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90년대생(20대)이 처한 경제적 상황과 그것이 정치ㆍ사회의식 등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분석 보고서다. 저자는 오늘날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의 본질은 학력과 노동시장의 지위를 기반으로 부를 축적한 50대 부모 세대가, 교육 투자뿐만 아니라 문화적 역량, 사회적 네트워크 등 무형 자산을 이용해서 그들의 자녀에게도 동일한 학력과 노동시장 지위를 물려주는 데 있고, 이러한 격차 고정은 이후 생애주기 전반을 결정한다면서, 세습 중산층 사회에 산재한 다중적 불평등 문제를 파헤친다.
세습 중산층 사회
▣ Short Summary
2019년 한 해 동안 90년대생(20대)에 관한 사회 차원의 관심과 탐구가 꾸준히 이어졌다. 이를 반증하듯, 취임 35일 만에 사퇴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90년대생(20대)은 또다시 소환 되었는데, 해당 사안에서 검찰 개혁이라는 키워드 못지않게 집중 포격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불평등 이슈였고, 그 가운데 특히 주목을 받은 세대가 그들이었다. 이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90년대생(20대) 의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고, 진단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음을 극명하게 나타낸다.
이 책은 90년대생(20대)이 처한 경제적 상황과 그것이 정치ㆍ사회의식 등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분석 보고서다. 저자는 오늘날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의 본질은 학력과 노동시장의 지위를 기반으로 부를 축적한 50대 부모 세대가, 교육 투자뿐만 아니라 문화적 역량, 사회적 네트워크 등 무형 자산을 이용해서 그들의 자녀에게도 동일한 학력과 노동시장 지위를 물려주는 데 있고, 이러한 격차 고정은 이후 생애주기 전반을 결정한다면서, 세습 중산층 사회에 산재한 다중적 불평등 문제를 파헤친다.
구체적으로 1장에서는 20대가 진입하는 노동시장의 특성을 개관하고, 2장에서는 2010년 이후 20대가 노동시장 진입 당시 겪는 경험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3장에서는 교육이 어떻게 세습 중산층 지위를 유지하는 불평등 제조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피고, 4장에서는 세습 중산층에 진입할 기회가 없는 나머지 90%에 해당하는 지방 소재 대학생과 고졸자에 대해 논의한다.
5장에서는 취업 이후의 생애주기 과업인 결혼과 주택 구입 등에서 나타나는 계층 분화 양상을 분석하고, 6장에서는 90년대생의 다중격차가 부모 세대인 60년대생의 역사성 특수성에 기인했음을 다룬다.
그리고 7장에서는 오늘날 20대의 세계관이 성별에 따라 계층에 따라 얼마나 다른지 분석하고, 8장에서는 그러한 세계관의 차이가 어떻게 가장 표층의 정당 지지에 영향을 주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무엇보다 지금의 20대(90년대생)가 경험하는 불평등이 상위 1퍼센트와 나머지 99퍼센트의 격차뿐만 아니라, 상위 10퍼센트와 나머지 90퍼센트의 심각한 격차 문제에 기인한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세습 중산층은 그 격차를 능력의 차이로 포장하며, 자신의 자녀들에게 적극적으로 계층 지위를 물려주고자 노력하는데, 그 불평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생하고, 사회적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지 정확히 인식하는 데에 해결의 단초가 있다고 역설한다.
