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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삼국지 4권

by Casey,Riley 202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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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4권
  원저 : 나관중, 평역 : 김홍신


  권머리에
  유비는 공명을 만나 난세를 헤쳐 나갈 지혜를 구하고...
  관우와 손건이 유비를  만나기 위해 여남으로 가던  중 망탕산 고성에 머물고 
있던 장비와  해후한다. 유비는 원소에게서 몸을  빼내 여남에서 헤어졌던 관우, 
장비, 조운 등 가족들과 다시 합하고 세력을 확장한다. 한편 원소는 강동의 손책
과 연합하여 조조를  치고자 하나, 손책은 모든 백성들로부터 추앙을  받던 우길 
선인을 처형하여 화를 입고 죽임을 당한다. 이로  인해 연합 전선은 물거품이 되
고 원소는 관도에서  조조와 대전을 벌인다. 이때 조조는 원소가  배척한 허유의 
도움으로 오소의 군량을 불태워 황하를 휩쓸고  기주성까지 점령한다. 나라가 안
정되자 조조는 백성들을 안심시키며 널리 인재를  구한다. 또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정벌을 시작한다.  이때 조조와의 싸움을 두려워한 공손강은 두  형제의 목
을 베어 바치니 조조는 요서,  요동 지방까지 평정하게 된다. 그 무렵 유비는 형
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고 하북의 원소는 갑자기 세상을 뜬다.  이에 셋째인 
원상이 맏이 원담을 제쳐두고 그  뒤를 잇게 되고 원담은 그 화를 누른 채 조조
군과 맞서 싸운다. 적로마를 얻어 형주를 떠나  신야현으로 향하던 유비는 채 부
인이 앙심을 품고  죽이려 하자 이를 눈치채고  적로마를 타고 단계를 뛰어넘어 
몸을 피한다. 그 후 신야에서  널리 인재를 모으는 한편 원대한 꿈을 키운다. 유
비가 채모의 계략으로 위험에  처했던 사실을 유표에게 알리자 유표는 채모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린다. 한편 유비는 사마휘를 만나  천하의 인재가 양양 땅에 몰
려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지략과 병법에  뛰어난 서서를 군사로 중용하여 여
광, 여상 무리를 물리친다. 마침내 공병을 만난 유비는 한실을 구하고 난세를 헤
쳐 나갈 지혜를  구한다. 유비의 삼초고려에 감복한 공명은 혜안을  열어 천하삼
분의 계를 설명한다. 또한 유비의 눈물어린 호소에 출려를 결심한다.

  용과 호랑이가 서로 만나 풍운을 이루다.
  관우가 조조에게 항복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던 장비는 관우로 하여금 세 번의 
북 소리가 울리기 전에  채양의 목을 베어 오라 한다. 한편  유비는 유표를 핑계
로 원소 밑에서 빠져 나오고, 이윽고 조자룡,  관우, 장비 등과 재회의 기쁨을 나
눈다.
  관우와 손건이 유비를 만나기 위해 여남으로 가던  중, 멀리 고성 하나를 발견
했다.
  "저 고성에서 연기가  오르고 있는데, 도대체 누구의  성인가?" 관우와 손건이 
이마에 손을 대고 바라보고 있는  동안 주창이 어디선가 그 고장 사냥꾼을 데려
오자 관우가 물었다.
  "저 고성은 흔히  고성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석 달쯤 전의 일입니다. 
장비라고 하는  험상궂게 생긴 장수가 4,  50기를 이끌고 오더니  현의 관리들을 
내쫓고 저 성을 차지했습니다. 성을 차지한 이래  해자를 깊이 파고 방책을 둘렀
습니다. 또한 군사를 모으고 말을 사들이며 마초를  재워 두고 있어 지금은 인마
가 수천에  이른다고 합니다. 장수가 워낙  무섭고 그 세력이 커  이 부근에서는 
아무도 그를 대적할 자가 없다 합니다." 짐짓 사냥꾼의 얘기를 태연하게 듣고 있
던 관우였으나 마음속으로는  걷잡을 수 없는 감회에 젖어 들었다.  그 사냥꾼이 
물러가자 관우는 손건을 돌아보며 말했다.
  "공도 들었을 테지요?"
  "그렇습니다."
  "지금 이 고장 사냥꾼의 말을 들으니 그는 틀림없는 아우 장비요. 서주에서 흩
어진 후 어디로 갔는지 소식을  알 길이 없었는데 지금 뜻밖에도 이곳에서 만나
게 되다니 실로 감개무량할 따름이오."
  "익덕을 여기서 만나게 됨은 실로 큰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손건도 힘이 
솟는 듯 기뻐하며 말했다. 그런 손건에게 관우가  다급한 마음을 감추지 않고 서
둘러 말했다.
  "공은 곧장 저 고성으로 가 장비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전하시오. 그리고 두 부
인의 수레를 모시러 오라고 이르시오." 손건은  그 자리에서 말을 몰아 고성으로 
달려갔다. 나는 듯이  달리는 손건의 말은 순식간에 언덕을 내려가고  다시 저편 
산기슭을 돌아갔다. 손건이 성벽  아래에 이르러 성을 바라보았다. 그 옛날 어떤  
왕족이 터를  잡았음직한 광대한 규모의  산성이었다. 그러나 벽과  망루는 이미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씻겨 낡아 있었다.  손건이 성문 아래에서 문지기를 소
리쳐 부르며 그가 찾아온 연유를 알렸다. 잠시 후, 망루에는 덥석부리 수염이 여
전한 장비가 나타났다. 장비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니, 정말 손 공이시오?" 장비는  그렇게 큰소리로 물어 보더니 직접 마중을 
나왔다. 장비는  지난번 서주가 조조에게 함락된  후 망탕산에 몸을 숨긴  지 한 
달쯤 되자 두 형님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그리하여  산을 나와 여러 곳을 떠돌며 
소식을 묻던 중 우연히  이곳 성 앞을 지나게 되었다. 장비는  때마침 식량이 떨
어진 참이라 성을 지키는 관리에게 곡식을 빌려  달라고 떼를 썼다. 관리는 떠돌
아다니는 무리에게 곡식을  빌려 줄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나 장
비 또한 좋게 물러날 리 없었다. 두 형님의  소식도 모른 채 방랑하여 잔뜩 악에 
받쳐 있던 장비는  불문곡직하고 그들을 힘으로 성 밖까지 내몰았다.  게다가 관
인까지 빼앗아 다른 세력들은 얼씬도 못하게 해온  터였다. 장비가 손건을 성 안
으로 맞아들이자 손건은 예를 마치고 말했다.
  "현덕 공은 원소를 떠나 지금 여남으로 가셨습니다. 지금 저 밖에는 관 장군께
서 두  부인을 모시고  허도를 떠나 이곳에  이르러 계십니다. 장군께서는  어서  
나가 맞아 들이십시오." 그 말을 듣더니 장비는 대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먼저 
갑옷부터 꿰입고 이어 장팔사모를 들더니, 불문곡직하고  말 위에 올라 군사 1천
여 명을 점고하여  거느리고 성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손건은 놀란  가운데도 의
아했으나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라 엉겹결에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양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손건이  말을 붙여 볼까 했으나 장비의 기세가 흉
흉하여 감히 입을 열 수도 없었다. 한편  관우는 장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성문
에서 한 떼의 인마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넓은 연못을 휘돌면서 군마가 
이쪽으로 향해 점점 가까워지자 관우의 수하들은 기뻐하며 소리쳤다.
  "저걸 보십시오.  선두에 장비 장군께서 오고  계십니다." 관우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주창에게 청룡도를  맡기고 천천히 말을 몰아 마중을 나갔다.  그러나 장
비의 얼굴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장비는 고리눈을 떡 하니 부릅뜨고  호랑이 수
염을 곧추세운 채  벽력 같은 고함을 치며 달려들었다. 관우가  황망히 말머리를 
옆으로 돌려 몸을 피하여 소리 쳤다.
  "아우는 이게 무슨 짓인가? 도원에서 맺은 결의를 잊었느냐?" 장비도  벼락 같
은 소리로 관우를 꾸짖었다.
  "뭐라구? 너같이  의롭지 못한 자가 도원  결의를 얘기할 수 있느냐?"  관우가 
몸을 피하는 가운데도 장비의 어처구니없는 말을 꼬집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닥쳐라! 너는 형님을 배반하고 조조에게  들러붙어 수정후라는 벼슬까지 지내
지 않았느냐? 이제 조조의 명을  받고 나까지 유인하러 왔느냐? 오늘 너와 죽기
를 작정하고 싸우러  왔으니 내 칼을 받으라!" 그제야 관우도  그가 사실을 잘못 
알고 있음을 얼핏 깨달았다. 관우는 그의 오해를 깨우쳐 주려 하였다.
  "네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두 분 형수님도 계시니 믿지 못하겠거든 직접 여쭈
어 보도록 하라" 수레 안에  있던 두 부인이 이를 보다 못해 주렴을 걷어올리며 
장비를 향해 외쳤다.
  "작은아주버님, 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고정하십시오."
  "두 형수님은 가만히 계십시오. 이 의리를 배반한 자를 처치한 다음 성 안으로 
모실 테니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장비는  말을 마치자 창을 수평으로 겨누고  
관우를 향한 채 말을 몰았다. 이를 본 감 부인이 언성을 높여 말했다.
  "큰아주버님이 허도에 계셨던 건 만부득이 한  사정에 의한 것입니다. 작은 아
주버님은 오해를 푸십시오." 미 부인도 거들어 한 마디 했다.
  "황숙과 작은아주버님의 소식을 몰라 잠시 조조에게 몸을 의지 했을 뿐입니다. 
황숙께서 여남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여기까지 왔습니
다." 그러나 장비는 그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두 형수를 깨우치
려 들었다.
  "형수님들은 저놈에게 속으시면  안 됩니다. 충신은 죽어도  항복을 하지 않는 
법이며, 대장부는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 법입니다." 관우도 마침내 더 이상 참
지 못하겠다는 듯이 노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손건이 옆에서 장비를 달랬다.
  "장 장군, 떼를 써도 분수가 있지 이젠 그만 진정하시오. 관 장군은 장군의 소
식을 듣고 반가워서 찾아온 것이오." 그러나  장비는 더욱 화를 돋우며 손건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너는 나서지 말라. 이제는  한 통속이 되어 나를 사로잡으러 온 것이렷다. 어
찌 딴소리로 정신을 우려  빼려 하느냐?" 관우는 답답함을 달랠 길이 없지만 끝
까지 그를 달랬다.
  "아우를 잡으러 왔다면 군사를 데려오지 왜 두 형수님과 사졸 몇만 이끌어 왔
겠느냐? 웬  의심이 그리 많으냐?" 관우는  그렇게까지 말하면 장비가 알아들을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장비가 관우의 말을 듣자 
마자 호랑이 수염을 올올이 세우며 다시 소리쳤다.
  "그럼 저기 말을 달려오는 것들은 군사가 아니고 뭐란 말이냐? 이래도 되지도 
않은 주둥아리를 놀리겠느냐?" 그 말에 무심코 돌아다본 관우는 크게 놀라고 말
았다. 과연 등 뒤에는  한 떼의 기병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
다. 바람에 나부끼는 기를 보니 바로 조조의 군기가 아닌가.
  "이래도 나를 속일 테냐?" 장비가 한 마디 외침과 함께 장팔사모를 들고  관우
를 향해 내달렸다. 관우가 이를 피하며 급히 외쳤다.
  "아우는 기다리게. 저들이 나를 잡으러 오니 제일 앞서 달려 오는 장수를 베어 
내 진심을 보여 주겠네." 관우의 다급한 외침에 장비는 관우와 인마를 번갈아 보
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지켜 보기로 하겠다. 북을 세 번 칠 때까지 저 장수의 목
을 베어 오라. 그러게  못한다면 내가 용서치 않겠다." 관우는 장비를 향해 고개
를 끄덕인 후  적토마를 몰아 달려오는 적장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적장
은 바로 채양이었다. 채양은 원래 관우를 하찮게  여겼고 그가 허도를 떠나올 때
부터 사로잡아 오겠다고 자청했던 장수였다. 거기다가  관우가 조카 진기의 목까
지 베었으므로 원수를  갚으려던 터라, 채양은 관우가 말을 달려오자  칼부터 빼
들었다.
  "내 조카 진기를 죽인 네놈이 여기까지 도망을 왔구나. 승상의 명을 받고 너를 
잡으러 왔다. 어서 목을  내게 바쳐라." 관우는 채양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청룡도를 움켜쥐었다. 세  번의 북이 울리기 전에 그의 목을  장비에게 바치기로 
하였으니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채양이 칼을 휘두르며 그에게 덮쳐 들었다. 이
때 장비는 몸소 북채를 들어  북을 쳤다. 북치는 소리가 한차례 들려 왔다. 마주 
오는 채양의 칼을 피해 관우의  청룡도가 허공을 가르자 채양의 목이 땅위로 떨
어졌다. 그 빠르기가 전광석화 같았다. 채양의 목은 이미 말 아래로 굴러 떨어지
고 말았다. 그와 함께 장비가 치는 두 번째 북 소리가 들려 왔다. 관우가 채양의 
목을 청룡도에 꿰고 나는 듯이  적토마로 달려 장비에게 이르자 장비가 치는 세 
번째 북 소리가 울렸다. 관우는 다시 말머리를 돌려 적진으로 향했다. 기합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간단히  대장의 목을 떨어 뜨리는 걸 본 채양의 군사들은 이미 
겁에 질려 있었다. 관우가 성난 기세로 그들을  향해 말을 몰아가자 뿔뿔이 흩어
지며 한목숨  보전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관우는 도망가는 군사  중에 장수기를 
가진 졸개를 사로잡아 장비가 보는 앞에서 문초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추격해 왔느냐?" 관우의 물음에 졸개가 대답했다.
  "채양 장군께서 자기의 조카를  죽였다는 말을 듣고 관 장군을 뒤쫓아 싸우겠
다고 나서는 것을 조 숭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여남으로 가 유
벽을 치도록 했습니다. 그리하여 여남으로 행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여기서 관 
장군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장비는 그 졸개의 허도에 있을 때의 관우에 대해 
물어 보았다.  졸개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소상히 장비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제야 장비는 관우에  대한 의심을 풀었다. 장비가 멋쩍은 얼굴로  관우에게 사
과의 말을 꺼내려 했다. 그러나 홀연 성쪽에서  군사 하나가 말을 달려 장비에게 
고했다.
  "남문 쪽에 누군지 모르겠으나 수십 기를  이끌고 다가오는 자가 있습니다. 장
군께서 오셔야 하겠습니다." 그 소리에  장비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남문쪽으로 
급히 달려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을 과연  말을 탄 10여 명이 가벼운 활과 
화살을 멘 채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장비가 나타나자마자 말에서 내렸다. 장
비가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그들은 바로 미축, 미방 형제들이었다.
  "아니? 미축 형제가  아니오?" 장비가 놀라는 가운데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며 
물었다.
  "서주를 잃고 난 후 유 황숙의 행방을 찾고 있었습니다. 황숙께서는 하북에 계
시고, 간옹도 하북으로 갔으며 운장께서는 조조에게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일단  고향에 머물렀다가 다시  황숙께 소식이나 전할까  하여 길을 
떠났는데 우연히  한 나그네로부터 성이 장씨이고  생김새가 이러이러한 장수가 
이 성을 지키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틀림없이  장 장군이라
고 여겨 곧장 이리로 달려오는 길입니다."
  "참으로 잘 왔네. 운장 형께서도 허도를 떠나 두 형수님을 모시고 이곳으로 와 
계시다네."
  "아니? 관 공께서도 이곳에 오셨다는 말씀입니까?"
  "손건도 함께 왔다네. 그리고 큰형님의 거처도 알아 냈다네."
  "이건 정말 뜻밖입니다. 실로 하늘의  도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축, 미방이 
크게 기뻐해 마지않았다. 이어  관우와 두 부인을 뵈러 달려갔다. 이윽고 일행은 
성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두 부인은 하비성이  조조에게 떨어
지던 날로부터 허도를 떠나올 때까지의 관우의  지난날을 빠짐없이 들려 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장비는 목을 놓아 울며 관우 앞에 엎드렸다.
  "형님! 그간의 고초도 모른  채 부끄러운 짓을 저질렸습니다. 어리석은 아우를 
꾸짖어 주십시오." 장비가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니  곁에 있던 미축 형제와 여러 
사람도 눈시울을 붉혔다.  관우는 엎드린 장비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감격에 겨
운 재회를 했다. 장비는  수하를 시켜 염소를 잡아 크게 잔치  준비를 하도록 이
른 뒤, 자신도 지난 일을  들려 주었다. 그날 밤은 밤이 늦도록 잔치가 계속되었
다. 언제 다시 만날 지 기약 없이 뿔뿔이 흩어졌던 사람들이었다. 관우가 조조에
게 영영 투항한 걸로 알고 있던 장비였다.  관우가 이렇게 돌아오고 큰형임의 소
식까지 알게 되자 장비의 기쁨은 더욱 컸다.  관우는 잔치 자리에서 가끔 술잔을 
놓고 탄식했다.
  "이럴 때 형님이 계셨다면 얼마나 술맛이 좋으리오." 밤늦게 까지 이어진 잔치
가 끝나고 제각기  처소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장비가 관우에게 
다급히 재촉을 했다.
  "형님, 어서 여남으로 가  큰형님을 뵙도록 합시다." 장비의 말에 관우는  조용
히 타이르며 그를 만류했다.
  "아우는 두 형수분을 모시고 이 성을 지키고 있게, 나와 손건이 먼저 여남으로 
가서 형님의 소식을 알아보고 오겠네." 관우의 말에 장비도 고개를 끄덕였다. 생
각해보니 성을 비우다시피 한 채 모두 떠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관우가 손건과 
함께 수십 기를 거느리고  여남으로 말을 몰았다. 여남성에 이르러 유벽, 공도를 
만나자 먼저 유비 소식부터 물었다.
  "애석하게도 한 발 늦으셨소. 현덕 공께서는 나흘 전까지 머무르셨으나 이곳에 
군사가 적은 것을 보고 하북으로 돌아가시었소.  이렇게 적은 세력으로는 군사를 
도모하기 어렵다고 하시며 원소에게 이 일을 의논하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관우
는 그 말을 듣자 낙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소의 장수를 죽인 몸이라 하북
으로 마음대로 찾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근심어린 얼굴로 다시  고성으로 향
하는데 손건이 위로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하북으로 가서 황숙을 모시고 고성
으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기 전에 고성으로 가서 장비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좋겠소." 관우
와 손건은 장비가 있는 고성으로 돌아와 유비가  하북으로 간 사실을 알렸다. 장
비가 또 하북으로 함께 가자고 나섰다.
  "지금 우리가 몸을 의지할 곳은 이 성밖에  없네. 경솔히 이 성을 버릴 처지가 
아니니 아우는 이 성을  잘 지켜야 하네. 그러면 나와 손건이  하북으로 가서 형
님을 모셔 오도록 하겠네."
  "형님께선 전에 안량, 문추를  죽였는데 어떻게 원소에게로 가겠다는 말씀입니
까?" 장비가 그 일을 근심하며 관우에게 물었다.
  "그건 그곳의  형편을 살펴본 연후에  알아서 대책을 세우겠네."  관우는 짐짓  
태연히 대답하고 장비를 성에  머물게 했다. 그런 후 얼마 되지  않는 종자와 주
창을 데리고  하북 땅을 행해 출발했다.  가는 도동 와우산 기슭에  이른 관우는 
주창을 불렀다.
  "전에 헤어진 배원소에게 다녀오라. 나는 지금 가까운 사잇길로 형님을 찾아갈 
작정이다. 그대는 와우산으로  가서 배원소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큰길을 따라나
와 나를 맞도록 하라."  관우의 말에 주창은 곧장 길을 떠났다. 주창이 와우산에 
이르자 배원소는 반갑게  일행을 맞았다. 관우가 약속대로 그를 불러준  것에 기
뻐하며 졸개들을  점고하여 관우의 명에  따라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튿날 
관우와 손건을 이윽고 하북의 경계에 다다랐다.
  "장군께서는 이 부근에 숙소를 정하고  기다립시오. 아무래도 하북으로 들어가
시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먼저 하북으로 가서  황숙을 뵙고 의논
하겠습니다." 원소의 근거지가 가까워지자 손건이 관우에게 말했다. 관우도  그말
이 옳다고 여겼다.  그래서 손건이 떠나자 관우는 종자를 이끌고  가까운 장원으
로 가서 하룻밤 묵어  가기를 청했다.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와 관우를 맞
았다. 관우가 자기 소개를 하자 그 노인이 관우를 반기며 말했다.
  "이건 무슨 기이한 인연입니까? 저의 집 성씨도 관씨이고 저는 관정이라고 합
니다. 장군의 높으신 이름은 이미 들은지 오래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니 큰 영광
입니다." 관정은 두  아들까지 불러 관우를 뵙게  하며 일행을 깍듯이 대접했다. 
관정의 아들 가운데  형은 관녕이라 하여 유학에 조예가 깊었고,  아우는 관평이
라 하여  무예를 닦고 있었다. 관우는  20기의 종자와 함께 관저의  집에 묵으며 
손건으로부터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손건은 유비를 만나기 위
해 기주로 들어갔다.  유비는 여남의 군사가 보잘것 없음을 보고  실망하여 하북
으로 돌아왔으나 근심이  그치지 않았다. 관우와의 서로 글만 한  번 주고받았을 
뿐 뒷소식을 알 수 없었고 장비는 아직 어디 있는지 종적조차 모르고 있는 형편
이었다. 원소에게 다시  돌아오기는 했으나 주견이 없고 변덕이 심한  그의 휘하
에서 언제까지나 몸을 굽히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유비가 그런 일을 근
심하고 있을 때 종자가  와서 손님이 왔다고 알렸다. 유비가 그를  맞아 보니 바
로 손건이었다. 유비는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온 것처럼 기뻐하며 반겼다. 더
욱이 기쁜 것은 관우, 장비가 건재하며 두  부인까지도 고성에 있다는 소식을 들
은 것이었다.
  "이는 실로 하늘의 도우심이리라." 유비는 벅찬 감격으로  하늘에 감사했다. 그
러나 지금에 와서  통탄스러운 것은 자신이 기주 땅으로 돌아온  사실이었다.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다시 걸어 들어왔으니, 몸이  쇠사슬에 휘감겨 있는 것과 다름
없었다. 유비는 손건과 함께 원소에게서 몸을 빼낼  일을 궁리하던 중 문득 한가
지 생각이 떠올라 말했다.
  "그렇군, 간옹의 지혜를  빌리도록 해보세. 그 사람은  지모에 밝을 뿐 아니라 
원소에게도 신임을 받고 있다네." 유비는 은밀히 사람을 보내 간옹을 불렀다. 간
옹은 원래 유비와 같은 고향 사람으로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 유
비를 공경하여 기주까지 따라왔으나  원소의 시선이 있는 터라 겉으로는 내색하
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이윽고 간옹이 오자 세 사람은 자리를  같이 하고 원소
에게서 탈출할 궁리를 꾀했다. 먼저 간옹이 입을 열었다.
  "주공은 내일 원소를 만나십시오. 형주의 유표를 설득시켜 함께 조조를 치자고 
말한 뒤 주공께서  그를 달래러 형주로 가겠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원소도 동의
할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형주로  가는 척하여 몸을 뺀 후 관  장군을 만나면 될 
것입니다." 간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유비가 물었다.
  "좋은 계교요. 그러나 공은 어떻게 하겠소?"
  "저는 달리 꾀를 내어 이곳에서 빠져  나갈 것입니다." 간옹의 말에 유비는 마
음을 놓은 듯 그가  말한 계책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이  되자 유비는 기
주성으로 원소를 찾아가 말했다.
  "조조와의 싸움은 아무래도 빨리 끝이 날 것 같지 않습니다. 조조와 끝없는 대
치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형주의 유경승(유표의 자)을  끌어들여 함께 조조를 치
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유경승은  형주와 양주 일대의 아홉 군을 거느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곡식도  넉넉하고 군세도 강합니다. 그와 힘을 합친다면  조조를 치
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건 그렇소. 그러나 지난번에 사람을 보내  동맹을 맺자고 하였으나 그는 응
하지 않았소. 내가 조조와 싸우면 그는 힘들이지 않고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소. 
그렇지만 다시 사람을 보내도 응하지 않을 것이오."
  "실은 그와 나는 모두 한실의 종친입니다.  내가 가서 잘 타이른다면 물리치지 
못할 것입니다." 유비의 말에 원소의 얼굴이 밝아졌다. 원소는 기쁜 기색을 감추
지 않은 채 은근히 유비에게 말했다.
  "유경승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이겠소. 그는 
여남의 유벽에 비할 바가 아니오." 원소는 유비가 형주로 떠나는 것을 쾌히 응낙
하며 떠나려는 유비에게 문득 생각난 듯이 말을 이었다.
  "듣자하니 관운장이 조조를  떠나 하북으로 오고 싶어한다고  하오. 그가 오면 
안량, 문추를 죽인  한을 풀어야 하겠소." 관우가  하북에 오면 장수로 쓰겠다는   
지난날의 말과는 달리 그 새 마음이 변한  원소였다. 유비는 관우가 이미 자기를 
기다리고 있어, 올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나 짐짓 놀라는 척하며 말했다.
  "명공께서 지난번 그를 쓰자고 하시어 제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오게 한 것
입니다. 그런데 이제  또 그를 죽이려 하시니 무슨  연유에서입니까?" 유비의 말
에 원소는 자신의 변심을 궁색하게 변명했다.
  "만약 그를 죽이지 않으면 수하 장수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이오. 혹시 현덕 공
이 없는 동안이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미리 말해 두는 바이오."
  "명공께서는 부디 현명히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안량, 문추가 사슴이라면  관운
장은 한 마리 호랑이입니다.  사슴 두 마리를 잃은 대신 호랑이  한 마리를 얻는
데 무슨 한 될 것이 있겠습니까?" 그 말에 원소는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방금 한 말은 내가 농으로 한번 해 본 소리요. 관운장 같은 맹장을 어찌 죽일
수가 있겠고 공은 다시 사람을 보내 그가 빨리 하북으로 오도록 권하시오." 유비
의 말에 또 마음이 변한 원소는 자기가 한 말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이렇게 덧
붙였다.
  "손건으로 하여금 관운장을 불러들이도록  하십시오." 뜻밖에 손건에게도 어렵
지 않게 원소를 떠나갈 수 있는 구실이 생기게 되어 유비는 내심 쾌재를 올리며 
말했다. 원소는 손건을 관우에게로 보내는 것을 즉석에서 허락했다. 유비가 원소 
앞을 물러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간옹이 원소 앞에 나아가 말했다.
  "현덕이 형주로 간다고는 하나 이번에 가면 돌아오지 않을지 모릅니다. 현덕은 
마음이 여리고  온화할 뿐입니다.  유경승을 설복시키기는커녕 유경승이  도리어 
현덕을 설복시킬지 모릅니다. 유경승은 원대한 야심을  품고 있는 자이므로 그가 
종친임을 내세워 현덕을  달래면 반드시 현덕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 것입니
다. 바라건대 저를 현덕과 함께 형주로 보내 주십시오. 저도 형주로 가서 현덕과 
함께 유경승을 달래는 한편 현덕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않도록 지키겠습니다." 간
옹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것 또한  옳은 말이었다. 유비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보낸 자신이  후회스러웠으나 간옹이 가면  근심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원소는 
간옹으로 하여금 유비를 뒤따르게 했다.
  "현덕이 떠난 지 오래지 않았으니 급히  그의 뒤를 쫓으라." 원소의 허락이 떨
어지기가 무섭게 간옹은  원소 앞을 급히 물러났다. 간옹이 말을  몰아 어디론가 
급히 떠났다는 사실을 원소의 모사 곽도가 안 것은 그날 저녁 무렵이었다. '큰일
났다!' 곽도는 황급히 기주성에 올라 원소에게 나아가 간했다.
  "현덕이 지난번 유벽을 설득시키기  위해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냥 왔
습니다. 이제 또 간옹과 함께 형주로 간다면  그는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
다."
  "너는 쓸데없는 의심을 하지 말라. 간옹까지  딸려서 보낸 터인데 어찌 돌아오
지 않는다고 하느냐?" 원소는 유비만 보냈다면 의심을 할 만도 했으나 간옹으로 
하여금 그를 감시하게  했으므로 마음을 놓고 있던 터였다. 원소가  곽도의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고  나무라기만 하니, 그는 입을  봉한 채 물러 나오고 말았다. 
한편 간옹은 원소 앞을 물러 나온 뒤 급히  말을 몰았다. 얼마 되지 않아 유비를 
만난 간옹은 함께 무사히 기주의 경계를 넘었다.  유비는 손건으로 하여 먼저 관
우에게 가서 이 사실을 이르도록 하였다. 이윽고  일행이 관우가 묵고 있는 관정
의 집에 이르자 관우는 이미 문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이 아우가 이제야 형님을 뵙습니다." 관우가 유비를 보자  덥석 땅에 엎
드려 절을 했다.
  "오오!" 유비는 말에서  뛰어내려 관우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  벅찬 감격에 눈
물만 흘릴 뿐 말을 잇지 못했다. 관우도 어느  새 눈가에 굵은 눈물 방울을 떨어
뜨리고 있었다. 유비도 관우도  한동안 할 말을 잊은 채 손을  마주 잡고 무언으
로 회포를 풀었다. 집 주인  관정은 그런 두 사람을 집 안으로 맞아들였다. 이미 
자리를 마련해 놓은 초당에 유비를 청해 앉게 한 관정은 두 아들을 거느리고 나
와 절을 했다. 유비는 관정에게 예를 표한 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용모의 두 아
들을 보며 이름을 물었다. 유비의 물음에 관우가 대신 대답했다.
  "이 노인장은 저와 같은 관씨 성을 가진 분인데 저 둘은 이분의 아드님입니다. 
큰아들 관녕은 글을 배웠고, 둘째아들 관평은 무예를 익혔다고 합니다." 그날 밤 
조촐하게 베푼 잔치 자리에서 술잔이 오간 뒤 집주인 관정이 정중히 청했다.
  "이 늙은이의 욕심입니다만, 관장군을 제 둘째아들이 모시고 다니도록 하고 싶
소만 이를 허락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유비가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올해 열여덟입니다." 유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어르신께 두터운 신세를 졌습니다. 내  아우는 아직 혈육이 없으니 둘째 
자제를 양자로 삼게 하고 싶은데 어르신네의 뜻은 어떠십니까?" 유비의 말에 관
정은 몹시 기뻐하며 관평을 불렀다.
  "관 장군님과 유 황숙께 절을 올리고 뵈어라. 앞으로 관 장군님을 아버지라 부
르고 유 황숙님을  큰아버지라 불러야 하느니라." 관평이  유비와 관우에게 절을 
올리자 관정은 이 뜻깊은 날을 기리기 위해  잔치를 열려고 했다. 그러나 유비는 
이를 만류했다.
  "어르신네의 뜻은 고마우나 원소가  언제 우리를 뒤쫓아올지 알 수 없는 일입
니다. 한시바삐 길을 재촉해야 하니 잔치는 뒷날로 미루어 두십시오." 유비의 말
에 관정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들 관평과 함께 길을 떠나는  그들 일행을 전
송할 뿐이었다. 유비 일행이 말을 달려가니 이윽고  저 멀리 구름 사이로 와우산
이 보였다. 관우가 하북으로 가면서 주창에게  와우산으로 마중 나오도록 일렀으
므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오래지 않아 저쪽에서 주창이 수십 기를  이끌고 말을 
달려오고 있었다. 주창이   가까이 다가오는데 그를 보니 온몸이  상처 투성이였
다. 관우가 유비에게 주창을  소개하자 주창은 예를 올렸다. 관우가 주창의 상처
를  보며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게 웬일인가? 어쩌다가  그토록 심한 상처를 입었는가?" 관우의 물음에  주
창이 씨근덕 거리며 대답했다.
  "장군의 명을 받고 와우산에  달려와 보니 한 장수가 나타나 산도둑 배원소에
게 싸움을 걸었습니다. 그 장수는 배원소를 한  창에 찔러 죽이고 부하를 굴복시
킨 뒤 산채를 차지해 버렸습니다. 제가 가서  그 부하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했으
나 그  장수를 두려워한 나머지 감히  나서지 못했습니다. 겨우 몇  명만 나에게 
오고 나머지는 그  장수의 눈치만을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따르는 몇 명과 함께 저는 그 장수에게 싸움을 걸었습니다. 그
러나 그 장수의 창 솜씨가 뛰어나 싸울 때마다 잇달아 지고 몸에 상처만 입었습
니다. 그래서 이 일을  알리러 장군께 달려오는 길입니다." 주창의 말을 듣고 있
던 유비가 물었다.
  "그 장수의 생김새는 어떠하며 이름은 무어라고 하던가?"
  "이름은 알지 못했습니다만 몸집이 크고 늠름했습니다."
  "형님, 그 자가 누구인지  이 아우가 한 번 가 보고 오겠습니다." 관우가  청룡
도를 움켜지고 말에 올랐다. 관우가 말을 달려가자 유비도 급히 말을 몰았다. 뜻
하지 않는 적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관우가 주창과 함께 와우산 기
슭에 이르자 주창이  그 장수에게 마구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때쯤  유비도 말을 
달려 산기슭에 이르렀다. 이윽고 한 장수가 뒤에  수백 명의 졸개를 거느리고 갑
옷을 입은 채 나타났다.  그 장수는 관우 일행을 보더니 쏜살같이  말을 달려 산
기슭으로 내려왔다. 그 장수를 유심히 지켜 보던  유비가 문득 말 궁둥이를 차며 
앞으로 나서더니 소리쳤다.
  "거기 오는 것은 혹시 자룡(조운의 자)이 아닌가?" 유비의 외침에 달려오던 장
수는 흠칫 놀라 말을 세웠고, 유심히 유비를 지켜 보았다. 이어 그 장수는 말 위
에서 몸을 날려 길가에  뛰어 내리더니 엎드려 절을 했다. 과연  그 장수는 조자
룡이었다. 유비와 관우도 말에서 내여 조자룡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자룡을 여기서 만나다니 실로 꿈만 같구나. 공손찬 형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자네의 소식을 알 수 없어  걱정했었다네." 유비가 이렇게 말하자 조자룡의 
눈에서는 어느 새 눈물이 흘러내렸고, 유비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으며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유비가 조자룡
에게 묻자 지난날을 이야기했다.
  "지난날 서주에서 주공과 헤어지기 싫었으나 주공의 명을 거역 할 수 없어 공
손찬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공손찬은 점점 교만해져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
지 않더니 끝내는 싸움에 져 스스로 불을  질러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른 곳을 지키고  있던 제가 급히 달려가 보았습니다만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그 뒤  하북의 원소에게서 수차례  자기에게 오라는 권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믿을 만한 사람이 못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 부름을 사양했습니다. 저는 
오직 서주에 계신  주공만을 생각하고 이 몸을  의지하기 위해 서주로 향했습니
다. 그런데 서주에  이르기도 전에 이미 서주가 조조에게 넘어갔다는  놀라운 소
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주공께서는 원소에게 가  계시고 운장께서는 조조에게 항
복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공을 찾아뵈려 원소에게 갈까  하고 생각하였으
나 지난번 그가 부를  때 거절한 터라 결국 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되
고 보니 저는 의지할 데 없이 여기저기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구름처
럼 정처없이  떠돌던 중에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배원소란 산도둑이 산에서  내려와 나의 말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그를  죽인 후 
그 부하들을 거두고 몸도 의지할  수 있는 산채가 생겼는지라 잠시 이곳에 머무
르고 있는 중입니다.  소문을 들으니 익덕이 고성에 와 있다기에  그곳으로 찾아
갈까 했으나 아직 그 진위를 몰라 망설이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뜻밖에 주공을 
뵙게 되니 실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자룡이  끝내 자기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말을 듣자 유비는 감격했다.  유비도 감회어린 목소리로 지난날의 
일을 조자룡에게 들려 주었다. 관우 역시 지난  일을 말하고 헤어진 사람들을 한
꺼번에 만나게 되었음을 기뻐했다.
  "자룡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곁에 두고 싶었으나 공손찬 형의 사람이라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네. 이제 다행히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내 마음은 든든하기 
이를 데 없네." 유비가 조자룡의 붙든 손을 움켜잡으며 말하자 조자룡 또한 감격
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사방을 떠돌며 섬길 만한 주인을 찾았으나 아직 주공과 같은 분을 만나
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렇게 만나 따르게  되었으니 이 몸 하나  진토가 되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조자룡은 그날로 산채를 불태운  후 산적 떼들을 이끌어 유
비의 뒤를 따랐다. 관우를 만났고, 또 뜻밖에 조자룡을 만나니 병마의 수는 적었
으나 유비의 좌우에는 천하의 맹장이 호위하는  위풍당당한 행렬이 되었다. 고성
에 이르기 전에 미리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리게 했다. 장비, 미축, 미방이 나는 
듯이 달려나와 유비의 말 앞에 엎드렸다. 장비는  유비를 보자 그만 격정을 누르
지 못하여 엉엉 소리내어  울었고, 미축 형제도 눈물을 흘리며 재회를 기뻐했다. 
관우가 그들을 달래며  성 안으로 들기를 재촉했다. 일행이 성  안으로 들어서자 
낭랑한 주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쪽 각에서는  두 부인이 사뿐사뿐 가벼운 걸
음걸이로 마중을 나왔다.  성 안의 군사들은 두 줄로 도열하여  일행을 맞아들였
다. 군사들이 갖가지  색깔의 기치를 들고 늘어서니 마치 수많은  가지에 일시에 
꽃이 핀 듯 오색찬란했다. 유비를 비롯한 일행은  군사들이 열을 지은 사이를 조
용히 지나 성 안으로 들었다. 유비가 부인들을  맞으니 두 부인은 말없이 흐느껴 
울 뿐이었다.
  "그간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소."  유비는 눈물로 복받치는 감회를 억누르며 
부인을 위로했다. 두  부인은 그제야 아예 눈물을 거두고 지난날  관우가 겪었던 
고초들을 이야기했다. 특히  관우가 5관을 돌파할 때의 위급한  대목에 이르러서
는 유비도 눈물을 흘렸다. 듣고 있던 모든  사람들도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
다. 이어 삼 형제는 새롭게 만난 것을 기리며  소와 말을 잡고 제단을 만들어 하
늘에 감사를 드리고 큰 잔치를 벌였다. 또한  모든 군사들에게 술과 음식을 내려 
위로했다. 유비는  형제가 다시 모인데다가 조자룡을  얻었고, 또 관우가 주창과   
아들 관평을  얻었는지라 기쁨이 더욱  컸다. 그리하여 잔치는  며칠로 이어지니 
호탕한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뒷날 사람들을 이때의 광경을 시로  지어 그 
감회를 노래했다.
  지난날, 손과 발이 오이처럼 서로 잘리고
  소식 전할 말과 글도 끊겨 그립기만 하더라.
  이제 임금과 신하가 다시 의로 모이니
  용과 호랑이가 서로 만나 풍운이 이는 듯하도다.
  이제 유비는 두 아우 외에도 조자룡, 손건, 간옹, 미축, 미방, 주창과 같은 장수
에다 군사도 4, 5천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런데 삼 형제의 재회를 축하하는 잔치
에 여남의 유벽과  공도도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잔치 자리에서  유벽이 유비에
게 말했다.
  "이렇게 협소한 땅에서는 더 큰 세력을 도모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가 여남 땅
을 바치겠으니 여남을 근거지로 삼아 뒷일을 도모하십시오." 유벽이 그같이 말하
니 유비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공들의 큰 은혜는 눈을 감기 전에는  잊혀지지 않으리다." 다음 날 유비는 유
벽의 제의를 받아들여  고성에는 적은 군사만 남겨  두고 즉시 여남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렇게 군신이  같은 성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은 서주 몰락  이후 실로 
몇 년 만인가?   돌이켜보면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유비를 중심으로 한 신의가 
있었기에 다시 결속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었다. 유비는 여남에 이르자 유벽, 공
도와 함께 힘을 모아 말을 사들이고 군사를 모아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강동의 손책 땅에 떨어지다.
  원소는 강동의 손책과 동맹을 맺어 조조를 치고자  한다. 한편 날로 세력을 확
대시켜 나가던 손책은  어느 날, 모든 백성들이 추앙하던 우길  선인을 처형하고 
그 일로 병이  악화된다. 결국 그는 손권과  주유, 장소 등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눈을 감는다.
  유비가 여남에서 자리를 잡고 군세를  키워 가고 있는 동안 초조와 불안에 휩
싸인 것은 원소였다.
  "형주에서 소식이 올 리 없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유비는 그의 두 아우와 
조운 등을 규합하여 여남을 근거지로 삼았다 하옵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원소
는 불같이 노하여 소리쳤다.
  "즉시 군사를 일으킬 채비를 하라. 내가 몸소  나아가 이 귀 큰 도적놈부터 없
애리라!" 원소가 길길이 날뛰고 있는데 곽도가 나서서 만류했다.
  "유비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는 몸에 생긴 옴과 같이 피부병에 지나지 않
습니다. 그냥 두어도 목숨을 위협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뱃속의 큰 
우환거리는 조조의  위세입니다. 그를 그대로  두면 언젠가는 우리에게  큰 화가 
미칠 것입니다."
  "조조가 우환거리임은 나도 이미 아는 바다.  그래서 유비를 유표에게 보낸 것
이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틀어졌으니 내가 유비부터 치겠다는  것 아니냐?" 원
소는 유비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울컥 화가 치밀어올랐다.
  "형주의 유표를 이편으로 끌어들인다 해도 천하의 형세는 영향을 미치지  못합
니다. 유표는 적지 않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다  하나 천하에 대한 야망이 없습니
다. 그저 자기 영토만을 지키며 이에 만족해할 뿐인 자입니다. 그보다 세력도 크
고 힘을 합하면 능히 조조도 물리칠 수 있는 자를 끌어들어야 합니다."
  "그 자가 누구인가?"
  "강동의 손책입니다. 그는 장강의 자연적인 요새의 이점을 안고 땅은 여섯 군, 
그 위세는 3강에 떨쳐 있습니다. 그 아래  용맹스런 장수와 지모 있는 모사가 많
으며, 물자도 풍부합니다.  정병 수십만은 언제라도 동원할 수  있는 처지입니다. 
지금 동맹을 맺어야 할 곳은 신흥국인  손책의 오나라 뿐입니다." 곽도가 간곡히 
간하자 원소의 마음이  동했다. 이에 글월을 써서 진진으로 하여금  강동의 손책
에게 다녀오도록 했다.  유비가 하북을 떠나자 이제 강동에서 손책이  나타난 셈
이었다. 혜성과 같이 등장한 풍운아, 강동의 소패왕 손책은 그때 스물이 갓 넘은 
나이였다. 오나라는 지난 수년  동안에 실로 눈부신 약진을 이루어 가고 있었다. 
절강 일대의 연안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양자강 유역과 하구를  장악했다. 기온
이 온화하여 천연의  물산도 풍부했다. 이른바 남방계 문화와 북방계  문화가 융
화를 이루어 오나라 특유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백성들의 기풍은 사리에 밝으며 
또 진취적이었다. 손책은 건안  4년 겨울, 여강을 공략하여 태수 유훈을 몰아 내
었다. 또 예장 태수  화흠 또한 그의 서릿발 같은 공격에  항복을 선언하니 그의 
세력은 날로 융성해졌다. 그의  신하 장굉은 몇 번인가 허도를 오르내렸다. 손책
이 황제께 승전을 알리는 표문을 전하러 가거나 아니면 공물을 바치기 위함이었
다. 손책의 눈에는 한의 조정은 있으나 조문에 있는 조조는 안중에도 없었다. 손
책은 은근히 대사마(참모총장)의 관작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조정이  아니라 조조였다. 조조는 조정에 올라온 표문과  소문에 의해 
손책의 세력이 날로 강성해 짐을 알고 이를 걱정했다.
  "사자새끼와 같구나.  그와는 다툼을  피해야겠다." 조조는 그런  사자새끼에게 
젖을 주고 관직을 높여 주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손책이 자기의 세력을 
믿고 어린 나이에 높은 벼슬을 구하는 것도  불쾌한 일이었다. 손책은 조조의 속
셈을 알고 이를 갈았다.
  "내 손으로 조조를 치리라!" 조조는 우선  그를 자신의 울타리 안에 묶어 두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다. 그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적은 역시 원소였다. 그리하여 
일족 조인의 딸을 손책의 동생 손광에게 출가시키는  인척 정책을 써 보았다. 그
러나 이런 정도로  손책이 조조에게 넘어갈 리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조와 
손책 사이는 험악한 기류로 꽉 차게 되었다.  손책은 허도를 공격할 기회만을 노
리게 되었다. 이때 오군의  태수에 허공이라는 자가 있었다. 허공이 은밀히 조조
에게 밀서를 보냈다. 그러나 사자가 허도로 가던  중 장강을 건너다 손책의 감시
대에 걸려 오의 본성으로 압송되었다. 허공의 사자를  취조하던 중 그가 지닌 밀
서를 발견했다. 밀서에는  놀랍게도 손책이 허도를 치려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
었다.
  오의 손책은 누차 주상문을  올려 대사마의 관작을 원했으나 허락되지 않음에 
반감을 품고 있습니다.  이에 병선을 만들고 군사를 조련하여 불원간  허도로 쳐
들어갈 듯하오니 이에 대비하기 바랍니다.
  밀서를 읽고 난 손책은 불같이 노했다. 즉각  허공에게 의논할 일이 있다고 불
러들여 목을 베었다.  그리고 허공의 처자 권속들까지 모조리 주살해  버리고 말
았다. 그런데 이런 아비규환  속에 가까스로 몸을 빼 나온 3인의 가객이 있었다. 
당시에는 무사나  선비가 필요하다면 저택  안에 기거하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가객 세 사람은 평소 허공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고 있는 터였다.
  "어떻게 하든 은인의 원수를 갚아 줘야  하겠다." 세 사람은 이렇게 뜻을 모으
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손책을  암살할 기회는 쉽게 오지 않
았다. 손책이 항상 군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어 섣불리 대들 수도 없었다. 손책은 
곧잘 사냥을 즐겼다. 지난날 회남의 원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소년시절부터 
즐겨해 왔던 것이 사냥이었다.  그가 며칠 후 사냥을 간다는 것이  이들 세 사람
의 귀에 들려 왔다. 그날도 손책은 많은  신하를 이끌고 단도라는 부락의 서쪽에 
있는 깊은 산으로 사냥을  갔다. 손책의 부하들이 사슴, 멧돼지 몰이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허공의 가객 셋은 화살촉에 독을  바르고 창날을 돌로 갈아 손책이 
지나갈 만한  숲 속에 숨어들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손책의 말은  보기 드문  
명마로, '오화마'라고 하였다. 손책이 말을 타고 산 속을 평지 달리듯이 종횡무진
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가  산 속을 누비고 다니던 중 한  마리의 사슴을 발견하
고 화살을 날렸다.
  "맞았다. 누구든지 사슴을 찾아오라." 그가 좌우를 살피며 명했다. 그러나 혼자
서 여기저기  말을 달려왔으므로 수하가  뒤따르지 못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였다. 숲 속에서 세 사람의 낯선 괴한이 창과 활을 가지고 나타났다.
  "너희들은 누구인가?"
  "저희들은 부장 한당의  수하들입니다. 이곳에서 사냥을 하던 중  이었습니다." 
손책이 그 말을 듣고 마음을  놓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번개 같이 달려와 손책의 
왼쪽 넓적다리를 창으로 찔렀다.
  "앗!" 손책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아픔도  참은 채 칼을 빼들고  그 괴한을 
후리치려 했다. 그러나 급하다 보니 칼이 칼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틈을 놓치
지 않고 다른 괴한이 활을  당겨 쏘았다. 화살은 손책의 볼에 꽂혔다. 손책은 급
히 볼의 화살을 뽑고 활에 실을 메겨 재빨리  시위를 당겼다. 그 중 한 사나이가 
거꾸러졌다. 그러는 동안 두 사나이가 달려들어 창으로 손책을 찔렀다.
  "은인 허공의 원수, 내  창을 받아라!" 손책은 오화마의 등에서 굴러 떨어지면
서도 상대의 창을 빼앗아 그의 창으로 자신을 찌른 상대를 찔렀다.
  "으음... 으으음." 이미 여러 군데를 창으로 찔리고 얼굴에  화살까지 맞은 손책
은 커다란 신음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때  정보가 부하를 몇을 거느리고 달려
왔다.
  "어서 이놈을 죽여라!" 손책이  사력을 다해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분노한 정
보와 부하들의 창가 칼에 그 가객의 몸은  갈기갈기 찢기고 말았다. 순식간에 엄
청난 양의 피가 발디딜 틈도 없이 낭자해졌다.  손책의 얼굴을 피로 물들었고 몸
에도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정보는 옷자락을 찢어 상처를 싸맨  뒤 급히 오
회의 본성으로 손책을  옮겼다. 손책이 뜻밖에 이런 일을 당하니  어떻든 나라의 
큰 변괴가 아닐 수 없었다.
  "화타를 불러라! 화타를 부르면 이런 상처쯤 금방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손
책은 헛소리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성 밖으로는 손책의 일을 극비에 붙였다. 그
런 가운데 명의 화타에게  급사가 달려갔다. 손책은 역시 강골의 사나이였다. 웬
만한 사람이면 이미  목숨을 잃었을 중한 상처였으나 그는 견디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무예를 익힌 몸이 아니고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래지 않아 
화타에게 보낸 급사가 돌아왔다. 그러나 화타는 출장을  가고 없는 터라 마침 남
아 있던 그의 제자를 데리고 왔다. 화타의  제자는 손책의 상처를 이리저리 둘러
보더니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이거 큰일이군. 화살촉에도 창에도 독을 바른 것 같습니다. 독이 골수까지 스
며들었으므로 앞으로 1백여 일은 지나야 안심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크게 
노기를 부리시면  상처가 덧나니 조심하십시오."  역시 명의 화타의 제자다웠다. 
손책의 상처를 보고 즉시 이렇게 주의를 준  후 그날부터 치료에 전념했다. 손책
은 사흘 동안을 혼수상태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성미가 급하고 열정적인 손책이
었으나 목숨이 달린 일이라  의원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20여 일이 지
나자 정성스런 의술의 효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손책은 이따금 머리맡에 앉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  허도에 가 있는  장평으로부터 사자가 
왔다. 손책의 몸도 웬만큼 회복된 터라 시신이 이일을 알렸다.
  "허도에서 보낸 장림이 왔습니다. 만나 보시겠습니까?" 손책은 그 동안 외부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하고 있었다.  손책은 궁금해하던 허도로부터  온 사자라는 
말에 그를 급히 불러 오도록 했다. 장림은 병상  밑에 꿇어 엎드려 묻는 말에 아
는 대로 자세히 허도의 소식을 전했다. 손책이 장림에게 물었다.
  "조조는 최근 나에 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장림은 주저하지 않고  대
답했다.
  "사자새끼하고는 싸우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 앗하하하......"  손책이 근래 들어 보기  드물게 큰 소리로 웃었다.  그의 
기분이 대단히 좋은  모양이라고 여긴 장림은 물어  보지도 않은 말을 지껄이고 
말았다.
  "그러나 모사인 곽가 만은 조조의 그 말에 반대하고 있는 듯싶사옵니다."
  "그래? 곽가가 뭐라고 하더냐?" 삽시간에  손색은 안색이 달라졌다. 장림을 노
려보며 대답을 재촉했다.  장림은 그제야 입을 연 걸 후회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손책이 그 대답을 듣지 않고 물러설 리가 없었다. 손책의 엄한 재촉에 
장림은 들은 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곽가가 조조에게 말했습니다. 손책이 제 아무리  백만의 강병이 있다 하나 그
는 아직 젊다  하였습니다. 젊어서 성공한 터라 우뚤대다 실수하기  쉬우며 성품
이 급하고 지모가  모자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용맹이 있다 하나  그 용기에는 
지혜가 없어 필시  필부의 손에 비운의 종말을 맞게 될  거라 하였습니다." 듣고 
있던 손책이 크게 노해 소리쳤다.
