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도 (제 2부 폭풍전야)
최인호
제 1장 계영배
1
아침부터 구름이 잔뜩 낀 궂은 날씨 더니 아니나다를까 출발할 때부터 싸락눈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시간 정도 일찍 출발했어야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
을 텐데, 하고 나는 때늦은 후회를 하였다.
거리는 완전히 차량의 행렬들로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일단
약속을 한 이상 정릉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약속을 한 한기철이 내 휴대폰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므로 교통이 막혀
시간 약속이 차질을 빚으면 따로 연락을 취해올 것이니 괜찮다고 마음을 편히 먹기로 하였
다.
이틀 전날 밤.
나는 한기철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가 부탁했던 물건을 구해놓았다는 용건이었다. 나는
한기철에게 어떤 물건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해놓았던 것이다.
기평그룹의 총수 김기섭 회장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은 작년의 성탄절 이래로 이번이 세
번째의 만남인 셈이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한기철에게 그간의 조사를 통해 김기섭의
지갑에서 나온 문자의 출처가 바로 임상옥이었으며, 김기섭이 그 문장에서 호를 따올 만큼
임상옥을 사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 주었었다.
그러자 한기철은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돌아가신 회장님께서 마음속으로부터 존경하고 따르신 스승이 계셨다는 일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제가 아는 한 회장님은 자기 자신 이외의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회장
님에겐 오직 자신만이 친구이자 스승이셨습니다."
나는 죽은 김 회장에게 있어 오직 자기 자신만이 친구이자 스승이었다는 한기철의 말에 동
의한다. 이 말은 얼핏 보면 오만하고 독선적인 성격이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
큼 자기 자신에 대해 철저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어느 분야건 자기 분야에서 도를 이룬 사람의 특징은 남이 간 길을 가지 않고 자기만이
길, 즉 '길이 없는 길'을 만들어 간 사람들인 것이다.
"만약 정 선생님 말씀대로 임상옥이란 분이 오늘을 사는 현대인이었다면 회장님께선 그분
을 존경하고 따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지금으로부터 2백년 전의 사람이셨기에
회장님은 그분을 마음놓고 따르고 존경하고 본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회장님은 원래 질투심
도 많으신 분이셨으니까요. 헛허허허."
한기철은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분을 오랫동안 모셨던 저지만 그분께서 마음속으로 한없이 존경하고 지갑 속에까지 그
좌우명을 넣고 다니실 만큼, 또 그 문장에서 호를 따올 만큼 따로 사숙하는 분이 계셨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한기철은 진심으로 말하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한기철은 즉석에서 제안하였다.
"회장님이 사숙하였던 임상옥이라는 인물에 대한 연구가 어떨까요. 오는 가을에 개관되는
기념관에 회장님의 사숙하신 임상옥 선생의 유물들을 진열하거나 비치해 놓는다면 돌아가신
회장님의 뜻을 이어받는 일도 되겠구요. 또한 세인들이 알고 있는 회장님의 이미지를 각인
시켜 놓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구요."
한기철의 제안은 현명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겐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던 것이
다. 그것은 임상옥이 말년에 저술한 저서를 구하는 일이었다.
임상옥은 말년에 두 권의 책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역왕이자 시인이었던 임상옥은 말년에 이르러 시와 술로 여생을 보냈었는데 시를 추려
모은 시집 <적중일기>와 시와 더불어 자신의 일생을 추려 기록한 문장 등을 모은 ,<가포집
>을 편찬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임상옥의 일생을 추적하고, 한기철의 제안대로 임상옥 이라는 인물을 연구하는 데
는 반드시 그가 생전에 저술하였던 <적중일기>와 <가포집> 두 권의 저서가 필요했던 것이
다.
그러나 그 책은 찾을 수가 없었다.
국립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 아니면 서울대학교의 도서관을 뒤지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
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하였다.
만약 내가 추적했던 대로 실제로 김기섭 회장이 임상옥을 사숙하고 있었다면 어쩌면 김기
섭은 임상옥이 생전에 저술한 <적중일기>나 <가포집> 두 권의 저서 중에서 한 권이라도
이를 구해 소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또한, 김 회장의 평소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가 일단 목표한 대상에 대해서는
불과 같은 추진력을 갖고 밀고 나갔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김 회장이 임상옥이 쓴 문장을 좌
우명으로 삼아 스스로 이를 베껴 지갑 속에 넣고 다니고, 그 문장에서 자신의 호를 따올 만
큼 임상옥을 사숙하였다면 반드시 임상옥의 일대기를 기록한 저서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해 놓았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임상옥의 유물쯤은 구해서 이를 자신의 개인 소장품으로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번째로 한기철을 만났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한 실장의 말씀이 옳습니다. 돌아가신 김 회장님이 사숙하신 임상옥에 대한 연구가 더 회
장님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념관에 임상옥의 유물
을 진열하거나 비치해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다.
"김 회장님의 유품중의 임상옥과 관련된 유물들을 구할 수 없을까 해서요. 이를테면 임상
옥이 생전에 쓴 두 권의 책이라든가, 아니면 임상옥이 생전에 사용했던 도자기라든가, 하다
못해 붓, 먹, 연적과 같은 문방구라도 구할 수 없을까 해서요. 특히 임상옥이 쓴 책은 임상
옥의 일대기를 추적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니까요."
그러자 한기철은 대답했다.
"하지만 평소의 회장님 성격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무슨 골동품이라거나 미술적 가
치가 있는 그림이나 조각품과는 전혀 상관없던 회장님의 성격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한기철의 말은 사실이었다.
김기섭은 무취미한 사람이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일 그 자체였으며 그 중에서도 자동차
였다.
그에겐 바퀴 이외엔 아무런 취미도 없었다. 즐기는 것이라고는 오직 무제한 속도로 달려갈
수 있는 독일의 고속도로에서 세계적 명차를 타고 시속 2백 킬로미터 이상으로 차를 모는
스피드, 오직 그것 하나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김기섭 회장의 평소 성격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는 한기철의 말은 정확한 것이었
다.
"하지만."
헤어질 무렵 한기철이 손을 내밀며 말을 하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유가족과 의논해서 돌아가신 김 회장님의 유품들을 정리해 보겠
습니다. 정리하다가 말씀하셨던 임상옥의 저서라든가, 임상옥의 유물로 짐작되는 물건들이
나오면 그 즉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틀 전날 밤 뜻 밖에도 바로 그 한기철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었다.
내가 찾고 있던 책 중에서 한 권이 김기섭 회장의 유품에서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던
것이다. 바로 임상옥의 마지막 저서인 <가포집> 이라는 표제가 붙은 고서가 한 권 발견되
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뜻밖의 수확이었다.
<가포집> 에는 임상옥이 스스로 저술한 자전적인 생애의 기록이 포함되어 있어 단순히 시
문만을 모아둔 <적중일기> 보다는 임상옥 연구에 더욱 보탬이 되는 자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뿐이 아니었다.
한기철은 뜻밖의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덧붙인 것이었다.
"돌아가신 회장님의 유품을 유가족분들과 함께 정리하다가 <가포집> 이란 책과 함께 오래
된 잔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술잔 같기도 하고 찻잔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골동품 같은 데
전혀 관심이 없던 회장님이 갖고 계시던 낡은 물건이라서 혹시 정 선생님께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가족들과 상의해서 <가포집> 한 권과 그 수수께끼의 잔
을 한동안 빌려 진열돼야 하니까 그때까지만 빌려드리기로 합의했던 것입니다."
골동품 같은 데 전혀 관심이 없던 김기섭 회장이 갖고 있던 낡은 물건. 한기철의 표현대로
수수께끼의 잔 하나. 그것 역시 내게 있어 뜻밖의 수확이었던 것이다.
잠시 끊겼던 싸락눈이 다시 흩날리기 시작하였다. 윈도 브러시를 작동시켰으나 쉴 새 없이
차창에 엉겨붙는 세설을 말끔히 밀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차는 정릉으로 넘어가는 네거리의 길목에서 막혀 있었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벌써 약속시간보다 삼십 분이 넘어 있었다.
연초에 나는 지금 가고 있는 절에 이미 한 번 다녀간 적이 있었다. 독일에서 운구되어 온
김기섭 회장의 영결식이 정릉에 있는 사찰에서 거행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한 번 다녀갔
었던 절이었기에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출발했을 때부터 걱정했던 대로 싸
락눈이 내리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아침부터 한파가 몰아치고 있었던 길거리는 완전히 빙판
과 다름없었다.
이틀 전날 밤, 한기철은 임상옥의 저서인 <가포집>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잔을
내게 전해 주겠다고 말한 다음 둘이 만날 장소로 정릉에 있는 사찰을 가르쳐준 것이었다.
"모레 오후 돌아가신 김 회장님의 사십구재가 열립니다. 정릉에 있는 경국사란 절인데요.
왜 이시지요, 지난 연말 회장님의 영결식이 열렸던 바로 그 절에서 말입니다. 오후 세 시에
바로 그 절에서 회장님의 마지막 명복을 비는 천도재가 열립니다. 그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왕이면 마지막으로 열리는 천도재에 참석하시는 셈치고 말입니다."
나로서는 마다할 다른 이유가 없었다. 나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의식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사십구재.
불교에서는 이를 다른 말로 칠칠재라고도 부르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을 받을 때
까지 49일 동안의 중음의 상태를 갖게 되는데 이 기간에 다음 생을 맞을 연이 정해지는 것
이다. 따라서 7일 단위로 불경을 읽고 부처님 전에 공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죽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음 생에서 좋은 생을 받게 하기 위해 49일 동안 재를 지내는 것이다.
오늘이 바로 그 49일의 마지막 날인 것이다.
간신히 엉겼던 교통신호가 풀렸는지 막혀 있던 차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엉겼던
신호체계가 경찰의 수신호에 의해 풀리기 시작한 모양으로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그렇군,
달려드는 싸락눈을 부지런히 밀어내는 윈도 브러시가 만들어 낸 부채꼴의 차창을 통해서
가파른 정릉의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나는 생각하였다.
바로 오늘이 김기섭 회장이 죽은 지 정확히 49일째가 되는 날이로군.
나는 차를 몰아 나가면서 생각하였다.
바로 오늘로써 죽은 김 회장이 생전에 저질렀던 업보에 대한 모든 심판이 끝나는 날이로
군.
사람들은 누구나 죽으면 이승과 저승 사이의 중유라는 49일 동안 심판받게 되어 있다.
우선 죽은 사람은 죽은 지 첫 7일째에 첫 심판을 받는다. 이때 부동명왕의 화신인 진광왕
이 생전에 저지른 선악을 서류심사로 낱낱이 밝혀낸다.
14일째에는 초강왕이 그 선악의 심사에 따라 강을 건너게 한다. 이 강은 6천 킬로미터가
넘는 강. 이 강가에는 늙은 귀신들이 지키고 있어 죽은 사람의 옷을 벗기고 벌거숭이의 몸
으로 강을 건너게 한다. 이 강에는 다리가 하나 있는데 생전에 착한 일을 한 사람만이 건너
갈 수 있는 것이다. 죄가 적은 사람은 얕은 물로, 죄가 많은 사람은 깊은 물로 건너가야 한
다.
21일째에는 문수보살의 화신인 송제왕이 고양이와 뱀들로 하여금 사음의 죄를 조사하게 한
다.
28일째에는 보현보살의 화신인 오궁왕이 대단히 세밀한 저울로써 주로 거짓말을 하였는지
를 따져본다.
다시 35일째에는 지장보살의 화신인 염마왕이 거울 앞에 죽은 사람을 세워놓고 생전에 저
지른 악업을 낱낱이 조사한다.
42일째에는 미륵보살의 화신인 변생왕이 저울과 거울로써 다시 한번 심판의 결과를 재검토
해 본 후 마침내 49일째에 이르면 약사여래의 화신인 태산왕이 최종판결을 내려 죽은 사람
의 다음 생이 결정되는 것이다.
오늘이 김기섭 회장의 영혼이 49일동안 모든 심판을 받고 그 과보에 따라서 다음 생을 받
는 바로 그날인 것이다.
바퀴벌레. 자동차에 미친 바퀴벌레 김기섭.
그가 다시 태어날 저승은 어디일까. 그것은 분명하다.
그가 다시 태어날 곳은 오직 한곳. 그것은 그가 전생에서 평생을 바쳐왔던 바퀴, 자동차가
있는 바로 그 인계일 것이다. 자동차가 있는 곳이 아귀도라면 그 아귀로 다시 태어날 것이
다. 자동차가 있는 곳이 축생의 세계라면 그는 또다시 짐승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때였다.
나는 팔짱을 끼고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독경하는 스님의 경문을 귀기울여 들었다. 불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평소 불교에 관심이 있었으므로 나는 스님이 외우는 그 경문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무상계.
스님이 외우는 그 경문은 바로 무상계였다. 죽은 영혼에게 인생의 무상을 일깨워 주고 영
가 나마 불법에 의지하여 좋은 곳에 환생하여 태어나기를 소원하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죽
은 영혼을 달래주는 무상계를 '열반으로 가는 문이며 고해를 벗어나는 자비의 배' 라고 일컫
고 있는 것이다.
나는 법당에 몸을 기대고 서서 청아한, 그러나 슬픈 스님의 독경소리를 귀기울여 들었다.
"영가여, 겁이 다하여 말세가 되면 대천세계도 불타고 수미산과 큰 바다도 다 넘어지는 것
인데, 어떻게 이 몸뚱이가 늙고 병들고 죽고 고뇌하는 생사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스님의 손에 들린 요령이 마음 심 자를 그리면서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영가여, 그대의 머리털과 손톱, 발톱, 뼈와 이, 가죽, 힘줄, 해골 같은 것은 다 흙으로 변
하고 침과 콧물, 고름, 피, 진액, 가래, 오줌 같은 것들은 다 물로 변하고 더운 기운은 불로,
움직이는 기운은 바람으로 변하여 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인데, 오늘날 영가여 그대의 죽
은 몸은 어디에 있는가.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의 네 가지 요소로 잠시 모인 헛된 것이니 조
금도 아까울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영가여..."
독경소리도 잦아들고 있었다. 그와 함께 타오르던 불길도 찾아들고 있었다.
"...이 세상 모든 것 그 바탕 본래 고요하니 불제자가 되어 닦고 또 닦으면 내세에 부처를
이루리라. 아아 덧없다. 인생의 흘러가는 태어남과 죽어감이여. 나고 죽음이 없어지면 이것
이야말로 열반의 즐거움이라...."
법당에 기대어 서서 팔짱을 끼고 스님의 독경을 묵묵히 듣고 있던 내게 스님의 목소리 하
나가 화살이 되어 가슴에 내리꽂혔다.
"...아아 덧없다. 인생의 흘러가는 태어남과 죽어감이여, 아아 덧없다. 인생의 흘러가는 태어
남과 죽어감이여."
평생을 통해 자동차에 미쳐 최고의 거부가 되었지만 죽을 땐 단돈 만원짜리 한 장도 지갑
속에 넣어 가지지 못하였던 빈털터리 김기섭 회장. 그의 육신도 흙으로 돌아가고, 물로 돌아
가고,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서 이제 깨끗한 무 그 자체가 되었음이다.
그때였다.
모든 의식이 다 끝났는지 독경을 하고 있던 스님도 합장배례한 후 사라졌다. 남은 사람은
한기철을 비롯한 서너명 뿐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계단을 내려가서 한기철의 등을 두드렸다.
"아."
그는 활짝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언제 오셨습니까."
"한 십 분 되었을까요. 저기 법당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한기철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머리에 맺힌 눈발을 털며 말하였다.
"이제 모든 제사는 끝이 났습니다."
타오르던 불길도 꺼져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태우고 있었던가 그 불탄 흔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 완전히 타버리지 않아 태우던 물건이 무엇이었던가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흰옷과 그리고 고무신 한 켤레였다.
흰옷은 이제 마악 마지막 남은 한 조각마저 깨끗이 연소되고 있었지만 고무신은 잘 타오르
지 않아 잔해가 남아 있었다.
저 흰옷과 흰 고무신을 태움으로써 이제 이승에도, 저승에도 인간 김기섭은 영원히 존재하
지 않는 것이다.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사람 하나가 불길이 사그라들자 그 불길 속에 휘발유를 부어넣었다.
그러자 다시 맹렬하게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단숨에 흰 고무신의 잔해가 불길에 휩
싸였다..
"자, 그럼 이제 가실까요."
흰 장갑을 벗어 부하직원에게 내어주면서 한기철이 내게 말하였다. 우리는 나란히 경내를
가로질러 일주문 쪽으로 걸어갔다.
무사하게 사십구재를 치렀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 한기철의 얼굴에 엿보이고 있었다. 그는
약간 피로해 보였다.
"차를 가져 오셨지요."
"그렇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저는 회사차를 타고 왔으니 직원들과 함께 보내고 저는
따로 정 선생님과 동행해서 시내로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지요."
우리는 주차장까지 나란히 걸었다. 잠시 끊겼던가 싶었던 싸락눈의 알이 굵어져 있었다. 저
녁 다섯 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궂은 날씨라서 그런지 벌써 땅거미가 내리고 어둑어둑하
였다.
시내로 들어갈수록 교통은 훨씬 더 혼잡하였다. 그러나 한기철은 느긋한 표정이었다. 무사
히 제사를 마쳐 오늘 하루의 일과가 모두 끝이 났으니 어디 가서 술이라도 산 잔 하자는 것
이 그의 제안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차마 마다할 수가 없었다. 차를 운전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술친구 노릇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리라고 생각하였다.
먼젓번에 함께 갔었던 그 호텔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일식집으로 갔다. 마침 작
은 방이 남아있었다. 방에서 내다볼 수 있는 작은 일본식 정원에는 먼젓번처럼 흰 눈이 소
복이 쌓여 있었다.
회를 시켜 저녁식사 겸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는데 한기철은 얼음을 넣은 잔에 위스키를 가
득 따라 단숨에 이를 들이켰다. 술을 폭음하는 것이 그의 즐거움인 것 같았다.
"저는."
독한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야 한기철은 비로소 입을 열어 말하였다.
"사람의 내세를 믿지 않습니다. 죽으면 사람이 천국을 간다는 것도, 아니면 다른 세상에서
또다시 태어나 윤회한다는 것도 다 믿지 않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라는 생
각입니다."
'아아, 덧없다.'
내 귀에는 문득 스님이 요령을 흔들면서 독경하던 무상계의 한 구절이 기억되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덧없다, 인생의 흘러가는 태어남과 죽어감이여.'
단숨에 마신 위스키의 술기운이 혈관 속으로 성급하게 퍼져나가는 그 마취의 쾌락을 즐기
는 듯 그는 한결 풀어진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의 모습에서 나는 그가 약간의 알코올 중
독 증세가 있음을 짐작하였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다시 술잔에 가득 위스키를 따랐다.
"더 취하기 전에 우선 사무적인 일부터 끝내야지요."
그는 들고 온 가방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회사의 기밀서류 같은 것을 따로 보관하여 들
고 다니는 이른바 007가방이었다. 그는 비밀번호를 눌러 잠금장치를 열었다. 그 가방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그것을 탁자 위에 놓았다.
"이것이 정 선생님이 부탁하셨던 바로 그 책입니다. 임상옥의 저서라고 알려져 있는 <가포
집> 바로 그 책입니다."
한기철은 그 책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 책을 받아 보았다. 한눈에도 2백 년 가량 되어
보이는 낡은 고서 한 권이었다.
책의 표지는 종이를 몇 겹 발라 만든 두터운 한지였는데 원래는 누런빛이 도는 물감을 풀
어 만든 황염초주지였던 것처럼 보였다. 이런 종이를 운룡지라 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빛이
바래었으므로 회색빛으로 변색이 되어 있었다.
표지에는 세로로 된 글씨로 다음과 같은 제목이 씌어져 있었다.
'가포집'
한눈에도 분명한 <가포집>, 바로 임상옥이 말년에 저술하였던 그 책임이 분명하였다. 나로
서는 의외의 수확이었다. 임상옥은 1779년에 출생하여 철종 6년인 2855년 숨을 거두었다. 그
가 비록 2백년전 사람이라 하여도 그가 죽은 것은 15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가 오래된 역사 속의 인물이라지만 따지고 보면 가까운 근세의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행적이 몇 개의 단편적인 에피소드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아마도 그가
평안북도의 의주 사람으로 남과 북이 가로막힌 그 분단의 단절 때문일 것이다.
조선이 낳은, 아니 우리나라가 낳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상 임상옥이 이처럼 세인
들에게 잊혀진 인물로 다만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은 남북분단이라는 바로
그 하나의 이유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임상옥이 자신의 육성으로 직접 자서한 <가포집> 이야말로 임상옥 연구의 단 하나
의 증거인 셈이었다.
"고맙습니다."
나는 그 책을 두 손으로 받아들며 말하였다.
"고맙다니요. 그런 책이야 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희와 같은 장사꾼들에게 그
런 책은 낡은 휴지조각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는 소리내어 웃었다.
"그 책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다만 11월에 개원될 기념관에 전시될 물건이니 그때까지만
보관하셨다가 돌려주시면 됩니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그는 갑자기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어 들였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였다.
"저 책을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기 마십시오. 정 선생님 혼자서만 보셔야 합니다."
나는 그가 술김에 농담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의 표정은 진
지하고 엄숙하였다.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정 선생님 말로 다른 사람에게는 이 책을 보여주지도, 이 책의 존재
에 대해서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안경 너머로 그의 눈빛이 차갑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서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의 빈틈없고 단정한 태도에서 상사의 현지 주재원이라는 느낌보다
는 무슨 정보기관의 첩보원 같다는 느낌을 받은 기억을 떠올렸다.
"물론입니다."
나는 대답했다.
"약속하겠습니다."
"또 한가지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그는 다시 정색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절대로 이 책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
이 생긴 경위 같은 것도 묻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절대 보안을 유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다.
어지러운 정치적 혼란기였던 70년대 초 나는 하찮은 필화사건으로 정보부라는 곳에 끌려간
적이 있었다. 하루낮 하룻밤을 꼬박 그 문장에 대해서 조서를 수백 장 쓰는 정신적 고문을
받고 풀려날 때 직원을 내게 각서를 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곳에 들어왔었다는 말을 절대로 밖에서는 발설해서는 안됩니다. 절대 보안을 유지해
주시겠습니까.'
지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가 내미는 종이에 붉은 지장을 찍은 적이 있었다. 한기철의
말은 그 정보부 직원의 부드러운 그러나 강압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망설였다. 이 책은 임상옥이 지은 낡은 고서에 불과하다. 이 책이 그런 보안을 유지할
만큼의 값어치를 지닌 비밀문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엄청난 고가의
희귀본도 아니잖은가.
"...물론입니다."
나는 빈 잔에 위스키를 조금 따랐다. 한 잔 정도 마신다고 해서 운전에는 지장이 없을 것
이다. 그보다도 위스키를 입술로 핥는 시늉이라도 해야만 심리적인 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떄문이었다.
내 망설이는 태도에 예민한 한기철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불쾌하셨습니까."
"약간은요."
나는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미안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훗날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가져가시지요."
한기철은 탁자 위에 놓인 책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나는 미리 준비해 가져온 가방 속에 그
책을 넣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유쾌하게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태도에 순간 당황했다. 약속이 어긋나버렸기 때문이었다.
이틀 전, 한기철은 분명히 내게 힘주어 말했었다.
그는 내가 찾고 있는 책 중에서 <가포집> 이 김기섭 회장의 유품에서 나왔다는 반가운 소
식을 전하고 나서 뜻밖의 말을 덧붙였던 것이다.
"...돌아가신 김 회장님의 유품을 유가족들과 함께 정리하다가 <가포집> 이란 책과 함께
오래된 잔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술잔 같기도 하고, 찻잔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골동품 같은
데 전혀 관심이 없던 회장님이 갖고 계시던 낡은 물건이라서 혹시 정 선생님께 도움이 될지
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가족들과 상의해서 <가포집> 한 권과 그 수수께끼의
잔을 한동안 빌려 드리기로 했습니다...."
한기철은 자신의 입으로 분명히 말하지 않았던가, 그 '수수께끼의 잔'을 빌려주겠다고 내게
미리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게 빌려주기로 한 물건이 다만 책뿐이었던가요."
"물론입니다."
그도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한 실장님께서 먼저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이 책과 함께 오래된 잔을 하나 발견하셨다구
요. 술잔 같기도 하고 찻잔 같기도 한, 수수께끼의 낡은 잔 하나를 유품으로 발견하셨다구
요."
" 아, 그 잔 말입니까."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한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 책과 함게 발견한 낡은 잔 하나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는 정 선생님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빌려 드리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갖고 오지 않았습니다. 잊어버리십시오. 그 잔은 대단한 잔이 아닙니다. 별것이 아닙니다."
"별것이 아니라니요."
내가 쉽게 물러나지 않자 한기철은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처음에는 무슨 값어치가 잇는 유물로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쓸모없는 잔에 불과하였
습니다."
" 쓸모가 없다니요."
"그 잔은 깨어져 있었습니다. 깨어져도 금이 가거나 약간만 파손된 것이 아니라 삼분의 일
가량이 깨어져 없었습니다. 깨진 잔이 무슨 값어치가 있겠습니까."
한기철의 말은 사실이었다.
금이 가거나, 작은 균열로 일부가 손상된 물건이 아니라 30퍼센트에 해당하는 상당 부분이
깨어져버린 잔이라면 그건 이미 유물이 아니라 낡은 파편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쉽게 한기철의 말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실망한 느낌이었다. 나는 <가
포집>과 함께 발견된 그 오래된 잔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한기철은 바
로 자신의 입으로 그 잔을 '수수께끼의 잔' 이라고까지 표현하지 않았던가.
그날 밤, 우리는 늦게 헤어졌다.
술을 주로 한기철이 마시는 편이었고 나는 술 대신 얼음물을 마시며 그의 말을 주로 듣는
편이었다.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의 위스키를 들이켰으므로 그는 상당히 취해 있었다. 나중에
는 맥주를 따로 시켜 위스키 잔을 가라앉히고 폭탄주를 만들어 자신이 마시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기철에게선 어디에서도 흐트러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밤 열 시쯤, 술 취한
한기철을 그의 부하직원이 찾아와 승용차로 모셔갔으며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2
그날 밤.
나는 혼자서 서재에 앉아서 한기철로부터 받은 책을 펼쳐보았다. 책은 보관상태가 양호하
지 않았다. 드문드문 세월의 흔적으로 파손되어 있었고 간혹 떨어져나간 낙장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런대로 임상옥이란 인물을 연구하는 데에는 반드시 필요한 진서임에는 틀림이 없
었다.
처음 예상대로 <가포집>은 서두를 자신의 행장기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의주 남쪽 성곽의 아래에 거주하는 곳은 곧 조상들이 사시던 곳이다. 6, 7세 때부터 외부
의 스승에게 나아가 15세에 이르기까지 경서를 대충 섭렵하고 문리가 겨우 나게 되었다. 혹
은 명사들을 쫓아다니고 혹은 사찰에서 홀로 공부하여 읽은 것을 거의 스스로 해독하였다.
시가 거의 스스로 이루어진 것은 꽃이 스스로 피고 달이 스스로 둥글게 되는 것 같아 하루
에는 하루만큼의 공부가 있었고 한 달에는 한 달만큼의 효과가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임상옥이 자서한 서문을 읽다가 그
끝 무렵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다음과 같은 문장에 시선이 멎게 된 것이었다.
'...경진년에 새 집에 들어오매 숲과 연못, 꽃과 돌 사이에 새들이 집을 지으니 책이나 읽으
면서 만년에 휴식할 만한 장소가 될 듯하다. 만년에는 시를 읊는 가객으로 지냈었으니 매사
가 평안하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이루게 해준 것은
그 하나의 잔이었다.'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뜻밖의 문장이 불쑥 나타난 것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생아자부모 성아자일배'
그 문장의 뜻은 의외로 쉽고 단순하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이루게 해준
것은 그 하나의 잔이었다'는 뜻인 것이다. 나를 낳아준 사람이 부모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진리이다. 그러나 '나를 이루게 해준 것이 그 하나의 잔' 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
을 뜻하고 있는 것일까.
그 '하나의 잔' 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감히 부모와 함께 동격으로 비유해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그 열 자의 글도 임상옥의 독창적인 문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문장은
분명히 <사기>에 나오는 문장에서 빌려온 것이다.
<사기> '관중열전'편에 관중과 포숙아의 두터운 우정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 두 사람의
각별한 우정을 고사성어로 관표지교 라고 부르는데, 먼 후일 관중은 자신의 친구였던 포숙
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던 것이다.
'나는 젊었을 때 포숙아와 장사를 함RP한 일이 있었는데 늘 이익금을 내가 더 많이 가졌
으나 그는 나를 욕심쟁이라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를 위해 한 사업이 실패하여 그를 궁지에 빠뜨린 일이 있었지만, 그는 나를 용렬하다
고 여기지 않았다. 때에는 이로움과 불리함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벼슬길에 나갔다가는 물러나곤 했었지만 나를 무능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싸움터에서도 도망친 일이 있
었지만 그는 나를 겁쟁이라곤 말하지 않았다. 내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죽마고우였던 포숙아에 대해서 훗날 대재상이 된 관중은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
고 난 다음 그 유명한 말로 끝맺음하였던 것이다.
'아무튼 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였던 것이다.'
마침내 이 말 한마디에서 둘도 없는 친구 사이를 나타내는 '관포지교' 란 고사성어가 탄생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임상옥은 <사기>에 나오는 이 유명한 문장을 인용하여 기록하고 있음이 분명하
지 않은가.
'...만년에는 시를 읊는 가객으로 지내었으나 매사가 평안하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이루게 해준 것은 그 하나의 잔이었다.'
<사기>에 나오는 문장 '생아자부모 지아자포숙아'는 '생아자부모 성아자일잔'로 변형되어
있는 것이다. 앞줄의 문장은 똑같아 한 자의 변형도 없다. 변형된 것은 뒷줄의 '지'가 '성'으
로, '포숙아'가 '하나의 잔'으로 바뀐 것뿐이다.
이는 임상옥이 짐짓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관중에게 있어 포숙아는 자신
의 생명과도 바꿀 만큼의 벗이자 스승이었다. 마찬가지로 임상옥에게 있어 그 수수께끼의
잔은 포숙아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암시하는 문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책을 덮고 생각하였다.
그 하나의 잔은 무엇을 뜻하고 있는 것일까. 낳은 사람은 부모지만 이룬 것은 하나의 잔이
라고 분명히 임상옥 자신의 육성으로 고백하고 있지만 책 어디에도 그 하나의 잔에 대해서
는 설명도 부언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내 머리 속으로는 한기철이 말하였던 그 잔이 영감처럼 떠올랐다.
혹시 그 수수께끼의 잔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한기철은 이렇게 말하였었다.
"<가포집>이란 책과 함께 오래된 잔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분명히 한기철은 '책과 함께' 란 말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한기철도 그 평범한 잔을 '수수께
끼의 잔'이라고 표현했던 것은 그 잔이 <가포집>과 함께 발견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잔을 함께 빌릴 수 없을까 하고 물었을 때 한기철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지 않
았던가.
한기철의 말처럼 삼분의 일 가량이 깨어져버린 그 낡은 잔이 무슨 값어치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순간의 착각이었다. 내가 쉽게 한기철의 말에 동의했던 것도 '깨어진 잔'이
라는 말에 현혹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잔의 값어치가 차나 술을 따라 마시기 위한 실용성이
나 온전한 보존상태에 따른 골동품적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잖은가. 만약 그 잔이 임상옥의
저서인 <가포집>과 함께 발견된 것이 확실하다면, 그리하여 그 잔이 임상옥이 사용하던 손
때 묻은 잔이 확실하다면 그 잔은 깨어졌을 뿐 아니라 깨어져 박살이 난 상태라 할지라도
그만한 값어치를 갖고 있음이 분명한 것이다.
만약 깨어진 잔이 임상옥이 쓰던 유물임이 확실하다면 그 잔이야말로 임상옥을 키운 포숙
아와 같은 벗이자 스승임이 분명할 것이다.
나는 흥분으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서재를 나와 베란다의 문을 열과 담뱃불
을 붙였다.
평생을 임상옥을 사숙하였던 김기섭 회장의 평소 성격으로 보아 그의 저서뿐 아니라 그가
사용하던 유물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깨진 잔이야말로 임상옥
이 고백하였던 '자신을 이루게 해준 그 잔'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날이 밝으면 나는 한기철에게 전화를 걸어 그 깨어진 잔을 볼 수 있겠느냐는 제의를 할 것
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새로운 의문점이 내 가슴을 번득이며 스쳐갔다.
그것은 평소답지 않은 한기철의 말투 때문이었다. 한기철은 <가포집>을 빌려 주면서 마치
정보부의 정보원과 같은 말을 덧붙였던 것이다.
밤늦게까지 책을 면밀하게 살펴보았지만 <가포집>은 다만 하나의 낡은 고서일 뿐, 한기철
의 주문대로 절대 보안을 유지해야할 만큼의 비밀문서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한기철은
어째서 이 책의 존재에 대해서 절대의 침묵을 내게 강요하고 있는 것일까. 그 순간 내 머리
속으로 하나의 영감이 떠올랐다.
언제였던가.
김기섭 회장이 죽었을 때 나는 한기철과 따로 은밀하게 만난 적이 있었다. 김회장이 시운
전하다가 죽은 바로 그 신차 '아카로스'의 발표회 직후였었다.
그때 한기철은 내게 텅 빈 김 회장의 지갑 속에 들어 있던 '이각'짜리 중국 지폐를 보여 주
었었다. 90년대 초 북경의 공중화장실에서 우연히 받은 거스름돈에서 '조선 여인'의 얼굴을
발견한 김 회장은 그 이후부터 그 지폐를 부적처럼 가지고 다녔다는 한기철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무렵 김 회장에게 어떤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한기철은 잠시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끊었었다. 나는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한기철의 얼굴에서 뭔가 망설이는 감정들이 교차되고 있었던 것을. 짧은 침묵 끝에 한기철
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그때가 아마 90년대 초일 것입니다. 그 무렵 회장님은 북한의 주석 김일성의 초청을 받
고 열흘 동안 북경을 거쳐 평양에 다녀왔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기철은 이렇게 말을 덧붙였었다.
"회장님은 국가 당국과 안기부 측의 허가를 받고 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80년대 말부터 들
어가셨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말씀드려도 좋겠지만 그 다시만 해도 북한으로 들어간다는 것
은 생사를 건 극비사항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아마 이렇게 질문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선생님도 함께 평양에 들어갔었습니까."
내 질문에 한기철은 대충 다음과 같이 대답했었다.
"저 역시 회장님을 모시고 북경에서 조선민항기로 갈아타고 북한으로 들어갔었습니다. 그
러나 제가 북한에 갔을 때는 회장님의 첫 번째 방문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회장님은 서너 차례 북한을 방문하셨던 것으로 짐작됩니다마는. 아무튼 평양에 머무르는 열
흘 동안 회장님은 세 번 김일성 주석을 만났습니다."
나는 몸이 떨리는 한기를 느꼈다. 담배연기를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서 조금 열어놓은 베란
다의 창틈으로 싸늘한 겨울바람이 스며드는 탓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그제서야 애매모호하던 상황들이 안개가 걷힌 듯 명료하게 밝아오는 것을 느꼈다.
한기철이 내게 빌려준 임상옥의 저서 <가포집>의 김기섭이 회장이 북한의 주석 김일성으
로부터 초청을 받고 수차례 비밀 입북하였던 과정에서 얻은 소득이었을 것이다.
임상옥의 본관은 전주.
임씨의 성은 전체 성씨 중 10위에 해당될 만큼 자손이 번창하였지만 대종은 평택 임씨에서
분파된 분적종인 것이다.
따라서 평택, 나주, 진천, 울진 등 30여 본으로 전해지지만 임상옥의 본관 전주 임씨는 아
주 희성으로 남한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본관은 전주지만 전주 임씨들은 대대로 평안북도 의주에서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었으므
로 남한에는 그의 후손들이 거의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임상옥 자신도 <가포집>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자서하고 있지 않은가.
'의주 남쪽 성곽의 아래에 거주하는 곳은 곧 조상들이 사시던 곳이다.'
자신이 표현한 대로 임상옥은 의주 남쪽 성곽에 있던 전주 임씨의 집성촌에서 4대째에 걸
쳐 중국을 상대로 만상을 하던 상인의 후예인 것이다.
그렇다면 임상옥이 남긴 희귀본인 <가포집>이 그의 후손이 전무한 남한에서 발견될 가능
성은 극히 희박했을 것이다. 이러한 낡은 고서들은 주로 그의 후손들에 의해서 보존되고 가
보로 전해져 올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임상옥의 <가포집>은 김 회장이 북한을 수차례 방문하였을 때 김일성 주석을 통
해서 얻었던 일종의 전리품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김 회장은 북한을 상대로 상담을 벌였
을 것이고 그 상담의 결과로 어쩌면 김일성 주석은 김 회장에게 그 책을 선물하였을지도 모
르는 일인 것이다.
비록 정치체제가 달라져 임상옥의 사당이 없어지고 그의 유택이나 저택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르지만 후손들은 분명히 그곳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 후손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조상이었던 임상옥의 저서를 가보로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
을 뿐 아니라 그가 쓰던 유물 몇점쯤은 소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김기섭 회장이 구한 임상옥의 저서 <가포집>은 바로 북한에 사는 그의 후손들로부터 구한
유물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함께 시내로 돌아와 술을 마실 때 취했던 한기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기철은 그 책이 북한에서부터 유출되어 온 일종의 노획물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책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도 말고, 그 책의 출처에 대해서
는 엄중하게 보안유지를 해달라던 그의 정보원 같은 발언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김기섭 회장이 비밀리에 방북하여 북한의 주석 김일성을 수차례 만나 상담을 벌인 것은 국
가로부터 사전 승낙을 받은 일이라 하더라도, 그를 통하여 임상옥의 유물을 전해 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공적이 아닌 사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김 회장은 사적으로 받은 물건들은 국가기관에 보고하거나 반납해야 할 의무가 있
었을지도 모른다.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은밀하게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외부에 노
출되는 것을 한기철은 꺼렸을 것이다.
모든 것은 분명해진다.
임상옥의 저서 <가포집>은 지금은 갈 수 없는 분단의 따에 살고 있는 그의 후손들이 가보
로 보관하고 있었던 유물이었음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거실에 걸린 괘종시계가 둥중한 소리로 세 번을 계속해서 울었다.
밤 세 시였다. 여의도광장 너머로 뭔가 새의 깃털 같은 것들이 희끗거리는 것이 보였다. 끊
겼던 눈발이 다시 흩날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광장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 밤새 켜둔 가
등의 불빛 주위로 한여름 몰려드는 날곤충처럼 싸락눈의 설편들이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베란다의 문을 닫고 다시 서재로 돌아와 앉앗다. 탁자 위에는 스탠드의 불빛 아래 임
상옥의 저서가 놓여 있었다.
김기섭 회장이 집념으로 구한 기밀문서, <가포집>. 나는 그 책을 펼쳐서 좀 전에 읽었던
수수께끼의 문장을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 경진년에 새 집에 들어오매 숲과 연못, 꽃과 돌 사이에 새들이 집을 지으니 책이나 읽
으면서 만년에 휴식할 만한 장소가 될 듯하다. 만년에는 시를 읊는 가객으로 지내었으나 매
사가 평안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이루게 해준 것
은 그 하나의 잔이었다.'
그 문장 하나가 내 시야에 비수처럼 날카롭게 내리꽂혔다.
그렇다면.
나는 생각하였다.
한기철이 말하였던 그 깨어진 잔 역시 북한에 살고 잇는 그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었던 임
상옥의 유물이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한기철은 그 수수께끼의 잔이 깨어졌으므로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평범한 잔에 불과하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김기섭 회장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깨어진
잔을 무엇 때문에 소중하게 <가포집>과 함께 따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 깨어진 잔 역시 임상옥의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던 가보이며, 바로 그 깨어진 잔이야말
로 임상옥이 스스로 기록하였던 것처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자신을 이루게 해준 것
은 바로 그 하나의 잔' 이라는 문장에 나오는 '그 잔'임을 김 회장은 명백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흥분으로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 깨어진 잔이 임상옥을 이루었다면, 그 깨어진 잔은 김 회장에게 있어 임상옥의 전신인
것이다.
그 잔이 처음부터 깨어져 있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임상옥 당대에 그 잔이 깨어졌든가
아니면 그 후대에 분명 깨어졌을 것이다. 만약 임상옥 당대에 깨어진 곳이라고는 전혀 없는
온전한 고배였다면.
나는 가빠오는 호흡에 또 다른 흥분을 느꼈다.
그렇다면 후손들에게 전해져 보관돼 내려오는 중에 실수로 깨어져버린 것이 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아닐 것이다. 만약 후손들이 실수로 잔을 깼다면 분명 깨어진 부분을 찾아 원래 모습대로
복원시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의외로 간단할 것이다. 바로 임상옥 당대에 그 잔은 깨어
진 것이다. 그것도 금이 가거나 약간만 파손된 것이 아니라 삼분의 일 가량이 깨졌다면 그
잔이 깨어진 데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그 잔이 임상옥을 이룬 것
이 아니라 그 잔의 깨어진 사연이 임상옥을 이룬 것이 아닐까.
그렇다.
그 잔은 분명 누가 고의로 깬 것이다. 그 잔을 깬 장본인이 임상옥이든 아니든 그 잔이 깨
어진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보다 정확한 표현은 다음과 같아야 할 것이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이룬 것은 깨어진 잔이다.'
3
방조제로 남행하는 간선도로를 버리고 남양만으로 가는 사잇길로 접어들자, 차창 왼쪽 멀
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겨울 날씨치고는 햇볕이 밝은 날이어서 그런지 바다의 빛깔이 쪽빛으로 푸르렀다. 바다 가
까이 다가가는 도로 양편으로 유난히 겨울처럼 평평한 평야지대가 나타나고 있어, 처음에는
가을걷이를 끝내고 동면하고 잇는 전답지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염전이었다.
밀물 때면 자연적으로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을 가둬놓고, 농축시킨 바닷물을 자연증발시키
는 천일염전 지대였다. 한겨울이면 결빙기여서 염전이 폐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새 2월의 하순, 아직 매서운 해풍이 몰아치는 겨울이긴 하지만 그 칼바람 속에도 봄의 온기
가 스며드는 해빙기인 때문인지 염전들은 한결같이 개장하고 있었다.
지형이 평탄한 간석지들이 끝없이 펼쳐져 잇는 염전에서는 유난히 햇볕의 일사가 강하여
눈이 부실 정도였다. 칸칸이 구획을 정리해 놓은 염전지대의 한쪽에는 바짝 마른 해수 속에
서 사금파리와 같은 소금의 결정체들이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광활한 염전 너머로 푸른 바다가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따금 대여섯 대의 차들을 한꺼번에 실어나르는 대형 수송차들이 거리의 반대편에서 달려
오는 것으로 보아 그 바다 가까이에 자동차공장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서해안을 끼고 남행하는 국도에서도 분명히 '매화리 기평자동차 공장' 이란 거대한 입간판
을 확인했으므로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정확한 방향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평일 오후였으므로 도로는 한산하였다. 마침 썰물 시간이라 바닷물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개펄에는 가래침을 뱉어놓은 것 같은 암갈색의 바닷물 위로 바다갈매기들이 떼지어 날고 있
었다.
'기평자동차 공장 5킬로미터'
도로의 한곁에 달려가는 차의 방향을 따라 화살표가 그려진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공장
까지 5킬로미터가 남아 있다면 늦어도 십 분이면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네 시 사십오 분이었다.
한기철과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보다도 한 시간이나 일찍 공장에 도착한 셈이었다.
기평그룹의 모기업인 자동차공장을 방문하는 것은 내게 있어 처음이었다. 따라서 약속시간
에 늦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출발했던 것이다.
4, 5일 전 나는 한기철과 어렵게 통화를 했었다. 그 무렵 한기철은 회사의 일로 홍콩에 머
무르고 있었다. 비서실을 통해 2, 3일이면 돌아온다는 말을 들었지만 내 성급한 마음으로는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다.
임상옥의 저서 <가포집>이 북한의 주석 김일성을 통해서 임상옥의 후손들로부터 얻은 유
물임이 분명하고, 그 '깨어진 잔' 역시 김 회장이 임상옥이 후손들로부터 구한 유물이라면
그 깨어진 잔을 내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렵게 여기저기 물어 한기철과 통화된 것은 휴대폰이었다.
"웬일이십니까."
한기철은 몹시 놀란 목소리였다. 나는 길게 통화를 할 수 없는 휴대폰이었으므로 단도직입
적으로 간단하게 용건만 말하기로 하였다.
나는 <가포집>과 함께 발견된 잔을 보고 싶다고 말을 꺼내었으며 임상옥의 연구를 위해서
는 반드시 그 잔을 보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나는 한기철이 쉽사리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으므로 보다 강한 어조로 덧붙여
말하였다. 그 잔이 비록 깨어져 값어치는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중요한 사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한기철은 쉽게 대답하였다.
"그 깨어진 잔이 그토록 중요하시다면 보여 드리거나 빌려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
니다. 제가 서울로 돌아가는 그 즉시 정 선생님 댁으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
예정보다 하루가 지난 어젯밤 한기철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무가 끝나지 않아서 하루 더 홍콩에 머무를 수밖에 없어서 연락이 늦었습니다. 죄송합
니다."
늦은 이유에 대해서 사과를 하고 나서 한기철은 말하였다.
"어떻습니까. 내일 오후에 시간이 있으십니까. 그 잔을 보여 드리고 싶어서 말입니다."
나는 좋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러면 저녁 여섯 시까지 경기도 화성군 매화리에 있는 기평자
동차 공장으로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의외의 느낌이었다.
그 깨어진 잔을 보기 위해서 무엇 때문에 기평자동차의 공장까지 가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
였다. 한기철이 그러한 내 마음을 벌써 눈치채었는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동차공장 한구석에 돌아가신 회장님의 숙소가 있습니다. 서울에 계실 때에도 회장님은
일주일에 하루쯤은 그 공장의 숙소에서 머루르시곤 하셨습니다. 노사분쟁이 심하던 저 80년
대에는 아예 그 숙소에서 4, 5년 가량 머무르고 계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숙소야말로
회장님의 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기철은 다시 말을 이었다.
"정 선생님이 제게 부탁하셨던 임상옥의 저서인 <가포집>이란 고서가 발견된 곳도 회장님
의 살림집이 아닌 바로 공장 속에 있던 숙소였습니다. 정 선생님이 지금 보고 싶어하시는
그 깨어진 잔이 발견된 곳도 바로 그 숙소입니다. 그 깨어진 잔은 아직도 그 숙소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정 선생님이 저와 함께 회장님의 숙소를 방문하신다면 그곳에서
또 다른 유물을 발견하실지도 모릅니다. 저희와 같은 문외한의 눈에는 띄지 않는다 하더라
도 정 선생님과 같은 전문가의 눈에는 새로운 유물이 발견될지도 모르니까요."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한기철의 말대로 그곳에 가면 그 깨어진 잔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있을 뿐 아
니라 어쩌면 그곳에서 임상옥과 상관이 있는 유물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다를 끼고 뻗어내린 야산을 돌아가자 갑자기 산 아래로 자동차공장의 전경이 드러났다.
바다를 메워 조성한 간척지에 세운 공장이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대로 약속장소인 공장 안으로 들어가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
렸다. 한기철은 오후 세 시부터 공장 안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고 오후 여섯 시쯤 회의가 끝
날 것이라고 말하였으므로 이미 도착해서 회의에 참석하고 있을 것이었다.
바다를 향해 내려가는 야트막한 경사를 따라 천천히 차를 몰고가는 동안 공장은 산 위에서
볼 때보다도 가까이 다가갈수록 엄청난 규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다를 막은 방조제를 경계로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항공모함처럼 자동차공장은
누워 있었다. 그것은 외부세계와 단절된 하나의 왕국과도 같아 보였다.
정문을 향해 차를 끌고 가자 굳게 차단기가 내려진 정문 수위실에서 사람이 나와서 다가왔
다.
내 신분을 확인한 그는 내게 출입허가증을 내어주면서 말하였다.
"길을 쭈욱 따라가시면 첫 번째 사무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 사무실에 가시면 임영준 차
장이란 분이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나는 출입허가증을 눈에 잘 보이도록 가슴에 달았다. 차단기가 열리고 나는 차를 몰아 공
장 안으로 들어섰다. 안내원이 가르쳐준 대로 곧장 앞으로 나아가자 작은 광장이 나타나고
광장에는 회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조각이었다. 아니, 조각품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설치미술과도 같은 작품이
었다. 거대한 원형의 조형물 두 개가 쌓아올린 석축계단 위에 포개어져 누워 있었다. 그 원
형이 무엇을 뜻하는가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바퀴의 상징물이었다.
두 개의 바퀴는 서로 경쟁하여 굴러가는 움직임과 속도를 나타내고 있었다. 또한 그 두 개
의 바퀴는 바퀴에 미친 바퀴벌레 김기섭 회장의 철학을 암시하는 공간예술이기도 하였다.
그 광장 뒤편에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주차장에는 공장에서 갓 생산되어 출고
된 신차들이 정돈되어 진열돼 있었다.
마치 열병식을 올리듯 일사불란한 모습이었다. 형형색색의 차들은 이제 마악 기울기 시작
한 하오의 햇살을 받고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 신차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카로스'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을 향해
달려가다가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 추락하여 죽은 영웅. 그 신화의 주인공처럼 자신이
개발한 신차 '이카로스'를 타고 무제한의 속도로 달려가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김기섭. 바
퀴벌레 김기섭은 죽고 그 대신 '이카로스'는 탄생되었다.
하오의 햇살을 받으며 형형색색의 빛깔들로 넓은 야적장에 정렬되어 있는 신차 '이카로스'
의 모습들은 김 회장의 표현처럼 이제라도 당장 발굽으로 힘차게 땅을 박차고 말갈기를 휘
날리면서 달려갈 준비를 끝내고 있는 기마들처럼 보였다.
나는 정문 안내원이 가르쳐준 대로 첫 번째 건물로 다가갔다. 차를 세우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임 차장을 찾았다.
"어떡하죠. 아직 회의가 안 끝났는데요. 오신다는 연락은 받았습니다만."
젊은 임 차장은 회사 마크가 새겨진 푸른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한 실장님이 회의가 끝날 때까지 공장 내부를 시찰시켜 드리라고 했는데 괜찮으시겠습니
까."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그 한 시간을 무료하게 기다리는 것보다 그의 말대로 공
장 내부를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차를 타고 출발하였다. 출발하기 전에 임 차장은 내게 안전모를 권
하였다.
공장은 몇 개의 단위공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엔진의 주물을 생산하는 주조공장, 자동차의 차체를 구성하는 부품을 생산하는 프레스공장,
자동차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진을 생산하는 엔진공장, 자동차의 주요 부품인 보디와
캐빈을 찍어내는 금형공장, 승용차의 보디 및 화물차의 캐빈 등 주요 차체를 도장하는 도장
공장, 그리고 엔진공장으로부터 엔진, 도장공장으로부터 캐빈 및 보디 등 수만 가지의 각종
부품들이 집중되어 자동차가 조립되는 조립공장이었다.
내가 가장 흥미를 느낀 곳은 조립공장이었다. 3백 미터에 가까운 컨베이어가 거대한 공장
내부를 돌아가는 동안 수만 가지의 부품들이 조립되고 결합되어 마침내는 신차 '이카로스'가
완성되어 나오는 것이었다. 마치 하나의 정자로부터 인간이 탄생되듯이 수만 개의 부품들이
합쳐져서 마침내는 현대인들의 말인 승용차가 탄생되는 것이다.
차야말로 현대문명의 꽃이며 과학문명의 총아라는 사실을 나는 불과 5분 만에 한 대씩 생
산되는 공장 내부에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조립공장 안에서 안내를 하던 임 차장이 휴대폰을 들고 뭐라고 대화를 나누었다. 공장 내
부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소음으로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서둘러 조립공장을 나오자 그가 말하였다.
"방금 회의가 끝나셨답니다. 실장님이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서는 한기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가시죠. 회장님의 숙소로 함께 가실까요."
번호판이 없이 공장 내에서만 운행되는 회사차를 사용치 않고 우리는 내 차를 타고 함께
출발하였다.
수평선 너머로 이미 해가 졌는지 선혈과 같은 붉은 노을이 수술대 위에 마취된 환자의 혼
수상태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공장의 내부를 깊숙이 가로질러 바다 가까이 가장 가늘게 뻗어내린 육지의 끝부분
인 곶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땅의 끝부분이었으므로 삼면이 모두 바다였다. 바다를 메워 만든 간척지에는 마치
종합운동장 같은 스타디움이 건설되어 있었다. 웬 경기장이 공장 내부에 마련되어 있는가,
의아해 하였지만 자세히 보니 그것은 트랙이었다. 사람들이 달려가는 트랙이 아니라 자동차
들이 달려가는 원형 트랙이었다. 신차를 개발할 때마다 자동차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주행시험장인 모양이었다.
그 시험장 뒤쪽은 가파른 언덕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공장의 대부분은 바다를 매립하여 만
들었고, 부지 확보를 위해 바다를 향해 뻗어내린 야산을 절개하여 평평하게 인위적으로 조
성했지만 그곳은 원래 있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울창한 송림 사이로 주택 한 채가 바다를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이곳입니다."
자갈밭으로 이루어진 주차장에 이르자 한기철이 말하였다.
"차를 세우십시오."
자갈이 급정거하는 바퀴에 튀어 차체를 때렸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송림 아래는 가파른
절벽이었다. 절벽 아래로 몇 개의 암벽이 보이고 그 갯바위를 향해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들
고 있었다.
갯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의 포말이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고 낭떠러지의 밑동을 때리는 거친
바닷물로 소나무숲 어귀에 누워있는 주택은 난파하는 배처럼 표류하고 있었다.
"이곳이 돌아가신 회장님의 숙소입니다."
한기철이 그 집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나는 그 주택을 바라보았다. 김 회장의 숙소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낡은 단층
주택이었다. 원래는 밝은 페인트칠을 한 주택이었는데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빛이 바래 잿빛
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저 집은 회장님의 숙소가 아니라 살림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
장님은 해마다 연초에는 이곳에 와서 새해를 보내시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곤 하셨습니다.
그럴 때 회장님의 유일한 취미는 저기 보이는 주행시험장에서 직접 차를 몰고 트랙을 달려
가는 일뿐이었습니다."
바다를 향해 만들어진 창문에 커튼이 굳게 드리워져 있어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주택 앞
으로 땅을 골라 정원이 만들어져 있었지만 그 흔한 정원수 하나 심어져 있지 않았다. 거친
바닷바람에 비틀어진 소나무들만 서 있을 뿐이었다. 한때 정원에 잔디를 심었던 흔적이 보
였지만 거친 바닷바람의 짠 염기로 대부분은 죽어버린 듯 검은 흙이 보일 뿐이었다.
