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5명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핵심 철학을 강의라는 형식을 통해 소개한다. 저자는 철학을 공부 해야 하는 이유는 그 결과에 있지 않고 그 사유과정을 익히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즉 사유과정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형성하고, 습관화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며, 이에 추론적 사유를 더해 세상에 대한 이해도를 넓혀 미래에 대한 촉을 갖추기 위함이라 역설한다.
세계의 리더들은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 저자 리우스
허베이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철학 애호가로 주로 ‘일상생활’과 관련된 동서양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어렵고 복잡한 철학 문제를 일상생활에 대입시켜 삶의 지혜가 담긴 문장 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했다. 철학이 더욱 가깝게 느껴질 수 있는 글을 쓰고자 노력하고 있다.
▣ Short Summary
사람들은 대부분 철학을 복잡하고 어려운 학문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철학은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동떨어진 학문처럼 느낀다. 하지만 리더나 철학의 참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철학이 세상 모든 이치가 모이는 학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살면서 마주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철학을 통해서 찾는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책은 15명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핵심 철학을 강의라는 형식을 통해 소개한다. 저자는 철학을 공부 해야 하는 이유는 그 결과에 있지 않고 그 사유과정을 익히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즉 사유과정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형성하고, 습관화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며, 이에 추론적 사유를 더해 세상에 대한 이해도를 넓혀 미래에 대한 촉을 갖추기 위함이라 역설한다.
저자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편리한 세상을 만들었지만,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철학자의 눈과 생각하는 사고법이라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생각’하는 태도와 냉정하게 ‘고찰’할 수 있는 행위가 비판적 ‘방식’을 만나게 되면, 문제는 그 근본부터 해결할 수 있는데, 이 태도와 행위,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이 책은 동양의 노자, 서양의 헤라클레이토스에서 시작되는데, 저자는 이들을 통해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사는 이들에게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물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지만 영원히 변치 않고 자신이 맡은 바를 다하며 존재하는 도와, 한 방향의 변화와 그와 대응하는 다른 방향의 변화가 궁극적 으로 균형을 이루는 정합적인 체계로 존재하는 세상을 깨달아 새로운 세상의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
▣ 차례
머리말 1
철학과 신입생 민경
- 2 - 세계의 리더들은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chapter 01 노자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chapter 02 공자 ‘중용’ : 딱 좋은 게 가장 좋은 걸까? / 천명이란 무엇일까? / 군자란 어떤 사람일까?
chapter 03 헤라클레이토스 ‘운동’ : 만물의 근원인 불 / 물은 왜 칼로 잘라도 계속 흐를까? / 우리는 싸워서 존재하는 걸까? / 만물이 변화하는 규칙, 로고스
chapter 04 소크라테스 ‘자신을 아는 법’ : 나쁜 사람에게는 벌을 주고 선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는 ‘악 마’ / 악당이 개과천선하는 방법 / 무능하다는 건 미덕이 부족하다는 걸까? / 불량배가 영웅이 될 수 있을까?
chapter 05 플라톤 ‘정신적 사랑’ : 연애와 결혼이 다른 이유 / 결혼은 왜 사랑의 무덤인 걸까? / 일부 일처제를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 차도 집도 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chapter 06 아리스토텔레스 ‘행복관’ :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chapter 07 장자 ‘무위’ : 소요란 무엇일까? / 별과 달을 움직이게 하는 건 무엇일까? / 소를 해체할 때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 죽기 살기로 싸우며 토론해야 할까?
chapter 08 아우구스티누스 ‘미학’ : 가장 아름다운 건 신 / 아름다움에도 등급이 있을까? / 사람은 어떻게 ‘못생겨’질까?
chapter 09 데카르트 ‘의심’ : 완벽함은 어디서 올까? /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신 / 나는 정말 이세상에 존재하는 걸까? / 영혼과 육체의 차이점
chapter 10 루소 ‘사회계약론’ : 자연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 / 우리 모두 국가의 주인 / 평등은 어떤 상황에서 사라질까?
chapter 11 쇼펜하우어 ‘비관주의’ : 행복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 / 병을 치료해 주지 못하는 진통제 / 우리는 왜 비극을 좋아할까?
chapter 12 니체 ‘권력의지’ : ‘바퀴벌레’는 왜 때려도 죽지 않을까? / 자신을 알아야 세상을 구할 수 있다 / 신은 죽고 초인이 돌아온다 / 예술만이 인생을 구할 수 있다
chapter 13 존 듀이 ‘교육철학’ : 교육이란 무엇일까? / 학교란 뭘까? / 의무교육의 이상적인 결과 / 교육은 어린아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chapter 14 러셀 ‘논리 분석’ :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 내가 살아가는 이유
chapter 15 사르트르 ‘자유’ : 인물과 사물 사이의 구별 /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나를 결정한다 / 족쇄를 찬 자유 / 사람은 왜 자기기만을 할까?
