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부부가 겪는 절망과 아픔, 그리고 아기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과 심경, 그 험난한 과정을 가슴 저릿하게 쓴 에세이다. 보통 입양 가족은 입양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은데 글쓴이는 훗날 아이가 자랐을 때 “우리 딸이 되어주어 고맙다”고 당당하게 밝히려 한다. 여전히 입양을 망설이는 많은 난임 부부들에게 입양에 대한 정보와 마음가짐,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해주는 따뜻한 글이다.
서툰 가족
▣ Short Summary
제3회 경기 히든작가 공모전 당선작. 난임 부부가 겪는 절망과 아픔, 그리고 아기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과 심경, 그 험난한 과정을 가슴 저릿하게 쓴 에세이다. 보통 입양 가족은 입양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은데 글쓴이는 훗날 아이가 자랐을 때 “우리 딸이 되어주어 고맙다”고 당당하게 밝히려 한다. 여전히 입양을 망설이는 많은 난임 부부들에게 입양에 대한 정보와 마음가짐,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해주는 따뜻한 글이다.
▣ 차례
1부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다고 끝나지 않는 하루 / 매일 한 번은 최후를 생각한다 / 난임의 끝에 서서 나라는 주제 / 엄마가 아니어도 너를 사랑해
2부 지난하고 오랜 우리의 출산 가보지 않은 여행을 떠나려 해 / 49개의 서류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 오늘 아기를 만나러 갑니다 집으로 가는 길 / 가슴으로 낳았다구요 / 사실 난 엄마를 미워해
3부 가족이 되어가는 방법 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름이 고민이지 말입니다 / 까꿍, 엄마가 여기 있어밥 잘 못하는 예쁜 엄마 / 이제 어린이집에 가도 될까요 / 벚꽃이 피어도 피지 않아도 우물 위로 핀 하늘 / 햇님을 닮은 아이
4부 편견에게 전하는 인사 실례지만 입양한 사람 처음 봐요? / 기도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 편견에게 전하는 인사둘 중 누군가가 아닌 우리 / 보통의 이기심 / 숨은 행복 찾기 / 오늘도 안녕합니다내 딸의 엄마에게
글을 마치며 : 아이를 갖고 싶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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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가족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다고
‘나’라는 주제 말하지 않은 벌: “네 저는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 그래, 형은 괜찮아.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나보다 OO이를 더 사랑하시나보다. 괜찮아.”
수술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첫 밤을 보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지만 밥을 해먹고 빨래도 했다.
깊이 잠든 남편의 얼굴을 보자 낮에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들으려던 것은 아닌데 입원실 문 앞에서 통화 내용이 들려왔다. 시댁 식구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안부 전화였다. 하지만 우리보다 누군가를더 사랑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발언에 피가 솟았다. 그럼 나는? 위로도 좋고 화목도 좋지만 지금은 우리만 생각해야 되는 때 아닌가. 나는 신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아이를 갖지 못하고 누구는 사랑받 아서 쉽게 아이를 갖는 것인가.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운명 같은 것. 내가 믿고 기도했던 신은 그런 존재인가. 내가 사랑한 남자는 지금까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걸까.
잠을 잘 수 없었다. 말할 사람이 없어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용은 알 수 없다. 분노라는 단어에 모든 것을 담기에는 뜨거움이 너무 컸다. 저주의 말이었던 것 같다. 나를 향한 저주. 아침이 되고 싸움이 일어났다. 싸워서는 안 되는 시간에 갈기갈기 찢어졌다. 다시 담기 어려운 말들을 서로 쏟아냈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내가 다 복수하고 말 거야!” “그만해! 도대체 당신이 우리집에 한 게 뭔데?”
