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영화,리뷰,

인간 쓰레기 [아이작 싱어]

by Casey,Riley 2023. 6. 8.
반응형

인간쓰레기
아이작 싱어

  살과 썩음은 원래 처음부터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하느님의 지혜와 자비와 영광의 정반대인 창조의 찌꺼기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의 약속이 끝나 그 생명의 책에서 인간의 이름이 영원히 지워져 버릴 때까지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땅 위를 기어다닐 것이다.
  (므두셀라의 죽음)

    1

  그날 아침, 맥스 바란밴더가 바르샤바에서 샀던 이디시어 신문에는 뉴욕과 런던 신문에서 읽었던 것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었다. 발칸 반도는 화약고이고, 악명 높은 유태인 학살자 푸리슈케비치와 흑백인단 단원들은 러시아계 유태인들을 죽이는 데 바빴으며, 팔레스타인의 유태인 촌락은 가뭄이 들었고, 아르헨티나의 유태인 촌락 관료들은 또다시 드 허시 남작의 거류지에서 말썽을 일으켰으며, 빌헬름 황제는 전쟁을 운운하여 외교가에서 새로운 증오를 불러일으켰고, 시온주의자들은 새로운 의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등의 기사였다. 그리고 (지구의 네 모퉁이)라는 난에는 여섯 아이를 사산한 이집트 농부의 아내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맥스 바라밴더는 치즈빵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읽었다.
  "한꺼번에 여섯 아이라!?"
  그는 탄성을 내질렀다.
  "무덤을 여섯 개나 팔까, 아니면 한군데에 다 묻을까? 계집아이였을까, 사내아이였을까?"
  아르헨티나를 떠나 영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그리고 나중에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이디시어 신문을 구할 수가 없었다. 베를린에서는 독일어 신문을 샀었는데 외국어로 된 신문은 풍미가 없었다. 반면 이디시어로는 모든 얘깃거리가 나름대로의 맛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7만 5천 루블짜리가 당첨된 복권을 사서 화장실 휴지로 날려 버린 제화공 이야기, 사진으로 결혼한 3백 명의 신부를 영국에서 싣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들어온 배의 이야기 등등. 맥스는 커피를 꿀꺽 들이켰다.
  "3백 명의 여자! 빌어먹을, 사악한 작은 배꼽들같으니! 그게 내가 좋아하는 거란 말이야. 살아 있는 상품을 실은 배 말이 야." 
  (예와 아니오 사이에서 백만 루블이 왔다갔다하겠지)라고 맥스는 장난삼아 생각해 보았다.
  그는 아르헨티나 여권, 왕복 비행기표 그리고 각종 이름이 가득 실린 주소록을 넣어 둔 호주머니를 툭 쳐보았다. 그 자신, 한때 도둑이었으면서도 털리는 것을 끔찍히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안심시키느라고 그는 외투 호주머니에 있는 총을 만져 보았다.
  맥스 바라밴더는 마흔일곱 살이었으나 젊어 보였다. 사람들은 흔히 그를 서른다섯이나 기껏해야 서른여덟로 보았다. 큰 키에 넓은 어깨, 금발에 파란 눈동자 하며, 각이 진 턱에다 짧은 목과 곧은 코의 그는 소년 시절에도 힘이 세기로 유명했다. 주먹으로 테이블을 치면, 도살당하는 짐승의 다리처럼 테이블 다리가 주저앉곤 했었다. 한때는 계란 36개와 맥주 12병 먹기 내기를 해서 이긴 적도 있었다. 그리고 여자에 관한 한, 그는 관계한 여자들 이외에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십이 가까워지면서 그는 늙어 간다는 데 공포를 느꼈다. 빛깔도 바래고 숱도 적어만 가는 머리는 간신히 대머리를 면할 정도였다 
  그의 아들 아르투로가 죽은 뒤로 맥스는 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열일곱 살의 소년이 두통을 호소한 지 10분 만에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면 인간이란 존재는 한줌 연기보다 못한 것이리라, 맥스는 그럭저럭 뇌리에서 그러한 불행을 지워 버렸지만 아내 로셸은 반쯤 미쳐 버렸다. 그가 이 여행을 떠나게 된 것도 실상 그녀 때문이었다. 집에서는 더 이상 광란에 가까운 그녀의 헛소리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맥스를 졸라 아들을 위하여 카디시(사망한 근친을 위한 유태교식의 기도)를 올리고 아르투로의 영혼을 위해 촛불을 켜놓고, 걸핏하면 자선 기부를 하게 하더니 마침내 담석증이 악화되어 수술을 받기까기 했다. 맥스는, 그녀가 회복되는 데 여행이 좋다는 의사의 충고대로 그녀와 함께 폴란드 여창을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한사코 아르투로와 같이 있어야만 한다고 고집을 부릴 뿐이었다.
  이제 맥스 바라밴더는 그가 하던 모든 더러운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었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극장의 동업자였다. 적절한 시기에 그는 주택과 토지를 많이 사들여 그로부터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새로 아르헨티나에 이주한 유태인들은 (더러움)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유태인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으며 공동묘지에 묘터를 구하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맥스는 지역사회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고아원의 부회장직까지 맡고 있었다. 다년간 그는 존경받는 생활을 해왔다. 로셸과의 결혼생활에도 만족하고 있었다. 아르투로의 비극적인 죽음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한마디로 대포알 같았다. 완벽하게 그를 좌지우지하고 있어 그는 다른 여자들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어버렸었다. 하지만 아르투로의 죽음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로셸은 얼음처럼 차가워졌고 그를 근처에도 못 오게 했다. 죽고 싶다며 끊임없이 죽음을 조잘대더니, 그녀 자신의 묘비명까지 새겨 놓게 했다. 그녀를 알고 나서 처음으로, 그녀는 맥스를 다른 여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는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맥스의 이번 여행은 사업이 아닌 즐거움을 위한 여행이었다. 이제 폴란드에 와 있으니, 아마도 그는 원기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선상에서 그는, 남미의 뚜쟁이들이 여자들을 납치해서 차에 억지로 실어서는 사창가에 팔아 오욕의 삶을 강요한다는 따위의 온갖 종류의 이야기를 다 들었다. 하지만 맥스는 이런 황당한 얘기에 코웃음을 쳤다.
  (60년 전에는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불가능하지, 어쨌든 기꺼이 그런 짓을 하려는 여자들은 항상 구할 수가 있지.)
  사실 맥스는 여자 친구를 찾아 폴란드에 왔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로셸이 다시는 과거의 그녀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그가 사나이로 남아 있으려면 한때 로셸을 원했던 만큼이나 강렬히 딴 여자에 대한 욕망이 있어야 할 것이었다.
  물론 그는 폴란드에서 할 일이 또 있었다. 오래 전 그는 로스코바에 있는 부모를 떠나와서는 단 한 줄의 편지도 쓰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죽었다. 삼촌, 숙모, 사촌 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형 잘멘과 누이동생 소레네키가 폴란드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이었다. 또 폴란드에는 아직도 그의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23년 동안이나 나타나지 않다가 어떻게 친지와 친구들 앞에 불쑥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아마 자신 때문에 죽었을지도 모르는 부모의 무덤 앞에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인가?
  맥스는 커피잔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켜고 치즈빵 조각을 삼켰다. 겨우 한 시간 전에 그는 베를린에서 특급열차로 도착하였다. 짐은 아직도 비엔나 역에 있었다. 바르샤바의 거리를 걸어 그르지보바 구역까지 갔다.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을 다 바르샤바에서 보낸 만큼, 그는 바르샤바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포비아크 감옥에서 3개월을 보낸 적도 있었다. 20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는 말이 끄는 궤도차가 바르샤바에 막 운행되기 시작했었는데, 1906년인 지금은 전차가 운행되고 있었고 가끔 자동차들도 눈에 띄었다. 마르잘코바스카 가의 상점에는 고급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여자들은 파리나 베를린 못지않게 유행을 따라 옷을 입고 있었다. 거리는 더 넓어졌고 빌딩은 더 높아졌다. 별로 변한 것이 없는 유태인 구역에도 20세기라고 하는 새 시대의 느낌은 있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수염을 밀어 버렸고 모자와 양복을 입고 있었다. 젊은 유태인 여인들은 짧은 소매에 목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파인 옷을 입고 있었다. 맥스가 살던 그 시절에는 유태인 여자들은 하나같이 숄을 둘렀으며 모자는 드물었고 핸드백이라고는 알지도 못했었다.
  신문에는 이제 이디시어 연극, 하조미르에서의 시 낭송, 슈네이어 합창단과의 노래의 밤, 시내 중심가에서의 학생 모임 따위 공고가 실려 있었다. 심지어는 성병 치료와 (남성 고민)해결이라는 의사 광고까지 게재되어 있었다.
  "세상이 조금 진보되었구먼." 
  맥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카페 안에는 작은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보며 아침을 먹고 있는 소녀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어떤 부류의 아이들일까?)
  맥스는 의아해 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양갓집 처녀치고 특히 식당 같은 데서 혼자 앉아 있는 여자는 없는데.)
  하지만 카페의 처녀들은 천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의 옷매무시로 보아 공장 직공이거나 가게 점원일 것 같았다.
  해외에서 사는 동안 맥스는 1905년의 러시아 혁명, 그리고 지하조직과 근로자들-아니, 어느 편인가 하면 파업자들-과의 전쟁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이민자들은 보루흐 슬만이 경찰에게 폭탄을 던진 이야기며, 시위, 파업, 대량 체포, 그리고 어떻게 러시아 황제 차르가 마침내 굴복하여 국회를 허용하게 되었는지 등, 피의 일요일에 관한 온갖 이야기를 다 들려주었었다. 하지만 한 칼럼니스트는 모든 게 그대로라고 주장했다. 내용인즉슨 권력은 여전히 흑백인단의 손에 있으며, 노쇠한 라스푸틴이 차르와 황후와 궁정의 여인들에게 최면을 걸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지?"
  맥스 바라밴더는 자신에 게 물었다.
  그는 주소록을 꺼내어 넘기다가 옛날부터 기억하고 있던 브리스톨 호텔을 발견했다. 제 1길드의 장군과 상인들이 거기에 묵었고, 감옥에서 죄수가 침대가 딱딱하다고 불평하면 동료 죄수들은 (내일은 브리스톨 호텔로 옮겨 갈걸세)라고 농담하던 그 호텔이었다. 자, 이제 맥스 바라밴더가 거기에 묵을 것이다. 그는 밖으로 나가 마차를 불렀다. 마차를 타고 비엔나 역으로 갔다. 역에 가서 그는 보관해 두었던 가죽 가방 두 개를 가방보관소에서 찾아서 포터에게 들려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마차로 갔다. 맥스가 지갑에서 10코페이카를 꺼내어 주자 포터는 허리 굽혀 인사했다.
  (그래, 수중에 돈이 있는 자가 이 땅의 주인이지. 지불할 수 있는 자만이 명령할 수가 있는 법이야.)
  맥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마차 벽에 머리를 기대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모든 도시는 그 나름의 냄새가 있었다. 코 언저리에서는 라일락과 하수도와 타르와, 프라하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무엇들이 섞인 과거의 바르샤바 냄새가 맴돌았다.
  철거덩 철거덩 전차가 내뿜는 갖가지 소음과 마차 바퀴들이 자갈길 위에서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모세 5경을 큰소리로 외는 교회 소년들의 목소리와 시장에서 나는 소음은 여전히 울려 나왔다. 마차가 브리스톨 호텔에 서자 포터가 달려와 대리석 계단으로 맥스의 가방을 날랐다.
  "다른 방들과 같은 방이군."
  손으로 매트리스를 만지며 맥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괜찮군. 빠진 건 여자뿐이야." 
  그는 흔들의자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주소록 꺼내 들었다.
  (어디에서든지 일단 시작을 해야지. 한 사람 찾으면 다른 사람으로 연결될 거야. 지금 로셸은 아르헨티나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는 궁금했다.
  (폴란드는 여름이지만 거긴 겨울이지. 여기가 밤이면 거기는 낮이고.)
  바다, 강 그리고 나라들이 그와 로셸을 갈라 놓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그를 그녀에게 매여 있게 하는 것일까? 단지 생각과 기억뿐인 것을.
  맥스 바라밴더는 나름대로는 온갖 생각을 다 해보는 철학자였다. 그는 모세5경을 믿지는 않았으나 탈무드 속에 신이 존재함을 느끼고 있었다.
  (모든 사람은 운명이 있지, 그렇지만 왜일까? 왜 세상은 빌헬름 황제니, 푸리슈케비치나 눈먼 메이어 같은 사람이 꾈요한 것일까?)
  맥스에게 눈먼 메이어를 만나 보라고 권한 친구는, 그의 주소는 알지 못했지만 크로치말나 가의 술집에 가보라고 했었다.
  눈먼 메이어는 일종의 거친 녀석들의 랍비와 같은 존재로, 그 지역 깡패들의 우두머리였다. 맥스는 결코 바르샤바의 지하세계와 뒤섞일 마음은 없었다. 건전한 정신을 지닌 사람이 병상에 들어갈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하지만 한번 둘러보는 것은 괜찮을 듯했다. 맥스는 한때 크로치말나 가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술집을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금시계가 7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밖은 아직 한낮 같았다. 바르샤바의 여름날은 부에노스아이레스나 뉴욕보다도 길었다. 10시가 가깝도록 어두워지지 않았다. 맥스는 이번에는 마차를 타지 않고 결었다. 우선 그노이나 가로 가서 둘러보았다. 똑같은 기름과 비누 그리고 청어 냄새가 났다. 모자에 주석 배지를 단 청소부가 말똥을 치우고 있었다. 가게에는 긴 개버딘 외투와 두터운 장화를 신은, 수염이 텁수룩한 유태인들이 서 있었다. (덥지 않을까?) 가벼운 양복과 밀짚모자를 쓴 맥스는 불현듯 궁금했다.
  그는 크로치말나 가로 접어들었다. 한쪽은 높은 담장이, 다른 쪽은 창문 없는 빌딩이 줄지어 서 있었다.
  "무엇이지? 공장인가? 아니면 조병창인가??
  그는 계속 걸었다. 곧 도둑과 사기꾼, 뚜쟁이들과 창녀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한 광장에 닿았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눈위까지 모자를 푹 눌러쓴 소년들이 무리를 지어 서서 이야기하며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한 떼의 젊은 무리가 제비뽑기를 하고 있었다. 가방에서 숫자를 뽑아 내고 나무로 만든 수탉을 돌려서 당첨되면 초콜릿과 기름으로 구운 패스트리의 일종인 (차스테)를 타가는 것이었다. 창녀들이 대문 옆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맥스는 능숙한 눈길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루즈를 바르지는 않았지만 빨간 종이로 문지른 것같이 불그죽죽한 얼굴에다, 헐렁한 실크 드레스와 빨간 스타킹에 노란 신발을 신고 있었다. 한 여자는 키가 작고 몸집이 욕조처럼 둥글둥글했다. 옆의 여자는 얼굴이 얽은데다 뺨은 움푹 패고 이마에는 여드름이 가득했다. 저런 여자들을 원하려면 어지간히 달아 있어야만 할거라고 맥스는 생각했다. 연기와 굽는 냄새가 대기에 가득 찼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악취가 코를 찔렀다.
  젊은 건달 둘이 그를 보고서 서로 눈을 찡긋하더니 그에게로 몰려왔다. 한 녀석이 물었다.
  "아저씨, 어디서 왔죠?"
  "난 네 아저씨가 아니야. 그러니 꺼져 버려." 
  맥스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대단한 분이시군, 그렇죠?"
  "그래! 꺼져 버려. 그렇지 않으면 주둥이에 한 방 먹일 거야." 
  "거친 분이시군, 안 그런가?"
  맥스는 이 따위 쓰레기들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싸움을 한다는 게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들을 밀치고 계속 걸어갔다.
  (여긴 아무것도 변한 게 없군.)
  그는 입안엣소리로 중얼거렸다. 똑같은 더러움, 똑같은 가난. 시장에서는 행상 여인이 썩은 과일과 껍질 벗긴 양파와 (작은 주름)이라고 부르는 깨진 계란과 꿰맨 스타킹을 팔고 있었다. 마치 겨울인 것처럼 모자를 쓰고 속을 넣은 옷을 입은 
할머니들이 목청껏 외치고 있었다.
  "뜨거운 병아리콩! 콩! 감자 케이크!" 
  한 번만 둘러보고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고 맥스는 결심했다. 그는 6번지에 이르렀다. 술집 문을 열고 그대로 서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몇몇 청년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도미노 게임을 하고 있었고, 한 무리는 때묻은 카드를 돌리고 있었다. 또 한 무리는 입술이 두툼하고, 주근깨투성이인 작은 여자들과 바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카운터 위에 놓인 케이크와 패스트리 위에는 파리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이곳이 눈먼 메이어가 단골로 드나드는 곳일까.)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어이, 거기 친구, 문을 닫으라우!"
  "들어와요. 하지만 조심해요." 
  한 여자가 그에게 농을 걸었다. 맥스는 뒤돌아서서 문을 닫고는 그대로 걸어갔다. 더운 날, 질식할 것 같은 곳에 앉아 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17번지로 가서 술집을 찾아내고 문을 열었다. 여긴 훨씬 질서가 잡혀 있었다. 바닥은 사각 모양의 흑백 타일이 깔려 있었다. 바에는 구운 거위를 담은 접시와 잘게 썬 청어, 젤리를 묻힌 우족이 담긴 그릇, 계란 쿠키 접시, 소금빵 바구니가 널려 있었다. 몸집이 큰 사나이가 맥주통 꼭지에서 맥주를 따르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들이 테이블에 앉아 마시고 전채요리를 씹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맥스는 빈 테이블을 찾아 앉은 다음, 웨이터에게 맥주를 주문했다.
  "바바리안으로 할까요, 아브세인으로 할까요?J
  웨이터가 물었다. 그 이름들은 친숙하게 들렸지만 어떤 것들인지는 기억 나지 않았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냥 찬 맥주로." 
  "맥주와 함께 딴 거라도... 잘게 썬 청어나 간이나 찬 고깃조각 하시겠습니까?"
  맥스는 잠시 생각했다.
  "호밀빵 위에 잘게 썬 청어 얹은 것으로 하지."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가난 속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젠 지저분함을 견딜 수 없었다. 어려운 때를 다 거친 로셸은 금방 사치에 익숙해져서 아름다운 옷과 비싼 가구와 최고급 보석을 좋아했다. 카지노에서 도박을 즐겼고 그와 같이 리오나 뉴욕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비록 맥스 자신은 스페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로셸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했다. 아르투로도 그랬다 아르투로의 스페인어 실력은 마치 현지인들이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르투로는 부잣집 자제들만 가는 학교에 다녔고, 로셸은 그녀 자신이 영리한 사업가임을 입증했다. 맥스는 그녀와 상의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거래를 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 좋았던 7년은 지나가 버렸다. 로셸은 이제 파탄에 이른 여자가 되었다. 대단한 호색한이었던 맥스는 발기 불능이 되었다. 파리에서 예쁜 여자를 하나 사서 도비유에 가서 최고급 호텔에 함께 투숙했었다. 그러나 그 여자가 그를 껴안는 순간 그는 슬픔과 경멸에 휩싸여서 갑자기 토할 것 같았다. 샴페인도, 그녀의 유혹적인 함정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똑같은 일이 베를린에서도, 선상에서도 일어났다. 미국과 유럽의 의사들과 상담해 본즉, 모두가 같은 말만 했다. 신경성이라는 것이었다. 의사들은 물 치료법, 온욕 그리고 시체에서 피를 뽑는 것만큼이나 효과 없는 약 따위만 처방해 주었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같은 충고를 했다. 장기간 여행을 떠나 불운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짝과 새로운 흥미거리를 발견하라는 충고를.
  웨이터가 맥주 한 잔, 잘게 썬 청어를 얹은 빵, 신 오이지 그리고 술집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피망이 든 완두 한 그릇을 내왔다. 맥스는 맥주의 거품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단숨에 반이나 들이켜고는 잘게 썬 청어를 씹었다. 먹는 즐거움만이 그에게 남은 전부였다. 그라나 정작 그는 취해 있을 때가 별로 없었다. 술에 취해 으스대거나 공허한 이야기나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는 피해 왔다. 마흔일곱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아직 젊고 청년의 꿈을 지니고 있다고 그는 늘 생각했다. 그는 부자였지만 꿈에서는 여전히 수백만을 벌어 들이고 있었고, 숨은 보물을 찾아냈으며, 그와 사랑에 빠진 공주와, 오페라 가수와, 대단한 귀부인들과 사귀었다. 꿈에서만큼은 그는 로스차일드 못지않게 부유할 뿐만 아니라 차르에게 돈을 빌려 주기도 하고 술탄에게서 팔레스타인을 사들이기도 하였다.
  언젠가 맥스는 테오도르 헤르즐 박사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는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을 확보하지 못한 데에 충격을 받아 심장마비로 숨졌다. 또 시온주의자 운동에 동조하여 해마다 한 세켈(고대 유태의 은화)씩을 기부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번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팔레스타인도 찾아가 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예루살렘과 라첼의 무덤, 통곡의 벽, 그리고 젊은이들과 자유주의자들과 학생 출신들이 땅을 갈고 포도밭을 일구고 헤브루어로 얘기하는 식민지를 찾아볼 작정이었다 
  그래, 한때 여기 17번지의 빌딩 다락방에 살면서 맥스는 매일 그 술집을 지나다녔었다. 그때는 맥주 한잔 사 마실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에 한 번도 주점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 시절, 그는 도둑질한 죄로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경찰들이 그를 찾아 다녔고 마침내 붙잡혀서 포비아크 감옥에 들어갔었다. 이제 그는 아르헨티나 시민으로서 러시아 입국사증이 찍힌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를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술집 테이블에 흘로 앉아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애매한 즐거움이었다.
  (로셸이 함께 있기만 하다면! 가까워질 수 있는 여자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자라고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살이 뒤룩뒤룩 찐 중년 여인네 몇 명뿐이었다. 아마 야누슈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들 같았다. 그들은 쉰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한 여자는 장사치 주머니같이 큰 주머니가 달린 에이프런을 두르고 있었다.
  (아니, 이건 내가 찾고 있던 게 아니야.)
  그는 주소록을 꺼내서 다시 펼쳐 보았다. 누가 주었는지 기억 나지 않는 이름과 주소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 탓인지 그의 기억은 몹시 가물가물했다. 안경을 잃어버리지 않나, 뉴욕에서 산 만년필을 어디 두었는지 모르는가 하면, 옷을 바꿔 입을 때 돈과 서류나 손수건을 빼는 것을 잊어버리곤 했다.
  손님들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다 아는 듯했다. 테이블을 한곳에 붙여 놓고 큰 소리로 얘기하며 웃고 건강을 기원하며 잔을 부딪쳤다. 그중 우두머리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는 사나이였다. 불룩 솟아난 배 위에 걸친 조끼에는 5루블짜리 금장식 걸이가 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슈무엘이라고 부르면서 그의 농담에 웃고 그에게 아부를 하고 있었다. 그는 천식 환자처럼 우는 소리를 하듯이 씨근거리면서 심장비대증에 걸린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때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했을지 모르나 맥스가 보기에는 언제라도 심장마비가 올 수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그 뚱뚱한 우두머리는 곱창과 으깬 감자를 안주삼아 맥주를 한잔 한잔 따라 마시고 있었다.
  맥스는 그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지금 어떻게 해서 한 부랍비가 감옥에 가는 것을 막았는지를 얘기하고 있었다. 선량한 부랍비는 법을 위반하여 결혼식 주례를 했었다. 그에게는 결혼 주례를 서도 된다는 정부의 허가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적어도 3개월 내지 1년의 징역형을 언도받을 터였다. 그랬는데 슈무엘이 조사 담당 판사에게 가서 해결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살점 하나 없이 가냘픈 팔과 발코니같이 툭 튀어나온 큰가슴과 점점 폭이 넓어져 가는 머리를 가진 뚱뚱한 여자가 줄질하는 것 같은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스스로에게 기름칠을 시켰군, 안 그래요?"
  "기름 없이 바퀴는 돌지 않지. 그 선량한 사람이 와서는 (슈무엘 씨, 날 구해 주십시오) 하며 애걸을 했었지. 그는 떨고 있었어. 내 집에서 쓰러지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말야. 수갑 차고 사흘만 있으면 끝장나 버릴 그런 사람이었어." 
  "우리는 그 사람에게 매주 기부금을 내지요." 
  "그는 애가 넷이나 돼." 
  "그 랍비의 처는 안식일용으로 내게서 생선을 사가요." 
  그 뚱뚱한 여자가 말했다.
  "꼭 4분의 3파운드만 말예요. 하지만 난 아무 말도 않고 더 주어요, 선행이라고나 할까요." 
  "한번은 그 여자가 내게 가공 안 한 비단 가발을 주문하기도 했어요." 
  다른 여자가 거들었다.
  "그게 어떤 거요?" 
  "그결 몰라요? 머리카락 아닌 비단 말이에요." 
  "랍비의 아내는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쓰면 안 된답니다. "
  "왜 안 돼요?"
  "만약 남자가 머리카락을 보면, 여자랑 하고 싶어진대요." 
  갑자기 웃음과 테이블을 쾅쾅 치는 소리가 쏟아졌다. 뚱뚱한 여자는 에이프런에 코를 풀었다. 슈무엘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쳤다.
  "웃지 마. 우린 그들의 미덕으로 살고 있는 거요." 
  맥스 바라밴더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벌떡 일어 서서 그들의 테이블로 가서 말했다.
  "모국어로 얘기를 하시는군요. 앉아도 되겠습니까? 난 이곳 출신은 아닙니다. 막 외국에서 오는 길입니다. " 
  "미국인이시구먼?"
  "아르헨티나도 미국(아메리카)에 있지요," 
  일순 그들은 조용해졌다. 슈무엘이 나서서 말했다.
  "자, 의자를 당겨요. 어디서 왔소,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 뉴욕, 파리... 전세계에서 왔지요."
  "음, 거기 큰 세상은 어떻게 돌아갑니까?"
  슈무엘이 물었다.
  "자그마한 세계가 많이 모여서 된 하나의 큰 세계이지요." 
  그 다음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으나, 아무튼 맥스는 그렇게 대답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때에는 (미국을 만든다)고 하지요. 뉴욕에서는 (생활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런던에서 유태인에게 안녕하냐고 물으면 훨씬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대답할 것이고, 파리에서는 유태인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어요. 그 사람들은 카페에 앉아 10상팀(1프랑의 100분의 1)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죽치고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 뭔가를 얘기하면 (우-라-라)라고 하면서 아페리티프를 한잔 사달라고 할 겁니다. 그건 포도주 한잔을 말하지요. 열 잔을 마셔도 결코 취하지 않지요." 
  "센 술은 마시지 않소?"
  이번에도 슈무엘이 물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포도주를 더 좋아하지요. 감사 기도에 좋고 심장을 자극하지도 않으니까요." 
  맥스가 말했다. 그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브랜디 좀 대접할까요?"
  "(대접)이라니 무슨 뜻이오?"
  "이 테이블에 앉은 모두에게 사는 거요." 
  "우린 거지가 아니오. 브랜디는 우리가 직접 사 마실 수 있소. 하지만 우정을 위해 한잔 하고 싶다면 좋고말고요. 할아버지께서는 한잔의 브랜디나 한줌의 코담배도 거절하지 말라고 하셨소." 
  "뭐와 함께 드시겠소?"
  "도대체 어떤 성경에 뭐하고 같이 마셔야 한다고 씌어 있소?"
  "안주로 곱창을 하지요." 
  침울하게 앉아 있던 시장 여자가 외쳤다.
  "무슨 일이오, 레이첼. 살이 찔 만큼 찌지 않았소?" 
  슈무엘이 그녀에게 농을 걸었다.
  "우리 남편은 이대로의 나를 좋아해요." 
  "거칠기는 하지만 귀여운 이 여자는 스스로를 잘 보호할 수 있다오." 
  슈무엘이 한마디했다.
  "당신 이름이 뭐라고 그랬소?|
  "맥스 바라밴더요." 
  "내 이름은 슈무엘 바클러요. 보통은 슈무엘 스메테나라고 부르지요. 사람들이 그런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이제 그렇게 굳어져 버렸소." 
  "왜 스메테나가 됐죠? 사워 크림 좋아하시오?"
  "다른 사람이 싫어하지 않는 거라면 다 좋아해요. 그래서 이렇게 배가 튀어나왔소. 여자들을 길거리에서 채다가 아르헨티나로 데리고 가버린다는데, 사실이오?"
  "제 발로들 가지요."
  "웨이터가 왔군..."
  몇몇은 여느 브랜디를 주문했고, 몇몇은 코냑을, 그리고 맥스는 위스키를 주문했다. 웨이터는 위스키가 뭔지 몰라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맥스는 자기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느라 위스키란 단어를 썼다. 그는 사람들이 들어 보지 못한 술들을 잘 알고 있었다.
  슈무엘 스메테나와 레이첼 옆에 또 다른 여자 셋과 남자 둘이 합석했다. 넓적하게 각이 진 짤막한 얼굴에 거의 목이 없는 금발의 한 남자는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사람둘은 그를 젤릭이라고 불렀다. 슈무엘 스메테나는 그를 가리키며 거리에서는 젤릭 키슈키나 젤릭 피셔로 알려져 있다고 소개했다. 젤릭의 처 마아클은 몸집이 뚱뚱하고 작달막했다. 그녀는 비뚜름한 코에다 미간이 아주 좁았다. 그녀는 미소를 띠고 노란 눈동자를 슈무엘 스메테나와 맥스에게서 떼지 않고 있었다. 때때로 맥스에게는 마치 윙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매력적인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맥스는 의아해 했다. 그때 그는 피골이 상접하고 머리카락이 한 오라기도 없는 민머리의 야윈 남자를 발견했다. 그 사람은 마치 귀족처럼, 줄무늬 양복에 깃이 빳빳한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에다 넥타이핀까지 고루 갖추어 차려 입고 있었다. 그의 옷깃에는 자선 단체가 파는 종이꽃 같은 것이 꽂혀 있었다. 허약한 사람에게서나 나을 법한 여린 음성으로, 그는 뜨거운 소시지와 도수가 90도나 되는 브랜디를 주문했다 
  "그 꽃은 뭐 하는 거요?"
  "건강 협회 것이오." 
  "그게 뭔데요?"
  "결핵 환자는 옷보츠크에 보내어진다오." 
  "거기서 어떻게 되지요?"
  "그게 마지막 머무르는 곳이오. 곧 여행용 트렁크에 들어가게 되지요." 
  "당신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해요, 풀리예. 그렇게 말하는 꼴이라니." 
  자그마한 여자가 외쳤다.
  "하지만 사실이오." 
  "진실 때문에 얻어맞는 거요."
  슈무엘 스메테나가 되받았다.
  "(라쳄!(건배!))"
  맥스는 위스키를 마시고 양파와 마늘로 만든 젤리를 바른 말랑말랑한 우족을 씹었다. 실로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기쁨으로 가득 찼다.
  파리도, 베를린도 그에게 올바른 동반자를 제공해 주지 못했었다. 거기서는 프랑스어나 독일어 표현을 사용하거나 리투아니아 이디시 방언을 사용했었다. 게다가 외국에서 만난 거의 모두가 그보다는 젊어서 마치 그를 노인 취급했었다. 어디에서 다정스런 얼굴을 찾을지는 절대로 모르는 법이다. 이 술집에서 불과 30분도 안 되었는데 벌써 이 사람들은 그를 맥스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이 집의 단골인 하임 카비오르니크라는 늙은 남자는 여기서 멀지 않은 18번지에 카페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치즈빵을 좋아하면 내 카페로 오시오. 이 세상 최고의 치즈빵을 맛보게 될 것이오." 
  그가 말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무얼 먹지요?"
  침묵을 지키고 있던 여자가 맥스에게 물었다. 그녀는 마흔 남짓해 보였다. 작고 거무스름한 피부에, 어느새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보이는 단발을 하고 있었다. 까만 체리만큼이나 검은 그녀의 눈동자 아래에는 주름살이 굵은 선을 그은 듯이 선명했다. 짧은 코와 턱이 작은 그녀는 양 눈썹이 마치 맞붙은 듯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딴사람들보다 세련되어 보였고 나이가 들었는데도 소녀 같은 인상을 풍겼다. 웃을 때는 틈새가 벌어지긴 했지만 작고 하얀 이빨이 드러났고 왼쪽 뺨에는 볼우물이 패었다. 맥스는 그녀를 몇 번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회색 윗도리 위에, 가게 점원들이 현금을 넣어 두는 데 쓰는 것과 같은 종류의 지갑을 두르고 있었다.
  맥스는 원기가 회복됨을 느꼈다.
  "벙어리인 줄 알았소."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슈무엘이 쉰 듯한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와 시작했다 하면 당신 귀가 번쩍할 만한 이야기들을 듣게 될 거요." 
  "왜 그녀와 시작해야만 하지요? 우리가 아르헨티나에서 먹는 건 비프스테이크요. 하루에 두 번씩 우리는 전세계로 쇠고기를 실어 보내지요. 알팔파라는 풀이 있는데 그걸 가축이 먹으면 매우 살이 쪄요. 아르헨티나에서는 수백 마일을 가도 보이는 건 초원, 그리고 풀과 가축뿐이오."
  "아르헨티나에서는 고기를 수출할지는 모르지만, 인육을 수입한다던데." 
  슈무엘이 재치 있게 한마디했다.
  "사실이오. 하지만 수입 같은 데 곧 신경 안 쓰게 될 거요. 스페인 여자들이 꼭 정숙하지만은 않아요. 문제는 한번 쳐다보았다 하면 임신이 된다는 거지." 
  "단지 보기만 해도요?"
  까만 눈동자의 여자가 물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아르헨티나에서는 비유태인들, 말하자면 남자들은 종교적이지 못해요. 심지어 일요일에도 교회를 안 가요. 종교적인 것이라곤 여자들에게만 있지요. 여자들은 교회에 가고 신부에게 고해도 하고 그러지요. 그리고 남편이 집에 없으면 여자들 마음대로 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지요. 삼십이면 이미 끝나 버려요. 기후 탓이지요. 그러니 아르헨티나 남자들은 다 정부가 있답니다. " 
  "멋진 나라군." 
  "뜨거운 피가 흐르는 곳이지요. 사람들은 아르헨티나에 대해 나쁘게 말들 하지만 정작 거기 가보면 이해하게 될 거요. 충동을 느끼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게 되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멋진 나라를 떠나 여기 크로치말나 가까지 오게 되었지요?"
  자그마한 여자가 물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지요. 당신은 가게를 운영하나요?"
  "남편은 굽고 나는 팔아요. 식빵, 롤빵, 베이글빵 등을요. 크로치말나 가 15번지에 있어요." 
  "이름이 뭐죠?"
  "에스터 ." 
  "빵을 파는 건 좋은 직업이에요. 사람들은 항상 식빵과 롤빵을 먹고 싶어하지요." 
  "제 남편 밑에는 도제가 열두 명이나 있답니다. 바르샤바에는 얼마나 머무르실 건가요?"
  "모르겠소." 
  "내일 밤 와보세요. 우린 저녁을 10시경에 먹어요. 당신에게 제 여동생을 소개시켜 드리지요. 제 동생은 저보다 열 살이나 젊어요." 
  "당신도 그리 늙지 않았는걸요." 
  "늙지도 않았지만 젊지도 않은 할머니지요. 두 살 난 손자가 있는걸요. 바르샤바에서는 어디에 머무르시나요?"
  "브리스톨 호텔에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당신은 절대 가난한 사람이 아니시구먼." 
  슈무엘 스메테나가 말했다.
  "가난한 사람이 부모의 무덤을 보러 폴란드에 오지는 않지요. " 
  맥스는 그렇게 말해 놓고는 자기가 한 말에 스스로 놀랐다.
  "자, 그럼 당신은 우리와 한편이오." 
  슈무엘이 말했다.
  "여기 바르샤바에서는 부자가 되지 못해요. 부자 아버지 없이 부자가 될 수는 없소. 다른 나라, 일테면 미국에서는 자수성가할 수 있지요. 당신은 어떤 일을 합니까?"
  "집과 땅이죠." 
  "그런데 정말 부모님 무덤을 보러 왔소?"
  "부모님은 로스코바에 묻히셨소." 
  "어디에 있죠? 당신은 바르샤바 출신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때 여기 살았소. 바로 이 17번지에." 
  "미국 사람들이 오면 거의 그 사람들의 말을 이해 못할 거요. 육십 된 사람이 와도 마치 마흔밖에 안 된 것같이 보입니다. 기껏 젊은 여자들을 따라다니다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지요. 하나 가진 게 있다면 미국 달러요. 1달러면 2루블이지요. 아르헨티나에선 어떤 돈을 쓰지요?"
  "페소요." 
  "사람들이 여기 오면 고향 같다고들 합니다. 런던에서 온 어떤 사람은 자동차를 타고 우리와 함께 팔레니츠까지 갔었소. 그가 말하길, 런던에는 깨끗한 공기는 없고 연기뿐이며, 해가 밝게 빛날 때가 없다고 했소. 매일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린다고 했소. 거기서는 돈이 파운드라든가 뭐라든가 하는 걸로 계산이 된답니다. 또 한 가지는 어디나 같아요. 끊임없이 뇌물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만약 당신에게 가게가 있고, 가게 문을 저녁 7시에 닫아야 하는데 모두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7시 즈음에야 시장을 보러 간다면 어떻게 문을 닫을 수가 있겠소? 그러니 경찰서장이나 경사들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안 되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은 고발당할 것이고 몹시 바빠질 거요. 그게 내 일이오. 누구한테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알아야 되지 않겠소? 무턱대고 3루블을 꺼내어 그냥 경찰서장에게 주어 보시오. 그 자리에서 뇌물 공여죄로 체포될걸. 그뿐이겠소? 그것 때문에 빵간에 갈 거요. 또 몇몇 경찰들과는 (오케)나 (66) 같은 카드 게임을 해서 잃어 주지요." 
  슈무엘은 쉼 없이 지껄였다.
  "그렇지 않으면 뇌물을 받지 않아요. 슈무엘 스메테나가 전화해서 카드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하면 서장은 자기가 아무리 못해도 이길 거라는 걸 알지요. 한번은 9자 두 장- (슈라제스)라고 부르기도 하는 쓸데없는 카드죠- 과 잭 두 장을 잡았소. 그런 카드로는 곧 그만두어야 하죠. 하지만 나는 진짜 카드를 치러 간 것이 아니니까. 경찰 부서장이 에이스 네 장을 들고 있는 걸 알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5루블을 걸었죠. 그가 25를 내려놓았을 때 내가 졌소. 보통 그 사람들은 자신이 이길 때면 상대편 카드를 볼 생각도 않소.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손을 뻗어 내 카드를 한 번 보았소. (이 못된 놈, 날 겁나게 하려고 했지?) 그래서 내가 말했소. (그렇습니다, 각하.) 그게 우리들 방식이오. 큰돈을 잃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당신은 스톨리핀이나 차르와도 카드를 칠 수 있소." 
  "에스터." 
  빵집 여인에게로 몸을 돌리며 슈무엘이 말했다.
  "당신 남편은 빵 굽는 사람이지 밀수쟁이가 아니오. 하지만 그 또한 뇌물을 먹이지. 경찰 마누라들이 와서는 공짜 롤빨을 가져 가지요. 사실이요 아니오?"
  "당신은 미국을 발견해 가고 있소?"
  "빵 굽는 사람이 어떤 죄를 저지르지요?"
  에스터는 미소를 지었다.
  "러시아 돼지의 눈에는 모든 게 죄악이지요. 보건 검사원을 보내서 빵집이 깨끗하지 않다고 주장하지요. 그들 막사에서는 밀가루를 발로 반죽하니까, 오히려 우리 기준으로는 그게 깨끗하지 않은 거지요. 내일 밤 우리 빵집으로 와보세요. 제 남편이 다 말해 줄 겁니다." 
  그 자그마한 여자는 눈길을 돌렸다.
  "당신 남편은 밤 11시까지 빵을 굽잖아." 
  슈무엘이 끼여들었다.
  "10시경이면 이미 집에 와 있어요," 
  "장난하지 말아요, 에스터. 당신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지? 이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다니. 맥스, 당신은 저 여자에게 가도 돼요, 그녀의 요리 솜씨는 왕의 입맛도 맞출 수 있을 정도지. 잘생긴 여동생도 있고 예쁜 딸도 있소. 저 여자는 그렇게 못된 여자는 아니오." 
  모두가 웃었다. 에스터는 어린 소녀처럼 얼굴을 붉혔다.
  "슈무엘,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나는 벌써 할머니란 말이에요." 
  모두가 떠난 뒤 맥스는 혼자 남아 돈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보통 여름이면 저녁나절에는 시원해지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았다. 벽돌 벽과 양철 지붕과 도로에 깔린 자갈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거리는 소년 소녀 들로 가득 차있었다. 그들은 거리 한복판에서 뛰어노는 데 정신이 빠져 마차가 바싹 다가올 때까지도 비켜 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맥스는 그노이나 가로 다시 나왔다. 창녀들이 안마당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서서 남자들을 부르고 있었다. 줄곧 마셔서 약간 취기가 오르긴 했지만 기분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왜 이렇게 멀리까지 왔을까? 슈무엘 스메테나에게 얘기하려고? 이미 할머니가 된 빵집 마누라 집에 초대받기 위해서?)
  한때 그는 바르샤바에 많은 여자 친구들이 있었건만 이젠 그녀들이 어디에 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로스코바로 가버리면 안 될까? 뭔가 가치 있는 일을 실제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게 아닌데.)
  맥스의 머릿속에는 상념에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잠시 동안 그는 만약 여기서 갑자기 죽어 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상상해 보려고 애썼다. 로셸은 그의 뼈가 어디에 누워 쉬고 있는지조차도 모를 것이다.
  그의 어머니-고이 잘드소서-는 늘 말씀하셨다. (인생은 무덤 위에서의 춤이다.) 그는 무얼 해야만 하는 것일까? 기록관에게 유태 율법 한 두루마리를 준비시킬까? 종이꽃을 파는 건강 협회에 돈을 주어 버릴까?
  감옥에 갈 뻔했던 저 선량한 사람, 랍비를 슈무엘 스메테나가 구해 준 것이 갑자기 생각났다. 어쩌면 그를 찾아가서 몇 루블이라도 쥐여 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아직 늦은 시간이 아니니까 아무도 잠자리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맥스 바라밴더는 그의 충동이 광란의 편린임을 깨달았다. 갑자기 박애주의자가 되려는 젓일까? 그는-제발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그를 내몰고 있었다.
  그는 모자를 쓴 늙은 여자를 불러 세웠다.
  "무얼 원하죠?"
  그녀가 물었다.
  "랍비는 어디에 삽니까? 이름을 잊어버렸소. 사람들이 결혼하러 찾아가는 선량한 사람 말이오." 
  "부랍비 말씀하시는 거요? 70번지 2층에 살아요. 저기 불켜진 발코니 보이죠?"
  "대단히 고맙습니다. " 
  "문 왼쪽으로 들어가세요." 
  맥스는 길을 건너서 작은 등유 램프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그는 잠시 서서 마당을 들여다보았다.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받아 쓰레기통과 휑한 벽과 별채가 희미하게 보였다.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일하고 있었다.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 제화공의 망치 소리와 쩔그렁거리고 붕붕대는 소리를 들으니 맥스는 마치 공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곳에 지하 아파트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잊고 있었다. 아파트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희미한 천장과 땅에 닿아 있는 작은 창문이 보였다. 줄에는 빨래가 널려 있었다. 한 가정주부가 폭이 넓은 긴 의자 위에서 침대를 정돈하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소녀가 냄비에다 감자를 삶고 있었다. 맥스는 몇 루블이라도 줄까, 생각했지만 그러려면 그 어두운 계단을 기다시피 해서 내려가야 할 터였다. 랍비의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역시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아, 여긴 마치 백 년 전 같군."
  계단을 걸어 올라가며 그는 중얼거렸다.
  그가 어느쪽 문을 두드려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그중 한쪽 문이 저절로 열리면서 분홍빛으로 칠한 부엌의 벽이 보였다 벽돌 오븐 위에는 냄비들이 놓여 있고 천장에는 등유 램프가 대롱대롱 매달려 양철색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한 여인이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그 선량한 분은 어디에서 살지요??
  맥스가 물었다.
  "내 말은..."
  그 여인은 가발을 쓴 머리를 들었다. 좁은 얼굴에 볼이 움푹 패고 코가 자그마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회색 눈동자는 의심의 빛을 가득 싣고 있었다. 약간 두려워하는 듯하면서도 다소 과장된 미소를 띄웠다.
  "부랍비를 보려고 하시나요?"
  "예, 부랍비요." 
  "제 남편이 부랍비예요. 지금은 집에 없어요. 뭐 물어 볼 게 있으세요?"
  "음, 아니, 물어 볼 게 있는 건 아니오." 
  "남편은 아래층 기도실에 있어요. 노이슈타터 기도실이라고 하지요." 
  "그럼 당신은 랍비 부인이시군요." 
  "예, 그래요."
  "들어오시고 문을 닫으시죠, 원하신다면." 
  침대에 앉아 있던 소녀가 말했다. 소녀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짜증과 조롱기가 실려 있는 듯했다. 맥스가 보기에 소녀는 열여덟이나 아흡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깃이 높고 소매가 길다란 옥양목 옷을 입고 있었으며 검은 머리는 한 가닥으로 단정하게 묶었다. 그늘에 있는데도 소녀의 얼굴은 밝게 빛나 보였다. 소녀에게는 맥스를 놀라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소녀는 시골뜨기 같으면서도 국제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파리와 베를린에서 보았던 귀부인들 같았다. 소녀는 빼어난 미인이었다. 아마 어깨 위에 숄을 두르고 상자에 앉아 있는 다른 소녀-그녀의 언니?-의 넓적한 코와 남자 같은 짙은 눈썹 때문에 그녀의 아름다움이 더 도드라져 보였을지도 모른다.  맥스는 문을 닫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서 있었다. 늘상 하던 대로 그는 혀가 알아서 모든 말을 다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나는 먼 곳에서 왔습니다 우연히 17번지 술집에 들렀다가 슈무엘 스메테나라는 사람이 당신 남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당신은 분명 그 사람의 딸인 것 같군요." 
  그는 예쁜 소녀에게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누이동생인가요? 슈무엘은 결흔식 때문에-뭐라고 해야 하나?-고생한 랍비 이야기를 했어요. 무서워 마십시오. 난 염탐꾼이 아닙니다. 그 선량한 분이 고통받고 계시다는 것을 듣고 보니 생활이 대단히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때 여기에 부모님도 계셨지만 다 돌아가셨습니다. 바르샤바가 아니라 로스코바였지만요. 루블린 지방에 있는 마을이죠. 아마 어디 있는지 아실지도 모르겠군요. 부모님의 묘소를 돌아보러 왔습니다. 나 역시 바르샤바 출신입니다. 20년도 더 전아 여기서 살았지요."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랍비의 아내는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예쁜 소녀의 눈은 웃음으로 가득찼지만 검은 피부의 뚱뚱한 소녀는 입을 크게 벌리고 당혹해 하는 빛이 역력했다. 랍비의 아내는 펜을 내려놓았다.
  "잠깐만요. 남편이 곧 들어오실 겁니다. 치렐, 손님을 위해 의자를 내오렴." 
  예쁜 소녀가 치렐이었다 치렐은 주저주저하며 일어섰다. 불거진 방문을 열고 들어가 의자를 내왔다. 소녀는 의자를 방 한 가운데 놓았다.
  "고맙소." 
  맥스가 말했다.
  "앉을 필요는 없소. 제 어머니께서는 (사람은 단지 잘 서 있을 수 있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소. 난 기차에서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앉아서 왔소. 2등칸이긴 했지만 지겹지요. 여기서는 브리스톨 호텔에 머무르고 있소." 
  "브리스톨 호텔에?"
  치렐이 외쳤다.
  "전재산을 다 날릴 텐데요!"
  "전재산은 아냐. 하루에 4루블이지." 
  "1주일에 28루블이에요." 
  "그게 별건가? 베를린에서는 12마르크씩 주었어. 그건 6루블이야." 
  "백만 장자이시군요." 
  "치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랍비의 아내가 끼여들었다.
  "주께서 도우시면..."
  "하루에 6루블이면 일주일에 42루블이에요. 어디서 그런 돈이 나지요? 어디 사세요, 미국?"
  "그래, 남미에." 
  "우린 여기 앉아서 선생님을 구하는 꿈을 꾸어 왔어요." 
  치렐이 말했다.
  "우리는 러시아어와 폴란드어도 배우고 싶어요. 어제 선생님이 왔었는데 한 수업당 20코페이카를 달래요. 1주일에 3번 수업을 하면 60코페이카이니까 4굴덴이에요. 그 돈만 내면 둘 다를 가르쳐 주겠대요. 하지만 어디서 그런 돈이 나요? 이쪽은 내 친구 레아체예요." 
  옆의 소녀를 가리키며 치렐이 말했다.
  "레아체란 말이지? 내 사촌 중에 레아라고 있지, 레아는 30년 전에 천연두로 죽었단다. 그런 일이 결코 너한테는 일어나지 않기를!"
  "그때는 천연두 예방 접종을 안 했군요?"
  랍비의 아내가 물었다.
  "로스코바에서는 하지 않았죠. 너도 이 동네에 사니?"
  맥스가 레아체에게 물었다. 레아체는 곧 대답할 듯했으나 정작 입에서 말이 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막상 말이 입 밖에 나왔을 때는 말더듬이가 애써 말하려는 양 더듬더듬거렸다.
  "우린 가난한 동네에 살아요." 
  그녀는 잠깐 사이를 두고 어눌하게 말했다.
  "우린 비스코바 출신이에요. 아버지가 먼저 오시고 그 다음에 오빠 요월과 언니 네미와 막내 여동생이 왔지요." 
  "아버지는 윌 하시지? 너희 아버지도 부랍비이신가?"
  레아체의 얼굴에 웃음이 번져 나왔다.
  "오, 아버지는 중매쟁이인데요, 부업으로 시계도 팔아요. 오빠는 사무실 직원이고요." 
  "아버지가 중매쟁이라면 왜 네 중매는 안 서지?"
  랍비의 아내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도 어린아이예요. 때가 되면 분명 짝을 찾을 거예요."
  "여기 와서 보니 어쩐지 모든 게 다 이상하게 보이는군요. 20년 이상이나 넓은 세상에 나가 있다가 이렇게 갑자기 다시 돌아오게 되다니! 난 술집에 있었는데 슈무엘 스메테나가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소. 선량한 분이 결혼식을 주관해 준다는 것이 러시아의 돼지들에겐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리고 나서는 모두가 다 술집을 떠났지요. 하지만 호텔은 아무리 거창해도 집은 아니지요. 사람들이 말하듯이 혼자 있다는 것은 우울하지요. 그래서 여기 와서 선량한 사람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른 거예요." 
  "미국에 가족이 있으신가요?"
  랍비의 아내가 물었다.
  "있었지요." 
  "무슨 일이 있었나오?"
  "아르투로라는 아들이 있었죠. 내 처가 장인어른 아리예 레이프 이름을 따서 그렇게 지었지요. 아르헨티나에서는 아리예를 아르투로라고 발음하지요. 사랑스럽고 영리한 아이였소. 또 얼마나 잘생겼게요. 산책을 하고 오더니 머리가 아프다고 했소. 아내가 침대에서 쉬라고 했죠. 그애는 침대에 눕더니 숨을 깊게 들이쉬었습니다. 아내가 물 한잔을 갖다 주려고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는 모든 게 끝나 있었소." 
  랍비의 아내가 흠칫했다.
  "하느님, 우리를 구원하고 보호하소서!"
  "난 더 이상 집에 있을 수가 없었소." 
  맥스가 말했다.
  "부인은 어떠신가요?"
  "아내는 아들을 뒤따라 이 세상을 떠났소." 
  맥스의 입에서 그렇게 흘러 나왔다. 그는 말을 해놓고 흠칫 놀랐다.
  "하느님, 우리를 구하소서! 부인은 어떻게 되었죠? 병을 얻었나요?"
  "독약을 마셨소." 
  랍비의 아내는 여린 손을 비틀었다. 그녀는 마치 침이라도 뱉을 것같이 고개를 숙였지만 침을 뱉지는 않았다.