- 3 - 세계의 리더들은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철학과 신입생 민경
민경은 유명 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민경이 입학하던 해, 대학은 첨단 장비들을 설치했다. 가장 특별한 것이 바로 첨단 인공지능을 사용해 진짜 사람과 같은 모습을 구현하는 장비였다. 철학과는 이 기술을 이용해 15명의 유명 철학가들이 진행하는 ‘재미있는 철학’이란 강의를 개설했다. 매년 신입생들이 그러하듯이 그녀는 동아리 활동, 학생모임, 토론 모임 등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완벽한 1학기를 보냈지만 단 하나, 그녀의 늦잠 자는 습관은 고치지를 못했다.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순조롭던 민경의 대학 생활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녀가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시곗바늘은 오전 7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오늘은 ‘재미있는 철학’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다.
노자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빵은 어디서 왔을까?
재빨리 책상에 놓여 있는 빵을 들고 기숙사에서 나온 그녀는 허겁지겁 강의실로 달려갔다. 하지만 지각은 피할 수 없었다. 민경이 살금살금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교수가 그녀를 쳐다보고는 강단 앞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고, 강단 앞으로 걸어가자 민경의 손에 있던 빵을 빼앗아 갔다. “이제 수업을 시작할 거니 저쪽 자리에 가서 앉게.” 교수가 강단 한쪽 구석에 놓인 조그마한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첫 번째 수업은 빵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도록 하지. 학생, 빵은 어디서 온 것인가?” 교수가 민경에게 물었다. “그 빵은 어제 친구가 사 온 걸 먹고 남은 거예요.” “내 말은 빵 자체가 어디서 왔냐는 거네.” “빵은 밀가루로 만들죠. 그러니까 밀을 가공해서 밀가루로 만든 뒤 물과 함께 섞으면 빵이 돼요.”
“만두도 밀을 사용해 만들지 않는가! 알았으니까 일단 앉아 보게. 이 문제에 관해서는 내가 설명하도록 하지.” 민경이 앉자 교수가 마른기침하며 목청을 다듬은 뒤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했다.
“방금 이 학생의 대답은 빵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말한 것이자 인류가 빵을 만들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네. 그럼, 빵이 아닌 하늘과 땅, 해와 달, 별과 행성, 새와 짐승은 어디서 온 걸까? 하늘과 땅은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변화하고, 해와 달은 사람이 없어도 알아서 빛나고, 별과 행성은 사람이 없어도 질서에 따라 운행하며, 새와 짐승은 사람이 없어도 공존해 살아가지. 이것이 바로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이치라 생각하지 않는가? 이러한 천지 만물은 모두 인류가 생겨나기 전부터 자연적으로 존재해 왔다네.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움직이는 천지 만물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간섭할 필요도 없고, 또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지. 그럼, 천지 만물은 무엇을 통해 생겨났을까?”
교수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계속 말했다. “아주 오래전 어떤 물건이 천지보다 먼저 생겨났다네. 그것은 소리도 형체도 없었지만 홀로 서서 변하지 않았고, 위태롭지도 않아 천하의 어머니라 할 만했지. 나는 그것의 이름을 알지 못하기에 내 마음대로 ‘도’라는 글자를 붙이고, ‘크다’(大)라는 이름을 지어줬네. 그것은 아주 커서 움직였고, 또 움직이기에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멀어져서 되돌아왔지. 그러므로 도는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사람 또한 큰 것이라네. 세상에는 큰 것이 네 가지가 있는데,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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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하나지. 그래서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 것이야.”
민경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교수는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도를 말할 수 있으면 그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고, 이름으로 불릴 수 있으면 영원한 이름이 아니라네. 이름이 없는 것은 만물의 시작이고, 이름이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지. 그러므로 항상 욕심이 없으면 눈에 띄지 않는 오묘함을 볼 수 있고, 항상 욕심이 있으면 눈에 드러난 모습을 보는 법이야. 이 두 가지는 같은 곳에서 나와서 이름은 다르지만한 가지로 불리니 현묘하고 또 현묘해서 모든 오묘함의 문이 된다네.”
그때 교수를 바라보던 민경의 머릿속에 이름이 떠올랐다. 지금 눈앞에서 사극 말투로 천지 만물을 말하는 사람은 바로 노자였다. 노자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업을 계속했다. “천지 만물이 형성되기 전에 하나로 뒤섞인 어떤 물건이 있었다네. 만물을 초월한 뛰어나고 독립적인 존재인 그것을 나는 ‘도’라고 이름을 지었네. 그것은 천하 만물의 어머니라 할 만하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도를 근본으로 해서 생겨나고 도로 인해서 변화하거든. 그럼 우주의 변화법칙은 무엇일까?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네. 이것이 바로 우주의 법칙이지. 그렇다면 사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역시 도에서 온다네. 사람은 어디로 갈까? 당연히 도로 되돌아가지. 아까 답변했던 학생도 이제 빵이 어디서 오는지 알겠지?” “도에서 와요!”
