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열등감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알려주고, 열등감을 드러내놓고 펼침으로써 행복해지는 실질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는 열등감은 행복을 부르는 확실한 도구이며, 문제는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하면서, 열등감 때문에 뼈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저자가 경험한 일들을 진솔하게 들려주면서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나는 열등한 나를 사랑한다
▣ Short Summary
알프레드 아들러는 “열등감 극복을 통한 우월감 추구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삶의 동기”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열등감 자체는 인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열등감의 정도와 성격이다. 그러나 우리는 내 안의 열등감 자체를 인정하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머리만 가리면 몸을 모두 숨긴 줄 아는 타조처럼, 자신에게 존재하는 열등감을 보지 않으려고 바로 그 열등감을 부정한다.
이 책은 열등감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알려주고, 열등감을 드러내놓고 펼침으로써 행복해지는 실질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는 열등감은 행복을 부르는 확실한 도구이며, 문제는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하면서, 열등감 때문에 뼈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저자가 경험한 일들을 진솔하게 들려주면서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1장에서는 열등한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2장에서는 손에 잡히지 않는 행복을 찾는 방법을 이야기하면서 그동안 나를 불행하게 하던, 실패와 좌절 속에 주저앉아있을 수밖에 없던내 모습과 마주했던 때에 대해 말한다. 3장에서는 손에 잡히는 행복을 잡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 차례
PROLOGUE
1장 열등한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01. 나는 내 삶의 주인이다 02. 열등감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 2 - 나는 열등한 나를 사랑한다
2장 손에 잡히지 않는 행복을 찾아라 01. 행복을 찾는 마음훈련 02. 나에게 정직하라 03.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라 04. 어설픔을 인정하는 행복의 초대 05.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긍정의 마음 06. 열등의 말투를 행복의 표현으로 07. 격려를 받을 때 생기는 특별한 행복
3장 손에 잡히는 행복을 잡아라 01. 내 몸의 행복을 관리하라 02.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03. 학벌에서 해방되라 04. 은메달의 아쉬움을 버려라 05. 돈을 탐하지 말라 06. 비교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 07. 열등감을 부추기는 SNS 08. 전국자기자랑용 SNS 계정을 삭제하라
EPILOGUE
- 3 - 나는 열등한 나를 사랑한다
열등한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나는 내 삶의 주인이다 우월감 추구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삶의 동기: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환경을 겪으면서 타인과 나를 자연스럽게 비교한다. 이런 비교는 곧 타인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열등감이 발생하는 과정 으로 이어진다. 한편 열등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단점 혹은 약점이 폭로될 상황에 직면하면 불안해 한다. 더 심한 경우에는 공포심까지 느낀다. 그리고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 경우에도 불안감이 떨쳐지지 않아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 혹은 반대로 불안감을 느끼면 극도로 예민해져 오히려 폭력적이 되는 사람도 있다. 이 둘은 반대되는 성향처럼 보이지만, 타인의 비판에 민감하다는 점과 칭찬을 받으면 과잉반응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의 원인을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열등감이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로 ‘개인심리학’을 연구한 알프레드 아들러는 “열등감 극복을 통한 우월감 추구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삶의 동기”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열등감 자체는 인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열등감의 정도와 성격’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 안의 ‘열등감’을 인정하기를 어려워한다. 머리만 가리면 몸을 모두 숨긴 줄 아는 타조처럼, 자신에게 존재하는 열등감을 보지 않으려고 바로 그 열등감을 부정한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기에: 당신 삶의 주인이 누구겠는가. 솔직한 마음으로 당신 자신을 들여다보라. 당신 자신의 행동과 생각,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의 주인은 과연 누굴까? 열등감을 부정적으로 학습한 사람은 열등감을 오로지 부정적으로 사용하려고 든다. 목소리만 크면 이긴다고 생각해 무조건 소리를 지르며 안하무인이다. 회사에서는 위아래도 없으며 독불장군으로 유명하다. 직장동료들에게 손가락 질을 당하거나 무시당하기 일쑤다. 성격 자체가 원만하지 못하고 괴팍스러워 모두가 기피하는 대상이 지만, 당사자는 그것만이 자신을 지키고 직장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착각한다.
