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부유층과 권력층이 어마어마한 액수의 세금을 장기간 내지 않고 법망을 빠져나가 국가에 손해를 끼치고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들이 노리는 허점과 틈새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조세법상의 ‘공소시효’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공소시효를 이용해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고, 그 결과 피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선량한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과 현주소를 정확하게 살펴보고, 오랜 적폐를 청산하여 공정사회의 초석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저자 강해인
25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출입 기자로 현장을 취재하면서 기자로서 느낀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의 현실과 역사를 되짚어본 『권력의 거짓말』을 썼다. 그후 5년이 흘렀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힘 있는 자들이 유리한 위치에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 전작에 이어 이 책 『공소시효』를 통해 우리 사회의 권력자들의 모순과 문제점을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꿈꾸는 사회의 모습을 함께 그려보고 싶어 한다. 현재 한국기자협회 보도자유분과 위원장, 한국지역언론인클럽 회장, 청와대 출입 지역기자단 감사와 《경기일보》 정치부 부국장,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이사로 활동하며 언론사 기고와 TV 방송 출연, 대학 강의 등을 하고 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약속대상 기자상을 수상했다.
▣ Short Summary
우리 사회의 해묵은 적폐는 국민의 가장 기본적 의무인 납세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평범한 우리나라 국민의 절대다수는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고 있습니다. 이 비율은 전 세계 국가들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부유층과 권력층이 어마어마한 액수의 세금을 장기간 내지 않고 법망을 빠져나가 국가에 손해를 끼치고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들이 범법행위를 위해 노리는 허점과 틈새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조세법상의 ‘공소시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공소시효를 이용해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고, 그 결과 열심히 피땀 흘려 살아가는 선량한 국민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신뢰를 상실한 권력층이 국정농단을 야기했고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사태들의 원인이 되었는지를 우리 국민은 아프게 경험했습니다. 따라서 오래된 잘못된 관행으로 나타나는 이 사회의 온갖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습니다. 적폐 청산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다름 아닌 정치와 경제 분야입니다. 평범한 서민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액의 세금을 내지 않고도 호화롭게 사는 소위 ‘세금도둑’들은 적폐의 주범이자 핵심입니다. 이들의 교묘한 범죄행위를 가능케 하는 결정적인 틈새가 바로 공소시효법에 있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각 분야 전문가들은 세금과 관련된 공소시효법이 대폭 수정 되어야 함을 오래전부터 지적해왔습니다.
악질적인 탈세 범죄를 계속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고 있는 정치인과 재벌 기업가들의 미납 세금은 다음 세대까지 끝까지 추징되어야 하며 공소시효가 이들의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평범한 서민들의 노력이 정당하게 인정받고 보상받을 수 있는 공정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조세법상의 공소시효 관련법 개정은 반드시 시행되어야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과 현주소를 정확하게 되돌아보고, 오랜 적폐를 청산하여 공정사회의 초석을 마련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차례
특권과 반칙에 가려진 공소시효
조세범죄 공소시효, 얼마일까?
공감하며 추천합니다.
머리말: 왜 이 책을 썼나?
1장 법 위에 있는 그들은 누구? _ 국가 예산 낭비의 실상
01 억대 장기 체납자만 1만1,000여 명 / 02 ‘눈먼 돈’의 실체
03 속속 드러난 정부 예산 낭비 실상 / 04 정부 예산의 함정
05 저들이 훔쳐 먹고 빼먹는 내 돈을 지키는 길은?
2장 끝나지 않는 정의 실현 _ 무엇이 정의를 파괴하고 있는가?
01 국민은 분노로 가득하다
02 분노의 원인, 어디에 있나?
①공정하지 못한 사회의 계급론 / ②갑질이 대물림 된다
③부와 소득, 기회의 불공정 현상 / ④사회적 양극화의 극단적 흐름
03 갑질 타파와 구조 개선은?
3장 폐단이 쌓이면 나라가 썩는다 _ 분노에 대한 대안
01 적폐 청산의 대상은 누구인가? / 02 정치·경제 분야의 적폐부터 해결되어야 한다
03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책임론 / 04 부와 권력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05 그들의 점수는 몇 점인가? / 06 생활 속 적폐를 청산해야 하는 이유
07 적폐 청산을 가로막는 구조는 무엇? / 08 재벌의 범죄행위가 계속되는 이유
09 세금범죄 공소시효법 개정과 공정한 대가 / 10 신뢰는 어디에서 오는가?