유일하게 멋을 부린 것이라곤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비치 파라솔 한 개가 꽂혀 있는
것뿐이었다. 그 파라솔의 빛깔이 유난히 현란해서 주위의 풍경과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겨울이어서 접어두면 좋으련만 시도 때도 없이 펼쳐져 있는 파라솔 밑으로 접으면 의자가
되고 펼치면 누울 수 있는 간이의자가 한 개 놓쳐져 있었다. 방금 누군가 그 의자에서 누웠
다 가버린 듯 간이의자는 길게 펼쳐져 있었다.
"회장님이 이곳에 머무르실 때는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와서 식사를 해주고 살림을 도와
주곤 하셨습니다. 회장님은 혼자서 이곳에 머무르시기를 좋아하셨습니다. 비서들도 저 언덕
아래의 기숙사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뿐 이곳에서 회장님과 함께 머무르지는 못하였습니다."
한기철은 그 집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미리 사무실에서 준비해온 듯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그때였다.
바다를 향해 만들어진 창문 위에 무슨 팻말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바다의 직사광을 막는
차양 아래로 나무로 만든 현판이 내걸려 있었다.
나는 그 현판을 올려보았다.
그 현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씌어 있었다.
'계영당'
오래된 고목의 나무등걸을 베어내고 그 나무를 파내린 후 그 자리에 먹물을 입혀 만든 널
조각이었다. 처음에는 그 붓글씨가 선명하게 보였겠지만 역시 바닷바람으로 글씨의 대부분
은 날아가 버렸으므로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현판이 바로 이 주택의 이름임을 알 수 있었다. 한기철의 말대로 이 초라한 주택
이 김 회장이 가장 사랑하던 당우임이 확실하다면, 저 현판에 씌어진 이름이야말로 김 회장
자신이 지은 당호임이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저 현판에 씌어진 당호의 뜻은 무엇인가.
'계영당'
굳이 그 뜻을 직역하자면 '가득 채움을 경계하는 집' 이란 뜻이 아닌가. 가득 채움을 경계
하는 집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손을 들어 그 현판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힌기철은 내가 가리킨 손끝을 바라보았다.
"글쎄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난 저곳에 저런 현판이 내걸려 있었던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
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기 전에는 난 전혀 보지도 못했던 것인데요."
한기철이나 나나 대동소이하였다.
"어쨌든 저 당호는 회장님 자신이 붙인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회장님은 자신이 일으
킨 자동차공장 안에 있는 이 주택을 자신의 보금자리라고 말씀하곤 하셨으니까요. 회장님은
이 집을 '계영당'이라고 불렀을지는 모르지만 저희들은 이 집을 '청송대'라고 부르곤 했지
요."
한기철은 열쇠를 구멍 속에 넣어 비틀었다. 찰카닥. 자물쇠가 열렸다. 현관문을 열고 우리
는 어두운 실내로 들어갔다. 아직도 잔광이 남아 있어 시야가 밝은 바깥과는 달리 실내로
들어오자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가만 있자, 여기 어딘가에 스위치가 있었는데."
혼잣말을 하면서 한기철이 벽을 더듬었다. 그러다 마침내 스위치를 발견하였는지 딸깍 하
는 소리가 나고 이어서 반짝이며 실내의 등이 켜졌다.
불이 켜지자 거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실내의 풍경이었다. 손님을 맞는 소파
가 한 세트 놓여 있었고, 벽면에 만들어진 붙박이장에는 몇 권의 책이 꽂혀져 있었다. 대충
책의 제목을 훑어보았지만 고양서적은 전혀 없고 모두 전문서적들이었다.
집도 주인을 잃으면 차츰 무너져가는 것일까. 주인인 김기섭이 죽은 지 두 달 정도밖에 되
지 않았는데 실내에는 냉랭한 한기가 감돌고 있었다. 매캐한 먼지냄새 같은 것도 풍기고 있
었다.
한기철은 서둘러 창문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땅거미가 내리고 있는 저녁바다 위로 아직 완
전히 사라지지 않은 낙조의 잔광이 남아 있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노을빛이 눈이 부
실 정도였다. 창문 밖으로 한눈에 서해바다가 펼쳐져 보이고 있었다. 한기철은 집안의 무거
운 분위기를 감지한 듯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낡고 초라한 외양의 모습처럼 집의 내부도 지극히 검소하였다. 멋을 부리기 위한 가구나
장식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있는 물건들은 지극히 생활에 필요한 도구들뿐이었다. 다만
소파에서 맞은편 쪽에 대형 TV수상기 세 대가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연달아 놓여져 있는
세대의 TV야 말로 집안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그러한 내 마음을 눈치챘었는지 한기철이 말하였다.
"회장님에겐 이상한 버릇이 있으셨습니다. TV를 즐겨 보시지는 않았지만 스포츠중계나 뉴
스시간은 꼭 챙겨서 보시곤 하셨습니다. 그럴 때면 한 프로그램에 집중하시지 않고 한꺼번
에 모든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보시는 습관을 갖고 계셨습니다. TV수상기가 세 대
나란히 놓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랍니다."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서 찬 바닷바람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무취미한 김
회장의 평소 성격을 엿볼 수 있듯이 거실에는 그 흔한 화분 같은 것도 없었다. 벽에는 바다
를 그린 풍경화 한 점이 걸려 있었거 그 밑에 무슨 물건 하나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 물건은 방안의 풍경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가 보았다. 그것은
바퀴였다.
둥그런 외륜 바깥으로 고무로 만든 공기타이어를 끼운 구식 자전거의 바퀴였다. 중심축에
서부터 빗금 모양의 쇠살들이 외륜을 향해 뻗어나가 있는 전형적인 자전거의 바퀴였다. 고
물상에나 놓여져 있을 이 낡은 자전거 바퀴가 어째서 거실 한쪽에 놓여져 있는 것일까, 하
고 나는 생각했다.
"이 자전거 바퀴가 왜 이렇게 놓여져 있습니까."
나는 한기철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그 자전거 바퀴는 회장님의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회장님께선 해방되자마자 일본으로
밀항하셨습니다. 그때 나이가 스무살도 되지 않은 청년이었을 것입니다. 회장님이 일본으로
밀항한 것은 오직 자전거의 바퀴를 만드는 기술을 터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자전거 만드는 기술은 조잡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자전거의 생명은
바퀴에 있으며 그 바퀴를 이루는 쇠살의 힘이 360도의 원형을 향해 골고루 뻗어나가야 하는
데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전거의 수명이 짧고, 조악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바퀴에 미친 청년 김기섭은 그 바퀴의 비밀을 터득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일본으
로 밀항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오사카에는 오무라 라는 사람이 공업사를 경영하고 있었습니
다. 그는 원래 일제시대때 조선에서 공작소를 경영하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는 특히 자전
거의 바퀴인 림의 제작에 있어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당대 제일인자였습니다. 회장님은
그 공작소에서 견습생부터 시작하셨습니다. 3년간 견습생을 거치는 동안 마침내 자전거의
비밀은 바퀴를 지탱하는 바로 자전거의 화살의 숫자에 있음을 알아내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 쇠살의 간격이 전체적인 균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회장님이
최초로 만든 바퀴가 바로 아 바퀴인 것입니다. 바로 이 바퀴 하나가 회장님의 기평그룹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제서야 나는 언젠가 김기섭 회장으로부터 직접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오른손의 새끼손가락과 자전거 바퀴 하나를 바꿔버렸지. 그러나 난 전혀 아쉽지 않았
소. 보다 완벽한 림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난 새끼손가락은 물론 오른손 하나와도 맞바꿀 마
음이 있었으니까. 아니, 그 이상이었지. 오른손은 물론 내 목숨과도 맞바꿀 마음도 있었으니
까."
이것이 그 자전거 바퀴인 것이다.
스무 살도 안된 나이에 일본으로 밀항을 해서 3년 동안 견습생 노릇으로 기계공작을 배운
뒤 마침내 자신의 새끼손가락 마디가 끊어져 나가는 고통과 함께 터득한 기술. 그 신기술로
만든 자전거 바퀴. 이 바퀴야말로 한기철의 말처럼 김기섭을 일으킨 태 그 자체인 것이다.
그 바퀴를 본 순간 나는 이 초라한 숙소를 자신의 보금자리라고 표현했던 김 회장의 마음
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들이 나뭇가지들을 물어다가 집을 짓듯이 김 회장은 자신
의 보금자리 속에 자신의 추억이 깃든 소중한 물건들을 따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실내를 한바퀴 훑어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깨어진 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내 마음을 눈치채었는지
한기철이 먼저 말하였다.
"회장님의 침실로 들어가실까요."
그는 다시 주머니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내었다. 중요한 물건은 없었지만 만일을 생각해서
방마다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집에 들어오기 전에 그가 무슨 카드
를 꺼내어 보안장치를 해제시키는 모습을 보았던 것도 같았다.
방문을 열고 김 회장의 침실로 들어섰을 때도 방안은 캄캄하였다. 벽면을 더듬어 다시 스
위치를 올리자 깜박깜박 거리다가 불이 켜졌다.
방안은 거실보다 더욱 협소하였다.
이 방이 국내 제일의 기업 총수가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잠을 자고 가는 방일까 싶게도
작았다. 그 방은 마치 대학교 근처의 하숙방처럼 보였다.
벽에는 붙박이 옷장이 만들어져 있었고,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침대가 덩그렇게 놓여 있었
다. 그리고는 바닷가를 향해 책상과 걸상이 놓여져 있었다. 그저 그뿐이었다. 책상 위에는
작은 방과 어울리지 않게 큰 지구본 하나가 덩그렇게 놓여져 있었다.
"선생님께서 부탁하신 임상옥의 책이 발견된 곳이 바로 책상 속에서였습니다."
한기철이 책상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나는 그가 가리킨 손가락끝을 눈으로 좇아 보았다. 그
책상 머리맡 스탠드 옆에 무슨 조그마한 토기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진흙과 같은 황토로
구워낸 평범한 고배였다.
하지만 그 잔을 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그 잔이 바로 한기철이 말하였던 그 잔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잔을 손으로 들어보았다.
과연 잔은 옆부분이 삼분의 일 가량 깨어져 있었다. 한눈에도 매우 단단한 잔이었는데 잔
이 이렇게 깨진 것은 실수해서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 일부러 내어던져 깨트린 것 같은 느낌
을 주고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초라해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였지
만 전체적인 모습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웠으며 기품까지 있어 보였다. 깨어지지만 않았어도
고가의 골동품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김 회장이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통해 의주에 살고 있는 임상옥의 후손
들로부터 직접 구해온 유물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김 회장에게 있어 임상옥은 평생을
통해 사숙했던 스승이었다. 그 스승의 저서를 책상 속에 넣어 보관하고 있었다면 스승의 유
물도 가장 눈에 잘 띄는 책상머리에 보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깨어진 잔은 분명히 임상옥의 손때가 묻은 유물일 것이다. 임상옥이 쓰던 물건임에 틀
림이 없다면 이 잔은 어쩌면 임상옥이 <가포집>에서 스스로 고백했던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이루게 해준 것은 그 하나의 잔"이라는 문장 속에 나오는 바로 그 잔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상당 부분 깨어져 아무런 쓸모도 없는 잔을 이렇게 소중히 보관하
고 있을 리 없지 아니한가.
"바로 그 잔이 제가 말씀드렸던 잔입니다."
한기철이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필요하시다면 빌려 드리겠습니다. 오늘 가을 개관되는 기념관에 전시될 물건이므로 그때
까지만 빌려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잔 역시 타인에게는 그 존재를 발설
하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는 무심코 그 잔을 들어 잔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술을 따라 먹는 술잔인지, 아니면 차
를 따라 먹는 찻잔인지 용도는 불분명하였지만 무심코 들여다본 잔의 내부에는 무슨 흔적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깨알처럼 작은 문자임에 틀림이 없었다. 나는 확인해 보기 위해서 스탠
드의 불을 켰다. 스탠드의 밝은 불빛 속에서 들여다본 그 흔적은 일부러 새겨넣은 몇 개의
문장이었다.
그러나 워낙 글씨가 작았으므로 밝은 스탠드 불빛으로도 그 글자를 판독할 수 없었다. 다
행히 책상 위에 놓인 볼펜이나 만년필을 꽂아두는 연필통 속에 확대경 하나가 꽂혀 있는 것
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확대경을 꺼내어 그 글자를 읽어 보았다.
첫 번째의 한자는 계 자였다. 그러나 두 번째의 글자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시선을 집중
해서 호흡을 멈추고 들여다보자 마침내 두 번째의 글자를 판독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영 자
였다. 나머지 두 개의 글자는 단숨에 읽을 수가 있었다. 그것은 기 자와 원 자였다.
이를 합쳐서 일어보면 다음과 같았다.
'계영기원'
그러나 술잔에 새겨진 글자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이어서 또 다른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
데 안타깝게도 글자의 배열상 두 개의 다른 문자는 깨어진 부분에 새겨져 있어 잔이 깨어져
나갈 때 함께 떨어져 나가 박락되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머지 두 개의 글자는 다음과 같았다.
그것은 동 자와 사 자였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문장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계영기원 00동사'
그 순간이었다.
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아니 이럴 수가.
나는 하마터면 그 잔을 떨어뜨려 다시 깨트릴 뻔하였다. 잔을 쥔 내 손이 와들와들 떨리는
모습을 보자 놀란 한기철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나는 헐떡이면서 대답하였다. 그러나 손쉽게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이것은 기적이다. 어쩌면 이런 일이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날 수가 있는가.
나는 깨어진 잔을 들어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그 순간 나는 떨어져나간 조각에 새겨져
있던 두 개의 문자가 무슨 글자인가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여 자와 이 자의 두 자였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전체적인 문장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계영기원 여이동사'
그 뜻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일 것이다.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
이뜻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음인가. '가득 채워 마시지 말라'는 뜻은 쉽게 알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이 잔에 술이건, 차건, 무엇이건 가득 채워서 마시지는 말라는 뜻인 것이다. 그
러나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란 뜻은 무슨 내용인가. 그대와 함께 죽기를 바란다에서 그
대는 도대체 누구를 말함인가.
그보다도, 어째서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 깨어진 잔이야말로 임상옥의 유물인 '계영배'인 것이다.
임상옥은 이 잔을 스스로 '계영배'인 것이다. 임상옥은 이 잔을 스스로 '계영배'라고 이름짓
고 언제나 어디서나 소중하게 지니고 다녔다.
그러나 '계영배'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야사에만 나오고 있는 일종의 민담인 것이다.
그러므로 임상옥이 소유하였던 '계영배'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민화 속의 전설에 불
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 전설 속에 나오는 '계영배'가 이처럼 실제로 존재하고 있지 아니한가. 평안북도 의주에
살고 있는 임상옥의 후손에 의해 소중하게 가보로 전해져 내려오던 바로 그 '계영배'가 이처
럼 야사의 심연에서 정사의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지 아니한가.
석숭 스님이 임상옥의 미래에 닥치리 세 번의 위기를 점지하고, 그 위기를 벗어나는 비기
로 전해준 바로 그 잔.
계영배.
이 잔이 바로 그 잔이었다.
임상옥은 이 잔의 이름을 스스로 계영배라 작명하고 평생 이 잔을 소중하게 가지고 다녔
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계영배야말로 임상옥이 고백한 바로 그 '하나의 잔' 이었던 것이다.
나는 김 회장의 집으로 들어오기 직전 창문 위에 내걸린 현판에 새겨진 당호를 떠올렸다.
계영당.
김 회장은 유일한 보급자리의 초라한 처마 밑에 자신이 지은 당호를 나무널판에 새겨 이를
내걸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김 회장은 이미 이 계영배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깨어진 평범한 잔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 임상옥을 구사일생하게 한 이 계영배의 모든 비밀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
다. 따라서 그는 이 깨어진 잔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임상옥을 완성시켜
준 그 잔에 얽힌 사연을 자신이 경영하는 상업의 타산지석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김 회장은 모든 사업구상을 하는 유일한 자신의 안가의 이름을 '계영당'이라고 이
름지었던 것이다.
계영당.
'가득 채움을 경계하는 집' 이라는 당호를 스스로 지어 그 현판을 처마 밑에 내걸음으로써
계영배에 얽힌 임상옥의 교훈을 자신의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좀체로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러한 내 마음을 알아차린 한기철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가 오랜 침묵 끝에 말하였다.
"이 깨어진 잔이 아주 중요한 유물이라도 되는 모양이지요."
"글쎄요."
아직 구체적인 그 계영배에 얽힌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였으므로 나는 애매하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 잔을 제가 빌려 가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선선히 한기철이 대답하였다.
나는 그 잔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젖힌 커튼 너머로 어
둠 속에 갇힌 짐승처럼 울부짖는 파도의 고함소리만 들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방안을 더 뒤져보시지요. 저는 이런 데 문외환이라서."
나는 한기철의 친절이 고마웠다. 그래서 천천히 방안을 뒤져보기 시작하였다. 협소한 방안
에는 붙박이 옷장과 작은 책상뿐이었으므로 확인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책상서랍 속에는 눈에 뛸 만한 물건이 없었다. 초라한 내용물들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
내용물 중에 흥미로운 것은 하모니카가 하나 들어 있다는 것이.
나는 무심코 그 하모니카를 들어 입에 대어 후- 하고 불어 보았다. 그러자 뽀옹- 하고 하
모니카 특유의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기철이 웃으며 말하였다.
"돌아가신 회장님의 유일한 취미는 하모니카를 부는 것이었습니다."
한기철은 자신이 부끄러운 듯 쑥스럽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회장님은 이 집에 오시면 혼자서 바닷가에 나가서 하모니카를 불곤 하셨습니다. 회장님이
즐겨 부르시던 노래는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어' 하는 노래와 '넓고 넓은 바
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로 시작되는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의 조그만 낡은 집에서 혼자 하모니카를 불던 국내 제일의 기업 총수
김기섭. 그것은 일에 미친 바퀴벌레 김기섭의 유일한 취미였다.
"어떻게 할까요."
방안을 뒤져보는 일을 끝내가 한기철이 말했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났으니 어디 가서 식사라도 하고 함께 올라 가시지요."
"좋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한기철이 말을 하였다.
"공장에서 가까운 곳에 작은 어촌이 있습니다. 주로 공장에서 일을 하는 생산직 사원들을
상대로 형성된 어촌인데 제법 회가 싱싱하고 먹을 만합니다. 그곳에 가서 간단히 식사 겹
반주를 하시지요."
우리는 말없이 방을 나왔다.
한기철은 불을 끄고, 젖힌 커튼을 다시 여며 닫았다. 거실의 창문도 다시 잠그고 일일이 점
검을 하였다. 한기철의 말대로 귀중한 물건들은 없었지만 침착한 성격대로 그는 보안장치를
확인한 다음 어두운 바깥으로 나왔다.
어둠과 함께 해풍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였는지 집밖으로 나서자 벌떼같은 바람의 입자들
이 한꺼번에 일어서서 소나무숲과 집을 할퀴고 있었다. 소나무숲 사이로 빠져 스쳐가는 바
닷바람 소리가, 페달을 밟은 풍금소리처럼 위잉- 위잉- 하고 들려오고 있었다.
그날 밤.
한기처로가 나는 어촌의 자그마한 횟집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처음에 나는 차를 타
고 집으로 돌아올 것을 염려해서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오늘 밤은 공장 안에 있는 숙소에서
함께 잠을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올라가자는 한기철의 유혹에 넘어간 나는 작정하고 술을 마
시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술을 마시지 않고 맨숭맨숭한 정신으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
문이었다.
원래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을 하던 제법 큰 어항이었는데 공장이 들어서고 난 뒤
많은 어부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고 난 듯 황량한 어촌이었다. 바다 가까이 횟집들이 줄
지어 서 있었다. 주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생산직 근로자들을 상대로 해서 술집이자 밥집
을 겸하고 있었다. 회사 마크가 새겨진 푸른 점포를 입은 청년들이 곳곳에 모여 있었다. 어
둠을 밝히니 알전구들이 가게들의 입구를 환하게 만들어 어촌의 정취를 돋보이게 하고 있었
다. 방파제 너머로 횟집에 생선을 대주는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
의 포말이 안개비처럼 어항을 적시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간 횟집은 한기철의 단골집인 모양이었다. 가게 앞 수족관에서 횟감으로 요리
할 생선을 미리 고르고 나서 한기철은 음식점 주인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하였다.
"우리 둘이서만 앉아서 멋쩍게 술을 마실 수는 없잖아요. 좀 계셔 보세요. 재밌는 일이 생
길 겁니다."
한기철이나 나나 술을 급하게 마시는 편이었다. 권커니 잣거니 소주 한 병이 금세 비었을
무렵 방파제 앞길로 오토바이 한 대가 나타났다. 헬멧을 쓴 젊은이가 음식점 앞에 오토바이
를 세웠고 뒷좌석에서 여인 하나가 내렸다. 여인을 내려주고 청년은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다.
키가 크고, 한겨울인데도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인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여인은 보자
기로 싼 물건을 들고 있었다. 여인은 사무적으로 와서 사무적으로 말하고 사무적으로 앉은
다음 사무적으로 보자기를 풀었다. 그러자 보자기 안에서 보온병 하나와 잔 두 개가 나왔다.
여인은 보온병에 들어 있는 커피를 잔에 따르기 시작하였다.
"커피를 시키셨어요?"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입니다. 커피부터 마시는 게 술꾼들의 주도가 아닙니까. 이리 와 앉아라. 네 이름이
뭐지."
"이향란이에요."
여인은 사무적으로 대답하였다.
"가명 말구 본명이 뭐냐니까."
짓궂게 한기철이 캐물었다.
"이향란이 제 본명이에요."
젊은 여인은 사무적으로 대답하였다. 그러자 한기철은 껄걸 소리내어 웃었다.
"맞아 맞아. 향란이면 어떻고, 향단이면 어때. 자, 술이나 한 잔 마시시지."
여인이 따른 커피는 아무도 마시지 않고 대신 술잔부터 채웠다. 여인은 주면 주는 대로 단
숨에 술을 마셨다. 나이는 젊은데 세파에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과 코, 입술 어느 하
나 성한 데가 없이 모두 뜯어고친 얼굴이었다. 그러나 비록 세파에는 지쳐 있었지만 젊은
나이가 주는 낙천적이니 명랑함이 술기운이 들어가자 곧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여인 어항에 몇 있는 다방에서 일하고 있는 종업원인 모양이었다. 이른바 티켓이라는 이름
으로 사가지고 온 여인이었다. 손님과 함께 지내는 시간만큼의 화대를 다방에 지불하고 그
시간동안 손님들과 즐겁게 노는 것이 여인의 할 일인 모양이었다.
술이 들어가자 여인의 몸에서 공식적인 태도가 갑자기 사라졌다. 여인 한기철의 어깨를 손
으로 때리며 오빠라고 아양을 떨었다. 오빠라는 호칭이 싫지 않은 듯 한기철은 그럴 때마다
술잔을 부딪치며 술을 마셨다.
어느 정도 주기가 오르자 한기철이 여인에게 노래 부를 것을 권하였다. 미리 음식점 주인
에게 노래를 부르는 여인을 골라 주문했는지 여인을 노래를 시키자 서슴지 않고 노래를 부
르기 시작하였다.
"사아공에의 배엣노래에 가아무울거리이며 사암하악도오 파도오 기입피이 스며드느은데
에..."
여인은 구성지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여인이 노래를 부르자 한기철은 젓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그제서야 한기철이 왜 티켓을 끊고서라도 다방에 있는 젊은 여인을 불러왔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식점 창문 밖으로 검음 밤바다의 파도가 연신 으르렁거리고 있었고, 시간이 늦었는지 서
성이던 근로자들의 모습도 사라져버린 텅 빈 어항. 거리를 밝히기 위해 내건 안전등의 흐린
불빛만이 광원의 머리에 걸린 불처럼 막장같이 캄캄한 바다를 밝히고 있었다.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육지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바람에 실린 파도가 몰아치고 있는
방안은 금방이라도 난파되어 어디론가 휩쓸려 떠갈 것만 같았다.
스산한 바닷바람과 유령과 같은 파도소리를 뚫고 노래 부르는 여인의 목소리야말로 모든
것이 쓰러지고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는 이 바다의 공동묘지 속에서 유일하게 생명력을 지
니고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여인이 부르는 노래는 마디마디가 그대로 살아서 술 취한 내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들고 있었다. 여인이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하고 노래 부르면 실제
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같았다. 여인이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속절없는 사랑아' 하고
노래 부르면 실제로 사랑이 나팔꽃 같고, 사랑이 속절없는 짓 같았다. 여인이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라고 노래 부르면
아아 그렇구나, 추억이 있는 한 나는 당신의 남자로구나 하고 머리가 끄덕여졌다.
마침내 한기철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평소에 보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깔끔하고
항상 빈틈이 없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웃통을 벗고 맨 와이셔츠 차림으로 마치 숟가락이
마이크나 되는 양 입에 대고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그의 숨겨진 본래 모습처럼 보
였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홀로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그는 거의 악을 쓰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은 노래가 아니라 절규이자 발악이었
다. 그는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이마에는 핏줄이 돋아나 있었다.
나는 들고 온 가방 속에서 깨어진 잔을 꺼내었다. 계영배. 나는 그 잔을 식탁 위에 올려놓
고, 그 속에 소주를 따랐다. '가득 채움을 경계하는 잔' 이란 이름 그대로 그 잔에는 술을 가
득 채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잔은 깨어져 있어 가득 채우면 술이 밖으로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술을 따른 잔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잔 속
에 새겨져 있었던 깨알같이 작은 글자들이 물에 부풀어오른 듯 확대되어 크게 보인다는 점
이었다. 평소에는 육안으로 판독할 수 없을 만큼 작은 글자여서 확대경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문장을 읽을 수 없을 정도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술이 잔을 채우자 빛의 굴절로 깨알같
이 작은 문장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것이었다.
'계영기원'
나는 술 취한 눈을 부릅뜨고 술잔에 어리는 첫 번째 문장을 들여다보았다. 나머지 문장은
깨어진 술잔의 떨어져나간 부분에 새겨져 있었으므로 단지 두 자의 글자만 남아 있을 뿐이
었다.
'...동사'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
그렇다. 이 잔은 석숭 스님을 통해 임상옥에게 내려진 비기인 것이다. 이 잔은 다시 임상옥
에게서 2백년 만에 김기섭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김기섭에게서 내게까지 내려온 것
이다. 마치 계주경기에서 주자들이 바통을 터치하듯.
한기철은 완전히 취해 있었다. 아니 취했다기보다는 일부러 주정을 부리는 사람처럼 보였
다. 함께 술을 마신 적도 서너 번 있었고 독한 위스키를 더 많이 마신 적도 있었지만 한 번
도 자세가 무너지거나 옷매무새를 흐트린 적도 없던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그가 일부러 작정
하고 주사를 부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여인과 한기철은 일어서서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부둥켜안고 춤을 추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즐겨 부르는 빠른 템포의 노래였다.
"쿵따리 샤바라,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쿵따리 샤바라 빠빠빠빠빠빠...."
한기철은 눈을 감고 악을 쓰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고 여인은 여인대로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넓은 음식점의 실내에는 세 사람뿐으로 우리는 함께 어울리고 있었지만
결국은 모두 혼자였다. 여인은 여인대로 제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있었고 한기철은 한기철대
로 제 기분에 취해서 마치 격렬한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처럼 주먹을 휘두르며 노래를 부르
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상관없이 계영배에 술을 따라 혼자서 자작하고 있는 것이다.
술을 많이 마셔서 몹시 취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은 명료하게 맑았다. 나는 노래 부
르고 춤추는 그들과는 상관없이 잔이 비면 혼자서 술을 따르고 그리고 혼자서 술을 마셨다.
마음속으로 하나의 상념이 끊임없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계영배에 관한 이문 같은 것이었다. 석숭 스님은 속세로 떠나는 임상옥에게 최대의
위기를 물리칠 비기로 이 계영배를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석숭이 임상옥에게 주었을 때 이
잔은 한군데도 깨어지거나 파손되지 않은 온전한 잔이었다. 또한 임상옥은 이 잔을 소중하
게 간직하고 있었으므로 함부로 보관하여 이처럼 깨트릴 정도의 과오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
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잔은 깨어졌다. 깨어져도 삼분의 일 가량이 파손될 정도로 무참하게
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잔을 깨트린 사람은 누구인가. 임상옥의 후손들이 이 잔을 깨트
린 것일까. 아니다.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이 잔은 취급을 잘못하여 자칫 실수하여 떨어뜨
려 깨어진 것이 아니다. 잔의 형태로 보아 그런 작은 실수에는 금도 가지 않을 만큼의 강도
를 지니고 있다. 더구나 후손들이 집안의 가보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그렇게 소홀히 취급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깨어진 잔의 형태로 보아 이 잔은 일부러 박살을 내기 위해 있는 힘
을 다해 내팽개친 끝에 이처럼 깨어진 잔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술잔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하였다.
밤이 깊었는지 부둣가의 불빛도 하나씩 둘씩 꺼져가고 있었다. 그새 기승을 부리던 바닷물
도 마침내 썰물로 돌아서서 파도소리가 재갈을 물린 듯 잦아들어 있었다. 찾는 사람들이 끊
긴 듯 어촌도 파장을 보이고 있었다. 파도소리가 잦아들자 신기하게도 미친 듯 날뛰던 해풍
도 함께 스러들었다. 그러자 거짓말과 같은 바다의 풍경이 드러났다. 언제 그런 광기를 부렸
냐는 듯 시치미를 뗀 말끔한 바다 위로 눈부신 월광이 부서지고 있었다.
달밤이었다.
잦아든 파도처럼 여인과 한기철도 가라앉아 남은 술을 서로 나눠 마시고 있었다.
나는 계영배를 들여다보면서 생각하였다. 이 계영배가 석숭 스님의 예언대로 임상옥을 마
지막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이 아니라 이 잔이 깨어질 수밖에 없었던 숨겨진 사연이 임
상옥을 마지막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이 분명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계영배가 임상옥을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전무후무한 거부로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이 계영배가 깨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 사연이 임상옥을 조선 최대의 무역
왕으로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계영배가 이처럼 깨어질 수밖에 없었던 숨겨진 사연은 무엇
이었던가.
김 회장은 그 사연을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 깨어진 잔의 이름을 다서 자신
의 집 앞에 당호로 내걸고 있었지 아니한가.
"저 가겠어요."
미리 약속이 되었던지 달빛이 가득한 푸른 방파제 독길 위로 젊은 여인을 태워다 주었던
헬멧을 쓴 청년이 아까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발동을 걸고 있었다. 일부러 젊은 여인에
게 사인으로 보내는 듯 시동을 밟아 부르릉부르릉 엔진소리를 요란하게 내뿜고 있었다.
"갈 사람은 가야지."
선선히 지갑을 꺼내 티켓값을 지불하면서 한기철이 한바탕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중얼거
렸다.
"안녕히 계세요. 잘 놀았어요."
여인을 사라졌다.
우리는 묵묵히 창문을 통해 그 여인이 몽환적인 푸른 달빛 속에서 오토바이의 뒷좌석에 타
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인이 한 손으로 사내의 허리를 휘감자 기다렸다는 듯 투투타타 투
투타타- 오토바이가 굉음을 울리며 사라졌다. 우리는 말없이 소주병에 남은 술을 서로의 잔
속에 따랐다. 간신히 한 잔씩을 채우고 술은 떨어졌다.
싱싱한 회임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일부러 살아 있는 생선의 모가지를 올려놓은 접시 속에
서 꿈벅이던 생선의 눈도 이미 잠들어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잔을 채워 마시고 일어섰다. 계산은 한기철이 하였다. 구두를 찾아 신고 먼
저 부둣가로 나온 나는 바다를 향해 서서 오줌을 누었다. 밤하늘엔 엄청나게 큰 달이 떠 있
었고 월광이 잔잔한 바다 위에 일렁이고 있어서 바다는 마치 거대한 꽃밭과도 같았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좀 전에 들었던 여인의 노래를 떠올리면서 나는 통속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 또다시 떠날 때가 되었다. 항구를 떠나는 배처럼.
임상옥의 일생을 추적하는, 그리하여 계영배에 얽힌 임상옥의 숨겨진 사연을 밝히는 나의
작업을 이렇게 해서 또다시 시작되었다.
제 2장 개미와 꿀
1807년.
11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던 순조가 즉위한 지 7년째가 되던 해. 그해 9월.
임상옥과 박종일은 성급히 한양으로 상경하였다.
이때가 임상옥의 나이 29세 때의 일이었다.
임상옥이 박종일과 성급히 한양으로 상경한 것은 당대의 세도가였던 박준원이 68세의 나이
로 숨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박준원.
조선 후기의 문신. 어려서부터 육경과 백가의 글에 두루 능통하였던 대학자였던 박준원이
갑자기 권세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을 그의 딸이 정조의 부인이 된 이후부터였다.
박준원의 3녀였던 딸이 수빈으로 뽑히자 그의 벼슬길은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수빈이 원자를 낳게 됨으로써 세자의 외할아버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호산
의 노고로 퉁정대부에 올라 항상 대궐에 머물면서 원자를 보호하고 보도하였던 것이다.
마침내 1801년에 이르러 자신의 외손주인 순조가 대왕위에 오르자 수렴청정하던 정순왕후
에 의해 호조, 형조, 공조의 세 판서와 금위대장 등 삼영의 병권을 8년 동안이나 잡고 있었
던 권세의 핵이었다.
오늘날에도 그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가 여주에 남아있는데 그 비문을 지은이는 순조라고
알려져 있을 만큼 대단한 권력을 누리던 당대의 거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임상옥이 당대 권부의 핵심이었던 박준원과 도대체 무슨 인연이 있어 그의 상에
참석하게 위해 의주에서 한양까지의 그 멀고도 먼 2천 리 길을 단숨에 달려왔던 것일까.
이는 솔직히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시호를 충헌 이라고까지 받았던 박준원에 대
한 문상 때문은 아니었다.
임상옥이 부랴부랴 참석하였던 것은 한 가지의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박준원의 아들 박종경 때문이었다.
청렴하고 결백하였던 아버지 박준원과는 달리 그의 아들이었던 박종경은 그 권력의 맛을
철저히 즐기던 당대 제일의 세도가였던 것이다.
이 무렵 권력을 주물렀던 사람은 박종경과 김조순 두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 홍경래의 난이 났을 때 홍경래는 멀리 사람들에게 알려서 부추기는 격문
을 쓰는데 그 격문의 서두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 나라는 유충한 임금 순조를 두고 김조순과 박종경의 무리가 국권을 농락하고 있다.'
서북의 혁명아 홍경래로부터 성토를 받을 만큼 박종경과 하나의 인물 김보순이 순조 왕조
의 권부를 휘어잡은 일대 거물이었던 것이다.
박종경을 비롯한 그의 부친 박준원은 대왕인 순조의 외척이었지만 김조순을 비롯한 안동김
씨들을 순조를 수렴청정하였던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근척이었던 것이다.
정순왕후는 경주김씨로 청정할 때부터 자신들의 인척들을 모두 벼슬에 등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순조의 나이 15세에 이르러 대비가 철렴환정하여 친정하게 되자 김조순의
세력은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박준원이 왕의 외할아버지였다면 김조순은 대비의 아버지로서 사람들은 그를 국구라고 부
르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결국 조선 후기의 그 혼란과 폐해는 왕과 왕비를 중심으로 한 그의 친척들에게서 파생된
것이니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 있는 곳에 그의 근척과 가신들이 있고 권력은 바로 그들에게
서부터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역사적 진리를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일이다.
어쨌든 임상옥으로서는 당대의 양대 세도가였던 박종경과 김조순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
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었다.
바로 이 무렵 조정에서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던 것이다.
이전에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인삼을 자유롭게 수출하고 세금만 내면 그 대금을 자유롭
게 갖고 들어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백삼이 홍삼시대로 넘어가자 매년 무역고가 백
만 냥 이상으로 올라 더 이상 국가에서 방치할 수 없는 재원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조정에서 생각해낸 것이 인삼 교역권.
말이 교역권이지 실은 인삼 독점권이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지금까지 의주에서 가장 큰 인삼왕이자 만상이었지만 만약 인삼 교역권을 확보하
지 않으면 그대로 하루아침에 구멍가게로 전락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형님."
임상옥보다 상술이 앞서 있던 개성 상인 박종일이 상심에 빠져 있던 임상옥에게 말하였다.
" 이렇게 앉아만 있으면 무슨 수가 납니까."
"그러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지요."
"호랑이 굴이라니."
임상옥이 묻자 박종일이 대답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공자께서 어느 날 아홉 구비가 구부러진 구멍이 있는 진기한 구슬을 얻
으셨다 합니다. 공자는 그 구슬에 실을 꿰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아낙네
라면 그 방법을 알고 있을 것 같아 근처에서 뽕을 따고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낙
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조용히 생각하십시오. 생각을 조용히 하십시오.' 공자는 다시 생각
끝에 그 뜻을 깨닫고는 개미를 잡아다가 개미허리에 실을 매었습니다. 개미를 구슬의 한쪽
구멍에 밀어넣고 다른 쪽 출구가 되는 구멍에 꿀을 발라서 개미를 유인했습니다. 공자는 아
낙이 일러준 밀에서 꿀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형님은 이미 진기한 구슬을 얻으셨습니다. 옛
말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듯이 그 진기한 구슬을 꿰려면 반드시 개
미와 그 개미를 유혹하는 꿀이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박종일이 말하였던 공자의 이야기는 유명한 고사성어 중의 하나인데 이를 '공자천주'라고
부르고 있다.
공자천주라 하면 문자 그대로 '공자가 구슬을 꿰다.'라는 뜻이지만 그 뜻의 교훈은 자기보
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세 사람이 길을 길을 가면 그 중에 한 명은 반드시 나의 스승이다.'
평소에 이렇듯 배움을 강조하였던 공자였던 터라 그 유명한 고사를 임상옥이 모를 리 없었
지만 박종일이 말하는 그 말의 뜻을 알 수 없어 임상옥은 다시 물어 말하였다.
"자네가 하는 말의 뜻을 모르겠네."
그러자 박종일이 말하였다.
"형님은 천하의 장사꾼이면서 어찌 제 말의 뜻을 모르십니까. 형님은 이미 아홉 구비가 구
부러진 구멍이 있는 진기한 구슬을 얻으셨습니다. 그래서 공자님처럼 그 구슬의 구멍 속에
실을 꿰려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뽕을 따는 여인의
말처럼 개미를 잡아다가 개미허리에 실을 매고 구슬 안쪽에 밀어넣고 다른 쪽 출구에 꿀을
발라 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형님과는 상관 없이 개미가 제 스스로 알아서 출구를 찾아나가
마침내 구슬을 꿸 수 있을 것입니다."
개미와 꿀.
이것은 개성 상인 박종일이 임상옥에게 가르쳐 주었던 장사의 기술 제 1조였다. 오직 상도
에만 치우쳐 있었던 임상옥에게 박종일은 상술의 경영철학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박종일은 현실주의적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 모든 설명에도 아직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던 임상옥에게 박종일은 다음과 같이 말을 덧붙였다.
"무릇 장사에는 반드시 권세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작은 장사에는 작은 권력이 팔요하
지만 큰 장사에는 큰 권력의 힘이 필요합니다. 장사란 무릇 이익을 추구하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익을 추구하는 장사와 힘을 추구하는 권력이 합쳐지면 거기에서 이권이 생겨나
는 법입니다. 지나치게 권세에 의지하면 그로 인해 멸망하게 되지만 또한 권세를 지나치게
멀리하면 그로 인해 흥하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장사와 권세의 관계는 입술과 치아와의 관
계와도 같습니다. 입술과 치아는 함께 있지만 서로 떨어져 서로의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입
니다."
박종일이 덧붙여 말을 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순망치한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서로 의지하는 가까운 사이에 놓여 있어서 한쪽이 망하면 또 다른 편도 온전하기
어려운 관계임을 뜻하는 비유입니다. 권력과 상업은 서로 입술과 이빨과 같은 관계인 것입
니다. 서로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고 지나치게 멀지도 않습니다. 이를 불가근 불가원이라고
합니다. 권력은 힘이 있지만 돈이 없고, 상업은 돈이 있지만 힘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말씀드린 개미와 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실주의적 경영철학을 갖고 있던 박종일의 상술 제1조. '개미와 꿀'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개미는 권력과 같습니다. 형님은 구슬을 스스로 꿰기 위해서 수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개
미허리에 실을 매달 듯 권력의 힘에 잠시만 매달리면 됩니다. 나머지는 개미가 알아서 구멍
을 뚫고 나갈 것입니다. 다만 그 개미를 유혹할 강력한 미끼가 필요한데 그것이야말로 꿀인
것입니다."
권력의 힘을 암시하는 개미를 유혹하는 꿀.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박종일은 웃으면서 말하
였다.
"개미를 유혹하는 꿀이야말로 돈인 것입니다. 형님, 바야흐로 이제 조정에서는 교역권이라
하여 전국의 상인 중에서 다섯 명만 골라 이 다섯 사람에게만 교역권을 준다 하였습니다.
말이 교역권이지 실은 독점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형님께서 그냥 가만히 계
신다면 교역권은커녕 인삼에 관한 무역조차 못하고 꼼짝없이 앉아서 거렁뱅이가 될 것입니
다. 그러므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 한다는 옛 속담처럼 이제는 호랑이 굴로
가야 합니다."
그러자 임상옥이 물었다.
"호랑이 굴이 도대체 어디인가."
"그것도 모르십니까."
한심하다는 듯이 박종일 대답하였다.
"호랑이 굴은 대왕마마가 계신 한양입니다. 권력이란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뻗어나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왕마마에게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권력의 힘은 그만큼 당해지기 마련입
니다. 아시다시피 인삼 교역권은 이권 중의 이권입니다. 전국 팔도의 인삼 상인들이 모두 한
양으로 몰려들어 오직 다섯 개에 불과한 그 교역권을 획득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을 것입
니다."
그리고 나서 박종일은 결론을 내렸다.
"지금 천하의 권세는 양대 세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김조순 대감이고 또
하나는 박종경 대감입니다. 두 사람 다 대왕마마의 친척이라는 데에 그 힘이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김조순 대감은 대비마마의 근척이고 박종경 대감은 대왕마마의 외척입니다. 이 두
사람이야말로 호랑이 중의 호랑이입니다. 인삼 교역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 두 사람뿐입니다."
김조순과 박종경.
이 두 사람이야말로 박종일이 꿰뚫어 본 권세의 핵이었으며 권력의 힘을 가진 개미였던 것
이다.
"하지만 나는 그 두 사람과는 전혀 안면이 없지 아니한가.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빌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적수공권으로 도와줄 변변한 사람도 없으며 찾아가서 상의할 양반조차 없
지 아니한가."
그러자 박종일이 말하였다.
"김조순 대감의 고향은 안동으로 아마도 서북인들을 별로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
오나 박종경 대감은 고향이 여주로 지역적인 편견은 갖고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 또한 제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저는 박종경 대감의 먼 친척뻘이 됩니다. 제가 본관이 반남(潘南)
인데 박종경 대감도 반남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남을 본관으로 하고 있는 박씨는 희성으로,
거의 모두가 한 핏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중하게 듣고 있던 임상옥이 마침내 입을 열어 말하였다.
"그것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지 않은가. 박종경 대감을 만나기는커녕 문전에서 박대 당하여
쫓겨나지 않겠는가."
"형님."
갑자기 박종일이 임상옥의 손을 만지면서 대답하였다.
"방금 한양에 있는 같은 송상으로부터 전갈이 왔습니다. 박종경 대감의 아비가 되는 박준
원 대감이 올해 예순여덟 살이 되었는데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어 회복하여 일어날 가망
은 없고 며칠 내로 운명하리라는 내용입니다. 이 전갈대로라면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닐 수
없나이다. 만약 박준원 대감이 죽으면 자연 대감의 집 대문은 문상객들을 위해 활짝 열릴
것이며, 따라서 그의 아들인 박종경 대감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형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단 한 번의 기회인 것이나이다."
당시 개성 상인들의 독특한 조직 송방.
바로 개성 상인들은 이 송방을 통해 장사에 필요한 정보를 다른 상인들보다 훨씬 다양하고
빠르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타지역 상인들에게 없는 오직 개성 상인들만의 조직이었다.
박종일이 임상옥에게 말한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단 한 번의 기회인 박준원 대감이 위독하
다는 정보도 바로 송방을 통해 박종일에게 신속히 전달된 것이다.
박종일의 정보는 정확하였다.
그해 9월.
마침내 당대 최고의 세도가였던 박준원 대감이 6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다.
"마침내 때가 오고 말았나이다."
박종일이 임상옥에게 말하였다.
박종일이 임상옥에게 말하였던 때가 왔다는 말은 천하의 권부였던 죽은 박준원의 아들 박
종경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륜지대사는 관·혼·상·제의 네 가지였다. 그 중에서도 상은 사례 중의
으뜸이라고 여겨졌었던 것이다.
만일 박종경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은밀히 그를 따로 만나 거금을 주었다면 이는 명백
히 뇌물인 것이다.
그러나 당대의 세도가였던 박준원의 상사에 부의금으로 거금을 보낸다면 이는 어디까지나
부정한 방법의 검은 돈이 아니라 인지상정의 상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갈 때가 되었나이다."
박종일이 임상옥을 부추기며 말하였다. 마침내 출발하기 전 박종일이 임상옥에게 넌지시
말하였다.
"자, 이제 개미는 잡았는데 꿀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임상옥은 박종일의 말을 빠르게 알아들었다. 즉 박종경에게 내어놓을 부의금을 말하는 내
용이었다. 천하의 세도가인 개미, 박종경을 유인할 달콤한 꿀, 그것은 부의금이라는 명목으
로 내어놓는 합법적인 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글쎄, 어떻게 하면 좋겠나."
평생을 관부에 기대지 않아 특권과 특혜를 누려보지 못하였던 임상옥인지라 사실 그로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박종일이 대답하였다.
"꿀은 달면 달수록 좋은 법입니다. 꿀이 달면 달수록 개미는 더 빠르게 구슬을 꿸 수 있을
것입니다."
임상옥이 다시 물어 말하였다.
얼만큼 달면 되겠나."
"형님."
임상옥의 질문에 박종일은 대답하였다.
"당대의 세도가인 박준원 대감의 상사이므로 전국 팔도 각지에서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몰
려들 것입니다. 팔도의 벼슬아치는 물론 갑부들도 떼로 몰려들 것입니다. 더구나 박 대감의
아드님이신 박종경 대감은 현재 총융사로서 아비의 뒤를 이어 천하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나
이다. 그러니 팔도의 수령, 아전들이 올리는 각 지방의 특산물은 물론 웬만한 꿀들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보다 월등한 금액이 아니고서는 박종경 대
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 얼마면 되겠나."
임상옥이 넌지시 물어 말하였다. 그러나 박종일은 일정한 금액을 말하지 않고 다만 이렇게
대답하였을 뿐이었다.
"그것은 형님이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박종일의 말을 들은 임상옥이 어음종이를 꺼내 그 종이 중앙에 붓을 들어 지급 금액을 적
어 넣었다.
"이 정도면 되겠나."
그러자 박종일이 냉정하게 말하였다.
"그 정도라면 팔도의 수령들이나 할 만한 금액이나이다."
박종일의 말을 들은 임상옥이 그 어음종이를 찢어버리고 다시 다른 종이에 새로운 금액을
적어내렸다.
"이 정도면 어떤가."
임상옥이 내미는 어음을 한눈으로 훑어보고 나서 박종일은 대답하였다.
"그 정도라면 전국 팔도의 방백들이나 할 정도의 금액이나이다."
박종일이 그렇게 말하자 임상옥은 다시 그 어음종이를 찢어버렸다. 삼세번이란 말이 있듯이
임상옥은 새로운 어음을 작성하였다.
붓을 들어 다시 어음종이 중앙에 지불할 금액의 액수를 써넣었다.
"이 정도면 어떠한가."
삼세번, 마지막으로 어음을 작성하여 박종일에게 내밀자 금액을 훑어본 박종일이 다시 그
종이를 내밀며 말하였다.
"어차피 상업이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고, 권력이란 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상업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이익을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이를 이권이라 합니다. 또한 상업과 권력이 합
치면 상권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남의 물건을 훔친 도둑은 도둑이지만 나라를 훔친 도둑
은 영웅이 되는 것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보다 큰 상권을 얻기 위해서는 보다
큰 권력의 힘을 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보다 큰 권력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는 아무도 맛
보지 못한 꿀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물며 형님께서는 이제 전국에서 다섯 개밖에 되지 않는
인삼 교역권을 따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닥뜨리고 있나이다."
그날 밤.
고민고민하던 임상옥은 한 장의 어험을 발행하였다. 박종일과 함께 임상옥은 서둘러 한양
으로 출발하였으면서도 박종일은 더 이상 임상옥에게 어음에 적은 출전 액수를 묻지 않았으
며 임상옥 역시 자신이 적은 금액이 액수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양으로 올라온 임상옥과 박종일은 곧바로 박준원의 상가를 찾아갔다. 과연 당대의 세도
가였던 박준원의 상가답게 전국 팔도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박준원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이 세 아들도 모두 대단한 세력을 갖고 있었는데 맏아들은 박종보로 세 아들 중에서 가장
청렴하고 인격자였다. 그는 여러 번 과거에도 떨어졌었고, 초년에는 빈한하게 살았으므로 높
은 관직에 올라 녹봉이 많아지자 즐겨 남을 도와주었다. 그는 자신이 총명해서 판서까지 오
른 것이 아니라 아버지 박준원의 공덕으로 벼슬아치에 오른 것을 평생 부끄럽게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음관.
조상의 공덕이나 아비의 은덕으로 벼슬아치에 오른 것을 음관이라 하였는데, 박종보는 호
조판서에까지 자신이 오르는 것은 불가하다 하여 스스로 상소를 올리고 사양하였던 선비였
다. 이를 본 정조대왕은 이렇게 박종보를 칭찬하였었다.
"비록 음관으로 벼슬에 올랐지만 풍도는 문신과 같으니 반드시 재상이 될 것이다."
맏형인 박종보에 비하면 차남 박종경과 삼남 박종신은 권력의 화신이었다. 박종경은 이미
한양의 궁궐과 치안을 전담하고 있는 총융사의 벼슬을 맡고 있었을 뿐 아니라 천하의 병권
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남 박종신은 두 형들과는 달리 조정에서 큰 벼슬에 오르지는 못하였지만 주막집 개들이
술꾼들이 마시다 버리는 술찌꺼기를 탐하듯 평생을 권력을 탐하던 소인배였다. 실제로 박종
신은 그로부터 4년 뒤 황해도 곡산에 부사로 내려갔다가 우리 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탐관오
리의 대명사가 되어 군민들에게 쫓겨나 추방당하였으며 그로 인해 마침내 홍경래의 난이 일
어나게 만든 그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이런 세도가이자 명문가의 집에 친상이 났으니 전국이 떠들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
이다.
임상옥과 박종일은 차례를 기다려 문상하였는데 어찌나 객들이 많았는지 오후 한나절이 되
어서야 간신히 빈소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빈소 앞에는 서기들이 앉아서 부의금들을 접수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사랑방에서 묵
고 있는 서생들이었다. 임상옥은 그들에게 가져온 어음을 내주었다. 접수를 하고 방명록을
작성하던 서생이 임상옥이 내민 어음을 보고는 깜짝 놀란 눈으로 다시 쳐다보았다.
부의금을 접수하는 서생이 놀라거나 말거나 임상옥과 박종일은 빈소에 들어가 넙죽 절하고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였던 것이다.
그날 밤부터 임상옥은 지금의 서울역 위에 있던 시장거리인 칠패에 숙소를 정하고 빈둥거
리는 한편 박종일은 부리나케 상가를 드나들면서 서생들과 문지기 종놈들을 매수하기 시작
하였다. 사랑방 서생들에게는 몇 푼씩 쥐어주고 술도 사주고 오입질도 시켜주는 한편 종놈
들에게는 개가죽 담배쌈지에 곰방대도 사주었다.
박종일은 잘 알고 있었다.
건넛마을 대감보다는 내 동네 사령놈이 더 무서운 것이고, 이 공사 저 공사 해도 '한마루
공사'가 제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목적을 위해서는 뭐니뭐니해도 하인이나 종놈들을 매수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잘 알
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뇌물로 군것질 재미를 붙인 박종경의 하인들은 '의주에 사는 임
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으며 그 임상옥이 칠패의 여인숙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
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면 임상옥은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무엇을 기다리
며 여인숙에서 하루하루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평안도 의주 변방에 사는 일개 장
사치가 천하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던 박종경과 무슨 인연이 있다고 무작정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바로 그 무렵.
무사히 상을 치른 박종경은 방명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방명록는 일일이 찾아온 문상객들
의 이름과 그들이 바친 부의금의 금액이 적혀 있었다. 명목이 부의금이었을 뿐 실은 뇌물이
라 수백 냥은 보통이었고 천 냥이 넘는 금액도 꽤 있었다.
박종경은 마음이 흡족하였다.
아버지 박준원에 대한 상례도 호상이었고 게다가 들어온 부의금 역시 천문학적 금액이니
꿩 먹고 알 먹는 식의 대만족이었던 것이다.
방명록을 훑어보던 박종경은 한 이름에서 갑자기 멎었다. 그는 방명록에 적힌 이름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방명록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평안도 의주 상인 임상옥'
박종경으로서는 생면부지의 이름이었다. 박종경은 총융사답게 전국 팔도의 벼슬아치 이름
과 웬만큼 세도를 부리던 사람들의 이름을 환하게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임상옥, 그런 장사치의 이름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던 것이다. 박종경은 본능적
으로 임상옥이 바친 부의금을 찾아보았다.
박종경은 임상옥이 바친 어음을 찾아 그 내역을 훑어보았다. 어음에 적힌 금액을 확인한
박종경은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웬만한 일에는 놀란 적이 없는 당대 제일의 세도가 박종
경이 아니었던가. 그런 박종경이 임상옥의 어음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처럼 놀란 얼굴을
하였단 말인가.
"여봐라."
박종경은 그 즉시 하인을 불러 말하였다.
"문상객 중에 의주에 사는 임가란 상인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느냐."
"쇤네가 알고 있나이다."
박종일이 모든 하인들을 이미 매수해 놓고 있었으므로 임상옥의 이름을 모르는 종놈들은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그자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칠패 거리의 여인숙에 머무르고 있나이다."
"그 여인숙을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나으리."
"그럼 가서 임상옥을 사랑으로 불러라. 내가 얼굴을 좀 보잔다고 그리 일러라."
하인은 신이 나서 총융사 대감의 하늘 같은 분부를 가지고 임상옥이 머무르고 있는 여인숙
으로 찾아가 말하였다.
