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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

by Casey,Riley 2020.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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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연주자의 시선에서 베토벤의 삶을 조명하는데, 250년 전 인물인 그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인간 베토벤에 초점을 맞춰 소개한다. 저자는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중요시했던 그의 음악을 몇몇 사람들만 향유하는 엄격하고 딱딱한 고급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적이며, 또 그를 신격화해 거리감을 두고 그의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면 안 된다고 역설한다.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

 

저자 임현정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피아니스트. 12세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콩피에뉴 음악원을 5개월 만에 수석으로 조기 졸업했다. 이후 파리 루앙 국립음악원에 진학해 3년 후 만 15세에 조기 졸업했다. 그 다음해 드뷔시와 라벨이 다녔던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 최연소로 입학해, 이 역시 3년만에 최연소로 조기 졸업했다. 24세 때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해 최연소 기록을 세웠고, 뉴욕타임스, BBC 뮤직의 극찬을 받았다. 텔레그레프는 그녀의 앨범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아주고, 익숙해진 연인을 향한 불타는 욕망을 되찾아주며, 직접 20장을 구매해서 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들어보라고 권해주고 싶기까지 한 앨범이다.” 2012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아이튠즈 클래식 차트 1위와 빌보드 클래식 종합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로열 스코틀랜드 국립 오케스트라,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모스크바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인 단체들과 협연했다. 베토벤을 존경해 그가 쓴 편지 3천 페이지와 각종 연구 서적을 섭렵했고, 스스로를 베토벤 스토커라 자칭하며 사람들에게 베토벤의 매력, 더 나아가 클래식의 매력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침묵의 소리가 있다.

 

Short Summary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음악이 주목받고 있는데, 그의 음악이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천부적인 재능의 영역을 넘어 그의 삶 속에 그 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머릿속엔 인간 베토벤이 아닌 음악의 성인 베토벤이라는 이미지만 각인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벗겨내면 그의 작품을 보다 온전히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연주자의 시선에서 베토벤의 삶을 조명한 책으로, 독자들이 250년 전 인물인 베토벤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인간 베토벤에 초점을 맞춰 소개한다. 저자는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중요시했던 그의 음악을 몇몇 사람들만 향유하는 엄격하고 딱딱한 고급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적이며, 또 그를 신격화해 거리감을 두고 그의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면 안 된다고 역설한다.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에서는 왜 지금 우리에게 베토벤이 필요한지, 그의 음악이 어떻게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 되었는지 알아본다. 2장에서는 베토벤의 고난과 투쟁, 틀에 얽매이지 않은 예술성을 연주자의 시선에서 조명한다. 3장과 4장에서는 청각 장애와 낮은 사회적 계급으로 인한 좌절감, 정서적인 문제들이 결부된 길고 긴 어두운 시기를 지나 심적 고통을 초월한 베토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울러 책 곳곳에 QR코드를 게재해 스마트폰으로 저자의 연주를 직접 들어볼 수 있게 한다.

 

차례

프롤로그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

책을 더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

미리 알아두면 좋은 서양음악사

1장 악성 베토벤, 모두를 하나로 만들다

왜 지금 베토벤인가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클래식의 위대함

음악의 힘으로 절망을 뛰어넘다

베토벤의 영성

안녕, 베토벤 - 불우한 유년기를 극복하다

 

2장 운명을 극복하고 음악의 틀을 깨다

운명과의 사투를 작품에 담아내다

상실의 불행도 막지 못한 투쟁

틀에 얽매이지 않은 베토벤의 예술성

음악가가 나아가야 할 길

안녕, 베토벤 - 이루지 못한 사랑

 

3장 고단한 거장의 길

고립된 영웅, 그리고 자기존중

왜곡된 베토벤의 템포

가난도 꺾지 못한 베토벤의 자존감

이상적인 여성성을 찾아서

안녕, 베토벤 - 베토벤의 제자들

 

4장 고통을 넘어 영원으로

청력을 잃고 마음의 소리를 얻다

자연에서 답을 구하다

신분의 한계 앞에서 당당하다

불멸의 악성, 행복을 찾다

안녕, 베토벤 - 불확실한 사인

 