11 상생만이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 / 12 해결해야 할 불신의 씨앗은 무엇?
13 적폐 청산의 대안은 상생 사회 구축이다
4장 결론은 무엇인가? _ 근본적인 해결의 핵심은 공소시효다
01 해외범죄 수익 환수 조사단 설치 / 02 스위스 비밀계좌 정보공개 청구
03 예외 없는 집행에 따른 법령 신설 / 04 미납세금 끝까지 추징해야 한다
05 귀신 잡는 기동대도 따돌린 세금도둑은? / 06 고액 상습 체납자 얼마나 되나?
07 공소시효의 속임수, 범죄자도 빠져 나간다 / 08 그들은 왜 세금도둑 잡기에 앞장섰나?
09 독일 ‘탈세와의 전쟁’ 선포 사례
맺음말: 책임을 다하는 세상을 위해
공소시효
강해인 지음
모아북스 / 2019년 4월 / 214쪽 / 15,000원
1장 법 위에 있는 그들은 누구?_ 국가 예산 낭비의 실상
‘눈먼 돈’의 실체
피 같은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했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피 같은 세금을 내며 살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세금을 가리켜 혈세라고 말하겠습니까. 국민이 누구나 납세의 의무를 지키는 이유는, 자신이 낸 세금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와 국가 살림을 나아지게 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국민과 국가의 기본적인 약속입니다.
문제는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제도와 시스템상의 허점으로 인해 줄줄 새거나 ‘눈먼 돈’으로 쓰여 왔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국민이 피땀 흘려 번 돈이 엉뚱한 일에 쓰여야 할까요? 수천억 원, 수조 원에 이르는 돈이 엉뚱한 곳에 낭비되는데도 왜 정작 국민은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을까요? 왜 누군가는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국민의 돈을 자기 것으로 가로채 숨겨놓고 자손 대대로 부와 권력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요? 그러한 불법과 편법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상의 허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무엇이 적폐를 만들었는가: 정치인의 역할은 국민이 낸 세금을 최대한 활용해 국민 전체의 삶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국회의원, 정부 인사, 공무원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국가와 국민이 합의한 제도와 법은 엄격한 원칙과 투명한 절차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관리되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 중에는 법의 허점과 빈틈을 악용해 세금을 착취하는 사례가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할 국민 세금이 개개인의 이익과 사리사욕을 위해 악용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정치권력과 재벌 기업의 정경 유착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온갖 불법과 악행은 우리나라 현대사를 적폐의 역사로 만들어왔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혈세 낭비 사업으로 꼽히는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의 4대강 사업일 것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시 4대강 즉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사업을 국가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수질 개선과 가뭄 및 홍수 예방 등을 보장한다며 22조2,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대대적인 공사를 감행했지만, 그 결과가 어떤지는 이제 온 국민이 알게 되었습니다.
속속 드러난 정부 예산 낭비 실상
혈세만 낭비한 허울 좋은 국가사업: MB 정부에서 22조 원의 혈세를 쏟아 부으면서 4대강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치적 실세를 둘러싼 주변 인맥의 소위 ‘카르텔’이 있었습니다. 일부 건설업체들이 실세 정치인에게 기부금 명목으로 거액의 정치후원금을 제공했던 사실도 나중에야 밝혀졌습니다. 결국 모든 혈세 낭비의 핵심에는 기업인과 정치인 간의 강력한 연결고리가 존재합니다. 이는 다음 정권인 박근혜 정부에서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결과적으로 혈세를 낭비한 허울 좋은 사업들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혈세 낭비의 핵심은 정경 유착의 고리: MB 정부가 주된 공적으로 내세웠던 자원 외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많은 국내 공기업이 해외자원 개발에 무분별하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공기업인 석유공사의 경우 이명박 정부 시절 10조 원의 자금을 해외자원 개발에 투자했고, 거액의 돈을 들여 외국의 망해가는 석유업체를 인수했지만 적자만 쌓여 헐값에 처분하게 되었습니다. 28조 원의 혈세를 쏟아 부은 자원 외교는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 개발 투자는 국민 세금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좋은 일만 한 셈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MB 정부와 정경 유착의 고리로 얽힌 인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입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자원 외교와 4대강 사업 등에 천문학적인 금액의 국민 세금이 들어갔지만 그 실상을 살펴보면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사업이었고, 그 핵심에는 정경 유착의 끈끈한 고리가 있었음이 나중에 밝혀진 것입니다. 개인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정치권 인맥과 기업들이 유착한 결과, 피 같은 국민 세금이 엉뚱한 곳에 낭비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 등 MB 정권 당시 자원 외교 비리를 저지른 장본인들에 대한 사법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석유공사는 이명박 정부 당시 자원 외교 실패로 인한 손실을 2019년인 현재까지도 처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들이 훔쳐 먹고 빼먹는 내 돈을 지키는 길은?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조직입니다. 따라서 국회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책정하는 국가의 예산이 얼마나 투명하고 적절하게 배분되는지를 감시하는 기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민이 낸 세금이 잘못 쓰이거나, 엉뚱한 곳에 쓰이거나, 일부 권력층의 사욕을 위해 사용되었다면 국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불법과 편법을 가능하게 만든 제도상의 허점이 발견되었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요?
