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전염병을 차단하는 항바이러스제부터 탈모 치료제, 뇌질환 치료제, 위장약, 수면제, 당뇨약, 항암 대체제로 뜨거운 이슈가 된 구충제, 그리고 유전자 치료제 등 인류에게 희망과 미래를 열어준 11가지 치료약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저자는 약에 관한 내용뿐 아니라, 관련된 역사적, 사회적, 문학적인 내용을 추가해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다.
▣ Short Summary
과학자들은 지구에 약 160만 개의 바이러스가 있다고 추정한다. 그 중 현재까지 발견된 바이러스는
5,000여 종인데, 사람뿐 아니라 다른 척추동물, 무척추동물, 식물, 세균에서도 바이러스는 발견된다.
한편 현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인류는 사스, 신종플루, 코로나19 등 다양한 바이러스와 주기적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신종 바이러스 감염이 위험한 이유는 발병할 당시 치료약이 없기 때문이다. 변종된 바이러스의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전염병을 차단하는 항바이러스제부터 탈모 치료제, 뇌질환 치료제, 위장약, 수면제, 당뇨약, 항암 대체제로 뜨거운 이슈가 된 구충제, 그리고 새로운 치료 지평을 여는 유전자 치료제 등 인류에게 희망과 미래를 열어준 11가지 치료약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저자는 약에 관한 내용뿐 아니라, 관련된 역사적, 사회적, 문학적인 내용을 추가해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다.
그리고 약은 인류와 함께 개발되고 선택되면서 역사를 같이 해왔고, 현대 인류가 다양한 약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처음 개발되어 사용되기까지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온 누군가의 끈질긴 노력 때문이라 말한다. 아울러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바이러스를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므로 바이러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 차례
1장 전염병을 차단하는 항바이러스제 / 2장 여권 신장을 가져온 피임약 3장 카리브해에서 찾은 탈모 치료제의 열쇠 / 4장 현대인의 쓰린 속을 달래주는 위장약 5장 환청과 망상에서 벗어나게 한 조현병 치료제 / 6장 인생의 즐거움을 되찾게 한 항우울제 7장 불안과 스트레스를 잠재우는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 8장 뇌 건강을 지켜주는 뇌 질환 치료제 9장 혈당을 낮춰주는 당뇨약 / 10장 기생충을 없애는 구충제 11장 새로운 지평을 여는 유전자 치료제
- 2 -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
전염병을 차단하는 항바이러스제
과학자들은 지구에 약 160만 개의 바이러스가 있다고 추정한다. 그 중 현재까지 발견된 바이러스는
5,000종 정도다. 사람뿐 아니라 다른 척추동물, 무척추동물, 식물, 세균에서도 바이러스는 발견된다.
바이러스는 19세기 말에 처음 발견되었다. 세균을 함유한 용액을 여과기에 부으면, 여과지의 미세한 구멍을 통과하지 못하는 세균을 걸러낼 수 있다. 그런데 담배모자이크병에 걸린 담뱃잎의 즙을 여과해 세균을 걸러낸 용액이 병을 일으켰다. 세균이 없는데도 병이 생기자 담배모자이크병은 더 작은 병원체에 의해 감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을 여과성 병원체라고 하는데, 1939년 전자현미경이 발명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세균과 바이러스의 가장 큰 차이는 스스로 생명 활동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세균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관을 가지고 있어 먹이를 먹고 유기물을 만들어서 번식한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생존에 필요한 유기물을 스스로 만들지 못해 숙주의 힘을 빌려서 증식한다. 크기도 달라 세균은 보통 수 마이크로미터(㎛) 크기인데 반해, 바이러스는 수백 나노미터(㎚)이다. 현재는 이런 고전적 의미의 바이러스 개념과 달리 크기가 큰 거대 바이러스도 발견되고 있어서 아직도 모르는 점이 많다.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는 외과의사 에드워드 제너로부터 시작했다. 그는 젖소 젖을 짜는 여자들이 천연 두에 걸리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고, 우두를 일으키는 병독에 사람이 걸리면서 천연두에 면역이 생긴다고 가정했다. 1796년 그는 소젖을 짜는 여인의 손바닥에 생긴 종기에서 고름을 채취해 8살 소년 제임스 핍스의 팔에 접종했다. 핍스는 팔에 상처가 생겼지만, 금방 회복되었다. 6주 후에는 진짜 천연두 고름을 주사해도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이것이 최초의 천연두 백신이다.