▣ 차례
프롤로그 - 세습 중산층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2 - 세습 중산층 사회
10과 90의 사회 / 20대가 경험하는 다중의 불평등 / 2010년 이후 노동시장의 변화 / 글의 구성
1장 문제는 노동시장한 번 외부자는 영원한 외부자 / 첫 일자리로 신분이 결정된다 / 첫 번째 관문은 명문대 진학 / 10퍼센 트만이 번듯한 일자리를 갖는다 / 어느 때보다 극심한 경쟁을 경험하는 세대
2장 좁아진 중산층 진입의 문달라진 취업시장 / 줄어든 대기업 일자리 / 내부자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 / 여성의 약진 / 중숙련 일자리가 사라진다
3장 가려진 20대: 지방과 고졸 “공부 잘하면 치인트, 못하면 복학왕” / ‘지방대생과 고졸자’라는 주변부 / 지방의 현실, 질 좋은 일자리가 없다 / 취업시장의 ‘시골’이 된 지방 / 탈산업화 쓰나미는 시작됐다 / 고졸은 우리 사회의 투명인간 / 미래가 없는 고졸 취업자 / 근로빈곤 상태에 놓인 청년들
4장 세습 중산층의 등장 20대의 불평등은 30대와 어떻게 다른가 / 다시 작동하는 ‘명문고’ 시스템 / “중산층 자녀의 ‘인생’을 설계합니다” / 중학교 때부터 드러나는 격차 / 노오오오오력도 계층 따라 간다 / 56년생 최순실의 자녀 vs. 65년생 조국의 자녀
5장 ‘정상가족’이라는 특권 결혼과 부동산에 나타난 계층 격차 / 남성 5명 중 한 명은 ‘노총각’으로 40대를 맞이한다 / 미혼을 강제당하는 하층 남성 / 여성, ‘완벽한 결혼’ vs. ‘비혼도 괜찮아’ / 부동산=세대+계층 / 세습 신분이 된 ‘서울 거주-2주택 보유 중산층’
6장 세습 중산층의 기원 60년대생은 무엇이 다른가 / 두 60년대생 이야기 / 대기업의 성장과 테크노크라트형 인력의 등장 / ‘승 리의 역사’가 함께하는 60년대생의 근로 생애 / 성장의 또 다른 과실: 금융, IT와 대공장 생산직 / 학력 -직업-경제적 지위의 결합
7장 계급의식의 형성 “나는 주인공 될 수 없는 영화 같았다” / G세대와 N포 세대의 공존 / 20대 남녀의 정치적 양극화? 그건 ‘세습 중산층’ 내부 이야기 / 불공정ㆍ불평등에 대한 인식은 계급 문제
8장 ‘20대 남성 보수화’라는 신화 ‘20대 남성’ 담론의 허실 / 2016~2017년 ‘보수 이탈’ 분석 / ‘지지 정당 없음’의 등장 / 젠더 갈등과 SNS 배후의 ‘계급’ / 60대 건물주의 정당 vs. 50대 부장님의 정당
에필로그 - 세습 중산층의 진화 세계무대에서 펼쳐지는 명문대 졸업장 경쟁 / 고도성장의 끝, 세습 자본주의의 시작 / 저성장기에 더치열해지는 ‘교육 군비 경쟁’ / 불가능한 프로젝트, 세대 간 양보 / 문제는 ‘60년대생’이 아니라 ‘세습
- 3 - 세습 중산층 사회
중산층’이다
주참고문헌
- 4 - 세습 중산층 사회
세습 중산층 사회
프롤로그 - 세습 중산층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0과 90의 사회 오늘날 20대 문제의 핵심은 ‘1등 시민’인 중상위층과 나머지 ‘2등 시민’ 간의 격차가 더는 메울 수 없는 초(超)격차가 되었다는 데 있다. 이 초격차는 단순히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만이 아니라, 인적 자본의 세습을 통해 확대ㆍ유지된다. 그리하여 1등 시민과 2등 시민이 갖는 격차는 노동시장에서 소득 ㆍ직종ㆍ직업적 안정성의 격차로 나타난다. 흔히 이 격차는 능력의 격차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출산 계층의 격차라는 사실을 ‘나머지’ 계층에 속한 오늘날의 20대는 삶의 단계마다 피부로 깨친다.
2019년 가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20대의 핵심 문제가 계층 또는 계급의 재생산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또 20대 내부의 격차가 이전 세대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다차원적임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대기업ㆍ공공부문 정규직의 기회를 얻는 이들은 연간 7만 2,000명쯤 되며, 이는 동갑내기들 중 10퍼센트 정도로 추산된다. 따라서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은 1퍼센트와 99퍼센트의 격차가 아니라 10퍼센트와 90퍼센트의 격차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격차는 단순히 임금의 격차가 아니라 생애주기 전반의 격차다.
