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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경계인의 시선

by Casey,Riley 2020.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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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를 넘나들며 개인과 사회에 물음표를 던진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경계인이며, 경계인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왜곡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추억하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그렇게 하면 경계에서 중심으로 한 발 다가갔을 때 잘못된 구조를 바꾸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고, 후배에게 부조리함을 강요하지 않는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저자 김민섭

1983년 서울 홍대입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현대소설을 연구하다가 ‘3091201라는 가명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썼고, 그 이후 대학 바깥으로 나와서 김민섭이라는 본명으로 이 사회를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으로 규정한 대리사회를 썼다. 후속작인 훈의 시대는 한 시대의 개인들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언어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교수도 아니고 학생도 아닌, 어느 중간에 있는 경계인이었다. 저자는 그러한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에게 보이는 어느 균열이 있다고 믿는다. 그 시선을 유지하면서 작가이자 경계인으로서 개인과 사회와 시대에 대한 물음표를 독자들에게 건네려고 한다. 특히 가볍지만 무거운, 그러나 무겁지만 가벼운 김민섭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되고 싶어 한다. 지금은 망원동에서 글을 쓰고 책을 기획하거나 만들고 이런저런 노동을 하며 지낸다. 1인출판사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진격의 독학자들(공저), 고백, 손짓, 연결, 거짓말 상회(공저),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공저), 아무튼, 망원동이 있고, 기획한 책으로 회색인간등 김동식 소설집과 저승에서 돌아온 남자무조건 모르는 척하세요문화류씨 공포 괴담집시리즈가 있고, 만든 책으로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내 이름은 군대가 있다.

 

Short Summary

2019년의 시작과 함께 20대 청년 노동자가 공장에서 자동문을 설치하다가 몸이 끼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용균법이 조금만 더 일찍 마련되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산업재해일지 알 수는 없다. 우선은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개인의 분노를 사회적 분노로 확장시키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편 자신이 몸담은 사회와 개별 조직이 가진 구조의 문제점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는 경계. 그래서 회사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학에서는 대학원생 조교와 시간강사가, 또 어느 공간에서는 어린아이가, 여성이, 청년이, 그 구조의 문제점을 가장 잘 목도한다. 그러나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교수가 되고, 가장이 되고, 소수자에서 다수자가 되면, 점차 그 문제점을 외면하게 된다.

 

이 책은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를 넘나들며 개인과 사회에 물음표를 던진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경계인이며, 경계인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왜곡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추억하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그렇게 하면 경계에서 중심으로 한 발 다가갔을 때 잘못된 구조를 바꾸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고, 후배에게 부조리함을 강요하지 않는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우리는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기를 바라는데, 그런 연결이 개인과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차례

추천사

머리말

 

1장 대학은 정의로운가? - 위법과 편법의 경계에서

대학과 교수와 조교

교수님들의 자화상

대학에 인권과 민주주의는 없다

대학원생은 왜 노조를 설립했는가?

사과하지 않는 선배들

염치를 아는 대학이 되기를

 

2장 청년에게 말걸기 - 청년과 아재의 경계에서

몸으로 쓰는 언어의 힘

오늘을 읽어내는 힘

젊은 꼰대의 탄생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광장과 월드컵

살아보니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

 

3장 연대하는 사회 - 느슨함과 긴밀함의 경계에서

분노의 글쓰기, 증오의 글쓰기

타인을 외롭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왜 가난한가?

