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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울었다

by Casey,Riley 2023.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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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m Sheds a Tear
                         어머니가  울었다
                                                      James Yaffe

  어머니는 감상적인 한숨을 쉬며, 원망스러운 듯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어린애가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발소리는...그건 인생의 커다란 즐거움 중의 하
나인데. 너도, 셜리도 이상하구나. 이런 즐거움에 관심이 없다니."
  나는 약간 쑥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엄한 투로 이 문제를 꺼낼때면 나
는 언제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셜리도 나도 그야 어린애가 갖고 싶지요."하고 나는 말했다. "승급만 하면, 교
외의 집을 얻을 보증금도 치를 수가 있으니까..."
  "보증금이라니! 승급이라니!" 어머니는 성난 음성으로 머리를 저어댔다.  "오늘
날의 젊은 것들이란 감정이 풍부할 나이에 수표가 몇장이나 남았는가 계산할 때가
있더구나.  알겠니, 데이비. 만일 네 아빠나  내가 네 나이 또래에 보증금 따위를
생각했더라면 너는 지금 여기서 쇠고기찜 따위를 먹고 있진 못해."
  금요일 밤이었다. 그러나 오늘밤은 아내 셜리는 안 왔다. 일주일 예정으로 시카
고의  친척집에 갔기 때문이었다. 셜리가 없으면 어머니는 기회를 놓칠세라, 우리
의 결혼생활에 대해 - 참으로 귀찮기 짝이 없지만 - 집요하게 간섭해 오는 것이다.
  "게다가 말예요, 어머니." 하고 나는 화제를 돌리려 했다.  "어린애란 번거로운
거라고,  어머니는 곧잘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마음에 든다시던 글귀 있
죠, '아기 때는 부모의 가구를 상하게 하고 어른이 되면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한
다' 구요."
  "그건 부정하지 않는다." 하고 어머니는 단호히 대답했다. "그런 상심거리가 없
으면, 인생이란 싱거운 거 아니냐?"
  "어머니도 그렇게 느끼시는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만약 어머니가 아그네스
피셔라면...아그네스 피셔는 어제 제가 수사를 시작한 사건의 관계자인데요, 미망
인이죠.  케네스라는 이름의 다섯 살 난 아들이 있어요."
  "그 어린애가 어떻게 됐단 말이냐?"
  "분명히 증거는 아무것도 없지만요,  주위의 상황은 온통 다섯 살 난 케네스 피
셔가 살인범이라는 단정을 얻게 해요."
  어머니는 포크를 놓고 나를 노려보았다. 너무 오랫동안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쁜 짓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마침내 어머니는 빈정거림이 섞
인 긴 한숨을 쉬셨다.
  "기어이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전부터 말하지 않더냐?  마약환자나 동성애자,
주정뱅이, 그따위 사건만 상대하다 보니 네 머리까지 이상해진 거야. 사이몬 백부
와 의류점을 하라던 내 말을 들었더라면."
  "진정하세요, 어머니. 머리가 이상해진 건 아니에요. 이상한 건 피셔 사건이죠.
이제 얘기할 테니 어머니께서 판단해 주세요."
  완전히 화가 풀리진 않았으나, 어머니는 포크를 다시 입으로 가져가서 품위있게
한입 먹은 다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그네스 피셔는 서른살 정도로..." 하고 나는 얘기하기 시작했다. "군침을 삼
킬만한 미인인데, 다소 얼이 빠진 듯해요.  그 점이 또 말할 수 없는 매력이지만.
1년 전에 남편을 여의었죠. 남편은 공군조종사였어요. 그녀는 남편과 살던 집에서
다섯 살 짜리 케네스와 살고 있었어요.  워싱턴 스퀘어의 4층집인데, 그 변두리에
남아있는 낡은 벽돌집이죠. 19세기 이래로 피셔 가문의 소유에요."
  "그 피셔라는 양반, 부자냐?"
  "피셔 가문은 뉴욕의 부유층에 속하죠.  옛날같진 않지만 지금까지 상당한 자산
가죠. 그건 어떻든, 아그네스 피셔는 워싱턴 스퀘어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어요.
친구들이나 이웃사람들과도 잘 지냈으며, 미망인 생활에 안주하고 있었던 셈이죠.
그렇지만,  아이는 그다지 평온무사하지 않았어요.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심한
충격을 주었던 모양이죠.  본시  내성적이고 명상적인 아이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을 알자 더욱 자기의 껍질속으로 숨어버리게 되었어요. 이웃 아이들과 노느니
보다 자기의 공상세계 쪽을 더 좋아했어요. 그런데 몇달 전에 소년과 어머니의 생
활에 딴 사람이 비집고 들어오지 않았겠어요.
  이 새로 온 사람은 넬슨 피셔,  죽은 아버지의 동생으로  케네스에겐 숙부지요.
넬슨은 서른살 가량으로 죽은 형과 같이 공군조종사인데요, 금방 제대한 참이었어
요. 그가 원해서 제대한 게 아니라 - 하늘을 날으는 것은 그의 삶의 보람이었어요
- 태평양에서 말라리아에 걸렸기 때문이었죠. 친절하게 간호해줄 사람이 필요했어
요. 형수인 아그네스는 단 하나의 친척이었죠. 그녀는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기꺼이 그를 맞아들였어요. 낡은 저택의 3층을 모조리 제공했기 때문에,  그는 형
수와 어린 조카와 함께 살게 됐지요."