정신이 들었다. 아니다. 정신이 나갔다. 남편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흐려졌다. 머리가 빙글빙글. 빈혈도 없는데 왜 이러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뭐라고 소리라도 내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설마 내가 죽은 건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 “장모님, 혜연이는요?” 퇴근하면 남편은 다급하게 나를 찾았다. 좋아하는 초콜 릿을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소담하게 핀 꽃다발을 품에 안겨주기도 했다.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얼마나 잤는지, 약은 잘 먹었는지 꼼꼼히 물었다. 다리를 주무르고 얼굴을 살폈다. 별안간 울컥하며 손을꼭 잡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우리 여행 갈까?” “…….” “당신이 조금만 움직일 수 있게 되면 우리 여행 가자. 당신 유럽에 가보고 싶어했잖아. 신혼여행 때 가보려고 했던 체코에 갈까? 프라하 말이야.” “…….”
답은 할 수가 없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고 싶은데 여전히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모든게 귀찮다. 지난 일 년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남편도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을 시작했다. 서재에서 목놓아 우는 그를 달랠 방법이 없다. 그는 어떤 기도를 하고 있을까. 잠이 다시 쏟아진다. 꿈속에서 상담 사를 만났다. 아마 꿈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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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불쌍한 사람아, 왜 그렇게 말을 못 해.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나 죽겠다고 말을 해야 알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고ㅡ 이게 다 내 잘못 때문이냐고ㅡ 화를 내라고! 억울해 죽겠다고!!” “… ….” 꿈인데 역시나 한마디도 뗄 수 없다. 따라해 보고 싶은데 입술이 얼어붙었다. 상담사의 얼굴이 검은 괴물이 되어 나를 덮친다. 악몽이다. 식은땀이 흐른다. ‘말할게요. 이제는 말할게요.’ 손바닥을 마주 비볐다.
사람들로부터 종종 말 좀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편한 감정들을 쌓아두지 말고 그때그때 이야기하 라고. 참고 참다가 폭탄이 되어서야 터뜨리니 당하는 사람이 황당하지 않느냐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말하는 것이 어렵다. 혹시라도 상대방의 마음이 상할까봐 눈치가 보이고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두렵다. 하지만 결국 내 감정을 돌보지 못해 폭발하고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준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상이자 벌이었다. 말하지 않음으로 상대방이 끊임없이 나를 관찰하고 돌보게 되었고, 말하지 않음으로 생각이 멈춰 고통받지 않았다. 그리고 말하지 못함으로 보복성 핵폭탄 발언을 금지 당했다. 눈을 뜨니 남편이 보인다.
“여보, 혜연아… 미안해, 정말 몰랐어. 당신이 그렇게까지 마음 아픈 줄. 난 그냥 당신도 나 같을 줄알았어.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그렇구나, 내 인생에 아이를 주시지 않는구나 받아들이자. 당신이 그렇 게까지 아이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어. 난 그냥… 우리 둘이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당신도 알잖아… 내가 장남으로 커온 거. 내가 좀 힘들고 불행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행복이 나에게는 더 중요했어. 나는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었어. 당신이 내 아내니까, 당신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정말 미안해. 당신 마음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이렇게 아프게 해서.”
신혼 초, 남편은 고3 수험생처럼 바빴다. 이직한 직장 적응에 실패했던 나는 패배자로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나. 바쁜 남편을 원망할 수 없으니 아이가 생기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 외로운 시간도 끝. 직장인도 엄마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도 끝. 주변 사람들의 부당한 요구도 아이를 핑계로 단칼에 끝. 얽혀 있는 섭섭함을 아이로 풀어내려 했다. 나의 존재 가치를 아이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 순간을 상상하며 병원에 다녔다. 하지만 매달 임신 테스트기의 한 줄보다 남편의 무관심에더 낙담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의 편이 아니라는 것. 부부라는 이름으로 맺어졌지만 고통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 격렬한 전쟁을 겪은 전우가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다. 그와 나는 우리에게 들이닥친 사건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불필요하게 서로를 살피느라 다름을 살피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어쩌면 사랑 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더 큰 이해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마음 좀 알아달라고, 나좀 봐달라고 싸운 것이겠지.