암소를 라틴어로 바카(vacca)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따와 접종한 우두의 고름을 백신(vaccine)이라고 했다. 이것이 1세대 백신이다. 이후 프랑스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광견병과 콜레라 백신을 개발 했다. 사실 백신이라는 이름은 제너의 종두법만을 의미했지만, 그를 존경한 파스퇴르가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자신이 개발한 약도 백신이라 부르면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파스퇴르는 감염증이 미생물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과 병원체를 약하게 만들어 접종하면 백신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바이러스는 어디서 온 것일까? 약 1만 년 전 수렵에서 농업으로 생활양식이 바뀌고 가축을 키우면서 시작되었다. 동물에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가축을 숙주로 살다가 유전자 돌연변이 같은 진화를 통해 면역체계, 화학반응이 전혀 다른 사람에게 들어온 것이다.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하는데,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종으로 숙주를 바꾸었는데, 그 과정에서 과도한 면역반응이 일어나 숙주를 죽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숙주가 가진 자원을 이용할 수가 없어서 바이러스도 같이 죽는다.
제너가 백신을 개발한 이후, 천연두 바이러스는 1980년에 공식적으로 퇴치되었지만, 다른 바이러스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인플루엔자, HIV(후천성 면역결핍증 바이러스), 간염바이러스, 조류인플루엔자,
- 3 -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
코로나바이러스 등 다양한 병원체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 바이러스는 주기적으로 발생해 인간에게 엄청난 위력을 휘두르는 숨은 권력자인데,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바이러스를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바이러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공황 상태에 빠뜨렸는데, 이는 우한에 있는 수산물 시장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수산물 시장에는 수산 물뿐 아니라 박쥐, 뱀, 너구리 등 야생동물도 거래되는데, 이곳에서 다양한 종의 바이러스 재조합이 이뤄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바이러스는 2019년에 발생했다고 해서 ‘코로나 19’로 이름 붙여졌는데, 중국 우한을 중심으로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 중동, 유럽, 아메리카 등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강한 전염성을 가졌지만 사스와 메르스에 비해 치사율은 높지 않았다. 바이러 스가 전염성이 강하면 다른 숙주를 찾아 전파하기가 쉬워지는 반면에 치사율은 떨어진다.
세계보건기구는 전염병의 위험도를 6단계로 구분한다. 그중 전염병이 특정 지역이나 사람에 한정된 경우를 엔데믹(endemic), 세계적 유행 임박 단계를 에피데믹(epidemic)이라 하고, 국가ㆍ대륙 간 전파가 가장 심한 6단계를 팬데믹(pandemic)이라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사스와 에볼라 바이러스는 에피데믹, 1968년 홍콩 독감, 2009년 신종플루, 2019년 코로나 19는 팬데믹으로 공식 선언했다.
최근에 사스, 메르스, 코로나 19처럼 야생동물에서 서식하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자주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밀림, 오지 개발, 환경파괴가 가속화되면서 사람이 과거보다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더 많이 침범하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살던 야생동물과 사람의 접촉이 빈번해지자 인류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바이러스와의 만남도 크게 늘어났다.
개학이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와 사회적ㆍ경제적 타격 등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코로나 19사태를 교훈 삼아 이제는 바이러스와 사람 간의 공존을 모색할 때다. 박쥐가 바이러스를 전파한다고 현실적으로 모두 잡아 없앨 수는 없다. 만약 모든 박쥐를 멸종시킨다면 바이러스는 새로운 자연 숙주를 찾아 나설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통해 더 강한 독성을 가지고 사람을 공격해 올 것이다.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수많은 바이러스가 있고, 그중 병을 일으키지 않고 유익한 바이러스도 많다. 병을 일으키는 세균도 있지만, 몸에 유익한 세균인 프로바이오틱스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이러스 유전자는 숙주 유전체에서 연속하는 특성이 있어 생물 종의 다양성에도 기여한다. 사람은 바이러스와 공존하며 살되,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백신을 만들면 인공감염을 통해 집단면역을 높여서 바이러스의 확산을 낮출 수 있다.
최신 의약 동향 - 코로나 19 치료에 사용하는 에볼라, 말라리아 치료제: 코로나 19는 신종 바이러스여서 백신과 치료제가 없다. 유행하는 시점에서 개발을 시작해도 약이 나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기존에 있는 다른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해 환자를 치료한다. HIV약 칼레트라 외에 대표적으로 렘데시비르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있다. 렘데시비르는 치사율이 최고 90%에 달하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치료하기 위해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사가 개발하던 약으로 바이러스의 RNA 중합효소에 결합해 복제를 막는다.