그 배경에는 무슨 일만 생기면 습관적으로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 일상화된 경험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과거에도 소리를 질러서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고 심리적인 보상을 받았던 것이다. 즉 자신처럼 열등감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어 물어뜯는 것이 점점 습관화된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이 보상받는다고 착각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마음을 제압하지 못하면 열등감은 거대한 괴물로 변해 당신을 집어 삼킨다. 만일 당신이 열등감을 노예로 삼지 못하면, 당신이 열등감의 노예가 될 것이다.
열등감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타인만을 좇는 태도에서 생길 수도 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다보니 타인을 기준으로 삼고서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고 가혹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이런 열등감이 있었다고 한다. 전 세계인의 동경과 존경을 동시에 받는 미국 대통령 역시, 열등감으로 인해 ‘나’와 타인을 비교하고 엄격한 잣대로 ‘나’ 자신을 규제했었 다는 사실이 꽤 놀랍지 않은가? 물론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열등감을 오바마 대통령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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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딛고 일어섰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열등감을 전복시켜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이방인’ 이 아닌 ‘대통령’으로서 자리매김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행복을 찾아라
행복을 찾는 마음훈련 마음의 호랑이를 잡아라: 열등감은 내 안에서 뛰노는 야생 호랑이와 같다. 야생 호랑이는 위협적이고 무서운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야생 호랑이가 사육사의 손에 길들여질 수 있듯이, 열등감도 내마음가짐에 의해 다스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열등감이라는 호랑이는 더 이상 마음의 주인자리를 꿰차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내가 열등감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곧 열등감을 가지는 것이다: 아들러는 이렇게 말했다. “열등감 때문에 인간은 더높은 수준의 발달을 향해 노력하고, 그 노력의 결과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면, 또 다른 열등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더 높은 곳으로 가려는 동기가 유발된다.” 즉 열등감은 인간이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펼치는 데 필요한 조건이라는 뜻이다. 아울러 아들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곧 열등감을 가지는 것이다.” 열등감에 몰린 삶은 경기 중 코너에 몰린 권투선수와 같다. 그때 권투글러브를 낀 양 팔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차라리 새로운 삶의 기회를 탐색 해볼 수 있도록 다음의 네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라.
첫 번째 방법은 열등감을 인식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내면적 노력을 하는 것이다. 열등감을 인지하더라도 그 열등감에 갇혀 있다면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내면적 태도부터 바꾸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열등감이 아니다. 즉 내면적 인식이 바뀌어 열등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옅어지고, 이것이 확장되어 태도의 변화까지 불러일으키게 된다.
두 번째 방법은 ‘열등감 안고 가기’이다. 내가 가진 열등감을 타인에게 알리지는 않지만, 내 안에서 그러한 열등감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그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긍정적 효과를 충분히 볼 수 있다.
세 번째 방법은 열등감의 원인을 찾아내어 해결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열등감 해소의 궁극적 방법이다. 많은 열등감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생겨나기 마련이지만 ‘원인을 찾아내어 해결하기’는 이런 외부적 요인을 바꾸자는 게 아니다. 내면적 태도를 바꾸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열등감을 내면적으로 이해하고 ‘또 다른 나’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네 번째 방법은 ‘회복탄력성’이다.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졌어도, 밑바닥에서조차 꿋꿋하게 튀어오를 수있게 해주는 마음의 근력, 그리고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긍정적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설사 열등감으로 인해 좌절하게 되더라도 다시 한 번 더 크게 튀어오를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나를 위협하는 열등감이, 내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줄 전환점으로 변화될 것이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라 열등감을 털어놓지 못하는 아쉬움: 열등감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고백하지 못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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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장벽은 열등감은 나쁜 것이고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두 번째 장벽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혹은 잘난 척하기 위해서다. 세 번째 장벽은 열등감을 나 혼자만의 마음의 병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열등감은 병이 아니다. 자존심이나 자존감 같은 것일 뿐이다.
네 번째 장벽은 한번 생긴 열등감은 죽을 때까지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짐인 줄로 착각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장벽은 내 열등감에 대해 남들이 알면 나를 바보 취급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런 걸 알아서 댁들이 뭘 할 건데!” 하는 기세로 살면 된다.
