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
영원한 생명은 어떤 눈으로도 보지 못하고 어떤 귀로도 듣지 못하며 인간의 마음 속에 떠오르지 않지만,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생명수가 당신에게 있는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흘러나오며 우리는 담을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목을 축이게 됩니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고백록 Confessiones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 저자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354~430)
교부철학 자체로 일컬어지는 그리스토교 철학의 대부. 이 책을 통해 방탕했던 젊은 시절을 참회하고 그리스도교인으로 거듭났다.
교부철학 자체,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는 교부철학 자체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토대를 구축했고, 중세철학 전반에 영향을 미쳤으며, 사람들이 흔히 그를 서양의 스승이라고 할만큼 그의 사상은 그리스도교 철학의 최고봉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에 당시 로마의 북아프리카 식민지 누미디아(지금의 리비아)의 타가스테에서, 이교도 아버지와 독실한 그리스도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로마제국 말기의 시대적인 분위기에 젖어 그는 사춘기를 방탕하게 보냈고, 15세부터 법률가의 꿈을 안고서 타락한 항구도시 카르타고에서 수사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행실을 가르치려 했으나 그는 이 종교의 신앙과 도덕을 다 내던져 버리고 18세 때에 이미 한 여자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고 10년 동안 동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불타는 지식욕과 뛰어난 재능으로 공부에도 전념했으며 수사학에서 뛰어난 학생이 되기도 했다. 수사학을 배우러 로마에 머물던 19세에는 여러 철학자들의 글을 담은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읽고서 철학과 지혜에 대한 동경에 빠져들게 됐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그는 마니교에 빠져 28세가 될 때까지 거기에 얽매였다. 마니교는 페르시아에서 생겨 로마에 들어온,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로 일컬어졌지만, 사실은 일종의 이교(異敎)다. 마니교도들의 교리에 따르면, 우주 안에는 두 개의 근본 원리(빛과 어두움, 신과 물질)가 대립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는 일종의 세계영혼이요 구원자이지만 인격은 아니라고 한다. 또한 인간은 빛으로 구성된 영혼과 어둠으로 구성된 육체 사이에서 숙명적으로 갈등한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의 이원론이, 선한 신에 의해 창조된 세계 속에도 악이 존재한다는 모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것으로 간주해서 마니교에 끌리게 됐지만, 그들의 교리가 포함한 논리적 모순과 교주의 무식함을 깨닫고 차츰 거기서 떠나게 된다.
마니교에서 그리스도교로 전향
수사학 공부를 끝내자 그는 타가스테와 카르타고에서 웅변교사로서 정착하다가, 그후 로마를 거쳐 밀라노에서 웅변교사로 생활했다. 밀라노에 와서 플라톤학파의 저서들을 접하게 됐을 때, 그는 물질적 세계 외에 정신과 관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특히 마니교의 교리와는 달리 신이 비물질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가 암브로시우스(밀라노의 주교)의 말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정신성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됐을 때, 그는 마음 속에서 근본적인 전향을 하게 된다. 세상 욕심과 신에 대한 헌신 사이에서 오랫동안 갈등을 겪다가 마침내 회심하고서 그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밀라노 근처의 시골별장으로 물러나, 새로운 사상을 깊이 생각해본 후 암브로시우스에게 영세를 받아 완전히 그리스도교인이 된다.
그후 1년 뒤 그는 타가스테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일종의 수도원을 창설하고 저작활동에, 특히 마니교와 정신적으로 대결하는 데 모든 시간을 보낸다. 그는 37세에 사제(司祭)로 서품되고, 41세에는 힙포의 주교가 되어 34년 동안 주교로서 봉사하면서 틈나는 대로 글을 써서 113종의 책과 논문, 200여통의 편지, 500회의 설교를 남겼다. 반달족이 그가 주교로 있는 도시를 점령했을 때도 그는 손에 붓을 들고 있었다. 그가 죽은 뒤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반달족이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 뒤에도, 그의 저작은 계속해서 살아남았으며, 항상 서양의 철학과 종교적인 정신의 으뜸가는 원천이 되고 있다.
플라톤과 같기도, 다르기도 한 사상
그의 사상에는 플라톤 철학이 많이 포함돼 있고, 그 역시 플라톤 철학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친화성을 자주 역설했지만, 그 가운데 하느님이 만물을 무(無)에서 창조하셨다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독특한 교의다. 플라톤의 창조는 근원이 되는 물질을 가상하고 신이 이에 대해 형상(形相)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은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신은 조물주라기 보다는 위대한 기술자요, 건축가라 할 수 있다. 질료는 영원한 것이며, 창조된 것이 아니고, 단지 형상만이 신에 의해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가 무에서 창조된 것이며, 물질까지도 신이 창조한 것이라고 했다. ‘세계가 왜 좀더 일찍 창조되지 않았는가’혹은 ‘신은 세계창조 이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나’ 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시간도 세계가 창조될 때 함께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보다 일찍’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고 대답한다. 신에게는 이전이나 이후가 있을 수 없고, 영원한 현재만이 있을 따름이다. 신에게는 모든 시간이 동시적으로 있고, 신은 영원히 시간의 흐름 밖에 있다.
