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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김용 소오강호2

by Casey,Riley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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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오강호 제 2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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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고봉은 말했다.

  [임진남, 자네는 청성파의 고수들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벽
사검보의 비밀을 토설하지 않았다고 자랑하고  있군! 맞아! 그대의 
집에는 벽사검보가 있지만 실토할 수  없다는 말씀이시겠지. 좋아! 
매운 맛을 보여 주겠다.]

  잠시 후 목고봉은 다시 말했다.

  [자네는 이미  초죽음이 되도록 고문을  당했으니 어디 더  손을 
쓸 데가 없군! 가만 내버려 두어도 한 시진  이상을 살 수 없을 것
이다. 자네가  죽은 다음 임평지  그 녀석을...... 험......  나는 
그 녀석을......]

  임 부인은 놀라 말했다.

  [우리 아들은...... 우리 아들은 어떻게 되었죠? 무사한가요?]

  목고봉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아직은 무사하다. 검보의 행방을 알려  준다면 나는 그대들에게 
아들을 데려다 주지. 그 녀석은 나에게  사로잡혀 있거든! 나는 그 
녀석에게 벽사검법을  가르쳐 뛰어난 고수로 만들어  줄 생각이다. 
임진남, 자네가  한평생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그 검법의  오묘한 
점을 내가 깨우쳐 줄 수도 닝다는 얘기야.  만약 벽사검보가 내 손
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나는...... 흥! 그 녀석을 때려  죽이고 말
테다.]

  곧이어 '쿵' '쾅' '우지직' 하는  음향을 들려왔다. 영호충은 그
가 집 안의  물건을 두드려 부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임 부
인은 놀라 외쳤다.

  [아니...... 그러면  안 돼요!  우리 아들을  때려 죽이지  마세
요!]

  목고봉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임평지는 나의  제자야. 그가 죽고  사는 문제는 내 손에  달려 
있지. 언제든지  내가 일장으로 그를  후려친다면 제 녀석이  죽지 
않을 수가 있겠어?]

  이어 '우지직' 하는  소리가 몇 번 울렸다. 다시  장력으로 무엇
을 후려쳐 부수는 모양이었다.
  임진남은 말했다.

  [여보, 더  말할 것 없소. 우리  아들은 그의 수중에  있지 않을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어찌 평아를  데리고 와서 우리를 위협하지 
않고 말로 협박하겠소?]

  목고봉은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군. 새북명타가 그대의  아들을 
죽이는 것이 뭐가  어렵겠는가? 설사 그가 나의 수중에  없다 해도 
내가 정말 그를 죽이려고 결심한다면 언제라도  죽일 수 있단 말이
야. 나의 친구는  천하에 널려 있으며 나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무
리들이 부지기수란 말이야. 그러니 그대의  귀여운 아들을 찾아 내
는 것은 조금도 힘든 일이 아니지.]

  임 부인은 나직이 말했다.

  [여보 저 사람이 우리 아들을 찾아 분풀이를 하면 어떡하죠?]

  임진남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부인, 만약 우리가 벽사검보의  위치를 알려 준다면 이 
꼽추는 검보를 손에 넣고 난 후 우리  아들을 죽일 것이오. 우리가 
말하지 않는다면 이  꼽추는 검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평아
의 목숨을 해치지 않을 것이오.]

  임 부인이 말했다.

  [그렇군요. 꼽추, 당신은 우리 부부를 죽이세요.]

  영호충은 거기까지  듣게 되자  목고봉이 크게 노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방법을 강구해 유인해 내지  않는다면 임진남 부부의 목
숨이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낭랑하게 외쳤다.

  [목 선배님! 화산파 제자 영호충이 사부의  명을 받고 목 선배님
을 모시러 왔읍니다. 사부님께선 상의할 일이 있답니다.]

목고봉은 이때  손을 쳐들고  임진남의 머리를 향해  내리치려고 
하다가 영호충이 절간 밖에서 낭랑히 외치는  소리를 듣고 크게 놀
랐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남에게 양보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화산파의  장문인 악불군에 대해서만은 무척  꺼렸다. 더구
나 군옥원에서  친히 악불군이  펼치는 자하신공의 위력을  목격한 
이후 더욱 악불군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는 임진남 부부를 협박
하는 광경을 악불군과  영호충이 엿들었다면 결코 자기를  그냥 두
지 않을 것 같았다.

  (악불군이 나보고 무슨  상의할 일이 있어 나오라는  것일까? 말
이나 그렇지  나에게 쓴맛을 보여주지 않겠어?  영웅호걸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일찌감치 이곳을 빠져 나가는게 상수다!)

  그는 즉시 말했다.

  [이 목모는  달리 중요한 일이  있어 상대해 드릴 여가가  없네. 
영사에게 여가가  있으면 새북으로 놀러오시라고 하게나.  이 목고
봉이 공손히 맞아 드리겠다고 전해 주게.]

  말이 끝나자  그는 두 발로  땅을 차며 대청에서 뜨락으로  몸을 
날려 재차 왼발로  땅을 가볍게 찬 이후 쏜살같이 지붕  위로 올라
갔다. 그리고 절간  뒤로 재차 몸을 날렸다. 그는 악불군이  앞 길
을 막을까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사라져 갔다.
  영호충은 그가 멀리 가자 크게 기뻐했다.

  (꼽추는 우리  사부님을 무척  두려워하고 있었군! 그가  도망을 
가지 않고 나에게 손을 썼다면 나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는 즉시  지팡이를 짚으며 절간  안으로 들어갔다. 절간  안은 
어두컴컴했으며 등불조차 켜 있지 않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반쯤 
누운 자세로  서로 의지하고 있는  광경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소질은 화산파의  문하인 영호충입니다. 임평지  사제와는 동문
의 정을  나누게 되었지요. 임  백부님과 백모님에게 인사  올립니
다.]

  임진남은 기뻐서 말했다.

  [소협께서 깎듯이 인사를  차리니 감당할 길이 없구료.  이 늙은 
부부는 몸에 중상을 입어 답례하기  어려우니 용서해 주시오. 우리 
아이는 정말 화산파 악 대협의 문하로 들어가게 되었소?]

  최후의 한 마디를 할 때 그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악불군의 명
성은 무림에서 중천에 떠 있는  태양처럼 찬란한 것이었다. 임진남
은 여창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매년  예물을 보냈으나 악불군 등 
오악검파의 장문인들에겐  뇌물마저 감히 올릴 생각을  못했다. 더
구나 목고봉과 같이 무서운 고수도 화산파의  이름을 듣자 즉시 도
망을 치지  않았는가? 자기 아들이 화산파의  문하제자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기쁘기 한량없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목고봉은 억지로  자기의 제자로 거둬
들이려고 했으나 자제분은 한사코 고집을  피우며 응낙하지 않았읍
니다. 그래서 그 꼽추가 해치려고 할 때  마침 저의 사부님께서 그
곳을 지나치시다가 자제분을 구하게  되었읍니다. 자제분이 한사코 
간청을 하며  우리 화산  문하로 들어오겠다기에 사부님께선  그의 
성품이 성실하고  대성할 인물임을  알고는 응낙하셨읍니다.  조금 
전 저의 사부님은  여창해와 검으로 싸우게 되었는데  여창해를 패
배시켜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치게 만드셨답니다.]

  임진남은 말했다.

  [아무쪼록...... 아무쪼록 평아가 즉시  이곳으로 달려왔으며 좋
겠소. 늦었다간...... 늦었다간 모든 일을 그르치게 된다오.]

  영호충은 임진남이 말을  할 때 숨을 들이마시는  것보다 내쉬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 
증거였다.
  영호충은 급히 말했다.

  [임 백부님,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의  사부님은 곧 이리로 오실 
것입니다. 그 어른신께서는 반드시 두  분의 상처를 치료하실 겁니
다.]

  임진남은 쓰게 웃더니 두 눈을 감고 나직이 말했다.

  [영호 현제,  나는...... 나는......  글렀소. 평아가  화산파의 
문하로  들어가니......  나는 실로  기쁘기  그지  없소.  아무쪼
록...... 아무쪼록  그대가 이후......  그를 많이 지도해  주시고 
돌보아 주시구료.]

  영호충은 말했다.

  [백부님,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동문으로서 한 사부  밑에서 무
공을 배우는 처지입니다. 친형제나 다름이  없읍니다. 소질은 오늘 
백부님의 부탁을 받은 바, 마땅히 임 사제를 잘 돌볼 것입니다.]

  임 부인이 입을 열었다.

  [영호 소협의 큰 은혜는 우리  부부가 죽어 구천지하에 가서라도 
잊지 않을 거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두 분께선 정신을  가다듬고 정양하십시오. 너무 많은  말을 하
시면 안 됩니다.]

  임진남의 호흡이 더욱 거칠게 변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
다.

  [아무쪼록...... 아무쪼록  나의 아들에게 전해  주시오. 복주향
양항(福州向陽巷)의 옛집  지하실에 있는 물건은......  우리 임씨 
집안에서  조상대대로 전해오는  물건이니...... 반드시......  잘 
보관하라고......  증조부이신  원도공(遠圖公)께서  유훈(遺訓)을 
남기셨는데 누구라도  그 물건을 펼쳐  보면 안 된다고  했소이다. 
그것을 펼쳐 보면  무궁화 화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소...... 그
에게 잘 기억하라고 전해 주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부님의 말씀을 제가 꼭 전해 주겠읍니다.]

  임진남은 말했다.

  [정말...... 정말...... 정말......]

  그는 '고맙다'  는 말을 시종  내뱉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
다.
  그가 억지로 버텨 온 것은 아들을  한번 보겠다는 바램 때문이었
다. 그러다  마음속에 접어둔 중요한  말을 하게 되자  아들에게는 
이미 빛나는  미래가 약속된 터라  크게 기쁜 나머지 마음을  놓게 
되었다. 그리하여 안심하고 눈을 감은 것이었다.
  임 부인이 말했다.

  [영호 소협,  아무쪼록 그대는  우리 아들에게 부모님의  원한을 
잊지 말아달라고 전해 주시오.]

  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절간의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을 향
해 머리를  부딪쳐갔다. 그녀는  상처가 가볍지 않은  모양이었다. 
머리를 부딪치게 되자 대뜸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영호충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여창해와 목고봉이  벽사검보가 있는 곳을 실토하라고  모진 고
문을 가했는데도 말을  않더니 이제서야 자기 명이  다했다는 사실
을 알고  부득불 나에게 벽사검보의  비밀을 알려 주었구나.  그는 
내가 임씨  집안의 검보를 차지할까봐  '펼쳐보면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무궁한 화근을  당한다' 는 말을 덧붙였군! 허허허!  이 영
호충이 어떤 사람인데 당신들 임씨  집안의 검보를 엿보겠소? 그야
말로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격이지.)

  이대 그는  피로할 대로 피곤해져  있었다. 기둥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절간 밖에서 악불군의 음성이 들려왔다.

  [우리 안으로 들어가 보자.]

  영호충이 외쳤다.

  [사부님! 사부님!]

  악불군은 기뻐서 소리쳤다.

  [충아냐?]
  [녜.]

  그는 기둥을 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때 동녘 하늘이 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악불군은 절간 안으
로 들어와 임씨 부부의 시체를 발견하더니 눈쌀을 찌푸렸다.

  [저들은 누구냐?]

  영호충은 말했다.

  [임진남 부부입니다.]

  영호충은 목고봉이 어떻게  핍박을 하고 자기가 어떻게  그를 사
부의 이름으로 놀라게 해 도망치도록  만들었으며, 임씨 부부가 어
떻게 세상을  떠났는지를 일일이 이야기했다. 임진남이  남긴 최후
의 유언마저도 사부에게 말했다.
  악불군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여창해는 헛고생을 하느라고 큰 죄를 지었군!]

  영호충은 말했다.

  [사부님 여관주를 쫓아가 사과를 받아냈읍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여관주의 걸음은 무척 빨랐다. 내가  한동안 뒤쫓았으나 잡을수
가 없었다. 청성파의 경신법은 역시 화산파보다 한 수 위더구나.]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청성파의 엉덩이를 뒤로 한 채  도망치는 재간은 원래부터 다른 
문파보다 고명한 편이죠.]

  악불군은 엄한 표정으로 꾸짖었다.

  [충아, 너는 항상  말이 경박스럽다. 말을 할 때  조금도 점잖은 
기가없어. 그래  가지고 나중에 어떻게 여러 사제와  사매를 거느
리는 장문인이 될 수 있겠느냐?]

  영호충은 고개를 돌리고 혀를 한번 쑥 내밀었다.

  [알겠읍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알았으면 안 것이지 혀는 왜  내미느냐? 그것이야말로 성실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아니냐?]

  영호충은 대답했다.

  [녜.]

  그는 어려서부터  악불군의 밑에서 자라났다. 그들의  정은 부자
와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그는  사부를 두려워하고  우러러보기는 
했지만 결코 쩔쩔매지는 않았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혀를 내밀 때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사부님께선 어떻게 
제가 혀를 내밀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셨나요?]

  악불군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흥! 너의 귀  아래의 근육이 움직이는 걸 보았지.  그것은 혀를 
내밀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너는 언제나 제멋대로  굴더니 이
번에야말로 쓴 맛을 보았겠지? 상처는 좀 나았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녜, 많이 나았읍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말했다.

  [한번 쓴맛을 보게 되면 좀더 영리해지지 않겠어요?]

  악불군은 코웃음치더니 말했다.

  [흥! 너는 이미  꼬리가 아홉개나 달린 여우가  되었는데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느냐?]

  악불군은 품 속에서 하나의  화전포(火箭?)를 꺼내더니 뜨락으로 
나가 화섭자로 불을 당긴 후 하늘 높이 던졌다.
  화전포는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펑' 하는 소리를  내며 터졌다. 
그러자 새벽하늘에 한  자루의 새하얀 장검의 형체를  이루지 않는
가? 이것은 화산파의 장문인이 문하의 제자를 부르는 신호였다. 
  얼마 되지 않아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일제히 
절간 쪽으로 달려왔다.  얼마 후 고근명의 음성이 절간  밖에서 들
려왔다.

  [사부님, 어르신께선 이곳에 계십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나는 안에 있다.]

  고근명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와 허리를 굽혔다.

  [사부님!]

  그러다가 영호충을 발견하자 기뻐서 말했다.

  [대사형, 무사하시군요!  중상을 입었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걱
정했읍니다.]

  영호충은 미소지었다.

  [목숨이 끈질겨 아직도 죽지 않았다네.]

  발걸음 소리와  함께 노덕약과 육후아가 들어왔다.  육후아는 영
호충을 보자 사부에게  예의를 차리지도 않고 달려와  영호충을 끌
어안고 큰 소리로  기쁨에 찬 비명을 질러댔다. 세째  제자인 양발
과 네째 제자인 시대자가 차례로 들어섰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여덟째 제자인  영백나, 악불군의 딸인 악영산,  그리고 화
산파 문하로 갓 들어온 임평지가 달려왔다.
  임평지는 부모의 시체를  보더니 시체 위에 몸을  던지며 대성통
곡을 했다.
  악영산은 영호충이 무사한  것을 보고 놀람과 기쁨을  감추지 못
했다.

  [그대는...... 아무일 없나요?]

  영호충은 말했다.

  [아무일 없소.]

  이 며칠 동안 악영산은 대사형 때문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
른다. 만나게 되자 수일간 쌓인 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악영산
은 영호충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왁'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영호충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나직이 말했다.

  [소사매, 왜 이러지?  어떤 녀석이 그대를 괴롭혔군!  내가 복수
를 해줄테니 어서 말을 해봐.]

  악영산은 대답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울고 
나자 속이 시원한 듯 영호충의 옷자락으로  자기 눈물을 닦으며 말
했다.

  [대사형은 마빠요! 나는 대사형이 죽은 줄만 알았어요.]

  영호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이렇게  멀쩡하잖아? 어떤  녀석이 내가 죽었다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닌 모양이군.]

  악영산은 말했다.

  [말을 들으니까  그대는 청성파의 여창해에게 다시  일장을 맞았
다고 했어요.  여창해의 추심장(推心掌)은 심장에 충격을  주어 사
람을 죽이며  죽은 사람은 겉으로  보면 아무 상처도 없는  것처럼 
보여요. 나는 그가  적지 않은 사람을 죽이는  광경을 목격했어요. 
저는 깜짝 놀라서...... 놀라서.]

  영호충은 미소지었다.

  [다행히 그의 일장은  나에게 적중되지 않았소. 조금  전 사부님
께선 여창해로 하여금 도망치게 하셨다오.  그 광경은 정말 멋있었
지. 그대가 보지 못한 것이 매우 애석하구료.]

  악불군은 말했다.

  [그 일은 더이상  들먹이지 말아라. 누가 듣게  된다면 여관주가 
얼마나 창피하겠느냐?]

  영호충과 여러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영산은  눈물이 그
렁그렁한 모습으로 영호충을 바라보았다.  영호충의 모습이 초췌하
고 얼굴엔 핏기 한 점 없는 걸 보자 마음이 아팠다.

  [대사형, 이번엔......  정말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으셨군요. 
화산에 돌아가면 푹 쉬시며 몸조리를 하셔야겠어요.]

  악불군은 임평지가  여전히 부모의  시체 위에서 슬피  통곡하고 
있는 것을 보며 말했다.

  [평아, 울지 말아라. 너희 부모님의  후사를 처리하는 것이 중요
하다.]

  임평지는 몸을 일으키고 대답했다.

  [녜.]

  그러다가 모친의  두개골이 빠개져  온통 선혈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것을 보자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함께  있지  못했으
니...... 제게 무슨 유언을 남기셨는지 모르겠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임 사제, 그분들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나는 이곳에 있었다네. 
두 분 어르신께서는  나에게 자네를 잘 돌보아 달라고  하셨고, 영
존께서는 두 마디 유언을 남기셨네.]

  임평지는 허리를 굽혔다.

  [대사형, 대사형, 저희 부모님이 세상을  등지게 되었을 때 대사
형께서 옆에  계셔 주셨으니 그래도  한 사람도 없는 것보다  훨씬 
낫읍니다. 소제는...... 소제는 무엇으로  답례를 해야할지 모르겠
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청성파의 악당들이  여존께 모진  고문을 가하면서  벽사검보가 
있는 곳을 다그쳐 물었지만 그분께선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네. 그 
이후 목고봉이  재차 두 분  어르신을 핍박했다네. 목고봉은  본래 
타락한 녀석이니까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여창해는  일파의 종사
가 되어  그 같은 비열한  짓을 저질렀으니 실로 천하영웅들의  비 
웃음을 받아 마땅하다고 볼 수 있네.]

  임평지는 이를 갈며 말했다.

  [이 원한을 갚지 않는다면 임평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주먹을 쥐고 힘주어 기둥을  후려쳤다. 그의 무공은 평범
했으나 마음속에 분노가  끓어올랐던 터라 대들보 위의  흙 먼지가 
뿌옇게 떨어져 내렸다.
  악영산은 말했다.

  [임 사제, 이번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화근이라 할  수 있으니 
그대가 장래 복수를 할 때 나도 돕겠어요.]

  임평지는 허리를 구부렸다.

  [사저, 감사합니다.]

  악불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화산파가  언제나 내세우는 것이 상대방이  우리를 침범하
지 않는 한 우리도 상대방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교라는 
원수들을 제외하고 무림의 각 문파와는  아무런 원한이 없다. 그러
나 이후 청성파...... 청성파와는...... 아!  강호에 몸을 담고 있
는 몸으로  매사에 남의 비위를  거슬리찌 않기란 정말 쉽지  않은 
노릇이구나!]

  노덕약은 말했다.

  [소사매, 그리고 임  사제, 이번 화근은 임 사제가  여창해의 못
된 아들을 죽였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니고 순전히 여창해가 밍 
사제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벽사검보를  탐한데서 비롯된 것이
라네. 과거 청성파의 장문 장청자는  임 사제의 증조부이신 임원도 
선배님의 벽사검보 아래 패배했네. 그때부터  이 같은 불상사가 시
작된 것이라네.]

  악불군은 말했다.

  [맞다. 무림의 인물들은 싸우기를 좋아하고  무공의 요결이 적힌 
책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진짜이든 가짜이든 상관하지  않고 수
단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으려고  한단다. 기실 여관주나 새북명타
와 같은  신분을 가진 고수라면  너의 임씨 집안의 검보를  욕심낼 
필요는 없었는데도 그들은 지나친 욕심을 부렸다.]

  임평지는 말했다.

  [사부님, 제자의 집안에는 벽사검보라는  게 없읍니다. 칠십이로
의 벽사검법은  아버님께서 손과 입으로 전수해  주셨으며, 제자에
게 열심히 기억하라고 했을 뿐입니다.  만약 정말 검보가 있었더라
면 저의 아버님께서 옛날에 제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영호충이 말했다.

  [임 사제 영존의 유언에서는 보주향양항...... .]

  악불군은 손을 내흔들었다.

  [이것은 평아에게  남긴 유언이니 평아에게만  이야기하면 된다. 
다른 사람은 알필요 없다.]

  영호충은 말했다.

  [녜.]

  악불군은 말했다.

  [덕약과 근명, 너희  두 사람은 어서 두 분을 안치할  관을 사오
도록 해라.]

  임진남 부부를 염하고 나서 관에 안치한  후 일행은 커다란 배를 
타고 북쪽을 향했다.
  하남성 서쪽에  당도하자 뭍으로 올라왔다. 영호충은  커다란 수
레 안에서 상처를 치유하게 되었다.
  여칠 후  그들은 화산 옥녀봉(玉女峰)아래 당도했다.  임진남 부
부의 관은  잠시 옥녀봉 옆에  있는 조그만 절간에 맡기고  날짜를 
택해 다시 안장하기로  했다. 고근명과 육후아는 먼저 산  위로 올
라가 전갈을 했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산 아래로 마중을  나와 사
부에게 인사를 했다. 임평지는 제자들의  나이가 많은 사람은 이미 
삼십을 넘었고 어리다  해도 십 오륙 세가 되며 그  가운데는 여섯 
명의 여제자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여제자들은 악영산을 보자 
조잘조잘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노덕약은 임평지에게 일일이 
소개를 했다. 화산파의  규칙은 입문이 빠른 사람이 형이  되고 뒤
에 들어오는 사람이 아우가 되어서  나이가 어린 서기(舒奇)에게도 
임평지는 사형이라고 불러야 했다. 다만  악영산만은 예외였다. 그
녀는 악불군의 딸이기 때문에 제자들의 입문  서열을 따질 수 없었
고 나이에 따라 칭호를 하였는데 그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그
녀에게 사매라고 불렀다. 그녀는 임평지보다  몇 살 아래였으나 그
녀가 하도 우기는  통에 임평지는 그녀에게 사저라고  부르기로 했
다.
  봉오리를 오르며  임평지는 여러 사형들의 뒤를  따랐다. 산세는 
매우 험준했고  수목이 울창했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
렸고 물 흐르는 소리도 들렸다. 너댓 채의  하얀 담장을 두른 커다
란 집들이 산허리를 등지고 높고 낮게 펼쳐져 있었다.
  한 중년의 아름다운 여인이 천천히  다가왔다. 악영산은 나는 듯 
달려가더니 그녀의 품 속으로 뛰어들며 부르짖었다.

  [어머님! 저에게 사제가 또 한 명 생겼어요!]

  그리고 웃으며 임평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임평지는 사형들로부터  사모님인 악 부인  영중칙(寧中則)은 사
부와 동문 사남매이며 검술의 정묘함에 있어  사부 못지 않다는 말
을 들은 터였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제자 임평지가 사모님께 인사 드립니다.]

  악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훌룡하구나! 몸을 일으키도록 해라.]

  그녀는 악불군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산을 한번  내려갈 때는 언제나 많은 제자를  거두지 않
았나요? 이번에는  적어도 서너 명의 제자를  저두리라 생각했는데 
어찌하여 한 명밖에 거두지 않았죠?]

  악불군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언제나  양보다는 질이  중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대가 
볼 때 이 한 명이 뛰어난 보배라고 생각되지 않소?]

  악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생긴 것이  너무 준수하여 무공을 제대로연마할  것 같
지가 않군요. 차라리 당신을 흉내내어  사서오경이나 읽은 후 과거
를 보아 장원급제를 하는게 낫겠어요.]

  임평지는 얼굴을 붉히며 생각했다.

  (사모님은 내가 문약하게 생겨 얕보는구나.  나는 열심히 노력하
여 사형들 못지 않은 무공을 닦아 남의 비웃음을 받지 말아야지!)

  악불군은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좋지. 화산파에서  한 명의 장원이 나오면  누구나 화산
파가 문무를 겸했다고 부러워할 것이오!]

  악 부인은 눈을 돌려 영호충을 노려보더니 말했다.

  [너는 또 싸우다  상처를 입은 모양이구나. 어찌  얼굴빛니 그토
록 창백하냐? 상처는 심하지 않느냐?]

  영호충은 미소지었다.

  [이미 많이 나았읍니다.  명이 길지 않았다면 이번엔  뵙지 못할 
뻔 했읍니다.]

  악 부인은 눈을 한번 흘기더니 말했다.

  [이번의 일은 너에게 '하늘 밖에 하늘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다' 는 진리를 가르켜 준 것이다.  패한데 대해선 깨끗이 승복했
겠지?]

  영호충은 말했다.

  [전백광 녀석의 쾌도(快刀)를 이 제자는  감당할 수 없었읍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모님께 가르침을 받고자 생각했었읍니다.]

  악 부인은 영호충이  전백광의 손에 상처를 입었다는  말을 듣고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전백광 같은 악적과 싸웠군! 정말 잘 한  일이다. 나는 또 네가 
쓸데없는 시비를  불러일으킬 줄  알았다. 그의 쾌도가  어떻더냐? 
우리 잘 연구해 보자. 다음엔 그를 상대로  멋지게 싸울 수 있도록 
말이다.]

  길을 오면서 영호충은 수차례 사부에게  전백광의 쾌도를 깨뜨리
는 방법을 물었으나 악불군은 시종  말하지 않았었다. 화산에 돌아
가 사모님에게  가르침을 받으라고 했을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악 부인은 그 같은 사연을 듣더니 크게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일행은 악불군이  거처하는 유소불위헌(有所不爲軒)으로  들어가 
그 동안의  경과에 대해 담소를  나누었다. 여섯 명의  여제자들은 
악영산이 복주와 형산에서 듣고 본 사실을  이야기해 주자 모두 부
러워했다. 육후아는  사제들에게 대사형이  어떻게 해서  전백광을 
상대로 싸웠는가를 크게 떠들었으며 나인걸을  죽인데 대해서는 잇
는 말 없는 말을 보태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의 이야기대로라면 
전백광이 대사형에게 진  것이지대사형이 그에게 형편없이  진 것
이 아니었다. 뭇사람들은 간식을 먹고 차를  마셨다. 그런 후 악부
인은 영호충에게 전백광의 도법에 대해 물어보았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전백광 그 녀석의  도법은 정말 훌룡했읍니다. 당시  제자는 눈
이 어지러울 지경이었으며  막아내려 했지만 전혀 막아낼  수가 없
었읍니다.]

  악 부인은 말했다.

  [네 녀석은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억지를 썼을 것이다.]

  영호충은 어려서부터  그녀에 의해 양육되었다. 따라서  악 부인
은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영호충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때 동굴 밖에서  싸우게 되었을 때 항산파의 그  사매는 떠나
갔지요. 제자는 부담이 적어졌기 때문에  전백광 그 녀석과 전력을 
다해 싸웠읍니다. 그런데  싸운 지 얼마되지 않아 그는  쾌도를 펼
쳐냈읍니다. 제자는  이초로 막아내고 야단났다고  생각했지요. 이
번에야말로 내  목숨이 다했다고 생각했읍니다. 나는  갑자기 껄껄 
소리내어 웃었죠.  전백광은 칼을 거두며 물었읍니다.  '뭐가 우스
운가? 그대가  이 비사주석(飛沙走石)이라는 수법을 막아낼  수 링
다는 것인가?'제자는 웃으며 말했읍니다.  '명성이 쟁쟁한 전백광
이 알고 보니  우리 화산파에서 쫓겨난 제자였군!  천만 뜻밖이야! 
천만 뜻밖이야!  그렇지. 틀림없이  그대는 나쁜 일만  일삼았다가 
본파에서 쫓겨났을  것이오.' 전배광은 말했읍니다.  '누가 화산파
에서 쫓겨난 제자란  말이야? 터무니없는 소리! 이  전모의 무고은 
독특하여 한 문파를 이루다시피하는데 화산파와  무슨 상관이 있다
는 것인가?' 제자는  웃으며 말했죠. '그대의 도법은  모두 십삼식
이 아니겠소?  비사주석이라는 것은 그대 자신이  아무렇게나 멋진 
이름을 만들어 붙인 것이겠지. 나는  사부님과 사모님이 대련을 하
시는 광경을 본 적이 있소. 당신이 방금  펼친 일초는 우리 사모님
이 꽃을 수놓게  되었을 때 우연히 생각해낸 것이오.  우리 화산에
는 옥녀봉이 있는데 그대는 들어본  적이 있소?' 전백광은 말했다. 
'화산에 옥녀봉이  있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느냐? 그게  어쨌다는 
거야?' 저는 말했읍니다. '우리 사모님이  창출하신 검법은 옥녀금
침십삼검(玉女金針十三劍)이라고 불린다오. 그  가운데는 천침인선
(穿針引?)  천의무봉(天衣無鋒) 야수원앙(夜繡鴛鴦)  등의  초식이 
있소.' 저는  말을 하면서 손가락을 헤아렸읍니다.  '그렇군! 방금 
그대가 펼친 검초와 도법은 우리 사모님이  창출하신 제팔 초 직녀
천사(織女穿梭)에서 변화된  것이오. 당신 같은 대한이  우리 사모
님의 부끄러움을 타는  자세, 즉 꽃과 같은 천상의  직녀가 베틀에 
앉아 섬섬옥수로 베틀의 부을 이쪽에서  던졌다가 저쪽으로 던지는 
자태를 흉내냈으니 어찌 우습지 않겠소?']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악영산과 뭇  여제자들은 깔깔거
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악불군은 빙긋 웃고는 꾸짖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였구나!]

  악 부인은 탓하며 말했다.

  [네 멋대로 씨부렁거리는건 상관없다마는  하필이면 이 사모님을 
끌어들일 게 뭐냐? 정말 매를 맞아야 하겠군!]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사모님께선 모르십니다. 그 전백광은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그
의 도법이 사모님께서  창출한 것이라고 말하면 그는  반드시 진상
을 밝히려고  제자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거죠. 아니나 
다를까? 그는 도법을 일초 일초 펼쳐 보였는데  일초를 펼친 후 한
마디씩 물었읍니다.'이것도 그대 사모님이  창출하신 것인가?' 제
자는 짐짓 생각에  잠긴 척 말하지 않고 속으로 그의  도법을 외웠
읍니다. 그가 십삼식을 펼친 후에야  입을 열었죠. '그대의 도법은 
우리 사모님이 창안하신 것과 조금  다르지만 대체로 같소. 그대는 
어떻게 화산파로부터 훔쳐  배웠소?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구료' 전
백광은 노해 말했어요. '그대는 나의 도법을  당할 수 없으니 궤변
을 늘어놓아  시간을 끌면서 이  도법의 초식을 알아보려고  했군! 
내가 모를 줄 알아? 화산파에 이 같은  도법이 있다면 그대가 펼쳐
서 이 전모에게  구경을 시켜 주시지?' 제자는  말했죠. '귀파에선 
검을 사용하지  칼은 사용하지 않는다오. 거기다가  사모님의 옥녀
금침검은 여제자에게만  전수하는 것이고 남자에겐  전수하지 않는 
것이오. 우리 같은 사내대장부가 그  같은 계집애들의 검법을 배운
다는 것은  무림의 친구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행위가  아니겠소?' 
전배광은 더욱 화를  냈읍니다. '비웃던 비웃지 않던  오늘 그대로 
하여금 화산파엔 내가  펼친 무공이 없다는 것을  승인하도록 만들
어 줄테다. 이 전모는 그대가  사내대장부인줄 알았는데 함부로 지
껄여 나를 희롱을 하다니 정말 실망이 크군!']

  악영산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 같은 몰염치한  악적은 희롱을 할수록 좋지.  대사형이 그를 
희롱한 것은 참 잘 한 일이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내가 만약  내멋대로 날조한 
옥녀금침검을 한번  펼치지 않는다면  즉시 목숨을 빼앗길  위험이 
있었지요. 부득이 그의 도법을 흉내내어  되는 대로 펼쳐 보였는데 
그 당시 나는 여자들처럼 엉덩이를 이리 흔들 저리 흔들했죠.]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사형은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면서도 초식을 제대로  펼칠 수 
있었나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 그대가  검법을 펼지는 모습을  많이 보았던 터라  별로 
어렵지 않더군!]

  악영산은 말했다.

  [아! 사형은  내가 검법을 펼치는  모습을 흉보는 거군요?  나는 
사흘 동안 사형과 놀지 않을 터예요.]

  악 부인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산아, 너는 장검을 빼어 대사형에게 주어라.]

  악영산은 장검을 뽑아 영호충에게 내밀며 웃었다.

  [어머니께선 그대가엉덩이를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하며 검법을 
펼치는 우스운 꼴을 보고 싶으시대요.]

  악 부인은 말했다.

  [충아 산아의  터무니없는 말을 아랑곳하지  말고 그 당시  네가 
어떻게 펼쳤는지 시범을 보여주렴!]

  영호충은 즉시 장검을 받은 후 사부와  사모님께 허리를 굽혀 인
사를 했다.

  [사부님, 사모님 제가 전백광의 도법을 펼쳐 보이겠읍니다.]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육후아가 임평지에게 귀엣말로 소근거렸다.

  [임 사제,  우리 문중의 규칙에  의하면 나이 어린 사람이  어른 
앞에서 검법을 펼칠 때는 반드시 먼저  윗어른에게 알려 허락을 받
아야 한다네.]

  임평지는 말했다.

  [녜, 육 사형의 가르침에 감사 드립니다.]

  이때 영호충은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하품을  하며 두 손을 힘없
이 들어 올렸다. 마치 기지개라도 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별안간 
오른쪽 손목을 들추며  잇달아 삼 검을 쪼개내는데  재빠르기는 번
개 같았으며,  찍찍 하는 소리가  일었다. 뭇 제자들은 깜짝  놀랐
다. 몇 명의 여제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아' 하고 비명을 질렀다. 
영호충은 검법을 펼쳐냈는데 그 모양은 잡다한  게 법칙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악불군과  악 부인은 수십 초를 똑똑히  관찰할 수 
있었는데 한번 찌르고 한 번 내리치는  등 그 초식이 악랄하면서도 
교묘하기 이를데 없지  않은가? 잠시 후 영호충은 검을  거두고 웃
더니 사부와 사모에게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했다.
  악영산은 약간 실망하여 말했다.

  [너무 빨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없네요!]

  악 부인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드시 빨라야 좋단다.  이 십삼식의 쾌도에는 매식에  삼사 초
의 변화가 있다.  그리고 삽시간에 사십여 초를 펼치니  세상에 보
기드문 쾌도이다.]

  영호충은 말했다.

  [전백광 녀석이 펼칠 때는 제자보다 더욱 빨랐읍니다.]

  악 부인은 악불군을 한번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감탄
하는 빛이 어려 있었다.

  악영산은 말했다.

  [대사형, 어째서 엉덩이를 오리처럼 흔들지 않았죠?]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이 며칠 동안 나는 수시로 그 쾌도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에 자
연 신속해진거야.  그러나 그날 황산에서 전백광에게  펼쳐 보이게 
되었을 때는 이토록   빠르지 않았어. 일부러 그의  도법과 비슷하
면서도 다르게 보이기  위해 교태어린 여인의 모습을  보여 주려고 
노력했지.]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인이 교태를 부리는 멋진  자세를 취했는지 
빨리 보여 주세요.]

  이때 악 부인이 몸을 돌리더니 한  명의 여제자 허리에서 장검을 
뽑아들고 영호충에게 말했다.

  [쾌도를 펼쳐라!]

  영호충은 대답했다.

  [녜.]

  쑥 하고 장검이 악 부인의 몸 뒤로  돌아갔다. 검날은 대뜸 그녀
의 허리를 베어 갔다.
  악영산은 놀라 부르짖었다.

  [어머니, 조심하세요!]

  악 부인은 몸을 튕기듯 앞으로 한덜음  내딛으며 영호충이 등 뒤
에서 베어나오는 일검을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들었던  장검을 곧
장 뻗쳐내 영호충의 가슴을 찔러갔다.  그녀의 수법은 눈부실 정도
러 빨랐다. 악영산은 다시 놀라 부르짖었다.

  [대사형, 조심하세요!]

  영호충은 역시 다른 생각을 않고 일검을 냅다 찌르며 말했다.

  [사모님, 그는 훨씬 더 빨랐읍니다.]

  악 부인은 휙휙휙  하며 잇달아 삼 검을 찔러댔다.  영호충은 동
시에 삼 검을 반격했다. 두 사람은 속공으로  맞섰고 하나 같이 공
격만 하는 형태였으며 자기 몸을  보호하는 초식은 하나도 없었다. 
순식간에 사모님과 제자는 이십여 초를 겨루게 되었다.
  임평지는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이 벌어졌다.

  (대사형은 언행이  우스꽝스러운 데가 있지만 무공은  정말 뛰어
나구나! 이후 나는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무공을 연마해
서 남에게 비웃음을 받지 않도록 해야 되겠다!)

  바로 이때 악 부인은 번쩍하는 순간  일검의 끝으로 영호충의 목
을 겨누었다. 영호충은 피할 수 없어 말했다.

  [그였다면 막았을 것입니다.]

  악 부인은 말했다.

  [좋아!]

  그리고 손에 든  장검을 휘두르며수초가 지나서  재차 영호충의 
가슴을 겨누었다. 영호충은 여전히 말했다.

  [그는 막을 수 있읍니다.]

  그 뜻은 자기는 막을 수 없지만  전백광이라면 도법이 훨씬 빠르
기 때문에 그 일초일초를 모조리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더욱 빠르게 돌아갔다. 영호충은  '그는 막을 수 있읍
니다.' 라고 말할  여유도 없었다. 매번 악 부인의  일검에 제압을 
당하게 되었을 때  고개를 가로저어 그 일검으로선  여전히 전백광
을 죽일 수  없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악 부인은  장검을 휘두르다 
갑자기 흥이솟구치는 듯 별안간  맑은 소리로 휘파람을  불었다. 
검날이 끊임없이  번쩍이며 영호충의  몸 주위를 돌아가며  찔러댔
다. 은빛 광채가 난무하는 가운데  뭇사람들은 눈이 어지러울 지경
이었다. 별안간 그녀는  일검을 뻗쳐 영호충의 가슴을  푹 찔렀다. 
번개 같은 빠름이었고 우뢰와 같은  기세였다. 영호충은 깜작 놀라 
부르짖었다.

  [사모님!]

  이때 장검은  그의 옷자락을 뚫고  있었다. 악 부인은  오른손을 
여전히 앞쪽으로  내밀었다. 장검의 손을 보호하는  방패막이가 영
호충의 가슴에 닿을 지경이었다. 그  일검은 영호충의 몸을 관통했
으며 자루가 있는 곳까지 푹 꽂힌 것 같았다.
  악영산은 놀라 부르짖었다.

  [어머니!]

  이때 '쨍그렁'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일었다. 그리고 한  조각 
한 조각 한  치 정도 길이의 토막난 단검이 영호충의  발밑으로 떨
어졌다. 악 부인은 깔깔 소리내어 웃으며  손을 멈췄다. 그녀의 손
에 들린 장검은 겨우 자루만 남아 있었다.
  악불군은 웃으며 말했다.

  [사매, 내력이 그토록 진보했구료! 나 역시 모르고 있었소!]

  그들 부부는  동문으로서 짝을 맺었다.  젊었을 때 부르던  것이 
습관이 되어 결혼을 한 후에도 사남매를 칭호하고 있었다.
  악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과찬이예요. 이까짓 조그만 재간은 말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예
요.]

  영호충은 땅바닥에  토막난 검 조각을 내려다  보며 아연해졌다. 
그는 악 부인이 일검을 찔러댔을 때  전력을 돋우었다는 사실을 알
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검이  이토록 신속할 리 없는  것이다. 
검의 끝이 그의  살갗에 닿는 순간 그녀는 한 가닥  웅후한 내력을 
쏟아내었던 것이다. 격렬한 충격에 한  자루의 장검은 토막나 버렸
던 것이다. 악 부인이 내경(內勁)을  운용하는 재간은 출신입화(出
神入化)의 경지에까지 도달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영호충은 탄복했다.

  [전백광의 도법이 빠르다 해도 사모님의  이 일검은 결코 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임평지는 영호충의 옷  여기저기에 구멍이 난 것을  보며 생각했
다.

  (세상에 이같이  고명한 검술이  있었다니! 내가 조금만  배워도 
부모의 원수를 갚을 수 있겠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청성파와 목고봉은  모두 우리 집안의 벽사검보를  욕심내고 있
다. 그러나  우리 집안의 벽사검법은  사모님의 검법과 비교할  때 
천양지차이다!)

  악 부인은 득의양양해서 말했다.

  [충아, 이 일검으로 전백광을 죽일 수  있다고 네가 믿는다면 너
는 열심히 무공을 익혀라. 나는 이 검법을 네게 전수해 주겠다.]

  영호충은 말했다.

  [사모님, 감사합니다.]

  악영산은 말했다.

  [어머니, 저도 배우겠어요.]

  악 부인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너의 내공 조예가  그 지경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이  일검은 배
울 수가 없다.]

  악영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못마땅한 듯 말했다.

  [대사형의 내공은 나보다  별로 나을 게 없다구요!  어째서 그는 
배울 수 있고 저는 배울 수 없다는 거예요?]

  악 부인은 미소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악영산은 부친의 소매자
락을 붙잡고 말했다.

  [아버지, 저 일검을 깨뜨릴 수 있는  재간을 저에게 전수해 주세
요. 그래야 대사형이 그 일검을 배우게 되었을  때 저를 못살게 굴
지 않을 거예요.]

  악불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네 어머니가  펼친 일검은 '무쌍무대(無雙無對)  영씨일검(寧氏
一劍)'이라는 것으로  천하무적인데 나에게 깨뜨릴  방법이 있겠느
냐?]

  악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예요? 저를 추켜세우는  것은 상관 
없지만 그 같은 말이 소문나면 무림의  동도들이 배꼽을 잡으며 웃
을 거예요.]

  악 부인의 이 일검은 바로 우연히  떠오른 영감에서 창안한 것이
었다. 이  가운데는 화산파의 내공과  검법의 절묘함이 들어  있었
다. 거기다 그녀의 총명함과 지혜가  첨가되었기 때문에 정말 무서
운 검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금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물론 이름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악불군은 그 일검을 '악부인
무적검' 이라고  부르려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볼 때  부인은 
자존심이 강한 여자였다. 혼례를 치른  후에도 다른 사람들이 그녀
에게 영여협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악  부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 영여협이라 부르는 것은  그 자신의 재간이 뛰어나
므로 떠받드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악  부인이라는 한 마디는 대명
이 쟁쟁한 남편의  덕을 본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겉
으로는  남편이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무쌍무대 영씨일검' 이라는  여덟 글자를 듣자 매우  기뻤던 것이
다. 그녀는, 남편은  역시 선비다운데가 있어서 자기의  일검에 듣
기좋은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좋아했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듯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간 기쁜 것이 아니었다.
  악영산은 말했다.

  [아버님도 언제가는 '무비무적,  악가십검(無比無敵, 岳家十劍)' 
을 창안해서  딸에게 전수해 주세요.  그러면 저도 대사형과  한번 
겨루어 볼 수 있지 않겠어요?]

  악불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안 돼. 너의 애비는 너의 어머니처럼  총명하지 못해 새로운 초
식을 창안할 수 없단다.]

  악영산은 입을 부친의 귀에 갖다대며 나직이 속삭였다.

  [아버님은 창안하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마누라가  무서워서 
감히 창안하시지 못하는 거죠?]

  악불군은 껄껄 소리내 웃으며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가볍게 한
번 꼬집어 웃으며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악 부인은 말했다.

  [산아, 아버지에게 매달려서 소란을 피우지  말아라. 덕약, 자네
는 가서 향촉을  준비하도록 하게. 그리하여 임 사제가  본파의 열
대조사들의 신위에 인사를 올리도록 해야지.]

  노덕약은 대답했다.

  [녜.]

  삽시간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악불군은 사람들을  데리고 후당
(後堂)으로 들어갔다.  임평지는 대들보에 한 조각의  편액이 걸려
있고 그 편액  위에 커다랗게 글자가 씌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
기어검(以氣御劍)>이라는  네 글자였다.  단상에는 촛불과  향로가 
마련되어 있었다. 양쪽 벽에는 여러  자루의 장검이 걸려 있었는데 
빛은 거무스름했고  수실은 색이 바랜  것으로 보아 오랜 된  듯했
다. 아마도 화산파의 전대(前代)고수들이 차던 검인 모양이었다.
  임평지는 생각했다.

  (화산파가 오늘날  무림에서 커다란  명예를 누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간악하고 요사한  악적들이 윗대 고수들의 장검  아래 목숨을 
잃었는지 모르겠군!)

  악불군은 향안(香案) 앞에서  무릎을 꿇고 네 번  큰절을 하더니 
두 손을 모았다.

  [제자 악불군은 오늘 복주 임평지를  제자로 거두게 되었읍니다. 
원하옵건데 역대  종사(宗師)들께선 하늘에 계신  영이나마 보호하
여 주시옵소서.  임평지로 하여금 열심히 무공을  연마하도록 하고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돌볼 줄 알며 본파의 규범을 엄히  지켜 화
산파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임평지는 사부의 말을 듣자 공손히 엎드렸다.
  악불군은 몸을 일으키더니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임평지, 너는 오늘  우리 화산의 문하가 되었으니  반드시 문규
를 지켜야 한다. 만약 어길 때는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처벌을 받
을 것이다. 죄가  크면 즉시 목을 베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본
파가 건럽된 지  이미 수백년, 무공에 있어 다른  문파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시적인 강약성패는 논할가치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본파의  제자가 하나같이 사문의 영예를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명심하도록 해라.]

  임평지는 말했다.

  [녜, 제자는 삼가 사부님의 교훈을 받들겠읍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영호충, 본파의 문규를 외워 임평지로 하여금 듣도록 해라.]

  영호충은 말했다.

  [녜. 임 사제, 잘 듣게. 본파에서  첫번째 계율은 사문의 어른을 
기만하거나 윗어른을 존경하지 않는 것,  둘째는 약한 자를 못살게 
굴고 함부로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 세번째 계율은  간교하고 
음란하여 여자를  희롱하는 것, 네째  동문을 질투하고 서로  죽고 
죽이는 것,  그리고 다섯번째는 이득에  눈이 어두어 의리를  잃는 
것과 재물을 훔치는 것, 여섯째는  교만방자하여 동도에게 죄를 짓
는 것, 일곱번째는 함부로 도적들을  사귀거나 요사한 무리들과 결
탁을 하는 것, 이상이 반드시  금해야만 될 화산의 칠계(七戒)로서 
본문의 제자는 삼가 받들어 행하여야 한다.]

  임평지는 말했다.

  [녜. 소제는  대사형께서 알려주신  화산의 칠계를 삼가  기억해 
두겠으며 애써 받들고 감히 어기지 않겠읍니다.]

  악불군은 미소지었다.

  [좋아, 이 칠계가 전부이다. 본파는  다른 문파처럼 많은 계율이 
없다. 너는  이 칠계만을 잘  지키고 정인군자의 행동을  저버리지 
않도록 해라.]

  임평지는 말했다.

  [녜.]

  그리고 그는 사부와 사모님에게 절을  하고 뭇사형과 사매들에게 
읍을 했다.
  악불군은 말했다.

  [평아, 우리는 먼저  너의 부모님을 안장하여 너의  자식된 도리
를 다하도록 하겠다.  그런 연후에 본문의 기본이 되는  재간을 전
수하겠다.]

  임평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땅바닥에 엎드려 말했다.

  [사부님과 사모님께 감사 드립니다.]

  악불군은 손을 뻗어 그를 부축이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본문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모두 한 가족과 다름없다.  어느 
누구에게 어떤 사고가  생겼아르 때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돌보아
야 한다. 앞으로는 쓸데없는 절은 삼가하도록 해라.]

  그리고 고개를 들더니 영호충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충아, 너는 이번에  산을 내려가서 화산칠계 가운데  어떤 계율
을 어겼지?]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평소 사부는 뭇제자들에게  매우 인자한 
편이었지만 누구나  문규를 어기면  엄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
다. 그는 즉시 향안 앞에 무릎을 끓고 말했다.

  [제자는 잘못을  알았읍니다. 제자는 사부님과  사모님의 가르침
을 듣지 않고 제 육계인 교만방대하여  동도에게 죄를 짓는 계율을 
어겼읍니다. 형산의  회안루에서 청성파의  나인걸을 죽인  것입니
다.]

  악불군은 코웃음쳤다. 그의 얼굴빛이 더욱 준엄해졌다.
  악영산은 말했다.

  [그것은 나인걸이  대사형을 핍박했기 때문이예요.  당시 대사형
이 전백광과 악전고투한  끝이라 몸에 중상을 입고  있었는데 나인
걸은 대사형의 위험한 처지를 노리고  공격했던 거죠. 대사형이 잠
자코 죽음을 당해야 하나요?]

  악불군은 말했다.

  [너는 쓸데없이  나서지 말아라. 이  일은 충아가 두 명의  청성 
제자를 걷어 찼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인걸이 
충아에게 괜히 화를 입혔겠느냐?]

  악영산은 말했다.

  [그 일은 이미  아버님께서 서른 대의 곤장을 내렸기  때문에 더 
이상 거론하면 안 돼요. 지금  대사형께서는 몸에 중상을 입었으니
까 더이상 매를 맞으면 큰일나요.]

  악불군은 딸을 한번 노려보더니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지금은 본문의 계율을  논하는 자리다. 너는 함부로  입을 놀리
지 말아라.]

  악영산은 부친이 자기에  대해 이처럼 날카롭게 꾸짖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억울한  생각이 들어 눈을 붉히며 
울려고 했다. 평소  때 같았으면 악 부인이 무슨  말로라도 위로를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악불군은 장문인의  신분으로 문을 
계율을 따지고 있었기  때문에 악 부인으로서도 딸을  위로하기 곤
란했다.
  악불군은 영호충을 향해 말했다.

  [나인걸이 네가 위태한 틈을 노리고  부당히 무력을 행사하자 너
는 죽음을  도외시하고 굴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내대장부가 마땅
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군옥원에서 너는 항
산파에 대해서 무례한  말을 했으며 여승을 보기만  하면 놀음에서 
반드시 진다고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여승을 보면  두려워한다고 
했다면서?]

  악영산은 호호 웃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제자는 당시 항산파의 그 사매를  한시바삐 보내기 위해서 그런 
소리를 했읍니다. 제자는 전백광의 적수가  되지 못해 항산파의 그 
사매를 구할 수 없었읍니다. 그러나  그녀는 의를 들먹이며 물러가
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제자는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였던 
것입니다. 그 같은  말을 항산파의 사매나 사숙들께서 들을  땐 물
론 기분이  나빴겠지만 사람을  살려야 했으니  어쩔 수가  없읍니
다.]

  악불군은 말했다.

  [네가 의림 사질을 떠나도록 하려고 한  것은 좋다. 하지만 좋은 
말도 많은데 하필이면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했느냐? 어
찌되었든 너는 너무 경박하다. 이런  일을 오악검파에서 모두 알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배후에서 네가 그  같은 망나니가 된 것이 
내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욕을 하고 있다.]

  영호충은 말했다.

  [녜. 제자는잘못을 알았읍니다.]

  악불군은 다시 말했다.

  [군옥원에서 상처를 치료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두자. 하지
만 너는 의림 사질과 마교의 소마녀를  이불 속에 숨기고서 청성파
의 여관주에게 형산의  기녀라고 했다. 이 일이 얼마나  커다란 위
험을 내포하고 있는지 아느냐? 그  일이 발각된다면 화산파의 명성
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항산파에도 누를  끼쳐 수백년간 
쌓은 명예를 하룻밤에 무너뜨리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어
떻게 항산파의 사람들을 대하겠느냐?]

  영호충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고 떨리는 음성
으로 말했다.

  [그 일은 제자도 염려하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사부님께서도 이
미 알고 계셨군요.]

  악불군은 말했다.

  [마교의 곡양이 너를 군옥원으로 보내  상처를 치료하게 한 사실
을 나는 후에 알았지만 네가 두  소녀에게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라고 말할 때 나는 창문 밖에 있었느니라.]

  영호충은 말했다.

  [다행히 사부님께서 제자가 결코 기녀를  끼고 잠을 자지 않았다
는 사실을 아셨으니 천만다행입니다.]

  악불군은 싸늘히 말했다.

  [네가 정말 기녀원에서 기녀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면 나는 이미 
너의 목을 잘라내었을 것이다. 어찌 오늘까지 살려 두었겠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녜, 잘 알겠읍니다.]

  악불군은 얼굴은 갈수록 엄해졌다.

  [너는 곡비연이  마교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어찌하여 일검
으로 그녀를 죽이지  않았느냐? 그녀의 조부가 네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베풀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마교의  사람들이 일부러 은혜를 
베풀어 우리  오악검파를 이간질하려는  술책이었다. 너는  바보가 
아닌데 왜 몰랐느냐? 그 사람들이 네 목숨을  구한 것은 속으로 커
다란 음모를  꾸미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정풍은  얼마나 똑똑하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냐? 그런데도 상대방의 술수에  넘어가 나중
에는 패가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마교의 그같이  음흉하고 독랄한 
수단은 네가 친히  본 바가 아니냐? 우리가 호남에서  화산에 이르
는 동안  나는 네가 한  마디라도 마교를 질책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충아, 그  사람들이 네 한 목숨을 구한 이후  너는 정사충
간(正邪忠奸)의 차이에  대해 매우 모호해진  것 같았다. 이  일은 
금후 네가출세를  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니  이 문
제를 애매하게 처리해선 안 될 것이다.]

  영호충은 그날 형산에서 유정풍을 만난  밤을 생각했다. 그때 곡
양과 유정풍은  칠현금을 튕기고 퉁소를 불며  합주하지 않았던가? 
곡양이 엉큼한 마음을  품고 일부러 유정풍을 함정에  빠뜨려 해친 
것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악불군은 그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아직도 자기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이 일은 우리 화산파의 흥망성쇠에  관련되며 네 일생의 안위와 
승패에 관계된다. 그러니 너는 나에게  조금도 감추려고 하지 말아
라. 내 너에게 묻겠는데 이후 마교의 사람을  만났을 때 정말 약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사정없이 죽일 수 있겠느냐?]

  영호충은 망연한 표정으로 사부님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 무
수한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내가 이후 마교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불문곡직하고 검을 뽑
아 죽일 수 있을까?)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사부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악불군은 그를 한참동안  주시했지만 시종 그가 대답을  하지 않
는지라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네가 억지로 대답을  하도록 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하지
만 네가 산을 내려가서 우리파의 명성을  크게 더럽힌 것은 사실이
니 너에게 일 년 동안 면벽(面壁)의 벌을  내리겠다. 이번 일을 처
음부터 끝까지 곰곰히 생각해 보도록 해라.]

  영호충은 허리를 굽혔다.

  [녜, 제자는 삼가 벌을 받겠읍니다.]

  악영산은 말했다.

  [일 년 동안이나  면벽을 하라구요? 그렇다면 이 일 년  동안 매
일 몇 시진씩 면벽을 하게 되나요?]

  악불군은 말했다.

  [뭐가 몇 시진이야?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먹고  잠자는 일
이외에는 면벽하고 있어야 한다.]

  악영산은 급히 말했다.

  [그럴 수 있어요?  답답해 죽고 말거예요. 설사 대소변도  안 된
다는 거예요?]

  악불군은 호통을 쳤다.

  [계집아이가 조금도 얌전한 말을 하지 못하고 무슨 꼴이냐?]

  악 부인은 말했다.

  [일 년간의 면벽이  뭐가 대단하냐? 과거 너의  조사께서는 잘못
을 저질러  옥녀봉 위에서 삼  년하고도 육 개월 동안  면벽하면서 
봉우리에서 한 걸음도 내려온 적이 없다.]

  악영산은 혀를 쏙 내밀었다.

  [그렇다면 일  년간의 면벽은  가벼운 벌인가요? 기실  대사형이 
여승을 만나면 놀음에 반드시 진다고 한  것은 완전히 사람을 구하
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일부러 욕한 것은 아니잖아요?]

  악불군은 말했다.

  [그는 호의에서 그런  말을 했기에 일 년간만 면벽하도록  한 것
이야. 만약 악의에 차서 그런 말을 했더라면  나는 그의 이빨을 모
조리 뽑아버리고 그의 혓바닥마저 잘라내고 말았을 것이다.]

  악 부인은 말했다.

  [산아, 아버님께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아라.  대사형이 옥녀봉
에서 면벽하며 잘못을  뉘우치는 동안 너는 대사형을  찾아가 쓸데
없는 농담을 하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아버님이  그를 위
해 취한 조치가 모조리 틀어지게 된다.]

  악영산은 말했다.

  [대사형을 옥녀봉 위에 감금시키는 것이  그를 위해서라구요? 또 
저보고 대사형과  농담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대사형이  어렵게 
되었을 때 누가  대사형을 위로해 줄 수 있겠어요? 또  일 년 동안 
누가 나의 검술연마를 도와줄 수 있나요?]

  악 부인은 말했다.

  [네가 그와 농담을 하게 된다면 그가 어떻게  면벽을 할 수 있겠
으며 과오를 생각할  수 있겠느냐? 이 산 위에는  사형들과 사저들
이 얼마든지  있으지 너는 누구와도  검술을 연마할 수 있을  것이
다.]

  악영산은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그럼 대사형은 무엇을  먹나요? 일 년 동안  봉우리에서 내려오
지 않는다면 굶어 죽지 않겠어요?]

  악 부인은 말했다.

  [그것은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밥을  갖다 줄 사람은 얼마든
지 있다.]

  그날 저녁 무렵 영호충은 사부님과  사모님, 그리고 여러 사제들
과 사매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한 자루의  장검만을 들고 스스로 옥
녀봉의 정상으로  올라갔다. 봉우리의 암벽에 하나의  동굴이 있었
다. 화산파 역대  제자들이 규칙을 어겼을 때 감금되어  벌을 받았
던 곳이다. 벼랑에는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았으며  나무도 없었
다. 동굴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화산은 초목이 무성하고 풍광
이 수려했다. 그러나 이 바위벼랑만은  예외였다. 옛부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옥녀(玉女)의  머리에 꽂는 비녀에 한알의  진주가 이 
벼랑으로 화한 것이라 했다. 화산파의  선조들이이 벼랑을 제자의 
잘못을 벌하는 장소로  택한 이유는 바로 이곳이 풀 한  포기 없고 
새들도 없어서  벌을 받는 제자가  다른 사물에 의해 방해를  받지 
않고 한 마음으로 뉘우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호충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땅바닥에는 미끈미끈한 바위가 
놓여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수백 년간  우리 화산파의 얼마나  많은 제자들이 이곳에  앉아 
세월을 보냈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커다란 바위가 이토록 
매끄럽게 되었을  것이다. 영호충은  오늘날의 화산파에서  첫번째 
가는 망나니다. 그러니  이자리에 내가 앉지 않고  누가 않겠는가? 
사부께서 오늘에서야  나를 이 바위에  앉게 한 것은 나에게  너무 
관대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는 손을 뻗쳐 바위 위를 툭툭 치며 말했다.

  [바위야, 바위야. 너는 몇 년 도안  홀로 지냈겠지? 오늘부터 영
호충이 너와 벗해 주마.]

  바위에 앉자 두눈과 석벽과의 차이는 한  자 정도밖에 되지 않았
다. 벽의 왼쪽에는 풍청양(風淸揚)이라는 세  글자가 씌어 있었다. 
예리한 무기로 새긴  듯했으며 필체가 힘차 보였다. 그  깊이는 반 
치나 되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풍청양이라는 분은 누구일까? 아마도 본파의  한 분 선배님으로
서 이곳에서  면벽을 하신 모양이구나.  아, 그렇지. 우리  조사들 
가운데 풍자(風字) 돌림의 배분이 있었다.  그러니 이 풍 선배님은 
나의 사백조이거나  사숙조였을 것이다. 이  세 글자는 매우  힘찬 
것으로 보아 그의 무공도 대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부님과 사모
님께서는 왜 한번도  들먹인 적이 없을까? 아마도 이  선배님은 이
미 세상을 떠나신 모양이다.)

  그는 눈을  감고 반 시진  동안 앉아서 내공을 연마하다가  몸을 
일으켜 가볍게  운동을 한 후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  면벽하여 
생각했다.

  (내가 이후 마교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불문곡직하고 그들
을 죽일 수 있을까? 마교의 사람들 가운데는  정말 좋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일까? 만약 좋은  사람이라면 어째서 마교에 들어갔
을까? 일시  길을 잘못 선택했다 해도  즉시 물러나야 할  것 인데 
물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 마교의 요사한  무리들과 벗하여 이 세상 
사람을 해치려는 속셈이 있지 않겠는가?)

  삽시간에 그의 뇌리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평소 사부와 사모
님께서 말하던  마교 사람들의  흉악한 행위들이었다.  강서(江西) 
우노권사(于老拳師) 일가족  십삼 명은  마교에 잡혀서 산채로  큰 
마무에 못박혔고 세  살 먹은 어린애들도 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노권사의  두 아들은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신음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제남부(濟南府) 용봉도(龍鳳刀)의 장문인  조등괴
(趙登魁)가 며느리를 맞게 되어 집안에 손님이  가득 찼을 때 마교
의 사람들이 끼어들어  신혼부부의 목을 뎅겅뎅겅 잘라서  여러 사
람 앞에  던지고 축하의 선물이라고  했다지 않는가? 그리고  한양
(漢陽) 학노영웅(?老英雄)의  칠십회 생일에 각처의  영웅호한들이 
모여 축하하게 되었는데 축하잔치를 하는  마룻바닥 아래에 마교가 
화약을 묻어 놓았다가  폭발을 시켜 영웅호한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죽고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태산파의 기(紀) 사숙
은 바로 그  사건으로 한 팔이 날라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것은 
기 사숙이 친히 말한 것이니 절대 틀림없을  것이다. 이 같은 생각
이 뇌리에  오갔고 다시  정주(鄭州) 대로(大路)에서 숭산파의  손
(孫) 사숙을 만난  적이 있었다. 손 사숙은 두 손과  두 발이 모조
리 잘렸으며 눈알마저 뽑혀져서 연신 부르짖지 않았던가?

  [마교가 나를  해쳤다!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 마교가  나를 
해쳤다!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

  그때 숭산파에서  달려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손 사숙이  그토록 
심한 중상을 입은 끝이라 어떻게 치료를 할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그의 얼굴에 난 두 개의  눈구멍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
러나오던 광경을 생각하고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며 생각
했다.

  (마교의수단이 그토록 악랄하니 곡양의  조손이 나를 구했다 해
도 결코 좋은  마음을 가지고 구했다고는 볼 수  없다. 사부님께선 
이후 마교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당장  죽이겠느냐고 물으셨
는데 그야말로 주저할 필요가 있겠는가?  당연히 검을 뽑아 죽여야
지!)

  이치를 깨닫게 되자 그의 마음은  개운해졌다. 길게 휘파람을 내
불며 뒤설음질쳐서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허공에서 날렵하
게 몸을 돌려  앞으로 나갔다가 땅 위에 내려섰다.  그리고 자세를 
가다듬은 이후 눈을 떴다. 바라보니  벼랑의 가장자리에 와 있었는
데 벼랑의 끝과는 불과 두 자 정도의  간격이 있을 뿐이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힘을 더  주었다면 두 자 정도 더 나아갔을  것이고 그
의 몸은 벼랑으로  떨어져 박살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가 눈을 
감고 몸을 날린 것은 사전에 계산을 하고 행한 것이었다.
  이후 마교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즉시  죽인다고 생각하니 
번뇌가 없어져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장난을 한 것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나의 담은 크지  않구나! 적어도 한 자 정도 앞으로  더 나갔어
야만 했다.)

  이때 누군가 그의 뒤에서 손뼉을 치며 웃었다.

  [재미있네요!]

  악영산의 음성이었다. 영호충은 크게 기뻤다.  악영산은 손에 커
다란 대바구니를 들고 방글방글 웃으며 말했다.

  [대사형, 밥을 가져 왔어요.]

  그리고 바구니를 놓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더니 몸을  돌려 바위 
벽을 마주보고 앉으며 말했다.

  [눈을 감고 벽을 마주보다가 벼랑으로  날아가는 것이 무척 재미
있어 보이네요. 저도 시험해 볼래요.]

  영호충은 이  시험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장난을 
친 것도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한연후에 시행하지  않았던가? 악영
산의 무공은 자기보다 훨씬 뒤떨어지니  힘을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사용치 않는다면  큰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무척 해보고 
싶어하자 만류하지 못하고 벼랑가에서 지켜보았다.
  악영산은 대사형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뛰어야 할 
거리와 힘을 가늠해보고  두 발로 땅을 차며 몸을  솟구쳤다. 그녀 
역시 허공에서 가볍게 몸을 돌려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녀는 영호
충보다 바위  가장자리에 가깝게 내려서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몸을 날릴 때 힘을 강하게 주었다. 몸이  내려설 때 그녀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눈을 떴다. 눈  앞은 바로 밑이  보이지 않는 
깊은 골짜기가 아닌가?  그녀는 깜짝 놀랐다. 영호충은  손을 뻗어 
그녀의 왼팔을 잡았다. 그녀는 땅 위에  내려섰다. 벼랑 끝과는 한 
자 정도였다. 확실히  영호충보다는 더 많이 뛴  것이었다. 그제서
야 그녀는 방그레 웃으며 말했다.

  [대사형, 제가 대사형보다 재간이 좋지요?]

  영호충은 그녀가 조금  전 두려움에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던 사
실을 상기하고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 말했다.

 [이 같은 장난은 다시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사부님과 사모님
께서 아신다면 크게  꾸중하실거다. 아마도 나에게 일 년  더 면벽
을 하라고 하실거야.]

  악영산은 정신을 가다듬고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웃었다.

  [그러면 저도 벌을 받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 두 사람이 
이곳에서 면벽을 할테니 재미있지 않겠어요?  매일 누가 이기나 시
합을 할 수도 있구요.]

  영호충은 그녀의 말을 받아 중얼거리듯 말했다.

  [우리가 매일같이 함께 면벽을 한다고?]

  그는 동굴 안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설레였다.

  (내가 만약 사매와 이곳에서 일 년 동안  떨어지지 않고 보낼 수 
있다면 신선도  나만큼 즐겁지는  못할거야. 아하!  그럴 수는  없
지.)

  그는 말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그대에게 정기헌(正氣軒)에서 면벽을  하면
서 한 걸음도  떠나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들이 일 년간  보지 못할 
것이 아니겠어?]

  악영산은 말했다.

  [그건 불공평해요. 어째서 대사형이 이곳에  있는데 저를 정기헌
에 가둔다 말이예요?]

  그러나 부모는 결코  자기로 하여금 주야로 대사형과  함께 있도
록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말머리를 돌렸다.

  [대사형, 어머님은  매일 육후아를 시켜 밥을  나르도록 했어요. 
그런데 제가  육후아에게 말했죠. '육 사형  매일같이 사과애(思過
崖) 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려면 아무리  좋은 당나귀라 해도  역시 
병이 날 거예요. 차라리 내가 대신 수고를  해 줄테니 무엇으로 보
답해 주세요.'  그렁 육후아  사형은 말했어요. '사모님께서  내게 
시킨 일을 게으름 피울 수 없어. 더군다나  대사형은 나에게 잘 대
해 주니  대사형께 일 년간  밥을 갖다주면서 그를 만나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야. 어찌  고생이라 하겠어?' 대사형, 육  사형은 정말 
얄밉지요?]

  영호충이 말했다.

  [그가 한 말은 사실이야.]

  악영산은 말했다.

  [육후아는 또  말햇어요. '평소 내가  대사형께 몇 수의  재간을 
받으려고 할 때마다 그대가 와서 나를  쫓아버리고 대사형께 한 마
디도 못하게 하지  않았어?' 대사형, 언제 내가  그랬어요. 육후아
는 정말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인 거예요. 그는 또  말했어요. '금
후 일 년 동안 나는 사과애로 올라가  대사형을 만날 수 있지만 소
사매는 대사형을  만나 볼 수  없게 되었어.' 그래서 저는  성질을 
막  부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겠어요.  나중에......  나중
에......]

  영호충은 말했다.

  [그대는 나중에 검을 뽑아 검을 주었지?]

  악영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나중에  화가 나서 울었어요. 육후아는  그제서야 밥
을 대사형께 갖다 주라고 나에게 부탁하는 것이었어요.]

  영호충은 그녀의 조그맣고 귀여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두 눈은 약간 붉어져 있었다. 울었던 흔적이었다.

  (그녀가 나를 이같이  대해 주는 이상 나는 그녀를  위해 천번만
번 죽으래도 죽겠다.)

  악영산은 바구니에 덮힌  보자기를 벗기고 두 접시의  찬과 젓가
락, 그리고 밥그릇을 꺼내 바위 위에 내놓았다.
  영호충은 말했다.

  [어째서 밥그릇과 젓가락이 두 몫이지?]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대사형과 함께 먹으려고요. 이것이 무엇이죠?]

  그러면서 그녀는  마구니 아랫쪽에서 조그만  술호로를 꺼내들었
다. 영호충은 술을 목숨처럼 좋아하는지라  술을 보자 몸을 일으켜 
악영산을 향해 급히 읍을 하며 말했다.

  [정말 고맙군. 그렇지 않아도 이 일 년  도앙나 술을 못 먹게 되
었군 하고 근심을 하고 있던 참이야!]

  악영산은 호로의 마개를 뽑고 호로를  영호충에게 건네주며 웃었
다.

