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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유대인 생각 수업

by Casey,Riley 2022.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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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는 히브리어로 ‘위대한 학문’, ‘위대한 연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유대교의 법률, 판례,
전통적 습관, 축제, 전승가례, 사상, 생활양식 등이 집대성되어 있는 《탈무드》는 유대인들의 정신
적 유산으로서 삶을 지탱해 주는 지혜서 구실을 해왔다. 이 책은 《탈무드》를 통해 유대인들의 내
면에 자리 잡은 삶의 등식을 밝히고,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갈 지혜를 제시하고 있다.

유대인 생각 수업


▣ Short Summary
유대인들은 《탈무드》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라’고 적고 있다. 또한 ‘오
늘이 최초의 날이자 최후의 날’이라고 명시하면서 책을 정원으로 삼고 즐기되 죽음의 바다, 사해처럼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탈무드》는 《구약성서》 중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
위기, 민수기, 신명기)인 토라와 함께 유대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지혜의 바다로 유대인들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지주가 있었기에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세계를
떠돌며 혹독한 시련을 겪었음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탈무드》는 흩어져 있는 유대 민족
을 단단히 결속해 주고 포근히 감싸는 어머니의 품처럼 위안을 준다.
‘위대한 학문’, ‘위대한 연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탈무드》는 모두 1만 5천여 페이지에 250만 개 이
상의 낱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무게만도 75kg에 달한다, 그래서 탈무드를 빌려 볼 사람은 트럭을
대동해야 한다는 말이 생기게 된 것이다. 흔히 《탈무드》는 법을 논하지만 법전이 아니고, 역사를 논
하지만 역사책이 아니며,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인명사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
다고 백과사전도 아니다. 《탈무드》는 한 마디로 유대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지혜서이다.
《탈무드》에는 생활 규범이 있고 그 규범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에게로, 그리고 자식에게로 전승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생각할 때 유대 민족이 《탈무드》를 지켜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탈무드》가 유대
민족을 지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탈무드》 본문은 한결같이 두 번째 페이지에서부터 시작되고,
첫 페이지에는 독자가 스스로 경험한 것을 적어 넣도록 되어 있다. 즉, 책을 읽는 사람이 거기에 자기
의 경험을 써 메워야 하는 것이다.
《탈무드》는 전적으로《구약성서》인 토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토라를 보완하고 더 넓게 펼친 것
이 《탈무드》인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출현 이후 기독교인들은 유대 문화를 무시하고, 《탈무드》
의 존재를 단호히 거부해 왔다. 그래서 《탈무드》를 닥치는 대로 불사르고 수집하여 파괴했다.
오늘날 《탈무드》는 바빌로니아의 《탈무드》와 팔레스티나 《탈무드》가 있는데, 그중 바빌로니아 《탈
무드》가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무드》는 많은 부분이 구전으로 전승되어 내려왔는데, 소실
될 것을 염려하여 전승자들을 불러 모은 일이 있었다. 그 전승자들 중에서 머리가 뛰어난 사람들은 제
외시켰는데, 이는 《탈무드》의 내용이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런 《탈무드》는 히브리어를
비롯하여 바빌로니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북아메리카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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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생각수업

《탈무드》의 중요한 가르침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지혜는 지식의 동화 작용을 거쳐
야 자양분이 되고, 그 자양분이 나무를 성장하게 한다. 그래서 지혜의 꽃을 피우고 아름다운 향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탈무드》를 읽다 보면 사물에 대한 사고방식을 확립시켜 주고, 그 뜻을 속
시원하게 이해시켜 주기 때문에 흡족함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두뇌 회전이나 정신을 단련시키는 데
이보다 더 훌륭한 책은 없는 것 같다. 한 마디로 《탈무드》는 유대인의 혼이라 할 수 있다.
▣ 차례
Ⅰ. 탈무드와 유대인
제1장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제2장 유대인과 탈무드
제3장 유대인들의 민족의식
제4장 유대인의 상술
Ⅱ. 탈무드의 지혜
제1장 탈무드의 지혜 눈
제2장 탈무드의 감성 귀
제3장 탈무드의 이성 머리
제4장 탈무드의 오감 손
제5장 탈무드의 전통 발
Ⅲ. 탈무드 유머
제1장 돈은 지혜로운 사람을 부른다
제2장 잉어에 대한 형벌
제3장 신분에 따른 대우
제4장 구두쇠의 유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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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생각수업