“그렇지! 천지 만물이 생겨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혼돈 상태였다네. 이 혼돈이 우주인 하나를 낳았고, 하나인 우주가 나누어져서 하늘과 땅, 해와 달인 둘을 낳았지. 그리고 다시 둘인 해와 달이 오행과 교감하고 천지와 화합하여 서로 부딪치는 것들을 하나로 통일한 셋을 낳았어. 이렇게 서로 부딪치는 것들을 통일한 덕분에 더욱 발전된 형태의 사물을 만들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만물이지.”
빵은 왜 만두가 아닐까?
잠시 쉬는 시간에 민경은 강단 아래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 노자 교수의 강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조금 전 우리는 우주 만물의 근원인 ‘도’에 대해서 이야기했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각양각색의 사물 들은 모두 ‘도’로부터 시작했다는 것까지 말했지. 자, 이번 시간에는 그 ‘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세.” 노자 교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응? 아까 강단에 있던 여학생은 어디로 갔나?” 난처해진 그녀가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강단 위로 올라갔다.
“이 빵은 어째서 존재하는 것인가? 그리고 자네는 왜 이 물체를 빵이라고 하고 만두라고는 말하지는 않는 건가?” 민경은 침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빵이 존재하는 이유는 제빵사가 만들어 냈기 때문이죠. 그리고 빵이 만두라 불리지 않는 이유는 들어간 재료나 모양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교수님이 강의하셨던 내용을 생각해 보면 빵과 만두는 모두 ‘도’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니 ‘도’가 그것들을 다르게 변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한마디로 빵과 만두는 ‘도’에 의해서 다르게 불리는 거죠.”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대답을 했군. 정말 대단해.” 노자 교수가 뿌듯해하는 얼굴로 민경을 바라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도는 만물의 오(奧)라네. 여기서 ‘오’는 집안에서 가장 깊숙하게 위치한 존귀한 장소를 말하지. 그러니까 도는 만물의 가장 깊숙하고 존귀한 장소에 있다네. 이러한 큰 도는 아주 커서 좌우를 모두 아우를 수 있고, 만물이 자신에 의지해 생겨나는 걸 피하지 않으며, 공을 세워도 갖지 않지. 도는 모든 것의 중심이기에 어떤 사물에도 의지하지 않지만, 사물은 모두 도에 의지해 존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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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떤 사물이든 도를 떠난다면 그 존재의 근거를 잃게 되는 거라네. 이제, 질문하고 싶은 사람 있나? 내가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토대로 서로 질문하고 토론해 봤으면 좋을 듯싶네.”
강단 아래에 있던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도는 만물의 근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일상생활에서 도에 근거해 이루어진 사물이 있나요? 그리고 교수님께서 들고 계시는 빵도 도에 의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좋은 질문이군. 우리가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자세히 바라본다면 그것들이 존재하는 근거를 발견할 수 있고, 그 근거가 바로 도인 거지. 우리의 생활에서 도를 얻은 사물이 무엇인가. 하늘은 도를 얻어 지금처럼 푸르게 됐고, 땅은 도를 얻어 지금처럼 편안해진 것이며, 우리 사람도 도를 얻어서 이렇게 똑똑해진 것이라네. 풀과 나무들도 도를 얻어 뿌리를 내리고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지. 그리고 과거 역사에서 천하의 주인이 된 사람들도 모두 도를 얻어 그렇게 된 것이라네.” 교수는 말을 이었 다.
“천지 만물이 도에 근거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도가 없으면 하늘은 맑지 못해 찢어지고, 땅은 편안하지 못해 붕괴하며 사람은 영명함을 유지하지 못해 멸종되며, 골짜기도 물이 흐를 수 없어 말라 버리게 되지. 풀과 나무, 모든 만물이 성장하지 못하고 소멸하는 것이라네. 그럼, 사람도 더는 살수 없게 되겠지. 빵도 이 세계에 속한 사물인 만큼 도에 근거해 존재하는 것이네. 도가 빵의 내용을 다르게 부여했기 때문에 빵의 형태가 다른 사물과 다른 것이고, 만두와도 구별이 되는 것이네.”
노자 교수가 민경의 앞으로 걸어가서는 빵을 건네주고 말을 이었다. “세상에는 모순되고 대립하는 게많지. 도는 모순되고 대립하는 것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지만 모순되는 양쪽은 모두 도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라네. 또 도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차별성을 가진 사물들도 모두 도에 의지해 생겨난 것들이지. 세상 만물이 모두 제각기 다양한 형태와 특성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도를 통해서 자신만의 특별한 본질을 얻었기 때문이야. 이처럼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물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지만 도는 영원히 변치 않고 자신이 맡은 바를 다하며 존재한다네.”