20대가 경험하는 다중의 불평등 20대 집단 내부의 격차는 ‘능력’의 격차로 포장된 ‘결과’의 격차이면서, 동시에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계층’의 격차다. 결국 20대의 격차는 부모 세대인 50대의 격차가 그대로 세습되는 것이라 할 수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오늘날 50대인 60년대생(1960~1969년생)이 한국 사회에서 학력, 소득, 직업, 자산, 사회적 네트워크 등 다중격차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세대이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은 ‘세습 중산층’과 나머지 사람들의 격차에 가깝다. “부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 되어 있던 사회가 거의 전적으로 노동과 인적자본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된 사회로 바뀌었다”는 토마 피케티의 지적은 구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문제는 노동시장
한 번 외부자는 영원한 외부자 세습 중산층과 나머지 사람들 간의 메울 수 없는 격차가 발생한 핵심 원인은 노동시장에 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장은 대기업 정규직이나 공무원 같은 ‘내부자’와 중소기업 재직자나 기타 비정규직의 ‘외부자’로 구성된다. ‘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들이 끼리끼리 모여 형성되는 노동시장을 ‘1차 노동시 장’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 속한 일자리는 급여가 높고 근속 연수가 길며 연공서열제가 강하고 경우에 따라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다. 반면 나머지 ‘아싸(아웃사이더의 줄임말)’들의 노동시장을 ‘2차 노동시장’으로 묶는데, 이 일자리들은 낮은 급여에 연공서열제 등이 거의 없고 근속연수가 짧으며(따라서 숙련 형성도 어렵다), 노동조합의 보호는커녕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일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대학에서 한 번 ‘아싸’가 되면 ‘인싸’가 되기 어렵듯이, 노동시장에서
- 5 - 세습 중산층 사회
도 한 번 외부자가 되면 내부자로 승급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1차 노동시장에서는 연공서열제 등으로 내부자의 인건비 부담이 높아도 이들을 정리해고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중소기업 재직자를 경력직으로 뽑느니, 차라리 상대적으로 초임이 저렴한 젊은 신입 직원을 채용한다.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이중노동시장 또는 분절노동시장이 바로 이것이다. 국내 학자들은 이와 같은 이중 구조가 있다는 데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한다. 다만 그 원인이 내부자 보호 경향이 짙은 경직적 노동시장 때문인지, 아니면 기업이 생산 조직을 유연하게 바꾸면서 비정규직 채용을 늘려 내부자-외부자 차별을 조장하기 때문인지 등등으로 이견이 있는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는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내부자가 되느냐, 외부자가 되느냐의 기로에 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급학교(특히 대학) 진학과 첫 일자리 취업은 노동시장 진입 과정으로 한데 묶어볼 수 있다. 김영철 서강대 교수는 이에 대해 ‘이중선별’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국내 노동시장에서의 선별(또는 선택)이 대학 입학 단계에서의 1차적 선별과 노동시장 진입 단계에서의 2차적 선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의미다.
첫 번째 관문은 명문대 진학 노동시장의 ‘내부자’ 또는 ‘성 안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이른바 ‘명문대’라 불리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일이다.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면 번듯한 일자리에 취업하는 경로가 대단히 좁아지기 때문이다. 지방 거점 국립대 공대에서는 4년간 줄곧 높은 학점을 받아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7급또는 9급 공무원 시험에 목숨을 걸거나, 아니면 공기업에서 균형선발 등의 명목으로 제공하는 좁은 문을 뚫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이중선별 과정의 1단계가 사실상 가장 중요한 셈이다.
20대 대졸자의 임금과 취업률을 분석한 여러 연구들은 10여개 명문대 졸업자와 나머지 대학 졸업자 간의 임금이 크게 차이난다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참고로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간한 2014년 보고서에 의하면, 상위 10개 대학 졸업자의 평균 급여는 월 269만 5,000원이었는데, 수도권 대학은 월 208 만 2,000원, 지방 대학은 월 196만 7,000원, 졸업 후 2년 정도 경력을 더 쌓은 전문대학 졸업자의 급여는 월 202만 원이었다. 상위 10개 대학을 제외하면 서울 및 지방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의 월 급여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셈이다. 여기서 10개 대학은 2013년 《중앙일보》 대학 평가 순위에 따라 선정되었는데, 포스텍(포항공대), 카이스트, 성균관대,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서강대, 중앙대, 경희대였다. 흔히 이야기되는 서울 안 명문대에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를 더한 셈이다.
한편 명문 대학 내부에서도 ‘학벌 위계’에 따른 졸업생의 임금 차이가 존재했는데, 2010년 9월 임금을 분석한 조윤서 씨의 논문에 의하면, 상위 1~6위 대학 졸업자는 월 274만 2,000원, 7~12위 대학 졸업 자는 월 237만 5,000원, 13~32위 졸업자는 216만 8,000원을 각각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학벌에 따른 임금 프리미엄은 최상위권 명문대로 갈수록 그 격차가 더 커졌다.