"대감께오서 뵙자신다고 아뢰오."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임상옥은 그 즉시 의관을 정제하고 하인을 따라나
섰다. 임상옥에겐 임상옥 나름대로의 확신 같은 것이 있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천하의 세
도가지만 언젠가는 자신을 반드시 부를 것을 짐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과 박종일은 그 즉시 하인을 따라 박종경의 집으로 찾아갔다. 사랑방은 찾아온 사람
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박종경은 그 사람들 사이에 보료를 깔고 앉아서 이야기만 늘어지게
주고받고 있었다.
"대감, 문안인사 아뢰오."
임상옥이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리자 상견례라 하여 서로 마주보며 절을 올려야 하는 것이
당연하였지만 박종경은 비스듬히 누운 채 담뱃대를 입에 물고서 거만하게 물어 말하였다.
"어디 사시는 누구신가."
임상옥은 대답하였다.
"의주에 사는 상인 임상옥이라 하나이다."
"거기 앉으시게."
박종경은 분명히 자신의 명령으로 임상옥을 오라 하였으면서도 호랑이 수염이 무성한 턱짓
으로 윗목의 언저리를 가리켰을 뿐, 미리 와 앉아 있던 손님들과 다시 이야기만 걸판지게
늘어놓을 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잡은 세도가의 사랑방은 항상 사람들로 들끓고 있는 법이다. 어떻게
든 눈도장이라도 찍어 출세를 하려는 사람들과 뇌물이라도 바쳐 이권을 탐하려는 사사로운
무리들이 들끓고 있는데 이들은 예로부터 정상배라고 부리던 그런 사람들이 보통이었다.
박종경은 가장 아랫목에 비스듬히 누워 연죽이라 불리는 긴 담뱃대를 물고 빠끔빠끔 연기
를 빨아들이고 있었는데 그의 담뱃대는 백동을 기본으로 하고 오동과 금으로 시문하고 있던
최고급 담뱃대였다. 집안의 제일 어른인 박종경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므로 방안에서는 그
누구도 담배를 피우려 하지 않았다.
원래 담배가 떨어지면 옆에 하인을 앉혔다가 통 속에 담배를 재어올리게 하고 종놈이 쳐올
리는 부시로 불을 붙이는 게 보통이었으나 박종경의 경우는 달랐다. 담배가 떨어지면 서로
다투어 종놈처럼 통 속에 담배를 재어올렸으며 또한 서로 다투어 부시를 쳐서 불을 붙이곤
하였다.
원래 사랑방에서는 정치 얘기와 같은 무거운 화제는 금기로 되어 있었다. 사랑방에서는 담
소라 하여서 가벼운 시중의 화젯거리나 아니면 수수께끼 놀이 같은 것이 자주 벌어지곤 했
었다. 사랑방에 모인 사람 중의 하나가 문제를 맞추는 일종의 미어 놀이가 자주 벌어지곤
하였다.
가령 누군가 한 사람이 '먹으면 홀쭉하고 안 먹으면 통통한 것이 무엇' 하고 물으면 다른
하 사람이 '애어미의 젖통' 하고 대답하는 놀이였던 것이다.
여기서 오가는 수수께끼들은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음담패설이 대부분이었다.
"열 놈은 잡아당기고 다섯 놈은 들어가는 게 무엇" 하고 누군가 물으면 손님 중에 하나가
대답하곤 했다.
"버선 신는 것."
그러면 사랑방에 앉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와- 하고 웃곤 했었다.
임상옥은 윗목에 앉아서 물끄러니 손님들이 노는 꼴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분명히 자
시을 하인을 시켜 사랑방까지 불렀지만 불러놓고 잊어버렸는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있었
다. 임상옥과 박종일은 눈길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채 사랑방 손님을 위해 나온 점심까
지 얻어먹었다. 오후가 되어 박종경은 또다시 사랑방으로 나와 앉았으나 오전과 마찬가지였
다. 그는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앉아서 쓰다 달다 말도 없이 계속 담배만 피우고 있을 뿐이
었다. 성미가 급한 박종일이 안달하였으나 임상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 되자 박종경은 몸을 일으키며 말하였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소이다."
그리고 나서 박종경은 이렇게 덧붙여 말하였다.
"그런데 물러나기 전에 내가 한 가지 수수께끼 문제를 내겠소. 지금껏 여러분들이 내는 수
수께기는 들었소만 맞힐 수 없는 수수께끼를 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소. 그런즉 내가
문제를 하나 내겠으니 맞힐 수 있는 사람은 맞춰 보시오. 만약 이 문제를 맞힐 수 있는 사
람에게는 내가 큰 상을 내리겠소이다."
박종경이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온 사랑방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문제가 무엇이오니까." 손님 중의 한 사람이 성급하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박종경이 호랑
이 수염을 쓸어올리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요새 한양의 궁궐과 치안을 맡아하고 있는 총융사의 벼슬을 하고 있는데 제일 궁금
한 것이 하루에 숭례문으로 몇이나 출입하는지 그것을 모르겠소. 답답해서 대문을 지키는
군병들에게 그 숫자를 세어 보라고 하였더니 어떤 녀석은 하루에 대략 3천 명이 온다고 하
고 어떤 녀석은 하루에 7천 명이 온다고 대답하는 것이었소. 대답하는 녀석들마다 숫자가
달라 통 종잡을 수가 없단 말이오. 그러니 그 정확한 숫자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내일까지
그 수를 알아 오시란 말이오."
그리고 나서 박종경은 말을 덧붙였다.
"맞히는 사람에게는 내가 큰 상을 내리겠소이다."
밑도끝도 없는 수수께끼를 남기고 나서 박종경은 사랑방에서 나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임상옥과 박종일은 사랑방을 나와 여인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뭡니까."
성미가 급한 박종일이 안달하여 말하였다.
"종놈을 시켜 당장에 들어오라고 부를 때는 언제고 본척만척 하는 때는 언제입니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도대체 어음에 얼마나 적으셨길래 한나절을 윗목에 앉혀놓고 말은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또 뭡니까. 하루에 숭례문을 출입하는 사람
의 숫자가 몇 명이나 되느냐구요. 아니 그것을 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자 갑자기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여기 있네."
박종일이 미심쩍은 눈초리로 임상옥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형님께서 그 숫자를 알고 계시단 말입니까."
"...물론이지."
"그럼 그 숫자가 몇 명이오니까."
"대답할 수 없네."
빙그레 웃으면서 임상옥이 말하였다.
2
그 다음날 아침.
임상옥과 박종일은 또다시 박종경 대감의 사랑방으로 찾아갔다. 여전히 박종경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비스듬히 누운 채 담뱃대를 입에 물고 빠끔빠끔 담배연기를 뿜어 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대감, 문안인사 드리오."
임상옥이 어제처럼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리자 박종경은 거만하게 물어 말하였다.
"어디 사시는 누구신가."
어제 분명 어디에 사는 누구라고 이름을 밝혔지만 박종경은 금시 초면인 듯 빤히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소인 평안도 의주에 살고 있는 임상옥이라 하나이다."
"직업은 무엇인데."
"상인이나이다."
"상인 중에도 무엇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가."
"청나라와 인삼 무역을 하고 있는 만상이나이다."
"오, 그러한가. 거기 앉으시게."
박종경은 다시 턱으로 빈자리를 가리켰다. 어제와 다른 것이라면 어제는 맨 윗자리였는데
오늘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켜 가까이 앉혔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어제보다 박종경 대감 옆자리에 가까이 앉았을 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것은 여전
히 마찬가지였다. 다만 거리가 가까워 담배가 떨어지면 박종일이 통 속에 담배를 재어 넣었
으며 부시를 쳐서 불을 붙여 올릴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행운이랄까.
마침내 손님들로 방이 가득 차자 박종경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어제 저녁 내가 여러분들에게 수수께끼 문제를 내었소이다. 이 문제를 맞힐 수 있는 사람
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다고 미리 약조까지 하였소이다. 하루에 숭례문을 드나드는 사람의
숫자가 얼마인가, 그것을 묻는 문제였소. 어디 아는 사람들 대답을 하여 보시오. 간밤에 곰
곰이 생각해 보았을 터이니 대답들 하여 보시오."
비스듬히 누워서 박종경은 재미있다는 듯 실웃음을 띄우며 말하였다. 그러나 사랑방에 있
던 손님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을 뿐 누구 하나 입을 열어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손님들은 박종경의 말대로 밤새도록 심사숙고하였을 것이다. 문제를 맞히는 사람에게
는 큰 상을 내리겠다는 박종경 대감의 말은 평소의 그의 성격으로 봐서 틀림없는 사실이었
다.
그러나,
손님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하루에 숭례문을 출입하는 사람이 숫자를 어떻
게 정확히 알아맞힐 수 있단 말인가. 박종경 자신의 말처럼 숭례문을 파수하는 군병들조차
도 어느 날은 3천 명이 들고 어느 날은 하루에 7천 명 이상이 온다고 말하고 있지 아니한
가.
숭례문.
조선의 대표적인 성문인 숭례문. 편액에 씌어진 숭례문이라는 글자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
들인 안평대군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른 문의 편액이 가로쓰임이나 유독 숭례문의
편액이 세로로 씌어진 것은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함이라고 알려져 왔다.
어쨌든 과연 누가 숭례문을 거쳐 도성 안으로 드나드는 사람의 숫자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을 것인가.
주위를 둘러본 박종경이 아무도 대답이 없자 헛기침을 하면서 말하였다.
"아무도 없단 말이신가."
그때였다.
잠자코 대감 옆에 앉아 있던 임상옥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대감어른, 소인이 한번 대답하여 보겠나이다."
임상옥이 입을 열어 말하자 좌중의 사람들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말이 그렇지 천
하의 세도가였던 박종경 대감의 사랑방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내로라 하는 선비들과 묵객들
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눈에 변방에서 온 한갓 장사치의 존재는 실로 하찮은 것이었다. 그런
장사치가 감히 박종경 대감의 질문에 대답하고 나서다니.
"허어, 자네가 대답을 말하겠단 말이지. 자네가 숭례문을 드나드는 사람의 숫자를 알아맞힐
수 있단 말이지."
"소인 아는 대로 대답하여 올리겠나이다."
임상옥은 고개를 숙이고 공손하게 말하였다.
"그러한가. 그럼 대답하여 보시게나. 하루에 숭례문을 드나드는 사람의 숫자가 몇이나 될
것인고."
"...두 사람뿐이나이다."
임상옥은 고개를 들고 박종경의 얼굴을 마주보며 분명히 대답하였다. 임상옥의 입에서 도
대체 어떤 대답이 나올까 궁금해 하던 손님들은 일순간 어처구니가 없어 와아- 하고 폭소
를 터뜨렸다. 숭례문을 드나드는 사람이 하루에 두 명 뿐이라니. 과연 제정신이 있는 사람의
답변이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놀라운 것은 박종경 대감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비스듬히 누워서
뻐끔뻐끔 담배를 빨던 박종경이 순간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았던 것이다.
그뿐인가. 박종경은 몸을 바싹 임상옥에게 기울이고는 다음과 같이 물어 말하였다.
"그렇다면 자네는 그 두 사람이 성씨를 알 수 있겠는가."
"알 수 있습니다."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묻겠네. 하루에 숭례문을 드나드는 그 두 사람이 성씨가 무엇무엇인지 한번 대
답해 보시게나."
"한 사람의 성씨는 이가입니다만 나머지 한 사람의 성씨는 해가로 알려져 있나이다."
임상옥의 답변은 실로 엉뚱하기 짝이 없었다. 숭례문을 드나드는 사람의 총 숫자가 하루에
두 명뿐이라는 것도 그러하고, 더구나 그 두사람의 성이 이씨와 해씨라는 것도 그러하였다.
이씨라면 대종을 이룬 성씨지만 해씨는 과연 그런 성씨가 있을까 싶게도 드문 희성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을 받은 듯 박종경도 다시 물어 말하였다.
"그 두 사람의 성씨 중 한 사람이 이씨라는 것은 그럴듯하네만 나머지 한 사람의 성씨가
해씨라는 것은 믿을 수 없네. 해씨라는 성이 과연 있기나 한가."
그러자 임상옥이 말하였다.
"소인이 말씀드리는 성씨는 그런 이가와 그런 해가를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
"그러하면."
"소인이 글씨를 써서 말씀드리겠나이다."
당시의 풍습으로는 항상 사랑방에 지필묵을 준비해 놓고 있는 것이 상례였다. 왜냐하면 사
랑방에 모여드는 선비들은 대부분 글씨와 그림에 능통한 묵객들이었기 때문이다.
임상옥은 먹을 듬뿍 묻혀서 붓을 세워들었다.
임상옥이 쓴 글씨는 오직 두 자뿐이었는데 그 글자는 다음과 같았다.
"이. 해'
글자를 쓰고 나서 상옥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가 말씀드리는 두 사람의 성씨 중 한 사람은 이가이며, 또 한 사람은 해가란 뜻이나이
다."
순간 박종경이 담뱃대를 들어 탁상을 치며 호탕하게 껄걸 소리내어 웃었다.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좀더 자세히 설명하여 보시게나. 아니, 나뿐 아니라 여기 모
인 여러 손님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상세히 말씀하여 보시게나."
그러나 임상옥이 다시 입을 열어 말하였다.
"하루에 숭례문을 출입하는 사람의 숫자가 3천 명이건 7천 명이건, 때로는 하루에 만 명을
넘건,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대감 어른께 한 사람은 한 사람은 이로운 사람일 것이고, 나머
지 한 사람은 해로운 사람일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로운 사람도, 해로운 사람도 아닌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이므로 셀 필요도 없는 사람이겠으니 오직 있는 사람은 이로운 사람인 이가와
해로운 사람인 해가뿐이 아니겠습니까."
박종경 대감이 넌지시 손을 들어 사랑방에 모인 객들을 가리키며 물어 말하였다.
"이 사랑방에 오는 사람도 하루에 얼마가 되든 결국 두 사람뿐이겠네."
"그렇습니다. 대감어른."
임상옥은 분명히 대답하였다.
"대감어른 댁에 하루에 수백 명이나 손님들이 온다 하여도 결국에는 이로운 사람과 해로운
사람 단 두 사람뿐입니다."
임상옥의 말은 사랑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박종경 대감의 사랑방에
하루에 수백 명이 넘는 손님들이 온다 하여도 결국에는 이로운 사람과 해로운 사람 단 두
사람뿐이라는 임상옥의 말은 정곡을 찌른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명리를 좇아 벼슬 한 자리라도 얻으려는 사람들과 이권을 좇아 돈을 벌려는
상인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입으로는 박종경을 칭송하고 아첨하고 있
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익을 얻으려는 검은 속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명예를 중요시하는 선비가 이익을 탐하면 명리를 좇게 되고, 이익을 추구하는 상업이 권력
과 야합하면 이권을 노린 상권이 형성되기 마련인 것이다.
임상옥의 말에 넌지시 박종경이 사랑방에 모인 사람들을 두루 한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였
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내게 이로운 사람이 아니면 해로운 사람이렷다."
박종경은 물론 농담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검은 속셈을 가지고 방안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간담에 서늘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하면."
또다시 박종경이 임상옥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내게 이로운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내게 해로운 사람인고."
"내게 이로운 사람으로는 세 유형이 있고, 내게 해로운 사람으로도 세 유형이 있나이다."
"한번 말씀하여 보시게. 내게 어떤 사람이 이로운 사람인가."
"소인 말씀드리겠나이다."
임상옥이 입을 열어 대답하였다.
"이로운 사람으로는 세 유형이 있으니 그 첫 번째는 정직한 사람이오, 그 두 번째는 성실
한 사람이오. 그 세 번째는 박학다문한 사람이나이다."
"그러하면."
박종경이 수염을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물어 말하였다.
"내게 해로운 사람은 도대체 어떠한 사람들인가."
"대감어른께 해로운 사람으로도 세 유형이 있으니 그 하나는 아첨하여 정직하지 못한 자
요, 그 둘째는 신용이 없어 간사한 자요, 진실한 견문 없이 감언이설 하는 자가 그 셋째이나
이다."
임상옥이 대답하여 말한 내용은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금언 중의 하나이다.
공자는 <논어>의 '계씨' 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 명의 이로운 벗과 세 명의 해로운 벗이 있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박학다문한 벗이면 이
로운 벗이며, 아첨하여 정직하지 못한 자와 신용없이 간사한 자와 진실한 견문 없이 잘 둘
러대는 자는 해로운 벗이다.'
중국 속담에 주를 가까이하면 빨갛게 되고 먹을 가까이하면 검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벗과
우정과 신의를 중요시했던 공자의 가르침 중에 나오는 '이로운 벗과 해로운 벗'의 내용을 모
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임상옥의 대답은 사랑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침묵을 가져왔다. 그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다름아닌 박종경이었다.
"으핫핫핫핫."
느닷없는 박종경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고개를 들어 대감을 쳐다보
았다.
"내 수수께끼를 이렇게 쉽게 맞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정말로 몰랐었네. 맞았어, 맞으이.
하루에 숭례문을 드나드는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네. 내게 이로운 사람과 내게 해로운 사람,
단 두 사람뿐이야. 으핫핫핫핫."
그날 저녁.
사랑방에 있던 사람들이 각자 물러갈 무렵. 임상옥은 머리를 조아리고 하직인사를 하였다.
"대감어른,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그러자 거만하게 비스듬히 누워 인사를 받던 박종경이 담뱃대를 들어 재떨이를 두드리며
말하였다.
"잠깐. 잠깐 남아주시게. 내 자네에게 따로 할 말이 남아 있네."
임상옥은 시키는 대로 사랑방에 남았다. 모든 사람이 다 물러가고, 박종일조차 사라진 방안
에는 임상옥 혼자뿐이었다.
이윽고 어둠이 내리자 하인 하나가 찾아와 임상옥에게 말하였다.
"나으리, 대감어른이 오시랍니다. 따라오시지요."
임상옥은 하인을 따라 바깥채에서 행랑을 지나 안채로 들어갔다.
내실에서 박종경은 임상옥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상과 안주가 곁들인 주안상이 차려져
있었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대의 권세를 한 손에 장악하고 있는 박종경과 의주에서
온 상인 임상옥 단둘만의 독대였던 것이다.
박종경은 임상옥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만 가득 따라 넘치는 술잔을 계속 권할 뿐
이었다. 임상옥은 주면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몇 순배나 술잔이 돌아가고 취기가 오를 무
렵이 되어서야 박종경이 임상옥을 쳐다보며 비로서 말하였다.
"그대는 내게 있어 어떠한 사람인가. 아까 자네 입으로 말하였으니 자네 입으로 대답하여
보시게. 자네는 내게 있어 이로운 사람인가, 아니면 해로운 사람인가."
임상옥은 대답하였다.
"소인은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은 사람이나이다."
"그러하면 그대는 내게 있어 아무런 소용도 없는 쓸모없는 사람이군."
"그렇지 않나이다, 대감."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만약 소인이 대감어른께 이로운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대감어른의 해로운 사람이 될 것이
나이다. 이익이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이므로 다른 사람에게는 손해를 주게 되나이다. 그
러므로 이익이 있는 곳에 반드시 원망과 원한이 생기게 되어 있나이다."
"그러하면 자네는 내게 있어 어떠한 사람인가.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은 사람이라면."
"대감어른."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유어의하고 소인유어리라'하였나이다."
군자는 의를 따르지만 소인은 이를 따른다는 임상옥의 대답 역시 <논어>에 나오는 내용이
었다. 그 말을 들은 박종경이 소리를 높여 말을 이었다.
"그러하면 자네가 말하는 '의'와 '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신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므로 불의가 있을 수 없지만 이익은 내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므로 불의와 원한이 생길 수밖에 없나이다."
"그렇다면 자네는 누구신가. 우리집을 드나드는 두 사람, 이가도 해가도 아니라면 자네는
도대체 누구신가."
임상옥은 분명하게 말하였다.
"소인은 이가도 해가도 아닌 다른 성을 가졌나이다."
"그럼 무슨 성씨를 가졌는가."
임상옥은 대답하였다.
"소인은 의가이나이다."
자신의 성이 이가도 해가도 아닌 의가란 임상옥의 대답에 박종경은 새삼스럽게 임상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미 한 차례의 문답으로 임상옥이 변방에서 올라온 하찮은 장사치가
아님을 꿰뚫어 본 박종경이었지만 임상옥이 범인이 아님을 깨달았다.
박종경은 문갑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었다. 그는 그 종이의 내용을
펼쳐보았다. 그것은 부의금으로 내놓았던 임상옥의 어음이었다.
"지난번 친상을 당하였을 때 나는 이 음표를 받았었네. 그런데 방명록을 보니 이 어음을
보낸 사람이 자네 이름으로 되어 있던데."
"그렇습니다, 대감어른. 이 어음은 소인이 보낸 것이나이다."
"그래서 말인데."
박종경이 술잔을 기울이다 말고 정색을 한 얼굴로 임상옥에게 물어 말하였다.
"자네가 보낸 어음이 백지어음이었단 말이거든. 이를테면 출전의 액수가 적혀 있지 아니하
였던 백지어음이었단 말이야. 백지어음이라면 어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임의로 그 액수를
적어넣을 수 있고 그 어음을 발행한 사람은 그 액수가 천만 냥이 된다 하여도 이를 갚을 의
무가 있는 어음이라는 뜻이 아닌가."
임상옥이 마지막으로 쓴 어음에 적힌 액수는 자그마치 일만 냥이었던 것이다. 일만 냥이라
면 이는 보통 액수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박종일은 일언지하에 이를 무시하면서 이렇게
말하지 아니하였던가.
"보다 큰 상권을 얻기 위해서는 보다 큰 권력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보다 큰 권
력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는 아무도 맛보지 못한 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날 밤 고민고민하던 임상옥은 한 가지 중대한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어음에 적어낼 금액을 임의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나는 어음에 일만 냥을 적었다. 아무리 천하의 세도가인 박종경이라 할지라도 일만 냥의
뇌물은 받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 정도의 뇌물이면 박종경의 마음을 충분히 움
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 일만 냥의 뇌물은 곧 거기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욕망은 욕망을 부르고 탐욕은 탐욕을 부른다.'
밤새도록 고민하던 임상옥은 마침내 어음에 금액을 적어 넣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백지어음.
어음 발행자가 그 소지인에 대해서 금액, 지불지, 만기 등의 어음요건 전부의 권리를 부여
하는 백지어음을 발행하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상옥이 우리나라의 상인 중에서 백지어음을 제일 먼저 발행하였던 상인이
었을 것이다.
백지어음을 받은 사람은 그 어음에 자신의 임의대로 금액을 적어 넣을 수도 있다. 단돈 일
냥의 금액을 적을 수도 있으며 아니면 수천만 냥의 금액을 적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음에
그 어떤 천문학적 금액을 써넣더라도 반드시 임상옥은 그 금액을 갚아줄 책임이 생기는 것
이다.
오직 이 한 가지 방법뿐이라고 임상옥은 생각하였다.
'내가 천 냥을 쓰면 천 냥만큼의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만 냥을 쓰면 만 냥만큼의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내가 그 어떤 액수의 돈이라 할지라도 그 돈을 쓰면 그 돈만큼의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거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금액이 적혀 있지 않은 백지어음을 준다면 나 또한 백지의 마음을 받게 될 것
이다. 그것은 거래가 아니라 우정이 되는 것이다.'
임상옥의 생각은 적중하였다.
천하의 세도가였던 박종경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말로만 들어왔던 백지어음이었던 것이
다.
백지어음.
금액도, 지불 날짜도, 지불지도 모두 명기되어 있지 않은 백지어음.
인간 모두의 무한대의 욕망을 극명하게 나타내 보인 그 백지어음 한 장이 천하 제일의 권
력자인 박종경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대감어른."
"도대체 내게 이런 백지어음을 보낸 연유가 무엇인가."
순간 박종경의 눈빛이 번득였다. 수염뿐 아니라 얼굴 전체가 호상으로 사람을 쳐다보면 상
대방을 압도하는 형안이었다.
그러나 임상옥은 막힘 없이 대답하였다.
"처음부터 대감어른께 그런 어음을 드리려는 생각은 아니었나이다. 하오나 차츰 어음에 적
을 금액을 생각하는 동안 도저히 그 액수를 정할 수가 없었나이다. 솔직히 말씀드려 처음에
는 천 냥을 적었나이다. 그러다가 두 번째에는 오천 냥을 적었나이다. 마지막으로는 일만 냥
을 적었지만 그 어음을 찢어버릴 수밖에 없었나이다."
"어째서."
"그 연유는 이러하나이다."
임상옥은 술잔을 들어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소인이 천 냥을 쓰면 대감어른으로부터 천 냥만큼의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
다. 오천 냥을 쓰면 오천 냥만큼의 관심을, 만 냥을 쓰면 만 냥만큼의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소인이 그 어떤 액수를 적어넣는다고 하여도 그 액수만큼의
마음을 얻을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나이다."
"그러하면."
박종경이 물어 말하였다.
"자네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소인이 대감어른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은 관심도, 점심도 아닌 마음 그 자체이나이다.
대감어른, 사람에게 있어 호기심이나 관심은 돈으로 살 수 있사오나 마음은 이 하늘아래 그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나이다."
"그렇다면."
박종경이 백지어음을 임상옥에게 내던지며 말하였다.
"자네가 어음의 백지 위에 쓰고 싶은 것을 써보시게."
임상옥은 망설임 없이 붓을 세워들었다. 그는 단숨에 어음의 빈 백지 위에 무엇인가를 써
내렸다. 글씨가 마르기를 기다려 임상옥은 그 종이를 박종경에게 두 손으로 바쳐올렸다. 박
종경은 임상옥이 쓴 어음의 내용을 쳐다보았다.
'적심'
적심이라면 조금도 거짓이 없는 참되고 충성스러운 마음을 가리키는 말로 다른 말로는 단
심이라고 부른다. 박종경은 임상옥이 새로이 써 바친 어음을 문갑 속에 집어넣은 후 뚜껑을
닫으며 말하였다.
"이제 자네의 마음은 내 것이네. 자네는 언제든 내가 이 어음을 꺼내면 자네의 마음을 내
게 주어야 할 것이네."
"알겠사옵니다, 대감어른."
밤늦게까지 박종경과 임상옥은 술을 함께 마시고 대취하였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였던
것이다. 임상옥의 일생에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단 한 번의 정경유착은 이렇게 멋진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이었다.
정경유착.
반드시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할 정치와 경제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음
을 가리키는 검은 뒷거래의 경제용어.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보면 임상옥은 그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정경유착의 부도덕한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임상옥은 위에 금액을 쓰지 않음으로써 검은 거래의 대가를 받은 것이 아니라 박
종경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술상이 파장이 날 무렵 넌지시 박종경이 물어 말하였다.
"깜박 내가 잊을 뻔하였구먼, 내가 자네에게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무슨 약속이나이까."
"이 사람이 벌써 잊었는가. 내가 숭례문에 드나드는 사람의 숫자가 몇 명이냐고 수수께끼
를 내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이 수수께끼 문제를 맞히는 사람에
게 반드시 큰 상을 내리겠다고 말일세."
"그러하였나이다."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그 수수께끼를 맞힌 사람이 바로 자네 한 사람뿐이니 약조하였던 대로 자네에게 상을 내
려야 하지 않겠는가."
"망극하나이다."
마침내 박종경이 물어 말하였다.
"자네가 받고 싶은 상이 무엇인가. 한번 말씀하여 보시게."
박종경도 임상옥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이 명마라면 명마를 알아본
박종경도 명장이 아닐 것인가. 그는 이미 백지어음을 통해 임상옥의 비범함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비로소 입을 열어 말하였다.
지금까지는 자유로이 인삼을 사고 팔고 하였으나 이제부터는 조정에서 교역권을 공포하여
몇 사람에게 독점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그 교역권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대
답하였던 것이었다.
인삼 교역권.
이 교역권이 시작된 것은 정조 말년에 이르러 한 비변사가 삼포절목이란 상소를 올린 것으
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국방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주무관청인 비변사에서는 자주 사람을 보내어 변방의 경계상
태를 점검해 보곤 하였는데 이들이 돌아와 보고하였던 내용은 인삼을 중심으로 한 상인들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주로 중국을 오가는 역관들과 만상들에 의해 거래되는 인삼 때문에 사사로이 월
경하는 자들이 많아 자연 국경의 방비가 허술하여지고 또한 국가의 세수가 감소되고 있음을
간과한 비변사는 '무역하는 길을 열고 재화를 통제하는 권한이 조정에서부터 나오도록 하는
교역권'을 율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상소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전국의 인삼 유통망을 다섯 개로 축소하여 인삼을 무역하고 싶은 사람은 그 다섯
개의 창구를 통해 수출하도록 조정에서 통제하고 조정으로서는 이 창구를 통해 세수를 정확
히 거둬들이려 했던 것이다.
그날 밤.
임상옥은 천하의 세도가였던 박종경으로부터 인삼 교역권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뿐 아니
라 장인인 홍득주도 인삼 교역권을 딸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평생에 단 한 번 정경유착을 하였지만 백지어음에 금액을 쓰지 않음으로써 그는 검음
뒷거래에 물들지 않았으며 이는 천하의 세도가였던 박종경도 마찬가지였다. 박종경은 임상
옥에게 인삼 교역권을 주었으나 이는 거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낸 수수께끼 문제를
맞힌 것에 대한 약속을 지킨 결과였으므로 두 사람은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관계를 유
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로부터 박종경은 임상옥의 배후 인물이 되는 것이다. 또한 임상옥은 박종경의 백
지어음에 썼던 '적심' 그대로 평생동안 박종경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박종
경에게 자신을 '의' 가라고 표현하였던 임상옥은 먼 훗날 박종경에게 결정적인 보은을 하는
것이다.
훗날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박종경은 민심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게 된다. 이때 대사헌
조득영으로부터 탄핵을 받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박종경은 임금의 인척으로 위복을 누리면서 음탕과 뇌물만 탐내고 사적인 감정으로 살인
을 저지르는 등 행패가 많다.'
이에 박종경은 양주목사로 좌천되어 정치적 생명이 끝났으며 부임도 하지 못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기사회생하게 된 것은 임금이 갑자기 병환에 걸린 이유때문이었다. 병명을 모르는 중
환으로 사경을 헤매던 왕은 박종경이 지어다 준 약으로 쾌차하였는데 이 시약한 공로로 홍
경래 난의 상처를 씻고 화려하게 당대 제일의 세도가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박종경에게 사경을 헤매는 임금이 먹을 귀한 인삼을 선물하였던 사람이 바로 임상옥
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임상옥은 자신의 말대로 박종경에게 신의를 저버리지 않은 사람이었으며 박종경에
게 주었던 백지어음에 썼던 내용대로 '적심'을 지킨, 의로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제 3장 불매동맹
1
1809년 순조 9년.
이조판서 김노경을 진주사로 하는 대신 사신 일행이 한양을 떠나 연경으로 출발하였다.
진주사라 하면 매년 정기적으로 중국에 파견하는 사신과는 달리 임시로 통고할 일이 있을
때 부정기적으로 파견하는 사신을 말한다.
당시 조정에서는 해마다 정례적으로 청나라에 사신을 보내곤 했었다. 대개 동지를 전후해
보냈으므로 이를 동지사라 부르곤 했다.
이 사행은 동지를 전후해서 출발하여 대개 그해가 지나기 전에 연경에 도착하여 40일에서
60일 정도 묵은 다음 2월중에 떠나 3월말이나 4월초에 돌아오는 것이 통례였다. 사행의 구
성은 목적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50인 내외가 대부분이었고, 어떨 때는 500인이 넘는 사행
도 있었다.
예물은 황제에게는 여러 빛깔의 모시와 명주, 화문석 및 백면지였으며, 황후에게는 나전소
함과 여러 빛깔의 모시와 명주 및 화석이었는데 때로는 특별히 수달피 20장을 황제에게 바
칠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례적인 사신과는 달리 조정에서 특별히 사신을 보내 때가 자주 있었다. 이
를테면 왕실이나 국가의 중요한 사실이 중국 조정에 잘못 전해졌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어
문제가 야기되었을 때 이를 해명하고 그 정정을 요구하기 위해서 파견하는 특별사신이었던
것이다.
이 특별사신을 변무사라고 부른다.
사행의 규모는 정례사신인 동지사의 규모보다 대부분 컸으며 그 중대 사안에 비추어 변무
사를 대표하는 주청사의 직급도 동지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높았다.
그러나 정례적인 사행이 아니라 일종의 외교사신이었으므로 대부분 변무사의 우두머리인
진주사를 맡아 하지 않으려고 갖은 핑계를 대고 발뺌하곤 했었다.
바로 이 무렵.
연경으로 떠난 변무사 일행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해의 <승정원일기>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올 정도인 것이다.
'연경으로 떠날 진주사가 모두 병을 핑계 대고 교체해 주기를 바란 사람이 이미 여섯 사람
에 이르렀다. 막중한 사행이 웃음거리같이 되었으니 이런 일은 나라가 생긴 이래로 처음이
다. 전후사면을 청원했던 심상규, 곽상우, 이상횡, 홍의신, 김노음 등을 차례로 삭직하고 전
관이었던 김노경을 임명하였다.'
변무사의 주청사였던 김노경. 그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일찍부터 동지사 겸 사은부사로
연경을 자주 드나들던 사람이었다. 당대 최고의 명필로 지금도 남아 있는 '신라 경순왕전비'
의 글씨를 통해 낳은 최고최대의 명필 추사 김정희의 생부로 유명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김노경의 필력은 유전적인 것으로 그이 아들인 김정희에게 대물림하였는데 특히 사행을 통
해 일찍부터 연경을 드나들던 아버지 김노경을 통해 김정희가 실학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
그의 학문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바로 이때 24세이었던 김정희는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서 사신 일행에 합류하였던
것이다.
임상옥도 이 변무사의 사행을 따라서 연경으로 함께 떠났다.
그 무렵 임상옥은 벌써 당대 최고의 거상이 되어 있었다.
당대 최고의 세도가였던 박종경을 통해 얻은 인삼 교역권으로 인삼의 무역을 독점하고 있
었을 뿐 아니라. 장인 홍득주의 교역권도 관장하고 있었으므로 임상옥은 단시일 내에 당대
최고의 무역왕으로 발돋움한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그 당시 인삼 한 근은 은으로 만든 돈인 은자로 해서 25냥이었다. 그리고 순조 말
무렵. 의주 상인을 통해 공식적으로 나갔던 우리나라의 인삼은 4만 근 정도였으니까 4만 근
을 기준하면 은자 백만 냥에 해당하는 교역이 의주 상인 임상옥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엄청난 인삼 교역권을 쥔 임상옥이 매년 세금으로 조정에 바친 돈이 4만 냥이었다
고 알려져 있다. 이 막대한 이익에서 얼마만큼이 은밀하게 박종경의 손으로 흘러들어 갔을
지는 알 수 없지만 참고로 1822년 순조 22년 현재 조선왕조가 국고금으로 지녔던 비축재산
은 다음과 같다.
'황금 230냥, 은자 42만 2백 냥, 전 75만 9백 냥, 명주 134동 20필, 베 8천여 동, 저포 107
동, 포 443동, 쌀 13만 4천5백여 섬, 전미 4만 5천8백여 섬, 콩 2만 8천여 섬, 흉년을 대비해
비축해두는 곡식인 패잡곡이 2만 5천8백여 섬....'
조선왕조의 비축재산 내역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국가가 비축 은자의 총액이 42만
냥이었다면 임상옥이 거래하였던 인삼의 총 무역고가 은자 백만 냥이 넘었으니 조정의 재정
은 거상 임상옥이 다 잡아 흔든 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사행길에서 임상옥이 거둔 최대의 수확은 추사 김정희와의 만남이
었다. 그들의 운명적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김정희는 24세의 청년이었고 임상옥은 그보다 일곱 살이 많은 31세의 장년이었다.
두 사람은 비록 일곱 살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이번 사행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각별한
우정이 싹트게 되었다.
임상옥은 이미 십여 차례나 연경을 드나들어 모든 사행에는 없어서는 안될 해결사였다. 또
한 그는 누구보다 중국어에 능통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인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사신들은 떠날 때마다 임상옥의 도움을 청하곤 하였다. 이 청을 임상옥은 마다할 이유가 없
었다. 사신의 일행을 따라 연경에 가서 인삼을 무역한다면 신변의 안전은 물론이고 사무역
이 아닌 공식적인 무역을 통해 거래함으로써 보다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상옥은 동지사 일행보다 변무사 일행이 청의 조정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더 많이 받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평소보다 맣은 5천 근의 인삼을 마차에 싣고 함께 연경을 향해
먼 여행길을 떠난 것이다.
물론 박종일과의 동행이었다.
임상옥과 박종일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이번 여행길에 장사를 성공리에 끝마치면 엄청난 이익은 물론이고 중국의 상권까지 장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호리호도.
중국인들과의 거래는 그들 속담에 내려오듯 '풀 속에서 풀칠한다.'는 식의 뭐가 뭔지 모르
는 상태에 빠질 때가 많은 것이다. 중국인의 속마음을 꿰어 보기 전에는 그들과의 거래는
항상 풀속에서 풀칠하는 식의 오리무중인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임상옥은 사상 유례없는 인삼을 확보하여 이를 독점판매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통해,
중국 상인들과 치열한 상전을 벌여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고지에 있었던 것이다.
김정희.
그는 원래 김노경의 아들이었으나 태어나자마자 아들이 없는 김노경의 홍이었던 김노영의
집으로 출계하였다.
출계라 함은 양자로 들어가서 그 집의 대를 잇는 것을 말함이었는데 따라서 김정희에게는
낳은 생부와 기른 양부, 두 사람의 아버지가 있게 된 것이었다.
김정희의 재능은 어릴 때부터 뛰어나서 6세 때 벌써 글을 깨치고 그림을 그렸는데 김정희
가 그린 화서첩을 본 당대 제일의 학자 박제가는 이미 김정희가 학예로 세상에 이름을 날릴
것을 예언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가르쳐서 반드시 성공시키겠다.'
박제가는 실제로 김정희가 성장하기를 기다렸다가 김정희가 15세 되던 해부터 직접 그를
불러다가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박제가.
김정희의 스승이었던 조선 후기의 실학자. 뛰어난 학문적 재능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첩의
아들인 서자로서 평생을 핍박받았던 당대 제일의 학자. 서얼들의 누적된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제정된 정조의 정책으로 13년간이나 규장각에 근무하면서 비장된 서적을 마음껏 읽음
으로써 학문을 넓혔던 박제가는 그러나 무엇보다도 청나라에 다녀온 이래로 '신분적 차별을
타파하고 상공업을 장려하여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청
나라의 선진적인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급선무' 라고 주장하는 <북학의>를 사상적으로
펼치고 있었던 선각자였던 것이다.
김정희는 15세 되던 해부터 박제가를 사사해 스승의 사상을 전수받게 되었으며 실제로 스
승의 맹세대로 그의 가르침을 받고 대성할 수 있었다.
박제가는 평생을 통해 네 번이나 청의 수도인 북경을 방문하였다. 그의 실학적 사상은 바
로 북경을 통해 얻은 지식에서부터 싹트고, 그 싹을 통해서 사상적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따라서 박제가의 제자였던 김정희도 스승처럼 북경에서 신학문을 보고 배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던 것이었다.
더구나 스승 박제가는 4년 전 연행길에서 돌아오자마자 억울한 무고로 유배되었다가 1805
년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였으므로 스승의 뒤를 이어 북경에서 '북학' 의 유업을 잇겠다는 정
열에 김정희는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임상옥도 김정희에 관한 소문은 듣고 있었다.
평생을 상업에 종사하였던 임상옥은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김정희를 마음속으로 깊이 존경
하고 있었다. 비록 김정희가 일곱 살이나 어린 연하의 동생뻘이었던 임상옥이 존경하였던
단 한 사람의 선비였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도 태어날 때부터 산동이었던 김정희에 관한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6세의 어린 나이 때 김정희가 그린 그림과 글씨를 보고 무릎을 쳤다는 박제가의 소문은 장
안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희의 소문은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당대 제일의 문장가이자 명신이었던 채제
공이었다. 일찍이 영조로부터 '진실로 나의 사심 없는 신하이고 너(정조)의 충신이다.' 라는
극찬을 받았던 노 재상 채제공은 어느 날 추사의 집 앞을 지나다 대문 위에 걸린 글시 한
점을 보게 되었다.
'입춘대길'
대문 앞에는 봄을 맞기 위해서 쓴 입춘첩이 내걸려 있었다. 평범한 넉 자의 글씨였으나 그
글씨의 뛰어남을 본 채제공은 평소에 김노경의 가문과 대대로 좋지 않게 지내는 사이였으면
서도 특별히 집으로 차장 들어가 김정희의 부친이었던 김노경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았다
고 전해오고 있다.
"대문 위에 거린 입춘방을 쓴 사람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한 번 만나게 해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김노경은 쾌히 승낙을 하고 그 글을 쓴 사람을 불러오게 하였다.
마침내 불려온 사람은 일곱 살 난 김정희. 어린 소년을 보고 채제공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진실로 저 글씨를 쓴 사람이 바로 이 어린아이란 말입니까."
그 글씨를 쓴 사람이 7세의 소년 김정희임이 틀림이 없음을 알게 된 채제공은 김정희에 대
해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하였다.
"이 아니는 반드시 명필로 세상에 이름을 날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팔자가 사나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붓을 잡지 못하게 하는 게 좋겠으며 만약 문장으로 세상을 울린
다면 반드시 귀하게 될 것입니다."
먼 훗날의 이야기지만 채제공의 이 예언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추사 김정희는 글씨로 세상
에 크게 이름을 드날리었지만 그이 노년은 매우 비참하였던 것이다. 이는 당대 제일의 문장
가였던 채제공의 뒤를 따르기보다는 당대 제일의 사상가였던 박제가를 사상가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뒤를 따른 결과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김정희가 직접 자신의 종손이었던 김
태제에게 해준 말로 어쨌든 임상옥도 이미 신동 김정희에 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
던 것이다.
청년 김정희에게도 임상옥의 존재는 각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김정희는 중국말을 전혀 할 줄 몰랐기 때문에 필담으로는 의사가 소통되었으나
말로써는 통하지 않아 반드시 임상옥의 통역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김노경의 사행은 1809년 을사년 10월 28일 한양을 출발하여 12월에 연경에
도착하였으며 그곳에서 두 달 정도 머물다가 마침내 2월 초 연경을 떠나 1810년인 경오년 3
월 17일에 환국하여 입조하였다고 알려져 있는 것이다.
출발해서 돌아올 때까지 실로 5개월이나 걸린 대장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승 박제가의 뒤를 이어 연경에서 북학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려는 김정희의 불타
는 야망과는 달리 임상옥에게도 또 다른 야망이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김정희가 광할한 신천지를 연경에서 발견하고 그곳에서 신학문을 받아들이려는 학문적 열
망에 불타오르고 있었다면 임상옥은 광활한 신상계를 개척하고 그곳에서 중국 상인들과 생
사를 건 상전을 벌임으로써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천하 제일의 상인' 이 되고야 말겠다는
상업적 대야망에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방향은 달랐지만 김정희와 임상옥은 한 사람은 서도를. 한 사람은 상도를 꿈꾸었
다는 점에서 두 사람에게 있어 이번 연행길은 일종의 구도 여행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10월 28일 한양을 출발하였던 사신의 행렬은 그해 12월 22일 연경에 도착하였다.
일행들은 사신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객관에 짐을 풀고 머무르게 되었다.
해마다 찾아오는 사신들이 북경에 있는 동안 머물게 되어 있는 객관에는 임금을 가리키는
'궐'자를 새겨 넣은 나무패가 모셔져 있었다. 이를 궐패라 하였는데 사신들은 이 궐패를 향
해 무사히 연경에 도착하였음을 엎드려 절하여 배례함으로써 공식적인 연경에서의 외교행사
를 시작하였다.
이를 망궐례라 하였는데 도착하고 떠날 때에 배례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경에 머무르는 동
안에도 매달 초하루와 보름이면 전 사신 일행이 모여서 실제 살아있는 대왕마마를 배알하듯
궐패를 향해 배례하는 것이 절차였던 것이다.
임상옥도 당연히 사신의 일행이었으므로 객관에 묵었지만 박종일은 연경에 올 때마다 묵는
전문대가의 여인숙에 짐을 풀었다. 박종일이 여기에 묵는 까닭은 임상옥이 거래하는 단골
약재상들이 이곳에 밀집하여 있을 뿐만 아니라 장미령과의 인연으로 임상옥이 연경에 들를
때마다 그의 무역을 현지에서 도와주고 있는 동인당의 점주 왕조시가 이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조시는 장미령을 통해 임상옥과 인연을 맺게 된 이후부터 실제적인 임상옥의 화계 노릇
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계. 다른 말로는 과계라고 부르는 이 독특한 제도는 당시 중국 상인들만이 갖고 있던 조
직이었다.
당시 중국 상업에 있어 실질적인 주인들은 잘 나타나려 하지 않았다. 이들은 당시 청나라
에서 통용되고 있던 돈으로 관직과 명예를 사 겉으로는 관리 일을 가장하고 있었다. 돈으로
관직을 사는 제도를 연납제라 하였는데 따라서 실제로 장사는 화계라고 불리는 대리인들이
하고 있었다.
이들은 금전출납의 회계와 관리를 도맡아 하던 일종의 전문 경영인이었던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전문경영인이었던 화계를 내세움으로써 중국의 상권은 한결 조직적이고
체계화됨으로써 경쟁력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인당의 점주 왕조시는 연경 현지에 있어서 임상옥의 대리인이자 화계였던
것이다. 왕조시는 임상옥의 무역을 도와주는 대신 일정량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받는 일종의
중개무역상이기도 했다.
이미 임상옥의 존재는 연경 전역에 잘 알려져 있었다. 임상옥이 가져오는 홍삼은 최고의
품질을 갖고 있었으며 그 양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다. 임상옥의 홍삼이 연
경에 도착하지 않으면 당장 연경에는 인삼이 품귀현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러므로 항상 임상옥의 홍삼은 중국 상인들과의 거래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더구나 지난해에는 인삼 흉년이 들어 연경 전역에 인삼의 씨가 말라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럴 무렵.
조선의 인삼왕 임상옥이 5천 근의 질 좋은 홍삼을 갖고 변무사의 사행을 따라 연경에 도착
하였다는 소식이 왕조시의 통문을 통해 전시내의 약재상들에게 번져나갔다.
곧 약재상들이 박종일이 머무르고 있는 여인숙 회동관으로 몰려들었다. 몰려온 약종상들도
대부분 실질적인 주인은 따로 있고, 흥정에 대리인으로 나선 화계들이었다.
따라서 임상옥도 자연 현장에서 물러나 있었으며 실질적인 거래는 박종일과 현지인 왕조시
가 따로 나서고 있었다.
약제상들은 박종일을 통해 가져온 홍삼이 견본을 볼 수 있었다. 오랫동안 홍삼을 취급해온
상인들이었으므로 그들은 본능적으로 이번에 온 인삼이 상품 중에서도 극상품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 상인들은 이 최상급 홍삼값이 도대체 얼마인가가 몹시 궁금하였다.
당시 중국인들과의 거래는 개별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값의 흥정은 충분히 하지만
인삼의 값은 공시가로 정해져 일괄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곤 했던 것이다. 그 가격이 비싸
다고 생각한 사람은 그 거래에 참여치 않고 다른 거래를 찾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얼마만큼 인삼을 가져왔습니까."
"값은 한 근에 얼맙니까."
중국 상인들은 벌써부터 궁금해 하며 박종일과 왕조시에게 이것저것을 따져묻고 탐문하곤
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중국의 상인들은 동인당 앞에 내걸린 인삼의 공시가를 본 순간 일제히 놀랐
다. 처음에는 그들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닐까 눈을 의심할 정도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종이에 다음과 같은 가격이 적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인삼 1근당 은자 40냥'
중국 상인들은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가격 1근당 은자 25냥보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흉년이 들어 품귀현상을 빚는다 해도 30냥을 넘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오랫동안의 관행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오랜 관행이 깨어진 것이다.
1근에 40냥을 받겠다는 공시가가 당당하게 내걸린 것이다. 30냥을 내건다고 해도 수백 년
동안의 최고가일 터인데 무려 한꺼번에 10냥을 올려 40냥을 받겠다는 공시가를 내걸었으니
중국 상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바야흐로 중국 상인들과 조선에서 온 인삼왕 임상옥과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이엇다.
임상옥이 단번에 은자 40냥의 최고금액으로 공시가를 정했던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
다. 지금까지 조선에서 온 인삼은 그 엄청난 수요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거래되
는 것이 보통이었다.
역관에 의해서 주로 거래되던 인삼 1근의 가격이 25냥이었던 것이 17세기부터였으니 거의
2백 년 가까이 인삼의 가격은 고정되어 불변이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였다.
인삼의 거래가 대부분 역관들과 만상들에 의해 소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
이었다. 인삼의 거래는 주로 사무역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조선의 상인들은 인
삼의 가격을 담합할 만한 조직력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또한 몇몇의 상인들이 힘을 합쳐
가격을 인상하려 해도 각 상인의 자본이 영세하여서 중국 상인들과 장기전을 펼 만한 여력
을 갖고 있지 못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에서 온 객상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2백 년 가량
거래되어 온 고정가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진 것이다.
조정에서 공포한 인삼 교역권으로 거의 모든 인삼이 임상옥에게로 독점된 것이다.
개별적인 사무역은 불법이므로 모든 인삼의 교역은 임상옥에게로 단일 창구화되었던 것이
다. 따라서 인삼의 판매는 일원화된 창구로 한결 조직력을 갖게 되었으며 가격에 있어 경쟁
력도 갖게 되었다.
이제야말로 오랜 관행을 깨뜨릴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임상옥은 생각하고 있었다. 더구나
지난해는 인삼의 흉작으로 연경 일원에서 인삼의 씨가 말라 있음을 임상옥은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때가 왔다.
임상옥은 지금이야말로 중국 상인들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여야 할 최고의 적기라고 생각
하고 있었다.
임상옥이 최고급의 극상품 인삼을 5천 근이나 한꺼번에 갖고 온 것은 중국 상인들과의 단
판승부에서 유리한 선제공격을 가하기 위한 치밀한 계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인삼 1근당 은자 40냥'
동인당 앞에 내걸린 상상할 수 없는 천문학적 액수의 공시가는 그런 의미에서 임상옥이 중
국 상인에게 던진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었다.
선전포고.
전쟁의 개시를 선언하는 포고.
임상옥의 선전포고는 상인으로서 죽느냐, 아니면 이 기회를 통해 천하 제일의 상인이 되느
냐는 명운이 걸린 한편의 진검승부였던 것이다.
여러번 임상옥의 선전포고는 곧 연경 일대의 약재상들에게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1809
년 기사년이 저물 때까지 단 한 명의 상인도 인삼을 사러 박종일의 여인숙에 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전에 없던 일이었다.
대부분의 인삼은 공시된 이후부터 이삼 일이면 전량이 판매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임상옥
이 연경에 도착한 것이 동지 무렵인 12월 22일이었으니 해가 가기 전에 모든 인삼이 팔려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해를 넘기면 새해가 되어 중국인들은 먹고 마시며 노는 끝도
없는 명절 연휴에 거의 한 달 이상을 소비하는 것이 상례였다.
다행히 시일이 흐른다 해도 인삼이 홍삼으로 바뀐 뒤에는 썩지 않아 안심할 수 있었지만,
보통 2월 초면 환국하는 사행의 관례로 보아 인삼의 무역은 주로 사신 행렬이 도착하는 동
지 무렵에서 새해 전까지의 열흘 동안에 모두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단 한 사람의 상인도 박종일을 찾아오지 않았으며 따라서 단 한 건의 상담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박종일은 초조해졌다. 무슨 영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왕조시를 내세워 중국 상인들의 동정
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왕조시는 몇 명의 단골 약종상들을 만나고 온 후에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대인어른."
왕조시는 임상옥에게 입을 열어 말하였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인어른."
"심상치 않은 일이라니요."
임상옥이 묻자 왕조시가 대답하였다.
"아무래도 약종상들간에 사전에 무슨 합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합의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옆에서 보다 못해 박종일이 참견하여 말하였다.
"글쎄요. 말씀드리기 황송합니다만 상인들끼리 담합하여 형님의 인삼을 누구든 단 한 사람
도 사지 않을 것을 서로 맹세한 것 같습니다."
왕조시가 일단 말을 꺼냈으나 쉽게 말을 잇지 못하였다.
"일테면요."
답답해진 박종일이 다시 채근하여 물었다. 그러자 왕조시는 대답하였다.
"일테면 불매동맹을 맺은 것 같습니다. 일체 상품을 사지 않겠다는 공동의 약속이 이루어
진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생산자에 대한 제재수단으로 소비자가 단결하여 그 어떤 상품을 사지 않기로 하는 공동의
약속, 불매동맹.
이 공동의 약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산자에게 압력을 가하는 조직의 단결력이 우선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중국의 상인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불매동맹을 형성할 수
있을 만큼 상업이 발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조시의 말은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불매동맹이 이루어졌다면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노리는 것이란 말인가요."
답답해진 박종일이 빠르게 물어 말하였다.
"도대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상인들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왕조시는 단숨에 대답하였다.
"상인들은 임 대인께오서 값을 내려 종전의 값을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침묵 끝에 임상옥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만약 그 요구를 내가 거절한다면요."
그러자 왕조시는 대답하였다.
"그렇게 되면 말씀드리기 황송하오나 임 대인께오서는 단 한 근의 인삼도 연경에서는 팔지
못하게 될 것이나이다. 결국 가져온 5천 근의 인삼을 조선으로 도로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것
이나이다."
왕조시의 전언은 실로 무서운 것이었다.
무조건의 항복을 요구하는 일방적인 통고와 같은 것이었다. 가격의 협상을 통해 공시가를
재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종전의 가격만을 받으라는 것은 백기를 들고 항복하라
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일체의 거래를 중지함
으로써 갖고 온 인삼을 그대로 갖고 가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인으로서의 파문을 의
미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임상옥은 다시는 연경의 상계에서 발을 못 붙이게 되
는 금치산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여보, 왕 대인."
사태의 긴박함을 깨달은 박종일이 왕조시의 어깨를 치면서 말하였다.
"왕 대인이 나서서 그들을 설득해 볼 수도 있지 않겠소. 우리와는 달리 왕 대인은 중국사
람이니 같은 중국 상인들을 만나서 흉금을 털어놓고 그들을 설득하여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
을 수도 있을 것이 아니겠소이까."
박종일의 말을 사실이었다.
왕조시는 연경 제일의 중약점인 동인당의 점주로서 약재상들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을 지닌
인물들이었다. 그가 나서서 설득한다면 많은 상인들의 마음을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은 분명
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왕조시 역시 화계에 불과하였다. 그는 동인당의 점주처럼 보이고 있었지만 실은 장
미령의 남편인 광록대부 주병성이 실직적인 주인이 아니었던가.
"대인어른."
왕조시가 미소 띤 얼굴로 말하였다.