박근혜 정부 내내 국정농단의 장본인이었던 최순실은 정부와 정부조직, 국민의 세금을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 재산을 불리는 데 철저히 이용했습니다. 권력의 사유화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일어났던 것입니다. 수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최순실 일가의 재산은, 제대로 추적하고 환수하지 않으면 최순실 일가 내부에서 대대로 증여될 것입니다. 이것이 비단 최순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요? 이전 정권, 그리고 수많은 정경 유착을 저지른 인물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입니다. 그들이 숨긴 거액의 재산은 다음 세대에 새로운 적폐의 씨앗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지난 정권이 행한 국정농단을 제대로 파헤치고 대한민국의 적폐를 청산하려면, 그들이 부정하게 은닉한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국고에 환수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내가 낸 세금 제대로 쓰이고 있었나?: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꼭 필요한 곳에 쓰겠다는 말을 국민은 더 이상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예산 편성이 얼마나 악용되고 눈속임 될 수 있는지 그동안의 역사를 통해 잘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편법이 쓰이고, 숫자와 수치가 조작되고, 정책이나 국가사업에 허울 좋은 껍데기를 씌워 그럴듯하게 포장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수천억 원, 수조 원의 혈세가 엉뚱한 곳에 쓰이고 흔적 없이 사라져도 국민은 알 길이 없습니다. 또한 정치인과 기업인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여 공공자금이나 세금을 축재하고 은닉해도 그에 대한 처벌은 너무나도 미약하거나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불법 범죄를 철저히 밝혀내고 그들이 부정하게 숨긴 재산은 끝까지 추적하여 국고에 환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해진 데는 이러한 역사와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소시효를 비롯한 법제도상의 허술함 탓에 정치인과 재벌 기업인들의 재산 축적은 한 번도 제대로 끝까지 추적 되지 못했습니다.
인식과 제도 개선 함께 가야 한다: 국정농단의 모든 과정에서 관련된 인물들의 부정한 재산을 끝까지 추적하여 환수하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순실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는 특별법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명박을 비롯한 정치권 인사와 기업인이 불법으로, 혹은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탈세하거나 해외에 빼돌려 숨긴 재산도 이제는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이 범죄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재산이 환수되지 않은 채 적폐 세력을 뿌리 뽑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적폐 청산을 하려면 여러 사람과 여러 부처의 협력과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인적 적폐도 청산해야 할뿐더러 제도적인 개선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제도를 개선하고 수정하는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부정을 저지르고 세금을 탈세하고 불법적으로 재산을 축적한 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엄정하게 처벌하는 것은 대한민국 적폐 청산의 한 획을 긋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해야만 미래의 한국 사회는 좀 더 공정하고 발전적인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장 끝나지 않는 정의 실현_ 무엇이 정의를 파괴하고 있는가?