  "곽가 따위가 어찌 감히  나에게 그런 소릴 하느냐? 상처가 낫기를 기다릴 수 
없다. 내가 허창을 취해 이놈을 엄살하고 말리라." 손책은 몸을 일으키더니 병상
에서 내려오려 했다. 그러자 장소가 급히 달려나와 손책을 힐책하며 달랬다.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그만한 일을 가지고 격분하십니까? 의원이 그토록 중히 
당부한 말을 잊으셨습니까? 주공께서는 만금 같으신 몸을 가벼이 여기시지 않도
록 하십시오." 장소가 손책을 달래고 있는데  멀리 하북에서 사자가 왔음을 알렸
다. 원소의  친서를 가지고 진진이 당도한  것이었다. 다름아닌 원소의 사자라는 
말을 듣고 손책은 병중의 몸이었으나 그를 맞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무슨 일로 왔는가?" 손책은 곽가의 일로 화가 아직 풀리지 않았는지  언
성을 높여 물었다. 진진은 원소의 친서를 손책에게 바친 후 말했다.
  "지금 조조와 맞설 수 있는 곳은 우리 하북과 귀국 오나라밖에 없습니다. 양국
이 동맹을 맺어 남과 북에서 호응한다면 중원의 패자로 자처하는 조조를 무너뜨
리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주공께서 특별히 저를  보내시어 장군과 
더불어 힘을 합쳐 역적 조조를 도모하고자  하는 뜻을 전하게 하시었습니다." 이
어 진진은 군사동맹의 긴요함을 역설하고 조조를 쳐없앤 뒤 천하를 양분하여 오
래도록 양가의 번영을 구가할 기회라고 말했다. 진진의  말을 들을 손책은 뛸 듯
이 기뻐했다. 그로서는 타도  조조의 생각으로 밤낮을 지새고 있는 때가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기회라 여긴  손책이었다. 성루에 크게  잔치를 벌여 
진진을 상좌로  영접하고 장수들을 불러  함께 술잔을 나누었다.  그런데 연회가 
한창일 때의  일이었다. 몇 순배의 술잔이  오고간 뒤 문득 여러  장수들이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우르르 누대를 내려갔다.  손책은 괴이하
게 여기는 한편 언뜻 불쾌감이 일어 물었다.
  "무슨 일인가?" 근신 하나가 손책의 물음에 대답했다.
  "우길 선인이란 신선이 오셨기 때문인 줄 압니다. 그 모습을 뵈려고 모두 다투
어 나가는 모양입니다." 손책은 눈썹을 꿈틀하고 떨었다. 걸음을 옮겨 누대 난간
에 기대 성내를 굽어보았다.  거리는 사람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가만히 보니  
저쪽 모퉁이를 돌아 똑바로 걸어오고 있는 한  도인이 있었다. 머리도 수염도 새
하얀데 얼굴을 복숭아꽃처럼 붉었고 학의 깃털로 짠 옷을 입었으며 손에는 명아
주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소리 없이  조용히 걷고 있었으나 그의 주위에는 
저절로 미풍이 일었다. 사람들은 그가 가는 앞길을 열며 엎드려 절을 올렸다. 향
까지 피우고 길에 꿇어앉은 군중 속에는 농부와 장사치들 뿐만 아니라 연회석상
에서 황급히 몰려나간 장수까지 보였다.
  "웬 요사스런 자냐? 그를 잡아들여라!" 손책은  치솟은 노기를 달래지 못한 채  
소리쳤다. 백성들을 미혹케  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특히 격분한 것은  자기 아닌 
다른 자가 강동의 백성들에게 추앙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손책은 좌우의 무사
들에게 명했으나  그 무사들이 손책의  심중을 알리 없었다.  손책에게 한결같이 
입을 모아 간했다.
  "저분은 동국에서 사는 성이 우씨요 이름은 길이라는 분으로서 동방에  머무르
시며 오회 땅을  왕래하십니다. 밤에는 새벽이 될 때까지 정좌하여  움직이지 않
으며 낮에는  향을 피우고 도를  설파하십니다. 그때마다 부적과  정화수를 주어 
뭇사람의 만병을 고치는데  그 영험으로 낫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백
성들은 그를 살아 있는 신선으로 숭앙하고  있습니다. 함부로 그들 잡아들인다거
나 하면 백성들은 통곡해 마지않을 적이며  필시 주공을 원망할 것입니다." 무사
들이 손책의 비위를 더 한층 건드리니 손책은 악을 썼다.
  "어리석은 놈! 너희들까지  저런 비렁뱅이 늙은이에게 현혹되는가?  명을 거역
하면 너희들부터 하옥하겠다." 손책의 일갈에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도사를 묶지
도 않은 채 누대로 이끌고 왔다.
  "이 미치광이 늙은이, 어찌하여 나의 양민을 어지럽히고 있는가?" 손책이 우길
을 큰 소리로 꾸짖었다. 그러나 우길은 조금도 동요도 없이 냉랭하게 대꾸했다.
  "빈도는 낭야궁의 도사로 순제  때부터 산 속에 들어가 약초를 캐고 있었습니
다. 그러던 어느 날 곡양의 샘물 근처에서 신서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책은 [태
평청령도]라는 책인데 무려 1백여  권이나 되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사람의 
병을 고치는 방술이었습니다.  빈도는 그 책을 얻은 후 지금까지  하늘을 대신하
여 덕을 베풀어 널리 만민을 구할  뿐이었습니다. 백성들에게서 눈꼽만한 재물도 
취한 적이 없는데 어찌 민심을 어지럽힌다 하십니까?"
  "닥쳐라. 감히 이  손책을 능멸하려 하느냐? 네가 백성들에게  받은 것이 없다 
하였는데 그렇다면 그 옷과  음식은 어디서 얻어 오늘날까지 목숨을 부지했다는 
말인가? 네놈을  보니 하는 짓거리가 지난날  황건적의 괴수 장각처럼 요사하고 
간교하다. 지금 너를 죽이지  않으면 뒷날  큰 우환거리를 남기는  격이 될 것이
다." 손책이 좌우에 명해 그의  목을 베게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그의 목
에 칼을 대려고 나서는 자가 없었다. 장소도 손책을 말렸다.
  "그는 십년 동안 강동에 있었습니다만 아직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습니
다. 또한 앞으로도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장소는 손책에게 그
를 죽이면 반드시 민심을 잃을 것이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무슨 소리. 이런 늙은이 하나, 개  죽이기보다 쉬울 뿐이오. 그가 요망한 짓을 
일삼으니 개나 돼지와 다를 것이 무엇이오?" 손책의 노여움은 조금도 풀리지 않
았다. 여러  장수들과 모사, 관원들이 그의  명을 거역하면서까지 우길의 처벌을 
만류하자 손책의 노기는  더해 갈 뿐이었다. 그러나 사자로 온  진진도 손책에게 
애원하자 손책도 우길을 죽이는 일만은 뒤로 미루었다.
  "우선 저 늙은이에게 큰칼을 씌워 옥에 가두어라. 내가 직접 문초하여 그의 죄
상을 밝히겠다." 손책은  용서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우길을  옥에 가두에 했
다. 우길의 일로 해서  잔치는 도중에서 파하고 진진도 역관으로 돌아갔다. 한편 
손책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손책의 근신 하나가 그의 어머니 오 태부
인에게 이  일을 알렸다. 오 태부인은  크게 놀라며 근심스런 낯으로  며느리 교 
부인을 찾았다.
  "너도 들었겠지? 책이 우도사를 붙잡아다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는구나."
  "예. 그러하옵니다."
  "남편에게 잘못이 있으면 충고하는 것이 아내의 소임이니라. 이 어미도 말하겠
지만 너도 곁에서 거들어  다오. 그를 만류해야 하느니라." 교 부인도 슬픔에 잠
긴 터였다. 자당을 비롯하여 부인을 모시는 나인들, 시녀들 모두가 다 우길 선인
을 추앙하고 있었다. 교 부인은 즉시 남편 손책을 부르러 갔다. 손책이 후당으로 
들어와 보니 어머니  오 태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책은 어머니의  얼굴을 보
자 바로  어머니의 용건을 알아챘다. 손책은  오 태부인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것은 자기 생각이 단호함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어머님께서도 그 우길이란 자 때문에 저를 부르신 것입니까? 그 자는 요사스
런 늙은이로 백성들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설마  어머님마저 그 요사스런 도사
에게 미혹되신 건 아니겠지요?"
  "우길 선인은 일찍이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쳤으며 사람들의 화를 예언하되 어
긋난 적이 없다. 모든 백성들이 그를 우러르며  따르고 있는데 그를 옥에 거두고 
죽이려 한다면 이는 잘못된 일이다. 결코 해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 자는 요술로써 사람을 현혹하니 그를  처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님
께서는 바깥 사람들의 말에 마음쓰지 마시고 이 일을 제게 맡겨 두십시오." 손책
의 아내도 오 태부인의 말을 거들었다. 그러나  손책은 아내가 붙드는 소매를 뿌
리치며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다.
  "이 일은 아녀자들이  나설 일이 아니오!" 손책의 우길에  대한 증오는 집요했
다. 어머니 오 태부인의 말도 아내의 간언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자 
손책은 옥리를 불러 우길을 문초하겠다며 대령시키도록 했다.
  "우길을 빨리 끌어 내도록  하라!" 주군의 명에 옥리는 사색이 되었다. 이윽고 
옥중에서 우길을 끌어내왔는데 그의 목에 큰칼이 없었다.
  "누가 큰칼을 벗겼는가?" 손책이  일갈하며 옥리를 힐문했다. 포도대장을 비롯
한 옥리들은 모두 몸을 떨었다. 아니 대장뿐  아니라 옥지기 태반이 사실은 우길
을 경모하고 있었으므로 옥에 가둘 때 칼과 족쇄를 벗겨 주었던 것이었다.
  "나라의 형벌을 집행하는  관리가 사교를 신봉하고 임무를 게을리하다니 이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마땅히 그 죄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손책은 포도대장
의 목을 베고 말았다.  또 우길 선인을 받드는 수십 명의  형리를 무사에게 명하
여 모조리  참형에 처했다. 그때 장소  이하 수십 명의 중신과  장수들이 연서한 
탄원서를 가지고  우길 선인의 구명을  위해 달려왔다. 손책은  포도대장의 목을 
친 칼을 든 채로 그들에게 조소를 날리며 말했다.
  "그대들은 사서를 읽고도 어찌 사를 모르느냐? 옛날 남양의 장진은 교주의 태
수로 있으면서 한 나라의 조정의 법도를 위하지  않고 모두 물리쳤다. 그리고 항
상 붉은  두건을 쓰고 거문고를 타며  향을 피우고 사도(부정하고  요사스러움을 
가리킴)의 책을 읽었다. 전쟁에 나가면  이상한 요술을 보이며 술수를 써서 신의  
힘으로 적을 무찌른다 하여  한때는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린 도사라고 일렀으나 
하루 아침에 남방 오랑케에게  패하여 죽지 않았는가. 우길도 그와 다름 아니다. 
그 해독이 더 널리 퍼지기 전에 그를  없애 사교를 엄히 다스리려는 것이다." 손
책의 마음이 움직일 수 없는 완강함을 보이자 여범이 한 가지 의견을 내었다.
  "이렇게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우길이  기도만 하면 능히 비와 바람을 부른다
고 하니 그가  진정한 신선인지 요사스런 도인인지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마침 
농부들이 오랜 가뭄으로 애를 태우고 논밭도  갈라지고 있습니다. 우길에게 비가 
오도록, 빌게 하여 만약  비를 오게 하면 살리고 그렇지 않으면  군중 앞에서 목
을 쳐  본보기로 삼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시면 만민도 납득할 것입니
다." 손책도 그 말을 듣고 보니 묘안이 아닐 수 없었다. 우길을 떠돌이 점쟁이쯤
으로 생각하고 있는 손책으로는 그를  죽일 수 있는 안성맞춤의 구실을 얻게 되
는 셈이었다.  여범으로서도 손책이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사 민심을  잃는 일을 
막을 수 있는 꾀를 낸 것이었다. 손책은 쾌히 승낙하며 즉시 명을 내렸다.
  "실로 묘안이다. 즉시 기우제 제단을 만들라. 내가 그놈의 요괴 탈을 벗기고야 
말겠다." 그리하여 거리의  광장에 제단이 만들어졌다. 사방에 기둥이 세우고  비
단을 둘렀으며 소와 말을 잡아 비를 내리는  용과 천신을 모셨다. 우길은 목욕을 
한 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제단 위에 앉았다.
  "네가 정말 신통력이  있는 도사라면 오늘 그 힘을 보여라.  너는 하늘에 빌어 
비를 오게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사교를 펴 백성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한 죄를 물을 것이다."  손책이 엄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를 따르는 관리에게 속
삭였다.
  "내 천명도 이제는 다한 것 같구나. 이번에는 나도 어쩔 수 없다."
  "평지에 석 자의 물을 불러  백성을 구할 수는 있어도 이미 내 운수가 다했으
니 어쩔 수 없다." 우길은 새끼줄을 찾아 스스로 결박을 지었다. 백발 위로는 햇
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거리에는 이를  지켜보기 위한 백성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단 밑으로 손책의 시신이 와서 소리 높이 외쳤다
  "만일 오시까지 비를 내리지 못할  때는 이 제단과 함께 산 채로 불태워 죽이
라는 엄명이십니다. 명심하십시오." 우길은 벌써 눈을 감고 있었다. 제단의 큰 항
로에는 향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제단의 주위에는 마른섶이며 장작을  쌓아 두
었다. 만약 비를 내리지 않으면 우길을 태워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윽고 오시
가 되었다. 홀연  회오리 바람이 일며 사방에서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모여들기 
시작했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수만을 헤아리는 백성들은 비가 오지  않자 소리 
높여 울음을 터뜨렸다. 백성들의 울음소리에 손책의 눈썹이 곤두서는 듯했다.
  "보아라! 무릇 도사니 신선이니 하는 자들이란 다 저런 것이다. 오시가 되었는
데도 검은 구름만 보이고 비는 오지 않으니 저놈이야말로 간교한 거짓으로 사람
들을 현혹시켰지 않았느냐. 불을 질러라."  손책이 소리쳐 명했다. 형리가 주저하
고 있자 손책은 일갈하여 그들을 재촉했다. 형리는  하는 수 없이 장작더미와 섶
에 불을 놓았다.  갑자기 열풍이 일며 우길의  모습은 화염 속에 덮이고 말았다. 
그러자 화염 속에서 문득 한줄기  짙은 먹물 같은 검은 연기가 공중으로 치솟았
다. 그  연기가 하늘 한 곳에  이르자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우뢰소리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비는 억수같이 퍼붓는 장대비가 되었다. 거리
는 냇물이 되었고 성은 온통 물바다를 이루었다.  냇가와 계곡이 물로 가득 차니 
그 비는 족히  석자에 이르는 단비가 되었다. 장작더미를 거세게  타오르던 불길
도 비로 인해 순식간에 꺼져 버렸다. 이때 제단  위의 우길이 한 번 크게 외치자 
비는 뚝 그치고 다시 햇살이 따갑게 비치었다. 형리가  놀라  반쯤 불에 탄 제단 
위를 보니 우길이 반듯이 누워 있었다.
  "아아, 진정 신선이로다." 장수들이  달려가 그를 안아 내리고 서로 다투어  그
에게 엎드려 절하며 찬탄해  마지않았다. 손책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길에 대한 놀라움과  감탄으로 한동안은 할 말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무장도 
관리도 백성들도 모두 의복이 젖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길 주위에 꿇어 엎
드린 꼴을 보자 손책의 안색이 다시 험악해졌다.
  "비를 내리는 것도 가뭄이 계속되는 것도 모두 하늘이 정한 바이며 사람의 힘
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대들은 백성들 위에  선 무장이요, 관리들인 터에 이 
무슨 추태인가 요사스런  저 늙은이의 편에 서서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이나, 모
반하여 내게 화살을 겨누는 것이나  다 같은 죄다. 속히 우길을 참하라!" 그러나 
손책의 노한  목소리를 듣고도 신하들은  묵묵히 머리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누구 하나 우길을 두려워하여 나서지 못했다.
  "무얼 망설이느냐? 오냐, 그리하면 내가 목을 베겠다."
  "고정하십시오. 도인이 비를 오게 했거늘 어찌 죽이려 하십니까?" 모든 관리들
이 입을 모아 그를 말렸으나 그럴수록 손책은 더욱 불 같은 화를 낼 뿐이었다.
  "어서 저 요망한 것을 참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도 모두 우길을 좇아 내게 
역모를 꾸민 자로  여기겠다." 손책은 신하들이 머뭇거릴수록  더욱더 안달이 나  
꾸짖었다. 손책의  열화 같은 성화에 쫓기다  못한 한 무사가 얼결에  칼을 번쩍 
들어 내리쳤다. 우길의 목이  그 한칼에 떨어지며 땅바닥에 뒹굴었다. 그러자 한 
가닥의 푸른  기운이 일더니 천천히 동북  쪽으로 멀어져 갔다. 모두  얼이 빠진 
듯 서 있는 신하들을 보고 손책은 이제야 말로 제 정신을 들게 해야겠다고 여겼
다. 언성을 높여 엄한 영을 내렸다
  "요망한 사교로 나라를 어지럽힌 우길의 목을 거리에 효수하여 본보기로  삼게 
하라!" 손책이  그렇게 외치니 악귀에게라도 홀린  듯 그 일그러진  얼굴이 마치 
딴 사람처럼 보였다. 그날 밤이 되었다. 갑자기 검은 구름이 일더니 세찬 비바람
이 몰아쳤다. 새벽녘이 되자 우길의 시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지키던 
군사가 놀라 이 사실을 손책에게 알렸다. 그  동안 우길로 인해 신경을 곤두세웠
던 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안심하고 있던 손책이었다. 눈도 뜨기  전에 우
길의 일로 허둥지둥 군사가 달려오자 먼저 화부터  났다. 손책은 칼을 빼들고 그 
군사를 베려 했다. 문득 저쪽에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
다. 가까이 다가오는데 보니 그는 바로 우길이었다.
  "이 요망한 것. 어찌 네놈이 또  나타났느냐!" 손책이 우길에게 칼을 겨누었다. 
그러나 채 칼을 내리치기 전에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군사들이 그
를 안아 자리에  눕혔으나 깨어나지 못했다. 독기가 빠지지 않은  몸으로 날마다 
화만 돋구었으므로 이미 심신이 기진해 있던  손책이었다. 손책은 한나절이 지나
서야 겨우 깨어났다. 그러나  손책은 그날부터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눈은 빨
갛게 충혈되고 온몸에는 신열이 났다. 그날 밤이었다.
  "아니 저게 무슨 소리지?"  손책의 침전을 지키던 무사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
다. 촛불이 가물거리고 있는 손책의 침전 휘장  안 깊숙한 곳에서 갑자기 손책의 
목소리인 듯 한 외마디 절규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밤은 깊어 사경이 가까울 무
렵이었다.
  "무슨 일인가?" 전의와 무사들이  달려갔다. 침상으로 달려갔으나 손책의 모습
은 보이지 않았다.
  "아아, 여기요. 여기  쓰러져 계십니다." 손책은 침상  아래 마루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손에는 칼을 빼든 채였는데 앞에 있는  비단 휘장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
었다. 무사가 안아서 침상에 눕히고 전의가 약을 먹이자 손책은 눈을 번쩍 떴다. 
그런데 그 눈빛이 낮에 본 눈빛과는 사뭇 달랐다.
  "우길 놈! 요사스런 늙은이 어디로  갔느냐?" 손책은 헛소리처럼 중얼거리더니 
사방을 휘둘러보고 있었다. 손책은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깊은 
잠에 빠졌던 손책은 해가  중천에 뜰 무렵에야 겨우 눈을 떴다.  그의 어머니 오 
태부인과 아내가 근심스런  얼굴로 손책을 지켜 보고 있었다. 오  태부인이 눈물
을 글썽이며 타일렀다.
  "네가 죄 없는 신선을 죽이더니 이런  화를 당하는구나. 부디 오늘부터 제당에 
들어 신령님께 참회하고 이레 동안 죄를 빌며 공을 들이도록 하거라." 오 태부인
의 말에 손책은 웃으며 어머니를 위로했다.
  "어머님, 이 책은 열여섯 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싸움터로 가 풀잎 베어 넘
기듯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화를 당한 적이 없습니다. 어저께 
죽인 우길은 나라의 큰 화근을 없앤 것입니다. 어찌 그 일로 화를 입겠습니까?"
  "아니다. 우 도인은 범인이  아닌 신선이시다. 그걸 믿지 않아서 일이 이 지경
에 이른 것이다. 그의 벌이 두렵지  않느냐?" 변괴를 당하고도 손책의 우길에 대
한 고집은 조금도  꺾기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런 아들을 근심하며  달랬으나 소
용이 없었다.
  "그의 벌이 두렵다니요? 어머님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책은 오나라의 주인
입니다. 하찮은 사교나 퍼뜨리는 요망스런 노인을 두려워해서야 되겠습니까?"
  "아, 이렇게도 어미의 마음을 모른다는 말이야?" 어머니 오 태부인은 흐느끼며 
탄식할 뿐이었다.
  "사람의 명은 하늘의  뜻에 달린 것입니다. 그 요망한 늙은이가  결코 화를 줄 
수는 없습니다. 어머님을  안심하십시오." 손책이 끝내 어머니 오 태부인의  뜻을 
따르려 하지 않자 하는 수 없이 노모와 부인은 아들과 남편을 위해 자신들이 대
신하여 7일 동안 목욕재계하고  제사를 올렸다. 그날 밤이었다. 사경이 가까워지
자 손책의 침전에  으스스한 바람이 일더니 등불이 꺼질 듯이  깜빡거렸다. 손책
이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들어  살펴보니 홀연 우길이 침상을 돌며 그를 비웃고 
있었다.
  "나는 요망한 무리를 죽여 천하를 바로잡는 일에 내 목숨을 바치려 했다. 네가 
이미 죽어 귀신이 되었는데  어찌 감히 내 앞에 나타난단 말이냐?" 손책은 칼을 
뽑아 우길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우길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손책
이 검을 들고 그를 기다리는 동안 날이 훤히  밝아 오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손
책은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낮에도 혼미하게 지쳐  잠 속으로 빠져드는 일이 많
아졌다. 어머니 오 태부인은 아들의 이런 모습을  지켜 보다가 그만 근심에 싸여 
몸져눕고 말았다.  어머니가 몸져누웠다는 말을  듣고 손책은 아픈  몸을 추수려 
어머니의 병문안을 갔다.  오 태부인은 아들 손책의 수척해진 모습을  보고 당부
했다.
  "이미 성인께서도 귀신의 덕이 큰 바가 있다고 하셨으며 또 위로는 하늘에 있
는 귀신, 아래로는 땅에 있는 귀신에게 빈다고도 하셨다. 그러니 어찌 귀신의 일
을 믿지 않을 수 있겠느냐? 거기다가 아무 죄 없는 우길을 죽였으니 어찌 그 원
망이 없겠느냐 제발 이 어미의 소원이니 옥청관(도교의  절)에 가서 치성을 들이
도록 하여라. 내가  특별히 천하의 도사들을 초빙하여 향을 피우고  불공을 드려 
귀신의 노여움을 풀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 몸져누운 어머니가 흐느끼며 당부하
고 부인도 울며 간했다.  손책은 어머니의 당부를 물리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바꾼 것이 아니라 몸져누운 어머니의 마음이나 편안하게 해 
드리고자 결심한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손책이 옥정관으로 나오자  그의 참배를 반가워하며 제주 이
하 여럿이 그를 영접하며 불공을 드리게 했다.
  "향을 사르고 절을  하십시오." 손책은 내키지 않는 얼굴을  하고 중앙 제단을 
향해 마치 서로 대치하듯 노려보고  있다가 제주의 재촉에 하는 수 없이 향로에 
향을 피웠다. 그러나  향을 사르는 시늉만 하고  끝내 절은 하지 않았다. 그때였
다.
  "이놈!" 모락모락 피어 오르던 향이 한  곳으로 모여 둥근 모양을 이루더니 그 
속에서 우길의  모습이 보였다. 손책이 소리쳐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우길의 
모습이 문가로 멀어져 갔다. 우길의 문설주 있는  곳에 버티고 서서 손책을 노려
보고 있었다. 손책은 괴이쩍은 기분이 들어 좌우를 돌아보며 외쳤다.
  "너희들 눈에는 저 요괴가 보이지 않느냐?" 손책을 따르던  군사들이 어리둥절
하여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요괴라니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손책은  앞뒤 가릴 것 없이 칼을 빼
들었다. 자기만을 희롱하고 있는  우길이 더욱 괘씸할 뿐이었다. 칼을 들어 우길
을 향해 던졌다.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칼에 맞은 자가 쓰러졌다. 손책이 던
진 칼이 그 군사의 머리를 베니 눈, 코,  입, 귀의 일곱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처
참한 몰골로 죽어 갔다. 손책의 눈에도 그 모습은 끔찍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
은 채 시체를 끌어 내어 장사를 지내  주도록 명했다. 손책이 기진맥진하여 옥천
관의 문을 향해 가는데 이번에도 또 문 쪽에서 우길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 도관이 알고 보니 요괴들의 소굴이 아닌가?  여봐라! 이 도관을 헐어 버려
라." 손책이 그를 따르는 군사 5백에게 명했다. 손책은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열에 들떠  미친 듯이 소리치니 군사들도  하는 수 없이 도관을  헐기 시작했다. 
군사들이 지붕  위의 기와를 걷어 내려  할 때였다. 우길이 지붕  위에서 기와를 
내던지고 있었다. 손책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이 도관을 불살라라. 불을  질러 저 요괴놈을 태워 죽여라!" 무사들이 손책의 
영에 따라 도관을 불을  질렀다. 도관은 순식간에 불길로 화했다. 그런데 타오르
는 불길 속에도 우길이 버티고 있었다. 손책은  불길 속까지는 뛰어 들지 못하는
지라 급히 군사를 이끌고 부중으로 돌아왔다. 수레를  타고 가는데 그 수레를 따
라 유유히 걷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수레 안에서 보니 그는 우길이었다.
  "저 늙은이가 아직까지 나를 괴롭히는가?" 손책은 주렴을 베어  찢으며 외마디
로 소리쳐 외치다가  수레에서 굴러 떨어졌다. 군사들이 그를 일으켜  수레에 태
웠다. 열에 들떠 있는 손책은 성문을 들어갈 때도 발작을 일으켰다. 손책이 보니 
부문 앞에 우길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서  있었다. 손책은 '창을 던져라, 활을 쏘
아라' 하며 마치 진두에  나온 것처럼 명을 내리더니 이윽고 제정신이  든 듯 가
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성에서는 잠을 잘 수가 없다."  마침내 손책은 성 밖에다 진영을 세우고 3
만의 정병으로 하여금 경비를 임하게 했다. 그가  자는 군막 밖에는 막강한 역사
와 무장이 큰 도끼를 가지고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눈을 부릅뜨고 머리
를 풀어헤친 우길의  모습은 그날 밤에도 손책의 머리맡에 나타났다.  손책은 밤
이 새도록 그를  향해 소리치며 꾸짖었다. 다음날이 되자 손책은  모든 장수들을 
불러모았다.
  "여러 날 동안을 병상에 누워 허송 세월을 했다. 무릇 장수란 싸움터를 멀리하
면 이미 장수가  아니다. 침상만을 지키며 나날을 보내니 몸은  쇠약해지고 정신
도 혼미해질 뿐이다. 이로 인해 요사스러운 것이  내 눈앞을 어지럽히니 나는 본
분을 다해 싸움터로  나가고자 한다. 지난번 원소와 동맹을 맺어  조조를 치기로 
하였던 바 이제 그대들은 계책을 말해 보라." 장수들이 손책의 말을 온전히 들을 
리 없었다.
  "주공께서 아직 옥체가 불편하시니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병이 
낫기를 기다렸다가 군사를 내도 늦지 않습니다."  한결같이 입을 모아 손책을 말
리니 제대로 의견이 모아질 리가 없었다. 다른  날을 정해 의논하기로 하고 장수
들이 물러갔다. 그날 밤도  손책 앞에는 어김없이 우길의 모습이 나타났다. 우길
의 환영에 시달린  손책은 한낮이 지나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그를  만나는 사람
들은 한결같이  그의 변한  모습에 놀랐다. 마침  어머니 오 태부인이  부른다는  
전갈이 왔으므로  손책은 후당으로 갔다.  손책을 본 어머니가  소스라치게 놀라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네 몰골이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되었느냐?" 그 말에 손책은 앞에 놓인  거울을 
끌어당겨 얼굴을 비춰 보았다.  거울에 비춰  보니 자기의 모습에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었다. 놀란  마음으로 다시 거울을  들여다본 손책이 갑자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마귀 같은 놈!"  거울 안에 비친 것은 자기 얼굴이  아닌 우길의 얼굴이었
다. 손책은 거울을 내동댕이치고  칼을 빼려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 
순간, 온몸에 상처가 일시에  터지더니 피가 쏟아져 나왔다. 놀란 태부인이 아들
을 부축하여 방안에 눕혔다. 얼마 후 정신이  든 손책도 마음속으로 천명을 깨달
았는지 가만히 중얼거렸다.
  "아,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손책은 길게  탄식한 후 사람을 시켜 장소와 
동생 손권을 비롯, 문무백관들을  불러들렸다. 전갈을 받고 장소 이하 중신과 장
수들이 속속 몰려들었고, 아우  손권도 달려와 병상 앞에 엎드렸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손책의  얼굴은 담담했고 눈동자도 맑았다. 
손책은 또렷한 목소리로 모여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천하는 큰 변혁기에 처해 있소. 이제  한은 이미 떨어진 꽃과 같으며 거
센 바람과 물결이 천하에 소용돌이칠 것이오. 그러나  우리 오월 군은 정예를 자
랑하고 있으며 3강을 끼고 있어  이 자연적인 요새가 우리를 지켜 주니 능히 큰 
뜻을 펼 수 있을 것이오.  자포(장소의 자)를 비롯한 여러분들은 부디 내 아우를 
도와 그 뜻을 이루게 해 주시오." 손책은  말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며 다시 말
을 이었다.
  "아우 권은 여기 가까이 오라."
  "예. 권이 여기 있습니다." 손권이 형 손책의 머리맡에 다가왔다.
  "형님, 마음을  단단히 잡수십시오. 지금  형님께서 가시면 오나라는 대들보를   
잃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어머님과 많은  신하를 생각해서라도 형님께서는 일어
나셔야 합니다." 손책은 조용히 웃음을 띠며 베개 위의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이것은 내가 네게 들려 주고픈 말이다. 군사를 이끌고 
적과 대결하여 천하를 판가름하는 싸움에서는 내가  너보다 낫다. 그렇지만 어진 
신하를 쓰고 뛰어난 통솔력을 발휘하여 나라를 튼튼히 지켜 나가는 일에는 내가 
너를 따를 수 없다. 그러니 너는 아버님께서  오나라를 처음 세웠을 때의 고난을 
잊지 말라. 현인을 잘 등용하고 유능한 장수로  하여금 영토를 지키게 하며 백성
을 사랑하고 당상에서는 어머님께 효도하라."  시시각각으로 그의 얼굴에는 죽음
의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병상 안팎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손책은 말을 끝
내자 오의 인뒤웅이를 손수 풀어 떨리는 손으로  손권의 손에 쥐어 주었다. 손권
은 목놓아 물며 절한 뒤 인뒤웅이를 받았다.  이어 손책은 어머니 오 태부인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 아들이 하늘로부터 받은 목숨은 이제 그 수가 다한 듯합니다. 어머님을 모
시지 못하고 먼저  이승을 떠나는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이제 이  강동의 인뒤
웅이를 아우에게 넘겼으니 어머님께서는 부디 아침 저녁으로 동생을 깨우치시고 
아버지와 형이 믿고 아끼던 옛 사람들에게  소홀함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어머
니 오 태부인은 비통함을 억누를  수 없어 흐느끼는 가운데도 한 나라의 어머니
로서 뒷일을 근심했다.
  "권은 아직 나이가 어리니 그것이 걱정이로구나. 장차 그 큰 일을 어떻게 감당
할 수 있겠느냐?"
  "어머님께서는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우는 저보다 재주가 뛰어납니다.  만
약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항상 안의 일은 장소에게 물으시고 바깥일은 주유에
게 묻도록 하십시오...... 아아 주유가 여기 없어 마주 대하고 당부하지 못함이 한
스럽습니다. 그가 파구에서  돌아오거든 잘 전해 주십시오." 손책은 말을  끝내고 
다시 아우들에게도 마지막 타이름을 잊지 않았다.
  "내가 죽거든 너희들은 형 중모(손권의 자)를 도와 큰 일을 이루도록 해라. 만
약 집안에서 감히 딴마음을  품는 자가 있거든 힘을 합해 그를  죽여야 한다. 골
육으로서의 모의를 꾀한  자는 죽어서라도 조상이 누운  땅에 함께 들게 해서는 
아니된다!" 모든 아우들이 울며 손책의 분부를 받들 것을 맹세했다. 손책은 마지
막으로 아내 교  부인을 불렀다. 원래 교씨는 자매였는데 큰딸은  손책의 아내가 
되었고 작은딸은 주유의 아내가 되었다.
  "부인......" 손책도  아내 교 부인을  부를 때만은 그  목소리가 떨렸다. 아내는   
퉁퉁 부은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내 목숨이 다했으니 이제 이승에서 작별을 고해야겠소. 부부가 중도에서 헤어
지다니 이보다 더한 불행은 없소만 천수가 다했으니  하는 수 없는 일이오. 그대
는 부디  어른들을 공경하고 자식들을 잘  길러 주시오. 또한 처제가  내 장례를 
보러 오면  그때 동생에게도 잘 말해서  주랑(주유의 자)으로 하여금  아우 권을 
잘 보살펴 주도록 하시오. 부디 평생 지기였던  나와의 정의를 봐서라도 내 부탁
을 저버리지 않도록 해 주시오." 주유는  손책에게 있어서는 왼팔과도 같은 존재
였다. 주유는 손책의  죽마고우인 동시에 한 자매를 각자의 아내로  삼은 동서였
다. 아내에게까지 주유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모두에게 당부할 것을 당부
하고 이를 것을 이른  연후에 손책은 홀연히 눈을 감았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
여섯이었으니 아까운 나이였다.  강남의 소패왕으로 일컫던 손책이  이렇게 빨리 
요절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지방의  한 정
권에 지나지 않았던 오나라를  머지않아 정립된 삼국 가운데 하나로 성장시키는 
기틀을 마련한 영웅임에는  틀림없었다. 그의 죽음을 애처롭게  여긴 뒷사람들이 
슬퍼하며 지은 시가 있다.
  홀로 동남 땅에서 싸워서 이기니 사람들은 그를 소패왕이라 했네.
  계책을 세울 때는 웅크린 범이요 결단은 매처럼 잽쌌다네.
  그 위엄 세 강을 눌러 평안하고 그 이름은 사해를 향처럼 퍼졌다네.
  큰 일은 남겨 두고 세상 떠날 때 못 다한 일 주유에게 부탁하네.
  형 손책에게 인수를 이어받아 오의 주인이 된 손권은 이때 그의 나이 겨우 열
덟이었다. 그러나 형인 손책이 정확히 헤아린 대로  그는 형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점을 가지고 있었다.  즉 내적인 수완이나 보수적인 정치의 재능은  형보다 뛰어
났다. 형의 무용에  비해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내치가 훨씬  월등했다. 손권, 자
는 중모였다. 태어날 때부터 입이 크고 턱이  넓고 눈이 푸른색이었다고 하니 손
씨는 아마도 열대  지방의 남방인의 피가 섞여 있었는지 모른다.  일찍이 오나라
에 사신으로 왔던 한의 유완은 곧잘 골상을 보았는데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한 적
이 있었다.
  "손가의 형제는 모두 재능이 있으나 모두가  천수를 다하지는 못할 상이다. 다
만 손중모만이 다른 상이니 손씨  가문을 지키면서 장수할 사람은 이 아이 뿐일 
것이다." 이 말은  손씨 가문의 장래와 형제들의  운명을 예언한 결과가 되었다. 
아니, 손책에게는 그 말이 불행하게도 이미 적중된 것이었다.

  강동의 손권 그리고 관도대전
  젊은 손권을 중심으로 오나라는  착실히 기반을 다져 나간다. 한편, 관도의 조
조군과 대치한 원소는  토산을 쌓고 땅굴도 판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조군의 식
량은 바닥이 나고, 이때 원소로부터 배척당한 모사  허유가 조조를 찾아와 한 가
지 계책을 알려 준다.
  손책이 젊은  나이로 죽자 오나라는  온통 슬픔에 잠겼다.  하늘에는 애처로운 
새 소리만 들릴 뿐, 풍악  소리가 들리는 곳은 없었다. 장소는 손권의 종중 어른
인 숙부 손정으로 하여금 장례를 치르게 하였다.  손권은 손책의 침상 앞에 쓰러
져 곡을  하며 눈물로 나날을 보냈다.  손권에게 있어 형 손책은  아버지나 다름 
없는 존재였다. 장소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손권을 달래며 깨우쳤다.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울고만 계실 때가  아닙니다. 지금 승냥이와 이리의 야
심을 품은 자들이 이 땅에 득실거리고 있는  마당입니다. 어서 형님의 유언을 받
들어 군국의 큰일을 다스려야 하며 밖으로는 이전 국주에 못지않은 주군임을 보
여야 합니다." 장소가 이처럼 간곡히 말하니 손권은 애써 눈물을 거두었다. 자신
에게 부여된 대사를 잊고 슬픔에만 잠겨 있을  손권 또한 아니었다. 장소는 손권
을 부당으로 모시어  문무의 관원들을 불러들여 하례를 올리게 했다.  손권이 주
군으로서 신하를 대하는  첫 의식인 셈이기도 했다. 그때 파구로부터  주유가 달
려왔다. 주유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손권을 기뻐하며 말했다.
  "공근이 돌아왔으니, 이제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원래 주유는 손책이 자객에
게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안을 드리러  오던 길이었다. 그러나 오는 도
중에 손책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왔다. 주유
는 먼저 손책의 영구  앞에 엎드려 절하며 통곡을 했다. 오  태부인과 손책의 아
내도 함께 곡을 한  후에 손책이 남긴 말을 전했다. 주유는  땅에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비록 제 힘이 미약하나 맹세코 견마의 힘을 아끼지 않고 죽을 때까지 지기의 
유언을 받들겠습니다." 이때  손권이 들어오자 주유는 당장  그 자리에서 주공을 
향한 예로 절하여 맞았다.
  "공께선 부디 돌아가신  형님이 남기신 명을 잊지 않도록  해 주시오." 주유가 
다시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간과 뇌를 땅에 쏟으며 죽을지라도 나를 그토록 헤아려 주신 은혜 기필코 보
답하겠습니다." 손권은 주유를 딴 곳으로 청한 뒤 마주 앉았다.
  "이제 어리석은 이 몸이 동오를 맡아 아버지와 형의 뜻을 잇게 되었습니다. 바
라건데 그 대책을 일러 주시오." 손권이  주유에게 의논하자 주유가 서슴없이 입
을 열었다.
  "무릇 무슨 일이든 그 바탕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얻는 자는 흥하고 사람을 잃
는 자는 망한다 했습니다. 그러니 주공께서는 덕이  높고 지혜가 밝으면 먼 앞날
을 내다볼  수 있는 선비를 널리  구하십시오. 그런 이들이 많이  모이면 강동은 
절로 튼튼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가형께서도 돌아가실 때 이르시기를 안의 일은 자포에게 묻고, 바깥일은 공근
에게 의논하라 하시었소.  그 말씀을 깊이 새겨  반드시 지키려고 하오." 손권이 
더 많은 선비를 불러들이라는 주유의 말에 이같이 대답하자 주유는 고개를 저었
다.
  "장자포는 어질고 재주가 많은 선비이니 능히  큰일을 이루어 낼 것입니다. 그
러나 이 유는  우둔하니 고인께서 기탁하신 무거운  일을 감당해 낼지 두렵습니
다. 원컨대  저보다 나은 자를 한  사람 천거하여 주공을 보필토록  하고 싶습니
다."
  "공근만한 인재가 또 있다는 말이오? 그게 누구요?"
  "그의 이름은 노숙이요, 자는 자경이라고 합니다."
  "아직 들어  보지는 못했소. 그렇게 유능한  인재가 어떻게 세상에  파묻혀 있
소?"
  "초야에서 현인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지만 어느  시대건 반드시 숨어 있는 
현인이 있는 법입니다. 다만 현임을 볼 줄 모르고  또 그 현인을 찾더라도 잘 쓰
지를 못할 뿐입니다."
  "그는 대체 어디에 살고 있소?"
  "임회 땅의 동성현에 살고 있습니다. 가슴에는 육도삼략을 간직하고 지모가 출
중한 인재입니다. 어릴 때부터 기지가 풍부한데  평소에는 참으로 온후하여 만나
면 봄바람을  대하는 듯 합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셨는데 
효성 또한 지극하였습니다.  집안이 넉넉하여 항상 재물을 나눠 가난한  이를 돌
보는 데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내 영하에 그런 사람이 있는 줄을 몰랐소."
  "제가 거소를 맡고 있을 때의 일인데 수백 명을 거느리고 임회땅을 지나게 되
었습니다. 마침 양식이  떨어져 어려운 지경에 빠졌는데 우연히 노숙의  두 곳간
에 곡식이 3천  석이나 쌓여 있다는 소문을 듣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노숙은 그 
중 창고 하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마음대로 양식을 갖다 먹게  했습니다. 그러니 
그 인품의 됨됨이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검술과 말을  타고 활 쏘
는 일을 좋아하면서도  벼슬을 마다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는  그의 할머니
가 죽어 동성 땅으로 장사지내러 갔다가 그의  친구 유자양을 만났습니다. 그 친
구는 소호의 정보에게로 가서 출사(벼슬을  하여 출근함)하기를 간곡히 권하였습
니다만 그는 선뜻 나서고 있지 않습니다."
  "공근, 그가 다른 곳으로 가도록  그냥 둘 순 없는 일이오. 공이 가서 모셔 오
도록 하지 않겠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어떠한 인재도 그를 잘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
다. 제가 가서 모셔 오도록 하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가문을 위해,  현인을 구하고도 어찌 유용하게 쓰지 않겠소?  공
은 어서 다녀오시오."  손권이 기뻐하며 주유를 재촉하자  주유는 기쁜 마음으로 
동성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노숙의 동네에 가서는 일부러 종사도  대동하지 않
고 혼자서 말을 타고 그 문전에 이르렀다. 그의 집은 시골의 호농(대규모의 농사
를 짓는 지구)답게 마당이 넓었다.  대문 안에서는 한가로이 맷돌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유가  문 안으로 들어섰으나  만류하는 사람도 없고  그저 평화롭기만 
했다.
  "주인 어른 계신가?" 주유가 조용히  사람을 부르니 한 동자가 나왔다. 종자의 
안내를 받으며  노숙이 있는 곳을 행해  가는데, 문득 풍채 좋은  무인이 종자를 
데리고 거만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노숙의 손님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며 길을 조
금 비켜 섰으나 그 무인은 목례도 하지  않고 우쭐대며 지나갔다. 주유가 종자를 
따라 서당에 이르니 그곳에는 방금 손님을 배웅한 주인이 사립문을 연 채 서 있
었다. 주유는 노숙에게 예를 올리고 말했다.
  "오성의 주공이신  손권의 뜻을 받들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노숙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하찮은 몸을 그토록 높여  주시니 감사하오만 이미 친구 유자양과 소호에 가
기로 약조하였습니다." 주유는  조금 전에 나간 자가 유자양임을 깨달았다.  그러
나 개의치 않고 주유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지난날 마원(후한의 맹장)  장군이 광무제께 말하기를 이제는  임금이 신하를 
가려 뽑을  뿐만 아니라  신하도 임금을 가려  섬긴다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의  
손 장군께서는 어진 이를 가까이  대하고 예로써 선비를 대접하며 각기 그 재주
에 따라 녹과  벼슬을 내리니 세상에 보기드문 영걸이십니다. 일찍이  공의 이름
을 흠모하여 이렇게 저를  보내셨으니 바라건대 천하의 시류를 헤아리시어 정보
에 출사하심을 거두시고 동오를 위해 저와  함께 가심을 허락해 주십시오." 주유
가 간곡히 설복하자 노숙은 조용히 웃었다.
  "지금 여기서 나간 손님을 만나셨지요?"
  "예, 역시 공을 모시고자 하는 유자양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두 번 세 번 이곳에 와서 정보에게 출사하라고 권합니다만......"
  "공은 마음을 정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새는 좋은 나뭇가지를 골라 
앉는 법입니다. 저와  함께 동오로 가십시다." 그제야  노숙은 주유의 말에 좇을 
뜻을 밝혔다. 주유는  노숙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동오로 돌아와  주공인 손권
을 알현하게  했다. 손권은 예를 다해  노숙을 맞은 후 극진히  공경하며 정무와 
군사일에 대한 노숙의 고견을  물었다. 어느 날은 노숙과 단둘이서 술을 마셨다. 
술잔이 오가고 흥이 오르자 서로가  군신의 예도 잊고 자리를 나란히 하여 누운 
채 촛불을 켜 놓고 국사를 논하였다. 손권이 노숙에게 물었다.
  "이제 한실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고  천하는 어지러울 뿐이오. 나는 아버님과 
형님의 뒤를 이었으나, 제환 공이나 진문 공처럼 천하의 패업을 이루려 하오. 그
러나 그 길을 알 수 없으니 내가 어떻게 하면 그 같은 일을 도모할 수 있겠는지 
공이 깨우쳐 주시오." 젊은 주공 손권이 눈동자를 빛내며 묻자 노숙도 정색을 하
여 입을 열었다.
  "지난날 한의 고조는 초의 의제(항우가  세웠다가 후에 죽임)를 받들고자 했으
나 항우에게 의지하다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의 조조는 그  항우에 비
할 수  있습니다. 황제가 이제 조조의  손에 들어 있거늘 장군께서는  어찌 제환 
공이나 진문 공과 같은  패업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한실을 관망하시며 
강동의 요해를 견고히 지켜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일단 때가 오면 먼저 황조
를 정벌하여  장강을 취합시시오. 때마침  조조와 원소는 하북의  공방에 여념이 
없어 남쪽을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한실이 기울면 조정은 어떻게 될 것 같소?"
  "다시 한의 고조와 같은 인물이 나타나 제왕의 업이 시작되겠지요. 장군께서는 
한의 조묘를 구하심보다 새로이 제호를 창하고  나아가 천하를 도모하십시오. 이
는 옛 한나라 고조의 창업과 다르지 않습니다." 노숙의 뜻밖의 말에 손권은 놀라
기는커녕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을 하며 옷깃을 단정히 여민 후 노숙에
게 고마음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노숙에게 많은 예물을 내리기까지 했다. 그 후 
며칠간은 노숙이 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 그의  노모에게도 의복과 재물을 보냈
다. 노숙은 그 은혜에 감격하여  다시 돌아올 때, 또 한사람을 데리고 와 손권에
게 천거했다.  그 사람은 한나라 사람들에게는  드문 두 자 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그 가문을 알고 있었다. 성은  제갈 이름은 근, 자는 자유였다. 손
권이 그의 집안에  대해 묻자 그 사람이 대답했다.
  "고향은 낭야의 남양입니다. 선친은 제갈규라고 하며, 태산의 군승을  지냈는데 
제가 낙양의 대학 유학 중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하북은 전란이 계속되어 
계모가 안주할 곳이  없어 강동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동생과 누이는  저와 헤
어져 형주의 백부가  부양하게 되었습니다. 백부는 형주의 자사 유표를  섬겨 중
용되었으나 5년 전 전란으로 돌아가시었습니다." 손권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숙이 
그이 사람됨을 말했다.
  "제갈 형은 아직 젊습니다만 낙양에서 수재라고  이름 났으며, 시문 경서에 이
르러 통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특히 제가  탄복하고 있는 것은 계모 섬기기를 
친어머니 모시듯 하여 그 가정만 보아도 온화한 인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손권
은 기뻐하며 그를 상빈으로  중했다. 이 제갈근은 제갈공명의 친형이었다. 딴 나
라에 흘러나와 무엇 하나 배경이 없었던 제갈근은 이로써 손귄에게 높이 중용되
기에 이른다. 그것은  그의 지략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의  인품이 휼륭
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지략은 동생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덕이  높고 검소하며 
언행이 흐트러짐이 없으니 당대의 큰 그릇으로  숭앙받을만 했다. 손권은 제갈근
에게 앞일을 물었다.
  "공께서는 동오를 위해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장군께서는 하북의 원소와는 손을 끊으십시오.  원소가 조조와 대처하고 있으
나 그는 군사가 많다는  것만 믿을 뿐 결단력과 지모가 부족합니다.  또한 그 조
직은 내분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조조에게 패망할 것이니 장군께서
는 조조를 따르는  척하며 기회를 엿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제갈근은 오랫동안  
하북에 있었으므로 원소 진영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손권은 그 말을 좇기로 
하고, 하북에서  사자로 와 오랫동안 머물고  있던 진진에게 글을 써  주어 돌려 
보내고 원소와는 절연했다.  한편 조조도 이때 이미 손책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
고 있었다.
  "지금은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다. 즉각  군사를 일으켜 동오를  치도록 하
자!" 조조는 여러 중신들을 모아 이 일은 의논했다. 나이 어린 손권이 오의 주인
이 되었을 때  일찌감치 그 싹을 자르고 강동을 차지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이때 
손책의 사자로 허도에 왔다가 이곳에서 벼슬을 받아 머무르고  있던 시어사(검찰
관) 장굉이 아뢰었다.
  "남의 불행한 일이 있을 때를 틈타 군사를 일으킨다는 것은 승상답지 못한 일
입니다. 만약 공격했다가  이기지 못한다면 적만 만들고 숭상에 대한  민심만 잃
게 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때  그를 잘 대우해 차라리  두터운 사이로 
만들어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장굉의 말에 조조도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
다. 손책이 죽었다는 소리에 얼핏 동오를 칠  생각에 들었으나 가만히 헤아려 보
니 이는 원소를 염두에 두지 않은 처사였다.  조조는 천자께 아뢰어 손권에게 은
명을 전하게 했다. 즉 손권을 장군으로 봉하는  동시에 회계의 태수도 겸하게 했
다. 장굉에게는 회계의 도위를  명하여 그를 사자로 보냈다. 손권은 뜻밖에도 태
수인을 받게 되고 또 장굉까지 돌아왔는지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공은 장소와 함께  정사를 돌보며 이 몸을 깨우쳐  주시오." 장굉은 오랜만에 
돌아온 자기를 반겨 주는 손권을 위해 한  사람의 인재를 천거했다. 그는 고옹이
라는 사람으로  자는 원탄인데, 지난날 왕윤에게  목숨을 잃은 채옹의 제자였다. 
그는 말수가 적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근엄하고 곧은 인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손권은 곧 사람을 보내 그를 부르게 하였다.  그의 인품이 소문대로라는 것을 안 
손권은 고옹을 승으로  삼아 회계태수의 일을 돌보게 했다. 그렇게  되자 손책을 
잃고 일시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던 오는 오히려 젊은 손권을 중심으로 
보좌하는 인재가 속속 모여들었다. 인재가 모여드니  자연 군사는 강해지고 내치
는 더욱 강화되어  흥성해 갔다. 손권의 위엄은 강도에 더높이  떨쳤고 백성들의 
신임도 두터워지기만  했다. 그러나 강동이  이렇게 기반을 착실히  다져 나가자 
이를 가장  못마땅히 여기는 것은  원소였다. 동오에서 하북으로  쫓겨온 진진은 
원소에게 손권의 동태를 알렸다.
  "손책의 아우 손권이 뒤를 이어 동오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조가 손
권에게 벼슬을 내리고 서로 손을 잡았습니다."
  "이 역적놈이 또 간교한  수작을 부리고 있구나." 원소는 대로했다. 오는  사자
를 쫓아내고 자청해서  조조에게 추파를 던지며, 조조는 또 오의  손권에게 벼슬
을 내려 제휴를 맺었다. 고립된 원소의 초조와 분노는 가눌 길이 없었다.
