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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주의자

by Casey,Riley 2020.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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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더욱 심화하고, 이주민 2세들이 성년기에 진입하게 되면 선진 다문 화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사회적 갈등이 우리나라에서도 예외 없이 더욱 커질 것이라 예상되는 이 시점에서, 한국 사회가 그리고 독자들이 다문화주의 수용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류광호 작가의 장편소설 『다문화주의자』가 탄생했다. 
 
다문화주의자 
 
  
▣ Short Summary 
 
2019년 1월 기준 국내 거주 다문화인은 이미 22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전라남도 인구보다도 많은 숫자이다. 이 가운데 약 56만 명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이주 노동자들이며, 그 숫자는 매년 늘고 있다. 2018년에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제주도 예멘 난민사태나 또래들의 폭력으로 인해 숨진 인천 중학생 사건도 모두 다문화주의와 무관치 않은 일들이다. 향후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더욱 심화하고, 이주민 2세들이 성년기에 진입하게 되면 선진 다문화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사회적 갈등이 우리나라에서도 예외 없이 더욱 커질 것이라 예상되는 이 시점에서, 한국 사회가 그리고 독자들이 다문화주의 수용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류광호 작가의 장편소설 『다문화주의 자』가 탄생했다. 
 
▣ 차례 
 
1부 대립 2부 의문 3부 진실 
 
작가의 말 
 
- 2 - 다문화주의자 
 

1부 대립 
 
1. 
 
“다문화주의는 실패했습니다. 유럽을 보십시오. 자국 사회와 통합을 거부하는 600만 무슬림 인구를 거느린 프랑스를 보십시오. 그들은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섰습니다. 이번 세기 중반쯤 되면 프랑스는 다수의 백인 노령층과 그들보단 소수이지만 젊고 강력한 이민자들로 양분될 것입니다.”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진행된 그 날의 토론에 패널로 참석한 송우석이 차분하면서도 냉소 적인 얼굴로 말했다. 마른 체구에 잘생긴 얼굴,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오십 대 초반의 남자 송우석은 보수 논객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잦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게 볼 수 없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독특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시사평론가였다. 혹자는 그를 민족주의자라 규정했고 또 다른 이들은 극우주 의자라 평가했지만ㅡ우습게도 정반대로 그를 극좌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ㅡ그는 자신을 이념으로 규정하려 하는 모든 시도에 반대하며 꾸준히 독자적인 길을 걷는 중이었다. 
 
사회자는 생산가능인구 감소 추이에 근거해 이주 노동자 수용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모 교수의 논문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한 후 패널들에게 논문이 지적한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송우석은 차분한 어조로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염려하는 위기론은 과장됐으며, 이주 노동자의 한국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과대평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국내의 실업 인구와 이주 노동자의 수를 비교하며 일자리 잠식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주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공격적인 활동을 펼치기로 유명한 단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사람들’의 대표 한성주가 빠른 어조로 말했다.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열악한 분야에서 일하며 우리 경제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농업, 어업, 건설업, 주조, 용접 같은 분야에서 말입니다. 이 분야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 지만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분야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자신이 이주 노동자 2세인 한성주는ㅡ그의 부모는 이십여년 전 한국으로 이주한 조선족이다ㅡ깔끔한 외모와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진보 성향의 젊은 층들의 지지를 받는 스물아홉의 청년이었다. (중키에 하얀 피부, 검고 숱 많은 머리카락과 붉은 입술을 지닌 그는 소년적인 매력을 강하게 풍겼으며 실제 나이보다 다섯은 어려 보였다)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송우석이 말했다. “말씀하신 분야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 참여를 최소화 한다면 한국인의 일자리 수만 개가 창출될 것입니다. 주조업이나 농업 같은 영세한 분야가 한국인 고용에 따른 임금상승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요? 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데 감 
 
- 3 - 다문화주의자 
 
당하지 않고 싼값에 이주 노동자를 끌어들임으로써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주 노동자들이 싹 빠지면 농업과 주조업이 아예 멈춰설 것 같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일대신 그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지급이 이뤄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승한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사업장들도 생겨나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필요한 과정입니다. 저임금 노동력 공급이 중단되는 순간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는 사업체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정리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럼으로써 국가 전체 차원에서 보자면 산업고도화가 개별 기업 차원에서 보자면 혁신과 발전이 촉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성주는 목이 타는 듯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생수병을 집어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애써 침착한 태도로 말했다. “국내 거주 다문화인은 이미 22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전라남도 인구보다도 많은 숫자이지요. 이 가운데 약 56만 명이 일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이 땅에 온 이주 노동자들입니다. 그숫자는 매년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주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권과 일자리를 보장해 준다는 명분 아래 생긴 ‘고용허가제’로 인해 최소한의 권리도 박탈당한 채 사회적 폭력과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습니 다. 
 
