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국의 우리 아이들이 그동안 자신의 머리로는 생각해 본 적 없이 받아들여 왔던 학교라는 곳의 존재 이유와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한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직업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올 AI 시대에 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생존 전략을 제시한다.
나는 우리 애들이 삼성 간다 할까 두렵다
▣ Short Summary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나의 시간과 노력을 사용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일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는 먼 길을 돌아갈 마음이 없기에 내 길이 아니라면 깨끗이 내려놔야 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본인의 길을 찾은 사람이 의외로 없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일본에서 가족과 함께 10년을 넘게 살면서 일본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며 깨달은 내용에서 이 책은 시작되었 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3가지이다. 첫째,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는 이야기. 하루에도 핸드 폰은 수도 없이 들여다보지만 평생토록 자신의 모습과 마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지? 무엇에 가슴이 뛰는지? 그것이 타인과는 어떤 가치를 갖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개개인 삶의 목적은 행복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행복해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둘째, AI 시대를 맞아 미래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 지금 아이들이 받고 있는 주입식 교육으로는 AI 시대의 흐름에 역행할 따름이다. AI 인공지능은 말 그대로 여태까지는 인간의 지능으로 했던 업무의 많은 영역을 로봇이나 컴퓨터가 수행할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현재도 도처에서 AI의 시대는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는 더 다양하고 전문성 있는 직업의 영역까지 더 빠른 속도로 침범할 것이다. 이 변화 속에서 가장 주의 깊게 생각하고 향후의 방향설정을 해야 할 곳은 다름 아닌 학교이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졸업하고 찾게 될 일자리의 근간 자체가 바뀌고 있고, 인재의 패러다임조차도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력의 변천사는 산업혁명 1, 2, 3차를 거쳐 현재의 4차 산업혁명까지 와 있다. 앞으 로의 일자리는 어떤 분야에 어떤 능력이 있어야만 되고, 어떤 인재가 각광을 받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고 교육의 방향을 설정하지 않으면 풍차에 맞서 열심히만 싸우는 돈키호테를 양산할 뿐이다. AI 시대의 대응 방향에 대해 감정적, 지적, 사회적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셋째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의 사례에 대한 이야기. 학교의 존재 이유는 학생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사회에 나가기 전의 사전 경험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신만의 개성과 능력을 발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유학원의 철학에 대해 소개한다. 또한 학교의 소개는 “학교의 주인공은 누구인가?”에 진정한 답을 주고 있는 교육철학이다.
학교의 주인공은 학생이라고 누구나 말한다. 하지만 진짜 지금 학교의 주인이 학생인가? 어쩌면 우리 들은 주인공과 대상을 정확히 구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의 예를 들어보자. 영화의 주인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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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대사 한마디 없이 무표정하고 수동적인 모습으로 일관한다면 그 영화가 과연 재미있을까? 본문에 서는 학생들이 진짜 주인공답게 스스로 생각하고, 수업 자료를 준비하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하는 IB(국제 바칼로레아) 인증학교를 소개한다.
교육에 있어 우리나라는 훌륭한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는데 한 날은 한국 우리 아이들의 우수성이고또 한 날은 한국의 부모들의 세계 최고의 교육열이다. 이 두 가지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커다란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완전히 바꾸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아이들이 앞으로 해일처럼 다가오는 AI에 지배를 당할 것인지 지배를 할 것인지를 규정짓는 능력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미래가 다가오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곳을 향해 무작정 열심히만 달려가는 교육 현실은 아이들에게는 무모이고 부모에게는 허망에 가깝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원하는 궁극적인 바람은 소위 남들이 최고라는 S대, S사도, 안정적인 공무원도 아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의 진짜 행복이기 때문이다.