유대인 생각 수업

Ⅰ. 탈무드와 유대인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유대인의 역사와 탈무드: 서기 70년 로마의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정복하였다. 일부 유대인은 난공불락
의 요새 마사다에서 결사항전을 펼쳤지만, 73년에는 끝내 그마저도 함락되고 말았다. 로마는 그 기념
으로 개선문을 세우고 금화를 만들었다. 그 금화에는 라틴말로 ‘유대아 데빅터’ 및 ‘유대아 가프터’라는
글귀와 로마 병사의 발밑에 꿇어 앉아 있는 유대 여인을 조각해 넣었다. ‘유대아 데빅터’라는 말은 ‘유
대를 격파하였다’는 뜻이고, ‘유대아 가프터’라는 말은 ‘유대를 사로잡았다’는 뜻이다.
이후 유대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를 맞게 되었고, 로마인들은 승리에 도취했다. 그런
데 승리에 도취해 있던 로마제국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사라졌고, 패배의 고배를 마셨던 유대인들은 살
아남아 시오니즘을 앞세워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스라엘이라는 말
은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얍복강 나루를 건너려 할 때 천사와 씨름하여 이긴 다음
얻은 이름이다.
《탈무드》는 5천여 년 동안 유대인들이 생활하면서 축적해온 지적, 사회적, 민족적, 종교적인 생활 규
범이라 할 수 있다. 《탈무드》는 각종 규례와 법규, 율법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법전은 아니며, 역사
에 대한 풍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지만 그 자체가 역사책은 아니다. 수없이 많은 현자와 학자들에 대
해 기록되어 있지만 인물사전도 아니다. 또한 민속을 기록하여 전하는 보고이지만 인류학 논문집도 아
니다. 랍비들의 사상이 기록되어 유대사상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지만 신학의 논문집이 될 수도 없다.
《탈무드》는 체계적인 철학을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전체적인 통일성을 갖추고 있으며, 광범위한 주제
를 거침없이 다루고 있지만 그렇다고 백과사전은 아니다. 종교책도, 역사책도, 윤리책도, 철학책도 아
니지만 문학과 사상이 고루 포함되어 있다.
또한 《탈무드》는 단순히 사고와 결론을 집대성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결과뿐만 아니라 과
정까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누구나 독자적인 해석과 분석으로 탈무드의 주석자로서 풀
이에 가담할 수 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폭넓고 깊게 그리고 새롭게 전
하고 있다. 그들의 전통은 신의 계시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 연구와 응용은 인간의 손에 있었다.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신으로부터
받은 이성을 인간 중심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기원전 11세기에 사울 왕이 가나안 땅의 선주민 팔레스타인과 싸워 이스라
엘 왕국을 건설했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 형성의 명실상부한 기점이다. 그리고 사울의 뒤를 이은 다
윗 왕은 예루살렘을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이곳에 왕궁과 야훼의 성전을 세웠다. 그 뒤 이스라엘 사
람들에게 다윗 왕가와 더불어 야훼의 성전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민족적 자각의 중심지가 되었다.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솔로몬 왕이 죽고 이스라엘의 12지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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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생각수업

