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천지회(天地會)
북풍은 칼날처럼 매섭게 휘몰아쳤고 대지는 차디차게 얼어붙었다.
강남(江南) 해변가의 어느 큰 길에는 한 떼의 청나라 병사들이 칼과 창
을 들고 일곱 대의 수거(囚車)를 압송한 채 찬 바람을 무릅쓰고 북쪽으
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앞에 있는 세 수거에는 각각 한 명씩의 남자가 갇혀 있었다. 하나같
이 서생(書生) 차림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노인이었고 두 사람은
중년인이었다. 뒤의 수거에는 여인들이 갇혀 있었는데 마지막 수거에
는 품에 갓난 여아(女兒)를 안고 있는 젊은 부인이 갇혀 있었다. 그 여
아는 끊임없이 울어대고 있었다. 수레를 호송하던 한 명의 청나라 군사
가 발로 수례를 걷어차며 호통을 내질렀다.
"자꾸만 울어라! 발로 걷어차서 죽여 버릴테니!"
더욱 놀란 갓난 아기는 요란하게 울어 대기 시작했다.
길 옆에 있는 커다란 집의 처마 아래에 한 사람의 중년 선비와 십
이세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년 선
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아......., 가련하구나!"
소년은 고개를 들어 중년 선비를 올려다 보며 물었다.
"아버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끌려가고 있는 거지요?"
중년 선비는 말했다.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 어제와 고늘 아침 우리 절강성(浙江省)에서
설흔 명이 넘는 선비들이 체포되었단다. 모두 무고하게 연루된 것이
지."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갓난아기는 죄를 지을 수가 없지 않겠어요? 그런데도 잡아가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요."
"네가 그와 같은 도리를 알고 있다니 제법이구나. 아.....'인위도조
(人爲刀俎),아위어육(我爲魚肉),인위정확(人爲鼎穫),아위록미(我爲鹿靡
)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중년의 선비가 길게 탄식하자 소년은 고개를 쳐들고 물어보았다.
"아버지 그 말은 어제 아버지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신 거지요? '인위
도조 아위어육'이란 남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뜻이라고 하셨지요? 다른
사람이 식칼과 도마라면 나는 고기의 신세가 되듯이 말이예요. '인위
정확 아위미륵'도 그런 뜻인가요? 다른 사람이 고기를 삶는 가마솥이라
면 나는 사슴이 되듯이 말이예요."
중년의 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이때 청나라의 군사들은 멀리 사라져가고 있었다. 중년의 선비는 소
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바람이 차구나.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은 서재로 들어섰다.
중년의 선비는 붓에 먹물을 찍어 종이 위에 '록'(鹿)이라고 썼다. 그
리고 말했다.
"사슴은 들짐승으로 덩치가 크지만 성질이 온순하여 다만 풀이나 나
뭇잎을 따먹고 산다. 사슴은 다른 동물을 해치는 법이 없다. 맹수가 사
슴을 잡아먹으려고 할 때 사슴은 도망칠 수 밖에 없으며 만약 도망치지
못한다면 맹수의 밥이 된단다."
중년 선비는 다시 붓으로 '축록'(逐鹿)이라고 쓰고 나서 말했다.
"옛날 사람들은 종종 사슴을 천하(天下)에 비유하곤 했다. 백성들은
온순하고 선량하여 남에게 압박과 박해를 받기만 하는 모습이 사슴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한서(漢書)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진나라
에서 사슴을 잃으니 천하가 모두 그 사슴을 취하려고 하더라.(秦失其鹿
天下逐鹿之)'진나라가 천하를 잃으메 군웅(群雄)들이 다투어 일어나 천
하를 얻으려고 싸웠으며 그 많은 군웅들 가운데 한고조(漢高祖)가 초패
왕(楚覇王)을 무찌르고 한마리의 노루를 얻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노
루를 백성이나 천하에 비유했다는 뜻이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소설책에 나오는 '축록중원'(逐鹿中原)이란 말은 황제가
되기 워해 다툰다는 뜻이군요"
선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 워에 다시 기다란 다리가 세 개 달린
가마솥을 그리고 말했다.
"옛 사람들은 음식을 익혀 먹을 때 남비를 사용할 줄 몰랐다. 그들은
긴 다리가 세 개 달린 가마솥을 사용했단다. 가마솥 밑에 불을 지펴서
짐승을 익혀 먹었지. 황제와 큰 벼슬아치들은 하나같이 잔인하고 포악
했다.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죄를 뒤집어 씌워 가마
솥에 산 채로 넣어 삶아 죽이곤 했다. 사기(史記)에는 임금애개 반역한
자를 가마솥 안에 넣어 삶아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소년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소설에 나오는 '문정중원'(問鼎中原)이라는 말도 '축록중원'과 같은
뜻인가요?"