한편 그는 정욕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을 겪으면서 그 고통을 철학적으로 해명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악은 무질서한 사랑에서 나온다고 결론지었다. 인간은 무한하고 불변하는 기쁨을 위해 창조됐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은 무한자인 신에 의해서만 궁극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도록 정해져 있다. 그런데 무한하고 불변하는 아름다움과 기쁨 대신에 유한하고 변화하는 대상을 사랑하면, 그 대상이 실제로 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기대를 하게 되고 그 결과 영혼은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는 먼저 신을 사랑해야만 인간을 올바르게 사랑할 수 있고, 의지가 불변(不變)의 선(善)에 고착될 때 축복받은 삶을 발견할 수 있다.
▣ 차례
제1권 어린 시절 (15세까지, 354 - 369)
공부를 하지 않고 시적인 소설과 연극에 빠져 지내며 부모님을 속이는 등의 행동을 했었음을 솔직히 고백했다.
제2권 성장기 (16세 때, 369-370)
사랑의 참된 빛과 육욕을 구분하지 못해 방탕한 삶을 살았던 젊은 시절을 회고했다.
제3권 카르타고에서 (17세-19세, 371 - 373)
카르타고에서 법률 공부를 하면서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 읽고 철학에 빠지게 됐으나 내용이 없어보이는 성경을 싫어해 마니교에 빠지게 됐다는 이야기다.
제4권 우울한 일기 (19세-28세, 373 - 382)
사람들에게 교묘한 언변술을 가르치고, 각종 철학책을 읽었지만 정작 그 철학의 근원에 놓여있는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제5권 마니교도와의 결별 (28세-30세, 382 - 384)
카르타고에 온 마니교 교주 파우스투스를 직접 만나 마니교의 허상을 깨달았다. 로마로 가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만나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제6권 밀라노 주교 (30세-32세, 384 - 386)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계속 들으며 하느님의 축복을 깨달았지만 육체적 쾌락에 빠져 여전히 죄를 지었다.
제7권 철학적 해명 (30세 때, 384)
하느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선한데, 왜 악은 존재하는가의 문제를 고민하며 하느님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제8권 회 심 (32세때, 386)
극복되지 않은 육체적 욕망으로 갈등하다 우연히 듣게 된 한 구절 어린이 노래를 통해 구원을 얻게 됐다.
제9권 개 종 (33세 때, 387)
비로소 영세를 받고 어머니의 임종에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제10권 - 제13권
주교로서의 자기반성과 함께 영혼의 능력과 성향을 밝혔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저자가 회개를 하고 10년쯤 지난 뒤에 과거와 현재의 생활을 반성하면서, 그가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죄에서 구원을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의롭고 선하신 하느님을 찬미한’ 책이다. 전편에 흐르는 분위기는 신과 주고받는 마음의 대화요, 기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행복과 지혜를 추구하기는 했지만 참된 행복과 지혜를 분별하는 눈이 없어서, 정욕의 쾌락과 이교도의 철학에 오랫동안 빠져 있었다. 하지만 당대 제국에 풍미하는 모든 사상계를 골고루 섭렵한 끝에 마침내 플라톤 철학을 통해 감각계를 초월한 진리의 세계를 알게 됐고 밀라노 주교의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교로 전향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정욕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하느님이 섭리하셨던 부분을 뒤늦게 깨달으며,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죄에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은총을 통해서 구원받는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며, 고도의 문학성과 철학적 사상들이 저자의 회상과 함께 어우러진 고전이다.
고백록 Confessiones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제1권 어린 시절 (15세까지, 354-369)
주님! 당신의 능력은 위대하시고 그 지혜는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당신의 한 조각 가련한 피조물인 인간이 당신을 찬양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앞에서 안식을 얻기 전에는 평안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찾는 자는 주님을 발견할 것이며 주님을 발견한 자는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하느님이시여! 저는 어렸을 때 많은 슬픔과 조롱을 당했습니다. 어린 저에게 생활 규칙으로 정해진 것은, 부귀영화를 얻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과 학문에 재능이 뛰어나야 한다고 격려하는 스승에게 복종하라는 것이었습니만 저는 부모와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은 이유는 단지 장난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리스어를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읽기와 쓰기와 셈하기를 배우는 기초과정은 그리스어만큼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제가 싫어하던 그 공부도 지금에 와서는 도리어 덕이 된 줄을 압니다. 저는 읽기와 쓰기 공부보다 시적인 소설을 더 좋아해서 주인공의 슬픔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시적인 소설을 읽는 것을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 공부보다 더 고상하고 유용한 교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영혼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당신의 진리가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기초교육이 더 유용한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짓궂게 선생님들과 부모님에게 무수히 거짓말을 헸습니다. 영극을 보는 것이 저의 취미였으며, 배우의 흉내를 내는 데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부모님을 속이고 골방과 식탁에서 도적질도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군것질을 하거나 아이들에게 줄 것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어울려 즐겨 트럼프 놀이를 하면서 속임수도 동원했습니다. 주님이시여, 이것은 어린이들만이 저지르는 죄과오리까? 이런 일은 어른들에게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여, 비록 저는 당신의 뜻대로 어린 시절을 살지 못했지만 그대로 여전히 감사합니다. 저는 훌륭한 기억력을 갖고 있었으며, 저의 뜻을 표현하는 법도 훌륭히 배웠습니다. 친구들과 잘 사귀고 고통과 비굴과 무지에서 벗어나려 애썼습니다. 저와 같은 인간이 그렇게 했다는 것은 놀랍고 찬양할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선물이며, 제가 저에게 준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주님께서 주신 선한 일이었습니다.