  "먼저 큰 화근을 없애야 한다. 조조부터 타도해야겠다." 원소는 즉각 명을 내
렸다. 이에 기주, 청주, 병주, 유주 등 하북의 대군 70만은 관도의 싸움터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조조의 상장 하후돈은 첩자로부터 원소가  출진 준비
를 서두르고 있다는 보고를 전해 받았다. 하후돈은  즉시 이 사실을 허도에 알렸
다. 조조는  급보를 받고 지체없이 군사  7만을 수습하여 모사  순욱에게 허도를 
지키게 한 후 자신이 군사를 이끌었다. 원소도  전신 갑주로 무장하고 몸소 기북
성에서 출진을 서두르고 있을 때였다. 옥에 갇혀 있는 전풍으로부터 글이 왔다.
  이처럼 안을 텅  비우고 함부로 서두르면 반드시 큰 화를  초래합니다. 오히려 
관도의 병력을 물리고 방비를 하며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전풍의 글을 보고 있는 원소의 곁에는 봉기가  있었다. 봉기는 전풍과 원래 사
이가 좋지 않았다. 봉기가 가만히 원소에게 속삭였다.
  "주공께서는 조조를 치기 위해 의로운  군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전풍이 출진에 
앞서 어찌하여 이토록 불길한 말을 하다는 것입니까?" 출진 날에는 작은 일에도 
길흉을 따지며 매사를  조심하여 행하게 된다. 그런 판국에 상서롭지  못한 언사
를, 그것도 중신이  글까지 올려 출진을 반대하고 이에 봉기가  간언하는 소리를 
듣자 원소는 화를 내며  그의 목을 베려 했다. 그러나 전풍의  충성심을 알고 있
는 많은 관원들이  원소를 말렸다. 원소도 여러 관원들의 사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풍의 목을 베는 대신 한 마디 내뱉았다.
  "내가 개선한 뒤에  반드시 그 죄를 다스리리라!" 원소군은  관도를 향해 출발
했다. 백만에 가까운  대군이 출동을 하니 기치는  들을 메웠고, 수십 리에 걸쳐 
칼과 창의 숲이 이어지는  듯했다. 원소군은 양무에 이르러 영채를 세웠다. 모사
인 저수가 원소에게 아뢰었다.
  "조조는 속전속결을 노리고 있습니다. 군량과 마초가 넉넉지 못하므로 가려 뽑
은 날랜 군사로 이 싸움을 단번에 끝낼  심상입니다. 우리는 대군이지만 그 용맹
과 의기로는 조조군을  따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군은 군량과  마초가 넉넉
하니 지키면서 천천히  싸우는 것이 이롭습니다. 적의 마초와 군량이  떨어질 때
를 기다리면 적은 스스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닥쳐라. 그대도 전풍처럼 군심을 흐려 놓을 작정이냐!" 원소가 크게 노해  소
리쳤다. 원소는 저수의 목에도 큰칼을 씌워 가두도록 했다.
  "조조를 무너뜨린 후 저 자도 전풍과  함께 그 죄를 다스리리라." 저수를 옥에 
가둔 후 원소는 관도의 산과  들 사방 90리에 걸쳐 하북의 군세 70여 만으로 진
영을 펼쳐  세워 조조와 대치했다.  조조군의 세작은 원소군의  동태를 지체하지 
않고 관도로 전했다. 엄청난  원소의 대군에 군사들은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조
조가 모사를 불러 원소의 대군과 맞설 계책을  의논했다. 그러자 순유가 입을 열
었다.
  "우리 군사는 원소군에 비해 일당 십의  정예병입니다. 다만 유의할 것은 빨리 
싸워 결판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일을 끌수록 우리의 양초가  줄어드니 헛
되이 날을 보내다가는 그르칠 수가 있습니다."  조조가 순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
였다.
  "공의 말은 바로  내가 생각하던 바요. 이제 적을 알고  아군을 아는데 무엇을 
망설이겠소. 바로  진군합시다." 조조가 그렇게  말하며 군사들에게 진군의 영을 
내렸다. 군사들을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원소군을 향해 나아갔다. 원소군은 
조조군이 진격해  오자 마주 군사를  내었다. 원소군은 군사를  양쪽으로 나누어 
진을 벌이게 했다. 심배는 노수 1만을 좌우에  매복시킨 후 다시 문기 안에도 궁
수 5천을 숨겨  주었다. 날래고 용맹스런 조조군을 끌어들여  섬멸시키기 위함이
었다.
  "포향이 울리거든 일제히 활을 쏘아라!"  심배는 군사들에게 이렇게 명을 내렸
다. 양군이 마주  군사를 움직이니 흙먼지는 하늘을 덮고 양군의  기치와 북소리
는 땅을 메웠다. 어느 새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원소군은 매복병의 배치가 끝나
자 크게 세 번의  북소리가 울렸다. 자세히 보니 원소가 문기를  날리며 진 앞으
로 달려오고 있었다. 황금 투구와 갑옷, 비단 전포에 옥대를 두른 모습으로 명마
에 앉은 원소는  과연 강북의 명문답게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원소가  진 앞에  
나서자 그의 좌우에는 장합,  고람, 한맹, 순우경 등의 장수가 늘어섰다. 조조 진
영에서도 문기가 열리더니 조조가 말을 타고  나왔다. 그의 앞뒤로는 허저, 장요, 
이전, 악진, 우금 등의 장수들이 호위했다.  조조가 말 채찍으로 원소를 가리키며 
외쳤다.
  "내가 일찍이  천자께 상주하여  너를 기북대장군으로  봉하여 하북의 치안을   
맡겼다. 그런데 어찌하여 스스로 반란군을  일으키는가?" 원소도 성난 얼굴로 조
조를 꾸짖었다.
  "닥쳐라 천하의  조직을 마음대로 하고 조정을  유린하고 있는 너야말로 바로 
한의 역적이 아니더냐. 나로  말하면 한실 제일의 신하이다. 하늘을 대신하여 왕
망이나 동탁보다 더한  역적을 징벌하러 왔다. 이는 만민이 소망하는  뜻이니 너
의 목을 바쳐라." 서로 주고받는 외침은 아무래도 원소쪽이 유리했다. 한나라 대
대로 높은 벼슬을 받은 명문의 자손이 하는  말이니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에 조조는 황급히 그의 말을 맞받았다.
  "나는 천자의 어명을 받들어 너를 치러 왔다." 조조가 천자의 어명임을 내세우
자 원소도 지지 않고 조조의 약점을 긁었다.
  "네가 천자의 명을 받았다면 나는 천자께서 내리신 의대 속의 비밀 조서를 받
들고 왔다. 어서 네  목을 내놓아라." 원소가 지난번 동승에게 내린 천자의 비밀 
조서를 들먹이자 조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문원은 나가 당장 저놈의 목을 쳐라!" 이에 동시에 원소도 장합에게 명했다.
  "가서 저 역적놈을 사로잡아라!" 노궁과  포향이 일시에 울리고 화살이 빗발치
는 사이로 장요가 말을 달려갔다. 마주 나온  하북의 용장 장합도 창을 휘두르며 
달려나왔다. 두 사람이 불꽃은 튀기며 부딪기를 50여 합, 그래도 승부는 나지 않
았다. 칼과 창이 부딪힐 때마다 내지르는 기합 소리가 들판에 쩌렁 쩌렁 울렸다. 
장요는 조조가 자랑하는 상장이었다.
  "도대체 저 괴물 같은 장수는 누구인가?" 조조는 두 장수의 솜씨를 보며  감탄
해 마지않았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허저가 참다못해 칼을  휘두르며 달려
나갔다.
  "장합은 게 있거라!" 허저가 달려나오자 원소군에서는 고람이 달려나왔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감히 어디를 나서느냐?" 네 장수가  한
동안 어우러져 찌르고 베는데 이를 지켜 보는 사람들은 숨소리마저 죽일 정도로 
마음을 졸였다.  조조는 네 장수가 서로  싸우고 있는 동안을 틈타  군사를 내어 
기습을 가하기로 결정을 했다. 하후돈과 조흥에게  명해 각기 군사 3천을 거느리
고 원소의 진영으로 쳐들어가도록 했다. 그때 높은  대 위에 서서 싸움의 대세를  
지켜보던 원소군의 심배는  하후돈, 조흥이 아군의 측면을 협객해 오는  것을 보
았다.
  "자, 이때다. 포를 쏘아라!"  심배의 말과 함께 일제히 포문이 열렸다. 이와 함
께 양쪽에 매복해  있던 궁수가 일제히 진격해  오는 적군에게 빗발치듯 쇠뇌를 
퍼부었다. 뿐만 아니라  중군에 매복했던 군수들도 진영 앞으로 공격해  오는 조
조군을 향해 화살을 퍼부었다. 아무리 용맹스럽고  날랜 조조의 군사라지만 뜻하
지 않은 곳에서  빗발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군사를 되돌릴 
사이도 없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화살에 쓰러지는 군사가 수백이었다. 하후돈, 조
흥은 황망히 군사를 돌려 남쪽으로 달아났다.
  "이때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사로잡아라!" 원소가 때를 놓치지 않고 달아나
는 군사를 뒤쫓았다. 이미 선두가 무너진  형세인지라 조조군의 후진을 원소군에
게 이리 저리 짓밟혔다. 조조가 싸움을 독려했으나  원래 원소의 대군에 비해 중
과부적인데다가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군사들이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크게 찢긴 채 조조는 수십 리를 쫓겨  관도에 이르러서야 군사를 수습했다. 그러
는 동안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본디 하남 북방에 있는  관도 땅은 자연
이 주는 요새를 형성하고 있었다. 뒤로는 큰산이 솟아 있고, 그 기슭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30여  리 강의 흐름은 해자  구실을 해 주었다. 강줄기를  건어 관도에  
진을 편 조조는 이 강줄기에다  다시 가시나무 울타리를 둘러 방비를 단단히 했
다. 한편 원소군도  조조군을 추격해 와 관도  근처에 이르러 진을 쳤다. 양군은 
강의 흐름을 사이에 두고 대진하게 되었다.  원소가 관도에 이르렀으나 강줄기가 
가로막고 있어 함부로 공격할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화살 하나  쏘지 못한 채 
대치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심배가 원소에게 다시 계책을 내놓았다.
  "군사 10만을 풀어 조조 진영 앞에  흙을 쌓아올려 언덕을 만들도록 하십시오. 
그 위에서 조조 진영을 내려다보며 활을 쏘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조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강줄기만 건너면  허창을 무너뜨리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심배의 말을 들으니 원소도 이제 조조군을 깨뜨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겼다. 즉시 힘이 세고  날랜 군사들을 뽑아 괭이와 삽으로 흙을  파서 져 나르
게 했다. 원소군은 원래가 많은 군사들이었다. 하루 이틀 지나자 조조 진영 앞쪽
에는 흙더미가 높이 쌓아져 갔다. 원소의 속셈을  알아챈 조조가 군사를 내어 그
들을 무찌르게  했다. 그러나 심배가  조조군이 나오기를 기다려  길목에다 이미 
궁수들을 매복시켜 두었기  때문에 나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자 원
소군은 조조 진영앞에 50여 개의 토산을 만들었다.  그 토산 위에다 다시 망대를 
세워 거기에서 궁노수들이 활과 쇠뇌를 쏠 수  있게 만들었다. 원소군은 한 망대
에 50여 명의  궁노수들을 배치시켜 활과 쇠뇌를 조조군에게 퍼부었다.  높은 곳
으로부터 활과 쇠뇌가 빗발처럼 떨어지니 조조군은 머리에 화살 막는 방패를 쓰
고 몸을 움츠리고  다녔다. 원소군은 딱따기 소리를 신호로 하여  화살을 쏘았는
데 그때마다  조조군은 방패로 몸을  가리고 땅에 엎드렸다.  원소군은 조조군이 
땅에 엎드릴 때마다 놀리며 비웃어댔으나  조조군은 대항 한 번 못해 보고 몸을 
사릴 뿐이었다. 조조군이 이렇게 무력해지자 원소군은 강을 건너갈 준비를 했다. 
밤마다 조조군이 쌓아놓은 가시나무 울타리를 조금씩 잘라 버렸다.
  "관도의 수비도 이 강이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조조도  초조해질 수밖에 없
었다. 그러자 모사 유엽이 계책을 내 놓았다.
  "우선 적의 망대를 부수지 않으면 아군은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
서 발석거를 만들어야 합니다." 조조가 궁금한 듯이 물었다.
  "발석거란 무엇인가?"
  "제 고향에 사는 이름 없는 늙은 대장장이가 고안해 낸 수레인데, 수레의 통에 
큰 돌을 집어 넣고 화약을  터트리면 그 돌이 겨냥했던 곳에 떨어지게 만들었습
니다." 유엽은 발석거의  그림을 그려 보였다. 조조도  이 무기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으므로  기뻐하며 즉시 발석거를 만들도록 하였다. 유엽은  곧 늙
은 대장장이를 부르고 목수, 석공, 화약 만드는 사람들 수천 명을 불러모아 그들
을 독려하며 수백 대의 발석거를 만들었다.  만들어진 발석거는 원소군의 망대를 
겨냥하여 배치되었다. 조조군이 진영  안에 발석거를 숨겨 둔 다음 날이었다. 원
소군의 궁노수들이 일제히 딱따기 소리를 신호로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
러자 조조군도  일제히 발석거에서 큰 돌을  쏘아댔다. 큰 돌은 허공을  날아 강 
건너 토산 위의 망대 위에 떨어졌다. 수많은  포석이 공중에서 쏟아져 망대를 쳤
다. 원소의 궁노수들은  피하지도 못한 채 망대에서 떨어져 죽고  돌덩이에 맞아 
죽으니 그 수가 부지기수였으며, 망대는 풍비박산이 났다. 원래 조조군의 발석거
는 성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였다. 날아오는 돌의  속도가 느리고 눈에 보이기 때
문에 땅 위의 군사들은 피할 수가 있었으나  망대에서는 도망칠 수가 없었다. 원
소군은 발석거에 어찌나 혼이  났던지 '벽력거'라 외치며 겨우 목숨을 건진 자라
도 달아나기에 바빴다.  발석거로 토산의 망대가 무너지고 박살이 나자  그 이후
로는 원소군이 감히  토산에 오르려고 하지 않았다. 토산을 이용한  공격이 수포
로 돌아가자 심배는  궁리 끝에 새로운 방책을 세웠다. 굴자군을  편성한 것이었
다.
  "군사들로 하여금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게 하여  조조의 진영으로 길을 내는 
것입니다. 관도의  강이 양군 사이에 있으나  수심이 얕아 파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원소는 심배의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과연 명안이오. 그렇게  되면 발석거도 무용지물일 뿐이오." 하북군은  이전에 
북평성의 공손찬을 무너뜨릴  때도 이 전법으로 성  안에 들어갔던 사례가 있었
다. 원소는 곧  2만 여의 두더지군을 뽑아 순식간에 한  줄기의 땅굴을 조조군의 
언덕까지 파 나갔다.  그런데 조조군이 원소군의 땅굴을 파는 사실을  알게 되었
다. 굴 속으로  부터 파낸 흙더미가 개미둑처럼 여기저기에 쌓이기  시작했기 때
문이다. 이 흙더미를 본 군사들이 이 사실을 조조에게 알렸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막을  수 있겠는가?" 조조가 유엽에게 묻자 유엽은  가볍
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 수법은 이미 잘 알려진 낡은 것입니다. 우리 편의 진지 앞에 옆으로 긴 해
자를 파놓으면 될  것입니다. 거기다가 관도의 물을 끌어들여 놓으면  굴 속에서 
나오자마자 물 속에 수장될 것입니다." 조조는 유엽의 말대로 곧 긴 해자를 파게  
하고 관도의  물을 끌어들였다. 원소군은  땅굴을 파서 강을  건넜으나 땅속에서 
나오는 군사는  곧바로 해자에 빠지게  되었다. 원소군의 땅굴  작전은 이번에도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헛된 힘만 쏟은 셈이 되고 말았다.  원소군은 달리 공격
할 길을 찾지 못한 채 날만 흘러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8월과 9월이 지나갔
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초를  겪게 되는 것은 조조군이었다. 계속된 진전없는 싸
움으로 인해 지쳐  있는데다 군량과 마초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조
는 몇 번인가 관도에서 물러나  일시 허도로 군사를 물릴까 했으나 결정을 짓지 
못하고 허도로 사자를  보냈다. 사자에게 서신을 주어 순욱에게 의견을  묻기 위
함이었다. '허도로 철수하여  그곳으로 원소를 유인하고자 하는데 그대의 의견은 
어떠한가?" 조조의  글은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내용이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것인지라 순욱 또한 지체하지 않고 회신을 보냈다.  조조는 회신이 오자 급히 뜯
어 읽어 보았다.
  군량 부족으로 고통을  겪으시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지난
날 한 고조가 형양, 성고  땅에서 싸울 때 겪었던 고초보다 덜할 것입니다. 그때 
향우나 유방은 서로 먼저 철수하려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먼저 철수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열세임을  증명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원소가 모든  군력을 관
도로 이끈 것은  명공과 승부를 결정지으려는 뜻에서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군
사를 불린다면 우리가  스스로 열세임을 드러내는 격이 됩니다. 이는  곧 천하의 
향방을 가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원소가 이끄는 무리가  많다 하나 
그는 무리를  이끄는 힘이 미약하고  사람 씀에 어둡습니다.  명공의 신무하심과 
밝은 헤아림으로 어찌 그들을  꺾지 못하겠습니까? 굳게 진을 쳐서 더욱 방비를 
단단히 하여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을 지키면서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는다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입니다. 제가 보건대  머지않아 원소군에게 반드시 의외로운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  계락을 써서 원소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결코 관
도 땅을 그들에게  내어 주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명공께서는  깊이 헤아리시
기 바랍니다.
  조조는 순욱의 글을  읽자 새롭게 의기가 치솟았다. 모든 휘하들은  불러 철수
를 보류하는 대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을  명했다. 조조가 진영을 굳게 지키
면서 철수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원소군은 진을  30여 리 밖으로 물렸다. 조조
는 서황에게 진영  밖의 부근 일대에까지 초병으로  하여금 널리 돌아보게 하였
다. 그러자 서황의 부하  사환이라는 자가 어느 날 한 명의  적을 포로로 사로잡
아 왔다. 서황이 그 포로를 구슬러 원소군의  사정을 물었는데 뜻밖의 자백을 듣
게 되었다. 순욱이 예측한 대로 생각지도 않는 좋은 계기를 얻게 된 셈이었다.
  "원소의 진에서도 사실은  군량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에 대장 
한맹이 각지에서  많은 군량을 모아  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들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서황은  곧 그 사실을 조조에게 보고 
했다. 조조가 그 말을 듣더니 무릎을 쳤다.
  "그 군량이야말로 하늘이  우리를 위해 보내 주신 것이  아니냐!" 순유가 조조
의 말을 거들었다.
  "한맹은 뛰어난 장수가 아니니 기병 수천만 이끌어 가면 능히 그를 무찌를 수 
있습니다. 원소군에게 갈  군량과 마초를 뺏으면 손 하나 쓰지  않고도 원소군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누구를 보냈으면 좋겠는가?"
  "제가 사환을 데리고 갔다 오겠습니다." 서황이 나섰다.  조조는 서황으로 하여
금 거느린 군사를  이끌어 떠나도록 명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적지  부근으로 가
는 길이라  만약을 염려하여 장요와 허저에게  군사 5천을 주어  뒤따르게 했다. 
그만큼 군량을 뺏느냐 못 뺏느냐  하는 것은 이번 싸움의 승패에까지 영향을 미
칠 중대한 일이었다. 그날 밤,  하북의 군량 총책인 한맹은 수천 량의 곡식과 마
초를 싣고 마소를 채찍질해 가며 구비구비 긴  행렬을 재촉하고 있었다. 물론 한
맹은 조조군이  이 사실을 알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알 리가  없었다. 한맹이 
산기슭에 이르자 한  떼의 군마가 산 속에서 달려나와 앞을  가로막았다. 한맹은 
뜻하지 않은 기습에 당황했다. 한맹은 서황을 맞아 일대 혼전을 벌였다. 그럴 동
안 사환은 군사 일부를 거느리고 곡식과 마초를  실은 수레를 덮쳤다. 그런 다음 
곡식과 마초 몇 량만  본진으로 이끌어 가게 했다. 나머지 수레는  모두 불에 지
르게 했다. 그 많은  양을 끌고 가다 언제 달려올지 모르는  원소군에게 화를 당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한맹은 서황을 맞아  싸웠으나 원래부터 서황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서황의 군사는 날랜 자들만 가려 뽑은 정예군이었다. 
발 디딜 곳도  마땅치 않은 산골길인데다 날은  어둡고 마소는 난동하니 서황의 
기습에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곡식과 마초까지 불타자  황급히 말머리
를 돌려 달아났다. 서황은 그를 뒤쫓는 대신 수레를 남기지 않고 불태워 버렸다. 
소와 말은 수레에  불이 불자 울부짖었고, 한맹의 부하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
났다. 수천 대 수레에서 곡식과 마초가 타는 불길은 어두운 밤하늘을 밝혔다. 한
밤중에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오르는 것을 본 원소는 깜짝 놀랐다.
  "저게 웬 불길인가?" 그때 도망쳐온 한맹의 부하들이 달려와 알렸다.
  "적이 기습해 군량과 마초를 불태워 버렸습니다." 원소는 놀랄 겨를도 없이 한
맹의 패퇴에 울화가 치밀었다.
  "장합, 고람은  어디 있느냐?" 원소는 급히  두 장수를 소리쳐 불렀다.  장합과 
고람이 달려왔다.
  "그대들은 군량을 급습한 적을 섬멸하라!"  장합과 고람은 지체하지 않고 군사
를 거느려 군량과 마초가 불타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때 수레를 태우고 본진
으로 돌아가던 서황과 맞부딪쳤다.  장합, 고람은 적이 의외로 적은 군사라는 걸 
알자 서황을 에워싸며  덮쳐 들었다. 서황의 군사는 두 장수의  기습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난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서황의 군사는 점점 몰리기 시작했다. 
서황이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장합, 고람의 뒤쪽에서  홀연 함성
이 크게 일었다. 허저와  장요가 이끄는 군사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렇게 되니  
장합, 고람의 후진들이  개미떼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허저와 장요는 도망치는   
군사들을 베며  장합과 고람을 향해 달여  들었다. 앞과 뒤에서 협공을  받게 된 
장합과 고람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달아날 길을 급히 찾아  말을 달렸다. 서
황은 구원온 허저,  장요와 합류하여 유유히 관도의 하류를 넘어  조조의 진지로 
돌아왔다. 적의 군량과  마초를 불태우고 네 장수가 돌아오자 조조의  기쁨은 말
할 수 없었다.  네 장수에게 상을 내린 후 본영  앞에 또 하나의 진을 구축했다. 
군량을 잃은 원소군이 공격해 올 경우를 대비하여 앞과 뒤에서 호응하기 위함이
었다. 원소는 기다렸던  막대한 양의 군량과 마초를 잃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
았다. 간신히 목숨을 구해 도망온 한맹을 보자 대로하여 소리쳤다.
  "한맹의 목을 쳐 진문에  걸어라!" 그러자 여러 관원들이 간곡히 말렸다. 전군
의 사기를 내세우며 한결같이 그의 구명을 호소하자 원소는 한맹을 일개 군졸로 
강등시키는 대신 그의  목숨만은 살려 두었다. 이런 일이 있자  심배가 원소에게 
고했다.
  "오소(하북성)를 굳게 지키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곳은 군사를 움직이는
데 가장 중요한 양곡을 쌓아 둔 곳입니다. 반드시 굳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오
소와 업도는 하북군의  양곡을 쌓아둔 곡창이었다. 원소도 이미 그  일을 걱정하
고 있었다. 이에 심배에게 명해 업도를 지키게 했다. 이어 오소는 순우경을 대장
으로 하여 약 2만여 군사를 주고 지키게  했다. 그의 부장으로는 목원진, 한거자, 
여위황, 조예를 딸려 보냈는데  그들은 내심 대장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다. 대
장 순우경은 본래 호주가였다. 거기다가 성격이  거칠어 부하들이 그를 두려워했
다. 오소 땅은 주위의 지세가 험했다, 순우경은 오소가 천험의 요새라는 것을 알
고 안심했는지 부하들이  염려한 대로 날마다 술만 마시고 있었다.  원소의 휘하
에는 허유라는 모사가 있었다. 나이는 원소보다  연배였으나 원소에게 높이 중용
되지 못하고  전공도 올리지 못한  불우한 인물이었다. 허유가  원소에게 배척을 
당하는 이유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조조와 동향이라는 점이었다. 원소는 
그를 모사로  쓰기는 했으나 정사에  너무 깊이 관여시키면  위험하다고 여겼다. 
허유가 이전에 한번 술을 마시고  자랑삼아 술김에 지껄인 것이 화가 되어 항상 
백안시당하고 주변에서 서성거릴 뿐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조조와는 잘 아는 사이이지. 고향에서 함께 지낼 때는 날
마다 여자를 좋아하고, 사냥을 좋아하며 동네  술집이란 술집은 무상 출입하였으
니, 글세 불량배들의 대장  같았다고나 할까......, 나도 그와 함께 망나니 짓을 많
이 했다구." 허유가 조조의 임협시절을 들먹이며  너스레를 떨자 원소가 이를 못
마땅히 여긴 것이다.  원소가 이런 눈치를 보이자 사람들도 자연히  그를 피하며 
상대하려 들지 않았다. 그 무렵 조조는 진주에  군량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급히 허도로 사자를 보냈다. 순욱에게 군량을 재촉하는 글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조조의 서신을 받아든 사자가 급히 허도로 말을  몰았다. 이때 허유가 부하를 이
끌고 순시하던 중  그 사자를 생포하게 되었다. 틀림없는 조조의  사자인지라 허
유가 문초를 해 보니 그의 품에서 조조가  순욱에게 보내는 글이 나왔다. 허유는 
이 글을 보자 얼핏 딴 생각이 생겼다.  허유는 원소에게 나아가 양곡을 재촉하는 
조조의 글을 보여 주며 청했다.
  "제게 기미 5천은 인솔하게 해  주십시오." 허유는 이때야말로 평소 원소의 자
신에 대한 불신을 깨끗이 씻고 또 공을 세워 불운에서 벗어날 기회라고 여겼다.
  "그대에게 군사를 준다면 어떻게 할 작정인가?" 원소가 심드렁하게  그의 말에 
대꾸했다.
  "밤을 틈타 산길을 이용해 허창을 치는  것입니다. 지금 조조는 우리와 맞서고 
있으니 허창은 비어 있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주공께서 관도를 공략하신다면 군
량이가 바닥난 조조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항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가 군사를 이끌어 허창을 급습한다면 허창과 관도가 한꺼번에 떨어질 것
입니다." 허유의 말 원소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어리석은 소리. 그런 일이 그리 쉽사리 이루어  질 수 있다면 나를 비롯한 상
장들이 왜 이 고생을 하겠나? 뿐만 아니라  그건 조조를 모르고 하는 말일세. 그
는 꾀가 많은 놈이니 이 글은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계교일지도 모르는 일일세." 
원소가 쾌히 응락하리라  기대했던 허유는 실망이 컸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돌
리는 일이 우선 급했다.
  "허창이 공격을 받는다는 소식을  조조가 듣게 된다면 그는 진을 거두어 허창
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주공께서 그들을 친다면  조조를 반드시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허유가 단념하지 않고 계속하여 간청했으나 원소는 
도중에 자리를 뜨고 말았다.  심배에게서 사자가 왔지 때문이다. 원소가 그 사자
를 만나고 있는 틈을  타 한 시신이 원소에게 귀엣말로 간했다.  시신은 자기 나
름대로 허유를 잘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허유의 말을 결코 믿으시면 아니 됩니다.  말장인 푼수에 탄원을 하다니 주제
넘은 짓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 사나이는 기주에  있을 때부터 항상 행실이 좋지 
않았으며, 농민을  협박하여 뇌물을 옭아 내거나,  금은을 빌려 주색에 빠지거나 
하여 모두 그를 멀리 하였습니다. 주공께서는 그의 말을 헤아려 들어 주십시오." 
시신의 말을 들은 원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소는  허유가 낸 계책의 옳고 그름
을 헤아리기 전에 우선 화부터 냈다.
  "필부놈이 감히 그따위 짓을 하고도 계책을 내놓다니......"  원소는 다시 허유가 
있는 자리로 돌아와 오물을 보는 듯한 눈으로 그를 내려보며 꾸짖었다.
  "너 같은 탐관오리가  감히 내게 얼굴을 들고  계책을 논한다는 말이냐? 너는 
사사로운 욕심이  많은데다 젊었을 때는  조조와 친구였다. 필시  그에게 뇌물을 
받고 그놈의 앞잡이  노릇을 하여 우리 군사를  해치려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이
냐? 당장 네놈의 목을  벨 것이나 네 머리를 잠시 목에다 맡겨  둔다. 그러니 썩 
물러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 조조와 싸우고 있는  원소로서는 한 번
쯤 허유의 말을 되씹어  볼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 시신의  말을 듣고는 허유
가 한 말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그의 지난 행실만을 꾸짖었다.  이 기회에 공을 
세워 보려고 잔뜩  기대하고 있던 허유였다. 그러나 원소에게 질책만  당하고 물
러 나오자 분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어 탄식했다.
  "옳은 말은 귀에 거슬린다더니 과연 그  말이 맞는구나. 저런 애송이하고 어찌 
큰일을 꾀할 수 있으랴!" 허유는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자기의 목에다 갖다 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놀라 칼을 빼앗으며 말했다.
  "공은 어찌하여 이토록 목숨을 가볍게 여기시오? 원소는 바른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결국 조조에게 패망하고 말 것이오. 공은  조조와는 잘 아는 사이이니 그
리로 가 보시오. 어찌하여 어두운 곳에  머물러 밝은 곳을 찾지 않습니까?" 허유
와 가까운 사람이 그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한 말이었다. 그러나 원소의 진중
에서 그 같은 말이 나왔으니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허유는 그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내가 본때를  보여 주리라. 머지않아 그가 후회하도록 
만들 테다.' 허유는 순간적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슬그머니 진중을 빠져 나와 조
조의 진으로 향했다. 불과 대여섯의 부하를 이끌고  어둠을 틈타 관도의 얕은 내
를 건너 조조의 진영으로  향한 허유였다. 허유는 내를 건넌 지  얼마 되지 않아 
매복해 있던 조조의  군사에게 붙들리는 몸이 되고 말았다. 허유가  조조의 군사
에게 말했다.
  "나는 조 숭상의 옛  친구다. 남양의 허유라고 하면 기억하리라." 그때  조조는 
본진에서 옷을 벗고  막 쉬려던 참이었다. 군사가 달려와 허유가  찾아온 사실을 
전했다."
  "남양의 허유라고 하는 분이 숭상님을 찾아왔습니다."
  "무엇이? 허유가?" 조조는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들여보내도
록 했다.  조조가 그를 보니 소년  시절과는 달리 많이 변한  모습이었으나 분명 
허유가 틀림없었다.
  "오오, 자넨가? 그대는 원소에게서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조조가 허유를 반기자  그는 땅에 엎드려 절했다. 조조는 황망
히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자네와 나는 어릴  적 친구가 아닌가? 그러니  의례적인 인사는 그만두게나." 
그러자 허유가 송구해하며 말했다.
  "그대는 한의 숭상이요, 나는 아직 벼슬길에도 나서지 못한 흰 옷 입은 필부일 
뿐이오." 허유의 말에 조조는 그의 손바닥까지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
  "친구 사이에 관작의 높고 낮음을  들먹이다니 자네답지 않으이." 원소의 냉대 
속에 지내온 허유는  조조의 흉허물 없는 따뜻한 영접에 감격했다.  허유는 더욱 
송구해하며 말했다.
  "나는 반생을 헛되이 살아왔소. 주인을 식별하는  눈이 없어 원소 같은 놈에게 
몸을 굽히며 지내왔소.  충언을 간해도 듣지 않고 계책을 말해도  헤아림이 없었
소. 이제 그에게 쫓겨난  후 이렇게 찾아와 면목이 없소만 나를  불쌍히 여겨 거
두어 주시오." 바로 조조가 바라던 말이었다. 조조가 여전히 얼굴 가득히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자원이 이렇게 찾아왔으니 내 어찌 반갑지  않겠나. 자네는 그 동안 원소에게 
있었으니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을 터인즉 그를 무너뜨릴 계책이 있으면 말해 주
게." 조조가 허유에게 물었다. 그러나 허유는 조조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엉
뚱한 말을 했다.
  "사실 내가 원소에게 권한 것은 내가 기병 5천을 이끌어 허도를 치는 동안 원
소로 하여금 관도를  치라는 것이었소. 그런데 원소는 들어주지 않았을  뿐 아니
라 나에게 필부의 주제에 계책을 낸다고 내쫓았소." 허유의 말에 조조가 크게 놀
라며 말했다.
  "만약 원소가 자네의 계책을  들어 주었다면 나는 반드시 결딴나고 말았을 걸
세.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었네. 그런데 자네는 지금  나의 진에 와서 그 반대로 
그를 무찔러야 한다면 어떤 계책을 세우겠나?" 조조의 집요한 물음에 허유는 다
시 엉뚱한 소리만 했다.
  "그 계략을 세우기  전에 먼저 묻고 싶은 말이 있소.  도대체 숭상의 진지에는 
지금 어느 정도의 군량이 확보되어 있소?"
  "한 1년은 지탱할  만하네." 조조가 대답하자 허유는  얼굴을 찡그리며 가만히 
조조를 노려보았다.
  "거짓말하지 마시오. 모처럼 내가 옛 정을  되살려 참된 말을 하려는데 숭상은 
오히려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소? 나를 속이려는 사람에게  어찌 참을 말할 수 
있겠소?" 허유가 그렇게 말하자 조조는 뜨끔했다. 조조가 얼른 바꾸어 말했다.
  "반 년 정도일세." 허유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한탄했다.
  "내가 목숨을 걸고 옛 친구를 찾았는데 이렇듯 나를 속이니 내가 여기서 무엇
을 바라겠소?" 조조가 그의 소매를 붙들었다.
  "아닐세. 지금 한 말을  농담일세. 정직하게 말하면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
다네." 허유는 여전히 빈정대듯 웃으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과연 그렇군.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맹덕은 간옹이요, 약삭빠른 귀재라고   
하더니 소문대로군. 숭상은  끝내 나를 믿지 못한다는 말인가?"  허유의 말에 조
조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른 그의 귀에 입을 대고 나직히 속삭였다.
  "하지만 자네는  '병불염사(군사에 있어서는 간사한 꾀를  꺼리지 아니함)'라는 
말을 듣지 못했나. 실은 군량이 한 달치밖에 남아 있지 않네." 그러자 허유는 분
연히 조조의 입에서 귀를 떼어 내며 성난 기색으로 언성을 높여 말했다.
  "그만두시오. 숭상의 진영에는 이미 한 톨의 군량도 없지 않소. 말을 잡아먹고 
풀을 뜯어먹는 것을 어찌 군량이라 할 수 있겠소?" 조조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자네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가?" 조조가 얼굴빛이 달리하며 묻자 
허유는 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봉함이  뜯긴 서한을 꺼내 조조의 코앞에 
내밀었다.
  "이것은 누가 쓴  것이오?" 허유가 조조에게 되물었다.  조조가 보니 틀림없이 
자기가 순욱에게 군량의 궁박함을 알리며 재촉한 그 서한이었다.
  "아니, 어떻게 나의 서한을 자네가  갖고 있는가?" 조조는 어이가 없는 가운데
서도 그제야 허유가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유는 자신의 
손으로 밀사를  생포한 일을  소상히 얘기해 주었다.  조조는 내심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속에 품고 있던 한가닥 경계심을 풀고 허유의 손을 잡으며 말했
다.
  "자원이 옛 친구를 잊지 않고 찾아왔는데 서운하게 대했다면 너그러이  용서하
게. 자네가 나를 찾아온 데에는  필시 무엇인가 깨우쳐 줄 곳이 있어 왔을 걸세. 
부디 가르침을 주기 바라네." 조조가 목소리를  가다듬어 정중히 묻자 허유는 그
제야 정색을 하고 주인을 섬기는 신하의 예로 입을 열었다.
  "명공께서는 적의 군대에 비해서 적은 군사로 맞서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군량
마저 바닥이 났는데  어찌하여 속전속결의 방도를 찾지 않으십니까? 지구전으로 
간다면 패배를 자초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게 한  계책이 있는데 명공께서 이 계
책을 쓰면 원소군은  싸우기도 전에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다만  명공께서 이 
계책을 들어 주실지 그것이 걱정될 따름입니다."  조조가 허유의 말에 반색을 하
며 물었다.
  "자원이 내는 계책이라면 내 어찌 듣지 않겠나? 어서 말해 보게나."
  "이곳에서 40여 리 떨어진 곳에 오소라는  요새가 있습니다. 오소는 곧 원소의 
군대를 먹여 살리는 양곡을 비축해 둔 창고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을 지
키는 순우경이라는 자가 술을 좋아하여 부하들을 잘 단속하지 못하니 방비가 허
술할 것이외다. 불시에 기습을 가하면 능히 무너뜨리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 오소에 접근하려면 적지를 돌파하여야 하는데 어떻게 그곳을  지나
갈 수 있다는 말인가?"
  "명공께서는 계교를 써야 합니다. 먼저 날래고  용맹스런 군사를 뽑아 모두 북
군으로 위장시키고 관문을 지날 때마다 원소의 직속 장군이 장기의 부하로 사칭
하는 것입니다.  군량 수비에 파견되어  오소로 가는 길이라고  대답하면 그들은 
별로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소의 성 안에 들어가 순우경의  군사를 격퇴시
킨 뒤 군량미와 무기를 태워  버리면 원소의 군대는 필경 자중지란을 일으킬 것
입니다." 조조는 그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막다른 지경에 이르른 조조는 
허유의 계책을 받아들여 생사를 걸고 오소 공격을 감행하기로 작정했다.
  "오소를 소탕해 버리면 원소의 군대는  무너진 것과 다름없다." 조조는 이렇게 
말하며 허유를 후히 대접하여 진영에 머물게 했다.

  용솟음치는 황하의 물결
  조조는 군량을 보관하고 있던 오소를 공격하여 순우경을 무찌르고, 장합, 고람
마저도 대패시킨다. 한편  원소의 우유부단함으로 원소군의 내부는  모함과 시기
로 얼룩진다. 조조는 여세를  몰아 원소를 공략하고, 원소는 겨우 목숨만을 건진 
채 기주성으로 달아난다.
  다음 날, 조조는 즉각 허유의 계책을 좇아 오소를 칠 준비를 시작했다. 하북군
의 깃발을 만들고, 군사의 복장과  장비, 말 위의 안장 등도 모두 하북군의 것으
로 만들었다.  이윽고 정예병 5천의 마보군을  하북의 군대로 위장한  후 출진을 
서둘렀다. 그러나 장요는 조조가 친히 그 군사를 이끄는 것을 말렸다.
  "만약 허유가 원서의 첩자라면 우리의 5천 군사는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원소가 양곡을 쌓아  둔 오소의 방비를 허술히  할 까닭이 
없습니다. 숭상께서 친히 줄전하시는 것은 위험천만입니다."
  "걱정 마시오. 하유가 우리에게 온 것은  실로 하늘이 조조에게 큰일을 이루게 
하시려는 뜻이네. 만일 주저하다가 천재일우의 이  호기를 놓친다면 하늘은 조조
를 어리석게 여겨 버리실 것이네. 이미 우리의  군량이 바닥났으니 더 이상 망설
일 여유가  없네. 이 마당에 허유의  권고를 듣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면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격이네.  또 허유가 우리를 속일 계획이라면 어찌  우리 진중에 
머물겠나? 뿐만 아니라 나 또한 전부터 오소를 공격할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
네. 오늘 우리는 해야 할 일을 마땅히 시행하는 것이니 그대는 너무 걱정 말게." 
조조가 분명한 어조로 장요를 깨우쳤다. 이것은  원소와는 실로 극명하게 대비되
는 그의 결단이 아닐  수 없었다. 그에게는 군사를 거느리는 장수로서, 주군으로
서 절대로 필요한  명철한 헤아림과 직관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도저히 용
퇴의 결정이 서지  않는 모험도 조조는 한순간에  판단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빨랐다. 장요는  조조의 말을 듣고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으나  또 한 
가지의 걱정을 덧붙였다.
  "우리 진영의 빈틈을 원소가 노릴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방비도 가벼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장요의 말에 조조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미 그에 대해서는 생각해 두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조조는 출진한 이
후의 본진을 지킬 군사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먼저 순유와 사후에게는 조홍, 허
유와 함께 본진을  지키도록 하고 하후돈, 하후연 형제는 군사를  거느려 왼쪽에 
매복케 했다. 그런 다음 조인, 이전은 오른쪽에 매복하여 적의 내습에 대비케 했
다. 그 다음 조조 스스로가 이끈 군사는  장요, 허저를 선봉으로 삼고 서황, 우금
에게는 후진을  맡게 한 후 스스로는  여러 장수와 함께 중군이  되어 진군했다. 
원소군으로 위장한 군사  5천은 모두 마른풀과 장작을 짊어졌다.  순사들을 모두 
함매(소리를 낼 수 없도록 입에  무는 도구)를 했으며, 말도 입에 재갈을 무리고 
말굽은 천으로 싸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다. 그날 황혼  무렵부터 5천의 군사
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관도를 떠나  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그날  밤은 하늘의 
별이 유난히 총총하게  빛나고 있었다. 때는 건안  5년 10월 중순경이었다. 이날 
밤 주군 원소에게 간언했다가 옥에  갇히게 된 저수도 옥중에서 유난히 밝게 빛
나는 별을 보고 있었다.
  "아아, 이건 심상치 않은 일이다." 저수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리자 옥사장이 궁
금히 여겨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나 저수는  그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옥사장에
게 청했다.
  "나를 잠시 밖으로 나가도록 해 주게." 옥사장은 저수의 인품을 우러르고 있던 
터였으며, 또 밖으로 잠시 내보낸다고 해도 그의  목에는 큰칼이 씌워져 있는 지
라 안심하고 옥문을 열어 주었다.
  "오늘 밤은 별빛이 유난히 밝은데, 지금 천문을 보니 태백성이 거꾸로 흘러 그
흐름이 북두칠성과 견우성  사이로 행하고 있다. 이는  큰 화가 있을 징조이다." 
저수가 옥사장에게  이렇게 말하며 다시  주군 원소를 만나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때 원소는 술에  취해 있었다. 옥사장으로부터 저수가 은밀히 아뢸  말이 있다
는 전갈을 받자 원소는 그를 불러오게 했다.
  "무슨 일인가?" 원소가 저수를 보자  퉁명스런 어조로 물었다. 저수가 절을 한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방금 천문을 보니 오늘 저녁부터 새벽녘 사이에 반드시 적의 기습이 있을 징
조가 보여  이에 주공을 뵙자고  청했습니다. 짐작하건대 우리의  군량과 마초를 
쌓아 둔  오소는 지략 있는 장수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그곳을  노릴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장수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어 산간의 통로를 지키며 대비케 
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이 점을 실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원소는 그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미 저수를  자신의 명을 거스른 반역자로 여겼음
인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컥 화부터 냈다.
  "옥중에 있는 처지에 아직도  함부로 입을 놀려 군사들을 동요시키려 하는가? 
당장 물러가라!" 원소는 그를 데리고 온 옥사장에게도 소리쳤다.
  "내가 너에게 죄인을 가두어  두라 하였거늘 어찌하여 저놈을 함부로 풀어 놓
았느냐?" 원소는 좌우에게  명하여 옥사장의 목을 베게 했다.  저수는 다시 옥으
로 끌려 가면서 눈물을 흘리며 한탄했다.
  "이젠 보이는 구나. 우리의 멸망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이 한 몸 어느 하
늘 아래서 한줌 흙이  될 것인가......" 원소의 진중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조조군은 밤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행군하는 도중 원소의 진지  하나를 지나
가게 되었다.
  "멈춰라. 어디서 오는 군사냐?" 원소의 군사들이 물었다.
  "우리는 장기 장군의 군사들로서  주군의 명을 받들어 오소를 지키러 가는 증
원군이다." 원소군이 그들을 살피니 모두 자기와 같은 복장에다 군가까지 같으니 
의심하지 않고 보내 주었다.  오소까지 가는 데는 몇 개의 원소  진영이 더 있었
으나 모두 이런 식으로 수월하게 통과할 수가  있었다. 오소 땅에 이르렀을 때는 
밤이 깊어 사경이 되어 있었다. 오소의 수비대장  순우경은 그날 밤도 마을의 처
녀들을 납치해 와서 부하들과 함께 밤이 깊을  때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조조
와 군사들은 이때 등에 지고  온 섶다발과 장작에 불을 붙인 뒤 북과 함성을 울
리며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섶에 불을 당긴 군사들을  군량과 마초를 쌓아 둔 창
고에 불을 질렀다.  순우경은 요란한 함성과 함께 사방에서 불길이  비치자 놀라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웬일로 이렇게 소란스러우냐?" 그때  낯 모를 군사들이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조조군이 던진 쇠갈고리가  순우경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쇠갈고리가 순우경을 
낚아채자 그는 방바닥에  나둥그라지고 말았다. 조조군이 순우경을  포박하니 그
는 칼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사로집히는 몸이 되었다.  순우경의 졸개들은 불더
미 사이로  우왕좌왕하다 조조군에게 찔리거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살아 있는 
자들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순우경의  부장이었던 목원진과 
조예는 그때 다른  곳에서 군량을 호송하던 중이었다. 자기 진영이  불길에 휩싸
여 타오르고  있는 것을 보자 황급히  달려왔다. 이를 본 군사  하나가 조조에게 
알렸다.
  "적의 구원병이  오고 있습니다." 조조는 군사들에게  동요하지 않도록 독려했
다.
  "모든 장수들은 조금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말라. 적의 구원병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려라!" 오소는 이제 사방이 완전히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검은 연기
와 불꽃이 튕기는 가운데  북 소리, 함성 소리가 요란하고 그  사이로 화살이 날
았다. 오소의 군사들이  지리멸렬 되어 갈 즈음 이윽고 목원진과  조예가 이르렀
다. 조조가 말머리를 돌려  그들을 맞으니 군사들의 일부가 조조를 뒤따랐다. 조
조군은 원래가 날랜  군사들로만 이루어진 정예병이었다. 목원진과  조예의 호송 
부대들이 그들을 당해 날  리 없었다. 두 장수는 조조군의 칼날  아래 힘없이 목
이 떨어지고 말았다. 조조는  오소가 완전히 잿더미로 변한 걸 본  후 군사를 수
습했다. 이어  사로집힌 순우경이 조조 앞으로  끌려왔다. 조조는 순우경의 귀와 
코와 손가락을 모두 자른  뒤 말 위에 묶어 원소의 진영으로  보냈다. 중요한 군
량을 지키는 장수가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결과로  겪게 되는 굴욕적인 수모이리
라. 그때 원소의 진영은 평온한 잠에 취해 있었다.
  "북쪽 하늘에 불길이 보인다!"  초병의 놀란 고함 소리가 일었고, 이어 진중의 
여기저기서는 잠에서 깬  군사들의 놀란 고함 소리로 소란했다. 그  소리에 잠에
서 깬 원소가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곳은 오소가 아니냐, 이게 이찌  된 일이냐?" 원소는 황급히 모사와 장수를 
불러들여 오소를 구할 방책을 몰었다.
  "제가 고람과 함께 가겠습니다." 장함이 나섰다. 그러나  곽도가 일어나 오소로 
가는 것을 반대했다.
  "아니 됩니다. 조조는  몸소 오소를 습격하러 갔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조조의 본진이 텅텅 비어 있을 것입니다.  군사를 내어 오히려 조조의 본
진을 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본진이 위급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조조는 반드
시 급히 군사를 돌리게 될 것이니 그러면  오소도 안전할 것입니다. 이는 손빈이 
한나라를 구하기 위해 위나라를 포위했던 바로  그 책략입니다." 곽도의 말에 장
합도 지지않고 그 말을 반박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조조는  꾀가 많은 자입니다. 반드시 본진의 방비를  단단히 
해 두었을 것입니다.  만약 적의 본진을 쳐서 일거에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오소
도 조조에게 빼앗기게 되고 우리 또한 모두 사로잡힐 것입니다." 장합의 말에 곽
도는 끝까지 자기 의견을 고집했다.
  "조조는 지금 군량을 빼앗은 일에 정신이  팔려 있을 것입니다. 본진에 군사를 
남겨 두고 갔을 리가 없습니다." 치솟은  불길을 보면서 원소의 진영에서는 이런  
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원소가 두 사람의 의견을 들으니 모두 맞는 말 같았다. 
명쾌한 결단을 내릴 수가  없게 되자 장합, 곽도 두 사람의  말에 모두 따르기로 
하고 명을 내렸다.
  "장합과 고람은 각각 5천기를 이끌고 관도의 본진을 쳐라. 또 오소에는 군사 1
만을 거느리고 장기가  출전토록 하라!" 장기는 곧  군사를 이끌고 말을 달렸다. 
오소의 하늘에는 아직도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장기가 말을 달려 오소로 향하
고 있을 때 조조도 이미 원소의 구원군을  걱정하고 있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야 하므로 원소군을 매복을 했거나  아니면 돌아가는 길을 지키고 있을 것이 분
명했다. 조조는 순우경의  부하들이 버리고 간 적의 복장과 기치를  거두어 부하
들에게 입히고 그  기치를 들게 했다. 순우경의 졸개들로 꾸민  군사들을 앞세워 
보내고 조조는  그 뒤를  따랐다. 장기가 구원군을  거느려 어느 산기슭의  좁은  
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맞은편에  1백기, 50기로 무리를 이룬 군사들이 다가왔
다.
  "누구냐, 너희들은?" 장기가 말을 세우고 그들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 중의 졸
개 하나가 대답했다.
  "순우경 장군의 부하들입니다. 오소를 지키고 있다가 저렇게 불바다가 되어 간
신히 목숨을 건져 도망쳐 나오는 길입니다."  장기가 그들을 보니 모두 하북군의 
복장임에 틀림없었고  들고 있는 기치도  그랬다. 장기는 그들을  의심하지 않고 
지나쳤다. 패잔병을 본 장기의  마음은 더욱 급했다. 장기가 말을 몰아가는데 홀
연 그 패잔병의 무리  속에서 장기를 뒤쫓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장요와 허
저였다.
  "장기는 꼼짝 말고 게 섰거라!" 적의  대장을 확인한 장요와 허저가 단숨에 내
달아 왔다. 장기가  놀라 그들을 향해 머리는  돌리는 순간, 그의 머리는 장요가 
내리치는 칼에 맞아 아래로 나뒹굴었다. 때를  같이하여 패잔병으로 위장한 조조
군이 일제히 칼과  창을 쳐들어 장기의 졸개들을 찍고 베었다.  뒤따르던 조조군
도 원소군을 향해 덮쳐 들었다. 창과 칼이  어지러이 난무하는 가운데 장기의 군
사 1만은 순식간에 섬멸되고 말았다. 조조는  이에 그치지 않고 하북군 복장으로 
변장한 졸개 하나를 원소의 진에 보내어 거짓으로 고하게 했다.
  "장기 장군께서는 이미 오소에서 조조군을  무찔렀습니다. 조조는 나머지 군사
를 이끌고 패주하였습니다." 원소는 그 말을 듣자 안심하고 더 이상 오소로는 구
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그 대신 관도 쪽에만 응원군을 보냈다. 한편 관도로 군사
를 이끌고 간 장합과 고람이 조조 진영으로  밀고 들어갔다. 적이 오기만을 기다
렸던 조조군은 그들이 진영으로까지  밀고 들어오자 왼쪽에 있던 하후돈이 내달
아 그들을 맞았다. 장합, 고람이 하후돈,  하후연을 공격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오
른쪽에서 조인이 달려나왔다. 장합, 고람이 조조의 본진을 휩쓸기 위해 중군으로 
내닫자 기다렸다는 듯이 조흥의 군사들이 일제히  내달으며 그들을 맞았다. 그렇
게 되니 삼면에서 에워싼 조조군에  의해 그들은 이리 찢기고 저리 찢기는 형세
가 되었다. 때마침  원소가 뒤이은 응원군을 보내와 잠시 전세를  가다듬기는 했
으나 이미 장기를  섬멸시킨 조조 군사에 의해 에워싸인 장합과  고람이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그들이니라 어지러운  난전을 뚫고 포위망을 벗어나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오소 땅의 조조군을  무찔렀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하고 있던 
원소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놀란 것도 그때였다. 오소 땅에서  패한 순우경
의 진짜 졸개들이 코와 귀를  베이고 손가락이 잘린 순우경과 함께 원소의 본진
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원소는 망연자실한 가운데 물었다.