2020년 1월 미국에서 발병한 첫 번째 코로나 19 환자에게 렘데시비르를 투약해 하루 만에 증상이 호
- 4 -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
전된 사례가 있다.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약 염기성으로 세포막을 쉽게 통과해 가수 분해효소 리소좀의 pH를 4에서 6으로 올린다. 그러면 면역세포의 기능이 떨어져 사이토카인 생성이 억제되어 염증이 줄어든다. 또 다른 후보 아비간(성분명: 파비피라비르)은 일본 후지필름의 자회사 후지필름도야마 화학이 만든 A형 항인플루엔자 치료제다. 신종플루 치료를 위해 개발해서 2014년 일본 에서 승인을 받았다. 아비간은 바이러스 유전물질 RNA의 중합효소를 억제해 복제를 막는다. 아비간은 타미플루에 내성이 있거나 다른 항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약이 효과가 없을 때만 제한적으로 쓸 수 있다.
아직 임상경험이 많지 않아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다.
기존에 사용하던 약을 어쩔 수 없이 신종 바이러스에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아직 코로나 19에 대한 치료제가 없기에 보완적으로 쓰는 것이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효능이 인정되어도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므로 높은 비용과 상당한 시간이 요구 된다. 개인적으로 손 씻기, 마스크 쓰기, 기침 예절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로 평소에 면역력을 강화해서 바이러스를 예방하고 이겨 나가야 한다.
카리브해에서 찾은 탈모 치료제의 열쇠
현대인에게 탈모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걱정거리인데, 대한 탈모치료학회는 탈모 인구를 1,000만명으로 추정한다. 탈모는 이제 단순한 미용 차원을 넘어서 질병이 되었고, 최근에는 10~20대 젊은 층과 여성에게도 탈모가 급증하고 있다. 2018년 탈모로 건강보험 진료를 받은 사람 중 43.8%가 여성이 었다. 여성 탈모는 남성에게 흔한 유전적 요인보다는 스트레스와 생활 습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모발은 약 10만 개 정도이며, 80~90%는 계속 자라는 상태(생장기)이고, 나머지는 성장이 멈춘 상태 (퇴행기, 휴지기)다. 모발은 하루에 50~100개 정도 빠지는 것이 정상이다. 탈모를 일으키는 유전이 있다 하더라도 사춘기 전에는 대머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다 사춘기 이후 고환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테스토스테론(T)이 효소의 작용으로 디히드로테스토스테론(DHT)으로 전환되어야 탈모가 생긴다.
탈모 치료에 많이 사용하는 피나스테라이드와 두타스테라이드는 탈모 원인이 되는 5알파-환원효소 작용을 억제한다. 5알파-환원효소는 T를 DHT로 바꾸는데, 약이 이 과정을 막아 탈모를 치료한다. 약의 부작용으로는 성욕 감소, 발기부전, 사정량 감소가 있지만, 발생 빈도는 2% 이하로 낮은 편이다. 두피에 바르는 약으로는 미녹시달 성분이 있다. 남성용으로 5%, 여성용으로 2%와 3% 제품을 사용하는데, 모근혈관을 확장해 모발의 영양공급을 늘린다. 그러면 모발이 굵고 길게 자란다.
탈모약은 초기에 사용해야 효과가 있다. 모근 세포가 완전히 사라지면 약으로 되살릴 수 없다. 탈모 방지 샴푸도 많이 사용하지만, 모발이 빠지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참고로 모발과 두피에서는 세포분 열이 빨리 일어나는데, 음식물 섭취가 줄면 모발에 필수적인 영양소 공급도 줄어든다. 따라서 규칙적인 식사와 스트레스 관리, 두피를 청결하게 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현대인의 쓰린 속을 달래주는 위장약
소화제와 위장약은 약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약 중의 하나다. 과식이나 자극적인 음식, 불규칙한 식사 등 주로 생활습관으로 인해 생기는 위장장애는 일시적인 증상이기는 하지만 만성이 될 경우 어려 움을 겪기도 한다. 위산이 많이 나와 속쓰림과 위산 역류가 심하면 위궤양이나 역류성 식도염이 생긴
- 5 -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
다. 이런 경우 위산 분비를 막아주는 위장약이나 위산 역류를 방지하는 짜 먹는 물약을 권한다. 하지만 증상이 심하면 위 운동을 조절하는 약을 사용하는데, 이때 소화불량이 있으면 소화효소제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오래전 서양에서는 초콜릿을 소화제로 사용했다. 반면 아시아에는 한방소화제가 있다. 매실이나 탄산을 배합한 물약으로 된 한방소화제와 각종 생약 성분으로 구성된 소화제는 광고를 통해서도 흔히 접할수 있다. 위산과다로 속이 쓰리거나 위산이 역류하는 질환도 흔하다. 위ㆍ십이지장 궤양 같은 소화성 궤양은 위벽 조직이 파괴된 것이다. 위벽을 파괴하는 공격인자가 증가하고 방어인자가 줄어들어 균형이 깨져 생긴다. 단백질을 분해하는 펩신, 위산과 스트레스, 진통소염제 등은 공격인자에 속하고, 위벽을 덮는 끈적끈적한 점액은 위산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방어인자다.