좁아진 중산층 진입의 문
달라진 취업시장 2011년 11월, 주요 대기업의 고참 과장급 인사 담당 직원들을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국내 최대 전자업체 인사 담당자들은 한결같이 “이제 인사, 재무, 영업 등의 사무직 채용에는 관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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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이들이 채용 의사를 가진 직군은 한창 확장 중인 해외 판매망에 투입할 마케팅 인력이었다. 전통적인 내수 산업도 일반적인 사무직 인력에 대해서는 ‘새로 뽑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8년 전의 인터뷰 경험을 꺼낸 이유는, 당시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의 발언대로 2010년 이후 대졸 신규 취업자들의 노동시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번듯한 일자리’에 속한 대기업 일자리 중 일반적인 사무직군 일자리가 가파르게 감소하는 양상이 나타 나고 있다. 이른바 ‘문송(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의미의 신조어)’의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거기에 대기업이 채용하는 화이트칼라 인력의 면면을 보면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을 나온 흙수저 남성’이 가차 없이 밀려나는 대신 ‘서울 명문대를 나오고 외국어에 능통한 중상위층 여성’은 이전보다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처럼 1차 노동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집중적으로 피해를 받는 집단과 상대적으로 이전보다 몫이 늘거나 최소한 유지되는 집단이 갈리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20대의 노동시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사정이 악화된 정도가 계층별, 성별, 대학 전공별로 다르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가려진 20대 - 지방과 고졸
“공부 잘하면 치인트, 못하면 복학왕”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 <복학왕>은 지방 소재 대학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묘사한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의 필명(기안84)을 딴 기안대는 소위 ‘지잡대(지방대를 비하하는 표현)’로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배경이 되는 1~4회를 중심으로 그 현실적인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날마다 벌어지는 술자리, 학점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채로 게임에만 열중하는 고학년 학생들, ‘마케 팅’의 영어 철자를 틀릴 정도로 실력 없는 교수, 모교로 짜장면 배달을 온 대선배와 그를 맞으며 신입 생들을 상대로 군기를 잡는 고학년생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등이 그것이다.
<복학왕>이라는 작품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결국 주인공의 하류 인생이 공부를 못해 지잡대에 간 결과라는 인식에 가깝다. 주인공은 남자 얼짱 경연 대회, 인터넷 의류 쇼핑몰 등으로 성공을 노리지만 실패하고 결국 밀린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김치 공장 생산직으로 취직한다. 이러한 이야기 전개는 실패한 20대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피카레스크 소설(악당소설)이라 부를 만하다. 그는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다른 20대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감으로써,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지방대생과 고졸자’라는 주변부 지방대 출신과 고졸 이하는 오늘날 청년 담론에서 거론되지 않는 존재들이다. 이들이 거론되지 않는 이유는 앞서 <복학왕>에 대한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 그들은 ‘공부를 못해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고, 따라서 노동시장에서 갖는 열등한 지위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건 ‘품성’이 나쁘고 ‘노력’이 부족한 결과다. 이러한 사고에 대항하는 담론은 ‘간판만 보고 뽑는 세태 때문에 능력 있는 지방대생들이 차별받고 있다’ 정도가 전부다.
지방대 내부의 사람들은 지방대생이 20대 청년들의 치열한 공부 경쟁에서 이탈하는 이유를 두고, 그들이 ‘예정된 패배’를 맞이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그들에 대해 “공무원 시험도 도전은 해보지만 집중력 있게 돌파하기는 어렵다. 토익을 치르라고 권해도 해봐야 안 된다는 생각에 고득점을 올릴 만큼 집중하지 못한다. 결국 지인을 통해 지역 사회에서 구할 수 있는 열악한 일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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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들의 행동은 원인이면서 동시에 패배의 경험에서 체득한 습속의 결과인 셈이다. 그런데 지방대와 고졸 청년을 마냥 없는 사람처럼 취급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숫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현재 만 20~24세 가운데 절반(50.3퍼센트)은 서울ㆍ인천ㆍ경기 바깥의 ‘지방’에 산다.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주하는 인구 때문에 숫자가 줄긴 하지만, 만 25~29세에서도 ‘지방’ 거주 비율은 45.6퍼센트에 이른다.
한편 고교 졸업생 가운데 대학교 진학이나 취업을 하지 않고 ‘무직자 및 미상’으로 파악되는 인원은 2011년 졸업자(1992년생, 2019년 현재 27세) 중 13만 6,000명까지 늘었고, 이후 12만~13만 명대를 유지한다. 2011년 졸업자 이후 이들의 비중은 전체 고교 졸업자의 20퍼센트에 이른다. 즉, 현재 20대 5명 중 1명 정도가 진학도 취업도 하지 못한 채 노동시장 주변부에 위치하면서 불안정 노동과 니트족 (직장에 다니지도 않고 교육을 받지도 않는 이들) 사이에 있는 것이다.