  "그래, 케네스가 질투를 한 게로구나?"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처음에는 그랬어요. 방구석에서 뾰로퉁해 보이기도 하고, 울거나 고함치고, 숙
부를 노려보기도 했어요.  넬슨 피셔는 아직 환자였는데, 말라리아의 후유증이 남
아 현기증이나 오한이 있어서 약도 먹고, 의사가 매주 왕진을 왔어요. 아그네스는
그 시중들기에 매우 바빴어요. 그래서 케네스는 약이 올랐나봐요. 하루는 심한 신
경질을 부렸어요. 발버둥을 치며 고래고래 뇌까렸죠.  '저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
냐! 저런 사람, 아빠 삼지 않을 테야!'  가까스로 진정이 됐으나, 이 일은 엄마를
뒤흔들어 놓았죠. 하인들은 이러니 저러니 수근거리구요."
  "하지만, 그건 처음에만 그랬을테지."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 후로는 케니
어린이의 기색도 달라지지 않았던가?"
  "그의 반항은 한달쯤 지나 그쳤어요. 그리고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지요. 그때
까지는 넬슨을 보기도 싫어했는데, 이젠 넬슨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찾아나서는
거예요.  갑자기 넬슨을 영웅으로 숭배하게 되구요.  딱한 숙부를 따르게 됐어요.
숙부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갔어요. 여러가지 질문을 퍼붓고,  어떤 대답
이 나와도 의심없이 그걸 믿곤 했어요. 넬슨 숙부의 말이나 행동을 찬양하는 눈으
로 바라보는 거였죠."
  "조그만 아이라면, 당연한 노릇이야."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까닭도 없이 마음이 변하는 일은 곧잘 있지.  참 그렇지, 내가 아는 어른 중에
도 그런 사람이..."
  "아, 알았어요. 당연한거죠." 하고 나는 말했다. "아뭏든 그런가 봐요. 그건 나
중에 일어난 일 때문에 - 아니, 얘기를 앞질러선 안되지. 두어 달 동안은 피셔 집
안은 평온했어요. 넬슨은 조카를 상대하기가 즐거웠던가 봐요.  결혼을 하지 않았
기에 어린애도 가진 적이 없고, 케네스를 아우처럼 다루더래요. 무척 이상적인 사
이죠. 그런데 여름으로 접어들자, 일주일 전 쯤에, 케네스는 야릇한 짓을 하기 시
작했어요. 그전까지는 퍽 정직한 아이였는데 일주일 전부터 물건을 훔치게 됐어요."
  "물건을 훔쳐?" 하고 어머니는 머리를 내밀고 말했다. "뭘 훔쳤다는 거냐?"
  "언제나 같은 짓이었죠, 어머니.  죽은 아버지의 소지품.  이를테면 아그네스가
맨 먼저 없어진 것을 안 것은 남편의 은성훈장이었죠. 그녀는 그걸 커프스 버튼이
나 결혼반지 등과 함께 양복장의 보석상자 속에다 넣어 두었다는데 그게 없어졌다
는 거예요. 여자 요리사와 하녀를 불러서 차근차근 물어보았으나 두 사람 다 무척
분개하고 자기들은 도둑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어요. 그래서, 그녀는 수도수리공이
범인이 아닐까 의심했죠.  그런데 이튿날 아침, 하녀가 의기양양하게 와서 훈장을
내놓더래요.  하녀의 말인즉 방금 케네스의 침대를  정리하러 갔을 때 발견했다는
거예요. 케네스의 베개 밑에 있었던가 봐요. 아그네스는 당황했죠. 케네스에게 따
졌으나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려 하지 않더래요.  그저 눈을 내리깔고 입안에서 우
물우물하더니 뛰어나가버리는 거였어요. 아그네스는 엄격한 어머니가 아니었기 때
문에 진상을 알아낼 때까지 어린애를 가두어두는 따위의 짓은 못했지요. 
  그런데 케네스는 또 도둑질을 했어요.  복도의 작은 방에다 여러가지 여러 가지
잡다한 물건을 상자에 넣어서 치워두었는데 - 남편의  헌 옷이라던가  책이라던가
서류 따위를 - 어느날 그 작은 방 앞을 지나려니까, 속에서 딸각거리는 소리가 나
더래요.  문을 열어보니 케네스가 있었죠. 상자 하나를 끌어내려 알맹이를 꺼내려
하는 참이더래요.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어머니. 케네스는 50년 전에 유행했음직한 길다란 망토
를 훔치려고 했던 거예요.  그건 케네스의 아버지의 것이었죠. 프린스턴 대학에서
연극을 할 무렵, 연극부에서 연극을 할 때 쓴 물건이었어요. 긴 망토는 그때의 의
상이었던 거죠."
  "케니는 아빠가 그 긴 망토를 입은 일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니? 참으로 알고
있었니?"
  "모를리 없지요, 어머니. 거실에 아버지의 사진이 걸려 있으니까 -연극 후에 찍
은 것으로 긴 망토를 어깨에다 걸치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아그네스는 케
네스에게 망토를 원래의 상자에 넣도록 했어요. 그런데 이튿날 그 작은 방을 들여
다보니 그 상자가 또 열려 있고 망토가 없더래요.  그녀는 곧 케네스의 방으로 올

라갔어요. 케네스는 없었지만, 긴 망토는 양복장에 걸려 있더래요. 그래서 아그네
스는 망토를 상자 속에다 갖다뒀죠. 그랬더니 이튿날..."
  "그만 됐다."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하고 나는 말했다. "긴 망토가 또 없어졌더래요. 아그네스는 어
찌할 바를 몰랐죠. 온종일 긴 망토를 찾아 헤멜 수도 없고, 그래서 그녀는 생각했
어요. 케네스는 필시 무슨 놀이에라도 쓰는 모양이지.  이런 생각으로 이 일을 처
리하고 말았죠. 