보통 속이 쓰리면 겔포스, 알마겔, 개미스콘 같은 약을 먹는다. 광고로 잘 알려진 겔포스와 알마겔은 위산을 중화시켜 속쓰림을 없애고, 개비스콘은 위산 역류를 막는다. 개비스콘은 미역, 다시마 같은 해초에 있는 끈적끈적한 식이섬유(알긴산)가 주성분이다. 최근에는 위산 외에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세균이 궤양 발생의 중요 원인으로 밝혀졌다. 위궤양 환자 80% 이상에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발견 되었고, 이 세균을 박멸시키면 재발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다. 만성적인 위장병을 예방하려면 약의 복용도 중요하지만 규칙적인 식사와 올바른 생활습관,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또소염진통제를 오랫동안 먹을 때는 위장약을 함께 복용해 위를 보호하는 것이 좋다.
뇌 건강을 지켜주는 뇌 질환 치료제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치매, 파킨슨 같은 퇴행성 뇌 질환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치매는 크게 알츠하 이머와 혈관성치매로 구분하는데, 알츠하이머가 70% 이상을 차지한다.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기억력, 판단력, 이해능력, 언어능력 등이 떨어지고 사람에 대한 의심이 많아진다. 쉽게 화를 내고 기분이 슬퍼 지거나 우울해지기도 한다. 심하면 아무 장소나 돌아다니는 배회 증상이 생기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행동장애가 생긴다. 이런 증상은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발병 시기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발병후 몇 년이 지나면 음식을 삼키지 못해 몸이 급격하게 약해진다. 몸져눕는 상태가 되면 침이나 음식이 기관으로 들어가 폐렴을 일으키거나 심장에 이상을 일으켜 생명을 잃는다.
우리나라 알츠하이머 환자는 첫 증상이 나타난 후 평균 12.6년, 첫 진단 후 평균 9.3년 생존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고령일수록 생존율이 낮아지지만, 약물의 발달로 수명이 늘어나는 추세다. 알츠하이머와 별도로 노인에게는 기억력이 깜빡깜빡하는 건망증이 많은데, 노화에 의한 자연스러운 증상이다. 건망증과 알츠하이머는 다르다. 건망증은 젊을 때와 달리 기억력과 주의력이 떨어지는 증상인데 반해, 알츠하이머는 뇌세포가 영구적으로 손상되어 기억을 잃어가는데, 알츠하이머는 베타 아밀로이드(β
-amyloid) 단백질과 타우(tau) 단백질이 뇌에 축적하면서 발생한다.
파킨슨(Parkinson)은 뇌에서 도파민을 만드는 신경세포가 파괴되어 생기는 병이다. 도파민은 뇌에서 몸이 원하는 대로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신경전달물질인데, 부족하면 행동장애를 일으킨다.
행동이 느려지고 근육이 뻣뻣하게 경직되며 몸이 떨리고 자세가 불안정해지는 증상이 특징이다. 치매 처럼 나이가 들수록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 2017년 10만 명을 넘은 국내 파킨슨 환자는 90% 이상이 60대 이상 고령에서 발병한다. 치매와 같이 파킨슨병도 천천히 진행되고 증상도 조금씩 나타나기 때문
- 6 -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
에, 조기발견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관심이 필요하다. 파킨슨을 예방하거나 완치할 수는 없지만 약물 치료를 적절하게 하면 병의 진행을 늦추고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한편 2012년 간질은 뇌전증으로 병명이 바뀌었다.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들리는 간질에서 뇌에 전기적인 장애가 있다는 뜻의 뇌전증이 되었다. 정신분열증이 조현병으로 개명된 것처럼, 병명은 사람 들의 인식에 변화를 준다.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가 이상을 일으켜 과도한 흥분을 나타낸다. 의식이 없어지고 팔다리가 뻣뻣하게 굳고 떠는 증상이 생긴다. 일시적으로 뇌 기능의 마비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뇌전증은 10세 미만 어린이와 70세 이상 고령층에서 발병 빈도가 높다. 어릴 때는 열성 경련 등 외적 요인으로 발작이 생기고, 노년기에는 각종 뇌 질환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뇌경색, 뇌종양, 뇌 외상 등으로 뇌전증이 생길 수 있다. 그렇지만 원인을 모르는 경우도 절반이 넘는다.
