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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by Casey,Riley 2022.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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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애, 이중기 지음 / 전망
그동안 두 권의 연구서가 나왔고 백신애를 모델로 한 일본어 소설을 연구한 책도 발간되었다. 전
집이 만들어지고 연구가 온축되고 있으니 이제 평전을 기대해도 될 시점이 아닌가 성급하게나마
전망해 본다. 또한 백신애 문학이 널리 읽히는 대중화에도 힘을 쏟을 때인데, 이번『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의 간행이 이에 부응하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원전을 확인할 수 없는 소년 소설을 제
외하고 백신애의 본령인 소설을 오롯하게 재구성하였다. 작가가 개작한 소설은 개작본을 저본으로
삼고 원문을 살리면서 가능한 현대어 표기로 바꾸어 가독성을 높였다. 원본과 마찬가지로 방언은
주석을 통하여 설명했고 한자는 병기하였다. 잘못된 문장을 바로잡고 일본어는 가능한 우리말로
전환하였다. 이와 같은 작업이 백신애 문학이 연구자의 범위를 넘어 시민과 청소년에게 널리 읽히
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백신애, 이중기 지음


▣ Short Summary
백신애는 돈 많은 아버지의 외동딸이었으나, 열한 살이 되도록 학교에는 다니지 못했다. 불과 오륙십
미터 거리에 있는 학교에 들어가기는 열두 살, 영천공립보통학교 2학년 편입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출생 연도를 1907년으로 고쳐 대구 신명여학교로 전학했다가 돌연 중퇴해 버린다. 1922년 영천공립보
통학교 4학년에 편입하는데, 그 시기가 하필이면 12월이었다. 1923년 3월 18일에는 또 출생 연도를
1906년으로 고쳐 경북도립사범학교에 입학한다. 낮도깨비 장난 같은 일들은 모두가 안하무인인 아버
지 짓이었다.
백신애는 일 년짜리 단기 강습과를 졸업한 후 경북사범학교 최초의 여교사가 되었지만, 두 해를 채우
지 못하고 열여덟 초겨울에 사표를 던져 버렸다. 그 후, 경성에서 숱한 소문을 뿌리고 다니는 화제의
여성이 되었다. 열렬한 여성 운동가에서 느닷없이 전향을 해 버린 열아홉 처녀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밀
항을 했고, 시베리아를 방랑했으며, 영화배우가 된 일본 유학 중에 긴자 뒷골목 카페에서 일했으나 술
집 여자로 둔갑이 되었고, 능란한 솜씨의 가무에다 남편을 두고도 간통한 여자라는 악성 소문에 시달
렸다.
1934년 《신여성》 1~2월호에 「꺼래이」를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꺼래이」는 자신의 블
라디보스토크 밀항과 시베리아 방랑 경험이 짙게 배어 있는 소설이다. 이후 「적빈」, 「복선이」 등 작
품을 써내면서 193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보했지만, 몸에 고약한 병이 찾아들고,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남편의 폭행에 만신창이가 된 몸을 끌고 친정으로 돌아오면서 파탄이
나고 만다.
백신애는 생전에 위장병의 고통을 견디느라 자주 독한 술을 마셨다고도 한다. 췌장암으로 조용히 죽음
을 기다리고 있던 1939년 4월 시인 백석의 권유로 「청도기행」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죽음조차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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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오하고 폭음을 하는 백신애에게 백석, 백철이 글쓰기를 권유하자 그는 경성을 떠난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4월부터 왕성하게 작품을 써낸다. 단편 「혼명에서」, 산문 「봄 햇살을 맞으며」 등이 그것이다.
1939년 6월 23일 오후 5시, 백신애는 격렬한 고통 속에서 간신히 눈을 감았다.

▣ 차례
일러두기
구모룡 / 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발간을 기념하며
나의 어머니
꺼래이
복선이
춘기春飢
채색교彩色橋
적빈赤貧
낙오
악부자顎富者
정현수鄭賢洙
학사學士
호도糊途
정조원貞操怨
어느 전원의 풍경
광인수기狂人手記
소독부小毒婦
일여인一女人
혼명混冥에서
아름다운 노을
의혹의 흑모黑眸
이중기 / 짧고 격렬했던 백신애의 삶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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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백신애, 이중기 지음

나의 어머니
××청년회 회관을 건축하기 위하여 회원끼리 소인극素人劇을 하게 되었다. 문예부에 책임을 지고
있는 나는 이번 연극에도 물론 책임을 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시골인 만큼 여배우가 끼면 인기
를 많이 끌 수가 있다고 생각한 청년회 간부들은 여자인 내가 연극에 대한 책임을 질 것 같으면 다른
여자를 끌어내기가 편리하다고 기어이 나에게 전 책임을 맡기고야 만다. 그러니 내 소임은 출연할 여
배우를 꾀어들이는 것이 가장 중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 트레머리(가르마를 타지 않고 뒤통수 한복
판에 넓적하게 틀어 붙인 머리)가 사오 명에 불과한 이 시골이라 아무리 끌어내도 남자들과 같이 연극
을 하기는 죽기보다 더 부끄러워서 못 하겠다는 둥, 또는 해도 관계없지만 부모가 야단을 하는 까닭에
못 하겠다는 둥, 온갖 이유가 다 많아서 결국은 여자라고는 출연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되어 부득
이 남자들끼리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밤마다 ××학교 빈 교실을 빌려서 연극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습을 시키고 있는 나는 아직 예전 그대로 완고한 시골인 만큼 일반에게 비난을 받지나 않을까? 하
는 여러 가지로 완고한 시골에서 신여성들이 취하기 어려운 행동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다른 위원들과 같이 여러 번 토론도 해 보았으나, 내가 없으면 연극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수밖에 없다
는 다른 위원들의 간청도 있어서 나는 끝까지 주저하면서도 끝까지 일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그 공연을 이틀 앞둔 날이다. 학교 사무실 시계가 열한 시를 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우리는 연습을 그
쳤다.
