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 3권
최인호
제1장 정의 비밀
1
1811년 순조 11년, 신미년 5월.
임상옥은 김정희를 찾아 충청도 예산에 있는 그의 고택을
방문하였다.
지금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김정희의
고택은 김정희의 증조부인 부마 김한신에 의해서 건립되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무렵.
김정희의 아버지 노경은 예조참판에 임명되어 한양에 머무르고
있었으나 김정희는 예산의 고택에 머물면서 연경에 체류할 때
옹방강. 완원 두 거두에게서 배우고 익혔던 금석학 연구와 서도에
몰두하고 있었다.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불쑥 의주에서 예산까지 천리길을
멀다 않고 나타난 임상옥을 보자 김정희는 크게 놀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대인어른, 이게 웬일이시오니까. 이것이 꿈입니까 아니면
생시옵니까"
반갑기는 임상옥도 마찬가지였다. 김정희와 연경의 사행길에서
만나고 헤어진 것은 불과 몇 년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연하의 이 청년을 그리며 사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김정희는 인근 마곡사에 들러서 수일 동안 불공을 드리고
오던 길이었다. 마곡사는 김정희와 오랜 인연을 맺어왔던 사찰이었고
옹강방으로부터 받았던 불경 수백 권과 불상 등을 기증해 더욱
인연이 깊어졌는데 김정희가 오랫동안 마곡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첫 부인 한산 이씨 때문이었다.
김정희는 동갑내기인 한산 이씨와 조혼하였으나 그의 나이 스물
한 살 되던 해 병인년 5월, 부인 이씨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몇 년을 홀로 지내던 김정희는 세 살 연하의 예안 이씨와
재혼함으로써 후취를 얻었으나 마침 첫 부인 한산 이씨의 기일이
다가오자 몸소 위패가 안치되어 있던 마곡사까지 나아가서 불공을
드리고 돌아오던 길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부인 예안 이씨도 그가 말년에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을
때 김정희보다 14년이나 먼저 세상을 떠났으므로 살아 생전
김정희에게 있어 처복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비록 처복은
없었을지는 모르지만 두 부인에 대한 김정희의 사랑은 각별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갑내기 첫 부인의 돌연한 죽음으로 스물 한 살의 청년 김정희는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숙고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불교에
심취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김정희를 찾아온 임상옥은 즉시 사랑채로 안내되어 여장을 풀었다.
그날 밤. 김정희는 술을 좋아하는 임상옥을 위해 조촐한 주안상을
차렸다. 김정희 역시 술을 좋아하고 있었으므로 두 사람은 마주보고
앉아서 담소를 즐기며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김정희는 임상옥이 조선 최고의 거부일 뿐 아니라 당대 제일의
상인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비록 사농공상의 사회제도가 있다
할지라도 깍듯이 임상옥을 대인으로 예우하고 있었다. 김정희는 이미
연경에서 체류하고 있는 동안 임상옥의 인품을 잘 알게 되어
마음속으로는 임상옥을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어 순배 술잔이 돌아가자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였다. 김정희가
먼저 입을 열어 말하였다.
"의주에서 이곳까지는 천리가 넘습니다. 그곳에서 이곳까지
불원천리하고 찾아오신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임상옥이 크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제가 생원어른을 찾아온 것은 생원어른께오서 일찍이 말씀하신
'적천리설' 때문이나이다. 연경에서 제게 말씀하신 것을 벌써
잊으셨나이까. 생원어른께오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대체 천리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먼저 그 길이 나
있는 곳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런 뒤에야 출발행로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원어른께오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이처럼
천리길을 마다않고 찾아온 것은 길이 나 있는 곳을 판단하였기
때문이나이다.
일찍이 연경에 머무르고 있을 무렵 임상옥은 사신 일행을 따라온
청년 김정희가 대견스러워 왜 이렇게 고생스런 여행을 자청했는가
물었을 때 김정희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눈앞이 곧 길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라'
라고 하였습니다. 하오나 출발하여 가야 할 곳이 그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익히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문을 나서서 가는데 진실로
앞길이 아득히 멀어서 어떻게 가야 할까 하고 생각되면 반드시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 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연경에 온
것은 '길을 아는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천리길은 물론 만리길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리가 있는 곳이면 천리길은 물론 만리길도 마다하지 않겠다던
김정희는 그런 의미에서 구도자라고 불실 수 있을 것이다. 연경에서
김정희에게 들었던 그 말을 인용해서 임상옥은 자신이 천리길을
마다않고 김정희를 찾아온 것도 '길이 나 있는 곳' 을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연경에서 했던 자신의 말을 기억해 두었다가 길이 나 있는 곳을
판단해서 찾아왔다는 임상옥의 말을 듣자 김정희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어쨌거나 잘 오셨습니다. 대인어른"
"그래 무슨 의심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김정희가 묻자 임상옥은 아무런 대답 없이 허리춤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었다. 석숭 큰스님이 친히 써준 두 번째의 위기를
물리쳐줄 비결이 들어있는 주머니였다. 김정희는 술을 마시다 말고
물끄러미 임상옥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임상옥은 주머니의 주둥이를
벌려 안에서 겹겹이 접힌 종이를 끄집어내었다. 그런 후 조심스레
종이를 펼쳤다. 마침내 종이가 모두 펼쳐지자 석숭 큰스님의 친필이
나타났다.
'정'
묵묵히 침묵을 지키던 김정희가 먼저 입을 열어 물어 말하였다.
"이 글자는 누가 쓴 글씨입니까"
임상옥은 대답하였다.
"오래 전 내가 모시던 어른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내게
써준 글씨이나이다"
그러자 김정희가 말하였다.
"이 글씨는 보통 필체가 아닙니다. 이 필체는 선필 입니다. 보통
도력이 높은 어른의 글씨가 아니나이다"
한 눈에 글자를 쓴 큰스님 석숭의 정체를 꿰뚫어 본 김정희의
날카로운 직관력에 놀라면서 임상옥이 말하였다.
"제가 생원 어른을 이처럼 찾아온 것은 바로 이 글자 하나
때문이나이다"
임상옥의 말을 들은 김정희가 의아한 눈빛으로 말을 받았다.
"이 글자는 솥 정자로 옛날 중국에서 주로 사용하던 솥의 모양을
따서 만든 글자입니다. 자세히 보면 태양을 두 개의 귀를 가진 세
개의 발이 받치고 있는 형상을 갖고 있는데 이는 이 솥이 예로부터
음식을 삶던 기구로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나이다. 훗날 주. 은
대에 이르러서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기로 사용되어 천자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온데 이 글자 하나 때문에 대인
어른께오서 천리길도 마다않고 저를 찾아 오시다니요"
그러자 임상옥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였다.
"제가 생원 어른을 찾아온 것은 이 솥의 무게를 알아보기 위해서
나이다"
임상옥은 큰스님 석숭이 서준 '정' 자를 들어 보이면서 김정희에게
말을 이었다.
"생원 어른께오서는 이 솥의 무게를 알고 계시나이까"
"그러하시면"
김정희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였다.
"대인 어른께오서 천리길도 마다않고 저를 찾아오신 것은 이 솥의
무게를 알고 싶어서 입니까"
"그렇소이다"
임상옥이 대답하자 김정희가 '정' 자가 씌어진 종이를 들어 허공에
내던지면서 말하였다.
"이 솥의 무게는 보다시피 가볍기는 솜처럼 가볍습니다"
종이가 허공에서 떨어져 땅바닥 위에 내려앉자 김정희는 다시
말을 이었다.
"또한 이 솥의 무게는 무겁기가 태산처럼 무겁기도 하나이다. 그
보다도"
갑자기 소리를 내어 호탕하게 웃으면서 김정희가 물어 말하였다.
"왜 갑자기 저에게 솥의 무겁고 가벼움을 물으시나이까. 그 저의가
무엇이나이까"
"솥의 무겁고 가벼움의 정도를 알았다면 제가 생원 어른을 찾아
왔을 리가 없겠지요"
그 순간.
김정희가 웃음을 그치면서 한 곁에 놓인 붓과 종이를 집어들었다.
붓에 먹을 듬뿍 묻힌 후 김정희는 붓을 세워들고 단숨에 종이
위에 문장 하나를 써내렷다. 임상옥은 김정희가 쓴 문장을
읽어보았다.
'문정경중'
그 뜻을 풀어 말하면 '솥의 가벼움과 무거움의 무게를 묻는다' 는
내용이었다. 문장을 쓰고 나서 김정희가 웃으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대인 어른께오서 저에게 솥의 무게를 물으시니 제가 아는 대로
대답하여 올리겠나이다. 이 말은 원래 (춘추좌씨전) 에도 나오고
(사기) 의 '초세가' 에도 나오는 말이나이다"
김정희는 임상옥의 술잔에 다시 술을 가득 따른 후 말하였다.
"춘추시대 때 초나라에는 장왕이란 명군이 있었나이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장왕이라 칭한 후 즉위한지 3년이
되어도 정령하나 내리지 않고 밤낮으로 잔치만 열면서 즐겼습니다.
또한 천하의 미녀들을 골라서 첩으로 삼은 후 날마다 주색을
즐기기만 하였습니다. 신하들이 이를 간하자, 간하는 신하들의 목을
벤 후 이렇게 훈령을 내렸나이다.
'감히 간하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겠다'
실제로 장왕은 신하들의 목을 베어 그 누구도 장왕의 행동을
나무라거나 입궁하여 간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하 중에
오거란 사람이 있었나이다. 대대로 초나라의 신하였던 오거는 죽음을
각오하고 궁중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장왕은 왼팔에는 정희를 끼고
오른팔에는 월녀를 끼고 앉아서 종과 고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고
(사기) 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장왕이 오거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오거가 대답하였습니다.
'수수께끼 하나를 들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수수께끼라니, 내게 말인가'
'그렇습니다. 대왕마마께 드리는 수수께끼이나이다'
'그럼 내어 보게나'
장왕의 말을 들은 오거는 수수께끼 문제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큰 새 한 마리가 언덕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새이겠습니까'
대인어른, 오거가 장왕에게 낸 수수께끼를 풀 수 있겠습니까"
김정희는 껄걸 소리내어 웃으면서 임상옥을 마주보았다. 두 사람은
이미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그러나 기분이 한껏 좋아진 김정희는
다시 술잔에 가득 술을 따라 임상옥에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장왕은 그 큰 새가 바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곧
알아차렸습니다. 그러자 장왕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거여, 과인은 그대의 수수께끼를 풀었으니 안심하고 돌아가거라.
3년 동안 그 큰 새가 날지 않았으니 한 번 날았다 하면 하늘을 찌를
것이요, 3년 동안 울지 않았으니 한 번 울었다 하면 아마 천하가
놀랄 것이다'"
김정희는 다시 술잔을 기울이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다시 수개월이 지났으나 장왕의 음락은 더욱 심해지기
시작하였을 뿐이었나이다. 참다 못한 대부 소종이 입궁하여 장왕에게
간하였습니다. 이에 장왕은 군사를 불러 소종의 목을 베도록
지시하고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과인의 훈령을 듣지 못하였는가'
그러자 소종은 대답하였습니다.
'이 한 몸을 희생해서 군왕의 잘못을 깨닫게 해드린다면 백 번
죽어도 여한은 없습니다'
이 말에 장왕은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3년만에 잔치를 그만두게
하고 정무를 돌보기 시작하였습니다. 태만하고 게으른 관리 수백
명을 주벌하고 유능한 인재 수백 명을 등용했나이다. 나랏일을
오거와 소종에게 맡긴 후 장왕은 수수께끼를 풀었던 자신의 말처럼,
3년만에 날기 시작하고 3년만에 울기 시작하는 큰 새가 되었습니다.
과연 장왕은 3년 동안 그 큰 새가 날지 않았으니 한 번 날았다 하면
하늘을 찌를 기세였으며 3년 동안 울지 않았으니 한 번 울었다 하면
천하가 놀랄 정도였습니다. 장왕은 소국 용을 쳐서 멸한 후 다시
송을 쳐서 전차 5백 대를 탈취했습니다. 마침내 오랫동안 초나라를
위협하던 육혼 지방의 융족을 토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낙수 근처로
나왔습니다. 낙수의 북쪽에는 주나라의 도읍 낙양이 있었는데 그
근처 국경에 대군을 주둔시키며 군사를 사열하여 우위를 과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주나라의 천자는 정왕 이었나이다. 바로 국경 근처에서
대군을 사열하는 것은 군사를 지휘함으로써 은근히 주나라를
협박하고 군사적으로 위협을 가하려는 군사행동이라는 것을 간파한
정왕은 대부 왕손만을 파견하여 장왕의 노고를 치하토록 하였습니다.
정왕이 보낸 왕손만을 만난 장왕은 대뜸 구정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구정은 고대 순나라의 임금 우때 주조되었다고 전해
내려오는 거대한 솥으로서 이는 천자의 덕을 상징하는 보물로 하 .
은 나라를 거쳐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천자가 계승해오는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장왕은 왕손만에게 물었습니다.
'구정의 크기는 어떠한가'
왕손만이 대답하려 하지 않자 장왕은 왕손만에게 다시 물어
말하였습니다.
'크기를 모른다면 무게는 알 수 있겠군. 그렇다면 구정의 무게는
어떠한가. 무거우면 얼마만큼 무겁고 가벼우면 얼마만큼 가벼운가'"
여기까지 말을 마치고 나서 김정희가 임상옥을 쳐다보며 물었다.
"대인어른께오서는 장왕이 주나라의 대부 왕손만에게 천자가 갖고
있는 구정의 크기와 무게에 대해서 물어본 이유를 모르실리는
없으시겠지요"
"장왕이 천자가 갖고 있는 그 구정에 대해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임상옥이 대답하자 유쾌하게 웃으면서 김정희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인어른. 장왕이 왕손만에게 구정의 크기와 무게를
물었던 것은 주나라 황실의 보물인 그 구정을 빼앗음으로써 자신이
천자위에 오르고 싶다는 뜻이었나이다. 즉, 언제든 제위의
상징이기도 한 구정을 차지하여 천자의 자리에 앉아 보겠다는
속셈의 표현이자 은근한 협박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간파한
왕손만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어째서 정의 크기와 무게를 알려고 하십니까. 실로 정의 크기와
무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장왕의 질문에 왕손만은 대답하였습니다.
'덕입니다. 크기와 무게는 덕에 있는 것이지 정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천자가 되고 못 되는 것은 천자의 상징인 구정을 갖고 못 갖고가
아니라 덕이 있고 없음에 달렸다는, 은근한 왕손만의 비유에 화가 난
장왕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난 덕 같은 것은 모르오. 내 말은 우리 초나라에서는 부러진
창끝만 주워 모아도 그대 나라의 구정 같은 솥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말이오'
이에 왕손만은 이렇게 대답하였나이다.
'아, 군왕이시여.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왕손만이 장왕에게 행한 대답은 (사기)에 나오는 명문 중의
명문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김정희는 잠시 말을 끊었다.
임상옥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김정희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김정희의 말을 듣는 동안, 홍경래가 자신에게 마적단의 두목
정시수의 선물로 정을 선택하여 가져온 이유와 또한 자신에게 그
솥의 크기와 무게를 물어온 이유를 확연하게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
홍경래는 솥의 크기와 무게를 물음으로써 천자의 제위를 엿보았던
장왕처럼, 혁명을 통해 천하의 권세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잠시 말을 끊었던 김정희는 다시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그 명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왕손만은 이렇게
대답하였나이다.
'아, 군왕이시여. 어떻게 그렇게 하십니까. 순 임금이나 우 임금
같은 성덕의 시대에는 먼 지방에서조차 모두 그분들의 덕에
감복하였습니다. 그래서 천하 구주의 목민관을 시켜 구주의 금속을
공납케 하여 제왕의 덕을 상징하는 보물로서 정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정을 구정이라 부른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이었습니다. 백물의 형상을 새겨 신이한 것이나 간괴한 것을
알게 하고 온 백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수호물로서의
상징이었을 뿐입니다. 그러하니 정의 무게와 크기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천자의 덕이 있다면 작은 솥이라도 무겁게 버티고 있는
것이고 덕이 흐려져 있다면 큰 솥이라도 가볍게 옮길 수 있으니
솥은 항상 덕이 있는 곳으로 옮겨져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라의
걸왕은 덕이 없고 무도했기로 구정은 하왕조를 떠나 은왕조로
옮겨져 왔나이다. 그후 6백년이 지나, 은왕조는 31왕 629년 만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은왕조 역시 주왕이 부덕하고 포악하였기에
구정은 다시 주왕조로 옮겨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천자의 덕이
아름답고 빛날 때에는 정이 작다 하더라도 반드시 무거우며, 천자의
덕이 간사하고 혼란스러울 때는 정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반드시
가벼운 법입니다. 옛날 성왕께오서 정을 낙양에 안치한 후 점을
쳤습니다. 그러자 하늘로부터 '30세대 7백년' 이라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명령이니 천명인 것입니다. 이처럼
주왕조의 덕이 아무리 쇠퇴하였다고 하나 천명은 아직 끝이 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비록 군왕께서 아무리 덕이 많다 하더라도 정의
경중은 물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왕손만의 이와 같은 명답을 들은 장왕은 달리 할 말이 없었나이다.
따라서 장왕은 군사를 거둬서 자신의 왕도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난 후 김정희는 좀 전에 자신이 쓴 글씨를 들어
보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이후부터 '솥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붇는다'는 이 '문정경중'의
고사성어가 태어난 것입니다. 이 말은 제위를 엿보았던 장왕이
속셈을 은근히 표현해 보였던 것처럼 상대의 실력과 내부 사정을
살펴서 그 약점을 파악한 후 공격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대인어른께오서 천리길을 마다 않고 찾아와 솥의 경중을 물으시니
그 물음의 저의가 무엇이나이까"
김정희는 소리를 내어 크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저에게 솥의 경중을 물으시니 저와 함께 정혁을 도모하기라도
하실 생각이시나이까"
정혁.
썩은 왕조를 뒤집어 엎고 새로운 왕조를 창건하는 역성혁명을
가리키는 말.
"장왕이 왕손만에게 솥의 경중을 물은 이래로 솥은 제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정업은 제왕의 사업이 되었으며, 정조는
제왕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정정이라 함은 새로 나라를 세워 도읍을
정하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며 '정절족 복공속' 이라 함은 솥의 발이
부러져 임금에게 드릴 음식을 뒤엎는다는 뜻으로 '재상위에 있는
사람이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는 의미를
갖고 있나이다. 하오나 대인어른"
김정희가 다시 붓을 들어 먹을 묻힌 후 종이 위에 단숨에 시 한
구절을 써내렸다. 임상옥은 그가 쓴 문장을 읽어 보았다. 종이
위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다숙향농석정외'
문장 한 구절을 쓰고 나서 김정희는 붓을 내려놓으며 말하였다.
"솥이 아무리 제왕의 상징이라 하여도 솥은 단순히 솥에 지나지
않습니다. 옛부터 발이 넷 달리고 귀가 둘이 달린 음식을 익히고
차를 끓이는 기구에 지나지 않나이다. 마찬가지로 천자의 상징인
구정이라 하여도 따지고 보면 낡은 청동솥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초나라의 장왕이 그토록 갖고 싶어하였던 주나라의 구정도
한갓 청동솥에 지나지 않는 법입니다. 덕이 있어 무거운 솥이건,
덕이 없어 가벼운 솥이건 솥은 솥에 지나지 않는 법입니다. 이에
남송의 시인 범성대는 위와 같은 시를 지었던 것입니다. 남송
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힐 만큼 시를 잘 지었던 범성대는 자는
치능, 호는 석호거사라 하였는데 그는 황제의 신임이 두터워 금국에
사절로 파견되었을 때 부당한 요구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소신을
관철하여 사가들의 찬양을 받았던 뛰어난 정치가이기도 하였나이다.
그는 '돌솥 위에 차를 끓이니 짙은 향기가 번져 나간다' 는 내용의
시를 지음으로써 '천하의 권세도 차 한 잔의 향기에 미치지 못한다'
라고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인어른, 천자를 상징하는
구정도 결국 향기로운 차를 끓이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 법입니다"
2
그날 밤.
밤이 이슥해서 임상옥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주거니 받거니 김정희와 꽤 많은 양의 술을 나눠 마시긴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취기가 가시고 정신이 말짱해지고 있었다.
마침내 천리길을 마다 않고 김정희를 찾아와 '문정경중' 의
수수께끼를 풀긴 했지만 아직 그것으로써 석숭 스님이 써준 '정' 의
비밀이 밝혀진 것은 아닌 것이다.
물론 김정희를 통해 홍경래의 저의를 명백하게 밝혀낼 수 있었다.
홍경래는 임상옥에게 솥의 대소 크기와 무거움과 가벼움의 정도를
물음으로써 서로 함께 제왕의 제위를 노리는 정혁, 즉 역성혁명을
함께 일으키자고 넌지시 권유해온 것이다. 임상옥의 대답은
분명해진다.
그 솥의 무게가 가볍다 하면 임상옥 자신도 그 혁명에
가담하겠다는 뜻이며 그 솥의 무게가 무겁다 하면 임상옥 자신은 그
혁명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김정희는 솥의 무게를 묻는 홍경래의 수수께끼를 풀어준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비밀이 풀린 것은 아니다.
석숭 큰스님이 써주었던 두 번째의 비결'정' 의 화두는 아직 풀린
것이 아니다. 석숭 큰스님은 분명히 말씀하였다.
"만약에 네가 그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는 반드시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 비의는 무엇인가.
임상옥은 석숭 스님이 써준 '정' 글자를 새삼스럽게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아직 이 '정의 비밀' 이 풀린 것은 아니다. 갓씨 속에 수미산이
들어 있듯 이 한 자 속에 살고 죽는 모든 생사의 비밀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그윽한 향냄새 같은 것이 풍겨오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암자에서 동자승 노릇을 하면서 글을 배워 익혔고 청년
시절에는 일년 이상 세속을 떠나 승려생활을 했었던 임상옥으로서는
그 향냄새가 법당 안에서 풍겨오는 분향냄새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임상옥은 김정희가 독실한 불교신자임을 알고
있었으나 집안에 사찰까지 두고 있는 것은 몰랐으므로 그 향냄새에
취해 사랑채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날이 밝기에는 먼 미명이었으나 어둠을 사르는 향냄새는
그윽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임상옥은 그 냄새가 풍겨오는 곳을
찾아서 사랑채를 지나 집 뒤꼍으로 걸어가 보았다. 야트막한 야산을
끼고 형성된 고택 위쪽으로 작은 암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암자
위에는 다음과 같은 편액이 내걸려 있었다.
'영모암'
과연 그 암자는 작은 법당이었다. 신도들을 상대로 한 사찰이
아니라 가족들의 소원을 비는 원찰이었다. 새벽예불을 올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누군가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일어나 부처님 앞에 향불을
지펴 올린 모양으로 반쯤 열린 법당 안에 불이 켜져 있었고, 그
안에서부터 향냄새가 번져오고 있었다.
임상옥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먼 옛 생각이 물밀 듯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하산하여 추월암을 떠난 이후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하였던 향냄새였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하였던 추억들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석숭 스님의 손이 솟아나와 임상옥의 코를
세차게 부여잡고는 흔들었다. 아야야, 하고 임상옥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싸안았다.
"아프냐"
석숭 스님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도, 귀를 잡아당기고 코를 비틀고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던
큰스님 석숭.
"아픕니다"
임상옥이 대답하자 그 대답하는 일을 잡아 찢었던 석숭의 손길이
느닷없이 십수년 만에 어둠 속에 나타나 임상옥의 코를 잡아
비틀었던 것이다.
순간 임상옥은 부여잡았던 손을 풀고, 어둠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코를 잡아 비틀었던 석숭의 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빈
어둠의 허공뿐이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굳이 산 속에 머물러 앉아서 불도를 닦을
필요가 없다. 저잣거리에 나가서 장사를 함으로써도 상불을 이룰 수
있다는 깨우침을 주기 위해서 자신의 입을 찢고 코를 비틀었던
큰스님 석숭.
과연 나는 산을 내려와 저잣거리에 나아가 상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거부가 되었다. 불과 짧은
세월동안 나는 조선 제일의 상인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하늘 아래
구할 수 있는 물건은 모두 구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원하는
제물이면 나는 그것을 사서 내 소유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대상은 되었지만 석숭 스님이 말씀하였던 것처럼
상인으로써의 부처를 이루었는가.
큰스님 석숭이 내려주신 비결 '정' 의 비밀은 내 어리석음과
미망을 깨우쳐 주기 위한 화두인 것이다. 이 화두를 타파하지 못하면
나는 영원히 떠돌이 잡상인이 되어 저잣거리를 헤맬 것이다.
임상옥은 법당 안으로 들어가 합장한 자세로 불상 앞까지 다가가
향불을 붙인 다음 불상 앞에 고개숙여 절을 하였다. 향을 든 손을
이마 위로 올렸다가 가슴 앞 높이로 다시 내린 후 향로에 불붙인
향을 꽂으면서 중얼거려 말하였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임상옥은 다시 합장한 채 한 발을 뒤로 물러선 후 불상을
바라보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하였다.
"반드시 석숭 스님이 내려주신 참된 뜻을 목숨 걸고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임상옥이 김정희를 찾아온 간절한 소망에도 임상옥은 어쩔 수
없이 '정의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고 그대로 떠날 수밖에 없게된
것이다.
그런데 떠나기 전날 밤.
김정희는 떠나는 임상옥을 위해 다시 주안상을 차려 조촐한
주연을 베풀면서 말하였다.
"대인어른께오서는 솥의 무게를 알기 위해 천리길을 마다 않고
찾아오셨나이다. 그런데 찾아오신 목적은 이루셨습니까. 솥의 크기와
무게를 알아내셨습니까"
이에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물론입니다. 솥의 크기와 무게의 정도를 알아낼 수 있었나이다"
"그런데"
임상옥의 대답을 들은 김정희가 가볍게 물어 말하였다.
"어찌하여 찾아오셨을 때처럼 표정이 어두우시나이까. 여전히
의심이 풀리지 않은 표정이십니다"
김정희의 말을 들은 임상옥이 솔직하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것은 이것 때문이나이다"
임상옥은 며칠 전 김정희에게 보여주었던 석숭 스님이 쓴 친필을
꺼내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제가 생원어른을 찾아온 것은 바로 이 한 장의 종이
때문이었나이다. 찾아올 무렵 저는 이렇게 스스로 말하였습니다.
만약 내가 이 '솥 정' 자의 비의를 풀 수 있다면 저는 이 종이를
반드시 불에 태워버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 이 종이를
불태우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모든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나이다. 생원어른께오서 제 표정이 어두운 것으로 보신 것은
바로 그런 연유 때문이나이다"
그러자 술을 마시던 김정희가 갑자기 손을 내밀고 말을 받았다.
"그러하면 그 종이를 제게 보여주십시오"
임상옥이 주머니를 풀어 종이를 꺼내 김정희에게 내밀자 말없이
종이 위에 쓰인 '정' 자를 물끄러미 바라본 후 김정희는 종이를
촛불에 들이밀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서 감히 말릴
겨를조차 없었다. 종이는 촛불이 댕겨져서 순식간에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큰스님 석숭의 친필이 씌어 있던 종이는 한 줌의 재가되어
스러져버린 것이다.
김정희는 재가되어 스러진 종이를 후- 하고 불어버렸다. 그러자
재는 단숨에 사방팔방으로 사라져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이
되어버렸다. 큰스님 석숭이 써준 멸문지화의 대재앙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활구를 감히 불태워버린 김정희의 돌연한 행동에 놀라,
임상옥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김정희를 마주보았다.
그러자 김정희는 소리를 내어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무엇을 그리 놀라십니까. 방금 대인어른께오서는 이 정의 비의를
풀어 반드시 이 종이를 불에 태워버리기 위해 저를 찾아오셨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이 종이를 미리 불태워버린
것입니다"
"하오나"
임상옥이 말하였다.
"그 정 자의 비의가 풀리지 않아 아직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고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물론입니다"
김정희가 대답하였다.
"하오나 그 종이가 있는 한, 그리고 문자에 매달리고 있는 한 그
정 자의 비의는 풀리지 않을 것이나이다"
김정희가 두 손으로 술을 가득 따른 잔을 임상옥에게 내어 밀면서
말하였다.
"제가 한 말씀하여 올리겠습니다. 평생 동안 방망이로 제자들을
때리는 독특한 선법을 사용했던 덕산은 때문에 덕산방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선사였는데 그는 어린 나이에 출가하였나이다. 그는
금강경에 정통하여 그 누구든 그의 금강경 강해를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주금강이라 불릴 정도였나이다.
그는 남방에 선종이 성하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선종에
도전하기 위해 남방으로 내려갈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는 등에는
금강경을 강해한 '청룡소초' 를 짊어지고 하남으로 가는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가는 도중에 떡장수를 만나게 됩니다. 마침 배가
고팠으므로 덕산은 떡장수 좌판 앞에 앉아 발길을 쉬면서
말하였나이다.
'할머니, 떡을 두 개만 사서 배를 채울까 합니다'
노파는 호떡 두 개를 내놓으면서 물었습니다.
'등에 진 게 무슨 물건이오'
'책입니다'
'무슨 책들인데'
'금강경이라는 책입니다'
금강경에 정통하여 주금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덕산은
자랑스럽게 대답하였나이다. 이를 본 노파가 말하였습니다.
'그러면 내가 금강경에 관한 수수께끼를 내겠는데 이를 맞히면
공짜로 점심을 드리리다. 한번 맞혀 보겠소'
김정희는 술을 마시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덕산은 금강경에는 자신이 있었으므로 쾌히 승낙하였나이다"
그러자 노파는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그 대는
어느 마음에 점을 찍겠소이까'
노파의 수수께끼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노파에게 낮에 먹는 떡인
점심을 사먹으려 하였을 뿐이던 덕산은 그만 답이 막히고 땀을 뻘뻘
흘릴 뿐이었습니다.
'답을 못 맞혔으니 점심을 못 주겠소. 다른 데 가서 사먹으시오'
자칭 주금강이었던 덕산은 선종을 쳐부수려고 길을 떠났는데 그만
선사를 만나기도 전에 길거리의 떡장수 노파에게 보기좋게 한 방
얻어맞은 것이었습니다. 덕산은 할 수 없이 쫄쫄 굶으면서 용담을
찾아가 당대의 유명한 용담선사를 친견하였나이다.
용담선사를 본 순간 덕산은 이렇게 비꼬았습니다.
'용이 사는 연못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지만 막상 찾아오고 보니
연못도 보이지 않고 용도 보이지 않습니다'
눈앞에 있는 용담화상을 빗대어 한바탕 빈정대는 덕산을
용담선사는 그냥 웃으면서 맞아들였습니다.
'그대는 이미 용이 사는 연못에 이르렀도다'
덕산이 입실한 때는 한밤중이어서 용담이 말하였습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서 자거라'
덕산이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오려 하자 너무 어두워 돌아서서
말하였나이다.
'스님, 밖이 너무 어둡습니다'
이에 용담이 지촉에 불을 댕겨주었습니다. 덕산이 막 지촉을
받아들고 나서려 하자 용담이 확- 입김으로 불을 꺼버렸는데 순간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덕산은 사무쳐 깨달았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절대의 어둠 속에서 깨달은 덕산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합니다.
'내가 이제부터는 노화상의 혀끝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덕산은 횃불 한 자루를 들고 법당 앞으로 나아가
청룡소초를 태우면서 말하였습니다.
'온갖 현묘한 말재주를 다 부려도 터럭 하나를 허공에 날린 것
같고, 온 세상의 온갖 재간 다 부려도 한 방울의 물을 바다에 던진
것 같다'"
말을 끊고 나서 김정희가 말하였다.
"대인어른께오서 '정' 을 등에 지고 있는 한 영원히 그 비의를
밝혀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 의 비의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덕산이 금강경을 태우듯, 그 문자를 등에서 내려놓고 불에
태워버려야 할 것입니다"
임상옥은 말문이 막혔다.
"자, 모든 것을 잊고 술이나 흠뻑 취해 보십시다, 대인어른"
김정희는 임상옥의 술잔에 술이 넘치도록 가득 따랐다. 주거니
받거니 두 사람은 대취하였다. 김정희의 말대로 큰스님 석숭으로부터
받았던 '정' 의 문자를 불태워버리자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될 대로 되라지.
술취한 임상옥은 생각하였다.
능지처참을 당하라면 능지처참을 당하라지. 멸문지화를 당하라면
멸문지화를 당하라지.
술이 거나하였을 때 김정희가 말하였다.
"전날 밤 제가 말씀드렸던 '솥의 무겁고 가벼움' 을 물었던 장왕의
고사를 아직 기억하십니까. 주나라의 대부 왕손만에게 '솥의 무게' 를
물었다가 '솥의 가볍고 무거운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덕에
있다' 는 대답을 듣고 망신을 당한 장왕 말입니다. 그 장왕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왕손만으로부터 덕이 없는 무뢰한 취급을
받았던 장왕은 그러나 나중에는 명군 중의 명군이 되었습니다. 비록
천자가 되지는 못하였지만 그는 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명군이 되었나이다. 제의 환공이나 진의 문공과 더불어 '오패' 로
일컬어지는 명성을 얻은 것은 무엇 때문인 줄 아십니까"
김정희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였다.
"장왕이 다섯 명의 명군 중 한 사람으로 출발하게 된 것은 '솥의
무게' 를 물었다가 무뢰한으로 왕손만에게 반격을 당한
이후부터였나이다. 그는 솔직히 주나라의 구정을 빼앗음으로써
스스로 천자의 제위에 오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왕손만으로부터 명답을 들었던 장왕은 이 말에 크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후로 그는 정나라와 진나라 등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나라들을 정복하고 압박을 하였지만 이들 나라가 항복하여도 결코
멸망시키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왕손만을 통해 천하통일의 꿈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제가
묻겠습니다, 대인어른"
김정희가 임상옥의 얼굴을 정색을 하고 쳐다보았다.
"장왕은 처음에 솥의 크기와 무게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솥의 대소경중에서 벗어난 장왕이 그 다음에 솥을 통해
깨달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솥의 무엇을 보았기에 그는 무례한
왕에서 패왕으로 성장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인어른"
김정희도 취하고 임상옥도 취해 있었다. 임사옥은 취기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면서 대답하였다.
"...글쎄요, 모르겠소이다"
그러자 김정희가 대답하였다.
"처음에는 솥의 무게와 크기에만 관심이 있던 장왕이
왕손만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발견한 것은 바로 솥의 발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정은 세 개의 발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을 다른
말로는 삼족기라 부르고도 있습니다. '세 개의 발을 가진 그릇'
이라는 뜻이지요. 정담이라 하면 세 사람이 둘러앉아 나누는
이야기를 뜻하며, 정립이라 하면 세 나라가 서로 어우러져 서 있는
형상을 말합니다. 이러한 모든 말들은 솥이 가진 세 개의 발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나이다. 말하자면 장왕은 천하의 덕은 '솥의 크기' 와
'솥의 무게' 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크기와 무게를 받쳐주는 세
개의 발에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큰솥이라 할지라도 세
개의 발이 받쳐주지 못하면 그 솥은 뒤집어져 쓰러져버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무거운 솥이라 할지라도 세 개의 발이 조화롭게
받쳐주지 못하면 뒤집혀질 것을 장왕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잠시 말을 끊고 나서 김정희는 술을 따라 임상옥에게 내밀며 잔을
권하였다. 임상옥은 이미 대취하였으나 주는 잔을 마다할 수가
없었다. 임상옥은 예를 갖춰 두 손으로 잔을 받아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김정희는 다시 말을 이었다.
"때문에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솥의 세 발을 인간이 가진 세 가지
욕망으로 흔히 비유하여 말하곤 하였습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욕망이 있다. 그 하나는 명예욕이요, 다른 하나는 지위욕, 즉 권력에
따른 욕망이며, 나머지 하나는 재물욕이라 하였습니다.
이 세가지 욕망을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삼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노자, 장자와 더불어 도가삼서로 널리 읽혀온 열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번쇠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네 가지의 욕망 때문이다.
첫째는 수명, 둘째는 명예, 셋째는 지위, 넷째는 재물이다. 이 네
가지 것에 얽매인 사람은 귀신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며, 위세를 두려워하고 형벌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런 사람을 두고
자연의 이치로부터 도망치려는 둔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죽여도 좋고 살려도 좋다. 목숨을 제재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려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순민이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순민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운명을
거스르지 않거늘 어찌 수를 부러워하겠는가. 귀함을 뽐내지 않거늘
어찌 명예를 부러워하겠는가. 권세를 추구하지 않거늘 어찌 지위를
부러워하겠는가. 부를 탐하지 않거늘 어찌 재물을 부러워하겠는가'"
김정희는 말을 이었다.
"이처럼 자고로 중국의 도가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명예, 지위,
재물 이렇게 삼욕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솥의 세
발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도가에서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오래 살고 명예와 지위를 누리고 재물을 많이 모으려고
발버둥친다. 그러나 이것은 외물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목숨이나
명예, 지위, 재물에 초연할 수 있을 때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의
뜻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재물을 가진 사람은 명예뿐
아니라 권세까지 누리려 합니다. 권세를 가진 사람은 명예뿐 아니라
재물까지 가지려 합니다. 이것은 분명 하늘의 뜻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이 세 가지 욕망을 합쳐서 천하를 통일하여 한 사람이
누리려 하는 것은 마치 한 발을 가진 솥이 쓰러지거나 뒤집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도 같습니다, 대인어른"
말을 마치고 나서 김정희가 빙그레 웃으며 물어 말하였다.
"이제 대인어른께오서는 천하의 무뢰한 장왕이 어찌하여
'춘추오패'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군패왕으로 변신하였는지 그 연유를
알게 되셨나이까. 장왕은 솥의 크기와 무게에 벗어나 솥의 세
다리를 발견하였던 것이나이다. 장왕은 솥의 세 다리를 발견함으로써
인간에게는 누구나 세 가지 욕망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이
명예와 지위, 그리고 재물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장왕은 자신이
천자를 노리는 것은 마치 세 개의 발을 합쳐 외발로 솥을 똑바로
세우는 것 같은 불가한 일임을 깨닫고 그 이후부터 정나라와
진나라와 같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나라들을 정복하고 항복을
받았음에도 이들을 멸망시키지 않는 덕을 베풂으로써 마침내 패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정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는 노자도 마찬가지였나이다. 노자도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하였나이다. '누구나 똑똑한 자가 되고 싶고 명성을 누리기 원한다.
또 누구나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고 권세를 누리기 원한다. 또한
누구나 금은보화를 얻고 싶고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지위와
명예는 끝없는 경쟁심을 일으키고, 재물은 끝없는 욕심을
불러일으킨다. 끝없는 경쟁심과 끝없는 욕심은 백성들로 하여금 한도
끝도 없는 거짓을 야기시켜 결국 사회를 혼란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무지와 무욕, 무위야말로 백성을 다스리는 최고의 덕인 것이다'
따라서 솥의 세 발처럼 지위, 명예, 재물이 인간이면 누구나 가진 세
가지의 욕망이라면 무지, 무욕, 무위야말로 성인이 가져야 할 세
가지의 덕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나이다"
그 다음날 아침, 임상옥은 김정희의 고택을 떠났다. 김정희의 집에
머문 지 사흘만의 일이었다. 그가 서둘러 떠난 것은, 남행하여
오랫동안 마음속에 두고 있었던 곡창지대인 강경 들판을 이번
기회에 한 번 둘러보고 싶었고, 또한 한양에서 박종경 대감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희로부터 정중한 환송을 받고 이별을 하였지만 임상옥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간밤에 김정희와 더불어 마신 술이 깨지
않아 몸이 천근처럼 무거웠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큰스님 석숭이 써준 비결 '정' 자의 비밀을 아직
완전하게 밝혀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멸문지화의 사지를 벗어나기
위해서 천리길도 마다 않고 김정희를 만나기 위해서 이처럼
예산까지 내려왔던 길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솥의 무게를 물었던 홍경래의 진의는 밝혀내었지만
큰스님이 써준 비결 '정' 의 비의는 아직 밝혀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뿐인가.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한 채 큰스님의 비결만 불태워버린
것이다.
아침 나절에 예산을 떠난 임상옥 일행은 오후 무렵에 강경 근처에
도착하였다. 두 명의 종자를 앞세우고 노새 위에 앉아서 터벅터벅
강경을 지나던 임상옥은 문득 들판에서 모내기를 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보았다.
강경이라 하면 예나 지금이나 쌀농사를 많이 짓는 너른 들판으로
유명한 곳. 임상옥이 김정희를 찾을 때가 5월이었으므로 모내기가
한창일 무렵이었다. 잠시 노새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면서 한가롭게
들일을 바라보던 임상옥은 문득 들판에서 약속이나 한 듯 한 떼의
새들이 날개짓을 하면서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금강 하류에 자리잡고 있는 강경은 바다가 가까워 자연 각종
철새들이 살고 있는 도래지 이기도 하였다. 담배를 피우면서 앉아
있던 임상옥은 갑자기 날아오르는 새떼를 보면서 그것이 들오리임을
알았다.
무심코 일제히 날개짓을 하면서 날아오르는 들오리떼를 본 순간
임상옥은 갑자기 허공 속에서 손 하나가 나타나 자신의 코를 세차게
잡아 비트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야야.
임상옥은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의 코를 부여잡고 얼굴을 숙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김정희의 고택에서 첫날 밤을 지낼 무렵 우연히 한밤에 향냄새에
이끌려 밖으로 나와 향냄새가 풍겨 오는 곳을 찾아가다가, 같은
경험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날 밤에도 어둠 속에서 석숭
큰스님의 손이 돌연 나타나 임상옥의 코를 잡아 비틀었던 것이었다.
임상옥은 어째서 같은 일이 며칠 사이에 연거푸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아직도 아픔이 가시지 않는
얼얼한 얼굴을 감싸쥐면서 생각하였다.
그럴 수가 있는가.
석숭 큰스님은 지금 이곳에 있지 않다. 그런데도 어째서 실제
상황인 것처럼 허공 속에서 석숭 큰스님이 손이 나타나 생생하게
자신의 코를 잡아 비트는 것일까.
임상옥은 긴 담뱃대를 빨면서 묵묵히 생각하였다.
그러자 문득 추월암에 있으면서 석숭 스님으로부터 환속 허가를
받기 위해 찾아갔던 그날 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밖에는 소나무 숲을
달려가는 솔바람소리가 말발굽소리처럼 들려오고 있었지만 방안에는
호롱불 하나만 깜박이고 있을 뿐 적적한 깊은 밤이었다. 긴장해서
앉아 있는 임상옥에게 느닷없이 석숭이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가리키면서 소리쳐 물어 말하였다.
"이게 무엇이냐"
임상옥은 큰스님이 가리킨 손끝을 보았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허공입니다"
"허공이 보이느냐"
"보이지는 않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허공이 있느냐"
"있긴 있습니다"
"그럼 너는 그 허공을 잡아올 수 있겠느냐"
임상옥은 대답하였다.
"잡아오도록 하여 보겠습니다"
"그럼 잡아오도록 하여 보아라"
임상옥은 파리채를 들어올려서 허공에서 빙빙 돌려 보았다. 어느
한순간 임상옥은 파리채로 타악- 소리가 나도록 허공을 후려쳤다.
"잡았습니다"
"잡았으면 허공을 보여다우"
임상옥이 파리채를 들어올리자 석숭이 큰소리로 할하면서
말하였다.
"허공이 어디 있느냐. 보이지 않지 않느냐"
순간 석숭은 파리채를 들어 임상옥의 머리통을 세차게 후려쳤다.
임사옥은 무안해서 겸연쩍은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큰스님께서는 허공을 잡을 수 있습니까"
"나야말로 잡을 수 있지"
"그럼 허공을 잡아 보여 주십시오"
"보여주다마다"
석숭은 갑자기 옷소매를 걷었다. 그는 두 손을 휘둘러 허공을 향해
내저었다. 어느 순간 그 손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임상옥의 얼굴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 손은 임상옥의 코를 잡아 비틀었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내가 잡은 허공이다"
석숭이 잡은 손은 가차없었다. 코를 떼어낼 듯이 석숭은 임상옥의
코를 잡아 비틀었다. 저도 모르게 임상옥은 아야아- 하고 비명을
질렀다.
"내가 잡은 허공이야말로 진짜의 허공이다. 아야아 하고 비명까지
지르니까"
죽을 맛이었다. 환속을 허락 받기 위해서 찾아간 임상옥은
허락대신 코가 떨어질 만큼의 호된 아픔을 맛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참담한 마음으로 큰스님의 방을 나온 임상옥은 다음날 채마밭에
나아가 거름을 주고 밭이랑을 고르고 있다가 스승 법천에게 간밤에
있었던 일을 낱낱이 고하였다. 그러자 법천은 말하였다.
"옛날 마조 선사에게 백장이라는 큰 제자가 있었다. 백장은 마조의
제자 중 단연 으뜸이라 해서 어금니라 불리우곤 하였다. 어느 날,
백장은 스승인 마조 스님을 모시고 들판을 지나게 되었다. 이때 두
사람은 들판에 앉았다가 인기척에 놀라 날아가는 들오리떼를 보았다
이때 마조 스님이 물었다. '저것이 무엇인가' "
스승 법천은 임상옥에게 말을 이었다.
"그러자 백장은 대답하였다.
'들오리입니다'
다시 스승 마조가 물었다.
'어디로 갈까'
백장은 대답했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마조가 갑자기 머리를 돌려 제자 백장의 코를 비틀었다.
이에 백장이 아픔을 참으면서 아야아- 하고 비명을 질렀는데 마조
스님이 다시 물어 말하였다.
'다시 한번 날아가 버렸다고 말해 봐라'
이렇듯 마조는 제자를 깨우치기 위해 백장의 코를 잡아 비틀었고
큰스님도 너를 깨우치기 위해 네 코를 잡아 비틀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큰스님을 원망해서는 안되고 큰스님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마땅히 옳을 것이다"
임상옥은 뉘엿뉘엿 해가 기우는 들녘에 앉아서 묵묵히 십수년
전에 들었던 스승의 말을 떠올렸다. 느닷없이 큰스님의 손이
허공에서 나타나 임상옥의 코를 세차게 비틀었던 것은 이처럼
갑자기 날개짓을 하면서 날아오르는 들오리떼를 본 순간 까마득히
잊고 있던 마조와 백장의 선화가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다가 돌연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랐기 때문이 아닐 것인가.
임상옥은 손을 들어 가만히 자신의 코를 만져 보았다. 거짓말처럼
사정없이 잡아 비튼 고통으로 코 끝에는 아직 얼얼한 아픔이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약속이나 한 듯 떼지어 날아갔던 들오리떼들이 다시 허공을
선회하여 들판에 내려앉았다. 새떼들의 모습을 보는 임상옥의
마음속에 돌연 번득이는 영감이 떠올랐다.
마조가 제자 백장의 코를 비틀어 보인 것은 새가 날아가버린 것이
아니라 바로 백장 코 위에 앉아 있음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큰스님 석숭이 임상옥의 코를 비틀어 보인 것은
임상옥의 코가 바로 허공임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코는 항상
얼굴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그것은 움직이거나 날아가지 않고
항상 면전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소에는
있는지조차 모르는 존재이지만 쥐어뜯으면 아픈 것이다. 큰스님
석숭은 코를 쥐어뜯어 아픔을 느끼게 함으로써 가장 가까운 곳에
코가 있음을 깨우쳐 준 것이다. 그렇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 눈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코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임상옥은 '정' 자의 비밀을 깨우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임상옥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고 전하여진다.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켜보던 종자들이
주인어른이 행여 실성하였는가 걱정이 되어 만류하였지만 임상옥은
내쳐 노래까지 부르며 춤을 추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들녘에서
모내기를 하던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기웃거렸지만
임상옥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노래하고 한참을 춤추었다.
한바탕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나서 임상옥은 종자들을 시켜
방석을 가져오게 하였다. 방석을 가져오자 임상옥은 먼저 방위를
짚어 북쪽을 정한 후 그 방위를 향해 방석을 깔았다. 그런 후 의관을
정제하고 나서 임상옥은 정중하게 삼배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그곳은 큰스님 석숭이 있는 곳을 향한 방위였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큰스님이 있는 곳을 향해 삼배를 올림으로써
임상옥은 '솥 정' 자의 비결을 전해주어 자신을 결정적인 위기에서
구해준 스승의 은혜에 대해 보은을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었다.
"큰스님"
삼배를 올리면서 임상옥은 소리내어 말하였다.
"큰스님의 은혜는 백골난망이나이다. 부디 옥체보존 하시옵소서"
정중하게 삼배를 올린 후 임상옥은 다시 방석을 들고 이번에는
김정희가 사는 곳을 향해 펼쳐 깔았다. 그리고 나서 임상옥은 또다시
김정희를 향해 정중하게 삼배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생원어른"
삼배를 올리면서 임상옥은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생원어른으로부터 '솥 정' 의 비결을 밝혀낼 수 있었나이다.