"한 번 시집간 여인은 이미 그 집 귀신이라 하였습니다. 비록 내가 중국인이라 하여도 임
대인의 귀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 말
을 들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저를 만나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왕조시가 다시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또한 임 대인과 함께 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중국인에 불과하므로 먼 곳에 있는 물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습니다. 그때 먼 월나라 땅에서 사람을 청해다가 구하려
한다면 그 월나라 사람이 아무리 헤엄을 잘 친다 해도 때는 이미 늦습니다. 또 한 집에 불
이 났다고 할 때 먼 바다에서 물을 끌어다가 불을 끄려고 하면 바닷물이 아무리 많아도 역
시 때는 이미 늦습니다. 이처럼 저는 임 대인에게 있어서 가까이 있어 보이지만 실은 먼 바
다에 있는 물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저는 임 대인의 불을 끌 수도 없거니와, 끌 자격도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왕조시가 말한 내용은 중국에서 내려오는 고사 중에서도 유명한 내용이다. 한비자이 '설림'
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멀리 있는 물로는 가까운 곳의 불을 끄지 못한다' 는 의미를 담고 있
는 성어인 것이다. 이를 '원수불구근화' 라 하는데 이는 곧 먼 곳에 있으면 아무리 그 힘이
강해도 급할 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왕조시가 자신을 빗대어 '먼 곳에 있는 물' 이라고 표현한 것은 임상옥이 처한 급산 불을
끌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적절히 표현한 것이었다.
이로써 임상옥은 완전히 사면초가에 빠져버린 셈이었다.
임상옥의 선전포고는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면을 포위해버린 적들로 인해 고립되어 스
스로 자멸해버리는 최대의 위기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고립무원.
임상옥은 완전히 사면을 포위당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절체절명의 궁지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불매동맹을 맺은 중국 상인들이 요구하는 대로 공시가를 내려 종전의 값으
로 환원하거나, 아니면 가져온 인삼을 그대로 갖고 돌아가는 두 가지 방법뿐이었다.
그러나 그 두 가지 방법 모두 임상옥에게 있어 일종의 파산과 같은 것이었다. 공시가를 종
전대로 내리면 갖고 온 물건은 모두 팔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굴욕을 의미한다. 그
렇게 되면 임상옥은 앞으로 연경 상인들과의 상거래에서 항상 칼자루를 쥐지 못하고 칼날을
쥐게 될 것이다. 한 번 신용을 잃은 상인은 결코 신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상인에 있어 차
라리 가산을 모두 날려 도산하는 편이 낫지, 상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항복의 백
기를 드는 것은 한 번 죽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을 죽는 참시와 같은 것이다.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살기 위해 무릎을 꿇고 굴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국 상인들과 감정싸움을 벌여 단 한 근의 인삼도 팔지 못하고 그대로
조선으로 돌아간다면 자존심은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완전히 상업을 파산되어 망하게 될
것이다. 그뿐인가. 임상옥은 재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갖고 온 인삼의 대금을 모두 은자로
계산하여 사상들과 인삼을 재배하는 농부들에게 나눠주고 나면 임상옥은 완전히 빈털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사태의 심각성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박종일이 말하였다.
그러나 임상옥은 묵묵부답이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임상옥의 눈치를 보면서 박종일이 말하였다.
"방법이라니."
임상옥이 묻자 박종일이 대답하였다.
"장미령 부인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장 부인의 남편은 고위대신으로 광록대부라 하지
않았나이까. 광록대부라 하면 막강한 힘을 가진 대관이나이다. 더구나 장 부인께오서는 대인
어른에게 큰 은덕을 입은 사람이 아니시오니까. 장 부인께오서 대인어른을 은인으로 생각하
고 있는 이상 찾아가 말씀드리면 어떻게든 힘을 써줄 것이나이다."
그러자 임상옥이 말하였다.
"은덕에 있어서도 한 번이면 족하네. 한 번 이상 바란다는 것은 보은이 아니라 구걸행위와
같은 것이네."
임상옥은 단호하게 말하였다.
"내가 장 부인을 구한 것은 무슨 대가를 바라서가 아니었네. 이것은 장 부인도 마찬가지였
네. 하지만 내가 찾아가 도움을 청해 청나라의 권력을 빌려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한
번은 성공할지는 모르지만 다시는 연경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게 되네. 이는 살아도 산
몸이 아니라 죽은 목숨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옛말에 이르기를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
는 칼을 쓰겠는가' 란 말이 있네."
"닭을 잡는데 칼이 없다면."
박종일이 볼멘소리로 대답하였다.
"소 칼인들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을 굳힌 듯 임상옥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만약 이번에 저희들이 이 난관을 잘 헤쳐 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죽습니다."
박종일이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그 순간 무심코 말하였던 박종일의 한마디가 임상옥의 뇌
리에 가시처럼 박혀들었다.
"...우리는 죽습니다."
여기에서 잠깐.
우리나라가 낳은 무역왕 임상옥의 일생일대에서 최초의 위기였던 연경 상인들이 벌인 불매
운동의 발단은 오랫동안 누적되어 왔었던 감정 싸움이었다. 그 싸움의 배경은 다음과 같았
다.
예로부터 사농공상이라 하여 물건을 사고 팔아 이익을 남기는 상업을 가장 천대하였던 우
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사상농공이라 하여 상업을 중시하였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전인 <서경> 에는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를 친 후 은나라의 유
신 기자에게 도를 물었을 때 기자는 천제의 계시로 얻은 홍범구주를 주었다. 오행사상을 토
대로 정치, 도덕의 9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이 책 속에서 기자는 첫 번째로 '부' 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홍범구주선언부' 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자가 쓴 사서삼경의 하나인
<대학> 에서도 반 이상이 '재' 에 관해 논하고 있었다. 이를 '대학십책논반재' 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인들은 사람을 다스림에 있어 '부' 가 그 첫 번째로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
고 있었으며 또한 공자도 '재'야말로 가장 중요한 인간의 규범임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사람을 다스림에 있어 '부' 와 '재'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야말로 가장 중
요한 법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경세제민.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이야말로 사람을 다스리는 데 있어 최고의 덕목이었던 것이
다.
그러나 중국인들도 경제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상인들을 우대하지는 않았다. 상업을
농업이나 공업보다 더 낮게 두었던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인들은 어느 정도 상업을 중요시하
였지만 상인들을 등용치 않았던 것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는 유학의 발달고 무관하지 않았다. 명분과 학문을 숭상하였던 유학은 마침내 다음과 같
은 극단적인 내용이 나올 정도로 상업으르 천시하였던 것이다.
'굶어 죽는 일은 지극히 작은 일이고 절개를 잃는 일은 지극히 큰 것이다.'
북송의 정이천이 말한 이 내용은 주자학의 철학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생들의 사고에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 바로 왕양명이었다. 그는 원래 당시의 관학
이었던 주자학에 빠져 있었으나 공론과 명분에만 매달려 있던 주자학에 곧 싫증을 내었으며
35세 무렵에 이르러 돌로 만든 관 속에 들어가 명상하기를 즐겨 하였다.
그렇게 2년을 보내던 어느 날 그는 석관 속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음이 곧 진리이며, 따라서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됨으로써 만물과 하나될
수 있다는 사상이었다. 이 사상이 그 유명한 양명학으로 발전되었으며 양명학의 진수는 왕
양명이 스스로 일컬은 사구결에 있는 것이다.
'마음의 본체는 원래 선과 악이 없는 것이다. 선과 악이 나타나는 것은 뜻의 작용 때문이
다. 그러므로 이미 나타난 선과 악을 구별하여 아는 것이 양지이며 선을 행하고 악을 버려
마음의 본체로 돌아가는 것이 격물인 것이다.'
격물치지.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자신의 잘못을 바르게 잡고, 선천적인 양지로 갈고 닦는다는 유명한
철학이 바로 양명학의 진수였던 것이다.
이처럼 명문보다 실제의 이론을 중요시하였던 왕양명은 공리에 치우쳤던 유생들인 선비보
다 상인들을 우대하였으며, 따라서 그는 신사민론을 부르짖었던 것이다.
신사민론.
1535년에 왕양명이 상인 방린을 위해 쓴 한 편의 묘표에서 비롯된 새로운 의식은 기종의
유가에서 내려오던 사민론을 단숨에 무너뜨린 일종의 혁명과 같은 것이었다.
'옛날부터 사민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기 직업을 달리하였으나 마음을 극진히 한 것은 한
가지였다. 선비는 이것을 가지고 수양하고 통치하였으며 농부는 이것을 가지고 갖추어 봉양
하였으며 공인들은 이것을 가지고 도구를 이롭게 하였고 상인들은 이것을 가지고 재화를 유
통시켰다. 각기 그 자질이 가까운 곳, 힘이 있는 곳에서 생업을 삼아서 그 마음을 극진히 발
휘할 것을 추구하였다. 그 귀결은 요컨대 사람을 살리는 길에 유익한 것은 한결같았다는 것
이다.'
왕양명의 이 말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지금까지의 유가에서는 오직 선비만이 도를 알고 도를 행할 뿐, 농부나 공인들이나 상인들
은 도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한갓 백성에 지나지 않은 하찮은 존재였던 것이다. 따라서 맹자
는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표현까지 했었다.
'...닭이 울자 부지런히 이익을 챙기는 자는 도둑놈의 무리이다.'
왕양명의 이러한 '신사민론'의 선언은 16세기 이후 상업 발전으로 유가들도 더 이상 상인들
의 사회적 지위를 새로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게 된 현실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
다.
특히 명나라가 망하고 청조가 들어서자 명나라의 유생들은 어쩔 수 없이 상인의 길로 나아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는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의 새 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의 유민들은 관리의 길을 버리고 상업의
길로 나아갔다.
명나라의 유민들은 변방의 오랑캐들이라 천시하는 청나라에 의해 중원이 통일되자 대부분
과거시험 공부를 버리고 상업의 길로 나아갔다.
이를 '유학의 길을 버리고 상업의 길로 나아갔다' 하여 기유취고라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임상옥이 먼저 선전포고하였던 상전에 불매동맹이라는 초유의 강수로 맞서 싸웠던
중국 상인들은 대부분 '선비의 길을 버리고 상업의 길로 나아갔던' 명나라의 자존심 상한 유
생들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연경의 상인들은 대부분 돈을 벌어 청나라의 관직을 사서 벼슬길에 올랐다. 그들은 과거를
통해 벼슬에 오르기보다는 돈을 벌어 청나라의 관직을 사는 것이 더 공명을 얻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청나라에 몸을 굽혀 복종하여 과거시험을 보느니 돈으로 관직을 사는 일이야 말로 '명실
있는 상인' 이라고 그들 스스로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돈으로 벼슬길에 오른 상인들을 그들 스스로 선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었다.
'내가 비록 상인이자만 어찌 나라의 군주와 대등한 예를 지키려는 단목의 뜻이 없겠는가.'
단목은 공자의 제자인 자공을 말함인데 그들의 이와 같은 자부심은 상인이야말로 이제는
선비처럼 '위대한 유학자' 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의 상인들은 스스로를 도인이라고 불렀으며 '상인의 길' 이라 하여 이를 '고
도' 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의 선전포고는 이들의 명예와 자존심에 일대 경종을 울린 셈이었다.
당시 중국인들의 경영철학은 박리다매였다. 상업의 비결을 '사는 즉시 팔아야 한다' 는 원
칙에 두고 있던 중국 상인들에게 있어 '이익을 적게 하되 많이 판다' 는 박리다매야말로 경
영철학 제 2조였던 것이다.
'염가' 라는 용어가 나온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원래 이 염가라는 용어가 나온 곳은 <사기>인데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탐가는 세 번을 뛰어 벌어들이고 염가는 다섯 번을 뛴다.'
오늘날의 염가는 '싼값에 상품을 파는 가격'을 말함인데 이 용어가 당시 중국 상인들에게
유행되어 성어를 이룰 만큼, 염가처럼 다섯 번을 뛰는 박리다매로써 이익을 남기는 일이야
말로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염가는 박리다매' 라는 등식을 갖고 있던 중국 상인들에게 느닷없이 최고가격의 공
시가를 내건 임상옥의 모험은 그들의 자존심에 치명타를 가한 셈이었던 것이다.
불매동맹.
바로 중국 상인들의 이 불매운동은 마침내 임상옥을 사느냐, 죽느냐는 절체절명의 기로로
몰아갔던 것이다.
임상옥은 몇날 며칠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였으나 좋은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
다.
그로서는 오직 단 두 가지 방법뿐이었다.
중국 상인들이 원하는 대로 공시가격을 내리거나, 아니면 인삼을 갖고 그대로 고향으로 돌
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임상옥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때였다.
임상옥의 머리 속에 우연히 박종일의 말 한마디가 기억되어 떠올랐다. 그때 박종일은 낙담
하여 이렇게 한숨을 쉬면서 말하였었다.
"만약에 이번에 저희들이 이 난관을 잘 헤쳐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죽습니다."
마지막의 말 한마디가 자꾸 메아리되어 임상옥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
"우리는 죽습니다, 우리는 죽습니다, 우리는 죽습니다."
임상옥은 어째서 박종일의 그 한마디가 가시처럼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죽는다. 우리는 죽는다.
순간 몇날 며칠을 뜬눈으로 밤을 새우던 임상옥의 머리 속에 뇌성과 같은 목소리 하나가
번득이며 떠올랐다. 그것은 추월암의 큰스님이었던 석숭의 고함소리였다.
추월암을 떠나 세속으로 하산할 무렵 석숭은 이렇게 말하였었다.
"...너는 반드시 살아감에 있어 세 번의 큰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그 큰 위기가 있을 때마
다 너는 이를 잘 극복해 나갈 것이지만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너는 하루아침에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때 임상옥은 이렇게 물어 말하였었다.
"어떻게 하면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임상옥의 질문에 한동안 침묵하던 석숭은 느닷없이 먹을 갈도록 한 후 붓을 들어 종이 위
에 내리찍듯이 글자를 써내렸었다. 석숭 스님이 종이 위에 쓴 한 자의 글자는 바로 '사' 자
였던 것이다.
그때 석숭은 그 글자를 쓰고 나서 임상옥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자가 무슨 자인 줄 아느냐."
"물론입니다."
임상옥이 대답했었다.
'그러하면 이 자가 무슨 자냐."
"죽을 사 자입니다."
"그렇다."
그때 석숭 큰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이 죽을 사 자가 너를 반드시 첫 번째 위기에서 살려줄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오직
이 죽을 사 자, 한 자뿐이다."
임상옥은 곰곰이 생각하였다.
이번의 이 일이 석숭 스님이 말하였던,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내가 만날 운명직인 세 번의
위기 중 그 첫 번째 위기임이 틀림이 없을 것인가. 임상옥은 오랜 생각 끝에 중국 상인들이
벌이고 있는 이 불매동맹이 자신이 맞는 일생일대 최초의 위기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이
상의 위기가 달리 있을 것인가.
이 위기야말로 박종일의 말처럼 잘 헤쳐나가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최초의 위기인 것
이다.
그렇다면 석숭 스님은 이 위기를 헤쳐나갈 비책을 가르쳐 주셨다. 그 비책은 오직 한 자의
글자, 사 자뿐인 것이다.
임상옥은 그 즉시 먹을 갈아 종이 위에 사 자의 글씨를 써서 벽 위에 붙여놓았다. 그리고
나서 스승이 내린 사 자의 뜻이 무엇인가를 참구하기 시작하였다.
죽을 사가 어떻게 사지를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어차피 이대로 가다간 죽을 운명
에 맞닥뜨릴 것이 분명한데 더 이상 어떻게 또다시 죽으란 말인가. 어차피 남은 두 가지 방
법 모두 죽을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인삼의 가격을 내려도 죽고, 가져온 인삼을 돌 가져가
도 죽는다. 어차피 죽을 운명임이 틀림없는데도 어찌하여 석숭 큰스님은 내게 죽을 사 자의
참언을 내리신 것일까.
심사숙고하였으나 임상옥은 그 문자에 숨겨진 진의를 깨달을 수 없었다. 이러한 임상옥의
고민에 해답을 내려준 사람이 바로 추사 김정희였다.
때마침 초하루라 사신 일행은 객관에 모셔진 궐패에 망궐례를 올리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임상옥은 간단한 안주와 술병을 챙겨들고 김정희가 머무르고 있는 숙소로 찾아
갔다. 마침 김정희는 혼자 있었다.
"웬일이십니까."
김정희는 찾아온 임상옥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출출한데 술이나 한 잔 하려구 찾아왔습니다, 생원어른."
"좋습니다, 좋지요. 대인어른."
당시 김정희는 생원시에 갓 급제한 터였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소과에 급제하였으나, 성균
관에 들어가 공부를 하다가 다시 문과에 응시해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가는 것이 당시 유생
들이 밟는 정상적인 과정이었으므로 아직은 햇병아리 유생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생
원은 어디까지나 선비를 가리키는 존칭이었고 비록 나이는 일곱 살이나 위라 하지만 임상옥
은 한갓 상인에 불과해 하대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김정희는 깍듯이 임상옥을 어른 대접으
로 공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권커니 잣거니 술을 나눠 마시기 시작하였다. 그해 연경의 겨울은 살을
에듯 추웠다. 객지에서 맞은 설날이라 몸도 마음도 춥고 쓸쓸하던 차에 임상옥이 들고 온
술이 두 사람의 객고를 달래주고 있었다.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오르자 임상옥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김 생원, 한 가지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오니까.'
'어떤 사람이 지금 백척가두에 올라서 있습니다. 오도 가도 할 수 없고 꼼짝없이 죽게 되어
있습니다."
백척간두.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끝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을 말함인데 임상옥은
위태로운 자신의 지경을 그렇게 표현하여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하니, 그 사람이 어떻게 하면 그 백척간두에서 내려올 수 잇겠습니까."
'백척간두에서는 내려올 수 없습니다."
김정희가 단숨에 말하였다.
"그러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백척간두 위에서 올 수도 갈 수도 없고, 꼼짝할 수 없으니
그 장대 끝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백척간두 끝이라 해도 살아가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정신이 바짝 든 임상옥이 소리를 높여 물었다.
"옛 중국의 선사 중에 성상이란 화산이 계셨습니다. 이 스님이 바로 백척간두에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김정희는 휴대용 붓을 쥐어들고 종이 위에 다음과 같이 글을 써내렸다. 소문으로만 듣던
추사의 운필이었다. 과연 명필 중의 명필로 이는 인간의 솜씨가 아니라 신의 필력이었다. 일
필휘지로 써내린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백척간두좌저인
수연득입미위진
문장을 쓰고 나서 김정희가 말하였다.
"백척간두 위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 하여도 아직 진인은 되지 못한다는 말입니
다."
'"그러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속을 떠나 불문에 몸담은 적이 있던 임상옥이었지만 처음으로 듣는 설화였다.
"백척간두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추사는 다시 종이 위에 다음과 같이 써내렸다.
백척간두수진보
시방세계현전신
글을 쓰고 나서 김정희는 말하였다.
"석상 화상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백척간두 위에서 다시 걸어 나아가라. 그러면 시방세계
의 전신을 볼 수 있으리라. 백척간두 위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그 벼랑 끝 위에서 다시 한
발자국 나아가는 것입니다."
"백척간두 위에서 다시 한 발자국 나아가면 그것은 죽음이 아닙니까.'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뿐입니다. 백척간두 위에 앉아 있다고 하여 죽음을 물
리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임상옥은 추사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백척간두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길뿐이라는 김정희의 말이
임상옥의 마음에 와닿지가 않았다. 이러한 임상옥의 마음을 눈치챈 듯 김정희가 다시 붓을
들어 종이 위에 단숨에 문장 하나를 써내렸다. 임상옥은 그 문장을 쳐다보았다.
종이 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씌어 있었다.
'필사즉생 빌생즉사'
임상옥은 그 말의 뜻을 알고 있었다.
'반드시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반드시 죽기를 꾀하면 죽을 것이다.'
임상옥은 그 문장을 쓴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 문장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계시겠지요."
김정희는 임상옥에게 물어 말하였다. 임상옥은 대답 대신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 문장을 쓴 사람은 이순신 어른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처럼 죽음을 물리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반드시 죽는 필사의 길 단 한 가지 방법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백
척간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갱일보 하여 다시 한 발자국 나아가는 방법뿐입니다.
그 순간 임상옥의 머리 속에 벽력이 번득였다. 임상옥은 손을 들어 무릎을 치면서 말하였
다.
"아."
그 순간 임상옥은 큰스님 석숭이 써준 죽을 사 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었다.
그 의미를 깨달았을 때 임상옥은 큰소리로 껄걸 웃었다고 전하여진다. 한바탕 크게 웃고
나서 임상옥은 느닷없이 의관을 정제한 후 김정희 앞에 세 번을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왜 이러십니까, 대인어른."
당황한 김정희가 극구 만류하였지만 임상옥은 멈추려 하지 않았다.
"생원어른께 제가 가르침을 얻었으니 이제부터 생원어른은 제게 있어 스승이나이다."
당황한 김정희가 맞절을 하면서 말하였다.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생원어른이 백척간두에서 벗어날 길을 가르쳐 주셨으니 제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나이다.
이로써 제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제가 무릎을 꿇고 삼배를 올림으로써
사부로서의 예를 올리지 않으리이까."
마침내 임상옥은 큰스님 석숭이 써준 '사' 의 숨겨진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임상옥은 따로 박종일을 불러 말하였다.
"내가 지난밤 내내 생각하고 궁리하여 인삼 가격을 새로 조정하였으니 왕조시에게 이를 전
하여 새 가격을 공시토록 하게."
임상옥이 새로 다시 쓴 종이를 박종일에게 내주면서 말하였다. 임상옥으로부터 종이를 전
해받은 후 박종일은 임상옥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셨다는 말입니까."
박종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임상옥의 태도였다. 중국 사인들은 임상옥이 내건 '인삼 1근
당 은자 40냥' 의 공시가격을 종전대로 인삼 1근당 은자 20냥에서 25냥 사이의 가격으로 낮
춰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내 말을 잘 듣게. 이것은 오랜 심사숙고 끝에 내가 결정을 내린 것이니 내가 내린
결정을 그대로 따르도록 하여 주시게."
단호한 임상옥의 태도였다. 박종일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종이를 받아들고 객관을
나섰다. 나선 즉시 박종일은 종이에 새로 씌어진 최종 종시가를 확인하여 보았다.
순간 박종일은 깜짝 놀랐다. 그는 자신이 행여 잘못 보았는가 두 번, 세 번 다시 확인하여
보았다. 그러나 분명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박종일은 온 길을 되돌아가 주인 임상옥을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는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평소와는 달리 단호했던
임상옥의 목소리와 태도가 기억되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내린 결정을 그대로 따르도록 하여 주시게."
박종일은 그 길로 동인당으로 왕조시를 찾아갔다. 왕조시도 박종일처럼 크게 놀라 반신반
의하는 표정이었지만 마침내 임상옥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마침내 동인당 중약점 앞에 내걸렸던 공시가격을 알리는 게시판이 철거되고 새 가격을 알
리는 게시판이 내걸렸다.
공시가격을 알리는 게시판이 떼어지고 새 가격을 알리는 게시판이 나붙었다는 소문은 순식
간에 중국 약재상들에게 번져나갔다. 그 소문을 들은 순간 그들은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중국 상인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기쁨으로 환호하였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중국 상인들간의 단결된 힘인 초강경의 불매동맹을 통해 조선의 인삼왕 임상옥을 꺼꾸러뜨
렸다는 사실에 그들은 한결같이 승리감을 맛보고 있었다.
이겼다.
중국 상인들은 환성을 울렸다.
임상옥을 이기고 말았다. 이겼을 뿐 아니라 임상옥의 자존심을 꺾었으니 이제부터 인삼의
가격은 중국 상인들 멋대로 조종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약재상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전문대가의 큰 거리로 나섰다. 새해를 맞이하여 거리
마다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그들은 떼를 지어 동인당의 앞까지 찾아가 보았다.
순간 그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종전 게시판은 내려지고 새 게시판이 내걸려 있었다. 그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이 씌
어 있었다.
'인삼 1근당 은자 45냥'
인삼의 가격이 40냥에서 종전의 가격인 25냥으로 내려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40냥에서 45
냥으로 5냥이나 뛰어올라 고시된 것이다.
인삼 1근당 40냥이란 공시가도 수백 년간 없던 최고가였었다. 그런데 그 최고가가 다시 5
냥이 올라 새로운 가격으로 갱신된 것이었다.
"꾸웨즈"
누군가 한 사람이 침을 뱉으면서 말을 뱉었다. 꾸웨즈란 귀자를 가리키는 말로 귀신처럼
더러운 사람을 향해 던지는 일종의 욕이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또다시 침을 뱉으며 욕을 하였다.
"토우." 토우란 도둑을 가리키는, 역시 남의 물건을 훔치는 비열한 도둑을 향해 던지는 쌍
욕이었다.
그들은 일제히 침을 뱉고 욕을 한 다음 조선의 인삼상인 임상옥을 단호히 연경의 상계어서
추방할 것을 새로이 결의한 다음 모두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임상옥은 태평하였다.
그는 이미 큰스님 석숭이 내려준 '사' 의 참언을 통해 이 난국을 헤쳐나갈 비책을 강구하였
으므로 결심이 내려진 이상 천하태평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최고가의 공시가격을 내붙이고는 임상옥은 전혀 상업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박종일을 비롯한 자신의 종들에게는 객고를 풀든지 술을 마시든지 신나게 놀라고 돈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김정희와 단짝을 이뤄 연경의 전역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2
당시 연경에는 두 사람의 거유가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옹방강이었으며, 또 한 사람은 완원이었다. 중국 청조를 대표하는 이 두 사람은
당시 중국의 정신을 이끄는 사상의 두 거목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탕생에는 박제가의 북학이 일조하였지만 김정희를 이룬 것은 청나라를 대표
하는 옹방강과 완원의 실학사상이었다.
김정희는 옹방강을 통해 경학, 서화, 금석학을 배우고 익혔으며 특히 전, 예, 해, 행의 제체
에 능통하였던 옹방강에게서 독특한 김정희 특유의 추사체란 필법을 창조해낼 수 있었던 것
이다.
그에 비하면 완원은 고증학파의 산두였던 당시 중국의 대표적인 사상가였다. 그는 경사에
박통하고 금석 연구에 정심하였던 대학자였다.
추사가 연경에 머물렀던 것은 40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10월 28일에 아버지 김노경을 주청사로 하는 사행을 따라갔던 김정희는 12월 22일에 이르
러 연경에 도착한다.
다음 해인 1810년 2월 1일, 완원은 자신의 제자들인 주학년, 홍점전, 김용, 이임송, 유화동
과 더불어 떠나는 김정희를 위해 전별연을 베풀어 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김
정희가 연경에 머물며 거유들과 교유하였던 것은 겨우 한 달 남짓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남짓의 짧은 교유에서 김정희는 눈을 뜨고 꽃이 핀 것이다.
매화꽃이 피어 만발하는 데에는 오랜 시일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따뜻한 봄의 시절과 따
뜻한 봄볕의 인연만 맞으면 매화꽃은 어느 한순간에 눈을 뜨고 피어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
에서 옹방강이 김정희의 입춘이었다면 완원은 김정희의 양광이었던 것이다.
김정희의 재능은 수차례 연경을 드나들었던 스승 박제가에 의해 연경의 학자들 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연경의 학자들은 사신을 수행하여 온 김정희의 존재를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소장파 학자였던 조강이 김정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는 사실이 기록에 남아
있다.
'...동쪽나라에 김정희 선생이란 분이 있으니 호는 추사이다. 나이는 이제 24세인데 개연히
사방으로 찾아다닐 뜻이 있어서 일찍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개연히 한 생각 일으키니 사해
에 지기를 맺고 싶구나. 만약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만 하면 그를 위해 한번 죽기라도 하
련만, 하늘 끝 저쪽에는 명사가 많다 하니 부러움을 술로 주체하지 못하네" 라고 하였다. 따
라서 그의 기상을 가히 알 수 있다. 세상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현실에 얽매이지 않으며 시
도 잘 짓고 술도 잘 마신다고 한다. 지극히 중국을 그리워하고 동쪽나라에는 사귈 만한 선
비가 없다고 스스로 말했다고 했는데 이제 바야흐로 사신을 따라 왔으니 장차 천하의 명사
들과 사귀어 옛 사람들이 정의를 위해 죽던 의리를 본받으려 한다.'
당대의 청년학자 조강이 연경의 학계에 소개하였던 이 문장보다도 한층 김정희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한 가지 일화가 때맞춰 연경에서 생겼다.
해마다 사행을 따라 관상감도 연경을 드나들곤 하였다.
이들이 하는 일은 중국으로부터 시헌력을 받아가는 일이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중
국의 역법을 받아다가 그것으로 표준력을 삼곤 했었다. 청나라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전래와
함께 서양문명이 들어와 아담 샤알(중국 이름 탕약망)의 시헌력을 채택하여 이를 사용하였
으므로 자연 우리나라에서도 이 역법을 받아다가 사용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해마다 관상감
에서 파견된 사신이 동지사의 사행을 따라 여경으로 들어와 중국의 흠천감에서 새로운 시헌
력을 받아가는 것이 관례였던 것이다.
그런데 김정희가 새로 받아온 시험력을 보다가 중요한 오류를 발견했던 것이다. 즉 매월마
다 두 번째 드는 절기인 중기의 차례가 틀렸음을 발견해낸 것이다.
설마 하던 관상감의 서리가 연경의 흠천감에게 변정을 요구하니 중국의 천문학자들이 비로
소 실수를 깨닫고 이렇게 탄식하였다고 전해진다.
"도대체 이처럼 천상과 지리에 통달한 사람이 어떻게 동쪽나라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흠천감의 시헌력을 해동에서 온 청년 김정희가 바로잡았다는 소문이 곧 연경의 학자들 간
에 번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너나할것없이 김정희를 만나고 싶어하고 있었던
차였다.
김정희가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은 옹방강이었다.
이는 옹방강이 연경 제일의 거유였을 뿐 아니라 실제로 나이가 제일 많은 어른이자 원로였
기 때문이었다.
옹방강은 순천의 대흥인으로 자는 정삼이었고 호는 많이 있었으나 주로 담계를 사용하였던
당대 최고의 사상가였다.
그는 당시 연경에 석묵서루란 서원을 차리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문도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었다.
김정희가 임상옥과 함께 옹방강을 찾아간 것은 새해 다음날이었다. 중국어에 서툴렀던 김
정희는 자연 임상옥의 능숙한 통역이 필요하였으므로 임상옥과 동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다.
또한 임상옥은 거부였으므로 그들에게 줄 선물을 따로 챙겨들곤 하였다.
김정희가 옹방강을 찾아갔을 때 옹방강은 무슨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당시 옹방강은 나이
여든이 가까운 78세의 노인이었지만 얼굴은 동안이었고 눈에 안경도 끼지 않고 있었다.
"무억을 하고 계십니까."
제자로서의 답례를 올리고 나서 김정희가 옹방강에게 물어 말하였다. 그러자 옹방강이 대
답하였다.
"새해를 맞아 신춘 휘호를 하고 있네."
분명히 옹방강은 휘호를 하고 있다고 대답하였지만 그의 손에는 붓이 들려 있지 않았고 그
어디에도 종이 역시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는 붓 대신 작은 도구를 세워들고 있었다. 김정희는 그 작은 도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작은 칼이었다. 따라서 그는 휘호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기고 있는 것이었다.
"무엇에 새기고 계십니까."
작은 칼은 분명히 보이고 있었지만 새기고 있는 대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김정
희는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옹방강 선생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 위에 휘호를 새기고 있단 말
인가.
"보고 싶은가."
느닷없이 옹방강은 크게 웃으며 손가락에서 무엇인가 집어내었다. 눈에 겨우 보일까말까
한 작은 씨앗이었다. 김정희는 그 씨앗이 무슨 씨앗인가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참깨였던
것이다.
참깨. 중국말로는 이를 백유마라고 부른다. 씨를 볶아서 기름을 짜거나 양념으로 쓰는 작은
씨앗.
그 씨앗 위에 옹방강은 신춘 휘호를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참깨가 아닙니까."
김정희가 탄식하여 말하였다.
"물론 그렇지. 참깨임에 틀림이 없네."
옹방강이 대답하였다.
"그러면 이 작은 참깨 위에 휘호를 새기셨단 말씀입니까."
"물론이지."
그리고 나서 옹방강이 말하였다.
'보고 싶은가."
"그렇습니다."
김정희가 대답하자 옹방강이 확대경을 내어주었다. 김정희는 확대경을 들고 그 씨앗을 유
심히 살펴보았다. 그 순간 그는 소스라쳐 놀랐다. 먼지처럼 작은 참깨 씨앗 위에 분명하게
글자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 자가 아니었다. 자그마치 넉 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김정희는 그 글자를 읽어 보았다.
'천하태평'
이때의 가마동을 김정희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내가 찾아갔을 때 옹방강 선생께서는 설날 참깨 위에 천하태평이라는 네 글자를 쓰셨는데
그때 선생의 연세가 일흔여덟이셨다. 글자는 파리 머리만하였지만 안경도 끼지 않으셨다 하
니 매우 놀랄 만한 일이었다.'
'옛 사람의 글씨를 논함' 이란 문장 속에 나와 있는 옹방강 선생과의 대면은 이렇듯 충격적
인 일이었던 것이다.
옹방강이 참깨 위에 '천하태평' 의 넉 자를 쓴 것은 불교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당대의
거유였으나 불교에 심취하고 있던 옹방강은 <유마경>에 나오는 '수미산이 갓씨 속에 들어
있다' 라는 내용을 몸소 실천해 보인 것이다.
세계 중심에 솟아 있다는 수미산이 겨자씨 속에 들어 있다는 이 불법에 대해 유명한 설화
가 있다.
당나라의 학자 이발은 독서를 즐겨 만 권을 넘어서자 사람들은 그를 '이만권' 이라 칭하였
다. 어느 날 그는 자상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유마경에 이르기를 '수미산이 갓씨 속에 들어 있다' 하였는데 어찌 그 큰 산이 작디
작은 갓씨 속에 들 수 있는지요."
그러자 지상 스님이 대답하였다.
'이발아, 사람들은 널 이만권이라 부르지 않더냐. 그러하면 넌 책 만 권을 어찌 그 작은 머
리 속에 넣어두고 있는 것이냐."
첫 대면에서 스승 옹방강이 참깨 위에 '천하태평' 의 네 글자를 새겨넣은 모습을 본 추사
김정희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충격으로부터 김정희의 추사체란 독특한 필법이 탄생된 것이다.
그는 한예의 장점을 모아 스스로 한 길을 터득하여 추사체를 독창적으로 만들어내었는데
훗날 한 사람이 김정희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어떻게 선생님 특유의 추사체란 필법을 만들어내셨습니까."
이에 김정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이는 흉중에 만 권의 책을 담고 팔뚝 아래에는 삼백구비가 들어 있지 않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김정희는 스승 옹방강이 갓씨와 같은 참깨 위에 '천하태평' 의 네 글자를 새겨넣은 모습을
보고 그 모습에서 당나라의 이발이 만 권의 책을 읽어 '이만권' 의 별명으로 불렸던 것처럼
자신도 만 권의 책을 가슴에 담지 않으면 '갓씨 속에 수미산이 들어 있다' 는 진리의 구경에
닿을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말대로 가슴에는 만권의 책을 다고 팔뚝 아래로는 '한예자원' 에 수록된 한나
라 비석의 총 수를 가리키는 '삼백구비' 의 서체를 모두 익히지 않았더라면 추사체는 탄생할
수 없었다고 김정희는 스스로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김정희가 찾아갔을 때 옹방강은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정제한 후 금글씨로 불경을 베
끼고 있었다. 설날부터 시작하여 그믐날까지 옹방강은 하루에 한 장씩 불경을 베끼어 이를
가까운 절에 보시하고 있었다. 옹방강은 마침 ,반야심경>을 베끼고 있었던 것이다. 한 자 한
자 베낄 때마다 서원에 마련된 불상을 향해 삼배를 올리는 옹방강의 모습에서 김정희는 큰
감명을 받았다.
옹방강이 금글씨로 불경을 베끼어 보시하였다는 법원사는 오늘날에도 북경에 남아 있으며
옹방강이 보시한 불경은 사찰의 보물로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거유 옹방강도 이미 김정희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다. 그는 한눈에 범상치 않은 김정희
의 모습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김정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기 있는 난이 보이느냐,"
마침 금글씨로 사경을 하고 있던 옹방강 옆에는 난초가 한 그루 자라고 있었다. 춘란이었
다.
"보입니다."
김정희가 대답하자 옹방강이 말하였다.
"이 난을 한번 쳐보아라."
김정희에게는 낯익은 춘란이었다. 꽃이 다른 난들보다 일직 피기 때문에 보춘화라고도 불
리는 이 난은 그러나 아직 엄동설한이었으므로 꽃은 피지 않고 있었다. 김정희는 옹방강이
시키는 대로 익숙한 솜씨로 난을 치기 시작하였다.
임상옥은 옆에 앉아 난을 치는 김정희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에게는 경이로운 풍경이었
다. 흰 백지 위에 김정희가 붓을 들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난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순식간에 종이 위에는 김정희가 친 춘란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김정희가 그림을 끝내고 붓을 내려놓자 옹방강이 다가와 그 그림을 보며 말하였다.
"네가 그린 난에서는 어찌 꽃이 피지 아니하였느냐."
김정희가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꽃이 피다니요. 아직 꽃이 피기에는 이른 엄동설한입니다."
그러자 옹방강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내 눈에는 꽃이 보이는데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네가 난을 그릴 줄
만 알았지 난을 보지는 못하였구나, 이제 보니 네가 앞을 못 보는 장님이로구나."
"꽃을 그리겠습니다."
김정희가 다시 붓을 세워들었다.
김정희는 옹방강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춘란에는 잎만 무성할 뿐 그 어디에도
꽃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일찍 꽃이 피는 춘란이라 하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아 꽃
봉오리조차 맺혀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옹방강은 분명히 꽃이 보인다고 말하고 있지 아니
한가.
김정희는 그림 속에 상상의 꽃을 그려넣기 시작하였다. 평소에 춘란을 많이 그렸었던 김정
희인지라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화경을 그려놓고 꽃을 그려놓고 꽃받침을 그려넣었다. 임상
옥은 거침없이 그려 나가는 김정희의 솜씨를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러자 살아 움직이던 춘란은 갑자기 만개하나 꽃으로 황홀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김정희
가 그림을 끝내가 옹방강이 다가와 그림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말하였다.
"마침내 꽃이 피었군."
그러면서 옹방강은 김정희가 그런 춘란의 그림을 들어 심호흡을 하면서 냄새를 맡아 보며
말하였다.
"하지만 그대가 그린 춘란의 꽃에는 향기가 없어."
김정희는 당황한 얼굴로 옹방강을 쳐다보았다.
"그대는 난을 그릴 줄만 알았지 꽃을 본 적도 없고, 꽃을 그릴 줄만 알았지 꽃의 향기를
맡아 본 적이 없군."
그리고 나서 옹방강은 자신이 금글씨로 사경하던 <반야심경>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내가 지금 불경의 한 자 한 자를 베끼고 있다면 나는 다만 글씨를 베끼는 필경사에 지나
지 않는다. 나는 글씨를 베끼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새기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대가 난을
베끼고 있다면 그대는 다만 그림을 옮기는 화공에 지나지 않는다. 마땅히 난을 그렸으면 꽃
이 피어나야 하고 꽃이 피면 향기가 있어야 한다. 향기가 없는 난이야 죽은 난이지 그것을
어찌 살아 있는 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말을 들은 순간 김정희는 크게 깨우쳤다.
옹방강은 그 당시 철저하게 정도의 수련을 강조하던 이상가였다. 그는 마땅히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소동파를 거슬러 올라가 두보에까지 도달해야 하는 것을 정통으로 삼고 그들의 경
지에 이르러야만 마땅히 정도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옹방강은 시도의 가치를 문자향과 서권기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문자향' 과 '서권기'.
이는 옹방강이 추구하였던 최고의 이상이었다.
즉, 아름다운 문장에서 저절로 풍겨나오는 멋스러움과 좋은 내용을 담은 책에서 저절로 풍
겨나오는 기운을 궁극으로 보았던 것이다.
옹방강은 시. 서. 화 일치의 문인화풍을 존중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림의 기법이나 기술
보다는 심의를 존중하는 문인화풍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있었던 것다 .
김정희가 훗날 문인화풍에 철저하게 된 것은 이렇듯 스승 옹방강을 만나 큰 영향을 받은
때문인 것이다.
김정희는 옹방강의 영향을 받아 예서를 쓰듯이 필묵의 아름다움을 주로 하여 고답하고 간
결한 필선으로 심의를 노출시키는 문기 있는 그림, 즉 문인화를 그리는 데 전생애를 바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김정희는 난을 잘 쳤었는데 그는 항상 난 치는 것을 예서 쓰는 것에 비겨 말하고 스
스로의 마음속에 거짓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정희는 무엇보다 위선을
싫어하였으며, 따라서 혼자 있다 해도 '열 사람의 눈이 바라보고 열 사람의 손이 가리키는
삼엄함' 이라는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난을 치는 데 있어 한 가닥의 줄기, 한 장의 꽃잎이라도 스스로 속이면 얻을 수 없으며,
그림으로 남을 속일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난을 치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마음에
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김정희는 스승 옹방강과의 첫 대면에서 그 진리를 한순간에 깨달은 것이다. 이로써 김정희
는 옹방강의 제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몇 년 뒤에는 옹방강이 서찰을 통해서 김정희를 자신
의 의발제자로 인정한 것이다.
김정희가 환국하여 돌아온 지 2년 후 옹방강은 편지를 통해 김정희가 자신의 법을 잇는 정
법제자임을 알리고 '시암' 이란 호를 지은 편액을 직접 보내주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김정희는 스승이 보내준 '시암' 이란 호를 사용하였으며 특히 난초 치는 그림이나
문인화풍의 그림을 그렸을 때에는 스승 옹방강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 스승이 직접 내려준
호를 즐겨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김정희에게 있어 옹방강과의 만남은 운명적인 것이었다.
옹방강을 만남으로써 김정희는 예술가로서 거듭나게 되었던 것이다.
훗날 박혜백이란 사람이 김정희에게 어떻게 그렇게 글씨를 배우게 되었습니까,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이에 김정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글씨에 뜻을 두었었는데, 스물 넷에 연경에 들어가서 여러 이름난 큰
선비를 뵙고 그 서론을 들으니 손가락 쓰는 법, 붓을 쓰는 벗, 먹 쓰는 법으로부터 줄을 나
누고 자리를 잡는 것과 과나 파나 점과 획을 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우리 동쪽나라 사람들이
익히던 바와는 사뭇 달랐었다..."
김정희는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 고백하였던 이 말처럼 옹방강을 만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익혀왔던 손가락 쓰는 법, 붓 스는 법, 먹 쓰는 법까지 모두 버리고 새로 재생하엿던 것이
다.
그러나 이는 김정희뿐만 아니었다.
우연히 김정희의 통역으로 따라 나선 임상옥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도 이제까지는 한 번
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신천지의 세계였던 것이다.
임상옥은 어려서부터 장사꾼이었던 아버지 임봉핵의 뒤를 좇아서 중국을 드나들던 객상에
불과하였으므로 그들이 나누는 학문과 경학의 세계는 실로 경이로운 것이다.
어쨌든 김정희를 통해 큰스님 석숭의 '죽을 사' 의 의미를 깨달은 임상옥은 더 이상 연경
상인들의 불매동맹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이처럼 매일같이 김정희과 함께 연경의 학자들을
찾아다니는 데만 전념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 임상옥의 태도에 몸이 달은 것은 박종일이
었다.
박종일은 틈만 있으면 임상옥을 찾아왔다. 그러나 임상옥의 행방은 항상 오리무중이었다.
심상치 않은 연경 상인들의 험악한 분위기를 잘 알고 있던 박종일은 하루하루가 침이 마르
고 불안하였다. 이러다간 장사꾼으로 파산하는 것은 물론 살아서는 연경을 빠져나가지도 못
할 정도로 분위기가 흉흉하였던 것이다.
간신히 임상옥을 만난 박종일은 그래서 따져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어렵게 만났지만 너무나 편안하고 태연한 임상옥의 태도에 박종일은 어이가 없어 말하였
다.
"뵐래야 뵐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얼굴이라도 뵐 수가 있어야지요."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보다시피 잘 있지 아니한가."
"형님."
박종일이 임상옥의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도대체 어쩌자고 이러시는 것입니까. 이제 연경을 떠날 날짜가 열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열흘이면 연경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이지."
임상옥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그런데 지금 연경의 상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모르겠네."
형님께서 새로 써주신 게시판을 내걸자 찾아온 상인들이 침을 뱉으며 이렇게 욕을 하였습
니다. 꾸웨즈라구요."
"귀신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 귀신일세."
임상옥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뿐인 줄 아십니까. 상인들은 또 이렇게 침을 뱉으며 욕을 하였습니다. 토우라구요."
그러나 임상옥의 얼굴에는 아무런 동요도 일지 않았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다만 이렇게 말하였을 뿐이다.
"걱정 말고 그냥 돌아가시게. 가서 신나게 술을 마시고 중국 여인들이나 품고 노시게나."
여색을 좋아하는 박종일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임상옥이었으므로 그는 툭툭 박종일의 어
깨를 치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곧 그들이 침을 뱉었던 바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우리들에게 따런 이라고 매달리
며 용서를 빌 때가 찾아올 것이니까."
임상옥은 박종일이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용돈을 찔러 넣어 주면서 말하였다.
"너무 걱정 마시게나. 궁하면 통하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반드시 있는 법이니
까."
박종일은 임상옥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에게는 어차피 청루에 들러 계집을 사서 놀며 시간을 보내는 방법뿐이 없었
다.
박종일을 물리친 후 임상옥은 다시 김정희를 따라 나섰다. 임상옥은 김정희가 만나는 학자
들에게 선물하는 인삼을 전담하고 있었다. 중국의 학자들도 모두 인삼의 소문을 듣고 있었
기 때문에 김정희가 갖고 오는 인삼 선물은 그들에게 호의를 갖게 하였다.
옹방강 이후 김정희가 만난 최고의 학자는 완원이었다. 당시 완원은 47세의 소장학자였지
만 최고의 학자이자 정치가, 서예가이자 문학자였다. 그의 호는 운대, 자는 백원이었다.
그는 조정의 요직에 두루 올랐고 양광총독에도 올라있던 정치가였으나 무엇보다 학자들을
많이 키우고 학술 진흥에 앞장섰던 최고의 사상가였다.
완원은 옹방강과 함께 김정희를 이룬 양대 산맥이었다.
따라서 김정희는 이 두 스승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와 '옹완' 이라고 이름을 약하여 함께
부르곤 하였다.
먼 훗날 제주도로 귀양을 갔었던 김정희는 두 스승을 생각하면서 두 스승의 차이점으르 한
마디로 표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옹방강 스승은 이르기를 '나는 옛 경전을 좋아한다' 고 말하시고, 왕원 스승은 이르기를
'남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 하였는데 이 두분의 말씀이 내
평생을 모두 다 나타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바다 밖의 삿갓쓴 한 사람이 되어
홀연히 원풍대의 조인같이 되었는가."
스스로 그런 초상화에 붙인 이 문장은 제주도까지 귀양온 자신의 처지를 송나라 원풍 3년
에 억울한 누명을 썼던 시인 소동파로 비유하여 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문장 안에
서 볼 수 있듯 '옹방강' 과 '완원' 은 김정희의 정신세계에 두 가지의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 정신의 하나는 '옛 경전을 좋아한다'는 옹방강의 훈고정신이고, 다른 하나는 '남이 말하
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는 완원의 비판정신이었던 것이다.
'옛 경전을 좋아한다' 는 옹방강의 훈고정신은 김정희에게 소동파와 두보에 거슬러 올라가
기까지의 정통적인 시도 정신을 배워 익히게 하여 고증학에 전념케 하였다.
당시 옹방강은 옛 문헌에서 확실한 증거를 찾아 실증적으로 연구하려는 고증학적 연구방법
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는 완원의 비판정신은 이
러한 정통적인 고증학적 학문 위에 실용적인 실학사사을 덧붙였던 것이다.
완원은 청조의 경학을 이어 경세치용을 주창하고 있었다. 따라서 완원이 주창하였던 '실사
구시' 는 김정희의 사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실사구시.
사실에 근거하여 진리나 진상을 연구하는 그런 태도야말로 완원이 주창하던, 세상을 다스
리고 백송을 구제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옹방강이 이렇듯 고전에 바탕을 둔 이상주의자였던 완원은 이렇듯 사실에 바탕을 둔 현실
주의자였던 것이다.
김정희가 완원을 찾아갔을 때에는 완원은 제자들과 더불어 태화쌍비지관이란 서원을 열고
있었다.
그는 중국이 전역에 서원을 열고 있었다. 강동에는 학해당이란 열었으며 절강에는 고경정
사를 열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학자들과 함께 <경전찬고>란 책을 편찬했다.
때마침 왕도인 연경으로 돌아와 있던 완원은 찾아온 청년 김정희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
는 엄걸을 비롯하여 주학년, 홍점전 등 자신의 제자 수십 명과 함께 있었는데 그는 김정희
가 삼배를 올리자마자 이렇게 말하였다.
"이 난이 보이는가."
완원은 서원 한곁에서 자라고 있는 난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 난 역시 옹방강의 서원에
서 자라고 있는 난과 똑같은 춘란이었다.
"보입니다."
김정희가 대답하자 완원은 말하였다.
"그대의 붓솜씨가 천하일품이란 소문은 익히 들었으니 한번 이 난을 쳐보도록 하시오."
공교롭게도 옹방강을 찾아갔을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옹방강을 찾아갔을 때도
첫 번째 인사가 춘란을 한번 쳐보라는 주문이 아니었던가.
김정희는 붓을 들어 그 난을 치기 시작하였다. 물론 때는 엄동설한이었으므로 춘란에는 꽃
이 피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옹방강으로부터 마땅히 난을 그렸으면 꽃이 피어나야 하
고 꽃이 피어나면 향기가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던 김정희였으므로 김정희는 서슴지
아니하고 꽃을 그려넣기 시작하였다.
그림의 기법이나 기술보다는 심의를 더 존중하는 문인화풍이라면 당연히 꽃과 향기를 그려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정희가 그린 춘란은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웠다. 옆에서 지켜본 임상옥은 넋을 잃고 바라
보았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옹방강이 말하였던 꽃의 향기마저 풍겨나오고 있었다.
김정희가 그림을 끝내가 완원이 다가와 그림을 보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피지도 않은 꽃을 그려넣었던 말인가."
김정희는 당황하였다.
"내 눈에는 정녕 꽃이 피지 아니하였는데 그대의 눈에는 어찌하여 꽃이 보인단 말인가. 있
지도 아니한 것을 있다고 속이는 것은 한갓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는 한마디로 난을
친 것이 아니라 거짓의 나을 그려 보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극단적인 두 스승의 태도였다. 그러나 이 극단적인 두 스승의 태도가 결국 추사
김정희를 이룬 사상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옹방강은 심의의 꽃을 강조함으로써 김정희의 예술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완원은 실제의 꽃을 강조함으로써 김정희의 사상을 완성시킨 것이었다.
첫 대면한 김정희를 꾸짖고 나서 완원은 붓을 들어 종이 위에 문장 하나를 써내렸다. 김정
희는 완원이 쓴 문장을 읽어보았다.
'실사구시'
그 문장이야말로 완원의 핵심사상이었으며 또한 김정희 사상의 골수였던 것이다.
이렇듯 김정희는 두 스승으로부터 극단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옹방강으로부터 '문자향 서권기' , 즉 아름다운 문장에서 저절로 풍겨나오는 멋스러움과 좋
은 내용을 담은 책에서 저절로 풍겨나오는 기운을 궁극으로 보고 그림의 기법이나 기술보다
는 심의를 존중하는 시도를 전수받았으며, 완원으로부터는 '실사구시' , 즉 공허한 이론을 숭
상하거나 있지도 않은 학풍에 매달리기보다는 '실제로 있는 일에서 올바른 이치를 찾아 이
를 실행에 옮기는 비판정신' 을 전수받았던 것이다.
김정희의 추사체가 완성된 것은 김정희가 말년에 제주도에 귀양을 가서 그곳에서 9년간 머
무르고 있을 때였는데 그는 스스로 초상화를 그린 후 그 초상화 옆에 다음과 같은 글을 자
제하였다.
'진짜의 나도 역시 나고, 가짜의 나도 역시 나다. 진짜의 나도 역시 옳고 가짜의 나도 역시
옳다.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어느 것이 나라고 할 수 없구나. 제석궁 구슬들이 켜켜로 쌓였
거늘 누가 능히 그 구슬들 속에서 참모습을 가려 집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핫하하.'
옹방강은 심의의 꽃을 강조함으로써 김정희의 예술을 완성시켰고 완원은 실제의 꽃을 강조
함으로써 김정희의 사상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김정희는 있지도 않은 심의의 꽃과
실제로 존재하는 실제의 꽃 사이에서 진짜의 꽃을 찾아 마침내 자신만의 독창적인 추사체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당대의 거유였던 완원 역시 김정희에게 매료당하고 만다. 완원의 서원이었던 태화
관에서 차를 마시면서 완원과 김정희 사이에 벌어진 논전은 매우 유명하였는데 한마디로 이
풍경을 민규호는 <소전>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각로 완원은 당시의 큰 선비로서 그 이름이 중국 안에 크게 떨치고 있었으며 직위가 또한
높아 가볍게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번 공을 보고는 곧 막연한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났을 때 완원은 47세였고 김정희는 24세였으므로 부자지간의 나이
차가 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민규호의 표현대로 첫 대면에 벌써 '막연한 사이' 가 되었
던 것이다.
또한 민규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두 사람은 경전의 진의를 논의하고 변석하는데 불꽃 튀는 논전을 벌이니 서로 조금도 굽
히지 아니하였다.'
이로써 김정희는 옹방강의 수법제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완원의 수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완원은 김정희에게 다음과 같은 미칭을 붙여주었던 것이다.
'해동제일통유'
해동, 즉 조선 제일의 통유라는 미칭이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통유란 말은 세상 일에 두루
통하고 실행력이 있는 유학자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김정희는 스승 완원이 붙여준 이 미칭을 조금도 사양하지 앟고 스스로 즐겨 쓸 만큼 자부
심을 갖고 있었다.
김정희가 스승 완원으로부터 이 미칭을 정식으로 받은 것은 전별연에서였다.
1810년 경오년 2월 1일.
완원은 자신의 제자들을 모두 모이게 하고 김정희를 위한 전별연을 벌여 주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때 모인 완원의 제자가 삼십 명이 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전별연에 임상옥도 함께 참석하였다. 술이 거나하게 오가는 흥취 있는 연회였다.
한찬 술이 거나할 무렵 술잔을 들어 떠나는 제자 김정희를 위해 건배를 제의한 다음 스스
로 붓을 들어 다음과 같이 썼다.