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하(夏)의 우왕(禹王)은 구주의 금을 거두어 들여서 아홉개
의 가마솥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 금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금의 구
리(銅)이란다. 각각의 가마솥에는 구주의 명칭과 산천(山川)의 그림을
새겨 놓았으며 아홉 갸의 가마솥을 가진자가 천하의 주인이 된다고 했
다. 좌전(左傳)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초자관병어주강(楚子觀兵於
周彊).정왕사왕손만로초자(定王使王孫滿勞楚子).초자문정지대소경중언
(楚子問鼎之大小輕重焉).'이 말은 천하의 주인만이 아홉개의 가마솥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초자은 초나라의 제후(諸候)에 지나지 않았는
데 그가 가볍고 무거우며 크고 작은 가마솥에 대해 물어 보았다는 것은
주왕(周王)의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려고 했다는 뜻이란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문정'(問鼎)이나 '축록'(逐鹿)은 바로 황제가 되려고 한
다는 뜻이군요. '미지록사수수'(未智鹿死誰誰)란 바로 누가 황제가 될
지 모른다는 뜻이 되겠네요?"
"맞았다. 원래 문정 축록은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후에는 다른
뜻으로 쓰이기도 했지"
중년 선비는 한숨을 내숴고 다시 말했다.
"그러나 저러나 죽어나는 건 백성 뿐이었다. 그래서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을런지 모른다.(未智鹿死誰手)라는 말이 생긴 것이지."
그는 말을 마치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금새라도 눈이 내릴 것만 같
이 음울한 날씨였다. 중년 선비는 나직이 탄식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수백명이나 되는 무고한 사람을 혹한 속에 떨며
잡혀가도록 하다니! 눈이라도 온다면 고생은 더욱 심해질 것인데...
.."
중년 선비의 눈에 문득 남쪽으로 난 큰 길 위로 삿갓을 쓴 두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오는는 모습이 비쳤다. 그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
왔고 얼굴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중년의 선비는 크게 기쁜 음성으로
말했다.
"너의 황(黃)아저씨와 고(顧)아저씨께서 오시는구나!"
중년 선비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문 밖을 나서며 큰
소리로 외ㅊ다.
"이주(梨洲)형! 정림(亭林)형!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두 분께서 이
곳까지 오셨읍니까!"
오른쪽에 둥뚱하고 검은 수염을 기른 사람은 황종의(黃宗義)라는 사람
으로 자(字)는 이주(梨洲)였다. 왼쪽의 키가 크고 여윈 얼굴이 검은 사
람은 고염무(高炎武)라는 사람으로 자(字)는 정림(亭林)이었다.강소성
곤산(崑山)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당세의 이름이 높은 유생(儒生)들 이었다. 명(明)나
라가 망한후 망국(亡國)의 설움을 안고 초야에 은거하여 벼슬길에 나아
가지 않았던 사람들인데 어께를 나란히하고 찾아온 것이었다.
고염무는 몇 걸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만촌(晩村)형 한 가지 중대한 일이 생겨 특별히 상의하러 왔소."
중년의 문사는 여유량(呂留良)이라는 사람이고 호(號)는 만촌이었다.
조상 대대로 절강성 항주부(杭州府) 숭덕현(崇德縣)에 살고있었다. 그
역시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지극히 유명한 은사였다.그는 찾아온 두 사
람의 표정이 침ㅈ하기 이를데 없는 것을 보고 집작되는 바가 있었다.
"어서오십시요 두분. 우선 석 잔의 술로 마음을 녹이도록 하십시오."
세 사람은 서제 안으로 들어섰다. 여유량은 소년에게 말했다.
"보중아 어머니에게 가서 황아저씨와 고아저씨께서 오셨으니 양고기
와 술을 차려오라고 일러라."
얼마후 한 늙은 하인이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여유량은 하인이 물러
가기를 기다려 입을 열었다.
"먼저 술석잔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눕시다."
황종의는 참담한 안색으로 묵묵히 고개를 가로저었고 고염무는 스스
로 술을 따라 단숨에 여섯잔을 비웠다.
여유량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분께서 이곳에 오신 것은 혹시 명사(明史) 때문이 아닙니까?"
황종의 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고염무는 술잔을 든 채 소리 ㅈ여 한 구절의 시를 읊기 시작했다.
"청풍(淸風)은 비록 소슬하나 나에게 불어오지 않고(淸風雖細難吹我)
명월은 어찌하여 사람을 비추지 않는가(明月何嘗不照人)?, 만촌형 나는
술을 마실때마다 이 시를 읊는다오. 그리고는 흠뻑 취해버리죠."