부록 - 베토벤의 대표적인 작품 목록

부록 - 찾아보기

에필로그 - 찰나를 영원으로 만든 베토벤

 

 

 

 

 

 

 

악성 베토벤, 모두를 하나로 만들다

 

왜 지금 베토벤인가

흔히 클래식 음악을 지루하거나 고지식하며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만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레스토랑이나 공공장소,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나 듣는 배경음악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클래식이 단순한 클래식(classic), 즉 고전음악이 아닌 위대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클래식이라는 말이 지닌 고전(古典)’이라는 뜻이 모순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베토벤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는 음악계에 혁명을 일으켰던 장본인이었다. 고지식한 음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무후무한 극단적인 감정 표현과 대규모의 스케일을 도입해 고전을 깨트린 작곡가다.

 

더 위대한 아름다움을 위해서 어길 수 없는 규칙은 없다.”라고 말한 악성 베토벤은 음악 작곡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뛰어난 발상으로 자신의 곡에 혁명적인 정신을 불어넣었다. 예로 1803년 작곡된 베토벤의 세 번째 교향곡 교향곡 제3E플랫장조 Op.55’ 영웅은 대단히 파격적인 실험의 결과물이었다. 기존 교향곡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전개부의 1악장과 장례식 때 연주되는 장송 행진곡을 도입한 2악장은 파격 그 자체였다. 이처럼 평생에 걸쳐 혁신적인 행보를 이어온 자신을 두고 고전 작곡가라고 칭한다는 것을 안다면, 베토벤의 성격상 무덤에서 벌떡 뛰쳐나와 반박하고 싶을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유산, 클래식: 바흐, 모차르트, 쇼팽 등 위대한 클래식 작곡가들은 소리의 과학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그 시대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비교를 초월한 대표적인 음악이라는 뜻에서 클래식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한편 베토벤의 초상화를 보자. 정열이 가득한 눈에 회오리치고 있는 듯한 머리카락, 무언가 단단히 결심한 듯 야무지게 다물고 있는 입술. 이는 우리가 흔히 베토벤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다. 나는 이 초상화가 베토벤을 전설 속에나 나올 법한 가상의 인물처럼 느껴지게 만든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보면 특별한 음악가란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에게 각인된 이미지와 달리 베토벤은 생전에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한 인물이었다.

 

특권 의식에 반발한 인간적인 베토벤: 베토벤은 인간 평등 사상의 기치 아래 귀족의 특권 의식에 큰 반발심을 갖고 있었다. 눈앞에서 황족이 지나가도 모자를 벗지 않고 고개를 뻣뻣이 들어 함께 있던 괴테를 놀라게 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특권층의 후원으로 먹고 사는 음악가로서는 용기 있는 처세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한창 전쟁터에서 맹위를 떨칠 무렵, 악보 표지에 나폴레옹의 성 보나파르트(Bonaparte)’를 적어 그에게 곡을 헌정하려 했었다.

 

하지만 평등의 기치를 중시한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에 올라 군림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헌정을 철회했고, 최종적으로 교향곡의 이름은 에로이카(Eroica), 영웅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시인 쿠프너가 베토벤에게 교향곡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3번이요.”라고 답했다는 일화를 보면, 그가 교향곡 제3E플랫장조 Op.55’영웅에 얼마나 큰 애착을 갖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폴레옹에게 이 곡을 선물하려 한 이유는 황제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프랑스의 자유평등박애 정신을 구현해줄 인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삶을 산 베토벤은 단지 자신의 모든 경험을 위대한 소리의 과학을 통해 악보에 표현했을 뿐이다. 그러니 베토벤을 신격화해 거리감을 두고 그의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중요시했던 그의 음악을 특별한 몇몇 사람들만 향유하는 엄격하고 딱딱한 고급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일만큼 모순적인 것도 없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가장 현실적인 현대 음악이자 인류의 유산인 클래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베토벤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그를 딱딱한 가상의 인물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심장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음악의 힘으로 절망을 뛰어넘다

1798년부터 청력에 문제가 생긴 베토벤은 1810년 무렵에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제 막 빈에 정착한 젊은 음악가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는 극심한 고독감을 느꼈고 유서를 쓰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의 삶을 지탱해준 희망은 역시나 음악이었다. 그는 1802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절망하기에 이르렀다. 스스로 내 목숨을 끊어버릴 뻔했다. 그것을 제지해준 것은 오직 예술뿐이었다. 나에게 맡겨졌다고 느끼는 이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는 세상을 버리지 못하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 비참한 생명을 부지하기로 했다.’