  [하지만 많이  마실 술은 없어요.  저는 매일 이 조그만  호로에 
술을 훔칠 수 있을 거예요. 너무 많으면  어머님께 발각이 될 거예
요.]

  영호충이 천천히 그 조그만 호로의 술을  다 마신 후에야 식사를 
했다. 화산파에선  문하제자가 사과애 위에서  면벽을 할 때  비린 
것을 먹지  못하게 했다. 부엌에서  영호충에게 만들어 준  반찬은 
한대접의 푸른  야채와 두부였다. 악영산은 대사형과  함께 어려움
을 겪는다고 생각하니 밥맛이 좋았다. 두 사람이  밥을 먹은 후 악
영산은 다시  영호충과 쓸데없는 농담을 반  시진이나 주고받았다. 
그녀는 날이  어두워지자 그릇을 챙겨  산 아래로 내려갔다.  이후 
매일 저녁 무렵이 되면 악영산은 밥을  가지고 벼랑 위로 올라왔으
며 함께 먹었다.  영호충은 벼랑 위에서 홀로 지내게  되었지만 외
롭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내공을 연마하고 사부님이 전수해
준 기공(氣功)과 검법을 연마하는가 하면  전백광의 쾌도를 흉내내 
보기도 했고,  사모님이 창안하신 무쌍무대 영씨일검을  연구해 보
기도 했다. 이 영씨일검은 일검에  지나지 않았으나 화산파의 기공
과 검법을  내포하고 있었다. 영호충은  자기의 조예가 아직도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일을 그르칠  우려가 있다
고 생각하고 매일같이 내공에 힘썼다.
  그는 벌을 받고 면벽을 하면서 죄를  뉘우쳐야 했지만 면벽은 고
사하고 잘못을 뉘우칠 기회조차 없었다.  매일 저녘 무렵 악영산과 
한담을 나누는 시간  외에는 모든 시간을 무공을  연마하는데 보냈
다.
  어느 덧  두 달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옥녀봉은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고 있었다.  다시 며칠이 지나자  악 부인은 영호충을  위해 
솜옷 한벌을 지었고, 육후아를 시켜  봉우리 위로 올려보내 그에게 
전해주었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폭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점심 때
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영호충은 하늘에 닭털  같은 구름이 덮힌 것을 보고 이  눈이 좀
처럼 그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산길이 험준한데 이 눈이 저녘까지  내리면 땅이 매우 미끄러울 
것이다. 소사매가 밥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는  아랫쪽으로 전갈을 보낼  수 없어 초조했다.  다만 
사부와 사모님이 나서서 만류했으면 하고 바랐을 뿐이었다.

  (소사매가 육 사제  대신 나에게 밥을 갖다 주는  것을 사부님과 
사모님이 어찌 모르시겠는가? 다만 모르는  척하실 뿐이겠지. 그런
데 오늘 벼랑 위로 오르다가 잘못해  실족하면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다. 사모님께선 틀림없이 그녀를 벼랑  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시
겠지.)

  그는 걱정이 되어 황혼이 질 때까지  일각이 멀다하고 벼랑 아래
를 내려다보았다. 날은  점점 어두어졌다.그녀가 정말  오지 않아 
영호충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날이 밝으면 육  사제가 반드시 밥을 가져오겠지.  그때 소사매
가 모험을 하면 안 된다고 전갈을 해야지.)

  그리고 그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자려고 했다.  그런데 갑
자기 벼랑 위로 오르는 산길 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고 곧
이어 악영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사형...... .]

  영호충은 놀랐다. 기쁨에 얽혀 벼랑가로  달려갔다. 목화송이 같
은 눈송이가 퍼붓고  있는 벼랑 위를 악영산이  한걸음 올라왔다가 
한걸음 미끄러지는  듯하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영호충은  사명을 
받고 있는 몸이기 때문에 감히 벼랑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다. 그
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붙잡아 주려고 해따.  그러다가 악영산
의 오른손이 그의  손에 닿는 순간 영호충은 그녀의 손을  잡고 힘
껏 벼랑 위로 끌어 올렸다.
  달빛은 몽롱했다.  그녀의 전신은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머리 
카락에도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으며,  왼쪽 이마에는 붉은  혹이 
볼록 튀어 나와 있었고, 아직 피가 맺혀 있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대는...... 그대는...... .]

  악영산은 입을  비쭉하더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모습으로 말했다.

  [넘어졌어요.  법그릇도  산골짜기로 떨어뜨렸지  뭐예요.  그대
는...... 그대는 오늘밤 굶어야 될 거예요.]

  영호충은 고맙기도  했고 측은하기도 했다. 옷  소매자락으로 그
녀의 상처를 눌러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소사매, 산길이 이처럼 미끄러운데 왜 올라왔지?]

  악영산은 말했다.

  [밥이 없을까  걱정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리고...... 저
는 대사형이 보고 싶었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만약 그대가  산골짜기로 떨여졌다면 내가 무슨  낯으로 사부님
과 사모님을 대할 수 있겠어?]

  악영산은 미소지었다.

  [울상을 짓지  마세요. 저는 지금 무사하잖아요.  애석하게도 저
는 쓸모가  없어 벼랑가에  다와서 밥바구니와 호로를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대가 무사하다면 나는 열흘간 밥을 안 먹어도 괜찮아.]

  악영산은 말했다.

  [반쯤 올라오니 땅바닥이 미끄러웠어요. 저는  진기를 돋우어 몇
번 뛰어오른 후  다섯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가파른 언덕  위로 올
라올 수 있었어요.  그때 저는 정말 골짜기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까 두려웠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소사매, 약속해. 이후는  정말 이 같은 모험은  않겠다고. 그대
가 떨어지게 된다면 나도 함께 뛰어내릴 수밖에 없어.] 

  악영산은 두 눈에 희열의 빛이 가득 차 올랐다.

  [대사형, 초조해할  것 없어요. 그대의 밥을  가져오다가 실족하
게 된다면 그것은 내 잘못이지 대사형의 잘못이 아니예요.]

  영호충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마. 만약 육 사제가  골짜기 아래로 떨어져 목숨
을 잃게  된다면 나는 결코  골짜기 아래로 떨어져 죽지는  않을거
야.]

  악영산은 나직이 말했다.

  [그럼, 내가 죽으면 그대도 따라 죽겠다는 거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고 말고!  소사매, 그것은 그대가  나에게 밥을 갖다  주기 
때문이 아니야. 만약 그대가 다른 사람의 밥을  갖다 주다가 그 같
은 사고를 당하더라도 나는 홀로 살아남지 않을거야.]

  악영산은 힘주어  그의 손을 잡았다. 마음속으로  끓어오르는 애
정을 느끼며 부드럽게 불렀다.

  [대사형.]

  영호충은 그녀를 품 속에 안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본 채 꼼작도 하지  않았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차츰차츰 두 사람의 눈에 덮여가고 잇엇다.
  한참 후에 영호충은 입을 열었다.

  [오늘밤 그대는 혼자  내려갈 수 없어. 사부님께선  그대가 올라 
온 것을 알고  계시오? 그 누구를 보내와서 그대를  데려갔으면 가
장 좋겠군!]

  악영산은 말했다.

  [아버님은 오늘  아침 일찍 숭산파의  죄 맹주가 보내온  편지를 
받고 상의할 일이 있다고 어머님과 함께 산을 내려가셨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러면 그대가 벼랑 위로 올라온 것을 아는 사람은 없소?]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믄요. 둘째 사형,  세째 사형, 네째 사형과  육후아는 아버
님을 따라갔으니 제가 벼랑 위로 올라와  대사형을 만나는 것을 아
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지 않다면  육후아가 밥을 갖다  주겠다고 
나와 다투게 되었을 거예요. 아!  그렇군요! 임평지라는 녀석이 제
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어요. 하지만  내가 그에게 쓸데없이  입을 
놀리지 말라고 당부해  놓았어요. 그렇지 않을 때는 내가  때려 주
겠다고 했어요.]

  영호충이 말했다.

  [아이쿠! 사매의 위풍이 대단한걸!]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야 물론이죠. 간신히 나를 사저라고  부르는 사람이 생겼는데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다면 억울해서 죽고  말 거예요. 그대와는 좀 
다르죠. 모두가  그대를 대사형이라고 부르니 그거야  별로 이상할 
것도 없죠.]

  두 사람은 한동안 웃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러면 오늘밤 그대는  돌아갈 수 없겠군! 이  동굴에서 하룻밤 
지내고 날이 밝으면 내려가도록 해.]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이 협소해  두 사람은 겨우 몸을 눕힐 수  있었으나 몸을 
이리저리 뒤척일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은 채 깊은 밤까
지 한담을 주고받았다.
  악영산은 끝내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영호충은 그녀가 감기에  들까봐 솜옷을 벗어서 그녀를  감싸 주
었다. 동굴 밖에서  하얀 달빛이 스며 들어왔다.  희미한 빛이나마 
악영산의 아름다운  얼굴을 비추어 주고 있었다.  영호충은 생각했
다.

  (소사매가 나에게 이토록 깊은 정을  느끼니 나는 그대를 위해서
라면 몸이 박살이 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겠다.)

  그는 턱을 고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
님이안 계셨다. 사부님과 사모님이 그를  키워주었으며 또 그를 친 
아들처럼 대해 주었다.  그는 화산파의 대제자였다. 가장  일찍 문
하 제자가 되었으며  무공에 있어서도 같은 배분의  사제들보다 뛰
어났다. 훗날  반드시 사부의  의발(衣鉢)을 이어받아  화산일파를 
거느리게 될 것이다. 거기다가 소사매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사부님께서 그에게 베푼 은혜는 끝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
었다. 그 자신도 천성이 구속받기를  싫어해서 때때로 사부와 사모
님의 화를 돋우어 그들 두 분의 기대를  저버리는 때가 있었다. 지
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가 악영산의 미미하게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넋을 잃고 바라보
고 있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 임가 녀석, 말을 듣지 않겠어? 이리와! 때려 줄테니까!]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런데 그녀는 여전히 두  눈을 꼭감
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숨 소
리도 고르게 잠을 자는 것이 아닌가?
  영호충은 조금 전 그녀가 한  말이잠꼬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습기 짝이 없었다.

  (한번 사저가 되더니  우쭐해서 어쩔줄 모르는구나! 이  며칠 동
안 임 사제는  그녀의 호령을 들어야 했고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
다. 속으로 꽤  화가 났을거야. 하하하...... 그녀는  꿈 속에서도 
그에게 욕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구나.)

  영호충은 그녀를 지켜보며  날이 밝을 때까지 시종  눈을 붙이지 
않았다. 악영산은  전날밤 매우 피곤한  듯 진시 때쯤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영호충이  니소를 띄운 채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하품을 하더니 웃어 보였다.

  [일찍 일어 나셨네요?]

  영호충은 한숨도 자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무슨 꿈을 꾸었지? 임 사제를 때려 주었겠지?]

  악영산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저의 잠꼬대를 들은 모양이군요. 그렇죠?  임평지 그 녀석이 매
우 뻣뻣하게 나오며 저의 말을  안 듣잖아요. 호호호...... 그래서 
대낮에 욕을 했는데 밤에도 잊지 못하고 잠꼬대로 나오는군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그가 무슨 잘못을 했지?]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꿈  속에서 그에게 폭포로  가서 검술을 연마하자고  했어
요. 그는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
래서 나는 그를 꼬드겨서 폭포로 데리고가  단번에 그를 폭포 아래
로 떨어뜨렸어요.]

  영호충이 웃었다.

  [아이쿠! 그럴 수가 있나. 그것은 살인이 아니야?]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건 꿈에서  한 일인데 웬  걱정이세요? 내가 정말 그  녀석을 
죽일까봐 두려우세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낮에 무슨 생각을  하던 밤엔 낮의 생각을  꿈꾸는거야. 그대가
대낮에 정말 임  사제를 죽였으면 했고, 그 생각을  자꾸 하다보니 
밤에 그 같은 꿈을 꾸게 된 거야.]

  악영산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녀석은 정말 쓸모가 없어요. 기초적인  검법을 삼 개월 동안 
연마했는데도 조금도  진보가 없어요. 그래도 매우  열심히 노력을 
해요. 밤낮 연마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그만  울화가 치밀더군요. 
내가 그를 죽이려고  한다면 그는 피하지 못해요. 검을  들고 단번
에 죽일 수 있어요.]

  그러면서 오른손을 옆으로 휘둘렀다.  일초의 화산검법을 펼치는 
시늉을 해보인 것이었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백운출수(白雲出岫)라는 수법에  임가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겠
군!]

  악영산은 간드러지게 웃었다.

  [호호호...... 내가 정말 백운출수를 쓴다면  그의 목이 땅에 떨
어지겠군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사저니까  사제의 검법이 틀렸으면 마땅히  검법을 가르
쳐 주는게 옳아. 어째서 걸핏하면 검을  들어 죽이려고만 하지? 이
후 사부님께서 다시 백 명의 제자를  거두어들이셨을 때 그대가 어
느날 갑자기 구십 구 명을 죽인다면 어떻게 되겠어?]

  악영산은 벽을 붙잡고 깔깔 웃었다.

  [그대의 말이 정말 올하아요. 나는 아흔  아홉 명은 죽여도 반드
시 한  사람은 남겨 놓을 거예요.  모조리 죽인다면 그  누가 나를 
사저라고 부르겠어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아흔 아홉 명을 죽인다면 백 번째는  도망을 치고 말걸? 그러면 
역시 사저 노릇을 할 수 없게 돼.]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그때는, 그대를 다그쳐 저에게  사저라고 부르게 만들죠 
뭐.]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사저라고 부르는  것은 상관없어.  그렇지만 그대는 정말  나를 
죽일거야?]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말을 들으면 죽이지 않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일래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사저, 제발 사정을 봐 주시구료!]

  눈은 이미 멎었다. 사저와 사매들이  악영산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어떤 말이라도 하게 되면 소사매는  무척 무안할 것이라고 영
호충은 생각했다. 그는  농담을 주고 받은 후 그녀에게  벼랑 아래
로 내려가도록 재촉했다. 악영산은 미련이 남은 듯 말했다.

  [나는 여기서 조금 더 놀다 갈래요.  아버지와 어머님이 안 계시
니 답답해 죽겠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사매, 이 며칠간 나는 충영검법을  연마하고 있는 중이야. 내가 
벼랑 아래로  내려간다면 그대를  데리고 폭포로 가서  충영검법을 
가르쳐 줄께.]

  그는 한참동안 권해서야 악영산은 벼랑 아래로 내려갔다.
  이날 황혼 무렵,  고근명이 밥을 가져왔다. 악영산이  감기가 든  
듯 열이 나서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사형이 
걱정되어 고근명에게  밥을 갖다 주라고 부탁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술을 가져가라고 당부하더라는 것이었다.
  영호충은 악영산이 걱정되었다.

  (어젯밤 넘어지는 바람에 놀라서 병이 났군!)

  당장 벼랑 아래로 내려가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는 이틀낮 
하룻밤을 굶었지만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고근명은  대사형과 소
사매가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아프다는 말
을 듣고 영호충이 매우 초조해 하자 말했다.

  [대사형, 너무  근심하실 것 없읍니다.  어제 눈이 너무  내렸고 
날씨가 차서 감기에 걸렸을 것이오.  모두 무공을 익힌 사람들인데 
그까짓 감기쯤이 뭐가 대단하겠읍니까. 한두  첩의 약을 먹으면 금
방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악영산은 십여 일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악불군 부부
가 돌아와 내공으로  그녀의 몸에 스며든 한기를  몰아내고서야 점
차 쾌유되었으며, 그녀가  재차 벼랑 위로 오른 것은  이십여 일이
나 지난 후였다.
  두 사람은 오랫만에 만나게 되자  크게 반가워했다. 악영산은 물
끄러미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놀라 말했다.

  [대사형, 그대도  병이 난 것이  아니예요? 왜 이토록  수척해지 
셨어요?]

  영호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병이 나지 않았어. 나는...... 나는......]

  악영산은 갑자기 깨닫고 왁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대는...... 그대는  나는 걱정하다가  이처럼 야위게  되었군
요! 대사형 저는...... 이제 완전히 나았어요!]
  영호충은 그녀의 손을 잡고 나직이 말했다.

  [이 며칠  동안 나는 밤낮으로  저 길을 바라보고 있었지. 그저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이야. 그런데 고맙게도 그대는 끝내  와 주
었어.]

  악영산은 말했다.

  [그러나 저는 종종 그대를 보았어요.]

  영호충은 의아해 말했다.

  [그대가 종종 나를 보다니?]

  악영산은 말했다.

  [내가 병이  났을 때 눈만  감으면 그대가 보였어요. 열이  매우 
심하게 날 때  어머님은 제가 잠꼬대를 하는 소리를  들었대요. 모
두 그대에 관해서  잠꼬대를 했다고 했어요. 대사형,  어머니는 그
날 밤  제가 여기 왔다가  이튿날에야 내려간 사실을 알게  되었어
요.]

  영호충은 얼굴을 붉히며 놀람과 당황함을 금할 수 없어 물었다.

  [사모님께서 화를 내시지 않았어?]

  악영산은 말했다.

  [화내시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하지만......]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다음말을 잇지 못했다.
  영호충은 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다는 거지?]

  악영산은 말했다.

  [말하지 않겠어요.]

  영호충은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설레였다.  그는 마
음을 진정하고 말했다.

  [큰병을 앓고 난 후인데 이토록 빨리 벼랑  위에 오를 필요는 없
었어. 나는 그대가 차츰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다
섯째 사제와 여섯째  사제가 나에게 밥을 가져다 줄 때  매일 나에
게 이야기해 주었는 걸.]

  악영산은 말했다.

  [그런데 그대는 어째서 이토록 야위었나요?]

  영호충은 씩 웃고 말했다.

  [그대의 병이 나았으니 나는 금방 살이 오르게 될꺼야.]

  악영산은 말했다.

  [솔직이 말하세요. 이 며칠 동안  도대체 몇그릇의 밥을 먹었죠? 
육후아는 그대가 숱만  마셨지 아무리 달래도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어요. 대사형,  그대는...... 어째서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해
요?]

  그렇게 말한 그녀의 눈 주위가 다시 붉어졌다.
  영호충은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그의 말은 믿을  필요가 없어. 무슨  말이든 
육후아는 과장하는  버릇이 있잖아. 내가  언제 술만 마시고  밥을 
먹지 않았다고 그래.]

  이때 찬바람이 불어오자 그녀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직도 엄
동설한이고 우뚝  솟은 벼랑 위는  나무가 없어 바람을 막아  주지 
않기 때문에 무척 추웠다.
  영호충은 재빨리 말했다.

  [소사매, 아직 쾌차하지  않았으니 다시 감기에 들지  않도록 해
야 돼. 빨리 벼랑 아래로 내려가봐.  언제든지 해가 솟아오르고 그
대가 매우 건강할 때 다시 나를 찾아오라고.]

  악영산은 말했다.

  [춥지 않아요. 이  며칠 동안 바람이 불지 않으면  눈이 왔어요. 
해가 떠오르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걸요.]

  영호충은 급히 말했다.

  [그대가  다시  병이  난다면  어떻게  하겠어?  나는......  나
는......]

  악영산은 그의 이 초췌한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만약 정말 병이 덧나게 된다면 그  역시 병으로 쓰러질 것이다. 
이 벼랑 위에는 돌볼 사람도 없으니 그의 목숨을 빼앗게  되지 않
겠는가?)

  그래서 그녀는 말했다.

  [좋아요. 나는 가겠어요. 아무쪼록 몸조심  하시고 술을 적게 마
시도록 하세요. 그리고 한끼니에 세 그릇의  밥을 먹도록 해요. 저
는 가서 아버님께  말하겠어요. 그대의 몸이 좋지 않으니  몸을 보
양해야 하며, 채소만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겠어요.]

  영호충은 미소지었다.

  [나는 계율을 어기면서까지  비린 음식을 먹고 싶지는  않아. 그
대를 보았으니 기뻐서  사흘도 되지 않아 살이 오르게  될거야. 착
한 누이지? 빨리 벼랑 아래로 내려가요.]

  악영산은 두눈에 정을  담뿍 담고 두 뺨을 붉힌 채  나직이 말했
다.

  [나를 뭐라고 불렀죠?]

  영호충은 겸연쩍었다.

  [불쑥 말한다는게 그렇게 되었어. 소사매는 너무 탓하지 말아.]

  악영산은 말했다.

  [제가 왜 탓하겠어요. 나는 그렇게 부르는게 좋아요.]

  영호충은 가슴이  화끈거렸다. 팔을 벌려  그녀를 품 속에  안고 
싶었으나 겨우 참았다.

  (그녀가 나에게 이처럼 대할 때 더욱  멀리해야 한다. 어지 그녀
를 모독할 수 있겠는가?)

  그는 고개를 돌리고 낮은 어조로 말했다.

  [산을 내려갈 때는  천천히 가고 평소처럼 달려가지  말도록 해. 
피곤하면 쉬어가면서 천천히 가요.]

  악영산은 말했다.

  [녜.]

  그리고 그녀는 몸을 돌리더니 벼랑가로 다가갔다.
  악영산은 벼랑 아래 사 장쯤 되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자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쳐 움직이지 
않았다. 영호충은 말했다.

  [천천히 내려가도록 해. 이제 내려가야지.]

  악영산은 말했다.

  [녜.]

  그제서야 그녀는 몸을 돌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이날 영호충은 일찌기 겪어보지 못한  기쁨을 맛보았다. 바위 위
에 앉아 희열을 참을 수 없어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별안간 소
리내어 길게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산골짜기로  휘파람소리가 메
아리쳤으며 그 메아리 소리는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정말 기쁘다! 나는 정말 기쁘다!]

  이튿날은 눈이  내렸다. 악영산은  정말 오지 않았다.  영호충은 
육후아로부터 그녀의  회복이 빠르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진다는 말을 듣고 기쁨을 금치 못했다.
  다시 이십여 일이  지났다. 악영산은 한바구니의 종자(?子  : 대
나무 잎에 찹쌀을  싸서 찐 것)를 가지고 벼랑 위로  올라왔다. 영
호충의 얼굴을 한참 동안 응시하던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를 속이지 않았군요. 정말 얼굴이 좋아졌어요.]

  영호충은 그녀의 뺨에 붉은색이 도는 것을 보고 말했다.

  [그대 역시 좋아졌군. 이 같은 얼굴을 보니 정말 기뻐.]

  악영산은 말했다.

  [나는 매일같이  그대에게 밥을 갖다 주겠다고  했지만 어머님께
서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날씨가 춥고  습기가 많다고 하시면서 사
과애(思過崖)로 돌아오면  목숨을 잃을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이었
어요. 저는 대사형이 밤낮으로 벼랑에서  지내고 있어서 병이 날지
도 모른다고  했어요. 그러나 어머님은 대사형은  내공이 고강하여 
병이 나지 않을거라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등 뒤에서 대사형을 칭
찬한 거예요. 대사형은 기쁘죠?]

  영호충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종종 사부님과 사모님을 생각하지. 한시  바삐 두 분의 얼
굴을 뵙고 싶어.]

  악영산은 말했다.

  [어제 저녁 어머니를 도와 하루종일  종자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죠. 이 종자를 가져와  대사형에게 많이 먹여 드려야
지 하고요. 그런데  오늘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어머님은 말씀하
셨어요. '이  바구니의 종자를 충아에게  갖다 주어 먹도록  해라' 
정말 뜻밖이었어요.]

  영호충은 코가 시큰해져 생각했다.

  (사모님께선 내게 정말 잘 대해 주시는구나.)

  악영산은 말했다.

  [이것은 방금  찐 것이라 아직  따끈따끈 해요. 제가 벗겨  드리
죠.]

  그리고 그녀는 종자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 
잎사귀가 풀리지 않으라고 동여맨 끈을 풀고잎을 벗겼다.
  영호충은 구수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악영산은 종자를 내밀
었다. 그는 받아서  한 잎 깨물었다. 이 종자는 소찬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 안에는 초고(草?),  향균(香菌), 부의(腐衣), 연자(蓮
子), 두변(豆?) 등을 섞어 넣어 맛이 좋았다. 악영산은 말했다.

  [이 초고는 소림(小林)이 나와 함께 캔 거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소림이라니?]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임 사제 말이예요. 그저께 그는 나에게  동쪽산 비탈길 아래 초
고가 있다고 하지 않겠어요. 반나절을  캤는데 겨우 조그만 바구니
에 반 밖에  차지 않았어요. 많지는 않았지만 맛이 참  좋아요. 그
렇죠?]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군. 맛이  참 좋군! 잘못하다간 혓바닥까지  깨물어 삼키겠
어. 소사매, 요즘에는 임 사제를 욕하지 않아?]

  악영산은 말했다.

  [왜 안 해요.  그가 말을 듣지 않으면 용서없어요.  최근에 그는 
많이 착해져서 욕을  덜하는 편이죠. 검법도 열심히  연마해요. 진
보가 있을 땐 몇 마디 칭찬도 해주죠.  '자아, 소림, 그 일초는 그
럴싸해. 어제보다 한결  나은걸! 다만 아직 빠르지 못해.  다시 연
마해. 다시 연마해 호호호......]

  영호충은 말했다.

  [그대는 그에게 검술을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지?]

  악영산은 말했다.

  [음, 그가 말하는 것은 복건성의 말이기  때문에 그의 말을 사저
들이나 사매들도 잘  알아듣지 못해요. 나는 복주에 가본  적이 있
기 때문에  그의 말을 잘  알아듣죠. 아버님께선 저에게  한가로울 
때 그에게 가르치라고 했어요. 대사형, 저는  벼랑 위로 올라 오지 
못하자 매우 답답하고 할 일이 없고 해서  그에게 몇 수 가르친 거
예요. 그런데 소림은 둔하지 않아빨리 배워요.]

  영호충은 웃었다.

  [사저겸 사부노릇을 하게  되니 그가 감히 그대의 말을  안 들을 
수 있겠어?]

  악영산은 말했다.

  [말을 잘 듣는다고는 볼 수 없어요.  어제와 그저께 나는 그에게 
함께 꿩을 잡으러  가자고 했으나 가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는 백
홍일관(白虹貫日)과 천신도현(天紳倒懸)이라는  두 초식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연습을 해야 한다나요.]

  영호충은 의아하여 말했다.

  [그가 화산에 온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 백홍관일과 천신도
현을 익히게  되었지? 소사매, 본파의 검법은 차근차근  배워야지 
서둘러선 안 돼.]

  악영산은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함부로 가르치는 게  아니예요. 소림은 
호승심이 강해요. 낮에도 연마하고 밤에도  연마해요. 그와 이야기
를 나누려고 하면  세 마디도 하기 전에 검법 애기를  들고 나오곤
해요. 그랫 다른  사람이 삼 개월간 익혀야 할 검법을  반 개월 만
에 다 배워요.  그 까닭에 내가 그를 데리고 놀고  싶어도 그는 시
원스럽게 따라오지 않아요.]

  영호충은 잠자코 있었다. 마음속으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번뇌
를 느꼈다.  하나의 종자를 입에 두입  베어 물었을 뿐  손에 들고 
멍하고 앉아 있었다.
  악영산은 그의 손가락을 잡아당기며 웃었다.

  [대사형, 혓바닥을 삼키게 되었나요? 어째서 말이 없어요?]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졌다가 반쯤 남은  종자를 입으로 가져갔다. 
본래 매우 고소한  종자였지만 입 안에 쩍쩍 붙어 제대로  삼킬 수 
없었다.
  악영산은 그를 가리키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급히 먹으니 이빨에 철썩 달라붙죠?]

  영호충은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애써 종자를 삼키며 생각했다.

  (내가 이처럼바보스러울까? 소사매는 놀기를  좋아하지만 벼랑 
위에서 나는 내려갈 수 없다. 그녀가 임  사제와 놀고 싶어하는 건 
당연하다. 내가 이처럼 좁게 생각하다니 한심하구나!)

  이처럼 생각하자 그의 마음은 가라앉았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 종자는 아무래도  그대가 싼 것 같군. 너무 꼼꼼이  쌌기 때
문에 이빨과 잇몸이 붙고 말았어.]

  악영산은 소리내어 웃었다.

  [불쌍한 대사형. 이  벼랑 위에 갇혀 있다가 음식 맛에  너무 민
감해졌군요!]

  그녀는 십여 일이 지나서야 벼랑  위로 올라왔다. 이번에 그녀는 
조그만 대바구에 잣과 밤을 절반쯤 담아 가지고 왔다.
  영호충은 그녀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이 십여 일 동안 
밥을 가져다 주는  육후아에게 소사매의 근황에 대해  물어 보았을 
때 육후아는 머뭇거리며 난처한 푸정을  짓곤 했었다. 영호충은 마
음속으로 의심이 일었으나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마음이 초
조해져서 다그칠라치면  육후아는 마지 못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소사매의 건강은  좋아요. 매일 검술을 열심히  연마하고 있어요. 
아마도 사부께서 그녀에게  벼랑 위로 올라와 대사형의  공부를 방
해하지 못하게 한 것 같아요.' 이처럼  마음을 졸이며 며칠을 보내
다가 갑자기  올라온 악영산을 대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매우 건강해 보였고 아름다워 보였다.  영호충은 의심이 더럭 치밀
어 올랐다.

  (그녀의 몸은  건강해졌다. 그런데  어째서 십여 일이  지나서야 
겨우 벼랑 위로 올라왔을까? 설마  사부님과 사모님이 허락을 안했
던 것일까? 아니면 혹시......)

  악영산은 영호충의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대사형, 며칠간 와 보지 못했다고 저를 탓하시는게 아니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왜 그대를  탓하겠어. 사부님과 사모님께서 벼랑  위로 못
오르게 하셨을테지. 그렇지?]

  악영산은 말했다.

  [맞아요. 어머님은  제게 새로운 검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검법
의 변화가 복잡해서 벼랑 위로 올라와  대사형과 농담을 하게 되면 
마음이 헷갈리게 되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어떤 검법이지?]

  악영산은 말했다.

  [짐작해 보세요.]

  영호충은 말했다.

  [양오검(養吾劍)?]

  악영산은 말했다.

  [아니예요.]
  [희이검(希夷劍)?]

  악영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번 더 알아맞춰 보세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럼 숙녀검(淑女劍)?]

  악영산은 혀를 내밀었다.

  [어머니가 자랑하는 재간이니 저로선 숙녀검을  흉내낼 수 없죠. 
대사형께 말해 줄께요. 바로 옥녀검십구식(玉女劍十九式)이예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매우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영호충은 약간 놀랐으나 곧이어 기쁜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가 벌써  옥녀검십구식을 익히게  되었어? 음 그것은  정말 
복잡한 검법이지?]

  그는 석연치 못했던 감정이 풀어졌다.  이 옥녀검은 십구식에 불
과했지만 매 일식마다 복잡한 변화가  있었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
지 않으면  일 식도 펼쳐낼 수  없었다. 그는 사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옥녀검십구식의 특징은 변화의 기묘함에  있다. 본파가 중시
하는 이기어검(以氣馭劍)이라는 방법과 다른  점이 바로 그것이다. 
여제자들은 팔힘이 약하기  때문에 강적을 만났을 때는  이 검법을 
펼쳐 상대방을 현혹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남자들은 배울 필요가 
없다.]

  그래서 영호충은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악영산은  공력으로는 
아직 그 검법을  연마할 때가 되지 않았다. 언젠가  한번 영호충과 
악영산 그리고 몇 명의 사남매들은 사부와  사모님이 그 검법을 가
지고 대련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사부님은 계속 각문각파의
검법을 대결했으나 사모님은 계속  옥녀검십구식으로맞서 싸웠다. 
십구식의 옥녀검은 놀랍게도  십여 문파나 되는 고명한  검법을 일
일이 상대했던  것이다. 당시 뭇제자들은 옥녀검십구식을  보고 감
탄해 마지 않았다. 그때 악영산은  어머님께 가르쳐 달라고 졸랐으
나 악 부인은 말했었다.

  [너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 첫째로  너의 공력이 약하고, 둘째로 
이 검법은 사람의 정신을 혼란시키고  번거롭게 한다. 그러니 스무 
살이 된 이후에  배우도록 해라. 더군다나 이 검법은  다른 문파의 
검초를 전문적으로 제압하는 효용이 있다.  만약 이 검법으로 화산
검법과 자주 대련하게 된다면 화산검법을  파괴하는 방법을 터득하
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화산검법은 
위태한 지경에 빠지지 않겠느냐? 충아는  여러 문파의 검법을 많이 
알고 있으니 이  다음에 네가 이 검법을 배우게 된다면  충아와 겨
루어 다른 문파의 검법을 깨뜨리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해라.]

  이것은 이 년 전의 일이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사부님께서 매일같이  그대를 상대로  대련을 해주시다니  놀랍
군!]

  이 검법은 임기웅변을 중시했으니 일정한  형식에 구애받지않았
다. 손을 쓰게 되었을 때 상대방의 초식을  해소시킬 수 있도록 연
마해야 했다.  화산파에선 악불군과 영호충만이 다른  문파의 검법
을 잡다하게  알고 있었다.  악영산이 옥녀겁십구식을  연마하려면 
반드시 악불군이 친히 나서서 매일같이 상대해 줘야 했다.
  악영산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버님이야 그럴 시간이  없죠. 소림이 매일 저를  상대해 주고 
있어요.]

  영호충은 의아해 말했다.

  [임 사제가? 그가 많은 문파의 검법을 알고 있었던가?]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는 벽사검법밖에  몰라요. 아버님은 벽사검법의  위력이 강하
지는 못하지만 초식의 변화가 신비롭기  때문에 제가 옥여검십구식
을 연마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셨어요.]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랬었군!]

  악영산은 말했다.

  [대사형, 기분이 나쁘세요?]

  영호충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왜  기분이 나쁘겠어? 그대가  본문의 수준 높은  검법을 
익히는데 그대를 위해 기뻐했으면 기뻐했지  어째서 기분이 나쁘겠
어?]

  악영산은 말했다.

  [제가 볼 때 그대의 표정은......  분명히 기분이 나쁜 표정이었
어요.]

  영호충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몇 초식까지 익혔지?]

  악영산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본래 어머님은  대사형을 상대로  그 검법을 익히라고  하셨죠. 
그런데 이제  소림을 상대로  익히니까 대사형은 기분이  나쁘겠지
요. 그렇죠? 그러나 대사형은 벼랑  위에서 내려갈 수가 없잖아요. 
전 한시 바삐  그 검법을 연마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사형을 기
다릴 수 없었던 거예요.]

  영호충은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대는 또 어린애 같은  말을 하는군! 동문 사남매인데 
누가 그대를 상대해 주든 어때?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

  그는 잠시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어. 사매가 임 사제와  놀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보다는 그 녀석을 상대로 검법을 익히고 싶은거지?]

  악영산은 얼굴을 붉혔다.

  [터무니없는 소리  말아요. 소림의  재간은 대사형과 비교할  때 
십만 팔천 리나 차이가 나요. 그를 상대해서 무엇이 좋겠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물론 그를 상대로  연마하면 커다란 잇점이 있지.  초식을 펼칠 
때마다 그로 하여금 반격할 겨를도 없이  공격할 수 있으니 즐겁지 
않겠어?]

  악영산은 깔깔거리고 웃더니 말했다.

  [그는 얄팍한  벽사검법으로는 반격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
야죠?]

  영호충은 소사매가  호승심이 강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임평지를 상대로 대련을 하게 되면  새로 연마한 검법을 마
음대로 휘두를 수 있고 매초마다 우세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생
각이 들었다. 반드시 임평지를 좋아해서  그와 연습을 한다고 생각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굳어졌던 마음이 풀
어졌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대를 상대로 몇  수 펼쳐 그대가 옥여검십구식
을 어느 정도까지 연마했는지 볼까?]

  악영산은 크게 기뻐서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오늘...... 오늘 벼랑 위로 오르며  나도 그와 같이 생
각했죠.]

  그녀는 방긋 웃으며 장검을 뽑아들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대는 벼랑  위로 오르며 그  검법을 펼쳐 나를  이겨야겠다고 
생각했겠지? 좋아! 손을 써봐.]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대사형, 그대의  검법은 언제나 나보다 뛰어난  편이었지요. 그
러나 내가  이 옥녀검십구식을  연성하게 된다면 대사형의  업수이 
여김을 받지 않을 거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언제 그대를  업수이 여겼어? 정말 좋은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군!]

  악영산은 장검을 세우더니 말했다.

  [그대는 아직 검을 뽑지 않았어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서두를 것 없어.]

  그리고 왼손으로 검결을 짚고 오른손을 뻗으며 말했다.

  [이것은 청성파의  송풍검법(松風劍法)인데 이 일초는  송도여뢰
(松濤如雷)라고 하지.]

  그리고 오른손 식지와 중지를 뻗어 악영산의 어깨를 찔러갔다.
  악영산은 비스듬히 뒷걸음질치면서 부르짖었다.

  [조심해요!]

  영호충은 말했다.

  [겸손해 할 것 없어. 내가 막지 못하면 검을 뽑을거야.]

  악영산은 뾰로통한 어조로 말했다.

  [그대는 감히 맨손으로 나의  옥녀검십구식을 상대하겠다는 거예
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아직가지 그대는 연성하지 못했지 않아.  그대가 연성하게 된다
면 나는 맨손으로 상대할 수 없겠지?]

  악영산은 이  며칠 동안 옥녀검십구식을 고되게  연마했다. 따라
서 그녀는 자기의  검술이 크게 향상되어 강호의  일류고수라도 이
길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녀가 십여  일 동안이나 오지 않은 
이유는 그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가  단번에 놀라게 하여 영호
충의 탄복하는 표정을 보려는데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자
기를 매우  경시하여 맨손으로 옥녀검십구식을  받아내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앙칼진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검으로  그대에게 상처를  입혀도 그대는 탓하지  말아요!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님께도 말하면 안 돼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물론이지.  그대는 마음껏 펼쳐보도록 해.  검에 사정을 
두게 되면 진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걸 명심하라구.]

  그리고 왼손을 '휙' 하는 소리가 나도록 뿌리치며 호통을 쳤다.

  [조심해!]

  악영산은 부르짖었다.

  [아...... 아니 그대는 왼손에도 검을 잡고 있나요?]

  영호충이 이 일장을 내려쳤다면 악영산의  어깨죽지는 이미 잘려
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력을 쏟아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청성파의 사람들은 쌍검을 쓰기도 하지.]

  악영산은 말했다.

  [맞았어요. 나는  청성파의 사람들이  쌍검을 차고 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그만 깜박 잊었군요.]

  그리고 일검을  찔러갔다. 영호충은 그녀의 반격하는  기세가 표
홀(飄忽)한 것을  보았다. 선녀가 춤을  추는 듯 날렵하기  이를데 
없지 않은가? 그래서 칭찬의 말을 던졌다.

  [이 일검은 정말 훌룡하군. 다만 아직 빠르지가 못해.]

  악영산은 말했다.

  [아직 빠르지 못하다고요? 더 빨랐다면  그대의 어깨를 베어버렸
을 텐데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어디 베어 보시지.]

  그리고 오른손을 검처럼 휘둘러 그녀의 왼팔을 자르려고 했다.
  악영산은 속으로  울화가 치밀어 검을 질풍같이  휘둘렀다. 그리
고 이 며칠간 연마한 옥녀검십구식을  일일이 펼쳤다. 이 십구식의 
검법 가운데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구 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구 식 가운데 진정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것은 육식에 불
과했다. 그러나 단지  육 식이라 해도 상당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
다. 영호충은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그녀의 주위
를 빙글빙글 돌아가며  공격했지만 매번 앞으로 나가  공격을 하다
가는 언제나 그녀의 날카로운 검세에  밀려 물러나곤 했다. 그리고 
한번은 급히 물러나다가  불쑥 돋아난 바위에 등을  심하게 부딪치
게 되었다.
  악영산은 으기양양하여 말했다.

  [그래도 검을 뽑지 않을 거예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조금 더 있다가 뽑지.]

  그리고 그녀가  옥녀검을 일초 일식씩 펼쳐내도록  유도했다. 그
녀가 되풀이해서 펼치는 것은 육  식에 불과했다. 영호충은 그녀의 
검술을 훤히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갑자기한  걸음 나가 
오른손을 내려치며 호통을 내질렀다.

  [송풍검의 수법이다! 조심해!]

  장세는 날카로웠다. 악영산은 그의 손이  자기의 머리 위로 떨어
지는 것을 보고 급히 검을 들어 막으려고  했다. 이 일초는 영호충
이 이미 내다보고  있던 터였다. 그는 왼손을 질풍같이  앞으로 뻗
어내며 중지(中指)를 튕겨냈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의 칼
날이 튕기게  되었다. 악영산은 손아귀가 격렬하게  아파오자 그만 
장검을 놓치고  말았다. 장검은 그녀의  손을 떠나 빙글빙글  돌며 
산골짜기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악영산은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멍하니  영호충을 노려  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윗 이빨로 아랫 입술을  잘근잘근 깨
물었다.

  [아이쿠!]

  영호충은 크게 부르짖으며 급히 벼랑가로  몸을 날렸다. 그 검은 
이미 천장이나 되는  깊은 골짜기 아래로 떨어졌으며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별안간 벼랑가에 검은  그림자가 번쩍이는 것 같
았다. 마치 옷깃이  펄럭이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정신을 가다듬
고 바라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낭패한 얼굴이 되
어 생각에 잠겼다.

  (내가 어떻게 된거지? 내가 어떻게  된거야? 소사매와 검초를 시
험한 것은 수백 번 수천 번이 된다.  나는 언제나 그녀에게 양보를 
했으며 한번도 오늘처럼 손을 쓴 적이 없다.  내가 일을 처리 하는 
것은 갈수록 형편없구나!)

  악영산은 고개를 돌리고 골짜기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저 검...... 저 검!]

  영호충은 다시  놀랐다. 소사매의 장검은 무쇠를  무우 자르듯하
는 보검으로서 벽수검(碧水劍)이라고 했다. 삼  년 전 사부가 절강
성(浙江省) 용천(龍泉)에서 구해온 거였다.  소사매는 첫눈에 반하
여 그 검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했으며 사부에게 몇  번이나 달
라고 졸랐으나 사부께선  시종 주지 않다가 금년 그녀 나이  십 팔 
세 되는 생일날  그녀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이제  깊은 골짜
기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영호충은 
이번에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었다.
  악영산은 왼발로 땅을  두번 차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숨을 돌리
고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영호충은 불렀다.

  [소사매!]

  악영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벼랑 아래로  달려내려갔
다.
  영호충은 벼랑 끝까지 달려가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손가
락이 그녀의  옷소매에 닿으려고 할  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움츠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달려 내
려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영호충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과거에는  될 수 있는  한 양보를 해왔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서 사정없이  그녀의 보검을 퉁겨 버렸을까?  사모님이 그녀에
게 옥녀검십구식을  전수해 주셔서 질투심이 일어난  것일까? 아니
다. 결코 아니다. 원래 옥녀검십구식은  화산파의 여제자들이 익히
는 검법이다. 소사매가 더욱 많은  무공을 배울수록 나는 기뻐해야 
할 것이 아닌가? 아...... 어쨌든 혼자 이  벼랑 위에서 지내다 보
니 성질이 거칠어진  모양이다. 그녀가 내일 벼랑 위로  올라 오면 
나는 정중히 사과를 해야지.)

  이날 밤 그는 아무리 짐을 청하려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단정히 바위 위에 앝아서 내공을  연마했다. 그러나 심신을 가다듬
을 수 없었다. 달빛이 비스듬히 동굴 안으로  비춰 들어 석벽을 밝
게 비춰 주었다.  영호충은 벽에 씌인 풍청양이라는 세  글자를 보
고 있다가 손가락을 뻗어 석벽의 움푹  들어간 글자를 더듬어 보았
다.
  갑자기 석벽이 어두워졌다. 한 사람의  그림자가 석벽을 막아 선 
것이었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대뜸 장검을 집어 들고  미처 검을 
뽑지도 못하고 등  뒤로 향해 찔러갔다. 그러나 검이  중도에 이르
렀을 때 그는 별안간 기뻐 부르짖었다.

  [소사매!]

  그리고 가까스로  공격을 거두어들이고 내쏟지 않았다.  그는 천
천히 몸을 돌리고  동굴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동굴  입구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컸으며  몸에는 청포(靑?)를 입고 있었다. 
이 사람은 달빛을  등지고 있었고 얼굴을 한 조각 푸른  베로 가리
고 있었다. 다만 한 쌍의 눈만을  내놓고 있었다. 영호충은 호통을 
내질렀다.

  [귀하는 누구시오?]

  그리고 그는 입구를 향해 나가며 장검을 뽑았다.
  그 사람은 대답을 하지 않고 오른손을  내밀어 앞쪽을 향해 두번 
내리쳤다. 그것은 낮에 악영산이 펼쳤던 옥녀검 구  식 중의 이 초
였다. 영호충은 크게 이상한 생각이  드는 한편 경계심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귀하는 본파의 선배님이십니까?]

  별안간 한가닥 질풍이 얼굴을 향해  덮텨왔다. 영호충은 미처 생
각해 볼 여유도 없이 검을 뽑았다. 이때  왼쪽 어깨가 살짝 아파왔
다. 어느새  그 사람에게 얻어  맞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공을 돋우지 않은  것 같았다. 영호충은 급히 몇걸음  옆으로 미
끄러져 피했다. 그 사람은 뒤쫓아 오지 않고  손을 검으로 삼아 삽
시간에 옥녀검 십구식  가운데 육 식을 단숨에 펼쳐냈다.  그가 펼
쳐 낸 수십 초는 마치 일초와 같았으며,  그 수법의 빠르기는 번개 
같았다. 매 일초는 모두 악영산이  영호충을 상대로 펼쳤던 것이었
다. 영호충은 어떻게  수십 초의 검법을 일 초인 양  펼칠 수 있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입을 딱 벌리고 그 사람의  동작을 지켜 보
기만 했다.
  그 사람은 기다란  소맷자락을 펄럭이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벼
랑 뒤로 돌아갔다.
  영호충은 정신을 차리고 부르짖었다.

  [선배님, 선배님!]

  그리고 벼랑 뒤쪽으로 쫓아갔으나 교교한  달빛만이 온누리에 뿌
려지고 있을 뿐 사람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영호충은 찬 기운을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누구일까? 그 같이 옥녀검십구식을 펼친다면  나는 절대로 그의 
손에 들린 장검을  튕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매 일
초마다 능히 나의  손을 베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찌 손뿐
이랴? 나의 어디를  찌르고 싶으면 어디든지 찌를 수  있을 것이고 
나의 어디를 베려고  한다면 벨 수 있을 것이다. 그  육 식의 옥녀
십구식 아래 이 영호충의 운명은 좌우되고 말  것이다. 원래 이 검
법은 이토록 커다란 위력을 지니고 있었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그것은 결코 검법 자체가 위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직 그 사
람의 무예가 신의 경지에 이르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 사람이 
아무리 평범한 초식을  펼쳐도 나는 막아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 어찌하여 옥녀봉 위에 있었던 것일까?)

  사부나 사모님은 그  사람의 내력을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일 소사매가 벼랑  위로 올라오면 그녀로 하여금  사모님께 물어
보도록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튿날 악영산은 벼랑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사흘째 되
는 날과 나흘째 되는 날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열여드레가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육후아와 함께  벼랑 위로 올라왔다. 영호충
은 열여드레 낮과 밤을 기다린 끝에  그녀를 대하게 되자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육후아가 옆에  있기 때문
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밥을 먹고 난 후 육후아는 영호충의 뜻을 알고 말했다.

  [대사형, 소사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이곳에서  많은 이
야기를 하도록 해요. 내가 밥 바구니를 들고 먼저 내려가죠.]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육후아, 왜 도망치려고 그래요? 함께 왔으면 함께 가야죠.]

  그러면서 몸을 일으켰다.
  영호충은 말했다.

  [소사매, 그대에게 할 말이 있소.]

  악영산은 말했다.

  [좋아요. 대사형이 할  말이 있다니 육후아도 거기  서서 대사형
의 가르침을 받도록 해요.]

  영호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가르침을 베풀자는게 아니야. 그대의 벽수검......]

  악영산은 그 말을 가로챘다.

  [저는 어머니께  말씀 드렸죠. 옥녀검십구식을  연마하다가 잘못
해서 산골짜기로 떨어뜨렸는데 다시 찾을  수 없다고요. 그리고 한 
바탕 울었죠.  어머니는 저를 꾸짖지  않고 오히려 위로해  주었어
요. 그리고 다음에  다시 좋은 검을 구해 주겠다고 했어요.  이 일
은 이미 지난 일이니 더 들먹일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두 손을 좌우로 펼쳐 보이고 웃었다.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자 영호충은 더욱 불안했다.

  [내가 벌을 다  받고 벼랑 아래로 내려가면 반드시  강호로 나가 
훌륭한 검을 구해 소사매에게 주도록 하지.]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같은 사남매끼리 한 자루의 검을 가지고  다툴게 뭐 있어요? 더
구나 그 검은 제가 실수해서  산골짜기로 떨어진게 아닌가요? 제가 
무공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  죄지 누구를 탓하겠어요?  모두 
단기영시(蛋幾寧施) 개필척미(個必?米)라고 해두죠.]

  그리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져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아, 대사형은 모를  거예요. 이것은 소림이 종종  말하는 '단진
인사(但盡人事) 각빈천명(各?天命)' 즉 다만 사람이  할 일을 다하
고 하늘에  맡긴다는 뜻이죠. 그의  말음이 모호하기 때문에  우린 
그를 흉내내어서 놀려주곤 하죠. 호호호!]

  영호충은 실실 웃었다. 그러다가 말했다.

  [임 사제는  자질이 뛰어나고 또한  애써 검법을 익히는  데다가 
이 몇달 동안 소사매의 지도를 받아  아마도 눈부신 진보를 보였을
거야. 하지만 나는  벼랑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니애석하군! 그렇
지 않다면 나에게  은혜를 베푼 그를 위해 내가 검법을  지도해 주
었을 텐데......]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가 군옥원에서 '어른이 아이를 때리다니  염치가 없다' 고 소
리쳐서 여창해의 손에서 대사형을 구한  것은 사실이예요. 그는 또
한 나를 위해서 여창해의 아들을 죽였어요. 이  두 가지 일만 하더
라도 무림에 크게 명성을 떨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의 무
공은 그의 인품에 못 미치죠.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죠.]

  영호충은 말했다.

  [무공은 연마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의협심은 타고 나야  하는 것
이야. 인품의 고하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거지.]

  악영산은 미소지었다.

  [아버지와 어머님도  소림을 이야기할 때 그와  같이 말씀하시더
군요. 의협심에 대해서 말한다면 대사형과  소림은 비슷한 데가 있
어요.]

  영호충은 물었다.

  [뭐가 비슷하다는 것이야? 어떤 점이 비슷하지?]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오만한 기질 말이예요.  그대들 두 사람은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죠.]

  육후아는 불쑥 입을 열었다.

  [대사형은 우리 사남매의 우두머리야. 약간  오만한게 오히려 당
연해 하지만  그 임가 녀석은  이 화산에서 오만무례할 자격이  없
지.]

  육후아는 임평지에 대한 적대감으로 충만해져 있었다.
  영호충은 의아해 물었다.

  [육후아, 임 사제가 자네에게 잘못한 일이 있는 모양이군!]

  육후아는 성이 나는 듯 말했다.

  [그는 나에게 잘못한 것이 없죠. 다만  사형제들 모두가 그의 꼬
락서니를 달갑게 여기지 않죠.]

  악영산은 말했다.

  [여섯째 사형,  왜 그래요? 언제나 소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더
라. 상대방이 어리니까  사형이 좀 너그럽게 대해야 할  것 아니예
요?]

  육후아는 코웃음쳤다.

  [흥! 그가 제  분수를 안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을 때엔  이 육가
가 제일 먼저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악영산은 말했다.

  [그가 도대체 어떤 점에서 분수를 지키지 않았다는 거예요?]

  육후아는 말했다.

  [그는...... 그는......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예요? 왜 그리 더듬거리기만 하죠?]

  육후아는 말했다.

  [아무쪼록 이 육후아가 잘못 본 것이기를 원해.]

  악영산은 얼굴을 살짝  붉혔을 뿐 더 묻지 않았다. 육후아가 가
겠다고 나서자 악영산도 그와 같이 벼랑 아래로 내려갔다.
  영호충은 벼랑가에 서서 멍하니 두  사람의 뒷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이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것을 보고서야 고개
를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산모퉁이 저쪽에서 악영산의 
맑고 고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곡조는  매우 경쾌했다. 영호충은 
그녀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랐고,  또 그녀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지만 이번 곡은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악영산이 평소 부르는 노래는 길게  꼬리를 끄는 것이었다. 그러
나 지금  부르는 곡은 마치  구슬이 물방울을 튕기는 것처럼  글자 
하나하나가 끊어지고 있었다. 영호충은 귀를 기울였다.

  [이봐요, 누이...... 찻잎을 딪러 산으로...... 가자.]

  그런데 그  몇 자의 발음이  이상야릇해싸. 그리고 십분지  구는 
음만 들을 수  있었지 그 뜻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
했다.

  [소사매가 언제 저와 같은 새로운 노래를  배웠지? 매우 듣기 좋
군! 다음에 벼랑 위에 올라왔을 때 그녀  보고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해야지.]

  별안간 그는 가슴팍을  쇠망치로 심하게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
다. 갑자기 그는 깨달았다.

  [저것은 복건성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임  사제가 그녀에게 가르
쳐 주었구나!]

  이날 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영호충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귓가에 악영산의 그  경쾌하고 활발하며 음을 분간하기  어려운 노
랫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는 몇 번이나 자기를 꾸짖었다.

  [영호충, 이 멍청아. 너는 과거  얼마나 소탈하고 자유로웠느냐? 
그런데 왜 오늘은  한 곡의 노래 때문에 번뇌하느냐?  그야말로 사
내 대장부라 하기에 부끄럽지 않느냐?]

  그와 같이 생각했으나 악영산이 부르던  복건성의 노랫가락은 시
종 귓가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장검을 뽑아들
고 미친 듯 석벽을 베기 시작했다. 갑자기  단전에서 한 줄기 내력
이 치밀어 올랐다.  검을 고치고 앞으로 힘껏 내지르는  순간 '싹' 
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은 놀랍게도 자루가 있는데까지  쑥 들어가 
박히는 것이 아닌가? 영홑우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이 몇달 동안 
공력이 증가했다고 하더라도 일검을 석벽에  찔러 자루까지 들어가
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사부나  사모라도 이와 같은 능
력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의아함을 금치 못하고  검자루를 바
닥 쪽으로 내리  눌러 보았다. 그 순간 손에 와  닿는 느낌으로 그 
석벽이 썩은 나무처럼 부드럽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호기심을 
느끼고는 다시 검을  뽑았다가 다시 찔렀다. '뚝' 하는  소리와 함
께 장검은 두  토막이 나고 말았다. 원래 이번에는  내력을 끌어올
리지 않고 찔렀기  때문에 검이 부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느 욕
을 한 마디 하고는 동굴 밖으로 가서  머리통 크기의 돌을 들고 동
굴 안으로 들어왔다.  돌로 석벽을 후려쳤다. 석벽  뒤쪽에서 은은
히 메아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뒤쪽은 넓은 공간인 모양이었
다. 그는  다시 힘을 돋우어서  석벽을 때렸다. '텅' 하는  소리가 
나면서 바위가 세치  두께의 석벽을 뚫고 저쪽으로  떨어지게 되었
는데 '텅텅'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면서 바위가  자꾸만 저쪽
으로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석벽 뒤쪽에 또다른 동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다시 커다란 돌을  들어 후려쳤다. 몇번 때리지 않아서  구멍이 뻥 
뚫리게 되었고, 그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  수 있었다. 그는 석벽
의 구멍을 조금 더 크게 뚫었다. 그리고  횃불을 들고 그 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 안쪽에는 좁다란 통로가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발밑을 살펴본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발 옆에 한구의 고루(??)
가 엎어져 있었다.
  이 광경은 너무 뜻밖이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했다.

  (설마 이곳이 옛 사람의 무덤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 해골은 어
째서 하늘을 향해 눕지 않고 이렇게 엎드려  있는 것일까? 이 모양
을 보건데 이 좁은 통로는 무덤으로 통하는 통로가 아닐까?)

  그는 몸을 구부려 고루를 살펴보았다.  몸에 걸쳤던 옷은 삭아서 
흙먼지로 호해 있었는데 곁에는 커다란 두  자루의 도끼가 놓여 있
었다. 불빛 아래 그 도끼는 찬란한 빛을 발했다.
  그는 한  자루의 도기를 집어들고  살펴 보았다. 꽤  묵직했으며 
적어도 사십여 근은 될 것 같았다.  도끼를 들고 석벽을 후려쳤다. 
'쏵'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조각의 돌이  떵져 나갔다. 그는 다
시 한번 어리둥절해졌다.

  (이 도끼가 이처럼 예리한 것을 보면  보통 물건이 아니다. 틀림
없이 한 분의 무림 선배의 무기인 것 같구나!)

  석벽에는 도기로 찍은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고  그 자국은 
매끄럽기 그지없었다. 칼로 두부를 자른 것  같다고나 할까? 그 옆
에는 예리한 도끼로  내려찍은 자리가 있었다. 그는 잠시  어찌 할 
줄 모르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횃불을  든 채 통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동굴의 통로에는 여기저기 도끼로  찍어낸 흔적이 나 있
었다.

  (알고 보니 이 통로는 바로 사람이 예리한  도끼로 파낸 것이 로
구나. 그렇군!  그는 산 속에  감금되자 예리한 도끼로 산을  파기 
시작했고, 산허리 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겨우 몇 치 정도를 
남겨 놓고 힘이 빠져 죽고 말았군. 아!  이 사람의 운명이 좋지 못
해 이렇게 되었구나!)

  그는 십여 장을  나아갔다. 그래도 그 통로가 끝나지  않자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사람이 통로를  뚫은 것을 보건대 의지의 굳셈과  무공의 고
강함은 천고에 보기드문 지경이구나!)

  다시 몇 걸음을  나가자 땅바닥에 다시 두 구의 고루가  눈에 띄
었다. 한 구석 벽에 기댄 채 앉아 있었고  한 구는 그 자리에 웅크
린 채 앉아 있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원래 산허리  속에 감금되어 있던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었구
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곳에 우리  화산파의 근본이 되는 중지(重地)로서  외부의 사
람이 쉽게 올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고루는 우리 화산파에서 문
규를 범한  선배들로서 따로  이곳에 감금되어  죽었던 것이  아닐
까?)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통로를 따라 왼쪽으로 돌게 되자  눈 앞
에 커다란 동굴이 나타났다. 족히 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이였
다. 동굴 안에는 일곱 구의 해골이 앉거나  누운 채로 널려 있었고 
그들 옆에는 한결같이  무기가 놓여 있었다. 한  쌍의 철패(鐵牌), 
한 쌍의 판관필(判官筆),  한 자루의 철곤(鐵棍), 한  자루의 동봉
(銅棒), 그리고 한 자루의  뇌진당(雷震?)이 있었고, 낭아(狼牙)가 
잔뜩 돋아난 삼첨양인도(三尖兩刃刀)도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의 
무기가 있었는데 칼  같기도 하나 칼이 아니고 검 같기는  하나 검
이 아니었다. 영호충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와 같은  외문(外門)의 병기를 사용하는 사람과  예리한 도끼
를 사용하는 사람은 결코 우리 화산파의 제자가 아니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십여 자루의 장검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고 한 자루의  장검을 집어 
들었다. 그 검은  보통 검보다 짧았으나 검날의 폭이  두배나 되고 
꽤 묵직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화산파에서 사용한 검이군!)

  그리고 나머지의 장검 가운데는 가볍고  부드러운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항산파의 무기였다. 그리고 어떤  검은 검신이 구부러져 있
었는데 바로 형산파에서 사용하는 세 가지  장검 가운데 한 가지였
다. 그리고 어떤 것은 검날이 서지 않고  검의 끝이 지극히 날카롭
고 뾰족했다. 이것이 바로 숭산파의  선배들이 즐겨 사용하는 무기
였다. 그리고 달리  세 자루의 장검이 있었는데 길이나  무게를 볼 
때 화산파에서 사용하는 검이었다. 그는  갈수록 기이한 생각이 들
었다.

  (이곳에 오악검파의 무기가 던져져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횃불을 들고  동굴의 사면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오른쪽 벽에는 
땅바닥에서 수장쯤 되는 곳에 한 커다란  바위가 불쑥 튀어나와 있
었다. 그것은  마치 평대(平?)와 같았다.  그 커다란 바위  아래의 
서벽에는 네 줄로 다음과 같은 큰 글자가 씌어 있었다.

  <오악검파는 염치 없고 천박하다. 무공으로  이기지 못하자 암수
로써 사람을 해쳤다.>

  글자는 한결같이 한 자 둘레의 크기였고  석벽에 깊이 패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지극히 예리한  무기로 새긴 것  같았다. 그 
깊이는 몇 치나  되었다. 그런가 하면 그 글자들의  모서리가 흐트
러져 있어 매우 다급히 새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글귀들 옆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조그만 글자들이 새겨져 있
었는데 하나같이  비열하다느니 몰염치하기 이를데  없다느니 비겁
하다는 등 욕을  하는 말들이었다. 영호충은 이를 보자  무척 화가 
나서 생각했다.

  (원래 이  사람들은 우리 오악검파에 사로잡혀  이곳에 감금되었
었구나. 가슴 가득히  끓어오르는 분노를 풀 길이 없어  여기다 욕
을 썼군. 이 같은 행위야말로 비열하고 몰염치한 것이지!)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 오악검파와 싸웠다면  물론 좋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는 횃불을 들고 석벽의 위를 비춰 보았다.  그러자 한 줄의 글
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범송(范松),  조학(趙鶴)이 항산파의  검법을 이곳에서  깨뜨리
다.>

  그리고 그 귀절  옆에는 무수한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는데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루고 있었다. 한 사람은 검을  들고 다른 한 
사람은 도끼를  들고 있었다. 대략  훑어봐도 오육백 명의  사람이 
새겨져 있었는데 도끼를 쓰는 사람이 검을  쓰는 사람의 검법을 깨
뜨리는 모양이었다.
  그림의 옆에는 한 줄의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장승운(張乘雲), 장승풍(張乘風)이  화산검법을 모조리  깨뜨리
다.>

  영호충은 발끈해져 생각했다.

  (몰염치한 자식들  같으니! 정말 대담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군! 
화산파의 검법은 정묘하여 천하에서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손 가락
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인데  그 누가 깨뜨린다고  떠드는거야! 
더구나 모조리 깨뜨렸다고 하다니!)

  이 같은  생각을 하며 그는  태산파의 무거운 검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힘을 주어 그 글귀를 향해 내리쳤다.  '캉' 하는 소리와 함
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자  그 글귀 가운데  진(盡)자가 
부서졌다. 그는  한번 내리침으로써 석벽이 매우  딱딱하다는 사실
을 알 수  있었다. 이 같은 석벽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 넣는 
다는 것은 예리한 무기가 있다 해도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옆의 도형을  바라보았다. 그 도형에는 검
을 쓰는 사람의 모습이 간단하게 그려져  있고 선(線)도 심히 간결
한 편이었으나 그  자세와 형태는 바로 화산문파의  기본검법 가운
데 유봉래의(有鳳來儀)라는 일초를 펼치고  있는 형세였다. 검세는 
나는 듯이 펼쳐지고 있었으며 가볍고도 날카로워 보였다.
  그런데 그와 맞서  있는 인형은 손에 한 자루의 무기를  들고 있
는데 곤봉인지 아니면  창날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무기
의 끝은 곧장 상대방 검끝을 겨누고 있었다.  그 자세는 우스울 정
도로 우둔하고 졸렬했다.
  영호충은 싸늘히 냉소를 흘리며 생각했다.

  (허허! 본문의 유봉래의라는 일초는 안으로  다섯 가지의 후수가 
숨겨져 있는데  이같이 우둔한  초식으로 깨뜨릴  수가 있단  말인
가?)

 그러나 다시 그림 속의 사람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둔하고 졸렬
한 가운데  여유가 있었고, 면면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유봉래의라는 일초에 다섯  가지의 후수가 있다고 하지
만 그 사람의 곤봉에는 은연중 여닐곱  가지의 후수가 숨겨져 있어 
유봉래의의 여러 후수를 상대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았다.
  영호충은 간단하게  그려진 인형(人形)을 응시하며  놀람을 감추
지 못했다.

  (본문의 이 일초  유봉래의는 본래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하지
만 곧 이어질  후수의 위력은 지대하다. 적이 눈치가  빨라 막거나 
피한다면 모르되 만약  위험을 무릅쓰고 깨뜨리려 든다면  크게 당
하게 된다. 그러나 상대방의 이  일초에는 우리 유봉래의라는 일초
를 깨뜨릴  수 있는 위력이  엿보였다. 이건...... 이건......  이
건)

  그의 놀라움은 감탄으로  변하게 되었고 마음 깊이  당황함과 공
포를 누르기 힘들었다.
  그는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오른손이 격렬히 아파왔다. 횃불이  이미 끝까지 타게 되어 
손이 있는 곳까지 타들어온 것이었다.  그는 횃불을 던지고생각했
다.

  (횃불이 없으니 동굴 안은 칠흑처럼 어두워질 것이다.)

  그는 급히  면벽을 하던 동굴로  달려가, 추위를 몰아내기  위해 
불을 피우려고 모아둔  소나무가지를 십여 개 들고  윗동굴로 달려
갔다. 그리고 불이  거의 꺼져가는 횃불에다 불을 붙이고  두 사람
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막대기를  사용하는 사람의 공격이 본문의  검수와 비슷하다
면 본문의 검수는  상처를 입을 우려가 있다. 만약  상대방의 공격
이 조금이라도 높다면  무기가 맞부딪칠 때 본문의  검수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우리의 이 유봉래의라는 일초는......  확실히 상대
방에 의해 깨뜨려진 것이니 이미 쓸모가 없게 되었구나.)

  그는 고개를 돌리고 두번째 조의  도형을 바라보았다. 검을 들고 
있는  사람이 펼치는  검법은 화산파의  창송영객(蒼松迎客)이라는 
일초였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살폈다.  이 일초는 과거 그
가 한달 남짓한 세월을 보내고 익숙하게  연성할 수 있었으며 그가 
적을 상대할 때  자주 사용하는 검법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가슴
이 크게  설레였다. 이 일초가  다시 상대방에 의해  깨뜨려질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 막대기를 쓰는  사람을 바라보니 그  사람의 
손에는 모두 다섯 개의 막대기가 들려  있었으며 검을 사용하는 사
람의 아랫도리를 다섯 군데로 나누어 공격하고 있었다.
  그는 어리둥절해졌다.

  (어째서 다섯 개의 막대기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막대기를 쓰는  사람의 자세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 즉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은 다섯 개의  막대기가 아니다. 그가 삽시간에  잇달아 막
대기를 다섯 번이나 찔러내어 상대방의  아랫도리 다섯군데를 공격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빠르다면  나도 빠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잇달아  다섯 번을 찔러낼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창송영객이라는 일초는 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의가양양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멍해지게  되었다. 끝내 깨
달은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잇달아  다섯 번을 내지른  것이 아니구나! 이 다섯  개의 
막대기가 노리는 방위  가운데 어느 한 곳이라도 나는 피할  수 없
구나!)

  영호충은 지나간  일을 생각해 보았다. 세번이나  이 창송영객이
라는 일초를 펼쳐 이긴 적이 있었다. 만약  상대방이 이 석벽의 그
림처럼 반격해 온다면  상대방이 막대기를 쓰든 창을  쓰든 자기는 
죽지 않으면 상처를 입을 것이고 그러면  오늘날 이 세상에는 영호
충이라는 사람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는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움
을 느꼈다. 이마에서  식은 땀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틀렸다. 틀렸다.  만약 창송영객이 이 같은  방법으로 깨뜨려진
다면 사부님께선 어찌 모르고 계실까?  어재서 나에게 경고를 해주
시지 않은 것일까?)

  그는 이 일초의 정묘한 검법에  익숙할대로 익숙했다. 그러나 막
대기를 쓰는 사람이  다섯 방향으로 공격해오는 기세를  도저히 막
아낼 수 없었다.  석벽에는 단조롭게 다섯 개의 선을  그렸지만 그
선 하나하나가  모두 그의 다리나  허벅지의 뼈를 때리는 것  같았
다.
  다시 아랫쪽을 바라보았다. 석벽에 새겨져  있는 검초는 모두 화
산파의 검초였고 상대방은 교묘하고 악랄하기  이를데 없는 초식으
로 모두  깨뜨리고 있었다. 영호충은  보면 볼수록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무변낙목(無邊落木)이라는  일초를 보게 되었
을 때 상대방의  곤봉이 연약하고 무력하며 순전히  수세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이 일초는 당신네들이 깨뜨릴 수 없었겠지!)

  그러나 작년  섣달께에 일어났던 사건이 생각났다.  그때 사부는 
커다란 눈송이가  휘날리는 것을  보고 흥이 도도해져  뭇제자들을 
모아 놓고 검법을 강론하셨고 최후에는  이 무변낙목이라는 일초를 
펼쳤었다. 그때 그의  일검은 번개보다 빠른 것 같았고  매 일검마
다 번개같이  허공에서 내리고 있는 눈송이를  적중시켰었다. 그때 
사모님마저도 손뼉을 치며 갈채를 보내지않았던가?

  [사형 이 일초에  저는 승복했어요! 당신은 역시  화산파의 장문
인이 되어야 마땅해요!]

  사부는 웃으며 말했다.

  [화산파를 거느리는 것은  덕에 의한 것이지 힘에 의한  것이 아
니오. 일초의 검법을  익숙하게 잘 쓴다고 해서 장문인이  되는 것
이 아니지.]

  이에 사모님은 웃으며 반박했다.

  [흥! 부끄럽지도  않은가봐? 사형의 언어덕행이 나보다  더 나은
가요?]