빵을 얻기 위해 싸울 필요가 있을까?
쉬는 시간이 되자 배고파진 민경은 빵을 재빨리 먹어치웠다. 그때 노자 교수가 수업을 시작하려 했고, 그 모습을 본 민경도 강단 위로 올라와 앉았다. “이번에는 자리를 정확하게 찾아 앉았군. 내 질문에 대답해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잘 됐어. 그런데 빵이 보이지 않네? 하긴 빵은 인류의 생존에는 아주 유용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까지 추구할 만한 것은 아니지. 학생이 보기에 자신의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게뭐라고 생각하나?” 민경이 대답했다. “진리라고 생각해요. 진리는 사람에게 유익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니까요. 그리고 빵이나 우유 같은 건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서 얻어지는 거죠.”
“좋아, 이 학생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객관적 진리를 추구해야 하네. 물론 여기서 객관적 진리란 도를 말하는 것이지.” 노자 교수가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했다. “하늘과 땅은 항상 변치 않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 이처럼 하늘과 땅이 오래도록 자신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생성(生成)하지 않기 때문이야.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겠네. 하늘과 땅이 오래도록 변치 않고 운행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운행하지 않기 때문이라네. 그래서 하늘과 땅은 오래도록 생존할 수 있지.”
잠시 목을 가다듬은 후, 교수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선두에 서서 항상 사람들을 지휘하는 사람은 늘겸손하게 사양할 줄 알고 자신의 개인적 이익에는 관심이 없기에 항상 리더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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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일세. 그러니 하늘과 땅처럼 사심 없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사람이 추구해야 할 가장 높은 경지라할 수 있지. 여러분이 어려워하는 듯하니 더 좋은 예를 가지고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설명해 주도록 하겠네.”
노자 교수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지.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도 머무니 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네. 낮은 곳에 머무르려 하고, 깊은 마음을 좋아하며, 어진 마음으로 사람과 어울리고, 믿음 있게 말하며, 공정하게 다스리고, 능숙하게 일을 하며, 때에 맞춰 적절히 움직이니 다투는 것도 없고 허물도 없지.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인류가 가장 본보기로 삼기 좋은 것이 물이네. 고상한 사람 중에서 물과 같은 인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네.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일을 하면서도 싸우지 않는 사람,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데도 기꺼이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 자신의 힘을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쓰는 사람을 바로 고상한 사람이라 하네.” 그때 갑자기 한 학생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교수님, 지금 저희가 사는 시대는 교수님이 사셨던 시대와는 다릅니다. 교수님이 사셨던 시기에는 순수하게 선의를 품고 있는 사람을 대접해 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살아가는 저희가 만약 싸워서 자신의 이익을 쟁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에 노자 교수가 차분한 목소리로 답을 해 주었다. “천하의 모든 물이 강과 바다로 흘러가는 이유는 그것들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네. 그래서 산 위에서 내려온 골짜기 물이 거스르지 않고 강과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네. 이렇듯 자신의 몸을 낮춘 채 누구와도 싸우려 하지 않으면 아무도 싸우려 하지 못한다네. 다투지 않는 물은 부드러움으로 단단한 물체도 감쌀 줄 알고, 형체가 없어도 틈도 보이지 않는 견고한 물건을 관통할 수 있네. 바로 가장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는 것이지.” 노자 교수가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서로 빵을 가지겠다고 싸우면서도 빵이 어디서 왔는지는 잊어 버리고 있지. 앞에서 말했듯이 빵은 우리가 인생 마지막까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건 무엇이라 생각하나?”
인생 마지막까지 추구해야 할 목표 노자 교수가 민경에게 걸어오며 물었다. “자네가 인생에서 추구할 만한 건 진리라고 하면서 빵과 우유 같은 건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얻어지는 거라고 그랬지? 자네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가?”
민경이 대답했다. “진리는 도를 말한다고 생각해요. 빵도 도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우유도 도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니 도를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요?” 노자 교수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빵은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가 될 수 없지. 그렇다면 우리가 살면서 추구해야 할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바로 방금 학생이 말한 도라네.”
노자 교수가 말을 이었다. “여러분에게 인생의 도에 관한 내용을 알려줄 테니 구체적인 뜻은 스스로 체득하길 바라네. 만일 내 말로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 한 수업도 헛된 건 아니겠지. ‘솔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솔직하지 않다. 선한 사람은 말을 잘하지 못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 지식을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지식을 알지 못한다. 성인은 모으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데도 더욱 풍족하며,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도 더 많이 가지게 된다. 그래서 하늘의 도는 이로울 뿐 해롭지 않으며, 성인의 도는 다른 사람을 위할 뿐 다투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끝으로 노자 교수가 몸을 돌려 장막 안으로 들어가자 강의실의 전등이 밝게 켜졌다.
