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영화,리뷰,

[최인호] 상도 1

by Casey,Riley 2023. 2. 26.
반응형

        상도 1
최인호
  
  
      제1부 천하제일상
    제1장 바퀴벌레
  1
  내가 김기섭 회장의 돌발적인 사고 소식을 들은 것은 1999년 12월 말이었다. 
해마다 연말이면 묵은해를 보
내는 각종 행사들과 그에 따른 술자리, 연회 등으로 바쁘고, 새해를 
맞는 설레임으로 몸과 마음이 분주하기 마련인데 1999년의 연말은 다
른 해보다도 한층 더 바쁜 나날이었다. 그것은 며칠만 지나면 마침내 
서기 2000년으로 접어들어 신세기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인간
의 역사 속에서 천년 동안 우리의 일상을 지배해 왔던 서기 1000년
의 숫자가 마침내 '2'의 숫자로 바뀌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
다. 그뿐인가. 그리스도교의 일부에서는 1999년을 세기말적인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해라고 하여 어쩌면 인류의 멸망이 이해의 한순간
에 다가올지도 모른다고 일년 동안 줄곧 경고해 왔었다. 그러나 오히려
  새로운 세기, 새로운 2000년의 세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막연한 희
망 같은 것으로 모든 사람이, 모든 사회와 모든 국가가, 지구촌 전체
가 흥분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물론 21세기는 며칠 뒤인 새해 20
00년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 21세기는 서기 2001년부터 시
작되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서기 2000년을 신세기가 열리
는 그 원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1999년의 성탄절은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밤 열두 시에 열리는 자정미사에 
참석했었다. 교황은 다가오는 2000년의 신세기에는 전지구와 전인류에
게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는 성탄절 메시지를 내렸으며, 지구촌에서 유일
한 분단국인 한국이 2000년대에는 반드시 통일된 국가를 이루기 바란
다는 전언을 한국 교회에 보내왔다. 아내와 나는 미사가 끝난 후 성당
  마당에 만들어진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곁에 누운 아기예수의 모습을 
보았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은 헛간 속에는 예수를 낳은 마리아와 그
의 남편 요셉이 앉아 있었고, 말과 소의 먹이를 담아주는 구유속에는 
아기예수가 태어나 누워 있었다. 헛간 속에는 말과 소뿐 아니라 양과 
염소도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헛간 문밖에는 아기예수를 경배하기 
위해서 먼 동방에서부터 찾아온 세 명의 박사들이 선물을 들고 서 있었
다. 나는 인파 너머로 구유 속에 누워 있는 아기예수의 인형을 쳐다보
면서 생각했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인류
의 역사 속에 아기예수가 태어난 것이 오늘로 1999년째가 되는 예수
의 생일인 것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예수가 태어난 지 2000년
이 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미사가 끝나고 밤 두 시가 
다 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는 습관적으로 TV를 틀었다. TV에
서는 KBS교향악단의 연주가 방송되고 있었다. 베토벤의 심포니 제9번
, 합창교향곡이었다. 교향곡은 절정에 이르러 웅장한 합창곡이 터져 흐
르고 있었다. '찬양하라 노래하라 창조자의 영광을. 뻗어나는 새싹들은
 쉬지 않고 자란다. 봄비 내려 새싹 나는 나무들을 보아라...'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합창곡의 절정에서 음악이 멈췄다. 방송사고인가 
하고 나는 본능적으로 화면을 보았다. 대형 무대의 오케스트라를 비추던
 TV화면이 갑자기 스튜디오로 장면이 바뀌었다. "뉴스 속보를 말씀드
리겠습니다." 성급히 나온 듯 아나운서는 넥타이를 고쳐 매면서 말을 
시작하였다. 나는 외출복을 벗다 말고 TV앞으로 다가갔다. 성탄절의 
특별연주 실황방송을 중단시킬 만큼 큰 사건이라도 벌여졌단 말인가, 이
 좋은 성탄절날 밤에. "방금 들어온 뉴스 속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나운서는 같은 말을 두 번씩 되풀이한 다음 황급히 쓴 것 같은 원
고를 읽기 시작했다. "기평그룹의 총수 김기섭 회장이 교통사고로 별세
했습니다. 독일의 비스바덴 고속도로 위에서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나는 털썩 소파 위에 주저 앉았다. 뭐라는 소리인가. 아니 도대체 무
슨 소리인가. "...김기섭 회장은 21세기를 겨냥하여 기평그룹에서 
총력을 기울여 만든 신차를 직접 몰고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서 시운전하
다 비스바덴 근처의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일으켜 별세했다고 합니다...
"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TV 화면에는
 김기섭회장의 사진이 고정되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틀림없는 그의 얼굴
이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나운서는 짧은 뉴스의 내용
을 되풀이해서 읽기 시작했다. "방금 들어온 뉴스  속보를 말씀드리겠
습니다." 낡은 흑백사진의 얼굴 위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기
 시작했다. "기평그룹의 총수 김기섭회장이 교통사고로 별세했습니다. 
독일의 비스바덴의 고속도로 위에서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나는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자세한 뉴스는
 아침 여섯 시 첫 뉴스 시간에 속보가 들어오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불과 일이 분쯤 지났을까. 짧은 뉴스 시간이 끝나자마자 다시 멈
췄던 베토벤의 합창곡이 화면을 가득 채우면 터져 흐르기 시작하였다. 
이 우주만물을 창조한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한 쉴러의 시에 곡을 붙인 
베토벤의 웅대한 합창소리는 한 인간의 죽음 따위는 강물을 흐르는 물거
품에 불과하다는 듯이 순식간에 뒤덮어버렸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내
게 있어 김기섭 회장은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그 이상이었다. 내게 있어
 인간 김기섭은 베토벤 그 이상이었다. 그가 죽었다. 나는 외출복을 
갈아입는 것을 잊은 채 망연하게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김기섭 회장
이 마침내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서 교통사고로 죽고야 말았다.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가 그 기초를 닦았다는 고속도로, 제한속도 없이 달리고 
싶은 대로 얼마든지 달릴 수 있는 독일의 아우토반. 일년에 한 번이나
 두 번은 반드시 직접 스포츠카를 몰고 독일의 고속도로에서 아무도 태
우지 않고 혼자서 시속 2백 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는 스피드광. 그가
 마침내 독일의 고속도로에서 직접 차를 몰고 운전하다가 사고를 내어 
죽고 말았다. 1999년이 저물어 가는 이날 밤에, 모여서 술을 마시
고 노래를 하는 이 즐거운 성탄절날 밤에. 대기업의 총수가 마치 어머
니의 꾸중을 듣고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와 가출한 소년처럼 차를 몰고
 가다가 그대로 죽어버리고 말았다. 새로운 2천년대의 신세기가 열리는
 그 성탄절 전야에 김기섭 회장은 시대에 반항하듯, 지구에 넘쳐나는 
축제 분위기에 저항하듯 21세기를 겨냥해서 만든 신차를 타고 그 성능
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혼자서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서 차를 몰고 가다
가 알 수 없는 사고를 일으켜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차에 미친 사람
. 사람들은 김기섭 회장을 그렇게 부르곤 했었다. 그러나 본인은 남들
이 그렇게 자신을 불러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딱 한 번 그는 
내게 고백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당신에게만 고백하는 말이오. 난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어. 난 내가 차에 미친 사람이라고는 생각
지 않아. 어떤 사람은 나를 스피드광이라고 하지만 내가 미친 것은 차
가 아니야." "그럼 무엇에 미치셨습니까." 내가 묻자 김회장은 정색
을 하고 대답했다. "재가 미친 것은 바퀴야. 나는 어릴 때부터 바퀴
가 좋았어. 바퀴는 그 어떤 무거운 물건도 쉽게 운반시켜 주지. 바퀴
는 사물을 이동시켜 줄 뿐만 아니라 빨리 굴리면 속도가 나거든. 바퀴
는 또 둥글고 모난 데가 없어. 난 그래서 바퀴가 좋아. 그래서 말인
데, 사람들이 나를 차에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알맞은  별명일
 수가 없거든." "그럼 남들이 뭐라고 부르면 좋겠습니까." 내 질문
에 그는 싱긋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바퀴벌레." 김 회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남들이 불러 주었으면 하고 바라던 자신의 별명. 물론 그의
 설명대로 차에 미친 것이 아니라 바퀴에 미친 것이라 해서 스스로 붙
인 자신의 별명, 바퀴벌레. "사람들은 바퀴벌레를 싫어하고 징그러워하
지. 그런데 말이야. 어떤 음식점에서는 바퀴벌레를 돈벌레라고 해서 봐
도 잡지 않고 그래도 키우기도 한단 말이야. 또 바퀴벌레는 어두운 곳
을 좋아하고 밝은 곳을 싫어하거든. 중국사람들은 바퀴벌레를 '향낭자'
라고 부르지.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이지." "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십니까. 바퀴벌레처럼 나타나지 않
고 어두운 곳에서 숩기를 좋아하십니까." 김 회장의 대인기피증은 정평
이 나 있었다. 그는 매스컴의 집요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는 물론
 사진을 찍히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런가. 그렇군. 허허허허." 크
게 파안대소를 하면서 그는 무릎을 쳤다. 뭔가 마음에 들면 그는 크게
 웃으며 손으로 무엇인가를 치는 버릇이 있었다. 책상이 있으면 책상을
 치고 탁자가 있으면 탁자를 치고 아무것도 없으면 그는 무릎이라도 쳤
다. 크게 웃으면 치는 힘도 강해지는데, 그래서 번번이 탁자 위의 물
이 쏟아지곤 했다. 바퀴벌레. 스스로 붙인 자신의 별명처럼 차에 미친
 것이 아니라 바퀴에 미친 사람. 바퀴벌레 김기섭 회장이 성탄절 전야
에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서 혼자서 차를 몰고 가다가 죽어버린 것이다.
 도대체 무슨 사고였을까. 그러나 알 수 없었다. 밤 두 시는 뉴스의
 사각지대로, 이리저리 채널을 바꿔 보았지만 성탄절의 특집만 방송하고
 있을 뿐이었다. 좀더 상세한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서는 아나운서의
 말처럼 여섯 시 첫 뉴스 방송시간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조간신문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잠옷으로 갈아입었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나는 한 잔 가득 위스키를 따라 얼음을 채
워 들고 아파트의 베란다로 나가 보았다. 밤 두 시가 가까운 깊은 밤
중이었는데도 아파트의 많은 방들은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나는 위스
키를 마시면서 베란다와 거실을 서성이었다. 문득 거실의 장식장 위에 
놓인 벽돌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나는 다가가서 그 벽돌을 들어 보았
다. Freihei. 벽돌 위에는 붉은 글씨로 그렇게 씌어져 있었다.
 프라이하이트. 독일어로 자유를 뜻하는 말이다. 처음에 나는 그 벽돌
을 발견했을 때 그 붉은 글씨가 페인트가 아닌 붉은 피로 씌어진 글씨
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만큼 그 붉은 글씨는 선혈처럼 섬
뜩한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나는 그 벽돌을 무너진 베를린 장벽의 잔
해더미에서 주웠다. 그때가 1989년 11월 9일. 지금으로부터 정확
히 10년 전의 일이었다. 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동서냉전시
대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그 역사적 현장을 취재하기 위
해 방송국 팀과 함께 독일에 머무르고 있었다. 내가 김기섭 회장을 처
음으로 만난 것은 바로 그 무렵의 독일에서였다. 베를린에서 광란과 같
은 축제를 취재한 우리 촬영팀은 일단 프랑크푸르트로 철수하였다. 그 
전날 밤, 나는 우연히 브란덴부르크 문 옆 장벽의 잔해더미에서 붉은 
벽돌 한 장을 발견했었다. 그 벽돌 위에는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
Freiheit'라는 글씨가 낙서되어 있었다. 그 글씨를 본 순간 나
는 자유를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 벽돌로 이루어진 장벽을 넘다
가 피를 흘리며 죽어갔음을 떠올렸다. 그런 의미에서 이 벽돌 한 장은
 자유를 위해 죽어간 이름 없는 사람들의 묘비명인 것이다. 지금은 다
만 하나의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이 벽돌 한 장은 미치광이 히틀
러와 공산주의 냉전체제의 갈등과 스탈린 등 20세기의 역사를 증언하는
 기념비로 남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벽돌인 것이다. 나는 1
0년 전 독일의 베를린에서 주운 그 벽돌을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이
제 일주일 뒤면 20세기는 종말을 고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아
편전쟁으로 인해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던 홍콩도 이미 2년 전, 199
7년 7월 1일자로 중국으로 다시 귀속되었다. 그 숨가쁜 20세기의 
역사는 이처럼 붉은 벽돌 한 장만을 남기고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 그 막바지의 절정에서 김 회장은 독일의 아우토반, 그 고속도로 위
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내가 김기섭 회장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프
랑크푸르트에서였다. 그때 독일을 운항하는 항공 직항로가 프랑크푸르트밖
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독일에서의 모든 촬영을 마치고 프랑크푸르트로
 되돌아왔다. 그날 저녁, 나는 호텔 방에서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
를 받았다. 그는 대뜸 전화를 받는 사람이 정상진 선생님이냐고 물어왔
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다시 그렇다면 소설을 
쓰는 정 선생님이 맞느냐고 물어왔다. 내가 다시 그렇다고 대답하자, 
상대방은 곧 호텔로 찾아뵐 테니 로비에서 잠깐만 만나주셨으면 좋겠다고
 제의를 해왔었다. 낯선 도시에서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만나자는 제의가
 썩 기분 내키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화를 해온 말투와 태도가 무척 예
의바르고 정중하였으므로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로비로 내려갔을 
때 이미 로비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 의자에 앉아 있던
 그 사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정 선생님 맞으시죠."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명함은 
한쪽에는 독일어로, 뒷면에는 한국어로 되어 있는, 주로 현지 주재원들
이 사용하는 다목적용 명함이었다. '기평그룹 프랑크푸르트 지사장 한기
철' 명함에는 그렇게 인쇄되어 있었다. "전 명함이 없습니다." 명함
을 받았지만 따로 내어줄 명함이 없었으므로 내가 겸연쩍게 대답하자 그
는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정 선생님 같은 분이 무슨 명함이 
필요하시겠습니까. 명함같은 것은 저희와 같은 장사꾼들이나 필요한 겁니
다. 정 선생님의 존함은 글을 통해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뵙는
 것은 처음인데요. 독일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사내에서는 외국
 주재원 냄새가 풍겨나고 있었다. 빈틈없는 태도에 말쑥한 옷차림으로 
비지니스맨이라기보다는 무슨 정보원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독일의
 통일을 취재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방금 베를린에서 오는 길입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취재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언제 돌아가실 
예정이신데요." 그는 습관적인 듯 수첩과 볼펜을 챙겨들고 있었다. 그
것은 그의 버릇인 모양이었다. "내일 오후 비행기로 떠납니다." "일
행이 있으십니까." "방송국 직원 다섯 명입니다. 프로듀서, 촬영감독
과 같은 스태프들과 저까지 합하면 여섯 명이 됩니다." "일정이 괜찮
으시다면." 사내는 내가 하는 말을 수첩 위에 메모하다 말고 말을 잘
랐다. "며칠 더 이곳에서 머무르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글쎄요."
 나는 좀 난처했다. "함께 왔으니 함께 떠나야죠. 또 돌아가서 할 
일도 있구요." 사실 내겐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이번 특별기획 취재
에 나는 리포터로 참석하였을 뿐 아니라 3부작 다큐멘터리에 처음부터 
끝까지 내레이션을 작가인 내가 직접 쓰도록 계약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연말 특집방송이어서 약 한 달 정도 남아 있었지만 촬영한 필름을 
편집하고 내레이션을 녹음하려면 빠듯한 스케줄이었기 때문이었다. 할 일
이 많이 남아 있어 일행들과 함께 돌아가야 한다는 내 말을 듣자 그
는 난처한 표정으로 수첩을 덮었다. "정 선생님만 남아 주십시오. 물
론 여행경비와 체제비 등은 저희들이 모두 전담하겠습니다. 돌아가실 때
까지 모든 편의는 저희들이 제공하겠습니다." "도대체."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게 무슨 용건이 있으시죠. 도대체 제게 무슨 일이
 있으신겁니까." "정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
는 갑자기 긴장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구요. 어디에서요." "독일에서입니다. 바로 프랑크푸르트에서입니다
." "그분이 누구신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는 사무적인 어
조로 말을 이었다. "저희그룹의 회장님이십니다." 한순간 나는 당황스
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좀 전에 그가 주었던 명함을 다시 한번 들
여다보았다. 나는 글을 쓰는 작가로 무슨 기업이나 사업에는 전혀 문외
한이었다. 그래서 명함에 씌어 있는 기평그룹이 어떤 회사인지, 또한 
그 그룹의 회장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회장님이
 정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하십니다. 제가 정 선생님을 찾아뵙는 것도 
회장님의 명령입니다. 회장님의 명령을 받고 저희 지사에서는 전시내의 
호텔을 모두 뒤졌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 호텔에 묵고 계시다는 사
실을 확인하게 됐던 것입니다." "잠깐." 나는 무슨 미스터리에 빠진
 느낌이었다. "한 가지 묻겠는데요. 그렇다면 회장님을 어떻게 제가 
이 프랑크푸르트에 묵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 것일까요." "그건 
솔직히 말씀드려서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오후에 K-2의 수행비서로부
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전호텔을 뒤져서 소설가 정상진 
씨의 숙소를 확인해서 보고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K-2의 수행비서
라니요." 나는 소리내어 웃었다. " K-2라면 히말라야에 있는 유명
한 산봉우리의 이름이 아닙니까." 한기철은 내 가벼운 농담에도 전혀 
웃지 않았다. " K-2는 저희 회장님의 암호명입니다. 저희들은 회장
님을 K-2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K-2가 도대체 누구십
니까." "김기섭 회장님이십니다." 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경제에는
 전혀 백지인 나였지만 김기섭이라는 이름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제
서야 나는 기평그룹이 어떤 회사인가 하는 초보적인 상식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기평그룹은 한때 많은 계열회사를 거느린 재벌기업이었지만 9
0년대 초부터는 일체 자동차에 관련된 사업만 일관되게 추진한 외곬수 
기업이었다. 기평그룹의 그러한 독특한 성격은 그 그룹을 창업한 김기섭
이라는 인물에서 비롯되는데 사람들은 그를 '자동차에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곤 했다. 자동차는 그의 종교였고, 자동차는 그의 신앙이었다. 
뿐 아니라 나는 그에 대한 수많은 소문을 이미 듣고 있었다. 매스컴을
 기피하여 한국판 하워드 휴즈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의 석유왕
이자 항공산업의 개척자였던 하워드 휴즈는 말년에 저택에만 은거하고 자
신의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었다. 세균 노이로제에 걸려 사람들과 
악수할 때도 전신을 소독하게 하였으며, 홀로 있을 때도 세균을 모두 
죽인 보호막 속에서 숨어 살다가 비참한 생애를 마쳤었다. 자동차에 미
친 사람. 김기섭 회장은 이 세균 노이로제에 걸린 하워드 휴즈처럼 매
스컴을 극도로 기피하여 많은 사람들은 그를 신비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
었다.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재벌의 총수
로서 공식적인 모임에도 그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한 수수께끼의 인물
이 자신의 사업과는 전혀 무관한 단지 소설가일 뿐인 나를 왜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나는 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한기철은 대
답했다.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정 선생님이 K-
2가 만나고 싶어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
은 그것뿐입니다." "좋습니다. 하룻밤만 더 생각해 보고 내일 아침에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일행들과 의논을 해봐야 하니까요." 우리는 일
단 헤어졌다.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아직 떼지어 시내 구경
과 쇼핑을 나간 일행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TV를 켰다. 국영방송에서는 내가 방금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베
를린 장벽에서 세기의 첼리스트 로스트르포비치가 연주하는 첼로 협주곡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첼로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는 휘황한 조명에 비춰
지고 있는 한밤의 베를린 장벽 잔해더미 속에서 홀로 연주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전쟁과 살인, 광기와 이데올로기가 무너진, 
새로운 평화를 기원하는 첼로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떤 소녀
는 자유를 찾기 위해서 장벽을 넘다가 죽어간 많은 사람들의 넋을 달래
기 위해 울면서 헌화하고 있었다. 베토벤이 말했던가. "음악은 어떠한
 지혜, 어떠한 철학보다도 높은 계시다." 마침내 무너진 베를린 장벽
 위에서 연주하는 거장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협주곡을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에는 베토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것이야말로 예슬의 힘인 것
이다. 그 어떤 정치, 그 어떤 전쟁,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증오의 
장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오직 예술만이 그런 마음의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약속대로 한기철 지사장으로부터 전화가 걸
려왔다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프랑크푸르트에 남겠다고 대답을 했다
. 그러자 그는 오전 열한 시쯤 차를 갖고 호텔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아침 일찍 방송국 직원들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공항으로 떠나자 나
는 곧바로 짐을 싸들고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열한 시 정각에 한기철
은 나를 픽업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이렇게 해서 수수께끼의 인물. 자
신의 표현대로 바퀴에 미친 '바퀴벌레' 김기섭 회장과의 첫 만남이 시
작된 것이다. 내가 '바퀴벌레' 김 회장을 만난 날은 1989년 11
월 12일이었다. 그 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여기서 잠깐, 그 당시 
독일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가를 어느 정도 설명할 필
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김 회장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첫 번째 만남을 가지게 된 것도 역사적인 독일의 현장 속에서였기 때문
이다. 결국 독일이 통일이 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인 1990년 1
0월 3일 , 정확히 밤 0시부터였다. 바로 그때, 서베를린의 시청에
서는 '자유의 종'이 울리고 동베를린의 국립극장에서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장'이 연주됨으로서 반세기 동안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대표적 분단국이었던 독일은 통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단결과 
권리의 자유, 독일인의 조국을 위하여." 독일인들은 절치부심, 하나된
 독일의 통일을 위하여 쉼없이 반세기를 달려오고 노력해 왔었다. 마침
내 독일의 콜 수상은 민족의 화합을 이룬 통일을 완수하고 나서 '마침
내 기쁨과 감사와 희망의 빛이 밝아졌다'고 울부짖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이 통일의 전조를 보인 것인 내가 베를린에서 장벽이 무너지는 것
을 취재하러 갔다가 김기섭 회장을 처음으로 만났던 바로 그 무렵이었던
 것이다. 1989년 11월 9일 밤.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개방되어
 무너진 것이다. 이날 밤, 백만 명의 동독 인들이 장벽을 무너뜨리고, 
장벽을 뛰어넘어 서베를린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서독 정부는 각 은행
 지점을 통해 환영금 1백 마르크를 베를린 장벽을 넘어온 자유인 동독
인들 모두에게 나눠주어 서독에서 약간의 물건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
고 있었던 것이다. 거의 모든 상점과 백화점에서 동독 인들은 넘쳐흐르고
 있었다. 서독 인들은 대부분 동독 인들에게 맥주를 무료로 마시도록 하였
으며 밤이 깊어지자 기쁨과 환희에 넘친 광란의 축제가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그 역사적인 현자에 나는 취재차 들렀으며 후에 알게 된 것이
지만 김기섭 회장도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그 숨가쁜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김 회장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바로 그 현장에서 나는 20세기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소.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다가오는 21세기에 내가 무엇을 어
떻게 해야 하는가 그 구상을 떠올릴 수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부터 그가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에
서 자신이 직접 차를 몰고 가다 죽은 1999년의 성탄절날 밤까지의 
10년간 김 회장은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에서 구상했던 자신의 사업계획
을 미친 듯이 추진해 나갔던 것이다.
  
 나는 잔에 가득 들어 있던 위스키를 다 마셨다. 한 잔 더 따라 들고 
거실의 불을 켰다. 레코드들 속에서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한 바흐의
 판을 뽑아 들고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바로 10년 전 독일을
 떠날 때 공항에서 샀던 판이었다.
 파리에 살고 있던 세기적인 거장 로스트로포비치는 자신의 전용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씩이나 걸려 베를린으로 날아왔다. 그는 분단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성문 옆 장벽 아래 의자 하나만을 갖다 놓은 자리에
서 모인 관중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프랑스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순간 장벽을 때려부수던 관중들이 행동을 
멈추고 침묵하였다. 로스트로포비치는 다시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나는
 이 역사적인 장벽 앞에서 자유를 찾기 위해 생명을 잃어 버린 모든 
사람들을 회상하며 그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이 연주를 합니다." 그가
 연주했던 곳은 바흐의 선율. 사라반드 C장조와 B단조. 그리고 
나서 프랑스의 농민무곡 부레를 연주했었다. 11월의 밤은 쌀쌀해서 외
투를 걸치고 연주한 그는 연주를 끝내고 나서 독일의 독한 술 슈납스 
한 잔을 마시고 싶다면서 그 자리를 떴던 것이다. 스피커에서는 그날 
밤 베를린 장벽 아래서 연주했던 로스트로포비치의 바로 그 음악. 바흐
의 사라반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순간 내 귓가에는 김 회장이 내게 했
던 질문의 내용이 떠올랐다. " 도대체 무엇을 보기 위해 베를린에 왔
습니까." 그것이 내게 던진 김기섭 회장의 첫 질문이었다. "베를린에
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무엇을 느꼈습니까." 나는 몹시 당황했었다. 
그때 나는 짐 속에서 베를린 장벽의 잔해더미에서 내가 주웠던 그 벽돌
 한 장을 보여줬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의 첫 질문이 상상을 초월한 
예상 밖의 충격이어서 달리 대답할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으므로 아
마도 그런 행동을 취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준 벽돌을 유심히 들
여다보았다. 그는 벽돌 위에 낙서된 붉은 빛깔의 'Freiheit'란
 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것을 줍기 위
해서 베를린에 왔습니까." 나는 기분이 나빴다. 초면에 그는 나를 무
시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아무리 대기업의 총수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
의 부하직원은 아니다. 도한 그가 나보다 열다섯 살 정도나 위의 연상
이라 할지라도 인간적으로는 어디까지나 대등한 자유인인 것이다. "이것
은 그저 하나의 돌멩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줍기 위해서 베를린
에 오신 것이라면 나 같으면 당장에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겠소." 그는
 10층의 호텔 창문 밖으로 당장이라도 벽돌을 던져버릴 듯한 행동을 
취하면서 그러나 유쾌하게 큰소리로 웃었다. 사실 첫 대면한 생면부지의
 나에게 던진 기상천외한 첫 질문이나 , 벽돌을 던져버릴 듯한 무례한
 행동들은 평소의 김기섭 회장으로 보면 예외적인 행동이었다. 김기섭 
회장은 몹시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면 부끄러워
했다. 자신의 부하직원 아닌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움의 대상이었다. 그
가 매스컴을 기피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은 아마도 낯을 가리
고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성격을 
가진 김 회장이 내게 던진 질문이나 행동은 전혀 이례적인 것이었다. 
"프라이하이트. 자유라는 낙서가 새겨진 벽돌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한 
갓 돌멩이에 불과합니다. 정 박사. 내가 정 박사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유명한 소설가인 정 박사가 1989년 11월 9일 밤 베
를린의 무너지는 장벽 아래서 도대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 그
 대답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소."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을 어
떻게 아셨습니까. 또 제가 프랑크푸르트에 온 것도 어떻게 아셨습니까.
" "나도 그 자리에 정 박사와 함께 있었으니까. 베를린 장벽 아래서
 촬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소. 낯익은 방송국의 이름이 있어 바
라보니 정 박사 일행이  촬영을 하고 있더군. 독일을 떠나려면 프랑크
푸르트로 돌아올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는 무릎을 치면서 웃었다
. "그럼 이번에는 제가 묻겠습니다." 나는 복수하는 심정으로 그가 
내게 했던 똑같은 질문을 했다. "회장님은 그러면 무엇을 보기 위해서
 베를린에 오셨습니까." "무엇을 보기 위해서 독일에 왔느냐구요?" 
김 회장은 내 질문을 되뇌었다. 그리고 나서 내 모습을 정면으로 보았
다. 그는 좀처럼 남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이 없었다. 그 무
렵 그의 나이는 거의 환갑에 가까웠지만 그는 노인이 아니라 발가벗은 
소년에 불과하였다. 그는 상대방이 자신의 소년같은 치기를 꿰뚫어 볼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기 위해 
독일에 왔는지. ...함께 밖으로 나갑시다, 정 박사." 그리고 나서
 그가 보여준 행동은 독일의 고속도로로 나와 함께 나선 것이었다. 나
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는 해외에 출장을 떠날 때면 일년에 한 번이
나 두 번씩은 반드시 독일의 아우토반에서 차를 몬다는 것이었다. 이때
는 옆에 비서를 앉히거나 하는 일 없이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직접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몬다는 것이었다. 시속 2백 킬로미터 이상 
차를 몰아 비서진들은 일년에 한두 번 있는 이 상황을 'K-2의 비상
작전'이라는 특별 암호명으로 부르고 있는데, 어쨌든 이 한 시간 남짓
의 미친 듯한 광란의 질주야말로 초비상사태라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
서 나는 'K-2의 비상작전'에 함께 동승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
는 그의 미친 듯한 운전, 바퀴에 미친 바퀴벌레의 그 무서운 집념을 
바로 한 자동차 속에서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였던 것이다. 우리가 출발
한 곳은 프랑크푸르트의 외곽지대, 고속도로의 시작 지점이었는데 이미 
그곳에는 김 회장이 탈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차에 대해서는 전혀 문
외한인 나였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차가 한 대 고
속도로 입구에 서 있었다. 전체가 완전하게 붉고, 공기의 저항을 최대
한도 줄이기 위해 유선형으로 만든 스포츠카였다. 이태리의 명차로 이름
은 페라리. 기종의 이름은 'F355베를리네타' 였다.
 그때가 오후 세 시쯤 되었을까. 하지만 만추의 독일에서는 이미 땅거미가
 어스름한 초저녁이랄 수 있었다. 차는 바퀴만 빼놓으면 전체가 붉어서
 마치 적토마처럼 보였다. 김기섭 회장이 탑승하기 전에 미리 예열을
 시켜놓기 위해 시동을 걸어놓고 있었으므로 차는 앞으로 뛰쳐나가려는
  질주의 욕망으로 부르릉거리면서 몸을 떨고 있었다. 
말갈기를 휘날리면서 말발굽소리를 힘차게 내며 주인의 명령을 좇아
 산을 넘고 내를 건너, 절벽을 지나고 강을 뛰어넘으려는 흥분과 기
다림으로 붉은 스포츠카, 페라리는 헤드라이트의 두 눈을 부릅뜬 채 이
를 악물고 고속도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차는 김 회장에 있어 말이었다
. 나는 왜 김 회장이 평생을 두고 차에 미친 일평생을 보냈는가 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김 회장에게 있어  차는 더 이상
의 차가운 금속과 죽어버린 쇳덩어리가 아니라 따뜻한 체온과 언어가 통
하는 , 살아 있는 말이었다. 그에게 있어 차는 한 점의 거짓말이 없
는 정직한 말이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김기섭 회장이 나를 만나
고 싶어한 것은 내가 쓴 광개토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읽었기 대
문이었다. 그는 그 소설 속에서 광개토대왕이 그토록 많은 영토를 점령
하며 동양의 알렉산더라는 별명을 얻은 우리 민족 최대의 영웅이 된 것
은 그가 기마병으로 고구려 군사를 무장시켰기 때문이라고 쓴 내용에 동
감하였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해양국 영국에서는 이런 신념을 젊은이들에
게 불어넣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만이 세계를 지배한다." 섬나라 
영국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길은 오직 바다뿐이었다. 바다로 나아가기 위
해서는 오직 배를 타는 것뿐이었다. 그 결과 영국은 마침내 전 세계에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차를 지배하는 자만이 세계를 지배한다." 그것이 김 회장
의 철학이었다. "이 차의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정 박사." 김 회
장은 손으로 윤기가 흐르는 차의 겉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내게 물었
다. "모릅니다. 전 차에 대해서는 전혀 백지입니다." " 차를 운전
하십니까." " 운전은 하고 있습니다." "차종은 뭡니까." 나는 미
안했다. 나는 김기섭 회장의 라이벌 회사 차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 승용차 이름을 대자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했다. "앞으
로는 우리 차 타시오. 우리 차가 안전도에 있어서는 월등하니까." 그
리고 나서 그는 붉은 스포츠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차의 이름
은 페라리요. 이 자동차를 처음으로 만든 엔초 페라리를 기념해서 그의
 이름을 붙인, 명차 중의 하나요 작년엔가 내가 직접 그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소. 이 차는 2년 전인 1987년엔 엔초 할아버지가 자
신의 차가 처음으로 출고된 지 4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해서 만든 차인
데, 이 차를 만들 때 할아버지의 나이는 89세였소." 그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입안에 털어넣었다. 은단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라 박하향
이 나는 작은 사탕의 일종이었다. 하루에 두 갑씩 담배를 피우던 그는
 마침 담배를 끊고 그 무료함을 박하사탕으로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차는 지금 전세계에 4백 대밖에 없습니다. 이 차는 그러니까  
4백 대밖에 없는 그 중에서 뽑힌 '미스터 페라리'인 셈이지. 나머지
는 타고 나서 말을 합시다. 참, 타기 전에 미리 말해둘 것이 있는데
 난 운전면허가 없거든. 생명보험도 들지 않았고. 그러니까 무서우면 
타지 말고 차에서 내리시오. 정 박사." 나는 그의 말을 그저 단순한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차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차는 네 개의
 문이 있는 승용차와는 달리 두 개의 문만 있는 2인승의 쿠페였다. 
"유명한 자동차 평론가가 이 차를 시승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더군 페라
리 F355 베를리네타와 함께 하는 드라이빙은 떠들썩한 사랑의 서사시와
 같다고. 몇 번의 말다툼이 있더라도 이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에 빠
지게 된다고." 그는 신사복의 윗도리를 벗고 넥타이를 풀었다. 그는 
안전벨트를 매고 나서 운전대를 잡았다. "자, 정박사. 우리도 떠들썩한
 사랑의 서사시를 읊어 봅시다." 실내는 완전히 항공기의 조종석처럼 
꾸며져 있었다. 계기판들이 형광램프로 명멸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얼
굴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의 얼굴은 흥분과 끓어오르는 기쁨으로 생
생하게 빛나고 있었다. "시계를 차고 있습니까, 정 박사." 느닷없이
 그는 내게 질문을 했다. "차고 있습니다." "초침이 있는 시겝니까
." 나는 구형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래서 내 시계에는 초를 가리키는
 시계바늘이 있었다. "그렇습니다." " 그렇담 잘됐습니다. 정 박사
. 여기 있는 속도계기판이 보이시죠. 내가 출발해서 시속 백 킬로미터
에 오를 때까지 몇 초가 걸리는가 한번 시간을 재어 봐 주겠습니까."
 "좋습니다." 나는 시계를 벗어 들고 초침과 속도를 가리키는 계기판
을 동시에 쳐다보았다. "자, 출발합니다." 김 회장은 힘차게 액셀러
레이터를 밟았다. 차는 순간 박차에 채인 말처럼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무서운 기세로 속도를 가리키는 계기판의 바늘이 떠오르기 시작
하였다. 60km,70km,80km,90km 그리고 마침내 100km
. 나는 시계의 초침을 확인해 보았다. 5초. 정지된 제로의 상
태에서 시속 백 킬로미터에 도달할 때까지의 시간은 불과 5초밖에 걸리
지 않은 것이다. "몇 초 걸렸습니까." 김 회장은 시선을 앞 차창에
서 떼지 않은 채 내게 물었다. " 5초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
스톱워치로 재었더라면 아마도 정확히 4.8초가 걸렸을 것입니다."차는
 점점 더 속력을 높이고 있었다. 외곽으로 나아갈수록 도로는 왕복 8
차선으로 넓어지고 있었다. 독일의 행정수도인 본으로 직통하는 메인 도
로였지만 차량의 통행은 한산한 편이었다. 벌써부터 하나의 유럽을 꿈꿔
서 통일된 유럽국가를 원하는 유럽인들이 때마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서 프랑스에서, 영국에서부터 온 차량
들이 고속도로 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온 자동차는 후면에 
'F'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고, 덴마크에서 온 자동차는 'DK'의
 스티커를, 네덜란드에서 온 자동차는 'NL' 의 스티커를, 영국에서
 온 자동차는 'GB'의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그 자동차들은 대부
분 자신들의 국적에 따른 자국 생산의 승용차들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가 생산한 승용차를, 스웨덴 사람들은 스웨덴이 생산한 자동차를
 타고 있었다. 때문에 그 차에 붙인 스티커만 봐도 그 차 속에서 운
전을 하고 있는 사람의 국적을 자동적으로 알 수 있었으며, 또한 그 
각양각색의 자동차들이 어느 국가에서 제작된 승용차인가를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160km, 180km, 200km. 차는 무서
운 속도로 질주해 나아갔다. 김 회장이 모는 페라리는 마치 장애물경주
라도 하듯이 앞서가는 모든 차들을 따라잡았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그는
 말을 끊고 무겁게 입을 닫았다. 그리고 불타는 눈으로 정면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차의 뒤쪽에서 깜박깜박 헤드라이
트의 불빛이 명멸하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시속 2백 킬로미터로 달려가는 페라리 바로 뒤쪽에서 차를 비켜달라는 
듯  회색빛 스포츠가 한 대가 전조등을 번쩍거리고 있었다. 순간 김 
회장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뒷 차의 기세에 눌렸는지 차선을 바꿔 피
해 주었다. 바짝 따라오던 스포츠카는 굉음을 내면서 앞서 나갔다. 차
안에 선글라스를 쓴 젊은 남자와 연인이 앉아 있었다. "저 차가 무슨
 차인줄 아세요." 묵묵히 차를 몰던 김 회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 모릅니다." "포르세요. 차종은 911 터보. 게르만 민족의 혼
이 담긴 꿈의 스포츠카라고도 하지요." 김 회장은 꿈꾸듯 중얼거려 
말하였다. "벨트를 맸습니까." "맸습니다." 순간 페라리는 곤두박질
치면서 가속하였다. 저만큼 앞서가는 포르세를 따라잡기 위해서 액셀러레
이터를 밟기 시작했던 것이다. " 저 차는 백 미터를 불과 3.7초 
만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정 박사, 저 차가 아무리 달리는  꿈의 궁
전이라고 해도 페라리는 당할 수 없을걸. 이 차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 실력을 겨루는 포뮬라원레이스에서 자그마치 105회나 
우승하였소. 다른 것은 몰라도 빠르기에서 이 페라리를 당할 차는 이 
지상에는 없소. 비행기를 빼어  놓으면, 페라리는 살아 있는  카 레
이스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
  페라리의 계기판이 올라가고 있었다. 시속 230킬로미터를 넘어
 서고 있었다. 페라리의 최대속도는 300킬로미터에 조금 모자라는 
296킬로미터. 그러나 카 레이스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도로에서나 
가능한 최대시속일 뿐, 아무리 넓고, 아무리 시설이 잘된 독일의
 고속도로라고는 해도 25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는 도로 사정상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 회장의 페라리는 미친 듯이 포르세를 따라잡기 위
해서 속력을 올리고 있었다.  
  이러한 김 회장의 욕망을 눈치챘는지 포르세도 갑자기 속력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런 내용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고속도로 위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 서로 선의  
의 속도 경쟁을 벌인다는 해외토픽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마치 카 레이스를 벌이듯 고속도로 위에서 경주를 벌인다는 내  
용을. 바로 그 사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이었다.
  독일의 마크 'D'가 새겨진 포르세를 탄 독일의 젊은 청년과  
한국에서 온 대기업의 총수 바퀴벌레 김기섭의 생명을 건 무서  
운 자동차 경주가 바로 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 포르세는 고속도로 위를 달려가는  
차와 차 사이를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고 있었고, 김  
회장이 모는 페라리는 오직 포르세 하나만을 목표로 돌진하고  
페라리의 속력이 250킬로미터를 육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포 
르세의 속력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페라리의 최대속도가 시속 296킬로미터라면 포르세의 최대속 
 도는 290.9킬로미터. 최대속도에 있어서는 페라리가 조금 앞서지 
 만 풀타임 구동시스템을 적용한 엔진 부분에 있어서는 포르세가
 41400마력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속도는 페라리가 조금 앞서지 
 만 힘은 포르세가 훨씬 앞서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와이셔츠를 팔뚝까지 걷어붙인 채 낯모르는 독일 청년과 
 필사의 카 레이스를 벌이는 초로의 재벌총수 김기섭 회장의 옆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차의 속력 계기판은 시속 250킬로미터에 육박하고 있었지만 
 차안은 오히려 정적에 쌓인 듯 조용했다. 오직 고속도로의 노면 
 과 부딪치는 바퀴의 입맛 다시는 듯한 접촉소리만 들려올 뿐이 
었다. 차체의 진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차량 높이를 3단으로 조정해서 속력을 내면 낼수록 20밀리미 
 터 정도 낮아지도록 고안된 페라리였으므로 오히려 속력을 낼 수 
 록 차는 노면에 달라붙어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불이 붙은 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두 눈빛을 보 
 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목표로 이렇게 미친 듯이 달리고 있 
 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저 포르세를 따라잡기 위해 이렇게 달리 
 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머리를 흔들며 부정을 했다.
  이 사람의 목표는 타인이 아니다. 이 사람의 목표는 언제나 한
  발자국 앞서가는 자기 자신이다. 욕망의 화신인 자기 자신을 향 
해서 김기섭 회장은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포르세가 백기를 들었다. 집요하게 쫓아오는 페라리의
공세에 지친 듯 포르세가 도로 한 곁으로 물러섰다. 그 틈을 노려
페라리가 총알처럼 앞서 나갔다. 차창 너머로 선글라스를 쓴 청 
년이 앞질러 나가는 페라리의 운전석에 탄 김 회장을 향해 주먹
을 들어 빈정대는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사
라졌다
  생명을 건 자동차 경주에서 김 회장의 페라리가 이긴 것이었
다 
  포르세와의 속도 경쟁에서 마침내 승자가 된 김 회장은 목표
를 상실한 듯 갑자기 차의 속도를 줄였다 
  "이제 그만 돌아가기로 할까요," 
  그 동안 줄곧 입을 다물고 있었던 김 회장은 꿈에서 깨어난 듯
입을 열어 말하였다  
  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인터체인지에 이르러서 그는 비로
소 미소를 떤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무서우셨습니까, 정 박사."
  "아닙니다. " 
  나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이상하게도 그의 미친 듯한 고속
주행에 일말의 불안감이나 공포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차입니다. "
  그는 지친 말을 달래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듯 평균시속 120
킬로미터 속도로 고속도로를 거슬러 달리고 있었다. 이미 하늘에
는 붉은 노을이 걸려 있었다  
  "원래 이 페라리는 엔초 할아버지가 4백 대만 만들어서 한정
판매를 하였습니다. 대당 가격은 1억 7천만원 정도. 한데 소비자 
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지금 독일에서는 한 대당 얼마에 거 
래 되고 있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나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판매가의 네 배인 6억 7천만원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으세요, 정 박사. 이 승용차 한 대에 백만 불이라니. 결국 폭발 
 적인 인기에 엔초 영감이 추가 생산을 결정, 아마 천 대 정도로 
확대 생산될 것 같습니다. "
  밖이 어두워질수록 차 안의 운전석은 야간비행을 하는 비행기 
의 조종석처럼 눈부시게 밝아지고 있었다. 나는 차에 탔을 때부 
터 마음속으로 느껴왔던 궁금증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왜 이렇게 무모한 드라이브를 하십니까. 이런 명차 하나를 생 
전에 만들어 보고 싶은 욕망 때문에 이런 운전을 즐기시나요"
  나는 오랫동안 참았던 질문을 김 회장에게 던졌다. 바로 그 순 
간 김 회장은 운전대를 손으로 세게 때리면서 소리를 내어 크게 
웃었다.
  "이 차가 명차라구. 오 이 페라리 F355 베를리네타가 명차라구 
천만에요, 정 박사."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 차는 한마디로 똥차요 이 차는 여자로 말하면 한마디로 
 똥갈보요"
  김 회장은 자기 말에 자기가 유쾌한 듯 크게 웃으면서 차의 운 
 전대를 내리쳤다. 제풀에 빠방빠방-경적이 울렸다.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껏 이 폐라리에 대해서는 입이 닳도록 예찬을 퍼붓
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대당 백만 달러의 이 고급 명차를 똥차라고 표현하
다니. 이 지구상에서 4백 대에 불과한 이 최고의 스포츠카를 똥
갈보라는 저속어로 표현하다니  
  "한 대당 백만 달러의 초 고급차라고 회장님이 방금 전에 말씀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소 한 대당 백만 달러의 똥차요 백만 불의 똥 갈보차요."
  "어째서 입니까."  
  내 질문에 그는 다시 소리내어 웃었다. 
  "이 차는 마치 유명 잡지에 나오는 세계적 모델의 벌거벗은 육  
체에 불과하지. 그 육체는 아름답긴 하지만 성욕과는 거리가 멀
어, 여인의 벌거벗은 육체를 보면 성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하지만 이 차는 최고급의 창녀와 같아. 밍크 코트를 입은 세계적 
모델의 고급 콜걸 말이오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가고 싶고 평생 
을 같이 있고 싶은 사랑하는 여인은 아니란 말이오. 그렇소 이 
차는 충분히 찬탄할 만큼 아름답지만 어딘지 천박해."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차를 명 차라고 합니까."  
  "이봐요, 정 박사."  
  김 회장은 정색을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진정으로 명 차라고 생각하는 차가 있소. 평생을 두고 만
들고 싶은 차. 살아 생전에 단 한 번이라도 내 손으로 직접 만들  
고 싶은 명 차. 그래요, 정 박사. 내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독 
일의 역사적인 현장에 온 것은 바로 그 차를 내 몸으로 느끼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
  독일의 아우토반에서 한바탕 낮선 독일 청년과 생명을 건 필 
 사의 경주를 벌이고 되돌아오는 길에 내게 던진 김 회장의 이 
 말 한마디는 그를 재벌 총수 김기섭 회장에서 그 모든 직책을 
 모두 집어던진 자연인 김기섭으로 돌아가게 했던 것이다. 그날 
 나는 그 스포츠카 속에서 인간 김기섭을 보았다.
 -회장님이 만들고 싶은 차는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묻자 김 회장은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내 머리 속에 있소"
  그리고 나서 김 회장은 다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그리고 내 가슴속에 들어 있소"
  김 회장은 꿈을 꾸듯 중얼거렸다.
 ·내가 평생을 두고 만들어 보고 싶었던 차가 바로 저 앞에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
  김 회장은 손을 들어 차창 밖을 가리켰다.
  나는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는 딱정벌레 모습을 한 구형의 폴크스바겐 한 대가 느 
 린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저건 폴크스바겐 아닙니까."
 차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인 나로서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
 는 차. 곤충의 일종인 딱정벌레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러가도 전혀 새로운 모습의 신형이 나오지 않은 전통 
 적인 독일의 국민차, 폴크스바겐.
"그렇소, 정 박사."
 김기섭은 머리를 끄덕였다.
 ·저 차의 이름은 폴크스바겐. 독일어로 국민의 차라는 뜻입니다.
다. 내가 만들고 싶은 명 차는 바로 저와 같은 폴크스바겐이지, 이
런 페라리가 아니. 오 이런 페라리는 한번 데리고 놀다 버리는 고 
급 창녀와 같은 차지만 저런 폴크스바겐은 평생을 함께 사는 조
강지처 같은 차라고 말할 수 있지. 저 폴크스바겐을 디자인한 사 
람이 누구인지 아시오." 
  "모릅니다. "  
  "저 폴크스바겐을 디자인한 사람이 바로 조금 전에 나와 함께 
자동차 경주를 했던 게르만 민족의 혼이 담겼다는 포르세 911
터보를 만든 바로 포르세 그 사람입니다. 그렇소. 진정으로 게르
만 민족의 혼이 담긴 꿈의 차는 바로 저 느리게 달려가는 폴크
스바겐입니다, 정 박사." 
  순간 김 회장의 눈이 번쩍이며 빛났다.
  '난 만들고 싶소. 게르만 민족의 혼이 담겼다는 폴크스바겐처
럼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꿈의 차, 그런 명차를 다가오는 21세기
에는 반드시 만들고 싶소"
  