'해동제일통유'
당대 제일의 거유였던 완원이 직접 인정하고 지은 김정희의 새로운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완원은 떠나는 제자 김정희에게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선물을 전했던 것이
다.
당시 완원은 제자들과 함께 <황청경해>란 책을 편찬하고 있었다. 이는 188종 1,400권에 이
르는 방대한 양으로 일흔 세 명의 청나라 유학자들의 경서 해석을 수록하고 주해고증, 문자
훈고를 비롯하여 역산 연구서까지 포함하고 있던 청대 고전연구의 총서였던 것이다.
이 총서가 완성된 것은 김정희가 환국한 지 19년이 지난 1829년 무렵의 일이었지만 이때
벌써 완원은 김정희를 위해 그 초본 몇 권을 기증하였던 것이다.
'해동제일통유' 란 미칭으로 인가를 받고 <황청경해>의 초본을 전별 선물로 받은 김정희는
스승 완원의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돌아온 이후 자신의 호를 완당으로 새로 지었던 것이
다.
그것은 스승 완원의 이름 첫 자에 '완' 을 빌려다가 '집 당' 자를 붙임으로써 자신이 완원의
사상을 잇는 제자임을 스스로 드러내 보였던 것이다.
옹방강으로부터 받은 '시암' 이라는 호와 완원을 기리기 위해서 스스로 지은 완당이란 호를
사용함으로써 김정희는 두 스승의 큰 은덕을 절대 잊이 않았던 것이다.
이렇듯 떠나는 제자 김정희를 위해 뜻깊은 선물을 하였던 완원과는 달리 옹방강도 나름대
로 떠나는 제자 김정희를 위해 법원사에서 불경 4맥여 권을 얻어 이를 전별 선물로 김정희
에게 주었다.
그뿐 아니라 귀한 불상도 함께 주었는데 김정희는 이를 가져와 고향에서 가까운 마곡사에
기증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김정희가 스승 옹방강으로부터 선물받아 가져온 4백여 권의 경전과 불상이 오늘날에도 마
곡사에 그대로 남아 전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로써 김정희는 불과
한 달 남짓의 연경 체류를 통해 신학문의 세계에 눈을 떴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대사상가
와 대예술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김정희가 신학문에 눈을 뜨는 동안 임상옥은 어떻게 상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
던가.
큰스님 석숭이 남겨준 참언 '죽을 사'의 비의를 통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벌어졌던 연
경 상인들의 불매동맹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일까.
물리쳤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당대 최고의 무역왕으로 기사회생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
었던 임상옥의 상도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완원이 떠나는 제자 김정희를 위해 전별연을 열어준 그 다음날인 2월 2일은 임상옥과 연경
상인들 간에 생사가 걸린 건곤일척의 상전을 벌인 결전의 날이었다.
3
그날 아침, 임상옥은 날이 밝자마자 박종일을 비롯한 자신의 종들에게 귀국할 채비를 갖
추라고 명령을 하였다. 하인들은 말에 안장을 놓는다. 짐보따리를 꾸린다 하면서 바쁘게 움
직이고 있었다.
다음날인 2월 3일은 김노경을 주청사로 하는 사신 일행이 환국을 하기 위해서 연경을 출발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연경의 상인들은 비록 그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풀어놓고 임상옥의
행동을 일일이 염탐하고 있었다.
연경의 상인들은 내일이면 임상옥을 비롯한 사신들이 연경을 떠난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하
고 있었던 것이다.
5천 근이나 되는 인삼바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가져온 그대로 수레에 싣고서 그냥 갖고
돌아가려는 것일까. 임상옥의 인삼은 이 연경에서 팔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는 팔 데가 없을
것이다.
연경 상인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염탐꾼을 풀어놓고 임상옥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귀국할 모든 채비가 끝나자 박종일이 눈치를 살피면서
임상옥에게 물어 말하였다.
"형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말인가."
분명히 박종일의 속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임상옥이 짐짓 딴청을 부리면서 말하였다.
"인삼 말입니다. 저희들이 가져온 5천 근이나 되는 인삼 말입니다."
"아, 그렇지."
글제서야 생각난 듯 임상옥이 무릎을 치면서 말하였다.
"인삼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 그걸 깜박 잊고 있었군."
박종일은 임상옥이 제정신이 붙어 있는가 눈치를 살피면서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인삼바리를 도로 수레에 싣도록 할까요."
"가져온 인삼을 도로 가져갈 수는 없지."
"그럼 어떻게 할까요."
"가져온 인삼이니까 일단 연경에 두고 가야지."
박종일은 어이가 없어 말하였다.
"두고 가다니요. 단 한 사람도 찾아와 사려는 사람이 없는데요. 단 한 근의 인삼도 팔리지
않았대요."
"여봐라."
박종일의 대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임상옥이 말하였다.
"인삼을 모두 마당에 쌓아 놓도록 하라."
박종일이 묵고 있던 회동관 뜨락에 5천 근이나 되는 인삼이 가지런히 포개어져 쌓여졌다.
그리고 나서 임상옥이 다시 명령하였다.
"장작더미를 마당 한곁에 쌓아 놓도록 하여라."
"장작더미라니요."
박종일이 다시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 말하였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뭘 따져 묻고 있는가."
임상옥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웬만한 일에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던 임상옥의 얼굴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임상옥의 얼굴에는 단호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임상옥의 명령대로 마
당 한곁에 장작더미가 쌓여졌다.
"어떻게 할까요."
장작더미가 쌓여지자 다른 하인이 임상옥에게 물어 말하였다. 그러자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라."
그제서야 박종일은 임상옥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 박종일은 임상옥의 눈
치를 살폈지만 워낙 단호한 결단의 얼굴이라 뭐라고 말을 붙이거나 참견할 수 없었다. 그는
묵묵히 임상옥이 하는 대로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인은 임상옥이 시키는 대로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다. 바짝 마른 장작이라 부을 붙자마자
무서운 기세로 타올랐다. 연경 제일의 여인숙 앞마당에 갑자기 대낮에 장작을 태우는 연기
가 피어오르고 화관이 충천하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때아닌 불놀이가 벌어진 셈
이다. 장작더미가 불이 붙어 맹렬하게 타오르자 다시 하인이 임상옥에게 물어 말하였다.
"장적더미에 불이 붙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임상옥이 단숨에 말하였다.
'인삼을 불 속에 집어넣게."
"뭐라구요."
하인은 행여 자신이 잘못 들었는가 다시 물어 말하였다.
"인삼을 어떻게 하라굽쇼."
"인삼을 불 속에 집어던져 태워버리라니까."
하인은 멈칫했다. 그때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박종일이 소리쳐 말하였다.
"귀가 먹었는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무슨 말이 그리 많은가. 인삼을 불 속에
넣어 태워버리라 하시잖는가."
박종일이 먼저 나가 인삼 한 덩어리를 불 속에 집어넣었다. 무섭게 타오르는 화염이 던져
진 인삼을 핥기 시작하였다. 곧 인삼에 불이 붙어 인삼의 독특한 향이 매캐한 연기에 섞여
번져나갔다. 이왕 내친 김이었다. 하인들도 이젠 어쩌는 수 없이 인삼덩어리를 불 속에 집어
던지기 시작하였다. 때아닌 불놀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순간 경악하였다.
그들은 조선의 상인들이 불 속에 집어던지는 것이 다름아닌 인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
간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 구경꾼 중에는 연경 상인들의 염탐꾼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
은 임상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지켜보던 상인들의 거간꾼들이었다.
그들은 임상옥이 화동관 앞마당에 부을 지르고 그 불 속에 인삼꾸러미를 집어던져 태우기
시작하자 혼비백산하였다. 그들은 달려가 자신들의 주인인 약재상들에게 이를 낱낱이 고하
였다.
"조선의 상인이 불을 지르고 인삼을 모두 태우고 있습니다."
염탐꾼들의 전갈을 받은 상인들은 모두 단숨에 뛰어왔다. 그들은 실제로 임상옥이 인삼을
태우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연경을 드나드는 인삼 상인들은 예로부터 가짜 인삼, 즉 도라
지를 따로 준비해서 갖고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다. 여행도중에 도적을 만나면 인삼이라 하
고 도라지를 대신 빼앗기기 위해서 그런 방법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약재상들은 임상옥이
인삼을 태우는 척 하고 실은 도라지를 태우는 것이 아닐까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불 속에 던져지는 것은 분명히 인삼이었다. 인삼 중에서도 수년간 볼 수 없었던 정품의 홍
삼이었던 것이다. 인삼에는 사포닌이라고 하는 독특한 주성분이 있다. 이를 중국의 약재상들
은 배당체 라고 부르고 있었다. 인삼을 먹었을 때 약간 씁쓰레한 이 향기야말로 인삼만이
가진 독특한 맛이자 약리작용을 하는 주성분임을 약재상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
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삼을 태우면 사포닌 성분이 불과 작용하여 연소할 때 인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약재상들은 본능적으로 솟아오르는 연기 냄새를 통해 인삼이 타오르
고 있음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연경의 약재상들은 상상을 초월한 임상옥의 광기에 우선 기가 질렸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임상옥이 태우는 것이 인삼이 아니라 실은 자신의 몸임을.
연경 상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상인들은 무엇보다 인삼을 자신의 생명처럼 알고 있음을.
그러므로 인삼을 태운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태워 소신공양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
다.
소신공양.
불길에 자기의 몸을 스스로 태워 죽음으로써 부처에게 공양하는 행동을 소신공양이라고 부
르고 있다. 따라서 임상옥이 자신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인삼을 스스로 태워버리는 것은 스
스로의 몸에 불을 지르는 분신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연경 상인들은 임상옥의 결단에 우선 기가 질렸다. 그 순간 연경 상인들은 갑자기 분노하
기 시작하였다. 연경의 약재상들에게 있어서도 인삼은 생명과 같은 것이었다.
조선의 무역상들에게만 인삼이 생명이 아니라 그것을 사는 연경의 약재상들에게도 인삼은
생명이었으며 신령한 신비의 약초였던 것이다. 중구그이 상인들은 인삼을 활인초 라고 부르
고 있었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풀을 어찌 태워 한 줌의 연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천하의 명약인 인삼을 불 속에 태워버리는 임상옥의 태도에 연경의 약재상들은 한순간 분
노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럴 수가 잇는가. 감히 인삼을 태워버리다니. 사람을 사리는 신비의 약을 태워 한 줌의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다니."
그러나 연경 상인들의 분노는 곧 절박한 현실감으로 바뀌어갔다. 자신의 생명과도 다름없
는 인삼을 불태우는 임상옥의 미친 광기를 탓하여 지켜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들이 지켜보는 바로 앞에서 이 엄청난 양의 인삼이 모두 불태워져 한 줌의 재로
사라진다면 앞으로 수년간 연경에서는 인삼을 눈을 뜨고 볼래야 볼 수 없게 되는 것이 분명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것은 오히려 연경 상인들이었다. 인삼이 불태워져 모두 사라져버린다면 임상옥뿐
아니라 그들 자신도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중국에선 의학이 발달하여 수말은 명의들이 배출되었다. 갈가구, 이동원, 모단계 이렇
게 세 의원이 특히 유명하여 사람들은 이 세 사람을 신의라고 부르곤 하였다.
이 세 사람의 명의는 모든 병의 근원을 허로토혈 네 증상으로 보았으며, 기가 허하고 피로
하고 토하여 피가 부족한 것을 보함으로써 병을 무리칠 수 있다고 하여 양음성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 세 신의들은 허로토혈을 치료하는 데에는 오직 인삼이 특효라고 신처방을 내린
것이었다. 이로부터 '조선의 인삼이 가미되지 않은 중약은 약도 아니다' 라는 정설이 일반
화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인삼이 없다면 모든 백약이 무효하게 될 것이며 모든 약재상들과 중약점들을 문을
닫고 폐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국 상인들은 불매동맹을 맺음으로써 임상옥을 골탕먹일 것만 생각하였지 자신들도 먹이
사슬에 의해 임상옥과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너나할 것 없이 여경의 상인들이 앞서 나서기 시작하였다.
"임 대인,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요."
"어쩌자고 이러는 거요."
"임 대인, 어서 불을 끄도록 하시오. 불을 끄라 이르시오."
그러나 임상옥은 아이 동풍이었다. 그는 소리쳐 하인들에게 명령하였다.
"무엇들을 하고 있느냐. 불기운이 꺼져가고 있지 않느냐. 장작더미를 더 던져놓도록 하여
라."
하인들은 타오르는 불 속에 장작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다시 무서운 기세로 화염이 타오르
기 시작하였다. 임상옥은 다시 소리쳐 명령하였다.
"인삼을 더 많이 불 속에 집어던져 넣어라."
자신들의 눈앞에서 5천 근이나 되는 인삼의 반 정도가 이미 잿더미로 변하는 모습을 본 순
강 중국 상인들이 앞장서 나서기 시작하였다.
"불을 끄시오. 불을 끄도록 하시오."
그 현장에 왕조시가 나와 있어 중국 상인들이 다투어 왕조시에게 말하였으나 왕조시는 묵
묵부답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실제 주인인 임상옥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임 대인, 불을 끄도록 하십시다."
"불을 꺼 무엇을 하려구 그리들 하시오. 당신들 모두 내 인삼이 필요치 않다고 불매동맹을
맺지 않았소이까. 필요치 않은 인삼이야 남겨두어 무엇을 하겠소이까. 그대로 가져간들 소용
도 없거니와, 남겨둔들 버림받아 쓸 일도 없으니 자연 태울 수밖에."
"아이구, 임 대인. 우리가 졌습니다. 불을 끕시다. 일단 불을 끄고 나서 말을 하도록 합시
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불을 끈 사람은 임상옥이 아니라 박종일이었다고 한다. 임상옥은 그
즉시 현장에서 떠나 자취를 감춰 버리고 현장에 남은 두 사람 왕조시와 박종일이 새로운 상
담을 벌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중국 상인들의 금과옥조는 '6자 비결' 과 '4자 비결' 이었다. 일찍이 중국 상인 중에
전설적인 인물 하심은이란 사람이 이었다. 이 사람에게 어떤 상인이 찾아가 돈을 버는 비결
을 물었다. 그때 하심은은 첫 번째로 '6자 비결'을 써주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푼에 사서 한 푼에 팔아라."
다시 상인이 하심은에게 말하였다.
"돈을 버는 방법이 더 있습니까."
그러자 하심은은 다시 비결을 써주었는데 이번에는 4자였다.
그래서 이를 '4자 비결' 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꺼번에 사서 낱개로 팔아라."
두 가지의 비결을 전해들은 그 상인이 다시 하심은에게 청하여 물었다.
"돈을 버는 세 번째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이에 하심은이 단숨에 말하였다.
"열 자면 충분하다. 그 이상은 없다."
하심은의 '6자 비결' 과 '4자 비결' 은 중국 상인들의 금과옥조였던 것이다.
'한 푼에 사서 한 푼에 팔아라' 라는 6자 비결의 뜻은 '사는 즉시 팔아야 한다' 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한꺼번에 사서 낱개로 팔아야 한다' 라는 4자 비결의 뜻은 염가로 대량 구입
하여 이윤을 붙여 낱개로 팔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사는 즉시 팔아야 한다' 라는 중국 상인들의 상업 철학의 의미는 흥정은 치밀하지 않더라
도 매매는 단숨에 이루어지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즉시 왕조시와 박종일과 더불어 새로운 상담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어제까지의 자
존심은 아랑곳없는 중국 상인 특유의 노희함 때문이었다.
중국 상인들에게 있어 자존심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있어 이익은 최고의 선인
것이다. 일직이 임어당은 중국인의 성격 중 나쁘면서도 뚜렷한 세 가지 특징을 '참을성' '무
관심' 그리고 '노희함'으로 구분하여 설명한 일이 있었다.
특히 중국의 상인들은 노희의 극치였다. 이들은 '큰 일은 작은 일로 환원할 수 있고 작은
일은 없던 것으로 환원할 수 있다' 는 상인들의 처세술을 철저히 신봉하고 있었다. 따라서
어제까지의 자존심 싸움과 같은 큰 일은 이익을 위해 작은 일로 바꿔 생각할 수 있으며 오
늘의 굴욕이나 수치 같은 작은 일은 아예 없는 일로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후안무치 하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임상옥은 2월 2일, 단 하루 만에 불에 태우다 남긴 인삼 모두를 단숨에
팔아치울 수 있었다.
불에 태운 인삼으로 손해본 가격을 모두 중국 상인들이 떠맡기로 한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따라서 임상옥은 새로 내걸었던 공시가격 45냥에서 단 한 푼도 깎아주지 않고 원하는 가격
대로 단 하루 만에 인삼을 모두 팔아치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불에 태운 인삼을 감
안하면 중국 상인들은 인삼 한 근에 50냥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인삼을 사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종전 가격의 네다섯 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단 한 번의 상전을 통해 막대한 재화를 벌었다는 임상옥의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
라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있었던 연경 상인들의 불매동맹을 기묘한 방법으
로 물리친 임상옥의 상업철학에 그 의의가 더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임상옥은 큰스님 석숭의 참언대로 죽음으로써 보다 큰 생명을 얻었던 것이다. 이는 비단
상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정치, 모든 종교, 모든 예술, 인간사회의 모든 일들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아 포기
의 죽음이란 무를 반드시 통해야만 기쁨인 존재의 유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리 그 자체인 것이다.
추사 김정희를 통해 이순신의 '반드시 죽으려 하면 살 것이요, 반드시 살려 하면 죽을 것이
다' 란 문장을 접하게 되고 그 문장에서 큰스님이 내려준 죽을 사 자의 비의를 깨닫게 된
임상옥은 이로써 일생일대에 맞닥뜨린 첫 번째 위기를 통쾌하게 물리치게 되는 것이다.
물리쳤을 뿐 아니라 그 위기를 조선 최대의 무역왕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역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기회는 이처럼 위기 속에 있는 법이니 이로부터 임상옥은 조선의 상계뿐 아니라 연경의 상
계까지 제 손바닥 안에 넣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만큼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4
1810년 경오년 2월 3일.
마침내 김노경을 주청사로 하는 사신 일행은 연경을 출발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인삼 5천
근을 연경까지 싣고 갔던 빈 수레는 대신 김정희의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옹방강이 김정희를 위해 법원사에서 선물로 준 불경 4백 권과 불상도 실려 있었으며 완원
이 떠나는 제자 심정희를 위해 주었던 <황청경해>의 미완성 초본도 수레에 실려 있었다.
옹방강의 문도인 섭지선을 통해 수백 점의 화적도 얻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스승 옹방강
으로부터 <한예자원>에 수록된 한비들의 탁본들도 수백 장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김정희가 돌아온 즉시 함흥 황초령에 있는 신라의 진흥왕 순수비를 고석하고 또한 북한산
비봉에 있는 석비가 조선 건국시 무학대사가 세운 것이 아니라 진흥왕의 순수비이며 '진흥'
이란 칭호도 왕이 살아 생전에 사용했음을 밝혀내었던 것은 이렇듯 스승들로부터 고증학에
입각한 금석학에 새로운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가 낳은 최고의 사상가이자 예술가인 김정희가 연경에서 새로운 학문에 눈을 떴다
면, 우리나라가 낳은 최고의 무역왕이자 상인이었던 임상옥도 공교롭게 같은 날 같은 곳에
서 중국 상인들의 불매동맹을 분쇄하고 거상으로 입신할 수 있는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
이다.
연경을 떠난 사신 일행은 일주일 만에 산해관에 도착하였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으로
만리장성의 기점이 되고 있는 산해관은 중국의 관문이었다. 산해관을 들어서면 비로소 중국
안에 들어선 것이며, 산해관을 나서면 비로소 중국을 떠나는 것이었다.
'천하제일관'
하늘 아래 제일의 관문이란 뜻을 지닌 이 현관이 있는 산해관은 상업을 위해 연경을 드나
들 때마다 임상옥의 마음을 다잡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산해관에서 하루를 머무를 때면 임상옥은 으레 술병을 들고 홀로 산해관의 문루가 잘 보이
는 곳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옛 일을 생각하곤 하였다.
"천하제일상, 너는 반드시 '하늘 아래 제일의 관문'이란 저 현관처럼 '하늘 아래 제일의 상
인'이 되어야 한다."
신해관의 문루에 내걸린 현판을 가리키며 말하였던 아비의 말은 그대로 유언이 되었다. 그
말을 남기고 연경에서 돌아온 그해 아비 임봉핵은 술에 취해 강물에 빠져 익사해 죽지 않았
던가.
이후부터 임상옥은 산해관을 드나들 때마다 술병을 들고 나아가 문루 주위에 조금씩 술을
뿌려 죽은 아비의 넋을 달랜 다음 선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맹세하여 말하곤 했었
다.
"아버님이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제가 '하늘 아래 제일의 상인' 이 되겠나이다. 3대째에 이
르렀으나 이루지 못하고 비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와 선대의 한을 반드시 제가 이루어내고
말겠나이다. 그리하여 아버지 영전에 '천하제일당' 의 신위를 반드시 바치겠나이다."
임상옥은 술병을 들고 달빛 아래 위용을 뽐내고 있는 산해관의 문루가 보이는 곳에 앉아서
중얼거려 말하였다.
"이제서야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게 되었나이다. 제가 드디어 '하늘 아래 제일의 상인' 이
되었나이다."
임상옥의 눈에서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마침내 죽은 아비의 유언대로 천하제일의 상인이 된 것이다. 연경 상인들의 불매동맹을 교
묘히 분쇄하고 단숨에 일확천금을 한 것이다. 상상할 수도 없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돈을 단
숨에 벌어들인 것이다. 비참하게 죽은 아비의 소원대로 선대로부터의 한을 풀어버린 것이다.
임상옥은 문루 주위에 술병을 기울여 술을 뿌리면서 죽은 아비의 넋을 달래었다.
그때였다.
문득 임상옥의 귓가에 우렁찬 목소리가 들여왔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임상옥은 그 소리난 곳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순간 임상옥은 오래
전 객상으로 함께 연경에 왔었던 이희저의 모습을 떠올렸다.
10여 년 전, 임상옥과 함께 연경으로 떠났던 이희저. 임상옥을 유곽으로 함께 데리고 간 이
희저. 결국 장미령과의 운명적 만남을 이끌었던 자가 바로 이희저가 아니었던가.
이희저.
이희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임상옥은 이희저가 광산을 경영하며 큰돈을 모아 지신과 쌍벽을 이룰 만큼 거부가 되었다
는 소문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이따금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전하는 우정을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벌써 10여 년 전의 일.
그때 생전 처음으로 남에게 가슴속의 비밀을 털어놓았던 것처럼 임상옥은 마침내 상상할
수 없는 돈을 한꺼번에 벌어들임으로써 마침내 '천하제일의 상인' 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산해관의 문루 앞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는 임상옥에게 누군가 어둠 속에서 나타
나며 말하였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임상옥은 소리난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청년 김정희가 홀로 서 있었다. 날이 밝으면 이제 산해관을 넘어 저 광활한 만주
의 대륙으로 떠난다는 감회로 김정희도 잠 못 이뤄 뒤척이다가 바깥바람을 쐬기 위해 나온
모양이었다.
임상옥은 느닷없이 나타난 김정희가 무척 반가웠다.
"마침 잘되었습니다. 출출하던 차에 술병을 가져 왔는데 한 잔 하시겠습니까, 생원어른."
김정희는 술을 좋아하는 호주가였다. 이 점은 임상옥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산해관의
문루 옆에서 임상옥이 갖고 나온 술병을 기울이며 대작하기 시작하였다.
술 한 병을 단숨에 비워버린 두 사람은 금세 취기가 솟아올랐다. 그러자 갑자기 김정희가
정색을 한 얼굴로 임상옥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한 달 전 저 산해관을 들어올 때만 해도 저는 큰 바다를 몰랐습니다. 따라서 저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것입니다."
김정희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우물 안 개구리는 대해가 있음을 모른다' 라고 하였습니다. 한 달 전의
저는 옛말처럼 큰 바다가 있는 줄 모르던 우물 안의 개구리였습니다. 그런데 한달 남짓 연
경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저는 마침내 큰 바다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내일 아침이면
중국을 떠나 또다시 개구리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예전의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닐
것입니다. 이는 옛 선사들의 선화와도 같습니다.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러나 한번 깨치고 보니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었습니
다.' 마침내 확철대오한 끝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러나 이때의 경지는 예전과 다릅니다. 이때의 산은 산이지만 예전의 산이 아니고 이때의
물은 물이지만 예전의 물이 아닌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일 아침이면 중국을 떠
나 내 나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예전의 '우물 안의 개구리' 는 아닙니다. 이제
저는 '큰 바다 속의 개구리' 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김정희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담계 노인께서 떠나는 제게 화도사비첩의 탁본을 주셨습니다. 아마도 연경에서 받아 가져
가는 선물 중에 가장 귀한 선물의 하나일 것입니다."
'화도사비첩'은 당나라 초기인 정관 5년에 옹선사의 사리탑을 세울 때 당시 74세의 구양순
이 쓴 글씨로 새긴 비첩인 것이다.
구양순.
태어나기를 키가 작고 얼굴이 못생겨서 남의 업신여김을 받는 등 어릴 때부터 불행한 환경
을 참고 견디며 자랐지만 마침내 수양제 밑에서 태상박사 까지 올랐던 서예의 대가로 특히
해서의 달인이었던 것이다.
특히 김정희의 스승 옹방강은 개인적으로 구양순의 숭배자였으며 그가 남긴 화도사비의 숭
배자였던 것이다.
옹방강은 해서야말로 모든 문인화의 기본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구양순의 서체는 '해법'의
극칙이라고까지 칭송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옹방강은 떠나는 제자 김정희를 위해서 스스로 각출하여 만든 구양순의 '화도사비
첩'의 탁본을 특별히 선물로 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의 스승이 아니다. 나는 다만 너보다 앞서온 선인에 지나지 않는다. 너의 참 스승
은 바로 이것 하나뿐인 것이다."
자신은 스승이 아니고 다만 선인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하였던 옹방강 내놓은 참 스승
그것은 바로 구양순이 쓴 '화도사비첩'의 탁본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너의 스승으로 삼아라. 옛말에 이르기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하였다.
너는 이것을 너의 스승으로 삼아서 마침내 스승을 죽여 네 자신만의 해탈의 극칙을 이루리
라."
김정희는 스승을 옹방강 노인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는 옹방강 노인이 준 '화도사비첩'을
통해 자기만의 독특한 서체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술취한 김정희는 갑자기 몸을 일으켜 일어섰다. 그는 산해관의 문루를 우러러보면서 말하
였다.
"'천하제일관', 산해관의 문루에 새겨진 현판을 바라보면서 저는 두 스승의 말을 떠올렸습
니다. 완원 스승께서는 떠나는 제게 '해동제일통유' 란 명칭을 친히 붙여 주셨습니다."
해동제일통유, 김정희는 손을 들어 현판에 씌어진 글씨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스승께서 친히 지어준 미칭이라 사양하지는 않겠지만 문득 산해관의 문루 위에 씌어진 저
현판을 바라보니 가슴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열정을 억누르기가 벅차나이다, 대인어른."
김정희는 임상옥을 바라보면서 껄걸 소리내어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왕이면 '해동제일의 통유' 가 될 것이 아니라 '하늘 아래 제일의 통유' 가 되는 것이 어
떨까 하는 열정이 샘솟아 오르나이다. 옹방강 노인의 말씀처럼 저 문루 위에 내걸려 있는
현판을 뜯어 내리고 그 자리에 구양순의 서체가 아닌 나 자신만의 서재로 현판을 내걸고 싶
은 열정 또한 샘솟아 오르나이다."
제 4장 요원
1
1811년 순조 11년, 신미년.
그해 춘삼월.
백마산성 서쪽 삼봉산 밑에 있던 임상옥의 집에 낯선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왔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인 듯 몹시 지쳐 보였다. 그는 체구는 작았지만 기골이 있고 강단이 있어 보이
는 사람이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임상옥의 집은 항상 열려 있었다. 이른바 양객 이라 하여서 시도 때도 없이 수많은 식객들
이 드나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거나 싯줄이나 읊을 줄 아는 선비들이거나 아니면 지나는 가객이나
입담좋은 풍객이든지 누구나 사랑방에 머무르면서 주인의 말벗이나 되고 바둑도 함께 두면
서 후한 대접을 받고는 노자나 옷가지를 얻어서 또 다른 마을로 떠나는 나그네들을 대접하
는 풍습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나그네는 다른 객들과는 달랐다. 활짝 열린 문 앞에서 대문이 무너질 듯 집 주
인을 불러 소리쳐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하인 하나가 영문을 모르고 뛰어나가 보았지만 행색이 갓 쓴 양반이 아닌 중인이었으므로
괘씸한 마음이 들어 물어 말하였다.
"도대체 누굴 찾아 오셨소."
'여기가 임 대인 댁이 아니더냐."
"그렇소."
하인이 못마땅한 얼굴로 눈을 흘기면 대답하였다. 그러자 나그네가 다시 소리쳐 말하였다.
"가산에 사는 이 대인께서 서찰을 보내셨다고 여쭤라."
무식한 하인이었으므로 가산에 사는 이 대인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
인은 비록 나그네의 행색이 지치고 남루하였지만 단순히 하룻밤을 묵고 가기 위해서 찾아온
떠돌이 식객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하인은 그 사람을 일단 사랑방으로 안내하여
여장을 풀도록 하였다.
이 무렵.
기골이 장대한 나그네가 가산에 사는 이 대인, 즉 이희저의 편지를 갖고 임상옥을 찾아온
바로 그 무렵의 시대상은 한마디로 난세였다.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 순조의 권위는 유명무실할 뿐 실제로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조정은 완전히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었으며, 이러한 혼란을 틈타 중앙에서건 지방에서건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탐관오리들은 국가의 행정이나 조세를 통해 썩어가고
있었고, 이에 따라 민생은 완전히 도탄에 빠지고, 뜻하지 않은 화재, 전염병, 대기근과 같은
천재지변이 겹쳐서 일어나고 있었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일어난, 천주교인을 삼백 명이나 죽이고 선대의 왕들인 영조, 정조대왕
의 신임이 두텁던 시파를 축출하는 신유사옥을 시작으로 1803년 4월에는 평양과 함흥에서
대화재가 일어났고, 그해 11월에는 사직 악기고에서 불이 일어났다.
다시 그해 12월에는 선정전과 인정전에서 화재가 일어났으며 1804년 3월에는 다시 평양에
서 대화재가 일어났고, 강원도에서 큰 산불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1806년 5월에는 전라도에서 대기근이 일어났으며 1807년 2월에는 서해안에서 해일이 일어
났다. 3월에는 영흥에서 대화재가 일어났으며 4월에는 자모산성에서 화약고가 폭발하였다. 5
월에는 영남에 대기근이 들었으며 7월에는 황해도에 대홍수가 일어났다.
1808년 7월에는 충청도에 전염병이 돌았으며 1809년 2월에는 다시 함흥에 대화재, 3월에는
울산에 대화재, 7월네 황해도에 폭풍우, 8월에는 흉작, 1810년 1월에는 함경도에 대지진, 5월
에는 중부 이남의 대기근, 7월에는 중부 이북의 폭풍우....
세도정치에 의해 정치가 문란해진 틈을 타고 일어난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와 더불어 이러
한 천재지변들은 마침내 절망한 민중 사이에서 들불처럼 타오르는 저항의 불길을 불러일으
켰다.
그리하여 민중의 저항은 요원의 들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 무렵.
아이들 간에 이상한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전국을 떠돌던 그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았다.
"이씨 나무 무너지고 정씨도령 찾아온다."
원래 이 노래는 <정감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조선시대 이래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온
대표적인 예언서인 <정감록>은 이씨 성을 가진 왕조가 망하면 그 뒤를 이어 정씨 성을 가
진 '전인' 이 새로운 세계를 연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신앙은 그 무렵의 난세를 틈타
널리 퍼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불렀던 그런 동요와는 달리 어른들 간에는 다음과 같은 참언이 유행하고 있었다.
"목자망 존읍흥."
이처럼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나, 어른들 간에 유행하는 참언들 모두가 조선왕조가 무너지
고 정씨 성을 가진 정도령의 새 세상이 찾아온다는 불길한 예언을 하고 있었으므로 조정에
서는 이러한 유언비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면밀히 탐색해 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조정에서는 1804년 황해도 안악에 사는 이달우가 이상한 노래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유행시
키는 한편 장연 백성 장의망과 어울려 무기 및 군량을 준비하여 황해도와 평안도의 백성들
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해 9월.
반당의 괴수 이달우는 마침내 관군에게 체포되고 그 길로 압송되어 능지처참되는 것으로써
난은 진정되었지만 어쨌든 이 무렵의 온 나라는 뒤숭숭하고 어지러운 난세 중에 난세였던
것이였다.
그런데 또 하나의 이상한 참언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이 소문은 주로 평안도를 비롯한 관서지방에서 유행하던 노래였다.
"이씨 나무 쓰러지고 수씨 강이 흘러든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아이들이 부르던 노래에 그대로 가사만을 바꿔서 새롭게 널리 퍼지는
불길한 동요였다.
내용은 이씨 성을 가진 왕조가 무너지고, 수씨 성을 가진 새로운 왕조가 들어선다는 또 하
나의 유언비어였다.
그뿐 아니었다.
이 동요의 유행과 더불어 보다 구체적인 비설이 입에서 입으로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내용은 '난세와 혼란을 구할 큰 영웅이 바로 서북지방에서 출현할 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 큰 영웅이 바로 수씨의 성을 가진 평한이라는 것이다.
평한.
예로부터 평안도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을 스스로 멸시해서 그렇게 부르곤 했었다. 평한이
라 하면 '평안도 놈'을 가리키는 한자였으며 바꿔서 서한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순수한 우
리말로는 '평치' 라고 부르거나, '도치' 라고도 부르기도 했는데 둘 다 '평안도 놈'을 가리키
는 일종의 비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평안도 놈'의 평한 중에서 난세를 구할 물 수의 성을 가진 영웅이 태어난다는
참언이 유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정체불명의 참언이 해가 바뀌어 신미년에 접어들자 그해 봄부터 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떠돌기 시작하였다.
즉, 그 영웅이 이미 태어나 있다는 비설이었다. 그 영웅은 30년 전에 태어나 이 세상에 와
있는데 그는 선천군 검산 속 일출봉 밑 군왕포에서 태어난 진인이라는 것이다.
이 소문은 주로 평안도 지방에서 대유행을 보이고 있었다. 임상옥도 이미 이 소문을 입에
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풍문을 통해 전해듣고 있어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
가산에 사는 이희저로부터 보내온 서찰을 가진 심부름꾼 하나가 임상옥의 집을 찾아온 것
이다. 하인으로부터 전갈을 받은 임상옥은 따로 술상을 차려놓고 그 심부름꾼을 불러들였다.
가신의 이희저가 보낸 심부름꾼이 술상이 차려진 사랑방으로 찾아왔다. 사사로이 주고 받
는 서찰들을 전해주는 사람을 봉인이라 하였는데 이는 하인 중에서도 신임이 두터운 사람으
로 입이 무겁고 선택된 사람이었던 것이다.
봉인은 임상옥 앞에서 큰절을 올려 예를 표한 후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임상옥은 몸을 편히
하라 이르고는 술잔에 가득 술을 따라 주며 말하였다.
"이 대인께오서는 안녕하시더냐."
"평안하시나이다."
몸을 편히 가지라 하였으나 사내는 여전히 무릎은 꿇고 앉은 자세로 대답하여 말하였다.
"이 대인께오서 내게 서찰을 보내오셨다고."
"그렇습니다. 대인어른, 이 대인께오서 서찰을 전해 드리라 분부하셨나이다."
사내는 두 손으로 서찰을 받들어 올렸다. 임상옥은 피봉을 뜯고 그 안의 내용물을 읽어 보
았다. 낯익은 이희저의 글씨였다. 서찰 끝부분에는 이희저 특유의 수결이 그려져 있었다. 수
경이라 함은 자기 본명이나 직함 아래 도장 대신 쓰던 일정한 자형이었는데 따라서 그 서명
을 통해 이 편지가 틀림없이 이희저로부터 온 편지임을 알 수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하였다.
처음에는 의례적인 문안인사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본론은 좀 특이하였다. 즉, 이 서찰을 보
내는 사람을 수하에 두고 서기로 사용해 달라는 일종의 추천장 형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
다. 보내는 사람은 총기가 있고 정직할 뿐 아니라 수리에 밝아 계산 능력도 뛰어나니 한번
쯤 데리고 있어 볼 만하다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편지를 읽어 본 임상옥은 순간 당황하였다. 이런 식의 편지를 이희저로부터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리에 밝아 계산 능력이 뛰어나고 총기가 있고 정직하다면 어째서 자신의 상업에도 도와
줄 서기가 필요할 터인데 굳이 사람을 보내서 내게 천거해 오는 것일까. 장사꾼끼리는 원래
돈을 빌리고 꿔주는 일은 있어도 사람을 추천하거나 보증해 주는 일은 금기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돈은 돈으로 그치자만 사람은 결국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결과를 초래
하여 아예 두 사람을 원수가 되게 하는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임상옥은 편지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이희저가 추천한 사내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임상옥은 사람을 꿰뚫어 보는 데 남다른 안목이 있었다. 사람을 보는 데 남다른 안목을 가
진 임상옥의 일화는 오늘날까지 야담이 되어 전해오는데 어쨌든 사내의 모습을 본 순간 임
상옥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람은 조가에나 있을 사람이지 상가에 있을 사람은 아니다.'
사내의 몸은 비록 작았지만 뼈가 굵고 강골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자세가 단정
하고 기품이 있어 비록 행색이 남루했지만 귀한 상이었다.
이 사람을 서기로 두고 데리고 있어 보라는 이희저의 편지 내용을 읽은 순간 임상옥은 문
득 중국의 상인들을 떠올렸다.
이 무렵 임상옥은 중국 상인들의 독특한 화계제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참이었
다. 중국의 화계제도는 마침내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회계'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나가고 들어오는 돈의 흐름을 따지고 셈하여 재산과 수입 및 지출의
관리와 운용을 계산하는 경리를 보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임상옥은 중국의 화계제도를
본받아 수리에 밝고, 신용이 두터운 서기 한 사람을 두려던 참이었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이희저로부터 사람을 천거하는 추천장형식의 서찰이 보내졌던 것이다.
임상옥은 사내의 모습을 정면으로 다시 쳐다보았다. 사내의 모습은 분명히 조가, 즉 조정에
서나 어울릴 상이었지 이처럼 상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단아하고 품위있는 모습을 하고 있
었다. 그러나 눈빛은 달랐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사람을 꿰뚫어 보듯
이 형형하였다. 예의가 바랐지만 비굴한 곳이 없이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나이를 물어보니 임상옥보다 한 살이 어렸다. 고향은 평안도의 용강 출신이라 하였다.
용강이라면 일찍이 의주의 상계에서 추방당하였을 때 입산하기 전 봇짐장수로 장터를 떠돌
아다니고 있을 무렵 가보았던 곳이라 임상옥은 사내에게 다시 물어 보았다.
"용강 어디인고."
그러자 사내는 대답하였다.
"쇤네의 고향은 용강군 다미면 세동 꽃장골이라 하나이다."
"성은."
"성은 홍가라 하나이다."
"홍가라면 본관은 어디인고."
"본관은 남양이나이다."
"이름은 무엇인고."
"쇤네의 이름은 경래라 하나이다."
성이 홍씨에 이름은 경래. 홍경래의 이름을 가진 사내의 태도는 여전히 당당하고 전혀 거
침이 없었다.
"문자는 알고 있는가."
"웬만한 문장은 읽고 또한 쓸 줄 알고 있나이다."
이왕 이희저로부터 추천을 받았으니 이참에 평소에 생각하였던 대로 이 봉인을 중국의 상
인들처럼 화계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임상옥은 꼬치꼬치 까다롭게 따져묻고 있었다. 당대
제일의 거부였던 임상옥의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자에 정통하고 수리 능
력이 뛰어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문장은 어디에서 배웠는가."
"어렸을 때 외숙으로부터 배웠나이다."
"과거는 본 적이 있었던가."
"....."
순간 홍경래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는 침묵 끝에 대답하였다.
"열아홉 나이 때 한 번은 본 적이 있었습니다만 부끄럽게도 낙방하고 말았나이다. 하오나
감히 말씀드리지만 그것은 제 실력이 모자라 낙방한 것이 아니옵고 서북 출신의 임용을 제
한하는 조정의 정책과 모략·중상·아첨의 횡행, 문벌과 당파 싸움 때문에 떨어지고 말았나
이다."
술을 마시던 임상옥은 사내의 눈빛에서 분노의 불꽃이 번득이는 것을 보았다. 처음 본 사
람 앞에서 감히 자신의 흉금을 털어놓는 사내의 기백이 용기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무모한
것인가. 임상옥은 잠시 헤아려 보았다.
"그 이후에는."
"단 한 번으로 족하였나이다."
홍경래는 대답하였다.
"그 이후로는 과거를 보지 않기로 작정하였나이다."
"허어, 그러한가."
홍경래의 말을 듣는 순간 임상옥은 그가 마음에 들었다. 자작으로 이미 거나하게 술에 취
한 임상옥이 등뒤의 병풍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문장을 읽고 쓰는 법을 알고 있고, 열아홉 나이 때 과거를 본 적이 있다 하니 문장을 쓸
수는 있겠구먼. 그러하면 이 자리에서 문장 하나를 지어 보도록 해 보시게."
임상옥은 등뒤에 처진 바람막이 병풍을 바라보았다. 그 병풍에는 가을날의 추경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는 원감의 선시 한 수가 씌어져 있었다. 원감은 고려 때의 스님으로 어릴 때부
터 글을 배워 문장을 잘 지었으며 19세 때 문과에 장원하였던 당대의 문장가였지만 뜻한 바
가 있어 출가하여 중이 되어 원나라의 세조로부터 북경으로 초대받아 빈주의 예를 받고, 금
란가사와 백불자를 선물받았던 당대의 고승이었던 것이다.
병풍에는 가을풍경이 그려져 있고 원감의 '가을날에'란 선시가 씌어져 있었다.
추녀를 둘러싼 대밭에 가득한 빗소리 귀에 익고
골짜기에 가득 무리진 단풍 앞에는 가을빛이 맑구나.
아리따운 노란 꽃은 새벽이슬에 우는데
쓸쓸한 빨간 잎은 뜨락 나무에서 떨어진다.
임상옥은 그 시의 제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시의 제목이 '추일우서'이네. 그러하면 그 표제의 첫 번째 자인 '가을 추'와 '낭 일' 두
자를 넣어서 짧은 2행시를 한번 지어 보시게나."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말입니까."
홍경래는 굵은 눈썹을 오므리며 임상옥을 쳐다본 후 물어 말하였다.
"물론이지."
임상옥은 크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말일세."
"좋습니다."
선선히 홍경래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붓과 종이를 주십시오."
방 한구석에 비치되어 있던 벼루에 연적을 기울여 먹을 부은 후 홍경래는 붓에 듬뿍 먹물
을 묻혀 세워들었다. 펼쳐진 종이 위에 전혀 망설임 없이 단숨에 2행시를 써내렸다. 일단 놀
라운 문재였다.
일필휘지하는 그의 거침없는 붓글씨에 놀라면서 임상옥은 그가 쓴 문장을 읽어 보았다.
추풍역수장사권
백일함양전자두
임상옥은 다시 한번 크게 놀래었다. 처음에는 거침없는 그의 붓솜씨에 놀란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가 쓴 2행시의 내용에 놀란 것이었다. 임상옥이 즉석에서 내놓은 '가을 추' 자와
'날 일' 의 두 자를 넣어 단숨에 2행시를 지은 그의 문재에 감탄하여 놀랐지만 그 2행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가을바람 불 때 역수의 장사는 주먹으로
대낮에 함양 천자의 머리를 노린다."
홍경래가 쓴 시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고사를 알아야만 한다. 시에 나오는
'역수의 장사' 는 바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형가'를 말함이었던 것이다.
현가는 사마천이 쓴 <사기>에 나오는 자객으로 위나라 출신이었다. 독서와 칼쓰기를 좋아
했던 문무를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당시 연나라의 태자 단은 후에 진시황제가 된 진나라의
왕으로 즉위하자 옛 우정을 배신하고 연나라의 국토를 잠식해 들어오고 있었다.
이에 단은 다음과 같이 맹세한다.
"의리를 배반하는 자는 금수와 같다. 내 그대를 전에 홀대한 일이 없거늘 연나라가 작고
힘이 없다 하여 이토록 구박하고 위협하려 하는가. 어디 두고 보자. 이 원수를 반드시 갚으
리라."
원수를 갚기 위해서 태자 단이 선택한 자객이 바로 형가였다. 때마침 진나라의 장수 번어
기가 진왕에게 죄를 짓고 연나라로 도망쳐 왔으므로 형가는 이렇게 말하였다.
"진왕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번어기의 모가지와 연나라의 옥토인 독항의 지도가 필요합
니다. 이 둘을 모두 주십시오."
마침내 번어기의 목을 얻은 형가는 목이 썩지 않도록 상자에 넣어 밀봉을 한 후 천하에서
가장 날카롭다는 조나라의 동장 서부인이 만든 비수를 구해 칼날에 미리 독약을 묻힌 후 독
항의 지도를 갖고 진나라의 왕 정을 죽이기 위해 장도에 오르는 것이다. 이 장면을 사마천
은 <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드디어 형가 일행은 장도에 올랐다. 그들의 장렬한 의거를 짐작하고 있던 번객들은 흰
옷을 입고 흰 관을 쓴 상복 차림으로 그들을 전송하였다. 마침내 역수 가까이에 이른 형가
일행은 행인을 보호하는 신인 도조신에게 제사지내었다. 형가의 친구인 개백정 고접리가 축
을 타면서 반주하자 형가는 화답하여 노래를 불렀다. '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는 차가워라,
장사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형가 일행은 수레를 타고 떠났고, 그는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형가는 예측하였던 대로 번어기의 목과 독항의 지도를 미끼로 진시황을 알현하는 데까지는
성공하였지만 지도 속에 숨겨두었던 비수로 황제를 죽이는 데는 실패, 마침내 비참하게 죽
음을 당하였던 비극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 고사를 빗대어서 홍경래는 2행의 즉흥시를 지었던 것이다.
물론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즉흥시이긴 했지만 그 내용은 불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역수의 장사' 가 홍경래를 말함이라면, 그렇다면 '천자의 머리' 는 무엇을 말함인가. 임상옥
은 순간 섬뜩한 느낌을 받았지만 이를 결코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임상옥은 너털웃음
을 웃으면서 잔에 술을 가득 따라 홍경래에게 내어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을 뿐이다.
"이제 보니 대단한 문재를 가졌구먼. 내 미처 알아보지 못하여 미안하였네. 그 대신 술 석
잔을 내릴 터이니 단숨에 들이키시게."
이로써 홍경래는 마침내 임상옥의 재산을 관리하는 회계, 즉 서기로 발탁되어 임상옥의 문
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는 홍경래의 주도면밀한 계획이 대성공을 거두게 된 결과였다.
시대의 반항아, 썩은 '천자의 머리', 즉 조선의 왕조를 뒤집어 놓고 새시대의 혁명을 꿈꾸었
던 풍운아, 홍경래. 그는 어째서 거사를 앞둔 일년 전 스스로 임상옥의 상가에 서기로 취직
하여 들어갔던 것일까.
여기에서 잠깐 홍경래의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기로 하자.
2
홍경래는 임상옥에게 고백하였던 대로 용강군 다미면 세동 꽃장골에서 태어났다.
정조 4년, 1780년의 일이었다.
홍경래가 태어난 꽃장골은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꽃동산의 고장으로 특히 봄이면 진달래꽃
이 엉켜서 꽃장막을 이루었다 해서 꽃장골로 불리던 곳이었다. 홍경래는 어렸을 때부터 키
가 작아 땅딸보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꼬마대장이었다.
그는 꼬마장군으로 전쟁놀이뿐 아니라 글공부에도 천재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도 남
아 있는 어린 홍경래의 일화 중에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홍경래의 남다른 담력을 말해주는
이 일화는 그의 나이 일곱 살 때의 일로서 특히 평안도 지방에서는 설화처럼 내려오고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어느 날 밤.
홍경래를 가르치던 글방 선생님은 그가 머리도 좋거니와 생김 생김이 범상치 않아서 한번
은 이런 시험을 내렸다고 한다.
즉, 아랫마을 비석거리 옆에 큰 고목나무가 있고 그 고목나무에는 큰 구멍이 뚫려져 있는
데 그 구멍 속에 무엇이 있으니 가서 꺼내 오라는 당부였던 것이다.
어린 홍경래는 그 즉시 그 고목나무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공동묘지를 지나고 사람
이라고는 없는 호젓하고 무서운 밤길을 달려 아랫마을로 가니 과연 썩어가는 큰 고목이 버
티고 서 있었다. 홍경래는 짚신을 벗고 맨발로 나뭇등걸 위로 올라타 구멍 속에 손을 집어
넣었다. 이 구멍 속에 무엇이 있어 훈장님이 가서 꺼내 오라고 이르셨을까. 손을 넣어 휘젓
는데 무엇인가 구멍 속에서 어린 홍경래의 손을 꽉 잡았던 것이다.
"누구요. 이 손을 놔요."
홍경래가 소리를 지르자 구멍 속에서 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이놈아, 어디다가 손을 넣어. 나는 귀신이다. 너를 잡아먹는 귀신이다."
보통 아이 같으면 이미 혼절이라도 했을 터지만 어린 홍경래는 이렇게 말하였다고 전해지
고 있다.
"귀신이라구요. 그런데 귀신의 손이 차갑지 않고 왜 이리 따스해요. 도대체 귀신이 아닌가
본데 당신은 누구요."
하는 수 없이 미리 달려와 귀신 행세를 하고 있던 글방 선생님은 그 즉시 정체를 나타내어
항복하였다는 이 일화는 어린 날의 홍경래를 잘 말하주고 있는 전설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땅딸보 꼬마장군 홍경래는 그후 곧 고향을 떠났다.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서 중화에
있는 외숙의 집으로 떠난 것이었다. 홍경래의 외삼촌은 류학권 이란 사람으로 그 일대에서
는 모르는 사람이라고는 없을 만큼 유명한 학자였다. 그러나 그도 평안도에서 태어난 평치
중의 한 사람이었으므로 과거도 못 보고 시골에서 서당 선생님으로만 겨우 만족하고 있던
유학자였던 것이다.
외삼촌이 있던 중화는 홍경래의 고향 꽃장골에서 겨우 칠십리 길. 그러나 홍경래로서는 첫
번째의 이향이었던 것이다.
류학권은 어린 홍경래를 많이 가르쳤고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린 홍경래가 영특하여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그 비상한 머리에 감탄하였고 또한 가르치는 보람에 마음이 기
뻤다. 그러나 이 기쁨과 함께 류학권은 어린 홍경래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것은 홍경래에
게 어린애답지 않은 엉뚱한 무엇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류학권은 학자요, 선비이지 그 이
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학문이 높고 문장이 훌륭하면서도 한 촌의 일개 훈장으로 만족
하고 있던 한 사람의 서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홍경래는 달랐다.
불과 여덟, 아홉 살의 어린 소년이었지만 가슴속에는 엉뚱한 대망과 야심을 갖고 있던 것
이었다. 외삼촌 류학권이 어린 홍경래가 엉뚱한 야망을 갖고 있음을 눈치챘던 것은 홍경래
가 여덟 살이었을 무렵, 무심코 간단한 글을 지어 보라고 말하였을 때 홍경래가 다음과 같
은 문장을 지었던 이후부터였다.
불과 여덟 살의 나이 때 어린 홍경래가 지었던 시 한 수는 아직까지 남아서 전해져 내려오
고 있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압산에 걸터앉아서
포강에 발과 허리를 씻는다
거좌해압산
세족요포강
썩어빠진 왕조를 무너뜨리고 역성혁명을 꿈꾸었던 혁명아 홍경래. 그가 꾸었던 쿠데타의
꿈은 이렇듯 어린 날에서부터 싹터 온 것이었다.
여덟 살의 소년 홍경래가 '걸터앉는다' 는 해압산은 중화에 있는 해발 332미터의 산으로 주
위에서는 가장 놓은 산이다. 또한 홍경래가 발과 허리를 씻는다는 포강의 원 이름은 문포천
으로 공양강과 함께 평야지대를 흐르며 비옥한 토지를 발달시킨 후 대동강으로 유입되는 중
요한 강이다.
여덟 살의 꼬마소년이 바로 그 '해압산에 걸터앉아서 포강에 발과 허리를 씻는다' 는 시를
쓰자 외숙인 류학권은 자신의 뜻을 서슴지 않고 써내린 당돌함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두려운 일이 있었다.
중화에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의 묘로 알려진 분영이 있었다.
홍경래는 이 왕릉에서 놀기를 좋아하였다. 이 왕릉을 현지에서는 진주묘라고 부르고 있는
데 거기에는 유래가 있다.
즉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은 항상 기린마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 자신의 일을 아뢰곤 했
었다. 그러나 나이 40에 이르러 결국 승천하여 돌아오지 않자, 하는 수 없이 태자는 부왕이
남간 옥채찍을 용산에 묻고 이를 동명성왕묘라고 이름지었던 것이다.
따라서 동명성왕묘에는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고주몽의 시신은 없고 그 대신 기린마를 부리
어 옥채찍이 묻혀 있다는 것이다.
고려의 문신 이승휴는 동명성왕묘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승천한 구름수레 다시 돌아오지 않아,
남긴 옥채찍을 묻어 분영을 이루었구나."
홍경래가 열 살쯤 되었을 무렵 류학권은 홍경래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았다.
"장애, 너의 길은 무엇이냐."
류학권은 똑똑한 홍경래가 글공부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자신을 대신하여 뜻을 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홍경래를 데리고 있은 지 3년. 그동안에 벌써 홍경래의 실력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을
만큼 일취월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홍경래의 대답을 전혀 뜻밖이었다.
"옥채찍을 구하는 것이 저의 꿈이나이다."
난데없이 옥채찍이라니. 어리둥절해진 류학권이 다시 물어 말하였다.
"옥채찍이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그러자 홍경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고려의 문신 휴휴(이승휴의 자)는 옥채찍을 묻어 동명성왕의 무덤을 만들었다고 노래하였
나이다."
"그러하면"
"동명성왕묘의 무덤을 파헤쳐 묻힌 옥채찍을 구해내겠나이다."
"옥채찍을 구해 무엇에 쓰겠는가."
섬뜩해진 류학권의 질문에 홍경래는 거침없이 대답하였다.
"옥채찍이 있어야만 하늘로 올라가 기린마를 타고 부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하면, 또 무엇이냐."
"구름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기린마를 타고 옥채찍을 휘둘러 다시 돌아오는 것이 저의
꿈이나이다."
