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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by Casey,Riley 2020.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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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생각하는 평소의 정치 소신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한국의 정치는 진영 논리에 빠져 민생은 나 몰라라 정쟁만 일삼고, 그래서 국민들이 정치를 멀리하고 혐오하고 또 증오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나간 역사를 살펴보면 좋은 나라는 좋은 정치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고, 그래서 정치가 중요하며, 정치를 바꾸면 우리 삶의 질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역설한다.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 Short Summary 
 
한국에서는 정치 불신이 크고, 반정치 정서가 여전히 강하다. 정치를 통해 삶이 달라지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를 바꾸려고 하는 개혁가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표현대로,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를 동시에 가져야 한다. 지성적인 판단에 따르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현실의 강고한 저항력을 차가운 지성이 헤아리기 때문이다. 반면, 의지는 계산에 따르지 않고 옳은 것이기에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가는 것인데, 세상을 바꾸는 용기는 바로 이런 의지에서 비롯된다. 
 
이 책은 저자가 생각하는 평소의 정치 소신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한국의 정치는 진영 논리에 빠져 민생은 나 몰라라 정쟁만 일삼고, 그래서 국민들이 정치를 멀리하고 혐오하고 또 증오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나간 역사를 살펴보면 좋은 나라는 좋은 정치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고, 그래서 정치가 중요하며, 정치를 바꾸면 우리 삶의 질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방법 중에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하고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진보세력과 진보 정치인들이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수단으로 정치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사회ㆍ경제적 약자들이 잘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므로, 정치는 사회ㆍ경제적 약자들의 삶을 지키고 보살피면서, 소수보다는 다수, 강자보다는 약자, 승자보다는 패자를 챙기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상대방과 다름을 인정하고 타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차례 
 
머리말 - 정치가 삶의 무기가 되려면 
 
제1장 진보의 정치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힘민주정치로 가는 길 
 
- 2 -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진보는 닫히면 죽고 열려야 산다 타협의 정치, 긍정의 정치 
 
제2장 유능한 정치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대통령은 어떻게 성공하는가?
유능한 정치인이 되려면 좋은 정치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국회, 잘하고 있는가? 
 
제3장 정치를 바꿔야 한다 인사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패스트트랙으로 동물국회는 벗어났는가?
내 삶을 바꾸는 선거제도 소득주도성장론의 딜레마 
 
맺는말 -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 3 -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진보의 정치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힘정치의 성공과 실패: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거의 없다. 그들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수적 우세뿐이다. 그런데 이 다수가 뭉쳐서 정치적 다수를 이루면 권력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민주주의로 자본주의의 권력 관계를 교정하는 것이다. 한편 정치가 이처럼 작동하지 않을 때 보통 사람들의 삶이 더 힘들어진다. 한국에 정말 필요하다고 하는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의 성공과 다름없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집단들끼리 타협할 수있도록 안내하고 중재하고 압박하는 정치가 있어야 비로소 대타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치가 풀지 못하는 과제를 사회적 대타협의 틀로 넘기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물론 정치에서 진영 대결이 치열하고 정파 간 분열이 극심한 탓에 정치를 통한 타협이 더 어렵기 때문에 사회적 대타협이 우회적이거나 대안적인 해법으로 제기되는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치를 우회하거나 심지어 부정하는 사회적 대타협 해법은 실현 가능성도 적지만,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그리고 정치를 통하지 않은 대타협은 소수의 담합 거래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예로 자본과 노동자 간의 타협을 도모할 때 전체 기업과 전체 노동자 간의 상생이 아니라 대기업과 그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조합 간에 타협이 모색되고 실현되는데, 이를 대타협이라 할 수는 없다. 
 
정치의 기본 역할은 시장의 불평등과 차별을 시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에서 강자들의 횡포를 막고, 약자들의 삶을 지키고 보살피는 것이다. 정치가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는 데 기여할 때 그 사회는 좋아 진다. 소수보다는 다수, 강자보다는 약자, 승자보다는 패자를 챙기는 사회 시스템이 작동한다. 
 