울 수 있다면 울고 싶다. 나도 미안하다고. 무작정 몰아붙이기만 해서 미안했다고, 그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기를 바랐다고. 나 역시 당신 입장과 생각,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다고.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만들지 못하면 실패할까봐 두려 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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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할까요?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
봉사활동 다녀온 날은 낯빛이 다르다며 남편이 물었다. 좋으니까 좋은 거지 좋은 걸 어떻게 말로 다표현할 수 있을까. 아기들을 만난 지 반년째, 남편도 따라나섰다. 입이 닳도록 칭찬한 홍이도 만나고 신생아 여드름 때문에 사춘기 형아 같은 요한이도 만났다. 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아 말이 서툰 정이도 만났다. 남편은 네가 정이구나, 요한이구나, 홍이구나, 한눈에 알아보며 반가워했다. 나는 보았다.
그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그동안 나 때문에 내색도 못한 채 가슴 한켠에 움켜쥐고 살았음을.
틈이 보이면 아기들 옷과 신발을 샀다. 그리고 틈이 없던 가을, 공모전에 나갔다. 상금 타서 아기들 크리스마스 때때옷을 사는 것이 목적이었다. 뒷걸음치다 얼떨결에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12월 24 일, 남편 옷밖에 살 줄 몰랐던 내 손에 아기들 내복 박스가 들려 있었다. 감사하게도 민망한 소문을 접한 남편의 지인 한 분이 지속적인 후원을 약속했다. 바쁜 자신을 대신해 좋은 일을 해달라고. 나는 아기 옷가게의 만수르, 아니 메신저가 되어 아기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날랐다. 사연을 궁금해 한 옷가게 사장님이 자신도 꼭 동참하고 싶다며 아기 양말이며, 손수건, 인형 등을 매번 챙겨주었다.
아기 바라보는 것이 힘들어서 시작한 일이다. 내 아이가 없어서 허전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 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나를 ‘아이가 없어 슬픈 사람’으로 정의했지만, 아기들은 나를 ‘반갑고 헤어지면 섭섭한 사람’으로 대해주었다. 나는 아기들을 ‘베이비박스 아기’가 아닌 ‘사랑둥이’의 시선으로 보았다. 우리는 서로를 편견 없이 마주했다. 엄마가 아니어도 사랑할 수 있다. 그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었고, 그 사랑으로 나는 두려움의 껍질을 또 한번 벗었다.
결혼 전, 오랜 시간 청첩장 문구를 고민하던 남편이 성경 말씀 하나를 보내 왔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허투루 보았던 그 말씀이 오늘따라 더 가슴에 닿는다.
지난하고 오랜 우리의 출산
49개의 서류,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입양을 합니다: 이후로도 서류 제출은 끝없이 이어졌다. 두 달을 기다려 부모교육 이수증을 받았고, 유효기간이 지난 서류들을 다시 제출했다. 두 차례의 가정방문 끝에 가정방문 조사서가 나왔다. 아기를 입양한 뒤 필요한 서류가 추가되었고, 법원 판결이 난 이후에는 행정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것들이 뒤따랐다. 남편과 나의 이름 아래 딸아이의 이름이 적히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서류들이 오고 갔다.
아이를 낳으면 출생신고만 하면 된다는데, 입양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담당자의 전화가 점점 받기 싫어지고 낯선 이름의 서류가 더해질 때마다 맥이 풀렸다. 내가 이렇게 가진 것이 없었나, 보잘 것 없는 숫자 앞에 어이가 없었다. 잠재적인 아동학대 행위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우울했던 이유가 난임 때문인데, 우울하면 입양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 모순처럼 들렸다. 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우울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서류 몇 장으로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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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하기 어려운 썩 괜찮은 내가 있는데 증명하기가 어렵다. 여러모로 억울하다.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정을 달갑게 받아들인 것은 우리와 한 가족이 될 아기를 생각해서였다. 아기에게 새로이 만나게 될 부모는 미지의 세계다. 얼떨결에 만난 엄마 아빠가 흔들린다면 아기의 세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내 욕심만으로 입양을 진행할 수는 없다. 이미 헤아리기 어려운 아픔을 겪은 아기를 위해 최소한의 검증 과정은 당연한 절차다.