책을 둘러싼 모험

그해 겨울, 우리는 광장에 있었다

참담한, 자본의 애도

 

경계인의 시선

김민섭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910/ 251/ 15,000

 

대학은 정의로운가? - 위법과 편법의 경계에서

 

대학과 교수와 조교

위법과 편법: 20173월에 대학의 법과 정의를 말하다라는 제목의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영화 재심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와 대학 문제의 당사자인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들을 초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한동안 대한민국의 대학이 위법을 행하고 있다고 믿었다. 대학원생 조교로 행정노동을 하거나 시간강사로 강의노동을 하면서, 그 어떤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건강보험, 퇴직금, 주휴수당 등이 모두 남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답답한 마음에 근로기준법이나 국민건강보험법을 들추어보고, 애써 그것을 해석해 보고서는 무척 서글퍼졌다. 딱히 위법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원생 조교는 노동의 대가를 임금이 아닌 근로장학금으로 받는다. 그에 따라 노동자가 아닌 학생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이 모호해진다. 시간강사는 대개 한 대학에서 주 9시간 이상 강의하는 일이 드문데, 15시간 이하 근로자는 건강보험 등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받을 수 없는 초단기 근로자로 분류된다. 결국, 대학은 적어도 법을 위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위법이 아닐지라도 편법이다. 법의 느슨한 지점을 이용해 그 경계를 넘나들며 벌이는 비열한 행위다. 그래서 나는 박준영 변호사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은 정의롭습니까?”

 

총장과 이사장을 고발하고 싶습니다”: 토크 콘서트를 기획하게 된 것은 동국대학교 대학원생 신정욱 때문이다. 사적인 자리에서 우연히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총장과 이사장을 고발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행정 노동자인 대학원생 조교들이 노동자로 대우받지 못하는 데는 문제가 있으므로, 대학의 관리자인 총장과 이사장을 고용노동부에 고발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신정욱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신정욱은 그때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의 총학생회장이었다. 그래서 학과 대표자들과 협조할 수 있었고, 함께 고발을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이나 동국대학교의 내부 사정에 대해서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의 외로운 싸움을 돕고 싶었다. 고민해보니 고발을 하려면 변호사가 필요할 테고, 그러면 수임비가 발생할 것이었다. 얼마가 드는지 물어보니 ‘300만 원이라고 했다. 그가 어두운 표정을 짓기에 나는 왜 그랬는지 그거 같이 모아봅시다.”라고 말했다. ‘대학의 법과 정의를 말하다라는 이름의 토크 콘서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300만 원을 모으기 위해 다음 스토리펀딩에 프로젝트를 개설하고, 토크 콘서트 입장권을 후원 형식으로 판매했다. 1학생에게 장학금이 아닌 임금을로 시작해 11대학원생의 연구는 누구의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로서 대학에서 겪는 여러 부당한 처우에 대한 글을 썼다. 84일 동안 289명이 3938,500원을 모아주었다. 프로젝트 진행 비용을 제외하고 나면 변호사 수임비에는 조금 부족한 액수였지만, 그래도 기뻤다.

 

을과 을의 싸움: 시간강사 문제를 대하며 절망스러웠던 것은 내부의 조직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특히, 오랜 시간 운동을 해왔다는 주체들 간에 서로 의견이 달랐다. ‘시간강사법을 두고서도 찬성과 반대가 갈렸다. 시간강사법을 찬성하는 이들은 교원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했고, 반대하는 이들은 현 법안이 통과되면 3분의 2에 가까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토크 콘서트 중, 동국대학교에서 왔다는 어느 대학원생은 다음과 같은 질문지를 제출했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후원에 참여했는데 동국대 조교 인원이 80퍼센트로 감축되는 사태가 벌어져 죄책감이 듭니다. 실제로 학내 구성원들의 원성도 잦은데 앞으로 어쩌면 좋을까요? 무거운 질문 죄송합니다.’

 