  그런데 케네스의 도둑질은  그치지 않았어요. 그로부터 이틀 후 - 사흘 전의 일
인데요 - 그는 또 일을 저질렀지요.  하녀가 여자 요리사와 함께 야단스럽게 달려
왔어요. 어젯밤에 4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쥐나 바람소리나 그 따위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잠을 잤는데 오늘 아침에 하녀가 청소하러 올라갔더니 쥐나 바람의
짓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만큼 심하게 어지럽혀져 있더라는 거예요. 4층에는 조그
만 다락이 있는데 거기에는 죽은 남편의 제복이나  모자, 계급장, 양복이나 외투,
구두 따위를 방충제를 넣어서 간수해 두었어요. 하녀의 말인즉, 마치 태풍이 휩쓴
듯 했다는 거예요.  옷이나 방충제가 난잡하게 흩어져 있더래요. 그리고 제복에서
마지막 계급장에 이르기까지 깡그리 없어졌다는 거죠. 여자 요리사는 곧 그만두겠
다고 나섰죠.  케네스처럼 난폭한 도둑이 있는 집은 질색이란 거였죠. 아그네스가
아무리 부탁해도 완강히 결심을 뒤집지 않더래요. 
  아그네스에겐 이것이  대체 무슨 영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아들이 몹
시 걱정되어 의사나  아동심리학자에게 데리고 가서 진단을 받으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녀는 사물을 과감하게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었죠. 의사에게 전화거는 걸
뭉기적뭉기적 미루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어제 아침을 넘겨버렸어요. 어제 아침,
살인이 일어난 거예요."
  어머니의 눈이 반짝 빛나는 것이 보였다. 내 성격의 짖궂은 부분이 발동하여 나
는 입을 다물고 한숨을 쉬고 음식을 우적우적 씹었다. 그리하여 긴장감에 찬 분위
기를 고조시켰다.
  드디어 나의 책략에 걸려,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알았다, 알았어. 그렇게 뭉
기적거리고 있지말고, 서서히 요점을 얘기하려무나."
  "어제 아침 -" 하고 나는 얘기를 이었다. "일어났을 때부터 이상하더래요. 케네
스는 여느날처럼 어머니와 넬슨 숙부와 함께 아침식사를 들었지요. 평소에는 잘먹
었는데  케네스만이 그날은 한입도 먹으려고 하지 않더래요 - 단 한컵의 물도. 
  식사 후에  그는 놀러 나갔대요. 좋아하는 놀이터가 있었는데 옥상에 마련된 조
그마한 천막이죠. 여기가 케네스의 거점인데, 넬슨이 오기 전까지 다른 사람은 하
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식사후 그는 넬슨 숙부와 함께 옥상으로 갔어요. 케네스는
평소의 원기도, 활발성도 없었어요.  옥상으로 가는 층계를 느릿느릿 올라갔어요.
어깨 너머로 어머니를 돌아보는 그의 얼굴에는 무언가 절실한 표정이 떠올라 있더
래요.  어머니는 그걸 보고 미심쩍게 여겼으나 마침 전화를 받고 있는 중이었기에
그냥 지나치고 말았어요. 
  두 시간 후  그녀는 외치는 소리를 들었어요. 집안 사람들도 모두 그걸 들었죠.
그게 어디서 들려왔는지도 모르는채 다들 일제히 옥상을 향했어요. 옥상에 당도해
보니  케네스가 난간 옆에 서 있더래요 -  그의 턱 높이까지 올라간 폭이 좁은 돌
난간이죠 - 거기서 4층 밑의 뒷마당을 굽어보고 있더래요. 그는 넬슨 숙부를 굽어
보고 있었던 거죠. 넬슨은 옥상에서 떨어져 밑의 콘크리트 위에 쓰러져 있었어요.
다들 또 층계를 달려 내려가서 현장에 쫓아가보니 그는 아직 숨이 있었어요. 몇초
밖에 안됐지만 그 몇초 사이에 괴로운 숨을 몰아쉬면서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
더래요.'케니, 왜? 왜 그래, 케니. 왜 그래?' 그리고는 죽었어요. 
  또 한가지 말해둘 일이 있어요, 어머니. 수사과에선 옥상을 수사했어요.  그 결
과 케네스의 거점인 천막속에서 발견한 게 있어요 - 뭔지 아시겠죠, 어머니? - 케
네스가 다락방에서 훔쳐간 것들이 모두 발견됐어요.  아버지의 제복, 아버지의 망
토, 아버지의 계급장, 아버지의 은성훈장까지 있었어요.  그것들을 어머니의 옷장
서랍에서 다시금 훔쳐냈던 거죠."
  나는 의기양양하게 얘기를 마쳤다. 솔직히 말해서 스스로 감동하고 있었다.  무
척 극적인 연출이었다고 생각했다.  자, 어머니로부터 이 사실에서 무엇인가를 추
리해 받도록 하자!
  "그래서 어린애는?" 하고 어머니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충격을 받았나봐요."하고 나는 말했다.
  "어머니한테  기대어 그날 온종일 울어대고 있었어요. 하지만 옥상에서 어떤 일
이 있었는지는 말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무얼 물어도 눈을 내리깔고 있을 뿐이에
요. 의사의 말인즉, 충격에서 회복되려면 일주일 가량 걸린다나요.  그리고 그 후
에는 사건은 기억에서 사라져버릴 거래요."
  "그래, 너의 의견은, 데이비?"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너희 경찰의 의견에 따
르면 옥상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거냐?"
  "저희들의 의견은 아니에요, 어머니.  사실이 보여주는 바에 따르는 거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는 거지만 모든 것을 검토한 결과 그 중의 하나만이 모든 사실과
부합해요."
  "그럼 그 여러가지 가능성이란 걸 들려주려무나."
  "하나는 넬슨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거죠. 그러나 이건 줄거리가 통하지 않아요.