고용허가제의 폐해는 2004년 도입 당시부터 제기되어왔습니다. 이주 노동자의 모든 권리가 사업주에게 일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주 노동자들은 직장을 옮기고 싶어도 사업주의 동의가 없으면 그럴수 없고, 이런 절대적인 종속 관계 하에서 부당하게 임금을 떼이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언과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요. 
 
고용허가제는 5년 이상 거주 시 부여되는 영주권 신청 자격을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주 노동자의 최대 근무 연한을 4년 10개월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낮은 수준의 임금만 지불해도 되는 이주 노동자들을 계속 고용하기를 원하지요. 그래서 정부는 사용자들의 숙련 인력 지속 고용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2012년부터 ‘성실 근로자 재입국 제도’를 실시하게 됩니다. 한 사업장에서 4년 10 개월을 일한 이주 노동자가 다시 재고용 되면 3개월간 본국에 갔다 와서 4년 10개월을 더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이지요. 그래서 도합 9년 8개월까지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거의 10년을 이 땅에서 체류하며 일한 사람들인데도 영주권조차 신청할 수없게 만드는 이 제도의 성격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것은 명백히 반인권적인 제도입니다. 철저하게 이주 목적국의 이해만을 추구하는 제도란 말입니다. 이것은…” 
 
“동의합니다.” 아직 다 끝나지 않은 한성주의 발언을 자르며 송우석이 말했다. “현재의 고용허가제는 부도덕한 제도입니다. 저는 그 제도에 의해 피해를 보는 이주 노동자의 수가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그런 주장을 해도 이 나라는 인구 구조상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이주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이주 노동자 유입에 대해 부정 적이었던 일본이 고령화의 심화로 간호 간병 인력이 부족해지자 베트남인들에게 해당 분야의 일자리를 대폭 개방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저는 심화하는 노동 인구 부족에 대한 장기적인 해결책은 현재 실업 상태인 국내 노동 인구의 취업률 제고와 청년세대의 혼인율ㆍ출산율 제고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종과 문화, 가치관 
 
- 4 - 다문화주의자 
 
이 다른 외국인의 대량 유입에서가 아니라 말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통합을 이루는 과정이 마냥 행복할 거라는 낭만주의적 공상을 버려야 한다고. 먼저 다문화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의 실패를 보고도 그 길을 쫓아간다면 그리 오랜 시일이 지나지 않아 분명히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질의응답이 20분가량 더 이어진 후 토론회는 막을 내렸다. 종훈은 토론에서 오간 내용 중 어떤 것들을 활용해 기사를 작성할지 머릿속으로 그리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2부 의문 
 
12. 
 
월요일 아침 종훈은 아침 식사를 거른 채 사무실로 향했다. 새롭게 시작할 연재 기획 기사 ‘학령인구 감소시대, 교육에 대해 말한다’와 관련해 검토해야 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인터뷰 대상자 섭외는 수민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일정만 허락한다면 인터뷰도 함께 진행하고. 
 
10시쯤 사무실에 들어온 윤 기자를 통해 한성주 사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한성주를 태운 승합차는 렌트한 차량으로 최종 행선지는 강원도 횡성의 야산이고 아마도 그곳 어딘가에 한성주의 시신이 유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현재 차량을 렌트한 사람의 신원은 파악된 상태라고도 했다. 
 
“오늘내일 중으로 용의자가 검거되겠군.”
“아마도.”
윤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용의자는 어떤 놈일까?”
“경찰은 둘 중 하나로 보고 있어. 한성주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놈이거나 아니면 한성주의 활동에 대해 불만이 있는 놈. 곧 밝혀지겠지.” 
 
종훈은 무언가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알겠어. 또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알려줘.”
그때 돌아서려는 종훈을 붙잡으며 윤 기자가 물었다.
“근데 혹시 박상훈 경위라고 알아?”
“알아. 예전에 마포경찰서가 출입처였을 때 친하게 지냈거든. 근데 박 경위는 왜?”
“박 경위가 한성주 사건 담당이야. 나한테 묻더라고, 이종훈 기자는 잘 지내고 있느냐고.”
“그래? 그거 잘됐네!” 
 