▣ 차례
PART 01 우리 애들이 삼성 간다 할까 두렵다 PART 02 우리 애들이 우등생이 될까 두렵다 PART 03 우리 애들이 벌거벗은 임금님이 될까 두렵다 PART 04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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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애들이 삼성 간다 할까 두렵다
PART 01 우리 애들이 삼성 간다 할까 두렵다
나는 우리 애들이 삼성 간다 할까 두렵다 2년 전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국의 대학교와 기타 기관에서 일본 사회와 문화 및 트렌드 관련 강의를 하고 있는데 매번 한국에 돌아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한국 아이들 얼굴이 늘 화가나 있는 듯한 인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언제라도 폭발할 것처럼 말이다. 일본 현지 학교로 두자녀를 유학 보내고 있는 나는 한국의 아이들만큼 역량이 뛰어난 아이들도 없다고 확신한다. 자질이 뛰어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화가 나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일본이 자국 아이들에게 행하고 있는 교육의 모습을 보면서 아찔한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국 민에게도 이랬는데 과거 일제 강점기 시대에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그들은 어떤 교육을 시켰을까? 식민지 통치자들이 원하는 교육의 결과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안타깝게도 한국 학교에는 아직도그 일제 강점기 교육 잔재들이 면면히 남아 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얼마나 우수하고 잠재 역량이 뛰어난지는 우리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아이들이 성장해서는 지극히 평범한 어른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아이들의 뛰어난 자질과 부모들의 지극정성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한국의 아이들이 부디 호두 까는 용도로 사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절실한 마음이다. 나는 종종 지도하고 있는 대학생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그때마다 획일화된 교육에 지친 그들의 무거운 상실감을 그대로 느낀다. ‘이 상실감을 만든 건 누구일까?’ 그것은 아마도 기성세대의 잘못이고, 아이들의 화난 표정의 원인이 사실은 어른들에게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은 과거 자국민에게 행했던 제국주의의 잔해들이 아직도 생활 곳곳에 깊게 뿌리 내려 있다. 일본 아이들이 태어나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은 듣기에는 공공의 식이 있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남이란 말은 전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즉, 개인이 전체에 방해되는 행동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이 당연시되고 그것이 미덕으로 고착화 되어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6년 동안 메고 다니는 배낭인 란도셀을 볼 때마다 제국주의 일본 군인의 배낭이 떠오른다. 부국강병의 기치를 내걸고 아이들 에게 유순한 노동자와 군인 양성을 목적으로 칼을 차고 행했던 교육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 다면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교육의 잔재들이 완전히 청산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 아이들의 화난 표정은, 개개인이 가진 뛰어난 능력을 뒤로하고 획일화된 교육을 강조하는 간극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학교는 학생 개개인이 진정한 자신을 찾고 만나는 장소이어야 한다.
선생님과 친구들을 통해 여러 과목을 접하면서 자신이 가장 흥미를 느끼는 과목은 무엇인지, 더 깊이 공부해 보고 싶은 학문은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학교의 현실은 전 과목을 잘하는 것이 공부를 잘하고 우수하다는 평가의 기준이 되어 있다.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학교는 그역할과 목적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 아이들은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고통 받고 화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학교에서 과연 우리 아이들은 즐겁고 행복할 수 있을까? 학교가 답습하고 있는 전통적인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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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과 방식은 AI 시대의 흐름과 방향에 역행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 학생들 대부분이 비슷한 것들을 공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꿈 대신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대기업 취업 또는 적성과 관계없이 공무 원이 되는 것이 목표라면 그야말로 안타깝고 서글픈 현실이다. 많은 아이들이 꿈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목표를 향해 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일제 식민지 시대에 말 잘 듣는 노동자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였던 당시 학교의 모습과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하고 경쟁에서 이기기만을 위해 상위 학교에 진학하고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삼성에 간다고 할까 봐 솔직히 두렵다. 암기만 잘해서 우등생이 되는 것도 두렵고, 혼자만 자신의 멋에 취해 있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될까 봐 두렵다.
교육을 받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빅 데이터(Big Data)의 발전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취급하는 분야에서는 인간이 AI에게 상대가 될 수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학교 교육의 대부분은 과목의 암기 및 지식의 전달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 실제 사례로 인간과 AI의 체스, 바둑 등에서 인간의 패배를 지켜보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그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학교는 AI 시대가 시사하는 바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 즉 직업과 인생의 방향 문제이기 때문이다. AI와 몇 번을 싸워도 한 번을 이길까 말까 하는 현실에서 기존의 싸움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며 AI라는 강적과 싸워야 하는 당사자인 학생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학교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교육(Education)’의 어원을 풀어 보면 학교 교육의 목적이 잘 나와 있다. Education은 라틴어의 ‘duce’가 어원인데, ‘이끌어 내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에 E 가 붙은 ‘educe’는 ‘밖으로 이끌어 내다’가 되고, 다시 ‘~하게 하다’라는 ‘ate’가 붙은 Educate는 ‘밖으로 내 능력과 자질을 이끌어 내다’의 뜻이 되다. 즉, 자신의 잠재되어 있는 능력과 자질을 밖으로 이끌어 내게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타고난 재능은 제각기 다르다. 개개인이 가지고 태어난 그 능력을 끄집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교육을 받는 진정한 의미이자 목적이다.