이제 겨우 열 살 난 홍경래의 말은 무서운 선언이었다. 예로부터 평안도 사람들은 자신들
의 뿌리를 고구려에 두고 있었다. 특히 조선왕조가 건국되어 평안도 사람들이 이유없이 홀
대받고, 벼슬길에서도 소외되어 천대를 받는 동안 평안도 사람들은 언젠가는 고구려의 왕조
가 부활하여 새 세상이 열린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홍경래가 동명왕묘에 파묻
힌 옥채찍을 구해내어 이를 갖고 하늘로 올라가 기린마를 타고 돌아오겠다고 장래의 욕망을
이야기했던 것은 여러 가지로 큰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옥채찍은 평안도에 살고 있는 민중을 비유하고 있음이었다. 무덤처럼 죽어 있는 평안도의
민중 속에 들어 있는 분노의 불꽃을 옥채찍처럼 파내어서 그것으로 썩은 왕조를 뒤집어엎
고, 구름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이 타던 기린마를 타고 새 세상
으로 내려옴으로 말미암아 죽었던 고구려를 부활하여 천지개벽의 새 왕조를 열겠다는 반역
의 포부가 아닐 것인가.
이 말을 들은 류학권은 더 이상 홍경래를 두고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대로 놓고
가르치다가는 언제 도리어 자기가 화를 입게 될지도 몰라 은근히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너는 이제 공부도 웬만하니 집으로 돌아가서 혼자서 공부를 계속하도록 하여라."
류학권은 넌지시 귀향을 분부하고는 자신의 매부인 홍경래의 아버지에게 따로 은밀히 편지
를 썼다.
류학권이 쓴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홍경래의 문재는 비범하다. 그러나 그 뜻은 순이 아니라 역으로 보이니 각별한 주의를 요
한다."
이리하여 홍경래는 3년 만에 자신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10년
간 독학으로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는 믿을 것이라곤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자신만이 자기의 스승이었다. 홍경래는 자습으로 모든 경서를 통달했고 특히 모든
병서를 탐독하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도약과 검술을 연마하였다. 그는 특히 도약에 뛰어났는데 전해져 내려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홍경래는 고향으로 돌아온 즉시 마당 개울가에 버드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고 한다. 그는 버드나무를 심고 그 나무 위를 아침저녁 뛰어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묻자 홍경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지금은 버드나무가 이렇게 작지마는 해마다 자랄 것이다. 이렇게 매일같이 버드나무를 뛰
어넘다 보면 나중에는 버드나무가 산처럼 높이 자라도 쉽게 뛰어넘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홍경래의 말은 사실이었다.
버드나무는 3년이 지나자 지붕을 넘을 만큼 키가 자랐다. 따라서 홍경래의 도약은 지붕을
손쉽게 뛰어넘을 만큼 놀라운 것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버드나무는 해를 거듭할수록
키가 자랐는데 그때마다 홍경래는 땅을 한 번 구르고는 하늘로 솟구쳐 버드나무를 거뜬히
뛰어넘곤 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홍경래를 일러 홍길동이라고 부르곤 했다. 전설 속에 주
인공처럼 홍경래의 무술은 가히 신출귀몰이었던 것이다. 주력에도 일가견이 있어 하루에 이,
삼백 리는 거뜬히 달릴 수가 있었다.
"문사에 있는 자일수록 반드시 무비가 있어야 한다."
홍경래가 말하는 대장부가 갖춰야 할 필수의 조건, 그것이 바로 문무겸비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머리맡에는 항상 책이 산적해 있었으며 안두에는 언제나 삼 척의 장검을 세워놓
고 출입할 때는 언제나 이를 차고 다녔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홍경래의 마음속에 들어
있던 단 한 가지의 생각은 전혀 벼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사략>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을까 보냐. 대장부 죽지 않으면 능히 뜻을 이룰 것이고 만일
죽더라도 큰 이름을 후세에 남겨야 한다.'
정조 22년, 1798년.
19세의 청년 홍경래는 3년에 한 차례씩 정규적으로 열리는 사마시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평생동안 단 한 번 과거를 보았던 홍경래는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통해
쓰라린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다.
홍경래는 보기 좋게 과거에 낙방하게 된 것이다. 당시 조정을 쥐고 흔드는 세도정치의 중
추였던 안동김씨들의 횡포, 이에 따라 문벌과 당파를 가리고 뇌물의 많고 적음에만 혈안이
된 관리들은 실력이 있고 없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기호 의 양반 자제
들이라야 명함이라도 내밀어 보지, 홍경래와 같은 평안도 출신은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어
림없는 일이었다.
과거에서 낙방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홍경래는 그 즉시 모든 경서를 불태우고 붓을 꺾었
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다시는 책을 읽지도 않을 것이며 붓을 들어 문자를 쓰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무렵.
홍경래의 아버지가 숨을 거두었다. 홍경래는 아버지의 시신을 선산에 모시고 나서 첫 번째
로 예언을 하였다.
"이곳은 무등대지의 땅이다. 곧 커다란 음조가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상을 치른 홍경래는 그 길로 고향을 떠났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 때의 일이었다.
그는 삿갓을 쓴 도인이나 술사의 행색을 하고 평안도의 방방곡곡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지
향없는 나그네의 길이었지만 그에게는 두 가지의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평안도의 지형도와
지리를 조사하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뜻있는 동지들을 만나서 사귀고 규합하는 일이었던 것
이다.
그는 또한 예언을 퍼뜨리면서 행각을 계속하였는데 그의 예언은 계속되는 흉년과 탐관오리
의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백성들에게 걷 천지가 개벽되어 새 세상이 열리는 큰 변괴가 찾아
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바로 그 무렵.
홍경래는 가산군에 있는 청룡사란 절에 머물고 있으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바로 그
곳에서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평생의 우인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홍경래는 잠시 청룡사에 기탁하여 절밥을 먹고 있었으므로 한가한 시간을 틈타 도기로 장
작을 패며 절의 살림을 도와주고 있었다. 절 살림을 도와주는 불목하니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에서 베어 온 통나무를 도끼로 일일이 찍어 땔나무인 장작을 만들고 있는 동안 누군가
옆에서 자신의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는 듯한 낌새가 느껴졌다. 장작을 패다 말고 홍
경래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 사람을 마주보았다. 그곳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키 작은 사
람이 서 있었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려 말하였다.
"아까운 도끼자루가 썩고 있구나"
그날 밤. 홍경래는 요사채로 그 사람을 만나러 찾아갔다. 그는 떠돌아다니면서 부잣집 묘자
리나 봐주고, 그 대가로 푼돈을 쥐면 그 길로 주막에 가서 실컷 술이나 퍼마시는 풍수복설
가였다.
찾아간 홍경래는 대뜸 물어 말하였다.
"도끼자루가 썩고 있다니요."
홍경래가 묻자 그는 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대답하였다.
"죽은 나무를 팰 사람이 아닌 사람이 죽은 나무를 패고 있으니 도끼자루가 썩을 밖에."
"그러하면."
홍경래가 물어 말하였다.
"도끼자루가 썩지 않으려면 무슨 나무를 패야 합니까."
"죽은 나무를 패지 말고 산 나무를 패야 하지. 그렇지 않은가."
"어떤 나무가 죽은 나무고, 어떤 나무가 살아 있는 나무입니까."
홍경래가 묻자 사내는 껄껄 웃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뭘 알겠는가. 묘자리나 봐주는 한갓 지사가 사람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 다만 자두를
따려면 자두나무를 베어야지 엉뚱한 소나무를 베어 어찌 가경자를 얻을 수 있겠는가 말일
세."
홍경래는 그 사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룻밤을 꼬박 세운 끝에서야 홍경래
는 그 사내의 말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가경자라 하면 자두를 말함이었다. 자두나무를 순 우리말로 하면 오얏나무. 바로 오얏나무
는 이씨 왕조를 일컫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씨의 성을 흔히 '오얏나무의 이' 씨로 훈독하고
있으니 그 사내의 말은 홍경래가 베어야 할 나무는 죽은 소나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이씨
나무, 즉 조선왕조임을 넌지시 암시해 보인 것이다.
한눈에 장작을 패는 홍경래의 모습에서 조선왕조를 무너뜨릴 수 있는 혁명아의 면모를 꿰
뚫어 본 풍수복설가. 그의 이름은 우군칙이었다. 나이는 홍경래보다 네 살이나 많았으나 그
는 훗날 홍경래가 일으킨 난의 주동자가 되었다.
그는 홍경래 난의 모사로서 모든 난을 기획하고, 책동하였다. 후일 <관서평란록>은 그의
인물 됨됨이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홍경래가 괴수가 되고 우풍수가 모사가 되었다. 우군칙은 지혜가 제갈량을 앞서고, 홍경래
는 용감하기가 조자룡보다 나았다.'
원래 우군칙은 평안도의 태천 출신. 그는 명문가의 자제였으나 첩의 아들인 서자였다.
서자신분으로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던 우군칙은 집을 버리고 떠돌이 지관이 되어 남
의 집터나 묘자리를 잡아주면서 얻어먹고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만난 즉시 의기투합하였다.
그러나 서로의 눈빛에 의해서 뜻은 통하였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서로 흉금을 털어놓고
속마음을 나누진 않았다.
그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본격적으로 반역으르 모의했던 것은 그로부터 일년
뒤였다.
두 사람은 또다시 청룡사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의 일년 동안 홍경래
는 강계와 연려 등 압록강의 상류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널리 인재들과 교류하였으며 강을
건너 중국 마적단과도 친교를 맺었었다.
일년 뒤에 또다시 만난 홍경래와 우군칙은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만나자마자 서
로의 눈빛에서 변함없는 뜻을 확인하였다.
단도직입으로 홍경래가 우군칙에게 말하였다.
"썩은 나무만 벨 것이 아니라 오얏나무를 베기로 하였소. 그러니 내게 그 나무를 베는 법
을 가르쳐 주시오."
마침내 우군칙은 홍경래의 제안을 받아들여 '오얏나무를 베는 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였
는데 그 첫 번째는 자금이었다. 무릇 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였는데 그
대상자가 바로 이희저였던 것이다.
이희저를 동지로 끌어들이기 위해 우군칙은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우선 자신의 아내를 떠
돌이 점쟁이로 꾸며 이희저의 집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평소 점이나 복술 같은 데 많은 흥
미를 갖고 있었던 이희저라 서슴지 않고 떠돌이 점쟁이 행세를 하고 있는 우군칙의 아내에
게 점을 보았는데 그 여인은 점을 보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삼 년 이내에 반드시 대운이 터지겠소이다."
"대운이라니."
이희저가 궁금해서 묻자 여인은 대답하였다.
"이미 푸른 용 한 마리가 다복동으로 찾아들었나이다."
다복동이라면 이희저가 살고 있는 대령강변의 깊은 골짜기. 훗날 홍경래 반란군의 총본영
이 되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따라서 용이 승천할 때가 무르익었으니 곧 대인께오서 관운에 올라 귀인이 되실 것이 분
명하나이다."
당대의 거부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자신은 미천한 역노 출신이 아닌가. 그런 노예의 신분
에게 관운이 있어 귀인이 되다니. 어쨌든 기분이 좋은 이희저에게 점쟁이 여인은 한마디 덧
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오나 푸른 용이 승천하려면 물이 있어야 하나 반드시 수성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 하십
시오."
이희저는 떠돌이 점쟁이의 말이라 귀담아 듣지는 않았지만 그 여인이 던지고 간 몇 마디의
말은 마음에 남았다.
그 무렵.
우군칙이 다시 가산에 나타나 이희저의 집을 찾아왔다. 평소에 우군칙은 이희저와 안면이
있던 사이였다. 마침 이희저는 아버지의 묘자리를 찾고 있던 터라 우군칙에게 명당자리 하
나를 구해 달라고 청하였다. 우군칙은 묘자리를 하나 구해 놓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지관이 되어 전국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으나 이런 명당자리는 일찍
이 본 적이 없고. 이곳에 묘지를 쓰면 반드시 발복이 있을 것이오."
이희저는 기뻐서 우군칙이 점찍어놓은 명당자리로 가 보았다. 그러나 그곳에 가서 묘자리
를 본 순간 이희저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곳은 이미 남의 묘자리가 있는 곳이었다. 묘자리가 있었던 곳일 뿐 아니라 그 터가 흉지
라 하여 전에 장사지냈던 사람이 이장해 놓은 곳이었다.
"이곳이 천하 명당이라고."
이희저가 화가 나서 물어 말하였다.
"자네가 날 놀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우군칙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대인어른. 이곳이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나이다. 옛사람 곽박은 <장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나이다. '사람이 죽어서 장사를 지내는 곳에는 반드시 생기가 있어야 한
다. 이 생기라는 것은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흐르게 되므로 생기가 흩어지고
흘러가지 못하게 머물도록 해야 한다.' 이곳이야말로 생기가 있어 음택을 정하면 시신이 직
접 땅에서 그 생기를 얻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지이나이다."
"허지만."
이희저가 다시 말하였다.
"이곳은 이미 한 번 장사를 지냈던 곳이 아닌가. 더구나 장사를 지낸 후 후손들에게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나 흉터라 하여 파버린 흉지가 아닌가."
"아닙니다, 대인어른."
우군칙이 말을 이었다.
"예로부터 묘지를 택하는 일을 감여라 하였습니다. 감은 하늘이고, 여는 땅이므로 묘지를
택하는 일은 천지간의 조화를 밝혀내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이 묘지가 이미 한 번
장사를 지냈으며 재수없는 곳이라 파내어버리기는 하였으나, 이는 이 묘자리가 흉지라서가
아니라 아직 지운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며 망자에게도 이 땅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나이
다."
그리고 나서 우군칙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곳에 부친의 묘를 쓰시면 당대에 반드시 발복이 있을 것입니다. 발복이 있어 반드시 관
운에 들어 귀인이 되실 것이나이다."
우군칙의 말을 들은 순간 이희저는 잠시 잊어버렸던 떠돌이 점쟁이 여인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점쟁이도 반드시 관운이 들어 귀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관운에 오르면 어디까지 오를 수 있겠는가."
농담반 진담반의 표정으로 이희저가 물었다.
"천하의 군사들을 다스리는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겠나이다."
"천하의 군사들을 다스리는 자리라. 그러면 병조에라도 오를 수 있단 말인가. 핫허허허."
물론 이희저의 말은 농담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농담만은 아니었다. 무인으로 출세하고 싶
어 일찍이 무과에까지 급제하였던 이희저가 아니었던가. 훗날 홍경래와 의기투합하면서 혁
명을 모의하였을 때 홍경래는 이희저에게 혁명을 성공시켜 전권을 잡고 새 왕조를 일으키면
신왕조에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넌지시 물었다고 한다. 이때 이희저는 다음과 같이 대답
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병권을 잡고 싶소."
천하의 병권을 잡고, 군사를 지휘하고 싶었던 이희저. 그는 마침내 홍경래의 반란군을 총지
휘하는 총병관이 되어 그 야망을 이루려 하였으나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희저의 야망을 우군칙은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군칙은 자신의 아내를 통
해 일차로 전갈을 보낸 후 자신이 직접 나서서 묏자리를 잡아주며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계
책을 사용했던 것이다.
"하오나."
우군칙도 한마디 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묏자리가 명당 중의 명당이오나 한 가지 명심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곳에 물이
흐르고 있어 생기가 머물지 못하고 흘러가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그 생이가 흘러가지 못하
도록 붙잡아 두어야 하나이다."
"그 생기를 붙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이희저가 묻자 우군칙이 대답하였다.
"자고로 불을 불로써 막고, 물은 물로써 막는다고 하였나이다. 이제 얼마 안 있어 수성을
가진 사람이 나타날 터이니 반드시 그를 가까이 하십시오. 그를 가까이 하시면 반드시 당대
에 발복이 있어 푸른 용이 승천하여 귀인이 되실 수 있을 것이나이다."
우군칙으로부터 명당을 점지받은 이희저는 어쩔 수 없이 수씨 성을 가진 사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부친의 묘가 천하 명당이 되기 위해서는 생기가 흘러가지 못하도록 붙잡아둘 수 있는 수씨
성을 가진 사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우군칙의 말대로 그로부터 몇 달 뒤 낯선 도인 한 사람이 가산에 나타났다. 이희저는
그를 청하여 불러들이고는 물어 말하였다.
"어디서 오십니까."
"청룡사에서 옵니다."
청룡사라면 청룡산에 있는 오래된 사찰이었다. 갓을 쓴 홍경래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이희저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떠돌이 점쟁이 여인이 '푸른 용 한 마리가 다복동으로 찾아들었나이다' 라고 예언했을 뿐
아니라, 천하 명당의 묏자리를 잡아준 우군칙도 '당대에 발복이 있어 푸른 용이 승천하여 귄
인이 되실 수 있을 것' 이라는 참언을 하지 않았던가.
청룡사라면 문자 그대로 푸른 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절이 아닐 것인가.
"함자는 무엇이온지."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성은 홍이라 하옵고 이름은 경래라 하나이다."
사내의 말을 들은 순간 이희저는 무릎을 쳤다. 성이 홍이라면 '삼수' 변을 가진 수성이 아
닐 것인가.
점쟁이 여인이 말하였던 '푸른 용이 승천하려면 물이 있어야 하니 반드시 수성을 가진 사
람'을 구하라던 바로 그 사람, 또한 우군칙이 말하였던 '흐르는 생기를 머무르게 하기 위해
서는 반드시 수성을 가진 사람' 을 가까이 하라던 그 사람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단순한 이희저는 즉시 홍경래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였다.
"오랫동안 귀인을 기다렸습니다. 저와 함께 이곳에 오래 머물러 주십시오."
이로써 이희저와 홍경래는 단숨에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이른바 혁명 핵심의 세 사람이 결
성된 것이었다. 일찍이 '천하제일의 왕'을 꿈꿈으로써 '천하제일의 권력' 의 대야망을 갖고
있었던 이희저라 썩은 오얏나무를 베고 새 왕조를 일으키려는 홍경래의 역성혁명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1802년. 임술년 춘삼월.
홍경래와 우군칙 그리고 이희저, 이렇게 세 사람은 유비와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맺듯
대령강 한가운데에 있는 신도라는 섬에서 의를 맺고 의형제가 되었다.
세 사람이 모였던 대령강은 옛날에는 개사강 또는 박천강이라고 불렀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고 <동국여지승람>은 전하고 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부여로부터 남쪽으로 도망쳐서 이곳에 오니 물고기들이 다리를 만
들어 건너게 해주어 이름을 그렇게 지었던 것이다.'
일찍이 동명성왕의 무덤에서 옥채찍을 파내어 하늘로 올라가 기린마를 타고 돌아오겠다고
말함으로써 외숙인 류학권을 놀라게 했던 홍경래는 이렇듯 또다시 동명성왕이 도망쳐올 때
물고기들이 다리를 만들어 건너게 해주었다는 대령강 속의 한 섬에서 결의를 맺음으로써 자
신의 혁명이 모반이 아니라 옛 고구려 왕조의 부활이며 자신은 고주몽의 현신임을 스스로에
게 나타내 보인 것이다.
홍경래와 우군칙 그리고 이희저는 이 섬에서 말을 잡았다. 홍경래가 직접 말의 목을 베고,
흘러내리는 피를 서로 함께 마시고 피를 이마에 함께 바름으로써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는 '피의 맹세'를 나누었다.
훗날 이 반란군의 총본영이 되었던 다복동 앞을 흐르는 대령강 한가운데에 있는 섬 신도는
반란군이 거병하였던 첫 장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탄광을 경영하는 한편 청나라와의 무역을 통해 거부가 되었던 이희저의 고향 가
산은 혁명의 본산으로는 최적의 장소였다.
원래 이곳은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평안도 지방에서도 가장 외진 오지로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자 유명한 문인이었던 김식(1482-1520)은 이곳을 두고 이렇게 노래했을 정도였다.
깎은 석벽, 높은 봉우리 형세가 하늘로 들어가는데
말발굽 높았다 낮았다 간신히 오르네.
구름 깊으니 산에 길이 없는 것 같고,
나무 늙었으니 이곳에 신선 있는 것을 알겠구나.
비를 등진 찬 바위에는 아직도 잔설이 남았고
바람에 임한 약초는 향기를 풍기고 있네.
머리를 돌이키니 황홀한 저 하늘밖에
한 줄기 소나무 소리 시냇물 소리 섞여 있구나.
당파싸움에 희생되어 38세의 나이에 자살한 김식의 '군신천재의' 란 시처럼 가산은 깎은 듯
한 석벽과 높은 봉우리로 둘러싸이고 구름 깊어 산에 길이 없는 천혜의 요새였던 것이다.
따라서 가산은 남의 눈을 피해 은둔하면서 군사를 모으고 훈련시키는 데는 최적의 장소였
다.
실제로 이희저는 낮에는 금광을 열어 노동을 시키고 밤에는 노동자들에게 은밀하게 군사훈
련을 시키기 시작하였다. 마침 계속되는 흉년과 한발로 땅을 파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농민들이 하루 세 끼 끼니라도 이을 양으로 구름처럼 다복동으로 몰려들어 쉽게 반란군들을
모집하고 기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홍경래는 우군칙을 얻음으로써 지혜의 머리를, 이희저를 얻음으로써 거병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였다.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우선 혁명의 정당성을 만천하에 알리는 지와 혁명을 선봉에서
이끄는 용, 즉 힘이 필요하였다.
세 사람은 혁명의 정당성을 만천하에 알리는 격문을 쓸 적임자를 찾기 위해 고심하였다.
물론 우군칙도 문장에 능하여 격문을 쓸 만큼의 실력은 있었다. 그러나 널리 세상에 알려
사람을 선동하고 의분을 고취시키는 격문은 그 내용보다는 그 문장을 쓴 사람의 인격이나
자질이 더욱 중요했던 것이다.
세 사람이 고심 끝에 찾아낸 사람이 바로 김창시였다. 그는 평안도 곽산 사람으로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는 평안도 출신으로는 드물게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그는 통칭 김 진사로 불리고 있었는데 문장에 능하고 또한 부호였으므로
평안도 선비들 세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문인이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만약 김창시가
그들과 함께 모반에 뛰어들어 격문을 지어 준다면 그들의 혁명은 반역이 아니라 개벽의 정
통성을 인정받게 되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군칙이 홍경래에게 말하였다.
"자고로 선비란 문약하여 소심한 곳이 많으면서도 교만한 데가 많은 법입니다. 자칫 섣불
리 접근하다가는 대사를 그르치고 천기를 누설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김창시를 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때마침 김창시가 여행을 떠나 황해도를 순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문장에 능한 김
창시는 여행을 떠나 각지에 살고 있는 선비들과 만나서 교유하고 산천을 구경하며 시를 짓
는 유유자적하는 삶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황해도의 봉산은 탈춤으로 유명하였다. 해마다 5월 단오 때면 벽사와 기년의 행
사로 봉산읍에 있는 경수대란 곳에서 봉산탈춤이 성대하게 벌어지곤 했다.
김창시가 이 탈춤을 구경하기 위해 봉산에서 한 달 가량 머무르고 있다 마침 황주로 돌아
가고 있다는 정보가 우군칙에게 들어온 것이다. 이 정보를 입수한 우군칙은 홍경래에게 이
러저러한 방법으로 그를 포섭하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탈춤을 구경하느라 한 달 가량 봉산에 머물고 있던 김창시는 한여름 동선령 고개를 넘고
있었다.
동선령은 조선의 건국 초부터 북방으로 통하는 중요한 대로의 중심점이었다. 산세가 높고
험하고, 수목이 무성하여 통행하기가 어려웠던 고갯길이었는데 영조 22년(1746년) 성첩을 개
수하고 관문을 새로 만들어 행인들의 내왕을 단속하는 한편 객사도 마련하여 통행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도 하는 중요한 통로였던 것이다.
김창시가 말을 타고 마부를 앞세워 터벅터벅 이 가파른 동선령 고갯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
기 푸른 옷을 입은 동자 하나가 나타나 김창시 일행에게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린 후 물어
말하였다.
"곽산에 사시는 김 진사 어른이 아니옵니까."
난데없이 나타난 청의동자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의아해서 김창시는 그렇다고 대답한 다
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동자는 대답하였다.
"도사님께오서 진사어른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는 길이 바쁘지 않으시다면 다리도 쉬실
겸 잠시 들렀다 가시라고 저더러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김창시는 흥미가 일었다.
이처럼 낯선 타향, 그것도 험준한 고갯길에서 자신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는 도인이 이
심산궁곡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거니와, 푸른 옷을 입은 어린 동자를 기다리게 하
였다가 자신을 모셔오라는 그 도인이 도력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봉산에서는 예로부터 구암이라 불리던 아홉 군데의 절묘한 바위가 있었다. 그 중에
서도 백학암과 산인암이 특히 유명하였는데, 백학암에는 일찍이 신선이 백학을 타고 놀았다
는 전설이 있어 이 마을 일대를 백학동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역대의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이곳 백학암을 찾아와 은거생활을 하던 은둔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따라서 이곳 일대의 암벽에는 수많은 도인들이 초막을 짓고 세상을 등지고 살고 있었던 것
이다.
김창시가 넘고 있던 동선령을 다른 이름으로는 사인암성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이곳
일대에 유명한 구암 중의 하나인 사인암의 암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창시는 동자가 이끄는 대로 자신이 찾아올 것을 예견하고 있었던 도인을 만나기 위해 험
준한 사인암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 이르기를 '돌이 공중에 우뚝 솟아 있
어 적암이라고 이름하고 사인암이라고도 부른다. 길은 좁고 심히 비탈져 몇이 같이 걸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의 표현대로 김창시는 허공에 우뚝 솟아 있는, 말조차 함께 할 수 없을 만
큼 좁고 가파른 암벽길을 동자를 따라 간신히 굽이굽이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천 길이나 높은 이끼 낀 푸른 바위는 은은하게 안개비를 머금고 있어 어디가 구름인지 어
디가 하늘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구름의 바다 속 암벽 위에 위태롭게도 제비집 같은 초
당 하나가 서 있었다.
초당 앞에 말을 세우고 김창시는 동자가 이끄는 대로 집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암자 속에
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이른바 '말뚝이'라 불리고 있
는 봉산탈춤의 전형적인 가면이었던 것이다.
봉산탈춤은 총 일곱 개의 놀이로 나뉘어진다. 그 중 여섯 번째의 광장이 '양반춤'으로 그
놀이에는 '말뚝이'라고 불리는 천한 상놈이 나와 신나게 양반들을 조롱하며 신랄하게 풍자하
고 있다. '막쇠'라고도 불리는 말뚝이는 탈춤의 주인공으로 주로 상민과 양반 사이의 갈등체
계를 민중의식의 희화화된 풍자로 풀어나가는 판소리 <춘향가>에 있어 '방자'의 역할과 같
은 것이다.
지나가는 과객을 불러놓고는 느닷없이 방 한가운데서 '말뚝이'의 가면을 쓰고, 검은 더거리
에 흰 바지, 검은 패랭이에 채찍을 든 말뚝이 행색으로 앉아 있는 도인의 처사가 다소 기분
이 나빠서 김창시는 입을 열어 말하였다.
"방안에 앉아 있는 그대가 말뚝이의 가면을 쓴 말뚝이냐, 아니면 말뚝이의 가면을 쓴 샌
님이냐."
이 말을 들은 가면을 쓴 사람이 받아 말하였다.
"찾아온 그대는 샌님의 가면을 쓴 샌님이오, 아니면 샌님의 가면을 쓴 말뚝이오."
이 말을 들은 김창시가 웃으면서 머리 위에 쓴 갓을 벗어들고 앉으면서 말하였다.
"그럼 내가 먼저 가면을 벗겠소이다."
그러자 홍경래도 얼굴에서 말뚝이의 가면을 벗어내리며 말하였다.
"그럼 나도 가면을 벗겠습니다."
홍경래는 가면을 벗고 먼저 일어나 세 번을 절하여 스승과 제자로서의 예를 표하였다. 당
황한 김창시가 손을 들어 만류하였으나 가면을 벗을 홍경래는 정중하게 세 번을 절하여 예
를 올린 후 무릎을 꿇고 앉아 말하였다.
"김 진사어른의 높으신 고명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진사어른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움을 청하려 합니다."
서로 허위의 가면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진면의 있는 모습 그대로 허심탄회하게 흉
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자는 뜻으로 '말뚝이'의 가면을 쓰고 자신을 맞아들였던 그 홍경래의
뜻을 알아채린 김창시는 우선 궁금한 대로 어떻게 자신이 동선령을 지나는 줄 알아 동자를
시켜 데려오게 하였는지 그 이유부터 물어보았다.
그러자 홍경래는 아무런 말도 없이 붓을 들어 종이 위에 문장 하나를 써내렸다.
김창시는 그가 쓰는 문장을 지켜보았다.
물리고자연 천기묘난처
지공금석장 항동부지처
김창시는 그 문장의 누구의 시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 시는 고려 말의 명신 이색이 이
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출사를 종용하였으나 끝내 고사하고 봉산에 머무르며 은둔생활을
하고 있을 때 지은 12영의 시 중 마지막 부분이었다.
봉산에 있는 수동은 봉산에서 동쪽으로 삼십 리에 있는 절경인데 이색은 이곳에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었던 것이다.
아악이 오랫동안 흩어졌으니
사양이 바다로 들어갔네.
궁소리 상소리 서로 난잡하니
음절곡조 만연하여 의지할 데 없었더니
문득 놀라운 것은 동중 물이라
맑게 울려 음률이 맞는구나.
물리는 원래 자연에 이루어지는데
천기는 묘하여 엿보기 어렵구나.
다만 금석을 감춘 그곳에 홍동이 어딘지 알지 못하겠네.
이 노래는 자신이 모시던 고려왕조가 망하고 신왕조가 들어섬으로써 어지러운 난세를 빗대
어 표현한 시로 유명한 노래이다. 즉, 공자 때에 주나라가 쇠약해지자 모든 악사들이 몸을
숨겼는데 그 중 유명했던 악사 사양이 바닷속으로 들어가 은둔했다는 고사를 인용해 자신의
심정을 묘사한 것이다. 이색은 수동의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빗대어 궁소리, 상소리
어지러운 난세를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 어지러운 난세에도 흐르는 물소리만은 음률에 맞게 맑게 울리고 있음을 노래하면서 이
색을 수수께끼와 같은 문장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즉 '천기는 묘하여 엿보기 어렵구나. 다만 금석을 감춘 그곳에 홍동이 어딘지 알지 못하겠
네'라는 문장이었던 것이다.
'홍동' 이라 함은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살 수 있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곳. 그 낙원이 어
디인가 찾아 헤매는 것은 하늘의 비밀이므로 엿보기 어렵다는 이색의 노래 한 구절을 홍경
래는 종이 위에 써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문장을 다 쓰고 나서 홍경래는 김창시를 쳐다보면
서 물어 말하였다.
"김 진사 어른께오서는 홍동이 어디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러자 김창시는 대답 대신 붓을 들어 종이 위에 다음과 같은 문장 하나를 써내렸다.
'아애산중인 백구추일속'
김창시는 과연 평안도 제일의 선비다웠다. 그는 홍경래가 쓴 시 한 구절이 고려 말의 대학
자였던 이색의 시 구절임을 그 즉시 꿰뚫어 보았으며 역시 이색이 쓴 시 한 구절로 회답함
으로써 홍경래의 질문에 대답하여 보인 것이었다. 김창시는 당대 제일의 학자였지만 새 왕
조에 출사하지 않고 끝내 지조를 지켰던 이색을 특히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색은 자신이 머물던 '거사암'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나는 산중 사람을 좋아하느니
흰 망아지의 꽃 한 다발이네.
신선되어 간혹 적막한데
높은 그 풍도를 누가 있어 계승할 것인가.
술잔엔 술이 벌써 쇠잔한데
지초밭은 비에 아직 푸르고나.
지금도 밤중에 학이 울고
산 위의 달은 그윽하게 적적함을 비쳐주네.
옛날 일 생각하며 한 번 크게 탄식하니
분분한 세상사 몇 번이나 영화와 욕이 바뀌었나.
김창시는 바로 그 시 중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여 보였던 것이다. 즉 첫 문장인 '나는 산중
사람을 좋아하느니, 흰 망아지의 꽃 한 다발이네'를 인용함으로써 '나는 꽃 한 다발에 만족
하는 흰 망아지처럼 세속에는 관심도 없고 다만 산중에 살고 있는 산사람'이라고 자신을 표
현해 보였던 것이다.
김창시가 쓴 한 문장에서 그러한 김창시의 속마음을 엿보았던 홍경래는 입을 열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가 하늘의 천기를 엿보았습니다. 그러니 홍동이 어디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진사어른께
오서도 저와 함께 홍동으로 가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홍경래는 붓을 들어 다시 종이 위에 써내렸다.
신룡소반처 야야기생백
비체백유시 불일비벽력
일우편사해 인자자무적
홍경래가 쓴 문장도 이색이 봉산에 있는 신룡담을 노래한 시 중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
다.
'휴류암'이라고도 불리는 이 신룡담에는 전설이 있다. 이 바위아래 물 속에는 신룡이 있어
모두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정성을 드린다는 말을 듣고 고려 명종 때에 감찰어사 함유일이
이를 미신이라 하여 그 물을 메우자 갑자기 천둥번개가 무섭게 치고 물을 메웠던 흙들이 다
없어졌다는 전설로 그후 다시 물이 맑아지자 매년 봄가을에 향축을 내려 제사를 드려온 유
서깊은 못이었던 것이다.
이 물을 두고 이색은 이렇게 노래하였던 것이다.
신룡이 서리어 있는 곳에
밤마다 기운 희게 일어난다네.
날고 잠기는 것 스스로 때가 있으니
며칠 안 가서 벼락이 날게 되리.
한 번 비 내리어 사해에 두루 하니
어진 자는 대적할 이가 없다네.
홍경래가 쓴 문장을 본 순간 그제서야 김창시는 홍경래의 속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신룡이 날고 또한 물 속에 잠기는 것은 모두 때가 있으니 곧 벼락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하면 대적할 자는 아무 곳에도 없을 것이다'라는 이색의 시를 한 구절 인용함으로써 그
가 말하였던 '천기'야말로 하늘에서 내리는 벼락을 의미하며, 홍경래가 말하였던 이상향의
'홍동'은 바로 그 벼락이 내리친 후의 새 세상을 말함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
다.
김창시가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음을 직시한 홍경래는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놓
았다.
"머지않아 신룡이 물 속에서 몸을 솟구쳐 날아갈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에서는
벽력이 내리칠 것입니다. 머지않아 세상에는 큰 난리가 날 것입니다. 이는 묘향산에서 얻은
서산대사의 비결에도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난세를 구할 인물이 반드시 서토에
서 나타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그 인물을 찾으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마침내 지난 밤 꿈 속에서 서산대사가 나타나셨습니다. 대사께오서는 제게 영음을 내려 주
셨습니다. 존장께서 국난을 구할 바로 그 어른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동자
를 시켜 모셔오게 했던 것입니다."
홍경래의 말은 약간 허황하였으나 김창시의 마음을 움직였다. 잠시 머리를 쉴 겸 초당으로
들어온 김창시는 날이 저물기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둘은 곧 의기가 투합되어 동지로서의
결연을 맺기에 이르렀다. 그날 홍경래와 하룻밤을 머물며 담론하였던 김창시는 마침내 혁명
에 참가할 것을 맹세하게 되었던 것이다.
훗날 김창시는 자신의 재산으로 군량의 준비와 운산의 축대봉금광의 광산 노동자들이 봉기
군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한편 홍경래가 원했던 대로 봉기의 이유와
당위성을 주장하는 격문을 지어 사방에 포고하였던 것이다.
비록 실패한 혁명이긴 했지만 김창시가 지은 격문은 오늘날까지 남아 전하고 있으며 그 내
용은 명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로써 홍경래는 세 사람의 혁명동지를 얻게 되었다.
천문. 지리. 병서에 통달하여 제갈공명에 비견되는 우군칙, 평안도 내에서 굴지의 부호였던
이희저, 도내의 명사요 당대의 지성이었던 김창시. 이렇게 세 사람의 동지를 규합함으로써
홍경래의 야망은 마침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훗날 명문으로 알려진 김창시가 쓴 격문의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서북지방은 기자, 단군시대 때부터 천하에 이름을 떨치던 구역으로 옛부터 의관문물이 빛
났었고 임진. 병자의 두 국난에 있어서도 그 공이 컸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재조(사직을 다
시 일으켜 세우는 일)의 공이 있었고 .월포와 같은 재사가 나왔으나 조정에서는 이를 돌보
지 않았고, 심지어는 권문세가의 노비까지 서북인을 평한이라고 멸시하여서 4백년 이상 버
려두는 데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격문에 나오는 양무공의 이름은 정봉수, 평안도 태생으로 이진왜란이 일어나자 하던 공부를
포기하고 무장이 되어 흑산도 앞바다에 침입한 왜구를 참획하였으며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4천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용골산성 전투에서 수많은 후금군을 살해하고 포로가 된
수천 명의 백성을 구출하였던 최고의 공신이었던 것이다.
또한 둔암의 이름은 선우협, 월포의 이름은 홍 경우로 둘 다 평안도 출신의 유명한 재사들
이었다.
특히 선우협은 평안도 태천 출신으로 서른여덟 살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도산서원을 찾아
가 이황이 남긴 장서 수백 권을 열람한 후에 학자의 길로 들어서서 많은 후학들을 키웠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를 관서부자라고 칭하여 존경하였던 관서 제일의 석학이었던 것이다. 그러
나 생전에 이들은 제대로 된 벼슬에는 오를 수가 없었으며 이에 대한 불만불평들이 대단하
였던 것이다.
이들의 불평을 알고 있던 율곡 이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상소문을 지어 상책하였을 정도
였다.
'서북인들이 수재(지방관)가 되는 자가 매우 적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집중적으로 등용하여
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서북지방 평안도인들의 분노를 서두에 일깨웠던 김창시의 격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
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욱 지금에 이르러서는 김조순, 박종경의 무리들이 국권을 농락하여 정치는 어지럽고,
인민은 도탄에 빠져 헤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에 선천군 검산 일월봉 밑
군왕포 위에 있는 홍의도에서 진인이 나타났으니 이분은 일찍이 중국에 들어가 도술을 배워
가지고 조선으로 나왔는데 지금 철기 10만을 일으켜 드디어 동국의 악폐를 말끔히 씻어줄
뜻을 펴게 되었다. 그러나 서북 땅은 우리들의 고향이라 차마 병마를 함부로 짓밟게 할 수
없어 서북의 영웅호걸들을 시켜 만백성을 구하려고 하니 의군의 깃발이 이르는 곳마다 모두
이 명령을 받들어 순종토록 하라.'
격문에 나오듯 '서북의 영웅호걸'들, 이들은 홍경래가 10년간의 긴 세월을 규합하였던 우군
칙, 이희저, 김창시를 비롯한 서북지방 각지에 널려라 퍼져 있던 호걸들이었던 것이다. 홍경
래는 10년 동안 전국을 도아다니며 각지의 지형과 요새를 살폈으며 인물들의 반부, 용겁을
엿보는 한편 자신은 도사가 되어 장차 자신이 일으킬 거사를 신비롭게 하기 위한 참언과 비
설을 퍼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평안도 제일의 문장가이자 선비였던 김창시를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인 홍경래는 그 다음으
로 평소에 봐두었던 두 명의 인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홍경래는 혁명은 머리와 돈과 지략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혁명은 이념이 아니라 전쟁이며, 성공한 혁명은 역사 속에 구국이 되지만 실패한 혁명은 역
사속의 반역이 됨을 홍경래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혁명에는 앞장서서 싸울 선봉
장, 즉 모사보다도, 어떠한 부호보다도, 어떠한 명사보다도 싸워 나아가 이길 수 있는 행동
대원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른바 용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여기서 두 사람의 역사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홍총각이라고만 알려져 있던 장사였으며, 또
한 사람의 이름은 이제초였다. 훗날 홍총각은 홍경래의 오른팔이 되었으며 이제초는 홍경래
의 왼팔이 되었다. 이 두 사람은 홍경래가 관서지방을 두루 떠돌아다니면서 점찍어 두었던
천하장사들이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홍총각은 홍경래의 심복이었다. 그는 홍경래의 명령 하나면 그곳이 물 속이든
불 속이든 죽음 속이든 그 어디든 달려가서 싸우던 충복이었다.
홍총각은 평안도 곽산 사람으로 원래의 이름은 이팔이었다. 나이가 서른이 되도록 장가를
못가서 그냥 '총각'으로만 불리던 인물이었다. 훗날 홍경래가 홍총각에게 봉의란 이름을 지
어주어 '홍봉의'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난을 일으킬 때마다 선봉장이었던 모습에 대해 <관서
평난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얼굴이 넓고 검으며 수염이 없고 체구는 크며 키는 5척 정도인데 나이는 27, 8세로 보였
다. 호피관을 쓰고 갑옷을 입고 있었다.'
<관서평난록> 기록된 대로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호피관을 쓰고 붉은 갑옷을 입고, 홍경
래가 이끄는 농민군의 선봉장이 되어 각 고을을 점령할 때에도 선봉부대 2백-3백 명을 이
끌고 먼저 목표 지역으로 나아가 관아를 점령한 후 홍경래의 주력군이 뒤따라 입성하도록
하였던 홍총각은 원래 말 위에 어염을 시도 다니면서 판매를 하던 소상인이었다.
상민 출신의 몰락 농민이었던 그는 각지를 떠돌면서 상업이 성하면 그곳에서 상업에 종사
하였으나 의식만 겨우 꾸려나갈 정도로 빈곤하였다.
따라서 그는 경작할 땅도 없고, 가난하여 서른이 다 되도록 장가조차 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힘은 장사여서 평안도 내에서는 그를 당할 사람이 없다고 알려진 천하장사였던 것이
다.
힘뿐 아니라 말타기, 활쏘기에도 특출한 무용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으며, 그
는 우직한 성격에 물러설 줄 모르는 용맹과 보통사람이 가질 수 없는 용용력으로 특히 홍경
래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농민군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홍경래가 천하장사 홍총각을 수하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은 실은 그의 누이를 미끼로 사
용했기 때문이었다. 서른이 넘도록 홍총각이 장가도 못들고 있었다면 그의 누이도 시집 못
간 처녀귀신이었다.
<사기>에 나오는 자객 중에 가장 유명한 개백정 '섭정'을 유혹하기 위해 엄중자가 그의 노
모를 돌봐주고 시집 못간 누이를 시집보내 준 것처럼 홍경래도 홍총각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의 누이를 시집보내 주었던 것이다.
금광에 모여든 노무자 중에서 반듯한 사람을 골라 홍경래는 홍총각의 누이와 혼례를 치러
준 것이다. 이희저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성대한 혼례식까지 올려주자 그날 밤 홍총각이 홍
경래에게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저는 객지로 떠돌아다니면서 소금을 팔고 있는 미천한 놈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에게
이처럼 큰 은덕을 내리십니까."
그러자 홍경래가 대답하였다.
"그대를 누가 미천한 사람이라 말하는가. 그대는 나와 같은 성씨를 가진 형제다. 앞으로 나
는 그대를 동생이라고 부르겠다."
그날 밤 홍총각은 말하였다.
"자고로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주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지금껏 저를 알아주는 사람을 기다려 왔었으나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대인께오서 저를 알아주셨으니 반드시 대인을 위해서 목
숨을 바칠 것입니다."
홍경래의 오른팔이 홍총각이었다면 왼팔은 이제초. 그는 개천사람으로 오려서 산에 들어가
심신을 연마하여 역사가 된 사람이었다. 그의 괴력은 관서지방에 두루 알려져 있어 사람들
은 그를 '이장군'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해마다 정월이면 동리와 부락이 편을 갈라서 줄다리
기를 하는데 이제초가 저편에 가서 당기면 저편이 이기고, 이편에 가서 당기면 이편이 이길
정도였다. 그는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면서 빈둥빈둥 놀면서 동리마다 벌어지는 줄다리
기, 씨름판, 편싸움 등에 비싼 값으로 팔려 다니면서 힘을 팔아 먹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성질이 고약하고 또한 주색을 밝히고 있었다.
어느 날, 사람 하나가 찾아와 그에게 말하였다.
"노형이 유명한 이 장군이십니까."
"그렇소."
이제초가 대답하였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며칠 뒤 가산의 다복동에서 큰 줄다리기가 벌어지는데 와서 도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기
기만 하면 그 대가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드리겠다는 말을 듣자 이제초는 귀가 번쩍 뜨
였다. 그로서는 마다할 리 없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보수만 있다면 씨름판이건 싸움판이건
그 어디든 달려가는 이제초로서는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사내의 말에
마음에 혹했던 것이다.
사내를 따라 그 즉시 가산으로 왔으나 며칠이 지나도록 줄다리기는 커녕 난장조차 벌어지
지 않고 있었다.
기다리다 못해 초조해진 이체초가 화를 내며 말하였다.
"줄다리기 한다고 사람을 먼 곳에서 불러다 놓고 밤낮을 잠만 자게 하다니. 난 이제 돌아
가겠소."
그러자 사내가 말하였다.
"오늘 밤에 벌어집니다. 그러니 화를 내지 마십시오."
그날 밤, 이제초는 사내를 따라 줄다리기가 벌어진다는 촛대봉 아래 평평한 분지로 나가
보았다. 그러나 너른 공터에는 줄다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없고, 키가 작고 체구가 당당
한 사람 혼자서 서 있었다. 원래 줄다리기는 삭전이라 하여 보통 대보름날이나 단오날과 같
은 축일에 전부락의 사람들이 모여 노는 일종의 단체놀이인데 홀로 서 있는 키 작은 사람을
보자 기가 막혀 이제초가 말하였다.
"단둘이서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그러자 홍경래가 말하였다.
"단둘이서 줄다리기를 합시다. 만약에 이 장군이 나를 이기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해드
리겠소."
이제초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날 이제껏 한 번도 줄다리기에서 져본 적이 없던 이제초였다. 상대방이 제아무리 많아도
이제초가 끼어들면 이기는 것은 따논 당상이었다. 그런데 체구는 단단하다고 하지만 키는
땅딸보만큼 작은 사내가 감히 천하의 이 장군에게 힘겨루기를 제의해 오다니.
그러나 사내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땅 위에는 칡으로 만든 고삿줄이라는 외줄이 놓여 있었고, 승부를 가리기 위한 중앙선이
미리 그어져 있었다. 중앙선 양 옆에는 5미터 정도의 결승선까지 끌어 잡아당기면 승부가
나는 전형적인 줄다리기였던 것이다.
"좋소."
이제초는 단박 팔을 걷고 덤벼들었다.
"잠깐."
달려드는 이제초의 기세를 잠시 꺾고 나서 홍경래는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가 이기면 그대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해준다고 약속하였소만, 그 반대로 그대가
지고 이쪽이 이기면 그땐 어떻게 하겠소."
그러자 이제초는 별 생각 없이 대답하였다.
"만약에 줄다리기에서 내가 지고 그쪽이 이긴다면 그땐 내 목숨을 걸겠소. 나를 죽이든 살
리든 내 목숨을 그쪽 마음대로 하시오."
천하장사 이제초와 홍경래의 생명을 건 줄다리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줄다리기가 시작된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천하장사 이제초가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고삿줄을 잡아당겼으나 상대방이 꿈쩍도 하지 않자 이번에는 아예 웃통을
벗고 본격적으로 달려들어 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하였는데도 키가 작은 홍경래는 미동도 하
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초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
진 것이었다.
이제초는 자신이 귀신에 홀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한겨울, 있는 힘을 다해 용을
쓰느라고 이제초의 벗은 몸에서는 곧 뜨거운 땀에 솟아오르고 더움 김이 뿜어져 나오기 시
작하였다. 그럼에도 상대방을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줄다리기를 한 뒤 이긴 쪽은 줄을 가져다가 액막이돌이나 신목에 감아두었다가 나중에 썰
어서 논에 거름으로 넣기도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제초는 자신이 지금 사람과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액막이돌이나 신목과 더불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
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큰 힘을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는 자신에 반해 사내는 숨소리 하나도 거칠어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한밤중에 시작된 줄다리기가 새벽 동틀 무렵까지 계속되었는데도 줄다리기는 승부가 나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자 홍경래가 이렇게 먼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날이 훤히 밝았으니 이만 쉬었다가 오늘 밤 다시 시 판을 벌이는 것이 어떠하겠소."
원래 줄다리기는 며칠 동안 계속해서 벌어지는 경기였으므로 이를 마다할 이제초가 아니었
다.
"좋소. 오늘 밤에 다시 붙어 보기로 합시다."
그날 밤.
이제초와 홍경래는 또다시 생명을 건 줄다리기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상황은 조금도 달라
진 것이 없었다. 마침내 지친 이제초가 홍경래에게 헐떡이며 말하였다.
"줄다리기는 승부가 나지 않으니 다른 방법으로 힘을 겨뤄 보기로 합시다."
"다른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정하시오. 씨름이든 주먹싸움이든 그쪽이 원하는 대로 먼저 결정하시오."
그러자 홍경래가 손을 들어 촛대봉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 바위를 들어올리는 것으로 힘을 겨뤄 봅시다."
원래 촛대봉은 이르이 가리키듯 촛불을 켜놓은 것 같은 삐죽삐죽한 바위들이 둘러가면서
처져 있는 암벽이었다. 그 암벽 위에는 타오르는 불 모양의 바윗돌 하나가 얹혀져 있었다.
홍경래가 가리킨 바윗돌은 암벽 위에 얹혀진 거석이었던 것이다. 한눈에도 들어올리기에
수월치 않아 보이는 거대한 암석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함으로써는 그 누구에게도 져본 적
이 없었던 이제초였던 터라 선선히 대답하여 말하였다.
"좋소. 저 바위를 들어올리는 것으로 힘을 겨뤄 봅시다."
먼저 이제초가 웃통을 벗고 암벽 위에 올라섰다. 이른바 흔들바위라 하여 암벽 위에 올려
진 바위는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흔들거렸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흔
들리는 바위였지만 들어올리기에는 엄청난 무게였던 것이다.
이제초는 이를 악물고 바위에 달라붙었다. 힘을 주느라 그이 이마에는 굵은 핏줄이 솟아올
랐고 그이 입에서는 괴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재차, 삼차 시
도하였던 이제초는 마침내 물러서면서 말하였다.
"난 못하겠소이다. 자, 이번엔 노형 차례요."
이제초가 물러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홍경래가 암벽 위로 올라섰다. 홍경래 역시 웃통을 벗
고 몇 차례 호흡을 가누느라고 심호흡을 한 다음 온몸의 기를 모아 어느 한순간 바위에 바
짝 달라 붙었다. 으랏차차, 고함소리와 함께 거대한 암석이 홍경래의 두손 위에 번쩍 들어올
려졌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이제초가 직접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곳이다.
홍경래의 두 손에 번쩍 들어올려졌던 바위는 잠시후 제자리에 그대로 놓여졌다. 그리고 나
서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두손을 털고 있는 홍경래 앞에 이제초는 무릎을 꿇고 말하였
다.
"내가 졌습니다. 내 입으로 직접 내기에서 진다면 나를 죽이든 살리든 내 목숨을 바치겠다
고 맹세하였으니 이제 내 목숨은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홍경래가 들어올려 천하장사 이제초의 힘을 제압하였다는 촛대봉의 흔들바위는 그 다음부
터 '역사암' 이라고 불렸다는데, 우리나라 최대의 금광이었던 운산에 있던 촛대봉의 역사암
은 최근까지 남아 있어 역사의 반항아 홍경래의 일화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홍경래는 천하장사인 홍총각과 이제초를 자신의 고굉으로 삼게 되었으며 앞장서서
혁명을 이끌어 나갈 선봉장을 구하게 된 거시었다.
마침내 홍경래는 두뇌와 자본과 지략을 얻는 한편, 용을 얻음으로써 역성혁명의 기틀을 마
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천하의 영웅호걸들이 홍경래의 휘하에 속속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우선 용맹에 있어서는 홍총각이나 이제초를 능가하여 그 위에 비상한 지략까지 겸비한 태
천 사람 김사용, 평안도 굴지의 거부 이희저를 통해 얻은 부상대고들의 후원들. 정주성의 거
부 이침. 김석하, 안주 상인 나대곤, 개성 상인 박광유. 홍용서 등, 이들은 대부분 부를 축적
하여 하층 지배자로 진출한 신흥귀족의 사상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부를 아낌없이 홍경
래의 혁명을 위해 바친 상인들이었던 것이다.
이희저를 비롯한 상인의 집단들도 이처럼 홍경래의 혁명을 도왔으며 또한 과거제도의 부
패,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삼정의 문란 등의 난세에 따른 현상에 불만
을 품고 있던 각 지역의 선비들. 가산의 윤언섭, 곽산의 박성신, 정주의 최우륜 김이대, 선천
의 유문제. 최봉관, 안주의 양수호, 철산의 정복일. 정경행. 정성한, 개천의 이하유, 태천의
변대익, 박천의 한일환. 김혜길, 영변의 김우악. 남열강. 김운용 등 내로라 하는 평안, 황해
양 도의 유지들을 규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이미 가산의 다복동에 모여 금광업을 핑계로 한낮에는 금광을 여는 한편 한 밤에는
홍총각과 이제초로 하여금 무술훈련을 시키도록 하고 있었는데 이미 군세는 2천 명을 넘었
으며 다복동의 골짜기는 장정들의 활쏘기, 칼쓰기, 고함소리로 들썩거렸고 대장간은 주야로
무기 제조에 바빴으며, 아낙네들은 군복과 기치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홍경래는 항상
각지에 밀사를 파견하여 지방에 숨어 있는 책임자와 긴밀한 연락을 취함으로써 조직을 정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마침내 임신년 즉 1812년 정월을 기해 거사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
다..
이것이 '임신기병'이었다.
임신년 정월에 기병을 하여 혁명을 일으키기로 마음을 굳힌 홍경래는 김창시를 불러 임신
기병의 운명적인 사실을 참설로써 세상에 널리 알리도록 명령하였는데 이에 김창시는 다음
과 같은 참설을 고안해내었다.
'일사황관하니 귀신탈의하고, 십필가일척하니 소구유양족이라.'
김창시는 이 참설을 고안한 후 다음과 같은 노래를 널리 유포 시켰다.
선비 하나가 관을 비뚤어 쓰니
귀신이 옷을 벗고 있도다.
열 필 비단에 한 척을 더하니
작은 언덕은 양 다리를 갖고 있구나.
얼핏 보면 그 뜻을 종잡을 수 없는 난해한 참설이었지만 어쨌든 이 노래를 즉시 관서지방
으로 퍼져나갔다. 일반 백성들이나 아이들은 이 해괴망칙한 노래를 널리 부르고 있었다. 그
러나 이 노래의 의미를 정밀하게 따져보면 그 노래 뒤에 숨겨져 있는 깊은 뜻을 밝혀낼 수
있다.