제2권 성장기 (16세 때, 369-370)
제가 지금 거짓과 육욕으로 인해 영혼이 썩은 지난날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들춰내려는 것은 당신만을 사랑하기 위함이며, 이 세상에 속함으로써 산산이 흩어진 저 자신을 그 사랑으로 다시금 주워 모으기 위함입니다. 젊은 시절에 저는 참된 사랑의 밝은 빛과 육욕의 안개를 분간하지 못해 더럽고 욕된 정욕의 구렁텅이에 빠졌고,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헛되이 사랑하기를 즐기고 또 사랑을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제가 육욕에 미쳐 날뛰던 열 여섯 살 때, 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정욕이 이끄는 대로 저 자신을 맡겨 버렸습니다. 제 친구들은 제가 정당한 결혼생활을 해서 정욕의 도가니 속에서 헤어나게 하기보다는 제가 뛰어난 웅변가가 되는 데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배나무에서 배를 따먹은 도둑질도 했습니다. 그것도 물건이 탐나서 도둑질을 한 것이 아니라 도둑질이라는 죄악 자체를 즐겨서 행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훔친 과일보다 더 좋은 과일이 집에 쌓여 있었지만, 죄 자체를 사랑하고 악한 것을 좋아하는 동기에서 훔친 것입니다. 오오, 죽음의 심연이여! 해서는 안되는 일을, 다만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 때문에 한다는 것이 그토록 즐거울 수 있겠습니까? 그 도둑질에서 즐긴 것은 당신의 권능을 닮는답시고 병적인 자유를 흉내낸 것이며, 혼자서는 내키지도 않을 도둑질이 친구들과 공모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신바람을 느끼게 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떠나버린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당신에게 의지하기는커녕 당신에게서 멀리 떠나 곤궁 속을 헤맸습니다. 무엇 때문에 죄를 저지르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당신 아닌 낮은 가치에 대한 사랑과 욕구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저속한 가치가 인간을 즐겁게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을 만드신 당신이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과는 감히 견줘 말할 수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은 당신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며, 당신은 오직 의로운 사람의 즐거움이 돼 주십니다.
제3권 카르타고에서 (17세-19세, 371 - 373)
저는 법률가가 될 꿈을 안고서 수사학을 연구하기 위해 카르타고로 유학해 법률 공부에서 명성을 얻었고 웅변술도 공부했습니다. 저는 카르타고에 온 후 한동안 불순한 연애관계를 가지기도 하고 연극 관람에 열중하기도 했으나, 19세에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제 생활은 완전히 변하게 됐습니다. 철학을 권장하는 이 책을 읽고 저의 헛된 소망은 완전히 사라졌고 저는 뜻밖에도 불멸의 지혜를 갈망하게 됐으며, 당신에게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당시의 철학자들과 그 이전의 모든 철학자들을 소개했으며 당신의 성령이 사도 바울을 통해 보내주신 충고의 말씀도 싣고 있었습니다.
저는 성서를 읽기 시작했지만 저에게는 성경이 키케로의 책에 비해 별로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성경은 겸손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책이며 교만한 자는 아무리 읽어도 알 수 없는 책입니다. 저의 통찰력은 성경의 내부에까지 비치지 못했으며 제 바람기가 그 글을 싫어했습니다.
성서문체의 간소함과 철학적 내용의 빈약함에 실망한 저는 교만을 부리며 성경을 모독하는 마니교(敎)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마니교도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헤사 성신(聖神)의 이름까지 인용하면서 사람을 유혹했습니다. 그들은 세계의 원소와 여러 피조물들에 대해 철학적인 설명을 제게 들려줬고, 저는 진리이신 당신 대신 진리의 껍질로 영양을 취하려 했습니다.