생원어른이야말로 제게 있어 큰 스승이나이다. 부디 명신보중
하시옵소서"
우연히 노새를 타고 가다가 잠시 들녘에 앉아 쉬면서 들판에서
날아오르는 새떼를 본 순간 큰스님 석숭이 내려준 '정' 자의 화두를
타파한 것이다.
3
임상옥이 다시 고향 의주로 돌아온 것은 막 성하가 시작되는
초여름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임상옥은 여독도 채 풀리기 전에 한밤에 주안상을
마련한 후 홍경래와 박종일을 함께 불러들였다.
"대인어른"
홍경래가 문안인사를 올리면서 말하였다.
"일들은 모두 잘 치르셨나이까"
"물론이네"
임상옥이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그동안 집안에 별일이 없었는가"
그러자 박종일이 한마디 거들어 말하였다.
"별일이 있겠습니까. 홍 서기가 워낙 일을 잘하여서 전혀 문제가
있을 리 없나이다"
"물론 그러하겠지"
세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기 위해 잔을 돌리면서 술을
나눠 마시기 시작하였다. 주로 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을 임상옥이
털어놓고 홍경래와 박종일은 이를 듣고 담소하는 일종의 환담이었다.
밤이 이슥하여 파장될 무렵이 되자 임상옥은 정색을 하고
홍경래에게 물어 말하였다.
"여전히 홍 서기는 내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니 무엇으로 그
은혜를 갚았으면 좋겠소. 아직도 청동솥을 갖고 싶은 것이 홍 서기의
유일한 소원이란 말인가"
임상옥이 묻자 홍경래가 대답하였다.
"물론이나이다, 대인어른"
홍경래가 고개를 숙이면서 말을 이었다.
"하오나 대인어른께오서 쇤네와 약조하지 않으셨나이까. 저
청동솥의 무게를 직접 가르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그렇게 하였네"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청동솥의 크기와 솥이 무게를 반드시 알아서 그 대소경중의
여부를 그대에게 반드시 가르쳐 주겠다고 내가 약속하였지"
"그렇다면 그 무게를 알아보셨습니까"
홍경래의 눈빛이 번득였다.
번득이는 홍경래의 눈빛을 담담한 표정으로 받으면서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물론 알아보았네. 솥의 무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덕이 있고
없음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았지. 또 덕이 있으면 솥이 가볍다해도
무거울 것이고, 덕이 없으면 솥이 무겁다해도 가벼울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내었네"
"그러하면 대인어른께 묻겠습니까"
홍경래가 역시 번듯이는 눈빛으로 물어 말하였다.
단도직입의 질문이었다. 이를테면 솥으로 상징되는 왕조의 운명이
덕이 있어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냐, 아니면 왕조의 운명이 덕이
없어 끊겼으니 함께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왕조를 창립할 것인가를
묻는 교묘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이에 임상옥은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대답하기 전에 내가 먼저 홍 서기에게 묻겠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청동솥이 가볍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무겁다고
생각하는가"
"쇤네는 저 청동솥의 무게가 아주 검불처럼 가볍다고
생각하나이다"
잠시 짧은 침묵이 흐른 후 임상옥이 다시 입을 열어 말하였다.
"허지만 고사에 이르기를 덕이 있으면 청동솥의 무게가 가벼워도
무겁다고 말하였네. 그러하면 저 청동솥의 덕도 무게가 무게처럼
가볍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무게는 가볍더라도 덕은 무겁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이에 홍경래는 대답하였다.
"무게가 검불처럼 가벼운데 어느 곳에 덕이 있겠습니까"
그의 눈빛이 횃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허어, 그러한가"
홍경래의 단호한 대답을 들으면서도 임상옥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임상옥은 말을 이었다.
"홍 서기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하겠네.
그리고 홍 서기의 의견을 따르겠네. 청동솥의 무게가 가볍다고
생각한 홍 서기의 의견대로 무게가 가볍다고 생각할 것이며, 무게가
가벼울 뿐 아니라 부덕하다는 홍 서기의 의견대로 나도 그 솥이
부덕하다고 생각할 것이네"
"...고, 고맙습니다"
순간 홍경래의 눈빛에 살기가 번득였다. 이것으로 되었다고
홍경래는 생각하였다. 이것으로 지난봄 이희저의 서장을 갖고
상인으로 변장하여 임상옥의 상가로 숨어 들어온 소기의 목적은
거둔 것이다. 마침내 자신의 의견대로 솥의 무게가 가볍다고
생각하고 부덕하다고 생각함으로써 둘이서 함께 솥을 뒤집어엎는
정혁의 역성혁명을 일으키겠다고 임상옥은 맹세하고 있지 않은가.
임상옥을 혁명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을 거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뜻모를 문답을 영문도 모르고 지켜보던
박종일이 비로소 입을 열어 말하였다.
"이제는 저 솥을 가져가겠는가"
"물론입니다"
"그럼 가져가시게나"
홍경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방 한구석으로
다가가서 덮여져 있는 청동솥의 흰 보자기를 벗겨 들었다. 비록
크기는 크지 않아도 장정 서너 명이서 들어올려야만 겨우 움직일
만큼의 엄청난 무게의 청동솥이었다.
홍경래는 그 엄청난 청동솥을 단숨에 번쩍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청동솥을 홍경래가 들어올리는 순간 솥을 받치고 있던 세 발
중에서 발 하나가 동강 부러져나갔다. 놀란 홍경래가 다시 솥을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솥은 먼젓번처럼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솥을 받치고 있던 세 발 중의 하나가 부러져나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동솥은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뒤엎어졌다.
좀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솥의 발이 부러져 뒤엎어지자
홍경래는 놀란 눈빛으로 임상옥을 쳐다보았다. 어느 순간 홍경래의
얼굴에서 사태의 추이를 짐작한 것 같은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홍경래는 묵묵히 한쪽 발이 부러져나간 청동솥을 번쩍 들고는
말하였다.
"주시니 감사하게 받겠나이다"
그 길로 홍경래는 술자리를 벗어나 사려져버렸다. 임상옥과 박종일
단 두 사람이 남게 되자 박종일이 먼저 입을 열어 말하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청동으로 만든 솥의 발이 갑자기 부러져
나가다니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솥이 아니었습니까. 녹이
슬어 갑자기 부러져나갔을까요"
청동솥을 통째로 홍경래가 들고 나간 방바닥에는 아직도 부러진
총동솥의 외발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 그 떨어져나간 다리를 들고
박종일이 말하였다.
"귀신이 곡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단단한 청동솥의 다리가
엿가락 부러지듯 동강나버렸으니 말입니다"
물론 박종일의 표현은 정확한 것이었다. 청동솥의 다리가 동강나
부러지는 것은 귀신도 곡할 일이었던 것이다. 눈치빠른 천하의
박종일이라 하더라도 그 청동솥의 다리를 임상옥이 미리 분질러놓은
후 아슬아슬하게 힘을 받고 서 있게 했다가 누구든 손만 대면
쓰러지도록 교묘하게 위장하고 있었음을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미리 청동솥의 다리를 부러뜨려 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바로 그것이 큰스님 석숭이 내려준 비결 '정(鼎)' 의 참뜻이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큰스님 석숭이 내려준, 멸문지화를 벗어날 '정'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 천리길도 마다 않고 예산으로 김정희를 만나러 갔었다.
그러나 임상옥은 그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고 홀로 돌아오다가 강경
벌판에서 갑자기 떼지어 날아오르는 들오리들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 들오리들을 본 순간 임상옥은 갑자기 허공에서 석숭의 손이
나타나 자신의 코를 비트는 고통을 느꼈으며 그 충격속에서
임상옥은 활연대오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헤어지기 전날 밤 이미 김정희의 말을 통해 '정' 자의 비밀은
밝혀진 셈이었다. 그럼에도 임상옥은 김정희의 말이 마음에 와닿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눈에서 가장 가까운 얼굴의 정중앙에 있으면서 보이지 않아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코를 잡아 비틀어 고통을 줌으로써 진리는
코처럼 바로 눈앞에 있음을 깨우쳐 준 석숭 스님의 행동을 통해
임상옥은 순간 '정' 자의 비밀을 깨우칠 수 있었던 것이다.
석숭 스님은 '정' 자의 비결을 내려줌으로써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경책을 내리신 것이다. 석숭 스님은 김정희의 말처럼 인간에게는
누구나 '솥' 의 세 발과 같은 욕망이 있음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세 가지의 욕망, 지위, 재물, 명예 중에서
나는 이미 하나의 욕망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재물의
욕망인 것이다. 나는 조선왕조 제일의 거부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솥의 세 다리 중에서 이미 다리 하나의 욕망은 이룬 것이다.
그러나 내가 홍경래를 도와 혁명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욕망, 권력의 욕망을 이루려 함인 것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지위, 명예, 재물의 세 가지 욕망이 있음을
김정희의 입을 통해 가르쳐준 석숭 큰스님은 마침내 세 사람의
인물을 통해 보다 더 극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석숭 큰스님이 보여준 세 사람의 인물.
그 하나는 김정희이며, 또 하나는 홍경래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바로 임상옥 그 자신인 것이다.
김정희는 천하제일의 거유을 꿈꿀 정도로 학문에 힘쓰는 학자이다
문인이다. 그러므로 굳이 말한다면 그는 인간이 가진 욕망 중에서
'명예' 를 추구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홍경래는 썩은 왕조를
무너뜨리고 천지개벽의 혁명의 꿈꿈으로써 지위, 즉 천하의 권세를
추구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임상옥 자신은 누구인가.
임상옥 자신은 천하제일의 상인이 될 것을 꿈꾸었던 사람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희는 '명예' 의 화신이고 홍경래는 '지위' 의
화신이며 임상옥은 '재물' 의 화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명예를 가진 사람이 재물을 탐한다면 솥의 다리가
부러져 솥이 쓰러져 뒤집히듯이, 명예를 가진 김정희가 재물의
임상옥이 되기를 꿈꾼다면 이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재물을 가진 임상옥이 천하의 권세를 꿈꾸는 홍경래와
한 인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하나의 인물이
되려고 한다면 이는 반듯이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되어
하늘로부터 무서운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임상옥이
혁명에 참여하는 것은 마치 '재물' 을 가진 사람이 권력마져 탐하여
솥이 쓰러져 뒤집히는 것처럼 하늘의 명령을 거스르는 일인 것이다.
이것이 큰스님 석숭이 가르쳐 주신 삼족이 멸망하고 능지처참을
당하는 멸문지화의 길인 것이다.
임상옥의 강경의 들판에서 깨우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바로 그 기쁨 때문에 임상옥은 그 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으며, 그리고 나서 멍석을 깔고 큰스님이 계신 곳과 김정희가
있는 곳을 향해 세 번이나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던 것이다.
스승 석숭이 내려준 '정' 자의 참위 예언을 미리 꿰뚫어 봄으로써
임상옥이 취할 선택은 자명해졌다.
그것은 홍경래의 혁명에서 물러서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홍경래에게 혁명에서 발을 빼고 참여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뜻을
밝힐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를 대면하고 그의
면전에서 분명하게 자신의 뜻을 밝힐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다. 첫날 그를 첫 대면하였을 때부터
임상옥은 그의 눈빛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때로는 그의
눈빛이 살기를 띠고 있음도 종종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혁명을
도모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죽음을 무서워할 사람도 아닐
것이다. 만약 천기가 누설될 경우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칼을 들어 자신의 목을 벨 것을 망설일 홍경래가 아닌
것이다.
그제서야 임상옥은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혁명군의 괴수 홍경래가 이희저의 서장을 갖고 자신의 상가에
점원으로 취직하였던 것은 오직 자신을 혁명에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임상옥은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홍경래가 자신의 상가고 직접 들어온 것은 마치 '호랑이 새끼를
잡기 위해서 호랑이 굴로 들어온 것' 과 같은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호랑이 굴로 들어온 홍경래를 어떻게 굴 밖으로 무사히 쫓아낼
수 있을까 하는 방법뿐인 것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단신으로 숨어 들어온 홍경래를 빈손으로
무사하게 굴 밖으로 쫓아내는 방법, 쫓아내어 돌아가게 하는 방법은
단 하나.
솥의 발을 부러뜨리는 일인 것이다.
홍경래는 솥의 크기와 가볍고 무거움의 정도를 묻는 것으로
임상옥에게 혁명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참여치 않을 것인가
양자택일의 선택을 직접 물어온 것이다. 따라서 임상옥도 솥을 통한
암유로 이 질문에 우회적인 답변을 내려할 할 것이다.
홍경래가 '솥을 통해 질문' 을 해왔다면 임상옥도 '솥을 통해 대답'
하여야 할 것이다.
솥을 통한 대답으로 혁명에 참여치 않겠다는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전하는 단 하나의 방법.
그것은 솥의 발을 미리 부러뜨려놓는 일일 것이다.
홍경래도 직접 자신의 입을 통해 천기를 누설한 것은 아니다. 다만
솥의 무겁고 가벼움의 정도를 물어온 것뿐이다. 임상옥도 분명하게
거절의 말을 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솥의 다리를 미리 부러뜨려
놓아 솥발이 부러져 솥을 뒤엎게 함으로써, 그것이 혁명에 참여하는
것은 이처럼 솥발이 부러지는 것처럼 능력 밖의 일이며 주제를
넘어선 과욕임을 넌지시 전하고 있는 것이다.
임상옥은 돌아오자마자 자신이 직접 청동솥의 다리를 부러뜨려
놓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부러뜨린 다기를 간신히 버팀목으로
아슬아슬하게 세워놓아둔 후 곧바로 주안상을 차려 홍경래와
박종일을 불러들였던 것이다.
임상옥의 생각은 적중하였다.
홍경래가 가볍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가볍다고 생각할 것이며
홍경래가 솥의 무게다 무겁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무겁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임상옥의 대답에 드디어 자신의 뜻대로 되었다고 쾌재를
부르던 홍경래가 솥을 번쩍 들려는 순간 동강나 부러져 나가는 솥의
다리를 보았을 때 얼굴에 스쳐가던 어두운 표정을 임상옥은 놓치지
않고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모든 것은 끝났다.
홍경래의 얼굴에서 스쳐가던 미묘한 실망과 분노의 그림자를 엿본
순간 임상옥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과연 그러하였을까.
솥의 다리를 미리 부러뜨려 놓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이었을까.
4
그날 밤.
자정이 넘은 깊은 한밤중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임상옥이 잠자고
있는 안채의 담장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는 잠시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따금 노복들이 순시를
돌곤 하였으므로 사내는 행여 인기척 소리가 들려오는가를 귀를
기울여 들어 보았다. 그러나 사위는 깊은 정적에 빠져 있었다.
이윽고 담을 넘어 들어온 안채에 아무런 동요가 없음을 확인한
검은 그림자는 빠르게 움직여 마당을 가로질렀다.
일순 구름을 벗어난 달에서 대낮 같은 광채가 뿜어나왔다. 그러자
사내는 민첩하게 층계를 올라 마루 위로 올라섰다. 짚신을 벗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사내의 발은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그 별당은 임상옥이 잠을 자고 있는 곳이었다. 임상옥은 가족들이
살고 있는 본채에서 따로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내는 언젠가 한번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임상옥을 이곳까지
업어서 바래다 준 적이 있었으므로 이곳이 임상옥이 거처하는
곳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날이 밝기 전에 이곳을 떠날 것이다.
사내는 입에 물었던 단도를 빼어들어 손으로 거머쥐면서
생각하였다.
성문이 열리자마자 의주읍을 빠져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내는
발끝으로 걸어서 조심스레 마루를 건넜다. 몸무게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나무로 만든 마루가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소리를 내었다.
떠나기 전에 마무리를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지난봄.
우군칙은 홍경래에게 단호한 어조로 힘주어 말했었다.
"만약에 임상옥의 마음을 바꿀 수가 없다면 베어야 할 것은 그의
혀가 아니라 그의 목이나이다. 목을 베어 숨통을 끊어버려야만
천기를 보존할 수 있게 되나이다. 내 말을 명심하소서"
우군칙의 말은 정확한 것이었다. 천기를 누설치 아니하고 보전하기
위해서는 임상옥의 혀를 자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한 것이다. 하늘의
밀지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임상옥의 목을 베어 성명을
끊어버려야만 후환이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지난밤 홍경래는 가져가기 위해 무거운 청동솥을 들어올렸을 때
두 동강으로 부러져나가는 솥의 다리를 보았었다. 바로 그 순간
홍경래는 임상옥이 미리 그 다리를 분질러놓았음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으로 임상옥이 자신의 혁명에 참여할 뜻이 전혀 없음을
분명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임상옥의 뜻을 정확하게 알게 된 이상 이곳에 머물 필요는 없게
된 것이다.
우군칙의 충고대로 임상옥의 목을 베어 숨통을 끊어버림으로서
천기를 누설치 아니하고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그가 반항하려
한다면 그의 심장을 찔러서라도 그를 잠재워야 할 것이다.
홍경래는 가만히 손을 들어 방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다행히
문은 잠겨져 있지 않아 가볍게 열렸다. 날이 더웠으므로 덧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 있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방문은 소리없이 열렸다.
한 사람쯤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이 열리자 홍경래는 오른손으로
단도를 옮겨서 거머쥐고 살그머니 방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들려왔다.
"홍 서기 아니신가. 이 밤중에 이곳엔 웬일이신가"
자지러지게 놀란 홍경래의 눈에 어둠보다 더 밝은 임상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밤소리는 멀리 가는 법. 임상옥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임상옥은 낮에 보았던 홍경래의 살기 띤 눈에서 지금의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중요한 것을 가져가기 위해서 온 것이오"
예기치 못한 상황에 홍경래의 목소리는 오히려 파르르 떨렸다.
"가져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한층 낮은 목소리로 임상옥이 물어 말하였다.
"무엇이든 갖고 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씀을 하시게나. 돈인가
아니면 물건인가"
"내가 가져갈 것은 돈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오"
홍경래가 대답하자 임상옥이 다시 물어 말하였다.
"그럼 무엇인가. 돈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라면"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바로 그대의 목숨을 가져가기 위해서 온
것이오"
순간 홍경래의 칼이 임상옥의 목을 향해 겨냥되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무시무시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어디선가 새벽을
알리는 듯 닭의 울음소리가 아스라히 들려오고 있었다.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마음이 급해졌는지 홍경래가 급하게 말을
뱉었다.
"그러니 순순히 목숨을 내게 내놓으시오"
순순히 목숨을 내놓으라는 말에 임상옥이 멈칫거리며 조용히 물어
말하였다.
"어째서, 내 목숨이 필요하단 말이신가. 내 목숨을 가져
무엇하겠는가"
그러자 홍경래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잘랐다.
"내가 그대의 목숨이 어째서 필요한 것인지 그 연유를 정녕
모르겠단 말이오"
"모르겠소"
단호하게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예로부터 죽을 사람에게는 그 죽을 이유를 가르쳐 주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오. 그대가 정녕 내 목숨이 필요해서 이렇게
찾아왔다면 나도 그 이유를 죽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하겠소"
전혀 두려움이 없는 당당한 요구였다.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거나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는
임상옥의 태도 앞에 홍경래도 마음이 움직였다.
"그렇게 물으니 내가 대답해 드리겠소"
임상옥의 목을 겨냥한 칼끝을 여전히 날카롭게 치켜세운 채
홍경래가 차분하게 말하였다.
"그대는 못 봐야 할 것을 너무 많이 보았으며 또한 못 들어야 할
것을 너무 많이 들었소. 또한 몰라야 할 것을 너무 많이 알게되어
단지 그대의 혓바닥을 베는 것만으로는 천기를 보존할 수가 없게
되었소. 내가 이렇게 한밤을 틈타 그대를 찾아온 것은 그대의 목숨을
가져가기 위함이오. 그대라면 모든 것이 무사할 수 있기 때문이오"
그러자 임상옥이 받아 말하였다.
"나는 그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으며 아무것도 듣지 못하였소. 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그대가 누구인지도 모르오. 따라서 그대가 내 곁을 떠난다 해도
그대가 어디로 갈지도 모르오. 허나 만약 그대가 나를 죽인다면
그것은 차라리 어리석은 일이오. 내가 죽어 발각된다면 그대는 날
죽인 살인자로 수배를 받게 되어 오히려 만천하에 그 정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오. 옛말에도 그러한 말이 있소. 내 입을 막기
위해서 나를 죽인다 해도 이는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나도 알고,
그대도 알고 있는 일이오. 그러나 만약 그대가 이대로 내 곁을 떠나
사라진다면 이는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그대도
모르는 일이오. 자, 그러니 둘 중의 하나를 택하시오. 나를 죽여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나도 알고, 그대도 아는' 길을 택하겠소,
아니면 나를 살려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그대도
모르는' 길을 택하겠소"
자신을 죽이러 온 홍경래를 설득한 임상옥의 말이야말로 세치의
혀바닥으로 천하를 얻은 세객을 연상케 한다.
심상옥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만약 홍경래가 임상옥의 입을
막기 위해서 칼로 목을 찔러 죽인다면 입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홍경래는 쫓기는 자가 되어서 전국의 관원들에게 수배를
당하여 더욱 쉽게 천기를 누설케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임상옥의 변설대로 임상옥이 홍경래를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따라서 홍경래가 온 적도 없고 간
적도 없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그대도 모르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홍경래는 임상옥의 말이 훨씬 현명한 것임을 깨달았다. 순간
홍경래는 목숨을 겨냥하기 위해서 세워들었던 칼을 임상옥의 목에서
치웠다.
"나는 그대를 모르오"
임상옥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본 적도 없고 아무것도 들은 적도 없소. 안 그대를
만난 적도 없고, 그대 또한 나를 만난 적도 없소. 따라서 그대는
내게 온 적도 없고 간 적도 없소. 그러니 얼른 가시오. 이곳을 떠나
날이 밝기 전에 성문을 빠져나시오"
어둠 속에서 새벽을 재촉하는 닭의 울음소리가 꼬끼오-하고 다시
들려왔다.
목숨을 빼앗으러 왔다가 오히려 설득당한 홍경래는 그러나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배신하여 입을 열게 되면 그땐 반드시
그대에게 보복을 할 것이오. 이 말을 명심해 두시오"
그러자 임상옥이 말을 받았다.
"난 이미 그대의 손에 죽은 목숨과 다름이 없소. 안 이미 그대의
칼에 죽은 목숨이오. 죽은 목숨이 어찌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할
것이고, 죽은 목숨이 무슨 배신을 할 것이오"
순간 홍경래의 눈빛이 번득였다. 그의 눈빛에서 다시 소름끼치는
살기가 뿜어져나왔다.
"그대의 곁을 떠나기 전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소"
그는 꺽었던 칼을 다시 세웠다.
홍경래는 임상옥이 앉아 있던 보료 위를 쳐다보았다. 보료 위
머리맡에는 임상옥의 옷과 갓과 같은 의관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놓여져 있었다. 홍경래는 손을 들어 임상옥의 옷과 갓을 가져다가
방바닥에 펼쳐 놓았다.
"예로부터 그 사람이 입던 옷에는 그 사람의 신령이 깃들어 있는
법이라 하였소. 또한 그 사람이 쓰던 갓에는 그 사람의 혼백이
깃들어 있는 법이라 하여 사람들이 입고 쓰는 옷은 신물이라고
부르곤 하였소. 나는 이제 그대의 목숨을 빼앗는 대신 이 옷을 베고,
이 갓을 찔러 숨통을 끊어버리겠소. 이 옷과 갓의 숨통을
끊어버림으로써 그대의 목숨을 끊은 것으로 대신하겠소. 그러하니
이것으로 그간 있었던 인연과 정의를 끊고 입을 굳게 다물어 밀지를
보존하여 주시오. 이를 맹세하겠소"
홍경래가 눈빛을 번득이며 물었다. 임상옥은 한 자 한 자 끊으며
맹세하여 말하였다.
"반드시 약조를 지키겠소"
홍경래의 손이 번쩍 허공으로 치켜올려졌다. 허공을 가르며
홍경래의 손이 섬광처럼 일렁거렸다. 칼이 임상옥의 갓 위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그와 동시에 홍경래의 손이 춤을 추며 흔들렸다. 임상옥의 깃이
갈갈이 찢겨졌다. 비록 선혈이 낭자하지는 않았지만 처참한 살육의
현장이었다.
"잘 있으시오"
한바탕의 살육이 끝난 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홍경래는 한순간
임상옥을 마주보았다. 그리고는 비호처럼 열린 방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임상옥은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구름을 벗어난 달빛이 온누리에 펼쳐져 있어 시야는 대낮처럼
투명하였다.
임상옥은 바람을 가르듯 방문 밖으로 날아간 홍경래의 몸이 순간
허공을 솟구쳐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도저히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분명히 나는 새의
모습이었다.
허공을 날아 담장 위에 올라선 홍경래는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마루 위에 선 임상옥을 보았다. 두 사람의 눈은 짧게 마주쳤다.
뭐라고 말을 할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홍경래는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훌쩍 담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그것이 임상옥이 본 홍경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세기의 풍운아,
조선왕조 최고의 혁명아였던 홍경래의 최후 모습이었던 것이다.
홍경래가 사라지자 임상옥은 갈갈이 찢긴 자신의 옷과 갓 위에
꽂혀 있는 홍경래의 칼을 보았다. 홍경래의 단도는 여전히 그곳에
꽂혀 있었다. 비록 임상옥의 목숨을 앗으러 와서 임상옥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꾸긴 하였지만 만에 하나라도 입을 열어 자신을 밀고하면
그땐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 보이기라도 하듯
단도는 갓을 찌르고, 방바닥 깊숙이 박혀 있었다.
날이 밝기 전에.
임상옥은 찢긴 옷들을 주섬주섬 거둬들이며 생각하였다.
이 물건들을 모조리 없애버려야 할 것이다.
임상옥은 찢긴 옷들과 갓을 들고 마당으로 내려와 불을 질러
태우기 시작하였다.
조금 있으면 날이 밝아 노복들이 나타날 것이므로 그들이 깨기
전에 이 물건들을 태워버려야 할 것이다. 자신이 입던 옷과 갓을
태우면서 임상옥은 생각하였다.
이 옷들은 나의 가구이다.
홍경래의 말처럼 이 옷에는 나의 신령이 깃들어 있고 이 갓
속에는 내 혼백이 깃들어 있는 신물인 것이다. 이 옷들을 태움으로써
홍경래에게 있어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인 것이다.
옷을 모두 태우고 나자 남은 것은 오직 홍경래의 칼 하나뿐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임상옥은 생각하였다.
자신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서 상가에 들어올 때부터 비상용으로
준비해 두고 있었던 홍경래의 칼. 이 단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임상옥의 눈에는 후원에 있는 우물의 모습이 들어왔다. 깊은
우물이었다. 아무리 가물어도 전혀 물이 마르지 않는 우물이었다.
임상옥은 칼을 들고 우물 쪽으로 걸어갔다.
이 속에 칼을 넣어 떨어뜨린다면 영원히 홍경래의 칼은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임상옥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속이 깊어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물 속에는 물이 가득 차 있어 생선비늘처럼 달빛이 찰랑이고
있었다. 임상옥은 홍경래의 칼을 우물 속에 떨어뜨렸다. 맑은
물소리가 일어나더니 엷게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이제 모두 끝났다.
임상옥은 손을 털면서 마당을 가로질러 마루 위로 올라갔다.
그날 아침. 임상옥의 상가는 발칵 뒤집혔다.
간밤에 홍 서기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임상옥의
상가에 출입하는 모든 물건들을 받아들이고 내놓는 일을 도맡아하는
사람이 바로 홍경래였고, 곳간의 열쇠를 전담하고 있는 사람이 홍
서기였으므로 그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할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으므로 하인들은 이제나 저제나 홍 서기가 잠에서 깨어나
나타나기를 기다렸는데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나타나지 않자 하인
하나가 홍 서기가 자고 있는 방까지 찾아가 보았다.
문 밖에서 큰소리로 서너 번 외쳐도 방문이 열리지 않자 하인은
밖에서부터 문을 덜컹 열어 보았는데 놀랍게도 방안은 텅비어
있었다. 사라진 것은 홍 서기뿐 아니라 그가 쓰고 입던 생활용품
모두가 한꺼번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다못해 홍 서기가 신었던 짚신까지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깨끗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 소문은 즉시 박종일에게 전해졌으며 박종일은 혹시 귀중한
물건이 없어졌는가 곳간을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사라진 것은
홍경래의 몸일 뿐 없어진 것은 전혀 없었다.
박종일은 곧바로 임상옥을 찾아갔다.
"형님, 기침하셨습니까"
성급한 박종일의 목소리에 천천히 문을 열고 임상옥이 물어
말하였다.
"무슨 일이신가"
"밤에 해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해괴한 일이라니"
"홍 서기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임상옥은 따로 안채에서 가져온 옷을 입고 갓을 쓰고 나서 정색을
하고 물어 말하였다.
"무슨 소리인가. 홍 서기가 사라져버렸다니"
"글쎄 말입니다요. 홍 서기가 하늘로 솟구쳤는지 땅으로
꺼져버렸는지 흔적조차 없습니다.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샅샅이 곳간을 뒤져 보았습니다만 없어진 물건도 없고..."
"이 사람아"
임상옥이 꾸짖어 말하였다.
"홍 서기가 남의 물건을 탐할 사람인가"
"물론 그렇습니다. 하오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앞장서게나. 함께 홍 서기의 방으로 가 보세나"
박종일을 앞세우고 임상옥은 홍경래의 방으로 함께 가 보았다.
과연 박종일의 말대로 홍경래의 방은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텅 비어
있었다.
방안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간밤에 들고 갔던 청동솥뿐이었다.
다리 하나가 부러졌으므로 청동솥은 쓰러져 뒤집혀져 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박종일이 임상옥의 눈치를 살피면서 물어 말하였다.
"글쎄. 낸들 알겠나"
방문을 닫으며 임상옥이 말하였다.
"올 때부터 어디서 온 사람인지 몰랐으니 갈 때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홍경래의 방을 떠나며 임상옥은 생각하였다.
홍경래는 내 곁에서 사라졌다.
나는 홍경래를 만난 적도 없고, 그를 본 적도 없다. 그에게서
아무것도 들은 적이 없고, 또한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한 적이 없다.
홍경래는 이곳에 온 적도 없으며, 따라서 이곳에서 떠난 적도 없는
것이다.
@[제2장 혁명의 종말@]
1
1811년 순조 11년 12월 18일.
마침내 홍경래가 이끄는 혁명군 2천 명은 다복동에 있는 대본영을
출발하여 진군을 시작하였다. 혁명군의 진영은 다음과 같았다.
평서대원수 홍경래
총참모 우군칙
모주 김창시
선봉장 홍총각
선봉장 이제초
후군장 윤후험
도총 이희저
부원수 김사용
이들의 진용에 대해서 참모들 간에 약간의 불평은 있었지만
대원수인 홍경래의 용단이었으므로 별 의의는 없었다. 무식하면서도
혈기왕성한 홍총각에게 선봉장이라는 중임을 맡겼다는 게 주로
우군칙과 김창시의 불평이었으나 홍경래는 원안대로 밀고 나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황혼이 깃드는 저녁 무렵.
혁명군은 다복동 앞을 흐르는 대령강 한가운데에 있는 신도에
집결하여 출진식을 거행하였다.
홍경래는 대원수의 복장을 하고 제단 위에 올라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낸 후 모주 김창시로 하여금 혁명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격문을 낭독케 하였다.
격문을 낭독한 후 홍경래 대원수는 군령을 어기는 자는 사정없이
참한다는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고 혁명군은 천하를 뒤엎을 듯한
함성과 함께 가산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원래 임신년 정월을 기해 기병하기로 했던 거사 계획이 이처럼
열흘 이상 앞당겨진 연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거사일이 다가오자 각지에서는 다복동의 본영으로 각종 군수품을
보내오기 시작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선천의 유문제와 최봉관은 총 .
칼 . 창과 같은 무기들을, 정주의 정진교는 탄환과 촛대를, 철산의
정복일은 여러 가지 깃발들과 군복과 비단들을 보내왔다. 그뿐이
아니라 선천에 사는 계형대는 쌀 백여 석을 바로 보내오고 곽산의
박성간은 은 5백 냥과 쌀 열다섯 섬을, 영변의 남명감과 김우학은 은
5천 냥과 말안장 열여섯 개를 보내왔다.
다복동의 혁명군들은 이처럼 각처에서 물밀듯이 밀어닥치는
군수품에 사기가 충천하여 하루라도 빨리 출병의 명령이 내려지기를
고대하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광산을 하는 다복동의 비밀은 점점
벗겨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즉 가산의 관아에서는 뭔가 수상한
일들이 다복동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눈치채었으며, 따라서 관군을
집결시켜 이를 진압시키려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던 것이다.
홍경래는 하는 수 없이 참모들을 모아 긴급회의를 열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놈들이 기미를 챈 것 같으니 거사를 앞당겨 해를 넘기지 말고
섣달 20일로 결정한다"
그러나 섣달 20일의 기병도 또 어긋나게 되었다.
그것은 섣달 15일 밤의 평양거사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총참모 우군칙은 양동작전으로 일단 서북지방의 핵심인 평양에서
혁명군 출동의 서곡을 장식하려 계획을 세워두었다. 평양에서 먼저
거사를 시작함으로써 다복동에 대한 관가의 관심을 평양 쪽으로
돌리게 하는 한편 평양을 뒤엎어서 혁명군 출동의 시작을 만천하에
널리 알리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비밀 장졸들이 평양에 파견되었으며 그곳의 동지들과
협조하여 15일 밤에 평양감사의 객사인 대동관을 불지르고 감사
이하 모든 관리들을 한꺼번에 몰살해버리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동지섣달의 평양 기후가 활짝 풀려서
대동관 밑에 미리 파묻어둔 화약통과 그 심지에 물이 녹아 들어가서
불이 제대로 인화되지 않아 그만 폭탄이 터지지 않았던 것이다.
무기를 들고 이제나 저제나 비밀 결사대원들은 밤새도록
기다렸지만 폭탄은 그 다음날 한낮인 정오 무렵께나 터졌다. 대낮에
폭탄이 터져버렸으니 폭동과 암살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사대원들은 잡힐까봐 뿔뿔이 흩어져 다복동으로 돌아왔으나 대원
중의 하나가 관가에 체포되어 다복동의 비밀이 탄로되었던 것이다.
평안감사는 가산군수에게 한시라도 빨리 다복동을 습격하여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밀령을 내려보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관군의 압박은 점점 조여 들어오고 있었다.
17일에는 다복동으로 총 . 칼 . 창을 보내온 최봉관이 체포되었고
17일 밤에는 가산의 관군들이 이희저의 집을 포위하기 위해
이르렀던 것이다. 간신히 이희저의 식구들은 포위망을 뚫고 도망쳐
왔으나 이대로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거병도 하기 전에 그대로
진압되는 불상사를 우려한 홍경래는 마침내 18일 황혼을 기해
혁명의 기치를 세워들고 기병을 시작하였다.
이 출진에 앞서 홍경래는 정병 백여 명을 미리 홍총각에게 주어
가산을 점령할 것을 명령하였는데 홍총각은 그 즉시 호의관을 쓰고
갑옷을 입고 군사를 지휘하여 가산의 관아를 점령하였던 것이다.
이때 가산의 군수는 정시.
그는 당시 43세의 나이였는데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고 주로
훈련원과 도총부에 근무하고 있었던 무인이었다.
그 당시 평안감사였던 이만수의 장계에 의하면 그 무렵 정시는
'그날 난리가 일어난다고 민심이 흉흉하고 군내가 떠들썩하여
백성들이 피난가려 하자 홀로 말을 타고 군내를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효유하여 피난가는 것을 중지시켰다' 고 전하여진다.
어쨌든 홍경래가 통솔하는 남진군은 선봉장 홍총각의 습격으로
그날로 가산에 진격하여 군리들의 내응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손쉽게 군내를 점령할 수 있었다.
이때 가산을 점령한 홍총각은 봉기군 오십여 명을 이끌고 관아에
돌입하여 '살고 싶으면 인부와 보화를 내놓고 항복문서를 쓰라' 고
하였으나 정시는 다음과 같이 소리쳐 말하였다고 장계는 기록하고
있다.
"내 명이 다하기 전에는 항복할 수 없다. 어서 나를 죽어랴"
정시에게는 일흔 살이 넘은 아버지가 있었는데 그도 역시 그들의
대역무도함을 꾸짖었다. 그리하여 두 부자는 홍총각이 휘두르는 칼에
맞아 숨을 거두었는데 홍경래의 난이 계속되는 수개월동안
혁명군에게 항복하지 않고 떳떳하게 최후를 맞은 관리는 오직 이 두
사람뿐이다.
대원수 홍경래가 가산에 입성하였을 때는 이미 모두가 평정된
후였다. 홍총각이 군수 정시를 죽인 것을 탓하지 않았으나 일흔살이
넘은 그의 아비를 죽인 것은 지나친 일이었으므로 우군칙은
홍총각을 나무라며 말하였다.
"일흔이 넘은 노인까지 죽여 무엇하겠느냐"
우군칙은 민심을 다잡기 위해 소를 잡고 술을 걸러서 백성들에게
나눠 주었으며 관고를 열어 쌀과 필목들을 함께 나누어 주었다.
홍경래는 여기서 일단 막료들을 소집하여 군기를 정돈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 결정하였다.
그것은 첫째 홍총각과 이제초는 북행해서 김사용의 북군과 힘을
합쳐 정주를 공격케 하고, 홍경래 자신은 동행하여서 박천을
공격하기로 계획을 세운 것이다. 둘째로는 군복의 제도를 마련했다.
복색은 푸른 빛으로 하고, 붉은 천을 가슴과 등에 붙여서 호의를
구별케 하고, 모자는 장교가 전립과 호피관을 쓰도록 하고 병졸은
홍건을 쓰도록 하였다.
그리고 첫 번째 점령지였던 가산의 주관장으로는 가산의 유지요,
혁명군에 비밀히 협조해온 윤원섭을 임명했다.
이에 부원수 김사용은 북군을 이끌고 곽산을 향해 미리
진격하였다. 홍경래는 처음 20일을 기해서 기병을 결정하였을 때
김사용을 북군의 책임자로 임명하고 그 예하의 장졸들은 항상 걸인,
붓장수, 중 등으로 변복하고 뿔뿔이 흩어져서 곽산 근방에
집결하기로 명령을 내려두었던 것이다.
김사용은 아장 김희련, 기국범, 이성항, 한처곤을 거느리고 18일
정오 때쯤에 곽산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여 정세를 살펴보니
혁명군에게 무척 불리하게 사태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선천부사 김익순이 혁명군의 병장인 최봉관을 체포해
심문하여 곽산의 김창시와 박성신이 혁명군에 가담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곧 포교를 곽산에 파견하여 김창시의
아버지와 박성신을 체포하여 곽산을 떠나게 되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이것은 북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박성신은
곽산의 유지였을 뿐 아니라 그의 형 박성간은 곽산 제일의 부자였다.
애초에 북군의 근거지를 곽산으로 정한 것은 박씨형제의 힘을 믿고
그렇게 했던 것인데 이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으니 아무리
날래고 용맹한 김사용이라 하여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사용은 그대로 앉아서 20일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정보를 받은 즉시 용맹한 부하 몇을 직접 진두지휘하여
곽산에서 선천으로 가는 길목을 지켜서 압송되어 가는 동지들을
구하려고 매복하였다.
곽산에서 선천으로 가는 고갯길은 신현이라는 곳이었는데 몹시
가파르고 험준한 산길이었다. 김사용은 이곳 고갯길에 부하들을
매복시키고 끈질기게 선천으로 압송되어 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해질 무렵.
멀리서 김창시의 아버지와 박성신을 꽁꽁 묶어서 끌고 오는 포교
일행이 보였다. 김사용은 그들이 인질로 잡혀 있었으므로 자신의
신호가 있기 전에는 절대로 경거망동하여 공격하지 말 것을 명령해
놓고 있었으며 포교들이 그들의 앞을 지나 완전 포위망에 들어온
것을 확인한 순간 손짓하여 군호를 내렸다.
순간 매복하였던 군사들이 번개처럼 나타나 단칼에 포교들을
베었다. 포교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무사히 두 동지를 구해냈던
것이다. 김사용은 곧 일행을 거느리고 곽산 북쪽에 있는 연무장에
몸을 숨기는 한편 박성신의 형인 박성간을 불러낸 후 그곳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였다.
"20일이 본래의 거사일이지만 이렇게 동지들이 계속 체포되니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을 것 같소. 더 이상 기다리간 일을 그르치게 될
것만 같소이다"
그러자 박성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쪽의 형편은 문제가 없습니다. 비밀동지들이 동헌을 둘러싸고
원을 고립시켜 놓았으니 이제라도 당장 쳐들어가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대원수께오서 20일을 기해서 거병하라 엄명을
내리신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나이다"
그러자 김사용이 용단을 내렸다.
비상사태에 임하여서는 임기응변의 특권을 대원수께오서 나에게
부여하셨소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오. 바로
오늘 밤을 기해서 습격하기로 결정하십시다"
김사용이 용단을 내린 이상 더 이상의 이의는 없었다. 그 즉시
장병들은 하나씩 둘씩 변복을 하고 곽산읍으로 잠입하였다.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동헌에서 횃불이 켜지면 그것을 신호로해서
일제히 공격하기로 계획을 짜두었던 것이다.
곽산의 군수는 이영식이라는 사람으로 제법 문무를 겸한 인물이긴
했지만 술을 너무 좋아하는 위인이었다.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또 술을 좋아하는 줄 아는 지방민들은 대소사의 부탁을 모두
술로써 때워버리게끔 되어 있던 호주가였던 것이다. 바로 그날도
읍내의 비밀동지들이 동헌의 비장을 통해 좋은 술한 말을
이영식에게 보내두었던 것이다.
때마침 한양에서 군수 이영식의 동생 이영호가 형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와 머물고 있었다. 술을 좋아하던 두 형제는 오후부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이영식은 잠깐 자기 방에 들러 문서를
뒤적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고함소리가 나더니 느닷없이
방문을 박차고 손에 횃불을 든 폭도 수십 명이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게 누구 없느냐"
혼비백산한 이영식이 소리쳐 호령하여 보았으나 아무도 썩
나타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비밀동지들에 의해 아전들과 이속들은 모두 다른 곡에 모여서
술잔치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놈을 잡아라"
"술주정뱅이 원놈 이영식을 놓치지 마라"
횃불을 든 폭도들은 동헌을 짓밟으며 소리쳐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이영식은 아무도 형세가 다급해진 것을 눈치채고 우선 몸을
피해 보자고 벽장 속에 숨어버리고 말았다.
어수선한 고함소리에 술이 취해 안방에서 누워 자던 아우
이영호가 잠결에 뛰어나오면서 호령하였다.
"웬놈들이냐.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쳐들어오느냐"
폭도들이 뛰쳐 나오는 그를 원으로 보았다.
"저놈이 원이다. 죽여라"
그들은 일제히 대청마루 위에 올라 그를 잡아 죽이려 하였다.
그러니 아무리 겁이 나서 벽장 속에 숨기는 하였으나 죄 없이
아우가 죽는 것을 알고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이영식은 벽장속에서
뛰어나오면서 외쳤다.
"그 사람은 원이 아니다. 원은 나다. 너희들의 대장을 만나게
해다오"
그러나 이미 동생은 죽은 후였다. 핏투성이의 동생을 부여잡고
이영식이 통곡하여 말하였다.
"네가 죄 없이 나를 대신하여 죽었구나"
이때 뒤늦게 들어온 김사용이 대청 위에 오르면서 말하였다.
"내가 대장이다. 항복하면 네 목숨을 살려주겠다"
"예, 항복하겠습니다"
이영식은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그러면 관인과 병부를 내놓아라"
이영식은 관인과 병부를 내놓고 항복문서에 조인하였다.
일부막료들은 당장에 이영식을 죽여버리자고 권하였으나 김사용은
다만 이렇게 말하였다.
"항자를 죽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우선 묶어서 가두어
두어라"
그러나 이영식도 보통 위인은 아니었다. 우선 항복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해 놓고 다음 계획을 짜 활로를 타개하자는 비상수단을 강구한
것이다. 이로써 이영식은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옥에 갇힌 이영식은 옥문을 지키고 있던 병졸 장재흥을 살살
꾀었다. 장재흥도 역시 술을 좋아하였다. 그것을 알고 있던 이영식은
내아에 좋은 술을 놔둔 곳을 가리켜 주며 추운데 그 술이나 갖다가
마시고 몸이나 덥게 하라고 일러주었다. 회가 동한 장재흥이 가보니
과연 좋은 술이 있었다. 장재흥은 술병째 갖다 놓고 들이켜기
시작하였다. 동지섣달이었으므로 살을 에는 듯 추운 한밤에 술을
마시니 곧 몸이 더워지고 취기가 거나하게 올랐다.
이영식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짝 다가앉으면서 장재흥을 꾀었다.
대청마루 밑에 은 9천 냥을 숨겨두었으니 자기를 풀어주면 그것을
송두리째 주겠다고 유혹하였다. 장재흥은 술김에 마음이 동하고
욕심이 동하였다. 그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선뜻 옥문을 열어
주었다.
이영식은 나오자마자 몽둥이로 갈겨 장재홍을 단매에 죽여버리고
샛길로 정주를 거쳐서 22일에 안주병영에 다다라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것진 것이다.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던 이영식은 이때부터 좋아하던 술을 끊고
혁명군 토벌의 제일 선봉장으로 나서서 혁혁한 공을 세우긴 했지만,
반도들에게 무릎을 꿇었던 치욕적인 항장으로 기록되어 다시는
벼슬길에 오를 수가 없었다.
그는 도망가는 도중에 정주에 들러서 수성의 준비나 잘하고
있으라고 당부하고는 그대로 안주로 향했던 것이다.
과연 정주는 풍전등화였다. 가산과 곽산 중간에 있는 정주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정주목사 이근주는 19일
아침의 곽산 함락, 오후의 가산 변보 등을 듣고는 좌불안석이었다.
원체 위인이 겁쟁이인데다 너무나 돌발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무슨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목사는 곧 좌수 김이대와 중군
이정환을 불러 대책을 세우려 하였으나 혁명군의 비밀동지들이었던
이들은 입을 모아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아무 준비 없이 성을 지키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차라리
항복하는 것이 빠른 길인가 합니다. 공연히 우물쭈물하다간
가산군수처럼 개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역시 비밀동지인 최이륜이 대낮에 부하를 거느리고 옥을
부수도 갇혀 있던 동지들을 구해내고, 거리거리에는 평서대원수
홍경래의 격문이 나붙자 겁이 난 목사 이근주는 뒷문으로 뛰어나가
마구간의 말을 타고 향교로 도망하였으나 적과 내통한 집사들이
인부를 빼앗고 안주병영으로 내쫓아버린 것이다.
이로써 불과 이틀 만에 홍경래의 혁명군은 가산, 곽산 그리고
정주의 세 열읍을 차례로 점령하는 전과를 올리게 되었다.
한편 대원수 홍경래가 직접 진두지휘하는 본진의 부대는 20일
새벽에 박천을 정면으로 쳐들어가 쉽게 함락시켰다.
박천의 군수는 임성고란 사람이었는데 그는 변변한 대항 한번
못해 보고 병졸 몇 명과 더불어 성을 버리고 도망쳐서 서운사란
절에 피신하였다. 그런데 이 겁쟁이 군수는 자신의 노모를 그대로
성에 내버려두고 도망쳤기 때문에 혁명군은 그 노모를 잡아 옥에
가두었다. 이 소식을 들은 임성고는 대원수 막사에 찾아와 자수하여
말하였다.
"어머니를 살려주는 대신 저를 죽여 주십시오"
임성고가 비록 적이긴 했지만 그의 효성을 보아서 참하지 않고
옥에 가둬 두자고 김창시가 홍경래에게 간하였다. 그러나 무장
김대린이 핏대를 올리며 말하였다.
"싸움에 있어 쓸데없는 인정은 오히려 화를 부르는 법입니다.
더욱이 그 자는 겁이 나서 제 에미까지 버리고 도망쳤던 용렬한
자입니다. 죽여서 후환을 없애는 것이 마땅한 일이나이다"
그러나 홍경래는 김창시의 말을 들어 임성고를 살려두었다. 과연
김대린의 말처럼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임성고는 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통인과 연락하여 안주병영에 급보를 전하게 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안일하게 지내고 있던 안주는 이 거짓말 같은
급보를 전해받고는 정신을 차라리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반군의
공격을 대비하는 군영을 정비하는 한편 한양에도 이 급보를 전하는
등 지금까지의 안일을 일소하고 비상조치를 강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가산, 곽산, 정주, 박천의 네 열읍을 점령한 혁명군은
여기에서 앞으로의 작전을 논의하였는데 두 가지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하나는 처음의 계획대로 동으로 영변과 북으로 태천을 공격하려는
작전과, 다른 하나는 이러한 작은 읍을 하나씩 쳐부수느니 가장
긴급한 과제는 속히 안주성을 쳐부수자는 적극적인 작전이었다.