  사부는 빙그레 웃고 더 말하지  않앗다. 그만큼 사모는 상대방에
게 승복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런데  그녀마저 승복한 이 무변낙목
이라는 검초의  위력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그후  사부는 
이 일초의 이름을 한 구절의  당시(唐詩)에서 취하였다고 했다. 사
부는 당시 그 귀절을 읽어 주었지만 지금  영호충은 기억 할 수 없
었다. 하지만 수백  수천 그루의 나무 잎들이 분분히  떨어지듯 이 
일초의 검법은  사면팔방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반격까
지 할 수 있다는 말은 기억이 났다.
  그는 재차  막대기를 쓰는 사람의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 
덩어리로 웅크리고 있었다. 그 자세는  실로 꼴불견이었다. 도저히 
받아낼 수 없어 얻어 맞는 듯한  자세였다. 영호충은 우스웠다. 그
런데 별안간  그의 웃음이 사라졌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솜털이 올올이 곤두섰다. 그는 눈 한번 돌리지  않고 그 사람의 손
에 들린 곤봉을 응시했다. 그 곤봉이 처한  방위는 보면 볼수록 교
묘하기 이를데  없었다. 무변낙목이라는 일초를 펼쳐  찔러내는 구
검, 십검, 십일검,  십이검...... 매 일검이 그 곤봉의  끝을 찌르
게 되는 형세였다.
  그리고 이 곤봉을 얼핏 보면 졸렬한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지극
히 교묘했다. 약해 보였으나 실제로는  지극히 강맹했다. 그야말로 
정(靜)으로서 동(動)을 제압하고  졸렬함으로써 교묘함을 제거한다
는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삽시간에 그는 화산파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설사 사부와 같이 노화순청에  도달하는 검술을 익혔다 해
도 이같이 곤봉을 쓰는 사람을 만난다면  이곳 저곳에서 제한을 받
아 도저히 항거할 여지가 없을 것이니  화산파의 검법을 배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산파의 검술은 진정  이 
같은 일격에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일까?
  이 같은 생각을  하며 그는 동굴 안의 해골을  바라보았다. 해골
들은 이미 죽은  지 삼사십 년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어째서 오
악검파는 지금까지 강호에서  모두다 뽐내고 있고 그  누구에 의해 
깨뜨려졌다는 소문이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숭산파 등의 검
법도 어떤 사람들에  의해 깨뜨려졌는지 그는 알지  못했지만 화산
검법이 깨뜨려진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만약에  상대방 같이 
고명하기 이를데 없는 초식에 부딪치게  된다면 화산검법은 일패도
지하고 만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고 있었다.
  그는 혈도를 집힌 듯 움직이지  못했다. 뇌리에 무수한 상념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누가 부
르는 소리가 났다.

  [대사형, 대사형, 어디 있읍니까?]

  영호충은 깜짝 놀라 급히 동굴  밖으로 달려나갔다. 급히 통로를 
지나 자기가  깨뜨려 만든  동굴입구를 기어나와 거처하는  동굴로 
되돌아 왔다. 육후아는 벼랑 바깥 쪽을  향해 부르짖고 있었다. 영
호충은 동굴 안에서 달려나가 살그머니 벼랑  뒤에 커다란 바위 뒤
로 돌아가 단정히 앉아 소리쳤다.

  [나는 이곳에서 타좌(打坐)를 하고 있다네.  육 사제, 무슨 일인
가?]

  육후아는 소리나는 쪽을 향해 다가오며 기쁜 듯 말했다.

  [대사형은 이곳에 계셨군요. 밥을 가져 왔읍니다.]

  영호충은 새벽 무렵부터 석벽의 초식을  응시하느라고 온 정신을 
쏟아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때는 이미 오후가 되
어 있었다. 그가 거처하는 동굴은  과거의 과오를 조용히 뉘우치는 
곳이어서 육후아는 함부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는 동굴이 얕아 영
호충이 없는 것을 보고는 벼랑가로 찾아나선 것이었다.
  영호충은 육후아가 오른족 뺨에 풀을 짓이겨 발라놓은  것을 발
견했다. 핏물이 푸른 약초덩이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볍지 
않은 상처라 생각한 영호충은 급히 물었다.

  [어? 자네 얼굴은 어떻게 된 것인가?]

  육후아는 말했다.

  [오늘 아침 검술을  연마하다 조심하지 않아 검을 돌릴  때 그만 
상처를 입게 되었지요. 정말 바보 짓을 했읍니다.]

  영호충은 그의 얼굴의  표정이 부끄러움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달리 사정이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말했다.

  [육 사제, 어떻게  입은 상처인가? 설마 나까지 속일  생각은 아
니겠지?]

  육후아는 울화가 치민다는 듯 말했다.

  [대사형을 감히  속이자는게 아니고 대사형이 화를  낼까봐 말하
지 않은 것입니다.]

  영호충은 물었다.

  [누구에게 찔린 것이지?]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본문의 사형제는 평소  화목한 편이었고 
한번도 싸운 일이  없는데 설마 산 위로 외부의 적이  들어온 것일
까?
  육후아가 이때 말했다.

  [나는 임 사제와  검술을 연마하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그가 배
운 지  얼마 되지 않는  유봉래의를 펼치는 바람에 나는  조심하지 
못해 그만 얼굴에상처를 입었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사형제끼리 손을 쓰다 보면 실수도 있는  법, 평범한 일이니 화
를 낼 필요도 없군. 거기다 임 사제는  처음 배워서 연마하는 것이
니 제대로 검을 거두고 휘두르지 못할 것이  아닌가? 그를 너무 탓
하지 말게. 그런데  자네가 너무 소홀했군. 유봉래의의  위력은 적
지 않으니 마땅히 조심해서 상대했어야 옳았네.]

  육후아는 말했다.

  [하지만 내가 어찌  임가가 입문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았는데 
유봉래의라는 일초를  연성했으리라고 생각했겠읍니까? 내가  사문
에 들어온 지 온 년째 되는  해에 이르러서야 사부님께서는 대사형
으로 하여금 그 일초를 나에게 전수한 것이 아니겠읍니까?]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졌다.  임 사제가  화산문하로 들어온  것은 
몇 개월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유봉래의를 배우다니  너무 
신속한 진도가 아닌가? 하늘이 내린  총명을 타고난 사람이거나 뛰
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무공을 서둘러  배웠다가는 기
초를 튼튼히 할  수 없게 되고 오히려 훗날 무공을  연마함에 있어 
크게 방해가 되는데  사부는 어째서 그톡록 빨리  유봉래의를 전수 
해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육후아는 다시 말했다.

  [그가 그  검초를 펼치자, 나는  깜짝 놀라서 상처를 입게  되었
죠. 그런데  소사매는 옆에서 좋다고  웃으며 손뼉을 치지  않겠어
요? '육후아, 나의 제자조차도 이기지  못하면서 이후 어떻게 영웅
호걸이라고 뽐낼 수 있겠어요?' 그 임가  녀석은 자기가 잘못한 것
을 알고 다가와 나의 상처를 싸매주려고  했지만 나는 그를 발길로 
차 곤두박질치게  만들었죠. 그랬더니  소사매는 노해  부르짖었어
요. '육후아, 상대방이 호의로 상처를  싸매주려는데 왜 때리는 거
예요? 수치가 분노로  변한 건가요?' 대사형, 소사매가  몰래 그에
게 전수한 것이 틀림없읍니다.]

  영호충은 가슴이  크게 진팡되었다. 이 유봉래의라는  일초는 심
히 연마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다섯  개의 후수는 변화가 무쌍했고 
또 여러 가지 오결이 있었다. 소사매가 임  사제에게 그 검법을 펼
칠 수 있도록 가르치려면 반드시 무수한  심혈을 기울여야 했을 것
이고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했을 것이다. 그녀가 이  며칠간 벼랑 
위로 올라오지  않은 것은 임  사제와 온종일 함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악영산은  성격이 쾌활하였고  자질구레하게 시간을  들여 
익히는 것을 귀찮게 여겼다. 그리고  호승심이 강해 남을 가르치려
고 한다면 세심히  지도하기를 바랄 수가 없는 터였다.  그런데 지
금 변화가  무쌍한 일초의  유봉래의를 임평지에게 익숙할  정도로 
가르친 것이니 이로 미루어 임 사제에  대한 관심과 애호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호충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마음의 평
정을 되찾게 되었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대는 어쩌다가 임 사제와 검술을 연마하게 됐지?]

  육후아는 말했다.

  [어제 내가 대사형과 그 몇 마디를 나눈  이후 소사매는 매우 불
쾌한 듯 봉우리 아래로 내려갈 때 줄곧  나에게 핀잔을 주었죠. 그
리고 오늘 아침  일찍 나를 끌고 임사제와 대련을  하라는 것이었
어요. 나는 아무  경계심도 품지 않고 대련을 하게  되었는데 소사
매가 몰래 임가 녀석에게 몇 수의  검초를 가르쳤으리라고 누가 생
각이나 했겠어요? 그리하여 그만 의표를  찔리게 되고 그의 암수에 
넘어가게 되었죠.]

  영호충은 모든 일을 환히 내다볼  수 있었다. 틀림없이 악영산과 
임평지는 이 며칠간 매우 다정하게  지낸 것이었다. 육후아로 말하
면 영호충과 각별한 사이였으니, 그녀는  육후아가 눈에 거슬려 끊
임없이 차가운  말과 비웃음을  던졌을 것이고 심지어  임평지에게 
욕을 보도록 했을 것이다.

  [자네가 먼저 임 사제를 욕했겠지? 그렇지?]

  육후아는 울화가 치민다는 듯 말했다.

  [그 비열하고 몰염치한 바보 녀석을  욕하지 않고 누구를 욕하겠
읍니까? 그는 나를 매우 두려워해요. 내가  욕을 해도 그는 한번도 
반박한 적이 없으며  나를 보기만 하면 슬슬 피했어요.  그런데 뜻
밖에도...... 뜻밖에도 그  녀석이 그처럼 음흉하게 나올  줄 누가 
알았겠읍니까? 흥!  그에게 재간이 있다면 얼마나  있겠어요? 만약 
사매가 뒤에서 받들어 주지 않았다면 어찌  그 녀석이 나에게 상처
를 입힐 수가 있었겠어요?]

  영호충은 가슴이  쓰렸다. 뒷동굴 석벽에 있던  유봉래의라는 일
초를 전문적으로  깨뜨리는 검초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땅바닥
에서 한 개의 나뭇가지를 집어들고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일초를 
육후아에게 전수해 주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았다.

  (여섯째 사제는 그 임가 녀석을 매우  증오하고 있다. 이 일초가 
펼쳐지면 반드시 그에게 중상을 입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부와 
사모님은 이 일을 따지게 될 것이고 우리  두 사람은 반드시 큰 벌
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절대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한 영호충은 말했다.

  [한번 손해를 보게 되면 그만큼 영악해지는  게 아닌가? 이후 다
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으면 될걸세. 같은  사형제끼리이니 조그
만 승패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게나.]

  육후아는 말했다.

  [그러나  대사형, 나는  관계럿읍니다만 대사형......  대사형이 
개의치 않을 수 있겠어요?]

  영호충은 그가  말하는 것이  악영산과 자기 자신과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가슴속 깊이 아픔을  느꼈다. 얼굴의 근육마저도 일그
러졌다.
  육후아는 자기가 한  말이 대사형의 자존심을 크게  해쳤다고 생
각하자 빨리 말했다.

  [제가...... 제가 말을 잘못했읍니다.]

  영호충은 그의 손을 잡고 나직이 말했다.

  [자네는 말을 잘못하지 않았네. 내 어찌  개의치 않아르 수 있겠
나. 하지만...... 하지만......]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말했다.

  [육 사제, 이번 일에 대해 우리 다시는 들먹이지 말도록 하세.]

  육후아는 말했다.

  [그러죠, 대사형.  그 유봉래의는 대사형이 나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나는 손을  쓰기도 전에 그의 수작에  넘어간 것입니다. 
후에 반드시 열심히  연마하여 그 녀석에게 대사형이  가르친 것이 
강한지 소사매가 가르친 것이 강한지 보여 주겠읍니다.]

  영호충은 쓴 웃음을 지며 말했다.

  [그 유봉래의라는 일초는 허허허. 기실 별 것도 아닐세.]

  육후아는 그의 표정이 씁쓸해 하는 것을  보고 소사매가 그를 냉
대했기 때문에 그가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더 
말하지 않고 그가 밥먹기를 기다렸다가 그릇을  챙겨 산 아래로 내
려갔다.
  영호충은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소나무 가지로 만든 횃불에 불을  붙이고 다시 뒷동굴로 가
서 석벽의  검초를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악영산이  어떻게 임평지
에게 검술을 가르쳤을까  하는 생각에 아무리 해도  정신을 가다듬
고 석벽의 그림을 바라볼 수 없었다. 벽  위에 새겨진 사람들이 하
나하나 악영산과 임평지의 모습으로 변해  하나가 가르치면 하나가 
배우곤 했으며, 그  표정이나 태도가 친밀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
곤 했다. 그의  눈 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임평지의  준수하게 생긴 
모습이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생각했다.

  (임 사제의 모습은  나와 거의 맞먹을 정도로  준수하다. 나이는 
나보다 적고 소사매보다는  한두살 위이니 쉽게 친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별안간 그는 석벽의 도형 중에 사람이  찔러낸 일검의 내공이 운
용하는 방법이나  검초의 방향이  악 부인의 '무쌍무대  영씨일검' 
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영호충은 깜작 놀라 생각했다.

  (사모님의 그  검법은 분명리  그분 스스로 창안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석벽에 그려져 있는  것일까? 참 이상한 노릇이구
나!)

  그는 다시 그 도형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그는 석벽의 
그 일검이 악  부인이 창안해낸 검초와 비슷한 것 같으나  실은 크
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석벽에 그려진  검초는 웅
후하고 힘찼으며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면이 있었다.  이로 미루어 
남자의 손에 의해  펼쳐진 것이고 펼쳐진 일검은 악 부인의  그 일
검처럼 무수한  후수가 숨겨져 있지  않았다. 따라서 더욱  단순한 
반면에 훨씬 위맹스런 면이 있었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모님이 창안하신 그 검법은 원래  이곳의 검법과 우연히 부합
한 것이로구나. 기실  이것은 이상한 게 아니다. 두 사람  모두 화
산검법의 원리를 보고  새로운 검법을 창안했기 때문에  비슷한 구
석이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다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석벽의  여러 검법 가운데 많은 검초를  사부와 사
모님은 모르고 계신 것이다. 그러면  사부님도 본문의 고심한 검법
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인가?)

  그런데 상대방의  그 막대기는 일직선으로 내밀어져  있었다. 막
대기 끝이 검의  끝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 자루
의 검과 한 자루의 막대기를 하나의 직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영호충은 그 하나의  직선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크게 부르짖었
다.

  [야단났다!]

  그리고 손에 든 횃불을 그만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동굴 
안은 금새 캄캄해졌다. 그는 두려움을 느끼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어떻게 하지?]

  그는 똑똑히 본 것이다. 한 자루의 막대기와  한 자루의 검이 부
딪치고 있었는데  막대기는 견고하고 검은 부드러웠다.  쌍방은 똑
같이 전력을  다해 찔러내고 있었다. 장검은  반드시 가운데서부터 
부러질 것이었다. 이 일초에 쌍방은 온  힘을 쏟아넣고 있었다. 곤
봉은 그 기세를  빌어 곧장 찔러가게 될 것이지만 검을  쓰던 사람
은 이미 피할래야  피할 겨를도 없이 곤봉에 찔려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영호충의 뇌리에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정말 해소시킬 수 없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무기가 부러
지고 상대방의 곤봉이 질풍처럼 찔러오게 될  때 부러진 검을 내던
지고 무릎을 끓든가  아니면 몸을 앞으로 재빨리  엎드린다면 곤봉
의 기세를 해소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사부와  사모님 같은 
검술의 대가가 어찌 그 같은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겠는가? 죽으면 
죽었지 욕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 그야말로 일패도지다. 일
패도지야!)

  그는 한참 동안  서 있다가 화로와 화석을 꺼내 불을  당겨 횃불
에 붙였다. 그리고  석벽을 다시 바라보았다. 검초는  갈수록 기이
해졌고 또  정묘해졌다. 최후의 수십 초는  변화무쌍하고 오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검초가  아무리 무서워도 상대방의 곤봉은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화산파의  검법의 그림이 끝난 곳에
는 검을 펼치던  자가 장검을던지고 고개를 숙인 채  무릎을 끓고
서 막대기를  쓰는 사람 앞에  수그리고 있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
다. 영호충은 가슴에 끓어오르던 분노는  이미 사라지고만 후였다. 
의기소침한 감정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곤봉을 쓰는 자의 그림이 
교만하고 각박한 데가  없지 않았지만 화산파의 검법이  모조리 상
대방에 의해  깨뜨려지고 다시 상대방과  자웅을 겨룰 수 없게  된 
사실만은 절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날 밤 그는 뒷동굴에서 몇백 몇천  번의 원을 그리면서 서성거
렸는지 모른다. 그는  한 평생 지금같이 커다란 충격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화산파는 오악검파의  하나이며 무림에서 명성을 누린  지 이미 
오래되는 명문파이다.  그런데 본파의 무공이 이토록  패배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석벽의 검초를 사부님과 사모님은  모르고 께시
다. 본문의  최고 검법을 연성하게 될지라도  사부님께서는 석벽의 
무공에 패배하고  말 것이다. 상대방에서 깨뜨리는  방법을 알기만 
하면 본문의 최강고수라 해도 검을 던지고  투항할 수밖에 없을 것
이다. 졌음을 시인하고 싶지 않으면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는 동굴 안을 서성거렸다. 이때 불은  이미 꺼지고 없었다. 얼
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횃불을 붙이고  땅바닥에 끓어 앉아 항복하고  있는 그림을 
바라보았다.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었다. 검을  쳐들고 벽을 뭉개
려고 했다. 그러나 검의 끝이 벽에 닿는  순간 갑자기 떠오르는 생
각이 있었다.

  (대장부는 공명정대해야 한다. 지면 지는  것이고 이기면 이기는 
것이다. 우리  화산파의 재간이  남만 못한데  무슨 할 말이  있는
가?)

  그는 장검을 내던지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시  석벽의 나머지  도형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숭산, 
항산, 태산,  사파(四派)의 검법이 새겨져  있었고, 그 검법  역시 
모조리 상대방에 의해  산산이 깨뜨려지고 있었으며 그  형세는 만
회할 수  없었다. 거기에도 역시  최후에는 땅에 엎드려  투항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영호충은 화산에  입문한 지 오래  되었고 
견문 또한  넓었다. 숭산파 등의  검초에 대해서 심후하고  정묘한 
점을 명백히  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대체적인 뜻은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석벽에 그련진 사파의  검초가 매우 고명하고 날카
롭고 오묘했음에도 불구하고  매 일초가 끝내는 상대방에  의해 깨
뜨려지고 말았다.
  그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범송, 조학,  장승풍, 장승운, 그  사람들은 대체 어떤  내력을 
지닌 사람들일까?  무슨 심사로 우리 오악검파의  검법을 깨뜨리는 
방법을 새겨놓고  그들 자신은 무림에서 종적을  감추고만 것일까? 
우리 오악검파는 어떻게 지금까지 커다란 명성을 떨치고 있을까?)

  오악검파가 강호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이 실로  불가사의 
하게 느껴졌다.  아니, 요행스럽다고  생각했다. 오악검파  가운데 
수천이나 되는  사장(師長)이나 제자들이 아직도  무림에서 떵떵거
리는 것은  이 석벽의 도형이  외부로 누설되지 않은 덕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내가 도끼를 들고  이 석벽의 도형을 깨끗이 문질러  이 세상에
서 없애 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오악검파의 명성을  보전할 것이
고 나 자신이  이 뒷동굴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해두면  되는 것
이다.)

  그는 몸을 돌려 커다란 도끼를 집어들고  다시 석벽 앞으로 나섰
다. 그런데 벽의  여러가지 초식을 대하자 차마 도끼로  내려 찍을 
수 없었다. 그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몰염치하고 비열한 짓을 이 영호충이 어찌 행할 수 있겠는가?]

  별안간 그의 뇌리에 다시 그 청포복면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사람의 검술이 고명한 것을 보면 이  동굴의 그림과 크게 관
계가 있을 것이다. 누구일까? 그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앞동굴로 와 반나절을 생각해 보고  다시 뒷동굴로 가서 벽
면의 도형을  살펴보았다. 이같이 갑자기 앞동굴로  나왔다가 갑자
기 뒷동굴로 가곤  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날이 어
두어지자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악영산이 밥그릇을  들고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영호충은 크게 
기뻐 급히 벼랑가로 달려가며 외쳤다.

  [소사매!]

  그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악영산은 대답하지  않고 벼랑가로 올라오더니  밥그릇을 아무렇
게나 내려 놓고  그를 한번 쳐다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  가려고 했
다. 영호충은 크게 다급해져 부르짖었다.

  [소사매, 소사매, 어떻게 된거야?]

  악영산은 살며시  코웃음치더니 오른발로  땅을 차며 몸을  날려 
벼랑 아래로 내려갔다. 영호충은 두번  세번 불렀으나 그녀는 시종 
대답하지 않았으며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영호충은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혀 일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
르고 바구니의 보자기를  열어 젖혔다. 하얀 쌀밥에 두  그릇의 소
찬만 있을 뿐 조그만 호로의 술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멍하니 내
려다볼 뿐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애써 밥을  먹으려고 했다. 그러나 한 수저를  입에 넣으면 
입에 가시가  돋힌 듯 넘길 수  없었다. 그는 수저를  놓고 생각했
다.

  (소사매가 나에게  화를 내고 있다면  어째서 친히 밥을  나에게 
가져다 주었을까?  나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이라면 어째서  한번 
바라보지도 않고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사라졌던 말인가?  설마 여
섯째 사제가 병이  들어 그녀가 대신 밥을 가져온  것일까? 하지만 
육 사제가 밥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오 사제,  칠 사제 여덟째 사제
가 밥을 가져오면 되는데 하필 소사매 자신이 가져왔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악영산의 심정을 추측해  보느라고 뒷
동굴의 석벽에 새겨진 무공을 깡그리 잊고 말았다.
  다음날 저녁 악영산은 다시 밥을  가져왔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한 마디도 그에게  건네지 않았다. 벼랑 아래로 
내려갈 때는 큰 소리로 복건성의 민요를 부르기도 했다.
  영호충은 창자를 칼로 휘저어버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원래 그녀는 나를 화나게 만들려고 하는구나!)

  삼 일째 저녁  무렵 악영산은 다시 밥을 가져와 바위  위에 털썩 
내려놓고는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 영호충은 더  참을 수 없어 불
렀다.

  [소사매, 내 그대에게 할 말이 있어!]

  악영산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해보세요.]

  영호충은 그녀의 얼굴이  찬서리가 내린 듯 싸늘한  모습을 보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대는...... 그대는...... 그대는......]

  악영산은 말했다.

  [내가 어떻다는 거예요?]

  영호충은 더듬거렸다.

  [나는...... 나는......]

  평소 그느 소탈하고 언변도 뛰어난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말
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악영산은 말했다.

  [빨리 말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가보겠어요.]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
  영호충은 크게 초조했다. 그녀의 표정으로  볼 때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다급한 김에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소맷
자락을 잡았다.
  악영산은 부르짖었다.

  [손을 놔요!]

  그리고 힘주어 뿌리치는  바람에 찍 하는 소리와  함께 소맷자락
이 찢어지면서 하얀 팔이 드러났다.
  악영산은 부그럽기도  했고 다급하기도 했다. 드러난  팔을 어떻
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무공을  익히는 사람이라 
조그만 예절에 대해서는 일반 규수들처럼  구속을 받지 않았다. 하
지만 갑자기 팔이 드러나자 매우 화가 나서 부르짖었다.

  [그대는...... 당돌하군요!]

  영호충은 재빨리 말했다.

  [소사매 미...... 미안해. 나...... 나는 고의가 아니었어.]

  악영산은 오른쪽  소매를 들어서  왼팔을 덮으며 날카롭게  말했
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자는 거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왜  그대가 나에게 이같이  대하는지 알 수가 없어.  정말 
내가 잘못했다면 소사매  그대는...... 그대는 검을 들어  나의 몸
을 이리저리 찌르도록 해. 나는......  나는 죽어도 원망하지 않겠
어.]

  악영산은 냉소했다.

  [당신은 대사형인데  감히 어떻게  대사형의 비위를  건드리겠어
요? 그대의 몸에 검을 들이대다?? 우리는 그대의 사제이고 사매예
요. 그대가 때리지 않고 욕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천지신명께 감
사할 노릇이죠.]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점을  사매에게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어.]

  악영산은 성이 나서 말했다.

  [모른다고요? 육후아를 시켜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고자질을 하
지 않았어요?]

  영호충은 크게 의아하며 말했다.

  [내가 육  사제에게 사부님과 사모님에게 고자질을  하도록 했다
고? 그...... 그대를 고자질했단 말이야?]

  악영산은 말했다.

  [대1사형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귀여워해 고자질을  해도 소
용없는 줄  알면서도 자기가  총명한 척 고자질을......  고자질을 
했어요. 흥흥...... 그러고도 정말 모르세요?]

  영호충은 짐작되는 일이 있어 대강의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더욱 쓰라리고 아팠다.

  [육 사제와  임 사제가 검술을  연마하다가 상처를 입은  사실을 
사부님과 사모님이 아시고 임 사제에게 벌을 내리셨나 보군!]

  그리고 생각했다.

  (사부님과 사모님께서  임 사제를 벌하셨다고 해서  이토록 나에
게 화를 내1다니.)

  악영산은 말했다.

  [사형제끼리 검술 시합을 하다가 한쪽이  실수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일부러 해치려고 한 것은  아니잖아요? 아버지는 육후
아를 편들어  소림을 크게  꾸짖었으며 소림은 공력이  모자라므로 
유봉래의라는 초식을 배우지 말았어야 했으며  다시는 저에게 검술
을 가르치지  말라고 했어요. 자  되었죠? 이제는 그대가  이겼죠? 
그러나...... 그러나......  나는...... 나는 그대를  다시는 아랑
곳하지 않겠어요. 영원히 영원히 상대하지 않겠어요.]

  이 영원히  영원히라는 1말은 평소  그녀가 영호충과 놀 때  즐겨 
사용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예전엔 눈을 깜박이고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어 상대하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안색이 준엄했고 음성은 싸늘하여 의를  끊겠다는 결심으로 가득차 
있는 듯했다.
  영호충은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

  [소사매...... 나는......]

  그는 본래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했다.

  [나는 육  사제에게 사부님과 사모님께 고자질을  하라고 시키지 
않았어.]

  그는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나 자신에 대해 가책을 느끼1지 않고 그  같은 일을 하지 않았는
데 내가 왜 그런 일로 너에게 애걸하며 동정을 빌어야 하느냐?)

  그래서 그는 다음 말을 잇지 않았다.
  악영산은 말했다.

  [그대가 어떻게 되었다는 거예요?]

  영호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어떻게 되었다는  게 아니다. 다만 사부님과  사모님이 그
대가 임 사제와  검술연마를 시키는 것을 만류했다고  하더라도 대
단한 일이 아닌데 어째서 나에게 이토록 화를 내는가 하는 거야.]

  악영산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화를 내고 ?槁楮? 당신의  마음속으로 나쁜 
것만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임  사제에게 검술을 가르치지 않으면 
매일 같이 와서 놀아줄 것이라고 생각했겠죠?  흥! 나는 영원히 그
대를 상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오른발을 힘차게  딛으며 몸을 날려 벼랑  아래로 내려갔
다.
  영호충은 손을 뻗쳐 그녀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귓전에 그녀
의 맑고 고운 복건성의 민요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는 벼랑가로  다가가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아름다
운 뒷모습이  산모퉁이 저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렴풋이 그녀1
의 왼팔이  그녀의 오른쪽 소맷자락에  가려진 모습을 볼 수  있었
다.
  그는 걱정이 되었다.

  (내가 그녀의 옷자락을  찢어 놓았다. 그녀가 사부와  사모님 두
분에게 알린다면 두  분은 내가 그녀에게 무례하고  경박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하지?  이 일
이 소문나면 사제들과 사매들도 나를 업수이 여길 것이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경박한  짓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상관할 필요는 없지.)

  그러나 그녀가 임평지1에게  검술을 가르칠 수 없다고  해서 그를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그는 자신을 위로했다.

  (소사매는 나이가 어리고 활동적이다. 벼랑  위에서 과오를 뉘우
치고 있을 동안 그녀를 상대하여 답답함을  풀어줄 사람이 없기 때
문에 그녀는 나이가  비슷한 임 사제를 짝으로 삼은  것이다. 무슨 
뜻이야 있으려고?)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자랐다. 정이 얼마나 깊은가 말이다.  임 사
제는 화산에 온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임 사제에 대해서 그
토록 1다정하게 굴면서  나에게 이토록 야박하게 굴다니  그럴 수가 
있을까?)

  이 같은 생각이 들자 다시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이날밤 그는 동굴  안에서 벼랑가로 다가갔다가 다시  동굴 안으
로 걸어오곤 했다.  왔다갔다 하기를 수천 수백 번은  반복해야 했
다.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속으로  악영산만 생각했다. 석벽
의 도형과 밤에  갑자기 모습을 나타냈던 청포의  복면인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날 저녁무렵 육후아가 밥을 가지고  올라왔다. 그는 밥과 찬을 
바위 위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대?聆?식사하세요.]

  영호충은 '음'  하고 그릇과 젓가락을  들고 두 번 떠  먹었으나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벼랑 아래로  한번 내려다 보고는  천천히 
밥그릇을 놓았다.
  육후아는 말했다.

  [대사형 안색이 좋지 못하군요. 몸이 불편하십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괜찮아.]

  육후아는 말했다.

  [이 동고(冬?)는  내가 어제 사형을  위해 캐온 것이라오.  한번 
맛이나 보십시오.]

  영호충은 그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  두어 번 동고를 집어먹고 
말했다.

  [맛이 좋군!]

  동고의 맛은1 구수했으나 그는 그 구수한  맛을 반푼도 느끼지 못
하고 있었다.

  육후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대사형,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죠. 어제부터  사부님과 사모님
께서는 소사매가 소림을 가르치지 못하게 했읍니다.]

  영호충은 냉랭히 말했다.

  [자네는 검법으로 임 사제를 이길  수 없으니 사부님과 사모님께 
울면서 하소연을 했겠지? 그렇지?]

  육후아는 펄쩍 뛰었다.

  [내가  그를 이기지  ?幣磯鳴? 누가 그럽디까?  나는......  나
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그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영호충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임평지가 유봉래의라는  일초로 육
후아의 의표를 찔렀지만 역시 육후아가 사문에  들어온 지 오래 되
었기 때문에 임평지가 그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육후아가 
사부와 사모님께  고자질을 한 것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영호충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원래 사제와  사매들은 나의 마음이  괴로운 것을 알고  있었구
나!  육  사제는  나를  도와  사태를  수5습하려고  했을테지.  허
허...... 사내 대장부가 어찌 남의 동정을 살 수 있단 말이냐?)

  그는 미친 듯이 화를 내며 밥그릇과  찬그릇을 하나하나 집어 산
골짜기 아래로 던지며 부르짖었다.

  [누가 자네보고  쓸데없는 일에  관계하라고 그랬어? 누가  자네 
보고 쓸데없이 일에 관계하라고 했어? 엉?]

  육후아는 깜짝 놀랐다. 그는 연신 뒷걸음질치며 말했다.

  [대사형, 대...... 사형.]

  영호충은 밥그릇과 찬그릇을 산골짜기로 다  내던지고도 화가 가
라앉지 않아서 숨을 거칠게 몰아 쉬었다.
  육후아5는 말했다.

  [대사형, 내가 잘못했어요. 대사형, 나를 때려 주세요.]

  영호충은 손에 들린 돌을 산골짜기로 던지다가  그 같은 말을 듣
자 몸을 돌리고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자네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가?]

  육후아는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서며 더듬거렸다.

  [나는...... 나는...... 나도 모르겠읍니다.]

  영호충은 손에 들렸던 돌을 산골짜기를 향해  멀리 던진 후 육후
아의 손을 잡더니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육 사제, 미안해.  내 스스로 가슴이 답답해서  그랬어. 자네와
는 상?驩愎?일이야.]

  육후아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시 밥을 갖다 드릴께요.]

  영호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필요없어 나는 먹고 싶지 않아.]

  육후아는 바위 위에  어제 갖다 놓은 밥과 찬이 그대로  있는 것
을 보고 우려의 빛을 띄우며 말했다.

  [대사형, 어제도 밥을 드시지 않으셨군요.]

  영호충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상관하지 말게. 이 며칠간 나는 밥맛이 없어.]

  육후아는 더 말하지 못했다.
  이튿날 그는 미시 때도 되지 않아 밥을 들고 산5 위로 올라왔다.

  (오늘은 주전자에 좋은 술을 마련했고  또 두가지 맛있는 반찬을 
준비했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대사형에게 몇  그릇의 밥을 먹이도록 
해야지.)

  벼랑 위에 와보니  영호충은 동굴 안에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안색은 매우 초췌했다.
  육후아는 큰 소리로 말했다.

  [대사형, 이것이 무엇인지 보세요!]

  그는 술호로를  들어 흔들흔들해 보이고는 병마개를  뽑았다. 동
굴 안은 술 향기가 가득 찼다.
  영호충은 호로를 받아 단숨에 반을 마시더니 칭찬을 했다.

  [이 술맛이 괜찮군!]
5
  육후아는 기뻐서 말했다.

  [내가 밥을 떠 드리겠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아니, 난 밥을 먹고 싶지 않아.]

  육후아는 말했다.

  [한 그릇만 잡수세요.]

  그러면서 한 그릇의 밥을 내밀었다.  영호충은 그의 성의를 무시
할 수 없었다.

  [좋아! 술을 다 마신 후에 밥을 먹기로 하지.]

  그러나 영호충은  끝내 먹지 않았다.  육후아가 다시 밥을  가져 
왔을 때 영호충은  땅바닥에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육후아는 그
의 두 볼이 새빨개져 있는 것을 보고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짚어 
보5았다. 후끈 달아오른  것이 높은 열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육
후아는 걱정이 되어 나직이 말했다.

  [대사형 병이 났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술, 술...... 술을 주게나.]

  육후아는 술을 가져왔으나 감히 그에게  줄 수가 없었다. 그릇에 
맑은 물을 부어 그의 입에 댔다. 영호충은  일어나 한 그릇의 물을 
다 마시고 말했다.

  [술맛이 좋군! 술맛이 좋아!]

  그리고 벌렁 뒤로 눕더니 여전히 중얼거리듯 말했다.

  [좋은 술이야! 좋은 술!]

  육후아는 그의 병세가 가볍지 않음을  보고 매우 5걱정이 되었다. 
이날은 마침 사부님과 사모님은 볼 일이  있어 일찍 산을 내려가고 
없었다. 그는 즉시 나는 듯 벼랑 아래로  달려내려가 노덕약 등 사
형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악불군은 매일같이 밥을  갖다 주는 일 외에  문하제자들이 벼랑 
위로 올라가  영호충과 환담하는 것을  엄히 금하고 있었다.  지금 
영호충은 병을 앓고 있으니 위로 올라가  위문하는 것은 문규를 어
기는게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뭇제자들은 함께 벼랑 위로 
오르지 못하고  상의한 후에 나누어  벼랑 위로 문병을 오기로  했
5다.
  첫날은 노덕약과 양발 두 사람이 벼랑 위로 올라갔다.
  육후아는 다시  악영산에게 그  사실을 알렸으나 그녀는  분노가 
가시지 않은 듯 냉랭히 말했다.

  [대사형은 내공이 정순한데  어떻게 병에 걸려요? 나는  그런 속
임수에 넘어가지 않아요.]

  영호충의 병의  정말 무겁고 위험했다. 사흘  밤낮을 혼수상태에 
빠져 일어나지  못했다. 육후아는 애걸애걸하며 그녀가  벼랑 위로 
올라가 문병을  해야한다고 타일렀다. 무릎을 끓고  그녀의 면전에
서 빌 것  같자 악영산은 그제서야 마지 못해 육후아와  ?途?벼랑 
위로 올라갔다. 영호충은  두 뺨이 움푹 패여 있었고  텁수룩한 수
염이 얼굴 가득히  자라 있어서 소탈하고 뛰어난  풍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악영산은 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의 
곁으로 다가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대사형, 제가 돌아왔어요. 다시 화를 내지 마세요. 네?]

  영호충은 무표정했다.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는
데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악영산은 말했다.

  [대사형, 저예요. 왜 모른 척하세요?]

  영호충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더??한참  후에 잠이 들었다. 육
후아와 악영산이 떠날 때까지 그는 시종 눈을 뜨지 않았다.
  이번에 병을 그는  한달 남짓 앓았다. 그제서야 그는  전차 회복 
되었다.
  이 한달 남짓한 동안에 악영산은 세  번이나 그에게 문병을 왔었
다. 두번째 벼랑  위로 올라왔을 때 영호충은 정신을  차리고 있었
다. 그리고 그녀를  보고 매우 기뻐했다. 세 번째 문병을  왔을 때 
그는 이미 일어나  앉을 수 있었고 그녀가 가져온 몇  조각의 간식
도 먹었다.
  그러나 그 문병  이후 그녀는 전혀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영호
충??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자 하루종일  벼랑가에 
서서 소사매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매번 보이는 것은 텅
빈 듯한 산길이  아니면 육후아가 구부정한 몸으로  재빨리 올라오
는 모습뿐이었다.
  어느날 영호충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이 신
속하게 벼랑  위로 올라왔다. 앞에  있는 사람은 치마가  펄럭이는 
것으로 보아 여자였다. 그들은 신법이  뛰어났고 가파른 언덕을 마
치 평지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영호충은  자세히 바라보았다. 바로 
사부와 사모님이 아닌가? 그는 기5뻐한 나머지 소리높여 외쳤다.

  [사부님! 사모님!]

  악불군과 악 부인이  쌍쌍히 벼랑 위로 올라왔다. 악  부인의 손
에는 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화산파에서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문규에 의하면 제자가  벌을 받아 사과애에서 면벽하며  과오를 뉘
우칠 때 동문의 사형제들이 밥을 갖다  주는 외에는 올라가 이야기
를 나눌 수 없었다. 즉 벌을 받는  사람의 제자라도 올라와 사부에
게 인사를 드릴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부님께서 친히 올라온 것이다.  영호충은 기
쁨을 감추지 못하고 달려들었다.5
  악불군은 두팔을 부여잡고 기뻐서 부르짖었다.

  [사부님! 정말 보고 싶었읍니다!]

  악불군은 눈쌀을  살짝 찌푸렸다. 평소 대제자가  성질이 제멋대
로이고 자기  자신을 잘 가눌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같은 결점은  화산파의 상승기공을 연마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
이었다.
  그들 부부는  벼랑 위로 오르기  전에 이미 병의 원인을  물어본 
바 있었다. 제자들은  분명히 말해 주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영호
충의 병이 악영산 때문에 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딸을  불러 물었다. ?柳? 역시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고 
확신이 섰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영호충이 산벼랑 위에서 반년동
안 면벽했지만 오히려 나쁜 영향만  끼쳐준 결과가 되었다. 악불군
은 매우 못마땅히 여겼다. 하지만  제자가 염려되어 문병을 가야한
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악 부인은  손을 뻗어 영호충을  부축했다. 그의 안색이  초췌했
다. 과거 훤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지라 측은한 마음이  들어 부
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충아, 너의 사부와 나는 지금  관외에서 돌아왔다. 큰병을 앓았
다는데 지금은 좀 나았느냐?]
5
  영호충은 가슴이 화끈거리고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려고 했
지만 억지로 참고 말했다.

  [다 나았읍니다.  사부님과 사모님께서 먼길을  오시느라 피곤하
실텐데 돌아오시자마자  즉시 벼랑  위로...... 저를 보러  오셨군
요.]

  거기까지 말한 그는 감정이 복받쳐 목이 메었고 눈물이 흘렀다.
  악 부인은 밥바구니에서 한 그릇의 인삼탕을 꺼내며 말했다.

  [이것은 관외의 산삼으로 달인 인삼탕이다.  그것은 보(補)가 되
니 빨리 마시도록 해라.]

  영호충은 사부와 사모님이 만리길이나 되는  관이에??가지고 온 
인삼을 가장  먼저 자기에게 먹이는  것을 보고 감격했다.  그래서 
그릇을 받아든 오른손이 떨려 인삼탕이  조금 흘러내렸다. 악 부인
은 그릇을  받아 영호충에게 먹여  주었다. 그는 단번에  인삼탕을 
마시고 난 후 말했다.

  [사부님과 사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악불군은 손가락을  뻗치더니 그의 맥박을 짚었다.  맥박이 잦고 
힘이 없었다. 내공조예로  말할 때 옛날보다 크게 퇴보를  한 것이
었다. 더욱 불쾌해진 악불군은 담담히 말했다.

  [병이 나았군.]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다시 말했다.

  [충아, 너는  이 사과애에서 몇달  동안 무엇을 했느냐!  내공이 
진보하기는 커녕 퇴보를 했구나!]

  영호충은 고개를 숙였다.

  [녜. 사부님, 사모님, 용서해 주십시오.]

  악 부인은 미소지었다.

  [충아가 큰  병을 앓았고 아직  완쾌하지 못했으니 내력이  전만 
못함은 당연한 일이  아니예요? 설마 그대는 그가 병이  나면 날수
록 무공이 뛰어난다고 하는건 아니겠죠?]

  악불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내가 살핀 것은  몸이 강하고 약한 것이 아니라  내력의 조예였
소. 5이것은 병이  나고 안 나고와 상관이 없는 것이오.  본문의 기
공(氣功)은 다른 문파의  내공과는 달라 열심히 연마하게  되면 잠
을 자면서도 진보하게 되는 것이오.  더군다나 충아는 본문의 기공
을 연마한 자가  십 년이 넘었소. 몸 밖으로부터  오는 외상으로는 
병이 생길  이유가 없는 것이오.  어찌 되었든...... 어찌  되었든 
칠정육욕(七情六慾)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기 때문에  생겼던 거라
오.]

  악 부인은 남편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고  영호충에게 말
했다.

  [충아, 너의 사부는  언제나 너에??기공을 익히고  무공을 연마
하라고 타일렀다.  네가 사과애 위에서  홀로 지내도록 벌한  것은 
기실 정말 벌을 준 것이 아니라, 네가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 일년 안으로  기공이나 검술에 있어 대단한 
진보가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

  영호충은 잘못을 알고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제자 잘못을 알았읍니다. 오늘부터 열심히 연마하겠읍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무림에서는 나날이 변고가 많아지고 있다.  우리 부부는 근년5에 
사방으로 뛰어다녀  보았다. 잉태된 화근은 이제는  뿌리뽑기 힘들 
정도로 성장했다. 커다란  어려움이 닥칠 것 같더구나.  나는 무척 
불안하다.]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너는 본문의  대제자이다. 나는 너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
다. 네가 훗날  우리와 어렵고도 큰 책임을 맡아  화산일파를 빛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너는  남녀의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서 
열심히 정진하기는  커녕 오히려 무공이 떨어지고  말았다. 우리에
게 커다란 실망을 준 것이다.]

  영호충은 ?瀛括?얼굴에  근심의 빛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죄송
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땅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제자...... 제자는  죽을 죄를 지었읍니다.  사부님과 사모님의 
기대를 저버렸읍니다.]

  악불군은 손을 뻗어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잘못을 알았으면 됐다. 반개월 후에 다시  와서 너으 검법을 시
험하겠다.]

  그리고 몸을 돌려 떠나가려고 했다. 영호충은 불렀다.

  [사부님 한가지 일이......]

  그는 석벽의 도형과 청포인에 대해  알리려고 했다. 악불군은 손
을 흔들더니 벼랑 아래로 5내려갔다.
  악 부인은 나직이 말했다.

  [반드시 반개월  동안 무공이 증진되고 검법에  익숙해지도록 열
심히해야 한다.  너의 한평생이 관련되는 일이니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라.]

  영호충은 말했다.

  [녜, 사모님.]

  악 부인은 몸을 돌려 벼랑 아래로  달려내려가 남편과 어깨를 나
란히 하고 떠나갔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어째서 사모님께서는  검술연마가 나의  장래에 관련이  있으니 
절대 가볍게  생각지 말라고 하셨을까? 또  사모니께서는 사부님이 
먼저 가신 후에야 당부하신 것일까? ?ㅍ?..... 혹시......)

  그의 뇌리에  한가지 일이 떠올랐다. 따라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달아 올라 감히 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마음 깊숙히 하나
의 희망이 떠올랐다.

  (혹시 사부와  사모님은 내가 소사매  때문에 병이 났다는  것을 
알고 소사매와 짝지워  주시려는 게 아닐까? 다만 내가  열심히 연
마하여 기공이나 검술에서 반드시 뛰어났을  때 혼인을...... 사부
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가 거북하셨겠지만 사모님은  나를 친아들
처럼 대하시니까 몰래 나에게 당부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5
또 무슨 일이 나의 장래와 크게 관련이 되겠는가?)

  이 같은 생각이  들자 그는 힘이 솟았다. 그는  사부가 전수해준 
가장 어려운 검법을  펼쳐 보였다. 뒷동굴 석벽의 도형이  그의 뇌
리에 깊이 박혀 있었기 때문에 어떤  초식을 쓰든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화산 검법의 검초를 깨뜨리는  방법이 떠올랐다. 그는 검초를 
중간 정도 펼치다가 중지하고 생각이 잠겼다.

  (뒷동굴 석벽의 도형에 관해 사부님과  사모님에 대해 말할 겨를
이 없었다. 다음에  두 분이 벼랑 위로 올라오시면  자세히 관찰한 
바를 말씀드5리고 내가 느끼고 있는 의문을 풀어야 되겠다.)

  악 부인은 당부는  그로 하여금 새 힘이  솟구치도록 만들었으나 
그 후에는 검법과 기공의 수련에 있어 진전을  볼 수가 없었다. 그
는 온종일 쓸데없이 생각으로 소일하다시피 했다.

  (사부님과 사모님이  나와 영산을 짝지워 주신다면  소사매가 달
가워할까? 정말로 그녀와 부부가 된다면  소사매의 임 사제에 대한 
정이 사라질런지 알  수 없구나. 임 사제는 가까스로  사문에 들어
왔다. 그가  소사매에게 검법을 배우게  되자 그녀를 상대로  말을 
주고받아 무?簫纛?달랬을  뿐이지 두 사람 사이에  반드시 애정이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와 소사매는  함께 자라고 십여 년
간 조석으로 정을 쌓아오지 않았는가?  그날 나는 하만터면 여창해
의 일장에 격살될 뻔했는데 임 사제가  말을 해주어서 구원을 받았
으니 그 일을 한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이후 마땅히 그에게 잘 대
해 주어야 한다. 그에게 여려움이  있다면 나는 생명을 걸고서라도 
구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

  반개월이라는 세월은  눈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다.  악불군 부부
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시 벼랑 위로 올라왔다.  동행한 사람은 
시대자와 육후아,  악영산이었다. 영호충은 소사매도  함께 올라온 
것을 보고 '사부니 사모님' 하고 부를 때 음성이 떨려나왔다.
  악 부인은 그의 정신이 말고 안색도  반개월 전보다 많이 다랄진 
것을 보고 웃음을머금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산아, 네가 대사형에게 밥을 담아  드려라. 먼저 배부르게 먹은 
후 검법을 펼쳐 보이게 하자.]

  악영산은 대답했다.

  [녜.]

  그녀는 밥바구니를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  바위 위에 놓고 그
릇과 젓가락을 꺼내고  하얀 쌀밥을 한 그릇에 가득 담은  후 웃으
며 말했다.

  [대사형, 식사하세요.]

  영호충은 말했다.

  [고...... 고마워.]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대사형, 아직도 열이 나는가요? 어째서 더듬거리죠?]

  영호충은 말했다.

  [아...... 열은 이미 식었어.]

  그러면서 그는 생각했다.

  (이후 아침이면 아침마다 저녁이면 저녁마다  밥을 먹을 때 그녀
가 옆에 있어 준다면 이 영호충은 한평생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때 그는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겨우 두세 숟갈을 떴
을 뿐이었다. 악영산은 말했다.

  [다시 더 담아 들릴께요.]

  영호충은 말했다.

  [고맙지만  필요없어. 사부님과  사모님이  밖에서 기다리고  계
셔.]

  그가 동굴 밖으로 나오니 악불군 부부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바
위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
나 할 말이 없었다. 육후아는 눈을 껌벅이고 기쁜 빛을 띄웠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육 사제는 무슨 소식을 얻어듣고 저처럼 기뻐할까?)

  악불군은 영호충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말했다.

  [근명이 어제  장안에서 돌아왔는데 전백광이 장안에서  몇 가지 
가건을 일으켰다고 하더구나.]

  영호충은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전백광이 장안에 갔다고요? 그러면 십중팔구  나쁜 일을 저질렀
을 것입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그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장안성에서 하룻밤  사이에 잇달
아 일곱 채의 부자집을 털었다. 그것뿐  아니라 그집 벽에다 '만리
독행 전백광 차용' 이라는 아홉 개의 큰 글자까지 남겨 놓았다.]

  영호충은 화난 어조로 말했다.

  [장안성은 바로 화산의  옆에 있읍니다. 그런데 그가  그 커다란 
글자를 남겼다면 바로 우리 화산파를  비웃은 것입니다. 사부님 우
리는......]

  악불군은 말했다.

  [뭐냐?]

  영호충은 말했다.

  [사부님과 사모님의  신분은 존귀하시니 그 악적을  상대하여 보
검을 더럽힐 가치가 없읍니다. 그러나  제자의 재주가 아직도 부족
해 그 자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더구나  제자는 죄가 있는 몸으
로 벼랑 아래로  내려가 그 악적을 찾아나설 수  없읍니다. 어쨌든 
그 악적이  화산의 아래에서  날뛰게 내버려둔다면 정말  울화통이 
터지고 말 것입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만약 네가 그  악적을 죽일 자신이 있다면 네가  벼랑을 내려가
도록 허락하겠다.  그리하여 공을  세워 죄를 사하도록  해주겠다. 
너는 사모님이 전수해준 '무쌍무대 영씨일검'  이란 일초를 펼쳐보
여라. 이 반년 동안 아마도 거의  터득했으리라생각한다. 다시 사
모님에게 지도를  받게 되면 그  악적을 이기지 못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져 생각했다.

  (사모님은 그 일검을 전수해 주시지 않으셨는데?)

  그는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사모님께서는 그  일검을 펼쳐보였다. 정식으로  나에게 전수하
시지는 않으셨지만 나의  조예와 수위로 미루어 자연히  검초 가운
데 담긴 요지를 알았으리라 짐작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반
년 동안 열심히 연구하고 연마했으니 거의  다 익혔을 것이라고 계
산하신 것이다.)

  그는 속으로  무쌍무대 영씨일검 하고 뇌까렸다.  그러나 이마엔 
자기도 모르게 땀방울이 흘렀다.
  그가 처음 벼랑 위에 오르게 되었을 때는  때때로 그 일 검의 정
묘한 점을  생각했고, 두번 세번  시험해 보았으나 뒷동굴  석벽에 
그려진 그림을 본  이후로는 화산파의 어떤 검초도  남에게 격파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영씨일검이라는 검법은  더욱 참담
한 패배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마저 알게 되었고, 그  후부터 자연 
그 검초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
멍까지 올라왔으나 다시 집어삼키곤 했다.

  (그 일초는  쓸모가 없읍니다.  상대방에 의해 깨뜨려질  것입니
다.)

  그러나 그는  시대자와 육후아  앞에서 사모님이 자부하고  있는 
일초의 검법을 깎아내릴 수가 없었다.
  악불군은 그의 표정이 귿어지자 급히 물었다.

  [그 검법을  너는 아직도 연성하지 못했느냐?  그래도 상관없다. 
이 검초는 우리  화산파 검법의 극치라 할 수 있다.  너의 내공 조
예가 아직  충분하지 않으니만큼 제대로  연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일이 흐르게 되면 모자라는 점을 보충할 수 있다.]

  악 부인도 웃으며 말했다.

  [충아. 사부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드려라. 너의  사부는 너에게 
자하공(紫霞功)의 내공을 전수해 주겠다고 응낙하셨다.]

  영호충은 흠칫하며 말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릎을 끓으려고 했다.
  악불군은 손을 뻗어 저지하며 웃었다.

  [자하공은 본문의 최고의 내공이다. 내가  가볍게 전수하지 않는 
것은 인색해서가 아니다. 다만 이  기공을 연마하려면 마음속에 잡
념이 없어야 하고 거침이 없어 앞으로  나가듯 열심히 연마해야 하
고 중도에서 지체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무공을 연마하는 
사람에게 큰  해를 미치게 되고 주화입마(走火入魔)하게  된다. 충
아, 내가 먼저  네가 반년간 무공을 익힌 진도가  어떤지 보고나서 
자하공을 전수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겠다.]

  시대자와 육후아 악영산 세 사람은  대사형이 자하공을 전수받게 
되었다는 말에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자하공의 위력이 엄
청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옛부터  '화산구공(華山九功) 제일
자하(第一紫霞)' 라는 말이 있었다. 그들은  본문의 제자들 가운데 
무공이 있어 영호충이  으뜸가기 때문에 이후 반드시  영호충이 사
부의 뒤를  이어받아 화산파의  장문인이 되리라고 예상하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사부가 이토록 빨리 화산파의  제일신공을 전수해 
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육후아는 말했다.

  [대사형은 매우 열심입니다. 제가 밥을  가져오면 언제나 바위에 
앉아서 기공을 연마하거나 검법을 연마하고 있었읍니다.]

  악영산은 그를 흘겨주며 얼굴을 찡그렸다.

  (저 육후아는 대사형을 돕기 위해서  내 앞에서 사부님께 거짓말
을 하는구나.)

  악 부인은웃으며 말했다.

  [추아, 검을  들어라. 우리 사도  세 사람이 전백광을  죽이자구
나. 다급해지면 부처님의 발을 밟고  싸움터에서 창날을 간다는 말
이 있지 않느냐?]

  영호충은 의아하여 물었다.

  [사모님 우리 세 사람이 전백광을 상대로 싸우는 것입니까?]

  악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겉으로는 네가 도전을 하고 우리는  숨어서 몰래 그를 죽이는거
야. 누가 그를  죽이든 모두 네가 죽였다고 할 게  아니냐? 그러면 
무림동도의 신분에 어긋났다는 말을 사부님은 듣지 않을 것이다.]

  악영산은 손뼉을 치고 웃으며 말했다.

  [잘 되었군요.  아버님과 어머님이 도우신다면  저도 전백광에게 
도전할 자신이 있어요. 그렇다면 나는  전백광을 죽인 여호걸이 되
죠.]

  악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너는 너무 명예욕이 강해. 다 된  밥을 네가 지었다고 가로채고 
싶은게지? 너의 대사형으로 말하면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전백광과 
두 차례에 걸쳐  수백 초나 싸웠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허실
을 잘 알고  있다. 너의 그까짓 재간으로는 덤비자마자  목이 달아
날거다. 더군다나 너는  훌륭한 규수다. 입으로그  악적의 이름을 
담는 것조차 삼가해야 하는데 그와 맞서  싸운다는 것은 더욱 있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찍 하고 영호충의 가슴을 향해 찔러 왔다.
  그녀는 딸에게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
기 허리에서 장검을 뽑아들고 영호충의  요혈을 찔러온 것이다. 영
호충의 임기웅변 역시  신기할 정도로 빨라싼. 즉시 검을  뽑아 밀
어 붙였다. '창'  하는 소리가 나면서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영호
충은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악 부인은 '휙휙휙' 하며  잇달아 여
섯 검을  찔러 내었고 '창창창'  하는 소리가 여섯번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영호충은 검을 휘둘러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악 부인은 호통을 쳤다.

  [반격해라!]

  그리고 별안간  검법을 바꾸었다. 거믓띵 쳐들고  곧장 내려치는
가하면 재빠르기 이를데  없이 내려찍고 베고 하는데  결코 화산파
의 검법이 아니었다. 영호충은 즉시  사모님이 전맥광의 쾌도를 펼
쳐 그 자신으로  하여금 전백광의 공세를 막아내도록  하려는 속셈
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악 부인은  펼치는 초식을 갈수록  빨라졌다. 악 부인의  일초와 
일초는이미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펼쳐지고 있었다.
  악영산은 부친을 향해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의 저 초식들은 빠르기는  하지만 검법에 불과하
지 도법은 아니예요. 아무래도 전백광의  쾌도는 저와 같지 않을거
예요.]

  악불군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전백광의 무공은  뛰어나다. 그의  도법을 펼치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느냐? 애미 역시 그의 도법을 모방할  수가 없단다. 다만 쾌
(快)라는 요결을  극치로 발휘하고자 할 뿐이다.  전백광을 깨뜨림
에 있어서는 그의 도법의 신속함을  제압해야하는 것이다. 저것봐
라 좋아! 유봉래의(有鳳來儀)!]

  그는 영호충이 두  어깨를 살작 내려뜨리며 왼손의  검결지를 비
스듬히 이끌어 들이면서 오른팔굽을 슬쩍  움츠리는 즉시 유봉래의 
일초르 펼치는 광경을  보았던 것이다. 이 일초르 이때  펼치는 것
은 실로 합당했다. 그래서 크게 칭찬의 말을 던진 것이었다.
  그런데 영호충은  일검을 비스듬히  힘없이 찔러내는게  아닌가? 
그러자 악 부인이  펼쳐놓은 검의 그물을 꿰뚫을 수  없었다. 악불
군은 생각했다.

  (저런...... 저 검초를 헛 익혔군!)

  악 부인은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고  휙휙휙 잇달아 삼검을 찔러 
영호충으로 하여금 손발이 어지러워지도록 만들었다.
  악불군은 영호충의 초식이 일정한 법칙이  없이 아무렇게 방어를 
하는데 십초 가운데 삼초가 화산파의 검술이  아닌 것을 보고 얼굴
이 점점 일그러지게 되었다. 그런데  영호충의 검법은 어지럽고 법
칙이 없었지만 악 부인의 날카로운 공세를  여유 있게 막아내지 않
은가? 이때 영호충은 벼랑까지 물러가게  되었는데 퇴로가 없어 지
자 그는 갑자기  반격을 개시했다. 그는 기회를  포착하여 '창송영
객' 이라는 일초를  펼쳤다. 검화(劍花)를 허공에 수놓으며  악 부
인의 미간과 귀뿌리  쪽으로 검끝을 겨냥하며 번개같이  공격해 갔
다.
  악 부인은 창하고 일검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급히 검화를 뿌려 
몸을 지켰다.  그녀는 이 창송영객이라는 일초가  전개되면 곧이어 
몇가지 무서운  초식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호충은 
이 일초를 평소 익숙하게 연성했기 때문에  정말 자기를 찔러 상처
를 입히지 않는다  해도 쉽게 막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수비할 태세를 취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기다렸다.
  뜻밖에도 영호충은 장검을 비스듬히 찔러내는데  그 기세가 느렸
고, 검에 실린 기운도 약해지더니 제풀에 검을 거두는 게 아닌가?
  악 부인은 호통을 쳤다.

  [마음을 써서 초식을  펼쳐야지! 도대체 너는 무슨  쓸데없는 생
각을 하는 거냐?]

  그리고 휙휙휙  하고 잇달아 삼검을 찔러냈다.  그리고 영호충이 
몸을 훌쩍 날려 피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그 창송영객이라는 일초의  꼴이 뭐냐? 병을 앓고  나서 검법을 
모조리 사부님께 되돌려 주었단 말이냐?]

  영호충은 말했다.

  [녜.]

  그리고 얼굴에 부끄러운  빛을 띄우고 재차 검법을  펼쳐 반격했
다.
  시대자와 육후아는  사부의 얼굴이  점점 불쾌해지는 것을  보고 
속으로 똑같이  가슴을 두근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소리가 휙
휙 일어나는 가운데  악 부인이 장소가 좁다는듯  빙글빙글 돌아가
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 걸치고 있는 청삼이 한폭의  푸른 그림
자로 변했다.  그리고 검의 광채가  번쩍이는 가운데 검초를  다시 
분간할 수 엇었다. 영호충의 머리는  어지럽지만 했고 갖가지 생각
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만약에 야마분치(野馬奔馳)를  펼친다면 상대방의 곤봉을  비껴
막는 절묘한 초식에  의해 개뜨려질 것이다. 내가 만약  그 일초를 
계속하여 펼친다면 나 자신은 반드시 나중에  중상을 입고 말 것이
다.)

  그는 매번 화산파의  검법을 펼칠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석벽에
서 본  깨뜨리는 방법을 상기하곤  했다. 먼저번 그가  유봉래의와 
창송영객을 펼쳤다가 중도에서  그만둔 것은 바로 그  초식을 깨뜨
리는 방법을  상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연  몸이 움츠러들고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악 부인이 쾌검을  펼친 것은 그를 이끌어  무쌍무대 영씨일검을 
펼치도록 하여 적을 격파하고 공을  세우도록 하자는데 있었다. 그
러나 영호충은 제정신이  아닌 듯했고 전전긍긍하여 혼이  붙어 있
지 않은 것 같았다.
  평소 영호충은 간담이 지극히 크며 하늘과  땅이 무서운 줄 모르
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처럼 당황해 하는 꼴을 보게  되자 크게 
울화가 치밀었다.

  [어째서 그 초식을 끝까지 펼치지 않지?]

  영호충은 말했다.

  [녜.]

  그는 검을 들고  곧장 찔러갔다. 내공을 돋우는 방법과  검을 펼
치는 초식은 마치  악 부인이 창안해낸 무쌍무대  영씨일검과 같았
다.
  악 부인은 말했다.

  [좋아!]

  부인은 이 일초가  날카롭기 이를데 없어 정면으로  대하지 못하
고 몸을 비스듬히  날려 피했다. 그리고 검을 돌려  영호충의 검을 
쳐내려고 했다.
  이때 영호충은 생각했다.

  (이 일초는 되지 않는다. 소용없다. 일패도지이다.)

  그는 손목에 커다란  힘이 와 닿는 것을 느꼈다.  장검이 붕하고 
떠올라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 그는 깜작 놀라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악 부인은 검을  뻗어 찔러 내었는데 검광은  무지개처럼 뻗쳤고 
'찍찍' 하는 소리가 일었다. 그녀는  무쌍무대 영씨일검을 펼친 것
이다.
  이때 펼친 위력은 부인이 처음 펼쳤던  날보다 위력이 훨씬 커져 
있었다.
  그녀는 이 일초를  창안한 후 매우 의기양양했고  매일같이 연구
했던 것이다. 어떻게  초식을 펼치면 더욱 빠를까?  어떻게 내공을 
더욱 강하게 실을까? 어떻게 일격에  적중시켜 적을 물리칠까 하는 
점을 연구한 터였다. 그녀는 영호충의  검이 중도에 이르렀을 때는 
호랑이를 그리려다가  고양이를 그려 놓은 격이  되었으며, 위력이 
강한 초식이 형편없이 질질 끌려가는게  허수아비가 손짓하는 것과 
같자, 화가 나서 자기 스스로가 그  일초를 펼쳤던 것이었다. 그녀
는 제자에게  상처를 입힐 생각은  없었으나 검세가 너무  강했다. 
검세가 뻗어나며 어느덧 영호충의 전신을 뒤덮어 버리고 말았다.
  악불군은 이미 영호충이  피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을  뿐 아
니라 반격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악불군은 속으로 부르짖었다.

  (큰일났다!)

  그리고 재빨리 딸이 차고 있던 장검을  뽑아들고 한 걸음 내딛었
다. 악 부인의 장검이 다시 반 자  정도만 들이밀어진다면 그는 달
려들어 검으로 막을 작정이었다.
  사실 그들 부부의  재간은 별 차이가 없었다. 악불군이  조금 낫
다해도 악 부인이 승기를 점하고 있으니  정말 악불군이 그녀의 장
검을 밀어낼 수 있을지 짐작할 수  없는 일이었고 영호충이 상처를 
입더라도 가볍기를 바랄 뿐이었다.
  전광석화 같은 순간이었다. 영호충은 손이  닿는 대로 허리에 찬 
검집을 더듬게 되었고  몸을 움츠리며 허리를 구부리고  끓어 앉는 
듯한 시늉을  해보였다. 그리고 검집을  들어 악 부인이  찔러오는 
검을 겨냥하고 마주  내밀었다. 이 일초는 바로 뒷동굴  석벽에 그
려져 있는 도형의  하나로써 곤봉을 쓰는 자가  상대방이 찔러오는 
검을 마주 찔러  나가는 형세였으며 곤봉과 검이  일직선으로 이어
져 있기 때문에  쌍방의 내력이 마주치면 장검이  반드시 부러지는 
초식이었다.
  영호충은 장검이 손에서 날아가 버렸고  곧이어 사모님이 벼락같
이 공격하는지라 그렇지  않아도 혼란되어 있던 그의  뇌리에 떠오
르는 것이  석벽의 여러가지 초식이었다.  악 부인은 일검에  항거 
할 수 없게  되자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연히 석벽의  일초를 펼치
게 되었던 것이다.
  찔러오는 검도 빨랐지만 그가 내미는 검집도 빨랐다.
  이 일초가  펼쳐지자 팔에 실린 내공이  자연적으로 뻗쳐나갔다. 
이때 '싹' 하는  소리가 나며 악 부인의 장검이 곧장  그의 검집에 
꽂히게 되었다.  영호충은 당황하고 급해서 검집을  거꾸로하지 못
하고 잡히는대로 검집을  들어 상대방의 검과 맞서게  되었던 것이
다. 찔러오는 검을 겨냥한 것은 바로  검집의 입구였다. 악 부인의 
장검에 충격을 주는 대신 그 검이 검집에 꽂히게 되었던 것이다.

  악 부인은 깜작 놀랐다. 손아귀가  격렬하게 아파오자 그녀는 자
기도 모르게 장검을 놓치고 말았다.  영호충이 검집을 용해 빼앗은 
격이었다. 영호충의 이 일초는 뒤에 몇  수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
때 그는 뻗어나가는 공격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검집을 
뻗쳐내면서 악 부인을  향해 찔러갔다. 지금 그녀의 몸에  있는 급
소를 겨누는 ?痼?바로 악 부인이 사용했던 장검의 자루였다.
  악불군은 놀람과  분노를 함께  느끼며 장검을 휘둘러  영호충의 
검집을 후려쳤다. 이때 그는 자하공을  돋우었다. 영호충은 전신이 
화끈 달아옴을 느끼고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검집은 장검이 꽂혀 있는 채로 서너  토막이 나서 땅바닥에 떨어졌
다. 이때 하얀 광채가 번쩍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던 장검이 땅바
닥에 떨어졌는데  자루가 있는 곳까지  푹 꽂혔다. 시대자와  육후
아, 악영산 세 사람은 눈이 어지러워 모두  멍청하게 넋을 잃고 있
2었다. 악불군은 영호충의 앞으로 가  철썩철썩하며 잇달아 그의 뱝
을 갈기고 노기어린 어조로 호통을 내질렀다.

  [이 녀석,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영호충은 머리가  어지러웠고 몸을  휘청거렸다. 그는  땅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사부님, 사모님. 제자 죽을 죄를 지었읍니다.]

  악불군은 분노가 극에 달해 호통쳤다.

  [이 반년 동안 너는 사과애에서  무엇을 뉘우쳤으며 무슨 무공을 
익혔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제......  제자는......  제자는 아무것도  연마하지  못했읍니
다2.]

  악불군은 큰 소리로 다그쳐 물었다.

  [네가 사모님을 상대로 한 일초는 얼떨결에 생각해낸 것이냐?]

  영호충은 말했다.

  [제자...... 제자는 위급한 김에 아무렇게나 펼친 것입니다.]

  악불군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네가  생각도 없이  아무렇게나 펼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같이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네  자신은 사악한 
길로 드어서서  좀처럼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느
냐?]

  영호충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2
  악 부인은  한참 후에야 정신을 가다듬었다.  영호충이 남편에게 
따귀를 맞아 두 뺨이 부어 올랐고, 푸른  멍이 들자 가여운 생각이 
나서 말했다.

  [일어나거라. 이 가운데에  있는 속사정을 너는 본래  모르고 있
으니 탓할 수야 없지.]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남편에게 말했다.

  [사형, 충아는 자질이  뛰어나고 총명하기 때문에 이  반년간 우
리 두 사람을 보지 못하고 무공을  연마하느라고 그만 사악한 길로 
접어들었나 봐요.  아직 사악한 길로  들어선 지 얼마되지  않으니 
즉시 바로잡아 주면 될 것2이예요.]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일어나거라.]

  영호충은 몸을 일으키고 땅바닥에 세 토막이  나 있는 장검과 검
집을 내려다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째서 사부와 사모님이 자
기가 무공을 연마하다가  사악한 길로 들어섰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악불군은 시대자 등에게 손짓을 하고 말했다.

  [이리 다가오너라.]

  시대자, 육후아, 악영산 등은 일제히 말했다.

  [녜.]

  그리고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악불군은 바위 위에 앉아 천천히 말했다.

  [이십 오 년 전의 2일이다. 본문의  무공은 정(正)과 사(邪)로 나
누어져 있었다.]

  제자들은 모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화산파의 무공은 화산파의 무공일 뿐인데  어떻게 정과 사로 나
누어진단 말인가? 예전엔 왜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을까?)

  악영산은 말했다.

  [아버지, 우리가 연마한 것은 당연히 정통 무공이겠죠?]

  악불군은 말했다.

  [그야 물론이다.  그것이 방문좌도의  무공일 까닭이  있겠느냐? 
다만 방문좌도의  어떤 사람들이  스스로 정통이라고 하면서  우리 
보고 좌도라고  말했을 뿐이야. 그러나2  세월이 흐르게 되자  정과 
사는 저절로 분별이  나게 되고 방문좌도의 파벌은  끝내 구름처럼 
연기처럼 사라져 없어졌으며,  이십 오 년 동안 이  세상에 나타나
지 않게 되었다.]

  악영산은 말했다.

  [그러니까 제가 보고 듣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군요. 아버지, 
그 방문좌도의 일파가 소멸되었다면 더 상관할 것 없잖아요.]

  악불군은 말했다.

  [네가 무엇을  안다고 그래?  방문좌도라고 해서 모두  사마외도
(邪魔外道)가 아니다.  그것 역시  본문의 무공이다. 다만  무공을 
연마하는 중점이 다를2 뿐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무공을 가르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가르치더냐?]