제4권 우울한 일기 (19세-28세, 373 - 382)
열 아홉에서 스물 여덟에 이르는 9년 동안 저는 속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면서 갖가지 범죄에 빠진 생활을 했습니다. 수사학을 가르치면서 남을 설복시키는 구변을 팔아 결과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속임수를 가르쳤으며, 한 여자와 동거생활을 했습니다. 또한 점성술에 매료돼 점을 보기도 하고 귀신들에게 제사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이 몇 해 동안에 저는 고향에서 글을 가르치면서 친구 한 사람을 사귀었습니다. 그와 저는 같은 취미에 열을 올리며 무척 사이좋게 지냈으나 당신은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신앙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던 그가, 그리고 제가 마니교로 유혹했던 그가 죽기 전에 세례를 받고 진지한 신앙심을 갖는 것을 보고 저는 당황했습니다. 누군들 자기에게 일어난 당신의 섭리를 낱낱이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를 데려가신 것은 당신께서 역사하신 바이지만 그 당시의 저는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슬픔에 모든 것을 원망하고 모든 것에 싫증이 날 뿐이었습니다.
저는 나이 스무살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10 범주』를 읽고 그 내용을 이해했고 이 밖에도 소위 교양서적들을 혼자 읽고 이해했습니다. 수사학, 논리학, 기하학, 음악, 수학 등 무슨 학문이나 이해하는 데 조금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고 이러한 재능은 오직 당신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나 악한 정욕에 사로잡혀 있던 저에게 이것이 무슨 이익을 주었겠습니까? 저는 그 재능을 당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주색잡기에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참된 빛을 등지고서 그 빛을 받고 있는 사물에만 향했기 때문에 제 얼굴 자체는 전혀 빛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학문으로써 당신에게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고, 또한 당신이 저에게 오실 길도 가로막았습니다. 오오, 주님이시여, 저를 보호하여 주시며 저를 당신에게 데려가 주시옵소서. 우리의 힘은 오직 당신에게 속해 있을 때에만 비로소 참으로 강한 힘이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것으로 있을 때 언제나 병적인 것이 됩니다.
제5권 마니교도와의 결별 (28세-30세, 382-384)
당신은 죄인들을 보살필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 그들을 지키고 계십니다. 불쌍한 영혼들이 저마다 축복을 받고 있지만 그들은 당신을 얼마나 상심케 하고 있습니까? 하늘에서 땅 밑까지 이르는 당신의 통치는 아름답기 짝이 없건만, 그들은 당신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만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죄인들의 마음 속에도 계셔서 그들의 눈물을 씻어 주고 새로이 생명과 용기를 부어주십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에 제 자신에게서조차 떠났으므로 저 자신도 찾지 못했으니, 어찌 당신을 찾을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 저는 이제 당신 앞에서 스물 아홉 살 때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때 마니교의 교주인 파우스투스가 카르타고에 왔는데, 그는 정말 ‘악마의 함정’과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일반 자연과학의 지식도 많이 갖고 있는 데다가 유창한 화술을 구사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를 환대하고 있었습니다. 마니교도들은 일식과 월식의 날짜, 시간, 각도와 같은 천체의 운행에 대해 사람들에게 수년 전에 예언을 해줬고 그들이 예언이 맞아 떨어지면 사람들은 마니교도들에게 탄복하곤 했지만, 저는 천문학자들의 계산법에 의한 증명이 그들의 주장과 맞지 않다는 점에 의혹이 있어서 파우스투스를 만나면 한번 물어보리라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파우스투스를 만나 보니 그는 솔직히 천문학에 대해 자기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무식함을 알고 있었으며 이를 고백하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마니교도들의 책은 하늘과 별과 해와 달에 대한 긴 신화로 가득차 있지만 천문학자들이 발견한 것과는 일치하지 않았고 마니교의 합리적 세계관이라는 것도 미숙한 상상을 만족시키는 거짓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파우스투스의 솔직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지만 마니교에 대한 열성은 식었습니다.
그후 저는 로마에 가서 수사학을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머니는 말리셨지만 어머니를 속이고 몰래 로마에 와서 수사학 교사 생활을 하다가, 다시 밀라노의 수사학 교사로 초빙돼 밀라노에 머물게 됐습니다. 거기서 저는 경건하고 훌륭하기로 온 세상에 소문난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를 찾아갔고 그로 인해 당신을 알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저를 친아버지처럼 대해줬고, 그의 설교는 차츰 저를 감동시켜 저는 마니교의 교리보다 기독교의 교리에 더 호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기독교 교리를 믿지 못했지만 저의 갈 길을 올바로 인도할 분명한 서광이 비칠 때까지는 기독교회 안에서 학습 교인으로 있을 작정이었습니다.