종훈은 윤 기자에게 고맙다고 말한 후 자리로 돌아가 박 경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경위는 한참 만에 전화를 받았다.
“이 기자, 이거 오랜만이네. 잘 지내고 있지?”
“네 경위님, 진작 한번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이제야 전화 드리네요. 어떻게, 잘 지내고 계시죠?”
“나야 뭐 똑같지. 근데 어인 일이야? 아까 윤정훈 기자한테 안부 좀 전해 달라고 그랬더니 그 얘기 듣 
 
- 5 - 다문화주의자 
 
고 전화한 거야?”
“네, 윤 기자한테 얘기 듣고 반가워서 전화했어요. 근데 이번에 한성주 사건 담당하시게 되었다면서 요?”
“어, 골치 아픈 거 또 하나 굴러들어온 거지.”
“제가 그 사건에 관심이 좀 있거든요. 경위님이 그 사건을 맡게 되셨다니 아주 반갑네요.”
“그럼 그렇지. 나 보고 싶어서 전화한 게 아니라 일 때문에 전화했구나.”
“경위님도 보고 싶고 사건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서 전화했죠.”
“곧 용의자 검거에 들어갈 거야.”
“어떤 놈이죠? 이름은 심승우. 나이는 스물일곱, 2년 전 대학 중퇴하고 이런 저런 알바로 살아가고 있는 녀석이야.”
“한성주랑 동년배네요. 혹시 둘이 서로 아는 사이 아닐까요?”
“모르지. 잡아서 족치면 알게 되겠지.”
내일 오후쯤 박 경위를 찾아가면 사건의 전말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종훈은 한두 가지 궁금한 것들에 대해 더 물어본 후 통화를 마쳤다. 
 
오늘은 점심 약속이 잡혀 있었다. 상대는 대학 선배 정운이었다. 정운은 9개월 전 결혼 후 남양주에 신혼집을 차리고 회사가 있는 종로까지 통근하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갑자기 연락해와 점심이나 한번 같이 먹자고 했다. 그는 서둘러 약속장소인 근처 한정식집으로 향했다. 
 
정운은 이미 도착해있었다.
“빨리 나온다고 나왔는데 늦었네. 미안.”
정운은 괜찮다고 말한 후 시간이 많지 않으니 빨리 음식을 주문하자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갈비탕을 시키자마자 정운이 말했다.
“나 요즘에 고민이 많다.”
“깨가 쏟아질 신혼에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으실까?” 
 
정운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와이프가 애를 갖는 것에 대해서 반대해.”
“형수님이 올해 몇이지?”
“서른다섯.”
“미루기에는 적은 나이가 아닌데.” 
 
음식이 나왔다. 시장기 때문인지 맛있게 느껴졌다.
“영원히 안 낳겠다는 건 아니지?”
“안 낳고 싶대.”
“그래? 왜?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거야?”
“일 그만둬야 하는 것도 싫고, 둘이서 행복하게 사는 게 더 낫대.”“형은 낳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거기다 부모님도 빨리 손주 보고 싶어 하시고.”
“형수님은 원래 아기를 싫어했어?”
“싫어한다기보다도…… 왜 그런 거 있잖아, 잃는 게 너무 크다는 거지.” 
 
- 6 - 다문화주의자 
 
뭐라고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물을 마시며 잠시 말없이 있었더니 정운이 다시 입을 열었 다.
“계속 아기 얘기할 거면 잠자리도 갖지 않겠대. 지난번에 말다툼했을 땐 자기는 마음이 확고하니까 정아이를 갖고 싶으면 헤어지고 다른 여자를 만나든지 하래. 서로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나온 말이긴 하지만 그게 남편한테 할 소리야?”
그때의 일이 떠오른 듯 정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종훈은 가볍게 숨을 내쉰 후 말했다.
“두 가지 방법밖에 없을 것 같네.”
“어떤 방법?”
“형이 형수님 뜻을 따르거나 아니면…….”
“아니면?” 
 