안주는 평서지방 최대의 병영이다. 성이 견고하고 상번 군졸이
주야로 지키고 있는 평안도 제일의 군영이다.
이 안주 공격의 적극적인 안은 주로 무인들이 주장하고 있었다.
대본영 참모회의에서 무장 김대린은 안주 선공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이처럼 기병한 목적은 안주, 평양을 거쳐 한양까지 올라가
썩어빠진 왕조를 뒤집어엎고 새 나라를 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사한 지 수삼 일이 지났으나 아직도 청천강 이북의 소읍 몇 개를
얻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사를 미리 앞당긴 것은 그들이
공세를 취하기 전에 먼저 기선을 제압하려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김대린은 핏대를 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 안주성에서 미리 우리의 거사를 탐지하고 군비를
갖추게 된다든지 먼저 공세로 나오게 되면 큰 손실을 입게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 기습하면 적은 군사와 적은 희생으로도
안주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안주야말로 적의
모가지입니다. 이 모가지를 눌러 놓아야 평양도, 한양도 쉽게
무너뜨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린의 이 선공작전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사선 것이
우군칙, 김창시 등 주로 문인 참모들이었다. 우군칙은 즉석에서
안주의 선공작전을 반대하여 말하였다.
"본래 우리의 작전은 대원수를 중심으로 참모본부에서 계획한
작전이니 이제 도중에서 변경할 수는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안주는
평서 제일의 병영이 있는 곳으로 성이 견고하고 더구나 청천강을
끼고 있어 공격하기에는 힘들고 방어에는 손쉬운 요새입니다. 이런
천연의 요새를 그렇게 쉽게 함락시킬 수 있다고 보십니까. 적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은 병가의 금물입니다. 그러니 애초의 작전대로
남군은 영변, 태천, 개천 등을 함락시키고 북군이 정주, 곽산, 귀성,
선천, 철산, 용천, 의주를 함락시켜 청천강 이북을 완전히 평정하여
놓으면 자연 안주성을 고립무원이 되어 남북 연합군이 합세하여
일거에 쳐들어가면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안주성의 선공을 가지고 문인과 무인 두 참모들은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심사숙고 끝에 홍경래는
문인참모들의 의견을 좇아 처음의 계획대로 영변, 태천과 같은
외곽의 공략을 명령하였다.
안주성.
안주성은 평안도 제일의 요지였다. 북으로는 청천강을 끼고 의주로
통하는 큰 길목에 있으며 무엇보다 42주의 병마를 한 손에 쥔
평안병사의 본영이 있는 전략상의 요충지대였던 것이다.
따라서 속전속결로 사기가 오를 때 우선 안주성을 무너뜨리자는
무인들의 의견이 결과적으로 보면 현명한 작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대원수 홍경래가 문인 참모들의 의견을 좇아 외곽의
소읍들을 차례로 점령하는 작전을 명령하자 그날 밤 김대련은 칼을
들고 대원수 홍경래를 암살하려 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김대련의 칼이 홍경래의 심장을 노리고 일격 하였으나 다행히도
그 칼이 두꺼운 갑옷 때문에 비껴나가 생명을 건졌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은 건진 대신 어깨에 심한 부상을 입고
홍경래는 내내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김대린은 현장에서
홍경래의 칼에 맞아 즉살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내분의 제1호였다.
이로써 안주성 기습은 중지되었으나 열읍에 대한 작전은 그대로
계속되었다.
북군의 김사용은 24일에 선천을 무난히 점령하였고 검산상성에
도망쳐 있던 선천부사 김익순을 생포하고 항복을 받았으며 25일에는
철산을, 이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용천도 함락시켜 수중에 넣었다.
용천의 부사는 권수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북쪽에 있는
용골산성에 의거하여 항전하였으나 역부족이었으므로 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신했던 것이다.
홍총각이 이끄는 남군도 28일에 태천을 점령하였다. 이와 같이
혁명군은 파죽지세로 가산, 정주, 태천, 곽산, 선천, 철산, 용천 등
여덟 개의 열읍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영변, 귀성, 그리고
임상옥이 머물고 있는 의주는 함락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무렵.
용천부사 권수는 간신히 목숨을 구해 의주로 도망쳐 옴으로써
순식간에 의주는 위기감에 빠지게 되었다. 용천이 함락되었다면 바로
코앞에까지 혁명군이 쳐들어온 것이다. 이제는 혁명군과 맞서 싸울
것이냐, 아니면 성문을 열어 다른 열읍처럼 혁명군을 환영하여
맞아들이느냐, 둘 중의 하나만 남은 것이다.
이미 의주성 내 곳곳에는 평서대원수 홍경래의 격서가 나붙어
있었고 민심은 흉흉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홍경래의 붉은
군대(홍경래의 혁명군이 붉은 천을 가슴에 붙이고 다녔으므로
백성들은 그들을 홍의병, 즉 붉은 군대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에 맞서 싸울 의병을 모집한다는 방문이 내걸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홍경래의 혁명군과 맞서 싸울 의병을 모으는 의병대장의 이름은
허항으로 본관은 양천이며 자는 원숙이다. 그는 원래 첨사였던
허수의 아들이었는데 효성이 지극하고 담용이 뛰어난 무장으로 이곳
일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일화가 있다.
그는 27세에 무과에 응시하였는데 과규에는 합격하였으나 방에는
누락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가 평안도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에 허항은 방방(放榜)하던 날 억울한 사정을 직접 왕에게
호소하기 위해서 궁중으로 뛰어들어갔다가 위사에게 붙잡혀 전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다.
그러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나와 큰소리로 억울함을
합외(閤外)에서 호소하니 그 소리가 왕이 거처하는 대내에까지 들려
왕이 그를 불러 까닭을 묻고는 그 기백이 장하다 하여 급제를
내리고 충장장으로 제수까지 하였다고 (순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때 마침 허항의 아버지 허수가 죽어
상중이었다. 마땅히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야 할 거우 중임에도 그는
분연히 일어섰다. 그는 홍경래의 격서가 부당함을 직접 조목조목
따져서 격문을 지어 방을 붙인 다음, 스스로 대장이 되어 의병을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홍경래의 혁명군이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와 의주는 몹시
위태하였으므로 의병은 소규모로 모집되었으나 김견신이 의군에
합류하였던 것은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김견신은 대대로 의주의
상가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 출신의 장사였기 때문이다.
김견신은 허항을 만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홍경래와 맞서 싸울 의병이 구름처럼 몰려들게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허항이 묻자 김견신이 대답하였다.
"임상옥의 동의를 구하는 길뿐이나이다. 임상옥 대인의 동의를
구할 수만 있다면 의주성 내에서 의병들이 구름처럼 일어서고 또한
군자금 역시 든든하게 모을 수 있어 자연 적들로부터 의주성을
굳건히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허지만 임 상공의 허락을 받아낼 수 있을까"
당시 임상옥은 의주읍 내의 성민들로부터 상공으로 불리고 있었다.
원래 상공이라 함은 나라의 재상을 높이는 말이었는데 청나라의
장사꾼들은 상대방 장사꾼을 높여서 부를 때 그런 과장된 존칭을
부르는 풍습이 있어 청나라의 상인들이 쓰던 대로 '상공'이란 칭호를
그대로 임상옥에게 붙여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만나 사실대로 아뢰오면 임 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나이다"
허항은 김견신의 말을 받아들여 함께 임상옥을 찾아가 방문하였다.
허항은 마침 기중이라 베옷을 입고 가슴에는 검은 상장을 달고
있었으며, 손에는 대나무 막대로 만든 상제가 짚는 지팡이까지 들고
있었다.
허항은 임상옥에게 자신이 의병을 일으켜 홍경래의 적도들과 맞서
싸울 결심을 털어놓고 도와줄 것을 청하였다. 임상옥은 끝까지 말을
듣고는 가타부타 대답치 아니하고 깊은 침묵 끝에 다음과 같이 물어
말하였다.
"허 대인께오서는 누가 돌아가셨습니까. 가슴에 검은 상장을
두르고 있는데"
"신의 아비가 돌아가셨나이다"
"그러하면 친상을 당하셔서 대상 중이신데 어찌하여 의병을
일으키려 하시나이까"
이 말을 들은 허항은 눈을 부릅뜨고 말하였다.
"예로부터 군사부일체라 하였나이다. 나라의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다 같아 하나라는 뜻이나이다. 비록 이 몸은
아비에게서 나왔으나 나를 가르친 것은 스승이요, 나를 기른 것은
나라의 임금이나이다. 그러므로 어찌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나라의
위태로움을 모른 체할 수 있겠나이까"
이 말을 들은 임상옥은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며 허항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임상옥은 말하였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말하시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껏
도와드리겠소이다"
전혀 뜻밖의 손쉬운 답변이었다. 허항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다. 임상옥이 의병을 모으는 방수장이 되었다는 소문이 곧
의주성 안에 떠돌았으며 이로써 이병들은 손쉽게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던 관군들도 다시 사기가
충천하였다.
임상옥은 창고를 열어 쌀과 포목들을 모두 풀어 의병들에게 나눠
주는가 하면 소를 잡고 술을 걸러서 관군들을 위로하였다. 이때
임상옥의 장인 홍득주도 곡식 1천2백18석과 돈 5천2백 냥을 내어
행진과 각 읍을 통틀어 가장 많이 군자금을 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홍경래의 혁명군이 코앞에 있는 태천까지 점령하여 풍전등화의
화급상태에 있는 의주에서 임상옥이 보인 행동은 얼핏 보면 무모한
용단이 아닐 수 없었다.
박종일이 근심스런 얼굴로 임상옥을 찾아와 말하였다.
"어찌하여 이 위태로운 시기에 무모한 일을 하시나이까"
"무모한 일이라니"
임상옥이 담담한 얼굴로 물어 말하였다.
"홍경래의 난군이 태천까지 점령하고 영변과 귀성을 넘보고
있나이다. 빠르면 이삼 일 안에 의주성을 무너뜨리고 점령할
것이나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난국에 의병의 편을 들어
홍경래를 대적하려 하십니까. 더욱이 홍경래는 형님에게 있어서는
의인이 아니십니까"
박종일은 홍경래에 대해서 비교적 호의를 갖고 있었다. 그는
홍경래가 떠나던 날 임상옥을 죽이기 위해 월장하였음을 모르고
있었지만 임상옥에게는 그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자 의인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홍경래는 내게 있어 은인이라고 말할 수는 있네. 그러나
홍경래는 내게 은인이지만 의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네"
말을 끝내고 나서 임상옥은 붓을 들어 종이 위에 문장 하나를
써내렸다. 박종일은 임상옥이 쓴 문장을 읽어 보았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묵적지수'
문장을 다 쓰고 나서 임상옥은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홍경래의 편에 서지 않고 그 반대편에 선 것은 바로 이
문장 하나 때문이네"
임상옥은 천천히 말을 이어 내려갔다.
"옛날 춘추시대 때 전쟁은 무익하니 없어져야 한다는 비공을
주장한 묵자가 있었지. 그런 묵자가 어느 날 강대국 초나라가
공수반이라는 기술자를 고용해 운제계라는 새로운 공격용 사다리를
개발하여 약소국 송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초나라를
방문했다네. 수도 영에 도착한 묵자는 공수반을 찾아가 이렇게 입을
열었지.
'북방에 나를 모욕 주는 자가 있는데, 그대가 나를 위해 그를
죽여줄 수 있겠소'
느닷없는 질문에 공수반이 불쾌한 낯빛으로 말하였네.
'나는 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소이다'
그러자 묵자는 공손히 절을 하면서 말하였지.
'한 사람도 죽이지 않는 것이 의라고 생각하면서 어째서 죄 없는
송나라 백성을 죽이려 하시오'
물론 내게 있어 홍경래는 은인이자 의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홍경래는 내 생명을 구해 주었으며 끝내는 내
목숨까지 살려 주었으니. 그러나 그렇다고 그를 의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이 의라면 묵자의 말대로
의주성읍의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 역시 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묵자가 끝까지 성을 지키고 사수한 것처럼 허항을 도와
의병 편에 선 것도 묵자처럼 의주성을 끝까지 지키고 사수하려는
의지 때문인 것이네. 분명히 말해서 홍경래는 의인이 아니네.
그에게는 욕망이 있어. 그에 비하면 허항은 아무런 욕심이 없지.
그는 단지 나라를 지킨다는 충효의 마음 하나로 자신의 목숨까지
내걸었네. 그러므로 진정 의로운 사람은 홍경래가 아니라 허항인
것이네"
사람을 꿰뚫어 본 임상옥의 직관은 정확하여 곧 드러나게 된다.
허항은 의병의 대장으로 군사를 이끌고 홍경래의 혁명군과 맞서
싸웠다. 이 공으로 그는 가의대부에 오르고 우림장으로까지
임명되었으나 곧 전사하여 목숨을 잃었다.
전공으로 인하여 그는 통제사로까지 추증되었으며 충신 효자
열녀들에 대해서 그들이 살던 고을에 정문을 세워주는 정려까지
지어 그의 고향 정주의 표절사에 배향되었다.
한편.
홍경래의 혁명군은 이처럼 여덟 개의 열읍을 점령하였으나 시일이
흐름으로써 청천강 이북을 완전히 평정하여 뒷근심이 없게 하고,
남북연합군이 일거에 안주 평양을 공격하려던 애초의 작전은 이제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안주 선공을 반대하던 우군칙, 김창시 등도 하는 수 없이 남군
만으로 안주를 공격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에
남군은 박천에서 안주성이 바라보이는 송림으로 그 본진을
이동하였다. 이것이 26일 밤이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이보다 며칠 앞선 21일 밤에 평안감사 이만수는 홍경래의 기병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이 변보를 받은 조정은 곧 이요헌을 양서순무사로 삼고,
박기풍으로 순무중군을 삼아 삼영의 정병을 거느리고 27일 정오에
한양을 출발하게 하였던 것이다.
안주병영에서는 관하 각 군에게 명령을 내리어 증원을 독촉하였다.
그 결과 숙천부사 이유수를 위시하여 중화, 순천, 함종, 덕천, 영유,
증산, 순안 등 각 군의 수령들이 거느리고 온 군세가 불과 5,6일
동안에 2천 명을 넘어섰다. 게다가 한양에서 곧 본군이 오리라는
소식에 안주의 관군은 그 기세가 충천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12월 29일 아침.
동이 틀 무렵, 우선 천여 명의 관군이 얼어붙은 청천강을 건너서
송림 속에 진을 펴고 있던 혁명군에 기습작전으로 총공격을
개시하기에 이르렀다.
관군은 주장에 평안병영의 우후 이해승, 우익장에 순천군수
오치수, 좌익장에 함종부사 윤육렬 등 3진으로 나뉘어서 강을 건너고
있었다. 혁명군에서도 천5백 명의 군사를 3진으로 나누어 홍총각,
윤후험, 변대언 등이 각각 인솔하고 이에 대적하였다.
마침내 혁명군과 관군의 죽느냐 사느냐 건곤일척의 결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선봉장 홍총각의 활약은 과연 대단하였다.
선봉장 홍총각은 선두에서 칼을 빼들고 닥치는 대로 주장 이해승
군에 육박하여 좌충우돌 베어버렸다. 곧 이해승의 진세는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좌익의 관군도 수세에 있어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때 평안병사 이해우는 백상루의 누각 높은 곳에서 진세를
살피고 있다가 관군이 동요됨을 보고, 곽산군수로 있다가 도망쳐온
이영식을 시켜 성내에 남아 있던 군졸 천여 명을 지휘하여 일시에
출동케 하였다.
안주성의 전 병력인 줄만 알고 이를 포위하여 완전 섬멸하려던
혁명군은 불의의 원병에 당황하였고 포위당하였던 관군은 후원군이
닥쳐오자 용기백배하여 반격을 개시하였던 것이다.
순식간에 전세는 바뀌었고, 역전되었다.
이때의 패주 원인을 기록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혁명군은 관군과의 비등한 전투병력으로 평야에서 전투를
전개함으로써 활과 조총으로 무장한 관군을 대적할 수 없었던 점,
관군의 지휘부는 누각 높은 곳에 올라가 양군의 전투를 내려다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군의 지휘부는 낮은 평야에 있었으므로
국지적인 면밖에 볼 수 없었던 점, 진세 구축에서 우세한 관군을
무모하게 중앙돌파하려 하였던 점 등이 패배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원수 홍경래는 북을 울려 혁명군을 철수케 하였다. 날은
이미 어두웠고, 많은 군졸이 관군에게 짓밟히고 죽어 쓰러졌다.
홍경래는 남은 장병들을 정비하고 정주성으로 향하였다. 홍경래는
벌써부터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다복동에 있던 모든 식솔들을
정주성에 피신시켜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주성이 그곳에서는
가장 견고하고 험준하였으므로 수성하기에 유리한 곳이라고
홍경래는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혁명군은 공격군이 아니라 정주성을 근거지로 끝까지
방어하는 수성의 혁명군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송림대전에서 패하기는 하였지만 아직 절망적은 아니었다.
홍경래는 우선 정주에 입성하여 군사들을 위로하고, 성내의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애를 썼다. 그리고 참모들을 모아놓고 앞으로의
작전을 논의하였다.
당시 북군의 김사용과 이제초는 선천과 의주로 통하는 길목에
있는 요지인 양책참에 머물면서 의주성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의주 공략은 만만치가 않았다.
임상옥을 방수장으로 하는 의병군은 허항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성을 굳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경래는 창성과 강계의 동지들에게 증원병을 청하는 한편 북군이
속히 의주작전을 마치고 남하하여 합류해서 함께 남진하는 길만이
난관을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홍경래는 이를 위해 김창시를 북군에 파견하였다.
김창시는 즉시 말을 몰아 북군이 주둔하고 있는 양책참으로
향하였다.
김창시를 맞은 북군의 진중에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초는 다시 선천으로 내려가 북군과 남군과의 연결을 확보케
하고 김사용과 김창시는 북군을 거느리고 의병과 대전키로 한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남군과 북군 양군의 연결이
두절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초는 이 막대한
중임을 맡고 곧 선천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한편 송림대전에서 이긴 관군은 기세를 몰아 해를 넘기기 전에
벌써 박천, 가산을 도로 찾고 혁명군의 소굴인 다복동을 습격하여
민가와 병사를 모두 불살라버렸던 것이다. 계속해서 태천을 회복하고
마침내 1812년 1월 3일, 관군은 홍경래의 마지막 보루인 정주성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관군은 이 정주성도 단숨에 함락시킬 기세였으나 이는
쉽지가 않았다. 세 차례나 대정문의 공격을 개시했으나 그때마다
실패했고 관군의 손해는 막중하였다.
성문을 굳게 닫은 혁명군은 관군이 성 밑까지 올 때에는 별로
응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관군들이 몰려들어 사다리를 타고 성위로
올라오려 할 때를 기다려 성 위에서 큰 돌과 끓는 물을 퍼부어 한
명도 성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하였던 것이다.
관군은 이 작전에 속수무책이었다.
관군은 이렇게 정주 작전을 계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주 바로
뒤에 있는 곽산을 회복하려 하였다.
곽산의 원에 있던 이영식은 자신을 대신해서 죽은 동생의 복수를
다짐하고 스스로 후원장이 되고, 오치수를 우익장으로 삼아 2천 명의
관군을 휘몰아 곽산을 공격하였다.
혁명군의 유진장 박성신은 이 군세를 당할 수 없어 선천으로 가서
이제초에게 응원을 청하였다.
이제초는 자신의 주력부대와 선천의 장병을 모아 겨우 천여명의
장졸을 끌고 곧 곽산으로 달려나갔다.
이영식이 이끄는 관군 2천 명과 이제초가 이끄는 혁명군 천 명은
곽산 서편에 있는 사송벌에서 맞서 싸우게 되었다.
이것이 혁명군의 운명을 결정하는 두 번째의 대전이었다. 만약 이
전투에서 혁명군이 승리한다면 또 한번 혁명군은 수세에서 공세로
반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제초는 진두에서 독전하며 분전하였다. 그러나 중과부적이었다.
수에 있어 절대다수였던 관군은 어느덧 이제초의 군을 완전히
포위하고 말았다. 포위된 것을 안 이제초는 군졸을 몰아서 포위망을
뚫으려고 있는 힘을 다하였다. 그는 포위망의 한모퉁이를 허물었다.
이제초가 휘두르는 칼에 대여섯 명이 쓰러졌다. 이때 이를
지켜보았던 안주군관 김계묵은 이제초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이에 이제초도 돌진하는 김계묵을 향해 칼을 날렸다. 그러나 그 순간
김계묵의 창이 먼저 이제초의 손을 치며 연달아 그의 허벅지를
찌르자 피가 위로 솟구쳐 뿜어났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김계묵이 목을 지르려 창을 내리꽂는 순간, 이게 웬일인가. 그만 창
끝이 이제초의 철갑에 걸려 빠지지 않는 게 아닌가. 서로 하나의
창을 잡고 맴돌기 잠시. 힘에 눌린 김계묵이 말에서 그만
떨어져버렸다. 그러나 이제초의 운이 다된 것일까. 이를 본 군관
전재명이 이제초를 향해 몸을 던져 그를 생포한 것이다. 결국
이제초는 곧 관군의 대장이었던 윤욱렬 앞으로 압송되었다. 윤욱렬은
함종의 부사였는데 이제초를 죄인으로 체포하려 하였으나
후원장이었던 이영식이 그를 자신에게 데려오라 명령하자 이제초를
그에게 보냈다.
이영식은 자신의 동생을 죽였던 김사용이 체포되었다고 생각하고
직접 칼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으나, 막상 김사용이 아니라 이제초가
나타나자 눈을 부릅뜨고 말하였다.
"김사용은 어디 가고 네 놈이 잡혀왔느냐"
이때의 모습을 (조선왕조실록) 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적진의 선봉 이제초를 추문할 즈음에 장을 세게 치고 주리를
틀자, 살이 찢어지고 뼈가 바스러졌으나, 그래도 능히 걸어다니며
언어가 태연자약하였습니다. 그 여력이 보통 사람을 넘으니 심상하게
논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압송하는 길에 아마도 의외의 염려가 있을
듯하여 김국신, 김국주와 더불어 모두 참수하였습니다'
이영식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칼을 들어 이제초의 목을 베었다.
목을 베는 것만으로 울분이 풀리지 않자 이영식은 죽은 이제초의
시신을 난자하여 또다시 살육하였으며 그의 두골을 곽산의 성문
안에 내걸었다.
이로써 혁명군은 완전히 기울게 되었으며 이제초의 전자 소식을
듣자 김사용의 북군은 거의 전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김창시는 김사용과 의논하여 창성으로 가서
포수들을 동원하여 오기로 하였다. 당시 국경지대인 변방에는 솜씨
좋은 포수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홍경래를 돕고 있었던
비밀동지들이었던 것이다.
관군의 화약과 총에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혁명군으로서는 화약과
총에 능통한 포수들의 활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김창시는 포수들을 포섭하여 이끌고 오기 위해서 귀성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는 도중에 몇 명의 낙오병을 만났다.
"너희들이 누구냐"
김창시가 묻자 서너 명의 낙오병을 이끌고 걸어오던 수졸 하나가
울면서 말하였다.
"참모 나으리, 저희들이 누군지 모르시나이까"
"네가 누구냐"
김창시가 다시 묻자 그는 말하였다.
"우리는 이제초 장군 아래에서 관군과 맞서 싸우던 농군 중의
하나이나이다"
서너 명의 낙오병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모두가 부상을 당해서
병신이 되었으며 그 중 수졸로 보이는 조문형이란 자 하나만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패하여 뿔뿔이 흩어져 이처럼 정처없이 헤매고
있사옵니다. 이제 죽을지 내일 죽을지 기약도 없는, 죽은
목숨이나이다. 원컨대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서 받아주시옵소서"
김창시는 그들 일행을 자기 예하에 편입시켰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저녁에 산중에 막을 치고 자는데 파수를 보던 조문형이 문득
생각하였다.
어차피 농군은 이제 되살아날 가능성은 없다. 이대로 있다가는
반군을 도왔다는 역모죄로 사형을 당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대로 김창시를 따라다니다가는 미구에 관군에 사로잡혀
개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바로 이 순간 김창시의 목을 베는 길뿐이다.
김창시라 하면 반군 중에서도 괴수인 홍경래의 핵심 참모로
서열은 세 번째에 속하며 평안도 일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학식이 풍부하고 지식이 높은 선비가 아닐 것인가.
김창시의 목을 베어 갈 수만 있다면 반군에 가담하였던 역모죄는
깨끗이 씻고 살아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관군으로부터 높은 상금까지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민하던 조문형은 마침내 결심을 하고 군막으로 숨어들어갔다. 막
안에서는 김창시가 혼곤히 잠들어 있었다.
조문형은 단숨에 김창시의 가슴에 칼을 곶아 살해하였다. 즉시
그는 김창시의 목을 베어 그 수급을 나무통 속에 넣어 들고 곧바로
선천을 찾아갔다. 그는 선천을 지키는 위병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를 선천부사님 앞에 데려가 주시오"
당시 선천의 부사는 김익순이었는데 그에게는 치욕적인 일화가
있었다.
그는 김사용이 이끄는 북군이 쳐들어오자 수하 군졸을 데리고
검산산성으로 도망쳐 숨어 있었다. 선천을 점령한 김사용이 격서를
보내어 위협하자 그는 스스로 새끼로 목을 매고 와서 항복을 한
다음 항복서까지 써내렸다. 여러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김사용이 김익순의 족쇄를 풀게 한 후 전 30냥, 백미 30석, 민어
10마리, 조기 10속을 보내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미 살아나도 생명을 보존키 어렵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와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선천부사 김익순은 김사용의 말을 듣고 보니 이를 마다할 수
없음을 알았다. 자신은 이미 스스로 새끼로 목을 매어
항복하였으므로 김사용의 말대로 관군이 승리한다 하더라도
변절자로 낙인찍혀 사형을 당하게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김익순은 혁명군에 합류되어 하루아침에 선천부사에서 혁명군의
유진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전세는 의외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혁명군은 곳곳에서 패전하고 있으며 마침내 선천도 관군에
의해서 회복되기 직전에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김익순은
실로 난처하게 된 것이다. 간신히 스스로 목을 매어 항복함으로써
목숨을 건진 김익순은 또다시 하루아침에 변절자가 되어 관군에
의해서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김익순의 이러한 사정을 잘아는 조문형이었으므로 그는 김창시의
모가지를 베어 들고는 이를 흥정의 대상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었다.
조문형은 김익순을 만나자 이렇게 말하였다.
"나으리, 신이 김창시의 목을 베어 오면 얼마를 주시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김익순이 호통을 치면서 호령하였다.
"이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허튼 수작을 하고 있단 말이냐"
그러나 조문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웃으며 말하였다.
"나으리, 공연히 왜 이러하십니까. 나으리야말로 이제 관군이 오면
생명이 위태로운 줄 모르시나이까. 신도 한때는 선천의
위병이었나이다. 그러던 신이 하루아침에 반군이 되었던 사정은
누구보다 나으리께서 잘 아시지 않으시나이까. 그러므로 나으리께서
기사회생하실 수 있는 것은 오직 김창시의 목을 베어 전공을 올리는
단 하나의 방법뿐이나이다"
조문형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었다.
"마침 김창시 일당이 산중에 막을 치고 잠들어 있나이다. 만약
신이 홍경래의 참모이자 평안 제일의 선비 김창시의 모가지를 베어
온다면 그땐 신에게 얼마만큼의 상금을 내려주시겠나이까"
김익순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자 조문형이 채근하여
말하였다.
"시간이 없나이다, 나으리. 얼마 안 있어 날이 밝을 것이나이다"
"좋다"
오랜 침묵 끝에 김익순이 말하였다.
"만약 네 놈이 김창시의 목을 베어올 수 있다면 네 놈에게 오백
냥을 줄 것이다"
그러자 조문형이 소리내어 웃으며 말하였다.
"오, 오백 냥이라니요. 김창시의 모가지야말로 나으리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는 진귀한 보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진보를 한갓
오백 냥에 사시겠다니요"
조문형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하기야 그의 말은 바른
말이었다. 김익순의 목숨을 구해줄 수 있는 진귀한 보물이야말로
바로 김창시의 모가지였던 것이다.
"좋다"
마침내 김익순이 말하였다.
"바로 네 놈이 김창시의 목을 베어 올 수 있다면 그땐 천 냥을
주겠다"
"좋습니다"
조문형이 말하였다.
"그러하면 먼저 선금을 주십시오"
그러자 김익순이 소리쳐 말하였다.
"이놈아, 네가 김창시의 목을 베어 오지도 않았는데 어찌하여 먼저
돈부터 달라 하느냐"
순간 조문형이 탁자 위에 나무상자를 올려놓으며 말하였다.
"나으리, 이미 김창시는 제가 죽였나이다. 따라서 그를 죽이러
다시 군막으로 찾아갈 필요는 없나이다"
"그러하면"
김익순이 물어 말하였다.
"나무통 속에 김창시의 수급이 들어 있단 말이냐"
"그, 그렇습니다. 나으리"
김익순은 평소에 김창시를 잘 알고 있었다. 평안도 제일의
학자이자 선비였던 김창시의 문명을 잘 알고 있었던 김익순은 평소
그를 흠모하여 이따금 만나서 어울려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차마 나무통의 뚜껑을 열어 그 안에 들어 있는 김창시의
목이 사실인가 아닌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낌새를 눈치챈
조문형이 상자의 뚜껑을 열어 그 안에서 김창시의 목을 꺼내 들었다.
김창시는 눈을 부릅뜬 채 숨져 있었다. 그 모습이 처참하여 차마
목불인견이었다.
"이놈아"
눈을 가리며 김익순이 소리쳐 말하였다.
"통 속에 어서 넣지 못하겠느냐"
그러자 조문형이 소리내어 웃으면서 말하였다.
"어쨌든 제가 가져온 물건이 김창시의 목인가 아닌가를 직접
확인하셔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거라"
김익순은 그 즉시 천 냥을 내어주며 말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라"
이로써 개천 출신의 천하장사 이제초와 평안도 제일의 선비이자
홍경래 난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격문을 지었던 김창시는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공평한 것인가. 홍경래의 난이 진압된 후 결국
조문형도 효수형에 처해져버린다.
한편 창성으로 포수를 구하러 떠난 김창시가 비참하게 살해당한
것을 모르고 계속 기다리던 김사용은 마침내 의주의 의병들과
격전을 치르게 되었다.
임상옥을 방수장으로 하는 의병들은 스스로 이름을 창의군이라
짓고 굳게 의주성을 지키다가 정월 16일 아침 성을 나와 김사용의
근거지인 양책참을 선공하였다.
창의군 대장이었던 허항은 앞장서서 진두지휘하여 공격하였다. 그
기세에 놀란 혁명군은 처음에는 우왕좌왕하였으나 곧 전열을
가다듬고 맞서 싸우기 시작하였다. 치열한 접전이었다. 비록 기세가
꺾이긴 하였지만 김사용의 북군이야말로 혁명군의 정예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허항과 김견신을 앞세운 창의군의 공세를 당해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김사용은 후퇴를 명하였다. 그러나 허항은 물러서는
김사용의 군대를 그대로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는 패주하는
혁명군의 퇴로를 차단하였다. 그러는 와중에 아깝게도 허항은 유탄을
맞아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허항.
아버지가 돌아가서 거우 중임에도 불구하고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모집하고 스스로 창의군의 대장이
되었던 허항. 조정으로부터 우림장으로까지 임명되었으나 아깝게도
유탄을 맞아 전사한 허항과 그를 도와 의주를 지키는 방수장이
되었던 임상옥 두 사람이 서로 힘을 모음으로써 의주는 청천강
이북에서는 홍경래의 난으로부터 지켜진 단 하나의 성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김사용의 북군은 후퇴하다가 선천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이 직접
살려준 선천부사 김익순이 반갑게 맞아줄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성문은 굳게 닫겨 있었으며 성문 앞에는 방이 내걸려 있었다.
김사용은 그 방을 읽어 보았다. 그 방에는 적의 괴수 김창시의
목을 참하였다는 내용이 씌어 있었으며 성문 앞에는 김창시의 목이
효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자 김사용은 그대로 졸도하여 쓰러졌다. 한참 후에
정신을 되찾은 김사용은 칼을 들고 일어나서 말하였다.
"내 반드시 적의 목을 베어 원수를 갚을 것이다. 그러하지 않으면
살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김사용은 혁명군을 몰아 선천을 공격하였다. 하루 만에 선천을
되찾은 김사용은 김익순을 마루 밑에서 찾아내었다. 김익순을 본
순간 김사용은 눈에 불을 켜고 말하였다.
"나는 네가 스스로 목에 새끼를 매고 항복하여 왔을 때 네 목숨을
살려주었다. 그런데 너는 나를 배신하여 두 번이나 돌아섰다. 어떻게
할 것이냐. 내 칼에 베여 죽을 것이냐, 아니면 전번에 나를 찾아온
그대로 새끼에 목을 매고 죽을 것이냐"
김익순은 자진하여 죽을 것을 간청하였다. 김사용이 허락하자
김익순은 스스로 서까래에 새끼를 묶고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김사용은 그의 시체를 말에 묶어 끌고 다니게 한 후 목을 베어
김창시의 목이 내걸렸던 그 자리에 대신 걸고, 김창시의 목은 불태워
화장하여 날려보내었다.
관군은 선천을 향해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김사용은 어쩔 수
없이 남은 군사들을 정리하여 정주성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김사용의 북군이 정주성으로 달려가 남군과 합류함으로써 혁명군은
마침내 정주성 한곳에만 집결하여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관군은 결국 선천을 회복하였다. 이로써 혁명군의 손에 들어갔던
여덟 개의 열읍은 정주성 하나만을 제외하고 모조리 관군의
수중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평서대원수 홍경래는 정주의 성문을 굳게 닫고 성내에서 온갖
군비를 마련해서 장기전의 태세를 갖추었다.
관군은 정주성을 치려고 온갖 계교를 다하였다. 성벽을 타고 넘기
위해서 사다리무기인 운제와 병거 등 새로운 무기들을 만들어
시험하였으나 성내의 혁명군의 철저한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관군의 중군대장은 박기풍이었다. 그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함경도 절도사, 황해도 병마절도사 등 주로 변방의
군사들을 지휘하던 무신이다.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도총부 부총관으로 양서순무중군 겸
선봉장이 되어 청천강 이북의 각 고을을 모두 회복하였다. 이
전공으로 인하여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겸하여 홍경래가 지키고 있는
정주성을 네 번이나 공격하였으나 이를 성공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홍문관으로부터 '성격이 유약하여 규율을 잡지 못한 까닭에
실패하였다' 는 소핵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정에서는 홍문관의 탄핵을 받아들여 박기풍을 파면하고 그 대신
유효원을 임명하였다.
유효원은 승승장구했던 전임 박기풍과 달리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던 무인이다.
그는 이미 61세의 환갑을 지낸 노장이었는데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냈던 유진항의 아들이었다. 23세의 청년 때 무과에 급제한 후
탄탄한 벼슬길에 올랐으나 죄인 신형하를 정배할 때 이를 법대로
다스리지 않고 인정을 보여 관용을 베풀었다가 도형을 받고
유배되었다.
3년 뒤 다시 기용되어 우포도대장, 금군별장, 좌포도대장으로
승진되었으나 난폭한 성질로 민가에 불을 질러 다시 파직되었던
전력을 갖고 있었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되어 좌포도대장으로 기용되었으나,
수하 병졸들의 군기를 문란케 한 책임을 지고 파직되었던 강골의
무인이었던 것이다.
네 번의 공격에도 정주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책임을 물어
박기풍을 면직시키고 강골의 무인 노장군 유효원을 복직시킨 것은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용맹성 때문이었다.
유효원은 지금이야말로 무인으로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유효원은 박기풍을 대신해서 양서순무중군의 총대장으로 임명
되자마자 군령을 엄히 하는 한편 네 번의 공격에도 성을 점령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휘하의 장수들을 모조리 삭탈하고 그들의
이름들을 사판에서 지워버렸다.
사판은 일종의 벼슬아치의 명부로서 여기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함은 영원히 벼슬길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뜻하는 일이다.
유효원은 군령을 엄히 하고 작전을 새로 짜기 시작하였다.
유효원은 한겨울 동안에는 정주성을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유효원은 봄이 되기를 기다렸다.
유효원은 물샐틈없는 포위로 정주성을 고립시키는 한편 봄이 되자
밤이 오기를 기다려 관군을 동원하여 정주성의 북쪽 성 밑을 파기
시작하였다.
성문이나 성벽 위를 넘어서 쳐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또한 홍경래의 혁명군들도 만반의 태세를
완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식량도 군비도 모두 충분하여 이들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 에는 정주성에서 생포한 숫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생포한 남녀 2천 9백 83명 안에서 여자는 8백 42명이고 남자는
10세 이하가 2백 24명이니, 이들은 모두 풀어주었습니다. 그외 1천
9백 17명은 모두 적중에서 이른바 총수 . 창수 등으로 적의 혈당이
되었던 자들로서 결코 한 시각이라도 천지간에 살려둘 수 없는지라,
모두 진 앞에서 효수 하였습니다'
1천 9백 17명의 혁명군도 후일 관군에게 항복한 숫자이니 실제로
혁명군의 숫자는 3천 명에 육박하는 대군이었을 것이다.
3천 명의 군사라면 이는 절대로 만만치 않은 군세였었다. 만약
이들이 힘을 합쳐 성을 나와 정면으로 관군과 결전을 벌인다면 어느
쪽이 이길지 승패를 감히 점칠 수 없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결국 자신의 전공을 과시하기 위해서 항복한 농군들을 모두
죽여버린 유효원은 훗날 이것이 문제가 되어 난의 평정에 따른
상벌을 논의하던 중 공과상반, 즉 공과 과실이 반반된다 하여
대간에서 삭직을 요청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난을 평정한 공로로 죽은 지 7년 후 병조
판서로 추증되었으며 순조로부터 시호를 무숙으로 받았던 빼어난
무인이었다.
봄이 되어 4월이 되자 얼어붙었던 당이 녹아서 쉽게 파들어갈 수
있었다. 모든 작업을 한밤중에 은밀하게 하였으므로 혁명군은
까마득히 이를 모르고 있었다.
마침내 순조 12년 임신년 4월 19일 밤.
관군은 미리 파 둔 땅 속에 화약 수천 근을 묻고 심지에 불을
질렀다. 타들어간 불꽃은 화약을 점화시켜 수천 근의 화약이 일제히
폭발하였다.
엄청난 폭발과 더불어 삽시간에 북성이 무너지고, 이윽고 북장대가
무너졌다. 관군은 물밀듯이 성안으로 쳐들어갔다.
당시 평서대원수 홍경래는 서장대에 머물면서 혁명군을 직접
지휘하고 있었으며 북장대는 김사용이 지키고 있었다. 북장대는
정주의 진산인 해발 545미터의 독장산 여맥에 솟아 있는 파수대였다.
김사용은 관군의 기세를 어떻게든 저지해서 시간을 끌어서라도
서장대에 있는 홍경래에게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하였다.
그는 있는 군사들을 지휘하여 용감히 싸웠으나 이미 전세는
기울고 있었다. 그는 날아오는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이로써 혁명군의 부원수이자 북군의 맹장이었던 김사용은 아깝게도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관군들은 물밀듯이 서장대 쪽으로 쳐들어갔다.
서장대의 높은 누각에서 밀려들어오는 관군들의 모습을 홍경래는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이미 사태를 그르친 것을 알았다.
도망칠래야 도망칠 수 있는 혈로도 없었으며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이때 홍경래는 혁명군들의 참모인 우군칙과 이희저 등과 함께
있었다. 홍경래의 호위는 선봉장이었던 홍총각이 맡아 하고 있었는데
사태의 위급함을 알게 된 홍총각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대원수 나으리, 옷을 벗어 나를 주옵소서"
홍경래는 홍총각의 속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옷을 대신
갈아입고 자신이 홍경래 역할을 함으로써 어떻게 해서든 홍경래에게
포위망을 뚫고 도망칠 기회를 주려 함이었다.
"소용없는 일이다"
홍경래는 웃으며 말하였다.
곳곳에서 성은 무너지고 있었으며 한꺼번에 폭발한 화약으로
성읍은 완전히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관군들은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었다. 혁명과는 상관없는 읍내의 주민들이라 할지라도 관군들은
닥치는 대로 찌르고 베었다. 부녀자들과 아이들도 쓰러져 나갔다.
살아 있는 아비규환이었다. 피맛을 본 관군들의 증오심은 불붙고
있었다.
혁명군은 어떻게 해서든 방어선을 구축하려 하였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화약과 조총에서 우세한 화력을 확보하고 있었던
관군을 기껏해야 낫, 칼, 창과 같은 농기구로 무장한 농민군이
대적하기에는 애당초 무리였던 것이다.
"대원수 나으리"
곁에서 홍총각이 소리쳐 말하였다.
일찍이 소금장수였던 미천한 신분의 자신을 발탁하여 혁명의
중심에 세운 홍경래에 대해서 홍총각은 혈육 이상의 정을 갖고
있었다.
홍총각은 홍경래를 호위하여 날아오는 화살과 총을 자신의 몸을
방패삼아 물러서고 있었다. 정주성은 원래 조선시대 때 쌓은
성곽이었다. 북한의 사적 34호로 되어 있는 성곽은 초기에는 흙으로
쌓은 토축성이었으나 뒤에 석성으로 개축한 읍성이었다. 성곽의
높이는 낮은 곳이 2미터, 높은 곳이 5미터에 이르고 있는데 요소마다
성치를 설치하고 있었다.
혁명군은 서장대까지 빼앗기고 성치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옷을 신이 입겠나이다"
홍총각은 자신이 홍경래의 모자를 빼앗아 머리에 쓰고 홍경래의
갑옷을 벗겨 자신이 대신 입었다. 그는 평서대원수의 휘장이 새겨진
붉은 깃발을 대신 손에 들고 관군들로부터 시선을 집중시켜 마지막
혼란작전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홍경래의 생명을 지키려는 홍총각의 이러한 행동은 오히려
홍총각은 살고, 홍경래를 죽이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왜냐하면 홍경래를 산 채로 생포함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중군대장 유효원은 전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엄명을
내려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로 홍경래를 죽여서는 안된다. 털끝 하나 다쳐서는 안된다.
살아 있는 그대로 생포하여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홍경래를
살상하는 자가 생길 경우에는 군령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홍경래의 투구와 갑옷을 빼앗아 대신 입고, 대원수의 휘장이
새겨진 홍총각의 모습은 관군의 표적이 되었다. 죽여야 할 적의
표적이 된 것이 아니라 살려야 할 대상의 표적이 된 것이다.
따라서 관군들은 그 표적을 향해 진격해 나갔을 뿐 그곳을 향해
집중 사격을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농군들은 닥치는
대로 쏘고, 잔인하게 베었다.
관군들은 소위 초토작전이라 하여서 애매한 농민들을 혁명군의
배후세력을 인정하고 그들을 원수처럼 대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농민들은 관군의 약탈을 피해 정주성으로 퇴각하여 농군으로 편입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말이 농군이었지 실은 소박한 농민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허수아비처럼 쓰러지고 죽어 나갔다.
그때였다.
관군들이 쏘는 조총으로부터 날아온 탄환이 홍경래의 가슴에
정통으로 박혔다. 홍경래는 그대로 쓰러졌다.
"대원수 나으리"
홍총각을 비롯하여 우군칙, 이희저가 쓰러진 홍경래를 감싸안았다.
그러나 이미 사태는 그르친 뒤였다. 탄환이 가슴을 꿰뚫어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으리"
이희저가 울면서 몸을 흔들었으나 그의 두 눈빛에서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음이 보였다. 그는 잠깐 동안이나마,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와 같은 것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헐떡이던 그의 숨이 크게 부풀어오르더니 땅이 꺼지듯 스러졌다.
홍경래의 목이 꺾여지고 그의 입에서 붉은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홍경래는 그대로 숨을 거뒀다.
이로써 조선 후기의 혁명아, 과거에 실패한 후 풍수로서 각지를
전전하면서 당시 과거제도의 부패, 세도정치의 모순, 삼정의 문란
등으로 비참해진 백성들의 현실을 체험하면서 썩어버린 조정을
개혁하려던 풍운아 홍경래는 33세의 나이로 아까운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였다.
홍경래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희저는 순간 이성을
잃고 칼을 뽑아들고 적진을 향해 울부짖으며 홀로 달려 나아갔다.
"모두 나오너라, 이놈들아. 내가 너희들을 상대해 주마"
이희저는 닥치는 대로 관군의 목을 베었다. 창수건 총수건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곳곳에서 분수처럼 뿜어 나오는 피분수에 맞춰 머리를 산발한 채
흔들어대는 그의 칼춤은 마치 망나니의 모습 그 자체였으며,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한꺼번에 쏟아내고 있는 피의 광기는 더 이상
인간의 그것도, 예의 이희저의 그것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대의의 명분도, 또 복수의 일념도, 혁명이란 말도 아무
의미 없는 미사여구일 뿐이었다.
오직 무의식적 손놀림만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놈들아, 내가 바로 천하제일왕 이희저다"
이희저는 이렇게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선 장대비가
쉴새없이 흘러내려 강이 되고 있었다.
천하제일왕.
죽음을 예견한 것일까.
이희저가 그토록 원했던 '천하제일왕'을 울부짖고 있던 그 찰나,
의병 함의형의 창이 이희저의 갑옷을 뒤에서 뚫으며 속살에 꽂혔다.
"내가 바로 천하제일왕 이희저다"
이 말은 이희저의 마지막 유언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홍경래와 이희저의 죽음은 곧 전투의 포기와 직결되었다.
홍총각은 죽을 때까지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였으나 총참모
우군칙은 이미 전세가 글러 싸울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군칙은 대원수의 휘장이 새겨진 붉은 깃발을 내리고, 백기를 들고
항복하였다.
아직까지 홍경래의 죽음을 모르는 유효원은 즉각 전투 중지를
명령하여 항복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홍경래가 죽었음을 알게 되자 유효원은 곧 대노하여
총참모 우군칙, 병참장 이박저 등 몇 명의 참모들만 빼어놓고 나머지
군사들은 모두 죽여버리라고 명령하였다.
농군들은 항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관군에 의해서 몰살되었다.
이들이 흘린 피는 길상산에서 흘러내린 달천강을 통해 황해로
유입되었는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강물은 통 핏빛으로 물들어
피의 강이 되었으며, 바다 역시 피의 바다가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로써 1811년 12월 18일에 기병하여 시작된 홍경래의 난은
이듬해 4월 19일 정주성이 함락되고 평서대원수인 홍경래가
죽음으로써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게 된 것이다.
'만고의 역적'
(순조실록) 에는 홍경래에 대해서 단 한마디로 그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다섯 달 동안의 짧은 기간이었고, 불과 청천강 이북의
한정된 지역만을 휩쓸었던 혁명이었지만 만고의 역적 홍경래가
불붙인 민중들과 농민들의 저항은 결국 썩은 왕조를 몰락케 한
원동력이 되게 하였으며 이로 인해 홍경래는 세기의 풍운아로
되살아나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다. 또한 난에 참여했던 장수들이
살았던 안주, 정주, 가산, 곽산을 현으로 강등시켰으며 개천, 용강을
강호하여 현감으로 삼고 태천은 현의 끝에 끼이게 하였다.
마침내 정주성을 폭파시켜 난을 평정한 유효원은 우군칙, 홍총각
등 반역자들을 압송하는 한편 홍경래, 이희저의 시신과 함께 관군을
이끌고 평양으로 개선하였다.
2
임상옥이 참가하였던 환영연이 벌어지고 있을 무렵 평양으로
압송되어 온 우군칙과 홍총각은 반역죄를 물어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들은 모두 대역죄인들이었으므로 능지처사로 처형되었다.
능지처사의 참형은 먼저 신체의 살을 잘게 저미거나, 신체의 특정한
곳에 칼질을 하여 상처를 낸 후 목을 베는 극형이었는데 죽은 후의
효수는 간두에 매달아서 백성에게 보이는 참형이었다.
이 무렵 임상옥은 홍경래의 난 동안 의주성을 지킨 공로로
오위장으로 임명되었다.
오위장이라면 종 2품의 벼슬로서 세조 3년(1457년) 이전의 군제를
새로 고쳐 만든 중앙군사조직의 타 지역의 장을 겸하는 열두 명
중의 하나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사단장에 해당되는 직책이었다.
임상옥은 의주와 전라감영의 중군으로 함께 겸하는 오위장으로
임명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로 보면 아무리 조선 제일의 거부라고는 하지만
사농공상의 엄격한 신분제도 속에서 일개의 상인이 오위장으로나마
임명되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임상옥은 오위장으로 임명을 받은 그날 밤 은밀히 새로
부임한 평안감사 정만석을 찾아가 말하였다.