제6권 밀라노 주교 (30세-32세, 384-386)
어머니는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 건너 저를 뒤따라 와서, 제가 이제 마니교도가 아닌 기독교인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당신이 밤낮 눈물로 간구하던 기도가 이뤄졌다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의 종 암브로시우스가 저를 마니교의 어둠에서 벗어나 광명한 진리의 길로 나아가도록 손목을 잡아주신 분임을 알았을 뿐 아니라 그를 진정한 하느님의 종으로 생각해서 그를 사랑하고, 그를 통해 당신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저도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는 ‘문자는 죽이지만 성령(聖靈)은 살립니다’라는 말을 자주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언짢게 생각되는 구절도 그가 신비의 베일을 걷어 올리고 영적 진리를 가르쳐 주면 그 가르침이 귀에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오, 주님, 저는 부드러운 당신에 이끌려 차츰 당신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아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믿는 것이 먼저라는 여러가지 실례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민족들의 역사나 여러 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저는 믿어 왔으며, 제가 부모님에게서 출생했다는 것도 그 사실을 듣고 믿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의 성경 말씀도 마찬가집니다. 누군가 당신의 성경이 성령의 역사(役事)로 인간에게 주어졌음을 의심한다면, 그 사람은 알아서 믿는 길만 알고, 믿어서 아는 길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확신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갑론을박하는 철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어왔지만, 어떤 궤변도 공격도 저로 하여금 당신이 계시다는 것과 - 비록 당신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 인간 만사를 인도하는 힘이 당신에게 있다는 생각을 제게서 뺏아 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단지 이성적인 힘에 의해 추상적으로 당신과 당신의 진리를 찾을 수는 없으며, 따라서 성경의 권위가 필요하며 당신께서 성경에 커다란 권위를 주신 것은, 인간이 성경을 통해 당신을 찾게 하려고 하신 것임을 저는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저는 육체적인 안락과 행복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여인의 가슴에 저의 몸을 파묻지 않고는 아무런 행복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저는 얼마나 비참한 존재였습니까? 저는 끊임없이 정욕을 추구하며 허덕였고, 사람들은 저더러 빨리 결혼하라고 권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정식으로 결혼을 해야만 세례를 받아 죄에서 깨끗이 씻어지리라고 생각해서 저의 결혼을 서둘렀고, 그래서 저는 어떤 여자와 약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동거해오던 그 여인, 이미 어린아이까지 낳아준 그 여인이, 제가 원하는 어린 처녀와의 결혼에 방해가 된다고, 그녀가 낳아준 자식을 남겨둔 채, 그녀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갔습니다. 그녀는 다시는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떠났고, 제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약혼한 처녀와 결혼하려면 아직 두 해나 더 기다려야 했으므로 육욕의 노예가 된 저는 또 다른 애인을 하나 얻었습니다. 결혼할 상대로서가 아니라, 쾌락의 노예로서 취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병든 영혼은 육욕에 매어 방탕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죽은 연후에 영혼이 존속하고 행위에 대한 상과 벌을 받으리라는 것을 믿지 않았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누리며 계속해서 살 수만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친구들에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맑아야 볼 수 있는 저 덕(德)이 발산하는 빛과 그 자체 때문에 사랑해야 할 미(美)의 빛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7권 철학적 해명 (30세 때, 384)
이미 죄악에 젖은 저의 청년 시절은 지나가고 저는 장년기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당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육신을 입어 세상에 임하신 것을 아직 믿지 못했고, 당신이 모든 공간에 침투해 은밀한 영감으로 모든 것을 인도하신다는 식의 범신론적 사상으로밖에는 당신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저는 지선(至善)하신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왜 악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탐구하면서 악의 근원을 찾아 미궁 속을 헤맸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제가 갈팡질팡하는 동안에도 신앙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신앙이란 당신이 계시며, 당신의 본질은 변치 않고, 당신께서 인간을 보살피시고, 심판하시며, 사후의 생명을 구제하는 길을 당신의 아들 우리 주 그리스도에게 마련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악이 어디서부터 왔느냐 하는 문제는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라는 것이, 우리가 악을 행하는 근원이 된다는 교리를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당신의 섭리로 플라톤 학파의 책들을 읽으면서, 당신의 말씀인 로고스(Logos)의 형이상학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플라톤주의에는 도성인신(道成人身, Incarnation)의 교리가 없었으나 플라톤주의를 이해함으로써 저는 무형(無形)의 진리를 깨달았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당신의 진리를 창조물을 통해 깨치게 됐으며, 저의 영혼의 어둠 때문에 볼 수 없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동시에 당신이 존재하신다는 것, 그리고 무한하시되 유한 무한을 막론하고 어떤 공간 속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당신이야말로 영원 불변하며 다른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당신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그렇게 존재하게 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선하며 제가 그 근원을 찾던 악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래서 멸망을 초월해 있다면 악은 하나의 높은 선일 것입니다. 제가 분명히 알게 된 것은 당신께서 모든 것을 선으로 창조하셨으며 각기 다른 개체들도 각각 선하고 전체로서의 만물은 매우 선하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어느 일부분이 악으로 보일지라도 전체의 조화라는 차원에서 보면 선입니다.
