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등바등 버텨온 회사생활을 기록한 이번 책에, 씁쓸한 웃음이 깃든 문장들과 공감할 수밖에 없는 소재들을 엮어 연신 울컥하는 순간들을 담아냈다. 그리고 하루 평균 8시간씩 저마다 일일회사드라마를 찍을 모든 독자들에게 ‘퇴사와 존버’의 갈등에서 잠시 벗어나 먹고살기 위해 해온 일의 ‘진짜 의미’를 묻는다.
로또는 꽝이고 내일은 월요일
▣ Short Summary
꿈 많던 사회초년생에서 이제는 나름 회사에 익숙해진 요즘. 그사이 당신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여전히 일요일 밤은 좀 우울하고, 아직도 일하다 감정을 다치진 않는지. 이놈의 회사 때려치우겠다며 산 로또가 꽝인 걸 알고는 약간 침울해진 채로 월요일 아침을 맞지는 않는지. 그래도 다시 로또를 구매해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다가올 주말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는지.
이 책은 정규직, 계약직, 프리랜서로 어느덧 11년 차 노동자로 살아온 저자의 에세이다. ‘작고 귀여운 월급’으로 카드값 막기에 급급해하고, 병원 가는 바람에 ‘순삭’된 월차 같지 않은 월차에 속이 타고, 월급은 ‘욕 값’이라고 조언하는 부장에게 찍소리도 못하는 모습까지, 전혀 낯설지 않은 그의 회사생활이 펼쳐진다. 그렇지만 그토록 웃픈 기록들을 거침없이 쏟아낸 이 책은 섣불리 퇴사를 권하지 않는다. 돈에 눈먼 세상에서 당신 대신 밥벌이를 해줄 게 아니기에, 씩씩거리면서도 씩씩하게 출근하는 법, 일요일 밤 덜 뒤척일 색다른 조언을 건넨다.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까. 일의 의미가 무언가 거창한 것을 깨닫거나 감동하는 것이 아닌, 어쩌면 자신의 삶을 의심해볼 소중할 기회일 수 있음을 얘기한다. 이제는 현실에 징징거리는 데 지친 당신에게 아주 약간의 용기와 희망을 품는 방법을 알려준다.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 아침을 피할 수는 없지만 기어코 돌아오는 주말도 있듯이, 당신의 노동인생에도 불행뿐 아니라 행복도 여전히 있음을 말이다.
▣ 차례
프롤로그 _ 기어코 월요일이 왔다
제001회. 월요일이 싫어요 회사가 질려요
월요일 회사는 위험해 / 출근길에 찍은 재난영화의 마지막 장면 / 작고 귀여운 월급이 들어오는 날
갑질은 꽉 막힌 고속도로와 닮았다 / 외로운 요일 월요일 열일 / 나에게도 어린 상사가 생겼어요
회사 가기 싫어서 병원에 간 썰 / 원래 월급은 욕 값이에요 / 우디는 장난감이 아니었다
제002회. 퇴사 씩씩거리며 씩씩하게
퇴사 후 1년 8개월간의 4단계 심리 변화 / 퇴사해보니 돈은 허구가 아니더라
연애 권태기와 직장생활 권태기의 7가지 공통점 / 감정적인 퇴사는 현실적인 내일로
치밀한 퇴사자와의 인터뷰
제003회. 일도 사람도 리셋하고픈 월요일
강력한 한 방보다 산만한 잽이 필요해 / 무인도로 퇴근하고 싶다 / 호기롭게 호구에서 탈출하기
왜냐하면, 거절은 어려운 거니까 /일요일에 출근하면 월요병이 나아진다? /혼밥으로 소속감을 느낀다
제004회. 쓸데없이 회사생활을 이롭게 하는 것들
쓸데없는 질문의 힘 / 쓸데없는 감동의 효능 / 쓸데없는 욕의 부작용 / 쓸데없는 일정의 지속성
제005회. 회사 가기 싫어서 받은 심리상담
나는 괜찮지 않았다 / 아빠를 닮아가고 있던 딸 /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의 민낯
그래, 웃지 말고 울자 / 아직 불행하지 않다면 아직 행복하단 의미죠
내 발로 간 심리상담의 솔직 후기
부록. 매일 상상해도 질리지 않는 로또 1등
로또 1등에 당첨되려면 / 로또 1등 당첨자 행동강령
에필로그 _ 기어코 주말도 온다.