"나으리, 일개 비천한 신에게 종 2품의 벼슬을 내려주심은
백골난망이나이다"
정만석은 임상옥의 이름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의주에서 이름난 상인일 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으뜸가는 부호이며
무엇보다 당대의 권신 박종경 대감의 비호를 받고 있는 상인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오. 그대에겐 종 2품이 아니라 정 2품의 벼슬을
제수한다 하여도 전혀 나무랄 것이 없음을 잘 알고 있소이다"
"하오나"
임상옥은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신은 나으리께서 내려주신 오위장의 벼슬을 감히 받아들일 수가
없나이다"
"어째서 그렇소"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정만석이 물어 말하였다.
"그대의 논공보다 벼슬의 품계가 부족하여서 그렇소이까"
"천만의 말씀이나이다"
임상옥이 말하였다.
"나으리, 오위장이라 함은 무장들의 벼슬이옵고 신은 무예와는
거리가 먼 한갓 장사꾼에 지나지 않나이다. 신이 비록 난 때에 있어
방수장이 되었으나 이는 다만 이름뿐이었고 실제로 방수대장은
전사한 허항이었나이다"
"물론 원숙공의 충정이야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소이까"
원숙은 죽은 허항의 자였다.
"때문에 조정에서도 허공을 우림장으로까지 제수하지 않았소이까.
또한 표절사를 지어 길이 원숙공의 충절을 기린다고 하니, 그렇게
하면 죽은 원숙공도 편히 눈을 감게 될 것이나이다'
표절사란 평안도 내의 사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하려던 사당이었다.
홍경래의 난 때 순절한 가산군수 정시를 비롯하여 소위
임신칠의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끝까지 항거하였던 홍경래 최후의
성 정주성읍에 세워진 사당이었다. 이곳에 배향된 나머지 6의사는
허항, 한호준, 백경한, 박지환, 제경욱, 김대택 등이다.
"나으리"
임상옥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신은 장사꾼이어서 무예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나이다. 따라서 나으리께서 임명하신 벼슬은 받아들일 수가
없나이다. 그 대신 허항 공을 비롯하여 임신년의 일곱 명 의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만드는 사당의 건립은 전액 신이
기부하겠나이다"
사당을 건립하는 전액을 자신이 부담하겠다는 임상옥의 말에 번쩍
정만석의 귀가 뜨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6개월 동안의
변란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사당을 건립하는 비용을 각출하는
데 많은 애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렇게까지 해주신다니 고마웁기 그지없구려"
정만석이 파안대소하자 임상옥이 조심스럽게 말을 받았다.
"그 대신 한 가지 청원이 있나이다"
"그것이 무엇이오"
그 대신 청이 하나 있다는 임상옥의 말에 정만석이 정색을 한
얼굴로 물어 말하였다. 그러자 임상옥이 고개숙여 말하였다.
"차마 아뢰옵기 황망하나이다"
"무엇이냐고 내가 묻지 않았소이까"
정만석이 재차 묻자 임상옥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번에 홍경래의 난 때 협조하였다가
능지처참된 죄수의 시신 하나를 신에게 주셨으면 하나이다"
"무엇이라구"
뜻하지 않은 임상옥의 말에 크게 놀라면서 정만석이 소리를
높였다.
정만석은 잘 알고 있었다.
홍경래의 난에 협조하였던 우군칙, 홍총각 등 대역죄인이
평양성까지 압송되어 끌려와 능지처사되었으며 그들의 효수들은
홍경래, 이희저의 수급과 함께 간두에 매달려 성민들에게 효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시신은 가져가 무엇하시게"
원래 대역죄로 죽은 죄수들의 시신은 매장도 허락되지 못하는
법이었다. 그들의 시신은 함부로 들판에 내버려 굶주린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거나 날짐승이 쪼아먹도록 내버려두는 관례가 있었던
것이다.
"신이 매장하여 주고 싶어서 그렇나이다"
순간 정만석은 임상옥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 사람이 도대체
제정신인가 하는 눈빛으로 임상옥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정만석이
말하였다.
"이 사람아,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대역죄인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러주는 것도 역모죄가 되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물론 알고 있나이다. 그래서 감사 나으리께 청원을 드리고 있지
않나이까. 신은 대역죄인을 장례하여 줄 마음은 없나이다. 다만
허락하여 주신다면 시신을 수습해서 땅 속에 묻어주고 싶은
생각뿐이나이다. 봉분도 세우지 않고 비석도 세우지 않겠나이다.
아무런 표지도 남기지 않겠나이다"
"도대체 누구의 시신을 원하고 있단 말인가"
정만석이 임상옥의 얼굴을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홍총각인가'
"아닙니다"
"그러하면 우군칙인가"
"아닙니다, 나으리"
임사옥이 대답하였다.
"이희저의 시신이나이다"
"이희저의 시신을 말인가"
정만석이 심드렁한 얼굴로 물어 말하였다.
"그렇나이다, 나으리. 이희저의 시신을 신에게 주셨으면 하나이다"
"도대체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데"
"이희저는"
임상옥이 조심스레 입을 열어 말하였다.
"한때 신의 막역한 친구였나이다. 둘이서 함께 청나라로 들어가
장사를 하였던 만상들이었나이다"
자칫하면 오해받을 수 있는 말이었다. 죽은 대역죄인 이희저와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밀이었던 것이다. 남들은 행여 역모에 연루될까 쉬쉬하여 함구하고
있는 판에 어째서 임상옥은 대역죄인의 친구임을 스스로 고백하여
밝히고 있는 것일까.
정만석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상옥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임상옥의 얼굴에는 조금도 동요하는 빛이 없었다.
이 사람은.
정만석은 순간 생각하였다.
신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비록 국가에는 모반하여 대역죄를 지어 참형을 받았다고는
하오나 신에게는 변함없는 친구이나이다. 죄를 보아서는 극형을 받아
마땅하오나 인간으로 보아서는 죽어서도 차마 땅 속에 묻히지
못함이 너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나이다"
조심조심 임상옥이 말을 이었다. 묵묵히 말을 듣고 있던 정만석이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어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시게나. 다만 이 일이 밖으로 알려지면 피차 서로 좋을
것이 없으니 절대로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조심을 하시게나.
어차피 어지러운 난국이니까 말일세"
다음날 아침.
동트기 전에 성문 밖에 걸렸던 세 죄수의 효수 중에서 이희저의
목이 내려졌다. 비록 시신은 없는 수급뿐이었지만 임상옥은 이희저의
수급을 조심스럽게 초라한 목관 속에 넣었다. 시신을 지키던
위병들의 호주머니에도 두둑이 뇌물이 주어졌다.
이 모든 작업이 귀신도 모르게 빠르고 그리고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이희저의 시신은 곧바로 그의 고향 가산으로 운구되었다.
가산은 반란군의 총본영이 있던 곳이라 하여서 관군들에 의해
철저히 초토화되어 있었다.
특히 이희저가 경영하던 다복동의 깊은 골짜기의 광산은 모든
것이 불타고 모든 것이 파괴되어 폐허가 되어 있었다.
임상옥은 이희저의 시신을 대령강 속에 있는 신도로 옮겨갔다.
신도는 홍경래의 혁명군이 기병하였던 발화점이었다. 홍경래가
대원수의 복장을 하고 김창시로 하여금 격문을 낭독케 하고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냈던 바로 그곳이었다.
임상옥은 하인 둘을 시켜 흘러가는 강물이 잘 보이는 둔덕 위의
흙을 파도록 하였다.
때는 4월 하순이어서 봄은 한창 무르익어 온통 푸른 풀들과
나뭇잎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언제 그러한 비극이 있었냐는
듯 관군에 의해서 불타버린 대지에는 어느새 푸른 신생의 신록들이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고, 섬을 감도는 대령강의 강물은 와랑와랑
물소리를 내면서 휘돌아 나가고 있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거름 무렵이었으므로 서편 하늘은 붉은
낙조가 드리워져 있었고 강물도 온통 핏빛이었다.
이윽고 하인들이 입관할 수 있도록 깊이 당을 파자 임상옥은 친히
이희저의 관을 땅 속에 묻었다. 남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매장하고
있었으므로 격식을 갖추지 않고 신속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평양감사 정만석과 봉분도 만들지 않고 비석이나 그 어떤 표지도
남기지 않겠다고 미리 약속해 두었으므로 임상옥은 이희저의 수급을
땅 속에 묻자 그대로 흙을 덮어버렸다.
흙을 덮은 후 임상옥은 가져온 술을 흙 위에 뿌렸다.
생전에 유난히 술을 좋아하던 이희저가 아니었던가.
임상옥은 봉분조차 만들지 못한 이희저의 무덤 위에 앉아
자작하여 술을 마시면서 묵묵히 이희저와 있었던 지난 일들을
회상하여 보았다. 임상옥은 자신이 한 잔 마신 후에는 반드시
이희저의 무덤 위에 술을 한 잔 독같이 부어내리곤 하였다.
마치 다정했던 친구 이희저가 그곳에 앉아 있기라도 한 듯이.
"한 잔 마시게나"
임상옥은 입으로 소리를 내어 그렇게 말하곤 하였다.
주거니 받거니 잔을 돌리는 동안 임상옥은 취기가 솟아올랐다.
그는 묵묵히 잔을 들고 앉아서 강물 위에 반사된 붉은 낙조가
타오르듯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날이 저무는 것을 아쉬워하는 듯 섬의 갈대숲에서 일제히
새떼들이 일어나 강물 위를 바짝 스치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서편 하늘로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보면서 임상옥은 다시
생각하였다. 이희저와 처음으로 만나 함께 중국으로 들어가던
산해관에서의 첫날밤. 죽은 아비를 생각하며 임상옥이 '천하제일의
상인' 이 될 것을 맹세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술병을 들고 나타난
이희저는 임상옥의 고백을 듣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야단났군. 왜냐하면 나 역시 '천하제일의
상인' 이 되는 것이 꿈이니까. 우리 둘 중 누구 하나는 죽어야겠군.
하늘에는 태양이 둘이 없고, 천하에는 영웅이 두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그러나 그 말은 농담이었다.
"우리끼리 이곳에서 나눈 이야기는 죽을 때까지 천지신명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입을 열어 털어놓지 않기로 맹세해 주겠나"
임상옥의 다짐을 받고 나서 이희저는 자신의 꿈을 고백했던
것이다.
'천하제일왕'
이희저의 꿈은 바로 그것이었다. '하늘 아래 제일의 임금' 이 되고
싶은 것이 이희저의 욕망이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흙 밑에 잠들어 있는 이희저의 시신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려 말하였다.
"나도 모반에 가담하였다면 자네처럼 이렇게 비참하게 모가지가
베어져 죽어버렸을 테지. 안 그런가, 희저. 한 잔 더 마시게나"
임상옥은 사신이 마셨던 빈 잔에 술을 가득 따라 붉은 흙더미에
쏟아부었다. 술취한 그의 눈가에서 눈물이 솟아 흐르기 시작하였다.
임상옥은 다시 빈 잔에 이번에는 스스로 자작하여 술을 따르고는
천천히 들이켜고 있었다.
그렇다. 이희저는 '재물'을 소유하였을 뿐 아니라 천하의 권세마져
소유하려 하였다. 그가 능지처참으로 비참하게 죽은 것은 혁명에
실패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과욕 때문인 것이다.
지위와 명예는 끝없는 경쟁심을 일으키고 재물은 끝없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이 끝없는 경쟁심과 끝없는 욕심은 결국 인간을
병들게 하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무지와 무욕 그리고
무위의 삼무야말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인 것이다.
임상옥은 빈 잔에 술을 따랐다. 간신히 한 잔을 채우고서야 술은
떨어졌다. 임상옥은 그 남을 술을 이희저의 가묘 앞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나서 임상옥은 마지막으로 다정했던 벗 이희저의
무덤앞에서 큰절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임상옥으로서는 마지막 인사였다.
이제 다시는 이곳을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이희저의 가족들은
모두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니 이 무덤 자리를 안다고 한들 찾아와
성묘할 사람들조차 없을 것이다. 또 안다고 하더라도 봉분조차
만들지 못하였으므로 한 해만 지나도 잡초가 우거져 어디가
무덤이고 들녘인지 구별이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묘비조차 없는 무덤이라 할지라도 땅 속에 묻힌 이희저의 시신은
세월이 가면 썩어서 살은 살대로 흩어지고, 뼈는 뼈대로 삭아서 모두
흙으로 돌아가버릴 것이다.
"그럼 잘 있게"
임상옥은 마지막 술잔을 흙더미 위에 부어내렸다.
그것으로 모든 장례는 끝이 난 셈이었다.
임상옥은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섰다. 마신 술이 많아서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취하였으나 마음은 밝았다. 친구의 장례를 무사히
치렀다는 안도감으로 임상옥은 돌아서서 둔덕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석양의 그림자를 배경으로 까마귀들이
까악까악 울면서 날아오르고 있었다.
문득 임상옥은 김식의 시를 떠올렸다.
푸른 솔길도 멀고 석문도 먼데
말에서 내리니 분명 집에 도착한 것 같네.
지붕보다 높은 배나무 처음 열매 맺고,
뜰에 가득한 작약 반쯤 꽃이 피었네.
고개 위에 바람 이니 바위 사이 폭포 울고,
강물 위에 구름 나니 바다안개에 연했네.
느지막이 누각에 올라 한가로이 앉았으니
석양의 그림자 돌아가는 갈가마귀 보내네.
"잘 있게. 희저"
돌아서면서 임상옥이 중얼거려 말하였다.
"자네가 나를 살려주었네. 자네가 대신 죽음으로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었네. 고맙네 그려"
사라져가는 석양의 그림자가 물든 강물 위에는 김식의 시처럼
안개가 뽀얗게 드리워져 있었고 석양의 그림자를 등에 지고
까마귀떼들이 어디론가 돌아가고 있었다.
임상옥은 비틀거리며 언덕을 내려왔다.
이제나 저제나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하인들이 황급히 달려왔다.
임상옥은 이것으로 이희저와의 인연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과연 이희저의 수급을 묻어줌으로써 그와의 인연이 모두
끝이 난 것이었을까.
그러나 이희저와의 인연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또다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임상옥과 이희저는 숙세로부터 숙연을 맺은
불가분의 관계인지 모른다.
@[제3장 전설의 잔@]
인사동 거리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봄철을 맞아 각종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지 골목의 전신주마다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고 전시장을 알리는 포스터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화랑들과 골동품상. 낡은 고서들을 취급하는 전문책방들과
솜씨를 낸 카페들과 한옥들이 밀집되어 있는 인사동 골목은 낡아서
어딘지 퇴락하고 있는 느낌이 들지만 그 나름대로의 운치를 지니고
있었다. 박재정이 경영하고 있는 '고예관' 은 인사동에서도 후미진
골목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유난히 햇빛이 비치는 양지쪽으로 난
쇼원도에는 낡은 민화 몇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계의 전문가로
알려진 박재정의 점포치고는 작고 소박하였다.
문을 열자 문에 걸린 종이 딸랑딸랑 울렸다. 눈부신 봄볕이
흘러넘치는 바깥에서 어두운 실내로 갑자기 들어선 탓일까.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어서 오세요"
누군가 나를 반기는 소리가 났다.
맑은 여인의 목소리였다.
좁은 실내는 골동품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구석진 자리에 여인
하나가 차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햇볕 쪽으로 평상이 놓여있었고 그
평상 위에서는 작은 화분 속의 꽃들이 낡은 골동품 속에서
비현실적인 화려한 빛깔로 번득이고 있었다.
나는 여인에게 내가 찾아온 용건을 말하였다. 그러자 여인은 "잠깐
기다리세요" 라고 말한 다음 내실로 사라졌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내가 이 골동품상점에 찾아온 목적을 잠시
생각하였다.
김기섭 회장의 자동차공장 안 숙소에서 본 '계영배'
나는 그 잔에 새겨진 '계영기원 여이동사' 란 여덟 개의 글자, 즉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바란다' 란
내용의 글자를 통해 그 술잔이 전설이나 야담 속에 등장하고 있는
임상옥의 그 유명한 계영배란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그 깨어진 술잔이 과연 전설 속에 나오는 계영배에 틀림이 없을
것인가. 아니면 전설 속의 계영배를 모방하여 만든 모작품일지도
모르는 일이 아닐 것인가.
나는 그 계영배가 임상옥의 진품인가 아닌가의 진위 여부를
판별해 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수소문 끝에 내가 소개받은 사람은 TV 같은 곳에서 공개적으로
골동품 가격을 매기는 사람이며, 골동품 감정에 뛰어난 심미안을
가진 것으로 소문이 난 박재정이란 사람이었다.
골동품 같은 분야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었던 나도 박재정의
이름은 전해듣고 있을 정도였다. 박재정이 사계의 권위자라는
사실을, 소개해 준 대학 후배는 누누이 강조하고 있었다.
백재정은 인사동에서 자그마한 골동품상을 직접 경영하고 있었다.
전화로 미리 통화를 하고 약속시간을 정해 인사동으로 그를 찾아온
것이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라졌던 여인이 다시 나타나 나을 안내하였다.
안으로 난 쪽문을 열자 작은 내실이 나타났다. 그 안에 박재정이
앉아 있다가 나를 맞았다.
낡은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상점 겸 살림집이었는지 작은 내실의
천장위로 서까래가 그대로 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를 안내해 준 여인은 아마도 박재정의 부인인 모양이었다.
여인이 녹차를 가져오기를 기다려 우리는 뜨거운 차를 함께 나눠
마셨다.
오랜 침묵이 흐른 뒤 박재정은 이윽고 입을 열어 말하였다.
"물건은 갖고 오셨습니까"
"갖고 왔습니다"
나는 들고 온 가방 속에서 계영배를 꺼냈다.
그것은 한기철로부터 당분간 빌려서 내가 따로 보관하고 있는
물건이었다.
내가 잔을 내밀자 그는 두 손으로 그 잔을 받았다. 그른 두 손에
흰 장갑을 끼고 있었다. 골동품을 소중하게 다루려는 그의 세심한
마음 같은 것이 느껴져서 함부로 다루는 내 자세에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그는 잔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거리 쪽으로 작은 창이
하나 나 있었고 그곳으로 눈부신 봄햇살이 흘러들어오고 있었으므로
광량은 충분하였다. 육안으로만 잔을 들여다보던 박재정은 무엇인가
발견하였는지 확대경을 찾아들고 잔을 면밀하게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다.
생활한복을 입고 있어 나이가 들어 보일 뿐 나보다 연하의
모습이었다. 나보다 젊은 사람이 어떻게 골동품 감정 같은 부문에서
제일인자가 될 수 있을까,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이윽고 감정이 끝난 듯 박재정은 잔을 탁가 쥐에 내려놓았다.
"무엇을"
박재정은 놓아두었던 찻잔을 들어 다시 한 모금 마시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무엇을 아시고 싶으십니까"
"우선 이 잔이 언제쯤 만들어졌을까 그 연대를 알고 싶습니다"
"아마도 한 2백 년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박재정은 대답하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임상옥은 1779년에 출생하여 1855년에 숨을 거뒀다.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2백 년 정의 인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계영배가 2백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박재정의 감식은 정확한 것이다. 따라서 이
깨어진 술잔이 임상옥의 진품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잔을 만든 곳은 어디입니까"
"이 잔이 만들어진 곳은"
박재정이 녹차를 마시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마도 경기도 광주군 일대에 있었던 분원일 것입니다. 당시
광주군 일대에는 사옹원이라는 관원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관영
사기제조장인 셈이었지요. 국가가 필요로 하는 관어용 도자기들은
국가가 직접 담당하여 전국의 명인들을 경기도 광주에 집합시킨 후
그곳에서 직접 사옹원의 임무 아래 임금이 쓰거나 혹은 궁중에서
쓰는 그릇들을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이 잔은 그곳에서 만들어진
특산품 중의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박재정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소중하게 술잔을 들고서 낮은
소리로, 그러나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시 광주 지방에서는 사옹원에서 번조소를 만들어 왕궁용
사기그릇을 조달하는 수공업장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종
8품직의 봉사가 번조관으로 파견되어 직접 사기그릇의 생산을
독려하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숙종 20년 그러니까 1694년의
경우에는 1년에 천 3백 죽의 사기그릇이 궁중에 납품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한 죽은 열 개의 그릇이므로 일년간
납품되는 그릇은 모두 만 3천여 개의 엄청난 숫자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물었다.
"이 그릇은 그렇게 생산되는 만 3천여 개의 그릇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박재정은 머리를 흔들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사옹원에 소속된 사기장이 380명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철저히 분업이 되어 각자 맡은 일에만
충실하고 있었는데, 예를 들면 작업 감독을 맡은 변수와 성형을 맡은
조기장, 굽는 일을 하는 마조장과 보조를 맡은 건화장, 제조를 맡은
수비장, 연토를 맡은 연장, 수정을 맡은 참역과 번조를 맡은 화장,
번조 책임장인 부호수와 번조 살핌을 맡은 감화장, 화공인 화청장과
유약조합을 맡은 연정과 시유를 하는 양수장, 제품의 선별을 맡은
파기장 등입니다. 이처럼 엄격하게 분업화된 가운데 사기장들은 평생
불만 때는 일, 평생 물레질하는 일로 지내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누구나 자기분야에 있어서는 달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그릇은 엄격히 말해서 광주분원에서 만들어진 그릇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관어용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관어용들은 궁중에서 쓰이는 그릇임을 알리는 표시 같은
것이 되어 있는데 반해 이 그릇에는 그러한 표시가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그릇은 당대 최고의 명인 중의 한 사람이 관어용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개인 창작품으로 만든 물건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박재정은 말을 이었다.
"내가 이 그릇이 관어용이 아니라고 보는 또 다른 이유는 그릇
안쪽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그 글씨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 글자는 모두 여섯 자였습니다. 처음 넉 자는
계영기원이었는데 나머지 두 글자는 동사였습니다. 원래는 여덟 자가
새겨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불행하게도 잔이 깨어져나간 부분에 그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따라서 이 그릇은 분명히
광주분원에서 제작된 물건이지만 관어용은 절대로 아닙니다.
궁중에서 쓰여질 그릇에 사사로운 개인의 낙서가 새겨진 그릇이
납품될 리는 없기 때문이지요. 사기장들은 대부분 한여름에만 모여서
궁중용품을 만들고 나머지 한 철에는 사발, 대접, 접시 등
사제품들을 만들어 직접 육로로 혹은 배를 타고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산골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팔았는데, 당장 돈 없는
농가에는 외상으로 나눠 주었다가 가을이 되면 곡식으로 받거나
현금으로 받아서 돈을 벌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잔은 당대
제일의 명장이 자신의 개인 창작품으로 만든 특산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재정은 잠시 말을 끊고 자신의 찻잔에 뜨거운 녹차를 더 따랐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찻물이 식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물어
말하였다.
"솜씨는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뜨거운 찻물을 한 잔 마시고 나서 박재정은 말을 이었다.
"최고의 솜씨를 가진 사람의 작품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그릇이 작고 또한 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는 어떻습니까"
나는 그가 TV 같은 곳에서 골동품과 같은 물건들을 직접 감정해
주고 시청자들을 위한 흥미거리로 골동품의 가격을 매겨주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요"
박재정은 얼굴에 미소를 띄워 올렸다.
"깨어진 물건이라서 특상품이긴 하지만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는
없습니다"
"만약 깨어져 있지 않았다면요"
"글쎄요. 그렇다 해도 그렇게 많이 값이 나갈 수는 없습니다. 2백
년밖에 안된 조선 후기 때의 물건이고, 작은 술잔에 불과한
물건이라서"
"만약 값을 매긴다면 얼마를 매기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짓궂게 물었다. 그러자 박재정은 소리를 내어서 웃었다.
소리를 내어 웃음을 보인 것이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 농담을 하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나는 다소 정색을 했다.
"값을 알고 싶은 것은 진심입니다. 그렇지 않다면야, 어째서 내가
박 선생님을 소개받아 이렇게 직접 물건을 들고 찾아뵈러
왔겠습니까"
그러자 박재정은 대답하였다.
"이 물건은 값으로 치면 만원도 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깨어지지
않았다면 한 이십만원은 되겠지요. 하지만 이 물건이 어떤
개인에게는 억만금을 준대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물건일 수도
있겠지요. 가령 이 물건이 조상 대대로 물려오는 사연 깊은 가보이자
유산이라면 그 값어치를 따질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원. 불과 만원도 되지 않는 깨어진 잔. 그러나 이젠 분명해졌다.
이 잔이 2백여 년 전, 광주의 분원에서 만들어졌다는 박재정의 말이
분명하다면 이 잔은 임상옥의 계영배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만원도 되지 않는 깨어진 술잔 하나가 임상옥에게는
낳은 부모보다 더 소중한 물건임을 도대체 박재정은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계영배를 두 손으로 들면서 박재정을 쳐다보았다.
"잔에 새겨진 계영기원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러자 박재정은 대답하였다.
"글쎄요, 이런 뜻이 아닐까요. '가득 채워서 마시지 말기를 바란다'
아마도 이 잔을 만든 사람은 이 그릇을 자신의 휴대용 잔으로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실 때마다 가득 채워 마시지 말자는
경구를 보면서 술을 절제하고 적당히 마시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 나머지 두 글자 동사란 말은요"
내가 묻자 박재정은 대답하였다.
"글쎄요. 깨어진 부분에 두 글자가 더 있었던 것 같아서요. 글자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그 깨어진 부분에 어떤 글씨가 새겨져 있었던 것 같습니까"
나는 따져 물었다. 그러나 박재정은 애매하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글쎄요. 너무 어려운 부분이라서"
"혹시"
나는 정면으로 박재정을 쳐다보았다.
"그 깨어진 부분에 여이란 말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뒷부분의 문장은 여이동사 즉, 너와 함께 죽겠다는 뜻이
아닐까요"
"글쎄요"
글쎄요는 박재정의 말버릇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보시는 무슨 뚜렷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박재정의 질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깨어진 부분에 새겨져 있던
글자를 여이로 추정하여 온전한 문장을 여이동사, 즉 너와 함께
죽겠다고 해석하는 내 의견은 그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위험하고,
임의적인 해석이었다.
그렇다면 박재정은 야사에 나오고 있는 그 유명한 계영배의
이야기를 모르고 있는 것일까.
"혹시"
나는 물었다.
"임상옥이란 인물을 알고 계십니까"
그러자 박재정은 아무런 대답 없이 찻잔에 뜨거운 녹찻물을 따라
천천히 들이켰다.
"글쎄요"
짧은 침묵 끝에 박재정은 대답했다.
"조선조 말의 의주 태생이었던 거상 임상옥을 말씀하시나요"
"그렇습니다"
"그분이 쓰시던 계영배란 술잔에 대해서는 들어보신 적이
없습니까"
"글쎄요"
여전히 애매한 표정으로 박재정은 말을 받았다.
"저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순간 그의 탁자 위에 놓인 깨어진 잔, 그의 소견으로 모면
2백여 년 전, 관어용의 그릇들을 만들던 사옹원 소속 광주분원에서
특상품이지만 값어치로 보면 깨어져 만원도 나가지 않는 보잘것없는
그 잔이 바로 임상옥이 평생 갖고 다니면서 스스로를 경책하였던
전설속의 그 잔임을 말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제하였다. 골동품
감식의 전문가인 박재정의 눈에는 이 깨어진 술잔이 만원도 채
못되는 하찮은 유물쯤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상옥에게 있어 이 깨어진 계영배는 스승 석숭
스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비기이며 이 비를 통해 임상옥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뿐인가. 그리하여 임상옥은 이
계영배를 통해 전무후무한 조선왕조 최대의 거상이 될 수 있었으며
마침내 젊은 시절 맹세하였던 대로 '하늘 아래 제일의 상인' 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뜨거운 녹차를 마시면서 박재정이 나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 깨어진 잔이 임상옥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술잔인
모양이지요"
"글쎄요"
나 역시 애매하게 대답하였다.
이것으로 됐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박재정의 명쾌한 분석을 통해
이 깨어진 술잔이 임상옥의 계영배임이 백 퍼센트 확증이 된 셈인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이것으로 박재정을
소개받아 그를 만나러 온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이루었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고맙습니다"
나는 탁자 위에 놓인 계영배를 다시 가방 속에 넣고 일어섰다.
박재정은 나를 상점 문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상점을 나와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서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담배의 연기를 가슴 깊숙이 빨아들이면서 나는 중얼거리며
말하였다.
임상옥에게 그 계영배가 어떻게 일생일대의 마지막 위기를 물리쳐
주었는가 그 미스터리를 밝히는 일인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석숭 스님이 예언하였던 임상옥이 맞이한 세
번째의 위기로 뛰어드는 일인 것이다. 죽을 사 자로 첫 번째의
위기를 벗어난 임상옥은 솥 정 자로 홍경래의 난에서 비껴서서
마침내 멸문지화를 벗어나게 된다. 그러하면 계영배는 어떻게
임상옥의 세 번째 위기를 벗어나게 하였던 것일까. 아니, 임상옥에게
닥쳐온 세 번째 위기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이렇게 해서 임상옥에 대한 추적은 또다시 시작되었던 것이다.
@[제4장 호사다마@]
1
1832년 임진년. 순조 32년.
임상옥은 곽산군수로 제수되었다.
한갓 장사꾼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임상옥은 일찍이
신미년에 일어난 홍경래 난 때 수성의 공으로 국가로부터 오위장의
벼슬을 받았으나 이를 사양하고 부임하지 아니하였으며 또한
신사년에는 변무사를 수행하여 연경에 들어가 공을 세웠으므로
완영중군의 벼슬을 받았으나 역시 이를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곽산군수로 제수된 것은 임금이 직접 내린 특지였으므로
임상옥이 이를 마다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사양하면 어명을
거스르는 일이었던 것이다.
곽산은 원래 정주군에 속한 작은 고을로 임상옥이 군수로 부임할
때까지만 해도 홍경래의 반란군이 수세에 몰리자 정주성으로
후퇴하여 4개월 동안이나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반역향이다.
홍경래의 난이 끝난 지 벌써 20여 년이 흘러갔지만 아직 곽산은
그 처참했던 반란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임상옥의 나이는 54세로서 그는 인생의 절정에 있었다.
임상옥이 곽산군수로 재임하고 있을 무렵에 있었던 일화 하나가
오늘까지 남아 전하고 있다.
사람을 보는 눈이 뛰어났던 임상옥의 대인관을 통해서 임상옥의
상업철학을 엿보기로 한다.
옛말에 이르기를 '작은 부자는 부지런한 데서 오고, 만석 부자는
하늘이 낸다' 고 하였다. 그러면 임상옥은 작은 부자가 될 사람과
하늘이 내는 큰 부자가 될 사람을 어떻게 구별하여 헤아릴 수
있었단 말인가.
임상옥이 곽산군수로 부임하자 사랑방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다. 임상옥으로부터 돈을 빌려 달라는 청탁을 하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임상옥이 사랑방에 들어가자 공교롭게도 세 사람의 낯선
손님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임상옥이 찾아온 목적을
묻자 세 사람은 동시에 대답하였는데 한결같이 '돈을 빌려 달라' 는
청탁이었다. 그러자 임상옥은 물어 말하였다.
"돈을 빌려서 뭘 하려는가"
그러자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돈을 빌려 장사를 해서 돈을 벌려 합니다"
임상옥은 나머지 두 사람에게 똑같이 물어보았다.
"돈을 빌려서 뭘 하려는가"
나머지 두 사람도 똑같은 대답이었다. 빌린 돈으로 장사를 해서
돈을 벌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임상옥은 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참 후에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하였다.
"헛허허. 세 사람 모두 장사를 해보시겠다니 오죽 좋은
생각들이오. 좋소. 그럼 바로 지금 세 사람 모두에게 각각 한 냥씩을
빌려 드리겠소. 이 한 냥을 가지고 나가서 닷새 후에 각자 재주껏
장사를 해서 이문을 남겨서 돌아오시오. 그 이문을 남기는 태도를
보아서 원하는 대로 돈을 빌려 드리겠소이다"
임상옥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모두 공평하게 돈 한 냥씩을
내어주면서 말하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닷새 뒤. 과연 돈 한 냥씩을 빌려간 세 사람이 한날
한시에 임상옥을 찾아왔다. 맨 먼저 함경도에서 찾아온 상인에게
임상옥이 물었다.
"그래 이문을 얼마나 남기셨소"
그러자 함경도 상인이 말하였다.
"저는 그 한 냥으로 짚을 샀습니다. 짚을 사서 짚신을 다섯 켤레를
삼아 날마다 장에 나가서 팔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루에 한 켤레씩
팔아 하루에 한 푼씩 남았습니다"
두 번째의 사람은 평안도 사람이었다. 그에게도 임상옥이 물어
말하였다.
"그래 이문은 얼마나 남겼소"
그러자 평안도 상인이 대답하였다.
"예. 저는 그 돈 한 냥으로 대나무와 창호지를 사다가 하루에
종이연 다섯 개를 만들었습니다. 마침 설날 대목이라 금방 다
팔았습니다. 닷새 만에 여기 본전 한 냥을 제하고도 이문이 한 냥
남았습니다"
닷새 만에 본전 한 냥을 제하고도 이문을 한 냥 남겼으니 대단한
성공이었다. 임상옥은 나머지 한 사람, 황해도 사람에게 물어
말하였다.
"손님은 한 냥으로 뭘 하였소이까"
그러자 그 사람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대인 어른께오서는 한 냥으로 도대체 무슨 장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담 아무런 이문도 남기지 못하셨단 말이오"
"준 돈 한 냥으로 술을 마셨나이다. 아홉 푼으로 하루종일 술을
마시다 보니 한 푼이 남았습니다"
"그 한 푼으로 뭘 하셨소"
'한 푼으로 백지 한 장을 샀습니다"
"백지를"
임상옥이 의아한 표정으로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백지를 한 장 사서 무슨 장사를 하셨소이까"
그러자 그 사람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그까짓 종이 한 장으로 장사는 무슨 장사를 했겠습니까. 주막에서
먹과 붓을 빌려 그 백지에 소지를 썼습니다"
"무슨 내용의 소지였소"
"...내가 이제부터 절간에 들어가 사서오경을 좀 읽겠으니 의주부윤
나리께서는 글 읽는 동안에 쓸 비용을 좀 변통해 주십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랬더니요"
"부윤 나으리께서 돈 열 냥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져 왔나이다"
"황해도 사람은 주머니에서 돈 열 냥을 꺼내 임상옥 앞에
내어놓았다"
어쨌거나 한 사람은 한 냥으로 짚신을 엮어 다섯 푼을 벌었으며,
한 사람은 종이연을 만들어 한 냥을 남겼으며, 나머지 한 사람은
기발한 방법으로 열 냥을 구해온 것이다.
소지.
예로부터 관부에 올리는 소장을 소지라 하였다. 다른 말로는
백활이라고도 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 일어난 일
중에서 관부의 결정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오늘날의 진정서와 같은
것이다. 소지를 수령이나 관계 관부에 올리면 해당 관원은 내용을
살펴본 뒤 그 소지에 대한 판결을 내리게 되어 있는데 이를 '뎨김'
이라 하였던 것이다. 황해도 사람은 이 기발한 방법을 통해
의주부윤에게서 열 냥을 얻어내었던 것이다.
한 냥을 빌려주어 닷새 동안에 장사를 하든지 무슨 방법으로든
이문을 남겨오라는 임상옥의 일차 관문의 결과는 엉뚱하게 내려졌다.
즉, 임상옥은 짚신을 삼은 사람에게는 백 냥을, 종이연을 만든
사람에게는 2백 냥을 빌려주고, 소지를 올렸던 사람에게는 서슴없이
천 냥을 빌려주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각자 차용증을 쓰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 돈을 가지고 가서 일년 동안 재주껏 장사를 하여 보시오.
정확히 일년 뒤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나기로 하겠소"
세 사람은 돈을 빌려 가지고 뿔뿔이 흩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선비
하나가 임상옥에게 물어보았다.
"대인어른께오서는 어째서 짚신을 삼은 사람에게는 백 냥을
주시고, 종이연을 만든 사람에게는 2백 냥을 주셨습니까"
그러자 임상옥은 대답하였다.
"짚신을 만든 사람은 꼼꼼해서 절대로 낭패를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사는 한 푼으로 한 푼을 버는 행위는 아닙니다.
그것은 씨앗을 뿌려 씨앗을 거두는 농사꾼이나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절대로 부자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예로부터 '부지런한 사람은 굶어죽지는 않지만 큰 부자는
되지 못한다' 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백 냥만 빌려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종이연을 팔아 한 냥을 남긴 사람에게는 2백냥을
빌려주셨습니까"
"종이연을 만들어 판 사람은 짚신을 삼아 판 사람보다 머리가
좋습니다. 그는 마침 섣달 대목이라 아이들이 종이연을 갖고 논다는
시기를 적절하게 이용하였습니다. 그는 시기를 살필 줄 아는 눈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장사는 한 치 앞의 때를 살피다가는 낭패를 보기
마련입니다. 때를 살피는 장사꾼은 한때 성공할지 모르나 언젠가는
그 때를 타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살피는 장사꾼은
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 하루아침에 쫄딱 망할 수도 있습니다. 부자가
되어도 거부는 되지 못합니다. 또한 그는 장사를 상술에만 의지하려
합니다. 장사는 절대로 기술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선비는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임상옥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백지 한 장을 사서 부윤에게 소지를 올렸던 그
허황된 사람에게는 천 냥을 빌려주셨습니까. 그는 돈을 벌려고 땀을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술만 마신
게을러빠진 사람이 아닙니까"
어째서 술만 마시다가 백지 한 장을 사서 소지를 올렸던 게으른
사람에게 천 냥을 꿔주었냐는 선비의 신랄한 비판에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내가 그 손님에게 천 냥을 꿔준 것은 그가 돈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돈으로써 돈을 벌려 하는 사람은 절대로 돈을 벌 수
없습니다. 돈은 사업을 하다 보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지 돈을
좇으면 사업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부터 '돈은 계집과
같다' 하였습니다. 계집이란 예뻐하면 예뻐할수록 앙탈을 부리고
화를 부르게 되어 있는 법입니다"
그로부터 일년 뒤. 정확히 만나기로 했던 바로 그날, 세 사람은
다시 임상옥의 사랑방에 모여 앉았다. 짚신을 만들어 팔았던 사람이
빌린 돈 백 냥과 그에 따른 이문까지 갚으며 말하였다.
"저는 빌려주신 돈으로 대장간을 열었습니다. 평생 해본 짓이
풀무질이니 다른 장사는 해볼 수가 있어야지요. 그 동안 시우쇠를
다루며 온갖 연장을 만들어 장마다 돌아다니며 팔았습니다"
"손님은 그 동안 뭘 하셨소"
임상옥은 종이연을 만들어 팔던 사람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저는 빌려주신 돈으로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소금과 건어물을
사서 내륙지방으로 들어가 되팔아서 그 돈으로 농산물과 약초들을
샀습니다. 그 농산물과 약초들을 전국 각지에 팔아 큰 이문을
남겼으며 이제는 점방을 다섯 곳이나 열어놓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대인어른의 은덕 때문이나이다"
임상옥은 마지막으로 백지를 사서 부윤에게 소지를 올렸던 엉뚱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는 다른 두 사람과는 달리 행색이 엉망이었다.
"손님은 그 동안 무슨 장사를 하였소이까"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보다시피 빈손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냥 도망칠까도
생각했습니다만 대인어른과 맺은 굳은 약속이라 도망칠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였길래"
임상옥이 묻자 그 사내는 대답하였다.
"...대인어른께오서 주신 돈 천 냥을 갖고 저는 평양으로 갔습니다.
말장사나 한번 해볼까 했었지요. 그런데 우연히 어떤 기생년에게
홀딱 반했습니다. 사내가 기왕 기생오입을 하는데 야금야금할 수도
없고 해서 그 기생년 구멍이 얼마나 큰지 그 구멍 속에 은전을
넣어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사내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그 기생년 구멍이 얼마나 큰지 한 달도 채 못되어 천
냥이란 돈이 모두 그 구멍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들어가는 것은 물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
참 세상에 무슨 구멍이 깊네깊네 해도 여인의 구멍같이 깊은 것은
처음 보았소이다"
"그래서요"
임상옥이 묻자 그는 대답하였다.
"약속한 날짜는 다가오고 해서 기생년에게 그 동안 쌓던 정분을
봐서 노잣돈이라도 달라 하였더니 겨우 다섯 냥을 주길래 그것을
받아서 이렇게 대인어른을 찾아왔나이다"
"그렇다면 꿔간 돈은 어떻게 하시겠는가"
"갚을 돈이 있어야 갚지요. 하는 수 없이 대인어른 댁에서
머슴일이나 하면서 품앗이로 갚을까 하나이다, 대인어른"
실로 염치도 없고, 개차반같이 뻔뻔한 수작이었다. 예로부터
난봉꾼이란 마음잡아봤자 사흘이라고 남의 돈 천 냥을 갖고 장사를
하겠다는 놈이 이 모양이니 애초부터 글러버린 녀석이었던 것이다.
사랑방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임상옥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임상옥은 담담한 표정으로 물어 말하였다.
"그럼 앞으로 무엇을 하겠는가"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면 또다시 장사를 해서 돈을 벌고
싶습니다"
실로 파락호다운 대답이었다. 그러나 임상옥은 그 말에 개의치
않고 이번에는 2천 냥을 사내에게 내주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돈으로 다시 장사를 하여 보시게나. 정확히 일년 뒤 오늘 돈을
갚기로 하고"
사내는 날름 임상옥이 주는 돈을 받아들고는 그 즉시 사랑방을
떠나버렸다. 옆에서 끝까지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선비 하나가 물어
말하였다.
"도대체 그에게 돈을 빌려주어 무엇을 어떻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그는 주색잡기에 능한 한갓 난봉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틀림없이 빌려주신 그 돈으로 술을 마시면서 그 기생년의
치마폭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자 임상옥이 껄껄 웃으며 대답하였다.
"글쎄요. 옛말에 이르기를 참새는 눈앞의 담장 밖에 모이만 떨어져
있어도 지지배배 춤을 추면서 몰려들지만, 대붕은 한 번 먹으면 5년
동안이라도 먹이가 없어도 아예 제자리에 꿈쩍 않고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임상옥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일찍이 장자는 말하였소. 북주의 바다에는 곤이란 고기가 있는데
그 크기는 몇천 리가 되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 고기가
변하여 붕새가 되는데 그 붕새의 크기 또한 몇천 리가 되는지
아무도 짐작하여 아는 사람이 없소이다. 이 붕새는 전혀 움직이지
않으나 한 번 마음먹고 날 것 같으면 그 날개 벌린 모습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도 같다, 그리하여 제해란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갈 때에는 날개를 벌여 구천
리가 되는 수면을 치고, 거기서 일어나는 엄청난 선풍을 타고 날개를
흔들면서 구만리 장천에 올라간다. 그리하여 여섯 달이나 걸려서야
남녘 바다에 깃들어 쉬게 된다' 고 말입니다"
"그러하면"
선비가 다시 물었다.
"대인어른께서는 그 난봉꾼이 대붕이라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임상옥이 껄걸 웃으며 말하였다.
"나 같은 참새가 어찌 대붕의 속마음을 알겠습니까"
임상옥은 어쩌면 사내의 행동에서 옛 기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갓 스물 넘은 청년시절 임상옥은 이희저를 따라간 색주가에서
우연히 천하의 절색이었던 장미령을 만나지 않았던가. 살려 달라는
여인의 애원을 물리치지 못하고 갖고 있던 모든 돈 5백 냥을 털어
여인의 몸값을 지불하고, 임상옥은 그 길로 의주의 상계에서
추방되어 장돌뱅이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비록 그 난봉꾼처럼 기생의 몸 속에 거금 천 냥을 쏟아붓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임상옥 자신도 어쨌든 한 여인의 생명을 구해주기
위해 전재산을 바쳤었던 엉뚱한 과거를 갖고 있지 아니하였던가.
결국 전화위복이 되어 고관의 부인이 된 장미령을 통해 연경의
상계를 장악할 수 있었던 임상옥이고 보면 그 사내의 엉뚱한 행동이
어쩌면 임상옥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기다렸다.
모두들 일년 뒤 약속한 날짜에 2천 냥을 다시 빌려간 그 사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그 날짜에 돌아오지 않았다.
일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그의 그림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천하의 임상옥이 협잡꾼에게 사기당했다는 유쾌한 소문이 의주성
내에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그런데 정확히 6년 뒤 바로 그 약속한 날짜에 그 난봉꾼이 다시
임상옥의 사랑방에 나타난 것이다.
난봉꾼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임상옥에게 넙죽 절하였다.
"대인어른, 그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아니, 자네가 웬일인가. 이게 몇 년 만인가"
"예에, 정확히 6년 만입지요"
"그 동안 어떻게 지내었는가"
임상옥이 묻자 그는 대답하였다.
"그간의 사정 얘기는 차차 드리기로 하고 대인어른께 또다시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부탁이라니"
임상옥이 짐짓 놀란 표정으로 물어 말하였다.
"또다시 돈을 꾸어달라는 부탁은 아니겠지"
"헛허허,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하면"
"소 열 마리에 튼튼한 달구지를 채워 주시고 이를 부릴 일꾼 열
명만 불러주십시오"
"무엇에 쓰려고 그러는데"
"묻지 말고 열흘만 기다려 주십시오"
임상옥은 두말 않고 그 사내가 시키는 대로 달구지를 채운 소 열
마리와 이를 부릴 일군 열 명을 딸려 보내었다. 사내는 이들을
거느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또다시 의주성민들에게 소문이 번져나갔다. 임상옥이 세 번씩이나
그 팔난봉꾼에게 사기협잡을 당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정확히 열흘 뒤.
그 사내는 의주에 나타났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빈 달구지로 떠났던 수레들이
모두 가득가득 인삼으로 채워져서 돌아온 것이다. 모두 6년근으로 질
좋은 인삼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놀란 임상옥이 물어 말하였다. 그러자 그 사내가 웃으며 말하였다.
"천하의 대인어른께서 모르시나이까. 인삼이 아니나이까"
"아니, 소 열 마리에 모두 인삼을 싣고 왔단 말인가"
"아, 인삼이 아니면 도라지를 캐어서 싣고 왔단 말입니까"
"임상옥은 놀랐다.
소의 달구지에 한 가득 짐을 실은 것은 '바리' 라고 부른다. 인삼
한 바리에 대충 잡아서 만 냥, 소 열 마리의 달구지에 가득가득
인삼이 실렸으니 열 바리는 족히 되는 엄청난 양의 인삼이었던
것이다. 돈으로 따져봐도 10만 냥이 넘는 천문학적 금액이었던
것이었다. 그 많은 인삼을 임상옥에게 내놓은 후 그 사내는
말하였다.
"이 모두가 대인어른의 인삼이나이다. 실로 6년 만에 빚을 갚게
되었나이다"
사내의 말처럼 그는 임상옥의 빚을 6년 만에 빚을 갚게
되었나이다"
사내의 말처럼 그는 임상옥의 빚을 6년 만에 갚은 것이다. 그것도
처음에는 천 냥, 두 번째는 2천냥, 모두 3천 냥을 빌려갔던 사내는
6년 만에 10만 냥의 거금으로 불려 갚게 된 것이었다.
"그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나 한번 말씀하여 보시게나"
술상을 차려서 사내를 대접하자 사내는 호탕하게 술을 마신 후
입을 열어 말하였다.
"6년 전 대인어른이 빌려주신 2천 냥을 갖고 저는 다시 평양으로
그 기생을 찾아갔나이다. 도대체 그 기생의 구멍이 얼마나 컸던지
일년 만에 천 냥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을 보아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냐, 저는 결심했습니다.
그 기생년의 구멍이 얼마나 큰지 내 한번 끝장을 보리라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2천 냥을 갖고 그 기생방에 틀어박혀 다시 일년
동안 살았습니다. 대인어른과 약조하였던 날짜가 다가왔지만 일년
동안 그 기생년의 구멍 속에 들어갔던 돈은 모두 천냥이 넘었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기생년의 구멍의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나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대인어른과의 약조날짜를 어길 수밖에
없었나이다. 저는 나머지 천 냥도 그 기생의 치마폭에 쏟아붓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시 일년이 흘러갔는데 여전히 구멍의 끝은 보이지
않았으며 어느 날 남은 돈을 세어보니 백 냥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습니다. 이러다간 안되겠다.
이러다간 패가망신은 물론이고 남의 돈 등쳐먹는 협잡꾼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길로 평양에서 길을 떠나 개성으로 갔습니다.
남은 돈 백 냥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마침내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황해도 사람은 호탕하게 술을 마시며 신이 나서 떠들어 말하였다.
"무슨 생각을 떠올렸던 말인가"
임상옥이 묻자 사내는 대답하였다.
"남은 돈 백 냥으로 인삼 씨를 사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인삼씨를 사고 보니 서 말 정도가 되었습니다"
"인삼 씨를 사서 무엇을 하고 싶은 생각이었는데"
술좌석에 참석했던 박종일이 도저히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채근하여 말하였다.
"얼른 속시원하게 빨리 털어놓으시게나"
그러나 그 사내는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는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인삼 씨 자루를 둘러메고 저는 강원도 삼척군으로 찾아갔나이다.