  "어쩌다가 오소를  빼앗겼느냐?" 순우경이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사이  졸개 
하나가 대신해 대답했다.
  "장군이 잔뜩 술에 취해 있다가  갑자기 밀어닥친 적과 싸움 한 번 제대로 못
해 보고 패하고 말았습니다." 원소는 그 말을  듣자 꾸짖은 사이도 없이 그의 목
을 치고 말았다. 그때  관도 땅에서 패한 패전병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패잔병들
이 원소에게 고했다.
  "조조의 본진으로 쳐들어갈 때  적은 이미 삼면에 군사들을 숨겨 두고 있었습
니다. 때마침 응원군이  이르러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다시 조조가  군사를 이끌
고 달려왔습니다. 장합,  고람 장군은 겨우 몸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원소가 그 
말을 듣자 더욱 불같이  화를 내었다. 순우경의 목이 잘린 것을  본 원소의 장수
들은 모두 불안에 떨고 있던 참이었다.  '언제 나도 저런 신세가 될지......' 패잔병
들이 관도에서의 싸움에서도  패한 걸 알리자 곽도는 겁이 났다.  자신의 계책이 
어긋났으므로 장합과 고람이 돌아와 모든 걸 밝히고 자신을 추궁하면 어떤 화가  
미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곽도는 보신책을 짜내기에 급급했다. 곽도가 황망히 원
소에게 말했다.
  "장합, 고람은 주공께서 싸움에 지신 걸 보고 마음 속으로 기뻐하고 있을지 모
릅니다." 곽도의 말에 원소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장합, 고람이 관도에서 참패하였다고 하지만 원래 그들은 조조에게 투항할 생
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힘써 싸우겠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그
렇게 적은 숫자의 적군에게 패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들이 이번 싸움
에 패한 걸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곽도의 말을 들은 원소는 앞뒤 가려볼 생각
도 하지 않고 벌컥  화부터 냈다. 이미 그의 마음은 평정을  잃고 있었던 것이었
다.
  "오냐. 돌아오기만 해봐라.  내 그들의 죄를 문초하리라."  원소의 노한 음성을 
들은 곽도는 은밀히 사람을 보내  장합과 고함을 찾아보게 하여 이 일을 알리도
록 했다. 장합과 고람이 퇴각해 오던 중 곽도가 보낸 사람을 만났다.
  "잠시 본진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미루십시오.  주공께서는 두 장군님을 참수하
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뜻밖의 말을 듣고 두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데 이번에는 원소가 보낸 전령이 왔다.
  "주공께서는 두 분에게 급히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고람은 미
리 들은 말이 있는 터라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주공께서 우리들을 급히  부르시는 까닭은 무엇이냐?" 고람의 물음에  전령은 
주저하며 말했다.
  "글쎄요...... 제가 어찌 까닭을 알겠습니까?" 고람은 돌연 칼을  뽑아 전령의 목
을 쳤다. 깜짝 놀란 장합이 물었다.
  "어쩌자고 주군의 사자를 베시오?" 그 물음에 고람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가 어찌 원소에게  목을 바쳐야 하오. 원소는 옳은 말과  그른 말을 가릴 
줄도 모르니 반드시 그가 조조에게 넘어가는 날이  올 것이오. 시대의 흐름은 이
제 하북에서 떠났소.  이 기회에 차라리 조조에게  투항하는 것이 나을 것이오." 
장합도 고함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소는 모함하는 말만  듣고 우리를 죽이려 드니......,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무엇을 주저하겠소." 장합과 고람은 그날로 거느린 군마를 거느리고 조조의 군문
으로 들어갔다. 하후돈이 그들을 의심하여 조조에게 아뢰었다.
  "그들이 투항했다고는 하나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기뻐하며 그
들을 맞았다.
  "내가 두 사람을 두텁게  대한다면 비록 딴마음을 지녔더라도 나를 버리지 않
을 것이다." 조조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영문을 활짝 열어   
두 사람을 맞아들였다. 장합과 고람은 무기를 버리고  갑옷을 벗은 뒤에 조조 앞
에 엎드렸다.
  "만약 원소가 그대들의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처럼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이
제 두  장군이 나를 찾은 것은  지난날 은나라 주왕의 횡포함에  미자가 떠났고, 
또 초나라를 떠난 한신이 한에 투항한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오." 조조의 말에 
두 사람은 감격하며 절을  올렸다. 이에 조조는 장합에게는 편장군 도정후에, 고
람에게는 편장군 동래후에 봉했다. 조조 진영에서  장합과 고람을 맞아들이고 있
을 즈음 원소군의 사기는 말이 아니게 땅에  떨어져 있었다. 허유에 이어 장합과 
고람이 조조 진영으로 투항해  갔고, 거기다가 오소 땅의 군량과 마초, 무기까지 
잃었으니 원소군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로  조조군의 사기는 
드높았다. 오소 땅을  급습한 이후 군량난도 타개되었으므로  조조군의 내부에서
는 원소군을 단번에  쳐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일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자기가 
낸 계책으로 조조군이 큰 성과를 거두에 되자 허유는 조조를 재촉했다.
  "여기서 한숨 놓아서는 안  됩니다. 여세를 몰아 원소를 쳐야 합니다."  장합과 
고람이 조조에게 공을 세워 후히  대해 준 것에 보답하려고 선봉을 맞겠다고 자
청했다. 원소군의 마음에  동요가 일고 있을 때 조조군은 이렇듯  기세가 오르고 
있었다. 조조가 그  기세를 기뻐하며 장합과 고람에게 군사를 주어  원소 진영을 
공격하게 했다. 장합과 고람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원소 쪽이 아무래도 대군
이라 야습을 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밤 삼경이  되자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어 원소의 본진을 급습했다. 장합, 고람은 원소군의 사정을 잘 알
고 있는 처지였다.  방비가 허술한 곳으로 군사를 내몰아 급습하자  원소군은 대
혼란을 일으켰다. 원소군이  아무리 대군이라 하나 싸울 때마다 패해  이미 사기
가 움츠러든 군사들이었다. 거기다가 한밤중에 당한  기습이고 보니 원소군은 제
대로 싸우지도 못한 채 죽고 상하는 자가  많았다. 장합과 고람이 새벽녘이 되어 
재빨리 군사를 수습해  가자 원소군은 태반으로 줄어 있었다. 그러나  하북의 군
사는 아직도 조조군에 비해서는 대군이었다. 원소의  본진을 손아귀에 넣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조조가 여러 장수와 모사를 불러  의논을 하고 있는데 순유가 계
책을 내었다.
  "적의 세력을 삼분시킨 후에 원소를 치는  책략을 쓰도록 하십시오. 즉 아군의 
군사를 분산시키는 것입니다. 즉, 여양(하남성 요현 동남),  업도(하북성), 산조(하
북성)의 세 방면으로 나누어 놓는 것입니다. 그런 후 여양의 군사는 원소의 퇴로
를 끊기 위한 것이라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면 원소는 반드시 군사를 나누어 배
치할 것입니다. 그때 원소의 본진을 치면 어렵지  않게 무너뜨릴 수가 있을 것입
니다. 순유의 말을 듣고 조조가 감탄했다.
  "실로 뛰어난 계책이오." 조조는 순유의 계책대로 세 길로 군사 일부를 보내며 
거짓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그러자 원소에게도 이 소문이 들려 왔다. 원소가 알
아보니 조조의 군사들은 이미  업도, 여양, 산조 방면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다.
  "조조가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업군을 치면서 이와 함께 여양 땅을 공격한
다는 소문입니다. 이미 군사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조조가 또 잔꾀를 부리기 시작한 모양이군." 조조의 군사가 얼마 되지 않음을 
알고 가볍게 여기다  매번 기습을 당해 낭패를 보았던 원소였다.  군사들이 전해 
온 그 말을  듣고 내심 당황해 하면  군사를 배치했다. 대장 신명에게  5만 기를  
주어 여양으로 향하게  하고, 그의 셋째 아들 원상에게도 5만을  주어 업도로 급
파했다. 또 산조에도 대군을 보내 지키게 했다. 이렇게 군사를 나누니 그렇지 않
아도 싸움에서 많은 군사를 잃은 뒤라 본진은 눈에 띄게 허술해졌다. '과연 계책
대로 들어맞았군.' 조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조조는 세 군데에 나누어 놓은 
각 지역의 장수들에게  은밀히 사자를 보냈다. 날짜와 시각을 정해  놓고 그때를 
기다려 일제히 원소의 본진으로 쳐들어가라는 명을  내렸다. 각 지역의 군사들과 
약속한 때가 되자  조조는 원소의 본진 급습했다. 조조는 군대를  8대로 나눈 후 
제각각의 길로 공격해 들어가게 했다. 원래  조조의 군사들이 날래고 용맹스럽기
가 원소군보다 몇 배 위였다. 원소군이 대군이  아니고 거의 비슷한 수효라면 이
미 싸움의 승패는 판가름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가 원소군의 사기마저 
조조군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최후의 일격을  가해 원소군을 송두리째 사로잡
겠다는 조조군의 기세 앞에 원소군은  제대로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뿔뿔이 흩
어졌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졸개들은 무기를 던지고 목숨을 애걸했다. 조조군의 
위세 앞에 황하는  춤추고 태산이 무너져 내렸다. 원소는 조조군의  기습에 미쳐 
갑옷을 꿰입을 여유도 없었다. 복건과 홀옷만을 입은 채 황망히 말 위에 올랐다. 
그의 뒤에는 아들 원상과 약간의 졸개들이  뒤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허저, 서황, 
우금 등의 장수들이  원소의 뒤를 추격했으나 황하 유역에서 놓치고  말았다. 한
두 줄기의 하류라면 짐작이 가지만  광막한 들판에 뻗어 있는 많은 물줄기 중에 
어느 줄기를 건넜는지  알 수가 없었다. 70만 대군을 자랑하던  하북군은 군세만 
믿고 관도  땅에 왔으나 원소는 겨우  목숨만을 부지한 채 강을  건너간 것이다. 
조조에게 이날의 전과는 예상외로 큰 것이었다.  이날 전투에서 죽은 원소군은 8
만이나 되었다. 피가 내를  붉게 물들였고 시체가 산을 만들었다. 원소의 본지에
는 그가 버리고 간 식량, 금은보화와 서책이며  문서와 수레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조조는  금은보화와 비단등을 모두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그들 
전리품 중에는 원소가  사용하던 것으로 보이는 문서나  문구를 넣어 두는 궤도 
있었다. 조조는 열어보니 여러  다발의 서한이 나왔다. 그중에는 허도에 있는 조
조 휘하의 부하와 이번에 거느리고 온 졸개들 중에도 몇몇이 그 동안 몰래 원소
와 내통한 서한들도 있었다. 조조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이 서한을  근거로 차제에 그들을 모조리 가
려 내어 군율에  따라 처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나라를 배반한 역모 
죄를 저지른 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조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원소의 세력이 한창  강성할 때 나도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다. 하물
며 다른 사람들이야 뒷일을 알 수 없는 불안한 마음에 어찌 동요가 일어나지 않
겠느냐?" 조조는 그렇게  말하며 그 서한들을 모두 불태우게  했다. 좌우 사람들
은 조조의 바다보다  넓은 도량에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원소가  패하여 달아난 
뒤, 옥에 갇혀 있던 저수는  미처 달아나지 못하고 조조 앞에 끌려 나왔다. 조조
와 저수는 이미 이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조조는  저수를 보자 손수 오랏줄을 풀
어 주었다. 그러나 저수는 조조를 노려보며 큰소리쳤다.
  "내가 붙잡힌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항복한 것은 아니니, 
어서 목을 베어라." 그러나 조조는 저수를 보며 부드럽게 타일렀다.
  "원소는 미련하여 그대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는 원
소를 잊지 않고 있는가? 만약 내가 일찍부터 그대를 얻었더라면 걱정할 일이 없
었을 것이다." 조조는 저수를 진중에 머물게 하며 후하게 대접했다. 조조는 두터
운 대접을  받으며 저수는 한동안 조조의  말을 따르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 날 
틈을 엿보다 군사의 말을 훔쳐 달아나려다 붙들리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조는 크게  노했다. 그가 끝내 마음을  돌리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달은 조조는 
군사들에게 영을 내려  그의 목을 쳤다. 저수는 목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당당히 죽음을 맞았다. 조조는  그의 죽음을 보며 탄식해 마지
않았다.
  "아아, 참다운  충신을 죽이고 말았구나!" 조조는  저수의 장례를 성대히 치러 
주도록 명했다. 그리고 황하 강변의 무덤에는 '충렬저군지묘'라는 묘비를 세웠다. 
조조는 싸움에서 크게 이긴 여세를 몰아 원소의  뒤를 추격했다. 기주군 까지 진
격하여 그의 뿌리마저  제거해 버릴 심산이었다. 그 무렵 원소는  겨우 8백여 기
를 이끌고 간신히 여양 북쪽에 이르렀다. 그러나  휘하 장군들과 소식이 끊겨 어
느 쪽으로  가야 그들을 만날 수  있을지 몰라 헤매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여산 기슭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새벽을 맞았다. 문득 눈을 떠보니  슬피우는 남
녀노소의 통곡 소리가  은은히 들려 왔다. 원소가 의아히 여겨  소리나는 쪽으로 
가 보았다. 군사들이 부모형제를 잃거나 친지와  친척을 잃어버린 것을 한탄하며 
우는 소리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같은 말로 원망을 하고 있었다.
  "아아, 주공께서 전풍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화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
가? 실로  원망스럽기 짝이 없네." 그  말을 들으니 원소의 마음  또한 무거워져 
홀로 탄식했다.
  "내가 전풍의 말을 듣지 않다가 싸움에 패하고 많은 군사들을 죽게 했구나. 어
찌 그의 얼굴을 대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때 군사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대장군 장의거와 봉기 장군이 주공께서 주무실 동안 이곳에 당도하셨습니다." 
장의거와 봉기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패전병들을 수습하여 원소를 찾아 헤매
다 이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마침 날이  어둡고 원소가 잠들어 있어 깨우지 
않고 잠이 깨기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두  장수를 보자 원소는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때쯤 패잔병들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던 원소의  군사들도 소
식을 듣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원소는 군사를 풀어  주위의 산과 들에 흩어져 있
을 패잔병들을 불러모으게 했다. 얼마 있지 않아  군사들이 모이니 그 수가 만만
치 않았다. 원래가 대군인  때문이었다. 원소는 기주로 돌아가 다시 기회를 엿보
기로 했다. 원소는  군사를 이끌어 마을을 지날 때마다 백성들의  통곡과 원망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북을 떠날 떠는 70만  대군을 이끌었던 
원소였다. 장의거나 봉기의 군사들이 따르고 있다고는  해도 그때에 비하면 군사
의 수는 보잘것이 없었다.  찢긴 기치만이 요란하게 바람에 펄럭일 뿐이었다. 원
소는 기주로 가는 도중 무심코 봉기에게 푸념을 털어놓았다.
  "진짜 전풍의 발을 듣지 않아 이렇게  패했으니 실로 그를 대할 면목이 없네." 
전풍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봉기가 그 말을  듣자 대번에 안색이 달라졌다. 봉기
는 이번에 원소가 돌아가면 그를 중용시킬 것이 두려워 그를 헐뜯기 시작했다.
  "주공께서는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옥중에 있던 전풍은 주공께서 크게 패했
다는 소식을 듣자 '그럼 그렇지. 내  말대로 되었구나' 하고 박장대소하며 뽐냈다
고 합니다." 봉기의 말을  듣자 원소의 안색이 달라졌다. 참담한 패배로 속이 뒤
틀려 있던 원소는 봉기의 몇 마디 말에 의심과 시기심이 발동하고 말았다.
  "그 하찮은 선비가 나의 실패를 비웃고 있을 줄이야? 내가 그를 살려 두지 않
으리라." 원소는 차고  있던 검을 풀어 사자에게 주며 먼저  기주로 달려가 옥에 
있는 전풍을 죽이라 일렀다. 그러나 기주성 감옥에  갇혀 있던 전풍은 관도 싸움
에서 대패했다는 소식을  듣자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다. 그를 경모하고  있던 옥
리가 몰래 그를 찾아와 위로했다.
  "주공께서는 이제야 공의 충간을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돌아오시면 반드시 공
을 높이 쓰실 것입니다." 그 말에 전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일 이겼더라면 내 목숨을 건질 수 있었겠으나 결국 패했으니 이제 내 목숨
은 죽은 거나 다름없네."
  "사람들은 별가(전풍을 이르는 말) 어른을  위해 기뻐하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옥리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전풍이 조용히 말했다.
  "주공이 겉으로 관대한 척  하나 속마음은 좁으니 충언을 고하는 자를 알아볼 
줄 모른다. 만일 이번 싸움에서 이겼더라면 기뻐 나를 살려 줄지 모른다. 그러나 
싸움에 패해 나를 볼 낯이 없을 것이니 어찌 나를 살려 두겠는가?" 전풍의 말이 
끝나면서 홀연 원소의 사자가 달려 왔다.
  "죄인에게 검을 내렸습니다." 옥리는 놀라는  한편 몹시 슬퍼하며 전풍에게 술
을 따라 주었다. 전풍은 태연자약하게 한 잔 술을 마신 다음 탄식했다.
  "무릇 선비라는 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섬길 군주를 잘못 택한 것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마당에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전풍은 
검을 받아 스스로 제  목을 찔렀다. 그의 피는 땅바닥 위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
다. 전풍이  죽었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모두  그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한탄했다. 
뒷날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시를 지었다.
  어제는 저수가 군중에서 죽더니 오늘은 전풍이 옥 속에서 숨졌도다.
  하북의 인재 다 꺾이니 본초(원소)가 어찌 망하지 않으랴.
  기주로 돌아온 원소는 성 안  깊숙이 들어앉아  분노와 번뇌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전사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날을  보내고 있는데 뜻밖에 생각지도 않
은 분란이 일어났다. 원소의 처 유씨가 원소에게 세자를 세울 것을 재촉했다.
  "당신이 건강하실 동안 부디 후계자를 정해  주세요. 후계자를 먼저 정해 두시
면 하북의 여러 주도 한 덩어리가 되어 정사를 돌보시는 데 도움이 되실 것입니
다." 유 부인은 이렇듯 줄곧 후사 세울  일을 재촉했는데 내심은 자기 소생인 원
상을 후사로  세우기 위함이었다. 원소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장남인 원담은 
자가 현충이었으며, 청주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다. 차남 원희의 자는 현혁이었으
며 유주를 다스렸다.  셋째 원상은 자를 현보라 했는데 평소부터  원소가 사랑하
며 항상  곁에 두었다. 세 아들중  용모와 체격이 준수한 그를  원소도 속으로는 
자기의 후사로 내정해 두고 있었다. 그러나 두  아들을 젖혀 놓고 막내아들을 후
사로 내세우자니 자연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원소는 중신들의  의
향을 살펴보기 위해 심배,  봉기, 신평, 곽도를 불렀다. 그런데 네 사람의 모사는 
두 패로 나누어져 제각각 주인을 정하고 있었다.  즉 봉기와 심배는 원상을 옹립
하려 했고, 곽도,  심평은 원담을 받들고 있었다. 원소는 자기가  마음 속으로 내
정해 둔 바를 넌지시 비치면서 이들의 속을 떠보려 했다.
  "지금 바깥의 걱정거리가 끊이지 않으니 안의 결정지어 두지 않을 수 없소. 내
나이도 나이인지라 내 뒤를 이를 후사를 세울  일을 의논할까 하오. 내가 보기에 
맏아들 담은 성질이 모질고 사람 죽이는 일을  가볍게 여기는 듯하오. 차남인 희
는 너무 겁이 많아 대업을 이을 그릇이 못되는  것 같소. 다만 셋째아들 상은 영
웅다운 기상이  있고 어진 이를 예로 대할 줄 알며 훌륭한 선비를 공경할 줄 아
오. 그 재질로 보아 원상을 하북의 후사로  세우고자 하는데 공들의 의향은 어떠
시오?"
  "아니 되옵니다. 세  아드님 가운데 담은 맏이일 뿐 아니라  지금은 밖에 나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형을  젖혀 두고 동생을 후사로 세워서 종가의  평온을 얻은 
예는 드뭅니다. 지금 우리 군사의 위세는 꺾이고  적은 우리 경계로 밀려오고 있
습니다. 이러한 때 어찌하여 부자와 형제간에 서로  다투게 될 일을 자초하려 하
십니까? 주공께서는  그보다도 적을 막을 계책부터  세우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후사를 세우는 일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곽도는 원담이 있을 때부터 
때를 기다려 후사를  세우는 일을 의논하고 싶은 속셈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이 그른 것도 아니어서  원소는 그 일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는 
며칠 후였다. 병주에 있는  조카 고간이 군사 5만을 이끌어 기주성으로 왔다. 원
소가 관도 싸움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돕기 위함이었다. 이어 장남 원
담도 청주에서 군사 5만을 거느리고 왔다. 차남  원희도 질세라 6만 대군을 이끌
고 왔다. 이로  인해 기주성 안팎이 원소를  돕기 위해 달려온 군대로 뒤덮었고, 
이에 낙담하고 있던 원소는 크게 기뻐했다.
  "새로운 군마가  갖춰졌으니 먼길을 달려와 지쳐  있을 조조를 쳐부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원소는 후사를 세우는 일은 뒤로 미루고 조조를 칠 궁리부
터 했다. 세 곳에서 온 군대만 해도 적지 않은 군사였다. 원소도 다시 옛 군사들
을 수습해 보니 이전보다는 못하지만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군세를 이루었다. 원
소는 조조의 움직임을  알아보았다. 관도 싸움에서 이긴 후 조조는  황하 일대에 
진영을 벌리고 군마에게 휴식을 갖도록 하며 이쪽의 동향을 엿보고 있다는 것이
었다. 원소는 군사를 이끌고 조조를 치기 위해 기주를 떠났다. 한편 조조가 황하 
언덕 일대에 진영을 펼치자 이곳에  사는 백성들이 음식을 들고 와 조조를 반겼
다. 그 중에는 머리카락이 새하얀 노인들도 있었다. 조조는 그 백발 노인들을 장
중으로 청해 들여 앉을 자리를 내주며 물었다.
  "노인장께서는 대체 연세가 어떻게 되시오?"
  "모두 백살이 가까워 옵니다."
  "참으로 복받은 분들이오. 저의 군사들이  어르신네의 고을일 소란스럽게 하지
나 않았는지 걱정이 됩니다." 조조는 술과 고기를 내어 오게 하여 정중히 대접하
며 말했다. 조조의 환대에 노인들을  송구한 듯 절하며 예를 올렸다. 그 중에 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환제가 다스리던 때의 일입니다. 요동 사람으로  은규
란 예언자가 이 마을에 왔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근자에 건방(서북
방)의 하늘에 황성이 나타났으니 앞으로 50년 뒤에 하늘의 뜻을 받은 진인이 양, 
패 땅 사이에 나타날 것이오'라고  말입니다. 그 후 이 마을은 원소의 치하가 되
었습니다. 원소는  그 동안 백성들에게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어들여  그 원성이  
자자합니다. 바로 금년은 그때 은규가 말한 5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숭상께서는 
인의를 위한 군사를 일으키시어 백성들을 위로하고 죄지은 자를 치셨으니 곧 관
도땅에서 원소의 백만 대군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는  곧 50년 전의 그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며 이제부터 태평성대를  누릴 것이라 하여 백성들은 기뻐하고 있
습니다. 그리하여 그 기쁜 마음을 숭상께 전하고자 온 것입니다."
  "어르신네께서는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조조는 껄껄 웃으며 겸사했으나 
마음 속으로는 몹시 기뻤다.  노인들이 돌아갈 때는 비단까지 주어 보냈다. 노인
들이 돌아가자 조조는 군사들  중에 노략질을 하거나 백성들을 조금이라도 해치
는 자가  있으면 곧 목을 베겠다고  군령을 내렸다. 조조가 그  군령을 방문으로 
써 내걸자 마을 사람마다 이 방을 보고  조조를 칭송해 마지않았다. 백성들이 조
조를 믿고 따르니  그 후로는 군량이나 마초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백성들이 
발벗고 나서 군량과 마초를 대주었으며 원소군에 대한 소식이 있을 때는 지체없
이 달려와  조조에게 알려 주었다. 이럴  즈음 원소가 다시 군사를  이끌어 창정 
부근까지 이르렀다는 소식이  조조에게 전해졌다. 조조는 전군을  이끌어 원소군
과 맞섰다. 양쪽 군사가 전투  태세를 갖추자 원소는 세 아들과 조카, 그리고 문
관, 무관을 거느리고 진 앞으로 나섰다. 조조도 장수들을 거느리고 진 밖으로 나
서며 원소를 향해 큰소리로 꾸짖었다.
  "본초는 이제 계책도 힘도  다했을 텐데 어찌 항복하지 않느냐? 이 조조의 칼
이 네 목을 내리친  이후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원소가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저 역적의 목을  쳐라!" 원소의 고함 소리에 셋째아들  원상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용맹을  자랑하고 싶었다. 춤추는 듯 쌍칼을 휘두르며  말을 몰아 
조조쪽으로 달려갔다. 조조는 그가 아직 나이가  어려보이므로 좌우를 향해 물었
다.
  "저 애송이는 누구냐?"
  "원소의 셋째아들  원상이라 합니다. 제가 그의  목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창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나가는 장수가 있었다. 서황의  부장 사환이
었다. 두 장수가 서로  어울러졌다. 그러나 불과 3합이 되자 원상은 사환의 날카
로운 창끝에  쫓겨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원상을  놓칠세라 사환은 
급히 뒤쫓았다. 그러자 원상은 활에 살을 메기더니 몸을 홱 돌려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사환의 왼쪽 눈에 꽂혔다.  사환이 '쿵!'하고 말 위에서 굴러 떨어져 흙먼
지를 일으키자  원소의 진영에서는 일제히  함성이 울렸다. 아들의  장한 모습을 
본 원소는  크게 기뻐하며 그 여세를  몰아 조조를 향해 군사를  휘몰았다. 비록  
관도 싸움에서는 패했으나 원소는 다시 20만에 이르는 대군을 만들었고 전투 장
비도 조조군보다는 우세했다. 조조군과 원소군을 맞붙어 일대 혼전이 벌였다. 죽
고 죽이는 싸움을 한동안 계속한 후 양군은 서로 북을 올려 각기 군사를 거두어 
들였다. 혼전이 계속될 때는  양쪽의 군사만 상할 뿐 승패를 가름할  수 없게 때
문이었다. 아무래도 군사의  수에 있어서 열세인 조조는 계책을 써서  원소를 깨
뜨릴 수밖에 없었다.  조조가 계책을 묻자 정욱이 이른바 십면매복의  계책을 올
렸다.
  "군사 중 일부를 10대로 나누어 매복한 후 나머지 전군을 황하 강변까지 후퇴
시켜 원소를 유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군은  퇴로가 막혔으므로 죽기를 작정
하고 싸울 수밖에 없으니 이로써 능히 원소군을 무찌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
는 정욱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계책은 최후의 방책인 듯하나 우리 군사의 장점을 십분 살릴 수 있는 
계책일 것이오." 조조는 그 계책대로 정병을 뽑아 좌, 우로 각각 5대씩 나누었다. 
즉 왼쪽 제1대는 하후돈, 제2대는 장요, 제3대는 이전, 제4대는 악진, 제5대는 하
후연이 맡게 했다. 그리고 오른쪽 제1대는 조홍, 제2대는 장합, 제3대는 서황, 제
4대는 우금, 제5대는 고람으로 하여 맡게 한 후 중군의 선봉은 허저에게 맡겼다. 
이튿날, 그들 10대의 군사를 이끌어 좌우에 매복케 했다. 밤이 되자 허저는 중군
을 이끌고 원소군에게 야습을 감행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원소는 다섯  영채의 군사를 모두 이끌어 허저의 군사
와 일대 격전을 벌였다. 한동안 싸움이 이는  듯하자 허저는 슬며시 말머리를 돌
려 물러나기 시작했다.  유인책인 줄 알리 없는 원소군은 허저의  군사를 뒤쫓았
다. 허저가 다시 뒤쫓는 군사를 맞아 싸우는 척하다 다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원
소의 장수가 생각하니 적군이 도망가는 쪽은  황하의 강변이었다. 강까지 쫓으면 
그들은 퇴로마저 끊기는 꼴이  되니 이에 그들은 독 안에 든  쥐라 여겼다. 숨쉴 
틈도 주지 않고 추격에 박차를 가했다. 이윽고  날이 샐 무렵까지 싸우면서 추격
해 가니 어느덧 황하까지 이르렀다. 이때를 기다렸던 조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앞은 황하다. 이제 더 이상 도망갈래야 갈 수도 없다. 모든 군사는 죽기를 작
정하고 싸워라!" 조조의  호령에 허저를 비롯한 군사들은 일제히  돌아서서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조조의 명이 아니더라도 앞에는 강물이 가로막고  있으니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저가 나는 듯이 말을  달려 마주 오는 
적장의 목을 10명이나 베었다. 한 둘도 아니고  10여명의 장수가 허저에 의해 목
이 떨어지니 기세  좋게 뒤쫓던 원소의 군사들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반면에 허
저의 군사들은 사기가 올라  그 기세를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맹렬한 반격 앞에 
기세가 움츠러든 원소군은  황망히 군사를 휘몰아 후퇴했고,  이번에는 조조군이 
원소군을 추격했다. 원소군이 앞을  다투며 쫓겨 달아나고 있을 때였다. 홀연 북
소리가 크게 일더니 좌우에 매복해 있던 하후연과 고람이 군사를 거느리고 내달
아 양쪽에서 협공을 가했다. 다급해진 건 원소였다. 그때서야 또 적의 계교에 떨
어진 것을 알아챘다. 세 아들과 조카를 거느리고  혼전을 틈타 달아날 길을 찾아 
말을 달렸다.  그들이 한 10리쯤 달렸을  때였다. 이번에는 좌, 우에서 악진과 우
금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뒤따르는 군사들은  이들 악진과 우금의 군사들
에게 목숨을 잃거나 상하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겨우 그들의 공격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별안간 왼편에서  이전이, 오른편에서 서황의 군사가 달려나왔다. 원소의 
부자는 기진맥진한 가운데 간신히  가까이에 있는 옛날의 진영 하나를 발견하고 
그리로 숨어들었다. 진영으로  겨우 몸을 피한 원소는 군사들에게 밥을  짓게 했
다. 지난 밤부터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지금까지 싸움터에서 쫓기고 쫓겨온 터였
다. 군사들과  함께 지은 밥을  먹으려고 할 때였다.  이번에는 왼쪽에서 장요가   
오른쪽에서는 장합이 군사를  이끌어 오고 있었다. 원소는 황망히 말  위에 올랐
다. 말도 군사도 모두  기진맥진했으나 죽을 힘을 다해 창정 땅을  향해 말을 달
렸다. 한동안 달리다 보니 조조의 추격군은 더 이상 뒤따르지 않았다. 지친 군마
를 잠시 쉬게 하며 한숨을 돌리려는데 또  한 떼의 매복군이 나타났다. 매복군의 
마지막 부대인 하후돈과  조흥이 이끄는 군사들이었다. 원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나 원소도  백만 대군을 이끌었던 장수였다. 호락호락하게 매복군에
게 짓밟힐 수는  없었다. 조조가 황하 강가에 이르러 군사들에게  의기를 돋우었
던 것처럼 원소도 군사를 일깨웠다.
  "만약 죽기를 작정하고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적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죽기로 각오하고 싸우면  목숨을 구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욕된  죽음이 있을 
뿐이다!" 원소가 소리치며 다가오는 적을 맞아 칼을  휘두르자 군사들도 힘을 얻
어 원소를 뒤따랐다.  하후돈과 조흥이 날래고 용맹스러운  장수들이었지만 죽기
로 작정하고 달려드는  원소군에게는 그 기세를 당할 수가 없어  멈칫거렸다. 원
소는 하후돈과 조흥이 주춤거리는 사이, 겨우 매복군의 포위망을 벗어났다. 그러
나 이번 싸움에서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둘째아들 원회와 조카  고간이 화살에 
맞아 증상을 입었다. 또 쫓겨 오는 동안  매복군에게 찢기고 밟히어 군사와 말도 
반 이상 잃고 말았다.  처음 창정 땅으로 나올 때 20만에 이르던  군사가 겨우 1
만여 명으로 줄었다.  그나마도 그중에 적지 않은 군사들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
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수백 리를  쉴새없이 달려온 원소는 조조의 추격에서 
벗어나자 더 이상 말을 달리지 못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자 셋째아들 원
상이 아버지의 몸을 안아  말에서 내린 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풀 위에 전포
를 깔고 원소를 반듯이 눕혔다. 원소는 세  아들을 끌어안고 통곡하다 문득 새빨
간 피를 토해냈다. 원소는 붉은 피를 쏟으며 탄식해 마지않았다.
  "내 평생 싸움터에서 수십  번을 싸웠으나 오늘처럼 이토록 심한 패전을 당해 
본 적이 없었다. 이는 하늘에서 나를 저버린 것이다. 너희들은 각자 다스리던 고
장으로 돌아가 힘을 기른 뒤에 맹세코 조조와  사생 결단을 내라." 세 아들은 급
히 아버지를  말 위로 부축해  기주성으로 향했다. 기주성에  이르러서야 정신을 
차린 원소는 곽도와 심배를 불렀다.
  "너희들은 원담을 도와 청주로 가라. 급히 백성들을 안온시키고 군사들을 수습
하여 힘을 길러라.  그리하여 조조군의 침범에 대비하라." 원소는 이어  둘째아들 
원희와 조카 고간에게도 유주와 병주로 돌아가게  했다. 원소는 셋째아들 원상에
게 심배, 봉기와  함께 군무를 돌보게 한  뒤  자신은 병든 몸을  치료하는 데만 
전념했다. 한편 창정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조조는 3군에게 많은  상을 내려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또한 세작을 풀어 원소의 동태를 알아보는  일에도 게
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작이 기주의 동태를 알려 왔다.
  "원소가 병으로 몸져누워 있습니다. 그의 두  아들은 각각 그들이 다스리던 주
로 돌아갔으며, 셋째아들 원상이 심배,  봉기와 함께 기주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세작의 보고를 접한 좌우의  장수들이 한결같이 기주성을 칠 기회이므로 군사를 
내자고 했다. 그러나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들을 일깨웠다.
  "우리 군사들은 이미 오랜 싸움과 행군에  지쳐 있다. 우리가 후방과의 연락이
나 군량  보급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거기에 비해 
기주는 양곡이 풍부한데다 지모를 갖춘 심배가 곁에 있으니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 지금은 곡식이  익을 때라 전란통에 백성들의 농사에 피해라도  주게 될까 
걱정이다. 또한 기주성은  휘몰아쳐도 쉽게 넘어갈 성이 아니니 다시  기회를 보
아 도모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조조가  이렇게 말하자 여러 모사와 장수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기주성을 치자는 사람과  조조의 말에 따르자는  사람이 서로 
의견을 내고 있는데 문득 허도의 순욱으로부터 전령이 왔다.
  유비가 여남에서 유벽, 공도와 손을 잡고 그  동안 군사 수만 명을 수습하였습
니다. 뿐만 아니라 숭상께서 하북으로 출정하셨다는 것을 알고, 유벽에게 여남을 
맡긴 후 군사를  거느려 허도로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숭상께서는  급히 허도로 
군사를 돌리시기 바랍니다.

  원소의 죽음으로 무너지는 원가
  유비는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고  하북의 원소는 갑자기  세상을 뜬다. 
이에 셋째인 원상이 맏이  원담을 제쳐두고 그 뒤를 잇게 되고,  원담은 그 화를 
누른 채 우선 조조군과 맞서 싸운다. 원가  형제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친 조조
는 곽가의 권유를 받아들여 먼저 형주를 치기로 한다.
  숙적 원소의 대군을 물리치고 허도로 개선하려던 조조는 순욱의 글을 보고 크
게 놀랐다. 조조는 곧 군사를  이끌고 여남을 향해 말을 달렸다. 떠나기 전에 조
홍에게 일부의 군사를 주며 명했다.
  "그대는 이대로 황하 연안에  머물면서 우리 군사가 모두 이곳에 주둔하고 있
는 것처럼 허장성세하도록 하라." 조조가 유비를  맞으러 여남 땅으로 향하던 중 
양산에 이르렀다.  그때 유비도 관, 장,  조자룡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허도로 
향하던 중 양산에  당도했다. 유비는 허도로 군사를 이끌어 가다  조조와 이곳에
서 맞닥뜨리자 황망히  그들을 맞은 준비를 했다. 조조의 대군이  너무나도 신속
히 회군해 왔으므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리한 지형을 먼저 차지하지 않
으면 안 된다.'  유비는 이렇게 생각하고 양산  아래쪽에 영채를 세운 후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었다. 두 갈래의 군사는 관우와  장비로 하여금 거느리게 하고 자
신은 조자룡과 함께  남쪽에 진을 펼쳤다. 지평선 저편에서 새까맣게  들판을 뒤
덮으며 조조군이 진병해  오자 유비도 북 소리를 울리며 나아갔다.  조조도 급히 
진을 세우도록 한 후 중군을 가르며 나타났다. 조조가 유비를 큰 소리로 불렀다.
  "현덕은 거기 있느냐?" 유비가 문기  아래로 나서며 조조를 마주 보았다. 조조
는 말채찍으로 유비를 가리키며 질타했다.
  "지난날의 은의를 저버린 배은망덕한 놈아, 내 너를 극진히 대우했거늘 어찌하
여 내게 칼을 겨누느냐?" 유비가 조조의 질타에 조용히 대꾸했다.
  "너는 한의 숭상이라 하나  천자 어의(임금의 뜻)가 아니지 않느냐. 나는 황실
의 종친으로서 천자의 말조를 받들어 역적을 치러  왔다. 어찌 감히 은의를 말할 
수 있느냐?" 조조는 유비의 말에 화가 치솟아 소리쳤다.
  "닥쳐라! 나야말로  한의 숭상으로서 천자의  말조를 받아 천하를  어지럽히며 
속이 검은 네 놈을 응징하러 왔다!" 유비도 지지 않고 고함쳤다.
  "나라를 훔치려는 자에게 어찌 천자께서 밀조를 내릴 것인가. 천자께서 내리신 
밀조는 여기 있다." 유비는 지난날 천자가 의대에 넣어 동승에게 내린 밀조를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유비가 낭랑한  목소리로 천자의 밀조를  읽어 내려가자  
양 진영에서는  귀를 기울였다. 항상  자신을 한실의 숭상이라  내세우던 조조는  
유비가 천자를 읽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유비가 그 조서를  다 읽기도 
전에 조조는 좌우를 보며 외쳤다.
  "함부로 조정의 조서를  사칭하는 무도한 자의 목을 베어  버려라!" 조조의 말
이 떨어지자마자 허저가 말을 달려 나왔다. 그러자  유비의 등뒤에서 이를 본 조
운이 창을  휘두르며 말을 몰았다. 창과  칼이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일고 말굽 
아래에는 흙먼지가  일었다. 날래고 용맹스런  두 장수의 싸움에서  30여 합이나 
어우러지고 있었으나  승패의 가름이 엿보이지  않았다. 두 장수의  싸움을 지켜  
보고 있던 관우가  동남쪽에서 나는 듯이 말을 몰아왔다. 관우가  말을 달려오자 
장비가 질세라 군사를 휘몰아  왔다. 관우, 장비가 양쪽에서 군사를 이끌자 이번
에는 유비의 본진에서  크게 함성이 일며 군사들이 내달았다. 조조군은  오랜 싸
움과 먼길을 달려와 지쳐 있는 군사들이었다.  유비군이 삼면에서 총공세를 펴고 
관우, 장비, 조운이  말을 달려 조조군을 베고  찌르니 더 이상 견디지를 못하고 
흩어졌다. 진을 세우자마자 군사를 제대로 추스리지 못한 때에 당한 급습이었다. 
조조는 무너지는 군사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려  멀리 물러났다. 유비가 진영으로 
돌아와 첫 싸움에서 이긴 걸 기뻐하며 말했다.
  "첫 싸움에서 조조를 물리쳐 다행이다. 그러나 그는 워낙 꾀가 많은 자이니 신
중히 맞서지 않으면 안된다." 유비의 말에 관우가 입을 열었다.
  "조조군은 먼길을 강행군하여 몹시 지쳐 있는  듯 했습니다. 이때를 기회로 내
몰아치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일은 조자룡을  보내 싸움을  걸어보도록 해야겠다." 이튿날이었다.  조운이 
조조의 진영으로 가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조조의  군사들은 꼼짝
도 않고 진영만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도 조
운과 장비가 나서  싸움을 돋우며 조조군을 자극했으나  역시 변함 없이 진영만 
굳게 지키고 있었다.  이렇듯 10여 일이 지나도록 조조의 군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저  꾀많은 자가 또 이상한  계책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비가 
싸움을 돋우다 보니  그들의 동태가 아무래도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은 엉
뚱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날 여남에서 급한 전갈이 왔다. 공도로부터 날
아온 급보였다.
  "여남에서 이곳으로 군량을 호송해 오던 공도 장군께서 조조의 매복군에  포위
되어 위급합니다." 유비는  그제야 조조가 본진의 군사를  빼돌려 여남을 빼앗을 
궁리를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유비는 장비를 불러 공도를 돕게 했다. 장비
가 공도를 돕기 위해 군사를 이끌어 가자 다시 급한 전령이 왔다.
  "하후돈이 우리 등  뒤를 돌아 여남으로 가서 그곳을  치고 있다고 하옵니다." 
유비가 그 말에 크게 놀라며 걱정했다.
  "여남을 잃는다면 이는 실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앞과 뒤로 적의 공
격을 받는다면 그곳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된다." 유비는 탄식하며 관우에게 여
남을 구하도록 했다. 관우가 떠난 다음 날  여남으로부터 또 놀라운 소식이 전해
졌다.
  "하후돈이 여남성을 취했습니다. 유벽은 성을 버린 채 달아났으며, 이제 관 장
군께서는 조조군에게 포위당하고 말았습니다." 뿐만 이니었다. 장비도 공도를  구
하기 전에 매복해 있던 조조군에게 포위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유비는 크게 당황
했다. 관우와 장비를  구하기 위해 군사를 내몰려 했으나 조조군이  뒤를 추격해 
올 것이 염려되었다. 유비 자신까지 두 아우 쪽을  향한 채 추격을 받게 되면 그
야말로 조조군에게 삼면으로부터 포위를 당하는 셈이  된다. 유비가 망설이고 있
는 동안 과연  허저가 유비군에게 다가와 싸움을 돋우었다. 조운이  허저를 맞아 
싸우려고 했으나 유비가  말렸다. 유비의 군사를 이미 몇 갈래로  나누기에는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서황을 치기 위해 함부로 나섰다가 또  어떤 계책에 말
려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대신 낮에는 군사들을  배불리 먹인 다음 진영을 굳
게 지키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보군을 앞세웠다. 기병은  그 뒤를 따르게 하고 뒤
이어 유비는 진영을  나섰다. 진영에는 군사 일부를 남기고 북소리를  울리게 하
여 군사가 주둔하고 있는 것처럼 꾸몄다. 유비가  군사를 거느리고 몇 리를 가자 
얕은 산이 나타났다. 홀연 산 위에서 수많은 횃불이 나타나더니 함성이 일었다.
  "유비는 달아나지  말고 게 섰거라. 숭상이  기다리신 지 오래다!" 고함소리와 
함께 산 위에서 무수한 횃불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이번에는 북 소리를 군호삼
아 돌덩이가 쏟아졌다. 유비군은 한순간에 대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유비의 군
사가 크게 허물어지는 가운데 유비는 이제 도주할  길을 찾기에 바빴다. 이때 조
운이 유비 곁으로 바짝 다가와 말했다.
  "제가 혈로를 열겠으니 주공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운이 창을 비껴들고  
마주 오는 적을 헤치며 길을 열고 있었다.  유비도 조운을 뒤따르며 쌍고검을 빼
들고 적을 헤쳐 나갔다. 그러자 등 뒤에서 허저가 뒤따라왔다. 조운이 허저를 맞
아 싸우는데 다시 우금과 이전이 그 싸움에  가세했다. 이렇게 되니 조운은 유비
의 혈로를 열기는커녕 한꺼번에 세 장수가 덤벼들어 자신을 지키기에도 벅찰 지
경이었다. 혼자가 된  유비는 쌍고검을 휘두르며 앞길을 열기가 바쁘게  말을 몰
았다. 그렇게 정신 없이 달리다 보니 조조군의 함성이 점점 멀어져 갔다. 필마단
기가 된 유비인지라 우선 몸을 숨겨야 했다. 무작정  깊은 산 속을 향해 말을 달
리는데 어느 새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 고갯길에서  한 떼의 군마
가 나타났다.  유비가 급히 말을 멈추고  몸을 숨긴 후 살펴보니  그는 다름아닌 
유벽이었다. 유벽의 뒤에는 패잔병으로 보이는 한  떼의 군마가 1천여 기가 뒤따
르고 있었다. 거기에는 손건,  간옹, 미방의 모습도 보였다. 유비가 유벽 앞에 나
타나자 그들 일행은 놀라는 한편 반가워하며 지난일을 전했다.
  "하후돈의 군세가 워낙 강해 그들을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성을 
버리고 달아나는데 조조군이 뒤쫓아왔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관운장께서 오시어 
구함을 받아 이렇게 빠져 나오는 길입니다."  유벽이 거느린 패군 중에는 유비의 
두 부인과 일족도 있었다. 그러나 유벽의 이야기를  들으니 가장 궁금한 것은 역
시 관우의 소식이었다. 유비가 유벽에게 물었다.
  "그럼 운장은 지금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유벽은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보다는 우선 이곳을 빠져 나가는 것이 급합니다. 운장의 일은 그 연후에 살
피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유벽의 말을 좇아 유비가 다시  길을 재촉하니 몇 
리쯤 갔을 때 문즉 앞쪽에서 크게 북소리와  함성이 일었다. 장합이 이끄는 조조
군이었다.
  "유비는 말에서 내려 항복하지 못하겠느냐!"  유비가 놀라 군사를 물리려고 뒤
를 돌아보니  산 위에 붉은 기를  펄럭이며 내려오는 한 떼의  군사들이 보였다. 
선두에서 달려오는 장수는 조조의 장수인 고람이었다.  앞과 뒤에서 적장 장합과 
고람을 맞게 된 유비였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진  유비는 긴 한숨과 함께 하
늘을 원망하며 탄식할 뿐이었다.
  "하늘은 어찌하여 나를 이런  궁지로 몰아넣는다는 말인가? 차라리 욕된 죽음
을 할 바에는 목숨을 끊는 것이 나으리라." 유비는 칼을 빼어 자결하려 했다. 이
때 유벽이 칼을 빼앗았다.
  "제가 죽기를 작정하고 싸워,  길을 열겠습니다." 유벽이 그렇게 말한 후  칼을 
빼더니 고람을 향해 나아갔다. 유벽은 목숨을 던져  길을 열려고 고함을 치며 나
아갔으나 고람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두세 번  칼을 부딪는가 했더니 고람의 고
함 소리와 함께 유벽의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자기를 살리려다 비명  한 번 지
르지 못하고 말 아래로 굴러  떨어진 유벽을 보자 유비도 그대로 주저앉을 수만
은 없었다. 겨우  1천여 기의 군사로는 고람과 장합의 군사를  당해낼 수 없으나 
이젠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다 죽기로 작정하고  유비는 쌍고검을 빼들었다. 유비
가 고람의 군사를 행해 말을 몰았다. 그러자  갑자기 고람의 군사 뒤쪽에서 혼란
이 일었다. 한  장수가 고람의 군사를 베며  곧장 고람을 향해 내닫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고람을 향해  달려온 그 장수는 곧장 고람을 내리쳤다.  고람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말 아래로 떨어졌다. 죽은 목숨이라  여기고 있던 유비 앞에 고람을 
한 창으로 떨어뜨리며 나타난 장수가 있었으니  바로 조운이었다. 유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조운은 허전,  우금, 이전 세 장수의 포위망을 뚫
으며 유비를 뒤따르다 때마침 고람군과 맞서고 있는 유비를 보자 질풍처럼 달려
온 것이었다. 조운은 고람의  군사들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그의 창솜씨가 어찌
나 빠른지 창이 한  번씩 번뜩일 때마다 몇 개의 목이  한꺼번에 나뒹굴었다. 대
장 고람이 죽자  조운의 무서운 창을 겁낸  조조의 군사들은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람의 군사가 달아나자 이번에는  장합의 군사가 짓쳐 왔다. 
조운은 다시 장합을 맞아 겨루었다. 장합과 조운이  맞겨룬 지 30여 합에 이르자 
장합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이에 조운은  장합을 뒤쫓으며 
그 졸개들을 풀잎 베듯 베어 나갔다. 그러나  장합의 군사들이 지세가 험한 산어
귀를 이용해 싸우니 조운도 쉽게 그들을 물리치지  못했다. 그때 험한 산길을 타
고 내려오는 무리가 있었다.  조운이 얼른 보니 앞선 장수의 낯이  익은 것 같았
다. 그는 다름 아닌 관운장이었다. 관우는 관평,  주창과 함께 3백여 기를 이끌고  
나타났다. 조운과 관우는 앞뒤로 장합의 군사들을 몰아쳤다. 관우마저 그 싸움에 
가세하자 장합은  더는 버티지 못했다.  장합이 군사를 이끌어  달아나자 유비는 
험한 산 밑에 진영을 세우고 관우, 조운을  맞아 들였다. 유비는 관우, 조운을 만
나자 장비를 걱정했다.
  "익덕이 공도를 구원하러 간 이후 소식이  없네. 운장은 익덕을 찾아가 보도록 
하게." 유비는 관우를 불러 그렇게 말했다. 관우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말을 
달려나갔다. 장비가 공도를 구하러 갔으나 그때  공도는 이미 하후연에게 목숨을 
잃은 뒤였다. 장비는 불같이  화를 내며 하후연을 뒤쫓았다. 그러나 이미 조조군
이 여기저기에 매복군을  배치해 둔 뒤였다. 악진이 하후연을 뒤쫓는  장비를 포
위했다. 장비는 하후연을  뒤쫓는 것을 뒤로 미루고 악진의 포위망을  뚫기에 급
급했다. 하지만 장비보다  월등한 군세를 가진 악진의 포위망은 점점  장비를 향
해 조여들  뿐 길은 뚫리지 않았다.  이때 장비를 찾아나선 관우가  도망쳐 오는 
장비의 졸개들로부터 그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뜻밖에 관우의 구원을  받자 장
비는 힘이 치솟았다. 호랑이 턱수염을 세우며  사모창을 휘두르니 한꺼번에 수십 
명의 군사들이 쓰러졌다.  관우까지 청룡언월도를 휘두르자 악진도  감히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관우가 호령하며 눈을 부릅뜨자 악진은 말머리를  돌려 달아
나기 시작했다. 관우는 도망가는 적들을 한동안 뒤따르며  쓸어 없앤 뒤 더는 추
격하지 않았다. 유비가 있는 산 속의 진영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유비는 험
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진영을 세웠으나 워낙 급히 세운 방책이라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군량도 물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런 가운데 급보가 전해졌다.
  "조조가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유비는 놀라는 가운데도 
그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먼저 손건에게는 가족을 호위하여 떠나도록 했다. 유
비는 관, 장 두 아우와  조운을 거느려 조조군을 맞아 싸웠다. 그러나 거느린 군
사라야 겨우 1천여  기에 지나지 않으니 조조의  대군과 자웅을 겨룰 수는 없었
다. 험한 산세를  이용해 싸우다 후퇴하고 다시 싸우다 달아나는  전법으로 조조
군에게 대응하고 있었다. 날이 어둡자 유비는 조조의  추격이 뜸한 틈을 타 멀리 
군사를 몰렸다. 유비가 말을 달리다 보니 문득 앞에는 강이 가로막고 있었다. 나
룻배를 얻어 강을 건넌 후 유비는 어부에게 물었다.
  "이 강이 무슨 강인가?"