딸자식은 으레 시집갈 때까지 친정에서 먹여 주는 것이 예로부터 해 오던 습관이라면, 나도 아직 시
집가지 않은 어머니의 하나 딸이니 놀고먹어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지만, 오빠가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고 보통학교 교원으로 있던 내가 여자청년회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학교 당국으로부터 하루아침
에 권고사직을 당하고 나서는 그대로 할 일이 없으니 부득이 놀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날마다
먹고는 식구가 단출한 얼마 안 되는 집안일이 끝나면 우리 어머니의 말씀마따나 빈둥빈둥 놀아 댄다.
어떤 때는 회관에도 나가고 또 어떤 때는 가까운 곳으로 다니며 여성단체를 조직하기에 애를 쓰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또는 밤이 새도록 책상 앞에서 책과 씨름을 하는 것뿐이다. 한 푼도 벌
어들이지는 못하지만 어쩐지 나는 나대로 조금도 놀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종

“아까운 재주를 놀리기만 하면 어쩌느냐.”
고 벌이 없는 것을 한탄하시기도 한다. 벌이를 하지 않으면 아까운 재주가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이
우리 어머니 생각이다. 그러면 나는
“아이고, 바뻐 죽겠는데.”
하고 딴청을 들이댄다.
“쓸데없이 남의 일만 하고 다니면서 바쁘기는 무엇이 바뻐.”
하며 나를 빈정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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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내가 밤낮 남의 일만 하고 다니는지 또는 내 할 일을 내가 하고 다니는지 그것은 둘째로 하고라도 나
의 거동은 언제든지 놀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오늘은 ××에서 ‘여자 ××회’를 발기하니 좀 와서 도와다오 하니, 거절할 수 없고, 오늘은 또 ××가
저희 집이 조용하다니 그곳에도 가서 하려던 얘기를 해 줘야겠고, 오늘은 또 ××회로 모이는 날이니,
내가 빠지면 안 될 것, 동무가 보내 준 책이 몇 권이나 있는데 그것도 읽어야겠고, 여러 곳에서 편지가
왔으니 꼭 답을 해 줘야겠고, 이것이 모두 나에게는 바빠 못 견딜 만치 바쁘고 모두가 해야만 할 일같
이 생각된다. 그러나 남의 눈에도 한 푼도 수입이 없으니 나는 날마다 놀기만 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것
도 무리가 아니다. 더욱이 우리 어머니, 어머니에게는 하루나 이틀이 아니고 몇 해든지 자꾸 나 혼자
만 바쁘고 남의 눈에는 ‘아까운 재주’를 놀리기만 하면서 먹기가 좀 어색하게 생각되지 않을 수가 없었
다.
열일곱 살 때부터 교원으로서 얼마 안 되는 월급이나마 받아서 꼭꼭 어머니 살림에 보태드릴 때는 내
마음대로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했었고, 또 마음으로는 하고 싶어도 그만 참고 있으면 어머니
가 척척 다 해 주시기도 했었다. 말하자면 어머니는 어떻게든지 내 마음에 맞도록 해 주시려고 애를
쓰시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으레 해야 할 말도 하기가 미안하고 아무리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이라도 불평을 말할
수가 없어졌다. 심지어 몸이 아플 때도 어디가 아프다는 말조차 하기가 미안해진다. 병원! 약값! 이것
이 연상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때때로
“사람이 오륙 명씩이나 모두 장정 밥을 먹으면서 일 년 내내 한 푼도 벌이라고는 하는 인간이 없구
나.”
하며 어머니의 얼굴이 좋지 않아지면 나는 말할 수 없는 미안스러움과 죄송스러운 감정에 북받치고
만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너무 심하게 구시면 어떤 때는
‘아이고 어머니도, 내가 벌지 않으면 굶어 죽는가베. 아직은 그래도 먹을 것이 있는데.’