한편 정치에는 2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시장에 개입하지 않거나 못하도록 하는 정치다. 정치는 나쁘고, 더럽고, 유해하다는 전제하에 정치의 영역을 축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정치의 정치’라고 부른다. 또 하나는 시장의 불합리성과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가 개입하는 것이다. ‘1인 1표’의 민주 주의를 통해 ‘1원 1표’의 자본주의를 조절하는 정치다. 이는 ‘반시장의 정치’라고 부를 수 있다. 크게 보면 반정치의 정치가 득세하는 나라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어렵다. 반면 반시장의 정치가 득세하는 나라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편하다. 물론 ‘반’정치, ‘반’시장이라고 해서 이 ‘반’이 부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항우울, 항정신성 등의 단어에 쓰이는 ‘항(抗)’의 의미다. 
 
세상을 바꾸는 힘: 반시장의 정치는 불가피하게 반정치의 정치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정치가 보통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개선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그 정치의 효능이 체감되지 않을 때 정치는 잊히거나 거부된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도입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에 의한 민주정치가 자동적으로 변혁적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라, 진보세력과 진보 정치인들이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수단으로 정치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때 가능해진다. 
 
- 4 -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민주정치와 선거의 경험이 쌓이면서 최근 정치를 ‘발견’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더불어 정치를 ‘은폐’하는 움직임 역시 커지고 있다. 따라서 진보가 치러야 할 첫 번째 싸움이 바로 대중이 정치를 발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반시장의 정치가 그 효용성을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체감시켜줄 때 정치가 그 본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정치를 발견하게 되는 까닭은 그들의 주체적 자각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적극적 노력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진보는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데 아주 둔하다. 유능이냐 무능이냐 잣대로 나누면 무능에 가깝다. 진보가 집권한 3번의 선거를 보면 모두 정치를 통해 집권했다고 보기 어렵다. 1997년 대선에서는 보수가 초래한 IMF 사태 때문에 진보가 반사이익을 누렸다. 2002년 대선에서도 진보는 보수에 밀리고 고전하다가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라는 극적 이벤트로 판을 뒤집었다. 후보단일화는 선거연합의 한 예이기 때문에 정치를 통한 집권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의 단일 화는 연합의 명분, 정책, 운영 방안 등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다. 유럽에서 많이 보이는 연합과는 다른 것이었다. 2017년의 대선 승리도 촛불시위라는 시민봉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진보는 상대방의 대형 실패나 시민의 대중적 저항 또는 필사적으로 시도해 얻은 스턴트 액션과 같은 예외적 요인이 아니라 정상적인 상태에서 평소 실력으로 승리하는, 다시 말해 비전과 정책과 인물로 다수연합을 만들어냄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하고, 설사 운 좋게 승리했더라도 집권을 통해 진보적 가치와 정책이 대세를 이루는 새로운 정치 질서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진보는 도전자나 저항 세력이 아니라 주류나 주도 세력으로서 그 위상을 명실상부하게 보여줄 때다. (2019년 3월 1일) 
 
진보는 닫히면 죽고 열려야 산다 멋진 이상과 거친 현실: 진보든 보수든 이념이란 세상을 이해하거나 살아가는, 또는 바꾸는 방법과 다름없다. 누구나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더 좋은 삶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하나의 논리적 방편 으로 만들어진 것이 이념이라는 이야기다. 사상도 마찬가지다. 이념이든 사상이든, 또는 패러다임이든 결국에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그런데 아무리 거창한 이상이라도 그것이 현실에 발을 딛고 서지 않으면 허상이 된다. 그리고 또 아무리 정교하게 마련된 이상이나 비전이라도 현실의 무궁무진한 변화를 모두 담아낼 수 없다. 그 때문에 현실의 변화에 맞게 이상이나 비전을 조응시켜야 한다. 
 
그런데 현실만 보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절망이다. 소수의 강자가 늘 승자가 되고, 다수의 약자는 패자로서 낙오되고 배제되는 현실이기에 이상과 비전은 필요하다. 이념으로서 진보가 보수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모름지기 더 나은 세상을 그리고 추구해야 진보다. 여기까지는 쉽다.
난제는 지금부터다. 비전과 이상을 다소 수정하더라도 실현하는 데 치중할 것인지, 아니면 완강하게 애초의 비전과 이상을 고집할 것인지, 이 고민을 피할 수 없다. 이상과 현실 간의 관계를 딱 부러지게 규정할 수 없다. 때에 따라 다르고, 케이스마다 또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다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현실에 발을 딛고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전적으로 옳다.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열림과 닫힘: 대한민국의 진보정치 세력은 닫혀 있다. 진보는 본래 새로운 세상으로 열림(open)을 추구하기에 닫힘(close)은 진보와 애당초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땅의 진보는 닫혀 있다. 낡은 교조에 매달려 습관적으로 변화를 거부한다. 뭐든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고 하면 ‘안 된다, 하지 마라’는 주문만 외운다. 오랫동안 저항 세력, 소수파, 비주류, 야당의 입장에 서 있었기에 수구세력의 온갖 악행을 막고자 이런 행동 양식이 생겨났고 마땅히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집권 세력, 다수파, 주류, 여 
 