동국대학교 측이 고발에 대응하는 방식은 상식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았고, 정의롭다고는 더욱 말할 수 없었다. 우선은 조교들을 찾아다니며 고소 취하장에 서명하기를 권했다. 거기에는 저는 학생으로서 본분에 충실하고자 하며 이 사건으로 인해 총장님과 이사장님을 비롯한 학교의 관계자들이 처벌을 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서명한 이들에게 다음 학기 조교 선발 우선권을 주겠다고도 말했다는 것 같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조교 제도가 개편되면 어떠한 불이익이 있을지에 대한 대조표도 만들어 홍보했다. 퇴직금과 4대 보험을 보장하면 월 수령액이 오히려 줄어들고, 대학원생을 행정조교로 선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협박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특히, 대학원생들은 국가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참여할 수 없을 것을 가장 걱정했다. 대표적으로 BK21사업은 “4대 보험을 받는 대학원생은 사업에 참여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다른 노동을 하면서 연구원으로 일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조교 노동은 4대 보험을 보장하지 않으니 중복 수혜가 가능하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악법이 만든 숨을 쉴 만한 틈새다. 조교 장학금을 받으며 연구원으로 일하면 대학원생들은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동국대학교 측은 대학원생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렸고, 그것으로 그들이 서로 반목하도록 만들었다. 을과 을의 새로운 전쟁을 부추기고서 자신들은 뒤로 빠졌다. 비상식과 비합리를 목도하고 문제를 제기한 이들에게, 우리는 종종 책임을 묻는다. ‘너희가 조용히 있었다면 아무 일이 없었을 텐데, 괜히 나서서 모두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들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 제기자에게 손가락질하기를 멈추고, 잘못된 제도를 바꾸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예컨대 4대 보험 가입으로 국가 프로젝트 참여가 힘들어진다면, 그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니까 학교 내부의 조교 노동에 대해서 예외 규정 두기를 요구하면 그만이다. 그에 더해 동국대학교 측이 제시한 대조표를 참조하면, 월 수령액이 다소 줄어든다고 해도 퇴직금을 받을 경우 연봉 총액은 10만 원가량 줄어드는 데 그친다. 그러나 고용보험 가입에 따라 실업급여를 신청하면, 오히려 실수령액은 개인에 따라 수백만 원까지 늘어나게 된다. 동국대학교 측은 이러한 사실을 따로 고지하지 않았다.

 

왜 교수들은 침묵하는 겁니까?”: 박준영 변호사는 토크 콘서트에 패널로 참가한 최은혜(인문학협동조합 연구복지위원장), 신정욱, 김선우(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 이영이(전 상명대학교 강사)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고는 특유의 재치를 섞어서, 때로는 재심의 경험에서 나온 진지함을 보이며, 답을 해나갔다. 나는 그가 했던 말 중 다음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들이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왜 교수들은 침묵하는 겁니까?’

 

그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쉽게 정의로움과 대의를 말하지만 자기 영역의 정결함을 돌아보지는 않는다. 그러한 정의로움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이야기하는 그를 보면서, 그를 토크 콘서트에 초대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토크 콘서트를 마치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의 정의로움을 묻기 이전에, 자기 영역의 정의로움을 먼저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이 정의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리의 상아탑’, ‘지성의 전당이라는 수식어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청년에게 말걸기 - 청년과 아재의 경계에서

 

젊은 꼰대의 탄생

취준생을 마주한다는 것: 청년 멘토로 이름이 있는 H를 만났다. 멘토를 자처하는 이들이 대개 강연을 하거나 책을 홍보해서 생계를 이어가지만, H는 새로운 청년문화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우선은 청년들의 최대 관심사가 취업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한 도움을 주는 데 주력한다. 성과가 좋아 그를 찾아오는 청년이 무척 많아졌다고 한다. 물론 그것이 이 사회의 취업구조를 바꾸거나 근본적 문제를 개선할 방안은 되지 못하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H는 술을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젊꼰이라고 아느냐고 물었다. 처음 듣는 단어였지만 그것이 대강 젊은 꼰대를 지칭하고 있음을 알았다. 내가 “20대 꼰대도 많은 모양이죠?” 하고 되물으니, 그는 아휴, 말도 마십시오. 걔들이 더합니다.”라고 답했다. 어쩌면 그와 나 역시 다음 세대를 폄하하는 꼰대가 이미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취준생과 함께해온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보고 싶어 들었다. 그와의 대화가 모두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논지만을 대강 복원해보자면, ‘보상 심리로 압축된다.