서류의 징검다리를 밟으며 앞으로 걸었다. 사이가 너무 멀어져 용기를 내어 펄쩍 뛰어야 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 막막하기도 했다. 하지만 손잡고 함께 걷는 사람이 있었고 파이팅을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지만 한 장 한 장 야무지게 밟으니 내가 보이고, 우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길 끝에 우리 아이가 있었다. 이보다 더 멋지고 드라마틱한 여행이 있을까.
오늘 아기를 만나러 갑니다 아기 선보기의 최후: “딸아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앳된 얼굴 한 담당 선생님의 질문에 짤막하게 대답했다. 입양기관에서 진행한 첫 상담 자리였다. 사회생활 12년차, 온갖 면접을 치러 왔지만 이토록 간절한 적이 없다. 진솔하고 담담하게 대답하려 했지만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다. 혹여 말하다 눈물이라도 흘리게 되면 어쩌지. 가감 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나와 우리 부부, 양가 가족, 경제적 상황, 난임, 우울증, 입양하려는 이유, 입양 후 계획… 처음 만난 사람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아니 털어놓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해야 했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게 될 아기 입장을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한 과정도 거쳐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결국 눈물이 뚝 떨어졌다. 단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는데, 실패다.
애타게 기다린 전화가 걸려온 건 한낮의 교정에서였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 졸업을 앞둔 무렵이었다.
아기가 집에 오면 졸업하기 어렵다는 담당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아기와의 만남을 6개월째 미룬 상태 였다. 논문이 늦어지면 아기도 늦게 만난다는 생각에 불도저처럼 나 자신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드디어 아기를 만나게 되었다.
보육원 원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아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예쁘장한 여자 아기가 누워 있었다. 이제막 목욕을 마친 아기의 몸에서 풋풋한 살내음이 났다. 한눈에 보아도 선생님들께서 정성껏 돌봐온 것을 알 수 있다. “한번 아기와 시간을 가져보세요. 가족이 되면 어떨지, 대화를 나눠보셔야죠.”
어리둥절했다. 만나면 그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기의 눈을 쳐다 보았다. 아무런 미동이 없다. ‘까꿍~ 만나서 반가워 아가야’ 웃음을 지어보았다.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작은 아기의 움직임과 표정 하나에 마음속 동요가 일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행복하지가 않다. 분위기를 파악한 담당 선생님이 아기를 몇번 더 만나보고 결정하기를 권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양쪽 어깨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무엇이 우리를 어색한 기분에 휩싸이게 만든 것일까. 고대했던 순간 기쁨과 감사가 아닌 낯설고 성긴 감정을 느끼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남편과 밤늦도록 대화를 이어갔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대로 더 만나보면 친근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둘만이 느낀 어색함이 있다. 그것은 아기의 외모나 기질과는 상관없는 별개의 무언가다. 아무리 주변에서 아빠 될 사람과 아기가 닮은 것 같다고 부추겨도 설득당할 수 없는 명백한 자각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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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아기와 만나는 날을 상상했다. 그리고 첫 번째 만난 아기와 한 가족이 되리라 다짐했다. 낳은 자식을 선택할 수 없듯이 입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종종 두 번째 만난 아기와 가족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이기적이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식인데 감사히 받아야지 어떻게 물건 고르듯 고를 수 있냐고. 남들보다 어렵게 돌고 돌아 만났 으니 더 감사해야 하는 일 아니냐며 비난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나라니. 숨고 싶었다. 죄책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윤리와 의무감 때문에 아기를 입양 할 수는 없다. 잠시 멈춰 서자. 원점으로 돌아가는 생각해야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입양에 대한 확신이 차오르면 다시 움직이기로 했으나 매번 죄책 감과 두려움이 앞섰다. 섣불리 아이 선보기를 다시 진행하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나를 만나게된 다면. 아이를 만난 순간 어색한 기분을 또 느끼게 된다면. 입양과는 영영 멀어질 것 같아 두려웠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때론 놓아버리면서 입양에 대해 줄다리기를 했다. 그리고 마음이 정돈되어 갈 무렵 다른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 다.