그가 읊는 시는 바로 여유량이 지은 시로 청(淸)나라를 풍자하고 명
(明)나라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당시의 류생들 사이
에 널리 암송되고 있었다.
황종의는 술잔을 들며 말했다.
"정말 좋은 시입니다."
그리고는 술을 단숨에 마셨다. 여유량을 말했다.
"과찬 이십니다."
고염무는 고개를 들고 벽에 걸린 한 폭의 커다란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려진 것은 산수화(山水畵)였으며 필세(筆勢)가 종횡으로 거침이 없이
뻗어나갔고 기상이 웅위(雄偉)하여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 였다. 그림
위에는 '영차강산'(如此江山)이라는 네 개의 글자가 씌여 있었다.
고염무는 감탄했다.
"이 필법은 틀림없이 이첨선생(二瞻先生)의 걸작일 것이오."
여유량이 말했다.
"그렇소이다."
이첨선생은 사사표(査士標)라는 사람으로 명말청초의 대화가(大畵家)
였다. 그는 고염무 황공의 여유량과의 교분이 두터웠다.
황종의가 그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처럼 훌륭한 그림에 어찌 시 한수를 써 넣지 않으십니까?"
여유량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첨선생의 이 그림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소. 다만 그의 사람됨
이 신중하여 낙관(落款)을 하거나 시를 써 넣지 않았다오. 그는 지난
달 나의 집에서 며칠을 묵으면서 이 그림을 그린 것이지요. 두 분이
시한수를 써 넣으시는게 어떻겠소?"
고염무와 황종의는 몸을 일으켜 그림 앞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
다. 커다란 강물이 동쪽을 향해 도도히 흐르고 있는데 강 언덕 양편에
는 산봉우리가 줄지어 솟아 있었고 기수괴석(奇樹怪石)이 즐비했다. 왠
지 모르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울적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고염무가 말했다.
"이처럼 수려한 강산이 오랑캐에게 짓밟히고 있다니.......아! 정말
생각만해도 분통이 터질 지경 이구려! 만촌형은 어찌하여 시 한수를 적
어 이첨선생의 뜻을 기리지 않으시오?"
여유량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좋소이다."
그는 그림을 떼어 방바닥에 펼쳐 놓았다. 황종의는 먹을 갈았다.
여유량은 붓을 들고 잠시 생각하더니 그림 위에 거침없이 한수의 시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는 송(宋)나라가 오랑캐에게 망한 이후 이 강산은 치욕을 받게되어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가 없다는 것 이제 그림을 그려 슬픔과 분노를
담게 되니 눈물이 앞을 가란다는등의 내용이었다.
쓰기를 마친 여유량은 눈물을 떨구었다. 고염무는 말했다.
"정말 통쾌하고도 멋진 싯구입니다.!"
"만촌형 이 그림을 잘 보관하시구려. 만약에 오지영(吳之榮)과 같은
간악한 놈들에게 발견된다면 만촌형 뿐만아니라 이첨선생까지도 큰 해
를 입게 될게외다."
여유량이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두분께선 도대체 어인 일로 오셨읍니까?"
황종의가 말했다.
"우리는 명사(明史)에 얽힌 사건에 이첨선생과 이황(伊璜)선생이 관
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오게 된 것이라오."
여유량은 침통한 얼굴로 묵묵히 방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황종의는
다시 말했다.
"이번 명사를 기록할때 발생한 사건으로 절강성의 많은 선비들이 연
루되었소. 만촌형도 화가 미치기 전에 피신하는게 좋을듯 하외다."
여유량은 눈을 부릅뜨며 결현히 말했다.
"잡혀가면 잡혀가는 것이지 두려울게 뭐있소! 오랑캐 우두머리 강희
제가 나를 잡아간다면 나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뱃고 욕을 해주겠소."
고염무는 말했다.
"만촌형의 의기는 하늘을 찌를듯하군요. 강희제는 어린애에 불과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입니다. 지금 조정의 대권은 오배(鰲拜)가 한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소이다. 이번 명사 사건은 그놈이 꾸민 짓이오."
황조의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끝까지 살아 남아 오랑캐와 싸워야 하오. 일시의 혈기를 이
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는 오히려 오랑캐 놈들을 도와주는
것이 될 것이외다."
여유량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황형의 말씀이 옳소이다. 나는 집안 식구를 데리고 내일 아침 일찍
피난을 가도록 하겠소."
고염무가 말했다.
"저는 근년에 강호를 떠돌아 다니다가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소.