로또는 꽝이고 내일은 월요일
이하루 지음
홍익출판사 / 2020년 03월 / 224쪽 / 14,800원
제001회. 월요일이 싫어요 회사가 질려요
월요일 회사는 위험해
월요일은 위험하다.
정확히는 회사로 출근해서 일하는 월요일이 그렇다. 나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느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것은 증명된 사실이다. 아래 내용은 우연히 본 뉴스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보길 권한다.
일본 아이치 현의 아사히 산재병원이 실시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고가 특히 월요일 오전에 발생하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 기무라 원장은 “심혈관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월요일에는 가급적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천천히 일을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밀린 업무를 월요일 오전에 급히 처리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_<월요일 아침, 심혈관질환 위험 높다>, 추현우, 파이낸셜뉴스, 2018년 4월 22일자.
그랬다. 우리 직장인은 ‘그냥’ 회사에 가기 싫었던 게 아니다. 예민한 촉으로 ‘위험’을 감지한 것이다. 일요일 저녁마다 기분이 우울했던 이유, 일요일 밤마다 잠이 오지 않는 이유, 월요일 아침마다 예민해지는 이유. 모든 것엔 이유가 있었다. 어렴풋이 예감한 것들이 사실로 밝혀지는 순간은 늘 이렇게 찜찜하다.
이렇게 월요일이 위험하다는 게 증명됐건만 예방하고 치유하는 방법은 고릿적 시절 그대로다. 그놈의 스트레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조언은 회사를 관두라는 말과 마찬가지 아닌가. 돈에 눈이 먼 세상에서 밥벌이를 대신 찾아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마시고 주말에는 푹 쉬세요. 일요일에는 일찍 주무시고요.”
예전에 자주 가던 병원 의사는 늘 내게 이런 처방을 내렸다. 위염에 걸렸을 때도, 장염에 걸렸을 때도, 마지막으로 대상포진으로 찾아갔을 때도, 그는 스트레스와 잠을 운운했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세 번째로 찾아갔을 때마저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하는 그를 보자 멱살을 잡고 이렇게 따지고 싶었다.
“딱히 할 말이 없으면 그냥 불치병이라고 해.”
하지만 끝내 내 손은 무릎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왜냐하면, 의사의 얼굴이 환자인 나보다 더 안돼 보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유행하는 감기 때문인지 병원에는 대기 환자가 가득했다. 처방전을 받고 나오면서 나는 의사의 심혈관이 걱정스러웠다.
월요일은 이렇게 위험한 것이다. 환자가 의사를 걱정할 정도니까.
제002회. 퇴사 씩씩거리며 씩씩하게
퇴사해보니 돈은 허구가 아니더라
전년 대비 26.8퍼센트나 올랐다. 주가 얘기가 아니다. 2019년 1분기 과자 맛동산 가격이 인상된 폭이다.
1990년대 초반 맛동산은 500원이었다. 초등학생이던 내게 무시무시하게 고소한 맛이 나는 이 과자는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맛동산을 사기 위해 슈퍼마켓으로 전력 질주할 때가 많았다. 아빠에게 맛동산은 팝콘 대용이었다. 비디오 가게에 입고되는 최신 영화를 제일 먼저 대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빠였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 준비되어야 할 것이 쟁반에 올려진 맛동산이었다.