우벤ㆍ시므온ㆍ레위ㆍ유다ㆍ스불론ㆍ잇사갈ㆍ단ㆍ갓ㆍ아셀ㆍ납달리ㆍ요셉ㆍ베냐민) 중 유다족과 시므
온족을 제외한 10지파는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사마리아를 수도로 하여 북왕국을 탄생시켰다(기원전
922년). 북왕국은 여로보암 1세부터 약 200년간 19명의 왕이 통치했다. 이 북왕국을 남왕국 유다족과
구별해 ‘이스라엘’이라 불렀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남왕국 유다족과 갈라져 지내다 보니 보이지 않는
갈등이 이어졌다. 그러다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 왕 사르곤 2세에 의해 북왕국이 무너졌고, 기원전
586년에는 바빌로니아 왕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가 남왕국을 멸망시켰다.
그런데 남왕국 유다족들은 바빌로니아(이집트ㆍ애굽)에 포로로 끌려가 노예로 살면서도 이것을 하나님
이 주신 시련으로 인식하고 신앙공동체를 만들고 시나고그를 세워 전통을 유지했다. 에스겔이 그발 강
가의 성읍 델아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도, 바빌로니아에 끌려갔던 다니엘이 서기관 모임을 조
직하고 꿈 해몽과 벽에 쓰여진 외문자를 해석하여 총리가 된 것도 이때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538년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반세기 만에 노예 신분에서 풀려나 귀환했다. 그
러나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에 남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디아스포라가 형성되었다.
당시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살게 되면서 유다족과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동
의어가 되었다. 그리고 역사가들은 이를 기점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유다족을, 유다라는 말은 유대
민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4세기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통치 아래 들
어갔으며,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 하에서도 독립정부를
형성하여 로마제국에 저항하였으나 티투스 황제 때 엄청난 탄압을 받아 세계 각처로 흩어져 오랫동안
유랑하며 박해받는 생활을 하였다.
유대인들은 이후 2천 년 동안 유랑인으로 살면서도 《성서》를 마음의 지주로 삼고 《탈무드》를 지혜
의 받침대로 삼았다.《탈무드》는 시대를 뛰어넘어 유대 민족의 정신을 일깨워 주는 데 이제 막 인쇄되
어 나온 신문처럼, 샘물처럼,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그 전통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로마인들은 유대 민족을 점령한 후 예루살렘을 황폐하게 만들고 유대인이 팔
레스타인에 거주해서는 안 된다고 출입을 금지했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민족으로 만들기 위한 특
단의 조치였다. 이렇듯 유대 민족은 그리스 로마에 점령되었지만, 그리스 로마 문명은 결국 유대주의
모태에서 싹튼 문명이었음이 로마 멸망 후 1,600여 년이 지나서야 밝혀지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서구
문명의 정신, 도덕, 윤리, 사상의 뿌리는 결국 유대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서구인들의
가구나 생활용품은 그리스 로마인들의 것이지만 그 문화는 누가 뭐래도 유대인들이 지녀온 유대인풍이
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핵폭탄보다 더 강력한 유대인들의 문화는 흐트러지지 않고 지금까지 면면히 이
어지고 있다.
유대인들은 강물처럼 흘러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의 세 대륙에 흩어져 있었지만 하나의 민족이며,
하나의 종교와 언어, 그리고 여호와의 법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들은 이교도의 국가에 살면서 국가 안
의 국가로 조직되어 서로를 보호하고 의지했다. 그중에 《탈무드》는 법과 윤리로서 세대와 국경을 뛰
어넘어 하나로 결합되어 사는 지혜를 일러주고 있다. 결국 유대인들만의 보이지 않는 국가 연합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말이다. 《탈무드》는 이 국가연합의 사법, 무역 규칙, 상업, 부동산, 손해, 계약의 이
행 등 광범위하게 경제 활동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국제법으로서 기능한다. 《탈무드》를 가르치는
유대교의 랍비는 종교적 관습뿐만 아니라 상거래, 국제 무역 문제, 국제법의 판례에 대해서까지 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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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생각수업

들이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국제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유대인들의 무역활동 규모가 커지자 각 나라에서는 유대인들을 바
라보는 눈길이 달라졌고, 유대인들이 자신들 국가의 안위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불안감
이 자국 내 유대인들을 감시하고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전통을 따르고 서로 소식을 전했을 뿐 살고 있는 곳에서 나라를 갖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유대
인들은 국가라는 큰 틀 속에서 보면 아주 작은 소수 민족이다. 더욱이 나라를 잃고 세계 도처에 흩어
져 있으며, 그 수를 합쳐 봐야 겨우 2천만 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디아스포라는 유대인들이 겪은 핍박: 디아스포라는 이스라엘에 살고 있지 않은 유대인이라는 의미이다.
유대인이 디아스포라를 맞은 것은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가면서부터였다. 전쟁으로 나라가 멸망하
자 유대인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세계 각국을 유랑하며 핍박을 받았다.
유대인들은 《성서》 ‘토라’를 통하여 자기들의 조상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신이 어떻게 자신들을 세웠
는지 상세히 알고 있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18세기경 유목민으로, 현재의 이스라엘 땅에 이주해 살기
시작했다. 《성서》에 유대인의 조상으로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이 무렵의 인물이다. 유대인들은 이스라
엘이라는 땅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만 중동의 소수 민족으로 이리저리 쫓기면서 살았다. 지
형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유럽으로 통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천
혜의 요충지이자 변란이 서로 끊이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런 변란 속에서 이집트의 노예로 끌려가는가
하면, 바빌로니아로 납치되어 노예로 살기도 했다.
이러한 수난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유대 왕국은 사울 왕, 다윗 왕, 솔로몬 왕 등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원후 70년 유대인들은 로마에 정복되어 그들의 조국 이스라엘에서 추방되었다. 이로
써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추방된 유대
인들은 대부분 유럽으로 건너갔으며, 그중 일부는 아랍과 터키로 가 나라 잃은 설움과 멸시를 겪으며
2등 시민으로 살았다. 아랍과 터키로 이주한 유대힌들은 그다지 심한 박해는 받지 않았다. 그러나 유
럽으로 건너간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인들의 끈질긴 박해를 받아야만 했다. 유럽인들은 유대인들이 하
나님의 독생자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선택함으로써 게토에 갇히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유
대인임을 나타내는 치욕의 노란색 별을 택했다. 나중에는 노란색 별이외에도 특별히 정해진 복장을 입
어야 했고 그리스도교인과 길에서 마주치면 비켜서서 길을 양보해야만 했다. 시나고그를 세우는 것도
일체 금지되었다. 개종만 하면 편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육체적 제한 조건을 토
라와 《탈무드》의 빛으로 비추면서 지성과 신앙으로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서 추방되어 각국으로 밀려들자 로마 교황 바울 4세는 1555년 유대인들을 따로
살게 해주었다. 그때부터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부락을 게토라고 불렀다. 게토는 스페인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그리고 터키,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시행되었으며 19세기 초까
지 계속되었다. 유대인들은 다른 나라에 얹혀사는 처지라 자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칼이나 창을 가
질 수 없었다. 따라서 외부로부터 위협을 막기 위해서는 벽을 쌓거나 울타리를 쳐야 했다. 하지만 나
라가 없으므로 지켜야 할 땅도 군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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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생각수업