- 5 -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당의 입장이 되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때와는 다르다. 의회 의석에서는 여전히 과반에 못 미치지만,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세력이나 구도에서는 확연하게 다수파가 되었다. 권력을 잡고 국가 운영과 시대 경영의 키는 이제 진보가 쥐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수파 열등감에 긴박되어 있다. 다수파 자신감을 보여주지 못한다. 여전히 현실에서 생겨나는 혁신의 욕구를 받아들이기 주저한다. 단언컨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진보는 절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없다. 정치적 진보의 DNA는 담대한 혁신이다. 낡은 원칙에 집착해 어떤 변화든 ‘안 된다, 하지 마라’고 하면 더 나은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성공이든 실패든 도전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정치를 통해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정치 문법을 수용해야 한다. 정치는 수의 게임이다. 다수를 형성해야 집권할 수 있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다. 다수파가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 다수파가 되기를 고려하지 않으면 그것은 정치 문법이 아니라 운동 문법이다.
운동(movement)은 다수냐 소수냐 하는 것보다 옳고 그름의 차원이 중요하다. 당장 실현하기보다 안되더라도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주창해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타협이다. 주고받는 게임, 서로 양보해서 절충하는 게임이 바로 정치다. 내가 다 얻거나 큰 것을 얻고 상대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거나 조금 양보하는 것으로는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말 꼭 해야 하는 경우면 더 많은 것을 양보하고 서라도 타협해야 한다. 단단한 정체의 벽을 뚫고 변화의 단초를 마련하는 것이 절실할 때에는 그렇게 해야 한다. 이 정치 문법은 진보든 보수든, 또는 새 정치든 헌 정치든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의 적대적 공존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수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데 집착하지 말고, 보수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연연하지 말고 보통 사람의 삶을 보아야 한다. 더 크게 보고, 더 넓게 합치고,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보수를 이기기 위해 안달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진보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떤 변화를 선택하거나 불가피하게 타협할 때 나중에 맞아 죽을 수 있다는 각오가 필수적이다. 그런 모험 없이 안전한 선택만으로 세상이 더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고 또 오만이다. 더 나은 세상은 진보에 더 많은 결단과 타협을 요구한다. 
 
정치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진보에 맡겨져 있다. 그런데 그 진보를 표방한 정치세력은 여전히 닫혀 있다. 용기가 없다. 정치를 잘 모른다. 상상력이 부족하고, 결단력은 모자란다. 낡은 교조에 빠져 현실에서 생겨나는 온갖 혁신의 움직임과 변화의 몸부림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고 있다.
좋은 예가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 내 갈등이다. 
 
2018년 10월 어렵사리 법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이 법의 내용을 놓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벌어진 갈등은 대한민국에서 진보를 표방한 정치세력의 문제점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금산분리 완화는 안 되며, 이 법이 자칫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줄 수 있으니 안 된다는 지적도 충분히 타당하다. 특정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 금산분리의 목적인데, 이 법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반론도 수긍할 만하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권력을 잡고 있는 세력이다. 현실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을 활성화해야 하고, 현실적으로 합의 가능한 방법이 제한적이라면 타협할 용기를 내야 한다. 그 법에 따라 어떤 결과가 만들 어질지는 권력을 잡은 더불어민주당 하기 나름이다. 과정을 관리하고, 좋은 결과를 내도록 하라고 국 
 