지방대생과 고졸자들은 20대 집단 내에서 ‘주변부’를 형성한다. 서울 소재 명문대라는 ‘중심부’, 서울과 수도권의 4년제 및 지방 거점 국립대라는 ‘반주변부’에 밀려 사회로부터 소외된 변방이다. 그리고 지방의 20대가 지리적인 주변부에 그치지 않고 졸업을 전후해 사회 계층의 위계에서 주변부가 된다면, 일반계 고졸 20대는 ‘대학도 가지 못한’ 실패자로 간주되며 투명인간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근로빈곤 상태에 놓인 청년들 지방대생과 고졸자는 근로빈곤층(일은 하지만 소득이 워낙 낮아 가난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의 주공급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의 의뢰로 한국보건사회연구 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만 19~34세의 청년 근로빈곤층 비율은 2009년 4.9퍼센트에서 2013년 5.9퍼센트로 소폭 높아졌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바로 위 연령대(만 35~55세)인 중장년층의 근로빈 곤층 비율은 8.4퍼센트에서 7.7퍼센트로 낮아졌다. 상대적으로 청년층의 빈곤 문제만 더 악화된 것이다. 보고서는 “청년 세대의 경우 소득과 노동시장 조건이 개선되는 모습이 오랜 기간 나타나고 있지 않다”며 “일종의 ‘빈곤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서술했다.
세습 중산층의 등장
20대의 불평등은 30대와 어떻게 다른가 20대 노동시장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고소득과 안정된 지위를 보장하는 ‘번듯한 일자리’는 점점 줄어 드는 반면,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많아졌다. 그리고 ‘10퍼센트의 울타리’에 들어가기 위해 서는 출입증이 필요한데, 서울의 명문대, 의치대, 소수의 지방 소재 공대에 입학하지 않으면 월 300만원 이상의 일자리를 갖기가 과거보다 훨씬 어렵다. 문제는 90년대생에게 이 ‘좋은 대학’이라는 지위가 이전보다 훨씬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는 점이다. 그 지위를 얻느냐 마느냐는 부모의 경제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또는 직업)와 학력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서서 사회적, 문화적 불평등까지 결합된 ‘복합적인 불평등’이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의 실체인 것이다.
56년생 최순실의 자녀 vs. 65년생 조국의 자녀 오늘날 20대가 맞닥뜨린 불평등이 이전과는 다른 주된 이유는 이들의 부모 세대(50대-60년대생)에서 이전 세대(60대-50년대생)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경제자본, 인적자본, 사회자본의 결합이 이루어졌기
- 8 - 세습 중산층 사회
때문이다. 60년대생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대졸 화이트칼라 또는 대졸 중산층이 만들어진 세대다. 이 세대에서부터 학력, 직업에서 오는 사회적 지위, 경제적 성과의 연관 관계가 중요해지고, ‘울타리 안’과 ‘울타리 밖’의 경계가 명확해졌다. 경제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전문 지식을 활용한 직업을 얻거나,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집단이 대거 생겨났다. 그리고 노동소득을 통해 중상위층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해당 직종에 종사해야만 했다. 또 학교와 직장이라는 ‘조직체’에서 만난 이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면서, 소득-학력-네트워크가 밀접하게 맞물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세대의 다중격차가 이들의 자녀 세대에서부터 그대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30대가 직면한 불평등은 1956년생 최순실의 자녀가 그 비교 대상이었다. 그런데 20대가 직면한 불평 등은 1965년생 조국의 자녀가 그 비교 대상이다. 최순실이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으로 서울 강남에 빌딩을 가진 ‘못 배운 졸부’라면, 조국은 부산의 향토 건설업체 집안의 장남으로 서울대 법대 학력과 서울대 교수, 80년대 운동권 인맥 등 인적자본과 사회자본을 두루 가진 ‘깨우친 중상위층’이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2017년 발표한 논문에서 “경제자본, 인적자본, 사회자본이 상당히 동조 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부유층 부모의 경제자본이 자녀의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와 연결 되고 있으며, 경제자본과 인적자본을 활용한 사회적 연결망 획득이 또다시 경제자본의 축적에 유리한 영향을 주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사회 계급 간에 일종의 다중격차가 발생 하면서 사회 이동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한국에서 90년대생들은 전문직이나 대기업 일자리를 가진 부모가 확보한 경제력과 사회적 네트워크, 문화자본을 바탕으로 명문대 졸업장과 괜찮은 일자리를 독식하는 ‘세습 중산층의 자녀 세대’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이 이전 세대가 경험한 불평등과 질적으로 다른 이유다.