  "우리 모두 그런 슬픔에서 보호되길! 확실히 고통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니었군요. 하늘에 계신 주여, 그녀를 용서하소서!"
  "어느 날 집에 와보니 갑자기 난 가족이 없어져 버린 것이었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램프 속의 심지가 등유를 빨아들이는 소리도 귀에 잡히는 듯했다.
  "당신은 직업이 무엇인가요?"
  "집과 땅을 팔지요." 
  "글쎄, 모든 게 다 예정되어 있죠. 어느 것도 함부로 일어나진 않지요." 
  랍비의 아내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맥스는 랍비의 아내가, 술집에 같이 있던 미용사가 들려주던 바로 그런 종류의 가발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렸다. 정말 그녀는 가공 안 된 실크 가발을 쓰고 있었다. 그 가발에 대해 물어 보고 싶었지만 적절한 때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지금 그는 대단한 거짓 말을 만들어 내고 있지 않은가! 무엇 때문에?
  치렐은 머리를 한쪽으로 갸우뚱했다. 소녀는 그를 걱정스럽 다는 듯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 눈길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갑자기 소녀가 말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선생님의 (페어츠바이플룽)을 잊으시려고 이런 여행을 하시는 거군요." 
  신문에 등장하는 단어들 가운데 하나인, 비참함을 뜻하는 이 독일계 이디시어를 맥스가 들은 것은 너무나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단어의 뜻을 금방 알아들었다. 그 단어를 듣는 순간 그는 벌에 쏘인 듯, 창자가 찢어지는 듯 했다. 이 애송이 랍비의 딸이 그의 문제가 무엇이며 왜 이런 여행을 하게 되었는가를 단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었다. 전율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래, 그게 이유야." 
  이제 그는 화제를 바꾸어야 했다.
  "부인, 무얼 쓰고 계십니까?"
  맥스는 부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영수증이 에요." 
  "무엇을 위한 거죠? 학교인가요?"
  "제 남편은 교구에 속해 있지 않아서 교구에서 주는 돈은 없어요. 동네에서 주간 수당을 주지요. 수금인이 한 바퀴 돌면서 헌금을 모으죠. 그리고 모두에게 영수증을 주지요,"
  "이걸로 선량한 분이 사신다는 말이죠?"
  "이따금 결혼이나, 이혼, 재판 따위 일이 있기도 하지요."
  맥스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신앙심 깊은 사람은 살아가는 데 불편이 없을 만큼 충분한 돈이 있어야 하죠. 그래야 돈 걱정 않고 유태 율법을 연구할 수 있으니까요." 
  치렐은 웃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당연히 그래야 할 일들이 많이 있죠. 우리 동네에는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나르는 짐꾼들이 있는데, 짐 밑에 깔리지 않는게 기적이에요. 대부분은 나이 든 유태인들이죠. 한번은 혼자서 옷장을 나르는 걸 보았어요. 어떻게 그가 그 무거운 짐에 깔리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사람들이 어디에 사는지 아세요? 어두운 지하 방인데, 너무나 습기가 차서 분명 결핵에 걸리고 말 거예요. 그 사람들은 너덜너덜 찢어진 누더기를 입고 있어요. 얼마 전에 한 사람이 죽었는데 수의 한 벌 사려고 여러 사람들이 돈을 모았어요." 
  "치렐, 네 아버지 얘기하고 짐꾼들 얘기하고 섞지 마라." 
  랍비의 아내가 꾸짖었다.
  "물론, 그런 유태인들은 동정받아야지. 하지만 그건 이것과 전혀 관계가 없단다." 
  "아니에요. 관계 있어요, 엄마. 올바른 세상에서는 누구도 굶주림으로 고통받지 않고, 올바르지 않은 곳에서는 몇몇 착취자들과 흡혈귀 같은 존재들만 빼고 모두가 고통을 당해요."
  "파업자들이 네 아버지의 유리창을 부숴 버렸잖니?"
  "바보 같은 남자아이들 몇 명이 그랬어요. 아버지가 기도실에서 그 사람들에게 반대하는 말을 했기 때문에 자극을 받은 거죠. 왜 가난한 사람이 다른 가난한 사람한테 반대해야만 하나요? 그 사람들은 아버지와 싸우는 게 아니라 차르와 싸우고 있던 거였어요."
  랍비의 아내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펜을 내려놓았다.
  "얘야! 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그런 얘기하면 우리 모두 사형장으로 끌려간단 말이야."
  "무서워 말아요, 엄마. 이분은 밀고자가 아니에요."
  "제발 그렇지 않기를! 하지만 벽에도 귀가 있어. 차르는 모두를 부자로 만들 수는 없단다. 만약 차르가 그의 모든 재산을 나누어 준다고 해도 한 사람당 3루블짜리 지폐 한 장밖에는 안 돌아갈걸." 
  "어느 누구도 부를 공유하라고 하지는 않아요. 비밀 경찰들이 첩자들을 통해서 통제하기 때문에 한마디 말도 무서워서 못 하는 국회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유, 진정한 자유를 주라는 것이..." 
  "얘야, 너 조용할 거냐, 안 할 거냐?"
  랍비의 아내는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얘는 제 주장만 하려 드는구나, 전세계를 다 보살필 수는 없단다.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이 있었고 구세주가 나타나지 않는 한 계속 있을 거야. 유태 율법에도 나와 있어. (이 지구상에 가난한 사람들이 없을 때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라고 말이야." 
  "알아요, 엄마, 안단 말이에요 3천 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우리의 스승 모세가 알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필요가 없어요. 러시아에는 누구나 배불리 먹을 만큼 충분한 곡식이 있어요. 심지어 러시아는 외국으로 곡물을 수출도 해요. 옷, 신발 등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그것을 만들 수 있는 공장을 세우면돼요. 농부들은 맨발에 옷도 없어요. 땅을 갈고 딴사람들이 먹는 빵을 만드는 곡물을 수확하는 사람들에겐 빵 한 조각도 사치예요. 최소한의 교육도 자식들에게 못 시켜요. 가르치는 게 있다면 십자가에 입맞추라는 거예요."
  "그래서 너는 유태인을 학살하는 반유태주의자들인 그 농부들도 돌보겠다는 거냐?"
  "농부들이 유태인을 학살하는 건 흑백인단이 부추기기 때문이에요. 베르디체프나 키시네프에서 농부들이 유태인 근로자들에게 반감 가질 게 뭐가 있어요? 푸리슈케비치가 농부들을 선동하면 마치 양들처럼 따라요. 누군가 나서서 그들에게 진실을 말해 주어야 해요."
  "그래? 그렇다면 당장 달려가서 말하렴!"
  "러시아어를 알기만 한다면요."
  맥스는 감탄하며 마냥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린 소녀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치렐의 친구 레아체는 입을 벌린 채 앉아 있었다. 맥스의 눈에는 그녀의 턱이 마치 암소 턱처럼 보였다.
  "랍비 부인, 그애에게 화내지 마세요. 저애도 생각하는 머리가 있소. 그건 아버지가 랍비이기 때문 아니겠소? 뭐라고 하더라,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멀리 안 떨어진다고 하지요? 랍비는 유태 율법에 대해 생각하고, 딸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죠. 미국에도 사회주의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자유롭게 시위를 합니다. 5월 1일에는 붉은 깃발들을 들고 모두 쉬지요. 그들은 짧은 근로 시간과 나은 보수를 위해 투쟁하고 있소." 
  "거기에는 차르가 없는데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있지요."
  랍비의 아내가 말했다.
  "누가 굴뚝을 소제하죠? 록펠러?"
  "어떻게 록펠러를 아시오, 랍비 부인?"
  "우린 알아요. 딸애는 매일 신문을 사와서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읽지요. 전세상을 다 돌볼 수는 없어요!"
  랍비 아내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전지 전능한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해 내셨고 관장하시지요. 가서 접시나 씻는 게 낫겠어요." 
  "지금 하지 마세요, 엄마. 지금말고." 
  "랍비 부인, 나한테 화내지 마세요." 
  맥스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지만 아무튼 입을 뗐다.
  "난 술집에 앉아서 사람들이 랍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옆에서 듣게 되었죠. 당신이 말하시는 대로 난 뭔가 하고 싶습니다. 내 자신, 가난한 사람은 아니지만 돈으로 얻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아래층에 내려가서 무엇이든 샀으면 합니다. 나의 선행이 될 것입니다. 가게 문도 열려 있고 소시지나 갓 구워낸 롤빵과 베이글빵, 정어리 등 전부를 다 가질 수 있습니다. 한잔의 포도주나 브랜디는 어떨지요? 식욕을 돋우지요. 곧 선량한 분이 학교에서 돌아오실 텐데 그분 또한 뭔가 먹을 걸 원하겠지요." 
  랍비의 아내는 미간을 찌푸렸다.
  "우린 잘살지는 못하지만 주의 이름을 찬양하므로 덕택에 먹을 것은 충분히 있습니다. 당신의 성의는 고맙지만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그러면 혹 종교 서적이나 어떤 성물로 기부할 수는 없을까요?"
  "제 남편이 곧 오실 겁니다. 그러면 그가..."
  람비의 아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계단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치렐은 웃으면서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발자국 소리는 무겁고 빨랐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맥스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랍비를 바라보았다. 키가 작고 약간 뚱뚱한 랍비는 발목까지 오는 긴 개버딘 외투를 입고 무거운 장화를 신고 있었다. 머리에는 낡고 해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붉은 콧수염과 곱슬거리는 구레나룻, 짧은 코 위로 밝은 눈이 빛나고 있었다.
  (아버지와 딸이 두 방울 물과 같이 똑같군.)
  맥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 사람에게서는 좀 독특한, 따스한 기운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어쩐지 맥스는 전에 그를 만난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랍비는 분명 뭔가를 말하고 싶어했다. 그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못 견디는 사람처럼 뛰쳐 들어왔다. 손님을 보자마자 그는 갑자기 어쩔 줄 몰라했다. 잔뜩 겁을 먹은 듯했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금방 타고난 좋은 성품으로 되돌아왔다.
  "굿 이브닝!"
  랍비가 말했다.
  "유태인이오? 환영합니다. 날 기다리고 계셨지요?"
  "딴 방의 램프를 켜렴." 
  람비의 아내가 치렐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엄마." 
  치렐은 일어서서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맥스는 재빨리 소녀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키는 크지 않지만 날씬했다. 가는 허리가 특히 돋보였다. 그는 모든 것을 한눈에 다 보았다. 여자다운 어깨, 작은 발, 평평한 가슴, 흰 목. 마치 어린애처럼 부드러웠다. (아주 멋진 상품이야.)
  맥스는 랍비를 보고 말했다.
  "랍비님. 저는 먼 곳에서 왔죠. 당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좋은 일을 위해 기부하고 싶습니다."
  "정말입니까? 기쁩니다! 탈무드 학원과 교회, 그리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바르샤바의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들어오세요. 왜 부엌에 앉아 있지요? 편히 있으세요." 
  랍비는 작은 손을 내밀었다. 맥스는 랍비의 손을 잡고 잠시 있었다. 그는 랍비 앞에 우뚝 서서 마치 랍비가 교회 소년인양 그를 굽어보았다.
  랍비와 맥스는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치렐이 이미 허리케인 램프(등피가 달린 강풍용 촛대)를 켜놓았다. 맥스는 책으로 가득 찬 벽과 의식용 커튼이 달린 성스런 방주를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두 마리 사자가 십계명 판을 받쳐들고 있는데 갈기는 황금 잎으로 돋을새김을 해놓았다. 시뻘건 혀를 내밀고 꼬리를 치켜 든 사자의 유리 눈은 일종의 성스러운 야성으로 가물거렸다. 창가에 있는 성서 낭독대 위에는 종교 서적과 뭔가 잔뜩 씌어진 종이가 쌓여 있었다. 방 한가운데는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긴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이 게 뭐지? 서재인가 교회인가?)
  맥스는 의아스러웠다. 그는 부엌에서 곧 성스러운 곳으로 이어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는 방금 그가 꾸며 낸, 자신이 홀아비라는 거짓말 때문에 두려워졌다.
  치렐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건 우리 방이에요. 미국에서는 물건들을 다르게 배치하겠지요?"
  "우리도 유태인 예배당이 있지요. 하지만 랍비는 떨어져 살지요." 
  "이건 예배당이 아니오. 토요일에는 신도들이 여기서 기도를 하죠." 
  랍비는 무척 미안해 하면서 말했다.
  "방주는 그들의 것이지만 종교 서적은 내 것이오."
  "여기 집세는 비싼가요?"
  맥스가 물었다.
  "한 달에 24루블이요. 이 방말고도 방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발코니도 있죠. 바르샤바에서는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닙니다. 저쪽편 거리는 더 비싸요." 
  "랍비님, 집세로 얼마간 기부하고 싶습니다. 50루블요." 
  랍비는 딸을 쳐다보았다.
  "무엇 때문에요? 우리는 필요 없어요. 물론 집세를 내는 게 어렵소. 하지만 하느님 덕택에 그럭저럭 해나가지요." 
  "따림은 약혼을 했나요?"
  불쑥 내뱉은 말예 스스로 당혹해 하면서도 맥스는 물었다.
  랍비는 마치 그의 딸이 약혼을 했는지 안 했는치 기억을 못 하는 사람처럼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치렐의 눈길에는 웃음과 후회가 뒤섞여 있었다. 소녀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두 뺨에 약간 홍조를 띠었을 뿐이었다.
  "이젠 앉으시지요." 
  랍비가 말했다.
  "그건 이렇소. 내 딸은 약혼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중매를 하겠다고 나서긴 하죠. 관습에 따르자면 여자는 남편에게 지참금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부랍비는 지참금을 보낼 만한 형편이 못 되죠. 글쎄요, 누구에게나 결혼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지요. 참, 어디서 오신 분입니까? 무얼 하십니까?"
  치렐은 문 쪽 가까이 다가가더니 거기 가만히 서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아버지가 차나 마실 것을 가져 오라고 할지도 몰라서 그러는가 보았다. 그녀는 의혹에 찬 눈초리를 맥스에계 던졌다. 훈계가 담긴 듯하면서도 말없이 유혹하는 그런 눈길이었다.
  (이 여자애와 나는 통하는 게 있겠는걸. 곧 그녀와 데이트할 수 있을 거야.)
  맥스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랍비는 까만 기름 헝겊을 씌운 쿠션이 놓여 있는 의자에 조심스럽 게 앉았다.
  "저는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계 곳곳을 다 가보았습니다. 런던, 뉴욕, 파리, 베를린 등등을요. 또 저는 집과 땅을 파는 사업을 하고 있죠." 
  "그렇습니까? 이 세상은 어떻게 들아가고 있죠? 유태인은 유태인이지요.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랍비님. 유태인은 유태인이죠. 그렇지만 여기하고는 다릅니다. 화이트 채플에는 유태인 예배당과 목욕 의식과 그 밖에 모든 것들이 있지만 젊은 세대는 영어로 말하지요. 그런 젊은이들 중 한 사람하고 얘기해 보면 금방 (나는 유태인이오)라고 말할 것입니다. 만약 그런 얘기를 안 하면 전혀 몰라 볼 겁니다. 파리에서는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고 아르헨티나에서는 젊은 세대들이 스페인어를 하기 시작했어요." 
  "스페인에선 유태인의 거주를 금했소."
  랍비는 스스로와 손님 둘 다에게 말하는 듯했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이 아닙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거기 와서 땅을 정복했지요.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죽을 만한 어떤 짓을 했나요?"
  "왜 유태인들은 한때 이스라엘 땅에 살았던 사람들을 죽였나요?"
  문가에 서 있던 치렐이 불쑥 큰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들 또한 자식을 가진 어머니와 아버지였어요. 왜 그 사람들은 말살되어야 마땅한가요?"
  랍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딸이 아직도 거기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게 분명했다. 그는 수염을 당겼다가 바로 놓았다. 모자를 벗은 그의 머리에는 작은 성직자용 모자만 달랑 놓여있었다. 그의 이맛전에 주름이 잡혔다.
  "그건 전지 전능한 하느님이 명령하신 거다. 그 사람들, 일곱 국가는 완전히 죄악에 빠져 있었던 거다. (이 세상에서 가증스런 행위에는 끝이 없다.) 지구라고 하는 냄비가 종교적으로 추잡해지면 깨지게 마련이야. 도시와 국가가 그렇게 되는 것이란다. 하나의 도시 전체가 우상 숭배를 하게 되면 금지된 도시가 된단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나 깊이 죄악에 빠져서 더 이상 회개가 불가능한 때가 오는 것이야." 
  "어떻게 해서 그 어린아이들이 책임이 있나요?"
  치렐은 끈질기게 물고늘어졌다.
  "그 어린애들은 죄악을 저지르지 않았어요." 
  랍비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목소리는 거칠어졌다.
  "선조들의 죄악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고통을 받아야 한단다. 부모들이 창조주께 대항하고 주술과 온갖 종류의 더러운 일들에 관련되었을 때는 어느 누구도 보호받을 수가 없는 것이지."
  "그건 옳지 않아요, 아빠." 
  "넌 지금 뭘 얘기하고 있는 거니? 뭐가 잘못됐다는 거냐? 창조주보다 더한 동정심을 가진 사람은 없다. 이렇게 씌어 있다. (그리고 내가 창조한 영혼들...)이라고. 너는 차나 내오는 것이 좋겠구나."
  그리고는 그는 맥스에게로 몸을 돌렸다 
  "차와 함께 뭐 딴 거라도 같이 드시지요."
  "랍비님, 당신의 따님에게 나가서 무얼 좀 사오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애에게 돈을 주겠습니다. 잠깐만요." 
  맥스는 문 쪽으로 가서 치렐에게 10루블짜리 지폐 두 장을 주었다.
  "아가씨, 부탁드립니다. 윌 좀 사가자고 오세요. 과자나 과일이라도. 나도 먹을 테니. 그렇게라도 해서 이 선량한 분께 존경을 표하고 싶군요." 
  "과자 사는 데 20루블이나요?"
  "나머지는 가져도 돼요. 러시아어 공부를 하려면." 
  치렐은 마치 어머니가 엿듣기라도 하는 듯이 뒤로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2

  맥스는 몇 시간 동안 잠을 잤다. 그러나 깨어나서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도 되지 않았다. 창문에는 희뿌옇게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손과 발을 올렸다 내렸다 하고, 몸을 왼쪽 오른쪽, 앞뒤로 굽히며 운동을 했다.
  꿈속에서 그는 로셸뿐만 아니라 옛날 여자 친구들까지도 같이 있어서 무척 즐저웠다. 치렐과 같이 배를 타고 여행하는 꿈도 꾸었다. 닭장 속의 닭처럼 갇혀 있는 다른 여자들도 함께 데리고 갔었다. 그들에게 음식을 주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장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그냥 모르는 척하는 걸까?"
  갑자기 강풍이 몰아쳐 배는 시베리아로 밀려 갔다. (시베리아에도 바다가 있을까?) 맥스는 궁금해 했다. (아니면, 이 배는 대기 속을 날아가는 것일까?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와 얘기를 나누던 여자들은 반은 인간이고 반은 암탉이었다. 모두가 꼬꼬댁거리는가 하면 한 여자는 마치 수탉처럼 울어댔다. 갑자기 치렐이 말했다.
  "저걸 죽여야 해요." 
  그 소리에 맥스는 깜짝 놀라 욕정으로 가득 찬 채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목욕을 하려고 벨을 눌러 객실 여종업원을 불렀다. 그러나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가 머물던 베를린의 호텔에는 객실 안에 목욕탕이 있었지만 여기는 욕조와 더운물을 불러야만 했다. 그는 세면대에서 몸을 대강 씻은 다음 신경과민 치료법에 따라 소금물에 적신 수건으로 피부를 문질렀다 그는 창문가로 가 밖을 내다보았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마차도 전차도 행인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슬을 머금은 나무 위에는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맥스는 침대로 돌아왔다.
  다시 한 번 그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번엔 부에노스아이레스이면서 동시에 뉴욕이기도 한 도시에 있었다. 폭풍 속에서 헤매던 그의 배는 항구에 도착했는데 승객들은 엘리스 섬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로셸은 남자로 위장했지만 재킷 아래로 블루머가 삐죽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장님이라도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맥스는 레이스를 집어 넣으라고 고함쳤지만 그녀는 말을 듣지 않았다. 주먹으로 그녀를 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땀으로 젖고 심장이 뛰고 있었다.
  "이런 꿈들 때문에 난 미치고 말 거야!" 
  꿈속에서의 그는 여전히 원기 왕성한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약하게만 느껴졌다.
  다시 한 번 그는 욕망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찬물을 끼얹었다. 단지 몇 분밖에 안 잔 것 같은데 시계는 6시 10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거리에는 전차 몇 대가 떨그렁 소리를 내며 오가고 있었다. 청소부들은 빗자루로 포장도로를 쓸고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었다.
  옷을 다 입고 났을 때는 7시였다. 몇 구역을 걸어가서 카페에 이르렀다. 들어가서 아침을 주문하려는데 문득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치즈빵이 있다고 하던 하임 카비오르니크가 생각났다. 맥스는 그 집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차는 금방 잡았다. 맥스가 크로치말나 가로 가자고 하자 마부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그는 채찍을 휘둘렀다.
  "끼랴!" 
  맥스는 마차 벽에 몸을 기대었다.
  (누가 알아? 아마 그녀를 보게 될지도 몰라. 랍비가 발코니 얘기를 했었지. 치렐이 발코니로 나올까?)
  맥스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너무 깊이 빠져 황소 일곱 쌍이 달려들어도 날 끌어내 오진 못할걸.)
  자, 그는 너무나 많은 실패를 경험했었고 이젠 마술을 풀어야만 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나야만 한다고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로셸은 중환자일지도 모른다. 그의 재산을 반 정도 떼어 준다면 이혼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중요할것은 비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마차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거리를 지나 곧 유태인 지역에 닿았다. 맥스는 그곳이 비엔나 흘 앞이라는 것을 알았다. 빌딩의 원기둥 사이에서 상인들은 테이블 천이나 수건, 린네르, 실, 단추, 유물 따위를 팔고 있었다. 체리나 딸기, 까치밥 나무와 향기가 여름 냄새와 함께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맥스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말 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코로치말나 가조차 어제보다는 더 생기가 도는 듯했다. 광장은 그렇게 사람이 많이 붐비진 않았다.
  마차는 8번지에 섰다. 맥스는 마부에게 40그로센짜리를 하나 주었다. 카페를 발견한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하임 카비오르니크가 있었다. 그는 긴 앞치마를 둔르고 요러사용 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카비오르니크가 외쳤다.
  "이거 놀랍군, 미국인 친구 아닌가?"
  손뼉을 치면서 그는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시오. 여기서는 굶지 않을 거요." 
  "치즈빵 냄새가 거리에 가득합니다. " 
  "사람들이 멀리 무라노바에서도 내 빵을 사러 오지요. 우리 모두 다 잘살고 건강하길!"
  "설마 유태인 신문 정도는 있으시겠죠?"
  하임은 문을 열고 상인을 불렀다. 그러자 즉시 한 소녀가 유태인 신문을 가져 왔다. 1면의 정치 기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다를 바 없었다. 하자만 지역 뉴스는 재앙으로 가득 차 있었다. 루블린의 홍수, 러시아의 철도 노동자 파업, 많은 희생자를 낸 바르샤바의 불. (인간인지, 동물인지)라는 제하의 기사를 맥스는 읽었다.
  지난밤 늦게 스모차 가 12번지의 야경꾼 얀 로파타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서 11살 난 딸 마리안나를 덮쳤다. 딸의 어머니가 그 무자비한 공격을 막으려고 하자 그는 칼로 그녀를 질러 버렸다. 그리고는 딸을 강간했다. 이웃 사람의 고함소리를 듣고 온 경찰이 짐승 같은 아버지를 수갑에 채워 연행했다. 부인은 성령 병원에 입원중이나 중태이다.
  맥스는 방금 읽은 기사의 의미를 상상해 보려고 애쓰면서 치즈빵을 먹었다. 이렇게 달콤한 치즈빵 맛만큼이나 인생이 쓰디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미친 생각이 그 아버지를 사로잡았는지 누가 알랴! 맥스에게는 딸이 없지만 고대 사람들도 비슷한 짓을 하지 않았던가? 야곱은 자기의 두 딸과 결혼하지 않았던가? 아르헨티나, 페루, 볼리비아, 칠레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딸들은 아버지들에게 능욕당하고, 형제는 자매와 성교하고, 어머니는 자기가 낳은 아들과 관계를 한다. 사람들이 그런 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늘 체포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성직자에게 가서 고백하고 성직자는 참회의 물로 그들을 용서해 준다. 인도 사람들은 천 년이나 된 관습에 따라 살고 있는데... 자, 얀 로파타는 의심할 여지 없이 포비아크 감옥 나무 침대에서 형을 살아야겠지.
  "커피 한잔 더?"
  하임 카비오르니크는 갓 끓인 뜨거운 커피를 직접 갖고 와서 맥스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신문에 뭐가 났지요?"
  "많은 재앙들이오." 
  "정직한 기사를 쓴다고 생각하시오? 기자들은 때로 거짓말도 만든다오. 당신이 사는 외국에서는 여기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압니까?"
  "거기도 신문은 있지요." 
  "일본 전쟁에 대해서 들어 보셨소?"
  "그럼요. 전부." 
  "여기서는 폭동이 격렬하고 심각해져서 카페 문을 닫아야 했었소. 파업자들은 누구나 다 동등해야 하며 차르 같은 것은 없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차르를 뒤엎어야 하는지 아닌지를 물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되받았소. (당신 역시 부르주아야, 당신은 우리의 피를 빨아)라고요. 그런 식으로 내게 얘기했어요. 누군가 그들에게, 거 뭐라고 하지요, 선언문을 읽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읽을 줄 몰라요. 그런 종이를 누군가 가지고 있는 게 발견되기만 하면 그 사람은 시베리아로 가요. 차르가 항복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시청으로 행진해 갔다가 탄환 세례를 받았소. 파리처럼 푹푹 쓰러졌어요. 카자흐 기병들이 말을 타고 칼로 머리를 내려쳐 무참하게 죽였지요. 거리의 조무래기며, 도둑, 장물아비, 뚜쟁이들까지 합세해서 진짜 싸움이 되어 버렸소. 파업자들은 그 다음에 뛰어들어 창녀들을 구타했어요. 여자 포주 하나가 심하게 얻어맞았소. 이 근처에 눈먼 메이어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 사람은 다섯 번이나 칼에 찔렸소." 
  "눈먼 메이어? 어디 있지요?"
  "아십니까?"
  "이름을 들어 보았소." 
  "그는 깡패 우두머리였어요. 랍비,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지요. 어떤 사람이 강도를 당하면 눈먼 메이어에게 가서 보상금을 주지요. 그러면 눈먼 메이어는 도둑에게 훔친 물건을 도로 주라고 명령하죠. 그 다음에는 마지막 그로센 한푼까지 고스란히 다 되돌려주지요. 하지만 그는 이제 큰 두목이 아닙니다. 한쪽 눈은 먼데다 다른 한쪽은 거의 보이지도 않지요. 새로운 세대가 부상했어요. 모세5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는 요셉을 알지 못했다)이지요.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교회에서 조금 공부했습니다. " 
  "이런 것들은 잃게 되지요. 하지만 남아 있는 것도 있어요. 나는 한밤중에 일어나서 성서의 한 구절을 기억해 내지만 나중에 또 잊어버립니다. 당신은 어제 랍비에게 가서 몇 루블을 주었다면서요?"
  맥스는 잔을 밀쳤다.
  "누가 얘기했지요??
  "여기서는 모든 걸 다 알아요. 랍비는 선량한 사람이고 가난하기로 말하면 끝이 없는 사람이죠.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너무 현대화된 나머지 집을 나가 버렸어요. 그는 망토에 모자까지 썼었죠. 랍비는 아들 때문에 늘 슬퍼하면서 앉아 있었소. 당신은 치렐을 만났지요?"
  "그래요. 저기 있었소." 
  "좋은 아이죠. 하지만 딸아이의 아버지는 딸에게서 별로 즐거움을 얻지 못하지요. 너무 현대화되었거든요. 학교 선생인 레프 자인벨의 아들과 결흔하라고들 했는데 그애가 싫다고 했소. 그애 어머니가 계속 우기자 발코니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었지요. 마침 나는 그 근처에 있다가 그애의 고함소리를 들었지요. 그애는 속치마 바람으로 달려나와서 난간 위로 뛰어오르려고 했소. 흔히 자살이라고들 하지요. 랍비가 외투도 벗은 채 예식 때 입는 속옷 차림으로 그애를 뒤쫓아 나왔죠. 성직자용 모자까지 훌렁 벗겨져 떨어졌지요. 그 뒤론 그 혼사는 없던 일로 되어 버렸소. 그애는 매일 아침 신문을 사러 여기 오지요. 당신은 홀아비죠, 그렇지요?"
  "그래요. 홀아비요." 
  "밖에 무슨 소리죠? 나가 보고 오겠소." 
  하임이 밖으로 나가자 맥스는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여기 온 데 대한 보상은 이미 되었어. 맛있는 아침 이외에도 치렐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으니까. 여자애가 그 정도로 격렬할 수 있다떤 조심해야 하지. 대개, 그런 유의 애는 다혈질 이지. 아마 쉽게 유혹당할지도 몰라.)
  하임이 돌아왔다.
  "3층 창문에서 유리공이 떨어졌소." 
  "죽었습니까?" 
  "다리를 부러뜨렸소."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운이 좋군 그는 병원에 실려 가서 다리를 고치 겠지.)
  맥스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웨이터를 불러 돈을 치르고는 하임에게 작별인사로 고개를 까딱 했다.
  까페를 떠나면서 랍비의 방 바깥으로 난 발코니를 흘긋 보았다. 붉은 귀밑머리의 어린 소년 하나가 단추 없는 길고 헐거운 옷을 입고 서 있었다. 헐렁한 옷 밑으로 술이 달린 속옷이 비어져 나왔다. 발코니는 워낙 낮아서 손을 올리면 거의 닿을락 말락했다. 맥스가 큰소리로 물었다 
  "어이, 네 이름이 뭐지?"
  "저요? 이친이에요." 
  "네 아버지가 랍비시냐?"
  "그렇습니다."
  "집에 계시니?"
  "아뇨." 
  "어머니는?"
  "어머니는 여기 안 계셔요." 
  "그럼 집엔 누가 있니?"
  "누나요." 
  순간 맥스는 무언가가 내장을 쥐어뜯는 듯했다.
  "올라가야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를 쫓아내도 이 세상의 종말은 아니야." 
  그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문으로 갔다.
  (내가 그애와 사랑에 빠진 걸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냐. 이건 사랑이 아니고 집착일 뿐이야. 벽이라도 허물것만 같은 욕망 말이야.)
  그는 여러 가지 일을 저지르기 위하여 폴란드에 오지 않았는가. 만약 그가 위기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면 그는 집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그는 룰렛 판 위에 전재산을 다 건 룰렛 도박사 같았다.
  맥스는 문을 두드렸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손잡이를 돌리자 문이 열렸다. 치렐이 보였다. 그녀는 쇠침대 위에 앉아 이디시어 신문을 읽고 있었다. 비로소 그는 환한 아침 햇살을 받은 그녀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녀는 거무스름한 머리칼이 차츰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그런 종류의 여자였다. 얼굴과 목이 눈부시도록 희었다. 뺨에는 붉은 반점이 두 개 나 있었다. 결핵 환자나 혹은 유년기를 갓 벗어난 어린 소녀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반점이었다. 치렐은 지난밤보다 더 어려 보였다. 그녀가 맥스를 알아본 순간, 그녀의 파란 눈동자는 여성 특유의 기쁨의 미소를 환하게 띠었다. 하지만 곧 그녀는 진지해지더니 망설이듯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마치 학생처럼 옷 위에다 물결 무늬의 비단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치렐. 해치진 않아. 여기 8번지 카페, 이름이 뭐더라... 아, 하임 카비오르니크에게 갔었단다. 거기서 네 동생이 발코니에 서 있는 걸 보았단다. 네 동생과 넌 마치 두 개의 물방울처럼 똑같더구나." 
  치렐은 신문을 내려놓았다.
  "오늘 (갈루예프카)라서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그게 뭐지?"
  "차르 삼촌의 생일날이에요. 이첼은 공립 학교에 다니는데 거기선 기독교 공휴일은 다 쉬죠." 
  맥스는 그녀가 말하는 것을 충분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목소리는 그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목소리는 그녀의 아버지처럼 거친 소리였으나 마치 종이 울리는 듯했다. 그녀의 입술이 달싹일 때마다 우유같이 하얀 치아가 드러났다.
  (매력적이야.)
  맥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왈칵 그녀를 덮쳐 팔 안에 안고 힘껏 끌어당기고 싶었다.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그녀를 데려가 그녀의 몸 위에서 취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불쑥 일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랍비의 딸이고 동생이 집에 있지 않은가.
  "너한테 이득이 되면 되었지 절대 해가 되지는 않을 이야기를 해주고 싶구나." 
  "오! 어머니가 집에 안 계세요. 그리고 곧 저녁을 준비해야 하고요." 
  "혹시 나와 함께 저녁을 하고 싶지는 않니? 너를, 뭐라고 하지? 그래 식당으로 데리고 가마.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그게 제가 필요한 전부예요. 선생님과 함께 거리로 나가는 것 말예요. 여긴 작은 마을이나 같아요. 아니 더 나쁠지도 모르지요. 누구나 옆집 냄비에서 무엇이 요리되고 있는지 알거든요. 제 어머니..." 
  치렐은 갑자기 말을 끊었다. 그녀는 눈을 찡그리면서 신기한듯이, 다소 두려워하는 빛을 담고 그를 쳐다보았다. 다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제 선생님제서 주신 잔돈이 아직 남아 있어요." 
  그녀는 스타킹에서 돈을 꺼낼 듯한 자세를 취했다.
  맥스는 깜짝 놀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난 네 돈을 원치 않아. 그 반대야, 난 너한테 더 많이 주고싶어. 혹서 밖에서 만날 수 있을지. 유태인이 허용되지 않는 곳, 그 정원 이름이 뭐지?"
  "색소니 정원 말이에요? 유태인들도 갈 수 있어요. 다만 긴 옷을 입지 않은 사람들만요. 그리고 여자는 모자를 써야 해요."
  "내가 모자를 사주마." 
  치렐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요? 랍비의 딸이! 사람들은 아버지를 바르샤바에서 쫓아낼 거예요." 
  맥스는 한걸음 다가섰다.
  "네 아버지가 온 바르샤바에 다 알려져 있는 건 아니란다. 아마도 이 동네뿐일 거야. 마르잘코바스카 대로에 나가 보아라. 아무도 네가 누군지 모를걸? 우린 가게에 들어가서 바를샤바에서 제일 예쁜 모자를 사는 거야. 그리고 나서 마차에 올라타고 가는..."
  "가요? 어디로?"
  치렐은 어른에게서 즐거운 약속을 받아 낸 어린애처럼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오, 정원이나 멀리 뉴 월드 가로 가는 거지. 거리 이름이 뭔지는 기억이 안 나." 
  "예루살렘 가예요. 전 갈 수 없어요. 저녁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어머니는 옛 친구를, 여자죠, 보러 12번지에 갔어요. 우리는 저녁을 2시에 먹어요. 제 동생 모이씰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럼 저녁 식사 후에 만나지." 
  "어디서요? 어디든 나가려면 행선지를 분명히 말하고 가야 해요. 엄마가 불안해 하세요. 엄마는 걱정하기 시작하면 가슴이 뛰어요. 한 시간 밖에 나갔다 오려면 제가 나가서 할 일을 죄다 설명해 주어야 해요." 
  "이렇게 좋은 날이면 모두가 산책을 가지. 랍비의 딸도 말이야. 브리스톨 호텔로 와. 거기서 기다릴게. 마차를 타면 아무도 우릴 못 알아볼 거야. 내 딸이라고 해도 돼. 모자, 신발 뭐든 필요한 건 다 사줄게. 한동안 같이 있다가 나중에 마차에 태워서 보내 줄게. 혹 극장이나 오페라에 가고 싶을 수도 있겠지. 첫번째 줄 좌석표를 사도록 하지." 
  치렐은 윗입술을 핥았다.
  "극장에 가면 밤 12시까진 집으로 못 돌아을 거예요. 부모님은 제가 납치되었거나, 뭐 그런 줄로 생각하실 거예요. 아마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서 돌아가실 거예요. 아버지는..."
  "극장에 갈 필요는 없겠지. 카페에 갈 수도 있고 프라가 다리로 드라이브를 할 수도 있겠지. 어제 네가 얘기하는 것을 듣고 너는 절대 바보가 아니란 걸 알았어. 넌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 다만 너의 부모님은... 광신자이시지. 부모님은 널 (슈마게지)와 결혼시켜 버리고 말 거야. 필시 너를 삭발시킬 거야, 머리에다 비단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을 뒤집어씌우겠지. 집안은 온통 더러운 아이들로 가득 차게 될 거야." 
  치렐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사실이에요. 하지만..."
  "왜 하지만이지? 저녁 식사 후에 브리스톨 호텔로 와. 위로 올라오기가 무서우면 밖에서 널 기다릴게. 난 가난하지 않아 돈이 있어. 아내는 죽었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일가 친척도 없어. 난 선량해지고 싶어. 그러니 나에겐 누군가 선량하게 대할 사람이 필요해."
  맥스는 스스로의 말에 매료되었다.
  맥스는 자기가 랍비의 딸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인지 아니면 남은 삶을 진정으로 그녀와 함께하고 싶은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디시어를 할 줄 아는 베를린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 하나가 그의 상태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 의사의 말을 진정으로 납득한 것인지, 단순히 지금과 같은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아무튼 치렐과 함께라면 다시 남자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렐은 망설이면서 침대 위에다 신문을 내려놓았다.
  "누군가 우릴 알아볼까 봐 두려워요."
  "아무도 널 알아보지 못할 거야."
  "집으로 돌아을 때 모자는 어떻게 하죠? 부모님께선 그걸 어떻게 갖게 됐는지 물으실 거예요." 
  "그래? 내가 네 부모님께 말씀드릴게. 너와 결혼하고 싶다고 얘기할게." 
  그건 마치 그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유태 전설에 나오는 죽은 이의 악령이 얘기하는 것 같았다.
  치렐은 재빨리 문 쪽을 보았다.
  "오, 어떻게 그런 말씀을!"
  "난 너보다 거의 서른 살이나 더 많아." 
  갑자기 맥스는 이디시어에서 친밀한 사이를 나타낼 때 쓰는 2인칭으로 그녀를 부르면서 말했다.
  "하지만 난 노인이 아니야. 세계 일주를 같이할 수도 있어. 선생님을 네게 구해 줄게. 20코페이카를 달라는 그런 평범한 늙은 선생이 아니라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그리고 네가 원하는 걸 뭐든지 가르칠 교수를 말이야. 나 역시 공부하고 싶어. 뭐라고들 하지? (안 하는 것보다 늦은 게 낫다.) 하느님 덕택에 난 돈도 많아. 우린 파리, 런던, 뉴욕에도 갈 거야. 너는 절대로 호박 같은 시골뜨기가 아니야, 나는 널 처음 본 순간 네가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금세 알 수 있었어."
  치렐의 안색이 순간순간 변해 갔다. 공포와, 무언가 급히 말하고 싶지만 참고 있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혼란이 눈에 나타났다. 그녀는 땋아 내린 머리를 오른손으로 매만지더니 다시 왼손으로 또 매만졌다. 그녀의 손은 아버지 랍비의 손처럼 작고 희었다.
  "제발! 누군가 와서 엿들을지도 몰라요." 
  그녀가 불쑥 말을 꺼냈다.
  "언제 올 거지?"
  그녀가 분명 올 거라고 확신하면서 맥스는 물었다 
  치렐의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4시?"
  "그래. 4시."
  "브리스톨 호텔에서요?"
  "그래 . 거기서." 
  "그럼 맞은편 거리에서?"
  "맞은편 거리에서." 
  "갈게요. 하지만... 집에는 걸어와야 해요. 마차는 좋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 등뒤에서 얘기할 거예요. 왜냐하면... 얼마나 대단한지 선생님은 알지 못해요... 사람들은 제 의사를 무시하죠... 나를 강요했어요... 죽는 게 낫죠..., 간단히..." 
  "그래, 이해해." 
  "누가 얘기했었나요?"
  "그래. 하임 카비오르니크 카페에서 아침 먹고 있을 때."
  "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마세요. 누군가 알게 되면 그런 이야기를 또 하게 될 거예요." 
  "누구한테? 여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원한다면, 네 부모님한테 말씀드리지."
  "부모님들은 절대로..."
  치렐은 하던 말을 끊었다.
  "그건 절대로 몰라. 부모님은 널 위한 지참금이 없어, 탈무드 학원 신랑들은 하나같이 신부와 신부 재산으로 먹고 자는 걸 해결해야 하거든, 여긴 유태인 학살이 있었던가?"
  "아뇨. 하지만 사람들은 총살당했어요... 바로 이 동네에 보바라는 애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과부였죠. 시위에 참가했다가 다시는 살아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
  "그애와 사랑하는 사이였니?"
  "아뇨. 하지만..."
  "자, 이제 갈게. 잊지 마, 4시에 브리스톨 호텔 건너편."
  "그래요. 4시예요."
  맥스가 막 작별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기도실 문이 확 열리면서 빨간 귀밑머리를 한 소년이 달려들어왔다. 그는 맥스를 보더니 뒤로 주춤 물러났다.
  "오, 선생님은 바로 발코니에서 저와 얘기했던 분이시군요!"
  그는 맥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맥스는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수십 년 간 폴란드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폴란드에서는 유태인 아이들이 옷을 어떻게 입고 있는지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 소년은 양쪽으로 삐쭉 챙이 나온 우단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는 구겨지고 지저분했다. 누나처럼 하얀 얼굴은 몹시 더러웠다. 작은 겉옷에는 단 하나 남은 단추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목이 긴 신발은 해어져 발톱이 쑥 비어져 나와 있었다. 한쪽 술이 다른쪽 술보다 치켜 올라간 예식용 속옷이 비스듬히 달려 있었다.
  맥스는 경험 많은 눈으로 그를 훑어보았다. 소년은 창피해 하며 얼른 셔츠를 바지 안에 쑤셔 넣었다.
  치렐이 소년을 꾸짖기 시작했다.
  "네 모습을 한번 봐‥‥‥‥ 새 셔츠를 입혀 놓으면 곧 흙투성이로 새카맣게 만들죠." 
  그녀는 맥스를 보고 말했다.
  "얘는 오물 속에서 구른답니다."
  "글쎄, 그건 문제가 안 되지. 어린애는 어린애니까." 
  맥스는 그를 두둔해 주었다.
  "네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이첼이에요." 
  "너 학교에 가니?:
  "오늘은 안 갔어요." 
  "넌 무얼 공부하니, 모세5경?"
  "모세 5경, 주해서, 탈무드." 
  "오늘의 말씀은 뭐였지?"
  "(슐라크)." 
  맥스는 침묵에 잠겼다. 그도 한때 성서를 공부했었지만 다 잊어버렸다. (슐라크)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는 내심 혼란에 빠졌다. 무언가가 불쑥 나타나 온통 휘저어 놓은 듯했다.
  (난 로스코바에 가야만 해.)
  그는 스스로를 일깨웠다.
  "여기 40그로센짜리다. " 
  그가 이첼에게 말했고, 이첼은 손을 내밀었다.
  치렐은 이마를 찌푸렸다.
  "주지 마세요! 뭣 때문에 돈이 필요해요? 얘는 사탕이나 사 먹고 배에 기생충이나 키을 거예요."
  "난 기생충이 없을 거야." 
  "여기, 가져라." 
  맥스가 말했다.
  "네가 사고 싶은 걸 사고 엄마에게는 얘기하지 마렴. 너 말 않겠지, 그렇지?"
  "예."
  "엄마에게 누가 여기 왔었다고는 말하지 말아라. 가서 네 사고 싶은 것을 사렴. 내 이름은 맥스란다."
  "맥스? 그건 유태식 이름이 아닌데요." 
  "내 본명은 모르드케야. 하지만 미국에서는 모르드케가 맥스가 된단다. " 
  "아저씬 미국에 살아?"
  "아저씨께 말버릇이 그게 뭐니?"
  치렐이 화를 내며 말했다.
  "너보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경어체를 써야지." 
  "잊어버렸어." 
  "괜찮다. 이애는 날 편하게 불러도 돼. 치렐, 너도 마찬가지다. 어제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난 내 집같이 느꼈어. 마치 내 부모님-하늘 나라에서 부디 편히 쉬시길-한테 돌아온 것처럼 말이야. 나도 학교니 하는 그런 델 모두 다녔단다. 세프슬 바낙이라는 랍비도 있었지. 로스코바에서는 모두가 별명이 있었단다. (수사슴) 베렐, (날 긁어 줘) 파이벨, (푸딩 머리) 허셀 등. 한 사람은 (키슈키 먹는) 자인벨로 불렸단다. 너 그 돈으로 무얼 살 거지?"
  그는 소년에게 물었다.
  "난 사탕은 안 살 거예요."
  "안 산다고? 그럼 무얼?"
  "탈무드 책을 살 거예요. 딴 애랑 함께 탈무드를 읽는데요, 자기 쪽으로만 끌어당겨 가서는 안 보여 줘요. 나중에 시험을 보는데 난 탈무드 말씀을 알지 못해서 랍비가 저한테 고함질렀어요."
  "탈무드 한 권이 20코페이카밖에 안 하니?"
  "작은 탈무드예요."
  "여기 40그로센짜리가 더 있다. 간단한 식사라도 사서 먹으련. 작은 탈무드 한 권 사고도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내가 여기 왔었다는 말은 아무한테도 하지 마라. 약속하겠니?"
  "그럼요. 아무에게도 얘기 않을게요," 
  "자, 이제 난 가야 해!"
  맥스는 밖으로 나오다 한 여인과 맞닥뜨렸다. 랍비의 아내는 아니었다. 손에 닭을 들고 있었는데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같아 보였다.
  "내가 다시 살아야 할 이유가 있군." 
  맥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아르투로의 비극적 죽음 이후로 늘 그를 괴롭혀 왔던 공허함을 그는 이제 더 이상 느끼지 않았다. 그는 대문을 나와 왼쪽으로 꺾었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될까? 로셸은 살아 있는데, 난 홀아비가 아닌데...)
  그는 그노이나 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법이지." 
  그는 혼자말로 크게 외쳤다.
  그날 저녁은 비가 내렸다. 그래서 마부는 마차 뚜껑을 씌워야 했다. 맥스는 치렐을 껴안고 키스했다. 그녀가 마치 작은 새처럼 떠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기침을 하면서 그를 밀어냈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가 청년이었을 때처럼 여자에 대해 분명하고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사랑해, 사랑해!"
  그는 소녀에게 속삭였다.
  "우린 결혼할 거야. 그러면 너는 바로 내 자식의 어머니가 될 거야...!"
  치렐의 심장은 너무나 빨리 뛰었다. 순간 맥스는 겹이 났다. 로셸과 이혼할 거라고 그는 결심했다.
  (난 치렐을 아프리카, 아니 이 세상 끝까지 데려갈 거야!)
  마차가 그노이나 가에 이르렀을 때 맥스는 하부에게 세워 달라고 했다. 치렐이 마차를 타고 집에 가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이었다. 맥스는 그녀를 9시까지 집에 보내 주겠다고 했었지만 이미 10시 15분 전이었다. 어느새 비는 멈추었다. 비에 젖은 다리는 가스 등불 빛을 받아 번쩍였다. 강에서는 시원한 미풍이 불어왔다.
  맥스는 치렐에게 작별의 키스를 하고 마부에게 돈을 치른 다음 치렐이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내일 아침 집에 갈게. 네 부모님과 터놓고 이야기를 하지."
  "오, 전 두려워요! 부모님께 뭐라고 얘기하지요? 아마 벌써 절 찾고 계실 거예요." 
  "네가 말하고 싶은 대로 하렴. 나와 함께 있었다고 말해도 돼. 어쨌든 우린 결흔할 거니까." 
  "그걸 원하지 않으실지도 몰라요... 당신은 콧수염이 없잖아요."
  "콧수염 없는 유태인이 유태인 아닌 콧수염쟁이보다는 낫지."
  맥스는 이디시어 연극에서 본 2행구를 인용해서 말했다.
  "만약 부모님께서 동의하지 않으시면 도망가 버리자고." 
  그는 그대고 서서 그녀가 크로치말나 가로 접어드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녀는 뒤돌아서서 그에게 두려움과 사랑으로 가득 찬 눈길을 던졌다. 아니, 그는 이 여행을 헛되이 한 게 아니었다. 그는 다시 남자가 된 것이다. 어린 소녀가 그와 사랑에 빠져 그의 아내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순수한 처녀, 랍비의 딸이. 구름 사이로 은빛 달이 나타났다. 맥스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자, 이제 위기는 끝났어. 우리 각자에게는 자신을 지켜 보는 신이 있다는 게 무슨 뜻이었을까?)
  한순간 맥스는 호텔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호텔에 들어가 자기에는 너무 일렀다. 그는 빵집 여인 에스터를 생각했다. 물론 그녀의 초대도 떠올렸다. 완벽한 시간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발을 떼며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모든 게 내 뜻대로 될 거야.)
  15번지에 이르렀을 때 그는 2층 랍비 집 창문을 흘끗 보았다. 불이 켜져 있었다. 지금쯤 치렐은 분명 집에 와 있을 것이다. 그는 두 손을 입술에 대고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키스를 보냈다.
  (그녀가 바로 내가 필요로 하는 존재이지. 젊고 예쁘고 너무 교활하지도 않고, 광신적이지도 않고. 랍비는 동의하겠지. 딸이 발코니에서 뛰어내리려고 한 마당에 대단한 결혼을 하리라곤 기대하지 않겠지.)
  맥스가 대문을 지나치려는데 빵집 냄새가 물씬 풍겨 왔다. 회향풀과 양귀비 씨, 갓 구워낸 베이글빵, 사워 도우빵의 냄새였다. 몇 발자국 아래, 지하에서 한 빵집 일꾼이 오락에다 반죽한 밀가루를 주걱으로 넣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는 끓는 물통이 있었다. 맨발에 속옷만 입고 머리에는 원뿔형 종이 모자를 쓴 한 남자가 반죽된 베이글빵을 그 속에 던지고 있었다. 벽에 늘어서 있는 거대한 반죽통에서는 반나의 젊은이들이 서로 고함을 쳐대고 웃으며 반죽을 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맥스는 문득 어린 시절 들었던 지옥에 관한 얘기가 떠올랐다. 자신들이 지은 죄 때문에 타죽어야 할 운명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해 불을 피우는 그런 지옥이었다.
  밀가루를 하얗게 뒤집어쓴 사람이 밀가루 반죽 덩어리로 뒤덮인 판을 옮기면서 다가왔다.
  "빵집 주인은 어디에 살지요?"
  맥스가 물었다.
  "바로 저기 3층에요."
  맥스는 검댕투성이인 시커먼 유리 속의 작은 등유 램프가 비추고 있는 어두운 계단을 올라갔다. 문은 두드릴 필요 없이 이미 열려 있었다. 얘기하는 소리와 웃음 소리 그리고 쨍그랑 쨍그랑 접시 부딪는 소리가 들려 왔다. 여자 셋이 테이블에 앉아 늦은 밤의 간식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얘기에 정신이 팔려서 맥스의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는 잠시 문간에 서서 그들을 지켜 보았다. 그는 에스터는 물론이려니와 누가 딸이고 동생인지 금방 알아 버렸다. 맥스가 잔기침을 하자 세 여자는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에스터는 잔을 받침에다 놓았다.
  "마멜레크, 그가 여기 왔어!" 
  급히 일어서면서 그녀가 외쳤다.
  "난 선생님을 포기했었어요!"
  그녀는 손뼉을 쳤다.
  얼마 안 있어 맥스는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벌써부터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랍비 집을 방문한 것을 온 마을이 다 알고 있었다. 치렐이 옳았다. 크로치말나 가는 조그마한 동네였다. 맥스는 이미 저녁 식사를 했지만 곧 다시 시장기를 느꼈다. 에스터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에스터의 동생은 더 예쁘고, 가슴도 더 크고, 어깨도 에스터보다 넓적했다. 그것만 빼고는 에스터와 똑같아 보였다. 동생은 로시 하샤나(유태교 신년제) 때 먹는 할라빵처럼 머리를 땋아서 위로 말아 올렸다. 슈무엘 스메테나는 에스터의 동생이 미인이라고 했지만 맥스는 언니가 더 좋았다.