하는 야속한 생각도 난다. 그러나 이 생각도 감옥에 들어 계시는 오빠를 위하여 차입을 한다, 사식을
댄다, 바득바득 애를 쓰는 어머니 모양을 생각하면 그만 가슴이 어두워지고 만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대문이 닫혔으면 어떻게 하나. 어머니가 아직 주무시지 않으시면 어쩔까.’
하는 걱정과 함께
‘지금 나에게도 무슨 돈이 월급처럼 꼭꼭 나오는 데가 있었으면…….’
하는 엉터리없는 공상을 하기도 했다. 가라앉지 않는 뒤숭숭한 가슴으로 조심스럽게 대문을 밀었다.
의외로 대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옳다, 되었다.’
나는 소리 없이 살며시 대문 안에 들어서서 도적놈처럼 안방 동정을 살폈다. 안방에는 등잔불이 감스
릿하게(불빛의 밝기가 낮아 어두침침한) 낮추어져 있었다.
‘어머니가 벌써 주무시는구나.’
하는 반갑고 안심되는 생각에 갑자기 가벼워진 몸으로 가만히 대문을 잠그고 들어서려니까, 안방 창
문에 거무스름한 어머니 그림자가 마치 지나가는 구름처럼 어른거리며 재떨이에 담뱃대를 함부로 탁탁
때리는 소리와 함께 길게 한숨을 쉬더니
“아이고 얘야, 글쎄 지금이 어느 때냐.”
하는 어머니의 꾸지람이라기보다는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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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아이고머니, 아직 안 주무셨구나.’
는 생각이 번뜩하자 나도 떨리는 한숨이 길게 나왔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직 이불을 펴지 않고
어머니는 밀창(미닫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지금까지 애꿎은 담배만 피우며 나를 기다리신 모양이다.
무겁던 가슴이 뜨끔! 해졌다. 이러한 경우는 교원을 그만두게 된 후로는 수없이 당하는 것이지만 그
래도 그대로 들어가 모르는 척하고 누워 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 가슴에 받치어 그대로 엉엉 마
음 풀릴 때까지 울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문턱에 걸치고 들여다보던 반신半身을 막 방 안에 들여놓으며 어머니 앞에 털썩 주저앉아서 하
하 웃었다. 그러나 그 순간 뒤에 나는 울고 싶으리만치 괴로웠다. 내가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너
무도 침울했던 까닭이다.
“이런, 어머니 어디 갔다 오셨어요? 벌써 열 시가 되어 오는데.”
나는 열두 시가 가까워 오는 것을 다행히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노기를 덜고자 일부러 열 시라고 했다.
물끄러미 등잔만 쳐다보던 거칠어진 어머니 얼굴에서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열 시?”
하며 나에게 반문하셨다. 나는 또 가슴이 뜨끔해졌다.
“열 시? 열 시가 무엇이냐? 열 시? 열 시라니! 열한 시 친지가 언제라고……. 벌써 닭 울 때가 되었
단다.”
나직하게 목을 빼 어안이 막힌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핀잔을 주기 시작하셨다.
나는 그만 온몸의 피가 뜨거워지는 것 같더니 그 피가 일제히 머리를 향해 달음질쳐서 올라오는 것
같아 진작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글쎄 지금이 어느 때라고! 네가 미쳤니? 지금까지 어디를 갔다 오느냐 말이다.”
그 말소리는 어머니다운 애정과 애달픔과 노여움이 한데 엉킨 일종의 처참한 음조에 떨리는 그것이었
다.
어리광으로 어머니의 노기를 풀려고 하하 웃기 시작한 나는 어머니의 이 말소리에 몸을 어떻게 지탱
할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 책상 위에다 머리를 내던지며 주저앉았다.
“남부끄러운 줄도 어쩌면 그렇게 모르니? 이 밤중에 어디를 갔다 오느냐 말이다. 네가 지금 몇 살이
니? 응. 차라리 나를 이 자리에서 당장 죽여나 주던지!”
“가기는 어디를 가요? 연극 연습한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거기 갔어요.”
이런 내 대답에 어머니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입을 벌린 그대로 얼굴이 푸르러졌다.
“연극하는 데라니? 아이그 이 애 좀 보게. 그곳이 글쎄 네가 갈 데냐. 아무리 상것의 소생이라도 계
집애가 그런 데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니? 모이는 자식들이란 모두 제 아비 제 어미는 모른다 하고 사
회니 지랄이니 하고 쫓아다니는 천하 상놈들만 벅적이는데…….”
“어머니, 잘못했어요. 남의 말은 하면 무엇해요. 저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만 주무세요.”
나는 덮어놓고 어머니를 재우려 했다. 나는 어찌하든지 어머니와는 도무지 말다툼을 하지 않으려 했
다. 아무리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켜도 점점 어머니의 노기만 더할 뿐인 것을 나는 잘 안다. 이따금 어
머니가 심심하실 때에 이야기를 하라고 하시면 옛이야기 끝에
“성인도 시속을 따르란 말이 있지요.”