즉 '선비 하나가 관을 비뚤어 쓰고 있음'은 '일사횡관'이란 말인데 이는 '임' 자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귀신이 옷을 벗고 있음'은 '귀신탈의'란 뜻인데 이는 '신' 자를 의미하고 있
는 것이다. 따라서 '작은 언덕이 양 다리를 갖고 있구나'는 '소구유양족'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병' 자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해괴망칙한 내용의 노래는 '임신기병'의 넉
자를 '파자'로 만든 수수께끼의 암호였던 것이다.
파자.
한자의 자획을 나누거나 합쳐 그 뜻을 풀이하고 길흉을 점치는 일로 특히 <정감록>에서
널리 유포되어온 방법이 아니던가.
<정감록>은 홍경래나 우군칙 모두가 숭상해온 비결서였다. 특히 김창시는 정감록의 숭배
자였다.
따라서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고 은어, 우의, 특히 파자를 사용하였으므로 그 해석이 난삽하
고 애매한 표현이 많이 있는 것이다. 김창시가 지은 '임신기병'의 동요 역시 이처럼 정감록
에서 파자 형식을 빌려와서 지은 노래다.
<정감록>에는 '파자' 형식을 빌려온 '삼절운수설'이 골자를 이루고 있다.
즉, 조선왕조는 세 번의 내우외한으로 단절될 운수를 맞게 되는데 그 첫 번째는 '임진왜란'
이요, 두 번째는 '병자호란'이요, 세 번째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재앙이라 하였다. 따라서
이 세 번의 국가적 위기에서 살아남을 방법으로 ,정감록>은 '파자 풀이'의 형식을 빌려 이렇
게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첫 번째 위기인 임진왜란 때에는 '살아자수 화인유녀'요 '활아자수 십팔공' 이라 하였다.
여기에서 '화인유녀'는 '왜의 파자이고, '십팔공'은 '송'의 파자이므로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죽은 자는 왜 때문이며, 산 자는 송 때문이다.'
두 번째 위기인 병자호란 때에는 '살아자수 우하횡산'이요 '활아자수 시착관'이라 하였는데
'우하횡산'은 '설'의 파자이고, '시착관'은 '가' 자의 파자이므로 '죽은 자는 눈 때문이요, 산
자는 집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는 뜻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병자호란이 한겨울에 일
어났으므로 전쟁 때문에 죽은 사람보다는 얼어죽은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에 파난 가지 않
고 집에 남아 있던 사람이 오히려 화를 면하였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다가올 세 번째의 위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의 예언을 하
고 있었다. '살아자수 소두자족이요, 활아자수 신입혈이라.'
여기에서 '소두어족'은 '당'의 파자이고 '신입혈'은 '궁'의 파자이니 그 뜻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죽은 자는 사색분당의 정치분쟁 탓이면, 산 자는 재물을 버리고 가난을 좇아
청빈한 삶을 산 때문'이란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
홍경래의 뛰어난 모사였던 김창시는 이 세 번째 위기를 자신들이 일으킬 혁명의 예언으로
보았다.
자신들의 난이 김조순과 박종경을 비롯한 세도가들의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가난한 농
민들을 중심으로 일으킬 혁명이었으므로 '죽은 자는 당 때문이며 산 자는 궁 때문' 이라는
<정감록>의 예언에 정확히 부합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김창시는 <정감록>의 참설을 빌려 임신년(1812년)에 일으킬 혁명을 미리 널리 유
포시키기 위해서 파자 노래를 유행시켰던 것이다.
선비 하나가 관을 비뚤어 쓰니
귀신이 옷을 벗고 있도다.
열 필 비단에 한 척을 더하니
작은 언덕은 양 다리를 갖고 있구나.
이 노래는 곧 전 관서지방으로 번져 나갔으나 아무도 이 노래의 의미를 파헤쳐 아는 사람
이 없었다.
김창시는 이 노래를 유행시키는 한편 국난을 구할 큰 영웅이 서북지방에서 곧 출현할 것이
라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하였다. 죽, 킬 속에서 태양과 달의 정기를 받은 왕 하나가 태어날
것인데 그가 진짜 이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소문을 퍼뜨렸던
것이다.
'선천군 검산 일월봉 밑 군왕포 위에 있는 홍의도에서 진인이 나타나셨으니 이분은 일찍
중국에 들어가 도술을 배워 가지고 조선으로 나왔는데'라는 김창시의 격문도 바로 이런 소
문에 바탕을 둔 치밀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김창시가 미리 퍼뜨렸던 '칼 속에서 해와 달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군왕'이야말로 격문에
나오는 '검산 일월봉 밑 군왕포에서 태어난 홍경래'임을 미리 암시하여 예언과 현실이 일치
되도록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짰던 것이다.
이렇듯 치밀한 혁명의 계획을 짜고 있던 홍경래가 거사를 앞두고 스스로 위주까지 임상옥
을 찾아와 임상옥 상가의 서기로 들어간 것은 홍경래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홍경래는 그만큼 임상옥을 중요한 인물로 점찍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관서지방 제일의 거부였으며 조선 최대의 무역왕이었다. 그는 또한 전국 최고의
갑부였을 뿐 아니라 당대 제일의 권력가였던 박종경을 자신의 배후 인물로 삼고 있던 막후
실력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청나라의 상계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뛰어난 외교가이기
도 했었다.
홍경래가 10년간 공들여서 포섭하고 규합해온 그 어떤 선비보다도, 그 어떤 상인보다도 임
상옥 한 사람의 영향은 그만큼 크고 막대한 것이었다.
만약 임상옥을 혁명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홍경래는 오래 전부터 임상옥을 점찍어 두고 있었으며 그를 끌어들일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혁명은 손쉽게 성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임상옥을 혁명군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홍경래의 계획에 찬성을 보낸 사람은 우군칙이었
다. 우군칙은 말하였다.
"반드시 임상옥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임상옥은 최대의 거부일 뿐 아니라 인아족척이 전국
에 분포되어 그 영향력이 대단하나이다."
"하지만 그를 끌어들일 묘수가 없지 않은가."
홍경래의 제갈공명으로서, 평안도 제일의 선비인 김창시를 끌어들일 묘안을 가르쳐준 우군
칙이었으므로 홍경래는 넌지시 그에게 그 방안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우군칙이 말하였다.
"자고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호랑이 새끼를 얻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군칙의 말을 들은 홍경래가 다시 물어 말하였다.
"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방법
조차 없지 않은가."
그 묘수는 의외의 곳에서 들렸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이희저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임상옥과 저는 절친한 친구 사이나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방법이 이희저의 소개장을 들고 홍경래가 직접 임상옥의 집으로 찾아 들
어가는 것이었다. 이희저의 서장을 읽으면 임상옥은 감히 홍경래를 물리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면 임상옥의 상가에서 서기로 취직하여 일을 하다가 기회를 엿보아 그의 마음을 사로잡
을 만남을 따로 구할 것이다. 이희저는 홍경래에게 이렇게 귀띔을 해주었다.
"임상옥도 지금은 조선 제일의 갑부가 되어 호의호식하고 있사오나 마음속으로는 현 조정
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갖고 있을 것이 틀림이 없나이다."
"어째서 그러하오."
홍경래가 묻자 이희저는 대답하였다.
"임상옥도 죽은 아비의 비참한 일로 조정에 대해 깊은 불평을 갖고 있음을 내가 잘 알고
있나이다."
홍경래 역시 사마시에 단지 평안도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낙방했었던 쓰라린 과거가
있었으므로 임상옥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상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오나."
우군칙이 홍경래에게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임상옥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조선 제일의 갑부이나이다. 따라서 비록 아비가 비참하
게 죽었다고는 하지만 지난 과거의 일 때문에 자신의 목숨과 안위를 반역과 감히 바꾸려 하
지 않을지도 모르나이다. 그렇게 되면 공연히 천기만 누설시켜 일을 그르치게 될지도 모르
나이다."
홍경래를 대원수로 하는 혁명군의 거사일은 임신년 정월 초하루, 바로 10개월 후의 일인
것이다. 지난 10년간 쥐도 새도 모르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어 온 혁명의 비밀이 임
상옥에 의해서 누설되어버리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허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만약에 임상옥이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면 그땐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자 홍경래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만약 임상옥의 마음을 바꿀 수가 없다면 그땐."
홍경래의 눈빛이 번득였다.
"그가 다시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그의 혀를 베어버릴 것이다."
그러자 우군칙이 말을 이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사옵니다. 혀를 베어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천기를 지킬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러하면."
홍경래가 우군칙을 쳐다보자 우군칙이 단숨에 대답하여 말하였다.
"만약에 임상옥의 마음을 바꿀 수가 없다면 베어야 할 것은 그의 혀가 아니라 그의 목이나
이다. 목을 베어 숨통을 끊어버려야만 천기를 보전할 수 있게 되나이다. 내 말을 명심하소
서."
마침내 임상옥의 마음을 바꿔 그를 혁명군에 끌어들이느냐, 아니면 우군칙의 충고대로 임
상옥의 목을 베어 천기를 보존하느냐는 절체절명의 마지막 선택이 홍경래에게 맞닥뜨려진
것이다. 이 마지막 선택을 위해 혁명아 홍경래가 직접 호랑이 굴인 임상옥의 집으로 서기를
가장해 잠입해 들어갔던 것이다.
이때가 신미년 춘삼월이었다.
제 5장 폭풍전야
1
이희저의 추천으로 임상옥의 상가에 서기로 들어온 홍경래는 놀라우리 만치 일을 잘하였
다.
빈틈없는 회계와 장부정리로 나가고 들어오는 자금의 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임상옥의 재산에 관한 수입과 지출이 일목요연하게 관리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
라서 임상옥으로서는 일일이 자금의 흐름을 따지고 확인할 필요가 없이 다만 홍경래가 정리
하여 올리는 부책을 검토하면 그만일 정도였다.
홍경래는 서기로 들어온 지 한 달 만에 임상옥의 모든 사업을 손 안에 장악하고 있었던 것
이다. 홍경래는 항상 남보다 일찍 일어났으며 또한 남보다 늦게 잠이 들었다. 그의 능력으로
만 본다면 임상옥으로서는 보배로운 인물 하나가 제발로 걸어서 들어온 셈이었다.
그러나 홍경래의 탁월한 수리와 업무능력에도 불구하고 임상옥으로서는 그를 완전히 신뢰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여전히 상가에 있을 상이 아니라 조가에나 있을 상을 타고난 홍경래
의 인상 때문이었다.
상업의 가장 큰 밑천은 바로 사람이며, 상업에 있어서 가장 큰 투자 역시 사람이라는 철학
을 갖고 있어 '상업이야말로 곧 사람' 이라는 상도에 철저하였던 임상옥. 그는 한눈에 사람
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관상의 눈을 타고난 사람이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비록 홍경래가 이희저의 서간을 갖고 초라한 행색으로 찾아왔다 하더라도 그를
본 순간 한눈에 그가 이런 상가에 만족하지 않을 비범한 인물임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었다.
오늘날까지 임상옥으로부터 전설적인 야담 하나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임상옥의 사람을
보는 뛰어난 눈을 가리키는 이 이야기는 '이생이사'란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내용
은 다음과 같다.
하루는 임상옥의 집으로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 나그네는 다른 객들과는 달랐다. 다른 객들은 바둑을 두거나, 시를 읊는 선비거
나, 가객이거나, 입담 좋은 풍류객들이었는데 이 나그네는 하루종일 한마디의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말 못하는 벙어리인 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 못하던
나그네는 초면인 임상옥을 대하자 대뜸 입을 열어 말하였다. 자신을 전라감영에서 이방 노
릇을 하는 최 아무개라고 소개한 다음 이방질을 하다가 공금 5만 냥을 축내어 죽게 된 목숨
이니 살려주는 셈치고 5만 냥을 꾸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5만 냥이라면 어마어마하게 큰 천문학적 액수였다. 생면부지의 나그네로부터 그런 엄청난
거금을 꾸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임상옥은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다만 다음과 같이 물어
말하였다.
"그러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먼 걸음을 하였소. 완산에서 의주라면 이천 리가 넘을 터인데."
그러자 그 나그네는 대답하였다.
"그런 큰돈을 조선 팔도 안에서 대인어른이 아니고는 누가 갖고 있겠습니까. 조선 최고의
갑부가 의주 사는 대인어른이라 하여 불원천리하고 찾아왔습니다."
"그런가."
임상옥은 잠시 혼잣말로 중얼거린 후 다시 머리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그렇소.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임상옥은 그 자리에서 즉시 5만 냥의 어음을 끊어 주었다. 그 어음을 한양에 가서 한전해
쓸 쑤 있도록 해주자 나그네는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차용증을 쓰겠습니다."
임상옥은 붓과 종이를 가져오도록 한 다음 5만 냥을 약속된 기한 내에 갚는다는 증서를 쓰
도록 하였다. 증서를 쓴 다음 나그네는 성급히 사라졌다. 나그네가 사라지자마자 임상옥은
그가 남기고 간 차용증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옆에서 기록을 맡아 보고 있던 서사가 놀래 말하였다.
"어째서 증서를 찢어버리십니까."
그러자 임상옥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 사람아, 어차피 갚지도 않을 사람인데 증서를 보관해 두어서 무얼 하겠는가. 이건 차용
증서가 아니라 한갓 휴지조각에 불과한 따름이네."
임상옥의 말을 들은 서사가 다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어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차피 갚지도 못할 사람에게 어떻게 그 큰돈을 꾸어 주셨습니까."
5만 냥이라면 당시 시세로 치면 홍삼 2천 근에 해당하는 상상도 못할 금액이었던 것이다.
그런 거금을 어떻게 분명히 갚지도 못할 사람인 줄 알면서 꿔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임상옥은 수수께끼와 같은 대답을 했다.
"이 사람아. 내가 갚지도 못할 사람에게 그것도 홍삼 2천 근에 해당하는 5만 냥을 꾸어 준
것은 이생이사 때문일세."
"이생이사라니오."
서사가 묻자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두 사람이 함께 살거나, 두 사람이 함께 죽는다는 말일세."
여전히 서사가 영문을 몰라하자 껄걸 웃으면서 임상옥이 물어 말하였다.
"이 사람아, 5만 냥이 중요한가, 목숨이 중요한가."
"물론 사람의 목숨이 중요합지요. 5만 냥 아미라 5천만 냥이라 하더라도 산 목숨이 중요합
지요."
"만약 내가 5만 냥을 꾸어 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도 죽고 나도 죽었을 것일세. 왜냐하면
그 사람 얼굴에 살기가 있었으니까. 내가 만약 돈을 주지 않았다면 그는 나를 죽였을 것이
네. 그렇게 되면 나도 죽고 또한 그 사람도 죽었을 것이네. 그러나 내가 돈 5만 냥을 꾸어
주었으므로 나도 살게 되었고 그도 공금을 갚고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지. 이 사람아, 이것
이야말로 이생이사가 아니겠는가. 나도 죽고 그 사람도 죽는 것보다 나도 살고, 그 사람도
함께 사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장사를 하다 보면 이익을 보는 수도 있고 손해를 보는
수도 있으니 돈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네."
전해오는 야사에 의하면 임상옥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서사는 그 길로 변장을 하고 그 나
그네의 뒤를 밟아 완주까지 내려가 주막집에서 이틀을 함께 지내 보고는 사흘 만에 다시 돌
아온 후 임상옥에게 이렇게 고백하였다고 한다.
"과연 대인어른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과연 그 사람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은 것은
매일반이다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가슴에 비수를 품고 대인어른을 찾아왔다 하나이다. 만약
대인어른께오서 돈을 죽으려 했노라고 고백했나이다. 내 눈으로 직접 품고 있던 비수를 강
물 속에 던져넣는 모습을 보았나이다."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하였던 임상옥의 일화를 말해주는 이 야사에서부터 '이생이사'란 임
상옥만의 독특한 경영철학이 완성된 것이다.
즉, 장사란 이익을 보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고 나 혼자만 살아 남은 행위가 아닌 것이다.
어차피 상업이란 사람과 사람 간의 거래이므로 나도 살고 상대방도 함께 사는 길이 바로 정
도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사는 '이생이사'의 경영철학이야
말로 임상옥의 상업철학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사람을 보는 데 있어 정확한 눈을 가졌던 임상옥이었으므로 홍경래에 대한 인상 역
시 남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임상옥이 홍경래가 세상 풍조에 타협하지 않고 반역의 기질을 가진 반골임을 닷 한번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서기로 들어온 지 한 달 후의 일이었다.
하루는 의주부에서 이방이 황급히 달려왔다. 청나라로 가는 사신의 옥로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옥로는 갓에 매다는 입식의 꾸미개 중 하나로 단순한 노리개가 아니었다. 신분에 따라 대
신들은 금으로, 정 3품까지는 은으로, 관찰사. 절도사 등은 옥으로 만들어 갓 정상에 매달았
다. 고려시대 공민왕 19년(1370년) 7월부터 백관의 품위를 가리기 위해서 옥, 수정 등의 정
자를 달게 하였던 이 제도는 조선시대에도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옥로야말로 외교 사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장식품이었다.
예로부터 국경도시 의주는 청나라로 가는 외교사신들이 마지막으로 묵어가는 곳. 따라서
의주부사는 이들 사신 일행을 맞아 접대하고 환송연을 벌여주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기생들을 불러다가 걸판지게 놀고 원하면 하룻밤 수청들여 객고까지 풀어주는 것이
연중행사였는데 연회를 끝내고 아침에 일어나고 보니 주청사의 옥로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
다는 것이다.
의주부가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연회장을 뒤지고 간밤에 수청들었던 기생들의 몸까지 샅샅이 수색하였으나 끝내 옥로를 발
견해낼 수 없었던 다급해진 이방이 임상옥의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임상옥의 창고에는 없는 게 없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해마다 음력 유월이나 섣달에 벼슬아치의 근무성적을 떼어 올리는 도목정사를 살피
기 위해 관리 하나가 의주에 왔다가 그가 짚고 다니던 산호 지팡이가 부러진 일이 있었다.
황실의 일족이었던 종친부에서 직접 나온 사람이라 다들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는데 임상옥
이 자신의 창고에서 똑같은 산호 지팡이 십여 개를 가지고 나와 마음에 드는 지팡이 하나를
골라잡고 돌아가게 함으로써 위기를 면한 이후 임상옥의 창고는 없는 게 없는 '부엉이 창고'
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던 것이다.
헐레벌떡 달려온 이방으로부터 전후사정을 들은 임상옥은 하인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하여
사.
"이방어른을 창고로 모시고 가서 옥로를 모두 보여 드리도록 하여라. 그 중 잃어버린 옥로
와 같은 물건이 있으면 갖고 가시도록 말씀드려라."
하얗게 질렸던 이방의 얼굴에 금방 희색이 돌았다. 임상옥의 허락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이
창고에 잃어버린 옥로와 같은 물건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그 즉시 이방을 안내를 하는 하인을 따라 창고까지 걸어갔다. 그러나 창고는 굳게 잠겨 있
었다. 창고의 열쇠는 서기인 홍경래가 직접 관리하고 있던 터였으므로 하인은 홍경래를 찾
아가 자초지종을 말한 다음 창고를 열어 달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홍경래는 이렇게 말하였다.
"자고로 도둑에게는 문을 열어주는 법이 없다. 갖고 가고 싶으면 훔쳐 가도록 하시게."
홍경래의 말을 들은 하인은 오금이 저려 벌벌 떨었다. 이방이라면 부사어른의 바로 아랫자
리. 그런 이방에게 '도둑'이란 칭호를 감히 사용하여 함부로 부르다니. 만에 하나라도 이방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야말로 치도곤을 맞을 일이었던 것이다.
하인은 재삼, 재사 매달려 보았지만 홍경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하인은 다
시 임상옥을 찾아와 하소연하여 말하였다.
"홍 서기가 곳집의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어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내 명이라 말하였는데두."
"그렇습니다. 대인어른의 하명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렸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고 있나이다."
"그런 가서 홍 서기를 불러오너라."
하인이 뛰어달려가 홍경래를 불러왔는데 그는 낯빛 하나 흐트러진 데가 없이 담담한 표정
을 짓고 있었다.
"곳집의 열쇠를 갖고 있는가."
임상옥이 묻자 홍경래가 대답하였다.
"보관하고 있나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곳간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가."
그러자 홍경래가 대답하였다.
"자고로 곳간은 함부로 열어주는 법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아낙네들의 속살과 곳간은 은밀
히 숨어 있어야 하지, 남의 손때를 타면 부정을 입는다 하였습니다."
"곳간의 주인인 내가 열어주도록 허락을 내렸는데두."
"물론 곳간의 주인은 대인어른이시나이다. 하지만 주인이신 대인어른께오서 허락을 내렸다
하더라도 저는 문을 열어줄 수가 없나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그건 그들이 도둑이기 때문이나이다.'
"도둑이라니."
임상옥이 정색을 하고 물어 말하였다.
"그 양반들은 나랏일을 맡아하시는 관원님들이시다."
순간 홍경래의 입에 싸늘한 비웃음이 감돌았다.
"그러니까 더 큰 도둑놈들이나이다."
홍경래의 눈에서 순간 불꽃이 튀었다.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나랏일을 맡으라는 양반님들이오만 뒷구멍으로는 도둑질을 하여 자
신의 배만 불리고 있는 도둑이나이다. 대인어른, 자고로 도둑들에게는 문을 열어주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도둑들은 마땅히 담을 넘고, 문을 뚫고 들어가 물건을 훔쳐 가도록 해야 하
나이다. 따라서 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곳간의 문을 열어줄 수는 없나이다."
자기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곳간의 문을 열어줄 수 없다는 홍경래의 말에 임상옥은 웃으면
서 말하였다.
"하는 수 없지. 자네가 문을 열 수 없다면 내가 가서 문을 열 수밖에. 내가 가서 문을 열어
드리는 것은 괜찮은가."
"곳간의 주인이 대인어른이시오니, 도둑의 무리에게 대인어른께오서 문을 열어 드린다 하
더라도 소인이 상관할 바는 아니나이다."
"그럼 열쇠를 이리 주시게나."
홍경래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열쇠꾸러미를 임상옥에게 내밀었다. 임상옥은 자신이 직접
창고까지 찾아가서 자물쇠를 열고 창고의 문을 열었다.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임상옥의
'부엉이 창고' 속에는 그 귀한 옥로가 수백 개나 들어 있었다고 한다. 간밤에 사신이 옥로를
잃어버려 혼비백산하였던 이방은 그 수백개의 옥로 중에서 똑같은 옥로를 구해다가 감쪽같
이 사신의 갓에 매달아 놓음으로써 위기를 벗어났음은 물론이고.
2
그날 밤.
임상옥은 술상을 봐놓게 한 다음 사람을 시켜 홍경래를 불러오도록 하였다. 마침 봄이 무
르익어 뜰에는 벚꽃이 만개하여 피어 있었다. 흐드러진 벚꽃은 바람도 없는데 제 무게를 못
견디어 난분분 난분분 떨어지고 있었고, 게다가 가는 봄비마저 내리고 있었다. 춘흥이 도도
한 밤이었다. 아직 한기가 남아 있는 북방의 봄밤이었지만 임상옥은 방문을 활짝 열어젖혀
놓고 활짝 핀 벚꽃 위로 스며드는 봄비의 정취를 홀로 술을 마시면서 즐기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홍경래가 봄비를 맞으며 나타났다. 홍경래를 방으로 들이고 나서 임상옥은 대뜸 술을 내리
석 잔을 따라주고는 자신도 자작하여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사람을 오라고 불러놓고는 막
상 오자 잊어버린 듯 임상옥은 술을 마시면서 흩어져 내리는 벚꽃만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
을 뿐이었다.
홍경래 역시 술만 들이킬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긴 침묵 끝에 먼저 임상옥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자네 이런 말을 알고 있는가."
"어떤 말이나이까."
"교토삼굴이란 말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나이다."
홍경래가 단숨에 술을 들이키며 말하였다.
"그 뜻이 무엇인가."
"영리한 토끼는 숨을 굴을 세 개나 갖고 있다는 뜻이나이다."
임상옥은 말없이 자기 손으로 빈 잔에 술을 따라 마시면서 물어 말하였다.
"영리한 토끼는 숨을 굴을 세 개나 갖고 있다니, 그 말의 뜻은 무엇인가."
"옛말에 이르기를 교토유삼굴 근득면기사이 라 하였습니다. 이 말의 뜻은 '영리한 토끼는
숨을 굴을 세 개나 갖고 있어 죽음을 면할수 있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나이다."
거침없는 홍경래의 말이었다.
원래 이 말은 춘추전국시대 때 맹상군이 식객이었던 풍훤에게 설 땅으로 가서 부채가 있는
사람들의 차용금을 모두 거두어 오라는 명을 내렸을 때 그가 가서 백성들의 차용증서를 모
두 불태워버린 데서 비롯된 말이었다. 빈손으로 돌아온 풍훤이 못마땅해 맹상군이 화를 내
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일년이 흐른 뒤 맹상군이 제왕의 노여움을 사서 재상 자리를 놓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백성들이 그를 보호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 뒤로 맹상군을
세 번이나 백성들로부터 보호를 받게 됨으로써 식객 풍훤이 자신을 위해 숨을 구멍 세 개를
미리 마련해 주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로써 맹상군은 수십년 동안 재상의 지위에 있었
으면서도 전혀 화를 입지 않았으며, 여기에서부터 난세의 처세술로 '영리한 토끼는 숨을 굴
을 세 개나 갖고 있다' 는 고사성어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묵묵히 홍경래의 답변을 듣고 있던 임상옥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그대는 몇 개의 굴을 갖고 있는가."
홍경래가 대답하였다.
"하나의 굴도 갖고 있지 않나이다."
"그러하면 그대는 영리한 토끼인가, 아니면 우둔한 토끼인가."
"영리한 토끼도, 우둔한 토끼도 아니나이다."
"그러하면 그대는 어떤 토끼인가."
"대인어른."
홍경래가 소리내어 웃으면서 말하였다.
"저는 다만 숨을 곳이 하나도 없는 토끼이니 죽음조차 면할 수 없는 토끼이나이다."
임상옥이 홍경래에게 교토삼굴의 고사를 넌지시 물어보았던 것은 아침나절에 있었던 옥로
사건을 빗대어 그의 심중을 묻기 위함이었다. 의주 부윤에서 찾아온 이방을 '도둑놈'이라고
비웃고 창고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홍경래에게 난세를 헤쳐가기 위해서는 영리한 토끼처
럼 숨을 굴을 세 개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는 융통성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임상옥의 흉중을 미리 꿰뚫어 보고 있기나 한 듯 홍경래는 자신을 '숨을 곳이
하나도 없는 토끼'라고 못박아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나랏일을 보라고 벼슬을 맡겼으나 뒷구멍으로는 도둑질을 하여 자신
의 배만 불리우는 도둑 아닌 도둑, 그 도둑들을 위해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곳간의 문을
열어줄 수 없다는 의지를 자신을 '숨을 굴이 하나도 없는 토끼' 라고 표현하여 나타내 보인
홍경래는 묵묵히 열린 방문 바깥 뜨락에서 비를 맞고 있는 벚꽃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
다. 마침 비 내리는 벚꽃 가지에는 새들이 날아와 어지러운 소리로 울고 있었다. 내리는 봄
비에 어느덧 낙화의 꽃잎들이 어지러이 땅 위에 떨어져 싸락눈이라도 내린 듯하였다.
임상옥은 갑자기 춘흥이 도도해졌다. 그래서 붓을 들어 종이 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써내
리기 시작하였다.
깊은 봄밤에 새벽이 된 것을 깨닫지 못하는데
곳곳에서는 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밤새 비바람 소리에
꽃이 많이도 떨어졌음을 알겠다.
춘면불각효
처처문제명
야래풍우성
화락지다소
이 시는 봄밤을 그린 탁월한 시의 하나로 당나라 시인 맹호연의 대표적인 유정시 중의 하
나인 것이다.
춘흥이 도도해져서 제 흥에 겨워 단숨에 종이 위에 시 한 수를 적어내리고 나서 임상옥은
붓을 던지며 말하였다.
"영리한 토끼건 어리석은 토끼건 봄은 봄이다. 아름다운 봄밤이야."
그러자 물끄러미 임상옥의 붓글씨를 지켜보던 홍경래가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려 입을 열어
말하였다.
"하오나 이 밤을 지새고 나면 간밤의 비바람에 꽃이 많이도 떨어질 것이나이다."
"비바람이 불면 꽃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취한ㄴ 임상옥이 빈 잔을 들어 술을 마시는 시늉을 하면서 말하였다. 그러자 홍경래가 술
병을 들어 임상옥의 빈 잔 속에 가득 술을 따라 주면서 말하였다.
"대인어른께오서는 깊은 봄잠에서 아직 깨어나시지 못하셨습니까. 이제 곧 날이 밝아 새벽
이 올 것이나이다. 그만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셔야 하나이다. 언제까지 잠에 취해 꿈에서 헤
어나지 못하시나이까, 대인어른."
그리고나서 나서 홍경래는 말을 이었다.
"지금 밖에서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일사횡관하니 귄신탈의하고 십필
가일척하니 소구유양족이라."
"그게 도대체 무슨 노래인가."
임상옥이 물어 말하였다. 그러자 홍경래가 대답하였다.
"'선비 하나가 관을 비뚤어 쓰니 귀신이 옷을 벗고 있도다. 열필 비단에 한 척을 더하니 작
은 언덕은 양 다리를 갖고 있구나' 하는 뜻이나이다."
임상옥은 마시던 술잔을 멈추고 주의깊게 귀기울여 홍경래가 읊는 해괴망칙한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치기를 기다려 임상옥이 다시 말하였다.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선비가 관을 비뚤어 쓰기 귀신이 옷을 벗고 있다라니. 그것은
노래가 아니라 귀신의 곡성이 아닐 것인가."
"그렇습니다, 대인어른."
홍경래가 대답하였다.
"이 노래야말로 귀곡성이나이다. 귀신의 울음소리나이다. 대인 어른께오서 노래한신, 깊은
봄밤에 새벽이 된 것을 깨닫지 못한 맹호연의 시는 태평성대에나 어울릴 봄밤의 노래입니다
만, 지금 밖에서는 귀신의 울음소리와 같은 해괴한 내용의 노래가 널리 번져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태평성대가 아니라 난세 중의 난세입니다. 아이들이 부르고 있는 동요의 내용대로
선비는 관을 비뚤어 쓰고, 귀신은 옷을 벗고 잇는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대인어른
께 묻겠습니다. 대인어른은 몇 개의 숨을 굴을 가지셨습니까."
그러나 임상옥은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키고는 껄걸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는 이미 상당히 취한 듯 보였다.
"나는 영리한 토끼라서 항상 세 개의 숨을 굴을 갖고 있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살아남지 못하십니다. 세 개의 굴을 가진 토끼라고 하여도 불타오르는
벌판에서는 살아남지 못하십니다. 세 개가 아니라 열 개의 굴을 가진 토끼라고 하더라도 요
원의 불길 속에서는 타죽고 말기 마련입니다. 대인어른, 지금은 난세 중의 난세로 바깥세상
은 온통 야화가 타오르고 있습니다. 타오르는 들불은 끌 수가 없습니다. 타면 타오르는 대로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벌판의 온갖 초목이 다 타버리고 영리한 토끼건 어리석은
토끼건 모두 다 타 죽어버리고 그 잿더미가 되어버린 폐허에서 새 순이 돋아오르고 새싹이
트고 새 생명이 자라 마침내 새 세상이 오게 될 것입니다."
순간 임상옥이 껄걸 큰소리로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 사람아, 당나라의 선사 조주에게 어느 날 제자 한 사람이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네. '대
난도래 여하회피.' 그 말은 '큰 난리가 닥쳐오면 어떻게 회피해야 합니까' 라는 뜻이지. 이
말에 조주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는가."
임상옥은 술에 취해 술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면서 홍경래를 쳐다보았다. 홍경래는 묵묵부
답이었다. 그러자 임상옥이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였다.
"조주는 이렇게 대답하였다네. '흡호.' 이 말의 뜻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네. 제자가 물
었던 그 큰 나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지. 그러나 그 대답의 뜻은 이런 것이지. '큰 난
리가 닥쳐오면 회피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 큰 난리를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난세야말로
호시절이 아니겠는가'라는 뜻이지."
홍경래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인어른께오서는 이 난세를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난세야말로 호시절이다."
갑자기 임상옥이 술상을 내리치면서 크게 웃었다.
"난세야말로 내가 기다리던 호시절이고 말고."
세차게 술상을 내리쳤으므로 술병과 술잔, 몇 개의 그릇이 엎어졌다. 임상옥은 완전히 취해
있었다. 주인의 그런 취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홍경래였던지라 자리에서 일어나
며 말하였다.
"대인어른께오서는 술이 취하셨습니다. 그만 술상을 물리시고 처소에 드시는 것이 좋을까
하나이다."
그러자 임상옥이 취한 눈으로 홍경래를 마주보며 말하였다.
"물론 난 취했네. 하지만 아직 홍 서기에게 할 말이 남아있네. 내가 홍 서기를 부른 것은
이처럼 쓸데없는 말장난이나 하려고 부른 것이 아니야."
"무슨 이유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홍경래가 묻자 임상옥이 대답하였다.
"다름아니라 홍 서기가 풍수의 대가라는 소문을 전해들었네. <주역>에도 통달하였다는 소
문도 전해들었네. 역경에 밝아 하늘과 땅의 조화와 인간의 길흉화복을 꿰뚫고 있다는 소문
이었네. 그러니 내가 홍 서기를 부른 것은 내 점을 보아 달라는 부탁 때문이었네."
임상옥의 말은 사실이었다.
처음 홍경래가 임상옥의 집을 찾아왔을 때 그는 자신을 추천하는 이희저의 서장을 소지하
고 있었던 것이다. 그 서장의 내용 중에 이희저는 홍경래를 추천하면서 그가 수리에 밝을
뿐 아니라 문장을 일고 쓰는데 능통하다고 추천하면서 아울러 홍경래가 풍수에도 밝고, 특
히 역경에 통달하여 그를 잘 이용하면 흉운을 물리치고 길운을 잡아 상업이 번창할 수 있을
것이라 천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임상옥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어떻게 해서든 임상옥과
친분을 맺게 하려고 우군칙이 내놓은 고도의 전술이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직접 술병을 들어 홍경래의 술잔에 술을 따라 주면서 말하였다.
"홍 서기, 내 점괘를 좀 봐주게나. 진작부터 홍 서기에게 점괘를 봐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
었으나 차일피일하다가 마침 오늘에 이르렀네. 내 복채는 두둑이 내놓을 터이니 내 명운을
한번 봐주시게나."
<주역>은 원래 유교의 경전인 삼경 중의 하나로 이 책은 인간의 점복을 위한 원전이기도
하지만 나아가서는 동양의 지혜가 담긴 우주론적 철학이기도 하다.
<주역>이 생겨난 것은 복희씨가 황하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새겨진 도형을 보고 천문지리
를 살피고 만물의 변화를 고찰하여 처음 팔괘를 만든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팔괘는 육십
사괘로 발전되었는데, 양과 음의 법칙을 인간사에 적용시켜 비교하여 풀이한 것이 바로 역
인 것이다.
홍경래는 실제로 주역에 통달하였다. 사마시에 낙방한 뒤 고향에 머루르고 있는 동안 홍경
래는 특히 역경에 심취하여 역경의 달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1808년 순조 8년에는
정약용이 지은 <주역사전>이란 책이 출판될 정도로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역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실제로 공자는 <주역>을 지극히 숭상하고 애독하여 소가죽으로 만
든 책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주역>을 읽었다 하여 '위편삼절'이란 말이 태어났을 정도
였던 것이다.
홍경래는 고의춤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임상옥은 그가 고의춤에서 꺼낸 물건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산통이었다. 산통은 점칠 때 쓰
는 기구로서 그 안에 대나무로 만든 산가지를 넣어두는 통이었던 것이다. 홍경래가 그 산통
을 고의춤에 넣고 항시 휴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역경에 통달하였다는 이희저의 추천
역시 과장된 표현은 아니었다.
산통 속에는 서죽이라고 불리는 점치는 산가지가 오십개 들어 있었다. 원래 서죽은 오십
개가 정량이었다. 그 중 한 개는 태극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여 젖혀놓고 마흔아홉 개만 사
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왜냐하면 태극은 천지만유의 근원으로서 발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홍경래는 진지하게 정좌한 다음 서죽 마흔아홉 개를 경건한 표정으로 양쪽 손에 나누어 쥐
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천하의 혁명아 홍경래의 점괘가 시작된 것이다.
임상옥은 엄숙한 태도로 점을 치는 홍경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홍경래는 서죽을 양손으로 나눈 후 왼쪽에 쥔 서죽에서 한 개를 뽑아내어 이것을 무명지와
새끼손가락에 끼웠다. 그리고 나서 왼손에 있는 서죽을 네 개씩, 네 개씩 차례로 덜어내기
시작하였다. 나머지의 서죽을 무명지와 새끼손가락에 끼우면서 괘를 점찍어내기 시작하였다.
홍경래는 몇 차례씩이나 이런 작업을 되풀이하면서 괘를 얻고 있었다.
원래 주역은 천지자연의 바른 법칙을 본받아 그 이치에 순응함으로써 계시를 얻는 것이므
로 부정한 일을 위한 점은 주역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며, 따라서 올바른 반응을 얻을 수 없
는 것이다. 또한 점의 결과를 의심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두 번, 세 번 점을 되풀이하여
보는 것은 신선을 모독하는 것으로 바른 계시를 얻을 수 없다고 금기시되어 왔던 것이다.
점괘는 오직 단 한 번뿐이었다.
홍경래는 그러한 작업을 순서에 따라서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나오는 점괘마다 이를 종이
위에 적어 우선 팔괘로 나누고, 다시 팔괘를 두 번씩 세분하여 대성괘로 만들어 점괘를 완
성해 나아갔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홍경래는 비로소 얼굴을 들어 임상옥의 얼굴을 마주 쳐다보면서 말하
였다.
"대인어른의 점괘가 나왔나이다."
홍경래는 붓을 들어 종이 위에 무언가를 써내린 후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려 그 종이를 임
상옥에게 내어주면서 말하였다.
"이것이 대인어른의 괘이나이다."
임상옥은 홍경래가 내준 괘를 받아보았다. 종이 위에는 문자도 아니고 무슨 도형과 같은
그림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
임상옥에게 괘를 내주고 나서 홍경래가 말하였다.
"이 두 개의 괘 중에서 첫 번째는 불을 상징하며 다음 괘는 나무를 의미합니다. 예순네 개
의 괘 중에 쉰 번째에 해당하는 이 괘는 나무로 불을 때는 형상입니다. 주역에 이르기를 이
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주역에 이르기를 이 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괘는 크게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무로 불을 때고 삶고 익힌다. 성
인은 삶고 익힌 제물로 하늘의 상제에게 제사하고 또 크게 향응하여 천하의 어진 사람들을
기른다. 겸손한 태도로 남의 말고 의견을 존중하니 귀와 눈이 총명하여진다. 유화한 덕을 가
진 이가 위에서 훌륭한 신하들과 뜻이 서로 호응한다. 이러하므로 나라가 크게 발전한다.'
라는 좋은 뜻을 가진 괘이나이다."
임상옥의 점괘에 대해서 설명한 후 홍경래는 다시 종이 위에 다음과 같은 글자를 써내렸
다.
'정'
그 글자가 씌어진 종이를 임상옥에게 전해주고 나서 홍경래는 말을 이었다.
"이 정은 '솥'을 의미하는 문자인데 대인어른의 운명은 바로 정괘이나이다. 이를 역경에서
는 화풍정 괘라 하나이다. 솥은 나무로 불을 때어 삶고 익히듯 크게 발전할 상이 바로 대인
어른의 괘상이나이다. 주역에서는 이 괘를 '나무' 위에서 불이 타고 있는 것이 괘상이다. 군
자는 이 괘상을 보고 군주의 지위를 바르게 지켜 하늘의 명령이 자신에게 정착하게 해야 한
다' 고 풀이하고 있나이다."
"그러하면 내 운명이 솥과 같다는 말인가."
임상옥이 홍경래가 준 종이를 접으면서 물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인어른의 상괘는 솥이나이다. 나무 이에서 불이 타고 있고, 대인어른은 그
불 위에서 끓어오르는 솥의 운명을 타고났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흥하고 크게 발전하
는 길운을 타고났나이다. 다만 주역은 한 가지 사실만을 경계하라고 가르치고 있나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임상옥은 취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물어 말하였다.
"솥 속의 음식을 익히느라 솥귀가 뜨겁게 달아올라 변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를 역경은 이
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솥 손잡이가 (뜨겁게) 변하였다. 손댈 곳이 없으니 솥 안에 삶아 놓
은 기름진 꿩고기도 먹지 못한다."
"그러하면 그 뜨거운 솥 안에 들어 있는 꿩고기를 익히기만 하였을 뿐 전혀 먹을 수는 없
다는 말인가."
임상옥이 묻자 홍경래가 대답하였다.
"역경은 뜨거운 솥 속에 들어 있는 꿩고기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은 비입니다. 비가 오면 솥 손잡이가 다시 식어 운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솥뚜껑을 열고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역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솥
귀가 다시 식어서 걱정은 없어질 것이다."
불을 때어 뜨거워진 솥귀는 비가 내려 식어야 뚜껑을 열고 솥속에 들어 있는 꿩고기를 먹
을 수 있다는 홍경래의 점괘는 의미 심장한 말이었다. 홍경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또한 주역은 다음과 같이 점괘를 내리고 있습니다. 솥을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 그렇다고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솥바닥에 있는 찌꺼기를 버려야만 그곳에 소중
한 새 물건을 다시 담아 익힐 수 있는 것이다."
홍경래는 점을 치기 위해 꺼내놓았던 산가지를 모아서 산통속에 다시 집어넣으며 말을 이
었다.
"대인어른의 명운은 주역에 따르면 천운을 타고났나이다. 말씀 드린 것처럼 나무로 불을
때어 솥 속에 제물을 삶고 익히는 천운을 타고났나이다. 그 제물은 하늘의 상제를 위한 음
식이며 또한 '정'은 예로부터 천자의 지위와 국가의 위신을 상징하는 신성한 그릇이었나이
다. 때문이 예로부터 왕위를 정조라 하였으며 국가의 운은 정운이라 말하기도 하였던 것입
니다. 대인어른께오서 상인이 되셨으니까 그렇지 만약에 국사에 뜻이 있었다면 조정을 이끌
어 나가실 제위에까지 오를 수 있는 명운을 타고난 것이나이다. 하오나 역경은 대인어른께
두 가지 주의할 점괘를 내리고 있나이다. 그 하나는 솥 속에 들어 있는 찌꺼기를 버리고 새
음식을 삶아 익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솥을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솥
속에 들어 있는 기름진 꿩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뜨거원진 솥귀를 식힐 수 있는 '비가 와야
걱정이 사라진다'는 상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언젠가 한 번은 솥을 거꾸로 뒤집지
아니하면 평생을 낡은 찌꺼기의 음식만을 먹게 될 것이며,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솥 속의
기름진 꿩고기는 익혀만 놓았을 뿐 먹지를 못하게 되실지도 모르나이다. 이것이 대인어른의
명운이나이다."
홍경래는 산통을 고의춤에 넣어 보관하면서 말을 마쳤다. 그러자 묵묵히 듣고 있던 임상옥
이 다시 잔에 술을 따라 마시면서 물어 말하였다.
"그렇다면 홍 서기, 그 꿩고기를 먹기 위해 반드시 비가 내려야 한다면 언제까지 그 비를
기다려야 할 것인가. 기다려도 비가 내리지 아니하면 그땐 어찌할 것인가."
"대인어른."
홍경래는 임상옥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리고 말하였다.
"이미 비는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홍경래의 눈빛이 번뜩이며 타오르고 있었다. 임상옥은 그 눈빛을 피하여 열린 방문 바깥으
로 활짝 만개한 벚꽃 쪽을 바라보면서 껄걸 소리내어 웃으며 말하였다.
"그렇군. 비는 이미 내리기 시작하였군, 봄비는 이미 내리기 시작하였어."
벌써부터 내린 봄비는 벚꽃의 속살로 소리없이 스며들어 육육에 취한 꽃들은 제 스스로 옷
을 벗고 난화하여 땅 위에 어지러이 떨어지고 있었다.
짐짓 홍경래의 눈빛을 피하고 딴청을 피우는 임상옥을 향해 홍경래는 정곡을 찌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말씀드리는 비는 저와 같이 벚꽃을 적시는 봄비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같은 비로써 절대로 솥의 귀를 식히지 못할 것이나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임상옥이 정면으로 홍경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대가 말하는 비는 어떤 비인가."
"제가 말씀드리는 비는 붉은 비를 말함이나이다."
"붉은 비라면."
"혈우를 말함이나이다. 붉은 피의 비라는 뜻이나이다. 솥의 귀를 식히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붉은 비가 내려야 하나이다. 마찬가지로 솥을 뒤집어엎어 그 속에 든 찌꺼기룰 쏟아버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붉은 비는 내려야 하나이다. 이제 이미 그 비는 내리기 시작하였나이다."
"으헛헛헛."
갑자기 임상옥이 크게 웃으면서 술상을 내리치면서 말하였다.
"그대야말로 내게 있어 붉은 비로군. 홍 서기의 성이 바로 홍씨가 아니겠는가. 홍씨라면 물
수변을 가진 큰 물이란 뜻이 아니겠는가. 그뿐인가. 같은 음인 홍은 붉다는 뜻. 그러므로 홍
씨는 '붉은 큰 물'이란 뜻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홍 서기는 내게 있어 붉은 비인 셈이로
군. 홍 서기야말로 뜨거워진 솥의 귀를 식혀줄 붉은 비인 셈이야."
물론 임상옥의 말은 재치어린 농담이었다. 그러나 그 농담 속에는 뼈가 있었다. 홍경래는
순간 모골이 송연하였다. 그는 임상옥에 대해서 섬뜩한 감정을 느꼈다. 무서운 인물이다라고
홍경래는 순간 느꼈다. 절대로 범인은 아닐 것이다.
임상옥은 빈 잔에 술을 따라 홍경래에게 내주면서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대의 점괘는 무엇인가. 그토록 주역에 통달하였다면 홍 서기도 스스로 역경을
보아 자신의 명운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임상옥의 말을 사실이었다.
그 또한 공자처럼 세 번이나 가죽 끝이 끊어질 정도로 <주역>을 읽고 또 읽었었다. 그가
<주역>에 통달한 후 제일 먼저 점괘를 쳐본 것이 바로 자신의 명운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입니다."
홍경래는 대답하였다.
"저도 <주역>을 통해 이미 제 자신의 점괘를 알고 있나이다."
"그 점괘는 무엇인가."
임상옥이 물었으나 홍경래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 점괘가 무엇이냐고 내가 묻지 않는가."
임상옥이 자작하여 술을 따라 마시면서 어눌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는 벌써 상당히 취해
있었다. 임상옥은 술병의 술이 동이날 정도로 혼자서 들이키고 있었던 것이다.
"말씀드릴 수가 없나이다. 하지만."
홍경래가 잘라 말하였다.
"언전가는 말씀드리겠나이다."
임상옥은 서서히 잔을 들었다. 잔은 비어 있었다. 술병들을 기울여 보았지만 모든 술병들은
깨끗이 비어 있었다.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여기 술을 더 가져오너라."
비틀거리면서 임상옥이 소리쳐 말하였다.
"대인어른."
홍경래가 일어서면서 말하였다.
"그만 드십시오. 이미 대인어른께오서는 만취하셨나이다. 밤도 깊었으니 이만 잠자리에 드
시옵소서. 제가 모시고 가겠나이다."
바로 그 순간 임상옥이 손에 들린 빈 잔을 뜨락을 향해 내던지면서 소리쳐 말하였다.
"이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빈 잔은 봄비 내리는 뜨락에 던져져 깨어졌다. 그 뿐이 아니었다. 임상옥은 빈 술병도 열린
방문 바깥을 향해 내던졌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술병이 깨어졌다. 그 요란한 소리에 벚꽃
가지에 앉아 비를 피하면서 울고 있던 새들이 놀래 날개짓을 하여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
다.
주인 임상옥의 고함소리와 던져진 술병들이 깨어지는 소리에 놀란 하인들이 달려왔다. 그
들은 처음 보는 집주인의 취한 모습에 모두들 어리둥절해 하였다. 주인은 술을 좋아해서 거
의 매일이다시피 술을 마시긴 했지만 한 번도 저처럼 마취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
이다.
"이놈들아."
임상옥은 닥치는 대로 술상 위에서 접시와 잔들을 들어 마당으로 내던지면 소리쳤다.
"술을 더 가져오라는 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단 말이냐."
묵묵히 이를 지켜보던 홍경래가 나서며 말하였다.
"밤이 늦었습니, 대인어른. 이젠 그만 잠자리에 드시옵소서.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모시고 가다니."
술취한 임상옥이 다소 기세를 누그러뜨리면서 물어 말하였다.
"제 등에 업히십시오. 제가 등에 업고 가겠나이다."
홍경래가 무릎을 꺾고 등을 돌려 임상옥을 향해 내밀었다.
홍경래가 작은 키로 자신을 업겠다고 하자 임상옥은 느닷없이 껄걸 웃기 시작하였다.
"홍 서기가 나를 없어준다고. 그렇다면 하는 수가 없지."
임상옥은 비틀거리며 홍경래가 내민 등에 몸을 얹었다. 순간 홍경래가 가볍게 임상옥을
업어들었다. 생각보다 엄청난 힘이었다. 임상옥의 키는 홍경래보다 두세 뼘이나 더 컸으며
체중도 훨씬 더 나갈 정도로 무거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가벼운 볏단을 업은 듯 홍경래는
가뿐하게 임상옥을 업고 비가 내리는 뜨락으로 나선 것이다.
"불을 밝혀라."
당황해 하는 하인들을 향해 홍경래가 명령하였다. 하인 하나가 어둠을 밝히는 지등을 앞세
워 들었다. 가뿐가뿐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전을 향해 걸어가는 홍경래의 등뒤에 업힌 임상
옥은 모든 술이 한꺼번에 깨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생각했던 대로 홍경래야말로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다. 홍경래야말로 붉은 피의 빗
물인 것이다. 임 붉은 비는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 집 한가운데서 그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장차 이 일을 어이하면 좋을 것인가.
임상옥은 짐짓 만취한 것처럼 주정을 하고 있었지만 실을 말짱하나 정신이었던 것이다. 물
론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술을 마신 거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임상옥은 홍경래의 속마음을
알아보기위해 일부러 많은 술을 마시고 대취한 것처럼 주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넓은 홍경래의 등에 업혀 침소로 가는 임상옥의 마음은 착잡하였다. 그를
만난 첫인상에서부터 상가집이 아니라 조가집에서 재상이나 하고 있을 얼굴이라는 의외의
느낌을 받은 이후 '대낮에 주먹으로 천자의 머리를 노린다'는 홍경래의 즉흥시를 보았을 때
느꼈던 불길한 예감이 오늘에야 확연히 드러나게 된 것이다.
홍경래를 역모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이희저는 산해관의 문루에 내걸린 '천하제일
문'을 쳐다보면서 자신은 '천하제일의 왕'이 되고 싶다면 반역의 꿈을 고백해 보이지 않았던
가. 반역의 대야망을 꿈꾸던 이희저가 추천해 보낸 홍경래. 이 홍경래야말로 혁명을 꿈꾸는
반역자인 것이다. 그것이 오늘 확연히 드러나게 된 것이다.
임상옥은 마신 술이 한꺼번에 깨었다.
나는 지금 희대의 반역자의 등에 업혀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업혀 있는 이 사내가 희대
의 반역자라면 그 등에 업힌 나도 반역자로서 삼족이 멸하는 역모죄를 받게 될 것이다. 그
러나 만약 지금 내가 천하의 혁명아의 등에 업혀 있는 것이라면 그땐 사정이 달라진다. 이
사내가 역성혁명을 일으켜 마침내 썩은 조정을 무너뜨리고 개벽을 하여 새 왕조를 일으켜
청사의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아.
홍경래의 등에 업힌 임상옥은 순간 깊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사내의 등에 계속 업힐 것인가. 아니면 이 사내의 등에서 내릴 것인가.
3
그날 밤, 임상옥을 침전에 내려놓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홍경래도 착잡한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임상옥이 홍경래에 대해 섬뜩한 느낌을 받았듯 홍경래 역시 임상옥에 대해서 섬뜩
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홍경래는 이미 임상옥이 만취하기를 작정하고 자신을 불렀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속마음을 떠보기 위해 만든 술좌석이었음을 홍경래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과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숨을 굴을 갖고 있다'는 논쟁과 주역의 점괘를 통한 선문
답을 했던 것도 실을 서로의 마음을 떠보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이었음을 홍경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홍경래가 임상옥의 부탁으로 봐준 주역의 점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었다.
홍경래 역시 임상옥이 그처럼 좋은 명운을 타고났으리라고는 감히 상상치 못하였다.
임상옥의 점괘인 화풍정 괘는 예순 네 괘 중 그 제일괘인 건위천과 더불어 가장 좋은 길상
괘의 하나인 것이다.
홍경래는 주역에 심취하고 있었으므로 주역이 내리는 점괘에 있어서도 추호의 의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하늘이 내리는 계시인 것이다. 따라서 상업을 해도 흥할 길운이지만 조
가에 들어도 재상 위에 오를 천운을 타고났다는 점괘는 일부러 과장하여 꾸민 내용이 아니
라 있는 그대로의 풀이였던 것이다.
임상옥을 혁명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홍경래는 팔베개를 하고 누워 생각하였다.
임상옥처럼 하늘로부터 천운을 받고 태어난 인물을 혁명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그 혁명에도 하늘의 도움이 따를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닫힌 방문 바깥에서부터 치적치적 흩뿌리는 빗소리가 홍경래의 귓가를 적시고 있었다. 그
의 귓가에 좀 전에 있었던 임상옥의 목소리 하나가 맴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대의 점괘는 무엇인가. 그토록 주역에 통달하였다면 홍 서기 스스로 역경을
보아 자신의 명운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홍경래는 자신의 운명을 암시하는 점괘를 알고 있었다.
그때 홍경래는 강물 속에 들어가 목욕하여 몸을 깨끗이 씻은 다음 마음을 다잡아 하늘과
땅 그리고 동서남북 사위를 향해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린 후 스스로 서죽을 잡아 자신의 괘
를 점쳐보았던 것이었다. 그것이 하늘로부터 계시된 자신의 천운임을 홍경래는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천지신명이여, 저에게 타고난 운명을 점지하여 주소서."
간절한 기도 끝에 나온 홍경래의 점괘는 바로 '∩≡' 였다. 순간 홍경래는 자신의 눈을 의
삼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앞은 물을 상징하는 괘였으며 뒤의 것은 불을 상징하는 괘였
기 때문이었다.
물과 불이 함께 있으며 서로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주역에서는 택화혁괘라고 부
르고 있었다.
홍경래는 자신의 운명을 나타내는 점괘가 나오자 경악하였다. 그것은 물 속에 불이 타오르
고 있으므로 물과 불이 함께 싸우며 혁명을 꿈꾸고 있는 괘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주역세서는 다음과 같이 상괘를 내리고 있다.