태백산에 이르러 사람들이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심심산중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내는 다시 말을 이었다.
"심심산중으로 들어간 저는 이 골짝 저 골짝을 찾아다니며 북쪽
응달을 골라 바람잡듯 인삼 씨를 뿌렸나이다. 그랬더니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길로 또다시 평양으로
올라가 그 기생년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 기생년은 저를 반갑게
맞이하였으나 한 푼도 없는 거렁뱅이임을 눈치채자 저를 괄시하기
시작하였나이다. 그래서 제가 말하였습니다. 너도 이젠 이팔청춘도
아니니 얼마 안 가 퇴기가 되거나 병들어 늙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에게도 이젠 기둥서방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 물론 그 기생년은
코웃음만 쳤나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기생도 늙어 찾아오는 사람이
없자 저를 기부로 맞아들여 전 명색이 그 기생년 기둥서방이
되었나이다. 우리는 평양 성밖으로 나아가 주막집ㅇ르 차렸는데 그
기생년은 창을 부르며 지나는 나그네들을 유혹하고 저는 그
뒷바라지를 하면서 세월을 보냈나이다. 그러다 보니 문득 6년의
세월이 흘러갔나이다"
사내는 자신의 말처럼 예전의 청년 모습이 아니었다. 자신의
말대로 술과 여자, 그리고 세상 풍파에 젖어 어느덧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전 그 길로 대인어른을 찾아와
달구지를 채운 소 열 마리와 일꾼 열명을 빌려 달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대인어른은 계속 속았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이나 저를
만나 주셨습니다. 저는 일꾼들을 몰고 6년 전 갔었던 태백산으로
찾아갔나이다. 여전히 태백산 심심산골은 사람은커녕 짐승들도
드나들지 않는 첩첩산중이었습니다. 찾아가 보니 뿌렸던 임삼들이
모두 잘 자라서 거대한 인삼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길로 저는
일꾼들을 시켜 그 인삼들을 캐서 이렇게 보다시피 인삼을 싣고
돌아온 것입니다"
사내는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대인어른께서는 천하의 인삼군자가 아니십니까. 그러니 캐어온
인삼의 질은 어떠한지 아실것이 아니겠습니까"
인삼의 품질은 6년근을 최고로 친다. 더구나 그 인삼은 인적이
드문 태백산 산중에서 사람의 손때를 타지 않고 바람과 비로
자생되었으므로 거의 산삼에 가까울 정도로 약효가 뛰어난
극상품이었던 것이다.
"그러하니 대인어른께오서는 캐어온 인삼의 값이 얼마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세"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소달구지 한 바리에 만 냥은 되겠으니 모두 합해서 10만 냥
정도는 될걸세"
그러자 사내가 물어 말하였다.
"제가 대인어른께 빚진 돈을 얼마만큼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임상옥이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그만두시게나. 이 모든 인삼은 자네 인삼이니 모두 자네 것일세.
다 자네의 물건들일세. 나는 원금만 받으면 그만이네"
사내는 소리쳐 말하였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대인어른의 돈으로 이런 장사를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하여 소인의 인삼일 수 있겠습니까. 모두
대인어른의 인삼이나이다"
곁에서 보던 박종일이 거들어 말하였다.
"저 사람의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돈은 분명 형님의 돈이 맞고
장사는 저 사람이 했으니 인삼은 분명 저 사람의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시지요. 반반씩 나눠 가지십시오"
박종일의 말에 두 사람은 합의를 보았다. 임상옥이 5만 냥을
지불하여 인삼을 사들이는 것으로 정확히 반씩 나눠 가졌던
것이었다. 이로써 임상옥은 큰 사람을 꿰뚫어 봄으로써 3천 냥으로
5만 냥을 벌어들이는 최고의 장사를 한 것이며 그 사내 역시
임상옥을 만남으로써 장사를 성공시켜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평소에 '상즉인', 즉 상업이란 결국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라는 상업철학을 갖고 있던 임상옥이 상도가 적중되었음을
가르쳐주는 일화였던 것이다.
5만 냥을 받고는 곧바로 길 떠날 채비를 차리고 있는 그 사내에게
임상옥이 물어 말하였다.
"이제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그러자 그 사내는 웃으며 말하였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아직 그 기생년의 구멍을 다 헤아려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5만
냥의 거금이 생겼으니 그 치마폭 구멍에 도대체 얼마만큼 돈이
들어가야 끝장을 볼 수 있을까, 한번 부딪쳐 보겠나이다"
"그래서 또다시 평양으로 가시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마침 그 기생년이 늙어 퇴기할 때 돈이 없어
대비정속을 들이지 못하고 물러나왔나이다. 가는 길로 예쁜 계집아이
하나 사들여서 기적에서 빼줄까 하나이다"
대비정속.
기녀들은 병들거나 늙어 퇴기할 때 자신을 대신하여 젊은 계집을
들여놓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를 대비정속이라 하였던 것이다. 돈이
없는 기녀들은 자신의 딸이나 조카딸을 들여놓는 수도 있었고 돈이
있는 기녀들은 돈이 없는 농가들을 돌아다니며 버린 계집아이를
사서 대신 들여놓고 속신을 하여야만 비로소 기적을 벗고 양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5만 냥을 갖고 자신의 말대로 그 기생을 찾아가 기생의 구멍을
끝까지 헤아려 보겠다며 사내가 돌아간 후 사람들이 임상옥에게
물어 말하였다.
"대인어른께오서는 그 사람에게 세 번을 속으셨습니다. 처음에는
천 냥을 꿔주셨으며 두 번째는 다시 2천 냥을 빌려주셨습니다. 세
번째는 소 열 마리와 일꾼 열 사람까지 빌려주셨습니다. 어째서 세
번이나 그 난봉꾼을 믿었습니까"
사람들이 묻자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외국인과 장사를 하는 행상을 고행 혹은
고홍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 고행들은 장사를 하는데 있어 두
가지의 철칙이 있었소. 그 하나는 '성' 이며, 또 하나는 '남을 속이지
않는 것' 이었소. 중국에서 상인들은 성실과 속이지 않음을 '하늘의
길' 이라 하여 중요한 덕목으로 보았소이다. 중국에서 근세 최고의
거부였던 번현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소. '누가 천도를 믿기
어렵다고 말하는가. 나는 남으로 강회에 이르고 북으로 변경의
끝까지 갔지만 도둑맞거나 병으로 쓰러질 근심이 한번도 없었던
것은 하늘이 내가 속이지 않음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무역을
할 때 사람은 속임을 계획하고 있으나 나는 속이지 않음을 계획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날로 이익이 나는데 다른 상인들은 날로
손해만 난다. 누가 천도는 믿기 어렵다고 말했던가' 라고 말이오.
여러분들은 그 사내가 나를 세 번이나 속였다 말하였지만 실은 나를
속인 것은 아니오. 그는 주색에 빠졌으나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비록 그 사람은 '성실한 상인' 은 못되었을지 몰라도
'남에게 거짓말을 한 사람' 은 절대로 아닙니다"
말을 끊고 나서 임상옥은 붓을 들어 듬뿍 먹을 묻힌 후 종이 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써내렸다.
'유불기이자 가종신행지'
문장을 쓰고 나서 임상옥이 둘러앉은 선비들에게 물어 말하였다.
"이 문장의 뜻이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그러자 한 선비가 대답하였다.
"오직 속이지 않는다는 두 글자만이 일생을 마칠 때까지 행하여도
좋으리라"
임상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이 말을 남긴 사람은 옛 중국 북송 때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범중엄 이었습니다"
임상옥이 말을 이었다.
"흔히 하는 장사는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저울을 속이고,
물건값을 속여서라도 이문을 남기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소이다.
때문에 옛부터 사람들은 장사꾼을 '간상배' 라고 불러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상업에 있어 천도는 범중엄의 말처럼 '남을 속이지 않음' 에
있는 것이오. 남을 속여서 일시로는 이익을 남겨 재미를 볼 수는
있을 것이오. 그러나 남을 속이면 절대로 큰 상업을 이룰 수 없는
것이오. 왜냐하면 남을 속여서는 절대로 신용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오. 신용이야말로 장사에 있어 최대의 자본이요, 재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임상옥은 다시 말을 이었다.
"또 한 가지, 상업은 '끊임없이 변화' 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래를 꿰뚫어 보고, 나아갈 대와 물러갈 때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오. 첫 번째로 한 냥을 가지고 짚신 다섯 켤레를
만들어 다섯 푼을 번 사람은 장사꾼을 하느니 차라리 농사꾼을 하는
게 좋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푼 들이면 한 푼 남고,
두 푼 들이면 두 푼이 남는다' 는 것은 장사꾼의 철학이 아니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는 농사꾼의 철학이기
때문이오. 장사꾼들은 '콩 심은 데서 판이 나고, 팥을 심은 데서 콩이
나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농사는
일년의 운수를 보는 '천운적' 요소가 더 강하고, 장사는 '인운적'
요소가 더 강한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종이연을 만들어 섣달 대목을 본 그 장사꾼은 과연 때를 잘
살필 줄 아는 안목을 갖고 있었소이다. 생각했던 대로 바닷가에서
소금을 사다가 내륙지방에서 팔아 큰돈을 벌었고, 내륙지방에서는
농산물과 약초들을 구해다가 바닷가에서 팔아 자신의 말처럼 점포를
다섯 개나 여는 성공을 거두었소.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의 재물을
얻지 못할 것이오"
임상옥은 한 마디로 잘라 말하였다. 듣고 있던 선비들이 의아해서
다시 물어 말하였다.
"어째서입니까. 그 상인은 성실할 뿐 아니라 남을 속이지 않았고,
또한 대인어른과의 약속을 어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임상옥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그 사람은 이익이 있는 곳을 좇아 다니는 사람이오. 그는 비가
오면 우산을 만들고, 비가 그치면 나막신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오.
그는 눈앞의 이익만 살펴서 상술에 의존하고 있는 장사꾼입니다.
분명히 말해서 상업은 기술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서 임상옥이 말하였다.
"큰 장사꾼은 비가 오거나 말거나, 우산을 만드는 사람이며
나막신을 만드는 사람이오. 왜냐하면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것은
자연의 한 현상일 뿐이기 때문인 것이오. 현상을 좇아 다니는 사람은
시세를 좇아다니거나 유행을 좇아다니다가 제 꾀에 넘어가 무너질
것이오. 따라서 큰 장사꾼은 최소한 5년 후의 장래를 내다보는
계책을 세울 줄 알아야 하는 것이오. 세 번째 장사꾼은 비록 술과
계집에 빠진 난봉꾼이긴 하였지만 6년 뒤를 내다보고 인삼씨를
구해다가 태백산 심심산중에 뿌림으로써 마침내 10만 냥이라는
거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오. 옛말에 이르기를 '가장 현명한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라고 하였소이다. (사기)의
'화식열전' 에서도 이르기를 '물이 깊으면 고기가 그곳에서 생겨나고
산이 깊으면 짐승이 그곳으로 달려가고 사람이 부유하면 인의가
부차적으로 따라온다' 고 하였소. 무릇 돈을 벌려는 사람은 돈을
좇아다닐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물과 산처럼 깊이 파고 담으면
고기와 짐승처럼 자연 그곳에서 부귀가 생겨날 것이오"
임상옥이 말을 마치자 귀기울여 듣고 잇던 선비 하나가 소리를
내어 웃으며 말을 받았다.
"'물이 깊으면 고기가 저절로 생겨난다' 는 사마천의 말은 과연
옳습니다"
"어째서"
"그 기생년의 구멍이 얼마나 깊은가 그 사람은 계속 그 구멍 속에
돈을 집어넣어 보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렇게 말하여야
옳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비는 크게 웃고 나서 종이 위에 다음과 같이 써내렸다.
'혈심이화생지 음심이재왕지'
선비가 쓴 문장은 임상옥의 말을 빗대어 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뜻이었다.
'구멍이 깊으면 자연 돈이 그곳에서 생겨나고, 여인의 음부가
깊으면 자연 그곳으로 재물이 달려간다'
좌중은 순간 유쾌한 웃음으로 흘러넘쳤다.
곽산의 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무렵 임상옥에게 실제로 일어났었던
이 일화를 통하여 임상옥의 상업철학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성실' 과 '남을 속이지 않음'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눈'
이야말로 임상옥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상도일 것이다.
이처럼 임상옥이 곽산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그의 사업은
번창일로에 있었으며 자신을 찾아왔던 세 사람의 장사꾼에 얽힌
일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사람과 인생을 보는 그의 안목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상업은 날로 번창하고 한갓 비천한 상인의
신분으로 후에는 귀성부사로까지 제수될 정도로 벼슬길까지
승승장구하여 못하는 것이 없는 무소불능의 경지에 이른 임상옥에게
느닷없이 마가 들기 시작하였다.
옛부터 호사다마라 했던가, 좋은 일이 많으면 역시 재앙을
일으키는 마가 승하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불교에서 내려오는 설화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어떤 보살의 집안에 예쁜 여인 하나가 손님으로 찾아왔다.
하룻밤을 재워줄 것을 부탁하는 그 여인에게 집주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대답하였다.
"나는 집에 복을 갖다주는 천신입니다. 재물과 부귀와 장수를 주는
천신입니다"
그러자 집주인은 그 여인을 맞아들이며 생각하였다.
"어서 들어와 얼마든지 쉬십시오"
여인을 맞아들이자 또 다른 여인 하나가 문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나는 집에다 재앙을 가져다주는 악신입니다"
그 주인은 추악하게 생긴 그 악신에게 말하였다.
"악신은 들어오지 마십시오"
그러자 그 여인은 말하였다.
"우리는 쌍둥이 형제입니다. 천신 혼자만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천신이 있는 곳이면 나도 함께 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내려오는 설화의 내용처럼 천신이 있는 곳이면 악신의
재앙 역시 함께 존재하는 것일까. 승승장구하던 임상옥에게도
결정적인 장애가 다가오는 것이다. 바로 석숭 큰스님이 예언하였던
세 번째의 마지막 위기가 다가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의 기록이 (조선왕조실록) 에 나와 있다.
(조선왕조실록) 에는 그 어디에도 조선 최대의 거부였던 임상옥의
이름이 실려 있지 않다. 임상옥의 이름이 실록에 나오는 것은 오직
한 번뿐인데 그 내용은 바로 이러한 임상옥의 위기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곽산군수에서 귀성부사로 제배된 임상옥에 대해서 지변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논척하였다.
"어제 도정에서는 곽산 전 군수 임상옥을 귀성부사에
제배하였습니다. 임상옥은 작년에 만부의 수재 뒤 의연의 재물을 낸
공로로 본사의 회계로 인해 외직에 조용하라는 승전을 받게 된
것입니다"
회계. 이 말은 임금이 내린 하문에 대해서 조사하고 심의하여
상주함을 뜻하는 말로, 이 문장을 통해 임상옥이 순조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음을 알 수가 있다.
승전이라는 것은 '임금의 뜻을 전하는 말' 로 임상옥이
곽산군수에서 귀성부사로 제배되었던 것은 순조의 특지에
의함이었던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변사의 논척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만 생각하건대 부사와 군수는 승의에 관계되는데
임상옥은 전임 곽산군수로서 직접 섣달의 전회에서 중고에
들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졸지에 군수에서 부사로 발탁하는
예는 일찍이 없던 일이니 고적을 무겁게 여기고 윤간을 신중하게
하는 뜻에도 어긋나는 일이나이다. 그러므로 해당 정관은 추고하고
임상옥에게 새로이 제수된 직임은 청컨대 개차하소서"
한자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뜻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지만 그
대충의 내용은 이러한 것이다.
"임상옥이 수재 때 의연금을 낸 공로로 곽산군수에서 귀성부사로
불과 몇 년 사이에 제배된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니 이를 없던 일로
바꿔 주십시오"
이러한 내용을 조정에 보냈던 지변사들은 당시 비변사에 속한
관리들로 주로 국경의 국방을 맡아보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신분을
감추고 국경지방을 돌아다니며 방위태세를 살피는 일종의 암행어사
노릇까지 맡아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비국을 통해 올린 논척에서
임상옥을 바꿔 달라고 아룀으로써 임상옥이 처했던 당시의
위기상황을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당시 임금이 순조에서 헌종으로 바뀌었던
정권교체기 탓도 있지만 어쨌든 임상옥은 비변사의 의견이
받아들어져 귀성부사로까지 제수되었던 그의 벼슬이 하루아침에
취소되었던 것이다.
이때의 기록이 실록에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비국의 상소는 윤허되었다. 이로써 임상옥은 귀성부사에서
개차되었다'
윤허. 임금이 허락함을 뜻하는 말. 그렇다면 임상옥은 불과 몇 년
사이에 군수에서 부사로 중임되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니 이를
바꿔 달라는 단순한 상소문에 의해 귀성부사에서 밀려나버릴 수밖에
없었단 말인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에 실려 있는 이 기록은 하나의 암시에
지나지 않는다.
임상옥은 하루아침에 귀성부사에서 개차되었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암행어사였던 지변사들에 의해 감옥에까지 갇히게 되었다.
역사의 기록 뒤에 숨겨진, 임상옥에게서 관직을 삭탈하게 한 그
정확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임상옥 스스로 (가포집) 서문에 자서하였던
내용처럼 자신이 태어난 의주읍 내 삼봉산 아래 지은 대하
때문이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이렇게 말하였다.
"...남들은 이것을 궁궐과 같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나 나는 몇 개의
서까래를 엮어서 조석으로 아버님의 묘소를 바라보는 장소를
만들었던 것뿐이다"
임상옥이 몇 개의 서까래를 엮어서 지었을 분이라는 집은 그러나
국경을 돌아다니는 암행어사의 눈으로 보면 한갓 변경의 거부가
짓고 살기에는 지나친 호화주택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었던 것이었다.
당시 국법으로는 양반세도가의 집이라 해도 그 규모와 평수가
일일이 정해져 있던 바, 비록 그 평수를 초과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지나치게 크고 호화로운 임상옥의 집이 비변사의 눈에 거슬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보다도 임상옥이 비변사의 눈총을 받게 된 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임상옥의 숨겨진 여인 때문이었다.
임상옥이 비변사의 논척을 받고, 귀성부사에서 개차된 데에는
이처럼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숨겨진
사연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인생의 황금기인 절정에서 결정적으로 임상옥을 추락하게 한 마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곽산군수에서 하루아침에 옥에 갇히는 죄수가
되어버린 결정적인 이유는 호화주택을 지음으로써 국법을 어긴
표면상의 이유보다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사연 때문이었던
것이다.
숨겨진 사연.
그것은 한 여인 때문이다.
숨겨진 여인.
임상옥에게 찾아온 제삼의 위기. 석숭 큰스님이 예언하였던 마지막
위기를 불러온 숨겨진 여인은 과연 누구였던가. 천하의 무역왕
임상옥이 자신이 가졌던 그 모든 재산과 그 모든 명예, 그 모든
권력까지도 포기하고 그 모든 부귀와 맞바꾸려 하였던 여인. 그
숨겨진 여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 숨겨진 비사는 임상옥이 곽산의 군수로 부임하였던 1832년
초봄에서부터 비롯되었던 것이다.
2
그 무렵 순무사 일행이 변경을 돌아다니며 순행하던 차에 곽산을
찾아올 것이라는 소식이 들어왔다. 순무사는 왕명을 받은 특사로
막강한 힘을 가진 일종의 어사이기도 하였으므로 지방관아에서는
이들을 접대하는 일이 큰 일 중의 하나였던 것이었다.
연회를 앞두고 반드시 관아에 달린 관기들을 점고하는 일도
지방수령의 중요한 일이었다.
관아에 딸려 가무와 탄금을 하던 관기들을 일패 기생이라고
총칭하였는데 잔치나 연회에서는 반드시 술자리의 흥을 돋우기 위해
이들 기생의 역할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라서 이들을 '말을 할 줄
아는 꽃' 이라는 의미로 해어화 혹은 화류계라고 부르기도 했었는데,
특히 의주의 기생들은 치마무검이란 가무로 유명하였다.
곽산의 관아에는 열두 명의 관기가 있었다. 대부분 남편이 있는
유부기들로 나이가 많았으나 그 중 한 여인이 유독 젊고 눈에 뛸
정도의 미인이었다.
평생을 술을 좋아하였으나 여인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던
임상옥이었지만 눈에서 비늘이 떨어질 정도로 미인이었던 것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임상옥이 묻자 젊은 기생은 대답하였다.
"송이라 하나이다"
목소리도 부드럽고 행동거지에도 천기가 없고 품위가 있었다.
나이는 올해로 스무 살이라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임상옥이 그
젊은 관기를 인상적으로 보았던 것은 왠지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처음 본 얼굴이었으나 낯이 설지 않고 수십 차례 만난
사람처럼 친숙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 관기들은 양민도 못되는 천민 중의 하나였던 것이었다.
노비와 마찬가지로 기적에 올려지면 평생 천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경국대전) 에 이르기를 '관원은 기녀를 간할 수
없다' 고 명문화되어 있었지만 관기는 지방수령이나 관료들의 위안
대상으로 수청을 드는 것이 의무였다.
하지만 평생 여인을 멀리 하였던 임상옥으로서는 그 송이라는
젊은 기생이 낯이 익다는 사실이 전혀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일찍이 젊은 시절 잠깐 불문에 들어 승려생활을 했던 습관이 몸에
밴 탓 때문이었을까. 임상옥은 술을 좋아하였지만 여색은 멀리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운은 호색' 이라 하였으나 임상옥은 천하의 절색,
장미령의 몸을 샀음에도 몸에는 손 하나 대지 않는 미덕을 보였던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이미 스무 살 초반이 아니었던가. 스무
살이라면 한창 피가 끓고, 정욕이 불붙을 때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한갓 천인에 불과한 젊은 기생이 낯설지 않고 눈에
익다는 사실이 임상옥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뭘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임상옥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해볼수록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그 젊은 기생이 처음 본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각하면 할수록
분명해지는 것이었다.
몇날 며칠을 고민하던 임상옥은 아전을 불러 물어보았다.
"이보게 이방"
임상옥이 부르자 아전이 허리를 굽혀 대답하여 말하였다.
"말씀하십시오, 사또 나으리"
임상옥은 궁금했던 모든 것을 이방에게 물어보았다. 그 송이란
기생이 어떻게 기적에 올랐으며 어미는 무엇을 하였던 사람인가
하는 신상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러자 아전은 대답하여 말하였다.
나으리, 신이 알기에는 송이의 어미는 기생이 아니옵고 노비였던
것으로 아나이다. 하오나 송이를 낳고 나서 다섯 살 될 무렵
죽어버린 것으로 알고 있나이다. 그래서 송이는 남편을 가진
유부기였던 산홍의 양녀로 들어갔나이다. 산홍이 올해로 병들어 늙고
퇴기할 때 자신의 양딸인 송이를 대신 대비정속 시켜놓았나이다"
"그렇다면"
임상옥이 물어 말하였다.
"그 송이란 기생은 올부터 기적에 올랐단 말이냐"
"그러하나이다, 사또 나으리"
"그러하면"
임상옥이 다시 물어 말하였다.
"그 송이란 기생의 아비는 누구였더냐"
그러자 이방은 황공하여 몸을 굽신거리어 말하였다.
"사또 나으리, 그 송이란 기생의 어미는 물론 아비도 원래는
노비가 아니었나이다"
"노비가 아니었다니"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송이의 어미는 물론 아비 역시
양민이었나이다"
"양민의 딸이 어찌 기생이 될 수 있단 말이냐"
임상옥이 묻자 이방은 대답하였다.
"그것은 송이의 아비가 대역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나이다. 결국
송이의 어미는 그 죄로 인해 비적으로 떨어져 내려와 노비가 되었고,
송이는 관기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나이다"
"아비가 대역죄인이었다구.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냐"
이방의 말은 사실이었다.
조선 초기 대역죄인이었던 사육신의 처자들은 신하들에게 노비로
나누어 주었던 것이 대표적인 예로, 가장 극단적인 예는 광해군 무렵
인목대비의 친정 어머니를 제주감영의 노비로 삼았던 사실일 것이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근친상간의 금기를 범한 상서예부시랑 이수의
조카며느리를 기생의 적에 올려 유녀로 삼았던 것처럼 조정에서는
역신들의 처자들을 노비로 삼거나 기생으로 삼는 일이 왕왕 있었다.
그러자 이방은 대답하였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송이의 아비는 평서대란 때 난을 일으킨
대역죄인이라 알려져 있나이다"
평서대란. 이는 20년 전에 일어났던 홍경래의 난을 가리키는
용어였던 것이다.
송이의 아비가 평서대란, 즉 홍경래의 난 때 난을 일으킨 대역
죄인이었다는 이방의 말에 임상옥은 소스라쳐 놀랐다.
비록 자신은 홍경래의 난 때 수성의 공으로 조정으로부터 공신의
상까지 받기는 하였지만 한때는 직.간접으로 홍경래의 난에
연루되었던 적이 있었지 아니하였는가.
"대역죄인이었다면 송이의 아비가 누구였단 말인가"
"사또 나으리"
임상옥의 질문에 이방은 대답하여 말하였다.
"신은 그 정도까지만 소문으로 전해들었을 뿐 상세한 것은 더
이상 알지 못하고 있나이다. 그 동안 벌써 20여 년의 오랜 세월이
흘렀사옵고, 모두 신이 부임하기 전의 일이라 신은 황공하옵게도 잘
모르는 일이나이다"
벌써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20년이라면 두 번이나 강산이 변할 만큼 오랜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모르겠다는 아전의 말은 정확한
표현이었다.
임상옥으로서는 궁금증만 한층 더해진 셈이다. 송이가 태생부터
노비이거나, 아니면 기생의 어미를 둔 기녀가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 송이의 얼굴이 낯이 익다는 궁금증에 대해서는 그 어떤
해답도 얻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곽산에서는 순무사 일행을 위한 연회가 벌어졌다. 관아에 소속된
관기들이 총동원된 대연회였다. 순무사는 당대의 세도가 김조순
인척이었던 김명도였다. 김조순은 자신의 인척을 변경의 국방태세를
감지하는 순무사로 파견함으로써 자신의 세력을 지방으로까지
팽창시키려는 야심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연회장에서 최고의 인기는 단연 젊은 기생 송이였다.
송이는 한갓 지방의 관아에서 관기로 있기에는 아까운 미모를
갖고 있었다.
그날 송이가 모든 사람의 넋을 빼앗은 것은 빼어난 미모뿐 아니라
뒤어난 춤솜씨 때문이었다.
그날 송이는 홀로 검무를 추었다. 흔히 기녀들은 각각 지방적
특색으로 독특한 춤과 노래를 익히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안동의
기생들은 송대학지도란 창을, 함흥의 기생들은 송출사표란 노래를,
평양의 기생들은 창관산융마시라는 노래를, 제주의 기생들은
주마지기라 하여서 말타고 노는 기예를 각 지방적 특색의 장기로
삼고 있었는데, 의주를 비롯하여 곽산 등 변경에서는 치마무검이라
하여 말을 타고 춤을 추는 검무를 장기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송이는 홀로 검무를 추었는데 그 춤솜씨 역시 일품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양어미인 산홍에게 그 검무 춤을 배워 전수받은 모양이었다.
임상옥은 넋을 잃고 송이의 춤솜씨를 바라보면서도 그 여인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말하는 태도와 몸을 움직이는 행동거지 모두가
분명히 낯이 익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으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째서 생면부지의
기생의 모습이 저토록 낯이 익고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임상옥으로서는 모골이 송연할 따름이었다.
연회가 파했을 때 임상옥은 은밀히 송이를 따로 불러들였다.
무릎을 꿇어앉은 송이에게 임상옥은 물어 말하였다.
"네가 일찍이 나를 본 적이 있었더냐"
그러자 송이가 대답하였다.
"나으리를 어찌 천한 계집인 제가 뵈온 적이 있겠나이까"
임상옥이 다시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송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나이까"
"아니 기생 이름 말고, 네 원 이름이 무엇이더냐"
"미천한 관기의 신분으로 이름이 어찌 있었겠나이까. 성도, 이름도
처음부터 없었나이다"
임상옥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비천한 관기라 할지라도 아비 어미가 있었을 것이 아니겠느냐.
하찮은 강아지라 할지라도 개를 낳은 아비 어미가 있는 법이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아비 어미가 없을 것이겠느냐"
그러자 송이는 대답하였다.
"저의 어미는 산홍이나이다"
"산홍이라면 퇴기가 아니겠느냐. 산홍은 너를 낳은 어미가 아니라
너를 기른 어미가 아니겠느냐"
"저는 모르겠나이다"
송이는 머리를 흔들며 대답하였다.
"저를 낳은 어미가 누구인지, 저를 낳은 아비가 누구인지 저는
알지 못하나이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제 어미가 산홍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아전의 말처럼 송이를 낳은 어미가 다섯 살 무렵 죽고 그 딸을
대신 관기였던 산홍이가 키웠다면 송이는 자신의 어미에 대한
기억은 전혀 갖고 있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대역죄인으로
죽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그런 사실 역시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아니, 자신을 낳은 아비가 홍경래의 난 때 죽은
대역죄인이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아무런 소득 없이 송이를 보내고 난 뒤에도 임상옥은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분명히 송이이게는 전생의 인연이랄까,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숙연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 반드시 이를
밝혀내리고 말리라, 임상옥은 결심하였다.
그 다음날 임상옥은 아전을 은밀히 따로 불러 말하였다.
"송이의 어미 산홍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그러자 아전이 대답하였다.
"알고 있나이다. 산홍은 이제 나이가 들어 기생에서 물러나
성밖에서 주막을 차리고 주모 노릇을 하고 있나이다"
"그 주막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가"
임상옥이 묻자 아전이 대답하였다.
"알고 있다마다요. 산홍은 남편이 있고 아이가 셋이나 딸린
유부기인데 산홍의 남편이 신과 친하여 이따금 찾아가 함께 술을
마시는 사이이나이다"
"그럼 앞장서라"
임상옥이 말하였다. 예, 하고 아전이 놀랐으나 임상옥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지금 산홍의 주막집으로 찾아가는 것은 너와 나 단둘만의
비밀이니 네가 함부로 입을 놀려 이를 발설할 시에는 엄중히
문책하여 벌을 내릴 것이다. 그러니 마땅히 입을 무겁게 하고 신중을
기하도록 할지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전은 앞장서고 임상옥은 뒤를 따랐다. 아무리 변방이라고는
하지만 그 고을에서의 지방수령은 임금과 다름없는 존재다. 그
원님인 사또가 아전 하나만을 거느리고 일개 천민에 불과한
주막집의 주모를 찾아가는 일은 몹시 드문 일이었던 것이다.
해질 무렵이었다.
관복을 벗은 임상옥은 아전 하나만을 거느리고 주막집을 찾아
나섰다. 주막은 능한산성 앞 장터에 있었다. 마침 장이 열리고
있었는지 주막은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다.
예로부터 곽산은 바다가 가깝고, 또한 깊은 산까지 끼고 있어
특산물이 많이 있었다. 삼, 자초, 자연석 등과 바다에서 나는 은어,
밴댕이, 숭어, 넙치, 새우, 굴 등의 집산지로 장이 열리면 이를 사고
팔려는 장사꾼들로 장터는 흥청이고 있었다.
산홍의 주막은 '주' 자를 써붙인 창호지를 바른 등을 내어 놓고
있었고 주막을 알리기 위해서 쇠머리와 삶은 돼지머리를 좌판 위에
늘어놓고 있었다.
주막은 꽤 커서 행상들이나 나그네들이 잘 수 있는 방들이 여러
개 있었으며 이들이 몰고 다니는 말과 소, 당나귀들도 맡아주기
위해서 따로 마구간이 마련되어 있을 정도였다.
마침 장이 파할 무렵이어서 주막집은 한층 바빠지고 있었다. 비록
임상옥이 관복을 벗었다고는 하지만 행색이 벌써 남다른 곳이
있었으므로 술청에는 앉지 못하고 귀한 양반손님이 오면 따로 맞는
특실로 안내되었다.
주막에서 파는 술은 탁주와 소주가 주종이었으나 특별한 손님이
오면 방문주라 하여 향기를 넣은 특주가 따로 나오곤 하였다.
임상옥은 잠자코 이방을 상대로 술부터 마시기 시작하였다.
해가 지자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만 남아 주막은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 그러자 이방은 중노미를 불러 주모를 데려오라
말하였다. 큰 주막에서는 안주를 굽거나, 공짜 안주를 집어먹는
사람들을 감시하여 허드렛일을 하는 시중드는 아이를 중노미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주모 산홍이가 나타났는데, 한때 기생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완연한 아낙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대뜸 임상옥이
이런 주막집에 드나드는 손님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양반 나으리께오서 이처럼 누추한 주막에는 어인 일로 행차
하시었소"
산홍은 땋아서 한 바퀴 틀어 올린 트레머리에 팔닢 댕기라는
빨간색의 좁고 짧은 전형적인 주모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미 전주가 있는 듯 불그레 상기한 얼굴로 거침없이 산홍이가
묻자 이방이 황급히 말하였다.
"귀한 양반어른이시다. 어느 안전이라고 말을 함부로 하시는가"
이방이 꾸짖어 말하였으나 산홍은 산전수전 다 겪은 기생
퇴물답게 능청스레 대꾸하여 말하였다.
"귀한 양반어른이시라면 나랏님이라도 행차하셨는가"
이방이 불그락푸르락 하였으나 임상옥이 눈짓으로 이를 막아
세웠다.
"내가 이처럼 주모를 찾아온 것은 다름아닌 양딸 송이에 대해
물어볼 말이 있어서네"
"그런가. 난 또 양반 나으리께오서 이 산홍의 겨드랑이나
비단속곳을 구경하러 오신 줄 알았는데"
걸쭉한 입담이었다.
산홍의 입담에는 유래가 있다.
주모들은 주로 겨드랑이 가래의 길이가 2.35센티미터밖에 안되는
이른바 '동그레저고리' 란 짧은 저고리와 '주릿대치마' 를 입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주릿대치마란 치마를 바로 여미고 그 오른쪽
자락을 앞으로 돌려 가슴에 닿을 듯 말듯 치켜올려 입고 허리띠를
매는 방법으로 이렇게 치마를 입으면 자연히 속곳이 노출되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주모들은 이따금 짧은 저고리 사이로 겨드랑이의 은근한
치모를 보여주거나 속곳을 노출시킴으로써 오가는 행객들의 시선을
성적 매력으로 유혹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우선 나도 술이나 한 잔 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어떻겠소이까, 양반 나으리"
산홍은 잔부터 내밀었다.
이방이 그 빈 잔에 술을 가득 따라주었다.
산홍은 꿀꺽꿀꺽 단숨에 술을 비웠다. 잔에 남은 술찌꺼기를 척-
하니 마당에 던져버리며 산홍은 혼잣말처럼 말하였다.
"아이구 가슴이야, 가슴이 답답해서 내 못살겠네"
아직 늦은 봄이라 더위가 몰려들 때가 아니었지만 산홍은 울화가
치밀어 못 참겠다는 듯 팔을 한 짝 들어올리고 일부러 보라는 듯
드러난 겨드랑이 안쪽을 향해 펄쩍펄쩍 소리가 나도록 손부채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차츰차츰 주막집에서도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술청에 남은
사람들은 하룻밤을 자고 새로운 장터를 향해 먼 길을 떠날 행상들이
대부분이었다.
벌컥벌컥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 나서 산홍은 그 빈 잔에 술을
가득 임상옥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고맙게도 잔을 한 잔 받았으니 노래 한 곡 부르리다"
그리고 나서 산홍은 구성진 목소리로 권주가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불로초로 술을 빚어
만년배에 가득 부어 비나이다.
남산수를 약산동대
어즈러진 바위꽃을 꺾어
주를 놓으면 무궁무진 먹사이다...
비록 나이가 들어 퇴기라 하지만 아직도 창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임상옥이 흥이 돋아 산홍의 권주가에 얼씨구 얼씨구 하면서 가락을
넣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찾아온 목적을 차치하고라도 주흥이 도도하기
시작하였다. 한바탕 신바람이 나도록 춤에 노래에 장단에 놀고 나자
산홍이 이마에 밴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물어 말하였다.
"그래 양반 나으리께오서 내 딸 송이에 대해 뭔가 물어볼 말이
있어 찾아오셨다 하였으니 말씀하여 보시오"
그러자 임상옥은 진지한 표정으로 송이를 낳은 어미가 누구이며
언제 어떻게 죽었는가를 아는 대로 말해 보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러자 잠자코 이를 듣던 산홍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였다.
"난 또 송이에 대해 양반 나으리께오서 알고 싶어 찾아오셨다하여
송이를 소실로 삼아 속신이나 시켜줄 줄 알았는데 아닌밤중에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시는가. 아따, 난 그만 가겠소"
산홍이가 일어서자 아전이 뜯어말리며 말하였다.
"앉아, 앉으시게"
아전은 미리 준비하였던 은전을 술상 위에 소리가 나도록
얹어놓으며 말하였다.
"나으리께오서 속신이야 못 시켜줄망정 그 값은 후하게 쳐준다고
말씀하시었네. 그러니 앉으시게나"
산홍은 흘깃 술상 위에 놓인 은전을 보았다. 한눈에도 상당한
거금이었다. 그러자 산홍은 자리에 도로 앉았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자기 손으로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또다시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서
한숨 쉬듯 말하였다.
"나으리,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뭣이든 물어보시오. 이 산홍이 년
가죽배 위로 타고 넘어간 남정네가 누구누구인지 그 성명 석자만은
빼어놓고 모든 걸 다 말씀드릴 터이니"
임상옥이 비로소 입을 열어 물었다.
"송이의 어미가 어떤 사람이었소"
그러자 산홍은 긴 담뱃대에 불을 붙여 뻐끔뻐끔 연기가 나도록
빨고는 한참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어둠이 내린 바깥을 내다보다가
한숨을 쉬면서 말하였다.
"...이년이 송이의 어미를 처음 만난 것은 한 20년 되었나이다.
그때가 어느 핸가 정확히 기억되지는 않지만 한바탕 온 나라에
난리가 났던 바로 그때였나이다. 그때 이년의 나이는 열넷인가
열다섯이었고 고향은 철산이었는데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하여서
아비가 방물장수에게 팔아넘겨 그 길로 기생어미 홍매의 양딸로
들어갔다가 기생으로 나섰던 바로 그해였나이다..."
산홍은 넋두리를 하듯 말을 이어 내려갔다.
"...바로 그해 봄인가, 여름인가에 어느 날 한 아낙이 관노로
들어왔었나이다. 소문에 듣자 하니 난리 때 능지처참 당하여 죽은
대역죄인의 부인이었다고 하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여염집 아낙은
아닌 듯 싶고, 손은 섬섬옥수에 자태 또한 고와서 공노비가 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여인이었나이다. 신공으로 관아에서 나오는 대소
빨래는 물론 때에 맞춰 음식을 차리는 선상노비였는데 하는 짓이 영
서툴러 무진 애를 먹곤 하였나이다. 나이는 대략 스물여섯 정도로
보였는데 남편이 대역죄인으로 능지처참 당해 죽고, 있던 자식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 노비로 팔려간 뒤끝이라 혼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나이다. 내가 그 아낙과 친해진 것은 어느 날 밤에 우연히
뒷산에 올라갔다가 나뭇가지에 목을 매어 죽으려던 여인의 모습을
내 눈으로 본 뒤부터였나이다. 뭔가 달밤에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처음에는 귀신인가, 도깨비인가 하였나이다. 달려가
보았더니 바로 그 아낙이 목을 매고 축 늘어져 있었나이다. 밧줄을
풀어 끌어내리고 보니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던 것 같은데 온몸을
주무르고, 차디찬 우물물을 온몸에 끼얹었더니 아낙은 숨이 돌아와
울기 시작하였나이다. 왜 자신을 살려주었느냐고, 되레 나를
원망하더이다. 그리고 나서 울며 말하기를 난리통에 지아비가 죽은
것은 견딜 수 있으나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이 모두 노비로 팔려나가
하나는 역노비가 되었으며 또 하나는 공노비가 되었는데 나머지 세
명은 어디로 팔려나갔는지 알 수가 없으니 살아서 무엇을
하겠느냐고 울며 하소연하더이다. 그래 내가 말을 하였소이다.
관노나 관기나 어차피 공천이니 사람의 목숨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살아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어야만 언젠가는 팔려나간
자식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고 타일렀나이다. 그 일이
있고나서 그 아낙은 나를 동생처럼 생각하였고 나 역시 그 아낙을
언니처럼 생각하였다.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은 친자매처럼 가깝게
지내기 시작하였나이다"
산홍은 갑자기 말을 끊었다. 그녀는 다시 뻐끔뻐끔 담뱃대를
빨았다. 그러자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전이 산홍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산홍은 말없이 술잔을 들어 마시고는 다시 그
술찌꺼기를 마당에 홱- 하니 버리고 나서 한숨을 쉬고는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나이다. 그 아낙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였던 것이나이다. 그 대역죄인으로 죽은
지아비의 씨가 그 아낙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던 것이나이다. 그
아낙은 기가 차서 말하였나이다. 아들을 보아도 노비가 될 것이고
딸을 낳아도 계집종이 될 터인데 아이를 낳아서 무엇을 하겠소, 하며
뱃속의 아이를 떼느라 무진 애를 썼나이다. 간장을 대여섯 사발을
먹기도 하고 일부러 댓돌 위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하였나이다.
뱃속의 아이를 숨이 막혀 죽게 하기 위해 일부러 복대를 칭칭 감아
조이기도 하였지만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배가 남산만해졌나이다.
이듬해 겨울, 그 아낙은 아이를 낳았는데 낳고 보니
계집아이였나이다"
"그 계집아이가 송이였단 말이냐"
다소 뜸을 들이며 마치 장타령이라도 하듯 말을 하는 산홍의
태도에 성미급한 아전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어 물어 말하였다.
"...그 계집아이가 송이였나이다. 그 아낙은 계집아이를 낳고
나서도 돌보지 않았나이다. 배가 고파 울어도 젖을 먹이지 않았으며,
실제로 언젠가는 아이의 목을 졸라 죽이려고까지 하였나이다. 내가
간신히 뜯어말렸는데 아낙은 이렇게 말을 하였나이다. 이 모진
세상에 모진 목숨으로 태어났으니 차라리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목숨이다. 그래서 송이는 제 어미보다는 내 양어미인 홍매의
품에서 더 많이 자랐나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그 아낙에게
한 사내가 찾아왔는데 알고 보니 근수노였던 그 아낙의
아들이었나이다. 관원의 몸종으로 팔려 나가 있던 그 아들이 제
어미가 보고 싶어 도망쳐서 찾아온 것이었나이다. 그러나 만난 것도
잠깐, 도망쳐와 제 어미를 만난 지 불과 하루만에 아들은 잡으러 온
관원들에 의해 붙잡혔으며 아들이 끌려간 뒤부터 그 아낙은 정신이
나가 실성하고 말았나이다.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였고 심지어는
자기가 낳은 딸 송이도 알아보지 못하였나이다. 아낙은 붙잡혀간
아들뿐 아니라 뿔뿔이 흩어져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온 산과 들을 맨발로 헤매고 다녔나이다. 미친 관노를
누가 돌봐주겠나이까. 그해 여름 장마가 들어 강물이 불었을 때 그
아낙은 강변에서 물에 퉁퉁 불어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나이다.
장례는 내 어미인 홍매와 내가 함께 치러주었는데 그냥 거적대기로
둘둘 말아 햇볕이 잘 드는 산마루에 봉분도 없이 파묻어 주었나이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한 살이었고 송이의 나이는 겨우 다섯
살이었나이다"
산홍은 말을 끊었다. 목이 마른지 다시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밤이 깊어가자 장터는 완전히 철시되고 주막도 가라않고 있었다.
늙은 개 하나만 어슬렁거리며 주막을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술청 어디에서 술 취한 취객 하나만 큰소리로 뭐라고 떠들고 있을
뿐 사위는 적적하고 고즈넉하였다.
산홍은 다시 말을 잊기 시작하였다.
"하루아침에 어미까지 잃어 천애고아가 된 송이를 나는 애 양딸로
삼기로 결심했나이다. 어차피 노비의 딸로 태어나 천노가 되어
살다가 죽을 바에는 기생년의 딸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나이다. 기생년의 팔자가 화류계라 하더라도 양반의
부녀자처럼 비단옷에 노리개를 할 수 있는 팔자이기도 하며 잘하면
사대부와 눈이 맞아 면천하거나 기적에서 빠져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나이다. 송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어미인
홍매였나이다"
잠자코 듣기만 하던 임상옥이 비로소 입을 열어 말하였다.
"그 송이를 낳은 어미는 그렇다 치더라도 송이를 낳은 송이의
아비는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모릅니다, 나으리"
산홍은 머리를 흔들며 말하였다.
"송이의 아비가 난을 일으킨 대역죄인이란 말을 들었사오나 그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나이다. 송이의 어미도
그에 대해서는 입조차 벙긋하지 않았나이다"
"그러하면 송이의 어미가 어디에서부터 흘러왔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그것도 말하지 않았나이다. 송이의 어미는 자신에 관한 모든
사연은 일체 털어놓지 않았었나이다. 어떤 자취도 없이 사라져
죽었사오나 단 한 가지 흔적만을 남기고 떠났나이다"
"그게 무엇이냐"
산홍은 머리를 풀어 자신이 꽂고 있던 비녀를 임상옥에게 보여
주었다.
"이것은 송이를 낳은 어미가 내게 준 물건이었나이다. 난리 뒤에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노비로 팔려왔지만 머리에 꽂은 비녀
하나만은 빼앗기지 않았다고 송이의 어미가 내게 말하였나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물건을 내게 선물로 준다고 말하였나이다. 송이를
낳은 어미는 죽어 아무런 흔적도 없사오나 이 비녀 하나만 유품으로
남아 전하고 있을 뿐이나이다"
임상옥은 산홍의 꺼낸 그 비녀를 손으로 집어들어 보았다. 그것은
한마디로 귀한 물건이었다. 예로부터 계급사회에서는 존비, 귀천,
상하의 구별이 분명하였으므로 서민계급의 아녀자들은 다만 나무,
뿔, 뼈와 같이 단순한 재료로 만든 비녀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 비녀는 매죽잠이라 하여 은과 산호로 만들어진 고급
비녀였다. 또한 부귀, 장수, 다산을 기원하는 아름다운 잠두의 수식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화려한 수식이 있는 비녀는 반드시 양반 집안의
반가의 부녀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노리개였던 것이다.
더구나 이런 비녀는 노리개뿐 아니라 후손에게 물려주는 가보적인
성격까지 띠고 있는, 일종의 아녀자의 정절을 뜻하고 있던
물건이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비녀를 통해 송이의 어미가 여염집 여인이 아니라
지체높은 반가의 아녀자였음을 단박에 알아보게 된 것이다.
20여 년 전 일어났던 평서대란이 일종의 농민의 난이어서
주모자들 몇 명을 빼놓으면 대부분 가난하고 못사는 평민계급이었다.
그러나 송이의 어미가 이렇게 고급 비녀를 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송이의 아비가 난을 모의하여 일으킨 대역죄인임이 보다 분명해지는
것이다.
"...언젠가는"
산홍이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송이에게 이 비녀를 물려줄까 하나이다. 지금까지 송이에게 제
어미가 어떻게 죽었으며 누구의 자식으로 어떤 연유에 의해
기생년이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으나 언젠가
서방이라고 만나 시집을 가게 되면 머리를 얹을 때 쓰라고 이
비녀를 물려주면서 모든 사실을 다 말해줄까 하나이다. 그때까지만
이년이 이 비녀를 보관하고 있겠나이다"
그러자 짧은 침묵이 왔다.
주막집의 늙은 개가 손님들이 마시다 버린 술찌꺼기를 혀로
핥으면서 어슬렁거리며 집 안팎을 오가고 있었다. 잠자코 담배를
빨던 산홍이 다시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비록 이년이 송이의 양어미라 하오만 이년은 원래 찢어지게
가난하였던 천민이었고 송이는 비록 대역죄인의 딸이라고는 하오만
양반의 집 딸이었으니 송이가 내 딸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이년이 술과 노래를 모두 가르쳤사오나,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고 모르는 것이 없는 총기가 있는 아이나이다"
그리고 나서 산홍이 임상옥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하였다.
"나으리, 내 딸 송이가 비록 기생이긴 하오나 올해로 이년이 늙고
병들어 관기에서 물러나올 대 이 양어미를 대신하여 기적에 올라
기생이 되었으니 아직 처녀 중의 생처녀임에 틀림이 없나이다.
그러나 이제 내버려두면 이놈저놈이 집적거리고, 오는 신관
사또들마다 수청들고, 벼슬아치들이 올 때마다 몸을 주고 그러다
보면 주막집 술사발처럼 이가 빠지고 깨어질 것이 뻔하나이다"
그리고 나서 산홍이 은근히 임상옥을 쳐다보면서 다정스레 말을
하였다.