하며 이야기 꼬리를 멀리 돌려서 내 입장과 행동을 변명도 하고 될 수 있는 정도까지 어머니를 깨우
치려고 애를 쓴다. 그러면 그때는 나에게 감복이나 한 듯이
“너는 어떻게 그런 유식한 것을 다 아느냐.”
하고 엄청나게 감복하시며 기특하고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신다. 그때만은 나도 어머니의 따뜻한 사
랑 속에서 숨을 쉬는 듯한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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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나면서부터 완고한 옛 도덕과 인습에 푹 싸인 어머니시라 그만 씻어 버린
듯이 잊어버리고 다시 자기의 주관으로 들어간다. 그런 까닭에 나는 어머니와 입다툼은 하지 않는다.
억지로라도 어머니를 누워 재우려고 겨우 책상에서 머리를 들었다.
“아이그 어머니! 글쎄 그만 주무세요. 정 그렇게 제가 잘못했거든 내일 아침이 또 있지 않아요? 그만
주무세요, 네?”
어머니는 휙 돌아앉아 담배만 자꾸 피우신다. 그 입술은 여전히 노여움에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 잘못했어요. 참 잘못했습니다. 잘못한 것만 야단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 이제부터 그러지 말라
고 하셨으면 그만이지. 에로나(정말로)! 주무세요. 왜 저를 사내자식으로 낳으시지 않으셨어요. 이렇게
잠도 못 주무시고 하실 것이 있습니까?”
억지로 어리광을 피우는 내 눈에는 눈물이 팽 돌았다. 나는 얼른 닦아 감추려 했으나 차디찬 널빤지
위에서 끝없이 떨고 있을 오빠의 쓰린 생각이 문득 나며 덩달아 솟아오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가 없었
다.
“어머니, 참 우스워 죽을 뻔했어요. 이 주사 아들이 여자가 되어서 꼭 여자처럼 어떻게 잘 하는지 우
스워서 뱃살이 곧을 뻔했어요. 모레부터는 돈 받고 연극을 합니다. 그때는 저녁마다 어머니는 공구경
을 시켜드리겠습니다. 참 잘해요.”
아무리 나는 애를 써도 어머니의 노기는 풀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점점 노기가 높아 가는 것 같았다.
어머니 무릎에 손을 걸었다.
“글쎄 왜 이러느냐. 내야 잘 때가 되면 어련히 잘라고. 보기 싫다. 내 눈앞에서 없어져라. 계집아이가
무슨 이유로 남자들과 같이 야단이냐. 이런 기막힐 창피한 꼴이 또 어디 있어.”
어머니가 어디까지든지 늦게 온 나를 이상하게 의심해 자기 마음대로 기막힌 상상을 해 가며 나를 더
럽게 말하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가슴이 터져 오르나 그래도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어머니 잡시다.”
하고 떨치는 손을 다시 어머니 무릎에 걸었다.
“팔자가 사나우려니까 천하제일이라고 칭찬이 비 오듯 하던 자식들이…… 아이고, 내 팔자도…… 너
보는데 좋네, 좋다 하니 내내 그러는 줄 아니? 그래도 제집에 돌아가면 다 욕한단다. 네 오라비도 그
렇게 열이 나게들 쫓아다니고 어쩌고 하더니 한 번 잡혀간 뒤로는 그만이더구나. 너도 또 추켜내다가
네 오라비처럼 감옥에나 보내지 별수 있을 줄 아니?”
나는 그만 도로 책상에 와 엎드렸다. 자신의 편함과 혈육을 사랑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모르고 도덕과
인습에 사무친 저 어머니의 자기 생명같이 키워 놓은 단 두 오누로 말미암아 오늘에 받는 그 고통을
생각할 때, 나는 가슴이 다시금 찌르르하고 쓰라렸다.
‘저 어머니가 무엇을 알리? 차라리 꾸지람이라도 실컷 들어 주자.’
하는 가엾은 생각에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방 안의 공기가 쌀쌀하게 움직이더니 납을 녹여 붓는 듯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이 얘, 밥 안 먹겠니?”
어머니의 노기는 한없이 올라가다가 풀리기도 잘한다. 그것은 마음이 약하신 어머니는 모든 짜증과
괴로움에 문득 속이 상하시다가도 그 속풀이를 하는 곳이 언제든지 얼토당토 않는 데 마주치고 만 것
을 스스로 깨달으면 곧 눈물로 변해서 사라지고 만다.
언제든지 밤참을 꼭꼭 잡수시는 어머니이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지금까지 잡숫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새삼스럽게 가슴이 차게 놀랐다. 갑자기 어떻게 대답을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안 먹겠어요.”