5%가 망친 나머지 95%
우리 인생 전체를 100으로 봤을 때 우리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부를 하는 시간은 몇 %나 될까? 평균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학교를 다닌다. 하루 24시간, 인생의 평균 수명 80세를 기준으로 했을 때 초등학교 들어가는 8세에서 고등학교 졸업하는 20세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한다고 가정하면, 공부하는 시간은 전체 수명 중 약 5%이다. 학교를 다니는 5%의 시간대에 무엇을 하는가가 나머지 95%의 시간에 도움이 될까? 우리는 그 5% 시간에 학교 에서 무엇을 경험했는가? 지식의 내용을 묻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받은 교육에 과연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
여러분은 학교에서 공부할 때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즐거웠는가? 솔직히 나는 공부는 재미없고 귀찮은 것이었고, 단지 명문대나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한 인식으로 5%의 시간을 보냈는데 나머지 95%의 시간에 공부, 탐구라는 것을 자발적으로 찾아서 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5% 때문에 잃어버린 나머지 95%가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5% 에 해당하는 시기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95%의 시간에 대학을 포함하여 본인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 재미있어 하는 것, 보수를 조금 받아도 진정으로 즐겁게 하는 일을 배워가며 살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이었을까? 미꾸라지 한 마리가 웅덩이를 전부 흐려 놓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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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고의 선생이자 기회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동안 실패는 피해야 하는 것, 만나면 불행하고 낙오하는 것으로 배워왔다. 그러나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러한 실패에 대한 인식은 달라진다. 전체가 중시되는 상황에서의 실패는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지만 개인의 발견이라는 목적에서는 실패만큼 유용한 거울 역할을 하는 것도 없다. 전자의 경우 실패를 통해 궤도 수정을 할 여유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크게 배우는 순간이 언제인지 생각해 보라. 실은 거의 대부분이 실패에서 얻어진다. 우리가 처음 걸음마를 시작할 때 얼마나 많은 엉덩방아를 경험한 후에야 설 수 있고 걸을 수 있었는가?
그리고 부모님들은 그 멋진 실패 앞에서 얼마나 많은 행복한 박수를 보냈는가? 그 박수 받던 실패는 학교에 들어가면서 대접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인정 속에 격려를 받아왔던 실패는 학교라는 경쟁사회에서 절대 겪으면 안 되거나 하게 되면 뒤처지는 것으로 취급 받게 된다. 어떻게 해서든 실패를안 하고 결과를 내는 것만이 대접을 받게 됨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하지만 삶은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아! 그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무엇이 문제였구나, 어떻게 하면 바뀌게 될까?’ 등등의 원인과 방법은 사실 실패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를 만나게 되면 돌아가거나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에디슨은 전구를 완성할 때까지 약 1,200번의 실패를 거듭했다. 그 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마침내 성공을 거둔 후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기자가 에디슨에게 말했다. “1,200회나 실패를 거듭하고도 포기하지 않으셨다니 대단하시군요.” 그러자 에디슨은 “1,200회를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전구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경우를 1,200회나 관찰 하는 데 성공했던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의 모습과 길을 찾은 성공한 사람은 실패에 좌절하거나 흔들리지 않았기에 일반인이 이루기 힘든 성공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 후 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만나는 실패와 시행착오는 사실 진전이 이루 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며 진정한 스승이자 발전을 위한 좋은 기회인 것이다. 인생에 있어 이러한 실패를 경험하지 않는 것만큼 무미건조한 일도 없다. 하는 일마다 다 잘 풀리고, 보는 시험마다 합격하고, 하는 사업마다 순풍대로라면 그의 인생은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인가?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지혜로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실패를 안 한 사람이 멋있는 게 아니라 실패를 기회로 받아들이고 극복한 사람이 진정으로 인간적이고 멋있는 사람이다.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이다.
사람들이 행복해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3가지 행복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셀 수 없이 많은 설이 있다. 하지만 그 방법들은 사람에 따라 각자 인지하는 영역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나와 맞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행복해하지 않는가? 사람들이 행복해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다음 3가지에 원인이 있다.