어렵게 찾아간 보육원. 원장님은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가족이 되는 문제인데 어떻게 단번에 이 아이예요 할 수 있겠어요? 오랫동안 지켜보니 부모님과 아이 들이 다 제 짝이 있더라구요. 우리 생각에 이 아이가 이 부모님과 잘 어울리겠다 싶지만, 정작 다른 아이와 연결되기도 해요. 가족은 가족이 알아보지 다른 사람이 추천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감사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기들과 관계 형성을 하며 관찰해 보라고, 만날 수 있다고 응원해주시는 말씀에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아득했다. 면담이 끝나자마자 아기들이 있는 방으로 안내 해주었다. 뜻밖의 만남에 어안이 벙벙했다.
원장님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방 안에는 아홉 명의 아기가 함께 살고 있었다. 세 명은 이미 부모를 만나 법원 절차 중에 있다고 했다.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보았다. 모두… 가슴이 저릴 만큼, 예뻤다. 그중 한 아이에게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바로 어제 배냇머리를 밀었는지 둥그런 머리에는 한 가닥의 머리카락도 남아 있지 않았다. 민둥산 같은 머리가 압도적이어서 이목구비가 상대적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동그랗고 말랑말랑한 볼 위로 앙증맞은 코와 오동통한 입술, 쌍꺼풀은 없지만 작지 않은 눈, 커다란 펭귄이 그려진 보라색 옷을 입은 모습이 깜찍하다. 말랑말랑한 떡이 생각났다. 밀가루 옷을 입어 폭닥거리고 동글동글한 모양이 예뻐서 자꾸만 만져보고 싶은 찹쌀모찌. 앞으로 이 아이를 모찌라 불러야지. 남편은 아기를 번쩍 들어 안았다. 샛별 같은 눈이 반짝반짝, 까르르르~ 재미있는지 웃음이 굴러간다.
우리 딸, 모찌를 만났다.
가슴으로 낳았다구요?
우리의 오랜 출산, 입양: “여보, 우리 모찌 입양한 거 맞지?” “당연하지, 왜 실감이 안 나?” “응, 어떤 때는 그냥 내가 낳은 것 같기도 한데….” “왜 낳아보지 않아서 섭섭해?”
모찌와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모찌를 낳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과 감사함이 교차한다. 신생아 시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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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돌봐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그 앙증맞은 순간들을 함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한편으로는겁 많고 엄살쟁이인 내가 출산을 하지 않고도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깊은 밤, 스르륵 잠든 모찌를 보며 이 아이를 만나기까지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한순간도 쉽지 않았다.
매 순간이 생의 고비처럼 느껴졌고, 절망에 빠져 눈물만 뚝뚝 떨구기도 했었다. 기대와 한숨, 희망과 걱정이 뒤섞인 밤낮이 지나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을 때 모찌가 우리에게 왔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시간들이 나와 남편에게는 출산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아주 지난하고 오랜 우리의 출산. 그리고 그 경험은 어쩌면 세상의 많은 아빠들이 겪는 출산과 비슷하지 않을까.
여전히 그 표현에 완벽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가슴으로 낳는’ 정서적 출산에 대해 조금씩 배워나간다.
모찌의 키가 내 키를 훌쩍 넘어서면 온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으려나?
누가 아기 낳을 때 어땠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멀미가 심한 뱃놀이를 하는 기분이요.
그리고 그 여정은 6년.”