이토록 중요한 맛동산이 늘 집에 있는 건 아니었다. 과자가 없을 때는 누군가 잽싸게 나가서 사와야 했다. 그렇다. 그 누군가는 집에서 제일 어린 나일 때가 많았다. 불공평한 처사였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아빠가 내 손에 쥐여준 1,000원 덕분이다. 암묵적으로 맛동산을 사고 남은 500원은 내 것이었다. 이것은 심부름 값이자 구매대행 서비스 이용료였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아빠가 시킨 심부름은 딸을 위한 경제 교육이 아니었나 싶다. 돈은 일해야 생기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맛동산을 살 수 없다, 이런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안타깝게도 아빠의 노력에도 내게 경제관념이 생긴 건 퇴사하고 무일푼이 된 후였다.
내게 돈은 허구였다. 여기저기서 주워듣고 읽은 내용에 따르면 돈은 예측할 수 없는 종이다. 본래 돈이라 불리는 종이는 과거 금과 은을 교환하는 증서였다. 한데 영리한 은행이 증서를 이용해 부를 쌓기로 한다. 증서를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실제 은행에 보관된 금보다 많은 증서를 찍어내게 됐다. 그러다 세계 강국인 미국이 무역적자로 어려워지자, 금으로 교환받던 증서가 미국을 믿고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화폐로 바뀌었다. 이제 돈은 실물자산인 금으로 교환되지는 않는다. 가치도 시장에 의해 달라졌다. 내가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한들, 화폐 가치가 하락하면 돈은 정말 종이에 불과할 수도 있다. 더는 맛동산을 500원에 살 수 없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돈을 허구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사회초년생 때는 돈을 꽤 열심히 모았다. 점점 불어나는 통장 숫자가 든든하기도 했으니까. 그때 나는 투잡을 뛰었다. 평일에는 직장에 다녔고 주말에는 과외를 했다. 악착같이 살려던 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취업하기 전에 했던 과외를 관두기 어려웠을 뿐이다.
그때 나는 신입 기자였다. 주말에도 취재를 나가야 할 때가 많았고 그런 와중에 과외까지 맡았다. 당연히 놀 시간이 부족했다. 친구들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예쁜 옷을 입었고, 좋은 곳에 갔으며, 맛있는 음식만 골라 먹었다. 한데 난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아쉬운 마음도 통장에 돈이 쌓이는 뿌듯함과 바꿀 수 없었다. 그때 내 연봉은 2,400만 원 정도였는데, 6개월 만에 통장에 1,000만 원이 모였다. 백수로 지낼 때 생긴 빚까지 모두 청산한 후에도 말이다.
그렇게 8개월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나는 쓰러졌다. 과로사는 아니었다. 막걸리 한 잔에 정신을 잃은 것이다. 원래부터 술을 잘 못 마신다. 그렇다고 막걸리 한 잔에 쓰러질 주량 또한 아니었다. 몸에 나타나는 이상 신호는 더 있었다. 별일이 없으면 금요일 밤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잠이 들었는데, 언제부턴가 다음 날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금요일 밤 10시에 잠들어 토요일 밤 10시에 눈을 뜬 날도 있었다. 몸이라도 개운했으면 좋았으련만. 물먹은 도톰한 니트처럼 몸이 무거웠다. 그 후 생리 주기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한 달에 두 번, 두 달에 한 번, 이런 식이었다.
병원에 가 건강검진을 받았다. 갑상선 결절, 만성 위염, 허리 디스크 초기 등 열심히 일한 몸뚱이는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과외를 관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다녔다. 금요일 밤에는 친구들과 가격은 사악하지만 사진 찍기 좋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주말에는 이름조차 발음하기 어려운 작가들의 전시회에 다녔다. 쇼핑도 했다. 난해한 디자인에 편히 착용하기 힘든 옷과 액세서리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이 바로 소비에 편향된 욜로였다.
독립도 했다. 회사 근처에 집을 구했다. 창문을 열어두면 금세 발바닥이 까맣게 변하는 대로변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하얀 화장대, 하얀 침대, 더 하얀 소파. 그것들을 집안에 들여놨다. 마지막은 와인 장식장이었다. 야근 후 와인을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8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성난 자동차 소리뿐인데도, 내 삶이 꽤 그럴듯해 보였다.