 

한때 자살을 생각했던 베토벤은 이후 마음을 고쳐먹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창작욕을 활활 불태웠다.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함께 모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모든 이가 한자리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런데 수십 수백 명이 아닌 몇 천 명, 많게는 몇 만 명이 함께 모여 기적을 실현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연주회장이다.

 

기적을 일으키는 음악의 힘: 연주회장이라는 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음악으로써 감정을 공유한다. 수백 년 전 프랑스독일이탈리아러시아영국 등 지구 곳곳의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심장 안에 요동치고 있었을 감응은 수백 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음악을 통해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며 한마음, 한몸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베토벤은 청각을 완전히 잃은 뒤에도 음악을 통해 그러한 기적을 체험했다. 182457, 빈에서합창교향곡의 지휘를 마친 베토벤은 마지막 4악장이 끝난 후에도 청중의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해 우두커니 자리를 지킨 채 서 있었다. 당시 주변에 있던 동료가 베토벤을 부축해 돌려세웠고 환호하는 청중을 본 뒤에야 그는 비로소 눈물을 쏟으며 감격했다고 한다. 기적의 힘이 청각을 잃은 베토벤에서 청중에게로, 그리고 다시 청중에서 베토벤에게로 전해진 것이다.

 

음악을 음미하기 위해 사람들은 함께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음악을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각자 내면의 소리, 즉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 사이에는 강렬하게 울리는 어떤 파장 같은 것이 생긴다. 연주회는 이런 기적을 실현시키는 장소다. 나 역시 피아니스트로서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기적을 선사하고자 모든 것을 바친다. 한 사람에겐 2시간이지만 2천 명 청중의 시간을 모으면 4천 시간이 된다. 연주자인 나의 몫은 그 시간이 아깝지 않게 순간순간을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무대에 입장하기 전 나는 관객에 대해 생각한다. 음악이 전개되며 우리는 서로의 숨결을 느끼고 호흡한다. 음악에는 작곡가의 숨결이 담겨 있으며 나 자신과 당신, 우리 모두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하모니는 나의 영원한 열망이다.

 

운명을 극복하고 음악의 틀을 깨다

 

운명과의 사투를 작품에 담아내다

베토벤은 엄청난 메모광이었다. 훗날 그의 자필 메모를 팔아 큰 돈을 번 사람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는 악상이 떠오를 때마다 어디에든 기록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는데, 심지어 자주 가던 식당의 벽지나 문짝 등에도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쓰는 양에 비해 글씨를 잘 쓰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악필로 유명한 베토벤의 메모를 도통 해석하지 못해 수많은 연구가들이 당황했다고 한다. 자필 악보에도 그러한 면모가 잘 드러난다. 한편 베토벤의 노트와 편지, 음악을 살펴보면, 운명과의 투쟁, 그리고 운명에 의문을 던지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하물며 베토벤의 음악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멜로디 따다다단-”으로 시작하는 교향곡 역시 운명이란 부제를 가지고 있다.

 

주어진 운명에 끝없이 투쟁한 삶: 운명교향곡의 따다다단-”이라는 음률이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유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을 겪을 때 느껴지는 운명의 힘이 곡 안에 폭발하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교향곡 제5c단조 Op.67’ 운명을 작곡할 때 베토벤이 느끼고 활용했을 모티프(예술을 표현하는 동기가 된 작가의 사상)가 바로 운명과의 투쟁은 아닐까? 자신에게 주어진 불리한 조건들에 굴복하지 않고 인생의 주인이 되어 새로운 운명을 창조한 베토벤은, 그 처절하고 고독한 전투 과정을 피아노 소나타에 분출했다. 스승이자 멘토인 하이든에게 헌정했던 피아노 소나타 제1f단조 Op.2’ 1악장에는 운명에 맞서 싸우는 전사로서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제1f단조 Op.2’를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 제1번으로 출판하면서, 즉흥 연주자나 비르투오소(매우 뛰어난 연주 실력을 가진 대가)가 아닌 작곡가로서 자신을 세상에 당당히 내보였다. 초기 작품임에도 명백히 베토벤적인 특징을 지닌 이 작품은 그를 앞섰던 선배들과 필적할 정도로 놀라운 음악적 포부를 담고 있다. 또한 이 곡은 베토벤이 시골을 벗어나 음악의 중심지인 빈에 도착한 지 3년이 지난 후에 작곡한 작품으로, 젊은 작곡가의 독창성과 운명과의 사투, 그에 대한 집착이 권력적이고 지배적인 태도로 표현되었다.