- 6 -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민이 준 것이 바로 권력 아닌가. 어떤 흐름이든 가능하면 물꼬를 터주어야지 무조건 막는 것은 하책이다. 철 지난 교조에 얽매여 무조건 ‘안 돼’라고 하는 완강한 태도에서 정체성 정치의 흔적을 느꼈다면 과민한 탓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진보가 열망했던 것 중에 일부 잘못 판단한 것으로 드러난 것도 없지 않다. 단적인 예가 로스쿨의 도입이다. 크게 보면 로스쿨의 도입은 득보다 실이 많다. 이런 사례를 통해 진보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다름 아닌, 우리가 오랫동안 견지해온 원칙이라도 현실의 요구에 따라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조주의는 안 된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넘어 수구일 뿐이다. 진보는 제자리걸음 하지 말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진보는 최소한 정치에서 닫히면 죽는다. 열려야 산다. 결국 열린 진보만이 답이다. (2018년 11월 1일) 
 
유능한 정치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좋은 정치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진보정치의 조건: 무엇이 유능한 정치를 가능하게 할까? 선거 때마다 수없이 반복해서 사람을 대거 바꾸는 물갈이 공천을 하고, 스펙이 좋거나 심성이 착하거나 잘 알려진 사람들을 발탁해도 정치의 질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정치와 유권자 간에 만리장성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정치를 풀고 정치의 역동 성을 열어야 한다. 이것이 정치가 유권자나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삶에 반응하도록 하는 유일한 해답이라 할 수 있다. 또 사람만 볼 뿐 좋은 정당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것도 다른 이유다. 좋은 정당이 존재해야 좋은 정치가 가능하다. 다수대표제에 의한 인물 중심의 정치보다 비례대표제에 의한 정당 중심의 정치에서 더 나은 사회가 가능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확인된다. 정치의 기본단위를 인물보다 정당에 두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그래서 선거제도가 중요하다. 
 
고민해야 할 게 하나 있다. 착한 인물과 좋은 정치인의 상관관계다.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좋은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어렵다. 선의와 신념을 말하는 정치인일수록 정치 문법에 약해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거나, 심성이 착할수록 타협에 주저하기 쉽다. 사과나무에 대한 평가는 사과의 맛으로 평가해야 하듯이, 정치인은 성과로 평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정성의 정치는 유능한 정치의 등장을 저해한다. 정치에서는 선의보다는 결과, 마음보다 실력이 핵심이다. 
 
좋은 정치인은 지능지수나 스펙, 인격, 인지도 등과 상관없이 누구를 대표할 것인지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실천하는 정치인이다. 이런 정치인, 이런 정치 활동이 정치ㆍ사회적으로 보상 받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또 대표되는 유권자들과 조직적ㆍ정책적 연계가 튼실해야 한다. 결국 추상적으로 말하면 유권자의 이해와 요구, 선호와 열정에 충실한 정치인이 유능해진다. 그런 정치인이 보상받는 시스템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프레임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진보는 사회경제적 프레임을 가동할 수 있을 때, 이 프레임 속에서 보수와 대비되는 ‘쉽고 간명한’ 이슈를 부각하면서 차별화할 수 있을 때 승리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패배한다. 일반적으로 진보는 정치ㆍ도덕적 프레임으로 승리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분단체제의 효과까지 있어 더더욱 그렇다. 
 
- 7 -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가 패배하고, 2010년 지방선거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이유는 간단하다. 전자는 사회경제적 프레임에서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후자는 그것을 보여주었다. 2010 년 지방선거는 무상급식이라는 쉽고 간명한 이슈로 복지에 대한 정당 간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복지 프레임이 천안함의 안보 프레임을 제압했다. 
 
한편 정치의 소임은 갈등의 사회화에 있다. 사회화는 숱하게 많은 부분 갈등을 한 사회가 풀어야 할과제로 제기하는 한편 그것을 개인적 부담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어떤 갈등ㆍ균 열을 사회화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 사회의 성격과 질, 힘의 관계 등이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누가 권력을 잡는지도 여기에 달려 있다. 어떤 갈등을 사회화해서 국가 의제로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이 정치 세력의 실력을 가늠하는 첫 번째 지표다. 
 