  딸은 아버지를 닮은 게 분명했다. 키가 크고 뚱뚱한 금발로, 크로치말나 가에서는 억센 여자라고 부를 만한 그런 타입이었다. 그녀의 웃음 소리는 크고 울렸다. 먹을 때는 양쪽 볼을 불룩하게 내밀고 씹었다. 머지않아 그녀는 턱이 두 겸으로 될 것이다. 몇 년 안 가 부풀어오른 밀가루 반죽처럼 퍼져 나갈 게 틀림없었다.
  에스터는 브랜디 병과 작은 유리잔 몇 개를 소반에다 담아 왔다.
  "우리는 술꾼이 아니에요. 하지만 손님을 맞이하는 의미에서 브랜디 한 모금 하지요." 
  이야기가 랍비와 슈무엘 스메테나로 옮겨 가자 에스터가 말했다.
  "슈무엘은 나쁜 짓도 서슴지 않고 할 만한 위인이지만 호의를 베풀기도 좋아하죠. 또 받을 돈이 있으면 다 받아 내야 직성이 풀리지만 때때로 가난한 사람은 공짜로 해줘요. 랍비는 아슬아슬하게 경찰서 가는 걸 피했죠."
  "슈무엘은 부인과 자식이 있나요?"
  "부인과 자식이 있지만, 안식일뿐이죠."
  에스터의 동생 셀리아가 목청을 높였다.
  "지난 주 내내 그는 집에 없었어요."
  "딴 여자들과 놀아나나요?"
  "한 여자하고, 그런데 좋은 여자죠."
  "카드 게임에서 그가 매주 잃는 것만큼 우리는 매일 다 벌어야 해요." 
  에스터가 끼여들었다.
  "이 부근에서는 11번지 야경꾼 초소에서 카드 게임을 하지요. 어리석은 하시드교도 남편들이 여러 명 거기서 지참금을 날렸죠." 
  "어떤 게임들을 하죠?"
  "(오케), (뱅크), (66), (1000) 등 뭐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요. 한번은 누군가 표시된 카드를 사용해서 모두를 속였죠. 하지만 그는 결국 뼈가 부러진 채로 구급차에 실려 갔어요. " 
  "경찰이 안 끼여듭니까?"
  "경찰이 판돈의 일부는 꼭 챙기죠..." 
  맥스는 브랜디 한잔을 마시고 나자 기분이 유쾌해졌다. 그는 양파 롤빵을 하나 먹었는데 그것은 그가 기억하고 있던 맛 그대로였다. 잠시 후 셀리아가 하품하기 시작했다. 에스터의 딸 다샤는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맥스는 일어섰다.
  "자, 이제 나도 갈 시간이군요." 
  "서두를 필요 없잖아요? 브리스톨 호텔에서 누가 당신을 기다리지 않는 이상?"
  에스터가 말했다.
  "누가 날 기다려요... 시바의 여왕?"
  "그렇다면 그냥 계세요. 2시 전에 잠자러 가는 법은 없어요."
  나머지 사람은 다 떠났다. 어쩐지 에스터의 얼굴은 더 늙고 엄해 보였다.
  "남편은 어디 있소?"
  맥스가 물었다.
  "라자 술집에 있어요." 
  "누가 빵집을 돌보죠?"
  "아무도 안 봐요. 금광이 될 수도 있었어요. 우리가 생활을 꾸려 간다는 게 기적이죠." 
  에스터는 포크를 가지고 장난하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페이사크는 바르샤바 최고의 제빵 기술자였어요. 제가 그의 약혼녀가 되었을 때 모두가 저를 보고 황금 냄비 속에 빠졌다고 얘기했었죠. 이웃에 있는 빵집을 죄다 몰아낼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결혼한 지 몇 년 만에 그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일꾼들은 저하고 싶은 대로들 해요. 그는 모든 책임을 저버렸어요. 딸, 빵집 그리고 집. 그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빵가게 침대에 누워 코를 골고 있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날 창피주고 공휴일이나 안식일을 지키지도 않아요. 당신은 아내와 자식이 있으세요?"
  에스터가 물었다.
  "있었었소." 
  "어떻게 되었죠?"
  "죽음의 천사가 데려 갔소." 
  "당신은 여전히 젊으신데요." 
  "골칫거리들이 사람을 늙게 하죠." 
  그는 치렐 얘기를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참았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서 도넛 모양을 만들며 연기를 내뿜었다.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겠소? 로스차일드도 하루에 저녁 한끼만 먹죠. 리비에라는 아름답지만 기차에 혼자 앉아 있으면 바라보는 것도 지겨워지죠." 
  "당신이 바라는 여자를 찾을 수가 없었나요?"
  "젊은 여자들은 너무 젊고 내 나이 여자들은 대개 남편이 있소." 
  "바르샤바에서 과부를 구하려면 과부 한 사람당 천 루블은 있어야 해요." 
  "과부를 구하면 그건 그녀 남편과 자는 셈이죠." 
  그게 자신의 생각인지 어디선가 읽은 것인지 의아해 하면서 땍스가 말했다.
  그는 일어서서 방안을 왔다갔다했다. 에스터도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치렐을 사랑한다면 손자가 있는 이 할머니 빵집 여자에게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속담대로 술집에 가기 전에 한 모금 마실 수는 있지.) 그는 에스터에게 성큼 다가가서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껴안았다. 그녀는 떨어져 나가려는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무릎이 그의 무릎에 닿았다. 그는 그녀 입술에 키스했다. 그녀가 물었다 
  "이렇게 빨리?"
  "우리 나이에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는 없지."
  "잠깐만. 문을 잠글게요." 
  순간, 맥스는 욕망이 사그리 식어 버리는 것을 느꼈다. 이전에도 여러 번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 여자가 동의를 하는 순간 그의 내부에 있는 그 무엇이 식고 오그라드는 것이었다. 대신 모멸과 고뇌가 그를 압도해 버렸다 브랜디가 얼마간 남아 있었다. 그는 단숨에 그걸 비웠다. 알코올이 곧바로 머리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에스터는 문을 잠그고도 한참을 끌었다. 아마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마치 뛰어내릴 것처럼 창문을 바라보았다.
  (난 기꺼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만 누군가를 원하는군.)
  5분이 지났다. 문 저쪽에서 에스터가 불쑥 머리를 디밀었다. 그녀는 옷을 벗고 목욕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를 따라 침실로 오라는 시늉을 했다. 그는 그러겠노라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바깥 문으로 가서 자물쇠와 한참 씨름을 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맥스는 시에플라 가 쪽으로 달려갔다. 저녁의 승리는 쓴 패배로 끝이 났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맥스는 한순간도 눈을 못 붙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창문은 열려 있었지만 미풍의 흔적조차 없었다. 맥스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누워 있었다. 목이며 어깨, 다리가 가려웠지만 긁지 않았다. 그 나이의 남자가 더 이상 여자에게서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면 먹는 것, 마시는 것, 옷 입는 것, 세계 여행하는 것 따위 모든 게 짐이 될 뿐이다.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 
  맥스는 중얼거렸다.
  "자살." 
  그렇지만 어떻게 자살을 할 것인가? (총을 쏠까, 창 밖으로 뛰어내릴까, 비스툴라에서 빠져 죽을까, 독약을 마실까, 아니 목을 매달까?)
  맥스는 천장에 달린 고리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는 로프를 찾아서 올가미를 만들고 그 밑에 의자를 놓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시작도 느닷없었듯이 그의 광기도 별안간 끝이 났다. 죽음이란 너무 늦은 법은 없다. 그리고 만약 하느님이 있으면? 악마는? 천국은? 지옥은? 아마도 그가 죽은 다음날 그는 하느님 앞에 서야 할 것이다... 
  맥스는 미동도 하지 않고 침대에 쭉 뻗고 누워서 그의 인생을 낱낱이 뜯어보았다. 아버지는 신앙심 깊은 마부였다. 그는 가지고 있던 동전 한 닢까지 탁탁 털어서 맥스-당시에는 모틀이라고 불렸다-를 학교에 보냈다 그렇지만 맥스는 전혀 배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기도문을 건성으로 외웠으며, 안식일에는 단추놀이를 하거나 마차 뒤에 매달려 놀았다. 일찍부터 그는 소녀들에게 눈길을 돌렸으며 이교도나 유태인 소년들과의 싸움에 뛰어드는 데 흥미가 있었다. 로스코바에서 그는 농담꾼, 장난꾸러기 그리고 약간은 치사한 녀석으로 명성을 얻었다. 15살의 나이에 그는 헛간 청소를 하던 이교도 소녀 완다와 사랑의 도피를 했으며 유태인과 농부들에게서 물건도 훔쳤다. 아버지는 그를 양복 재단사 도제로 보냈지만 양복 재단일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그는 기회가 오자 잽싸게 바르샤바로 도망을 갔다.
  그렇지만 그는 완전히 무식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는 싸구려 책과 유태인 신문, 심지어는 보통의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배움을 쌓은 셈이었다. 그는 쇼머, 이삭 메르 딕, 온갖 종류의 연감, 그리고 리네츠키, 멘델 모체 스포림, 숄렘 알레이쳄, 헤르말린 그리고 시이퍼트 같은 작가의 책까지 읽었다. 또 곳곳을 돌아다니는 세일즈맨이나 도둑, 장물아비 그리고 가게 점원에게서 들은 수많은 농담과 일화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자들과 어린 소녀들을 유혹하는 데 전문가가 되었다 실수 없이 편지를 쓰는 것을 배운 적은 없었으나 이디시어, 폴란드어, 러시아어는 그럴듯하게 할 수 있었다. 특히 그는 오페라, 연극, 서커스, 발레를 좋아했다.
  오, 하늘에 계신 하느님! 사람들이 거짓말이라고 할 게 틀림없기 때문에 자랑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여자들을 그는 손아귀에 넣었었다. 합창단원, 카바레의 댄서, 심지어는 무라노바 극장의 주연 여배우가 애인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한때 사창가 주인과 친한 적도 있었다. 실로, 그가 로셸을 만난 것도 이런 환경에서였다. 그렇지만 그는 진창 속에 빠져 있지만은 않겠다고 맹세했었다.
  얼마간 돈이 모이자 곧 그는 남미, 북미 및 캐나다 전역에 출장을 다녔다. 그는 시온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또 그는 무정부주의자, 채식주의자, 유태인들은 드 허시 남작의 거류지에 정착해야 한다고 설교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톨스토이의 교의에 따라 땅을 일구고 생활하던 톨스토이주의자들과도 알게 되었다. 그는 유태인 신문과 뉴욕 신문을 구독했고 곧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여행 온 뉴욕의 남녀 배우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지하 세계의 정신 상태를 아직도 청산하지 못했다. 여전히 대단한 강도, 위조 사기단, 부정한 방법으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계획 따위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평판이 좋지 못한 친군들과 결별하고 가장 존경받는 지역 성원만 가입할 수 있는 장의 사교회(葬儀 社交會) 회원이 된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암거래의 꿈을 멈출 수가 없었다. 또 그는 순수한 여인을 더럽히고 유부녀와, 약혼한 여자를 유혹하고 싶은 욕망에서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환상 속에서는 늘 여자들을 배에 태워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다른 남미 국가들로 실어 날랐다. 로셸이 임신했을 때 맥스는 혹시 딸을 낳을까 봐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비록 맥스는 지성인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의 철학은 있었다. 어떤 점에서 이른바 정직한 사람들이 창녀나 도둑이나 뚜쟁이들보다 나은가? 상인은 사기 치고, 가정 주부는 남편을 기만한다. 창녀와 살인자를 얘기하는 책과 연극도 있지 않은가? 적어도 지하 세계는 성스러운 체하진 않는다. 나름대로의 하느님에 대한 불평도 있었다. 세상은 스스로 창조된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이 작은 천체를 책임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도대체 그는 누군가? 그는 무얼 원하는 것인가? 하느님이 모세에 십계명을 주셨을 때는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사람은 가질 수 있는 것은 가지는 게 낫다. 하지만 그가 가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새벽녘에야 맥스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1시간 반 뒤에 그는 일어났다. 8시에 객실 여종업원을 불러 목욕 준비를 시켰다. 목욕탕에서 그는 옷을 벗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뜯어보았다. 몸무게는 좀 늘었지만 근육은 여전히 단단했고 활기도 넘쳐흘렀다. 예전의 힘이 아직도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단지 왕성하던 그 시절의 정력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을 따름이었다 무엇인가가 마음속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슬픔, 후회 그리고 모멸이 죽은 이의 망령처럼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래, 아마도 선량한 사람, 치렐의 아버지 랍비를 보러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그런 일들을 그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어.)
  맥스는 아침 식탁에 앉아 신문을 넘겨 보았다. 잠시 동안 개인 광고란을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그중 하나가 그의 눈길을 끌었다.
  저명한 천리안 베르나르드 슈콜니코프가 수상과 관상으로 당신의 미래를 알려 드리고, 실종된 사람과 물건을 찾아 주며, 도둑을 밝혀 내고,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거울에 보여 줍니다. 저렴한 가격.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손님을 받습니다.
  그 아래에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맥스는 잠시 씹기를 멈추었다. 어쩌면 이 사람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세상을 지켜 주는 더 큰 힘이 그가 신문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걸 막았는지도 모른다. 오늘 그 천리안에게 가야겠다고 그는 결심했다.
  (누가 알아?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숨겨진 비밀이 있을지.)
  한 집시가 어떤 일을 예언했었는데 모든 게 다 사실로 드러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흙이 묻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카드 한 벌로... (마술은 있어. 그래, 분명히 있어.) 아마도 누군가 그에게 저주를 씌웠든가, 사악한 악마의 눈길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로셸도 마녀 같은 구석이 있었다... 맥스는 거의 입맛을 잃어버린 채 먹는 시늉만 하고 있었는데 이 광고가 식욕을 자극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광고를 찢어 내어 조끼 호주머니에 넣었다.
  맥스가 막 방을 나서려고 하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 앞에는 금색 단추가 달린 빨간 제복에 둥근 모자를 쓴 벨 보이가 서 있었다.
  "바라밴더 씨? 전화입니다."
  "전화?"
  항상 그랬다.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 무엇인가 나타나곤 했다. (나에게 전화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내가 브리스톨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고 있을까?) 전화는 복도에 있었다. 맥스는 수화기를 들었다.
  "누구시죠?"
  "맥스 바라밴더요?"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창자에서 비틀려 나오는 듯 한 미끈미끈한 목소리의 남자가 말했다.
  "그렇소. 바로 나요." 
  맥스가 대답했다.
  "슈무엘 스메테나요. 그저께 17번지 술집에서 만났지요. 기억하시오?"
  "그걸 말이라고! 물론 기억하죠." 
  "좋아요! 그 점 마음에 들어요. 나는 거드름 빼는 사람들을 싫어하죠. 당신을 본 순간 우리와 같은 사람이란 걸 알았소. 어젯밤 우린 그 술집에 다시 갔었는데 모두가 당신을 찾고 있었소. 에스터 역시요. 15번지 빵집 여자 말이오. 당신은 여자복이 있구먼." 
  "예전엔 그랬죠."
  "오래된 폴란드 속담이 있죠. (물이 있었던 곳에 물이 있을 것이다)라고. 다시 오는 게 어떻소? 뭐냐 하면 당신과 할 얘기가 있는데, 술집에서는 말고 말이오. 내게 친구가 있는데 멋진 여자죠. 우린 마치 가족 같소, 그 여자에게 숨기는 거라고는 없소. 그 여자는 23번지에 살죠. 요리 솜씨는 왕이라도 만족시킬 거요. 당신도 와서 함께 저녁을 먹지요. 우리 셋만 말이오." 
  "이름이 뭐죠? 그리고 아파트 호수는?"
  "뭐라고? 그 여자 이름은 레이즐이오. 레이즐 코르크. 그게 이웃엔 알려져 있는 이름이죠. 아파트 호수는 12번이오. 입구는 대문을 들어오면 3층에 있소. 바로 17번지 뒤에 21번지가 있을 게요. 그 다음이 바로 23번지요." 
  "몇 시에 가야 되죠?"
  "5시경. 레이즐은 당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해요. 나는 계란 보리로 만든 미트볼과 후식으로는 말린 자두와 살구를 좋아하죠." 
  "계란 보리, 미트볼보다 더 좋은 게 뭐가 있겠소?"
  "마차를 타고 올 거면 마부에게 시에플라 가로 가자고 하시오.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마을 사람 모두가 알 필요는 없죠? 나는 잠자코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오," 
  "(부에노(좋아-스페인어).) 우리 5시에 보지요."
  전화를 끊고 난 다음에야 맥스는 (부에노)가 이디시 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건 폴란드에서 얘기하는 식이 아닌데.)
  천리안 베르나르드 슈롤니코프는 들루가 가에 살고 있었다. 마차는 크라코바 서버브 가를 달려, 코지아 가를 지나서 미오도바 가에 접어들었다. 거기에서 들루가 가로 갔다. 집은 핀라신스키 광장에서 얼마 멀지 않았다. 맥스는 흘끗 성을 보았다. 그가 여자들과 거닐곤 했던 이곳 주변이 기억났다. 그는 낡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입구가 좁고 계단이 꼬불꼬불한 낡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4층은 한밤처럼 캄캄했다. 그는 성냥불을 켜서 문에 씌어 있는 (베르나르드 슈콜니코프)라는 글자를 읽었다 문을 두드리고도 한참 만에 누군가 대답을 했다. 이윽고 검은 콧수염에 턱수염이 성글게 난 작은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는 가발 같아 보이는 것을 쓰고 있었다 유태인답지 않게 개버딘 외투와 줄무늬 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맥스가 관찰하건대, 그는 어딘가 아프고 근심이 많으며 두려워하는 듯했다.
  "일찍 당신에게 전화했던 사람입니다. 맥스 바라밴더요." 
  "압니다. 들어오시오." 
  그는 찌르는 듯한 거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맥스는 좁은 복도를 지나갔다. 짙은 벽지로 뒤덮인 벽 천장에는 금속 등이 매달려 있었다. 곧 그는 창문을 두터운 커튼으로 드리운 방으로 들어갔다. 의자들은 모두 검은 천이 씌워져 있었다.
  "모든 게 공포를 불러일으키게 되어 있군." 
  그는 혼자 말했다. 지하실의 냉기가 방에도 차 있었다.
  슈콜니코프는 맥스에게 의자를 가리키면서 작은 테이블 맞은 편에 앉았다.
  "어디서 오셨다고 하셨소?"
  "아르헨티나입니다. 하지만 이미 6개국에서 살았습니다. " 
  "무엇 때문에 오셨나요?"
  맥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아르투로의 죽음과 로셸의 절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참 후 그가 어떻게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는가도 들려주었다. 슈콜니코프는 그의 말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그는 마치 내장에 통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는 여자처럼 길고 뾰족하게 손톱을 길렀다.
  맥스는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때때로 슈콜니코프는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다간 다시 뜨곤 했다. 짙은 눈썹과 사람을 꿰뚫어 볼 듯한 눈매가 두드러졌다.
  "난 여자와 같이 잘 수가 없어요. 간단 명료하죠." 
  맥스는 불쑥 말하고서는 침묵에 잠겼다.
  슈콜니코프는 마치 누군가 들여다보지나 않나 의심하듯이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여기 혼자 사는 것일까? 아니면 가족이 있을까?)
  문득 맥스는 궁금했다.
  슈콜니코프는 가발 머리를 긁었다.
  "의사는 뭐라고 합니까?"
  "신경성이랍니다."
  "신경성."
  슈콜니코프는 마치 그 단어만으로도 몹시 메스껍다는 듯이 되뇌었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을 감았다. 너무 어려워서 표현이 쉽지 않은 생각에 몰두해 있는 것 같았다.
  "의사들은 당신더러 어디서 휴양하라고 보냈죠? 칼스바트나 마리엔바트?"
  "그런 덴 다 가보았소." 
  "그런데 전혀 도움이 안 되던가요?"
  "예." 
  "당신에겐 온천욕은 필요 없어요." 
  방 한구석으로 눈을 돌리며 슈콜니코프가 말했다.
  "남자는 여자에 대한 욕망이 정신에서 나오지 육체에서 나오는 건 아닙니다. 그런 욕망을 잠재력이라고 부르는데 일종의 자기력이죠. 자석이 쇠를 끌듯이 여자도 남자를 끈답니다. 모든 여자가 다 자기력을 지닌 건 아닙니다. 어떤 여자는 아름다워도 남자를 싸늘하게 만들 수가 있지요. 또 어떤 여자는 못생겼어도 보는 순간 당신의 내부에 있는 자기력을 일깨워 내죠, 남자가 젊을 때는 자기력이 강해서 모든 여자가 다 그를 흥분시킬 수가 있죠. 얼마 전에 신문에 72살 난 노파를 강간한 이교도 소년의 이야기가 났었죠. 늙으면 그 여자를 사랑해야만하고 그 여자도 당신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건 필수적이죠. 당신의 부인은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여자가 당신을 갖는 것은 여전히 원하지 않아요. 만약 부인이 강한 힘이 있으면 먼 곳에서도 당신에게 최면을 걸 수 있어요. 부인은 텔레파시 메시지를 통해서 당신을 제어할 수 있지만 당신은 그 사실조차 모르죠. 마치 누군가 더 센 육체적 힘을 가진 사람이 약한 사람을 이기듯이 더 큰 영적인 힘을 지닌 사람 또한 약한 사람에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죠. 당신은 약한 사람입니다. 그게 전부요." 
  "그렇다면 아무것도 할 게 없군요," 
  "아니오. 있어요, 있어, 설마하니 당신 부인의 사진은 갖고 계시겠죠?"
  "뭐요? 아, 예."
  "사진을 보여 주시오. 당신이 여기,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소. 혼령은 거리를 인식하지 않죠. 지구 끝까지라도 부인의 자기력은 당신을 따라가지요. 그걸 보여 주시오!"
  맥스는 사진을 건네 주었다. 베르나르드 슈콜니코프가 사진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사진을 뒤집었다. 그는 마치 명백한 진실을 마주 대하고 있는 양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옛날에는 마술이라고 불렀소. 지금은 최면이라고 부르죠. 이건 의지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나폴레옹이 수백만의 군인들을 전쟁으로 내보냈겠소? 그것은 그의 의지가 군인들의 의지보다 강했기 때문이오. 또 전쟁에서 진 것은 영국이나 프러시아의 대포가 더 잘 쏘아댔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의지가 약해진 탓이었소. 언덕이나 탑을 놓고 전투가 벌어지면 육체들이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혼령들 사이의 다툼이죠. 이해하시겠소?"
  "물론이오."
  "당신의 부인은 단순히 당신과 전쟁을 하고 있을 뿐이오. 부인은 당신이 절대적인 노예가 되기를 바라거나 아니면 항복하기를 바라고 있소. 당신은 그녀에게 대들어야 하오." 
  "어떻게요?"
  "그건 내가 당신에게 가르칠 거요. 당신은 메시지를 부인에게 되돌려보내야 합니다. 우린 당신의 자기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소. 당신이 더 강해지면 그만큼 부인은 약해질 거요. 그게 바로 정확히 야곱과 에사우에게 일어난 일이오. 당신은 학교에 다니셨나요? (하나가 일어나면 다른 하나는 망한다.)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오. 죽은 자의 영혼 또한 우리 삶의 일부죠. 당신에게는 세상을 떠난 부모님,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소. 그들이 영원히 가버린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곳에 있고 또 당신을 돕고 싶어하오. 그러니까 당신은 단지 그들과 접촉하는 방법을 알기만 하면 돼요. 저녁에 강신술을 써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혼령을 불러냅시다. 무서워할 필요는 없소. 혼령들은 당신을 해치진 못하오. 당신 부모님은 당신의 어린 시절만큼이나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소."
  맥스는 감정이 북받쳤다. 솟구치는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난 부모님께 한 번도 편지를 써본 적이 없소. 부모님을 위해 묘비 하나도 세워 드리지 못했소."
  "부모님은 당신을 용서하셨소. 마치 우리가 공기를 호흡해야하듯, 부모님의 사랑을 호흡해야 해요. 난 아무것도 예언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알게 될 거요. 우린 저녁에 강신술을 할 텐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가 당신에게 적당할 거요. 중요한 건 의심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는 것이오. 나는 영매는 아니오. 하지만 내 여동생이 영매인데, 영매는 그런 식으로 태어난 사람들이죠. 영매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소. 그들은 피와 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우리 가까이 오고 싶어하는, 몸에서 떨어져 나간 혼령들과 쉽게 접촉하죠. 영매는 영매를 지배하는 영매령이 있는데 이 영매령을 통해서 접촉을 하죠. 오늘 저녁에 올 수 있소?"
  "오늘 저녁엔 어디 갈 데가 있는데요."
  "내일은 어떻소?"
  "내일은 올 수 있소."
  "좋소! 내일 저녁 여기로 오시오. 의심이 아닌 신념을 지니고 오시오. 믿음은 기력이고 의심은 무기력이오, 알아듣겠소?"
  "예. 조금."
  "그 사이에 당신 부인에게 첫번째 메시지를 보내시오. 눈을 감고 나를 따라 한마디 한마디씩 하시오. (로셸, 오늘부터 나에게 대한 당신의 힘은 가라앉기 시작할 거요. 당신은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다른 곳에서 사랑을 찾을 권리가 있소. 나는 자유롭고 독립적이기로 결심했소. 어느 누구도 내게서 자유를 빼앗아 가지 못하오. 당신이 나를 당신에게 묶어 두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할 것이오. 내 아들이 내 편이오. 내 아들은 나의 친구이자 우군이오.)"
  이 마지막 몇 마디를 내뱉을 때 맥스는 목구멍이 조여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가 그 목구멍 안에 자리잡고 있는 덩어리를 부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는 온 힘을 다해서 악쓰려는 것을 참고 있었다.
  "이제 눈을 떠도 됩니다. "
  그때 슈콜리코프가 말했다.
  "내일 저녁 8시에 여기 오시오."
  "얼마 드리면 되지요?"
  맥스가 주저하며 물었다.
  "5루블이오. 강신에 참가하는 건 3루블이오."
  맥스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폐를 끄집어내었다. 슈콜니코프가 일어서고 뒤따라 맥스가 일어섰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배웠소? 어디에서 연구하셨소?"
  맥스가 물었다.
  "오, 그건 긴 이야기요. 나는 어린아이일 적에 내 안에 있는 힘을 발견했소..." 
  맥스는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왔다. 슈콜니코프는 그를 문까지 바래다 주었다. 맥스는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겨우 5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맥스는 꼬불꼬불한 계단을 내려왔다.
  "뭐 하는 사람일까? 도둑? 아니면 광인, 마술사?"
  맥스는 자문했다. 신경 전문가를 찾아가 보았을 때마다 그는 절망감만 안고 나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벽에 괴물과 엉터리들을 덕지덕지 치장해 놓은, 이 사악한 마술의 천재는 그에게 희망감을 불러일으켰다. 맥스는 웃음과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게 사실일까? 내 부모님과 아들이 살아 있어서 나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바깥으로 나와서 태양의 온기를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맥스는 마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크라신스키 정원까지 갔다. 잔디 냄새와 장미 향기가 한데 어우러져 풍겨 왔다.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이런 혼령들은 모두 다 어디 있지?"
맥스는 옆에 누가 있기라도 한 양 물었다.
  "어째서 슈콜니코프의 여동생만 혼령들을 불러오게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 세상에 어떤 신비가 존재하는지 누가 알랴?
  슈콜니코프는 한 가지는 옳았다. 로셸이 그와 비밀 전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따금 그는 그녀가 그를 따라다니면서 관찰하고 지분대는 것을 느꼈다. 천리안은 그걸 뭐라고 했더라? 자기력이라고 했었다.
  맥스는 연못으로 갔다. 백조들은 한가로이 헤엄치고 있고 아이들은 백조들에게 빵 조각을 던지고 있었다.
  "죽은 뒤에도 사람이 죽지 않으면 동물들은 어떻게 될까? 매일 황소, 송아지, 양, 닭 들이 수백만 마리나 도살되는데 왜 동물들의 혼령은 되돌아와서 백정들의 목을 조르지 않을까? 전투에서 죽은 군인들과 유태인 대학살에서 죽은 유태인들은?"
  맥스는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그는 기적이란 것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슈무엘 스메테나가 오늘 그에게 한 전화는 정말 기적같이 느껴졌다. 신문을 읽다가 잔글씨로 씌어진 특이한 광고를 우연히 발견한 것도 특별했다. 평소에는 그는 광고를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상관할 게 뭐람?)
  5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저녁에 누구를 만난다는 것을 알면 쉬면서 혼자 있을 수 있었다. 그는 날류키 가로 나와서 유태인 구역을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간판은 이디시 글자로 되어 있었고 어디서나 이디시 말이 들렸다. 그는 그 자체가 하나의 도시인 것 같은 널따란 안마당으로 들어갔다. 남자들은 상자며 술통, 바구니 등을 짐마차에 싣고 있었고, 시장 여인네들은 소리 높여 물건을 팔고 있었다. 서재 같기도 하고 하시드교 교회 같기도 한 건물이 눈에 띄어 맥스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귀밑머리를 한 소년들이 방대한 탈무드 책을 들고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서로에게 성스러운 책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 소년들이 둘러싸고 있는 한가운데에서 어떤 노인이 카디시를 올리고 있었다. 여느 추모 기도가 아니었다. 맥스에게는 낯설기만 한 문구의 기도였다. 해외에서 살았던 탓에 그는 이런 오래 된 유태인 관습에서는 멀어져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과거의 로스코바에서처럼 신을 섬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영혼도 믿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슈콜니코프는 수염을 밀어 버렸을까? 그는 다른 종류의 믿음이 있는 것일까?"
  맥스는 문 옆에 붙박여서 떠날 수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노란 콧수염의 남자가 그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여기 기도하러 와 계신 겁니까? 여기서 숄과 성궤를 구할 수 있습죠. 2코페이카입니다!"
  맥스는 잠시 말없이 있었다.
  "난 벌써 기도했소. 그렇지만 자, 여기 2코페이카이오." 
  그는 4루블을 꺼내서 그에게 주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모든 게 루블과 코페이카 주위에서 돌고 있군. 이런 성스러운 곳에서까지."
  그는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았다. 그 순간 치렐 생각이 났다.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 보고 즉각 기본적인 얘기부터 하겠노라고 약속한 게 떠올랐다.
  들루가 가에서 마차는 틀로마키 가를 건너 리마르스카, 반코비 광장을 지나서 철탑 근처로 나와 그노이나 가와 크로치말나 가를 지나갔다. 또 마차는 커다란 기둥과 널찍한 광장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은행을 지나쳤다. 은행이 마치 성이나 요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돈이 저곳에 있을까?)그때 문을 굳게 닫고 중무장을 한 짐마차가 입구에 들어섰다. 거기에 돈이 실려 있음을 곧 맥스는 깨달았다.
  크로치말나 가로 오자마자, 맥스는 바로 랍비의 집으로 올라갔다. 이 모든 것들을 다 계획하지는 않았으나 어떤 계획이 마음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는 문을 열어제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치렐과 그녀의 어머니가 있었다.
  치렐은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 앳되고 생기 있어 보였다. 그릇에 담긴, 괭이밥 잎을 다듬고 있던 그녀는 그를 보자 얼굴이 빨개졌다. 눈물이 고인 듯한 눈길에는 궁금한 빛이 역력했다. 간절히 묻는 것 같은 표정을 담고 있었다. (난 벌레처럼 밀치고 나와 여기까지 왔구나.) 문득 맥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마음으로만 가능한, 그런 종류으 통찰력이었다.
  랍비의 아내는 기도를 하고 있었음에 분명했다. 그녀는 손에 기도책을 들고 있었다. 맥스가 인사했다.
  "굿 모닝." 
  랍비의 아내는 화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뾰족한 코에는 날이 서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금방 맥스는 치렐이 자기 이야기를 했으며 랍비의 아내는 그를 사위로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메스꺼움을 가득 담은 잿빛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순간 맥스의 뇌리 속에 (가까이 해서는 안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계시군요. 기도 계속하세요, 부인, 기도하십시오. 랍비님은 집에 계십니까?"
  "아버지는 다른 방에 계세요." 
  치렐이 대답했다.
  "넌 저녁을 짓고 있구나, 그렇지? 여기는 여전히 생활이 옛날과 똑같군. 뭐를 만들고 있지? 감자를 넣은 괭이밥 보르시치 수프니?"
  "여기 있다가 함께 식사하세요." 
  치렐이 말했다.
  랍비의 아내는 얇은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 중얼거리면서 말을 할 수 없다는 신호를 했다. 그녀의 비단 가발은 햇살을 받아 다채로운 빛깔로 반짝였다. 맥스는 갑자기 이 여자가 무서워졌다. 비록 그녀가 순종적이고 종교 세계에서 살고 있어도 그가 품고 있는 엉큼한 수단을 죄다 완벽하게 꿰뚫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불쑥 랍비의 아내도 성질이 급한 여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녀는 마흔 살을 넘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그는 치렐에게 윙크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다른 방의 문을 열었다. 창문과 발코니 쪽으로 나 있는 유리문을 통해 햇살이 들어왔다. 랍비는 설교대에 서서 종이쪽지에다 뭔가 쓰고 있었다. 그 선량한 사람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뭐 좋은 소식을 가져 오셨나요?"
  "저는 맥스입니다. 모르드케입니다. 미국에서 온 절 못 알아보시 겠습니까?"
  "흠, 아니오. 물론 알지요. 어서 오십시오."
  랍비는 테이블머리에 앉으면서 맥스에게 의자를 권했다.
  "랍비님 제가 공부 시간을 빼앗았습니까?"
  "아니오, 아니오. 물론 공부는 중요하지요. 하지만 (유태 율법을 공부함으로써 현실과 동떨어지게 된다면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속담에도 나와 있소. 만약 누군가 (로탄의 누이는 팀노라고 불리었다)라는 걸 되뇔 수 있다면 그는 유태 율법을 공부하라는 명령을 다 이행한 것이라고 말하지요. 그 밖에도 모르는 사람을 환대하라는 것도 중요한 명령이오. 유태인, 유태인의 체면이라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오!"
  맥스는 랍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 선량한 사람의 말은 은총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이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랍비님, 당신은 매우 바쁘신 분이고 또 성스런 분이십니다. 저는 당신 발 밑의 진흙만큼도 가치가 없습니다. 저는 하찮은 사람입니다." 
  "제발 그렇지 않기를, 제발 그렇지 않기를!"
  "들어 보십시오, 랍비님. 저는 저일 뿐입니다. 저는 학교에 갔죠. 제 아버지-고이 편히 쉬시길-는 저를 탈무드 학원에 보내고 싶어하셨거든요. 하지만 저는 됫골목 백정의 거리에 이끌렸습니다. 당신이 제게 화내시지 않기를 바라며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는 어제 당신 집에 들어왔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딸을 보자마자 성스런 존재가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로스코바에서는 그런 식으로 말을 하곤 했었지요, 그녀는 아름답고 세련되고, 진정으로 성스러운 사람의 딸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태양처럼 빛납니다. 랍비님, 저에게 화내지 말아 주십시오. 남자는 남자입니다. 심지어 모세도 남자였습나다. 저는 공부를 조금 했습니다. 랍비님, 제가 홀아비란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만 흘아비가 되기 전에 저의 유일한 사랑스러운 아들을 잃었습니다. 아작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던 아들을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제 아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지도 이제 몇 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도 있다가 저기도 있다가 합니다. 저는 돈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이 무거운데 돈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당신의 발을 씻은 물을 마실 만큼 그렇게 착하지도 않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유태인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듯, 우린 모두 한아버지에게서 나왔습니다. 랍비님, 저는 제 자신의 (샤드큰(유대인의 결혼 중매인))이 될 겁니다. 따님은 저를 기쁘게 합니다. 제가 따님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으며 아버지뻘이라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남자가 더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그렇게 나쁘다고만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전 따님을 금으로 옷을 해 입히고 작은 장갑으로 그녀를 다룰 겁니다. 저에게는 유일신과 치렐밖에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게 어리석게 들리더라도 랍비님께서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성스러운 분과 어떻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 
  맥스는 말을 멈추었다.
  랍비는 위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경이스럽게도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붉은 구레나룻 위로, 두 뺨은 붉게 물들었다. 어느 때보다 더 그의 딸과 닮아 보였다. 잠시 동안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귀밑머리도 따라서 흔들렸다.
  "어디에 사실 작정이십니까? 먼 나라에서요?"
  "랍비님, 당신이 원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가겠습니다. 그건 마치 당신의 말씀이 성서에 씌어진 것과 같습니다. 바르샤바는 대단한 도시입니다. 치렐과 결혼할 수만 있다면 저의 모든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 그녀를 데리고 함께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몇 달 아니면 기껏해야 반 년 정도일 겁니다. 왜 그 좋은 돈을 날려 버립니까? 토지나 다른 재산과 마찬가지로 집들은 팔거나 세를 놓아야 할 것입니다. 제 전재산을 금괴로 바꾸지요. 그런 다음 여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치렐뿐만 아니라 랍비님 또한 다시는 가난하지 않을 겁니다. 랍비님의 부인께서는 더 이상 그런 영수증들을 쓰실 필요가 없을 겁니다. 랍비님은 풍족하게 사실 것이고 걱정 없이 유태 율법을 공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벼락을 맞게하소서." 
  "오, 맹세를 하시면 안 됩니다. 맹세하지 마십시오."
  랍비가 끼여들었다.
  "심지어 진실에도 맹세를 하시면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주의 이름을 헛되이 들먹이지 마라)고 명령하셨을 때에 온 세상이 떨었다고들 합니다. " 
  "글쎄 랍비님, 제가 동화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모든 것이 빈틈없이 정확합니다. 저는 정말로 평범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뭔가 좋은 일에 관해서라면 저는 전문가이지요. 심지어 농부조차도 콩과 팥 정도는 구별할 줄 알지요." 
  "자, 자, 알겠소."
  마치 자신에게 얘기하듯 랍비가 말했다.
  "그런 일들은 빨리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일들은 가족들과 의논해야 합니다. 법에 의하면 딸아이의 의견 또한 들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처녀를 불러서 그녀가 의향이 있는지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물론이지요, 랍비님. 어떻게 달리 될 수 있겠습니까? 따님이 절 좋아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녀를 결혼의 차양 밑으로 끌고 갈 수가 없지요. 랍비님께서 이 일을 부인과 치렐 그리고 모두하고 의논하셔야죠, 저는 그런 보석을 차지할 가치가 없지만 따님에게 착하게 대할 것입니다. 어린애들에게는 프록코트와 뭐든 필요한 걸 사주겠습니다. 크로치말나는 좋은 거리는 못 됩니다. 너무 복잡해요. 공기가 상쾌하고 나무가 있고 촌뜨기와 거지들이 많지 않은 다른 거리로 이사할 겁니다. 랍비님은 랍비로 계속 활동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랍비님의 재판소도 여실 수 있고 원치 않으신다면 앉아서 연구하실 수 있고, 최고와 최선의 것들을 다 가지게 되실 것입니다. 제가 아는 체하는 바보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은 순수합니다."
  맥스는 스스로의 말에 놀라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진실을 불쑥 내뱉은 것인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랍비는 성직자용 모자를 벗어서 그것을 부채삼아 부쳤다.
  "여기서 사업을 하실 수 있습니까?"
  "제 사업은 어디서나 잘됩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충분한 돈을 모아 두어서 앞으로 100년 동안은 그 돈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돈을 은행에 넣어 두고 이자로 먹고 살지요. 로스코바에서는 (쿠폰 자르기)로 불렀습니다. 집과 땅은 어느 나라에서건 팔리죠. 우린 넓은 아파트 두 개만 있는 한 층 전체를 빌려서 서로 이웃해서 살 겁니다. 람비님, 제가 한말씀 드리죠. 저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닙니다. 제 아버님-평화로이 잠드소서-은 마부였고 신앙심 깊은 유태인이었습니다. 투르지스크의 랍비는 로스코바에 왔을 때 우리 집의 (브리츠카)만 타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뭐라고 부르는지 이제 잊어버렸는데... 그걸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죠."
  "(샤트네즈)."
  "예, 랍비님. 그 단어는 오래 전에 잊었습니다. 하지만 랍비님에서는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한번은 그가 등뒤에 베개를 받치고 싶어해서, 제 아버님께서는 봉합선을 뜯어내어 양포가 없는 아마포라는 걸 보여 주었죠. 아버님은 진정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성서를 읽는지는 알고 있었죠. 제 어머님-편안히 잠드소서-은 안식일엔 꼭 모자를 썼었죠. 우린 한방에서 살았지만 하느님께 속한 것은 하느님께 돌렸죠. 이방인이 마을에 오면 우리와 함께 식사를 했죠. 모든 것이 엄격히 유태 율법에 따른 정갈한 음식이었죠. 맹세라도 하지요, 람비님. 하지만 맹세는 허용되지 않죠. 미국에서는 유태 관습에서 벗어나 있지만 여기서는 람비님, 저는 유태인이랍니다!"
  맥스는 가운뎃손가락으로 가슴을 쳤다. 랍비는 친절하고, 상냥하면서도 가족 같은 따뜻함으로 가득 찬 눈길로 그를 바라다 보았다.
  "모든 것이 예정된 것이오." 
  그가 말했다.
  "아이가 나기 40일 전 사람들이 (아무개의 딸)이라고 외친다고 씌어 있소. 난 여기 앉아 내 딸을 위해 지참금을 어떻게 구할지 걱정하고 있는데 먼 땅에서 당신이 여기로 보내어졌소. 내 딸은 현대적인 편이오." 
  이 대목에서 랍비의 어조는 갑자기 달라졌다.
  "내 딸은 신문을 읽는데 신문이 딸을 깨우쳤소. 우린 치렐을 선생의 아들과 중매시키기를 원했소." 
  "압니다, 랍비님. 레프 자인벨하고요." 
  랍비는 놀란 듯했다 
  "어떻게 아시오?"
  "압니다. 랍비님, 압니다. 제가 살아 숨쉴 때는 아무것도 놓치지 않습니다."
  "내 딸에 대해서 사람들이 얘기한단 말이군요?"
  "사람들은 떠벌리고 다니죠. 그렇지만 전 그 사람들에게 얘기했죠. 여자가 아니오라고 하면 강요해서는 안 된다라고."
  랍비는 수염을 꽉 잡았다가 놓았다.
  "우린 딸에게 강요하지 않았소. 제발 그런 일 없기를! 하지만 딸은 제 엄마를 닮아서 다혈질이오. 신경이상도 병이지요. 사람이 놀라면 나중에 후회할 짓을 하게 되지요. 옛날에는 악마가 부추긴다고 했소, 탈무드에서 이르기를 악령이 들어가지 않는 한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했소. 흠, 선택할 수 있고 뜻이 있으면 뭐든지 극복할 수 있는 법이죠. 의사들은 죄악을 신경이상이라 부르고 병 때문에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하죠. 하지만 그건 실수요. 분노를 통제할 능력이 없다면 분노가 죄가 될 수 없다는 것 말이오."
  "그렇습니다, 랍비님. 하지만 심한 분노에 휩싸이게 되면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지요. 제가 사는 곳에 한 스페인 이교도가 있었는데 아내가 있으면서 정부까지 두었죠. 아내가 그 사실을 알아내고는 그에게 잔소리를 했어요. 그는 이미 정부와의 사이에 아이까지 있었죠. 그런 나라에서는 인정되는 일입니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그녀가 너무 남편을 괴롭힌 나머지 남편은 벽에서 소총을 빼어 들고 아내를 쏘아 버렸죠. 애들까지도 다 쏘아 버렸죠. 그런 다음 정부에게 가서 같은 짓을 해버렸소. 5살 난 어린 여자아이는 침대 밑에 숨어 있다가 살아났지요. 그는 자살하려고 했으나 소총이 막혔어요. 결국 그는 감옥에 갇히고 말았지요." 
  람비는 이마를 찌푸렸다.
  "교수형에 처했소?"
  "아니오. 국립 병원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는 무엇을 달성했죠? 여생을 정신 병원에서 보내게 될 거고 다른 세상에서는 최후의 심판 날이 있을 거요. 흘러 넘친 피가 땅으로부터 외칠 것이고 죽인 사람에 대해 추궁할 거요. 한순간의 분노 때문에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됩니까?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죠? 우린 좋은 일을 하라고 여기 보내어진 것이지 나쁜 짓 하라고 보내어진 게 아니오."
  맥스는 잠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성스러운 랍비님, 그건 사실입니다. 랍비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입맞춤할 가치가 있습니다."
  "만약 하느님의 도움으로 결혼이 성사된다면 당신이 유태인이기를 바랍니다."
  "그럼 저는 뭐죠, 이교도인가요?"
  "유태인은 수염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염은..."
  "랍비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지요."
  그때 갑자기 부엌에서 소리가 나더니 랍비의 서재 문이 열렸다. 랄비의 아내가 문틈으로 가발 끝을 디밀었디.
  맥스가 랍비의 집을 떠났을 때는 아직 1시도 되지 않았다. 그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서 이마를 닦으려고 손수건을 꺼냈다. 그는 문가에 잠시 서 있었다. 그리곤 혼자 중얼거렸다.
  "도대체 난 어떤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거지? 로셸과 이혼하겠어. 그 선량한 사람을 진흙탕 속에 끌고 들어가진 않겠어. 만약 그렇게 하면 난 조각조각 찢어져 마땅할걸."
  그의 눈이 축축해졌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늘에 계신 주여, 제가 이 사람들을 모욕한다면 저를 벌주소서. 파라오의 저주가 제게 내리기를!"
  맥스는 그노이나 가 쪽으로 걸어갔다. 그 선량한 사람은 가족들과 의논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내일 다시 오라고 했다. 맥스의 머리에서 무엇인가가 기계처럼 굉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결심했다.
  (난 거기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어.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끊어 버려야 해! 슈무엘 스메테나 집에도 가지 않겠어. 짐을 꾸려서 로스코바로 직행해야지.)
  맥스는 세나토르스카 가를 지났다. 시 의회 탑을 보고 그 거리를 알아보았다. 그는 극장 구역으로 걸어 나왔다. 모든 것이 기억하고 있던 그대로였다. 오페라, 나메데니 카페, 방금 도착한, 화려하게 장식한 커다란 무개 짐마차.
  그는 카페로 들어가서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했다. 이디시어 신문은 없고 웨이터가 막 결혼한 왕자와 왕자비의 사진을 실은, 삽화가 들어 있는 신문을 가져 왔다. 맥스는 그 사진에 완전히 빠져 들었다. 신부 들러리 소년 넷이 왕자비의 웨딩 드레스 꼬리를 들고 있었고 신랑은 견장을 단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훈장을 가득 단 남자들과 타조 깃털로 장식한 모자를 쓴 귀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런 게 모두 어디서 일어나고 있지? 독일, 러시아, 영국?"
  갑자기 모든 것이 그의 눈앞에서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점점 분노가 들끓어올랐다. 비록 그 자신은 육체의 쾌락을 추구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낡은 유태인식의 경멸과 육체적 쾌락의 어리석음이 떠올랐다.
  (로스코바에서는 사람들이 뭐라고들 했었지?) 
  (허영 속의 허영.) 모든 것이 다 소용이 없고 공허했다. 오늘은 살지만 내일 죽는다. 우린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쫓고 있는 걸까? 그는 거리를 오가는 늙고 젊은 남자와 여자들을 둘러 보았다. 그들은 탐욕스럽고, 심각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마치 그들 모두가 어떤 실수를 저질렀으나 아무도 어떻게 그 실수를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불만스러울 것이다. 10만 루블을 가지면 100만 루블을 원하고 한 명의 여자를 가지면 세 명의 여자를 두고 싶어할 것이다. (나는 다른가? 이제 나는 아무도 없다고 해서 랍비의 딸을 농락하고 싶어하다니.)
  "내가 살아 있을 동안은 절대로 안 돼!"
  맥스는 하마터면 크게 외칠 뻔했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아!"
  그는 웨이터에게 돈을 지불하고 호텔로 걸어갔다. 바르샤바의 거리를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도 쉽게 길을 찾았다 뉴 세나토르스카 가를 지나 트레바카 가로 접어들었다. 호텔은 얼마 멀지 않았다. 그는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서 그대로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누웠다. 그는 슈무엘의 집에 안 가기로 마음을 정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이 가고야 말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그가 눈을 떠보니 시계는 4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레이즐 코르크는 아마도 진짜 잔치를 준비할 거야."
  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는 밝은 색 양복과 파리에서 산 비싼 와이셔츠를 입었다. (무엇을 이 계집에게 갖다 줄까? 뭔가를 그녀에게 갖다 주긴 해야 하는데.) 그는 거리로 내려가서 포도주 가게로 걸어 들어갔다 커다란, 정말 거대한 샴페인 병에 그의 눈길이 멎었다. 포도주 상인은 그것은 구할 수 있는 최고의 포도주라고 자질구레하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높은 가격을 불렀다. 거지처럼 누구를 찾아가지는 않겠다고 맥스는 결심했다.
  그는 다시 쾌활해졌다. 요즈음은 매사가 다 그런 식이었다. 한순간 슬펐다가 또 느닷없이 기뻤다. 신경불안은 악에 대한 유혹과 같은 것이라던 랍비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오, 난센스! 그런 사람이 의학에 대해 무얼 알아?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손에 들고 있는 성서를 흔드는 것뿐이지. 이젠 랍비 집에 다시는 안 가겠어, 랍비의 마누라는 어쨌거나 날 원하지 않으니까.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신경성이야.)
  어떤 의사가 신경계를 세밀히 그려 놓은 나체 사진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난 그런 경건한 집에 벌레처럼 기어들지 말았어야 했어.)
  맥스는 자신을 꾸짖었다.
  (치렐 같은 애는 그녀와 같은 유의 사람과 결혼해야 해.)
  시침이 5시에 거의 다 갔을 무렵 맥스는 마차에 올라탔다.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는 장미빛 종이로 싼 커다란 포도주 병을 든 맥스를 쳐다보았다. 맥스는 마부에게 시에플라 가를 지나서 가자고 말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는 레이즐 코르크의 미트볼 냄새를 맡았다. 검은 머리에 잘생긴 여자가 문을 열어 주었다. 커다란 검은 눈동자와 구부정한 코가 돋보이는 여자였다. 맥스를 보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따뜻한, 마치 집을 떠올리게 하는 폴란드어계의 이디시어로 말했다.
  "무엇을 가치고 오셨죠? 초, 이런, 이 병 크기 좀 보세요! 샴페인이에요? 난 기절해 버릴 것 같아요! 자, 어서 들어오세요."
  그녀는 맥스를 식탁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어느새 식탁은 다 차려져 일었다. 새장에서는 앵무새가 조잘대고 있었다. 적갈색 공단을 씌운 커다란 소파와, 벽에는 반나의 여인들과 화려한 풍경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방은 고급 사창가를 연상시켰고 레이즐 코르크는 포주 마담을 생각나게 했다.
  그녀가 맥스에게 말했다.
  "슈무엘이 곧 올 거예요. 모자를 주세요! 샴페인으로는 뭘하죠?"
  "거기다 얼음을 넣어요."
  "좋아요! 샴페인 안 마셔 본 지 100년은 되었어요!"
  "그럼, 당신은 몇 살이오, 200살?"
  맥스는 대번 그녀에게 꼭 맞는 농담을 던졌다.
  "때로는 제가 천 년이나 살아 있었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레이즐이 응수했다. 맥스는 그녀의 목소리가 좋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결코 싫증 내지 않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쉰 소리가 담겨 있었다.
  "여긴 내 집같이 편안하게 느껴지는군."
  맥스가 혼자 말했다.
  "슈무엘이 당신과 만난 얘기를 해주었어요. 그 술집에 안 갔 던 게 유감이에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제 언니가 있다는 걸 아셔야 되는데." 
  "어디, 어느 동네요?"
  "유닌 아니면 추닌 가인데 어떻게 발음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거리는 알아요." 
  맥스는 생각에 잠겼다.
  "이제 당신 언니의 직업을 알 것 같군." 