  "한강입니다." 유비는  강가에 진영을 세우고 잠시  한숨을 돌리기로 했다.  그 
고을 사람들에게도 이미 유비의 이름이 알려졌던지 그가 유 황숙임을 알자 양고
기에 술을 바쳤다. 일행은 강모래 위에 앉아 술을 마셨다. 강가의 잔물결을 바라
보며 술을 마시던 유비가 문득 비탄을 금치 못해 입을 열었다.
  "운장, 익덕, 조자룡 그리고 여러 장수들은 모두 왕좌(임금을 보좌함)의 재능을 
지녔음에도 불행히 나를  따라 고초만 겪고 있네. 나의 옹색한  운수가 자네들에
게까지 미치니 이제 송곳 하나 세울 땅도  없어졌네. 실로 그대들의 장래를 그르
칠까 두려울 뿐이네.  일이 이에 이르렀으니 그대들은 명군을 섬기며  공명을 떨
치는 것이 어떻겠나?" 유비가 침통한 얼굴로 탄식하자 모두 고개를 떨구며 울었
다. 생각해 보니 지난날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모처럼 기회를 잡았다가도 곧 잃
게 되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던 고난  속에서 반생을 지낸 셈이었다. 유
비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니 더욱 비감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절로 터져 
나온 한탄이었다.  그러자 관우가 자신들의  마음을 몰라 주는  유비에게 원망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형님께선 무슨 말씀이 그렇게  하십니까? 지난날 한 고조께서는 항우와 천하
를 다툴 때에 번번이 패했습니다. 그러나 구리산  싸움에서 한 번 크게 이김으로
써 한조 4백 년의 기업을 닦았습니다.  싸움에 이기고 짐은 병가지상사라고 하였
는데 형님께서는 어찌 큰  뜻을 저버리려 하십니까?" 관우는 조용하면서도 힘있
는 어조로 유비의 비탄스러움을  달래면서고 함께 있는 사람들의 무거운 마음에 
의기를 되살렸다. 손건이 관우의 말을 듣더니 입을 열었다.
  "승패는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주공께서는  상심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형주땅이 멀지 않습니다. 또한 태수 유경승은 그곳에서 동으로 오회, 서쪽으로는 
파촉으로 통하며, 남으로는 해우에 인접한 9주를 거느립니다. 또한 군량이 넉넉
하며 정병도 10만을 헤아린다 합니다. 더구나 주공과는 한실의 종친입니다. 주공
께서는 그곳에 의지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손건의 말에 유비는  생각에 잠겼다. 
달리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손건의 말에 반대할 수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선뜻 응할  수도 없었다. 서로 교유한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불현듯 패잔병의  
몰골을 하고 찾아가는  것도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다가 이곳  저곳으로 흘
러다닌 지난날의 행적을 유표가 좋게 여겨 주지  않을 것은 뻔했다. 그러자 유비
의 이런 속마음을 환히 들여가 보기나 한 듯 손건이 말을 이었다.
  "제가 먼저 유경승을 찾아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반드시 유경승으로 하여금 경
계 밖까지 나와 주공을 영접하도록 하겠습니다."  손건의 말에 유비는 반색을 하
며 쾌히 응낙했다. 손건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형주로 말을 달렸다. 손건은 형주
에 이르러 유표를 보자 절하며 예를 올렸다.
  "그대는 듣자하니  유현덕을 섬기고 있다던데 무슨  일로 예까지 찾아  왔소?" 
유표의 물음에 손건은 정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우리 유 사군(서주목사를 지냈음을 뜻함)은  천하가 다 아는 영웅으로서 비록 
그의 군세가 약하고 장수 또한  많지 않습니다만 한실을 받들고자 하는 큰 뜻만
은 누구에게도 뒤짐이 없을 것입니다. 이에 여남의  유벽이나 공도 등 원래는 아
무런 인연이 없었던 이조차 우리  사군의 뜻을 받들어 목숨까지 바친 바 있습니
다. 그러나 명공과  우리 사군께서는 다같이 한의 종친이시니 함께  기우는 한실
을 바로잡음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군께서는 이번  조조와의 싸움
에서 패하여  부득이 강동의 원소에게  의탁하려 하였으나 제가  말렸습니다. 한 
핏줄을 이어받은 분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함은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
니다. 뿐만 아니라 명공께서는 현자를 두터이  존중하시어 물이 동으로 흐르듯이 
천하의 선비들이 형주로  들고 있음에 하물며 같은  종친인 사군을 어찌 두터이 
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고 사군에게  고했더니 저에게 명공을 찾아뵙고 그 뜻
을 받들도록 하셨습니다. 명공께서는 밝은 헤아리심으로  저희 사군과 더불어 부
디 큰 뜻과  힘을 펴시는 계기를 삼으시기 바랍니다." 손건의  말에 유표는 크게 
기뻐했다.
  "한실의 계보에 따르면 나와 유현덕은 같은  종친이며, 비록 먼 촌수이나 그는 
나의 아우뻘이 되오.  지금 9군 11주의 주인인 내가 종친인  유현덕을 돕지 않는
다면 아마 사람들이  비웃을 것이오. 오래 전부터 만나고 싶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이제 와 준다면 실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소." 유표가 쾌히 응낙하며 
유비를 받아들였다.  이미 나이가 들어 노쇠한  유표였다. 천하의 군웅이 날뛰는 
난세에 그 자신이 종친인 유비를 불러 들여 형주에 머물게 하는 것은 그만큼 유
리하다는 것이 유표의  또 다른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표의  장수인 채모는 
유비를 받아들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니되옵니다. 유비는 의를 모르고 은혜를 저버린 자입니다. 처음에는  여포를 
섬기다, 다시  조조를 따랐습니다. 그러다  다시 원소에게  의지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끝까지 주인을 섬기지 못하니 이는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함을 뜻
합니다. 거기다가 지금 유비를 받아들인다면 조조가  노하여 필시 형주를 공격할 
것이니 이는 쓸데없는 화를 부르는 결과가 될  뿐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손
건의 목을 베어 조조에게 바치면 조조는 필시 주공을 후히 대접할 것입니다." 채
모의 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유비를 받아들이는 것은 조조에게  적대 관
계를 밝히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손건이 정색하며 채모의  말을 반
박했다.
  "그런 말을 해도 나는 두려워할 사람이 아니오. 다만 지난날의 일을 들먹여 우
리 사군을 욕되게 하는  일만을 참을 수가 없어 하는 말이오.  유 사군은 충의로 
나라를 받드는  분인데 어찌 조조나 원소,  여포와 견주려 하시오?  여포가 바른 
사람이었소! 또한 조조가 참다운 충신이오? 원소가 천하를 구할  만한 그릇이 되
오? 저희 사군께서 지난날 그들을 잠시 따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 그
들의 그릇됨을 보고  떠난 것이오. 이제 사군께서는 유 장군이  한실의 종친이므
로 믿고 먼길을 달려 의지하시려는 바 그대는 어찌하여 현자를 해하려 하시오?" 
손건의 분연한 어조에 유표가 채모를 꾸짖었다.
  "내 뜻이 이미 정해졌으니 너는 다른  말을 하지 말라." 유표가 채모를 나무라
자 그는 물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자신의 말을 물
리친 유표가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유표는 손건에게 일렀다.
  "그대는 이 길로 유현덕에게 가 내  뜻을 전하고 모셔 오도록 하시오." 손건은 
유표가 그렇게 말하자  다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유비에게 이르러 유표의 뜻을 
전했다. 유비는 기뻐하며 손건의  노고를 치하했다. 유비 일행이 그 일족과 함께 
유표에게 의지하여 형주로 간 것은 건안 6년의  가을인 9월이었다. 유표는 성 밖 
30리까지 몸소 나와 유비를 맞았다. 유표는 유비를  성 안으로 정중히 청하여 거
처를 마련해 주었다.  유비는 유표에게 감사해하며 종친 어른을 대하는  예로 인
사를 올렸다. 유표는 유비가 거느린  두 아우와 조운, 간옹 등의 장수를 보자 크
게 기뻐했다. 유표는 일행들에게 기거할 집을 내리며 성 안에 머물게 했다. 유비
가 형주의 유표에게  의탁했다는 소식은 곧 조조의 귀에 들어갔다.  조조는 그때 
여남을 떠나 허도로 돌아가던 중이었는데 이 소식을 듣자 깜짝 놀라며 말했다.
  "유현덕을 사로잡지 못하고 도리어 그를  형주로 몰아넣었구나. 그것은 바구니 
속의 고기를  잡으려다 강물에 빠뜨린  격이다. 후환을 키운  셈이니 지금이라도 
형주를 쳐 후환을 없애야 하리라." 조조는  이렇게 탄식하며 행군의 방향을 당장
이라도 형주로 돌리려 했다. 그러나 모사 정욱이  나서며 그런 조조를 한사코 말
렸다.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아직 원소를 죽이지 못한 터에 어찌 형주를 치려 하십
니까. 형주로 군사를 이끌면 필시 원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허도
로 돌아가 군사를 모으고 힘을 기르며 내년  봄을 기약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먼
저 원소를 치고 그  다음 형주와 양주를 치심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남과 북
을 한꺼번에 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정욱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
다. 원소가 병중에 있다 하나 그가 아직 죽은  것도 아니며 그 세력이 뿌리 뽑힌 
것도 아니었다. 조조는 정욱의 말에 따라 허도로 말을 몰았다. 조조는 허도를 향
하던 도중 여남에서  멀지 않는 서주 부근,  조조의 고향인 패현에 들렀다. 그의 
나이 열여덟이 되어 조정에  출사한 이래 몇 번 고향에 드나든  적은 있었다. 그
러나 그 이후 십수년 만에 처음 찾는  고향이었다. 조조가 설레이는 마음으로 고
향을 찾자, 이전의 망나니가 이제는 천하를 호령하는  대장군이 된 것을 보며 고
향 사람들은 모두 감격에 겨워 목이 메었다. 조조  또한 벅찬 감회를 가눌 수 없
었다. 어찌 옛  친구를 잊을 수 있으랴! 조조는  옛날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아는 얼굴을 만날  수가 없었으며 어느 집을 가
도 전쟁에서 희생자를  내지 않은 집이 없었다. 고향의 청장년들은  모두 조조군
에게 가담하여 해를 거듭한 싸움에서 혹은 죽고  상처를 입고 있었다. 조조의 젊
었을 시절에도 이곳 마을 사람들의 인구는 많은  편이 아니었다. 이런 곳에서 태
반의 일꾼을 잃었으니 고향 사람들의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 여긴 조조는 
마음이 무거웠다. '장군의 공  뒤에 뭇 군졸의 희생이 깔려 있음이라.' 조조는 무
거운 마음을 달래며 포고를 발표했다.
  "나는 천하 만백성을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 내 휘하로 달려온 우리 고을의 장
정들은 거의 전사하고 이제 온  고을을 돌아다녀도 낯이 익은 사람은 만날 수가 
없다. 이는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슬픔이며, 그 어버이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고
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이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휼병조
치(물품이나 금품을 내려 군사를 위로함. 원호정책)를  취하기로 한다. 첫째로 나
를 따라 싸움터로 가서  죽은 장정의 가족에게, 혹 뒤를 이을  사람이 없는 집에
는 그 친척에게라도 논과  밭을 나누어 주도록 하라. 그 논과  밭을 경작할 소나 
말은 관에서 지원토록 하라. 또한 학교를 마련하고  선생을 두어 그 자녀를 가르
치도록 하라. 뿐만  아니라 전상자의 가족에 대해서는 곡식을 대도록  하며 사당
을 세워 전사자를 제사  지내 그 혼을 위로하도록 하라. 만약  죽은 자의 영혼이 
이에 감흥해 준다면 나 또한 마음놓고 그들과 황천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조조
는 이렇게 말한 후  몸소 포고문을 써 공표했다. 조조는 이어  각 고을을 다스리
는 현령에게 명을 내렸다.
  "논밭 가진 것이  없어, 자립할 수 없는 유족이나 전상자에  대해 현령은 대어 
주는 식량이 끊이지 않도록 특히 유의하라. 내  뜻에 어긋나는 자가 있으면 엄벌
에 처하리라." 조조가 오랜만에 찾은 고향  사람들에게 그 위세를 과시하려는 마
음이 없진  않았으리라. 그러나 이제  숙적과의 혈전을 치르고  돌아오는 마당에 
이런 치밀한 휼병정책을  썼다는 것은 역시 대장군다운  면모를 보인 점이라 할 
수 있다. 군율에 엄하며 신상필벌을 제일로 하는  그였기에 엄한 대신 돌보는 일
도 또한 두터웠다. 조조는 허도를 돌아온 이듬해  정월이 되자 다시 원소를 치러 
갈 의논을 했다.  조조가 천하 패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쳐없애야 할 
적이 원소가 아닌가. 몸소 군사를 일으켜 관도  땅으로 출정키로 한 조조는 먼저 
하후돈과 만총 두  장수로 하여금 형주를 경계하기 위해 여남으로  보냈다. 조인
과 순욱은 허도에 머물러  방비토록 한 다음 군사를 이끌었다. 이  소식은 곧 기
주의 원소에게도 전해졌다. 원소는 지난 해 패전  이후 피를 토하던 증세를 겨우 
다스린 터라 모사와  장수를 불러 대책을 의논했다. 심배가 근심스런  얼굴로 말
했다.
  "지난 해 관도와 창정에서 연거푸 패한 이래 아직 군사들의 의기를 제대로 추
스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지금은 성 주위의 해자를  깊이 파고 성벽을 높이며 군
사들과 백성들의 힘을 북돋워야 할 것입니다."  그때 이미 조조군은 성난 노도와 
같이 관도 땅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조조군은 이미 관도 땅에 이르렀으며 머지않아 곧 기주로 쳐들어오리라  합니
다." 급한 소식이 원소에게  전해졌다. 원소는 이 소식을 듣자 심배의 말을 물리
쳤다.
  "성 아래까지 적군이 밀고 들어온 뒤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는가. 그들이 
오기 전에 내가  몸소 나아가 그들을 먼저 치리라!" 원소가  단호한 어조로 말하
자 셋째아들 원상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며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아직 병환이  완쾌되지 않으셨으니 멀리까지 나가 싸우시는  것
은 삼가야 합니다.  바라건대 소자가 군사를 거느려 적과 싸우겠으니  허락해 주
십시오." 원소는 원상이 나서자  기뻐하며 쾌히 응낙했다. 세 아들 중 가장 믿고 
있는 아들인데다 이미 지난번  싸움에서도 그의 용맹을 본지라 믿음직스럽게 여
겼다. 원상을 출진토록 한 후 원소는 사람을 청주, 유주, 병주로 각각 보냈다. 그
곳을 지키는 두 아들과 조카에게 군사를 내어 원상과 함께 네 길로 나누어 조조
를 치게 했다.  원상은 지난 해 조조의  장수 사환의 목을 벤 이후  자기 용맹을 
과신하고 있었다.  이런 과신으로 하여 엉뚱한  자만심과 공명심에 들뜨게 했다. 
원상은 형들과 고종사촌 고간의 군대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군사를 거느려 먼
저 여양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조조의 선봉이 이미 당도해 있었던  터라 원상이 
오자 장요는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나와  맞섰다. 원상도 창을  휘두르며 장요를 
향해 말을 박차며 달려가니 그 호기만은 좋았다.  그러나 그가 장요를 대적할 수
는 없는 일이었다. 장요와 2, 3합 부딪자 원상은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급히 말
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장요가 도망가는 그를 그냥  둘 리 없었다. 원상이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자 뒤에 남은  그의 군사들은 장요의 칼에 떼죽음을 당할 뿐이
었다. 원상은 뒤따르는 나머지 군사들을 이끌고 황급히 기주성으로 도망쳤다. 원
소는 원상이 조조 군사에게 패해  기주로 돌아오자 상심과 울분이 겹친 듯 다시 
많은 피를  토해냈다. 겨우 달랬던 병이  다시 도지니 그 병은  쉽게 다스려지지 
않았다. 이미 의식까지  혼미해진 지경에 이르자 허둥지둥 달려온 유  부인이 급
히 심배, 봉기 등을 불렀다.  원소의 병이 회복될 기미가 없음을 알고 뒷일을 의
논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원소는 병이 무거워 말을 하지 못하고  손짓 발짓으로
만 뜻을 전할 뿐이었다. 유 부인이 원소에게 물었다.
  "후사를 미리  정해 두셔야 합니다. 상으로  뒤를 잇게 하는  것이 어떠하오리
까?" 원소는 말을 하지 못하고 겨우  머리만을 끄덕일 뿐이었다. 심배가 붓을 들
어 원소의 유언을  적는데 원소가 몸을 뒤척이며  뒤집더니 붉은 피를 한말이나 
토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일찍이 사세오공의 후예로 1백만 대군을  거느리며 천
하를 호령하던 영웅으로서는  덧없는 죽음이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의 한스러운 
죽음을 시로 남겨 탄식했다.
  여러 대의 명문 자손 되어 큰 이름 떨치고
  어릴 적부터 그의 거칠 것 없었다.
  덧없이 불러들인 3천의 준걸
  영웅이 백만이 되어도 무슨 소용 있으랴.
  양의 몸에 호랑이 가죽 입으니 이룬 공 없고
  보기엔 봉이로되 담력은 닭이니 큰일 못 이루네.
  한스럽고 더욱 마음 아픈 것은
  집안 우환 아들 형제에 미친 일이네.
  원소가 죽자 기주성에는  어지러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배가 원소의 
장례를 도맡아 치르는 동안 미망인 유 부인이  뜻하지 않은 풍파를 일으켰다. 아
직 원소의 장사도 치르기 전에 이글거리던 평소의 질투심을 발동시켜 생전에 원
소가 총애하던 다섯 명의 첩을 모두 죽여 버렸다.
  "죽어 저승에 가서 혼백끼리라도 상봉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유 부인은 
무사들을 시켜 죽인 첩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시신을 찢어발기니 그 시기심이 오
뉴월 서릿발 보다 매서워 보는 이들의 치를 떨게  했다. 유 부인은 그 토막난 시
체를 한 곳에 묻지  말라고 엄명을 내려 또한 끔찍한 한풀이를  했다. 원상 또한 
어머니 유  부인 못지않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그 다섯 첩의  가솔들이 뒤에 
어머니나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 그들을 모조리 주살해 버린 것이다.  한바탕 끔
찍한 살륙전이 있은 뒤 원상은 대사마대장군에  봉해졌다. 원래부터 원상을 받들
던 심배, 봉기가 그를 원소의 후사로 정식 추대한 것이다. 원상을 청주, 유주, 병
주, 기주를 다스리는 4주목으로 삼은 후에야  원소의 죽음을 각처에 알리게 되었
다. 맏아들 원담은 청주에서 조조와 싸우기 위해  군사를 거느리고 가던 중 아버
지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원담은 곽도, 신평을 불러 의견을 물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어찌했으며 좋겠소?"  원담이 묻자  곽도가 
입을 열었다.
  "심배와 봉기가 반드시 원상을 주공으로 세웠을 것입니다. 조조군과 맞서기 전
에 먼저 기주성으로 가야 합니다." 곽도의 말에 신평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원상을 주공으로  세웠다면 그리로 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필시 음흉한 
계교를 세워 놓고 기다릴 것이니 급히 가면 화를 당하게 됩니다."
  "그럼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신평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말 또한  일리가 
있어 다시 의견을 내었다.
  "제가 직접 성  안에 들어가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그럴 동안  성 밖에 군사를 
머물게 하여 저들의  동정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담과 신평은 곽도를  
성 안으로 들게 했다. 곽도가 원상을 만나 상례를 올리자 원상이 물었다.
  "어찌하여 형님께서는 오시지  않으셨소?" 원상이 물음에 곽도는 거짓으로  둘
러댈 수밖에 없었다.
  "마침 병이 나  군중에 누워 계십니다." 원상이 짐직  위엄을 부리며 곽도에게 
말했다.
  "나는 부친의 유명을  받들어 하북의 주인이 되었소.  형님께서는 벼슬을 높여 
거기장군에 봉하셨소. 지금 조조의 군사가 우리 경계에까지 밀려들고 있소. 바라
건대 형님께서 전위가 되어 그들을 막도록 했으면  하오. 나도 군사를 거느려 곧 
뒤따르겠소." 원상이 형 원담을 싸움터로 내모는  말을 하자 곽도는 걱정하던 대
로 일이 어긋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곽도는  이대로 물러나면 영영 일을 그르칠 
뿐이라는 걸 알고 있으므로 원상에게 청했다.
  "청주의 군중에는 계책을  의논할 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심
배, 봉기로 하여금 이  일을 돕도록 하시면 크게 도움이 되겠습니다." 곽도는 원
상을 고립시키기 위해 심배,  봉기를 자신의 군중으로 데려가려 했다. 그러나 원
상이 곽도의 그 말을 순순히 들어줄 리 없었다.
  "나 역시 두 사람에게 의지하고 있소. 어찌 그들을 보낼 수 있겠소?"
  "그럼 두  사람 중에 한 사람만이라도  보내시면 어떻겠습니까?" 곽도가  쉽게 
물러나지 않은 채  그렇게 말하자 원상도 그것만은 거절하지 못했다.  두 사람에
게 제비뽑기를 하여 한  사람을 가게 했다. 제비뽑기를 한 결과  봉기가 가게 되
었다. 봉기는 원상이  준 거기장군의 인수를 가지고 곽도와 함께  원담의 군중에 
당도했다. 봉기가 막상  와 보니 원담은 병으로 앓고 있기는커녕  멀쩡한 얼굴이
었다. 봉기가 내심 불안했으나 인수를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을 거기장군에 봉한다 하셨습니다." 원담이 벌컥 화부터 냈다.
  "이게 무슨 수작이냐? 나는 원상의 형이며  이 집안의  장남이다. 그런데 어찌
하여 아우가 형에게 관작을 내린다더냐?"
  "원상 공께서는 이미 선군의 유명을 받들어 하북의 군주가 되시었습니다."
  "그럼 선친의 유서를 보여라."
  "유 부인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그 말에 원담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무사
들에게 명했다.
  "네놈도 이 일을  함께 꾸몄지 않았느냐? 어서 저놈의 목을  베라!" 그러자 곽
도가 급히 말리며 조용히 말했다.
  "지금 조조의 군사가  하북의 경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봉기를 이곳에 머물게 
하여 상이 의심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먼저 조조를 물리친 뒤에  기주를 취하셔
야 합니다." 원담도 곽도의 말을 듣자 노기가  치솟는 가운데도 그 말이 옳게 여
겨지지 않을 수 없었다. 노기를 거두고 즉시  군사를 거느려 조조군을 맞으러 출
발했다. 원담이  군사를 이끌어 여양에 이르니  이미 조조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담이 장수 왕소를  내보내자 조조군에서는 서황이 마주 나왔다. 두  장수가 맞
붙어 싸움이 시작되었으나  불과  몇 합을 어우르지 못하고 서화의 칼에 왕소의 
목이 떨어졌다.  여세를 몰아 조조의  군사가 원담의 군사를  몰아치기 시작하자 
원담의 군사는 크게  상했다. 원담은 여양성으로 들어가 성문을 굳게  닫고 원상
에게 사람을 보내  구원을 청했다. 원상은 심배와 의논한 끝에  겨우 군사 5천을  
뽑아 여양으로 보냈다.  5천의 군사로는 조조군에게 패한 원담에게  힘이 되기가  
태부족이었다. 그나마  원상이 보낸  군사들도 여양에  이르기 전에  조조군에게  
무너지고 말았다. 조조가 세작으로부터 원상의 구원병이  온다는 사실을 미리 탐
지하고 악진, 이전에게 군사를  주어 도중에서 치게 한 것이었다. 악진과 이전이 
원상의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려  사방에서 그들을 에워싸고 섬멸하니 살아 남은   
자가 없었다. 구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원담은  겨우 군사 5천이 달려오다 그
나마 도중에서 조조군에게 몰살당했다는 걸 알고 또다시 노기가 치솟았다.
  "상이 놈이  겨우 군사 5천을 보내고  자기는 기주성에 들어앉았다는 말이냐? 
내가 누구를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말이냐?" 원담은 화가 나 봉기를 불러 꾸짖
었다. 봉기는 원담의 노기를 그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되든 안 되든 하는 
데까지 해 보자는 마음으로 원담에게 달래듯 말했다.
  "제가 글을 써서 주공께 올려 보겠습니다. 그러면 주공께서는 반드시 구원병을 
이끌고 오실 것입니다."  원담으로서는 지금 다른 방책이 없었다. 봉기에게  기대
를 걸며 원상에게 글을  써 보내게 했다. 봉기의 글을 받자  원상은 심배에게 이 
일을 물었다. 그러자 심배가 엉뚱한 계책을 내놓았다.
  "곽도란 놈은 예삿놈이 아닙니다. 요전번에 그가 잠자코 여양으로 돌아간 것은 
조조군이 우리와 경계에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조조군이 물러나면 
그는 반드시 기주를 취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조조의 손을 빌어 그들
을 없애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심배가 곽도의 속셈을 헤아려 한 말이었
다. 그러나 그는 조조군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이 기막힌 
계교를 들은 원상 또한 앞뒤의 헤아림 없이 그의 배다른 형을 없애자는 말만 듣
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사에 그 주군이었다. 원상은 마침내 심배의 말을 듣고 
구원병을 보내지 않기로 하니 사자는 하릴없이  여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사자
로부터 이 말을  전해들은 원담이 노발대발했다. 한칼에 봉기의 목을  쳤으나 원
상에 대한 적개심은 적군인 조조보다 더했다.
  "원상이 이토록 간악하고 음흉하니 내 차라리 조조에게 항복하여 원상이  놈부
터 치리라." 격분한 원담은 조조에게 투항하기로 하고 곽도와 더불어 이 일을 상
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실은 원상의 첩자에게 알려지고  다시 원상의 귀에  전
해졌다. 그제야 크게 놀라며 일이 엉뚱하게 뒤틀려 버렸음을 알았다. 아연실색한 
심배가 원상에게 급히 말했다.
  "조조와 함께 원담이 쳐들어온다면 기주성을  지켜 내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이
라도 주공께서 급히 원군을 이끌어 원담을  구원해야 합니다." 원상도 일의 위급
함을 알고 대장  소유와 심배를 성에 남겨  두고 3만여 군사를 이끌어 여양으로 
향했다. 원상은 대장 여광과 여상 형제로 하여금 선봉을  맡게 한 후 한 발 먼저 
여양으로 떠나게  했다. 원담은 원상이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러  온다는 보고를 
받았다. 원담은  그 소리를 듣자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조조에게  투항할 마음을 
바꾸었다. 원담은 여양에 당도한 구원군을 맞으며 군사를 배치했다. 원담은 여양
성안에 머물고 원상은 성  밖에 진을 쳐 안과 밖에서 적군을  치기로 했다. 그럴 
동안 유주의 원희와  고간도 각기 군사를 이끌고 여양에 이르렀다.  원희와 고간
이 가세하여 삼면에 걸쳐 진을 펴니 바람 앞의 촛불 같았던 원가의 위기가 하루 
만에 기세 당당한  군세로 뒤바뀌었다. 조조군도 원가 일가가 힘을  모아 맞서자 
마음대로 밀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몇  번의 국지전으로 적에게  피해를 입혔을 
뿐 싸움은 이듬해인  건안 8년까지 이어졌다. 2월의 되어 날씨가  풀리자 조조는 
마침내 총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군사를  네 갈래로 나누어  일제히 진격하자 
원담, 원희, 원상,  고간은 견디지 못하고 군사를  물렸다. 총공세를 편 조조군은 
퇴각하는 적을 숨쉴 여유도 주지 않은 채  단숨에 기주까지 추격했다. 그러나 기
주성은 북방 제일의 요새였다. 원담, 원상이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니, 맹공격을 
가해도 이 철옹성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성 밖  30여 리에 진영을 
내린 채 군사를 주둔시키고 대치했다. 그런 어느  날 모사 곽가가 조조에게 권했
다.
  "기주성을 원소의 세 아들이 굳게 지키니 쉽게 깨뜨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대
치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이 기회에 형주를  치는 것이 어떻겠습니
까?" 곽가의 권유에 조조가 물었다.
  "그럼 기주성을 포기한다는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원소가 죽기 전 맏아들을 젖혀두고 셋째아들 원상을 하북의 
군주로 세웠기 때문에 형제간에 다툼의 불씨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급하게 그
들을 치면 그들은 우리를 막기  위해 뭉치지만 물러나면 그들은 필시 다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형주를 평정한다면 그 동안 그들은  반드시 서로 싸우게 될 것
입니다. 그때를 기다리며 형주를 치는 것입니다. 유표를 치면서 기주성에 변란이 
일어나면 그때 다시 돌아와 기주를  치면 하북도 어렵지 않게 무너뜨릴 수 있습
니다." 조조가 들으니  형주와 하북을 한꺼번에 평정할 수 있는  현책이 아닐 수 
없었다. 조조는 곽가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모사 가후를 태수로  삼아 여양성을 
지키게 했다. 또한 조홍에게도 군사를 주어 관도를  지키게 하여 자신이 없는 동
안 일어날 만약의 일에 대비케 했다. 이윽고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출진
했다. 조조군이 썰물처럼 기주에서 떠나자 기뻐하는  사람은 물론 원담, 원희, 원
상 형제들이었다. 서로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속고 속이며 원담과 조조 결탁하다
  원담은 조조에게 거짓  투항하여, 조조로 하여금 원상을 치도록 하고  그 후에 
조조를 도모하기로  한다. 조조는 원상을 완전히  쳐부수고, 끝까지 지키고 있는 
심배의 견고한 기주성마저 손안에 넣는다.
  조조군이 물러가자 원희와  고간은 각기 자기들이 다스리던  곳으로 돌아갔다. 
기주에 더 있을 필요가 없거니와 각각 다스리던 주를 오랫동안 비워 둘 수도 없
는 일이었다. 원희,  고간도 돌아가고 기주에 원담, 원상 형제만  남자 원담의 마
음 속에서 또다시  원상에 대한 적개심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원담이 곽도
와 신평을 부른 후 볼멘소리로 말했다.
  "나는 맏이건만 부친의 대업을 잇지 못하고 있다. 첩의 자식인 아우가 그 자리
를 차지하고 있으니 내 어찌 원통하지 않으랴!"  곽도가 지체하지 않고 목소리를 
낮춰 한 계교를 말했다.
  "그 일로 상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공께서는 이제 청주로 돌아가신다는 핑
계를 대고 원상과  심배를 청하여 주연을 베풀도록 하십시오. 술이  거나해질 때
를 기다려 미리 도부수를  매복시켰다가 그들을 제거하시면 대사는 절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원담이  들으니 가슴이 후련해지는 계책이었다. 때마침 지난날  별
가직을 지냈던  왕수가 청주에서 왔다.  원담은 왕수에게도 이  계책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며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왕수는 고개를 저으며 담담한 어조로  그 일
을 말렸다.
  "형제란 원래 왼손과 오른손에 다름아닙니다. 지금  싸워야 할 적이 따로 있거
늘, 자기의 한 손을 자르고 어찌 이길  수 있다 하겠습니까? 무릇 형제와 가까이 
지내지 못하는데 천하의 그  누구와 가까이 지낼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형제간
을 갈라 자신의 한때의  이익을 구하려 함이니, 이런 말은 귀를  막고 듣지 않아
야 할 것입니다." 왕수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았으나 옳은 말에는 귀를 막기로 작
정이나 한 듯이 원담이 대뜸 화부터 벌컥 냈다.
  "내 너에게 흉금을 터놓고 도움을 청했거늘 어찌 일을 그르치려 하느냐? 그렇
다면 아우 원상이 대업을 이어받은 것이 옳다는 말이냐?" 원담이 노기가 등등하
여 외치자 왕수는 그 자리를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왕수는 그 길로 다시 청주
로 돌아가고 말았다. 원담은 지체하지 않고 성  안으로 사람을 보내 원상과 심배
를 초청했다. 형으로부터 사자가 와 자기를 부르자 원상은 심배에게 물었다.
  "형이 우리를 초청하였는데  어찌해야겠소?" 불쑥 자기와 심배를 함께  부르는 
것이 꺼림칙하여 원상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곽도의 속을 꿰뚫어본  것처럼 심
배는 펄쩍 뛰며 말했다.
  "주공께서는 가셔서는 아니 됩니다. 분명 곽도의 간계일 것이니 주공께서 가셨
다가는 화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차라리 이  기회에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좋
을 듯합니다." 심배의 말에 원상은 생각에 잠기다 말했다.
  "공의 말이 옳소. 그들은  살아 있는 한 나의 우환거리가 될 것이오." 이미  형 
원담을 적으로 돌린 원상은 곧 갑옷에 투구차림으로  말에 올랐다. 성 안에 있는 
군사 5만을 거느리고 기주성 밖으로 나왔다. 원상이 나오는가. 눈이 뚫어져라 지
켜 보고 있던 원담은 뜻밖에도 그가 군사를 거느리고 오자 일이 뒤틀려 버린 걸 
알았다. 원담도 즉시 갑옷에 투구 차림으로 말에 올랐다.
  "너는 아버님을  독살하고 마음대로 작위를 탐하더니  이제는 이 형을 죽이러 
왔느냐?" 원담이 원상에게 큰 소리로 꾸짖자 원상도 이에 질세라 대꾸했다.
  "너는 아버님의 유명을 어기고 감히 내 자리를 넘보느냐? 그러고도 어찌 나를 
탓하느냐?" 원담, 원상 두 형제는 그 말이 떨어지자 곧장 칼을 빼들고 싸움을 벌
였다. 원래 군세는 원상보다  약했던 원담이었다. 거기다가 무예 또한 원상의 적
수가 되지 못하는 원담이었다. 칼과 칼이 몇  번 부딪다 원담이 말머리를 돌리자 
원상도 지체하지 않고 그 뒤를 쫓았다. 원담이  평원 땅으로 달아나는 도중 많은 
군사들이 원상군에 의해 죽고 상했다. 원상은 더  이상 쫓지 않고 군사를 되돌렸
다. 패군을 거느리고  평원에 당도한 원담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원상을 공격할 
채비를 갖췄다.  이번에는 원담이 직접  나서는 대신 잠벽을  선봉으로 내세우고 
기주를 공격했다. 원상도 군사를 거느리고 성 밖에 나와 둥그렇게 진을 쳤다. 양
군이 각기  진을 벌이며 기치를 세우고  북을 울렸다. 원담의 장수  잠벽이 말을  
달려나와 원상을 꾸짖으며 얼러댔다. 원담의 군사를  하찮게 여기고 있는 원상이 
말을 달려 가려 하는데 장수 여광이 가로막고 나섰다.
  "주공께서는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저  자의 목을 치겠습니다."  원상이 
기뻐하며 여광을 가게 했다.  두 장수가 양군의 가운데서 세차게 칼을 부딪쳤다. 
몇 합을 기세 좋게 어우르는가 했느나 여광의 칼에 찔려 잠벽이 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원상의  군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여세를 몰아  원담군을 향해 
짓쳐 들어 갔다. 대장이 무너지자 기가 꺾인  원담군은 원상군의 칼에 많은 군사
가 목숨을 잃는 가운데 도망가기 바빴다. 또다시  패한 원담은 다시 평원으로 되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원담을 섬멸해야  할 때입니다." 심배가 원상을 부추겼다.  원상
은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평원까지 뒤쫓았다. 원담은 원상에게  쫓겨 황망
히 평원성  안으로 들어갔다. 크게 혼이  난 원담은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기만 
할 뿐 다시는 성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원상은 평원성을 삼면으로 에워싸고 날
마다 세차게  공격했다. 게다가 양초를  호송하는 길마저도 끊어  놓으니 원담도 
더 이상 배겨 낼 수가   없었다. 원담은 곽도에게 대책을 물었다. 그러자 곽도가 
서슴없이 한 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지금 성 안에는 양식마저 줄어드는데 저들의 사기는 충천합니다. 저의 어리석
은 생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시 조조에게 항복하고 조조로  하여금 기주를 
치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조조가 기주성을 공격하면 원상은 당황한 나머지 
군사를 물릴 것입니다. 그때 조조와 함께 협공을  가하면 원상을 사로잡을 수 있
을 것입니다."
  "만약 조조군이  와서 원상을 깨뜨리고 기주를  점령하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겠소?" 원담이 곽도에게 물었다. 조조와  연합하여 원상을 물리치게 되어도 그 
후에 조조군이  선선히 물러가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게 되면  원상보다 더 
큰 적을 만나게 되는 격이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곽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조가 원상을 무너뜨리거든, 우리는  원상의 패잔병을 거두어 조조와 맞서면 
됩니다. 조조는 멀리서 달려왔으므로  군사와 말이 모두 지쳐 있을 것입니다. 게
다가 군량마저 딸릴 테니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물러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기주성을 차지한 다음 천천히 큰일을  도모할 수도 있습니다." 원담은 곽
도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원상과 조조를  한꺼번에 물리칠 수 있다는 말
에 반색을 하며 물었다.
  "그럼 누구를 보내면 좋겠소?"
  "신평의 아우 신비가 좋겠습니다. 그는 자를 좌치라고 하는데 지금 평원령으로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언변이 좋으니 그를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신비라면 나도 잘  알고 있소. 변설이 능한  사람이지요. 당장 부르도록 하시
오." 원담이 재촉하자 곽도는 곧 사람을 보내 신비를 불러 조조에게 사자로 다녀
올 것을 청했다.  신비는 흔쾌히 수락하고 원담으로부터 서찰을 받아  길을 떠났
다. 원담은 신비에게 군사  3천을 딸려 그를 호위하게 했다. 이때 조조는 군사를   
이끌어 하남의 서평에  진영을 펴고 있었다. 유표는 조조가 공격해  오자 유비를 
선봉에 세워 그들을 맞도록 했다. 양군이 접전을  벌이려고 할 즈음 조조는 진중
에서 원담이 보낸 사자의 전갈을 받았다. 조조가  그를 불러 찾아온 연유를 물었
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가?"  신비가 조조에게 예를 올린 후 원담의  서찰을 
바쳤다. 글을  읽어 본 조조는 신비를  진에서 기다리게 한 후  문무의 중신들을 
불러 이 일을 의논했다.
  "지난번 곽가는 원가에서 곧 그 아들들이  다투리라고 진언한 바 있었소. 그런
데 그 말대로 지금 맏이와 셋째가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 같소. 이에 맏이
인 원담이 내게 투항하겠다고 하였소. 투항한 이후  함께 원상을 쳐 기주성을 무
너뜨리자는 것이오. 공들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조조가 좌중을 돌아보
자 정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원담이 원상의 공격을 받아  위급한 처지에 빠지자 하는 수 없이 투항하겠다
는 것이니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주공께서는 유표를 치기 위해 이곳까지 군사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어찌 유표
를 두고 다시 원담을 도우러 가겠습니까?" 만총과 여건도 정욱과 같은 의견이었
다. 그러자 이들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순유가  자리에서 일어
나 말했다.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저의 어리석은 생각일지  모르나 유표를 치는 것은 급
히 서둘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유표는 천하가 어지러울 때도  다만 자신의 
영토 지키기에만 급급했을 뿐  한 번도 그 세력을 넓히고자 한  바 없습니다. 이
는 그가 천하에 대한 뜻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에 비해 원씨는 4주에 걸친 넓
은 영토를 갖고  있고 정병만도 수십만이 됩니다. 만약 이들에게  뛰어난 모사가 
있어 형제의 화목을 꾀한 후 그 기업을 함께 지켜 간다면 천하의 형세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때마침 그들 형제가  서로 다투다 그 중 한 쪽이 우
리에게 투항하려 한다니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기회를 빌
어 우리가 군사를 거느려 원상을  없앤 뒤 사태를 지켜보다 차후 원담까지 제거
한다면 이것이 곧  천하를 평정하는 일입니다. 이는 실로 하늘이  내린 기회입니
다." 순유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조조는 크게  기뻐했다. 순유가 유표와 원씨를 
헤아리는 데에 있어  한치의 어긋남도 없다고 여겼다. 조조는 순유의  말을 좇기
로 하고 신비를 불러 술을 대접하며 물었다.
  "원담이 항복하겠다는 것은  진심이요, 아니면 위계요? 그리고  원상이 원담을 
정말 이기고 있소?"  조조가 신비를 지켜보았다. 기주의 말을  통해 그의 속마음
과 기주의 형세를 엿보기 위한 물음이었다. 신비가 조조의 물음에 대답했다.
  "승상께서는 이 투항이 진심인가 아닌가를 묻지 마십시오. 사자의 신분으로 대
답하기가 거북할 따름입니다.  다만 그 형세를 살펴보시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
을 것입니다." 신비가 이렇게 말하자 조조가 다시 물었다.
  "원씨 일가와 기주의 형세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원씨는 해마다  싸움에서 패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들은 지쳐 있으며 현신들 
또한 모략으로 주살되었습니다.  거기다가 권력다툼으로 골육이 서로  창칼을 맞
대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늘의 노하심인지 지난  해부터 황해(메뚜기의 폐해)의 
재앙까지 겹쳐 백성들의 고초가 말이 아닙니다.  이야말로 하늘이 원씨를 버리려 
하심입니다. 그러니  이제 승상께서 군사를 거느려  업을 치십시오. 만약 원상이 
구할 틈이 없다면 그는  제 소굴을 잃을 것입니다. 또 구하기  위해 돌아온다 할
지라도 원담이 그 뒤를 덮칠 것입니다. 승상의  위엄으로 지친 그 무리를 치신다
면 거센  바람이 낙엽을 쓰는 것과  한가지일 것입니다. 이를 두고  형주를 치려 
하심은 하늘이 내린  기회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형주는 양식이  풍부하고 나라 
또한 평화스럽습니다. 그런  형주는 단번에 무너뜨리기 어렵습니다. 지금 천하가 
소란스러운 마당에  하북은 그 중 가장  큰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하북을 평정하시는  것이 곧 패업을  이룩하는 지름길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승상께서는 이를 깊이  살피시기 바랍니다." 묵묵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조조는 
신비의 말이 끝나자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신좌치와 진작 만나지 못한 것이 한스럽소. 공의 밝은 헤아림이 모두 내 뜻과 
같소." 조조는 그날  밤에 여러 장수와 함께 성대히 잔치를  열어 신비의 노고를 
치하했다. 이튿날이 되자  조조는 진을 거두어 대군을 이끌고 기주로  향해 진병
했다. 조조군을 맞으러 출정했던 유비는 조조가  갑자기 군사를 물리자 의아해했
다. 그러나 그 뒤를 쫓지는 않았다. 꾀가 많은 조조가 또 무슨 술수를 쓰는 것이
라 여겼기 때문이다. 한편, 원상은 조조가 군사를 이끌어 강을 건너 기주로 향한
다는 급보를 받고  놀라며 급히 군사를 업성으로 되돌렸다. 원상은  여광과 여상
에게 후진을 맡겨 원담이 추격해 올 경우에  대비했다. 이때를 노리고 있던 원담
은 원상이 급히 물러나는 것을 보자 평원  군사를 거느리고 추격했다. 원담이 수
십 리를 쫓아갔을  때였다. 갑자기 포 소리가 들리더니 양쪽에서  군사가 달려나
왔다. 여광과 여상이 거느린  군사들이었다. 원담은 말을 멈추고 두 장수에게 말
했다.
  "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 나는 그대들에게 한 번도 소홀히  대한 적이 없었소. 
그런데 어찌하여 내  아우 편만을 들어 나를  괴롭히려 하시오?" 조용한 어조로 
달래는 듯한 원담의 말을 듣자 여광, 여상 형제도 마음이 흔들렸다. 맏이인 원담
이 원상에게 자리를 뺏겨 분한  마음으로 원상을 치려는 것은 전혀 이해하지 못
할 일도 아니었다. 거기다가 조조가 원상을 치러  온다면 앞일은 어떻게 될 것인
지 뻔한 일이었다. 여광, 여상은 말에서  내려 원담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원담은 
그런 그들을 보고 말했다.
  "나에게 항복할 것이 아니라 조 승상께 항복하도록 하시오." 두 형제는 조조군
이 올  때를 기다려 우선 원담의  진영으로 갔다. 이윽고 조조의  군사가 평원에 
다다르자 원담은 여광, 여상 두 장수를 데리고 조조를 뵈러 갔다. 조조는 원담이 
원상의 장수인 여광, 여상까지  데리고 오자,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딸을 원담과 
짝지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조조가 열대여섯 밖에 되지 않은 자기  딸을 신부로 
준다고 하자 원담은  철없이 기뻐했다. 자기 아버지를 죽인 조조의  사위가 되기
로 한  원담은 다시 원상을 급히  치자고 재촉했다. 그러나 조조는  그런 원담을 
달랬다.
  "아직 군량과 마초가  오지 않았고, 또 운반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다네. 이제 
황하를 건너 기수를 막아 백구로 물을 돌리면 양도(곡식을  나는  길)가 열릴 것
이니 그때 그들을 치도록 하겠네." 조조는 원담에게 잠시 평원성에 머물게 한 뒤 
자신은 여양 땅으로 군사를  물렸다. 조조는 여양으로 가면서 여광, 여상에게 열
후로 벼슬을 높여 주고  함께 데리고 갔다. 조조가 원상을 치지  않고 그냥 군사
를 물리자 이를  못마땅히 여긴 건 곽도였다. 자기의 계책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여광, 여상의 벼슬을 높여 조조의 휘하로  데리고 가자 이를 심상치 않
은 일로 생각했다. 어느 날 화를 불러일으킬 계책을 내며 원담을 부추겼다.
  "조조가 여광, 여상에게 벼슬을 높여 데리고 간 것이나 장군과 자기의 딸을 짝
지어 주겠다고  한 것은 깊은 책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그렇게  해서 하북 
사람의 인심을 자기에게로  돌려 놓고 뒷날 우리를  치려는 속셈입니다." 곽도의 
말에 원담은 얼굴빛이 달라지며 물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그 두 사람을  장군으로 봉하고 대장인 두 개를 파서  은밀히 여광, 여상에게 
보내도록 하십시오. 그들의 마음을 주공께 되돌린  후 우리와 내응하도록 하십시
오. 그래야만 조조가 원상을 치는 즉시 우리가 조조를 칠 수 있을 것입니다." 곽
도의 부추김에  원담은 이를 받아들여 즉시  두 개의 대장군 인을  새기게 했다. 
그 인은 얼마 후 여양에  있는 여광, 여상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이미 두 사람
은 모두 조조의  충실한 심복이 되어 있었다. 곽도나 원담이  이것까지는 헤아리
지 못했던 것이다. 여광과 여상은 대장인을 받자 그것을 조조에게 보였다.
  "원담이 이런 걸  보내 왔습니다." 조조는 그 대장인을  보자 어이없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보내온 것이니 잠자코 받아 두게. 몰래 장인을 보낸 까닭은 때가 오면 그대들
에게 내응토록 하여 내가  원상을 치고 난 후 나를 도모하려는 것이니. 하하하." 
조조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으나  마음 속으로는 그를 죽여 없애야겠다는 살의를 
굳혔다. 겨울 동안은 싸움  없이 지냈다. 그러나 조조는 그 동안에 허송세월하고 
있지는 않았다. 수만  명에 이르는 인부를 동원해서 기수의 흐름을  끌어 백구로 
통하게 하는 운하를  만들기 위한 공사를 독려하고 있었다. 또  다스리는 영지에 
부흥정책을 시행하여 선전을 베풀었다.  부흥정책의 첫째로는 감세정책을 시행케 
했다. 농민들에게 1묘(약 200평)에  대해 곡물 4되, 1호에 대해서는 비단 2필, 솜 
2근 등으로 세금을 줄여 그 이상의 세금이나  노역은 금하게 했다. 또 각 군마다 
사당을 만들고 5백 호마다 장학관을 두며,  학문이나 무예에 빼어난 젊은이는 관
비를 들여 허도에  유학시켰다. 이렇게 해서 육성된 젊은이는 후일  위왕조를 떠
받드는 인재로 성장했다. 산업정책으로는 그가 꾸준히  독려해 온 농업생산을 장
려했다. 조조는 일찍이  강대함을 자랑하던 대한제국이 허물어지려는  것은 벼슬
아치들의 무능과 부패  때문이라고 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벼슬아치들에게 백
성들의 공복(국가나 사회에  대한  심부름꾼으로서의 공무원)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현령이나 태수 등의  벼슬아치들이 임지로 부임할  때 조조는 
훈시하기를 잊지 않았다.
  "너의 봉록은 백성들의  땀과 기름이다. 아래로 백성들을 학대하기 쉽고,  위로
는 하늘을 속이기  쉽다. 너의 봉록은 결국은  민중의 고혈(사람의 기름과 피)을 
짠 조세에서 나왔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러므로 민중에게 유익한  일만을 생각
해서 다스려야 할 것이니라." 조조의 훈시는 [서경]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천하의 
군웅이 서로 겨루는  난세에서 '공복정신'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는다
는 것은 조조의  대정치가로서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이듬해인 건안 9년의 봄, 
운하는 개통되고 수많은 군량선들이 운하를 따라  오르내렸다. 한편 업성으로 돌
아간 원상은 조조가 여양으로 떠난 후 심배에게 앞일을 물었다.
  "지금 조조의 군사들이  백구를 통해 배로 군량을 실어 온다고  하오. 이는 곧 
기주를 공격하려는 뜻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심배가 원상에게 방책을 내
놓았다.
  "급히 사자를 보내, 무안의 윤해로 하여금 모성을 지키게 하십시오. 그런 다음 
상당의 양곡 수송로를 끊게 하는 한편, 저수의  아들 저곡으로 하여금 한단을 지
키면서 멀리서 응원하게 하십시오. 그 다음  주공께서는 평원으로 군사를 전진시
켜 먼저 원담을 치신 후에 조조를 무너뜨려야 할 것입니다." 심배의 말에 원상은 
기뻐했다. 원담과 조조를  차례로 깨뜨릴 수 있다는 계책에 원상은  즉시 진병을 
서둘렀다. 심배를 기주에 머물게 한 후 정예병과  마연과 장의 두 장수를 선봉에 
세우고 그날로 평원으로 나아갔다. 원상이 군사를  내어 진군한다는 소식을 듣고 
원담은 조조에게 급히 구원병을 청했다. 그때  조조의 진중에서는 허창에서 허유
가 당도하여 그 둘이 만나고 있었다. 원상이  원담을 공격한다는 말을 듣자 허유
가 조조에게 말했다.
  "승상께서는 하늘에서 원담, 원상 형제에게 벼락이라도 떨어져 맞아 죽기를 기
다리십니까?" 허유는  조조에게 때가 왔으니  군사를 일으키라고 빗대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하하, 이제부터일세. 이제 반드시 기주를  얻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말게." 이
때 원담으로부터의 구원병을 청하는 사자가 왔다.  조조는 허허 웃으며 허유에게 
말했다.
  "때마침 소식이 왔네. 원담이 구원을 청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네." 조
조는 먼저 조홍으로 하여금 업성을 치도록 했다.  그런 다음 자신은 몸소 군사를 
거느려 모성을 향해 군사를 거느렸다. 조조가  모성으로 진격한다는 소식을 들은 
윤해가 경계까지 군사를 이끌어 조조와 맞섰다.  조조는 윤해가 말을 달려나오자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허중강(허저의 자)은 저 자의 목을 베어 오라." 조조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허저는 말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윤해가 마주 달려나오자 둘은 수  합을 부딪쳤
다. 윤해가 기세 좋게  달려나오기는 했으나 그는 허저의 적수가 아니었다. 허저
의 한칼에  목이 떨어지니 허저와 수  합을 겨룬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윤해의 목이 맥없이 떨어지자 조조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항복하는 자에게는 어제의 죄를 묻지  않겠다." 대장의 목이 떨어지자 그렇지 
않아도 술렁대던 군사들은 조조의  말에 너도나도 무기를 버리고 땅바닥에 엎드
렸다. 조조는 대항하는  군사를 무찌르고 항복한 패잔병들을  거느리며 한단으로 
말을 몰았다.  한단을 지키던 저곡이  조조군을 맞아 싸웠으나  조조군을 대적할 
만한 군사들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장요가 말을 달려 저곡과 맞섰다. 저곡은 장
요를 맞아  불과 세 합을 버티지  못하고 말을 돌려 달아나기에  바빴다. 장요가 
그를 그냥 둘 리 없었다.  그를 뒤쫓으며 활에 살을 메겨 시위를 당겼다. 화살이 
저곡의 뒷덜미에 꽂히자 그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말 위에서 굴러 떨어지
고 말았다. 조조가 이를 보고 군사를 휘몰아 저곡의 군사들을 덮쳤다. 대장을 잃
은 군사들은 우왕좌왕하다 모두 뿔뿔이 흩어지며 달아나기에 바빴다.