  그는 눈을 들어 영호충을 바라보았다.
  영호충은 말했다.

  [가장 먼저  전수해 주신 것은  내공을 기르는 요결이고  내공을 
연마하는 것부터 시작했죠.]

  악불군은 말했다.

  [그렇다. 화산일파의 무공의 요점은 바로  기(氣)라는 한 글자에 
있다. 기는 내공으로서 일단 형성되면  권각법을 펼치건 칼과 검을 
휘두르건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본문의 무
공을 연마하는  정도(正途)이다. 그러나 본문의 선2배  가운데 일파
의 인물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본문 무공의 요점이  검(劍)에 있다
고 주장했다. 검술은  일단 연성하고 내공이 약하다 해도  적을 제
압하고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정사지간(正邪之間)의  차이는 바로 
이점에 있다.]

  악영산은 말했다.

  [아버지, 제가 한 마디 하겠는데 화내지 마세요.]

  악불군은 말했다.

  [무슨 말이냐?]

  악영산은 말했다.

  [저는 본문의 무공중 기공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검술 역시 경시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기공이 뛰어나지만 검법을  제대로 
연?또舊?않았다면 본문의  무공도 제대로 위풍을 나타낼  수 없다
고 생각해요.]

  악불군은 코웃음쳤다.

  [흥! 누가  검법이 중요하지 않다고 했느냐?  요점은 주종(主從)
이 다르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역시  기공이 주가 된다는  것이
지.]

  악영산은 말했다.

  [기공이나 검법 두 가지 다 주가 되는 게 좋겠어요.]

  악불군은 노해 말했다.

  [그 한마디는 바로 마도(魔道)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다 주가 된다면 두 가지 다 주가  아니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위 
강거목장(綱擧目張)이라??무엇이  강(綱)이며 무엇이  목(目)인지
를 분명히 해야 한다. 과거 본문은 정사의  차이로 크게 한마탕 소
란이 일었었다. 네가  그 말을 삼십 년전 했더라면  아마 반나절도 
되지 않아 목과 몸이 분리되었을 것이다.]

  악영산은 혀를 쏙 내밀고 말했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고 목이 떨어지다니, 어찌  그토록 흉악하
고 야만적일 수 있나요?]

  악불군은 말했다.

  [내가 젊었을  때는 본문의  기검양종(氣劍兩宗) 사이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었다. 너의  그 같은 말이 그 당시에  공공연히 내뱉어
졌다??기종(氣宗)에서  너를 죽일 뿐만  아니라 검종(劍宗)에서도 
너를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기공과 검법 두 가지가  다 중요하고 
주종을 가늠할 수 없다고 하면 기종에선  자연히 네가 검종의 신분
을 높이게 되었다고 할 것이고 검종에선  네가 강과 목을 혼합하고 
있으니 대역무도하다고 했을 것이다.]

  악영산은 말했다.

  [누가 옳고  그른지 다툴 것이  아니라 시합을 해보면  판가름이 
날 것 아니예요?]

  악불군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삼십 년 전 우리 기종은  소수였으며 검종의 사백부와 사숙들??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검종의 무공은  성취가 빨랐고 
빨리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모두  십 년 동안  무공을 연마했다면 
반드시 검종이 우세를  차지하게 되고 모두 이십  년을 연마했다면 
각기 우열에  있어 승부를 판가름 할  수 없게 되다.  그러나 이십 
년 이후가  되면 기종을 연마한  사람이 점차 강해지고 삼십  년을 
연마하게 되면  검종을 연마하는 사람은  다시 기종을 따라 올  수 
없다. 그러니까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야 진정으로 높고  낮음이 
판가름나는데 그 이십 년 간 쌍방이  얼?떨?격렬하게 싸웠는지 상
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악영산은 말했다.

  [나중에 검종일파는 졌다고 인정했겠죠?]

  악불군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하지 않더니 잠시 후에야  입을 열
었다.

  [그들은 죽어도 패배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옥녀봉 위에서 
크게 싸운 뒤 일패도지하게 되었으나  대다수의...... 검종 사람들
은 검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을 했고,  살아 남은 사람들은 종
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강호에 나타나지  않았
다.]

  영호충을 비롯한 제자들은 '아' 하고 놀랐다.
  악영산은 말했다.

  [모두가 사형제인데 검술시합의 승패를 그토록  따져 뭐해요? 왜 
그처럼 마음 좁게 생각했을까요?]

  악불군은 말했다.

  [무학의 근본을 따지는 일은 결코  사형제들끼리 무공 시합을 가
지는 일과는 다르다. 과거 오악검파에서  맹주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되었을 때 인재의  많음과 무공의 고강함에 있어서  본파가 으뜸이
었다. 그러나 본파에 내분이 생기자  옥녀봉에서 크게 검술 시합을 
가진 후 이십여  명이나 되는 고수들이 죽고 말았다.  검종이 대패
하기는 했으나  기종의 고수들도 적지  않게 죽었다. 그랫  맹주의 
자리를 숭산파에  빼앗기고 말았다. 그  화근을 따지고 보면  기검
(氣劍)의 다툼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악불군은 말했다.

  [본파가 오악검파의 맹주가  되지 못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화
산파가 위명을 떨치지  못한 일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본
파에서 사형제끼리 분쟁이 일어나 스스로  죽고 죽인 것이다. 동문 
사형제는 본래 골육처럼 다정했다. 그런데  네가 나를 죽이고 내가 
너를 죽이는 참혹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과거 
옥녀봉에서 전개되었던 처절한 싸움을 회상하며  여전히 두려운 마
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구나.]

  그는 시선을 들어 부인을 바라보았다.
  악 부인은  얼굴에도 공포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아마도  본파 
고수가 서로 도살하던  과거의 정경을 되돌이켜 보고  자기도 모르
게 두려움을 느낀 듯했다.
  악불군은 천천히 앞섶을 헤치더니 가슴을 내밀었다.
  악영산이 부르짖었다.

  [어마! 아버님......]

  악불군의 가슴에는 비스듬한 두자 길이의  상처가 나 있었다. 그 
상처는 왼쪽 어깨에서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나 있었는데상처자국
은 이미 치유된 지 오래 됫 것  같았지만 여전히 담홍색의 빛을 띄
우고 있었다. 과거에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목숨까지 잃을  뻔 했
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영호충과 악영산은 어려서부터 악불군  밑에서 자라난 몸이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야  그의 몸에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악불군은 옷자락을 여미고 말했다.

  [그날 옥녀봉의 큰 싸움에서 나는  본문의 사숙에게 일검을 맞고 
기절하고 말았다. 그는 이미 내가 죽은 줄  알고 더 아랑곳하지 않
았다. 만약 그가 다시 일검을 찔렀다면...... 허허허!]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되었다면  아버지의 오늘은 없을 것이고  악영산도 없었
겠죠?]

  악불군은 빙그레 웃었으나 그 웃음은 여전히 침통했다.

  [이것은 본문의 커다란 비밀이니 그  누구도 외부에 누설하지 말
아라. 다른 파의 인사들은 화산파의  고수들이 하루 아침에 죽거나 
상처를 입은 사시에 대하여 참된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전염병에  걸렸다고 했지. 본파의  수치스런 일을 다른  파에 
알릴 수는 없었다. 그 가운데의  원인이나 결과를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실로 이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충아가 만약 
지금처럼 나간다면 삼  년이 되지 않아 기공보다  검법을 중시하는 
마음을 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찌 위험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되면 비단 자신을 망칠 뿐 아니라  과거 무수한 선배들이 목숨처럼 
바꾼 본문의 정통무학을  망치게 되고 나아가 화산파는  너 때문에 
멸망하고 말 것이다.]

  영호충은 그 같은 말을 듣고 전신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
다.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자는 큰 잘못을 저질렀읍니다. 사부님과  사모님은 엄한 벌을 
내려 주십시오.]

  악불군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고 한 짓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과거 검종의 
사숙부님과 사백부님들  역시 하나같이  좋은 마음을 품고  고강한 
무학으로 본문을 빛내려고 했다. 하지만  일단 검종이 옳다고 생각
하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되고 나중에는  그 길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만약 너를 꾸짖지 않았다면 너의  자질과 성질
로 볼 때 검종과 같은 길로 들어설  것이고 빠른 성취를 이루어 악
한 길로 들어설 것이다.]

  영호충은 대답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악 부인은 말했다.

  [충아야, 조금 전 네가 나의 장검을  검집으로 받은 것은 어렵게 
생각해 낸 것이냐?]

  영호충은 부끄러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제자는 사모님의 날카로운 일격을 막으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
런데 뜻밖에도...... 뜻밖에도......]

  악 부인은 말했다.

  [바로 그것이다. 기종과  검종의 높고 낮음을 이제  명백하게 알
았을 것이다. 너의 그 일초는  교묘했지만 너의 사부의 상승기공에 
부딪치자 기묘한초식이었지만 아무런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과거 옥녀봉  위의 혈투에서  검종의 고수들의 검기는  무지개처럼 
허공을 뒤집고  검초는 순식간에 천번만번 변화했다.  그러나 너의 
사조부께서 연성하신  자하공으로 그들의 변화무쌍한  검법을 이기
고 정으로서 동을 제압했단다. 사조부님은  검종의 십여 명이나 되
는 고수들을 일격에 격살하시고 본문의  정통무학이 천년이 흘러도 
흔들리지 않는  기틀을 세우셨다. 오늘 너희들은  사부님의 가르침
에 대해서  모두들 깊이 생각하고  몸으로 행하도록 해라.  본문의 
무공은 기를 체(體)로 하고 검을 용(用)으로  하며 기는 주가 되고 
검은 종이 되며 기가 강이면 검은 목이  된다. 기는 제대로 연마하
지 않으면 검술이 아무리 강하다해도 결국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
다.]

  영호충과 시대자, 육후아, 악영산은 일제히  허리를 구부리고 가
르침을 받았다.
  악불군은 말했다.

  [충아, 나는 오늘  너에게 자하공의 요결을 전수하고  너를 데리
고 산에서 내려가 전백광이라는 그 악적을  죽이려고 했으나 이 일
은 연기할 수밖에  없다. 이 두 달 동안 너는  내가 전수한 기공을
열심히 연마하도록 하여라. 이후에는  방문좌도의 괴상야릇한 검법
을 모조리 잊도록  해라. 내가 나중에 시험하여 네가  정말 진보했
는지 두고 보겠다.]

  거기까지 말한 그의 표정이 갑자기 엄숙하게 변했다.

  [만약 네가 깨닫지  못하고 계속 사악한 검종의 길로  나가게 되
어 무거우면 너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고  가벼우면 너의 무공을 없
애고 본문에서  쫓아낼 것이다. 그때  네가 아무리 빌고  애걸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  내가 먼저 네게 분명히 알려주지  않았다고 탓
하지 말아라.]

  영호충은 이마에 식음땀을 흘리며 말했다.

  [네 제자는 결코 그 가르침을 잊지 않겠읍니다.]

  악불군은 딸에게 몸을 돌리고 말했다.

  [산아, 너와 육후아  두 사람은 성질이 매우 급하다.  내가 너의 
대사형에게 한 말을 너희 두 사람도 마땅히 기억해 두어라.]

  육후아는 말했다.

  [녜.]

  악영산은 말했다.
  [저와 여섯째  사제는 성질이 급하지만 대사형처럼  총명하지 못
하니 스스로  검초를 창안하지 못할거예요. 그러니  아버님은 안심
하세요.]

  악불군은 코웃음쳤다.

  [스스로 검초를 창안하지 못한다고? 너와  충아는 충영검법을 창
안하지 않았느냐?]

  영호충과 악영산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것은 제자가 터무니없는 장난을 한번 해보았을 뿐입니다.]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오래 전의  일이예요. 그때 저는 어렸고  아무것도 모르
는 철부지였어요. 장난으로 한 것이예요.  그런데 아버님은 어떻게 
아셨죠?]

  악불군은 말했다.

  [문하제자가 스스로  검법을 창안하고 문파를 세우는  데도 장문
인이 모르고 있다면 그처럼 멍청한 사람이 있겠느냐?]

  악영산은 아버지의 소맷자락을 잡으며 웃었다.

  [아버님은 여전히 저를 놀리시는군요!]

  영호충은 사부의 어조와 표정에서 추호도 웃는  빛을 볼 수 없자 
마음속으로 흠칫 놀랐다.
  악불군은 몸을 일으키더니 말했다.

  [본문의 무공이  심후한 경지까지 도달한다면 꽃이나  잎을 날려
서도 사람을 해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화산파가  검술에 뛰어나
다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너무 작게 본 것이다.]

  그는 왼손의 옷자락을 휘둘렀다. 그  세찬 소맷자락의 힘이 이르
자, 육후아의 허리에 찬 장검이 검집에서  불쑥 튀어 나왔다. 악불
군은 이어 오른쪽  소매도 펼쳐 검신을 후려쳤다. 그러자  '뚝' 하
는 소리와 함께  장검은 두 토막이 나고 말았다.  영호충은 가슴이 
뜨끔해짐을 느꼈다.  악 부인의 남편을 바라보았던  그 눈초리에는 
흠모하는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악불군은 말했다.

  [가자.]
  그리고 부인과  먼저 벼랑 아래로 내려갔다.  악영산과 시대자가 
그 뒤를 따랐다.
  영호충은 땅바닥에 두  토막이 난 장검을 바라보며  놀람과 기쁨
을 함께 느꼈다.

  (원래 본문의  무학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구나. 어떤  일초라도 
사부의 손에서 펼쳐진다면 아무도 깨뜨릴 수 없겠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뒷동굴 석벽에는 여러가지 도형이  새겨졌고 오악검파의 검초를 
모조리 깨뜨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오악검파는 지금까
지 크게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무림에 우뚝 서 있다.  원래 각 검
파는 상승기공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검초에 웅후한  내력이 실려
지기 때문에 쉽게  깨뜨려지지 않는 것이구나! 이 도리는  본래 평
범한 것인데 나는 너무 깊이 생각한  나머지 외곬으로 빠져들게 되
어 그만 망각하게 되었구나. 기실  똑같은 유봉래의라는 일초를 임 
사제가 펼치는  것과 사부님이 펼치는  것은 위력이 크게  다르다. 
석벽의 곤봉을 쓰는 사람은 임 사제의  유봉래의를 깨뜨릴 수 있지
만 사부님의 유봉래의는 깨뜨릴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을  깨닫게 되자 수개월  동안 그를 번거롭게 하던  생각이 
씻은 듯  사라졌고, 오늘 사부님으로부터 자하공을  전수받지 못하
고 또 악영산은  자기에게 짝지워 주겠다는 언질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조금도  의기소침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산파의  무공에 대
하여 믿음을 되찾게 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이 반개월 동안 사부와 사모님이 딸을  자기에게 짝지워 주실 것이
라는 헛된 꿈을 꾼데 대해서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이튿날 저녁 무렵 육후아가 밥을 가지고 벼랑 위로 올라왔다.

  [대사형, 사부님과  사모님은 오늘  아침 일찍 섬서성  북쪽으로 
떠나셨읍니다.]

  영호충은 의아해서 물었다.

  [섬서성 북쪽이라고? 어째서 장안으로 가지 않으셨지?]

  육후아는 말했다.

  [전백광 그 녀석이 연안부(延安府)에서  몇가지 사건을 저질렀답
니다. 그러니 그 악적은 장안에 없는거죠.]

  영호충은 속으로  사부님과 사모님이 출마하게  된다면 전백광은 
반드시 주살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애석
함을 느꼈다.
  전백광은 음란하고 색을  좋아하며 세상에 해를 끼치니  죽어 마
땅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의 무공은  진정 고강한 편이고 자
기와 두번이나 싸울  때 보여준 호탕한 성격은  사내대장부의 본색
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그가 자꾸만  나쁜 짓을 하여 무림의 
공적이 된데 대하여 애석하게 생각했다.
  그후 이틀 동안 그는 기공을  부지런히 연마했다. 석벽의 도형에 
다시는 가 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마음속에 그것이 떠오를 때마다 
즉시 그 생각을 쫓아냈으며 그 생각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행히 사부님께서  호통을 쳐 저지하셨기 때문에  나는 본문의 
죄인이 되는 불상사를  면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위험하기 짝
이 없는 일이었다.)

  이날 저녁 밥을 먹은 후 한 시간  가량 타좌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벼랑  위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 소리가  매우 
미약한 것이 무공이 매우 고강한 인물인 모양이었다.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 사람은 본문의 사람이 아니다. 무엇  때문에 벼랑 위로 올라
오는 것일까? 혹시 복면의 청포인이 아닐까?)

  그는 재빨리 뒷동굴로  달려가 화산파의 장검을 들어  허리에 차
고 다시 앞동굴로 돌아왔다.
  삽시간에 그 사람은 벼랑 위로 올라와서 큰 소리로 말했다.

  [영호형, 옛 사람이 찾아왔소!]

  그 소리는 매우 귀에 익었다.  놀랍게도 만리독행 전백광의 음성
이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사부님과 사모님께서도 너를 주살하려고  산을 내려가셨는데 너
무 대담하게도 화산으로 올라왔구나. 무엇 때문에 올라왔을까?)

  이 같은 생각을 하고 그는 동굴 입구로 나가며 웃음을 지었다.

  [전형 멀리까지 찾아주시니 정말 뜻밖이외다.]

  그런데 전백광은  어깨에 외짝지게를 지고 있었다.  영호충의 말
을 듣자 지게를 내려놓고 두 개의  대바구니를 안에서 하나의 커다
란 항아리를 꺼내고 웃으며 말했다.

  [영호형이 화산 위에 감금되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술을 마시지 
못해 입에서 노린내가  날 것이라고 생각해서 소제는  장안 적선주
루(謫仙酒樓) 지하실에서 백 삼십 년 묵은  두 항아리의 술을 구해 
영호형과 통쾌하게 마셔 보려고 가져왔소이다.]

  영호충은 몇 걸음  다가갔다. 달빛이 비치는 아래 커다란  두 항
아리에는 과연 적선주루라는  화금빛 글자가 씌인 붉은  바탕의 종
이가 눈에 띄었다. 그 종이의 색이 매우  바랜 것으로 보아 최근의 
물건은 아니었다. 그는 기쁨을 느끼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백근이나 되는  술을 짊어지고 화산 위를 오르다니  그 의리
야말로 굉장한 것이구료. 자자! 우리 술을 마십시다.]

  그리고 그는  동굴 안에서 두  새의 대접을 꺼내왔다.  전백광은 
항아리를 봉했떤 마개를 뽑아 놓고  있었다. 술향기가 곧장 그들의 
코에 스미는데 여간  향기롭지 않았다. 술을 입에 대기도  전에 영
호충은 이미 취해오는 기분이었다.
  전백광은 술항아리를 꺼꾸로 들어서 대접에 따르더니 말했다.

  [그대가 맛보시오. 맛이 어떨지 모르겠구료.]

  영호충은 대접의 술을 마신 후 큰 소리로 칭찬의 말을 던졌다.

  [정말 좋은 술이오!]

  그리고 한 대접의 술을 다 비우고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웠다.

  [천하의 명주로써 세상에서 보기 드문 술이군요!]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천하에 이름 있는 술이  북쪽의 분주(汾酒)와 남쪽의 소주
(紹酒)라고 하는  말을 들었소. 가장  좋은 분주는 산서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안성에 있으며 장안성에서  으뜸가는 술로는 이태백
이 때때로 가서  흠뻑 취하게 마셨다는 적선주가  제일이라는 소릴 
들었소. 당금  세상에서는 이 두 항아리의  술 외에 다시  이 같은 
맛좋은 술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오.]

  영호충은 의아하여 물었다.

  [설마 적선주루의 지하실에 이 두 항아리밖에 없었단 말이오?]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두 항아리를 꺼내고도 그곳에는  이백여 개의 항아리가 있
었소. 나는 장안성의 벼슬아치나 귀인은  말할 것도 없고 범인이라
도 허리에 돈만 있다면 적선루로 올라와  이같이 맛좋은 술을 마실 
수 있겠지만 그들은  화산파 영호대협처럼 술을 즐기지  못하는 자
들이라고 생각했다오. 명주를 그 따위  인간들이 먹어서야 쓰겠소? 
그래서 나는 우직끈  뚝딱 와르르 하고 지하실의  술항아리를 모조
리 깨뜨려 술향기가  사방에 넘치고 술이 허리까지  차오도록 만들
었다오.]

  영호충은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아니, 그렇다면 전형은 맛좋은 술을  이백여 항아리나 박살냈단 
말이오?]

  전백광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천하에 이 두 항아리밖에 없어야만  이 예물이 더욱 귀
중하게 보이지 않겠소?]

  영호충은 말했다.

  [정말 고맙소.]

  그리고는 다시 한 대접의 술을 마시고 말했다.

  [기실 전형이  두 항아리의 술을 장안성에서  화산까지 긺어지고 
온 것은 얼마나 귀찮고 고생스런  것이었겠소? 천하의 명주는 그만
두고 두 항아리의 맑은 물을 가지고  왔다 하더라도 영호충은 그대
의 정에 감격했을 것이외다.]

  전백광은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역시 영호형은 사내대장부로군요!]

  영호충은 물었다.

  [전형은 왜 소제를 칭찬하는 것이오?]

  전백광은 말했다.

  [이 전가는 악이라면 모조리 저지르는  음적이외다. 그리고 한때 
그대에게 칼질을  해 중상까지 입혔소.  거기다 화산 밑에서  많은 
사건을 저질렀소.  화산의 아래 위를  막론하고 모두 나를  죽여야 
시원할 것이오. 그러나  오늘 내가 술을 가져왔을 때  영호형은 태
연히 마셨으며  술에 독을  타지 않았는지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소. 그러니 오로지 이처럼 흉금이  큰 사내대장부만이 이 천하
명주를 마실 자격이 있다고 할 것이외다.]

  영호충은 말했다.

  [지나친 칭찬이시오. 소제는 전형과 두번이나  싸우는 동안 전형
의 품행이 비록 단정하진 못했지만 본래  사람을 해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소. 더군다나 그대의  무공은 
나보다 훨씬 고강하여 나의 목숨을 빼앗고자  한다면 칼을 뽑아 내
려치기만 하면 될터인데 뭐가 어렵겠소?]

전백광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영호형의 말씀이 옳소. 그러나  나는 두 항아리의 술을 
곧장 장안에서  화산으로 지고 온  것이 아니라오. 나는  백근이나 
되는 술을 메고 섬서성 북쪽으로 가서  두 가지의 사건을 저질렀고 
다시 섬서성 동쪽으로  가서 다시 두 가지의 사건을  저질렀소. 그
런 연후에 화산으로 올라온 것이외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잠시 생각한 후 그는 짐작되는 바가 있어 입을 열었다.

  [원래 전형이 끊임없이 사건을 저지른  것은 일부러 우리 사부님
과 사모님을 유인해  낸 후 소제를 만나려고 한  것이구료? 그러니
까 일종의 조호이산지계(調虎離山之計)를 쓴  것이구료? 그런데 저
형이 수고스러움과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그런 것은  무슨 연
유요?]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영호형께서 한번 알아 맞춰 보시구료.]

  영호충은 말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구료.]

  그리고 한 대접의 술을 따르며 말했다.

  [전형, 그대는 화산에  온 손님이오. 황량항 산 속에  드릴 만한 
물건이 없으니 꽃을  빌어 부처님에게 바친다고 그대의  술을 빌어 
경의를 표하겠소. 천하에서  제일가는 맛 좋은 술을 한  대접 마시
구료.]

  전백광은 말했다.

  [정말 고맙소.]

  그리고 한 대접의 술을 비웠다. 영호충도  함께 마셨다. 두 사람
은 술대접을 비운  후 껄껄 웃으며 동시에 대접을  내려놓았다. 영
호충은 별안간 오른발을  내밀어 퍽퍽하는 소리와 함께  두 항아리
의 술을 차서  깊은 골짜기 아래로 떨어뜨렸다. 골짜기  밑에서 둔
탁한 소리가 두번 들렸다.
  전백광은 놀라 물었다.

  [영호형이 술항아리를 차버린 것은 무엇 때문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그대와 나는 길이  다르니 친해질 수 없는 것이오.  전백광, 그
대는 많은 죄를  저질렀고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여 무림에서는 
모두 이를 갈고 있소. 영호충은  그대가 소탈하여 결코 비영띵하거
나 왜소한 잡배가  아니라는 점을 높이 사서 그대와 함께  세 대접
의 술을  마셨던 것이오. 얼굴을  맞댄 정은 이로써 다한  셈이오. 
이제 두 항아리의  맛 좋은 술은 고사하고 이 천하에서  가장 값진 
보물을 모조리  나의 앞에 쌓아  놓는다 해도 이 영호충은  그대의 
친구가 될 수 없는 일이오.]

  그리고 '휙' 하니 장검을 뽑아들었다.

  [전백광, 불초는 오늘  그대의 쾌도로 펼치는 수법을  가르침 받
겠소.]

  전백광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 칼을 뽑지 않고 미소지었다.

  [영호형, 화산파의  검법은 지극히 고강하오. 그러나  그대는 나
이가 아직 젊고  공력이 모자라오. 지금 칼을 쓰거나  검을 휘두른
다 해도 역시 이 전모의 적수는 되지 못할 것이오.]

  영호충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소.  영호충은 십년 안에는 그대를 죽일 수  없을 것
이오.]

  그러면서 검을 검집에 꽂았다.
  전백광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상황을 잘 판단하는 자가 호걸이라고 했소.]

  영호충은 말했다.

  [영호충은 강호의  무명소졸에 불과하오. 전형이  고생을 마다하
지 않고 화산까지  온 것은 나의 목을 가져가려는  게 아니었군요. 
그대와 나는  적이지 친구는 아니오.  전형이 어떤 녕령을  내리건 
불초는 일절 받아들일 수 없소.]

  그는 몸을 흔들하더니 벼랑 뒤로  돌아갔다. 그는 상대방이 만리
독행이라고 불리며 발걸음이 기이하도록 빠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전백광의  도법이 뛰어난 것도 사실이었다.  뮤에 뛰
어난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전백광이 십여  년이 넘도록 악한 짓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도 그를 처치하지  못했다. 그를 포위하여 잡으
려고 했지만 시종  그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경신법이 뛰어
나기 때문이었다.  영호충은 한발을 내딛자  즉시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그가 빨리  돌아섰으나 전백광은 그보다 훨씬  빨랐다. 영호충이 
겨우 수장을 달려갔을 때 전백광이  어느새 앞을 가로막았다. 영호
충은 즉시 몸을  돌리고 벼랑 아래 쪽으로 뛰어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전백광은 다시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양손을  벌리고 껄껄 
웃었다. 영호충은 세 걸음 물러서며 부르짖었다.

  [도망치지 못한다면 싸울  수밖에 없는 법, 나는  협조자를 부르
겠으니 전형은 너무 탓하지 마시오.]

 전백광은 말했다.

  [스승이신 악  선생이 만약 이곳에  달려온다면 그땐 이  전모가 
발밑에 기름칠을 하고  도망을 쳐야 할 것이오. 그러나  악 선생과 
악 부인은  섬서성 동쪽 오백리  밖에 계시니 이리로 달려와  구할 
수 없을 것이외다. 영호형의 사제들과  사매들은 수는 많지만 벼랑 
위로 올라온다고  해도 여전히 전모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오. 
남자들은 오히려 헛되이 목숨을 잃게  되고 여자들은...... 허허허
허]

  높은 웃음소리는 불칙했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생각했다.

  (사과애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곳이다. 소리를 아무리  크게 지
른다 해도 사제와  사매들은 듣지 못할 것이다. 이  사람은 유명한 
채화음적이다. 소사매가 그에게  발견된다면...... 아이쿠, 위험하
게 된다. 소사매의 화용월태를 이  채화음적이 보았다면 나는..... 
그녀에게 속죄할 길이 없게 된다.)

  그는 눈을 껌벅이며 생각했다.

  (지금으로선 그와 시간을 끌 수밖에 없다.  힘으로 맞설 수 없다
면 지혜로써 맞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부님과 사모님이 산으로 
오실 때까지 시간을 끌 수가 있다면 좋으련만......)

  생각을 마친 영호충은 말했다.

  [좋소. 이 영호충은  그대와 싸워 이길 수도 없고 또  도망칠 수
도 없으며 협조자도 불러올 수 없으니......]

  그리고 손을 벌려 보았다. 어찌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뜻
은 '그대가 어떻게 하려면 해라. 나로선  명으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 는 뜻이기도 했다.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영호형, 그대는  결코 나의 뜻을  오해하지 마시오. 그대는  이 
전모가 그대를 난처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  일은 그대
에게 크게 좋은  일이외다. 장래 그대는 반드시 나에게  깊이 사례
하게 될 것이오.]

  영호충은 손을 내저었다.

  [그대는 나쁜 일을 많이 하여 명성이  자자하오. 이후 나에게 어
떤 좋은 일이  있든간에 이 영호충은 결코 당신과 함께  더러운 짓
을 할 수가 없소.]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이 전모가  명성이 자자한 채화대도이고 영호형은  무림에서 제
일 가는  군자(君子) 악 선생의  제자이니 물론 나와 함께  더러운 
짓을 할 수  없을 것이오. 오늘 이렇게 된 바에야  애당초 왜 그런 
짓을 저질렀소?]

  영호충은 말했다.

  [무슨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오?]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형산성 회안루에서 영호형과 이 전모가  함께 탁자에 앉아 술을 
마시는 정을 나누었소.]

  영호충은 말했다.

  [영호충은 너제나 술을 목수보다 좋아하오. 함께   몇 잔의 술을 
마셨다고 그게 뭐가 대단하오.?]

  전백광은 말했다.

  [형산 군옥원에서 영호형은 이 전모와  함께 기녀원에서 잠을 자
게 된 풍류를 누리지 않았소?]

  영호충은 '퉤' 하고 침을 뱉으며 말했다.

  [그때 이 몸은  중상을 입고 남의 도움을 받아  잠시 군옥원에서 
상처를 치료를 했을 뿐인데 어찌 기녀와 잤다고 할 수 있겠소?]

  전백광은 말했다.

  [그러나 군옥원에서  영호형은 두 분의 꽃같이  아름다운 소녀와 
한 이불 속에서 즐거움을 나누지 않았소?]

  영호충은 속으로 흠칫 했으나 큰 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입으로 깨끗하지 못한 말로 함부로  하지 마시오! 이 영
호충은 깨끗한  몸이고 그 두분  소저로 말하면 더욱 고결한  몸이
오. 그대가 그와 같은 더러운 말을 한다면  나는 사정을 두지 않겠
소.]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나에게 사정을 두지  않는다고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대가 화
산파의 고결한 명성을  누리고자 했다면 당시 두  소저를 존중했어
야 마땅한데 어째서  청성파, 형산파, 항산파 등  뭇영웅들 앞에서 
두 소저와 한 이불을 덮었느냔 말이외다.]

  영호충은 대노했다. '휙' 하고 주먹을 맹렬히 내질렀다.
  전백광은 웃으며 피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 일은 그대가  아무리 억지를 쓴다 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
외다. 당일 그대가 만약 침대 위의 이불  속에서 그들 두 소저에게 
경박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그녀들이 그대에  대해 그리운 
정을 이기지 못해 고통을 받을 까닭이 없을거요.]

  영호충은 생각했다.

  (이 자는 파렴치한이다. 무슨 말을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
를 상대로 아리송한 말을 계속했다간 듣기  거북한 말을 얼마나 많
이 듣게 될런지  모른다. 그날 회안루에서 그는 나의  간계에 빠지
게 되었다. 그가 한평생 가장 큰 치욕으로  여기고 있으니 그 일을 
꺼내어 그의 입을 막아야겠다.)

  그는 생각을 마치고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전형이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화산에  무엇 때문에 왔는가 했
더니 그대의 사부 의림이라는 젊은 여승의  명을 받고 두 항아리의 
술을 나에게  보내 내가 그대같이  착한 제자를 만들어 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하려고 했던 것이었구료? 하하하!]

  전백광은 얼굴을 붉히다가 곧 침착을 되찾고 정색하며 말했다.

  [그 두 항아리의  술은 이 전모 스스로 보낸 것이오.  그러나 이 
전모가 화산까지 온 것은 확실히 의림 소사부와 관계가 있소.]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사부면 사부이지 어찌하여 대사부 소사부로  나눈단 말이오? 장
부일언 중천금인데  설마 그대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오? 의
림 사매는 항산파의  제자요. 그대가 그 같은 사부를  모신다는 것
은 운수가 대통한 것이 아니겠소? 하하하.]

  전백광은 대노하여  손을 칼자루에 대고 뽑으려고  했다. 그러나 
억지로 참으며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영호형, 그대는 손의 재주는 형편  없어도 입으로 씨부렁거리는 
재주는 대단하구료.]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칼과 검, 권각법에  있어선 전형의 적수가 되지  못하니 입으로 
상대할 수밖에 더 있겠소?]

  전백광은 말했다.

  [입으로 경박한  말을 논하는데는 이 전백광이 졌음을 시인하겠
소. 영호형은 나를 따라갑시다.]

  영호충은 말했다.

  [가지 않겠소. 나는 죽인다 해도 가지 않겠소.]

  전백광은 말했다.

  [그대는 내가 그대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 알기나 하오?]

  영호충은 말했다.

  [모르오. 하늘로  올라가도 좋고 땅으로 꺼져도  좋소. 전백광이 
가는 곳에 이 영호충은 무조건 가지 않을 것이외다.]

  전백광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나는 영호형과 함께 의림 소사부를 만나보려고 하는 것이오.]

  영호충은 깜짝 놀라 말했다.

  [의림 사매가그대의  손에 들어간 것이구료! 그대가  아랫 사람
으로서 윗사람을  거역하다니! 감히 자기의 사부에게  무례한 행동
을 하다니!]

  전백광은 노해 말했다.

  [이 전모에겐 이미 스승이 다로 계셨었오.  그러나 몇년 전에 세
상을 떠나셨소. 다시는 의림을 소사부를 들먹이지 마시오.]

  그리고 다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의림 소사부는  주야로 영호형을  생각하고 있소. 나는  그녀를 
친구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반푼어치도  실례된 행동을 하지 
않았소. 그 일에 대해선 안심하시오. 우리 갑시다.]

  영호충은 말했다.

  [가지 않겠고. 무조건 가지 않겠소.]

  전백광은 빙그레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대는 왜 웃소?  그대의 무공이 높다고 해서  강제적으로 나를 
끌고가려고 그러오?]

  전백광은 말했다.

  [전모는 영호형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대에게 
죄를 짓고 싶지  않소. 그러나 크게 기뻐 달려왔다가  실망해서 돌
아가고 싶진 않소.]

  영호충은 말했다.

  [전백광, 그대의  도법은 무척  고강하여 나를 죽이기는  쉽겠지
요. 그러나 영호충에게  욕을 보이지는 못할 것이오.  그껏해야 목
숨을 그대 손에  바치는 것뿐, 나를 잡아 산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전백광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그를  비스듬히 곁눈질하며 말했
다.

  [나는 남의  부탁을 받아 그대를  의림 소사부에게 모시고  가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소. 그런데 그대는 왜 목숨을  걸고 싸우려고 
하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으면 설사  사부님에나 사모님은 물론  오악 
맹주나 황제라고 해도  나를 어쩌지 못할거요. 가지  않겠소. 만번 
십만번 말해도 가지 않겠단 말이오.]

  전백광은 말했다.

  [그대가 그렇게 나온다면 이 전모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구료.]

  그리고 칼을 뽑아 들었다.
  영호충은 노해 말했다.

  [그대가 나를  사로잡겠다고 한 것부터가  이미 죄를 지은  것이
오. 이 화산의 사과애는 바로 영호충은 목숨을  버리는 곳이 될 것
이오.]

  그리고 길게 휘파람을 내불며 검을 뽑아 들었다.
  전백광은 한 걸음 물러서며 눈쌀을 찌푸리고 말했다.

  [영호형, 그대와 나는  아무 원한이 없는데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오? 우리 다시 한번 내기를 합시다.]

  영호충은 기뻤다.
  (내기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지. 만약 내가 이긴다면  말도 
되지 않는 소리로 억지를 부릴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그는 말했다.

  [무슨 내기를 하자는 것이오? 나는 이겨도  가지 않을 것이고 지
더라도 가지 않을 것이오.]

  전백광은 웃었다.

  [화산의 대제자가  전백광의 쾌도를 이토록 무서워하며  삼십 초
도 감히 받을 생각을 못하다니 한심하군!]

  영호충은 노해 부르짖었다.

  [누가 그대를 두려워한다고  했소? 기것해야 그대의 한  칼에 죽
기 밖에 더 하겠소?]

  전백광은 말했다.

  [영호형, 내가 그대를  얕보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그대는 나의 
이 쾌도를 삼십  초도 받아내지 못할 것이오. 그대가  나의 쾌도를 
삼십 초만  받아낸다면 이 전모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이  자리를 
떠나겠으며 다시는 잔소리를 하지 않겠소.  그란 이 전모가 요행히 
삼십초 안에 그대를 이긴다면 그대는 부득이  나를 따라 산을 내려
가 의림 소사부를 만나야 할 것이오.]

  영호충은 전백광의 도법을 생각해 보았다.

  (그와 두번 싸운  이후 그의 도법이 가진 여러가지  살수를 나는 
이미 수없이 생각해 보았다. 또  사부님과 사모님에게 가르침을 받
기도 했다. 내가 나 자신을 지키려고 한다면  설마 삼십 초를 막을 
수 없으랴?)

  영호충은 호쾌하게 말했다.

  [좋소, 내가 그대의 삼십 초를 받아 보지.]

  그리고 '휙' 하니  일검을 뽑아드는 즉시 공격해 갔다.  그는 대
뜸 화산파의  살수인 유봉래의를 펼쳤다. 검날이  부들부들 떨리는
가 하더니 대뜸 전백광의 상반신을 모조리  검과 아래 가두어 버렸
다.
  전백광은 칭찬의 말을 던졌다.

  [좋은 검법이외다!]

  그리고 칼을 휘둘러 밀어제치고 물러섰다.
  영호충은 호통을 내질렀다.

  [일초요!]

  그리고 잇달아  창송영객이라는 검초를 펼쳐내자  전백광이 다시 
창찬의 말을 했다.

  [훌륭한 검법이오!]

  그는 이 일초  가운데 뒷수가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막
으려고 하지 않고 비스듬히 걸음을 미끄러뜨려 멀리 물러났다.
  영호충은 호통쳤다.

  [이초요!]

  영호충은 사정을 두지 않고 다시 일초를 공격했다.
  그는 잇달아 오초를 공격했다. 전백광은  막거나 피하며 시종 반
격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육초째가 되자  장검을 아래서 위로 올려
쳤다. 전백광은 일성대갈하며  칼을 들어 곧장 내려쳤다.  다음 순
간 칼과 겆이  맞부딪치게 되었다. 영호충의 손에 들려  있던 장검
이 아래로 밀렸다. 전백광은 호통을 내질렀다.

  [제육초, 제칠초, 제팔초, 제구초, 제십초!]

  입으로 헤아리며 손으로 한번씩 칼질을  했다. 다섯 초를 헤아리
며 강철칼을 다섯  번이나 내려찍었다. 매 일초는 전혀  변화가 없
었다. 일초일초가 모두 정수리를 향해 내려친 것이었다.
  이 몇번의 칼질은일초가 더할수록  무거워졌다. 그리고 여섯 번
의 칼질을 내려치게  되었을 때 영호충은 상대방의  칼에서 벋치는 
기운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는  애써 검을 들고 맞받
아야 했다.  금속성이 커다랗게 울려  퍼지면 칼과 검이  맞부딪쳤
다. 손과 팔이  시큰해지며 장검이 땅으로 떨어졌다.  전백광은 다
시 칼을 내려치려고  했다. 영호충은 두 눈을 감으며  죽음을 기다
렸다.
  전백광은 껄껄 웃으며 물었다.

  [제 몇초요?]

  영호충은 눈을 뜨고 말했다.

  [그대의 도법이  나보다 고강하고 팔힘이나 내공에  있어서도 나
보다 뛰어나니 이 영호충은 그대의 적수가 못되오.]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갑시다.]

  영호충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가지 않겠소.]

  전백광은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영호형, 전모는 그대를 사내대장부로 알고  있소. 뱉은 말에 신
용을 지켜야 하오.  삼십초 안에 영호형은 승복했는데 한  말을 번
복하려는 것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본래 그대가 삼십초 안에  승세를 굳히리라고 생각지 않았
소. 나는 졌소. 그러나 나는 결코 지게  되었을 때 그대를 따라 간
다고 하지는 않았소. 내가 그런 말을 했소?]

  전백광이 속으로 생각해보니  그 말은 자기가 한  말이지 영호충
이 한 말은 아니었다. 그는 즉시 칼을 흔들며 냉소했다.

  [그대의 이름에 호(狐  : 여우)자가 있는데 정말  명실상부한 이
름이오. 그대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쩌자는 거요?]

  영호충은 말했다.

  [방금 그대에게 진  것은 그대보다 힘이 약해 진  것이므로 항복 
할 수 없소.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우리 다시 겨룹시다.]

  전백광은 말했다.

  [좋소. 그대로  하여금 지더라도 입으로나  마음속으로 승복하게 
해주지.]

  그는 바위에 앉더니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싱글벙글하며 영호충
을 바라보았다.
  영호충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악적이 반드시  나를 데리고 산 아래로 내려가려는  것은 어
떤 간계가 있는지  모른다. 의림 사매를 만나러 가자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는 의림 사매의 진짜 제자도  아니고 의림 
사매는 그를 보기만  하면 놀라서 혼비백산하는데 어찌  그와 사귀
겠는가? 다만  내가 그의 손아귀에 붙잡혔으니  어떻게 빠져나가야 
옳을까?)

  그는 자기에게  잇달아 여섯번  해대던 전백광의 수법을  생각해 
보았다. 그 도법은 평법했지만 그  기세가 웅후하여 어떻게 해소기
켜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별안간 그는 움직이는 데가 있었다.

  (그날 황량한 야밤에 산 속에서  막대선생은 힘을 다해 대숭양수 
비빈을 죽였다. 형산검법은  뛰어나기 이를데 없었다. 그  같은 검
법으로 전백광을 상대하면 지지 않을  것이다. 뒷동굴 석벽에는 형
산검법의 여러가지 검초가  새겨져 있으니 나는 가서  사십초만 보
고 와서 전백광과 맞서보자.)

  그러나 다시 생각했다.

  (형산검법은 정묘하기  이를데 없다.  삽시간에 어떻게 빼울  수 
있겠는가? 나의 부질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겠지.)

  전백광은 그의 얼굴이  수심에 차였다간 웃음을 띄우고  또 다시 
우울한 빛을 띄우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영호형, 나의 도법을 깨뜨릴 수 있는 간계를 생각해 냈소?]

  영호충은 그가 간계라는 말에 특별히 힘을  주는 것을 보고 울화
가 치밀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대의 도법을 깨뜨리는데 무슨 간계가  필요하다는 것이오? 당
신이 내 앞에서 어른거리니 나의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릴 수
가 없구료. 나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잘  생각해 보겠으니 방해 하
지 마시오.]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애써 생각해  보시오. 내 그대를 시끄럽게  하지는 않으
리다.]

  영호충은 그가  애써라는 말에 힘을  주자 나직이 욕을 한  마디 
해주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영호충은 초에  불을 켜고 뒷동굴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형산파의 검법이 그려져 있는 도형  앞으로 다가갔다. 그 일초일초
의 변화는 무쌍했다.  친히 보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이토록 기이
한 변화가 잇달아  일어나는 검초가 있으리라곤 믿지  않았을 것이
다. 그는 생각했다.

  (삽시간에 이 검법을  배운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나는 다
만 이중에서 가장 괴상망칙하고 기묘한 초식을  몇 개 보아 두었다
가 나가서 그를  상대로 마구잡이식으로 싸우면서 그에게  미처 손
쓸 기회를 주지 않는 공세를 펼쳐야겠다.)

  그는 도형을 보며 머릿속에 기억했다.  매 일초 형산파의 검법은 
적에 의해 깨뜨려지기는  했으나 전백광은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지 못할테니 그 점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기억하는 한편 손으로 연습을  해 보았다. 이십초를 배우는
데 이미 반  시진이 흘러갔다. 그러자 전백광의 음성이  동굴 밖에
서 들려왔다.

  [영호형, 다시 나오지 않는다면 내가 들어가겠소.]

  영호충은 그 말을 듣고 달려나가며 부르짖었다.

  [좋소! 나는 그대의 삼십초를 다시 받아보리다.]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영호형이 지게 된다면 그래 어떻게 하시겠소?]

  영호충은 말했다.

  [그래도 처음  지는 것은 아니지  않소? 한번 더 진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소?]

  그 말을  하게 되었을 때  그는 검을 들어 광풍호우처럼  잇달아 
칠초의 공격을 펴보였다.  이 칠초는 그가 뒷동굴 석벽에서  본 초
식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초식은 많은 변화를  내포하고 있었
다. 
  전백광은 화산파의 검법  가운데 이 같은 변화가  있으리라고 예
측하지 못했던터라, 그만 손발이 어지러워  연신 뒤로 물러서야 했
다. 그리고  제십초의 공격을 받고  물러서게 되었을 때는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며 칼을  들어 '휙' 하고 반격했다. 그의  칼의 기
세는 웅후하기 이를데 없었다. 영호충은  검법의 변화를 좀처럼 쉽
게 펼칠  수가 없었다. 십초를 펼치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의 칼과 
검은 다시 부딪치게 되었고, 영호충의  칼은 다시 튕겨져 날아가고 
말았다.
  영호충은 두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전형은 힘이 셀 뿐이지 도법으로 나를  이긴 것이 아니오. 나는 
아직도 승복할 수 없고. 내 다시 삼십초의  검법을 생각해 낸후 재
차 그대와 겨루어 보도록 하겠소.]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영사는 지금도 오백 리 밖에 있을  것이며, 그쪽에서 이 전모의 
행적을 찾느라고  한창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오. 열흘이고 
반달 안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니 영호형의 지연책은  아마도 쓸
모가 없을 것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나의  사부를 의지하여 당신을 처치한다면  어찌 영웅호걸
이라고 할 수 있겠소? 나는 큰 병을  앓고난 이후라 힘이 부족하여 
그대에게 밀리게 된 것이오. 초식으로만  겨룬다면 어찌 그대의 삼
십초를 받지 못하겠소?]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대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소.  도법으로 그대를 이기는 
것도 좋고 팔힘으로  이겨도 좋소. 지는 것은 지는  것이고 이기는 
것은 이기는 것으로소 입으로 다투어 무엇이 달라지겠소?]

  영호충은 말했다.

  [좋소. 나를 기다려 주시오. 사내대장부라면  겁을 집어 먹고 그
대로 산 아래로  뺑소니치지 않도록 하시오. 이 영호충은  결코 그
대를 뒤쫓아가 잡을 생각은 없소.]

  전백광은 껄껄 소리내어 웃더니 두 걸음  물러나 바위 위에 앉았
다.
  영호충은 다시 뒷동굴로 들어가 생각했다.

  (전백광은 태산파의 천송도장에게 상처를  입혔고 항산파의 의림 
사매를 상대로 싸워 보았으며, 지금은  내가 형산파의 검법으로 그
와 싸웠다. 숭산파의 무공은 그로서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숭산파의 도형을  찾아내 십초를 기억하고  생각했
다.

  (형산파의 검초를 조금  전에 나는 십초도 사용해  보지 못했다. 
내가 그를 공격할 때 숭산파의 검법을  섞어 사용하고 재차 본문의 
검초를 몇초 별안간  펼쳐낸다면 그의 머리를 어지럽게  할지도 모
르겠다.)

  그리하여 그는 전백광이 부르기도 전에 동굴을 나서서 싸웠다.
  그의 검초는 갑자기 숭산파의 검초를  펼쳤다가 또다시 형산파의 
검초를 펼치는가 하면 화산파의 몇수 검초를 펼치기도 했다.
  전백광은 잇달아 부르짖었다.

  [이상하군! 이상해!]

  그러나 이십초를 싸우게  되었을 때 전백광은 영호충의  목에 칼
을 갖다댈 수 있었고 영호충으로 하여금  검을 던지고 졌음을 시인
하게 만들 수 있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처음엔 나는 그대의 오초밖에 못받았으나  조금 생각해본 후 그
대의 십팔초를 받았소.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본 후엔  어느덧 그대
의 이십초를 받게 되었으니 전형은 두렵지 않으시오?]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무엇이 두렵단 말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몇번 더  사색하게 되면 그대의 삼십초
를 맞받게 될  것이고 몇번 더 생각하면 오히려 지는  싸움에서 이
기는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오. 그땐 내가 전형을  죽일지도 모르
니 야단이 아니겠소?]

  전백광은 말했다.

  [이 전모가 강호를  떠돌아 다니며 한 평생 만난  적수들 가운데 
영호형이 가장 총명하고 지혜가 많소.  그러나 무공에 있어서는 이 
전모에게 훨씬 뒤떨어지오. 설사 그대의  진보가 신속하다 해도 몇
시진 안으로 이 전모를 이기기는 불가능할 것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영호충이 강호를 떠돌아 다니며 만난  적수 가운데 전형이 가장 
대담하고 당돌하오.  영호충이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지는  것을 보
고도 여전히 도망치지  않으니 정말보기드문 사람이오.  전형, 이
만 실례하겠소. 나는 좀 더 안으로 들어가 생각해 봐야겠소.]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좋도록 하시구료.]

  영호충은 입으로는  전백광과 터무니없는 말을  하면서 아무렇지
도 않은 척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걱정이 되었다.

  (저 악적이 화산까지 온 것은 결코 좋은  마음을 품고 온게 아니
다. 그는 사부와 사모님이 주살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 무슨 정으로 나와 한가하게  초식을 겨루겠는가? 나를 제압
한 이후 나를  죽이지 않는다 해도 나의 혈도를짚어  꼼짝하지 못
하도록 할  수 있는데 어째서 한번  더 한번 더  풀어주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이유일까?)

  전백광이 화산으로 온  것은 실로 공포스럽기 이를데  없는 음모
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음모인지 전혀 단서
를 찾을 수 없었다.

  (그가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동안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의 
사제와 사매를 처치하려는  것이라면 어째서 빨리 나를  죽이지 않
을까? 그것이 훨씬 쉬운 일이 아닌가?)

  잠시 생각하다가 몸을 일으키며 다시 생각했다.

  (오늘의 일은  우리 화산파가 어려운  일에 부딪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부와  사모님도 산에 안 계시니 이  영호충이 본문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된다. 그러니 이  무거운 짐은 나  혼자 짊어져야 
한다. 전백광과 마음과, 지혜를 써서 끝까지  맞서야 될 것이며 기
회만 있다면 일검으로 그를 죽여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이 들자 그는  석벽의 도형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번에 그는 가장 악랄한 살수만을 기억해 두었다.
  그가 동굴을  나설 때는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영호충은 
이미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 먹었으나 얼굴에는 웃음을  띄우며 말
했다.

  [전형, 그대가 화산의  손님인데 소제가 제대로 주인  노릇을 못
해 죄송스럽게 생각하오.  이번 시합을 한 후 누가  이기든간에 소
제는 전형으로 하여금 이 화산의  토양(土釀)명주를 맛보여 드리고
자 하오.]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정말 감사하오.]

  영호충은 말했다.

  [그러나 훗날 산  아래로 내려가 만났을 때 나는  그대와 사생결
단을 내는 싸움을  할 것이오. 오늘처럼 예의를 다해  초식을 헤아
리며 내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오.]

  전백광은말했다.

  [영호형과 같은 친구를  죽이는 것은 매우 아까운  노릇이오. 그
대를 죽이지 않는다면  훗날 그대가 무공이 신속하게  정진되어 검
법이 나보다 강하게 될 때 그대는  이 채화음적을 용서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소. 오늘과 같이 서로 무공을 겨룬다는  것은 실로 얻기 어
려운 기회요. 전형,  소제는 공격을 할테니 아무쪼록  많은 가르침
을 베풀어 주시구료.]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감당할 수 없소. 영호형은 어서 손을 쓰시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소제는 전형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장검을 번개처럼 찔러 갔다.
  전백광의 몸 앞 석자 정도에 이르렀을  때 별안간 그는 비스듬히 
왼편으로 방향을 바꾸어 맹렬히 되돌려 찔렀다.
  전백광은 칼을 들어 막으려 했다.  영호충은 자기의 검날이 칼날
에 부딪치기 전에 갑자기 전백광의 사타구니를  걷어 올릴 듯 베어
갔다. 이 일초는  음흉하고 악랄했다. 전백광은 깜짝  놀라서 몸을 
날려 급히 피했다.
  영호충은 그  기세를 빌어  휙휙휙하고 연달아 삼검을  찔렀으며 
일검마다 평생의 힘을  쏟아내 전백광의 급소를 다시  노리고 공격
해 갔다.  전백광은 당황하여 열세에  몰리게 되었고 칼을  휘둘러 
동으로 막고 서로  치곤했다. '쫙' 하는 소리와 함께  영호충이 그
의 오른쪽  다리를 찌르자 바지에  구멍이 나게 되었는데,  검세는 
기이하도록 빨랐으며 그의 다리에 한 줄기의 혈흔이 내비쳤다.
 전백광은 오른소능띵 들어 한 대의  주먹을 내질렀다. '퍽' 하며 
영호충이 곤두박질치게 만든 다음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는 초식마다 나의 목숨을 놀리고  있는데 이것이 어찌 무공
을 겨루는 수법이라 할 수 있겠소?]

  영호충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웃었다.

  [어찌되었든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전형을 죽일 수가 없
었던 것이 아니오. 그대의 왼손 주먹의 힘은 정말 대단하구료.]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게 되었소.]

  영호충은 싱글벙글 웃으며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무래도 나의 조골이 부러진 것 같소이다.]

  그리고 전백광과  가까워지게 되었을  때 별안간 검을  왼손으로 
옮기며 냅다 찔러댔다.
  이 일검은  불가사의했다. 바로 항산파의  살수(殺手)였다. 전백
광은 영호충의 검끝이  그의 아랫배에 몇 치도 되지 않는  곳에 이
른 것을 보고  촉망중에 몸을 날려 땅바닥에 뒹굴어  피했다. 영호
충은 위에서 아래로  잇달아 사검을 찌르게 되었고  전백광은 낭패
하게 되었다. 몇수의 공격을 더하게  된다면 일검에 전백광을 땅바
닥에 못박아 놓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전백광은 갑자기  왼발을 들
어 영호충의 손목을 찼다. 곧이어  원앙연환으로 오른발을 들어 영
호충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영호충은 장검을  놓치고 뒤로 벌렁 나
가 떨어졌다.
  전백광은 몸을 벌떡  일으키고 달려들며 그의 목에  칼을 갖다대
며 냉소했다.

  [매우 신속하고 악랄한  검법이군! 이 전모는 하마터면  너의 손
에 생명을 잃을 뻔했다. 이번에는 승복하겠지?]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물론 승복할 수 없소. 우리들은  검술을 겨룬다고 했소. 그런데 
그대는 잇달아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 대니  이 초식을 어떻게 계산
에 넣는단 말이오?]

  전백광은 칼을 거두고 냉소를 머금었다.
  영호충은 몸을 일으키고 말했다.

  [그대가 삼십초 안에  나를 패하게 만든 것은 그대의  무공이 고
강하기 때문인데 그게 어쨌단 말이오?  그대가 죽이려면 죽이지 왜 
나를 비웃는 것이오? 그대가 웃고 싶으면 웃지 왜 비웃는 거요?]

  전백광은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영호형의 꾸지람이 옳소. 이 전모가 잘못했소.]

  그리고 포권을 하며 다시 말했다.

  [이 전모는 진심으로 사과하는 바이오.  영호형은 용서해 주시구
료.]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승리를  거두고도 오히려 사과하
는 것을 보고 그 역시 포권을 하며 반례했다.

  [감당할 수 없소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예의를 깍듯이 차릴수록 반드시 큰 음모가  있다. 그가 나를 이
토록 반드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도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어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전형, 영호충은 마음속에  한 가지 모르는 일이  있는데 전형께
건 솔직이 말해 주실 수 있겠소?]

  전백광은 말했다.

  [전백광은 남에게  말 못할 일이  없소. 간음이나 약탈,  그리고 
살인, 방화 등의  일을 다른 사람들은 속이려고 억지를  쓰지만 이 
전백광은 했다면 한 것이오. 어찌 발뺌을 한단 말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다면 전형은 오히려 소탈하고 훌륭한 사내이구료.]

  전백광은 말했다.

  [훌륭한 사내라는 말은  감당할 수 없소. 하지만  어찌되었든 언
행이 일치되도록 행동하는 사람이외다.]

  영호충은 말했다.

  [허허. 강호에서 정말 전형과 같은  인물은 보기 여려울 것이오. 
전형에게 묻겠는데 그대가 계략을 짜 나의  사부를 멀리 유인해 내
고 화산으로 달려와 나와 함께 가자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자
는 것이며 어떤 음모가 있는 것이오?]

  전백광은 말했다.

  [이 전모는 일찌기  영호형에게 말했소. 그대를 모시고  의림 소
사부와 만나 그녀의 그리워 못잊어 하는  고통을 달래 주자는 것이
외다.]

  영호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나 이상하오. 이 영호충이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어
떻게 그 말을 믿는단 말이오?]

  전백광은 노해 말했다.

  [이 전모는 그대를 영웅호걸로 존경하고  있는데 그대는 나를 파
렴치한으로알고 있군!  내가 한 말을 그대는 왜 못  믿는 것이오? 
내 말이 사람  말이 아니라 개방구같이 들리오? 이  전모가 조금이
라도 거짓말을 한다면 개 돼지만도 못한 놈이오.]

  영호충은 그의 말이  매우 진지한 것을 모고 믿지 않을  수 없었
다. 그는 의아하여 물었다.

  [전형이 그 소사부를  사부로 모시게 된 것은 한  마디의 농담에 
지나지 않은 것이오.  그대가 그녀를 위해 천리길을 마다  하지 않
고 찾아와 나와 함께 산을 내려가자고 하니까 이상하구료.]

  전백광은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 말했다.

  [이 가운데는 말 못할 사정이 있다오.  그녀의 재간으로 어찌 나
의 사부가 될 수 있겠소?]

  영호충은 속으로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혹시 전백광이  의림 사매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그의 욕념이 순수한 사랑으로 승화된 것은 아닐까?)

  그는 슬쩍 물었다.

  [전형은 혹시 의림 소사매에 대해  한번 보자마자 마음이 기울어
져서 기꺼이 그의 지휘를 따르게 된 것이 아니오?]

  전백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대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마시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소?]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정이 있는지 전형이 말해 주시오.]

  전백광은 말했다.

  [이 일은 전백광이  창피하게 여기는 일인데 왜 그토록  애써 물
으시오? 어찌되었든 이 전백광이 그대를  데리고 이 산을 내려가지 
못한다면 일개월 동안 참담한 고통을 느끼다가 죽어갈 것이오.]

  영호충은 깜짝 놀랐으나 내색을 안 하고 물었다.

  [천하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소?]

  전백광은 앞자락을  들추고 가슴을 내보였다. 가슴  아래에 있는 
옆전만한 두 개의 붉은 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백광은 어떤 사람에게 이곳의 사혈을  짚히게 되었소. 그리고 
독을 복용당해 강제로 이곳으로 와 그대를  데리고 그 소사부를 만
나도록 하게 된 것이오. 내가 그대를 모셔가지  못한다면 이 두 붉
은 점은 한달 후에 썩어 고름이 나게  되고 그 상처는 점점커져 아
무리 손을 써서 치료할 수 없게 되오.  끝내는 온몸이 썩을 것이고 
3년 6개월 뒤에는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오.]

  그리고 그는 엄숙한 얼굴을 하고 다시 말했다.

  [영호형, 이  전모가 그대에게솔직이  말할 것은 그대의  동정을 
받고자함이 아니라  그대가 아무리  반대해도 나는 반드시  그대를 
모셔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것이오. 그대가  가지 않는다면 
이 전백광은 무슨 짓이든 해낼 수 있소.  나는 평소 어떤 악이라도 
저지르는 사람인데 생사의 고비에서 무슨 짓을 못하겠소?]

  영호충은 생각했다.

  (아마도 이 일은  거짓이 아닐 것 같다. 내가 그를  따라 내려가
지 않는다면  한달 후에 그의 몸에  독이 퍼져 이 악적이  죽게 될 
것이니 내가 친히 그를 죽일 필요도 없겠구나.)

  그리하여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도대체 어느  고수가 짓궂은 장난을 하면서까지  그대에게 어려
운 문제를 내놓게 되었소? 전형이 중독된  약은 또 어떤 독약이오? 
아무리 무서운 독약이라도 해소시키는 방법은 있기 마련이오.]

  전백광은 울화가 치미는 듯 말했다.

  [혈도를 찍고 독약을 쓴 사람은 들먹일  필요가 없소. 이 사혈을 
풀고 기이한 독을 풀 사람은 손을  쓴 사람외에 천하에는 살인명의
(殺人名醫) 평일지(平一指)  한 사람뿐이오. 그러나 그가  어찌 나
를 구원해 주겠소?]

  영호충은 미소지었다.

  [전형이 좋은  말로 부탁하거나 칼로 위협한다면  그가 풀어줄지
도 모르지 않소?]

  전백광은 말했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  두시오. 어찌되었든 내가 그대를  모셔 가
지 못한다면 이  전모가 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대  역시 평안무
사하지 못할 것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그야 물론이오.  그러나 전형은  내가 입으로나 마음으로  승복 
할 수 있도록 나를 대패시켜야 할 것이오.  그러면 이 영호충은 그 
같이 뛰어난 무공을  익히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고  그대를 따라 
산을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외다. 전형은  잠깐 기다려 주시오. 나
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생각해 보겠소.]

  그리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 생각에 잠겼다.

  (그날 나는 그와  몇찰례 손을 썼지만 매번 삼십초  가까이 싸웠
다. 그런데 어째서 오늘은 삼십초도 받아내지 못했을까?)

  그는 잠시 생각한 끝에 그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맞아. 그날 나는 의림 사매를 구하기  위해 그에게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고 그가 펼치는 것이 삼십초이건  사십초이건 상관하지 않
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입으로  끊임없이 일초 이초를  헤아리고 
있으며 마음속으로  삼십초만 받아내자고  생각하고 있다.  이같이 
정신이 헷갈리니 검법은 자연히 크게  약화될 것이 아닌가? 영호충
아, 영호충아, 넌 왜 이처럼 멍청하냐?)

  이 같은 도리를 깨닫자 그는 새로운 기운이  났다. 그는 다시 석
벽의 무공을 연구했다.
  이번에 그가 본 것은 태산파의  검법이었다. 태산파의 검초는 웅
후하고 무겁고 견실함을 장점으로 삼고  있었다. 일시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진수를  파악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규칙이  엄한 검법은 
결코 그가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잠시 바라본  그는 그 자리를 뜨
려고 했다.  그런데 도형 가운데  짧은 창으로 태산검법의  초식을 
깨뜨리는 수법이 매우 날렵하고 경쾌해  보였다. 그는 볼수록 빠져
들어 그만 그  초식을 이해하느라고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망각하
고 말았다. 그러다가 전백광이 기다림에  지쳐 그를 부르게 되었을 
때에야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다시 손을 써서 싸우게 되었다.
  이번에 영호충은  경미하게 다시는 수를 헤아리지  않았다. 그리
고 손을 쓰자마자  검광을 번뜩이며 전백광에게 급촉한  공격을 퍼
부었다. 전백광은  그긔 검초가 잇달아  펼쳐질 뿐 아니라  동굴에 
한번 들어가 생각하고  나올 때마다 새로운 초식이  마구 펼쳐지는
지라 조금도  소홀히 여기지 못하고  맞섰다. 두 사람은  하나같이 
속공으로 공격과  수비를 다했다. 순식간에 몇초를  싸웠는지도 모
르게 되었다. 별안간,  전백광이 한걸음 내딛으며 손을  번개와 같
이 뼉쳐 영호충의  손목을 잡고 그의 팔을 비틀었다.  그리고 검의 
끝으로 영호충의 목을  겨누었다. 이렇게 하면 조금 힘을  주어 밀
치더라도 장검이 영호충의 목을 관통하게 되는 것이다.
  전백광은 호통을 내질렀다.

  [그대가 졌소.]

 영호충은 손목이 기이하도록 아팠으나 입으로  큰 소리로 부르짖
었다.

  [그대가 진 것이오.]

  전백광은 말했다.

  [어째서 내가 졌소?]

  영호충은 말했다.

  [제삼십이초요.]

  전백광은 말했다.

  [삼십이초?]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소 삼십이초요.]

  전백광은 말했다.

  [입으로 헤아리지도 않았잖소?] 

  영호충은 말했다.

  [입으로 헤아리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헤아리고  있었소. 그
리고 명명백백하게 삼십이초였소.]

  기실 그는 마음속으로 수를 헤아린  적이 없엇다. 삼십이초 운운
한 것은 내키는 대로 내뱉은 말이었다. 
  전백광은 그의 손목을 놓고 말했다.

  [틀렸소. 그대의 일검은 이렇게 공격해  왔소. 그래서 난 이렇게 
반격을 했고 그대는 이렇게 맞받았소.  나는 또 이렇게 내려쳤는데 
이것이 제이초요.]

  그는 일초일식을 펼쳐보이며  조금 전 싸우게 된  초식을 처음부
터 끝까지 다시 한번 펼쳐 보였다. 손을  뼉쳐 영호충은 손목을 잡
을 때까지 소요된 초식은 이십팔초에  불과했다. 영호충은 그의 기
억력이 뛰어나  두 사람이  신속하게 주고받은 일초일식을 똑똑히 
기억하고 전혀  그 순서가 틀리지  않는 것을 보고 실로  무림에서 
보기드문 기재라고 생각하고 자기도 모르게  감탄하는 마음이 일어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전형의 기억력이 대단하구료. 이 소제가  잘못 헤아렸소. 내 다
시 생각해 보리다.]

  전백광은 말했다.

  [잠깐! 이 동굴에  어떤 이상한 점이 있는지  내가 들어가봐야겠
소. 동굴 안에  혹시 어떤 무학비급을 숨겨 놓은 것이  아니오? 어
째서 그대가 동굴 안으로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많은 기이한 초식
들을 펼치게 되는 것이오?]

  그러면서 그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생각했다.

  (만약 그가 석벽의 도형을 보게 되면 큰일난다.)

  그는 기쁜 표정을  띄었다가 급히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고 
두손을 벌리며 막았다.

  [이 동굴 안에  숨겨진 것은 폐파의 무학비급이오.  전형은 우리 
화산파의 제자가 아니니 안으로 들어가 살펴볼 수가 없소.]

  전백광은 그의 얼굴에  기쁜 빛이 떠올랐다가 근심의  빛이 떠오
르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그는 내가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어째서  대뜸 기
쁜 빛을 띄웠을까? 그리고 그 후에는  근심스런 척 가장했다. 그것
은 마음속의 진정을 감추려는 것이고 사실은  내가 동굴 안에 들어
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동굴 안에는 반드시  나에게 
불리한 물건이 있을 것이다. 십중팔구는  함정이나 그가 기른 독사
나 야수가 있을지도 모르니 나는 그의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 된
다.)

  생각을 마친 그는 말했다.

  [원래 동굴  안에는 귀파의  무학비급이 있었구료. 그렇다면  이 
전모가 봐서는 안 되겠는걸?]

  영호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매우 실망스런 빛을 띄웠다.
  이후 영호충은 몇번이나 동굴 안으로 들어가  또 많은 기이한 초
식을 익혔다. 비단 오악검파의 검초뿐만  아니라 오파의 검법을 깨
뜨리는 여러가지의 기이한 초식도 적지  않게 깨우쳤다. 그러나 창
졸간이라 응용하기가  힘들었다. 전백광은 그가 동굴  안으로 들어
가 잠시 생각해  본 후 나오면 기이한 초식이 마구  펼쳐지지만 정
묘할 뿐 별로  쓸모가 없으며 자기 자신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초식의  오묘한 점은 그가 한평생 보지  못하던 것
으로서 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케  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영호충과 될  수 있으면 오래도록 싸워 
불가사의한 검법을 좀더 구경했으며 하고 생각했다.
  어느덧 점심 때가 지나게 되었다.  전백광은 다시 영호충을 제압
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 그가  펼친 검초는  대부분이 숭산파의 검초같다.  혹시 
동굴 안에 고수들이  모여 있는게 아닐까? 그가 동굴  안으로 들어
갈 때 고수가  있어서 그에게 약간의 초식을 가르쳐 준  후 그에게 
나서서 나와 싸우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경솔히  동굴 안으
로 들어가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면 내  어찌 오악검파
의 뭇고수들과 싸워 이길 수 있겠는가?)

  그는 그같이 생각되자 불쑥 물었다.

  [그들은 왜 나서지 않소?]

  영호충은 말했다.

  [누가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오?]

  전백광은 말했다.

  [동굴 안에서  그대에게 검법을 가르치고 있는  그대의 선배고수
들 말이외다.]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졌으나 그 뜻을 알아  차리고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 선배님들은...... 전형과 손쓰기를 원하지 않소.]

  전백광은 대노해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흥. 그 사람들은  위선에 차 있소. 자부심만 대단하여  나와 같
은 음적  전백광과는 싸우기 싫다는  것이겠지? 그대가 그들  보고 
나오도록 하시오. 일대 일이라면 아무리  명성이 대단해도 이 전백
광의 적수가 될 수 없을 것이오.]

  영호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만약 전형께서  흥취가 있다면 직접  동굴 안으로 들어가  열한 
분의 선배님들에게  가르침을 받도록 하시오. 그들은  전형의 도법
을 높이 평가하고 계시오.]

  전백광은 코웃음쳤다.

  [흥! 뭐가  선배고수들이란 말이오! 모두 헛되이  명성을 얻은자
들이겠지. 두번세번 그대에게 여러가지  초식을 전수해 주었는데도 
그대가 시종 이 전모의 삼십초를 막을 수 없지 않았소?]