'못 속에 불이 있는 것이 혁괘의 상괘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개혁을 획기하여 역서를
고쳐 때를 분명히 한다.'
이 점괘는 한마디로 '혁'괘인 것이다. '혁'이란 개혁' 변혁을 뜻하는 것이니 주역에서는 이를
'혁명'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혁명.
자신에게 내린 하늘의 계시. 하늘로부터 점지된 자신의 천명. 그것이 혁명임을 알았을 때 홍
경래는 가슴이 끊어지는 듯하였다.
얼머나 꿈꾸어 왔던가. 썩은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일으키는 천지개벽의 혁명을 얼
마나 꿈꾸어 왔던가. 그러나 그것은 한갓 내 자신의 야망이 아니다. 하늘은 주역을 통해 그
것이 하늘의 명령임을 분명히 드러내 보이고 있지 아니한가.
홍경래는 하늘을 우러러 말하였다.
나는 하늘로부터 명령을 받은 선택된 사람이다. 내 혁명은 하늘의 뜻인 것이다.
그러나 또한 <주역>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굳게 지키기를 소가죽으로 묶어놓은 것같이 하라. 절대로 경솔하게 행동하여서는 아니된
다.'
그리고 나서 <주역>은 이렇게 주의를 내리고 있었다.
'여건이 이미 충분히 성숙한 때에 혁명을 단행하라. 적극적으로 나아가면 모든 백성들이 즐
거워할 것이다. 길하다, 허물은 없으리라.'
홍경래는 자신에게 내려진 점괘를 자신이 직접 풀이하여 보았다.
'함부로 나아가면 흉하다. 바른 일이지만 해롭다. 개혁해야 하는 세론이 무르익을 때에만
일을 단행하라. 개혁해야 한다는 세론이 무르익어지면 달리 할 길이 없지 않겠는가.'
홍경래는 하늘이 주역을 통해 자신에게 명령하는 혁명의 조건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
다. 하늘이 홍경래에게 내리는 혁명의 조건, 그것은 때를 기다리라는 단 하나의 천명이었던
것이다.
'때를 기다려라.'
하늘이 홍경래에게 내린 단 하나의 혁명 조건. 굳게 지키기를 소가죽으로 묶어놓은 것같이
하여 절대로 경솔하게 행동해서는 안되며 충분히 여건이 성숙되기를 기다려 때를 노려 혁명
을 단행한다면 혁명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주역>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후회할 것은 없다. 인민이 신뢰하고 있다. 신념을 가지고 혁명을 단행하라. 길할 것이다.'
때를 기다려 혁명을 일으킨다면 반드시 혁명이 성공할 것이라고 <주역>은 분명한 점괘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홍경래는 잘 알고 있었다.
유교의 정치사상은 천명사상 위에서 성립된 것이다. 천명이란 하늘의 명령인 것이다. 이 우
주의 만유를 창조하고 주재하는 것은 하늘, 즉 상제인 것이다. 인간의 모든 일이 하늘의 명
령에 의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다. 하늘은 와전하고 바르고 선하고 무한히 생성하고 변화
하면서 발전해 가는 것인데 인간은 하늘의 축소판인 것이다.
제왕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은 천명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제왕은 하늘의 명령을
받은 지도자로서 하늘을 대행하여 하늘의 뜻으로 인민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왕을
'하늘의 아들', 즉 천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천명을 받은 제왕이 하늘의 뜻에 어긋나는
정치를 하면 천명을 잃게 되는 것이다. 즉, 하늘이 제왕을 파멸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
엇으로 하늘의 천명을 잃은 것을 아는가.
그것은 민심이다. 제왕이 민심을 잃으면 천명을 잃은 것이다.
민심이 곧 하늘의 마음, 즉 천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심을 잃으면 천하를 잃게 되므로 제왕이 된 자는 항상 수양하고 반성하여 하늘에
서 타고난 천성, 즉 선성을 발휘하고 덕으로써 천하에 선정을 펴야 천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의 뜻을 위반하고 학정으로 백성을 괴롭히는 자는 민심을 잃은 자이나 곧 천명을 잃은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 천명을 받은 자가 하늘을 대신해서 새로운 제왕위에 오르는 것,
이것을 혁명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은나라의 마지막 왕이자 전형적인 폭군이었던 주를 주나라의 무왕이 멸망시키고 스
스로 천자가 된 사실을 두고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이는 천명을 받은 무왕이 구체적으로 하늘의 위임을 받은 천리로서의 임무를 수행한 것
이므로 하극상도, 신하가 임금을 해치는 이신별군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나서 맹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림으로써 혁명을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도를 해치는 행위를 적이라 하고, 의리를 해치는 행위를 잔이라 한다. 따라서 잔적의 행
위를 하는 자를 필부라고 한다. 무왕이 주의 목을 벤 것은 필부의 목을 벤 거이지 임금을
죽인 것은 아닌 것이다.'
도덕정치의 왕도를 자신의 유교사상으로 내세웠던 맹자의 그러한 글을 본 순간 홍경래는
심장이 터지는 듯하였다.
내가 혁명을 일으켜 썩어빠진 조선왕조를 뒤집고, 왕의 목을 베려는 것은 맹자의 말처럼
하극상도 아니며 임금의 목을 베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일찍이 무왕이 하늘의 명령을 받고
주의 목을 벤 것처럼 필부의 목을 베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맹자는 <왕도 정치론>에서 '군주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정치를 해야하며, 또 경
제적으로 넉넉하게 한 다음 도덕교육을 해야 한다. 만약 이에 불인한 군주는 쫓아내야 한
다.' 고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때를 기다렸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 홍경래는 혼잣말로 다시 중얼거려 말하였다.
하늘이 내게 <주역>을 통해 택화혁의 점괘를 내린 이후부터 10여 년간 나는 줄곧 하늘이
점지해준 천시를 기다려왔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임상옥과 더불어 꽤 많은 술을 마셨지만 홍경래
는 전혀 술이 취하지 않은 말짱한 정신이었다.
그런데 이제 때가 왔다. 민심은 완전히 도탄에 빠지고, 따라서 천심은 완전히 썩은 조정에
대해 마음이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때가 무르익어 몇 달 뒤엔 해가 바뀌고 새해 정월
초하루 임신년이면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는 것이다.
벌써 날이 밝아오는지 창문 밖에서부터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었으며 어디선가 새벽을 알리
는 닭울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내가 이처럼 임상옥의 집으로 숨어 들어와 서기 노릇을 하고 있는 것도 때를 기다리는 행
위인 것이다. 이것이 혁명을 위한 마지막 시도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상옥은 혁명아 홍경래가 점찍어 놓은 최후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밤을 통해 홍경래는 임상옥이 혁명으로 끌어들이기에는 만만치 않은 인물임을 분명하
게 알게된 것이다.
자신을 불러놓고 엄청나게 술을 마시고도 정신이 말짱하던 그 눈빛. 그러고도 짐짓 엉망으
로 취한 듯 창문 밖으로 술잔과 술병을 집어던지던 건주정. 그러나 등뒤에 업혔을 때 홍경
래는 비록 입을 열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부딪히는 체온과 몸을 통한 교감으로 임상옥의
속마음을 분명히 일고 있었던 것이다.
'이 등에 계속 업힐 것인가, 아니면 이 등에서 내릴 것인가.'
임상옥은 그것을 마음속으로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경래는 중얼거려 말하였다.
그는 마침내 내 등에 업히게 될 것이다.
홍경래는 임상옥이 마침내 자신의 수하로 들어와 혁명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
었다. 그것은 홍경래가 임상옥의 집으로 들어올 때부터 갖고 있던 비책 때문이었다. 그 비책
은 우군칙과 더불어 충분히 상의한 다음 미리 마련해 두었던 계책이었던 것이다.
며칠 뒷면 그 비책은 발동하게 될 것이다. 그 비책이야말로 임상옥의 마음에 결정적인 선
택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임상옥은 혁명에 가담하는 선택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홍경래는 이를 악물며 생각하였다.
마침내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임상옥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비장의 무기
를 사용하는 그 결전의 한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만약 이 한순간에 임상옥이 결심하고 내
혁명에 참여한다면 그는 목숨을 건질 것이다. 만약 그가 내 등에 업히지 아니하고 스스로
내려 혁명에 가담치 아니한다면 그는 마침내 목이 베어져 죽게 될 것이다.
이희저의 서장을 갖고 임상옥의 집으로 출발할 때 우군칙과 약속하였다. 것처럼 천기를 누
석치 않기 위해서는 임상옥의 목을 베어 참수해버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홍경래는 베개 속에 들어 있는 단도를 손으로 만져 확인해 보았다. 홍경래는 베개 속에 항
상 단도를 비상용으로 넣어두고 잠자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단도는 분명히 베개 속에 꽂혀 있었다.
만약.
홍경래는 단도를 확인하면서 중얼거려 말하였다.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임상옥은 반드시 이 칼로 심장이 찔려져 죽어버리게 될 것이다.
4
그로부터 며칠 뒤.
과연 홍경래가 임상옥을 포섭하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비장의 승부수가 마침내 펄럭이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임상옥의 상가로 급보 하나가 날아들어온 것이다.
청나라의 수도 연경으로 들어갔다가 성공리에 모든 인삼을 팔고, 그 돈으로 비단을 비롯하
여 수많은 수입품을 사서 싣고 돌아오던 박종일을 비롯한 세 명의 일행이 책문을 지나 금석
산 근처에 이르러서 그만 마적을 만나 모든 물건을 빼앗기고, 박종일은 인질로 잡히고 말았
다는 비보였다.
이곳은 무인지대이자 무법지대이기도 했었다. 이곳에서는 청나라의 법도, 조선의 법도 통하
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 일대는 마적단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주로 말을 타고 다니던 기마집단이었으므로 마적이라고 불리던 이들은 처음에는 촌락 공동
체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조직하였던 자위의 무장집단이었지만 차츰 비적화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임상옥은 이들 무리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으면서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청나라와의 교역에 있어 이들 마적단들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 정기적인 상로를
확보할 수 없고, 약탈을 당할 수밖에 없어서 무역이 성사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임상옥은
각 지역에 할거하고 있던 마적단의 두복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뜩밖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책문과 압록강에 이르는 백이십 리의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는 신흥 마적단이 출현하게 되
었는데 그 두목의 이름은 정시수라 하였다. 원래 평안도 강계 사람으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
가 되어 청나라로 도망쳐 그 영특함과 잔인성으로 곧 마적단의 두목에 오른 전설적인 인물
이었던 것이다.
신흥 마적단의 두목 정시수가 자신의 영토 안에 굴러들어온 박종일 일행을 그냥 보낼 리가
없었던 것이다. 마적단들은 원래 재물을 빼앗고 인명을 살상치 아니하고 살려 보내는 불문
율을 갖고 있었으나, 그들이 박종일을 비롯한 두 명의 상인들을 인줄로 억류했던 것은 치밀
한 작전 때문이었던 것이다.
즉, 홍경래가 미리 정시수와 내통하여 꾸민 고도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홍경래는 10여 년
전 일년 동안 압록강 상류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널리 인재들과 교류하는 한편 강을 건너 마
적단의 두목이었던 정시수와 친교를 맺고 의형제가 되었던 것이다. 홍경래가 마적 정시수와
친교를 맺은 것은 훗날 만약 일으킨 난이 실패하면 국경을 넘어 도망쳐 그곳에서 또다시 힘
을 길러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해 두려는 계산 때문이었다.
마적 정시수는 박종일을 비롯하여 두 명의 상인을 인질로 억류하고 있는 한편 한 명의 상
인을 살려 보내어 임상옥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도록 하였다.
"그래, 뭐라고 하더냐."
임상옥은 살아 돌아온 상인에게 물어 말하였다. 그러자 상인이 몸을 떨며 말하였다.
"황공하오나 자신을 만나러 와야 한다고 말하였나이다."
"누가 누구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말이더냐. 만약에."
임상옥이 말하였다.
"내가 그를 만나러 가지 않는 다면 어떻게 된다고 말하더냐."
"만약에 대인어른께오서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으려 하신다면 그땐 이것을 보이라 말하였
나이다."
"그게 무엇이냐."
상인은 웃통을 벗었다. 그러자 흉칙한 형상이 그의 벗은 맨몸 위에 드러났다. 그것은 살갗
을 바늘로 찔러 먹물을 입혀 새긴 자문이었다. 그의 가슴에는 '살' 자의 문신이 커다랗게 새
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마적들은 사람을 살상할 때 있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는 날카로운 칼로 살갖의 껍질을 벗
기기ㅗ 인육을 도려내는 방법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이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는다면 박종일을 비롯하여 두 명의 상인들은 가슴에 새겨
진 문신처럼 살갖의 껍질을 벗기고 인육을 도려내어 죽이겠다는 최후통첩이었다.
박종일을 비롯하여 두 명의 상인이 죽을 뿐 아니라, 상로가 확보되지 못함으로써 임상옥의
장사도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의미심장한 최후통첩이었던 것이다.
이제 어저는 수가 없었다.
"어제 어디에서 만나자고 하였더냐."
"쇤네가 그들이 있는 곳을 알고 있나이다."
"그곳이 어디인데."
"구연성을 지나 금석산 속이나이다."
청나라를 제 집 드나들 듯 하면서 만상 노릇을 하였으므로 임상옥은 그곳 일대의 지리를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 상세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또 무엇이더냐."
"은자 오천 냥도 따로 가져오라 일렀나이다."
"가겠다."
단호하게 임상옥이 말하였다.
"내가 직접 가겠다."
그러한 임상옥을 가로막고 나선 사람이 바로 홍경래였다. 묵묵히 옆에서 지켜보던 홍경래
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대인어른께오서 직접 가실 필요는 없으시나이다."
"어째서냐."
의아한 목소리로 임상옥이 홍경래를 쳐다보았다.
"몸에 새겨진 자자를 그대로 보았지 아니한가. 내가 직접 가지 않는다면 그들의 목숨을 빼
앗겠다고 새긴 '살' 자의 문신을 그대도 보았지 아니한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인어른이 아니오라, 은자이나이다. 또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인어
른이 아니오라 자신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납할 공물의 약속이나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원하
는 은자 오천 냥의 두 배인 만냥을 보내주고 드나들 때마다 정해진 통행세를 따로 지불하겠
다는 약조를 맺는다면 그들은 굳이 대인어른을 따로 만나기를 원치 아니할 것이나이다."
"그러나."
임상옥이 머리를 흔들면서 말하였다.
"나 대신 그곳에 보낼 사람이 없지 아니한가. 누가 나 대신 죽을지도 모르는 그 위험한 곳
에 대신 가겠다고 나서겠는가."
"제가 가겠나이다."
홍경래가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하여 말하였다.
"제가 대인어른을 대신하여 그곳에 가겠나이다."
자신을 대신해서 금석산으로 가겠다는 홍경래의 단호한 대답에 임상옥은 반신반의 하였다.
그러자 홍경래가 이렇게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세 치의 혓바닥만 있으면 사지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고 하였나이다.
제가 가사 세 치의 혓바닥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보겠나이다." 이 모든 것은 홍경래가
임상옥의 마음을 사로잡아 혁명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치밀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계획은 착
착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마적단의 두목 정시수는 미리 홍경래로부터 전갈
을 받고 환국하는 박종일 일행을 포획하고 그들을 인질로 삼아 막대한 자금을 요구하는 한
편, 임상옥의 생명까지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던 것이다.
홍경래가 임상옥을 대신하여 생명을 담보로 해서 마적단의 소굴로 자진해서 들어간다면 홍
경래는 임상옥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 되는 것이다. 즉, 임상옥의 생명을 구해준 의인이 되
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덕을 입었다면 임상옥도 홍경래의 생명을 구해줄 의무
와 책임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홍경래의 은덕을 갚은 의무와 책임.
그것은 단 하나, 홍경래의 혁명에 참여하는 길뿐이 아니겠는가.
다음날.
홍경래는 살아 돌아온 상인을 앞세워 압록강을 건넜다. 홍경래는 마적단들이 요구했던 은
자 오천 냥의 두 배인 만 냥을 따로 간진하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임상옥은 직접 강변까지 나아가 홍경래를 전송하였다.
홍경래를 실은 배가 거센 압록강물을 가로질러 까마득히 멀어질 때까지 지켜본 후 임상옥
은 발을 돌려 읍내로 돌아오고 있었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통군정을 지나 의주읍성 안으로
들어선 임상옥은 무심코 거리에 나와서 놀고 있던 어린아이들이 손뼉을 치면서 부르는 노랫
소리를 들었다.
그 노랫소리를 들은 임상옥은 하인을 시켜 그 어린아이들을 자기 앞으로 불러오게 하였다.
아일들이 오자 임상옥은 엽전을 꺼내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면서 말하였다.
"너희들 아주 노래를 잘하는 구나. 이 엽전을 줄 터이니 한 번만 더 그 노래를 하여 보아
라."
그러자 신이 난 아이들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선비 하나가 관을 비뚤어 쓰니, 귀신이 옷을 벗고 있도다. 열필 비단에 한 척을 더하니,
작은 언덕은 양 다리를 갖고 있구나."
홍경래가 말하였던 귀신의 울음소리. 아이들이 부르는 바로 그 노래가 홍경래가 말하던 귀
곡성이 아닐 것인가. '선비 하나가 관을 비뚤어 쓰니 귀신이 옷을 벗고 있도다'라는 노래가
실로 홍경래의 말처럼 유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임상옥은 깊은 생각에 잠겨서 읍내의 거리를 걸어 나갔다. 바야흐로 봄은 무르익어 화창한
봄날시의 강변을 따라 이루어진 방천둑길에는 실버들이 우거지고 벚꽃은 만개하여 만화방창
이었다.
봄은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방망이질 속에서 무르익어가는지 의주읍성을 가로질러 흘러가고
있는 남동천 개울가에 앉아서 타악, 타악 두들겨 패는 방망이질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임상옥은 둑길을 걸어가면서 생각하였다.
저와 같은 요언들과 요망한 노래들은 나라가 극도로 어지러운 난세일 때만 유행하는 법이
다. 일찍이 서주 나라가 멸망할 때는 '달은 떠오르고 해는 진다. 뽕나무로 만든 화살과 쑥대
전통'이라나 뜻모를 노래가 대유행을 보이고 있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개천가에서는 아이들이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올리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임상옥은 하인을 시켜 그 아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아이들이 오자 임상옥은 다시 엽전을
한 푼씩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면서 말하였다.
"너희들 이런 노래를 알고 있느냐. 선비 하나가 관을 비뚤어 쓰니 귀신이 옷을 벗고 있다
는 노래 말이다."
"알구 말구요." 아이들은 엽전 한 닢을 받은데다가 알고 있는 노래까지 물으니 신이 난다
는 듯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럼 한 번 불러보지 않겠느냐."
"여기서 말입니까."
"그래, 여기서 말이다."
아이들은 쑥스러운 듯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기만 하였다. 그러자 임상옥이 다시 엽전 한
닢씩을 꺼내 보이면서 웃으면서 말하였다.
"너희들이 노래를 부르면 다시 이 엽전 한 닢씩을 나눠 주겠다."
임상옥의 말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선비 하나가 관을 비뚤어 쓰니, 귀신이 옷을 벗고 있도다. 열필 비단에 한 척을 더하니,
작은 언덕은 양 다리를 갖고 있구나."
그날 밤.
임상옥은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낮에 들었던 아이들의 해괴망칙한 노랫소
리 때문이었다. 일찍이 주나라는 요망한 노래가 유행을 보이더니 실제로 멸망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아이들이 부르는 해괴망칙한 내용의 동요에도 뭔가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홍경래가 자신의 입을 통해 그 노래를 귀신의 울음소리라고 표현하였다면 그 노래 속에는
무엇인가 의미 심장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다.
홍경래는 이미 그 노래 속에 숨겨져 있는 깊은 뜻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홍경래는 그 노래 속에 들어 있는 암호를 임상옥에게 전해 주기 위해 일부러 그 노래의 가
사를 자신의 입으로 외어 본 것이다.
임상옥은 종이를 펴고 붓을 세워들었다.
그 노래 속에 숨어 있는 암호는 과연 무엇인가.
임상옥은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통해서 그 가사를 완전히 외고 있었다. 그 노래의 첫 마디
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선비 하나가 관을 비뚤어 쓰고 있다."
이를 홍경래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일사횡관하니."
임상옥은 종이 위에 '선비 사' 자를 써보았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선비 하나가 관을 '비뚤어' 쓰고 있다.
이 노랫말의 묘미는 선비가 관을 비뚤어 쓰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다. 순간 임상옥은 종이
위에 쓴 '선비 사' 자 위에 한 획을 비뚤어 그어 보았다. 그러자 '선비 사' 저눈 '아홉째 천간
임' 자가 되었다.
올ㅇㅎ지.
임상옥은 자신의 무릎을 내리치면서 중얼거려 말하였다.
첫 마디의 노랫말 속에 숨겨진 암호가 풀린 것이다. 선비 하나가 관을 비뚤어 쓰고 있다
함은 바로 '임' 자를 가리키기 위한 파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의 노랫말은 무슨 자를 가리키기 위한 파자일 것인가. 임상옥은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떠올려 보았다.
"귀신이 옷을 벗고 있다."
이를 홍경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귀신탈의하고."
아무리 생각하여도 임상옥은 그 노랫말 속에 숨겨진 암호를 해독해낼 수 없었다. 귀신이
옷을 벗는다, 귀신이 옷을 벗는다. 임상옥은 뜻모를 노랫말을 중얼거리며 생각하고 또 생각
하였다.
원래 '옷 의' 자는 한자의 변에 있어서는 '의' 자로 씌어지고 있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그
러나 '귀' 자, '신' 자 그 어느 글자에도 '옷 의' 의 변자는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장 비슷한 '귀신 신' 자도 정확히 따지고 보면 '보일 시' 변이지 '옷 의' 변은 아닌 것이
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임상옥은 번득이는 영감을 얻었다. 원래 한자의 자획을 나누거나 합치는 파자
행위는 그 내용을 암시하기 위해서 약간의 과장과 병형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었
다.
파자를 할 때에는 같은 모양의 한자를 차용하거나 같은 음의 한자를 음사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 왔던 일이었다.
따라서 임상옥은 '귀신이 옷을 벗고 있다' 는 노랫말에서 '옷' 이라 함은 귀신 신 자의 보일
시 변을 가리키는 암호임을 알아치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귀신 신 자가 옷을 벗는다면.
임상옥은 종이 위에 쓴 신 자에 보일 시 변을 먹으로 지워 보았다. 그러자 남은 글자는
'신' 자 하나뿐이었다.
임상옥은 자신의 무릎을 다시 내리쳤다.
이로써 두 자의 글자가 밝혀진 것이다. '선비 하나가 비뚤어 관을 쓰고 있다' 함은 임 자를
가리키는 암호였고, '귀신이 옷을 벗고 있다' 함은 신 자를 가리키는 암호였으나, 두 자를 합
하면 임신, 즉 임신년을 가리키는 파자인 것이다.
임신년이라 하면 육십갑자의 아홉째에 해당되는 해로서 올해가 신미년이니 임신년은 바로
다가오는 내년에 해당되는 햇수인 것이다.
이제 남은 글자는 두 개뿐.
임상옥은 붓에 먹물을 새로 묻혀 놓고 중얼거려 말하였다.
그 남은 두 자의 비밀만 밝혀내면 그 수수께끼의 노래 속에 숨어 있는 암호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글자는 만만치 않았다.
'열 필 비단에 한 척을 더한다.'
이를 홍경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십필가척일척하니'
물론 열 필 비단을 가리키는 십필은 '달릴 주'를 가리키는 한자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
나 여기에 '한 척을 더한다' 는 척 자가 더해져야만 숨은 암호의 한자가 드러나는 것이므로
여기에서 주 자는 역시 한문의 변에 불과할 따름인 것이다.
임상옥은 주 변에 척 자를 합쳐 보았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한자가 되어버렸다.
'0 '
임상옥은 그런 한자를 본 적이 없었다. 임상옥은 나름대로 한문에 조예가 깊었으나 그런
문자는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비록 자신이 모른다 하더라도 자전에는 그런 한자가 있을지
모른다가ㅗ 생각하여 임상옥은 자전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분명히 그런 한자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임상옥은 갑자기 벼랑 끝에 선 느낌이었다.
세 번째 글자가 풀리지 않는다면 그 문자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마지막 한 자인 네 번째
글자부터 풀어내자고 임상옥은 마음을 바꾸었다.
임상옥은 아이들이 부르던 제 번째의 노랫말을 떠올렸다.
"작은 언덕은 양 다리를 갖고 있구나."
이를 홍경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었다.
"소구유양족이라."
이 암호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러나 눈치빠른 임상옥은 '양 다리르르 갖고 있다' 는 포현의
뜻을 금방 알아치릴 수 있었다. 원래 구 자는 그 자체가 작은 언덕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굳
이 작을 소 자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문제는 '양 다리를 갖고 있다'는 '양족'
인데 이는 다리 족이라는 문자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형상을 가리키는 일종의 표
의문자인 것이다. 사물의 형상을 그대로 베끼거나 시각에 의해서 의미를 전달하는 행위도
파자에 있어서는 중요한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작은 언덕이 양 다리를 갖고 있다' 는 암호는 쉽게 풀려지는 것이다. 즉 '작은 언
덕' 아래 두 개의 다리를 가진 형상의 문자를 기리키는 암호인 것이다.
'두 개의 다리를 가진 언덕'. 그 글자는 다름 아닌 '군병 병' 자인 것이다.
이로써 수수께끼의 노래가 가리키는 네 자의 한자 중 석 자의 비밀이 풀리게 된 것이다.
임상옥은 풀린 한자를 차례차례로 종이 위에 써보았다.
'임신0병'
그러나 세 번째 자의 비빌을 밝혀낼 수 없었으므로 그 넉 자의 의미를 완전히 해독될 수
없었다.
임상옥은 다시 세 번째 글자의 비밀에 도전하기 시작하였다. 밤이 새고 어느새 날이 밝아
오는지 창문 너머로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파자의 비밀을 밝혀
내느라고 임상옥은 몹시 피곤하였다. 그러나 이대로는 물러설 수 없다고 임상옥은 굳게 마
음을 다잡고 있었다. 그 귀신들의 노래인 수수께끼 동요의 비밀을 다 밝혀내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리라고 임상옥은 맹세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아이들이 부르던 세 번째의 노랫말을 떠올려 보았다.
"열 필 비단에 한 척을 더하니."
"십필가일척하니."
여기에서 십필이 달릴 주 자를 가리키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한 척을 더한다'는 가일 척인 것이다.
혹시 자전에 있는 '달릴 주' 의 부를 가진 한자를 모두 찾아서 그 한자를 '임신0병' 의 풀리
지 않은 세 번째 자에 대임시켜 본다면 정확한 문자를 밝혀낼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자전에는 '달릴 주' 부를 가진 한자가 몇 개밖에 나와 있지 않았다. 그 한자들은 다
음과 같았다.
'0,0,0,0,0,0,0,0,0'
임상옥은 자전에 나와 있는 한자를 획수의 순서대로 종이 위에 써내리면서 '임신0병' 의 빈
칸 속에 대입시켜 보았다.
세 번째의 한자인 '일어날 기' 자를 그 빈칸 속에 넣은 순간 임상옥은 철커덕 하고 녹슨 빗
장의 열쇠가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세 번째 자는 바로 '일어날 기' 자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수수께끼의 동요
가 가리키는 넉 자의 완전한 전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임신기병'
그 순간 노래가 기리키는 "열 필 비단에 한 척을 더한다"는 세 번째 노랫말도 결국 기 자
를 가리키고 있음을 임상옥은 정확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이 문자도 병 자처럼 시가에 의해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기 자 대신 척 자를 차용
하고 있는 것이다.
임상옥은 마침내 완전히 밝혀진 그 암호문의 전문을 종이 위에 천천히 써보았다.
'임신기병'
순간 임상옥은 머리칼이 곤두서고 모골이 송연해오는 공포를 느껴T다.
아이들이 부르는 수수께끼의 동요는 임시년, 즉 내년 정월이면 군사를 움직여 난을 일으키
겠다는 혁명의 비의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유행하는 해괴망칙한 내용의 동요는
아닌 것이다. 이 노래는 임신년에 일어나는 혁명을 하늘에서 내린 운명적인 사실이라는 점
을 널리 유포하기 위해서 일부러 지어 퍼뜨린 일종의 참언인 것이다.
임상옥은 홍 서기가 어째서 이희저가 추천하는 서장을 가지고 자신의 집으로 찾아왔는가
하는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첫눈에도 이런 상가집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 조가 중
에도 재상 위에 있을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던 홍경래가 굳이 자신의 집으로 들어와 점원
노릇을 하였던 것은 자신을 혁명에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홍경래.
그는 임상옥이 첫눈에 알아보았듯 범상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는 임상옥이 밤을 새워
해독하였던 수수께기의 노래에 숨겨져 있는 '임신기병'을 실제로 행동에 옮겨 혁명을 일으킬
반역군의 총수인 것이다.
그제서야 전날 '가을바람 불 때 역수의 장사는 주먹으로 대낮에 함양 천자의 머리를 노린
다' 는 즉흥시를 썼던 홍경래가 가리킨 '천자의 머리'가 누구를 말함인가를 임상옥은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천자의 머리', 그것은 썩은 조선왕조의 목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홍경래는 청천백일의 한낮에 천자의 머리를 노리는 반역아며, 또한 어지러운 난세를 적셔
저줄 붉은 피의 혈우인 것이다.
그러한 괴수가 스스로 내 집으로 걸어 들어왔다. 몇 달 뒤 새해 정월이면 일으킬 '임신기
병'의 중대사를 앞두고서, 자칫하면 천기를 누설시킬지도 모르는 위험부담을 안고서.
또한 홍경래는 임상옥을 대신해서 목숨을 담보로 해서 마적의 소굴로 들어갔다. 그가 인질
로 잡혀 있는 박종일을 비롯한 나머지 세 사람의 상인을 무사히 살려내어 온다면 홍경래는
임상옥에 있어 생명의 은인이 되는 것이다. 홍경래가 임상옥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
였다면 임상옥도 홍경래의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할 것이다.
홍경래의 은혜를 갚는 길.
그것은 홍경래가 꿈꾸고 있는 혁명에 참가하는 일이다.
옛말에도 있지 아니한가.
'달리는 말에서는 내릴 수 없고, 이미 내리는 비는 멈추게 할수 없다.'
이미 나는 달리는 마상에 올라타 있으며 내리는 빗속을 걷고 있는 것이다. 달리는 말 위에
서 뛰어내리면 나는 추락하여 생명을 잃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미 내리는 비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내리는 비를 멈추게 하는 유일한 길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뿐인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기적적으로 홍경래가 무사히 돌아왔다. 박종일을 비롯하여 세 명의 상인
들을 모두 이끌고서. 그는 마적들이 요구하였던 오천 냥에 만일을 생각해서 비상용으로 지
참하였던 오천 냥을 더 보태 만 냥을 갖고 출발하였지만 오천 냥만을 마적단에게 주었을 뿐
나머지 오천 냥을 갖고 돌아왔던 것이다.
그뿐인가.
박종일의 일행들이 중국에서 인삼을 팔고 그 대금으로 사온 비단을 비롯한 모든 상품들을
고스란히 갖고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마적단 두목 정시수와 박종일이 임상옥을 대신해서 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즉, 임상옥 상가의 출입을 안전하게 보장하는 대신 일정한 통행세를 낸다는 합의서까지 작
정하고 돌아온 것이다. 이로써 무법지대인 책문까지의 상로를 임상옥은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로 전화위복이었다.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 번도 홍경래와 상면치 못하였던 박종일은 혀를 내두르며 임상옥에게 말하였다.
"내 생전에 그처럼 배짱이 두둑한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
인질로 잡혀 있는 동안 내내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던 박종일은 자신을 구하러 온 홍경래의
담대한 태도와 능란한 말솜씨에 대해 찬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임상옥의 속마음
은 편치 않았다.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임상옥은 무사히 살아 돌아온 박종일을 비롯한 세 명의 모습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
만 또 한편으로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마침내 홍경래는 내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이제는 홍경래에게 있어 내가 그 은혜
를 갚을 차례가 된 것이다.
그날 밤.
임상옥은 금의환향한 홍경래를 위해 주연을 베풀었다.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박종일과 홍
경래를 위로하기 위한 술자리였다. 술자리에 들어서는 홍경래는 따로 물건을 챙겨들고 있었
다.
"그 물건은 무엇인가."
임상옥이 묻자 홍경래가 대답하였다.
"이 물건은 제가 마적단 두목 정시수로부터 받아 온 물건입니다. 정시수는 저에게 이 물건
을 대인어른께 전해 드리라 하였나이다. 정시수는 대인어른께 이 물건을 자신의 정표로 받
아 달라고 말하였나이다."
임상옥은 홍경래가 가져온 물건을 쳐다보았다. 그 물건은 흰 천으로 가리워져 있어 그 내
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정시수는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들을 보여 주고는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대인어른에게
선물하라고 말하였나이다. 그 중에서 제가 이 물건을 골라왔나이다."
홍경래가 흰 천을 열었다. 그러자 내용물이 드러났다. 그것은 청동으로 만든 정이었다.
"제가 이 물건을 굳이 골라왔던 것은 주역을 보았을 때 대인어른의 점괘가 바로 '화풍정',
죽 '정'괘였기 때문이었나이다."
물론 임상옥은 홍경래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임상옥은 그 그릇을 만져보았다. 청동으로 만든 그릇이었으므로 겉면에는 푸른 녹이 슬어
있었다. 움직여 보기 위해 힘을 줘보았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른 무릎 정도 올 만큼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청동그릇이었지만 그 무게 만큼은 대단해서 바윗덩어리처럼 꿈쩍도 하
지 않았다. 둥근 원통 형태의 원정으로서 겉면에는 동물무늬의 장식이 둘러가면서 새겨져
있었다. 그 형태와 녹슨 모습으로 보아 족히 수천년은 되었을 골동품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
다.
아마도 마적단의 두목 정시수가 상인들로부터 빼앗아 두었던 노획품 중의 하나였던 모양이
었다.
"제가 이 물건을 골라왔던 것은 대인어른의 점괘가 '정' 괘였기에 이를 가까이 두고 교훈삼
아 경책하라는 의미로 가져왔나이다."
그러나 홍경래의 말을 사실이 아니었다. 그가 정시수의 선물로 솥을 골라 가져왔던 것은
임상옥의 선택을 묻는 최후통첩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홍경래의 금의환향을 위로하는 술좌석이었지만 임상옥의 마음은 계속 착잡하였다. 홍경래
가 마적단의 두목 정시수와 담판을 벌이기 위해 떠나 있는 동안 임상옥은 우연히 성내에서
들었던 아이들의 동요 속에 숨어 있던 수수께끼의 비밀을 해독해냄으로써 홍경래가 혁명의
괴수임을 명백하게 밝혔던 것이다.
홍경래는 반역자다.
내년 임신년이면 군사를 일으킬 희대의 반역자인 것이다. 만약 홍경래의 혁명에 동조하거
나 참여한다면 조정으로부터는 대역죄인으로 지목되어 삼족이 멸하는 멸문지화의큰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다.
아니다. 홍경래의 혁명에 동조하거나 참여하지 않더라도 그를 상가에서 점원으로 데리고
있었으며 그이 반역을 묵계하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임상옥은 국문을 당하는 중죄인으로
모든 재산을 잃고, 노비의 신분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 이상 임상옥은 무사히 귀환하여 살아 돌아온 박종일과 홍경
래를 앞에 두고서도 마냥 기쁘지만은 아니하였던 것이다.
밤이 이슥하여 술좌석이 끝날 무렵 임상옥이 홍경래에게 말하였다.
"홍 서기의 이번 일로 나는 큰 은덕을 입었소이다. 홍 서기가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이 자리에 살아남아 있지 못하였을지도 모르오."
이에 박종일이 거들며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홍 서기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마적단의 소굴에서 껍질이 벗겨지고 인육이 도
려내어져 개죽음을 당하였을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제가 살아온 것은 홍 서기의 은덕이나이
다."
그러나 홍경래는 입을 다물고 묵묵히 술만 들이킬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임상옥이 넌지시 홍경래에게 술잔을 건네면서 물어 말하였다.
"홍 서기에게 무엇으로 그 은덕을 갚았으면 좋겠소. 홍 서기야말로 내게 있어 생명의 은인
과도 마찬가지이니 무엇으로 그 은혜를 갚았으면 좋겠는지 대답하여 보시오."
그러나 홍경래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건네주는 임상옥의 술잔을 받아 마실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긴 침묵 끝에
마침내 홍경래가 임상옥을 쳐다보면서 무거운 입을 열어 말하였다.
"대인어른께오서 하찮은 저를 생명의 은인이라고까지 말씀하시니 송구스러워 몸둘 바를 모
르겠나이다. 하오나 감히 말씀드리면 제가 무엇이든 청하여도 그 요구를 들어주시겠나이까."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임상옥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홍경래가 자신의 흉중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이고 말고."
임상옥이 진지하게 대답하였다.
"홍 서기가 내 목숨을 살렸으니 그대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말고."
그러나 홍경래는 겨우 운만 떼어놓았을 뿐 말을 잇지는 아니하였다. 그는 다시 술만 마
실 뿐이었다. 옆에서 보다못해 박종일이 채근하여 말하였다.
"이 사람아, 도무지 답답하여 못 견디겠네. 대인어른께오서 여쭙지 아니하신가. 원하는 것
은 무엇이든 들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신가. 대인어른은 자네가 원하는 것이면 무
엇이든 들어주실 신의를 가지신 분이네. 그러니 대답하여 보시게나."
그러자 홍경래가 다시 무거운 입을 열고 말하였다.
"그것은 바로 저것이나이다."
홍경래가 손을 들어 방안에 놓은 물건을 가리켰다. 임상옥은 그가 가리킨 손끝을 쳐다보았
다. 그것은 바로 조금 전에 홍경래가 가져왔던 솥이었다. 마적단의 두목 정시수가 자신의 정
표로서 임상옥에게 선물하였던 청동솥이었던 것이다.
생명을 구해준 대가로서 요구하는 것이 겨우 낡은 청동솥이라니, 하는 표정으로 옆에 앉아
있던 박종일이 껄걸,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 사람아,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건가. 겨우 솥 하나를 달란다니."
그러자 홍경래가 단호하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바로 저 솥 하나뿐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나이다." "그렇다
면."
박종일이 껄걸 웃으면서 말하였다.
"당장에라도 저 솥을 가져가시게나. 안 그렇습니까, 형님."
박종일이 동의를 구하면서 임상옥을 쳐다보았다.
"하오나."
홍경래가 말을 잘랐다.
"대인어른께오서 반드시 저 솥의 무게를 알아주셔야 하나이다. 제가 대인어른께 묻겠습니
다. 저 청동솥의 무게가 무겁겠습니까. 아니면 가볍겠습니까. 또 그 무겁고 가벼움이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뜻밖의 대답이었다.
청동솥의 무게를 알아야만 그 솥을 받아가겠다는 홍경래의 대답은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일종의 선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박종일이 다시 나서서 말하였다.
"이 사람아. 솥의 무게가 무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솥이 무겁고 가벼움은 무게를 달아보
면 정확히 알아낼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다시 홍경래가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이 그 무게를 저울로 재는 것을 저는 원치 않나이다. 제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한
사람, 대인어른께오서 솥의 크기와 솥의 무게를 알아주시기를 바랄 뿐이나이다. 그러므로 제
가 대인어른께 다시 묻겠습니다. 이 솥은 어느 정도 무겁습니까. 아니면 이 솥은 어느 정도
가볍습니까. 도한 이 솥의 크기는 어느 정도입니까."
그 순간, 깊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임상옥이 비로소 입을 열어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네. 홍 서기가 원하는 대로 솥의 무게를 내가 반드시 알아보겠네. 솥의 크기와
솥의 무게를 알아서 그 대소경중의 여부를 그대에게 반드시 가르쳐 주겠네."
밤이 깊어 술자리가 파하자 임상옥은 곧바로 침소에 들었다. 그러나 그는 쉽사리 잠을 이
룰 수 없었다.
임상옥은 홍경래가 던진 화두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생명의 은덕을 갚기 위해 무엇을
원하는가 물었을 때 홍경래는 난데 없이 솥을 달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나서 솥의 무게를
알기 전에는 그 솥을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뿐인가. 반드시 그 솥의 무게를 임
상옥이 알아내야만 한다는 하나의 조건을 덧붙인 것이다.
이른바 홍경래가 임상옥에게 솥의 무겁고 가벼움의 정도를 물어온 것이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의미로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일까. 이미 임상옥은 수수께끼 동요의 비밀
을 풀어냄으로써 홍경래가 내년 임신년을 기해 반란을 일으킬 반역군의 괴수임을 밝혀내었
다. 마찬가지로 임상옥에게 솥을 달라고 말하고 그 전에 솥의 무게를 물어온 것은 수수께끼
동요처럼 뭔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잇는 또 하나의 참언인 것이다.
임상옥은 밤에 샐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지만 홍경래가 던진 화두를 깨칠 수가 없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홍경래가 그 질문을 통해 자신에게 선택을 강요하
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즉, 자신의 반역을 도와주어 혁명에 가담할 것이냐, 아니면 자신을
반역자로 밀고할 것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최후통첩의 의미를 그 솥이 갖고 있음을 임
상옥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임상옥은 자신의 침소로 옮겨온 청동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적단의 두목 정시수가
정표로 보내왔다고 하지만 그 솥을 선택해온 사람은 바로 홍경래였다. 다라서 <주역>을 통
해 임상옥의 괘가 바로 '정'괘임을 알게 된 홍경래는 임상옥에게 그 솥의 무게와 크기의 대
소경중을 물어옴으로써 운명적인 선택을 강요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임상옥은 그 솥을 닷 손으로 만져 보았다. 눈으로 보기에도 수천년은 되었을 그 솥은 의외
로 무거워서 바윗덩어리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장정 너댓 명이 달려들어 들어올려야만
겨우 움직일 만큼 수천 근은 족히 되어 보이는 엄청난 무게였다. 그 엄청난 무게의 솥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번쩍 들어올려 임상옥의 침소에까지 옮겨온 홍경래가 아니었던
가.
홍경래는 어째서 이 청동솥의 무게를 내게 물어온 것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년 정월이면 혁
명을 일으킬 반역군의 괴수 홍경래를 도와 역모에 가담할 것인가.
임상옥에게도 조정에 대한 반감은 있었다. 그에게도 서북인이라 하여 괄시를 당했던 쓰라
린 경험이 있었으며 그이 아비 임봉핵은 평안도치란 신분에 의해서 역과에 세 번 응시를 했
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낙과하여 실망한 끝에 술에 취해 압록강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던 처
절한 과거를 갖고 있었다. 임상옥 자신도 장돌뱅이의 봇짐장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철저히 막혀진 벼슬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평안도 사람들은 아무리 학문이 깊고 인품이
고매하다 하더라도 문관은 지평 이상, 무관은 첨사 이상의 벼슬에는 오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경래의 말처럼 조정은 도적들의 세상이었다.
반드시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할 정치와 경제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
는 도적의 세상, 큰 관리는 큰 관리대로 작은 관리는 작은 관리대로 모두 다 큰 도독, 작은
도둑으로 들끓고 있었던 난세 중의 난세였던 것이다.
민심은 조정을 떠나고 있었다. 몇 년째 흉년이 들어 민심은 흉흉하였으며 떠도는 전염병과
이유를 알 수 없는 화재로 민생은 완전히 도탄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때 홍경래를 도와 혁명에 참여한다면 나는 대역죄인이 되는 것이다.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죄인 중에도 가장 무거운 천인공노의 죄인. 그것은 왕권을 침해하거
나 부모를 살해하는 죄를 짓는 일인 것이다. 대역죄인은 삼족을 멸하는 형벌을 받게 되며
죄인의 시선 역시 머리, 몸, 팔다리 등을 토막내어 죽이는 능지처참의 극형을 받게 되어 있
는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 혁명이 성공한다면 대역죄인은 하루아침에 영웅이 되는 것이다. 그리
하여 하루아침에 정사공신이 되어 훈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역사적 실례는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2백여 년 전 광해군 시절, 서인 일파는 반란을 일으켜 능양군을 옹위하
여 왕위에 오르게 하니 이것이 곧 인조반정이었던 것이다.
신하가 임금을 몰아내는 반정도 실패하면 대역죄인이 되는 것이며 성공하면 정사공신이 되
는 것을 역사를 통해 분명히 확인 할 수 있지 아니한가.
그때였다.
마른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듯 무엇인가 번쩍이며 내리치는 고함소리 하나를 임상옥은 들
었다.
'이놈아, 이 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임상옥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거의 동시에 자신의 머리통을 세차게 후려치는 석숭 스님의
일갈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임상옥은 순간 일어난T다. 그는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둠속에서 하나의 방향을 정하
고 그곳을 향해 삼배를 올려 제자로서 예를 표한 후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제서야 석숭 스
님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이 죽을 사 자가 너를 반드시 첫 번째 위기에서 살려줄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오직
이 죽을 사 자 한 자뿐이다. 그러나 두 번째 위기는 다르다. 그 어떤 묘책도, 그 어떤 방법
도 너를 살려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때 임상옥은 두려움에 몸을 떨며 다음 말을 기다렸었다.
"만약에 네가 그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는 반드시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다. 문제는
네가 첫 번째 위기를 위기임을 알겠으나 두 번째 위기는 위기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위기를 위기로서 직감할 때 헤어날 방법이 반드시 있는 법이다. 그러나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할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멸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심
하여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때 혹시 위험한 고비가 아닐까 생각하여라."
임상옥은 무릎을 꿇고 앉은 채 큰스님 석숭의 말을 떠올려 보았다. 스님의 예언대로 그의
첫 번째 위기인 연경 상인들의 불매동맹은 '죽을 사' 의 비책으로 인해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두 번째 위기가 닥쳐온 것일까. 큰스님 석숭의 말씀처럼 벗어나지 못하면 능
지처참의 극형을 당하는 바로 그 위기인가.
순간,
임상옥의 온몸으로 전율이 흘렀다.
지금이 바로 큰스님 석숭이 말하였던 그 두 번째의 위기인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풀리고 있을 때 혹시 위험한 고비가 다가온 것이 아닐까 잘 생각해 보라던 바로 그 두 번째
위기인 것이다. 홍경래가 지신의 상가에 들어와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이 순간이 바로 벗
어나지 못하면 능지처참을 당하는 위기의 순간이며, 벗어나지 못하면 멸문지화를 당하는 두
번째 위기의 순간인 것이다.
임상옥은 온 생각, 온 마음을 집중해서 석숭 스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위험한 고비임을 깨달았을 때엔 어떻게 하여야 제가 살아나겠습니까."
임상옥이 묻자 석숭은 임상옥의 얼굴을 물Rm러미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었다.
그 미소를 임상옥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빙그레 웃고나서 석숭은 임상옥이 볼 수
없도록 몸을 돌려 앉았다. 그는 다시 붓에 먹을 묻혀 종이 위에 무엇인가를 써내렸다. 석숭
은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려 그 종이를 겹겹이 접었다. 석숭은 임상옥을 향해 다시 돌아앉은
후 이렇게 말하였었다.
"네가 살아날 방법이 이 종이에 씌어 있다. 그러나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함부로 이 종
이를 펼쳐 보아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너는 천기를 누설하여 반드시 하늘로부터 벌을 받
게 될 것이다. 반드시 네가 최대의 위기에 봉착되었음을 깨달았을 때에만 이 종이를 펼쳐
보아야 한다. 네가 살아날 수 있는 모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을 알아듣겠느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가 임상옥은 몸을 일으켜 지체없이 벽에 걸린 바지에 매달려 있는 비
단주머니를 떼어내었다.
붉은 비단주머니다.
그 비단주머니 속에는 5년 전 큰스님 석숭이 써준 비결이 들어 있는 것이다.
벗어나지 못하면 능지처참을 당하고, 벗어나지 못하면 멸문지화를 당하는 두 번째의 큰 위
기, 반역군의 괴수 홍경래의 혁명에 참여할 것이냐, 아니면 밀고할 것이냐는 절체절명의 위
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늘의 비밀. 죽느냐, 아니면 사느냐. 영웅이 되느냐, 아니면 대역죄
인이 되느냐는 운명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내려준 하늘의 기밀. 그 큰 위기를 벗어날 수 있
는 천기가 이 비단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석숭 스님이 내려준 그 비책을 마침내 펼쳐 보게 될 결정적인 때가 다가온 것이다. 지금이
야말로 바로 그때인 것이다.
임상옥은 비단주머니의 끈을 풀었다. 끈은 단단하게 매듭져 있었다. 주머니는 보통 형태의
두루주머니였는데 붉은 비단 위에 십장생이 새겨져 있는 염낭이었다. 매듭진 끈을 풀고 존
인 주머니를 잡아당기자 주둥이가 벌어졌다.
주머니 속에 손을 넣자 뭔가 만져졌다. 임상옥은 그것을 꺼내 보았다. 붉은 작은 종이가 주
머니 속에서 나왔다. 붉은 종이봉지를 펼치자 종이 속에서 작은 콩알 하나가 나왔다. 붉은
콩 한 알이었다. 원래 주머니 속에 종이봉지에 싸인 붉은 콩을 한 알씩 넣어 가지고 다니는
것은 일년 내내 귀신을 물리치고 만복이 온다는 신앙 때문이었다.
특히 해마다 정월 첫 해일 에는 붉은 콩 한 알씩을 종이 봉지 속에 넣어 종친들에게 보내
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붉은 콩 한 알이 귀신을 물리쳐 주는 부적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믿는 민간신앙 때문이었다. 특히 위험하기 짝이 없는 객상들은 안전을 빌기 위해 주머니 속
에 붉은 종이봉지로 싼 붉은 콩 하나를 넣고 다니는 풍습이 있었던 것이다.
임상옥은 다시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보았다. 겹겹이 접은 종이가 손 끝에 만져졌다 임상
옥은 그 종이를 꺼내 탁상 위에 올려 놓았다. 5년이 흐르는 동안 종이는 많이 낡고 변색이
되어 있었다.
"위험한 고비인 줄 깨달았을 때엔 어떻게 하여야 제가 살아나겠습니까."
다급해져 묻는 임상옥에게 다만 빙그레하고 염화미소만을 짓던 석숭 스님. 그리고 임상옥
이 볼 수 없도록 몸을 돌려앉아서 다시 붓에 먹을 묻혀 무엇인가를 써내리던 큰스님. 그 큰
스님 석숭이 써준 비책이 이 종이 위에 적혀 있는 것이다.
임상옥은 석숭 스님이 겹겹이 접은 종이를 천천히 풀기 시작하였다. 종이는 세 번, 네 번
차곡차곡 접혀 있었다. 마침내 접힌 종이를 풀어내리자 한 뼘 정도의 작은 종이 한 장이 그
대로 펼쳐졌다.
임상옥은 눈을 감은 채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서너 번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다잡은 후 임상옥은 눈을 떠서 펼쳐진 종이 위를 바라보았
다.
종이 위에는 글자 하나가 적혀 있었다. 낯이 익은 석숭 큰스님의 글씨였다.
임상옥은 종이 위에 씌어 있는 글자를 자세히 보기 위해서 탁상 위에 놓은 불빛 쪽으로 가
까이 다가가서 그 글자를 조심스럽게 확인하여 보았다.
종이 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씌어져 있었다.
'정'
오직 단 한 자의 글자뿐이었다.
그것은 솥은 가리키는 '정'자였다.
순간 임상옥은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홍경래로부터 자신의 주역이 정괘이며 자신의 상괘가 '화풍정' 이라는 점괘를 얻음으로써
자신의 운명이 '솥'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 불과 며칠 전이 아니었던가. 그뿐
인가. 마적단의 두목 정시수로부터 무사히 살아 돌아온 홍경래는 임상옥에게 줄 선물로 청
동솥을 선택해 오고는 , 자신에게 그 청동솥의 무겁고 가벼움을 묻는 '문정경중' 의 수수께
끼를 던져온 것이다. 솥의 크기와 무게를 임상옥에게 물어옴으로써 홍경래는 생명이 걸린
자신의 선택을 강요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 세 번째의 솥이 연이어 출현한 것이다.
벗어나지 못하면 능지처참을 당하고, 그뿐 아니라 삼족이 멸해 멸문지화를 당하는 이 절체
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비책으로 큰스님 석숭은 수수께끼의 '정' 자 한 자만을 밑도끝도 없
이 내어 던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큰스님의 이 뜻은 과연 무엇인가.
임상옥은 이를 악물고 종이 위에 적힌 그 글자를 노려보았다.
분명히 이 '정' 자 속에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모책이 숨어있을 것이다. 중국 사인들의
불매동맹에서도 임상옥은 밑도끝도 없는 '죽을 사' 자의 비의를 풀어냄으로써 죽는 길이야말
로 단 하나의 살아날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닫고 마침내 인삼에 불을 지르는 '죽음'을 택함으
로써 그들의 기세를 꺾고 전화위복의 행운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분명히 이
'정' 자에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임상옥은 심사숙고하였다.
연거푸 다가오는 세 개의 솥 정 자.
임상옥은 몇날 며칠을 고민하였다.
큰스님 석숭이 활구로 써준 '정' 자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노심초사하였다. 그러나 생각
하면 할수록 더욱 깊은 심연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깜깜절벽이었다.
큰스님 석숭이 써준 비결 '정' 자가 자신의 두 번째 위기를 무리쳐줄 활구임을 알겠으나 그
문자 속에 숨어 있는 비의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눈뜬 장님에 불과할 따름이 아닐
것인가.
몇날 며칠을 고민하던 임상옥은 어느 한순간 번득이는 영감을 느꼈다. 임상옥은 갑자기 광
명천지를 얻은 느낌이었다.
추사 김정희.
청년 김정희의 모습을 떠올린 순간 임상옥은 옳거니 하고 자신의 무릎을 내리쳤다.
그렇다. 임상옥은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석숭 스님이 내려주신 첫 번째 위기를 물리쳐줄 '죽을 사' 자의 비의를 밝혀낸 사람, 추사
김정희.
마찬가지로 두 번째의 위기, 벗어나지 못하면 삼족이 죽어 멸문지화를 당하고, 벗어나지 못
하면 능지처참을 당하는 두 번째의 위기를 물리쳐줄 '정' 자의 화두를 깨쳐줄 사람은 오직
김정희 뿐이다.
이미 김정희는 내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자 사부가 아닐것인가. 김정희 앞에 무릎을 꿇고
세 번의 예를 올림으로써 김정희는 임상옥에게 이미 스승이었던 것이다.
김정희를 찾아가 묻는다면 그는 '정' 자의 비의를 밝혀줄 것이다.
추사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고, 김정희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그 즉시 임상옥은 행장을 차리고 김정희를 찾아 떠났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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