뇌전증 치료는 항경련제를 복용하는 방법과 수술이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뇌전증은 불치가 아니라 계속해서 관리하는 병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 들어 새로운 뇌전증 치료제들이 쏟아져서 현재 20종이상의 약이 있다. 환자마다 치료제에 대한 반응이 달라 여러 종류의 약을 적절하게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 복용으로 70%가 완치되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나머지 30%는 재발하거나 조절이잘 안 되는데, 2년 동안 2가지 이상 약을 조합해서 치료해도 발작이 일어나면 수술을 고려한다.
혈당을 낮춰주는 당뇨약
당뇨가 있으면 음식을 먹어도 허기가 생겨 많이 먹게 되고, 과도한 혈당은 갈증을 일으켜 물을 많이 마셔 소변량이 늘어난다. 다음, 다갈, 다뇨는 삼다(三多)라고 해서 당뇨병의 대표적 증상이다. 하지만 이런 증상이 나타날 정도면 당뇨가 심하게 진행된 상태다. 대부분의 당뇨는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혈액검사나 혈당 체크로 나중에야 알게 된다. 당뇨는 혈액검사를 통한 당화혈색소 수치를 기준으로 하는데, 혈액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혈색소가 포도당과 얼마나 결합되었는지를 나타낸다.
당화혈색소 수치를 통해 최근 3개월 동안 평균 혈당을 알 수 있다. 당뇨가 심할수록 당화혈색소가 높아지는데 5.6%까지는 정상이고 당뇨가 있으면 6.5%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치료한다.
당뇨가 오래되면 망막, 신장, 신경 합병증이 올 수 있다. 황반변성, 녹내장, 당뇨망막병증을 성인 3대실명 질환이라고 하는데, 고혈당은 미세혈관을 변형시켜 당뇨망막변증을 일으킨다. 당화혈색소를 1% 줄이면 미세혈관 합병증을 30~50%까지 낮출 수 있다. 2016년 기준 국내 당뇨 환자 수는 501만 명이 넘는다. 당뇨 전 단계인 공복혈당장애는 870만 명으로 추정한다. 많은 사람이 걸리는 국민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당뇨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비율은 62%에 불과하다. 실제 치료받는 사람은 56%밖에 되지 않는다. 치료받아도 당화혈색소가 6.5% 미만으로 정상적으로 조절되는 사람은 4명 중 1명에 불과하다. 걸리면 정상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은 병이 당뇨다.
혈당이 높아지는 초기에는 식사나 운동으로 조절할 수 있으나 2~3개월 이내에 혈당이 정상적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약물 치료를 한다. 주사로 맞는 인슐린 외에 경구용 당뇨약을 크게 다음과 같이 6가지로 나누는데, 요즘은 ①②③을 많이 사용하는 추세다. ‘① 간에서 포도당 합성을 줄이는 약, ② 장에서 나오는 인크레틴 호르몬 효능을 높이는 약, ③ 신장에서 포도당 재흡수를 억제하는 약, ④ 췌장을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늘리는 약, ⑤ 장에서 포도당 흡수를 줄이는 약, ⑥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시키는 약’. 먹는 약으로 혈당이 조절되지 않으면 인슐린 주사를 추가한다. 당화혈색소가 10.5% 이상이거나
- 7 -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
심한 고혈당에는 처음부터 인슐린을 투여한다. 인슐린은 혈당을 조절하기에 효과적이지만, 바늘로 찌르는 불편함이 있다. 인슐린 외에 GLP-1 주사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생충을 없애는 구충제
대표적인 기생충으로 회충, 편충, 십이지장충, 요충을 들 수 있다. 1950년대 우리나라 국민은 1인당 평균 50마리의 회충이 있었다. 회충 1마리는 하루 20만 개 알을 낳는데, 대변으로 나온 회충 알 중 일부는 다시 사람 입으로 들어갔다. 회충 알을 일부러 찾아내서 먹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 채소에 묻은채 섭취했다. 당시에는 농촌에서 인분을 비료로 사용해서 밭에 뿌렸는데, 생으로 먹는 채소를 통해 사람 몸으로 다시 들어간 것이다. 김치가 주식이었던 우리는 배추에 있던 회충 알까지 함께 먹었다. 알은 사람 몸에 들어가면 2~3개월 후 30㎝나 되는 성충이 된다.