인정할 때 가벼워지는 경험: 열등감을 인정하는 순간,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또 가벼워질 수 있다. 열등감을 털어놓아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열등감을 펼치면 열등감을 숨기기 위한 자만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은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삶에 대한 희망과 도전정신이 높아진다. 또한 모든 일에 재밌게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열등감을 펼치면 스스로 자신을 보살피면서 자기의 미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 즉 당당해지는 것이다.
셋째, 열등감을 펼치면 삶의 긍정적 에너지가 터져 나온다. 넷째, 열등감을 펼쳐야 새로운 대인 관계의 장이 펼쳐진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성공을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 가족을 먹여 살릴 돈을 벌기 위해서와 같은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열등감을 펼쳐 진정한 행복을 얻는다면 더 나은 삶과 함께 멋진 대인 관계가 형성되면서 그 모든 것들을 손에 넣을 것이다.
다섯째, 열등감을 펼치면 비굴함 대신 자존심을 지켜주는 품위가 생긴다. 여섯째, 열등감을 펼치면 마음속 구석에서 숨죽이고 있던 감정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일곱째, 열등감을 펼치면 더 이상 나를 왜곡할 필요가 없어진다. 내가 얼마나 진실하게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되니까 말이다. 나의 삶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지 않는가! 어떤 것도 더하거나 뺄 수 없으며, 보태서도 안 되지 않겠는가!
어설픔을 인정하는 행복의 초대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기: 우리 삶의 본질은 ‘행복’이다. 물론 우리에게 대기업 입사를 성공의 목표라고 가르친 기성세대들은 “성공하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오는 덤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기성세대들이 말한 것과는 달리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들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성공은 장거리 마라톤과 같다. 멀고 막연하다 보니 그게 내게 어울리는가 하는 의문마저 가지기도 한다.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오지 않는 지금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행복은 가깝다. 예를 들면, 주택 문화가 단독주택, 연립주택, 다가구주택, 아파트, 오피스텔 등의 순으로, 즉 개성 위주로 바뀌는 것을 보라. 이 또한 주거 개념의 중심이 성공에서 행복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결국 내 속에 감춰진 열등감을 펼치는 일은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쉽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속에 열등감을 감추고 산다면, 당신은 좀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열등감을 펼치면 행복의 기쁨이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긍정의 마음 행복 플러스: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행동 중 하나는 나와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이다.
비교는 가족이나 타인과의 상호 작용에서 발생한다. 이때 타인에게 얼마나 의존하며 살았느냐에 따라 비교에도 정도의 차이가 나타난다. 타인과 나의 온갖 것들을 비교하고, 그래서 나보다 더 좋은 걸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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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가진 타인을 헐뜯고 시기하고 질투하는가? 그렇다면 “그래, 알게 뭐냐!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난 나다!” 하면서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어보라. 그러면 더 이상 시기심이나 질투심에 휩쓸릴 이유가 없다. 타인이 오히려 나를 질투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마음을 먹으면 그 시기심과 질투심에 불타는 타인이 먼저 나가떨어진다.
열등감 극복과 자존감 회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질투다. 성공하거나 잘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질투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행복이란 나의 행복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모습을 보고도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내가 승리해야 기쁜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즉 동료선수나 가족이나 친척이나 동창 등 누구를 막론하고 상대방의 기쁨을 함께 누려줄 때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때 행복의 대상이 누구냐는 그다지 중요한게 아니다. 내가 주인공이어야 행복하고, 내가 주인공이 아니면 불행하다는 생각은 행복이 달아나는 원인이다. 행복도 습관이고, 불행도 습관이다.
열등감을 행복의 열쇠로 만들려면 행복에 대한 이해와 행복한 마음의 감성이 깨어나야 한다. 또한 열등감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도 키워야 한다. 그리고 다양성을 이해하려면 우리 마음의 생각을 바꿔야 하고,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야도 필요하다. 열등감이 행복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은, 내 속에 숨겨진 내면의 세계를 다양하게 살펴볼 때 가능하다.