    2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하는 바흐의 사라반드 C장조의 음악이
 첼로의 그 둔중한 소리를 끝으로 멈췄다.
 나는 턴테이블의 스위치를 내렸다. 얼음만 남아 있는 유리잔에 
다시 위스키를 채워 넣고 나는 다시 서성이기 시작했다.
  거실 벽에 걸린 괘종시계가 느린 속도로 세 시를 가리켰다. 그 
러나 나는 좀처럼 잡을 이를 수가 없었다. 마신 위스키로 취기가 
오르긴 했지만 정신은 오히려 또릿또릿 맑아지고 있었다. 내 귓 
가에는 10년 전 페라리를 타고 되돌아오는 독일의 아우토반 위 
 에서 내뱉던 김 회장의 힘찬 목소리가 되살아나 들려 왔다.  
 '난 만들고 싶소 게르만 민족의 혼이 담겼다는 폴크스바겐처 
 럼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꿈의 차, 그런 명 차를 다가오는 21세 
 기에는 반드시 만들고 싶소"
  게르만 민족의 혼이 담긴 꿈의 차, 폴크스바겐처럼 우리 민족 
 의 혼이 담긴 꿈의 차를 다가오는 21세기에는 반드시 만들고 싶 
 다던 김 회장은 그러나 어젯밤 죽었다. 21세기를 며칠 앞둔 크리 
스마스 전야에. 21세기를 겨냥해서 총력을 기울여 만든 신차를 
 타고 그 성능을 직접 테스트해 보기 위해 나와 함께 달렸던 그 
  고속도로, 비스바덴 근처에서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었다.
 김 회장은 느린 속도로 달려가는 독일의 국민차 폴크스바겐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을 했었다.
 "저 차는 페르디난드 포르세가 1930년대 초에 슈투트가르트에 
 서 디자인한 세계적인 명 차 중의 하나입니다. 그때 포르세는 이 
 미 자동차 개발의 디자이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지요 
 1934년 마침내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고 전 독일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하자, 포르세 박사는 독재자 히틀러에게 다음과 같 
 은 친서를 보냅니다. '총통 각하. 위대한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차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 친서를 받은 히틀러 
 는 포르세 박사에게 다음과 같은 회신을 보냅니다. '포르세 박사.
 일년 이내에 전 독일 국민이 사랑할 수 있는 국민차를 완성 하도 
 록 하십시오.'"
  김 회장은 고속도로 위를 달려가는 또 다른 폴크스바겐을 가 
 리키면서 말했다.
  "히틀러와 약속했던 대로 포르세 박사가 디자인한 독일의 국
민차가 바로 폴크스바겐입니다.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과 더불
어 전 세계에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또 하나
의 야심 찬 계획을 하고 있었소. 그게 뭔 줄 아시오, 정 박사," 
  "모릅니다. " 
  내가 대답하자 그는 빠른 속도로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무척 빨라서 어떨 때는 혼잣말을 하는 사람과도 같았다. 그것은
그의 급한 성격에서 비롯된 말투였는데, 따라서 어떨 때는 그의
말이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지 그 핵심을 놓칠 때도 있었다. 
  "히틀러는 올림픽과 더불어 베를린 자동차 전시회'를 계획하
고 있었습니다. 자동차의 종주국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던 미국을
기계문명의 꽃인 자동차로 눌러 보고 싶었던 것이 히틀러의 야
심이었소. 포르세 박사와 히틀러의 야망은 이렇게 합작을 보게
되었지. 마침내 전시회 전인 1938년 폴크스바겐은 포르세 박사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30대의 폴크스바겐이
최초로 제작되어 탄생되었고 마침내 히틀러는 베를린 자동차
전시회에서 국민차가 완성되었음을 선포하였소. 전 세계는
전시회에 나타난 폴크스바겐을 보고 경악하였소. 그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저 차는 50년이 넘도록 같은 모델,
같은 성능으로 독일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소 아니, 독일뿐 아
니라 전 세계의 도로 위를 저 차는 달려가고 있소, 정 박사.' 
  김 회장은 나를 쳐다보았다
  "명 차는 이런 페라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저런 차를
가리키는 것이오. 세월이 흘러가도 한결같은 차, 언제 봐도 새것
같고, 세월이 흐르면 정이 들어 다정한 친구 같은 차, 그것이 바
 로 명 차인 것이오. 내가 평생을 두고 만들고 싶은 차는 이런 똥 
 갈보 같은 페라리가 아니라 바로 저 폴크스바겐 같은 차요. 나 
 는,"
  김 회장은 갑자기 운전대를 내리쳤다.
 "이 고속도로 위에서 우리나라가 만든 명 차가 다가오는 21세 
 기에 파도처럼 넘치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보고 싶소."
김 회장은 천천히 말을 뱉었다. 빠르고 어눌한 평소의 어투와 
는 달리 그는 마치 국어 책을 낭독하듯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하 
였다.
"정 박사는 도대체 무엇을 보기 위해 베를린에 왔습니까.'
김 회장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호텔 방안에서 내게 던졌던 질 
  문과 같은 질문을 다시 한번 똑같이 되물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기 위해서 독일에 온 것입니 
 까. 그 역사적 현장을 보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유를 찾기 위해 
 서 죽어간 그 핏자국을 눈으로 화인하기 위해서 독일에 온 것입 
 니까. 도대체 무엇을 보기 위해서 독일에 온 것입니까.'
 김 회장은 갑자기 예언자처럼 말을 이었다.
 "보십시오, 정 박사.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다만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제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두고 보시오. 20세기가 
 다 가기 전에 모든 것이 다 무너질 것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 
 너지면서 동독이 붕괴될 것입니다. 폴란드가 무너지고 체코가 무 
 너질 것입니다. 루마니아가 무너지고, 알바니아가 무너질 것입니 
 다. 그뿐인 줄 아십니까. 소련이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소련의 
 연방국들이 속속 독립을 선포하고 유럽에서는 민족과 민족끼리,
 종교와 종교끼리의 전쟁이 일어나 서로가 죽고 죽이는 내전이 
 일어날 것입니다. 비단 유럽뿐 아닙니다. 베트남이 무너지고 캄보
 디아가 무너질 것입니다. 중국이 꿈틀거리고 홍콩이 무너질 것입
 니다. 이 모든 일들이 20세기가 다 가기 전에 일어날 것입니다‥‥  
 난 그때 솔직히 그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그의 말은 너무 비
 약적 이었으며 과장되어 있었다
  20세기가 다 가기 전에 그런 극적인 변화가 이 지구상에 모든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다니 
  "21세기까지는 겨우 10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 
  나는 솔직히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자 김 회장은 대답했다  
  "그렇소 정확히 11년밖에 남지 않았지."  
  "그럼 지금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모든 변화가 그 짧은 11
 년 안에 모두 실제로 분명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분명히, 분명히 일어납니다. " 
  그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분명하게 대답했다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내기를 걸어도 좋소- 
  '내기에 무엇을 거시겠습니까." 
  나는 짓궂은 심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김 회장은 쾌활하고 단순하게 대답했다.  
  '내 목숨을 걸겠소 20세기가 다 가기 전에 내 말이 틀린다면 
 그땐 바로 당신에게 내 생명을 내놓겠소."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의 예언은 적중되었다. 베를린 장벽의 붕 
괴는 단순히 베를린 장벽의 붕괴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단 한 
개의 도미노가 쓰러지는 것으로 시작되어 수만 개의 도미노가 
파장을 이루면서 무너지듯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부터 동독은 
무너지고  독일은 통일되었다. 유고가 무너지고 종교간에, 민족 간엔 
전쟁이 일어나고 유고연방은 세 조각으로, 네 조각으로 쪼개졌다.
루마니아가 무너지고 알바니아가 무너졌다. 소련연방은 붕괴되고 
수많은 국가들이 러시아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 모든 일들이 
1989년 11월 12일 일요일, 프랑크푸르트로 되돌아오는 페라리 
차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기로 걸고 김 회장이 내게 예언했던 
그 내용대로 불과 10년 사이에 모두 실제로 일어난 것이었다. 흥 
콩이 중국에게 반환되었으며 중국이 용처럼 꿈틀거리면서 일어 
서고 있었다.
  예언자.
 그렇다. 바퀴에 미친 김기섭 회장은 내게 있어 시대의 징조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 예언자였던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내기에 걸겠다던 김 회장은 내기에 이기고서도 
스스로 목숨을 잃었다. 정답을 다 맞추고서도 시험에 떨어진 억 
울한 낙방생처럼 김 회장은 모든 미래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서 
도 20세기가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 전날에 자신의 표현처 
럼 현대의 말인 승용차를 몰고 독일의 고속도로를 달려가다가 
사고를 내고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바퀴에 미친 바퀴벌레 김기섭.
시대의 징표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던 예언자 김기섭 회장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처럼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었던 것일까.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김 회장은 1999년 12월 24일 오후 세 
  시에서 네 시경에 독일의 고속도로 비스바덴 근처에서 교통사고 
  로 목숨을 잃었다. 내가 그 소식을 최초로 접한 시간이 성당에서 
 자정미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직후였으니까 보다 정화한 시 
간은 독일 현지시각으로 오후 네 시경이 맞을 것이다. 오후 네
 시라면 아직 아기 예수는 태어나지 않은 그 시간에 김 회장은 21
세기를 겨냥해서 총력을 기울여 만든 자신의 신차를 타고 
달려가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어떤 사고였을까. 무한속도로 달
려가는 차들과 부딪쳐서 충돌사고를 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고속 
도로의 가드레일을 박고 도로 아래로 굴러 떨어진 것일까. 운전 부 
주의로 중앙분리대를 받고 고속도로 위에서 차가 뒤집혀 전복 사 
고를 일으킨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순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혹시 그것도 아니라면 무슨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까.
  그는 어쩌면 사고를 가장한 어떤 치밀한 범죄에 의해서 피살 
된 것은 아닐까, 그도 아니라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을 
해버린 것이었을까 
  그는 충분히 그럴 만큼의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었다. 그는 아
직 공산세력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동구권을 상대로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소련연방이나 한때 그 연방의 일원이었던 독립국 
가들과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국을 상대로 싸웠던 동구권의 
여러 나라들은 실질적으로 구 소련의 정보기관이었던 KGB출신
들이 그 조직을 바탕으로 만든 마피아에 의해 모든 상권을 통제 
받고 있었던 것이다
  김기섭 회장은 없앨 수 없이 이들과 접선을 하고 거래를 하고 
상담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
  그렇다면 김기섭 회장은 폭력조직들간의 암투에서 어쩌면 청 
부 살인업자에 의해 교통사고로 위장된 교묘한 범죄에 의해 피살 
  되어 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럴 만한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나는 팔짱을 끼고 거실을 서성이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을 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나 
  는 알고 있다. 그에게는 심각한 우울증 증상이 엿보이고 일었다.
  정신과 의사는 아니지만 작가적 직관으로 나는 김 회장이 심각 
  한 우울 증세와 싸우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은 그의 전부였다. 불교를 
믿거나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고 무신론자였던 그에 있어 부처는 
일이었고 하느님 역시 그의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자동차는 그 
의 종교였고 신앙이었다. 술을 마시거나 취미활동을 하거나, 따로 
즐기는 운동도 없이 그는 하루 24시간을 모두 일에 전념하고 있 
었다. 자신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일종의 자해행위 
와 같은 무모한 짓이었다.
 자살은 자해행위의 가장 마지막 선택.
더 이상 탈출구가 없는 생애의 마지막 기로에서 어쩌면 김기 
섭 회장은 죽음이야말로 최고의 휴식임을 얼핏 느꼈을지도 모른 
다. 그리하여 전혀 예정했던 계획도 없이 어느 순간 갑자기 날개
를 가진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로 날고 싶어서 운전대를 도로의 
바깥으로 꺾고 차는 그대로 가드레일을 받은 채 언덕 아래로 굴 
러서 휴지처럼 구겨져 그대로 숨을 거두었을지도 모른다.
 김기섭 회장은 사고에 의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스스 
로 목숨을 끊어 자살해 버렸을 지도 모른다.
 이윽고 새벽 여섯 시가 되자 생각했던 대로 각 방송국에서는
 일제히 첫 뉴스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뉴스의 첫머리는 
모두 세계 각 국의 크리스마스 표정이었다. 서투른 한국말로 "여
러분, 성탄을 축하합니다"로 시작되는 교황의 메시지로부터 눈 
덮인 전선에서 보초를 서는 젊은 병사의 표정에 이르기까지 21
세기를 앞둔 성탄절의 다양한 모습들이 길게 나오고 있었다. 그  
특집뉴스가 끝나자 비로소 김기섭 회장에 관한 기사가 흘러나오  
기 시작하였다
  "방금 들어온 속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간밤에 성탄절 특별연주 방송 도중에 갑자기 베토벤 심포니
제9번 합창교향곡을 중단시키고 성급히 뉴스를 방송하였던 그 
젊은 아나운서가 똑같이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기평 그룹의 총수 김기섭 회장이 교통사고로 별세했습니다. 우 
리 나라 시각으로는 24일 밤 열두 시, 독일의 현지시각으로는 오  
후 네 시. 김기섭 회장은 독일의 비스바덴 근처의 고속도로 위에 
서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현지의 특파원 
으로부터 전해 듣겠습니다. "  
  나는 숨을 죽이고 TV 화면을 노려보았다. TV 화면에는 바바 
리 코트를 입은 낯익은 특파원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어  
두운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 서 있었다 
  "김기섭 회장은 성탄절을 앞둔 현지시각으로 오후 네 시, 기평  
그룹에서 21세기를 겨냥해서 만든 신차를 직접 몰고 독일의 고
속도로 위에서 시운전을 하다 바로 비스바덴 근처의 이 고속도
로에서 이 가드레일을 받고 언덕 아래로 굴렀습니다. "
  카메라는 특파원의 말대로 부서진 가드레일과 실제 상황을 중 
계하듯 부서진 가드레일 너머로의 언덕 아래를 비추고 있었다.
  사고가 난 시각이 오후 네 시였지만 특파원이 달려간 시간은
훨씬 뒤의 일이었는지 도로는 물론 언덕 아래도 캄캄하게 어두 
웠다.
  카메라 앞으로 총탄과 같은 눈발이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 
 아 독일에서는 성탄절 전야에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인 
 모양이었다.
  독일의 고속도로 앞에 서 있던 특파원의 모습은 병원 앞으로 
바뀌어졌다. 눈발은 한층 더 거세어졌다.
  "여기는 김기섭 회장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메디컬 센터입니다. 김기섭 회장의 시신은 사고 즉시 이 병원으 
 로 이송되었지만 담당의사의 말로는 이미 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절명했다고 합니다. 김기섭 회장은 사고 즉시 현장에서 즉 
  사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기평그룹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성탄 
  절이 지나는 첫 비행기로 김 회장의 시신을 한국으로 운구
  한다고 합니다. 김 회장의 사인으로는 현지 경찰에서는 운전부주 
 의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새천년을 며칠 앞둔 성탄절 전야에 평 
  생을 차에 바친 김기섭 회장의 죽음은 비극이 아닐 수가 없습니 
  다. "
화면은 다시 다른 화면으로 바뀌어졌다. 화면에는 추상적인 물 
 건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차의 모습이라는 것 
  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처참한 모습으로 구겨져 있었다. 그래서 
  그 물건은 승용차가 아니라 무슨 행위미술의 조각품처럼 보이고 
 있었다. 화면은 몹시 떨리고 있었다. 아마 누군가에 의해서 촬영 
  을 제지당하고 있음에도 기자라는 신분으로 촬영을 강행하고 있 
  는 듯 화면은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이 차가 바로 김기섭 회장이 타고 가다가 사고를 냈던 바로 
그 승용차입니다. "
  다시 TV 화면은 특파원의 얼굴로 바뀌어졌다
  "이 승용차의 이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기평그룹
내에서는 암호명으로 I-카 라고 부르고만 있습니다. 김기섭 회장은
 21세기를 겨냥해서 만든 이 I-카를 타고 직접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서 시운전을 하고 가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 같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김기섭 회장의 일생은 차에 바친 것이었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차에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일년에 한두 번은 직접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서 무제한의 속도로
 차를 몰던 스피드 광이기도 했던 김기섭 회장의 돌발적인 죽음은
 우리나라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줄 것임이 분명합니다. " 
  갑작스런 김기섭 회장의 죽음으로 성탄절 휴가 중에 현장으로
성급히 달려간 현지 특파원의 뉴스는 상황만 있을 뿐 알맹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세한 뉴스를 전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짧은,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1세기를 겨냥해서 전 유럽의 자동차를 석권하려 하였던 김  
회장의 야심찬 계획은 이로써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김 회장의 개인적인 비극이 기평 그룹의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
치게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기평 그룹 자체의 의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이상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케이비에스 뉴우스 박대경  
입니다. " 
  잠은 뉴스가 끝났다 
  간밤에 들었던 속보보다 양만 늘었을 뿐 더 진전된 내용이 없
는 현장 뉴스였다. 김기섭 회장이 무슨 이유로, 왜, 그리고 어떻 
 게 목숨을 잃었는가는 다만 현지 경찰의 애매 모호한 '운전 부주 
  의'라는 판단만 전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다만 현장 스케치에 
  불과한 내용이었다.
  그는 죽었다.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서. 성탄절을 앞둔 현지시각으로 오후 네 
  시, 독일의 비스바덴 근처의 고속도로 위에서 가드레일을 받고 
  경사진 언덕길 아래로 굴렀다. 차체는 마치 휴지 조각처림 구겨졌 
  으며 그는 운전대를 잡은 채 현장에서 즉사했다. 시신은 발견 즉 
  시 프랑크푸르트의 메디컬 센터로 옮겨졌지만 이미 목숨이 끊어 
  진 직후였다.
그의 시신은 성탄절 아침 첫 비행기로 우리나라로 운구되어 
 올 것이다.
나는 결정적인 골인 장면을 몇 번이고 느린 속도로 되풀이해 
  서 보여주는 중계방송처럼 현지 특파원이 전한 뉴스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되새겨 보았다.
  바퀴에 미친 인간 김기섭. 자신이 스스로 붙인 별명처럼 바퀴 
  에 미친 바퀴벌레, 김기섭.
굴렁쇠를 굴리던 소년시절부터 바퀴라면 환장을 했던 꿈꾸는 
  소년 김기섭.
하나의 바퀴인 굴렁쇠를 굴리던 김기섭은 두 개의 바퀴를 가 
  진 자전거에 미친다. 자전거의 생명인 바퀴. 림의 비밀을 
  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밀항까지 했었던 청년 김기섭.
림이라면 자전거의 타이어를 끼우는 외륜. 
그러나 자전거의 생명은 바로 이 림에 있다. 보다 완벽한 원일수록 
보다 완벽한 바퀴임을 알게 된 김 기섭은 보다 완벽한 바퀴를 만들다가 
손가락 하나를 잃어버린다 .
  오른손의 새끼손가락.  
  김기섭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의 마디 하나는 절단되어 있다. 그 
의 오른손은 한마디로 불구인 것이다 
  '내 오른손의 새끼손가락과 자전거의 바퀴 하나를 바꿔 버렸지. 
그러나 난 전혀 아깝지 않았소. 보다 완벽한 림을 만들기 위해서 
라면 난 새끼손가락은 물론 오른손 하나와도 맞바꿀 마음이 있 
었으니까. 아니, 그 이상이었지. 오른손은 물론 내 목숨과도 맞바
꿀 마음도 있었으니까,"
  두 개의 바퀴를 가진 자전거에 미쳤던 청년 김기섭은 다시 두 
개의 바퀴를 가진 오토바이에 미친다. 두 개의 바퀴를 가진 오토
바이에 미쳤던 김기섭은 다시 세 개의 바퀴를 가진 삼륜차에 미
쳐버린다. 그리고는 세 개의 바퀴를 가진 삼륜차에 미쳤던 김기 
섭은 마침내 네 개의 바쥐를 가진 승용차에 미쳐 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한 개의 바퀴를 가진 굴렁쇠에서 네 개의 바퀴를 가진  
승용차에 이르기까지 온통 평생을 바퀴에 바친 김기섭이야말로 
인간이라기보다는 한 마리의 벌레, 바퀴벌레인 것이다. 
  마침내 죽을 때도 자신이 만든 차 속에서 자신이 차를 몰다 차
와 함께 죽어 버린 바퀴벌레 인간 김기섭.
  나는 일어섰다 
  꼬박 밤을 새운 아파트의 베란다 너머로 성탄의 새아침이 밝
아 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우편함을 들여다보았다. 조간신문이 배달
되어 와 있었다. 갓 배달되어 온 신문에서 채 마르지 않은 잉크 
냄새가 풍겨 오고 있었다  
  '기평 그룹의 총수 김기섭 회장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서 교통 
 사고로 사망'
  주먹만한 활자로 제1면 톱뉴스였다.
  나는 신문을 펼쳐 보았다. 천연색으로 인쇄된, 바티칸성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로마의 성탄미사를 밀쳐 낼 만큼 김기섭 회장의 
죽음이 톱뉴스로 기사화 되었지만 내용은 TV에서 흘러나온 첫 
 뉴스처럼 빈약하였다.
  현지 및 특파원의 전송 형식으로 된 톱기사는 김 회장이 무슨 
이유로 어떻게 죽음을 맞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에는 여전히 '부 
 주의한 운전' 때문일 것이라는 현지 경찰의 형식적인 대답을 인 
용 보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한 가지 내 시선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흥 
미로운 기사의 내용이 있었다.
  "김기섭 회장은 소문난 스피드 광이어서 일년에 한두 번은 독 
 일이나 이탈리아의 고속도로에서 세계적 명 차들을 직접 시속 2
 백 킬로미터 이상으로 모는 버릇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에 탄 차는 기평 그룹에서 21세기를 겨냥해서 자사의 총력을 
 기울여 제작한 신차인 것이다. 김기섭 회장은 신차의 성능을 직 
접 테스트하기 위해서 시운전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 승용차의 이름은 아직 비밀에 붙여져서 암호명으로 
 I-카라고만 불리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확한 소 
식통에 의하면 서기 2000년 1월부터 전 세계로 본격적으로 출고 
될 예정인 신차의 이름은 이카로스. 이카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신차의 이름은 김기섭 회장이 직접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는 너무나 태양을 향해 가까이 
날아갔으므로 태양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빠져 죽어 버리는 비극 
의 주인공인데 자신이 직접 이름을 붙인 신차를 타고 독일의 고 
속도로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은 김기섭 회장이야말로 태양을 향 
해 날아가다가 날개가 녹아 그대로 추락해서 바다에 빠져 죽어
버리는 그리스 신화의 비극적인 주인공 이카로스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이카로스
  출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정확한 소식통'이라면 대부분 90% 
센트 이상의 정확도를 가진 정보인 것이다
  신문의 현지 특파원은 암호명이 단지 I-카로만 알려져 있는
신차의 새 이름이 이카로스임을 밝혀낸 것이다. 보통 수 천억의
돈을 들여 새로 개발하는 신차의 이름은 정식으로 '신차발표회' 
를 열기까지는 비밀에 붙여지게 되어 있다. 국내의 라이벌 회사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새로 탄생하는 신차의 
디자인, 새로운 기능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신차의 이름에 대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그 신차의 이름에 대해서 사전에 정보 
를 빼내려고 고도의 첩보 전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I-카 
  기평 그룹에서 21세기를 겨냥해서 만든 신차의 암호명 I-카는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이카로스를 본 따 지은 신차
의 암호임이 밝혀진 것이다  
  21세기 유럽의 도로 위를 달려가는 차의 이름을 바로 유럽 정
 신의 근원인 그리스 신화에서 찾으려는 김기섭 회장의 강력한
 의지는 그러나 현지 특파원의 기사 내용처럼 '김기섭 회장이야 
 말로 태양을 향해 날아가다가 날개가 녹아 그대로 추락해서 바 
 다에 빠져 죽어 버리는 그리스 신화의 비극적인 주인공 이카로스 
 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
  비극의 주인공 이카로스는 명공 다이달로스의 아들로 아 
 버지와 함께 크레타섬으로 간다. 그러나 크레타섬의 왕 미노스는 
 두 사람을 미워해서 미궁에 유폐 시켜 버린다. 부자는 왕비 
 마시파에의 도움을 받아 탈출을 꾀해 보지만 미노스왕은 이미 
 이를 알고 해변에 있는 모든 배를 치워 버린다. 이에 명공 다이달 
 로스는 날개를 만들어 이를 몸에 달고 날아서 탈출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이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뛰어난 손재주를 지녔던 다이달로스는 
 마침내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몸에 붙인다. 섬을 탈출하기 전 
 아버지는 아들 이카로스에게 말한다.
  "아들아, 날기 전에 너에게 말해 줄 것이 있다. 우리의 날개는 
 날개가 아니다. 이것은 밀랍으로 만든 인공의 날개일 뿐이다. 너 
 는 조금 있으면 하늘로 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늘로 날 
 면 더 높이 날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는 절대 
 로 안된다. 왜냐하면 높이 날수록 태양에 가까이 가 날개가 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날개는 다만 시칠리섬으로 도망갈 정 
 도의 높이로만 날아야 한다. "
  그리고 두 사람은 하늘을 날기 시작한다.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무사히 날아 시칠리섬에 도착하였지만 아들 이카로스는 하늘 위 
 로 솟아오르자 아버지의 주의를 잊어버린다.
  더 높이, 더 멀리. 날면 날수록 쾌감을 느낀 이카로스는 하늘 높이
 날개짓하며 날아간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간 이카로스의 날개는 
태양에 녹아 마침내 바다에 떨어져 익사해서 숨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이카로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비극의 주인공.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무모하게 더 높이, 더 멀리 날다가 
태양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빠져 죽는 이카로스.
  하나의 바퀴에 미쳐 두 개의 바퀴를 가진 자전거, 그리고는 세 
개의 바퀴로, 마침내는 네 개의 바퀴를 가진 승용차에 미쳐서 마 
치 자기 몸 전체가 바퀴인 양 더 빠르게' 더 빠르게'를 향해 
달려가다가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서 죽어 버린 김기섭 
  이카로스와 김 기섭.
  두 인물에게는 유사한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를 겨냥해서 만든 신차에 김기섭 회장이 직접 이카로스의 이름 
을 붙인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자신이 바다에 빠져 죽은 이카로 
스처럼 언젠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할 것을 
예견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제 2장 서곡 
  2000년 1월.
  Y호텔 컨벤션 홀에서는 기평 그룹에서 21세기를 겨냥해서 만든
 '이카로스' 의 신차발표회가 열렸다. 
  오후 여섯 시. 
  컨벤션 홀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 몰려온 유명인사들과 자
동차의 딜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홀 중앙에는 아직 한 번도 공개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
았던 신차 '이카로스'가 횐 베일로 가려진 채 전시되어 있었고, 
홀의 전면을 메운 플래카드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21세기의 월드카. 이카로스 신차발표회' 
  시간이 되자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과 기업인들 그리고 이를
취재하기 위해서 온 기자들과 TV매체들의 촬영 팀들이 속속 도 
착하고 있었다  
  아직 베일로 가려진 이카로스의 전면과 후면에는 네 명의 여
성 도우미들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서 있었고, 당대 최고의 배우
인 C양이 최초로 이카로스의 운전석에 앉을 수 있는 미의 여왕
으로 선정되어 회장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한구석에 서서 팔짱을 낀 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만원을 이룬 회장 한복판에 전시된 이카로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수천 명의 인파들이 대만원을 이룬 이 축제 마당에 막상 그 주  
인공인 김기섭은 없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도 햇수를 바꿔 벌써
한 달 정도 지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신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곧바로 비행기에 실려 우리나 
라로 운구 되었으며, 그의 장례식은 불교 식으로 진행되었다. 생전 
에 종교는 전혀 갖지 않았던 그였지만 김기섭 회장의 부인이 독
실한 불교신자였기 때문에 서울에서 가까운 절에 그의 빈소를
마련하였다
  나는 정릉에 있는 절까지 나아가서 분향을 했었다. 몹시 춥고
눈이 많이 내리던 세모의 겨울날이었다. 대기업의 총수를 애도하
는 장례식치고는 지나치게 조촐하고 검소하였다 
  향을 집어들고 촛불로 불을 붙여 향로에 꽂으면서 나는 검은 
테이프로 가려진 영정 속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액자 속에서 김
기섭은 수줍게 웃고 있었다. 마치 이런 자리에 주인공으로 누워
있다는 것이 부끄럽고 겸연쩍다는 듯 불교 식으로 장례를 
치렀으면서도 김 회장의 시신은 화장되지 않았다.
 그는 서울에서 가까운 교외에 묻혔다. 그러나 나는 정릉 
 에 있는 그의 빈소에만 들러서 조의를 표했을 뿐 그 이상의 조 
 문은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그와의 우정에 대한 예의는 모두 갖추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나는 생각하지 않은 곳으로부터 전화를 받 
 았다. 기평그룹의 기획조정실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고 
 보니 낯익은 사람이었다. 한기철이었다. 그는 10여 년 전 독일 프 
 랑크푸르트에서 만났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김기섭 회장의 
 특명을 받고 전시내의 호텔을 뒤져 내가 있는 곳을 찾아내었던 
 프랑크푸르트의 지사장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 후에도 나는 그를 
 몇 번이나 다시 만났었다. 프랑크푸르트의 지사장에서 그는 김 
 회장의 수행비서로 자리를 옮겼는데 김 회장을 만날 때마다 그 
 가 먼저 내게 전화를 걸어왔었다. 최근에 그는 그룹을 총괄하는 
 기획조정실 실장으로 영전하였는데 자리를 옮긴 후로는 첫 번째 
 의 전화였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기억하고 말고요."
  내가 대답하자 그는 바로 오늘 저녁 여섯 시에 Y호텔 컨벤션 
 홀에서 신차발표회가 있는데 꼭 참석해 달라고 부탁을 해 오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 일은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무 
 슨 모임이나 파티 같은 곳에 참석하는 것을 싫어하고 있었다. 깊 
 은 우정이 없고 다만 가벼운 사교만이 오고가는 연회장의 분위 
 기는 내가 가장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이었다.
  내가 선뜻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리자 그는 내게 간곡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정 선생님께 발표회장으로 오시라고 하는 것은 의례적인 것
이 아닙니다. 발표회가 끝난 후 따로 만나서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 
  신차발표회가 끝난 후 따로 만나서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다
는 한기철의 부탁을 나는 물리칠 수가 없었다. 정확한 내용을 물
어보지는 않았지만 '이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라고 말을 덧붙
이는 것으로 보아 나는 본능적으로 만나자는 용무가 죽은 김기 
섭 회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직감했다
  정각 여섯 시가 되었는지 갑자기 실내악단이 연주를 시작 하였
다  
  나는 발돋움을 하고 흘 중앙에 자리잡은 '이카로스'를 바라 보  
았다. 베일에 둘러싸인 차의 휘장을 벗겨 내기 위해서 총리를 비
롯한 관계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서서 줄을 잡고 있었다. 그룹 관
계자로부터 간단한 신차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는 신차에 대 
한 설명보다는 이 차를 타고 가다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서 눈을
감은 김기섭 회장에 대한 회상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다. 고인
에 대한 간단한 묵념과 함께 마침내 제막식이 시작됐다. 우렁찬
팡파르와 함께 허공에서 레이저 광선이 푸른빛을 번쩍거리면서
 '이카로스'를 향해 집중되었다. 거의 동시에 붉고 푸른 조명이
명멸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차를 중심으로 둘러서 있던 내빈들의 손에서 줄이 잡아 당겨졌  
다. 그러자 차의 전면을 덮고 있던 휘장이 벗겨지고 마침내 신차
의 모습이 드러났다
  "와아..."
  순간 커튼이 젖혀지기를 기다리던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탄 
  성이 흘러나왔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물질문명에 중독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현란한 조명과 레이저 광선을 받으면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이카로스'는 마치 제우스의 신상처럼 보였다. 전체적으로 둥글 
 어 마치 강인한 헤라클레스의 힘과 근육을 연상케 하는 후드 캐 
 릭터 라인의 모습은 이제라도 막 스타트 라인을 박차고 뛰쳐 나 
 가려는 옛 그리스의 올림픽 전사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 것은 붉고 푸른 현란한 조명 속에서 마 
 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신차의 빛깔이었다. 그 빛깔은 이제껏 우
 리들이 봐 왔던 검고 푸른, 혹은 붉고 횐 도색의 자동차 색이 아 
 니었다. 신차 '이카로스'의 색은 그 원색의 빛깔 속에 형광물질 
 이 포함되어 있어 스스로가 발광하는 심해어의 비늘처럼 눈이 
 부셨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 차체의 빛깔이 광 량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차체의 페인트에 함유
 된 특수 도료에 따라서 대낮의 차체 빛깔과 어둠이 내린 한밤의
 차의 빛깔은 전혀 달라 보였다. 이른바 색의 혁명이었던 것 
 이다.
  최고속도 19837n
  길이 4,670mm
  너비 1,778mm
  높이 1,437mm
  직렬 4기통 DOHC의 4도어 세단의 보디 형식, 
  배기량은 1798cc의 신세대차 '이카로스'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세기의 명 차인 폴크스바겐과 같은 승용 
차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김기섭 회장. 사상 처음
단일 차종으로 2천만 대 생산이라는 천문학적 기록을 세운 폴크 
스바겐 비틀. 그에 버금가는 21세기의 월드카를 생산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로 만들어 낸 이카로스 디자인은 유럽 특유의 고전적인 
모습이면서도 차체의 빛깔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빛의 혁명
을 이룬 첨단예술. 그리고 차의 내부는 마치 우주선의 조종석 처 
럼 첨단과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바로 이카로스인 것이다.
  사람들은 이카로스 앞으로 바짝 몰려들고 있었다. 영화배우 C
양은 승용차의 운전석에 앉아서 특유의 밝은 미소로 활짝 웃고
있었고 각 신문과 잡지, TV에서 나온 촬영기자들이 C양의 모습 
을 잡기 위해서 카메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번쩍
이며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외 귀빈들은 서둘러 전시회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세계 각 국에서 몰려온 딜러 들과 즉석 상담을 하는 부산한 모습
만 보일 뿐 발표회장은 썰물처럼 인파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팔짱을 긴 채 썰렁해진 회랑을 가로질러 이카로스 앞으 
로 다가가 보았다 제 스스로 움직이면서 360도 방향으로 회전 하 
게 되어 있는 이카로스의 차체를 가만히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
다.  
  이것인가.
  나는 차체를 쓰다듬으면서 생각했다
  이 차가 바로 김기섭 회장의 생명을 앗아간 바로 그 차인가.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서 김 회장은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
든 이 차를 타고 달려가다가 불의의 사고로 가드레일을 받고 경 
사진 언덕 아래로 굴러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카로스의 최고 속도는 198킬로미터. 
 나는 페라리를 타고 250킬로미터까지 차를 질주하는 모습을 
 직접 그의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는 이 차가 허락하는 
 최고속도인 198킬로미터까지 차의 스피드를 올려 보았을 것이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바로 아침에 전화를 걸었 
 던 한기철 그 사람이었다.
"어디 계신가 한참을 찾았습니다. 안 보이시길래 오시지 않았 
 는가 걱정했습니다. "
그는 말쑥한 정장 차림에 가슴에는 꽃을 한 송이 꽂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새 차의 모습이,"
  그는 횐 장갑을 벗으면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악수를 
 나누었다.
  "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첫눈에 매우 매력적인 차라는 느 
 낌을 받았습니다. "
  "고맙습니다. "
컨벤션 흘은 순식간에 빠져나간 사람들로 파장을 이루고 있었 
다. 손님들은 거의 없고 손님들을 접대하던 회사측 사람들만 남 
아서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가시지요, 선생님,"
  한기철은 앞장섰다.
  그제서야 나는 '발표회가 끝난 후 따로 만나서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라고 전화를 걸어왔 
  던 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2
  
 한기철은 미리 예약을 해 놓았는지 Y호텔 3층에 있는 일식집으  
로 갔다. 그는 작은 손가방 하나만을 들고 있을 뿐 부하직원을
대동하고 있지 않았다 
  "저녁식사는 드시지 않으셨죠."  
  그는 내게 물었다
  "하지 않았습니다. "  
  "무엇을 드실까 물어 봤어야 하는 건데 일방적으로 제가 예약
하였습니다. "  
  일식집에서는 점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구석진 밀실로
안내했다. 다다미 안으로 발을 밀어 넣을 수 있도록 공간이 확보
되어 있었다  
  "이제야 일이 끝났습니다. 신차발표회까지 하루 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
  실제로 피로한 듯 점원이 가져온 뜨거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한기철이 말했다
  "술을 하시죠? 어떻습니까. 날씨가 차가운데 따뜻한 정종 같은  
것은."
  "전 위스키를 마시겠습니다. "  
  생선회와 더불어 그는 데운 정종을, 나는 얼음을 넣은 위스키  
를 마셨다. 일식집 창문 너머로 소규모의 일본식 정원이 만들어
져 있었다. 대나무가 심어져 있는 정원 한 곁에는 괴석들이 놓여
져 있었는데 방금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는지 그 정원 위로 솜털 
같은 눈발들이 쌓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술만 계속해서
서너 잔 마셨다.
  "제가 정 선생님을 뵙자고 한 것은 돌아가신 김기섭 회장님 때 
  문입니다. "
정종에 다소 긴장이 풀렸는지 발그스레 상기한 얼굴로 한기철 
이 입을 열었다 
  "저희 그룹에서는 창업자이신 회장님의 기념사업을 새해부터 
  추진하기로 결정 보았지요. 그래서 곧 회장님의 기념관을 건립하 
  기로 하였습니다. 그와 더불어 회장님의 일대기랄까, 아니면 평전 
  같은 책을 출판하기로 결정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요. 돌아가신 회장님의 평전이야말로 그것을 쓰실 분은 오직 정 
  선생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언제부터인가 일대기라든가 전기, 평전 같은 책들이 쏟아져 나 
오고 있었다. 정치가들도 이따금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들을 출 
판하고 있었고, 기업인들도 기업이념을 담은 책들을 내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는데. 이런 책들은 거의 모두가 자 
신들이 쓴 것이 아니라 문필가들에 의해서 대필되는 책들 
이었다. 내게도 가끔 그런 청탁이 들어오곤 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들을 매우 언짢게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단번에 긴절하곤 
했었다.
  "지금 당장 여기서 허락을 해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은 좀 
  있습니다. 회장님의 생신이 11월 3일. 그 생신에 맞춰서 기념관 
  의 건립과 고인을 기리는 평전을 함께 출판하자는 것이 저희 기 
  획 조정실의 계획입니다"
그는 정종을 한 병 더 시켰다. 이미 두 병을 마셨는데도 그는 
술에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창문 밖 작은 정원에는 이미 적지 않은 눈이 쌓여 있었다. 
  "그보다도 한 가지 보여 드리고 자문을 구하고 싶은 물건이 있 
습니다. "  
  그는 작은 손가방의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자 찰칵  
가방이 열렸다. 한기철은 가방 속에서 무슨 물건을 하나 꺼내 식 
탁 위에 놓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 물건을 취급하고 있었기에  
그의 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그 물건은 비닐봉지 속에 들어 있었다. 함부로 사람들의 손때 
가 타지 않도록. 
  한기철은 비닐봉지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을 아주 천천히 꺼내 
서 식탁 위에 놓았다. 그가 너무 조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자칫하면 깨지거나 손상될 우려가
있는 유리제품 같은 물건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  
니었다. 그가 식탁 위에 놓은 것은 투박하고 볼품없는 가죽제품  
이었다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기철은 남은 정종을 잔에 따라 들이키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글쎄요." 
  어지간히 나도 취기가 올라 있었다. 나는 그 가죽제품을 쳐다 
보았다. 몹시 낡아서 그 가죽제품은 마치 골동품처럼 보였다. 군 
데 군데 껍질이 벗겨져서 낡은 고서처럼 보이기도 했다. 
  "...모르시겠습니까."  
  한기철은 표정 없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글쎄요, 지갑이 아닌가요 아니면 무슨 골동품 같기도 하고," 
  "맞습니다. "  한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지갑입니다. '
  지갑은 가죽 특유의 갈색빛이었지만 세월의 흐름으로 회색 잿 
 빛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얼마나 닳았는지 지갑의 표면부분이 너 
 덜너덜 균열이 가 있었다. 가죽제품이 아니었더라면 이제라도 벗 
 겨져버릴 듯이 해어져 있었다.
  "이 지갑이 누구의 지갑인 줄 아십니까."
  그는 식탁 위에 놓인 지갑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손으로 
 조심스럽게 가리키고 있을 뿐 손가락을 대어 촉수하지는 않았다.
  "이 지갑은 돌아가신 회장님이 평소에 갖고 다니시던 지갑입니다.
 아마 회장님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유일한 물건일 것입니다.
 4년 동안 수행비서로 회장님을 모시고 다녔습니다만 저는 
 회장님께서 주머니 속에 무엇을 넣고 다니시는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
  한기철은 술병을 기울여 잔에 따랐다. 그러나 술병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한기철은 식탁 위에 있는 초인종을 눌러 술을 더 
 시켰다.
  "돌아가신 회장님은 주머니에 무엇을 넣고 다니시는 것을 가 
 장 싫어했습니다. 심지어는 손수건도 넣고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주머니에 들어 있었던 물건이라면 이 낡은 지갑이 유일할 겁니 
 다. "
  술이 들어왔다. 그러자 그는 다시 잔에 술을 따라 단숨에 들이
 켰다.
  한기철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는 말을 끊고 우두커니 창밖에 
마련된 작은 정원 위로 흩날리는 눈발을 쳐다보았다. 
  "...이 지갑은 회장님께서 작년 12월 24일 독일의 고속도로 위 
에서 돌아가실 때 회장님의 시신 속에서 나온 유류품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회장님께서는 오늘 보신 신차 이카로스를 직접 타시  
고 고속도로를 달리시다가 비스바덴 근처에서 가드레일을 받고  
경사진 언덕 아래로 굴러 현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회장님 
께서는 누구도 곁에 태우지 않고 혼자 시승하셨기 때문에 돌아  
가실 때는 혼자뿐이셨습니다. 주머니에서 이 지갑이 나오지 않았  
더라면 독일 경찰들은 죽은 사람의 신원조차 쉽게 확인할 수 없 
었을 것입니다. "
  이미 서너 병의 정종을 마셨지만 그의 술 속도는 빨라지고 있 
었다. 그의 속도에 따라서 내 술도 빠르게 비워지고 있었다.
  "이 지갑 겹겹에 새겨진 얼룩이 무슨 자국인 줄 아십니까."  
  한기철은 두 겹으로 꺾여진 지갑의 손잡이 부분을 가리켰다.  
나는 그가 가리킨 곳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과연 그의 말대로 비 
교적 원래의 갈색 가죽 빛깔이 그대로 납아 있는 부분에는 얼룩 
자국이 남아 있었다. 검붉은 얼룩 무늬였다 
  "이 얼룩은 핏자국입니다. "  
  한기철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바로 회장님의 핏자국입니다. 저희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회장님의 시신은 완전히 피범벅이었습니다. 온몸이 찢겨지시고  
갈래갈래 갈라져 있는 모습이란 너무나 처참한 광경이었습니다. "
  그는 다시 술을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그가 왜 서둘러 술을  
마시고 있었던가 하는 그 이유를 그제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차체에도 온통 회장님께서 흘리신 핏자국뿐이었습니다. 그때 
 독일의 경찰이 제게 이 가죽지갑을 건네주었습니다. 독일 경찰은 
 지갑 속에서 회장님의 명함을 한 장 발견했던 모양입니다. "
한기철은 두 겹으로 포개어진 지갑 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
내서 식탁 위에 놓았다. 나는 그 명함을 집어들어 보았다. 명함에
는 다만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김기섭'
  기평그룹의 회장임을 알리는 공식 직함도, 자신의 연락처를 알
  리는 전화번호도 명함에는 적혀 있지 않았다. 명함의 뒤를 제껴 
 보자 영문자로 비교적 상세한 내역이 적혀 있었다.
  독일 경찰이 김기섭 회장의 신원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명
 함 뒷면에 기재된 영문의 내역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명함 한 
 구석에도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한기철의 말처럼 그들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피범벅이 되었을 만큼 처참한 광경이었으므로 자연히 그의 주머 
 니 속에 들어 있던 지갑의 겉면은 물론 두 겹으로 포개어진 지 
 갑의 속에까지 핏물은 스며들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 지갑은 회장님께서 최후까지 지니셨던 유일한
 물건이며 회장님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최후의 증인입니다. 물론 
 이 지갑은 그분의 기념관에 소중하게 보관될 유물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소중한 유물을 이곳으로 직접 가져온 것은 정 선생님께 
 보여 드리고 몇 가지 자문을 구하기 위해섭니다. 정 선생님을 뵙 
 자던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 지갑 때문입니다. "
 한기철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갑속에 뭐가 들어 있는가 확인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글쎄요"  
  나는 대답했다 
  "원하신다면 직접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  
  "제가 지갑을 뒤져봐도 좋겠습니까." 
  "물론입니다. "  
  한기철은 분명하게 대답했다 
  "제가 오늘 정 선생님을 만나 뵙자고 했던 것도 바로 이 지갑 
때문이었으니까요" 
  나는 식탁 위에 놓인 지갑을 집어들었다. 두 겹으로 포개어진
지갑은 그러나 두툼한 부피에 비해서는 가벼웠다. 나는 지갑을  
펼쳐 보았다. 한눈에도 몹시 낡은 구형의 지갑이었다. 신분증이나  
사진 같은 것을 넣을 수 있도록 투명한 비닐로 포장된 속지갑에
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같은
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독일의 고속도로에서 함께 차를 탈 때  
김 회장은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참, 타기 전에 미리 말해 둘 것이 있는데 난 운전면허가 없거
든. 생명보험도 들지 않았고, 그러니까 무서우면 타지 말고 차에  
서 내리시오, 정 박사."
  나는 그때 그의 말이 단순한 놀림인 줄 알았었다. 그러나 운전  
면허가 없다는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닌 사실이 아닌가. 그의 지갑 
에는 그의 말대로 운전면허증조차 없지 않은가  
  그의 지갑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신용카드나 명함  
같은 것을 보관하기 위해서 따로 칸칸이 구분해 놓은 지갑 속에
도 아무런 내용물이 들어 있지 않았다. 조금 전 한기철이 꺼내  
보여주었던 명함 한 장이 유일한 내용물이었다  
 그야말로 빈 주머니 속의 빈 지갑이었다. 보통사람이라면 대여 
섯 장은 가지고 다니는 신용카드조차 한 장도 없는 빈 지간 신 
분을 확인시켜 줄 만한 어떤 증명서도 없는 텅 빈 지갑. 나는 지 
갑 맨 뒤쪽에 있는 칸을 살펴보았다. 그곳은 지갑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물건 중에서 가장 길이가 긴 지폐가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부분이었다.
  그곳도 텅 비어 있었다. 흔한 만 원짜리 지폐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
  대기업의 회장으로서 김기섭은 자신이 따로 지갑 속에 돈을 
넣고 다닐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건을 사야 하거나 돈을 
사용할 때면 모두 수행비서들이 이를 처리해 주었을 것이다. 그 
 렇다고는 하지만 만일의 비상사태를 대비해서라도 지갑 속에 몇 
 백 달러 정도의 비상금은 들어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폐를 넣을 수 있는, 둘로 나뉘어져 있는 나머지 한 
칸 속에 무슨 종이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을 살며시 
꺼내 보았다. 아주 작은 종이조각이었다. 푸른색이 감도는 그 종 
이는 마치 아이들이 소꿉장난할 때 사용하는 물감이 번진 딱지 
처럼 보였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갑을 펼치는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한기철이 입 
 을 열어 내게 물었다.
  "글쎄요"
 나는 그 물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라비아 숫자로 '2'가 양쪽에 인쇄되어 있었고 위 
 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었다.
  'ZHONG GUO RENMIN YINHANG'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암호  
문인가. 나는 그 물건을 뒤집어 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본
쪽은 뒷면이었고 뒤집어 본 바로 그 면이 앞쪽임을 알 수 있었
다. 역시 아라비아의 '2' 숫자가 새겨진 그 한복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씌어져 있었다 
  '이각 ' 
  분명한 한자였다
  나는 눈대중으로 그 종이의 크기를 헤아려 보았다. 가로 12센  
티미터 세로 5센티미터쯤 될까. 얼핏 보면 이 물건은 외국의 화
폐처럼 보인다. 이각 이라고 인쇄된 글씨도 화폐의 단위를
나타내는 표시가 아닐 것인가
  나의 생각은 정확하였다 
  사방을 둘러싼 테두리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중국인민은행'
  "중국 지폐인가요."  
  내가 묻자 한기철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건 중국의 지폐입니다. 우리나라의 화폐 단위로  
보면 이십 원쯤 되는 아주 소액 지폐입니다. "
  한기철의 말대로라면 이십 원쯤 되는 작은 돈. 그 지폐 한 장이  
국내 랭킹 1, 2위를 다투는 재벌 총수 김기섭 회장이 죽을 때 자  
신의 지갑 속에 가졌던 전 재산이었던 것이다
  "이 돈이 중국 화폐단위 중에서 가장 작은 ,화폐입니까," 
  내가 묻자 한기철은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일 작은 화폐단위는 일각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십 원 정도에 해당되지요. 제일 큰 돈은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에 
 해당되는 백 원이구요 제일 많이 쓰여지는 화폐단위는 '원'입니 
 다. '각'은 중국에서도 잘 통용되지 않는 화폐단위입니다. 중 
 국에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뇨, 가본 적이 없습니다. "
  "중국에서도 각은 잘 통용되지 않는 화폐인데 주로 화장실 같 
 은 곳에서 통용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어디나 공짜 화장실이 
 없으니까요. 시골에 가도 화장실 문 앞에 문지기가 지키고 있습 
 니다.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소변은 일 각, 대변은 오각 정도의 이 
 용료를 받습니다. 지갑 속에 들어 있던 저 돈도 돌아가신 회장님 
 께서 북경의 한 공중화장실을 사용하신 후 거스름돈으로 받은 
 돈 중에서 직접 지갑 속에 넣어 보관해 두었던 물건입니다. "
  "직접 이 돈을 넣어 보관했단 말씀입니까."
내가 의아한 목소리로 묻자 그는 대답했다.
  "그 돈은 김 회장님의 부적이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회장님은 지갑 속에 그것을 넣고 다니셨습니다. 이따금 꺼내서 
  제게 보여주기도 하셨습니다. "
  "어째서요. 어째서 이 작은 지폐를 지갑 속에 넣고 다니셨단 
  말입니까."
  "그것은."
 한기철은 지폐의 왼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두 명의 여인이 
인쇄되어 있었다. 두 여인은 모두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옆 얼 
굴로 인쇄되어 있었는데, 한 여인은 머리에 리본 같은 것을 꽃은 
전통복 차림이었다. 쌍꺼풀이 지고 오똑한 콧날로 봐서 정통적인 
한족의 얼굴이 아니라 이민족의 얼굴이 분명하였다.
  "그것은 이 여인의 얼굴 때문입니다. " 
  한기철은 인쇄된 두 여인의 얼굴 중에서 수줍게 뒤쪽에 숨어
있는 듯한 다른 여인의 얼굴을 가리켰다. 나는 그가 가리킨 여인 
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여인은 쪽진 머리에 횐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누가 
보아도 한복 저고리를 입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여인 모습임이
분명하였다 
  한기철은 말을 이었다 
  "중국에는 200만에서 250만에 이르는 우리 조선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12억이 넘는 중국의 인구 중에서 200만 정도의 조선족 
은 인구로 봐서 열두 번째에 이르는 소수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
을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이 소수민족 중에서 티베트 인들과 위구 
르인들 그리고 조선족 이렇게 세 민족을 가장 경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 민족이 가장 자주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독립에 대한 욕망이 가장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이 돈에 인쇄된
두 여인 중 머리에 리본을 맨 여자는 위구르족 여인입니다. 처음 
에는 몽골고원에서 발원하였지만 나중에는 중앙아시아로 옳겨  
거대한 제국을 일으켰던 투르크족, 한문으로는 회흘족 사 
람들입니다. 이 사람들도 독자적인 독립국을 세우려고 전통적으
로 중국과 맞서 싸워왔던 불행한 역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오른쪽에 인쇄된 한복 저고리를 입은 여인은 우리 조선족 여인 
의 얼굴입니다. "
  나는 그가 말하는 오른쪽 조선족 여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꼭 쪽진 머리와 횐 동정 깃을 단 한복 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아 
니더라도 눈샙과 눈의 표정, 도톰한 입술, 오똑한 콧날의 생김생  
김은 어딘지 낯익은 우리 민족의 특색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에서 가장 큰 백 원이나 오십 원짜리 같은 화폐에는 한족 
 의 얼굴들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12억의 거대한 중국 인구 중에 
 서 조선족들은 이렇게 '이 각'의 화폐처럼 소수민족으로 살아가 
 고 있습니다. 10년쯤 전이었던가요 김 회장님은 갑자기 거리를 
 지나시다가 길거리 공중화장실에서 차를 세우셨습니다. 저는 회 
 장님이 급한 용무 때문에 차를 세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게 아니셨습니다. 회장님은 중국의 화장실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재래식 중국의 공중화장실은 아마도 전세계 
 에서 가장 불결하고 더러운 곳일 것입니다.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시고 나신 회장님은 잔돈을 거스름돈으로 받으셨습니다. 이 
 '이각'짜리 화폐는 그때 회장님께서 화장실에서 직접 받으신 거 
 스름돈의 일부였습니다. 회장님은 갑자기 그 거스름돈 중에서 유 
 난히 이 화폐를 유심히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봐, 이 여인은 분명히 우리 조선 여인의 얼굴 
 이야.봐,이 표정 봐.을 밑에 선 봉선화 같지 않아.' 회장님은 이 
 돈에 새겨진 이 조선족 여인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이 
 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 슬픈 조선의 얼굴이다. 눈물나도록 슬 
 픈 우리들 엄마의 얼굴이다. 우리 엄마의 엄마.그 엄마를 낳은 
 할머니, 그 할머니를 낳은 할머니의 할머니 얼굴이다. 또한 시집 
 간 누이의 얼굴이다. '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회장님은 이 돈을 자 
 신의 지갑 속에 넣으셨습니다. 그때부터 이 돈은 회장님의 부적 
 이 되었습니다. 회장님은 가끔 이 돈을 꺼내 이 돈에 새겨진 조 
 선 여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도 하셨습니다. "
  한기철은 얼굴을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회장님은 이 여인을 사랑하셨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이 여인
은 회장님의 연인이셨습니다. "
  나는 감상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말을 
잘랐다 
  '10년 전 이 지폐를 발견했을 때 김 회장님에게 도대체  
일이 있었습니까." 
  한기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잠시 말을 꿀었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말을 받았다 
  "그때가 아마 90년대 초일 것입니다. 그 무렵 회장님은 북한의 
  주석 김일성의 초청을 받고 열홀 동안 북경을 거쳐 평양에 다녀 
  왔었습니다. "  
  한기철은 말을 이었다
  "김 회장님은 국가 당국과 안기부 측의 허가를 받고 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80년대 말부터 북한에 들어가셨습니다. 지금은 이렇 
 게 말씀을 드려도 좋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북한으로 들어간다 
 는 것은 생사를 건 극비사항이었습니다. "
  "한 선생님도 함께 평양으로 들어갔었습니까."
  "저 역시 회장님을 모시고 북경에서 조선 민항기를 타고 북한 
 으로 들어갔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북한에 갔을 때는 회장님의 
 첫 번째 방문은 아니셨습니다.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회장님은 서 
 너 차례 북한을 방문하셨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아무튼 평양에서 
 머무는 열흘 동안 세 번 김일성 주석을 만났었습니다. 열흘 후 
 북경으로 돌아온 바로 그 날 회장님은 이 지폐를 발견하셨습니다.
 열흘 동안 분단된 조국의 비극을 직접 체험하면서 마음이 착잡 
 하셨다가 이 지폐를 본 순간 마치 피를 나눈 혈육과 같은 느낌 
 을 받으셨던 모양입니다. "
  나는 한기철의 표현대로라면 김기섭 회장이 사랑했던 연인, 10
 년 동안 부적처럼 지갑에 넣어 심장이 뛰는 가슴속에 품고 다녔 
 던 연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연인의 얼굴에도 김기섭 회 
 장의 몸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묻어 붉은 얼룩자국이 번져 있었다.
지갑 속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지갑의 칸들을 자 
세히 살펴보았다. 한기철이 말했던 대로 나를 만나자는 용건이 
바로 이 지갑 때문이었다면 또 다른 유물이 지갑 속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지갑은 텅 비어 있었다.
  "이 지폐 한 장이."
 나는 한기철을 쳐다보았다.
  "저를 만나자는 바로 그 이유입니까.'
  "아, 아닙니다. "
 한기철은 손을 내저었다.
  "회장님의 부적이었던 지폐 한 장과 빈 지갑을 보여 드리기 위
 해서 정 선생님을 만나자고 한 것은 아닙니다. 저회도 처음에는 
 지갑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모두 그것뿐인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 
 다. 그런데 비서실에 있던 다른 직원 하나가 지갑 속에서 비상용 
 주머니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
 한기철은 지폐를 넣기 위해 만들어 둔 칸 속에 따로 마련된 작
은 속주머니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마치 비상용으로 수표 같 
은 것을 접어서 넣어 숨겨둘 만한 정도의 작은 공간이었다. 그 
공간은 작은 지퍼로 밀폐되어 있었다. 그 공간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마치 가죽의 일부분인 것처럼 같은 빛깔의 지퍼와 
짜깁기로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주머니를 제가 뒤져봐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위장된 비상용 주머니를 가리키면서 한기철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
  그는 선선히 대답했다 
  나는 지퍼를 조심스레 열어 보았다. 엄지손가락 하나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주머니 속에는 접혀진 종이 한 장
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꺼내 들었다. 
  종이는 네 겹으로 접혀져 있었다. 접혀진 종이를 펼치자 작은 
메모지 정도 크기의 종이가 되었다. 횐 종이는 아무것도 인쇄되
어 있지 않았으며, 빈 백지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그 백지 위에는 
낙서와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흘려 쓴 게 아니라 또박또박 
정자로 쓴 문자였으므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글자들이었다. 나
는 백지 위에 씌어진 글자를 읽어 보았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모두 열 자로 된 단문이었다
  또한 열 자의 한자어 모두가 특별히 어렵고 난해한 한자어가 
아니어서 자세히 뜻을 살펴보면 내용이 쉽게 판독될 수 있을 정 
도의 쉬운 문장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평이한 문장 
이었지만 그 뜻은 쉽게 헤아려지지 않았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이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내가 묻자 한기철이 대답했다
  "저희들도 정확한 뜻은 모르겠습니다만 대강 이런 뜻이 아닐 
까요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
다."
 순간 나는 이 열 자에 불과한 단문이 죽은 김기섭 회장의 인생 
철학이며 평생에 걸친 그의 좌우명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서 김 회장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을 때 
유일하게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단 하나의 유류품인 지갑, 그 
지갑의 맨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몇 개의 한자어로 되어 있 
는 문장 하나.
  "이 글을 쓴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는 한기철을 쳐다보았다.
  "회장님이십니다. "
  한기철은 대답했다.
  "저는 회장님의 필체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회장님이 직접 쓰신 글씨입니다. "
  "그렇다면."
  나는 다시 물었다.
  "이 문장 역시 회장님께서 직접 창작한 내용인가요"
  "글쎄요. 전 그렇게 보지는 않습니다. 회장님께서 직접 한자어로 
문장을 만드실 만큼 한문에 조예가 깊지는 않았으니까요.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글은 고전에 나오는 문장 속에서 한 
줄 따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어떤 책을 보다가 이 말이 
회장님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회장님은 이 문장을 
자신의 평생에 걸친 좌우명으로 삼아 늘 가까이 두고 일상의 경 
계로 삼으셨을 것입니다. 정 선생님은 회장님의 호가 무엇이 
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회장님께서도 호를 갖고 계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자주 쓰시지는 않았습니다만 분명히 갖고 계셨습 
니다. 그분의 생신을 맞아 개관할 기념관도 그분의 호를 빌려서 
이름을 지으려고 합니다. " 
  "호가 무엇인데요."
  내가 묻자 한기철은 식탁 위에 놓인 종이에 쓰인 문장 중에서 
한곳을 가리켰다
  "여수입니다. 바로 '물과 같다'는 뜻이지요. 저희 비서실 
에서도 회장님이 언제부터 '여수'라는 호를 사용하셨던가를 정 
확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마 20년이 훨씬 넘었을 것입니다. '물 
과 같다'는 회장님의 호 '여수'를 도대체 누가 지어 주었는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지갑 속에서 이 종이가 발견된 
이후에는 회장님이 스스로 이 문장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
다'라는 다섯 자 중에서 '물과 같다'는 두 개의 한자를 빌려 호를
직접 만드신 것이 분명하게 밝혀진 것입니다. "  
  한기철은 말을 이었다
  "기념관의 이름도 '여수기념관'으로 정해졌습니다. 결국 이 열
개의 한자어는 회장님께서 평생을 두고 자신의 본보기로 삼은
금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문장 중에서 두 자를 골 
라 자신의 호를 삼을 만큼."
  한기철은 다시 술을 따랐다. 쉬지 않고 마셨으므로 술병은 다
시 비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술을 시키지 않았다. 
  "저희들은 이 문장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의 글인가,
그 원전을 모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회장님께서 이 문장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는 가는 지갑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들어 
있었으며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필사하셨으며 그 문장 중에서
두 자를 빼어 자신의 호로 삼으신 것을 보아 분명히 알 수 있 
습니다. 헌데 저희는 문헌상의 출처인 전거를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정 선생님을 뵙자고 요청을 드린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
유리창 밖 작은 정원에는 햇솜을 두른 것처럼 흰눈이 한 겹 쌓 
여져 있었다. 그새 그쳤는지 더 이상 눈은 내리지 않고 있었다.
  "정 선생님께서 이 문장이 어디서 왔는가 그 출처를 밝혀 주십 
시오. 선생님이야말로 이 일의 적임자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 
다. 이 일은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돌아가신 김기섭 회장님의 내 
면을 파헤치는 데 아주 중요한 실마리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 
니다. "
 그는 동의를 구하듯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나는 대답 대신 탁자 위에 놓인 김기섭 회장이 직접 쓴 출처불 
명의 문장을 바라보았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
 이 문장에서 호를 따 온 여수 김기섭.
굳이 표현하자면 흐르는 물처럼 살아가려 했던 김기섭. 
그에 있어 이 열 자의 한자어야말로 그의 평생에 걸친 기업활동의
모티브였던 것이다.
  "어떠십니까. 정 선생님,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문장의 출 
처를 밝히시는 데 힘이 되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한기철은 내게 동의를 구하면서 말을 맺었다.
  "돌아가신 김 회장님께서 정 선생님은 사업과 관계 엄이 만나
겼던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저희를 도와주시지 말 
고 돌아가신 회장님을 도와주십시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하였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  
  그러자 한기철은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마치 10여
년 전 프랑크푸르트의 호텔 로비에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
듯이.
  "도와주실 줄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정 선생님."
  한기철은 건배를 하자면서 술을 한 병 더 시켰다. 술이 오자 
그는 잔에 가득 술을 따라 내게 내밀었다.
  우리는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그 날 밤 늦게 우리는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에 나는 다른 메모지를 구해 김기섭 회장의 지갑 
속에 들어 있던 그 문장을 따로 천천히 베껴 썼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나는 그 메모지를 접어 내 지갑 속에 넣었다. 그 순간 나는 죽 
은 김기섭 회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마치 계주경기에서처럼 내 
손에 바통터치를 하듯 스치는 것을 느꼈다.
  단 열 자의 단문으로 된 이 짧은 문장만으로 그 원전의 출처를 
찾는다는 것은 한강 백사장에 떨어진 바늘 하나를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해낼 것이다.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기철과 헤어져 눈 내린 도심을 걸었다. 끊겼던 눈발이 
다시 흩날리기 시작하였고 매운 찬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밤이 
늦었고 눈이 많이 내렸으므로 거리에는 인적이 끊기고 차량의 
불빛도 드물었다. 택시를 타기 위해 지나가는 차들마다 손을 내  
밀면서 나는 중얼거려 말하였다.
  "바퀴벌레 김기섭. 당신은 평생 재물을 모았지만 지갑 속에는
 단돈 이십원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웃음이 터져 흘렀다. 유쾌해서 웃고 또 웃었다.
  