"그러하니 나으리, 더 이상 늦기 전에 우릴 송이를 데려다가
정속이나 하여 주시오, 그리되면 우리 송이도 기적에서 벗어나
양민이 될 수 있지 않겠나이까"
산홍의 말은 사실이었다.
기생 역시 노비와 마찬가지로 한 번 기적에 올려지면 천민이라는
신분적 굴레를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심지어 기생과 양반 사이에
태어난 아이라 할지라도 천자수모법에 따라 아들은 노비가 되었으며
딸은 자연적으로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기생이 기적을
벗어나 양민이 되는 것은 단 한 가지 방법뿐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속신이라 하여 부자나 양반의 소실이 되는 경우뿐이었다.
이럴 경우 재물로 그 대가를 치러줌으로써 그 기생은 천민의 신분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하오니, 나으리"
산홍은 부채를 들어 다시 활활 소리가 나도록 부채질을 하고 나서
임상옥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송이를 데려다가 첩으로 삼아 주십시오.
보아하니 점잖은 양반 나으리 같으리 송이를 구박할 것 같지는 않고
내 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송이년이야말로 금지옥엽과 같은
계집이나이다. 하오니 당장이라도 송이를 데려가시오, 나으리. 내
많은 돈도 바라지 않고 원한다면 공짜로라도 드리겠나이다. 우리
송이를 소실로라도 들이신다면"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전이 참견하여 말하였다.
"어느 안전이라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시는가. 우리 나으리께오서
천한 기생년을 들여다가 소실이라도 삼으실 분처럼 보이시는가"
그러자 산홍이 발딱 일어서면서 말하였다.
"높으신 양반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천하에 몹쓸
불쌍놈들이로구나"
산홍는 좀 전에 받았던 은전을 홱- 하니 술상 위에 던져버리고는
말하였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황후장상의 씨앗으로 따로 태어난다
그러합디까"
산홍은 가래침을 퉤- 하고 마당에 뱉고 나서 소리쳐 말하였다.
"애야, 중노미야"
"예"
중노미가 달려오자 산홍은 말하였다.
"손님들 가신단다. 신발 챙겨 드리거라. 그리고 가시는 즉시 소금
한 바가지 가져다가 댓돌 위에 뿌리고 마당에도 뿌리거라"
"알겠습니다"
임상옥과 아전은 그 길로 주막을 나왔다. 나온 것이 아니라
쫓겨나온 셈이었다.
"나으리"
지등을 들고 앞서 걸으며 어둠을 밝히던 아전이 변명하여
말하였다.
"기분이 언짢으셨다면 마음을 풀어놓으십시오. 산홍이란 년이
워낙에 성질이 험악하고 나쁜 탓에 그리 되었나이다. 전전 사또 계실
때에는 수청들라는 말에 이를 거절하였다가 불기까지 맞은 과거가
있을 정도나이다"
"괜찮네"
잠자코 걷던 임상옥이 헛허허 소리를 내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산홍의 말이 맞네. 태어날 때부터 황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산홍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네. 잘못한 것은 산홍이가 아니라 아전
자네와 나 두 사람일세"
콸콸콸콸.
언덕을 따라 개울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개울에서 발빠르게
흘러가는 물소리가 수양버들 아래로부터 들여오고 있었다.
이것으로 그만인가.
임상옥은 문득 밤하늘에 떠 있는 무성한 별들을 우러러보면서
중얼거려 말하였다.
이것으로 송이의 출생에 대해 더 이상 알아볼 수 없단 말인가.
산홍을 찾아간 것은 그 비밀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산홍을 통해 알아낸 것은 송이의 어미가 어떻게 죽었으며
송이가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기생이 되어버렸는가 하는 그 기구한
인생유전일 뿐, 송이의 아비가 어디 살던 누구라는 비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술에 취해 관아로 돌아온 임상옥은 그러나 또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송이의 양어미인 산홍을 만나, 사연을 듣긴 들었으나 오히려
조급증만 한층 더해진 셈이었다.
그보다도, 밤이 깊어지자 문득 송이의 자태가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하였다. 임상옥은 아내와 자식들을 의주에 두고 홀로 곽산에
나와 지방 수령을 하고 있었으므로 홀아비 아닌 홀아비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며칠 전 순무사들이 찾아왔을 때 열린 연회에서 검무를 추던
송이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송이의 나이 이제 겨우 스물.
임상옥의 나이보다 서른 살이나 어려 여인이라기보다는 딸 같은
어린아이가 아닐 것인가. 그럼에도 송이의 자태가 임상옥의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송이의 신분을 밝히려 함은 송이가 왠지 낯설지 않고 분명
숙연이 있다는 확신 때문인가, 아니면 그러한 인연을 빙자하여
송이를 좀더 가까이 하고 싶은 노추 때문인가.
아니다.
임상옥은 결론을 내렸다.
뭔가 있다.
송이에게는 숙인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그 다음날 임상옥은 따로 책방을 불러 말하였다.
"이 관아에 딸린 노비안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느냐"
그러자 책방이 대답하였다.
"노비안이 영고에 보관되어 있나이다"
노비안이라면 일종의 노비 호적이었다. 원래 노비는 공노비와
사노비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사노비는 사사로이 사고 파는 노예로서
이들은 노비문기라는 문서에 의해 매매되기도 하고 남에게
양여되기도 하고 상환되기도 했다. 따라서 사노비들은 이 문서만
없어지면 그 순간 자유인이 될 수 있었지만 공노비들은 달랐다.
공노비들은 예로부터 전쟁의 포로나 특정범죄자 등으로 해서
국가기관에 소속된 공노비였으므로 사사로이 팔거나 함부로
면천되어 자유를 얻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공노비들의 호적을 일일이 만들어 이를 따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태조 4년 1395년부터
노비변정도감이란 관청을 만들어 모든 공노비들의 호적을 기록하여
이를 보관하고 있었다.
공노비의 경우는 20년마다 정안을 만들어 비치해 두었으며
3년마다 노비의 생산, 사망 등의 변동사항을 기록하여 지방의
경우에는 수령인 군수가 추쇄하여 이를 관찰사들에게 보고하는 것이
의무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공노비들의 호적인 '노비안' 은 일종의 비밀문서이기도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노비안이 공노비의 신분을 파악하는 근거로서
국가재정의 필수 불가결한 기존자료라는 점 때문이었다.
따라서 공노비들의 호적인 노비안은 함부로 파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를 열람하는 것조차도 엄중히 금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하면 영고에서 노비안을 찾아오너라"
임상옥의 말에 책방은 놀라 물어 말하였다.
"노비안을 말입니까요"
부임한지 얼마 안되는 신관 사또가 영고에서 노비안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리는 일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당시 노비들은 도망치거나,
교묘하게 숨어버리는 일이 왕왕 있었다. 공노비는 대략 두 종류로
나뉘어지고 있었다. 입역노비와 납공노비로 60세에 이르면 공역을
면제하여 주었으나 워낙 일이 고되고 과중하였으므로 도망치거나,
호적을 교묘히 변조하여 탈루시키는 일이 왕왕 있었던 것이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느냐. 노비안을 가져오라고 내 말하지
않았느냐"
"알겠사옵니다, 사또 나으리"
책방은 속히 달려가 영고에서 노비안을 가져왔다. 임상옥은 이를
안아들고 남의 눈을 피해 침전으로 홀로 들어갔다.
노비안에는 관아에 딸려 있는 모든 노비의 명단이 다 기재되어
있었다. 3년마다 병동사항을 조사하여 속안을 만들었는데 그럴 때면
기존에 쓴 문장 위에 종이를 덧붙여 가필하여 수정하고 있었다.
일일이 종이마다 관인이 찍혀 있었던 노비안은 대부분 이름 석
자에 그의 아비 이름과 살고 있는 주소를 적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드물게는 어미 이름과 출생지도 함께 적혀 있기도 하였다.
노비안은 대충 초안, 도안, 대도안 등을 기록한 것이며, 도안은
노비의 근파를 모두 기록하여 실은 것이며, 대도안은 변동사항을 3회
이상 계속하여 추적하여 기록한 것이다.
임상옥은 펄럭이며 책장을 넘겨 보았다.
문득 적혀 있는 기록 중에 낯익은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송이.
바로 그 젊은 기생의 이름이었다.
임상옥은 그 이름 앞에 씌어진 생년월일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계유년 정월 출생'
계유년이라면 순조 13년, 바로 홍경래의 난이 진압된 임신년 그
다음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홍의 말대로 송이의 아비가
홍경래의 난 때 대역죄인이었고, 그의 어미가 유복자로 낳은 것이
확실하다면 송이의 출생 연도는 정확한 기록이 되는 것이다.
송이의 이름 밑에는 그녀의 변동사항이 따로 기재되어 덧붙여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노비에서 적을 옮겨 관기가 되었음'
그 변동사항 위에는 이를 증명하는 관인이 찍혀 있었다.
'모 손복실, 정축년 7월 몰'
임상옥은 숨을 죽였다.
이로써 송이의 어미의 이름이 밝혀진 것이다. 송이를 낳은 어미의
이름은 손복실이었으며 산홍의 말대로 송이의 나이 다섯 살 무렵,
한여름 물에 빠져 비명횡사하였던 사실을 기록은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송이를 낳은 아비는 누구인가. 그러나 그 어디에도 그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노비의 근파를 기록하는 도안을
살펴보았으나 그 어디에도 그 기록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송이가
관기였던 산홍에게 입양되어 그녀의 양딸이 되었다는 기록은 따로
명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실망한 임상옥은 책을 덮었다.
그 순간 번득이는 영감 같은 것이 떠올랐다.
그것은 송이의 이름을 통해 찾을 것이 아니라 송이의 생모인
손복실의 이름을 찾아보면 그곳에서 혹시 기록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임상옥은 다시 책을
열고 책장을 펄럭이며 이름 따로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손복실'
있었다.
송이를 낳은 생모, 손복실의 이름이 관노들의 명단 속에 분명히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이름 옆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적혀 있었다.
'병오년 출생. 정축년 7월 몰'
병오년이라면 정조10년 생이니 그녀는 26세 때 노비가 되었으며
마침내 31세가 되던 해에 겨우 다섯 살 된 어린 딸 송이를 남기고
비명횡사하였던 것이다.
그때였다.
임상옥의 눈을 강렬하게 잡아당기는 그 무엇이 그곳에서 번득이고
있었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지아비 부 자였다. 바로 죽은 손복실의 남편, 그러니까 송이의
아비가 누구인지 확실히 밝혀낼 수 있는 기록이 명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 문장을 일일이 짚어가며 읽어
보았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기재되어 있었다.
'부 이희저'
순간 임상옥은 노비안을 떨어뜨렸다. 그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질식하여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희저라면.
임상옥은 헐떡이며 생각하였다.
바로 자신의 오랜 친구였던 그 사람이 아닐 것인가.
임상옥은 간신히 마음의 평정의 되찾았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부 이희저. 가산 사람으로 평란 때 홍경래와 더불어 난을 일으킨
대역죄인임. 정주성에서 의병 함의형의 창에 찔려 죽음. 모반
대역죄로 처벌되어 능지처참됨'
이로써 모든 것이 밝혀진 것이다.
손복실이란 여인이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공노비가 되어 이곳
곽산까지 팔려온 것인가가 명백하게 밝혀진 것이었다.
이희저의 아이들도 모두 노비로 팔려나가 뿔뿔이 흩어지고
이희저의 부인이었던 손복실이 이곳 곽산으로 팔려올 때에는
불행히도 뱃속에 이희저의 아이를 배고 있었던 것이다. 이희저가
능지처참되고 있을 때 송이는 어미의 뱃속에서 생명을 지니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유복자였던
송이는 제 아비의 죽음과 맞바꾸어 새 생명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제서야 임상옥은 자신의 궁금증이 안개 걷히듯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임상옥은 노비들의 호적인 비밀문서 '노비안' 의 서첩을 덮으며
생각하였다.
송이가 이희저의 유복자임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짐으로써 어째서
송이가 낯설지 않고 친숙하게 느껴지고 있었던가 하는 의문점도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것이다.
임상옥은 두 눈을 감았다.
송이는 죽마고우였던 이희저의 친딸인 것이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대역죄인 이희저의 딸로 어쩔 수 없이 관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송이가 임상옥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 이희저가 남긴 단 하나의
유복자인 것인가. 이를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라 말인가.
물론 송이는 자신의 출생에 얽힌 이 모든 비밀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오직 아비가 노비였으며 자신은 관기의
수양딸로 팔려와 어쩔 수 없이 기생이 될 수밖에 없는 비천한
신분이라고 스스로 체념하고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순간.
임상옥의 머릿속으로 번득이며 영감 하나가 떠올라 사라졌다.
차라리 이 순간, 저 노비안의 한 장을 찢어버린다면.
임상옥은 노비안을 노려보며 생각하였다.
차라리 저 노비안에서 송이에 관한 모든 기록을 찢어내고 이를
감쪽같이 불태워버린다면 송이가 노비임을 증명할 아무런 기록도
없어져 양민이 되어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임상옥은 머리를 흔들며 생각하였다.
노비안을 불태워버린다 한들 하루아침에 송이가 기생에서
양민으로 탈바꿈하여질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또한 저 노비안은
비밀문서이며 일종의 중요한 국가 조정의 재정에 필수불가결한
기초자료이므로 함부로 파기하거나 파손하여 버린다면 문책받아
죄를 묻게 되지 아니하겠는가.
임상옥은 밤을 새우며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그는 날이
밝아 새벽닭이 울 때까지 한숨도 자지 않고 노비안을 들여다보며
생각하였다.
마침내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서야 임상옥은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그는 이 방법 한 가지뿐이라고 생각하였다. 더
이상의 방도는 없다고 임상옥은 결론을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이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것뿐이라고 심상옥은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임상옥이 하룻밤을 꼬박 새워가며 생각한 끝에 내린 단
한 가지의 방도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제5장 상사별곡@]
1
이른 아침 임상옥은 이방을 불러 봄맞이 연회를 야외에서 열 것을
명령하였다. 곽산의 북쪽에는 신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그곳은 절경
중의 절경이었다.
마침 봄이 절정이라 온갖 꽃들이 산마다 들마다 만개하고 있었다.
관원들 모두가 참석하였으며 관기들도 모두 가야금과 거문고를 들고
참석하였다. 노비들이 주효를 미라 준비하여 놓았으므로 한바탕
춘흥이 도도하였다.
온갖 공사를 미뤄두고 나와 노는 놀이라 모든 사람들은 곧 흥에
젖어 술에 흠뻑 취하였다. 기생들이 나와서 가야금을 뜯고 노래를
하였다.
예로부터 의주는 평양과 진주와 더불어 유명한 색향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의주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타령 하나가 있었다.
황계사란 타령인데 기생들 모두 가야금을 뜯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황계란 문자 그대로 '누런 닭'을 말하는 것으로 님과
함께 잠을 자던 병풍에 그려져 있는 닭의 그림을 가리키는 일종의
사랑타령이었다.
일조낭군 이별 후에 소식조차 못 듣는다.
아희야 말듣소
어찌하여 못 오시나
병풍에 그린 황계 두 날개 둥덩치면
날 사이고 꼭꾸야 울제 올라시나,
아희야 말듣소
황혼 저문 날에 기약 두고 어데로 가고
날 아니 와 보시느냐,
아희야 말듣소
춘수는 만사택하니 물이 깊어 못 오시나
하운은 다기봉하니 산이 높아 못 오시나,
아희야 말듣소
너는 죽어 꽃이 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어
삼춘 다 진토록 죽자사자 마셨더니.
아희야 말듣소
저 달아 보느냐 님 계신 곳
명기를 빌려라 나도 보게,
아희야 말듣소
난을 그려 운다마는 적막한 사랑일세
다만 한숨이 내 벗이라, 아희야 말듣소
육관대사 성진이는
춘풍 석교 위에서
팔선녀 데리고 희롱한다,
아희야 지어자 좋을시고.
타령이 무르익자 여기저기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였다. 따라온 기생 모두가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소리를 맞추어 노래하는 병창이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연회의 절정은 송이였다. 송이가 칼을 들고
나와 말을 타고 춤을 추는 치마무검의 검무를 추기 시작하자 갑자기
좌중은 조용해지고 숨을 죽였다.
그 용모는 물론이거니와 춤을 추며 움직이는 손 하나 발 하나의
몸짓 모두가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그때였다.
갑자기 조용히 앉아서 술만 마시던 임상옥이 벌떡 일어나
어깨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병신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등뒤에 옷자락을 집어넣어 곱사처럼 굽은 등을
만들고는 송이의 춤에 발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지방수령인 사또가 한갓 기생놀이에서 춤을 추는 일은 전에 없는
일이었다. 군수는 그 지방에서 가장 지체높은 임금과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새로 부임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관 사또가 아무리 술에
취해 흥이 도도하다 하더라도 관원들 앞에서 그것도 곱사춤을 추는
일은 드문 일이었던 것이다.
얼씨구 얼씨구.
임상옥은 병신춤을 추면서 춤추는 송이의 곁으로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보고 있던 관원들 모두가 함께 웃고, 함께 얼씨구
절씨구 하고 박자를 맞추었지만 눈치빠른 관원들은 모두 새로 온
신관 원님이 관기 송이를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를 곧 알아차렸다.
그날 저녁, 임상옥은 대취하여 가마를 타고 관아로 돌아왔다. 자연
유흥이 파장되어 뿔뿔이 흩어지는데 이방이 따로 송이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송이야, 내가 한 가지 묻겠다"
"무슨 말씀이시나이까"
그러자 이방이 남의 눈을 꺼리며 조용히 물어 말하였다.
"네가 요즈음 달거리 중은 아니겠지"
달거리는 월경을 이르는 말로 이를테면 부정한 몸은 아니겠지,
하고 묻는 말이었던 것이다. 송이가 대답 대신 얼굴을 붉히자 이방은
그러면 됐다, 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오늘 돌아가면 즉시 목욕재계하고 몸단장 곱게 하고
기다리고 있거라"
"무슨 말씀이시나이까"
송이가 그 말의 뜻을 몰라 수줍게 묻자 이방이 능글맞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마도 오늘 밤 네가 신관 사또 나으리에게 수청을 드는 그
첫날밤이 될 것이다"
이방은 이미 신관 사또가 송이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송이의 양어미인 퇴기 산홍의 주막에 남의 눈을
피해 단둘이서만 암행하였을 때 이방은 이미 신관 사또가 송이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오늘 낮 봄맞이 놀이에서 신관 사또는 술에 취해 노골적으로
송이에게 춤을 추며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주책을 부리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신관 사또 체면에 입을 열어 송이에게 수청 들라고
노골적으로 말만 못할 뿐, 실은 그런 몸짓들은 관원들에게 눈치껏
알아서 하라는 일종의 암시가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신관 사또는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의주에 남겨두고
혈혈단신의 몸으로 부임해 오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밤이면 홀아비
아닌 홀아비 신세에 적막강산의 객고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이방은 자리끼를 들고 임상옥이 누워 있는 숙소로 들어갔다.
임상옥은 술에 취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나으리"
이방은 은밀하게 불러 보았다. 신관 사또가 잠이 들어 있나,
아니면 깨어 있나 그것을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일이냐"
술에 취해 곤히 잠들어 있는 줄만 알았던 원님의 입에서 의외로
대답소리가 수월하게 흘러나왔다.
"자리끼를 가져왔나이다. 목이 몹시 마르실까 해서요"
"잘했다. 그곳에 두고 가거라"
"나으리"
그러자 이방이 다시 은밀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마르신 것이 어찌 목뿐이시겠나이까"
"그게 무슨 소리냐"
"적적한 야밤에 밤마다 홀로 주무시니 목도 마르시옵고 몸도 또한
마르지 아니하시겠나이까"
"그래서"
벽을 바라본 그 자세 그대로 임상옥이 퉁명스럽게 물어 말하였다.
"나으리"
이방이 허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신이 화류 하나를 나으리 방에 들이겠나이다. 이미 벌써 몸단장
곱게 하고 기다리고 있으라 일러 놓았나이다. 그러니 마다하지
마시옵고 들여다가 객고를 푸시옵소서"
이방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분명 알면서도 임상옥은 짐짓
모르는 체하고 물어 말하였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그러자 이방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였다.
"나으리, 송이에게 오늘 밤 나으리 방에 수청 들라 신이 미리
일러두었나이다. 아마도 오늘 밤이 송이가 머리를 얹는 그 첫 날
밤이 될 것이나이다"
머리를 얹는다 함은 기생이 남성과 초야를 보낸다는 말로
여염집의 여인들로 보면 신혼 첫날밤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인 것이다.
예로부터 기생들은 얹은머리라 하여서 다리를 넣어 만 머리를 두
가닥으로 나누어 머리에 감아 올린 다음 머리끝은 구부려
오른쪽으로 끼우고 댕시를 맺어 아래로 내린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이를 트레머리 혹은 체머리라고도 하였는데, 관록이 있는 기녀들은
숱이 많아 보이도록 덧들이는 딴머리인 월자를 넣어서 머리를 한껏
얹어 부풀리는 것이 보통이었던 것이다.
송이는 관기라 하였지만 아직 처녀였으므로 귀밑머리의
새앙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방의 말은 송이가 임상옥과 첫날밤을 보낸다면 비로소 머리를
얹어 정식으로 기녀의 머리인 얹은머리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구나"
헛기침을 하면서 임상옥이 말하였으나 이방은 이미 사또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었으므로 나는 듯이 방을 나가 송이에게
달려갔다.
이방이 사라지자 비로소 임상옥은 몸을 일으켜 일어나 자리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 모든 일들은 임상옥이 곰곰이 하룻밤을 꼬박 새워서 내린 결론
끝에 행한 행동들인 것이다. 관기 송이가 죽마고우였던 이희저의
유복자임이 밝혀진 이상 송이를 구하는 것은 오직 이 한가지
방법밖에는 없다고 임상옥은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임상옥은 벌컥벌컥 차디찬 자리끼를 마시면서 생각하였다.
오늘 밤은 시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시작에
불과하며 송이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난관을 거치고
이를 이겨내야 할 것이다.
그때였다.
문 밖에서 인기척이 있더니 이방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으리, 송이 입실이오"
유난히 달 밝은 밤이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이 대낮처럼 밝아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래서 버선발로 마루를 걸어오는 송이의 그림자 모습이 선연하였다.
임상옥은 짐짓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있다 한들 방안이
상대적으로 어둡고 자신은 빛을 향해 누워 있었으므로 들킬 리는
없지만 차마 눈을 뜨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가만히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비록 보지는 않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 송이임에
분명하다는 것은 뭐라고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향기 같은 것이
함께 방안으로 스며들어 왔기 때문이다.
"나으리"
문 밖에서 짓궂은 이방이 속삭여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 물러가나이다.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옵서"
이방의 예리성이 사라지자 방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라도
선연하게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임상옥은 자신의 뛰는 심장소리가
방안으로 번져나갈까 두려웠다. 가끔 침 넘기는 소리까지
천둥소리처럼 들릴 정도였다.
방안에 들어와 앉아 있는 송이의 존재 그 자체만도 임상옥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한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비교적 여인의 미태에는 유혹을 느끼지
않던 임상옥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온몸이 폭발할 것 같은 욕망을 느끼며 임상옥은 몸을
뒤척이며 생각하였다.
송이는 달랐다. 송이를 처음 본 순간부터 임상옥은 이제껏 느낄 수
없었던 열정이 불붙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벽을 향해 누웠던
임상옥은 송이가 앉아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면서 생각하였다.
송이가 바로 이희저의 친딸임이 밝혀질 줄이야. 송이가 이희저의
딸이라면 송이는 자신의 친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자신의 딸인 송이를 범할 수가 있을 것인가.
송이를 향해 돌아누운 임상옥은 가만히 눈을 떠보았다. 손 하나
뻗으면 닿을 그 자리에 송이가 앉아 있었다. 이미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그 자세로 송이는 숨소리조차 내지 아니하고 앉아 있었다.
문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대낮 같은 달빛이 송이의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그날 밤, 임상옥은 이를 악물고 욕정을 참아내었다.
이윽고 먼데서 닭이 울 무렵 임상옥은 간신히 잠이 들었고 먼동이
틀 무렵이 되자 이방이 찾아와 소리낮춰 말하였다.
"나으리, 기침하셨나이까"
그러나 임상옥은 혼곤히 잠이 들어 있어 이를 듣지 못하였다.
원님이 객고를 풀기 위해 관기를 불러들인 밤에는 무엇보다 동이 틀
무렵에 남의 눈을 피해 여인을 불러 내가는 것이 원님의 체통에
관계되는 이방의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였으므로 이방은 꼭두새벽에
찾아왔던 것이다.
임상옥이 대답 대신 코를 골며 자고 있자 이방은 더욱 소리를
낮춰 말하였다.
"송이야. 그만 나오거라"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하였던 송이가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왔다. 남의
눈을 피해 숨겨 놓았던 신발을 신겨서 이방은 서둘러 침소를 벗어
나오다 말고 은근히 송이에게 물어 말하였다.
"어떠하시더냐. 사또 나으리께오서 너를 밤새 사랑하여 주시더냐"
송이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낯을 붉힐 뿐이었다. 가만히 이
모습을 바라보던 이방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였다.
"너는 이제 흥부처럼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온 것이야. 네가
이담에 고래 같은 기왓집에서 정승마님처럼 살더라도 절대로 이
아전 나으리의 은공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야"
임상옥은 단지 곽산의 수령일 뿐 아니라 천하제일의 거부였다.
따라서 송이가 임상옥의 마음에 들었다면 이방의 말대로 흥부네 집
호박이 저절로 덩굴째 굴러 들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이 담에
고래 같은 기왓집에서 정승마님처럼 살더라도 절대로 자신의 은공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이방의 생색은 당연할 일이었다.
송이에게 보인 임상옥의 관심은 그것으로 끝인 난 것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임상옥은 또다시 모든 관원을 불러 한바탕의 연회를 벌였다. 신관
사또가 이처럼 자주 연회를 벌이는 일은 전에 없던 일이다.
마침 단오절이 가까워왔으므로 단오놀이 겸 물놀이를 하는
연회였다. 옛날 초나라 때 굴원이 음력 5월 5일, 즉 단오날에
멱라수에 빠져 죽었음을 추모하여 물 위에서 배를 건너뛰는 것을
경쟁하는 놀이를 즐기곤 했던 것이다. 이 놀이를 경도회라 하였는데
실제로 배를 건너뛰는 놀이라기보다는 단오날을 맞아 물놀이를
즐기는 야유회였다.
곽산의 북쪽에는 운흥이란 곳이 있는데 이곳은 삼장천이라고
부르는 개울이 휘돌아나가는 절경 중의 절경이었다.
단오절이라 하지만 아직 늦은 봄이었으므로 개울가를 따라 온갖
꽃들이 흐드러져 피어 있었다. 단오절은 수릿날이라고도 불리웠는데
해마다 이때면 창포에 머리를 감고 단오굿을 하던 명절이기도 했다.
일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었으므로 단오날을 기해 쑥을
뜯어놓았다가 먹기도 하고, 한 다발로 묶어서 대문 옆에 세워 두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재액을 물리치는 효험이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사를 제쳐두고 물가로 나와서 그네뛰기를 하면서 노느라 모두들
춘흥이 도도하였다. 눈치빠른 이방이 임상옥의 곁에 바짝 송이를
앉히고 술시중을 들게 하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누가 봐도 신관
사또가 송이에게 마음을 빼앗겼음을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임상옥은 송이를 품고 안고 하였다. 얼핏 보면 신관 사또의 체통에
손상이 갈 행동이었다. 그러나 모두들 모른 체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바탕 술자리가 무르익자 임상옥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옛 고려 때의 명신이었던 김극기란 분이 금나라 사신으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이곳 운흥을 지나다 노래를 한 수 지었습니다"
임상옥은 벼루와 붓을 가져오게 한 다음 종이 위에 일필휘지로
시를 한 수 적어내리며 말하였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소이다"
모두들 술취한 신관 사또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임상옥은
종이 위에 김극기가 이곳 운흥을 지날 때 노래하였던 시를 써내리기
시작하였다.
김극기는 고려 때의 명신으로 뛰어난 문장가였다. 농민반란이 계속
일어나던 시대에 핍박받는 농민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던 양심적인
지식인이기도 하였다.
용만( 압록강) 에 안장을 풀고 어느 때나 쉴 것인가.
운흥을 지나지 못하여 말은 벌써 지쳤구나.
돌을 녹이고 모래를 찌니 천기가 호되게 더웁고.
강을 건너고 봉우리에 오르니 길이 멀구나.
항양( 더운볕) 은 정말 번흥부를 괴롭게 하고,
시원한 비에 부질없이 사조의 시를 생각하네.
어찌 천리 가는 수레를 잠깐 멈출 수 있으랴.
원님은 숲 아래 술 취해 고꾸라져 있구나.
김극기의 시를 종이 위에 써내리고 나서 임상옥이 말하였다.
"이 시를 있는 그대로 역하여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단오부채를 상으로 내리겠소"
해마다 단오절이면 궁중에서는 쑥으로 만든 호랑이인 애호나 부채
등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하사하기도 했다. 이때 만든 부채를
단오부채라 하였는데 이 부채를 가지고 한여름을 지내면 재액을
물리치고 벽사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왔던 것이다.
임상옥이 단오부채를 하사하겠다고 말을 하자 여기저기서 글깨나
아는 사람들이 나서서 다투어 한시를 역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시의 끝문장 '군림하취림호' 에서는 모두들 말이 막히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 문장의 뜻은 바로 이러하였기 때문이다.
'원님은 숲 아래 술 취해 고꾸라져 있구나'
쉬운 문장이었으나 이를 안다고 역하면 그대로 술 취해 앉아 있는
원님인 임상옥을 술주정뱅이로 모욕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므로
글깨나 아는 사람들일지라도 끝 문장에 이르러서는 짐짓 모른다고
꽁무니를 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허어"
술취한 임상옥이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 쉬운 문장 하나도 역하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그때였다.
관원 옆에서 술시중을 들고 있던 나이든 기생 하나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으리"
좌중은 순간 말을 끊고 그 기생을 쳐다보았다.
"저희들 기생들이 그 문장의 뜻을 알아맞혀도 단오부채를
하사하실 생각이시나이까"
"물론이지"
머리를 끄덕이며 임상옥이 대답하자 그 기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송이가 문장을 읽을 줄도 알고 쓸 줄도 아나이다. 송이가 그 뜻을
알고 있을 것이나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순간 송이에게 집중되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한갓 노리개에 불과한 천민인 송이가 글을 읽을 줄도
쓸줄도 알고 있다니.
"네가 정녕 이 문장의 뜻을 알고 있단 말이냐"
임상옥이 끝에 앉은 송이에게 물어 말하였다.
"... 알고 있나이다"
송이는 낯을 붉히며 대답하였다. 순간 좌중이 일렁이었다. 애당초
그 문장의 뜻을 몰랐을 리가 없었던 선비들은 오히려
좌불안석이었다. 한갓 송이가 그 문장의 뜻을 알아맞히면 그들은
백주에 무식쟁이가 될 것이요, 또한 지체높은 원님 나으리가 한갓
기생에게 놀림감이 되는 셈이었다.
"헛허허, 그러하느냐. 네가 그 뜻을 알고 있단 말이냐. 그러하면 그
뜻이 무엇이더냐"
그러자 송이가 대답하였다.
"그 뜻은 이런 말이 아니나이까. 원님은 숲 아래 술 취해 곯아
떨어져 있구나"
순간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송이가 문장을 알고 있다는 것이 놀랐으며 또한
자신들과는 달리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은 사실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침묵을 깨트린 사람은 바로 임상옥이었다.
"헛허허, 헛허허"
임상옥은 크게 너털웃음을 웃으며 특별히 대나무 생산지인
전주에서 붉은 색의 주사로 물감들인 단오부채를 송이에게 내주면서
말하였다.
"갖거라. 약속대로 단오선을 너에게 준다"
송이는 두 손으로 임상옥이 건네는 단오부채를 받아들었다.
그날 연희가 파하고 뿔뿔히 흩어질 때에도 이방은 은근히 송이를
불러 낮은 목소리로 물어 말하였다.
"네가 요즈음도 달거리 중은 아니겠지"
송이가 여전히 대답 대신 얼굴을 붉히자 이방은 이렇게 말하였다.
"돌아가는 즉시 목욕재계하고 몸단장하고 기다리고 있거라. 아마
오늘 밤에도 사또 나으리께오서 너를 불러들일 것이다"
그날 밤.
이방은 자리끼를 들고 임상옥이 누워 있는 숙소로 들어갔다.
임상옥은 여전히 술에 취해 벽을 보고 누워 있었다.
"나으리"
이방은 사또가 잠들어 있는가 어쩐가를 가늠해보기 위해서
은밀하게 불러 보았다.
"... 무슨 일이냐"
생각지도 않은 빠른 대답이었다. 옳구나, 하고 이방은 쾌재를
불렀다. 신관 사또가 마음속으로 송이를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자리끼를 가져왔나이다. 주무실 때 목이 마르실까 하여서요"
"잘했다. 그곳에 두고 가거라"
이방은 시치미를 떼고 머리맡에 자리끼만을 두고 뒷발걸음으로
물러나오는 척하였다. 그러자 벽을 보고 누워 있던 임상옥의 입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것뿐이더냐"
임상옥의 느닷없는 말에 이방은 짐짓 모른 체하고 물어 말하였다.
"무슨 말씀이시나이까"
"네가 가져온 것이 고작 자리끼뿐이더냐"
"그러하시면요, 나으리"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방은 능청을 떨면서 딴전을 부렸다. 그러자
임상옥이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말하였다.
"적적한 야밤에 마른 것이 어디 목뿐이겠느냐"
"그러하시면요, 나으리"
그러자 벽을 향해 누워 있던 임상옥이 몸을 돌아누우면서 이방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였다.
"이보게, 이방"
"말씀하십시오, 나으리"
"놓고 간 자리끼 옆에 무엇이 놓여 있는가 손으로 더듬어
보시게나"
이방은 임상옥의 말대로 머리맡을 더듬어보았다. 그곳에는 은전이
한 다발 놓여 있었다. 이방은 임상옥의 속뜻을 금방 알아채 릴 수
있었다. 이방은 재빠르게 은전을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나으리, 발바닥이 안 보이도록 냉큼 달려오겠나이다. 죽은
자리끼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리끼를 금방 대령해 오겠나이다"
이방은 나는 듯이 송이에게 달려갔다. 송이는 시켜놓은 대로
목욕에 고운 몸단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남의 눈을 피해
쓰개치마로 머리와 윗몸을 가리고 이방은 송이를 이끌고 임상옥의
침소로 숨어들면서 속삭여 말하였다.
"신관 사또가 완전히 송이 너에게 혼이 나가버렸다 네 필자가
하루아침에 정승마님 필자로 바뀌는 것은 오직 너에게 달려 있다.
무슨 방법을 쓰고서라도 신관 사또의 넋을 빼어버려라. 그래야만
네가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방은 임상옥의 침소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으리, 송이 입실이오"
송이는 가리웠던 쓰게치마를 벗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전번과
마찬가지로 방안에는 촛불 하나만 켜져 있을 뿐 어두웠으며, 임상옥
또한 여전히 벽을 마주보며 보료 위에 누워 있었다. 송이가 들어와
다음 행동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자, 비로소 임상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 이부자리를 펴거라"
송이는 시키는 대로 이불을 펴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러자
임상옥의 입에서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송이는 시키는 대로 이불을 펴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러자
임상옥의 입에서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네가 글은 어디서 배웠느냐"
송이는 대답하였다.
"글은 할미였던 홍매에게서 배웠나이다"
"너의 할미 홍매도 관기가 아니었더냐"
"그, 그렇사옵니다"
"관기가 어찌 글을 알 수 있었더란 말이냐"
"그 까닭은 모르옵고, 할미가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
주셨나이다. 소녀의 이름을 지어준 사람도 할미였나이다"
"참으로 요옹타 - "
밑도끝도 없이 임상옥이 탄식하여 말하였다. 긴 침묵이 왔다.
송이로서도 난감한 밤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이제 스무 살.
여인으로도 과년한 몸이어서 수청을 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남정네와 손 하나도 잡아보지
못하였던 처녀의 몸이었다. 처녀의 몸으로 수청을 든다는 것은
초야를 보낸 후 머리를 얹고 완전히 화류의 기녀로 그 첫 발을
들여놓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어차피 남자들의 노리개로
한평생을 보내야 할 기생의 팔자라면 그 첫날밤을 지방수령인 신관
사또와 함께 보내어 그에게 처녀는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체념하고 있었던 송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신관 사또는 그 첫날밤에 자신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던 것이다.
"나으리"
긴 침묵 끝에 송이가 간신히 입을 열어 말하였다.
"불을 끌까요"
송이의 질문에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불을 끄거라"
훅 - 하고 입김을 불어 불을 끄자 방안은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전번과는 달리 달빛조차 없는 어두운 밤이었다. 다시 긴 침묵이
왔다. 송이는 다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캄캄한 방 속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옷을 입은 채 두 손으로 깍지껴서 무릎을 안고
앉아 있었다. 임상옥이 뭐라 이르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앉아 있을
판이었다.
그러나 불을 끄자 그대로 피로가 몰려들었다. 깜박깜박 몸이
무거워지면서 잠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송이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얼마만큼 잤을까, 혼곤한 잠 속에서 송이는 뭔가 소리쳐
우는 소리를 들었다.
송이는 번쩍 눈을 떴다.
순간 밤이 물러가고 새벽빛이 스며든 낯선 방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송이는 소스라쳐 놀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간밤에 입은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새벽 한기에 춥지
말라고 누군가 자신의 몸 위에 이불을 덮어 주었던 것이다.
송이는 방의 벽 쪽을 보았다.
보료 위에는 신관 사또가 여전히 벽을 보고 잠들어 있었다.
송이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누가 나를 이부자리 위에 누인 것일까. 그것은 모두 신관 사또가
한 일이 아닌가. 방안에 있는 사람은 나말고 또 한 사람, 신관
사또뿐이 아닐 것인가.
어디선가 가까운 곳에서 새벽을 알리는 닭의 홰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 전에 깊은 잠 속에서 뭔가 소리쳐 우는 소리에 놀라 깬
것은 바로 닭의 울음소리가 분명하였다.
그때였다.
문 밖에서 주위를 꺼리는 듯한 인기척이 조심스럽게 들려오더니
곧 이어 이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으리, 기침하셨습니까"
그러나 임상옥은 대답이 없었다. 그는 코까지 골면서 잠이 들어
있었다.
"송이야, 그만 나오거라"
송이는 버선 발끝으로 걸어 방을 나왔다.
쓰개치마로 얼굴과 몸을 가리고서 두 사람은 새벽이슬이 젖은
뜨락을 가로질러 걸어나왔다. 나오다 말고 이방이 송이에게 은근히
말하였다.
"어떠하시더냐. 나으리께오서 밤새도록 너를 깨물어 주시더냐,
아니면 핥아 주시더냐"
이방은 벌써 두 번이나 송이를 신관 사또 방에 수청 들었으므로,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정이
들었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신관 사또가 기생 송이에게 홀딱 반하였다는 소문은 곧 파다하게
곽산군 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송이가 신관 사또에게 두
번이나 수청 들었다는 사실은 아전인 이방만 아는 비밀이었으나,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어느새 온 성내에 퍼져벼렸던 것이다.
이러한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번져나가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다. 아낙네들은 모이면 모이는 대로 숙덕거렸고
남정네들도 모이면 모이는 대로 웅성거렸다. 실로 숙덕거리면
숙덕거리는 대로 즐거운 분홍빛 연사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일들이 임상옥이 미리 생각해 두었던
계략대로 맞아 들어가는 것임을 눈치챈 사람이 곽산에 한 명이라도
있었을 것인가. 이 모든 소문은 임상옥이 미리 짜두었던
계획에서부터 비롯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소문이 파다하게 관산군 전체로 퍼져나갔을 무렵,
송이에게 그녀의 양어미 산홍이가 나는 듯이 달려왔다. 그녀는
무엇이 급한지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허이허이 숨이 가쁘게
달려와서는 대뜸 송이를 보자 냉수 한 사발을 들이켜며 다짜고짜로
다음과 같이 물어 말하였다.
"송이야, 내 소문에 듣자 하니 신관 사또가 송이 너에게 죽자사자
혼이 나가버렸다니 그것이 사실이냐"
양어미의 호들갑에 침착한 송이가 낯을 붉히며 대답하였다.
"그게 무슨 아닌 방중에 봉창 두드리는 소리예요"
그러자 산홍은 담배에 불을 붙여 뻐끔뻐끔 빨아들이며 말하였다.
"이년아, 온 곽산군 전체에 그 소문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신관 사또가 송이에게 넋이 나가 상사병에
걸렸다는 소문을 너는 듣지도 못하였느냐. 그래서 묻는 말인데, 신관
사또가 너에게 벌써 두 번이나 수청 들라 이르셨다는 말이
사실이냐"
송이는 순간 생각하였다.
신관 사또의 방에 두 번이나 수청 들었던 비밀을 오직 사또
나으리와 이방 그리고 자신만이 아는 비밀인데 어째서 양어미인
산홍이 이를 알고 있는 것일까.
"내 묻는 말에 이실직고하렷다. 내가 이방에게 술을 먹여 직접 내
귀로 들은 말이니 행여 네 년이 이 에미를 속이려 하여서는
아니된다"
산홍은 다시 담배를 뻐금뻐금 빨고 나서 물어 말하였다.
"그래 다시 묻겠는데, 네 년이 신관 사또에게 벌써 두 번이나 수청
들었다는 말이 사실이냐. 또 너에게 홀딱 반한 신관 사또가 너에게
단오부채를 하사 하셨다는데 그 말이 사실이냐"
그러자 송이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것을 알아 무엇을 하겠소"
그 순간 산홍이 피우고 있던 담뱃대로 방바닥을 소리가 나도록
내리치면서 소리쳤다.
"이년아, 그것을 알아 무엇을 하겠냐고. 아이구 이 미련한 년아,
그것이 네 생사가 걸린 중대한 일임을 아직도 모르고 있단 말이냐.
이년아, 인생이란 기회가 오면 붙잡아야 하는 법이여. 너도 이
에미처럼 주막집 술사발처럼 이놈저놈에게 넘겨져서 나중에는 이리
이가 빠지고 저리 이가 빠지는 퇴물 노리개로 한평생을 마칠
생각이냐"
그제서야 송이는 양어미 산홍이 어째서 부랴부랴 자신에게 달려온
것일까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송이는 양어미가 묻는
대로 대답을 해주었다.
그간 벌써 두 번이나 신관 사또의 침소에 수청 들러 들어갔던
이야기, 그리고 그 동안 벌써 이틀 밤이나 신관 사또의 침소에서
밤을 보낸 이야기 등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그러자 산홍은 희색이 낙락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하였다.
"그래, 어떠하시더냐. 신관 사또가 너를 사랑하여 주시더냐. 너를
안고 노시더냐, 아니면 너를 업고 노시더냐"
"안지도 업지도 않으셨소"
송이는 낯을 붉히며 대답하였다. 그러자 산홍이 신이 나서 자신의
무릎을 소리가 나도록 내리치고는 깔깔 웃으며 말하였다.
"안지도 업지도 않고 노셨다면, 그런 신관 사또가 너를 배 위에
올려놓고 노시더냐, 아니면 배 아래에 깔아놓고 노시더냐"
노골적인 질문이었다.
송이는 양어미의 질문에 다시 대답하였다. 이틀 밤이나 수청을
들었으나 한 번도 사또가 자신의 몸에 손 하나 대지 않았다는
이야기, 이틀 밤을 꼬박 손 하나 대지 않고 고스란히 온전한 처녀의
몸으로 보내 주었다는 이야기를 고백하였다. 그러자 산홍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소리쳐 말하였다.
"무엇이 어쩌구 어째"
그리고 기가 막히다는 듯 가슴을 풀어헤치고 활활 - 소리가
나도록 부채를 부치고 난 후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아직도 네 년이 생처녀의 몸이란 말이냐"
비로소 송이로부터 모든 사건의 전말을 전해들은 양어미 산홍은
기가 차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더냐. 그리고 보면 신관 사또인지
나발인지 그 사람이 고자가 아니더냐. 불알이 없는 내시가 아니더냐.
그러면 이년아,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가 잠만 자고 나왔단 말이냐.
아이구 이년아, 그러면 네가 먼저 신관 사또의 불알을 잡아
끌어당겨보지 그랬느냐, 아이구 내 팔자야. 내가 너에게 춤과 노래는
가르쳐 주었다만 사내들 녹이는 허리춤이야 일일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하여서 모른체 하였는데,
아이구 이 미련한 년아,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 왔는데도 사또
방에서 이틀 밤이나 생처녀로 잠만 자고 나왔단 말이더냐"
기가 찬 듯 허이허이 한숨을 쉬고 나서 산홍이 말을 이었다.
"듣자 하니 신관 사또가 조선 팔도에서 가장 돈이 많은 거부란
소문이다. 그러니 이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를 어떻게든 붙잡아야할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팔자를 고치는 것은 오직 이 한 방법
뿐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기생이 기적에서 벗어나서 양민이 될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방법이 바로 양민이 소실이 되거나 거부의
첩이 되어 돈으로 대속시키는 방법임을 너 또한 알고 있지 않느냐.
아이구 이년아, 사내놈들이란 계집이 좋아서 죽네 사네 하여도 일단
한번 맛을 보며 곧 싫증을 내고 단물이 빠지면 도망가 버리는 것이
속성이니라. 그러하니 신관 사또가 아직 너에게 넋이 나가 있을 때
어떻게 해서든 그를 휘어잡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만 너도
조선팔도 제일의 거부인지 개나발인지의 소실이 되어 한평생을
호의호식하지 않겠느냐. 그뿐이냐, 네가 기생의 팔자를 벗어나
소실이 된다면 이 에미의 팔자도 하룻밤 사이에 정승마님 팔자로
뒤바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이년아, 도대체 무엇을 망설이느냐.
수청을 들러갔으면 수청을 들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신관
사또가 수줍음을 타서 체통을 지키면 네가 먼저 옷고름을 풀고 옷을
발가벗으면 되지 않겠느냐. 아니면 신관 사또보고 옷고름을 풀어달라
하면 어느 시러배 아들놈이 이를 마다하겠느냐. 태어날 때부터
고자가 어디 있겠느냐. 그러니 이년아, 방구들이 뜨끈한가 하고
슬며시 이부자리 맡에 손을 넣었다가 슬쩍 신관 사또의 자지를
건드려 보지 그랬느냐. 사내놈들의 자지란 방아깨비와도 같아서
건드리면 건드리는 대로 꺼떡꺼떡 일어서는 것을 스무 살 나이
되도록 몰랐었단 말이냐. 아이구 이 미련한 년아, 아이구 이년의
팔자야"
산홍은 무엇이 답답한지 풀어헤친 앞가슴을 소리가 나도록 쾅쾅
때리면서 넋두리를 하였다.
그러다 문득 무엇인가 생각난 듯 산홍은 자신의 치마를 들추고
속곳을 벗어내렸다. 느닷없는 산홍의 행동에 송이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백주 대낮에 옷을 벗어 어쩔 셈이오"
그러자 산홍이가 기가 차다는 듯 한숨을 쉬면서 말하였다.
"이년아, 이제부터 사내놈을 녹이는 방법을 직접 가르쳐 줄라구
그런다"
산홍은 속곳을 벗어내린후 가장 은밀한 곳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이년아, 이게 무엇인 줄 아느냐"
송이는 어미가 꺼낸 물건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작은 주머니였다. 얼핏 보면 말총으로 짠 주머니처럼
보였다.
"그게 무엇이오"
송이가 묻자 산홍은 의기양양하게 말하였다.
"니 에미가 이 나이 되도록 서방 팔자도 사납고 돈 팔자도
사납지만, 남자 팔자는 좋아서 여태껏 아침저녁으로 뭍 사내가
쉬파리 달라붙듯 니 에미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은 모두 요놈의
물건 때문이다. 니 에미의 속살을 한 번 맛본 놈이면 오매불망
사족을 못 쓰는 것도 모두 요놈의 물건 때문이지. 이게 무엇이냐
하면 향낭이란 것이지"
항낭
문자 그대로 말총으로 짠 향기나는 주머니. 그 주머니는 궁노루의
사타구니에서 분비되는 액을 말린 사향을 넣어두는 향주머니다. 그
향주머니는 보통 왕족들이나 귀족들이 딸을 시집보낼 때 으레 가장
깊은 속곳에 집어넣어 주곤 하던 일종의 미약이었던 것이다.
사향의 냄새는 평생 동안 지속되어서 평생 동안 그 여인의 고유한
냄새처럼 인식되기 마련인데 진할 때는 오히려 고약한 인분
냄새처럼 느껴지지만 주머니의 끝을 꼭 여며 매어두면 은은하게
풍겨질 듯 말 듯하여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방향이
되어버리는 물건이다.
"이 주머니에는 궁노루의 사타구니에서 나오는 사향이 들어있다.