  "이제 업성으로 진격하라!" 한달음에 달려와  윤해와 저곡을 죽인 조조는 내쳐 
기주로 가 업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전군에 명했다. 조조가 밀물처럼  대군을 이
끌고 기주로 향하자 먼저 이곳으로 군사를 이끌고 왔던 조홍이 기주성을 공격하
고 있었다. 조조는  조홍이 거느린 군사와 합쳐 대군을 이끌고  총공격을 감행하
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조조는 3군을 호령하여 기주성 둘레에  흙을 쌓아 산
을 만들고, 땅굴을  파게 하며 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땅굴을 파는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땅 속에 암맥과 참호(성 둘레의 구덩이)가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이때 업성은 모사 심배가 지키고 있었다. 심배는 주군 원상이 평원으로 원
담을 치러 가고 없는 터라 성을 굳게 지키기 위해 군사들을 엄히 다스리고 있었
다. 그러나 이런 엄한 법령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하루는 
동문을 지키던 장수 풍례가 술에  몹시 취해 순찰을 게을리한 것에 대해 심하게 
꾸짖었다. 풍례는 이를 못마땅히  여겨 몰래 성을 빠져 나가 조조에게 투항했다. 
기주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던 조조라 그가  반갑지 않을 리 없었
다. 풍례를 후히 대접하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이 성을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조조의 물음에 풍례가  기다렸
다는 듯이 대답했다. 조조에게 투항한 장수로서 공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성 밖으로 공격할 수 있는 돌문 안쪽은 참호가 없습니다. 그곳으로 땅굴을 파
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힘센 군사 3백을 주어 굴
을 파게 했다. 심배는 풍례가 조조에게 투항했다는  것을 알자 성 안팎의 순시를 
한층 더 엄중히 했다. 스스로 성 위를 순시하던  어느 날 밤 돌문 망루에 올라가 
성 밖을 살피다  보니 이상하게도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조조의  군사들이 성을 
에워싸고 있어 밤이면 횃불이나 모닥불이 성 둘레를 밝히고 있는데 유독 한쪽만 
불빛이 없는 것이 아닌가. '이는  필시 풍례란 놈이 조조에게 일러 바쳐 돌문 쪽
으로 땅굴을 파게  한 것이리라.' 심배는 급히  날랜 군사들을 불러 돌을 나르게 
하고 돌문의 바깥쪽 밑을 파게 했다. 과연  돌문 아래쪽에 구멍이 뚫리며 땅굴이 
나타났다. 군사들은 성 안의 수문을 열어 굴 속으로 물을 퍼부었다. 땅굴이 물로 
차자 심배는 돌로 굴을 막아 버렸다. 풍례와  3백 군사는 땅굴 속에 모두 파묻혀 
죽고 말았다.
  "실로 심배는 적이지만 명장이 아닐 수  없다." 조조는 땅굴 파는 일이 실패로 
끝나자 아쉬움 속에서도 심배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조조는 땅굴 작전을 단념하
고 군사를 원수로 돌렸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기주성에서 힘을 뺄 것이 아니라 
성 밖에 있는  원상부터 깨뜨릴 심산이었다. 조조는 급히 원상의  동정을 알아보
게 했다. 원상이 그때 기주성을 향해 급히 회군해 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조조
가 윤해, 저곡을  격파한 후 기주성으로 쳐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원상은 기주
성을 구원하기로 했다. 황급히 기주로 떠나려는 원상에게 부장인 마연이 말했다.
  "큰길로 가지 마십시오.  반드시 조조의 복병이 있을  것이니 사잇길로 가십시
오. 서산으로 향한 뒤 부수 어귀로 가시어  조조의 배후를 몰아치면 기주성의 포
위는 자연히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원상은 마연의 말에 따라 사잇길을 택해 기
주로 향하는 한편 마연과 장의  두 장수에게 후진을 맡겨 만약 원담이 뒤쫓으면 
이를 치게 했다.  그런데 원상의 이러한 동정은 첩자에 의해  조조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그 사실을 보고받자 조조가 말했다.
  "원상이 큰길로 나오지 않고 서산 사잇길로 나온다니 이는 나를 두려워함이다. 
만약 큰길로 온다면 피하려 했지만  그가 소로로 온다니 그를 사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필시 불을  피워 성 안으로 군호를 보내어 나를  안팎으로 치려 할 
것이다. 그러니 나도 군사를 나누어 그들을 치리라." 조조는 군사를 나누어 한쪽
에서는 성을 치게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원상을  맞기로 했다. 원상은 이때 부수 
어귀로 나와 양평 땅에  이르러 진을 쳤다. 기주성과는 불과 20여  리 떨어진 곳
이었으며 부수가 흐르고 있는 곳이었다. 원상은 기주성과 내응할 궁리부터 했다. 
군사들에게 명하여 마른풀과 장작을 쌓아 두게 하는 한편 주부인 이부에게 기주
성에 들도록 했다. 이부는 조조군으로 위장하여 무사히 기주성에 이르렀다. 이부
는 성문 아래에서 외쳤다.
  "문을 열라!" 때마침 심배가 순시를 하다 이 목소리를 들었다. 가만히 들어 보
니 이부의 목소리인지라 성문을 열고 그를 맞았다.
  "지금 주공께서는 양평에서 공의 접응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 안에서 군사를 
내보낼 때에는 불을  올리도록 하시오." 이부는 심배에게  군호로 불을 올리도록 
했다. 심배가 군사들에게 불을 지필 마른풀과 장작을 준비하도록 명했다. 이부가 
뒷일에 대해 또 한 가지 방책을 말했다.
  "조조군을 깨고 밖에  있던 군사들이 성 안에  들게 되면 그때는 당장 군량이 
바닥이 날 것이오. 그러니 성  안에 있는 노인과 부녀자, 그리고 병든 자들을 내
보내 항복하게 하시오. 조조가 안심하고 있는 틈을  타 백성들의 뒤를 따라 군사
를 내보내 조조를 치시오." 심배가 이부의 말을 들으니 그럴듯한 계책이었다. 심
배는 이부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채비를 서둘렀다. 다음 날이었다. 심배는 기주
성 위에 흰  기를 내걸었다. 그 기에는 '기주 백성은  항복한다'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조조가 그 기를 보더니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늘고, 병들고, 약한 백성들만을 내보내  항복을 가장하려는 계교이다. 이미 성 
안에는 양식마저 떨어졌구나.  백성들이 항복해 나올 때 그 뒤에서  반드시 군사
를 내몰 것이다." 조조는 좌의 장수들에게 이렇게 말한 다음 장요와 서황에게 군
사 5천을 주어 성 양쪽에 매복케 했다. 얼마  후 성문이 열리더니 흰 기와 흰 누
더기 등을 손에  쥔 백성들이 해일처럼 성문 밖으로 쏟아졌다.  늙은이를 부축하
고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부녀자들뿐이었다. 조조는 이때  일산까지 받쳐들고 
유유히 성 아래로  향하니 싸움터에 나온 장수의 행차가 아니었다.  백성들이 성
문 앞을 다 빠져  나오자 그 뒤를 이어 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조
가 명을 내리자 군사 하나가 붉은 깃발을  흔들었다. 붉은 깃발을 군호로 매복해 
있던 장요와 서황이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와 성 밖으로 나온  군사들을 덮쳤다. 
심배의 군사들은 이 뜻밖의 기습에 얼이  빠졌다. 기주성에서는 원상에게 군호로 
불기둥을 하늘 높이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성문을 나온 군사들은  그때쯤 장요
와 서황의 군사들에게 짓밟혀 해자를 메우는 시체가  되고 있었다. 살아 남은 자
는 허둥지둥 성 안으로 도망가기에 바빴다.
  "이때다! 나를 따르라!" 조조가 좌우에 명하며 날듯이  말을 달렸다. 조조가 성 
밑 적교에 이르자 성  위에서는 화살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  중의 화살 하나가 
조조의 투구에 꽂혔다.  그를 따르던 장수들은 크게 놀라며 급히  조조를 호위해 
진영으로 돌아왔다. 그럴 동안  심배는 적교를 올리고 성문을 굳게 닫았다. 기주
성 안으로 밀고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조조는 새로 갑주를 입기가 바쁘게 군사를 
부수 경계에 있는 양평으로 돌렸다. 그러고 나서  원상을 치기 위해 군사를 이끄
는 한편, 여광, 여상으로 하여 원상의 후진인 마연, 장의 두 장수를 맞도록 했다. 
조조가 군사를 거느리고  오자 원상도 달려나와 맞섰다. 조조가 군사를  여러 갈
래로 나누어 공격하니 원상의 군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일대 혼전을 벌인 후 원
상의 군사는  마침내 견디지 못하고 크게  패한 채 서산으로 물러나  진을 폈다. 
간신히 패잔병을 수습한 원상은  후진인 마연, 장의에게 사람을 보냈다. 두 장수
가 거느린  군사와 더불어 조조군에게  총공세를 펼 심산이었다.  그러나 마연과 
장의 두  장수는 여광, 여상 형제의  권유를 받고 이미 조조구에게  투항해 버린 
뒤였다. 원담, 원상 형제가 서로 칼을 맞대고 있으니 이 싸움에서 조조군을 이길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했다. 거기다가 여광, 여상 형제가 그들을 깨우치며 달래
자 마침내 조조군에게  투항하게 된 것이었다. 조조는 그들을 맞아  크게 기뻐하
며 열후로 봉한 뒤 여광, 여상과 함께 원상의 양초 나르는 길을 막도록 했다. 조
조는 즉시 군사를 거느려 다시 서산으로 향했다. 마연, 장의 두 장수까지 끌어들
인 터라 단숨에 원상을  깨뜨릴 심산이었다. 난감한 것은 원상이었다. 이미 패잔
병이 되어 크게 위축된 군사들인데다 마연,  장의까지 조조에게 투항했다는 것을 
알고는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조조군이 다시 군사를  휘몰아오자 원상은 더 이상 
서산을 지켜 낼 수  없음을 알고 어둠을 틈타 달아났다. 원상이  깜깜한 어둠 속
을 달아나다 진영도 세우지 않고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사방
에서 함성과 함께  수많은 횃불이 나타났다. 이미 원상이 이곳으로  퇴각할 것을 
알고 있었던 조조가  복병을 숨겨 두었던 것이다. 원상이 황망히  말을 달렸으나 
군사들은 제대로 갑옷도 꿰입지 못한 채 크게  무너지며 50여 리를 퇴각했다. 첫 
싸움에 크게 졌던 패군인데다 그  뒤의 기습으로 찢기고 밟히니 이제 남은 군사
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나마 상한 군사가 대부분이었다. 원상은 하는 수 없이 
예주자사 음기를 조조의  진으로 보내어 항복할 뜻을 전하게 했다.  이미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는 원상이 항복을 청해 오자 조조는 짐짓 웃으며 항복을 받아들였
다. 그날 밤이 되자 조조는 장요와 서황에게 원상의 진영을 급습케 했다. 항복을 
청해 놓고 한숨을  돌리고 있는 원상은 때아닌 장요, 서황의  급습에 혼비백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군사들은 갑옷  꿰입을 틈도 없었고, 말 위에 안장 얹을 사이
도 없었다. 제대로 싸움이  될 리 없는 원상의 군사들은 달아날  생각도 못한 채 
고스란히 두  장수의 칼을 받아야 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자  원상은 한목숨 
보전하기에 급급해 말 위에 올라 어둠 속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원상은 인뒤웅
이와 절월, 기치와 갑옷, 치중까지 모두  버리고 황망히 중산군으로 달아났다. 원
상이 맨몸으로  도망치자 조조는 더 이상  그를 쫓지 않았다. 원상  쫓는 일보다 
미루었던 기주성을 무너뜨리기로 했다. 지체하지 않고  곧장 말머리를 돌려 기주
로 향했다. 허유가 한 가지  계책을 내었다. 그 계책은 장하의 둑을 무너뜨려 기
주성을 물 속에 잠기게  하자는 것이었다. 조조는 곧 군사를 풀어  성 둘레에 물
길을 끌어들일 수로를 파게 했다. 이 일은 적군 몰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조
는 적군을 속이기 위해 한가지 계교를 내기로 하고 수로 파는 일을 계속하게 했
다. 그러나 수로를 파되 물길은  얕게 하여 팠다. 조조군이 성 둘레에 수로를 파
고 있는 것을 심배가 보고 웃으며 말했다.
  "필시 장하의 물을  성에 끌여들이려는 속셈이리라. 그러나  수로가 깊어야 성 
안에 물이 들어올 터인즉 저렇게 얕게 파서야  아무 소용이 없는 일 아닌가." 심
배는 조조군이 성 둘레에 파고  있는 물길이 얕음을 보고 안심하며 쓴웃음을 지
었다. 그날 밤 조조는  낮에 수로를 파던 군사보다 10배나 숫자를  더 늘려 수로
를 깊이 파게 했다. 이윽고 날이 샐 무렵이  되자 수로의 넓이와 깊이가 두 길이
나 되었다. 즉시 장하의 물길을 수로로 끌어들이자  순식간에 성은 몇 자나 되는 
물 속에 잠겼다. 이미 성 안은 양곡이 바닥나  있는 터에 성마저 물에 잠기자 성 
안에는 아우성이 들끓었다. 원담의 사신으로 왔다가  조조에게 머무르고 있던 신
비가 나섰다. 신비는 원상이 버리고 간 인뒤웅이며  기치를 창끝에 꽂은 후 창을 
흔들어 보이며 외쳤다.
  "성 안 사람들은 이것을 보라. 이미 너희 주인인 인뒤웅이와 기치를 가지고 있
거늘 무익한 항전을  거두고 어서 항복하도록 하라. 무엇 때문에  헛되어 목숨을 
버리려 하느냐?" 신비가 성 안 사람들을 달래자 이를 지켜 본 심배가 격노했다.
  "자기 한 목숨 영화를 위해 주군을 배반한  역적, 내가 저 역적놈을 용서치 않
으리라." 심배는 성 안에 있는 신비의 가솔  80여 명을 성 위로 끌어올려 하나씩 
목을 베었다. 목을 벤 후 잘린 머리를 성  밖으로 내던지자 신비는 땅을 치며 통
곡했다. 그런데 심배에게는 심영이라는 조카가 있었는데  신비와는 평소 매우 가
까운 사이였다. 그는  신비의 가족이 심배에게 도륙당하는 것을 보자  울분을 가
눌 길이  없었다. 이미 싸움은 승패가  가름났다고 여긴 심영은 그날  밤 성문을 
열겠다는 글을 써서  화살에 매달아 쏘았다. 화살을 주운 군사는  곧바로 조조에
게 그 글을  바쳤다. 조조는 기뻐하며 머리를 끄덕이다가 문득  좌우의 장수들에
게 명했다.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일제히 쳐들어간다. 그러나 원씨 일가는 남녀노소 그 
어느 누구도 결코 죽여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항복하는 군사들은 결코 죽이
지 말라. 이를 어기는 자가 있으면 내가 직접 목을 베리라." 다음 날 새벽이었다. 
조조군이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서쪽 문이 활짝  열렸다. 조조군은 
성 안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철천지 원한이 가슴에  맺힌 신비가 앞장 서 마
을 달렸다. 심배가 망루에 있다가 성 안으로  조조의 군사가 몰려드는 것을 보았
다. 심배는 따르고 있던  몇 기를 거느려 성 아래로 달려가  죽기로 작정하고 싸
웠다. 심배가 싸우는 것을 보자 서황이 달려갔다. 심배가 서황을 맞으며 칼을 휘
둘렀다. 그러나 서황과는 처음부터 싸움이 되지 않았다. 몇 번 부딪지도 못한 채 
사로잡히는 몸이 되고  말았다. 서황이 심배를 결박지어 성 밖으로  나오는데 신
비가 달려왔다. 신비가 이를 갈며 원한에 사무친 말을 뱉어냈다.
  "일가친척을 죽인 원수놈, 이제 내 손에 죽어 보아라!" 그러나 심배는 눈 하나 
끄덕하지 않고 마주 소리쳤다.
  "이 역적놈아, 조조를 이끌어 기주성을 친  네놈을 죽이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서황은 심배를 조조 앞으로 끌고 갔다. 조조가 그에게 물었다.
  "우리에게 성문을 열어 준  자가 누구인지 아느냐?" 조조의 엉뚱한 물음에  심
배는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아는 바 없다."
  "바로 그대의  조카 심영이 문을 열어  우리를 맞았다.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
가?"
  "철없는 어린 놈이 미친 짓을 저질렀다. 내 그놈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
울 뿐이다." 심배가 노해 소리쳤다. 조조가 언성을 낮추어 다시 물었다.
  "그대는 원씨에게 충성을 다했으나  저들이 옳고 그름을 밝히지 못해 이 지경
이 되었다. 이제 마음을 돌려 나와  함께 대사를 도모해 보지 않겠는가?" 조조의 
말에 심배가 분연히 대답했다.
  "결코 항복하지 않겠다."  이때 신비가 조조 앞에 엎드려  눈물을 뿌리며 말했
다.
  "저의 가솔 80여 명이 저놈 손에  목이 떨어졌습니다. 원컨대 승상께서는 저놈
을 도륙하여 씻을 길 없는 이 원한을  풀어 주소서." 그의 인물을 아껴 혹시라도 
심배를 살려 둘까  염려한 신비가 조조에게 청했다. 그러자 심배가  조소어린 눈
으로 신비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는 살아서도 원씨의  신하요, 죽어서도 원씨의 귀신일 뿐이다. 권세에  아첨하
여 주군 섬기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네놈과는 다르다. 자, 어서 빨리 베어라." 
조조는 그 말을 듣자 더 이상 그를 달래려고  하지 않았다. 좌우에 명해 그를 죽
이라고 했다. 이미 죽기를 작정한 듯 심배는 끝까지 당당하게 죽음을 맞았다. 오
히려 형리에게 호통치듯 마지막 청을 했다.
  "나의 주공께서 북쪽에 계시니 내가  북쪽을 향해 절을 한 후 목을 베도록 하
라." 심배는 북쪽을 향해 절을 한 후 꿇어앉더니 목을 길게 빼어 기꺼이 칼을 받
았다. 심배는  원씨 형제의 다툼을 일으키게  한 사람 중의 하나였으나  끝내 그 
주군을 목숨 바쳐 섬기니 뒷날 사람들은 그 충절을 높이 여겨 시를 지었다.
  하북에 이름 떨친 선비 많아도 심배를 따를 만한 이 없구나!
  어리석은 주인 탓에 죽건만 그 충절 옛 사람에 못지않네
  청렴한 재주에 욕심이 없고 죽음에 이르러 북쪽을 향하니
  부끄럽도다, 항복하여 산 자들이여.
  당당히 최후를 맞이한  심배가 죽자 조조는 그의  충절을 진실로 가상히 여겼
다.
  "시체나마 그의 주인 성터에 묻어 주도록 하라." 조조는 좌우에게 명하여 기주
성 북쪽에 무덤을  만들고 제를 올리게 했다. 여러 장수들이  조조에게 기주성으
로 들기를 재촉했다. 조조가 기주성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형리가 한 사람을 이
끌어 왔다. 그는 지난날  원소가 군사를 일으켜 조조를 치려고 할  때 조조를 비
방한 격문을 썼던 진림이었다. 조조는 그를 보자  그 격문이 떠올라 노기어린 목
소리로 물었다.
  "너는 지난날 격문을 쓰면서 나의 죄만 따질 것이지 어찌하여 내 아버지와 조
상까지 욕되게 했느냐?" 진림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화살을 날리려면 시위에 걸어야  할 수밖에 없지 않소이까?" 실로 기지에  넘
친 응수가 아닐 수 없었다. 장수들이 조조에게 진림을 죽일 것을 권했다. 그러나 
조조는 재치있는 응수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소의  휘하에 있던 진림으로서는 어
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의 처지를 넓은  도량으로 헤아렸다. 또한 그의 재주를 
아깝게 여겨 종사로 삼아 휘하로 받아들였다.

  원가 형제의 패망
  기주를 점령한 조조는 백성들을 안심시키며 널리  인재를 구한다. 한편 원담은 
조홍의 칼에  쓰러지고 원희, 원상은 요서  지방으로 달아난다. 조조와의 싸움을 
두려워한 공손강은 두 형제의 목을 베어 바치고, 이로써 조조는 요서, 요동 지방
까지 평정하고 허도로 돌아온다.
  그처럼 강대했던 하북의 원씨 일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결국
은 형제들끼리 싸우다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건안 9년 7월의 일이었다. 기주성에
는 조조의 군마가  속속 입성했다. 이때 조조의 맏아들 조비도  나이 열여덟이었
는데 아버지 조조를 따라  기주성으로 들어갔다. 그의 자는 자환이었다. 원래 조
비 위에 맏아들 앙이 있었으나 지난날 장수와의 싸움에서 아버지를 살리고 장렬
한 죽음을 맞이했던 터였다.  조비는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은 조짐이 있었다. 
그의 집 지붕 위에는 청자색 구름이 수레의 둥근 덮개 모양으로 산실 위를 덮은 
채 종일토록 흩어지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상서로운 기운을  보고 있던 
자가 조조에게 살며시 아뢰었다.
  "이것은 천자가 태어날 징조입니다. 아드님은 존귀하기  이를 데 없는 분이 되
실 것입니다." 조비는 여덟  살이 되자 이미 뛰어난 글을 지었고, 오래잖아 고금 
경사에도 통달했다. 그의 특출한 재주는 학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무예도 
뛰어난 말타기와 활쏘기, 칼쓰기를  즐겨했다. 어느 날 조비는 아버지와 함께 기
주성에 들어왔다가 원소의 집 앞에 이르자 칼을  빼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러자 한 장수가 조비를 가로 막았다.
  "승상께서 원소의 집 안으로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조비
를 뒤따르던 근신이 그 장수를 꾸짖었다.
  "승상님의 아드님이신데 어찌  길을 막느냐!" 그 장수도 더  이상은 막지 못했
다. 조비는 아버지 조조의 원씨 일가를 죽이지  말라는 명에 내심 강한 반발심을 
지니고 있었다. 원소를 무너뜨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던가. 원씨 일
가를 향한 적개심에 불타고 있던  조비는 우선 칼부터 빼들고 집 안으로 뛰어들
었던 터였다. 조비는 후당으로 들어가 이곳 저곳을 살피며 다녔다. 무득 후당 으
슥한 모퉁이에 한  부인이 젊은 여자를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모습이  보였다. 빼
든 칼로 그들을 후려치려고 그쪽으로 향하는데 문득 붉은 빛이 번쩍하며 눈앞을 
스쳤다. 그 빛은 두 여인의 머리에 꽂은  구슬과 금비녀가 햇빛에 반사되어 나온 
빛이었다. 조비는 멈칫거리며 칼로 바닥을 짚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온몸에 힘
이 빠지는 듯했다.
  "너는 누구냐?" 조비가 그들을 향해 물었다. 그 중 나이가 많은 부인이 두려움
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첩은 원 장군의 처인  유씨입니다." 바로 원상의 어미였다. 조비가 다시  물었
다.
  "그럼 이 여자는 누구냐?"
  "둘째 아들 원희의 처인 진씨입니다."
  "그가 어찌하여 이곳에 있는가?" 조비가 젊은 여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원희가 먼 유주를 지키러 가자  저 아이는 멀리 가는 걸 싫어하여 이곳에 머
무르고 있습니다." 조비는 젊은 여자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풀어헤친 앞머리를 들
고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얼굴은  흙먼지로 뒤집어쓰고 
있었으나 반짝이는 맑은  눈과 보름달 같은 얼굴을 본 조비는  정신이 아뜩했다. 
조비는 소매로 그 얼굴의  흙먼지를 닦아 내었다. 백옥 같은 살결에  꽃 같은 얼
굴이 드러나는데  보니 실로 드물게  보는 경국지색이 아닌가.  조비는 섬광처럼 
빛나는 진씨의 눈빛을 보며 더듬거리듯 말했다.
  "나는 조 승상의 아들이다. 그대들을 보호해 줄 테니 두려워  말라." 조비는 칼
을 칼집에 꽂은 다음  마루에 버티고 서서 그곳을 지켰다. 이때  조조도 위무 당
당히 성 안으로 들고 있었다. 그러자 조조의  고향 친구이자 원소를 떠나 조조에
게 투항했던 허유가 갑자기 행렬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아만(조조의 어릴 적 이름), 내가  없었다면 네가 어찌 이 성문으로 들 수 있
었겠나?" 허유는 기쁨에 들떠 꺼낸 말이었으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한 말이었
다. 거기다가  기주성을 무너뜨린 것이 전부  자기의 공인 듯 말을  하자 주위에 
있던 장수들의 마음 속에 은근히 노기가 일었다.  조조 또한 자신의 체통을 헤아
리지 않은 경박한  허유의 말에 거북했으나 껄껄 소리내어 웃을  뿐이었다. 조조
는 성문을 지나 원소의 집 앞에 이르자 말이 매어져 있음을 보고 장수에게 물었
다.
  "누가 이 문으로 들어갔느냐?" 장수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세자께서 드셨습니다." 그러자 조조는 좌우를 보며 꾸짖었다.
  "비록 세자라 해도 군령을 어기면 용서할 수 없다. 그대들은 급히 조비를 부르
라!" 조조의 아들 조비가 나오자 호통을 쳤다.
  "비는 어찌 내 명을 어겼느냐? 군령을 어긴 죄가 실로 크니 마땅히 벌을 받으
리라." 그때 조비의  뒤를 따라나온 원소의 처 유씨가 조조  앞에 엎드려 절하며 
아뢰었다.
  "세자가 오시지 않았더라면 저희는 무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원컨대 며느리 
진씨를 세자에게 바쳐 종으로라도 써 주시면 그 은혜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듯싶사옵니다." 조조는 원소의 아내 유씨가 엎드려 그렇게 청하자 화를 누그러뜨
렸다. 원소와는  천하를 다투던 사이였지만  젊었을 때는 둘도  없는 지기지우가 
아니었던가. 조조는 유씨가  바치겠다는 둘째며느리를 불러내게 했다. 진씨가 조
조 앞에 나와 엎드려 절하자 조조는 그 빼어난 미모에 감탄하며 말했다.
  "비가 두 여인에게 온정을  베풀었다. 그건 아마 이 여인 때문일 것이다. 과연 
내 며느리감으로 손색이 없다." 기주가 평정을  되찾자 조조는 원소와 원씨 가문 
누대의 사당에 제물을 차려 놓고 두 번 절한  후 슬프게 곡을 했다. 조조의 곡소
리는 듣는  이로 하여 절로 슬픔에  젖게 하여 한동안 주위는  숙연해졌다. 곡을 
마친 조조는 여러 장수들과 함께 지난날을 회상했다.
  "지난날 원본초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을 때 본초가  내게 물었다. '만일 뜻을 
이루지 못할 때는 어느 곳에 근거를 삼아 다시 뜻을 펴보겠는가'하고, 그때 나는 
본초에게 되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그러자 본초가 대답하기를, '남쪽 하
북을 근거하여 연과 대를 방어선으로  삼아 북쪽 사막의 무리를 평정한 뒤 남쪽
으로 내려와 천하를 겨룰 작정이네'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천하의 인재를 두루 
모아 도로써 다스려 가면 근거지가  어디가 되든 이루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
가'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게 마치 어제일 같은데 이제 본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어찌 눈물이 나오지 않겠나." 조조는 그  말과 함께 새삼 감회가 깊은 듯 
다시 눈물을 흘렸다.  젊었을 때의 친구이자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천하를 다툼
며 싸우기를 10여 년이었다. 조조는 원소와 더불어  이어진 생애였다고 할 수 있
다. 미움 못지않은 각별한 정이 가슴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조조의 이런 눈
물은 기주의 민심을  수습하는 데도 큰 효과를 거두었다. 백성들에게는  그 해의 
세금을 감해 주고  이 지역의 벼슬아치들은 모두 그대로 채용했다.  그렇게 되니 
백성들은 조조를 우러르며  따랐다. 또한 산업과 농사를 장려하는 데도  힘을 기
울였다. 조조는 허도로 돌아가지  않고 천자에게 표를 올려, 스스로 기주목에 올
라 기주를 다스렸다.  기주가 질서를 되찾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제자리를 찾기
에는 시기상조였다. 게다가 아직도 원담, 원상과 또 조카 고간과 원희가 살아 있
기 때문이었다. 그런 중에도 성 안은 하루가 다르게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그러
던 어느  날이었다. 마침 허저가 말을  타고 동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가다가 
허유를 만났다. 허유가 또다시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이 허유가 없었던들 자네들이 어찌 이 성문을 드나들 수 있겠는가?" 처음  입
성할 때도 방자하게 혀를 놀려 여러 장수들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다시 이런 꼴을 당하자 허저의 화가 치솟았다.
  "우리가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함께 싸워 얻은 성이 아닌가? 어찌 혼
자서만 공을 세운 것처럼  떠벌리는 게요?" 허저가 화를 내며 하는 소리를 듣고
도 허유는 빳빳이 고개까지 쳐들며 욕을 해댔다.
  "너희들은 모두 하찮은 필부에 불과하다.  어찌 감히 내게 대꾸를 하느냐?" 허
유의 방자한 언사에 허저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허저는 칼을 뽑더니 주저없이 
허유의 목을 쳤다. 허유의  목이 땅바닥에 굴렀다. 허저는 그대로 조조에게 달려
가 사실을  아뢰었다. 조조는 허저의 말을  듣자 눈을 감고 잠잠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허유는 나하고는 어릴  적 친구로서 서로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아 온 터이다. 
사사로운 노기로 함부로 베어 죽이다니 당치  않다." 조조는 허유의 장례를 후하
게 치러 주라 하고 허저에게는  7일간 근신하라 명하고 더 이상 죄를 묻지 않았
다. 허저가 물러나자 선비 한 사람이 정중히 안내를 받으며 조조 앞에 다가왔다. 
이미 조조는 영을  내려 기주의 어진 선비를  널리 모집하도록 했는데 백성들의 
천거로 모셔 온 이가 바로 최염이었다. 그는  하동의 무성 사람으로 자를 계규라 
하는데 하북 일대에서 지혜롭고 어질기로 이름나  있었다. 지난날 기도위를 지낸 
바 있었는데 일찍이 원소에게 여러 번 좋은  계책을 내었다. 그러나 원소가 이를 
물리치니 병을 핑계로  초야에 묻혀 지내던 선비였다. 조조는 반갑게  최염을 맞
으며 기주의 별가 종사란 벼슬을 내린 후 일렀다.
  "기주의 호적을 살펴보았더니 인구가 30만이나 되었소.  실로 큰 주가 아닐 수 
없소." 그러자 최염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천하는 사방으로 갈라져 어지럽고 9주가 여러 갈래로 찢기었습니다. 거기다가 
원씨 형제의 다툼으로  기주 백성의 시체가 허허 벌판에 널려  있습니다. 승상께
서는 이곳의 풍속을  물어 백성들을 도탄에서 건져 내시는 일이  급합니다. 어찌
하여 호적부터  살피십니까? 이는 기주 백성들의  민심을 밝게 헤아리심이 아닌 
줄로 아옵니다." 최염이  조조를 깨우쳤다. 조조는 그  말을 듣자 옷깃을 여미고 
솔직히 잘못을 빌며 그를 더욱 높이 대했다.  최염은 조조가 바라던 대로 흐트러
진 민부를 정리하여 조조의 군정과 경제의 자료로  삼게 했다. 기주가 이렇게 날
로 안정되어 가자 조조는 원담의 행방에 대해  알아보도록 했다. 오래지 않아 원
담의 소식이  전해졌다. 기주가 조조에게 함락되자  원담은 군사를 거느려 감릉, 
안평, 발해, 하간을 떠돌며 약탈을 일삼으며  병력을 모았다. 그러다 원상이 조조
에게 패해  중산으로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이끌어  중산을 공격했다. 
조조에게 몇 차례나  크게 패했던 원상인지라 원담의 공격을 배겨  내지 못했다. 
원상은 급히 둘째형 원희가 다스리는 유주로  달아났다. 원상이 달아나자 군사들
은 원담에게 투항했다. 원담은 원상의 군사들까지  거두어 세력을 키우고 중산에 
머물면서 기주를  되찾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미 기주가  조조의 세력으로 
굳게 다져지고  있는 가운데도 원씨의 자손들은  이렇듯 골육다툼만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주를 되찾아야 한다!" 원담이 이런 생각으로 군사를 수습하고 있을 때였다. 
원담의 소식을 소상히 듣고 있던 조조가 사람을  보내 원담을 불렀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헤아려 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기주를 엿보고  있던 원담
이 갈 리가  없었다. 조조 또한 이를 좋은 구실로  삼았다. 사위 삼기로 한 일을 
없었던 걸로 하고 의절의 글을 보냈다. 또한  조조는 지체하지 않고 친히 군사를 
거느려 원담을 치기  위해 평원으로 향했다.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
을 들은  원담은 크게 당황했다.  아직 조조군을 대적하기에는  군세가 약하므로 
형주의 유표에게  구원을 청하기로 하고  사자를 보냈다. 원담의  사자가 형주로 
오자 유표는 이 일을 유비와 의논했다. 유비는 유표를 말렸다.
  "기주를 무너뜨린 조조의 군사는 지금 사기가 충천해 있습니다. 머지않아 원씨 
형제는 조조에게 사로잡힐 것이니 우리가 그들을  도와 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거기다가 조조는 우리 형주와 양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군사를 튼튼히 
길러 굳게 경계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청을 물리칠 수 있겠소." 유표가 난감한 얼굴로 물었다.
  "글로 화해를 권하고 이를 구실삼아  넌지시 거절하시면 됩니다." 유비가 잘라 
말했다. 유표가 들으니 그럴 듯했다. 즉시 글을 써서 원담에게 보냈다.
  군자는 어려움에 부딪치더라도  원수의 나라에는 가지 않는다  합니다. 그러나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대는 조조에게 무릎을 꿇었다 하니, 이는  돌아가신 아버
님의 원수임을 잊어  버리는 것이며 형제의 의를 끊음이요, 원수와  동맹을 맺은 
수치스러움이오. 원상이 아우로서의  도에 어긋난 일을 하더라도  그대는 너그러
이 대하고 도와야 할  것이오. 그런 다음 조조를 도모하고 그  뒤에 옳고 그름을 
천하에 묻는다면 그야말로  의로운 길이 될 것이오. 유표는 원담에게  사자를 보
낸 후 다시 원상에게도 글을 써서 보냈다.
  청주의 원담은 천성이  거칠어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나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그대는 먼저 조조부터 도모하여  아버지의 원한
을 푼 뒤에 옳고  그름을 따졌어야 했소. 그런데 형제가 서로  싸워 조조에게 쫓
기게 되었으니 이는 마치 한려와 동곽이 저희끼리 싸우다 농부에게 사로잡힌 꼴
과 다름아니오.
  한려라는 사냥개가 동곽이라는 토끼를 잡았으나 농부는 그 사냥개를 잡아먹고 
말았다는 옛 이야기를 인용한 글이었다. 원담은 유표의  글을 받자 그가 도와 줄 
뜻이 없음을 알았다. 원담은 하는 수 없이  남피로 달아났다. 건안 10년 정월, 조
조의 대군은  혹한의 눈보라를 헤치고  원담을 추격했다. 조조가  남피에 이르니 
엄동설한이라 황하의 물은 모두 얼어 있었다. 배로  군량을 나를 수가 없게 되자 
조조는 지방 백성들을  동원하여 얼음을 깨도록 영을 내렸다. 그러나  워낙 추운 
날씨라 백성들은 조조의 영을 어기고 모두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크게 노한 조
조는 엄한 영을 내렸다.
  "달아난 자들을 붙잡아 목을 베라!" 조조의  영을 전해 들은 백성들은 모두 벌
벌 떨었다. 백성들은 조조의  진영으로 몰려와 목숨을 빌며 무릎을 꿇었다. 백성
들이 자수하여 사죄하자 조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나의 군령을 세우기 위해서는 너희들을 죽여야  한다. 그러나 차마 너희들 모
두를 죽일  수가 없다. 그러니 빨리  산 속으로 도망쳐 내  군사들에게 붙잡히지 
않도록 하라." 조조가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내놓은 기발한 계교였다.  백성들은 
산 속으로  도망가며 조조의 너그러움에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조조가 군사를 
이끌어 남피에 이르자  원담도 군사를 거느리고 나와 조조 군사를  맞았다. 양군
이 둥그렇게 마주 진을 벌이자, 조조가 말을 달려나와 원담을 꾸짖었다.
  "내가 그만큼 너를  후히 대했는데, 어찌하여 나를  거스르려 하느냐?" 원담도 
마주 나오며 대꾸했다.
  "너는 내 영토를 침범하고  내 성을 빼앗았으며 처자까지 잡아가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나를 보고 나무라느냐?"  조조는 좌우를 둘러보더니 서황을 불러 원담
을 치게 했다. 원담도 장수  팽안으로 하여금 서황을 치게 했다. 팽안이 말을 달
려나올 때는 기세가  등등했으나 원래부터 서황의 적수가 아니었다. 불과  수 합
을 부딪은 후 서황이 휘두른 도끼에 목이  떨어졌다. 두 장수의 부딪침으로 승패
의 향방을 이미  예견한 조조였다. 곧장 군사를 내몰자 조조군은  사기가 치솟고 
원담군은 기가 꺾이니 싸움은 조조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원담군은 더러는 죽
고, 더러는 상한 채 성 안으로 허둥지둥 달아났다. 원담을 뒤쫓던 조조군은 원담
이 성문을 굳게 닫자  성을 겹겹이 에워쌌다. 조조는 군사를 몇  대로 나누어 연
달아 공격하게  했다. 조조군의 맹공에 원담은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한  채 몇 
날을 싸우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 그러나 조조군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원담은 마침내 모사 신평을 불러 조조에게  항복을 청하
게 했다. 조조는 사자로 온 신평에게 타일렀다.
  "원담은 어린 것이 변덕이 죽 끓듯하니 그를 믿을 수가 없다. 그보다도 그대는 
일찍이 내 휘하에 있던 신비의 형이 아닌가.  아우를 중용하고 있으니 그대도 나
와 함께 일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조조는 신평에게 호의를  베풀어 말했다. 이
미 조조가 원담의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으니 그가 다시 원담에
게 돌아가겠다고 하면  그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그러나 신평은  조조의 물음에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주군이  존귀해지면 신하도 영화를 누릴 것이요, 주군이  수
심에 차 있을 때는 욕을 당한다' 하였습니다. 아우에게는 아우의 주군이 있고 나
에게는 나의 주군이 있을 따름입니다." 조조는 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을 알고 
그를 돌려 보냈다. 신평은 원담에게 사실대로 고했다.
  "항복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죽기로 작정하고 싸우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신평의 말을 들은 원담은 버럭 화를 내었다.
  "네 아우 신비가 조조를  받들더니 너도 딴마음을 품은 것이냐?" 원담은  적에
게 에워싸여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신평에게  화풀이라도 하듯 옹졸한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신평에게는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기막힌 소리였다.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신평은  원망이 뒤섞인 말  한 
마디를 토하더니 격한  마음에 치받혀 혼절하고 말았다. 원담이 좌우에  명해 그
를 부축하여 일으켰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원담
이 그제야 자기의 경솔함을 뉘우쳤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곁에 있던 곽도가 입
을 여는데 그 얼굴이 사뭇 비장했다.
  "비록 팽안 장군이  전사하였다 하나 아직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울 수 있는 
장수는 있습니다. 거기에다  이곳 백성들을 모두 군사로 쓰고 죽을  각오로 싸우
는 것입니다. 때마침  혹한이 몰아치니 먼길을 원정해 온 적군도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곽도가  의기를 돋우었다. 원담도  조조가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다른 방책이 있을 리  없었다. 그날 밤은 남피의 백성들을 모두  불러모은 후 칼
과 창을 나누어 주며 명에 따르도록 일렀다. 다음 날, 날이 밝자 남피성의 네 문
을 모두 열고 총공세를 감행했다. 백성들을 앞장  세우고 군사들로는 그 뒤를 따
르게 했다. 이제 물러날 수도 없는 원담이  죽기로 작정하고 맹공격을 펴자 양군 
사이에는 크게 혼전이 일었다. 눈보라를 뒤집어쓰며 달리는 말발굽 소리, 바람을 
가르는 노궁 소리, 창과 칼이 불꽃을 튀기며 부딪는 소리가 들판을 메웠다. 양군
은 정오가 될 때까지 혼전을  벌이니 사람의 시체가 땅을 덮고 피는 눈 위를 붉
게 물들였으나 어느 쪽이 지고 이기는지 대세를  가름할 수가 없었다. 조조는 의
외로 싸움이 어렵게  되자 말을 달려 산 위로  올라가 몸소 북을 울리며 의기를 
돋우었다. 이를 본 군사들이 용기를 얻어 몸을  던져 싸우니 점차 싸움은 한쪽으
로 기울기 시작했다. 한동안 완강히 저항하던  원담의 군사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조조군에게 밀리니 애꿏은  백성들만 죽어 갔다. 이윽고 승세를 탄  조조군은 원
담군을 밀고 들어가 해자까지 짓쳐 들었다.  이때 조홍은 졸개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난군 속을  돌진해 들어가 원담의 진중으로 뛰어들었다. 조홍은  원담을 발
견하자 곧장 말을 몰았다.
  "원담은 게 섰거라!" 조홍이  말을 달려오자 원담도 조홍을 맞았다. 원담의 창
과 조홍의 칼이  거세게 부딪쳤으나 끝내 조홍의 상대가 되지  못한 원담이었다. 
조홍의 칼이 번쩍 치켜 올려지는가 싶더니 어느 새 원담의 몸이 말 아래로 굴렀
다.
  "원담의 목을  베었다!" 조홍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눈보라 속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원담군은  기가 죽었는지 다투어 성문 안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원
담까지 조홍의 칼에 죽자 곽도는  형세가 불리함을 알고 성 안으로 달아나는 군
사들 속에 뒤섞였다. 조조의 장수인 악진이 이를 보고 급히 활을 쏘았다. 화살이 
곽도의 목을 꿰뚫었다.  곽도는 성 둘레에 파놓은 해자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말
았다. 악진은 곽도의 목을  베어 창끝에 꽂아 들고 원담의 무리를  향해 큰 소리
로 외쳤다.
  "원담도 죽고 곽도의  목도 여기에 있다. 너희들은  누구를 위해 싸우겠는가?" 
원담의 군사들은 더 이상 싸울 기력을 잃은 채 무기를 버리고 목숨을 빌 뿐이었
다. 남피성이 마침내  떨어지자 조조는 성 안에 들어가 백성들을  안심시키며 위
로했다. 그때 한  떼의 군마가 성 밖에  이르렀다. 그들은 원희의 부장인 초촉과 
장남이었다. 원담의 위급함을 알고 원희가 보낸 구원군이었다. 조조는 군마를 수
습하여 성 밖으로 그들을 맞으러 나갔다. 그러나  두 장수는 조조군과 싸우는 대
신 창과 칼을  버리고 갑옷마저 벗더니 항복을 청했다. 그들은  원담을 구원하기 
위해 달려왔으나 원담과 곽도는 죽고 이미 성까지 조조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을 
보자 싸움의 무모함을 깨달은  것이다. 칼 한번 쓰지 않고 두  장수가 항복을 해
오니 조조는 기뻤다. 두 장수의 항복을 받아들인 후 그들을 열후에 봉했다. 조조
에게 항복을 청해 온  무리는 그 두 장수뿐만이 아니었다. 그  무렵 흑산적을 이
끌며 남피성 부근에 웅거하고 있던  장연이 그의 무리 10만을 데리고 투항해 왔
다. 조조가 그 위세를 천하에 떨치며 이제  원씨 일족들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보
고 장연은 그의  휘하에 들기로 작정했던 것이었다. 장연이 대군을  이끌고 항복
해 오자 조조의 기쁨은 컸다. 장연에게  평북장군이란 높은 벼슬을 내렸다. 악진, 
이전의 두 장수에다  장연이 읶는 10만의 대군이  가세하자 조조는 두 장수에게 
영을 내렸다.
  "병주를 쳐서 고간을 사로잡아라!" 조조 스스로는 친히 유주로 진격하여  원희, 
원상을 깨뜨리기로 하고 그 채비를 했다. 군사를  거느려 유주로 가기 전 조조는 
원담의 목을 북문 밖에 내걸게 하고 영을 내렸다.
  "원담의 목을 보고 애통해 하는 자가 있다면 목을 베리라!" 다음 날이었다. 성
문을 지키던 군사가 검은 상복에 두건까지 갖춘 한 선비를 끌고 왔다.
  "이자가 원담의 목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조조는 그 선비의 
인품이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러나 조조는 화를  내는 척하며 다정히 그 선비
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 사는 누구냐?"
  "북해 영릉(산동성 유현)사람 왕수, 자를  숙치라 합니다." 지난날 원담에게 형
제끼리 다투지 말라고 간하다 쫓겨난 그  왕수였다. 원담에게 쫓겨났으면서도 그
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곡을  했던 것이다. 조조가 언성을  높여 다시 
물었다.
  "포고문을 보지 못하였는가?"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죽는 것도  두렵지 않다는 말이냐?" 왕수는 태연한 어조로  대
답했다.
  "나는 지금껏 원씨의 녹을 먹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죽음을 보고도 
곡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의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워  의리를 잊는
다면 어찌 세상에 얼굴을 들 수 있겠습니까? 만약 원담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지내 줄 수만 있다면 이 한 목숨을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왕수는 서슴없이 그렇
게 말했다.  조조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더니  이윽고 노여움을 
풀며 탄식하듯 말했다.
  "하북에는 어찌 이다지도 의로운  이가 많다는 말인가? 생각해 보건대 원씨들
이 이런 의로운  선비들을 등용하지 않았음이 실로 애석한 일이었구나.  만약 이
들을 제대로 썼더라면 나는 하북에 발을 들여 놓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탄
식한 조조는 그  자리에서 왕수의 청을 받아들였다. 조조는 왕수에게  장례를 치
르게 한 후 그에게 사금중랑장(무기 제조를 맡은 책임자, 조조가 처음 설치한 직
책)에 봉하고 상빈의 예를 베풀었다. 왕수가 조조의 청을 들어 준 것에 감사해하
자 조조는 그에게 물었다.
  "원상이 원희에게 의탁해 있소. 어떻게 하면 그들을 칠 수 있겠소?" 왕수는 조
조의 물음에 끝내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조조는 그런 왕수를 보고 감탄
해 마지않았다.
  "과연 충신이로다." 왕수가  계책을 내지 않자 조조는 곽가에게  그 일을 물었
다.
  "원씨로부터 항복해 온 장수들로 하여금  그들을 치도록 하십시오." 조조는 곽
가의 말에 따라  장남, 여광, 여상, 마연, 장의에게  각각 군사를 주고 세 갈래로 
군사를 나누어 공격하게 했다. 곽가가 원상의  휘하에 있다가 투항한 장수들에게 
원상을 공격하게 한 것은 이  기회를 빌어 충성심을 보이고 공을 세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유주의 원상은 조조군이 온다는  소식을 접하자 두려움이 일었
다. 이미 원담까지  파죽지세로 휩쓴 조조군인지라 도저히 맞설 수  없음을 알고 
요서로 달아났다. 그곳  변경의 부족인 오환족에게 의지하기 위해서였다. 원상과 
원희가 달아나자 유주자사인 오환촉은  주의 관리들을 모아놓고 입에 피를 찍어 
발라 맹세하며 조조에게 투항할 것을 종용했다.
  "나는 조 승상이 당대의 으뜸가는 영웅임을 알고 있소. 이제 그곳으로 가 항복
하려 하거니와 만약  이 명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겠소." 오환촉에 이어 
모든 벼슬아치들이  입에 피를 바르며  맹세했다. 그런데 별가직에  있는 한형의 
차례가 되자 그는 대뜸 칼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외쳤다.
  "나는 원씨 부자로부터 5대에 걸쳐 큰  은혜를 입어 왔소. 이제 주군이 패망하
여 달아날 지경에 이르렀소. 그런데도 구할 만한  지혜나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용기도 없으니 어지 의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소. 거기다가 조조에게 항복을 
하라니 차마 어찌 그럴  수 있겠소. 나는 조조에게 무릎을 꿇지는 않을 것이오." 
한형의 말에 벼슬아치들은 놀라는 한편 숙연해졌다.  이때 오환촉이 무거운 분위
기를 깼다.
  "무릇 일을 도모함에는 마땅히 큰 뜻을 앞세워야 할 것이오. 모두의 뜻이 한결
같지 않다  해서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오. 그러니 굳이 한형의  뜻이 그렇다면 
그 뜻에 따르도록 하시오." 오환촉은 그렇게 말한 후 한형을 내보냈다. 오환촉은 
한형이 나가자 모두를 이끌고 나가 조조군에게 항복할 뜻을 전하고 그들을 맞아
들였다. 한바탕  결전을 치르리라 여겼던  조조는 뜻밖에도 성문을  열고 항복해 
오니 크게 기뻐했다. 조조는 오환촉에게 진북장군의 벼슬을 내렸다. 이때 전령이 
급히 말을 몰고 와서 조조에게  알렸다. 고간을 치러 보냈던 악진, 이전 두 장수
에게서 온 전령이었다.
  "이전과 악진, 그리고 장연은 병주로 향했습니다만 호구관의 좁은 길목에서 고
간이 가로막고 있어 아직 병주성을 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조는 그 소식을 접
하자 몸소 군사를  이끌고 호구관으로 향했다. 조조가 호구관에 이르러  보니 과
연 호구관은 지세가  높고 험악했다. 조조는 휘하를 불러 호구관을  무너뜨릴 계
책을 의논했다.
  "고간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거짓으로 항복하여 그들을 유인해 내도록 해야 
합니다." 순유가 이렇게 말하자 조조는 곧 그 말 뜻을 알아차렸다.
  "그렇군. 원씨로부터  항복해 온 장수를 보내어  그들을 유인해 내면  되리라." 
조조는 여광, 여상  형제를 불러 귓속말로 한  계교를 전해 주었다. 다음 날이었
다. 고간이 있는 호구관 아래 수십 기를 이끈 두 장수가 다가와 외쳤다.
  "성문을 열어 주시오." 두  장수는 다급한 목소리로 구원을 청했다. 고간이  망
루에서 내려다보니 옛 친구인 여광과 여상이었다.  고간을 보자 여광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지난번에는 어쩔 수 없어 조조에게 항복했었다네. 그런데 조조는 처음과는 달
리 날이 갈수록 천대를 하니  견딜 수가 없어 다시 옛 주인을 섬기기 위해 왔다
네. 앞으로는 힘을 합쳐 조조에게 맞서고 싶네." 그러나 고간은 조조군과 맞서고 
있을 때인지라 선뜻 믿어지지가 않았다. 두  사람을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이윽고 
고간이 소리쳤다.
  "그렇다면 군사는 성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먼저 두 사람만 들라!" 고간이 이
렇게 말하자 여광, 여상은 갑옷을 벗고 말에서 내려 호구관 안으로 들어갔다. 고
간을 만나자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계책까지 내었다.
  "조조는 방금 유주에 도착했네. 군사들은 먼길을  달려와 지쳐 있는데 다 아직 
제대로 진용도 갖추지 못하고  있네. 이 틈을 타 오늘 밤  기습을 가하여 그들을 
치도록 하세. 우리가 앞장 서 그들을 치겠네." 여광, 여상 형제가 스스로 앞장 서
서 싸우겠다는 말에  고간은 의심을 풀었다. 그들에 대한 의심이  풀리자 고간은 
귀가 솔깃해졌다.  그날 밤을 기다려 기습을  가하기로 하고 군사들을 수습했다. 