그러자 사람들도 강의실을 떠났다. 이렇게 ‘재미있는 철학’ 첫 번째 수업이 끝이 났다.
- 7 - 세계의 리더들은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 ‘행복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노자 이후, 공자, 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 플라톤이 교수로 나오자 ‘재미있는 철학’ 수업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학생들은 책에서만 봤던 철학자에게서 직접 수업을 듣는 게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한편 최근 2주에 걸쳐 고대 그리스의 유명 철학가들이 연속해서 교수로 나오자 민경은 오늘 수업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민경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강단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은 고대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한 사람이자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가 말했다. “모두들 이전 수업에서내 스승님의 행복에 대한 관점을 들었겠지. 이 방면에서는 나도 스승님께 많은 부분을 배웠지만 약간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지. 그러니 여러분도 행복에 대한 나와 스승님이 가진 관점을 비교해 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군.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지. 나는 ‘선’ 을 주로 세 가지 종류로 분류를 하네. 하나는 외재적 선이고, 다른 하나는 육체적 선이고 나머지 하나는 영혼의 선이네. 이 세 가지 선 중에서 영혼의 선이 가장 높고 고귀하지. 그리고 진정한 행복은 바로 가장 높고 고귀한 영혼의 선에 있네. 그렇다면 행복과 즐거움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즐거움은 행복의 기초가 아닐까요?” 한 여학생이 대답하자 아리스토텔레스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다른 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행복은 바깥으로 드러나는 즐거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면의 즐거움에서 오는 거라 생각해요.” “그렇지. 행복은 영혼의 지극한 선인만큼 당연히 내면에서 오는 것이지. 그리고 행복은 미덕에 부합하는 행동을 통해서도 오네.” 교수가 바로 말을 이어갔다
“이 점은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서 이해해 볼 수 있지. 먼저 첫 번째 부분은 행복은 미덕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점이네. 한 사람의 삶이 행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사람이 미덕에 부합하는 삶을 살았느냐에 달려 있지. 여기서 미덕은 일종의 선이므로 한마디로 ‘선’을 행하는 사람이 행복한 생활을할 수 있네. 또 다른 부분은 행복은 가만히 있어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니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네. 공정한 일을 실천해 공정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절제를 통해 절제된 사람이 될수 있으며, 용감한 일을 해서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듯이 행복도 미덕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얻을수 있네.” 잠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교수가 말을 이어갔다.
“내가 말하는 행복은 스스로 만족하는 최종적인 행복이네. 가진 것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삶을 즐길 수 있으므로 행복해질 수 있지. 이렇듯 스스로 만족하는 것은 모든 선한 일 중에서 가장 높은 선택이라 할 수 있네. 물론 행복을 단순하게 자신의 행동에만 기대기는 부족하지. 여기 에도 외부의 조건이 필요하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건강이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외부조건은 단순히 행복을 보충해 주는 정도이네. 사람은 세상을 다스리지는 못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할 수 있네.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권력을 가진 사람보다 존경하는 일을 더 많이 할 수도 있어. 이렇게 미덕에 부합하는 생활을 하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지.”
아리스토텔레스 교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말했다. “행복한 생활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눠서 볼 수 있네. 쾌락적인 삶, 정치적 삶, 관조적인 삶이지. 즐거움으로 만족을 찾는 쾌락적인 삶은 주로 동물적인 본성을 추구하는 삶이라 할 수 있고, 정치적 삶은 끊임없이 재산과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삶으로 두 가지 모두 선에 부합한다고 할 수는 없네. 마지막으로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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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적인 삶은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장 좋은 삶이라 할 수 있네. 스스로 만족하고 여가를 즐기며 관조하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최대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이네. 관조적 삶은 외부 환경에 의지하지 않고 한걸음 떨어져 스스로 만족하고 여가와 사색을 즐기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네. 앞으로 여러분도 이런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군. 이것으로 내 수업을 마치도록 하지.”
루소 ‘사회계약론’
자연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장자,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교수의 강의가 이어지면서 ‘재미있는 철학’ 수업이 어느덧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새로운 주가 시작되어 민경이 강의실에 들어와 앉았고, 이어 강단에 들어선 교수는 다음과 같이 강의를 시작했다. “내가 봤을 때 우리는 모두 일정한 사회형태에서 살아 가고 있고, 이러한 사회형태는 모두 일정한 사회질서를 가지고 있지. 그리고 이러한 사회질서는 자연 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네. 나는 이 점이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이러한 결합과 질서는 어떻게 구축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필연적인 합의가 필요하겠지. 약속을 통해 사회형태에서 양측이 결합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나는 이걸 사회계약이라 부르네.”