  레이즐은 약간 살이 쪘으나 결코 뚱뚱하지는 않았다. 피부는 유난히 희고 부드러웠다. 빛나는 커다란 눈은 욕정과 숱한 경험으로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여자와는 당장 본론에 들어갈 수 있지.) 검은 머리는 위로 곱게 빗어 올리고 목과 팔은 다 드러내 놓고 있었다. 주름살 하나 없는 피부, 키스를 기다리고 있는 입. 튀어나온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하얀 치아가 드러났다. 그녀는 살이 비치는 까만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바깔은 덥죠. 안 그래요?"
  맥스가 말했다.
  "거의 더울 때가 되었죠. 지난 겨울은 심했어요. 한잔 드실래요? 저는 레모네이드를 만들 때 풍미를 돋우기 위해 럼주를 약간 넣죠." 
  "슈무엘을 기다리겠소." 
  "지금쯤 여기 도착해 있어야 하는데. 그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절대로 알 수가 없어요. 거리를 걸어 내려오다 보면 경찰 경위나 심지어 서장에게도 붙들리지요. 사람들은 모두 그를 쫓아다니며 호의를 베풀어 주기를 원하죠. 마치 그가 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제는 의사들이 마리엔바트로 가서 휴양하라고 충고한답니다.
  "뭐가 잘못되었소?"
  "심장이 나빠요. 그는 4백 파운드나 되는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수 있는 반면 몇 계단만 올라가도 씩씩대기 시작하죠."
  "더 이상 젊지가 않은 게로군."
  "남자는 항상 젊죠. 그가 누구하고 같이 있느냐에 달렸죠."
  맥스는 하마터면 (당신은 굉장한 물건이구먼)이라고 말할 뻔했다. 그는 갑작스럽게 그녀를 안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당신 언니는 어떻게 잘되어 가고 있소?J
  그가 물었다.
  레이즐은 소파에 앉은 맥스를 마주보면서 의자 가장자리에 앉았다.
  "괜찮아요. 하녀가 수프에 달걀을 넣어 휘젓고 있는데 굳어 지지 않도록 제가 봐야 해요. 당신은 집을 파신다면서요?"
  "집과 땅이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커가고 있지요. 5년 전에는 대부분 잔디나 밭이었는데 지금은 거리가 나 있죠. 난 내생의 비극을 경험했죠. 내 아들..." 
  "알지요. 알아요." 
  "어떻게 알게 되었소?"
  "언니가 편지를 썼어요. 어제 받았죠." 
  "당신 언니가 나를 알아요?"
  "그럼요. 마담 샤예프스키라고 들어 보신 적 없으세요? 거기선 세뇨라라고 부르죠." 
  "아니오. 난 몰라요." 
  "하지만 언니는 당신을 알죠. 언니는 편지에 당신이 바르샤바로 오시니까 당신을 꼭 만나 보라고 썼어요. 좁은 세상이죠, 안 그래요?"
  "정말로 놀랍군." 
  "슈무엘에게 당신을 만났다는 얘기를 듣고 난 바로 그 다음날 편지가 왔더군요. 또다시 당신에 관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이 사람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쳐다보기만 해서 뭘 볼 수 있소?"
  "저는 모든 걸 다 봐요."
  "무얼 보지요?"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죠. 우린 앞으로 얘기할 기회가 많을 거예요. 누구든 제 손아귀에 들어오면 빠져 나가기가 쉽지 않죠." 
  레이즐은 일어서면서 미소를 짓고 윙크하며 말했다.
  "하녀가 수프로 뭘 하고 있는지 보고 올게요."
  "음, 보통 여자가 아닌데."
  그는 혼자 말했다. 그는 미트볼과 수프 그리고 집의 안주인 중에서 어느쪽을 더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방금 목마르지 않다고 레이즐에게 말했었는데 지금 갑자기 갈증을 느꼈다.
  맥스는 창문으로 가서 안마당을 들여다보았다. 어린애들이 술래잡기와 일종의 라켓볼인 (팔란트)와 (클리파)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 여자아이가 고무공을 공중으로 띄워 올려서는 잡고 있었다. (디아볼)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레이즐이 앞문을 여는 소리와 복도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슈무엘 스메테나가 도착한 것이다.
  다들 같이 식사를 한 다음, 슈무엘 스메테나는 누워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피곤한데다가 너무 많이 먹고 마셨다. 레이즐이 그를 침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는 옷을 입은 채 침대 위에 몸을 쭉 뻗치더니 금방 코를 골기 시작했다.
  하녀가 접시들을 치웠다. 레이즐은 손수 작은 잔에 리큐어를 조금 따랐다. 맥스는 소파에 반쯤 기대어 앉았다. 지는 해는 벽과 레이즐의 얼굴에 보라색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레이즐은 그녀의 언니에 대해 얘기하면서 차츰 대화를 본론으로 이끌어 갔다. 그녀의 언니 세뇨라 샤예프스키(그녀의 이름은 페이겔레 또는 파냐였다)는 남자들이 즐기러 오는 살롱을 갖고 있다. 물론 여자들은 나이가 들고 시들어 가며 때로 그들 중 일부는 결혼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술주정뱅이가 되는 여자도 있다. 남자는 어린애와 같아서 언제나 새 장난감, 새 안형을 필요로 한다. 레이즐은 바르샤바의 젊은 여자들을 많이 알고 있고 미인들 또한 알고 있다. 바르샤바에서는 여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남자들과 어울릴 수 없다. 하지만 나라 밖으로 나가서 아름다운 옷을 입을 수 있는 등등의 기회가 있다면 쉽게 여자들을 납득시킬 수가 있다. 요점은 모든 것을 기술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업에는 남자 가 필요하다. 그리고 슈무엘은 이런 방면에는 형편없다. 그는 경찰서장과 얘기하는 법은 알지만 예쁜 여자에게 말하는 법은 모른다.
  "사람들은 언제나 여자가 유괴당하는 데 대해 이야기하죠. 난센스예요! 더 이상 유괴의 문제가 아니랍니다. 세계를 보고  싶어하는 여자들이 여길 걸어다니죠. 하지만 셈을 치를 돈이 없어요. 심지어는 하녀가 되려고 해도 괜찮은 자리가 없어요. 결혼은 더더욱 가능성이 전혀 없죠." 
  "왜 가능성이 없죠?"
  "보잘것없는 재단사도 지참금을 원하죠. 기껏해야 1주에 12루블 버는 게시아 가의 점원은 황금으로 지참금을 받기를 원하더군요." 
  점점 날이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레이즐의 얼굴은 그림자로 가득 채워졌다. 그녀의 눈만 황혼 속에서 빛났다. 불꽃으로 빛나는 그녀의 커다란 검은 눈이.
  "만약 제가 남자라면 이 세상을 거꾸로 돌려 버릴 거예요."
  "무얼 하겠다고요?"
  "무얼 못할까요? 남자는 어디든지 가고,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눈길을 끄는 누구에게나 프로포즈할 수 있지요. 우리 두 사람은 일확천금을 벌 수 있어요."
  "슈무엘이 충분히 주지 않소?"
  "사람들은 돼지예요." 
  그리고 나서 그녀는 직접, 간접으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만약 맥스가 여자들을 설득시킬 수만 있다면 여자들을 공급해 줄 수 있다. 그녀의 언니 세뇨라 샤예프스키는 어느쪽 문이 열려 있는지 알고 있다. 돈은 문제가 아니다. 시장은 광대하다. 가족 없이 여행하는 남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아르헨티나나 브라질에서도-예쁜 여자들을 구하고 있다. 물론 괜찮은 여자에게는 제각기 다른 식으로 말을 걸어야 한다. 어떤 여자들에게는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반면, 어떤 여자들에게는 달콤한 얘기를 해주어야 한다. 남자는 그 여자들과 사랑에 빠져있는 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남자라면 입맞추어 주어야 할 여자와 때려야 할 여자를 구분할 줄 안다. 여자가 외국에서 여권 없이, 돈 한푼 없이 바보가 되어 버린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그녀는 남자가 원하는 대로 할 것이다. 경찰은 매수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여자를 국경을 넘게 해서 배에다 싣는 일이다. 나머지는 쉽다.
  "언니가 옳아요." 
  레이즐이 말했다.
  "당신이 이 일을 할 사람이에요." 
  "왜 언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날 찾아오지 않았지?"
  "당신의 아내가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죠."
  "음, 그건 사실이오."
  맥스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성냥을 그으면서 흘끗 레이즐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심각했으며 심지어 두려운 표정까지 떠올랐다. 맥스는 자신은 너무 늙었고, 돈도 필요 없으며, 딴 신경 쓸 일이 있다고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자극하는 목소리를 갖고 있는 이 여자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이 좋았다. 그녀는 경험 많은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소녀 같은 열정으로 남자들에 대해 얘기했다. 하지만 누가 딴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겠는가? 맥스는 생각했다. (여자란 백 명의 남자와 상대하고도 여전히 어리석은 소녀인 채로 있을 수 있구나.)
  "치렐에 대해서 아는 건 없소? 랍비의 딸 말이오."
  맥스가 물었다.
  "불길을 피하듯 그애에게서 달아나세요." 
  "왜요?"
  "그애는 우리와는 달라요. 그애는 파업자 보바와 사랑에 빠졌죠. 그는 시위 도중에 죽었는데 그애는 그 소식을 듣고는 까무러쳤답니다. 그애는-그거 뭐라고 하죠?-본질적인 것을 신봉해요."
  "난 그애를 아르헨티나로 데려갈 거요."
  "돈 낭비일 거예요."
  레이즐은 모든 걸 다 설명해 주었다. 이런 떳떳하지 못한 사업에는 평범한 가정의 예쁜 아이들이 필요하지 과격하거나 너무 떠들어서 교수형이라도 당할 만한 인텔리겐치아 여자아이들은 필요하지 않다. 파업 기간 동안에 이런 여자아이들이 다락방에 앉아 폭탄을 만들었었다. 폭탄을 만들던 한 아이는 그만 폭탄이 폭발하는 바람에 다리를 날려 버렸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왜 끼여들까? 레이즐에게는 맥스와 당장 의기투합할 수 있는 그런 아이들이 두셋은 있다. 이러한 아이들은 가난하게 자라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이 공장에 가면 결핵에 걸린다. 게다가 공장에서는 유태인 소녀들을 고용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상사가 유태인인 곳에서도 이교도 소녀들을 원한다. 하녀를 구하는 여자들인 (레이퍼키스)에게는 한 명을 구하면 열 명이 몰려든다. 못생긴 아이들은 보통 기회가 주어지지 않지만, 예쁘면 고통을 당할 필요가 없다.
  "언제 상품을 볼 수 있소?"
  맥스가 물었다.
  "오늘 밤이라도 가능해요."
  "어떻게 고양이가 물 위를 건너오지?"
  "쉬!"
  황혼 속에서 그는 레이즐이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갖다 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일어나서 침실 안을 바라다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문을 닫았다.
  "아침까지 계속 저이는 저렇게 코를 골 거예요."
  맥스도 일어섰다. 그는 레이즐에게로 다가가서 그녀의 엉덩이에다 손을 댔다.
  "당신은 아주 멋진 상품이군."
  "한때는 그랬죠."
  "지금도 마찬가지요."
  "슈무엘은 날 싼 상품으로 생각해요." 
  맥스는 몸을 구부려 레이즐의 입술에다 키스했다. 그녀는 그를 껴안고 키스하면서 혀를 깨물고 입 안을 빨았다. 그가 말했다.
  "자, 그렇게 하지."
  "그래요, 우리 둘이면 함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는 소파 쪽으로 그녀를 이끌어 갔다. 그의 무릎과 그녀의 무릎이 서로 맞닿았다. 레이즐은 그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이렇게 말고."
  "그럼 어떻게?"
  "비록 저이가 코는 골고 있지만 엿듣고 있는지도 몰라요. 저이는 첩자 같은 데가 있어요."
  레이즐이 소곤거리고는 킥킥 웃었다. 그녀는 12년 동안이나 슈무엘에게 충실했다. 남자들이 그녀를 뒤쫓아다녔지만,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하층민, 거리의 부랑배들은 그녀를 구역질 나게 했다. 크로치말나 가에는 버젓한 남자라고는 없었다. 이디시어 극단의 한 남자 배우가 그녀에게 달라붙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과 자신을 과시하는 것뿐이었다. 슈무엘 스메테나는 한때 강건한 남자였지만 이미 그는 60을 넘고 있었다. 또 그는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배가 나왔다.
  레이즐이 말했다.
  "제 나이에는 로맨스보다 돈이 더 낫죠." 
  "그래요. 젊어지진 않고 그냥 늙어 갈 뿐이니까."
  맥스는 그의 아버지에게서도 똑같은 말을 들었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선한 사람이 되어야지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그런 말을 했었다. 그는 아들에게 회개하라고 역설하였었다. 특히 모든 물고기가 물 속에서 떨고 유태인들이 하늘 나라의 휴일을 기대하며 회개의 기도를 올리는 (엘룰의 달(유태력 12월))에는 더했었다. 그와 달리 레이즐의 의도는 돈을 버는 것이었다. 맥스의 환상은 레이즐의 현실적인 계획이었다. 그녀는 그가 여자들을 아르헨티나로 데려가기를 바랐다 그녀는 그의 동업자이며 또한 정부가 될 것이다. 그녀는 그를 도을 것이다. 그녀의 키스는 이미 그를 충분히 흥분시키고 있었다.
  맥스는 그의 모든 약점, 강박 관념 그리고 공포를 잊어버렸다. 그녀는 그의 옆에 서서 여자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힘으로 그의 손목을 쥐고 있었다. 그녀는 여성의 위력을 발휘하면서 그를 취하게 만드는 약속들을 하고 있었다.
  "제가 당신에게 갈 거예요."
  그녀는 그의 귀에다 속삭이면서 그의 귓밥을 깨물었다.
  "언제?"
  "그런 애들 중의 하나가 여기 이 동네의 의녀예요. 원하신다면 오라고 하겠어요."
  "주인집 사람들은 어떡하고?"
  "그 사람들은 집에 없어요." 
  "(부에노)."
  맥스는 소파에 앉아서 레이즐이 복도에 있는 전화기를 드는 것을 보았다. 반대편 벽 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빛만 빼고는 완전히 캄캄했다.
  그는 전에도 이런 일을 겪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레이즐이 그를 진흙탕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돈이 필요 없었다. 또 존경받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이즐이라는 여자는 대포알이었다. 어쩌면 이 여자는 그가 겪고 있는 발기 불능이라는 마술에서 그를 구원해 줄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를 위해 다른 여자들도 구해다 줄 것이다. 무엇인가가 이곳에서 일어날 것이다. 바르샤바는 그가 내내 흘로 배회하던 런던이나 베를린이 아니었다. 하느님께 고맙게도, 이곳에선 그가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람들이 그를 쫓아다녔다. 내일 랍비는 그에게 대답을 줄 것이고 치렐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빵집 주인의 아내와 입을 맞추긴 했지만 그녀와 자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레이즐 코르크와 상대할 수 있다. 내일 그는 베르나르드 슈콜니코프를 보게 될 것이고 그의 누이 동생이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낼 것이다.
  맥스는 어둠에 둘러싸인 채로 앉아 있었다.
  (내가 잃을 게 뭐람?)
  그는 스스로에게 충고를 했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지. 차라리 감옥이, 거리낌없이 방황하면서 아무것도 즐길 수 없는 것보다 낫지. 차라리 죽음이 더 나을걸...)
  이웃집 어린애들이 이제 마당에서 공놀이를 그만둔 것 같았다. 침묵이 창문을 통해 스며 들어왔다. 맥스는 하늘과 몇 개의 별을 보았다.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레이즐이 들어왔다.
  "그애는 금방 여기로 올 거예요. 우리 부엌에서 얘기해요."
  모든 면에서 그것은 음모임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맥스는 일어서서 레이즐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테이블이나 의자의 모서리에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그는 문가에 서서 레이즐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언제 당신이 날 보러 오지?"
  "쉬! 저이는 곧 로즈에 가야 해요. 그는 거기서 할 일이 있어요."
  맥스가 이런 비밀에서 기쁨을 얻는 것만큼이나 어딘가 깊은 곳에서는 그것이 또한 그를 괴롭혔다. 비록 그는 썩었으나 그의 내부 감추어진 곳에는 정직한 본성, 즉 죽음의 날과 다가올 지옥에 대한 생각을 하며 공포에 떠는 도덕성도 있었다. 이것은 아르투로의 죽음 직후에 시작되었고 결코 그를 떠나지 않았다. 베르나르드 슈콜니널프가 말한 것처럼 이 모든 것이 로셸의 자기력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차라리 무덤 속에서 알 수 없는 힘으로 얘기하는 그의 아버지 같았다.
  레이즐이 그를 불러내었다. 그는 바닥은 타일로 되어 있고, 구리 냄비가 고리에 걸려 있는 널찍한 부엌으로 나갔다. 불타는 듯한 빨간 머리, 녹색 눈동자 그리고 주근깨로 덮인 얼굴을 한 어린 소녀가 부엌의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들창코였고 입술이 두터웠다. 레이즐 코르크는 그녀가 예쁘다고 했지만 맥스는 그녀에게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못생긴 편은 아니라고 맥스는 생각했다. 단지 그녀의 얼굴에서 주근깨들을 문질러 버릴 수만 있다면! 그녀는 옥양목 드레스를 입고 어깨에는 숄을 두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어딘가 친근한 시골의 맛이 풍겼다. (로스코바 출신일까?) 맥스는 궁금했다. 그는 재빨리 그녀의 신발을 보았다. 구멍이 가득 나 있는 단추로 조여 있었다.
  "바라밴더 씨, 이쪽이 그애예요."
  "이름이 뭐지?"
  "바샤." 
  "어디 출신이지, 바샤?"
  "오폴레 출신이에요."
  "오폴레란 말이지? 그 마을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어. 아버지는 무얼 하시나?"
  "장사꾼이에요"
  배시시 웃으며 바샤가 말했다.
  "형제, 자매는 있나?|
  "남동생 세 명과 여동생 두 명이 있어요. 제가 제일 위죠." 
  "그럼 넌 몇 살이지?"
  "열아홉 살이에요."
  "넌 열여섯 살같이 보이는구나. 식구들 모두가 빨간 머리이니, 안 그러면 너만 그러니?"
  "저하고 남동생 하나만 그래요."
  "러시아에서 도망가고 싶니?"
  그렇게 빨리 본론에 들어가야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은 채 맥스가 물었다. 소녀는 바로 대답했다.
  "제가 여기서 가진 게 뭐가 있어요? 전 1년 내내 일해도 8루블밖에 못 받아요. 휴일날 집에 가서 치마나 선물을 하나 사면 다 없어지죠. 여주인 얘기로는 미국에서는 돈도 많이 주고 하녀도 결혼 지참금 정도는 모을 수 있다고 했어요. 저는 영원히 하녀로 있긴 싫어요. 여주인은 저를 하루 종일 부려먹어요. 잠자고 싶을 때도 잠도 잘 수가 없어요, 그 사람들은 늦게 일어나지만 저는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6시에는 움직이고 있어야 해요."
  "앉아요, 맥스. 서 있지 말아요."
  맥스에게 의자를 밀어 주며 레이즐이 말한다.
  "여기는 여전히 30년 전과 똑같군."
  맥스가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게 옛날식 그대로야. 해외에서는 생활이 바뀌었어. 일테면, 이런 더운 날 숄이 왜 필요하지? 그리고 목이 긴 신발은 더운 여름에 맞는 스타일이 아니야. 거기 사람들은 네가 뭘 하는지, 네가 누군지 묻지 않아. 처녀는 세뇨리타라고 부르고 결혼을 하면 세뇨라가 되지. 아르헨티나에 간 사람들은 상류 사회 출신들이 아니야. 아버지는 도둑이었는지 모르지만 딸은 품위 있게 살고 사교계의 지도자이기도 하지. 어느 누구도 여기 사람들처럼 가발이나 모자를 쓰진 않지. 그건 소비에스키 왕시대 때부터 내려온 광신이야. 왜 자기의 머리카락은 자르고 이미 죽어 버렸을지도 모르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써야 하지? 모든 게 다 그런 식이야.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꾸며 낸 것을 성서에다 썼지. 내가 사는 곳에서는 아무도 유태식의 정 갈한 음식을 먹지 않아. 혹 어딘가에 유태 의식을 행하는 백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지. 어떻게 도살되는지 황소가 알게 뭐람? 거기서는 모든 게 발전되어 있고 여자는 남자를 두려워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는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고 존경심을 가지고 여자를 대하지 중요한 것은 퇴보하지 않고 할머니의 기도책을 잊어버리는 일이야." 
  맥스는 마치 다 외우고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말했다. 자신의 말에 그는 스스로 매료되었다. 레이즐 코르크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 찼고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마음을 훤히 읽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정확하게 필요한 말들을 다 한 것이었다.
  바샤는 부끄러운 듯 미소 지으며 숄을 벗었다.
  "그래요. 사실이에요. 선생님께선 오폴레가 어떤 식인지 보셔야 해요. 거긴 여전히 백 년 전 같아요. 휴일에 집에 가면 싸움이 시작되죠. 어머니는 여학교에 가길 원하세요. 하지만 전 하루 종일 서 있는 데 진력이 났어요. 부잣집 여자들은 벤치에 앉아 있고 우린 서 있어야 해요."
  "음, 내가 보기에 너는 센스가 있는 아이 같구나. 나와 함께 가고 싶으면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라. 사람들은 남을 시기한 단다. 사람들은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어. 그래서 딴사람들도 같이 진흙 속에 처박혀 있기를 바라지. 외국으로 나가면 여권이 필요한데 25루블이 들 거야. 온천으로 가는 사람들은 부자들이지, 너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야. 널 배에 태우고 하선한 다음 너를 보살펴 주겠어, 나는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거기서 잘 안 되면 다른 곳에 보내 줄거야. 그런 누더지를 벗기고 모자와 지갑과 망토로 공주같이 꾸며 줄 거야. 바르면 주근깨가 없어지는 크림도 있어. 넌 우유같이 흰 살결을 가지고 있어야 해. 소매를 걷어 보렴. 내가 한번 볼게." 
  바샤는 잠시 망설이다가 소매를 위로 밀어 올렸다 맥스는 전문가처럼 그녀의 팔을 훑어보았다.
  "내가 뭐라고 했지? 눈같이 희지, 너 천연두 예방 접종을 안 했구나. 아무런 자국이 없어."
  "천연두요? 전 몰라요. 아뇨."
  "러시아라서 그런 거야. 그곳에서는 애를 낳자마자 예방 접종을 시킨단다. 예방 접종이 없으면 승선을 시키지 않아. 하지만 내가 다 처리해 주겠어 너는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침묵이라는 걸 말이야. 만약 네가 누구에게 한마디라도 하면 모든 걸 다 망칠 거야."
  "누구한테 얘기하겠어요? 여기 이 아줌마에게는 아무것도 숨기는 게 없어요. 아줌마는 제 비밀을 다 알아요."
  "넌 약혼 같은 것 한 적이 있니?"
  "아무하고도 안 했어요. 사내애들이 지분대지만 전 혼을 내주죠. 그애들은 제가 가난하기 때문에 날 이용해 먹을 순 있다고 생각하죠. 안식일에는 주인과 같이 유태 학교에 가지만 주중에는 다 큰 겉멋쟁이에 불과하죠."
  "좋아! 품위 있게 행동해. 뭔가 가지고 싶으면 주어야 하는거야. (아무것도 없이는 목욕탕밖에는 못 간다)는 말이 있지. 하지만 바르샤바에서는 아무것도 없이는 목욕탕조차 못 가지.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니?"
  "예. 알아요." 
  "네가 바보같이 행동하지 않으면 너는 유태 예배당에서 식사하고 있을 거야." 
  "언제 떠나시나요?"
  바샤는 잠시 생각해 본 후에 물었다.
  "아직 좀더 걸릴 거야. 아마 몇 주, 딴 달이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린 갈 거야. 그때까진 조용히 있는 거지. 레이즐이 모든 걸 다 말해 줄 거다. 네가 필요할 땐 내가 여기 오마. 주인은 전화가 있다고 들었는데 전화번호를 내게 다오. 안식일에는 무얼 하지?"
  "오, 빵집에서 (촐렌트) 빵을 다시 가지고 와야 해요. 뜨거운 물이 없기 때문에 접시를 씻지 못하게 하죠. 하지만 접시를 닦는 건 해야 해요. 안식일 마지막 음식에 사람들은 굶주려 있고 저는 샤워 밀크를 가지고 와야 해요." 
  "몇 시간 동안이라도 집을 떠나 있을 수 있니?"
  "아마 그럴 수 있을 거예요."
  "널 어딘가에서 만나서 극장이나 패스트리 가게에 갈 거야. 드레스와 네가 필요한 건 모두 다 사줄게. 그건 외상이다. 네가 돈 벌면 내게 갚는 거야." 
  "선생님은 좋으신 분이군요." 
  "난 좋은 사람이 아냐. 나도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하는 거지. 나는 사업이 있고 사람이 필요해. 남자는 부족함이 없지만 여자들에게만 적합한 일이 있지. 중요한 건 네가 들은 대로 하는거야. 나와 함께 갈 때면 난 너의 아버지, 어머니, 언니, 약혼자가 되는 거야. 네가 해야 할 거라고는 복종하는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예. 알겠어요."
  "어떻게 생각해?"
  "뭔가 이루어졌으면 해요."
  "뭔가가 이루어질 거야. 중요한 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야. 누구에게든, 심지어 가장 친한 여자 친구에게라도 한마디한다면, 당장 말이 돌고 전부가 실패하게 돼. 여기 1루블짜리를 받아!"
  맥스는 지갑을 거내었다. 바샤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왜 이 1루블짜리를?"
  "네 예쁜 눈을 위해서지. 네겐 1루블이 대단한 재산이겠지. 내겐 전혀 중요하지 않아. 내게 갚으라고. 너 때문에 손해보는 일은 없을 거야. 내 수첩에 그걸 적어 놓으면 거기 그대로 있을 거야, 스타킹을 사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시렴. 안식일 1시에 날 만날 수 있겠니?"
  "1시는 너무 일러요. 안식일 노래와 송영이 끝나면 보통 2시예요."
  "3시는 좋아?"
  "3시. 좋아요."
  "(부에노). 시에플라 가에서 3시에 만나. 거기에 막사가 있어. 길 건너서 만나는 거야. 3시 정각에 거기 있겠어. 그때 모든 걸 다 얘기하지. 자 여기 1루블이야." 
  "오, 감사합니다."
  "가지고 가서 네 건강을 위해 사용해. 우린 사람이지 동물이 아니야." 
  "이제 가도 돼요?"
  "이제 가도 좋아." 
  레이즐이 대답했다.
  "하지만, 안식일 3시에 막사 건너로 나오는 거 잊지 마. 이 사람을 기다리게 하지 말고. 우리 세 사람 사이의 비밀로 하는 거야. 우린 네게 어떤 해도 입히지 않아. 제발 그런 일 없기를!"
  "안녕히 주무세요. 건강하시고."
  "잘 가."
  바샤가 문을 닫자마자 레이즐은 맥스에게 달려와서 그를 껴안고 끌어당겼다.
  "당신은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당신처럼 말하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키스를 받을 만해요. 어디서 그렇게 부드러운 혀를 얻었죠?그애가 행복에 겨워 녹지 않는다면 그애는 분명 쇠보다도 더 강해요. 당신의 입이라면 러시아 황후도 유혹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여잔 이미 유혹당했어. 신문에 모두 나와 있다고. 이름이 뭐였지? 라스푸틴이었지!"
  "그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예쁜 애는 아닌데."
  "순수한 처녀죠. 옷을 잘 입히면 그애 어머니도 못 알아볼 거예요. 싱싱한 상품이죠. 더 예쁜 애들도 있어요. 거긴 어떤 여자들이죠? 늙은 창녀들이죠?"
  "그애가 모든 걸 엎지르지 않는다면." 
  "그애는 개같이 조용할 거예요. 당신은 제가 벌써 그애를 준비시켰다는 것을 아셔야 해요. 하지만 제가 몇 주일이 걸리는 일을 당신은 10분 만에 다 해요. 당신은 핵심을 찔러요. 당신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죠. 안식일에 그녀와 무얼 할 건가요? 유혹할 건가요?"
  "그렇게 빨리?"
  "당신 같은 사람이면 뭐든 할 수 있죠. 당신을 친숙한 사이에서 쓰는 호칭으로 불러도 되나요? 당신이 그애와 얘기하고 있으면 전 질투가 나요. 전 여기 바르샤바에서 당신이 필요해요,"
  "나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가."
  "그러면 슈무엘은 어떻게 되죠? 그 사람은 모두를 다 알고 온갖 끈이 다 있어요. 하지만 바르샤바 밖으로 나가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는 여기 놔줘."
  "오? 아마도. 예, 그는 아내가 있죠. 우리 사이에 뭔가 일어날 거예요.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에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전 뭘 하죠?"
  "반 년은 거기 있고 반 년은 여기 있지."
  "오, 그것이 실현되기를! 우리가 같이 일한다면 황금을 긁어 모을 거예요. 잠깐만, 슈무엘이 자고 있나 한번 볼게요."
레이즐 코르크가 나가자 맥스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자, 이건 모두 장난에 불과해. 이렇게 늙은 나이에 뚜쟁이는 되지 않을 거야.)
  맥스는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는 단지 레이즐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여성에 대해 그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지녔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 그런 얘기를 했을 뿐이었다. (그 소녀에게 1루블을 줘. 그애는 불쌍한 아이야.) 맥스는 이마를 찌푸렸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돌아가고 있었다. 만약 레이즐이라는 이 여자가 마술을 풀 수 있다면, 그는 그녀를 데려갈 것이다. 그녀가 로셸보다 나쁘면 얼마나 더 나쁘겠는가? 오히려 훨씬 낫지! 슈무엘은 누군가 딴사람을 찾을 것이다. 어쨌든 크로치말나 가에서 그는 왕이니까.
  오늘날의 말로 양심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이 맥스의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계속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때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여자에게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그는 자라났다. 그는 항상 사랑과 전쟁에서는 모든 게 다 정당하다는 격언에 따라 행동했다. 잠자기 그는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그는 모든 죄악에 대해 마음을 고쳐 먹고 싶었다-돈으로, 말로, 선물로. 그의 마음속에서는 레이즐 코르크같이 자신의 욕망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이 일었다. 그녀는 분명 몇 루블 때문에 어머니마저도 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르투로의 죽음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감추어진 질병 때문에 나온 것일까?
  레이즐이 돌아왔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자고 있어요. 하지만 저이는 절대 몰라요. 갑자기 일어나서 사람을 놀라게 할 수도 있으니까."
  "그는 언제 로즈로 가지?"
  "다음 주예요."
  "거긴 얼마나 오래 있을 건가?"
  "며칠이에요."
  "당신이 나한테로 오겠소?"
  "그럼요. 당신이 제게 오든가, 제가 당신에게로 가든가."

    3
  맥스는 호텔 종업원이 문을 두드려서 일어날 때까지 잘,잤다.
  "전화입니다 !"
  그는 바삐 가운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었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누굴까) 맥스는 궁금했다. (레이즐 코르크일까?)
  그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면 (레이즐, 안녕?)이라고 말할참이었다. 하지만 전화 속의 여자는 주저하는 듯이 더듬거리면서 얘기했다. 랍비의 딸 치렐이었다.
  "제가 깨웠나요??
  그녀가 물었다.
  "아냐, 치렐, 이제 거의 10시야."
  "아버지가 선생님과 얘기하고 싶어하세요."
  "음, 좋아. 언제 갈까? 아버지가 승낙하셨나?"
  "오, 전 밤새도록 한잠도 못 잤어요."
  "어떻게 결정했지?|
  "오세요. 모든 걸 다 말씀드릴 거예요."
  "언제 갈까?"
  "선생님이 원하시는 아무 때나 오세요. 아버지는 지금 기도실에서 기도하고 계세요."
  "치렐, 왜 목이 쉬어 있지?"
  맥스가 물었다.
  "오, 이건 지적이에요!"
  "응, 좋아. 곧 갈게."
  "언제요?"
  "정오까지 갈게."
  "아버지는 즉석에서 동의하셨지만 어머니는 신경이 날카로운 분이죠... 걱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저는 가슴이 터지도록 말했어요. 그리고 전 분명히 밝혔어요. (탈무드 학원의 남자랑은 결혼하지 않는다)고 말이에요. 전 짐을 싸서 달아날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어디로 달아나지?"
  "선생님에게로요."
  "음, 내가 거기 갈게."
  맥스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흘린 사람처럼 계속 서 있었다. (그게 가능한가? 그래. 모든 게 다 가능해.) 하지만 그는 아무런 기쁨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반대로 그는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그녀를 어떻게 하지?"
  그는 방으로 돌아가면서 자문했다.
  "난 레이즐 코르크와 바람을 피워서는 안 돼. 치렐도 데려가 서는 안 돼. 난 아내가 있는 몸이야, 랍비에게 저지른 죄 때문에 하느님은 날 벌주실 거야. 왜 내가 바르샤바에 있지? 슈콜니코프가 나를 죽은 자들과 접촉시키려고 머무르게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 번 레이즐 코르크와 같이 계란과 보리로 만든 미트볼을 먹기 위해서인가?"
  그는 자기 가방들을 쳐다보았다. 짐을 싸고, 호텔비 정산을 하고, 비엔나 역까지 마차를 타고 가서 1등칸에 들어가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쫓아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글쎄, 하지만 기차는 내일도 탈 수 있지, 게다가 어디로 갈 것인가? 막 겨울로 접어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갈 것인가? 사실 이제 그에게는 모든 세상이 공허하게 보였다.
  (난 로스코바로 가야만 할까? 거기서는 무얼 하지?)
  친척들은 아마 지금쯤 그의 이름을 잊어버렸을 것이고 분명 대부분은 죽었을 것이다.
  (그래. 언제나 달아날 시간은 있어. 아직은 좀더 놀아 볼 거야.)
  그는 씻고, 면도하고 옷을 입기 시작했다. 아침은 온화하고 빛이 났다. 맥스는 잠시 창문 옆에 서서 행인들을 바라보았다. 모두에게 각자의 운명이 있었다. 마흔일곱 살의 나이에 목적없이 방황하는 것이 맥스의 운명이었다. 그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화이트 채플의 벤치에 앉아 선교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는 거친 모험에 뛰어드는 것이 더 나았다. 이번엔 맥스는 크라코바 서버브 가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 다음엔 걸어서 크로치말나 가로 갔다. 이제는 길을 알았다. 심지어 냄새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가 크로치말나 가로 갔을 때 그의 시계는 정확히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랍비의 집으로 올라갔다. 치렐은 마치 병을 앓고 난 것 처럼 창백한 얼굴에, 횐 블라우스와 밝은 녹색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치렐은 침대 위에 앉아 유리잔 위에 스타킹을 펴놓고 깁고 있었고 랍비의 아내는 테이블에서 완두콩 껍질을 까고 있었다. 마치 방금 로스코바에서 신부를 보러 온 신랑처럼 맥스는 올라가는 도중 갑자기 부끄러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다잡아먹고 부끄러움을 떨쳐 내었다. 그의 조끼 주머니엔 돈과 사증이 찍힌 여권과 금시계가 들어 있었고, 가방에는 리볼버 권총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랍비 부인. 안녕, 치렐. 랍비님은 집에 계십니까?"
  맥스가 말했다. 치렐은 두려워하며 옆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랍비의 아내는 뾰족한 얼굴을 그에게 돌렸다. 그녀의 회색 눈동자는 유감과 호기심을 싣고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코 위로 주름살이 잡혔다.
  "다른 방에요."
  맥스는 이 사람들에게 무언가 얘기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무슨 얘기를? 떠벌이인 그도 할말이 다 떨어졌다. 그는 기도실로 가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랍비를 발견했다. 랍비는 종교 의식용 모자에 물결 무늬의 소매가 긴 비단 옷을 입고 연단에 서서 종이 조각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이번엔 이 선량한 사람이 외쳤다.
  "어서 오십시오."
  "성스런 랍비님!"
  "앉으세요. 앉아요, 여기..."
  랍비는 테이블 머리 쪽에 앉았다.
  맥스는 서가와 커튼을 드리운 성궤(유태 율법을 넣어 두는 선반)와 사자와 십계명을 차례차례 바라보았다. 그리고 전날 느꼈던 것과 똑같은 모멸감에 사로잡혔다.
  (랄비의 사위가 되는 것보다 더 영예스러운 일이 있을까? 난 그녀가 걸어다니는 땅도 숭배할 거야. 난 메이즈자처럼 그녀에게 입맞출 거야.)
  이 집 안엔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다른 어떤 곳에서도 심지어 파리, 런던, 베를린의 박물관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조용한 기운이 지배하고 있었다. 전 세상이 속도와 경쟁과 소외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여기는 모든 것이 여유롭고 친밀하고 유쾌했다. 내세의 선함이 이 랍비의 푸른 눈동자에 나타나고 있었다. 햇빛의 반점들이 금종이로 된 벽과 테이블과 서가에 비추어져 있었다. 방에서는 차와 레몬과 안식일에 쓰는 앙념 냄새가 났다.
  랍비가 말했다.
  "모르드케(맥스의 이디시어 이름) 씨. 난 모든 걸 아내와 식구들과 얘기했소. 당신께 진실을 말하리다. 나와 내 처는 내딸을 젊은 학자와 중매 결혼을 시키고 싶소. 하지만 그건 어렵소. 난 치렐을 위한 결혼지참금이 없소. 음, 내 딸은 약간 현대 적이죠. 그렇지만 어떡하겠소? 세대가 다르고 관습이 다른 것을, 천상에서는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을 거요. 간단히 말해서, 우린 동의합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소. 당신은 수염을 길러야 합니다. 수염은 유태인의 상징이기 때문이죠. 당신은 꼭 유태식의 정갈한 음식을 먹고 안식일을 어기지 않으며 모든 종교적인 율법을 준수하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해야 해요. 만약 율법을 모르면 이디시어로 모든 게 다 씌어져 있는, 당신이 읽을 수 있는 조그마한 책이 있소. 작자는 결혼으로 장인어른과 친척이 된 이사야 라코버 씨요. 이분은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어했죠. 모두가 다 헤브루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유태인답게 행동하는 것이오. 우린 물론 당신이 여기서 살기를 원해요. 치렐은 우리의 외동딸이니 먼 나라에 떨어져 있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난 랍비의 판관이므로 당신이 수염이 없는 한 약혼 계약을 쓸 수가 없소. 유태 율법을 어기고 수염을 밀어 버린 사람을 사위로 삼는다면 그것은 내가 그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오. 게마라에 이르기를 침묵은 동의라고 했소. 그러므로 당신의 수염이 다 자랄 때까지 구두로 약속을 하고 그 다 음에 하느님의 도움으로 약혼 계약을 작성하고 결혼일을 잡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돼요. 당신의 짧은 옷 또한 내 마음에 들지 않소. 그런 옷은 이교도를 흉내내는 것이기 때문이오. 이교도와 독일인들이 짧은 옷을 입기 때문에 유태인들은 긴 옷을 입는 것이 의무요. 그렇지만 그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맡겨 두겠소, 짧은 바지를 입어도 여전히 유태인일 수는 있소. 중요한 것은 유태인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유태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고, 그러면 유태 율법이 없는 유태인은 뭐란 말입니까? 어떻게 우리가 거의 2천 년 동안이나 고난을 견뎌 왔소? 오직 유태 율법이 우리를 가르치고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오. 유태 율법이 없는 유태인은 이교도보다 더 나빠요... 당신은 이해하시겠지요?"
  "예, 성스런 랍비님. 이해합니다."
  "동의하십니까?"
  "성인이 그렇다고 하시는 모든 말씀에 다 동의합니다. 당신의 말씀은 마치 하느님이 얘기하시는 젓 같군요."
  "제발 그런 말 마시길! 인간이란 단순한 살과 피에 지나지 않소.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말하는 것은 유태 율법에 나오는 말이오. 원하신다면 당신과 함께 탈무드를 공부하지요. 당신은 우선 모세5경으로 시작할 수 있소. 모세5경보다 더 위대한 윤리책은 없소. 바로 맨 처음 시구부터 도덕으로 가득 차 있소. 하느님이 천국과 지상을 창조하시자마자 사람들이 그를 숭배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이죠. 라시가 바로 그 첫번째 주석에서 말하기를 하느님은 유태인과 유태 율법 때문에 천국과 지상을 창조하셨다고 했소. 하느님은 유태 율법의 의미에 따라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했소."
  "성스런 랍비님, 전 당신 신발에 묻은 먼지만큼의 가치도 없습니다."
  "자 이런, 무슨 말씀이시오? 우린 모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식들이오. 보통의 유태인도 성인이 될 수 있소. 36명의 비밀의 성인도 평범한 사람들, 제화공, 재단사, 물장수 등이었다는 것이 확인됐소. 내 딸은 충동적이지만 마음은 착해요. 치렐은 열정적인 아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을 말하고 가난한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우주의 주님을 책망하기도 하죠. 우리가 어떻게 전지 전능한 하느님의 수단을 알겠소? 모든 것은 위로부터 정해진 것이오. 잠깐만 실례하겠소. 내 식구들을 불러들이겠소."
  랍비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맥스는 일어섰다. 그는 서가로 가서 성서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전부 라시 타입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뭐라고 써놓았지?"
  그는 읽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단지 제목 페이지에 나와 있는 러시아어로 된 검열관의 허가만 읽을 수가 있었다. 맥스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을 꺼내 들었다.
  "난 결코 학생은 될 수 없어."
  그는 발코니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이웃의 어중이떠중이들이 쑥덕공론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레이즐 코르크나 치렐과 관련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염? 바로 그 생각 때문에 그는 웃었다.
  (아마도 슈콜니코프의 죽은 자들이 무얼 해야 할지 말해 줄지도 모르지.)
  그는 부엌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를 낮춰서 서둘러 말하는 소리였다. 갑자기 그는 레이즐 코르크의 언니 세뇨라 샤예프스키가 그의 아내에 대해 알고 있고 그래서 그가 홀아비가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이미 부인이 있음에도 딴사람과 결혼하려 한 죄로 바르샤바에서도 체포될 수 있었다.
  "난 절대로 빠져 나을 수 없는 함정으로 내 자신을 몰아 넣고 있어!"
  문이 열렸다. 랍비가 앞에 서고 그 뒤를 따라 랍비의 아내와 치렐이 들어왔다 
  맥스는 랍비의 집을 나온 후 계단에 잠시 서 있었다. 랍비는 그에게 친숙한 사이에서 쓰는 호칭을 사용했었다. 랍비의 아내는 그에게 (마젤 토프(행운))를 빌어 주었다. 수염이 없기 때문에 약혼 계약은 연기되었다. 하지만 맥스는 곧 로스코바로 가서 수염이 자랄 때까지 거기서 기다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치렐뿐만 아니라 그 선량한 사람과 그의 아내까지도 바보로 만들고 있었다. 랍비의 아내 또한 랍비의 딸이었다. 맥스는 혼자 말했다.
  "한 번 죽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난 갈기갈기 찢어져 죽어야 해!"
  그는 거리를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를 돌려서 발코니에 있는 치렐을 보았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면서 머리를 흔들었고 마치 그에게 키스를 보내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사악한 하만도 내게 비하면 성인이지... 이런 행동 때문에 하느님은 바로 이 지상에서 벌주실 거야.)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마치 취한 것처럼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의 다리는 절뚝거렸고 보도 블록들은 그의 발 아래서 흔들거렸다. 여름이라 해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맥스는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슈콜니코프는 저녁에 만나 볼 것이다. (술집에 들어가서 정말로 취해 볼까? 호텔로 돌아갈까?).그는 위스키를 마시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혼란스런 생각들을 하며 호텔 방에 혼자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맥스는 행인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의 삶은 거짓과 사기로 얽혀 있는 그의 삶과는 달리 정직했다. 이런 삶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는 가방에 리볼버 권총을 지니고 있었다. 단지 그걸 그의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의 발은 저절로 그를 호텔로 데려가고 있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그래, 목요일이지.) 안식일에 그는 빨간 머리의 소녀 바샤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레이즐 코르크는 슈무엘 스메테나가 로즈로 떠날 때 그에게 전화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았다. 갈고리(맥스가 목을 매달려고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주위에 파리들이 무심하게 소리를 내며 원을 그리고 있었다. 갑자기 어떤 기쁨이 파리들을 사로잡은 것일까? 맥스는 궁금했다. 그잣은 일종의 파리의 춤일까 혹은 파리의 결혼식일까?
  열려진 창을 통해서 여름의 미풍이 나무와 잔디, 말똥, 그리고 밭의 냄새를 실어 오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수영하러 비스툴라에 갈지도 몰랐다. 맥스는 이전에 수영을 할 수 있었던 강의 수영장을 기억해 냈다. 그러나 지금은 목욕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는 또 두려워서 그와 여권과 옷과 지갑을 강둑에 남겨 둘 수가 없었다. (도둑이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아?) 
  그는 리볼버 권총을 꺼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런 파괴적인 무기를 갖고 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 리볼버 권총은 때때로 저절로 발사될 수도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무기를 소지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오래 생각하면 할수록 모든 상황이 다 나쁜 소식이라는 사실을 차치하고도 이날 하루가 쓸데없이 지나가 버릴 것이라는 것이 점점 더 명백해졌다. 그는 갈데도 없었고 할 일도 없었다. 몇 루블을 날릴 수 있는 카지노라도 하나 있었으면!
  맥스는 잠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몬테 카를로에서 수천, 수백만 프랑을 따는 것을 상상했다. 그는 룰렛 테이블, 도박대의 책임자, 노름하는 다른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다. 특히 다이아몬드로 치장한 구부정한 손가락을 뻗치면서 (난 전부 다 걸어요. 남편이 남겨 준 전 유산을 말이에요)라고 외치는 흰 머리의 여자를 상상해 보았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금동전을 쌓아 놓았다. (어떻게 저런 늙은 마녀가 저렇게 많은 돈을 들고 다닐 수가 있지? 맥스는 자문했다. (그리고 어떻게 남편은 저런 보물을 모았지? 손금을 읽는 데서 나오는 건 아닐 텐데...) 맥스는 흠칫 놀라서 잠에서 깨었고 부들부들 떨면서 벌떡 일어 났다.
  "내가 무슨 꿈을 꾸었지?"
  믹스는 뇌까렸다.
  그는 랍비에게 한 대담한 말, 랍비 아내의 경고와 조용한 비난, 그리고 그가 교육받지 못했고 람비 딸의 남편이 될 가치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암시와 치렐의 비통해 하는 표정을 떠올렸다. 이런 모든 것들 때문에 그는 입안이 씁쓸했다.
  (내가 왜 이럴 필요가 있지? 무슨 악마 같은 게임에 내가 말려든 것일까?)
  그는 어머니 말이 생각이 났다. (사람에겐 자기 자신이 가장 나쁜 적이다... 열 명의 적도 단 한 사람이 자신에게 하는 짓을 다 하지 못한다.)
  "자, (아듀) 바르샤바!" 
  맥스는 크게 말했다.
  "난 널 당장 떠난다."
  그는 자기 짐을 보았다.
  "내 눈이 향하는 대로 어디든 갈 거야. 난 첫 차를 타겠어!"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보니, 호텔 사무원과 바르샤바에서는 (멜로니크)라 부르는 중산 모자를 쓰고 체크 무늬양복을 입은 평범한 복장의 사내가 서 있었다.
  "언제 떠나십니까?"
  그가 물었다.
  "손님 방이 준비가 되도록 해야 하는데요."
  "떠난다니, 무슨 말이오?"
  놀라서 맥스가 물었다.
  "오늘 정오까지 떠나시기로 되어 있는데요." 
  "왜죠?"
  "아! 실수가 있었던 것 같군요." 
  호텔 사무원이 말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조사해 보기 시작했다. 중산 모자를 쓴 사람은 비굴하게 미소 지으며 윙크까지 하는 듯했다. 호텔 사무원이 말했다.
  "아래층에 내려가서 모든 걸 정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사과도 하지 않고 그는 문을 닫았다.
  "이게 뭐야? 날 여기서 쫓아내려 하는 거야?"
  맥스는 혼자 말했다. 며칠 동안 그는 호텔에서 그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호텔의 사환과 객실 여종업원들이 그의 방문을 계속 두드렸었고 맥스가 방에 있는 동안에도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어 열기까지 했었다. 그들은 작은 소리로 조롱하듯이 사과했었다. 어쩌면 누군가가 관계 당국에 그를 고발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무슨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어떤 금지 품목도 바르샤바에 가지고 오지 않았다.
  맥스는 방을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지하 세계와는 손을 끊었다. 하지만 부자, 귀족, 실업가 그리고 우아한 귀부인들의 세계에는 결코 진정으로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는 런던, 파리, 베를린 등의 모든 곳에서 의심스런 눈초리로 관찰되고 있음을 느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스페인어를 할 때 폴란드어 말투 때문에 그의 정체가 밝혀져 버렸다. 랍비의 아내는 거친 말로 그에게 쏘아붙였었다. 맥스는 더 나은 종류의 인간이 되어야만 하고, 더 배우고 더 세련되어지기에 절대 늦지 않았다고. 그녀는 그가 촌뜨기이며 치렐이 자살을 기도하는 등의 존경받지 못할 여자이기 때문에 그에게 딸을 준다는 것을 솔직하게 암시했다.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날 던져 버리고 싶은 건가?"
  문을 열어 보니 치렐이었다. 그는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밝은 색 정장을 입고 그가 사준 밀짚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우아해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녀가 랍비의 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백작 부인으로 보였다. 맥스는 기쁨과 부끄러움이 넘쳐흘렀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 그녀에 대한 것인가? 그녀와 함께 있기 위해서라면 내 마지막 그로센까지 너에게 바칠 거야!)그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들어와! 들어와!"
  그는 그녀에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치렐은 저항했다.
  "여기선 안 돼요!"
  그는 그녀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그녀에게 키스하기 시작했고 그때 그는 모자의 핀과 같이 뾰족한 것이 솟구침을 느꼈다. 그는 몸을 날려 무릎을 꿇고 그녀의 발을 꼭 쥐었다. 치렐은 웃으면서 그를 나무랐다.
  "일어나세요! 무슨 일이에요?"
  "치렐, 넌 나의 하느님이야!"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 돼요!"
  "내 인생은 네 것이야!"
  그는 일어나서 그녀를 팔로 안았다. 그는 그녀를 흔들며 목, 어깨, 소매 그리고 장갑 낀 손에 입을 맞추었다.
  (이제부터 그리고 영원히 나는 치렐만을 위하여 살 것이다. 내 재산의 4분의 3이 날아가더라도 나는 로셸과 이혼할 것이다.)
  치렐은 그의 팔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
  "오, 당신은 거친 분이시군요."
  "하느님이 직접 널 내게 보냈어."
  "전 모든 걸 다 말씀드리고 싶어요. 전화를 했지만 당신이 호텔에서 나갔다고 했어요."
  "무슨 미친 짓이지? 지금 당장 호텔 사무원에게 가서 혼을 내주겠어. 멍청이같으니라고!"
  "흥분하지 마세요! 제 어머니가 당신을 보러 왔다는 걸 아시면 절 산 채로 가죽을 벗길 거예요. 전 어머니께 의사를 보러간다고 했어요. 아버지를 아는 프랑켈 박사라는 분이 있어요. 그는 헤브루어로 ((하-제피라))에 글을 쓰고, 케마라를 아버지와 논하죠. 그는 우리한테서는 돈을 받지 않아요."
  "왜 의사에게 가야 하지?"
  "어머니는 제가 창백해 보인다고 했어요. 전 밤중에 일어나서는 더 이상 눈을 감지 못하는 버릇을 갖게 되었어요."
  "나와 함께라면 너는 잘 잘 거야."
  "오,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다니! 당신은 부끄러워하셔야 해요!"
  치렐은 목덜미까지 새빨개졌다.
  "왜 그렇게 무안해 하니? 남편과 아내는 같이 자는 거야."
  "제발!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지 마세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치렐은 애원하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중단했다.
  "아니오라면 아니오겠지. 하지만 우리 모두 세상에 어떻게 나왔지?"
  "맥스, 제 부탁 좀 들어주세요!"
  "그래, 지금부터 내 혀를 조심할게. 넌 순진한 처녀이고 난..." 
  "아무 말씀도 마세요. 저랑 함께 아래층으로 가요. 당신과 얘기하고 싶은 게 많아요."
  "우린 여기서 얘기할 수 있잖아."