 

생애 마지막 소나타: 베토벤의 생애 마지막 소나타 피아노 소나타 제32c단조 Op.111’은 불가사의한 운명에 관한 해답이자 의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이다. 그를 평생 동안 몰아붙였던 비극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지혜로 통하는 길을 보여준다. 비록 2개의 악장으로만 구성되어 있지만 베토벤의 삶을 응축시켜 승화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운명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위협적이고 극적이며, 1악장에서 절정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20대 첫 소나타에서의 도전은 운명을 지배하기 위한 전투로 반항적인 분위기였지만, 생애 마지막 소나타에서 나타나는 이 최후의 도전은 결국 승리보다 더 승화한 평화로 막을 내린다.

 

이어지는 마지막 2악장에서 베토벤은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그토록 오랫동안 찾았던 일종의 신성(神性)과의 결합으로 들어선다. 2악장 악보에는 아리에타(짧은 아리아): 아주 느리게, 단순한 마음으로 노래하듯(Arietta: Adagio molto semplice e cantabile)’ 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 명상적인 분위기가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악장에서 천상적인 분위기가 더욱 심화되면서 마침내 적멸(寂滅), 즉 열반의 경지에 도달한다. 아무튼 베토벤의 초기 피아노 소나타와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를 비교해 들어보면, 간접적으로 그가 어떤 투쟁을 해왔고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음악가가 나아가야 할 길

오늘날의 음악가들은 과연 베토벤처럼 자신의 영혼을 예술로 잘 표현하고 있을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자신이 지닌 예술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음악가들이 많아야 청중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위대한 작곡가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콩쿠르에 입상하거나, 입시에서 성취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개성을 억누른 채 연주하고 있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이름을 딴, 그들이 살아생전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콩쿠르에 입상하기 위해 스스로를 감추는 것이 올바른 길일까? 입시 시험 등에서 심사위원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만의 개성은 뒤로 제쳐두고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맞는 길일까? 평론가들에게 굴복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개성을 마음껏 펼친 베토벤의 음악을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연주해야 할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억제하고 나보다 남의 시선을 우선시하면서 연주하는 연주자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면 좋겠다.

 

고전 음악가라고 불리는 그들이 오늘날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이유는 틀을 벗어난 혁신적인 정신을 음악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품이 세월을 관통해 우리에게까지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치의 위선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는 위험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음악을 절대적으로 창조했고, 절대적으로 사랑했으며, 자신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그리고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그들은 자유의 권리를 확실하게 선택했고 누렸다. 과거의 유산을 습득하고 존중하되 고정관념과 관습을 뒤흔드는 데 두려움이 없었으며, 이러한 자세를 바탕으로 혁신하고 창조하며 도약을 이루었다. 버림받고 비판받을지언정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환호가 뒤따른 것이다.

 

개성은 추구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 예술인이 개성을 찾고자 시도한다면 위험한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조언하고 싶다. 사실 일부러 개성을 추구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개성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나만의 빛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나 자신이 온전히 표현될 때 다른 이들에게 개성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이미 유일한 존재인데, 그것을 벗어나 무언가 다른 개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청중은 알고 느낀다. 고유한 본질은 마음의 진동으로 느껴진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표현할 때 청중도 깊이 감응할 수 있다. 작곡가의 의도를 존중하면서 자신의 과 경험으로 생성된 을 솔직하게 표현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듣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한 그 숭고한 영은 우리의 원천지인 본질이다. 그렇게 작곡가와 연주자의 영은 하나가 된다.