첫째, 가장 큰 이유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지 못해서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 면서 의외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대화하기보다는 부모나 주위의 의견에 맞춰 수동적으로 살다 보니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외형의 집은 내 집인데 나는 그곳에 살고 있지 않는 아이러니.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데 그 집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둘째,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자유에 있다. 자유에서 우리의 행복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은 크게 경제적 자유, 시간의 자유, 장소의 자유, 인간관계의 자유다. 학교에서 우리들은 직업을 선택할때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훨씬 가치가 있는 일인지 등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못했다.
취업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느 일정한 시간의 자유를 일정한 보수와 교환한다는 것이다.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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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는 것은 내 자유를 담보로 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삶에 있어 자유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이 자유를 얻기 위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는지 역사는 말해준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가 행복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자유의 가치를 알고 평생 업을 선택한 사람과 아닌 사람과는 행복을 느끼는 데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셋째, 사람들이 행복과 멀어지는 이유는 바로 상대와의 비교에 있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은 사람은 남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타인과 나의 비교 자체가 무모하고 의미 없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한 사람은 항시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상대적인 박탈감과 불행을 느낀다. 이러한 비교의 본격화는 학교에 입학한 이후 시작 되며 비교가 일상화 된다. 한 학급에 30명이 있다면 1등부터 30등까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1등에서 멀어지고 30등에 가까워질수록 인생의 질도 낮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나보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모든 면에서 우등하고 더 좋은 학교와 직장, 보수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식이 부지불식간에 우리들 뇌에 이식이 된다. 이처럼 객관적인 지표와 획일화된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에 우리들은 자연스레 길들여져 왔고 더욱 무서운 것은 이것을 인식조차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비교는 필연적으로 순위를 동반한다. 비교는 우열을 정한다는 것이고, 우열을 정하는 기준으로 사용되는 것이 숫자로 표시되는 순위이다. 이 순위 앞에서 사람은 행복과 멀어진다. 경쟁 구도에서 상대방은 나에게 적으로 인식될 뿐 동료로 인식되지 않는다. 여러분은 행복한 검투사가 이해되는가?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 하는데 그 검투사가 행복할 수 있을까? 상대방보다 내가 더 높은 순위에 있어야더 나은 학교,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현실에서 어떻게 그들이 친구나 동료가 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모든 조직과 사회에서 물리적인 1등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없다. 늘 비교 경쟁 속에서 스트레스와 피곤함만이 쌓이게 되는데 어떻게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이렇듯 사람이 행복해하지 않은 이유들을 이해하고, 그 해결책이 자신의 본모습을 찾는 일임을 다시 한번 인지하길 바란다.
PART 02 우리 애들이 우등생이 될까 두렵다
나는 우리 애들이 우등생이 될까 두렵다 미래의 고용 지도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데 학교의 근원적인 교육 방식은 요지부동이다. 과거나 지금 이나 대부분의 교사의 수업 방식과 그 내용은 정해진 틀 안에서 진행된다.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적극 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기보다는 대개는 선생님 혼자 한 시간 내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의 아이들은 집중력을 잃고 선생님의 일방적인 수업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러한 교실의 모습이 학교의 주인공인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과 결과를 가져올지 깊게 고민해 봐야 한다.
국어, 영어, 수학과 그 외의 과목들을 나누어 중요도를 가르고 학업의 효율이라는 이유로 학생의 등급을 우등, 열등(우열반)으로 나누어 놓은 지금의 학교 행태. 優等(우등)의 ‘優(우)’는 ‘우월하다, 뛰어나다, 넉넉하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劣(열)’이라는 말은 ‘일정 등급에서 떨어진다’는 것이다. 즉, 어떤 기준을 만들어서 그에 못 미치면 열등생, 그보다 조금 더 나으면 우등생으로 등급을 매기고 있다. 잔인한 말이지만 마치 소, 돼지의 등급을 매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식민지 시대의 교육 목적이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식민지 시대에 학교는말 잘 듣는 황국의 유순한 신하 국민을 양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잔해들이 아직도 우리의 학교에 남아 있다. 미술은 잘하는 데 영어나 수학을 못하면 열등한 것인가? 전 과목 평균이 일정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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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미치지 못하면 정말 열등한 것일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남이 세워 놓은 납득할 수 없는 기준에 의해 평가 받아선 안 되는 존재임을 안다. 우리 아이들이 어쭙잖은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본모습을 잊고 살까 두렵다.