    제 3장 비밀의 열쇠 
  
   내가 석전 이석현 선생이 혈압으로 쓰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은 
것은 아마 4, 5년 전쯤의 일이었을 것이다. 석전은 서예가이자 
한학자였다. 특히 한문에 조예가 깊고 금석문에 해박하였다. 
필경 옛 비석이나 그릇 또는 쇠붙이 등에 새 건진 금석들을 해석
하는 데는 당대 제일인자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문에도 
조예가 깊어 많은 사학도들이 직접 찾아가 한문을 배우기도 했었다.
  내가 석전을 만나게 된 것도 한문 때문이었다. 역사소설을 쓰 
다 보면 수많은 자료 속에서 도저히 해석이 안 되는 한문으로 된 
문장들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옥편을 찾아봐도 그 뜻을 
알 수 없는 것이 한문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석전은 단 한 번도 
그 뜻을 풀이하는 데 막힘이 없었다. 중국에서 나온 오래된 원전 
이든, 국내에서 편찬된 고서든 문장 하나만 보더라도 금방 그 출 
처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혜안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석전이 쓰러졌다는 소문을 전해들은 것이 벌써 4, 5년
전의 일이었다. 그 소문을 듣고서도 나는 한 번도 문병을 가지 
않았었다 
  석전은 이미 고희가 넘은 나이일 것이다. 무엇이든 해박하고
걸림이 없지만 평생을 서도에 전념해 왔으므로 풍을 맞아
반신불수의 몸이 되었다는 것은 곧 그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
다 
  그는 평소에 서예란 말을 몹시 싫어했다. 
  "글은 예가 아니다. 글이 예라면, 그렇다면 글을 쓰는 것이 
기생이란 말이냐."  
  그러고 나서 그는 말했다 
  "글은 예가 아니라 도인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그는 도인이었다. 서도에도 명인이자 달인이었  
지만 글씨를 써 출품을 하거나 글을 써서 팔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평생 궁색하였다. 그러나 늘 한가롭고 여유가 있었다. 그런  
데 공교롭게도 풍을 맞은 쪽이 오른쪽이라 다시는 붓을 들지 못  
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그 소문을 듣자 더욱 찾아가
지 못하게 되었다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몸의 오른쪽 부분이 마비가 되어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그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 것은 참담한 기분이었다. 오른손이 
마비가 되어 다시는 붓을 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느니 죽는 것  
만 못한 산송장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석전이 다시 붓을 든다는 소문을 들은 것은 신문 지상 
에서였다. 아직 오른손이 자유롭지 못해서 왼손으로 새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고 그것도 주먹 전체로 쥐는 악필로 글을 쓴
다는 것이었다.
 신문기사에는 석전이 오는 신춘에 서도전을 열 계획이라는 내 
용까지 실려 있었다.
 신문기사가 사실이라면 이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평생 동안 단
한 차례만 서도전을 열었던 석전이 병마로 쓰러진 후 산송장이 
되었다가 재기해서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꾸어서 좌수로,
그뿐인가 필법까지 바꾸어서 악필로 새로이 서도전을 열 계획이 
라니. 이 노인이 그 동안 망령이라도 들었단 말인가.
내가 돈암동의 석전 집을 찾아 나선 것은 한기철을 만난 지 사 
흘째 되는 날이었다.
 죽은 김기섭 회장의 지갑 속에 숨겨져 있던 열 자의 한문 '재상
평여수 인중직사형'의 출처를 밝혀내려면 그 적임자는 석전 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석전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단 열 자로 이루어진 단문 하나를 들고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
그 전거를 밝혀 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막상 석전을 찾아가려 결심하자 나는 석전에게 미안하 
고 송구스러웠다. 병마와 싸우는 동안 찾아가 문병은커녕 하다 
못해 전화라도 걸어 문안인사도 못하지 않았던가.
 평소에 술을 좋아하던 석전을 위해 위스키 한 병을 들고 그의 
집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면서도 나는 혼자 빙그레 웃었다.
술 때문에 쓰러진 석전에게 다시 술 한 병을 사 들고 5년 만에 
방문하는 이 후안무치여. 이 뻔뻔함이여,
 지난 며칠 동안 내렸던 눈은 그 동안의 쌀쌀한 날씨로 계속 얼 
어 붙은 채 쌓여 있다가 갑자기 풀어진 봄날 같은 기후로 녹아 
흐르고 있었다. 지금은 보기 드문 한옥으로 이루어진 골목길은
처마 끝에서 녹아내린 눈으로 질펀하게 젖어 있었다. 
  경사진 언덕 위에 석전의 집이 있었다
  그 빗 그대로 퇴락한 한옥집이었다. 대문 위에 예전 그대로 석
전의 문패가 내어 걸려 있었다
  본능적으로 초인종을 찾다가 나는 대문을 밀었다. 대문은 열려
있었던 듯 손으로 밀자 그대로 열렸다 
  손바닥만한 마당에서 누군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온 나와 눈이 마주친 여인은 석전의 부인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5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듯 전혀 변하지 않은 얼굴로 부인은     
허리를 펴고 일어나 웃었다 
  "아다마다요. 들어가 보세요 기다리고 계십니다. " 
  부인은 마루를 향해 손을 가리켰다 
  출발하기 전에 미리 전화를 걸어 두었던 것이다. 댓돌 위에는  
낯익은 석전의 횐 고무신이 보였다. 고드름이 맺힌 처마에서는
계속 눈이 녹아서 물이 틱톡, 틱톡 떨어지고 있었다. 고무신 곁에 
하이힐 한 켤레가 놓여 있는 것으로 봐서 나보다 앞선 방문객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구두를 벗고 마루로 올라섰다. 방문은 열  
려 있었는데 안쪽에 한복을 입은 석전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접니다. "  
  방안으로 들어서자 석전은 귀에 익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자네 왔는가." 
  나는 엎드려 세배부터 하였다.  
  해마다 정초에는 찾아와 세배를 올리곤 했었는데 병마로 쓰러 
 진 뒤로는 적조했던 것이다.
  후원으로 향한 덧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석전의 집은 언덕 위 
 에 있었으므로 후원으로 향한 덧문을 열면 시야가 확 트여서 한 
 옥들의 지붕이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있었고 언덕 아래로 까마득 
 히 굽어 내려간 도시의 풍경이 그대로 한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열려진 문으로 봄볕과 같은 따사로운 양광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석전의 모습은 병마와 싸운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예전 그대로였다. 고희를 넘긴 노인의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아직 거동이 불편한지 앉아 있는 자세가 부자연스 
 러웠고 말하는 발음소리가 부정확하고 약간 어눌하였을 뿐이다.
  노인 옆에 웬 여인이 앉아 있었다. 여인은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로 먹을 갈고 있었다. 석전은 여자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여 
자 중에서도 젊고 예쁜 여자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여색을 
 탐하거나 호색하는 편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끝의 꿀이 아니라 끝의 향기야,"
  그래서 석전의 곁에는 여자가 그칠 새가 없었다. 석전은 자신 
을 따르는 여자들을 신도라고 부르고 그 여신도들은 석전을 교 
주님이라고 부르곤 했다.
  문 밖에서는 자신의 늙은 아내가 한겨울에 빨래를 하고 있는 
 데도 방안에서는 젊은 여인을 옆에 앉히고 여인의 향기를 맡고 
있는 석전. 그러한 모습을 보자 나는 석전이 비로소 죽음에서 일 
어나 신생하였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먹을 갈고 있는 여인의 정성들인 태도를 보아 아마도 석전에 
 게 글이라도 한 장 받아 가려는 모양이었다. 남에게 글을 써주는 
것에 까다로운 석전은 그러나 젊고 예쁜 여자들이 부탁을 하면  
의외로 쉽게 써주는 버릇이 있었다. 봄을 맞아 신춘 휘호라도
한 장 얻어 가려는 듯 여인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먹을 갈 
고 있었고, 석전은 이제라도 마악 붓을 들어 글을 쓰려는 듯 방  
바닥에는 한지 몇 장이 놓여져 있었다
  "인사하시지, 이쪽은 소설 쓰는 정상진이고 이쪽은 나의 여자
신도이지. 뭔 말인 줄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
  호호호 여인이 입을 가리고 웃고 나도 웃었다.
  "가져온 게 뭔가."
  "술입니다. "  
  "위스키,"
  "그렇습니다. "
  "그것 좋지. 한 잔 할까,"  
  "하지만."
  나는 망설였다. 천하의 호주 석전이라고는 해도 쓰러져서 반신 
불수의 5년을 보냈잖은가. 그것도 술 때문에. 
  "하지만이고 뭐고 한 잔 따라 봐."
  석전은 등뒤의 석상에서 유리잔을 집어들어 내게 내밀었다. 나 
는 할 수 없이 마개를 따고 술을 한 잔 따랐다
  "애기야, 느두 한 잔 할까나,"  
  석전은 먹을 갈고 있는 여인에게 물었다  
  "안 마실랍니다. "
  여인은 교태가 있었다  
  '벌건 대낮 아닙니까."  
 벌건 대낮이 아니면 얼마든지 마시겠다는 듯 여인은 자꾸 입 
 을 가리고 웃었다. 석전은 내게도 술을 따라주려 했지만 아무래 
 도 손이 불편한 듯 술병을 쥔 손이 수전증 걸린 것처럼 와들와 
 들 떨리고 있었다.
  "제가 따라 마시겠습니다. "
  나는 자작했다.
  "자, 마시자구."
잔을 들어 건배한 후 석전은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병마 때 
문인지 예전처럼 벌컥벌컥 술을 들이켜는 것이 아니라 혀 끝에 
술을 축이는 정도였다.
  "그래 몸은 좀 어떠십니까."
  "많이 났어. 헌데 말이야, 자지가 예전 같지 않아."
 석전은 옆에 여인이 앉아 있든 말든 상관치 않고 입을 열어 말 
 하였다.
  "몸뿐 아니라 자지도 풍을 맞았나봐. 그래서 말이야, 답십리 어 
 딘가에서 침까지 맞았어. 그래도 안돼."
  석전은 당장이라도 바지를 벗어 보일 듯 고의춤에 손들 집어 
 넣었다. 시도 때도 없이 고의춤에 손을 집어넣고 사람이 있건 없 
 건 성기를 만지작거리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언젠가 한번은 
 여신도를 옆에 앉혀 두고 먹을 갈게 하고는 베개를 깔고 누워서 
 고의춤에 손을 넣고 있었다.
한복의 바지가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리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도대체 뭘 하고 계십니까,"
 내가 민망한 목소리로 묻자 석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었다.
  "뭘 하긴.그냥 꽃향기에 취해 있을 뿐이네."
  석전은 흘깃 먹을 갈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쳐다본 후 말을 이
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바람에는 바람이지. 몸에 풍을 맞았으니
이를 푸는 것도 오직 풍뿐이네. 풍 중에 으뜸이야 계집이 아닌가.  
안 그런가."  
  여인은 여전히 호호호 웃고 있었다. 나는 대답했다.
  "전 모르겠습니다. "
  그러자 석전이 내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왔는가."  
  "오랜만이라 세배 드리러 왔습니다. 문안인사 드릴 겸도 해서  
요."
  "그것말고 또."
  석전에겐 과연 비범함이 있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었다  
  "실은."
  나는 솔직하기로 했다 
  "선생님께 여쭤 볼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
  "뭔 데 ."  
  나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 지갑 속에서 김기섭 회장  
의 지갑 속에 들어 있던 문장을 베낀 메모지를 꺼내들었다. 
  "최근에 우연히 문장 하나를 발견했는데 영 오리무중이라서." 
  "자네 요즘두 역사소설 쓰는가."  
  "소설 때문에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
  "이리 줘봐." 
  나는 그에게 메모지를 건네주었다. 그는 탁상 위에 놓인 안경 
  을 집어들고 썼다. 그리고 비스듬히 앉은 채 그 문장을 읽어내렸 
 다.
  "뭐 야."
  그는 시시하다는 듯 그 메모지를 내어 던졌다. 그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됐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인가 자신 있을 때면 
 그는 집어던지는 버릇이 있었다. 자신 있을 때면 그는 던졌다. 붓 
 을, 화선지를. 어떤 때는 벼루를.
  "도대체 무엇을 알고 싶어 왔는데. 문장의 뜻인가."
  "아닙니다. "
  "그렇다면 문장의 뜻은 알고 있단 말인데, 네 이놈 어디 한번 
 일러 보아라."
  "글쎄요."
  나는 웃었다 나는 거칠게 몰아붙이는 석전의 태도로 봐서 이 
 미 찾아온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된 바에 
 야, 한 방망이 얻어맞거나 먹물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아쉬울 것 
 이 없었다.
  "이런 뜻이 아닙니까.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
 르기가 저울과 같다. "
  "그것말고 또."
  "그것말고 또 있습니까."
  내가 능청떨자 석전은 고함을 질렀다.
  "미친놈. 당장 돌아가, 이 나쁜 놈아."
  "돌아간들 갈 데가 있어야지요."
  "헛허허. 미친놈."
  느닷없이 석전은 먹을 갈고 있는 여인의 손을 끌어 자신의 손  
으로 어루만졌다. 여인은 웃기만 할 뿐 손을 뿌리치거나 내어치
려 하지 않았다
  "도대체 뭘 알고 싶어 왔는데."  
  "그 문장이 어디서 나온 말인가 그 전거를 밝히기 위해서 찾아  
왔습니다. "
  "...이놈아, 그것두 몰라."
  "그렇다면."  
  나는 다시 능청을 떨었다
  "선생님은 아십니까." 
  "이놈아, 내가 모르는 것이 있더냐. 어디 한번 일러 보아라. 내
가 뭘 모르던지."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 
  "엣따 이 미친놈."  
  석전은 잡았던 여인의 손을 획 뿌리치면서 껄껄 소리내어 웃
었다
  "이 문장은 <가포집>이란 책 속에 나오는 글이다. 뒤에 
이 책을 쓴 저자는 자신이 쓴 시를 추려서 따로 한 권의 책을 더  
만들었다. 그 책의 이름은 <적중일기>. <가포집>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창화시, 즉 시를 읊으면 다른 사람이 받아 노래하는
 화답시인데 이 문장은 만년에 저자가 자영해서 뽑아 추린 
<적중일기>에도 함께 보이고 있다. 저자가 직접 쓴 시라고도 하고
혹은 저자가 죽은 뒤 그의 인격을 기려서 주위 사람들이 쓴
만시라고도 부르고 있다. "
  석전을 쓰러지게 한 풍의 화살도 그의 육체는 꿰뚫었지만 그의
기억력이나 총기는 무너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가 누구입니까."
 내가 묻자 석전은 딴청을 부렸다.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언제 말씀하셨습니까."
  "이눔아."
 석전은 소리쳤다.
  "이 글을 쓴 사람이 자신이 쓴 시를 모아 을 만들었다 
  고 말하지 않았더냐."
  "그렇다면 쓴 사람의 이름이 가포입니까."
  "이눔아, 가포라는 이름이 어디 있느냐. 가포라는 것이 호면 몰 
  라도."
  "그렇다면 가포가 누구입니까."
 나는 다시 한번 되물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무엇을 하던 사람입니까. 시를 쓰고 글을 
  짓던 문사입니까."
  "그것말고 또."
 석전은 머리를 흔들면서 말하였다.
  "평생 자신이 쓴 창화시를 따로 모아 가송할 만한 시가 
  수백 수가 넘지만 가포는 시인은 아니다. "
  "그러하면."
 내친김에 다시 한번 묻자 석전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내가 어찌 그를 알겠느냐,"
 그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그의 얼굴은 진지한 표정으로 
 정색을 하고 있었다.
  "그는 도인이다. "
  "도인이라면 스님입니까."  
  "중이 될 뻔했지만 중은 아니었다. " 
  "그렇다면 무슨 도인이었습니까."  
  순간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던졌던 붓을 다시 집어들었다.  
붓에 먹을 묻히자 옆에 앉아 있던 여인이 반사적으로 종이를 펼 
쳐들었다. 석전은 다시 손바닥으로 붓을 세워 들었다. 그는 종이  
위에 단숨에 글을 써 내려갔다. 여전히 일필휘지였다.
  석전이 쓴 글자는 단 두 자였다. 나는 그가 쓴 글자를 쳐다보  
았다. 종이 위에는 다만 이렇게 씌어져 있을 뿐이었다. 
  '상도'  
  나는 석전이 종이 위에 쓴 두 자의 글씨를 바라보았다.
  이 두 자의 뜻은 무엇인가, 굳이 말하자면 '상업의 길'이란 뜻  
이 아닐 것인가. 하지만 이 말은 흔히 쓰여지는 단어는 아니다. 
흔히 '길 도' 자는 종교적인 의미로 쓰여지는 단어가 아닐  
것인가. 이를테면 수도라든가, 석전이 자신을 서예가라면 
싫어하고 굳이 서도인이라고 자신을 표현하듯이. 
  나는 석전을 바라보았다  
  "가포는 상인이었습니까.'  
  그러자 석전은 대답했다  
  "그렇다. 가포는 장사꾼이었다. "  
  "한갓 장사꾼에 불과한 사람을 어찌해서 선생님은 도인이라고  
부르셨습니까. 게다가 상도라는 명칭을 붙이겠습니까,"  
  "이눔아," 
  갑자기 석전은 소리를 높였다  
  "너는 명색이 작가라면서 어찌 그것을 모르느냐. 이 세상에 도 
가 아닌 게 어디 있겠느냐 거지에게도 거지의 도가 있으며, 성인 
은 성인의 도가 있다. 계집은 계집으로서의 도가 있으며, 하늘을 
나는 새도 새 나름의 도가 있다. 이 세상에 도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느냐. 그리하여 일찍이 노자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도 
 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단순한 도가 아니다.' 이 말은 이 세상
만물 모두에게는 도의 본체가 있다는 뜻이다. 그 뿐이냐.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도둑놈이 누구인 줄 아느냐."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르겠습니다. "
  "역사상 가장 뛰어난 도둑놈은 도척 이었다. 사마천이 쓴 
<사기> 에도 도척을 대도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도척은 모질고 사나웠지만 그의 부하들 
은 도척의 신의를 한없이 칭찬하였다. 이런 판단으로 보면 혁대 
의 갈고리 단추를 훔친 자는 처형이 되고 나라를 훔친 자는 제 
후가 된다는 말이 사실이 되어 버린다. ' 그렇지 않으냐. 남의 돈 
천 원을 빼앗은 자는 강도가 되어 처벌을 받지만 군사를 일으켜 
탱크로 정권을 훔친 도둑들은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고 국회 
의원이 되어 버리지 않느냐."
  석전은 오늘의 현실을 빗대어서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5년 
간의 병상생활로 아직 혀가 온전히 풀리지 않아 말이 어눌하였 
을 뿐 말하는 힘과 속도는 여전하였다.
  "장자는 한갓 대도에 불과한 도척을 성인이라 일러 표현하였다.
 한 도둑놈 졸개가 도척에게 물었다. '도둑에게도 
도가 있습니까.' 그러자 도척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물론 도둑에
게도 도가 있다. ' 졸개 도둑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 
시 물었다. '어찌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놈에게 도가 있습니까.'
 그러자 도척은 대답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모두 도가
있는데 하물며 도에도 도가 있을 수 없겠느냐.' 이 말을 
들은 졸개 도둑은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면 도둑의 도에 이르 
겠습니까.' 그러자 도척은 말했다. '그냥 도둑이 되고 싶다면 그 
냥 남의 물건을 훔치면 된다. 그러나 네가 정말 큰 도둑이 되고 
싶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도가 있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절대로 대도를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 졸개 도둑이 비로 
소 도척에게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스승님, 저에게 도둑으로
서의 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도척은 이렇게 대답 
하였다. " 
  석전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막힘이 없었다. 그 
 러나 단숨에 많은 말을 토해냈기 때문에 그는 숨이 가빴다. 
  "아가야."
  석전은 옆자리에 앉은 여인에게 말하였다  
  "얼른 물 한 잔 갖고 오너라."  
  여인이 물을 갖고 오자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 석전은 다시 말 
 을 이었다
  "도척은 도둑의 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집안에 
간직한 재물을 밖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을 성이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1의 도다. 그 다음엔 선두에 서서 남 
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용이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
야 할 제2의 도다. 그 다음엔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3의 도인 것이다. 그 다음엔 도 
둑의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 지라고 한다. 이것이 도 
둑이 지켜야 할 제4의 도인 것이다. 가장 마지막에는 훔쳐온 물 
건을 덜 갖고 치우침 없이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5의 도인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의 도를 터득하지 못하면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큰 도둑은 절대 
로 되지 못할 것이다. '"
  석전은 나를 쳐다보았다.
  "성, 용, 의. 지, 인. 이 다섯 가지의 도를 터득하지 못하면
 절대로 큰 도둑이 되지 못한다고 도척은 말하였다. 이것이 
'도둑의 도'란 것이다. 이름하여 '도도'라고 부른다. "
  석전은 느닷없이 자신이 쓴 종이를 내게 집어던지면서 일갈하 
 였다.
  "이눔아, 한갓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에게도 '도둑의 길'이 
 있는데 어찌하여 남에게 물건을 파는 상인에게 '상인의 길'이 
 없다고 하겠느냐. 네가 좀 전에 보여주었던 문장을 쓴 사람은 큰 
 상인이었다. 한갓 큰 도둑에게도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도가 있 
 듯이 그 어른에게도 평생 동안 지켜 나간 상도가 있었다. 내가 
 그 어른을 도인이라고 부른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
  "그렇다면 그분의 존함은 무엇입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물었다. 석전은 내 얼굴을 물끄러 
 미 바라보았다. 잠시 짧은 침묵 끝에 석전은 대답하였다.
  "그 어른의 이름은 임상옥이다. 본관은 전주이고
자는 경약이며, 호는 가포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 대략 1800년대
중반 사람으로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의
주 상인이다. "
  임상옥.
  마침내 석전의 입을 통해 밝혀진 이름. 독일의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숨을 거둔 김기섭 회장의 지갑 속에 깊숙이 숨겨져 
있었던 수수께끼의 문장. 열 개의 한자로 된 '재상평여수 인중 
직사형'의 문장을 쓴 상인의 이름, 임상옥. 기평그룹의 기획조정
실장 한기철의 추측이 정확하다면 김기섭 회장의 좌우명이었던 
이 금언을 통해서 김기섭은 평생 동안 임상옥이란 사람을 사숙 
해온 사실이 마침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임상옥, 그는 누구인가  
  그날 오후 늦게 나는 석전의 집을 나섰다  
  저녁을 먹고 가라고 석전은 만류하였지만 날이 어둑어둑 해지
기 전에 집을 나서기로 하였다. 저녁을 먹고 가면 아무래도 석전  
의 부인을 수고롭게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일어서기로
하였다  
  그러나 석전에게 헤어지기 전에 부탁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김기섭 회장의 지갑에서 나온 문장을 석전의 글씨로 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석전은 쉽게 남에게 글을  
써주지 않는다는 것을, 개인적인 친분도 그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내키는 대로 써 주고 말고 하 
였던 것이다.
  "글을 한 자 써 주시겠습니까."
  일어서기 전에 내가 눈치를 보면서 말하자 석전은 의외로 선선히
 대답하였다.
  "무슨 글을 받고 싶은데."
  "임상옥의 문장입니다. 좀 전에 보여 드렸던."
  "자네는 글쟁이지 장사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훗날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그럼 먹을 가시게나."
  나는 벼루에 물을 부어 먹을 갈았다. 충분히 먹을 갈기를 기다 
 려 석전은 붓에 먹을 이리저리 묻혀 」_았다. 충분히 붓에 먹이 
 스며들기를 기다려 석전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는 온몸 전체 
 로 붓을 쥐듯 혼신의 힘을 다해서 붓을 세워들었다. 내가 선지를 
 펼치자 그는 비수를 들어 맹수의 숨통을 끊어버리듯 격렬한 몸 
 짓으로 붓을 종이 위에 내리찍었다. 그의 손은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지만 그 떨림이 오히려 필체에 독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 
 다. 그는 일순의 머뭇거림도 없이 단숨에 종이 위에 열 자의 문 
 장을 써내려갔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단숨에 문장을 종이 위에 휘지하고 나서 석전은 붓을 던 
져 말하였다.
  "이 열 자의 글 속에 수미산이 다 숨어 있다. 이 열 자 
의 팎은 문장 속에 임상옥의 상도가 다 깃들어 있는 것이다. "
입이 타는지 석전은 술을 입가에 적셔 향기를 맡고 나서 입을 
열어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몹시 지쳐 보였다.
  "나이 40세 때 임상옥은 자신의 늙은 어머니께 말하였다. 그때 
임상옥의 노모는 자신의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한다. '아들아,
네가 조선에서 제일 가는 부자라고들 하는데 네가 도대체 얼마
만큼의 갑부이냐.' 그러자 임상옥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머니. 
제 은괴를 쌓으면 마이산만하고 제 비단을 쌓으면 저 남문루만
합니다. ' 그러나 도대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마이산만큼의 
은괴를 갖고 있고, 남문루만큼의 비단을 갖고 있다 하여도 
그의 누만금은 이제 간 곳이 없고 오직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이 한 줄의 시뿐이 아니겠는가, 아니 그런가."
  열린 문 밖으로 어두워져 가는 겨울 저녁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땅거미가 내리자 푸근했던 날씨가 다시 쌀쌀해지기 시작 
한 모양이었다. 이야기 도중에 석전 옆에 앉아 있던 여인은 어느 
새 나가 버리고 방안에는 석전과 단 둘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석전도 몹시
지치고 피로해 보였다. 나는 석전이 써 준 글씨를 구겨지지 않도
록 둘둘 말아 들고서 방을 나섰다. 한사코 저녁을 먹고 가라고 
만류하던 석전은 막상 내가 일어서자 쳐다보지도 않고 딴청을 
부리면서 중얼거려 말하였다  
  "갈 테면 가고 말 테면 말아라."
  "성은이 망극합니다. 만수무강하옵소서."  
  나는 석전을 만날 때마다 하던 버릇대로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도망치듯 석전의 집을 나섰다
  언덕길은 어두워져 있었다  
  가로등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거리에는 벌써 노점상들이 나와
있었다. 푸근했던 한낮과는 달리 저녁이 되자 날씨가 쌀쌀해져서 
녹았던 물기가 살얼음이 되어 거리는 미끄러웠다. 미끄러지지 말 
라고 여기저기 구공탄 재를 던져버린 곳을 찾아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해냈다.
  마침내 석전의 집을 찾아온 소기의 목적을 이룬 것이다.
  독일의 고속도로 위에서 흘로 차를 타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김기섭 회장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단 하나의 유류품인 낡은 
지갑 .그 지갑 속에 들어 있던 수수께끼의 문장의 출처를 밝혀낸 
것이다. 그 수수께끼의 문장은 임상옥이 말년에 쓴 만시였던 
것이다. 임상옥은 비록 150년 전에 죽은 우리나라 최고의 거 
상이었지만 그는 다른 역사적 인물만큼 잘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김기섭 회장은 임상옥을 마음속으로 존 
경하고 그를 사숙하였던 것일까. 그를 사숙하지 않았다면 그가 
쓴 만시 한 문장을 직접 써서 지갑 속에 넣어 가지고 다녔을 리 
는 없는 것이다. 그뿐인가. 김기섭 회장은 임상옥이 남긴 문장 
'재상평여수'에서 두 개의 단어를 취해 '여수'를 자신의 
호로 삼지 아니하였던가.
  석전은 일개 장사꾼에 불과하였던 임상옥을 도인으로 표현하 
였고, 그뿐 아니라 그를 '상도'를 터득한 성인이라고까지 
극찬하였다. 누구든 입에 오르면 사기꾼에 도둑놈이 되어 버리는 
 독설가인 석전의 입에서 성인으로까지 칭송받은 임상옥을 그렇 
다면 김기섭 회장도 평생을 통해 존경하고 사숙할 만큼의 사표 
로 생각해 왔었단 말인가,
 한옥으로 이루어진 경사진 골목길을 내려오면서 나는 중얼거 
렸다.
  죽은 김기섭 회장이 그토록 존경하였던 임상옥, 그는 누구인가.
  날씨가 쌀쌀해지자 푸득 푸득 털갈이하는 짐승에서 잔털이 날
리듯 밤하늘에서 싸락눈이 다시 홑날리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석전으로부터 받은 종이가 구겨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천천히 언덕길을 걸어 내리면서 생각
하였다  
  석전이 그처럼 칭송하였던 임상옥, 그는 누구인가.
  그는 누구이며 어떤 생을 살아왔던 것일까  
  임상옥을 추적하는 것이 김기섭의 궤적을 추적하는 또 다른 
맥일지도 모른다
  나는 김기섭이 남긴 수수께끼의 문장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인물 임상옥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열 개  
의 글자로 된 짧은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이란 수수께끼의  
문장은 내게 임상옥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열어 보인 비밀의 열 
쇠였던 것이다 
  석전의 집을 다녀온 지 열흘 후쯤 나는 조간신문에서 뜻밖의
기사를 보았다. 언젠가는 몸이 회복되어 다가오는 새봄에는 봄맞  
이 서도전을 열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석전이 그만 다시 쓰러져 
영영 회복되지 못하고 죽어 버린 것이다 
  충격 속에서 나는 석전의 집을 떠나올 때 나누었던 우리들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떠올렸다. 그때 석전은 비스듬히 누워서 내게 
이렇게 말하였었다.
  "갈 테면 가고, 말 테면 말아라."
  마루 위에 앉아서 댓돌 위에 놓인 구두를 신으며 나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농담조의 작별인사를 했었다.
  "성은이 망극합니다. 만수무강하옵소서."
  그 말이 이 지상에서 나눈 석전과의 마지막 인사말이 되었다.
 만수무강하시라는 마지막 작별의 말이 그대로 어긋나 버리고 말 
 았다. 만수는커녕 한 식경의 단명으로 석전은 이 세상을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써 준 임상옥의 글이야말로 석전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유작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석전과 헤어져 
 온 다음날 나는 표구점에 가서 석전의 글씨를 액자에 넣어 표구 
 하였었다. 그 액자를 눈에 잘 보이는 벽면에 걸어 놓고 보면 볼 
 때마다 명품이라고 감탄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석전이 죽어 
 버린 것이었다.
  불과 두 달이 채 못되어 나는 두 사람의 지기를 잃어버렸다. 
한 사람은 기평그룹의 총수 김기섭이었으며, 또 한 사람은 
평생을 붓글씨 쓰면서 백면서생으로 보낸 야인 석전 이석현이었 
다. 두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고 공통점 
이 없는 전혀 이질적인 사람들이었지만 액자 속에 표구된 석전 
이 쓴 임상옥의 문장은 두 사람을 마치 탯줄처럼 연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김기섭과 이석현을 결합시켜 주는 연결고리, 임상옥에 대한 추적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제 4장 운명의 밤 
   
 1801년.재위 24년 만에 선왕이었던 정조가 49세의 나이 
로 승하하고 뒤를 이어 순조가 즉위한 그 원년인 신유년.
  임상옥은 청나라의 왕도인 연경에 도착하였다. 고향인 
의주를 떠난 지 거의 한 달 가까운25일 만의 일이었다.
  의주에서 연경까지의 거리는 2천 하고도 30리의 까마득히 먼 
길이었다. 하루에 백 리를 꼬박 걸어도 한 달 가까이 걸리는 노 
정인 것이다. 때문에 이 노정을 상인들이나 혹은 어쩔 수 없이 
해마다 동짓달이면 청나라에 사신으로 떠나야 하는 동지
들은 '아니 갈 수 없어서 가긴 가되 죽기보다 가기 싫은 길'
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나 한양에서 의주까지는 2천 리가 더 되어 왕복으로 치면 
한 번 다녀오는데 자그마치 8천 리의 먼 길인 것이다. 얼마나 먼
길이었으면 박지원은, 정조 4년에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너
8월 2일에야 청의 왕도인 연경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너서 10월 27일 귀국할 때까지의 중국 
여행기를 쓴 박지원은 이 에서 이 여행이 얼마나 고된 노정인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해가 기울어 땅거미가 들자 30여 군데에 횃불을 피워 놓고 톱 
으로 베어온 아름드리 나무를 먼동이 틀 때까지 계속 집어 던졌 
다. 또 군졸들이 횃불 주변을 돌면서 크게 나팔을 불면 일행 3백
여 무리가 일제히 함께 소리를 맞춰 고함을 치는데 이것은 무인
지경의 산 속에서 뛰어나올지도 모를 호랑이를 쫓기 위한 것이  
다. '
  박지원의 표현대로 연경으로 가는 만리길은 호랑이가 뛰어나
올지도 모를 험로였던 것이다. 그뿐이랴. 국경지역은 변계라서
중죄를 지은 죄인들의 귀양지고 사나운 도둑들이 득실거리
는 무법천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마을마다 여인숙은 있지만 이불
보따리를 일일이 짊어지고 다니지 않으면 마을에서는 떠돌이 도
둑인가 싶어서 잠조차 재워 주지 않는 그런 사지였다.
  임상옥이 연경에 도착한 것은 그 해 가을 9월이었다. 이미 수차  
례 연경을 드나들던 임상옥이어서 2천30리의 연경길이 제 손바 
닥 보듯 훤하였지만 이번의 여정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초행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임상옥이 처음으로 연경에 간 것은 18세 때 사행길에 따라나
서면서였다. 그때 임상옥은 사신 행렬의 말몰이꾼으로 고용되었 
었다.
 그의 아버지 임봉핵도 의주 상인이었으며 주로 사신 
 행렬을 따라서 연경을 드나들어 후시무역을 하던 보따리장 
수였다.
 원래 임진왜란 중인 1593년부터 압록강의 난지도에서 조선의 
기근구제와 군미 조달을 위해 중국과의 국제교역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이를 섬의 이름 중강을 따서 중강 개시라 하였다.
개시무역은 국가에서 공인한 공 무역으로 바로 중강 개시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국제교역이 활성화된 것은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 
나라가 중국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던 17세기부터였다.
  오늘날의 압록강 지역을 자신들의 모태로 해서 중국을 지배할
수 있었던 청나라는 자연히 회령, 경원, 책문 등의 변경지역에
시장을 속속 개시하였던 것이다. 책문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변경도시 의주는 따라서 중국과의 무역을 하는 최전 
방의 상도였던 것이다.
  당시 조선의 상권은 세 곳의 국경지대에서 좌우되었다. 대마도 
 의 일본 장삿배를 상대하였던 동래의 왜관, 여진족의 담비가죽을 
사들이던 회령 ·경원지방, 그리고 청나라와의 사이에 밀무역시장 
으로 유명했던 책문 후시였다.
  개시가 국가에서 공인하는 공무역이라면 후시는 상인끼리 
주고받는 일종의 밀무역이었다.
  이 세 곳의 국제 무역권 중에서도 그 으뜸은 천하의 중원 한복 
 판에서 중국 비단을 주로 취급하였던 의주 상인들이었다.
  중국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상인을 일컬어 만상이라 하 
였는데 이는 의주의 원 이름이 용만으로 고려시대 때까지 
는 용만현으로 불렸기 때문이었다.
  임상옥의 집안은 4대째 의주에서 만상을 하던 전통적인 장사 
꾼의 집안이었다. 그러나 만상이라 해도 큰 자본도 없는 보따리 
장수에 불과했던 임상옥의 아버지 임봉핵은 주로 해마다 청나라 
로 들어가는 동지사 행렬을 따라 북경으로 가서 인삼을 팔고, 그 
에 합당하는 비단을 사서 돌아와 되파는 보따리장수였던 것이다.
  임상옥의 아버지 임봉핵은 누구보다 중국어에 능통하였다. 중 
국어뿐 아니라 만주어에도 능통하여 사신 행렬에서는 자연 우대 
를 받고는 했다.
  그래서 임봉핵이 꿈꾸었던 소망 하나는 역과 시험에 합
격해서 역관이 되는 일이었다.
  임봉핵이 역관을 꿈꾸었던 것은 자신이 중국어에 능통하였을 
뿐 아니라 역관이 되면 큰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 
시 역관들은 사신들과 함께 중국에 파견되어 통역임무를 담당하 
고 있었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사신이 올 때면 조정에 나아가서 
통역을 맡곤 했었다.
  역관의 선출은 문과, 무과와 더불어 3년마다 한 번씩 실시되는 
과거시험인 역과를 통해 이루어지곤 했었다. 그밖에 수시로 국가 
에 경사가 있을 때는 이를 경축하기 위해서 증광시가 실시되어
역관의 수는 필요 이상으로 넘쳐 있었다.
 때문에 이들의 봉급을 일일이 줄 수 없었던 조정에서는 역관 
들에게 사신을 수행하여 외국에 갈 때마다 밀무역하는 것을 허 
락함으로써 자연 역관들은 떼돈을 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역관들이 무역자금으로 중국에 가져갔던 것은 주로 인삼이었 
다. 당시 인삼은 국내의 생산물 중에서 가장 높은 효용가치를 갖 
고 있었고, 중국에서는 약용으로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교역에 
유리한 품목이었다.
  이때 역관들에게 허락된 무역자금은 팔포 무역이었다.
팔포란 인삼을 10근씩 한 꾸러미로 묶어 모두 여덟 꾸러미 
까지 포장한 부피, 즉 80근의 인삼정액 내에서 역관들은 공공연 
하게 밀무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당시에는 인삼 1근당 은 25냥으로 환산하여 인삼 
80근 대신 은 2천 냥을 팔포정액으로 규정하였다. 이것을 당시 
쌀로 환산하면 수천 석에 해당되는 막대한 거금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역관들은 억대의 거부가 될 수 있었으며 박지원이 지 
은 에 나오는 거부 변승업도 바로 역관 출신이었던 것 
이다.
  임상옥의 아버지 임봉핵이 역관을 꿈꿨던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비록 해마다 사신을 따라 연경을 드나들며 통 
역을 하였지만 정식 역관이 아니었으므로 그가 취급하는 인삼은 
겨우 한 보따리, 즉 대여섯 근에 불과하였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 
한밑천 버는 것이지 대부분 금문에서 발각되어 압수를 당 
하곤 했었다.
  사신이 국경을 떠날 때에는 압록강 구룡정 나루터가 조선
땅덩어리의 마지막 언덕이었다. 사행이 떠날 때에는 구룡정 
까지 평안감사와 의주부윤이 관기들을 데리고 와서 최후의 석별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역관은 역관대로, 통인은 통인대로,
마두는 마두대로 끼리끼리 정을 나누며 석 잔 술을 마시고 
배에 올라서면 기생들은 일제히 부채를 펴 들고 배따라기를 부르 
곤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낭만적 풍경과는 달리 시행이 압록강을 건너는 
날이면 압록강변 모래바닥에는 첫새벽부터 출입을 금지하는 문  
이 세워졌다. 일종의 세관이 설치되는 것이다. 모래바닥에 깃발  
세 개를 꽃아 문을 삼고 의주부윤과 서장관이 지켜보는 자리에  
서 사행 따라 배를 타는 중인 3백여 명을 샅샅이 검색하는 것이 
다. 금수품을 조사하는 문은 첫째 문, 둘째 문, 셋째 문의 3문
 그 문 앞에서 웃옷을 풀어헤치고 바지 아래 사타구니까지 검 
색관이 쓱쓱 훑는데, 찾는 물건은 황금이나 진주, 담비가죽이나  
 인삼 등의 금수품들이었다  
  이 당시의 금법은 이런 조문이었다. '첫째 금문에서 발
 각되면 물건을 압수당하고, 둘째 금문에서 발각당하면 볼기를 까 
 고 곤장을 치며, 셋째 금문까지 숨겨 나오다가 발각되면 목을 쳐 
 서 금문 깃대 꼭대기에 내어건다. '  
  국경을 넘어가니까 아무리 사신 행차라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의 인상서도 꾸몄다. 성명, 거주지, 나이에다 생김새 등 
 신체적 특징들을 기록하는, 오늘날의 여권과 같은 호조였다.
  임봉핵은 번번이 첫 번째 금문에서 발각당해 인삼을 압수당하 
 곤 했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음성도강'이었다.
 의주 상인들은 사신 행렬보다 며칠 앞서 강을 건너가 미리 기다 
 리곤 했었다. 그러나 이런 보따리장사로는 호구지책 정도에 불과
  하였다  
  임상옥의 아버지 임봉핵은 네 번에 걸쳐 과거를 보았다. 그러 
 나 그는 번번이 낙과하였다. 누구보다 만주어에 능통하다고 자부
 하고 있었던 임봉핵은 그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선조가 비천한 계급의 종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임봉핵은 평생 노력해도 가난한 보따리장사꾼의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는 몹시 실망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임봉핵은 술에 취해 압록강에 빠져 죽었다. 임 
 상옥의 나이 스무 살 때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임봉핵이 술에 취
 해 실족해서 물에 빠져 익사했다고 말하였지만 실은 그가 세상 
을 비관하여 죽었다고 수근댔었다.
  임봉핵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압록강변의 통군정 앞 
모래밭이었다. 통군정 앞 백사장은 압록강변 중에서 제일의 절경 
으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일찍이 조선 중기의 문신 허굉은 서쪽 변방의 야인들이 번번 
이 국경을 침입하여 소란을 피우자 스스로 순변사가 되 
 어 그들을 평정하고는 평안도 관찰사로 재직하다가 말년에 압록
강변 통군정에 이르러 절경을 감탄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 
었다.
  
  관하가 멀고 먼데 내 마음 어떠한가,
  연연에 올라 이름을 새기고 싶네.
  땅은 압록강에 다했는데 봄 물이 넓구 
  성은 위화도에 임했는데 저문 구름 평평하네.
  연래로 나라에 몸 바치매 마음만 부질없고,
  밤 고요한데 군악기 소리 들리니 꿈이 절로 깨네.
  깨어 낮은 소리로 읖조리니 돌아갈 생각은 간절한데,
  달빛에 이르러 밝아오네.
  
  연연은 산의 이름. 후한 때 위청이란 장수가 흥노를 격
  파하고 연연산에 올라가 돌에 새겨 공을 기록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허굉은 위청이 흥노를 격파했듯 자신도 변방의 야인들을
  번번이 물리쳐 격파하였음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임상옥은 앞이
  난감하였다. 더구나 기록에 의하면 임상옥의 아버지는 죽을 때
  엄청난 부채를 남기고 죽었다고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임상옥은 아버지가 빛을 진 상점에 점원으로 들어가 빛을
  탕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의주 상인들의 풍습으로는 사람은 고용해도 품삯이라  
  고는 없었다. 먹여만 줄 뿐, 5년이고 10년이고 데리고 있다가 싹  
  수가 없으면 내쫓기고 싹수가 보이면 주인이 자본을 대주고 독
  립을 시켜 주는 것이 상례였었다  
  임상옥은 3년간 문상에 점원으로 취직하여 충실하게 주  
  인을 섬겼다. 문상이란 중국을 상대로 장사하는 점포를 말함인데, 
  아버지가 빛을 진 상점에서 그는 빛 대신 자신의 몸을 담보로 
  잡히고 부지런히 일을 하였다 
  아버지가 남긴 빛은 평생을 점원으로 일을 해도 갚을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이었지만 임상옥은 한눈 팔지 않고, 눈을 뜨고 일어 
 나는 꼭두새벽부터 잠이 들 때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하였다. 임상 
 옥이 일을 하던 문상의 주인은 홍득주란 사람이었다.
  홍득주가 스무 살에 불과한 임상옥을 신뢰하였던 것은 임상옥 
이 어린 나이임에도 인삼에 대해서 특별한 안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임상옥은 아버지를 좇아서 수없이 인삼 
을 봐 왔으므로 인삼에 대해서 남다른 일가견이 있었다.
  하루는 홍득주의 집으로 노인 한 사람이 찾아왔었다. 늦은 가 
을이었다. 보통 산삼을 캐러 산으로 떠나는 때는 초가을이고 심 
마니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것은 늦가을이었는데, 노인은 머리에 
는 노캇을 쓰고, 굴걸피로는 이슬치를 걸치고 디디게를 신고 
마내시리를 짚은 전형적인 채삼꾼의 행색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메대기에서 나무상자를 하나 꺼내 들고는 홍득주 
에게 말하였다.
  "방금 묘향산에서 산삼 하나를 캐었습니다. 이렇게 큰 산삼은 
  인삼장사 40년 만에 처음 캔 것인데 감정을 해 보시고 뜻이 맞 
  으면 이 산삼을 홍 대인께서 사주시겠습니까."
 홍득주의 문상은 주로 인삼을 취급하는 상점이었는데, 그 중에 
서도 진귀한 산삼은 구하기도 어렵고 부르는 게 값이었다.
정말 귀한 산삼 하나를 제대로 구하면 팔자운수를 고칠 판이 
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을 정도인 것이 
다.
  '진짜 산삼은 세상에서 아주 귀하고 드문 것이다. 또 산삼이라 
 도 일종의 집에서 기르는 삼이 있어 진짜 산삼과는 형체나 모양 
 으로 구별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
 노인이 꺼내 놓은 산삼은 홍득주의 눈으로 보면 틀림없는 산 
삼이었다. 아니, 산삼 중에서도 가장 좋은 신령초였다. 흥 
득주는 당장에 거금을 주어 그 산삼을 사려 하였는데 그때 옆에 
서 말없이 지켜보던 임상옥이 홍득주의 소매를 잡아 조용한 곳 
으로 이끌더니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으리, 저 삼을 아직 사지 마십시오."
  "어째서."
  그러자 임상옥은 대답하였다
  "저 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루만 갖  
고 계시다가 내일 아침 날이 밝은 후에 제가 감정해 드리겠습니
다. " 
  홍득주는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평생을 인삼과 더불어
생활해 온 전문가인 자신의 안목을 무시하고 감히 스무 살밖에 
안된,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이래라저래라 참견을 하니
울화가 치밀 정도였다 
  그러나 젊은 임상옥이 아니꼽긴 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른 
체할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산삼값이 엄청난 거금이었기 때문  
이었다. 만에 하나 가짜 산삼을 진짜의 값을 치르고 사들인다면
낭패를 단단히 보게 되기 때문이었다
  '네 말대로 하거라."
  임상옥은 노인이 가져온 산삼을 하룻밤 동안 정중히 나무상자  
속에 넣어 잠을 재운 후 이튿날 첫새벽 해가 떠오르자 그 산삼 
을 들고 나가 햇볕 속에서 자세히 바라본 후 마침내 입을 열어 
말하였다 
  "큰일날 뻔하셨습니다 이것은 산삼이 아닙니다. 이것은 경삼
입니다. "
  경삼이란 자연 그대로 깊은 산 속에서 자란 산삼이 아니라 옮  
겨서 심은 삼을 말함이었다  
  산삼이란 원래 사람의 손을 전혀 타지 않는 깊은 산중에서 저 
 절로 자란 것을 말하는데, 그 어린 인삼 싹을 발견한 심마니는 
흙까지 아울러서 그 산삼 싹을 떠 다가 인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 
 는 아무도 모르는 전토에 옮겨 놓고 비료를 주어 약토 
한 것을 양직이라고 하고, 그 어린 산삼을 평토 직식한 것은
직삼 또는 토직이라고 구분했던 것이다.
  경삼이라 함은 이처럼 어린 산삼 싹을 떠 다가 비료를 주어 배 
 양한 인삼으로 이를 '되뽑이',혹은 산양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산삼과 경삼은 모양새는 똑같지만 약효는 
천양지차이며 값에 있어서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정말인가."
 홍득주가 반신반의하면서 되물었다.
  "이 삼이 산삼이 아닌 되뽑이란 말인가,"
  "그렇습니 다. "
 분명하게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그러면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그러자 임상옥이 말하였다.
  "주인께서는 그냥 가만히 제가 하는 일을 보고만 계십시오."
  임상옥은 나무상자 속에 들어 있던 인삼을 둘로 잘라 대가리 
는 그대로 두고 뿌리 부분에는 인삼을 닮은 도라지 한 뿌리를 
어넣었다. 아무리 인삼을 닮았다고는 하지만 도라지는 도라지 
였다. 도라지야 푸른 자줏 빛깔이 도는 길경으로 삼척동자 
라고 해도 인삼과는 한눈에 구별해 낼 수 있었다.
 날이 밝자 노인이 다시 찾아왔다. 그러자 임상옥이 나서서 말
하였다  
  "좋은 산삼이긴 하오만 값이 너무 많이 나가므로 못 사겠소.
 갖고 가시오."
 노인은 낯빛을 흐리면서 나무상자를 열어 보았다. 순간 노인의
  얼굴에서 분기가 탱천하였다
  "이노옴." 
 호통을 치면서 노인은 임상옥을 노려보았다  
  "노인장 왜 그러십니까."  
호통을 치는 노인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임상옥이  
물어 말하였다 
  "이놈아, 내가 왜 화를 내는지 네 놈이 정녕 모른단 말이냐."
 노인은 들고 다니던 지팡이를 들어 당장에라도 한 대 후려칠  
태세로 호통을 치며 말하였다
  "모르겠습니다. "
그러자 노인은 산삼이 들어 있던 나무상자를 가리키면서 말하 
였다.
  "내 산삼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도라지 한 뿌리만 들어 있단 
  말이냐."
그제서야 임상옥은 모른 체 나무상자 속을 들여다보았다. 과연 
상자 속에는 도라지 한 뿌리가 대신 들어 있었다. 그것이야 임상 
옥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바꿔치기 한 것이었으나 짐짓 시치미 
를 떼면서 임상옥이 대답해 말하였다.
  "소인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
  "이놈, 네 눈에는 이것이 도라지로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도라지입니다. "
  "그렇다면 어째서 하룻밤 사이에 산삼이 도라지 한 뿌리로 변 
 하였단 말이냐, 이는 정녕 네 놈이 엉뚱한 마음을 먹고 바꿔치기 
 한 것이 아니 란 말이냐."
  "아닙니다, 노인장. 쇤네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마도 산삼 
 이 제 스스로 도라지로 변하여 모습을 감춘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부터 산삼은 신선초라 하여서 신령한 물건이라고 말을 하지 
알습니까."
  임상옥의 말에 노인은 더욱 화가 나서 말하였다.
  "산삼이 제 스스로 모습을 감추어 도라지로 변하였다니. 네 놈 
 이 감히 나를 속이려 함이냐."
  순간 노인은 메대기 속에서 주청이를 꺼내들었다. 심마니들이 
 들고 다니는 배낭인 메대기 속에는 주청이와 안기리와 
 허버기 같은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이들은 험한 산길을 다
니기 위해서 이런 물건들을 휴대하고 있었고 산삼을 캐내기 위 
해서도 이런 도구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도끼를 허공으로 치켜들어 임상옥을 단번에 내리찍으 
려 하였다. 임상옥은 스무 살의 청년이었지만 힘이 세고 담력도 
있었다. 비록 기골이 장대하지는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사행으로 
 몸과 마음이 함께 여물어 있었다.
  임상옥은 노인의 손을 막을 수도 있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다.
  "노인장은 정화의 인삼도 모르십니까."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살기 등등하여 당장에라도 도끼를 들어 임상옥을 내리찍을 기 
  세였던 노인의 손이 슬며시 내려졌다. '노인장은 정화의 인삼도
  모르십니까'라는 뜻 모를 한마디가 노인의 손에서 도끼를 떨어
  뜨린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부시를 쳐 불을 일구어 담뱃불을 피우고 나서 껄껄 껄껄 소리내어
 웃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졌소이다. "  
  노인은 옆에 서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주인 홍득주에게 말하였다. 이 모든 모습을 지켜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어제 보여 드렸던 삼은 산삼이 
 아니라 경삼이었습니다. 산삼 한 뿌리도 못 쾌고 산에서 내려오
 던 중 어떤 절간의 우물가에서 경삼 하나를 캤었는데 캐고 보니
 귀신도 모를 산삼이라 한번 속여 보았나이다. "
  노인은 백배사죄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홍 대인을 속인 것은 미안하지만 저렇게 무서운 종놈을 데리 
 고 있는 것은 하늘과 신령의 도움이 아니랄 수 없소. 조선 천지 
 에 어제의 그 삼을 경삼으로 알아볼 사람이라고는 아마 이 어린 
 종놈 하나뿐일 것입니다. 정녕 하늘이 내려 주신 신인이 아 
 닐까 생각됩니다만."
  노인이 사라진 후 흥득주는 새삼 임상옥이 놀라웠다. 임상옥이 
아니었더라면 노인의 고백대로 절간의 우물가에서 캐온 경삼 한 
뿌리를 거금을 주고 사들여 자칫하면 파산할 뻔하지 알았던가,
  어떻게 스무 살밖에 안된 임상옥이 어느새 눈썰미가 있어 심 
마니도 감히 못 알아보는 산삼의 진위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 
단 말인가.아니 그보다도, 살기 등등하여 당장에라도 도끼를 내리 
찍어 살인이라도 저지를 만큼 충천하던 노인의 분기를 침착하게 
한마디 하여 당장에 기를 꺾고, 기를 꺾을 뿐 아니라 제 스스로 
산삼이 아니라 가짜의 경삼임을 고백하도록 유도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홍득주는 임상옥에게 물어 말하였다.
  '네가 그 노인에게 말하였던 정화의 인삼이란 도대체 무슨 뜻 
  이냐."
  '정화의 인삼,'
정확히 말하면 '정화의 인삼'이라는 용어는 예부터 의주 상인 
들 가운데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었던 관용어였다. 상인들 간에 
널리 사용되던 고사성어를 유독 홍득주만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 
은 이상한 일이었다.
  '정화의 인삼.'
인삼의 진짜와 가짜를 말할 때 흔히 비유되는 이 고사는 조선
초기 때에 비롯된 일이다.
 세조 때의 명신으로 정광괼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조판서 난종의 아들로 자신도 두 번이나 영의정에 
올랐던 조선 초기의 문신이었다. 명필이기도 했던 정광필은 죽은 
후 문익이라는 이름으로 시호까지 되었던 명재상이었는데,
 그에게는 정화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정화는 적자가 아닌 첩에서 난 서자였다. 그러니까 정 
화는 정난종의 손자인 셈인데 정화는 공교롭게도 자신의 할아버 
지 때문에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할아버지 정난종은 서자 혹은 얼자들은 과거를 
볼 수 없다는 '과거금지 발론자'였기 때문에 명가의 손 
자면서도 과거도 못 보고 벼슬길에도 오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중국어를 배워 나중에는 명나라 13성의 사투
리까지 모두 익혀 당대 제일의 중국통이 되었다. 그 정화가 연경  
사절을 따라다니면서 역관 노릇을 했다 
  정화는 떼돈을 단번에 벌기 위해 한 번은 있는 돈을 다 털어서 
인삼을 사 싣고 연경으로 들어간 일이 있었는데 정작 연경에 도
착하고 보니 '머리만 인삼이고 몸뚱이는 모두 도라지였다'는 기
록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에 정화는 몰래 숨겨 갔던 은자
를 풀어 여비로 써서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는데 문제는 그가  
단순히 장사꾼이 아니라 사신이었으므로 이 일이 말썽이 되어  
선천 땅으로 귀양을 가 그곳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정화의 인삼'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이 '정화의 
인삼' 이란 말은 사행길을 따라 인삼 장사를 하는 만상들에 
게는 상도의 제1조와 다름없었다. 즉. 가짜의 물건으로 남
을 속이면 그처럼 벌을 받아 언젠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는 뜻인 것이다. 상업을 할 때 절대로 남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의주 상인의 철칙이었다. 저울을 속이거나 남의 돈을 떼 먹
으면 안 된다는 뜻이며, 또한 정화처럼 단번에 큰돈을 벌려는 욕 
심은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경책의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정화는 자신이 속아서 가짜의 인삼을 갖고 간 것이 아니라 가
짜 인삼을 처음부터 알고 사서 그것으로 부정한 방법으로 큰돈 
을 벌기 위해서 연경으로 갔기 때문에 인삼 스스로가 도라지로  
변해버렸으며 그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 의 
주 상인들의 철학이었던 것이다.
  '가짜의 물건으로 남을 속여서는 안된다. '
이것이 의주 상인들의 지켜야 할 제1조였던 것이다.
  '정화의 인삼.'
 의주 상인들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 말을 유독 흥득주만 몰 
 랐던 것은 그가 청국을 드나들며 무역을 하는 만상이 아니라 상 
 점을 열어놓고 무역을 하는 문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심마니 노인도 임상옥의 기지에는 간담이 서늘해진 것 
 이다. 가짜의 인삼이 제 스스로 도라지 뿌리로 변하였다는 정화 
 의 고사를 빗대어 은근히 심마니 노인의 부도덕한 상행위를 꾸 
 짖자 노인은 그만 솔직히 이실직고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홍득주는 새삼 임상옥을 다시 보게 되었다.
 임상옥은 부지런하였으며 무엇보다 인사성이 밝았다. 임상옥은 
 한 번 본 사람의 인상을 절대 잊지 않았다. 이는 아버지 임봉핵 
 으로부터 배운 교훈인데 임봉핵은 어린아이 때부터 임상옥을 데 
 리고 청국을 드나들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을 하곤 하였 
 다.
  "장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이다. 인사야말로 최고 
 의 예인 것이다. 공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군자는 먼저 신 
 임을 얻은 후에 사람을 부린다. 만약 신임을 얻기 전에 사람을 
 부리려 하면 사람들은 자기들을 속이려 한다고 생각한다
 장사도 이와 같다. 신임을 얻는 것이 장사의 첫 번째 비결인 것이다. 
신임을 얻지 못하면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사로서 예를 갖추어야 한다. " 
  그 자신 3대째에 걸친 장사꾼에 불과하였으나 역관이 되기 위  
해서 네 번이나 과거를 보았던 아버지 임봉핵은 학문에도 탁월  
 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도 어쩔 수 없이 떠돌  
이 장사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음을 깨닫게 된 이  
후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임상옥이 듣거나 말거나 장사꾼이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서 말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렇듯 총명한 임봉핵이었지만 그 자신은 실패한 장사  
꾼으로 의도 이도 얻지 못하고 자식 임상옥으로 하여금 평생
몸값으로는 갚지도 못할 부채만을 남기고 비참하게 죽어버  
린 것이다.  
  임상옥은 부지런하고 깨끗하게 정돈하는 것을 습성으로 갖고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임상옥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임상옥은 집물 관리가 정밀하여 항상 치부책이 잘 정리  
되어 있었다. '  
  치부책이라 함은 금품을 출납한 내용을 적는 책으로  
오늘날의 금전출납부와 같은 성격의 장부인 것이다  
  또한 임상옥은 녹심첩도 잘 정리하고 있었는데 이는  
자신의 상점을 드나드는 단골손님들의 명부였다. 이 책 속에는
단골손님의 가계가 족보처럼 적혀 있고 외가, 처가의 가계까지
적혀 있었는데, 따라서 임상옥은 이들의 경조사를 절대 잊는 법
이 없었다  
  "장사에 있어서 그 첫 번째는 신용이다. "
  의주 상인들의 상거래에 있어 제1조인 신용거래를 위해서는 
이처럼 단골손님들의 명단 관리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임상옥의 집물 관리는 너무나 정연하여 그는 
 무슨 물건이든지 쓰고 난 뒤에는 반드시 제자리에 도로 갖다 두 
었으며 그의 집에서는 비 한 자루, 신발 한 켤레까지도 항상 일 
 정한 자리에다 두고 쓰는 버릇을 길러서 '그것 어디 갔느냐'고 
 찾는 일이나 허둥대는 일이 없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홍득주는 그 일이 있은 뒤부터 임상옥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 
 었다.
  '네가 글을 볼 줄 아느냐."
  심마니 노인을 지혜롭게 물리치는 모습을 본 후 홍득주는 따 
로 임상옥을 불러 물어 말하였다.
  "웬만한 글은 볼 줄 압니다. "
  "도대체 글을 어디서 배웠느냐."
  "열다섯 살 때 추월암에서 배웠습니다. "
  "추월암에서 글을 배웠다면 중이 되려 함이었더냐."
  "아, 아닙니다. 아버님께서 글을 배워오라 하여서 일년간 추월 
 암에서 행자생활을 하면서 문자를 익혔나이다. "
  자신이 까막눈인 홍득주에게는 문자를 읽고 쓸 줄 안다는 임 
 상옥이 대견스러웠다.
  그가 새삼스레 임상옥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또 다른
이유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 당시 의주에서는 조혼하는 것이 상 
례였는데, 그래서 열 살이면 장가를 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특히 
의주에서는 다른 지방보다 훨씬 일찍 조혼하는 풍습이 있었던 
것이다.
  의주지방의 조혼 풍습을 나타내는 민요로 '신랑요'라는 노래 
까지 있을 정도다 
  나이 어린 신랑이 자기 아내에게 밥을 풀 때 밥을 달라며 보채 
는 모습을 놀리는 노래인 것이다
 노랑두대 가리, 물렛줄상투
 샛문턱에 서서 밥 많이 달라구  
 홀쩍훌쩍  
  임상옥은 그러나 스무 살 청년이 다 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하
였고 홍득주에게도 시집 못 간 과년한 딸이 있었던 것이다. 아들
이 없어 외동딸만을 두고 있던 홍득주에게 임상옥이야말로 최고
의 데릴사윗감이었던 것이다  
  때가 되어서 자신의 만상을 물려주어 가업을 잇게 할 수도 있
었다. 홍득주의 딸은 남순으로 훗날 임상옥의 처가 되었지만 
어쨌든 임상옥을 새롭게 보게 된 홍득주는 임상옥에게 기회를  
한번 줘 보기로 결심하였다. 홍득주는 임상옥에게 과연 상재
가 있는가 어떤가, 상인으로서의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를 시 
험해 보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19세기가 시작되던 1801년.
  임상옥이 아버지의 빛을 탕감하기 위해 홍득주의 집에 들어가 
종살이를 한 지 3년이 되는 신유년. 그해 여름 8월 .홍득주는 임 
상옥을 불러 말하였다.
  "네가 우리  에서 점원 노릇한 지 얼마 되었느냐."
  "3년 되었습니다. "
  "벌써 그리 되었느냐, 보아하니 네가 다른 것은 몰라도 인삼에 
  는 도가 튼 것 같은데 그 동안 아비를 따라서 연경에는 몇 차례 
  다녀 왔었더냐."
  "연경에는 두 차례 다녀왔습니다. '
  "중국말은 할 줄 알겠구나."
  "의사소통하고 거래를 하는 데는 막힘이 없나이다. "
  "그러면 한번 연경에 다녀오지 않겠느냐."
  해마다 동짓달이면 조정에서 동지사라 하여 사신들이 사행으 
 로 드나들곤 했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의주 상인 중에서 몇몇 
 이 조를 짜서 몰래 연경을 다녀오기도 했었는데 이야말로 밀무 
 역이었던 것이다.
 만약에 관문에서 들키는 날이면 국문을 당할 뿐만 아니라 다시는 
연경 사신을 따라나설 수 없었다.
 열여덟살의 나이 때부터 말몰이로 사행을 따라나섰던 임상옥 
 이 만약에 들켜서 수검에 걸리게 되어 사행금지를 받게 되
 면 다시는 상인으로 나설 수 없는 일종의 사형선고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임상옥에게 연경에 다녀오라 
는 홍득주의 말은 이제는 지긋지긋한 종살이에서 풀어주고 어엿 
한 상인으로 독립을 시켜 주겠다는 언질과도 같아서 임상옥은 
어리둥절하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연경을 다녀오라는 주인의 말은 이제 자신을 하나의 상인으로
독립시켜 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가.
그 해 흥득주가 임상옥에게 연경을 다녀오라고 모험을 시킨 것 
은 이런 이유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인삼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조선이 자랑하는 최대의 자원이었
다. 그래서 의주 상인들 간에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 유행하고 있 
을 정도였던 것이다  
인삼아, 인삼아, 말을 해라  
팔도 갑부도 네게서 나고  
불로장생도 네게서 났구나  
  이 노래처럼 인삼이야말로 불로장생의 건강뿐 아니라 팔도 갑 
부를 낼 만큼의 자원이었던 것이다  
  특히 중국사람들은 고려인삼을 불로초라 하여 좋아하고 있었
다 . 구한말의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장지연은 그의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처음 개성 쪽에서 삼포가 생겼으니 그것이 소위 송삼이라
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을 그냥 백삼인 채로 보따리에 싸 가지 
고 연경에 가서 팔았는데 중국 부자들이 그것을 먹어 보니 때때 
로 위를 역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독이 있다고 해서 
먹지를 않았다. '
  장지연이 말하였듯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인삼은 자연 그대로 
인 채 생산되었으며 인삼을 길러 양삼하는 일은 없었던 것 
이다.
  그런데 개성 쪽에서 인삼을 재배하여 양산하기 시작하자 가히 
 인삼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최고의 무역자원이 될 수 있었던 것 
 이다.
  그러나 이렇듯 인삼을 중국사람들이 좋아하였지만 장지연의 
 표현대로 백삼 그대로 이를 먹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점점 혹평 
 이 나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즉,약효는 분명 좋지만 자연 그대로 
 의 백삼은 독이 있어 위를 상하게 한다는 소문이었던 것이다. 이 
 에 점점 인삼의 값은 떨어져 갔으며 교역량도 해가 갈수록 줄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무렵,인삼에 있어 혁명적인 수출 방법이 생겨난 것이다. 그것이 바 
 로 순조 원년. 인삼의 고장 송도 사람 중의 하나가 백삼을 쪄서 
 홍삼으로 만드는 방법을 개발해 낸것이다. 이른바 홍삼이 
 탄생된 것이다.
인삼왕 임상옥의 탄생은 이처럼 시대적인 시기와도 적절하게 
맞아떨어졌음이니 상업이야말로 시대의 흐름을 케뚫어 보는 통 
찰력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원래 인삼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의 모후산 일대가 
본격적인 재배인삼의 발상지였지만 이 동복삼이 개성 
상인들에 의해 도입되어 개성이 인삼 재배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삼에 있어 혁명적인 수출방안을 개발해낸 사람은 바 
로 박유철이란 사람이었다. 박유철은 이처럼 중국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떨어져가는 백삼의 효능을 높이고 위를 상하게 하는 독을 제거하는 
방법을 발견해낸 것이다.
  인삼이 무역에 있어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없으면 그만큼 조선  
의 대표적 상권인 개성과 의주의 상인들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예로부터 중국사람들은 인삼을 귀개, 인함, 신초, 토정, 옥정, 혈삼, 인미, 황삼
, 추면환단, 인신, 활인초, 지정등의 많은 이름으로 부를 만큼 인삼에 대해서 
큰 신뢰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인삼이 중국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게 되자 실로  
난감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할 무렵,  도 사람 박유철이 백삼을 쪄서 홍  
삼을 만드는 비결을 발견해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홍삼은 장기  
간 상하지 않게 저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약효를 증  
가시키고 백삼의 독을 제거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장지연은 <위암문고>에서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  
고 있다  
  '... 그러다가 송도 사람 하나가 백삼을 쪄서 홍삼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니 그 뒤부터 인삼을 쪄서 홍삼으로 수출하여 백  
삼으로 내다 팔 때보다 이익이 열 배나 많았다. 이것이 홍삼이  
생겨난 기원이다. 백삼으로 내다 팔 때보다 인삼이 상하거나 썩  
는 일도 적었고, 부자들도 먹고 나서 배가 아프다고 하는 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 홍삼을 사행을 따라다니는 역관들이 모리를 
했으나 뒤에 나라에서 홍삼 수출을 전관하니 실로 무궁한 재원  
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
  뒤의 일이지만 인삼이 백삼에서 홍삼으로 넘어가면서 청국을 
  상대로 한 무역고가 백만 냥에 이르게 되었으니 가히 '홍삼'이 
  야말로 인삼에 있어서 대혁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홍득주가 임상옥을 연경에 보내기로 결심한 바로 그 
 무렵이 인삼의 무역 방법이 백삼에서 홍삼으로 넘어가는 그 초 
 창기였던 것이다.
  홍득주는 임상옥을 연경에 보내 봄으로써 홍삼시대가 과연 미 
  구에 밀어닥칠 것인가를 시험해 보려 했던 것이다.
그해 여름 8월.
임상옥은 새로 등장한 홍삼을 갖고 의주를 출발하였다. 함께 
  떠난 사람은 모두 의주 상인으로 다섯 명이었다. 이들은 청국과 
  의 밀무역에 목숨을 건 만상들이었다.
임상옥이 다섯 포의 홍삼을 갖고 떠날 때 홍득주는 임상옥 
  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다섯 포의 홍삼 중 네 포는 내 몫이지만 그 중 한 포는 네 몫
  이다. 그것을 팔아서 네 사업자금으로 하여라."
쌀값으로 환산하면 이백 석 이상을 살 수 있는 거금이었던 것 
  이다.
이러한 홍득주의 말은 이번 장사만 훌륳히 수행하면 어엿한 
문상으로 독립시켜 주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나으리."
임상옥은 주인의 깊은 뜻을 알아차리자 무릎을 꿇고 배를 을 
  렸다.
"이 은혜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
 며칠 뒤  
  임상옥을 포함한 다섯 명의 상인들은 한밤중에 강을 건넜다 
의주의 옛 성을 가리키는 용만성을 지나자 그대로 허허  
벌판이었다  
  고려 명종 때의 뛰어난 문신이었던 김극기는 이  
허허벌판을 보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집을 떠나 한식 버리고 봄놀이도 저버리고 
필마로 서쪽에 오니  
벌써 철이 바뀌어 가을이로구나
나그네길 몇 리냐고 묻지 마오 
용만성 밖에는 다시 더 고을이 없네  
  당대의 문인들로부터 가장 뛰어난 문장가로 칭송받던 김극기  
의 시처럼 용만성 밖에는 더 이상 고을이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그 벌판을 넘어 압록강을 건너면서 임상옥은 3년 전 자신의 아  
버지 임봉핵이 바로 이 강물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아버지 임봉핵이 비참한 생애를 마쳤던 강물을 건너려 하자 
임상옥의 마음에는 만감이 교차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임상옥 
은 소리 죽여 울면서 강물을 바라보면서 맹세하였다.
  '반드시 이번 만행을 성공시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큰 부자가 
되겠나이다. '
 압록강을 건너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의주에서 청국으로 건너가는 압록강에는 이상하게도 모래로 
 이루어진 사주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위화도
라 하여 이성계가 회군하였던 바로 그 섬인 것이다. 이곳에는 
  왕당이라는 이성계의 사당이 있어 군사들이 보초를 서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위화도에서 멀리 떨어진 검
  동도 앞 강을 통해 도강하는 것이 상례였다.
  <동국여지승람>에 이 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검동도. 의주에서 서쪽으로 15리 떨어져 있는데 둘레가 15리 
 이다. 압록강이 여기에서 세 갈래로 나뉘는데, 이 섬이 두 섬 사 
 이에 있으며 삼씨량이 있다. 모든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 섬의 북쪽을 거치는데 북경으로 가는 사신이 입조
하는 길이기도 하다. '
 만약 변경을 지키는 파수병에게 들키면 뇌물을 주기로 하고 
 다섯 명의 상인들은 검동도 앞 압록강을 건넜다.
 이들은 주로 뗏목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방물
 들을 실어나를 노새 같은 것들도 함에 태우고 강을 건너야 했기 
 때문이었다.
 8월이라 장마철은 지났지만 아직 압록강의 물은 뱀의 모가지 
 처럼 부풀어 물살이 거세었다. 간신히 강을 건넌 것이 칠흑 같은 
 오밤중.
 무사히 강을 건넌 이들은 모두 뗏목에서 내려 노제를 지냈다. 갖고 온 술과 음식을 강가에 차려 놓고 다섯 명의 상인은
 강물을 향해 향을 태우고 절을 하였다. 왕복으로 하면 4천 리가 
훨씬 넘는 대장정의 머나먼 길이 시작된 것이다. 무사히 일을 마
치고 돌아온다 해도 빨리 잡아야 두 달.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것이다. 만주의 가을은 짧아서 10월이면 벌써 얼음이 얼
고 눈이 내린다. 그러므로 9월 안으로는 이 강물을 건너 되돌아 
와야 하는 것이다 
  그뿐인가.가고 오는 4천 리 길은 그야말로 무법천지.중간에서
비적떼를 만나 방물을 모두 빼앗기는 것은 일쑤이고 생명까지
빼앗겨 벌판에서 이리떼들의 밥이 되는 것도 부지기수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사히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게 해달라고 압록강의 수
신 하백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고구려 시대 때부터 내런
오는 풍습이었던 것이다 
  노제를 끝낸 객상들은 드디어 먼길을 떠나기 시작하였
다  
  압록강에서 10리 밖의 흙탕물을 중국인들은 애랄하라고 부른
다  
  이곳에는 명나라의 견장이었던 모문룡이 주둔하 
던 옛 성터가 있다. 명말의 무장으로 명나라와 청나라 사 
이에서 교묘하게 처신하여 우리나라를 괴롭히던 모문룡은 훗날 
산해관 군문이었던 원숭환에게 참살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된다. 바로 그들이 머물던 성터가 우거진 잡초 속에 누워
있는 것이었다
  이곳은 이미 폐허가 된 지 백여 년. 원래 이곳이 이처럼 폐허
가 된 것은 봉금제 때문이었다
  17세기 초,만주에서 나라를 일으켜 마침내 천대받던 오랑캐에
서 중국 대륙을 지배하는 만주인으로 탈바꿈하게 된 청나라는
 