가족이 되어가는 방법
햇님을 닮은 아이 인기쟁이 모찌: 며칠 전 신이 나서 달려온 모찌가 내게 건넸던 말이 생각났다. “난 모찌야.” 자신을 향해 폈던 오른손바닥을 내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너언?” 당황했다. 너무 귀엽고 어여뻐서 꼭 끌어안고 싶다. “나? 나는 엄마야.” “응, 난 세 짤이야. 너언?” “난… 서른아홉 살이야.” “반가워. 우리 이제 나가서 놀까?” 당당하고 멋지다. 내 딸 모찌.
입양할 때 특별히 닮은 아기를 추천해달라고 했는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특별히 바라는 것이 없어서 ‘건강한 아기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고 있는 그대로 말한다. 그러나 나도 사람인지라 나를 닮은 아기를 상상해 볼 때가 있었다. 남편과 나를 반반 섞으면 어떤 모습일까. 고등학교 때까지 이과였던 나와 뼛속까지 문과인 남편이 고루 섞이면 어떤 아이가 태어날까. 과학적 사고와 감성적 통찰을 겸비한 희대의 학자가 나오거나 노래 잘하는 남편과 그림에 소질이 있는 나를 닮아 예술 전반에 재능을 발휘 하는 아티스트가 나오게 되는 것은 아닐지, 궁금했다.
반대로 꼭 닮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도 있었다. “나 어렸을 때 너무 마르고 키도 작고 볼품이 없었어.
예민해서 엄청 울고. 수줍음이 얼마나 많은지 고등학교 때까지도 매표소에서 표 사는 게 그렇게 힘들 더라고. 어디어디 가는 표 달라고 말을 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말하는 것이 직업인 남편도 버리고 싶은 성격이 있다. “모찌랑 완전 다르네? 나는 중학교 때 이후로 친구를 사귀는 게 너무 힘들어. 지금이야 뭐 그럭저럭 사람들하고 잘 지내지만, 여전히 조심스럽고 겁이날 때가 있거든. 그래서 그런가, 모찌가 이 사람 저 사람한테 계산 없이 친근하게 다가가는 게 너무 부러워.” “모찌가 정말 타고난 부분이 있지.” 남편의 말이 맞다. 우리와 전혀 다른 모찌는 잘 자고 잘 놀고 잘 어울린다. 살면서 나와 그를 닮은 점이 늘어가지만 나와 달라서 좋다. 닮아서 좋고, 닮지 않아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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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해.” 이참에 한 번 더 솔직해져 보기로 한다. “무슨 생각?” “만약 내가 모찌를 낳았어도 이보다 더 잘 낳았을 수는 없었겠다는 생각.”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 우리 모찌는 누굴 닮아 이렇게 예쁜 거지?” “음… 햇님, 웃음 소리가 맑고 깨끗한 햇님.”
편견에게 전하는 인사
편견에게 전하는 인사 모찌 엄마의 소원은 마트에 가는 것: “모찌가 집에 오면 제일 먼저 뭘 해보고 싶어?” “나? 글쎄, 뭘 하든지 다 좋을 것 같은데. 당신은 특별히 해보고 싶은 게 있어?” “응, 나는 모찌랑 마트에 갈 거야. 아주 예쁜 유모차에 모찌를 태우고, 어깨 쫙 펴고 당당하게 몇 시간이고 마트를 빙빙 돌 거야.”
상상만으로도 벅차다. 아이가 없던 시절, 대형마트에 가는 것이 몹시 견디기 어려웠다. 저출산이 사회 적으로 문제라고 하던데 주말이면 마트는 아이들로 붐볐다.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단란한 가족의 모습과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되었다. 더 진심을 드러내어 말하면, 불임 판정을 받고 한동안은 마트나 쇼핑몰에서 스치는 유모차들이 지옥이었다. 부러움 때문이기도 하고 가질수 없는 것에 대한 억울함에서 비롯된 눈물이기도 했다. 남편과 같이 가는 날에는 의식적으로 아이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혹시라도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에게 너무 큰 죄책감을 안겨줄 것 같아서다. 하지만 마트에서 일하는 분들이 ‘새댁’이 아닌 ‘애기 엄마’라는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더 마음이 불편하고 우울해졌다. 장은 되도록 목요일 밤에 혼자 보았다. 최대한 아이들과 덜 마주치기 위해서. 고민 없이 우리의 첫 외출 장소로 대형마트를 떠올렸다. 모찌를 만나기 전의 속상함이 얼룩진 그마트로 가자.