  "아뇨, 맥스. 처녀가 호텔에 남자와 함께 있는 건 옳은 일이 아니예요."
  "하지만 우린 약혼했잖아."
  "특히 약혼자하고는 더 안 되죠."
  "글쎄, 난 이런 종교적인 형식에는 익숙해 있지 않아. 퐈리에서는 생활이 자유로워. 남자와 여자가 거리 한복판에서 입을 맞춘다고."
  "제발 나와 같이 아래층으로 가세요!"
  "그래, 좋아."
  그는 더 이상 치렐을 설득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고 모자를 썼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녀와 함께 호텔방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 속에 내재한 적인, 짓궂고 사악한 쪽의 흥미를 끌었고 그녀에 대한 욕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확 껴안았다. 치렐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 얼굴이 빨개져서는 그를 밀어내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더욱 파랗고 빛이 났다. 드레스를 입은 작은 랍비, 작은 메이즈자. 그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입을 맞추고 밖으로 나갔다.
  이 랍비 소녀는 그의 남성으로서의 욕망을 되살려 놓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것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맥스는 그런 미덕이 아직도 폴란드에 존재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었다.
  "시간이 얼마나 있지?"
  그가 물었다.
  "한두 시간뿐이에요. 함께 저녁은 먹을 수 있어요."
  모든 게 잘되어 가고 있었다. 맥스는 8시에 슈콜니코프에게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치렐을 그런 마술사에게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는 마차를 세우고 치렐 옆에 앉은 다음 오래 전부터 기억하고 있던 라지엔키 정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놀란 눈으로 그들을 힐끔거렸다. (무슨 일이지? 사람들이 랍비의 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일까?) 맥스는 사람들이 그가 아닌 치렐을 쳐다보는 것을 깨닫고 의아스러워 졌다.
  맥스는 랍비가 수염을 기르기를 원하는 한 적어도 2주일이라는 시간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때 쯤이면 그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그 몇 주 동안 그가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로셸에게 이혼장을 보내고 전 재산을 물려줄까? 치렐을 아르헨티나로 데려가서 실질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낼까? 격언에 뭐라고 했더라? (결과야 어찌 되든 기다려 보자.) 그러는 동안에는 이 멋진 여름날을 즐겨야 해,
  그는 치렐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더 이상 손을 빼지 않았다.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하느님께서 직접 널 내게로 보내 주셨음에 틀림없어."
  맥스는 치렐을 집으로 보낸 후, 이제 단 하나의 목적, 로셸에게서 자유로워져서 치렐과 결혼하는 것 하나밖에 없다고 맹세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레이즐 코르코에게 가지 않고 안식일에 빨간 머리의 바샤도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식당의 칸막이 좌석에서 치렐과 입을 맞추었고 할 수 있는 한 자신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치렐은 그녀의 이상에 대해 얘기했고 비록 유태 관습에 깊이 물들어 있지만 신앙심이 깊은 것은 아니라고 고백했다. 그녀는 다윈에 관한 책자도 읽은 적이 있으며 시나이 산에서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지 못했다는 강연도 들었고 칼 마르크스와 크로포트킨과 카우츠키가 누군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안식일에는 절대로 돼지고기를 먹거나 불을 피우지는 않을 것이다. 하느님이 금하기 때문에 아니라 습관과 부모에 대한 존경 때문이었다. 치렐은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결혼 후에 그녀는 부모와 같이 살거나 부모 곁에 있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녀는 삭발을 하거나 머리를 깎고 가발을 쓰며 종교 의식의 목욕탕에 갈 의향이 없었다. 치렐은 사회주의를 신봉하였다. 혁명은 착취, 광신 그리고 전쟁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만약 그녀에게 애들이 있으면 그녀는 그 애들을 현대식으로 키우며 학교에 보내고 방관자나 기생충이 아닌 필요한 사람으로 키울 것이다. 치렐은 새로운 질서가 생기고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한 러시아에 머물고 싶지 않다고 했다. 베를린이나 파리나 또는 런던으로 이사하는 데 대해 맥스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네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나, 내 귀여운 것."
  맥스는 대답했다.
  "거기서 우린 살 거야. 심지어 달 위에서도..."
  그리고 그는 그녀의 이마와 목과 입에 키스했다. 한 가지 그녀에게서 이루어 내지 못한 것은 그와 함에 호텔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당신은 나에 대한 (데레크 에레츠)를 스스로 잃으실 거예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맥스는 존경을 뜻하는 이 단어를 오랫동안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해외에서 살면서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잊어버렸었다. 그것은 그에게 로스코바와 (제이데-보베(할아버지-할머니))와 그의 선생 피셸을 생각나게 했다. 그녀는 이렇게 개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치렐의 말에는 아버지 랍비의 말과 같은 점이 있었다. 혁명, 군중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에 관한 그녀의 말은 모세5경에 나오는 시구들과 섞여 있었다. 그녀는 심지어 이디시어 연극에 나오는 노래도 그에게 불러 주었는데 그 노래는 (당신의 귀족적인 혈통을 던져 버리고 인간이 되어라)로 끝나고 있었다.
  라지엔키 정원에서 맥스는 식당을 발견하고는 그곳에 들어가 감자와 사워 밀크를 주문했다. 치렐은 유태식의 정갈한 냄비에서 요리된 것이 아니라고 감자를 먹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커피를 마시고 쿠키를 조금씩 뜯어먹었다. 2시간은 굉장히 빨리 지나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고무 바퀴를 단 마차인(굼카)를 초콜릿을 파는 가게 옆에 세워서 맥스는 치렐에게 캔디 한 상자를 사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10루블짜리 지폐를 주고 싶었지만 치렐은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결혼한 후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맥스는 전율했다. 이 어린 소녀는 그를 사랑하고 있고 그의 아내가 될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그래, 하지만 그건 사기와 악 위에 세워진, 도둑질한 사랑이었다.
  치렐과 헤어진 다음 그는 슈콜니코프의 강신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로 망설였다. 그가 치렐에게 슈콜니코프 얘기를 했더니 그녀도 그 악마의 마술사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물건이나 도난당한 보석을 찾기 위해, 도둑을 밝혀 내고 아내를 버린 남편의 정체를 검은 거울에 나타내기 위해, 그를 찾는다고 했다. 치렐은 자신이 아는 한 슈콜니코프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으며 그건 모두 미신이고 광신이며 환상이라고 했다. 죽은 사람들은 무덤 속에서 썩고 있을 뿐, 누구하고도 얘기하러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슈콜니코프가 몇 루블을 빼앗으려고 순진한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고 있을 것이라는 데는 맥스도 동의했다. 하지만 그는 오늘 저녁에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다. 아무리 여자 친구가 많고 또 어떤 모험을 시작한다 해도 아내가 없고 집이 없고 아이가 없는 날 저녁에는 흔히 혼자임을 발견하게 되는 법이다. 어떻게 슈콜니코프의 속임수가 극장에서나 카바레에서의 속임수보다 더 나쁘단 말인가? 그 마법사가 로셸에게 보내고 있는 텔레파시 메시지가 그녀의 자기력인가 뭔가 하는 것을 정말로 약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준비를 다 마치고 맥스는 마차를 손짓해 불러, 들루가 가로 가자고 했다. 뭔가 할 수 있는 한, 아무런 할 일 없이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낫다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는 철대문을 한 번 더 지났고, 프르제초드니아 가, 반코비 광장(은행은 이제 문을 닫았고 파수꾼이 밖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리마르스카 가와 장식 촛대와 둥근 지붕을 한 독일식 유태 예배당이 서 있는 틀로마키 가를 지났다. 옛날 맥스가 바르샤바에 살고 있었을 때 그는 바로 이 기독교화된 유태인 예배당에 들어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비단 모자를 쓴 교회지기가 그를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맥스는 교회지기를 지나쳐 가려 한 벌로 허리끈으로 채찍질까지 당했었다. 지금 교회에서는 결혼식을 축하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장식 촛대에서는 전구가 빛나고 있었다. 유태 학교 바로 앞 광장에는 마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르간 소리가 안에서 들려 왔다. 누군가 아직도 여자의 정직을 믿고 있다고 맥스는 비꼬인 생각을 했다. (우린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여자들 없이 이 세상은 가라앉고 말걸.)
  맥스는 날레브키 가와 들루가 가 아래쪽의 병기고라고 불리는 감옥의, 검은 문과 창살이 쳐진 창문을 보았다 빛이 안쪽에서 명멸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맥스는 바로 이 감옥에 갇히는 꿈을 반복해서 꾸었었다. 누군가 그를 모함했다. 그것은 위조 지폐, 여자 그리고 살인과 관계된 일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그런 꿈을 꾸고 난 후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더라도 결코 그를 바르샤바로 돌려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항상 자신을 안심시키곤 했었다. 자, 이제 그는 제 발로 돌아온 것이다. 만약 여기서 아차하면 그 꿈은 현실이 되고 말 것이다. 맥스는 폴란드의 속담을 기억하고 있었다. (교수형에 처해질 운명이면 익사하지는 않는다)라는.
  마차는 베르나르드 슈콜니코프 집에 멈추었고 맥스는 내렸다. 거리는 밤이 되니 낮보다 더 누추하고 우울해 보였다. 계단은 어두웠다. 맥스는 성냥을 켜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라드기름 냄새와 미끈미끈하고 역겨운 어떤 다른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문 뒤로부터 질식시킬 듯한 소음과 웅얼거림 그리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비록 지하 세계의 사람이었지만 절대로 이교도와 그들의 행동에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는 먹는 것을 좋아했지만-에사우의 자손들은 항상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지-돼지고기를 맛본 적은 없었다. 그는 (시핀사(유태인이 말하는 이교도 여자))와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그들을 사랑한 적은 없었다. 그는 심지어 이교도들과는 버젓한 토론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폭력을 피했고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금을 기부하고 나름의 방법대로 정의를 추구했다. 그는 그의 모든 죄악에 대해 정당화가 필요했다. 위험에 직면할 때마다 그는 즉시 하느님께 기도했다. 그는 슈콜니코프 집의 문을 두드렸다.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더 세게 두드렸다. 잠시 후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어두운 복도에 한 여자가 서 있었는데, 발바닥으로 술통을 굴리고, 불을 먹으며, 못 박힌 침대 위에 맨등으로 눕고, 말을 서서 타며, 곰과 춤추는 마녀를 연상케 해주는 여자였다. 여자는 외투, 바지, 스타킹 그리고 신까지 조화를 이루어 여자의 체형에 완벽하게 맞는 검은 옷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었다. 머리늘 단발이었다. 맥스는 마치 광채를 발하는 고양이 눈같이 빛나는 검은 눈동자를 보았다.
  맥스는 할말을 잊었다. 그는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 사람-뭐라고 말해야 하지?-죽은 사람을 불러오는 그 사람?"
  "슈콜니코프 씨."
  "그래요. 슈콜니코프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여자는 폴란드어로 물었다.
  "맥스, 맥스 바라밴더요."
  "절 따라오세요."
  여자는 살랑대는 소리도 없이 조용한 발걸음으로 움직였다. 마치 여자는 긴 복도를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했다. 잠시 후 여자는 맥스가 전에 슈콜니코프를 만났던 그 방으로 인도했다. 그곳은 상당히 캄캄했다. 약간 밝은 데서, 맥스는 앉아 있고 서 있는 남자와 여자들의 형상을 보았다. 맥스는 공포와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리볼버 권총을 가지고 왔어야 했어)라고 그는 생각했다. 슈콜니코프는 길고 검은 옷을 입고 그에게 다가와서 악수를 하며 말했다.
  "우린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소."
  "아직 8시도 안 되었군요."
  너무 일찍 온 데 대해 맥스가 사과했다. 그는 문을 열어 준 여자를 찾아 둘러보았지만 그녀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모든 속임수로 3루블을 빼앗아 가는 거야.)
  그는 자신에게 경고했다. 그는 조끼 주머니에 지폐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누군가 작은 테이블 옆의 의자를 가리켰고 모든 것이 침묵 속에서 느릿느릿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마치 고무창을 댄 신발을 신은 것처럼 조용히 걸어다녔고 서로서로에게 말없이 신호를 주었다. 나쁜 냄새를 몰아내기 위해 피워 둔 향냄새가 남아 있었다. 비록 맥스는 사람들이 속삭이는 것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폴란드어의 단어 몇 마디는 주워들었다.
  (이교도 유령들을 부르는 것일까?)
  맥스는 스스로에게 농담을 했다.
  (비록 가능하다 할지라도 아버지, 어머니가 여기 나타나시지는 않을 거야.)
  한 여자가 삐걱거리는 쉰 목소리로 폴란드어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곡조는 목사가 기도할 때 알아들을 수 없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연상시켰다. 언젠가는 이들이 날 기독교로 개종시킬 거라고 맥스는 생각했다. 우선 한 여자가 혼자 노래하고 나서 다음에 다른 사람들이 마치 죽음을 슬퍼하는 것처럼 울면서 길고 늘어진 음조로 같이 노래불렀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악몽 속에서 때때로 그를 공격하던 그런 우울이 갑자기 맥스에게 엄습해 왔다. 신들린 듯한 노래는 안식을 찾을 수 없는 무엇인 가를 슬퍼하고 있었다.
  "이런 노래는 정말 죽은 자를 무덤에서 불러내겠는걸."
  맥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가 아르투로의 이름을 들은 것으로 착각했을까? 그들은 기독교의 (알 몰레 라크밈(하느님 은총을 내리소서))을 그의 죽은 아들을 위해 노래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들이 아르투로에 대해 알고 있지? 슈콜니코프에게 아들에 대해서 얘기했었다는 것을 잊고 그는 궁금해 했다. 맥스의 모든 기관이 조용해지면서 긴장되었다. 이미 그와 뇌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 된 단어가 생각이 났다. (클렙시드라)였던가? (클렙시드라)가 뭐지? 어디서 그 단어가 사용되었던가-스페인어였던가? 그는 조롱하기 위해 여기 온 것이었는데 이젠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때 그에게 문을 열어 주었던 그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어깨 위로 검은 숄을 두른 것 외에는 아까와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에 앉았고 모두가 가장자리에 손가락들을 올려 놓았다. 한 여자가 맥스의 손을 잡아서 거기에다 올려 놓았다.
  "(레코(가볍게))."
  그녀가 그에게 속삭였다. 맥스는 테이블에게 질문을 한다는 사람들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로스코바에서는 그것을 가리키는 이름도 있었다- 테셸레)라고 하는. 그의 아버지는 못 대신 나무 쐐기로 조립된 테이블이 행하는 기적에 대해 얘기했었다. 로스코바의 랍비는, 그런 것은 주술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과 관련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 맥스 자신이 그런 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노래가 멈추었고 납과 같이 무거운 정적이 뒤를 이었다.
  맥스는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치 그것은 더 이상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힘을 얻은 것처럼 요동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들어올리고 있는 것일까? 모든 손들이 테이블 위에 있지 아래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저 테이블이 그의 손가락 밑에서 떨고 흔들릴 수 있을까? 때때로 그 테이블은 마치 날기라도 할 것처럼 일어섰다. 그들은 어떤 악의 마술을 행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테이블에게 질문을 던졌고 테이블은 대답을 했다-(예)를 뜻할 때는 한 번을 치고 (아니오)를 뜻할 때는 두 번을 쳤다. 어떻게 이 작은 테이블이 이 뚱뚱한 여자의 남편이 미국에서 돌아올 것인가를 알 수 있는가?
  (이건 모두 기만과 환영일 뿐이야!)
  맥스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슈콜너코프는 맥스에게 질문하고 싶은 게 있느냐고 물었다.
  "로셸은 나와 이혼할 것인가?"
  작은 테이블이 대답했다.
  "예." 
  "치렐은 내 아내가 될 것인가?"
  테이블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그리고는 두 번을 쳤다.
  "아니오." 
  "아버지는 살아 계신가?"
  "아니오." 
  "어머니는?"
  ·레이블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맥스는 더 이상 무얼 물어야 할지를 몰랐다. 하나가 죽은 다음 곧 다른 하나가 죽는 식으로 부모님 두 분은 다 이 세상을 떠나셨다. 왜 테이블은 아버지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면서 어머니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는 것일까? 나머지 사람들이 질문을 하려고 서둘렀다. 맥스는 테이블 위에 손을 얹는 것이 싫어져서 그의 의자를 뒤로 옮겼다.
  작은 테이블이 치워졌을 때 여자는 그녀의 가녀린 몸매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서 나오는 이상한 소리는 여자의 목소리도, 남자의 목소리도 아닌 두 가지가 혼합된 목소리였다. 그녀는 맥스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귀족들이 쓰는 폴란드어로 얘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고 이상하게 들리는 이름을 불러내었으며 죽은 사람으로부터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그녀가 불러낸 혼령들은 신호를 주었고, 장소와 날짜를 기억해 냈고, 그들이 지상을 떠난 후 그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보고했다. 갑자기 속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갑이나 석고로 만든 손 같은 무엇인가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바닥에 그릇이나 냄비 등이 있었는데 그 손 같은 것이 공기중에 떠올라 냄비 위로 헤엄쳐 가더니 그 안으로 잠겼다. 그러고는 다시 떠올라 반대 방향으로 옮겨 갔다. 맥스는 넋을 잃었다. 누구의 손인가? 어떻게 공중에 떠올라 있을 수 있는가?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았지만 손 이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소곤거림과 소리 죽인 한숨 소리를 들었다. 무엇인가 기적 같은 것이 그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그는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물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말 한마디도 입 밖으로 내놓기 전에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누군가 그의 팔을 팔꿈치로 슬쩍 찔렀다. 다른 기적들이 일어났다. 조그만 트럼펫이 어디선가 나타나서 한 가지 음률의 우는 듯한 음조로 양의 뿔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둡긴 했지만 트럼펫은 마치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만돌린이 가볍게 연주되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외쳤다.
  "아르투로가 여기 있어. 그는 당신과 얘기하고 싶어해..."
  나중에 맥스는 어떻게 해서 그 모든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 그에게 미지근한 물을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축축해졌다. 어떤 형상이 떠올랐다. 그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르투로가 그에게 폴란드어로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흥분해서 아르투로가 쓰던 말이 스페인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는 아르투로의 애원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 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아버지, 전 죽지 않았어요. 전 살아 있어요. 전 아버지 곁에 있어요... 아버지, 전 아버지가 겪으신 일들을 다 알고 있어요. 전 (제이데-보베)를 만났어요. 우린 같이 아버지를 위해 기도했어요... 전 아직도 아버지의 충직한 아들이에요... 그리고 아버지를 그리워해요. 우린 늘 아버지에 대해 얘기한답니다... 저 때문에 슬퍼하실 필요 없어요. 전 여기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해요. 어머니도 곧 여기 우리와 함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아버지는 이 지상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있어요. 기억하세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걸. 슈콜니코프 씨가 말하는 대로 다 하세요. 그는 우리 모두가 좋아해요. 그는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연결시켜 줘요. 용서하세요, 아버지. 전 가야 해요. 하지만 돌아올게요. 우리 식구가 모두 아버지께 안부 전하라고 했어요."
  형상은 사라졌다.
  "저건 아르투로야, 아르투로!"
  맥스의 가슴에서 무엇인가가 북받쳐 올랐다.
  "천상의 하느님이시여, 전 아들과 이야기했습니다. 로셸이 이걸 알기만 하여도 좋을 텐데!"
  맥스는 아르투로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맥스는 더 이상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꼬치꼬치 캐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취한 것 같았다. 그는 일어섰다. 다리가 절룩거렸다. 그리고 그는 잤다. 그가 의자를 만져서 앉았을 때 마치 의자 속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그는 비록 기절하지는 않았지만 힘이 없어 거의 실신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앞에서는 불꽃이 튀었다가 떠돌더니 다시 일어섰다가는 떨어졌다. 그는 마치 귀머거리가 된 것같이 느껴졌다. 그는 말소리를 들었지만 뜻이 통하지 않았다. 그는 의자가 무너지고, 그 의자와 같이 자신도 거름 더미나 심연 속으로 잠기면서 무너져 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나의 종말인가?)
  맥스는 자문했다.
  마치 어떤 힘이 그의 생각을 듣고 그에게 원기를 불어넣어 줄 것처럼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빨간 빛으로, 어린애가 소아마비에 걸렸을 때 눈이 머는 것을 막아 주기 위해 때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종류였다. 맥스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주술사 여자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는 두 남자와 함께 몇 명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웅얼거리는 소리와 신음 소리가 들렸다. 혼령인지, 어둠 속에 떠다니는 무언가가 손을 밀랍 속에 담가 자국을 남겼다. 여자는 그릇인지 냄비인지를 들고 다녔고 모두가 한 번씩 쳐다보았다. (이게 아르투로의 손일까?) 백스는 손수건을 꺼내어 땀으로 완전히 목욕을 한 얼굴을 닦았나. 셔츠도 젖어 있었다. 여자의 손목을 잡고 있던 두 남자는 이제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녀는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눈을 감고 있었는데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아 보였다. 그들은 그녀를 깨웠다. 그녀는 잠속에서 외치고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서늘한 땀방울이 맥스의 등뼈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땀에 젖었고, 허약해졌으며 공허해졌다. 그는 그런 자신의 몸 상태에 놀라서 앉아 있었다.
  (로셸이 여기 있기만 해도!)
  맥스의 마음의 목소리가 울부짖었다. 그는 그녀와 이혼하고 싶었지만 오늘 저녁 그가 겪었던 만족감만큼은 그녀와 공유하고 싶었다. 그는 아르투로를 보았고 그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3루블은 충분치 않다고 맥스는 결정을 내렸다. (난 10루블을 주겠어.) 맥스는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젖은 지폐를 만지작거렸다. 셔츠 바깥으로 땀이 흘러 나와서 조끼 안감을 통해서도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맥스는 슈콜니코프가 영매를 회복시키려고 애쓰는 소리를 들었다.
  "일어나, 테레사. 일어나... 테레사!"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몸을 떨더니 깨어났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공포에 질린 듯했다. 한 여자가 그녀를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누군가 등유 램프와 차인지 커피인지를 한잔 들고 들어왔다. 그 빛으로 그는 작은 테이블, 밀랍 냄비 그러고 거기 모인 사람들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는 방안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듯 보였으나 단지 여자 다섯 명과 남자 세 명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유령이거나 죽은 사람의 영혼이었던가? 그는 의심스러워하며 이곳에 왔었지만 이제 그의 의심은 사라져 버렸다. 그는 기적을 목격했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나타나서 말을 걸었다. 그는 아르투로의 형체를 보았고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맥스는 구석에 있는 슈콜니코프를 불러 10루블을 주었다. 슈콜니코프는 지폐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그의 주머니에 받아 넣었다. 맥스는 테레사라는 여자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당신의 여동생인가요?"
  맥스가 물었다. 슈콜니코프는 우물거렸다.
  "그래요. 내 동생이오." 
  "여동생하고 말해도 될까요?"
  "오늘은 안 됩니다. 내 여동생은 강신 때문에 약해져 있소. 거의 죽은 상태나 다름없소."
  모여든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떠나도 좋다는 허락 없이 성지에서 나가는 것처럼 떠났는데, 로스코바에서 욤 키푸르 (유태교에서 말하는 속죄의 날) 날의 콜 니드레(욤 키푸르 날 저녁에 올리는 기도) 후 유태인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것과 똑같은 식이었다. 맥스는 그와 슈콜니코프만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슈콜니코프는 좀 작아 보이는 긴 외투를 입고, 커튼이 쳐진 창분 옆에 서서, 마술사처럼 얼어붙은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흐트러진 눈썹으로 반쯤 덮여 있었다. 맥스는 공포에 횝싸였다. 그는 어둡고 길고 꼬부라진 계단으로 3층이나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내 아들이었소?"
  그가 묻자 슈콜니코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투로는 폴란드어가 아닌 스페인어를 했었소." 
  "그들은 영매의 말을 사용하오. 그들은 영매의 혀와 장기들을 사용하는 것이오."
  "내게 도움이 될까요?"
  "그렇소. 시간이 지나면."
  "언제 다시 올까요?"
  "월요일. 아니, 화요일."
  "어떻게 여기를 나가죠?"
  맥스가 물었다.
  "오시오. 데려다 드리리다."
  "몇 마디 당신 여동생에게 하고 싶은데요."
  "오늘은 안 돼요."
  슈콜니코프는 그를 긴 북도로 이끌었다. 그는 열려 있는 문 옆에 섰고 맥스는 느린 걸음으로, 오랫동안 아파서 걷는 법을 거의 잊어버린 사람처럼 서툴게 계단을 내려왔다. 그의 무릎이 밑에서 조여들었다. 계단은 그에게 너무 높고 그 사이사이는 너무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는 노인처럼 난간을 잡고 내려 왔다.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미풍이 불어왔다. 들루가 가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한밤중인 것처럼 텅 빈 채 그의 앞에 뻗어 있었다. 전차도 마차도 지나가지 않았다. 그는 몇 년 동안 감옥이나 병원에 감금되어 있다가 나온 사람처럼 노쇠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텅 빈 보도를 혼자 걸었다. 한 순간 맥스는 그가 어디에 있으며 무얼 하고 있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는 멈추어 섰다. 그러자 겨우 기억이 났다.
  (그래. 난 여기 바르샤바에 있다. 브리스톨 호텔에 머물고 있다. 랍비의 딸 치렐과 슈무엘 스메테나의 정부 레이즐 코르크와 휘말리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호텔까지는 어떻게 갈 것인가?)
  맥스는 누군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었다. 한 남자가 길을 가르쳐 주었다. 코지아 가와 포드발레 가가 만나는 곳에서는 뒷골목에서 느낄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언젠가 난 여기서 죽음을 당할지도 몰라!) 맥스는 속으로 외쳤다.
  널찍하게 자리잡은 가스등은 엷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래된 집에서 원긴왕성하게 나오는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스툴라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맥스는 다시 한번 멈추어 섰다. (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묻혀 있는 아르투로가 바르샤바에 있는 아파트에 나타나야만 하는 것일까? 언제 그애가 폴란드어를 배웠지?) 그건 모두 사기, 사기였다. 한 창녀가 그를 유혹했다.
  "우리 갈까요?"
  "아니, 아가씨."
  그렇게 말하고 그는 그녀에게 10그로센을 주었다.

    4
  랍비는 안식일 저녁 식사에 맥스를 초대했다.
  그래서 맥스는 랍비의 가족을 위하여 온갖 맛있는 음식을 다 샀다. 유태식의 정갈한 포도주, 랍비가 확인한 정갈한 훈제 연어, 저녁 식사 후 여자들이 즐겨 마시는 달콤한 리큐어, 치렐을 위한 초콜릿 한 상자(물론 다 유태교 규정에 맞는 정갈한 음식이었다), 그리고 꽃다발 하나. 그는 촛불을 켜기 두 시간 전에 도착했다. 크로치말나 가의 사람들은 선물 상자와 꽃을 한아름 안고 마차에서 내리는 맥스를 놀란 눈으로 바라다보았다. 그는 천천히 계단을 걸어 올라갈 때 집 안 곳곳에서 고기, 양파, 파슬리, 갓구운 효모 케이크 냄새가 풍겨 왔다. 그가 랍비의 방으로 들어가자, 랍비의 아내는 깜짝 놀라 얼굴을 붉히며 헝클어진 머리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손뼉을 치면서 외쳤다.
  "치렐, 이리 와봐!" 
  치렐은 안식일에 먹는 스튜 (촐렌트) 냄비를 리본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낡은 셔츠를 북북 찢어 리본을 만들어 포장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고는 촐렌트 냄비를 덮고 있는 종이에다 집과 아파트 주소를 써넣으면서 소리쳤다.
  "엄마, 이것 보세요. 이분이 얼마나 많이 가져 오셨는지를!" 
  "정말이구나. 우린 이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은데. 넌 부럼 축제(3월 1일에 치르는 유태인의 연례축제)엔 하느님의 도움으로 선물을 보낼 수 있겠구나." 
  랍비의 아내가 항의하듯 말했다.
  "그때까진 아직 멀었죠." 
  맥스가 말했다.
  "이건 뭐죠, 유태식의 정갈한 훈제 연어? 누가 훈제 연어를 먹죠? 그리고 리큐어는 무엇에 필요하죠? 여기는 이걸 마시는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꽃... 이 꽃으로 무얼 하죠?"
  그녀가 말했다.
  "꽃이 싱싱하게 오래가도록 물에 담가 놓겠어요."
  치렐이 대답했다 
  "그건 이교도식이야. 유태인들은 꽃을 꽃아 두지 않는단다."
  "꽃 또한 유태식의 정갈한 것이 아닌가요?"
  "아니야. 그건 돈을 갖다 버리는 거란다."
  "이 건 뭐죠?"
  치렐이 외쳤다.
  "오, 초콜릿이로군요! 이 상자를 봐요. 최소한 2루블은 들었을 거예요." 
  "치렐, 그건 너를 위한 거야!"
  "너무 고마워요. 하지만 돈을 이렇게 많이 쓰시다니!"
  치렐은 곧 빵집으로 배달되어야 할 (촐렌트)를 살펴보러 나갔다 맥스는 랍비를 찾아보았지만 그는 목욕 의식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부엌에서는 생선이며 닭고기 수프, 홍당무요리 그리고 랍비의 아내가 건포도에서 증류한 포도주 등 여러가지가 뒤섞인 냄새가 스며 나왔다. 맥스는 기도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교구 신도들은 안식일 아침에 기도할 것이다. 테이블 위에는 은촛대 2개, 황동촛대 4개, 2개의 할라빵이 수놓은 천으로 덮여 있었다. 또 진주모 손잡이를 한 할라칼과 오래 되고 움푹 파인 (키두시) 컵과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안식일에 쓰기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맥스는 앞뒤로 왔다갔다하면서 서가에서 성서를 한 권 빼내 들었다가 곧 도로 넣었다. 그는 성궤로 다가가서 커튼을 열고 틈만 보이게 문을 조금 열었다. 적갈색 덮개를 한 유태 율법 두루마리 하나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고 그 위로 대사제의 가슴에 다는 네모난 천과 방향침이 걸려 있었다. 성궤에서는 시트론 과일, 밀랍 그리고 뭔지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들이 뒤섞인 냄새가 났다.
  맥스는 성궤를 열거나 그런 신성한 곳엔 손대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제 그는 바로 그 손을 요술을 행하는 강신 테이블에 올려 놓아 손을 더럽혔던 것이다. 그러나 성스런 책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이제는 기분이 좋았다. 그의 영혼은 성스러운 공기를 호흡함으로써 새로워졌다. 랍비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길은 곧게 난 길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는 행복하고 저 세상에서는 천국에 있을 것이다. )
  그는 자기가 여기 속해 있다고 느끼면서 발코니로 나갔다. 거리의 구석구석에서는 안식일 준비가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빵집 사람들은 롤빵이 아닌 할라, (슈트리출(얇게 썬 흰빵)) 그리고 케이크를 운반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젖은 수염과 귀밑머리를 드러내 놓은 채 얼굴이 빨갛게 되어 목욕 의식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가게의 반쪽 문들이 닫혀지고 있었다. 열려진 창문을 통해서 남자나 여자가 녹은 밀랍에 초를 고정시키는 모습이며 여자아이들이 빵집으로 (촐렌트)를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맥스는 15번지 쪽을 보다가 빵집 마누라 에스터를 곧 알아 보았다. 그들의 만남은 너무나 비참하게 끝이 났었다. 그녀는 대문 옆 긴 의자에 앉아 저울에 커다란 할라빵을 달아 보고 있었다. 도둑과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자들로 가득 찬 광장에는 안식일 전야의 평화가 내려앉아 있었다.
  맥스는 아르헨티나에서는 거의 안식일을 잊고 지냈다. 토요일이면 늘 로셸과 그녀의 하녀는 안뜰에서 빨래를 다렸다. 여자들이 다리미질을 할 동안 아르투로와 맥스는 당구를 쳤다. 하지만 이곳 바르샤바에서는 안식일이 휴일로 엄격히 지켜지고 있었다.
  그때 랍비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맥스는 인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랄비의 수염은 젖어 있었다. 그는 이미 옷장에서 공단 외투와 모피로 테를 두른 모자를 꺼내 들고 있었다. 그는 맥스에게 고개를 끄덕했지만 너무 흥분해 있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듯했다.
  가발을 흐트러뜨린 채로 랍비의 아내가 달려 들어왔다.
  "하느님,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오늘 안식일을 모독할 것 같아요." 
  "일몰까지는 아직 30분이나 남아 있소."
  랍비가 그녀를 위로했다.
  "아, 이를 어쩌지! 벌써 촛불을 켤 시간이야!"
  람비의 아내는 다시 달려나갔다.
  맥스는 랍비, 이첼 그리고 모이셀과 함께 노이슈타터 기도실로 들어갔다. 이첼이 작은 우단 모자 아래로 불처럼 빨간 귀밑 머리가 살짝 나와 있었다. 여섯 살 난 모이셀은 금발의 귀밑머리와 커다란 파란 눈을 하고 있었다. 두 어런이가 다 작은 기도책을 들고 있었다. 맥스는 애들을 위해 과자와 부럼을 가지고 왔었다. 아이들은 벌써 이 (멋쟁이)가 치렐의 약흔자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호기심과 의심 그리고 어렴풋한 애정을 가지고 그를 쳐다보았다.
  노이슈타터 기도실에는 초와 가스 램프가 타오르고 있었다. 공단 외투를 입은 하시드교도들이 머리에 모피로 테를 두른 모자를 쓰고 아가(구약 중의 한 편)를 외우면서 무리를 지어 돌고 있었다. 랍비가 현대화된 유태인을 데려온 것을 보고서 사람들은 인사를 하려고 그에게 다가왔다.
  레프(존경스런 사람 앞에 붙는 경칭) 게출이 가장 먼저 인사를 했다. 그는 드문드문 난 흰 수염에 터부룩한 흰 귀띨머리를 한 좁은 얼굴의 사람으로 그리스 정교의 긴 공단 외투와 신발과 양말을 신고 있었다.
  "어디서 오셨소?"
  그가 물었다.
  맥스는 갑자기 목이 메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입니다."
  "어떤 나라인가요?"
  "미국(아메리카)에 있습니다."
  "뉴욕요?"
  "아닙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뉴욕까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바르샤바까지만큼이나 멀지요."
  남자들은 어깨를 으쓱했다.
  레프 케출이 또 물었다.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
  "친척들을 만나 보러 왔습니다."
  "랍비에게로?"
  "제 친척들은 로스코바에 있습니다."
  "자, 그럼..."
  신도들은 다시 아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얼마 안 있어 한 하시드교 신도가 (감사를 주소서)라는 기도를 하기 위해 교단으로 올라갔다.
  맥스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대단히 낯설면서도 매우 친숙했다. 비록 의미는 모르지만 가락과 가사는 알 수 있었다.
  "요르다이 하욤 보니요이스 오이사이 밀로코 비마임 라빔(배를 타고 바다로 가는 자들은 광대한 바다에서 그들의 일을 하네)... 바이차쿠 엘 하셈 바차르 로헴 우밈추코이사이헴(그리고 그들은 고통 속에서 하느님께 외쳤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재난에서 구해 주셨네)."
  그 다음에 그들은 (레쿠 네라네노(주를 찬양하여 노래부르세))를 외웠으며 기도 인도자가 (레코 도이디(내 사랑 신부에게로 가세))를 불렀다. 그들이 (보이 베숄렘(평화로이 오다))시구를 암송했을 때는 모두가 서쪽 벽으로 몸을 돌렸다 
  기도 후에 남자들은 맥스에게 와서 좋은 안식일이 되라고 인사했다.
  (이봐, 난 여기선 이방인이 아니야!)
  그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생애 내내 그는 그곳이 호텔이건, 여름 별장이건, 극장이건, 카지노이건 어디에서나 이방인이라고 느껴 왔다. 아르헨티나에서 로시 하샤나와 욤 키푸르 때 동네 유태인 교회당의 표를 샀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곳은 냉정한 비하시드교 교회였고 어린아이들은 서로를 부를 때 이미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번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스페인-포르투갈계 유태인 교회를 우연히 발견했었는데 거기선 사람들이 라디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랬었는데 이제 와서 그는 갑자기 다시 로스코바에 있는것과 똑같은 예배당에 와 있는 것이었다.
  여기 바르샤바에서는 유태인들이 그에게 인사하고,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는지를 물어 보는 것이었다. 교구의 하급 관리가 물었다.
  "이름이 뭐죠?"
  "맥스, 아니, 모르드케요."
  "부친께서는 뭐라고 불리셨지요?"
  "아브라함 나탄."
  "당신은 어느쪽이죠, 코헨족, 레비트족, 이스라엘족?"
  맥스는 당황해서 말없이 서 있었다. 그는 그런 말들이 기억은 났지만 의미를 잊어버린 지 이미 오래였다.
  교회의 하급 관리가 다시 물었다.
  "부친은 성직자같이 감사 기도를 드리셨나요?"
  "감사 기도요? 아니오."
  "(코하님)의 손을 씻으셨나요?"
  "손을 씻었냐고요? 아니오."
  "그렇다면 당신은 이스라엘족이오. 내일 유태 율법 기도회에 당신을 부르겠소."
  맥스는 몇 마디를 더듬거렸다.
  "감사 기도는 기억을 못해요."
  "오? 랍비님께서 기도책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주실 겁니다."
  그리고 그는 돌아서서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드케,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치렐의 아버지가 맡했다.
  "유태인은 항상 회개할 수 있소. (회개를 하였더니 나아 있더라)라고 선지자가 말씀하셨소. 때문에 우리에겐 회개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져 있소. 심지어 저승에서도 회개는 통하죠."
  "아르헨티나는 기독교 국가이죠."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맥스가 랍비와 함께 돌아왔을 때 아파트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깨끗하게 정돈해 놓은 방에는 초가 타고 있었고, 랍비의 아내와 치렐은 안식일 옷을 입고 있었다. 랍비의 아내는 안식일 가발을 쓰고 아라베스크 무늬의 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치렐은 흰 블라우스와 폭이 좁은 까만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랄비는 (숄렘 알레이켐)과 기도문 (에이셰스 카옐(용기 있는 여인))을 노래했다. 그는 안식일 (키두시)를 선언하고 맥스에게 건포도 포도주를 마시라고 주었다. 맥스는 다른 사람들이 하듯 꼭 같이 양귀비 씨가 덮인 할라빵 위에 대고 축원을 했다. 게필티 생선(유태 요리), 쌀을 넣은 닭고기 수프. 고기 그리고 홍당무 요리 등 모든 것이 집에서 만든 음식 맛을 지니고 있었다. 음식이 나을 때마다 랍비는 안식일의 노래를 한고 남자아이들이 따라 했다.
  모녀는 테이블 끝에 앉았다. 치렐은 계속 맥스를 쳐다보았다. 때로 그녀는 미소 지었고 때로는 심각해 보였으며, 이따금 그에게 눈을 찡긋하거나 머리를 끄덕이기도 했다.
  랍비의 아내는 화난 듯이 그를 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랍비는 친숙한 사이에서 쓰는 2인칭으로 맥스에게 얘기했지만 랍비의 아내는 계속 경칭을 사용했다. 축도를 한 다음, 람비는 먼 나라에 대해서 물어 보기 시작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도 랍비가 있나요? 그곳 랍비도 수염과 귀밑머리를 기르나요? 음, 그리고 런던에서는 어떤가요? 그리고 파리는? 서재와 하시드교 예배당과 유태 율법 학교는 있는지...?"
  맥스는 정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할지 몰랐다. 그때 뉴욕에 유태 율법 학교가 있는 게 생각이 났다.
  랍비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코츠커 랍비가 (유태 율법은 방황한다...)라고 했소,"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목욕 의식이 있습니까?"
  랍비의 아내가 물었다.
  "하, 모르겠는데요."
  "그러면 모든 어린애들이 서자이지요."
  랍비가 한참 생각한 끝에 말했다.
  "종교 의식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여자에게서 난 아들도 서자는 아니오. 거기에도 아마 목욕 의식은 있을 거요. 유태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목욕 의식이 있소."
  "그렇습니다, 랍비님.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부가 들어온다고 해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같은 곳으론 딸을 보내지 않겠어요."
  랍비의 아내가 말했다.
  "우린 여기에서 살 겁니다."
  "유태인 집의 딸은 순수 혈통의 법칙을 지켜야만 하죠."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겠습니다. 당신의 따님은 내겐 성스러운 존재입니다."
  랍비는 맥스에게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브리스톨 호텔까지는 멀어요. 당신이 물건을 가지고 다녀도 괜찮은지를 누가 알겠습니까? (에이레프)-안식일에 물건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지역을 표시하는 것 말입니다-를 연결하는 줄이 흔히 잘 떨어져 나가니까요." 
  "그럼 난 뭘 가지고 다니죠?"
  "당신의 종교 의식용 숄을 가지고 와야 할 거요."
  맥스는 입 안 가득 쓴맛을 느꼈다...
  랍비의 아내는 놀리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숄이 없는 게 분명해요."
  랄비는 놀란 듯했다.
  "당신은 숄과 성궤가 없단 말이오?"
  "교회에 들어갈 때 빌려서 하죠."
  맥스는 이렇게 자신을 정당화시켰다. 그리고 얼마나 쉽게 함정에서 빠져 나왔는지 그 스스로도 꽤 놀랐다.
  랄비는 그의 (키두시)컵을 밀쳐 놓았다.
  "그게 바로 유태인다움을 멀리할 때 일어나는 일이오."
  그는 자기 자신과 맥스 둘 다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유태 율법을 하루 떠나 있으면 네 자신을 이틀 버리는 것이 된다)라는 말이 있죠. 유태 율법이 없으면 뭐가 있겠습니까? 유태 율법이 없으면 우린 모두-제발 하느님, 그런 일이 없기를-버려진 존재들입니다. 만약 하느님의 도움으로 내 사위가 되면 당신은 유태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거요..."
  "랍비님, 심지어 불속으로 뛰어들라고 해도 당신이 말하는 것이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
  "그런 일이 없기를! 유태인은 오직 자신이 우상 숭배, 살인, 성적 패륜에 관련되도록 강요당했을 때만 생명을 희생시킬 수 있지요. 하느님, 그런 일이 없기를. 유태 율법은 생명의 율법이에요. 게마라에 이르기를 (유태 율법의 말씀에 따라 살며 그 말씀에 따라 죽지 말 것이니라)라고 하였소. 사람은 이 가르침과 함께 살아야 하오. 유태 율법은 생명의 원천이오."
  "그렇습니다, 성스런 랍비님."
  "아버지, 그에게 너무 많이 강의하지 마세요. 그는 유태인이지 이교도가 아니에요."
  갑자기 치렐이 외쳤다. 랍비는 엄한 눈길로 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단다."
  안식일 (촐렌트)를 먹고 난 후 맥스는 랍비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와 시에플라 가로 걸어갔다. 치렐이 한두 시간 정도 빠져 나을 수 있다고 암시를 주었지만 맥스는 친척을 만나야 한다며 거절했다. 3시에 그는 레이즐이 소개시켜 주었던 소녀 바샤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가 랍비의 집을 떠난 것은 2시 15분이었다. 거리에는 (촐렌트), 감자 푸딩, 그리고 기름 바른 양파 냄새가 났다. 신앙심 깊은 사람들은 모두 식사 후에 낮잠을 자고 있었지만 젊은 사람들, 짧은 옷을 입은 남자들은 밖으로 나와 (현대판) 여자들과 팔짱을 끼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맥스는 사람들이 죄를 씻기 위해 호숫가로 걸어가던 시절의 로스코바에서의 로시 하샤나가 연상되었다.
  모자를 쓰고 빳빳한 깃과 가슴판이 달린 새 양복을 입은 멋쟁이들은 깨끗한 구두를 신고 있었고, 색깔 있는 넥타이를 매었으며 안식일의 지팡이를 들고 다니고 있었다. 여자들에게는 새로운 스타일이 유행이었다. 치마폭은 너무 좁고 짧아 종종걸음을 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름이었지만 크로치말나 가의 우아한 여인들은 어깨 위로 모피를 두르고 있었다. 모자는 나무로 된 체리, 자두, 포도, 심지어는 타조 깃으로도 장식되어 있었다. 엉덩이에 무언가를 잔뜩 채워 넣고 작은 베개로 가슴을 크게 한 여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가게는 모두 굳게 닫혀 있었지만 맥스는 안식일에도 문을 여는 작은 찻집 (차이네스)를 기억해 냈다. 또한 과자를 살 수 있는 제과점도, 맥주를 살 수 있는 술집도 있었다-모두 외상으로. 안식일을 경축하는 사교 모임인 (하느님의 카자흐)가 염탐꾼들을 배치해 놓은 크로치말나 가, 그노이나 가 그 밖에 몇몇 거리를 벗어나기만 하면 마음내키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디시어 극장에 갔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일루전에 가서 영화를 보거나 색소니 정원에 갔다.
  3시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으므로 맥스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젊은 남자들은 중산모나 밀짚 모자를 쓰고 있었다. 가끔 긴 머리 위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어깨에는 망토를 두르고 목에는 넥타이 대신 리본을 단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풍은 책을 읽고, 연주회나 모임에 가고, 어떻게 인류를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느냐에 대해 토론하는 사회주의자나 인텔리겐치아의 패션이었다. 맥스는 또한 뚜쟁이들과 눈에 띄게 화려하고 밝은 색깔의 복장을 한 창녀들도 알아보았다. 창녀들은 큰소리로 웃으면서 호박씨를 씹어 먹고 있었다. 가짜 보석을 덕지덕지 걸친 그녀들의 몸에서는 싸구려 향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문간에서는 여자들이 어린애에게 젖을 물린 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시에플라 가와 크로치말나 가 사이에 볼리너 연대가 주둔했던 병영이 있었다. 맥스가 바샤를 만나기로 되어 있는 시에플라 가의 왼쪽은 경찰관 숙소였고 그 앞 보초소 근처에는 경호원이 서 있었다. 넓은 마당에서는 아직 배치받지 못한 장교들이 사병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그 주변에 구경하느라고 모여서 있는 아이들을 사병들이 내쫓았다 사병들은 짚 인형을 찌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들은 총검을 뻗치고 달려와서 짚으로 만든 인형의 쓸개를 꿰뚫는 것이었다.
  3시 10분인데도 바샤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마음을 바꾼 것일까? 맥스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에게는 안식일에 읽을 수 있는 유태인 신문조차 없었다.
  맥스는 금요일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심지어 만평과 줄거리가 어떤지도 모르는 연재 소설까지 다 읽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페테르스부르크였으며 베일을 쓴 귀부인과 살인마 남작과 시골에서 대도시로 온 어린 고아 소녀가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맥스는 이러한 작가들이 보통 어디서 소재를 구하는지 궁금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 쓰는 것일까 아니면 이야기를 꾸며 내는 재주가 있는 것일까? 이 소설의 서스펜스에 이미 그는 빨려 들었다. 마침내 그는 올가가 누구인지, 왜 그녀는 두터운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지 알고 싶어 다음 회를 기대하게 되었다.
  "음, 그 부엌데기 하녀가 날 바람맞혔군."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면 난 무얼 하지? 영화 보러 갈까? 정원에 혼자 가서 무엇이라도 타볼까?"
  그의 시계는 벌써 3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 5분만 더 있겠어!)
  맥스는 결심했다.
  (포톡키 백작 부인이라도 30분 이상은 안 기다려 하물며 크로치말나 가의 식모는 말할 것도 없지.)
  속으로 바샤를 저주하면서 맥스는 폴란드 총독이 되어서 그녀에게 포비아크 감옥의 여자 수용소로 가라고 명령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녀를 교수형에 처하는 것은 어떨까? 맥스 바라밴더는 장난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어야지.
  (난 그냥 치렐에게 돌아가야겠어. 발코니에 그녀가 나와 앉아 있으면 내려오라고 신호를 해야지.)
  맥스는 지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짝을 찾아 어떻든 안정이 되어 있었다. 맥스, 그만이 많은 여자들과 같이 있음에도 여전히 혼자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그건 저주이거나-슈콜니코프가 뭐라고 했더라?-최면이었다. 로셸이 텔레파시로 그에게 마술을 씌운 것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바샤에게 맥스와 만나지 말도록 메시지를 보냈을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 순간 맥스는 바샤가 크로치말나 가에서 이리로 뛰어 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노란 드레스를 입고 빨간 머리 위에는 꽃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불쌍한 시골뜨기 같았으며 조금 겁먹은 듯이 보였다. 맥스도 이내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바샤!"
  바샤는 숨을 몰아 쉬며 말했다.
  "아직 여기 계세요? 지금쯤 선생님께선 가버렸을 줄 알았어요!" 
  "왜 이렇게 늦었지?"
  소녀는 숨을 돌리겠다는 시늉을 했다.
  "안식일에는 주인집에서 절대로 차를 사러 날 내보내지 않아요. 주인집 영감은 안식일에는 차를 마시지 않거든요. 안식일에는 도대체 누가 무얼 요리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게 이유죠. 그런데 오늘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졌는지 차를 원했어요. 할 수 없잖아요? 엄격하게 유태식으로 정결한 차를 파는 슈무엘 말라크 집에 차를 사러 나갔죠. 거기엔 사람들이 대단히 많이 몰려 있었어요. 물을 끓이고 찻잔 따위를 다 테이블에 나르고 옷을 입었을 때에는 3시 15된이었어요. 전 다리가 부러져라 빨리 달렸어요. 전 굽이 높은 구두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남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궁금해요. 전 심장마비를 일으킬 뻔했어요. 선생님이 아직 여기 계신 걸 하느님께 감사드려요. 정말로 사과드립니다. 선생님도 누군가의 하녀라면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멀리 보내 버리죠. 그뿐 인가요? 일한 기간만큼 돈도 주지 않아요." 
  "난 이해해, 이해하고말고. 가슴에 새겨 두지 마.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넌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하녀가 아닌 귀부인이 될 거야." 
  "늙은 여주인은 제가 왜 들루가 가에 가며 왜 그렇게 옷을 차려 입는지를 묻기 시작했어요. 자기는 갖가지 싸구려 장신구로 치장하면서도 제가 얼굴 씻는 것마저도 시샘을 해요." 
  "너는 예쁘고 그 여자는 못생겼기 때문에 시샘하는 거야." 
  "어떻게 아셨어요? 그녀는 술통만큼이나 둥글어요. 여름마다 팔레니츠에 가서는 30파운드를 더 늘려서 오죠. 이번 여름에는 시에초시넥에 가는데 3주 후예요." 
  "넌 집에 있을 거니?"
  "딴 게 뭐 있나요? 절 데려갈 거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너한테 가마." 
  바샤는 잠시 생각했다.
  "그르지보바스카 가로 가요. 크로치말나 가는 너무 작은 마을 같아요. 사람들이 곧 우리들에 대해서 수군대기 시작할 거예요."
  "마차를 타지."
  "안식일에요? 안 돼요."
  "아르헨티나에 가고 싶으면 그렇게 신앙심이 깊으면 안 돼."
  "그건 다른 이야기죠..."
  이 같은 소녀에게 매달린다고 생각하니 이상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오늘 오지 않았다면 무척 허망했을 거라는 것을, 그는 그녀와 그르지보바스카 가와 크롤레바스카 가까지 걸었다.
  "어디로 가죠?"
  바샤가 물었다.
  "너 배고프지 않니?"
  "배고프다고요? (촐렌트)를 먹고 나서도요?"
  "어쩌면 커피 한잔쯤은 하고 싶을지도 모르지."
  "안식일에 커피를요? 방금 고기를 먹었는데요."
  (이런 바보가 어디 있담? 창녀가 되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가고 싶어하면서 고기 먹은 후에 유제품은 두려워 못 먹다니.)
  그녀는 레이즐 코르크가 그녀에게서 무얼 원하는지 이해하고 있지 못함이 분명했다. 그녀는 순진하기만 한 바보였다.
  "내가 묵는 곳으로 와. 모든 이야기를 다 해줄게."
  "어디에 묵고 계시죠?"
  "브리스톨 호텔에."
  바샤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날 들여보내 줄 거라고 생각하세요?"
  "나와 함께 가면 넌 나의 손님이지."
  "거기서 무얼 할 건데요?"
  "친구처럼 얘기하지."
  "음, 좋아요."
  얼마간 망설인 다음 바샤가 말했다.
  맥스는 왜 그녀에게 호텔로 가자고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보통 빨간 머리의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주근깨가 난 여자는 더 그랬다. 하지만 그는 정원이나 극장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그녀의 팔짱을 끼었으며 그녀는 그에게 가까이 달라붙었다.