  비록 중국을 평정하여 적의 심장부로 왕도를 옳겼지만 이곳이 
  전조의 발상지임을 잊지 않았다. 청나라를 일으킨 누루하 
  치가 이곳에서 태어났음을 기리고 이 성지를 지키기 위해 
  이곳 일대에 사람의 출입을 금하는 봉금제도를 실시했던 것이다.
  봉금제도가 시작된 지 벌써 백여 년. 이곳 일대는 완전히 폐허 
  가 되어 있었다.
이따금 사람들이 숨어들어 화전을 놓거나 벌채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을 뿐, 인적이 끊긴 망각의 땅에는 만초만 우거지 
  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이곳 일대에 호랑이를 비롯한 맹수 
  가 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숨어 들어온 밀렵꾼이 호망이라도 쳤는지 호랑이들과 
  늑대의 발자국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다시 20리쯤 더 가면 구련성 옛터. 보통 이곳에서 상 
  인들은 야숙으로 첫날밤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구련성은 단동에서 북동쪽으로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취락으로 동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우리나라와 접하고 있다.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금나라 때 꾸안루가 이곳에 아홉 
  개의 성을 쌓고 고려와 싸웠던 전략의 요충지로 훗날 청일전쟁 
  때는 일본군이 우리나라에서 만주의 동북지방에 이르는 진입로 
  로 이용하였던 그곳이었다.
이곳에서 하룻밤 노숙으로 첫날밤을 보낸 임상옥을 비롯한 대
  상들은 다시 30리를 더 가서 금석산에 이르렀다.
  그 금석산 아래에서 나뭇잎을 긁어다가 불을 피워 점심밥을 지 
  어먹은 후 다시 30리를 더 가서 노숙. 그날 밤은 밤새도록 비가
  내렸으므로 그야말로 우숙이었다.
  이렇듯 인적이 없는 황야에서 이틀 밤의 노둔을 보낸 임 
상옥을 비롯한 객상들은 사흘째 날에야 비로소 책문에 이르렀다
  책문은 중국 최후의 변문이 되는 곳이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은 
 이곳을 우리처럼 책문이라고 부르지 않고 변문으로 부르며 이곳  
지방 사람들은 가자문으로 부르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중국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마지막 시장으로 청국과 우리나라의 
국경무역지대에 위치한 유일한 공시였던 것이다. 
  구련성과 봉황성 사이에 있는 책문은 청나라로 가는 
사신들의 왕래가 빈번해지자 만주에 사는 상인들인 차호  
와 의주 및 개성 상인들 간에 시작된 사무역이 발전되어, 임상옥
이 상인으로 나선 때는 국가에서 인정한 책문후시가 인정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조정에서는 밀무역을 취재하는 
단련사를 파견하리만치 조심스러운 때였으므로 임상옥  
은 남의 눈을 피해 책문으로 들어갔다
  이곳에 들어와야 비로소 사람들을 만나 풍찬을 피하고 
여인숙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압록강에서 
책문까지의 120리 길은 중국사람도,조선사람도 살 수 없는 무인 
의 봉금지대로 오늘날의 휴전선의 완충지대와 같은 곳이었던 것
이 다
  박지원은 책문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책문은 나무 조각을 세워 목책으로 경계를 밝혔는데 지붕은  
이엉이 뒤덮이고 보통 때는 문이 닫혀 있다가 조선 사신이 매년
몇 차례씩 이곳을 통과할 때면 시장이 서고 활기를 띠는 곳이  
다. '
  임상옥이 책문에 들어설 무렵에는 일년에 유출되는 은이 70만  
 냥에 이르고 있었으므로 선왕인 정조 때에는 이곳을 정식으로 
 폐지하였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치는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 
 해 조선 측에서는 금 ·인삼·종이 ·우피 ·모물들과 
  청국 측에서는 비단·당목 ·약재 ·보석의 물물교환이 성 
 시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을 비롯한 상인들은 정식으로 세금을 물고 책문의 여인 
숙에서 여장을 풀었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다. 즉, 방물을 메고 갈 청인 
 들을 고용해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청국으로 들어가는 모든 
 방물,장사꾼들의 상품보따리는 중국사람들과 중국 마차를 사서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사람들은 중국사람끼리 서로 봐 
 주는 특성이 있었다. 만에 하나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비적의 무 
 리들도 같은 중국인들을 만나면 물건은 빼앗을지언정 사람을 죽 
 이거나 살상을 하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책문이 변경지대에 위치한 유일한 마을이라지만 상주인구는 
 불과 30호의 소읍에 지나지 않는다. 박지원은 이 마을에서의 풍 
 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방물과 예물을 싣고 가기 위해서 뽑히는 청인의 무리 
 가 백여 명이나 되는데 마차 세나 청인들의 품삯은 대개 벽지,
 담뱃대, 기름먹인 장판지, 짐승 가죽, 부채, 은장도 등으로 준다. '
임상옥은 이곳에서 두 명의 청인과 마차 한 대를 샀다. 그런 
뒤 닷새째 되는 날에야 비로소 중국 대륙으로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임상옥의 최종 목적지인 연경으로 가는 길은 사신들의 행로와 
  일치하고 있었다.
  책문을 떠난 상인들이 연경으로 가는 여정은 책문에서 봉황성,
 다음으로는 요동,성경,여양,소능하,영원위 그리고는 마침내 산 
 해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책문이 중국 대륙의 첫 출발지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중국의 
제일관문은 산해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산해관은 만리장성의 동단에 위치한 곳으로 만리장성의 기점 
이 되고 있는 곳이다. 산해관이란 지명은 명대에 산해위 
를 설치한 데서 유래되었지만 원래 수 ·당대에는 임유관
, 요 ·금대에는 천민현으로 불렸던 곳이
다  
  예로부터 산해관은 중국을 장악하려는 전략의 요충지로 특히 
명의 군사들과 청의 군사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대전을 벌였던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명나라의 군사들은 이곳을 거점으로 최후 
까지 저항하였으나 마침내 패함으로써 청나라는 중원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이 산해관에 도착한 것은 의주를 떠난 지 20일 만의 일
이었다. 상인들은 산해관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으며 마침내 중국 대륙에 무사히 도착하였음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산해관에서 연경까지는 아직도 닷새의 길이 더 남아 있었다. 
  산해관에서부터 연경까지의 노정은 무령, 양평,소현, 연경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5백 리가 넘는 머나먼 길이었지만
일단 산해관에 이르면 만리장성을 넘었다 하여서 상인들은 이렇 
게 말을 하곤 하였다
  "마침내 첫날밤을 보냈다. " 
 이 말은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에서 비롯된 
 말로 무사히 혼례식을 끝내고 첫날밤을 치르듯 그 험한 만주 대 
 륙을 무사히 넘어서 마침내 중국 중원에 이르렀다는 의주 상인 
 들끼리의 은어였던 것이다.
산해관에 이른 임상옥은 한밤중에 산해관의 문루에 나가 보았 
 다. 유난히 달이 밝은 밤이었다.
한여름 8월 의주를 출발하였지만 이곳에 이르는 동안 어느새 
  9월의 가을이 되어 있었다.
  산해관 문루 현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씌어 있었다.
 '천하제일관'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관문, 그 현판에 새겨진 글 
  씨를 보자 임상옥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하였다.
 임상옥은 지금까지 두 차례나 말몰이로 고용되어 연경을 드나
 들었었다. 그때마다 아버지 임봉핵과의 동행이었다. 중국어에 뛰 
 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행을 따라다니는 중인에 불과하 
 였던 아버지는 간신히 보따리장사로 입에 풀칠을 하던 자신의 
 신분을 탄식하면서 이곳에 이를 때마다 임상옥에게 현판을 가리 
 키면서 말하곤 했었다.
 "보아라.저곳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천하제일관', 이 말은 하 
  늘 아래 제일의 관문이라는 뜻이다. 나는 지금까지 셀 수 없을 
  만큼 사행을 따라 중국을 드나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산해관 
  에 씌어진 저 현판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맹세하곤 했었다. 나는 
  반드시 '하늘 아래 제일의 관문'이라는 저 현판처럼 '하늘 아래 
  제일의 상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틀렸다. 이 아비는 
  평생을 이처럼 사신이나 따라다니는 봇짐장수로 늙어 죽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이 아비처럼 이렇게 살다가 죽어서는 안된  
  다. "
그리고 나서 임봉핵은 다시 손을 들어 현판을 가리키면서 말  
  하였다
"천하제일상. 너는 반드시 ·하늘 아래  제일의 관
  문'이라는 저 현판처럼 '하늘 아래 제일의 상인·이되어야 한  
  다. "
 임상옥은 묵묵히 가을 달빛 아래 드러난 현판의 문구를 바라
 보았다. 손으로 현판을 가리키면서 울부짖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날 그 밤처럼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였다. 임상옥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였다.
"아버님."
임상옥은 선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버님이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제가 '하늘 아래 제일의 상 
 인'이 되겠나이다. 3대째에 이르렀으나 이루지 못하고 비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와 선대의 한을 반드시 제가 이루어내고 말겠나 
 이다. 그리하여 아버님 영전에 '천하제일상'의 신위를 바 
 치겠나이다. "
임상옥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난데없이 어둠 속에서 인기 
척이 있었다.
"여기서 윌 하고 있는가."
우렁찬 목소리였다. 이희저의 목소리였다. 
이희저는 임상옥과 함께 떠난 다섯 명의 객상 중에 유일하게  
임상옥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세 사람은 나이 차이가  
많이 있어 어려웠지만 이희저와는 나이가 비슷해서 여행 중에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희저는 가산 사람으 
로 원래 장사꾼은 아니었다. 그는 역속으로 대대로 역인의 
아들이었다. 장사꾼이나 역인이나 평생 출세하기는 글러먹은 중 
인의 천덕꾸러기 신세였는데 이희저는 체구가 장대하고 힘이 뛰 
어난 장사였다.
기록에 의하면 힘이 뛰어나 평안도 내에서 씨름으로 그를 누 
일 상대가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가 객상을 따라 연경길에 나선 것은 돈이라도 벌어서 비천 
한 신분을 뛰어넘어 보려는 야심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희저에 
겐는 이번 연경길이 초행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여기서 윌 하고 있는가."
이희저는 눈물을 훔치고 있는 임상옥을 보면서 의아한 목소리 
로 물었다. 그에게는 이미 전주가 있었는지 술냄새가 풍겨오고 
있었고 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네."
임상옥이 말을 피하려 하자 이희저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의 성격은 급하고 직선적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니, 울고 있잖아."
  이미 들켜버렸으므로 임상옥은 달리 
 "한 잔 마시게나."
  변명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이희저는 마시던 술병을 임상옥에게 내밀었다.
상심한 마음이었으므로 임상옥은 그가 주는 술병을 받아들고 
는 단숨에 서너 모금 들이켰다. 독한 중국 술이라 금방 취기가 
솟아올랐다.
"도대체 무슨 일로 만리타향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단 말인가.
숨겨둔 처녀 생각이라도 한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 죽은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고 있는 것일세."  
  임상옥은 이희저에게 비참하게 죽어간 아비 임봉핵의 이야기 
와 아비로부터 들었던 산해관의 현판에 씌어져 있는 '천하제일  
관'의 유래와 자신에게 '천하제일의 상인'이 되라고 유언처럼  
말하였다는 과거의 추억들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자네는 아버지 생각을 하고 울고 있었단 말이지."  
  "그렇네."  
  "아버지의 유언처럼 자네는 '천하제일의 상인'이 될 것을 맹세  
하면서 울고 있었단 말인가." 
  임상옥은 입을 열어 대답하지 않았다. 비록 입을 열어 대답하
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임상옥의 흉중을 꿰뚫어 본 이희저는 껄  
껄 소리내어 웃으면서 말하였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야단났군. 왜냐하면 나 역시 '천하제일
의 상인'이 되는 것이 꿈이니까.우리 둘 중 누구 하나는 죽어야  
겠군. 하늘에는 태양이 둘이 없고,천하에는 영웅이 두 사람은 없 
는 법이니까. 나 역시 '천하제일상'을 저 산해관의 현판처럼 내  
가슴속에 새겨 내걸고 싶은데 어쩌겠나."
  이희저는 짐짓 소리내어 웃으면서 임상옥을 쳐다보았다. 그러 
나 임상옥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이희저는 술병을 기울여 남
은 술을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 임상옥을 노려보면서 소리 죽여 
말하였다.
  "자네가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았으니 그럼 내가 자네에게 속 
마음을 털어놓을까? 그 대신 하나 조건이 있네."
 이희저는 정색한 얼굴로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우리끼리 이곳에서 나눈 이야기는 죽을 때까지 천지신명 이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입을 열어 털어놓지 않기로 맹세해 주겠 
 나.사나이로서 그 맹세를 해준다면 나도 자네에게 속마음을 털 
 어놓겠네."
이희저도 임상옥이 비록 체구는 작지만 강골이고 신의가 깊은 
  성격 임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약속하겠네."
임상옥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임상옥이 서약을 하자 이희저는 더욱 목소리를 낮추었다.
"자네가 아버지의 유언대로 '천하제일상'이 되려 하는 것이 마
음속의 비밀이라면 나는 아닐세. 하지만 나도 자네처럼 하늘 아 
래 제일이 되고는 싶네. 그러나 '상인'은 절대 아니네. 물론 난 
돈을 벌고 싶어.조선 팔도에서 제일 가는 갑부가 되고 싶네, 하 
지만 그것이 내 최종 목표는 아니네."
"그렇다면 자네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것을 알고 싶나."
순간 이희저의 눈에서 살기 같은 것이 번쩍였다. 임상옥은 몸 
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저 현판에 씌어진 '관' 자 대신 내가 새기고 싶은 글자 하나 
는 바로 이것일세."
이희저는 손을 들어 땅바닥에 무엇인가 글씨를 썼다. 달빛이 
백야처럼 밝아서 땅 위에 쓴 그의 글씨가 똑똑히 보였다. 임상옥 
은 그가 천천히 쓰는 글자를 읽어 보았다.
그것은 석 '삼' 자였다.
  임상옥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관' 자 대신 그곳에 '삼'  
자를 새겨넣는다면 이런 문장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천하제일삼'  
  이것이 무슨 뜻인가.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 엉터리 문장이 아
닐 것인가. 임상옥이 의아한 눈빛으로 이희저를 쳐다보자 이희저 
는 천천히 석 '프' 자를 레뚫는 획 하나를 그어내렸다. 그러자
석 '삼' 자는 임금 '왕' 자가 되었다  
  순간 임상옥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천하제일왕'  
  그렇다면 이희저는 하늘 아래 으뜸가는 제일의 임금이 되고  
싶다는 대역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으뜸가는 임금이 되고 싶다는 이희저의 
말을 들은 순간 임상옥은 항우의 고사가 떠올랐다.
  항우는 일찍이 진의 시황제가 회계산을 순행하고 
절강을 건넜을 때 마차에 타고 있는 시황제를 구경하기 위해 거 
리에 나와 인파에 묻혀 있었다. 중국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시황 
제를 보면서 느닷없이 항우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황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을까. 저놈을 대신해서 내가 들어서 
야겠다. "  
  하늘 아래의 황제를 쳐다보면서 '저놈을 죽이고 내가 대신 황
제가 되어야겠다'고 중얼거린 천하장사 항우. 이 말을 곁에서 들 
은 항우의 계부 항량은 항우의 입을 막으면서 이렇게 말하 
였다고 <사기>는 전하고 있다
  "허튼 수작은 말라. 잘못하다가는 일족이 몰살된다. "
  잉상옥은 이희저의 말을 들은 순간 항우의 말을 떠올렸다. 그 
 는 지금 술에 취해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일까.아니다. 그의 눈빛 
 에는 살기 같은 독기가 번득이고 있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무서운 말이 어디 있겠는가. 비록 만리타향의 외 
 지 산해관 문루 앞이라 해도 이희저의 말은 대역죄에 해당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비밀인 것이다. 항량의 말처럼 '잘못하다가 
 는 일족이 몰살되는' 무서운 고백인 것이다.
  임상옥이 멈칫거리자 갑자기 이희저는 껄껄 소리를 내어 웃었 
 다. 이희저는 그렇지 않아도 신장이 육척이 넘고 기골이 장대하 
 고 힘이 장사여서 이미 객상들간에 '항우장사'라는 별명으로 불 
  리고 있었던 것이다.
  "으핫하하. 너무 그렇게 심각한 얼굴은 하지 마시게. 술 취한 
  김에 농지거리 한번 해보았네."
그러나 이회저의 고백은 농지거리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가 
슴속에 묻어두고 있었던 야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될 뻔한 일이던가.
벼슬길에는 오를 수 없었던 서북인으로서 하급관리나 군병과 
같은 직급이라면 몰라도 감히 어찌 '천하제일의 임금'을 꿈꿀 
수 있음이 가능하단 말인가.
다음날 아침, 산해관을 떠난 일행은 무령, 양평, 소현을 거쳐 최 
종 목적지인 연경에 토착할 수 있었다. 의주를 떠난 지 정확히 
25일 만에 2천 하고도 30리 노정을 모두 끝내고 청나라의 왕도 
인 연경에 도착하게 된 것이었다.
 연경에 도착한 일행은 외곽에 있는 법원사에 도착하여 우선 
간단한 제를 올렸다.
원래 이 절의 이름은 민충사. 이 절은 당 태종이 고구려 원정 
에서 패한 후 전몰 병사들의 넋을 애도하기 위해서 지은 절이었 
던 것이다. 연경은 연나라 때에 도읍이 되어 그때부터 연경으로 
불렸지만 그후 진, 한, 당 말에 이르는 기간에는 동북 변방을 지 
키는 치소였었다. 특히 수 양제와 당 태종은 다같이 이곳 
을 고구려 원정의 전진기지로 삼고 있었는데 이 연경이 중국의  
왕도가 된 것은 몽골족이 중국을 통일하여 원 제국을 세운  
이후부터였다 
  원은 연경을 대도라고 명명하였고, 그 이후 명 ·청대에  
이르기까지 북경은 중국 전역을 지배하는 국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연경을 드나드는 객상들은 마침내 이곳에 이르면 민충사에 들
러 간단한 제사를 올리고 분향을 하는 것이 상례였다. 당 태종이
고구려 원정 때 전몰한 병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만든 이  
절에 들러서 원혼들에게 무사히 대륙을 횡단할 수 있도록 도와  
줌을 감사하는 것이 그들의 통과의례였기 때문이었다.
  임상옥을 비롯한 객상들은 남문을 지나서 전문대가
의 골목에 있는 여인숙에 투숙하였다 
  전문대가라면 오늘날 북경에 빗 이름 그대로 남아 있는 거리  
인데 중국인들은 이 거리를 '치엔먼따지에'라고 부른다.
  이 거리는 지금도 옛 전통을 지닌 가게가 많은 거리로 북경인 
들띄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명소지만 그 당시에도 연경 제일의  
상가거리였었다 
  이곳이 연경 제일의 상가가 된 것은 청대 이후부터였다.
  임상옥이 연경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연경은 세 구역으로 나뉘 
어져 있었다. 하나는 내성, 외성 그리고 성밖 이렇게  세 부분이었다.
  원래 내성은 명대에 완성한 북경성의 안쪽에 발달한 마을로 
 관청가를 포함해 건물들이 바둑판처럼 구획지어져 있었다. 그러 
 나 청이 중국을 장악하자 이곳에 살고 있던 한족들을 모조리 쫓 
 아내고 관료들이나 만주족들이 대신 입주하였다. 그러므로 이곳 
 은 외지인뿐 아니라 한족들도 살 수 없었던 특수지역이었다. 자 
 연 이곳의 토박이인 한족들은 외성으로 쫓겨나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으며 자연 전루를 따라 형성된 이 거리에 
 상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대 세계 제일의 도시였던 북경의 거리는 한마디로 눈부시게 
호화로운 곳이었다. 마르코 폴로는 '호화롭고 번영된 큰 도시' 라 
하여 북경을 '칸발릭'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상가에는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번화하였다. 임상옥이 갖고 
온 인삼을 취급하는 곳은 주로 약종상들이었다. 이들은 
  전국 각지 혹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각종 한약재들을 사고 파는 
  한편 환자들이 오면 직접 조제를 해주거나 약을 팔곤 하였다.
이 약을 중약이라고 부르는데 반드시 중약에는 우리나 
라에서 생산된 인삼이 포함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고려인삼이 들 
어 있지 않은 중약은 약효가 없다 하여 인기가 없었다.
그러므로 조선에서 2천 리를 걸어 직접 연경까지 온 만상들의 
  인삼은 부르는 대로 값을 쳐주리만치 약종상들에게 인기 있는 
  품목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상품을 거래하는 방법은 장사꾼이 인삼을 들고 약종 
상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방법이 아니었다. 장사꾼들은 여인숙에 
거처를 정한 후 거래가 있는 중약점이나 약포상들에게 
연락을 취하면 그들이 여인숙을 찾아와서 그곳에서 흥정이 되곤
하였다. 자연 경매의 형식을 취하게 되는데 가격을 많이 쳐주는
상인들에게 상품이 낙찰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두 차례나 연경을 드나들어 경험이 있던 임상옥이 이 모 
든 흥정을 맡아 하였고 중국 상인들과의 통역도 모두 도맡아 하
였다  
  과연 임상옥을 연경에 보냈던 홍득주의 생각대로 홍삼의 인기 
는 대단하였다. 중국 상인들은 홍삼의 소문을 익히 듣고 있었으
며 바야흐로 인삼은 백삼에서 홍삼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흥정은 단 하루 만에 끝이었다  
  임상옥을 비롯한 객상들이 갖고 온 홍삼은 한 근당 30냥의 후 
한 값으로 쳐서 단숨에 모두 팔린 것이었다  
  임상옥이 갖고 온 홍삼의 양은 다섯 포. 다섯 포는 근으로 해 
서 50근. 50근은 모두 해서 은 천오백 냥이었던 것이다. 그 중에
서 임상옥의 몫은 은 3백 냥. 연경에 이르자마자 책문에서 고용
했던 청인과 마차꾼에게 품삯을 주고 나도 250냥이 고스란히 떨
어지는 거금이었던 것이다
  250냥이면 버젓한 문상을 개점할 수 있는 큰 자본이었으며 이 
제 임상옥은 독립된 점포를 가진 무역상으로 자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
  임상옥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단 하루 만에 무사히 흥정을 끝낸 임상옥은 이희저와 땅거미
가 내릴 무렵 연경의 밤을 구경하러 거리로 나섰다
   두 사람은 거리의 모퉁이에서 유명한 만두를 먹기 위해 음식 
 점으로 갔다. 그들이 간 만두집은 도일처란 음식점인데 
 특히 삼선만두가 유명하였다. 지금도 이 음식점은 북경 시내에 
 옛 자리 그대로 남아 있는데, 원래 이름 도일처는 청나라의 6대 
 황제였던 건릉제가 붙인 것이었다.
  임상옥이 연경에 들어가던 신유년인 1801년보다 2년 전인 
 1799년에 죽은 건릉제는 문화적으로 난숙한 소위 '건릉시대'라 
 는 청나라의 최전성기를 열었던 문화의 황제로 그는 평소 만두 
 를 좋아하였다.
  유명한 식도락가였던 건릉제는 곳곳에서 만두를 가져다가 먹 
 어 보곤 했었는데 '도일처'에서 가져온 만두를 먹어 본 후 '장안 
 제일의 만두집'이라 하여 옥호의 이름을 직접 지어준 바로 그 
 소맥관이 도일처 였던 것이다.
  임상옥과 이희저는 도일처에서 만두를 먹고 중국 술을 들이켰 
다. 임상옥과는 달리 이희저는 중국말을 전혀 할 줄 몰랐으므로 
 이희저는 이번 장사로 큰돈을 벌게 해준 임상옥에게 마음 깊이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희저는 음식값을 자신이 지불하였다. 음식을 먹고 나 
 왔을 때는 완전히 밤이 되어 있었다.
  가을밤이었다 
  이제 이틀 뒤면 또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고달픈 인생길이었지만 젊은 두 사람에게 그런 고생은 아 
 무런 두려움도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대처 연경의 
 눈부신 야경과 호화로운 풍경은 경이와 탄식의 대상일 뿐이었다.
  보는 것마다 눈이 부셨고 걷는 곳마다 새로웠다. 하늘 아래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은 두 사람의 마음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천하제일의 상인'을 꿈꾸는 임상옥과 '천하제일의 권력'인 왕
 위의 대역을 꿈꾸는 이희저는 하늘 아래 제일의 도시인 연경의
 밤거리를 비틀대면서 걷기 시작하였다 
  음식점을 건너 유명한 중약점인 동인당 앞으로 걸머가던 이희  
 저가 갑자기 좁은 골목으로 빠져들었다. 원래 외성에는 좁은 골  
 목이 많이 있고 이 골목을 중국인들은 후퉁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임상옥은 그런 골목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그것은 아버  
 지 임봉핵으로부터 들었던 말 때문이었다
  "후퉁은 매우 위험한 곳이다. 큰돈을 지니고 다니는 우리와 같 
은 상인들은 절대로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 임상옥은 성큼성큼 골목 안으로 들어가  
는 이희저를 향해 소리쳐 말하였다  
  "도대체 어딜 가고 있는가.이곳은 몹시 위험한 곳이네.이곳은
후퉁이라고 하는 골목으로 대낮에도 살인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네."
  "살인이 일어난다고?" 
  육척 거구에 천하장사인 이희저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이 항우장사를 상대로 살인이 일어날 수 있다고.너무 무서워  
말게나."  
  "구경거리라면 큰 거리에 더 많이 있다네. 이 길을 따라 가면  
전문이 나오네. 예전 북경성의 정양문이라고 불리
는 곳이지," 
 "그런 곳은 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내가 가고 싶은 곳은 
 그런 고리타분한 곳이 아니라 재미있는 곳이지.난 반드시 이 골 
 목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네. 하지만 무서워하지는 마시게. 수백 
 명이 달려든다고 해도 단숨에 해치을 수 있으니까."
  그들은 한낮에 거래를 끝내고 중국 상인들로부터 받은 거금을 
 전대에 넣어 몸에 두르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외지에서 굴러 
 들어온 장사꾼들은 현금이나 값나가는 물건을 지니고 있어서 토 
 박이 범죄꾼들에게 표적이 되는 것이 보통이었던 것이다.
  "고집 부리지 말고 돌아가세나."
  다시 한번 임상옥이 만류하자 이희저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자네가 싫으면 난 혼자라도 가겠네."
  중국말을 하나도 모르는 이희저에게 임상옥이 없다면 눈뜬 소 
 경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희저는 왜 그 골목을 굳이 가려 함일 
 까.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왜 그런 고집을 부리는가.꼭 저 골목 안으로 들어가 
겠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자 이희저가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물어 말하였다.
"정말 몰라서 묻는단 말인가,"
"...모르겠네 "
"아니 연경에 두 번이나 먼저 왔었던 자네가 초행길의 나보다 
  그 분명한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모르겠네.'
임상옥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임상옥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음을 확인한 이희저는 골목의 벽에 드리워진 물건 하나를 가 
리켰다.
  임상옥은 그가 가리킨 손끝을 따라 가 보았다. 그곳에는 붉은  
 등 하나가 켜져 있었다
  그것은 색주거리를 알리는 일종의 네온사인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임상옥은 그 붉은 등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붉은 등 때문에 굳이 저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겠다니."  
  그러자 이희저는 더욱 크게 웃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단 말인가.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 
 데."
  이미 이희저는 아내를 비롯하여 두 명의 처자가 있는 몸이었  
 다. 그에 비한다면 임상옥은 여색에는 전혀 문외한의 숙맥이었다. 
  "...난 정말 모르겠네."  
  임상옥이 대답하자 이희저가 손을 들어 임상옥의 머리를 가볍 
 게 때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아,저 붉은 등은 바로 이곳이 색주가라는 뜻일세. 이
 골목의 어딘가에는 몸을 파는 여자들이 있다는 뜻이지.사내대장
부가 큰돈을 벌었으면 호기롭게 중국 계집의 맛을 한번 봐야 하
 지 않겠나. 예로부터 중국에는 미녀가 많다고 하였는데 이런 대
처에 와서 보기만 하고 맛을 보지 않고 돌아간다면 평생 한이  
되지 않겠는가.자네가 도와주지 않는다 해도 난 혼자라도 갈 테 
니까 말리지는 마시게." 
  그제서야 임상옥은 이희저의 속마음을 알게 되었다. 
  홍등이 걸려 있는 거리,
  이희저가 가자고 고집을 부리던 홍등의 사창가는 오늘도 북경  
시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천안문 광장의 남쪽에 있는 문루는 중
국말로 '지엔러우'라고 불리는데 이 문 앞을 따라서 일직선으로 전문대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따로 발달된 거리가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고 이 거리 이름은 따짜란
 거리라고 부른다.
  겨우 차 한 대가 빠져나갈 정도로 좁은 거리인데 지금도 이 거
 리는 수백 미터에 불과하지만 북경 제일의 번화가인 것이다. 이 
 부근이 예로부터 사창가가 있던 곳으로 격자로 된 창과 서양풍 
 의 이층건물이 특히 눈에 많이 띄는 곳이다.
  1900년대 초에 이 거리는 대화재에 휘말려 전소되어 폐허가 
  되고 말았지만 그후에 재건되어 구 시가지 중에서 가장 서양풍 
 의 거리로 남아 있는 곳이다.
  중국인들은 이 거리를 '따짜란지에'라 부르는데 중 
  국인들끼리 '따짜란에 가자' 하면 '여자를 사러 사창가로 가자'
 는 일종의 은어 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희저가 본 붉은 등의 불빛은 이곳이 여인을 사고 
 파는 색주거리임을 나타내는 표지였던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임상옥은 친구를 모른 체할 수만은 없게 되었 
 다 이희저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두고 혼자 
  만 돌아온다면 중국말을 하나도 모르는 그에게 실제로 봉변이라 
 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래서 두 사람은 함께 사창가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북경 제일의 서커스 극장인 북경잡기단이 있는 거 
 리는 붉은 등불로 온통 흔들리고 있었다.
여인의 몸을 사러 온 사내들과 이들을 유혹하는 여인들의 교 
 태어린 웃음소리와 분단장한 냄새는 가을밤을 가득 수놓고 있었 
 다.
  인력거를 타고 오는 사내들도 많이 있어 좁은 거리는 손님을 
  태우고 달려가는 쿠울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호기를 부리긴 하였지만 두 사람 모두 아득한 외지에서 굴러
 들어온 촌놈들인지라 막상 어떻게 할 줄을 몰라 어리등절하고
 있는데 누군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손을 잡아 이끌었다  
  "색시를 찾는 참이유."  
  키가 작은 노파였다
  "좋은 색시가 있으니 한번 따라와 보구려." 
  노파는 입을 활짝 열고 웃었는데 이빨에 검은 칠을 하여 이빨 
 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망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원래 중국
 사창가에서는 호객을 하거나, 거리에까지 나와서 유객행위를 하 
 는 일은,드물었다. 여인들은 집안에 숨어 있고 여인을 사는 사람 
 들이 제 발로 찾아가 여인을 고르는 것이 관례였다. 그럼에도 노
 파가 직접 나서서 호객행위를 하는 경우는 어차피 경쟁 때문이나 
었을 것이다
  임상옥과 이희저는 노파의 뒤를 따라 또 다른 골목으로 접어 
들었다. 골목골목마다 붉은 등불이 넘실거려 때아니게 단풍이 물 
든 것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노파는 전족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걸음걸이가 어린애처럼 아장아장하였다
  골목에서는 여인들의 낄낄거리며 웃는 웃음소리와 비파 소리
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파는 골목 끝에 있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비교적 큰 집으로
집안은 아래층과 위층의 이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전통적인 붉은 빛으로 장식되어 있는 색주가의 안채는 이미
먼저 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래층에서는 형식적으로 술
과 차를 팔고,계단을 올라 커튼이 쳐진 이층 안쪽에서 여인들을 
사고파는 흥정이 이루어지는 모양이었다.
아래층에는 술을 마시면서 마작을 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질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노파가 두 사람을 데리고 오자 입구
를 지키고 있던 사내가 노파에게 엽전 하나를 주어 사례를 하였
다.
"재미 많이 보시유."
노파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사내는 두 사람을 집안으로 이끌었는데 두 사람의 특이한 복
장은 단박 눈에 띄었다. 색주가 안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모두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장소가 장소니만치 살벌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자기 구역 안에서는 손님을 철저 
히 보호하는 관습이 있었다.
두 사람이 탁자에 앉자 사내는 사라졌고 곧 나이든 여인 하
가 나타났다. 비단옷을 입은 여인은 마치 중국의 전통적인 연극 
경극에 나오는 배우처럼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으며 손에
는 때아닌 부채를 들고 있었다.
"술을 마시러 오셨나요."
여인은 교태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뭐라는 거야."
중국말을 모르는 이희저는 임상옥에게 다시 물었다.
"술을 마시겠냐고 물었어.'
"술,술을 마시러 은 게 아니라 여자가 필요해서 왔다고 대답 
  해 ."
임상옥은 시키는 대로 통역을 하였다. 그러자 여자는 부채를 
부쳐 바람을 일으키면서 호호호호 소리내어 웃었다. 그녀는 알겠
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두 사람은 두리번거
리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붉은 주사 빛으로 장식된 이층 벽에는 번쩍이는 금박이 
칠해져 있었고 벽에는 흰 비단으로 만든 족자가 걸려 있었다. 족
자 속에는 한결같이 비단옷을 입은 여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 
었다 
  "저 그림 속의 여인들은 이 색주가에서 돈을 주면 살 수 있는 
여인들의 모습인 것 같은데."  
  눈치 빠른 이희저가 족자 속의 여인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희저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색주가에서는 자신들이 소 
유하고 있는 인기 있는 창녀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실물 크
기로 벽에 걸어놓고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 그림 속의 여인 중에서 자네는 어떤 여인이 마음에 드는
가."  
  이희저는 벽에 내걸린 대여섯 명의 여인들을 눈으로 훌어 감
상하면서 물어 말하였다 
  "...글쎄. 난 모르겠네."  
  임상옥이 대답하자 이희저는 자신있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난 키가 큰 계집일수록 마음에 드네. 소문에 듣기로는 키가 
작은 조선 여인들과는 달리 중국 계집들은 키들이 크고 늘씬하 
 다는 소문을 들었네. 키가 크고 허리가 개미처럼 가는 여인이라
 면 나는 전대 속에 들어 있는 돈을 다 주고서라도 하룻밤을 데
 리고 자며 만리장성을 쌓을 거네.얼굴이야 난 따지지 않아.피부 
 가 희고 키가 크며 허리가 가는 계집이면 떵호아일세, 으핫하하
 하,'
  이희저는 자기가 알고 있는 유일한 중국말인 '떵호아'를 사용 
 하고 나서 스스로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는 듯 큰소리로 웃었 
  다.
  이희저는 댁에 걸린 여인들의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꼼꼼하게 
  쳐다본 후 마침내 결심이 섰는지 임상옥을 쳐다보았다.
  이희저는 벽에 걸린 족자 중에서 한가운데의 여인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아무래도 난 한가운데에 걸린 계집이 마음에 드는걸."
붉은 비단옷을 입고 트레머리처럼 목 뒤에다 머리를 틀어올린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사라졌던 여인이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여인의 손에는 조그만 책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여인은 그 책 
  자를 두 사람 앞에 펼쳐 보이면서 말하였다.
"이 책 속에는 우리 집에 있는 여자들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원하는 여인들을 고르십시오."
임상옥은 여인이 펼치는 책자를 뒤적여 보았다. 과연 여인의 
말대로 이 집에 속해 있는 여인들의 온갖 명세가 세세히 적혀 
있었다. 나이에서부터 이름,출신지 그리고 생긴 모습은 그림으로 
  꼼꼼하게 그려저 있었다.
"..뭐라는 거야,'
 이희저가 임상옥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 이 책 속에 들어 있는 여자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고
 르라는 거야."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고르라구."
  이희저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마음에 드는 계집이라면 바로 저년이야."  
  이희저는 책은 펼쳐볼 생각도 않고 손을 들어 벽에 걸린 한가 
  운데의 여인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난 저 여자가 마음에 들어.저 여자와 하룻밤을 자겠어." 
  임상옥은 이희저의 말을 통역해서 여인에게 전해 주었다. 여인
 은 이 집의 살림살이와 매춘을 총괄하는 직책을 갖고 있는 모양
 이었다
  임상옥의 말을 들은 여인은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입을 가
 리며 웃었다
  "저 애는 아주 예쁜 아이입니다. 하지만 값이 좀 비싼데요." 
  "뭐라는 저야."  
  성격이 급한 이희저가 임상옥에게 물었다 
  "저 아가씬 아주 예쁜 아가씨여서 값이 좀 비싸다는 거야."
  "값이 비싸다구."  
  이희저는 소리를 질렀다
  "억만금을 준대두 상관 없어. 저 계집이 아니면 난 그냥 돌아
가겠어."
  여인과의 흥정은 의외로 까다로웠다
  이희저가 가리킨 그 여인은 아마도 이 색주가 안에서 가장 인
기 있는 창녀였던 모양이었다. 은 열 냥을 줘야만 짧게나마 만날
수 있고 하룻밤을 함께 지내려면 은 오십 냥을 줘야 한다는 것
이 여인의 설명이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이희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좋소 일단 열 냥을 주겠소. 그 대신 마음에 들면 다시 오십 
 냥을 주겠거니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 벽에 걸린 계집들을 한 
 사람씩 다 불러다가 열 냥씩 주고 한꺼번에 잠을 자겠소."
  임상옥이 통역해 준 말을 들은 여인은 가볍게 이희저의 등을 
  부채로 때리면서 말하였다.
  "하오써 한.'
여인은 이희저를 끌고 계단을 올라 휘장 뒤로 사라졌다. 임상 
옥은 홀로 아래층에 낳아 기다리기로 하였다. 이희저가 일을 끝 
내고 돌아을 때까지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기다리겠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임상옥에게도 뜨거운 정열이 있었다. 한창 피가 끓어오를 
20대 초반의 나이가 아니었던가. 여색에 대한 욕심도, 호기심도 
터질 것처럼 충만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여인의 몸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은 더러운 일이다 여인의 몸 
을 사랑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모르지만 여인의 몸을 상품처럼 
사고 판다는 것은 법도에 어긋난 일이다. 분명히 말해서 인신
은 물건이 아니며 상품이 아닌 것이다. 여인을 한갓 돈으로 
사고, 돈으로 파는 행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범죄며 이 때문에 인신매매의 죄를 저지른 인간은 훗날 노예나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나는 죄값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임상옥이 평생 지켜나간 법도 중의 하나였던 것 
이다. 비단 여인뿐이 아니다. 돈으로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고 인 
간이 지닌 존엄성을 무시하는 행위도 결국 인신매매의 범죄행위 
와 같은 것이다. 하늘 아래 인간은 돈에 의해서 살 수 없으며,또 
한 돈에 의해서 팔 수도 없으며, 돈에 의해서 지배받거나 돈에  
의해서 복종할 수도 없는 단 하나의 존재인 것이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먼 곳에서 등등등 북소리가 들려왔다. 꾸러우에
서 들려오는 북소리였다. 원래 원나라 때 대도가 되었던 연경의
시간은 타이꾸의 큰 북을 두드려 알렸는데 하루를 열둘로
나누어 매 시간 북을 두드렸던 것이다. 방금 들려온 소리는 해시  
를 알리는 북소리.오늘날의 밤 아홉 시를 알리는 북소리  
였던 것이다 
  꾸러우는 원대에 만든 연경의 배꼽과 같은 중심점.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큰 북은 60개 정도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넓은 방에 
전시되어 있다. 때문에 시간을 알리는 큰북소리는 연경의 어느 
곳에서도 잘 들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해시의 북소리. 이 소리와 더불어 연경의 모든 성문이 닫히게  
되는 것이다. 성밖에서 성안으로 들어을 수 없으며 성안에서 성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직 통행의 자유는 있지만 
이 북소리는 일종의 통행금지의 사이렌 소리와 같은 의미를 지 
니고 있는 것이다
  해시를 가리키는 북소리를 듣자 임상옥은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돌아가지 않으면 날이 밝을 때까지 이 거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걷잡을 수 없는 봉변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이희저를 위층으로 안내하였던 그 여인이 계단 위에서 나타나  
임상옥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친구분이 오시라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이희저를 데리고 돌아가려 했던 참이라 임상옥 
  은 반갑게 대답하였다.
  "그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위층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 오십시오."
여인은 앞장을 섰다. 임상옥은 여인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분홍빛 휘장으로 가려진 내실 안쪽은 작은 
 방으로 연이어져 있었고, 좁은 복도는 홍등으로 물들어 있었다.
  가장 구석진 방에 이르러 여인은 걸음을 멈추었다.
"들어가세요."
임상옥은 여인이 이끄는 대로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안도 역시 
붉은 불빛으로 물들어 있어 어두침침하였다. 중국 특유의 침대가 
한구석에 놓여 있었고 탁자 위에는 손님들이 무료할 때 까먹을 
수 있도록 검게 물들인 해바라기 씨가 가득 들어 있는 접시가 
놓여져 있었다.
"그 친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임상옥은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들어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눈빛 
으로 여인을 노려보면서 물었다.
"곧 올 겁니다. "
여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금방 올 겁니다. '
여인은 다시 사라졌다. 임상옥은 초조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일 
까.무슨 일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이희저가 자신을 만나고 싶다 
면 굳이 자신을 이처럼 은밀한 내실로 따로 불러들일 필요가 없 
지 않은가.
  임상옥은 허리춤에 숨겨둔 단도를 가만히 어루만져 보았다. 객
상들은 비상용으로 무기 하나쯤은 몸 속에 숨기고 다니는 습관  
이 있었다  
  만약에 위급한 사태가 벌어지면 칼을 뽑아서라도 난국을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임상옥은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  
지 않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반대편 문 쪽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임상옥이 소스라쳐 놀란 것은 등뒤에도 문이 있어 그곳에서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앞문으로 사라졌던 여인이 반대편  
쪽에서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였 
다. 임상옥이 놀라자 여인은 긴장을 가라앉히려는 듯 교태어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친구분께서 손님에게 여자를 보냈습니다. "
  여인은 함께 나타난 여인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혼자만 재미를 보는 것이 미안해서인지 손님에게도 여자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값은 친구분이 벌써 다 치르셨습니다. "
  "그 친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임상옥은 어이가 없어져서 여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인은 부
채를 부치면서 웃었다
  "어딘가에서 한창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날이 밝은 내일 아침
에 만나자고 말했습니다. " 
  여인은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말을 끝맺었다. 
  "손님께서 이 여자를 돈을 주고 샀으니 이제 이 시아오지
는 내일 아침까지는 손님의 소유물입니다. 이 여인을 죽이든  
지 살리든지 그건 손님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
여인은 사라졌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임상옥은 졸지에 합방하게 된 것이었 
다. 이제는 꼼짝없이 싫든 좋든 낯선 여인과 한 방에서 지내게 
된것이다.방은 일인방.중국어로는 딴런팡이라고 부른 
다. 매우 좁아서 움직이기만 해도 살이 마주치는 방안에서 젊은 
처녀와 함께 있는 것이다. 방안에는 추앙웨이라 불리우는 중국 
특유의 침대가 있고 침대 위에는 전터오가 나란히 놓 
여 있었다.
  여인은 우두커니 방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마치 주인의 명령 
을 기다리고 있는 하인처럼.
  "앉으시오."
  그냥 세워두기도 뭐해서 임상옥은 가만히 여인떼게 말했다. 그 
 러자 여인은 침대 위에 앉았다. 그제서야 밖에서 타오르고 있는 
 붉은 불빛 아래 여인의 얼굴이 분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 순간.
  임상옥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불빛 아래 드러난 여인의 얼굴은 일찍이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볼 수도 없는 천하의 절색이었던 것이다.
  훗날 <가포집>에서 임상옥은 이 여인을 단 한 번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일찍이 중국의 정사에서는 양귀비를 '자질풍염'한 
절세의 미인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당나라 시인 이백은 
  양귀비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하였다. 백낙천은 양귀비를 주인 
 공으로 '장한가'를 노래하였는데, 내가 그날 본 그 여인 
은 양귀비가 다시 살아 환생해 온 듯하였다..."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가포집>을 편찬하였던 만년의 임상 
옥이 늦게나마 고백하였던 이 여인. 임상옥이 표현하였던 것처럼 
감히 양귀비의 아름다움과 비유하였던 이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  
남은 이처럼 전혀 엉뚱한 곳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작은 우  
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여인의 이름은 장미령. 임상옥과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녀의 나이 열다섯 살이었다 
  붉은 불빛 아래 처음으로 드러난 장미령의 모습을 본 순간 임 
상옥은 가슴이 서늘하였다. 천하의 미색 또한 인위적으로 가꾸어 
지는 것은 아니고 하늘이 스스로 내는 법. 여인의 모습은 감히  
지상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정색을 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 여인은 이러한 곳에 있을 여인이 아닌 것이다. 모든 물건은
제자리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모든 나무와 작은 풀들 그리고 하 
찮은 돌멩이 하나도 있어야 할 제자리에 놓여 있기 마련인 것이  
다. 하물며 작은 돌 하나도 그러하거늘 하늘 아래 인간이야 일러 
무삼하겠는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던 여인의 어깨가 들썩이며 흔  
들리기 시작하였다. 소리를 죽여 참고 있었지만 임상옥은 여인이 
울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그리고 여인의 입에서 무슨 신음소리 같은 것이 짧게 흘러나  
오고 있었다
  임상옥은 그 신음소리를 귀기울여 들었다. 흐느끼며 우는 여인
 의 입에서 간신히 흘러나오는 외마디 신음소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지우 밍 아."
흐느끼며 우는 여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외마디의 신음소리.
'지우 밍 아'의 신음소리는 우리말로 하면 '살려주세요'라는 
절명의 하소연이었던 것이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여인은 숨죽여 울면서 들릴락말락 가냘픈 신음소리로 말하였 
다.
임상옥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살려 달라니.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을 리가 없다. 난 그녀를 살려줄 만한 사람이 
못된다. 난 단지 보따리장수에 불과하며 일시 지나가는 과객에 
불과한 것이다.
임상옥은 일단 그녀를 진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상옥은 
탁자 위에 뜨거운 물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중국사람들은 항 
상 열수를 끓여놓고 찻잎을 우려내어 마시는 습성이 있었 
다.
임상옥은 차뻬이에 녹차를 집어넣고 그 위에 뜨거운 물 
을 부어내렸다. 향긋한 차의 향기가 곧 피어올랐다.
"소저 ."
임상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인을 향해 말하였다.
"차를 한 잔 드세요. 그러면 마음이 가라앉을 것입니다. "
임상옥은 여인의 어깨 위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여인의 벗은 
어깨의 맨살이 손끝에 느껴졌다. 불처럼 '뜨거운 몸이었다. 살짝 
손을 스치기만 하였는데도 손길이 데일 만큼의 뜨거운 체온을 
가진 여 인이었다
  순간 뜨거운 차를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힐 사람은 그녀가 아 
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임상옥은 깨달았다. 임상옥도 뜨거 
운 차를 천천히 마시기 시작하였다. 임상옥이 준 찻잔 하나가 여 
인의 마음에서 두려움을 빼앗아갔는지 이윽고 여인의 어깨가 진 
정되기 시작하였다 
  붉은 불빛 아래 드러난 차를 마시는 여인의 모습은 이 지상에
서 볼 수 있는 미색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와 같이 하늘의 여인  
처럼 아름다운 선녀가 어떻게 이런 색주가까지 흘러들어와 몸을 
파는 창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임상옥은 여인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천천히 물
어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여인은 긴 한숨을 쉬면서 다음과 같  
이 말하였다
  "제 이름은 장미령.나이는 열다섯 살입니다. 오늘 제가 대인어
른께 나온 것은 처음으로 손님을 받는 날입니다. 저는 처녀의 몸 
입니다. 그러니 대인어른,저를 살려주십시오.지우 밍 아."
  여인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임상옥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처녀의 몸이라니.자신의 말처럼 열다섯 살의 이 소저가 한 번 
도 남자를 경험하지 않은 처녀의 몸이라니.그리고 또한 내가 이  
색주가에서 그녀가 맞은 최초의 손님이라니  
  장미령은 천천히 임상옥에게 자신이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경 
 위를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소녀의 고향은 절강성으로 태어난 곳은 소흥이었다. 
  중국말로 사오싱이라고 불리는 소흥은 원래 춘추전국시대 때 
월국의 도읍지로 전쟁에서 패한 월왕 구천이 그 복 
수를 맹세하고 장작 위에 누워 곰의 쓸개를 할으며 굴욕을 되씹 
으면서 자신을 패하게 한 오왕 부차에 대한 복수를 꿈러온 
와신상담의 바로 그 고장인 것이다 
  최근에는 중국 최고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노신(1936)
의 고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노신은 그의 작품 
 에서 소흥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혹한을 무릅쓰고 2천 리를 거쳐 20여 년 동안 소식을 전하 
 지 못하던 고향으로 나는 돌아왔다 계절은 한겨울,고향에 가까 
워 옴에 따라 날씨도 흐리고 차디찬 바람이 선창에 불어와 부 
 웅-하고 소리를 냈다. 배 사이로 보면 회청색의 하늘 아래, 여 
기저기에 괴로운 듯 마을들이 누워 있고 아무런 활기도 없다. 끊 
임없이 내 마음에 비애가 일어났다. '
  노신이 표현하였던 대로 끊임없이 마음속에 비애가 일어나는 
강남의 작은 마을 소흥은 그러나 두 가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 하나는 중국 8대 명주로 손꼽힌다. 
멥쌀과 밀,그리고 소흥이 자랑하는 맑은 호수인 지엔후 
의 물로 빛어지는 소흥주는 2천4백 년의 전통을 가진 중 
국의 대표적인 명주인 것이다. 이 소흥주의 빛깔은 붉은 갈색 빛 
으로 그래서 이 술을 황주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유명한 것은 이 지역에서 중국의 미인들이 많이 태어 
 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이 지방 사람들은 이 지방 특유 
의 맑은 물 때문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술과 미인은 동색이던가.
  임상옥이 고백하였던 것처럼 절색의 미인 '장미령'이 태어난 
고향은 전통적인 미의 색향인 바로 소흥이었던 것이다. 
  소흥이 전통적으로 미인들의 고향임은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
난 미인이었던 서시의 고향이 바로 이 소흥이라는 사실에 
서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저라산 근처에서 나무장수의 딸로 
태어난 서시는 너무나 뛰어난 절세미인이었으므로 여인들이 무
엇이든 서시의 흉내를 내면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병이 들었을 때의 서시가 찡그리는 모습까지 흉내냈다고 전해지 
고 있는 전설적인 미인이었던 것이다 
  월왕 구천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호색가인 오왕 부차 
에게 서시를 헌납하였는데 오왕은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치를 
 태만히 했다. 결국 부차는 구천의 미인계에 빠져서 마침내 멸망
 하고 말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뛰어난 미녀'를 일컫 
는 경국지색이란 말은 바로 서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도 소흥시 외곽에는 서시가 태어난 산이라는 서시산 
이 있다
  장미령의 아버지는 대대로 유명한 지아판지우를 만드
 는 도갓집의 장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소흥주는 거북 모양의 
 독특한 도자기 병에 담는 것으로 유명한데 장미령의 아버지는
 그러니까 술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술을 담는 거북 모양의 도
 자기를 만드는 도공이었던 것이다  
  자연 술을 가까이 하게 되어 나이가 마흔이 되기도 전에 술이
 없으면 한시도 살 수 없는 술주정뱅이가 되었다. 장미령의 어머
 니는 먼저 병들어 죽어버렸는데 이때 남은 형제가 딸이 넷에 막 
 내만이 아들이었다. 장미령은 그 중 세 번째 딸이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일도 하지 못하게 되어 쫓겨나게 되었으 
 며 마침내 병을 얻어 장님이 되어버렸다.
  아버지의 병을 고치는 것은 물론 하루하루의 끼니마저 걱정해 
 야 할 판에 어느 날 마을로 연경에서 수상한 사람들이 흘러들어 
 왔다. 사람들은 이들을 호릿꾼이라고 불렀다. 호릿꾼이란 원래 
 '호리'에서 비롯된 말인데 이는 여우와 살괭이처럼 숨어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들 호릿꾼은 가난 
 한 집의 딸을 돈을 주고 사들였다. 이들은 절대로 사내아이들은 
 사지 않았고 여자아이들만 사들였다. 인물과 생김새에 따라서 값 
 이 매겨졌다. 이들은 남의 딸을 돈을 주고 사다가 부잣집의 첩으 
 로 팔아넘겨 팔자를 고치게 해주겠다고 했지만 실은 돈을 주고 
 사다가 연경의 색주가게에 창녀로 되팔아 넘기는 인신매매꾼들 
 이었던 것이다.
  딸의 아버지는 거금의 돈을 주고 자신의 딸을 사겠다는 호릿 
 꾼의 말에 솔깃하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만 빼어놓고 나머지 
 딸 넷을 모두 팔아넘기기로 하였다.
  그러나 맏딸은 너무 나이가 많아서 흥정에서 제외되었고 둘째 
 딸과 셋째딸인 장미령만이 매매되었다. 넷째딸은 아직 열 살도 
 채 되지 않아 너무 어렸기 때문에 빠졌다. 둘째딸은 은 50냥에 
 값이 매겨졌으며 장미령은 은 70냥에 매매되었다. 술주정뱅이 아 
 버지는 딸을 팔아 거금의 돈을 마련하자 기분이 좋아 그날로 거 
 리로 뛰쳐나가 실컷 소흥주를 퍼마셔버렸다.
  장미령은 언니와 헤어져서 그날로 연경으로 옮겨졌다. 장미령 
 은 연경에 도착한 즉시 유명한 사창가인 따짜란의 한 색
주가로 되팔려졌다. 70냥에 장미령을 사들인 호릿꾼은 순식간에 
80냥을 더 벌었다. 장미령의 빼어난 미모에 색주가에서는 유쎄없
는 값을 지불하고 그녀를 사들인 것이었다  
  그러니까 장미령이 이 색주가에 팔린 뒤 첫 손님으로 만난 사 
람이 바로 임상옥이었던 것이다  
  장미령은 색주가에 팔렸을 때만 해도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손님을 받고 몸을 팔
아야 한다는 주인의 말을 듣자 비로소 장미령은 자신이 노예처 
럼 몸이 팔렸으며 결국 창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 
게 된 것이었다
  장미령은 무서웠다
  처녀의 몸으로 그 첫 번째의 남자를,돈을 받고 모르는 남자에
게 몸을 팔아야 한다는 사실에 장미령은 두렵고 슬퍼서 혀를 깨
물고 죽어버리고 싶었던 것이었다 
  "지우 밍 아." 
  살려주세요 하고 울면서 하소연했던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 
었다  
  그러나 난처해진 것은 오히려 장미령보다는 그녀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임상옥이었다. 장미령은 임상옥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 
였지만 정작 임상옥에게는 장미령을 살려줄 만한 힘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오늘 밤은 그녀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고 그녀
를 보호하고 그녀의 처녀를 지켜줄 수는 있다. 그러나 내일이면 
그녀는 또다시 다른 남자에게 돈을 받고 몸을 팔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돈을 받고 호릿꾼들에게 팔아넘긴 이상 
그녀는 이미 올가미에 걸려든 셈인 것이다  
  임상옥은 물끄러미 여인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붉은 등불 속에 
드러난 여인의 모습은 천상의 아름다움이었다. 이런 천하의 절색 
은 앞으로도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밤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뿐 아니라 이 여인은 오늘 밤 나의 것이다. 이 
 미 이희저가 값을 지불하고 이 여인을 사서 내게 넘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인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오직 내 손에 달려 있 
 는 것이다.
그녀가 울면서 애원한다고 해도 나는 이 여인을 가질 수 있다.
  그녀의 처녀성을 빼앗을 수 있다.
  순간 임상옥은 욕망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느낌이었다. 이희저의 말처럼 그 여인은 키가 
 컸지만 허리는 개미처럼 가는 전통적인 중국의 미인이었다. 눈물 
  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일까.한바탕 을 
 고 난 여인의 모습은 이슬을 머금은 모란꽃처럼 매혹적이었다.
  변방의 떠돌이 장사꾼으로 태어나 한평생 객상으로 늙어 죽을 
자신의 인생에서 앞으로 이처럼 절색의 미인을 다시금 만날 수 
가 있을 것인가.
임상옥은 사내로서의 욕망을 느꼈다. 그래서 손을 뻗어 장미령 
의 손을 찾아 쥐었다.
장미령의 손은 잘 빛은 만두와도 같았다. 손을 만지는 순간 임 
상옥은 격렬한 욕정이 끓어올랐다. 그래서 여인의 어깨 뒤에 손 
을 넣어 침대 위에 쓰러뜨렸다. 그 순간 여인의 몸이 다시 흔들 
리기 시작하였고 여인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흘러나오 
고 있었다.
"지우 밍 아.대인어른,저를 살려주세요.지우 밍 아."
  그 여자의 신음소리가 비수가 되어 임상옥의 심장에 내리박혔 
다. 임상옥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내가 어떻게 너를 살려줄 수 있단 말인가."
  임상옥은 그녀에게 소리질러 따져 묻고 있었다. 내가 무슨 힘 
으로 너를 구해줄 수 있단 말인가  
  임상옥은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끓어오르는 마음을 간신히 진
정시켰다 
  가까이 가지 않으리라
  임상옥은 결심하였다
  다시는 여인의 곁으로 가까이 가지 않으리라 
  그날 밤 
  임상옥은 밤을 새웠다
  불안에 떨던 장미령은 피로에 지쳐 잠이 들어버리고 임상옥은
한잠도 이를 수가 없었다
  마침내 먼 곳에서 시간을 알리는 타이꾸의 북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두등 두등 등 등 등- 
  묘시를 알리는 북소리였다
  묘시라면 오늘의 새벽 다섯 시
  이 북소리에 의해서 닫혔던 성문이 열리고 통행금지가 풀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임상옥은 날이 밝을 때까지 꼬박 밤 
을 새운 것이었다
  임상옥은 날이 밝을 때까지 한 가지의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이 생각 하나가 임상옥의 어두운 인생에 빗장을 여는 개금출
, 즉 결정적인 열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룻밤은 임상옥 
에 있어 '운명의 밤'이었던 것이다 
 밤을 꼬박 새우면서 생각하였던 임상옥의 상념 하나는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임상옥은 열다섯 살의 나이 때 일년간 추월암에서 행자생활을 
하였었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 글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아 
비 임봉핵의 고집 때문이었다.
의주의 북쪽으로는 금강산이 솟아 있는데 해발 221미터밖에 
안되는 야산이지만 계곡이 깊고 험준하였다. 이 산에는 금강사와 
천왕사 같은 큰 절이 있었는데 임상옥이 들어간 것은 금강사의 
말사인 추월암이었다. 추월암은 세 개의 사찰 중에서도 산정에 
있는 암자로 연중 물이 마르지 않는 곳이었다. 굳이 아비 임봉핵 
이 추월암에 임상옥을 밀어넣은 것은 빼어난 풍광보다는 이 암 
자에 석숭이란 큰스님 한 분이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스님은 괴팍하기로 소문이 나 있던 사람이었다.
석숭은 평생을 금강사의 말사인 이 암자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산문 밖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임상옥은 아비의 뜻에 따라 금강산에 들어가 추월암에서 석숭
스님을 시봉하면서 일년간 행자생활을 했었다. 그러나 임상옥은 
이 큰스님을 멀찌감치서 보기만 하였을 뿐 경전을 읽고 글을 배
운 것은 석숭 스님의 시자였던 법천 스님으로부터였다.
하루는 됫산에서 나무를 하고 내려오는데 바위 위에서 해바라 
기를 하고 앉아 있던 석숭 스님이 임상옥을 향해 손짓하였다. 나 
뭇짐을 등에 지고 산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던 임상옥을 스님이 
부르자 그 길로 지게를 내리고 스님 앞으로 달려갔다.
  임상옥이 가까이 오자 석숭 스님은 느닷없이 말하였다.
  "이 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석숭 스님이 주먹을 쥐고 손을 들어 임상옥에게 내밀면서 소 
리쳐 물었다. 임상옥은 스님이 내민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로서는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는 선문이었다. 느닷없이  
주먹을 쥔 손을 내밀고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알아맞춰 
보라니  
  "이 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냐"고 물은 뒤 석숭 스님은 임상옥
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일갈하여 소리쳐 다시 물었다
  "..모, 모르겠습니다. "  
  그 순간 스님의 큰 손이 임상옥의 머리통을 한 대 후려쳤다. 
그 길로 임상옥은 땅 위에 쓰러졌다. 너무나 아파서 눈물이 나을
것 같았다 
  "이놈아, 그것도 몰라. 이놈아,그것을 알 때까지 모르면 계속 
대갈통을 두들겨 맞을 것이다. " 
  만날 때마다 석숭 스님은 주먹을 내밀고 임상옥에게 이 손 안
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물었다. 임상옥은 죽을 맛이었다. 번번 
이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고 그럴 때마다 임상옥은 때리  
는 대로 한 방 얻어맞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었다 
  아무리 피해 다녀도 하루에 한 번씩은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
는 큰스님 석숭이었다. 석숭은 만날 때마다 법당 안이든 변소인 
해우소 앞이든 계곡이든 간에 주먹을 내밀고 '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묻고,그럴 때마다 임상옥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번번이 한 방 얻어맞곤 하였는데 
어떤 때는 지게막대기로 혼쭐이 날 만큼 얻어맞기도 하였다  
  임상옥은 고민 끝에 한 가지 죄를 생각해냈다. 그것은 살아남 
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석숭 스님이 머물고 
있는 암자의 뜨락을 빗질하고 있는데 아니나다를까,청소를 하고 
있는 임상옥을 보자 장난기가 발동되었는지 석숭 스님이 다가오 
고 있었다.
석숭이 다가와 주먹을 쥐며 내밀려는 찰나에 먼저 임상옥이 
주먹을 쥐고 석숭에게 내밀면서 말하였다.
"큰스님, 이 손 안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의외의 공격이었다. 허를 찔린 석숭이 놀라면서 몇 발자국 물 
러섰다. 석숭은 임상옥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임상옥으로서는 배 
수의 진이었다. 여기서 물러났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네 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냐구."
  여전히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석숭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 손 안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그걸 모른다면 네 롬이 나를 어떻게 할 셈이냐."
  웃음기 어린 얼굴이었지만 석숭의 안광만은 형형하였다.
"모른다면 네 놈이 감히 나를 때릴 셈이냐."
"물론입니다. 모르신다면 큰스님을 때리겠습니다. "
"나를 때려. 도대체 무엇으로 말이냐."
그러자 임상옥이 마당을 쓸고 있던 빗자루를 가리키면서 말하 
였다.
"이 빗자루로 때리겠습니다. "
"정말 그 빗자루로 나를 때리겠다구"
  껄껄... 소리나게 석숭은 웃었다.
"좋다. 내가 너에게 맞을 수는 없지.그러면 내게 다시 한번 물 
어보아라."
  석숭이 임상옥에게 말하였다. 임상옥이 주먹을 세워들고 석숭
에게 내밀어 다시 물어보았다
  "이 손 안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모른다."
  웃으면서 석숭이 대답하였다. 그 순간이었다. 그러한 대답을 기  
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임상옥이 마당을 쓸던 대비를 들어 사정
없이 석숭의 몸을 내리친 것이었다 
  석숭이라면 추월암에서뿐 아니라 금강산 안의 모든 절에서 존  
경하는 당대의 선객.그 큰스님의 몸을 한갓 행쟈에 불과한 열다
섯 살의 소년이 텟자루로 한 대 후려친 것이었다
  그러자 석숭은 쓰러지면서 소리질렀다 
  "아이구, 저놈이 사람 죽인다. 저놈이 사람 죽인다. "
  석숭의 큰소리에 온 절이 발칵 뒤집혔다. 놀란 스님들이 여기
저기서 뛰쳐나왔다. 그들은 마당에서 벌어진 기묘한 사태에 어안
이 벙벙하였다. 어린 행자가 빗자루를 들고 있고 큰스님이 그 뎃
자루에 맞아 쓰러진 형국을 보자 그들은 달려가 임상옥의 손에
서 텟자루를 빼앗아 들었다. 또한 임상옥에게 몰매라도 가하려는
듯 기세가 등등하였다
  그러자 석숭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몸을 툭툭 털고 일어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버려둬라, 이놈들아. 수년씩이나 절밥을 먹은 밥도둑놈들인
네 놈들보다 상옥이가 휠씬 낫다. 다시 한번 물어라."  
  석숭은 임상옥을 쳐다보며 정색을 하여 말하였다  
  "무엇을 말입니까."
  임상옥이 묻자 석숭이 대답하였다
 "조금 전에 내게 했던 질문을 똑같이 하여 보거라."
임상옥은 시키는 대로 주먹을 세워 석숭에게 내밀면서 똑같이
물어 말하였다.
"이 손 안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네 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칼이다. "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석숭은 뒷짐을 지고 산으로 사라졌다.
  임상옥은 마침내 기묘한 방법으로 정답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 
  이다.
이튿날이었다.
뒷산에서 나무를 하고 숲길을 내려오는데 바위에 앉아 해바라
기를 하고 있던 석숭 스님을 다시 만났다. 임상옥을 보자 자기의
곁으로 가까이 오도록 손짓을 한 후 가까이 오자 석숭이 손을 
내밀며 물어 말하였다.
 "이 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이미 정답을 알아버린 임상옥이 쾌재를 부르면서 기다렸다는 
듯 말하였다.
 "큰스님의 손 안에는 칼이 들어 있습니다. "
 임상옥이 대답하자 석숭이 말하였다.
"옳거니,"
 석숭이 다시 손을 내세우면서 물어 말하였다.
 "그렇다면 이 손에 들어 있는 칼이 사람을 살리는 칼이냐, 아
 니면 이 손에 들어 있는 칼이 사람을 죽이는 칼이냐."
 전혀 뜻밖의 또 다른 질문이었다.
 임상옥으로서는 난감한 질문이었다.
 임상옥으로서는 '모,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으
며 또다시 한 방 얻어맞고 쓰러지는 고통의 나날이 계속될 수밖 
에 없었다 
  견디다 못해 임상옥은 또 다른 비상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 
었다  
  "이 손에 들어 있는 칼이 사람을 살리는 칼이냐,아니면 이 손
에 들어 있는 칼이 사람을 죽이는 칼이냐."  
  임상옥은 만날 때마다 또 다른 질문으로 괴롭히는 큰스님의
질문에 번번이 '모,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으로 얻어 
맞곤 하였으므로 '모르겠습니다'라는 대답 대신 다른 대답을 하 
기로 작심을 하였다
  그래서 첫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스님의 손에 들어 있는 칼은 사람을 살리는 칼입니다. " 
  그러자 석숭은 임상옥을 한 방 후려쳤다. 임상옥은 쓰러지면서 
생각했다. 내일은 정답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다음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스님의 손에 들어 있는 칼은 사람을 죽이는 칼입니다. "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임상옥의 몸을 향해 석숭의 주장자 
가 태질을 하며 춤을 추었다
  임상옥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스님의 손에 들어 있는 칼이 사 
람을 살리는 칼도 아니고 사람을 죽이는 칼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칼이란 말이냐. 고민고민 하던 임상옥에게 해답을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법천 스님이었다. 법천은 석숭의 시자로 경전에 
밝았다. 임상옥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기도 하였던 법천은
고민을 하던 임상옥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큰스님이 너를 만날 때마다 묻고 또한 때리는 것은 네가 법기 
  이기 때문이다. "
"법기가 무엇입니까."
"법기란 '불법을 담은 그릇'으로 네가 큰 그릇이 될 싹수가 보 
 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스님,이러다간 맞아서 죽을 것 같습니다. 온몸아 성한 
 곳이란 한곳도 없습니다. 제발 제가 맞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법천은 임상옥에게 석숭 스님이 다시 물으면 이러이러 
하게 대답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다음날이었다.
이른 새벽. 임상옥이 가마솥에 밥을 짓고 있는데 느닷없이 석 
숭이 들어왔다. 가마 속에 장작더미를 넣어 불을 지피다 말고 임 
상옥이 일어서자 석숭은 손을 내밀며 물어 말하였다.
"이 속에 들어 있는 칼이 사람을 죽이는 칼이냐, 아니면 살리 
 는 칼이냐."
순간 임상옥은 법천 스님이 가르쳐준 대로 대답하였다.
"큰스님의 손 안에 들어 있는 칼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칼 
 이며 또한 살릴 수도 있는 칼입니다. "
임상옥의 대답에 석숭은 여느 때처럼 한 방 때리지 아니하고 
느닷없이 가마솥의 뚜껑을 열어 보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놈아,밥물이 적다. 물을 더 집어넣거라."
신통하게도 이후부터 임상옥에게는 석숭으로부터의 질문세례 
가 없어졌으며 따라서 얻어맞는 일도 신통하게도 사라져버린 것 
이었다. 임상옥으로서는 살맛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석숭 스님의 질문들은 언제나 임상옥의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석숭이 던진 질문들은 임상옥의 마 
음속에서 살아 있는 화두가 되었으며 그의 평생을 지배하
는 인생의 철학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더 이상 석숭 스님으로부터 질문을 당하는 일이나
태질을 당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궁금증은 날로 더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 손 안에 칼이 숨어 있을 수 있을 것인가.또한 그 칼
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칼일 수가 있 
겠는가. 그 말의 뜻은 무엇일까  
  그 답이 풀린 것은 임상옥이 암자에 들어온 지 일년 뒤의 일이 
었다. 임상옥이 암자에 들어온 후 봄,여름,가을,겨울의 한 해를 
다 보내고 이른 봄이 되었을 때 다시 아비를 따라 연경으로 떠
나기 위해 산을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일년 동안 임상옥은
글이 부쩍 늘어 웬만한 글은 모두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산을 
내려가기 전 임상옥은 큰스님 석숭에게 인사를 드리러 그가 머
물고 있는 암자로 찾아갔었다. 석숭은 추월암에서도 가장 후미진 
암자에 홀로 머물고 있었는데 임상옥은 감히 댓돌 위도 오르지
못하고 뜨락에서 무릎을 꿇고 삼배를 올려 작별인사를 하였다. 
  반쯤 열린 방문 안에는 석숭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임상옥이 
 인사를 올려도 본체만체하였다. 삼배를 올리고 물러서려다 말고 
 느닷없이 임상옥이 말하였다  
  "큰스님,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
  임상옥의 말은 분명히 들렸을 텐데 방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큰스님 손에 들어 있는 칼을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  
  그러나 임상옥은 방안에서 석숭 스님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있 
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큰스님,손 안에 들어 았다는,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칼을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큰스님, 마지막 부탁 
이나이다. "
그때였다.
침묵으로 일관되던 방안에서 마침내 석숭 스님의 목소리가 터 
져 흘렀다.
"정말이냐. 그 칼을 보고 싶다는 말이 진심이냐."
"그 칼을 보고 싶다는 그 말이 진심이냐'는 석숭 스님의 질문 
 에 임상옥은 서슴없이 대답하였다.
"보고 싶습니다. "
그러자 석숭 스님은 대답하였다.
"정히 그렇다면 내 그 칼을 너에게 보여 주리라."
그리고 나서 석숭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 칼을 보여 줄 터이니 방안으로 들어오너라."
칼을 보여 줄 터이니 방안으로 들어오라는 스님의 말에 임상 
옥은 선뜻 댓돌에 짚신을 벗어두고 툇마루로 올라섰다. 그리고 
앉아 있는 스님 앞으로 다가가기 위해 한 발을 성큼 방안으로 
들이밀었을 순간이었다.
갑자기 방안으로 들어오는 임상옥을 맞받아 석숭 스님이 한 
손으로 후려쳤다. 임상옥의 몸은 그대로 허공에서 공중방아를 찧 
으면서 댓돌 아래로 거꾸로 내리박혔다. 눈 깜짝할 만한 사이의 
일이었다. 비명을 지르면서 임상옥이 쓰러지자 이번에는 방안에 
앉아 있던 석숭 스님이 벌떡 일어나 맨발로 뛰어내려왔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쓰러진 임상옥의 몸을 일으키면서 석숭 스님이 부드럽게 말하  
였다. 임상옥은 그러한 큰스님의 행동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방안으로 들어오는 자신을 한 방에 때려서 공중방아를 찧게 하 
여 거꾸로 처박히게 할 때는 언제고,또다시 맨발로 허등지등 달
려와 쓰러진 자신을 부축하여 일으킬 때는 언제인가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고, 어떻게 저렇게 자비로운 눈빛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인가.살기를 띤 눈빛으로 마치 죽일 듯이 때려 
집어던질 때는 언제고 갑자기 태도가 변하여 부축하여 일으켜
줄 때는 언제인가 
  그때였다  
  갑자기 석숭 스님이 큰소리로 웃기 시작하였다
  "이눔아."  
  석숭 스님은 임상옥의 머리통을 때려 꿀밤을 먹이면서 말하였다
  "네 놈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칼을 보여 달  
라고 해서 보여 주었는데 뭐가 그리 어리등절하냐." 
  "그 칼이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볼멘소리로 임상옥이 따져 물었다 
  "좀 전에 보지 않았느냐.네 놈이 얻어맞아 거꾸로 처박힌 것
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요,네 놈을 부축하여 일으킨 것은 사람을
살리는 칼이다. 그러니 네 놈은 이미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
릴 수도 있는 칼을 네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이다. "
  석숭 스님은 손을 툭툭 털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하
였다  
  "그 칼을 똑똑히 보았으면 잘 가거라."
  그리고 방문이 굳게 닫겨버렸다
  임상옥은 그 길로 산을 내려와 일년여에 걸친 절에서의 행자 
 생활은 자연 끝이 나고 말았는데 그 이후부터 석숭 스님이 마지막으로 보여 주었던 그 기행이 두고두고 뇌리에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큰스님이 자신을 일부러 골탕먹이기 위해 그런 파행
 을 했으리라 미뤄 짐작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임상옥은 
  마음속으로 큰스님을 원망하려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석숭 스님이 자신에게 보여 주었던 그 행동들은 자신을 골탕먹 
  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각별히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칼', 이 칼을 
  불교의 선가에서는 '활인도, 살인도'라고 
  부르고 있다. 이 칼 이야기는 선화에 자주 나오고 있지만 우리나 
  라에서는 고려 때의 나옹선사가 제일 먼저 사용하였었다.
고려 충숙왕 때인 1320년 태어난 나옹선사는 스물여덟 살이 
  되던 1348년 3월 당시 원나라의 왕도였던 연경으로 불법을 배우 
  기 위해서 구도의 길을 떠났다. 연경에 있는 법원사라는 절에 지 
  공이라는 당대의 화상이 머물고 있었는데 나옹선사 
  는 이 화상의 수좌 생활을 하며 3년간 공부하였다.
마침내 지공으로부터 깨우침을 인정받은 나옹선사는 그 길로 
  전국을 순행하였다.
 중국의 전국을 떠돌다가 평산처림선사를 배알하려 
  갔을 때였다.
마침 승당에 있던 평산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그러자 나옹은 대답하였다 
  '대도에서 왔습니다. '  
  "일찍이 대도에서 어떤 사람을 보고 왔는가." 
  나옹은 다시 대답하였다
  "일찍이 대도에서 서천지공 화상을 뵙고 왔습니다. "
  그러자 평산은 묻는다  
  "지공은 무엇을 하고 있던가." 
  나옹은 다시 대답한다 
  "지공 화상은 천검을 쓰고 있더이다. " 
  그러자 평산은 꾸짖어 말하였다
  "지공의 천검은 차지하고 그대의 일검을 가져오너라."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옹은 좌구를 번쩍 들어 평
산 화상을 내리쳤다
  나옹이 내리치는 좌구를 맞으며 평산 화상은 넘어지면서 큰소 
리로 외쳤다
  "이 도적놈이 나를 죽인다. "  
  그러자 나옹 스님은 평산 화상을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저의 칼은 능히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능히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
  석숭 스님이 그러니까 어린 열다섯 살의 소년 임상옥에게 해
보였던 장난기 어린 농지거리는 이처럼 심오한 뜻을 지닌 옛 조
사들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나옹 스님이 대답하였듯 우리들의 손은 '천 개의 검'을 가진
 '천검' 인 것이다  
  우리들의 손은 뭔가를 만지고, 부수고, 만드는 연장인 것이다.
 그뿐인가.우리들의 손은 하나의 칼인 '일검'이지만 그 쓰 
  임새는 천 개의 칼을 가진 것처럼 다양하다. 음식을 만들 수도 
  있으며,도자기를 빚기도 한다. 배를 젓기도 하고,그물을 쳐 고 
 기를 잡기도 한다. 씨를 뿌려 농사를 짓기도 하고,글을 써 당대 
  의 문장을 이루기도 한다. 먹이를 주어 짐승을 기르기도 하고,그 
  림을 그리기도 한다 사랑하는 여인의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기 
  도 하고, 그 손으로 마술을 부리기도 한다.
  이처럼 손은 '천 개의 칼'을 가진 것처림 그 쓰임새가 다양하 
  지만 오직 '하나의 검'일 때는 사람을 죽이는 칼과 사람을 살리 
 는 칼로 나뉘어지는 것이다. 하나의 손이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될 수도 있는가 하면 그 똑같은 손이 죽어가는 사람을 부축하여 
  일으키는 '사람을 살리는 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옹선사 
  가 '그대의 일검을 가져오너라'라는 평산 스님의 말에 좌구를 
  들어 화상을 내리친 것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인검이요,다시 
  쓰러진 평산 스님을 부축하여 일으킨 것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활인검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석숭 스님이 임상옥의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릴 수 
  도 있는 칼'을 보여 달라는 말에 그런 느닷없는 행동을 보여 준 
  것은 하나의 손이 사람을 죽일 때는 살인검이요,쓰러진 사람을 
  부축하여 일으킬 때는 활인검이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극 
  명하게 보여 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잠든 장미령의 침대 곁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밤을 꼬박 새우 
면서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하였던 임상옥의 상념 하나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 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어느 날 산에서 나무를 하고 오솔길을 내려오던 임상옥에게
손을 내밀어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석숭 스님이 깨우쳐 주
었던 바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또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칼', 그 칼 한 자루의 상념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상념에서 임상  
옥은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임상옥은 여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여인은 낯선  
남자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피로에 지친 탓인지 혼곤히 잠이 들  
어 있었다.
  보면 볼수록 천하의 절색이었다.
  양귀비가 다시 살아서 환생해 온 것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잠  
든 모습을 보자 임상옥의 마음에는 측은한 마음이 떠올랐다. 한  
가지의 상념으로 밤을 새우는 동안 여인의 몸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은 재가 되어 스러진 지 오래였다. 그 대신 여인의 모습이
가엾은 누이동생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비록 글을 배우기 위한 일 년여 동안의 짧은 행자생활이었지만  
임상옥에게는 당대의 선객 석숭으로부터 법기라고 불릴 만큼
선기가 남달랐던 청년이 아니었던가.
  잠든 여인의 모습은 부처의 가르침처럼 욕정의 불이 스러지자  
나이 어린 누이동생처럼 느껴졌다. 
  내가 오늘 밤 손 하나 대지 않고 보호하면 이 여인의 처녀성은 
지켜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이 지나가면 이 여인은 또
다시 낯선 남자들 앞에 한 덩어리의 고깃덩어리처럼 던져질 것
이다. 아무리 발버등쳐도 여인은 결국 무너지고 더럽혀져 여인의  
인생은 파괴되고 황폐하게 될 것이다.
 석숭 스님은 내게 가르쳐 주었다.
 내게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칼이 있음을.
 만약 내가 이 여인의 몸을 빼앗는다면 이것은 이 여인을 죽이 
는 칼을 사용함이요, 내가 이 여인을 보호한다면 그것은 이 여인 
을 살리는 칼을 사용함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함인가. 오늘 밤 만 
이 여인을 무사히 보호한다 하여 그것이 과연 여인을 살리는 길 
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히 여인이 죽어 가는 결과를 보면서 
도 오늘 밤 만 내가 이 여인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고 자위 
하는 것은 결국 또 하나의 살인검을 휘두르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 것인가.
  장미령을 살리는 길은 여인을 이 사창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활인검의 길인 것이다. 이 사창가에서 벗어 
나게 해주는 일이야말로 장미령에게 자유를 찾아 주는 길인 것 
이다.
 자유의 길.
 장미령을 사지에서 벗어나 새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하 
는 방법은 단 하나.그 길은 또다시 장미령의 몸을 사는 방법뿐 
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날 아침, 임상옥은 일생일대의 운명적인 
결단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임상옥은 장미령을 돈을 주고 사기 
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결단을 내린 임상옥은 그 즉시 방을 나와 아래층 대기실에서 
  어젯밤 자신을 안내하였던 포주 여인을 따로 만났다.
 "재미 많이 보셨나요."
  여인은 여전히 교태를 부리면서 소리를 내어 웃었다.  
  임상옥은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런 일들  
은 자신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판단이 선 이상 될수록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임상옥은 포주 여인에게 말하였다.
  간밤에 그 여인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 여  
인을 데리고 살고 싶다. 고향으로 데리고 가서 첩으로 삼고 싶다.  
그러니 여인의 몸값을 흥정하고 싶다. 값이 맞으면 사겠거니와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임상옥의 말을 들은 여인은 깜짝 놀라했다. 그녀의 표정은 일  
부러 지어 보이는 과장의 몸짓이 아니었다.
  "장미령을 사겠다구요."  
  여인은 비명을 질렀다.  
  "사서 첩으로 삼으시겠다구요."  
  여인은 잠시 침묵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는 듯했  
다. 물론 이런 일은 드문 일이긴 했지만 전혀 없는 일은 아니었
다. 색주가에 드나드는 난봉꾼 중에서 돈이 많은 한량들은 마음
에 드는 창녀들을 만나면 돈을 주고 빼내다가 아예 살림을 차리  
는 일도 왕왕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낯선 복장을 한,  
먼 이국에서 온 외지인이 여인의 몸을 돈을 주고 사겠다는 일은  
처음 보는 일이었기에 여인은 당황하였다. 
  "아시다시피 장미령은 처녀의 몸입니다. 어젯밤 만난 대인어른  
이 최초의 남자입니다. 장미령은 남자의 손길을 한 번도 겪어 보  
지 못한 처녀일 뿐 아니라, 대인어른도 아시다시피 나이도 젊고 
또한 최고의 미인입니다."  
  잠시 당황하였던 포주 여인은 그러나 곧 장미령의 값을 올려 
야 한다는 계산이 들었는지 부채를 부치면서 냉정하게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녀의 눈빛은 날카롭게 임상옥의 모습을 살피고 있었 
다. 과연 이 변방의 오랑캐가 장미령의 몸을 거금을 주고 살 수 
있을 만큼 능력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여인으로서도 손해를 보는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지방 
을 돌아다니면서 여인들을 싼값에 사들여 사창가에 조달하는 매 
매꾼들에게 웃돈을 주고 장미령을 사들인 것이었다. 웃돈을 주었 
다지만 푼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장미령을 이 낯선 이 
방인에게 거금을 주고 되 팔 수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앉아서 
돈벼락을 맞는 일이요, 횡재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날 여인이 부른 장미령의 몸값은 6백 냥이었다. 임상옥은 흥 
정을 해서 백 냥을 깎아5백 냥에 사기로 결론을 보았다.
  장미령의 몸값은 5백 냥.
  고향 소흥에서 팔린 은 70냥의 몸값이 삼사 일 사이에 일곱 배 
이상 뛰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엄청난 거금에 의해 
 서 장미령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즉시 여인에게 몸값 은 5백 냥을 지불하였다.
  그러나 이 은 5백 냥이 임상옥에게는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었다.
  연경에서 팔린 홍삼은 모두 해서 은 천5백 냥.
  그 중 임상옥의 몫은 은 3백 냥. 책문에서 고용했던 청인과 마 
차꾼에게 품삯으로 50냥을 주기로 했으니 순전히 임상옥이 자의 
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은 250냥에 불과하였던 것이었다. 이 돈은 
임상옥의 주인인 홍득주가 임상옥을 위해 따로 마련해준 종자돈  
에 불과하였던 것이었다.  
  250냥이면 버젓이 문상으로 독립할 수 있는 큰 거금이었던 것  
이었다. 그러니 임상옥이 장미령을 위해 치른 몸값 5백 냥으로
자신이 독립된 점포를 가진 무역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천재일
우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었던 것이다. 
  뿐 아니라, 자신의 몫 250냥을 몸값으로 모두 털어 넣고도 모자  
라는 금액 250냥은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할 공금에서 차용해 온  
것이었다. 이를테면 임상옥은 장미령의 몸을 사기 위해서 공금을  
횡령하였던 것이다.  
  임상옥은 자신이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을 뿐 아니라
상인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결과를 
스스로 초래했던 것이다.  
  그 날 아침, 임상옥은 돈을 주고 산 장미령을 앞세우고 사창가  
를 나섰다. 간밤에 사창가로 함께 온 이희저는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임상옥이 낯선 중국 여인을 데리고 나서는 
모습을 보자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 말하였다.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인가."
  그러나 임상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호기심이 발동한 이희저가 계속 꼬치꼬치 물어도 임상옥은 장 
미령에 관한 한 절대로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임상옥은 장미령을 자신이 묵고 있는 여인숙으로 데려왔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장미령은 객관에 머물고 있던 다른 객상들에게 
도 자연 화제가 되었다. 임상옥은 따로 방을 잡아주고 장미령을 
그곳에 머물게 하였다. 나이 젊은 임상옥이 하루아침에 도대체 
어디에서 저와 같은 천하의 절색을 구해 왔는가. 나이 많은 상인 
들이 캐물어도 임상옥은 전혀 묵묵부답이었다.
  떠나기 전에 임상옥에게는 서둘러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 
은 비단을 사는 일이었다. 그 당시 조선에서는 인삼을 비롯해서 
금, 종이, 우피 같은 물건들이 수출의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면,
수입에서는 비단, 당목,  약재, 보석 같은 물건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임상옥이 주로 취급하였던 물건은 수출에서는 인 
삼, 수입에서는 비단이었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때부터 길쌈이 장려됐다. 왕과 
왕비들은 농상을 장려하였으며 백성에게는 누에고치로 길 
쌈하는 일을 가르쳤다. 비단을 짜서 옷감으로 사용하던 민족은 
우리나라와 중국뿐이었는데 일본으로 양잠 기술을 전파시켜 준 
것은 백제 인들이었다.
  비단은 일찍부터 옷감의 금이라 해서 귀중하게 여겼으며 
다양하게 생산되곤 했었는데 오히려 조선시대 이르러 비단의 생 
산은 격감하였다. 더욱이 화려한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 
은 미풍양속을 해치는 폐단이라고까지 해서 유가에서는 금지하 
곤 했었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켜기 위해서 끓는 물에 누에고치를 집어넣 
을 때 고치가 뱅그르 도는 것은 번데기가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 
는 것이니 이와 같은 살생은 오직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이므로 이는 인자한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그러므
로 늙은이의 옷이나 수의로 쓸 만큼만 누에를 치는 것이 법도로  
알려져 왔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화려한  
비단들은 사라져버리고 남녀의 일상 옷감으로 흔히 사용되던 단  
조로운 주 비단만이 주로 생산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비단의 제작기술이 날로 화려  
해지고 서역까지 수출될 만큼 고급화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중국  
에서 수입해 오는 비단은 그 당시 왕실이나 양반들에게 폭발적
인 수요가 있었으며 부르는 게 값이었다.  
  임상옥에게는 비단을 고르는 남다른 눈이 있었다. 비단에도 여  
러 종류가 있어 사, 단, 주 등이 주종을 이루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급의 비단을 주단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임상옥은 사나흘 동안 인삼을 판 돈으로 모두 비단을 사들였다. 
  25일 만에 연경에 도착하였으므로 돌아갈 때도 그와 같은 기  
간이 소요될 것이다. 임상옥이 연경에 도착한 것이 9월의 가을이  
었으니 서둘러 돌아가지 않으면 가는 도중에 북풍한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2천30리 길의 귀로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10월이  
면 벌써 내리는 눈보라와 매서운 삭풍인 것이다. 서둘러 돌아가
지 않으면 노지에서 얼어죽게 되어버릴 것이다.
  그리하여 또다시 연경을 떠나 되돌아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그  
전날 밤.  
  임상옥은 남의 눈을 피해 장미령을 은밀히 불러내었다. 그는
장미령을 데리고 도일처로 갔다. 만두를 시켜서 나눠 먹으면서 
임상옥은 말했다. 
  "내일 아침이면 난 연경을 떠나 조선으로 돌아갑니다."
  장미령에게는 임상옥이야말로 자신의 새 주인이었다. 임상옥이 
거금을 들여 자신의 몸을 샀으니 이제는 임상옥에게 자신의 운 
명이 달린 셈이었다. 또한 임상옥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 
이기도 하였다. 비록 몸을 섞지는 않았지만 하룻밤을 딴런팡에서
함께 보낸 각별한 인연을 나눈 사이였던 것이다. 임상 
옥을 바라보는 장미령의 눈빛에 다정함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밤이 연경에서의 마지막 밤입니다."
  장미령이 배불리 먹도록 만두를 자꾸 여인 앞으로 밀어놓으면 
서 임상옥이 말하였다.
 "또한 오늘 밤이 소저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기도 합니다."
  장미령은 만두를 먹다 말고 얼굴을 들어 임상옥을 보았다. 오 
늘 밤이 함께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는 임상옥의 말이 이해가 가 
지 않는 표정으로.
  "그러니 내일 아침부터 나는 소저를 더 이상 돌봐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만두와 곁들여 임상옥은 중국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로서도 
연경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감상적인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소저도 내일 아침 고향 소흥으로 돌아가기 
바랍니다."
  순간 만두를 집던 장미령의 젓가락이 멈췄다.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임상옥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처럼.
  "저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구요."
  "그렇습니다."
  임상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도 내일 아침이면 고향으로 떠나야 하니까요"  
  한순간 침묵이 흐른 뒤 불쑥 장미령이 임상옥을 쳐다보며 물
었다. 
  "대인어른의 고향은 어디인가요."  
  "내 고향은 조선입니다."
  임상옥은 웃으며 대답하였다. 
  "이 세상의 끝입니다. 연경에서 내 고향까지는 2천 하고도 30
리. 잠을 자는 시간만 빼어놓고 하루종일 걸어도 한 달 이상 걸  
리는 머나먼 길입니다."
  순간 장미령은 말을 받았다.  
  "내일 아침 저도 대인어른을 따라 조선으로 함께 가겠습니다."  
  자신을 따라서 함께 조선으로 가겠다는 장미령의 말을 듣자 
임상옥은 맘이 설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안됩니다."
  임상옥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함께 조선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십시오."  
  "제 겐."  
  장미령은 고개를 떨구면서 대답하였다.  
  "돌아갈 고향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낯선 사람들에게 돈
을 받고 팔았습니다. 돈을 받고 저를 팔았으니 이제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와 딸의 인연을 끊은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는  
저의 아버지가 아니며 저 또한 꾸냥이 아닙니다. 지난 밤에
대인어른께서는 돈을 주고 저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대인어른
께서는 저의 새 주인이십니다. 저를 살리시고 죽이시고 하는  
모든 운명도 대인어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인어른,
저를 버리지 마십시오."
 만두를 먹던 장미령의 눈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눈물을 보자 임상옥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장미령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돌아갈 고향조차 없는 고아의 신세였다. 고향으로 돌아
가봤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술주정뱅이 아버지뿐. 그녀는 아버지 
에 의해 또다시 되팔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를 고향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다. 사창가의 포주 여인에게 말하였듯 고향으 
로 데려가 첩을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애초부터 그녀의 몸을 
산 것은 그녀를 살려주기 위함이었지 그녀를 소유하기 위함은 
아니었잖은가.
 얼핏 보면 무모해 보이는 임상옥의 이러한 행동은 그의 일생 
을 통해 생활철학으로 일관되고 있었다.
작은 장사는 이문을 남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큰 장사는
결국 사람을 남기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철학이었다.
이는 <논어>에 나오는 구절인데 이인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사람이 이익대로 한다면 원망이 많다. 이익이란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니 필히 상대방에게 손해를 주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이익을 좇으면 원망을 부르기 쉬우니 결국 '의를 따라야 
한다.' 따라서 '군자가 밝히는 것은 의로운 일이요, 소인이 밝히는
것은 이익인 것이다.'"  
이런 철학을 임상옥에게 불어넣어 준 사람은 다름아닌 그의 
아비 임봉핵이었다.
  임상옥은 아비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 이야기를 들어왔
었다.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
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며, 따라서 신용이
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인 것이다."  
  자신은 신용은커녕 최소한의 이익조차 남기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마친 객상이었지만 그가 남긴 교훈은 임상옥의 인생에  
있어 귀중한 법도가 된 것이다.
  '상즉인' 
  '장사는 곧 사람이며 사람이 곧 장사'라는 상도에 있어서의 제  
1조는 임상옥이 평생을 통해 지켜나간 금과옥조였던 것이다.  
임상옥이 장미령의 몸을 사서 그녀를 자유의 몸으로 살려준  
것도 '이를 남기기보다 의를 좇으려는' 그의 상도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문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종자돈뿐 아니라 공금 
을 횡령해서까지 가진 돈을 모두 털어 한 여인의 생명을 구해내
었다. 그는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버린 것이다.
  결국 어떤 형태의 '옳은 일'은 크건 작건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형태든 '옳지 않은 일'은 크건 작건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이 반
드시 나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진리다.
  임상옥은 전대를 뒤져 은 50냥을 꺼내 장미령에게 내어 밀며  
말하였다.  
  "이것은 전별금입니다. 얼마 되지 않지만 이것을 갖고 있으면
당분간은 남의 신세 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이곳에서 살아가십시오. 하지만 
나쁜 사람들을 멀리 하십시오. 다시 한번 나쁜 사람들과 가까이 
하게 된다면 그땐 정말 끝장입니다."
  그 날 밤.
  깊은 잠 속에서 임상옥은 얼핏 정신이 들었다. 날이 밝으면 먼 
길을 떠나야 했으므로 일찌감치 장미령과 헤어져 돌아와 여인숙 
에서 잠이 들었다. 간밤에 중국 술을 마신 때문인지 임상옥은 곧 
끝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깊은 잠결에도 뭔가 인기척 같은 소리를 들었기에 임 
상옥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것은 객상으로서의 본능 때문 이었 
다. 객상들은 항상 위험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설혹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경우에도 사위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 
었다.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고 있었다.
  주위를 꺼리는 조심스런 몸동작이었지만 사람의 인기척임이 
 분명하였다.
  임상옥은 머리맡에 놓여 있는 단도를 가만히 잡아쥐었다. 그러 
나 그 순간 임상옥의 날카로운 후각이 숨어 들어오는 인기척의 
냄새를 감지해 냈다. 그것은 향기로운 꽃내음이었다. 향기로운 꽃 
냄새, 그것은 바로 장미령의 살내가 아니었던가.
  "대인어른."
  이미 잠은 깨었지만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임상옥의 곁
으로 다가와 장미령이 속삭여 말하였다.
  주위를 꺼리는 낮은 속삭임이었다.
  순간 임상옥은 눈을 떴다.
  바로 침대 곁에 장미령이 서 있었다. 그녀는 옷을 벗고 있었다.  
알몸이 아니라 비단으로 된 속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대인어른."  
  임상옥이 눈을 뜨자 장미령은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말하였다.  
  "제가 이렇게 들어온 것은 날이 밝으면 대인어른과 헤어지기
때문입니다. 대인어른께서는 저에게 전별금까지 주셨습니다만 저  
는 대인 어른께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생각다 못해 제가  
결심하였습니다. 이미 대인어른께서는 저를 돈을 주고 사셨으니
저의 주인이십니다. 게다가 대인어른께서는 저의 시엔성이  
시기도 합니다. 또한 저는 대인어른의 타이타이이기도 합니다."  
  시엔성은 남편을 말하는 중국말이며 타이타이는 아내를 말하  
는 중국말. 장미령이 하는 그 말의 뜻은 임상옥과 자신이 더 이
상 주인과 하인의 상하관계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부부관계임  
을 암시하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부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했습니다. 우리  
가 내일 아침 헤어지면 언제 또다시 만날지 모르는 운명이라 하  
더라도 오늘 밤만은 저희가 부부며 함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저는 대인 어른께 몸을 드리기로 생각하였습니다." 
  임상옥의 침대 곁으로 살며시 다가오면서 장미령이 말하였다  
  "저를 쫓아버리지 마십시오. 대인어른, 오늘 밤만큼은 함께 한
침대에 있고 싶습니다."
  장미령의 몸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처음 만났던 날의 몸  
이 아니었다. 지난번 장미령의 몸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면 지금 장미령의 몸은 설레임과 부끄러움에 떨고 있는 것이었
다.
  그날 밤. 임상옥은 장미령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그 
밤에 있었던 일은 아무도 모른다. 임상옥이 의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남자로서 장미령의 몸을 가졌는가, 아니면 끝까지 이성을 
지켜서 장미령의 처녀를 보호해 주었는가는 2백 년이 가까운 세 
월이 흐른 요즘에 와서 정확히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 
이다.
  다만 전후 사정을 봐서 미뤄 짐작하건대 임상옥이 끝까지 장 
미령을 하나의 여인으로서 존중하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접해 
주었음은 명약관화한 사실일 것이다.
  그러한 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날이 밝을 무렵 장미령이 임 
상옥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져온 사실이었다.
  "닌 꾸이싱."
닌 꾸이싱이라 함은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그러자 임 
상옥이 대답하였다.
  "어차피 우리는 헤어지면 또다시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한번 
 가면 언제 또다시 연경에 올지도 모르고, 설혹 이름을 안다고 해 
 도 어떻게 서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임상옥이 말하자 그 말을 막기 위해서 장미령이 임상옥의 입 
  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어디 사는 누구십니까."
  재촉하듯 장미령이 물어 말하였다.
  "내 이름은 임. 상. 옥."
 이름을 한 자 한 자 떼어 말하자 장미령은 그 말을 받아서 비 
 슷하게 발음하여 따라해 보았다.
  "사는 곳은 어디입니까." 
  "내가 사는 곳은 2천 리 밖 조선에서도 평안도에 있는 변방의
의주."
  그러자 갑자기 침대에 누웠던 장미령이 일어섰다. 그녀는 옷을
벗기 시작하였다. 느닷없는 여인의 행동에 임상옥은 몹시 당황하
였다. 장미령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자신의 흰 
비단 속옷을 들고 임상옥에게 말하였다. 
  "대인어른. 여기에 대인어른이 사는 곳과 이름을 적어 주십시
오."  
  자신의 흰 비단 속옷을 벗어들고 그 옷 위에 사는 곳과 이름을
적어달라는 장미령의 말을 듣자 임상옥은 몹시 당황하였다. 소문
으로만 듣던 일이었다.  
  정분을 나눈 사람끼리 헤어질 때 정을 표시하기 위해서 정표  
를 나눠 갖는다는 사실은 소문으로만 듣던 일이었다. 여인들이  
입던 치마폭이나 속치마 위에 정분을 나눈 사내가 자신의 이름  
을 쓰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이별시를 적어 내리는 것은 선비들
사회에서나 보여지는 풍류가 아니었던가.
  "소용없는 일입니다. 내가 사는 곳과 내 이름을 그곳에 쓴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다시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임상옥이 말을 하자 장미령은 눈물어린 얼굴로 입을 열어 말 
하였다. 
  "또다시 만나기 위해서 이름을 써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름을 알고 싶은 것은 대인어른의 이름을 평생 잊지 않기 위함
입니다. 대인어른이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덕을 평생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하는 수 없이 임상옥은 비단 속옷을 펼쳐 들었다. 휴대용 붓통 
에서 붓을 꺼내 먹물을 묻혀 들고 임상옥은 자신이 사는 곳을 
어떻게 쓸 까를 망설였다.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홍득주의 문상 
이름을 떠올렸지만 임상옥은 다만 이렇게 쓰기로 결심하였다.
  '의주상인'
  그리고 나서 임상옥은 자신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렸다.
  '임상옥'
  흰 비단 속옷 위에 다만 '의주 상인 임상옥'이라고 일곱 자의 
글씨를 써 내리자 임상옥은 더 이상 쓸 말이 없었다. 그것으로 그 
만이었다 
  날이 밝자 임상옥은 연경을 출발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이때가 
1801년, 신유년 9월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돌아가는 길 2천 리는 연경으로 찾아오는 길보다 더 험난하고
위험한 노정이었다. 그것은 9월이면 벌써 만주지방에는 동장군이 
위세를 떨쳐 자칫하면 노지에서 얼어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 
다.
  9월이면 일단 산해관까지는 일사천리.
  그러나 산해관을 넘어 동북지방으로 나서면 벌써 삭풍이 불고 
눈보라가 내리기 시작한다.
  소승하, 여양을 지나 요동에 이르면 10월. 당나라의 대군이 고 
구려에 패퇴하였던 것은 고구려의 군사력 때문이었기보다는 9월 
이면 벌써 몰아치는 한파와 눈보라 때문이었다.
  <사기>는 이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9월에 내린 비로 요동은 벌써 가을이 깊어갔고 물이 얼어
밤을 지내고 나면 얼어죽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돌아가는 길은 
전부 진흙과 늪지대였으므로 차마가 통하지 못하였고 9월이면
벌써 눈이 내렸다. 거리의 풀을 베어다가 진흙을 메우고, 물이
깊은 곳은 수레로 다리를 삼아 군마가 건너게 하였지만 10월  
로 접어들자 느닷없이 눈보라가 쏟아지고 강설이 내렸다.  
  군사들은 오직 살기 위해서 창과 칼을 눈길 위에 버리고 따라  
왔지만 젖고 습기가 차서 병들어 죽고, 지쳐 죽고, 얼어죽는 자가
태반이었다. 
  갈 길이 바빴으므로 사람이 죽어도 야산에 묻거나 매장을 하  
지 못하였고, 그대로 들에 버려 굶주린 늑대의 밥이 되기가 십상
이었다. 그래서 퇴군하는 군대의 주위를 따라서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무리들이 번갈아 쫓아오곤 했었다..."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잃었던 군졸보다 더 많은 군사를 폭풍설  
과 소택에 따른 돌림병으로 잃고 말았다는 기록처럼 요동
의 한설은 두려운 대상이었다. 
  먹이를 노리는 맹수들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동장군과 맹수.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하나 더 있었  
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이었던 것이다.
  요동성을 넘어간 변경지방은 죄인들의 귀양터이고 사나운 도
둑떼가 득실거리는 무법지대.  
  그 중에는 비적떼가 가장 무서웠다. 중국인들은 이들을 녹림 
,혹은 향마라고 부르곤 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모두 말을 잘 다루고
승마에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후에 이 비적떼들은 마적이란 이름
으로 변했지만 임상옥이 객상을 하던 그 당시만 해도 이 비적례들은
가장 무서운 범죄집단이었다. 이들은 촌락을 습격하여 온갖 약탈
행위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닥치는 대로 살상을 하곤 했었다.
특히 비싼 물건들을 방물로 운반하고 다니는 객상들은 이들의 
주된 공격대상이었던 것이다.
한겨울의 무법지대에선 이들이 곧 법이자 왕이었다.
 임상옥을 비롯한 다섯 명의 객상들은 이 모든 위험을 뚫고 사 
지에서 벗어나 그해 10월 말에 압록강변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떠날 때는 8월의 장마철이라 압록강의 물살이 거세었 
지만 그들이 돌아온 것은 11월이 다 된 한겨울이었으니 압록강 
물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실로 석 달 만에 돌아온 고향이었다. 그것도 어느 한 사람 다 
치지 아니하고 가져간 물건도 제값 쳐서 후하게 팔고 그 대신 
자기가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무사히 되돌아오는 환향이었다.
비록 비단옷을 입고 성공하여 돌아오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출 
발하였을 때의 소기의 목적은 모두 이루었으므로 금의환향이랄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얼음을 깨고 압록강을 지키는 수신 하백에게 제사를
지냄으로써 귀국 신고를 하였다. 그리고 나서 다섯 사람은 얼어
붙은 압록강을 건너 조선의 땅을 밟았다. 갈 때는 물이 넘쳐 
뗏목을 타고 도강을 하였는데 돌아을 때는 강물이 얼어 얼음 위를
걸어서 돌아온 것이었다.
 가고 온 길은 4천 리 하고도 60리.
이로써 석 달이 넘는 대장정은 끝이 가까워졌던 것이다.
 이러한 간난신고가 단 한 사람 임상옥에게 있어서는 아직 완전히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오히려 더욱 큰 고통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상옥의 무사귀환은 더 큰 고통의 출발이었다.
이러한 임상옥의 비극은 다름 아닌 장미령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었다.
  일대의 위기에 빠진 것은 연경에서 돌아온 직후 
때의 고통을 임상옥은 <가포집>서두에서 이렇게 있다.
  '...의주 남쪽 성곽의 아래에 거주하는 곳은 곧 대대로 조상들 
  다. 6,7세 때부터 외부의 스승에게 나아가 15세에 이르기까지 경 
  서를 대충 섭렵하고 문리가 나게 되었다. 혹은 명사들을 쫓아
  다니고 혹은 사찰에서 공부하여 글을 읽은 것을 거의 스스로 
  해독하게 되었다. 시가 거의 스스로 이루어 진 것은 꽃이 
  스스로 피며 달이 스스로 등글게 되는 것과 같이 하루에는 하루 
  의 공부가 있었고 한 달에는 한 달만큼의 효과가 있었다...'
  자신의 어릴 적 성장기를 이처럼 짤막한 고백으로 시작한 임  
상옥은 자서를 다음과 같이 이어가고 있다. 
  '...아, 이때에 이르러 부친께서는 연로하시고 가정에는 근심이
많았다. 올려보면 부모님을 보살필 길이 없었고 굽어보면 가솔들  
을 거느리고 기를 방법이 없었다. 장사를 하는 길만이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지름길이라고 알게 된 것은 이때가 18세 나이에 이
르러서였다. 이로부터 아버님을 따라서 연경을 출입하기 시작하  
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는 비통함을 만났으  
니 하늘이 노래지고 눈물이 솟구쳤다. 그러나 일더미는 산과 같  
았고 가세는 완전히 기울어 앉아서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상복을 입은 몸이지만 또다시 계속 장사를 하게 되었다... 
  형제 많은 전통적인 상가에 4대 장손으로 태어난 임상옥  
은 이처럼 암담했던 청년시절을 고백하고 나서 다시 다음과 같
이 절규하고 있다.
  '...그러나 곧 돌림병이 돌아 갑술년에 첫째 동생이 상을 당하
고 다시 기묘년에는 막내동생이 죽음에 이르렀다. 동기간의 죽음  
이 쌓이고 드디어 혼자 남게 되니 이때의 일은 감히 말하기 어
렵고 정황은 측량키 어려웠다. 몇 번을 죽으려 하였으나 뜻대로  
는 되지 않았고 이 무렵의 간난신고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지경 이었다‥‥‥
  임상옥 자신이 자영한 창화시들을 따로 모아 스  
스로 편집한 <가포집>은 일종의 시집이었다. 그러므로 시집에 쓴  
서문은 임상옥이 자신의 입을 빌려 고백한 짧은 자서전인 것이
다. 
  임상옥의 자서전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뜻밖에 생각지 않은 일로 기사회생하게 되었으니 
 이로부터 장사는 승승장구하였다‥‥‥ 
  짧은 자전적인 고백이지만 그 어디에도 비관적인 부분은 찾아 
 볼 수 없다. 임상옥이 그 어떤 경우에도 낙천적인 밝은 성격을 
 갖고 있었음은 서문 전체에서 엿볼 수 있을 정도인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부분에서만은 자신 스스로 '몇 번을 죽으려 하였
 으나 뜻대로는 되지 않았고 이 무렵의 간난신고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간난신고.
  온갖 어려움과 괴로운 고통을 이르는 말. 아비가 죽고 빛은 산 
 더미와 같아도 그러한 표현을 하지 않던 임상옥이 두 어린 동생 
 이 죽고 헤아릴 수 없는 정황이 다가오자 스스로 목숨까지 끊으 
 려 하는 고통 속에 빠지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무렵.
  임상옥에게 다가온 '측량할 수 없는 정황, 몇 번이고 죽으려 
 했었던 그 고통' 의 원인은 무엇이었던가 
  그뿐인가.
  임상옥은 바로 그 다음에 이같이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 생각지 않은 일로 기사회생하게 되었으니 
 이로부터 장사는 승승장구하였다. '
  그렇다면 또 무엇이었던가.
스스로 죽으려고까지 절망하였던 청년 임상옥에게 다가온 기 
 사회생은 무엇이었던가.
  뜻밖에 생각지 않았던 기사회생의 그 기회는 마침내 임상옥에 
 게 승승장구의 상운까지 가져다주지 않았던가.
  조선이 낳은 최고최대의 무역왕 임상옥이 스스로 고백하였듯  
'자살을 생각했을 만큼의 간난신고'의 정체는 무엇이고 또한 그  
뜻하지 않았던 기사회생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1806년. 순조 6년. 그해 7월.  
  의주의 문상 홍득주의 상점에 손님 하나가 찾아들었다. 행색으
로 봐서 손님은 방금 청나라의 왕도인 연경을 다녀온 송상 
의 차림을 하고 있었다.  
  송상이라 함은 송도 상인, 즉 개성 상인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장사꾼들은 의주 상인을 '만상'이라고 부르고 개성상인을 '사상'
 이라고 부르곤 했다. 
  의주 상인과 개성 상인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의 
주 상인들이 직접 중국을 드나드는 대청무역을 하고 있다면 개  
성 상인들은 송방이라고 부르는 전국의 지점망을 통해 유  
통무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의주 상인들의 행색이 거칠고 난폭하다면 송도 상인들 
의 행색은 세련되고 깔끔하였다. 그들도 직접 중국까지 건너가  
연경에서 인삼을 팔고, 비단을 사다가 왜국에 되파는 중개무역  
에 앞장서곤 하였다.
  이들은 고려의 시조인 태조 때부터 국가에서 개장한 시전토
 상인들이었으며 자존심들이 대단하였다. 따라서 송상들은 은 
근히 의주 상인들을 무시하고 깔보고 있었지만 홍득주의 상점을 
찾아온 송상은 정중한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홍득주와 만나 수인사를 나누고 나서 손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소인은 개성에 사는 상인 박종일로 방금 연경에서 돌 
아오는 길이나이다."
  이렇게 자신의 신분을 밝힌 송상 박종일은 홍득주에게 갓을 
하나 선물하였다. 당시 개성 상인들은 귀한 손님들을 만나면 갓 
을 선물하는 버릇이 있었다. '원래 갓은 말의 갈기나 꼬리 같은 
 말총으로 만들어지고 있었으므로 주로 제주도에서 생산되고 있 
 었다.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갓을 '마미립'이라 하였는데 이 갓은 
 바다 건너 강진과 해남에 집산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 갓을 매점하였던 조직이 바로 개성 상인들의 사상들이었던 
것이다.
  개성 상인 박종일로부터 '종립'이라 불리는 제주갓 하나를 선 
 물받은 홍득주는 기분이 좋아서 물어 말하였다.
  "어르신께오서 이 누추한 곳에 어인 일로 행차하셨는지요."
  그러자 박종일은 대답하였다.
  "소인이 찾아온 것은 장삿일로 온 것이 아니라 사람 하나를 찾 
아왔소이다."
  개성 상인의 방문이라면 자연 상담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홍득 
 주는 사람을 찾아왔다는 말에 의아하였다.
  "사람을 찾아오셨다니요.'
  홍득주는 다시 물었다.
  "저희 문상에는 찾아을 만한 변변한 사람이 없는데요."
그러자 박종일은 대답하였다.
  "소인이 찾는 사람은 임가의 성을 가진 사람이나이다. "
  홍득주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대답하였다.
  "저희 문상에는 임가의 성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혹시 잘못
찾으신 것은 아니시온지."
  그러자 박종일은 대답하였다.  
  "소인이 찾는 사람의 이름은 임자 상자 옥자라 하옵는데."  
  "임자 상자 옥자라면."  
  순간 홍득주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떠올랐다.
  "임자 상자 옥자라면 임상옥을 말함인데." 
  "그렇습니다, 대인어른."
  박종일이 대답하였다.
  "제가 찾아온 것은 바로 임상옥이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입
니다. 상인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오래 전부터 이 상점에서 점원으
로 일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한때 임상옥은 제가 데리고 있던 점원이었습니다만."  
  홍득주는 말을 흐리며 대답하였다  
  "...지금은 아닙니다. "  
  "그러하면."
  박종일은 홍득주를 쳐다보며 물었다.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홍득주는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모, 모르겠습니다. "  
  홍득주로서는 실로 난감한 일이었다. 
  임상옥이 홍득주의 문상에서 쫓겨난 것은 벌써 오래 전의 일 
이었다. 임상옥이 연경에 다녀온 즉시 쫓아내었으니 벌써 5년 전
의 일인 것이다. 그뿐인가. 홍득주는 임상옥을 쫓아내었을 뿐 아 
니라 의주 상계에서 추방시켜버렸던 것이다.
  홍득주는 임상옥이 공금을 횡령하였다는 사실을 적은 통문 
을 상계에 널리 보내어 통지하였던 것이다. 이는 일종의 파산
선고와 같은 것이었다. 신용사회인 상인들의 사회에서 남의 돈을
떼어먹거나, 사기를 치거나, 특히 공금을 횡령하는 행위는 치명적
인 범죄행위였던 것이다.
  임상옥이 처음 연경에서 돌아왔을 때 홍득주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었다. 애초에 임상옥의 몫으로 3백 냥을 주었으니 임상
옥이 그것을 어떻게 쓰든 상관할 바는 없었다. 돌아오자마자 임 
상옥은 홍득주에게 이렇게 고백하였었다.
 "주인어른, 쇤네가 어르신의 돈을 250냥 차용하였나이다. "
임상옥이 자신의 입으로 공금인 홍득주의 돈 250냥을 차용하 
였다는 고백을 하였을 때만 해도 홍득주는 임상옥을 믿어 의심 
치 않았었다. 임상옥이 연경에서 가져온 비단이 엄청난 가격으로
되팔려 홍득주로서는 일생일대의 거금을 움켜쥘 수 있게 되었으
므로 임상옥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던 터였다. 따라서 
자신의 돈을 차용했다손 치더라도 임상옥을 불신할 이유가 없었 
다. 임상옥이 그렇게 행동하였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따로 있었 
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믿음이 깨진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임상옥과 함께 연경에 다녀왔던 나이든 객상 중의 한 명이 홍 
득주를 찾아왔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친구 사이로 두 사람은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는데 취기가 돌자 객상은 연경에서 있었던
추억담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객상은 임상옥에 대한 얘기도 털어놓기 시작하였는데 나이도 
어린 녀석이 객기가 있어 중국 여자 한 명을 사서 벌써 첩으로  
삼아 두었다는 얘기를 전하였던 것이었다. 게다가 중국 여자는  
당대의 절색으로 사내대장부라면 누구나 하룻밤 데리고 자기 위  
해 수만 냥이라도 던지고 싶은 그런 여인이라고 과장되게 떠벌  
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도도한 취흥으로 과장된 표현이긴 하였지만 이 말을 들은 홍  
득주는 단박 취기가 깨는 느낌이었다. 손님이 돌아가기를 기다려 
홍득주는 임상옥을 불러 물었다. 
  "소문에 듣자 하니 네가 연경에서 돈을 주고 중국 여자 하나를
샀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냐."  
  임상옥은 묵묵부답, 한참을 침묵하고 대답이 없었다.
  "어찌 대답이 없느냐. 소문에 듣자 하니 네가 돈을 주고 중국 
여자를 하나사서 첩으로 삼아 두었다는데 이것이 사실이냐." 
  "아, 아닙니다. "  
  더듬거리며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그러면 모두 거짓이란 말이냐. 너와 함께 연경으로 간 사람  
모두가 똑똑히 눈을 뜨고 보았는데도 거짓이란 말이냐. 그러하면 
그들 모두가 눈 뜬 장님이란 말이냐."  
  캐서 묻는 홍득주의 말에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쇤네가 돈을 주고 중국 여인을 산 것은 사실이오나, 그 여인  
을 첩으로 삼았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나이다. "  
  "무엇이." 
  홍득주가 분기탱천하였다.
  "네 놈이 돈을 주고 여인을 산 것은 사실이라고. 이놈아, 돈을  
주고 여인을 샀으면 그것이 바로 첩으로 삼는 일인데 무엇이 천  
 부당 만부당한 일이란 말이냐."
  홍득주가 임상옥의 행동에 분개하였던 것은 이제 간신히 목구 
 멍에 풀칠이나 하게 된 젊은 녀석이 벌써부터 계집에 눈이 떠서 
 계집질을 한다는 도의심보다 오히려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 동안의 과정을 통해서 홍득주는 내심으로 임상옥을 데릴사 
 윗감으로 점찍어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들은 없고 딸만 두고 
 있던 홍득주로서는 임상옥이 탐나는 사윗감이었던 것이다. 그래 
 서 때를 보아 혼례를 치르리라 작심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러한 
 임상옥이 연경에서 돈을 주고 계집을 하나 샀다는 것이었다. 계 
 집을 샀을 뿐 아니라 그 계집을 첩으로 삼아 두었다는 말을 전 
해 듣게 되었으니 분기가 탱천하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 
이다.
  "네 놈이 계집을 사기 위해서 내 돈 250냥까지 함부로 손을 대
었느냐."
  임상옥은 다시 묵묵부답이었다.
  "감히 네 놈이 계집과 놀아나는 분탕질로 내 돈까지 손을 대었
 단 말이냐."
  화가 난 홍득주는 눈앞이 캄캄하였다.
  "어찌 아무런 대답이 없단 말이냐. 입 구멍이 뚫려 있으면 뭐라
 든 대답을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나으리."
  임상옥은 입을 열어 구구하게 변명하느니 무릎을 꿇고 몸을 
 조아리며 말하였다.
  "쇤네가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뭐라고 한마디 변명이라도 하였으면 좋으련만 곧이곧대로 인 
정하는 임상옥의 모습에 홍득주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  
다.
  "썩 나가거라."  
  홍득주는 불호령을 내리면서 말하였다. 
  "다시는 내 앞에 얼씬거리거나,발길을 들여놓아서는 아니된다.  
당장 나가거라."
  당시 의주 상인들은 삼계라 하여 '친절', '신용', '의리'를 상도의
계율로 굳게 지켜나가고 있었다. 만약에 고용살이하는  
점원이 이 세 가지의 계율을 한 가지라도 깨트리면 즉시 상주는  
전 상계에 이를 통문하여 그 점원은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하는  
불문율이 있었던 것이다.  
  '친절', '신용', '의리' 이 세 가지의 계율은 의주 상인들의 불 
문율이었다. 그 중에서 점원이 상주의 돈을 떼어먹거나, 저울을  
속이거나, 가짜의 물건으로 남을 속이는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에  
는 그 즉시 점원은 상점에서 추방되고 다시는 상계에 발을 못
붙이는 파문선고를 당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도 이러한 상법을 모르지는 않았다. 자신이 홍득주의 문  
상을 쫓겨나게 되면 절대로 다시는 의주상계에 들어설 수는 없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임상옥이 연경에서 있었던 사실을 이실직고하지 않  
고 한마디의 변명도 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여 오히려 더 큰  
화를 자초하였던 것은 오늘에 와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  
인 것이다.
  어쨌든 '당장 나가거라'라는 홍득주의 불호령 하나로 즉시 임  
상옥은 상점에서 쫓겨났다 
  그의 상재와 뛰어난 중국어 실력을 아는 다른 문상들이 임상 
 옥을 탐을 내었지만 홍득주가 즉시 자신의 수결이 서명된 
 통문을 돌렸으므로 그는 상인들의 사회에서 완전히 쫓겨나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벌써 4, 5년 전의 일로 그 일이 있은 뒤에는 임 
상옥에 대해서는 전혀 감감하였던 것이다.
  "그러하면 박 대인께서는 제가 데리고 있던 임상옥이란 자를 
만나러 오셨단 말입니까."
  홍득주는 난감한 표정으로 박종일을 바라보았다.
  "그. 그렇습니다. "
  박종일은 분명하게 대답하였다.
  "...어인 일로 임상옥을 만나러 오셨습니까."
  홍득주는 호기심이 나서 물어 말하였다. 그러자 박종일은 대답 
하였다.
  "그것은 본인을 만나기 전에는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는 없
 는 일이나이다. "
  "...중요한 일이나이까."
  "아주 중요한 일이다마다요. 임상옥이란 사람 본인에게는 생명
 이 걸린 아주 중요한 일이나이다. "
  "하오나."
  홍득주는 말을 잘랐다.
  "그자는 지금 이곳에 없습니다. 한때 데리고 있었습니다만 지 
 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어인 일로 내보내셨습니까."
  '내보낸 것이 아니라."
  홍득주는 내친 김에 말을 뱉어버렸다.
  "쫓아낸 것입니다. "  
  "쫓아내다니요."  
  "제가 한 3년 데리고 있었는데 상재가 있어 곧 독립시켜 주려  
하였으나 알고 보니 손버릇이 나빠서 공금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래서 쫓아 내버린 것입니다. "  
  일단 말을 뱉어버리고 나서 홍득주는 넌지시 박종일에게 물어  
말하였다. 
  "혹시 임상옥이가 박 대인에게도 무슨 손실이라도 입혔습니까. 
그래서 그자를 찾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홍득주가 묻자 박종일은 손을 내저으며 황급히 말하였다. 
  "천만에요. 그런 일로 만나자는 것은 아닙니다. "  
  "어쨌든."
  홍득주는 말을 잘랐다.  
  "임상옥을 이제 이곳에서는 절대로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 
  '그, 그렇습니까." 
  실망한 표정으로 일어서려던 박종일이 다시 홍득주를 바라보  
며 물었다.
  "좀 전에 말씀하시기를 알고 보니 손버릇이 나빠서 공금에 손  
을 대서 쫓아 내버리셨다 하옵는데 그 공금이 얼마나 되는 것이
었습니까." 
  "...큰돈은 아니었습니다. "  
  5년이 지난 지금에도 홍득주는 임상옥에 대한 반감이 사라지
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임상옥이 연경에서 계집질로 그 큰돈을  
날렸다는 말만큼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차마 할 수가 없었던 것  
이다
  "그 공금이 얼마가 되는 돈입니까."
 부드러운 목소리로 박종일이 다시 물어 말하였다.
  "별로 큰돈은 아니었습니다만 그 금액은 알아 무엇하려 하십 
니까."
  그러자 박종일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제가 대신 갚아 드리려는 것입니다. "
  "대신 갚겠다구요."
  영문을 알 수 없는 홍득주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습니다. "
  박종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원하신다면 원금에 이자까지 붙여 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시지 
요. 임상옥이란 사람이 손을 댄 공금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금액 
입니까."
  "...250냥이 었습니 다. "
  마지못해 홍득주가 대답하였다. 그러자 박종일은 선선히 말을 
받았다.
  "그러면 제가 임상옥을 대신해서 그 돈을 갚아 드리겠습니다.
원금 250에 이자를 50냥 쳐서 합계 3백 냥으로 갚아 드리겠습니
다. "
  박종일은 즉시 휴대용 붓통에서 붓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어음용지를 따로 꺼냈다.
  당시 의주 상인들과는 달리 개성 상인들 간에서는 어음이 본
격적으로 발행되곤 했었다. 이는 어험 혹은 음표라 
고 불렸으며 일정한 금액을 일정한 기일 안에 지급할 것을 약속
하는 표권이었던 것이다.
  전국의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개성 상인들은 객상들 간에 
신용을 본위로 한 어음을 주로 화폐 대신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
다. 이것은 돈이나 화폐 대신 사용하던 은이 무겁고 부피가 커서 
운반하기가 불편했으므로 간편하고 자유롭게 양도할 수 있는 신
용수단으로서 어음이 널궈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종일은 보통 길이 6∼7치, 너비 2∼3치가 되는 어음용지를
꺼내어 붓에 먹물을 묻혀 다음과 같이 써내렸다. 
  '전삼백 냥출급표'
  용지 중간에 액수를 쓰고 나서 박종일은 어음의 오른쪽에 다
음과 같이 날짜를 써내렸다.  
  '7월 12일. 개성 상인 박종일'
  보통 어음의 왼쪽에는 지급 기일을 기입하였는데 박종일은 지 
급 기일을 쓰지 않음으로써 언제든지 필요할 때 지급을 요구할 
수 있는 특별어음을 발행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박종일은 지그재그 모양으로 그 어음의 한가운데 
를 잘라 두 조각으로 나누었다. 채무자인 박종일의 기명이 있는
쪽은 보통 남표라 하고, 다른 한쪽은 여표라 하여  
남표의 보유자가 지급을 요구하게 되면 채무자는 그가 보관하고
있던 여표와 맞춰보고 액면의 금액을 지불하는 전통적인 어음이 
었다. 
  박종일은 자신의 기명이 있는 남표를 홍득주에게 내어주면서
말하였다.  
  "언제든 필요하시면 액면의 금액을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 
  홍득주는 믿을 수가 없었다.
  개성 상인들이 발행하는 어음은 액면 그대로의 신용을 지니고
  있다. '3백 냥'이라면 절대로 적은 돈이 아니다. 아니,그 돈이 크 
  건 적건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박종일이 도대체 무슨 연유로 해 
  서 수년 전에 내쫓아버린 임상옥의 빛을 스스로 대신 변제하여 
  주고 있는 것일까.
그뿐인가. 원금에다 충분한 이자까지 계산해서 대신 갚아 주고 
  있지 않은가.
또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임상옥을 만나려 하느냐는 홍득주의 
질문에 그는 다만 '본인을 만나기 전에는 말을 할 수 없다'고만 
답하고 있지 않은가.
그 날 저녁.
박종일은 임상옥의 빛을 대신 갚아 주고 홍득주의 상점을 떠 
났다.
 홍득주는 헤어지는 송상 박종일메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마도 의주 성내에서는 임상옥을 만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듣자 하니 남쪽 성곽 아랫마을에 임가 성을 가진 사람들이 대대 
로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 하오? 그곳에 가면 아마도 임상 
옥의 거처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옵니다마는‥‥‥ 
홍득주의 상점을 나온 박종일은 그 길로 시전들을 돌아 
다니며 임상옥의 행방을 수소문하여 보았다. 그러나 홍득주의 말
대로 그의 행방은 묘연하였다. 하는 수 없이 박종일은 홍득주가 
가르쳐 준 대로 남쪽 성곽 아래쪽에 있는 임씨의 집성촌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의주는 변경을 지키는 중요한 군사의 요충지대로 고려시대 때 
부터 천리장성을 비롯하여 강감찬 장군이 거란군을 막기 위해서 
축성한 백마산성 등 견고한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임경업 장군이 산성을 구축하였으며 그가 죽은 후 
백마산성에 현충사란 이름으로 사당이 세워질 정도로 의주사람
들은 그를 숭상하였는데 그 산성 안쪽에 유명한 남문이 있다. 
  장변루 혹은 내흥루로 불리는 이 남문은 지금도 북한의 보물
급 문화재 제10호로 남아 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층 문루로
된 누각에는 '해동제일문'이라는 현판이 내걸려 있다. 
  이 남문은 국경도시로서 서북방면의 관문 구실을 하는 대표적  
인 통군정인데 바로 이 성곽을 따라서 외곽지대에 임씨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훗날 조선 최고의 거부가 되었을 때 '내가 가진 은괴를 쌓으면  
마이산만하고 내가 가진 비단을 쌓으면 저 남문루만합니다'라고
어머니에게 말했던 가포 임상옥.  
  이 마이산은 의주 성내에 있는 산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  
다. 본래 마이산은 중국 만주에 있던 산으로 우리나라가 그리웠
던지 말처럼 달려서 우리나라로 오고 있었다. 그때 압록강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여자들이 '야아, 저거 조화다. 산이 달려오고
있다'라고 큰소리를 외치며 빨랫방망이를 던졌다. 산은 빨랫방망  
이에 맞아서 기운이 빠졌던지 더 날아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앉
아서 마아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임상옥이 자신이 가진 재산을 '마이산'과 깜문루'를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며 비유하였던 것으로 봐서 그의 조상 대대로 살아
온 집성촌이 남문루가 위치한 남쪽 성곽 아랫마을이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을 것이다.  
  임상옥의 집안은 대대로 객상을 하던 전통적인 장사꾼의 집안  
이었으므로 남문 성곽 밖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던 임씨 
들도 대부분 사행을 따라다니며 잔심부름이나 하던 통인들이나 
떠돌이 장사꾼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임상옥의 행방을 찾아나선 박종일은 임가촌에서 뜻밖 
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었다.
  홍득주의 만상에서 쫓겨나온 임상옥은 다시는 의주 상계에 발 
을 붙이지 못하였다. 나이든 노모와 어린 동생들을 거느린 임상 
옥은 생계가 막연해지자 행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빗, 유기, 목기, 농기구 등의 수공업 제품이나 소금, 산삼 같은 지 
역 특산물을 지게에 매고 장이 서는 장문을 찾아다니며 물 
건을 파는 장돌뱅이로 전락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뿐인가. 그의 어린 두 동생이 그만 돌림병이 돌아 갑술년에 
첫째 동생이 먼저 숨져버리고 뒤이어 막내동생마저 죽어버린 것 
이었다. 아비규환의 지옥도였다.
  아버지가 비참하게 최후를 마친 뒤 몇 해가 되지 않아 두 동생
마저 전염병으로 삽시간에 목숨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전염병에 
걸려 죽었으므로 무덤자리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였다. 훗날 파헤 
쳐 정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제대로 묘장을 하리라 생각하면서 
임시로 죽은 시체들을 가마니로 둘둘 말아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야산에 파묻으면서 임상옥은 피눈물을 흘렸다.
  압록강 물에 빠져 비명횡사한 아버지와 가매장한 두 어린 동 
생의 시체를 파묻은 가묘 앞에서 임상옥은 통곡을 하여 울었다.
 그에겐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중국의 관문 '산해관'의 현판에 새겨진 '천하제일관'이라는 문 
구를 우러러보며 '천하제일의 상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였던 
것도 한갓 꿈 속의 일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천하제일의 상인  
은커녕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임상옥은 아비처  
럼 압록강 물 속에 스스로 몸을 던져 죽어 버릴까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봉양하여야 할 노모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이어 닥친 피붙이들의 죽음으로 임상옥은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또다시 등짐을 메고  
장돌뱅이로 나섰지만 이미 마음은 세속을 떠나 있었다. 이것이  
그의 나이 26세 때의 일이었다.  
 고령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지신밟기 노래' 중에 봇짐장수  
장돌뱅이의 애환을 묘사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등짐 지고 이곳저곳 떠돌면서  
  아침에는 동녘하늘 저녁에는 서녘땅  
  어쩌다 병이 나면 구완할 이 전혀 없네. 
  사람에게 짓밟히고 텃세한테 괄세받고  
  언제나 숨 거두면 까미귀의 밥이 되고  
  슬프도다 우리 인생 이럴 수가 어찌 있소.
  