  그는 자기의  경신법을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
령 열한 명의 고수가 우루루 몰려나오게  되어도 도망을 치면 된다
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오악검파의  선배 고수들이라면  자기들의 
신분과 체면 때문에  결코 손을 합쳐 자기를  상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영호충은 정색했다.

  [그것은 영호충의  자질이 우둔하고 내력이 약하기  때문에 선배
님들의 무공의 정묘한  뜻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라오.  전형은 입
을 조심하시오. 그분들의 화를 불러  일으키면 어느 한분의 선배가 
나선다 해도 전형은  한달 후에 독이 퍼질 것도 없이  순식간에 이 
사과애에서 몸과 목이 따로 떨어지게 될 것이오.]

  전백광은 말했다.

  [동굴 안에는  도대체 어떤 선배가  계시는지 그대가 말해  보시
오.]

  영호충은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몇분 선배님들은 이미 은거한 지 오래  되어 밖의 간섭을 하
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소. 그들이 이곳에  모인 것은 전형과 아
무런 상관이 없소. 더군다나 몇분  선배님들의 영호를 외부의 사람
에게 누설할 수  없는 것은 고사하고 설사 말을 한다  해도 전형은 
알지 못할 것이니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외다.]

  전백광은 그의 얼굴이  이상한 것을 보고 애써  감춘다고 생각하
고 말했다.

  [숭산, 태산, 항산,  형산 사파 가운데어쩌면 무공이  고강한 선
배고인이 있을지 모르나  귀파에는 어떤 고수도 남아  있지 안띵을 
것이오. 그것은 무림에서 다 알고  았는 사실인데 영호형이 멋대로 
씨부렁거린다고 해서 누가 믿겠소?]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소. 화산파에는 확실히 지금까지 선배고수가  살아 있지 않
소. 과거 폐파는  전염병의 침입을 받아 배분 높은  고수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화산파에는  크게 원기를 잃게 되었소.  그렇지 않았다
면 전형이  혼자 산 위로  올라와 나를 공격하지는못했을  것이외
다. 전형의 말이  옳소. 동굴 안에는 확실히  화산파의 선배고수가 
안 계시오.]

  전배광은 영호충이  자기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영
호충이 동쪽이라고  한다면 사실은  서쪽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화산파의 선배고수가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반
드시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잠시 생각해 본 후  갑자기 떠오
르는 생각이 있어서 당황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아! 이제 생각이 났소! 알고 보니 풍청양 풍 노선배님이군!]

  영호충은 석벽에  새겨져 있는 풍청양이라는 세 커다란  글자를 
기억해내고 자기도 모르게 '어' 하고  놀란 소리를 질렀다. 이번엔 
결코 가장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풍 선배님이 아직까지 돌아가
시지 않았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재빨리 손을 흔들
어 보이고 말했다.

  [전형은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풍...... 풍......]

  그는 풍청양이란 이름자 가운데 청자가 있는  것을 보면 사부 불
(不)자 배분을 지닌 분들보다 배분이 한  항렬 높은 인물일 것으로 
생각했다.

  [풍 사숙조께서는 은거한 지 오래  되었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
고 있으며, 어르신이 아직도 이  세상에 살아계신지도 모르고 있는
데 어찌 그분이  화산으로 오시겠소? 전형이 믿을 수  없다면 동굴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오. 그러면  모든 진
상이 드러날게 아니겠소?]

  전백광은 그가 애써  동굴 안으로 들어가라고 할수록  그 속임수
에 넘어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이토록 당황해  하는 것을 보면 나의 짐작이  틀리지 않는
군. 소문에 의하면 화산파의 선배님들은  과거 하룻밤 사이에 모조
리 급살을 당했지만  오로지 풍청양 한 사람은 산 위에  없었기 때
문에 그  같은 액운에서 벗어나  아직도 세상에 살고 있다지  않는
가?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 있다 해도 칠팔십 세는  되었을 것이니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다  해도 끝내 정력이 이미  쇠퇴해졌을 것이
다. 늙어빠진 영감을 내가 두려워할까 보냐?)

  전백광은 말했다.

  [영호형. 우리는 이미 하루낮 하룻밤을  싸웠소. 다시 싸운다 해
도 그대는 끝내 나를 이기지 못할 것이오.  그대의 풍 사숙조가 끊
임없이 가르친다고 해도  소용이 없는 일, 그대는 순순히  나를 따
라 산을 내려가도록 합시다.]

  영호충이 그 말에  대답을 하려고 할 때 등 뒤에서  누군가 냉랭
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만약 몇초만 가르친다면 네 녀석은 패배하고 말 것이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동굴 입구에는 하얀 수염을 
기른 청포노인이 한  사람 서 있었다. 매우 우울한  표정이었고 얼
굴빛은 금(金)처럼 노랬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이 노선생은  혹시 그날밤  나타났던 복면의 청포인이  아닐까? 
나의 등 뒤에 있는데 어째서 나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전백광은 떨리는 음성으로입을 열었다.

  [당...... 당신이 바로 풍 노선배님이십니까?]

  그 노인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이 세상에 아직도 이 풍소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영호충은 생각했다.

  (본파에 아직 한 분의 선배님이  계시다는 말을 나는 사부님이나 
사모님으로부터 들은 적이 없다. 일이  이처럼 공교롭게 되었다니! 
전백광이 풍청양을 들먹이자 정말 풍청양이 나서니 말이다.)

  이대 그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영호충이라는 녀석은  정말 그릇이 작아! 하지만  가르쳐 주지. 
너는 먼저 백홍관일이라는 일초를 펼치고  곧이어 유봉래의라는 일
초를 펼쳐라.  그리고 다시  금안횡공(金雁橫空)을 펼치고  잇달아 
재검식(裁劍式)을 쓴다면......]

  그는 담숨에 끊임없이 삼십초의 초식 이름을 말해 주었다.
  삼십초의 초식은 영호충이 모두 배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검을 
뻗쳐내는 것과 발딛는 방위를 아무리해도 연결시킬 수가 없었다.
  노인은 다시 말했다.

  [너는 무엇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지? 그 삼십초를  단숨에 펼쳐 
낸다는 것은  지금 너의 조예로선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한번 먼저 펼쳐보도록 해라.]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고 표정도  쓸쓸했다. 마치 무한히 서글
픈 일을 당한 듯했다. 그러나 그  어조에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그 말을 따라 한번 시험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는 즉시 백홍관일이라는 일초를 썼다.  그리고 검의 끝을 허공
으로 겨누게  되었다. 그런데 유봉래의를  잇달아 펼칠 수가  없어 
머뭇거렸다.
  노인은 말했다.

  [아! 정말 바보로군!  바보야! 네가 악불군의 제자인  것도 무리
가 아니다. 형식에 얽매어 고지식하게  변화를 모르는구나! 검술의 
도(道)라는 것은 행운유수와  같아야 하며 임의로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네가 백홍관일을 다 펼칠고 났을 때  검의 끝이 위로 향하게 
된다면 너는 그  기세대로는 검을 끌어내릴 수 없다는  것이냐? 검
초엔 그 같은 자세가 없지만 너는  스스로 독특한 방법을 생각해내 
그 즉시 배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한마디에  영호충은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는 장검을  바삭 
당기며 자연스럽게  유봉래의라는 일초를  펼쳤다. 그리고  검초가 
변하기 전에  이미 금안횡공이라는 일초를 펼쳐내고  있었다. 장검
은 그의 머리  위로 스치듯 지나가며 한쪽으로  뻗쳤다가 한쪽으로 
뛰어오르듯 날렵하게 재검식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방향을 바꿀
때 전혀 빈틈이  없어 마음속으로 연간 통쾌하고  시원하지가 않았
다. 그  노인의 말대로  일초일식을 펼치자  종고제명(鐘鼓齊鳴)의 
일초를 펼치고  검을 거두게 되었을  때 바로 삼십초를 꼭  채우는 
것이 아닌가? 그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노인의 얼굴엔 전혀 칭찬하는 빛이 없었다.

  [맞기는 맞다만 억지가 너무 심하고 너무 둔하다.  고수와 싸우
면 안  되겠지만 눈 앞의  이 녀석을 상대하는데 있어서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나가 시험해 보아라.]

  영호충은 그가 진정  자기의 사숙조인지 아닌지 믿을  수가 없었
다. 그러나 이  사람이 무학의 고수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는 즉시 
장검을 아래로 내려뜨리고  허리를 굽혀 예를 한 후 몸을  돌려 전
백광에게 말했다.

  [전형 공격하시오.]

  전백광은 말했다.

  [나는 이미 그대가 삼십초를 쓰는 것을  보았소. 다시 그대와 손
을 쓴다고 해서 무슨 재미를 느낄수 있겠소?]

  영호충은 말했다.

  [전형이 손을 쓰지 않겠다면 그것도  좋소. 그럼 떠나주시오. 불
초는 이 노선배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아야 하겠으니  전형을 상대
할 여가가 없소이다.]

  전백광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대가 나를 따라 산을  내려가지 않는다면 
이 전모의 한 목숨이 그대 때문에 끊어지지 않겠소?]

  그리고 그는 얼굴을 돌려 노인을 향해 말했다.

  [풍 노선배님.  전백광은 후배라  어르신과 싸울 자격이  없읍니
다. 어르신게서 손을 쓰신다면 신분에 어긋나게 될 것입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바위 
앞으로 가더니 앉았다. 
  전백광은 크게 마음이 놓이는 듯 큰 소리로 호통쳤다.

  [칼 받으시오!]

  그리고 영호충을 향해 휘둘러왔다.
  영호충은 몸을 날려 피하고 장검으로  찔러갔다. 이번에 펼칠 것
은 조금 전  노인이 말한 제사초의 재검식이었다. 그가  이 일검을 
펼치는 순간 후수가  끊임엇 펼쳐졌고 검법은 날렵하기  이를데 없
었다. 사용되는 초식  가운데 어떤 것은 노인이 들먹인  것이고 어
떤 것은 노인이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행운유수와 
같아야 하고 임의로 펼쳐져야 한다는 깊은  뜻을 깨닫게 되어 검술
이 갑자기 정진하게 된 것이었다.  검의 광채는 파도가 일렁거리는 
듯했고 전백광과 어느덧 일백여 초를  싸우게 되었다. 별안간 전백
광은 일성대갈하며  칼을 들어 곧장 내려쳤다.  영호충은 피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자 즉시 손을 펼치며  장검으로 그의 가슴을 겨
냥했다. 전백광은 칼을 돌려 검을 옆으로  쳤다. '창' 하는 소리와 
함께 칼과 검이  부딪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영호충이  검을 움
추리기도 전에 칼을  놓고 몸을 날려서 달려들더니  두손으로 그의 
목을 졸랐다. 영호충은  숨이 꽉 막히게 되었고 장검도  놓치고 말
았다.
  전백광은 호통을 내질렀다.

  [네가 나를  따라 산을 내려가지  않는다면 너를 목졸라  죽이고 
말겠다.!]

  그는 본래 영호충과  형님이니 아우니 하면서 매우  겸손하게 예
의를 차렸었다. 그러나  이번 백여 초의 격렬한 싸움을  치르게 되
자 성질을 내며 영호충의 목을 조르고  '마음대로 해라' 하는 식으
로 나왔다.
  영호충은 얼굴이 시뻘개져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백광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일배 초도 좋고 이백 초도 좋다. 내가  이겼다. 그러니 너는 나
를 따라가야 된다.  빌어먹을! 삼십초의 약속은 이제  지킬 필요가 
없다!]

  영호충은 소리내어  껄껄 웃고 싶었다. 그러나  열손가락이 목을 
조르고 있는지라 소리내어 웃을 수가 없었다.
  별안간 그 노인이 말했다.

  [멍청한 것 같으니! 손과 발은  바로 검과 마찬가지다. 금옥만당
(金玉滿堂)이라는 초식을 반드시  검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줄 
아는구나!]

  영호충은 뇌리에  전광석화같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을 질풍같이  내질렀다. 바로 금옥만당이라는 
수법이었다. 중지와  식지가 전백광의 가슴에 있는  전중혈을 찌른 
것이다. 전백광은 나직이 신음소리를 내며  맥이 풀어지는 듯 땅바
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영호충의 목을 조르던 손도 풀렸다.
  영호충은 자기가  아무렇게나 찌른  것이 강호에 명성을  떨치는 
만리독행 전백광을 단번에 쓰러뜨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터였다. 
그는 자기의 목을 만져 보았다.  그러고 보니 전백광이라는 음적은 
땅바닥에 움추리고 있었는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두 눈을 
까뒤집고 있었다. 이미 기절을 한 것이다.  그는 놀람과 기쁨을 함
께 느꼈다.  삽시간에 노인에 대한  존경심이 극도에 달해  황망히 
그의 앞으로 나가 땅바닥에 엎드리고 불렀다.

  [사숙조, 이 사손이 무례했던 점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내가 가짜라고 의심하고 있겠지?]

  영호충은 고개를 숙였다.

  [어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읍니까? 이  사손은 다행히 풍 사숙
조님을 뵙게 되었으니 기쁘기 짝이 없읍니다.]

  노인 풍청양은 말했다.

  [일어나거라.]

  영호충은 공손히 세번 절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노인의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으며 초췌하기 이를데 없었다.
  영호충은 물었다.

  [사숙조, 배가 고프지 않습니까? 저의  동굴에 약간의 건량이 있
읍니다.]

  그가 가져오려고 하자 풍청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필요없네.]

  그리고 실눈을 떠 해를 한번 쳐다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햇살이 아주 따사롭군. 나는 오랫동안 햇살을 쬐지 않았단다.]

  영호충은 매우 이상했으나 감히 묻지 못했다.
  풍청양은 땅바닥에  움추리고 있는  전백광을 한번 쳐다  보더니 
말했다.

  [그는 너에게 전중혈을  찔리고 말았다. 그의 공력이라면  한 시
간 후에는 깨어날 것이다. 그때도 여전히  너를 귀찮게 할 것이다. 
네가 그를  대패시켜야만 그는 순순히  산을 내려갈 것이다.  너는 
그를 제압한 이후  반드시 그에게 강요하여 나에  대해서 한마디라
도 누설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하도록 시켜라.]

  영호충은 말했다.

  [이 사손이 방금 승리를 거둔 것은 그의  의표를 찌른 것으로 요
행히 이긴 것입니다.  검법으로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그
를 제압한다는 것은...... 그를 제압한다는 것은......]

  풍청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너는 악불군의 제자이다. 나는 본래  너에게 무공아르 전수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과거...... 과거......  무거운 맹세
를 한적이 있다. 살아 생전에 결코  남과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날 밤  너에게 검법을  펼쳐보인 것은 화산파의  옥녀검십구식을 
제대로 펼치기만 한다면  어찌 남과 싸우다가 장검을  손에서 놓치
는 일이 있겠느냐  하는 사실을 깨우쳐 주려고 그런  것이다. 그러
나 너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전백광으로  하여금 맹세를 하고 비밀을 
지키게 할 수가 없구나.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그리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뒷동굴로 들어갔다. 영호
충은 그의 뒤를 따랐다.
  풍청양은 석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벽에 있는 화산파의  검법의 도형을 너는 이미 보고  외우게 되
었을 것이다. 그러나  펼치게 되었을 때 전혀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아!]

  그러면서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 서서 도형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사숙조께선 이미 
알고 계셨구나. 아마도  내가 매번 넋을 잃고 바라보는  바람에 동
굴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만약에...... 만약에  사숙조께서 적이라면 허허허......  만약 그
가 적이라면  내가 그를  발견하더라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겠는
가?)

  풍청양은 계속해 말했다.

  [악불군이라는 녀석은 정말  앞뒤가 꽉 막힌 녀석이다.  너는 본
래 매우 훌륭한  인재였는데 그에게 가르침을 받아  바보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영호충은 그가 은사를  욕하자 속으로 울화가 치밀어  가슴을 편
채 말했다.

  [사숙조. 저는  사숙조의 가르침을 받지 않겠읍니다.  나는 나가 
전백광을 핍박하여 사숙조의 일을 누설치  않도록 맹세는 시키겠읍
니다.]

  풍청양은 약간 어리둥절해진 표정이었으나 곧  그 이유를 깨달은 
듯 담담히 말했다.

  [만약 그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너는 그를 죽일 참이냐?]

  영호충은 망설이며 대답하지 못했다.  속으로 전백광이 수차례나 
이겼으나 시종 자기를 죽이지 않았는데 자기가  어찌 우세를 점 한
다고 그를 죽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청양은 말했다.

  [내가 너의  사부를 욕한다고 원망하는 모양이구나.  좋다. 이후 
나는 다시는  그를 들먹이지 않도록  하겠다. 그가 나를  사숙이라 
부르니 내가 그를 녀석이라고 부르는 것은 괜찮겠지?]

  영호충은 말했다.

  [사숙조께서 저의  은사를 욕하시지만 않는다면 이  사손은 삼가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겠읍니다.]

  풍청양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내가 너에게 무공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
는 꼴이 되겠구나?]

  영호충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이 사손이 어찌  그럴 수 있겠읍니까? 사숙조께서  용서해 주십
시오.]

  풍청양느 석벽의 화산도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초식들은 확실히  본파 검법의 검초들이다. 이  가운데 태반
은 이미 실전되어서 악...... 악......  허허허...... 너의 사부마
저도 모르고 있다. 다만 초식이  오묘하기는 하지만 일초일초를 나
누어 펼치게 된다면 끝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깨뜨려질 것이다.]

  영호충은 거기까지  듣고 마음속으로 움직이는 바가  있었다. 은
연중 그는 한층 더 깊은 검술의 진리를  깨닫기에 이른 것이다. 그
리하여 그는 기쁜 빛을 띄웠다.
  풍청양은 말했다.

  [너는 무엇을 깨달았느냐? 나에게 이야기해 보아라.]

  영호충은 말했다.

  [사숙조께서는 각  초식을 한 덩어리처럼 이어놓을  수만 있다면 
적이 깨뜨릴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까?]

  풍청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척 기뻐했다.

  [나는 원래 너의  자질이 괜찮다고 말했었지. 아니나  다를까 이
해력이 지극히 좋구나. 옛날 마교의 장교들은......]

  그러면서 그는 석벽에 곤봉을 쓰는 인형을 가리켰다.
  영호충은 물었다.

  [이 자들은 마교의 장로입니까?]

  풍청양은 말했다.

  [너는 모르느냐? 이 열 구의 해골은 마교의 십장로들이다.]

  그리고 그는  땅바닥에 해골을 가리켰다. 영호충은  의아하여 물
었다.

  [어찌하여 마교의 십장로가 모조리 이곳에서 죽었읍니까?]

  풍청양은 말했다.

  [한 시진이 지나게 되면 전백광은 깨어나게  된다. 너는 묵은 일
들을 묻느라 언제 무공을 배울 수 있겠느냐?]

  영호충은 고개를 숙였다.

  [녜, 그렇습니다. 사숙조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풍청양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이 마교의 장로들은 모두 뛰어나게  총명하고 재주가 있어서 오
악검파의 검초를  깨끗하고도 철저하게  깨뜨렸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초식은 무공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음모와 간계, 함정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만약 다른 사
람이 교묘하게 안배한  함정에 빠지게 된다면 네가  아무리 고명한 
초식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것은 저혀 쓸모가 없게 돼......]

  그리고 그는 고개를 쳐들었다. 눈빛이  흐린 것으로 보아 아마도 
많은 옛날 일들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영호충은 그의  어조가 씁쓸하고  표정에 분개한 빛이  떠오르자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우리 오악검파는 정말로 무공을  겨뤄 이기지 못하자 몰래 
암수를 써서 사람들을 해친 것이  아닐까? 풍 사숙조는 오악검파의 
사람이지만 그 비열한 수단에 대해서는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모양
이다. 그러나 마교의  인물을 상대할 때 음모,  간계를 사용했다고 
하여 옳지 않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구나.)

  풍청양은 다시 말했다.

  [단지 무학을 놓고  논할 때는 이 마교의 장로들  역시 상승무학
의 문을 넘보게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은 초식이란 죽은 것
이고 초식을 펼치는  사람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죽은  초식이 아무리 오묘하게  상대방의 초식을 깨뜨릴  수 
있다고 해도 살아 있는 초식을 만나게  된다면 곳곳에서 제압을 당
하게 되고 상대방에  의해 도륙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  '살아 있
다' 는 글자를  너는 똑똑히 기억해 둬라. 초식을 배울  때는 살아 
있는 것을  배워야 하고 초식을  펼칠 때는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펼쳐야 한다.  만약 형식에 구애를  받는다면 수천 수만의  초식을 
연성한다 해도 참된 고수를 만나게 되었을  때 끝내 상대방에 의해 
깨끗이 깨뜨려질 것이다.]

  영호충은 크게  기뻐했다. 그는  원래 성격이 활달한  편이었다. 
풍청양의 말은 그의  마음에 꼭 드는 것이었다. 그는  잇달아 대답
했다.

  [녜! 녜! 반드시 산 것을 배우고 산 것을 펼쳐야 하죠!]

  풍청양은 말했다.

  [오악검파 가운데는 많은 멍청이들이 있다.  그들은 사부가 전수
해준 검초를 익숙하게 익히기만 하면 자연히  고수가 되는 줄 알고 
있다. 흥!  당시 삼백수를 숙독하게  된다면 시를 읊을 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겠지.  그리고 남의 싯구를 숙독하게 된다면  몇 수
의 엉터리시를 지을 수 있겠지. 하지만 자기  스스로 창조해 낼 수 
없다면 어떻게 대시인이 될 수 있겠느냐?]

  그 같은  말은 악불군마저도 욕하는 짓이었다.  그러나 영호충은 
그 말이 첫째로  도리가 있고, 둘째로 그가 직접  악불군을 들먹이
지 않았기 때문에 항변을 하지 않았다.
  풍청양은 말했다.

  [살아 있는 것을 배우고 살아 있는 것을  펼치는 것은 제 일보에 
지나지 않는다.  손을 쓰게 되었을  때 초식이 없어야만  진정으로 
고수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너는  각 초식이 한 
덩어리가 되면 적을  깨뜨릴 수 있게 되리라고 말했는데 그  한 마
디는 반쯤밖에  못 맞춘 것이다.  한 덩어리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초식이 없어야 한다.  너의 검초가 아무리 한 덩어리가  되도록 펼
쳐도 추호의  빈틈이 있기만 하면  적은 그 틈을 노리고  찔러들어 
올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근본적으로 초식이  없을 때 적이 어
떻게 너의 초식을 깨뜨릴 수 있겠느냐?]

  영호충은 가슴이 쿵쿵  뛰놀기 시작했고 손과 심장이  화끈 달아 
올랐다. 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근본적으로 초식이  없는데, 어떻게 깨뜨릴 수  있는가? 근본적
으로 초식이 없는데, 어떻게 깨뜨릴 수 있는가?]

  그의 눈  앞에 한평생 보지도,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천지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풍청양은 말했다.

  [고기를 자르려면  어쨌든 자르려고  하는 고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무를 패려고  한다면 팰 나무가 있어야 한다.  적이 너의 
검초를 깨뜨리려고 한다면  너는 반드시 상대방을 깨뜨릴  수 있는 
검초가 있어야 한다. 무릇 무공을  모르는 범인이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댄다면 너의  견문이 아무리 넓더라도 그가  다음번에 어디
를 어떻게 찌르거나 내려칠 것인지 짐작할 수  없게 된다. 설사 검
술에 지극히 고명한 사람이라도 그의 초식을  깨뜨릴 수 없는 것이
다. 하지만 무공을  모르는 사람은 초식이 없다 해도  상대방에 의 
가볍게 얻어 맞아 쓰러지게 된다.  진정으로 상승의 검술이라는 것
은 상대방을 제압하되  결코 상대방에 의해 제압당하지  않는 것이
다.]

  그리고 그는 땅바닥에서 죽은 사람의  다리뼈를 들고 아무렇게나 
영호충을 겨누고 말했다.

  [너는 나의 이초식을 어떻게 깨뜨리겠느냐?]

  영호충은 그가 다음에 펼칠 초식을 알 수가 없어서 말했다.

  [그것은 초식이 아니기 때문에 깨뜨릴 수 없읍니다.]

  풍청양은 빙그레 웃었다.

  [바로 그거다. 무공을  배우는 사람은 무기를 쓰거나  손과 발길
질을 하는데 언제나  초식이 있기 마련이다. 너는 그  깨뜨리는 방
법을 알기만 한다면 대뜸 제압할 수 있게 된다.]

  영호충은 말했다.

  [만약 적 역시 초식이 없다면요?]

  풍청양은 말했다.

  [그렇다면 상대방 역시  일류고수 중의 일류이다. 두  사람의 싸
움이 이렇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고강할  수 있고 
어쩌면 그가 고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당금에는 그 같은 고수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 요행히 한두 사
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너의 한평생 다시  없는 행운이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평생  겨우 세 분을 만나 보았을 
뿐이다.]

  영호충은 말했다.

  [어느 세 분입니까?]

  풍청양은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웃었다.

  [악불군의 제자  가운데 간섭하기를 좋아하고 알려주는  것도 배
우려고 하지 않는 녀석이 있다니 정말 잘 되었다! 잘 되었어!]

  영호충은 얼굴을 붉히고 재빨리 말했다.

  [제자는 잘못을 알았읍니다.]

  풍청양은 웃었다.

  [잘못하지 않았다! 잘못하지 않았어! 네  녀석은 심사가 매우 활
발해 나의  비위에 맞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많지 않다.  너는 
화산파의 삼사십초를  융합시켜서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처럼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초식을 모조리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일초도 마음속에 남겨  두지 않도록 해라. 그러면 나중에  아무 초
식도 없는 화산검법으로 전백광과 싸우게 될 것이다.]

  영호충은 기쁨을 느끼고 말했다.

  [녜.]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고 석벽의 도형을 바라보았다.
  과거 수개월 동안  그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미  석벽의 검법
을 외우다시피 하고  있었다. 이대 그는  더이상  시간을 낭비하면
서 배울 필요가  없었다. 그저 많은 검초를 연관시키기만  하면 되
었다.
  풍청양은 말했다.

  [모든 것은 반드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행해지
지 않을 수  없도록 행하여야 하고 멈추지 않을 수  없도록 멈추어
져야 한다. 만약 하나로 연결시킬 수  없다면 그만 두어라. 어찌되
었든 반점이라도 억지를 부려선 안 되느니라.]

  영호충은 생각했다.

  (다만 자연스럽게 하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떰든  연결이 교
묘하든 졸려하든간에 삼십초의 화산파 검초를  삽시간에 하나로 연
결시킬 수 있다.  하지만 한 덩어리로 융합시켜 그  가운데 시작되
고 끝나는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다.)

  그는 장검을  오니쪽으로 베고 오른쪽으로 내려쳤다.  그리고 마
음속으로 석벽 도형  가운데의 검초를 조금도 생각하려고  하지 않
았다. 닮아도 좋았고  닮지 않아도 좋았다. 마음  내키는대로 휘둘
렀다. 따로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의기양양
해 했다.
  그는 사부를 따라  무공을 연마한 지 십여 년이  되었다. 연습을 
할 때마다 그는 정신을 똑바로 가다듬고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
다. 악불군은 제자들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방법이 지극히 엄했다. 
뭇 제자들이 권법을  연마하거나 검을 사용하든 손짓  발짓에서 한 
자 한 치가 어긋나도 그는 즉시 멈추게  하고 바로잡았다. 매 초식
을 완벽히 연마토록 했고 눈꼽만치도 착오가  나지 않게 되어야 마
음이 놓여  고개를 끄덕여 되었다는  시늉을 했다. 영호충은  그의 
큰 제자였고, 이  세상에 태아날 때부터 호승심이  대단했다. 그는 
사부와 사모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 초식을 연마할 때 더욱  더 자
기 자신을 엄히 다스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풍청양은 전혀 상반된 
방법으로 그에게 검도의 이치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멋
대로하면 할수록 좋다고  했으며 이야말로 영호충의 마음에  꼭 맞
는 일이라서 거믓띵  펼칠 때마다 느끼는 마음속의  유쾌함과 감미
로움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수십 년이나  되는 맛 좋은 술을 
달게 마시는  것보다도 재미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넋
을 잃듯, 취하듯 연마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전백광이 말했다.

  [영호형, 이리 나오시오! 우리 다시 겨루어 봅시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검을 거두고 풍청양에게 여쭈어 보았다.

  [제가 함부로  후려치고 내려치는  검법으로 그의  쾌도(快刀)를 
막을 수 있겠읍니까?]

  풍청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막을 수 없다. 아직 멀었다.]

  영호충은 놀라 물었다.

  [막을 수 없다고요?]

  풍청양은 말했다.

  [막으려면 막을 수 없지. 하지만 네가 왜 막으려고 하느냐?]

  영호충은 그  말을 듣고 깨닫는  바가 있어 속으로 크게  기뻐했
다.

  (그렇다. 그는 나를  데리고 산을 내려가려는 것이기  때문에 감
히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어떤 초식을 펼치든 나
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스스로 알아서 공격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검을 들고 동굴에서 달려 나왔다.
  이때 전백광은 칼을 비껴들고 서서 부르짖었다.

  [영호형, 그대는  풍 노선배님으로부터  비결을 지적 받은  이후 
검법이 크게  정진되었소. 그러나 조금  전 그대에게 혈도를  찍혀 
쓰러지게 된 것은  내가 일시 소홀했기 때문이외다. 이  전모는 승
복 할 수 없으니 우리 다시 겨루어 봅시다.]

  영호충은 말했다.

  [좋소.]

  그리고 그는 검을 뻗쳐 비스듬히  찔러가는데 검신이 흔들흔들해
서 반푼의 힘도 실리지 않은 것 같았다.
  전백광은 크게 의아한 듯 말했다.

  [이것은 무슨 검초요?]

  그러나 그는 영호충의  장검이 찔러오는 것을 보고  칼을 휘둘러 
막으려고 했다.  그런데 영호충은 갑자기 오른손을  뒤로 움추리며 
허공을 향해  아무렇게나 찔러댔다. 그리고 검자루를  재빨리 거두
어 들이는데 마치  자기의 가슴을 찌를 것 같은  형세였다. 그런데 
곧이어 그는 손목을 다시 반대쪽으로  펼쳐냈다. 이렇게 되자 그는 
오른쪽 허공을  내찌르게 되었다. 전백광은 더욱  이상하게 생각하
고 그를 향해  가볍게 시험삼아 한 칼을 내려쳤다.  영호충은 피하
지 않고 검의 끝을 슬쩍 쳐들더니  비스듬히 전백광의 아랫배를 찔
러왔다. 전백광은 부르짖었다.

  [이상하다!]

  그리고 칼을 돌려서 막으려고 했다.
  두 사람은  이와 같이 수초를  싸웠다. 영호충은 석벽에  그려져 
있는 화산파의 검초를 수십 초 펼쳤으며  공격만 하고 수비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자기 혼자서 검술을  연마하는 것 같았다. 전
백광은 그의 공격을 받고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그는 소리쳤다.

  [나의 이 한  칼을 막지 못한다면 그대의 어깻죽지가  잘려 나갈 
것이오! 그때 가서 나를 탓하지 마시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그토록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면서 '휙휙휙' 하며 삼검을  이상야릇한 방향으로 찔러왔다. 
전백광은 눈과 손이  빨라 일일이 막아낼 수 있었다.  반격을 시도
하려고 할  때 영호충이 갑자기  장검을 하늘로 내던지고  있었다. 
전백광은 고개를 쳐들고 검을 바라보았다.  그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코를 얻어 맞고 말았다. 대뜸 피가 나왔다.
  전백광이 깜짝 놀라고 있는 사이 손을  검으로 삼아 질풍같이 내
질렀다. 다시 그의 전중혈을 짚은 것이다. 전잭광은  천천히 쓰러
졌는데 얼굴에는 매우  놀랍고 기이하다는 표정과 함께  분노의 빛
을 띄웠다.
  영호충이 몸을 돌리자  풍청양이 그를 불러 동굴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너는 한시진  반 검술을 연마할  수 있다. 그는 이번에  상처가 
깊기 때문에  처음보다는 빠르지 못할  것이고, 다음에 싸울  때는 
그가 목숨을 걸고  싸울 수도 있으며, 양보를 하지  않을런지 모르
니 조심해야 한다. 이제 형산파의 검법을 익히도록 해라.]

  영호충은 풍청양의 지시를  받은 후에는 검법에 있어  초식이 있
되 초식이 없는  것처럼 휘둘렀으며 초식을 전개했으나  초식이 아
닌 상태였다.
  형산파의 검법은 원래 변화가 많아서  허개비 같았다. 그렇게 되
니 초식의  시작과 끝을 더욱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백광은  다시 
일어난 후 팔십초를 싸웠으나 그에게 얻어  맞아 다시 쓰러지고 말
았다.
  어느덧 날이 어두어졌다. 육후아가 밥을  갖다 주려고 벼랑 위로 
올라왔다. 영호충은 혈도를  잡힌 전백광을 바위 뒤로  눕혔다. 풍
청양은 뒷동굴에서 나오지 않았다.
  영호충은 말했다.

  [이 며칠간  나의 밥맛이 많이  좋아졌으니 여섯째 사제는  내일 
밥과 찬을 많이 가져오도록 하게.]

  육후아는 신수가 훤해지고 수개월 동안  우울해하던 영호충이 다
른 모습이 된  듯하여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거기다  그의 윗옷이 
땀에 젖어  있는 것을 보고  그가 검법을 애써 연마한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했다.

  [좋아요. 내일은 커다란 바구니에 밥을 담아오지요.]

  육후아가 벼랑 아래로  내려간 후 영호충은 전백광을  품고 그와 
풍청양을 한 자리에  모시고 음식을 들게 되었다. 풍청양은  한 그
릇의 밥만 먹고 배가 부르다고 수저를 놓았다. 전백광은  화가 나
는 듯 연신 불평을 해댔으며 밥맛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
편으론 밥을 입으로 가져가며 한편으론  욕을 마구 해댔다. 그러다
가 갑자기 왼손에  주는 힘이 너무 커져서 '뚝' 하는  소리와 함께 
대접을 십여쪽 나게  만들었고 그릇에 담겼던 밥알들이  그의 몸에 
떨어지게 되었다.
  영호충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전형은 어찌 밥그릇을 상대로 풀이를 하려고 하시오?]

  전백광은 노해 말했다.

  [제기랄! 나는 그대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오! 다만 내가 그대
를 죽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술시합 때 그대는 공격만  했디 
수비는 안 하느라고 덕을 보게 된 것이오.  그대 스스로 말해 보시
오. 이런 시합이  공평하오? 만약 내가 양보하지  않았다면 삼십초 
안으로 그대의 머리를 잘라냈을 것이오.  흥흥! 빌어먹을 것! 젊은 
여...... 젊은 여......]

  그는 의림을 젊은 여승이라고 욕을 하고  싶었으나 어떻게 된 노
릇인지 말을 하다말고 그만 두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더니 칼을 
뽑아 왼손에 들고 말했다.

  [영호충, 다시 싸웁시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리고 검을 뻗쳐 공격했다.
  영호충은 다시  똑같은 방법을 썼다. 전백광의  쾌도를 해소시키
려 하지 않고  자신의 교묘한 초식으로 그를 찔러대기만  했다. 그
런데 전백광은  이번에는 손 씀씀이가 매우  무서웠다. 이십여초를 
싸우게 되었을 때  휙휙하며 두 번의 칼질을 했는데 한  칼은 영호
충의 허벅지를 내려찍게 되었고, 한  칼은 영호충의 왼팔에 상처를 
내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칼 아래 사정을  두어 상처는 깊지 않은 
편이었다. 영호충은  놀랐다. 아픔을 느기며 검법이흩어졌다. 그
리하여 수초 후에는 전백광의 발길질에 채여 쓰러지고 말았다.
  전백광은 칼날을 그의 목에 갖다대고 말했다.

  [그래도 싸우겠소? 다시  싸우면 그대의 몸에 몇번의  칼질을 할 
것이오. 설사 그대를  죽이지 않느다 해도 그대의 몸이  성하지 못
하게 될 것이오. 피를 모조리 흘리게 될거요.]

  영호충은 말했다.

  [물론 다시 싸워야  하오. 영호충이 그대를 이기지  못한다 해도 
설마 우리 풍 사숙조께서 그대가 날뛰도록 보고만 있을성 싶소?]

  전백광은 말했다.

  [그는 선배고인이니 나와손을 쓰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는 칼을 거두어 들였으나 속으로는  무척 질리는 듯했다. 영호
충을 힘껏 쳐  상처를 입히게 되면 풍청양이 노해 손을  쓸까봐 두
려웠던 것이다. 풍청양이란 노인은 매우  늙은 것은 사실이지만 쭈
그렁 영감탱이가  아니었다. 신(神)과 기(氣)가 안으로  갈무리 되
어 있으며 눈동자의  영화(英華)역시 은은한 것을 보면  내공이 메
우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검술이  고강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 같았다. 따라서  풍청양이 검을 휘둘러 사람을 죽일  것도 없이 
전백광 자신을 화산에서 쫓아내기만 해도  그로서는 야단이라고 생
각했다.
  영호충은 옷자락을 찢어 두 곳의 상처를  싸매고 동굴 안으로 들
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고 쓰디쓴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사숙조. 그  녀석은 책략을 바꾸었읍니다. 나에게  마구 칼질을 
했읍니다. 만약  그에게 오른팔을 베게  되었다면 검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그 후엔 그를 이기기가 어렵게 됩니다.]

  풍청양은 말했다.

  [날이 이미 어두웠으니  다행이야. 너는 내일 아침  다시 싸우자
는 약속을 해라. 그리고 오늘밤 자지 말고  우리는 하룻밤 동안 힘
을 다하도록 하자. 나는 오늘밤 네게 삼초의 검법을 전수하겠다.]

  영호충은 물었다.

  [삼초라고요?]

  그리고 속으로  삼초의 검법이라면  하룻밤을 새울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생각했다.
  풍청양은 말했다.

  [내가 볼 때 너는 꽤 총명하지만 정말  총명한 것인지 가짜로 충
명한 것인지 알 수가 없구나. 만약 정말  총명하다면 오늘밤 그 삼
초의 검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자질이 뛰어나지  못하고 이해
력도 평범하다면  그렇다면...... 그렇다면...... 내일  아침 너는 
그와 더 싸울 필요도 없다. 졌음을 시인하고  순순히 그를 딪라 산
을 내려가야 한다.]

  영호충은 사숙조가 그같이  말하자 이 삼초의 검법이  심상치 않
을 것이며  매우 배우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크게 
호승심이 솟구쳐 가슴을 펴며 늠름히 말했다.

  [사숙조, 이 사손이 이 하룻밤 사이에  삼초를 다 배우지 못한다
면 차라리  그의 한 칼에  죽었으면 죽었지 결코 투항하거나  그를 
따라 산을 내려가지는 않겠읍니다.]

  풍청양은 빙그레 웃었다.

  [그것도 좋지!]

  그리고 고개를 쳐들고 깊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하룻밤 사이에 삼초를 배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을 시키는 것이
다. 제이초는 잠시  사용할 필요가 없으니 우리들은 제  일초와 제
삼초만 배우기로  하자. 하지만......  하지만...... 삼초의  많은 
변화는 제이초에서 온 것이다. 좋아! 우리는  관계 있는 변화를 모
조리 생각한 이후 쓸모가 있는지 두고보기로 하자.]

  그리고 혼자 중얼거리더니  잠시 생각한 후 다시  고개를 가로저
었다.
  영호충은 그가 이토록  거리낌이 많은 것을 보고  마음속이 근질
근질해졌다. 무공이 배우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위력은 강한게 
아니던가? 이때 풍청양은 다시 중얼거리듯 말했다.

  [제일초에 있는  삼백 육십초의 변화  가운데 만약 한  가지라도 
잊게 된다면 제삼초를 펼질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정말 난
처하구나!]

  영호충은 제일초에 삼백  육십 가지의 변화가 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대 풍청양은 손가락을 접어가며 헤아렸다. 

  [귀매추무망(歸妹趨無妄)  무망추동인(無妄趨同人)   동인추대유
(同人趨大有) 갑전병(甲轉丙)  병전경(丙轉庚) 경전계(庚轉癸)  자
축지교(子丑之交)  진사지교(辰巳之交)  오미지교(午未之交)  풍뇌
(風雷)가 일변이고  산택(山澤)이 일변이요, 수화(水火)가  일변이
다. 따라서  건곤상격(乾坤相激) 진태상격(震兌相激)  이손상격(離
巽相激) 삼증이성오(三增而成五) 오증이성구(五增而成九)......]

  헤아리면 헤아릴수록 근심의 빛은 더욱  짙어지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충아, 나는 과거  이 일초를 배우는데 석달이라는  세월을 보내
야 했다.  네가 하룻밤 사이에 이초를  배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된
다. 너는 생각해 봐라 귀매추무망......]

  거기까지 말하더니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제정신을 잃
은 듯 물었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영호충은 말했다.

  [사숙조께선 방금  귀매추무망 무망추동인 동인추대유라고  했읍
니다.]

  풍청양은 는썹을 꿈틀했다.

  [너의 기억력이 괜찮구나.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지?]

  영호충은 말했다.

  [사숙조께선 갑전병 병전갑 경전계......]

  그는 줄곧  외워갔다. 놀랍게도 거의  반이나 외우는 것이  아닌
가? 그러나 그 뒷쪽의 것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풍청양은 크게 의아하여 물었다.

  [이 독고구검(獨孤九劍)의  총결(總訣)을 너는  배운 적이  있느
냐?]

  영호충은 말했다.

  [사손은 배운 적이 없읍니다. 그리고  이것이 독고구검이라는 것
도 모릅니다.]

  풍청양은 말했다.

  [너는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외울 줄 아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방금 사숙조께서 그렇게 읊으시는 것을 들었읍니다.]

  풍청양은 얼굴 가득히 기쁜빛을 띄우고 무릎을 '탁'쳤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하룻밤 사이에 모조리  다 배울 수는 없
지만 억지로 기악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일초는 배울 필요가 없다. 
삼초만 그저 약  반초 정도 배우면 되겠다. 잘 기억해  두어라. 귀
매추무망 무망추동인 동인추대유......]

  그러면서 그는 계속해서  읊어가는데 족히 삼백여 자를  읊고 난 
후 말했다.

  [네가 한번 시험삼아 외워 보아라.]

  영호충은 이미 온  정신을 모아 기억해 두고 있었다.  즉시 따라 
외웠다. 그런데 틀린  글자는 십여 자밖에 되지  않았다. 풍청양은 
급히 바로잡아 주었다. 영호충은 두번째로  외워 일곱 자가 틀렸으
나 세번째에 이르러서는 틀리지 않았다.
  풍청양은 매우 기뻐해서 말했다.

  [좋아! 매우 좋아!]

  그리고 다시 삼백여 자나 되는  구결을 전수했다. 영호충이 외우
자 다시 삼백여  자를 전수했다. 그 독고구검의 총결은  삼천여 자
나 되었고 내용이 서로 연관되지도  않았다. 아무리 영호충의 기억
력이 좋다 해도 앞쪽을 기억하면 뒤쪽을  잊게 되고 뒤쪽을 기억하
면 앞쪽을 잊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 시간  남짓 풍청양이 두번 세
번 깨우쳐  주어서야 겨우 한 자도  틀리지 않게 외울  수 있었다. 
풍청양은 그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세번  외우도록 했다. 그가 확실
히 모조리 외우자 말했다.

  [이 총결은 독고구검의  근본 관건이 된다. 겨우  기억했지만 속
성하기 위해서  억지로 기억한 것이니  그 가운데 도리를 잘  모를 
것이고 이후  잊어버리기 쉽상이다. 오늘부터는 반드시  아침 저녁
으로 외우도록 해라.]
  [녜.]

  풍청양은 다시 말했다.

  [구검의 제일초는 총결식(總訣式)으로서 여러  가지의 변화가 있
는데 이는 몸소 시범을 보여야 하니  지금으로선 서두를 필요가 없
다. 제이초는  파검식(破劍式)인데 전문적으로 천하각파의  검법을 
깨뜨리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지금은 서둘러 배울 필
요가 없다. 제삼초는 파도식(破刀式)인데  전문적으로 칼이나 쌍칼 
유엽도(有葉刀) 귀두도(鬼頭刀) 대감도(大?刀)  참마도(斬馬刀) 등 
여러가지 도법을 깨뜨리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전백광이 사용하는 
것은 한 자루의  칼로 펼치는 쾌도뿐이니 오늘밤  전문적으로 그의 
도법을 상대할 수 있는 부분만 배우기로 하자.]

  영호충은 독고구검의  제이초로서 천하각파의 검법을  깨뜨릴 수 
있고, 제삼초로서는 여러가지 도법을 깨뜨릴  수 있다는 말에 놀람
과 기쁨에 넘쳐 말했다.

  [이 구검이 그토록 신비하다니! 이  사손은 지금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일입니다.]

  그는 너무나 흥분돼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풍청양은 말했다.

  [독고구검의 검법은 너의  사부도 구경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 
검법의 명칭은  그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너희들에게 
들먹이지 않았을 것이다.]

  영호충은 의아하여 물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풍청양은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제삼초 파도식은  가벼운 것으로 무거운 것을  제어하고 재빠름
으로 느림을 제압하는 것이다. 전백광 그  녀석은 정말 빠르다. 그
러나 너는 그보다 더 빨라야 한다. 너  같은 젊은이가 그와 더불어 
재빠름을 견준다는 것은 가능한 것이다.  다만 지고 이기는데 대해 
필승의 자신이 없을 뿐이다. 그리고  나같이 쭈그러진 늙은이가 그
보다 더욱 빠르려고 한다면 유일한 방법은  그보다 먼저 초식을 펼
치는 것이다. 네가 그가 펼칠 초식을 짐작할  수 있다면 그를 앞지
를 수 있다.  적의 손이 쳐들리기 전에 너의 장검은  이미 그의 급
소를 찌르게 될  거이니 그가 아무리 빨라도 너만큼 빠를  수가 없
다.]

  영호충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녜, 녜. 아마도  이것의 요점은 어떻게 하면 적의  기선을 잡아
야하는가 하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풍청양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옳아! 너는  정말로 가르칠만한 인재다. 적을  헤아려서 기선을 
잡는다는 것은  바로 검법의 정묘한  점이다. 어떤 사람이  일초를 
펼칠 때는 반드시어느 정도 조짐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가 한 칼
로 너의 왼팔을 내려치려고 할 때는  반드시 너의 왼팔을 쳐다보게 
도리 것이다.  그리고 이때 칼이  오른쪽 아래켠에 있다면  자연히 
칼을 쳐들고 반원을  그려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 찍
게 될 것이다.]

  이윽고 그는 제삼검 가운데 쾌도를  제압하고 깨뜨리는 여러가지
의 변화를 한  조목씩 따져가며 분석해 보였다. 영호충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넓어지며 정신이 솟아났다.  한 시골의 소년이 갑자기 
황궁에 들어와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 
짝이 없는 것과 같았다.
  제삼초는 변화가  복잡하기 이를데 없었다. 영호충이  일시에 터
득하게 된 것은 십의 삼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는 억지로 기억해 
두었다. 한 사람은 신이 나서 가르쳤고  한 사람은 열심히 배웠다. 
그들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전백광이 동굴  밖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영호형, 날이 밝았소!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소?]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져 나직이 말했다.

  [어이쿠! 날이 밝았답니다.]

  풍청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시간이촉박하니 매우  애석하다. 그러나 너는 매우  빨리 배웠
다. 이미 내가  바라던 바를 훨씬 능가했다. 이제 나가서  그와 싸
워 보아라.]

  영호충은 고개를 숙였다.

  [녜.]

  그리고 눈을 감고  그날 밤 배운 뜻을 암암리에 기억해  보고 눈
을 뜨며 물었다.

  [사숙조, 사손은 아직도 모르는 것이  한 가지 있읍니다. 어째서 
이 변화는  다 공격하는 하는  초식으로 공격만 했지 수비는  하지 
않는지요?]

  풍청양은 말했다.

  [독고구검은 앞으로  나가는 초식만 있지 뒤로  물러나는 초식은 
없다. 초식은 모두 공격하는 것이고  적으로 하여금 부득불 수비를 
하도록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지킬 필요가  없는 것
이다. 이  검법을 창안한 독고구패(獨孤求敗) 선배님이  이름을 구
패라고 한 것은  그 어르신께서 한평생 한번이라도  지고 싶어했으
나 질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같이 이름지은  것이다. 이 검법이 펼쳐
지면 천하무적인데 지킬 필요가 있겠느냐?  만약에 누가 그 어르신
을 공격하여 자신을 지키려고 한다면 그  어르신은 정말 기분이 흐
뭇해져 좋아 어쩔줄 모르셨을 것이다.]

  영호충은 중얼거렸다.

  [독고구패...... 독고구패(獨孤求敗)!]

  그는 과거 이  선배님이 검을 들고 강호를  주유하면서 천하무적
으로 군림하여, 한  사람의 적수마저 찾을 수 없는  광경을 상상해 
보았다.
  이때 전백광이 다시 부르짖었다.

  [빨리 나오시오!  다시 그대의  몸에 두  곳의 상처를  내어주겠
소!]

  영호충은 부르짖었다.

  [나가오!]

  풍청양은 눈쌀을 찌푸렸다.

  [지금 나가 그와 싸울 때 가장 위험한  것은 그가 처음 한칼로서 
너의 오른팔이나 오른 손목을 내려찍어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그
러면 너는 그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고 더욱더 반격할 수 없
게 된다. 이것이 내가 가장 걱정하는 점이다.]

  영호충은 크게 호기가 치솟아 늠름히 말했다.

  [사손은 진력을 다하겠읍니다. 어떻든 사숙조께서  이 밤을 새워 
가르쳐준 은혜를 저버리지 않겠읍니다.]

  그리고 검을 들고 동굴을 나섰다.
  매우 기운이 없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켠 
다음 눈을 비비며 말했다.

  [전형, 빨리도 일어났구료. 어젯밤 제대로 주무시지 못했소?]

  속으로는 다른 궁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이 눈 앞의 난관만 버텨내고 몇  시진만 더 배운다면 나는 
영원히 너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전백광은 칼을 들고 말했다.

  [영호형, 불초는 실로 그대에게 상처를  입힐 생각은 없소. 그대
가 너무  고집스럽게 무슨 말을  해도 나와 함께 산을  내려가려고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구료. 거기다 이같이 싸운다면  부득이 나
는 그대에게 열번이나 스무번 칼질을 하게  되고 그대의 온몸에 상
처를 입히게 될지도 모르는 일,  그것이야말로 그대에게 미안한 노
릇이 아니겠소?]

  영호충은 속으로 생각나는 바가 있어 말했다.

  [열번이나 스무번 칼질을 할 필요는 없소.  그대는 단 한칼로 나
의 오른팔을 자르거나 그렇지 않을 때  나의 오른손에 상처를 입혀 
내가 검을 쓰지 못하게 하면 되는 것이오.  그때 그대가 나를 죽이
거나 사로잡으려고 한다면 뜻대로 될 것이 아니겠소?]

  전백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저 승복시키겠다는  것 뿐이외다. 어찌 그대의  팔에 상
처를 입히겠소?]

  영호충은 크게 기뻤으나  얼굴에는 깊은 우려의 빛을  띄우고 말
했다.

  [그대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다급하면 어떤  악독한 수법
을 펼칠지 염려스럽군요.]

  전백광은 말했다.

  [그대는 말로서 나를 자극하지 마시오.  전백광은 첫째로 그대와 
아무런 원한이 없고, 둘째는 그대를  뼈있는 사내라고 존경하고 있
으며, 세째는 정말  그대에게 심한 상처를 입혔을 때  다른 사람이 
나를 그냥 두지 않고 괴롭힐 것이오. 자, 손을 쓰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좋소. 전형이 먼저 공격하시오.]

  전백광은 칼을  한번 흔들했다. 그리고 제이도를  곧이어 비스듬
히 내려쳐 왔다. 칼이 햇살을 받고 번쩍이는데그 기세가 심히 맹
렬했다. 영호충은 독고구검 가운데  제삼검의 변화로서 깨뜨리거나 
해소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전백광의 도법은  실로 너무나 빨랐다. 
검을 막 뻗어내는  순간 상대방의 도법은 이미 변하고  만 것이다. 
끝내 한  걸음 늦은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초조해져  부르짖었
다.

  (야단났다! 야단났다!  새로 변한 검법을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되었군! 사숙조께선 반드시 나를 멍청이라고 욕하시겠지?)

  그는 다시 몇초를  맞받게 되었는데 너무나 다급해  이마에서 땀
방울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한데 전백광이  볼때 그의 검법은  날카롭기 이를데 없었다.  매 
일초가 자기 도법의 극성(?星)이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매우 놀랐
다.

  (그는 분명히 몇수의  검법으로 나를 죽일 수 있는데  어째서 일
부러 한 박자 늦추는 것이지? 그는 손아래  사정을 두고 내가 어려
움을 알고  물러서도록 만들려고 하는구나! 그러나  나는 어려움을 
무럴설 수  없는 고충이  있다. 그러니  끝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
다.)

  그가 이같이 생각하게 되자 칼을 내리치게  될 때 공격을 제대로 
돋울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서로 상대방을 꺼려하여 조심스럽게 
초식을 주고받았다.
  다시 한동안 싸우게 되었다. 전백광의  도법은 점차 빨라지게 되
었고 영호충이  독고구검 가운데  제삼검의 변화를 응용하는  것도 
점차 익숙해졌다.  칼과 검의 광채가  번쩍이는 가운데 서로  주고 
받는 초식은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갑자기 전백광이 대갈을 터뜨
리며 오른발을 들어 영호충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영호충은 몸이 뒤로 나가떨어질 때 번개같이 생각을 굴렸다.

  (이제 나에게 하루낮 하룻밤의 시간만  있으면 내일 이 무렵쯤이
면 반드시 그를 제압할 수 있다.)

  그는 즉시 검을  손에서 놓고 두 눈을 꼭감고 호흡을  거의 멈추
다시피 하고 혼수상태에 빠진 것처럼 가장했다.
  전백광은 그가 정신을  잃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으나 영호충이 
교활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감히 몸을 구부리고 
살펴보지 못했다. 영호충이 혹시 갑자기  공격해 와 승부를 역전시
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즉시  칼을 비껴들고 앞으로 몇걸
음 나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영호형, 어떻게 되었소?]

  몇번 불러서야  영호충은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는...... 우리는 다시 싸우도록 합시다.]

  그러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버티려고 했다.  그러나 왼다리에 
맥이 풀리는 듯 다시 땅바닥에 쓰러졌다.
  전백광은 말했다.

  [그대는 틀렸소. 차라리 하루쯤 쉬고 내일쯤  나를 따라 산을 내
려가도록 합시다.]

  영호충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쳐서  땅에 대
고 몸을 이르키려고 하며 숨을 몰아 쉴 뿐이었다.
  전백광은 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한 걸음 다가가  팔을 잡고 
부축해 주었다. 그러나  그가 한 걸음 내딛게 되었을  때 일부러인
지 아니면 우연인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영호충의  장검을 밟았
고 오른손에는 칼을 든 채 자기  자신을 지켰으며 왼손으론 영호충
의 오른팔 혈도를  꽉 잡아 그로 하여금 어떤 간계를  펼치지 못하
게 했다.  영호충은 전혀 맥이 빠져  몸을 가눌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불쾌한 듯 버럭 소리쳤다.

  [누가 그대보고 나의 비위를 맞춰달라고 했소?]

  그는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풍청양은 미소했다.

  [그 방법으로 하룻밤 하룻낮을 얻어냈구나.  하지만 약간 비열하
고 몰염치하지 않으냐?]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비열하고 몰염치한  사람을 상대할 땐  어쩔 수 없이  비열하고 
몰염치한 방법을 써야 되죠.]

  풍청양은 정색했다.

  [정인군자를 상대한다면?]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져 물었다.

  [정인군자라니요?]

  풍청양은 두 눈을  형형히 뜨고 영호충을 노려보며  싸늘한 어조
로 물었다.

  [정인군자를 상대할 때는 어떻게 하지?]

  영호충은 말했다.

  [설사 그가 참된  군자라고 해도 만약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저
로서는 그의 손에  죽음을 당할 수 없는 노릇이죠.  부득이할 때는 
몰염치하고 비열한 수단을 조금 써보아야 되겠지요.]

  풍청양은 크게 기뻐 낭랑히 말했다.

  [좋다. 좋아! 네가  그같이 말하는 것을 보면 착한  척하는 위선
자는 아니구나. 사내대장부는 행함에 있어  하고 싶은 대로 해야한
다. 구름이 떠가고  물이 흐르듯 마음대로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무림의 규칙이나 문파의  계율이라는 것은 모두 개방구  같은 소리
다.]

  영호충은 빙그레 웃었다. 풍청양의 이  말은 그의 마음에 꼭든는 
말이라 듣기에 여간 통쾌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 사부로부터 목
숨을 버릴지언정 절대로  문규를 어겨서는 안 되고  화산파의 명성
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기에 사숙조의  그같은 말
에 공공연히 맞장구를  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착한  척하는 위
선자 운운하는  말은 바로 사부  군자검의 외호를 빚대어 하는  말 
같아 그저 빙그레 웃었을 뿐 그 말에 찬동하지는 않았다.
  풍청양은 비쩍 마른 손가락을 뻗어  영호충의 머리카락을 쓰다듬
으며 미소지었다.

  [악불군의 문하에 너 같은 인재가 있는 것을  보면 그 녀석은 안
식이 있는 셈이다. 전혀 쓸모없는 녀석이라고는 할 수가 없구나.]

  그가 말하는 그 녀석은 물론 악불군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는 영호충의 어깨를 툭툭치고 말했다.

  [네 녀석은 정말  내 마음에 든다. 자아, 우리는  독고대협의 제
일검과 삼검을 다시 연마해 보도록 하자.]

  그는 즉시  독고씨의 제일검을 설명했다. 영호충이  깨우치게 되
었을 때 다시  제삼검에 관계있는 변화를 설명하면서  시늉까지 해
보이는 등 세심히 가르쳤다. 뒷동굴에는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장
검들이 무척  많았다. 두 사람은  모두 화산파의 장검을  집어들고 
연습했다. 영호충은 열심히 기억을 했으며  모르는 곳에 이르면 질
문을 던지곤 했다.  이 날은 시간이 충분해서 검법을  배움에 있어 
전날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좋았다. 일검일식을 천천히  펼쳐 보이
며 상세히 논할 수 있엇따. 저녁밥을 먹은  후 영호충응 나두 시간
을 자고 다시 초식을 배웠다.
  이튿날 이른 아침 전백광은 전날 입은  상처가 가볍지 않다고 생
각했는지 소리쳐 싸우자고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뒷동굴에서 검법을  배우다가 오시 말 미시  초쯤 되었
을 때 독고씨의  제삼검의 여러가지 변화를 모조리  터득하기에 이
르렀다.
  풍청양은 말했다.

  [오늘 그를 이기지 못해도 상관이 없다.  하루낮 하루밤을 더 배
우게 된다면 어찌되었든 내일은 반드시 이기게 될 것이다.]

  영호충은 그 말에  대답하고 화산파의 선배가 남긴  장검을 힘주
어 잡고 천천히  동굴 밖으로 나갔다. 전백광은 벼랑가에  서서 멀
리 펼쳐져 있는  풍경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영호충은  짐짓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어, 전형은 아직 떠나지 않았소?]

  전백광은 말했다.

  [불초는 여기서 귀하를  기다리고 있는 참이외다. 어제  입은 부
상은? 오늘은 많이 나아지셨소?]

  영호충은 말했다.

  [뭐 그렇게  나을 것도 없소.  다리에 입은 상처는 아직도  심히 
아프다오.]

  전백광은 웃었다.

  [나는 그대에게  간계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대가  이 
같이 시치미를 떼고 약하게 보이려는 것은  나의 의표를 찌르고 공
격하겠다는 것이 아니오? 불초는 그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
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속았소.  이제 설사 깨우친다해도 때는 이미  늦었소. 
전형, 검을 받으시오.]

  호통소리와 동시에 그는 검을 뻗쳐 곧장  그의 가슴을 노리고 찔
러갔다. 전백광은  급히 칼을 들어  막으려고 했으나 허공을  치고 
말았다. 영호충의 제이검이 다시 찔러왔다.  전백광은 칭찬의 말을 
던졌다.

  [매우 빠르군!]

  그리고 칼을  비스듬히 치켜들어 막으려고 했다.  영호충은 제삼
검 사검을 번개같이 찔러내면서 입으로 부르짖었다.

  [더욱 빠른 것이 있소!]

  그러면서 오검  육검을 잇달아 펼쳐냈다. 공세가  하넌 펼쳐지자 
놀랍게도 이검이 일검에  이어졌고 이검이 앞의 일검보다  더욱 빨
라지면서 면면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독고검법의 정묘한 점
을 터득한 것 같았다. 독고구검은 앞으로 나가기만  할 뿐 뒤로 물
러서 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매 일검이 모조리  공격하는 초식
이었다.
  십여검이 펼쳐지자 전백광은 전전긍긍했다.  어떻게 초식을 받아
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영호충이 일검을  찌르면 그는 
한 걸음  물러서야 했다. 그가 십여  검을 찌를 때  전백광은 이미 
벼랑가로 밀려나  있었다. 영호충의 공세는 조금도  늦춰지지 않았
다. '휙휙휙' 하며 잇달아 사검을  찔러내게 되었는데 모두 급소를 
노린 것이었다.  전백광은 힘써 이검을 밀어냈으나  제삼검은 어떻
게 밀어낼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왼발을 뒤로 빼려고  했는데 그
만 허공을 딛게  되었다. 전백광은 드 뒤가 만장이나  되는 골짜기
이고 떨어지면 몸이 박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위기일발의 순
간 칼로 맹렬히  땅바닥을 내리쳤다. 그 기세를 빌어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영호충의  제사검은 어느덧 전백광의 목을  겨누고 있었
다. 전백광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영호충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검의 끝을 시종  그의 목에 겨누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전백광은 
노해 말했다.

  [죽이려면 죽이지 왜 우물쭈물 하오?]

  영호충은 오른손을 움추리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난 후 말했다.

  [전형이 일시 소홀한  틈을 타 소제가 기선을 제압한  것이니 실
력으로 이겼다고 할 수 없오. 우리 다시 싸웁시다.]

  전백광은 코웃음치고 칼을 휘두르며 폭우와  같은 공격을 펼치며 
부르짖었다.

  [이번에는 그대가  이득을 볼  수 없게  내가 먼저 공격을  하겠
소.]

  영호충은 그가  강철칼을 휘두르며 맹렬히  공격해오자 장검으로 
비스듬히 그의 아랫배를 찔렀다. 동시에  그 자신은 윗몸을 옆으로 
기울여 그의 칼날을 피했다. 전백광은  그의 일검이 빠르게 찔러오
는 것을 보고  질풍같이 칼을 되돌려 영호충의 검을  치려고 했다. 
자기 자신의  힘이 큰 만큼  영호충의 검과 자기의 칼이  ?琯饗“?
된다면 반드시 영호충의 장검을 튕기듯  날려보낼 것이라고 생각했
다. 그런데 영호충은 그 일검마다  선기를 제압하고 제이검 제삼검
을 끊임없이  펼쳐냈는데 일검마다  무섭고 정확했으며 검의  끝은 
시종 상대방의  급소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백광은 막을 수  없게 
되었고 부득이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십여초가 지나게 되었을 때 
재차 그는 벼랑가로  몰리게 되었고, 한 걸음만 뒷걸음질  쳐도 만
장의 깊은 골짜기로 떨어질 판이었다.  이때 영호충은 장검을 위에
서부터 아래로  베어 내려왔다. 그리하4여 전백광으로  하여금 칼을 
들어 상반신을 보호하도록 만들었다. 그  순간 왼손을 뻗쳐내 영호
충은 다섯 손가락  끝이 그의 가슴 전중혈에서 두 치도  되지 않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그 순간 그는 손가락에 뻗었던  힘을 내쏟지 
않고 손을 멈추었다. 전백광은 두번이나  그에게 전중혈을 짚힌 경
험이 있엇다. 이번에 다시 짚히게 되면 몸이  쓰러지게 될 때 땅바
닥으로 떨어지는게  아니라 깊은 골짜기로 떨어질  판이었다. 그런
데 영호충은 그저 손가락으로 그의 전중혈을  겨누고 있을 뿐 손을 
쓰지 않는 것으로 4보아 사정을 두고 있는  게 분명했다. 두 사람은 
잠시동안 대치해 있었다. 영호충이 뒤로 물러섰다.
  전백광은 바위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는  듯했다. 
그런데 그는 한소리 호통을 내지르더니  서둘러 공격을 해왔다. 단
숨에 강철칼을 위로 아래로 휘두르는데  그 기세는 몹시 위맹했다. 
이번에 그는 방위를  정확하게 겨냥하고 등을 산  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마음속으로 설사 영호충에게 공격을  받아 물러서게 된다 해
도 동굴 쪽으로 물러나 어떻게 하든  생사의 일전을 결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4
  이때 영호충은 그의  칼이 펼치는 여러가지 변화를  모조리 외울 
수 있었다. 그의 강철칼이 내려쳐지면  그는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
이면서 장검으로 그의 왼팔을 베어갔다.  전백광은 칼을 돌려 막으
려고 했다. 그 순간 영호충의 장검은 방향을  바꿔 왼쪽 허리를 찔
러갔다. 전백광은 왼팔과  왼쪽 허리는 간격이 한 자도  되지 않았
다. 갑작스럽게  칼을 돌려 허리를  보호하기에는 이미 늦어  있었
다. 부득이 오른쪽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영호충은  장검을 쳐들
어 올리며 그의  왼쪽 뺨을 찔러갔다. 전백광은 칼4을  들어 막으려
고 했으나 검의 끝은 갑자기 그의  왼쪽다리를 향해 찔러오지 않는
가? 전백광은 막을 수가 없어서 재차  오른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영호충은 잇달아 일검을 찔러냈는데 모두가  그의 왼쪽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한 걸음 또  한 걸음 오른쪽으로 물
러나게 만들었다.
  십여 걸음을 옆으로  물러나게 되었을 때 어느덧  전백광을 오른
쪽 벼랑가의 막다른 곳까지 몰아세울 수가 있었다.
  이곳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어서 뒤로 물러나는 것을  막고 있었
다. 전백광의 등이  그 바위??닿았다. 전백광은  칼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며 영호충의 장검이 어떠한 공격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았
다. 다음 순간  그의 귀에 '찍찍' 하는 소리가 잇달아  들렸다. 왼
손의 소맷자락과 옷자락 그리고 바지가랭이는  영호충의 장검에 의
해 잇달아 여섯번이나 찔리게 되었다.  이 육검은 한결같이 옷자락
에 구멍만 내었을  뿐 살갗에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
백광은 속으로 환히  내다보고 있었다. 이 육검 가운데  어느 일검
이라도 자기의 팔이나 발을 자르기에 충분했을  뿐 아니라 배를 찔
러 창자가 ?た윳돈?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렇
게 되자 삽시간에 좌절감을 느끼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왁' 하고 
한 모금의 선혈을 뿜어내게 되었다.
  영호충은 잇달아  세번이나 전백광을 제압한 것이다.  수일 전만 
하더라도 이 사람의 무공은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편이었다. 영호
충은 얼굴에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으나 속으론 미친  듯 
기뻐하고 있었다.  거기다 전백광이 입으로 선혈을  토하자 미안한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

  [전형, 승패란 흔히  있는데 그럴 것까지는 없지 않소?  소제 4역
시 그대의 손아래 여러번 지지 않았소?]

  전백광은 칼을 던지며 고개를 흔들었다.

  [풍 선배님의 검술은  이미 신의 경지에 도달했소.  당금 세상에
는 대적할 사람이  없을 것이오. 불초는 영원히 그대의  적수가 되
지 못할 것이오.]

  영호충은 그의 칼을 주워 두 손으로 건네주며 말했다.

  [전형의 말이 맞소.  소제는 요행으로 이겼을 분이며  풍 사숙조
께서 가르쳐 주신 덕택이죠. 그런데  풍 사숙조께선 한가지를 전형
에게 부탁했소.]

  전백광은 칼을 받지 않고 참담한 어조로 말했다.

  [전모의 목숨이  그대의 손에 달려 있는  이상 또 무슨  할 말이 
있겠소?]

  영호충은 말했다.

  [풍 사숙조께선  이미 은거하신 지  오래라 세상 일에  간섭하지 
않고 속인들이 번거롭게 구는 것을  좋아하지 않소이다. 전형이 산
을 내려간 이후라도 다른 사람에게 그  어르신의 일을 들먹이지 말
아 주었으면 고맙겠소이다.]

  전백광은 냉랭히 그 말을 받았다.

  [일검으로 나를 죽여 입을 봉한다면 더 깨끗하지 않겠소?]

  영호충은 뒤로 두 걸음 물러나며 검을 검집에 꽂았다.

  [전형의 무공이 나보다  뛰어날 당시 만약 한 칼로  나를 죽였다
면 어찌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소? 불초가 전형에게 우
리 풍 사숙조의 행적을 누설하지 말라고  한 것은 부탁이지 위협이 
아닙니다.]

  전백광은 말했다.

  [좋소, 내 응락하리다.]

  영호충은 급히 읍을 했다.

  [전형, 고맙소.]

  전백광은 말했다.

  [나는 며을 받들어 그대를 모시고  산을 내려가려고 이곳까지 왔
소. 그러나 이  일을 전모가 해낼 수 없게 되었지만  일은 끝난 것
은 아니오. 싸운다면 나는 한평생 그대를 이길  수 없을 것이나 이
대로 손을 떼지는 않을 것이오. 이 전모의  목숨이 붙어있는 한 끝
까지 해보겠소. 그러니 그대는 내가  영웅호걸의 행동을 안 한다고 
탓하지 마시오. 그럼 영호형, 다시 만납시다.]

  전백광은 포권을 하더니 몸을 돌려 떠나갔다.
  영호충은 그가 중독되어 있어 이번에 산을  내려가면 얼마 후 독
이 퍼져 죽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영호충은 그와  며칠간 악
투를 치른 끝에  전백광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다
음의 말을 하고 싶었다.

  [내 그대를 따라 산에서 내려가겠소.]