BC 3300년 전 알프스산맥을 지나가다가 죽어서 5000년 넘게 냉동 미라가 된 아이스맨이 있는데, ‘외 치’라는 이름이 붙은 이 냉동 미라의 몸에서 편충이 발견됐다. 편충도 회충같이 흙 속에 있는 알을 사람이 먹어서 감염된다. 몸에 들어온 편충 알은 맹장에 가서 성충으로 자란다. 크기가 3~5㎝인 편충은 몸에 피해를 거의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대적인 기생충 박멸 운동으로 지금은 감염률이 0.3%에 불과하다. 오히려 편충이 있으면 면역계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사람 편충과 거의 같지만 수명이 짧은 돼지 편충을 자가면역질환인 크론씨 병 치료에 사용하기도 한다.
흙에 있는 십이지장충의 유충은 피부를 뚫고 사람 몸으로 침입한다. 유충은 혈액을 통해 폐와 기관지로 이동한 다음 십이지장에 정착한다. 성충은 길이가 1㎝로 갈고리 모양의 이빨로 장벽에 붙어서 매일 0.2㏄의 피를 빨아먹는다. 심하면 빈혈을 비롯한 여러 가지 소화 기능에 이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금은 십이지장충이 거의 박멸되어서 멸종단계에 들어섰다. 인분 비료 사용을 금지하고 화학비료를 쓰면서 토양매개성 기생충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항문을 가렵게 하는 요충은 아이들에게 가장 흔한 기생충이다. 길이 1㎝의 하얀 실 같은 요충은 맹장 에서 성충이 되고 짝짓기를 통해 알을 낳는다. 짝짓기 후 수컷은 죽고, 암컷은 항문으로 이동해 모두가 잠든 야밤에 항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주변에 알을 낳는다. 항문이 가려워 긁고 난 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으면 알이 입으로 들어가 다시 성충이 되는 일을 반복한다. 거의 멸종 단계인 회충, 편충, 십이지장충과 달리 요충은 감염률이 높은 편이다. 요충은 전염성이 강해서 가족을 포함해 함께 생활하는 사람 모두가 한꺼번에 구충제를 먹어야 한다.
이들 기생충 외에도 디스토마가 있다. 입(stoma)이 2개(di)라는 뜻으로, 간에 기생하는 간디스토마와 폐에 기생하는 폐디스토마가 있다. 예전에는 입이 2개라는 의미인 라틴어에서 유래해 디스토마라고 불렀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니 입이라고 생각한 것이 빨판으로 판명되어 지금은 디스토마라고 하지 않고 흡충이라고 말한다. 민물고기나 가제, 게 등을 익히지 않고 먹으면 생기는데, 우리나라 풍토병이기도 하다. 이때는 일반적으로 흔히 먹는 광범위 구충제와 달리 프라지콴텔이라는 약으로 치료한다.
한때 기생충은 박멸해야 하는 악이었지만, 기생충이 거의 사라진 사회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 졌다. 알레르기와 자가면역질환이 늘어난 것이다. 1960~1970년대에는 위생상태가 나쁘고 상하수도 시설이 열악해 기생충이 창궐해서 대대적으로 퇴치했지만, 환경이 너무 깨끗해지자 과도한 면역반응이
- 8 -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
일어났다. 외부에서 들어온 기생충을 인체는 이물질로 인식한다. 면역세포가 기생충을 감시하며 관리 하는 과정에서 면역체계가 강해졌는데, 이방인이었던 기생충이 갑자기 사라지자 혼란이 생긴 것이다.
아토피, 천식, 비염같이 예전에는 드문 질환이 늘어났다. 3만 년 전 사람 몸속에서 회충이 발견될 만큼 사람과 기생충은 오랫동안 공생해왔다. 그래서 서로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균형을 이루며 살았다. 보기에는 흉측하지만 나름 기생하면서 면역을 튼튼하게 해준 공로가 있다.