유대인들은 게토에 모여 사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1492년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에서는 그리스도
교로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을 추방했다. 이들 대부분이 북아프리카와 터키로 이주했으며, 게토의 다른
표현인 슈터틀이 베네치아를 비롯하여 비엔나와 프랑크푸르트와 프라하 등 유럽 도시로 확대되었다.
비록 나라는 없었지만 유대인들은 배움으로써 유대인이 되고 《성서》를 통해 정체성을 지켜왔다. 흔
히 국토를 잃었을 때 민족이 멸망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문화와 종교를 버리고 점령자에게
동화될 때 확실하게 멸망하는 것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고대부터 학문을 숭고한 것으로 여겼으며, 랍비(유대교의 율법학자)는 유대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존재였다. 유대인의 아이들은 용사나 왕자를 영웅이라 여기기보다는 지혜롭고 현명한 현인이
되는 것을 이상형으로 숭상했다. 유대인들은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식을 갖고, 12세가 되면 ‘바 미츠
바’라는 성년식을 치렀다. 이 성년식은 지금까지 받아 온 가정교육을 끝내고 성년이 되는 것을 뜻하는
데, 이때 《성서》나 《기도서》를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유대인은 누구나 글을 안다.
유대인 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차별 없는 민주주의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
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 사회는 고대로부터 철저한 평등주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 따라서 누구라도 교육을 받고 배울 권리가 있으며, 《성서》를 읽고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지혜를 넓혀 갔다. 그들의 배움의 욕구는 《성서》에만 그치지 않고 성서 외에도 많은 책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탈무드》이다. 《탈무드》를 펼쳐 보면 최초의 단 한 사람, 아담이 등장한다. 단 한 사람,
한 인간을 지칭한 것은 아담 이후의 어느 한 사람이건 그의 세계는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한 인간을 멸망시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과 같다는 말이
다. 그만큼 인간이 고귀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과 탈무드
배움을 날줄로 실천을 씨줄로 삼아: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책의 겉표지나 뒤표지와 같다’고 《탈
무드》는 말한다. 책의 겉표지에 제목이 있듯이 인생을 살아가야 할 방향과 살면서 겪어야 할 수많은
체험을 그 책 속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일주일의 모든 날을 교육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낸다. 유대인 철학자 이븐 데이븐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책을 당신의 친구로 삼으라. 당신의
동반자로 삼으라. 서재를 당신의 낙원으로 삼으라. 과수원으로 삼으라. 향기로운 과일을 그곳에 모으
라. 그곳에서 꺾은 장미로 당신을 아름답게 장식하라. 정원을 돌며 새로운 경치를 구경하라. 그러면 당
신의 희망은 항상 신선하고 당신의 영혼은 기쁨 속에서 넘쳐흐르리라.”
사람이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다면 나이가 많고 적음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혹 나이가 많아
서 배울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삶의 목표나 이상이 없는 것으로, 그는 이미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탈무드》는 말하고 있다. 사람은 배움으로써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청춘이란 나이로 따
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의욕적이고 생기발랄한 태도는 말 그대로 젊음이다.
따라서 삶의 태도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탈무드》는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하게 많은 것을 지적한다. 걷는 법, 뛰는 법, 먹는 법,
앉는 법 등 살아가는 온갖 것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
는 어떻게 해야 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는 것까지 세세히 일러주고 있다. 그
러면서 배우는 것이야말로 성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배우
라고 권하고 또 그렇게 배운다. 배움에는 아래위가 없으며, 이는 랍비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배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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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생각수업