등장한 갈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정치적 성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김용균의 죽음을 개인적 사고로 보느냐 사회적 참사로 보느냐에 따라 그 파장은 사뭇 다르다. 이렇듯 하나의 갈등을 어떻게 정의 하는지는 정치세력 간의 경쟁이나 선거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그런데 갈등을 대체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 정치세력이 A 갈등을 의제화하려고 하면, 다른 정치세력은 B 갈등을 의제화하 려고 할 수도 있다. 어떤 갈등을 의제화할 것인지를 두고 정치세력 간에는 치열한 다툼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선택된 갈등이 곧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대표하고자 하는 자신의 지지층에게 필요한 갈등을 의제화해내는 것이 정치세력의 일차적 과제 라면,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대표하는 진보세력은 사회경제적 어젠다를 부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수를 점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계층적 이해관계를 잣대로 정치를 바라보고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선택된 의제들이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틀이나 갈등 구조를 어젠다 세팅이라 부를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의제화와 이슈화가 다르다는 점이다. 의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정치적 경쟁이나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안이한 판단이다. 의제화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갈등을 부각하는 것이라면, 이슈화는 그것을 중심으로 정치적 경쟁이 펼쳐지거나 대중적 호오(好惡)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2012년 대선을 상기해보면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민주통합당(현재 더불어민주당)은 복지와 경제민 주화를 초반에 의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새누리당(현재 자유한국당)이 기존의 태도를 바꿔 복지와 경제민주화 의제를 수용해버리자 이 의제는 선거의 쟁점으로 등장하지 못했다. 의제화에는 성공 했으나 이슈화는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의제화는 어떤 갈등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것이고, 이슈화는 갈등 해법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것이다. 정치나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이슈화다. 간혹 의제화만으로 승리하기도 하지만 결정적 요인은 이슈화 여부다. 
 
정치세력의 실력도 이슈화에서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성패가 의제화 여부에 있는 만큼 진보정당 ㆍ세력은 보수정당ㆍ세력과 다른 차별화된 해법을 손에 잡히게 보여주어야 한다. 쉽고 간명한 쟁점으로 양자의 차이를 드러나게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좋은 시도에도 지지층의 동원과 확충에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반론도 강해지게 된다. 
 
책임정치인의 조건: 좋은 정치인은 유권자의 삶에 대해 알아야 하고, 그 삶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정치인이 유권자의 삶에 대해 알게 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보통의 삶을 
 
- 8 -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살고 있는 사람 중에 정치인을 배출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변호사나 의사, 교수 등 성공한 사람보다 사회경제적 약자라 할 수 있는 노동자나 농민, 자영업자 등이 더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사회경제적 약자나 저소득층 출신이더라도 얼마든지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국회의원이 누리는 지위에 따른 효과(지위 효과), 그가 부득불 권력을 다루어야 하는 것에 따른 효과(권력 효과), 언론 등의 집요한 길들이기, 동료평가 등으로 인해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당위적으로 유권자의 삶을 챙겨야 한다고 한들 그의 정치적 성패가 그것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면 그를 강제하기 어렵다. 인센티브가 유권자를 향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성패의 핵심 요인이 공천이기 때문에 계파나 실세를 향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유권자의 삶을 알게 하고, 유권자는 정치인의 활동에 대해 알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경쟁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 등 직능단체, 각종 결사체의 정당 연계가 필수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대중적 명망 성이 아니라 조직적 연계성을 중시하도록 해야 한다. 추상적인 대중이 아니라 구체적인 집단이나 계층을 대표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인이 유권자의 삶에 책임을 지게 하려면 무엇보다 선거에서 상벌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책임지는 정치인이 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막스 베버는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단련된 실력, 그런 삶의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단련된 실력, 그것을 내적으로 감당해낼 수 있는 단련된 실력이다.” 실력을 갖추고 책임 윤리를 따르는 정치인,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인은 이런 책임 정치인이다. (2019년 4월 1일) 
 
정치를 바꿔야 한다 
 
소득주도성장론의 딜레마 역효과, 무용, 위험의 명제: 앨버트 허시먼이 멋진 통찰이 담긴 책을 펴냈다. 영어 원제는 『 The Rhetoric of Reaction』인데, 한글 번역서의 제목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다. Reaction은 반동 또는 반작용을 뜻한다. 이것은 Action, 즉 작용에 대항하는 움직임을 뜻한다. 그런데 Reaction이 반드시 보수만을 뜻하지 않는다. 보수의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이 Action이고, 그것을 저지하려는 움직임이 Reaction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Reaction이 보수의 몫이다. 반대로 진보의 세상을 바꾸려는 Action이 있다면, Reaction은 진보의 몫이 된다. 상대적인 것이다. 진보도 얼마든지 Reaction, 즉 반동이나 반작용일 수 있다. 물론 허시먼의 설명대로 이 책에 제시된 세 명제는 기존의 혹은 새로운 진보적 정책에 대한 보수파의 비판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쓰이는 것은 맞다. 
 