최신 의약 동향 - 펜벤다졸이 암을 치료한다고?: 2019년 9월 폐암 말기 환자 미국인 조 티펜스는 개구충제 펜벤다졸을 먹고 암이 완치되었다고 유튜브에 올렸다.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티펜스의 치료법을 따라하는 열풍이 불었고, 펜벤다졸은 기적의 항암제가 되어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문제는 펜벤다졸이 항암제로 승인을 받은 약이 아니라 개 구충제라는 점이다. 식약처와 의료계에서는 펜벤다졸 복용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항암제로서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고 임상시험 자료가 없어 장기 손상 등의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약을 먹지 말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암 환자들과 가족들은 발표를 신뢰하지 않고 암 치료 효능을 입증할 수 있는 임상시험을 정부 차원에서 진행해 달라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요구했다. 참고로 우리나라 암환자는 2019년 기준 174만 명에 달하고, 암 치료비만 연간 7조 원이나 된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암 진단을 받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몸에 좋다는 모든 방법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국민적 열망은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 효능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립암센터에서는 구충제의 항암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추진했으나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계획을 취소했다고 발표했다.
임상시험 실시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2018년 과학전문 저널〈네이처〉에 실린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 관련 논문을 제시한다. 그리고 펜벤다졸과 분자구조가 비슷한 메벤다졸은 미국, 영국, 스웨덴, 이집트 등다른 나라에서 항암 효과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결과가 나오려면 2022년이 되어야 하는데, 한시가 급한 말기 암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발적으로 임상시험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임상시험은 돈이 많이 든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임상시험을 해서 효능이 나타나도, 펜벤다졸, 메벤다졸, 알벤다졸처럼 이미 개발되어 특허가 수십 년이나 지난 1알에 1,000원이 되지 않는 값싼 약을 제약 회사에서는 반기지 않는다. 1회 주사에 수백만 원이나 되는 항암제가 많은 상황에서 구충제는 수익에 맞지 않는 약이다. 그래서 온라인 댓글에는 갖가지 추측이 무성하다. 제약회사와 의료계가 고가의 항암제 치료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구충제의 임상시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외국에서 결과가 나오기까지 우리나라 암 환자들은 기다려야만 한다. 그들의 자발적인 임상시험을 막을 수 없기에 원하는 자원자라도 모아서 체계적인 시험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과량 복용과 오용으로 인한 독성을 줄일 수 있으며 소중한 임상데이터도 쌓을 수 있다.
새로운 지평을 여는 유전자 치료제
특정 유전자가 결핍되거나 돌연변이가 생기면 몸에서 필요한 호르몬이나 단백질을 만들지 못해 유전병이 생긴다. 혈액을 응고시키는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혈우병이 생기고, 운동 신경을 조절하는 유전 자가 결손 되면 근육을 퇴화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유전자 치료는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에 작용해 원인을 제거하거나 제 기능을 하도록 돕는데, 치료방법은 바이러스 벡터(vector)를 운반체로 하여
DNA, RNA 같은 유전자를 환자의 유전체에 도입시키는 것이다.
- 9 -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
유전자 치료제는 유전물질을 가지는 약으로 치료용 유전자와 이를 운반하는 벡터로 구성된다. 방향성을 가진다는 의미의 벡터는 치료용 유전자를 목표 지점까지 운반한다. 주로 바이러스가 벡터로 이용되 는데, 다른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화학약품이나 수술 같은 기존 치료법과 달리 유전자 치료는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교정해 질병의 원인을 고친다. 한편 유전 연구는 오스트리아 수도원에서 시작되 었는데, 수도사 그레고르 멘델은 수도원 정원에서 완두콩을 교배하면서 유전 원리를 발견했고,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선구적인 업적을 알아 본 학자들에 의해 멘델의 유전법칙은 유전학의 근간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 토머스 모건은 수명이 짧으면서도 번식력이 강한 초파리로 유전을 연구했다. 그는 유전자는 염색체의 특정 위치에 존재하는데, 상동염색체의 같은 위치에 대립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후 베일에 감춰졌던 유전의 비밀은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면서 벗겨졌다. 유전의 본질은 염기서열을 가지는 화학물질이었다. 이를 계기로 유전과 DNA에 관한 연구는 유전자 치료제 개발로 이어졌다.
2015년 미국 암젠에서 개발한 임리직은 멜라닌 세포에서 유래하는 악성흑색종을 치료한다. 스위스 노바티스에서 나온 킴리아는 면역을 담당하는 B세포에서 유래하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치료한다.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예스카타는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성 림프종 치료제다. 아직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유전자 치료제는 희귀병이나 난치병을 낫게 할 수 있어서 지금까지 치료 불가능한 병을 고치고 있다. 그렇지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유전자 치료제는 가격이 아주 비싸다.