사회계약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민경은 앞에 있는 교수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이전 철학가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존재하는 노역과 통치의 관계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라 보았지. 하지만 나는 이게 원인과 결과를 혼동해서 생긴 착각이라고 생각하네. 예를 들어 태어났을 때부터 노예인 사람이 있다면 그건 인위적인 노예제도가 존재한다는 뜻이지 않은가. 결코, 자연적으로 형성된 관계는 아닌 거지. 힘으로는 사회질서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없네. 왜냐하면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의 힘을 권리로, 복종 의무로 만들지 않는 이상 그 힘을 영원히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
루소 교수의 입에서 권리와 의무가 나오자 민경은 순간 현대사회의 통치제도가 떠올랐다. 권리와 의무는 현대 통치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지만 루소 교수가 말한 권리와 의무가 현대 통치제도에서의 권리와 의무를 말하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교수가 말을 이었다. “물론 힘은 진정한 권리가 될 수 없네. 왜냐하면 그렇게 만들어진 권리는 힘이 위력을 잃어버릴 때 같이 소실되어 버리거든. 만약 힘을 사용해 억지로 복종하게 한다면 사람들은 의무 감을 가지고 복종하지 않게 되고, 복종을 강요받지 않는 순간 복종하지 않게 되네. 자연 상태에서 인류는 각자 생존을 책임질 수밖에 없었네. 하지만 생각해 보게.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나 혼자서 숲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어떨 것 같나? 사나운 맹수들의 위협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나? 그러니 자연 상태의 인류는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찾을 필요가 있었네.
그 새로운 생존 방식은 힘을 모아서 서로를 보호하는 방식이었지. 이와 같은 연합을 통해 사람들은 공동의 힘으로 구성원들의 건강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었어. 하지만 이런 연합 형식에서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게만 복종했기 때문에 여전히 이전과 같은 자유를 가지고 있었지. 이러한 공동체를 견고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합의하는 것이네. 이 합의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공동의 것으로 만들고 ‘주권자’의 지도하에 두는 것이지. 여기서 ‘주권자’란 뭘 말하는 것이겠는가?”
- 9 - 세계의 리더들은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루소 교수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시 강의를 이어갔다. “나는 ‘주권자’가 가장 많은 사회 구성원을 가진 공동체가 도덕적인 공동체라고 생각하네. 그리고 이 공동체에서 합의는 모든 구성원에게 평등 하게 이뤄져야 하고, 이렇게 통일됨으로써 통일성과 공동의 자아, 생명, 의지를 얻게 되지. 이러한 공동체가 여러분들에게도 낯설지 않을 거야. 나는 이것은 ‘국가 또는 정치 집단’이라 부르고, 이 공동체 에서 구성원들을 집합적으로 국민이라 부르고, 주권의 권위를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시민, 국가의 법에 복종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신민이라 부르네. 사실 나는 여기서 서로 간에 ‘합의’라는 말보다는 ‘계 약’이란 말을 사용하는 걸 더 좋아한다네. 이러한 계약을 통해서 인류는 비로소 맹목적인 자유와 본능 상태에서 벗어나 질서 있는 사회 상태, 또는 도덕과 공리 상태로 들어가는 거지.” 그때 어느 여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이런 사회계약은 사람이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유 본성을 잃게 하고, 사회에 구속되게 하는 거 아닌가요? 사회계약을 맺는다는 건 사람이 자유를 잃게 된다는 의미잖아요?”
루소 교수는 학생의 질문이 마음에 드는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질문은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이군. 그리고 동시에 내가 다음에 말할 주제이기도 하지. 물론 인간은 사회계약으로 원래의 자유와 원하면 언제든지 가질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권리를 잃게 되었다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잃음으로써 인류가 얻은 건 없을까? 이러한 것들을 잃음으로써 인류는 사회적 자유와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한 소유권을 얻을 수 있었다네. 사회계약에서 사람은 모두 자연적 자유를 포기하고 계약적 자유를 얻게 되네. 정치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은 자연적 자유를 포기하고 전체 집단에 넘겨주어야 인류는 비로소 평등한 계약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거지.”
평등은 어떤 상황에서 사라질까?
“이제 평등에 대해 이야기해보세.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불평등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지. 여러분은 불평등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생각해 본 적 있나?”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 문제를 고민하기 전에 민경은 먼저 자신의 생활 속에 있는 불평등한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같은 노력을 했는데도 돈이 있는 사람은 잘살고, 돈이 없는 사람은 고생한다. 누군가는 몇 마디 말로 큰돈을 벌어들이고, 누군가는 밤낮없이 일해야만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민경에게 불평등은 이런 종류의 것들이었다. 교수가 말을 이었다.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인류의 근원을 탐색할 필요가 있네. 물론 인류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 고고학자처럼 전문적으로 연구할 필요는 없지. 먼저 인류의 자연 상태부터 탐구해 보도록 하지. ‘가장 진실에 근접한 추측’으로 인류의 자연 상태 및 이러한 상태에서 인류가 평등한 상황이었는지를 논술하도록 하지.”