  부리스톨 호텔 입구에 들어서자, 바샤는 겁에 질려서 그에게 착 달라붙었다. 그는 그녀를 위층 그의 방으로 데려갔다.
  바샤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난생 처음으로 호텔에 와보는 거예요."
  "호텔이라는 게 뭐야? 방은 다 똑같아. 단지 돈이 더 비쌀 뿐이지. 모자를 벗고 편안히 있어."
  "하지만 개는 집이 어디에 있나요?"
  "자, 바로, 바샤!"
  그녀는 모자를 벗고 빨간 머리를 밑으로 내렸다. 머리핀들이 떨어져 맥스는 그것들을 집어 올렸다. 바샤는 앉아서 말했다.
  "이 세상의 몇몇 사람들은 좋은 생활을 하고 있어요. 제 사촌은 미국에 갔어요. 제화공 도제였는데 급료는 귀리를 씻을 물 정도였죠, 그런데 거기서 그는 소위 제조업자가 되었어요. 그가 사진을 보냈는데 그의 어머니조차 그를 못 알아보았죠. 그는 머리에다 굴뚝처럼 높은 모자를 쓰고 있었어요. 그의 아내는 영어만 사용한대요. 진짜 시골 유지래요. 여기서는 그를 슈메를이라고 불렀는데 거기서는 샘이라고 한대요. 아버지가 그 편지를 읽어 주었을 때 집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마치 욤 키푸르인 것처럼 울기 시작했어요."
  "왜 울었지?"
  "기뻐서요."
  "그래, 그건 사실이야, 이곳은 고문받는 생활이야. 미국에서는 스스로 일해서 성공할 수 있단다. 중요한 것은 광신하면 안된다는 것이지. 왜 넌 고기 먹은 후에 유제품을 못 먹지? 난센스야."
  "어머니가 그렇게 가르치셨어요."
  "네 배에서는 모든 게 다 섞여진단다. 고기, 우유, 심지어 돼지고기 한 조각까지."
  "돼지고기를 드세요?"
  "아니, 하지만 못 먹기로 되어 있어서가 아니야. 그냥 좋아하지 않을 뿐이지. 우리 나중에 내려가서 커피나 한잔 하지. 카페가 밑에 있어. 여기서 7시 30분까지 있자고."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안식일의 마지막 저녁을 준비해야 해요."
  "그 사람들 스스로는 못해?"
  "그 늙은 안주인은 당장 절 없애 버릴 거예요."
  "만약 그 여자가 널 내보낸다면 나한테로 와. 나와 함께 여행하자고. 내가 널 보살피겠어. 이리 와!"
  맥스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손목을 잡았다. 그녀는 놀랐지만 손목을 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녀를 번쩍 들어올려서 입술에다 키스를 했다. 얼굴이 빨개져서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초록빛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다시 키스를 했다. 이번에는 그녀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는 그녀를 껴안고 가슴과 가슴을 밀착시켰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 불평했다.
  "선생님 뭐 하시는 거예요? 누가 들어올지도 몰라요."
  "아무도 안 들어와." 
  그는 그녀에게 욕망을 느껴 그녀의 옷을 벗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지금은 말고요."
  "언제?"
  "우선 먼저 친구이어야 해요."
  "사실을 말해 봐, 누가 있니?"
  "아무도 없어요. 있으면 하느님 저를 벌주세요."
  맥스는 곧 그녀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 그는 여자들에게서 너무 많은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행운을 시험해 보기가 겁이 났다. 한 순간 그는 욕정에 사로잡히지만 다음 순간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마치 그의 내부의 어떤것, 그에게 내재한 적이 그를 약올리면서 창피를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긴 키스를 했고 그녀는 그의 입술을 깨물면서 키스를 되받았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바샤는 몸을 추스르고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맥스가 문을 열자 횐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 모자륵 쓴 객실 여종업원이 말했다.
  "전화 왔습니다."
  그는 레이즐 코르크의 목소리를 알아보았다.
  "맥스, 당신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호텔에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한번 해보았어요. 바샤를 만났어요?"
  "그래요. 나와 함께 호텔에 있소."
  "음, (마젤 토프(행운))를."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그럼 그애랑 뭘 하고 있죠? 성경을 암송하고 있나요?"
  "우린 얘기하구 있어."
  "그애를 타락시켜야 할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빨리는 말고. 맥스, 슈무엘이 오늘 아침 로즈로 떠났어요." 
  "안식일에 차를 타?"
  "주중보다는 안식일에 타는 게 나아요. 기차는 비어 있거든요."
  "알겠어..." 
  "바샤를 거기 오래 놔두면 안 돼요. 난 그애의 안주인과 바깥주인을 알아요. 안식일의 마지막 음식으로 생선과 사워 밀크를 못 먹으면 이 세상이 끝이라고 생각할 사람들이에요. 안식일 저녁엔 무얼 할 건가요?"
  "하브달라 기도문을 외고 (하마브딜)을 찬송할 거요."
  "와서 우리 같이 불러요."
  "그렇게 하기로 합시다."
  "몇 시에 여기 올 거예요?"
  "7시."
  "배를 가득 채워서 오진 마세요. 여기 오면 먹어야 하니까요."
  "당신의 뼈를 먹지."
  "할 수 있으면 그래도 좋아요."
  맥스는 수화기를 놓고 바샤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오늘 저녁 내내 혼자일까 봐 두려웠는데 어떤 악마가 그를 지켜 보고 있었다.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 그를 계속 긴장 상태에 있게 했다.
  바샤는 빗으로 빨간 머리를 빗고 있었다 
  "제가 일하는 곳의 주인 늙은이도 전화가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한밤중에 전화가 울려대서 모두를 깨우죠. 주인 늙은이가 전화를 받으면 저쪽에서 (당신 서랍의 줄이 질질 끌리고 있소)라고 하지요." 
  "장난이다 이거지?"
  "이 장난꾸러기들은 모든 사람들을 골탕먹이죠. 그들은 젊은 여자에게 전화를 해서는 남편이 별의별 이교도 여자들과 다 놀아나고 있다고 말해서 부부싸움을 시작하게 만들죠. 혹은 남편에게 전화해서, 아내에게 정부가 있다고 하죠. 그들은 랍비, 장군 등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하죠. 제 주인들은 한밤중에 오는 전화는 안 받고 벨소리가 멈출 때까지 울리도록 내버려두어요."
  "내가 너 한테 전화할 수 있을까?"
  "예, 늙은 주인이 없으면, 한번은 고향에서 누군가 전화를 했었어요. 주인 늙은이가 그가 누구며, 무얼 원하며 등등 너무나 오랫동안 꼬치꼬치 묻는 바람에 그가 전화를 끊어 버렸죠." 
  "늙은이가 아마 질투하나 보군. 그가 네게 손댔니?"
  "등을 꼬집는 것 이상은 아니에요. 그게 그가 내게 할 수 있는 전부죠."
  "그러고도 그는 하시드교도란 말이지?"
  "매일 아침 교회로 가죠. 안식일에 찬송가를 부를 때는 사람들을 귀머거리로 만들 정도죠."
  "음, 그자는 돼지로군"
  맥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여전히 입술에서 바샤와 나눈 키스 맛을 느끼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여자들과 관계했음에도 그는 여자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진정으로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들은 다 마찬가지였지만 또한 다 달랐다. 겉보기에는 이성으로 모든 것을 하는 듯했으나 사고의 방법은 특이했다. 예컨대, 왜 그녀는 그에게 키스했던 것일까? 그가 그녀에게 외국으로 데려간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가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었을까? 바샤는 타락되어야 하지만 너무 빨리 되어서는 안 된다는 레이즐 코르크의 말이 그를 흥분시키는 동시에 두렵게 했다.
  (내가 타락시키는 사람인가? 내 자신 타락한 사람이잖아.)
  맥스는 레이즐과의 만남이 두려웠다. 그녀는 (슈무엘이 떠났다)라고 드러내 놓고 말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사악한 미소가 깃들여 있었다.
  그는 바샤에게 말했다.
  "나와 안 잘 거면 밖으로 나가서 식당으로 가지."
  "전 걸을 수 없어요. 이 굽 때문에 죽을 지경이에요."
  "그렇다면 여기서 뭔가 먹도록 하지."
  "전 전혀 배고프지 않아요."
  "넌 뭘 하고 싶니?"
  "그냥 이렇게 백 년이나 앉아 있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맥스는 웃었다.
  "그러면서도 나하고는 안 자?"
  "아마 잘 거예요."
  "네 얘기를 좀 해보렴. 언제부터 하녀 일을 시작했지?"
  "오, 제가 아홉 살 때였어요. 처음엔 레프 노셀 야프로버라는, 비스코바에 사는 부자의 하녀였어요. 그에게는 다른 하녀가 있었고 난 그녀를 도왔죠. 그녀는 부엌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저를 막았어요. 하지만 우유가 끓어 넘치면 그건 전부 저의 잘못이었어요. 그녀는 날 빨간 암소라고 불렀는데 제가 빨간 머리를 가졌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남자들이 나쁘다고 하지만 여자가 사악해지면 천 명의 남자보다 더하죠. 그녀의 애인은 정육점 점윈이었는데 (촐렌트)를 먹고 난 후 안식일에 그가 놀러 올 땐 그녀는 설탕처럼 달콤했죠. 그의 이름은 슬로임이었지만 그녀는 그를 리암이라고 불렀죠. (리암, 여기 와. 리암, 저기 가.) 그는 날 쳐다보고 나의 머리를 잡아당기곤 했어요. 그것이 그녀를 속상하게 만들었죠. 그러면 그녀는 박작을 일으키는 거예요. 한번은 주인이 10루블을 잃어버렸는데 그녀는 날도둑이라고 부르면서 내가 훔쳐 갔다고 했어요.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느님은 오래 기다리시고 심하게 벌을 주신다)라고 했어요. 하느님이 그녀에게 벌을 주어서 리암은 군대에 징집되고 말았죠. 부자들은 자해를 하거나 의사를 매수하거나 하지만 정육점 점원이 돈이 있을 리가 없죠. 그는 황소딴큼이나 힘이 셌어요. 그가 군대에 서약하고 합류하는 날 로이즈 리아는, 그게 그녀의 이름이어요, 그를 쫓아 달려가서 마치 그의 장례식인 것처럼 울었어요. 그는 돌아다니며 외쳤죠. (뭘 기다리고 있는 거야? 난 아직 죽지 않았어?) 몇 달이 지나도 그녀는 편지 한 장 받지 못했죠. 매일 그녀는 편지가 왔나 알아보려고 우체국에 갔었어요. 이교도들은 그녀를 보고 비웃었답니다. 반 년이 지나서 편지가 왔는데 그가 아닌 로이즈 리아의 사촌에게서였죠. 리암은 탈영해서 미국으로 가버렸죠. 로이즈는 그 소식을 듣고는 울음을 그칠 줄 몰랐어요. 물론 그 편지는 그녀의 주인이 그녀에게 읽어 주었죠. 그녀는 펄쩍펄쩍 뛰며 손뼉을 치고 외쳤죠. (리암, 네가 내게 이런 짓을 하다니, 리암, 넌 왜 날 이렇게 창피하게 만들어야 하니?) 처음엔 사람들은 그녀가 울도록 내버려두었죠.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그 다음날에도 그녀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울기만 하자 안주인은 그녀를 내보냈어요."
  "그래서 네가 그 자리를 차지했니?"
  "안주인은 부엌 일에 대해서 절 신뢰하지 않았어요. 전 해고 당했죠."
  "로이즈 리아는 어떻게 되었지?"
  "그전에는 돼지같이 살이 쪘었는데 그 편지를 받고 난 다음에는 마치 먹는 것과는 영 멀어져 버린 것처럼 바싹바싹 말라 갔어요. 제가 바르샤바에 갔다가 유월절에 돌아왔을 때에는 그녀는 이미 미국으로 떠나 버리고 없었죠."
  "그녀가 리암을 그의 미국인 아내에게서 빼앗아 와버렸나?"
  "영리하신 분이시군요! 어떻게 짐작하셨죠? 그게 바로 그녀가 하려고 했던 일이었어요. 하지만 운이 없었죠. 미국에선 결혼을 하면 모든 게 끝이래요. 거기서는 여자들이 꼭대기에 있다나요."
  "로이즈는 어떻게 되었지?"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전 몰라요. 사람들은 가버리고 나면 편지를 쓰지 않죠. 엄마가 말하길 (물 건너 있는 것은 다음 세상에 있는 것과 똑같다)라고 했죠."
  "넌 정말로 하느님이 그녀를 벌주었다고 생각하니?"
  바샤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말했다.
  "하느님이 아니면 누가 벌을 주겠어요?"
  "하느님은 제7의 천상에 계시면서 작년에 내린 눈 정도밖에는 이 세상 일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
  "아뇨 그럴 리가 없어요."
  "왜 안 그렇지?"
  "그냥 그렇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살았던 곳에 신앙심이 깊은 레프 토드루스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말했어요.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린 그분의 자식들이다. 하느님은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아주 작은 일까지도 모두 살펴보신다. 어떤 사람의 손톱 속에 있는 작은 지저깨비까지도 하느님은 아신다.)"
  "왜 그는 손톱 안에 지저깨비가 끼도록 내버려두지?"
  "죄 때문이죠."
  "왜 스톨리핀은 장관이고 너의 아버지는 가난한 학교 선생이지?"
  "스톨리핀이 누구예요? 그들은 이 세상에서는 배불리 먹지만 저 세상에서는 지옥으로 끌려갈 거예요. 거기선 그들은 못침대 위에 누워야만 할 거예요." 
  "그렇다면 넌 나한테 키스했기 때문에 벌받게 될 거야."
  "뭐라고요? 그래요, 아마."
  "그래도 넌 내게 키스했어. 나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가면 기기서 넌 랍비의 아내가 되진 못할 거야. 너한테 미리 말해 두지만."
  "그래요, 알아요."
  "그런데도 넌 가고 싶니?"
  "여기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세월은 가고 사람들은 늙어 가죠. 여자는 지참금 없이는 남자를 맞이할 수도 없어요. 늙은 여자들은 절 벌레처럼 고생시키겠죠. 아침에 새로운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다시 접시를 닦고 다시 불을 지피고 다시 감자 껍질을 벗기는 거죠. 특히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소처럼 일하죠. 안식일이 오면 전 창가에 앉아서 산레기통을 바라다보죠."
  "넌 그런 생활보다는 차라리 지옥에 있고 싶지?"
  "지옥 가려면 아직 멀었어요..."
  "책에는 지옥이 없다고 되어 있는데."
  "오? 그렇다면 그건 정말로 좋군요..."
  "자, 이리 와. 가자."
  맥스는 일어섰다. 바샤도 따라 일어섰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몸을 숙여 키스했다. 이제 두려움은 모두 사라졌다. 그는 그녀를 침대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점점 더 세게 키스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를 뿌리치며 몸을 뺐다.
  "이러지 마세요. 난 떳떳한 여자란 막이에요!"
  "넌 오랫동안 떳떳했어!"
  그는 그녀를 침대에다 던졌다. 바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의 눈동자는 진한 녹색으로 변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분노와 사랑이 한데 어우러져 나타났다. 그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게 그의 손목을 움켜잡고 그와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면서도 그녀는 용케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발! 봐주세요. 오늘은 안 돼요!"
  "그러면 언제?"
  "다른 때요."
  그녀는 숨을 헐떡였다.
  그는 그녀의 옷을 찢으며 힘으로 그녀를 잡으려고 했다.
  "당신은 내 치마를 찢고 있어요!"
  그녀는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갑자기 그녀의 손톱이 그의 얼굴에서 느껴졌다. 분노나 증오 없는 한 마리 고양이처럼 그녀가 그를 할퀸 것이었다. 피가 흐르는 듯했다. 그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녀가 너무나 민첩하게 벌떡 일어나서 그는 깜짝 놀랐다.
  "오, 엄마. 피야!"
  그녀가 외쳤다. 그러더니 그를 껴안고 핥으면서 그에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면대로 달려가서 손수건을 물에 적셔 가지고 와서는 얼굴을 닦아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수건을 뺏어 직접 닦아 냈다.
  "거친 짐승같으니."
  그가 외쳤다.
  "언제?"
  "다른 때요. 대낮에는 말고요."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와 헌신과 후회가 뒤섞여서 나타났다. 그녀는 방금 아이를 야단 친 엄마처럼 그의 주위를 배회했다. 다시 한 번 그녀는 손수건을 적시러 세면대로 달려갔다.
  "요드가 있으세요?"
  그녀가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끔찍한 상처를 입은 어린 소녀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그에게 매달려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다가 그의 셔츠에 입을 맞추고는 그럭저럭 지나가려고 했다. 그는 거울로 갔다. 그녀도 따라왔다. 이마와 왼쪽 뺨에 각각 하나씩 두 개의 흉터가 나 있었다.
  (이걸 어떻게 레이즐에게 보여 주지? 그리고 나중에 치렐에게는? 나으려면 일주일은 걸릴 텐데.)
  맥스는 옆에 서 있는 이 시골 소녀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욕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원했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지금 아니면 안 돼!"
  "(타텔), 낮에는 안 돼요... 안 돼요, 안 돼요!"
그녀는 이디시어 연극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그의 정강이를 잡고서 바지와 소매 끝에 입을 맞추었다.
  맥스는 머리와 한쪽 어깨를 움켜쥐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커튼을 내릴 게."
  "봐주세요. 안 돼요!"
  바샤가 씨근거렸다.
  "음, 고집 센 아이같으니, 자!"
  맥스는 그녀를 밀쳤다. 그녀는 침대 쪽으로 비틀거렸다. 하지만 용케도 넘어지지 않고 섰다. 아까 매만졌던 머리는 다시 거칠게 헝클어지고 얼굴은 퉁퉁 부어 올라 있었다. 그녀는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더니 몸을 떨며 흐느꼈고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단 한마디 말만, 마치 반항하는 어린애가 뇌까리는 것처럼 계속해서 내뱉었다.
  "자, 그런 식으로 예정된 게 아니었어."
  맥스는 중얼거렸다. 그는 세면대로 가서 얼굴에 임시로 습포를 댔다. 따끔따끔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는 혼자말로 투덜댔다.
  "지저분한 것, 하찮은 마을의 설거지꾼, 비스코바의 망나니..."
  오랫동안 그가 잊고 있었던 단어들이 입에서 튀어 나왔다. 그는 여전히 바샤를 정복할 힘과 욕망이 있었으나 최종 결정을 내리는 그의 머릿속 한구석에서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함을 지를 것이고, 그러면 호텔 종업원들이 달려올 것이다. 그는 한낱 감옥에서 썩기 위해 바르샤바에 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피가 묻은 습포를 떼어 내서 거기에다 물을 붓고 얼굴에다 갖다 댔다. 그는 가려지지 않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바샤는 경외와 애원과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그녀의 드레스를 목에서 가슴까지 찢어 버린 것이었다. 그녀의 속옷이 밖으로 약간 나와 있었다.
  (바샤가 어떻게 집으로 가지? 딴 드레스를 하나 사줄 수 있을까?그러면 안주인이 뭐라고 할까?)
  갑자기 맥스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이대로 당장 이 아이를 데려가 버릴까!)
  "너, 나와 함께 미국으로 가고 싶니? 지금 말이야!?
  바샤의 얼굴이 밝아졌다.
  "미국으로? 안식일에요?"
  "심지어 욤 키푸르에도 미국에 갈 수 있지."
  "선생님은 절 비웃고 계시는군요. 비웃으신단 말이에요!"
  "난 네 옷을 찢었어. 찢어진 옷으로 어떻게 집에 돌아가지?"
  "핀으로 깁죠."
  그녀는 손가방이 놓여 있는 의자로 가서 안전핀을 몇 개 끄집어내었다.
  "안식일에 이걸 하는 건 금지되어 있어요. 하지만..."
  그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는 일어서서 그녀가 드레스를 고치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안식일이 지나면 곧 다른 드레스를 하나 사주마. 아니면 내가 돈을 줄 테니 네가 직접 사든가 딴사람에게 하나 짜달라고 하렴."
  "드레스를 살 필요는 없어요. 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감쪽같이 고칠 수 있어요."
  "새걸 사주마, 그럼 우린 언제 다시 만나지?"
  "전 2주일에 한 번씩밖에는 쉴 수 없어요."
  "어느 날이지?"
  "이번 주 수요일요."
  맥스는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그녀가 모자를 쓰는 걸 도와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키스를 했고 그녀는 그의 키스를 되받았다. 그녀가 무어라고 외쳤지만 그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뜨거웠고 그의 뺨은 축축했다. 그는 그녀를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다시 한 번 그는 욕정에 횝싸였다. 그는 자신의 힘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제 넌 내 것이어야만 해."
  바샤는 안식일이라 마차를 타고 싶지 않아 했지만 걷는 것이 어려웠다. 그녀는 맥스의 팔에 매달려서 발을 조금씩 떼어 보다가 불평했다.
  "주인한테 돌아갈 수가 없어요. 오,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세요!"
  "원한다면 호텔에 네 방을 하나 잡아 주마. 그러면 넌 다시는 그곳에 얼굴을 내밀 필요가 없을 거야."
  맥스가 말했다.
  "무슨 호텔요?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거기 내 물건이 모두 있어요. 주인에게서 이번 기간 일한 데 대한 보수를 받을게 있어요. 뿐만 아니라 제가 호텔에서 무얼 하겠어요? 전 일하는 데 익숙해 있어요." 
  "넌 일하게 될 거야, 걱정하지 마.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이제부터 넌 내 손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 내가 뭐라고 하건 넌 하는 거야."
  "선생님을 언제 미국의 그 무엇인가 하는 곳으로 돌아가시나요?"
  "몇 주일 후에, 아니면 몇 달 후에."
  "음, 그건 모두 운명이겠죠. 전 어제 마치 뱀처럼 꼬부리고 누워서 온 밤을 꼬박 선생님 꿈을 꾸었어요. 안식일엔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지만 6시면 저는 일어나 있어요. 전 선생님이 제 모자나 다른 모든 것들을 좋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어요. 선생님은 제게 요술이나 뭐 그런 걸 거셨나요?"
  "요술 따윈 걸지 않았어."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할머니는 제가 어릴 때부터 늘 (남자들을 조심해. 남자는 너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지만 너의 적이란다)라고 경고하시곤 했어요. 그렇게 할머니께선 말씀하셨어요." 
  "날 믿어, 나보다 더 나은 친구는 없어."
  "누구라고요? 제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제 아버지는, 오! 그분이 건강하시기를, 완고한 분이시죠. 하루 종일 말 한마디도 안하시는 분이에요. 제가 휴일에 집에 가면 (잘 지내니?)라고 물으시죠. 그리곤 제가 대답도 하기 전에 게마라를 다시 읽고 계시죠. 전 쓰레기 더미 출신이 아니에요. 제 할아버지 레프 모르드켈은 테이블만큼이나 큰 게마라 책으로 공부하셨어요,"
  "그분도 학교 선생님이셨어?"
  "그분은 결혼 적령기의 청년들을 가르치셨어요."
  그는 7시에 레이즐의 집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청의 시계는 이미 8시 20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샤의 발걸음은 점점 더 느려지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녀는 떨면서 그의 어깨에 기대었고 몇 발자국 가서는 발을 멈추곤 했다. 계속해서 맥스는 마차를 타자고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안식일에는 마차를 타고 싶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전 이미 그것 말고도 큰 죄를 지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들은 침묵에 빠져 들었다. 그노이나 가에 이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맥스의 머리는 갖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슈콜니코프가 도운 것일까? 그가 로셸에게 보낸 텔레파시 메시지가 저주를 제거시킨 것일까? 그는 지난 2년간 병 때문에 의사와 약과 온천에다가 수없이 많은 돈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빨간 머리 하녀가 나타나서 그를 소생시켜 주었던 것이다. (이제 난 행복한가?)
  그는 그런 문제들만 없다면 자신이 가장 운좋은 사나이일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랬건만 그는 여전히 마음이 착 가라앉아 외롭고 우울한 채 바르샤바의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그는 안식일이라 문을 닫은 가게들과 거리를 오가는 남녀들과 기도하러 하시드교의 연구실로 가는 것이 분명한 유태인들을 휘둘러보았다. 그 유태인들은 공단 외투를 입고 우단 모자나 모피로 테를 두른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들 뒤에는 곱슬곱슬한 귀밑머리를 내놓고서 육각 모자인 (사클레크)를 쓴 소년들이 따르고 있었다. 빛나는 해는 이미 밤을 암시하면서 빨갛게 타고 있었다. 문간에는 길다란 귀걸이를 한 할머니들이 모자를 쓰고 구식 복장을 단 채 앉아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마치 맥스가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는 치렐과 바샤 둘 다에게 사랑을 얘기했었다. 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것일까? 동시에 두 여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치렐은 이제 그에게서 멀어져 버린 것 같았다. 바샤의 침묵과 느린 발걸음이 그에게는 성가셨다. 그녀는 아내처럼 그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벌써 잰 척 하고 있었다. 그는 옆눈으로 그녀를 훔쳐보았다.
  (얘도 나만큼이나 비참하고 혼란스럽군.)
  그녀는 눈을 아래로 내리뜨고는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있을 것인지 말 것인지 망설이는 듯했다. 그는 그녀를 거와 끌다시피 해야 했다.
  맥스는 레이즐의 집에 늦게 도착하는 것에 대해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방금 일어난 일에 비하면 늦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겠는가? 게다가 레이즐이 왜 필요한 것인가? 그는 신경쇠약을 치료하기 위해서 바르샤바에 온 것이었지 육체의 쾌락을 찾으러 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분명 저녁을 준비해 놓고 그를 기다리며 앉아 있을 것이다.
  그노이나 가의 끝에서 바샤가 말했다.
  "이제 혼자 집에 가야겠어요. 주인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절 끝장낼 거예요." 
  "좋아. 원하는 대로 해. 조병창 반대편에서 수요일날 만나는 거야. 그리고 네 물건들을 가지고 와. 다시는 그 사람들에게 돌아갈 필요가 없는 거야." 
  "수요일날 절 어디로 데려가실 거예요? 아니, 저는 미국으로 갈 때까지 계속 일할 거예요." 
  "그렇게 하지." 
  "지금 어디 가세요?"
  하마터면 그는 레이즐에게 간다고 말할 뻔했다. 하지만 고렇게 말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샤 같은 아이는 벌써 질투를 느낄지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갈 거야."
  "안식일 마지막 저녁을 안 드실 작정이시군요?"
  "뭔가 먹을 거야."
  "늙은 안주인은 절 혼낼 거예요. 제가 1분이라도 늦으면, 절 산 채로 먹으려 할 거예요."
  "그 여자, 지옥에나 가라지. 지금부터는 네가 그 여자보다 더 귀부인이야." 
  바샤의 입이 뒤틀리더니 일그러졌다.
  "안주인이 알까요?"
  "아무도 모를걸."
  "자, 좋은 안식일이길. 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하느님께서 저의 증인이 되어 주시겠죠."
  맥스는 그녀의 뺨에 키스했다. 그녀는 책망으로 가득 찬 눈길로 그를 바라보다가 크로치말나 가로 접어들었다. 맥스는 길을 빠져 나와서 바샤가 닿기 전에 23번지에 도착하도록 큰 걸음으로 빨리 걸었다. 그는 거의 뛰다시피 했다. 그는 그노이나 가를 서둘러 지나서 그르지보바스카 가로 나왔다. 그리곤 시에플라 가로 접어들었다. 그는 바샤보다 먼저 23번지에 닿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당에서 그녀와 마주친다면 모든 것을 망칠게 뻔했다. 크로치말나 가에 도달했을 때 그는 바샤가 나올 방향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9시가 거의 다 되었다. 그는 레이즐의 집으로 이르는 계단을 올라가서 숨을 돌렸다. 그 자리에 서서 얼굴에서 땀을 닦아 냈다. 그는 전 생애를 사기와 도둑질에 바쳤다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어렸을 때 그는 부모에게서 훔치거나 때로는 낯선 사람에게서도 훔친 적이 있었다. 나중에 그는 도둑이 직업이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사랑을 훔치기 시작했고, 그 밖에도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면 어느 것이나 다 훔치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뒷골목으로 다녀야 했고 구실을 찾았으며 변명을 생각해 내고 여자들을 기만했다. 그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맞닥뜨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는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없이 거리를 자나다닐 때가 별로 없었다.
  로셸같이 교활한 사람에게 한술 더 뜬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탈선적인 방법들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아직 젊고 아름다울 때는 그는 딴 여자들과 관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음모와 거짓말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오래 전에 피웠던 바람의 찌꺼기들은 여전히 살아 남아 있었다. 로셸은 그의 사업의 동업자였다. 하지만 그는 항상 그녀가 모르는 거래들을 했으며 그녀가 알지 못하는 비밀 은행 구좌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젠 단지 바르샤바에 겨우 일주일밖에 있지 않았는데도 그는 너무나 깊이 휘말려서 절대로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자, 그게 바로 나야. 그게 당신들을 위한 맥스 바라밴더란 말이야!)
  그는 문을 두드렸다. 레이즐이 문을 열어 주면서 말했다.
  "당신이 안 올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던 참이었어요. 들어오세요."
  그녀는 두 사람을 위한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 방 한가운데로 그를 안내했다. 맥스는 커틀릿과 샤프 보르시치와 햇감자 냄새를 맡고는 레이즐이 안식일 요리를 했음을 알아챘다. 등은 아직 켜놓지 않았다. 다만 지는 해가 벽에 보랏빛을 던져 주고 있었다. 레이즐은 검은 눈동자로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그래서 그애를 유혹했군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그애가 당신의 이마를 긁어 놓았고 2시간이나 늦었잖아요."
  맥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레이즐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했다. 잠시 후에 그녀가 말했다.
  "힘으로 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난 그애를 강간하지 않았어,"
  "앉으세요. 가스등을 켜지 않았어요. 내가 안식일에 불을 켜는 것을 보면 저쪽 건너편에 사는 참견꾼이 달려와서 날 벌줄 거예요. 하지만 곧 등을 켤 수 있을 거예요." 
  "난 그냥 어두운 채로 있는 것도 괜찮아."
  "배고프세요? 바샤는 어디 있죠?"
  "집에 갔어."
  "당신은 서두를 필요가 없었는데. 그애는 사라지지 않았을 거예요."
  레이즐이 다정스럽게 말했다.
  그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는 소파에 앉았다. 무척 피곤했다. 보랏빛 그림자가 사라지더니 방은 어두워졌다. 맥스는 눈을 감았다. 곧 그는 잠에 빠져 들었다.
  그는 감옥에 있는 꿈을 꾸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였던가 바르샤바였던가? 아무튼 죄수들이 거기 앉아 있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스페인어 혹은 폴란드어 대화에서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기괴한 침묵에 싸여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갑자기 한 노파가 올가미를 들고 나타났다. 사형 집행인인가? 맥스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여자가 사형 집행인일 수가 있지? 노파는 그에게 눈을 찡긋하더니 로프를 부채처럼 부쳤다. 죄수들은 돌같이 굳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것이 끝이로구나.) 맥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들어라, 오, 이스라엘)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램프가 타고 있었다. 레이줄은 샤프 보르시치를 두 접시에 나누어 담아 오면서 말했다.
  "그러면 그애가 당신을 기진맥진하게 만든 거예요?"
  (어떤 꿈이었지?)
  그는 자문했다. 그는 레이즐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의미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 레이즐을 그에게 슈무엘 스메테나가 지난번 앉았던 테이블 머리의 의자를 가리켰다. 맥스는 일어섰다. 무릎이 휘청거렸다. (내가 이렇게 늙고 닳았나?) 그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는 슈무엘의 의자에 앉아서 보르시치를 먹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1시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배가 몹시 고팠다. 그는 녹은 버터를 바른 햇감자와 잘게 썬 파슬리를 먹었다. 씹을 때마다 힘이 되살아났다. 레이즐은 씹으면서 검은 눈동자로 그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았다.
  "난 당신이 새롭게 되어서 오기를 원했어요. 이렇게 다 지쳐서 말고."
  "미국 사람들이 말하지. (쾌락 전에 사업)이라고 말이야."
  맥스가 되받았다.
  "오! 당신지 그렇게 예민한 사업가인 줄 몰랐는데요."
  "자, 당신 몫은 원하지 않소?"
  레이즐은 놀란 듯했다. 맥스는 그녀보다 자신이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자신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그걸 알고 있을 것이며 그래서 약간 그를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그는 여성에 대해서 우위에 있었다.
  "돼지가 자기 꼬리를 못 보듯이, 당신이 이 썩은 사업에서 돈을 벌 가능성은 거의 없을걸. 당신이 할 것이라고는 슈무엘 스메테나를 오쟁이로 만드는 것밖에는 없을 것이오."
  그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맥스는 감자를 다 먹고 보르시치를 마지막으로 한 숟가락 떠먹었다. 레이즐이 테이블을 치됐다.
  "하녀는?"
  맥스가 물었다.
  "펠코비즈나의 엄마에게 갔다 오라고 보냈죠. 월요일 아침까지는 안 돌아올 거예요."
  "만반의 준비가 되었구먼."
  "모든 건 다 계획을 해야 하죠. 당신은 랍비의 딸과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레이즐이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을 때 그녀는 이미 부엌으로 통하는 복도 문에 가 있었다.
  맥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처가 있는 당신이야말로 구애자의 역할을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죠."
  레이즐은 구두 굽을 나뭇바닥에 부딪혀 딸깍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맥스에게는 말을 타고 있는 것은 레이즐이지 그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그녀는 심지어 경찰에게 그를 밀고할 수도 있고 광장에 있는 깡패들을 시켜 그를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가 그를 속였다는 것을 슈무엘 스메테나가 알면 그녀는 그의 손에 죽을 수도 있었다.
  (음, 모든 게임들처럼 이것도 게임이야.)
  맥스는 자신을 달랬다. 그는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목숨을 걸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가 여기서 하룻밤을 잤다는 것을 슈무엘 스메테나가 알면 어떻게 될까? 죄수들, 노파 그리고 로프가 머리에 떠올랐다. 어디를 가건 리볼버 권총을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몇 시간이 지나자 다 끝났다-맛있는 저녁, 침대에 들기 전의 키스와 애무, 어떻게 맥스가 레이즐의 언니 세뇨라 샤예프스키에게 바샤를 데려다 줄 것인가에 대한 토의 등. 2년 간의 발기불능 끝에 예전의 생식력이 되돌아왔음을 느낀다는 것은 만족스런 일이었으나 벽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마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랬더니 레이즐은 몇 마디 더 종알대다가 코방귀를 뀌었다.
  (사람이란 몇 년 동안이나 굶주렸다가도 한끼만 만족스럽게 먹으면 배가 부른 법이지.)
  그는 잠에 빠졌고 1시간 반 뒤에 일어났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기억해 내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는 레이즐을 만져 보고서는 혼자 중얼거렸다.
  "난 어디 있지? 이건 로셸인가? 아니, 로셸이 아니야. 난 런던에 와 있나? 베를린?"
  곧 그는 다 기억해 냈다. 그는 바르샤바의 슈무엘 스메테나의 아파트에 있었고 하느님께 고맙게도 그의 병은 과거의 일이 되었다.
  다시 한 번 그는 자신의 내부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분명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미쳤어, 미쳤어," 
  맥스는 중얼댔다. 레이즐이라는 이 여자는 확실히 대포알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그 같은 성격의 여자를 집으로 데려갈 의도는 없었다. 그가 이 모든 탈선에 말려들게 된 유일한 이유가 발기 불능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확연해졌다. 그는 로셸과 이혼할 수가 없으며 세계 여행가가 되기 위해 그의 사업을 팽개칠 수도 없었다. 더구나 그는 이미 가지고 왔던 돈도 반이나 써버렸으니 이제는 단지 하나의 길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아르헨티나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제 그에게 씌워졌던 마술에서 해방되었으므로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수많은 여자들을 찾게 될 것이다. 그는 치렐과 바샤를 잘못되게 했지만 그들을 쓰레기 더미로 끌고 가기 전에 떠나 버리는 것이 그들 둘 다에게 더 나으리라고 생각했다.
  (내일 아침 바르샤바를 떠나자.)
  맥스는 결심했다. 그에게는 오직 한 가지 걱정뿐이었다. 레이즐은 아마 그의 언니에게 모든 걸 다 얘기할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아르헨티나에서 그를 헐뜯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녀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래 봐야 그녀가 그에게 무슨 짓을 할 수 있겠는가?
  맥스는 고민 때문에 늘 몽롱한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신이 맑았다. 그는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실눈을 떴다. 새벽이 다 되었는지 날이 밝아지고 있었다. 때때로 새들이 지저귀었다가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맥스는 다시 잠속에 빠져 들었다. 잠들기 전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난 로스코바에 가야 하는 걸까?)
  그의 대답은 (아니)였다. 랍비와 치렐은 로스코바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들이 거기까지 그를 추적할지도 몰랐다. 제일 좋은 것은 특급 열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파리로 가는 것이었다. 그는 여권과 입국 사증이 있었고 그들은 그를 뒤쫓으려고 밀사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맥스는 한두 시간, 아니 3시간 정도를 잤다. 그가 일어났을 때 해는 조금만 내려진 커튼을 통해 빛나고 있었다. 그는 레이즐이 침대 가장자리에 누워 거의 숨도 쉬지 않고 평화스럽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맥스는 그녀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그렇게 젊지는 않았지만 온갖 크림으로 떡칠을 한 로셸에 뒤지지는 않았다. 레이즐은 얼굴에 로션을 바르지 않았다.
  맥스는 아르헨티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곳은 지금 겨울이라 비가 오고 추울 것이다. 가장 잘사는 집이라도 요리를 위해서만 쓰는 난로 가지고는 추위를 견뎌 내지 못할 것이다. 바르샤바에서 런던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다시 아르헨티나까지 한 달이 걸리는 여행은 맥스에게는 참기 힘든 것이었다.
  (바샤를 같이 데리고 갈까? 왜 예전의 공허 속으로 돌아가지?)
  맥스는 스스로에 게 물었다.
  그의 신경이 그를 고문하고 있었다. 한 순간 신경은 조용하다가 다음 순간 마치 악마가 몸 속에 들어와서 사람을 갖고 노는 것처럼 신경이 뒤흔들렸다. (악마를 물리쳤다고 생각하면 악마는 혀를 쏙 내밀거든.)
  맥스는 새로운 결심을 했다. (난 바샤와 가버릴 거야.) 물론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바샤가 주인에게서 떠나기로 동의하더라도 레이즐이 알아내서 그의 앞길에 장애물을 놓을 것이다. 레이즐 같은 여자라면 능히 그를 경찰에 밀고할 수도 있고 깡패와 공갈꾼을 고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 바샤와 접촉하지? 바샤가 집 전화번호를 알려 주긴 했지만 늙은 주인이나 안주인이 받으면 전화를 바꿔 주지 않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들은 심지어 바샤에게서 일당을 감해 버릴지도 모른다. 얼마간 생각을 해본 다음 맥스는 바샤가 그를 만나기로 약속한 수요일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수요일까지는 얼마나 남았나? 그는 그녀에게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같이 가든지 아니면 여기 바르샤바에서 땀 흘리고 있든지 하라고. 수요일쯤이면 바샤는 그를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그녀를 국경 도시 믈라바로 데려갈 것이다. 20년 전 그와 한 밀수꾼은 몰래 국경을 넘어 독일로 들어갔었다. 그는 그 길을 알고 있었다. 일단 거기선 모든 게 순조롭게 풀려 나갈 것이다. 그는 바샤에게 아파트를 하나 세내어 주고 그녀는 스페인식으로 그의 정부가 될 것이다. 그는 바샤와 로셸, 두 가정을 갖게 될 것이다. 바샤는 사치에 익숙해져 있지 않아서 돈이 얼마 들지 않을 것이다. 또 그 같은 여자는 충직할 게 틀림없다. 어쩌면 머지않아 그녀에게서 아기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비록 로셸은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그의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 상속자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맥스는 그런 결정에 도달한 후 어떻게 그가 혼자 달아나 버릴 생각을 그전에 할 수 있었는지 의아스러웠다. 그건 아마도 광기였을 깃이다. 왜 젊은 여자를 놔두고 혼자서 바다를 방황해야 할까? 왜 찬 겨울과 낡은 골칫거리로 돌아가야 할까? 맥스는 이 모든 것을 스스로에게 설명해야만 했다.
  (취해 있는 것은 좋지 않지만 정신이 너무 맑은 것도 좋지 않아.)
  (수요일날 바샤와 만날 때까지 난 무엇을 해야 하나?) 그는 월요일 한낮에 다시 치렐을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랍비와 랍비의 아내는 그가 치렐과 약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그 역할을 해야 할 거라고 맥스는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주술사 슈콜니코프에게 가는 것이지.)
  맥스는 잠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마냥 오랫동알 누워 있었다. 그리곤 그는 랍비가 그의 딸을 부끄럽게 만든 데 대해서 그에게 저주를 씌울 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 같은 유태인은 하늘에 의견을 표시할 권리가 있다. 그런 사람이 저주하면 그는 이 세상과 다음 세상에서까지 저주가 씌워진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성스런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은 지독한 일이다. 혹시 그에게 100루블이나 몇 백 루블의 돈이나 좀 남겨 줄 수 있을까? 맥스는 생각했다. (음, 치렐은 어떡하지?) 그녀는 예민한 아이고 그렇게 정신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다. 그녀는 이미 발코니에서 뛰어내리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녀는 우울에 빠질 것이고, 맥스, 바로 그가 그녀의 죽음의 원인이 될 것이다. 심지어 레이즐까지도 랍비의 딸과 관련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경고했었다. 돈? 치렐 같은 여자는 돈으로 살 수가 없다.
  맥스는 피곤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감아도 저절로 다시 떠졌다. 그는 치렐과 그녀의 부모가 그의 탈주를 알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상상해 보았다. 치렐은 울다가 실신 할 것이고 창 밖으로 몸을 던지려고 할 것이다. 레이즐은 랍비에게 그가 아르헨티나에 처가 있다고 알려 줄 것이다. 랍비는 치명적인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그걸 로스코바에서는 뭐라고 했지? 저주의 장이라고 했었지. 레이즐은 그녀의 언니에게 맥스가 독신으로 행세하며 랍비의 딸과 약혼했다는 편지를 보내겠지, 그러면 로셸은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겠지. 사람들은 카페에서 맥스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는 장의 사교회에서 쫓겨날 것이다. 그는 로시 하샤나와 욤 키푸르에도, 유태인 교회당에 못 갈 것이다. 그건 그의 사업에 타격을 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집과 땅을 (더러운 사람)에게서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눈을 감고 그제야 잠이 들었다. 레이즐이 그를 깨웠다. 그녀는 페티코트와 속치마로 갈아입고 있었다. 맥스의 어깨를 흔들면서 그녀가 말했다.
  "잠꾸러기, 9시예요."
  맥스는 경멸하는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슈무엘 스메테나에게 충실할 것이라고 맹세했었다. 하지만 맥스가 나타날 때는 아니었다. 그는 레이즐과 함께 그녀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레이즐은 그를 깨우면서 겨드랑이를 간질였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를 향해 미소 짓고 있는 그녀의 까만 눈동자는 기만으고 가득 차 있을 뿐, 부끄러움이나 후회의 흔적은 조금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아내와 같이 잠자리를 할 준비가 된 손님은 항상 있었다.
  "나가. 옷 입을 거야."
  "부끄러운 거죠? 아침 준비를 하겠어요."
  맥스는 침대에서 빠져 나왔다. 그는 슈무엘 스메테나의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너무 컸다. 화장실은 복도에 있었다. 맥스는 화장실에 들어가 얼굴에 자랄 그루터기 같은 수염을 만져 보며 한동안 멍청히 서 있었다. 최근 들어 그의 수염은 비정상적으로 빨리 자랐다. 아침에 면도를 해도 저녁이면 턱이 까칠까칠했고 다음날 아침이면 그의 턱을 마치 강판같이 되었다. 레이즐이 그를 보고 웃기 시작했다.
  "왜 웃는 거지?"
  "두 사람이라도 그 잠옷미 맞겠어요. 그는 정말 너무 살이 쪘나 봐요, 그래도 전혀 개의치 않아요. 들어와서 씻으세요. 안보겠다고 약속할게요." 
  "손과 얼굴만 씻겠어."
  "우린 욕탕이 없어요. 여긴 브리스톨 호텔이 아니에요."
  맥스는 씻고 커피와 갓 끓인 우유를 마셨다. 그는 여자를 방문할 때마다 늘 칫솔, 잠옷 그리고 목욕 가운을 가지고 갔었다. 하지만 최근엔 그는 남자로서의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그는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고 물로 입 안을 헹구어 냈다. 그는 그루터기 같은 수염을 만져 보고는 젊은 시절, 창녀와 함께 있었을 때와 같은 메스꺼움을 경험했다. 소년 시절부터 그는 자기 몸을 파는 여자들에 대해서 분노를 느꼈다. 그들이 향수를 뿌리면 뿌릴수록 악취가 더했다. 돈을 지불할 때 그는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런 종류의 여자와 결혼했다. 그는 로셸에 대한 욕정과 아울러 그녀의 때묻은 과거에 대해 유감과 구역질을 느꼈다. 동시에 그는 그녀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르투로의 죽음 이후로 그녀는 자신을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요새 속에 가두어 버렸다. 그래서 그가 그녀에게 가까이 가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혼자있게 해주세요. 난 늙고 지쳤어요. 원하는 사람에게 가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와 이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돈에 굶주려 있었고 교활했다. 그녀 몰래 얼마간의 돈을 빼돌릴 수 있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당신을 괴롭히거나 뭐 그런 게 있어요?"
  그가 간신히 옷을 다 입었을 때 레이즐이 들어오면서 말했다.
  "그런 건 없어."
  "당신이 일어난 뒤로 어쩐지 당신이 달라 보여요. 내 잘못인 가요?"
  "아니, 레이즐, 당신 잘못이 아니야."
  "당신이 바샤를 그리워한다면 그녀를 불러오죠."
  "난 누구도 그리워하고 있지 않아."
  "와서 식사하세요. 하느님이 아시겠지만, 난 그걸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와 함께 몇 년 동안은 그럭저럭 지냈을 거예요."
  "지금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소? 그를 떠나고 싶소?"
  레이즐은 맥스를 싸늘한 눈길로 바라다보았다.
  "난 질투하는 타입이 아니에요. 하지만 치렐과는 헤어지세요. 모두 다 알아요."
  "누가 떠들고 다니지?"
  "모두 다요. 당신은 심지어 랍비와 함께 기도도 하러 갔어요. 그래선 안 돼요, 맥스. 당신은 온 가족을 망하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짓은 살인자의 심장을 가진 자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맥스가 이 의사 저 의사를 쫓아다니던 시절, 의사들은 신체의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를 확신시켰다. 하지만 그의 주위에 힘세고 건강해 보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신장과 간에 질병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당뇨나 심장 질환, 담석 또는 암으로 죽었다. 로셸과 같이 장례식에 가지 않는 날은 단 한 주도 없었다. 의사들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고기와 설탕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글을 썼다. 오랫동안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 친구들 그리고 정부들이 죽었다. 그들은 대부분 그의 나이 또래였다. 죽음의 천사가 당신을 쳐서 넘어뜨릴 준비가 되어 있으면 돈이 무슨 소용인가? 눈 깜짝할 새에 묘지로 옮겨진다면 인생의 즐거움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과격파들이 장의 사교회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지역 사회 조직들 중 가장 (살아 있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런 것들을 반추하고 있다가 곧잘 깊은 우울에 빠지곤 했다. 지난 2년 간 다른 생각들도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는 끊임없이 숨어 있었다. 그는 아침이면 임 안이 말라서 깨어났다. 때로는 가슴에 통증이 있었고 위에서는 경련이 일어났으며 귀는 전보다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계단을 몇 개만 올라가면 금방 숨이 찼다.
  맥스는 레이즐의 집에서 나온 다음 그의 건강에 신경 쓰기로 결심했다. 이 외국에서 병 들어 쓰러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는 이교도들과 함께 입원해야 될 것이고 의사나 간호원들에게 이해도 못 시킬 것이다. 죽으면 그의 뼈가 어디에 묻혔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오늘은 치렐이나 슈콜니코프에게 가지 말자. 곧바로 호텔로 가자.)
  그는 대문에서 나와 시에플라 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그의 발은 마치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하여 지시받고 움직이듯 다른 길로 틀었다. 그는 10번지를 지나 랍비 집의 발코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빵집 여자 에스터가 17번지의 문에서 있지 않나 해서 쳐다보았다. 그는 하임 카비오르니크의 카페를 지나칠 때 마치 그곳으로 들어갈 듯하다가 6번지 술집으로 들어갔다. 아마 그가 20년도 더 전에 이름을 들었던 눈먼 메이어가 거기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맥스는 그 사람과 얘기하고 싶었다.
  카운터가 있는 앞방은 시끄러웠다. 반바지를 입고 목이 긴 장화를 신고 눈까지 모자를 내려쓴 젊은이들과 두창 때문에 얼굴이 엉망인 소녀들이 한 떼의 무리를 지어 있었다. 맥스는 사람들을 밀치고 반쯤 빈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큰 머리에다, 빨갛고 둥그런 코에 아래쪽 이마에는 꼬부라진 흉터가 있고 한쪽 눈동자가 빠진, 어깨가 넓은 사나이를 보았다. 그는 힘이 있는 체격이었으며 얼굴은 흉터로 흠이 나 있었다. 자 이 사나이가 바로 크로치말나 가의 왕, 지하 세계의 랍비인 눈 먼 메이어일 것이다! 맥스는 잔기침을 했다. 눈먼 메이어는 황소처럼 천천히 몸을 바로 폈다. 그는 두터운 눈썹 아래 성한 한 눈으로 맥스를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그의 눈초리는 더이상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신랄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메이어, 당신이 메이어요?"
  맥스가 말했다.
  "당신은 누구요?"
  눈먼 메이어는 창자를 쥐어짜는 듯찬 삐걱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모르실 겁니다. 제 이름은 맥스 바라밴더이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왔습니다. 당신의 오랜 친구 중의 하나인 하츠켈레 펠테스가 나더러 인사를 전하라고 했습니다."
  눈먼 메이어는 한참 생각했다. 골이 깊이 패어 선을 두 개 그어 놓은 듯한 그의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알아, 알아. 그는 지금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어. 하지만 그는 죽었다고 하던데." 
  "그는 절대로 안 죽을 겁니다."
  "그는 뭘 하고 있소?"
  "그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눈먼 메이어는 주먹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그가 바르샤바를 떠난 지 얼마나 되었소? 한 10년은 되었지."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렇소?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군. 그를 기억하오. 그는 금발 여자와 돌아다녔었는데."
  "하네체죠. 지금은 그의 처죠."
  "그래 그 여자와 결혼했단 말이야? 그가 날 아직도 기억한다니 놀랍군. 세상은 눈먼 메이어를 팽개쳐 버렸고 죽은 사람처럼 잊어버렸는데 말이야."
  "그는 당신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했죠."
  "뭐라고 합디까? 앉아요. 서 있지 말고. 배가 고프면 카운터로 가서 뭘 좀 드시오. 한때 웨이터가 있었는데 해고시켜 버렸소. 카운터 여자에게서 손수 다 가져와야 하오. 이 술집의 음식은 쓰레기요!"
  분노와 구역질로 얼굴을 찡그리면서 눈먼 메이어가 말했다.
  "난 배고프지 않습니다. 당신이 뭔가 드시고 싶으면 17번지 술집으로 가지요."
  "라자르로? 그래요. 가고 싶소. 하지만 의사가 가지 말라고 했소. 난 맥주 한잔도 못 마셔요. 궤양이 있거든!"
  테이블 위로 비어져 나온 배를 가리키면서 눈먼 메이어가 말했다.
  "그럼 하임 카비오르니크의 가게에 가고 싶어하실지도 모르겠군요. 그 집엔 훌륭한 치즈빵이 있어요."
  "치즈빵이란 말이죠? 우유 넣은 비스킷하고. 그건 먹을 수 있소."
  아랫입술을 밑으로 당겨서 꼬부라진 고리 같은 검은 이빨 몇 개를 드러내 놓으며 눈먼 메이어가 말했다. 그는 마치 장례식에 와 있는 것처럼 머리를 저으면서 잠시 앉아 있다가 물었다.