애플의 사훈을 아십니까?
사훈은 회사의 철학과 메시지를 한마디로 응축한 것으로, 가정에서의 가훈, 개인에게는 미션에 해당한다. 훌륭한 기업들은 대부분 회사의 미션, 비전을 가지고 있고 사훈에는 그 미션과 비전이 담겨 있다.
애플의 사훈은 ‘Think Different’ 즉, ‘다르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수많은 발명품 목록에 애플의 아이폰이 빠질 수 있을까? 음성통화만 가능하던 이동통신 영역을 음악은 물론 사진을 찍고, 인터넷과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며 다양한 형식의 파일을 짧은 시간 안에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영역 으로까지 진화시켰다. 더 나아가 무궁무진한 기능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추었 으니 가히 혁신적인 제품이 아닐 수 없다. 아이폰의 출현으로 카메라와 내비게이션 업계, MP3와 시계및 게임 업계 등 수많은 업계가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되었다.
현대사회 최고의 Innovation Product(혁신 제품)로 손색이 없는 아이폰을 발명한 애플의 사훈은 우리들 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답을 하나로만 인식하면 이런 기업은 절대 탄생할 수 없다. 답이 하나라 고만 생각하는데 어떻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다르게 생각하라는 말은 세상의 통념들, 상식들에 통렬한 의문과 질문을 던지라는 말이다.
‘왜 아이폰이어야 하는지?’, ‘왜 그렇게까지 단순해져야 하는지?’, ‘심플하게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핵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스마트폰의 원래 목적은 무엇인지?’,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 ‘그 외에 다른 길은 없는지?’ 이렇듯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며 그것이 지금의 아이폰을 만든 원천이 되었다.
“Think Different!” 우리가 중, 고등학교에서 배운 영어 문법대로라면 “Think Differently’가 맞지만 스티브 잡스는 그런 문법의 틀에서도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렇듯 애플의 사훈인 “다르게 생각하라!”의 요체는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기존의 상식과 통념을 뛰어넘는 본질에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용물인 메시지이지 형식이 아니다.
AI 시대에 학교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앞으로 다가올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풍차를 향해 질주하는 돈키호테 처럼 AI 시대에 열심히 공부만 하는 것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이에 AI 시대에 학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① 감정적인 면: 지루한 학교에서 즐거운 학교로. 학교의 주인공은 학생들이다. 즐거운 학교생활은 아이들의 자신감을 키워준다. 그러나 학교가 지루하고 즐겁지 않으면 향후 사회생활도 당연히 즐겁지 않다. 그렇다면 왜 학교생활은 재미없는 것일까? 기존의 학교 교육은 전체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었다.
전체를 대상으로 노동자가 알아야 할 정해진 내용을 가르치고 그 내용을 시험이라는 수단을 통해 정해진 인원을 선별했다. 하지만 이제는 개개인의 개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각자 자신이 가진 강점을 찾아내 그것을 어떻게 계발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인생에서 창의력과 상상력, 감수성이 가장 뛰어난 시기에 학교 교실에서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왔다.
② 지적인 면: 외우는 교육에서 사고할 수 있는 교육으로. 암기만 하는 교육은 이제 효용을 잃어 가고 있다. AI 시대에는 암기의 의미가 없어진다. 데이터의 저장, 정리, 추출 등은 AI가 도맡아 한다. 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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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등 인간만이 가능한 영역이라고 믿어 왔던 부분까지 이미 AI가 장악하고 있지 않은가? 나아가 의술, 증권 애널리스트 영역, 심지어 프로그래머 영역까지도 AI가 넘보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학교 교육의 행태는 교과서에 밑줄을 치며 외우고, 외운 것을 확인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뛰어난 역량을 가진 아이들에게 이러한 주입식 교육은 AI 시대에 상당히 뒤떨어지는 삶을 살게 하는 일임을 인지해야 한다.
③ 사회적인 면: 혼자만 잘하면 되는 교육에서 함께하는 교육으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에서 학생들이 지식을 얻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굳이 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고 할지라도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고 서로 배워가는 학교의 고유 기능은 대체할 수 없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 선후배들과의 조직, 사회 경험을 집에서도 대체할 수 없고 세상의 대부분 일들은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해야 이룰 수 있는 것들이 많다.