  그러나 자기는 사과애에서  벌을 받고 있는 몸이라서  사명이 떨
어지기 전에는 한  걸음도 떠나갈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사람은 
나쁜 짓만 저지르는 채화음적이 아닌가?  그를 따라 산을 내려가면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궁한 화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었다.
  그는 묵묵히  전백광의 뒷모습이  멀리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
다.
  영호충은 그가 산을 내려가자 즉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고 풍청양 앞에 엎드려 말했다.

  [사숙조께선 비단  이 사손의 목숨을  구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승의 검술을 전수해 주셨읍니다. 이  은덕은 영원히 보답하기 어
려울 것입니다.]

  풍청양은 미소했다.

  [상승검술이라, 상승검술이라, 허허허...... 아직도 멀었다.]

  그의 웃음에는 쓸쓸하고 외로운 감이 있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이 사손이  외람되게 사숙조님께 독고구검을 모조리  전수해 주
시기를 간절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풍청양은 말했다.

  [네가 독고구검을 배운 이후에 후회하지 않겠느냐?]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졌다.  장래 내가 왜 후회를  해야하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해 볼 때 짚히는 바가 있었다.

  (그렇다. 독고구검은 본문의 검법이  아니다. 사숙조께선 사부님
께서 이 일을  알고 나를 꾸짖지 않을까 염려하시는  것이다. 그러
나 사부님은 내가 다른 파의 검법을  섭렵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으
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옥(玉)을 공격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
다. 더군다나 나는  이미 석벽의 도형 가운데 적지 않은  항산, 태
산, 형산, 숭산 각파의 검법을 물론  마교 십장로의 무공까지도 배
웠다. 이  독고구검은 이처럼 신묘하니 무공을  배우는 사람으로선 
몽매에도 구하려는 절세의 묘기가 아닌가?  내가 만약 본문의 선배
님으로부터 전수받게  된다면 그야말로  다시 없는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생각을 한 그는 즉시 절을 했다.

  [이것은 이 사손이 한평생 다행스럽게  여기는 일로서 장래 고마
워할 뿐이지 결코 후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풍청양은 말했다.

  [좋다. 너에게 전수해 주마. 이  독고구검을 너에게 전수해 주지 
않는다면 몇년 후에는 영원히 이 검법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할 때  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무척  기쁜 모양
이었다.

  [전백광은 결코  이대로 물러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온다 해도 열흘이나 보름 후가 될  것이다. 너의 무공은 이미 
그를 능가하고 있고  음모가 간계에 있어서도 그보다  뛰어나니 영
우너히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제 시간이 충분하니 
처음부터 익히면서 기틀을 튼튼히 쌓도록 하라.]

  그리고 그는  독고구검 제일검의  총결식을 구결과 순서에  따라 
한 마디씩  해석해 주었다. 그리고  구결에 따르는 변화를  일일이 
전수해 주었다.
  영호충은 처음에는 구결을 억지로 외웠을 뿐  그 가운데 숨어 있
는 깊은  뜻을 알지 못했다.  지금 풍청양으로부터 시간의  여유를 
두고 지적을 받게 되자 시시각각 수준  높은 상승무학을 깨우칠 수 
있었고, 기이하고 오묘한 변화를 배울 수  있었다. 그는 너무나 기
쁜 나머지 탄성을 지르곤 했다.
  이리하여 한 쌍의 젊은이와 늙은이는  바로 사과애에서 독고구검
의 정묘한  겁법을 전수하고 전수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총결식으
로부터 파검식, 파도식,  파창식(破槍式), 파편식(破鞭式), 파색식
(破索式),  파장식(破掌式), 파전식(破箭式),.저구검  파기식(破氣
式)을 차례로 배우기에 이르렀다. 파창식은  장창, 대극(大戟), 사
모(蛇矛),  제미곤(齊眉棍), 낭아봉(狼牙棒),  백락간(白?桿),  선
창, 방편산,  기타 여러가지 기다란 무기를  깨뜨리는 방법이었다. 
파편식은 철편,  철간(鐵?), 점혈궐(點穴?), 괴자(拐子),  아미자, 
비수, 판장(板?),  철패(鐵牌), 팔각추(八角鎚), 철추(鐵椎)  등의 
짧은 무기를  깨뜨리는 초식이었다.  파색식은 장색(長索),  연편, 
삼철곤, 연자창,  철연, 어망, 비추유성(飛鎚流星)  등의 부드러운 
무기를 깨뜨리는  일초 일식마다  변화가 무궁무진했다.  배워가면 
갈수록 전후의 검식을 융합시켜 위력이 증대해갔다.
  나중에는 갈수록  더욱 더  배우기 어려워졌다. 파장식은  주먹, 
발길, 손가락,  손바닥으로 쓰는 무공을 깨뜨리는  방법이었다. 상
대방이 맨손으로  자기의 예리한  검과 싸운다면 상대방의  무공은 
지극히 높은 조예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잇을 것이며  손에 무기
를 들지 않았다고  해도 무기를 든 것과 별 차이가  없게 된다. 천
하의 검법, 퇴법, 지법, 장법은  복잡하지만 파장식은 장권단타(長
拳短打),  금나점혈(擒拿點穴), 응조호조(鷹爪虎爪),  철사신장(鐵
沙神掌) 등 여러가지  권각법의 무공을 모조리 깨뜨릴 수  있는 수
법이었다.
  파전식은 여러가지 암기를 총 망라하고  있었다. 이 방법을 연마 
할 때는 반드시  먼저 바람소리를 듣고 암기를 분간할 수  있는 수
법을 배워야 했다.  그래야 한 자루 장검으로 적이  쏘아대는 여러
가지 암기를 쳐서 쓰러뜨릴 뿐 아니라  상대방의 힘을 빌려 오히려
공격할 수 있고 적이 던진 암기를 되돌려  보내 적을 해칠 수가 있
었다.
  그리고 제구검 파기식을  익힐 때 풍청양은 구결과  연마하는 방
법을 말한 다음 설명을 덧붙였다.

  [이 식은 몸에  상승내공을 지니고 있는 적들을 상대할  때 사용
하는 것인데 신(神)이  맑아야 하며 오로지 정신으로  적을 제압해
야 한다. 독고  선배님은 과거 한 자루의 검을 지닌  채 천하를 횡
햐하였고 한번 패하고 싶었으나 패할  수 없었다. 이는 독고구검을 
출신입화(出神入化)의 경지까지  연마하였기 때문이다. 똑같은  화
산검법도 펼치는 사람에  따라 위력이 크게 달라졌는데  이 독고구
검 역시 마찬가지이다.  네가 설사 이 검법을 터득한다  해도 검을 
펼칠 때 검법이 순수하지 못한다면 역시  당금 천하의 많은 고수들
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너는  이에 입문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많이 이기고 적게  패하려고 한다면 다시  이십년 간 
고된 수련을 해야 할 것이고 그때는  천하의 영웅들과 한번 겨루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호충은 배우면 배울수록 구검의  변화가 무궁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동안 배워야  모든 오묘한 이치를 깨달을지  모른다고 판단했
다. 사숙조가 이십 년 간 고된 연마를  쌓아야 한다고 했으나 조금
도 놀랍거나 의아하게 여기지 않고 말했다.

  [이 사손이 만약  이십 년만에 독고 노선배님이 과거  이 구검을 
창안한 뜻을 모조리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크게 대견한 
일이 아니겠읍니까?]

  풍청양은 말했다.

  [너는 너무 겸손해 할 필요 없다.  물론 독고대협은 총명한 사람
이었다. 그의  검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터득할  오(悟)자에 있으
며 결코 억지로  기억한다고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이 
구검의 뜻을 완전히  통달하게 되어 마음대로 펼친다면  모든 변화
를 깡그리  잊어도 상관이 없다.  더군다나 적을 상대하게  되었을 
때는 깨끗하고  철저하게 잊어 검법의  구속을 받지 않아야  한다. 
너는 자질이  무척 뛰어나 구검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인재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당금 세상에는 대단한 영웅이  있다고는 허
허허...... 아마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후 너는  열심히 무공
을 익히도록 해라. 나는 이제 가 봐야겠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물었다.

  [사숙조, 어르신께선...... 어디로 가시려고 합니까?]

  풍청양은 말했다.

  [나는 뒷산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미 수십 년을 거기서  살아 왔
다. 며칠 전 나는 일시적인 기분으로 동굴을  나와 너에게 이 같은 
검법을 전수하게  되었다. 이것은 독고 선배의  절세무공이 사라지
지 않도록 하자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어찌 돌아
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원래 사숙조께선 뒷산에서 거주하고 계셨군요.  그거 잘 되었읍
니다. 이 사손이 조석으로 받들어  모시며 사숙조님의 외로움을 달
래 드리겠읍니다.]

  풍청양은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이제부터 나는 다시는 화산파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겠다. 너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영호충은 크게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자 풍청양은 부드
러운 어조로 말했다.

  [충아, 나는 너와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마음도 서로 통한
다. 말년에 너같이 훌륭한 자제에게  나의 검법을 전수했으니 나는 
말할 수 없이  기쁘다. 너의 마음속에 이 사숙조가  존재하는 걸로 
나는 만족한다. 네가 나를 찾아 온다면 내가 난처해진다.]

  영호충은 마음이 쓰라렸다.

  [사숙조, 그것은 또 무엇 때문입니까?]

  풍청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는 나의 일에 대해서 사부에게도 말해선 안 된다.]

  영호충은 눈물을 머금고 대답했다.

  [알겠읍니다. 사숙조님의 분부를 받들겠읍니다.]

  풍청양은 가볍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는 역시 착하다. 착해!]

  그리고 몸을  돌리더니 벼랑 아래로 내려갔다.  영호충도 벼랑가
까지 배웅했다. 비쩍마른 뒷모습이 표연히  사라진 이후 그는 슬픔
이 북받쳐오르는 것을 느꼈다.
  영호충은 풍청양과 십여 일 간 지냈을  뿐이며 그와 이야기를 나
눈 것은 모두  검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풍모는 영호충
으로 하여금  우러러보게 했다. 그는  친근감을 느꼈고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을 느꼈다. 풍청양은 그보다 항렬이  두 단
계나 높은 사숙조이지만  영호충은 같은 항렬의 지기를  만난 듯했
고 늦게 만나게  된 것이 한스럽게 생각되었다. 은사  악불군 보다
도 더욱 풍청양 사숙조에게 정이 갔다.

  (이 사숙조의 젊었을  때 성격은 아마도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하늘과 땅이 무서운  줄 모르고 멋대로 일을  처리하는 성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검법을 가르칠 때 언제나 사람이  검법을 사
용하는 것이며,  검법이 사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으며 
사람은 살아 있는  것이고, 검법은 죽은 것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검법에 구속되어선 안  된다고 하셨다. 이 도리야말로 
천번 만번 옳은 말씀이 아닌가?  그런데 사부님께서는 어째서 한번
도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그는 잠시 생각해 본 이후 결론을 내렸다.

  (이 도리를 어찌  사부께서 모르고 계시겠는가? 다만  나의성격
이 멋대로여서 내가 그 같은 도리를  듣는다면 내가 멋대로 놀아나
고 검법을  함부로 익혀서  규칙에 따르지 못할까봐  염려하셨을테
지. 이후 검술을  어느 정도 성취하게 된다면 사부는  자연히 설명
을 해주실 것이다. 사제와 사매들은  무공의 조예가 부족하니 상승
의 검리(劍理)를  모르고 있다. 그들에겐 말해봐야  헛소리에 불과
하니 말씀하시지 않을 게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사숙조의 검술은 이미 출신입마의  경지에 도달하셨으니 애석하
게도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지 못해  나의 시야를 넓히지 못했구나! 
안타깝구나! 어찌 되었든 사숙조의 검법이  사부님보다 한수 더 높
은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는 풍청양의 얼굴이 병색을 띄고 있음을 상기했다.

  (이 십여 일  동안 그는 때때로 한숨을 불어내곤 했다.  매우 슬
픈 일이 있는 모양인데 어떤 일인지 모르겠구나.)

  그는 장검을 들고 나와 검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연마한 이후  아무렇게나 일검을  펼쳤다. 놀랍게도  화산검파의 
유봉래의가 아닌가?  그는 어리둥절해졌으나 곧 고개를  흔들며 쓰
디쓰게 웃었다. 그리고 중얼거리 듯 말했다.

  [틀렸다.]

  곧이어 그는 다시 연마를 했다.  얼마후 아무렇게나 휘두른 일검
은 역시 유봉래의였다. 그는 울화가 치밀어 생각했다.

  (나는 본문의 검법을 익숙하도록 연마했기  때문에 이미 내 마음
속에 뿌리 깊은 인상을 남겨 놓았다. 검을  펼칠 때 조금이라도 정
신을 팔게 된다면 익숙해진 본문의 검초가  섞이게 되니 이것은 결
코 독고검법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별안간 번개같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사숙조께선 내가 펼칠 때 반드시  마음으로 머뭇거리지 말고 순
리대로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본문의 검법을 펼친다고 안 
될 것이 뭐가 있는가? 심지어 형산 태산의  여러 검법과 마교 십장
로의 무공을 그  가운데 쓴다고 해서 안 될 것도  없다. 만약 억지
로 구분하여 어떤 검법을 펼칠 수 있고  어떤 검법은 펼칠 수 없다
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고지식하게 구속을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후 그는 임의로 초식을 펼쳐냈다.  순조롭게 펼쳐질 때는 본문
의 검버은 물론이고 석벽의 여러가지  초식도 섞여 펼쳐졌다. 그는 
매우 재미가 났다.  그러나 오악검파의 검법은 각기 다를  뿐만 아
니라 마교 십장로의 무공은 더욱 다른  몇개의 문파의 무공으로 이
루어져 있었다. 따라서  그같이 많은 수법이 다른 무학을  한 덩어
리로 융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는 한참 동안 연마했으
나 시종 융화시킬 수 없었다.

  (한 덩어리로  융화시키지 못한다면  또 어떻단 말인가?  억지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어떤  초식이건 분별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검초
를 독고구검 가운데  섞어 넣었다. 그런데 이리저리 펼쳐  본 결과 
유봉래의를 펼칠 때가  가장 많았다. 다시 한동안 휘두른  후 아무
렇게나 일검을 찔러내자  그 일초 역시 유봉래의 였다.  그는 생각
했다.

  (소사매는 내가 유봉래의를 이렇게 펼치는  것을 보고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구나.)

  그는 검을  쳐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이  며칠 동안 그는  검 술 연마에만 매진하고  있었다. 
꿈 속에서도  생각나는 것은 독고구검의 여러가지  변화였다. 이때 
갑자기 그는  악영산을 생각하게  되었고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을 
좀처럼 억제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그녀는 아직도 몰래  임 사제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는 것일까? 
사부님의 명령이 엄하긴하나 소사매는 퍽  대담하고 사모님의 총애
를 받고 있다.  어쩌면 검법을 다시 가르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설사 가르치지 않는대도  조석으로 만나는 두 사람의  사이는 더욱 
좋아졌을 것이다.)

  점차 그의 표정이 쓰디쓰게 이그러졌다.
  그는 의기소침해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이때 육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사형! 대사형!]

  부르는 소리는 무척 다급했다.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아차! 야단났구나! 전백광  그 녀석이 나의 손에 패해  산을 내
려갈 때  끝까지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를 이기지  못하자 
소사매를 사로잡아가 협박을 하려는 게 아닐까?)

  급히 벼랑가로 다가가 보니 육후아가  밥바구니를 들고 달려오며 
다급하게 부르짖는 것이었다.

  [대...... 대사형! 대...... 대사형! 큰...... 큰일 났소!]

  영호충은 더욱 초조해져 재빨리 물었다.

  [무슨 일이지? 소사매가 어떻게 되었나?]

  육후아는 벼랑 위로 올라와 밥바구니를 벼랑 위에 놓고 말했다.

  [소사매? 소사매는 아무  일도 없다오. 그런데 내가 볼  때 사태
가 심상치 않소.]

  영호충은 악영산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말을 듣자  마음을 놓으
며 말했다.

  [무슨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인가?]

  육후아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사부와 사모님께서 돌아오셨소.]

  영호충은 그를 꾸짖었다.

  [쳇! 사부님과  사모님께서 돌아오셨다면 좋은 일  아닌가? 어째
서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인가? 터무니없는 소리!]

  육후아가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대사형께선  모르시오! 사부님과  사모님께서 
돌아오신 이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숭산, 형산, 태산의 고수들이 
찾아 왔소!]

  영호충은 말했다.

  [우리 오악검파는  연맹을 맺고 있으니 숭산파에서  사부님을 찾
아뵙는 것도 가능한 일이 아니냐?]

  육후아는 말했다.

  [아 아니오...... 대사형은 모르시오. 그들과  함께 따라온 사람
이 세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우리 화산파의 사람이라고  했소. 그
런데 사부님께선 그들을 사형이나 제자라고 부르지 않는다오.]

  영호충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어? 그 세 사람은 어떻게 생겼던가?]

  육후아는 말했다.

  [한 사람은 5얼굴이 싯누랬으며  성명은 봉불평(封不平)이라고 하
였소. 그리고 한  사람은 도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난장이인데 모
두 다 부(不)자 배분의 사람들인 것 같았소.]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본문의  반도로서 일찌기 우리 문파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아닐까?]

  육후아는 말했다.

  [그렇소. 대사형의  짐작이 맞소. 사부님께선 그들을  보시자 매
우 언짢게 여기며  말씀 하셨소. '봉형 그대들 세 분은  이미 화산
파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또 화산으로  올라왔
소?' 그러자 그5  봉불평이라는 사람이 말했죠. '화산을  그대 악사
형이 샀소?  남이 산 위로  오르는 것을 막다니요. 아니면  황제가 
그대에게 내리신 땅이라도 되오?' 이에  사부님께선 살며시 코웃음
치며 응수하셨소.  '흥! 여러분들이 화산으로 놀러  왔다면 그대들 
마음대로 해도 좋으나 이 악불군은 그대들의  사형이 아니니 악 사
형이라는 세  자는 그대로  돌려 드리리다.' 그러자  봉불평이라는 
사람이 말했소.  '과거 그대의  사부가 음모와 간계로  화산일파를 
억지로 차지하게 되었소.  이 묵은 빛을 오늘  따져봐야겠소. ?榴?
가 나에게 악 사형이라고 부르지 말라면  흥! 흥! 나중에는 그대가 
땅바닥에 끓어  엎드려 나에게  한번 더 불러달라고  애걸하더라도 
나는 부르지 않을 것이오.']

  영호충은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사부님께선 정말 귀찮은 일을 당하시는가보다!)

  육후아는 말했다.

  [우리 제자되는 사람들은 그 같은 말을  듣자 모두 화가 났지요. 
소사매가 가장 먼저 욕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모님께선 이
번만큼은 성질을  참으시는 듯했으며  소사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사부님은5 그 세사람을  마음에도 두지 않는  듯 
말씀하셨죠. '그대가 빚을  갚겠다고? 어떤 빚을 갚아?  어떻게 갚
는다는 것인가?' 그러자  봉불평은 큰 소리로 말했죠.  '그대가 화
산파 장문의 지위를 찬탈한 지 이미  이십여 년이 되었으니 오늘까
지 실컷 해 먹었지 않았소? 그러니 이제  마땅히 양보해야 할 것이 
아니겠소?' 사부님은 웃으셨소. '여러분이 떼를  지어 화산으로 달
려온 것은 알고  보니 불초의 장문 자리를 빼앗겠다는  것이군! 그
거야 뭐 대단할 것이 있소? 봉형이 만약  이 장문자리를 차지할 자
격이 있다5면 불초는  마땅히 양보해 드리리다.' 그러자  그 봉불평
은 말했죠. '과거 그대의 사부가 음모와  간계로 본파 장문의 지위
를 찬탈한 사실에 대해 오악검파의  좌맹주께서는 묵과하지 않으셨
소. 그  분은 영기를 보내시어  화산파의 장문을 교체하라고  하셨
소.' 그러면서 그는  품 속에서 한 자루의 조그만 깃발을  꺼내 펼
쳤어요. 정말 오악령기였다오.]

  영호충은 노해 부르짖었다.

  [좌맹주는 너무  지나치시군! 우리  화산파의 일을 그가  간섭할 
까닭이 어디  있어? 그가 무슨  권력을 가졌기에 화산파의  ?亮??
폐하고 세우는 것이지?]

  육후아는 말했다.

  [바로 그거외다.  사부님께서도 그 당시 그와  같이 말씀하셨소. 
그러나 숭산파의 늙은이  선학수 육백은 애써 봉불평의  뒤를 밀어 
주는 것이었소.  그리고 화산파의 장문은  마땅히 그 봉가가  해야 
된다고 하면서 사모님과 언쟁을 벌였죠.  태산파와 형산파의 두 사
람도 정말 울화가 치밀게 만들더군요.  역시 봉불평과 한 패거리였
소. 그들 세 파는 한 통속이 되어  화산파를 괴롭히려고 온 것이외
다. 다만  항산파에서만 참가하지  않았읍니다. 대...... 5 대사형, 
저는 사태가 심상치  않아서 재빨리 달려와 대사형께  알린 것입니
다.]

  영호충은 부르짖었다.

  [사문에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 제자되는 사람은 한  가닥 숨만 
붙어 있다면 사부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한다.  여섯째 사제, 
가세.]

  육후아는 말했다.

  [옳아요. 사부님께선  대사형이 사부님을  위해 손을 쓰는  것을 
보면 벼랑 아래로 내려왔다고 꾸짖지 않으실 거예요!]

  영호충은 나는 듯 벼랑 아래로 내려가며 말했다.

  [사부님께서 꾸짖으셔도 상관 없어. 사부님은  예의 바른 5군자시
니 남과 다투는  것을 싫어하셔. 어쩌면 정말 장문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 줄지도 모르지. 그러면 큰일 아닌가?......]

  그는 경신법을 펼쳐 질풍같이 달렸다.
  영호충은 한참 달려갈 때 맞은편 언덕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영호충! 영호충! 그대는 어디 있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그 누가 나를 부르시오?]

  그러자 몇 사람이 일제히 외쳤다.

  [그대가 영호충인가?]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소!]

  별안간 두 사람의 모습이 흔들하더니  길 앞을 막아섰다. 산길은 
매우 ?何老杉? 바로 옆은 만장이나 되는  깊은 골짜기였다. 두 사
람이 느닷없이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영호충은 하마터면 부딪칠뻔 
했다. 그들  두 사람의 얼굴은  울퉁불퉁했으며 주름이 잔뜩  잡혀 
있어 무척 흉칙했다. 깜짝 놀란 영호충은 뒤로  일장 정도 몸을 날
리며 호통쳤다.

  [누구시오?]

  그런데 등 뒤에도  추하기 이를데 없는 두 얼굴이  보였다. 뚱뚱
했으며 얼굴엔 잔뜩  주름이 져 있었다. 그들은 영호충과  반 자도 
되지 않는 곳에  있었으며 두 사람의 코가 그의 코와  맞닿을 정도
였다.
  영호충은5 다시 깜짝 놀라서 옆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고 
보니 산길 아래의  낭떠러지 끝에 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이 두 
사람의 모습도 다른  네 사람처럼 흉칙했다. 별안간 여섯  명의 괴
인을 만나게 되자 영호충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삽시간에 여섯  명의 괴인들에 의해 석 자도 되지  않는 산
길에서 에워싸였다. 그들은  점차 가까이 다가왔다. 앞쪽의  두 사
람의 숨결이 곧장 그의 얼굴에  뿜어질 정도였다. 뒷덜미에도 뜨거
운 김이 훅훅  뿜어지는 것이 뒤의 두 사람 역시  가까이 다가왔음
을 알 수  ?羚駭? 그는 재빨리 손을 뻗쳐 검을  뽑아들려고 했다. 
그런데 손가락이 검자루에 닿는 순간 여섯  명의 괴인들은 반 걸음
씩 내딛어 한복판으로 밀려왔다. 그들은  영호충을 꼼짝 못게 몸으
로 밀어 붙였다. 이때 육후아가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이것 봐요! 이것 봐요! 당신들은 무엇하는 사람들이오?]

  아무리 영호충이  임기웅변에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이  찰나 
만큼은 놀란 나머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 여섯 명의 괴인은 
도깨비 같기도 했고 유령 같기도 했다. 얼굴  모습이 흉칙할 뿐 아
니라 행5동마저도  이상야릇했다. 영호충은 두 팔을  바깥쪽으로 힘
주어 밀어내면서 앞에  선 두 사람을 밀치려고 했다.  그러나 두팔
은 두  사람의 몸에 밀착되어  있어 조금도 바깥쪽으로 밀어낼  수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반드시 봉불평과 한패거리의 악당들일 것이다.)

  이때 전신이 바짝  조여왔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네 
사람의 괴인이 더욱 더 몸을 붙여온 것이었다.  바짝 붙여 오자 영
호충의 뼈마디에선  '우두둑'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 영호충
은 감히  눈 앞 괴인들의 흉칙한  모습을 바5라볼 수  없었다. 급히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뾰족한 음성이 들려왔다.

  [영호충! 우리는 너를 한 젊은 여승에게 데려가려고 한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알고보니 전백광이라는 녀석과 한패거리였구나!)

  그는 말했다.

  [당신들이 날  놔주지 않는다면  나는 자살을 하겠소.  영호충은 
죽는다 해도......]

  그의 두 팔이  조여졌다. 그의 팔을 움켜쥔 손은  마치 쇠갈고리
와 같았다.  영호충은 헛되이 독고구검을  배웠을 뿐 일초  반식도 
펼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야단났다'고  부르짖을 때5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착하디 착한  여승이 너를 보고  싶어한다. 말을 잘 들으면  너 
역시 착한 사람이 된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죽으면 좋지 않아. 만약 그대가 자살을  하게 된다면 나는 그대
에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큰 고통을 내리겠다.]

  먼저번의 그 사람이 말했다.

  [사람이 죽어버리고  없는데 네가 어떻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고통을 내릴  수 있다고 그러지? 그런  말을 하면 그가  놀라지 않
아?]

  먼저번의 사람이 말했다.

  [나는 그에게  겁을 주려는  거야. ?苛?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
니?]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내 생각엔  그에게 권고하여 말을  잘 듣도록 타이르는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러나 먼저 말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겁을 주겠다고 했으니 겁을 주어야겠다.]

  다른 한 사람은 말했다.

  [아니야! 권고해야 한다!]

  그들은 서로 언쟁을 벌이며 티격태격했다.
  영호충은 놀라는  한편 울화가 치밀었다. 그들이  그같이 입씨름
을 하는 걸 보고 그는 생각했다.

  (이 여섯 명의 괴인은 무공은 고강하지만 우둔한 것 같다.)

 5 그는 큰 소리가 부르짖었다.

  [겁을 주어도  좋고, 권고해도 좋소!  그대들이 나를 놓아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혀를 깨물고 자살하고 말겠소!]

  그 순간 갑자기 두 뺨이 아파왔다. 어느덧  괴인들이 그의 두 뺨
을 움켜 잡은 것이다. 그러자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려 왔다.

  [이 녀석은 무척 뻔뻔스럽군! 혀를 깨물어  말을 못하게 되면 그 
젊은 여승이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야!]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혀를 깨물고 죽었는데 어찌 말만 못하겠는가?]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꼭 죽는?鳴煮?할  수 없어. 믿을 수 없으면 네가  혀를 깨물어 
보렴.]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죽는다고 했다. 그러니 네가 깨물어 보렴.]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내가 왜 내 혓바닥을 깨물어? 아 되었다.  저 녀석 보고 깨물도
록 하면 되겠군!]

  다음 순간 육후아가 '아' 하는 큰 소리를  냈다. 아마도 그 괴인
들에게 붙잡힌 모양이었다. 곧 한 사람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너의  혓바닥을 깨물어봐라. 죽는지 아니면  죽지 않는지, 
깨물어! 빨리 깨물어! 깨물어!]

  5육후아가 말했다.

  [나는 깨물지 않겠소! 깨물면 반드시 죽게 되오!]

  한 사람이 말했다.

  [맞아! 혓바닥을 깨물면  반드시 죽게 돼! 그도 그와  같이 말하
고 있잖아?]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그가 죽은 것도 아닌데 그 말을 믿을 수는 없는거야!]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그가 혓바닥을  깨물지 않았으니  죽지 않았지. 깨물기만  하면 
죽는거야.]

  영호충은 두  팔에 힘을 주어  떨쳐내려고 했다. 그런데  손목이 
부러질 듯 아파올 뿐 조금도 상대방을 밀쳐낼  수 없었다. 그는 다
급5한 김에 큰  소리를 낸 후 기절한 척 가장했다.  여섯 명의 괴인
들은 일제히 부르짖었다. 그리고 영호충의  뺨을 쥐고 있던 사람도 
물러섰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이 사람은 놀라 죽었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놀라 죽지는 않았을거야! 그렇게 쓸모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설사 죽었다 해도 놀라서 죽은건 아닐거야.]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은 걸까?]

  육후아는 정말 대사형이  그들의 손에 죽은 줄  알고 대성통곡을 
했다.
 5 한 사람의 괴인이 말했다.

  [나느 그가 놀라 죽었다고 했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네가 너무 힘껏 쥐어서 죽은 거야. 놀라서 죽는 사람은 없어!]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죽었을까?]

  영호충은 큰 소리로 말했다.

  [내 스스로 경맥을 폐쇄하여 자살했다!]

  여섯 명의 괴인들은 그가 말을 하자  깜짝 놀라더니 일제히 말했
다.

  [아, 원래 죽지 않았구나! 그는 죽은 척한거야!]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죽은 척한 게 아니다. 죽은 다음 다시 살아난 것이5오.]

  한 괴인이 말했다.

  [그대는 정말 경맥을 스스로 폐쇄할 줄  아는가? 그 무공은 연마
하기가 퍽 힘들다는데 그대가 나에게 좀 가르쳐 주지 그래.]

  그러자 다른 한 명의 괴인이 말했다.

  [그 경맥을 스스로  폐쇄하기는 심히 어려워요. 이  녀석은 알지 
못할거야. 그는 너를 속이는 거야.]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모른다고 누가  그러시오? 내가 모른다면 조금  전 어떻게 
경맥이 폐쇄되어 죽었겠소?]

  그 괴인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건...... 그건...... 좀 이상하군!]

5  영호충은 이 여섯  괴인이 무공은 무척 고강하나  두뇌는 우둔하
다는 것을 알고 다시 말했다.

  [당신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경맥을  폐쇄하여 죽을 
것이오. 이번엔 다시는 살아나지 않을 것이오.]

  그의 손목을 잡고 있던 두 괴인은 대뜸 손목을 놓으며 말했다.

  [그대는 죽으면 안 돼! 죽으면 큰일이 나!]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죽지  않을테니 당신네들은  길을 비키시오. 중요한  일이 
내게 있소.]

  그의 앞을 가로막았던  두 사람은 고개를 일제히  왼쪽으로 흔들
었다가 오른쪽5으로 흔들며 말했다.

  [안 돼! 안 돼! 그대는 나를 따라가 젊은 여승을 만나봐야 돼.]

  영호충은 눈을 뜨고  몸을 솟구쳐 그들의 머리를  뛰어 넘으려고 
했다. 그런데  두 괴인은 동시에  그를 따라 뛰어오르는데  동작이 
기이하도록 빨랐다.  두 사람의 몸뚱이는 날아다니는  담장처럼 재
차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영호충은 두 괴인의 몸과 부딪쳐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몸이 헉허공에  떠올랐을 때 검자루를 쥐고  팔을 바깥쪽으
로 뻗치며 검을 뽑으려고 했다.  그런데 별안간 어깻죽지가 무거워
5졌다. 그의 등  뒤에 두 괴인이 각기 한손을 밀어  그의 어깨를 잡
은 것이었다. 그의  장검은 칼집에서 겨우 한 자  정도 뽑혀졌는데 
더 이상은 뽑혀지지 않았다.
  그의 어깻죽지를 누르고  있는 힘은 수백 근이나  되었기 때문에 
그는 쭈그려 앉았다가 급기야 엎어지고 말았다.
  괴인들은 그를 쓰러뜨린 후 일제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떠메고 가세.]

  그러자 앞에선 이괴(二怪)가  각기 발목을 잡고 그를  덜렁 들어 
올렸다. 육후아가 소리쳤다.

  [이것 봐요! 이것 봐요! 당신들은 무엇하자는 것이요?]
5
  한 괴인이 말했다.

  [이 녀석은 왜 말이 많지? 죽여 버려!]

  그리고 손을  육후아의 정수리를  내려치려고 했다. 영호충은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죽이면 안 되오! 죽이면 안 되오!]

  그러자 그 괴인은 말했다.

  [좋아. 네 녀석의 말대로 죽이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의 아혈을 
짚어 말을 못하게 해야지.]

  그는 몸을 돌리지  않고 손을 뒤로 돌려 '찍' 하는  소리와 함께 
육후아의 아혈을 짚었다. 육후아는 한참  부르짖고 있었다. 그러나 
'아' 하는 소리를 지르고는 말을 하지 못했다.  누가 ??개의 가위
로 그가 부르짖는 소리를 잘라 놓은 것  같았다. 곧이어 그의 몸뚱
아리는 한 덩어리로 움츠러 들었다.  영호충은 그 괴인의 점혈수법
이 정확하고 고강한지라 흠모하는 마음이 일어 칭찬했다.

  [훌륭한 무공이군!]

  그 괴인은 의기양양해 웃었다.

  [이게 뭐가 대단해?  나에겐 많은 무공이 있는데  그대에게 몇가
지 보여주기로 하지.]

  만약 평소였다면  영호충은 구경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은 사부님의  안위가 걱정되어 초조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부르짖었다.

  [?망?않겠소!]

  그 괴인은 노해 말했다.

  [어째서 보지 않겠다는 것인가? 나는 반드시 보여줘야겠다.]

  몸을 훌쩍 날려  영호충을 잡고 있는 네 괴인의 머리를  뛰어 넘
었다. 몸은 허공에서 비스듬히 수평이 되어  앞으로 나갔다. 그 모
습은 날렵한  제비와 같았고 그  자세의 미묘함은 형용할 수  없었
다.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칭찬의 말을 했다.

  [훌륭하오!]

  그 괴인은 가볍게  땅에 내려섰는데 먼지 하나  피어오르지 않았
다. 괴인은 몸을  돌리더니 말처럼 기다란 얼굴에 잔뜩  웃음을 띄
우고 ?뽀杉?

  [이것은 별 게 아니야! 더욱 좋은 것이 있다고!]

  이 사람의 나이는 적어도 육칠십은 돼  보였는데 성격은 마치 어
린애와 같았다. 남의  칭찬을 받자 좋아 어쩔줄  모르는 눈치였다. 
무공의 고명함과 심후함은 두뇌의 유치함이나  천박함과 전혀 어울
리지 않았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사부님과 사모님은 지금 한찬  대적(大敵)들에게 에워싸여 난처
한 지경에 놓여  있겠지? 거기다 상대방은 숭산 및  태산파의 고수
들의 도움도 받고  있으니 내가 달려가도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것
이다. 이  괴?琯湧?꼬드겨 사부님과 사모님의  위기를 타개해야겠
다.)

  그는 즉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당신들의 재간을 이곳에서 자랑하기엔 아직도 멀었소.]

  그 사람은 말했다.

  [뭐가 아직도 멀어? 그대는 우리들에게 잡히지 않았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화산파의 무명소졸이니 나륵띵 잡는  것은 쉬운 노릇이오. 
지금 이 산에는 태산, 형산, 숭산, 화산의  각파 고수들이 모여 있
는데 당신들이 어찌 감히 그들을 건드릴 수 있겠소?]

  그 사람이 말했다.

  [건드리면 건드리는  거야!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고?  그들은 어
디 있지?]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내기에서  젊은 여승을 이겼고  그 젊은 여승은  우리들 
보고 이 녀석을  잡아오라고 했지. 우리 보고 숭산이나  태산의 고
수들을 잡아오라고 하지는 않았어. 한번  이겼을 때마다 한번의 부
탁을 들어줘야지,  여러가지의 일을  해주면 손해가 크단  말이야. 
우리는 그냥 돌아가자.]

  영호충은 약간 마음이 놓였다.

  (원래 이들은 의림 소사매가 보낸 것이니  나의 적이 아니다. 이
들은 내기에  져서 나를 잡으러  온 것인데 호승심이 강해  내기에 
이겼다고 하는군!)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았소. 그 숭산파의  고수는 말했소. '귤껍질 같은  얼굴 가죽
에 말상을  한 늙은 괴물들을  나는 업수이 여기며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는 즉시 손을  뻗쳐 그들을 마치 개미처럼  눌러 죽이겠다.' 
라고 했소. 그러나 그 여섯 며의 괴인들은  그 소리만 듣고도 도망
을 쳐버리니  그 숭산파의 고수가  어떻게 그들을 찾아낼 수  있겠
소?]

  여섯 명의 괴인들은 그 소리를 듣자  울화가 치미는 듯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그리고  영호충을 떠메고 가던 네 괴인도  너 한 
마디 나 한마디씩을 하며 나섰다.

  [그 사람들이  어디 있지? 우리를  안내해라. 그들과 한번  겨뤄 
봐야겠다.]
  [뭐가 숭산파  태산파야? 도고육선(挑谷六仙)은 정말  그들을 안
중에 두지 않아. 그 사람은 간이  부었군! 우리들을 개미처럼 눌러 
죽이겠다고?]
  [그대들은 도곡육선이라고  자칭하지만 그는 말끝마다  그대들을 
도곡육괴(挑谷六?)라고 했으며 어떤 때는  도곡의 여섯 꼬마들이라
고 불렀소. 그러니  육선이라는 분들, 내가 권고하건대  일찍 피하
는게 좋을거요.  그 사람의 무공은  굉장히 무서워서 당신들도 그 
사람을 이기지 못할 것이오.]

  한 괴인이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안 되겠어! 안 되겠어! 곧장 가서 결판을 내야겠어!]

  다른 한 괴인이 말했다.

  [내가 보기에 상태가 심상치 않은걸? 그  숭산파의 고수가 큰 소
리치는 것으로 보아 놀라운 기술이  있는가봐! 그가 우리를 도곡의 
여섯 꼬마라고 한 것을 보면  틀림없이 우리들의 선배일꺼야. 그렇
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를 이길 수 없을거야.  한 가지 일이 많아지
는 것은 한 가지 일이 없어지는 것보다  나빠. 우리들은 빨리 돌아
가야 돼.]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여섯째 아우는 가장  담이 적군! 싸워보지도 않고  그가 이긴다
고 하면 안 되지. 암! 안 되고말고!]

  그러자 그 괴인은 말했다.

  [만약 그가  우리들을 개미처럼 눌러 죽인다면  운수사나운 일이 
아니겠어? 싸운  이후 그에게  눌려 죽게  되면 어떻게 도망을  치
지?]

  영호충은 속으로 우스꽝스러웠으나 입을 열었다.

  [맞았소. 그대들은 빨리 도망치시오. 그  사람이 소문을 듣고 찾
아온다면 그대들은 도망칠래야 칠 수가 없을 것이오.]

  그 담이 적은  괴인은 그 말을 듣자나는 듯  달렸다. 그리고 눈 
깜짝 할 사이에 종적을 감추었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생각했다.

  (저 사람의 경신법은 정말 뛰어나구나!)

  그러자 한 괴인이 입을 열었다.

  [여섯째 동생은  겁이 많으니 도망치게  내버려 두고 우리는  그 
숭산파의 고수를 한번 만나보자구!]

  곧이어 네 괴인도 덩달아 부르짖었다.

  [갑시다! 도곡육선은 천하무적인데 어지 그를 두려워하겠소?]

  한 괴인이 영호충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가 주라.  그가 어떻게 우리를  개미처럼 
눌러 죽이는지 봐야겠어.]

  영호충은 말했다.

  [그대들을 그곳으로  안내하는 건 상관없지만 이  영호충은 당당
한 사내대장부로 결코  남의 협박을 받기 싫소. 나는  그 숭산파의 
고수가 그대들을 크게  비웃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아니꼬운 생
각이 들었다오.  그대들 여섯분의 무공이 고강하여  나는 마음속으
로 탄복하고 있다오.  하지만 그대들이 사람 수가 많은  것을 믿고 
억지로 나에게  이것해라 저것해라  시킨다면 이 영호충은  절대로 
그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오.]

  다섯 명의 괴인은 동시에 손뼉을 치며 부르짖었다.

  [매우 좋아!  그대는 뼈대가 있고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 
우리 여섯 형제의  무공이 고강한 것을 알아보니  우리도 탄복하는 
바일세.]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다면 난 그대들을  데리고 가겠소. 그러나 그를  만났을 때 
쓸데없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아무렇게나  일을 처리해선 안 되
오. 그러면  무림의 영웅호한들은  도곡육선이 천박하고  유치하며 
세상일을 모른다고 비웃게 될 것이외다.  모든 점에서 나의 지시를 
따르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은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것이오. 창피막심하게 된다면 좋지 않죠.]

  그는 그들의 의도를 알아보려고 그런  말을 했다. 그런데 오괴는 
그 말을 듣고 무작정 응낙하고 나섰다.

  [그거야 더 말할 나위도 없어. 우리는  결코 남이 도곡육선을 천
박하고 유치하며 세상  일을 모른다고 말하도록 함부로  까불지 않
을거야.]

  아마도 천박하고  유치하고 세상일을 모른다는  말을 도곡육선은 
여러번 들어본 것 같았다.
  영호충은 말했다.

  [좋소. 여러분들은 나를 따라 오시오.]

  그리고 그는 재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내려갔다. 오괴는 그 뒤를 
따랐다.
  수 마장을 나가지  않아 그 담이 적은 괴인이 바위  뒤에서 고개
를 내밀고 두리번  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영호충은  이 사람
에게도 반드시 용기를 돋우어줘야 되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숭산파의 그  늙은이의 무공은 당신보다 훨씬  떨어지니 두려워 
할 것 없소. 우리 모두 그를 찾아  따지러가는 길이니 그대도 함께 
갑시다.]

  그 사람은 크게 기뻐했다.

  [같이 가지!]

  그러나 그는 곧이어 물었다.

  [그대는 그 늙은 고수가 훨씬  뒤떨어진다고 했는데 그가 평범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고명한 것인가?]

  이 사람은 담이  적을 뿐 아니라 매우 조심성이  많았다. 영호충
은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대가 고명한  것이오. 조금 전 그대의  경신법은 훌룡했
소. 숭산파의  그 늙은  고수도 당신을  뒤쫓아 잡지는 못할  것이
오.]

  그 사람은 크게 기뻐 그의 곁으로  다가왔으나 여전히 마음이 놓
이지 않는 듯 물었다.

  [만약 그가 나를 뒤쫓아오면 어떻게 하지?]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그대 곁에서  한 걸음도 떠나지 않겠소.  그대를 쫓아온다
면 흥!]

  영호충은 검을 반자정도  뽑았다가 '탁' 하고 검집에  밀어 넣으
며 말했다.

  [나는 단 일검에 그를 죽여버리겠소.]

  그 사람은 크게 기뻐 말했다.

  [정말 좋아! 좋았어! 그대는 한 말을 반드시 지켜야 돼!]

  영호충은 말했다.

  [그거야 물론이오.  그러나 만약  그가 그대를 뒤쫓지  못한다면 
나는 그를 죽이지 않겠소.]

  그 사람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그가 나를  뒤쫓지 못한다면 그대는 그냥  내버려 두게
나.]

  영호충은 웃음을 참아야 했다.

  (당신이 힘껏 도망치면 그 누가 당신을 잡을 수 있겠소.)

  그리고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여섯 명의 노인은 성격이 단순하고  악한 것 같지가 않구나. 
사귀어 두어도 손해는 없을 것이다.)

  그는 말했다.

  [불초는 오래 전부터  여섯분의 대명을 많이 들어  왔소. 그런데 
오늘 만나뵙게  되니 과연 훌룡하신  분들이군요. 여섯 분의  존성 
대명은 어떻게 되시오?]

  여섯명의 괸인들은 영호충이 앞 뒤가 맞지  않는 말을 했지만 미
처 깨닫지  못했다. 영호충이 오래  전부터 대명을 들었다는  말에 
흐뭇해져 어쩔 바를 모르고 말했다.

  [나는 큰형으로서 도근선(挑根仙)이라고 한다네.]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둘째로서 도간선(挑幹仙)이라네.]

  또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세째인지 네째인지 잘  모르지만 이름은 도지선(挑枝仙)이
라네.]

  그리고 다른 한 괴인을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그도 세째인지  네째인지 모르는데 이름은  도엽선(挑葉仙)이라
고 한다네.]

  영호충은 의아하여 물었다.

  [그대들은 누가  세째형이고 네째형인지  자신들도 모르고  있군
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오?]

  도지선은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잊어버리셨어.]

  도엽선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대의 어머니가 그대를 낳게 되었을  때 만약 그대를 낳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셨다면 그대는 그 당시  갓난아이에 불과했을 터이
니, 이 세상에  그대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모르고 있었
을거야!]

  영호충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이오!  옳은 말씀이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께선 나
라는 사람을 낳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계셨소.]

도엽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영호충은 물었다.

  [그런데 그대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떻게 잊어버리게 되었소?]

  도엽선은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선 우리들을 낳았을 때  누가 크고 작은지 알
고 계셨지. 그런데  몇 년 지나게 되었을 때 잊어버렸던  거야. 우
리도 누가 세째인지 네째인지 모르게 되었고.]

  그는 도지선을 손짓해 보이며 말했다.

  [그는 자기가 세째라고 우겪지. 나느 그에게 양보해 주었어.]

  영호충은 말했다.

  [알고보니 두 분은 형제였군요?]

도지선은 말했다.

  [맞아. 우리들은 여섯 형제야.]

  영호충은 생각했다.

  (그처럼 멍청한 부모이니 이 같은  멍청이들을 낳은 것도 무리는 
아니군!)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두 분은 어떻게 되시오?]

  담이 적은 괴인이 말했다.

  [내가 말하지.  내가 여섯째야. 나는  도실선(挑實仙)이야. 우리 
다섯째 형은 도화선(挑花仙)이라고 해.]

  영호충은 참을 수 없어 '픽' 하고 웃었다.

  (도화선의 모습이  저토록 추악한데 어째서 도화라는  이름을 붙
였다지?)

  도화선은 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기뻐서 말했
다.

  [여섯 형제들 가운데 나의 이름이 가장  아름답지? 그 누구의 이
름도 나의 이름과는 비교도 되지 않잖아?]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물론 도화선이라는  석자는 듣기에 아름답소. 그러나  도근, 도
간, 도지, 도엽,  도실 다섯 이름도 모두 듣기가 좋구료.  정말 잘 
지었소! 잘 지었소!  만약 내게도 그같이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다
면 기뻐서 죽었을 것이오.]

  도곡육선은 우쭐해졌다. 그들은 손과 발을  들썩거렸다. 한 마디
만 더 하면 춤이라도 출 것 같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영호충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  빨리 갑시다. 그리고 어느 도형께서  나의 사제
의 혈도를 풀어 주시겠소? 그대들의  점혈수법이 너무나 고강해 나
는 풀 수가 없구료.]

  도곡육선은 다시 추켜  올려주는 말을 듣자 우르르  몰려가 다투
어 육후아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사과애에서 화산파의  건물까지는 산길로  쳐서 십리  남짓했다. 
육후아를 제외하면 모두  발걸음이 빨라 삽시간에 도달할  수 있었
다. 
  정기당(正氣堂) 밖에 이르자 노덕약, 양발,  시대자, 악영산, 임
평지 등 수십 명의 사제와 사매들이 모두  정기당 밖에 서 있는 모
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조심에  찬 표정을 짓고 있
었다. 그들은 대사형이 달려오자 모두들 기뻐했다.
  노덕약은 총총히 달려 나오며 말했다.

  [대사형, 사부님과  사모님께서는 지금 손님들을  접대하고 계십
니다.]

  영호충은 도곡육선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내가 가서 구경을  하고 올테니 여섯 친구분은 이  일에 끼어들
지 마십시오.]

  영호충은 객청(客廳)으로 다가가 창문에 구멍을  뚫고 안을 들여
다 보았다.
  악불군과 악 부인이 손님을 맞이할 때  제자가 몰래 엿본다는 일
은 있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화산파가 중대 위기를  맞이했기 때
문에 영호충은 그런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았다.

  영호충은 대청 안을 살펴 보았다.
  손님을 맞는  자리에는 여러 사람이  앉아 있었다. 맨  윗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한 손에  오악검파(五嶽劍派)의 영기(令旗)를 들
고 있었다.
  바로 숭산파의 선학수(仙鶴手) 육백(陸柏)이었다.
  육백 다음으로 한  중년의 도인(道人)과 오십여 세의  노인이 자
리잡고 있었다. 복장의 색깔로 볼 때   태산파와 형산파의 인물 같
았다.
  그들의 아래로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모두 오십여  세 정도로 
보였고 허리에는 화산파의 패검(佩劍)을 차고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누렇게 뜬  얼굴 피부를 지니고  있었고, 두 
눈에서는 흉흉한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육후아가  말했던 봉불평
(封不平) 같았다.
  사부와 사모는 손님들과 마주 앉아 있었다. 
  형산파의 노인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맛
을 본 후 '탕!' 소리가 나도록 다시 내려 놓으며 말했다.

  [악형(岳兄), 화산파의  일에 다른  사람이 참견하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오. 그러나 오악검파는  결맹을 맺은 사이가 아니겠
소? 마땅히 영광과 치욕을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할 것이외다. 따라
서 화산파의 일은  오악검파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따라서 우리 숭산파,  태산파, 형산파가 이 일에  개입하게 되었소
이다.]

  그 노인의 눈동자는 노란색이었다. 황달병에 걸린 인물 같았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원래 그들은 사부님께서 장문인의  직위에서 물러나라고 강요하
러 왔군!)

  이때 악 부인은 말했다.

  [노사형(魯師兄)의 말씀은  마치 우리 화산파가 일을  잘못 처리
하여 오악검파 전파의 명성을 추락시켰다고 헐뜯는 것 같군요.]

  그 노인은 싸늘히 코웃음쳤다.

  [소문을 들으니  영여협(寧女俠)께서 화산파의 실권자라고  하던
데 정말 그런 것 같군!]

  악 부인은 발끈하여 소리쳤다.

  [흥! 형산파의 노 사형은 강호에 이름  높은 영웅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헛소문이었군! 나는 막대선생에게 그대의  무례함에 대
해 따져야겠어요.]

  그 노인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마치 나를 죽여야  속이 시원한 듯이 노기  등등하군! 덤빌테면 
덤비시구료!]

  악 부인은 말했다.

  [나는 그대와 싸우지는  않겠어요.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해요.  우리 화산파가 귀파의 일에 간섭한  적이 있
던가요? 형산파에는 마교(魔敎)와 결탁한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는 
관여하지 않았어요.]

  형산파의 유정풍과  마교의 곡장로가 친교를  맺었다가 오악검파 
가운데 하나인  숭산파에 의해 죽게  된 사실은 이미 강호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악 부인은 은근히 그 일을 들추어  형산파의 인물이 화산파의 일
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고 빗대어 말한 것이었다.
  노씨 성의 인물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는 냅다 호통을 내질렀다.

  [화산파에는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못된 제자가  없었단 
말인가? 오늘  우리가 화산에 온  이유는 바로 공도(公道)를  지켜 
봉대형(封大兄)이  문호(門戶)를 정리하고  간사한 무리를  깨끗이 
몰아내는 일을 도와주려는 것이오!]

  악 부인은 검자루를 잡으며 싸늘히 말했다.

  [누가 간사한 무리라는  거요? 내 남편 악불군은  외호가 군자검
(君子劍)이예요. 간사한  사람이 군자라고 불리운  적이 있는가요. 
당신의 외호는 어떻게 되시죠?]

  노씨 성을 가진 노인의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되었다. 그는 흉흉
한 눈길로 악 부인을 노려볼 뿐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영호충은 옆에 있던 노덕약에게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저 사람의 더러운 외호는 무엇인가요?]

  노덕약은 화산파에 입문하기 전에 오랫동안  강호에서 활동을 해 
온 사람이었다. 그는 견문이 넓었기 때문에 얼른 대답했다. 

  [저  노인의  이름은 노연영(魯連榮)입니다.  외호는  금안조(金
眼?)라고 하죠. 그러나 말이 많고  남을 비방하기를 즐기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없는  곳에서는 금안오아(金眼烏鴉 : 누런  눈을 가
진 까마귀와 거위)라고 하죠.]

  영호충은 빙그레 웃었다.

  (매우 적합한  외호로구나! 비록  그가 없는 곳에서만  불렸다고 
하지만 그  역시 그런 소리를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으렸다?  하하
하...... 사모님께서 외호를 물어보신 것은  그를 난처하게 만들려
는 것이었군!)

  이때 노연영이 큰 소리로 말했다.

  [군자검이라니 무슨 헛소리야!  군자라는 두 글자 앞에  거짓 위
(僞)라는 한 글자를 첨가해야 마땅하지!]

  영호충은 노연영이 사부를 욕하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크게 외쳤다.

  [누런 눈을 가진 까마귀야! 이리 굴러 나와라!]

  악불군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녀석이 어찌해서 사과애에서 내려왔지?)

  악불군은 이어 큰 소리로 꾸짖었다.

  [충아야, 무례해서는  안 된다.  노사백(魯師伯)은 멀리서  오신 
손님이다. 네  어찌 상하(上下)를 구별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지껄
이느냐?]

  노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영호충이 형산
성 밖에서 소란을  일으켰던 소문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는 즉시 욕설을 퍼부었다.

  [누군가 했더니  원래 형산성에서  창녀와 놀아났던  녀석이었구
나. 화산 문파는 과연 깨끗하군! 암! 깨끗하고 말고!]

  영호충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맞소. 나는 형산성에서 갈보를 데리고  놀았소. 그 갈보의 성은 
바로 노(魯)씨였지. 하하하......]

  악불군은 노해 부르짖었다.

  [계속 헛소리를 지껄인다면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노연영은 갑자기 몸을 날려 창문으로  다가서더니 발길로 창문을 
걷어차 부수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창 밖에 늘어서 있는 여러  화산파의 제자들을 보고 삿대질
을 하며 소리쳤다.

  [방금 지껄인 짐승이 누구냐?]

  화산파의 제자들은 침묵을 지킬 뿐 대답하지 않았다.
  노연영은 또 다시 욕을 퍼부었다.

  [제 에미...... 방금 지껄인 짐승이 어디 있느냐?]

  영호충은 한 걸음 나서며 빙그레 웃었다.

  [방금 지저귄 짐승은  바로 당신이 아니오? 그런데  당신이 어떤 
짐승인지는 우리도 모르겠구료.]

  노연영은 그야말로 울화통이 터지고 말았다.
  그는 일성노갈을 터뜨리며 검을 뽑아들고  영호충을 향해 덮쳐갔
다.
  영호충은 뒤로 몸을 날려 피했다.
  이때 번쩍하며  한 사람이 대청에서  쏘아 나왔다. 동시에  은광
(銀光)이 눈부시게  빛나며 노연영을 향해 공격해갔다.  '창창' 하
는 소리가 잇달아 울려퍼졌다.
  바로 악 부인이었다.
  그녀가 대청에서 쏟아져  나와 검을 뽑고 공격하는  동작은 눈깜
짝할 찰나에 이루어졌으며 그때의 자태는  몹시 민첩하면서도 우아
했다.
  악불군의 음성이 들려왔다.

  [모두 한 집안 사람이니 싸우지 말고 말로 합시다.]

  그는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와 손가는대로 노덕약이  허리에 차
고 있던 검을  뽑아 허공에 한 번 원을 그리며  휘두르더니 노연영
과 악 부인이 검을 겨루고 있는 중앙을 향해 내려 눌러 갔다.
  노연영은 팔에 힘을  주고 위로 밀어 올렸다. 그러나  조금도 들
어올릴 수가 없는지라 얼굴을 붉혔다.
  악불군은 웃으며 말했다.

  [오악검파는 한 집안과 다름이 없소. 노  사형은 철 없는 아이의 
말에 화를 내지 마시구료.]


  이어 영호충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격렬한 어조로 꾸짖었다.

  [너는 헛소리를  지껄이고도 여전히 노사백께 배례를  올리지 않
는구나!]

  영호충은 사부의 말을 듣고 앞으로 나아가  고개를 한 번 아래로 
숙였다가 쳐들며 말했다.

  [노 사백, 제자가 눈이 멀어 냄새  나는 까마귀 새끼처럼 재잘거
렸으니 정말 나는 짐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까마귀
라고 한 것은  결코 어르신을 가리켜 욕한 게  아니랍니다. 어르신
은 버젓한  사람이지 까마귀가 아니잖아요? 나는  어디선가 까마귀
가 지저귀고 거위가 꽥꽥 소리를 지르기에  그 짐승들을 욕했던 거
랍니다. 결코 노 사백을 욕한 게 아니죠.]

  영호충은 여전히 까마귀가 어쩌구 저쩌구  하며 노연영을 조롱했
다. 그러나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어 그의 얼굴만  보고는 그말이 
진정인 것처러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사람들은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었지만 악영산은 참지  못하고 
'킥' 하고 웃었다.
  이때 악불군이 검을 거두자 노연영은  힘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그의 검은 대뜸  하늘을 향해 꼿꼿이 곤두서고  말았으며 하마터면 
자신의 눈을 찌를 뻔했다.
  이어 '째앵' 하는 소리와 함께 악  부인과 노연영의 장검이 중간
에서 부러져 땅 위로 떨어졌다.
  악불군이 내력을 거둘 때 암암리에 재주를 부린 것이었다.
  노연영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무공이 악불군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
이었다.
  그는 말을 더듬거리며 악불군을 노려보았다.

  [그대는...... 제법이구료!]

  말을 마치자 검을 쥔 채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때 악불군은 영호충의  뒤에 서 있는 도곡육선을  바라보고 있
었다.
  그들의 생김새가  괴이하기 짝이  없는지라 그는 소홀히  대하지 
못하고 공손히 읍을 했다.

  [여섯 분이 화산에  오셨군요. 멀리 나가서 배웅하지  못한 점을 
용서해 주십시오.]

  도곡육선은 악불군을 멍하니 바라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
은 함부로 말을  하다가 남으로부터 유치하다는 말을  들으면 곤란
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영호충이 얼른 나섰다.

  [이분은 나의  사부님이십니다. 바로 화산파의  장문인으로 계시
는 악(岳)......]

  그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봉불평이 불쑥 끼어들었다.

  [네 사부라는 말은  맞다. 그러나 화산파의 장문인이라고  할 수 
없다. 악 사형,  당신이 방금 펼칠 자하공(紫霞功)은  매우 훌룡했
소. 하지만 기공(氣功)으로는 화산문파를 영도할  자격이 없소. 오
악검파는 말 그대로 검파(劍派)가  아니겠소? 그러니 검공(劍功)을 
위주로 해야 할 것이오. 당신은  기공을 수련했는데 그야말로 마도
(魔道)로 빠지는 지름길을 당신은 걷고  있는 것이오. 그것은 화산
파의 정종심법(正宗心法)이 아니라오.]

  악불군은 말했다.

  [봉형은 말을 삼가하시오. 오악검파가 검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
이외다. 그러나 어떤 검파라고  하더라도 이기어검(以氣御劍)을 중
시하지 않소? 기(氣)로써 검(劍)을 제어하는  게 당연하단 말씀 이
외다. 검술은  외학(外學)이고 기공(氣功)은  내학인 바  모름지기 
내외무학을 함께 갈고 닦아야 할  것이외다. 봉형의 말처럼 검술만 
수련한다면 내가고수(內家高手)를  만났을 때 당해내기  힘들 것이
외다.]

  봉불평은 냉소했다.

  [그렇지 않지요. 천하에서 가장  좋은 것은 구류삼교(九流三敎), 
의복성상(醫卜星相),  사서오경(四書五經),   십팔반무예(十八盤武
藝)를 한 몸에 갖추는 것이외다.  도법(刀法)도 좋고 창법(槍法)도 
좋으며 두각을 나타내기만  하면 나쁘다고 할 수 없죠.  하지만 사
람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오. 어찌 한  사람이 그 많은 재간
을 모조리 익힐  수가 있겠소. 한 사람이 검법을  익히는데도 평생
이 걸리는데 또  무슨 방문좌도(旁門左道 : 너저분한  문파의 그릇
된 무예)의 기술을 익힐 여가가 있단  말이오? 나는 기공을 수련하
는 것이 나쁘다고 하지는 않았소.  다만 화산파의 정종무학(正宗武
學 : 올바른  문파의 올바른 무예)은 검법이라고 했을  뿐이오. 당
신이 방문좌도의 무공을 섭렵하려고  한다면 하시구료. 마교(魔敎)
의 흡성대법(吸星大法)을 익히려고 해도 다른  사람은 말리지 못할 
것이외다. 하물며  기공(氣功)을 익히는데 그 누가  간섭을 하겠소
이까? 그러나 당신은 알아야 하오. 평범한  사람은 많은 것을 탐한
다고 해도 고작 자기 자신만 그르칠  뿐이지만 당신은 화산파를 영
도하는 신분이니만큼 제자에게 해를 끼치고  문파 전체를 그르친단 
말이외다.]

  영호충은 그 말을 듣고 생각나는 바가 있었다.

  (풍태사숙(風太師叔)께서는 단지  검법만 가르쳐 주시지  않았던
가? 아마도 그분은 검종(劍宗)에 속한 분  같구나. 내가 그어르신
께 검법을 배운 것이 혹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

  그와 같이  생각하자 모골이  송연해지고 등줄기에서 식은  땀이 
흘러 내렸다.
  악불군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제자들에게  화(禍)를   끼치고  문파를  그르친다고요?   허허
허...... 터무니없는 말씀이시군!]

  봉불평의 옆에 있던  땅딸한 자가 앞으로 튀어나오며  크게 외쳤
다.

  [뭐가 터무니없단 말이오? 당신이 저같이  쓸모없는 제자를 키워
내지 않았소? 이것이야말로 제자에게 해를  끼치고 문파 전체를 그
리치게 한 증거가 아니겠소? 봉  사형께서는 당신을 가리켜 화산파
의 장문인 자격이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소. 당신은 스스로 물
러나겠소 아니며 강제로 물러나도록 만들어 줄까요?]

  그때 육후아가  허겁지겁 장내에 당도했다. 그는  영호충에게 다
가가 귀에 입을 대고 소근거렸다.

  (저 사람의  이름은 성불우(成不憂)래요. 사부님과  저 녀석들이 
대화할 때 엿들었죠. 아이고 숨차!)

  이때 악불군이 말했다.

  [성형(成兄), 당신들 검종은 이십 오년  전에 화산파에서 떠나지 
않았소? 스스로  다시는 화산파의 제자로 자처하지  않겠다고 하고
서 어찌하여 하여  오늘 또 왔소? 당신들의 무공이  뛰어나다고 여
긴다면 새로 하나의 문파를 세우면 될 게  아니오? 오늘 그같이 몰
염치한 말씀을  하시니 불초는 정말  기분이 나쁘구료. 우리  화기
(和氣)를 상하지 맙시다.]

  성불우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악형, 나는 당신과 아무런 원한도  없소. 그러나 당신이 화산파
의 장문이 되고 제자들에게 기공(氣功)을  닦게 하고 검공(劍功)을 
소홀히 하도록 시키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소. 당신은 우리 화산
파의 명예와 위세를  날로 쇠퇴시키고 있소. 그 죄를  어찌 작다고 
하겠소? 나는 화산파의 제자로서 수수방관하지는  않겠소. 옛날 기
종은 비열하고  악랄한 수단을 사용해 검종을  패배시키지 않았소? 
나는 검종의 제자로서 그 일을 결코 잊을  수가 없소. 우리는 이미 
이십 오년이나  참아 왔소. 하지만  오늘은 모든 것을  결산하도록 
합시다.]

  악불군은 말했다.

  [본문이 검종과 기종으로 나뉘어 싸운  일은 이미 옛날의 사건이 
아니겠소? 그날 두 파는 옥녀봉  위에서 처절하게 싸웠으며 승패는 
명백하게 판가름이 났소.  이제 와서 그 일을 거론해서  무슨 소용
이 있겠소?]

  성불우가 말했다.

  [그날의 승패가 어떠했는지 본 사람이  누구요? 있으면 나오라고 
하시오. 우리 세 사람은 보지 못했소.  어쨌든 당신은 깨끗하지 못
한 방법으로 장문인이 된 것이오.  그렇지 않다면 오악검파의 맹주
이신 좌맹주께서  사람과 영기를  보내 당신을 물러나도록  하셨을 
리가 없는 것이외다.]

  악불군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가운데  깊은 내막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좌맹주
께서는 항상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해  오셨소. 돌연히 사람과 영
기를 보내 장문인 지위를 박탈하실 분이 아니외다.]

  성불우는 오악검파의 영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설마하니 저 영기가 가짜란 말이오?]

  악불군은 말했다.

  [가짜가 아니외다. 그러나 말 못하는 물건에 불과하외다.]

  육백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악 사형, 영기가  말 못하는 물건이라서 믿을 수  업다고 했소? 
그럼 나는 어떤  물건이오? 나 역시 말 못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
시오?]

  악불군은 말했다.

  [어찌 감히 그럴  수가 있겠소. 이 일은 큰 일이니  나중에 좌맹
주를 만났을 때 신중히 처리하도록 합시다.]

  육백은 음산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나의 말을 믿지 못한단 말이오?]
  [어찌 감히!  좌맹주께서는 한쪽 말만 듣고  명령을 하달하셨소. 
불군의 말마저  듣고 결정하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오. 좌맹주
께서는 비록  악검파의 맹주이시지만 오악검파의  공동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태산, 항산, 형산,  화산, 사파
(四派)의 사사로운 일에 간섭할 권한은  없는 것이오. 각파 자체의 
일은 오로지 각파 장문인만이 주관할 수 있는 것이오.]

성불우는 버럭 소리쳤다.

  [잔소리는 집어치우시오!  당신은 장문인 자리를  양보하기 싫다
이 말 아니오?]

  그는 '양보'  라는 말을 하면서  검을 뽑아 들었고 '싫다'  라는 
말을 하면서 일검을  베어갔고 '아니오' 라는 말을  하면서 제이검
을 찌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이 순식간에 사
검을 펼쳤던 것이다.
  그의 검법은 괘속하기  이를데 없었고 잇달아 펼쳐지는  것이 아
니라 네 사람이 동시에 검을 찔러내는 듯이 보였다.
  제일검은 악불군의  왼쪽 어깨의 의삼(衣衫)을  뚫었고 제이검은 
오른쪽 어깨의 의삼을 뚫었으며, 제삼검은  왼쪽 옆구리의 의삼에, 
제사검은 오른쪽 옆구리의 옷에 구멍을 뚫었다.
  그런데도 검은 의삼을  찢었을 뿐 악불군의 피부를  조금도 건드
리지 않았다.
  그 사검의 빠름과 조준의 정확도는 그야말로 노라울 정도였다. 
  영호충을 제외한 화산파의 모든 제자들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저 사검은 하나같이 화산파의 검법이다!  그런데 위력이 저렇게 
클 줄이야! 검종의 고수는 과연 비범하구나!)

  반면 육백과 봉불평은 악불군에게 감탄하였다.

  악불군은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그  사검을 맞은 것이었다. 그의 
수양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어서  놀라기도 했지만 그들이 악불
군에게 감탄한 진정한  이유는 악불군이 성불우를 우습게  볼 정도
로 무공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사검을 고스란히  맞은 것은 언제라도 사검을  피할 자신이 
있었고 간일발의 차이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서도 능히  몸을 피할 
자신이 서 있기 때문이었다.
  승리한 사람은 바로 악불군 자신이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성불우가 펼친 초식을 석벽의 동굴에서 본 바 있었다.
  그 사검은 일초로써  네 가지의 변화가 내포되어  있는 화산파의 
검법이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검종은 검초(劍抄)가 기묘해봤자 석벽에  새겨진 도형의 범위에
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때 악 부인이 말했다.

  [성형, 제  남편은 당신들이  손님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이번에 
양보를 하셨어요.  당신은 옷에 구멍을 뚫었으니  이제 만족하시겠
죠?]

  성불우가 말했다.

  [손님이니 양보니  하는 소리는  집어치우시오! 악 부인이  나의 
사검을 받아낼 용기가 있다면 나는  즉시 물러나겠소. 그리고 다시
는 옥녀봉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소.]

  그는 악불군의 위세에 겁을 집어 먹고  있었기 때문에 악 부인에
게 도전을 한 것이었다.
  악부인은 방금 사검을  펼치는 광경을 보고 놀라  안색이 변했었
다. 성불우는 그걸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무예가 악불군
보다 한참 뒤질 거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성불우는 검을 똑바로 가슴 앞에 세우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악 부인,  부탁하오. 그대는 화산파 기종의  유명한 고수(高手)
로 천하에 이름을  날리고 있지 않소? 검종의 성불우가  오늘 그대
의 기공을 가르침 받으려 하오.]

  그는 그와  같은 말을 함으로써  화산파의 검기양종(劍氣兩宗)의 
분쟁을 조성하려고 했다.
  악 부인은 성불우의 수법을 목격한 이후  그녀 자신이 적수가 되
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이토록  자기를 지목하여 도전하는 데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슥' 하는 음향과  함께 검을 뽑아 들었
다.
  영호충이 황급히 나서며 말했다.

  [사모님, 검종은  무공을 연마할  때 샛길로 들어선  무리들입니
다. 어찌 우리 기공의 정당한 무공과  비교될 수 있겠읍니까? 먼저 
제자가 검종의 콧대를  꺾어 놓겠읍니다. 제자가 안 되면  그때 사
모님께서 그와 싸우셔도 늦지 않을 겁니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을 쓸 필요가 있겠읍니까?]

  그는 악 부인의  허락을 기다리지도 않고 담장가에  세워져 있는 
낡은 빗자루  하나를 집어들고 악  부인의 앞을 가로막고 우뚝섰
다.
  그는 빗자루를 한 번 흔들어 보이며 성불우에게 말했다.

  [성형, 당신은 화산파  사람이 될 자격이 없으니  사백이니 어쩌
느니 하는 호칭을 붙이지 않겠소.  당신처럼 비열한 사람이 화산파
에 들어오려면  새로 입문(入門)을  하여 사부님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오.  당신이 화산파에 입문하게 된다면......  먼저 들어온 
대사형(大師兄)인 나를  사형이라고 불러야  하오. 한번  불러보시
오.]