연극 연습을 하던 때에는 어느 정도까지 시장함을 느꼈었으나 지금은 모가지까지 무엇이 꽉 찬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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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았다. 뒤미처
“먹지 않아? 왜 안 먹어!”
어머니는 조금 불쾌한 어조로 다시 권하셨다. 잇따라 숟가락이 쇠그릇에 칼칼스럽게 마주치는 소리가
났다. 얼마 후에 또다시
“이 얘, 밥 먹어라. 네 오라비는 저렇게 떨고 있으련마는 그래도 나는 이렇게, 나는 먹는다. 저 나오
는 것을 보고 죽으려고…….”
목 메인 한숨과 함께 숟가락을 집어던진다. 나는 지금까지 참았던 울음이 와락, 치받쳐 전신이 흔들
렸다.
이윽고 다시 담배를 넣기 시작하시던 어머니가 지금까지의 것은 모두 잊어버린 것 같은 부드러운 말
소리로 다시 권하셨다.
“배고프지, 좀 먹으렴.”
나는 감격에 받쳐 다시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나 까닭에 썩는 속을 오빠를 생각해 눌러 버리고, 오빠를 생각해 애끓는 간장을 그나마 조금 편히 곁
에 앉힌 나를 위해 억제하려는 마음을 쓰는 어머니, 나는 그 어머니의 가슴을 잘 안다. 그 괴로움을 숨
쉴 때마다 느낀다. 기어이 몸을 일으켜 다만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 보이고 싶으리만치 내 감정은 서글
펐다.
천천히 마루로 나가시던 어머니가 얼마 후에 손에 감주 한 그릇을 떠 가지고 들어오셔서 내 옆에 갖
다 놓으시며
“밥 먹기 싫거든 이거나 좀 먹어라.”
나는 가슴이 터져라! 하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가엾은 어머니! 가엾은 딸! 담배 한 대를 또 피우고 난 어머니는 허리를 재이며 자리에 누우셨다. 내
가 이 감주를 먹지 않으면 어머니 속이 얼마나 아프시랴. 오빠 생각에 넘어가지 않는 음식이라도 내가
먹지 않을까 해서 일부러 많이 먹는 척하시는 가엾은 어머니가 얼마나 슬퍼하실까.
나는 한입에다 그 감주를 죄다 삼켜 버리고 크게 웃어서 어머니를 안심하시게 하고 싶은 감정에 꽉
찼으나 전신은 돌과 같이 여물어졌다.
석유가 닳을까 하여 등잔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이웃집 시계가 새로 한 시를 땡! 쳤다. 어머니가
후- 한숨을 쉬셨다.
‘아! 어머니! 가엾은 어머니! 지금 어머니는 내가 안타까운 어머니의 속을 알지 못하고 야속한 어머니
로만 여기는 줄 아시고 그다지 괴로워하십니까. 이 몸을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 김金가에게 바쳐 기뻐
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잠시라도 보고 싶을 만치 이 딸의 가슴은 죄송함에 떨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어머니를 마음 편하게 모실 수가 있을까요. 내가 사랑하는, 장래 내 남편이 되기를 어머
니 모르게 허락한 ××. 그도 나와 같은 울음을 우는 불행과 저주에 헤매는 가난한 신세이외다. 그러면
나는 무엇으로 어머니를 편하게 할까요. 그러나 아! 나의 어머니여, 나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김가에
게도 이 몸을 바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내일 밤도 빠지지 않고 가야 합니다.
가엾은 나의 어머니여.’
《조선일보》(1929. 1. 1~4)

복선이
유록 저고리 다홍치마에 연지 찍고 분 바르고 최 서방에게 시집오던 그날부터 이때까지 열네 해 동안
이나 불려 오던 복선이라는 그 이름 대신 ‘최 서방네 각시’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

-8-

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울타리 밑에서 동네 아가들 소꿉놀이 서투른 어린 솜씨로 만든 풀각시 같은 복선이다. 갸름한 얼굴이
라든지 호리호리한 몸맵시며 동글동글한 눈동자, 소복한 코끝이며 다문다문 꼭꼭 박힌 이빨 모두가 어
느 편으로 보아도 소꿉놀이에 나오는 각시 그대로였다.