 

자신의 본질이 중요하다: 관습의 틀을 깨고, 평론가들에게 휘둘리지 않았던 베토벤처럼 자신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다른 사람 마음에 들기 위해 이렇게 하면 좋아할 거야라며 아무 근거 없이 자신을 설득하려 하지 말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진심으로 느끼는 바는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기운이 나는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된다.

 

자신의 마음이 내는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자기 자신부터 먼저 스스로를 제대로 알고 사랑해야 다른 이도 인정하고 존중해줄 수 있다. 자신의 마음부터 우선 존중한 다음에 작곡가의 의도를 공부해야 한다. 반대로 어떤 예술인을 평가할 때는 마음에 든다, 들지 않는다.’가 아니라 그가 최선을 다했는지, 정말 할 수 있는 만큼 탐구하고 파고 들어갔는지가 중요하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음악을 만들었다면 취향을 떠나서 진심으로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다.

 

연주자들은 종종 베토벤 스타일답게 연주하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러한 요구가 당황스러운 이유는 과연 베토벤 본인은 베토벤 스타일이 무엇인지 알았을까?’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어떻게 베토벤 자신도 모르는 베토벤적인스타일을 운운할 수 있을까? 베토벤은 그저 그였을 따름이고, 그가 음악을 추구한 이유 역시 영혼의 자유로움과 표현의 자유로움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음악을 통해 자유로움의 가치를 선사하지 않았는가? 연주자는 연주에 자신만의 감수성과 개별성을 더함으로써 창조의 작업을 이어간다. , 훌륭한 연주자는 타성에 젖지 말고 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안녕, 베토벤 - 이루지 못한 사랑] 베토벤은 음악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사랑은 이루지 못했다. 생전에 많은 여인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사후 서랍에서 발견된 익명의 여인을 향해 쓴 편지, 일명 불멸의 연인을 향한 편지가 유명해지면서 그 수신인이 누구인지 아직까지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참고로 베토벤의 친구가 남긴 증언에 따르면 그는 대체로 사랑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마음속에 항상 누군가를 품고 있었으면서도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에는 신분의 한계와 귓병, 높은 눈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가난하고 성격도 괴팍한데 눈까지 높아 연애는 가능해도 결혼까지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베토벤은 주로 자신보다 신분이 높거나 나이가 더 어린 여자를 좋아했다. 불멸의 연인으로 몇몇 여성들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안토니 브렌타노다. 그녀와 헤어진 1812년에 베토벤이 편지를 썼을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미술품 감정가의 딸로 태어난 그녀가 남편과 빈으로 이사 오면서 베토벤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어려서 나이 차이가 큰 남편과 결혼했기 때문일까?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던 브렌타노는 베토벤과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괴팍한 그의 성격에 잘 맞춰주면서 심지어 청혼까지 먼저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어엿한 남편이 있고 아이 넷을 가진 유부녀였다. 또한 베토벤의 입장에서는 그녀의 남편과도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섣불리 청혼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브렌타노 부부가 다시 이사를 가면서 그들의 밀회도 결국 끝이 난다.

 

브렌타노 외에도 테레제 말파티라는 여성이 있다. 테레제 말파티의 삼촌이 베토벤의 주치의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문제는 당시 베토벤은 40대였고, 테레제는 10대였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베토벤이 심각한 귓병까지 앓고 있어 결혼까지 이어질 수는 없었다. 베토벤의 ‘WoO.59’ 엘리제를 위하여가 테레제 말파티에게 바친 곡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베토벤의 악필 때문에 곡 이름이 테레제(Therese)가 아닌 엘리제(Elise)로 잘못 알려졌다는 설은 유명하다.

 

고단한 거장의 길

 

이상적인 여성성을 찾아서

영원한 여성성(eternal feminine)’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영원한 여성성이 우리를 천상으로 이끈다.”라고 주장한 괴테와 같이 베토벤도 한평생 이상적인 여성성을 추구했다. 나 역시 예술가로서 육체의 욕망을 초월한 자연과 인류의 영원한 음()을 탐구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이는 모든 생명이 마음속에 갖추고 있는 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성스러운 어머니이자 인류의 기원인 음은 인간의 욕망을 성화시켜 우리를 발전시켜주는 요소다. 칼 융이 내세운 아니마(anima), 즉 남성의 무의식 속에 내재해 있는 여성성과 비슷한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성스러운 여성성과 헌신적인 모성의 여성성이 이들이 찾는 영원한 여성성의 근간일 것이다. 영원한 여성성에 대한 개념은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며, 그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베토벤 역시 다양한 희로애락을 경험했다.