그는 병으로 공군을 제대한 것을 몹시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아
그네스에 의하여 몸도 거의 좋아졌으며  민간인 생활에 약간씩 만족해가고 있었어
요. 병을 비관한 자살이라면 왜 여태까지 기다리고 있었을까?  게다가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다섯살 난 조카의 눈앞에서 왜 자살해야만 했을까 하는 점이죠. 자살자
는 대개 목격자가 있는 건 싫어하는 법인데 말이에요." 
  "아주 동감이로구나. 다음 가능성은?"
  "넬슨의 죽음은 사고였다는 가설.  그는 달음질치고 있다가  한눈을 팔았다거나
해서 난간을 그만 뛰어넘고 말았다. 하지만 이건 좀 납득할 수 없어요. 난간은 넬
슨의 허리 위는 충분히 오니까요. 어떤 뜀박질 놀이를 했더라도 그런 높은 난간을
뛰어넘게 된다고는 생각할 수 없지요." 
  "훌륭해. 칭찬해주마."
  "그리고  마지막 가능성은 - 어떻든, 모든 경우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니까요-
넬슨은 조카 케네스를  난간에서 밀어 떨어뜨리려 했다.  그런데 케네스가 버둥대
는 바람에 넬슨이 되려 밀려 팽개쳐져 버렸다.  허나, 그것도 사실과 부합되지 않
죠. 아그네스가 옥상으로 뛰어갔을 때, 케네스는 전혀 상처가 없고, 다툰 듯한 흔
적은 없었으며, 육체적인 피로의 흔적도 없었거든요.  이렇게 되면 남은 가능성은
단 한가지."
  "뭔데?"
  "이미 말했잖아요, 어머니. 이런 건 믿고 싶지 않지만,  믿지 않으려고 애써 봤
지만, 그래도 사실은 움직일 수 없지요. 그 다섯살 난 아이는, 정신적으로 균형을
잃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어요.  전부터 그랬잖아요. 단골 신경정신과 의사의 말인
즉,  어린애의 정신병이나 분열증,  우울증 따위의 예는 수두룩하다는 거예요. 이
사건에도 그게 해당되는 게 틀림없어요. 아버지의 죽음, 고독한 생활, 어머니에의
의존, 그러한 일상생활을 파괴한 숙부의 돌연한 출현 등. 이 모든 것이 그의 마음
의 평화를 뒤흔들어 놓았을 테죠. 그의 마음은 혼란에 빠져서, 마지막으로 무엇인
지가 뚝 끊어진 거예요. 
  살인 전의 우스꽝스런 몸짓이, 그의 마음속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었는가를 설
명하고 있어요. 어떤 야릇한 계기에 - 야릇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지만 - 숙부가 죽
은 아버지의 라이벌로서 갑자기 나타났다고 생각한 거죠. 숙부는 아버지의 자리에
앉으려 하고 있다고 말예요.  그래서 케네스는 아버지를 위해서 그걸 막아야만 했
죠. 침입자인 숙부를 처치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의 불행의 근원을 제거하지 않
으면 안된다, 자기와 아버지는 어머니를 빼앗겨서는 안된다고 말예요. 
  물론 그는 어른처럼은 하지 않았어요.  본능이 내키는대로 했지요. 어린애가 훔
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하녀를 차거나 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숙부에게 대
하는 태도를 바꿨어요. 숙부를 영웅처럼 숭배하는 척 했어요. 숙부를 사랑하고 있
는 척 했어요. 그리고 숙부의 신뢰를 완전히 얻어내자, 결단을 할 준비를 했지요.
우리는 가장 흥미깊은 심리학적 연상을 할 수 있었어요. 어린 케네스는 아버지 대
신 행동하려 한 거죠.  그래서 어린애답게, 아버지의 것을 훔쳐낸 거죠. 아버지의
제복, 아버지의 망토, 아버지의 훈장 - 그걸 훔쳐내서 베개 밑에 넣거나,  옷장에
감추거나 했어요. 아버지의 용기, 아버지의 힘이 주어지도록. 어제 아침나절까지,
그 가엾은 어린애는 자기를 진짜 아버지로 정착시켜 온 거죠. 의식에 있어서 그는
감쪽같이 아버지가 되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어제 아침, 옥상으로 올라갈 때, 그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죠. 이제
부터 어떻게 할지 결심이 되어 있었던 거죠. 옥상에 올라가자, 잠시동안은 숙부와
천진스럽게 놀았어요.  어린애의 교활성에 놀라게 되잖아요, 어머니! 드디어 어떤
구실을 만들어  숙부를 난간 밖으로 내밀게 했던 것! 아까 말했듯이, 넬슨은 어른
이지만 병으로 쇠약해져서 체중도 줄어 있었죠.  케네스는  다만 뒤에서 달려가서
넬슨에게 덤벼들어 난간으로 밀어올려,  밑으로 떨어뜨렸죠, 전력을 다해서. 넬슨
의 몸은 공중에 뜨고,  그는 비명을 지르고, 그리고 케네스는  방심상태에 들어간
거죠. 
  이것이 사건의 줄거리예요, 어머니. 이쯤이면 잘 아시겠죠, 이게 넬슨의 마지막
말을 설명하는 유일한 추론이란 걸.  '왜 그래, 케니, 왜 그래?'  그는 멍청하니,
죽음의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무엇이 조카를 이런 행동으로 몰아넣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거예요."
  "그게 네 결론이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린애가 불쌍하지만...그래요, 어머니."