격려를 받을 때 생기는 특별한 행복 ‘격려’를 받을 때 펼쳐지는 열등감: 아들러는 내담자(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를 도울 방법으로 내담자의 기본적 욕구를 파악하고서 접근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는 내담자의 열등감을 극복시켜주기 위해 내담자가 현재 생활하는 환경이나 구조에서 정보를 구한 뒤, 내담자의 인지/사고를 변화시키는 개념이다. 즉 내담자를 위해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내담자에게 ‘격려’를 해주라는 의미다.
나를 지키는 격려의 에너지를 충전하라: 최근 어느 젊은 여성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 소위 ‘악플러’라는 몹쓸 네티즌들이 그녀에게 퍼부은 날카로운 말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회생활 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지만, 그냥 참고 견디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내 감정을 모두 표출할 용기도 없으니 수긍 아닌 수긍을 할 수밖에 없다. 이때 가장 친한 누군가에게 오늘 하루의 회포를 풀 듯,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라. 불평이든 신음이든 가만히 들어주면서 자신의 손을 잡아주거나 위로해주는 한마디라도 해주라. 그럼으로써 자신을 새롭게 충전하라. 격려는 행복을 전달하는 행복전 도사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격려는 기본적으로 가슴 따뜻함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며, 가치와 의미를 추구한다. 참고로 가장 중요하면서 어려운 격려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1단계] 삶을 긍정적으로 살려는 개인에게 내적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단계다. 열등감의 노예로 살아온 가슴 아픈 날들을 털어놓으면서,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던가를 생각하다보면 열등감은 자연스 럽게 사라지고 자기 자신에 대한 격려가 시작된다.
[2단계] 격려를 받은 사람은 관점의 변화를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멘토(주변 사람)의 적극적 개입과 피드백이 중요하다. 즉 멘토가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담아서 격려해줄 때 상대방은 감정과 가치관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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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격려하는 사람은 말/감정/행동을 통해 “당신과 함께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러니 긍정 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격려를 받는 사람이 노력하는 만큼의 보상과 효과를 체험하도록 만들어준다. 이 과정에 초점을 맞출 때에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반응해주면 더욱 효과적이다.
[4단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내적 자원의 활용과 용기는 언제라도 사용될 수 있도록 충전 되어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상담자/관리자는 격려를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수시로 격려하여 긍정적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손에 잡히는 행복을 잡아라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천편일률적인 성형미인: 미디어의 영향으로 외모의 기준이 획일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아 름다움’과 ‘예쁨’에 대한 기준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모델이나 배우, 가수 같은 연예인 들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될수록 평범한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자꾸만 높아지는 것이다. 또한 요즘에는 SNS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과시하는 온라인 스타들이 급증했다. 온라인 스타 들이 타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고, 스스로의 매력을 과시하며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려고 올린 사진들 앞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부러움과 질투심, 그리고 시기심을 느낀다.
사회 전반에 심각할 정도로 깊게 뿌리를 내린 외모지상주의와, 이에 따라 아무런 죄의식 없이 타인의 외모를 비하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의 말을 개인이 혼자서 견뎌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그 결과가 눈에 확실히 보이는 성형수술을 통해 회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열등감은 회피를 한다고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열등감은 회피하면 회피할수록 더 지독하게 우리의 뒤를 쫓는다. 열등감 때문에 좌절한 이들의 숨통을 바로 그 열등감이 강하게 옥죌 뿐인 것이다. 즉 성형수술은 약이 아니라, 외모에 대한 당신의 열등감이 파놓은 당신 자신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
학벌에서 해방되라 열등감을 부추기는 사회구조: 어느 특정한 사회구조가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사회구조 때문에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러한 스트레스로는 개인적 스트레스도 있지만, 사회나 국가가 주는 불합리한 구조나 부정/부패, 그리고 권력자 집단이나 권력의 시녀들이 부리는 추잡스러운 비인간적인 행동들이 유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민행복지수 대신 국민의 열등지수를 높이고 부추기는 역할을 국가나 정치지도자들이 감행하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온 국민들에게 온갖 열등감을 심어주는 ‘열등감 공화 국’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오직 1등만 기억하고, 오직 1등만 사람 대접을 받고, 오직 1등에게만 박수를 쳐줌으로써 그런 열등감을 조장하지 않는가. 예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학벌’이 우선이다. 분식점 주인장이 ‘SKY 졸업장’을 내걸거나, S대 출신이 제과점을 한다는 이유로 온갖 미디어에서 야단법석이다. S대 출신 연예인이나 개그맨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찬양하는 나라다. 고등학교만 나온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인데도 말이다.