사내놈들이 제 아무리 인격이 고상하고 학식이 높다 하더라도 이
냄새 한 번 맡으면 오뉴월의 개처럼 혓바닥을 헐떡이며 달라붙게
되어 있지. 듣자 하니 황진이가 30년 수도 끝에 생부처가 다된
지족선사를 파계시킨 것도 이놈의 향낭 때문이라고 하던데 내가 이
물건을 네 년의 사타구니 속에 달아줄 터이니 어디 한번 보자꾸나.
신관 사또가 과연 이 냄새를 맡고도 그 놈의 자지가 요지부동인가,
아닌가 한번 두고 보자꾸나"
실제로 사향 냄새는 합환하는 사람들을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일종이 최음제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또한 사향은 갑자기 반사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비상약이기도 하여서 위급할 시에는 남자를 희생시키는
희소약으로까지 사용되는 귀중한 물건이기도 했던 것이다.
"치마를 벗고, 속곳을 벗어라"
산홍은 단호하게 말하였다. 송이가 망설이자 산홍은 채근하여
말하였다.
"뭘 망설이고 있느냐. 치마를 벗어라. 이 에미가 말하지 않았느냐"
송이는 치마를 벗고, 단속곳도 벗었다.
"속속곳도 벗어라"
속속곳이라면 오늘날의 팬티에 해당되는 여인들의 가장 깊은
내의였던 것이다. 송이가 속속곳을 벗자 산홍은 강제로 송이의 양
다리를 벌린 후 그곳을 한번 들여다보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어디 우리 딸년 옥문을 한번 들여다보자"
놀란 송이가 황급히 두 다리를 오므리자 껄걸 웃으며 산홍이
말하였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구나. 이렇게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옥문을 제대로 열어보지도 못한 신관 사또인지 나발인지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곰배팔이란 말이냐"
산홍은 송이의 속속곳에 자신이 차던 향주머니를 직접 바늘로
꿰어 달아주면서 말하였다.
"내가 이 주머니를 얻은 것은 스무 살 안팎이었다. 청나라에
사신을 갔다오던 관리한테 하룻밤 수청을 들고 난 후 얻은
물건이었지. 중국에서도 귀한 물건으로 운남성이나 사천성에서 나는
사향노루의 사타구니에서 얻은 분비물인데 이를 당문자라고
부른다고 그 사람은 말하였지. 그 이후부터 이 에미는 그것을 평생
동안이나 차고 다녔었지. 그 이후부터는 평생 니 에미의 옥문은
드나드는 사람으로 단 하루도 빗장을 잠그는 날이 없었더란다.
이놈이 드나들고 저놈도 드나들고, 주인이 드나드는가 하면 머슴도
드나들고, 그러다 보면 시주승도 드나들고, 작년에 왔던 각설이들도
드나들어 아예 오밤중에도 오고 싶은 놈들이면 누구든지 오너라
하고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낸단다"
송이의 속속곳에 향주머니를 직접 달아주고 나서 산홍은 말하였다.
"이것을 차고 다닐 때는 주의해서 명심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설혹
네 옥문을 남정네에게 보여줄지언정 이 향낭은 절대 보여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산홍은 말을 이었다.
"이 냄새를 맡은 사내가 이 냄새가 사향노루의 냄새가 아니라
바로 네 몸에서 나는 냄새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야 하느니라.
남정네들은 의외로 단순해서 이 냄새를 맡으면 이 냄새가 송이 네
년의 몸에서만 나는 냄새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절대로 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향주머니는 보여주어서는 안되느니라"
그리고 나서 산홍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내 말을 명심토록 하여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신관 사또가 또다시 너를 수청 들라 부를
것이다. 그때가 삼세번이니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꽃이 필 때도
시절인연이 있는 법이고, 열흘 붉은 꽃은 없는 법이다. 삼세번을
놓치면 신관 사또가 너를 다시는 여자로 보지는 아니하실 것이다.
무릇 남녀가 맺어질 때는 처음 만나서 삼세번 안에 다 이루어지는
것이니 세 번을 지나고 보면 서로에게 끌리는 것이 없어지는
법이니라. 두 번이나 네 년이 수청 들었음에도 신관 사또가 너를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아니하였음은 신관 사또가 불알 없는 내시거나
고자가 아니라, 그만큼 너를 마음으로 아끼고 너를 마음속으로부터
예뻐하고 있다는 뜻이니라.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치마를 뒤집어엎고 인당수 깊은 물에 풍덩 하고 빠져죽은
심청이처럼 신관 사또의 품안에 빠져들거라. 마침 신관 사또로부터
단오부채를 하사 받았으니 가까이 다가가 부채질을 하여 드리거라.
그래도 안되면 신관 사또의 이부자리 속으로 파고 들어가거라.
무어라고 나무라시면 그저 울어라. 무릇 사내놈들이란 계집년이
흘리는 눈물에 녹아 흐르는 법이니라. 만지면 반응을 보이되
덥썩덥썩 몸을 내맡기지 말거라. 때로는 토라지고 앙탈도 부리거라.
좋아도 너무 좋아하지 말거라. 그러면 색이 너무 강한 계집으로
느껴질지도 모르니라.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껏 모시거라.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하룻밤이 네 생사가 걸린 중요한 밤이라는 사실이다. 네가 신관
사또의 혼을 빼놓지 않으면 너는 이놈저놈 원하는 대로 옷을 벗어
마침내 주막집의 이빨 빠진 술사발처럼 낡고 깨어진 이 에미와 같이
늙은 퇴기가 되어버릴 것이다"
양어미 산홍이 다녀간 지 며칠 뒤.
해 저무는 저녁녘 이방이 송이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요즈음 달거리 중은 아니겠지"
송이는 이방의 그런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대답 대신 낯을 붉히고 있을 뿐이었는데 이방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마도 오늘 밤 사또 나으리께오서 너를 부르실 것이다. 그러니
몸단장 잘하고 기다리고 있거라"
이방의 말을 들은 순간 송이는 가슴이 뛰었다. 신관 사또가 자신을
또다시 부른다는 이방의 말 한마디에 송이는 낯이 붉어지고, 온몸이
녹아 흐르는 듯한 기쁨을 느꼈다.
두 번이나 한 방에서 함께 밤을 보냈으면서도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아니하였던 신관 사또였지만 이미 송이의 마음속에는 신관 사또에
대한 연모의 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비록 함께 살을 섞지는
아니하였지만 송이에게 있어 신관 사또는 태어나서 함께 밤을 보낸
첫 번째 외간남자였던 것이다.
관기 송이에게 있어 지방수령인 군수 나으리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의 천양지간인 것이다.
송이는 부랴부랴 목욕재계부터 하였다. 그녀는 쑥잎을 달인 뜨거운
물을 만들어 그 속에 몸을 넣어 목욕을 하였다.
목욕을 하고 나서 송이는 거울 앞에 앉아 곱게 몸단장을 하였다.
거울에 비친 송이의 몸은 자신이 보아도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웠다.
송이의 몸은 잡티나 흉터가 전혀 없는 옥과 같이 희고 투명한
피부였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옥과 같이 투명하고 흰 피부를 가진
사람을 귀인이라고 생각해 오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여인들은
짓찧은 마늘을 풀에 섞어 얼굴에 골고루 펴 바른 후 씻어냄으로써
살갗의 미백효과를 노리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송이의 얼굴과
피부는 천연적으로 희고, 옥처럼 투명하였던 것이다.
보통 기생들은 분대 화장을 하고 있었다. 분대화장이라 하면
얼굴에 분을 도포하듯이 하얗게 만이 바르고, 눈썹을 가늘게
가다듬어 또렷하게 그리고, 머릿기름은 반질거릴 정도로 많이 바르는
특징이 있는 진하고 야한 화장법이었다. 따라서 이 분대화장을
기생화장이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송이는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피부가 아름다워 굳이 그렇게 짙은 화장을 할 필요가 없었다.
송이는 시분무주라 불리는, 분을 약간 바른 뒤 연지는 전혀 바르지
않는 기초화장만을 즐겨 하였던 것이다.
양어미 산홍이 가르쳐준 대로 사향이 들어 있는 향낭의 주머니
끈을 조금 풀어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 나올 수 있도록 끈을
조정하고 나서 송이는 그 속곳을 여며 입었다.
송이는 생각하였다.
어미의 말대로 수청을 들러 갔으면 어떻게 해서든 수청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팔자를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며, 어미의
말대로 신관 사또의 소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오늘 밤이 그 마지막 밤인 것이다.
그 순간 송이의 귓가에 양어미 산홍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내 말을 명심토록 하여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꽃이
필 때도 시절인연이 있는 법이고 열흘 붉은 꽃은 없는 법이다.
삼세번을 놓치면 신관 사또가 너를 다시는 여자로 보지는 아니하실
것이다. 무릇 남녀가 맺어질 때는 처음 만나서 삼세번 안에 다
이루어지는 것이니 세 번을 지나고 보면 서로에게 끌리는 것이
없어지는 법이니라"
송이는 옷을 입고 마지막으로 거울 앞에 앉아서 머리를 빗었다.
창포물로 머리를 감았으므로 머리에서는 반들반들 윤이 나고 있었고
은은한 향기가 풍겨오고 있었다.
오늘 밤이 양어미의 말대로 삼세번의 마지막 밤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 신관 사또를 유혹하여서라도 인당수에 풍덩
하고 빠져 죽은 심청이처럼 그의 품속으로 빠져 죽어야 할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며 송이는 자신에게
말하였다.
나는 오늘 밤 신관 사또의 품속에서 심청이처럼 빠져 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대뜸 가슴이 붉어지고, 심장이 뛰었다. 그러나
그것을 마다할 송이였던가. 비록 대역죄인의 딸이 되어 비천한
관기로 전략하였다고는 하지만 그녀의 핏속에는 천하제일의 권력을
꿈꾸던 이희저의 피가 흐르고 있지 아니한가. 관서지방 제일의
협객이었으며 뛰어난 장사로 그를 당할 자가 없었던 영웅 이희저의
딸이 아닐 것인가.
그뿐인가.
영웅은 호색이라고 술과 여인을 좋아하던 이희저가 아니었던가.
청년 임상옥을 북경 제일의 유곽으로 데리고 갔던 사람도 바로
이희저가 아니었던가.
그 이희저의 피가 송이의 혈관 속으로 흐르고 있는 한 송이가
비록 여자라고는 하지만 그녀의 핏속에도 풍류가 흐르지 않을
것인가.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발자국 소리와 함께 이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이 게 있느냐. 있으면 나오거라"
송이는 쓰개치마로 몸과 얼굴을 가리우고 밖으로 나왔다.
밝은 달빛이 넘쳐흐르는 달밤이었다. 어느덧 봄은 가고, 초여름의
계절이었다. 개천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첨벙첨벙 들려오고
있었다. 송이는 꿈길을 밟듯 대낙같이 밝은 달빛을 따라 걸어갔다.
"나으리께오서"
관가가 가까워지자 이방이 따라오는 송이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오늘은 술도 한 잔 드시지 않으시고 너를 부르셨다. 나으리께오서
너에게 마음을 두고 계심이 분명하니 잘 모시거라"
이방은 이방대로 사또 나으리가 송이를 부를 때마다 따로 용돈을
두둑이 받으니 좋고, 잘하면 송이가 신관 사또의 소실이 될만도 하니
그렇게 되면 자신의 팔자도 고칠 수 있어 어쨌든 일거양득이었다.
드나드는 남의 눈을 피해 관가로 들어가는 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순찰을 도는 순라꾼들이 이따금 오고가고 있었는데 가능하면 신관
사또의 체통을 봐서라도 그들의 눈도 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관 사또의 방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나으리"
이미 낯익은 임상옥의 침소 앞에서 이방이 허리를 굽힌 자세로
소리내어 말하였다.
그러자 불이 켜진 방안에서 신관 사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신가"
"나으리, 접니다요, 이방입니다요"
능글맞게 웃으면서 이방이 굽실거렸다.
"나으리, 송이 입실입니다요"
"들어오라 이르게"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지금껏 송이가 임상옥의 침소를 찾아왔을 때에는 항상 촛불
하나만 켜 있어 어두웠으며 임상옥은 수렝 취해 늘 보료 위에 누워
벽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불이
대낮같이 환히 켜져 있었고 이방의 말대로 술에 취하지 않은 맑은
정신의 목소리였다.
"송이야"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방이 말하였다.
"들어가거라"
송이는 쓰개치마를 벗고 마루 위로 올라섰다.
"나으리"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을 법도 할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짓궂게 이방이 한마디 덧붙였다.
"소인 물러갑니다요. 날이 밝은 새벽에 다시 오겠습니다요"
그러나 방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방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침소를 벗어나며 기분 좋아 한마디하였다.
"얼씨구 좋네. 지화자로구나. 신관 사또가 난봉이 났구나"
그러나 어쨌거나 우쭐우쭐 걷는 이방의 주머니에서는 걸을 때마다
짤랑짤랑 은전들이 부딪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나는
달밤이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산홍이년에게 오늘 밤에 양딸 송이가
신관 사또의 침소로 수청 들러 들어갔다 귀띔하여 주면 공술까지
걸판지게 얻어먹을 수 있는 얼씨구 좋은 달밤이기도 했던 것이다.
송이는 신관 사또의 처소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으리, 송이 입실이오"
그러자 안에서 신관 사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 내 이르지 않았느냐"
송이는 두 손으로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방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임상옥은 옷을 입고 방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웬일인지
방안에는 술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앉아라"
송이가 머뭇거리자 임상옥이 부드럽게 말하였다.
"오늘은 내가 술 생각이 나서 너를 불렀다"
임상옥은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밝은 달빛이 그대로
방안으로까지 비춰 들어와 촛불을 꺼도 방안은 한낮처럼 밝을
정도였다.
"술을 따르거라"
임상옥이 술잔을 들어올리면서 말을 하자 송이가 두 손으로 술을
따랐다.
임상옥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밝은 달빛과 밝은 불빛 아래에서 바라보는 송이의 모습은
천하절색이었다.
항상 사람들이 많이 모인 연회 같은 곳에서 송이를 보았으므로
제대로 송이의 자태를 바라본 적은 없었다. 비록 두 번이나 같은
방안에서 밤을 보냈다고는 하지만 언제나 흐린 촛불 아래에서
희미한 모습만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임상옥은 밝은 달빛 아래에서 고스란히 드러난 송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송이의 얼굴이야말로 절색미인이었다.
대역죄인으로 죽어간 친구, 송이의 아버지인 이희저의 모습을 판에
박아놓은 듯 닮아 있지 않은가. 오뚝한 콧날하며 검고 큰 눈동자,
눈매까지 이희저를 따다 놓은 것처럼 닮아 있었다.
"너도 한 잔 마시겠느냐"
임상옥은 자신이 마시던 술잔을 송이에게 내어밀었다.
"주시니 받겠습니다"
두 손으로 술잔을 받으며 송이가 대답하였다. 임상옥은 송이의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주었다.
원래 기생에게는 술을 내리지 않는 법이다. 기생들도 간혹 술을
마실 수는 있었지만 자신이 마시던 잔을 물려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기생들에게 자신이 마시던 잔을 물려주고, 술까지 따라줄 때는 서로
정분을 나누는 합환주일 때만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송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송이는 사양치 아니하고 신관
사또가 내어주는 술잔을 다소곳이 받아든 것이다.
송이는 술을 한 잔 들이켰다.
"제 잔을 받으시오서, 사또 나으리"
송이가 잔을 비우고 나서 그 잔을 다시 임상옥에게 내밀었다. 한갓
관기의 비천한 주제에 자신이 마시던 술잔을 사또 나으리에게 직접
바쳐 올리는 일은 생각조차 못할 일이다. 송이에게는 그런 당돌함이
있었다. 그리고 당돌함 역시 아비 이희저로부터 몰려받은 성격
그대로였던 것이다.
임상옥은 전혀 개의치 않고 송이의 잔을 받아들었다. 송이는 다시
두 손으로 잔을 채웠다. 한 잔 마신 술에 벌써 취기가 올라 송이의
얼굴은 발그스레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 상기된 얼굴이 훨씬
매혹적이었다.
"네가 글을 읽고 쓸 줄 안다고 그러하였더냐"
한 잔, 두 잔 술을 마시고 또 마셔 거하게 취한 임상옥이 송이에게
물어 말하였다. 그러자 송이가 대답하였다.
"조금은 알고 있나이다"
임상옥이 벽에 두른 병풍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 병풍에 새겨진 시를 한번 읊어 보겠느냐"
병풍에는 당나라의 시인 만초의 한시가 씌어져 있었다. 만초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당대의 시인으로 현재 여덟 수 밖에 전해지지는
않지만 그의 시는 워낙 빼어나 후대에 널리 애송되고 있었다.
그 시의 제목은 '오일관기' 로 '단오날 기생을 보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 병풍에 그 시를 직접 쓴 사람은 바로 임상옥으로 지난 단오날,
물놀이 끝에 김극기의 시 '원님은 숲 아래 술 취해 고꾸라져 있구나'
를 맞춘 송이에게 단오부채를 하사하고 돌아온 직후에 쓴
문장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송이는 천천히 그 시를 읊기 시작하였다.
서시가 봄비단 빤 것도 쓸데없는 말이고
벽옥 아씨 지금에 꽃다움을 다투는데
눈썹 그림 원추리 빛을 빼앗아 가졌고
다홍치마 석류꽃을 시새움하는구나
새 노래 한 곡조는 사람을 황홀하게 하고
취한 춤 두 눈동자 애교머리 살짝 올려
그 누가 오색실로 목숨을 이을 수 있다 했더냐
도리어 오늘로 네 집에서 죽을 터이니
시를 읊어 나가는 송이의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병풍에 새겨진 만초의 시는 바로 자신의 모습을 빗대어
노래하고 있지 아니한가.
일찍이 '서시' 는 봄철에 자기가 짠 얇은 비단을 빨았다' 는 고사를
남겼고, '벽옥' 은 송나라의 '여남왕' 의 첩으로서 16세 때 사내의
마음을 미치게 하였다는 '벽옥가' 를 남길 만큼 천하절색이었는데
신관 사또가 병풍에 씌어진 만초의 시를 읊게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서시나 벽옥보다 더 아름답고 간접적으로 비유하고 있음이
아닐 것이가.
그러므로 신관 사또는 송이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은근히 만초의
시를 빗대어 사랑 고백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마지막 종장에 이르러서는 사랑의 표현이 더욱 강렬해진다.
수도오사능속명
욕령금일사군가
이 문장이야말로 송이에 대한 임상옥의 사랑을 격렬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오사.
5월 5일 단오날에 오색실로 팔꿈치를 감으면 장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단오절 풍물로 이 시의 뜻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그 누가 오색실로 목숨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하였더냐"
오색실을 감아 장수하기는커녕 맨 끝 문장에 이르면 오히려
다음과 같이 끝맺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리어 오늘로서 네 집에서 죽게 될 터인데"
그러므로 전체의 뜻은 그대와 함께 있다면 오색실로 팔꿈치를
감아 장수마저 원치 않는다. 단 하룻밤이라 하더라도 그대와 함께
죽고 싶다는 간절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송이는 신관 사또가 자신을 상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신관
사또가 자신과 함께 죽고 싶을 만큼 자신을 상사불망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었다.
"네가 어찌 그리 영특하다는 말이냐"
송이가 낭랑하게 병풍에 씌어진 만초의 시를 단숨에 읊어내리자
임상옥이 자신의 무릎을 내리치면서 감탄하여 말하였다.
"나으리'
송이는 얼굴을 들고 똑바로 임상옥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무슨 일이냐"
취한 눈으로 임상옥이 송이를 바라보며 물어 말하였다. 그러자
송이가 다소곳이 대답하였다.
"노래 한 곡조 올려드릴까요"
"노래. 그것 좋지"
한껏 기분이 좋아진 임상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그러자
송이가 다소곳이 대답하였다.
"노래 한 곡조 올려드릴까요"
"노래. 그것 좋지"
한껏 기분이 좋아진 임상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그러자
송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인간 이별 만사 중에 독수공방 더욱 섧다.
상사불견이라 진정 늬라서 알리 맺힌 시름.
이 정 저 정이라 흐트러진 근심 다 후루쳐 던져두고
자나깨나 깨어지나 임을 못 보니 가슴이 답답....
송이가 부르는 노래는 '상사별곡'이었다. 이 노래는 그 당시
대유행을 보이던 대표적인 가창이었다.
상사별곡은 지은 사람도 알려진 바가 없고, 연대도 미상이었지만
남녀 사이의 순수한 연정을 주제로 한 대표적인 노래였던 것이다.
내용은 인간의 이별 만사 중에 독수공방이 가장 섧다는 것으로
시작하여 임을 기다리는 마음과 상사하는 마음을 여러 가지로
묘사한 다음 한 번 죽어지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연정이 있거든
다시 보게 태어나도록 기원하는 것으로 끝나는 대표적인 사랑
노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여자의 입장에서 노래한 내방가사였으므로
송이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만초의 시로 자신의 연정을
간접적으로 표혀한 신관 사또에 대한 화답송이었던 것이다.
...어린 양자 고운 노래 눈에 암암하고 귀에 쟁쟁
보고지고 보고지고 임의 얼굴
듣고지고 듣고지고 임의 노래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께 임 생기라고 비나이다
전생차생이라 무삼 죄로 우리들이 생겨나서
잊지마자 하고 백년기약...
송이의 노래는 청아하고 구슬펐다. 노래의 가사도 그러하거니와
곡조 또한 애절하였다. 가슴을 파고드는 처연함이 있어 드는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듯하였다.
임상옥은 눈을 감고 송이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임상옥 역시 상사별곡은 부르는 송이의 속마음을 알고 있었다.
송이 역시 상사별곡을 통해 자신의 상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열린 방문을 통해 휘영청 밝은 달빛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하늘 한가운데에는 만월의 보름달이 공중에 걸려 있었다. 송이의
애절한 노래는 온 방안을 맴돌고, 방안을 빠져나가 달빛이 내리깔린
뜨락을 맴돌아 퍼져나가고 있었다.
...만첩청산을 들어를 간들
어느 우리 낭군이 나를 찾으리.
산은 첩첩하고 고개되고
물은 졸졸 흘러 소 이르소이다.
오동추야 밝은 달에 임 생각이 새로워라.
한 번 이별하고 돌아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그날 밤.
술상을 물리고 나서 두 사람은 한 방에 들었다. 술 취한 임상옥은
다시 벽을 보고 보료 위에 누웠고 송이는 옷을 입은 채 방한구석에
무릎을 안고 앉아 있었다.
오랜 침묵이 흘렀으나 임상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송이
또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랜 침묵 끝에 송이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으리, 불을 끌까요"
임상옥의 입에서 수월하게 대답이 흘러나왔다.
"마음대로 하려무나"
송이는 입김을 불어 불을 껐다.
불을 꺼도 달빛이 밝아 방안이 투명하게 보였다. 송이는
이부자리를 깔고 다시 임상옥에게 말을 하였다.
"나으리, 밤바람이 차나이다. 자리를 옮기시오소서"
송이는 술 취한 임상옥을 부축하여 요 위에 누이고 나서 스스로
천천히 옷을 벗었다. 그녀는 아무런 부끄러움도 스스럼도 없었다.
양어미 산홍의 귀띔대로 오늘 밤이야말로 삼세번의 생사가 걸린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오직 사랑하는 임과의
하룻밤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불렀던 상사별곡의 노래처럼, '보고지고 보고지고 임의
얼굴, 듣고지고 듣고지고 임의 노래' 바로 그 가사처럼, 보고 싶은
임의 얼굴과 듣고 싶은 임의 소리 때문에 송이는 스스로 옷을
벗었던 것이다.
옷을 벗은 송이가 임상옥이 누운 이불 속으로 살며시 들어갔다.
송이의 몸은 불덩어리처럼 뜨거웠고 임상옥의 몸도 역시
불덩어리처럼 뜨거웠다. 그럼에도 임상옥은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 것일까.
송이는 생각하였다.
뭔가를 고민하고 뭔가를 끊임없이 망설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신관 사또는 어찌하여 나를 원하고 있으면서도, 만초의
시처럼 '오늘 밤 함께 죽고 싶을 만큼' 나를 원하고 있으면서도
무엇을 꺼리고 있는 것일까.
순간 송이가 임상옥의 손을 잡아 쥐었다.
그녀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 그리고 나서 임상옥의 귓가에
속삭여 말하였다.
"나으리"
임상옥의 손 역시 불덩어리처럼 뜨거웠다. 송이는 속삭여 말을
이었다.
"나으리, 나으리 옆에 누운 제가 야호이니까, 아니면 송이이니까"
"그것을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달뜬 목소리로 임상옥이 물어 말하였다.
"저 역시 제가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인지, 아니면 기생 송이인지
잘 모르겠나이다.. 그러하니 나으리, 제가 만약 송이가 아니옵고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라면 분명히 제 엉덩이에는 꼬리가 붙어 있을
것이니 한 번 만져 확인해 보시겠나이까"
송이는 임상옥의 손을 잡아 자신의 엉덩이의 뒷부분에 슬며시
대어 보았다.
참으로 당돌한 송이의 태도였다. 임상옥의 손을 직접 잡아 자신의
엉덩이에 꼬리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가져가는 순간 불덩어리처럼
뜨거운 송이의 온몸이 임상옥의 손에 느껴졌다.
"나으리"
순간 송이의 입에서 뜨거운 입김이 쏟아졌다.
"묻겠나이다. 나으리, 제 엉덩이에 꼬리가 있나이까"
"글세"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아무것도 만져지지는 않는구나"
"그러하면 제가 야호이니까, 아니면 송이이니이까"
"야호는 아니다. 송이임에 분명하구나"
"그러하면 나으리"
송이의 뜨거운 몸이 임상옥의 품을 파고들면서 다시 물어
말하였다.
"어찌하여 저를 구미호 보듯 하시나이까. 분명히 꼬리가 아니달린
송이임에도 불구하고 꼬리가 아홉이나 달린 여우로 보듯
하시나이까"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느닷없는 고함소리 하나가 일갈하여 임상옥의 뇌리를
후려쳤다.
"네가 도대체 무엇을 망설이고 있단 말이냐"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튀어나와 임상옥의 머리통을
호되게 내리쳤다.
"이놈아, 이 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석숭 큰스님의 대갈일성이었다.
30여 년 전.
바로 곁에 누워 있는 송이의 아버지인 이희저와 둘이서 연경에
들어가 큰돈을 벌고 이희저의 유혹으로 유곽에 들어가, 절세
미인이었던 장미령을 만났을 때 살려 달라고 우는 장미령을 본
순간에도 똑같이 '이놈아, 이 손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는 석숭
큰스님의 대갈일성을 들었던 것이다.
그때 임상옥은 결심했었다.
이 여인을 죽이는 길은 이 여인의 처녀성을 빼앗고, 그녀의
하소연을 모르는 체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여인을 살리는 길은 이
여인의 몸값을 지불하고 사창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여 주는
일이다.
그리하여 임상옥은 마침내 거금 5백 냥을 주고 장미령의 몸을
사서 그녀를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장미령의 곁에서 꼬박 하룻밤을 새우던 그날 밤, 임상옥의 뇌리를
후려치던 벽력 같은 목소리.
"이놈아, 이 손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느냐"
바로 그 목소리가 3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송이와 함께
누워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벽력처럼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임상옥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놈아, 도대체 네 놈이 무엇을 망설이고 있단 말이냐"
너는 도대체 무엇을 망설이고 있단 말인가.
송이가 너의 죽마고우 이희저의 딸이라는 사실 때문인가. 그러나
송이는 이희저의 딸이지 너의 친딸은 아니지 않은가. 또한 이
방법이야말로 송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 것인가. 송이를
미천한 관기에서 벗어나 양민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은 오직 이 길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네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계략이기도 한 것이다. 네가
송이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송이를 소실로 삼는 길뿐이다. 송이를
소실로 삼고 다른 여인을 대속하여 대신 관기로 들여놓은 다음
송이를 양민으로 회복시켜 주는 길뿐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송이를 살리는 활인도인 것이다.
순간 임상옥은 오랫동안 지고 있던 등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임상옥은 몸으로 파고 들어오는 송이의 벗은 몸을 부둥켜안았다.
"내가 어찌 너를 구미호로 보고 있었겠느냐"
그리고 나서 임상옥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나는 오늘 밤 너와 함께 죽고 싶다. 바로 이곳에서 말이다"
일단 마음의 둑이 무너지자 걷잡을 수 없는 격랑이 폭포되어
쏟아졌다.
송이의 나이 스므 살 처녀의 몸이라 하였으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무슨 부끄러움이 있을 것인가. 이미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농밀한 여인의 몸이 아닐 것인가. 사내의 몸을 처음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전생으로부터의 숙연은 없을 것인가.
임상옥이 구름이라면 송이는 그대로 비가 되었다. 그리하여
임상옥이 드리우는 곳마다 송이는 그대로 비를 뿌렸다. 두 사람의
운우지정으로 밤새 꽃이 만발했다.
"송이야"
열락에 빠질 때마다 신음하여 임상옥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으리"
임상옥이 부르면 좇아 나오듯 송이가 화답하여 말을 받았다.
송이가 다시 열락에 빠져 신음하며 '나으리' 하고 부르면 임상옥이
기다렸다 화답하여 '송이야' 하고 대답하였다. 바로 몸을 섞고 있어
더 이상 가까이 할 수 없을 만큼 함께 있건만 그들은 함께 있는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서 자주 그렇게 부르고 하였다.
"송이야"
임상옥이 벌거벗은 송이의 등을 더듬어 쓸어내리며 말하였다.
"송이 네가 어디 있느냐"
"나으리"
송이가 대답하였다.
"바로 나으리 품속에 있지 않으니이까"
"그런데 어찌하여 네가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이제 보니 네가
정녕 사람이 아니로구나"
"사람이 아니라면요. 나으리"
"백년 먹은 여우가 아니겠느냐"
"백년 먹은 여우라면 어찌 제 몸에 꼬리가 없겠나이까"
"아니다"
임상옥이 송이의 엉덩이를 쓸어 만지면서 말하였다. 그러자
간지럼을 타듯 송이가 깨득깨득 웃으면서 몸을 꼬았다.
"간지럽사옵니다, 나으리"
"꼬리가 네 엉덩이에 분명히 달려 있지 않느냐"
"아까는 없다고 하시더니 어찌하여 이제는 꼬리가 있다고
하시나이까"
"그러니까 백호가 아니겠느냐. 백년 먹은 흰 여우야 한번 둔갑할
때마다 꼬리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하니, 그러니 네가
정녕 흰 여우임에 틀림이 없으렷다. 그러니 네가 무엇하러 사람이
되어 내 곁으로 찾아왔더란 말이냐"
그러자 송이가 임상옥의 벗은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스쳐
내리며 말을 받았다.
"소녀가 백여우에서 사람으로 둔갑하여 나으리 곁으로 나타난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나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사람으로 태어나길 원해서나이다. 소녀의 꿈은 오직 하나, 여우의
몸에서 벗어나 사람의 몸을 받아 환생하여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이나이다"
"네가 여우에서 사람으로 환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그것은"
송이가 임상옥의 몸을 파고들며 말하였다.
"나으리의 간을 빼어먹는 일이나이다. 소녀가 나으리의 간을
빼어먹을 수 있다면 소녀는 사람의 몸을 받을 수 있나이다"
"그러하면"
임상옥이 가슴을 펼치어 말하였다.
"네 뜻이 정녕 그러하다면 간을 빼어먹으려무나"
"정녕이시나이까"
"정녕 그러하다고 내 이르지 않았느냐. 먹어라. 내 간을
빼어먹어라"
그러자 순간 송이가 얼굴을 파묻고 임상옥의 가슴을 핥고 그리고
깨물었다. 임상옥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소녀는 나으리의 간뿐이 아니라 심장도 빼어먹고, 나으리의
혼백도 빼어먹겠나이다"
송이의 입이 임상옥의 벗은 온몸을 핥고 그리고 깨물었다. 마치
간을 빼어먹는 여우처럼. 임상옥이 흥분하여 다시 몸을 일으켜
송이를 안아 그녀의 몸속에 자신을 찔러 넣으며 말하였다.
"네가 백년 먹은 여우라면 나는 무엇이냐"
"나으리는, 나으리는"
송이가 말을 더듬었다.
"무엇이냐고 내 묻지 않느냐"
"소녀가 여우라면 나으리는 승냥이나이다"
"오냐. 네 말이 정녕 그러하다. 나는 승냥이니라"
임상옥은 으르렁거리면서 송이를 부둥켜안았다. 그러기를 하룻밤에
대여섯 번. 두 사람은 한숨도 잠들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부둥켜안고만 놀았다. 어떻게 흘러갔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밤이
물러가고, 닭울음 소리와 함께 희부연한 새벽빛이 스며들었다.
"나으리, 소녀에게 청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임상옥이 묻자 송이가 대답하였다.
"저 첫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죽여 주옵소서"
그때였다.
"...나으리"
이방의 목소리였다.
"...나으리, 기침하셨습니까. 나으리"
그러나 방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방은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그는 간밤에
송이의 신발을 품속에 넣고 갔으므로 그것을 댓돌 위에 놓으며
이번에는 송이를 불렀다.
"...송이야"
이방은 주위를 살피며 속삭였다.
"...일어났느냐. 일어났으면 나오거라"
그러나 여전히 방안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이방은 난처해서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였다.
아직 신 새벽이었지만 동이 트느라고 갓밝이가 드리우고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만사가 들통나버릴 것은 분명한
일이었기에 이방은 조금 더 큰소리로 말하였다.
"...송이야, 일어났느냐. 일어났으면 얼른 나오거라"
그때였다.
쥐 죽은 듯 정적을 지키던 방안에서 느닷없이 신관 사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게 있느냐"
순간 이방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고개를 읊조리며 말하였다.
"나으리, 기침하셨나이까. 신 이방 문안인사 드리나이다"
"...그래서"
"나으리, 벌써 날이 밝았나이다. 이미 어둑새벽이나이다"
"이놈아"
순간 방안에서 호통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
"이놈아, 무슨 어둑새벽이란 말이냐. 아직도 캄캄한 오밤중이
아니더냐. 그러니 날이 밝거든 다시 찾아오너라"
"...나으리"
다급해진 이방이 더듬거리며 말을 하였다.
"...새벽닭이 울었나이다. 닭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였나이까"
"...날이 밝거든 다시 찾아오라는 내 말을 아직 듣지 못하였느냐"
"알, 알겠나이다"
하는 수 없이 이방은 물러가면서 말하였다.
"...날이 밝거든 다시 찾아오라는 내 말을 아직 듣지 못하였느냐"
"알, 알겠나이다"
하는 수 없이 이방은 물러가면서 말하였다.
"...날이 밝으면 다시 오겠나이다, 나으리"
이방은 하는 수 없이 송이의 신발을 주워 다시 품속에 넣어
가지고는 임상옥의 침소를 벗어나면서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날이 밝으면 다시 찾아오라니. 신관 사또가 그새 망령이라도 든
것일까. 이미 날이 밝아 어둑새벽이 아닌가. 그런데도 아직 컴컴한
오밤중이라니.
그제서야 이방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두 사람의
운우지정이 밤을 꼬박 새우고도 모자라 찾아오는 새벽을 아쉬워 할
만큼 만리장성을 쌓은 것이다.
얼씨구 좋구나.
이방은 춤을 추면서 흥얼거렸다.
얼씨구 좋구나. 지화자로구나.
간밤에 이방은 송이를 수청 들이고 나서 그 길로 산홍의 주막
집으로 찾아갔었다. 찾아가서 산홍에게 양딸 송이가 신관 사또의
방에 수청 들었다고 이르자 생각하였던 대로 산홍은 밤이 새도록
이방에게 공술을 주었던 것이다. 이방은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가
밤이 깊어 깜박 주막집 술청에서 잠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 신관
사또의 방에서 송이를 쥐도 새도 모르게 빼내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도 신관 사또는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오밤중이니 날이
밝으면 다시 오라고 망령들린 소리를 해대지 않는가.
얼씨구 좋네. 신관 사또가 송이에게 빠져버렸구나. 빠져도 홀딱
빠져버렸구나.
이방은 덩실덩실 춤을 출 것 같았다.
이방은 건들거리며 관아의 후문 앞 들판에서 쭈그리고 앉았다.
새벽이라 어디 갈 데도 없고 얼마 안 있어 또다시 신관 사또를
깨우기 위해 갈 참이니 멀리 갈 수도 없었다. 그는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깜박 잠이 들었다.
은밀히 송이를 부르러 온 이방을 임상옥이 호통쳐 쫓아보내고 난
뒤 송이가 말을 하였다.
"나으리, 이제 그만 소녀는 가봐야 하겠나이다"
"그대로 있거라. 아직 오밤중이라 내 이르지 않았느냐"
임상옥이 헤어지기 싫어 송이를 껴안고 그렇게 말하였다.
"나으리"
송이는 웃으며 말하였다.
"소녀는 백여우라 날이 새기 전에 돌아가지 못하면 그대로
이곳에서 백여우로 변해버리고 마나이다"
"네가 간밤에 내 간을 빼어먹어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느냐"
"멀었사옵나이다"
송이가 대답하였다.
"아직 소녀가 사람이 되기에는 정성이 부족하나이다"
"가지 말아라"
임상옥이 말하였다.
"가지 않는다면요, 나으리"
"내가 아프다고 칭병을 하고 하룻날 하룻밤을 너와 함께 이곳에서
함께 지내리라"
"나으리"
그러자 송이가 몸을 일으켜 앉으며 말하였다.
"나으리, 소녀는 '아침의 구름 이나이다. 이제는 구름이 되어 산
위로 올라갈 때이나이다"
"네가 어찌 무산의 꿈을 알고 있느냐"
임상옥은 진정으로 놀라 물어 말하였다.
"나으리, 소녀는 아침의 구름이오니 물러가겠나이다. 저녁이면
비가 되어 다시 찾아오겠나이다"
송이의 말은 고사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양왕이 사랑하는 송옥을 데리고 운몽이라는
곳에서 놀다가 고당관에 이르렀다. 그때 하늘을 우러러보니 이상한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어서 송옥에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송옥은 '아침의 구름' 이라고 대답하고는 조운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옛날 선왕이 고당에서 노닐다가 주연이 끝난 뒤 피곤하여 잠시
낮잠을 잤다. 그때 비몽사몽간에 아름다운 한 여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무산에 사는 여인이온데 전하께서 고당에 거동하셨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아무쪼록 침석을 받들도록 하여 주십시오"
침석이라 함은 잠자리를 뜻하는 말. 이 말을 들은 왕은 기꺼이 그
여인과 잠자리의 정을 나누었다. 이윽고 헤어질 때가 되자 그 여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무산 남쪽 높은 산봉우리에 살고 있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어 산에 걸리고 저녁이면 비가 되어 산을 내러가 양대 아래
머무를 것입니다"
여인은 사라지고 왕은 꿈에서 깨어났다. 이튿날 아침 왕이 무산을
바라보니 과연 여인의 말대로 높은 산봉우리에는 아침 햇살에
빛나는 아름다운 구름이 걸려 있었다. 왕은 그 여인을 그리워하여
그곳에 사당을 세우고 그 사당의 이름을 '조운묘' 라고 이름지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남녀의 은밀한 만남과 정교를
무산지몽이라고 부르는 성어가 태어난 것이다.
영특한 송이는 이런 고사를 알고 있어 자신을 아침 구름에
비교함으써 간밤에 있었던 구름과 비의 운우지정을 무산지몽에
빗대어 표현하는 재치를 부린 것이다.
"옳거니"
임상옥이 무릎을 치며 대답하였다.
"네 말이 맞구나. 송이 네가 백여우가 아니라 아침 구름이로구나.
그래 가거라. 가서 무산 남쪽 높은 산봉우리에 아침 구름으로 머물러
있다가 저녁에 내가 부르면 다시 비가 되어 산을 내려오거라"
다시 문 밖에서 주위를 꺼리는 이방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사또 나으리"
"누구냐"
"신 이방이나이다. 기침하셨나이까"
"물론이다"
"그러하면 송이 퇴실이나이다"
"알겠다"
잠시 후 송이가 처음 들어올 때처럼 쓰개치마를 쓰고 방을 나왔다.
이방은 얼른 품속에서 가죽신을 꺼내 들었다.
이미 날은 밝을 대로 밝아서 몸을 숨길 어둠은 없었다. 송이는
가죽신을 신고, 이방은 송이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가리고서 서둘러
관아를 빠져나갔다.
남의 눈을 피해 후원의 쪽문을 통해 도망치듯 황망히 빠져나오는
동안 관아를 빠져나오자 안심이 된 듯 이방이 휘이-하고 한숨을
쉬면서 말을 하였다.
"어떠하시더냐. 나으리께오서 새벽이 밝아오시는 것을 싫어하실
만큼 송이 너를 사랑하여 주시더냐"
이방은 본능적으로 송이의 태도에서 이제는 자신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송이의 일거수 일투족은 이제 이방이 알던
예전의 관기가 아니었다. 지체 높은 사또와 몸을 섞어 이제는 신관
사또의 여부인과 다름이 없었다.
여부인.
정식으로 혼인하여 취한 처가 아니면서 가족적으로 지위가 안정된
여자. 첩을 다른 말로 여부인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원래 첩은
첩실. 소실. 부실. 별실. 별가. 측실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도 대부분
천칭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첩을 사실혼처로 인정하여 존칭으로
부를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첩을 가직 혼은 여부인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순 우리말로는 별칭으로 아아서, 작은집,
작은마누라라고 부르기도 했다.
"송이야"
이방은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린 송이에게 아부하여 말하였다.
"네가 이 담에 대갓집의 마님이 된다 하더라도 이 이방 어른의
공덕을 잊어서는 절대로 아니된다. 내 말을 뜻을 알고 있느냐"
한낮이 기울 무렵, 송이의 방으로 쏜살같이 뛰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송이의 양어미인 산홍이었다.
"게 있느냐"
산홍은 무엇이 급한지 쏜살같이 뛰어들어와 신발을 벗어던지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에서는 완전히 송이가 낮잠에 빠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밤 뜬눈으로 한밤을 새운 뒤끝이 아니었던가.
산홍은 송이를 흔들어 깨우며 말하였다.
"귀신이 업어가도 모를 만큼 낮잠에 빠져 있구나. 일어나거라,
아가야"
송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웬일이세요"
"웬일이란, 아가야"
산홍은 송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을 하였다. 여성 특유의
직감으로 지난밤 신관 사또와 운우지정을 나눈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므로 산홍은 한껏 신이 나 있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그래 간밤에는 어떠하시더냐. 내 말대로
하였느냐"
"어떠하시다니요. 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송이는 짐짓 시치미를 떼었다.
"아가야"
송이가 낯을 붉히며 시치미를 떼자 오히려 더 기분이 흐뭇하여진
듯 산홍이가 송이의 어깨를 소리가 나도록 내리치며 말하였다.
"이 에미가 이마 다 알고 있으나 행여 이 에미를 속일 생각은
아예 말거라. 지난 밤에 신관 사또에게 삼세번으로 수청을 들었다는
것을 이 에미는 알고 있다"
송이 역시 양어미 산홍이 이방의 입을 통해 자신이 지난 밤
수청을 들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입 빠른
이방이 그것을 양어미에게 고해 바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그래, 아가야"
은근히 산홍이가 송이의 얼굴을 살피며 물어 말하였다.
"어떠하시더냐. 이 에미가 시키는 대로 하였느냐. 지난 밤
삼세번이 네 생사가 걸린 중요한 밤이라 이 에미가 이미 말하였으니
무슨 방법을 다 써서라도 신관 사또와 몸을 섞는 데 성공하였느냐.
어떠하였느냐. 이 에미가 전해 준 향낭을 속곳에 차고 합방하였느냐.
치마를 뒤집어쓰고 인당수 깊은 물에 풍덩하고 빠져 죽은
심청이처럼 신관 사또의 품속에 빠져들었느냐. 아이고 답답하니 말
좀 하여 보거라"
갑자기 실제로 답답하여진 듯 산홍이 송이의 다리를 벌리고 나서
그 사타구니에 얼굴을 들이밀며 말하였다.
"어디 우기 아가, 옥문 한번 들여다보자, 우리 딸년 옥문속으로
신관 사또의 방앗공이가 밤새도록 들락날락하였는지 어디 한번
들여다보자꾸나"
황급히 두 다리를 오므리고 나서 송이가 낯을 붉히고, 양어미
산홍에게 간밤에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고하기 시작하였다.
송이로부터 간밤에 있었던 모든 일을 전해들은 산홍은 벌떡 일어나
방안에서 춤을 추었다. 산홍은 그것도 모자라 방문을 박차고 나가서
마당에서 버선발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녀는 한바탕 춤을 추고
나서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 송이에게 물어 말하였다.
"그래, 어떻게 노시더냐. 너를 품안에 안고 노시더냐, 아니면 너를
업고 노시더냐"
"...품안에 안고 노시더이다"
"그러하면 너를 배 아래 깔아 놓고 노시더냐, 아니면 너를 배위에
올려놓고 노시더냐"
"배 아래에 깔아 두고 노시기도 하고 배 위에 올려놓고 노시기도
하셨나이다"
"그래, 아가야, 너는 사또께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모두 하였느냐"
"시키면 시키는 대로 모두 하였나이다"
"그래, 사또 나으리께서는 합환하실 때마다 좋아하시더냐"
송이는 낯을 붉히고 대답하지 않았다. 산홍은 부시를 당겨
담뱃대에 물을 붙이고는 뻐끔뻐끔 빨면서 말을 이었다.
"사또 나으리께서 너를 한 번이라도 품에서 떨어뜨린 적이
있었더냐"
"사또 나으리께오서는 새벽이 찾아와 갓밝이가 되었는데도
오밤중이라 하옵시고는 찾아온 이방 어른을 물리치기도 하셨나이다"
"그리고 나서 또 한 번 합환하였느냐"
송이는 대답대신 머리를 끄떡이었다. 그러자 산홍이가 기기막힌 듯
콧소리를 내어 말을 이었다.
"그 늙은이가 힘 한번 좋구나, 그러다가 네 배 위에서 복상사하여
죽지나 않을까 염려되는구나. 어쨌거나"
산홍이가 송이를 어루만져 껴안고는 등을 토닥거리며 말하였다.
"잘하였다. 우리 아가 잘하였다. 우리 새끼. 그리고 또 무어라고
말씀하시더냐"
"더 이상의 말씀은 없으셨나이다"
"헤어질 때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단 말이냐"
"나으리께오서는 저더러 산봉우리에 가서 아침 구름이 되어
머물고 있다가 저녁이 되어 부르면 다시 비가 되어 산을
내려오거라고 말씀하셨나이다"
"그게 무슨 해괴망칙한 소리냐. 아침 구름은 무엇이고, 비가 되어
산을 내려오라는 말을 또 무엇이냐. 또 다른 말씀은 없었더란
말이냐"
산홍은 채근하여 다시 물었다.
송이는 양어미 산홍의 질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송이는
잘라서 대답하였다.
"다른 말씀은 없으셨나이다"
"아이구, 이년아"
갑자기 답답하여진 듯 자신의 가슴을 소리가 나도록 쥐어박고
나서 산홍이 말을 이었다.
"도대체 언제 치가를 차려 주실지 아무런 언약도 없으셨단
말이냐"
치가, 이를 다른 말로는 첩치가라고도 부른다. 이는 첩을 정식으로
인정하여 딴 살림을 차리는 것을 이름하여 말함인 것이다.
"내 말을 잘 들어라. 원래 남자란 처음 계집을 만나면 화분에 취한
나비처럼 정신이 없고 꿀에 취한 벌처럼 혼이 나가는 법이니라.
그러나 화분이 다 떨어지고 단 꿀이 다 빠져나가면 다른 꽃이 더
아름다워 보이고 다른 꽃의 꿀이 더 달아 보여, 아비처럼 다른
꽃으로 날아가버리고 벌처럼 다른 꽃으로 날아가버리는게
보통이니라. 지금 아무리 신관 사또가 송이 네 년에게 반하여
밤새도록 방아타령을 하였다 할지라도 얼마 안 가면 곧
시들하여지고 벌과 나비처럼 다른 꽃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
보통이니라. 더구나 네 년이나 나나 기생년이 아니더냐. 차라리
양민이면 양첩이라도 될 수 있지, 네 년이나 나는 기생년이어서 첩이
되더라도 기첩이 아니더냐. 기첩이면 종년의 첩인 비첩과 더불어
천첩이 아니더냐. 그러니 기생년들이야 하룻밤 데리고 노는 노리개가
아니더냐. 더구나 신관 사또의 본 마누라인 정실은 아직 의주에서
살림을 하고 있지 않다더냐. 그러니 소문이라도 나면 시앗을 본다
하고 맨발로 이곳까지 달려와 네 년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한바탕
난동을 부릴지 또 누가 알겠느냐. 그러하니 아가야, 신관 사또가
너를 품안에 안고 논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너를 등뒤에 업고 논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잘못하면 놀다 버리는 노리개가 되어버릴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이제부터가 생사가 걸린 것이 아니겠느냐.