 

취준생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혹한 시대를 보내고 있음은 굳이 짚고 넘어갈 필요도 없다. 금융권 대기업 출신인 H도 그들이 이전의 자신보다 더욱 심화된 경쟁의 장()에 있음을 잘 안다. 그런데 그러한 아픔을 겪은 세대가 보상받고 싶은 심리를 어떻게 내면화할 것인가? H에 따르면, 그들은 어느 세대보다도 빨리 꼰대가 될 것이다. 혹은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젊은 꼰대라는 단어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같은 느낌을 준다. ‘꼰대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는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로 수록되어 있고, 일상에서 거의 아재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음을 감안하면, ‘젊은이라는 형용사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뜨거운 커피 안에서 녹지 않는 얼음처럼 이질적으로 부유하는 한 세대가 있다. 딱히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어느새 자신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그런 미지근한 꼰대가 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어느 세월을 견뎠는데하는 자기 서사를 이미 가졌다. 그것은 어쩌면 그들의 부모 세대가, 혹은 조부모 세대가 자신들을 민주화 세대산업화 세대로 지칭하는 보상의 서사와도 닮았다.

 

저마다 자기 세대가 어느 세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생존 경쟁을 했고 거기에서 살아남았다고 믿는다. 지금의 청년세대 역시 그렇다. 성장이 정체된 한국 사회에서 취업과 생존을 위한 가혹한 경쟁을 해온 그들은 거기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어떤 보상 심리를 간직하게 된다. 나는 그것이 이전 민주화산업화 세대가 가진 자존감과는 다소 다르겠으나, 상당히 큰 분노로 적체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지금의 청년세대는 그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아재꼰대가 될 사회적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다.

 

언제부터 꼰대가 되었습니까?”: 꼰대가 된 이들에게 당신은 왜, 그리고 언제부터 꼰대가 되었습니까?”라고 묻는다고 그들이 친절히 답해줄 리는 없다. 오히려 화를 벌컥 내며 자신이 소통을 위한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설명을 시작하기가 쉽다. 당연하겠지만, 자신이 꼰대인 줄 아는 꼰대는 더는 꼰대가 아니다. 그런데 얼마 전 출간된 책 청춘의 가격은 왜 청년이 젊은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명료하게 말한다. 이 책은 인터뷰를 통해 청년의 현실을 진단하고 몇몇 연구원이 그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느 대학원생의 인터뷰를 읽다가 한동안 눈이 멎었다.

 

지금 노동시장 밖에 머물고 있는데, 이 시기가 어떻게 기억에 남을까요?”라는 질문에, 30세의 대학원생은 2가지의 경우로 나누어 대답했다. 취업 시도를 하지 않거나 취업에 실패한다면 지금의 아픔이 기억에 남지 않을 것이지만, 취업에 성공한다면 미화혹은 변질된다는 것이다. 나도 그와 비슷한 나이에 대학원을 다녔고, 대개 관찰자로 존재했다. 직장인 친구들과 대학원의 젊은 연구자들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 덕분에 그의 젊은 꼰대론에 절반 이상의 동의를 보낸다.

 

누구나 어제보다 꼰대가 된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조직 안에서 알게 모르게 대표적인 꼰대가 되기도 했다. 조교들을 관리하는 조교장이 되었을 때는 전임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후배들을 통제하고 감시했다. 내가 근무한 학과 사무실은 석사과정 합격통지서를 받은 예비 신입생들에게 방학 중 2개월이 넘는 기간에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급 근무를 시키는 관례가 있었다. 학기 시작 후 일을 할 수 있게 인수인계를 한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후배 길들이기의 일환이었다.