모찌가 집에 온 지 2주 정도 되었을까. 마음이 급한 나는 퇴근길에 모찌와 친정 엄마를 차에 태웠다.
“엄마~ 모찌 내복 입혀서 나왔지?” “당연하지. 근데 알라를 이래 늦은 시간에 데리고 나와도 되겠나?”
“에이 오늘 하루만. 나 진짜 모찌랑 마트에 가보고 싶어서 그래. 그때 보육원 선생님도 그러시던걸. 보육원 아이들은 일상생활을 경험해볼 기회가 적다고. 모찌도 태어나서 한 번도 마트에 가본 적이 없잖아. 벌써 돌인데.”
차에서 유모차를 꺼내 모찌를 앉혔다. 혹시라도 추울까봐 모찌 머리에 두툼한 헤어밴드를 씌우고 점퍼 지퍼를 단단히 올렸다. “모찌야, 여기가 어디게? 여기는 마트야. 먹을 것을 사려고 왔어. 우리 모찌 마트에는 처음 와보지? 엄마랑 할머니랑 옆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맛있는 거 사서 가자!”
드디어 마트 출입구로 진입. 가슴이 떨렸다. 조심스럽게 유모차를 앞으로 밀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다행이다. 자연스럽다. 무빙워크를 타고 식품관으로 이동했다.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았다. 지금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시금치며, 두부 등을 담았다. 요거트를 판매하는 분이 ‘아기들도 좋아해요. 한번 드셔보세요’라고 한다. 내가 진짜, 엄마처럼 보이는 걸까? 뭉클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찌는 눈을 크게 뜨고 여기저기를 휘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다. 기둥에 있는 거울에 모찌와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유모차 앞에 낯선 내가 서 있다. 모찌가 벙긋 웃는다. 나도 싱긋 웃어 화답한다. 이게 뭐라고. 명치에 묵직하게 자리잡았던 돌덩이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
- 9 - 서툰가족
그날 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늦은 시간에 나갔다 왔다고 남편에게 한소리 들었다. 첫 마실에 피곤했 는지 모찌도 집에 돌아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날의 느닷없는 외출이 오래도록 엉켜 있던 마음을 푸는 첫 지점이었음을. 단절되어 있던 세상에 함께 손잡고 한 걸음을 내딛는 첫 순간이었음을 말이다.
보통의 이기심 나를 위해서만: “이 대리님, 되게 이기적이지 않아?” “왜? 무슨 일 있었어?” “자기 몸 망가진다고 아이를 안 가진다잖아. 남편은 애 갖고 싶다고 매번 조르는 모양인데 그냥 무시하나봐. 내가 그 남편이라면 진짜 힘들 것 같아.” “뭐 애 갖는 문제야, 자기가 선택할 일이니까. 이유가 어찌 됐건 남편하고는좀 합의를 보긴 해야겠다.” “내 말이, 하여튼 회사에서도 딱 자기 일만 하더니 집에서도 그런가 봐. 만약에 우리 아들이 저런 여자랑 결혼한다고 하면 나 진짜 뒷목 잡고 쓰러질 것 같아.”