허시먼은 이 책에서 반동 또는 반작용의 담론(전략)을 3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는 역효과 명제다. 작용이 엉뚱한 결과를 낳는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무용 명제다.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셋째는 위험 명제다.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는 이야기다. 어떤 것이든 새로운 시도에 반대하거나 현실의 변화를 저지하고자 할 경우에는 이 3가지 담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다. 
 
허시먼의 설명대로, 지금 이 순간 소득주도성장을 반대하는 주장도 이 세 명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향상시켜준다고 하더니 반대로 그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지 않는가. 일자 리에 수십조 원을 쏟아 부었지만 아무 효과가 없지 않는가. 멀쩡한 경제를 파탄에 빠트리고, 자영업자 
 
- 9 -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들과 소상공인들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지 않는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확실한 것은 세상의 거의 모든 변화나 혁신이 처음에는 이런 세 명제의 비판에 직면했다는 사실이다. 
 
역효과, 무용, 위험의 명제가 먹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성 질서가 갖는 힘 때문이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질서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질서에 득을 보는 세력이나 개인들이 있기 때문에, 현 질서에 대한 심리적 복속 때문에 그것을 깨기란 쉽지 않다. 다른 한편 새로운 질서라는 것이 금방 손에 잡힐 정도로 구체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부득불 현실 세력과 개혁 세력 간의 갈등이 불편함과 적지 않은 비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초지일관 변화를 지지하기도 어렵다. 
 
불가피, 호용, 정의의 명제: 개혁은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바꾸려고 하면 저항이나 반대가 있기 마련이고, 그 반대 담론이 3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개혁 또는 가치중립적 용어로 작용(action)도 이에 맞설 대항 담론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첫째, 불가피 명제(inevitability thesis)다. 지금 이대로 갈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싫든 좋은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숱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현실에 순응해서는 더 나빠지는 것, 다 같이 힘들어지거나 최악의 경우 공도동망(共倒同亡)하게 될 것이므로, 개혁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잘 설명하면 그것이 곧 개혁을 위한 동력을 만들어내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둘째, 효용 명제(utility thesis)다. 개혁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게 되고, 사회는 더 좋은 세상 으로 바뀌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명제는 실질적인 성과를 통해 변화가 삶에 가져다주는 유용함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혁 성공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손에 잡히는 혜택이나 유용 함을 더 많은 사람이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개혁 전략의 핵심이다. 
 
셋째, 정의 명제(justice thesis)다. 개혁은 현실에서 정의롭지 못한 측면과 요소를 개선하는 것이다. 인간 삶은 정의를 향한 여정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정의에 부합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인류의 삶은 천천히 때로는 급속하게 나아져왔다.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복잡하고 상충되는 모순 덩어리의 다면체지만 인간 본성에 정의가 들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정의를 향한 열망을 자극 해야 반대나 반작용의 저항을 뚫을 수 있다.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 뭔가를 바꾸려고 하는 개혁가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표현대로,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를 동시에 가져야 한다. 지성적인 판단에 따르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현실의 강고한 저항력을 차가운 지성이 헤아리기 때문이다. 머리 좋은 사람이 세상과 더 쉽게 타협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런 측면을 지적하는 것이다. 반면, 의지는 계산에 따르지 않고 무작정 버티는 것이다. 옳은 것이기에,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기에 가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용기는 바로 이런 의지에서 비롯된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인의 덕목으로 거론한 것이다. 내용적으 로는 그람시의 지적보다 날카롭다. 현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대안까지도 고민하는 것은 서생적 문제의식이다. 깊이 연구한 학자가 현실의 문제를 올바르게 진단하고, 다른 세상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그려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문제의식을 구현할 능력은 또 다른 차원이다.
부모에게조차 이윤을 남긴다는 상인의 철두철미함, 장사 수완, 거래 기술 등이 필요하다. 그냥 좋은 생각만으로 덤벼서는 이길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이길지 그 방법을 알아야 한다. 
 