지금은 최 서방네 각시인 복선이 맏이 되는 복련이도 열네 살 되는 가을에 남의 집에 머슴살이하는
김 도령에게 시집을 갔다가 불행히도 사들사들 마르기 시작하더니 단 일 년도 못 되어 애처롭게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부모는 복선이도 일찍 시집을 보냈다가 복련이처럼 죽게 될까 하여 많이 키
워가지고 성내城內의 조금 맑은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생각했으나, 한 탯줄에 다섯이나 딸을 낳은
그의 부모라 조금 그럼직한 혼인 말이 나오면 두 귀가 번쩍 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최 서방에게도 그
의 부모는 반기듯이 응해 단 한 말에 시집을 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최 서방은 전에 철로공부鐵路工夫 노릇도 해 왔고 지금은 품팔이 일꾼이라 머리도 깎았고 일하러 나
갈 때는 누런 골덴 바지도 입고 운동화도 신고 하니 큰딸의 남편 김 도령보다는 겉만이라도 나을 뿐
아니라 얼굴도 미끈한 데다가 큰딸의 시집과 같이 층층시하가 아니라 단 하나 시어머니뿐인 단출한 식
구였으므로 시집을 보내면 좀 편하리라 한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딱한 사정이 있었다. 그것은 복선이 하나 입이라도 덜어 버리는 것이 그들에게는
짐을 하나 벗게 되는 것이 되므로 이왕 보내야 할 시집이니 이삼 년 더 키워서 보내나 마찬가지일 것
이니, 맏형이 죽은 것도 제 명이요 제 팔자이지 열네 살에 시집갔다고 죽었을 리야 있었겠나 하는 것
이다.
복선이만 해도 나면서부터 오늘까지 보리밥 덩이라도 맘껏 먹어 보지도 못했고 굶주림에 절여진 그다.
시집을 가면 일도 많이 하지 않을 것이고 밥도 많이 먹어 볼 수 있고 그뿐인가, 지금까지 자기가 먹던
몇 숟갈로 동생들 배를 채운다 하여 시집가면 어떻고 어떻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또 몰
랐었다.
시집가는 날 분 바르고 고운 옷 입고 하는 것이 명절을 만난 것 같아서 동네 순네 어머니가 쪽을 틀
어 주고 할 때는 엉둥엉둥 하면서도 기쁜 것 같아서 곱게 차린 모양을 동네로 다니며 남들에게 보이고
싶기까지 했다.
단방(하나뿐인 방) 한 칸, 정주 한 칸인 오막살이일망정 남편도 깔끔했고 시어머니도 자별하게 인자
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딱한 것은 벌써 나이 찬 남편이 밤이면 추근추근 굴어서 잠을 못 자게 하
는 것이다.
일은 비록 고달프고 배는 항상 굶주려도 저녁 먹고 등잔불 끄고 동생들과 같이 옹기종기 누워 자던
옛날이 그리웠다.
어떤 날 밤은 참다못해 흑흑 느껴 울어 버리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꿀꺽 울음소리를 삼키고 두 팔만을 시어머니 곁으로 파고들 듯 잠이 들기도 했다.
최 서방은 이곳저곳 일터를 찾다가 마침 성내에 들어가서 정미소 일꾼으로 쓰이게 되어 하루 사십 전
이상 일 원까지 벌이하게 되는 날도 있게 되므로 이따금 간고기 마리도 사 오고 흰쌀도 팔아 오므로
시집오던 처음보다는 훨씬 살기가 나아져 갔다.
이러는 사이에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 복선이도 제법 노랑머리 쪽이 어울려졌다. 그러나 ‘풀각시’같이
거칠어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두 어린 각시라고 웃었다.
최 서방이 낮에 성내로 일하러 간 후로는 한 가지 두통거리가 생겨났다. 그것은 동네 총각들 때문이
었다. 불과 오십 호밖에 살지 않는 그 산촌에서 복선이에게 젊은 남자들이 추근추근 따라다니기도 했
다. 그래도 복선이는 치마꼬리를 휘어잡고 입술을 다문 채 모르는 척 눈을 감고 제집 일만 부지런히
한결같이 살아갔다.

-9-

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이번 추석에는 임자도 비단 저고리 하나 해 줄까.”
시집온 지 두 해 되는 팔월 초생에 최 서방이 일터로 나갈 때 웃으며 복선이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아이고, 내야 소용없어. 당신 옷이나 해 입지.”
하며 얼굴을 붉혔다.
“내야 옷이 있는데, 이번엔 고운 것 바꾸어다 주지.”
최 서방은 싱긋싱긋 웃으며 집을 나갔다. 복선이는 사립문을 나가는 최 서방의 운동화 신은 발자취
소리를 들으며
“해행!”
하고 웃었다.
입으로 비록 사양은 했을망정 속으로는 무척 기뻤던 것이었다.
비단 저고리라 해도 인조견임에는 틀림이 없을망정 그는 분홍 저고리 검정 보일치마(무명이나 명주로
된 옷감)가 소원 소원이었으나 시집온 지 두 해가 되어도 아직 그 소원을 풀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은 유별나게도 가슴이 뛰놀며 싱긋 웃고 나가던 최 서방의 모양이 마음에 무척 좋게 여겨지고 어
서 그날 해가 지면 정말 어떤 옷감을 가져올까, 하고 눈이 감기도록 기다렸다. 이렇게 남편을 기다린
적도 시집온 지 처음인 것 같아서 공연히 마음이 분주했다. 그는 저녁때 시어머니가 놀러 나간 틈을
타서 한 짝밖에 없는 소탕 장롱을 열고 자기 옷을 챙겨 보았다. 시집오던 날 입었던 유록 저고리만이
툭진(투박한) 무명옷 틈에 끼어 있는 복선의 단 한 가지 치레였다. 그는 금년 추석에도 그 저고리를 입
으려고 생각했던 것을 생각하고
“아이고, 이번 추석에는 분홍 저고리 입겠구나.”