  성불우는 대노하여 외쳤다.

  [빌어먹을 놈!  마구 지껄이는구나! 네가 나의  사검을 받아낸다
면 나는 너를 사부로 모시겠다!]
  [나는 당신같이 못된 녀석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겠......]

  영호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불우는 버럭노호를  터뜨렸
다.

  [검을 뽑아라! 죽여 주겠다!]

  영호충은 말했다.

  [진기(眞氣)가 이르는 곳에는 초목(草木)이  모두 날카로운 무기
로 변하는 법! 성형을 상대하는 데는 몇  초의 하잘것 없는 초식이
면 충분하오. 검을 뽑을 필요도 없소.]
  [좋아! 네가 그토록 광망하구나! 나의  손이 맵다고 원망하지 마
라!]

  악불군과 악  부인은 성불우의  무공이 영호충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빗자루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검을 뽑아도  시원치 않을 판국이었다. 지금  영호충이 빗자루를 
들고 설치는 것은  맨손으로 적을 맞이하려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
었다.
  악불군이 급히 외쳤다.

  [충아야! 어서 물러서라!]

  그러나 흰 빛이  번쩍이며 성불우의 장검은 이미  영호충을 찔러
가고 있었다.
  그 일초는 바로 방금 악불군에게 펼쳤던 그 일초였다.
  그가 그 초식을 재차 사용한 것은  그의 가장 익숙한 초식이기도 
했지만 그  초식을 사용하겠다고  공언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같은  초식을 거듭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방비할 여유를 주려는 것이었다.
  이는 선배된 도리이기도 했으며 자신이  병기의 유리함에 편승하
여 이겼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영호충은 그에게 도전할  때 마음속으로 그 초식을  상대할 방법
을 생각해 두었었다.
  동굴에 새겨진 도형은 하나같이 기문병기(奇門兵器  : 특이한 무
기)로 검(劍)을 파해하는 방법이었다.
  만일 영호충 자신이 검을  사용한다면 현재로서는 독고구검(獨孤
九劍)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했으므로 이길 자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빗자루는 뇌진당(雷震?)처럼 사용할 수가 있었다.
  성불우의 장검이 베어올 때 영호충은  빗자루로 성불우의 얼굴을 
향해 쓸어갔다.
  영호충은 모험을 한 것이었다.
  본래 뇌진당이라는 무기는 절구 방망이처럼  생긴 무기로서 정강
(精鋼)으로 주조한 무거운 병기였다. 거기에  한번 맞으면 죽지 않
는다 해도 반드시 중상을 입게 된다.
  영호충의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진짜 뇌진당이라면  상대방은 검
을 회수하여  막아내거나 급히몸을  뒤로 날려 피해야 했을  것이
다.
  그러나 낡아빠진 빗자루가 어떻게 적을 겁먹게 할 수 있겠는가?
  그가 내공이  이르면 초목이  날카로운 병기로 변한다고  떠들어 
댄 것은 모두  허풍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설사 재수가  좋아서 빗
자루로 성불우의 얼굴을 후려칠 수가 있다고  해도 몇 줄기의 상처
밖에 더 입히겠는가.
  그 때 성불우의 검은 자기를 찌를 수가 있다.
  하지만 영호충은 성불우가 선배된 체면에  닭똥이나 치는 빗자루
에 얼굴을 할퀴는  치욕을 무릅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과
감히 공격해 갔던 것이다.
  과연 성불우는 급히 검을 회수하여 빗자루를 베어갔다.
  성불우는 공격을  하다가 중도에  수비를 하는 추태를  보이고는 
매우 부끄러워했으며 그의 얼굴은 금새 시뻘겋게 달아 올랐다.
  성불우는 방금 영호충이  휘두른 그 수법이 마교  십장로가 필생
의 심혈을 기울여 창안한 무서운 초식일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하고 
다만 영호충이 얼떨결에 휘두른 줄로 알았다.
  그러니 그가 느낀  수치가 분노로 변하여 재빨리  두번째의 공격
을 감행했다.
  이번에도 잇달아 사검을 쾌속하게 펼쳐  영호충의 상하좌우를 노
리고 찍듯이  공격했다. 영호충은 몸을 기울이며  빗자루를 왼손에 
바꾸어 쥐고는 곧장 성불우의 가슴을 찔러갔다.
  빗자루는 길고 검은  짧아 빗자루가 늦게 나갔지만  먼저 성불우
의 가슴을 찌르게 되었다.
  영호충은 크게 외쳤다.

  [닿았다!]

  그 순간  '싹' 하는 음향이  일며 빗자루의 중간이 검날에  의해 
두 동강이 나며 '툭' 소리를 내며 반동강이가 땅 위에 떨어졌다.
  옆에 있던 고수들은 생각했다.

  (먼저 빗자루가 닿았다. 저 빗자루가  진짜 뇌진당이었거나 월아
산(月牙?)이었다면 성불우는  이미 갈비뼈가  부러진 채  쓰러졌을 
것이다.)

  성불우는 까마득한  후배에게 빗자루로 얻어맞자  분노할대로 분
노했다. 그는 '어헝!' 소리를 내지르며  스스슥 삼검을 펼쳤다. 그
검은 살기(殺氣)로 가득했다.
  모두 화산파의 검법이었다.
  삼초 가운데 이초는 동굴의 석벽에 새겨 있는 검초였다.
  다른 일초는  영호충은 처음 보는 초식이었다.  그러나 독고구검
을 배운 뒤  영호충은 천하에 있는 온갖 검법을 깨뜨리는  법을 알
고 있었다. 그는체를 뒤로 젖혀  피하면서 석벽에 새겨진 곤봉파검
법(棍棒破劍法)을 이용해 빗자루 끝으로 성불우가  찔러댄 검의 끝
을 마주 찔러갔다.
  만일 그의  수중에 있는 것이  빗자루가 아니고 철로 만든  곤봉 
이었다면 곤봉은 견고하고 검은 부드러우니  장검이 부러지고 말았
을 것이고 곤봉은  여세를 몰아 상대방을 찔러 죽일 수  있었을 것
이다.
  영호충은 위급해지자 손에  잡고 있는 것이 하나의  대나무로 만
든 빗자루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얼떨결에 마주쳐 갔던 것이다.
  파죽지세(破竹之勢)라고나 할까?
  검은 곧장 빗자루를  쪼개며 빗자루 속으로 거침없이뚫고 들어
갔다.
  영호충은 빗자루를  힘껏 비틀며 옆으로 밀어냈다.  시퍼렇게 날
이 선 검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왼쪽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
까스로 위험한 고비를  넘겼을 때 성불우는 좌장(左掌)을  홱 뒤집
으며 질풍같이 영호충의 앞가슴을 강타하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영호충의 몸이  뒤로 벌렁 쓰러졌으며 그
의 입에서는 시뻘건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돌연 사람의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성불우의 두 팔과  두 다리가 
누구에겐가 꽉 잡혀져 허공에 들려졌다.

  [당겨라!]
  [으아악!]

  처절한 비명소리가 메아리쳤다. 선혈과  오장육부가 땅에 질펀하
게 뿌려지는 가운데 성불우의 사지는 각기 분리되고 말았다.
  양 팔과 양  다리는 네 명의 용모가 추괴한 괴인들의  손에 각기 
찢겨진 채 들려 들려 있었다.
  도곡육선이 성불우를 산 채로 찢어 죽인 것이었다.
  그것을 목격한 모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
  악영산은 끔찍한 광경을 보고 대뜸 혼절하고 말았다.
  악불군과 육백  같이 견문이  넓은 고수들도 아연실색하고  말았
다.
  이때 도곡육선  중의 도화선과  도실선은 땅에 쓰러진  영호충을 
안아들고 질풍같이 산 아래로 달려갔다.
  악불군과 봉불평은 일제히 검을 뽑아들고  도간선과 도엽선의 등
을 노리고 찔러갔다. 도근선과 도지선이  각기 소매 속에서 단철봉
(短鐵棒)을 꺼내 막자 '쨍' '쨍' 하는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도곡육선은 경신법을 펼쳐  산 아래로 내달렸다. 순식간
에 여섯 괴인과 영호충의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육백, 악불군, 봉불평  등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 도곡육선
을 추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들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가득 한 눈길로 땅  위에 널브러진 
성불우의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육백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고 봉불평
은 길게 탄식을 불어냈다.

  영호충은 성불우의 일장을  맞고 중상을 입은 채  도곡육선에 의
해 들려 내려가는 도중 정신을 잃었다.
  그가 다시 깨어났을 때 눈 앞에 말처럼  긴 얼굴을 한 두 사람의 
도곡육선의 모습이 비쳤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근심하는 빛이 역력했다.
  도화선은 영호충이 눈을 뜨는 것을 보자 기뻐서 소리쳤다.

  [깨어났다! 깨어났어! 이 녀석은 죽지 않았다.]

  도실선이 말했다.

  [죽지 않은게 당연하잖아.  그 사람의 가벼운 일장을  얻어 맞고 
죽는 사람이 어디 있니?]

  도화선이 말했다.

  [그 일장이  너의 몸에 맞는다면  물론 너는 죽지 않지.  그러나 
이 녀석을 때렸을 때는 죽을 가능성도 있단 말이야.]

  도실선이 말했다.

  [이 녀석은 분명  죽지 않았잖아. 그런데 어떻게  죽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도화선이 말했다.

  [내가 언제  반드시 죽는다고  했니? 죽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
지......]

  도실선이 말했다.

  [그는 살아났잖아? 그러니까 죽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은 타당하
지 않아.]

  도화선이 말했다.

  [내가 말을 하면 하느거야. 네가 왜 참견을 하니?]

  도실선이 말했다.

  [내가 참견하는 이유는 네가 안목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거
야. 너는 눈이 있으나 마나야.]

  도화선은 화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 너는 안목이  있니? 네가 이 녀석이 죽지 않을  거라고 믿
었다면 어째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까봐 근심을 했지?]

  도실선이 대답했다.

  [내가 조금  전에 근심을 한 것은  이 녀석이 죽을까봐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이  녀석의 이런 꼴을 보고 작은  여승이 걱정할까봐 
근심을 했던거라구.  그리고 우리는  내기에서 여승을 이긴  다음, 
화산에 와서  영호충을 데리고  가 그녀에게 보여주기로  약속했잖
아? 반쯤  죽은 영호충을 데려간다면  작은 여승이 우리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는 근심했던 거야.]

  도화선은 말했다.

  [네가 영호충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다면 그녀
에게 걱정말라고 하면  될 게 아니야? 그러면 그녀  또한 걱정하지 
않을 게 아니야? 그런데도 너는 근심을 했어.]

  도실선이 말했다.

  [틀렸어. 첫째로,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작은 여승은  내 
말을 믿지  않을 거야. 내 말을  듣고 겉으로는 걱정하지  않는 척 
하겠지만 마음속으로는 걱정을  할지 알게 뭐야. 둘째로,  이 녀석
이 죽지 않을  건 뻔하지만 상처가 가볍지  않으니까 걱정스러웠던
거야.]

  영호충은 두 사람의 말다툼을 듣고  우습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걱정을 했다는 말을 듣자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말끝마다 작은 여승이 걱정을  한다고 했다. 영호충은 항
산파의 막내 제자인  의림의 아리따운 자태를 떠올리고  웃으며 말
했다.

  [두 분은 안심하세요. 영호충은 죽지 않아요.]

  도실선은 크게 기뻐하며 도화선에게 말했다.

  [들었지? 이  녀석은 스스로 죽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너는 
이 녀석이 죽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어. 네가 틀린거라구!]

  도화선은 급히 반박했다.

  [아니야! 내가 그 말을 할 때 이 녀석은 그 말을 하지 않았어.]

  도실선은 즉시 말했다.

  [쳇! 그가 눈을  떴을 때 너는 그 말을 했어.  눈을 떴으니 당연
히 말도 할 게 아니겠어?]

  영호충은 두  사람의 말다툼이 끝이  없는 걸 보고 웃으며  말했
다.

  [나는 본래 죽었을  것이지만 두 분이 나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
다고  하는  말을  들었읍니다.   도곡육선의  이름은......  하하
하...... 강호에선 이름 높으신 도곡육선께서  죽지 말라고 하는데 
내 어찌 감히 죽을 수가 있겠읍니까?]

  도화선과 도실선은 그 말을 듣자 크게 기뻐 소리를 질렀다.

  [맞다! 맞아!  그 말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우리는  대형(大
兄)에게 알리러 가자!]

  두 사람은 다투어 사라졌다.
  영호충은 그제서야 자신이  하나의 침상에 누워 있고  머리 위의 
휘장이 매우 오래된 것임을 깨달았다.  어떤 곳인지 살펴보려고 고
개를 돌리려 하자  가슴에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껴졌다. 그는 
조금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얼마 되지 않아 도근선 등 네 괴인도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섯 명은  영호충을 내려다 보며  제각기 한 마디씩 떠들어  댔
다. 자신의 공로를  칭찬하기도 했고 영호충이 죽지 않은  걸 보면 
참 착한 녀석이라고 하기도 했다.
  또한 영호충을 구하느라고 숭산파의 늙은이에게  매운 맛을 보여
주지 못해  애석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사지를  찢어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런  다음 찢어진 사지를 개미를  밟아 
죽이듯 짓뭉갤 수도 있다고 떠들어 댔다.
  영호충은 그들의 말에  몇마디 장단을 맞추다가 다시  정신을 잃
었다.
  갑자기 그는 가슴이  답답하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돌아가는 듯
한 고통을 느기고 정신을 차렸다.
  온몸이 화로(火爐) 속에 들어 간 듯이  화끈화끈 달아 올라 그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질렀다.
  한 사람이 부르짖었다.

  [소리 내지 마라!]

  영호충은 천천히 눈을 떴다.
  탁자 위엔 등불이 밝혀져 있었으며 그는  벌거벗겨진 채 땅 위에 
눕혀져 있었다
  그의 사지는 도곡사선(挑谷四仙)에 의해 잡혀  있었고 나머지 두 
괴인은 각기  아랫배와 머리의 백회혈(百會穴)을  손바닥으로 누르
고 있었다.
  한가닥 뜨거운  열기가 왼발의  족심(足心)을 통해 올라와  왼쪽 
다리와 아랫배, 가슴,  오른 팔을 통해 오른손  장심(掌心)까지 치
밀어 오르고 있었다.
  또 다른  한 줄기의 뜨거운  기운은 왼쪽 장심에서 시작하여  왼
팔, 가슴,  아랫배, 오른 다리를  지나 오른쪽 족심까지  흘러가고 
있었다.
  두 줄기의 열기가  그의 온몸을 마구 휘저어 놓자 온  몸은 불구
덩이 속에 들어온 듯 화끈거렸다.
  그는 도곡육선이 내공(內功)을 이용해 자기를  치료해 주고 있다
는 사실을 알고  감격하는 한편 사부가 전수해준  화산파의 내공심
법(內功心法)으로 한가닥의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 순간 아랫배의 단전혈(丹田穴)에서 칼로  에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는 '왁' 하니 피를 토하고 말았다.
  도곡육선이 놀라 부르짖었다.

  [안 좋다!]

  도엽선은 손을 뒤집어 영호충의 머리를 때려 기절시켰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머리가 돌연 시원해지는 걸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귓전으
로 도곡육선이  격렬하게 언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도간선이 말했다.

  [너희들 봐라. 그의 몸에서 나던 땀도 안  나고 눈도 떴지? 이것
은 나의 치료 방법이 옳았기  때문이라구! 나의 진기(眞氣)가 풍시
(風市), 환도(環跳)에까지 침투하니까 그의 내상이 치료된 거야.]

  도근선이 말했다.

  [헛소리 작작해.  어제 내가  진기로 그의  족궐음간경(足厥陰肝
經)의 각 혈도(穴道)를 뚫어주지 않았다면  이 녀석은 벌써 죽었을 
거야. 오늘 진기를 밀어 넣어서 정신을 차린 줄 아니?]

  도지선이 말했다.

  [맞았어! 대형의  방법은 단지 그의 내상을  치료했을 뿐이라구! 
내상을 치료하면  뭘해?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두  다리로 걸어다닐 
줄 알아야  해. 네 다리로  걷는다면 짐승에 불과하지. 그리고  두 
팔과 두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고 드러누워  있다면 그 역시 사람이 
아니고 나무  토막이라 이거야. 이 녀석은  심포락(心包絡)을 다쳐
서 내상을  입었던 거야. 내가 그의  신락삼초(腎絡三焦)를 뚫어주
니까 나은 거야.]

  도근선이 노해 말했다.

  [웃기지 마. 네가 그의 몸에 들어가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
의 심포락이 고장난 줄 안다고 그래.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세 사람은 너 한  마디 나 한 마디 하는 식으로  쉬지 않고 언쟁
을 벌였다.
  도엽선이 갑자기 말했다.

  [진기로 연액(淵液) 사이를  뚫는 것은틀린 방법이야!  먼저 그
의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을 치료해야 돼.]

  그리고는 옆 사람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즉시 손을 뻗어 영호
충의 왼쪽 무릎에  있는 음곡혈(陰谷穴)을 짚고 뜨거운  진기를 밀
어 넣었다.
  도간선이 대노하여 외쳤다.

  [흥! 또 법석을  떠는구나! 우리 다시 누구의 방법이  옳은지 내
기를 하자!]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영호충의 현기혈(玄機穴)에  진기를 밀어 
넣었다.
  그 순간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영호충은 피를 토할 것처럼 아팠지만 말을 할 기운도 없었다.

  (끝났구나! 끝났어! 이들 여섯 명은  나를 구하려고 하지만 제각
기 의견이  달라 각각 자신의  방법으로 치료하려고 하는구나.  나 
영호충은 이번 고비를 넘기기 힘들 것이다!)

  도근선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녀석은 가슴에  일장을 맞아 내상을 입었다.  그러니까 수태
양폐경(手太陽肺經)을 먼저  치료해야 돼! 내가 진기를  그의 중부
(中府), 척택(尺澤),  공최(孔最), 열결(列缺), 태연(太淵),  소상
(少商) 등의 혈도에 밀어 넣는 것이 유일한 치료 방법이다!]

  도간선이 말했다.

  [대형(大兄), 다른 일은 대형이 나보다  낫지만 진기로 치료하는 
재주는 내가 일등이예요. 이 녀석의  몸이 뜨거운 것은 양기(陽氣)
가 왕성하기  때문이예요. 모름지기 그의  수태양경(手太陽經)부터 
손봐야  해요. 나는  그의  상양(商陽), 합곡(合谷),  수삼리(手三
里), 곡지(曲池),  영향(迎香) 등의  혈도를 뚫어주기로  결심했어
요.]

  도지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렸어! 틀려도 보통 틀린 게 아니야!]

  도간선은 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까짓 게 무얼 안다고 그래! 내 말이 어째서 틀렸다는 거냐?]

  도근선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세째의 말이 그럴싸하군!]

  도엽선이 말했다.

  [둘째 형이 틀린 것은 사실이지만 첫째  형 역시 틀렸어요. 보세
요. 이 녀석은  눈을 크게 뜨고 있지만 입은 국  다물고 있잖아요? 
둘째 형과 첫째 형의 말을 듣고 기가  막혀서 말을 하지 못하는 거
예요.]

  영호충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빌어먹을! 내가  말을 하기 싫어  못하는 줄 아느냐?  너희들이 
진기를 마구  뿜어대 내 몸을  망가뜨려 놓았기 때문에 나는  말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단 말이다!)

  도엽선은 계속하여 말했다.

  [기가 막힌다는  것은 머리가  어지럽고 심지(心智)가  몽롱해진 
현상이죠.  모름지기  양명위경(陽明胃經)을 치료해야  하는  법이
죠.]

  영호충은 들을수록 화가 치밀었다.

  (너희들의 머리가 어지럽고 심지가 몽롱해졌다고  하는 게 옳다! 
이 밥통같은 작자들아!)

  도엽선은 갑자기  열 손가락을  펼치더니 영호충의 얼굴을  마구 
찔러댔다.
  눈 밑의 오목  들어간 곳에 있는 네 개의 혈도를  아프도록 찌르
는가 하면 입꼬리의 지창(地倉)을 힘껏  비틀기도 했다. 이어 얼굴
에 있는 대영(大迎), 협차(頰車), 머리  위의 두유(頭維), 하관(下
關) 등의 혈도를 마구 주물러댔다.
  각 혈도는 극렬히  아파왔고 칼로 에이는 듯했으며  송곳으로 쑤
시는 것 같기도 했고 망치로 후려치듯 고통스럽기도 했다.
  그에 따라 영호충의 얼굴은 쉬지 않고 일그러졌다.
  도실선은 말했다.

  [헤헤...... 형이 만져봤자 그는 여전히 말을  못 하잖아? 내 생
각에는 아무래도  머리에 병이 있는  게 아니고 혀끝이 굳어진  것 
같애. 그것은  허(虛)하다는 증거이지.  나는 내력으로 그의  은백
(隱白),  태백(太白), 공손(公孫),  상구(商丘), 지기(地機)  등의 
혈도를 치료해야겠어.  그러나...... 그러나...... 내가  치료하지 
못했다고 욕을 하면 안 돼.]

  도화선이 말했다.

  [치료하지 못하면 그를 죽이게 돼. 그래도 욕을 하지 말라고?]

  도실선이 말했다.

  [내가 치료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혀를 부드럽게 만들지 못하는 
것에 불과해요. 생명을  잃는 것과는 거리가 멀단  말이예요. 내가 
치료하는 도중에 죽는다면 그것은 어떤  녀석이 영호충의 족태음비
경(足太陰脾經)을 잘못 건드려서  죽은 것이지 나 때문에  죽은 건 
아니라고.]

  도지선이 외쳤다.

 [치료를 잘못하면 끝장이다!]

  도화선이 말을 받았다.

  [잘못 치료해도  끝장인 건  사실이지. 그러나 치료하지  못해도 
끝장이지. 우리는 치료하지 못했어. 그는  마음이 고장난 것 같애. 
내 생각엔  수심경(手心經)부터 치료해야 된다고  생각해. 소해(少
海), 통리(通理), 신문(神門), 소충(少沖) 네  곳의 혈도를 치료하
는게 관건이야.]

  도실선이 말했다.

  [어제는 그의  족소음심경을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더니  오늘은 
소수양심경을  치료해야 된다고  떠드는군. 소양(少陽)은  양기(陽
氣)가 처음  생기는 곳이고 소음(少陰)은 음기(陰氣)가  처음 생기
는 곳이라고 그 두 가지는 상반되는 데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
어야 하지?]

  도화선이 의젓하게 말했다.

  [원래 음이 변하여  양이 되는 거야. 음과 양은 사물의  두 측면
이지. 태극(太極)에서 양의(兩儀)가 생기고  양의는 태극으로 다시 
돌아가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하나가  된다. 소음과 소양은 서
로 표리(表裏)의 관계가  있으니까 그게 그거야. 뭐 별  차이가 있
겠어?]

  영호충은 속으로 부르짖었다.

  (당신은 헛소리 좀  작작하시오!그런 엉터리 이론은  나의 목숨
을 해치게 된단 말이오!)

  도근선이 말했다.

  [지금까지의 방법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나는  한 가지 좋은 방
법이 떠올랐다. 너희들 반대하면 안 돼.]

  다섯 명의 괴인은 일제히 외쳤다.

  [무슨 방법인데요?]

  도근선이 말했다.

  [이 녀석은 아주 희귀한 병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기혈(奇
血)에 손을 대야 한다. 더 이상  경락(經絡)을 가지고 고생을 해봤
자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능허점혈지법(凌虛點穴之法)으로  이 
녀석의  인당(印堂), 금율(金律),  옥액(玉液), 어요(魚腰),  백노
(百勞)와 십이정혈(十二井穴)을 찔러 버리겠다.]

  다섯 괴인은 일제히 외쳤다.

  [대형, 그것은 너무 위험해요! 그러지 마세요!]

  도근선은 크게 노했다.

  [말리지 마라! 그 방법을 쓰지 않으면 저 녀석은 죽고 만다!]

  영호충은 그  순간 인당과 금율  등의 혈도에 칼로 쑤시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중에는 어디가  아픈지도 
모를 정도가 되었다.
  영호충은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르려고 했으나 소리가  되어 나
오지 않았다.
  갑자기 한 줄기의  뜨거운 열기가 족태음비경을 뚫고  체내에 주
입되었고 곧이어 소양심경의 각 혈도에도  뜨거운 열기가 밀려들었
다. 곧 이어  또 한 줄기의 열기가 다른 경맥을  뚫고 밀려 들어왔
다.
  도곡육선은 저마다의  치료방법을 펼치고  있었다. 여섯  줄기의 
열기가 영호충의 온몸을 마구 헤치고  돌아다녔으며 진기끼리 충돌
하면서 간(肝), 담(膽), 폐(肺), 비(脾),  위(胃), 대장(大腸), 소
장(小腸), 방광(膀胱), 심포(心包),  삼초(三焦), 오장육부(五臟六
腑)의 각 부분을 마구 뒤흔들어 놓았다.
  영호충은 화가 날대로 나서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내가 만약  죽지 않는다면 너희  놈들을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 
죽이고 말겠다!)

  영호충은 역시 도곡육선이 그를 치료하기  위해 스스로의 귀중한 
진기를 소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극렬한 
고통을 당하게 되자  그들에게 세상의 욕이란 욕은  모조리 퍼부어 
대고 싶었다.
  도곡육선은 진기를 이용해 치료를 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언쟁
을 벌였다.
  그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 며칠 동안 영호충의  체내의 경맥은 
모조리 뒤엉키고 흩어져서 제 형체를 상실하고 있었다.
  영호충은 어려서부터 화산파의  상승내공(上乘內功)을 닦아 왔지
만 그렇게 내공이 고강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가  배운 내공은 명문정종(名門正宗)의  내가무공(內
家武功)으로서 시초가 탄탄했다.  그래서 다행히독고육선의 헛수작 
아래에서도 근근이 목숨을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도곡육선은 시간이  흐를수록 영호충의 맥박이  미약해지고 호흡
이 가냘퍼지며 눈빛이 풀리는 것을 보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도실선이 말했다.

  [나는 그만둘래.  그가 죽는다면 귀신이 되어  나를 따라올거야. 
그러면 나는 놀라서 죽을지도 모르지.]

  그는 말과 함께 영호충의 몸에서 손을 떼었다.
  도근선이 노해 소리쳤다.

  [이 녀석이 죽는다면 그건 지금 네가  손을 뗐기 때문이다! 그는 
귀신으로 변해 너를 잡으려고 할 거야!]

  도실선은 크게 비명을 지르며 창을 넘어 도망쳐 버렸다.
  도간선 등 다섯 괴인도 손을 거두며  눈썹을 찌푸리는가 하면 고
개를 저어대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도엽선이 말했다.

  [이 녀석은 걸음을 걷지 못해. 어떡하면 좋을까?]

  도근선이 말했다.

  [너희들은 가서 작은  여승에게 말해라. 이 녀석은  땅딸보의 일
장을 맞고 죽었다고. 또 우리들이 이 녀석을  위해 그 땅딸보를 네 
조각으로 찢어 죽였다고 말해라.]

  도간선이 말했다.

  [우리가 진기로 그의 상처를 치료하던 일도 말해야 하나요?]

  도근선이 손을 내저었다.

  [그건 절대로 안 돼!]
  [그러나 작은  여승이 우리보고 왜 치료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
면 어떻게 하지?]

  도근선은 도간선의 말을 듣자 즉시 대답했다.

  [그냥 우리들은 치료하려고 했지만 치료할 수 없었다고 해.]

  도간선은 또 다시 물었다.

  [그러면 작은 여승은  우리보고 욕을 하지 않을까?  개보다도 쓸
모없는 녀석들이라고.]

  도근선은 대노해서 소리쳤다.

  [작은 여승이 우리보고 개라고 욕을 해? 그 말은 틀렸어!]

  도간선이 말했다.

  [작은 여승이 욕을 한 게 아니예요. 내가 한 소리예요.]

  도근선이 말했다.

  [그녀가 욕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네가 어떻게 알지?]

  도간선이 말했다.

  [그녀가 욕을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요.]

  도근선이 말했다.

  [그러나 욕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어. 자네의  말은 앞뒤
가 맞지 않는군!]

  도간선이 말했다.

  [어쨌든 이 녀석이 죽으면 그녀는 화가 나서 욕을 할거야.]

  도근선이 말했다.

  [아냐. 작은 여승은 크게 우느라고 욕을 하지 않을 거야.]

  도간선이 말했다.

  [나는 그녀가  우리보고 개라고 욕하는  소리는 들을 수  있어도 
우는 소리는 차마 들을 용기가 나지 않아.]

  도근선이 말했다.

  [그녀는 욕을 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우리 보고  개라고 하지는 
않을 거야.]

  도근선이 물었다.

  [그럼  무어라고 욕을  할까? 나는  그것 밖에  생각이 안  나는
데......]

  도근선이 말했다.

  [우리 여섯 형제는 개를 닮지 않았잖아?  정말 조금도 닮은 데가 
없지. 그녀는 고양이라고 욕을 할지도 모르지.]

  도엽선이 끼어들었다.

  [왜지? 우리가 고양이를 닮은 거야?]

  도화선도 끼어들어 한마디 했다.

  [틀렸어! 사람을  욕하는데 꼭 생김새가  닮아야 하는 건  아야. 
우리보고 작은 여승이  사람이라고 욕을 했다면 그건  욕이 아니라
구!]

  도지선이 말했다.

  [그녀는 우리보고 바보  또는 악당이라고 활지도 몰라.  그건 사
람을 의미하지만 욕이 되지.]

  도화선이 말했다.

  [개라는 말보다는 낫지.]

  도지선이 말했다.

  [만일 여섯  마리의 개가 총명하고 위풍이  있으며 영웅적이라면 
그렇다면 사람이 좋을까 개가 좋을까?]

  영호충은 기식이  엄엄한 중에도  그들의 말다툼을 듣자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돌연 한 줄기  진기가 아랫배에서 용솟음치더니 위로  치밀어 올
랐다.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당신들보다는 개가 더 낫지!]

  도곡육선이 흠칫하며 영호충을 내려다 보았다.
  이때 창 밖에서 도실선이 물었다.

  [어째서 개가 우리보다 낫다고 하지?]

  영호충은 욕을 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힘이  빠져서 끊어질 듯 낮
은 음성으로 말했다.

  [당...... 당신들은  나를...... 화산으로 되돌려  보내시오. 사
부께서...... 내 목숨을...... 구해 주실......]

  도근선이 벌컥 화를 냈다.

  [뭐라고? 네 사부는 네 목숨을 구해 줄  수 있고, 도곡육선은 그
럴 수 없단 말이냐?]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하려고  했지만 더이상 말이 되
어 나오지 않았다.
  도엽선이 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개가 말을  하는 것보다도 못  하군! 네 사부가 뭔데  우리보다 
뛰어나다는 거지?]

  도화선이 말했다.

  [흥! 네 사부를 데려와라! 우리와 겨루어 보게.]

  도간선이 말했다.

  [우리가 그의 사부의  두 팔과 두 다리를 잡아당기기만  하면 사
지가 쪼개지지 않고는 못 배길걸?]

  도실선이 창문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말했다.

  [화산파의 남자 여자를 모조리 네 조각으로 만들자!]

  도화선이 말했다.

  [화산의 개, 고양이,  돼지, 양, 닭, 오리,  거북이, 물고기까지 
하나하나 사지를 잡고 네 조각으로 만들자!]

  도지선이 말했다.

  [물고기는 사지가 없는데 어떻게 사지를 잡지?]

  도화선이 흠칫하며 소리쳤다.

  [흥! 상관할 필요가  뭐가 있어! 사지가 없어도 네  조각으로 만
들 수가 있는데!]

  도지선이 말했다.

  [어쨌든 너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아.]

  도화선은 화를 냈다.

  [앞뒤가 맞지 않다니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야?]

  도지선이 말했다.

  [너는 화산의  개, 고양이, 돼지,  양, 오리, 거북이,  물고기를 
하나하나 사지를 잡고 네 조각을 내자고 했잖아?  그 말을 하지 않
았다고 할 테냐? 너의 첫번째로 한 그 말은 분명히 틀렸다고.]

  도화선이 대꾸했다.

  [물론 그 말을  한 건 사실이야. 그러나 첫번째로 한  말은 아니
야. 오늘 나는 이미 수천 마디를 했는데  그게 어째서 첫번째의 말
이 될 수  있겠어?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한 말을 합한
다면 몇만 마디의  말도 더 했을텐데 어째서 그 말이  첫번째 말이
라고 그러지?]

  도지선은 할 말이 없는지 멍하니 서 있었다.
  도간선이 도화선을 보고 말했다.

  [너는 거북이까지 네 조각을 내자고 했지?]

  도화선은 의기양양해져서 얼른 말했다.

  [물론 그 말을  했지. 거북이는 앞다리와 뒷다리가  있으니 자연 
사지가 있는 셈이지.]

  도간선이 말했다.

  [거북이의 사지를 잡아당길  수는 있지. 하지만 네  조각이 나기
는 힘들거야.]
  [왜? 거북이가 우리보다 힘이 세단 말이야?]

  도간선이 말했다.

  [거북이의 사지를  잡아당기는 건  문제가 없어. 그러나  딱딱한 
겁질은 어떻게 하지? 거북이의 사지가  떨어지면 껍질 하나가 남게 
되는 데  그럼 모두 다섯  조각이 나게 돼.  결코 내 조각이  아니
지.]

  도근선이 끼어들었다.

  [틀렸어. 거북이의 껍질에는  열 세 개의 홈이 파져  있어. 껍질 
하나가 남게 될런지 껍질이 열 세 조각이  될지 누가 알겠어? 그러
니 거북이가 네 조각 난다는 말도  틀렸지만 다섯조각이 난다는 말
도 옳은 건 아니야.]

  영호충은 그들이  끊임없이 논쟁하는 소리를  듣고 박장대소라도 
터뜨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들의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가소롭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이와 같은  괴인들을 만나는 것도  얻기 어려운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들을 만난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호기가 치솟아 올라 그는  참지 못하고 크게 소
리쳤다.

  [나...... 나는 술을 마시고 싶소!]

  도곡육선은 얼굴에 기쁜 빛을 띄우며 일제히 말했다.

  [좋아, 매우 좋다! 그가 술을 마시려 하는  걸로 보아 죽지는 않
을 것이다!]

  영호충은 신음하듯 말했다.

  [죽어도...... 좋고......  죽지 않아도 좋소.  먼저...... 먼저 
통괘하게 마시고 다시...... 말합시다.]

  도지선이 말했다.

  [그래, 그래! 내 가서 술을 가져오지.]

  얼마 후 도지선은 큰 술호로를 들고 왔다.
  영호충은 술 향기를 맡자 정신이 번쩍 들어 말했다.

  [나에게 먹여 주시오!]

  도지선은 술호로를 그의 입에 대고 천천히 술을 부어 주었다.
  영호충은 술호로 하나를  깨끗이 비우자 머리가 더욱  영활해 졌
다.

  [내 사부께서......  평상시 말씀하시길......  천하대영웅(天下
大英雄)은...... 도(桃)...... 도......]

  도곡육선은 마음을 졸이고 그 말을 듣다가 일제히 물었다.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대영웅은 도...... 무엇이란 말이냐?]

  영호충은 말했다.

  [그것은...... 도...... 도곡......]

  육선이 일제히 외쳤다.

  [도곡육선(桃谷六仙)!]

  영호충이 말했다.

  [바로 그렇소. 내  사부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가장 한
스럽게 여기는 것은 도곡육선과 함께 몇  잔의 술도 마시지 못하고 
친구로 사귀지 못했으며...... 여섯 분의 대...... 대......]

  도곡육선은 일제히 소리쳤다.

  [여섯 분의 대영웅(大英雄)!]

  영호충이 말했다.

  [그렇소, 여섯 분의  대영웅을 청하여 제자들 앞에서  절기를 시
전(施展)......]

  도곡육선은 거기까지 듣고 나더니 제각기 한마디씩 떠들어댔다.

  [이상한 노릇이잖아?]
  [네 사부가 어떻게 우리들의 재주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지?]
  [화산파 장문인은  매우 좋은  자였구나! 우리들은 화산의  초목 
하나라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당연한  거야. 누가  화산파의 초목 하나라도  건드리면 
나는 가만두지 않겠다.]
  [우리는 너의 사부와 친구가 되고 싶다. 화산에 올라가자!]

  영호충은 즉시 말했다.

  [맞소! 화산에 올라갑시다!]

  도곡육선은 즉시 그의 몸을 들어올렸다.
  반나절 동안 길을 재촉하다가 돌연 도근선이 외쳤다.

  [앗, 큰일났다!  우리는 이 녀석을  데리고 작은 여승을  만나야 
하는데 어째서 화산으로 올라간단 말인가?  이 녀석을 작은 여승에
게 데려다 주지 않으면 어찌 내기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도간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대형의 말이 맞아요. 우리는 먼저  이 녀석을 작은 여
승에게 데리고 간 다음에 다시 화산에 올라가는 것이 좋겠어요.]

  여섯 명은 몸을 돌려 또 다시 남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영호충은 다급해서 물었다.

  [여승은 죽은 사람을 보자고, 아니면 산  사람을 보자고 하는 것
이오?]

  도근선이 말했다.

  [당연히 산 녀석을  보고자 하는 것이지 죽은 녀석을  보려는 것
은 아니다.]

  영호충이 말했다.

  [당신들이 나를  화산으로 데려가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의 경맥
(經脈)을 끊고 죽고 말겠어요.]

  도실선이 기뻐하며 말했다.

  [좋았어! 스스로 경맥을 끊는 고심(高深)한  무공을 어떻게 수련
하는지 내게 가르쳐주라. 나도 배우고 싶다.]

  도간선이 말했다.

  [너는 그 무공을  익히는 순간에 죽을 텐데 무엇때문에 배우려
는 거지?]

  영호충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무공은 만일 협박을 받고......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고 
괴로움을 참을 수  없어 통괘하게...... 자결하고 싶을  때 유용한 
것이라오.]

  도곡육선은 일제히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작은 여승이 너를 보려는 것은 결코  악의가 아니야. 우리도 너
에게 협박하는 것이 아니고.]

  영호충은 탄식하며 말했다.

  [당신들은 비록  호의를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사부님께 보고드
리지 않았소. 그분의 허락을 얻지 않고는  죽어도 갈 수가 없어요. 
더구나  사부님과 사모님께서는  줄곧  여섯 분의  당세......  당
세...... 무적의...... 대(大)...... 대......]

  도곡육선은 일제히 외쳤다.

  [대영웅(大英雄)!]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근선이 말했다.

  [좋아! 우리는 너를 화산에 데려다 주겠다.]

  몇 시간 후  일행은 화산에 올랐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칠인(七
人)을 보자 날 듯이 악불군에게 보고하러 갔다.
  악 부인은 여섯 괴인들이 영호충을 떠메고  다시 왔다는 말을 듣
고 놀랐다.  즉시 뭇제자들을  이끌고 나왔다. 악씨부부가  정기당
(正氣堂) 밖으로 나오자  도곡육선이 청석대로(靑石大路)를 다려오
는 광경을 볼 수가 있었다.
  그들 중 두 사람은 의자를 들고  있었는데 영호충은 의자에 깊숙
이 몸을 싣고 있었다.
  악 부인이 급히 달려가 살펴보니 영호충은  눈이 쑥 들어갔고 안
색이 누런지라 손을 뻗어 맥박을 짚어 보았다.
  맥박은 약할대로 약했고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목숨이 곧 끊
어질 듯하자 그녀는 크게 놀라 부르짖었다.

  [충아, 충아야!]

  영호충은 눈을 뜨며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사...... 사모님!]

  악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충아야, 사모님이 너의 복수를 해 주마.]

  말과 함께 검을  슥 뽑으며 의자를 들고 있는 도화선을  향해 찔
러갔다.

  [잠깐!]

  악불군은 그녀를 제지하고 도곡육선에게 포권을 하였다.

  [여섯 분이  화산을 왕림하시는 것도  모르고 마중 나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여섯 분의  존성대명(尊姓大名)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그리고 어느 문파의 인물들이신지요.]

  도곡육선은 그 말을 듣자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고 크게 실망
하기도 했다.
  그들은 영호충의  말을 듣고  악불군이 자신들을 정말  존경하는 
줄 알았던  것인데 그는 입을  열자마자 이름을 물어오지  않는가? 
도곡육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게 확실했다.
  도근선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우리 형제를 매우 존경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
단 말이오?  당신은 고루과문(孤陋寡聞)하군! 잘못돼도  크게 잘못
됐어!]

  도간선이 말했다.

  [당신은 천하영우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은 도곡육선이라고 
말했다는데 !  그렇군! 당신은 도곡육선의  대명(大名)을 뇌성처럼 
들어왔고 존겼했겠지만  우리들 도곡육선을 만나보지  못했으니 당
신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

  도지선이 말했다.

  [둘째 형, 그가 도곡육선과 함께 술을  마시고 친구로 사귀고 싶
다고 했다는데 어째서  지금 우리 형제가 놀라왔는데도  기쁜 빛을 
띠지 않고 또 우리보고 술을 마시자고  청하지 않는 걸까요? 아하! 
원래 육선의 이름을 들었지만 육선의  얼굴을 모르고 있어서 였군! 
하하!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악불군은 터무니없는 말을 듣고 차갑게 말했다.

  [여러분은 도곡육선이라  자칭하시지만 악모(岳某)는 필부에  불
가 합니다. 어찌  여섯 분 선인(仙人)과 교우를 맺을  수 있겠읍니
까?]

  도곡육선은 얼굴에 기쁜 빛을 띠었다. 도지선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 우리들 육선과 당신  제자는 좋은 친구야. 당신과 
친구로 사귄다면 더욱 좋은 일이야.]

  도지선이 말했다.

  [당신의 무공이 낮아서 자격지심을 갖고  있구만! 우리도 당신을 
대단하게 보고 있지는 않으니 그 점은 신경쓰지 말아.]

  도화선이 말했다.

  [당신이 무예를 익힐  때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면 물어
보라구. 우리가 가르쳐 주겠어.]

  악불군은 담담하게 한번 웃고 말했다.

  [그거 고맙구료.]

  도간선이 말했다.

  [고마워할 건 없어. 우리 도곡육선은 당신과 친구이니까.]

  도실선이 말했다.

  [내가 몇 수  시전하여 당신들 화산파 사람들의 견문을  넓혀 주
는 게 어떨까?]

  악 부인은  이들이 천진난만(天眞爛漫)하고 세상일을  모르고 있
으며 호의로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들의  말이 점
점 방자하게 변하자  분노가 울컥 치밀어 올라 더 이상  참지 못하
고 장검을 들어 도실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좋아요, 내가 당신의 무공을 가르침 받겠어요.]

  도실선이 웃으며 말했다.

  [도곡육선은 손을 쓸  때 병기를 사용하는 일이  드물지. 당신은 
우리를 오랫동안 존경해 왔다면서 아직 모르고 있군!]

  악 부인은 앙칼지게 외쳤다.

  [나는 모르고 있소.]

  장검은 튀어오르듯 찔러갔다.
  그 일검은  지극히 빨랐고 검의  기세 또한 지독하기 짝이  없었
다.
  도실선은 그녀에  대해 조금도 적의(敵意)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말을 하면서 찔러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
다.
  검끝은 순식간에  그의 가슴을 찔러갔다. 그가  막으려고 했다면 
그의 무공으로는 별로 어렵지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겁이  많았다. 멍하니 눈을 뜬 채  두려운 눈빛으로 
찔러오는 장검을 바라볼 뿐이었다.
  장검은 여지없이 도실선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도지선이 황급히  달려들며 일장으로  악 부인의 어깨를  가격했
다.
  악 부인의 온몸이 흔들리며 두 걸음  밀려났으며 검을 놓치고 말
았다.
  그 검은  도실선의 가슴에 꽂힌  채 싸늘한 빛을 번뜩이고  있었
다.
  도근선 등은 일제히 소리를 내질렀다.
  도지선은 도실선을 안고 황급히 물러섰다.
  남은 네 명은 튀어나가 신속하게 악  부인의 사지를 움켜쥐고 높
이 들어올렸다.
  악불군은 그들이 힘주어  당기기만 하면 부인의 몸이  네 조각으
로 찢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평소 일을 침착하게 처리하던 
그였지만 입을 쩍 벌린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호통을 치며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영호충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사모님이  네 조각으로 찢어지려는 
순간 벌떡 일어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분을 찢으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나는 경맥을  끊고 자살
을 하겠소!]

  그 두 마디를 지르고는 입으로 피를토하고 혼절하였다.
  도근선은 악불군의 일검을 피하며 외쳤다.

  [저 녀석이 경맥을 끊고 자살하면 큰일난다! 노파를 놓아줘라.]

  사선(四仙)은 악 부인을  놓은 후 도실선의 목숨이  걱정되어 도
지선과 도실선의 뒤를 쫓아갔다.

  악불군과 악영산은 악 부인 옆으로 달려가 부축해 일으켰다.
  악 부인은 크게  놀란 나머지 창백하게 얼굴빛이  변했으며 온몸
을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악불군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사매는 놀라지  마시오. 우리들이 나중에 혼을  내줍시다. 그들 
육인은 강적이지만 당신이 한 사람을 죽였으니 그나마 다행이오.]

  악 부인은 성불우가 도곡육선에게 분시되던  광경을 떠올리고 떨
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그...... 그......]

  몸이 떨리며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악불군은 아내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악영산에게 말했다.

  [산아야, 너는 어머니를  방으로 모시고 가서 휴식을  취하게 해
드려라.]

  악불군이 영호충을  바라보니 그의  얼굴과 가슴이 온통  선혈로 
물들어 있었고 호흡은 미약하여 나오는  기(氣)는 많으나 들어가는 
호흡은 적은지라 살아나기가 어렵다고 판단을 내렸다. 
  악불군은 손을  뻗어 영호충의 등에 있는  영대혈(靈?穴)을 누르
고 심후(深厚)한 내공을 밀어 넣어 목숨을 이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영호충의 체내에서 갑자기 괴한  내력(內力)이 솟구쳐 악
불군의 내공을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급기야는 자신의 손이 그힘
에 의해 영호충의 몸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몇 가닥의 기괴한 내력이 영호충 체내에서  서로 쉬지 않고 충돌
하고 있었다. 악불군은 크게 의아했다.
  다시 손바닥을  영호충의 가슴에 있는 단중혈(?中穴)  위에 붙였
을 때 장심(掌心)에 또다시 극렬한  통중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통
증이 가슴까지 치밀어  오르는지라 악불군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영호충의 체내에서  몇 가닥의 진기가 거꾸로  움직이는 것
을 느끼고 방문좌도의 내공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진기는 자신의  자하신공(紫霞神功)보다 약했지만 나머지 
다섯줄기의 진기는  악불군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
다.
  악불군은 더이상 장심을 대고 있을 수  없어 손을 거두며 생각했
따.

  (진기를 여섯 괴인이 충아의 체내에  주입시킨 모양이구나! 육괴
는 악독한 마음으로 각기 내력을 여섯  개로 나누어 충아에게 주입
시켜 고통을 주면서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들었구나.)

  악불군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근명(高根明)과 육후아에게 영호충
을 내실(內室)로 데려가라고 명했다. 그리고 부인을 찾아갔다.
  악 부인은  아직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녀는 방안으로 악불군이 들어오자 급히 물었다.


  [충아는 어떤가요? 상세(傷勢)가 덧나지는 않았나요?]

  악불군은 영호충의 체내에  여섯 줄기의 진기가 서로  싸우고 있
는 현상을 설명해 주었다.
  악 부인은 말했다.

  [그렇다면 육괴의  진기를 하나하나 제거해야 할텐데  그들이 그
때 들이닥치면 어떡하죠?]
  [사매,당신의 말은 그  육괴가 충아를 괴롭힌 것에  다른 속셈이 
있다는 것이오?]

  악 부인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그들은 충아를 고문하여  우리 문파의 비밀을 말하
라고 핍박했을 거예요.  충아가 죽어도 굴복하지 않자 그  못난 작
자들은 더욱 모진 고문을 가했을 거예요.]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 말에도 일리는 있소. 그러나 우리  문파에 무슨 비밀이 있겠
소? 육괴들과 우리 부부는 평소 원한도  없소. 그들이 충아를 잡아
갔다가 다시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본 채 생각에 잠겼다.
  악영산이 문득 말했다.

  [우리 문파에 은밀한 비밀은 없지만  화산파의 무공은 천하에 알
려져 있어요. 육괴는 대사형을 잡아  우리 문파의 기공(氣功)과 검
법(劍法)의 정묘한 점을 알아내려고 했을 거예요.]

  악불군이 말했다.

  [그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 육괴들은 내공이 매우  깊다. 나는 
한번의 시험으로 알 수 있었다.  외공(外功)에 있어서는 육괴의 무
공과 화산파의 검법은  공통점이 조금도 없다. 따라서 네  말은 타
당하지 않다. 더우기 핍박하여 비밀을  캐려면 화산에서 멀리 떠나 
천천히 고문을 가했을텐데 어찌하여 그를  데리고 다시 돌아왔겠느
냐?]

  악 부인은 그의 말을 듣고 다시 물었다.

  [그럼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그랬을까요?]

  악불군은 안색을 침중하에 고치며 천천히 말했다.

  [충아의 상세를 치료하느라고 나의  내력이 고갈되기를 기다리려
는 수작이겠지.]

  악 부인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맞아요! 당신이  충아의 목숨을 구하려면  반드시 내력(內力)으
로 그 여섯  줄기의 진기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해요.  그것을 기
다렸다가 육괴들은  다시 나타날 것이예요.  이일대로(以逸待勞)의 
수법으로 우리의 목숨을 제거하려는 것이예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그녀는 다시 말했다.

  [다행히 지금은  오괴(五怪)만 남았어요. 사형, 방금  그들은 분
명 나를 잡았었는데  어찌하여 충아의 외침을 듣고  나를 풀어주었
을까요?]

  아까의 위험했던 광경이 떠오르자 목소리가  떨려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악불군이 말했다.

  [나는 그 일을  생각해 보았소. 당신이 그들 가운데 한  명을 죽
였으니 얼마나 큰  원한을 갖고 있겠소? 그러나 그들은  충아가 스
스로 경맥을 끊어  자살하겠다는 소리를 듣고는 당신을  놓아 주었
소. 당신 생각해  보오. 만일 큰 음모가 없다면 그들  육괴가 충아
의 한 생명을 무엇 때문에 아끼려 하겠소?]

  악 부인은 중얼거렸다.

  [음험하기 짝이 없고 독랄하기 그지 없는 속셈이 있겠지요.]

  그녀는 다시 생각했다.

  (그들 네  괴물은 성불우를  찢어죽였다. 그처럼 악랄한  사람은 
무림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틀동안 일어난  일을 생각하
면 가슴이 떨린다. 그들이 소란을  일으키자 봉불평도 장문인 자리
를 빼앗으려던  일을 포기하고 육백과  함께 산에서 내려갔다.  그 
육괴들은 화산파를 위해 잠시 근심거리를  막아주더니 이번에는 화
산파에 우환을 심어 주었구나.)

  그녀는 입을 열었다.

  [당신의 내력으로 충아의  상세를 치료해서는 안 돼요.  나의 내
력이 비록 당신만 못하지만 그의 생명을  보전시킬 수는 있을 거예
요.]

  말과 함께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악불군이 불렀다.

  [사매!]

  악 부인이 돌아섰다.
  악불군은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소. 그 육괴의 방문진기(旁門眞氣)는 매우 지독했소.]

  악 부인이 말했다.

  [단지 당신의 자하신공(紫霞神功)만이 해소시킬  수 있다는 것인
가요? 어떻게 하지요?]

  악불군이 말했다.

  [눈앞을 조심해야 하니  먼저 충아의 목숨만 이어  놓읍시다. 하
지만 내력을 많이 소모해서는 안 되오.]

  세 사람은 영호충이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악 부인은 그의  호흡이 실날 같은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눈물
을 흘리며 손을 뻗어 맥박을 짚었다.
  악불군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손을  놓자 
쌍 장을 영호충의 두 손바닥에 붙이고 내력을 천천히 주입시켰다.
  그의 내력과 영호충 체내의 진기가 충돌하였다.
  악불군의 몸이  한 차례 진동했따. 얼굴에  자기(紫氣)가 떠오르
더니 한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영호충이 돌연 입을 열어 말했다.

  [임...... 임 사제(林師弟)는?]

  악영산은 흠칫 놀라며 말했다.

  [당신은 소림을 찾고 있나요?]

  영호충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의 부친이...... 죽을 때, 나에게  전해달라는 말을...... 그
에게 전해  주어야 하오.  나는...... 줄곧  그와 말할 시간이  없
어...... 나는 곧...... 빨리 그를 찾아오시오.]

  악영산은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가린 채 밖으로 나갔다.
  그때 화산파의 제자들은 문 밖을 지키고 있었다.
  임평지는 악영산의 말을  전해 듣고 즉시 방으로  들어가 영호충 
앞에 섰다.

  [대사형, 몸을 보중하십시오.]

  영호충이 말.

  [임 사제인가?]

  임평지가 말했다.

  [소제(小弟)입니다.]

  영호충이 말했다.

  [영존이 별세할 때......  나는 옆에 있었다. 나중에  말을 전해
달라고......]

  거기까지 말했을 때 숨소리는 더욱 잦아들었다.
  모든 사람은 침통해 했다. 방 안은  조용했다. 아무도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영호충이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향양(向陽)...... 향양항(向陽巷)의  옛집......  옛집의 
물건을 그대가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네. 다만......  다만 절대로 
뒤집어  보지   말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후환이  무궁
할......]

  임평지는 의아한 어조로 말했다.

  [향양항의 옛집이라고요?  그곳에는 일찌기 사람이  살지 않았으
며 긴요한 물건은 더욱 없었읍니다.  아버지는 무슨 물건을 뒤집어
보지 말라 하셨읍니까?]

  영호충이 말했다.

  [모르네. 그대 아버님은...... 바로 그  말을 하고는...... 죽었
네.]

  음성이 다시 잦아들었다.
  네 사람은 한참 기다렸으나 영호충은 끝내 말하지 못했다.
  악불군은 탄식을 토하고 임평지와 악영산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대사형아  모시고 있다가 병세에 변화가  보이면 즉시 
나에게 알려라.]

  임, 악 두 사람은 대답하였다.

  [예.]

  악불군 부부는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왔다. 영호충의  상세가 무
거워 치료하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
다.
  악 부인의 얼굴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악불군이 침통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슬퍼하지 마시오. 충아의 복수를 해 줍시다.]

  악 부인이 말했다.

  [그 육괴가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운다
면 비록 진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악불군은 고개를 저었다.

  [진다고 할 수  없다고? 아니오. 우리 부부가 그들  삼인을 상대
하면 단지 평수(平手)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그들 넷이라면 
지고 말 것이오. 그들 다섯 명이라면......]

  그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악 부인도 그들  부부가 그들 오괴(五怪)의 적수가  못된다는 사
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근래에  자하신공(紫霞神功)을 대성(大成)한  뒤 
공력이 크게 진보했기에  약간의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의 
말을 듣자 더욱 불안해졌다.

  [그...... 그럼 어떻게 하지요? 설마하니  속수무책으로 죽을 수
밖에 없단 말인가요?]

  악불군이 말했다.

  [낙담하지 마시오. 대장부는 구부릴 때 구부리고  펼 때 펴야 하
오. 승부는 결코  일시적인 것이 아니오. 군자(君子)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 것이오.]

  악 부인은 흠칫 말했다.

  [당신은 우리가 도망가야 한다고 말을 하는 거예요?]

  악불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망가는 것이 아니고  잠시 피하자는 것이오. 적은  많고 우리
는 적소.  우리 부부 두 사람이  어떻게 다섯 명의  합공을 막아낼 
수 있겠소? 하물며  당신이 이미 한 명을 죽였으니  잠시 피했다고 
해서 화산파의 위명이 추락되지는 않소.  더우기 우리가 말하지 않
으면 외인(外人)은 결코 이 일을 알지 못할 것이오.]

  악 부인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비록 일괴를 죽이기는 했지만  충아의 목숨을 보전하기 어
려워요. 충아는...... 충아는......]

  잠시 사이를 두고 다시 말했다.

  [당신 말대로라면 우리는 충아를 함께  데려가 천천히 그를 치료
해야 돼요.]

  악불군이 말이 없자 악 부인은 초조해졌다.

  [당신은 충아를 함께 데려갈 수 없다는 건가요?]

  악불군은 입을 열었다.

  [충아의 상세는 극히 중하오. 그를 데리고  길을 재촉하면 반 시
진도 못가 목숨을 버리게 될 것이오.]

  악 부인은 다급하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요? 정말 그의 목숨을  구할 방법이 없는 건가
요?]

  악불군은 탄식하며 말했다.

  [아, 그날 나는  자하신공(紫霞神功)을 전수해주려고 결심했는데 
그가 헛된  생각을 하고  검종(劍宗)의 마도(魔道)에 빠졌을  줄이
야! 당시  그가 비급(秘?)을 익혀  한 두 줄만 연성했다면  지금쯤 
스스로 기를 조절하여 상세를 치료할 수 있었을 텐데......]

  악 부인은 즉시 일어서며 말했다.

  [일이란 늦으면 안 돼요. 당신은  즉시 자하신공(紫霞神功)을 그
에게 전수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자하비급(紫霞秘?)을  주어 책을 
보고 익히도록 하세요.]

  악불군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사매, 내가 충아를 사랑하는 마음은 당신과  조금도 다를 바 없
소. 그러나 생각해 보시오. 그는 지금  상세가 지독한데 어떻게 내
가 전수해 주는 구결(口訣)과 연공법문(練功法門)을  들을 수 있겠
소? 내가 비급을  그에게 주고 신지(神智)가 맑을 때  스스로 연습
하라고 했을  때 오괴들이 찾아오면 우리  화산파 진산지보(鎭山之
寶)인 내공비급(內功秘?)이 그들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겠소? 그들 
방문좌도(旁門左道)의 무리가  우리 문파의  내공심법(內功心法)을 
얻게 되면 호랑이가  날개를 얻는 격이 되어 다시는 제압할  수 없
게 되면 나 악불군은 진짜 천고의 죄인이 되고 만다오.]

  악 부인은남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악불군이 말했다.

  [오괴들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이 표홀하오. 늦어서는  안 되니 
우리들은 즉시 행동합시다.]

  악 부인이 말했다.

  [우리가 정말  충아를 이곳에 남겨두어 그들에게  고통을 받도록 
해야 하는가요? 내가 남아 그를 보호하겠어요.]

  악불군이 타일렀다.

  [당신이 남아 있어도  헛되이 목숨만 버릴 뿐이오.  당신이 충아
를 보호할 수 있겠소? 또한 당신이 남아  있으면 남편과 여식이 어
떻게 하산(下山)할 수가 있겠소?]

  악 부인은 상심하여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악불군은 고개를  저으며 길게  탄식하더니 침상 머리를  뒤집어 
하나의 철함(鐵含)을 꺼냈다.
  철함을 열고 비단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책자를 꺼내  품속에 갈
무리 한 후 문 밖으로 나갔다.
  문 밖에 악영산이 서 있다가 말했다.

  [아버지, 대사형은...... 틀린 것 같아요.]

  악불군은 놀라 물었다.

  [어떻더냐?]
  [그는 갈수록 정신이 흐려져 헛소리를 했어요.]

  악불군이 물었다.

  [그가 무슨 헛소리를 하더냐?]

  악영산은 얼굴을 붉히고는 말했다.

  [저도 무슨 헛소리인지 알 수 없어요.]

  원래 영호충은 혼미한 가운데 악영산이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는 참지 못하고 말했었다.

  [소사매, 당신은 임  사제를 좋아하고 있으니 내가  죽으면 다시
는 나를 생각하지 않겠지?]

  악영산은 그가 임평지의 면전에서 그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
랐는지라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얼굴이 달아올랐으며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다.
  영호충은 또다시 말했다.

  [소사매, 나와 당신은  어려서부터 함께 컸으며, 같이  놀고, 검
을 닦아왔소. 내가 당신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없구료. 
당신이 화가 났으면  나를 때리고 욕하시오. 그리고 검으로  내 몸
을 찌르시오. 나는 조금도 원망하지 않겠소.  단지 당신은 나에 대
해 그렇게 냉담하게, 무심하게 대하지 마시오.]

  그 말은 몇개월  동안 그가 마음속으로 수없이  반복해서 생각했
던 말이었다. 만일  정신이 맑을 때였다면 악영산 한  사람과 같이 
있었다 해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자제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말을 
토해 낸 것이었다.
  임평지는 매우 무안해서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나가 있겠읍니다.]

  악영산이 말했다.

  [안 돼요! 당신은 이곳에서 대사형을 살피고 있어요.]

  황급히 밖으로  나와 부모님의 방 밖에  달려갔다가 자하신공(紫
霞神功)으로서 치료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부모의 대화를 끊을  수 없어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서 있
었던 것이다.
  악불군이 말했다.

  [너는 모두에게 정기당(正氣堂)에 모이라고 전해라.]
  [대사형은요? 누가 그를 보살피지요?]

  악불군이 말했다.

  [육후아에게 돌보도록 해야지.]

  악영산은 고개를 끄덕이고 명령을 전하러 갔다.

  잠시 후 화산파의 뭇제자들은 정기당에 모였다.
  악불군은 교의(交倚)에 앉아 있었고 악 부인은  그 옆에 앉아 있
었다.
  악불군은 영호충과 육후아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모이자 입을 
열었다.

  [우리 파의 윗대 선배 가운데 무공을 배울  때 길을 잘못들어 기
공(氣功)을 그만두고  검법(劍法)만을 열심히 수련했던  분들이 있
었다. 천하의 상승무공(上乘武功)은 기공(氣功)을  기초로 하고 있
지 않은 것이  없다. 만일 기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검법이 아무
리 정묘해도 등복조극(登峯?極)의 경지에 이를수  없다. 그들은 이 
사실을 망각했다. 한스러운 것은 그  선배들이 깨닫지 못하고 아집
에 빠져  뜻밖에도 종파를  이루고 화산파 검종(劍宗)이라고  칭하
고, 기존의 화산파 무공을 기종(氣宗)이라고  했다. 기종과 검종의 
싸움은 수십년간 이어져 우리 문파의 발전을 저해했다.]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장 탄식을 토해냈다.
  악 부인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 요괴들이 눈 앞에 있는데  당신은 이곳에서 옛일이나 들추며 
꾸물거리다니 한심하군요!)

  그녀는 남편을  흘겨보고 다시 정기당(正氣堂)이라는  글자가 적
혀 있는 현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화산파 검법을 처음 배우던  옛날에는 당(堂) 위의 편액은 
검기충소(劍氣沖宵) 넉자  였었다. 지금은 정기당(正氣堂)이라  개
칭하였고, 원래의 그  편액은 어디 갔는지 알 수가  없구나. 에이, 
그때  나는 아직  십삼세의  작은 아이였는데  지금은......  지금
은......)

  악불군이 말했다.

  [그러나 정사시비(正邪是非)는 마지막에  분명해졌다. 25년전 검
종(劍宗)은 일패도지하여  화산파에서 쫓겨나갔고 그후  이 사부가 
문호(門戶)를 집장(執掌  = 집권,  장악)하여 오늘에 이르른  것이
다. 헌데 수일  전에 봉불평과 성불우 등이  오악검파의 좌맹주(左
盟主)를 속여 영기(令旗)를 들고 와서  화산장문을 강탈하려 했다. 
이 사부가 화산장문이  된 지 어언 25년, 속무(俗務)가  많고 구설
수가 많아 일찌 퇴위하여 문하제자에게  물려주고 조용한 마음으로 
우리 문파의 상승기공심법(上乘氣功心法)을 연구하고자 했다.]

  고근명이 소리쳤다.

  [사부님, 봉불평 등 쫓겨난 검종의  무리는 일찌기 마도(魔道)에 
들었으니 마교와 다를  바 없읍니다! 그들이 다시 우리  문파에 들
어오는 것도 안 될 일일진대 어찌  광망스럽게 장문인 자리를 넘본
단 말입니까?]

  노덕약, 양발, 시대자 등 모두가 말했다.

  [그들 미친 무리에게 양보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악불군은 뭇제자들의 표정이 격앙된 것을  보고 미소지으며 입을 
열였다.

  [나 자신이  장문이고 아니고는  작은 일이다. 검종의  좌도지사
(左道之士)가 만일 우리 문파를 통솔하게  된다면 화산파의 수백년 
동안 내려온 무학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말터이니 우리들이 죽은 
후에 본파의 역대선배(歷代先輩)들을 무슨 면목으로  뵐 수 있겠느
냐? 화산파의 이름  또한 장차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될 
것이다.]

  노덕약 등은 일제히 말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읍니까?]

  악불군이 말했다.

  [다만 봉불평 등 쫓겨난 무리는 겁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오악
검파의 영기(令旗)를  청해오고 또한 숭산(嵩山),  태산(泰山), 형
산 등 각파의 인물과 결탁했으니 가볍게 볼  수가 없다. 그와 같은 
까닭으로......]

  그는 제자들을 한번 훑어보고 말을 이었다.

  [우리들은 숭산파로  가서 좌맹주(左盟主)를 만나 따져야  할 것
이다.]

  악불군의 말이 떨어지자 화산파의 모든 제자들은 흠칫 놀랐다.
  숭산파는 오악검파를  영도하는 막강한  위세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숭산파의  장문인 좌랭선(左冷禪)은 당금  천하에서 태양처럼 
떠받들려지는 존재였다.
  무공의 탁월함은 말할 것도 없고  지모(智謀)의 뛰어남이 제갈량
에 못지 않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강호에서는 좌랭선이라는 석 자를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할 뿐 아
니라 그 이름을  듣는 것조차 두려워 할 정도였다.  그는 신출귀몰
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제자들은 생각했다.

  (사부님은 무공이  높다고는 하지만 좌맹주의 상대는  되지 못한
다. 더구나  좌맹주에게는 사제(師弟)가 십여 명이나  있어 무림에
서  숭산십삼태보(嵩山十三太保)라고  불리고  대숭양수(大嵩陽手) 
비빈(費彬)이 죽었지만 아직도  열 두 명이 남아 있다.  그들 열두
명은 무공이 탁절(卓絶)한 고수(高手)가아닌가?  우리 화산파의 이
대제자(二代弟子)들은 숭산십삼태보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우리
가 경솔하게 숭산파로 가 일을 벌인다는  것은 너무 경망스런 짓이 
아닐까?)

  제자들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누구도 입을 열고 말을 할  수 없
었다.
  악 부인은 남편의 말을 듣고 속으로 탄복을 금하지 못했다.

  (사형의 이 계략은 극히  교묘하구나! 우리들이 도곡오괴(桃谷五
怪)를 피하기 위해 화산을 버리고  멀리 피했다는 사실이 강호상에 
알려지면 우리  화산파의 체면이  어찌되겠는가? 그러나  숭산파로 
따지러 갔다고 한다면  오히려 우리보고 대담하다고 칭찬을  할 것
이다. 좌맹주는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숭산에 올라가
도 우리와 목숨을 걸고 싸우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생각을 마치고 손뼉을 쳤다.

  [맞아요! 봉불평은  오악검파의 영기(令旗)를 지니고  와서 소란
을 피웠는데  영기를 훔쳤는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정말 좌맹주가 보냈다 하더라도 화산파의  일에는 숭산파가 관여할 
수 없어요.  숭산파가 비록 사람이  많고 세력이 강하며  좌맹주의 
무공이 세상을  덮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화산파는 굴복해서는  안 
돼요. 죽음이 두려운  자는 이곳에 남아야지요. 그런  겁장이는 필
요 없어요.]

  제자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사부님과 사모님께서 명령을 내리신다면  제자들은 용담호혈 속
이라도 뛰어들겠읍니다!]

  악 부인이 말했다.

  [일이란 늦으면 안 되니 모두들  짐을 챙기고 즉시 하산(下山)하
도록 해라.]

  말을 마친 그녀는 영호충을 찾아갔다.
  영호충은 기식(氣息)이  엄엄하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악 부인은  마음이 비통해졌지만  즉시 육후아에게 영호충을  뒤의 
작은 집에 옮기라고 명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후아(?兒), 우리는  본파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  숭산파로 
가서 좌맹주에게 따지려고  한다. 이 일은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너의 사부가 잘  통솔한다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충아
는 상세가 매우  중하니 잘 보살피도록 해라. 너희는  욕됨을 참고 
헛되이 목숨을 버리지 말아라.]

  육후아는 눈물을 머금고 응답했다.

  육후아는 산  아래까지 사부와 사모, 여러  사형제들을 전송하고 
외롭게 영호충이 있는 작은 집으로 돌아왔다.
  화산절봉에는 정신을 잃은 대사형과  자신만이 남아 있었다. 점
점 어둠이 깊어가는  것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두려워지기 시작했
다.
  그는 주방에 가서 한 남비의 죽을  끓여 대접에 담아다가 영호충
을 일으키고 몇 모금 마시게 했다.
  세 모금을 마실 때 영호충은 죽을  토했는데 하얗던 죽은 분홍색
으로 변해 있었다. 선혈(鮮血)을 토해내던 것이다.
  육후아는 매우  당황했다. 다시 잠든  영호충을 안은 채  어두운 
창 밖을 멍하니 내다 보고 있었다.
  멀리서 밤부엉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생각했다.

(밤부엉이의 울음소리가 병든 사람의 눈썹  수와 같으면 병든 사
람이 죽는다던데......)

  갑자기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육후아는 황망히 등불을  끄고 영호충을 침상에 눕히고  검을 뽑
아들었다.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으며 곧장 작은 집을  향해 다가왔
다. 육후아는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적이 대사형이 이곳에서 요양하는 것을  알고 있나보다. 끝났구
나! 내가 어떻게 대사형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단 말인가?)

  돌연 여자의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육후아(六?兒),당신 거기 있나요?]

  악영산의 음성이었다.
  육후아는 크게 기뻐하며 황급히 말했다.

  [여기 있어!]