차마 갈라서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아이를 갖는 것.”
“설득이 안 된다니까. 그러려다 얼마나 싸웠는데.”
“형이 각서 같은 걸 써서 들고 가면 어떨까? 애를 낳으면 양육은 내가 전적으로 맡겠다. 육아휴직 후복직되면 아이 돌봐줄 아줌마를 고용하겠다. 아이 때문에 부부의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뭐 이런 내용으로 말이야.”
“내가 그런 걸 왜 써야 해? 결혼한다는 건 아이를 낳겠다는 얘기 아니야?”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잖아……. 근데 형수님은 원래 결혼 전부터 아이를 안 갖겠다고 그랬던 거야?”
“그런 얘기 하긴 했었지. 그래도 결혼하면 바뀔 줄 알았지.”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너무 성급하게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조금 시간을 두고 기다려볼 수밖에 없을 거 같네. 사람 마음 이란 게 변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근데…… 형은, 혹시 형수님 의견대로 따라줄 생각은 없는 거야?”
“애 안 낳는 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래도 상관없어. 그냥 둘만 살아도 상관없어. 근데 부모님이 손주를 원하시고…… 그리고 생각해 봐, 삼십 대야 애 없이 둘이 사는 게 좋을 수도 있겠지. 근데 사십 되고 오십 됐는데 둘만 있어 봐, 얼마나 쓸쓸하겠냐.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애들이랑 같이 놀고 그런 소리로 집안도 시끌시끌하고 이런 게 사람 사는 거지, 둘이서 우두커니 소파에 앉아 TV나 보는 게사는 거냐고?”
“그렇긴 하지…….”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어쨌든 형수님이랑 일, 잘 해결됐으면 좋겠네.”
정운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10분쯤 더 그곳에 앉아 있다 밖으로 나왔다. 정운이 말했다.
“시간 내줘서 고마워. 직장도 가까운데 종종 보자고.”
종훈은 그러자고 대답했다. 둘은 악수를 한 후 헤어졌다. 종훈은 사무실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우리 시대의 결혼생활이란 너무도 어려운 과업이 되어버렸다고. 
 
왜 결혼이 이렇게 힘든 일이 되었을까? 이전보다 여권이 신장되어서? 그럴지도. 하지만 그것은 바람직 
 
- 7 - 다문화주의자 
 
한 일 아닌가? 그렇다, 바람직한 일이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변해서 결혼생활이 힘들어졌다는 건 지나 치게 가부장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게다가 현대의 결혼생활이 예전보다 어려워진 게 어떻게 여자들만의 탓이겠는가. 남자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겠는가. 당연히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책임인가? 
 
그것은 남자, 여자 구분 없이 모두에게 해당하는 현대적 속성에 기반한 것이 분명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떠오른 단어가 ‘이기주의’였다. 자신의 이익에 극도로 민감한 현대인들은 부부관계 에서마저도 자신이라는 한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일을 진행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방식이 충돌을 불러일으켜 종국에는 서로에게 고통을 가져다준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도 할 말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자신이 살아가는 시공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현대적인 가치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 이니까. 그것을 극복하는 일은 대부분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일부 예외적으로 이타적인 놀라운 소수의 사람에게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대다수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지속해야 하는가?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다면? 그렇 다면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럼 정말로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가? 몇 가지 구시 대적인 대안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과연 현대적 여건에서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아니,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느새 사무실이 있는 빌딩 앞에 도착했다. 정답 없는 고민은 그만해야 할 시간이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3부 진실 
 
24.
용인에 있는 박 목사의 이주 노동자 쉼터는 지은 지 30년쯤 되어 보이는 상가건물의 3층에 있었다. 3 층 전 층이 다 쉼터였다. 건물 안은 외관과는 달리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었다. 모임을 할 수 있는 널찍한 공간과 주방이라고 불러도 될 규모의 탕비실이 있었는데 조금 전 그곳에서 식사를 했는지 음식 냄새가 났다. 전날 전화를 받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의 안내를 받아 사무실에 들어서자 장례 식장에서 보았던 백발의 박 목사가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아주었다. 
 
악수한 후 종훈이 말했다. “먼저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할 게 있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은 더는 기자가 아닙니다. 최근에 그만두었거든요. 제가 일을 그만두기 전 연재했던 기획 기사가 <대한민국의 미래와 다문화사회>였고, 그 기사의 일환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던 분이 한성주 대표였습니다. 한 대표의 장례 식장에도 갔었습니다. 거기서 목사님을 처음 뵈었었죠. 이렇게 목사님을 찾아뵙게 된 것은, 꼭 여쭤보고 싶은 게……” 
 
그 순간 박 목사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박 목사는 미안하다고 말한 후 전화를 받았다. 통화 내용을 들 
 
- 8 - 다문화주의자 
 
으니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이주 노동자가 노숙 생활을 하다 한국인 노숙자들에게 폭행을 당해 광대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고 입원해있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박 목사는 저녁에 병원에 들르겠다고 말한후 통화를 마쳤다. 
 