‘정상가족’이라는 특권
결혼과 부동산에 나타난 계층 격차 38세 동갑내기 K 씨와 L 씨의 삶은 한국 사회의 계층 격차가 가족 형성과 자산 축적이라는 생애주기 양대 과제에 얼마나 결정적으로 작용하는지 잘 보여준다. ‘서울 소재 명문대를 졸업한 K 씨는 대기업 계열사에서 과장으로 일한다. 6년 전 같은 회사 동료와 결혼했고, 배우자는 현재 외국계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은 대학 재학 당시 교환학생, 어학연수 등으로 외국에 1년 정도 체류한 경험이 있다. 이들은 결혼 전 K 씨가 부모님의 조언으로 분양받은 서울 강북 지역 30평대 아파트에서 함께 거주 한다. 2011~2012년만 해도 K 씨는 거액의 대출을 갚는 게 적잖이 부담이 됐고, 아파트 가격도 오르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2013년부터 서울 아파트 가격이 이른바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파 르게 오르면서 지금은 ‘일단 기다려보라는 부모님 조언을 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요즘두 사람의 고민은 살고 있는 집을 매도하고 마포, 용산, 성동 일대에서 새 집을 살지 여부다.’
이와 대비되는 사례는 광주의 한 사립대를 졸업하고 충남의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L 씨다. ‘L 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연거푸 낙방하고, 8년 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공단에 위치한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늦게라도 일자리를 얻었지만 수입이 별로 늘지 않는데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 객지 생활을 하려니 친구도 만나지 못한다. 결혼도 언감생심이다. 꼬박꼬박 돈을 모으고는 있지만, 몇 년 전 광주 아파트 가격도 껑충 뛰면서 이제 집 살 기회도 놓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다시 공무원 시험을 봐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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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 공무원이라도 됐으면 지금보다 더 살기 좋았을 거라는 후회를 가끔 한다.’ 30대 중후반이 직면하는저 격차는 지금의 20대가 30대가 되었을 때는 더욱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20~30대 초반의 양대 과제는 취업과 가족의 형성이다. 또 취업 이후에는 노년에 대비해 자산을 모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택을 마련하는 건 자산 축적뿐만 아니라, 이후의 경제적 의사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제 과거와 같은 ‘중산층 핵가족’ 모델에 맞춰서 취업, 결혼, 출산, 자산 축적 등의 생애주기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번듯한 일자리’와 ‘부모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정상가족 형성 과정에서 부모의 지원이 절대적이라는 점은, ‘독립적 20대’라는 개념이 더는 불가능하다는 걸 시사한다. 한편 중산층에서는 동류혼(같은 계층끼리 결혼하는 행위)이 많아졌는데, 이는 결혼이 가족 단위의 계급 재생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4인 단위 핵가족을 꾸리는 것 자체가 ‘울타리’ 안에 있는 중산층의 특권적 행위가 되고 있다.
계급의식의 형성
20대 남녀의 정치적 양극화? 그건 ‘세습 중산층’ 내부 이야기 20대의 정치ㆍ사회ㆍ경제에 대한 의식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그리고 성별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여기서 성별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은 단순히 남성은 보수적이고 여성은 진보적이라는 게 아니다. 사회 계층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정치ㆍ사회ㆍ경제의식이 변화하는 양상이 다르다는 의미다. 20대의 ‘세상을 보는 눈’에는 30대보다 더 ‘출신 계층에 따른 인식 격차’가 존재한다. 이러한 성별과 계층에 따른 의식 분화 양상을 20대가 과거보다 진보적이지 않다든가, 또는 보수화되었다는 서술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다. 이를 잘 보여주는 데이터가 20대의 계층 간 교육 불평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동그 라미재단의 ‘한국 사회 기회 불평등의 조사’ 자료인데, 이 조사에는 정치ㆍ사회ㆍ경제에 대한 인식을 묻는 45개의 문항으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20대의 의식 구조 간의 관계를 살폈다.
불공정ㆍ불평등에 대한 인식은 계급 문제 결과를 음미하자면, 먼저 오늘날의 20대가 ‘공정성’에 대해서 가지는 인식은 성별로 또 사회경제적 지위별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중산층 여성의 공정성에 대한 인식이다. 여성의 경우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노력’을 사회가 가로막고 있다는 인식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 중산층 여성들은 타인의 ‘지위’에 대해서는 ‘노력의 결과’라는 답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노동시장에서 중상위층에 편입되는 비중은 늘어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성별 차이에 따른 불평등 문제에 민감해졌음을 시사한다.
20대 남성은 대체로 이전 세대보다 더 개인의 사회경제적 위치가 ‘노력’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지위가 스스로 들인 노력의 결과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중간 이하인 남성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부유하지 않은 부모를 둔’ 남성은 더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20대 남성의 세계관에서 불평등과 불공정을 민감하게 받아들일지의 여부는 그가 어떤 계층에 속하느냐에 의해 좌우된다.