욜로의 끝은 퇴사 후 장기간 여행을 떠난 후부터였다. 8개월 만에 빚을 청산하고도 1,000만 원을 모았던 성실한 사회 초년생은 모은 돈을 여행에 쏟아부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통장에는 커피 한 잔 사 마실 돈도 남아있지 않았다.
돈은 봄볕에 녹는 눈 같았다. 조용히 사라졌고, 흔적이 남지 않았고, 정신을 차렸을 땐 모든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서른이 넘어 무일푼이 된다는 건 꽤 심각한 문제였다. 때마침 아빠의 사업도 어려워졌다. 오빠까지 함께 일하는 사업장이었다. 아빠 주머니 사정이 곧 우리 집 경제 상황으로 직결됐다. 백수로 돌아온 집은 형편이 녹록지 않았다.
“혹시 돈 좀 있어?”
정신 차리고 다시 프리랜서 일을 시작할 때였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돈 얘기를 먼저 꺼낸 적 없던 아빠가 물었다. 생활비를 카드로 썼는데 갚을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에게 돈을 빌려만 줬지, 빌린 적이 없던 아빠가 뻔한 형편이란 걸 아는 딸에게 손을 벌리기까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때 문득 맛동산이 떠올랐다. 이 말을 꺼내기 얼마 전 아빠와 나는 마트에 갔었다. 과자가 진열된 코너를 지나는데 맛동산이 보였다. 아빠는 잠시 그 앞에 머물다가 이내 지나쳐버렸다.
그제야 돈이 아까웠다. 내 몸보다 자주 닦아야 해서 얼마 앉지 못한 하얀 소파, 언제 쓸지 기약 없는 물건을 한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낸 비행기 수화물 추가 비용, 시차 적응을 하겠다며 통장에 남은 돈으로 사 마신 아메리카노까지. 그동안의 가벼운 소비가 무거운 손실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네덜란드에 이런 속담이 있단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침대를 살 수 있지만, 잠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시계를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책을 살 수 있지만, 지식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약을 살 수 있지만, 건강을 살 수 없다.
언뜻 돈과 행복이 무관하다는 것처럼 들린다. 문장을 바꿔봤다.
집이 있으면, 가정은 더욱 안정적이다.
침대가 있으면, 수면의 질이 높아진다.
시계가 있으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잇다.
책이 있으면, 지식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약이 있으면, 건강관리에 도움이 된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그렇지만 돈이 있으면 불행할 확률이 줄어든다. 이것이 내가 소비를 손실로 느낀 이유다. 돈 때문에 삶이 불행해질지도 모를 위기를 느꼈으니까.
내가 소득과 소비의 균형을 맞춰가며 이루고픈 것, 돈으로 이루고픈 미래 경제력은 어마어마한 게 아니다. 우선 26.8 퍼센트가 아닌 268퍼센트가 인상되더라도 아빠에게 맛동산을 사주고 싶다. 비록 거실에 내 몸보다 소중히 다뤄야 하는 새하얀 비싼 소파는 없더라도, 대출금 없는 집에서 살고 싶다. 아주 가끔 가성비를 무시한 소비를 하고 싶다. 작은 실패에 와르르 무너져 세상에 야박해지기 싫다. 무엇보다 모래시계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언제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싫다.
이제는 안다. ‘회사에 받은 스트레스’를 ‘회사에서 받은 월급’으로 소비해도 해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제003회. 일도 사람도 리셋하고픈 월요일
왜냐하면, 거절은 어려운 거니까
아직 거절에 대해 할 말이 남았다.
직장생활은 거절로 시작해 거절로 끝난다. 입사하고 싶은 회사로부터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더는 함께할 수 없다는 회사의 거절로 회사생활이 마감된다. 따져보면 어디 직장생활 뿐이겠는가. 거절은 우리 인생 마디마디에 촘촘히 파고든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그밖에 살면서 얽히고설키는 관계에서 불편한 부탁은 일상다반사로 일어난다. 그 때문에 거절은 필수다.