“사고가 있었던 것 같네요?” 종훈의 물음에 박 목사는 안타까운 얼굴로 2주 전까지 쉼터에서 머물다 일자리를 구했다며 떠났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근로자가 폭행을 당해 입원해 있다고 대답했다. 종훈은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느냐고 물었고 박 목사는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일어난다고 했다. 그리곤 자신 때문에 얘기가 중단되어 미안하다며 하던 얘기를 계속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제가 오늘 목사님을 찾아 뵌 것은, 기사 작성을 위한 공식적인 인터뷰 때문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목사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입니다.”
“그게 어떤 거지요?” 
 
종훈은 가볍게 숨을 내쉰 후 말했다. “목사님께서는 추도사에게 한 대표가 추구했던 일들에 대해 긍정 적으로 평가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목사님께서 지금 하고 계신 일들도 한 대표가 추구했던 일들과 같은 목표를 지닌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목사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얼마 전 한 대표의 수첩이 공개되었습니다. 그의 진실한 내면이 드러난 그 수첩에 관한 기사는 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 목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한성주 대표라는 인간에 대해,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목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으신지 말입니다.” 박 목사는 찻잔을 들어 율무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성주 형제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었지요.” 박 목사는 가벼운 한숨을 내쉰 후 계속해서 말했다. “성주 형제는 진심 으로 이주 노동자들을 사랑했습니다. 예, 저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그는 뜨겁게 그 자신도 그들 중 하나인 이주민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은 진짜였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랑을 자신의 방법으로 이루려고 했지요.”
“그게 무슨 뜻이죠? 자신의 방법으로 이루려고 했다는 것 말입니다.”
“신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에게는 인간의 방법만이 남을 뿐이며 인간의 방법으로 목적을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종훈이 듣기를 원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종교문제에 대해, 신이 있고 없고에 대해 토론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한 건실해 보였던 인간의 어두운 진짜 모습에 대해 그를 잘 알고 있는 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듣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인간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자신이 목표로 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사용하지 못할 수단은 없다고 썼습니다. 교묘한 기만은 물론이고 폭력까지도 말입니다. 목사님은 그가 일그러진 정신의 소유자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셨습니까?”
종훈은 언젠가부터 상당히 무례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 목사는 그런 종훈의 말투에 어떠한 불쾌감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 9 - 다문화주의자 
 
“성주 형제에게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성주 형제는 제게 자신이 자라면서 받아온 무수한 차별과 무시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주로 말투 때문에 그랬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은 때로는 어른 보다도 더 잔인한 법입니다. 아마도 그런 경험들이 성주 형제의 생각을 그런 방향으로 이끌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3년 넘게 보아온 성주 형제는 수첩에 적힌 글대로 행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자신의 힘으로 목적한 바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는 것, 그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거라고 말씀드립니다.” 
 
“한 대표가 그토록 이루고자 했던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목사님께서도 그것을 위해 수고하고 계신 다문화주의 말입니다.”
“저는 다문화주의를 위해 수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을 위해 애쓰고 계신 거지요?”
“제가 하는 일은 이 땅을 찾은, 상처받고 모욕받은 영혼들을 돌보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그들을 돌보고 위로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면 목사님은 다문화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다문화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런데 왜 지금 하시는 일을 하는 거죠?”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이유의 전부인가요?”
“그 이상의 어떤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다시 처음의 얘기로 돌아가지요. 저는 한 대표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만큼이나 그의 위선에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마 그런 부분에선 저보다 목사님께서 더 많이 놀라셨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떠십니 까?”
“말씀하신 위선이 성주 형제만의 문제일까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사람은 다 위선적이다, 이 말씀입니까?”
“인간이란 연약하고 모순적인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을 사랑해야만 하지요.”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도 말입니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본래의 모습이 어그러졌다 해도 그의 내면에는 아직 고귀함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박 목사는 조용히 미소를 띤 채 종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자님은 그 자체로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자격을 지닌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드물지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과 한 달만 딱 붙어 생활하게 된다면 생각이 바뀌게 될 겁니다.”
“인간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비관적이라는 단어보다는 사실적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것 같군요.”
“사실적이라? 그럴지도요.” 
 
갑자기 어떤 생각이 종훈의 마음에서 올라왔다. 그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어쩌면 저도 목사님처럼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비관적인, 아니 사실적인 견해를 가졌는지도 모르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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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저는 인간이란,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인간에게 희망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거든요.” 
 
그는 자신이 왜 이런 얘기를 지껄이고 있는 건지 의문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어쩌면 바로 거기에 인생의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은 어설픈 희망 대신 그런 절망을 직시하는 데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니 까요.”
박 목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 11 - 다문화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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