하며 바쁘게 주름살이 깊어진 유록 저고리를 한 팔 꿰입어 보았다. 그리고
“해행.”
하고 웃고는 빨리 장 속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왔다.
웬일인지 그날은 최 서방이 날마다 돌아오는 때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은 일 마치고 옷감을 바꾸느라고 늦게 되는가 보다.”
시어머니와 복선이는 불안한 가슴을 진정하며 저녁을 마쳤다.
‘행여나 길에서 땅꾼에게 빼앗기지나 않았는가.’
밤이 깊어질수록 복선이는 걱정이 되었다.
“흐흥, 올 추석에는 친정에도 놀러 갔다 오너라. 시집을 와도 좋은 저고리 하나 얻어 입지 못했는데
설마 올 게야.”
시어머니가 채 입을 닫기 전에 갑자기 문 앞이 요란해졌다.
“거 누군가?”
시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지게문을 열어젖혔다. 복선이도 가슴이 덜컥해 벌떡 일어나 뜰로 뛰어 내려
갔다.
“최 서방 댁 있소? 어서 이리 좀 나오.”
그 말소리는 몹시 컸다.
“이 집에 누가 있소? 방금 최 서방이 큰일이 났으니 빨리 나하고 갑시다.”
시어머니와 복선이는 열어젖힌 지게문을 닫을 줄도 모르고 무슨 영문인지 더 물어볼 말도 나오지 않
았다. 허둥지둥 뛰어나갔다.
“최 서방이 지금 기계에 치어서 말이 아니오.”
달음박질을 쳐 산비탈 길을 내려오는 복선이는 가 보지 못한 성내 가는 길이었지만 넓은 한 줄기 길
과 같이 눈앞에 뻗쳐 있었다. 고운 옷감 떠오겠다던 최 서방은 정미소 기계에 치어 즉사를 하고 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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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이었다.
《신가정》(1934. 5)

춘기
무척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없어진 똥덕이는 보통학교 뒤에 있는 산에서 갈비(마른 소나무 이파리)를
하느라고 갈퀴로 떨어진 소나무 잎사귀를 열심히 끌어모았다. 조그마한 지게에다 부스스하게 얼추 짐
이나 되니 그는 갈퀴를 울러 메고 잠깐 머리를 돌려 산 아래 있는 보통학교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운동장에서는 춘계운동회 연습을 하느라고 야단법석이었다. 흰 운동모자를 쓴 아이, 붉은 운동모자를
쓴 아이 모두가 뒤섞여 달음박질을 하며 이따금 고함을 쳤다. 똥덕이는 이윽히 내려다보고 있더니 휙
돌아서 갈퀴를 지게에 얹고 새카만 묵은 때가 조리조리 늘어붙은 목을 늘이며 지게를 울러 메고 산으
로부터 내려왔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저렇게 달음박질을 하고 배가 속히 고파져서 어떡하지.”
입 속에 속삭이며 맥이 풀어진 두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지난겨울 몹쓸 바람에 다 허물어져 가는 조막만 한 집이 동쪽으로 제법 비뚜름하게 넘어갔다. 똥덕이
는 뜰 앞에다 지게를 내려놓고 다- 떨어진 삿자리 깔아 놓은 방문턱에 가 힘없이 걸터앉았다.
“아이그 복수네 집 가게에 보리쌀이 났던데…….”
하고 입맛을 다셔 보며 침끼 없는 혀끝으로 바싹 마른 입술을 핥아 보았다.
“제에기 언제나 햇보리가 날꼬.”
그는 벌떡 일어나 부엌에 가서 냉수를 한 그릇 떠서 꿀컥꿀컥 마셨다. 쉬엄쉬엄 그 한 그릇을 다 마
시고는 왼 손등에다 입술을 슬쩍 닦으며 날마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애처롭게 바라보는 보리밭을 또다
시 보려고 나왔다. 보리는 아직 이삭도 패지 않았으나 똥덕이는 그 보리가 다 익어야 비로소 한 번 배
부른 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에그 마님, 이십 전에 죄다 사 주세요.”
“어- 한 번 안 된다면 그만이지.”
“그러지 마십시오. 잡숴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마는 모두가 깊은 산중 것이라 무척 맛이 있습니다.”
“아이그 그 마누라는 참, 누가 생전 풋나물 구경을 해 보지도 못한 줄 아는가. 그까짓 것을 누가 20
전이나 주고 사.”
“벌써 해도 다 져 가는데 십 리가 넘는 집에 어느 때 돌아가 저녁을 짓겠어요. 적선하시는 셈 치시고
좀 사 주세요.”