거절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늘어난다. 그렇다면 거절, 어떻게 하면 익숙해질 수 있을까.
1. 아니다 싶은 것은 아닌 게 맞다: 누가 봐도 무리한 부탁인데 너무도 해맑게 부탁하는 사람이 있다. 또는 무리한 부탁을 하면서 관계를 운운하는 이들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부탁이라는 것은 부탁하는 자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고로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 상대가 해맑든 탁하든 상관없이 내게는 거절할 권리가 있다.
2. 결정은 빠르게, 거절은 천천히: 아니다 싶은 곤란한 부탁은 거절하는 게 맞다. 그러나 부탁한 사람과 덜 어색해지고 싶다면 바로 거절하지는 말자. ‘생각 좀 해볼게’, ‘확인 좀 해볼게요’, ‘의논 좀 해볼게요’처럼 상대의 부탁을 고민한 듯한 인상을 남기며 정성스럽게 거절하자.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상대도 거절을 염두에 두고 다른 사람을 물색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너무 늦게 거절하진 마시길.
3. 거절로 끊어질 관계는 언제든 끊어진다: 거절하기 미안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거절하지 않고 후회할 일을 만드는 것보다 미안한 게 낫다. 거절했다고 나빠질 관계는 이 기회에 정리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거절은 관계를 거절하는 게 아닌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다.
4. 미안해하지 말고 미안한 척만 하자: 실망할 상대가 걱정된다면 ‘미안한 척’을 하자. 여기서 주의할 점은 뼛속까지 진짜 미안해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직접적인 ‘미안하다’란 말은 최대한 언급하지 않도록 하자. ‘나도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는데 안타깝다’, ‘잘 해결되길 바랄게’ 정도가 좋다. 거절은 상대에게 빚을 지는 일이 아니다.
5. 상대에게 거절을 설득해보자: 부탁하는 사람만 상대를 설득하는 게 아니다. 부탁받는 사람도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 ‘설득’과 관련된 수많은 책은 상대가 거절할 수 없는 방법을 알려준다. 역으로 이 방법을 이용해 거절을 설득해보자. 이런 책을 보면 알겠지만, 상대에게 신세 진 기분이 들게 만들기, 일단 부탁하기, 공감대를 형성하기, 거절하는 이유를 이용해 설득하기 등 수많은 기술이 담겨 있다. 역으로 이를 이용하자.
혹시 ‘왜냐하면’이란 말과 함께 부탁하면 거절당할 확률이 낮다는 이야기를 들어봤는지. 심리학자 엘런 랭어(Ellen Langer)는 1978년 양보와 관련된 실험을 했다. 도서관 복사기 앞에서 줄을 선 사람들에게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말로 먼저 복사할 수 있겠냐며 부탁을 한 것이다.
① “죄송합니다만, 제가 지금 다섯 장을 복사해야 하는데 먼저 복사기를 사용해도 될까요?”
② “죄송합니다만, 제가 지금 다섯 장을 복사해야 하는데, 먼저 복사기를 사용해도 될까요? 왜냐하면, 제가 지금 굉장히 바쁜 일이 있어서요.”
결과는 어땠을까. 첫 번째 말로 부탁했을 때는 60퍼센트가, 두 번째 말로 부탁했을 때는 94퍼센트가 양보를 해줬다. 이 실험 결과와 같이 ‘왜냐하면’이란 단어는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게는 이런 심리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직장동료가 있었다. 그녀는 매번 이런 식으로 내게 부탁을 하곤 했다.
“하루 씨, 혹시 내일 아침에 데일리리포트를 대신 써줄 수 있을까? 왜냐하면, 내가 내일 아침까지 보도자료를 완성해야 하거든.”
“하루 씨, 이번 주말에 있는 행사 말야. 대신 가주면 안 될까? 왜냐하면, 주말에 부모님 생신이거든.”