AI의 능력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모르는 시대에 학교가 진정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 느끼는 당혹감과 절망, 분노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학생들의 행복은 국가 미래의 행복 이며 그 주인공들이 행복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이 판단의 기준점 인지 자각하며 행동해야 할 것이다.
시대의 흐름과 거꾸로 가고 있는 교육의 현주소 학교 교육은 사회에의 적응을 보다 쉽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 속도 및 방향과는 무관하게 이전의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이 학교이다. 이렇듯 학교와 변화되는 사회 사이의 괴리감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것이 기성세대들이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배려이자 의무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행해지고 있는 고질적인 학교의 모습 몇가지를 살펴보자.
① 산업혁명 이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교육 시스템: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의 학교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과목을 선생님의 일방적인 수업 형태로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곳이다. 산업 혁명 시대, 대량생 산을 위한 노동자의 육성이 목적이었던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학생의 모습이 우등생이었다. 그러나 AI 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고 있는 초정보화 시대에는 창의적이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높은 사람이 인재로 평가받는다.
② 암기식 교육: 암기식 교육은 AI 시대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것이다. 물론 암기를 해야 하는 과목도 있지만 대부분의 과목을 암기한다는 것이 문제다. 어떻게 우리의 역사가 암기 과목 범주에 포함될 수있는가? 우리는 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지식들을 외웠는가? 그리고 남아 있는 지식은 무엇인가?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지 않은 단순 암기식 배움은 물거품이다.
③ 자발성의 결여: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자율학습’도 정말 자발적으로 원해서 하는 학생들이 몇 명이나 될까? 선생님과 부모님의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늦은 시간까지 수업의 연장선에서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강압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 자유롭게 숨 한 번 쉴 수 있을까?
④ 개개인의 개성은 뒷전: 산업혁명 시대에 개개인의 개성은 의미가 없었다. 모두가 동일한 근무 조건 에서 성실하고 말없이 일해야 하는 환경에서 개성을 내세워서도 안 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산업혁명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이다. 너도 나도 ‘1인 방송’에 관심을 갖고 도전해 보고 싶어 한다. 남들과 다른 뚜렷한 개성이 곧 돈벌이 수단이 되는 이 시대에, 아직도 전체를 획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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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교육만 강조하는 학교 교육의 행태를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학교는 즐거운 곳이어야 한다. 학생들의 표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고서는 나라의 미래도 밝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PART 03 우리 애들이 벌거벗은 임금님이 될까 두렵다
나는 우리 애들이 벌거벗은 임금님이 될까 두렵다 모든 사람에게는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즉, 사람은 남의 말을 듣는 것보다 자기 말을 들어주길 원하고,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친절하다고 생각한다. 친절하다는 말은 일본말로 ‘야사시이(優し い)’인데 한자로 ‘優(도타울 우)’는 ‘?(사람인 변)’과 ‘憂(근심 우)’ 글자가 합쳐진 것이다. 즉, 타인의 근심이나 걱정을 옆에서 잘 들어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말을 잘하는 것을 더 똑똑하고 현명한 것으로 생각하여 어릴 적부터 아이들을 웅변 학원에 보내고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가르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말을 얼마나 잘하느냐, 상대방을 얼마나 잘 설득하느냐로 판단하지만 사실은 그반대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방의 호의, 호감을 얻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어울려 있는 학교 에서 먼저 가르쳐야 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동화는 누구나 알 것이다. “멋있다, 훌륭하다, 아름답다.”는 식의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임금님은 자신의 멋에 혼자 취해 있다.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가 잘났다고 착각하며 사는 모습이 웃지도 울지도 못할 광경이다.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 많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지, 그럴듯한 말솜씨로 자기 멋에 취해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공통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고 신뢰를 받을까? 사람은 상대방 에게 호의를 가지면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해와 신뢰를 가지지만 반대로 상대방에게 악의나 편견, 선입견 등을 가지고 있으면 그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이것이 인간 심리의 기본이다. 미국의 애리조나 대학의 심리학자 로버트 찰디니는 “사람은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요청을 받으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한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것은 타인에게서 호의를 받는 사람이 실제로 성공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톱 세일즈맨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대단한 언변이나 화려한 설득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이 말을 하고 싶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더 많은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보조를 맞출 뿐이다. 가령, 한 고객이 15분만 시간을 허락해준다고 한다면 보통 세일즈맨은 15분 동안 고객의 이야기를 듣기는커녕 제품 설명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톱 세일즈맨은 고객이 15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돕고 경청한다. 그러다 보면 고객은 15분이 부족해서 더 긴 시간을 이야기하게 되고 톱 세일즈맨은 고객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 아주 잠깐 제품에 대해 설명한다. 그런 후 고객은 다음에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명함을 준다. 결국 톱 세일즈맨과 보통 세일즈맨의 차이는 간단하다. 상대의 니즈를 읽고 상대에게 질문과 경청을 하느냐 아니냐이다. 달리 말하면 ‘유용한 질문은 짧게, 경청은 길게 할 줄 아는 것’의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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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유명한 정신 상담 컨설턴트가 있다. 그의 1시간 상담료는 100만 원으로 상당히 비싼 편이 지만 1년 치의 상담 예약이 이미 채워져 있다. 그 컨설턴트와 상담을 하고 나온 사람들은 고민이 해결 되었다면 역시 최고의 컨설턴트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 컨설턴트는 1시간 동안 고객에게 어떤 말을 했기에 그토록 신뢰를 받는 것일까? 그는 정확히 딱 세 마디 즉, 질문 3가지만 한다고 한다.