  어머니는 말이 없어졌다. 무엇인가에 마음을 빼앗긴 모양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
다. 우리의 대화나 식탁의 분위기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로.  어머니로선 이례적인
거동이다. 금요일 밤, 내가 최근의 사건에 관해서 얘기할 때, 어머니는 언제나 신
랄하고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었다. 얘기가 끝나면 단번에 수수께끼같은 질문,
알 수 없는 암시, 나의 멍청한 머리에 대한 빈정거림 등을 가볍게 퍼부었다. 그리
고 마지막에는 매우 유쾌한 듯이 교활한 정육점이나,  수다스런 이웃사람이나, 방
자스런 친척들을 상대로 평소의 경험에다 근거를 둔 완벽하고 논리적이며 피할 수
없는 해답을 선사해주곤 했다.  그런 어머니가 이렇게 말이 없어졌으니 나는 불안
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별난 분위기는 곧 사라졌다. 어머니는 머리를 번쩍 들어올렸다. 승리
의 반짝임이 어머니의 눈에서 빛났고, 음성은 언제나처럼 발랄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렇구나. 어린아이 쪽에서야말로 유감스럽게도 유감으로 생각하
지 않으면 안될 일이로구나. 뉴욕 경찰 수사관들이 - 끝내 연금을 탈 어른들이 사
건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다섯 살 난 아이한테 죄를 뒤집어 씌우다니!"
  나는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얘기했을 텐데요, 어머니.  죄를 덮어 씌우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건 나중에..."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내 간단한 세가지 질문에 대답해주면
얘기하마."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의 '간단한 질문'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다.  대개
매우 '간단'하기 때문에, 전보다 열 배나 이쪽의 머리가 혼란해지는 '요물'이다. 
  "네. 듣지요. 어머니." 하고 나는 말했다.
  "첫째 질문." 하고 어머니는 첫째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 케니라는 어린애는,  아이들끼리 노는 놀이에  잘 어울리는 편이니? 스포츠
맨 타입이니?"
  "아, 왜 그런 걸 묻는지 알겠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넬슨 숙부를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릴 만한 힘이 있는지, 민첩성이 있는지 하는
거죠. 그 대답은 대단한 뒷받침이 되지 못해요. 어린애는 그다지 운동경기 따위엔
어울리지 못했어요.  친구가 별로 없었으니까요. 이웃의 아이들은, 공교롭게도 모
두 그보다 나이가 많았어요. 그래서 이웃 아이들의 놀이상대는 되지 못했어요. 사
실 그 때문에 이 아이는 퇴영적이고 외톨박이가 되어 버렸지요. 그렇긴 하지만 그
아이는 다섯살치고는 큰 편이에요. 몸집도 좋고, 스테미너도 있으며, 건강한 우량
아지요. 넬슨 숙부 쪽은 아까도 말했듯이 환자여서 쇠약해 있었으니..."
  "그래, 그래, 알고 있단다." 하고 어머니는 조바심하듯 말을 가로막았다.
  "자, 둘째 질문." 하고 이번에는 손가락 둘을 내밀었다.
  "이런 케니는 어떤 책을 읽고 있었지?"
  "책이라고요, 어머니?"
  "책, 책. 알고 있니, 너. 대학에 다닐 때는 이따금 펼치더니만,  이런 바보같은
직업에 종사하고부터는 통 안 읽게 됐구나.  그 어린 케니는 퇴영적이고 외톨박이
라고 했겠다. 그런 아이란 대개 책을 많이 읽고 있거든."
  "질문하시는 의도는 모르겠지만..." 하고 나는 말했다. 
  "역시 어머니의 말씀대로예요. 그 아이는 대단한 독서가였어요. 방에 온통 책이
가득했어요. 대개 만화였지만. 수퍼맨, 배트맨, 우주여행 따위죠. 더 고급한 책을
읽기엔 너무 어린 셈이니까요."
  "좋아, 좋아." 하고 어머니는 끄덕거렸다. "세째 질문. 이건, 제일 중요한 질문
이야."
  어머니는 나를 한순간 지켜보고 나서 말을 이었다. 
  "어제 넬슨 숙부가 살해된 건, 아침 나절이었잖니.  나는 오전중에 내내 정육점
에 가 있었단다. 염소고기 일로 사소한 차질이 생겨서, 정육점 사람하고 말다툼을
하고 있었지.  그래서 바깥 날씨가 어떠했는지 기억하고 있지 않단다.  갠 날씨로
밝았니, 아니면 흐려서 우중충했니?"
  나는 물끄러미 어머니를 지켜보았다. 
  "그게 제일 중대한 질문이에요? 어머니. 그 질문의 중요성은?"
  "중요성 따위는 어떻든 좋아. 대답만 해주면 돼."
  "어제는 활짝 개어서 좋은 날씨였어요. 올여름 최고의 더위였죠. 하지만 날씨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요..."
  "넌 모르겠지."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안단다."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있다가 나는 잔기침을 했다.
  "뭘 아시는 거예요, 어머니?"
  "과연 그렇구나. 생각했던 대로야. 애초부터 내 머리속에 있던 대답대로야."
  "그 어린애는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시고 싶으신 거예요?"
  "누가 그런 말 했니? 그 어린애는 관계가 커."
  어머니는 나의  당황하는 모습을 잠시 즐기고 나서  한숨을 쉬고 머리를 저었다.
  "데이비, 데이비. 너희들이 저지르고 있는  과오를 아직도 모르겠니, 너나 경찰
의 수사관 양반들이? 어머니의 애정을 구하고 있는 어린애라느니, 그 아이가 숙부
에게 질투하고 있다느니, 아버지에게  병적으로 집착하여 아버지의 물건을 훔쳤느
니, 그건 하녀를 차는 짓이나 같다느니. 제법 영리한 소리들을 하지만, 그러나 그
어린애의 머리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런 게 아니란다.  너희들이 멋대로 어
린애의 머리 속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가정하고 있을 따름
이야."
  "그렇다면 어머니는 어린애의 머리 속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신다는 거
예요?"