저는 다시는 개체마다 완전하기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것들이 속된 것들보다 나은 줄을 알고 있으며, 거룩한 것이 혼자 있는 것보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함께 있는 전체가 더 낫다는 것을 건전한 판단으로 깨쳤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지으신 것을 하나라도 싫어하는 자는 건전한 판단력을 가졌다고 할 수 없는데, 실상 제가 그러해, 그 많은 사물들을 저는 싫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차마 하느님을 싫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싫은 것이 있으면 당신 것이 아니라고 우겼습니다. 제가 이원론(二元論)에 떨어진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참되며 거짓이란 없는 것을 있는 줄로 생각할 때에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결국 악이 다만 당신에게서 벗어나 본래의 자기자신을 버리고 천한 데로만 떨어지는 의지의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런데 철학책에서는 통회하고 애타는 심정으로 당신에게 나아가는 길과, 당신의 구원의 손길, 그리고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신다는 말씀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철학책들은 사랑을 가르치지는 않지만, 저는 사도 바울의 글을 열심히 탐독하면서 그리스도의 겸허한 사랑을 알게 됐습니다.
제8권 회 심 (32세때, 386)
당신의 말씀이 가슴 깊이 파고 들어와서 저는 당신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만, 제 생활는 낡은 습관의 힘에 여전히 사로잡혀서, 당신을 섬기려고 하는 새로운 의지와 쾌락을 추구하는 옛 의지가 격렬한 싸움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명예와 재물에 대한 욕심을 극복했지만 여자에 대해서만은 아직도 끈질긴 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저는 심지어 당신께서 저에게 정결과 절제를 베풀어 주실까봐 두려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새로운 삶과 옛 습관 사이에서 망설이고 갈등하는 저에게, 세속을 버리고 당신 뜻에 전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이 모범을 보이는 사례가 차례차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제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고, 얼마나 제 얼굴이 때가 묻고 진물과 고름으로 뒤범박이 돼 있는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들을 존경하게 되는 반면에 저 자신을 증오하게 됐습니다.
저는 어두운 골방 제 가슴 속에서 영혼을 상대로 치열한 싸움을 벌였습니다. 저는 진리를 꼭 붙잡으려 했으나, 이미 몸에 밴 옛 악습이 아직 길들지 못한 선(善)보다 저를 더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죄악에 매어 있는 자신이 애처로와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져 슬피 울고 또 울던 어느 때, 이웃 집에서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라는 아이들 노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런 노래를 전에 전혀 들어보지 못한 저는 그 노래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오는 것으로, 성경을 펴들고 첫 눈에 띄는 대목을 읽으라는 말로 단정했습니다. 제가 방금 전에 두고온 사도 바울의 서간문을 집어들고 책장을 펴자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대목은 이것이었습니다.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술 취하지 말고 음란과 방탕과 싸움과 시기하는 일을 버리십시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온몸을 무장하십시오.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이 말씀을 읽은 순간 저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넘치고 모든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제가 그 길로 어머니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모조리 이야기하자 어머니는 기뻐서 어쩔줄 모르시며, 당신을 찬양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저를 당신에게로 돌아가도록 허락해 주셨으므로, 저는 여인이나 이 세상의 속된 욕망을 송두리째 집어던지고 신앙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게 됐습니다. 당신께서는 제 육체가 바라던 기쁨보다 더욱 순결한 기쁨을 주셨던 것입니다.
제9권 개 종 (33세 때, 387)
당신의 오른손은 저의 죽음의 심연을 굽어보시고 저의 마음의 더러운 구정물을 밑바닥까지 퍼내 주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원하는 것을 원치 말고 당신이 원하는 것을 원해야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허망한 즐거움에 잠기지 않고 대뜸 당신의 복락을 누리게 됐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복락을 잃을까 두려워 세상의 낙을 버리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됐습니다.