는 끝이 없다. ‘방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보다 배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 존귀하
다’는 말은 ‘포도송이가 무거우면 아래로 숙인다’는 말처럼 유대인들에게 자극적인 교훈이다.
“매일 오늘이 당신의 최후의 날이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매일 오늘이 당신의 최초의 날이라고 생각하
라.” 인간은 하루하루를, 그리고 1시간 1시간, 1분 1분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루하루가 인생
인 것이며, 1분 1초가 인생인 것이다. 이것이 기본이 갖추어진 삶이고 사소한 것 같은 기본의 소중함
이다. 만약 오늘이 최후의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하루를 가장 충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 만약 최초의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최선을 다해 충만한 하루가 되도록 힘쓸 것이다. 삶은 여러 번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아니다. 그 하루는 단 한 번 밖에 오지 않는다. 이런 인생을 어떻게 헛되게 살겠
는가? 만약 헛되게 산다면 내 생명에 대한 죄인일 수밖에 없다. 헛되지 않게 살기 위해 배움을 날줄로
삼고 실천을 씨줄로 삼아 삶의 양탄자를 짜 나가야 삶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과 탈무드: 유대인들은 기도의 의미를 ‘히트파렐’이라 한다. ‘히트파렐’은 ‘스스로 평가한다’ 혹은
‘자기를 달아본다’는 의미다. 이는 여호와 앞에 자기가 얼마만큼이나 부응했는지 재본다는 의미를 가지
고 있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행위가 얼마나 옳았는
지, 얼마만큼 세상을 옳게 만들었는지를 스스로 평가하는 기도를 한다. 자기가 구하는 것, 자기가 갈망
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은 여호와에게 욕망의 향수를 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기도는 ‘신이
바라는 자기’를 만들어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탈무드》는 전체 6부로 농업ㆍ제사ㆍ민법ㆍ형법ㆍ사원ㆍ순결ㆍ불순결로 이루어져 있다. 그 구성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는데 반드시 미쉬나라는 부분에서 시작한다. 미쉬나는 유대인들의 율법을 말하며, 이
는 족장 혹은 랍비들이 편집한 구전 율법의 수집본을 일컫는다. 이 미쉬나는 200년경에 편찬되었으며
겨우 500g의 작은 책으로, 후에 논의와 토론 부분을 정리하여 실은 것이 《탈무드》이다. 즉,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의 저작 모음집이다.
《탈무드》는 할라카와 학가다로 나뉘는데, 할라카는 토론 부분으로, 유대인의 윤리 도덕 법칙과 제의,
유대인의 생활방식을 예시한 가르침을 말한다. 할라카는 법률적이지만 인간의 모든 일이 하나님을 섬
기는 일과 관계가 있도록 하여 신의 뜻에 절대성을 확립하는 데 깊은 의미를 두고 있다. 한편 학가다
는 히브리어로 ‘설화’라는 뜻으로, 할라카가 율법적이라면, 학가다는 설화적인 것으로 내적 경건과 종
교적 헌신에 목적을 둔다. 할라카가 유대 민족으로서의 의무를 가르쳐 준다면, 학가다는 그 의무를 수
행하고자 하는 마음의 의지를 어떻게 다지게 하는가를 보여준다. 할라카는 유대인의 생활로, 제사ㆍ예
술ㆍ식사ㆍ건강ㆍ언어ㆍ대인관계 등 모든 행위가 이에 속한다. 그리스도교인은 그리스도교를 믿으면
기독교인이 되지만, 유대인은 오직 할라카에 맞는 행동을 해야만 유대인이 되는 것이다.
학가다는 탈무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데 철학ㆍ신학ㆍ역사ㆍ도덕ㆍ시ㆍ속담ㆍ성서 해설ㆍ과학ㆍ의학
ㆍ수학ㆍ천문학ㆍ심리학ㆍ형이상학 등 인간의 지혜가 담겨 있는 부분을 말한다. 그러나 《탈무드》의 예
로 제시한 말 중에는 7년 동안이나 토론을 벌였지만 끝내 결론은 ‘모른다’였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런 《탈무드》에 남자의 일생을 일곱 단계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는 부분이 있다.
첫째 단계는 한 살로, 모심을 받는 왕의 단계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살 때는 모든 사람이 안아주고
달래주고, 불면 날아갈까 떨어지면 다칠까 돌봐주는 왕자의 단계이다. 둘째 단계인 두 살 때는 돼지와
같은 단계이다. 똥을 싸놓고도 울기만 하고,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입으로 가져가 늘 돌봐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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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생각수업