국민은 분노로 가득하다
‘공정함’에 목마른 한국 사회: 하버드대학교의 세계적 석학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국사회를 강타했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동안 인류가 정의를 어떻게 규정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공리주의부터 칸트, 루소, 로크 등 다양한 고전 정치철학자들의 주장들에 대해 쉽게 풀어 썼습니다. 27세에 하버드대학교 최연소 교수가 된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단순히 하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다양하고 복잡해진 시대를 사는 현대 시민으로서 정의를 어떻게 고민해야하는지에 대해 누구나 사유할 수 있으며, 그것은 일부 정치가나 사상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2009년에 발간된 『정의란 무엇인가』는 미국에서는 10만 부 정도 팔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0만 부가 넘게 팔렸습니다. 2012년 샌델 교수가 내한했을 때 그의 공개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1만 5,000여 명의 사람들로 연세대 노천극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여러 언론도 ‘정의’ 에 대한 한국인의 뜨거운 관심을 대서특필하며 이 현상의 원인을 다루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이토록 우리나라 국민이 정의와 공정함에 대해 목말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의로움과 공정함의 의미를 찾고 구현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은 이 책이 발간된 지 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 국민은 국정농단 사태에 문제의식을 갖고 ‘촛불의 힘’으로 적폐를 청산하는 중요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후 국민은 새로운 정권의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적폐 청산이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사회’ 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많은 부분에서 절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3장 폐단이 쌓이면 나라가 썩는다_ 분노에 대한 대안
정치 경제 분야의 적폐부터 해결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무엇으로 좌우되는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정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습니다. 너무나도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이제 겨우 먹고 살만한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성숙한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정치권과 경제 분야에서의 고질적인 적폐를 어떻게 청산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화가 되느냐의 여부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적폐는 제도의 틈새에서 발생한다: 지금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의 적폐 청산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아마도 모든 국민이 공감할 것입니다.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의 적폐가 청산되지 않는다면 국민 분열과 갈등 그리고 심각한 수준의 양극화 현상은 절대로 개선되지 않을 것입니다. 적폐의 온상이던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와 염원에 의해 탄핵되고 이후 들어선 지금의 정부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이 가장 갈망한 것도 바로 적폐 청산이었습니다. 공직사회에 적용되는 ‘김영란법’이 시행되었을 때 국민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공직사회의 적폐 청산이 사회 전체로 확장되기를 염원했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도 매우 정교한 법과 제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제도는 아무리 잘 만들었더라도 허점과 구멍이 있게 마련입니다. 바로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만들어지는 것이 관행이라는 이름의 편법 혹은 불법입니다. 이 편법과 불법으로 인해 소수의 누군가가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반면, 다수의 누군가는 부당한 피해를 입을 때, 그리고 이것이 장기간에 걸쳐 고질적으로 반복될 때 바로 적폐가 됩니다.
악용되는 제도는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 미성숙한 사회에서 성숙한 시민사회로, 즉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발전하고 변화하려면 제도의 틈새를 늘 살펴보고, 그 틈새를 악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제재와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냉철하게 평가하고 원칙을 고수하여, 모순은 줄이고 틈은 메워야만 합니다. 그래야 적폐가 쌓일 여지를 줄일 수 있습니다. 만약 현재의 법과 제도상의 허술함으로 인해 누군가가 편법을 쓰거나, 악용하거나, 꼬리가 밟히지 않고 있다면, 그 제도는 당장 수정되고 개선되어야 합니다. 적폐를 가능하게 해주는 구조 자체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고쳐 나가야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편법과 악용의 틈새를 가장 많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 정치와 경제 분야의 제도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인과 경제인의 잘못된 결탁, 즉 정경 유착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적폐를 만들어왔던 것입니다.
공정하게 대가를 치러야 개혁이 시작된다: 특히 세금 탈세를 비롯한 조세 관련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정경 유착으로 인해 정치인과 재벌 기업, 사회지도층의 비리가 싹트고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적폐 청산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른 모든 법제도와 마찬가지로 조세 관련 제도들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비판, 그리고 사회지도층의 반성과 변화 의지, 제도 개선의 실행력이 필요 합니다. 대기업과 부유층의 갑질 문화, 사회 곳곳의 불공정과 불평등, ‘금수저’의 횡포와 부정한 부의 세습 등은 반드시 제도 개선을 통해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정치인과 경제인은 잘못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하며 범법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동안 대가를 치르지 않고 빠져나가고 있었다면 바로 지금이 변화할 때입니다.
적폐 청산을 가로막는 구조는 무엇?