 

빈에 도착한 직후 인기를 누리면서 귀족들의 성원을 받았던 1798~1799년은 젊은 베토벤에게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한 시기였다. 후원자들도 많이 생기고 제자들 중에는 젊은 귀족 여성들도 있었다. 베토벤의 음악 안에는 영원한 여성성을 찾으려는 불굴의 의지, 젊고 장난기 넘치는 젊은 소녀들의 순진무구함과 그들의 우아한 자태, 젊은 청년의 한숨과 고뇌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실제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4E플랫장조 Op.7’에는 영원한 여성성에 대한 탐구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젊은 베토벤이 잠시 열렬하게 사랑했던 케글레비치 백작의 딸에게 헌정된 작품인 이 피아노 소나타는 당시 빈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여인(Die Verliebte)’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에 의하면 베토벤은 이 소나타를 정열적인 마음으로 작곡했다고 한다. 1악장의 기백이 넘치는 열정, 그리고 여성적인 우아함이 가득한 주제와 남성적인 기백이 서로 응답하는 4악장이 특히 인상적이다.

 

기적의 여인, 귀차르디: 1801년은 베토벤에게 희망으로 가득했던 해이자, 결혼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여인을 만난 해였다. 줄리에타 귀차르디에게 사랑에 빠진 베토벤은 그 유명한 월광소나타를 그녀에게 헌정한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백작 가문의 딸로 베토벤의 피아노 제자이기도 했다. 베토벤이 말년에도 귀차르디에 대해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녀는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귀차르디의 초상화가 베토벤의 유품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베토벤이 품은 사랑에 대한 기대감은 월광소나타에 그대로 드러난다. 리스트는 이 피아노 소나타의 중간 악장을 두 가지 심연 사이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표현했는데, 청각 장애로 고통 받는 시기에 나타난 이 여인은 베토벤에게 정말 기적 같은 존재였다. 그런 의미에서 월광소나타에는 기적의 여인 귀차르디를 통해 빛을 보았던 동시에 불행하고 어두웠던 이중적인 베토벤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한편 피아노 소나타 제13E플랫장조 Op.27’에는 베토벤이 귀족 가문 브룬스비크 집안과 교류를 나누었던 시기의 밝은 배경이 느껴진다. 브룬스비크 가문의 요세피네와 테레제 자매는 베토벤을 숭배했고, 자매의 오빠인 프란츠는 베토벤을 형제처럼 대했다. 베토벤은 자신의 열렬한 팬이자 후원자였던 프란츠에게열정소나타를 선물한다. 당시 입주 교사로 일했던 베토벤은 여름철마다 브룬스비크 성에 정기적으로 머무르곤 했다. 또한 이곳은 베토벤이 브룬스비크 가족과 사촌이었던 귀차르디를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다. ‘피아노 소나타 제13E플랫장조 Op.27’ 1악장에 담긴 청명하면서도 고귀한 기품, 그리고 기쁨의 감정은 듣는 이로 하여금 브룬스비크성에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베토벤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예술성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사랑을 작품에 담다: 베토벤이 사랑하는 여성에게 바친 다른 곡으로는 테레제 폰 브룬스비크에게 헌정한 피아노 소나타 제24F샵장조 Op.78’, 그리고 피아노 소나타 제27e단조 Op.90’이 있다. 후자의 곡은 모리츠 리히노프스키 백작에게 헌정되었는데, 당시 백작은 가족들의 오랜 반대를 무릅쓰고 오페라 가수와의 재혼을 앞둔 상태였다. 백작의 사랑을 축복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작품이기 때문인지, 격하고 극단적인 표현보다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분위기가 인상적인 곡이다.