 

신입생 시절에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몇 년 후 조교장이 된 나는 합격통지서를 받은 예비 신입생에게 전화해서 조교로 일하고 싶으면 당장 다음 주부터 출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교 근무를 하지 않으면 단 한 푼의 장학금도 받을 수 없다고, 그것이 이곳의 문화라고 덧붙였다. 예비 신입생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록을 포기했다. 그때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후배들에게 다음 학기 신입생이 조교 근무를 하고 싶지 않아 등록을 포기한 것 같은데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후배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인간이었는지를 더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쓰면서, 나는 내가 과거를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미화하고 추억해왔음을 알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후배들에게 그 추억을 강요하는 못난 인간이기도 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쓴 이유를 서문에서 내가 이후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 나의 과거를 미화하거나 추억하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썼다.’ 라고 밝혔다. 8년 동안의 대학원생 조교와 시간강사 시절을 돌아보고, 기록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과거와 현재를 계속 추억하고 미화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이미 그러고 있는 내가 두려웠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대학의 젊은 꼰대였다.

 

조직의 논리에 동화되는 괴물: 자신이 몸담은 사회와 개별 조직이 가진 구조의 문제점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는 경계. 회사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학에서는 대학원생 조교와 시간강사가, 또 어느 공간에서는 어린아이가, 여성이, 청년이, 그 균열을 가장 잘 목도한다. 그러나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교수가 되고, 가장이 되고, 소수자에서 다수자가 되면, 점차 그 균열을 외면하게 된다.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지는 법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과거에 인지했던 처참한 풍경을 망각한다. 그것을 필요악으로 규정하기도 하고, 순응하지 않는 개인을 악한 존재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지 않으면 개인이 아닌 조직의 논리에 동화되어 괴물, 즉 꼰대가 되어버리기 쉽다. 많은 사람이 단순히 나이 먹음이 아니라 경계에서 얼마나 더 중심으로 발을 내딛느냐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바꾼다. 지금의 청년세대가 그 어느 세대보다도 훨씬 경쟁에 익숙한 것을 감안하면, 한국 사회는 그들에게 꼰대가 될 만한 조건을 충분히 마련해주었다. 이른바 젊꼰이 탄생하기에 가장 알맞은 때인 것이다. 청춘의 가격에서 인터뷰를 한 대학원생은 성공한 청년들만 꼰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공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런 청년은 소수일 뿐이다. 다만, 치열하게 그 경쟁에 참여했든 참여하지 않았든, 자신이 그러한 장 안에 있었다는 경험과 감각만은 남는다. 이 글은 나를 위한,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꼰대가 되어버린 모두를 위한 변명이다. 나는 아직 꼰대가 되지 않았을 청년들에게, 그리고 나처럼 꼰대가 된 청년들에게,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 다른 세대보다 조금 빨리 주체적으로 자신을 성찰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들이 보상의 서사에 매몰되지 않으면 좋겠다.

 

특히,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왜곡하거나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경계에서 중심으로 한 발 다가갔을 때 잘못된 구조를 바꾸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고, 적어도 후배에게 부조리함을 강요하지 않는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러지 못하면 지금의 청년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역시나 꼰대보다 더한 무엇으로 규정되고 말 것이다. 청년의 유효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나는 그것이 몹시 억울하고 두렵지만, 어느새 다음 세대에게 책임이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88만 원 세대로 시작해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무엇도 바꾸지 못한, 어쩌면 아프다는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끼인 세대. 그래도 술자리에서 후배들을 젊꼰으로 규정하는 못난 일은 이제 그만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H와도 비슷한 내용으로 그 자리를 마무리했다.

 

연대하는 사회 - 느슨함과 긴밀함의 경계에서

 

분노의 글쓰기, 증오의 글쓰기

증오사회를 고찰하다: 2016년부터 몇몇 지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에 없이 평론가, 작가, 칼럼니스트 등의 직함을 가진 이들의 글을 많이 찾아 읽는다. 그런데 어느 필자들의 글은 몇 번 읽고는 다시 찾아 읽지 않게 되었다. 그중에는 베스트셀러 작가도 있고 사석에서 만났던 이들도 있다. 사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나와 그다지 다르지도 않다. 다만 그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몹시 불편한 것이다.