  "거기서 펠테스는 무얼 하오?"
  "그는 의류 공장을 갖고 있어요."
  "공장? 그 쥐새끼 같은 하츠켈레 펠테스가?"
  "종업원이 50명이 넘는 큰 공장입니다. 대부분 스페인 여자들이죠."
  "음, 여자는?"
  "상당한 귀부인이죠."
  "하! 미국에 가면 존경스런 사람이 되는구먼. 그 여자는 바로 여기 6번지의 창녀였어. 이첼 글롬프가 그 여자의 뚜쟁이였지."
  "그녀는 백작 부인 같습니다. 당신은 그녀의 다이아몬드를 보셔야 해요!"
  맥스는 엄지손가락으로 다이아몬드가 그의 둘째손가락의 반쯤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눈먼 메이어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쳤다.
  "미국에서 그 사람들이 아는 게 뭐가 있어? 거기는 모든게 돈이야. 현금이 있으면 말을 탈 수 있지. 여기선 폭동이 일어나 늙은 깡패들이 나가떨어졌소. 난 여기 앉아 있어도 아무도 몰라. 사람들은 내게 말을 걸지만 난 그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요. 폭동중에 제화공들과 양복장이들이 우리를 공격했소. 하지만 역공을 할 사람이 없었소.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얻어 터졌소. 그들은 토끼처럼 흩어졌소. 일꾼들은 창녀 집에 들어가서 창녀들을 두들겨 팼소. 20명의 후레자식들이 날 공격했소. 20대 1이었는데 대단할 놈은 하나도 없었소. 그놈들은 날 치스테에 있는 병원으로 데려갔소. 난 거기서 6주를 누워 있었는데 두세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내가 어떤지 보러 오지 않았소. 그게 크로치말나 가의 오늘날이오. 그리고 스모차 가도 더 나을 바 없소. 당신은 여기 왜 왔소?"
  "아무 이유도 없어요. 옛날의 바르샤바를 보러 왔지요."
  "여긴 이제 옛날의 바르샤바가 아니오. 옛날의 바르샤바는 이미 가버렸고 묻혀 버렸소. 한때는 누구나 자기 영역이 있었소. 지금은 최악의 하층 생활이오. 아무도 딴사람을 몰라요. 어떤 사람이 까맣다고 하면 다른 사람은 하얗다고 하죠. 그리고 경찰이 급습해서 사람들을 잡아다가 개처럼 닭장차에다 싣죠. 우리가 잘 나가던 시절에는 경찰서장 보이노프가 같이 브랜디를 마셨소. 경사는 나를 보고 절을 했고 내가 죽으면 유태인 묘지에 묻히기를 바랄 정도로 내게 경의를 표했소. 레이부시 트렐부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약속을 하면 마치 책에 쓰여진 것처럼 정확히 지켜졌기를 바랄 정도로 그는 경찰서에 가서 (각하, 이 사람은 내 사람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금방 감옥에서 풀려 나왔소. 레이부시가 죽은 지 36년이 되었소. 아니, 무슨 소리야, 47년도 더 되었지. 그는 내게 와서 (메이어,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났는데 애들 아버지를 잡아 넣었소. 그를 빼내 와야 합니다)라고 말하곤 했소. 10분 만에 돈을 모아서 경찰서장에게로 가서 사람을 빼오곤 했죠. 안 그러면 내 이름이 메이어가 아니죠."
  "그래요. 압니다."
  "뭘 알고 계시오? 아무것도 모르죠. 당신이 사는 도시 이름이 뭐라고 했소?"
  "부에노스아이레스 입니다."
  "알아요. 거기 화물들을 보내곤 했어요. 아직도 여기엔 옛날에 경호윈을 하던 사람이 하나 있소. 슈무엘 스메테나이죠. 한 때는 방패막이였는데 이젠 큰 놈이오. 탁에노스아이레스에 언니가 있는 여자랑 살죠."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압니다. 거기서 그 여자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 
  "내가 아는 게 뭐 있겠소? 그 여자의 언니 이름이 뭐죠? 레이즐 코르크. 폭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 여자는 여기 크로치  말나 가의 문에 서서 술 취한 사람들을 부르고 있었소. 하지만  슈무엘 스메테나가 그녀에게 반해서 그의 처를 버렸소. 그는 그 여자에게 23번지에다 아파트를 세내어 주었소. 이젠 그 여자가 우두머리죠. 오늘날의 세대가 무엇을 알겠소? 하지만 눈 먼 메이어는 제대로 정신이 박여 있고 기억을 하죠. 내게는 그 사람들이 다 표시가 되어 있소. 날 우롱하지 못하지. 그 때문에 날 미워하는 거요."
  "어느 누구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자, 자, 그들은 날 미워해. 난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거요. 그리고 진실 때문에 얻어맞는 거요. 그렇지만 내가 그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이오? 그들이 내게 무슨 짓을 할 수 있겠소? 내 오리들을 물가로 쫓아 보낼 건가? 난 하루 종일 여기 앉아 있고 인생은 꿈같이 흘러가고 있소. 몇 분마다 꼭 싸움이 있소. 이교도가 지나가고 지갑을 낚아채지요. 창녀들은 매달 검사받으러 가야 하죠. 모든 게 노란 통행증에 씌어 있소. 몸에 작은 까만 벌레가 생기면 그녀를 즉시 병원으로 실어 보내죠. 거기서 독살하는데 장례식도 없소. 구멍을 파서 이교도들이랑 같이 묻죠. 한번은 뚜쟁이가 여자로 가장한 적도 있었소. 닭장차가 오면 창녀들은 모두 달아나죠. 그들이 원하는 거라고는 그주센 몇 푼이고 악마는 가죽을 갖죠. 그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어떻소?"
  "스페인 사람들은 놀고 먹으려고 마누라를 팔죠."
  "거기도 흑인들이 있다던데."
  "거긴 미국이죠, 아르헨티나가 아니라."
  "그럼 뉴욕엔?"
  "뉴욕, 시카고, 클리블랜드예요." 
  "당신은 거기 있었소?"
  "몇 번 가봤어요." 
  "거기 생활은 어떻소? 사람들은 내가 갔으면 했지만 그때엔 누가 미국에 갔었소? 오직 쓰레기들만 갔죠. 난 여기서 부족한 것이 없었소. 크로치말나 가, 스모차 가, 전 구역에서 나는 두목이었소. 사람들이 탐키, 실리츠, 포바즈키, 오초타에서 날 찾아왔소. 내 말이 법이었소. 모든 불만은 파업자들에게서 나왔죠. 알렉산더는 훌륭한 차르였지만 사람들은 그를 죽여 버렸소. 그리고는 유태인 대학살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먼 곳으로 달아나기 시작했죠. 그들은 국회를 요구했지만 돈이 없고 생활이 비참하면 국회가 무슨 소용이오? 시체의 피를 빨아먹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듯 국회가 그들에게 좋은 일 해준 게 아무것도 없죠. 제화공은 제화공으로 남았고 장군은 장군으로 남았소. 내 말이 맞소, 그렇지 않소?"
  "당신이 맞습니다."
  "늙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난 걷기가 힘들어서 여기 하루 종일 앉아 있소. 눕는 것도 아프다오. 무얼 하건 아무 가치도 없어요. 처가 있소?"
  "예. 있습니다."
  "여기 왜 왔소? 애인을 찾아서?"
  "애인은 거기서도 구할 수 있지요."
  "저런! 어디서나 그런 물건은 부족함이 없지. 하지만 늙고 뼈가 쑤시기 시작하면 생각도 나지 않소. 시바의 여왕이 나체로 옆에 누워 있다 해도 난 쳐다보지도 않을 거요. 난 당신의 상상 이상으로 많은 여인과 자보았소. 한번은 어느 도시에 가서 호텔에 묵었는데, 내 바로 옆방에 어떤 대령과 그의 처가 묵었었소. 난 그녀에게 말을 붙였고 그녀는 나와 사랑에 빠졌소. 정말 너무나 갑자기. 그녀는 내 방에 와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소. 난 그녀에게 진실을 발했소. (난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 고를 수 있다)고. 그녀는 분필같이 창백해지더니 말했소. (그들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하지만 난 당신을 사랑해요.) (내가 어떻게 당신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소?) 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소. (당신의 담배를 주세요.) 그녀에게 담배를 주었더니 그녀는 타고 있는 담배끝을 그녀의 손바닥에다 눌러서 살을 지졌소. 그래서 살갗이 까맣게 변하기까지 했소. (여기에 당신의 표시가 있어요.) 그녀가 말했소. 내 평생 동안 그런 일은 처음 보았소. 난 약국에 달려가서 연고라도 사려고 했지만 그녀는 (니체보(괜찮아요). 당신의 입을 주세요) 하면서 날 마치 거머리처럼 빨았소. 사흘 밤 사흘 낮 동안 난 그 러시아 여자와 호텔에 머물렀소. 우리는 아무것도 않고 먹고 자기만 했소. 나홀째 날 나는 호텔 방을 걸어 나오는데 제대로 걷지도 못했소. 마치 장티푸스 걸린 사람 같았소."
  "그녀는 어떻게 되었죠? 대령에게로 돌아갔나요?"
  "그럼 누구에게로 갔겠소? 당신에게로? 그 지역에서 기동훈련이 있었고 그리로 그는 그녀를 데려갔지요. 이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소?"
  "전혀."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더 많이 배우죠. 당신은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뭔가 듣게 되고 당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죠. 어디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성서 어딘가에도 그런 말이 있소."
  아침이 지나갔다. 호텔 사무원이 와서 맥스를 찾는 전화가 왔다고 알려 주었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 없다고 하라고 했다. 그는 여러 명의 여자들을 정복하느라고 지쳐서 졸면서 침대에 몇 시간을 누워 있었다. 치렐이 그를 찾고 있었지만 수요일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는 더 이상 치렐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녀의 지적인 얘기와 랍비 아내의 화난 눈초리와 무엇보다도 랍비가 두려웠다. 맥스는 랍비가 저주를 한다면 그 저주가 통할 것이라고 믿어 마지않았다. 맥스는 처가 있는데도 결혼하겠다는 얘기로 치렐을 더 이상은 계속 속일 수가 없었다. 바샤는 달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시골에서 처자식과 함께 살고 있었고 맥스는 안전했다.
  저녁 9시에 그는 배가 고파서 몽롱한 상태에서 빠져 나왔다. 아직 해는 지지 않았다. 불타는 듯한 빨간 태양은 땅에 닿을락 말락 엷은 구름 위에 얹혀 있었다. 바르샤바에 온 후 처음으로 맥스는 밤을 혼자서 보낼 준비를 했다. 그는 뉴 월드 가 끝에까지 걸어서 카페를 찾아 롤빵과 청어와 오믈렛과 커피를 주문했다. 폴란드어 신문을 읽으려고 했지만 더 이상 폴란드어를 읽을 수가 없었다. 그는 딴 테이블에서 사진이 있는 신문을 집어 와서 사진들을 보았다. 제목을 읽을 펄요가 없었다. 잘 알려진 장군과 또 하나의 장군, 아름다운 여배우와 공주, 결혼식에서 꽃다발을 들고 있는 신부와 칼 손잡이에 몸을 기대고 있는 신랑. 그들 모두가 같은 것들을 찾고 있었다-돈, 짝 그리고 힘. 하지만, 아아, 그가 성취한 것은 무엇인가? 자기 같은 사람은 찌꺼기와 더불어 살았고 아무도 원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던져 버린 것들을 주웠다. 심지어 치렐도 그에게는 과분했다. 그는 쓰레기에서 나와서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는 음식을 먹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지 않도록 천천히 먹었다. 커피도 스푼으로 떠 마셨다. 그는 세 줄 중 한 줄만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읽었다. 자느라고 하루를 다 보내 버렸다는 것이 그에게는 유감스러웠다. 이젠 필시 새벽까진 잠을 못 잘 것이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또 피웠다.
  (난 실수한 거야. 난 강신에 가야 했어.)
  그는 외투 안주머니에 넣어 손을 바르샤바에 온 이후 늘 가지고 다녔던 주소록을 꺼냈다. 친숙한 사람도 있고 완전히 낯선 사람도 있는 그 이름들을 읽으면서 주소록을 한장 한장 넘겼다. 아마도 그가 아르헨티나에서 부탁받고 온 안부를 전해줄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전화가 없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주소록을 보니 기분이 얼마간 나아졌다.
  그는 11시까지 카페에 앉아 있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치미엘나 가 끝에서 창녀들이 그를 유혹하려고 했다. 맥스는 잠시 서서 그들과 얘기할까 생각했지만 창녀들은 폴란드어를 썼고 이디시어는 쓰지 않았다. 그는 호텔로 돌아왔지만 그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로비에 앉았다. 노란 얼굴을 하고 끌리는 검은 베일이 달린 까만 모자를 쓴 한 노파가 17살쯤 된 소녀를 꾸짖고 있었다. 노파는 화난 듯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소녀를 나무라고 있었다. 하얀 털이 노파의 턱에서 비어져 나와 있었다. 소녀는 대답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듣고 있었다. 맥스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소녀가 어떻게 행동했건 이 노파에게 무슨 차이가 있담? 말라버린 이 육체가 얼마나 오래 이 지상을 방황해야 할까? 누구도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부서진 사금파리조차도. 6개월 만에 그가 죽는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가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맥스는 이러한 생각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다. 그가 1년밖에 살 수 없다면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 침대에 누워 최후를 기다릴 수는 없다. 무언가 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줄까? 우선 그는 아르헨티나로 돌아가서 그의 집과 땅을 팔아야 할 것이다.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1년도 되기 전에다 현금으로 바꾸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근거로 자선이 도움이 된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다른 세상이란 없다. 죽은 사람은 죽은 황소와 같다.
  그 같은 사람에겐 단지 하나의 즐거움밖에는 없었다-여자라고 하는. 그는 가능한 한 많은 여자들과 자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는 돈도 전혀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많이 받아들일 것이다. 만약 그가 1년밖에 살 수가 없다면.
  오늘 밤도 벌써 지나가 버린 것인가? 레이즐에게 전화해서 하룻밤 자고 싶다고 말할까? 빵집 여자 에스터를 다시 만나 볼까? 그는 성적인 모험을 할 힘이 없음을 느꼈다. 1년밖에 살 기간이 없어도 힘이 견디어 낼 수 있는 이상으로는 못한다. 술집에 가서 취해 버릴까? 아니, 그는 위스키는 생각이 없었다. 담배를 또 한 대 피워? 그럭저럭 오늘 밤은 지나갔다. 하지만 내일은 무엇을 해야 하나?
  그는 흔들의자에 앉아서 계획을 짜내기 시작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가능한 한 많은 돈을 가져 올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계속 여자를 바꿔댈 것이다. 1년밖에 살 수가 없다면 누군가의 저주를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는 온 세상을 여행하고 한 무리의 여자들을 데리고 돌아올 것이다. 돈이 많으므로 그 돈으로 뭐든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자, 난 날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해. 비서, 중개인, 모든 계획을 실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은밀한 사람이. 하지만 누구를 해야 하나?)
  순간 그는 알았다-레이즐! 그녀는 슈무엘 스메테나에게 싫증이 났고 돈을 사랑했다. 그녀는 바샤 같은 아이를 하나뿐만 아니라 50명은 구해 줄 것이다. 그는 그애들과 여행하며 레이즐에게 월급을 줄 것이다. 그녀는 그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돌아갈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언니를 보고 싶어할 테니까.
  맥스는 환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같이 큰 환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의 전재산을 쓸 필요도 없다. 1만 5천 또는 2만 루블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에게는 쇼에 나오는 여자들은 펄요가 없을 것이다. 바샤 같은 여자면 그에게는 충분하다.
  그러나 하느님이 그에게 더 오랜 삶의 기간을 부여한다면 그는 거의 거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 그게 내가 할 일이야.)
  맥스는 결정했다. 그는 레이즐에게 전화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는 전화를 찾기 위해 일어났으나 곧 다시 앉았다. (아니야. 지금은 말고.) 그는 건축가가 집을 짓기 전에 설계도를 작성하듯 혹은 기술자가 기계를 만들기 전에 청사진을 먼저 그리듯, 모든 것을 숙고하여 계획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는 로셸이 그를 상대로 소송을 하지 못하게끔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다.
  맥스는 한번 둘러보았다. 노파와 그 노파의 손녀나 증손녀가 될 법한 소녀는 떠나고 없었다. 그 혼자 로비에 앉아 있었다. 그는 사무원에게 가서 열쇠를 받았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지않고 빨간 카펫이 깔린 대리석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방에 들어가 불을 켜지 않고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웠다 그렇다. 그는 아르투로의 죽음 이후 몇 년이나 슬픔과 아픔으로 지내다가 비로소 1년의 행복을 얻은 것이었다.
  그는 레이즐 코르크가 그의 계획에 달라붙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와 함께 보낸 그날 밤, 그는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슈무엘 스메테나는 늙고 살이 쟀다. 그는 맥주를 사랑했지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에 대해서는 거의 인내심이 없었다. 잠에 떨어진 2시경까지 그는 거의 모든 것을 다 생각해 보았다. 그는 레이즐과 여행할 것이고 어느 곳에서나 그녀는 그에게 여자를 구해 줄 것이다. 그녀는 타고난 뚜쟁이였다. 실제로 레이즐은 그들의 첫번째 만남에서 이 계획을 제안했었다 레이즐 같은 여자들은 질투가 없다. 실상, 여자를 구하는 것은 그 같은 여자들에게는 열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맥스는 잠에 빠졌다. 그가 눈을 떴을 때 해는 빛나고 있었고 시계는 7시 10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다섯 시간밖에 안 잤지만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맥스는 이 모든 뒤얽힘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을 찾아내었다는 확신이 섰다. 그는 그의 모험을 위한 동반자가 필요했으니 바로 레이즐 코르크였다. 그녀는 그를 위해 바샤를 찾아 주었고 그건 단지 시작이었다.
  레이즐에게 전화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그래서 그는 먼저 세면대에서 면도를 했다. 객실 여종업원을 불러 목욕물을 주문했다. 그리고 옷을 입고 아침을 먹으러 밑으로 내려갔다.
  "우리 둘이라면 이 세상을 뒤엎을 수 있지."
  맥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 여자 역시 그렇게 나쁜 상품은 아니란 말이야."
  레이즐이 거절할 가능성은 있을까?
  "불가능해."
  맥스는 스스로에게 대답했다.
  "랍비가 끼여들지 않는 한."
  그는 랍비에게 보상을 해주어야만 한다. 치렐을 위해서는 지참금을 주어야 할 것이다.
  9시에 맥스는 레이즐에게 전화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맥스, 밤의 반은 당신 생각을 했어요."
  "어느쪽 반? 처음 반 혹은 나머지 반?"
  "중간요."
  "레이즐, 당신에게 말할 게 있소."
  "자, 말하세요. 고맙게도 입이 있잖아요."
  "우리 만나야 할 것 같소."
  "물론이죠. 난 할 일도 없어요. 보고 싶어요."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야. 언제 갈까?"
  "지금요."
  "아무렴. 여자라면 그렇게 말해야지. 당장 가지."
  "아침은 드셨어요?"
  "그렇소."
  "좋아요. 우리 두 번째 아침을 들기로 하죠."
  "바로 그거야.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
  맥스는 큰소리로 혼자 말했다.
  "이 여자는 내가 원하는 것은 다 할 거야. 1년 간 난 인생의 맛을 느껴야 해!"
  그는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갔다. 몸은 날듯이 가벼웠다. 계단을 마구 건너 뛰면서 밖으로 나왔다. 바로 거기, 치렐이 서있었다. 그는 너무나 놀라서 말도 못하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치렐은 그가 사주었던 모자를 쓰고 회색 정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창백했다. 맥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치렐, 여기서 무얼 하고 있지?"
  그녀는 계산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어딜 가시나요? 전 한숨도 못 잤어요. 눈 한 번 감지 않았다고요. 맥스, 말씀드릴 게 있어요."
  "음, 어서."
  "길에선 얘기할 수 없어요."
  "내 방으로 올라와."
  "아뇨, 맥스, 전 남자 방에는 가지 않을래요."
  "그럼 저기 로비로 가지."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면 안 될까요?"
  "어디가 조용하지? 무덤?"
  맥스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자기 말에 스스로 놀랐다.
  "우리 색소니 정원으로 가요. 아침에는 거기가 조용해요."
  "좋아."
  그는 그녀의 팔을 끼었다. 그녀는 뿌리치지 않았다. 그들은 결혼한 부부처럼 천천히 말없이 걸었다. 그들은 정원의 (11개의 문)이라고 불리는 구역으로 갔다. 그리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맥스는 이제 치렐에게 명확한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머리를 숙여 절했다. 그의 생애는 숨어 있는 적, 진짜 악마에 개항하여 벌이는 게임이었다. 그가 두 발로 서기 시작한 어릴 때부터 추구해 오던 그런 쾌락들을 좇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그를 좌절시킨 것은 치렐이 아니라 다른 것, 사악한 악마였다 

    5
  (그래, 돼지 꼬리로 모피 모자를 만들 수는 없지.)
  맥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치렐과 결혼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은 미친 짓, 미친 짓이었다. 그는 마침내 그녀에게 진실을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처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그에게 침을 뱉었다. 그는 손수건으로 그 침을 닦아 낼 생각조차 않았다. 그는 그것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콩만큼이나 크고 다이아몬드같이 맑은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쉼없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유태 율법에서 나오는 말로 소리쳤다.
  "당신이 저주받기를! 영원히 저주받기를! 이 세상에서도 무덤에서도 어느 곳에서도 당신은 평화가 없을 거예요."
  그녀는 울면서 걸어 나갔다. 몇 걸음 걸어가더니 멈추어 서서 그를 쳐다보았다. 눈물에 젖어 빨갛게 부어 오른 얼굴을 하고서. 나중에 레이즐 코르크가 저주란 실현되지 않는 것이라고 안심시키면서 그를 위로했다. 만약 그녀에게 내려진 저주의 천분의 일이라도 일어났다면 그녀는 벌써 발을 문 쪽으로 하고 죽어서 누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맥스는 이번만큼은 그 저주가 실현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치렐의 말뿐만 아니라 치렐의 아버지 랍비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랍비의 태도와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 저주들은 마치 빨갛게 뜨거운 돌처럼 그에게로 쏟아졌다. 그는 실제로 그 저주들이 자신을 때리고 태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쓰라린 종말을 기다리면서 자신이 비탄에 빠지도록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가 살아 있는 한, 그는 조그마한 기쁨이라도 잡아야 했다. 최후의 심판 날인 오는 것을 확신하는 만큼이나 이제 더 이상 레이즐 코르크 없이 못 산다는 것도 확실했다. 24시간 만에 그녀는 그의 전부가 되었다-아내, 애인, 동업자 그리고 안내인.
  이런 모든 일이 어떻게 이토록 빨리 일어났던가? 그는 레이즐 코르크와 동업자가 된 이후로 줄곳 그녀가 그를 즐겁게 해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만의 환상과 야성을 지닌 여인이었다. 또 활기 차고, 경험이 많고, 실제적이었다. 그들은 계획을 만들어 내었다.
  레이즐은 슈무엘 스메테나를 떠나는 것이다. 그는 늙고 뚱뚱하며, 마누라, 아이들 그리고 손자들까지 있었으며, 심장 비대증으로 고통을 느끼고 때때로 심장마비까지 일으켰다. 레이즐이 그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는 죽으면 그녀에게는 단 1그로센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에 있는 레이즐의 언니는 그녀에게 이민 오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썼었다. 욕정에서 우러나오는 열정적인 입맞춤과 거침없는 말 속에서도 그녀는 하느님 덕택에 얼마간의 재산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그녀는 아름다운 보석을 갖고 있는데 작은 새집의 알 속에 넣어 두었다는 것이었다. 맥스가 세상을 방황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비록 그의 마누라 로셸이 이혼해 주지 않더라도 그녀는 그와 함께 살 것이다. 만약 그들이 바샤와 같은 소녀 몇 명을 아르헨티나로 데려간다면, 그들은 그 사업에서-하느님,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돈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맥스는 완전히 그녀에게 의존할 수 있을 것이다.
  레이즐이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새벽이 가까워 소면서 하늘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 등을 돌리고 떨어져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맥스가 눈을 떴을 때, 방은 햇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포만감과 시장기를 동시에 느끼면서 일어났다. 레이즐은 부엌에서 부산을 떨고 있었다. 맥스는 일어나 앉았다 이것이 사랑일까? 그는 일생에 두 번째로 창녀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녀는 그의 재산에 대해서 물어 보았고 그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해 주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는지, 또 갖고 있는 주택과 토지들이 얼마나 값이 나가는지 등 난생 처음으로 여자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모든 진실을 말해 주었다. 지금까지 모든 사람을 속였던 것과는 반대로 이제는 단한마디 거짓말도 없이 온 밤을 레이즐과 이야기하면서 보낸 것이었다. 그는 그녀가 자기를 속이고 있지 않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가 슈무엘 스메테나를 속인 적이 있는지를 물어 보는 식으로 해서 그녀를 시험해 보았다.
  "그래요, 처음 2년 동안요."
  "얼마나 많은 남자들과?"
  레이즐은 잠자코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는 그녀가 손가락을 꼽으며 중얼대는 것을 보았.
  "요셀레 반츠, 하나, 차임 키슈케, 둘, 라메 베를, 셋,"
  "네 번째는 누구지, 응?"
  "잠깐만! 레이저 보크."
  "다 합쳐서 몇이지?"
  "여덟." 
  "그런데 슈무엘이 몰랐나?"
  "전혀!"
  "그리고 그 다음은?"
  "그 다음엔 당신이 나타날 때까지 10년 간 그에게 충실했죠. 만약 이것이 거짓이면 전 올해를 넘기지 못할 거예요!"
  그녀는 맥스에게 달려와서 울며 입맞추기 시작했다.
  "제겐 신앙심 깊은 부모님이 계셨어요. 제 할아버지 레프 멘들은 학교 이사이셨어요."
  그녀는 고백했다.
  맥스는 다시 머리를 베개에 뉘었다. 그래,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과 숙모들, 로스코바의 그들은 죄라고는 몰랐다. 물장수 모이세의 딸이 보조 교사의 아이를 배었을 때, 온 동네가 난리가 났다. 푸줏간 주인들은 바지와 윗저고리만 입은 보조 교사를 침대에서 끌어내어 결혼식 날까지 그를 방안에 가두어 두었다. 그 젊은 부부는 미국으로 가야만 했다. 맥스에게도 26살에 과부가 된 숙모가 있었다. 그녀는 결코 다시는 결혼하지 않고 세탁일을 하여 다섯 아이들을 길렀다. 남편이 죽은 다음부터는 가발도 쓰지 않았고 다만 안식일과 휴일에만 수건을 썼다.
  (어떻게 그럴 수가?)
  맥스는 자문했다.
  (피가 핏줄을 따라 흐르지 않는 것일까? 천사이지 사람이었을까?하느님에 대한 경외가 그렇게 강했을까?)
  레이즐이 문에 나타났다. 오늘 아침만큼 그녀가 사랑스러워 보인 적은 없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희망과 사랑으로 빛났다. 그녀는 더 젊어 보였다.
  "잘 일어나셨기를!"
  그녀가 말했다.
  맥스는 깜짝 놀랐다. 그의 어머니-부디 평화로이 쉬소서-가 그와 똑같은 표현을 쓰곤 했었다.
  (난 로스코바를 찾아가 보지 않고는 이곳을 떠날 수 없어.)
  맥스는 스스로에게 경고했다. 실제로 그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폴란드에 온 것이었다.
  "레이즐, 난 내 부모님의 무덤을 보러 여기 왔어. 난 로스코바에 가지 않고는 여기를 떠날 수가 없을 거야."
  "당신은 날 보러 폴란드에 온 거예요. 내가 당신의 무덤이에요."
  레이즐이 감질나게 하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나와 함께 로스코바에 가야만 해."
  "나는 지구 끝까지라도 당신과 함께 갈 준비가 되어 있어요."
  "바샤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잠깐만, 난 모든 걸 다 생각해 보았어요. 그애를 같이 데려가는 거예요. 부자들은 하녀와 함께 여행하거든요. 물론, 원하신다면, 당신 시중을 들게 할 수도 있죠."
  레이즐은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아침 식사 후에는 무엇을 하지?"
  "당신의 여권을 주세요."
  맥스는 무서워졌다 
  "내 여권? 무엇 때문에 내 여권이 필요하지?"
  "간밤에 당신은 날 믿는다고 털어놓으셨어요. 내가 장군이고 당신은 일개 졸병이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우린 두 장의 여권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시겠어요? 남편과 아내 또는 오빠와 동생의 여권 말이에요. 어느쪽으로든 다 돼요. 난 원하는 대로 열 장 또는 백 장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위조꾼을 알아요. 그는 내 친구이고 아무것도 묻지 않아요."
  "그가 스페인어를 알아?"
  "그는 모르는 게 없어요. 심지어 터키어까지도요. 두려워 마세요. 당신의 여권을 망치지는 않아요. 단지 복사만 해서 내 이름을 적어 넣는 거지요. 슈무엘이 많은 일거리를 주었죠. 한 때 그는 3루블짜리 지폐를 위조하는 공장도 가지고 있었어요. 어떤 멍청이가 깩깩거리지만 않았다면 오늘날 그는 로스차일드 만한 부자가 되어 있었을 거예요. 그는 마카토바에서 5년을 복역했지요."
  "언제 여권을 돌려 받지? 여권 없이는 난 죽은 몸이야."
  "며칠 후에. 당신은 편히 쉬세요, 맥스. 와서 씻고 아침 먹어야죠. 아직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얼마 없어요. 슈무엘이 언제 올지 몰라요. 그가 당신을 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죠. 난 당신이 멀리 가버렸고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할 거예요."
  "당신은 그를 두려워하는구먼. 안 그래?"
  "난 작년 겨울 내렸던 서리 정도로밖엔 그에게 신경 안 써요. 하지만 그가 지껄여대는 걸 원치는 않아요. 실례의 말인지 모르지만 당신은 너무 부드러워요. 당신은 동정을 해서는 안돼요. 제 아저씨는 (살아가는 것은 전쟁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리고 그런 식으로 모든 일이 돌아가는 법이죠. 화약 냄새를 맡을 수 없다면 전쟁에 가지 마세요. 그는 날 20년이나 소유해 왔고, 그걸로 충분해요. 그는 이제 더 이상 정부가 필요 없어요. 물론 그는 날 잃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날 머물게 강요할 수도 없어요. 그 사람들에게 다른 이름으로 당신 여권을 만들게 할 것이고 그러면 당신은 다른 호텔로 옮길 수 있어요. 거기서 내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난 가구와 짐들을 팔아야 해요. 그는 분란을 일으키겠지만 나는 그를 다를 수 있어요. 경찰과 친구로 지내는 사람이 그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레이즐 코르크는 눈을 찡긋했다.
  (이 여자는 어제 가짜로 맹세를 했어.)
  맥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여자에 비하면 로셸은 성인이야. 오, 어머니! 나는 오물 속으로 내 목까지 집어 넣고 있어요!)
  맥스는 갓 구워 낸 베이글빵을 씹으며 생각했다.
  (레이즐이 여권을 가져 간다면 나는 레이즐의 손아귀에 있게 될 것이야.)
  그런데도 그는 그녀에게 여권을 주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완전히 의지해야만 할 것이다 레이즐은 버터와 카티지 치즈를 바른 베이글빵을 또 하나 주었고, 커피를 따라 주었다. 로셸과 몇 년을 보내면서 그는 지하 세계의 여자들과는 익숙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오로지 부잣집 딸들, 공주들 그리고 우아한 귀부인들만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즐은 그를 늪으로 다시 끌어당기고 말았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만족한 여성다운 미소와 결코 벌받지 않으며 늘 상을 받기만 하는 악인의 우쭐함이 담겨져 있었다.
  (천만에, 레이즐. 넌 실패해서 내게 손해를 입힐 거야.) 맥스는 혼자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큰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당신 부모님 사진이 있어?"
  레이즐은 씹는 것을 멈추었다.
  "무슨 말씀이에요? 아뇨, 사진은 없어요. 제 어머니는 하느님, 제발 그렇지 않기를-남자를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그 시대에 누가 사진을 찍었겠어요? 사진을 찍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죠."
  맥스는 브리스톨 호텔로 돌아왔다. 그녀는 위조꾼이 일을 빨리 해줄 것이라고 약속했고, 그녀가 여권을 돌려줄 때까지 맥스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는 아파트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팔려고 했으므로, 그런 물건을 살 사람을 찾기를 원했다. 그녀는 슈무엘 스메테나가 로즈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모든 것들을 재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텔 로비에서 그는 우체국 소인과 아르헨티나 우표가 잔뜩 붙은 편지를 건네 받았다. 로셸의 편지는 파리로 보낸 것이었는데 거기에서 이곳으로 다시 보내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6주전 날짜로 되어 있었다. 로셸의 필체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지만 하나만은 명백했다. 그녀는 화가 나 있었고, 심지어 이혼이라는 단어도 언급하고 있었다.
  그와 결혼했을 때, 로셸은 읽고 쓰는 법을 몰랐다. 결혼 후 그녀는 선생을 고용해서 수년 간 수업을 받았다. 로셸과 비교하면, 맥스는 거의 작가와 다름없었다. 그는 로스코바에서 쓰는 것을 배웠고 신문과 싸구려 소설들을 읽으며 독학을 했다. 또 그는 이디시어 연극과 강의에서 현대적인 표현들을 주워들었다. 심지어 장의 사교회 모임에서 토론을 하기도 했다. 편지를 읽고 또 읽고 나서 비로소 맥스는 로셸이 습진으로 고생하고 있고, 스페인 하녀 로시타와 문제가 있으며, 아르헨티나는 춥고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과 언제 맥스가 돌아오는지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언제 그리고 무엇 때문에?"
  맥스는 자문했다.
  편지에는 맥스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몇몇 글자가 있었다. 그는 그런 글자들을 뽑아 내어 한 번 더 읽어 보았다. 그는 겨우 (추도일)이라는 글자를 읽어 내었다. 그리고 곧 문장 전체를 이해했다. (곧 아르투로의 사망 추도일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주여, 어떻게 그걸 잊을 수가 있었을까요?"
  3주일 전이 아르투로가 죽은 지 2년째 되는 해였다. 맥스는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그가 레이즐과 창녀 조직을 계획하고 있었을 동안 아르투로는 땅에서 썩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난 오늘 금식해야 할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금식할다고 해서 누가 이득을 보겠는가?
  맥스는 슈콜니코프의 강신을 기억해 냈다. 아르투로는 폴란드어라고는 한마디도 몰랐다. 하지만 맥스는 아르투로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저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말, 그리고 (제이데-보베(할아버지-할머니))를 만났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 순간 맥스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로스코바로 가는 것을 연기하지 않을 것이다 폴란드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갔었어야 했었다. 그렇지만 이미 죽었거나 살아 있는 친척들이 있는 그곳이 그저 두려워서 그는 가까이 갈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이기적이며 자기 자신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것일까? 그걸 뭐라고 부르지? 자기 중심주의. 심지어 야만인과 도둑들도 가족에 대한 애정은 있는데.
  (나는 완전한 악당이란 말인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객실 여종멉원이 들어와서 말했다.
  "전화가 와 있습니다. " 
  "누구죠?"
  "마담 테레사랍니다. " 
  "테레사?"
  맥스는 그런 이름의 여자를 기억할 수가 없었다.
  "실수일 거야."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그는 일어서서 복도로 나와 전화 쪽으로 갔다. 들어 본 듯도 한 목소리이지만 여전히 낯설었다. 그녀는 폴란드어로 말하고 있었다.
  "내겐 폴란드어가 힘들어요. 당신은 누구요?"
  "나는 들루가 가의 테레사 슈콜니코프예요." 
  "오, 그 영매 !" 
  "예, 바로 저예요."
  "어떻게 내 주소를 알았소?"
  "오빠가 저에게 주었어요."
  "내가 왜... 그걸 뭐라고 하죠?... 그런 것에 안 갔는지 궁금해 하고 있음에 틀림없을 거요. 난 너무나 바빴소. 그렇지만, 왜 전화했는지 말해 주시오... 무슨 일이 일어났소?"
  "당신은 강신에 오기로 되어 있었죠. 대단히 성공적인 강신이었어요. 특이했어요! 당신의 아들은 당신과 접촉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어요." 
  "내 아들? 접촉?"
  "그래요. 당신과 접촉하려고 했었어요."
  "당신이 전화 걸기 직전에 아들 생각을 하고 있었소."
  "정말로요? 그건 놀라운 일이군요. 생각은 전달이 되지요. 제 오빠가 당신을 찾았어요. 우린 모두 기다리고 있었죠."
  "어쩌면 오늘 저녁에는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맥스가 제안했다.
  "오늘 밤은 강신이 없어요. 하지만 당신과 얘기하고 싶어요. 중요한 얘기가 있어요."
  "아마 당신이 이리로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신을 저녁에 초대해도 되겠소? 당신이 하늘에서 걸어다니는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먹어야 되죠."
  "물론 먹지요. 비록 다른 종류의 영양분이긴 해도, 심지어 이 지상을 떠난 사람도 먹지요."
  "죽은 사람도 먹는다고 지금 말하는 거요?"
  맥스가 물었다 
  "그래요. 다른 종류의 음식이지만 말이죠." 
  "난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음식을 주겠소."
  기분이 유쾌해지는 데 스스로 놀라면서 그는 되받았다.
  테레사가 물었다.
  "어디서 만나죠?"
  "여기 내 호텔요, 원하신다면."
  "그럼, 밖에서?"
  "호텔 바로 앞에서 만날 수 있죠. 8시면 되겠소?"
  "8시에 브리스톨 호텔 앞에 있겠어요."
  "좋아요, 그럼 만나서 어디 가서 얘기하죠."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혼자 하루를 보내야 할 것 같을 때마다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그는 이 테레사란 여자가 약간 두려웠다. 글쎄, 그녀가 죽은 자와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마녀라면 왜 그의 호텔로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까?
  (난 그 여자와는 어떤 이상한 짓도 벌이지 않을 거아. 그런 여자와는 끔찍할지도 몰라.)
  맥스는 방으로 돌아왔다.
  (악마들이 나와 장난치고 있어.)
  (누구에게나 다 이런 것일까 아니면 그만이 특벽한 목적물인 것일까? 그는 의자에 앉아 담뱃불을 당겨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불었다. 배 위에서 그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던 한 남자를 만났었다. 그는 고기도 생선도 먹지 않고 과일과 야채만 먹었다. 아주 춥거나 비가 올 때에도 그는 외투나 모자를 쓰지 않았다. 그는 몬테비데오에 살며, 매일 바다에서 목욕하고, 여자와는 아직 살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어깨까지 늘어뜨린 긴 머리를 하고 있었고, 콧수염은 다듬지도 않았다. 여행하는 동안 그는 신은 없으며 모든 것은 자연이라는 것을 맥스에게 확신시키려고 했었다. 그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회의를 위해 런던으로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연이라면, 왜 자연은 그런 책략을 썼던 것일까? 그리고 누가 세상을 창조하였으며, 누가 그 많은 물로 바다를 채워 넣었으며, 누가 산에다가 바윗덩이를 던졌단 말인가? 그리고 왜 심장은 뛰는 것일까? 하나의 자연이 동시에 그 많은 심장들을 지켜 볼 수 있는 것일까?
  맥스는 복도에서 전화가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를 찾는 전화라는 것을 확신했다. 객실 여종업원이 그를 불렀다.
  "선생님 전화예요?"
  맥스는 전화기로 갔다. 레이즐 코르크였다.
  "맥스, 슈무엘 스메테나가 심장마비를 일으켰어요!"
  "죽었나?"
  "아뇨, 살아 있어요. 사람들이 바르샤바로 데려갔는데 내게로 데려다 달라고 했대요."
  "그렇다면 우리 계획은 모두 취소야."
  "당신은 인내심이 있어야 해요."
  "말을 할 수는 있나?"
  "그래요. 그는 심지어 당신까지 찾았어요. 사람들이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그가 거부했어요. 만약 그가 죽으면 여기 나와 함께라고 했어요. 의사가 방금 떠났어요. 대단한 날이었어요. 그는 입이 비뚤어져서 그가 말하는 것은 겨우 알아들을 수 있어요. 맥스, 그는 예전의 슈무엘이 아니에요!"
  "그는 아내가 있잖소."
  "그녀는 시골 미찰린에 있어요. 맥스, 난 당신이 왔으면 해요."
  "언제? 오늘은 말고."
  "좋아요. 내일 오세요. 전 그런 불상사는 생각도 못 해봤어요. 그 사람들은 전화도 안하고 왔어요. 문을 두드려서 열어 봤더니 네 명이 들것을 들고 있지 않겠어요? 거기에 슈무엘이 누워 있었어요. 그때 무서워서 즉사하지 않았으니 이제 난 영원히 살 거예요."
  맥스는 누군가와 저녁을 먹고 싶은 기분이었다. 저녁 식사에 테레사를 부르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약속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는 뉴 월드 가를 따라 걸어서 식당까지 갔다. 그는 캐비지 수프인 (카푸슈니오크)와 비너 슈니첼을 주문했다.
  (자, 그렇게 해서 슈무엘 스메테나가 심장마비를 일으켰다고? 하느님께서 내가 레이즐과 함께 못 가도록 그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신 것일까? 누군가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알려 주어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일까?)
  폴란드식 캐비지(아마 라드 기름으로 튀긴 것 같은 음식)를 먹고 자신의 운명을 되새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맥스는 오늘 아침에 산 이디시어 신문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웅얼웅얼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다. 거기서 식사하고 있던 폴란드인들이 화난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는 (지드)라는 단어를 늘었다. 그는 랍비에게는 이교도였지만, 이런 이교도에게는 유태인이었다. 그들은 이디시어 신문이 눈에 띄는 것을 싫어했다.
  (죽어 자빠지게 내버려두라지, 난 여기 출신이 아니야, 난 미국인이야. 저 사람들은 내게 아무 짓도 못해.)
  맥스는 유태인과 유태인의 실정을 실어 주고 반유태주의를 난도질해 버리는 이 이디시어 신문을 무척 사랑하고 있었다.
  맥스는 신문을 테이블 전체에 펼쳐 놓았다. 몇 월이지? (아브(유태력의 11월))의 일곱째 날이 벌써 지나가 버렸나? 맥스는 탄식의 3주와 9일과 타무즈의 열일곱 번째 날을 기억해 냈다.
  (이 공휴일들은 며칠이지? 유태력을 사야겠어!)
  그는 그 신문에 유태력의 날짜가 있음을 기억해 냈다. 그는 앞장을 결쳤다. (아브)의 달이었다. (아브)의 아흡 번째 날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엘룰)의 달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6주도 못 되어서 로시 하샤나일 것이다.
  근래 내내 맥스는 (트레이프(유태식의 정갈한 음식이 아닌 다른 음식))를 먹어 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유태식의 정갈한 고기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태식의 정갈한 음식을 먹지 않아 온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그는 이제 갑자기 느꼈다. (사람들이 유태인을 미워하는 한, 유태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어쨌든 그는 커틀릿을 먹고 후식을 주문했다.
  그는 목적 없이 거리를 걷다가 그르지보바스카 가로 가서, 거기서 유태력을 하나 샀다. 그리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테레사하고 만날 8시까지는 아직 몇 시간 더 남아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이디시어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광고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방 세놓음. 모든 편의 시설 딸린 방 하나. 신사분만 원함. 드지카 가 3번지.)
  그리고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 사람들한테 전화를 해볼까?)
  맥스는 생각했다.
  (왜 신사를 원하지? 아마 시집보내야 할 딸이 있는지도 모르지.)
  그는 어리석은 짓인 줄 알면서도 복도로 나가서 전화를 걸었다.
  (이건 내가 다 외롭기 때문이야.) 그는 자신을 정당화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맥스가 물었다.
  "세놓을 방 있소?"
  "예. 한 달에 10루블이오."
  목소리는 쉬진 않았으나 나이 든 사람의 목소리같이 가늘었다. 말투는 바르샤바가 아닌 지방의 말투였다.
  "좋은 방입니까?"
  맥스가 물었다.
  "좋으냐고요? 거창한 방이오, 거리를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창문과 발코니를 갖추고 있소. 방을 원하는 사람이 누구죠? 바로 당신?"
  "그렇습니다."
  "실례지만 직업이 무엇인지요?"
  "여기선 외국인이오. 막 미국에서 오는 길이요."
  "미국이라고요? 그런데 여기 있고 싶다고요?"
  "아니오. 그냥 몇 주만이오."
  "우린 여기 머물 사람을 원해요. 안정된 사람 말이오. 3년 동안 어떤 상인이 여기 살았소. 돌아다니는 세일즈맨 말이오. 그는 길 위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었는데 이젠 러시아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방을 비우죠. 훌륭한 사람이었죠. 우린 꼭 그런 하숙생을 찾고 있소. 훌륭한 사람 말이오. 그 사람은 마치 가족 같았소."
  "난 로스코바에 가족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르샤바에서 몇 주는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안 되겠군. 우린 낯선 사람이 아닌 여기 사람을 원해요."
  "음, 안됐군요. 좋은 여름 되시길."
  그가 막 수화기를 내려놓으려고 했을 때 꾸지람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실례합니다. 파리소버 부인이에요. 제 남편은 방을 세놓는 데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선생님이 바라는 게 무엇이죠? 광고를 보셨나요?"
  "그래요, 광고요. 하지만 당신 남편이-당신의 남편이오?-말하길 오래 머물 여기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소. 사람들이 말하듯 난 잠간 동안의 손님이죠."
  "손님도 대단히 환영합니다. 지난번 있었던 하숙생 같은 사람을 찾기는 매우 어려울 거예요. 알맞은 자격을 모두 지니고 있던 젊은 사람이었죠. 아이들은 그 사람한테 미쳐 있었죠.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듯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죠. 그는 갑자기 딴 직업을 찾아 이사를 해야만 했어요. 바르샤바에는 얼마나 머무를 작정이신가요?"
  "몇 주일 정도요."
  "그리고 나선 미국으로 돌아가세요?"
  "아르헨티나로요."
  "어쨌든 우린 여름에는 아무도 못 구할 거예요."
  여자는 얼마간 망설이다가 말했다.
  "와보세요. 여기 아름다운 방을 가지시게 될 겁니다. 선생님은 이보다 더 멋진 방은 발견 못하실 거예요. 마르쟐코바스카 가에서조차도요."
  "좋습니다. 마차를 타고 바로 가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거지? 그게 내게 무슨 소용이람?"
  맥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는 답을 알고 있었다. 그는 8시까지 남은 몇 시간을 혼자서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마차를 타고 미오도바 가, 들루가 가 그리고 날레브키 가를 지났다. 집은 드지카 가와 노볼립키 가 모퉁이에 있었다. 부자들이 살고 있음에 분명했다. 계단은 깨끗했고 문에는 입주자들의 이름이 적힌 황동판이 걸려 있었다. 맥스는 나단 파리소버의 초인종을 눌렀다 40대 후반 또는 50대로 보이는 여자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녀의 반짝이는 검은 눈 아래는 군살이 붙어 있었고, 피부는 희었으며, 턱은 이중턱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지런한 이목구비로 보아 그녀가 한때는 미인이었음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맥스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자, 들어오세요."
  그녀는 맥스에게 방을 보여 주었다. 조각마루로 세공한 마룻바닥과 침대, 소파, 책상 그리고 물기 없는 세면대가 있었다. 모든 게 반짝거렸고 빛이 났다. 유리문은 발코니 쪽으로 열려 있었다. 맥스는 밖으로 나가서 길 건너 가게들을 바라보았다. 즉석 간이 음식점, 양념 가게, 이발소 그리고 작은 식당이 있었다. 거리는 모두 유태인 행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보통마차들과 무개마차들이 자갈로 포장된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때때로 트럭이 지나갔다. 젊은 남자들은 소리치고 여자들은 웃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이군)이라고 맥스는 생각했다.
  그는 거기 머물고 싶어졌다. 거리는 그에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코리엔테스 가의 유태인 마을을 생각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거기와는 달리 이곳의 유태인들은 그들 나름의 스타일로 옷을 입고 단지 한 가지 언어 이디시어만 사용하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 산다고 해서 나쁠 게 무엇이람? 발코니에 앉아서 바라다보기만을 며칠씩이나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여전히 혼자라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는 누군가가 있어야 했다.
  (바샤? 아내로선 안 돼. 레이즐 코르크? 이런 집에서는 안돼, 이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유태인들이야. 지하 세계의 사람들이 아닌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지.)
  맥스는 거기 서서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그는 인생의 상당 부분을 낮은 계급 사람들과 어울리며 보냈다. 자신을 위로 끌어 올리려고 할 때마다 무엇인가가 그를 다시 쳐서 밑으로 끌어 내렸다.
  "방이 어떠세요?"
  파리소버 부인이 물었다.
  "아름답군요."
  맥스가 말했다.
  "지금 어디 계시죠?"
  "브리스톨 호텔요."
  "그러세요? 호텔은 집이 아니죠. 오세요. 다른 방들도 보여 드리죠."
  그녀는 그를 거실, 부엌, 그리고 침실로 안내했다. 모든 문설주에는 메이즈자(신명기의 몇 절을 기록한 양피지 조각)가 들어 있는 나무 케이스가 걸려 있었다. 집은 뿌리 깊은 유태주의로 가득 차 있었다.
  한창 유행하고 있는 옆이 찢어진 길고 좁은 드레스를 입은 어린 소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커다란 검은 눈동자와 꾸부러진 코와 솟아오른 가슴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 못생긴 소녀 때문에 당황한 듯 말을 했다.
  "저의 막내딸 루즈케예요.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지요. 얘는 헤브루어를 해요."
  "엄마,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내가 뭘 하고 있냐고요? 돈이 엄청나게 들지만 우린 교육을 믿는답니다. 돈은 잃을 수 있지만 머릿속의 지식은 남지요. 하바첼레트 학교라고 들어 보셨어요?"
  "그런 것 같습니다. " 
  "우린 딸이 둘 더 있어요. 하나는 결혼했지요. 이번 겨울에 결혼식이 있었죠. 화폐 제조창 돈도 모자랄 만큼 돈이 들었지만 하느님 덕택에 멋진 경리 남편을 얻었죠. 그는 모세 율법도 알죠. 또 하나는 미오도바 가의 가게에서 일하고 있죠. 둘 다 학교를 보냈지만 우린 모든 힘을 더 어린 딸에게 쏟아 넣었죠. 제발 하느님께서 알맞은 짝을 딸에게 보내 주시길. 그게 우리가 원하는 전부죠."
  "엄마, 이분은 이제 방금 들어왔어요. 그런데 엄만 벌써 우리 가족의 역사를 모조리 이분에게 얘기해 주고 있어요."
  "자, 그러면 이분이 여기 살아서 우리 식구가 되면 되겠지. 내가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부모들은 자식에게서 기쁨을 얻고 싶어한단 말이야. 그게 뭐 잘못되었니?"
  "아니오. 잘못된 게 아니죠. 그게 아니면 자식이 무슨 소용입니까?"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맥스가 대답했다.
  "맥스 바라밴더요."
  "자식들이 있으신가요, 바라밴더 씨?"
  맥스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처도 있고 아들도 있었소. 하지만 하느님께서 데려가 버렸소."
  "뭐라고요? 하느님, 그런 불운에서 저희를 구원해 주소서."
  파리소버 부인은 두 손을 모았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요. 그래서 여기에 왔소. 이번 여행이 다소 도움이 되길 바랐소."
  "어디에 사시죠?"
  "부아노스아이레스요."
  "그렇게 멀리요? 어쨌든 큰 세상이죠. 할 수 있습니까? 모든게 운명이죠.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자살을 해서는 안 되죠. 선생님은 아직도 젊어요. 아마 재혼해서 또 자식들을 낳겠죠."
  "그 말이 작은 위안이 되는군요."
  거친 검은 눈동자와 매부리코를 가진 소녀가 말했다.
  "아르헨티나는 지금 겨울이죠, 그렇죠?"
  "그래, 여기가 여름이면 거긴 겨울이란다."
  "이애는 모든 걸 다 알아요. 얘는 아주 상세히 책들을 공부하죠. 언제 입주하실 겁니까?"
  "한 달치를 미리 드리죠. 그리고 모레 안에 입주하겠소."