“그만 가져가오. 안 살 테야.”
힘없이 나물 바구니를 이고 대문으로 나오는 똥덕이 어머니 그의 얼굴은 새카맣고도 노르댕댕해 두
눈은 맥없이 희미하게 풀어지고 살기 없는 두 뺨은 뼈만 앙그랗게 솟아 있었다.
“여보, 그러지 말고 팔고 가지. 지금 또 다른 집에 가져가 보았다 별 돈 못 받을걸.”
똥덕 어머니는 다시 돌아서 마루 앞으로 가서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10전에 그만 팔고 가구려.”
“조금만 더 보세요.”
“허- 참, 그 마누라 염치도 없구려. 하도 가엾어서 사기 싫은 것이라도 10전이나 주고 사려는 것인
데.”
“그러신 줄은 압니다만 몇 전만 더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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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그러면 11전에 팔우.”
“조금만 더 보세요. 온종일 산골짜기로 헤매며 긴긴 해를 죽조차 못 얻어먹고 죽을 판 살 판 뜯어 온
나물입니다.”
“그러기에 10전이나 주고 사지 않아? 돈 10전이 얼마나 귀중한 줄 아나?”
과연 참 귀중한 돈이다. 온종일 전심전력을 다해 뜯어 온 나물 그것을 단 10전에 바꾸어 가지기에 이
다지 애걸복걸해야 되는 것이다.
“…….”
“그러면 13전에 팔고 가.”
“조금만 더 보세요.”
“아따 그만 두. 안 살 테야, 가져가. 어서 가져가.”
“그러시지 마세요. 돈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그저 보리쌀 두 그릇만 주세요.”
“아이그 듣기 싫어. 안 사. 그저 줘도 싫어. 어서 가져가구려. 우리는 보리쌀도 없다.”
등 밀려 쫓겨나오는 똥덕 어머니. 해는 이미 다 저무는데 이 나물을 팔지 않으면 지금으로부터 내일
아침까지 어떻게 살아갈고…….
그는 두 눈이 캄캄했다. 어정어정 다시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마님 사십시오. 15전에 사십시오.”
겨우겨우 15전에 나물 바구니를 부어 주고 은전 두 닢을 손바닥에 받아 쥐고 후- 하고 한숨을 내쉬
었다.
주림과 고역과 눈물의 애원으로 얻은 15전이다.
기나긴 봄날 해도 이미 저문 지 오래이다. 캄캄 어두운 방 안에 관솔불조차 켜지 못하고 두 모자는
마주 앉았다.
복순네 가게에서 15전으로 보리쌀 한 홉되를 팔아가지고 돌아와 뒤미처 보리쌀을 절구에 찧어 가루
를 만들 여가가 없었으므로 그대로 나물과 함께 죽을 쒔다. 똥덕이는 어둠 속에서도 두 죽 그릇의 무
게를 짐작했다. 채 펴지지도 않은 보리쌀이 멀건 국물 밑에 가라앉고 나물 뭉치만이 둥둥 떴다.
“엄마는 국물만 먹어?”
똥덕이는 얼른 죽 그릇을 바꾸려 했다.
“얘가 왜 이러니, 나는 성내에서 나물 팔던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는데.”
어머니는 어느 사이에 국물을 훌훌 다 마셔 버리고 빈 그릇을 놓았다. 똥덕이는 밥 얻어먹었다는 어
머니의 가슴속을 잘 알 수 있었다. 비록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이였으나 그는 하도 여러 번 보고
겪고 해 온 경험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지 말고 이것 좀 더 먹어요.”
그러나 그 말을 들을 어머니가 아니었다. 똥덕이는 하는 수 없이 먹기 시작했다. 쓰고 떫고 거친 그
죽이었으나 그 죽 가운데 말할 수 없는 맛이 있었다.
“엄마 금년은 풍년이지?”
“금년은 설마 풍년이겠지, 하고 기다려 보기도 몇 번이었더냐. 그래도 이놈의 가난은 언제라도 그 모
양이 아니냐? 풍년이나 흉년이나 되는대로 되어라.”
“그래도 풍년이면 밥 한술 빌기에도 힘이 덜 들지 않아?”
“그렇기도 하지. 흉년에는 원 참, 거지도 많기도 하더라.”
하얀 쌀밥에다 맛있게 무친 파란 나물과 고기반찬을 해 가지고 아까 그 마님은 얼마나 맛있는 저녁을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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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하는 생각이 문득 난 똥덕 어머니는 그 아들의 훌쩍거리며 죽을 먹는 모양을 어둠 속에서 바라보았
다.
그때 똥덕이는 마지막으로 후루룩, 하고 죽 국물을 맛있게 마시고 그릇을 놓는 것이었다.
《신여성》(1934. 5)

- 13 -

현대어 백신애 소설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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