하기 때문이다.
셋째 단계는 열 살로, 어린 양과 같은 단계이다. 열 살은 세상 물정을 막 터득하는 시기로 부모에게 기
쁨을 주고 티 없이 밝은 표정으로 세상에 펼쳐 나갈 원대한 꿈을 키워 비상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넷
째 단계는 열여덟 살로, 말과 같은 단계이다. 몸집이 커지고, 지금까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였다면 이제 부모의 품을 벗어날 때가 되어 이성에 눈뜨는 단계이다.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해 과시하
고 싶고, 세상을 향해 날고 싶은 원대한 꿈을 갖는 시기이다.
다섯째 단계는 청년기로, 당나귀 같은 단계이다. 이제 짝을 만나 장가를 가고 고삐 채인 당나귀가 되
어, 무거운 가정의 짐을 지고 사회의 일원이 되어 힘겹게 터덜터덜 걸어가야 하는 시기이다. 여섯째
단계는 중년기로, 개의 단계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사리를 판단하고, 서로
공대하면서 수평을 유지하되 부양할 가족을 위해 소신을 꺾거나 자기의 고집을 접는 시기이므로 개로
비유되는 시기이다.
일곱째 단계는 노년기로, 원숭이 단계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면 어린이처럼 온순해지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므로 노년의 쓸쓸함과 고독을 느껴야 하는 연민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처럼 여러 단계로 상세하게 인생을 논하고 있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결론은 ‘모른다’가 정답일 수 있
다. 아무리 세분하여 설명하여도 결코 그것이 정답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Ⅱ. 탈무드의 지혜
탈무드의 지혜ㆍ눈
세 가지의 슬기로운 일: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이 여행 도중 병에 걸려 앓아눕게 되었다. 아무래도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여관 주인에게 부탁했다. “나는 이제 곧 죽게 될 것 같습니다. 내가
죽었다는 전갈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내 아들이 찾아오거든 내 소지품을 모두 내어 주십시오. 저의 모
든 것이 그 안에 있습니다. 단, 그가 세 가지의 지혜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절대 내어 주지 마십시오.
내가 여행을 떠나올 때 이미 그에게 ‘내가 만약 여행 중에 죽는다면 세 가지의 지혜로운 일을 행하여
야만 유산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라고 유언을 해 두었으니까요.”
그 남자가 죽자, 여관 주인은 유대 의례에 따라 그를 매장하고 그의 아들에게 기별하였다. 아들은 아
버지의 부음을 전해 듣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그는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여관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여관 주인에게 여관 위치를 아들에게 알려주지 말라고 부탁했기 때문
이었다. 아들은 자기 힘으로 그 여관을 알아내야만 했다. 아들은 때마침 땔감 장수가 장작 다발을 한
짐 지고 걸어가는 것을 보고 그 땔감 장수를 불러 장작을 산 다음, 그것을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이
죽은 여관으로 배달해 달라고 부탁한 뒤 그 땔감 장수의 뒤를 따랐다. 여관에 도착하자 여관 주인은
장작을 주문한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땔감 장수가 말했다. “아니올시다. 지금 제 뒤에 따라오신 분
께서 이리로 배달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들의 첫 번째 지혜로운 일이었다.
여관 주인은 그 아들을 기꺼이 맞이한 후 저녁 식사를 차려주었다. 식탁에는 다섯 마리의 비둘기와 한
마리의 닭이 요리되어 나왔다. 그리고 주인 부부를 비롯해 두 아들과 두 딸이 함께 자리하여 모두 일
곱 사람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여관 주인이 유대인의 아들에게 말했다. “상에 차려져 있는 음식을 모두
에게 고루 나누어주시오.” 그러자 아들이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주인어른께서 나누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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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생각수업