20대 남성 가운데 이전보다 기회의 공정성이나 능력 위주 사회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집단이 있다면 중산층 출신의 남성이라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른바 ‘공정성’에 대한 이슈는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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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중산층 자녀의 이슈다. 20대 중산층 남성이 왜 절차적 공정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는 2010년이후 노동시장에서 ‘번듯한 일자리’에 진입하는 데 가장 어려움을 겪게 된 집단이 20대 중산층 남성이 라는 점과 연관될 것이다. 즉, 그들의 ‘보수성’은 강한 경제적 압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정성’을 집착적으로 강조하면서, 자신이 그 ‘기회의 공정성’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서사이다. 하지만 부모가 고졸-생산직인 20대의 경우 확실하게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인식하고, 또 노력해서 성공할 수 없다고 본다. 이 부분은 남성과 여성 모두 마찬가지다. 오히려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20대 남성의 경우 최근의 ‘20대 보수화’ 담론이 포괄하지 못하는 계층으로,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감지할 수 있다. 결국 지금의 ‘공정성’ 문제는 20대 세습 중산층 자녀들에게 민감한 문제일 것이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세계는 세습 중산층의 자녀에게만 그 문이 열려 있는 세계다.
‘20대 남성 보수화’라는 신화
60대 건물주의 정당 vs. 50대 부장님의 정당 교육, 취업, 결혼 등 삶의 거의 모든 과정에서 불평등을 경험하는 20대가 ‘80년대 학번-60년대생’에 대해 불신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이는 그들이 불평등한 사회의 상층에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 다도 그들의 자녀들이 견고한 불평등 구조에서 최상층을 독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대의 입장에서 50대 중상위층은 단순한 부모 세대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교육 및 일자리 경쟁에 참여하고 있는 경쟁 자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독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80년대 학번-60년대생’이 제시하는 정치 기획이나 이데올로기는 능력 본위 경쟁을 내건 교육-취업 게임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창출하고, 승리를 독식하는 이들의 주장일 뿐이다. 이른바 ‘적폐 청산’ 등의 어젠다는 20대의 생활세계에 영향을 주지 못할뿐더러, 50대 중상위층의 우월적 지위를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즉, 지금의 20대가 586의 정치 기획에 냉소를 보내는 것은 단순히 ‘세대 차원의 기득권’을 가졌거나 ‘상류 계급’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불공정한 게임의 핵심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보수와 진보의 스테레오 타입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보수’가 60대 중반 이상의 건물주라 면, ‘진보’는 50대 초중반의 대기업 부장 또는 임원이다. 60대 건물주가 20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높은 월세 정도로, 자산 소유를 기반으로 한 경제적 착취 관계다. 하지만 50대 초중반 고참 부장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경제적 교육 투자뿐만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기업체 인턴 기회를 알아봐주는 등 사실상 ‘경쟁자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60대 중반 건물주를 상대로 ‘적폐 청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설득력을 가질 리 만무하다. 비싼 월세는 화가 나긴 하지만 돈을 벌어서 지불하면 되는 문제라면, 교육과 노동시장에서의 불공정한 경쟁은 교육과 일자리라는 근본적인 ‘기회’ 및 그 ‘결과’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으로 가속화되긴 했지만, 민주당 또는 진보 정당이 당면한 20대 문제는 단순한 세대 갈등이나 계급 갈등의 문제 이상이다. ‘50대 부장님들의 정당’이 그들의 자녀 세대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먼저 초격자 사회의 승자인 상위 10퍼센트에 대해서 ‘피해대중’이나 마찬가지인 하위 90퍼센트는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교육, 주택, 일자리 등에서 주된 사회경제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향후 정치적 주 전선도 여기에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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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 이슈에서는 모두 상위 10퍼센트의 독식 구조가 중요한 문제다.
더구나 교육, 일자리, 부동산 자산 가격에서 심화되고 있는 격차는 중상위층이 거주하는 ‘서울’과 나머지 계층이 거주하는 ‘지방’ 사이의 격차를 부각시킨다. 좁게는 민주당, 넓게는 민주ㆍ진보 세력의 정치 블록에서 호남ㆍ충청 등의 ‘동맹 지역’은 주된 구성 요소다. 그런데 서울과 지방의 격차 문제에 계층 문제가 중첩될 경우, 상위 10퍼센트가 거주하는 ‘서울’과 나머지 90퍼센트가 모여 있는 ‘지방’은 대립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중앙정부의 자원을 놓고 경쟁해온 지역들이 모여 정치 블록을 구성해온 방식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도시 중산층 집단 내 구심력 약화도 민주당과 진보 정당이 구축한 지지 블록을 형해화시킬 요인이다.