고발 근거는 바로 공소시효 시점: 지난 2018년 11월, 한 시민단체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검찰에 재고발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전 정부가 구 외환은행(현 KEB 하나은행)의 탈세 혐의를 방조했다는 것입니다. 앞서 이 단체는 외환은행이 법인세를 줄였다가 2006년 세무 당국으로부터 수천억 원대의 세금을 추징당하자 MB 정부 최고위층을 상대로 로비를 벌여 과세와 형사 고발을 무력화했다며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아울러 관련자들의 국세 횡령 혐의도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 사건의 중심 이슈 역시 조세법 공소시효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시민단체가 이 전 대통령을 고발한 것은 “탈세 의혹의 공소시효 기산 시점을 법인세 납부 시점인 2007년 3월이 아니라 조세심판원으로부터 불법 환급 결정을 받은 2009년 9월로 봐야 하므로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라는 주장 때문이었습니다. 기산시점을 2009년 9월로 보면 공소시효 만료 시점은 2019년 9월이 되는 셈이었습니다. 즉 기산시점이 바뀌면 공소시효도 바뀐다는 것입니다.
공소시효 적용, 왜 중요한가?: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7년 9월 자신의 SNS를 통해 “안보가 엄중하고 민생 경제가 어려워 살기 힘든 시기에 전전 정부를 둘러싸고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이러한 퇴행적 시도는 국익을 해칠 뿐 아니라 결국 성공하지도 못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국익과 국민을 위한 일이라면 5년, 10년, 100년의 시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적폐를 청산하는 일에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에 관한 전·현직 정치인들 간 입장 차이의 중심에 있는 핫이슈도 다름 아닌 ‘공소시효’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공소시효가 논란의 핵이 되는 이유는 고액의 세금 탈세를 포함한 정치인·경제인의 범죄가 공소시효 만료로 인해 제대로 처벌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나라가 공정사회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주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세금범죄 공조시효법 개정과 공정한 대가
각종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개정이 세계적 추세: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이 되어서야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되었지만, 세계 각국에서는 이미 그전부터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된 바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법정형이 사형인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되었으며, 독일에서는 반인륜적 욕구나 고의성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독일의 경우 독일 기본법에 의해 전범자들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해 처벌했고, 모든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확대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이미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선 2010년에 최대 형량이 사형인 12가지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한 바 있습니다.
세금 범죄에 대한 엄벌은 공정사회의 초석: 조세와 관련된 공소시효는 우리나라의 사회 구조에서 적폐를 만들고 일부 권력자가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교묘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왔습니다. 범죄자로 재판을 받은 역대 대통령도 사면과 복권 이후 더욱 공고하게 재산과 부를 축적하고 은닉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국민을 분노케 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등, 투명하고 공정한 국가 운영을 해치고 대다수 국민에게 박탈감과 좌절감을 주는 공직 관련 범죄가 난무했습니다. 고액의 상습적인 세금 탈세범과 조세 관련 범죄자들은 공소 시효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고액의 재산을 안전한 곳에 숨기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결국 조세에 있어서의 공소시효제도는 공정한 사회 정의를 훼손시키는 근본적인 원흉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 법치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공소시효 제도의 수정과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오래전부터 지적해왔습니다.
살인죄에 대한 법안이 개정되어 공소시효가 폐지되었듯이, 다양화된 사회에서 다양화된 각종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도 유형별로 재조정되어야 합니다. 형사법 체계에서의 공소시효 제도가 국민적 여론에 의해 개정되어 결국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가 뒤늦게 이루어진 것처럼, 극악한 범죄와 불공정 사회의 온상이 되는 조세범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가 전면적으로 개정되어야 비로소 공정한 사회로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폐 청산의 대안은 상생 사회 구축이다
상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 한국을 읽다』의 저자인 배영은 우리 사회의 공생과 상생을 논하면서 상생과 공생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상생>: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같이 잘 살아감. 서로가 관심을 보이며 더 나은 삶을 모색함. 지향점이 같은 이들의 새로운 관계를 전제로 하며, 시너지 효과를 가능하게 함. 〈공생〉: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감. 다소 수동적인 태도의 관계. 오랫동안 경험을 공유하여, 한 몸처럼 움직이는 관계를 의미.