교수가 강의를 이어갔다. “가장 원시 상태에서 인류의 생활 구조는 가장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네. 인류는 강인한 체력에 의지해 생존했으며, 동시에 야수의 본능을 참고해서 자신의 생존 상태를 개선해나 갔지. 물론 아무리 강인한 체력이라도 늙어서 노쇠해지거나 죽음의 위협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자연 상태에서 인류의 질병은 사회 상태에서보다 훨씬 적었네. 그리고 정신 상태에서 인류는 순수한 정신 활동은 접었지만, 사유 능력 방면에서는 야수들보다 높았다네. 그리고 이러한 차이점에서 봤을 때 나는 인간이 주체적 능동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네. 그리고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핵심은 인류가 스스로 자신을 완성하는 능력이 있다는 데 있지. 나는 이 능력이 인류의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 보네. 이 능력으로 인류는 자연의 원시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 상태로 들어서기 시작했지. 자연 상태에서 인류의 사회성은 미미했어. 원시적인 자연 상태에서 인류는 손짓이나 고함으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사회에 갖추어짐에 따라 의사소통의 범위가 넓어지고 전문화되면서 언어가 형성되기 시작했지.”
- 10 - 세계의 리더들은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교수는 강의를 계속 이어갔다. “도덕에 대한 개념도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지. 이 당시 인류는 도덕이나 의무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악함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네. 만약 굳이 최초의 자연 상태에서 도덕의 영향을 찾는다고 한다면 연민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네. 그래서 자연이 인류 불평등에 미친 영향은 별로 크지 않네. 자연 상태는 인류가 정말로 행복했던 시기이며, 인류의 청춘 시기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인류가 사회 상태로 들어갈 때 겉으로는 진보한 것 같지만 사실은 점차 타락과 괴멸의 상태로 들어가고 있는 거네.” 목을 축인 후 교수는 강의를 이어갔다.
“자연 상태에서 우리는 인류 불평등의 근원을 찾을 수 없었으니 인류의 사회 상태에서 답을 찾아야겠지. 앞서 언급했듯이 인류가 가진 스스로 완전해질 능력이 인류가 자연 상태에서 나와 사회 상태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었지. 나는 이 능력 때문에 인류가 불행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하네. 왜냐하면 사람 마다 자아를 완성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간의 차이가 갈수록 두드러졌을 것이네. 악한 세력이 강한 세력의 도움이 필요해졌을 때가 바로 인류 불평등의 첫걸음이자 타락의 첫걸음이었던 셈이지.
한편 사회 분업의 출현은 교역이 생활에 중요한 부분이 되게 했네. 교역이 확대됨에 따라 사유제가 점차 사회에 승인을 받기 시작했고, 이것은 또 최초의 공정한 규칙을 만들어 내었고, 자연법과는 다른 권력의 소유권을 만들어 내었지. 그래서 이익에 쫓기면서 인류는 거짓되고 약해졌으며 재산을 위해서 서로 경쟁하게 되었네. 이익은 인류가 추구하는 중요한 목표가 되었고, 사유재산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평등을 키우게 되었지. 부자는 더 많은 재산을 가지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고 자신의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법률을 제정하기 시작했네. 사회 지위에서도 인류 사이의 불평 등은 출현했네. 최초의 불완전한 정치조직에서 소수의 사람이 공공의 권리를 장악하고 불평등을 형성 했지. 여기서 재산은 여전히 종속적인 지위를 유지하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다네.”
잠시 기침을 한 후 교수는 강의를 계속했다. “정부의 건립은 시민과 지도자 사이의 협의이고, 이 협의 에서 사람들의 의지는 하나의 통일된 의지가 되었네. 정부의 관리는 시민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고, 이로써 모든 사람의 안전과 평등이 보장받고 공공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시 될수 있네. 하지만 야심을 가진 권력자들은 각종 방법을 사용해 자신의 직위를 세습하려 하는 동시에 시민을 종속시켜 시민의 노역으로 자신의 삶의 안전을 유지하려 하지. 이 때문에 바로 전제권력이 생겨 났고, 인류의 불평등이 최고조에 다다랐네. 불평등이 초래된 진정한 원인은 자연 상태의 인간은 자신의 생존만을 신경 썼던 것과 다르게, 사회 상태에서 인간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생활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로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네. 여러분도 현대사회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자연의 본성을 유지하며 사회의 풍습에 오염되지 않기를 바라네.”