“하루 씨, 이번 여름휴가 말이야. 나랑 날짜 바꿔줄 수 있어? 왜냐하면, 비행기 표가 그때밖에 없더라고.”
그러나 ‘왜냐하면 효과’는 내게 통하지 않았다.
“힘들겠는데요. 왜냐하면, 저도 내일 아침까지 제출할 기획안이 있거든요.”
“못 갈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희 부모님도 이번 주가 생신이거든요.”
“어렵겠네요. 왜냐하면, 제가 구할 비행기 표도 그때가 제일 싸거든요.”
거절은 어렵다. 왜냐하면, 저마다 그럴 만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제004회. 쓸데없이 회사생활을 이롭게 하는 것들
쓸데없는 욕의 부작용
나는 ‘은근히’ 욕을 잘한다.
일하다 보면 너무 화가 나 당장 관두겠다며 침 뱉듯 말하고 짐 싸서 나오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나는 그럴 때면 입안에 초콜릿을 잔뜩 넣고 볼륨을 최대한 줄이며 이렇게 말한다.
“씨베리안산 싹퉁 위에 굽는 갈비지(Garbage)를 능가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개놈 프로세스를 잘근잘근 씹을 씹씹한 휴먼(Human) 같으니라고!”
하지만, 발음이 매우 부정확하고 작은 목소리로 오물거리듯 읊어서 상대에게는 모호하게 들린다. ‘혹시 내 욕인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면 나는 입안에 초콜릿을 더 집어넣고 노래를 흥얼댄다.
내가 서른 중반에 이렇게 유치한 짓을 하는 까닭은 고통 없이 일하고 싶어서다. 그래도 그렇지 다 큰 성인이 무슨 욕이냐고 묻는다면, 이것이 ‘통증 완화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진짜다.
영국 킬대학교와 센트럴랭커셔대학교 연구팀에 의하면 ‘욕’이 고통을 감소시킨다고 한다. 연구팀은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지원자를 모아놓고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평소 잘 쓰지 않는 손을 얼음물에 넣게 했다. 이때 한 그룹은 욕설을 하게 하고, 다른 그룹은 욕설은 물론 어떠한 저속한 단어도 쓰지 못하게 주의시켰다. 그 결과 욕을 한 그룹은 1분 18초 동안 얼음물을 견뎌냈지만, 욕을 하지 못한 그룹은 45.7초를 버티는 데 그쳤다. 다시 말해 욕을 한 사람이 고통을 더 잘 견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효과적인 욕에도 부작용은 있기 마련이다. 혹시 마음이 잘 맞는 직장동료와 회사 또는 직장상사 욕을 시간제한 없이 실컷 하다가, 도리어 욕하기 전보다 더욱 우울해진 적이 있지 않은가. 화장실에서 살짝, 점심 먹으면서 잠깐 욕을 했을 때는 참 개운했는데 말이다. 이것이 욕의 안타까운 부작용이다. 약도 욕도 남용하면 위험하다. 특히 욕을 먹어야 할 대상이 없는 곳에서 하는 농도 짙은 욕은 어느 방향으로 던지든 꼭 내게 돌아오는 부메랑과 비슷하다.
‘욕의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평소에 쓸데없는 욕을 하지 않는 습관이 필요하다. 참으라는 말이 아니다. 아끼라는 당부다. 욕에도 내성이 생긴다. 따라서 고통이 적은 회사생활을 위해서는 ‘때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양의 욕’이 필수다.
제005회. 회사 가기 싫어서 받은 심리상담
그래 웃지 말고 울자
“회사에서 관계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있나요?”
“많죠. 나와 맞지 않는 상사라든가, 이상하게 서로를 견제하게 되는 동료라든가, 절 싫어하던 부하직원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런 일이야 누구나 겪는 거잖아요. 하하하.”
“근데, 하루 씨는 불편했던 기억에 관해 얘기할 때 유난히 더 웃으려고 노력하는 거 알아요? 처음에 아버님에 대해 말할 때도 울 것 같으면서 웃더라고요.”
“제가 그랬나요?”