A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은 아이보다 자신이 더 중요하다는 이 대리의 발언보다 평상시 그녀에게 느낀 업무상 선긋기의 불쾌함일 것이다. 아니면 여전히 아가씨 같고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동년배에 대한 적개심과 부러움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에 일부러 애 안 갖는 사람들 많잖아. 둘이 벌어도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고,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자식한테 모든 걸 쏟아붓는 세대가 아니니까.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것도 좋지 뭐.” “그렇긴 하지.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 이런 세상에 자기처럼 좋은 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왔다. 좋은 일 하는 사람. 열에 아홉은 나에게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말한다. 대부분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간혹 누군가를 더 나쁘게 몰아가기 위한 비교의 말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의도에서든 듣는 나는 불편하고 어색하다. 이것은 마치 '굿모닝'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아임파인땡큐, 앤듀?’처럼 ‘입 양했어요’ 하면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는 것 같다. 문제는 그 다음 건네야 하는 말을 모르겠다는 것. 처음에는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부자연스러운 손짓에 긍정 하고 싶은 마음이 은근히 깔려있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은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말 앞에 그냥 서먹한 웃음을 짓는다.
과거의 나 역시 입양한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가까이에서 입양 가족을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입양 부모를 대변했다. 그들은 내게 없거나 혹은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의 에너지를 보유한 딴 나라 사람들 같았다. 가정은 밝고 따뜻하고 하나같이 부유해 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를 입양하지만 방송에 드러나는 가정은 몇 되지 않는다. 내가 PD여도 특별할 것 없는 밍숭한 가족보다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거나 유명인이 입양한 경우를 취재하고 싶을 것같다. 이런 미디어의 영향을 아무런 비판 없이 등에 얹고 살았기에 입양은 남의 일이었고 범접할 수없는 세계였다.
사실, 우리 부부가 난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도 가능한 입양을 피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입양 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그럴 만한 그릇이 못된다며 딱 잘라 이야기했다. 그런데 엄마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입양뿐이라니.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은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수많은 괴로운 밤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을 했다. 누군가를 위해서도 아니었고, 좋은 일을 하겠다는 결심도 없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되고 싶었다.
- 10 - 서툰가족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아기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이기적인 순간이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갖기 위해 삶의 모든 총량을 쏟아붓던 때 오히려 이타적이었다.
왜 아이를 낳고 싶은지 이성적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잡히는 행복이 내게 오지 않는 것에 화가 났고 그 화가 나를 삼킬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내 소망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못했다. 고통스러웠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때의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 보았다면 일상의 대부분을 반성 일기를 쓰거나 기도하는 데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이기적이라고 했다. 아이 갖는 것에 미친 이기적인 여자라고.
만약 내게도 ‘아이 낳는 문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①바로 아이를 갖는다. ②조금 더 부부만의 시간을 갖고 아이를 갖는다. ③이대로 좋다. 딩크로 살자. 일 때문에 임신을 미루자고 내 입으로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답을 고르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언제든 다시 답안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른 보기가 주어졌다. ①둘이 잘산다. ②비배우자 정자 공여를 통해 아이를 갖는다. ③아이를 입양한다. ④(고려하고 싶지 않지만) 이혼한다.
이 중에서 나 자신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을 했다. 남편과 잘 지냈지만 둘만의 삶에 자신이 없었다. 난임을 겪는 기간 동안 느꼈던 공허함을 평생 안고 가야 한다는 사실도 두려웠다. 그만 울고 싶었다. 두 번째 보기는 내가 아이를 낳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한때 다짜고짜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나 자신이 동물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종족 보존의 본능, 나와 닮은 인간을 낳아 삶을 이어나가고 싶은 강렬한 욕망.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왠지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봉사활동으로 베이비 박스 아기들을 만나면서 내 안에 종족 보존보다는 모성애가 더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낳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을 원했다. 이혼은 바로 지워버렸다. 아직 생기지 않은 아이보다 남편을 더 사랑했으므로.
각자에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다를 뿐 선택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직장에서 만난 그녀에게는 자신을 가꾸고 발전시켜 나가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할 수 있다. 내게 아이 있는 삶이 간절한 것처럼.
때문에 누군가의 선택을 도덕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선택지는 자신만이 알 수 있으므로.
얄궂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이를 갖지 않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입양하는 사람은 이타적이라고 보는 현실. ‘나 이기적인 사람이에요’라는 변명을 늘어놓을 수 없어 오늘도 그냥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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