학벌에 대한 유별난 열등감: 명문대 출신이라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어지간한 중견기업에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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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들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에 취업한 동기들과 비교해보고 “내가 어쩌다 이딴 데서 일하게 됐나?” 하면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괴감에 빠진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패배적인 사고와 부정적인 사고까지 가지게 된다. 이런 사회구조적 병폐는 한국 사회 곳곳에 문화적ㆍ정서적으로 뿌리 깊게 박혀있다.
예를 들면, 법조인은 고시 출신과 로스쿨 출신으로 나뉘어 첨예한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그리고 경찰도 경찰대 출신과 비경찰대 출신으로 나뉘어 우월감과 열등감을 조직적으로 발산하고 있다. 심지어 군인마저 사관학교 출신과 일반 간부 후보 출신의 더 높은 계급장 쟁탈전이 심각하다. 학교라고 예외겠는가. 특정 교대 출신들과 사립 교대 출신들의 기 싸움으로 교총회장을 비롯한 선출직을 두고 싸움이 벌어진다고 하니, 학생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느냐고 묻고 싶다.
학벌에 대한 열등감을 제거하려는 젊은이들의 도전: 학벌에 대한 저항감은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일고 있다. 예를 들면, 서울에 있는 어느 명문대에 대자보 세 장이 붙었던 일이 있다. 사람들은 이 대자보들의 내용에 주목했는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 이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앞에 소개한 당시 그 대학 3학년이던 김 씨의 대자보는 학벌 위주의 풍토 속에서 사회와 기업들이 요구하는 부품 따위로 자라던 청년들에게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는 비단 김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육 현장에서 수동적인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양심적 자퇴 소식도 여기저기서 종종 들려온다. 2015년에는 고교생 김 양이 “진정한 배움이 없고 경쟁만 남아있는 학교를 떠난다”며 알림판과 팻말을 들고 20여 차례에 걸쳐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의 행동을 놓고 찬반 의견이 갈리기는 했다. 저자 역시 그들의 결정에 100퍼센트 동의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학교가 우리더러 사람이기를 포기하게 만든다!”는 그들의 공통된 절규를 들으면서, 기성세대로서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 그래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롤리타』라는 소설로 널리 알려진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인간과 동물이 다른 이유는 약자를 위한 법칙이 있어서”라고 했다. 약육강식의 동물세계에서는 약자가 도태될 수밖에 없지만, 인간세계에서는 약자도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대비되는 사례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이다. 사회에 깊은 파문을 남겼던 이 책은, 건강보험료 등 생계 문제를 해결하려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투잡을 뛰면서 시간강사로 활동하던 저자 자신의 이야기다. 저자는 직원들에게 “법을 지키기 위해서”라며 건강보험 등 4대 보험까지 챙겨주는 패스트푸드점이 시간강사를 제대로 챙겨주지도 않으면서 편법이나 저지르는 대학보다 낫다고 주장해서 강단을 떠나야 하기까지 했다.
이들이 선택한 삶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리라고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몇몇 개인들의 작은 소동으로 기억될 뿐이다. 심지어 요즘에는 이들의 고발을 한순간의 치기와 어리석 음으로 치부하는 자들도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회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 중 일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이 고발한 것처럼 우리는 학업의 열등감 때문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부터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귀머거리 12년, 장님 12년, 벙어리 12년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힘들여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행복을 듣지 못하고, 행복을 보지 못하고, 행복을 말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혁신하기 위해 대한민국 사회가 만들어놓은 트랙을 벗어나 초원을 찾기로 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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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작은 도전들을 어떤 식으로든 응원하게 된다.