대강(大江) 남북을 돌아다니며 비단 선비들만이 오랑캐를 반대하는게
아니고 무예를 익힌 호걸들도 오랑캐에게 반대하여 싸운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소. 우리 양주(揚州)로 갑시다. 제가 많은 친구들을 소개시켜
드리겠소."
황종의가 말했다.
"소문에 듣자하니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기치아래 천지회(天地會)라
는 조직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무술인들의 조직으로서 청나라를 무력
(武力)으로 쳐부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고염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소이다. 제가 양주로 가자는 것도 바로 천지회의 영웅호걸들과 교
분을 맺자는 것이외다.
여유량은 무릎을 치며 웃었다.
"하하하! 왜 진작 천지회를 샹각하지 못했을까? 어서 떠날 채비를 합
시다."
세 사람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1.소년 위소보(少年 韋小寶)
양주성(揚州成)은 예로부터 이름난 명승지였다. 옛 사람들은 인생에
서 가장 즐거운 일은 '허리에 십만관(十萬貫)의 돈을 두르고 학을 타고
양주에 날아가 노는 것'이라고 했다.
수양제가 운하를 개설한 이후 양주는 운하의 중앙에 지리잡고 강서성
과 절강성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명나라 이후에는 각지의
소금 장수들과 큰 장사치들이 모여 살게 되어 그야 말로 천하에서
으뜸가는 부(富)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청(淸)의 강희제(康熙帝) 원년(元年)의 일이었다.
양주 부근의 수서호(瘦西湖) 호반은 명옥방(鳴玉坊)이라고 불리는
기루(妓樓)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늦은 봄의 해는 저물고 집집마다 등불이 ㅂ혀질 무렵 명옥방의 모든
기루에서는 기생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와 가야금을 뜯는 소리가 어우
러저 한껏 흥청거리고 있어 태평성세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
다.
여춘원(麗春院)은 명옥방에서도 몇 번째 안에 드는 기루였다. 지금
여춘원에서는 십여 명의 염상(鹽商)들이 세 개의 탁자에 나누어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각기 한명의 기녀를 옆자리에 앉히고 권커
니 자커니 술을 들이키면서 기녀를 희롱하기도 했다.
갑자기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리고는 너댓명
이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문을 여시오! 우리는 사람을 찾으러 왔소"
술을 마시던 염상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수근거렸다.
"어떤 사람들이 와서 시끄럽게 굴지?"
"관가에서 조사하러 왔나?"
"도대체 무슨일이야?"
여춘원의 하인은 전례에 없었던 일이라 어쩔 줄 모르고 염상들의 눈
치만 살필 뿐이었다. 문을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엉거주춤해 있었
다.
'뻥'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밀어 제쳐지면서 십 칠팔 명의 대한들
이 와르르 몰려들어 왔다. 나타난 대한들은 하얀 띠를 머리에 질끈 동
여맸고 허리에는 푸른 띠를 두르고 있었으며 손에는 시퍼런 칼을 들거
나 쇠로된 자나 막대기를 들 고 있었다. 염상들은 그들이 바로 소금을
밀매하는 염효(鹽梟)들임을 알아 보았다.
그 당시에는 소금에 부과하는 세금이 너무나 과중했다. 그래서 누구
든지 소금에 대한 세금을 포탈한다거나 사사로이 팔고 사게 된다면 큰
이익을 보았다.
양주지방은 소금의 잡산지라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망명 도배들이 떼를 지어 세금을 내지 않고 소금 밀매업을
하고 있었다. 이들 염효들은 지극히 흉악했다.
많은 수의 관병(官兵)을 만났을 때는 뿔뿔이 흩어지고 적은 수의 관
병들과 만나게 되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부
에서는 한 눈을 뜨고 한 눈을 감고서 간섭을 하지 ㅇ을 때가 많았다.
술을 마시던 염상들은 염효들이 사사로이 소금을 밀매할 뿐 행상인을
턴다거나 나쁜일은 하지않고 평소에도 백성들을 상대로 소금을 팔더라
도 무게를 속이지 않으며 자기네들의 세력을 믿고 사람을 괴롭히지 않
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흉악하게 명옥당으
로 뛰어드는 것을 보자 모두들 당황해 하는 한편 의아하게 생각했다.
염효들 가운데 오십 여세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여러 친구들 실례된 것을 사과드립니다."
그리고는 포권을 하고 왼족에서부터 오른쪽에 이르기까지 공손히 예
를 하고는 낭랑히 말했다.
"천지회의 가여섯째가 이곳에 안 계시오?"
그리고 눈을 들어 염상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ㅎ어 보았다.
염상들은 그의 시선을 받자 모두 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때 염효를 이끌고온 그 노인은 음성을 높여 소리쳤다.