 

사실 칼럼이라는 글은 현실 문제를 진단하기에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줄 수밖에 없다. 이 사회에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을 만한 문제들이 언제나 일어난다. 예컨대 조울증 환자가 누군가를 살해했다거나, 건물주가 세입자를 내쫓았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인의 분노를 이용하는 일이기도 하다. 때로는 그 감정을 부추기는 것이 아무래도 가장 편한 방식의 글쓰기가 된다.

 

독자들에게 비난하고 혐오할 대상을 정해주고 필자가 나서서 온갖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쉽다. 언론사는 그런 글을 전략적으로 상단에 배치하고 자사의 SNS를 이용해 바이럴을 일으켜 노출한다. 여러 사람이 댓글을 달고, 공유를 하고, 속된 말로 열심히 퍼다 나른. 내가 잘 읽지 않는 필자들의 글은 그렇게 사회적인 관심을 받는 일이 조금 더 많다. 그들은 분노해서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함께 분노하기를 요청한다. 그러나 그들의 글을 읽고 나면 분노보다는 다른 감정이 더 커진다. ‘증오혐오인데, 이것은 분노와 닮아 있지만 그 결이 다르고, 무엇보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최근 한국 사회는 정지우가 지적했듯 분노사회이면서, 동시에 그 사회를 넘어 증오사회로 가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개인과 사회 그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대, 성별, 지역 등 여러 관계에서 갈등을 심화시키고, 단절, 폐쇄, 고립 등의 문제를 불러온다. 그렇다면 분노와 증오의 글쓰기가 서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글쓰기에 대해 고민해보자.

 

분노인가, 증오인가?: 카카오톡 이용자를 대상으로 내가 뽑는 2018 연말결산투표를 진행했다. 874,481명이 참여한 이 투표에서 나를 가장 화나게 한 뉴스’ 1위로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득표율 45퍼센트)이 올랐다. 20181014, 서울 강서구의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이 흉기에 수십 차례 찔려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현장에서 붙잡힌 피의자는 경찰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해 심신미약 감경을 시도했고, 이것이 많은 이를 더욱 분노케 만들었다.

 

이러한 분노는 피해자의 담당의였던 남궁인의 글로 더욱 확산되었다. 남궁인은 의사이자 작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응급의학과 의사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글로 써왔는데, 피해자가 이송된 병원이 그가 근무하는 강서구의 어느 병원이었다. 세상에는 종종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우연들이 일어나는데, 그날, 그 병원에, 그가 담당의로 있었던 것 역시 그렇다.

 

피해자가 사망한 이후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는 강서구 PC방 피해자의 담당의였다로 시작하는 한 편의 글을 올린다. 여기에서 그는 피해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의 모습과 그를 살리기 위해 의료진이 했던 노력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 등을 다루었다. 이 글은 며칠 만에 22만 명에게 좋아요를 받았고, 12만 개의 댓글을, 34,000개의 공유를 얻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역시 분노한 상태였고 이를 대하는 대중들 역시 몹시 분노한 상태였다는 데 있었다. 응급실의 장면 묘사가 필요 이상으로 적나라했다는 지적이 일었다. ‘무서워서 손을 가리고 읽었다는 내용의 댓글이 많았다.

 

기자들은 그의 글을 다시 있는 그대로 옮겨 적었다. 주로 자극적인 부분들을 가져가 노출하는 방식이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이 사건을 기사화했고, 누가 더 자극적인 제목을 뽑는지를 경쟁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분노는 한 인간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되어 확산되었다.

 

남궁인의 글이 재생산되는 동안, 그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직업윤리에 어긋난다거나 고인을 모독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중 정지우의 글은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남궁인의 글이 공론화의 지점이 없었던 것을 문제 삼으면서 결국 그는 자기가 겪은 경험의 절망스러움, 인간의 잔인함, 개인적인 분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이는 공론화의 글쓰기라기보다는 지극히 사적이고 문학적인 글쓰기가 아니었나 한다고 분석했다. 정지우는 분노사회의 저자답게, 이 사건을 두고 개인의 분노와 사회의 분노를 연결시키는 데로 자신의 사유를 옮겨나갔다.