배영은 애덤 스미스가 사회 발전의 근거인 ‘분업’을 경제적인 차원에서 논했다면,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사회 구성원의 ‘상호작용’에서 찾았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또한 많은 학자가 예전의 전통사회가 개인의 ‘기계적 연대’에 기반을 둔 사회였다면, 지금의 사회는 ‘유기적 연대’에 기반을 두는 사회라고 설명한다고 합니다. 이는 오늘날 발전하는 사회일수록 수동적인 ‘공생’ 의 관계가 아닌, 서로 발전하는 ‘상생’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위에 제시한 상생과 공생의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생은 그 사회의 ‘시너지 효과’를 가능하게 해주는 요소입니다. 서로 돕고 함께 움직이는 ‘공생’에서 한 발 더 진화한 것이 바로 상생하는 사회입니다.
상생하지 않는 사회는 적폐가 쌓인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진화해야 할 방향이 상생의 사회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는 우리 사회가 아직은 유기적이고 조화로운 상생을 이루지 못한 사회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를 극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사회 전반에 만연한 ‘갑질 문화’와 ‘금수저 흙수저 계층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갑을 관계=권력관계’로 인식하는 갭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세대를 거쳐 부당하게 세습되고 폐쇄적으로 유지되는 ‘금수저’의 견제와 독점이 존재하는 한, 상생의 사회를 만들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개인의 힘이나 노력만으로 상생을 이루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배영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갑질 문제는 결국 권력의 문제다. 소유하고 있거나 동원할 수 있는 유무형의 자원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간의 차이는 불평등한 관계를 낳고, 불평등한 관계는 권력의 문제로 이어진다. 위계로 인한 부당한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대안 자원을 마련할 방법이 사회적 약자에게도 열려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기에 수직화된 갑을 관계는 공고화된다. 게다가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불황은 왜곡된 갑을 관계를 양산하고 강화하는 기반으로 작동한다.”
적폐를 은폐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일부 국회의원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정치인의 권력욕과 그것을 휘두르는 횡포, 대기업 임원이나 사주 등 경제인과 거대 재벌의 범죄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들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갑질, 그리고 그들 자신의 권력과 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저지르는 많은 범죄는 상생이 결여된 우리 사회의 적폐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갑질 문화와 빈익빈 부익부 현상, 재벌가의 횡포와 경제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갑질을 편안하게 자행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습니다. SNS가 활성화되어 언론의 성질과 역할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시민의 의식 수준도 크게 높아지고 변화했습니다. 촛불을 통해 국민의 힘으로 국정농단의 적폐를 직접 척결한 경험을 한 서민들은 이제 무엇을 왜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고,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스며들어 있는 적폐를 청산하지 않으면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당연시되었던 적폐와 기득권의 갑질 문제를 더 이상 수면 아래 감추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4장 결론은 무엇인가?_ 근본적인 해결의 핵심은 공소시효다
미납세금 끝까지 추징해야 한다
범죄수익 환수 추징금 미납액 26조, 집행률은 겨우 12%: 2018년 10월 12일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범죄 이익에 대한 환수 수단인 추징금 미납 액수가 26조 원에 달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고액 추징금 미납자뿐만 아니라 100만 원 이하의 소액 미납 추징금도 6,000여 건에 달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8월 말 현재 전체 3만3,621건(26조 7,390억 원)의 추징금 부과에서 최종 환수된 경우는 4,192건(997억 원)이었습니다. 건수 기준 집행률은 12.5%에 그쳤습니다. 추징금 미납금 가운데 1억 원 초과 체납 건수는 3,768건으로 전체 체납금액의 98%를 차지했습니다. 이 중에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22조 원을 미납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1,042 억 원의 추징금을 미납해 전체 미납 추징금의 87%를 두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추징금 미납 가운데 100만 원 이하 소액 추징금에 대한 미납 건수도 6,251 건에 달했습니다. 체납 추징금 5건 중 1건은 소액 체납 건입니다. 10만 원 이하 소액 추징금을 안 낸 경우도 1,363건으로 나타났습니다.