  5일마다 열리는 시골장터는 난장을 트러 돌아다니는 장돌뱅이  
들과 소를 팔고 사는 쇠전꾼들로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자연 장 
미 서면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광대패와 사당패들도 함께 
따라다녔던 것이다. 그뿐인가. 그들에게 텃세를 부리는 무뢰배들 
도 따라다녔는데 임상옥은 장터마당에서 벌어지는 광대놀이를 
  볼 때마다 마음속 깊이 느껴지는 무엇이 있었다.
  광대패들은 탈놀이나 가면극과 같은 연극이나 줄타기, 땅재주 
같은 곡예, 그리고 소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졌는데 
임상옥은 특히 탈놀이를 좋아하였다. 양반의 탈을 쓴 광대와 각 
  시의 탈을 쓴 광대가 벌이는 별신굿을 볼 때마다 임상옥은 인생 
이야말로 가면의 탈을 쓰고 노는 한바탕의 광대놀이라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었다.
양반의 탈을 쓴 사람은 양반이 되고, 각시의 탈을 쓴 사람은 
각시가 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단지 그런 가면놀이에 불과한 것 
이다.
장터에서 열반의 탈을 쓴 광대놀이를 볼 때마다 임상옥은 심 
사숙고하였다.
  인생이란 가면을 쓴 탈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이란 
저와 같은 요술쟁이들이 요술쟁이의 고향을 찾아와 온갖 미친 
놀음을 노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즉시 임상옥은 소금, 생선 같은 지역 특산물이 가득 담겨져 
 있는 지게를 버리고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다.
임상옥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임상옥이 들어 
  간 절은 다름아닌 금강산 속에 있는 추월암이었다.
10년 만에 돌아온 절이었지만 예전의 절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면서 희망 없는 장돌뱅이 청년시절을 보 
내던 그 무렵.
  임상옥은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인생은 부질없는 하나의 헛된 꿈이며, 저잣거리에 
서의 삶은 미친 광대패들의 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예전의 절은 글을 배우는 서당이었지만 지금 돌아온 절은 인간 
 으로서의 껌질을 버리고 생사를 깨우치기 위해 찾아온 도량이었
 던 것이다. 임상옥에게 글을 가르쳐 주던 법천 스님도 그대로 계  
 셨고 추월암에 주석하고 있는 석숭 스님도 예전 그대로 암자에 
 머물고 계셨다.  
  10년 만에 석숭을 만나 삼배를 올리자 본체 만체 앉아 있던 석  
 숭이 큰소리로 물어 말하였다.  
  "네 칼은 잘 있느냐."
  10년 동안 신색은 많이 여위고 늙었지만 목소리만은 여전히 
 우렁 우렁 하였다.
  임상옥은 대답하였다.
  "잘 있나이다. "
  "녹슬거나 무디어지지 않았느냐."
  "여전히 날이 시퍼렇게 서 있나이다. "
  "그러하면 네 칼을 한번 보여다우."
  석숭 스님이 말하자 임상옥은 엎드린 자세에서 몸을 일으켜  
읍하고 두 손을 내렸다. 그러자 방안에서 석숭이 다시 물어 말하
였다. 
  "그 칼로 도대체 몇 명이나 죽였느냐."  
  "죽인 시체를 제가 갖고 왔나이다. "  
  "가져왔으면 이리 갖고 오렴."
  임상옥은 망태에 매었던 짚신 한 켤레를 빼들었다. 짚신 한 켤  
레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댓돌에 올라 툇마루로 다가갔다. 방안 
에 정좌하고 있는 큰스님 앞에 가만히 짚신 한 켤레를 내밀자  
석숭은 크게 소리쳐 말하였다.
  "문을 닫거라, 이놈아. 찬바람이 들어온다. "
  그 다음날로 임상옥은 법천을 은사로 해서 머리를 깎고 계
를 수지하였다. 이례적으로 큰스님 석숭이 임상옥에게 법 
명을 지어 주었는데 이를 도원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자연인 임상옥은 죽어버리고 수도자인 도원이 탄 
생하게 된 것이다. 이때가 임상옥의 나이 스물여덟 살 때인 1806
년의 일이었다.
  개성 상인 박종일은 남문 성곽 아랫마을의 임씨 집성촌에 들 
러서야 마침내 임상옥의 행방을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다음날 금강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의주에서 임상옥을 찾아내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찾을 때까지 의주를 떠날 수 없 
을 만큼 박종일에게는 이 일이 중차대 한 일이었다. 임상옥을 찾 
고 못 찾고는 상인으로서의 그의 명운이 걸린 일이었다. 임상옥 
을 만나 그에게 전해줄 물건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만약 임상옥 
을 만나지 못해 그 물건을 전해주지 못한다면 박종일은 그만큼 
상인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박종일은 임상옥이 속세를 떠나 입산출가하였 
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벌써 일년 전.
  일년 사이에 임상옥이 또다시 다른 사찰로 거처를 옳겼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금강산 속에 있는 추월암으로 그를 찾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종일은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고 올라 마침내 산정에 이르렀 
다. 그가 임상옥을 만난 것이 기록에 의하면 7월 14일. 7월이면  
한여름의 성하. 무더위를 무릅쓰고 산정에 오른 박종일은 산 아  
래 펼쳐진 너른 만주땅의 벌판을 땀을 닦으며 내려다보았다.
  산정에는 대여섯 개의 요사채로 구성된 암자가 우뚝 솟아 있  
었다. 가파른 계단 위 암자로 들어가는 전문 위에는 '추월암'이  
라는 현판이 내걸려 있었다. 어림하여 5백 년 이상 된 사찰로 한  
때 묘향산에 오래 있어서 서산대사라고 불리던 청허 휴정  
스님도 젊었을 때 이 암자에서 공부했던 유서 깊은 사찰인 것이  
다. 
  젊어 한때 추월암에서 공부하였던 휴정은 이곳 의주 땅이 고  
려시대 거란의 장군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끌고 침공하였을 때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싸워 전승한 강감찬의 격전지임을 깨닫고  
는 강감찬 장군을 기리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었다. 
  