① 왜 상담을 하러 오셨나요? ②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③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한 시간 가량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난 고객들은 모두 만족한 얼굴로 상담을 잘 받았다고 감사 해한다. 그 컨설턴트가 한 일은 무엇일까? 단지 핵심을 찌르는 질문과 진지한 경청뿐이다.
부자가 되는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 부자가 되는 의외로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먼저 성공하고 나서 여유가 생겨야 남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자들은 거꾸로 생각한다. 부자들 대부분은 남을 먼저 돈 벌게 한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미국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이 연봉이 천억 원이라고 가정한 다면 그는 자신이 속한 구단에 얼마를 벌어줬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받는 연봉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고 있지만 자신이 속한 회사나 조직에 자신이 얼마를 벌어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한다.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에게 이익을 남겨주는 것이 비즈니스의 기본인데 대부분은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다. 남에게 어떤 가치나 이익을 제공하지 못하는 비즈니스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남에게 어떤 가치와 이익을 제공한다는 것을 자신이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아니면 쉽지 않다. 결론적으로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남에게 이익과 혜택, 어떠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의 젓가락 이야기를 해보자. 천국과 지옥에는 똑같이 밥을 먹는 긴 젓가락이 있는데 그 길이가 1미터가 넘는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밥을 먹고 있는데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배가 고파 아우성이다. 그 이유는 천국 사람들은 긴 젓가락으로 서로를 먹여주지만 지옥에서는 서로 자신이 먼저 먹으려 하기 때문에 결국 아무도 먹을 수 없게 되어 아우성인 것이다. 이 모습이 사실은 우리들 현실의 모습이 아닐까?
누구의 관점에서의 성공인가?
그동안의 학교는 대학 입시와 취직을 위해 필요한 공부만 가르치던 곳으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들은 이유도 모른 채 경주의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앞만 보며 무작정 달리는 경주마였 다. ‘왜 달리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서 달려야 하는가?’, ‘진정 누구를 위해 달리는가?’, ‘지금 내가 달리는 행위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런 질문을 할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고,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물으면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대답만 듣기 일쑤였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스즈키 이치로(통상 이치로)라는 선수가 있다. 일본에서 최고의 자리를 경험한 후 미국 프로야구에 도전하여 신인상, 타격상, 리그 MVP, 최다 경기 출장 기록 등대단한 커리어를 쌓은 프로야구계의 스타이다. 그런 그가 놀랍게도 TV 인터뷰에서 자신은 성공이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다. 이치로가 일본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르고 미국에서 진출한 2000년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일본 프로 야구에서는 최고의 성과를 냈을지 몰라도 미국에서는 그 정도 실력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 진출한 첫해부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신인상, MVP, 수위타자, 도루왕, 골든글러브상 등을 수상했다.
그런 그가 성공이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공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완수했다면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남들이 정해 놓는 성공을 쫓기 시작한다면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의 말처럼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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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남들이 세워 놓은 성공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데일 카네기나 나폴레옹 힐과 같은 자기계발의 대가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제임스 앨런은 “진정한 성공이란 누구의 관점에서의 성공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진정한 성공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본인의 사명을 향해 도전하며, 타인과 사회에 가치를 기여하는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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