"가여섯째 오늘 오후 너는 추서호 옆 술집에서 터무니 없는 소리를
지껄었다. 양주 소금 밀매업자들이 용기가 없어 감히 관부에 대들지도
못하고 반역을 도모하지도 못하며 다만 소금이나 밀매하면서 세금을 포
탈하는 겁 많은 장사치들에 불과하다고 했다. 너는 술을 잔뜩 마시고
큰 소리로 우리 양주의 소금 밀매업자들이 너의 말에 승복할 수 없다면
언제든지 명옥방으로 와서 너를 찾으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렇
게 왔다. 가여섯째 그대는 천지회의 호걸이라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자
라처럼 목을 움츠리고만 있는가?"
그러자 십여명의 염상들도 덩달아 외쳤다.
"천지회의 호한이 어째서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있는가?"
"제기랄 도대체 너희 천지회 놈들은 모두 자라 흉내만 내는 것들 뿐
이냐?"
이 때 노인은 말했다.
"이것은 가여섯째 한사람만이 터무니 없는 소리를 지껄인 것일 뿐 천
지회의 다른 친구들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네. 우리 소금 밀매 업자는
밥 한끼 얻어 먹는 데만 신경 쓸 뿐이니 어찌 천지회의 영웅 호걸들과
견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들은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는 짓은 하지
않지"
한참을 기다려도 천지회의 가여섯째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
다. 그는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집안으로 들어가 샅샅이 뒤져서 그 바다 자라처럼 움츠리고 있는 형
씨를 만나게 되거든 밖으로 모셔오도록 하게. 그 친구는 얼굴에 커다란
칼자국이 있으니 알아보기 쉬울걸세."
그러자 염효들은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한 칸 한 칸 방을 뒤지기 시
작했다. 별안간 동쪽 객실에서 걸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떤 놈이 이 곳에서 큰 소리로 짖어대서 내 흥을 깨는 것이냐?"
염효들이 다투어 부르짖었다.
"가여섯째가 저기에 있구나!"
"가여섯째 빨리 기어나와라."
"빌어먹을 개도적이 매우 당돌하구나."
그러자 동쪽 객실에서 껄껄 웃는 소리가 들려 왔다.
"하하하! 나는 가씨가 아니다. 다만 네 녀석들이 함부로 천지회를 욕
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을 뿐이야. 나는 천지회 사람도 아니지만 천지회
친구들이 하나같이 영웅호걸들인 것을 알고 있다. 너희들 같이 소금이
나 몰래 팔아먹는 것들은 그들의 신발을 닦아주거나 뒤를 닦아 줄 자격
도 없다."
그러자 염효들은 성이나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서너 명의 사내가 손에 강철 칼을 쳐들고 동쪽 객실로 뛰어 들어갔
다. 그런데 '아이쿠''어이쿠'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덤벼들었던 염효들
이 방 밖으로 내던져 ㅈ다. 다시 여섯 명의 염효들이 다투어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잇달아 호통 소리가 들리면서 여섯 명은 하나같이 그
방에 있는 사람에 의해 내동댕이 쳐졌다. 염효들은 여전히 호통을 지르
고 욕질을 했으나 감히 그 방으로 달려드는 자는 없었다.
염효를 이끌고 온 노인은 천천히 다가가서 방 안을 들여다 보았다.
한명의 구레나루를 기른 대한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머리에는 하얀 수
건을 질끈 동여매고 있었다.얼굴에 칼자욱이 없는 것을 보아 가여섯째
는 아니었다. 노인이 말했다.
"귀하는 솜씨가 꽤나 좋은데 존성대명은 어떻게 되시오?"
그러자 그 사람은 차갑게 대답했다.
"네 녀석의 애빈 나의 아들이다. 네 녀석은 할아버지의 이름도 모르
느냐?"
그러자 옆에 선 기녀들 가우데 별안간 삼십 여세의 중년 기녀가 깔깔
소리내어 웃었다.
한 명의 염효가 그 기녀에게 다가가 '찰싹 찰싹' 두대의 따귀를 갈겼
다.
따긔를 갈긴 염효는 욕을 퍼부었다.
"제기랄! 갈보년이 웃기는 왜 웃어."
이 때었다.
옆에서 열 두어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큰
소리로 욕을 했다.
"네가 감히 우리 어머니를 때려? 이 후레자식! 거지 같은 자식! 벼락
맞아 되질 자식! 네 손등과 손바닥에는 부스럼이 나서 손을 못쓰게 될
것이고 혓바닥 마져 썩어 문드러져 피고름을 삼키고 창자까지 썩어 죽
게 될 것이다!"