 

한편 피아노 소나타 제30E장조 Op.109’피아노 소나타 제31A플랫장조 Op.110’은 좀 더 높은 차원의 영적이고 이상화된 사랑을 보여준다. 맹목적인 사랑 대신 성숙함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낭만주의적 사랑과 불멸의 연인은 회상과 추억으로 표현되어 있다. 베토벤은 사랑이 가득 담긴 피아노 소나타 제30E장조 Op.109’를 안토니 브렌타노가 아닌 그녀의 딸에게 헌정했다. 이는 한때 사랑했던 연인인 브렌타노에 대한 진심을 담은 마지막 헌사가 아니었을까? 비록 베토벤은 1812년 이후 브렌타노와 만나지 못했지만 평생 그녀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그녀 역시 계몽주의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베토벤과는 이념적으로도 잘 맞는 사이였을 것이다.

 

피아노 소나타 제30E장조 Op.109’는 베토벤의 천재적인 즉흥 연주 실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눈부시게 부드러운 패시지(독립된 발상을 하지 않고 선율 사이를 빠르게 상행 또는 하행하는 경과적인 악구)는 두 차례에 걸쳐 애처로운 저항(아다지오)에 부딪히지만, 이 반란은 장식음에서 꿈처럼 사라진다. 결국 비바체(‘아주 빠르게’ ‘생기 있게연주하라는 지시)에서는 오히려 평화가 감돌고 아다지오에서는 불안감이 느껴진다. 특히 3악장은 의심할 바 없이 베토벤의 음악 중에서 가장 내밀하고 깊이 있는 사랑이 담겨 있다. 이 사랑의 맹세는 변주곡에서 변용을 이루며 거룩하게 표현되었다.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제31A플랫장조 Op.110’으로 형용할 수 없는 부드러움을 표현했고, 깊은 서정성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순수하고 이상화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 피아노 소나타가 불멸의 연인의 후보 중 한 사람인 요세피네 폰 브룬스비크가 세상을 떠난 1821년에 작곡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참고로 요세피네는 베토벤의 처음이자 마지막 약혼자였다. 비록 브룬스비크 가문의 반대로 결혼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베토벤과 요세피네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베토벤은 이 피아노 소나타에서 또다시 푸가(하나의 선율을 한 성부가 연주하면 이를 따라 다른 성부가 다른 음역에서 모방하는 악곡 형식)를 도입하는데,함머클라비어소나타처럼 극단적인 규모와는 거리가 멀다. 이 피아노 소나타의 푸가는 좀 더 내면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내밀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 작품에서 푸가는 마치 사랑에 대한 표현이 현실을 초월해 정화되는 것처럼 나타난다. 따라서 피아노 소나타 제31A플랫장조 Op.110’은 사랑을 위한 레퀴엠(진혼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통을 넘어 영원으로

 

자연에서 답을 구하다

청각 장애와 낮은 사회적 계급으로 인한 좌절감, 정서적인 문제들이 결부된 길고 긴 어두운 시기를 지나 심적 고통을 초월한 베토벤은 새로운 길과 마주한다. 아마 이 시기에 베토벤은 스스로 이렇게 다짐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내 작품들은 만족스럽지 않다. 앞으로는 새로운 길을 걸을 것이다.’ 여기서 작품이란, 음악적 구조는 물론 작품에 대한 개념과 모티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제 베토벤 자신은 더 이상 작품의 주인공이나 영웅으로 대상화되지 않았으며, 한 발 뒤로 물러나 인류와 우주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개인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때부터는 대자연과의 투쟁에 더 중점을 두었다. 정열적이고 개인적인 갈등은 저 멀리 사라졌고, 그 자리에 인상과 회상, 만유적인 차원의 감정들이 들어선다. 인간과의 관계에서 대자연과의 관계로 작품의 세계가 확장되면서 이 시기에 작곡된 음악은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고 뛰어넘는 도구가 되었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다: 달라진 그의 음악성은 청력 상실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청력이 악화된 이후로는 독서와 산책을 더 자주 즐기며 음악에 깊이를 더했고, 이때 접한 대문호들의 작품과 철학 사상은 그의 재능과 맞물려 큰 시너지를 발휘했다. 그런 의미에서 피아노 소나타 제15D장조 Op.28’ 전원의 안단테 악장, 2악장은 사상가의 발걸음이 낳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안단테(andante)는 아다지오와 알레그레토의 중간 빠르기를 뜻하는 말로, 이탈리아어로 걷다라는 의미다. 2악장에는 철학자의 심사숙고하는 어두운 감정이 걸음을 걷는 속도의 리듬으로 나타나는데, 산책자의 멜랑콜리(우울이나 비관주의에 해당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와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으로 표현한 무사태평한 새들의 지저귐이 대조된다. 결국 인간의 고통은 자연의 평정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곡에 내재된 전원의 평온함은 인간에게 주는 달콤한 교훈이자 위안이다.