“네. 그래서 아마도 하루 씨의 경우 힘들어도 사람들에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힘들수록 잘 웃고 장난을 치니까요.”
“아, 네.”
“감정을 분리하는 것과 아무렇지 않은 척 감정을 누르는 건 다른 문제인데 말이죠.”
“그게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안에 쥐꼬리만큼 남은 자존심이라든가 자존감이 다 사라질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혹시 그럴만한 일이나 계기가 있었을까요?”
10여 년 전, 근무하던 회사에 좋아하던 부장님이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 직원 모두가 부장님을 잘 따랐다. 젊은 직원들끼리 퇴근 후에 뭉칠 때도 다른 상사들 모르게 부장님만 따로 초대할 정도였다.
부장님의 인기 비결은 포용력과 친화력이었다. 신입사원이 실수를 하면 혼내면서도 감싸줬다. 그리고 정작 본인이 그 일로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부하직원에게 감정적으로 화내지 않았다. 이외에도 업무적으로 배울 게 많았다. 내 경우 지금껏 부장님께 배운 대로 글을 써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좋은 상사이자, 좋은 선배였다.
그러나 임원과 대표는 이런 직원을 좋아하지 않았다. 직원을 통제하는 데 눈엣가시처럼 보였나 보다. 바른말을 하고 인간적으로 일하고픈 부장님의 인사평가가 늘 좋지 않았던 걸 보면 말이다. 부장님은 충분히 능력 있는 리더였지만, 리더의 리더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 결과 부장님은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말이 발령이지, 동떨어진 곳에 책상을 두고 아무 업무도 주지 않았다. 사실상 퇴사를 압박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직원이 안타까워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내게도 회사의 위엄을 경험한 첫 번째 순간이었다. 비로소 부장님이 그동안 얼마나 큰 용기를 내며 일해왔는지도 깨달았다.
그쯤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잠시 쉬기로 한 것이다. 얼마간 푹 쉬었을까. 다시 취업을 준비하는 내게 회사 선배가 연락해왔다.
“하루야, 잘 지내고 있지? 저기,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놀랍게도 선배의 부탁은 증언이었다. 회사와 최악의 상황까지 간 부장님은 소송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동안 회사에서 어떤 식으로 부장님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고, 또 어떻게 퇴사 압박을 했는지에 대한 증거가 필요했다. 선배는 다들 부장님을 도와주고 싶지만, 모두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보니 혹시 모를 불이익이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게 전화한 것이라 덧붙였다.
“죄송해요. 선배. 그건 좀 어렵겠어요.”
나는 거절했다. 업계는 좁았다. 퇴사했지만 아직 업계를 떠난 건 아니었다. 회사 안에 있는 선배들만큼 회사를 떠난 나도 두려웠다. 아니, 회사가 무서웠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나는 내가 힘들 때 나를 따뜻하게 감싸준 사람을 돕지 않았다. 앞으로 쭉 이렇게 비겁한 쪽을 택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죄책감도 사라질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미움 받을 각오를 하며 부장님의 연락처를 눌렀다.
“부장님 죄송해요. 도움이 되지 못해서요.”
원망을 듣더라도, 과격한 욕을 듣더라도, 눈을 질끈 감고 계속 사과할 작정이었다.
“하하하. 하루 씨, 괜찮아. 괜찮아. 사과해야 할 놈들은 따로 있는데, 왜 하루 씨가 나한테 사과하고 그래. 그나저나 몸은 좀 어때? 잘 지내고 있는 거야?”
그런데 부장님은 원망 대신 안부를 묻고, 욕 대신 걱정을 해줬다. 그러면서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끝까지 활기 넘치는 목소리로 웃음까지 섞어가며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 부장님은 회사와의 소송에서 패소했다. 나는 부장님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분명 연락하면 부장님은 괜찮다며 또 웃을 게 뻔했다. 그렇게 웃음으로 버텨내고 있는 부장님의 자존심과 자존감에 나까지 무게를 더하기 싫었다. 그것이 내가 사회생활에서 만난 가장 존경하는 선배에 대한 예의였다.