은메달의 아쉬움을 버려라 그렇다면 왜 ‘갑질’을 멈추지 못할까?: 타인과 나의 관계를 ‘갑과 을’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분명히 사회적 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장 개인의 사고방식 전환 정도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반성이 필요하다. 즉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이를 의심하고 재확인하는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한편 불평등은 곧 이 사회의 약자들(을과 병, 그리고 그 이하들)에게 크나큰 정신적 상처를 안기기 마련인데, 이것은 곧 개인(약자)의 ‘열등감 형성’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나마 개개인의 열등감으로 존재할 경우 상처도 개개인의 것으로만 존재하겠지만, 이들이 사회에서 서로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집단을 이루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개개인의 열등감이 곧 집단의 열등감을 이루고, 결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열등감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야기할 가능성이 큰 불평등에 관해서 “왜 불평등해야 하지?”, “누가 불평등하지?”, “불평등은 어떠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회 문제를 만들어내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불평등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불만과 투정으로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 타인을 깎아내 리며 나의 ‘열등감’을 숨기는 것은 이제 관두고, ‘비교’에서 싹트는 ‘열등감’을 인정하기로 하자. 어차피 영원한 ‘갑’은 없고, 그래서 ‘갑’과 ‘을’의 관계는 언제나 전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제까지 직원의 아들이던 내게 ‘갑질’을 하던 사장님 아들이 내일은 내 사업장의 직원이 되겠다며 이력서를 넣는 경우도 벌어지는 게 세상이기 때문이다.
은메달보다 행복한 동메달의 기쁨: 어느 미국 연구팀은 은메달리스트 23명과 동메달리스트 18명의 표정을 관찰ㆍ분석했다. 결정적 순간에 이들의 감정이 ‘비통’과 ‘환희’ 중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10점 만점으로 체크한 것이다. 아울러 시상식에서의 감정도 체크하기 위해 은메달리스트 20명과 동메달리스트 15명의 시상식 때의 모습을 분석했다. 결과는 경기가 종료되고 메달 색깔이 결정되는 순간 동메달리스 트의 행복 점수는 10점 만점에 7.1점으로 나타났다. 비통보다는 환희에 더 가까운 점수였다. 그러나 은메달리스트의 행복 점수는 고작 4.8점이었다. 환희와는 거리가 먼 감정이었다. 사실, 객관적으로 봐도 은메달리스트가 동메달리스트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룬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은메달리스트와 동메 달리스트가 주관적으로 경험한 성취의 크기는 이와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이 연구팀은 더 나아가 은메달리스트와 동메달리스트의 인터뷰 내용도 분석했다. 해당 선수들이 인터 뷰를 하는 동안 “거의 할 뻔했는데”라는 아쉬움을 많이 드러냈는지, 아니면 “적어도 이것만큼은 이루었습니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는지를 체크한 것이다. 결과는 동메달리스트의 인터뷰에서는 만족감이 더 많이 표출되었고, 은메달리스트의 경우에는 아쉬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대비효과’ 때문이다. 즉 어떤 경험이나 사건이 그 바로 직후에 이어지는 경험이나 사건에 반대되는 영향을 끼친다는 것인데, 이러한 ‘대비효과’는 열등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은메달을 받은 선수들은 “만약 내가 몇 초만 더 힘을 냈더라면 금메달을 땄을 텐데”라는 후회와 금메 달을 딴 선수와의 비교의식, 깊이를 알 수 없는 아쉬움이 그 순간의 감정을 지배하기 때문에 앞의 연구 결과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동메달을 받은 선수는 “이번에 실수하거나 잘못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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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동메달도 못 받았을 거야. 정말 다행 아니겠어!”라는 식의 안도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만족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은메달을 받은 선수는 위쪽(금메달을 받은 선수)과 자신을 비교하니 괴롭고, 동메달을 받은 선수는 아래쪽(메달을 못 받은 선수들)과 자신을 비교하니 만족스러운 것이다.
열등감은 나와 타인을 비교하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매일 같이 나보다 더 높은 위치의 사람만 쳐다 보며 살다보면 불평/불만/원망만 쌓인다. 하늘만 쳐다보고 있노라면, 땅에 있는 것을 내려다보지 못해 결국 구덩이에 빠지는 법이다. 그러면서 “쳇! 내가 하는 일이 늘 이렇지!”, “이번에도 역시 되는 일이 없구먼. 내가 행복할 수가 없어!” 같은 식의 자기비하만 늘어나게 된다.