그러자 염효는 크게 노해서 어린애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 어린애는
한 명의 염상 뒤로 몸을 숨겼다. 염효는 왼손으로 염상을 바람벽에 떨
어지도록 만들고 오른손 주먹으로 어린애의 얼굴을 힘껏 후려치려고
했다. 그 중년의 기녀는 깜짝놀라 소리를 질렀다.
"나으리 용서하세요."
그런데 그 아이는 매우 재빨랐다. 몸을 움츠리더니 염효의 사타구니
아래로 빠져나가는가 했는데 손을 뻗쳐 염효의 고환을 움켜 잡고 힘주
어 당겨 버렀다. 이 바람에 대한은 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아이는 그
순간 도망을 쳐 버렸다.
고환을 잡혔던 염효는 화풀이 할 상대를 찾지 못하게 되자 한대의 주
먹으로 중년 기녀의 얼굴을 후려쳤다. 기녀는 대뜸 기절을 하고 말았다.
아이가 달려와 그녀 몸 위에 엎드리며 부르짖었다.
"어머니! 어머니! "
그 염효는 어린애의 덜미를 잡고 들어올렸다. 그리고 주먹질을 하려
고 했다. 이 때 염효를 이끌고 온 노인이 호통을 내질렀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어린애를 내려 놓아."
그 염효는 소년을 내려놓고 엉덩이를 함껏 걷어찼다. 그 바람에 소년
은 몇번 데굴데굴 윗 쪽으로 굴러가더니 '쿵'하고 머리를 벽에 부딪쳤
다.
노인은 그 염효를 한변 흘겨 보더니 방문 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청방(靑幇)의 형제 들이외다. 우리는 가여섯째라는 친구가
공공연히 청방을 헐뜻고 또 명옥방에서 우리들이 따지러 오는 것을 기
다리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찾으러 온 것이외다. 귀하는 천지회
사람도 아니고 또한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어찌하여 욕을 하는
것이오? 귀하의 성명을 대 주시오. 방주께서 나중에 추궁을 하게 된다
면 우리도 변명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방 안의 그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천지회의 친구들을 찾아 따지는 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
다는 거야? 나는 이 곳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는데 너희들이 나의 흥을
깨뜨렸단 말이야. 내 충고 한 마디 하겠는데 욕을 먹었어도 어쩔 수 없
는일 차라리 꼬리를 감추고 순순히 물러가 돈이나 벌도록 하란 말이
다."
노인은 분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강호에서 너처럼 도리를 따지지 않는 놈은 정말 처음 본다."
바로 이 때 문 밖에서 세 사람이 달려 들어왔다. 모두 소금 밀매업자
의 차림이었다. 손에는 연자창(鍊子槍)을 든 비쩍 마른 사람이 물었다.
"저 녀석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자기가 누구인지 말을 하지 않는구만. 하지만 말 끝마다 천지회를
높이 칭찬하는 걸 보니 어쩌면 그 가여섯째가 저 방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자 비쩍 마른 사내는 연자창을 흔들거리더니 머리를 끄덕여 보였
다. 노인은 허리 춤에서 한 자 길이의 쌍 단검(短劍)을 손에 들었다.
별안간 네 사람이 일제히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방안에서는
무기 부ㄷ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와지끈''뚝딱'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것을 보아 방안의 가
구들이 하나 둘 부숴져 나가는 모양이었다.
방 안에 뛰어든 네 명의 염효들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방 안의 사람은 아무 소리도 내지않고 있었다.
대청에 남아 있는 염상들은 멀찌감치 서서는 방안의 싸움에 귀를 기
울이고 있었다. 무기 부딪히는 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별안간
방안에서 한 사람의 처절한 비명의 소리가 들려왔다. 한 명의 염효가
죽어가는 단말마의 비명 소리였다.
이 때 소년을 걷어찼던 염효는 어전히 고환이 무섭게 아파왔다.
그런데 소년이 담장가에서 몸을 일으키는게 아닌가? 그 염효는 주먹
을 쥐고 소년에게 다가 갔다.
염효는 한대의 따귀를 후려 갈겼다. 소년의 몸이 빙글 한 바퀴돌며
쓰러질듯 비틀거렸다.
염효는 다시 오른쪽 주먹을 쳐들고 소년의 얼굴을 내려치려고했다.
그 소년은 피한다는 것이 그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객실 안으로 뛰어
들게 되었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아' 하는 소리를 질렀다. 그 염효는 감히
방으로 ㅉ아 들어가지 못하고 문이 닫힌 방 안을 바라보기만 했다.
소년이 방안에 들어가니 욀칵 피비릿내가 끼쳐왔고 방안은 캄캄했다.