- 10 -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대개 개혁가나 더 나은 세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진보는 비전에 강하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동참하게 하려면 새로운 세상이 정치(精緻)하게 그려지고 설명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개혁가나 진보는 논리(logic)에 강하다. 현실의 무엇이 잘못이고, 그 잘못을 대체하는 바름이 무엇 인지 등을 빈틈없이 따진다. 논리를 추구하다 보니 다른 주장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는 데는 인색하다.
조금씩 열어주면 어느새 남아 있는 게 없어지기 마련이니 비타협적일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비전을 마련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쓴 탓에 개혁가나 진보는 그 비전을 어떻게 구현할지를 살피고 따지는 전략에 둔하다. 유능함보다는 선명함을 우선시한다는 이야기다. 그 때문에 개혁을 할때 자칫 작은 실수로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흔히 말하듯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사지성패 필유소생(事之成敗 必由小生)이라는 『회남자』에 나오는 말도 있다. 일의 성공과 실패는 반드시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유능한 진보의 지평은 전략에 눈을 뜰 때 비로소 열린다. 
 
현실을 보자. 소득주도성장을 내걸고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면, 그에 대한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그 이전과 달리 16.4퍼센트(2017년), 10.9퍼센트(2018년) 인상하면 혼란이나 잡음은 불가피하다(2019년에는 2.9퍼센트가 인상되었다). 예상되는 혼란을 차단하고, 잡음을 제거할 수단과 계획을 준비하고 치밀하게 실행했어야 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이런 일에 능숙하게 대비하지 못했다. 고작 한 짓이 일자리 안정자금을 투입했을 뿐이다. 임금의 산입 범위를 먼저 정리하지도 않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압박을 받을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헤아릴 대책이 부족했다. 좋은 일도 실행을 잘못하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는 법이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은 더 어처구니없다. 안 맞아도 될 매를 맞은 셈이다. 국민연금 개선안을 정부가 공식 발표한 것도 아니고, 개선책을 준비하는 기구에 참여한 인사들이 슬금슬금 흘린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인양 받아들여졌다(2018년 8월 정부가 국민연금 재정 고갈 시기를 늦추기 위해 보험료를 인상하고 지급 시기를 65세로 늦추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논란이 커지니 휴가 중이던 주무장관이 입장문 하나 낸 것이 전부다. 아직 최종안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다 공식 발표하 지도 않았으니 공식 대응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거라면 참 한심한 무능이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DOP(Dissent, Opposition, Performance)가 중요하다. 아무리 원대한 포부를 가진 비전도 내부의 이견(Dissent) 때문에 허망하게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대의 저항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이견이 더 치명적이다. 특히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경우 상대의 힘은 많이 약화되었을 것이므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그만이다. 문제는 내부의 의견 다툼이 갈등으로 발전하고, 그것이 지지층 균열로 이어지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백약이 무약이다. 
 
반대(Opposition)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든 반대가 없는 경우는 없다. 어차피 있는 반대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핵심이다. 반대를 무작정 외면하거나 힘으로 제압하는 것은 하책이다. 잘 통하지도 않는다. 반대 진영과 지루한 논쟁으로 힘겨루기를 벌이는 것은 중책이다. 이 또한 실익이 별로 없다. 가장 좋은 것은 반대의 토대를 허무는 것이다. 반대하지 못하도록 충분히 협의하고, 설사 차이를 좁히지 못하더라도 더는 설득력을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상책이다. 
 
마지막으로 성과(Performance)가 필요하다. 불가피한 선택이고, 정의에 부합하고, 결국 도움이 되는 길이라 할지라도 마냥 성과가 없으면 지치기 마련이다. 잠깐 걷는 산책이 아니라 계속 걸어야 하는 장 
 
- 11 -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정이라면 더더욱 성과를 통해 행복한 변화를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던가. 사실과 상관없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과 일자리가 줄어들 었다는 뉴스는 치명적이다. 나중에 좋아질 것이라는 설명만으로 이들의 불만과 허탈함을 달래기 어렵다. 이제 못 참겠다는 심리적 임계점(mental tipping point)을 넘기 전에 분명한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2018년 10월 1일) 
 
 
 
- 12 -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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