  황급히 등불에 불을 붙였을 때 악영산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
서며 말했다.

  [대사형은 어떤가요?]

  육후아는 대답했다.

  [피를 많이 토했어.]

  악영산은 침상으로  다가가 영호충의  이마를 손으로 만져  보았
다. 숯불처럼 뜨거웠다. 악영산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어째서 피를 또 토했지요?]

  영호충이 돌연 입을 열었다.

  [소사매...... 당신이오?]
  [그래요. 대사형, 몸이 어떠세요?]
  [그저...... 그래.]

  악영산은 품 속에서  하나의 보자기를 꺼내며 낮은  음성으로 말
했다.

  [대사형,  이것은  자하비급(紫霞秘?)이예요.  아버지는  말했어
요......]

  영호충이 말했다.

  [자하비급(紫霞秘?)?]
  [그래요. 아버지는 당신  몸에 방문고수(旁門高手)의 내력(內力)
이 주입되어 있다고 했어요.  반드시 본문의 무상심법(無上心法)으
로 풀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육후아, 당신은 한자  한자 대사
형이 들을 수  있게 읽어줘요. 그러나 당신 자신이  연성해서는 안 
돼요. 그렇지 않았다가는 아버지가 아시게  된다면...... 흥흥, 당
신 자신도 무슨 결과가 생기는지 알거예요.]

  육후아는 대단히 기뻐하며 급히 말했다.

  [내가 어찌 본문의  지고무상(至高無上)한 내공심법(內功心法)을 
훔쳐배울 수 있겠어? 소사매는 안심해도  좋아. 은사께서 대사형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예를 깨뜨리시고 비급을 전해  주셨으니 대사
형은 살 수 있을 거야.]

  악영산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돼요.  이 비급은 내가 아버지의 
베개 밑에서 훔쳐 온 것이예요.]

  육후아는 놀라 말했다.

  [소사매가 사부...... 사부의  내공비급을 훔쳤다고? 어르신네가 
알게 되면 어찌하려고?]

  악영산이 말했다.

  [뭐 어때요?  설마하니 나를 죽이기야 하겠어요?  꾸중을 하시고 
몇 대 때릴  뿐이겠죠. 혹시 대사형을 구하게 된다면  아버지와 어
머니도 기뻐하실 거예요.]

  육후아가 말했다.

  [맞아! 우선 목숨을 구하고 보는 거지 뭐.]

  영호충이 돌연 말했다.

  [소사매, 당신은 돌아가서...... 사부님께 돌려 주시오.]

  악영산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왜요? 나는  비급을 훔치느라고 여간 고생을  하지 않았다구요. 
밤길을 걸어올  때 무서웠지만 꾹  참았어요. 이것은 무공을  훔쳐 
배우는게 아니고  목숨을 구하는 일이예요. 당신은  왜 필요없다고 
하지요?]

  육후아도 말했다.

  [맞아요. 대사형은  전부 익힐  필요가 없어요. 육괴의  사기(邪
氣)를 제거하는데  필요한 정도까지만 익히고 비급을  사부님께 돌
려 드리면 그때는 사부님께서도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대사형에
게 자하신공을  전수하실 거예요. 당신은  화산파 장문대제자(掌門
大弟子)예요. 사부님께서 자하비급(紫霞秘?)을  대사형께 전수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전수하겠읍니까?]

  영호충이 말했다.

  [나는...... 죽는다 해도  사부의 명을 어길 수  없다. 사부께서 
말씀 하시기를 나는...... 자하신공을 배울  수 없다고 하셨다. 소
사매...... 소..... 소사매......]

  그는 두 마디를 오치고는 또 다시 혼절하였다.
  악영산은 한숨을 내쉬며 육후아에게 말했다.

  [나는 돌아가야 돼요.  날이 밝아질 때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아
버지와 어머니께서 초조해서 돌아가실거예요.  당신은 대사형께 권
하여 자하비급을 익히도록 해야돼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세요. 부탁이예요.]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내가 하룻동안 분주히 뛰어다닌 고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요.]

  육후아가 말했다.

  [내 성의를  다해 권해볼께. 소사매, 사부와  사형제들은 어디에 
있지?]
  [우리는 오늘밤은 백마묘(白馬廟)에서 보내게 됐어요.]
  [응, 백마묘는 이곳에서 삼십리(三十里)  떨어진 곳이지. 소사매
가 육십리(六十里) 길을 분주히 뛰어다닌  노고를 대사형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야.]

  악영산은 눈가를 붉히며 목메인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그가 회복되기만을  바랄 뿐이예요. 그가 기억하든  안 하
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말과 함께 자하비급을  영호충의 침상 머리맡에 놓고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한 시진이  흐르고 나서야 영호충은  다시 깨어났다. 그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외쳤다.

  [소...... 소사매! 소사매!]

  육후아가 말했다.

  [소사매는 이미 갔읍니다.]

  영호충은 크게 외쳤다.

  [갔다고?]

  돌연 벌떡 일어나 앉으며 육후아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육후아는 펄쩍 뛸 만큼 놀랐다.

  [예, 소사매는 산을  내려가며 날이 밝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읍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걱정하신다고 말했읍니다.  대사형, 
푹 쉬도록 하십시요.]

  영호충은 다시 말했다.

  [소사매는 임 사제와 함께 있느냐?]
  [그녀는 사부님과 사모님과 함께 있읍니다.]

  영호충은 눈을 부릅떴다. 얼굴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육후아는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대사형, 소사매는 대사형께 관심을 갖고  야반 삼경(三更)에 백
마묘(白馬廟)에서 돌아왔읍니다. 그녀는 아가씨의  몸으로 육십 리 
길을 왔다 돌아갔어요. 대사형에 대해  정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럴
리가 없었을 겁니다. 그녀는 돌아가면서  여러번 당부했어요. 사형
이 반드시 자하비급을 익혀, 대사형에  대한 그녀의 일편단심을 저
버리지 말기를 바란다고요.]
  [그녀가 그런 말까지 했어?]
  [그렇다니까요.  설마하니 내가  대사형에게 거짓말을  하겠읍니
까?]

  영호충은 더 버티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육후아는 깜짝 놀라 말했다.

  [대사형, 내가 읽어 드리겠읍니다.]

  자하비급(紫霞秘?)을 집어든  육후아는 일항(一項)을 펼쳐  읽어 
내려갔다.

  [천하무공(天下武功)은  기(氣)를 연성(練成)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원래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건만 사람
이 올바르게 그것을  기르지 않고 오히려 마음대로  기(氣)를 눌러 
버린다. 무부(武夫)의  후환은 성격의 급함과 교만,  잔인, 그리고 
교활함에서 비롯되느니라.  폭급정신과 기를 혼란스럽게  하고, 교
만함은 기를 뜨게 만들며, 잔인함은 기를  잃게 하고, 교활함은 기
를 부족하게 하느니라. 이 네 가지는 모두 기를 끊는......]

  영호충이 말했다.

  [너는 무엇을 일고 있느냐?]

  육후아가 말했다.

  [자하비급의 제일장(第一章)입니다. 그 아래 글은......]

  그는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네 가지를  버리고 오직 부드러움으로 폭급함과  잔인함을 제어
하고 정기(正氣)를 기른다.]
  [닥쳐라!]

  영호충은 크게 소리쳤다.
  육후아는 멈칫하여 고개를 들었다.

  [대사형, 왜 그러시오? 어디가 불편합니까?]

  영호충은 노하여 말했다.

  [네가 사부님의...... 내공비급을 읽는  소리를 들으니 몸전체가
불편하다. 너는  나를...... 불충불의(不忠不義)한 자로  만들려고 
하느냐?]

  육후아는 놀라 말했다.

  [아닙니다. 무엇이 불충불의하다는 것입니까?]

  영호충이 말했다.

  [그 자하비급은  전에 사부님께서  사과애(思過崖) 위로  가져와 
나에게 전해  주시려고 한 적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연공
(練功)의 길을  잘못 들었고 자질(資質)이......  자질이 떨어진다
고 하시고 생각을 바꾸셨다.]

  거기까지 말하고는 숨이 찬 지 매우 고통스러워 했다.
  육후아가 말했다.

  [이것은 목숨을 구하기 위한 것이지  무공을 훔쳐 배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영호충이 말했다.

  [우리 제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중요시해야 하느냐  아니면 사부
님의 가르침을 중요시해야 하느냐?]

  육후아가 말했다.

  [사부님과 사모님은  사형을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
어요. 더우기......  소사매는 밤에  분주히 뛰어 다녔읍니다.  그 
정의(情意)를 어떻게 저버릴 수 있읍니까?]

  영호충은 가슴이 저려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바로 그거야...... 훔쳐왔기 때문에...... 나 영호충은 당당한 
대장부인데 어찌 아녀자의 동정을 받겠느냐?]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뇌리 속을 섬광처럼 스쳐가는  생각이 있
었다.

  (나 영호충은 구애받는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본시  내가 자하
신(紫霞神功)을 익히기를  거부한 것은 소사매가  훔쳐왔기 때문이
다. 나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소사매와 임 사제에  대하여 한
을 품고 있는  것이다. 영호충아, 영호충아, 너는 어찌  그리 소심
한가?)

  그러나 악영산이 임평지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많은 대
화를 나누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멀리  숭산까지 가는 광경을 생각
하자 가슴이 아파와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육후아가 말했다.

  [대사형, 소사매와 당신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 친자매와 같지 
않습니까? 대사형의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녀와 친자매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

  육후아가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다시  읽을테니 사형은  천천히 들으십시오. 일시  기억할 
수 없을테니  내가 몇번이고 읽어 드리겠읍니다.  천하무공은 연기
(練氣)를 위주로  하느니라.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본시  하늘로부
터......]
  [그만두어!]

  영호충은 버럭 소리쳤다.
  육후아는 말했다.

  [예예, 대사형,  상처를 신속하게 치유하기 위해서  오늘 소제는 
대사형의 말을  따르지 않겠읍니다. 스승의  명을 거역한 죄는  나 
혼자 감당하겠읍니다.  무슨 말을 하든 나  육후아는 읽어야겠읍니
다. 이 자하비급(紫霞秘?)에  사형은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비급
에 기록된 심법(心法)을 당신은 한  글자도 보지 않았읍니다. 당신
은 병상에 누어 있고 몸도 움직일 수  없읍니다. 나 육후아는 읽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본시 하늘로부터  받
은......]

  육후아는 쉬지 않고 읽어 내려 갔다.
  영호충은 듣기 싫어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돌연 큰 소리로 신음했다.
  육후아는 놀라 물었다.

  [대사형, 어찌된 일이오?]
  [너는...... 베개를 높여다오.]
  [예.]

  육후아는 두 손으로 베개를 받들어 주었다.
  영호충은 손가락을  뻗어 내공(內功)을 끌어올려  육후아의 가슴
에 있는 단중혈(?中穴) 위를 찔렀다.
  육후아는 소리도 없이 꼬꾸라졌다.
  영호충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육  사제,  미안하네.  자네가 침상에  몇  시진  누워  있으면 
혈...... 혈도(穴道)가 스스로 풀어질 것이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침상에서 일어나  자하비급을 내려다보고 한
숨을 내쉬고는 문쪽으로 다가가서 문 빗장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
탱하며 밖으로 나갔다.
  육후아는 매우 다급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대사형...... 어디로...... 가...... 가시오!]

  영호충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육 사제,  영호충은 자하비급(紫霞秘?)에서  멀리 가면  갈수록 
좋다고 생각하네. 나의 시신 옆에  자하비급이 있으면 신공을 훔쳐 
배우려다 죽었다고 할  것이니...... 임 사제가 나를  본다면 나를 
어떻게 생각하....]

  거기까지 말하고는 '왁' 하고 선혈(鮮血)을 토해냈다.
  그는 기력을 조절한 다음 빗장으로 몸을  지탱한 채 기침을 해대
며 천천히 멀어져 갔다.
  영호충은 있는  힘을 다하여 걸음을  옮겼다. 반시진 동안  반리
(半里)정도 나갔을 때 눈 앞에 별이  오락가락하고 천지가 도는 것 
같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갑자기 앞의 풀더미 속에서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은 흠칫 놀라며 물었다.

  [누구요?]

  그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다.

  [영호형(令狐兄)이오? 나는  전백광(田伯光)이오. 아이고!  아이
고!]

  아마도 몹시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영호충은 놀랐다.

  [전...... 전형(田兄), 왜 그러시오?]
  [죽을  지경입니다.  영호형,  당신은  좋은   일  해주는  셈치
고...... 아이고...... 아이고...... 빨리 나를죽여주시오.]

  그는 큰 소리로 고통을 호소했으나 음성은 우렁찼다.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상처를 입었소?]

  그는 무릎에서 힘이 빠져 길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전백광이 놀라 말했다.

  [당신도 상처를  입었소? 아이고!  아이고! 당신을 해친  사람이 
누구요?]

  영호충은 말했다.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소? 전...... 형, 누가 당신을 해쳤소?]

  전백광은 말했다.

  [아...... 나도 모른다오.]

  영호충은 다시 물었다.

  [어찌 모른다 하시오!]

  전백광이 말했다.

  [나는 길을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두 손  두 발을 사람에게 잡
혀 허공에  떠올랐소. 누가 그런 신통력(神通力)을  가졌는지 보지 
못했다오.]

  영호충이 웃으며 말했다.

  [또 도곡육선(挑谷六仙)이었군......  아, 전형, 당신은  그들과 
일행이 아니었읍니까?]
  [일행이라니 무슨 소리입니까?]

  영호충이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 의...... 의림(儀琳)  소사매(小師妹)를 보러 가
자고  청했고......   그녀에게  가봐야   한다고  했읍니다.   그
녀......]

  숨이 가빠온 영호충은말을 다하지 못했다.
  전백광은 숲속에서 기어나와 고개를 저으며 욕을 했다.

  [제기랄...... 당연히 일행이 아니오. 그들은,  '화산에 한 사람
을 찾으러 올라왔는데 그 사람이 이곳에  있느냐' 하고 물었소. 나
는 그들에게 누구를  찾느냐고 물어 보았소. 그들이  말했소. 그들
이 이미 나를  잡았으니 당연히 그들이 나에게  물어보아야지 내가 
그들에게 물어보면 안 된다고 했읍니다.  만약 내가 그들을 잡았다
면 그때는 마땅히 내가 그들에게 물어볼  수가 있으며 그들은 나에
게 물어볼  수가 없다고 했소. 그들은......  아이고...... 귿르은 
말했소. 나에게 재주가 있다면 자신들을  붙잡아 보라고 하면서 그
때는 그들에게 물어볼 수가 있다고 했소.]

  영호충은 껄껄 두번 웃다가 숨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전백광이 말했다.

  [내 몸은 허공에 떴고 얼굴은 땅으로  향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
들을 잡을  수 있었겠소. 그런데도 빌어먹을  자식들은 헛소리만을 
지껄여대었소.]

  영호충이 물었다.

  [다음에는 어찌 되었읍니까?]

  전백광이 말했다.

  [나는 말했소......  '내가 당신들에게 물어보려고  한게 아닙니
다. 당신들이  나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빨리 나를  놓아주시오.' 
그중의 한 사람이 말했소. '너를 이미  붙잡은 이상 사지를 조각내
지 않는다면,  어찌 우리 여섯 대영웅(大英雄)의  위명(威名)이 손
상되지 않겠느냐.'  다른 한 녀석이 말하더군요......  '사지를 조
각낸 후에 그가 말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그는 욕을 퍼부어대며 숨을 돌렸다.
  영호충이 말했다.

  [그 여섯  사람의 말은 억지에  불과하니 전형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읍니다.]

  전백광이 말했다.

  [제기랄......  지에미...... 한  놈이 말하기를......  '사지가 
조각난 사람은 당연히  말을 못하지. 우리가 네 조각을  낸 자들이 
천(千)은 안  돼도 팔백(八百)은 될거야.  그 언제 찢어진  다음에 
말을 한 사람이  있었던가?' 또 한 녀석이 말했소......  '네 조각
으로 찢겨 죽은  사람이 말을 안 한 이유는 우리들이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물어본  적이 있다면 감히 대답을 안  하지는 않았
을거야.' 다른  놈이 말하기를...... '네 조각으로  찢어졌는데 뭐
가 두렵고 뭐가 감히 말할 수 있고 감히  말할 수 없다는 거야. 우
리가 그를 다시 여덟 조각으로  찢어놓을까봐 두려워한단 말이야?' 
먼저 말했던 자가 말했소...... '여덟  조각으로 찢는 무공은 예사
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옛날에 해 보았지만 지금은  잊고 있
었던 것이야.']

  전백광은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는데 중상을 입고도  그들의 헛 
소리들을 잘도 기억하고 있었다.
  영호충은 탄식조로 말했다.

  [그들 여섯분  인형(仁兄)들은 정말 세상에서 보기  어려운 사람
들이오. 나도 그들에게 고약하게 당했소.]

  전백광은 놀라며 말했다.

  [알고 보니 영호형도 그들에게 당했군!]

  영호충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아니랍니까?]

  전백광이 말했다.

  [나는 몸이 허공에  있을 때 사실은 정말 두려웠소. 나는  큰 소
리로 말했소. '나를  잡아 찢으면 나는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오. 
입으로는 말을 한다  해도 내 마음은 약이 잔뜩 올라  있으니 절대
로 말하지 않을  것이오!' 한 사람이 말하더군요. '네 몸이  네 조
각으로 찢어진 후  너의 입술은 한 조각에 붙고 마음은  다른 조각
에 있는데  마음속의 생각과 입  속의 말을 어떻게 하나로  연결할 
수 있단 말이냐?'  나는 즉시 그들에게 한방을  먹였읍니다. '빨리 
물어보도록 하시오. 나를 놓아주지 않고  계속 붙들고 있으면 나는 
독기(毒氣)를 뿜겠읍니다.'  한 사람이 물어오더군요.  '무슨 독기
를 뿜는단 말이냐?'  내가 말하기를 '나의 방귀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오. 냄새를 맡고  나면 삼일 밤낮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고 삼
일 전에 먹었던 음식도 다 토하고 만다오.  먼저 경고를 했으니 사
전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마시오.'

  영호충은 웃었다.

  [그 몇마디는 어쩌면 쓸모가 있었겠는걸?]

  전백광이 말했다.

  [그렇소. 그 네 녀석은 내 말을 듣자  약속이나 한 듯 크게 비명
을 지릅디다. 그리고  나를 내팽개치고 흩어졌지요. 내가  몸을 일
으키고 바라보니 괴상하게  생긴 여섯 늙은이들은 각자  손으로 코
를 틀어 막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소. 내  방귀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소. 영호형, 그들이 바로 도곡육선이라고 불리는 자들이오?]

  영호충이 말했다.

  [맞소. 아, 애석하게도 나는 전형과  같이 똑똑하지 못해서 당시 
그...... 방귀의 계략을  쓰지 못했소. 전형의 그 계략은  옛날 제
갈량(諸葛亮)이 사마의(司馬懿)를  놀라게 만든  공성계(空城計)에 
뒤지지 않는 것이오.]

  전백광은 쓰게  웃더니 빌어먹을  놈들이라고 두번 욕하고  말했
다.

  [나는 그 늙은이들을  상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요. 또
한 병기가 당신이  있던 사과애(思過崖) 위에 있는지라  즉시 방향
을 바꾸어 도망치려고  했는데 그 육인이 손으로 코를 가린  채 울
타리 같이 늘어서서  나의 앞을 가로막았읍니다. 흥!  그러나 누구
도 감히 나의 뒤에 서 있지는 못하더군요.  나는 곧장 몸을 돌렸는
데 어찌된  노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육인은 어느새  귀신같이 
나의 앞을 가로막고 있지 않겠소?  나는 수차례나 방향을 바꾸었지
만 피할 수  없었소. 한보 한보 뒤로 후퇴하며  끝내 바위절벽에까
지 물러서게 되었읍니다. 그 괴물들은  매우 재미있는지 하하 크게 
웃으며 물었소. '그는 어디에 있느냐?  그 사람이 여기에 있느냐?' 
나는 물었소. '당신들은  누구를 찾는 것이오?' 여섯  명은 일제히 
말했소. '우리가 너를  포위하였고 너는 도망갈 길이  없으니 반드
시 우리들  말에 대답해야 한다.' 그  중 한 명이  말하기를 '만약 
네가 우리를 포위하고 도망갈 길이 없게  만든 다음 우리에게 물어
온다면 우리는  순순히 대답할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소. 
'그는 단지 한 사람인데 어떻게 우리 여섯  사람을 포위할 수 있겠
는가?' 먼저 말한 자가 말했소. '만약  그의 재주가 고강하다면 한 
사람일지라도 여섯 명을  이길 수 있지 않은가?' 다른 한  놈이 말
했소. '그것은 단지  우리를 기기는 것이지 우리를  포위하는 것은 
아니야.' 먼저  말했던 괴인이  말했소. '그러나 우리들을  하나의 
동굴 속에 몰아넣고  동굴 입구를 지키고 우리들로  하여금 나오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를 포위한 것이 아닐까?'  다른 한 사람이 말하
기를, '그것은 가둔 것이지 포위한 것은  아니야.' 먼저 말한 자가 
말했소. '그러나 팔이  긴 사람이 우리를 한꺼번에  감싼다면 포위
한 것이 아닐까?' 다른 자가 말했소. '첫째,  세상에 그렇게 긴 팔
을 가진 사람이 없고 둘째,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눈 앞에 
있는 사람은 그처럼 팔이 길지가 않고 셋째,  그가 우리 여섯 명을 
한번에 감싸 안았다 해도 그것은 안은  것이지 포위한 건 아니다.' 
먼저 말했던 자가  눈쌀을 찌푸리며 한참고민하더니  갑자기 크게 
웃으며 말했소. '있다! 그가 독기를  뿜어 우리들로 하여금 도망치
지 못하게 하고  그 방귀가 우리를 에워싼다면 그 또한  포위한 것
이 아닌가?'  그러자 나머지 네  괴인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말했
소. '맞다. 이 녀석은 우리를 포위할  방법이 있다.' 나는 영기(靈
機)가 움직여  몸을 돌려 도망치며 소리쳤소.  '내가...... 너희들
을 포위하겠다!' 나는  그들이 나의 방귀를 두려워하고  다시 추격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육괴들의 출수는  매우 빨라 내가 두 
걸음도 채 옮기지  못했을 때 다시 그들에게 잡혔소.  그들은 나를 
큰 바위 위에 앉혀놓고 나를 내리 눌렀소.  설령 방귀를 뀌어도 방
귀는 새어나갈 틈이 없었소.]

  영호충은 껄껄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나 몇  차례 웃지 않아 가
슴에서 피가 용솟음 치는 듯하여 더 웃을 수가 없었다.
  전백광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 육괴는 나를  계속 눌렀소. 한 사람이 옆  사람에게 물었소. 
'방귀가 어디에서 나오지?' 다른 한  명이 물었소. '방귀는 장(腸)
에서 나오니 자연 양명대장경(陽明大腸經)에  관계된다. 그러니 그
의 상양(商陽), 합곡(合谷),  영향(迎香) 등 각 혈도를  짚어야 한
다.' 그는 말을 하면서 손으로 나의  그 네곳 혈도(穴道)를 짚었는
데 출수(出手)의 빠름과  정확함은 나 전모(田某)도 평생  보기 어
려운 것이어서 나를  감복케 하였소이다. 그가 혈도를 짚은  후 육
괴는  모두 긴  숨을  내쉬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말했소. 
'이...... 냄새나는 벌레는 다시는 방귀를  뀌지 못할 것이다.' 혈
도를 짚었던 자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소. '이봐, 그  사람은 어디 
있느냐? 네가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혈도를 풀어주지 않겠
다. 방귀를  뀌지 못하게 하고  배가 퉁퉁 부어오르게  만들겠다.' 
나는 생각했소. 이들 여섯 괴물의  무공이 이처럼 고강하니 화산에 
와서 평범한 인물을 찾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오. 영호
형, 존사(尊師)이신  악선생(岳先生) 부부는 산에 안  계셨고 설령 
돌아왔다고 해도 정기당(正氣堂)에 거주하고 있으니  바로 찾을 수 
있지 않겠소. 그래서  나는 육괴가 찾고자 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
의 태사숙(太師叔)인 풍 노선배(風老先輩)라고 짐작했지요.]

  영호충은 깜짝 놀라 다급히 물었다.

  [당신은 그분의 거처를 누설했소?]

  전백광은 매우 못마땅한 듯 성난 음성으로 말했다.

  [쳇! 당신은  나를 어찌 보는거요?  나는 이미 당신에게  맹세했
소. 절대로 풍 노선배의 행적을 누설하지  않겠다고. 나 또한 당당
한 사내대장부인데 어찌 맹세를 어기겠소?]

  영호충이 말했다.

  [맞소이다. 맞아! 소제가 실언했구료! 전형은 욕하지 마시오.]

  전백광이 말했다.

  [당신이 나를  다시 그런 식으로  얕본다면 우리는 금후  서로를 
친구라 할 수 없게 될 것이오.]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너는 무림에서  입에 담기도 싫어하는  채화음적(採花淫賊)인데 
누가 친구로 사귀겠다고 했느냐? 다만  그대가 수차례나 나를 죽일 
수 있는데도 손을 쓰지 않았기에 내가  너에게 정(情)의 빚을 지고 
있을 뿐이다.)

  어둠속이라 전백광은  그의 안색을 살펴볼 수  없었다. 전백광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 육괴들이 쉬지  않고 묻기에 나는 큰 소리로  말했소. '나는 
그 사람의  소재지를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소. 화산의  산령(山
嶺)은 수도 없고  산동(山洞)이 수없이 많소. 내가  말하지 않는다
면 당신들은 한평생 그를 찾을 생각을  그만두어야 할거요.' 그 육
괴들은 대노하여 나에게 혹독한 고통을  가하였소. 나는 그런 고통
을 받는  것을 돌아보지 않았소.  영호형, 그 육괴의 무공은  괴이
(怪異)하고 비상(非常)하니 당신은 빨리 가서  풍 노선배에게 알려 
주시오. 그 어르신네의 검법이 비록  고강하다고 하지만 그들을 대
항할 방비를 해야 할 것이오.]

  전백광은 육괴가 자신에게  뼈를 깎는 고통을 가했다는  말을 담
담하게 진술했는데  영호충은 혹독한  고통이란 말에 얼마나  많은 
독랄한 혹형이 포함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육괴가 자신에 대해  일편의 호의로 상처를 치료해  주었는 데도 
지금 그가 이토록 무서운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들이 전백광을 고
문했다면 수단의 지독함을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 마음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전형이 죽을망정  풍 태사숙의 거처를 누설하지  않았으니 정말 
천하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구료.  그러나...... 도곡육선(桃谷六
仙)이 찾은 사람은 나지 풍 태사숙이 아니라오.]

  전백광은 몸을 한차례 떨고는 말하였다.

  [당신을 찾은 것이라고?  그들이 무엇 때문에 당신을  찾은 것이
오?]

  영호충이 말했다.

  [그들은 당신과  같이 의림 소사부의  부탁을 받고 나를  찾아와 
그녀에게 데려가려고 찾아온 것이지요.]

  전백광은 입을 크게  벌린 채 말은 못하고 '어' 하는  소리만 연
발할 뿐이었다.
  한참 후 전백광은 말했다.

  [일찌기 육괴들이  찾는 사람이 당신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솔직이 알려 주었을 것이오. 육괴가 당신을 보러  갈 때 내가 따라
갔다면 극독이 발작하여 화산에 몸을  묻지 않았을 것이오. 그런데 
당신이 그들  수중에 떨어졌다면 당신을소사부(小師夫)에게 데려
갔을텐데 어찌 혼자 있는 것이오?]

  영호충은 한숨을 수며 말했따.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소. 전형,  당신은 극독이 발작하여 화산
에 몸을 묻게 되었다고 했는데?]

  전백광은 말했다.

  [내가 일찌기  말했듯이 나는 사혈(死穴)을 짚히고  극독을 복용
했소. 한달  내에 당신을  소사부(小師夫)에게 데려가지  못한다면 
나는 죽고 만다오.  내가 당신을 청해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손
가락 꼽아 보니 독이 발작할 날도 10일 밖에 남지 않았구료.]

  영호충이 물었다.

  [의림 소사부는 어디 있읍니까? 이곳에서  간다면 며칠이나 걸리
는지 알고 있읍니까?]

  전배광이 말했다.

  [당신은 가려고 하는가요?]

  영호충이 말했다.

  [당신은 수차례 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소. 비록  당신의 행
위는 깨끗하지 못하지만, 영호충은 나  때문에 독이 발작하여 죽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가 없구료. 그날 당신이  강함을 믿고 
나를 핍박하였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꺾일망정 굴복하지  않았던 
것이외다. 지금의 정세는 그때와 다른 것이오.]

  전백광은 말했다.

  [소사부는 산서(山西)에  있소. 에이......! 만일 우리  두 사람
의 몸이 건재하다면  쾌마(快馬)를 타고 달려 육칠  일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오. 지금 두 사람 모두  이 모양으로 상처를 입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소?]

  영호충은 말했다.

  [아니오. 산에 있어  봤자 죽음만을 기다려야 할  판이니 당신과 
함께 한번 가봅시다.  반드시 라고 말할 수 없지만  하늘이 보우한
다면 산 아래에서 마차를 빌릴 수 있을지도  모르오. 그러면 십 일
이면 산서(山西)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전모는 평생 나쁜  짓을 많이 했고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
을 해쳤는지 알  수 없는데 하늘이 눈이 멀었다면 몰라도  무엇 때
문에 나를 보우해 주시겠소?]

  영호충이 말했다.

  [하늘이 눈이  머는 일은...... 흥흥...... 그......  그것도 있
을 수 있는 일이오. 어차피 죽을 바에야 한번 시도해 봅시다.]

  전백광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렇소. 내가 길에서  죽으나 화산 위에서 죽으나  무엇이 다르
겠소? 하산하여 먹을 것을 찾는 것이  가장 급하오. 나는 이곳에서 
매일같이 생밤만  먹었더니 입에서 신물이 나올  지경이오. 당신은 
일어설 수 있소? 내 부축해 주겠소.]

  그는 입으로는 부축해 주겠다고 말했지만  스스로도 일어서지 못
했다.
  영호충은 손을 뻗어 그를 부축해 주려했지만 팔에 힘이 없었다.
  갑자기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껄껄 웃었다.
  전백광은 말했다.

  [전모가 강호(江湖)를 종횡한 지 오래이나  평생 친구 하나 없었
는데 영호형과 더블어  이곳에서 죽게 되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
소.]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어느날 사부께서 우리  두 사람의 시신을 보게 된다면  두 사람
이 악투  끝에 동귀어진(同歸於盡)한 줄로  알 것이오. 누구도  두 
사람이 죽음을 맞이할  때 호형호제(呼兄呼弟)했으리라고는 생각하
지 못할 것이오.]

  전백광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영호형, 우리 손을 잡고 죽읍시다.]

  영호충은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백광의 말은 자기와 생사
지교(生死之交)를 맺자는  것이었다. 그는 악독한 이름을  쌓은 채
화대도(採花大盜)이고  자신은  명문대제자(名門大弟子)인데  어찌 
그와 친구가 될 수가 있겠는가?
  그날 사과애(思過崖) 위에서 그를 몇 차례 이기고도  죽이지 않
은 이유는 그가 수차례나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은혜를 보답한 것일 
뿐이었다. 이와 같이  생각하자 막 내밀어 가던 손을  다시 움츠리
고 말았다.
  전백광은 그가 입은  상세가 너무 무거워 팔까지도  움직이지 어
려운 줄 알고 크게 소리쳤다.

  [영호형, 이 전백광이 당신 같은  친구를 사귀었으니...... 당신
이 만일 상세가  무거워 먼저 죽는다면 전모 역시 결코  혼자 살아 
남지 않겠소.]

  영호충은 그의 진정에 찬 말을 듣고  마음이 떨려와 생각에 잠겼
다.

  (이 사람이야말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는 손을 뻗어 그의 오른손을 잡으며 웃음을 머금고 말했따.

  [전형,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한다면 죽어도 외롭지 않을  것이
오.]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음산한  냉소(冷笑)가 
들려왔다.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화산파 기종(氣宗)의 수제자가  타락했다더니 정말이었군. 삼류
의 음적과 교우를 맺다니!]

  전백광은 버럭 소리쳤다.

  [누구냐?]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아차 싶었다.

  (내가 상처를 치료할 수 없으니 죽어도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
러나 사부의 명예에 누를 끼쳤으니 큰일났다!)

  어둠 속에서 몽롱한 인영을 볼 수 있었다.
  그 자는 장검을 손에 든 채 광망을  번뜩이고 있었다. 그는 싸늘
히 웃으며 말했다.

  [영호충(令狐沖), 네가  지금 후회한다면 이  검으로 전가(田家)
음적을 죽여라! 너와 그가 교우를 맺은 것을 알 사람은 없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이 땅에 꽂혔다.
  영호충은 검신(劍身)이  넓은 것을 보고  숭산파(嵩山派)의 검이
라는 사실을 알았다.

  [귀하는 숭산파의 누구십니까?]

  그자는 말했다.

  [네 안목이 뛰어나구나. 나는 바로 숭산파의 적수(狄修)다.]

  영호충은 말했다.

  [원래 적사형(狄師兄)이구료.  오랫만이오. 귀하가  폐산(?山)에 
올줄은 몰랐구료. 무슨 일로 이곳에까지 오셨는지요?]

  적수가 말했다.

  [장문사백(掌門師伯)께서는 밖에  떠도는 말처럼 과연  화산파의 
제자들이 못난  짓을 하는지 살펴보고  오라고 하셨소. 하지만  흥
흥! 화산에  올라와 네가 저 음적과  교우를 맺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전백광은 욕을 퍼부었다.

  [개 같은 놈! 너희 숭산파에는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알고나 있
느냐? 자신을 조사하지는 않고 쓸데없이 남의 일에간섭하다니!]

  적수는 발을 들어  퍽하고 전백광의 머리를 세게  걷어차며 외쳤
다.

  [너는 죽음에 이르렀는데도 입이 더럽구나!]

  전백광은 노해 부르짖었다.

  [개 같은 도적놈! 지미X할놈! 더러운 잡종놈아!]

  전백광은 쉬지 않고 욕을 퍼부었다.
  적수가 그를 죽이려고  했지면 자신의 주머니 속에서  물건을 꺼
내는 것만큼이나 쉬웠지만  그는 먼저 그들에게 치욕을  주고 싶었
다. 그는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영호충, 너는  그와 의기투합했으니  절대 그를  죽일 수  없겠
지?]

  영호충은 대노하여 낭랑하게 말했다.

  [내가 그를 죽이든 죽이지 않든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씨가 있는 놈이라면  일검으로 나를 죽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꼬리
를 말고 화산에서 기어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적수가 말했다.

  [너는 이  음적과 친구를  맺었기에 절대  죽일 수 없다는  것이
냐?]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누구하고 친구를 맺든 네놈과 사귀는 것보다는 낫다.]

  전백광은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말 잘했소! 멋지오!]

  적수가 말했다.

  [나를 격노케  만들어단검에 너희  두 사람을 죽이기를  바라는 
모양인데 천하에 그처럼  편한 일이란 없을 것이다. 나는  너희 두 
사람을 발가벗기고  가죽을 벗긴  다음 함께 묶어서  아혈(啞穴)을 
짚은 채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끌고 다니면서 한  놈의 털보
와 한 놈의 철면피가 나쁜 짓을 할  때 붙잡혔다고 말하겠다. 하하
하! 너희  화산파 악불군(岳不群)은 거짓으로 인자한  척 행세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군자검(君子劍)이라 자칭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
다!]

  영호충은 그 말을 듣자 노화가 치밀어 올라 기절하고 말았다.
  전백광은 욕을 퍼부었다.

  [제기랄...... 지미X할......]

  적수는 발로 그의 허리에 있는 혈도(穴道)를 걷어찼다.
  적수는 껄껄 웃고는 영호충의 의삼(衣衫)을 풀었다.
  돌연 등 뒤로부터 청아한 여인의 음성이 울려왔다.

  [이봐요, 당신은 거기서 뭐하는 거예요?]

  적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미미한 빛 아래 한 여인의 그림자가 보였다.
  적수는 차갑게 말했다.

  [너는 또 뭐하는 물건이냐?]

  전백광은 그  여자의 음성을  듣고 바로 의림(儀琳)이라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 소리쳤다.

  [소...... 소사부(小師父),  당신이 왔군요!  이 빌어먹을  놈이 
당신의 영호 오라버니를 죽이려고 하고 있소!]

  그는 보시 나를 헤치려고 한다는 말을  하려다가 즉시 생각을 바
꾸었다. 자신이  의림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
고 당신의 영호 오라버니라고 고쳤던 것이다.
  의림은 땅에 나뒹굴고  있는 사람이 영호충이라는 말을  듣자 황
급히 앞으로 달려나오며 외쳤다.

  [영호 오라버니! 당신이예요?]

  적수는 그녀가 온 정신을 영호충에게  집중하느라고 자신에 대해 
조금도 방비하지 않는  것을 보자 왼팔을 구부려  식지(食指)로 그
녀의 옆구리를 찔러갔다. 손가락이 막  그녀의 의삼에 닿으려고 할 
때 돌연 목덜미가 꽉 조여지며 몸이 허공으로 들여올려졌다.
  적수는 크게 놀라 오른 팔굽으로 뒤를  후려쳐 갔건만 허공만 때
리자 이어 왼발로 뒤를 걷어찼다. 그러나 또  다시 허공만 차고 말
았다.
  그는 더욱 놀라 두손을 뒤로 뻗쳐 잡으려고  했다. 그 순간 인후
(咽喉)가 하나의 큰  손에 의해 눌려졌으며 동시에  호흡이 곤란해
지며 전신에서 힘이 빠졌다.

  영호충이 깨어났을 때 한 여인이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영호 오라버니! 영호 오라버니!]

  그는 눈을  떴다. 눈 앞에 백설(白雪)처럼  수려(秀麗)한 얼굴이 
보였다.
  의림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그때 맑고 굉량한 음성이 들려왔다.

  [림아야, 이 병들린 귀신이 바로 영호충이냐?]

  영호충은 소리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나의 지극히 비
대(肥大)하고, 매우  키가 큰 화상(和尙)이 철탑(鐵塔)처럼  서 있
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그 화상의 키는 적게 잡아도 족히  칠척(七尺)은 될 것 같았으며 
왼손으로는 적수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적수는 사지를 축 늘어뜨리고 꼼짝도  않고 있었다. 죽었는지 살
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의림이 말했다.

  [아버지, 이분......  이분이 바로  영호 오라버니예요!  절대로 
병든 귀신이 아니예요!]

  그녀는 말할  때도 영호충을  응시하고 있었으며 눈빛에는  애련
(愛憐)의 정(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영호충
의 뺨을 어루만지려고 하다가 부끄러운 듯 손을 움츠렸다.
  영호충은 크게 의아했다.

  (너는 비구니인데 어떻게 중놈을 아버지라고  부른단 말인가? 화
상에게 딸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일진대 그  딸마저 비구니라니 
더욱 이상하구나! 이상해!)

  그 비대한 화상은 가가대소하며 말했다.

  [네가 밤낮으로  그리워하고 마음으로 애를 태우는  영호충이 나
는 무슨 건장한  영웅호한(英雄好漢)인 줄로 알았더니 죽은  척 땅
에 쓰러져 능욕을 당하고도 손을  쓰지 못하는 얼간이었구나! 나는 
절대로 이따금 병든  귀신을 사위로 삼지 않겠다. 우리  상대도 하
지 말고 그만 두자!]

  의림은 부끄럽기도 하고 급하기도 하여 변명을 늘어 놓았다.

  [누가 밤낮으로  그리워 했다는 거예요?  아버지는......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는군요.  가고 싶으면 혼자 가세요.  그는...... 좋
은 분이란 말이예요. 아버지, 결코 병든 귀신이 아니라고요.]

  하지만 사위로 맞을 수 없다는 말은 종내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영호충은 화상이  병든 귀신이니  쓸모없는 얼간이니 하고  욕을 
하는 소리를 듣고 크게 화가났다.

  [갈래면 가시오! 누가 아는 체를 하라고 그랬소?]

  전백광은 다급하여 소리쳤다.

  [안 돼! 가서는 안 돼!]

  영호충이 말했다.

  [왜 안 된다는 거요!]

  전백광이 말했다.

  [나의 혈도를  그는 풀어주어야 하고  독약의 해약도 그의  몸에 
있는데 그가 가면 내 어찌......]

  영호충이 말했다.

  [뭐가 두렵습니까? 내  이미 말했듯이 당신이 독이  발작하여 죽
는다면 나도 즉시 목을 따고 죽을 것이오!]

  그 비대한 화상은 하하 웃었다.
  웃음소리는 산곡(山谷)을 울렸다. 그는 이어 말했다.

  [좋다, 좋아! 원래 이 녀석은 뼈대가  있는 사내였군! 림아야 그
는 나의  비위 맞는구나.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어야 겠
다. 그는 술을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

  의림이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영호충이 소리쳤다.

  [물론 마시지!  어찌 마시지 않겠소?  이 몸은 아침에도  저녁에
도, 잠자면서도 마신다오.  당신이 나의 술 마시는  모습을 본다면 
당신같이 술과  비린 것을 먹지  않고 살생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화상들은 약이 오를거외다!]

  그 비대한 화상은 가가대소를 하며 말했다.

  [림아야, 그에게  아버지의 법명(法名)이 무엇인지  말해 주려므
나.]

  의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  아버지 법명은 불계(不戒)예요. 몸은  비록 불
가에 있지만  계율을 지키기를 싫어하세요. 그래서  불계라고 하는 
거예요. 술도 마시고  비린 것을 먹으며, 살인(殺人)과  도둑질 등 
못하는 것이 없어요. 그리고...... 나를...... 낳기도 했어요.]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풋' 하는 웃음소리
를 냈다.
  영호충은 껄껄 웃고는 낭랑하게 말했다.

  [그런 스님이야말로 정말 멋이 있군! 정말 통쾌한 사람이군.]

  그는 말을  하며 있는 힘을  다해 일어서려고 했으나 결국  힘이 
미치지 않았다.
  의림은 황급히 손을 내밀어 그를 부축해 주었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무슨  일이건 다 하실 수  있다면서 어찌
해서 환속(還俗)을 하지 않고 화상의 옷을 걸치고 계십니까?]

  불계화상(不戒和尙)이 말했다.

  [자네는 모르고 있군!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화
상이기 때문이야.  나는 바로 자네처럼 한  아름다운 여승(女僧)을 
사랑하여......]

  의림이 끼어들었다.

  [아버지, 허튼 소리를 하지 마세요.]

  이 말을 할  때 의림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다행히  밤중이라 다
른 사람은 볼 수가 없었다.
  불계화상이 말했다.

  [대장부는 광명정대(光明正大)해야  한다. 하고 싶으면  해야 하
고 남이 비웃든 욕을 하든 개의치 말아야  한다. 나 불계화상은 당
당한 사내대장부인데 누구를 두려워하랴?]

  영호충과 전백광은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바로 그것입니다.]

  불계화상은 두 사람의 칭찬을 듣자 매우  흥이 나 계속해서 말했
다.

  [나는 그 아름다운  여승을 사랑하였지. 그녀는 바로  이 아이의 
엄마였다네.]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의림소사매의 아버지는  화상이고 어머니는  비구니였구
나.)

  불계화상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때 나는 돼지를 잡는 백정이었는데  이 아이의 엄마를 사랑하
게 되었지. 그녀는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네. 나는 어찌할 방법
이 없어 화상이  되었다네. 그 당시 나는 생각하기를  화상과 비구
니는 한 집안  사람이니까 비구니는 일반 사람은  사랑하지 않겠지
만 화상은 사랑할거라고 생각했지.]

  의림은 힐책했다.

  [아버지, 입을 다물 생각은 않고 크게 떠드니 어린애 같군요.]

  불계화상이 말했다.

  [내가 틀린 말을  했니? 그러나 나는 그 당시 화상이  되면 여인
과 가까이 할 없고 비구니 역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지 못
했다네. 어쨌든 그 여인을 사랑할 수 없게  된 나는 화상을 그만두
려고 했었지. 하지만 사부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정한 불문제자(佛
門弟子)는 환속하지 않는다.'  라고 하면서 말렸어. 저  애의 엄마
도 바보스럽게  우직한 나의  진정(眞情)에 감동하게 되어  결국은 
어린 비구니를 낳았던거야. 영호충, 자네에게  알려주는데 나의 딸
을 좋아한다고 해서 화상이 될 필요는 없다네.]

  영호충은 속으로 고민했다.

  (의림 사매가 그 당시 전백광에게  사로잡혀 몸을 더럽히게 되었
기 때문에 나는  불의를 보고 검을 뽑아든 것이었다.  그녀는 항산
파의 수도하는  여승인데 어쩌다가  나와 같은 속인(俗人)과  이런 
정분이 얽히게 되었을까? 그녀는 어이해  나와 정을 맺으려 하는걸
까? 그녀는 전백광과 도곡육선을 보내어  나를 만나려고 했는데 이
는 나이 어린  여인이 생전 처음 남자를 대하게 되자  마음이 흔들
렸기 때문일 게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
겠다. 만일 화산, 항산 두 문파의  명예를 손상시키신다면 내가 죽
은 다음에도  사부께서는 욕을 들으실  것이다. 또 영산  소사매는 
나를 여승과 가까이 했다고 깔볼 거야.)

  이때 의림은 매우 겸연쩍어 말했다.

  [아버지...... 영호 오라버니는 벌써 마음에  둔 사람이 있어요. 
어찌...... 옆 사람에게 눈길을  돌리겠어요. 다시는...... 다시는 
거론하지 마세요. 남에게 비웃음을 받아선 안 돼요.]

  불계화상이 화를 냈다.

  [뭐? 이 녀석에게  다른 여인이 있다고? 울화가  치미는군! 울화
가 치밀어!]

  그는 오른발을 성큼 내딛더니 부채처럼  넙적한 손으로 영호충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영호충은 서  있기도 힘드는데 어찌  피할 수가 있겠는가?  그의 
손에 꽉잡힌 채 허공에 대롱대롱 들려졌다.
  불계화상은  왼손으로는 적수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영호충의 멱살을 잡고 두 팔을 좌우로 꼿꼿이  폈다. 그 모습은 물
지게를 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영호충은 힘이 빠져 낡은 부대처럼 축 늘어졌다.
  의림은 다급하게 말했다.

  [아버지, 영호 오라버니를 내려놓으세요!  내려놓지 않으면 나는 
화를 내겠어요!]

  불계화상은 딸이 화를  낸다는 말을 듣자 두려운  일이라도 있는 
듯이 즉시 영호충을 내려놓고 중얼거렸다.

  [저 녀석의 마음속에 예쁜 비구니가 있다고?  정말 그럴 수가 없
다. 그럴 수가 없어!]

  그는 자신이 아름다운  여승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비
구니를 제외하고는 사랑할 만한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있는 것이었
다.
  의림이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그저 사매인 악 소저예
요.]

  불계화상은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는 듣는 사람의 귀를 
웅웅거리게 울렸다.
  이어 그는 호통을 쳤다.

  [무슨 소저라고? 제기랄, 어여쁜 비구니가  아니란 말이냐? 비구
니가 아니면 예쁘지 않아! 이 다음에 그  계집애를 보게 된다면 나
는 단숨에 그 계집애를 죽여 버릴테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이 불계화상은 노망한 사람이군! 도곡육선과  조금도 다르지 않
구나! 단지 염려가 되는 것은 이 화상은  한번 내뱉은 말은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성미인 것 같으니 정말  소사매를 어떻게 할지도 모
른다. 아...... 정말 큰일이군!)

  의림은 매우 초조했다.

  [아버지, 영호  오라버니는 큰 상처를 입었다구요.  빨리 치료해 
주세요. 다른 문제는 천천히 강구해도 늦는 게 아니예요.]

  불계는 딸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했다.

  [상처를 고치는 게 뭐가 어렵겠어?]

  이어 적수를 뒤로 멀리 던져버리고 영호충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상처를 입었지?]

  등 뒤에서 '악' 하는 적수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적수는 산비
탈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고 있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가슴에 일장을 맞았소. 그건 아무것도 아니죠......]

  불계화상이 말했다.

  [가슴에 일장을 맞았다면 분명 임맥(任脈)을 다쳤겠군!]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도곡(挑谷)......]

  불계화상은 버럭 소리쳤다.

  [임맥에는 도곡이라는 혈도가 없다! 너희  화산파는 내공이 출중
하지 못하여 혈도에  대해 아는 바가 없구나. 사람의  혈도에는 합
곡(合谷)이라는 혈도가 있긴 하다.  그것은 수양명대장경에 속하는 
것이고 엄지와 식지  사이에 있어. 임맥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좋아 내가 너의 임맥을 치료해 주겠다.]

  영호충은 말했다.

  [아니, 아니외다. 그 도곡육......]

  불계화상이 말했다.

  [뭐가 도곡육이고  도곡칠(挑谷七)이냐? 온몸의 혈은  오로지 수
삼리(手三里),  족삼리(足三里), 음릉천(陰陵泉),  사공죽(絲空竹)
이 있을 뿐, 도곡육이나 도곡칠은 없다. 헛소리 작작해라.]

  말을 하면서 영호충의 아혈을 짚으며 말했다.

  [나의 정순(精純)한 내공으로 네 임맥에  속하는 승장(承藏), 천
돌(天突), 단중(?中), 구미(鳩尾),  거궐(巨闕), 중완(中脘), 기해
(氣海), 석문(石門), 관원(關元), 중극(中極)의  각 혈도를 뚫어주
겠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나을 것이고 칠팔일 정도  휴식을 취
하면 거뜬해질 것이다.]

  그는 부채같이 큰  손을 내밀었다. 우측 손은 그의  아래턱 승장
혈을 누르고 왼손으로는 아랫배의 중극혈을  눌렀다. 두 줄기의 진
기가 두곳의 혈도를 통해 밀려 들어갔다. 갑자기  이 두 줄기의 진
기와 도곡육선이 남긴  여섯줄기의 진기가 서로 부딪쳐  불계의 두
손이 마구 진동하기 시작했다.
  불계화상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크게 비명을 질렀다.
  의림은 급히 물었다.

  [아버지, 무슨 일이예요?]

  불계화상이 말했다.

  [그의 체내에는 몇  줄기의 이상한 진기가 있다. 하나,  둘, 셋, 
넷, 모두 네  줄기다. 아니다! 또 한줄기가 있다. 모두  다섯 줄기
가 있다. 이  다섯 줄기의 진기가...... 아이고! 또 한  줄기가 있
군! 제기랄! 모두 여섯 줄기로군! 나의  진기와 빌어먹을! 여섯 줄
기의 진기와  한번 싸워보아야겠다. 도대체 누가  이기는지 보자고 
또 있다면  더 좋을텐데 없는가? 하하하!  참 재미 있군!  재미 있
어! 흥!  단지 여섯 줄기뿐이라면  나 불계화상이 한번 싸워  볼만 
하지!]

  그는 두 손으로  영호충의 두 혈도를 짓눌렀다. 그의  머리 위에
는 흰  기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소리도 지르고  욕을 
하기도 했으나 나중에 내공을 점점 끌어올리자  입을 꾹 다물 수밖
에 없었다.
  이때 날은 점점 밝아왔다.
  그러나 그의  머리 위에 모인  흰 기체는 갈수록 짙어지기만  했
다. 결국은 한덩이의 짙은 안개처럼  그의 머리를 완전히 덮어버리
고 말았다.
  한참이 지난 후  불계화상은 두 손을 뗐다. 그는  껄껄 소리내어 
웃더니 갑자기 쿵 하고 땅 위에 뒤로 벌렁 쓰러져버렸다.
  의림은 깜짝 놀라 크게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급히 달려가  그를 품에  안았으나 불계화상의 몸뚱이는  너무도 
무거웠다. 의림은  반쯤 일으켜 주다가  두 사람이 같이  나뒹굴고 
말았다.
  불계화상의 온몸과 의복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입에서는 쉬
지 않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나...... 내가...... 제기랄!...... 내가...... 제기랄!]

  의림은 그가  욕지거리를 해대자 그때서야 마음을  놓았다. 그리
고 물어보았다.

  [아버지, 어떻게 된 거예요? 피곤하신가요?]

  불계화상은 욕을 했다.

  [제기랄! 이 녀석의  몸에는 여섯 줄기의 무서운  진기가 있었는
데 나에게 감히 대들잖아! 제기랄! 이  어르신께서 진기를 뿜어 여
섯 줄기의 사악한 진기를 물리쳤지.  헤헤헤...... 안심하거라. 이 
놈은 죽지 않는다.]

  의림은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과연 영호충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
었다.
  전백광은 웃으면서 말했다.

  [대화상의 진기는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  짧은 가간에 영호형의 
중상을 치료하셨군요.]

  불계화상은 그의 칭찬을 듣자 크게 기뻐 말했다.

  [네 녀석은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단숨에 문질러  죽여야 되겠
지만 어쨌든  영호충은 찾았다고 할  수 있으니 약간의 공로가  있
다. 그러니 목숨만은  살려 줄테니까 아무 소리도 말고  조용히 꺼
져라.]

  전백광은 대노하여 욕을 했다.

  [빌어먹을! 무엇이라고  했소? 아무 소리도 말고  조용히 꺼지라
고? 제기랄 중놈 같으니! 당신은  말했어. 영호충을 찾아내면 나에
게 해독약을 주겠다고. 이제 와서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다니 당신
이 혈도를 풀어주지  않고 해독제를 주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개만
도 못한 중놈이지!]

  전백광의 욕설을  들은 불계화상은  노하기는 커녕 오히려  껄껄 
웃었다. 

  [이 녀석 보게! 죽음을 두려워하여 저  모양 저 꼴이니 가소롭구
나! 이 불계가  식언을 헐 사람이냐? 빌어먹을 놈  같으니! 너에게 
해독약을 주겠다.]

  말과 함께 손을 품 속에 집어 약을 꺼냈다.
  그러나 조금 전 상처를 치료하느라고 힘을  쓴 나머지 손에서 힘
이 빠져 손에 있는 약병을 다시 품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의림은 손을 내밀어 약병을 집어들고 뚜껑을 뽑았다.
  불계화상은 말했다.

  [세 알을 줘라. 한  알을 먹고 삼일 후에 다시 한  알을 먹고 다
시 육일 후에 한 알을 먹어라. 구일이  지나가지 못해 남에게 살해
된다면 내 탓이 아니다.]

  전백광은 의림의 손에서 해독약을 받아 들고 말했다.

  [보시오. 해약만  주면 어떡하오. 사혈을 짚은  것도 풀어주어야 
되지 않겠소?]

  불계화상은 껄껄 웃었다.

  [내가 짚었던  그 혈도는 이레나  여드레가 지나고 나면  저절로 
풀어질 것이다. 이  불계가 정말 너의 사혈을 짚었다면  네가 어찌 
오늘까지 살아 있을 수가 있었겠느냐?]

  전백광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안심했다. 그는 웃으면서  욕을 했
다.

  [제기랄! 중놈이 사람을 속이다니!]

  그는 영호충에게 말했다.

  [영호형, 당신과 소사부는 할 말이 많을  거외다. 난 가겠소. 다
시 만날 날이 있겠지요.]

  말을 하면서  손을 맞잡고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려 산  아래로 
걸어갔다.
  영호충은 급히 말했다.

  [전형, 잠깐만!]

  전백광은 몸을 돌렸다.

  [왜 그러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전형, 영호충은  수차례 당신 손엣 살아났소.  그리하여 당신과 
친구가 되었소. 나는  딱 한가지 당신에게 부탁할  말이 있읍니다. 
만약에 당신이 고치지 않는다면 우리의 교제는  계속될 수 없을 거
외다.]

  전백광은 웃으면서 말했다.

  [말씀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오. 당신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다
시는 양가의 아녀자들을 해치지 말라는  것이겠죠. 나는 당신의 말
을 따르겠소이다. 이 몸이 비록  여자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얌전
한 규수를 욕보이지는 않겠소. 하하하  형산 군옥원의 풍경은 재미
있었소?]

  영호충과 의림은 형산의 군옥원이란 말을 듣고 얼굴을 붉혔다.
  전백광은 껄껄 웃고 큰 걸음을 내딛어  앞으로 향하다 갑자기 다
리를 휘청하더니 산비탈 아래로 몇바퀴 굴러내려갔다.
  그는 몸을 허우적거리고 앉더니 한 알의  알약을 꺼내 입속에 털
어 넣었다. 그러자 갑자기 복통이  일어 따위에서 한참이나 신음을 
질러대었다.그는 해독이 되느라고 이토록  아프다고 생각하고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느꼈다.
  조금 전에 불계화상이  영호충을 치료한 이루 영호충은  다리 끝
에서부터 천천히 힘이 생겨나는 것을  느끼고 불계화상에게 다가가 
공손히 읍을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스님은 제 생명을 구해주셨읍니다.]

  불계화상은 껄껄 웃었다.

  [감사하기는...... 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  아닌가? 자네는 
내 사위고 나는 자네의 장인이니 감사고 말고가 없네.]

  의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버지...... 또...... 또...... 말을 함부로 하시는군요.]

  불계화상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라고? 내가  말을 함부로 한다고?  너는 아침 저녁으로  그를 
사모하지 않았니? 그에게  시집을 가려고 그런 게  아니었니? 설령 
시집을 가지는 못한다  해도 그의 씨를 받아 예쁜 비구니  딸 하나
를 얻으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니?]

  의림은 골을 냈다.

  [늙어서 망령이 났군요. 누가...... 누가......]

  바로 이때 산 아래에서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산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바로  악불군과 악
영산 부녀였다.
  영호충은 놀랍기도 했고  기쁘기도 해서 급히 앞으로  달려 나갔
다.
  그는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사부님, 소사매, 돌아오셨군요! 사모님은요?]

  악불군은 영호충이 정신이  맑아 보이고 왕성한 것을  보고 크게 
기뻤다.
  그는 불계를 향해 손을 맞잡고 예의를 차리며 물어보았다.

  [대사께서는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누추한  곳에 왕림하셨
는데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으십니까?]

  불계화상은 말했다.

  [나는 불계라고 하오.  이런 누추한 곳에 왕림한  이유는 내사위
를 찾기 위함이었읍니다.]

  그는 말을 하면서 영호충을 가리켰다.
  그는 백정 출신이라 인사말을 할 때 문자를  쓸 쭐 몰랐다. 악불
군이 '누추한 곳에 왕림했다' 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었다.
  악불군은 불계화상의 정체를 자세히 몰랐고  그가 '내 사위를 찾
으러 왔소.' 하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단지 일부러 자기를 놀리려
고 한 소리인 줄 알고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대사님은 농담을 잘 하시는군요.]

  의림이 이때 악불군에게 공손히 예를 차렸다. 악불군은 말했다.

  [의림 사질, 예를 차릴 필요는 없네. 그대가  화산에 온 것은 사
부님의 명령을 받들고 온 것인가?]

  의림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아닙니다. 저는...... 저는......]

  악불군은 더 이상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전백광을  향해 말했
다.

  [전백광, 너는 담도 크구나!]

  전백광은 말했다.

  [나는 당신의 제자인 영호충과 말이 잘  통합니다. 나는 두 항아
리의 술을 지고 산 위에 올라 그와  통쾌하게 마셨지요. 술을 마시
는데는 담이 클 필요는 없더군요?]

  악불군은 얼굴이 엄숙하게 변했다.

  [술은?]

  전백광은 말했다.

  [이미 사과애 위에서 둘이 깨끗이 마셔버렸지요.]

  악불군은 영호충을 향해 말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냐?]

  영호충은 말했다.

  [사부님, 거기에는 사연이 있읍니다. 말을  하자면 기니 이 제자
는 천천히 말씀드리겠읍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전백광은 화상에 온 지 며칠이나 되었지?]

  영호충은 말했다.

  [약 보름 정도입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그 보름 동안 그는 줄곧 이 화산에 있었느냐?]

  영호충은 대답했다.

  [예.]

  악불군은 매섭게 말했다.

  [왜 나에게 알리지 않았느냐?]

  영호충은 대답했다.

  [그때 사부님과 사모님께서는 산에 계시지 않았읍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그럼 나는 그때 어디 있었지?]

  영호충은 말했다.

  [장안 부근에 전군(田君)을 죽이려고 쫓아가셨지요.]

  악불군은 흥! 하고 코웃음치더니 말했다.

  [전군? 흥! 전군이라고?  너는 그가 산처럼 죄를  지었다는 사실
을 알면서도 어째서  그를 죽이지 않았느냐? 설령 싸움을  해서 이
기지 못한다고 하지라도 그에게 죽음을  당했어야 마땅한 일일진대 
그러기는 고사하고 그와  교우를 맺다니!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
이냐?]

  전백광은 일어서려고  했으나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는 자리에 
앉은 채로 말했다.

  [내가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그가 어떻게 나에게  죽을 수
가 있었겠소? 그가 나를 이기지 못한다고 내  앞에서 칼을 물고 자
살을 하란 말이오?]

  악불군은 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 앞에서 감히 네가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악불군은 영호충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충아, 이 악적을 네 손으로 처단하도록 해라.]

  악영산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아버지! 대사형께서는 중상을 입었는데 어떻게  저 사람과 싸울 
수가 있겠어요?]

  악불군은 말했다.

  [저 사람 역시  상처를 입었다. 너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내가 
있는데 어찌 저 악당이 내 제자를 해치도록 내버려 두겠느냐?]

  악불군은 평소  영호충이 지혜가  많고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여 
얼마전에만 해도  전백광과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영호충이 전백광 같은 악당과 사귀게  된 것도 하나의 계략
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즉, 힘으로 이길  수 없어서 지혜를 쓴 것이며  전백광이 상처를 
입은 이유도  영호충의 계략에  당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교우를 맺었다는  말을 듣고도 사실 크
게 화를 내지 않고 있었다.
  영호충에게 전백광을 죽이라고  한 것도 크나 큰  악당을 제거했
다는 이름을 영호충이 얻도록 하기 위한 안배였다.
  설사 영호충이 당해내지 못한다고 해도  자기가 옆에서 도와준다
면 영호충에게는 결코 위험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호충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 저  사람은 이미 제자에게 맹세를  했읍니다. 개과천선
해서 앞으로는 절대로 양가의 아녀자를  능욕하지 않는다고 했읍니
다. 제자는 저 사람의 말을 믿습니다. 그러니......]

  악불군은 크게 놀랐고 또한 크게 화가 났다.

  [너...... 너는 그의  말을 믿는단 말이냐? 백번  죽어도 마땅한 
악당에게 무슨 신의가  있단 말이냐? 그의 저 칼(刀)에  얼마나 많
은 선량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지 알고 있느냐? 저런  음적을 죽
이지 않는다면 우리 무예를 익힌 사람은  도대체 뭣 때문에 무예를 
익혔단 말이냐? 산아, 너의 패검(佩劍)을 대사형에게 건네 줘라!]
  [예.]

 악영산은 대답하고 허리의 장검을 뽑아  검자루를 영호충에게 건
네주었다.
  영호충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지금까지  사부님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조금 전 죽음에 임박했을  때 전백광과 
손을 꼭 잡고 친구를 맺지 않았는가? 또한  그는 이미 개과천선 하
겠다고 맹세했으니 전백광이 과거에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지금 그를  죽일 수야 없는 일이었다. 그를  죽인다면 어찌 
의롭다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그는 악영산의 수중에서 장검을 받아  들고 비틀거리며 전백광을 
향해 걸어갔다.
  십여 보 정도  걸어가던 그는 두 무릎에 힘이 빠지는  척하며 앞
으로 쓰러지면서 장검이 자신의 왼쪽 장단지를 찌르게 했다.
  이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사태였다.
  모두들 놀라 '아' 하고 부르짖었다.
  의림과 악영산은 동시에 달려나갔다.
  의림은 한 발자국을 내딛다가 우뚝  멈추었다. 그녀는 자기는 불
문의 제자인데 어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한 젊은이에게 관심이 있
다는 태도를 취하랴 생각한 것이었다.
  악영산은 영호충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대사형, 왜 그러세요?]

  영호충은 눈을 감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악영산은 검자루를 꼭 쥐고 장검을 뽑았다.
  꽂힌 부위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녀는 품 속에서 자기가 쓰는  금창약(金創藥)을 꺼내 영호충의 
장단지 위에 발랐다. 악영산은 이때  의림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해 
있었고 온  얼굴 가득 관심의  빛을 띠고 영호충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악영산은 내심 흠칫 놀랐다.

  (이 여승은 대사형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그녀는 검을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아버지. 소녀가 저 악적을 죽이도록 해 주세요.]

  악불군이 말했다.

  [네가 이 악적을  죽이면 너의 이름이 더럽혀진다.  검을 나에게 
다오!]

  전백광의 음탕한 이름은  천하가 알고 있는데 악씨  소저의 손에 
전백광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불량한 무리는 말을  더 보태
어 강간(强姦)이니 어쩌니 떠들어댈 것이었다.
  악영산은 부친의 그  같은 뜻을 알아채고 즉시  장검의 검자루를 
건네주었다.
  악불군은 장검을  받아들지 않고  우수를 가볍게 흔들어  장검을 
잡았다.
  불계화상은 그 광경을 보자 외쳤다.

  [안 돼!]

 양쪽 신발을 벗어 손에 들었다.
  그러나 악불군이  소매를 휘젓자  장검은 십여장 밖의  전백광을 
향해 쏘아나갔다.
  불계화상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는지 두 손에  힘을 주어 두 개의 
신발을 좌우로 나누어 던졌다.
  검은 무겁고 신발은 가벼우며 또한 장검은 먼저 쏘아나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불계화상의 두 승혜(僧鞋)는  늦게 출발하였
지만 먼저  도착하여 장검을 때렸다.  장검은 방향이 틀어져  다시 
몇장 날아가다 힘이 다하여 떨어지며 땅에 박혔다.
  한쌍의 승혜는 검자루 위에 걸려 검을 따라 흔들거리고 있었다.
  불계화상은 탄식조로 외쳤다.

  [다 틀렸군!  틀렸어! 림아야,  아버지는 오늘 사위를  치료하다 
내력(內力)을 지나치게  소모한 탓에 장검을  조금밖에 날려보내지 
못하고 말았다. 본래  네남편의 사부 앞에 떨어뜨려 그를  좀 놀라
게 해주려고 했는데...... 아! 이 애비는 부끄럽구나! 부끄러워!]

  의림은 악불군의 안색이 극히 좋지 못한  것을 보고는 작은 소리
로 말했다.

  [아버지,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

  빠른 걸음으로 가서 장검에 걸려 있는  신발을 풀고 장검을 뽑아
들고는 잠시 주저했다. 영호충이 전배광을  죽이고 싶지 않은 뜻을 
알고 있는지라 만일  악영산에게 검을 돌려주면 그녀는  다시 전백
광을 죽이려 할 것이니 영호충은 마음이 아프게 되지 않겠는가.
  악불군은 소맷자락의 공력으로 장검을 날려  단검에 전백광의 심
장을 꿰뚫으려고 했는데  불계화상에게 이 같은 놀라운  재주가 있
으며 공력이 교묘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화상이 큰  소리로 여승을 대함에 아버지라  자칭하고 영호충
을 사위라 부르며 헛소리를 하는 것이 미친 중 같았다.
  그러나 무공은 매우 강한 듯 그가  방금 영호충의 중상을 치료하
느라고 내력을 크게 소모하였다고 말했는데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내공은 더욱 힘차지 않겠는가?
  비록  자신이 방금  옷소매로 자하신공(紫霞神功)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신공을 썼다고 해도 화상에게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명가고수(名家高手)의 체면에  일격이 실패했다고  어찌 
다시 펼칠 수 있겠는가?
  그는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탄복했소! 대사께서 저  악적을 보호할 뜻이 있다면  불초는 오
늘 손을 쓰지 않겠오. 대사의 뜻은 어떠십니까?]

  의림은 그가 오늘은, 전백광을 죽이지  않겠다는 말을 하자 즉시 
두 손으로 장검을 받들고 악영산의 앞으로  가 살짝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언니......]

  악영산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검을 받아 쥐고  돌아보지도 
않으며 '착' 하고 칼을 검집에  꽃아넣었다. 매우 우아한 동작이었
다.
  불계화상은 하하 대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좋은 솜씨요! 그 수법은 너무나 멋지군!]

  이어 영호충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사위, 우리 가자.  그대 사매는 매우 빼어나군!  당신이 그녀와 
함께 있다면 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네.]

  영호충은 말했다.

  [대사께서는 농담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런 말씀은  항산(恒山), 
화산(華山) 두 문파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이니 더  이상 말씀하
지 마십시오.]

  불계화상이 놀란듯 말했다.

  [뭐라고? 겨우 너를  찾아 네 목숨을 구해 주었는데 너는  내 딸
을 맞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냐?]

  영호충은 정색하며 말했다.

  [대사님의 은혜를 이  영호충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읍니다. 
의림 사매의 항산파는 문규(門規)가엄하니  대사께서 그런 무책임
한 농담을  하신다면 정한(定閒),  정일(定逸) 두분  사태(師太)의 
체면이 말씀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불계화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림아야, 나의...... 나의......  이 사위는 도대체 어찌  된 녀
석이냐? 이거......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의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외쳤다.

  [아버지, 그만해요, 그만해요! 그는 그고  나는 나인데...... 무
슨......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예요!]

  '왁'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그녀는 산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불계화상은 영문을  알 수 없는지  한참 멍하니 서 있다가  말했
다.

  [이상하다. 이상해! 그를  못 볼 때는 목숨을 걸고  보려고 하더
니 그를 만났을 때는 보지 않으려고  하니...... 제 엄마의 마음과 
같구나. 비구니의 마음은 정말 헤아릴 수가 없군!]

  그는 딸이 점점 멀어져가자 즉시 뒤따라갔다.
  전백광은 일어나 영호충을 향해 말했다.

  [청산(靑山)은 변하지 않고 녹수(綠水)는 쉬임없이 흐르네.]

  몸을 돌려 비틀비틀 산을 내려갔다.
  악불군은 전백광이 멀어져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충아야, 너는  그 악당에게까지 의리를 지키는구나!  차라리 자
기를 찌를 망정 그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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