  "모르면 어떡하니? 다섯 살 난 어린애에 관해서 명심해 둬야 할 것은 그 어린애
가 다섯 살이라는 점이야. 단지 5년 밖에 이 세상에 살지 않았어요.
  그런 조그마한 어린애가 5년 동안에 인생에 대해 얼마만한 일을 알 수가 있었다
는 거냐?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실이 아닌지? 엄마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동
화얘기를 해주고,  아빠는 신문에 나와 있는 어린애 유괴사건 얘기를 해준다고 하
자. 그렇다면, 어느 쪽 얘기가 진짜일까?  하나는 재미있는 얘기고 하나는 무서운
얘기지. 어느 쪽이 실제로 있었던 얘기일까?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얘기라는 게
있을까?  
  내 귀여운 동생 막스, 네 외삼촌 막스는 일곱 살 때 미국으로 건너왔지.  그 삼
촌이 그랬단다.  지각이 들면서 막스는  미국의 갱 이야기를 들었지.
  갱이란 뭘까? 갱은 몇 살일까?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보일까? 막스보다 크
고 자기를 호령하고 때리는 사람일까, 그런 사람은 아무나 될 수 있을까. 일곱 살
난 막스는  갱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었지.  운수 사납게도 델란시 거리 가까이
이사를 갔더니 이웃에 열 살 난 남자아이 둘이 있었어. 그들은 순하지도 친절하지
도 못한 아이들이었단다. 어느날 막스는 그 둘에게 물었지.  '갱이란 게 뭐야, 새
미? 너 갱이야, 샬리?'  그랬더니 새미와 샬리는 서로 눈짓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
어. '그래, 우리는 갱 2인조야.  이 동네에서 제일 악한 갱인걸.  지금 이 주머니
속에 커다란 권총이 들어있으니까 널 쏴 줄테야.' 하고 말이다. 막스가 그 아이들
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애처럽게도 막스는 믿었지. 그로부터 몇주일 동
안 줄곧 죽을만큼 무서워하고 있었어.  경관이 옆을 지나갈 적마다 얼굴을 감추는
거야. 식욕은 없어지고.  집에서 한발도 나가려고 하지 않았어. 한번은 그 애들이
'한밤중에 네 방에 숨어들어가서 너를 죽이겠다' 고 했을 때는  침대 속에서 떨고
있다가  문이 딸깍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정말로 창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단다.
만일 창이 좀 더 열려있었던들, 지금쯤 막스 외삼촌은 살아있지 못했을거야." 
  "어머니, 그건 이상해요." 하고 나는 말참견을 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 케네스라는 아이가 자기는  갱이라고
넬슨 숙부에게 믿게 해서, 즉 다섯살 난 어린애가 어른을 위협해서, 옥상으로부터
뛰어내리게 했다구요."
  "그런 말은 하지 않았잖니!"  어머니는 등을 의자 뒤로 젖혔다.
  "내 말은 말이다, 조그만 어린애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런 식으로 남을 믿어버
린다는 거지. 무슨 말을 해주면 곧 그것을 믿어버린다는 거야.  현관 탁자에 얹혀
있는 얇은 질그릇 장식품과 같은 거야.  그야말로 아이들은 약한데,  세상은 크고
강하고 냉정하고,  때에 따라서는 잔혹하니까, 실제로 탁자 위의 질그릇처럼 아이
들을 산산조각나게 하는 방법은 숱하게 많거든."
  "잘 모르겠는데요 - "
  "내 말은 말이다, 데이비. 만일 다섯 살 난 아이를 처치하고 싶다면 말이다, 만
일 그 아이가 방해가 된다, 비위에 거슬린다고 생각한다면 그 아이를 죽이고 살인
죄로 체포될 위험을 범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더 교묘한 방법이 있지. 그 아이에
게 조금씩 여러가지 말을 들려 줘서 무서워하게 하고, 혼란되게 해서 마침내 이상
한 행동을 하도록 조종해서, 필경 사고가 나서 죽은 셈이 되도록 하는 거야."
  이 말은 나를 어이없게 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의 말 속
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데  나는 그것을 얼른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말은 말이다, 데이비."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케니 어린이가 한 그 도둑질. 요즈음은 뭐든지  정신의학이요,  아무나 정신과
의사 행세를 하지 않더냐. 누군가가 영문모를 짓을 저지르면 곧 이렇게 말하거든.
'핫하, 그건 정신병이야! 아빠에게 대한 병적인 집착이야! 열등의식이야!'하니 말
이다.  그렇지만 데이비, 사물이란 건 때로는 보다 단순하고 확실한 해석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단다 - 머리를 좀 써서 생각해보면 말이다. 
  지난 주에 넬슨 숙부가 살해되기 전에  케니는 아빠의 소지품을 여러 가지 훔쳐
냈지.  그래서 너는 이렇게 결론지었어. 어린애는 아빠를 대신해서 숙부를 없애고
싶어하는 거라고. 그런데 너 한가지 잊고 있었던 게 있어. 케니는 그저 아빠의 소
지품을 훔쳐낸 게 아니라, 어느 특별한 것만 훔쳐냈어.  아빠의 긴 망토를 꺼내려
고 상자를 열어 봤을 때, 같이 있던 아빠의 책이나 서류에는 손을 안댔거든. 다락
에서 아빠의 군복을 찾았을 때는 아빠의 양복은 거들떠도 안 봤어요. 엄마의 보석
상자를 열었을 때,  아빠의 커프스 버튼은 꺼내지 않고, 아빠의 훈장을 꺼냈어요.
어린애가 아빠의 소지품 중에서 어느 특수한 것만 훔쳐냈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
아닐까? 아빠의 군복, 아빠의 계급장, 아빠의 훈장- 모두 공군의 조종사로서의 아
빠의 직무에 관계되는 것들 뿐이지 않니."