저는 말을 파는 시장(학교)을 떠나 수사학 교사의 자리를 버리고 친구인 베레쿤두스가 빌려준 시골 별장에 이사해 영세준비를 하고 밀라노에서 드디어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후 뜻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당신을 섬기기에 가장 적당한 곳을 찾아 아프리카로 가려는 도중 티베리스강 입구에 있는 오스티아에서 어머니와 사별하게 됐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이야기는 즐겁기만 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어떤 눈으로도 보지 못하고 어떤 귀로도 듣지 못하며 인간의 마음 속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지만,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생명수가 당신에게 있는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흘러나오며 우리는 이를 담을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목을 축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숭고한 뜻을 생각해 보면서 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감각적인 쾌락이 아무리 크고 즐겁다 하더라도 영원한 생명의 기쁨에 비할 바가 못된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언제나 한결같으신 당신’에 대한 열망으로 마음이 높이 치솟아 해와 달이 빛나는 저 하늘에까지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의 성업(聖業)을 생각하고 찬미하면서 더 높은 정신계에 도달했으며, 한걸음 나아가 거기서 다시 은혜가 충만한 초원에 이르기 위해 더 위로 올라갔습니다. 당신은 그곳에서 영원한 진리의 양식을 성도들에게 먹이고 계셨습니다. 거기는 생명이 곧 지혜이며 그 지혜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존재했고, 또 앞으로 존재할 모든 피조물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지혜 자체는 생성되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통해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과거와 미래가 없고 오직 현재가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있어 육체의 번거로움이 진정되고, 환상이 사라지고, 영혼마저 잠잠해,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이를 초월할 수 있다면, 누구든지 귀 있는 자는,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우리를 지은 것이 아니라 항상 계시는 이가 지으셨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후에 이 모든 것이 침묵 속에 가라앉는다면, 그래서 당신께서 그것들을 통하지 않고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가 듣게 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육신의 혀나 천사의 목소리나, 그밖의 이상야릇한 비유로 하지 않으시고 바로 당신 자신을 듣게 해 주십니다. 그러면 관찰자가 오직 이것만을 붙잡고 받아들여, 깊은 내면적인 기쁨 속에 가라앉게 됩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이 우리가 동경에 한숨짓는 이 순간과 같아지면, 그것은 곧 ‘네 주(主)의 즐거움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말씀이 이뤄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때는 언제 돌아오겠습니까? 그때 “모든 성도가 부활하면 다 변화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대충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이 세상과 그 모든 쾌락은 하찮게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저더러 당신의 제단 앞에서 언제나 어머니를 회상하라는 한 가지 부탁만을 남기고 당신에게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저는 당신 앞에 당신의 여종을 위해 눈물을 흘리옵니다. 주여, 당신께서 자비를 베풀지 않으시고 잘못을 따지신다면 깨끗한 일생을 마친 사람에게도 화가 있을 겁니다. 주여, 어머니가 세례를 받은 후 여러 해 동안 사느라 혹시 지은 죄가 있사옵거든 그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어머니를 ‘심판하지’ 마시옵소서.
제10권 - 제13권
『고백록』은 원래 13권이지만 흔히 9권 내지 10권까지 출판되는 것이 통례인데, 그 이유는 자서전적인 내용이 9권에서 끝나고 그 뒷부분은 난해한 철학과 신학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10권은 집필 당시의 주교로서의 자기반성과 함께 영혼의 능력과 성향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그는 먼저 신과 복된 삶을 찾아,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이성적인 것으로 올라가는 길을 걷고 있는데, 특히 기억의 능력에 대한 세밀한 분석에 의해 기억의 본성을 논구(論究)한 다음 유혹의 종류를 안목의 정욕, 육체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 등 셋으로 나눠 엄격한 자기분석을 시도한다.
11권에서 13권까지는 창세기 첫 장의 해석으로, 먼저 11권은 천지창조 이전에 신은 무엇을 했는가 라는 질문은 도외시하고, 현대철학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정밀한 시간론을 전개하면서 흔히 외적 물체운동에 근거해 생각하는 시간을 의식의 내적 사실로 환원하려 한다.
12권은 태초에 창조된 천지(天地)가 무엇을 뜻하는가를 밝히고, 마지막으로 13권은 천지창조 기사를 비유적으로 해석해, 그 가운데 신이 교회에서 구원과 성화를 위해 하는 일의 상징을 밝히고 신에게 영원한 안식을 구함으로써 고백을 끝맺는다.
▣ 더 깊이있게 알기 위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개인적 운명에 대해 광범위하게 고찰함으로써 자신의 철학 활동을 위한 추진력을 얻었다. 그는 청년기 초반부터 도덕적인 타락을 경험했으며 이것이 그로 하여금 진정한 지혜와 정신적인 평화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를 계속하게 했다.
그가 그리스도교에 입문한 후 철학자로서, 신학자로서, 성직자와 신비가로서 전개한 사상적 활동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관한 사유를 철학적인 틀 속에서 정립하는 작업이었고,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사도 바울 다음으로 큰 준봉을 이뤘으며, 그리스도교 초기 학자들을 일컫는 ‘교부(敎父)’들 중 최고의 인물로 여겨진다. 그가 등장하기까지는 그리스 교부들이 그리스도교 철학과 사상을 주도해왔으나 아우구스티누스의 등장으로 빛을 잃고 사라진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과거에는 물론이려니와 지금도 “참으로 모든 교부들에게 공통되는 자질을 갖춘 빛나는 모범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과거의 모든 사상적 조류들이 그의 작품에서 서로 만나며, 또한 다음 세대의 모든 교의적 전통을 이루는 원천이 돼왔다”(교황 바오로 6세)고 평가하며, “그는 또한 신앙과의 조화 때문에 참으로 그리스도교적이라 불릴 수 있는 철학을 정립한 천재였다”고 선언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악의 근원은 무엇인가
아우구스티누스가 경험했던 방황과 고민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악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끈질기게 묻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성향이고 그 대답을 알고 싶은 것은 모두의 바램일 것이다. 그가 『고백록』에서 밝히는 행복의 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인간의 조건이란 인간이 무한하고 변하지 않는 행복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명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도 인간 심리의 근본법칙으로 되어 있다.