범죄수익 환수 인력 10명이 3만 건 담당: 채 의원은 소액 체납 추징금의 환수가 부진한 이유는 검찰의 범죄수익 환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전국 검찰청에서 미납 추징금 환수를 담당하는 인력은 총 10명에 불과합니다.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담당자 10명이 3만 건에 달하는 추징금을 환수하기 때문에 소액 추징금 환수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채이배 의원은 “추징금은 범죄수익이라는 점에서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예외 없이 환수되어야 한다”며 “범죄자의 추징금 미납액을 공공정보로 등록해 신용정보에 반영되도록 하는 등 추징금 납부율을 높일 제도정비 방안과, 환수 인력이 부족하다면 검찰이 금융당국과 협의해 자산관리공사에 미납 추징금 추심을 위탁하는 방안을 모두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공소시효의 속임수, 범죄자도 빠져 나간다
24억 탈세범, 공소시효 지나 처벌 못 해: 2018년 6월 7일 언론 보도를 보면 공소시효의 빈틈과 범죄자들이 그 빈틈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수백억 원대 자금으로 사채업을 하던 민 아무개 씨는 2012 년 4월 이자소득세(회계연도 2006-2009년 기준) 24억 원을 탈루해 국세청으로부터 고발당했습니다. 두 번에 걸쳐 이 사건을 조사한 검찰은 민 씨를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두 번에 걸쳐 6년여 동안 해외에 머물렀는데, 이 기간 조사 한 번 받지 않은 상태에서 공소 시효 5년(2015년 5월)이 훌쩍 지나버렸다고 본 것입니다. 그가 2016년 3월 밀입항을 하다 해경에 적발되었을 때는 이미 탈세혐의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였던 셈입니다. 더욱이 검찰이 이 사건 공소 시효를 고무줄처럼 수차례 변경해온 것으로 확인되어 논란이 일었습니다.
해외에 몰래 나간 조세범에 검찰 ‘범죄 의식 없다’ 결론: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한석리)는 민 씨의 조세범 처벌법 위반 혐의가 검찰에서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2016년 11월)된 사건을 재수사해 달라고 지난해 8월 접수된 진정사건을 9개월여 만인 2018년 5월 29일 공람 종결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 공소시효를 기존 2016년 7월 20일에서 2015년 5월 31일로 정정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민씨는 2009년 5월부터 2011년 7월까지(1차 출국) 이어 2011년 10월부터 2016년 3월까지(2차 출국) 해외에 체류했는데, 앞선 수사에서 공소시효에 포함하지 않았던 1차 출국까지도 공소시효에 포함해 그만큼 공소시효 만기 시기를 앞당긴 것입니다.
검찰 관계자는“출국 당시 해당 사건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려울 경우 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라고 설명했습니다. 조세범 처벌법은 친고죄로 국세청의 고발이 있어야 처벌이 가능한데, 민 씨의 1, 2차 출국이 모두 국세청 고발(2012년 4월) 이전에 이뤄져 그 기간 공소시효를 정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2011년 8월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착수했으며 2013년 1월 검찰 조사과정에서 민 씨의 변호인이 선임된 사실이 있지만, 검찰은 이에 대해서도 “두 경우 모두 민 씨가 조사 사실을 알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소시효 네 차례 변경돼: 이뿐 아니라 검찰은 민 씨 조세 사건 공소시효를 모두 네 차례 변경했습니다. 검찰이 기본적인 공소시효 계산을 잘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문제는 공소시효가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수사 기회는 날아갔고, 24억 원이라는 거액의 세금을 가로챈 탈세범은 그 사이 조사 한 번 없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형사소송법 253조 3항).
민 씨의 불기소 처분을 검찰의 단순 착오나 운 좋음으로 넘기기에는 의심스러운 대목이 많습니다. 민 씨는 여권 위조를 해가면서까지 밀출국한 이유에 대해서 “채권자들에게 발각될 것이 두려워 더 이상은 한국에 있을 수 없고, 채권자들에게 탄로가 날 우려도 있고 해서 밀출국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조사과정에서 그는 출국 후 줄곧 중국에 머물렀고 “정말 거지 같이 살았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검찰이 제시한 통신 내역 등의 물증 앞에 사실은 인도네시아에서 한 현지 법인의 도움을 받아 체류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밀항 비용까지 빌려야 했다던 민 씨는 부산지검에서 진술할 당시 검사장 출신 전관 변호사를 선임한 상태였습니다. 이후 지난해 서울중앙 지검 조세 사건 조사과정에서도 역시 전관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돈을 빌렸다는 사람에 대해선 “연락처도 기억나지 않고, 찾을 수도 없을 것” 이라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을 늘어놓지만 당시 부산지검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민 씨 사건을 조사한 해경과 경찰 모두 민 씨의 2차 출국을 ‘공소시효 도과 목적’ 이라고 판단해 민 씨를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시효를 네 차례나 변경하면서 결국 민 씨를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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