시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여관 주인이 다시 말했다. “아니오. 당신이 우리 집에 온 손님이
니까 당신이 좋을 대로 나누어주시오.”
아들은 하는 수 없이 음식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비둘기 한 마리를 주인의 두 아들에게 나누
어준 다음, 또 한 마리를 두 딸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남은 세 마리 중 한 마리를 주인 부부에게
나누어준 다음, 나머지 두 마리를 자기 몫으로 몽땅 차지했다. 이것이 그가 행한 두 번째의 지혜로운
일이었다. 집주인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못마땅한 눈치를 보이자 아들은 다시 닭 한 마리를 가지고 먼
저 닭의 머리를 떼어 주인 부부에게 준 다음, 두 다리를 떼어 두 아들에게 주었고, 두 날개를 떼어 두
딸에게 주었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의 커다란 몸통을 자기 몫으로 차지했다. 이것이 마지막 세 번째
지혜로운 일이었다. 그러자 주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것 보시오, 손님!
당신이 비둘기 요리를 나누어줄 때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닭 요리까지 그런 식으로 나누다니 아무리
봐도 공평하지 않소. 도대체 이게 무슨 경우요?”
그러자 유대인의 아들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처음부터 저는 이 음식을 나누는 일을 맡고 싶지가 않았
습니다. 하지만 주인장께서 간곡하게 말씀하시는데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싶어 나름대
로 최선을 다해 나누었을 따름입니다. 그럼, 이렇게 나눈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주인어른과 부인과 비둘기 한 마리를 합하면 셋이요, 두 아드님과 비둘기 한 마리를 합하면 또 셋이요,
두 따님과 비둘기 한 마리를 합하면 역시 셋입니다. 그리고 저와 비둘기 두 마리를 합하면 역시 셋입
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공평한 방법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닭 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 내외분
께선 이 집안의 어른이시므로 머리를 드린 것이고, 두 아드님은 이 집안의 기둥이므로 두 다리를 드렸
고, 두 따님은 이제 머지않아 날개가 돋아 시집으로 날아갈 것이므로 날개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 올 때 배를 타고 왔고, 돌아갈 때도 배를 타고 돌아가야 하니까 배와 같은 모양을 한 몸
통을 가졌습니다. 이제 아버님께서 맡기셨던 유산을 제게 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탈무드의 감성ㆍ귀
랍비의 답변: 로마의 황제가 자신과 생일이 같은 이스라엘의 한 랍비와 각별하게 친분을 유지하고 있
었다. 황제는 랍비에게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을 때면 심부름꾼을 보내 그의 의견을 듣곤 했다. 어느
날, 황제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랍비에게 전했다. “내가 꼭 하고자 하는 바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내
가 죽고 난 후 내 아들로 하여금 황제의 자리를 잇게 함이요, 둘째는 이스라엘의 도시 타이베리아스를
관세가 없는 자유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밖에 해내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두 가지를 모두 해낼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는가?” 그러나 당시 로마와 이스라엘은 관계가
최악의 상태였으므로 랍비는 황제에게 답을 보낼 수가 없었다. 만일 자신이 로마 황제에게 답변을 보
낸 사실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게 되면 엄청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심부름꾼이 돌아오자 황제가 물었다. “수고했다. 편지를 받고 나서 그가 어떻게 하더냐?” “네! 그는 편
지를 읽고 나자 자기 아들을 어깨 위에 올려놓더니 비둘기를 그 아들에게 주어 하늘 높이 날려 보내게
했습니다. 그뿐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랍비의 뜻을 즉각 알아차렸다. 그것은 ‘우선 황
제의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 준 후에, 그 아들로 하여금 타이베리아스의 관세를 자유화하도록 하면 된
다’는 뜻이었다.
얼마 후, 황제가 랍비에게 또 다시 질문을 보냈다. “내 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이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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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생각수업