  오랑캐 땅을 번개처럼 쉽쓸고 
  천산에 한번 활을 걸었다  
  무쇠 같은 그 마음은 상기 죽지 않았거  
  아마도 하늘을 쏘는 무지개 되었으리
  소전호전토 
  천산일괘궁 
  철심금불사 
  응작사천홍
  
   이 시를 지을 무렵 서산대사 휴정이 머물고 있었던 암자가 바 
  로 추월암.
  개성 상인 박종일은 땀을 식히면서 추월암을 쳐다보며 생각하 
 였다.
  과연 저 암자에 임상옥이 머물고 있을 것인가. 입산하였다는 
  소문도 벌써 일년 전의 일. 집도 절도 없는 중의 팔자처럼 임상 
  옥은 그새 다른 산과 다른 절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박종일은 임상옥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가 어떤 인물
 인지,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일곱 자의 글자뿐이다.
  '의주상인 임상옥'
  그것이 박종일이 알고 있는 임상옥의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일곱 글자만으로 무슨 수단방법뜰 강구해서라도 임상옥을 찾 
 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 의주 땅에서 임상옥을 찾아내지 못한다 
 면 찾아낼 때까지 이 고을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몇날 며칠이 
 걸리더라도, 아니 몇달 몇년이 걸리더라도 찾을 때까지 의주 땅 
 을 떠나지는 못할 것이다.
  박종일은 땀을 식힌 후 추월암으로 들어갔다. 추월암은 마침 
 안거 중이었다. 스님들이 음력 4월 16일부터 석 달간 7월 
 15일까지 한곳에 들어앉아 수행하는 일을 하안거라고 
 하는데 박종일이 찾아간 것은 마침 그 무렵이었던 것이다. 이 기
 간에는 원래 외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따라서 박종일이 들어갔을 때는 묵언 중으로 온 암자가 깊은 침 
 묵 속에 잠겨 있었다.
  공교롭게도 박종일이 찾아간 것은 하안거가 끝나기 하루 전인  
7월 14일. 원래 안거가 시작되는 처음의 결제기간 7일, 끝나는 해
제기간 전의 7일은 용맹정진이라 하여 전혀 잠도 자지 않는 기
간이었던 것이다. 이 기간 중에는 특히 사람을 만나거나 동구 밖  
으로 나갈 수 없으며 부모나 스승의 사망과 같은 부득이한 경우
에만 조실스님의 허락을 얻어 외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안거 중에는 오직 유나만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유나는 안거 중에 유일하게 일체 집무를 담당하는 스님이었던 
것이다.  
  선방과 떨어진 종무소에서 박종일은 유나스님과 따로 만났다.  
박종일은 수인사를 나누고 나서 자신을 소개하였다. 자신은 개성  
에 사는 송상으로서 이름은 박종일이라 하고 방금 청나라의 수
도인 연경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 다음 찾아온 목적을 말하였
다. 
  박종일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스님 중의 한 명을 만나러 왔  
다고 말하자 유나는 그 스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박종
일은 대답하였다. 
  "...이름을 모릅니다. 소인은 그 스님의 속명이 임상옥이며 입  
산하기 전에는 저잣거리에서 상인 노릇을 하였다는 것만 알고 
있나이다. "
  스님들은 입산할 때부터 속세에서 있었던 일들은 모두 전생
의 일이라 하여서 이를 모두 버리는 것이다. 속세에서 하고
있었던 직업이며, 속세에 있었던 인연들이며, 속세에서 쓰던 이름
같은 것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인 전세의 일이라 하여
이를 따지거나 묻는 일조차 금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유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속명만으로 스님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구나 오 
늘은 안거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러하오니 일단 하산하였다가 내 
일 다시 오시면 그때 보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하여 드리겠습니 
다. "
  박종일은 그러나 물러설 수가 없었다. 유나의 말대로 산을 내 
려갔다가 내일 다시 찾아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개성 상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상인 기질을 가진 사상이 아니었던 
가.
  개성 상인들은 모든 일을 물건을 사고 파는 일로 보는 습성이 
있었다. 상인들의 생명은 '사야 할 물건은 목숨을 걸고 사고,팔 
아야 할 물건은 목숨을 걸고 팔아야 한다'는 철학에 달려 있었 
다. 그래서 송상들은 '사야 할 물건은 손해를 보고서라도 사고,
팔아야 할 물건은 손해를 보고서라도 판다'는 것을 장사의 철칙 
으로 알고 있었다.
  의주 상인들이 '신용'을 장사의 제1조로 삼고 있었다면 개성 
상인들은 '흥정'을 장사의 제1조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의주 상인들이 의리를 생명으로 여기는 '신용'의 이상주의자들 
이었다면 개성 상인들은 장사란 일단 성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는 '흥정'을 생명으로 여기는 현실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의주 상인들이 '상도'를 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었다면, 개성 상인들은 '상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이었던 것이다.
  박종일은 일단 유나스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
각하였다. 그래서 박종일은 고도의 흥정을 벌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거액의 돈을 시주할 것을 제안하였다. 상술에 능하였
던 개성 상인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뭐니뭐니 해도
돈이 최고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오늘날의 정경유착에  
따른 뇌물과 같은 검은 돈의 거래도 개성 상인들은 마다하지 않
았다. 개성 상인들이 일찍부터 금란전권과 같은 특권
과 국가의 돈을 빌려 쓰는 관전대하와 같은 특혜를 받
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는 상술에 따른 결과였던 것이다. 
  박종일은 엄청난 금액을 시주하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찰들  
은 가난하였다. 초근목피로 간신히 연명할 정도로 궁색하였으므
로 스님들의 중요한 일과는 탁발에 나서는 일이었다.  
  절의 궁색한 살림을 도맡아하는 유나스님으로서는 엄청난 금
액의 시주를 하는 박종일이 무척 고맙고 반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날 오후.  
  마침내 박종일은 임상옥을 만날 수 있었다. 대중의 눈도 있었  
으므로 암자 뒤편의 숲속에서 박종일은 은밀히 임상옥을 따로 
만났던 것이다. 박종일은 자신이 찾는 사람이 출가하였다고는 하  
지만 어쨌든 한때 장사꾼이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삭발한 모습의 스님이 나타나자 몹시 당황하였다.  
  "누굴 찾아오셨는지요."  
  스님은 합장을 하며 박종일에게 물었다.
  스님은 손에 염주를 들고 있었고, 박종일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염주알을 굴리고 있었다.  
  "제가 찾는 사람은 한때 의주에서 상인을 하던 사람입니다. "  
  박종일이 대답하자 스님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장사꾼에 대한 이야기는 저잣거리에서나 하실 일이지 여기까 
 지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여긴 머리 깎은 중들만이 모여 사는 
 곳인데요"
  그러나 박종일은 젊은 스님의 얼굴에서 스쳐 지나가는 마음의 
 동요를 날카롭게 감지해 내었다.
  "스님. 저는 임자 상자 옥자, 임상옥이라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이 암자에까지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을 만나야 합 
 니 다. "
  "모릅니다. "
  스님은 두 손을 합장하면서 대답하였다.
  "난 그런 사람을 모릅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스님은 이제라도 몸을 돌려 돌아갈 듯한 몸짓을 하였다. 그러 
 나 만만히 물러설 박종일이 아니었다.
  "스님, 스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소승의 이름은 도원이라고 합니다"
  "스님의 법명을 묻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님의 명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러자 스님은 정면으로 박종일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스님의 
눈에도 사람의 마음을 레뚫어 보는 듯한 안광이 빛나고 있었다.
  "중의 속명을 알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중에게 있어 출가하기 
전의 일이나 출가하기 전의 인연은 모두 죽어버린 전생의 일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생의 일을 알아서 무엇을 하겠습니까.나 
무 관세음보살."
  "스님에게 있어서는 그럴 줄 모르지만 제게는 몹시 중요한 일 
입니다. 저는 임상옥이라는 상인을 만나기 위해 홍득주라는 사람 
의 문상을 비롯하여 모든 상점들을 이 잡듯 뒤졌고 마침내는 남 
문루 성곽 아래 임가촌에서 임상옥이라는 사람의 늙은 노모까지 
만나 마침내 이 추월암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나
이다. "
  박종일은 일부러 늙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젊은 스님
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였다.  
  "임상옥이라는 사람의 늙은 노모는 비참하게도 집집마다 돌아
다니며 걸식을 하고 있었나이다. "
  짐짓 박종일은 스님의 얼굴을 살펴보았으나 여전히 그의 표정
은 담담하였다  
  "도대체." 
  긴 침묵끝에 스님이 말을 받았다.  
  "임상옥이라는 사람에게 도대체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그러자 박종일은 대답하였다.
  "그분에게 긴히 전해 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  
  "그 물건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분을 직접 만나지 않고서는 가르쳐 드릴 수가 없습
니다. "
  "그토록 중요한 물건입니까."
  스님은 물끄러미 박종일을 바라보았다.  
  "물론입니다. 아주 중요한 물건입니다. 저에게도 아주 중요한 
물건이지만 임상옥이라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물건입니다. 
스님,저는 지금 청나라의 수도인 연경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스
님, 스님께오서도 일찍이 연경에 다나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서 연경에 다녀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고 험한 길인가를 잘 아시 
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그렇소이다. "
염주알을 굴리던 스님의 손이 멈쳤다. 그리고 나서 스님의 입 
 에서 한마디가 무겁게 떨어졌다.
  "소승이 바로 임상옥입니다. "
  스님의 입에서 자신이 바로 임상옥이라는 고백이 나오자 박종 
  일은 다시 물어 말하였다.
  "의주에서 장사를 하시던 바로 그 임상옥이 맞으시나이까· 
  "그렇습니다. "
스님이 비로소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박종일이 갑자기 일어나 
 숲길에서 큰절을 올리면서 말하였다.
  "대인어른, 절을 받으십시오."
당황한 쪽은 젊은 스님 도원, 아니 임상옥 쪽이었다. 비록 임상 
  옥이 삭발을 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박종일 쪽이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고 있떴던 것이다. 생면부지에, 그것도 처음 보는 모르 
  는 사람으로부터 큰절을 받으니 임상옥은 몹시 당황하였다 
  "왜 이러십니까. 몸을 일으키십시오."
부축하여 몸을 일으지자 박종일은 머리를 숙여 말하였다.
  "마침내 대인어른을 찾게 되오니 광영이나이다. "
박종일은 봇짐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봇짐 속에서 무슨 
  물건을 하나 꺼내었다. 박종일은 그 물건을 꺼내 들고 두 손으로 
  임상옥에게 내밀었다.
  "이 물건이 무슨 물건인지 아십니까."
임상옥은 그가 내미는 물건을 받아들었다. 그것은 비단으로 만 
든 옷이었다. 흰 빛깔을 띠고 있었는데 옷에서는 고운 향기가 나
고 있었다. 그 향기를 맡은 순간 임상옥은 어딘가 그 향기가 익  
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접혀진 옷을 펼치자 임상옥은 그 흰옷  
이 다름 아닌 중국의 여인들이 입는 속옷임을 알게 되었다. 
  순간 임상옥은 당황하였다.  
  세속을 벗어나 출가한 승려의 손에 여인의 옷을 쥐어주다니.  
그것도 여인의 향기가 배어 있는 속옷을 쥐어주다니.  
  "가져 가십시오." 
  도로 옷을 박종일에게 내밀면서 임상옥은 말하였다.
  "저는 출가한 사문입니다. " 
  당황한 쪽은 박종일 쪽도 마찬가지였다. 박종일은 황급히 두  
손을 내저으면서 말을 하였다.  
  "아,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박종일은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면서 입을 열어 말하였다.  
  "그 옷을 끝까지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  
  임상옥은 다시 옷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여인의 깊은 속살을  
가리는 속옷이었으므로 감촉은 부드럽고 여인의 체온이 남아 있 
는 따뜻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옷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풍겨  
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인삼과 비단을 취급하였던 임상옥은 그 비단 속옷에
조하금이라 하여 주로 고급 옷에만 쓰던 비싼 비단임을  
알고 있었다. 옷을 전부 펼쳐본 임상옥은 깜짝 놀랐다.
  흰색 비단 속옷 위에는 낯익은 필체의 글씨가 적혀 있지 아니
한가.  
  그것은 분명 자신이 쓴 자신의 글씨였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 
 은 글씨가 씌어 있었다.
  '의주상인 임상옥'
  순간 임상옥은 이 속옷이 누구의 옷인가를 알게 되었다. 장미 
 령. 이 속옷은 바로 장미령의 옷인 것이다.
  임상옥은 박종일을 쳐다보며 생각하였다.
  이 흰 비단 속옷을 어째서 저 개성 상인이 갖고 있단 말인가. 5
 년 전, 장미령과 헤어지기 전날 밤 정표로 이름을 써주었던 그 
 속옷이 어째서 저 사람의 짐 속에서 나을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임상옥은 의심이 가는 얼굴로 박종일에게 물었다.
  "이 비단 속옷을 어떻게 해서 갖고 계시게 되었습니까."
  "그보다도"
  박종일은 딴청을 부리며 말을 돌렸다.
  "제가 우선 알고 싶은 것은 이 속옷이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그 속옷 위에 쓴 글이 누구의 글씨인가 하는 것입니다."
  임상옥은 천천히 대답하였다.
  "이 일곱 자는 소승이 직접 쓴 글자입니다. "
  "그럴 줄 알았습니다. "
임상옥이 대답하자 박종일은 껄껄 웃으며 자신의 무릎을 내리
 쳤다.
  "이제 됐습니다. 이제 제 할 일은 끝이 났습니다. 제 할 일은 
  의주에 사는 상인 임상옥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이 속옷을 돌려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할 일이 더 남아 있습 
  니 다. "
박종일은 짐 속에서 붓통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용지를 꺼내 
어음을 발행하였다. 어음용지 중간에 박종일은 다음과 같이 금액
을 써내렸다.
  '전문오천량 출전표'  
  그리고 나서 박종일은 어음의 오른쪽 부분에 오늘의 날짜와
채무자인 자신의 성과 이름을 썼다. 성만을 쓰는 것이 보통이었
지만 박종일은 자신의 이름을 모두 쓰고 수결 대신 인장을 찍었
다. 쓴 어음을 지그재그로 잘라서 자신의 인장이 찍힌 부분은 임
상옥에게 주고 다른 한쪽은 자신이 보관하였다.  
  오랫동안 장사에 종사하였던 임상옥은 개성 상인들이 발행하
는 어음은 그대로 현금과 같은 값어치를 지닌 유가증권임을 잘
알고 있었다.
  박종일이 지급하기로 한 5천 냥은 쌀값으로 4, 5천 석에 해당
 하는 천문학적인 거액이었던 것이다.
  그런 거액 은자 5천 냥을 왜 박종일은 임상옥에게 서슴없이 
지불하고 있는 것일까. 
  "제가 임 대인을 만나서 할 일은 이 속옷을 돌려 드리는 것과  
 함께 이 돈을 전해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의주에서 할 일은  
모두 끝이 났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마음 편하게 고향으로 돌
 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잠깐만."
  이제라도 곧바로 일어나 산을 내려갈 자세를 취하는 박종일을  
 잡아 이끌면서 임상옥이 물어 말하였다.  
  "도대체 소승에게 이러한 물건과 돈을 주는 것은 무슨 이유입  
 니까. 소승은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  
  "뭐가 뭔지 모르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
  박종일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다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연경에서 누군가가 임 대인을 계속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에서 오는 사신들, 오는 장사꾼마다 
  임상옥이란 사람인가 아닌가, 아니면 임상옥을 아는 사람인가 아 
 닌가를 계속 수소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년 동안 임 대인을 찾 
  지 못하자 마침내 제게도 그런 부탁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제 
 게 임 대인을 찾아주면 큰 상을 내리겠다 하였습니다. 제가 임 
 대인을 만나 이 속옷을 드리고 그 물건을 가진 산람이 다시 연 
  경에 돌아온다면 바로 그 사람이 임 대인이 틀림이 없을 것이므 
  로 저는 연경의 상권에서 큰 특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또 
  한 연경에서 임 대인을 계속 찾는 그 사람은 임 대인을 만나면 
  자기 대신 은 5천 냥을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부담 
 을 느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드리는 5천 냥은 제 돈이 아닙 
  니다. 저는 다만 그분을 대신해서 5천 냥을 빌려 드리는 것에 지
  나지 않습니다. 그분은 임 대인께서 이 옷과 돈을 받는 즉시 이 
  옷을 갖고 연경으로 들어와 주셨으면 합니다. 그분은 굉장히 대 
  인어른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
  "도대체."
임상옥은 말을 잘라 물었다.
  "소승을 찾는 그분은 누구십니까."
  "저도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임 대인을 찾아 달라고 
부탁을 한 사람은 연경에서 약종상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 
랫동안 중약상으로 거래하던 사람인데 그 사람도 누군 
가의 부탁을 받고 저에게 임 대인을 찾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저와 함께 연경에 다시 들어가도 좋습니다.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연경에는 임 대인을 평  
생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마도 연 
경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 최대의 거물일지도 모릅니다. "
  남다른 상술을 가지고 있던 박종일의 생각은 예리하였다. 자신  
도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연경에는 임상옥을 평생의 은  
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아마도 연경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 최대의 거물일지도 모른다는 박종일의 예측 
은 훗날 밝혀진 사실이지만 정확한 판단이었다.  
  "임 대인께서는 이 옷과 돈을 받은 즉시 연경으로 떠나셔야 합  
니다. 만약 연경으로 떠나신다면 임 대인에게는 하늘이 주신 천 
운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 
  "하오나." 
  염주를 굴리면서 임상옥이 말을 받았다. 
  "이 몸은 이미 출가한 사문입니다. 세속의 사사로운 인연이나
재물, 그리고 온갖 보화도 이미 소승과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제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하오니 다시 갖고 가셨 
으면 합니다. "
  임상옥이 받은 어음과 정표로 나누었던 옷을 다시 박종일에게
내밀자그는 펄쩍 뛰며 두 손을 저으면서 말을 하였다.  
  "그 옷을 버리시든 태워버리시든 그것은 임 대인의 임의대로 
입니다. 이미 그것은 저의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 돈 역시 버리
시든 태워버리시든 아니면 시주하여 불사에 보태 쓰시던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다만." 
  박종일의 얼굴에서 순간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정색을 한 얼
굴로 말을 이었다. 
  "임 대인을 찾아 헤매다 저는 집성촌에서 대인어른제오서 4대 
째 만상의 가업을 이어 나가던 장사꾼 집안임을 알게 되었나이 
다. 저 역시 송도에서 5대째 사상의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장사 
꾼의 아들입니다. 아시다시피 사농공상이라 하여 우리들 장사꾼 
들은 벼슬에도 오르지 못하고 천민이라 하여 사람 대접도 제대 
로 못 받고 살아왔나이다. 그러므로 한번 장사꾼이면 영원히 장 
사꾼일 수밖에 없나이다. 이제 임 대인께서 번잡한 세속을 떠나 
출가하여 도에 드셨습니다. 물론 도에 들어 도를 깨우쳐 부처님 
이 되시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불이 어찌 산 속에만 있겠 
습니까. 저잣거리에도. 주막집에도, 색주가 속에도 불도는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저희와 같은 장사꾼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일을 하는 것도 하나의 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임 대인이 
출가하여 승복을 입으셨다 하여 스님이 되셨지만 이름을 바꾸어 
법명을 도원이라 하셨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임상옥이라는 속 
명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
  박종일은 말을 이어 내려갔다.
  "임 대인께오서 지금 제 앞에 승복을 입고 나타나셨다 하더라
도 제 눈에 보이는 임 대인은 스님이 아니라 만주 대륙을 떠도 
는 만상의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나이다. 그러므로 불도
만이 도가 아니라 저희와 같은 장사꾼에게도 도가 있나이다. 그 
뿐 아니라 제가 남쪽 성곽 밖 임가촌에서 본 것은 처참한 풍경 
이었나이다. "
  박종일은 잠시 말을 끊었다. 짧은 침묵 끝에 박종일은 말을 이
었다.
  "이런 말을 임 대인에게 드려야 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만 할 말은 하고 가는 것이 같은 장사꾼으로 옳은 도리라고 생  
 각하였나이다. 임가촌에 가서 임 대인을 찾는 동안 늙은 어머니
를 만났었나이다. 사람들이 임 대인의 어머니라고 말을 하였지만
저는 차마 다가가서 임 대인의 행방을 물어볼 수 없었나이다 그 
이유를 알 수 있겠나이까." 
  임상옥은 묵묵부답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숲속의 우거진 나뭇
잎 사이 산 아래로 펼쳐진 만주 대륙의 광활한 산야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임상옥의 모습을 살피고 나서 박종일
은 말하였다. 
  "임 대인의 노모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걸식을 하고 있었나 
이다. 사람들이 임 대인의 노모를 손가락질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나이다. 저 할멈의 아들들은 모두 죽었다. 저 할
멈의 남편도 이미 죽어버렸다. 하나 남은 아들은 어느 날 시장거
리에서 행방을 감추어 삭발을 하고 스님이 되었다...스님."  
  갑자기 박종일은 지금까지 부르던 임 대인이란 이름 대신 임  
상옥을 스님이라 부르면서 말을 이었다.
  "스님께오서는 어느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스님의 노모께
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걸식을 하면서 구구하게 연명하시는 것 
을 전생의 일이라 하여 모른 체하오시고 이처럼 산 속에 틀어박  
혀 머리를 깎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독송하며 마음자리  
를 보고 깨우쳐 부처가 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라 
도 승복을 벗고 산을 내려와 늙은 어미를 봉양하고 효를 다하여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장사꾼의 집안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  
해 임 대인 당대에 집안을 일으켜 조선 제일의 상가를 이 
루심이 옳다고 생각하시나이까. 어느 쪽이든 옳다고 생각하는 쪽
으로 판단을 내리시어 그쪽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라나이다."
박종일은 몸을 일으켰다.
  이때 박종일이 말했던 내용들은 임상옥 일생일대의 분수령이 
 되는 것이었다.
  만약 임상옥의 일생에 있어 박종일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고 
 승 하나는 태어났을지 모르지만 조선 최고최대의 무역왕 임상옥 
 은 탄생되지 못하였을지도 모른다. 박종일은 임상옥의 일생에 있
 어 기사회생의 기회를 주어 그를 장사꾼으로 재기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평생을 통해 임상옥에게 장사의 상술을 가르쳐 준 스 
 승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박종일은 다시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 내려갔다.
  "아시다시퍼 은 5천 냥이라 하면 적은 돈은 아니나이다. 5천 
 냥이면 충분히 또다시 장사꾼으로 독립하고 갱기할 수 있 
 는 자금이나이다. 사람이 사는 일에 있어 기회는 오직 단 한 번 
 뿐이나이다. 개성에 사는 상인들 간에는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가
 있나이다. 한번 맞춰 보시겠습니까. 앞에만 머리카락이 있고 뒤에
 는 대머리인 것이 무엇이나이까."
  수수께끼를 내고 나서 박종일은 물끄러미 임상옥을 바라보았 
 다. 그러나 임상옥은 한 손으로 염주알을 굴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르시 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그러자 박종일은 말하였다.
  "앞에만 머리카락이 있고 뒤통수는 대머리인 것은 바로 기회 
 이나이다. 무슨 일이든 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인 기회는 자주 
오지 않나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세 번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고들 말하나이다. 기회는 찾아을 때 그 머리카락을 붙들고 
놓지 말아야 하나이다. 기회는 앞에만 머리카락이 있어 왔을 때  
잡아 붙들어야 합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스쳐 지나간 기회는 이 
미 그 뒤통수가 대머리여서 붙잡으려 하여도 붙잡을 머리카락이 
없는 법이나이다. "  
  박종일의 언변은 대단하였다. 그는 장사를 하는 기술인 상술에
도 능하였을 뿐 아니라 사람을 설득하는 변술에도 타고난 재능  
을 갖고 있었다.
  "이 말은 하지 않을까 생각하였지마는 이왕에 말이 나온 김에
말씀드리겠나이다. 제가 임 대인을 찾아 수소문하는 동안에 홍득 
주라는 사람을 만나서 그의 문상을 들러 보았나이다. 그곳에서  
임 대인이 공금을 횡령하여 의주의 상계로부터 파문당하였다는  
말을 들었나이다. 그 말을 듣고 제가 대신하여 그 공금을 갚아  
주었나이다. 이자까지 쳐서 갚아 드렸으므로 이제 누구도 임 대  
인을 파문하는 일은 없을 것이나이다. 임 대인은 이제 자유의 몸 
이나이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장사의 길로 다시 나설 수 있나이 
다. "  
  박종일은 일어나서 의관을 정제하며 말하였다.  
  "제가 임 대인을 대신해서 빛을 갚아 드린 것은 이제부터 임 
 대인을 장사에 있어 저의 형님으로 모시기 위한 예절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 소인은 물러가나이다. 앞으로 임 대인께오서는 저
 의 형님이자 주인이시나이다. 보십시오, 대 인어른."  
  박종일은 우거진 나무숲 사이로 펼쳐진 광활한 딴주 대륙의  
 산야와 굽이쳐 흐르는 겹겹의 산봉우리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듣기로는 임 대인께오서 어린 나이 때부터 풍찬노숙을 하면 
서 벌써 수 차례 연경에 드나들어 객상으로서는 드문 상재를 갖 
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나이다. 그뿐인 줄 아십니까. 무엇보다 
중국말에 능통하여 막힘이 없다는 말을 들었나이다. 앞으로 중국 
과의 무역에는 무엇보다 중국어의 능통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나 
이다. 지금 역관들이 제 세상을 만나서 저희들 장사꾼들을 종처 
럼 부리며 치부를 할 수 있는 것도 오직 중국말에 능통한 한 가 
지 이유 때문이나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 아까운 재능을 이 
산중에서 썩히려 하십니까. 그 재능을 뽐내어 천하를 호령하는 
제일의 상가를 이루고 싶지 않으십니까. 보십시오."
  박종일은 손을 들어 만주 벌판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대인어른, 저 산 아래 펼쳐진 만주 대륙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대인어른은 2천 리의 연경으로 가는 길을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 
이 환히 레고 있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나이다. 저 대륙을 다시 
한번 누비고 싶지 않으시나이까. 그리하여 조선 제일의 장사꾼이 
되고 싶지 않으시나이까."
  이로써 임상옥이 말년에 쓴 <가포집>의 머리말에 적혀 있던 
다음 구절.
  '...몇 번을 죽으려 하였으나 뜻대로는 되지 않았고 이 무렵의 
 간난신고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뜻밖에 생각지 않 
 은 일로 기사회생하게 되었으니 이로부터 장사는 승승장구하였 
다. '
  그 중에서 임상옥을 기사회생시킨 '뜻밖에 생각지 않은 일'의 
 수수께끼가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 '기사회생'의 비밀은 바로 이 
처럼 박종일과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박종일과의 만남은 기사회생의 시작이었을 뿐 거상 임 
상옥에게 찾아온 기회는 그야말로 하늘이 돕고 신령들이 돕는 
천우신조였던 것이다.
 