지금의 20대 중후반이 5년 뒤면 30대 초중반이 된다. 민주당지지 블록의 ‘근육’ 역할을 해왔던 30~40 대 화이트칼라 집단의 일원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현재 20대 중상위층이 30대 이상이 되었을 때 오늘날의 30~40대처럼 민주ㆍ진보 세력에 기울어져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20대 중상위 계층은 말 그대로 ‘세습’ 중산층이다. 그들의 정치의식은 탄탄한 사회경제적 기반에서 기원한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민주당이 여전히 30~40대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가능성은 적다.
게다가 서울 주택 가격이 급등하면서 현재 20대 후반~30대 초중반 중상위층이 자력으로 주택을 사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이들과 40대 중후반 이상, 특히 50대 중산층과의 자산 격차는 더더욱 벌어진다.
또 부모가 서울에 아파트 1~2채를 갖고 있는 20대와 그렇지 않은 20대 간에는 노동소득으로 메울 수없는 격차가 난다. 자산 격차 확대에 가장 불만이 있는 계층은 1차 노동시장의 주변부에 있거나 또는 계층 이동에 성공한 ‘개천에서 용난’ 이들이다. 즉, 도시 화이트칼라 집단에서도 경제적 지위가 분화되고 있으며, ‘586’에 대한 30대의 불만은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현재 20대의 바탕과 성향이 노동시장 진입 이후에도 상당 기간 유지될 것임을 시사한다.
결국 30대 중반까지 포괄한 대규모 탈민주당 유권자 집단이 수년 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20대가 30대 중반 정도가 되는 2022년 대선이나 2024년 총선을 전후로 해 기존 정당 체제에 대한 불만과 비당파적 성향이 강한 유권자 집단이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런데 정당 일체감이 약하거나 없는 유권자층이 대규모로 존재할 경우, 유권자들의 정당 간 선호 체계가 크게 바뀌고, 각 정당의 소구 계층이 변화하는 ‘재정렬’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 정치학자 크리스티 앤더슨은 193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당선과 그 이후 민주당 세력의 확대를 가능케 했던 것은 기존 정당이 포섭하지 못했던 비당파 유권자층을 공략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대규모 비당파 유권자가 존재하는 상황 에서 그들을 묶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 이른바 ‘뉴딜 집권 연합’의 성공 요인이라는 것이다. 2022년 이후 한국 정치 지형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에필로그 - 세습 중산층의 진화
문제는 ‘60년대생’이 아니라 ‘세습 중산층’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양보와 공정이 아니라 의무와 공평이 아닐까. 시작 단계에서부터의 공평과 그것을 위한 세습 중산층의 경제적ㆍ사회적 의무 부담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가장 분명하게 요구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기회의 평등이다. 단순히 입시제도의 공정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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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수준의 교육 기회와 능력 배양의 기회에서 하위 90퍼센트도 상위 10퍼센트 수준의 기회를 갖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OECD, IMF, 세계은행 등에서 나오는 관련 보고서에서 으레 등장하는 표현이라 식상해 보이지만 오늘 날의 한국 사회에서는 근본적인 수준에서 기회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급진적인 주장이 가능해 보인다. 가령 기회의 평등이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영유아기에서부터 공공 보육이나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교육을 통한 계층 재생산이 매우 어린 시기부터 이루어짐을 보일 수 있으며, 교육 과정이나 교육 재정 구조 개편을 촉발시킬 수 있다.
두 번째는 사회에서 보장해야 하는 최소 수준에 대한 합의와 그에 따른 적극적인 세원 확보다. 노동시 장의 변화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고,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있게 부조하자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자녀들이 ‘다음 세대’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도 영영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중요하다. 또 재원 마련을 위해 현재 노동시장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수혜를 받고 있는 상위 10퍼센트 중상위층에 대한 과세 강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금의 불평등이 상위 1퍼센트와 나머지 99퍼센트의 격차뿐만 아니라, 상위 10퍼센트와 나머지 90퍼센트의 심각한 격차 문제에 기인한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세습 중산층은 그 격차를 ‘능력의 차이’로 포장하며, 자신의 자녀들에게 적극적으로 계층 지위를 물려 주고자 노력하는데, 그 불평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생하고, 사회적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지 정확히 인식하는 데에 해결의 단초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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