  "그건 확실해요, 어머니.  하지만 그것으로  무엇이 증명된다는 거예요? 게다가
..."
  나는 갑자기 생각났다. 
  "그 아이는 망토도 훔쳤잖아요. 망토와 공군과 어떤 관계가 있죠?"
  "그 망토가 모든 대답이란다, 데이비.  조그마한 아이가  공군에서 쓰는 물건을
모두 훔쳐냈다.  그리고 아빠의 긴 망토를 훔쳐냈다. 한 번 뿐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훔쳐냈다. 그만큼 긴 망토에 집념이 있었던 거야. 무엇 때문에 그게 그토록 중
요했을까? 좀 생각되는 바가 있어서 내가 너에게 물었잖니.  그 아이는 어떤 책을
읽고 있었느냐고. 대답은 내 예상대로였지. 만화책, 어떤 만화책이냐 하면 카우보
이 얘기? 탐정 얘기? 해적얘기? 천만에. 케니 어린이는 좀 다른데 흥미를 갖고 있
었지. 우주여행, 수퍼맨, 배트맨. 그런데 수퍼맨이나 배트맨이 하늘을 날 때 언제
나 입고 있는 것이란 뭐지? 바람을 가르며 날아다닐 때 뒤로 펄럭이는 건?"
  "커다란 긴 망토죠!" 하고 나는 외쳤다.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달리 또 있니? 자, 이만하면 혼란이 사라졌을 테지.  콘 수프처럼 맑아졌을 거
다. 지극히 평범한 어린애다운 일이 케니의 머리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거야. 어
린애들이 대개 거치게 되는 것,  해마다 많은 사소한 사고나 큰 사고의 원인이 되
는 것. 즉 케니 어린이는 하늘을 나르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야!" 
  "그렇구나!"
  나는 신음소리를 낼 지경이었다. 
  "훨씬 전에 알고 있었어야 할 일이었군요. 생각나요, 저의 여섯살 때 여름 일이.
셋이서 숙부네 뒷마당의 나무에 올라가서 말예요.  하지만, 막바지에 가서 용기가
없어져서..."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로군." 하고 어머니는 나를 흘끔 보았다. 그리고 어깨를
움츠렸다.
  "케니 어린이에게  있어서는 극히 자연스런 일이었겠지.  아빠는 공군의 조종사
였겠다. 집안에서는 하늘을 나르는 일이 일상의 화제였을 테고, 그리고 아빠는 아
이에게 있어선 영웅이었지.  게다가 친구도 별로 없고, 건강하고 활발한 아이였지
만, 나이가 너무 적어서, 이웃에 놀 상대가 없었지. 필시 그를 우스개거리로 여겼
을 거야. '너같은 꼬마는 저리 비켜, 너 따위는 팀에 쓸모가 없으니까' 이랬을 거
야. 어린애는 필시 몹시 비참했을 테지. 그래서 어린애는 생각한 거야. 다들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려줘야지,  아무리 꼬마라도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지, 그러면 다들 기꺼이 그들 축에 넣어줄거야.
  어제 아침은, 네 말마따나 결단의 시기였거든. 옥상으로 올라갈 때 절박한 표정
을 하고 있었지. 그건 누군가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긴 망토를 입고,아
빠의 군복의 일부와 아빠의 계급장을 달고, 옥상에서 뛰어내릴 작정이었기 때문이
었어.  그래서 아침식사도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던 거야.  왜냐하면 될 수 있는
한 체중을 가볍게 해서..."
  "알았어요, 어머니. 그리하여 그가 난간으로 기어올라가려 했을 때,  넬슨 숙부
가 알아챘고, 어린애를 만류하려고 했다는 거죠. 어린애에게 달려들어가 케네스는
비켜났고, 넬슨은 균형을 잃게 되어 어린애 대신 옥상에서 떨어진 거다, 이거죠." 
  "대체로는 - "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대로는 아니야. 너, 제일 중요한 걸 잊고 있어. 조그만 아이가 이상한 걸 생
각했잖니. '나는 날 수 있어, 옥상에 올라가서 시험해보자'고 말이다. 하지만, 케
니와 같은 어린아이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할 수는 없지. 한 주일쯤 전에 생각하
게 된 거야. 아빠의 군복을 훔쳐냈지. 왜냐하면 아빠가 하늘을 날 때는 언제나 군
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 이상야릇한 힘이 자기에게 주어지라고 말야. 아
빠의 훈장을 훔쳐 베개 밑에다 넣고 잤지.  어린애가 빠진 이를 베개 밑에다 넣고
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야. 아빠처럼 공중을  날고 싶은 소원이 실현되도록 아빠
의 긴 망토를 날개로 삼으려고 훔쳐냈던 거야.  무척 현명한 방법, 정신요법적 방
법이거든. 나더러 말하라면, 이건 단 한 가지 일을 의미하고 있어요. 케니 어린이
는, 이런 걸 결코 혼자서 생각해냈을 리가 없어.
  음, 그야말로 어린애가 이런 생각에 걸려들도록 각본이 마련되어 있었어.  나도
인정해요,  그 아이는 쓸쓸했고, 공상벽이 있었고, 그 아이의 영웅은 조종사인 아
빠였어.  너나 수사과도 비교적 사실에 접근해 있었던 셈이야. 이 사건은 그 아이
의 아빠에 대한 감정이 초점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나, 네가 몰랐던 점은,  그런
감정은 누군가가 심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 말이다.  군복을 훔쳐내고, 망토
를 쓰고, 훈장을 베개 밑에다 넣고 자는 - 이러한 건 모두 조그마한 아이가  마음
에 이끌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지만 그 누군가가 누구죠, 어머니?  아그네스 피셔? 그럴리는 없죠. 여자 요
리사는 어때요, 사고 며칠전에 그만두고 나가버린 사람?"