 

전원소나타와 발트슈타인소나타: 자연을 표현한 또 다른 곡으로는 1803~1804년에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 제21C장조 Op.53’ 발트슈타인이 있다. 발트슈타인 백작에게 헌정된 곡으로 초판본에는 발트슈타인 백작에 대한 헌사가 적혀 있다. 3악장의 앞부분이 마치 밝은 해가 뜨는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여명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참고로 발트슈타인 백작은 베토벤의 후원자이자 그가 빈에 갈 수 있도록 장학금을 마련해준 사람이었다. 베토벤은 발트슈타인 백작의 지원으로 대학에서 인문학 과목을 청강할 수 있었고, 이때 경험한 정규 교육은 그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또한 그의 주선으로 하이든과도 만날 수 있었는데, 여러모로 베토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베토벤의 발트슈타인소나타는 신비스러운 울림과 독보적인 음악적 발상을 지녔으며, 페달을 풍부하게 사용해 당시에는 매우 낯선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광범위한 색채의 화성을 갖춘 이 작품이 자유사상가이자 프리메이슨 단원, 계몽주의 신봉자였던 발트슈타인 백작에게 헌정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이었을까? ‘여명이란 별명도 결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떠오르는 태양은 인간 자각의 깨달음, 즉 영혼의 발전을 상징하며 동시에 베토벤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임무를 나타낸다.

 

발트슈타인소나타의 시작 부분에서 되풀이되는 화성은 마치 우주의 박동, 대기의 진동을 표현하는 것 같다. 긴 밤이 지난 후에 자연을 깨우는 태양빛의 번쩍임이 느껴지는 2악장은 분명한 테마 없이 불현듯 나타난 신비로운 환영과 같다. 1악장에서 고조된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동시에 3악장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준다. 2악장은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고요한 바다에서 느낄 수 있는 알 수 없는 모호함을 닮았다. 그런가 하면 이리저리 바뀌는 조성(악곡에서 으뜸음을 중심으로 한 음의 조직과 그 영향력을 가리킴)은 보름달에 비친 구름의 기묘한 색깔 같다. 그런 후에 3악장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의미심장한 선율이 등장한다. 관현악을 연상시킬 정도로 웅장한 스케일이 돋보이는 3악장은 주제가 반복되는 론도 형식을 갖고 있다. 마치 인류의 감정이 비인격적인 우주와 대조를 이루는 것만 같다.

 

절묘한 화성 진행은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같다. 페달을 풍부하게 사용해 미묘한 색채의 변화무쌍함을 추상적으로 그려내는데, 이는 인상주의자 작곡가들을 훨씬 앞선 혁신적인 것이다. 이 독창적인 시도에서 베토벤이 어떻게 선배 작곡가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는지 엿볼 수 있다. 한편 발트슈타인소나타를 전원소나타와 비교해 들으면 더욱 흥미롭다. 전원소나타는 발트슈타인소나타와 달리 자연에서 받은 인상을 개인적이고 낭만적으로 표현했다. 베토벤은 이 작품을 통해 자연의 요소(바람의 어루만짐, 물 위에 비친 모습, 지평선 등)와 자연 속으로 녹아들면서 기쁨을 느끼는 영혼, 그리고 자연이 가져다주는 크나큰 행복을 묘사했다.

 

한편 1악장에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해서 뻐꾸기라는 별명이 붙은 피아노 소나타 제25G장조 Op.79’도 자연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곡은 놀랄 정도로 단순하고 순수하며 천진난만하다. 베토벤이 젊은 피아니스트이자 연인 테레제 말파티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 피아노 소나타가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다. 곧 내 다른 작품을 받아보게 될 텐데, 이번에는 연주가 어렵다고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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