 

정지우의 글은 중요한 지점을 상기시켜주는데, 다시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개인의 분노는 글쓰기로 전이될 때 무척 큰 힘을 가진다. 고백 또는 고발이라고 할 수 있는 그 글은, 독자들에게 쉽게 그 분노를 전염시키기 때문이다. 그 파급력은 엄청나서 곧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공론화에 이르지 못하고 개인의 분노에 머물게 된다면, 그 분노는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다. 대신 증오로 발전하고, 개인들에게 단절폐쇄고립 등의 근거를 제공한다.

 

남궁인의 글은 개인의 분노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사회적 분노로 이어가는 데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대신 페이스북과 기사화라는 확산 과정에서 개인을 향한 증오로 변질되었다. 물론 그가 그것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오랫동안 글을 쓰며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다루어온 작가다. 그래서 그도 결론부에 사회적으로 재발이 방지되기를 누구보다도 강력히 바란다. 그래서 이 언급이 다시금 그 불씨나 도화선이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본성에 천착하면서 어떤 이가 지닌 인간의 본성은 최악이다. 그것들이 전부 우리가 조종할 수 없는 타인의 인격이라는 한도 내에서 우리는 영원히 안전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것은 다시 어딘가에 있는 누구일 수 있다.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할지라도 이 사실을 바꾸는 것은 절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적었고, 이것은 그 피의자를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심신미약 등 정신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사회와 격리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숭고한 애도: 2018년의 마지막 날에, 다시 모든 국민의 분노를 불러온 사건이 일어났다. 젊은 의사가 자신의 진료실에서 환자가 휘두른 칼에 살해당한 것이다. 그는 정신의학과 의사였고, 피의자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가 다른 의료진을 구하기 위해 제대로 피신하지 못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대한간호협회에서 간호사를 구하다 유명을 달리한 고() 임세원 교수의 동료애에 깊은 존경의 마음을 표하며 유가족에게 애틋한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고 애도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충분히 다시 한 번 온 사회를 분노에 빠뜨리고, 동시에 한 개인과 정신질환을 앓는 집단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유가족은 피의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뜻을 밝혔다. “의료진의 안전과 더불어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정신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유가족은 정신질환자라는 단어 대신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선택하는 섬세함을 갖고 있었다. 그에 더해 이 일로 인해 그들에게 사회적 낙인 대신 좀 더 나은 치료와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나는 20191월 초에 한 아카데미의 글쓰기 강좌에 참여했고, 그날도 강의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지우가 이 사건에 대해 페이스북에 쓴 글을 읽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그날 수업 내용을 절반 정도 바꾸었다. 그리고 수강생들과 정지우의 글을 함께 읽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의 글은 내가 그날 강의하려던 분노의 사회화, 그리고 글쓰기라는 내용과 맞닿아 있었던 동시에, 무엇보다도 내가 그동안 본 글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숭고한 두 여성을 본다. 그녀는 말한다. 자신의 오빠를 살해한 사람에 대하여, 그에게 낙인을 찍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심신미약 같은 걸로 또 봐주지 말고 단두대에 매달아라!”고만 외칠 때, 유가족은 사회적 낙인 없이 그와 같은 이들이 치료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의 죽음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우리 가족의 자랑이었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하면서도 그를 살해한 자와 같은 정신질환자들의 치료와 지원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 앞에서 한동안 무슨 생각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중략-

 