  어머니는 신음소리를 냈다.
  "바보 같으니. 여자 요리사가 갑자기 그만둔 건 당연한 일이야.  이렇게 생각해
보렴. 드디어 그날이 왔다.  케니 어린이는 하늘을 날 참이다. 조바심이 난다. 두
시간 그곳에 있었으나, 아무래도 뛰어내리지 않는다.  하늘을 나는 생각을 어린애
한테 넣어준 사람은, 어린애가 실제로 뛰어내리는 것을 볼 때까지는 떠날 수 없단
다.  그래, 그는 마침내 어린애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주 간단해. 자, 먼저 어떻
게 하면 되는지 보여주마. 난간에 올라가 보자. 양손을 새처럼 파닥거린다.  뭐든
지 해보일께, 날 수는 없지만 - 나는 못 날아, 크고 무거워서' - "
  "잠깐 기다려주세요,  어머니! 넬슨 피셔가 조카의  이상한 짓의 그늘에 있었다
는 거예요?"
  "달리 누가 있니? 어른이면서도 같은 또래 친구는 안중에 없고, 다섯살 난 어린
애를 상대로 놀고 있는 사람이 또 달리 누가 있어?  고독하고, 병약하고,  비행기
조종사로서의 생활이 끝장나서  비참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누구지? 이런 걸 생각
해 낼 사람이 누구야? '형수는 나를 좋아한다. 그녀는 내 것이 될 것이다. 그녀의
집과 재산과 함께. 이 조그만 똘마니를 없애기만 하면.' 그리고 케니의 질투가 사
라진 다음,  케니에게 가장 영향을 준 것은 누구지? 자기를 영웅으로 떠받들게 하
고,  자기 말이라면 뭐든지 믿게 만들어버린 건 누구였더라? 특히 하늘을 나는 일
에 관해서는, 넬슨 숙부는 아빠처럼 공군의 조종사였어. 그리고 끝으로, 그렇다고
제일 중요한 건 아니지만, 케니와 함께 오전 중에 줄곧 옥상에 있었던 건 누구지?
넬슨이야,  절대적으로 넬슨이지. 난간으로 기어 올라가서 양팔을 파닥거리며, 이
렇게 외쳤던 거야.'자, 케니, 보려무나, 이렇게 쉬운 일이야. 뭘 꽁무니 빼니, 케
니? 왜 무서워하는 거야? 왜 그래, 케니, 왜 그래?' 그러다 자기가 떨어져 버렸어."  
  "하지만, 왜 그렇게 됐을까요, 어머니? 왜 그는 균형을 잃고,  난간에서 떨어졌
을까요?"
  어머니는 눈썹을 모았다.
  "그게 문제였단다. 잠시 고민했어.  그래서 너에게 날씨를 물어보지 않더냐. 덥
고 눈이 부실만큼 맑았다고 그랬지. 그래, 나는 그 변변찮은 넬슨의 입장에 내 자
신을 세워보았지.  그는 흥분돼 있다.  진작부터 원하고 획책한 일이 성공하려 하
고 있다. 그리고 그는 말라리아를 앓은 사람이다. 아직 현기증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는 난간에 올라간다 - 좁은 난간, 4층의 높이에서 아래를 굽어보니 땅바닥이 아
득해 보인다. 그리고 해는 반짝반짝 빛나고, 햇빛은 사정없이 내려쪼인다.  양 손
을 파닥거리며, 조그마한 아이에게 외친다. 그때 눈앞의 것들이 춤추기 시작한다.
현기증의 발작이지. 아차하는 순간 그는 떨어진다 - 그는 날고 있다..."
  어머니는 묵직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맺었다. 
  잠시 있다가, 나는 큰소리로 웃었다. 도저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순
간 어머니를 잠깐 놀려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어린애를 갖는 건 좋은 일이죠. 그러나 어머니, 어린애란 건 모조리 괴물은 아
니라는 걸 아직 증명하지 않았는데요."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세웠다.
  "증명되지 않았다고? 누가 그러더냐?  어린 케니는 순진하고, 영리하고, 양순한
아이라는 걸 가르쳐 주지 않았니?"
  "아, 어머니. 넬슨은 어때요? 넬슨인들 옛날에는 누군가의 어린애였을거 아녜요."
  "넬슨 따위는 상관없어!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넬슨 따위를 끌어내
다니?"
  "글쎄요."
 나는 어깨를 천천히 움츠렸다. 
  "셜리도 저도, 그 점은 신중하게 생각해야겠어요. 케네스 같은 아이라면 좋아요.
하지만 그 아이가 커서 넬슨처럼 된다면, 그건 큰 문제죠."
  "문제가 아니야."
  어머니는 머리를 몹시 저었다.
  "그렇게 말하지 말려무나,  네가 내 자식이라면!  제발 어린애한테 편견을 갖지
말아다오, 데이비. 조그마한 아이는 - 조그마한 손주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
운 선물이야. 가끔 생각한단다,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건 어린애 뿐이 아닐까 하
고."
  여기서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던 일이다. 어머니의 눈이
흐려지고, 입술이 떨리더니, 내가 놀라서 지켜보는 사이에, 어머니는 눈물을 떨어
뜨리고 있었다. 나는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하고 나는 말했다. "잠깐 놀려드렸을 뿐이에요."
  어머니는 순간 기분을 바꿨다. 일어섰을 때는, 이미 눈물은 말라 있었다.
  "나도 그랬단다!" 하고 어머니는 신음하듯 말했다.  그리고는 얼른 일어나서 네
슬로우드 파이를 가져오려고, 터덜터덜 주방을 향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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