그날 밤이 되자 고간은 군사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여광, 여상을 선봉 삼아 조조
의 진영으로 향했다. 조조의  진영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천지가 진동
할 듯한  함성이 일면서 사방에서  조조의 복병들이 달려들었다.  그제야 계교에 
빠진 것을 알고 여광, 여상을 찾았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에 있을 리 없었다. 고
간은 하는 수 없이 말머리를 호구관으로 돌려  말을 몰았다. 그러나 호구관은 이
미 자기의 성이 아니었다. 조조의 장수인 악진과  이전은 고간이 성을 나온 사이 
성을 점령해 버렸다. 조조가 군사를 거느려 추격해  오고 이전과 악진이 성 안에
서 군사를 이끌고 마주 나오자 고간은 크게  놀라며 달아날 길을 찾기에 바빴다. 
고간은 겨우 포위를 뚫어 황망히  흉노의 왕 선우에게 의지하기 위해 말을 달렸
다. 조조는 고간이 달아난 것을 알게 되자 수색대를 편성하여 그를 뒤쫓게 했다. 
고간은 밤낮으로 말을  달려 흉노의 경계에 이르자 좌현왕(선우의  왕자)을 만났
다. 고간이 말에서 내려 절한 후 말했다.
  "조조가 하북 일대를  손아귀에 넣고 이제는 대왕의  땅까지 엿보고 있습니다. 
원컨대 저를 구원하시어 빼앗긴 땅을 되찾게 해 주시고 또 함께 그를 무찔러 북
방을 보존토록 하십시오." 고간의 말을 듣고 있던 좌현왕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조조와는 창칼을  겨룬 적이 없는데 어찌  내 땅을 침범하겠느냐? 너는 
나를 조조와 원수지게 할 작정이란 말이냐?" 좌현왕은 그렇게 꾸짖은 후 좌우에
게 명해 그를 내쫓게 했다. 그에게 의지하러  갔다가 문전에 들지도 못하고 노여
움을 사 쫓겨난 고간은 이제 갈 곳도 없었다.  고간은 이제 의지할 곳을 청해 볼 
데라고는 형주의 유표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명은 거기서 다한  것인지 가는 
도중 상로 땅에 이르러 도위 왕염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왕염은 고간의 목
을 조조에게 바쳤다. 원씨 일족의 하나인 고간의  목이 떨어지자 조조는 또한 기
뻐했다. 왕염에게 치하한 후  그에게 열후의 벼슬을 내렸다. 조조의 위세는 날로 
욱일승천하고 있었다. 그가 아우른 영토는 북쪽은 몽고에 접경하였고, 동쪽은 산
동 방면에  이르렀다. 지난날 원소가  다스리던 전영토를 완전히  그의 손아귀에 
움켜쥔 것이었다. 조조는  이제 영토에 선정을 베풀어 민심을 얻는  한편 문화와 
산업에 걸쳐 새로운  정책을 펴 융성시켰다. 그러나 조조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
았다. 그의 야망은 광활한 대지와 더불어 끝간 데가 없었다.
  "지금 원희와 원상 형제는 요서인 오환에  있다고 한다. 이들을 그대로 방치한
다면 후일의 우환이 될 것이다. 요서와 요동의  땅을 아울러 취하지 않으면 기북
과 기동의 땅도 영원히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조조가 서쪽으로 군사를 내어 오
환을 정벌하려 하자 조홍을 비롯한 여러 장수들이 이를 말렸다.
  "지금 우리가 원희와 원상을 쫓아 서쪽으로 군사를 이끄실 때 멀리 떨어진 허
도에 변이라도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형주의 유표와 유비가 허도의 
빈틈을 노려 군사를 거느린다면 그때는 길이 멀어 구원하지 못하니 마침내 화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청컨대 더 나아가지 말고 허도로 회군하도록  하십시오." 
조홍의 염려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곽가의 생각은 달랐다.
  "그 말끔은 그럴 듯하오만 실은 그렇지  않소이다. 승상의 위엄이 비록 천하에 
떨치셨다고 하나 사막에 있는 무리들은 자기들이 변방에 멀리 떨어진 것만을 믿
고 대비를  않을 것입니다. 이 허를  노려 일거에 쳐들어가면 반드시  격파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환은  오랫동안 원소의 은혜를 입었고,  거기다가 원상, 원희가 
살아 있는 곳입니다.  형주의 유표가 근심이라 하나 그는 말만  앞세우는 사람입
니다. 스스로도 유비를 부릴 재간이 없게 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유비
를 중히  쓰면 뒤에 그를 억누를  수 없음을 두려워하여 중용치  않을 것입니다. 
유비에게 가벼운 일만을 맡기니 유비는 그 일을  힘써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
는 곧 유비를 쓰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므로 허도를 비워 놓고 
군사를 내어도 아무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곽가는 명쾌하고도 확신에 찬 어조
로 말했다. 귀를  기울이고 있던 조조도 마음이 움직였는지 곽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봉효의 말이 옳다. 여기서 허도가  멀다면 그만큼 다시 군사를 내기에도 
허실이 많을 것이다.  내친 김에 가까이 있는  오환을 치도록 해야겠다." 조조는 
전군에 진군 명령을 내렸다. 요서, 요동은  오랑캐의 땅을 불려왔다. 싸움으로 반
생을 보낸 조조였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  땅이었다. 그러므로 
군의 병장기와 군량 준비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했다. 조조가 곧 3군에게 진병을 
명하니 기치창검은 하늘을 가리고 군량과 병장기를 실은 수레만 해도 수천이 되
었다. 이밖에 전투 병력은 수십만에 달했다.  기마병과 보군이 있었고, 가마가 있
으며 또한 싸움에 소용되는 갖가지 병기와 물건을  실은 치중(군대의 짐)이 따르
니 실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행렬이었다. 낯선 땅이라  산천의 풍경은 남방
과 사뭇 달랐다. 매일 광풍이 불어닥쳐, 이른바 황사가 개미 떼의 행렬같이 길게 
이어진 행군을  뒤덮었다. 또한 길은  끝없이 이어진 사막인데다  험하고 거치니 
인마가 제대로  나아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역주란 곳에 이르러  조조도 견디지 
못한 듯 곽가를 찾아 군사를 돌릴 일을 의논했다. 이때 곽가는 사막 지대의 기
후뿐만 아니라  물과 흙에 적응치 못하여  병이 나 수레에 누워  있었다. 곽가의 
병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수레 위에 누워  있기도 힘겨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중에도 조조에게 의견과  대책을 올리고 있었다. 조조는 그를 보고  눈물을 흘리
며 말했다.
  "사막을 평정하려는 내 욕심 때문에 그대에게 온갖 고초를 겪게 하여 끝내 이
런 병까지 났으니 내 마음이 한없이 괴롭구나." 조조의 말에 곽가가 쾡한 눈으로 
조조를 보며 말했다.
  "황공한 말씀입니다. 이미 승상의 큰 은혜를 입은 몸입니다. 비록 여기서 죽는
다 하여도 승상께서 베푸신 은혜의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북녘 땅이 이토록 거칠고 험하니 나는 그만 회군하였으면 한다. 그대 생각
은 어떤가?"
  "아니 됩니다." 그 말에 곽가는 병든  사람 같이 않게 단호하고 힘있는 어조로 
말했다.
  "무릇 싸움에 있어서는 신속을 으뜸으로 삼습니다.  지금 천리 원정을 하고 있
는 터에 치중이 함께 한다면 그만큼 늦어져  불리할 뿐입니다. 가볍게 무장한 군
사로 단숨에 밀고 들어가 적의 허를 찔러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길을 잘 
아는 자를 찾아야  합니다. 나머지 군사는 제가 맡아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
니다. 승상께서는 군사를  거느려 나아가십시오." 곽가의 말에 조조는 다시  의기
를 되살리는 즉시 지세에 밝은  길잡이를 물색케 하고 곽가는 역주에 남겨 병을 
다스리게 했다. 길잡이를 물색하자  한 사람이 천거되었다. 그는 원소의 옛 장수
로 전주라는 사람이었다. 조조는 그를 불러 길을 물어 보았다.
  "이 부근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물로 뒤덮이는데 수레와 말이 지나가기에는  깊
고 배를 띄우기에는  얕습니다. 그러니 군사를 움직이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차라리 군사를 돌려 다른 길로 돌아가시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군사를 돌린다면 어떤 길로 돌려야 하는가?"
  "노룡구로 나가 험한 백단 땅만 넘으면 허허벌판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유성으
로 급히 군사를  거느려 급습하신다면 선우(오환의 족장)는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그 말에 따라 전주를 정북장군에 봉한 뒤 향도관으로 삼
아 길을 인도하게 했다.  전주의 뒤를 장요가 따르게 하고 그  뒤를 조조가 따랐
다. 때는 건안  11년 가을, 7월이었다. 전주가 장요를  인도하여 백랑산에 이르렀
을 때였다. 마침 원희,  원상이 흉노의 우두머리 선우를 설복하여 군사를 이끌고 
마주쳐 왔다. 후진에 있던 조조에게도 급히 이 사실이 전해졌다. 조조는 말을 몰
아 높은 산 위에 올라 적의 형세를 살폈다.  수만 기의 군사가 진을 벌였는데 대
오에 질서가 없고 진세도 어지러웠다.
  "오랑캐들이 진을 쳤다만 역시 오랑캐구나. 병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진용이
다." 조조는 장요에게 적의 허실을 알려 주며 그들을 치게 했다. 장요는 곧 허저, 
우금, 서황 세 장수와 함께  각각 군사를 거느려 짓쳐 들어갔다. 천하의 맹장 네 
장수가 각기 길을 나누어 덮치자 흉노의  군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우왕좌왕하며 
저희들끼리 부딪치듯이 말을 달렸다. 우두머리 선우가  보이자 장요는 좌우의 적
들을 짓밟으며  곧장 그쪽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장요가 다가오자  선우는 칼을 
들어 부딪쳐왔다. 그러나  선우는 몇 합을 부딪기도 전에 장요가  내리친 한칼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선우의 목이 떨어지자  그렇지 않아도 어지럽던 졸개들은 
뿔뿔이 흩어지기에 바빴다. 졸개들보다 더 당황한 것은 원희와 원상이었다. 이번
에야말로 조조군을 꺾어 보려 했으나 선우와 그 졸개들이 저 모양인지라 황망히 
수천 군사를 거느려 요동으로  달아났다. 선우의 군사는 태반이 꺾였으며, 그 나
머지 군사들은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조조는 항복한  적병을 수습하여 
유성으로 입성했다.  그리고 이번 싸움에  공이 많은 전주에게  유정후의 벼슬을 
내리고 유성을 지키게 했다. 그러나 전주는 눈물을 흘리며 사양했다.
  "저는 원래 원소의 수하 장수로서 옛  주인을 거스른 몸입니다. 승상께서 은혜
를 베푸시어 목숨을 살려 주신 것만해도 큰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어찌 옛 
주인의 땅인 노룡을  무너뜨리게 한 후 그 대가로  벼슬을 받고 이곳을 취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도  부끄러운 터에 죽음은 받을  수 있을지언정 벼슬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너의 말 또한 옳다." 조조는 옛 주인을 저버렸음을 부끄러워하고 있는 전주를 
의롭게 여겼다. 그에게 의랑 벼슬을 다시 내리고 그의 곁에 머물게 했다. 조조는 
그곳 백성들을 달래며 안녕과 질서를 도모했다.  백성들이 안정되자 가까운 고을
의 오랑캐들은 줄을 이어 공물을 바쳤고, 무리를 지어 조조에게 귀순했다. 그 중
에는 준마를 1만 필이나  헌납한 토호가 있었으니 조조의 군세는 싸움을 치르고
도 더욱 강해졌다. 조조는 유성을 다스리는 바쁜  격무 중에도 곽가의 병세를 하
루도 잊지 않고 걱정하고 있었다.
  "병세는 날로 악화되고 있다 합니다." 역주에서 온 소식을 아뢰는 조조의 측근
은 어두운 표정으로 이렇게 보고했다.
  "이곳은 전주에게 맡기고 역주로 돌아갈  준비를 하라." 곽가의 병세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음을  알고 조조는 갑자기 명을 내렸다. 조조가  곽가의 위급함
을 알고 급히 돌아가는 길인지라 전주도 더는  거절하지 않고 유성을 맡았다. 가
을에 군사를 내어 유성을 치는 동안 이미  겨울에 접어들고 있었다. 군사를 되돌
리는 데 2백여  리 길은 멀고도 험했다.  날씨가 찬데다 가뭄도 심해  땅 밑으로 
30길이나 구덩이를 파서 물을 구해야 했다. 군량마저  바닥이 나 말을 잡아 양식
으로 삼아야 했다. 가까스로 역주에 이른 조조는  먼저 원정을 말렸던 조홍 등의 
장수들에게 상을 내리며 말했다.
  "요행히 싸움에  이기고 돌아왔으나 이는 하늘의  도움이지 결코 우리 군사가 
강해서 이긴 것이 아니다. 그대들이 나의 출정을  말린 것은 사리에 맞는 합당한 
말이라 여겨 상을  내리는 것이다. 앞으로도 내 뜻과 어긋난다  할지라도 그대들
의 밝은 의견을 서슴없이 말하라." 조조는  무모했던 자신의 원정을 되살리며 그
들을 치하했다. 조조는 그들에게  포상을 끝내고 곧장 곽가를 문병했다. 이미 목
숨이 다한 곽가는 조조의 모습을 보자 안도한 듯 입을 열지도 못하고 그대로 눈
을 감고 말았다.
  "나의 패업이  아직 중도에 있는데 봉효가  죽다니 하늘의 무심하심이로구나." 
조조는 골육을 잃은 듯이 목놓아 울었다.
  "그대들은 모두 나이가 나와  비슷하나 오직 곽가만은 나보다 젊어 나의 뒷일
을 부탁하려 했소. 이곳까지 데려왔는데 고생 끝에  젊은 나이로 죽으니 실로 가
슴이 찢어지는 듯하오."  조조는 옆에 있는 장수들을 돌아보며 탄식했다.  처량하
게 울리는 장례의  징 소리와 피리 소리는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겨울 하늘에 
번져갔다. 장례가 끝났을 때였다. 평소 곽가를 섬기며 시중들던 군사가 글 한 통
을 조조에게 바치며 말했다.
  "이것은 돌아가신 주인님의 유언입니다. 주인께서는  죽음이 임박하자 손수 글
을 쓰시고,  자기가 죽으면 승상께 올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이 
끌에 쓴 바와  같이 하시면 요동 땅은 어렵지 않게  평정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조는 곽가가 남긴 글을 그  자리에서 읽어 보더니 한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감
탄해 마지않았다.
  "봉효야말로 하늘이 내린 인재 중의 인재로다." 곁에 있던 여러 장수들은 곡절
을 몰라  어리둥절해하기만 했다. 며칠이  지나자 하후돈이 여러  장수들과 함께 
오더니 조조에게 고했다.
  "원희와 원상이 요동태수 공손강의 비호를 받고 있다 하옵니다. 공손강은 원래
부터 승상께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반드시 머지않아 큰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
다. 그러니 그들에게 틈을 주지 않고  내쳐 달려가 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
후돈의 말에 조조는 가만히 웃으며 말했다.
  "그대들의 범 같은 용맹은 잠시 아껴두도록 하게. 며칠 안으로 공손강이 원희, 
원상 형제의 목을 이리로 보내 올 것이네." 조조는 전혀 서두르는 기색없이 태평
스럽게 말했다. 하후돈을 비롯한 여러 장수들은 조조의  그 같은 말이 도무지 믿
어지지 않았다. 한편  이 땅에서 저 땅으로 달아나기만 거듭했던  원희와 원상은 
요동에 이르렀다. 요동태수 공손강은 원래 양평  사람으로 무위장군을 지낸 공손
탁의 아들이었다. 원희, 원상  형제가 자기를 찾아오자 그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일가 친척들  가운데 그를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비 원소가  살아 있을 때 그는  항상 이 요동을 공략하고자 획책하고 
있었소이다. 그러나 그 일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그 스스로 패망한 것입니다. 우
리로서는 원한이 쌓였을지언정 아무런 은혜를 입은 바가 없소이다." 이렇게 말하
며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숙부인 공손공 또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뻐꾸기는 까치의 둥지를 빌려서 살다가 슬며시 까치를 내쫓고 둥지를  제것으
로 만듭니다. 원희 형제도 죽은 아비의 뜻을  받아 후일 뻐꾸기로 둔갑할지도 모
릅니다. 오히려 이 기회를 빌어 그들의 목을  베어 조조에게 보내면 조조는 요동
을 공략할  구실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요동이 무사할 뿐  아니라 조조는 
우리를 고맙게 여길 것입니다. 공손강은 숙부에게 물었다.
  "그러나 조조가 우리를 고맙게  여기지 않고 군사를 내어 요동으로 온다면 어
떻게 하겠소. 그러니 차라리 원희 형제를 받아들여  그들과 힘을 합해 만약을 대
비함이 어떻겠소?" 공손강은  생각을 달리하여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공손공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의견을 내었다.
  "정 그러하시다면 사람을 보내 탐지해 보시지요.  만약 조조가 쳐들어 올 기미
가 보이면 원씨 형제를 받아 주고, 그렇지  않으면 원씨 형제를 죽여서 조조에게 
보내도록 하십시오." 공손강이 그 말을 들어보니 과연 옳은 말이었다. 즉각 사람
을 보내 조조의  동정을 살피게 하였다. 한편  요동에 당도한 원희, 원상 형제는 
나름대로 계책을 세웠다.
  "요동에는 군사가 수만이나 되니 조조와도 충분히 싸울 만하다. 당분간은 이곳
에 엎드려  있다가 기회를 보아 공손강을  죽이고 영토를 빼앗도록 하자.  그 뒤 
힘을 길러 중원으로 나가면 하북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동상이몽이었다. 형제는 이런 속셈을 감춘 채 공손강에게 만나기를 청했다. 그러
나 공손강은 그들을 역관에 안내해  놓기만 했을 뿐 자신은 병을 핑계대어 만나 
주지 않았다. 조조의  움직임을 살피러 보낸 세작들에게서 아직 소식을  듣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작이 돌아왔다.
  "조조는 역주에  군사를 주둔시킨 채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요동으로 내려올 
뜻이 없는 듯하옵니다." 세작의 보고를 받자 공손강은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칼
과 도끼를 든 군사들을 벽에  둘러친 휘장 뒤에 숨긴 뒤 사람을 시켜 원희 형제
를 성 안으로 불러들였다.  원희, 원상은 공손강이 그들을 성 안으로 불러들이자 
크게 기뻐했다.
  "조조를 함께 치자는 일을 의논하기 위함일 것이다."
  "조조의 위협을 받고  있는 때인만큼 우리들의 힘을  빌리려는 것입니다. 이제 
이 성을 빼앗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는 이런 말을 가만히 주고받으
며 성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만나는 예를  마치자 공손강은 자리를 가리키며 앉
기를 권했다.  그날은 날씨가 추웠다. 그런데도  원희, 원상 두  형제가 앉으려는 
자리에는 깔개가 깔려 있지 않았다. 형제는  시무룩한 얼굴로 공손강에게 따지듯
이 물었다.
  "우리가 앉을 자리는 어디입니까?"  앉을 자리에 방석이 없음을 빗대어 한  말
이었다. 그러자 공손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너희 둘의  머리가 이제 만 리  길을 갈 터인데  자리는 무슨 얼어죽을 자리
냐?" 공손강의 한 마디를 듣고서야 원희, 원상은 크게 놀랐다. 공손강은 이어 휘
장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어서 나오지 않고 무엇들 하느냐?" 원희, 원상이 입 한 번 열 사이도 없이 순
식간에 일은  벌어졌다. 휘장 뒤에서  10여 명의 무사들이  달려나오는가 했더니 
두 사람을  향해 덮치면서 배와 가슴을  찌르고 목을 베어 버렸다.  공손강은 두 
형제의 목을 나무  상장에 담아 조조에게 보내도록 했다. 일찍이  사세오공 명문
의 후예로 천하에 그 위세를 떨쳤던 원가의  후손이 맞은 허망한 최후였다. 이때 
조조는 역주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하후돈, 장요 등이 보다못해 조조  앞에 나아
가 간했다.
  "만약 요동으로 진격할  의향이 없으시다면 하루빨리 허도로 개선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형주의 유표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립니다. 하릴없이 이곳에 머무른
다는 것은 이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조조는 그들을 웃으며 달랬는데 그 말이 이
상했다.
  "결코 하릴없이 날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불원간에 원희, 원상의 목을 가져올 
것이므로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여러 장수들은 조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비웃는  사람까지 있
었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였다. 요동의 공손강으로부터 글과 함께 상자에 담
겨진 소금에 절인  두 개의 목이 당도했다.  여러 장수들은 깜짝 놀랐다. 조조는 
놀라는 사람들을 보고 껄껄 웃으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과연 봉효의 헤아림이  빗나가지 않았구나. 그도 저승에게 기뻐하리라."  여러 
사람들은 조조의 말에 더욱 놀랐다. 곽가가 이미  죽고 없는 터에 그를 들먹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요동에서 온 사자에게  후한 상금을 내리고 공손강에게
는 양평후 좌장군의 벼슬을 내렸다. 요동에서 온  사자가 상을 받고 물러나자 사
람들은 궁금증을 견디지 못해 물었다.
  "어찌하여 봉효의 헤아림이 빗나가지 않다고 하셨습니까?"
  "이것을 읽어 보도록 하라." 그제야 조조는  곽가가 죽기 전에 써 두었던 글을 
보여 주었다. 사람들은 다투어가며 그 글을 읽어 내려갔다.
  이제 듣자하니 원희와 원상이  요동으로 달아났다 하는 바 주공께서는 아무쪼
록 군사를 내어 뒤쫓지 마십시오. 원래 공손강은  원씨가 자기의 땅을 노리고 있
음을 알고 두려워한 지 오래입니다. 원씨 형제가  투항해 오면 반드시 그 속마음
을 의심해 볼  것입니다. 만약 주공께서 군사를 거느려 그들을  쫓는다면 공손강
은 원씨 형제를 받아들여 힘을 합해 대적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급히 몰아
침은 그들의 힘을 합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되면 그들을 하루 이틀
에 깨뜨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내버려 두고 천천히  때를 기다리신다
면 공손강과  원씨 형제는 필시 서로  해치려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군세가 
강한 공손강이 원씨 형제의 목을 떨어뜨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꿰뚫어보듯한 곽가의 헤아림과 선견지명에 찬탄해 
마지않았다. 그토록 빼어난 재주를 지닌 곽가가  서른 여덟이라는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니 모두 그를  아깝게 여기며 애도했다. 조조를 만나 지난날  여포와 겨룰 
때, 또 원소와의 어려운 국면에 처했을 때 조조를 도왔던 곽가였다. 조조도 새삼 
곽가의 죽음을 애석히 여겨 크게 제사를 올리며  그 공을 돌이켰다. 후세 사람들
이 시를 지어 그를 기렸다.
  하늘이 곽봉효를 내리니 뭇 영웅 중에 으뜸이었네.
  뱃속에는 경사가 가득하고 가슴에는 갑병을 감춘 듯하네.
  지모를 낼 때는 범여와 같고 계책을 정함은 진평과 같구나.
  애석하나, 먼저 몸이 쓰러졌으니 중원의 대들보가 기울었구나.
  원희, 원상이 공손강의  손에 죽자 조조는 전군을 거느리고 일단  기주로 회군
했다. 곽가의 영구는 허도로 보내 성대히 장례를 치르게 했다. 이렇게 하여 조조
의 북방 공략은 일단락을  지었다. 다음은 마땅히 남방을 토벌할 차례였다. 그러
나 웬일인지 조조는  기주 땅에서 좀처럼 군사를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정욱을 
비롯한 몇 사람이 조조에게 청했다.
  "북방은 이미 평정하셨으니  이제는 허도로 돌아가셔서 강남으로 힘을 뻗치실 
방도를 강구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도 벌써부터 그럴 뜻이  있었다." 조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이었다. 조조는  기주성 동문의 누각에  머물면서 난간에 기대서서  천문을 보고 
있었다. 때마침 순유가  곁에 있었는데 조조가 문득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방에 왕성한 기운이  저토록 찬연하구나. 강남을 가볍게  여겨 도모할 수는 
없겠구나." 순유가 하늘을  보니 조조가 말한 그대로였다. 그러나 순유는  조조의 
근심스런 얼굴을 보자 위로했다.
  "승상의 하늘 같은 위세에  어찌 그들이 항복하지 않겠습니까? 승상께서는 근
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순유가 다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한 줄기의 
금빛 기운이 땅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놀란  채로 그 금빛 줄기를 보
고 있던 순유가 아뢰었다.
  "저 빛이 뻗쳐 나오는 곳에는 아마  귀한 보배가 묻혀 있을 것입니다." 조조도 
순유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과연 금빛 기운이  은은히 뻗치고 있었다. 조조는 누
각을 내려가 사람을 시켜  그 광채 나는 곳을 파 보게 했다. 얼마  동안 파 들어
가니 그곳에서 이상한  형태의 쇠붙이가 나왔다. 흙을 씻어 내고  자세히 살피니 
그것은 구리로 만든 참새였다. 조조는 동작을 가리키며 순유에게 물었다.
  "이거 무슨 징조인가?"
  "그 옛날 순 임금의 모후께서  옥돌로 만든 참새가 날아드는 꿈을 꾸고 순 임
금을 낳으셨다고 합니다. 주공께서 구리 참새를  얻으신 것은 길조임에 틀림없습
니다." 조조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즉시 이를 경축하기 위해 높은 대를 
축조하도록 명했다. 조조의 명이  떨어지자 그날로 흙을 파고 나무를 베었다. 기
와와 벽돌을 구와 장하가에 대를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대를 동작
대라고 불렀다. 공사는 대략  1년이면 끝이 날 계획이었으나, 어느 날 둘째 아들 
조식이 찾아와 아버지 조조에게 아뢰었다.
  "높은 대를 세우실 바에야  세 개를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좌우에 한 개
씩을 더 세워 가운데 제일 높은 층대를  동작대라 이름짓게 하십시오. 그리고 왼
쪽은 옥룡, 오른쪽은  금봉이라 하고 양쪽으로 반월형 구름다리 두  개를 만들어
서 걸쳐 놓으면 필시 장관일 것입니다." 조조는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기뻐했다. 
조식은 어릴 때부터 그을 잘 지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어질어 조조가 가장 총
애하는 자식이었다.
  "하하, 네 말이 아주 그럴 듯하구나. 대가 완성되면 내 만년에는 이 대를 보며 
즐길 수 있겠구나." 조조는  그렇게 말하며 쾌히 조식의 말에 따랐다. 조조는 조
식을 큰아들 조비와 함께 업군에 머물면서 동작대  짓는 일을 감독하게 했다. 또
한 북방의 요해는 장연으로 하여금  방비케 한 다음 자신은 허도로 개선할 준비
를 서둘렀다. 약 3년에 걸친 파괴와 기업을 다진 후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군세 
또한 크게 불어나  원씨의 군사까지 합치면 5,  60만이나 되었다. 허도로 돌아간 
조조는 공신들에게 각기 벼슬과 상을 크게 내렸다.  죽은 곽가를 기려 정후의 시
효를 내렸고, 그 아들 혁을 승상 부중으로 데려다 길렀다. 허도로 돌아와 부중의 
일들이 마무리  되자 조조는 모사들을  불러모아 앞일을 의논했다.  이제 북방을 
정벌했으므로 남은 일은  남쪽의 유표였다. 유표를 치기 위해 거병할  것을 묻자 
순욱이 반대하고 나섰다.
  "대군이 북방을 평정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군사를 쉬게 하여 
힘을 추스린 뒤 출정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남쪽의 유표와 손권쯤은 한숨에 
달려가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그 말을 듣자 오랜 싸움터에서 지쳐 
있던 군사들을 또다시 이끌 시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군사들에게 농사
를 짓게 하는 한편 조련하는 기회를 갖게 하여 앞날에 대비케 했다.

  용이 어찌 못 속의 물건이랴
  유비는 적로마를  얻고, 형주를 떠나 신야현으로  향한다. 채 부인은 유비에게 
앙심을 품고 죽이려  한다. 이를 눈치챈 유비는 적로마를 타고  단계를 건너뛰어 
몸을 피하고, 조운은 유비의 종적을 찾지 못한 채 신야로 돌아온다.
  그 무렵 유비는  호북성의 군벌 유표의 식객으로서 형주 땅에  머물고 있었다. 
영주인 유표는 성이  같은 유비를 귀한 손님으로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주인은 
즐겨 손님(식객)으로 대접하고 식객 또한 조금도 개의치  않고 주인과 더불어 천
하를 논하고 후일을 기약했다. 당시에는 이러한  풍습이 사회적 관습으로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3천 명의 군사, 수십  명의 장수, 두 아우 그리고 그 외
에 처자권속까지  거느리고 있으니 실로  거대한 식객이었다. 지금  형주에 있는 
유비가 이러한 처지였다.  그때 북방의 조조는 하북 평정과 오환  정벌의 위업을 
이루었고, 또한 강남의 패자 손권이 오의 기업을 다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북방
과 오의 완충지대로서  장강의 중류 지역인 형주 일대는 평화가  계속되었다. 돌
이켜보면 유비가 형주로  나온 지 이미 3년이 지난 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
었다. 강하 땅에 난이 일어났다. 장무와 진손은 이전에 남의 밑에 있다가 유표에
게 투항했던 자들인데 이들이 백성들을 약탈하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유비
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유표에게 급보가 전해졌다. 유표가  놀라더니 조심스
런 얼굴로 말했다.
  "그 두 놈이  다시 모반을 꾀했으니 이제 그 화가  크겠구나." 유비가 이 말을 
듣고 청했다.
  "형님께서는 과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나가 그들을  사로잡아 오겠습니
다." 유비는 그 동안 식객으로 있으면서 입었던  은공에 보답할 수 있는 좋은 기
회로 여겨  자청하고 나섰다. 부탁하려던  일을 유비가 자청하고  나서자 유표는 
곧 군사 3만을 주어 반란군을 치게 했다.  유비는 군사를 거느리고 떠난 지 하룻
만에 강하에 이르렀다. 유비가  군사를 거느리고 오자 장무, 진손도 군사를 이끌
고 나왔다. 유비는  관우, 장비 두 아우와  조자룡을 데리고 문기 아래에 나서며 
적진을 살폈다. 적장 장무와 진손도 말을 몰아 진 앞쪽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런
데 장무가 탄 말을 본 유비가 감탄했다.
  "저 말은 필시 천리마일 것이다." 과연 그 말은 예삿말이  아닌 준마였다. 유비
가 그 말을 보고 이렇게 감탄하자 조자룡이 말을 박차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제가 저 말을 주공께 바치겠습니다." 조자룡이 창을 들고 나는 듯이 적진으로 
달려가자 장무도 칼을  빼들고 마주 나왔다. 장무가 마주 달려오자  조자룡은 속
으로 기뻐하며 급한 마음이 들었다. 빨리 저  말을 뺏어 유비에게 바치고 싶었던 
것이다. 말과 말이 엇갈리기를 두세 번이 되자  조자룡은 창으로 장무를 찔러 말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  고삐를 잡아 급히 되돌아왔다. 그러나 장무를  죽이고 말
을 빼앗아 달아나는  조자룡을 보자 진손도 가만 있지 않았다.  칼을 빼들자마자 
곧바로 조자룡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모처럼 싸움터에 나온 장비가  몸이 근질
거려 못견디겠다는 듯이  한 마디 외침도 없이 말을 달려나갔다.  장비의 장팔사
모창이 춤을 추는가 했더니 어느 새 진손의  목이 땅바닥에 뒹굴었다. 황당한 건 
그 졸개들이었다. 순식간에 두 대장의 목을 무  자르듯 잘라 버리는 조자룡과 장
비를 보자 기겁하고 달아나기에 바빴다. 유비가 그런 졸개들을 보고 외쳤다.
  "너희들은 달아나지 말라.  항복하는 자들은 모두 우리 군사로  받아들이겠다." 
졸개들은 그 소리를 듣자 모두 무기를 버리고  땅에 엎드렸다. 유비는 강하의 여
러 고을을 안정시킨  뒤 군사를 이끌어 형주로 돌아왔다. 유표는  유비가 개선하
자 성 밖까지 나와 그를 맞아들인 뒤 크게  잔치를 벌려 그 공을 치하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술기운이 조금 오르자 유표가 문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우와 같이 영용한 인물이 형주에  있는 이상 누가 넘보진 못할 것 같아 크
게 마음이 놓이네.  그러나 한중의 장로, 오의 손권은 항상  두통거리요, 특히 남
월의 오랑캐가 언제 몰려올지 모르니 이 후환거리만 없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소
만......" 그러자 유비가 입을 열었다.
  "그 일이라면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이 아우에게 세 장수가 있는데 능히 그 
일을 맡길 만합니다. 장비로  하여금 남월의 경계를 지키게 하고, 관우는 고자성
에서 한중에 대비케 하며, 조운에게 삼강의 수비를  엄중히 하도록 맡기면 될 것
입니다. 그들은 필시  죽음을 무릅쓰고 임무를 다하여 형주의 땅을  지킬 것입니
다." 유비의 말에 유표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말했다.
  "세 호걸로 하여금 형주의 경계를 지키게 한다면 이보다 더 든든한 일이 어디 
있겠소? 곧 아우가 말한 대로 세  장수를 보내도록 하시오." 그리하여 유비는 관
우와 장비 그리고 조자룡을 각각 정한 곳으로  보내 변방을 지키게 했다. 유표는 
그 동안의 근심거리가 일시에 해소되자 기쁜 마음으로 이 사실을 형주의 장수인 
채모에게 알렸다. 그러나 채모는 별로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채모는 마지못한 듯 이렇게  입을 열었다. 채모는 유표의 처 채
씨의 동생이었다. 채모는 곧 채 부인을 찾아갔다. 채모는 채 부인에게 유비의 세 
장수가 각각 경계를 지키러 나간 일을 이야기한 후 은근히 충동질했다.
  "유비가 세 장수를 밖에 나가게 하고  자기는 형주에 머무르고자 합니다. 반드
시 우리 형주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누님이 넌지시  간언해 보시지
요. 내가 나서면 오해가 생길까 봐  그렇습니다." 채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채
모는 형주에서 유비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 후  채 부인은 남
편 유표와 단 둘이 있게 되자 유표에게 소곤거렸다.
  "소문에 의하면 형주 사람들이 유비의 처소로 많이 드나든다고 합니다. 조심하
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유비를 성  안에 두어 이로울 게 없을 것입니다. 그를 어
디 먼 곳에라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현덕은 어진 사람이오."
  "흥, 남이 다  당신 마음과 같은 줄 아세요?"  아내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왠지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성 
밖에서 군사를 사열하는  날이었다. 유표는 유비가 타고 있는 말의  털빛이 윤택
하고 날렵한 몸매에 강건해 보이는 것을 보고 물었다.
  "아우는 어디서 그런 준마를  구했는가?" 그 말을 듣자 유비는 말에서  내리며 
대답했다.
  "지난번 장무가 탔던 말이었습니다." 유표가  다시 말을 보고 감탄하자 유비는 
말고삐를 유표에게 넘겨 주며 말했다.
  "마음에 드신다면 기꺼이 이 말을  형님께 바치겠습니다." 유표는 크게 기뻐하
며 그 말을 타고 성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마침 성문 앞에 있던 모사 괴월이 
그 말을 보고 놀라 중얼거렸다.
  "이 말은 적로가 아닌가?" 유표가 그의 중얼거림을 듣고 되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는가?" 괴월은 엎드려 절하며 대답했다.
  "저의 선형 괴량은 말의 관상을  잘 보았는데 저도 말을 보는 법을 조금 배웠
습니다. 네 개의 발목이 모두  흰 말을 사백이라 하여 흉한 말이라 하는데, 이마
에 흰 점이 있는 것은 더더욱 흉마라 하옵니다.  이 말이 바로 적로란 이름의 말
이 틀림없습니다. 이 말은 반드시 그 주인을  해친다 하니 주공께서는 타시지 않
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무도 이 말을 탔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표는 괴월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얼굴에는 언짢은  빛이 역력했다. 
다음 날, 유표는 유비를 청해 술을 마시다가 슬며시 말을 꺼냈다.
  "어제는 좋은 말을 주어 무척 고마웠네. 하지만 그 병마는 아우에게 되돌려 주
겠네. 아우는  언제 싸움에 나갈지 모르니  항상 좋은 말이 필요할  터이고 나야 
항상 성에 머무는  몸이니 그런 말은 타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유표는 그렇게 
둘러대고 말을 유비에게  돌려 주었다. 유비는 유표가 한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
이고 감사하며 그 말을  받았다. 유비에게 말을 돌려준 유표는 문득  며칠 전 채 
부인이 한 말이 생각났다.  마음 속에 한 번 의심의 불이  당겨지자 지금까지 좋
게만 여겨지던 유비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유표는 마음의 부담을 덜어야겠
다고 생각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우가 이곳  형주에만 오래도록 머물다 보니  군사를 다스리는 일과 무예에 
등한해지니 걱정이네. 이렇게  하면 어떻겠나? 하남의 양양에서 가까운  곳에 신
야라는 성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보는 건  어떻겠나? 그곳에는 병장기와 군량이 
넉넉하니 군마를 거느려 그곳을  지켜주지 않겠나?" 유표가 이렇게 말하자 유비
는 쾌히 응낙하였다. 유비로서는  마다할 처지가 아니었다. 다음 날로 휘하 군사
들과 가솔들을 거느리고  신야로 향했다. 막상 유비가 떠나려 하자  유표도 섭섭
함을 이기지 못했던지 성 밖까지 나와 전송했다.  일행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동
문을 벗어났을 때였다. 한 사람이 말을 달려와  마전에 이르러 공손히 절하며 말
했다.
  "며칠 전에 성문 근처에서 괴월이 유표에게 하는 말을 듣고 전해 드리러 왔습
니다." 유비가 보니 유표 휘하에 식객처럼 머물고 있는 이적이라는 자였다. 그는 
산양 사람으로 자를 기백이라고 했다.
  "무슨 말씀을 전하려고 왔소?" 유비가 말을 멈추게 한 후 물었다.
  "괴월이 이 말의  이름은 적로이며 반드시 주인을  해치는 말이라 하였습니다. 
주공께서 이  말을 다시 공께 돌려  드린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니 공께서도 
이 말을 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적의 말에  유비는 서슴없이 대답했
다.
  "선생께서 나를 아껴 주시는 말씀 무어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사는 제 명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어찌  말 한 마리가 나의 운명을 좌
우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께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비는 이적을 보
고 밝게 웃을 뿐  조금도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이적은 유비의  큰 기개에 감
복하여 그때부터  더욱 그를 우러러  흠모했다. 유비가 신야에  이르자 백성들과 
군사들은 한결같이 그를 맞으며 기뻐했다. 유비의  이름은 이곳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백성들은 그가 덕으로  다스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신야는 작고 
평화로운 고을이었다.  유비는 신야에 이르러 큰  경사를 맞았다. 정실부인인 감 
부인이 아들 유선을  낳은 것이다. 이날 새벽녘에는 한 마리의  두루미가 현청의 
지붕에 와서 40여 번이나 크게 울고 서쪽으로  날아갔다. 또한 아기가 태어날 때
는 기이한  향기가 방 안에 가득하였다.  임신 중에 감 부인이  북두성을 삼키는 
꿈을 꾸었다 하여 아기의 이름을 아두라고 하였다. 때는 건안 12년 봄이었다. 이 
무렵은 조조의  원정이 기주에서 요서에까지  미치고 있을 때였다.  허도가 비어 
있음을 안 유비는 형주로 유표를 찾아가 권했다.
  "지금이야말로 천하에 그 뜻을 펼칠 때입니다. 조조가 북방으로 군사를 내었으
니 지금  허창은 비어 있습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치신다면 큰  일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표는 고개를 저으며 말렸다.
  "내가 형주의 아홉 고을을  유지하고 있으면 족하지 여기서 무엇을 더 바라겠
소?" 유비는 유표의 소극적인 대답에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유비는 조조가 출
병하고 없는 지금  허도를 점령하여 조조 대신  헌제를 옹립하고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그런 기회는  지난번 조조가 관도에서 원소와 싸
움을 벌이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때도 유표는 자기  경계만을 지
키려 할  뿐 거병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표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형주는 유표의 출생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유표는 임
지인 양양으로 부임할  때 형주에서 이름이 알려진 호족들의 힘을  빌어야 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주내 각지에 할거하고 있던 작은 호족을 평정하고 나서야 비로
소 태수로서의  권위를 세웠던 것이었다.  때문에 유표는 조조나  원소처럼 자기 
자신의 군사를  거느린 것이 아니라  조정에서 파견된 행정관에  지나지 않았다. 
10여 만이나 된다던  형주의 군사들도 실제로는 호족들의  사병이었다. 호족들은 
그 사병들을 근거로  하여 유표에게 관직을 얻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유표
는 오히려 호족들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호족들에게 의지하는 경우였다. 따라
서 호족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들의  사병 군단이었으며, 유표에 대한 
충성심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조가 오환 정벌에  나선 지금 유비
가 허도를 치자고  헌책하여도 유표는 거병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
다. 그것은 유표를 통해서  표명된 토착 호족들의 의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표
에게 이러한 속사정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가 천하를 다툴 야망이 없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조조를 비롯한  북방의 호족들이 중원의 패권을 다투고 있을  때 18여 
년 동안 형주를  다스리면서도 그는 자신의 군사를 기르지 않았던  것이다. 유비
가 허도를 치자고 몇 번을 권했으나 유표가 다시 승낙하지 않자 유비도 입을 다
물고 말았다. 그런 유비에게  유표가 후당으로 들기를 청했다. 유비는 내키지 않
았으나 마지못해 후당으로 들었다. 술이 나오자 두  사람은 몇 순배의 술잔을 돌
렸다. 술이 거나해지자 유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비가 의아히 여겨 물었
다.
  "형님께서는 무슨 연유로 그토록 한숨을 쉬십니까?"
  "나한테 걱정거리가 있으나  말하기가 어려워 그렇다네." 그때였다. 유표의  처 
채 부인이 병풍 뒤에서 나오자 유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조금 있다 술자리가 
파하자 유비도  자리를 물러나 신야로  돌아갔다. 유비가 신야로  돌아온지 어느 
새 반년이 흐르고 있었다. 그 동안 유표도  유비를 부르지 않았고 유비도 유표를 
찾지 않았다.  유비가 허도를 치자고 했을  때 유표가 움직여 주지  않자 유비도 
그를 만날 일이 없어졌다. 그런  어느 날 유표가 사람을 보내 유비를 불렀다. 유
비가 형주로 가니 유표는 술상을 차려 놓고 그를 반갑게 맞았다.
  "요사이 듣자하니 조조가 군사를 거느리고 허도로 돌아왔다고 하네. 그 세력이 
날로 강성해진다 하니  필시 언젠가는 우리 형주와  양양을 노릴 것이 아닌가?" 
술이 몇 순배 돌고 난 다음 유표는 문득  이렇게 입을 열었다. 유비는 그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유표가 다시 말했다.
  "지난날 어진 아우가 허도를 치자고  했을 때 그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스
럽네. 실로 좋은 기회를 잃어 버리고 말았네. 그렇지만 지금 후회한들 무슨 소용
이 있겠나." 유표가 힘없이  말했다. 막상 유비는 유표가 지난 일을 후회하며 면
구스러운 듯 말하자 오히려 유표를 위로했다.
  "지금 천하는 여러 동강이 나 다툼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회가 어
찌 그것으로 끝났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다시 기회를 기다리신다면 때가 올 것입
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한이 될  것은 없습니다." 유비가 위로하며 
말하자 유표도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제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마음이 놓이는  듯하네. 현제의 말이  지당하네." 
유표는 그렇게  말하며 유비에게 술잔을  권했다. 한동안 권커니  잣커니 술잔이 
오가자 술이 거나해졌다.  그러자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유표가  갑자기 눈물
을 흘렸다.
  "형님께서는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십니까? 이 아우가 힘이 될 수 있다면 말
씀해 주십시오."
  "전에도 아우에게 말하려 했으나 자리가 마땅치 않아 그만두었네."
  "만약 저를 쓰실 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설령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사양치 않겠습니다." 유비가 간곡히  청하자 유표도 더 이상 머뭇
거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실은 전처 진씨에게서 아들을  얻었는데 맏이 기는 성품은 어지나 마음이 나
약하여 큰 일을 맡길  만한 재목이 되지 못하네. 후처 채씨에게  얻은 둘째 종은 
총명하나 맏이를 젖혀 두고 그를 세우려 하니  이는 예법을 거스르는 일이 되네. 
그렇다고 맏이를 세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  채씨 일족이 형주의 군권을 쥐
고 있으니 필시  변란이 일어날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밤낮으로 걱정만 하고 있다네."
  "예로부터 맏이를 대신하여 그  아래를 후사로 정했을 때는 난이 일어나 나라
가 어지러워졌습니다. 가까운 예로 원씨의 후사가 그러합니다. 만약 채씨 일가의 
권세가 두텁다면 점차 줄이면  되지 않습니까? 둘째 아들을 어여삐 여겨 후사로 
삼으시는 일은 피하시도록 하십시오." 유비가 서슴없이 이렇게 말하자 유표는 입
을 다물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둘째아들  종에게 마음이 기울
고 있던 유표는 유비  그 같은 말을 하자 그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질 뿐이었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유비를 의심하고 있던 채 부인은 이 날도 유표가 유비를 청
해 술을  마시자 병풍 뒤에 숨어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과연  유비가 자기의 
아들 종을 후사로 삼는 일을  반대하자 유비에게 서릿발 같은 원한을 품게 되었
다. 유표가 끝내 입을  다물고 있자 유비는 자기의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무거운 분위기를 바꿀  생각으로 뒷간에 가는 것처럼 하여 자리를  떴다. 뒷간에 
앉은 유비는 문득 서글퍼졌다. 이제 늙어 가는  나이가 되었으나 아직도 한낱 식
객의 처지에 머물고 있는 자신이 새삼스럽게  돌아봐졌기 때문이다. 거기다 벗은 
허벅지에 살이 두둑이 오른 것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쏟아졌다. 잠
시 후 방 안으로 들어간 유비를 보자 유표는 의아히 여겨 물었다.
  "아니 왜 그러나? 눈물 자국이 있지 않은가?" 유비는 뒷간을  나오며 손바닥으
로 눈물을  닦았으나 그 자국이 남아  있었던지 유표가 이렇게 물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다른 말로 돌려  얘기하였겠으나 술김에 감정이 북받쳐 탄식하며 말했
다.
  "이 아우, 이전에는 항상 말을 타고 다녔으므로 넓적다리에 살이 오른 적이 없
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 동안 말을 멀리한  탓으로 다리에 다시 살이 올랐습니
다. 세월만  덧없이 흘려 보내며 늙어  가는데 아직도 이룬 공업이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내가 들은 바 있네만, 아우가 허창에 있을  때 조조와 더불어 푸른 매실로 빚
은 술을 마시며 천하의  영웅을 논한 적이 있다고 했네. 그때  아우는 천하의 영
걸들을 손꼽았지만 조조는 그들  모두를 영웅으로 인정하지 않고 아우와 자기만
이 영웅이라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네. 조조가 그 권세와 위엄을  가지고도 아우
를 먼저 영웅으로 꼽았는데 어찌 공업을 세우지 못했다고 근심하고 있나?" 유표
가 유비를  위로하며 달랜 말이었다. 그  말을 듣자 답답하던 유비는  이미 취한 
술기운에 마음이 실려 불쑥 울분으로 치받혀 앞뒤를 돌보지 않고 한마디 내뱉았
다.
  "기왕 그렇게 말씀하시니 말입니다만, 이 유비에게 의지할 근거지만 있다면 천
하의 하찮은 무리들쯤이야 문제삼지 않겠소." 유비가 취중에 불쑥 본심을 말하자 
유표의 안색이 달라졌다. 유비는 불현듯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얼른 말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려 몇  마디 실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그런 후  몹시 취한 척하며 
역관으로 돌아가 곯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뒷날 사람들이 이때 유비의 
마음을 읊은 시가 있었다.
  조조가 천하의 영웅을 이야기할 때 으뜸으로 꼽기를 '사군'이라 했네.
  허벅지에 살이 올라 한숨 쉬니 어찌하여 천하가 셋으로 나뉘지 않으랴.
  유표는 유비의 그런  행동을 보자 내색하진 않았지만 마음이 편치  못했다. 유
표가 안채로 들어가자 채 부인이 그런 유표의 마음을 건드렸다.
  "저는 병풍 뒤에서 두 분의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속마음을 감추
고 있지만 취하면  본심이 나오는 법이지요. 하찮은 무리라니 그게  누구를 뜻하
는 것입니까? 우리  형주를 삼킬 뜻이 분명합니다. 만약 지금  없애지 않으면 뒷
날 큰 화를 당하게 되실 것입니다."
  "음-." 유표는 신음 소리만  흘리고는 말 없이 방에서 나왔다. 유비는 당장 죽
일 마음까지는 갖지 않은 유표가  자리를 피해 물러나자 채 부인은 채모를 불렀
다. 채  부인은 남편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안타깝게 여겼으나  유비에게 의심을 
품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므로 채모에게 이 일을 알렸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느냐?" 채 부인이 묻자 채모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오늘 밤 안으로 역관에서  유비를 죽이고 나중에 주공께 알리는 것이 좋겠습
니다." 채모의 말에 채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채모는 그 길로 나가 은밀히 날
랜 군사 수백 명을 모아놓고 밤이 깊기를  기다렸다. 유비는 다음 날이면 신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유비는 역관에 들어와 곯아떨어진  체하고 잠시 누워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유표에게 실언을 한 뒤라 마음이 놓이지  않아 촛불
을 밝혀 둔 채  앉아 있었다. 혹시나 하여 바깥의 동태를  살피다가 밤이 늦어서
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  문득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비가 방문을 
열고 맞아들이니 그는  바로 이적이 보낸 사람이었다. 채모가 유비를  해치려 하
는 것을 알고 선물로 보내는  과일꾸러미 속에 밀봉한 서한을 숨겨 놓은 것이었
다. 유비가 밀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유비도 경계심을 품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
나 막상 밤중에 역관을  들이치려 한다는 글을 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
비는 급히 옷을 입고 역관 뒷문으로 빠져  나갔다. 유비를 따라왔던 종자들도 뒤
따랐다. 채모가 군사를 이끌고 역관을 급습했을 때  유비는 이미 멀리 도망간 뒤
였다. 채모는 유비가 잠들기를  기다려 밤이 늦도록 기다린 것을 몹시 후회했다. 
빈 방에 홀로 서서 한참을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던 채모는 문득 한 꾀를 생각
해 내었다. 시 한 수를  지어 역관의 벽에다 커다랗게 써놓았다. 그리고는 성 안
으로 들어가 유표에게 능청스럽게 고했다.
  "현덕과 그의 종자들은 우리 형주를 탈취할  뜻을 품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곳으로 올 때마다 형주의 지세를 살피며  종자들과 수군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서 지난 밤에는 군사 몇 사람을 시켜  그의 동정을 살피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현덕은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습니다만 벽에다 시 한 편을 써놓고 갔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아우가 내게 떠난다는 인사 한  마디 없이 갈 리가 있느
냐?" 유표는 처음에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떠난 걸 보고 낮에  있었던 유비의 언행이 생각나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
했다. 유표는 채모를 앞세우고  유비가 머물렀던 역관을 찾아갔다. 역관의 방 벽
에는 과연 시 한 편이 붙어 있었다. 유표는 그 시를 읽어 보았다.
  구차히 지낸 지가 몇 해인가 부질없이 옛 산천만을 대했노라.
  용이 어찌 못 속의 물건이랴 우레를 타고 하늘로 오르려 하네!
  그 시를  읽어 보자 유표도 마침내  크게 노하고 말았다. 유비가  취중에 했던 
말과 같은 뜻의 시가 아닌가. 유표는 온몸을 떨며 장검을 빼어들고 외쳤다.
  "이 의리 없는 놈, 내가  그를 살려 두지 않으리라!" 유표가 불끈 치솟는 노기
를 누르며 몇  걸음을 걸어가다 보니 문득 의아스러운 생각이  스치는 것이었다. 
유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홀로 중얼거렸다. '내가 현덕하고 오랜 사귐을 가졌지
만 지금까지 시를  지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또  그가 시를 
즐긴다는 말도, 시를 잘 짓는다는  말도 들어 보지 못했다. 이는 필시 나와 유비
를 이간시키기 위해 꾸민  계책이리라.' 유표는 마음을 돌이켜 역관으로 가 칼끝
으로 그 시를 도려 내 버렸다. 유표가 노한  얼굴을 풀며 그 시마저 없애 버리자 
다급해진 건 채모였다.  꾸민 계교대로 잘 되어가나 하다가 유표가  그같이 나오
자 얼른 뒤따라나오며 유표에게 말했다.