누군가의 안타까운 죽음은 수많은 방식으로 활용된다. 그중 하나는 악마에 대한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증오심을 즐길 기회로 삼는 것이다. 증오는 쾌락을 준다. 적에 대한, 악마에 대한 증오는 우리에게 놀라운 집중력을 주며, 현실의 복잡한 고민들을 없애주고, 단 하나에 몰입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 식으로 중세의 여성들이 마녀라 낙인찍혀 불태워졌고, 유대인들이 악마로 지목되어 학살당했다. 또한 그런 식으로 빨갱이김치녀라는 규정들이 탄생했고, 그에 대응하는 온갖 증오들이 우리 사회에 넘쳐나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든 증오할 대상을 기다리며, 증오할 기회를 찾고 있는 증오사회다. 그녀는 그러한 증오 앞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를 증오하지 말라고, 오히려 이를 통해 누군가를 보호하고, 지키며, 치료할 방법을 더 고민해달라고 말한다. 나는 이보다 더 숭고하며, 정확하고, 슬픈 애도에 관해 알지 못한다. 나에게 누군가가 그러한 입장에서, 그런 식으로 애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중략-

 

또 다른 여성이 있다. 그녀는 국회에서 김용균법이 통과될 때 아들아, 너로 인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게 됐다고 소리쳤다. 그녀는 책임자들을 모조리 잡아내어 단두대에 매달아 달라고 외치기 전에, 또 다른 아들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고 절규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이 시작된 것을 정확하게 바라보았다. 구조적인 살인, 인권유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인간, 그녀는 세상에 여전히 수많은 그 인간 아닌 아들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우리가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잡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죽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분노하는 것이다. 분노는 증오와 결이 다르다. 증오가 병적으로 적을 찾아다니며, 그 적이라는 대상에 집착하며 쾌락에 중독되는 것이라면, 분노는 정확하게 문제의 본질을 겨냥하는 것이다. 분노는 그 겨냥을 통하여, 온당한 것, 옳은 것, 정당한 것이 이 부조리한 현실에 내려앉아야 한다는 요구다. -중략-

 

수백 명의 증오도, 수천 명의 악질적인 상상력도, 수만 명의 비열한 웃음소리도 한 사람의 진정한 애도를 이기지 못한다. 진실은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하여 애도하는 한 사람에게 있다.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 귀가 있다면, 마음이 살아 있다면, 나머지 사람들이 할 일이란 온 마음을 기울여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진실 앞에서 침묵하고, 진실에 복종하고, 진실의 곁에 선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 길은 그들이 알고 있다. 그들의 애도가 곧 길이다.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

 

이 글을 수강생들과 함께 읽고, 나는 그들과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는 문장을 우리는 이러한 글을 써야 한다고 바꿔서 한 번 더 읽었다. 그에 따르면 분노라는 것은 정확하게 문제의 본질을 겨냥하는 것이며, “그 겨냥을 통하여, 온당한 것, 옳은 것, 정당한 것이 이 부조리한 현실에 내려앉아야 한다는 요구. 그러나 제대로 분노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증오는 모든 자리를 폐허로 만든다: 2019년의 시작과 함께 20대 청년 노동자가 공장에서 자동문을 설치하다가 몸이 끼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용균법이 조금만 더 일찍 마련되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산업재해일지 사실 알 수는 없다. 우선은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개인의 분노를 사회적 분노로 확장시키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특히 평론가라는 직함을 달고 글을 쓰는 이들이 자신이 얼마나 화가 많이 나 있는지, 자신이 얼마나 상처 받았는지 하는 것을 단어와 문장마다 드러내고 나면 그것은 사회적 증오와 개인적 혐오로 변질될 뿐이다.

 

좋은 글은 분노를 억누르고 담담한 문체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그래서 그들이 분노하는 동시에 고민하게 만든다.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표를 남기는 것이다. 그러나 증오는 모든 자리를 폐허로 만든다. 모든 문제를 현상으로만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고 격리시킨다. 분노사회는 이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되지만, 증오사회는 결국 이 사회를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계속 글을 읽고 써야 할 우리에게는 한 가지 과제가 남는다. 나를 닮은 타인들을 계속 의식하고, 그들에게 분노하게 하되 누구도 증오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나를 닮은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것으로는 어떤 변화도 추동해낼 수가 없다. 그러나 개인의 분노를 모아 사회적 분노로 만들고 나면, 이 사회의 문화와 제도를 바꾸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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