전국자기자랑용 SNS 계정을 삭제하라 열등감을 자극하여 행복을 갉아먹는 대상을 파악하라: SNS가 세상에 나왔을 때의 목적은 ‘소통’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소통보다 자기과시나 자기자랑이 주 목적이 되었다. 그렇게 자기과시나 자기자랑을 위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해외여행 다니는 이야기들과 사진들, 좋은 음식과 멋진 옷을 즐기는 모습 등 정말 잘살고 행복한 모습 등을 올린다. 하지만 자기자랑을 하려고 올린 글들과 사진들을 보노라면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 정작 나는 해외여행은커녕 알바를 몇 개씩 하며 아등바등 살아가니까 말이다. 이는 결국 열등감을 자극하면서 공허함과 우울함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우리의 신경은 어쩌다 한번 슬쩍 본 것도 당시의 감정이나 기분과 함께 대뇌에 저장한다. 그래서 SNS를 하다보면 30분이 멀다하고 남의 글과 사진을 보고 또 들여다보게 된다. 안 보려고 해도 관음증처럼 끊을 수가 없다. 그렇다. 일종의 ‘SNS 관음증’인 것이다. 타인이 뭘 어떻게 했는지가 자기 자신에 대한 것보다 더 관심의 대상인 것이다. 그런데 SNS에 공개되는 그들의 화려한 모습이 정말 그들의 ‘진짜 일상’일까? 실은 SNS에 공개되는 모습과 실제 모습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SNS에 올린 글과 사진 덕분에 ‘좋아요’를 많이 받는, 소위 ‘SNS 스타’라는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SNS에 자기 개인사를 올리지 않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할 정도다.
예를 들면, 일반인들이 몰라서 그렇지, SNS상에서 제일 많은 관심과 ‘좋아요’를 받는 연예인들 역시 하루 종일 연습하는 등 처절하게 일한다. 단지 카메라 앞에서만 멋져 보일 뿐이며, 그것 또한 그들에게는 즐기는 게 아니라 일일 뿐이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거부이자 성공한 사람인 빌 게이츠는 말했다.
“그 누구와도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 그것은 자신을 모욕하는 짓이다.”
남이 SNS에 올린 글과 사진을 긍정의 마음으로 받아들여라: 인간이라는 동물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사는 게 불가능하다. 이는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나 하인츠 코헛, 와다 히데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저자 역시 끊임없이 강조해온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비교할 것인가?”라는 방법론 이다. ‘비교’는 종종 나 자신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해주는, 그러니까 ‘기회’가 되어주기도 하기 때문 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불행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는 딱 하나다. 다른 사람과 늘 비교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예로 SNS에 타인이 올린 사진 정도야 쓰윽 한번 보고 넘겨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의 기억은 온갖 감정들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즉 마음속에 다음과 같은 비교의 찌꺼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데….” 그리고 그에 따른 자책감과 열등감, 시기와 질투가 함께 작동한다.
한편 정신적으로 건강하거나 열등감을 극복한 사람은 타인이 SNS에 올린 멋진 모습을 봐도 그냥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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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원하고 있을 ‘좋아요’나 눌러주면서 재밌게 보는 것으로 끝이다. 그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책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 당신이 SNS에 올라와 있는 타인의 행복을 훔쳐보듯 하면서 질투를 느끼거나 열등감에 젖어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SNS를 중단하라. 그것이 당신의 행복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SNS에는 언제라도 다시 들어갈 수 있지만, ‘SNS 열등감’에 한번 빠지면 깊이를 알수 없는 늪의 밑바닥으로 빨려 들어갈 뿐이다.
그러니까 타인이 SNS에 자랑하려고 올린 사진이나 글을 볼 때마다 ‘잘됐구나’, ‘행복하겠네’, ‘축하한다’, ‘다행이네’, ‘역시 대단하구나’ 같은 긍정의 마음으로 받아들여보라. 혹은 “나도 저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지!” 하는 발전과 도전의 원동력으로 삼거나 동기유발의 기회로 받아들여보라. 그렇게 한다면 비교 자체가 더 좋은 결과를 안겨주는 마음의 보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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