지금까지 허가받은 약 가격이 한 번 치료하는데 4억 원에서 25억 원에 달한다. 예로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척추성 근육위축증 치료에 사용하는 유전자 치료제인 ‘졸겐스마’는 단 한 번 맞는 주사 약값이 25억 원이다. 졸겐스마는 단 1회 투약으로 병이 치료된다. 성능도 약값도 놀라지 않을 수없다. 하지만 너무 비싸서 시장성이 떨어진다.
네덜란드에서 나온 혈액장애 희귀병 치료제 글리베라는 약값이 12억 원이나 되고, 치료받은 사람이 단 1명밖에 되지 않아 퇴출당했다. 뛰어난 치료제를 개발해도 수익이 나지 않으면 제품을 유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기술적인 문제도 남아 있고 벡터로 사용되는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 위험도 있다. 아직은 단일 유전자 돌연변이로 일어나는 아주 단순한 병만 치료할 수 있고, 여러 가지가 결합해서 일어나는 복합 유전자 돌연변이 치료제는 없다.
유전자 치료는 질병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고 삶의 질을 개선시킨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바이오, 제약업계도 차세대 산업으로 이 분야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해결해야 하는 난제도 많지만, 성장 가능성이 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제약회사와 바이오 벤처기업이 도전하고 있다. 유전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난치병을 정복하는 시대가 곧 오기를 기대한다.
최신 의약 동향 - 유전자를 편집하는 유전자 가위: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화학합성 약이 주류였지만, 어느새 글로벌 10대 의약품 대다수가 바이오 의약품으로 바뀌었다. 유전자 재조합 의약품, 항체 의약품, 세포 치료제가 글로벌 제약시장을 장악했는데, 이 분야에 세계적인 빅 파마들이 주력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바이오시밀러와 제약, 바이오 기술 수출이 활발하다.
바이오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한 핵심 기술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 유전자 가위다. 유전자 가위는 유전
- 10 -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
자의 특정 부위를 잘라내 원하는 유전자를 넣어 편집하는 기술이다. 유전자 가위는 세균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를 연구하면서 발견한 제한 효소가 시초다. 바이러스가 세균에 침입하면 자신의 유전체를 세균 안으로 삽입한다. 바이러스는 숙주인 세균을 이용해 유전체를 복제하고 단백질을 합성해 증식한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세균을 죽이고, 증식을 위해 다른 숙주로 이동한다.
바이러스는 세균 입장에서 적이다. 그래서 세균은 방어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세균에 바이러스가 들어 오면 세균의 유전체는 바이러스 유전자를 보관한다. 바이러스와 싸워 이긴 경험이 있는 세균은 후손 세균에게 바이러스의 정보를 유전으로 전달한다. 그러면 다음에 바이러스가 침투할 때 세균이 보관하고 있는 정보를 검색해 위험한 바이러스인지 감별한다.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세균은 바이러스의 DNA 를 정확하게 잘라내 바이러스의 증식과 복제를 막는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DNA를 자르는 기법이 개발되었는데, 3세대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 카스9(CRISPER-Cas9)가 나왔다.
3세대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 카스9는 1, 2세대 유전자 가위보다 사용하기 쉽고 비용이 적게 든다. 1세대 징크 핑거 뉴클레아제(zinc finger nucleases)와 2세대 탈렌(TALEN)은 염기서열을 배열해 제작하기가 어렵고 사용하기 불편했다. DNA 염기서열이 역방향으로 반복된 크리스퍼는 카스9 효소로 유전자를 절단한다. 예전에 비하면 아주 정교해졌으나 아직까지는 의도한 부분이 아닌 엉뚱한 부분을 잘라낼 수있다는 단점이 있다. 한 번 DNA가 잘려나가면 다시 복구할 수 없다.
값싸고 편리하고 정교한 기술이 도입되자 지금까지 식물을 이용한 식량 생산에 주로 사용하던 유전자 변형 기술이 동물과 사람으로 옮겨가고 있다. 아직도 유전자 변형 GMO 식품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이제는 아기까지 편집할 수 있게 됐다.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기술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더 나은 유전자를 가진 맞춤형 아기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 좋기만 한지는 알 수 없다.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의 인식과 여기에 대한 논의는 부진하다. 신인류를 만드는 기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최신 기술을 이해하고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인간이 기술을 지배해야지, 기술이 인간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합리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인문적이고 과학적인 교양이 대중에게 요구된다.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과학이 변화시키는 새로운 세상을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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