  "좋아요, 선생님이 원하시는 대로, 여기 방이 있는데 호텔에서 지낼 필요가 없죠. 거긴 비싸지요,"
  "여기 10루블이 있소."
  그녀는 지폐를 보더니 말했다.
  "행운이 함께하기를! 짐은 많으신가요?"
  "가방 2개요."
  "가져 오시죠. 선생님을 우리 가족처럼 잘 살펴 드릴게요."
  맥스가 8시 5분 전에 브리스톨 호텔 근처에 가까이 갔을 때 테레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멀리서 그녀를 알아보았다. 키가 크고, 날씬한 그녀는 쭉 뻗은 드레스와 베일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들루가 가의 아파트에서 볼 때 보다 휠씬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계속 머리를 돌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못 견뎌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비정상적으로 긴 목을 가지고 있어 동물원의 희귀조 중의 하나를 연상시켰다. 그녀는 그를 보는 순간, 떨기 시작했다.
  맥스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는 파나마 모자를 벗고 긴 장갑 위로 그녀의 손에 입맞추었다.
  "우리 갈 만한 데가 있을까요?"
  그녀가 물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카페가 하나 있소. 거기서 저녁을 먹기로 하죠."
  "난 배고프지 않아요. 하지만 커피 한잔은 할 수 있어요. 내쪽에서 전화 거는 것이 신중하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난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어요.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신 대로예요."
  "무슨 일이 일어났소?"
  "앉아서 얘기하죠. 사람들이 들을 수 없도록 좀 떨어진 테이블을 찾을 수 있겠죠. 이곳 바르샤바에서는 강신술 때문에 모두가 날 알아요, 게다가 내 사진은 신문에도 났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알아보리라곤 생각 안 해요. 알다시피 난 짧은 머리이지만 핀으로 묶고 얼굴을 가렸어요."
  "그래요. 당신은 다른 사람 같소. 나이도 더 들어 보여요. 당신은 이디시어를 잘하는군, 폴란드어만 하는 줄 알았소."
  "아버지는 신앙심 깊은 유태인이었어요 하시드교도였죠. 우린 이디시어 신문에 광고를 내고 매일 ((모멘트))와 ((헤인트))지를 읽죠. 그리고 물론 폴란드어 잡지도 읽어요."
  "당신은 어떻게 해서 영매가 되었소?"
  "모든 걸 다 말씀드릴게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베르나르드 슈콜니코프는 내 오빠가 아니라는 걸 말씀드려야겠어요."
  "그건 나도 짐작했소."
  "어떻게요?"
  "오, 그는 작지만 당신은 키가 크고 당신보다 약 서른 살은 더 들어 보이오. 당신 애인이죠." 
  "제발,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들어요. 카페는 어디에 있죠?"
  "저기, 길 건너."
  "좋아요."
  카페에서 맥스는 다른 테이블과 멀리 떨어진 창가의 테이블을 발견했다. 반대편 구석에 앉아 돋보기로 신문을 읽고 있는 폴란드 신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맥스와 테레사는 그 테이블에 앉았다.
  웨이트리스가 금방 나타났다. 그녀는 보라색 드레스와 양쪽에 나비 모양 장식을 한 짧은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18살쯤 되었을까, 아무튼 어려 보였는데 시골에서 갓 올라온 것 같았다. 아직도 이슬에 젖은 서양오얏 같다고 맥스는 생각했다. 물론 독초도 아닐 것이다.
  (남자는 할 수 없군)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머리를 흔들면서 테레사는 책망과 함께 이해가 담긴 그런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코코아 한잔을 주문했고 맥스는 롤빵과 청어와 오물렛을 주문했다. 웨이트리스가 떠나자 맥스가 말했다.
  "코코아 한잔으로는 혼령들을 데려올 힘을 얻지 못할 텐데."
  "농담하지 마세요. 혼령은 존재해요."
  "어디에 있죠?"
  "모든 곳에 다."
  "당신이 직접 보았소?"
  "한 번뿐만 아니라 수천 번 보았어요."
  "어떻게 생겼소?"
  "오, 그런 걸 토론하고 싶지는 않아요. 혼령은 죽은 사람 같지 않아요. 산 사람 같아요. 죽은 사람은 없어요."
  "묘지에 묻혀 있는 것들은 뭐죠?"
  "진흙 한줌이에요."
  "제발 내게 좀더 말해 주시오. 내 아들을 잃은 이후 나는 밤낮으로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소."
  "토론은 불가능해요."
  "내 아들은 폴란드어를 전혀 못하오. 그런데도 강신 때 내게 폴란드어로 얘기했소. 그애는 내게 할아버지를 만났다고 얘기했소. 어디서 만났죠?"
  "모르겠어요. 난 말을 듣고 따라 할 뿐이에요. 때로는 전혀듣지조차 못해요. 단지 어떤 인상만 받을 뿐이죠. 혼령들은 항상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에요. 혼령들이 메시지를 주면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어요."
  "왜 나와는 얘기하지 않죠?"
  "모르겠어요. 메시지를 받는 능력을 타고나야 해요. 한번은 머리를 자르려고 미용사에게 갔었죠. 난 긴 머리가 편하지 않아요. 나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미용사는 가위를 들고 내 뒤에서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요. 마치 누군가 망치로 나무 의자를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였어요. 하지만 그건 안으로부터 들리는 소리였어요. 난 묘사조차 못하겠어요. 두드리는 것은-뭐라고 해야 하나?-누군가 나의 주의를 끌려고 하는 신호이죠. 보통 밖에 나가 있을 때는 그런 일들이 잘 일어나지 않는데 그때는 미용실 의자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어요. (난 당신이 누군지 몰라요.) 미용사는 말했어요. (하지만 부탁하건대, 가주세요. 난 그런 것들이 무서워요.) 난 돈을 주려고 했지만 그녀는 안 받으려고 했어요. 그녀는 그냥 날 내쫓아 버렸죠."
  "아마 우리 집에서 무언가 두드리게 만들 수 있겠군. 그래도 난 당신을 쫓아 버리지 않을 거요." 
  "아무 일이나 일어나게 할 수는 없어요. 일이 일어나면 그냥 일어나는 것이죠."
  "혼령은 무얼 원했죠? 미용실에서 두드렸던 그 혼령 말이오."
  "모르겠어요. 미용실에서는 마치 집을 허물어 버릴 것처럼 두드렸어요. 하지만 집에 왔을 때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어요, 혼령들은 산 사람 같아요. 혼령들도 변덕을 부리고 열광하기도 하죠."
  "어디에 있소? 하루 종일 무얼 하죠?"
  "몰라요. 아무튼 어딘가에 있어요. 그렇지만 내게 보고를 하는 것은 아니죠. 한번은 집에 앉아 양말을 꿰매고 있었는데 갑자기 군대, 군대 전체를 보았어요. 지금의 군대가 아닌 다른 시대의 군대였어요. 아마도 수천 년 전의 군대일지도 모르죠. 그들은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있었어요. 일부는 말을 타고 일부는 전차를 타고 있었어요. 수천 명의 군인들이 말이며 노새, 그 외 다른 동물들을 끌고 길을 지나갔어요. 다 지나가는 데 45분이나 걸렸어요. 내가 본 것이 로마군인지, 이집트군인지 또는 그리스군인지 물으신다면 난 몰라요. 유태인 군인들은 확실히 아니었어요."
  "죽은 지 오래 된 군인들이 천상에서 행진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거요?"
  "천상이 아니에요. 여기 지상에서였어요."
  "어디를 가던가요? 작전중이었소?"
  "모르겠어요."
  "당신은 꿈을 꾼 것이오. 그것뿐이오."
  "당신이 말씀하는 대로라고 하지요. 당신이 날 믿는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다고 해서 가난해지는 것도 아니에요." 
  "실례지만 그것은 당신이 먹고 사는 수단이죠."
  "난 불구가 아니에요. 내 밥벌이는 내가 해요. 그렇게 못생긴 것도 아니라고요. 결혼을 해서 남편더러 날 먹여 살리게 할 수도 있어요. 현실적인 목적 때문에 나의 힘을 사용하고 싶어 한 적은 없어요. 내가 전화를 했지만 왜 했는지 당신은 아직도 모르고 있어요. 난 내 재능을 뽐내러 온 게 아니에요. 내가 처한 현실은 이러해요. 내가 떠나야만 한다는 것이죠." 
  테레사의 목소리가 변했다.
  "베르나르드가 얘기하길 당신은 부자라고 했어요. 당신이 날도와줄 수 있겠지요? 돈으로가 아니라 여기서 내가 뿌리치고 떠나는 걸 말이에요."
  둘 다 조용해졌다. 테레사는 코코아를 한 모금 들이켰다.
  "왜 떠나야만 하죠?"
  "베르나르드는 실제로 날 노예로 만들었어요, 바로 그거예요. 그는 나에게서 이런 힘을 발견했고 그 힘을 계발하는 걸 도왔어요. 하지만 수없이 많이 그에게 그 대가를 치렀어요. 그 뿐 아니에요. 그는 누구도 내 근처에 못 오게 해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클루스키라는 남자가 있는데 유태인은 아니지만 그 또한 영매이죠. 그는 아코로비치 교수라는 사람의 추종자죠. 난 진퇴양난에 빠져 있어요. 강도나 도망가 버린 남편에 대해 물어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는, 사람들이 얘기하듯, 안식일을 위한 충분한 돈을 못 벌죠. 우린 매우 잘 알려진 가문의 손님이 있는데 사피아 공작이라고, 그의 부인이 죽었죠. 그는 부인을 열정적으로 사랑했어요. 거의 광적이었거나 그보다 더 심했었죠. 처음에 그는 클루스키에게 갔었죠. 클루스키는 온갖 종류의 인사를 죽은 부인에게서 받아 왔죠. 하지만 사피아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았어요. 클루스키가 그를 내게 데리고 왔을 때 난 그의 부인의 인상을 강하게 받았었고 심지어 모습까지도 보았었죠. 하지만 그것도 그에게는 충분하지 못했어요. 간단히 말해서 공작은 불가능한 것, 즉 실체화를 원한다는 것이 명백해졌어요. 혼령이 구체화되어서 인간의 형태로 나타날 때 우린 그렇게 부르죠. 그런 일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죠.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죠. 혼령이 육화된다는 것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아담 사피아는 그것을 고집했어요. 난 철저히 솔직하고 싶어요. 이런 직업은 완전히 정직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손님들의 잘못이에요, 그들에게는 접촉 없는 저녁은 사기이죠. 손님들은 항상 낸 돈만큼 가져 가야 해요.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죠. 그냥 수화기를 들어서 저쪽에 있는 누군가와 전화를 거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하지만 3루블을 지불하는 사람은 그걸 요구하죠. 만약 그들에게 진실을 얘기할 수 없으면 그들을 속여야 하는 상황이 되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짓말에 만족하죠. 실제로 많이 그걸 요구해요."
  "그러면 그건 아르투로가 아니었군."
  "모르겠어요. 때때로 나 자신도 몰라요. 그리고 또한 내가 왜 이런 결 다 말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은 이방인이고 곧 떠날 사람인데 말이에요. 난 두려운 게 아무것도 없어요. 난 아코로비치 교수와 얘기했었죠. 그는 날 시험했고 강신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했죠. 더구나 그는 널리 발표하기를 내가 비범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했어요. 그는 또한 어떤 영매도 매일 밤 사피아 공작의 부인을 불러올 수는 없다고 했어요."
  "그래 당신은 어떻게 했소? 당신 자신이 그의 아내가 되었소?"
  테레사는 올려다보았다.
  "그래요. 어떻게 짐작했죠?"
  "오, 한때 나는 도둑이었소. 난 어떻게 풋내기를 바보로 만드는지 알죠."
  "도둑? 어디서요?"
  "여기 바르샤바에서."
  "정말로요? 모든 게 다 가능하군요. 난 공작 앞에 일주일에 두 번씩 나타나야 하는 처지에 있었어요. 그는 말로는 만족을 못했어요. 그는 나를 꽉 껴안고 내게 가까워지려고 했어요. 그런 짓이 매춘같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바로 베르나르드가 날 그렇게 내몰았어요. 공작이 많은 돈을 지불한다는 것 말고는 그는 주정뱅이였고 반은 돌았어요. 그는 벌써 베르나르드를 쏘겠다고 협박했어요. 그는 심지어 리볼버 권총을 내 가슴에다 갖다 대기도 했어요. 이성을 잃은 남편이 리볼버 권총으로 아내의 영혼을 협박하는 걸 믿을 수 있겠어요?그게 바로 인간이 미치면 나을 수 있는 행동이죠."
  "그는 그게 당신이지 그의 아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구먼."
  "물론 알죠. 하지만 그는 자신이 속기를 고집하고 있어요. 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요. 난 달아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자살하고 말 거예요."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전등불이 하나 둘 켜졌다. 훈혼한 바람이 열린 환기통을 통해 불어왔다. 맥스는 해가 짧아지고 유태인들이 회개의 기도를 하고 심지어 물 속의 고기조차 떤다는 (엘룰의 달)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테레사는 배가 고팠다. 그녀 대신 맥스가 롤빵과 청어와 달걀을 주문했다.
  그는 그녀가 먹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생각했다 이 여자는 영혼을 먹을 수는 없겠지. 다른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로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 하겠지. 이 여자는 내 계획에 들어맞을까?
  이제 슈무엘 스메테나가 아프고 레이즐 코르크가 모든 걸 중단하는 바람에 계획 전체가 중단이 되었다. 그는 치렐을 잃었다. 레이즐은 바샤를 잡고 있다. 슈무엘은 몇 주 또는 몇 년 동안이나 질질 끌지 모른다. 맥스는 저절로 눈살과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그래 당신은 그 미친 지주와 슈콜니코프로부터도 달아나고 싶단 말이죠?"
  "모두로부터, 모든 것으로두터요."
  "아르헨티나에선 무얼 하고 싶소? 결혼?"
  "뭐든 내가 하고 싶은 일요. 동업자 없는 걸로요."
  "이제 슈콜니코프는 사랑하지 않소?"
  "난 단순히 그의 장난감이에요. 그가 날 이용하는 것이죠. 그게 전부예요. 그는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고 충고하는 것을 좋아하죠. 최면과 메시지에 대해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어요. 그는 반쯤 미쳤어요. 그는 신경과 의사한테 가죠. 그건 사실이에요. 뿐만 아니라 그는 나도 구역질 나게 해요. 그에게서 달아나지 않으면 내가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 거예요."
  "내가 어떻게 해주죠?"
  "난 해외 입국 사증 신청을 할 수가 없어요 그가 알면 소란을 일으킬 테니까요. 그는 날 사피아에게 밀어 놓고서는 대단히 질투를 해요. 그가 몇 살이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는 오십쯤 되어 보여요."
  "쉰여덟 살이에요. 난 작은 가방에 짐을 싸서 몰래 국경을 넘어야겠어요. 당신이 날 도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국경을 넘는 것은 작은 일이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당신은 돈이나 가지고 있소?"
  "돈은 조금 있어요. 아르헨티나까지 배로 가는 데 얼마나 드나요?" 
  "배 운임으로 수중에 남은 돈을 다 써버리면 안 되죠. 거기에 가서 바로 그 다음날 아침부터 혼령들과 일을 시작할 수는 없소. 사람을 알아야 해요. 아르헨티나에서는 여자 혼자 거리를 걸을 수가 없소. 경찰은 보호를 안 해주는데 후원자 없이 돌아다니면 창녀이기 때문이오." 
  테레사는 접시에서 눈을 떼고 올려다보았다.
  "그곳이 그런 덴가요? 미국은 어때요? 뉴욕 말이에요."
  "어디서나 여자 혼자서는 키 없는 배와 같죠."
  "흠. 그래서 베르나르드가 나를 제압하는 그런 힘이 있군요. 난 혼자서는 신문에 광고를 못 내요. 혼자선 아파트도 못 빌려요. 언제까지나 여자는 이렇게 노예일까요? 외국은 다르다고 들었는데." 
  "다르지 않소. 런던에서는 시위가 있었고 한 여자가 장관을 물리치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소. 만약 남자가 당신을 동반하지 않으면 하인이나 어머니가 있어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호텔에 넣어 주지도 않을 거요. 혼령들과는 어떻소? 거기서는 여자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소?"
  "오, 당신은 날 놀리시는군요!"
  "난 조롱하는 게 아니오. 묻고 있는 것이오. 영혼들이 먹고 이야기하는 한, 사람과 마찬가지죠. 농담이 아니고, 아르헨티나는 여기보다 더 나빠요. 아르헨티나에도 점쟁이들이 있소. 한 때 나도 점쟁이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점쟁이가 나의 미래를 얘기해 주었소. 하지만 그녀는 늙었고 그곳 출신의 여자였소. 스페인어를 배워야 할 거라고 얘기할 필요는 없겠죠. 유태인이 점쟁이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게다가 유태인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많이 거기에 있겠소? 당신은 스페인어를 알아야만 해요. 당신 직업은 말로 사람을 사로잡아야 하는 직업이오. 이디시어와 폴란드어말고 어떤 말들을 하죠?"
  "러시아어예요."
  "그 밖에 딴 언어는?"
  "아무것도 없어요." 
  "어디를 가건 언어를 배워야 해요. 재잘거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집시들이 얘기하는지 들어 봤소?"
  "제발 나를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아 주세요. 난 당신이 날 도와줄 수 있을까 해서 왔는데, 오히려 당신은 날 실망시키고 있어요."
  "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요. 내가 당신을 속이는 걸 당신이 원치 않는 한."
  "난 영매일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무얼 하고 싶어하건 당신은 언어를 배워야 해요. 공장에서 일한다면 당신의 수입은 언급할 가치가 없어요. 유태인 여자들은 아르헨티나에서는 일하지 않아요. 뉴욕은 다르죠. 거기서는 (랜즈맨) 공장이나 딴 곳으로 일하러 가도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요. 난 거기 가봤고 뉴욕을 알아요. 하지만 거기도 나빠요. 거기서는 (미세스)-(미스트리스(정부))를 그렇게들 부른다오-의 하녀가 될 수밖에 없고 한방에 다른 여자들 셋과 자야 되죠. 일주일 내내 일하고도 빵 한 조각 살 정도밖에는 안 되지요. 기차로 일하러 가고 기차로 집에 오죠.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얼고 여름에는 열 때문에 질식할 정도죠."
  "그 말은 내겐 전혀 출구가 없단 말이군요."
  "당신은 누군가의 부인이든가 아니면 정부가 되지 않으면 안돼요."
  테레사는 마치 마실 듯이 잔을 들어올렸다가 힘없이 다시 내려놓았다.
  "누군가의 부인이거나 정부가 되려면 끌리는 사람을 찾아야 해요. 난 내 자신을 마치 상품처럼 시장에 내다 팔 수는 없어요."
  "어떤 사람은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못해요. 터키 사람들은 부인을 사지만 누구도 그걸 죄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아버지가 딸을 팔죠. 바로 우리 조상 야곱이 7년 동안 일을 해서 라반으로부터 라헬을 샀죠, 그리고 흥정에서 그를 속였죠."
  "난 나를 팔 아버지가 없어요."
  "나와 함께 갑시다. 난 정부를 찾고 있소."
  맥스는 스스로의 말에 당혹했다. 테레사가 그를 호되게 꾸짖거나 심지어 테이블에서 일어나 떠나 버리지 않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조용히 앉아서 접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창문 밖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전차가 멈추었다. 몇몇 숭객들이 내리고 몇몇이 올라탔다. 맥스는 밖을 바라다보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들의 일들은 다 질서 정연할까? 아니면 테레사와 나만큼이나 뒤죽박죽이 되어 있는 것일까? 전차가 종을 울리며 미끄러져 갔다. 전차의 막대기가 위의 전선에 닿을 때마다 전기 불꽃이 일어났다.
  테레사는 머리를 치켜 들었다.
  "당신은 날 놀리고 있군요." 
  "아니오. 나에겐 아프고 반쯤 미친 마누라가 있소. 그 여자와는 더 이상 못 살겠소."
  "당신이 베르나르드에게 말한 걸로 봐서는 당신은 누구와도 같이 못 살아요."
  "내가 가깝다고 느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면 그러겠소, 내 나이에는 이 여자 저 여자 쫓아다니는 게 어렵소. 난 친밀한 관계, 친구를 찾고 있소."
  (이건 실제로 내 계획과는 전혀 반대인데)라고 맥스는 생각했다. (난 전부를 거꾸로 돌려놓고 있어.)
  그는 자신의 말에 매료되어 앉아 있었다. 아니, 테레사가 그의 말을 듣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매료되었다. 아무리 생각이 비합리적이라도, 아무리 그의 말이 그 자신에게조차 황당하게 들리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맥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그는 실제로 자기가 그녀를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채 테레사에게 정부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녀가 동의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이 여자 때문에 파리소버 집에 방을 구했던 것일까?"
  그는 자신의 통치자이자 운명인 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그는 테레사가 (우린 서로를 잘 몰라요. 우선 친해져야 해요)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우린 친해질 거요. 당신에 관해서 당신이 해준 얘기는 흥미로웠소. 베르나르드 슈콜니코프와 한 번이라도 사랑에 빠진 적이 있소?"
  "오, 그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요. 그는 나의 재능을 발견하고 가르쳤죠. 그는 나의 선생이자 아버지였어요. 난 서부 폴란드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 출신이에요. 달리 어떻게 될 수가 없었어요. 난 그의 정부가 되었어요."
  "왜 그의 부인은 못 되었소?"
  "그의 부인은 이혼해 주지 않으려고 해요."
  "진부한 이야기구먼."
  "하지만 얼마나 오래갈 수 있겠어요? 그는 이제 거의 육십이다 되었고 난 아직 서른세 살도 되지 않았어요. 더구나 내가 사피아 공작에게 온갖 사기를 다 치도록 강요해요. 그것은 그의 쪽에서도 더 이상 사랑이 없다는 뜻이죠, 그는 단순히 날 써먹고, 팔아먹고, 돈은 혼자만 챙기려고 하죠. 내가 돈을 벌게 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절대로 얘기하는 법이 없어요. 음식과 때때로 드레스를 얻는 것 외에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못 얻어요. 난 그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라고 바라진 않지만 뭔가 그에게 일어나면 내가 어떻게 하겠어요? 그의 마누라가 와서 날 쫓아 버릴 테죠. 한번은 그가 아팠는데 상태가 나빠 보였어요. 고맙게도 그는 나았어요. 난 그를 밤낮으로 지켜보았죠. 하지만 부인이란 여자는 그가 어떤 상태인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염탐꾼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그는 유언장이 없나요?"
  "한번 용기를 내어 그 말을 꺼냈다가 얻어맞았어요."
  "그래서?"
  "난 다만 달아나고 싶어요. 그에게서 달아나지 않으면 그는 날 도로 잡아갈 거예요. 그는 그런 사람이에요."
  "달리 말하면 그가 당신에게 최면을 걸었단 말이군요."
  "그는 돌이라도 움직일 수 있어요."
  "혹시 그를 사랑하는 건 아니오?"
  "그렇다 하더라도 난 달아나야 해요."
  "나한테로 오시오. 나 또한 마누라가 있소. 하지만 집을 넘겨주거나 그 밖에 당신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주겠소. 선생을 구해서 당신이 스페인어를 배우도록 하겠소. 그건 어려운 언어가 아니오. 당신은 술집을 열고 돈은 다 내가 아니라 당신에게로 갈 거요. 난 당신의 돈이 필요 없소."
  "당신의 부인께선 뭐라고 할까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아르헨티나에서는 누구나 정부가 있소. 심지어 성직자들도. 그런 여자들은 존경심을 가지고 쳐다들 보지요. 난 아이를 잃어버렸소. 난 아들이 있어서 아들이 날 위해 카디시를 해주기를 바라오. 내 재산을 누구에게 남기겠소? 당신은 아직도 젊고 틀림없이 아이를 가지고 싶어할 거요."
  "그래요. 난 아이들을 사랑해요. 그와 내가 남매로 살아가는 한-그는 누구에게나 날 자기 여동생이라고 소개하죠-그의 어린애를 가질 가능성은 없어요. 난 두 번 임신했었죠. 그때마다 낙태하러 산파에게 갔어야 했었어요. 두 번째는 치질 때문에 거의 죽을 뻔했어요." 
  "젊은 여자의 생활이 그래서는 안 되지."
  사방이 조용해졌다. 전차 한 대가 완전히 빈 채로 서 있었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언제 가죠?"
  테레사가 물었다.
  "난 내일이라도 갈 수 있소. 아무것도 날 막지 못해요. 하지만 난 어리석은 일들을 했소.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소. 내가 떠나 온 조그만 마을을 찾아가는 것이오. 로스코바라는 마을이죠. 거기 친척들이 있는데 그들이 보고 싶소. 난 바르샤바에 대한 향수가 있었소. 아마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이 운명이겠죠. 당신이 원하면 짐을 꾸리거나 아니면 안 꾸려도 좋소. 난 상관없소. 그리고 같이 로스코바에 가서 거기에서 국경으로 가는 거요."
  "로스코바는 어디쯤이죠?"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아요."
  "로스코바에서 난 뭘 하죠?"
  "며칠 간 날 기다려요. 사실은 혼자 여행하는 것이 외로워서 거기 가지 않았소. 난 아들이 죽고 난 다음부터는 1분도 혼자 있을 수 없어요. 난 우울증에 사로잡혀 있소. 이젠 그걸 끝내고 싶소."
  "그 정도로 아들을 사랑했어요?"
  "그 정도나 아들을 사랑했는지는 모르겠소. 아무튼 모든 것이 공허해졌소. 지독하게 공허해졌단 말이오. 당신은 죽은 자가 살아 있다고 믿소?"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산 사람이 죽은 것이겠죠."
  "그래, 당신은 흥미로운 여자요. 난 당신과 함께라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 같소."

    6
  "사람이 얼마나 미칠 수 있을까?"
  맥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드지카 가의 방 하나를 10루블을 주고 세를 내었지만 여전히 브리스톨 호텔에 살고 있었다. 테레사는 그와 함께 세계를 일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함께 가겠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하지만 레이즐 코르크가 그의 여권을 들고 있었다. 그는 매일 여러 번 그녀에계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지금은 위조꾼에게 갈 수 없어요. 아픈 사람을 혼자 내버려둘 수 없어요)라고 설명했다.
  맥스는 방안을 왔다갔다했다. 왜 크로치말나 가의 창녀에게 여권을 주어 버렸을까? 경찰에 알려야 할까? 리볼버 권총을 그녀의 가슴에다 쑤셔 박아야 할까? 그녀에게는 깡패가 있었다. 그 깡패들은 그를 늘씬하게 팰 것이고 그는 체포될 것이다. 어딘가에 아르헨티나의 영사가 있을 터이지만 여권을 주어 버린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음, 내 발로 덫으로 걸어 들어간 거야."
  맥스는 바샤와 통화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안주인이 전화를 받았다.
  "바샤는 바빠요."
  그녀는 꽥 소리지르고는 수화기를 쾅 하고 내려놓았다.
  "난 맞아 싸. 내가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그건 당연해. 랍비가 날 저주했으니까."
  맥스는 중얼거렸다.
  여권 없이 맥스는 로스코바에도 갈 수가 없었다. 경찰들이 기차 객실에 와서 여권을 보자고 할 것이다. 여권이 없으면 체포되어 딴 죄수들과 함께 시베리아로 보내질 것이다.
  로스코바에서 태어났으니 새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거기에서 출생 증명서를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로스코바엔 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여자를 쏴버릴 거야. 그 여자를 쏘고 총을 내 머리에다 대고 쏘아야지. 그 어느 것도 감옥에서 썩는 것보다는 나아."
  맥스는 중얼거렸다.
  그는 다시 한 번 복도로 나가서 레이즐에게 전화를 했다. 남자가 거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레이즐이 거기 삽니까?"
  "그렇소. 무얼 원하시오?"
  "그녀와 얘기해야겠소."
  "당신 이름이 뭐죠?"
  "맥스 바라밴더."
  "바라밴더란 말이죠? 잠깐 기다리시오."
  그는 레이즐한테 가는 듯 했으나 5분이 지나도 아무 응답이 없었다. 맥스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다시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는 세 번째, 네 번째 전화를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레이즐이 테레사와 만난 것을 아는 것인가? 그녀가 첩자를 보내 그의 뒤를 쫓은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그녀의 더러운 사업을 위해서 그의 여권이 필요한 것인가?
  "그 여자를 쏴버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산 채로 가죽을 벗길 거야. 내가 그 여자를 끝장낼 때가 그 여자한텐 그래도 제일 좋은 순간일걸." 
  그가 그렇게까지 격노한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처음이었다. 사살, 구타 그리고 칼부림이 난무하던 그의 소년 시절의 환상은 끝이 나 있었다. 어른이 된 후 그의 생각은 여자, 건강, 그리고 물 치료법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었다. 하지만 이제 맥스의 피는 분노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가방을 열고 리볼버 권총을 꺼낸 다음 총알 수를 헤아렸다.
  (아니, 난 칼을 사야겠어.) 그는 결심했다. (시장의 좌판 아니면 이디시어를 할 수 있는 (철문) 구역의 행상에게서 하나 사야겠어.)
  (자, 그건 나의 행운이야.)맥스는 생각했다. 그는 감옥에 앉아 있는 그를 죄수들이 말없이 노려보고 있던 꿈을 기억해 냈다. 그 꿈은 항상 그를 공포에 젖게 했다. 이상한 중압감을 느끼면서, 또 이집트의 파라오 꿈에서처럼 하느님이 그의 계획을 그에게 보여 주고 있다는 확신을 하면서, 늘 그는 꿈에서 깨어 났었다.
  (요셉이 자기의 꿈을 밝힌 수석 제빵공의 이름이 뭐였더라?)
  그는 (그리고 새들이 그대의 살을 먹으리라)라는 말을 기억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그는 학교에서 그려 보았던 그 장면을 보았다-어두운 동굴, 찢어진 셔츠를 입은 긴 머리의 요셉, 수석 집사와 수석 제빵공의 모습을.
  (하느님이 당신의 머리를 들어올려서 당신을 당신의 원래 위치로 돌려 줄 것이다...)
  (파라오는 당신의 머리를 자르고 당신의 몸을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 것이다. )
  그는 아직도 유태 율법의 주석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파다나람에서 내가 왔을 때... 비록 나는 너의 어머니 라헬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나를 묻을 책임을 너에게 부과했음에도... 여전히 일구어야 할 작은 땅이 있었다. 땅은 체처럼 구멍들로 가득했다...)
  맥스는 그 다음 말을 기억하려고 애썼지만 더 이상 기억할 수가 없었다. 단지 멜로디만이 남아 있었다.
  "나의 선생의 이름은 뭐였지? 이첼 첸트시너. 얼마나 오래 전이었지? 자, 상관없어. 내가 망했으면 망한 거지. 난 내 운명에서 도망갈 수가 없을 거야."
  맥스는 호주머니에다 리볼버 권총을 넣었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가서 열쇠를 사무원에게 맡겼다. 맥스는 조용히 호텔과 사무원과 모든 직원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오늘 밤 난 어딘가에서 분명 죽어서 누워 있을 것이다. 날 용서해 주오, 로셸. 날 용서해 다오, 치렐, 날 용서해 주오, 랍비님. 난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나도 그 일을 당해 마땅해. 최소한 유태인 묘지에 묻히기만 바랄 뿐이야."
  맥스는 (극장) 광장과 세나토르스카 가와 반코비 가를 걸어갔다. 의회당의 시계는 2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너무 높아서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보아야 하는 탑 위에는 건물을 점검하는 소방서원의 모습이 작게 보였다. 페인트 칠한 집이며 정원, 호수, 백조가 그려진 무대를 갖춘 뚜껑 없는 마차가 오페라 극장으로 가고 있었다.
  돈을 나르는 승합차가 경호원 두 명의 호위를 받으며 반코비 광장 (철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맥스는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들도 그를 노려보았다.
  (내 리볼버 권총을 꺼내어 저들을 쏘아 버리면 어떻게 될까? 난 잡힐 거고 거리는 경찰로 가득 차겠지. 자, 어리석은 생각이야. 저 사람들도 분명 아이들의 아버지일 테지.)
  맥스는 프르제초드니아 가로 들어가서 (비엔나 홀)의 기둥들 사이를 빠져 나왔다. 그곳에는 시장 여인들이 (단추요, 바늘이요, 베개껍데기요, 유물이오!)라고 외치며 물건을 팔고 있었다. 하지만 칼을 파는 사람은 없었다.
  (바르샤바에서는 어디서 칼을 사지?) 맥스는 궁금했다. 그는 레이즐 코르크가 쉽게 죽도록 할 의향은 없었다. 그는 미로바스키 가로 접어들어 좌판 시장으로 향했다. 거기엔 모든 것이다 있었고, 심지어 바다 생선도 있었다. 그는 버터, 온갖 종류의 치즈, 각종 사과, 배, 자두, 대추, 무화과, 할바(터키식 과자의 일종) 그리고 물론 쇠고기, 닭, 오리, 칠면조도 보았다. (아니, 이게 뭐야? 가금류, 토끼. 하지만 칼은 없잖아.)
  (하느님,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아마 아직도 빠져 나갈 시간은 있겠지. 어쩌면 경찰에 가서 모든 걸 말해야 할지도 몰라 여권을 잃었다고 교수형을 시키진 않겠지, 로셸에게 전보를 보내서 오라고 해야겠어. 그녀가 날 구해 줄거야.)
  맥스는 잠시 멈추어 섰다. 두 개의 좌판 사이에 냄비, 파이앙스 도자기, 사기 그릇을 진열해 놓은 테이블이 있었다. 한쪽 테이블에서 그는 칼을 보았다. 보통의 부엌칼로 나무같이 둔탁한 목재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그는 제일 좋은 칼을 골라서 돈을 지불했다. 그는 (쇼이케트)처럼 살인의 칼을 손톱 가장자리에 대고 그어 보았다.
  맥스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칼 가는 기계를 가진 늙은 이교도가 있었다. 그를 보게 된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는 하얀 턱수염에 뺨이 움푹 패어 들어가 있었다. 머리에는 반짝거리는 챙이 달린 푸른 모자를 쓰고 있었다. 맥스는 그를 불러 세워서 칼을 내밀었다. 그는 폴란드어로 어떻게 (갈다)라고 말해야 할지를 잊어버렸으므로 손짓을 썼다. 노인은 기계를 보도로 밀어 놓고 돌에다 칼을 갈았다. 불꽃이 튀기 시작했고 수시로 그는 칼날을 살폈다.
  (이런 식으로 살인을 하는 것인가? 난 그저 장난치고 있을 뿐인데.)
  맥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노인에게 20그로센을 주었다. 그가 잔돈을 내주려고 하자 맥스는 손을 내저어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이제 그는 볼리너 연대 막사를 지나 시에플라 가로 올라갔다. 연병장 너머로 군인들이 행진하며 훈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군인 하나는 말을 타고 있었다. 맥스는 잠시 서서 바라 보았다. 그는 이미 이 모든 것을 거쳐 온 느낌이 들었다. 깨어있는 것일까 아니면 꿈일까? 모든 것이 낯익어 보였다. 칼갈이, 그에게 칼을 판 외눈박이 여인, 러시아어로 명령을 내리는 병장 혹은 삼등병, 말을 탄 상사 등. 멀리서는 모든 군인들이 다 똑같아 보였다. 마치 나무로 만든 인형처럼 보였다. 그들이 들고 있는 창검이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말굽 아래서는 먼지가 피어났다.
  "사람들을 어떻게 죽이는지를 배우고 있구먼. 사람들은 서로를 죽여야 하는 것 같아. 조만간 사람들은 너무나 타락한 나머지 감금이라도 되지 않으면 안 될 거야."
  다시 한 번 그는 분노했다.
  "만약 내게 여권을 돌려주지 않으면 그 여자는 죽은 목숨이야. 그 여자가 날 바보로 만들진 못할걸, 어쨌든 난 사는 것이 진절머리났어."
  맥스는 크로치말나 가의 모퉁이에 와서 23번지 문으로 갔다. 그때 (집으로 돌아가기엔 아직 늦지 않아)라고 어떤 목소리가 그에게 경고했다.
  그는 레이즐의 아파트 계단을 올라갔다.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문을 밀었더니 열렸다 그는 복도를 지나 중앙에 있는 방 쪽으로 갔다. 문을 열었더니 슈무엘 스메테나가 적갈색 목욕 가운을 입고 쿠션 세 개를 등뒤에 받치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의 입은 비뚤어져 있었고 눈 아래로 축 처진 살은 푸르뎅뎅했다. 몸이 굉장히 무겁고 부어 보였다.
  잠시 슈무엘 스메테나는 맥없어 보이는 눈으로 맥스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자, 들어오시오."
  "레이즐을 여기 없소?"
  "가게 갔소. 하녀가 멀리 갔거든. 어떻게 들어왔소? 문이 열렸던가요?"
  "닫혀 있지 않았소."
  "자, 들어오시오. 당신은 뭐가 날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겠죠."
  "예. 압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죠."
  "그럴까? 난 힘세고 건강했소. 갑자기 내 몸 안의 무엇인가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눈앞이 깜깜해졌소. 그리고는 길 할복판에서 쓰러졌소. 마차와 트럭들 사이에 말이오. 정신이 들었을 때 난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소."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요.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소."
  "육십 년을 살았어도 의사한테 간 적이 없소. 내 입을 보시오, 비뚤어졌소."
  "바로 돌아올 겹니다."
  "난 병원에 있고 싶지 않았소. 난 병원을 싫어해요. 어떤 사람이 내 옆 침대에서 죽었소. 바로 내 옆에서 사람이 죽는데 어떻게 나을 수가 있겠소? 우리 무리 중 몇 사람이 왔기에 말했소. (난 로즈에 머물고 싶지 않아. 난 바르샤바에서 살았어. 그러니 바르샤바에서 죽을 거야.) 그들이 접는 침대를 가져 와서 기차까지 밀어 주었소. 레이즐은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녀는 문을 열고서야 내가 거기 누워 있는 것을 보았소. 그녀는 반 구역이나 떨어진 곳에서도 들릴 만큼 크게 소리를 질렀죠."
  "레이즐이 당신을 돌보나요?"
  "레이즐이 아니라면 누가 날 돌보겠소? 난 그녀를 쓰레기 더미에서 구해서 여왕을 만들었소. 내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아직도 개천에서 썩고 있을 거요. 내 아내는 시골 미찰린 어딘가에 있소. 악마가 그녀를 데려가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하오. 집이 두 개가 있으면 저축이 안 되죠. 돈이 손가락 사이로 술술 빠져 나가도 아프지만 않다면 다 좋은 거죠. 만약 내가 유지들과 술집에 갈 수가 없으면 사람들은 내게 안 와요."
  "어쩌면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을 지도 모르겠군요."
  "돕는다고? 무얼?"
  "돈을 빌려 드릴 수 있어요."
  "왜 그래야 되죠? 당신은 여기 머물 것도 아니고 멀리 가버릴 사람이잖소. 바르샤바에 머무른다면...?"
  "난 가지 않아요. 당신이 회복되면 갚으시죠."
  "상상 좀 해보시오! 나의 무리들은 날 죽게 내버려두는데 지구 반대편에서 낯선 사람이 와서 내게 돈을 빌려 주려 하는군요. 요즘에 사람은 파리보다도 가치가 없어요. 살아 있다가 한 순간이면 가는걸." 
  "당신은 잘살고 건강할 겁니다."
  "음, 어쩌면. 레이즐에겐 돈이 있소. 한 뭉치 저축해 놓았지. 그렇지만 그녀에게서 빼앗을 생각은 없소. 뭐라고 표현하죠? 뺏는 사람은 주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걸 다 주어 버려도 고맙다는 말도 못 듣죠. 여자에게서 뭔가 바라느니 차라리 무덤에 누워 있는 게 더 낫죠."
  "당신에게 돈을 빌려 드리겠소. 당신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오."
  "예전과 똑같지 않소. 내가 크로치말나 가에 왔을 때는 여자들이 가축같이 전세계로 실려 나가고 있었소. 여자가 유혹에 넘어가면 금방 창녀가 되어 버렸소. 처녀가 아닌 여자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죠. 그런데 오늘날은 어떤 여자들은 스스로 몸을 팔고 어떤 여자들은 차르를 전복시키려고 하죠. 어찌 되었든 지금은 옛날과 다르오. 그녀가 당신과 가까워졌다면서?"
  맥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
  "가까워졌다고요? 아니오."
  "왜 안 그렇소? 그녀가 말하길 마음속으로 당신을 그리워한 다고 했소."
  "그럼 그녀가 당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거지요."
  슈무엘 스메테나는 말없이 잠시 있었다. 그의 입은 더욱 비뚤어졌다.
  "그런 사람에게서 무얼 기대할 수 있겠소? 그녀는 사람을 곯리죠. 나의 어머니는 미덕 있는 유태 여인이었소. 아버지가 러시아 군대에 입대하여 5년을 떠나 있었어도 어머니는 첫날과 마찬가지로 정숙한 아내로 남아 있었소.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바느질을 했고 그의 부대로 돈을 보내었소. 요즘 사람들은 그저 쓰레기일 뿐이오. 욤 키푸르에는 교회에 가지만 그 다음날 아침이면 제멋대로예요. 아마 저 세상에서야 우린 진실을 배우겠죠." 
  "딴 세상이 있습니까?"
  "뭔가 있음에 틀림없소."
  슈무엘 스메테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금방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는 잠에 곯아떨어졌다. 잠시 후에 맥스는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방안에 있는 옷장 안을 들여다보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옷장 안께 그의 여권이 있었다! 그는 너무나 놀라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기적이야!)내부의 목소리가 외쳤다.
  (내가 사람을 죽여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었군.)
  이제 맥스에게는 위조와 복사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레이즐은 단순히 그를 인질로 만들어 놓기 위하여 그의 여권을 가져 갔던 것이었다. 하지만 왜 옷장에다 놓아두었을까? 그는 레이즐에게는 졌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그가 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가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수호 천사가 그를 지켜 보고 있었다. 그는 집 밖에 나와 얼마간의 신선한 공기를 호흡할 필요가 있었다.
  문 앞에서 그는 레이즐 코르크가 닭, 양배추 하나, 감자. 그리고 토마토 따위가 든 바구니를 들고 그의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당신, 위에 계셨어요?"
  그녀가 물었다.
  "슈무엘 스메테나가 어떤가 해서 보러 왔소."
  "그는 어때요? 온다고 전화하시지 그러셨어요?"
  "전화했는데 누가 받더니 불러온다고 해놓고, 전화기를 든채 마냥 기다리게 했소."
  "누구였어요? 무슨 얘기를 하고 계신 거죠? 여긴 아무도 안와요. 그건 어제였지 오늘이 아니에요, 그건 분명 이발사 겸 외과의사인 메나시였을 거예요."
  "내 여권은 어떻게 됐지?"
  맥스는 준엄하게 물었다.
  "잠깐만. 바구니를 내려놓을게요. 이 바구니는 백 파운드나 되는 게 틀림없어요. 당신의 여권은 위조꾼에게 주었어요. 하지만 그가 바빠서 계속 미루고 있어요. 왜 여권이 필요하세요? 떠나고 싶으세요?"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 그렇소."
  "그러면 날 여기서 고생하게 내버려두고요?"
  "그러면 어때? 내가 당신을 유혹했나? 당신이 정말 순진한 어린 처녀란 말이야?"
  레이즐은 반은 한탄하듯이 반은 뻔뻔스럽게 맥스를 바라보았다.
  "이제 당신은 내가 필요 없으세요?"
  "우선, 내 여권을 돌려줘. 그리고 나서 이야기하자고."
  "여권은 위조꾼에게 가 있어요. 나에겐 없어요."
  "그는 어디서 살지? 거기로 내가 직접 가겠어."
  "그는 당신과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할 거예요."
  "그 말은 당신이 준비가 될 때까지 내가 여기 바르샤바에 묶여 있어야 한다는 거지."
  "맥스, 무슨 일이에요?"
  "문제는 네가 돼지고 암캐라는 거야. 너 같은 걸 죽이는 건 선행이야. 너한테는 그냥 죽는다는 것이 너무 큰 명예야. 넌 빈대처럼 으깨어져야 해."
  "맥스, 정신나갔어요?"
  "갈보, 암캐, 더러운 거짓말쟁이!"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소리도 좋게 한 방 먹였다. 레이즐은 거의 기절하는 듯했다.
  "맥스, 뭐 하는 거예요?"
  "여기 내 여권이 있어."
  맥스는 안주머니에서 여권을 꺼내 그녀의 얼굴 앞에다 흔들었다. 레이즐의 눈은 웃음과 고통으로 가득 찼다.
  "당신, 내 옷장 안을 보았군요?"
  "이건 바로 거기 누워 있었어. 위조꾼과 관계된 모든 게 다 사기였어. 거짓말쟁이, 도둑, 사기꾼, 거머리! 너의 심판 시간이 왔어. 난 널 싸늘하게 눕혀 줄 거야."
  그리고 그는 주먹을 쥐었다.
  "맥스, 어리석은 짓 마세요."
  레이즐은 조용히 그에게 경고했다.
  "만약 당신이 내게 다시 손을 대면 거리는 내 편을 들어줄 사람들로 메워질 거예요."
  "누구? 너의 뚜쟁이들?"
  "당신이 여기를 떠날 때면 당신 뼈는 성한 게 없을 거예요."
  "죽어 떨어져!"
  맥스는 그녀의 이마에 침을 뱉었다. 레이즐은 소매로 침을 닦아 냈다.
  "맥스, 당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요."
  "내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내가 돌려 달라고 했을 때 왜 내 여권을 그냥 가지고 있었지?"
  "난 그걸 위조꾼에게 가져 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슈무엘 스메테나가 심장마비를 일으켰잖아요. 맥스, 자기, 왜 우리 문에서 있죠? 곧 사람들이 몰려들 거예요. 올라가서 인간답게 얘기해요."
  "네가 인간이라고? 넌 벌레만도 못해. 너를 밟는 것마저도 구역질이 나."
  "나는 나일 뿐이에요. 난 당신에게 랍비의 아내라고 말한 적 없어요. 랍비에게 달려간 건 당신이지 내가 아니에요. 당신이 내게 왔고 난 당신에게 솔직했어요. 당신이 존경받고 싶으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우린 서로 만났고 의기 투합했고 그래서 난 일이 제대로 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슈무엘 스메테나는 이미 다 늙어 빠져서 이제 그는 끝이에요. 여긴 집이지 병원이 아니에요. 그건 간단하고 명백해요. 며칠만 더 기다리면 난 당신 것이고 당신은 내게 뭐든지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어요. 난 당신의 여권을 빼앗아 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것이 내게 무엇 때문에 필요해요? 당신 것 같은 여권은 천 개나 얻을 수 있어요. 그날 밤 당신은 날 사랑한다고 당신 아들의 영혼을 걸고 내게 맹세했었어요."
  "난 누구의 영혼도 걸고 맹세한 적이 없어. 거짓말쟁이, 허풍쟁이, 사기꾼!"
  "당신은 맹세했어요! 난 꾸며 내는 게 아니에요. 당신은 아마도 딴 여자를 꼬셔서 그 여자와 함께 달아나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겠죠. 맥스, 난 당신을 붙잡지 않겠어요. 그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요. 여기 서서 날 욕할 필요 없어요. 가고 싶다면 조용히 가고 좋은 여행 하세요. 만약 내가 아르헨티나에 있는 언니를 보고 싶으면 당신 없이도 갈 수 있어요. 난 내 식으로 할 수 있어요. 마을의 남자들 모두 날 따라다녀요. 그건 사실이에요. 열아홉 살 난 소년도 난 유혹할 수 있어요. 그렇게 못하면 내 이름이 레이즐아 아니죠. 우린 좋은 짝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날 때리면 당신에게 좋을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내가 어떡하라고? 너한테 키스라도 할까?"
  "왜 안 돼요? 올라가서 내게 하고 싶은 것 다 하세요. 오늘 아니면 내일 그를 없애 버리겠어요. 그러면 온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 거예요. 우리 바샤를 데려가서 우리의 하녀로 만들어요."
  "그런데 넌 왜 날 만나지 않으려고 했지?"
  맥스는 그렇게 묻고서 자신의 말에 스스로 놀랐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모든 일을 아무 생각 없이 해요. 안식일예 바샤는 살아 있다기보다는 죽은 몸으로 돌아왔어요. 늙은 부부는 이제 그녀를 집 밖에 못 나가게 해요. 당신은 일을 그런 식으로 할 필요가 없어요, 맥스.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당신이 더 나를 필요로 해요." 
  "널 내겐 아무런 가치가 없어."
  "그럼 가세요. 하느님의 가호가 있길."
  잠시 두 사람 다 조용히 서 있었다. 레이즐은 그녀의 바구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맥스는 주저했다.
  "넌 슈무엘 스메테나에게 충실하지 못했어. 네 얘기 전부가 거짓말이야."
  "내가 그에게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당신이 어떻게 아세요? 그는 3년 동안이나 남자 구실을 못했어요."
  "하지만 넌 여자였단 말이지?"
  "내가 무덤에 있어도 난 여전히 여자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죽은 시체들이 다 너한테로 올 거다, 이거지?"
  "그 동안에는 살아 있는 사람을 원해요."
  레이즐은 바구니를 집어 들었다. 맥스는 그녀가 현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보고 있다가 그녀를 따라갔다 
  "그 바구니를 이리 줘." 
  레이즐의 눈이 반짝 빛났다.
  "기사가 되고 싶으세요? 들어와요. 커피를 만들어 줄게요."
  황소가 이런 식으로 도살장으로 끌려갈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따라갔다. 소 같은 무거움이 그를 짓눌렀다.
  (그래, 난 정말 그녀보다 나을 게 없어.)
  맥스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안주머니를 만져 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래.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은 내 여권만큼은 손대지 않을 거야.)
  맥스는 부엌의 긴 의자에 앉았다. 레이즐이 바닥에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잠깐만, 그를 한번 봐야겠어요."
  그녀는 안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꾸물댔다. 맥스는 펜을 꺼내 공책에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그가 경비 계산을 한 지도 1주일이 지났다.
  "만약 이 모든 일을 겪고도 내가 그녀에게 돌아간다면 난 정말 사람도 아니야. 난 다만 걸레일 뿐이야. 왜 드지카 가에다 방을 얻었을까? 난 그냥 미쳤을 따름이야."
  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레이즐이 돌아왔다.
  "그는 잠자고 있어요,"
  "넌 윌 원하지?"
  맥스가 물었다.
  "당신 알잖아요."
  그녀는 눈을 찡긋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역겨운 일은 없을걸." 
  맥스는 혼자말을 했다. 그녀는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침실의 문을 열었다. 레이즐의 눈은 유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일어날지도 몰라."
  맥스가 말했다.
  "그는 걸을 수도 없어요." 
  "아냐, 레이즐. 난 하고 싶지 않아."
  "어리석은 소리 마세요."
  "넌 내게 똑같은 짓을 할 거야."
  "아니에요, 맥스. 당신은 남자예요."
  그는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드 그를 끌어당겼다. 그녀는 맥스에게 욕정과 증오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레이즐은 안 받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흔들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초인종을 울렸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소동을 일으키고 있지?"
  레이즐이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맥스에게 키스하면서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맥스, 우리 함께 가버려요."
  "그래. 이 먼지 조각아."
  "날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난 당신에게 진실할 거예요."
  그녀는 침대에 몸을 던지고는 맥스를 자기에게로 끌어당겼다. 매트리스는 둔탁하게 쿵 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그의 저고리를 벗기고 바지와 멜빵도 벗기려고 했다 그의 독서용 안경이 조끼 주머니에서 떨어졌다. 그때 갑자기 총성이 들렸고 례이즐이 고함쳤다. 화약 냄새가 났다. 레이즐은 침대 밖으로 떨어졌다가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나가면서 마치 신들린 것처럼 울부짖었다.
  "이자가 날 쐈어 ! 이자가 날 쐈어!"
  맥스는 바닥에 떨어진 피를 보았다. 그는 일어서서 바닥의 피를 응시했다.
  "음, 이제 끝이야! 이제 끝이란 말이야!"
  그는 중얼거렸다. 그는 레이즐이 고함치는 소리를 들었다.
  "도와줘요! 경찰을! 살려 줘요! 살려 줘요!"
  슈무엘 스메테나의 낮은 외침과 마당에서 나는 소리도 들렸다. 맥스는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리볼버 권총의 금속성 감촉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는 주머니에 나 있는 불에 탄 구멍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시작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