아직 신관 사또가 네 향기에 취해 있고 네 꿈에 빠져 있을 때
별가를 차려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옳은 방법이 아니겠느냐"
"...소녀는"
순간 송이는 낯을 붉히며 단호하게 말을 하였다.
"사또 나으리께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나이다. 사또 나으리와
더불어 무엇이 되어지고 싶은 마음조차 없나이다"
"그러하면"
갑자기 화가 난 표정으로 산홍이 말하였다.
"지금 이대로만 좋나이다. 소녀는 사또 나으리께 아무것도 바라지
않나이다"
"지금 이대로라니. 아이구 이년아. 네 년이 지금 이팔청춘이라고는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나처럼 늙고 병들어버릴 것이다. 주막집
술사발처럼 여기 깨어지고 저기 깨어지게 될 것이다"
"설혹 그렇게 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나이다.
사또 나으리와 더불어 무엇이 되어지고 싶은 마음조차 없나이다"
"열녀 났구나. 아이구 내 팔자야"
제 가슴을 소리가 나도록 쾅쾅 때리고 나서 산홍이 말하였다.
"좋다. 네 년이 신관 사또의 첩실이 되든, 아니면 신관 사또가
데리고 놀다 버리는 노리개가 되든 모두 네 년의 팔자이니 이
에미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산홍은 트레머리를 풀어 머리에 꽂았던 비녀를 뽑아내었다. 그녀는
비녀를 들어 송이 앞에 내놓으며 말하였다.
"이 비년 값은 내놓으라고 신관 사또에게 말하여라"
송이는 느닷없이 내미는 비녀를 쳐다보았다. 송이는 그 비녀가
자기를 낳은 생모가 쓰던 유물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산홍은 언젠가 때가 되면 이 비녀를 송이에게 물려주고 출산의
비밀을 모두 얘기해 주리라고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는 덧
그때가 온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신관 사또의 마음에 들어 송이가
첩이 되어 기생에서 벗어나느냐, 아니면 그대로 화류의 천인으로
죽어 가느냐는 중대한 운명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이 에미도 너를 키워준 값을 받아야겠다. 아디시피 네 년은 내가
낳은 딸이 아니고 내가 데려다 키운 양딸이 아니더냐. 그러니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느냐"
산홍은 차갑게 말을 뱉었다.
"네 년이 내 뱃속에서 아픔 끝에 낳은 딸이라면 모르겠으나,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내가 데려가 키운 남의 집 자식이니, 지금껏 너를
입히고 먹인 밥값이야 내게 꼭히 주어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 아니겠느냐. 네가 나를 만나지 못하였으면
지금쯤 생명도 부지하지 못하고 이미 죽어 없어질 목숨이
아니었겠느냐. 그러니 네가 이 비녀를 사또 나으리께 보이고 양어미
산홍이 비녀를 사달라 그리 말하더라고 이르거라. 심청이도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갔는데 어찌 금이야 옥이야 키운 내 딸 송이의
생처녀를 덥석 먹고 나서 모른 체 입을 닫을 수 있겠느냐. 더욱이
상대방은 조선 제일의 거부가 아니더냐. 그러나 속량의 값은 충분히
쳐줘야 하지 않겠느냐"
산홍의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생각이었다. 산홍은 이방을
통해서 자신을 찾아와 송이의 생모에 대해서 이것저것 캐어물은
양반 나으리가 바로 신관 사또임을 뒤늦게라도 알아내었던 것이다.
새로 부임해 온 신관 사또가 변복을 하고 주막집으로까지 찾아온
데에는 필히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산홍은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인가 있다. 필히 대역죄인으로 죽은 송이의 아버지와 죽은
송이의 엄마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관
사또가 주막집으로 찾아올 리 없는 것이다. 또한 산홍은 이방을
꼬드겨 들은 그간의 행적으로 보아 신관 사또가 송이를 다만 상사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아내었던 것이다.
두 번이나 송이를 수청들게 한 후에도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아니하고 그냥 보낸 것은 송이를 친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홍은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마지막 승부수. 그것은 비녀였다.
그녀는 주막으로 찾아온 임상옥에게 송이의 생모가 선물로 준
비녀를 보여주었던 사실을 기억해낸 것이다. 그러므로 임상옥이 이
비녀를 발견한다면 자신이 송이에게 이 비녀를 물려준 그 뜻을
단박에 눈치채게 될 것이다. 그때 산홍은 찾아왔던 신관 사또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하지 않았던가.
"...언젠가는 송이에게 이 비녀를 물려줄까 하나이다. 지금까지
송이에게 제 어미가 어떻게 죽었으며 누구의 자식으로 어떤 연유에
의해 기생이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으나
언젠가 서방이라도 만나 시집을 가게 되면 머리에 얹을 때 쓰라고
이 비녀를 물려주면서 모든 사실을 다 말해줄까 하나이다.
그때까지만 이년이 이 비녀를 보관하고 있겠나이다"
그러므로 신관 사또가 이 비녀를 보면 이 비녀의 의미를 금방
알아차릴 것이 아니겠는가.
쌀쌀하게 비녀를 송이에게 전해주고 비녀값을 내라는 모진 말로
끝을 맺고는 산홍은 그 길로 즉시 떠나버렸다.
그날 밤부터 송이는 기다렸다. 이제나저제나 신관 사또로부터의
부르심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해 여름에 평안도 일대에 대홍수가 일어났던
것이다.
몇날 며칠을 쉬지 않고 비가 내려 하천이 범람하고 강물이 흘러
넘쳐 논밭이 떠내려가는 대재앙이 밀어닥쳤던 것이다. 그러자
임상옥은 자신의 창고를 활짝 열어 곽산과 자신의 고향 의주의
성민들에게 곡식을 나눠주는 한편,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오곡의
종자까지 내어주었다.
따라서 모든 서민들은 새로 부임해 온 임상옥의 공덕에 대해서
칭송이 대단하였다.
진휼. 지난날 흉년이나 홍수와 같은 대재앙이 들었을 때 관에서
창고를 열어 곤궁한 백성들을 구해 주는 일을 진휼 또는 진구라
하였는데 임상옥은 관의 창고를 열지 아니하고 자신의 창고를 열어
사재로서 수많은 수재민들을 구해 주었던 것이다. 이 일로 의주와
곽산에서는 대홍수가 났으나 굶어죽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바쁜 일로. 임상옥은 한여름, 송이를 부르지 못하였다.
하루에도 몇 번식 송이를 보고 싶은 마음이 아침의 구름처럼
뭉게뭉게 솟아올랐으나 때가 때이니만치 그는 이를 억제하고 있었다.
상사의 고통으로 병이 든 사람은 오히려 송이가 더 하였다. 송이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어 산에 걸리고 저녁이면 비가 되어 산아래를
적신다는 무산지몽의 고사처럼 기다리고 기다렸다. 낮이면 구름이
되어 기다리고 밤이 오면 님을 보고 싶은 그리움에 눈물로써 비를
뿌리며 아홉 꼬리가 달린 구미호처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나 신관 사또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아니었다.
임상옥은 이미 송이에게 있어 신관 사또도, 원님 나으리도 아니었다.
임상옥은 송이에게 있어 그저 사랑하는 임에 지나지 않았다.
보는 것마다 임의 얼굴이었으며 듣는 것마다 임의 목소리였다.
실로 임상옥과 합방하여 첫날밤, 송이가 노래 부른 상사별곡의
노랫말 그대로였다.
인간 만사 중에 이별의 독수공방이 더욱 섧다. 상사불견이라 진정
뉘라서 알리, 이 내 시름, 이 정 저 정이라 흐트러진 근심 다 후루쳐
던져두고, 자나깨나 깨어지나 임을 못 보니 가슴이 답답.
임을 보고 싶은 그리움이 치솟아 오르면 송이는 홀로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보고지고 보고지고 임의 얼굴, 듣고지고 듣고지고 임의 노래.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께 비나이다. 전생차생이라 무삼 죄로
우리 둘이 생겨나서 잊지마자 하고 백년기약하였는가.
송이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상사하는 마음으로 상사병에 걸린
듯하였다.
2
어느덧 여름이 물러가고 풀벌레가 우는 가을이 찾아왔다. 밤이면
더욱 달빛이 밝아지고, 길어만 갔다. 한밤이면 송이는 유령처럼
일어나 뜨락에 서서 하늘에 내어 걸린 달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곤
했다.
임을 향한 그 많은 상사의 정들이 병이 되어서 송이는 도저히
잠이 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임을 보고 싶은 생각에 송이는 밤마다
눈물로써 밤을 지새우곤 했다.
마침내 추삼삭의 그해 7월. 저녁 무렵 송이의 집으로 이방이
찾아와 말하였다.
"송이야, 그 동안 잘 있었느냐"
이방은 송이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말하였다.
"그간 어디 아팠었느냐. 얼굴이 많이 상하였구나"
그리고 나서 이방은 다시 "혹시 달거리 중이 아니겠지" 하고 물어
말하였다. 송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이방은 귓속말로 넌지시
말하였다.
"나으리께오서 오늘 밤 너를 부르신다. 밤이 깊어지면 내가 데리러
올 터이니 분단장 잘하고 기다리고 있거라"
그 말에 송이는 오금이 저려 이방이 사라지자 방에 털버덕
주저앉았다. 목메어 기다리던 임으로부터의 소식이 온 것이다.
송이는 쑥잎을 달린 물에 목욕을 하고 나서 오랜만에 거울 앞에
앉았다. 송이는 물끄러미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옛말에 이르기를 '여인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고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였던가.
그 동안 송이는 전혀 거울을 들여다보지 아니하였었다. 사랑하는
임을 만날 언약이 없었으므로. 임을 위해 화장을 할 기회가
없었으므로.
거울 속에 비친 송이의 얼굴은 이방이 놀란 것처럼 초췌하고
병색이 완연하였다. 임 그리운 생각에 먹을 것도 못 먹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이었다. 송이는 한숨을 쉬면서 머리를 빗었다.
늘 화장하듯 시분무주 분을 약간 바를 뿐 붉은 연지는 전혀
바르지 않은 채 송이는 무심코 거울 앞에 놓인 비녀를 집어들었다.
그 비녀는 양어미 산홍이가 두어 달 전쯤 느닷없이 찾아와 물려주고
간 바로 그 매죽잠이었다.
산홍이가 띄운 마지막 승부수.
매죽잠. 송이의 생모가 물려준 비녀, 매죽잠.
송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머리를 땋아 둥글게 서리고 쪽이
풀어지지 않게 그 비녀를 머리에 꽂았다. 쪽진머리, 그것으로 모든
화장이 끝이 났다.
밤이 이슥해지자 추적추적 가을비가 흩뿌리기 시작하였다.
푸르렀던 나뭇잎을 단풍으로 물들이는 가을비였다.
그때 문 밖에서 이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이 게 있느냐. 있으면 나오거라"
송이는 비가 오고 있었으므로 기름종이로 만든 쓰개치마를 입고
밖으로 나아갔다. 이 쓰개치마는 머리에 쓰면 발목까지 올 만큼
전신을 가릴 수 있는 우장이었는데 치마 말기에는 흰색 무명 헝겊이
매달려 있었다.
이방도 비가 오고 있었으므로 띠로 엮어 만들어 어깨에 두르는
도롱이를 걸치고 있었고 머리 위에는 갈모를 쓰고 있었다. 갈모란
비가 올 때 갓 위에 엎어쓰는 입모로 접으면 쥘부채처럼 되고, 펴면
고깔처럼 되는 기름종이였다.
두 사람은 가을비가 내리는 거리를 빠르게 걸어갔다.
"나으리께오서"
개천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첨벙첨벙 들려오는 천변거리를
빠르게 걸어오면서 이방이 속삭여 말하였다.
"지난 여름 동안 큰물이 들어 몹시 바쁘셨네. 송이 너를 부르고
싶으셔도 그래서 못 부르셨다. 그래도 나를 만나기만 하시면 송이 네
안부부터 물어보셨네. 아마도 너를 만나고 싶어 오매불망하셨던
모양이야"
늘 그러하듯 두 사람은 남의 눈을 피해 관가로 은밀히 들어가는
쪽문을 통하여 앞으로 들어갔다.
사또의 방에는 촛불만이 켜져 있을 뿐 어두웠다.
"나으리"
이방이 허리를 굽히며 조심스레 부르자 안에서 대답소리가 있었다.
"게 누군가
"나으리, 송이 입실입니다요"
"들어오라 이르게"
이방은 송이를 슬쩍 쳐다보고 나서 능청맞게 웃으며 말하였다.
"들어가거라. 날이 밝은 새벽녘에 너를 데리러 다시 찾아오겠다"
송이는 신발을 벗고 마루 위로 올라섰다. 빗물에 젖은
기름종이로 만든 우비용 쓰개치마를 벗어 마루 밑에 잘 개어놓고
나서 문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아 송이가 말하였다.
"나으리, 송이 입실이나이다"
다소곳이 송이가 이르자 방안에서 임상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고 내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송이는 문열 열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에는 임상옥이 보료 위에 앉아 있었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송이가 머뭇거리자 임상옥이 불 쪽으로 손짓하여 부르며 말하였다.
"오랫동안 너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구나. 가까이 와서 네 얼굴을
불 쪽에 갖다 대어 보려무나"
다정한 소리로 임상옥이 말하였다.
"나으리"
여전히 문 가까이에 선 채 송이가 말하였다.
"나으리, 너무 오랫동안 뵙지 못하였사옵나이다. 때문에 소녀 문안
인사 드리겠나이다"
송이가 천천히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큰절을 하였다. 임상옥은
말없이 송이가 올리는 큰절을 받았다.
"나으리, 그 동안 별고 없으셨나이까"
"별고가 어찌 없었겠느냐"
너털 웃으며 임상옥이 말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송이 너를 보고 싶어 오매불망하였는데 어찌
별고가 없었겠느냐. 이리 가까이 오너라. 네 얼굴을 밝은 불빛
아래에서 자세히 보고 싶구나"
임상옥은 손을 내밀어 송이의 두 손을 잡아 이끌었다. 쓰개치마로
전신을 가리웠었지만 치적치적 내리는 가을비의 빗방울이 송이의
머리카락에 맺혀서 빛나고 있었다.
"밖에 비라도 내리고 있느냐"
"가을비가 내리고 있나이다. 나으리"
"벌써 그리 되었느냐. 내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가들이 되어버렸느냐"
'참으로 내가 너를 보고 싶어하였느니라"
한숨을 쉬듯 탄식하며 임상옥이 송이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송이는
임상옥의 품을 파고들었다. 송이의 몸이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움의 정을 참지 못하다가 이윽고 사랑하는 임의 품에 안기니
갑자기 눈물이 터져 흐른 모양이었다.
"아니 네가 지금 울고 있는 것이 아니냐"
놀란 목소리로 임상옥이 송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물어
말하였다.
"나으리"
얼굴 가득히 눈물을 흘리면서 송이가 흐느껴 말하였다.
'나으리를 다시는 뵈옵지 목하고 그만 죽어버릴 줄만 알고
있었나이다"
"울지 말거라"
임상옥이 부드럽게 송이의 등을 다독거리며 말하였다.
"이제는 가을이 왔으니 매일 밤이라도 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흐느껴 우는 송이의 등을 다독이던 임상옥의 손이 송이의
쪽진머리 뒤에 멎어섰다. 임상옥은 송이의 머리 뒤에 꽂힌 비녀를
발견하고 물어 말하였다.
"어찌하여 비녀를 꽂았느냐"
물론 비녀는 대부분의 부녀자들이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해서
머리에 꽂는 장식물이었다. 그러나 시집을 가지 않은 아녀자들은
비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정히 머리가 흘러내리면
보조 비녀의 일종인 두 가닥의 차를 사용하였지 비녀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비녀는 대부분 혼례를 치러 지아비를 가진
부녀자들이 사용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나으리"
임상옥이 묻자 송이가 대답하였다.
"소녀가 비록 천하의 천한 기생의 몸이오나 나으리를 맞아들여
머리를 얹었사오니 어찌 지아비를 맞은 부녀자가 아니겠나이까. 해서
비녀를 꽂았나이다"
"그 비녀를 이라 가져와 보아라"
임상옥이 말하자 송이가 머리 뒤에서 비녀를 빼어 두 손으로
임상옥에게 바쳐 올렸다. 비녀를 빼자 삼단 같은 송이의 땋은 머리가
치렁치렁 흘러내렸다.
"이 비녀는 어디에서 났느냐"
임상옥은 한눈에 그 비녀가 보통 비녀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아니
알아차렸을 뿐 아니라 그 비녀가 언젠가 이방을 대동하고 산홍의
주막집에 찾아갔을 때 산홍이가 보여주었던 송이의 생모가 쓰던
바로 그 매죽잠이 틀림없음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원래 비녀는
장식물 중에서도 후손에게 물려주어 가보로 삼을 만큼 여성의
정절을 상징하는 귀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이 비녀는"
정색을 하고 임상옥이 묻자 송이가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소녀의 양어미가 물려주신 것이나이다"
"양어미라면, 산홍이가 말이냐"
"그, 그렇사옵나이다"
임상옥은 비녀를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산홍은 송이에게 출생에 얽힌 비밀과 이 비녀의 실제 주인이었던
송이의 생모에 관한 비극적인 일들을 이미 말해 주었던 말인가.
"뭐라고 하면서 그 비녀를 너에게 물려주더냐"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송이였으므로 그녀는 임상옥이 묻자 있는
그대로 낯을 붉히며 대답하였다.
"나으리, 양어미가 이 비녀를 물려주면서 나으리께 가서 필히 이
말씀을 전하라 하셨나이다"
"무슨 말을 전하라고 하였느냐"
"나으리"
송이가 난처한 듯 말을 흐렸다.
"나으리,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양어미는 이 비녀를 소녀에게
주면서 나으리께 가서 이 비녀를 꼭 보여 드리라고
신신당부하였나이다"
"그 이유는 뭣이냐"
임상옥이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는 목소리로 물어 말하였다.
"나는 도무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어찌하여 그
비녀를 내게 보여주라고 일렀단 말이냐"
"나으리"
송이가 낯을 붉히며 대답하였다.
"물으시니 소녀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녀의 어미께오서
나으리께 이 비녀를 보여 드리고 나서 비싼 값으로 이 비녀를
사달라고 말하였나이다. 지금까지 남의 자식을 데려다가 입히고 먹인
값을 대신 치러 달라고 말하였나이다"
임상옥은 송이의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양어미 산홍은 송이의 생모가 쓰던 비녀를 슬쩍 송이에게 물려주고
그 비녀를 비싼 값에 사달라는 말을 전함으로써 자신의 양딸 송이을
정식으로 소실로 담아서 치가를 차려 달라는 뜻을 넌지시 전해온
것이다.
이를테면 비싼 돈을 치르고 대속을 시켜서 송이를 첩으로 삼아
관기의 기적에서 빼어내 양민으로 삼아 달라는 강력한 요구이기도
한 것이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불을 끄고 이내 한 몸이 되었다. 남녀의 관계는
기묘해서 그 나이와 신분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두 사람은 이제야 만난 것이 이상하였을 정도로 하나의
마음과 하나의 몸 그 자체였다.
송이는 어리고 처녀의 몸이었지만 임상옥의 품속에서 이미 열락을
알았다. 임상옥도 마찬가지였다. 첫날밤의 합환에서는 송이가
죽마지우 이희저의 친딸이라는 정 때문에 약간의 죄책감으로
망설여지는 부분이 없지도 않았으나 이제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임상옥이 송이의 임이었다면 송이 역시 임상옥의 임이었다.
그 기나긴 한여름을 서로 그리워하는 무산지몽의 상사로 지낸
고통을 누구보다 서로 잘 이해하고 있었다. 송이는 아침 구름이 되어
높은 산봉우리에 걸려 임을 기다렸으며 임상옥 역시 산 아래에서 그
구름이 내려와 비로 뿌려주기를 얼마나 기다려 왔던 것일까.
"네가 누구냐"
임상옥은 신음하면서 간혹 송이의 얼굴을 감싸쥐며 물어 말하였다.
그럴 때마다 송이는 대답하였다.
"소녀는 송이이나이다"
그러면 임상옥은 또다시 물어 말하였다.
"송이가 누구더냐"
"송이는 송이이나이다"
송이가 대답하면 임상옥은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아니다, 송이는 마름풀이다"
"소녀가 마름풀이라면 나으리는 무엇이나이까"
"나는 물새로다"
"나으리가 물새라면 물새는 어찌 우나이까"
"물새는 꽉꽉-하며 울지, 꽉꽉-하며 울면서 마름풀을 찾아다니고
있지"
임상옥은 실제로 꽉꽉 물새소리를 흉내내면서 송이의 몸을
마름풀처럼 입으로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러할 때마다 송이의 몸은
뜨거워져서 살이 데일 것 같았다.
임상옥의 말은 중국최고의 시집이며 유가의 경전 중의 하나인
(시경)에 나오는 '국풍'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자가 이를 산정했다는
말이 있으나 믿기는 어려운데 어쨌든 남자를 '꽉꽉하며 우는 물새'
로 여자를 '들쭉날쭉한 마름풀' 로 비유한 아름다운 연가를 빗대어
임상옥이 자신을 '물새' 라고 표현하였으며 이를 알아낸 송이는
자신을 '마름풀' 로 비유하였던 것이다.
공자는 훗날 이 노래의 아름다움을 극찬하여 (논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즐거워하되 지나치지 않고 슬퍼하되 몸을 해치는
데에는 이르지 않은 것이다.
공자가 극찬한 사랑 노래는 다음과 같다.
꽉꽉하며 우는 물새는 모래톱에 있네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들쭉날쭉한 마름풀을 이리저리 찾는구나.
요조숙녀을 자나깨나 그리워하는구나.
찾아도 날지 못하는지라 자나깨나 생각해서
길고 긴 이 생각에 이리저리 뒤척이네.
들쭉날쭉한 마름풀을 이리저리 캐는도다.
요조숙녀를 금슬로 사귀는도다.
들쭉날쭉한 마름풀을 이렇게 저렇게 삶는구나.
요조숙녀를 종과 북으로 함께 즐기는도다.
두 사람은 바로 그 사랑 노래를 빗대어 자신들의 연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그러하면 나으리"
신음하며 송이가 다시 물었다.
"마름풀을 이리저리 찾아다니셨나이까"
"찾아다녔느니라"
"그리하면 찾으셨나이까"
"찾지 못하였느니라"
"찾지 못하여 어찌하였나이까"
"찾지 못하여 자나깨나 그리워하였다"
그리고 나서 임상옥은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자나깨나 생각해서 길고긴 생각에 밤새도록 뒤척였지"
전전반측.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룬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
'나으리"
송이는 임상옥의 손이 닿으면 닿는 대로, 임상옥의 손이 스치면
스치는 대로 임상옥의 입이 부딪치면 부딪치는 대로 그대로
마픔풀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마름풀을 찾으셨나이까"
"찾았지, 암 찾고 말고"
"마름풀이 어디에 있나이까"
"이곳에 있지 않느냐"
임상옥이 바로 눈앞에 껴안긴 송이를 손끝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송이 네가 바로 마름풀이 아니더냐"
"아니나이다"
송이는 머리를 흔들어 대답하였다.
"소녀는 마름풀이 아니나이다"
"그러면 무엇이냐"
"소녀는 비파이나이다"
"네가 비파라면 나는 거문고란 말이냐. 아니다, 나는 거문고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나이까"
"나는 종이니라"
"그리하면 소녀는 북이나이까"
"아니니라, 송이는 아침 구름도 아니고, 마름풀도 아니고, 비파도
아니고, 북도 아니니라"
"그리하면 무엇이나이까"
"송이는 구미호이니라"
"아니나이다"
"어째서 아니냐"
"나으리의 간을 빼앗아 먹었으니 소녀는 이제 여우의 몸을 벗어나
사람이 되었나이다"
"그래서 이제 무엇이 되었느냐"
"소녀는 이제 송이가 되었나이다"
"그러면 그렇지, 송이는 송이니라. 그러면 나는 너의 무엇이냐"
"나으리는 꽉꽉-하며 우는 물새도 아니옵고"
"그려면 또"
"나으리는 나으리이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가 너의 나으리란 말이냐, 그리하면 네가 내 종이란
말이냐, 아니면 네가 나의 하인이란 말이냐"
"그리하면 나으리는 무엇이나이까"
"서방이 아니고 무엇이냐"
임상옥의 말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서방이라는 말은 결혼한
지아비를 부르는 남편의 높임말이 아닐 것인가. 그러므로 임상옥의
그 말은 송이를 지어미로 맞아들이겠다는 속뜻을 나타내 보인 말이
아니겠는가. 비록 정실은 아니지만 소실로라도 맞아들이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그러니 이제부터는 나를 나으리라고 부르지 말고 서방님이라고
부르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하오나"
송이가 머뭇거리자 임상옥이 분명하게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날이 새거든 양어미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거라. 원하는 대로 값을
치르겠다고 말을 전하거라"
다음날 저녁
산홍의 주막으로 이방이 찾아들었다. 한창 저녁 무렵이라 손님들이
한창이었으므로 산홍는 너비아니나 빈대떡 같은 술안주를
장만하느라고 분주하였다. 그러나 찾아온 손님이 손님인지라 산홍은
만사를 제쳐두고 이방을 은밀한 구석방으로 맞아들였다.
"간밤에 사또 나으리께오서 송이를 수청 들게 한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
이방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말하였다.
"그랬었나"
산홍은 깜짝 놀랐으면서도 시치미를 떼며 말을 받았다.
"그러면 간밤에 찾아와 알려주지 않으시고 하루 해가 다 간
지금에 와서 말하시다니"
산홍은 이방의 속셈을 잘 알 수 있었다. 이방은 송이가 수청들
때마다 산홍의 주막집을 찾아와 그 새로운 사실을 가르쳐 주고
공술을 실컷 얻어먹곤 했었기 때문이다.
"술 한 잔 받아들일깝쇼, 나으리"
"아니, 아니 천만에"
그날 따라 이방이 거드름을 피우며 두 손을 저었다. 그러면서
능청스레 남의 눈을 피해 산홍에게 속삭여 말하였다.
"이보게, 산홍"
이방은 바짝 산홍의 귓가에 입을 대고 말하였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요즈음 혹시 달거리 중은 아니겠지"
순간 산홍이 고개를 홱 돌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놈의 나으리가 대낮부터 미치셨나. 어째서 그걸 묻고
지랄하는거여. 대낮부터 한번 붙어보고 싶어 그러시나"
"이보게 산홍 말씀 좀 낮추시게나"
당황한 이방이 두 손을 내저으며 말하였다.
"내가 아니라 사또 나으리께서 자넬 보자고 부르시네"
"무엇이라구"
산홍이가 한층 더 어이없다는 듯 피우던 담뱃대로 타악타악
놋재떨이를 때리면서 말하였다.
"그놈의 사또가 미쳐도 유분수지. 언제는 딸을 수청 들이더니
이제는 다 늙은 에미까지 수청 들라고 하는겨. 그렇다면 에미, 딸 할
것 없이 모녀간을 둘 다 한꺼번에 덜컥 잡수실려구 그러시나. 이것
완전히 사또가 아니라 미친 개로구나"
"쉬잇"
이방은 주위를 꺼리면서 당황하여 말하였다.
"내가 농담 한번 하여 보았네. 오늘 밤 사또 나으리께서 산홍이
자네를 불러오라고 내게 이르셨네. 아마도 긴히 하실 말씀이 있는
모양이야"
"긴히 하실 말씀이 있다면 훤한 대낮에 부르시지 어찌하여 캄캄한
오밤중에 부르신담"
"쉬잇"
이방은 연신 주위를 살피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으리께서는 자네가 관아에 들어오는 것이 남들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신다네"
"좋소, 나으리. 술상 보아 드릴 터이니 이곳에서 편히 앉아
잡수시고 계시소. 밤이 이슥해지면 함께 관아로 들어가도록 합시다"
"그것 좋지"
이방도 물러갔다가 산홍을 데리러 다시 돌아올 필요 없이
주막집에서 시간을 보냈다가 함께 관아로 들어가는 것이 좋으므로
이를 쾌히 승낙하였다.
산홍은 걸판지게 술상을 차려 이방에게 내주었다. 특별히 방문주와
양골국을 주었다. 살코기를 발라낸 뼈다귀를 도끼로 토막쳐서
흐무러지게 끓인, 허연 국물이 된장 맛과 구수하게 어우러진
양골국에 특주인 방문주가 나왔으니 술꾼 이방은 절로 신이 나서
앉은 자리에서 벌컥벌컥 술을 사발째 들이키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밤이 늦어 술청이 파할 무렵, 이방과 산홍은 나란히 관아로
걷기 시작하였다. 이미 이방은 술에 취해 완전히 갈짓자로 걷고
있었다. 이미 가을이 깊어 오동추야 달밝은 밤이었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빛나고 있어 두 사람이 걸을 때마다 우물쭈물
그림자가 춤을 추고 있었다.
그날은 산홍대로 뭔가 집히는 데가 있었다. 신관 사또가 이처럼
한낮이 아니라 오밤중에 은밀하게 따로 자신을 부르는 것은 양딸
송이에 대해 무엇인가 따로 할 말이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아무리 미천한 기생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기생에게도 법도는 있는
법이고 명색이 송이의 어머니였으므로 이처럼 남의 눈을 피해
자신을 부르는 것은 필경 송이에 관해 무엇인가 은밀하게 의논을 할
사연이 있음이 분명한 것이다.
오냐.
산홍은 산홍대로 벼르고 있었다.
오늘 밤이야말로 이판사판이다.
오늘 밤, 신관 사또가 송이를 소실로 삼아 치가를 하겠노라고
말하면 모르겠으나 만약 송이의 머리를 얹는 데 대해서 사례를 하는
것으로 생색을 내려 한다면 신관 사또고 나발이고 덤벼들어 불알을
잡고 늘어질 판이었다.
오냐.
오늘 밤이야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라칠 판이다.
신관 사또가 송이에 대해 생색만 내고 끝장을 볼려 한다면 신관
사또의 불알을 빼어잡고 이렇게 소리칠 판이었다. 아이고 이놈아. 내
딸 살려내라. 내 딸 물러내라.
두 사람은 남의 눈을 피해 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임상옥의
침소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나으리"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고 있던 이방이 번쩍 정신이 드는지
소리쳐 아뢰었다.
"누구인가"
"나으리, 접니다요. 이방입니다요. 부탁하신 대로 산홍이 입실
입니다요"
이방이 눈짓하자 산홍은 거침없이 마루 위로 올라섰다.
"나으리, 신 이방은 어찌하면 좋을깝쇼"
"이방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게나"
산홍이 방으로 들어서자 임상옥은 관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이처럼 밤이 늦은 시간에 처소에까지 관복을 입고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나으리"
산홍이 임상옥을 보자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리며 말하였다.
"문안인사라도 올리겠나이다"
"앉으시지, 앉으시지"
당황한 음성으로 임상옥이 만류하였다. 그러자 못 이기는 체
산홍이 앉으며 말을 하였다.
"나으리, 일전에는 신관 사또 나으리인 줄 몰라뵈옵고 무례를
저질렀으니 용서하여 주오소서. 이년이 죽을 죄를 저질렀나이다"
산홍은 일전에 신관 사또가 신분을 위장하고 이방과 더불어
주막집으로 찾아왔을 때 '높으신 양반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천하에 몹쓸 불쌍놈들이구나' 하면서 심부름을 하는 중노미에게
'손님들 가신단다. 신발 챙겨 드리거라. 그리고 가시는 즉시 소금 한
바가지 가져다가 댓돌 위에 뿌리고 마당에도 뿌리거라' 하고 면박을
주었던 잘못을 사과하고 있는 것이다.
"뭐 그런 일로 죽을 죄까지라니. 이보게 산홍, 내가 산홍을 부른
것은 일전의 무례에 대해서 문죄하려 부른 것이 아니라 따로 할
말이 있어 부른 것이라네"
"무슨 말씀이니이까"
산홍이 고개를 들어 물어 말하였다. 그러자 임상옥이 탁상위에
무엇인가를 꺼내 올려놓았다.
"이것이 무엇인 줄 아는가"
산홍은 임상옥이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은 물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비녀였다. 자신이 송이에게 물려준 매죽잠의
고급 비녀였다.
"...알고 있나이다"
"자네가 이 비녀를 송이에게 물려주었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인가"
"...사실이나이다"
"송이에게 물려주면서 신관 사또인 나에게 이 비녀를 비싼 값에
사달라고 말하였다던데 그 말 역시 사실인가. 그 동안 먹여주고
입혀준 공양값을 받아야겠다고 말하였다던데 그 말이 사실인가"
"사실이나이다"
산홍이 똑바로 임상옥을 마주보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였다.
"내가 이처럼 산홍을 부른 것은 다름 아니라 그 비녀를 사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부른 것이네"
"...나으리"
순간 산홍의 입에서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 비녀를 사주시겠나이까"
"물론이지. 값은 얼마라도 좋네. 부르면 부르는 대로 값을
지불하겠네. 그 대신"
임상옥이 갑자기 소리를 낮추었다. 짧은 침묵이 왔다.
"산홍이 자네가 지켜줘야 할 약조가 있네. 이 약조를 지켜주겠나"
"무엇이나이까. 나으리께오서 그 비녀를 비싼 값에 사주신다
하시면 이 늙은 계집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 약속을 지키겠나이다"
"약속은 단 한 가지뿐이네. 절대로 송이에게는 이 비녀가 누구의
것이며 이 비녀의 주인이었던 생모가 어떻게 죽었으며 송이의 에비
역시 대역죄인이었다는 이 비녀에 얽힌 모든 비밀은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는 약속 하나뿐이네. 이 약속을 지켜준다면 나는 기꺼이 이
비녀를 사겠네. 내 말을 알아들으시겠는가"
"여부가 있겠나이까, 나으리"
"그럼 되었네. 이 비녀를 얼마만큼 값을 쳐주었으면 좋겠는가"
그러자 산홍이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듯 말을 받았다.
"나으리 옛말에 이르기를 공양미는 삼백 석이라 하였나이다.
심청이도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이 팔려가지 않았나이까. 내 딸 송이도
나으리께 몸이 팔렸사오니 공양미 삼백 석은 내셔야 하지
않겠나이까"
공양미 삼백 석.
효녀 심청이가 봉사였던 아비 심학규를 위해 당나라 상인들에게
팔았던 몸값 삼백 석. 그 값을 돈으로 치면 대충 얼마가 될 것인가.
보통 열 되가 한 말이고 열 말이 한 섬인 것이다. 이 한 섬을 한
석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18세기 한양에서의
쌀값 평균 시세는 한 섬에 다섯 냥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삼백 석이라 하면 천오백 냥의 거금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임상옥은 산홍이가 내건 거액의 조건을 눈 깜짝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공양미 삼백 석이라고 하였나, 그 비녀의 값이"
"...그렇사옵니다, 나으리"
"주겠네. 이왕이면 삼백 석의 값뿐 아니라 공양미 오백 석의
값으로 그 비녀를 사주겠네
산홍은 임상옥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임상옥이 조선
제일의 거부라고 하지만 천오백 냥이라면 보통의 돈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그 조건을 받아들였을 분 아니라, 그
거금에다 따로 이백 석의 천 냥을 덧붙여 덤으로 주겠다고 자신의
입으로 약속하지 않는가.
"...물론 다시 한번 말하여 두겠거니와 이 비녀에 얽힌 비밀을 일체
송이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말일세"
임상옥이 재삼 다짐하자 산홍은 기뻐서 입이 찢어질 것 같은
웃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말하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으리"
"그래, 그 돈으로 무엇을 하실 작정인가"
임상옥이 묻자 산홍이 대답하였다.
"우선 시골로 들어가 가난한 집 농가로 찾아갈까 하나이다. 먹을
것이 없어 풀칠도 하기 어려운 농가로 찾아가 열 살 미만의
계집아이 하나를 돈을 주고 사서 데려올까 하나이다. 물론 예쁜가
어떤가를 자세히 살핀 후 계집아이 하나를 사서 데리고 올까
하나이다"
"데려다가 무엇에 쓰려 하는가"
"나으리"
산홍이가 똑바로 임상옥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송이가 기적에서 빼어나가 양민이 되는데 마땅히 대비 정속할
계집 아이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산홍의 그러한 말은 송이와 신관 사또의 정혼을 기정사실화
시키고 있는 교묘한 언변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으리"
산홍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주신 돈으로 관아에서 가까운 곳에 반듯한 집 한 채를
사두겠나이다. 남의 눈도 있으니 나으리께오서 송이를 관아에서
만나심은 껄끄러운 일이니 이년이 집 하나를 마련하여 치가를 하여
놓겠나이다"
산홍이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이년이 이미 늙어 할망구가 되었는데 무슨 돈 욕심이
있겠나이까. 늙어 죽기 전에 욕심이라도 하나 남아 있다면 그것은
내가 기른 양딸 송이가 번듯한 양반의 소실이 되어 치가를 차린후
기적에서 벗어나 양민이 되어 잘사는 것을 보는 것뿐이나이다.
송이만큼은 이 박복한 계집의 팔자를 되풀이하지 말기를 지금까지
천지신명께 빌어왔나이다. 나으리께오서 이 계집년의 비녀를
사주시겠다는 말씀이야말로 바로 그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산홍은 애타는 눈빛으로 임상옥을 쳐다보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왔다. 그 침묵을 깨드린 사람은 임상옥이었다.
"바로 맞았네"
임상옥은 겸염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자네를 이렇게 남의 눈을 피해 오시라고 부른 것은 바로 그
말을 묻기 위함이었네. 어떠하신가, 자네의 딸 송이를 내게
주시겠는가"
순간 산홍은 자신이 행여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눈빛으로 임상옥을 쳐다보았다.
"... 무슨 말씀이시오니까"
"자네 딸 송이를 내게 달라는 말일세. 자네 딸 송이를 내게 소실로
달라는 말일세. 그리고 산홍이 자네가 내 장모가 되어주고 나 또한
자네의 사위가 되는 것을 허락할 달라는 말일세"
임상옥의 말에 산홍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간신히
물어 말하였다.
"...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오니까"
그러자 임상옥이 넌지시 산홍의 손을 찾아 쥐면서 말하였다.
"장모, 송이를 내게 주시게. 자네의 딸 송이를 여부인으로 삼겠네"
그제서야 비로소 임상옥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차린 듯
산홍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으리'
"나으리라니"
임상옥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어찌하여 내가 나으리인가. 이제부터는 나를 사위라고
부르시게나"
"그래도 되겠나이까"
"여부가 있겠는가, 장모"
산홍은 마치 춤을 추듯 임상옥의 침소를 뛰어나왔다. 문 밖에서
이제나저제나 산홍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이방은 산홍이 춤추듯
뛰어나오자 어안이 벙벙하여 물어 말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가. 어찌 그리 희희낙락이신가. 신관
사또가 손이라도 잡아주시던가. 아니면 입이라도 맞춰주시던가"
"말조심하게나"
갑자기 산홍이 표정을 바꾸고 표독스럽게 이방을 돌아보았다.
"이제는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리지 말으시게나. 어느 안전이라고
그 따위 말을 함부로 하시는가"
너무나도 당당하게 돌변한 산홍의 태도에 당황하여 주눅이 든
이방을 향해 산홍이 덧붙여 말하였다.
"이제부터 신관 사또는 내 사위가 되었네. 내 딸 송이가 신관
사또의 작은 부인이 되었다는 말일세. 그러하니 앞으로 각별히
말조심하시게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신관 사또 나으리의
장모님이란 말일세"
송이의 양어미 산홍을 떠나보내고 나서도 임상옥은 한참 동안을
관복을 입은 채 방안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로써"
임상옥은 혼잣말로 중얼거려 말하였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었다. 오늘로서 모든 일들이 내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오직 이 길밖에 없었다. 송이를 살릴 수 있는
길은"
가을 밤의 휘영청 밝은 달빛이 방안으로 스며들어 왔다.
임상옥은 이때까지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사실 송이를 살릴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송이를 첩으로 삼는
길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모든 일에는 명분이 필요하였다.
부임한 지 얼마 안되는 신관 사또로서 오자마자 관기를 소실로
삼는다는 것은 책잡히기 좋은 허물이 될 수 있었다. 더욱이 한여름
큰물이 들어 재앙이 있었는데 지방 수령인 사또가 계집에 빠져
주색잡기에 놀아난다는 비난을 받을 우려조차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고 시절인연이 있는 법이다.
임상옥은 송이를 맞아들일 때를 기다렸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임상옥은 밝은 달을 쳐다보며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마침내 때가 되었다. 송이를 맞아들일 때가 무르익어 다가온
것이다"
밤하늘에 보름달이 떠올라 있었다. 그 보름달 속에는 다정했던
친구 이희저의 모습이 깃들어 있었다.
"이보게나, 희저"
임상옥은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자네의 딸을 이제 내가 여부인으로 맞아들이려 한다네. 이 길만이
내가 자네에게 은혜를 갚은 보은의 길이라네. 그보다도"
임상옥은 둥근 보름달을 우러르며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이보게 희저. 나는 자네의 딸 송이를 상사하고 있네. 송이 또한
나를 상사하고 있네. 자네의 딸이야말로 내 딸이기도 하지만 송이는
이제 내게 있어 사랑하는 임일세. 내게 자네의 딸을 주시게나. 이제
자네는 내 죽마고우가 아니라, 내 장인어른일세"
임상옥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오늘로서 지난 봄부터 획책하여 왔던 모든 계획이 다 끝이
나버렸네. 이보게 장인어른, 걱정하지 말고 마음놓고 푹 쉬시게나"
3
그로부터 며칠 뒤.
관아에서 가까운 한 기와집에서 간략한 형태의 혼례식이 있었다.
원래 첩의 지위는 부종의 소유였으므로 처와 구별되어
원칙적으로는 혼례식을 치르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귀천의 명분을
엄격히 따지는 조선조 이래로 첩은 그 출신 성분의 성격상 비천함
때문에 예속적인 관계에 있어 혼례를 치르는 것은 불법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상옥과 송이가 정식으로 첩치가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혼례식을 치르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산홍의 마음은 달랐다.
비록 송이가 기생의 천민이긴 하지만 이제 정식으로 임상옥의
소실이 되어 양민이 되는 그 첫날밤이기도 하였으므로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약식으로는 혼례를 올리고
싶어하였다.
그래서 산홍은 자신이 수양딸 송이를 위해 사놓은 집에서
삼일우귀라도 행하려 하였다.
삼일우귀라면 신랑이 신부집에 머물며 3일을 지내면서 폐백인
구고지례를 행하는 것인데 이를 친영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임상옥은 산홍이 원하는 대로 송이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초행을
떠났다.
신랑과 산홍이 원하는 대로 송이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초행을
떠났다.
신랑과 그 일행이 신부집으로 떠나는 것을 초행이라 하였는데
임상옥은 남의 눈을 피해 이방 하나만을 데리고 송이의 집으로
떠났다.
산홍이의 집에 들어설 때 대문에는 짚불을 붙여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나으리"
대문가에 서서 산홍이 활짝 웃으며 말하였다.
"짚불을 활짝 뛰어넘고 들어오시옵소서"
신랑이 신부집을 들어설 때는 대문가에 짚불을 놓아 신랑은 그
집불을 밟지 않고 뛰어넘는 관습이 있었다. 이는 온갖 부정한 것을
다 태워버리려는 일종의 풍습이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시키는 대로 단숨에 짚불을 뛰어넘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안엔 아무도 없었다. 잔치에 참석한 하객도 없었으며 신랑의
일행인 상객조차 없었다.
임상옥은 산홍에게 기러기 한 쌍을 전하였다. 산홍은 미리 대문
안마당 위에 멍석을 깔고 병풍을 두른 다음 작은 상위에 붉은
보자기를 씌어놓고 있었다.
임상옥이 갖고 온 나무로 만든 기러기 한 쌍을 그 상위에
올려놓고 네 번을 절하였다.
임상옥이 절을 하고 있는 사이에 산홍은 나무 기러기를 치마로
받아들고 안방으로 내던졌다. 안방에는 송이가 앉아 있었다. 내던진
나무 기러기가 똑바로 서자 산홍은 신이 나서 소리쳐 말하였다.
"목안이 바로 일어섰으니 반드시 첫 아들을 낳겠구나"
나무 기러기가 누우면 첫 딸을, 나무 기러기가 서면 첫 아들을
낳는다는 풍습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임상옥은 대례상 앞으로 나아갔다. 송이는 원삼을
입고, 한삼으로 얼굴을 가린 채 산홍의 부축을 받고 마주섰다.
송이가 먼저 두 번 잘하였고 임상옥은 일배하였다.
울긋불긋한 혼례복에 족두리까지 쓴 송이의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소매에는 황. 청. 적색이 색동과 흰색 한삼이 달려
있었으며 머리에는 화관을 쓰며 도투락댕기와 앞줄을 길게 늘이고
있었는데 머리 위에 꽂은 큰 비녀는 생모가 쓰던 매죽잠이었다.
서로 맞절을 하는 고배지례가 끝나자 곧바로 합근지례가
시작되었다.
산홍이 청실과 홍실로 묶인 표주박에 술을 가득 따라 송이에게
내주었다. 그러자 송이는 약간 입에 대었다가 다시 이를 산홍에게
내밀었다. 산홍은 이 술잔을 임상옥에게 내주었는데 임상옥 역시
약간 입을 대었다가 산홍에게 주기를 두어 차례 반복한 후 셋째
잔에 이르러 서로 교환하여 이를 마셨다.
임상옥이 표주박에 담긴 술을 단숨에 들이켰으며 송이 역시 여러
차례 나누었지만 표주박에 담긴 술을 다 마셨다.
합근지례는 서로 술을 교환하여 마심으로써 남녀가 하나가 된다는
의식이었다. 즉, 지금까지 속해 있던 사회적 관계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어 하나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절차였던 것이다.
이로써 간단하지만 임상옥과 송이의 혼례는 모두 끝났다. 송이는
마침내 임상옥의 소실이 되었으며 송이의 이름은 관노들의 기록이
적혀 있는 노비안에서 벗어나 양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새로 이사온 집에는 신방이 꾸며졌다. 임상옥이 먼저 들어가 있자
밤이 이슥하였을 때 혼례복을 입은 송이가 들어왔다. 미리 차려놓은
주안상에서 술이 이미 거나하게 취한 임상옥이 송이의 족두리를
풀어내리기 시작하였다. 옛부터 신부의 족두리는 반드시 신랑이 먼저
풀어주는 것이 보통이었으므로 임상옥은 족두리와 노랑 저고리의
끈을 풀어 내렸다.
이때 산홍과 이방은 나란히 신방의 창호지를 뚫어 이를 엿보고
있었다. 이를 '신방 지키기' 라고 하였는데 임상옥이 송이의 앞섶을
풀어헤치자 이를 지켜보던 산홍이 속삭여 말하였다.
"아따 성미도 급하구먼. 촛불부터 끄시구랴"
임상옥은 신방을 엿보는 사람들의 인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촛불을 끄기로 하였다.
촛불을 끌 때는 입으로 불어 불을 끄면 복이 나간다 하여서
반드시 옷깃을 펄럭여 바람을 내어 끄도록 되어 있다. 임상옥이
옷깃으로 바람을 내어 촛불을 끄자 방안은 곧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신방 엿보기를 하던 산홍과 이방도 사라지고 마침내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두 사람만이 남게 되자 임상옥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이제 송이 네가 내 아내가 되겠느냐"
그러자 송이가 받아 말하였다.
"해로동혈하겠나이다. 믿을 수 없다 여기신다면 저 밝은 태양으로
맹세하겠나이다"
송이의 말은 (시경) 대거의 구절로,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같은 구덩이에 묻힌다는 뜻이다.
"같이 늙어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
임상옥이 탄식하여 말하였다.
이때가 순조 32년, 임진년으로 1832년이었다. 임상옥의 나이는
쉰넷이었으며, 송이의 나이는 겨우 스무 살이었던 것이었다. 거의
30년이 넘는 나이 차이가 있으니 함께 늙어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임상옥의 말에 송이는 이렇게 다시 말하였다.
"함께 늙어갈 수는 없다 할지라도 나으리와 함께 한 구덩이에
묻힐 수는 있을 것이나이다, 나으리"
그러나 송이의 맹세도 곧 사라지게 되었다. 두 사람은 임상옥이
우려하였던 대로 함께 늙어가지 못하고 짧은 세월이 흐른 뒤에
헤어지게 되었으며, 송이가 말했던 대로 한 구덩이에 묻히지 못하고
각자 헤어져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임상옥에게 있어 송이의 존재는 석숭 큰스님이 일찍이 예언하였던
대로 마지막 위기를 불러온 멸문지화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송이는 황금기인 인생의 절정에서 임상옥을 추락시킨
원인이었으며 곽산군수에서 하루아침에 옥에 갇히는 죄수로
전락시킨 결정적이 마였던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모든 재앙의
근원에는 반드시 여색이 있다고 했음을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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