   제 6장 천우신조 
  
  1806년.
  임상옥과 박종일은 8월의 한여름 의주를 떠났다. 압록강에는 
 이상하게도 모래로 이루어진 사주들이 많았는데 땟목을 타고 도
 강을 하는 임상옥의 가슴은 새로운 감회로 갈갈이 찢어지는 듯 
 하였다. 압록강의 물은 장마철이라 물살이 거세고 불어난 강물은
 와랑와랑 큰소리를 내고 있었을.
  5년 전, 의주를 떠날 때도 이와 같은 장마 뒤끝의 한여름 8월 
 달이었다. 그때 임상옥은 조선 제일의 상인이 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던 스무 살이 넘은 청년이었다.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흐른 동안 임상옥으로서는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하였던 온갖 고 
 통과 인생의 역경을 한꺼번에 거쳐 왔다. 두 동생은 전염병으로 
죽어버리고 자신은 상계로부터 추방되어버렸었다. 그리하여 어차  
피 인생이란 부질없는 꿈이며 저잣거리의 삶이란 미친 광대패들  
의 가면놀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되었던 것
이 2년 전의 일이었다.
  그 동안 임상옥은 도원이란 법명을 받고 계까지 받아 정식으  
로 사문이 되었었다. 바깥세상의 일들은 전생이라 하여 이미 죽
어버린 과거에 불과하였던 것이었다.
  그러한 임상옥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사람이 바로  
개성 상인 박종일이었던 것이다.  
  박종일이 나타나서 난데없이 자신의 이름이 적힌 장미령의 속  
옷과 5천 냥의 거액을 주고 가자 임상옥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  
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마침 박종일이 떠난 다음날은 7월 15일로 하안거가 끝나는 날  
이었다. 안거가 끝나자 모두 수고하였다 하여 떡을 만들고 함께
나눠 먹는 잔치가 벌어졌으며 일단 좌선하였던 승려들에게도 어  
느 정도 자유가 주어졌다. 이른바 행각이라 하여 한곳에 
있지 아니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도를 닦아도 무방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승복에 죽립을 쓰고 금강산을 내려왔다.  
  죽립은 가는 대오리로 만든 갓으로 일반 부녀자들이 행차할
때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는 도구였는데 임상옥이 죽립
을 쓴 것도 자신의 모습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산을 내려와 저잣거리로 들어간 것은 실로 일년 만의 일이었
던 것이다. 어깨에 걸망을 메고 집집마다 목탁을 두들기며 탁발
을 해 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실은 먼발치에서나마 늙은 어머
 니의 모습을 훔쳐보고 돌아오는 것이 임상옥의 속뜻이었던 것이 
  다.
  "이런 말을 임 대인에게 드려야 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 
 다만 할 말은 하고 가는 것이 같은 장사꾼으로 옳은 도리라고 
 생각하였나이다. "
  찾아온 박종일이 남기고 간 말 한마디가 계속 임상옥의 마음 
 에 남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어머니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밥을 구걸하고 다닌다는 박 
 종일의 말을 듣는 순간 임상옥은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이 
 미 사문에 들면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세계'와 '천 
 지가 갈라지기 전'의 세계를 찾아 도를 닦는 것이라 
 하더라도 자신을 낳은 어미가 걸식을 하고 다닌다는 말을 듣자 
  임상옥은 박종일의 말처럼 낳아준 어미를 굻겨 죽게 하고 혼자 
 서만 도를 깨우쳐 부처를 이룬다 하더라도 그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었다.
 가서 보리라. 먼발치에서나마 직접 어머니의 모습을 내 눈으로 
 지켜보리라.
  임상옥은 대 갓을 써 얼굴을 가리고 일년 만에 어머니의 모습 
  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기 위해 산을 내려왔던 것이다.
  2년 만에 보는 저잣거리의 모습은 몹시 낯이 설었다. 이미 죽 
 어버린 전생의 세계라 하여 절연하였던 세속의 거리였으므로 모 
 든 것이 생경하였다.
  임상옥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읍내 거리 
 를 피해 남쪽 성곽마을로 빠르게 걸어 나갔다. 의주 남문이 있는 
 곳은 송장면으로 이곳을 가려면 을파소의 묘당 앞을 지나야만 
 하였다. 을파소는 옛 고구려의 대표적인 국상이었는데 그는
 진대법을 실시하여 왕족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사회에 새로운
 정치질서를 수립하여 사회안정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었다. 
의주 사람들은 을파소의 묘당을 만들고 그를 숭상하여 대대로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곤 하였던 것이다. 이곳 일대는 예부터
 '흙굿재 기와'라는 특산물이 생산되는 곳이었다.  
  임상옥은 어머니가 살고 있는 남문루를 가려면 읍을 관통해서
 지름길로 가야 하지만 혹시 읍내 시장거리에서 아는 상인들을  
 만날지 몰라 일부러 성의 바깥지역을 굽돌아 을파소의 사당과  
 기와를 굽는 가마터를 지나 남문루 밖의 외곽지대로 나아갔던  
 것이다.  
  도중에 임상옥은 집집마다 들러서 탁발을 하였으므로 이미 걸
 망 안에는 곡식이 가득 들어 있었다. 비록 기근이 들고, 민심은 
흥흥하였지만 승려를 맞는 저잣거리의 민가들은 바루에 가득가  
득 알곡을 채워줄 정도로 인심이 넉넉하였다. 
  임상옥은 마침내 임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 
에 이르렀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함께 피를 나눈 사람들
이었으므로 임상옥은 죽립을 깊이 눌러쓰고는 목탁을 두드리지  
않고 걸행조차 하지 않았다. 임상옥은 숨을 죽이고 조심조 
심 자신이 살던 집 앞으로 가 보았다. 집은 워낙에 낡은 집이었 
지만 일년 사이에 완전히 폐가가 되어버린 듯하였다. 사람의 인 
적이 끊겨버린 흉가처럼 집은 쓰러져 가고 있었다. 열린 문 안쪽
을 조심스럽게 한참을 살펴보았지만 집안에서는 인기척조차 느  
껴지지 않았다.  
  임상옥은 주위의 눈을 피해 집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작은 마 
당은 잡초가 무성하고 댓돌 위에는 낯익은 짚신 한 켤레가 놓여 
져 있었다. 그것은 분명 어머니의 짚신이었다. 집안에 사람이 살 
고 있는 흔적이 전혀 없었지만 댓돌 위에 낡은 어머니의 짚신이 
여전히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어머니가 이 쓰러져 가는 
폐가를 지키며 오직 하나뿐인 아들을 기다리며 살고 있음이 분 
명하였다.
  임상옥은 짚신 앞에 무릎을 꿇고 숨죽여 울기 시작하였다. 기
 기 막히고 원통한 일이었다. 임상옥은 소리 죽여 울면서 방문을 
 열어 보았다. 방안도 텅 비어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 살고 있는 
 방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벽에 누더기 치마 한 
 벌이 걸려 있는 것이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는 인가라는 사실을 
 가리킬 뿐이었다.
  임상옥은 부엌으로 가 걸망을 풀고 들어 있는 양곡을 독에 모 
 두 부어내렸다.
 탁발한 곡식은 모두 절로 가져가 한동안 대중들이 나눠 먹어 
 야 하는 양식이었다. 그러므로 탁발한 양식을 절로 가져가지 않 
 고 사사로운 인연에 이끌려 엉뚱한 곳에 풀어놓는 것은 옳은 일 
 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임살옥은 걸망에 들었던 곡식을 양곡 한 톨도 들어 있 
지 않던 텅텅 빈 독 안에 부어내리면서 생각하였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먹을 양식을 주는 것이 자비가 아니 
고 무엇이랴. 부처님은 일찍이 전생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자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먹이로 내어주셨다. 굻어 죽어가는 사자 
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먹이로 주는 컷이 대자비라면 굻어 
죽어가는 어미를 위해 탁발하여 모은 양식을 주는 행위야말로  
대자대비의 보시행인 것이다.  
  독에 양곡을 모두 부은 후 임상옥은 집을 나섰다. 더 이상 집 
안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저 정도의 곡식이면 한동안 먹고 사는 데 걱정 없이  
입에 풀칠은 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 정도의 곡식마저 떨어지면 또다시 어머니는 어디서  
음식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잠시 가벼웠던 마음과는 달리 집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임  
상옥의 발걸음은 천 근처럼 무거웠다.  
  그때였다. 
  마을 어귀에 있는 우물가를 지나던 임상옥은 저절로 얼어붙은  
듯 제자리에 멈춰섰다. 우물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낙네 사  
이에서 무엇인가가 임상옥의 눈을 잡아끌었기 때문이었다. 동리  
아낙네들이 우물가에 모여 앉아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마치 강한 자석으로 잡아끌어 당기는  
듯한 모습 하나가 있었다.  
  임상옥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바로 어머니였다.  
  2년 사이에 어쩌면 저토록 늙어버릴 수 있을까 싶게도 완전한  
노인이었다. 머리카락은 백발이었다. 그 노파가 여인들 사이에 끼  
어 앉아 빨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숨을 죽이고 어머니를 지켜보았다. 마침 빨래를 끝내 
었는지 어머니는 일어섰다. 빨래를 광주리에 넣어 담아 머리 위  
에 이고 어머니는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호호백발의 할머  
니가 되었을 뿐 아니라 등도 굽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됫모 
습은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잔나비와 같은 짐승의 모 
습이었다.
  임상옥은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의 됫모습을 따라 걷기 시작하 
 였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머니는 자신이 방금 빠져나온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집은
 변변한 울타리조차 없었으므로 담 너머로의 풍경이 그대로 보이 
 고 있었다. 어머니는 등만 굽은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눈도 어 
 둡고 귀도 어두워졌는지 뒤따라오는 임상옥의 존재는 물론 담 
 너머에서 지켜보는 아들의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선 어머니는 빨래를 펴서 줄에 널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는 탁탁 물기를 털어 줄에 널기 시작하였는데 그 빨래를 
 본 순간 임상옥은 심장이 멎는 듯하였다.
  어머니가 방금 우물갈에서 빨아 온 빨래는 바로 자신이 입던 
 옷이었던 것이다.
  어째서.
  임상옥은 숨조차 쉬지 못하며 생각하였다.
  어머니는 왜 내 옷을 빨아서 그 옷을 햇볕에 말리고 있는 것일
 까. 나는 이미 수년 전에 사라져 어머니에게는 죽어버린 자식이 
 아니었던가. 내게 있어 어머니는 이미 전생이었다. 내게 있어 어 
 머니는 이미 끊겨진 인연이었고 죽어버린 존재였다. 그러나 어머 
 니에게 있어 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아들이며 수년 전에 사라진 
 아들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며 이제라도 당장에 불쑥 나타날지 
 몰라 때도 묻지 않은 아들의 옷을 깨끗이 빨아 널고 풀을 먹여 
 채곡채곡 가지런히 준비해 두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저 옷을 빨고 또 빨았을 것이다. 마치 아들인 내가  
입던 저 옷을 살아 있는 아들처럼 생각하고 그리을 때면 우물가  
에 나가 빨래를 하고 그것을 햇볕에 말리는 일을 두고두고 되풀  
이하며 세월을 참고 견디었을 것이다.  
  담 너머로 어머니가 널어놓은 빨래를 본 순간 임상옥의 가슴  
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순간 그의 머리로 중국의 선화 하  
나가 떠올랐다. 
  일찍이 당나라 때 양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일찍부 
터 불법에 심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집을 떠나 불도를  
닦으리라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사천에 무제보살
이란 스님이 있어 불법에 능통하다 하여 기회가 왔다고 생  
각을 한 양보는 무제보살을 찾아 집을 떠나 먼 길을 출발하였던  
것이다. 
  가는 도중에 찻집에 들러 간단한 요기를 하고 있는데 노인 한 
사람이 양보에게 물어 말하였다.  
  "젊은이, 어디 가시는가." 
  이에 양보가 대답하였다.  
  "사천으로 갑니다. "  
  "사천에는 왜."  
  "사천에 무제보살이라는 훌릉한 스님이 있어 그분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
  그러자 노인이 다시 물었다.
  "그분을 만나서 무엇을 하려고."
  "무제보살을 만나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불법을 이루고 싶  
기 때문입니다. '
  이 말을 들은 노인이 다시 물었다.
  "불법을 이루어 무엇이 되려고."
  "불법을 깨쳐 부처가 되고 싶습니다. "
  그때 노인이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부처가 되고 싶으면 부처를 만나 그분을 스승으로 삼으면 되 
지 어째서 젊은이는 그 먼 사천까지 가서 보살을 만나려 하는가.
보살을 만나느니 부처를 만나는 게 낫지 않은가."
  이 말을 들은 젊은이가 반색을 하여 물었다.
  "노인께서는 부처가 계신 곳을 알고 계십니까."
  노인은 웃으며 대답하였다.
  "알고 있다마다. "
  "그곳이 어디입니까."
  이에 노인은 대답하였다.
  "지금 곧바로 집으로 가면 이불을 두르고 신발도 거꾸로 신은 
채 뛰어나와서 맞는 사람이 있을걸세.바로 그분이 부처님이시라 
네."
  이 말을 들은 양보는 노인의 말대로 보살을 만나 스승을 삼느 
니 직접 부처를 만나는 게 좋겠다 하고 생각을 바러 집으로 돌 
아간다.
  밤늦게 집에 도착한 양보는 문을 두드리는데 바로 그 순간 노 
인의 말차럼 옷도 입지 못하고 그대로 이불을 두른 채 신발도 
신지 못한 맨발로 달려나오는 부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부처가 바로 어머니였던 것이다.
  이에 크게 깨달은 양보는 이런 말을 하였다.
  "부처님은 집안에 있다."  
  임상옥은 '부처님은 집안에 있다'는 유명한 선화를 남긴 양보 
의 이야기처럼 어쩌면 담 너머에서 입지도 않는 자신의 옷을 빨  
아 너는 어머니야말로 부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 길로 추월암으로 돌아왔지만 몇날 며칠을 임상옥은 잠을  
이를 수 없을 만큼 고민하였다.  
  이대로 어머니건 세속의 일이건 잊어버리고 불도에 들어 마음 
자리를 보아 부처를 이루느냐, 아니면 환속하여 저잣거리로 나아 
가 또다시 장삿길로 나서 못 다한 선대로부터의 한을 푸느냐는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임상옥은 번민하였다.  
  임상옥의 이런 고민을 눈치챈 사람은 임상옥의 사승인  
법천 스님이었다.  
  울력이라 하여 임상옥이 암자에서 먹는 채소 같은 것을 심는  
작은 채마밭을 가꾸고 있는데 법천 스님이 다가와 물어 말하였  
다.
  "네가 무슨 고민이 있어 보이는데."  
  임상옥은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밭이랑을 고르고 있었다. 
  "걸행을 나갔다 돌아온 뒤부터 부쩍 말수가 적어지고 기운이  
없어 보이더구나."  
  "스님 ."  
  마침내 임상옥은 사승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결심하였다. 
임상옥에게 있어 법천 스님은 스승이자 아버지였던 것이다. 
  임상옥은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그로서
는 남에게 생전 처음으로 털어놓는 고백이었다.
  5년 전 연경에서 있었던 일들, 장미령과의 만남, 5백 냥을 주고  
그녀의 몸을 사서 자유의 몸으로 풀어준 일, 그로 인해 상점에서 
쫓겨나게 된 사연. 그뿐인가. 의주의 상계에서 영원히 추방되어 
어쩔 수 없이 시골 장터의 장돌뱅이로 돌아다니던 일, 아비의 비 
참한 죽음과 전염병으로 한꺼번에 죽은 두 동생 이야기,그리고 
며칠 전 찾아온 개성상인 박종일로부터 받은 뜻밖의 거금 5천 
냥. 그 돈이면 얼마든지 만상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모든 이야기 
를 임상옥은 낱낱이 털어놓았던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임상옥은 탁발을 나가 어머니를 먼발치에서 보고 
돌아왔다고 말을 하였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서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네가 지금 고민하는 것은 그렇다면 다시 환속하여 산을 내려 
  가느냐, 아니면 산 속에 남아 계속 정진을 하느냐 그 둘 중의 하 
  나 때문이 아니겠느냐."
  스승의 질문에도 임상옥은 옷소매로 눈물을 닦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제자 임상옥의 속마음을 알게 된 법 
  천은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네가 중속환이
  가 되고 싶다고 해도 네 맘대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큰스님 
  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중속환이'란 중으로 있다가 퇴속하는 일을 말하는 것으로 어 
  쨌든 환속하는 것은 중의 자유이긴 하지만 일단 사찰의 제일 큰 
  어른인 석숭 스님의 허락을 맡게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일단 너를 대신해서 내가 큰스님에게 말씀을 드려 보겠으니 
  기다려 보도록 하여라.큰스님께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실 것 
  이다. "
  그날 밤.  
  임상옥은 큰스님에게 불려갔다. 큰스님 석숭이 머무는 암자는 
추월암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이었는데 임상옥이 문안인사를 드  
리자 석숭은 큰소리로 말하였다. 
  "들어오너라."  
  저녁 공양 무렬 스승 법천으로부터 모든 사실을 큰스님에게  
말씀드렸으니 곧 연락이 올 것이다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당장 오늘 밤에 자신을 부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으므로  
임상옥은 석숭 큰스님의 방안으로 들어서면서 몹시 긴장하였다.  
임상옥이 삼배를 올렸지만 석숭은 허공으로 얼굴을 돌린 채 눈  
 길 한번 주지 않았다.  
  방안에는 호롱불 하나만 깜박이고 있을 뿐 어둡고 적적하였다.
밖으로는 바람이 세어졌는지 쏴아아- 소나무숲을 달려나가는  
솔바람소리가 말밥굽소리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쩌다 방안으로 들어온 파리 한 마리가 날개소리를 내면서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파리를 가리키며 느닷없이 석숭이 긴  
 침묵을 깨트리며 입을 열어 말하였다. 
  "저 날아다니는 것이 무엇이냐,'  
  "파리 입니다. "  
  "파리가 눈에 보이느냐."
  "보입니다. "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그러자 석숭이 말하였다.  
  "파리를 잡을 수 있겠느냐."  
  "잡을 수 있습니다. "
 "그럼 파리를 잡아오너라."
 임상옥은 파리채를 들고 날아다니는 파리가 잠시 날개를 쉬기 
위해서 앉아 있기를 기다려 파리를 잡았다. 죽은 파리를 문 밖에 
버리고 돌아오는 임상옥에게 느닷없이 석숭이 손가락을 들어 허 
공을 가리키면서 소리쳐 물어 말하였다.
  "이게 무엇이냐."
  임상옥은 석숭이 가리킨 손끝을 보았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
다 그래서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허공입니다. "
  그러자 석숭이 다시 물었다.
  "허공이 보이느냐."
  "보이지는 않습니다. "
  "보이지는 않지만 허공이 있느냐.'
  "있긴 있습니다. "
  임상옥이 대답하자 석숭이 비로소 임상옥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그럼 너는 그 허공을 잡아을 수 있느냐."
  임상옥은 대답하였다.
  "잡아오도록 하여 보겠습니다. "
  "그럼 잡아오도록 하여 보아라."
  임상옥은 좀 전에 파리를 잡았던 파궈채를 들어올려서 허공에 
서 빙빙 돌려 보았다. 어느 한순간 임상옥은 파리채로 타악-소 
리가 나도록 허공을 후려쳤다.
  "잡았습니 다. "
  임상옥이 대답하자 석숭이 말하였다.
  "잡았으면 허공을 보여다우."  
  임상옥이 파리채를 들어올리자 석숭이 소리쳐 할을 하면  
서 말하였다.  
  "허공이 어디 있느냐. 보이지 않지 않느냐." 
  순간 석숭은 파리채를 들어 임상옥의 머리통을 세차게 후려쳤 
다. 임상옥은 무안해서 겸연쩍은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큰스님께오서는 허공을 잡을 수 있습니까."  
  "나야말로 잡을 수 있지." 
  단숨에 석숭이 대답하였다.  
  "그럼 허공을 잡아 보여 주십시오."  
  "보여 주다마다. "  
  석숭이 갑자기 옷소매를 걷었다. 그는 두 손을 휘둘러 허공을 
향해 내저었다. 어느 순간 그 손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임상옥  
의 얼굴을 향해 내리꽃혔다. 그 손은 임상옥의 코를 잡아 비틀었 
다..
  "이것이 내가 잡은 허공이지.'  
  석숭이 잡은 손은 가차없었다. 코를 떼어낼 듯이 석숭은 임상 
옥의 코를 잡아 비틀었다. 저도 모르게 임상옥은 아야야- 하고  
비명을 질렀다.
  "내가 잡은 허공이야말로 진짜의 허공이다. 아야야 하고 비명 
까지 지르니까."
  호되게 코를 잡아 비튼 후 임상옥의 비명소리를 듣고서야 석  
숭은 코를 풀어 주고는 장난기어린 얼굴로 물어 말하였다  
  "아프냐."  
  "아픔니다. '
  그 순간 석숭의 손이 임상옥의 귀를 잡아 비틀었다. 이번에도 
 사정을 봐주는 일이 없었다. 아야야- 하고 임상옥은 비명을 질 
 렀다.
  얼마나 세게 잡아당겼는지 귀가 떨어져나갈 지경이었다. 아야 
 야- 하고 임상옥이 비명을 지르자 석숭이 잡아 비틀었던 손을 
풀어 주면서 다시 물어 말하였다.
  "아프냐."
  "아픕니다. "
  그때였다.
  임상옥이 대답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석숭은 다시 임상옥의 입
을 잡아 비틀었다. 입술이 찢겨져 나갈 만큼 센 힘이었다. 임상옥
 은 비명을 지르려 하였지만 입술을 비틀고 있었으므로 신음소리 
 조차 내지 못하였다.
  "아프냐."
  임상옥이 몸부림을 치자 석숭이 입술에서 손을 떼며 말하였다
  "아픕니다. "
  임상옥은 석숭이 또 다른 부위를 향해 무차별로 공격해 들어 
 올 것 같아 물러서 도망치면서 말하였다.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큰스님."
  "꼬집어 아프지 않은 곳이 있다면 내 너를 풀어주리라. 때려 
 아프지 않은 곳이 있다면 네 좋은 대로 할 수 있도록 내 허락할 
 것이다. 꼬집고 물어뜯어도 아프지 않은 곳이 네 몸에 있더냐.'
  임상옥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큰스님의 질문처럼 내 몸 어
딘가에는 꼬집고 물어뜯어도 아프지 않은 곳이 한곳이라도 있을 
것인가. 스님이 벌써 잡아 비튼 코도, 귀도, 입도 모두 비명을 지 
를 만큼 아팠었다. 아프지 않은 곳이 있다면 손톱인가, 발톱인가.
아니다. 언젠가 생손앓이를 앓은 적이 있었다. 그때 얼마나 손가  
락이 아프던가. 손톱이야 아프지 않지만 손가락 역시 분명 아픈
곳이다 그렇다면 머리카락인가. 머리카락은 분명히 신체의 일부  
이지만 그 자체로는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기 때문에 스님들은  
삭도로 머리카락을 잘라 삭발하지 않는가.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꼬집어 아프지 않은 곳이 내 몸에 한곳 있습니다. "
  "있다구 어디인가."
  석숭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였다.
  "머리카락입니다. " 
  임상옥이 대답하자 순간 석숭이 또다시 파리채를 들어 임상옥  
의 머리통을 세게 후려쳤다. 비명을 지르면서 임상옥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허어, 이놈 봐라."  
  석숭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프지 않다면서 비명을 지른다. "
  석숭은 벌떡 일어서서 주먹을 들어 임상옥의 머리통을 냅다
쥐어박았다. 아이쿠- 임상옥은 방바닥에 쓰러졌다.
  석숭의 주먹이 연속해서 임상옥의 머리통을 쥐어박고 있었다.  
아이쿠 아이쿠- 임상옥은 비명을 지르면서 머리를 부여잡고 방
안을 뒹굴고 있었다. 
  "이래두, 이래두냐." 
  석숭은 다짐하듯 물어 말하였다.
  "이래두 아프지 않다구"  
 "아, 아픕니다. "
  임상옥의 입에서 아프다는 비명소리가 나오자 비로소 석숭은 
소나기 주먹세례를 멈추었다. 숨이 가쁜 목소리로 석숭이 물었다.
  "머리카락말고 또."
  "모, 모르겠습니다. "
  임상옥은 대답하였다.
  "꼬집고 물어뜯어도 아프지 않은 곳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습 
니다. "
  그러자 석숭이 정좌하여 앉으며 말하였다.
  "내일 밤까지 그걸 알아 다시 오너라."
  석숭은 다시 허공을 쳐다보면서 임상옥을 아는 체도 하지 않 
았다. 하는 수 없이 방을 물러나면서 임상옥이 말하였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날 밤 임상옥은 왜 자신이 그처럼 혹독하게 얻어맞고 코와 
귀를 비틀려 고통을 당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 또한 큰 
스님의 말대로 몸 어딘가에 아프지 않은 곳이 있던가, 있다면 그
곳이 어디인가를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다. 그곳을 발견하지 못하
면 가면 갈 때마다 큰스님으로부터 얻어맞을 것이다. 대답을 해 
도 얻어맞고 대답을 하지 않아도 얻어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빨인가. 이빨을 빼거나 잇병이 나면 이빨이 아프지만 그건 잇몸 
이 아픈 것이지 이빨 그 자체가 아픈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빨이라 대답하면 큰스님은 틀림없이 입을 벌려 보라고 하고 이 
빨을 잡아당길 것이다.
  그 다음날도 울력이 있어 임상옥은 채마밭에 나아가 거름을 
주고 밭이랑을 고르고 있었는데 스승 법천이 와서 물었다.
  "큰스님이 뭐라고 하시더냐.'  
  임상옥은 어젯밤에 있었던 모든 일을 낱낱이 고하였다. 코를 
비틀리고 귀를 잡아뜯기고 입을 비틀리고 머리통을 목탁처럼 두
들겨 맞았다고 이야기한 다음 오늘 밤까지 그걸 알아 다시 가야
하는데 그 답을 알지 못해 이처럼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자 법천
이 이렇게 말하였다. 
  "큰스님이 그런 행동을 너에게 보여준 것은 중옷을 벗고 환속 
하여도 좋다는 그런 대답을 하여 주신 것이다. "  
  임상옥은 도저히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큰스님이 제 코를 비틀어 잡아당긴 그것이 어째서 제가 환속 
하여도 좋다는 허락의 뜻이나이까."  
  그러자 법천이 말하였다.  
  "어느 날 중국의 선승이었던 반산 스님이 저잣거리에 나갔었
다. 그는 시장에서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파는 장면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더란다. 이때 한 사람이 도부에게 다가와 이
렇게 말하였다. '돼지고기 한 근을 주십시오.' 그러자 도부가 물
어 말하였다. '어느 부위를 드릴까요.' 돼지고기를 사러 온 사람
이 대답하였지. '제일 맛이 좋은 최상등의 고기를 주십시오.' 그
러자 도부가 웃으면서 돼지고기를 가리키면서 말하였더란다. '손 
님,어딘들 최상등품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반산 스님은
크게 깨우쳐서 마침내 부처가 되셨다. 하기야 어느 고기든 최상
등이 아니겠느냐. 부처님이 법당 안에만 계시면 어떻게 하겠느냐.
어느 부위든 다 맛좋은 고기인 것처럼 부처님은 마른 똥막대기 
안에도 계시지 않겠느냐. 큰스님께서 네 코를 비틀고 귀를 잡아 
뜯고 머리통을 때린 것은 마치 어디든 다 맛있는 최상등의 고기
가 아니겠느냐고 대답한 도붓장수의 가르침과 같은 것이다. 열 
 손가락 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고 우리 몸 그 어디에도 
 때려 아프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느냐. 그러니 큰스님은 네가 산 
 속에 머물러 부처를 이루기보다는 환속해서 저잣거리에 나아가 
 장사를 함으로써 상불을 이루라는 깨우침을 내려주신 것 
 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대답을 하여도 얻어맞고 대 
 답을 하지 않아도 얻어맞으니."
  임상옥이 묻자 법천은 오늘 밤에 큰스님을 찾아가면 이렇게 
 이렇게 하여라라고 일러주었다.
  그날 밤.
  저녁 공양을 끝내고 임상옥은 조실로 찾아갔다. '찾아왔습니 
 다'라고 문안인사를 드리자 방안에서 석숭이 큰소리로 말하였다.
  "들어오너라."
  임상옥은 짚신을 벗고 툇마루로 올라서서 방문을 열고 한 발 
을 방안에 밀어 넣었다. 나머지 한 발은 아직 툇마루에 걸쳐 있는 
자세였다.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는 자세로 계속 서 있자 석숭 
이 물어 말하였다.
  "도대체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에 기다렸다는 듯 임상옥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큰스님, 제가 방을 들어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방을 나가는 것 
입니까."
  임상옥이 묻자 갑자기 허공을 보며 딴청을 부리고 있던 석숭 
 이 갑자기 번쩍- 안광이 번득이는 눈빛으로 임상옥을 노려본 
 후 이렇게 말하였다.
  "밤바람이 차다. 들어와 앉거라."  
  밤바람이 차다는 큰스님의 말에 임상옥은 문을 닫고 들어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찌되었느냐. 때려도 아프지 않은 나머지 한곳이 어디인가 
알아 왔느냐."
  "알아보았습니다 . " 
  임상옥은 대답하였다.
  "알아보았다구.그럼 그곳이 어디인가 대답하여 보아라."
  그러자 임상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들고 간 좌구
를 방바닥에 펼쳐 깔았다. 그리고 나서 그 위에 올라가 큰절을  
세 번 하였다. 임상옥이 세 번을 절하자 새삼스럽게 석숭이 말하
였다. 
  "네 놈이 나를 죽어 있는 목불로 본 모양이로구나. 당장
썩 나가거라. 이 날강도 같은 놈아."  
  석숭이 펄펄 뛰었으나 임상옥은 무릎을 꿇고 나서 이렇게 말 
하였다. 
  "이만 물러가나이다. 큰스님. 그 동안 신세 많이 지었나이다. 부
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임상옥은 그 길로 됫걸음질쳐서 물러나왔다. 어쨌든 이로써 임
상옥의 환속은 결정된 셈이었다. 큰스님 석숭은 기묘한 방법으로
임상옥에게 불도보다는 상도를 통해서도 상불 
을 이를 수 있음을 깨우쳐 준 것이었다. 
  일단 마음이 정해진 이상 하루도 추월암에 머무를 이유가 없
어진 셈이었다.  .
  그로부터 며칠 뒤.  
  임상옥은 추월암을 떠나게 되었다. 입산한 지 정확히 일년 하 
 고도 두 달 만의 일이었다. 암자에 머무는 여러 대중에게 작털인 
사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사승인 법천 앞에서 삼배를 올리 
자 그는 임상옥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부디 성불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성불이라니요, 스님. 이제 겨우 초견성에 불과하나이 
다. 어린아이가 첫 걸음마를 떼어놓은 것에 불과할 따름이나이 
다. "
  부디 성불하시라는 말은 스님에게 나누는 덕담 중의 하나인데 
열다섯 살 때부터 입혀 주고 가르쳐 주던 법천은 스승이라기보 
 다는 친아버지 이상이었으므로 임상옥은 그 말 한마디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어쨌든.
  임상옥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사람은 바로 석숭 큰스님이었다.
  석숭과 나눈 작별인사는 잔은 한순간이었지만 이 한순간은 임상
 옥의 일생일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면 석숭은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로 글을 배우기 위해 암자에 
 들어와 중 아닌 중 노릇을 하면서 행자승을 하고 있던 임상옥의 
 미래를 핀뚫어 보고 그가 장차 어떤 인물이 될 것인가를 예지해 
 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찾아가 삼배를 올리자 석숭은 
 느닷없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꽃을 한 송이 가져오너라."
  임상옥은 자신이 큰스님의 말을 잘못 들었나 하고 생각하였다
  "무슨 꽃을 말입니까."
 임상옥이 물어 말하였지만 석숭은 다만 이렇게 말하였을 뿐이
었다.
   "꽃을 한 송이 가져오라고 내 말하지 않았느냐."   
   밑도끝도 없는 큰스님의 명령이었다.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특히 임상옥을 대하는 큰스님의 태도에
는 항상 선기가 칼날처럼 번득이고 있었다.
   큰스님의 명령은 지엄한 하늘의 명령이었으므로 임상옥은 어 
쩔 수 없이 꽃을 가져오기 위해서 방을 나섰다. 마침 암자에는  
여름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암자 앞마당에는 수국이 활짝 피어   
있었다. 
   원래 수국은 사찰 경내에 많이 심고 있는 관상용 식물인데 그
꽃의 보랏빛 빛깔로 인해서 이름을 자양화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암자의 뜨락에는 수국말고도 원추리꽃도 피어나 있었다. 백합의 
일종으로 노란 꽃이 활짝 피어나 있었는데 그 꽃 위로 발이 굵  
은 여름비가 내리꽃히고 있었다. 언젠가 10년 전 임상옥이 산에 
서 나무를 하고 내려오다가 경사진 비탈길에서 굴러 온몸에 타  
박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그때 법천 스님은 원추리꽃을 찧어서 
그 즙액을 임상옥의 온몸에 발라주었는데 신통하게도 그 즉시   
환처에서 피멍이 사라지는 효험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 
터 임상옥은 유난히 그 꽃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임상옥은 비를 맞으며 그 꽃말고 또 어떤 꽃들이 마당에서 피
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느닷없이 '꽃을 한 송이 가져오너라'라
는 명령을 내린 석숭 큰스님이긴 했지만 일단 명령을 받은 이상 
무슨 꽃이라도 한 송이 꺾어 바쳐 드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당에는 수국과 원추리말고도 붉은 작약꽃이 활짝 만개되어 
피어나 있었다.
 임상옥은 비를 맞으며 그 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꽃을 꺾을 것인가.
 임상옥은 묵묵히 생각하였다.
 무엇을 꺾을 것인가. 원추리꽃을 꺾을 것인가, 아니면 작약꽃을 
꺾을 것인가.
 임상옥은 석숭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도가에서는 제자가 먼 길을 떠나거나 여행을 떠나 기약 없 
는 작별을 할 때에는 제자로 하여금 꽃을 꺾어 오라 명령하고 
스승은 제자가 꺾어 온 꽃을 보고 길흥화복을 점쳐 주는 풍습이 
전해져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화점이라 하였다.
석숭은 바로 화점을 쳐주기 위해서 임상옥에게 꽃 한 송이를 
 가져오라고 명령한 것이었다.
 그러나 임상옥은 그 어느 것의 꽃도 한 송이 꺾지 못하였다.
 스님은 '꽃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였지 '꽃을 꺾어 오라'라고 명 
령하신 것은 아닌 것이다. 꽃 한 송이를 가져가기 위해서 꽃 한 
송이를 꺾는 것은 꽃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었다. 일찍이 큰스님 
으로부터 '사람을 살리는 칼'과 '사람을 죽이는 칼'의 의미를 철 
저하게 배워 깨달았던 띰상옥은 꽃 한 송이라도 꺾는 것은 그것 
이 바로 살생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임상옥은 수국도 꺾지 못하였다. 원추리꽃도 꺾지 못하였다. 작 
약꽃도 꺾지 못하였다. 그 어떤 꽃도 큰스님에게 바치기 위해서 
려을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임상옥은 하는 수 없이 빈손으로 방안으로 들어섰다.
  "꽃을 가져왔느냐"
 허공을 바라보며 석숭이 물었다.   
  그때였다.   
  석숭이 정좌하여 앉아 있는 벽 뒤에 작은 탁상이 있었고 그 탁 
상 위에 놓인 화병 속에 한 무리의 붉은 꽃이 꽃혀 있는 것을 임
상옥이 보았다. 
   임상옥은 그 꽃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이른바 배롱나무라 불리는 목백일홍의 꽃이었다. 이름 그대로 
백일 동안이나 꽃이 피어 백일 동안이나 질 줄 모른다는 나무꽃 
이었다. 꽃은 7월부터 피기 시작해서 10월까지 쉬지 않고 피는데 
다른 이름으로 자미화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스님들 간  
에는 나무의 껌질을 긁으면 잎이 흔들린다고 해서 간지럼나무라 
고도 부르는데 꽃이 오래 가고 아름다운, 대표적인 사찰의 정원   
나무였던 것이다.
   그 꽃을 본 순간 임상옥은 생각하였다. 저 꽃이다.  
   저 화병 속에 꽂힌 뱉일홍 한 송이를 스님에게 바쳐 드리자.  
그렇게 되면 나는 내 손으로 꽃을 꺾어 꽃의 생명을 죽이지 않  
고서도 큰스님에게 꽃을 바쳐 드릴 수 있는 것이다. 
   "꽃을 가져왔느냐고 내 묻지 않았느냐."
   석숭이 큰소리로 다시 말하였다.   
   "꽃을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꽃을 내게 보여다우."   
   임상옥이 성큼성큼 걸어 꽃병 속에 꽃힌 백일홍의 나뭇가지를
뽑아들었다. 그는 그 꽃 한 송이를 석숭에게 두 손으로 받쳐 을  
렸다. 
   그러나 석숭은 그 꽃을 흘깃 본 채 받으려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임상옥은 그 꽃을 다시 꽃병 속에 꽃아 넣었다. 그리고 
나서 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새 빗줄기가 더 굵어졌는지 쑤아아아-숲을 뚫고 불어가는 
바람에 실린 빗소리가 온 천지를 바닷속처럼 아득하게 가라앉히 
고 있었다.
'내 말을 잘 듣거라.'
긴 침묵 끝에 석숭이 임상옥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 
 하였다.
"차 한 잔 마시겠느냐."
 석숭은 주섬주섬 다기를 앞에 놓으면서 말하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큰스님으로부터 제대로 된 말, 제대로 된 시선 한번 받아보 
지 못했던 임상옥은 큰스님이 직접 차를 한 잔 마시겠느냐면서 
다기를 챙기자 몸둘 바를 몰라했다.
 석숭은 미리 준비하여 두었던지 임상옥 앞에 준비한 잔 하나 
를 내어밀었다. 그리고 나서 그 잔 속에 자신이 직접 차를 따랐 
다.
 "차를 마시거라."
큰스님 자신이 직접 차를 따라주는 것은 일찍이 본 적도,들은 
적도 없던 일이었다. 임상옥이 황송해서 두 손으로 잔을 들어을 
리면서 천천히 차를 마시는 퐁안 석숭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내가 하는 말을 명심토록 하여라. 너는 네 손으로 꽃을 려어 
꽃의 생명을 꺾지는 않았으니 분명히 자비심을 갖고 있다. 장사 
란 것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돈을 벌기 위해저 남을 짓밟거나,이 
를 추구하기 위해 남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무자비한 일을 
해서는 아니된다. 너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심을 갖고 있으 
니 반드시 장사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 또한 너는 방안에 있   
던 꽃을 들어 내게로 가져왔다. 너는 꽃을 가져오기 위해 먼 곳   
을 돌아 헤매이지 않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꽃을 발견하는 눈을  
가졌다. 무릇 재화란 멀리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것이며, 성공 또한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곁에 있   
는 것이다. 너는 가장 가까운 곳에 복과 재화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의 화합이 모든 일을 이   
룬다'는 옛말을 실천하고 있으니 이 또한 복이 있을 
징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너는 방안에서 꽃을 구하였으니 평   
생 계집질이나 주색잡기와 같은 허망한 일로 세월을 허송하지는  
않을 것이다. "  
   임상옥이 차를 마신 후 잔을 내려놓자 석숭은 다시 가득 차를 
따라주면서 말을 이었다.
   "또한 너는 방안에서 구한 꽃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아두었 
다. 너는 모든 물건이나 사람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분수를   
알고 있으니 반드시 복이 있을 것이다. 너는 꽃을 내게 가져왔다  
가 그 꽃을 있던 자리에 다시 꽂아두었다. 너는 모든 천하만물이  
반드시 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있다. 장사  
도 이와 같다. 장사란 사람이 하는 것인데 모든 사람에게도 대소  
귀천이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큰 사람도 작은 사   
 람도 없고, 날 때부터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사 
 람을 부릴 때 있어 차별하지 말고, 사람을 대할 때 있어 크고 작  
음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네가 선택한 꽃은 배롱나무의 꽃  
이었다. 배롱나무꽃은 꽃 중에서 가장 오래 피는 꽃이 아니더냐. 
배롱꽃은 죽은 꽃잎에서 계속 새순이 나와서 가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꽃이 지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너의 재물은 계속 
늘어만 가고 너의 상업은 계속 번창하여 나갈 것이다. "
  임상옥이 마시는 찻잔이 비자 그 잔 속에 다시 찻물을 부어내 
  리면서 석숭은 말을 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배롱나무는 과실나 
 무가 아니어서 먹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결국 너의 상운
 과 영화는 계속 뻗어나가겠지만 그것은 너의 당대에만 그칠 뿐 
 그 열매는 자식 대에 이를 때까지 맺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하니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하여 듣거라."
  석숭은 큰기침을 하였다.
밖에 내리는 빗줄기가 한층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였는지 번쩍 
번개가 일더니 하늘이 쪼개어지는 듯한 뇌성이 뒤를 이었다. 석 
숭은 지금까지의 덕담과는 달리 임상옥의 장래체 대해 여러 가 
지 예지를 전해 주기 시작하였다. 임상옥은 스승 석숭이 남겨준 
그 말들을 평생 마음에 새겨두고 명심불망하였다. 또 
한 석숭이 꿰뚫어 본 임상옥의 일생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대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너는 반드시 살아감에 있어 세 번의 큰 위기를 맞이할 것이 
  다. 그 큰 위기가 있을 때마다 너는 이를 잘 극복해 나갈 것이지 
  만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너는 하루아침에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
  석숭의 말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임상옥은 숨조차 쉬지 못 
 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긴장하면서 스승의 말을 귀기울여 
 들었다.
  "...어떻게 하면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임상옥이 물어 말하자 석숭은 한동안 입을 물고 묵묵부답하 
였다. 긴 침묵이 흐른 뒤 느닷없이 석숭은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먹을 갈도록 하여라." 
   임상옥이 시키는 대로 먹을 갈자 석숭은 붓을 들어 먹을 듬뿍 
묻힌 후 종이를 펼쳐 내리찍듯이 글자를 써내렸다. 임상옥은 그  
가 쓴 글자를 읽어 보았다.   
   그것은 한 자뿐이었다.
   석숭은 한 글자를 쓰고 나서 임상옥을 쳐다보며 물어 말하였  
다. 
   "이 자가 무슨 자인 줄 아느냐." 
   "물론입니다. "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그러하면 이 자가 무슨 자이냐."   
   "죽을 사 자입니다. "   
   "그렇다. "  
   석숭은 머리를 끄덕 이며 말하였다. 
   "이 죽을 사 자가 너를 반드시 첫 번째 위기에서 살려줄 것이 
다. 다른 방법은 없다. 오직 이 죽을 사 자 한 자뿐이다. 그러
나 두 번째 위기는 다르다. 그 어떤 묘책도, 그 어떤 방법도 너를  
살려주지는 못할 것이다. "   
   잎상옥은 온몸을 떨었다. 그는 두려웠다  
   "만약에 네가 그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는 반드시 능지 
처참을 당할 것이다. 문제는 네가 첫 번째 위기는 위기임을 알겠 
으나 두 번째 위기는 위기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위기를 위기로서 직감할 때는 헤어날 방법이 반드시 있  
는 법이다. 그러나 위기를 위기로서 인식하지 못할 때에는 자신 
도 모르게 멸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심하여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때 그때가 혹시 무서운, 위험한 고 
비가 아닐까 생각하여라.'
   "위험한 고비인 줄 깨달았을 때엔 어떻게 하여야 제가 살아나 
  겠습니까,"
  임상옥이 묻자 석숭은 물끄러미 임상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서 빙그레 웃었다. 그는 임상옥이 볼 수 없도록 몸을 
 돌려 앉았다. 그는 다시 붓에 먹을 묻혀 종이 위에 무엇인가를 
 써내렸다.
   석숭은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려 그 종이를 겹겹이 접었다. 석 
 숭은 다시 임상옥 쪽을 향해 돌아앉은 후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살아날 방법이 이 종이 안에 씌어 있다. 그러나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함부로 이 종이를 펼쳐보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너는 천기를 누설하여 반드시 하늘로부터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반드시 네가 촤대의 위기떼 봉착하였음을 깨달았을 
 때에만 이 종이를 펼쳐보아야 한다. 네가 살아날 수 있는 묘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을 알아듣겠느냐."
   "알, 알겠사옵니다. '
   임상옥이 꿇어앉은 채 말하였다.
   "이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실행하여 옮기도록 하겠나이다. "
   석숭은 그 겹겹이 접은 종이를 임상옥에게 내밀었다. 두 손으 
  로 이를 받아 임상옥은 몸에 깊이 간직하였다.
  "그것으로 끝이 난 것은 아니다."
 임상옥이 자신이 써준 종이를 품안에 소중히 간직하는 모습을  
지켜본 석숭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머지 한 가지 위기가 다시 한번 남아 있다. "
   "그 위기는 어떻게 벗어나야 합니까."  
   임상옥이 묻자 석숭은 말없이 임상옥이 마시던 잔을 집어들었  
다. 잔은 비어 있었다. 석숭은 그 잔을 임상옥에게 내밀어 말하였  
다. 
   "가져라. 이 잔은 내가 너에게 주는 물건이다. "
   어떻게 하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그 질문   
에는 대답하지 아니하고 대신 마시던 잔을 선물하는 큰스닝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잔을 잘 갖고 있도록 하여라. 이 잔이 너의 마지막 위기를 
잘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잔이 너를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전무후무한 거부로 만들러줄 것이
다. "  
   수수께끼와 같은 선문과 선답을 혼자 묻고 답하면서 석숭은 
잔을 내밀었다. 임상옥은 그 잔을 두 손으로 받았다. 아주 평범한  
찻잔이었다. 아니, 굳이 찻잔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그릇의 모양 
이었다. 오히려 술잔에 가까우리만치 속이 깊은 일종의 고배
였다. 어째서 이 평범한 찻잔이 임상옥이 맞닥뜨릴 위기에서   
그를 구해줄 비기가 될 수 있음인가.
   "이젠 그만 가거라. 그리고 산을 내려가면 그 즉시 이곳을 잊   
어버리고 다시는 되돌아오지 말아라."  
   임상옥은 석숭 스님이 주신 그 잔을 걸망 속에 소중하게 집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말하거니와 네 생각과 네 뜻과 관계없이 네가 한 
  푼이라도 손해를 보는 일이 있으면 그때가 네 상운이 다한 것을 
  알고 네가 가진 것 모두를 남에게 나눠 주고 장사에서 손을 떼 
  어라. 현명한 사람은 지붕에서 한 방울의 낙숫물이 떨어지는 모 
  습을 보는 순간 얼마 안 가서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미리 
 짐작하여 알게 되느니라. 다시 한번 말하겠거니와 다시 한번 나 
  를 찾아오거나, 이곳을 찾아온다면 그땐 네 놈의 대갈통을 부숴 
 버리겠다. 네 놈은 이제 이 산 속에서는 죽은 놈이요, 저잣거리에 
 서는 살아 있는 놈이다. 산 속의 일들은 모두 너의 전생에 불과 
  하니 전생을 기웃거리지 말지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임상옥이 대답하자 석숭은 곧 입을 다물었다. 그로 그만이었다.
  그는 허공을 볼 뿐 다시는 임상옥을 향해 말하지도, 보지도 아니 
 하였다. 임상옥이 물러가며 마지막으로 삼배를 하여 예를 드렸지 
 만 석숭은 본 척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새 비는 그쳐 있었고 석숭에게서 물러나온 그 즉시 임상옥 
은 암자를 떠났다. 임상옥이 입산하여 암자에 들어온 지 정화히 
2년 하고도 두 달 만의 일이었다.
2년 하고도 두 달 만에 도원이라는 승려에서 또다시 만상으로 
돌아온 임상옥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사람을 풀어 박종일을 만난 
일이었다 
  임상옥은 박종일로부터 거금 5천 냥을 받게 되었으며 그로 인 
해 장사꾼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헤어질 무렵 박 
종일은 임상옥의 앞에서 의관을 정제하여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
가.
   "이제부터 임 대인을 장사에 있어 저의 형님으로 모시겠나이 
다. 앞으로 임 대인께오서는 저의 형님이자 주인이시나이다. "
  또한 박종일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원하신다면 저와 함께 연경에 다시 들어가도 좋습니다. "
  임상옥이 박종일을 생각해낸 것은 그가 개성을 중심으로 상업 
을 하는 송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임상옥이 홍득주의 
공금을 다시 갚아주어 의주 상계에서 다시 복권되었다고는 하지 
만 여전히 의주 상인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임상옥에게
는 새로운 동업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임상옥에게는 새로운 동업자로 개성 상인 중의 한 사 
람인 박종일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이 무렵 개성 
상인들은 의주 상인들과는 달리 전국적인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 
었다. 그들은 중국과의 무역뿐 아니라 일본과의 무역에도 활약하
고 있었다. 일본과의 무역에는 왜관개시로 인해 주로 동래의 내 
상들이 활약하고 있었지만 개성 상인들이 깊숙이 관여하 
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의 모든 대외무역은 개성 
상인들에 의해서 장악되고 있었으며 삼각무역의 주도권은 당연 
히 송상들의 독무대였다.
  재기하여 또다시 만상으로 나서는 임상옥에게는 이제 새로운 
동업자, 전국의 유통망을 가진 유능한 개성 상인 중의 한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박종일은 그 적임자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그는 대대로 개성에
서 상인을 하던 송상의 가문이었을 뿐 아니라 정조 때에 이루어 
진 신해통공으로 사라져버린 개성의 난전까지 장악하 
여 나름대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상업망을 가지고 있던 사상 
이었던 것이다. 이 조직땅, 즉 송방을 통해 박종일은 
각 지방의 생산품을 싸게 매점해다가 다른 곳에서 판매하여 차 
익을 노리거나, 발빠른 정보를 통해서 손쉬운 유통을 꾀하는 전 
형적인 개성 상인이었던 것이다.
  임상옥과 박종일의 만남은 절묘한 조화였다. 임상옥이 대외무 
역의 귀재였다면 박종일은 내수 판매의 천재였다. 임상옥이 중국 
과의 무역에 최고의 상재를 갖고 있었다면 박종일은 조직과 경 
영의 뛰어난 상재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이 상도의 달인 
이었다면 박종일은 상술의 달인이었던 것이다.
  박종일로서도 임상옥의 제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박종일로서는 이미 중국말에 능통하여 막힘이 없는 임상옥의 재 
능이 필요하였으며,누구보다 중국통이었던 임상옥이 아니고서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 
던 것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1806년 8월의 한여름, 나란히 의주를 출발하였다. 임 
상옥으로서는 다섯 번째의 여행길이었지만 장사꾼으로서 재기에 
나선 의미있는 여행이었으므로 초행길과 다름이 없음이었다.
  박종일이 준 은 5천 냥으로 임상옥은 홍삼 2백 근을 샀다. 당시
인삼은 생산이 부진하여 일정량 이외에는 수출이 금지되고 있었 
다. 임금에게 바치는 어공삼까지 부족할 지경이었던 것 
이다. 임상옥이 질 좋은 홍삼을 2백 근이나 확보할 수 있었던 것 
은 모두 박종일의 수완 때문이었다. 임상옥과 박종일은 무인지대 
의 황야에서 이틀 밤을 야숙한 후 책문에 이르러 말을 풀고 방 
물들을 지고 갈 청인 네 사람을 따로 사들였다.
박지원은 이곳의 이국 표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었다. 
  '만주사람들은 수수밥을 젓가락으로 집어먹는다. 생파도 그냥   
 오득오득 씹어서 먹는다. 닭은 날개와 꽁지의 터럭을 다 뽑아버
 리고 기르는데 이렇게 하면 닭의 몸에 이도 없어지고 빨리 큰다 
 고 해서 심한 닭은 꽁지와 터럭은 전부 뽑아버리고 붉은 몸뚱이 
 살코기만 걸어 다닌다. '  
 박지원이 표현하였던 대로 닭조차 붉은 알몸뚱이로 걸어다니 
는 낯선 이국의 땅.그 이국의 땅, 2천 하고도 30리의 먼 길을 임 
상옥은 또다시 출발하였던 것이었다. 임상옥은 박종일의 청대로
장미령에게 받았던 속치마 한 벌을 방물 깊숙한 곳에 소중히 간 
직하고 있었다. 
 임상옥의 여행은 그러니까 장사를 주목적으로 한 것이라기보
다는 임상옥을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아마도 박종일의
추측으로는 연경에 살고 있는 중국 최대의 거물일지도 모른다는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이 장미령에게 준 
 정표를 소중히 갖고 있어야만 하였다.
  살려 달라고 우는 15세의 처녀 장미령의 청원에 의해 써 주었
던 일곱 자의 글자가 새겨진 흰 비단 속옷. 이 비단 속옷을 갖고
있어야만 내가 바로 그 임상옥임을 유일하게 증명해 보일 수 있
음이었다.  
   또한 임상옥은 두 가지의 물건을 품속에 같이 간직하고 있었
다. 그 물건은 임상옥이 평생 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물
건들이었는데 두 물건은 모두 석숭 스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이었
다.
 하나는 석숭 스님이 두 번째의 큰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 위기 
를 벗어날 수 있는 비책으로 써준 종이였고, 또 하나는 석숭 스 
님이 준 술잔이었다. 임상옥은 그 종이를 비단 주머니에 넣어 간 
직하고 있었다. 석숭 스님은 그 종이에 씌어진 내용이 천기이므 
로 절대로 사전에 펼쳐서 훔쳐보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고 말 
씀하셨으므로 언제나 어디서나 품속에 간직하고 있었을 뿐 그 
내용을 사전에 펼쳐본 일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주신 술 
잔은 달랐다. 석숭 큰스님은 그 술잔을 주시면서 다만 이렇게 말 
씀하셨을 뿐이었다.
  "이 잔을 잘 갖고 있도록 하여라. 이 잔이 너의 마지막 위기를 
 잘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잔이 너를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전무후무한 거부로 만들어줄 것이 
 다. "
 따라서 석숭 스님은 그 술잔에 특별한 금기 사항을 덧붙 
 이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임상옥은 그 술잔을 품속에 소중하 
 게 간직하고 있었지만 가끔 그 술잔을 꺼내어 유심히 살펴보곤 
 하였다.
   어째서.
  연경까지의 2천 리 길을 한 달 넘어 걸어가는 동안 빈 시간이 
  면 임상옥은 품속에서 그 잔을 꺼내 살펴보면서 생각하곤 했다.
 이 잔이 내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다줄 수 있다 
 고 말씀하셨을까. 이 잔은 너무나 평범한 고배에 불과하지 않은 
 가. 이 평범한 술잔이 어떻게 나를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전무후무한 거부로 만들어줄 수 있단 말인가. 이 술잔이 어떤 신 
통력이라도 갖고 있단 말인가. 마치 흥부네 제비가 물어다 준 박  
씨처럼 그 안에서 무엇이든 원하면 귀한 보화들이 가득가득 흘  
러넘치며 쏟아져 나을 수가 있단 말인가. 
   보면 볼수록 아무런 특징이 없는 술잔이었다. 그러나 그 잔에 
는 단 하나 다른 잔과 다른 점이 있었다. 
   작은 술잔 안쪽에 글자가 하나 새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술잔 안쪽에 새겨져 있는 글자는 너무나 작아서 유심히 들여  '
다보지 않으면 그 글자를 읽을 수 없을 정도였다. 틈만 있으면   
그 잔을 꺼내 이리저리 들여다보곤 했었지만 그 글자를 발견한   
것은 우연일 정도로 그 글자는 깨알 같았다. 처음에 임상옥은 그 
글자가 술잔을 빛을 때 생긴 잡티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햇볕 밝은 곳에 비춰보자 자질구레한 흠인 줄 알 
았던 그 잡티가 글자의 모양임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임상   
옥은 한 자 한 자 그 글자를 읽어 보았다.
   첫 글자는 계 자였다.
   그러나 두 번째 글자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시선을 집중해 
서 바라보자 마침내 두 번째 글자를 판독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영 자였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글자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기 자와 원 자였다. 이를 합쳐서 읽어 보면 다 
음과 같았다.
   '계영기원'
   그러나 술잔에 새겨진 글자는 그뿐이 아니었다. 연이어서 또  
다른 네 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여이동사'  
   모두 합쳐서 여덟 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 여
  덟 자의 글자를 모두 적어보면 다음과 같았다.

 이 말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임상옥은 그 
  잔을 꺼내어 살펴볼 때마다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하였다.
  물론 그 뜻을 해석해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문장의 뜻을 직역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문장의 해석은 어렬지 않으나 그 의미는 무엇인가. 가득 채워
  마시지 말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잔에 물이든 술 
   이든,무엇이든 가득 채워 마시지 말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너와 
   같이 죽기를 원한다'는 뜻은 도대체 무엇인가. 누가 누구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이 술잔을 주신 석숭 큰스님
   이 이 술잔을 받은 나와 함께 죽기를 바란다는 뜻일까.
 임상옥은 박종일과 함께 의주를 떠난 지 40여 일 만에 마침내 
  연경에 도착하였다. 출발할 때는 8월이었는데 도착하였을 때는 9
  월 하순이었다.
  임상옥으로서는 5년 만에 찾아온 연경이었지만 예나 다름없이 
눈부시고 호화로운 곳이었다. 임상옥이 5년 전에 찾아왔을 때만 
해도 홍삼은 시매품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완전히 인
삼은 백삼에서 홍삼의 시대로 넘어간 후였다. 아니,홍삼의 인기 
는 가히 절정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임상옥이 연경에 
들어갔던 1806년 당시만 해도 인삼의 흥작으로 절대량이 부족하 
였으므로 부르는 대로 값을 받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5년 만에 찾아온 연경이었지만 예전 그대로띄 판매망이 살아 
있었다. 낯익은 여인숙에 거처를 정하고 거래가 있던 약종상들에
게 연락을 취하자마자 삽시간에 중국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임상옥이 머물고 있었던 곳은 예전과 다름없이 '치엔먼따지  
에'로 불리는 전문대가였다. 
   흥정은 이틀을 끌었다.
   하루 만에 끝날 수도 있었지만 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임상옥이 값을 올려 불러 자연 낙찰가격이 늦게 형성되었기 때  
문이었다.
   생각보다 높은 가격으로 인삼을 모두 팔아넘긴 바로 그날 저 
녁 박종일은 기다렸다는 듯 임상옥에게 말을 하였다.  
   "이젠 형님 저와 함께 가실 곳이 있습니다. "
   함께 여행하는 40여 일 동안 박종일은 처음에는 임상옥을 대 
인이라 높이 부르다가 마침내는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갈 곳이라니." 
   "형 님 ."  
   박종일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였다. 
   "우리가 인삼을 팔아 넘기기 위해서만 연경에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형님이 한밑천 잡았다면 저도 이제부터 한밑천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박종일은 말을 이었다.  
   "이제는 그토록 형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도대체 누구인가 그 정체를 밝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종일의 말은 사실이었다.
박종일은 임상옥에게 거금 5천 냥을 주어 그를 장사꾼으로 기 
사회생케 하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임상옥에게 그런 거금을 
준 사람은 박종일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 
이었던 것이다. 박종일은 다만 심부름꾼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 
렇다면 도대체 누구일까. 3년 동안 줄곧 연경에 들르는 조선 상 
인들에게 임상옥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 
까. 그뿐인가.그 사람은 박종일로 하여금 거금을 풀어 임상옥을 
도와주도록 은밀하게 조종까지 하지 않았던가 
  임상옥은 방물 속에 깊이 간직하였던 장미령의 속옷을 따로 
 겨들고 박종일을 따라 거리로 나섰다.
  박종일이 간 곳은 동인당이란 한약방이었다. 지금도 
 연경에 남아 있는 유명한 중약점인 이곳은 17세기부터 내려오는 
 전통 있는 약방인데 임상옥이 연경을 드나들 당시에도 가장 크 
 고 유명한 약방이었다.
  지금도 이 약방 바로 앞거리에는 서커스를 공연하는 잡기단 
이 있지만 당시에는 중국의 만담을 공연하는 간이극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중국의 만담을 시앙성이라고 부르는데 
  중국사람 중에서도 한족이 이를 무척 좋아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거리 일대에는 항상 사람들이 들끓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약방에 들어서자 박종일이 임상옥에게 말하였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형님."
  박종일은 매장에 다가가서 점원에게 무어라고 말을 한 다음 
뒷문으로 사라졌다. 박종일은 간단한 일상회화쯤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말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사람들로 가득 찬 매장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문 입구에서 병의 증상을 말하는 사람들과 진맥을 받는 환자   
들, 처방전을 들고 매장으로 가서 약을 조제 받는 사람들로 약방 
안은 대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박종일이 나타났다. 그는 얼굴   
이 붉을 정도로 상기되어 있었다.  .
   "되놈들이 의심이 많다는 소문은 듣고 있었지만 어쨌든 형님   
들어가시지요." 
   뭔가 불쾌한 듯 씨부렁거리면서 박종일이 앞장섰다. 두 사람은  
됫문을 열고 좁은 통로를 걸어갔다. 통로 끝에 방 하나가 있었는   
데 아마도 약방의 주인이 개인용 사무실로 쓰고 있는 방인 모양   
이었다. 그곳에 살찐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전통적인 중국옷   
을 입고 있었고, 변발을 하고 있었다.   
   '대인어른." 
   박종일은 서툰 중국어로 먼저 입을 열어 말하였다.
   "임 대인을 모시고 왔습니다. " 
   그러나 그 살찐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앉은 채로 거  
만하게 임상옥을 쳐다보았다 박종일이 상기되어 불만을 털어놓 
을 만큼 의심이 가득 찬 얼굴 표정이었다.  
   "이분이 바로 의주에 살고 있는 조선 상인 임.상.옥입니다.   
바로 대인께오서 찾으시던 그분입니다. "
   박종일이 말을 덧붙였지만 그는 여전히 표정없는 얼굴로 물끄   
러미 임상옥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형님, 가져오신 그 옷을 꺼내놓으시지요"
 답답해진 박종일이 채근하듯 임상옥에게 다그쳤다. 임상옥은
 갖고 온 장미령의 속옷을 탁자 위에 펼쳐놓았다. 그러자 박종일
  이 그 비단옷 위에 씌어진 '의주상인 임상옥'
 이란 일곱의 글자를 하나 하나 손으로 짚어 내리면서 말을 하였다.
  "대인어른, 이분이 바로 여기에 씌어 있는 의주 상인 임상옥
 바로 그 사람입니다. "
 박종일이 소리 높여 설명하였지만 그 사람은 묵묵부답이었다
  "미치고 환장하겠네."
 박종일은 조선말로 씨부렁거리면서 투덜거렸다. 그때였다. 살
 찐 남자가 임상옥에게 입을 열어 말하였다.
  "당신이 임 대인 맞습니까."
  "그렇습니 다. "
 그러자 그 사람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자신이 임상옥이라는 조선사람을 세 명이나 
 만났습니다. 그러나 모두 진짜의 임상옥이 아닌 가짜의 임상옥이
 었습니다. 그러므로 대인어른에오서는 이곳에 똑같은 글씨를 한
 번 써 보여 주시지 않겠습니까. 예부터 얼굴은 속일 수 있지만 
 글씨는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필체와 수결
 은 딴 사람이 흥내낼 수 없으니까요."
 지금까지 진짜가 아닌 가짜 임상옥을 세 명이나 만났었다는 
 사내의 말을 듣고 보니 의심을 품고 있는 그의 표정이 당연하다
 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한약방의 점주인 중국인은 임상옥을 
 만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뜻을 내포하
 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임상옥은 그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중국인이 시
키는 대로 속옷 위에 씌어진 글자를 종이 위에 써 보이기로 생
각하였다. 미리 준비하여 놓은 듯 탁자 위에는 종이와 붓이 놓여   
있었다.  
   "써 보시지요, 형님 " 
   옆에서 박종일이 종이와 붓을 가리키며 재촉하였다. 그의 얼굴  
에는 자존심을 상한 기분 나쁜 표정이 여실히 드러나 보이고 있 
었다. 
   임상옥은 붓을 세워들었다.
   평생을 장사꾼으로 보낸 임상옥이었지만 그의 글솜씨만큼은
당대의 문사를 뛰어넘을 만큼 달필이었다. 이 토든 글솜씨는 그 
가 추월암에서 은사 스님이었던 법천으로부터 배우고 익힌 것들 
이었다. 
   임상옥은 종이 위에 비단 속옷에 자신이 쓴 문장대로 똑같이 
써내리기 시작하였다. 
 임상옥이 글씨를 다 쓰느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옆에 선 박종  
일이 탁자 위에 놓인 비단 속옷 위에 씌인 같은 문장을 가리키
면서 먼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보시오, 대인어른. 같은 글씨, 같은 필체가 아닙니까." 
   흥분하면 자연 목소리가 커지는 다혈질의 박종일의 목소리와
는 달리 그러나 중국사람의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하였고 여전히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어떻습니까."
   재차 박종일이 반응을 묻자 중국사람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   
서 말하였다.
  "당신이 데려온 저 사람은 임상옥 대인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저 사람도 진짜의 임상옥이 아닌 가짜의 임상옥입니다. "
  중국사람은 천천히 찻잔에 뜨거운 찻물을 따라서 마시면서 말
  을이었다.
  "당신이 데려온 저 사람은 내가 만난 네 번째의 가짜 임 대인 
  입니다. 그러므로 돌아가십시_오"
  주인이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말을 하자 박종
 일은 몹시 화가 난 목소리로 조선말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아이구, 환장하겠네 정말."
박종일은 답답하다는 듯 임상옥을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뭐라고 말씀하세요, 형님.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네."
그렇지 않아도 짧은 중국말로 더듬더듬 거리면서 간신히 의사 
소통을 하고 있었는데 사정이 이 쯤 되자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박종일은 임상옥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어째서 입니까."
임상옥이 마침내 익숙한 중국말로 물어 말하였다.
  "어째서 내가 당신이 찾는 임상옥이 아니라는 것입니까."
중국인이 보아도 중국인을 능가할 만큼의 언어를 구사하는 임
상옥을 보자 주인은 비로소 관심을 보이면서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것은 당신이 쓴 글씨가 옷 위에 쓴 글씨와 같지 않기 때문
  입니다. 내 말을 못 믿겠으면 직접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랄니다. "
  순간 임상옥은 당황하였다.
  내가 쓴 글씨가 비단 속옷 위에 쓴 글씨와 같지 않고 다르다 
 니. 어째서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저 비단 속옷은 분명히 내가 
  5년 전 헤어질 때 장미령에게 사는 곳과 이름을 적어 주었던 바 
로 그 속옷이 아닐 것인가. 
   그때 장미령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자신의   
비단 속옷을 들고 임상옥에게 말하였었다. 
   "대인어른, 여기에 대인어른이 사는 곳과 이름을 적어 주십시  
오."   
   그때 자신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소용없는 일입니다. 내가 사는 곳과 내 이름을 그곳에 쓴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다시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
   그러자 장미령은 눈물어린 얼굴로 이렇게 말하였었다.
   "또다시 만나기 위해서 이름을 써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름을 알고 싶은 것은 대인어른의 이름을 평생 잊지 않기 위함  
입니다. 대인어른이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덕을 평생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   
   이 속옷이 바로 그때의 속옷이 아닐 것인가. 비록 불빛이 어두   
워 자세히 본 적도 없고 알몸의 나체에 당황하여 유심히 살펴본  
적은 없었지만 이 흰 비단 속옷이야말로 그 날 밤 내밀던 장미령  
의 바로 그 옷이 아닐 것인가. 여인의 가장 깊숙한 육체의 은밀   
한 부분을 가리는 속옷이야말로 여인의 정절과 같은 의미를 지   
니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임상옥은 그제서야 탁자 위에 놓인 속옷 위에 씌어진 글씨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임상옥은 박종일로부터 그 속옷을 전해 받았  
을 뿐 한번도 제대로 펼쳐서 자신이 썼던 글자를 확인해 본 적   
이 없었던 것이다. 출가한 사문으로서 여인의 속옷은 여인의 육   
체를 탐하는 욕정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감히 펼쳐  
보기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단 속옷 위에 씌어진 글자를 확인한 순간 임상옥은 몹시 놀 
라고 당황하였다.
  "아니 ."
임상옥은 탄식하여 말하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임상옥은 조선말로 중얼거렸다.
  "왜요. 무슨 일입니까."
 곁에서 임상옥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던 박종일이 성급하 
게 끼어들었다.
  "이 글씨는 내 글씨가 아니야. 내가 쓴 글씨가 아니야."
임상옥이 중얼거리자 박종일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이 글씨가 형님
  글씨가 아니라니요."
 분명히 그 글씨는 임상옥 자신의 필체가 아니었다. 자신의 필 
체를 교묘히 흥내내고 있을 뿐 분명히 자신의 글솜씨는 아니었 
던 것이다.
  "자세히 보세요,형님.형님이 잘못 보셨겠지요."
  "내 글씨를 내가 모를 사람처럼 보이는가."
  임상옥이 담담하게 되풀이 말하자 박종일은 붉으락푸르락하였 
  다.
  "그렇다면 도패체 어떻게 된 겁니까. 난 분명히 저 중국 영감 
 한테 이 비단 속옷을 전해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옷 위에 씌어 
 진 '의주 상인 임상옥'을 찾아 달라는 부탁까지 받았습니다. 임 
 상옥을 찾으면 5천 냥을 주라는 약속어음까지 받았습니다. 그뿐
 인 줄 아십니까. 형님을 찾아오면 그 금액의 두 배에 해당하는
 배상금을 준다는 증서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형님 글씨가 아니 
 라구요.이런 귀신이 곡할 소리가 어디 있습니까."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조선말과는 상관없이 살찐 중국인은
 묵묵히 찻물을 들이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임상옥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중국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   
였다.
   "대인어른, 이 옷 위에 쓴 글씨야말로 내가 쓴 글씨가 아닙니 
다. 그러므로 이 비단 속옷은 내가 만났던 그 여인의 속옷이 아
닙니다. " 
   임상옥의 설명에도 살찐 중국인은 묵묵히 차를 들고 있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인어른께서 이 옷을 저 사람에게 주었다면 대인 어른이야말   
로 진짜의 속옷을 준 것이 아니라 가짜의 속옷을 주어 사람을
속인 것입니다. 이 옷 위에 씌어진 글씨가 내가 쓴 글씨를 교묘
하게 흉내내고 있을 뿐 내가 쓴 필체는 아닙니다. "
   임상옥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진짜의 속옷은 어디 있습니까." 
   그때였다. 말없이 차를 마시고 있던 중국사람이 천천히 일어섰   
 다. 그는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벽장으로 다가갔다. 벽장문을 열  
 고 그는 포개어 쌓여진 서너 벌의 옷을 꺼내었다. 그는 그 옷을 
 가져다가 탁자 위에 놓았다. 임상옥과 박종일은 그 옷을 본 순간   
 어안이 벙벙하였다. 왜냐하면 같은 빛깔, 같은 옷감의 비단 속옷 
 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사람은 그 옷을 함 
 부로 펼쳐 보였는데 어느 것이나 똑같은 글자가 같은 부분에 씌 
 어져 있었다. 모두 임상옥의 필체를 교묘하게 모방한 가짜의 옷 
 들이었다.
  "의주 상인 임상옥 대인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 
  다. "
  그제서야 비로소 미소 띤 얼굴로 변하면서 중국사람이 말을 
   꺼냈다.
  "저는 왕조시라고 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나중에
  아시게 되겠지만 임 대인을 찾는 일은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니었 
  습니다. 그러나 조선에서 임 대인 한 분을 찾는 일은 황하의 모 
  래밭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이었습니다. 또 저
   마다 자신이 임 대인이라고 나서곤 했으니까요 더구나 난 임 대
  인을 만난 적도, 본 적도 없으므로 누가 과연 진짜의 임 대인인 
  지, 아니면 가짜의 임 대인인지를 분간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 
  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냈던 것이 이 방법이었습니다. "
  그는 똑같이 복제된 옷들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내 앞에 나타난 가짜의 임 대인들은 옷 위에 씌어진 가짜의 
  글씨들을 흥내내고 있었던 가짜의 임 대인들일 뿐이었습니다. 그
  러나 이 옷 위에 씌어진 글씨가 자신의 글씨가 아니라고 말한 
  사람은 대인어른 한 분뿐입니다. "
  중국인 특유의 의심은 결국 중국인 특유의 신중함을 나타냈다.
  전 세계를 휩쓰는 중국인들의 상술은 바로 이러한 신중함에서부 
  터 비롯되는 것이었다. 뒤에 자연 상세히 말하게 되겠지만 중국 
  인의 상법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신중함인 것이다. 따라서 중국인 
  들과의 만남은 처음에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탐색으로 인해 
 진전이 없으나 이 기간이 지나 우정이 생기면 그때는 혈연 이상 
  의 깊은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일이 더 있습니다. '
 약방 주인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벽장 앞으로 다가 
갔다. 벽장문을 열고 깊숙한 곳에서 나무상자 하나를 꺼내었다.
   그는 그 상자를 탁자 위에 놓았다. 먼저와는 달리 그 상자를 조 
심스럽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 안에 중요한 물건이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임상옥은 그가 펼치는 상자의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눈부신 흰빛의 비단옷 한 벌이 들어 있었다. 그 속 
 옷이야말로 진본이었다. 진짜의 속옷이었던 것이었다. 한눈
 에 임상옥은 그 속옷이야말로 장미령이 입던 그날 밤의 바로 그 
 속옷임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인은 속옷 위에 씌인 글씨가 나오도록 펼쳐보였다. 그는 
 꼼꼼히 좀 전에 쓴 임상옥의 필체와 속옷 위에 씌어진 글씨가 
 일치하는가를 살펴보고 있었다.
 '고도'
 중국인들은 '상인의 길'을 고도라고 부른다. 우리가 '상인의 
길'을 상도라고 부른다면 중국인들은 이를 '고도'라고 부 
른다. 이는 중국 상인들이 예로부터 쓴 용어인데, 특히 명나라 대 
에 이르러 '상인의 길', 즉 '고도'는 하나의 가치관으로 정립된 
것이었다. 조선 상인들이 신용을 상도의 제1조로 치고 있었다면 
중국 상인들의 고도 그 제1조는 신중함인 것이다. 중국인들은 가 
족이라 할지라도 잘 믿지 않는다. 그들은 상인을 볼 때 상인으로 
서의 자질이 있는가를 끊임없이 살펴보고 의심하고 시험한다. 따 
라서 중국인들은 '훌륭한 상인'을 '위대한 유학자
와 동격으로 보았던 것이다. 신용은 세월을 두고 쌓아가는
것이지만 상인으로서의 자질을 살펴보는 것은 상인으로서의 천  
성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   
   면밀하게 임상옥이 쓴 글씨와 진짜의 비단옷 위에 씌어진 글 
씨의 필체를 비교하여 검토해 보던 중국인은 비로소 얼굴을 들  
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하였다.
   "드디어 임 대인을 찾게 되었습니다. 대인어른, 지난 3년간 그
토록 찾아 헤매던 임 대인의 모습을 이렇게 실제로 뵐 수 있게  
되다니요." 