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랍비는 지난번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밭으로 나가, 채소 한 포기를 뽑
아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 또 한 포기를 뽑아왔고, 그런 행동을 몇 차례 반복하였다. 이번에도
황제는 즉각 랍비의 뜻을 알아냈다. ‘적을 한꺼번에 뿌리 뽑을 생각을 하지 마시오. 몇 차례에 걸쳐 채
소를 뽑듯이 한 명씩 제거하도록 하시오’라는 뜻이었다. 이렇듯 인간은 자기 생각을 말이나 글이 아니
더라도 무언의 대화로 충분히 나타낼 수가 있다.
탈무드의 이성ㆍ머리
인생의 세 친구: 왕으로부터 소환장을 받은 사람은 소집에 응하기 전에 세 명의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첫 번째 친구는 마음속 깊이 사귀는 사이였으며,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친구로 늘 소중하게 생각하
고 있었다. 두 번째 친구는 그가 마음속으로는 사랑하고 있었으나 첫 번째 친구만큼 소중하게 여기지
는 않았다. 세 번째 친구는 친구로는 생각하고 있었으나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왕의 소환장을 받은 그는 자기가 나쁜 짓을 저질러 벌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그래서 혼
자 갈 용기가 나지 않자 세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차례로 부탁을 했다. 그가 늘 소중하게 생각하는 첫
번째 친구에게 부탁하자, 그는 아무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그냥 거절했다. 두 번째로 귀중하게 여기
는 친구는 애매하게 거절했다. “대궐 문앞까지는 함께 가줄 수가 있네. 하지만 그 이상은 곤란하네.”
실망한 그는 다시 세 번째 친구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흔쾌히 응해 주었다.
“물론 함께 가주고말고. 너는 내가 알기에 아무런 나쁜 짓도 저지르지 않았으니 전혀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 내가 왕에게 가서 그런 사실을 잘 말씀드릴게.”
이렇게 격려까지 해 주었다. 세 친구는 각각 어떤 친구이며, 왜 그렇게 대답을 했을까? 첫 번째 친구
는 재산을 상징한다. 제아무리 재산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 할지라도 죽을 때는 고스란히 남겨 둔
채 혼자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두 번째 친구는 혈육ㆍ친척을 상징한다. 화장터나 무덤까지는 함께
따라가 주지만 결국 그를 무덤 속에 남겨 둔 채 돌아간다. 세 번째 친구는 선행을 상징한다. 선행이란
평소에는 별로 남의 눈길을 끌지 못하지만, 죽은 뒤에도 영원히 함께 있는 것이다.
탈무드의 전통ㆍ발
미래를 위한 투자: 한 노인이 정원에 묘목을 심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물었다. “영감님
께서는 이 나무에서 언제쯤 열매를 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한 10년쯤
지나면 열리지 않겠소?” 나그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영감님께서는 그때까지 사실 수 있으리라고 생
각하십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아니오, 그렇게 오래 살진 못하겠지요.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과수원에 과일이 많이 달려 있었소.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내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 나무들
을 심어 주셨기 때문이었소. 나도 지금 아버지와 똑같은 일을 하는 중이오.”

Ⅲ. 탈무드 유머
신분에 따른 대우
히틀러가 죽는 날이 유대인의 축제 날: 히틀러가 어떤 큰 결정을 할 때면 점쟁이의 말을 따랐다는 것
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가 어느 날 점쟁이를 불러들였다. “내가 언제쯤 죽을 것 같은가?” “네,
총통 각하는 어느 때고 유대인의 축제일에 돌아가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히틀러는 즉시 자기 테이
블 위에 있는 벨을 눌렀다. 곧 부관이 뛰쳐 들어왔다. “하이, 히틀러!” “빨리 유대인들의 축제일표를 가
져 와!” 부관은 이내 유대 달력을 가지고 왔다. 히틀러는 안경을 쓰고 한참 들여다보더니 안도의 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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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생각수업

내쉬었다. 축제일의 숫자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잘 들어라. 앞으로 유대인의 축제일에는
경호원을 백 배로 늘리도록 하라!” 그때 옆에 있던 점쟁이가 말했다. “하지만 각하, 그렇다고 마음을
놓으셔서는 안 됩니다. 각하께서 어느 때 돌아가시든 그날이 바로 그들에겐 축제일이 될 테니까요.”
구두쇠의 유언장
금고가 필요해서: 한 유대인 남자가 뉴욕 번화가의 은행에 들어와 대부 담당자 앞에 앉았다. 대부 담
당자가 유대인의 값비싼 양복과 구두, 시계, 넥타이핀 등을 훑어보고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네, 실은 대출을 좀 받으려고요…….” “얼마나 받으실 예정이신지요?” “1달러만 빌려주시오.” “지금 1
달러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1달러요.” “네, 물론 우리 은행에선 담보만 있으면 1달러 이상 얼마든
지 융자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은 고급 가죽 가방에서 주권, 채권 따위를 잔뜩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저것
합해 50만 달러 정도 되는데, 이 정도 담보면 되겠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그런데 빌릴 돈이 1달러
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1달러 대출 금리가 연 6%니까 6센트를 지불해 주고, 1년 후에
1달러를 갚아 주시면 담보들을 모두 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유대인은 인사를 하고는 1
달러를 지갑 속에 소중히 집어넣더니 일어섰다.
그동안 행원과 유대인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점장은 50만 달러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
째서 1달러를 빌리러 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유대인을 불러 세웠다. “저, 실례입니다만 50만
달러 상당의 재산을 가지고 계신 분이 왜 1달러를 빌리시는지 궁금합니다. 그 정도의 담보라면 저희
은행에서 30, 40만 달러도 빌려 드릴 수 있는데요.” “아니, 그럴 필요 없습니다. 오기 전에 금고상에
들러 금고를 사려고 했지만 비싸서 사지 않았소. 그래서 제일 싼 금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곳을 생각한 거요. 1년에 6센트로 이만큼 안전하고 훌륭한 금고를 어디서 살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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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생각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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