무기와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면서 불꽃이 어지럽게 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렴풋이 침대 위에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머리를 베로 칭칭 감고 있어 그보습이 어둠속에서 기괴한 느낌을 주었
다.
불꽃이 튄 후 방 안은 다시 캄캄해졌다. 그러나 대청의 둥근 빛이 문
틈으로 흘러들어 흐릿하게 사방을 살펴볼 수 있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을 사람은 손에 칼을 쥐고 휘두르며 싸움을 벌이
고 있었다. 네 명의 염효들은 이제 두 명만 남아있었다. 단검을 손에
든 노인과 체격이 우람한 사내는 여전히 흰 베로 머리를 감은 침대 위
의 대한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소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머리에 중상을 입고 있는데다가 다리를 다쳤는지 일어서
지도 못하고 있으니 이 소금 밀매업자들을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러니 나는 빨리 도망을 쳐야겠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떻게 하지?)
그는 어머니가 남에게 구타당한것을 상기하자 울화가 치밀었다. 그리
하여 객실 방문을 사이에 두고 욕을 해댔다.
"이 돼지 같은 후레자식아! 빌어먹을 자식 같으니! 네 십 팔대 조상
까지도 소금장사나 해 먹은 잡종 녀석아! 네 놈은 소금이 많아서 할머
니나 마누라가 죽었을 때 소금에 절여서는 거리에 내다 암퇘지 고기처
럼 속여서 세 근에 한 푼을 받고 팔려고 했겠지? 그러나 아무도 그렇
게 썩은 고기는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대청의 염효는 매우 악독한 욕지거리를 듣고 속으로 크게 분노했다.
당장 방 안으로 들어가 주멱으로 소년을 때려 죽이고 싶었지만 감히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 ㄸ 방안의 그 대한은 갑자기 팔을 한 옆으로 휘둘렀다. '퍽'소리
와 함께 우람한 체격의 사내는 왼 팔을 잘리고 크게 비명을 지르며 쓰
러질 듯이 비틀거렸다. 이 때 노인이 쌍검을 내뻗어 침대 위의 사람을
향해 힘껏 내질렀다. 그러자 침대 위의 사내는 왼손을 홱 뒤집으며 기
묘하게 내질렀다. 그러자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나면서 노인의 늑골이
부서지며 곧장 방 밖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게 아닌가? 침대 위의 사내
역시 사력을 다해 반격했기 때문인지 입으로 선혈을 내뿜으며 온 몸을
휘청거렸다. 그런데 그 우람한 체격의 사내는 비록 왼 팔을 잘린 상태
였으나 용맹하기 짝이 없었다. 강편(鋼鞭)을 들어 대한의 머리통을 내
려 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대한은 대항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쳐 이미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다. 우람한 체구의 염효
역시 마지막 기력을 내쏟고 있는 듯 강편이 떨어지는 기세가 느리기 짝
이 없었다.
소년은 이광경을 보자 적개심이 치솟아 올라 질풍같이 달려나가 우람
한 사내의 두다리를 힘껏 뒤로 잡아당겼다.
이 체격이 큰 사내의 몸 무게는 적어도 이백근은 나갈 것 같았다. 그
소년은 비쩍 마르고 조그마한 체구를 지니고 있어서 평소 같았으면 그
대한을 어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중상을 입고 있는 그 사내는
그야말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던 참이라 소년이 잡아당기자 풀썩 쓰러
지면서 피가 흥건항 바닥에 눕게 되었고 일어나지 못했다.
침대 위의 대한이 크게 숨을 몰아 쉬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용기가 있으면 모두 들어와 덤벼라!"
그 소년은 연신 손을 내저으며 대한에게 밖에 있는 사람에게 도전을
하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조금 전 그노인이 방 밖으로 날아가게 되었
을 때 방 문에 부딪혀서 방문이 열였다 닫혔다 하고 있었으며 방문은
계속 흔들 거리고 있었다. 따라서 대청에 있는 불빛이 흘러들었다가는
막혀 버리곤 했다. 불빛은 그 사람의 잡초처럼 무성한 구레나루를 비추
게 되었는데 얼굴이 온통 피로 물들어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흉
칙해 보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대청의 염효들은 방 안의 사정을 알아채지 못하고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러자 방 안의 대한은 호통을 쳤다.
"후레자식들! 들어오지 못하겠다는 것이냐? 그러면 내가 나가 하나하
나 죽여주겠다!"
그러자 염효들은 고함소리를 지르며 땅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메
고 다투어 문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대한은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소년에게 나직이 말했다.
"애야, 문을 걸어 잠그도록해라."
소년은 속으로 문은 반드시 잠궈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예."
그는 방문을 닫고 천천히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어둠 속에는 피비린
내만이 물씬물씬 풍기고 었었다.