사르트르 ‘자유’
인물과 사물 사이의 구별 루소 이후, 쇼펜하우어, 니체, 존 듀이, 러셀의 강의가 이어졌고, 이제 ‘재미있는 철학’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 되었다. 일찌감치 강의실에 도착한 민경은 단정히 자리에 앉은 뒤 몇 백 년 전에 지어진 강의 실을 둘러봤다. 강의실을 천천히 둘러보던 민경의 눈빛이 자신도 모르게 강단 위에 있는 교수에게로 향했다. 강단 위의 교수는 곧 강단 앞쪽으로 걸어 나와 강의를 시작했다.
- 11 - 세계의 리더들은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마지막 수업을 책임진 사르트르라고 하네. 내가 강의하려는 내용은 여기 있는 여러분도 알고 있는 내용일 거네. 나는 내 방식대로 수업을 진행하려 하네. 만약 질문이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내 말을 끊고 질문을 해도 좋아. 먼저 처음이니까 철학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부터 이야기해보도록 하지. 바로 인간의 본질적 속성에 관한 문제이네. 이 문제는 답도 여러 가지가 있고 이유도 아주 많아. 그리고 수많은 답 중에서 자유가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들도 적지 않지. 아마도 여러분 중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완전히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해.”
교수는 강의를 이어 갔다. “나는 자유가 인간의 본질적인 성질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네. 오히려 자유는 인간의 존재에 속하는 것으로 인간의 본질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네. 나는 우리가 자유와 인간의 존재를 동일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인간의 자유가 인간의 본질보다 먼저라는 것과 인간의 존재가 인간의 본질보다 먼저라는 것의 의미가 같다고 생각해. 이런 내용을 기초로 해서 나는 ‘존 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관점을 내놨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책에서 나는 이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네. ‘우리가 말하는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사람은 먼저 존재하고 자신과 만나며 이 세상 에서 나타난 뒤에 비로소 그 자신을 규정한다는 의미이다. 만약 실존주의자가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규정될 수 없다면, 그것은 사람이 처음에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는 나중 에야 스스로 만들어 낸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이란 개념을 가진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사람은 그가 상상하는 그런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가 원하는 그대로의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존재한 뒤에야 자신이 이렇다는 상상을할 수 있으므로 사람은 존재한 뒤에야 그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다른 게 아니라 그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눈을 감고 자신이 쓴 책의 내용을 읊던 사르트르 교수는 이어 앞에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에서 모두에게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관점이 사람은 사물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한다는 걸 일깨워 줄 필요가 있겠군. 사물의 본질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이미 만드는 사람에게서 정해져 있네. 그러므로 사물의 본질은 존재를 앞서는 것이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사람과 사물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지. 사람은 맨 처음에 아무것도 없었어. 사람의 본질은 사람 자신 외의 어떠한 창조 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야. 어떤 사람이 되고 싶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싶든 모두 사람이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완전히 자유롭게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지,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물질적 사람이나 객체, 대상으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대자존재인 사람을 말하는 것이네. 사물이 대자존재가 아니라는 건 이제 모두 알겠지. 대자존재의 실존성은 그것의 부정성에 있고, 그것은 사람을 인과고리 안에서 해방하게 할 수 있네. 이로써 우리는 자유와 부정은 동일하게 대자존재의 구조이며, 대자존재의 근본 특징이라는 걸 발견할 수 있네.”
물로 목을 축인 교수는 강의를 이어갔다. “나는 존재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하네. 하나는 즉자존재(卽自存在,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지각의 대상인 탁자, 의자, 책 등)이고 다른 하나는 앞에서 이야기한 대자존재(對自存在, 즉자의 반대 개념으로,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 의식. 자기에 대해 있는 존재)이지. 이 두 가지 유형의 존재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즉자존재는 객관 존재의 물질이네. 우리는 이것들에서 규칙을 찾을 수 없는 만큼 우연성을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지. 우리는 이런 존재를 만나면 아득해지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게 돼.” 교수는 강의를 계속 이어갔다.
- 12 - 세계의 리더들은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반면 대자존재는 다르네. 앞에서 말했듯이 대자존재는 사람의 의식이며, 즉자존재에 대한 일종의 부정을 통해서 자신을 규정하고 있지. 사람은 자신의 의식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발전해나갈 수 있네. 그러니 인류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진행할 수 있고, 미래에서 상응하는 결과를 찾을 수 있지.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람은 ‘존재가 본질에 앞서는’ 반면 사물은 ‘본질이 존재를 앞서는 것’이네. 이 두 가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어. 사람이 자신의 의식에 따라서 사물을 창조하고 이용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니까. 그러니 인간의 의식은 다른 사물의 존재를 결정하는 근원이라 할 수 있지.”
- 13 - 세계의 리더들은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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