10여 년이 흐른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그때 차라리 부장님이 내게 섭섭하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걱정할 만한 일이 아니라 내 인생 최대의 사건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때 그 일이 목에서 빼내지 못한 생선 가시 같은 기억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부장님처럼 애써 비극을 희극으로 둔갑시키려는 노력을 0.000001퍼센트 쯤 덜 하며 살게 됐을지도 모른다.
감정은 반응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분노하고 화난 표정을 짓게 되는 것은 내 감정에 대한 반응이다. 그리고 나의 감정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에 대한 결정권도 나에게 있다. 그 감정이 부정적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한데 어릴 적부터 부정적인 감정은 참고 감추는 것이 어른이고 프로라 배웠다. 상황에 따라 어떤 반응을 내비칠지 선택할 생각 따위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감정을 분리하는 것과 참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를 힘들게 하는 회사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퇴근 후에 끊어내고 내 일상에 집중하는 것은, 감정을 분리하는 일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재계약을 들먹거리며 무리한 업무를 시키고, 내가 찍소리 없이 꾸역꾸역 일하는 것은, 감정을 참는 것이다. 나의 감정에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내가 참는 감정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가 아닌가에 대한 질문 말이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감정을 스스로 억압하는 일은 위험하다. 마구 구겨서 어디론가 던져둔 감정은 훗날 예고 없이 내 인생을 압류하려는 빨간 딱지가 되어 돌아올 테니까.
나는 네 번째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며 결심했다. 재수 없는 본사 담당자와 얘기할 때는 굳이 웃지 말자. 걔가 먼저 웃어도 나는 절대 따라 웃지 말자.
울어야 할 때 울고 웃기 싫을 때 웃지 않는 게 내가 내 마음과 소통하는 방법이니까.
부록. 매일 상상해도 질리지 않는 로또 1등
로또복권 1등 당첨자 행동강령
지금부터 소개할 내용은 나눔로또와 관련이 없다. 내가 로또 1등이 됐을 때 회사에서 이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은 행동강령이다.
하나. 흔한 질병으로 휴가 쓰기: 토요일 날 1등을 확인하면 월요일 날 당첨금을 찾으러 가야 한다. 계획에 없던 휴가를 써야 한다는 얘기다. 이때도 침착해야 한다.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겼다,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겼다, 이런 식으로 둘러대지 말자. 급체, 장염, 감기 몸살 등 흔한 질병을 핑계 대자. 오지랖 부리기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최소한의 질문만 받는 방법이다.
둘. 화요일 날 출근해서 아픈 척하기: 회사야말로 로또 1등에 당첨됐다고 절대 티 내지 말아야 할 곳이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자꾸 웃음이 삐져나오고 지나치게 너그러워질 수 있다. 평소대로 행동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럴 때는 차라리 월요일에 핑계 댄 질병으로 계속 아픈 척을 하자. 회사 사람들과 대화를 최소화하고, 밥도 혼자 드시라. 로또 1등 당첨이 현실처럼 느껴질 때까지는 주의하자.
셋. 퇴사는 신중하게 퇴사 이유는 그럴듯하게: 침착, 침착, 또 침착해야 한다. 사표 대신 품고 다닌 로또다. 1등이 됐으니 당장 회사를 관두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이성적이어야 한다. 당첨금이 10억 미만일 경우 서울 괜찮은 동네에 30평대 아파트를 매수하기도 어렵다. 물가도 매년 오른다. 부모님 노후도 걱정되는 일반 직장인에게 당첨금은 든든한 돈이다. 덜 스트레스 받으며 회사에 다닐 수 있는 돈. 본격적으로 월급이 풍족하게 느껴질 것이다. 일단 조용히 회사에 다니는 걸 추천한다. 도저히 다닐 만한 회사가 아니라면 관두자. 단 퇴사 사유는 이직, 창업, 학업, 유학, 휴식 등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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