그 대한이 말했다.
"너는 ......."
한마디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대한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금방
이라도 침대 아래로 덜어질 것 같았다. 소년은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
부축했다. 그리고 대한의 머리를 베개 위에 놓이도록 눕혔다.
"그 소금 밀매업자들은 다시 들어닥칠 것이다. 내 힘이 회복되지 않
았으니.....빌어먹을 피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그리고는 손을 뻗쳐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상처에 자극을 준듯 나직
이 신음 소리를 냈다. 소년을 재빨리 다가가 부축했다.
소년은 다가가서 그의 왼쪽 어깨를 부축했다.
"나를 부축하지 말아라. 그 염효들이 발견하면 너마저 죽일 것이다."
소년은 말했다.
"죽일태면 죽이라지. 뭐가 겁나요? 우리 친구들 끼리는 의리를 지켜
야 되지 않겠어요? 나는 반드시 당신을 부축해야 겠어요."
그러자 그 대한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웃는 동안에 잇달아 격렬히
기침을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나에게 의리를 지키겠다고?"
"의리를 지키지 못할 것도 없지 않아요? 좋은 친구끼리는 복이 있으
면 같이 나누고 화가 있으면 같이 당하는 법이라구요!"
양주의 거리에는 찻집이 많았고 그 찻집에는 책을 읽어주는 이야기군
들이 많이 있어서 삼국지나 수호지 대명영렬전(大明英烈傳)같은 책을
읽어 주곤 했다.
이 소년은 밤낮 없이 기녀원이나 도박장 찻집 술집을 들락거리며 심
부름을 해주고 돈푼이나 얻어서 쓰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나기만 하면
찻집 탁자 옆에 앉아 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찻집의 다박사(茶博士:차 심부름을 하는 사람 )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다라 다녔기 때문에 다박사는 소년을 ㅉ아내지 않았다. 소년
은 그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ㄸ문에 고사에 나오는 영웅호걸들을
매우 숭배하고 있는 터였다. 그래서 오늘 이 사람이 중상을 입은 처지
에서 다시 염효들을 무찌르는 것을 보자 속으로 앙모하는 마음이 싹트
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영웅들의 말투를 내뱉게 된 것이
다.
이 때 대한은 싱긋 웃었다.
"그 말은 참 그럴듯 하구나. 나는 많은사람들로부터 그같은 말을 수
없이 들어왔다마는 복이 있어 함께 나눌 사람은 보았으나 환난을 당했
을 때 같이 감수하자고 나서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이리 나가자꾸나."
그 소년은 오른쪽 어깨로 그 사람의 왼 팔을 부축하고 방문을 열었
다. 그리고는 대청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아연실색해서 사방
으로 피했다. 소년의 어머니가 크게 소리쳤다.
"소보(小寶)야 어디로 가는거냐?"
"이 친구를 대문 밖까지 바래다주고 오겠어요."
그 사람은 껄껄 웃었다.
"이 친구라고! 하하하.....내가 너의 친구가 되버렸구나."
소년의 어머니는 소리를 쳤다.
"가지 말아라! 너는 빨리 몸을 숨겨야돼!"
소년은 싱긋 웃어보이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대청을 나섰다.
두 사람이 대청을 나서게 되었을 때 골목안은 조용할 뿐 아니라 아무
도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염효들은 강적을 만나게 되자 구원을 청하러
간 모양이었다.
그 대한은 골목길을 벗어나자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서쪽으로 가자."
두 사람이 얼마쯤 가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한 대의 노새가 끄는 마
차가 달려왔다.
그 대한은 큰 소리로 불렀다.
"마부 이리 오시오."
그러자 노새를 몰던 마부는 두 사람에게 다가와 마차를 세웠다. 두
사람이 온 몸에 피칠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얼굴에 두려운 빛을 띠
었다. 대한을 품 속에서 한 덩이의 은자를 꺼냈다. 약 너 댓냥은 되어
보였다.
"이 은자를 선불로 드리겠소."
그 마부는 은자가 적지 않은 것을 보고는 즉시 두 사람이 올라 탈 수
있도록 발판을 내려 놓았다.
구레나룻의 사내는 몸을 숙여 수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품 속에
서 열 냥의 무게가 나가는 원보(元寶)를 소년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 봐, 꼬마 친구. 나는 가겠네. 이 원보를 자네에게 주지."
소년은 커다란 원보를 보고 침을 꿀꺽 삼키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큰 돈이다.)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가 급히 거두어들였다. 의리에
죽고 사는 이야기를 들어 온 그는 영웅호걸들은 친구를 사귈때 금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했던 것이다. 영웅호걸 노릇을 할 기
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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