다만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리스토텔레스와 구별되는 점은,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인간의 행복에 초자연적인 덕과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자연적인 것을 넘어서서 초자연적인 것으로 이행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봤다. 바꿔 말하면, 이성적인 덕의 완성 속에서가 아니라 신적인 정신 안에서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만물은 선 그 자체인 신에게서 비롯됐기 때문에 세계의 만물은 모두 선하고, 따라서 모든 사물은 무엇이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인간이 사랑하는 모든 대상은 그에게 어느 정도의 만족과 행복을 줄 것이다.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없다. 악은 실제적인 사물이 아니라 뭔가 부재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랑이나 그가 사랑하는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애정을 가지는 방식과 사랑의 결과에 대해 가지는 기대감에 있다. 즉 사물들을 올바른 우선순위에 따라 배치하고 그것들이 지닌 참된 가치에 따라 그것들을 평가해서 더 가치있는 것은 더 사랑하고 덜 가치있는 것은 그만큼 덜 사랑하는 질서를 유지한다면, 이는 미덕으로서 ‘올바로 정리된 사랑’이고, 사물들의 참된 가치와 우선순위를 파괴하고 무시한다면, 이는 악이며 죄다.
참된 행복은 신의 은총으로부터
인간의 정신력은 광대한 능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인간에게 고유한 이 정신력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무한한 신뿐이다. 그러므로 신에 대한 사랑은 행복으로 가는 필수 조건이며 모든 사물들의 가치평가를 위한 기준점과 중심점의 역할을 한다. 방종이란 유한한 실재에서 무한한 요구를 만족시키려는 것이며 신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 방향설정이 돼있지 않는 사랑이다.
플라톤이 생각한 것처럼 악이나 방종의 원인이 단순히 무지에 기인한다고만 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 죄많은 사람들조차도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을 곤경에 빠지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 양자 택일의 선택 앞에 있어서, 그가 신을 향하거나 신에게서 멀어져야 하는 선택의 기로를 맞는다는 사실이다. 이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자유의지를 사용하게 된다. 그는 신에게서 멀어져서 유한한 사물이나 사람 혹은 자신에게 애정을 쏟을 수도 있고 수단과 목적을 혼동할 수도 있다.
설령 올바르게 선택했더라도 그가 택한 선을 실행할 정신력을 지니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신의 은총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악은 자유의지의 행위에 의해 야기되는 반면, 덕은 인간의 의지가 아닌 신의 은총의 산물이다. 이성적인 덕의 완성은 인간의 의지로 이룰 수도 있겠지만, 이성적 덕으로는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으며, 신의 은총으로 이루는 신학적 덕, 즉 가치와 위계질서를 존중해 질서 있게 사랑하면서 모든 사랑이 영원 불변의 존재인 신을 향해 있는 애덕(愛德)만이 참된 행복을 가능하게 한다.
▣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와 작품
354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출생
371 카르타고에서 유학생활 시작
372 키케로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진리와 지혜를 동경하게 됨
373 마니교에 귀의하고 한 여자와 동거생활 시작
383 마니교의 교주 파우스투스를 만나 대화하고 마니교에 실망
384 밀라노의 수사학 교사가 됨,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에게 크게 감명
385 플로티누스의 『엔네아데스』를 읽고 이때부터 플라톤주의에 빠졌다. 동거하던 여자와 헤어 지고 양가집 처녀와 약혼
386 내면적인 갈등을 정리하고 완전히 그리스도교인으로 회심
387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 평생 아들을 위해 기도한 어머니 모니카가 세상을 떠났 다.
388 아프리카 갔다.
391 사제서품을 받았다.
395 히포 주교로 선임
400 『고백록』 저술
410 로마 게르만족에게 함락
411 펠라지우스와 우연히 만나 이후 신의 은총에 의한 구원을 부정하는 펠라지우스와 논쟁
415 『자연과 은총』 저술
426 『삼위일체론』 저술
427 『신국론』, 『그리스도교 교양』 저술
430 반달족이 힙포를 포위하고 공략하는 가운데 76세로 사망
▣ 참고 문헌
카를로 크레모나, 『성아우구스티누스傳』, 성염 옮김, 성바오로출판사,1994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김병호 옮김, 집문당, 1991
, 『고백록』, 최민순 옮김, 성바오로출판사, 1996
문시영, 『아우구스티누스의 행복의 윤리학』, 서광사, 1996
아우구스티누스, 『영혼불멸론.영혼의 위대성』, 김영국 옮김, 소망사, 1990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요약. 신앙핸드북』, 심이석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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