    다음날 오후.
  임상옥이 묵고 있는 여인숙 앞으로 약속된 시간에 인력거 한  
대가 도착하였다. 그 당시로는 드문 인력거였다. 임상옥과 박종일
이 인력거 위에 앉자 쿠울리는 곧 어디론가 출발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력거가 아닌 원시적 바퀴 형태로  
만들어진 일종의 수레였다. 마차에 쓰는 수레바퀴를 그대로 사용
하고 있었지만 다른 것은 말이 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끌고
있다는 점이었다.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의 눈에도 '바퀴'와 '벽돌'이야말로 낙 
후한 조선의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두 개의 물건으 
로 보였던 것이다. 바퀴는 사물을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는 동력 
의 원천이고 벽돌은 손쉽게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재료의 원천 
이었던 것이다.   
 당시 중국은 바퀴의 문화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바퀴가 발달해  
있었다. 말이 끄는 마차로부터 일반 백성이 사용하는 손수레에
이르기까지 바퀴는 익숙한 일상도구였다. 따라서 드물게는 사람 "
이 끄는 일종의 인력거가 벌써 연경의 거리에서 사용되고 있었
 던 것이다. 
   임상옥과 박종일을 태운 인력거가 전루를 지나 성안으로 들어   
서자 전문이 눈에 들어왔다.  
   인력거가 정양문을 지키는 파수병 앞에 멈춰섰다.
   임상옥과 박종일은 몹시 긴장하였지만 인력거를 끄는 쿠울리 
가 가서 뭐라고 말을 하자 그들은 임상옥 일행을 그대로 무사통 
과 시켜 주었다. 
   임상옥을 태운 인력거는 연경성의 정문인 정양문을 당당하게 
지랐다. 이곳부터 일반 서민뿐 아니라 웬만큼 잘사는 한족들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금지구역이었던 것이다. 이 내성은 명대
에 완성된 구역으로 고궁을 중심으로 주로 관료들이나 만주왕족 
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임상옥으로서는 인력거가 내성으로   
들어가 궁 안으로 가까이 가자 몹시 긴장하였다.   
   내성으로 들어서자 황제의 정원으로 알려져 있는 경산공원의 
산이 멀리 보였다. 원래 이 산은 원나라의 세조인 쿠빌라이가 만 
든 인공 산으로 산정은 인위적으로 여섯 개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 산정마다 정자가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제일 높은 곳에 서
있는 정자의 이름은 만춘정으로 이곳이 바로 연경 옛 내 
성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이 산의 높이는 43미터. 예나 지금이나 
   이 고성의 기와들은 황금빛으로 유명한데 임상옥이 인력거를 타 
고 지날 무렬에는 마침 해질덜의 석양이라 금색 기와가 눈부시 
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꿈이라도 꾸는 건가. 형님, 이게 꿈이요, 생시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박종일이 찬란하게 석양빛을 반사하고 있
는 황금의 기와들을 바라보면서 감탄하여 말하였다.
  "도대체 저 기와들은 하나하나 황금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던 
  데 그게 사실인가요."
 조선의 변방에서 온 촌뜨기 상인의 눈에 비친 황제가 살고 있 
는 연경의 거리는 한마디로 황금의 궁전이었다.
 인력거는 그 거리의 어느 집 앞에 섰다.
 그 저택 앞에서는 미리 두 사람을 맞을 사람이 기다리고 서 있
 었다. 그는 어젯밤에 두 사람이 만났었던 동인당 중약점의 주인 
 이었다. 그는 만주족 특유의 변발을 하고 있었지만 실은 한족이 
 었다. 중국을 정복하고 수도를 북경으로 정한 후 청나라의 세조 
 는 치발령을 내려 전국민에게 정복민안 만주족의 두발형을 따라 
할 것을 명령하였다. 많은 한족들은 이에 항의하여 승려가 되거 
나 도사가 되기도 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이민족의 풍습은 자연 
스럽게 일반적인 풍습으로 굳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석조로 만든 두 개의 사자상이 서로 마주보면서 지키고 
있는 대문 앞에 서 있다가 두 사람이 나타나자 뛰어나와 맞아들 
이며 말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임 대인."
임상옥은 안내하는 왕조시의 뒤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섰다. 이
미 날이 어두워 내정의 석등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안채로 들어 
가는 내정에는 큰 못이 있었고,그 못 속에는 비단잉어들이 한가  
롭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물 위에는 연꽃들과 각종 진기한 꽃들
이 다투어 피어 있었으며 남방에서 가져온 붉은 열매가 여는 대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내전과 안채를 잇는 중문은 전형적인 중국 특유의 달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문을 넘기 전에 왕조시가 두 사람을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임상옥과 박종일은 중문 앞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먼저 왕조시 
가 문 안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기를 기다려 박종일이 숨죽 
인 소리로 말하였다.  
   "형님,도대체 여기가 어딥니까. 죽어야만 갈 수 있다는 극락이 
바로 여기가 아닙니까. 도대체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그러한 박종일의 호들갑과는 달리 임상옥은 묵묵히 침묵을 지 
키며 서 있었다. 그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 
어지고 있었다. 어젯밤 동인당 중약점의 점주였던 왕조시는 
자신이 3년 동안이나 찾고 있던 의주 상인 임상옥임이 틀림없다 
는 사실이 밝혀진 후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하였던 것이다.
   "드디어 임 대인을 찾게 되었습니다. 대인어른, 지난 3년간 그 
토록 찾아 헤매던 임 대인의 모습을 이렇게 실제로 뵐 수 있게  
되다니요"
   임상옥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는 무슨 일로 나를 지난 3년 동안 중국인 특유의 신
중함으로 찾아 헤매고 있었단 말인가. 아을, 다만 찾아 헤맨 것이
아니라 거금의 자금까지 풀어서 나를 기사회생케 하였다. 그는  
개성 상인 박종일에게 이미 5천 냥의 어음을 발행하였으며 실제 
의 임상옥을 데려을 때는 그의 두 배에 해당하는 배상금을 주겠 
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임상옥은 왕조시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나를 찾으셨습니까.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임상옥의 질문에 왕조시는 다만 이렇게만 대답하지 않았던가.
  "내일이면 아시게 되실 것입니다, 대인어른. 나는 다만 심부름 
  꾼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연경 제일의 중약점의 점주인 
왕조시를 하인처럼 부릴 수 있는 정체불명의 그 사람은 누구인 
가. 이처림 으리으리한 저택. 그뿐인가. 연경성의 정문인 정양문 
안쪽의 내성은 청나라의 왕족들이나 살고 있는 별정지역.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청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높은 벼슬 
의 왕족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도대체 그러한 황족들이 
 머나먼 조선에서도 변방에 있는 이름멀는 한갓 장사치와 무슨 
상관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무슨 상관이 있어 지난 수년 동안 
이나 나를 찾아 헤매고 있었단 말인가.
 그때였다.
이미 어둠이 내려 어두워진 중문 안쪽에서 왕조시가 나타났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대인어른."
그는 길을 밝힐 수 있는 등을 손에 들고 있었다.
  "들어가시지요."
두 사람은 중문을 지나 안채로 들어섰다. 안채의 마당에는 돌 
로 만든 석등들이 일렬로 서서 어둠을 밝히고 있었는데 그 안에 
 서는 장명등이 환히 빛나고 있었다   
   안채는 더욱 화려하고 호사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왕조시는 두
사람을 집안으로 안내하였다.  
   "박 대인은 이곳에 잠간 앉아 계시고 임 대인만 저를 따라 들
 어오시지요."
   왕조시는 박종일을 향해 말을 하였다. 하는 수 없이 박종일은
문간방에 남고 임상옥 혼자서만 왕조시를 따라 긴 복도를 걸어  
갔다. 어디선가 섬세한 손으로 켜는 듯한 감미로운 비파소리 같
은 것이 들려오고 있었다. 복도 끝에는 커다란 방이 있었는데 천 
장에는 금박칠이 되어 번쩍거리고 방안에는 백랍으로 만든 촛대
에 붉은 촛불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이곳에 앉아 기다리십시오."
   왕조시가 빈 의자를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임상옥은 그 의자에 앉았다. 
   "잠시만 앉아 계시면 곧 한 분이 나타나실 것입니다. "   
   왕조시는 정중하게 말을 한 다음 어디론가 사라졌다. 넓은 방
안에 임상옥 혼자서만 남아 있게 되었다. 손님을 맞는 방으로 사
용되는 곳인지 방안은 넓고 호화로웠다. 새해가 다가을 때마다 
중국인들이 써 붙이는 '복'이라든가 '부'," 같은 글자가 씌어 
진 붉은 종이들이 천장에 붙여져 있었다. 백랍촛대 위에서 타오
르는 붉은 초 속에 향기로운 향료가 섞여 있는 듯 방안에는 은 
은한 향기가 배어 있었다.   
   그때였다.  
   임상옥이 앉아 있는 반대편 쪽에서 비단으로 드리워진 문장
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들어왔다. 임상옥이 앉아 있던 자리  
뒤편이라 처음에는 눈치조차 채지 못하였다. 인기척이나 가벼운  
발자국소리 같은 것도 들려오지 않았으므로 임상옥은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선 것을 알지 못하였지만 붉은 향초가 바람에 흔들   
리는 순간 임상옥은 누군가 방안으로 들어온 것을 알았다. 임상  
옥은 고개를 돌려 등뒤를 보았다. 쪽빛 비단으로 만들어진 휘장  
을 헤치면서 한 사람이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임상옥은 앉았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엉거주춤   
섰다. 그러자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스며들어온 그 사람은 조용히  
입을 열어 말하였다.  입을 열어 말하였다.
  "일어서지 마세요, 대인어른. 그냥 앉아 계셔도 됩니다. " 
 임상옥은 앉지도 서지도 않은 자세에서 몸을 돌려 그 사람을   
마주보았다. 그곳에는 부채를 들고 얼굴을 가리고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차면용으로 얼굴을 가리기 위한 부채였으므로 여인의  
눈은 보였으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여인의 눈이 임 
상옥의 얼굴을 정면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대인어른."
여인은 여전히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서서 조용히 말하였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전혀 변하신 곳이 없으십니다.  
대인어른. 아니, 전보다 더 체격이 커지시고 당당해지셨습니다. 
대인어른."
 여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임상옥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여인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여인은 머리를 둘로 가리마 
질하여 양 옆으로 내려뜨린 전형적인 미인의 머리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리에는 호사스런 장식들이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장통  
수로 알려진 깊고 넓은 소매의 전형적인 호복을 입고 있었다. 
이를 치파오라 하였는데 오른쪽 겨드랑이부터 아래를 특수한 끈 
단추로 잠그는 청나라 특유의 복장이었다.
   "...누구신지요" 
   임상옥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물어 말하였다. 그러자 여인은 역 
시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대인어른. 저는 한눈에 대인어른의 모   
습을 알아보았습니다.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흐르는 세월 
도 대인의 모습을 바꾸지는 못하였습니다. "   
   그제서야 임상옥은 그 여인의 목소리가 낯이 익고 그 여인에
게서 풍겨오는 체취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  
히 여인은 부채를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전혀 생각지 않은 
호복을 입고 있었으므로 여인이 꼭 짚어 누구인가 하는 뚜렷한 
 판단이 서질 않았다. 
   "지난 5년 동안 단 하루도 대인을 잊어버린 적은 없었나이다.
세월이 5년이나 흘러갔어도 대인어른은 여전히 저의 시엔성이시 
며 저의 주인이시나이다. "
   순간 여인은 천천히 얼굴을 가렸던 부채를 떨어뜨렸다. 여인은 
자신의 얼굴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백랍촛대 위에 타오르고 
있는 붉은 촛불 곁으로 바짤 다가섰다.
   "이래도 제가 누구인지 모르시겠습니까, 대인어른."  
 임상옥은 가렸던 부채를 치운 여인의 맨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임상옥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휘장을 걷고 나타난 그 여인은 장미령, 바로 그녀의 모습이었 
 던 것이다.
 임상옥은 얼어붙은 표정으로 장미령을 보았다.
 장미령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녀는 열다섯 살 처녀의 몸이 
 었다. 천하의 절색이었다. 여인의 모습은 감히 지상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닌 하늘이 랜 미색이었던 것이다. 5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장미령의 아름다움은 여전하였다. 아니, 처녀의 
 몸이 아니라 귀부인으로 탈바꿈한 듯 예전보다 살이 다소 쪄 보 
 였지만 그래서 더욱 원숙미가 풍겨나오고 있었다.
  "대인어른."
  여인의 얼굴에서 무엇인가 반짝이는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눈물이었다.
  "대인어른께오서는 설마 저를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제가 누군
지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그러하면."
  장미령은 두 손을 토았다.
  "절을 받으십시오."
  장미령은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굽혔다. 순간 황급히 임상옥 
 이 다가가서 만류하여 말하였다.
  "이러지 마십시오. 이러시면 아니되십니다. "
 그러자 장미령은 눈물 젖은 얼굴을 들어 임상옥을 똑바로 쳐 
다보면서 말하였다.
  "대인어른, 대인어른은 5년 전에 제 몸을 사서 구해 주셨습니 
다. 대인어른이 저를 구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저는 이미 
강물에 몸을 던져 죽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이 몸은 살아도 대 
인어른의 것이며 죽어도 대인어른의 것이나이다. 대인어른은 여 
전히 저의 주인이시나이다. 지금까지 단 하루도 대인어른의 이름  
을 잊어버린 적은 없었습니다. 대인어른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덕을 단 하루도 잊어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  
   남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  
다 더 어려운 일은 타인으로부터 받은 은덕을 절대로 잊지 않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미령은 의로운 사람, 즉 의인이었던 것   
이다.  
   '대인어른께오서는 여전히 저의 주인이시니 저의 절을 받으셔 
야 합니다. 의자에 앉으십시오.'  
   임상옥은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장미령은 정중하게 무릎을 꿇 
 고, 아무것도 깔지 않은 맨바닥에 몸을 굽혀 절을 하였다. 임상옥 
 은 말리려 하였으나 장미령은 막무가내였다. 절을 하고 나서 장  
 히령은 임상옥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대인께오서는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저에게 전별금까지 주셨 
 으나 저는 차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나이다. '
 임상옥이 연경을 떠난 후 그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고향 
 으로 떠나지 않고 그대로 연경에 남았던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든 아는 사람이라곤 단 한 사람도 없는 연경에 
 서 흘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야만 언젠가는 조선 
 에서 상인으로 연경으로 찾아올 임상옥이란 이름의 자신의 주인 
 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어느덧 장미령의 가슴속에는 생명의 은인인 임상옥에 대한 고
 마움이 사랑의 감정인 연정으로까지 발전되어 나가고 있었던 것
 이다. 그리하여 장미령은 마지막날 밤 임상옥으로부터 받은 정표
 를 소중히 간직하였던 것이다.  
  '의주 상인 임상옥'
 장미령에게 임상옥이 남기고 간 비단 속옷에 쓴 일곱 자의 글 
 자는 유일하게 임상옥을 떠올리게 하였던 소중한 정표였던 것이 
 다.
 그러나 임상옥이 주고 간 은 50냥의 전별금도 몇 달이 지나 버 
리자 바닥나게 되어버렸다. 장미령은 발이 붓도록 연경을 돌아다 
녔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한 방법은 유일하게 음식점의 늙은 점주들의 첩이 되는 것뿐 
이었다. 그 당시 여인들은 대부분 전족을 하고 있었다. 여 
자아이가 태어나면 세 살이나 네 살 무렵에 헝겊을 발에 동여매 
고 엄지발가락 이외의 모든 발가락을 발바닥 방향으로 접어 넣 
듯 힘껏 묶어 조그만 신에 고정시키는 이 기이한 풍습은 거의 
모든 여자들에게 통용되던 풍습이었다. 그래서 전족한 발을 소각 
이라 하였고 전족하지 않은 발은 대각이라 하여 천 
대하였는데 장미령은 그나마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갔으므로 전 
족을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전족을 하였더라면 장미 
령은 사창가에 더 많은 값에 팔렸을 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운명 
을 개척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하제일의 도시인 연경이라지만 남존여비의 사상, 여 
인을 한갓 남성의 노리개로만 보는 중국의 수도 연경에서 혈혈 
단신의 장미령이 자립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생각다 못해 장미령은 한 가지의 꾀를 내었다. 그것은 여성인 
자신을 남성의 몸으로 변장하는 일이었다. 여성이 아니라 남자의 
몸으로 변신할 수 있다면 얼마든 점원으로 취직할 수 있고 
로 돈을 벌어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미령은 그 즉시 
남자들이 보통 입는 호복인 파오를 사서 입었다. 장미령은 
몸이 가늘었지만 키가 큰 전형적인 중국의 미인형이었으므로 장
삼형의 호복을 입자 금방 미소년이 되었다.   
   문제는 머리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만주족의 머리 형태인 변발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장미령의 머리카락은 길었으므로 모발을 세 
가닥으로 땋은 후 등뒤로 늘어뜨리고 말총 스타일의 머리모양을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후두부만 남겨두고 전부 삭발하
여 버리는 두발의 형식이었다. 그 당시 연경에서는 이러한 복잡
한 머리형태로 인해서 맵시좋게 머리채를 땋아서 술이 달린 검 
은 댕기로 뛰은 후 앞부분의 머리카락은 칼로 밀어버리는 점소
가 곳곳에 있었지만 장미령은 그곳에 찾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
다. 
   성격이 독한 데가 있는 장미령은 삭도를 하나 사서 직접   
자신의 머리칼을 밀어 민 대머리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장미령은 거울을 보고 자신의 앞머리를 스스로 삭도로 밀었다.   
여성으로서 자신의 머리칼을 칼로 자르고 밀어버린다는 것은 속
세를 떠나 출가할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방법 하나뿐이라고 장미령은 생
각하였다.
   앞머리를 칼로 밀고 후두부는 자신의 손으로 세 갈래로 땋아
그 끝에 검은 술의 댕기를 엮어 늘어뜨리자 장미령은 단숨에 미
소년이 되어버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장미령 자신이
보아도 아름다운 미소년이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굵은 목소리였다 
   장미령의 목소리는 옥구슬이 굴러가듯이 청아하고 맑은 목소 
리여서 남성의 목소리로 바꾸는 것이 몹시 까다로웠으나 머리가 
좋은 장미령이었으므로 언제나 남성으로 말을 하고 남성의 억양 
을 흉내내는 것으로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변성기가 지나지 않 
은 소년의 목소리는 소녀의 목소리와 구별되지 않았으므로 문제 
는 남자처럼 말을 하는 억양이 중요했던 것이었다.
젖가슴은 헝겊으로 칭칭 동여매고 장미령은 호복을 입고 변발
을 늘어뜨린 채 연경의 거리를 소년처럼 걷고 소년처럼 돌아다 
녔다.
 그러다가 그녀가 본 것은 바로 동인당 중약점 앞에 내걸린 게
시문이었다. 중약점 안에서 심부름을 할 점원을 뽑는다는 내용이 
었다. 그녀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이었다.
동인당 중약점은 연경에서도 가장 큰 약방으로 만약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다시 찾아을 의주 상인 임상옥을 쉽 
게 만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아무런 친인척도 없는 낯선 도시 연경에서 자신이 점 
원으로 선택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던 것이었다. 궁리하던 
장미령은 중약점 점주의 이름이 무엇인가 알아내었다.
 점주의 이름이 왕조시임을 알아낸 장미령은 자신의 이름도 성
씨를 왕으로 하여서 왕관영이라 하였던 것이다. 유 
난히 혈연이나 가문을 중요시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같은 성씨에
대한 맹목적인 호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녀인 장미령에서 미소년인 왕관영으로 탈바꿈한 그녀는 뜻 
밖에 중약점의 점원으로 채용되게 되었다.
 그것은 장미령이 미리 계산했던 대로 점주인 왕조시가 같은 
성씨였던 왕관영, 아니 장미령을 배려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빼어난 미소년으로서의 용모 때문이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여인으로서의 미모를 좇는 사람도 많이 있었
지만 미소년의 아름다운 용모를 탐하여 남색을 선호하는  
사회풍조도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장미령은 곧 중약점 안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녀가 하 
는 일은 약을 썰거나 무게를 다는 하찮은 일에서부터 상점의 안 
팔을 청소하는 허드렛일이 대부분이었지만 워낙 성실하게 일을  
하였으므로 곧 점주인 왕조시의 눈에 띄게 되었다. 왕조시는 예 
쁘게 생긴 미소년인 왕관영, 아니 장미령에게 약 배달을 시키기  
로 마음을 바꾸었다.  
   예나 지금이나 중약점에서는 환자들의 진맥을 짚고, 증상을 살
핀 후 처방전을 내려주는데 이 처방전을 보고 매장에서는 각종  
약초를 넣어 조제를 해주는 것이 보통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한 
번 중약점에 들렀던 환자들은 다시 들르지 않고 처방전만 가져  
오면 그 처방전대로 약을 지어 집으로 직접 약을 배달해 주고   
그 약값을 받아오는 일종의 주문 배달제가 성행하고 있었던 것이 
다.  
   왕조시의 눈으로 보면 장미령이 이 일의 최적격이었다. 장미령 
은 총기가 있어 수에 밝아 계산 능력이 빠르고 정확하였다.  
또한 한문에도 뛰어난 미소년이었다. 왕조시에게도 자신의 약방 
을 대표하는 배달원으로 장미령과 같은 미소년의 이미지가 대외 
적인 신용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게다가
직접 사람이 오지 않고 하인을 시켜 처방전을 보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이 많은 부호들이거나 만주족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 
이었다.
 왕조시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장미령은 예상보다 훨씬 더 점원 노릇을 잘하였을 뿐 아니라 
 고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단시일 내에 장미령은 
왕조시에게 있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보석 중의 보석이 되 
어버린 것이었다.
 장미령은 한밤이면 상점에서 홀로 잠을 자고 상점을 지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년 정도가 지나자 장미령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여성으로서의 성징인 부풀어오르는 
젖가슴을 헝겊으로 가린다 하더라도 열여섯의 여성으로 한참 무 
르익어 타오르기 시작하는 매력을 단순히 남장만으로는 더 이상 
가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키도 더욱 자라고 가슴은 터질 듯 
이 부풀었다. 엉덩이는 남성의 그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 
도로 커졌으며 무엇보다도 전체의 모습에서 미태가 흘러 
넘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무렵이었다.
  내성 안에 사는 한 대부의 집에서 장미령을 각별히 총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원래 한족으로 명나라 시대 때는 제후의 집 
이었지만 명나라가 패망하자 청나라의 공신이 되어 대부로 
스스로를 격하시킨 명문가였다.
 비록 제후에서 대부로 격하하였다고는 하지만 광록대부  
중의 한 사람으로,패망한 한족으로서는 가장 높은 벼슬에 
까지 오른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주병성이라 하였는데 그에게는 병약한 정 
실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성을 송이라 하였다.
  그녀는 병약하여 장미령이 일하는 중약점에서 대놓고 약을 주   
문하여 시켜 먹었다. 그러나 그녀의 병은 골수에까지 스며들어 
중약점에서 일하는 용타 하는 의원들도 얼마 안 가서 죽어버릴 
것이라고 수근수근댈 정도였다.   
   자연 그녀의 짐에 약을 배달하는 것이 장미령의 몫이었다. 송  
씨부인은 내성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출입을 할 때면 일일이 허   
가를 받아야 했지만 나중에는 아예 조정에서 내준 특별허가증으   
로 무시로 출입할 수 있었다. 송씨부인은 장미령을 각별히 총애   
하였다. 그녀는 거동도 못하고 하루종일 누워서 지냈지만 장미령  
이 찾아가면 얼굴에 웃음이 가득할 정도로 반색을 하곤 하였다.   
   송씨부인은 한 번도 아이를 낳아보지 못하였다. 람편 주씨에게 
는 두 명의 첩들이 따로 있었지만 이들에게서는 모두 딸만 낳았   
을 뿐 대를 이을 아들은 아직도 낳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점을   
 그녀는 몹시 슬퍼하고 있었다. 또한 감편에 대해서도 몹시 미안  
 해 하고 있었다.
   정실인 자신은 남편에게 사내아이를 낳아줄 수 없을 뿐 아니   
 라 얼마 안 가서 곧 죽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그녀는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송씨부인은 장미령이 약을 지어 갈 때마다 화색  
 을 띤 얼굴로 이렇게 말을 하곤 하였다.  
 "...어쩌면 사내아이가 저리도 예쁘단 말이냐."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느 따뜻한 봄날 장미령이 약을 지어 송씨부인의 집으로 갔  
 을 때 그녀는 하녀들과 정원에 활짝 핀 꽃구경을 하고 있었다.   
 활짝 펼쳐진 비단과 같은 모란꽃과 매화꽃을 보던 그녀는 평소   
 에 햇볕을 가리던 일산을 걷어버리고 따뜻한 봄볕을 쬐느라 기   
  진하였는지 그만 가볍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하녀들은 몹시 당황하였다. 마침 이때 들렀던 
  장미령은 송씨부인의 얼굴과 몸에 땀이 많이 맺힌 것을 보았다.
 순간 장미령은 어렸을 때 들었던 어머니의 긴급처방을 기억하여 
  떠올렸다.
 장미령은 즉시 물을 끓이게 한 후 그 더운 물에 식초를 가득 
풀어넣었다. 그리고 그 물로 그녀의 얼굴과 몸을 가만가만히 닦 
아 주었던 것이다.
 식초를 더운 물에 풀어 그 물로 땀이 배어나온 몸을 닦아주면 
식초의 그 휘발성으로 순간 피부는 긴장하고 수축되어 몸의 열 
기를 갑자기 식히는 효과가 있음을 장미령은 알고 있었던 것이 
다.
 정신을 차린 송씨부인은 자신의 마른 몸을 닦아내리는 장미령 
 에게 이렇게 물어 말하였다.
 "더운 물에 식초를 풀어 땀을 닦아내는 그 방법을 너는 어디서 
 배웠느냐."
 "어렸을 때."
 무심코 땀을 닦아내리면서 장미령이 대답하였다.
 "어머니에게서 보고 배웠습니다. "
  순간 장미령은 아차 하였다. 순간적으로 상황이 급해 자신이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멈칫거 
리는 장미령의 눈길을 송씨부인은 예민하게 포착하였다. 어렸을 
때 부잣집의 하인으로 들어갔었던 어머니는 부잣집에서는 과음 
하였을 때나 몹시 피로하였을 때는 그런 방법으로 목욕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무심코 장미령은 이를 전해듣고 있었던 것 
이다. 그러나 그 무심한 방심 하나가 장미령의 정체를 드러나게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중약점 앞으로 인력거 한 대가 찾아왔다. 바로 광록대부의 정  
처인 송씨부인으로부터 전별이 온 것이었다. 급히 집으로 장미령  
을 인력거에 태워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장미령이 찾아갔을 때   
그녀는 욕실에 들어 있었다.
   "마마께오서 욕실로 들라 이르십니다. "
   하인들이 시키는 대로 장미령이 욕실에 들자 이미 송씨부인은 
온몸을 벗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욕실에는 더운 물이 가득 들어  
있었고, 그 더운 물 속에는 식초가 한 가득 풀어져 있었다. 
   "내가 너를 부른 것은." 
   더운 물 속에 들어 있으면서 송씨부인이 장미령을 보고 말하  
였다.  
   "내 몸을 씻어달라고 부른 것이다. 일전에 네가 식초를 탄 더  
운 물로 내 몸을 씻어준 이래로 몸이 가뿐하여지고 기분이 좋아  
졌다. 그래서 한번 더 내 몸을 씻어달라고 부른 것이다. "  
   "하오나." 
   장미령은 망설였다.  
   같은 여성으로서 여성의 몸을 닦아주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  
이다. 그러나 자신은 어디까지나 남자 행색을 하고 있는 처지가   
아닌가.
   "무엇을 망설이고 있느냐. 그리고 너도 옷을 벗어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래야만 내 몸을 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망설이고 있는 장미령을 보고 재촉하듯 송씨부인은 명령하였  
다.
 옷을 벗으라는 그녀의 명령은 지엄하였다. 아무리 남장을 하고 
남자의 몸으로 행색을 하여 남녀가 유별하다 하더라도 송씨부인 
이 옷을 벗으라면 마땅히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장미령은 당황하였다.
 옷을 벗으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여성의 몸을 
감추고 남장으로 변복한 자신의 실체가 그대로 밝혀지게 될 것 
이다.
  "도대체 무엇을 망설이고 있느냐."
날카로운 송씨부인의 목소리가 화살처럼 내리꽃혔다.
  "내 몸을 씻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냐."
  사실 송씨부인의 몸은 흉칙하였다. 그녀의 몸은 마르고 여위어 
 딱딱한 나무토막 같았다. 또한 오랫동안 간질환을 앓고 있었으므 
 로 피부의 빛깔은 누런 빛을 띠고 있었으며 온몸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악취가 나고 있었다. 배에는 복수가 차서 다른 부분과는 
 달리 부풀어 있었다.
  "아, 아니옵니다. "
  장미령은 황급히 부인하였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마님."
  "그러면 어째서 옷을 벗지 않는 것이냐."
  "마님."
 장미령이 애원하듯 송씨부인을 쳐다보자 그녀는 짐짓 소리질 
 러 말하였다.
  "너는 전번에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식초를 탄 더운 물로 내 몸 
 을 씻어 주었다. 나는 네 덕에 기절하여 쓰러졌다가 정신을 차렸 
 거니와 이제는 똑같이 다시 몸을 씻어 달라는 청을 하였을 뿐인  
 데 너는 도대체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 것이냐." 
   "마님 ."
   장미령이 말하였다.   
   "몸은 얼마든지 씻겨 드리겠나이다. 하오나 제발 옷만은 벗지  
않도록 하여 주소서."   
   "어째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송씨부인이 되물었다.
   "네가 나를 외간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냐. 그렇게 생   
각하였다면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내가 일찍 아이를 두었으면  
너만한 사내아이를 두었을 것이다. 그러니 너는 날 엄마라고 생   
각하면 되지 않겠느냐. 자, 어서 옷을 벗거라. 너무 오래 옷을 벗
고 있었더니 오한이 나는구나."   
   장미령으로서는 실로 난감한 일이었다. 옷을 벗으면 자신이 여 
성이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감히 여성의 몸으로 남장을  
하고 광록대부의 정부인을 속인 죄가 그대로 드러나게 될 것이 
다. 
   그때였다. 
   갑자기 송씨부인이 깔깔 소리내어 웃으면서 말하였다.
   "네가 왜 옷을 벗지 못하는가, 그 진짜의 이유를 내가 알고 있  
다. "  
   정색을 하고 화를 낸 얼굴에서 갑자기 깔깔 유쾌하게 웃는 송  
씨부인의 모습은 장미령에게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손을 다오." 
   그녀는 손을 내밀며 장미령에게 말하였다. 장미령이 손을 내밀 
  자 송씨부인은 그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난 이렇게 예쁜 손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
  장미령의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송씨부인은 말하였다.
   "네 손은 손이 아니라 잘 빛은 만두와도 같다. 이 손을 어찌 남
  자의 손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녀는 실눈을 뜨고 장미령의 얼굴을 살피면서 말하였다.
   "어찌 손뿐이겠느냐. 어찌 한곳이라도 예쁘지 않은 곳이 있다 
  더냐. 얼굴도 그러하고,몸도 그러하고, 엉덩이도 그러하다. 게다 
  가 목소리도 그러하고 걸음걸이도 그러하지 않느냐."
  갑자기 도망치기라도 하는 사람의 손을 꼼짝 못하도록 부여잡 
  듯 장미령의 손을 꽉 쥔 후 송씨부인은 말하였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내 눈만은 절대로 못 속인다. "
웃음 떤 얼굴로 그녀는 욕실의 물을 손바닥으로 한 줌 떠올려 
  장난스레 장미령의 얼굴을 향해 끼얹으며 말하였다.
  "네가 옷을 벗지 못하는 진짜의 이유는 네가 옷을 벗으면 남자 
 가 아니라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순간 장미령은 선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네가 아무리 머리를 땋아 변발을 하고 파오를 입고 남자 행세 
  를 한다 하더라도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튀어나온 젖가슴을 
  무엇으로 감아 동여 매었느냐. 아무리 가슴을 칭칭 동여 매어 남자 
  행색을 한다 하더라도 식초를 푼 더운 물로 땀을 닦아주면 피로 
  가 풀린다는 일상적인 지혜는 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이고 두려워하겠느냐. 그러니 
  내 눈앞에서 옷을 벗어라. 옷을 벗어 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라."
  그 날. 장미령은 송씨부인 앞에서 옷을 벗었다. 옷을 벗음으로써 
장미령은 왕관영에서 장미령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정확히 일   
년 하고도 다섯 달 만의 일이었던 것이다. 목욕을 끝낸 송씨부인   
은 장미령에게 여자의 몸으로 남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물었다. 장미령은 자신이 소흥에서 술주정뱅이 아버지로부터 열
다섯의 어린 나이로 몸이 팔린 일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 
들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장미령의 사연을 모두 듣고 난 송씨부인은 한숨을 쉬면서 이   
렇게 말하였다.
   "이제부터 중약점에 나갈 필요는 없다. 약방의 주인에게는 내   
가 말하겠으니 너는 이제부터 내 집에 있거라. 따라서 이제부터 
는 남장을 할 필요가 없다. " 
   그날부터 장미령은 더 이상 중약점으로 나가는 일이 없이 송 
씨부인과 함께 살게 되었다. 장미령은 하인이 아니라 그녀의 수 
양딸처럼 함께 지냈다. 
   이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행복과는 정반대로 송씨부인의  
병은 나날이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온갖 몸에 좋다는 약이란 약
은 모두 구해 복용하였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몇 번의 혼절 끝에 깨어난 그녀는 장미령을 불러 곁에 앉히고  다.
이렇게 말하였다.   
   "죽기 전에 너에게 한마디 할 말이 있다. "
   복수가 가득 차서 배가 산더미처럼 부풀어올랐으므로 숨이 가  
쁜 목소리로 그녀는 말하였다.
   "마마."   
   장미령은 송씨부인을 마님이 아닌 마마, 즉 어머니로 부르고 
  있었다. 장미령이 울면서 말하였다.
  "돌아가시다니요. 곧 나으실 텐데_오"
  "내 병은 내가 잘 안다. "
 송씨부인은 한숨을 쉬면서 말하였다.
  "난 얼마 안 가서 죽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었
 으므로 이제 와서 새삼 살고 죽는 것에 미련은 없다. 그러하니 
 내가 죽거들랑 사당에 들러 선향이나 피워주면 그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소원이 있다. "
  "말씀하십시오."
  "내 소원을 들어주겠느냐."
송씨는 무거운 눈을 뜨고 장미령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신명을 다하겠나이다. '
  "난 열여섯의 나이로 주씨 가문에 시집을 왔다. 지금은 대
 부로 격하되었지만 전대에는 제후 집안의 명문가였다. 그러나 송 
 구스럽게도 대를 잇는 아들을 낳아 드리지 못하여 선조들을 볼 
 면목이 없다. 서둘러 첩을 들이도록 내가 청하여 두 명의 측실 
 을 두었는데도 이상하게 딸만 낳을 뿐 아직까지 아들을 낳
 지 못하였다. "
 송씨부인은 가쁜 숨을 몰아쉬기 위해 헐떡이면서 말을 이었
  "주씨 가문의 정실로서 병약하여 대를 잇는 아들을 낳아주지 
  못한 죄로 이 몸은 죽어서도 무간지옥을 헤매게 될 것이다. 그러 
 하니, 내가 죽으면 너는 내 대신 주씨가문의 별방이 되어
 대를 잇는 아들을 낳아주지 않겠느냐."
 주씨 가문의 별방이 되어 달라는 그녀의 말은 결국 자신의 남
 편 주병성의 세 번째 첩이 되어 달라는 부탁이기도 하였으며,죽 
 어가는 자신을 대신해서 씨받이가 되어 대를 이어나갈 아들을
 낳아달라는 부탁이기도 하였다.  
  이따금 주 대부는 앓고 있는 정처 송씨부인을 만나기 위해 찾  
 아오곤 하였다. 그럴 때면 먼발치에서 장미령은 주 대부의 모습   
 을 바라보곤 했었다. 
 나이는 벌써 쉰 살이 넘었으며 비만한 전형적인 중국인의 모   
 습이었다. 
  "네가 만약 나를 대신해서 아들을 낳아준다면 내가 반드시 대  
 부께 말을 하여서 너를 별방이 아닌 정실로 맞아들이도록 간청 
 을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는 내가 죽더라도 주씨 가문의 정   
 부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별방이 되어 아들을 낳아 달라는 송씨부인의 말은 일종의 유   
 언이었다. 장미령으로서는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유음이   
 기도 하였다. 또한 한갓 도갓집에서 술병을 만드는 미천한 술주   
 정뱅이의 딸로서 비록 첩이긴 하지만 광록대부의 아내로 입적이   
 된다는 것은 큰 영광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장미령의 마음에는 이미 한 사람에 대한 연정이 자리잡고 있 
음이었다. 그 사람은 장미령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주인이며
실질적인 선생, 즉 남편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몸을 5백 냥의 돈 
을 주고 사서 자유의 몸으로 풀어준 임상옥,그 사람에 대한 사
랑을 어떻게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남장을 하고 어떻게든 연경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이 
를 악물고 버티는 것도 언젠가는 조선에서 찾아을 객상 임상옥
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하나 때문이 아닐 것인가.  
  "하오나, 마마."
 머뭇거리면서 장미령이 말을 하자 송씨부인은 장미령의 손을 
 쥔 채 말하였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나는 안다. 너를 구해준 그 조선의 
  상인에 대한 은덕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네 마음을 나는 안다.
  네가 파오를 입고 남장을 한 것도 오직 그 남자를 만나기 위함 
  이라는 것도 나는 네 말을 모두 들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말을 잘 듣거라.언제 만날지도 모르는 그 남자를 기다려 정절을 
  지키는 것이 옳은 것이냐, 아니면 네가 광록대부의 정처가 되어 
  네가 받은 은덕을 열 배로, 백 배로 갚는 것이 보다 큰 대의  
  겠느냐.내 말을 잘 듣거라. 옛말에도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비롯된 것은 바로 오늘이다' 라고 하지 않았느냐."
  송씨부인의 말은 장미령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가 말한 '하 
늘과 땅이 비롯된 것은 바로 오늘이다' 란 말 
은 성악설로 유명한 순자의 대표적인 사상이었다.
  즉 하늘이나 땅과 같은 관념적인 사상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보 
다 현실적이며 실념적인 사상에 충실하라는 증언이었던 것이다.
과거나 인연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이 한순간에 
충실하라는 송씨부인의 충고가 장미령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 
는 송씨부인의 유언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다.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는 송씨부인은 
서둘러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남편과 장미령을 합방시킬 것을 원 
하였다.
 마침내 첫날밤이 정해지자 송씨부인은 손수 장미령의 얼굴을 
화장하여 주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지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함께 나아갔다. 집 뒤의 후원에는 지신과 조상신을 모   
시는 사당이 있었는데 송씨부인은 하인들에게 부축되어 간신히 
장미령과 함께 그곳에 도착하였다. 사당은 지신과 조상신을 모시  
는 두 개의 별실로 나뉘어져 있었다. 해마다 환쟁이들을 불러다   
가 회떡 위에 휜색을 덧칠하고,사당 한군데에 앉아 있는 지신과   
그 부인의 성상에 붉은 금박지로 지은 승복 같은 것을 입혀 놓 
았기 때문에 사당 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제 밤이 오면 첫날밤을 치를 새 신부 장미령과 송씨부인은
함께 땅의 신과 가문을 지켜줄 조상신들에게 경배를 하였다. 그   
리고 나서 두 사람은 선향을 피웠다. 원래부터 중국인들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사당을 찾아 땅의 신인 지신에게 먼저 예를 을 
리는 습성이 있었지만 특히 결혼식을 앞두고서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땅의 신이야말로 만물을 먹여  
살리는 곡식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대를 이어나갈 아들을 낳도록   
도와주는 생명의 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지신에게 경배를 올리기 전에 향이 부러지면 재수가 없다는
속설이 있었으므로 하녀들은 선향이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 
게 다루었다. 
  부싯돌과 쇠를 뒤져서 마른 풀잎을 부싯깃 삼아 불을 일궈 향   
에 댕긴 후 그 향을 수북히 쌓인 재 속에 꽃아 세우자 장미령을   
향해 송씨부인은 속삭여 말하였다.
  "신령님께 빌어라. 아들 하나를 점지해 달라고 신불님께   
빌어라."   
  그날 밤. 
 장미령은 광록대부 주병성의 세 번째 측실이 되었다. 그때 장 
  미령의 나이 열일곱 살이었다. 무사히 첫날밤을 치른 그 다음날 
  송씨부인은 그대로 혼수상태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였다.
며칠 뒤 숨을 거둬버린 것이었다.
장미령으로서는 두 번째의 은인을 잃어버린 셈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난 뒤부터 장미령은 실질적인 집의 주인이 되었다. 하인 
  들은 장미령을 마님이라고 불렀으며 그녀의 남편이 된 주 대부 
  는 각별히 장미령을 사랑하였다.
"한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을 새로 얻었으니 한 사람이 죽은 대 
  신 한 사람이 새로 태어난 것과 같다. 그러하니 죽은 사람도 없 
  고 산 사람도 없다. "
주 대부의 말처럼 죽은 사람도,산 사람도 없이 자연스럽게 새 
  주인이 된 장미령은 처음으로 중약점의 주인인 왕조시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장미령에게 있어 왕조시 역시 은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 연경의 상인들은 세 종류가 있었다. 큰 상인을 대고라 
  부르고 중간상인을 중고, 그리고 작은 상인을 하고라 
  부르곤 하였다. 왕조시는 이름난 중약점의 점주였으므로 대가였 
  으나 뒤를 돌보아줄 변변한 배후세력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은 
  공명쳔이라 불리는 이름뿐인 관직이라도 사야 했는데 
  장미령은 남편에게 부탁하여 왕조시를 특별히 돌봐달라고 말하 
 였던 것이다.
"마님, 고맙습니다. "
한때 자신의 하인이었지만 이제는 광록대부의 부인이 된 장미 
령 앞에 정중히 인사를 드려 왕조시는 예를 올렸다.
   그러나 공명첩을 주는 것은 명목상의 이유였을 뿐 왕조시를
따로 불러 만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장미령은 자신이 소 
중히 보관하고 있던 비단 속옷을 왕조시에게 내어주면서 간곡히 
말하였던 것이다.  
   "절대로 누가 찾는가를 말하지 마시고 이 옷에 씌어져 있는 사   
람을 찾아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쓰셔도 좋습니다. "
   왕조시는 그 비단 속옷에 씌어진 글자를 읽어 보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왕조시는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여 말하였다.   
   "이 옷 위에 씌어진 이름의 사람을 반드시 찾아내어 마님께 보  
내드릴 것입니다. "
   "그것이 벌써 3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대인어른."
   자신에게 그 동안 일어났던 모든 사연들을 모두 고백하고 나 
서 장미령은 긴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대인어른과 헤어진 것이 벌써 5년 전. 하지만 그 동안 단 하 
루도 대인어른을 잊어버린 적은 없었습니다. 어찌된 일이셨습니
까. 그 동안 연경에는 몇 번이나 들르셨는지요."   
  눈물 젖은 얼굴을 들어 장미령은 임상옥을 바라보며 물었다.
   "한 번도 들르지 못하였습니다. "
   임상옥은 대답하였다.  
   "그러시면 5년 만에 처음으로 연경을 찾아오셨단 말인가요."
   "그, 그렇습니다. "
   "그러시면 무슨 나쁜 일이라도 있었던 것인가요."
  눈치 빠른 장미령의 질문에 임상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 
  다. 바로 장미령 그녀로 인해 공금횡령으로 상계에서 추방되어 
  어쩔 수 없이 떠돌이 장사꾼으로 전락했었던 지난 일들과 사면 
  초가의 곤궁으로 입산수도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과거의 일들을 
  임상옥은 굳이 털어놓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찾아 헤매도 대인어른을 만날 수가 없어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쩌면 다시는 대인 
  어른께오서 연경에 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대인어른을 이렇게 또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소녀 
  는 이제 죽어도 여한은 없나이다. 비록 이제는 혼인하여 남의 부 
  인이 되었사오나 지난날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에게 큰 인정 베 
   풀어 주시어 죽은 목숨을 살려주신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 
  었기에 하늘의 천신과 땅의 지신에 감사드리나이다. "
  두 손으로 합장을 하고 정중히 임상옥을 향해 예를 드린 후 장 
미령은 탁자 위에 놓인 종을 집어들었다. 그 종은 집안에 있는 
하인을 부를 때 사용하는 일종의 요령이었다. 장미령은 가볍게 
종을 흔들었다. 종소리가 딸랑딸랑 방안을 번져나갔다. 그러자 안 
채에서 예에-하고 대답 소리가 있었다. 곧 문 안쪽에서 하녀가 
나타나서 머리를 숙이고 말하였다.
  "부르셨습니까, 마님."
장미령은 하녀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모시고 나오너라."
  "알겠사옵니다, 마님."
하녀는 곧 사라졌다.
하녀가 사라지자 장미령은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상자의 뚜껑 
을 열었다. 그 상자 속에서 장미령은 무슨 물건을 꺼냈다.  
   임상옥은 그녀가 꺼낸 물건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대인어른.'
   장미령은 그 물건을 가리키면서 웃으며 말하였다.   
   그것은 달걀이었다. 그러나 보통의 달걀이 아니라 붉게 물들인
달걀이었다. 
   "달걀이 아닙니까." 
   임상옥이 대답하자 장미령은 소리내어 웃었다.
   "그렇습니다, 대인어른. 이것은 물감을 들인 붉은 달걀입니다. 
이 붉은 달걀이 무슨 의미가 있는 달걀인가를 알고 계시겠지요.' 
 장미령은 그 붉은 달걀을 임상옥에게 내어주며 말하였다. 
   "대인어른, 언젠가 대인어른을 만나면 이 붉은 물감을 들인 달 
걀을 드리겠다고 따로 보관하고 있었나이다. "   
   붉은 달걀.   
   물감을 들이는 붉은 종이와 함께 계란을 끓여 만드는 붉은 달 
 걀. 그것은 아들을 낳았을 때 붉은 달걀을 만들어 이웃에게 돌리 
 는 중국의 독특한 풍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임상옥은 생각했다. 
 장미령은 그새 광록대부 주병성의 아들을 낳은 것일까.
   "...그렇습니다, 대 인어른." 
 만면에 자랑스러운 미소를 가득 띄워 올리면서 장미령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2년 전 저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이를 대인어른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휘장 뒤에서 아기의 칭얼대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뒤이 
  어 강보에 싸인 아기를 든 하녀가 나타났다. 장미령은 그 아기를
 가슴에 안아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한 기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 세상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껴안은 어머니의 기쁨이었다.
  "아들입니다, 대인어른. 제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돌아가신 마 
  마의 말씀대로 저는 아들을 낳아 주씨가문의 대를 잇게 되었습 
  니 다. "
 그녀의 품에 안긴 아기가 칭얼대며 울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장미령은 품에 안긴 아기를 임상옥에게 내밀면서 말하였다.
  "한 번 안아 보시겠습니까. 이 아이를 낳은 것은 저입니다만 
  이 아이를 태어나게 하신 분은 대인어른 바로 당신이십니다. "
  임상옥은 내어주는 그 아이를 안아 보았다. 아이는 붉은 옷을
입고 있었다. 붉은 빛깔은 전통적으로 중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색
인 것이다. 붉은 색은 귀신을 물리치는 주술적인 색이며 또한 
을 가져오는 행운의 색인 것이다. 아이는 또한 호랑이의 토습이 
새겨진 가죽신을 신고 있었다. 이 모두 무병을 기원하고 호랑이 
의 힘을 빌려 액운을 물리치려는 주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 
다. 아이는 작은 금박으로 수놓아진 부처님 상을 새긴 끝이 터진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대인어른. 저는 아들을 낳아 돌아가실 마마와의 
  약속을 지켰으며 또한 저는 주씨가문의 첩이 아니라 정실이 되 
  었습니다, 대인어른."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면서 장띠령은 임상옥을 우러러보며 말하
  였다.
 "대인어른. 이 미천한 몸이, 한낱 70냥에 몸이 팔려 죽을 뻔한   
술주정뱅이의 딸이, 이제 광록대부의 정처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행복은 오직 대인어른의 은덕 때문이나이다. "  
   임상옥의 품에 안긴 아이가 칭얼대며 울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장미령이 웃으며 말하였다.
   "아이를 한 번 달래 보시지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아이는  
금방 울음을 멈출 것입니다. 아이의 이름을 가르쳐 드리지요."   
   장미령이 임상옥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바로 대인어른의 이름이나이다. 광록대부께오 
서도 이 이상 더 좋은 이름은 작명할 수 없다고 하셨나이다. 대  
인어른, 이 아이의 이름은 대인어른께서 제게 써주셨던 바로 그  
이름이나이다. 이 아이의 이름은 바로 상옥이나이다. " 
   기사회생 .
   임상옥이 스스로 <가포집>에서 고백한 '뜻밖에 생각지 않은   
일'이야말로 이처럼 장미령과의 다시 만남, 즉 재회였던 것이다.   
   인생에 있어 운명이란 이처럼 알 수 없는 오묘한 것이다.
   임상옥은 장미령으로 인해 일시적으로는 망하여, 자신의 표현 
 처럼 쓰라린 간난신고의 고통을 겪게 되었지만, 임상옥은 또한  
 장미령으로 인하여 기사회생의 천운을 얻게 된 것이었다. 
   만약 임상옥이 장미령을 만나지 아니하였더라면, 만났더라도  
 그녀를 한갓 사창가의 여인으로만 생각하였더라면 임상옥은 한 
 때의 고통은 벗어날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평생을 홍 
 득주의 문상에서 점원 노릇이나 하다가 말년에 이르러서야 자신
 의 상점을 갖고 독립하는 평범한 상인으로서의 생애를 마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장미령도 사창가에서의 첫날밤, 임상옥을 만나지 않았더 
 라면 그녀는 분명히 몸을 파는 여인으로 한평생을 지내다가 그 
 녀의 표현대로 강물에 몸을 던져 죽어버리는 비참한 최후를 맞 
 이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임상옥은 장미령을 만남으로써 일시적으로는 간난신고 
 의 고통을 겪게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끝내는 조선 최고의 무역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미령은 아버지에게 버 
 림당해 몸이 팔려버리는 일시적 고통을 겪게 되었을지는 모르지 
 만 임상옥을 운명적으로 만남으로써 끝내는 고위대관인 주병성 
 의 아들을 낳게 되었으며 또한 광록대부의 정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에게 장미령은 인생의 큰 은인이었으며, 장미령에게 임 
  상옥 역시 인생에 있어 최대의 은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를 베풀었으나 서로가 의를 베풀었 
 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불교에 있어 남에게 은덕을 베푸는 일을 보시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남에게 베푼 선행을 기억하고 항 
  상 이를 자랑한다. 때문에 은덕을 베풀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한 
  인간은 그 베푼 사람에 대해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되며 또한 섭 
  섭해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햇빛은 인간에게 베푼다는 생각 없이 내리쬐어 곡식을 익히고 
 과일을 열매 맺게 한다. 비는 인간에게 베푼다는 생각 없이 마른 
 대지를 적시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완성한다. 이 세상 만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남을 위해 은혜를 베풀었다는 생색을 낸다.
남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생각조차 없이 하는 베풀, 이를 불 
교에서는 무주상보시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머무름   
이 없는 보시인 것이다. 불교의 핵심은 바로 이 무주상보시에 있  
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불경 중에서도 골수는 <금강경>
)이라고 할 수 있다. <금강경>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보   
석 중의 보석인 것이다. 이 경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수보리찬)
와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있는데 부처님은 '무주상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법한다.
   "이와 같이 수보리여, 무릇 인간은 발자취를 남기고 싶다는 생 
각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보시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  
   그 이유에 대해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한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약에 인간이 집착함이 없이 보시하면   
그 공덕은 거듭 쌓여 쉽게 헤아릴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수   
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방에 허공의 양을 쉽게 측량   
해볼 수 있을까."
   이에 수보리가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헤아릴 수 없나이다. " 
   그러자 부처님은 다시 묻는다. 
   "마찬가지로 남도 서도 북도 아래도 위도
 이와 같이 시방의 허공의 양도 헤아릴 수 있을까."
   수보리가 다시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헤아릴 수 없나이다. "
 마침내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마찬가지다. 만약에 인간이 집착함이 없이 보시하면 
  그 공덕의 쌓임은 쉽게 헤아릴 수 없다. 실로 수보리여, 인간은   
  마땅히 발자취를 남기고자 하는 생각 없이 보시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
  부처님의 이 말은 진리의 구경이다. 인간이 지은 모든 
행위는 그 나름대로의 과업을 받는다. 하찮은 선이라 할지라도 
그 선은 선으로서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다. 악은 악대로 하찮은 
악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대가를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만약 
에 인간이 람에게 베풀었다는 집착 없이 베푼다면 그 공덕은 마 
치 헤아릴 수 없는 허공과 같아지는 것이다.
  임상옥은 아무런 대가 없이 장미령을 구하였다. 임상옥은 장미 
령을 소유하지 않았으며 발자취를 남긴다는 생각조차 없이 장미 
령을 위해 보시를 베풀었던 것이다. 이 보시를 통해 임상옥은 고 
통을 받았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무릇 자비에는 희생과 고통이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이 '머무르지 않는 보시'는 임상옥에게 결 
과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쌓게 한 것이다.
 천우신조.
하늘과 신령의 도움을 받는다는 천우신조는 바로 이 머무름이 
없는 자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임상옥은 바로 장미령을 통해서 
 하늘과 신령의 도움, 즉 천우신조를 받게 되는 것이다.
무릇 모든 사람들은 인정을 받으려 하고, 존경을 받으려고 하
고, 발자칠를 남기려고 해서는 안된다.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자 
신의 이름을 남기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욕망은 그의 공덕 
을 일시적이거나 한시적으로 만들기 때문인 것이다.
임상옥이 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돈을 벌었으나 돈에 집착 
하지 않았으며, 명예를 얻었으나 명예를 누리지는 않았고 풍류를 
즐겼으나 쾌락에 탐닉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평생을 크게 소유하였지만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여 
본 적은 없었다. 그는 상업을 통해 도인의 길을 걸었던 수도자였 
던 것이다.
 '부자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지만 거상은 하늘이 낸다'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임상옥은 그런 의미에서 하늘이 낸 거상인 것이다. 임상옥은 
장미령을 구해줌으로써 모두가 사는 활인의 길을 걸었다.
이는 열다섯 살의 소년 임상옥이 추월암에서 행자승 노릇을 하 
고 있을 때 큰스님 숭으로부터 빗자루로 얻어맞고 주먹으로
얻어맞은 끝에 배웠던 '손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고 살릴 수도 있는 칼'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임상옥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칼,즉 활인도를 사용함으로써 
마침내 장미령도 살고 자신도 사는 활인의 길을 선택하였던 것 
이다. 임상옥은 이처럼 장미령을 재회함으로써 상인으로서 기사 
회생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그의 사업은 
승승장구하며 번창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장미령과의 극적인 재회,그 이후는 역사의 심연 속으로 사라 
쳐버린다. 그녀의 생애는 더 이상 임상옥의 인생에 있어 드러나 
보이지 아니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미령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백 석에 몸을 팔았던 효녀 심청이었으며 임 
상옥은 바로 그 장미령으로부터 상인으로서의 눈을 뜬 심봉사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

반응형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 그리샴] 거리의 변호사  (0) 2023.02.26
[존그리샴] 파트너  (0) 2023.02.26
[최인호] 상도 2  (0) 2023.02.26
[최인호] 상도 3  (0) 2023.02.26
[최인호] 상도 4  (0) 2023.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