  "군사를 모아 출동할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이대로  달려가 현덕을 사로잡아 
오겠습니다." 그러나 유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경솔하게 움직일  일이 아니다. 두고 보면서 서서히 도모하여도  늦지
는 않다." 유표는 그 길로 성 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채모와 채 부인의 모략은 
그 이후에도 그치지 않았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현덕을 꼭 제거해야 한다." 채모와  채 부인은 밤낮없이 
궁리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표는 좀처럼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같은 한실
의 후예로서 친척이 되는  유비를 죽이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는 것이 유표의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또한 아직은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이런 일로 인해 자
기 문중의 후사를  둘러싼 분쟁이 세상에 알려질까 염려되었다. 채  부인은 남편
의 이러한 태도에 안달이 났다. 툭하면 동생 채모를 불러 놓고 채근했다.
  "조급하게 여기지 말고 기다려 주십시오."  채모가 누님을 달래며 궁리를 하던 
중 문득 한 가지  계교가 떠올랐다. 그는 여러 관원들을 불러모은  후 유표를 찾
아가 아뢰었다.
  "요 몇 해 동안 오곡이 잘 여물어  풍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금년 가을
은 대풍이라 백성들의 풍년을 기리는 노랫소리가  드높습니다. 이에 백관들을 양
양에 모아놓고 위로하며 격려하는 사냥을 하여  주공의 위세를 떨치고자 합니다. 
우리 형주의 부강과 강성한 기개를 위해  한번 행차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채모
는 유표가 이미 노쇠한 몸이라 사냥 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생각대
로 유표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요즈음 들어 몸이 매우 고단하고 불편하여  거동을 할 수가 없네. 큰 아
이 기와 둘째 종을 대신 보내어 문무관을 위로하라고 알려라." 그러나 채모는 유
표가 이렇게 말할 걸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두 분 공자님은 아직 연치가 어리시니 혹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 있을까 두렵
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주공께서  가셔서 위세를 보이심으로써 이번  사냥의 의
의가 있을 듯합니다." 채모의 말에 유표는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자 채모가 
짐짓 생각에 잠기는 척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신야에 있는 현덕님을 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는 주공님과도 
동종간이고 나이도 지긋하니 능히 그 일을  해낼 것입니다." 유표가 들으니 그럴
듯한 말이었다.  그가 얼른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을 깨우쳐 주었다는  듯이 쾌히 
응낙했다.
  "그 말을 들으니 옳은  말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라." 유표가 응낙하자  채모는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곧 양양에서 있을 사냥을 각지에  알려 벼슬아치들
을 초대하는 한편 신야로 사람을 보내 유비를  초청했다. 이 무렵 유비는 신야로 
돌아온 후에도 자신의  실언이 화를 불렀음을 알고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
다. 그 불쾌한 일을 측근의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있는데 홀연 형주에서 사
자가 왔다.  뜻밖에도 자신을 양양으로 청하는  사자였다. 유비로서는 선뜻 응할 
수도 없는 청이었다.  그렇다고 사자까지 보내왔는데 가지 않는 것은  자신의 실
언을 사실로 증명하는  셈이 되었다. 유비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
자 손건이 심상치 않은 낌새라도 느꼈는지 넌지시 말했다.
  "주공께서는 일전 형주에서 서둘러 오신 후로 신색이 매우 좋지 아니하십니다. 
제 짧은  생각에 형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별안간 
양양으로 청하니 주공께서는  경솔히 나가셔서는 아니 될  줄로 압니다." 유비는 
그제야 수일 전의 일을 소상하게 이야기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관우가 입을 열
었다.
  "형님께서는 실언하셨다고  스스로 걱정하시지만 유경승은  결코 책망할 뜻이 
있었던 것 같지  않습니다. 유경승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혼자만의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더구나 양양은 여기서  가까운 거리인데 만약 가시지 
않는다면 도리어 유경승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유비가 관우의 말을 들
으니 옳은 말이었다.
  "운장의 말이 옳으이." 유비가 그렇게 말하며 준비를 하는데 장비가 나서며 불
쑥 한 마디를 내뱉듯했다.
  "잔치치고 좋은 잔치가  없고 모임치고 좋은 모임이  없다 하였습니다. 형님은 
가지 않는 것이  좋겠소." 의견이 양쪽으로 나뉘자 이를 지켜  보고 있던 조운이 
나섰다.
  "걱정마시고 참석하십시오. 제가 보기 3백을 거느리고 주공을 따르겠습니다."
  "오오, 그게 좋겠군." 유비는 조운의  말에 반색하며 말했다. 유비는 조운과 함
께 그날로 양양을 향해 말을 달렸다. 신야에서  80리 떨어진 양양에 이르자 이미 
대오를 지어 유비를 마중  나와 있었다. 채모와 유기, 유종 형제,  왕찬, 문빙, 등
의, 왕위 등 형주의 여러 장군들이었다. 유비는 유표의 아들까지 나와 있는 것을 
보자 안심했다. 유비는 이 날은 역관으로 들어 쉬었다. 조운은 군사로 하여금 역
관을 둘러싸고 호위케  했다. 한편 자신은 투구철갑에 장검을 차고  잠시도 유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유표의 큰아들 유기가 유비 앞에 나와 유표의 뜻을 전했다.
  "아버님께서 가벼운 환후로  하여 거동이 불편하시므로 숙부님께 청해 손님을 
접대하라 하셨습니다."
  "나에게는 분에 넘치는 중임이나 형님께서 이미 명하셨거늘 어찌 사양하겠나." 
유비는 밝은 얼굴로 유기에게 말했다. 다음 날, 형주 9군 42주의 관원이 모두 도
착하였다는 전갈이 유비에게 전해졌다. 이때 채모는  가만히 괴월을 불러 의논했
다.
  "유비는 세상이 다 아는 효웅이오. 이곳에 오래 머물게 하면 반드시 후환이 있
을 것이니 오늘 아주 죽여 없애는 것이  좋을 것이오." 채모의 갑작스런 말에 괴
월이 망설이며 말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백성들의 신망을 잃지 않을까 걱정이오." 괴월이 망설이
는 기색을 보이자 채모는 거짓으로 둘러댔다.
  "나는 이미 주공의 승낙을 받았소. 이는 주공이 은밀히 내게 내린 명이니 공은 
망설이지 마시오." 그 말을 듣자 괴월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반만의 준비를 해야겠구려." 채모가  기다렸다는 듯이 숨겨 놓은 군
사들의 배치를 알려 주었다.
  "동문 밖 현산으로  가는 길목은 내 아우 채화를 시켜  지키도록 했소. 그리고 
남문 밖은 채중에게, 북문 밖은 채훈에게 각기  휘하 군사를 휘동하여 지키라 했
소. 그러나 서문은 지킬 필요가 없어 군사를 배치하지 않았소. 앞에 단계의 깊고 
험한 물길이 가로막고 있으니 비록 수만의 군사라 하여도 건너가지 못할 것이외
다."
  "하지만 조운이 저렇게 현덕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니 손을 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소." 채모는 괴월의 걱정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다 손을 써 놓았소. 군사 5백  명 정도를 벌써 성 안에 매복시켜 두었
소."
  "과연 기민하오. 그렇다면 문빙과 왕위 두 사람을 시켜 바깥 대청에서 따로 무
장을 대접한다고 핑계를  대도록 하시오. 그리고 조운을 먼 그곳으로  청해 놓고 
일을 결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괴월이  한 계교를 일러 주었다. 아무래도 조
운이 마음에 걸리던 터라 채모는 선뜻 괴월의  말에 동의했다. 채모와 괴월은 이
렇게 의논을 정한 뒤 소와 말을 잡아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유비는 적로마를 
타고 관아에 이르러 말을 뒤꼍에 매어 두게  했다. 이윽고 여러 주의 문무백관이 
연회장에 속속 모여들었다. 유비가 주인의 자리에 앉고  유표의 두 아들은 그 양
쪽에 앉았다. 조운은 투구와  갑옷을 입고 장검을 찬 채 유비의  곁에 시립해 있
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잔치의  분위기가 차츰 무르익어 가자  왕위와 문빙이 
들어오더니 조운에게 다가갔다.
  "장군께서도 한 잔 하시지요." 술잔을 건네며 문빙이 말을 꺼냈다.
  "하루 종일 그렇게  서 계신다면 고단하시겠소이다. 오늘은  높고 낮음없이 한 
마음으로 즐기는 날이 아닙니까? 장군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앞 채에 따로 상
을 마련하여 놓았소. 우리들끼리 술을 나눕시다."
  "사양하겠소." 조운은 한마디로  물리쳤다. 문빙과 왕위가 거듭 권했으나  조운
은 한결 같았다. 이를 본 유비가 조운에게 권했다.
  "자네는 괜찮겠지만  자네가 거기 시립해 있으니  부하 군사들도 움직일 수가 
없지 않은가. 거기다가  저렇게 간곡히 청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가  아니니 어
서 가보게." 유비가 명하자 조운은 하는 수  없이 왕위와 문빙을 따라 따로 마련
된 술자리로 갔다. 3백  명의 부하 군사들도 역관으로 돌아가 있도록 했다. 채모
는 마음  속으로 일이 뜻대로 되어  가자 좌중의 분위기를 살폈다.  유비는 이때 
유표의 두 아들이 좌우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었다.  술이 몇 순
배 돌자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그때  좌중에 앉아 있던 이적이 유비에게 
술잔을 들고 와 술을 권하는 척 눈짓하더니 가만히 말하였다.
  "아직도 예복인 채로  계시는군요. 옷을 갈아입으셔야지요." 그 말투와  눈빛으
로 유비는 이적의 뜻하는 바를 짐작했다. 곧  몸을 일으켜 뒷간으로 가는 체하며 
후원으로 나가자 이적이 뒤따라 달려나와 귀엣말로 속삭였다.
  "채모가 장군을 해치고자 성 밖 동남북 세 방향 모두에 군사들을 매복해 두고 
있습니다. 나갈 수 있는 문은 서문밖에 없습니다. 얼른 그곳으로 피하십시오." 유
비는 소스라쳐 놀랐다. 조운에게 말을 전할 틈도  없이 적로마의 고삐를 풀고 후
원문을 나서 훌쩍  말 위에 올랐다. 서문을 나갈 때까지  제지하려는 문지기들이 
있었으나 유비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앞으로만  달렸다. 문지기들이 이 사
실을 급히 채모에게 알렸고 채모는 곧 군사 5백을 이끌고 유비를 뒤쫓기 시작했
다. 유비는 채찍을  휘두르며 숨가쁘게 몇 리를  달렸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길은 간 데가 없고 유비의 말은 나지막한 벼랑  위에 우뚝 선 꼴이 되었다. 유비
가 아래로 보니 폭이  수십 길이나 되는 큰 물줄기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곳이 바로 단계였다. 물결마저 거셌으므로 채모는 유비가  이 계곡을 건널 수 없
음을 알고 군사를  풀어 방비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흰 물보라가  안개처럼 피어
올라 벼랑 위까지 뒤덮었다. 물줄기는 계곡에  치솟은 바위를 때리며 소용돌이치
고 있어 감히 건널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했다.  유비는 건너갈 수 있는 곳을 찾
기 위해 벼랑과  계류의 둔덕을 오르내렸으나 지세는  험하고 폭은 넓어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유비가 다시 다른 곳을  찾아보기 위해 말머리를 돌리려 하
자 멀리 서쪽으로부터 뿌연 흙먼지가 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이쪽
을 향해 달려오는  추격병들임이 분명했다. '이젠 꼼짝없이  죽었구나......' 유비는 
다시 말머리를 돌려  물가로 갔다. 앉아서 추격병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기 때문
이었다. 거기서 또 고개를  돌려 보니 추격병과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져 있었다. 
유비는 물 속으로 말을  몰았다. 그러나 몇 발자국 옮기지 않아  말의 앞쪽이 물 
속으로 꺼지며 온몸이 물에 잠겼다. 다급해진  유비가 말의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소리쳤다.
  "적로야, 적로야, 마침내  네가 나를 해치고자 하느냐!" 그 순간이었다.  적로가 
한 번 크게  울며 물 속에서 갑자기 몸을  솟구치더니 세 길이나 뛰어올라 저편 
언덕 위에 내렸다. 유비는  마침 구름을 타고 물길 위를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
다. 뒷날 소학사(시인 소동파)는  이날 유비가 적로마를 타고 단계를 뛰어넘었던 
일을 시로 남겨 칭송했다. 그 시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여기서 두 마리의 용
은 유비와 적로마를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말발굽에 푸른 유리 같은 물결 부서지고
  하늘바람 이는 곳에 금빛 채찍 휘둘러
  귓가에는 수많은 기병이 내닫는 소리
  물결 속에서 홀연 두 마리 용이 치솟는구나.
  유비가 적로와 함께 서쪽  언덕에 내려서서 뒤돌아보니 채모가 거느린 군사들
이 이미 건너편 언덕에 도착해 있었다. 채모가 유비를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유사군은 어찌하여 술자리를 말도 없이 떠나려 하오?" 유비도  이쪽에서 목소
리를 가다듬어 그를 꾸짖었다.
  "네가 나와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인 일로 나를 해치려 하느냐?"
  "나에게는 유사군을 해할  마음이 추호도 없소이다. 남의  말을 듣고 그러시는 
것입니까?" 유비가 채모를 보자 그는 말을  하면서 활에 살을 메기고 있었다. 유
비는 급히 말머리를  돌려 다시 서쪽을 향해 질주했다. 채모는  믿어지지 않는다
는 얼굴로 단계의 물결과 사라져 가는 유비의 뒷모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게 웬 귀신의 도움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단계를 건널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좌우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채모는 성으로 군사를 돌리는 수밖
에 없었다. 채모가 군사를  이끌어 성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저편에서 흙먼지
를 일으키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한 무리의 인마가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조
운이 이끄는 군사들이었다. 조운은 별채로 안내되어  마지못해 술을 마시는데 바
깥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나고 인마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심상치  않음을 느
낀 조운은 술잔을 놓고 급히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잔치가 열리고 있는 그곳에
는 유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놀란 조운이 부리나케  역관으로 달려갔으나 
그곳에도 역시 유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역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유비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지 못했으나 조금  전 인마의 움직임에 대해선 
모두 알고 말해 주었다.
  "채모가 군사를 이끌고 서문 쪽으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이놈들이 일을 꾸몄구나.' 조운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장창을 잡자마자 말 
등에 올라 데리고  온 3백 군사를 거느리고 서문 밖으로  달려왔던 것이었다. 그
런데 채모가 군사를 이끌고 마주 오자 조운은 그에게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우리 주공께서는 어디 계시오?" 조운이 험악한 눈길로 채모를 노려보았다. 채
모가 얼른 둘러댔다.
  "사군께서는 말씀도 없이  자리를 뜨셨는데, 어디로 가셨는지  나도 지금 찾고 
있소이다." 원래  조운은 세심하고 용의주도한  성품이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채모에게 더 이상 추궁할 수도  없었다. 그 대신 계속 말을 몰아 앞으로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 단계의 험한 개울이 앞을  가로막았다. 다시 말머리를 돌린 조운
은 채모를 따라잡고는 큰 소리로 따져 물었다.
  "주공을 잔치에  청해 놓고 어찌하여 군사를  휘동하여 뒤를 쫓았소?"  조운이 
매섭게 정곡을 찔렀으나 채모는 시치미를 떼고 대답했다.
  "아홉 군 마흔 두 고을의 관원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소. 내가 군사들의 총
지휘를 맡고 있으니 경호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오?" 그러나 조운은 의
심을 풀지 않고 다시 물었다.
  "다시 묻겠소. 그대는 대체 우리 주공을  어떻게 대했기에 주공께서 말을 몰아 
달려갔소? 말씀해 보시오."
  "사군께서 필마 단신으로 서문을 나가셨다는 말을 듣고 여기까지 왔을 뿐이오. 
행방이 묘연하니 궁금한 것은 나나 그대나  다름이 없소." 조운은 내심 채모에게 
의심이 갔으나 채모가 능청스레 말하니 더 이상  다투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마
음이 조급해진 조운은 다시 말을 돌려 계곡으로  돌아왔다. 조운은 벼랑 위의 둔
덕과 건너편 언덕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건너편 둔덕 위에 말발굽과  물이 땅바
닥에 떨어져 있는 흔적이 보였다. 분명 물을  건너 저편 둔덕으로 오른 흔적이었
다. '말을 탄 채  이 계류를 뛰어 건넜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유
비가 말을 타고 이  단계를 건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운은 군
사들을 풀어 주위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유
비의 종적은 알 수가 없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조운은 말머리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채모는 이미 성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조운은 서문
을 지키는 군사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유비가 말을 타고 서문을 빠져 나간 것밖
에는 더  아는 것이 없었다. 조운은  성 안으로 들어갈까 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혹시 자기들을 노리는 복병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운은 불안과 근심을 
안은 채 군사들과 함께 신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진흙 속에 웅크린 용 서서를 얻다
  채모의 계략으로 위험에 처했던 유비는 이 사실을 유표에게 알리고 채모는 겨
우 극형만은 면한다. 한편 유비는 사마휘를 만나  천하의 인재가 양양 땅에 몰려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지략과 병법에 뛰어난 서서를 군사로 중용하여 여광, 
여상의 무리를 물리친다.
  유비는 서문을 빠져 나와 단숨에  그 넓은 단계를 뛰어넘자 정신이 혼미할 지
경이었다. '이야말로 하늘의 도우심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렇지 않다면 어찌 사
람의 힘으로 그 넓은 곳을 뛰어넘을 수 있으리오!' 유비는 그렇게 생각하니 까닭
없이 힘이 치솟았다. 적로마의 목덜미를 다시 한  번 쓰다듬은 후 남장으로 향했
다. 한동안 가노라니  해는 서산에 기울고 어둠이 밀려와 희미하나마  하얀 별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비는 머얼건 저녁빛을 받으며 묵묵히  넓은 들판
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아아, 나도 벌써 마흔일곱 살이나  되었는데 아직 이
렇다 할 해 놓은 일도  없이 남에게 얹혀서 지내는 신세란 말인가!' 유비는 고삐
를 당겨 말을 세웠다. 무심히  저녁 안개 감도는 먼 들판 끝을 바라보았다. 그리
고 과거와  미래를 잇는 회상 속에  절로 한탄이 일었다. 불현듯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 왔다. 이윽고 황혼의 어스름  속에서 소 잔등에 올라탄 한 
동자가 나타났다. 유비  옆을 스쳐 지나가는 동자를 보며 황혼이  깃드는 들판에
서 피리를 부는 목동이 그지없이 평화롭고 한가롭게 보여 유비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실로 네가 부럽구나!"  동자도 유비 곁을 지나치려다 소를  세우고 입에서 피
리를 떼고는 유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장군께서는 옛날에  황건적을 토벌하시고 공을 세우신 유현덕이란 분이 
아니십니까?" 유비는 깜짝 놀랐다.
  "너는 이런 벽지에 살면서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느냐?"
  "저야 알 턱이  없지만 저의 스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스승께서는 
손님이 오실 때면 가끔  나누시는 말씀 중에 유현덕은 키가 일곱  자 다섯 치요, 
손을 내리면 무릎을 지나고, 눈으로 자기 귀를 볼  수 있을 만치 귀가 긴데 진정 
당대의 영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방금 장군의  모습을 뵈오니 틀림없는 그
분이라 여기고 여쭙는 것입니다." 동자의 말에  유비는 저으기 놀라며 다시 물었
다.
  "너의 사부님이 누구시냐?"
  "저의 사부님은 두 자 성으로 사마시고, 이름은 휘이며 자는 덕조라 하십니다. 
영주 분이신데 도호는 수경선생이라 하십니다."
  "음 수경 선생......" 유비는 입 속으로 되뇌어 보았으나 처음 듣는 도호였다.
  "그렇다면 너의 사부님은 어떤 분들과 사귀시느냐?"
  "양양의 명사는 모두 찾아오십니다. 그 중에서도 방덕 공과 방통 두 분과 가깝
게 지내십니다."
  "방덕 공과 방통......, 그분들은 어떤  분이시냐?" 유비가 두 사람 역시 낯선 이
름이라 다시 물었다.
  "두 분은 숙질간이십니다. 방덕 공은 자가  산민이신데 저의 사부님보다 열 살
이 위이시고, 방통  공은 자를 사원이라 하시는데 사부님보다 다섯  살이 아래이
십니다. 어느 날 사부님이  뽕나무 위에 올라 가 뽕잎을 따시는데  마침 방통 공
께서 오셨지요. 그래서 두 분은 그대로 나무  아래 앉으셔서 온종일 이야기를 하
신 적도 있습니다만 싫증내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방통 공을 무척 
좋아하시어 아우라고 부른답니다." 유비는 동자의 말을 들으니 듣지 못한 이름이
었으나 궁금증이 일었다. 초야에 묻혀 지내는  선비들임에 틀림없으나 자신의 이
름까지 알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한 번 만나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너의 사부님을 만나 뵙고 싶구나. 사부님이 사시는 
곳이 어디냐?" 동자가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저 숲 속에 사부님의 장원이 있습니다." 유비가 그제야 자신을 밝히며 동자에
게 안내를 부탁했다.
  "네 말대로 내가 바로 유현덕이란 사람이다.  나를 그곳으로 인도해 주지 않겠
느냐?"
  "그럼요, 어렵지  않습니다. 사부님도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기뻐하실 것입니
다." 동자는 유비가 스스로를  밝히자 입가에 미소를 띠며 앞장 섰다. 얼마쯤 가
자 숲 속에 장원이  나타났다. 장원 앞에서 말을 내려 중문  앞에 이르니 안에서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가  흘러 나왔다. 동자가 안으로 달려가려 하자  유비는 동
자의 옷소매를 잡아  세우더니 잠시 거문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갑자
기 거문고 소리가  뚝 그쳤다. 거문고 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려  안으로 들어가려 
했던 유비는 갑자기 소리가  멎자 문 앞을 바라보았다. 문 앞에는  한 사람이 가
만히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거기 온 사람은 누구인가?... 방금 거문고를  타고 있자니까 맑고 그윽하던 거
문고 소리가 불현듯 어지러워지며 강하고 높아졌다.  이는 필시 피비린내나는 싸
움터에서 온 영웅이 내 거문고 소리를 엿듣고 있었을 것이다." 동자는 나직한 목
소리로 유비에게 일러 주었다.
  "저분이 바로  수경 선생이십니다." 유비가 놀라며  그 사람을 보았다.  나이는 
쉰 살 남짓해  보이는데 소나무 같이 꿋꿋하고  학처럼 고매하며 청아한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유비는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품에 위압당한 듯  앞으로 나아
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유비의 옷은 그때까지도 젖어 있었다.
  "공은 다행히 큰  화를 면하셨구려." 수경 선생은 뜻밖에도  유비를 보며 그런 
말을 했다. 젖은 옷을 보고 짐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수경 선생이 훤히 보
고 있었던 것처럼 분명한 어조로  말하자 유비는 의아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없
었다. 동자가 영문을 몰라 유비를 소개했다.
  "이분이 늘 스승님들께서 말씀하시던 유현덕 바로 그분이십니다." 동자의 말에 
수경 선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비를 초당으로 맞아들인 후 마주 앉았
다. 유비가 방 안을 둘러보았다.  시렁에 책이 가득 쌓여 있고 창 밖에는 소나무
와 대나무가  무성했다. 방 안에는 석상  위에 거문고가 놓여 있는데  맑고 밝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수경 선생이 먼저 유비에게 조용히 말을 꺼냈다.
  "공은 어디서 이곳으로 오셨소?"
  "우연히 이 부근을 지나다가 동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생께서 이 곳에 계
시다는 말을 듣고 존안을 뵙고자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니 실로 큰 기쁨
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비는 자신이 처했던  위급한 처지를 숨긴 채 이렇게 말
했다. 그러나 수경 선생의 말은 유비를 더욱 놀라게 했다.
  "허허, 숨길 것 없소이다.  공은 지금 위급함을 면하고 이곳에 오신 것이 아니
겠소?" 수경 선생은  그를 훤히 꿰뚫어보듯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유비도 하는 
수 없이 양양에서 겪은 일들을 소상히 들려 주었다.
  "나는 공의 기색이며 그 행색을 보고 이미 그런 일이 있은 줄 알았소이다." 수
경 선생은  유비가 면구스러워하자 부드럽게  웃었다. 수경 선생이  다시 정색을 
하고 물었다.
  "공의 높은 이름은 일찍부터 들어 왔는데, 어찌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수를 
펴지 못하십니까?"
  "제 운수가 비색한 때문인가  합니다." 유비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픈  곳
을 찔린 유비가 문득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자 수경 선생은 고개를 가
로저었다.
  "그렇지 않소이다. 내가  서슴없이 일러 드린다면, 공의 좌우에는 인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유비가 수경 선생의 말을 의아하게 여기며 말했다.
  "뜻밖의 말씀입니다. 제가 비록 재주가 모자라나 생사를 함께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문사로는 손건,  미축, 간옹 등이 있으며 무사로는  관우, 장비, 조운이 
있습니다." 유비의 말에 수경 선생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래 공은 휘하 사람에게 정이 깊은 분이오. 때문에 좌우에 사람이 없다는 말
을 들을 때는 휘하들을 감싸려 하시지요. 군신의  정리로 보면 매우 아름다운 일
이지만 수장으로서는 그러한  정리만으로는 아니 되는 것이외다. 한 사람  한 사
람의 학식이나 용맹을 아낄 것이  아니라 공 자신도 함께 포함시켜 한 무리로서 
스스로를 잘 살펴보시오. 즉 무리로서 무언가  부족함이 없나를 살펴보라는 말이
외다." 유비로서는 듣기에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수경 선생의 말을 얼른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데 수경 선생이 다시 말을 이었다.
  "관우, 장비, 조운과 같은 인물은 홀로 만 명을 대적할 수 있는 장수들이오. 그
러나 이들을 용병할 사람이 없소이다. 손건,  미축, 간옹 같은 사람들이야 백면서
생일 뿐이지 세상을  구하는 경륜을 지닌 사람들은 아니오. 이러한  인문들만 가
지고는 왕패의  대업을 이룩하기는 어렵소이다."  유비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수경 선생의 말에 크게 공감하고 있었다.  유비는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다가 평소 생각하고 있던 것을 털어놓았다.
  "선생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저 역시 몸을 굽혀 산야에 묻혀 있는 현인을 구
해 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장량, 소하,  한신과 같은 인물
을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  준걸들을 만나고자 했으나 아직 만
나지 못했습니다."
  "아니외다. 어느 시대나  결코 인물이 없지는 않을  것이오. 다만 그런 인물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 없을 뿐이오. 일찍이 공자도 '열 집밖에 되지 않는 
자은 고을일지라도 반드시  충성스럽고 미더운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소. 어찌 
이 넓은 천하에 준걸이  없다 하겠소?" 수경 선생의 말에 유비는 간곡한 어조로 
청했다.
  "제가 어리석고 눈이  어두워 알아보지 못합니다. 바라건대  선생께서 그 밝은 
눈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수경 선생은  대답 대신 엉뚱한 
말을 했다.
  "요즈음 형주의 여러 고을에서  어린 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들
어 보시었소?" 유비로서는 금시초문의 말이었다.
  "예. 노래라니요, 어떤 노래입니까?"
  8, 9년 사이에 그 기운이 쇠하더니
  13년에 이르자 남는 것이 없었네.
  마침내 천명으로 돌아가
  진흙 속에 웅크렸던 용이 하늘로 치솟네.
  "처음 듣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건안 8년부터 불리기  시작했는데 태수 유경승이 상처한 해입니다. 
이때부터 집안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는데 '쇠하기 시작한다' 함은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또 '남는  것이 없다'라는 말은 머지않아 경승이 죽고  나면 그 수하의 
문무가 모두  영락하여 남아 있지 않으리라는  뜻이오. 그런데 '천명으로 돌아간
다'와 '웅크린  용이 하늘로 치솟는다'고 함은  모두 바로 장군을  가리킨 것이외
다." 그 말에 유비가 커다랗게 눈을 뜨며 놀란 얼굴이 되었다.
  "어찌 제가 그런 그릇이 되겠습니까?" 수경 선생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유
비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지금 천하의 기재는 모두 이곳에 모여  있소이다. 양양의 명사들 또한 은근히 
공의 장래에 기대를  걸고 있소이다. 이러한 기운을 맞이하여 훌륭한  사람을 써
서 대업의 기초를 닦도록  하시오." 유비의 귀가 번쩍 띄었다. 수경 선생에게 다
시 간곡히 청을 넣었다.
  "그분들이 뉘신지 제발 그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복룡이나 봉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만  얻으면 가히 천하는 손바닥 안에 
있을 것입니다."
  "복룡, 봉추란 누구를 가리킵니까?" 유비가 급히 물었다.
  "허허 좋소이다, 좋소이다." 그러나 대답 대신 수경  선생은 너털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유비는 수경 선생의 뜻밖의 웃음에  어리둥절했으나 그것이 버릇인 줄
은 나중에야 알았다. 수경  선생은 평소에 기쁜 일이건 궃은 일이건 '좋아, 좋아'
를 연발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 때인가 한  친지가 찾아와서 자기의 아들이 죽
었다고 슬픔에 겨워 말했다. 그랬더니 수경 선생은 '좋아, 좋아'하고 손바닥을 쓸
며 말했다. 친지가 돌아가고 난 다음 그의 아내가 핀잔을 주었다.
  "아무리 버릇이라  하나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에게까지 '좋아, 좋아'하는 
것은 너무 분별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수경 선생은 그 말에 스스로도 우스
웠던지 더욱 크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좋아. 당신의 그  말도 좋아, 좋아." 어느 새 창 밖이 어두워  오고 있었
다. 수경 선생은 방 안을 등촉으로 밝혔다. 유비는 수경 선생에게 다시 그 두 사
람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줄 것을 간청했으나 그에 대한 대답은 해 주지 않았다.
  "날이 저물었소이다. 장군께서는 여기서 하룻밤 유하십시오. 하던 이야기는  내
일로 미루도록 합시다." 수경 선생은 동자를 불렀다.
  "너는 장군께 식사를 지어 올리도록 하여라. 또 말은 뒤꼍에 매어 두고 여물을 
먹이도록 하여라." 이윽고  식사를 마친 유비는 옆방에  마련된 잠자리에 들었는
데, 수경 선생의 알 수 없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복룡과 봉추, 도대체  그들은 어떤 인물인가?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얻어도 
천하는 손바닥 안에  있다고 하니 대단한 인물임에는 분명했다. 유비가  잠을 이
루지 못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문득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유비가 귀
를 기울이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이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원직이가 아닌가, 웬일인가?" 수경 선생의 목소리였다. 이어  방문객의 목소리
가 들렸다. 서른 살은 넘었음직한 굵고 차분한 음성이었다.
  "선생님! 이 밤중에 불쑥 찾아온  것을 용서하십시오, 실은 그 동안 형주에 있
었습니다. 형주의 유경승이  착한 이를 좋아하고 밝은 정치를 한다는  말을 들었
기에 그를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를 정작  만나 보니 그건 사실이 아
니었습니다. 허명뿐이고 속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착한 이를 좋아하기는 합디다
만 쓰지를 못하며, 악한 자를 미워하되 물러치지는 못하는 위인이었습니다. 그래
서 몇 자 써서 남겨  놓고 곧장 이리로 오는 길입니다. 하하하, 이를테면 야반도
주인 셈이지요." 그 사람은  말을 끝내며 껄껄 웃었다. 조금 있다가 수경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엄하기 꾸짖는 듯한 목소리였다.
  "형주에 가 있었다니, 그건 그대답지 않은 행동이었네. 그대는 능히 임금을 보
필할 재주를 가지고  있으니 마땅히 사람을 가려 섬겨야 할  것이네. 영웅호걸이 
눈앞에 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유비는 수경 선
생의 말을  듣고 내심 기뻐했다.  저 방문객이야말로 봉룡이나  봉추일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영웅호걸이 눈앞에  있다고 했으니 그건 어쩌
면 자신을 가리킨  것일지도 몰랐다. 유비는 지금이라도 당장 나가서  그를 만나
고 싶었으나  경솔한 행동인 것 같아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날이  밝아 오자 
유비는 곧장 수경 선생한테 뵙기를 청했다.
  "어젯밤에 오신 손님은 누구십니까?"
  "아아, 그 사람은 내 친구외다."
  "선생께서 그분을 한 번 뵈올 수  있도록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유비가 청
하자 수경 선생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 훌륭한 사람을 만나 섬기려고 멀리 떠났소이다." 유비는 크게 실망하지 않
을 수 없었다.  어젯밤에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 전부 빗나가고  말았기 때문이었
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는 몹시 궁금하여 재차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의 성명은 무엇입니까? 그분이 선생께서 말씀하신 복룡, 봉추 중의 한 분
이 아니십니까?"
  "좋지, 좋아. 허허허......" 그러나 수경 선생은 너털웃음만  토해낼 뿐 끝내 가르
쳐 주지 않았다. 유비는 무릎을 꿇고 절하며 말했다.
  "불초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한실을 부흥시키고 만민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으
로 오늘날까지 천하를 헤맸습니다만,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습니다. 바라건
대 선생을 모시고 저의 뜻을 펴고자 하니 선생께서 응낙해 주십시오." 유비의 말
이 끝나기도 전에 수경 선생은 껄껄 웃더니 마지못해 한 마디 불쑥 내뱉았다.
  "나와 같이 산과 들에서 한가로이 소일하는 사람은 공을 돕지 못하오. 공을 보
필하려면 나보다 열 배나 나은 사람이어야 하며  또 그런 사람이 있소이다. 공은 
그 사람을 찾아보시오."
  "그 사람이 복룡입니까?"
  "좋지, 좋지."
  "아니면 봉추입니까?"
  "좋지, 좋아."  유비는 답답한 마음으로 물었으나  수경 선생은 시원스런  말을 
해 주지 않는데 문득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말발굽 소리와 사람
의 웅성거림이 요란한 가운데 동자가 달려왔다.
  "어떤 장군이 수백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곳으로 왔소이다." 유비가 놀라 얼른 
밖으로 나가 보니, 그들은  바로 조운과 그 휘하의 군사들이었다. 유비는 자기를 
뒤쫓는 유표의  장수가 아닌가 여기던  터에 조운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조운도 이런 곳에서 유비를 만나자  놀란 듯 부리나케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었
다.
  "무사하신 모습을  뵈오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유비도  반갑게 그를 맞으며 
물었다.
  "내가 수경 선생의 초당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어젯밤 신야로 돌아가 주공을 두루 찾았으나 허사였습니다. 다시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며 수소문하던 끝에 간밤에 낯선 장군이 동자의 안내를 받아 수경 선생 
댁으로 가셨다는 농부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수경 선생이 옆에서 이 말을 듣
고 있다가 유비에게 일렀다.
  "농부들도 보았다면 이곳에 오래 머물 처지가 못 되오. 휘하 장수도 왔으니 신
야로 급히 돌아가시오."  유비도 생각해 보니 채모가  뒤쫓을지도 모르는 일이었
다. 유비는 뒷날을 기약하며 우선 수경 선생에게  작별을 고한 뒤 신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약 10리쯤 갔을 때  맞은편에서 한 떼의 인마가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조운처럼 지난 밤부터 유비를  찾아 헤매던 관우와 장비였다. 
유비가 무사히 돌아오자 둘은 몹시 기뻐했다. 유비가  말을 탄 채 단계를 뛰어넘
은 이야기를 하자  모두들 감탄할 뿐이었다. 신야의 현성으로 돌아온  유비는 휘
하 장수들을 불러 놓고 양양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 주었다.
  "여러 사람에게 걱정을 끼쳐 미안하게 되었소.  실은 어제 양양에서 잔치를 벌
인 것은 나를 없애기 위한 것이었소. 채모의  계략에 빠져 하마터면 죽을 뻔하였
으나 구사일생으로 이렇게  돌아오게 되었소." 비로소 내막을  알게 된 장수들은 
모두 채모에게 큰 분노를 느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이번 일은 유표가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채모가 
꾸민 일입니다. 주공을 모살하려다 실패한 채모는  자기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유표에게 주공을 모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시바삐 사람을 보내어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손건이  이렇게 말하자 유비가 고개를 끄덕
였다. 지당한 의견이었다. 채모가  유표에게 간하여 자신을 모해하는 걸 막고 유
표의 확실한 속마음을 알기  위해선 먼저 글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유
비는 글을 써서 손건에게 주어 형주로 향하게  했다. 손건이 형주에 이르러 유표 
앞에 나아갔다. 그런데 유표가 손건에게 먼저 물어 왔다.
  "내가 유현덕을 청하여 양양의 잔치에서 주인 노릇을 하라 일렀거늘  어찌하여 
자리에서 빠져 나가 달아났는가?" 손건은 먼저  유비가 써 준 글부터 올리고, 채
모가 유비를 죽이려고 꾸민 계책과 적로마를 타고 단계를 뛰어넘어 도망간 사실
을 말했다. 유표는  그제야 양양에서 베푼 잔치가 채모의 음모에  이용된 것임을 
알고 크게 노하여 즉시 채모를 불러들였다.
  "네가 감히 내 아우를 해치려 하였단  말이냐!" 유표는 채모를 끌어 내어 참수
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채 부인은 아우 채모가  불려 갔다는 말을 듣고 내당에서 
구르듯이 달려나와 울며불며 채모의 목숨 부지를  빌었다. 유표의 분노는 그래도 
누그러지지 안았다. 채모가 자신 몰래 그런 일을  꾸몄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로 여겼다. 거기다 유비를 의심하기도 했으나 그런  계책을 꾸며 그를 죽일 마
음은 없었다. 유표가 채 부인의 애걸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는 것을 보자 손건이 
나서서 말했다.
  "만약 채모를 죽이신다면 황숙께서는 이곳에  계시기가 불편하실 것입니다. 채
모의 목숨만은 보존토록 해 주십시오." 손건의  말을 듣더니 유표는 가까스로 화
를 가라앉혔다. 손건의 말대로  채모를 죽이지 않고 다시 한 번  꾸짖어 물린 뒤
에 맏아들 유기를 손건과 함께 보내어 현덕에게  용서를 빌게 하였다. 유기가 신
야에 이르자 유비는  현성 밖에 나와 맞아들이고 주연을 베풀어  환대했다. 그런
데 주연이 무르익었을  즈음 유기는 문득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유비가 놀라며 
그 까닭을 물었다. 유기는 눈물을 씻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계모 채씨가 아우 종을 후사로  세우기 위해 항상 저를 해칠 마음을 품고 있
습니다. 그 일을 생각하니 처량한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
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유비는  그 말을 들으니 유기가 
측은했다. 그러나 지난번에도  그 일로 실언했던 일이 생각났을 뿐  아니라 함부
로 말할 일이 못 되었다.
  "오직 효도에 힘쓰시오. 아무리 계모일지라도 공자의 효심을 알면 자연히 화가 
없어지는 법일세." 유비는 바른말로 그를  타이를 뿐이었다. 이튿날, 유기가 형주
로 돌아갈 때 유비는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현성 밖까지 전송했다. 유기는 형주
로 돌아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유비는 그런 모습을  보고는 위
로하였으나 유기는 눈물만 글썽거릴 뿐이었다. 유비는  유기의 울적한 마음을 달
래려고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 말이 주인을 해치는  말이라고 하나 만약 이 적로마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일세." 그러자 유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은 그  말의 힘이 아닐 것입니다.  하늘이 숙부님을 보살핀  것이겠지요." 
유기와 헤어질 때가  되었으나 그는 끝내 눈물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유비가 
무거운 마음으로 말머리를 돌려 오는데 어떤 사람이 길가에 서서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고 있었다. 머리에는 갈건을  쓰고, 베옷을 입었는데 몸에는 검은 띠를 둘
렀고 검은 신을 신고 있었다. 그의 행색이  특별하여 유비는 그가 부르는 노랫소
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불기운도 꺼지네.
  무너지는 큰 집을 나무 하나로 버틸 수 없네.
  산 속에 어진 이 밝은 주인을 찾아가려 하네.
  밝은 주인은 그를 찾으면서 어찌 몰라보는가.
  유비가 그 노래를  들으니 심상치 않은 내용이었다. 기우는 한실을  암시한 후 
밝은 주인이 자기를  몰라보고 있음을 한탄하는 노래였다. 이는 필시  자신이 들
으라고 하는 노래인 것 같았다. 그리고 수경  선생이 말한 복룡이나 봉추가 바로 
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비는 말에서 내린 후  그가 가까이 다
가오기를 기다렸다. 행색은 소탈했으나 어딘지 모르게  몸 전체에서는 쉽게 범할 
수 없는 기품이 감돌았다.
  "잠깐 뵈었으면 합니다!" 유비가 그를 불러 세웠다.
  "소생을 부르셨습니까?" 장년의  그 사나이는 유비를 바라보며 걸음을  멈추었
다. 굵으면서도 시원스런 목소리였으나 눈빛만은 매서웠다.
  "그렇소이다. 우연히 이렇게 길에서 만났으나 그대와  나는 초면이 아닌 것 같
아 염치 불구하고 불렀소이다."
  "그렇습니까?"
  "나와 함께 현성으로 가십시다. 술잔을 나누면서  그대의 노래를 더 듣고 싶소
이다." 유비가 정중히 청하자 그는 껄껄 웃었다.
  "하하하, 소생의  하찮은 노래를 청하시다니...  실로 큰 기쁨이외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  사람은 흔쾌히 승낙했다. 유비는  그를 귀빈으로 맞는 예로 
맞이한 후 술을 권하며 불었다."
  "선생은 누구십니까?"
  "나는 영상 사람으로 성은  선, 이름은 복이라 합니다. 오래 전에 사군께서 어
진 선비들을 불러들이신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휘하에 몸을 의탁하려 하
면서도 감히 찾아뵙지 못하다가 짐짓 길거리에서 노래를 불러 사군의 이목을 끌
어 보려 했습니다." 유비가  그 말에 매우 기뻐하며 술잔을 권했다. 선복은 술잔
을 들이킨 후 잔을 권하며 엉뚱한 부탁을 했다.
  "사군께서 조금 전에 타고 오신 말을 보여 주실 수 없겠습니까?"
  "어렵지 않소이다." 선복의 말에 유비는 즉시 적로마를 대청 아래로 끌고 오게 
했다. 선복은 조금 전에  본 적로마를 무심히 보지 않았던 듯  다시 찬찬히 살펴
보더니 정색을 하며 말했다.
  "이 말은 적로마로서 천 리를 한달음에  달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보기 드문 
준마입니다만 반드시 주인에게 화를 끼칠 것입니다.  지금까지 무사하신 것이 이
상한 일입니다." 선복의 말에 유비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 액은  벌써 뗐소이다." 유비는 단계를  뛰어넘은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러나 선복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일로 주인을 구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말이 스스로를 구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은 주인을  해칩니다. 그런데 그 화를 면하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 말에 유비는  귀가 솔깃해졌다. 유비는 지난번 
단계를 건넌 일이 있은 후부터 더욱 적로마를 애지중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방도가 무엇이오? 말씀해 주시오."
  "사군께서 마음 속으로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으시거든 그에게 이 말을 
주십시오. 그래서 그  사람이 화를 당한 이후에 다시 타시면  앞으로는 무사하실 
것입니다." 유비가 그 말을 듣더니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선복에게 크
게 실망한 눈치였다.
  "이제 그만 차를 올려라!"  유비가 시종을 부르더니 싸늘한 어조로 명했다. 차
를 올리라는 것은  이미 술자리가 끝났음을 뜻하는 것이었으며, 손님이  곧 떠난
다는 것을 알리는  말이었다. 유비가 시종에게 그렇게 말하며 축객의  뜻을 비치
자 선복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소생을 여기까지 청해 오신 사군께서 차를 올리라니 
무슨 까닭이십니까? 어찌하여  소생을 쫓으려 하십니까?" 선복은 뜻밖이라는 얼
굴을 하며 다급히  물었다. 유비가 얼굴빛을 고치고 정색하며 무거운  어조로 입
을 열었다.
  "공을 이곳에 청한 것은 지조가 높은  사람이라 보았기 때문이요. 그러나 내게 
바른 길을 가르치지는 않고 오히려  남을 해치는 일을 가르치시니 이게 어찌 된 
일이오? 그 가르침은 이 비가 비록  불민하나 받들 수가 없소이다." 선복은 유비
의 꾸짖는 듯한 말에 그제야 가만히 웃더니 자세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사군께서 어지시고 덕스럽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과연 헛된 이름이 아닙니다. 
사실은 실례인 줄 알면서도 사군을 시험해  본 것이었습니다. 아무쪼록 노여워하
지 마십시오." 유비는  선복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그제야  낯빛을 고쳐 부드러운 
얼굴이 되었다.
  "나에게 어찌 남에게 미칠 덕이 있겠소? 앞으로 선생의 가르침을 바랄 뿐이외
다." 유비의 말에 선복은 감읍한 듯 공손스런 어조로 말했다.
  "제가 영상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에 신야 사람들이 이런 노래를 읊고 있었습
니다.
  신야목 유 황숙 예오시니 신야 들에 풍년가가 퍼지네.
  이 노래를 듣고  사군을 흠모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군을 뵈오니  과연 인
덕을 갖추신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재주는 없으나 거두어  주신다면 어
찌 수고를 아끼겠습니까!"
  "고마울 뿐이오. 인생의 긴 세월 중에 어진  이를 만나는 날이 가장 길한 날이
라 하였소. 오늘은 정말 뜻깊은 날이오."  유비는 크게 기뻐했다. 유비가 그 당시
에 마음 속으로  갈구하고 있었던 것은 뛰어난 인재였다. 청룡언월도를  쓰는 천
하무적인 관우와 1장 8척의 창을  쥐고 종횡무진으로 적진을 유린할 수 있는 괴
력의 장비가 있었다. 또 창의 명인 조운이  있었기에 때문에 무력에 있어서는 부
족함이 없었다.  그러므로 국지적인 싸움에서는 언제나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주위의 정황을 분석하여 적확한 전략이나 작전을 세우는 지장이 없기 때문에 큰 
싸움에서는 언제나 패배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유비는 병법에 통달하고 천하
의 형세와 정확한 정보를 포착하여 탁월한 계책을 세울 수 있는 신하를 마음 속
으로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갈구는  수경 선생을 만난 이후  더욱 강렬한 
확신으로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럴 때  선복을 만났으니 그의 기쁨은 짐
작하고 남음이 있었다. '이 인물이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사람이다.' 유비는 이렇
게 생각하자  과감히 그를 중용하여  군사로 발탁했다. 선복이  새롭게 유비에게 
가담함으로써 지식과 재능을 지닌 합리적인 인물이  더해지게 된 셈이었다. 선복
은 군사의 지휘권을 맡자 연병과 조마를 마치 자기의 수족을 부리듯이 조련하기 
시작했다. 군사를 자유자재로  부리되 능률적인 움직임을 도모했다. 거기다가 규
율과 체계가 바탕이 되도록 정신적인 단련을  병행했다. 이렇게 합리적인 조련을 
거치는 동안 신야의  군대는 비록 소수이나 날이  갈수록 정병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이 무렵, 조조는  북정을 끝내고 허도에 돌아와 있었으나 마음 속으로는 
형주를 엿보고 있었다. 조조는 허도의 군사를 내기  전에 먼저 형주를 살피게 했
다. 조인을 대장으로 삼고, 이전,  여광, 여상 세 장수에게 군사 3만을 주어 번성
으로 보냈다. 번성은 형주와 가까웠으므로 조인으로  하여금 양양과 형주의 계를 
넘보게 한  것이었다. 이때 원소군으로부터 투항했던  여광, 여상이 때를 놓치지 
않고 공명심을 불태우며 형주 정벌을 조인에게 역설했다.
  "지금 유비는 신야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군사를 모으고 말을 사들이며  마초와 
군량을 비축하고 있습니다.  그의 야심을 펴기 전에 일찌감치 싹을  자르지 않으
면 안 됩니다. 저희 형제가 승상께 항복한 이래  이렇다 할 공을 세우지 못한 터
이니 정병 5천만 주신다면 반드시 유비의 목을 취하여 바치겠습니다." 여광이 그
렇게 말하자 조인도 기뻐했다. 신야가 좁은 땅이니  유비가 힘을 기르고 있다 하
나 아직 작은  고을을 지키는 하찮은 군사쯤으로 여긴 조인이었다.  방심하고 있
는 틈을 타  일시에 급습해 들어가면 쉽게 깨뜨릴  수 있을 것으로 여긴 조인은 
군사 5천을 선뜻 여광  형제에게 내 주었다. 여광, 여상은 그날로 군사를 이끌어 
신야 들판으로 쇄도했다. 여광,  여상이 군사를 이끌고 오자 유비는 군사인 선복
을 불렀다.
  "군사, 어찌해야 좋겠소?" 아직은 그들과  싸워 이길 만한 정도의 군세가 이루
어지지 않았다고 여긴 유비가 걱정하며 물었다.  그러자 선복은 조금도 걱정하는 
기색 없이 계책을 올렸다.
  "사군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적을 우리 땅에 들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먼
저 관운장에게 일군을 이끌게 하여  왼편에서 적을 막게 하면 적은 가운데 길로 
올 것입니다. 그때 장비로 하여금 오른편에서 나와 적의 뒤쪽을 치게 합니다. 그
리고 사군께서는 조운을 이끌고 적의  앞길을 막아 치신다면 능히 물리칠 수 있
습니다." 선복이 실전에 임하여 지휘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유비
는 그의 말을 듣자  쾌히 그 계책을 따르기로 했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에게 군
사를 주어 앞서 가게  한 뒤 자신은 선복, 조운과 더불어 군사  2천을 거느려 성
문을 나섰다. 몇 리를 가지 않아 산모퉁이에서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여광, 여
상이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양쪽 군사는 한동안 화살을 날
리며 진세를 벌였다. 유비가 대장기를 앞세운 채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누구이기에 함부로 내 땅을 침범하는가?" 여광, 여상도 앞으로 나서
며 대꾸했다.
  "나는 대장 여광이다. 승상의 명을 받들어 너를 사로잡으러 왔다!"
  "조자룡은 어서 가서 저놈을 쳐라!" 유비가 노하며 영을 내렸다. 조운은 그 말
이 떨어지기도  전에 말을 박찼다. 공을  세울 기회가 왔다고 여긴  여광도 기세 
좋게 말을 달려나왔다. 양군  사이에는 한바탕 싸움이 일었다. 그러나 조운과 여
광 두 장수가 맞붙자 싸움은 일방적인 형태로  기울기 시작했다. 조운의 기합 일
성이 일자 여광은 손  한번 써 보지 못한 채 말  아래로 나뒹굴었기 때문이었다. 
유비가 그때를 노래 군사를 내몰아 적진을 뒤덮자 여상은 놀란 눈으로 유비군을 
보며 말머리를 돌렸다.  여상이 황급히 군사를 돌려 달아나는데 앞쪽에서  한 장
수가 길을 막고 있었다. 바로 관우였다. 여상은 관운장을 맞아 한바탕 싸움을 벌
였다. 그러나 싸움을  떠맡은 쪽은 졸개들이었지 자신은 급히 옆길로  빠져 달아
났다. 그 통에 졸개들만  태만이 관우에게 짓밟히고 말았다. 여상이 한동안 정신 
없이 말을 달리는데 앞쪽에서 우레 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이놈. 장익덕이 너를  기다렸다. 순순히 항복하라!" 한  떼의 군마를 거느리고 
장비가 앞을  막으며 호통을 치니  여상은 혼비백산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러나 
어느 새 달려온 장비가 얼이 빠진 여상을 맨손으로 움켜쥐어 땅바닥으로 패대기
쳤다. 여상이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장비의 창이 그를 내리쳤다. 유비의 장수들
이 너무 모르고 덤빈 무모한  도전이었다. 여광, 여상이 제대로 칼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맥없이 목이  떨어지자 졸개들은 어안이벙벙했다. 오도가도  못하고 우왕
좌왕하는 군사들을 관우와 장비가 모조리 사로잡고  말았다. 유비는 사로잡은 군
사를 이끌고 신야로 돌아왔다. 유비는 이번 싸움에서 이긴 걸 크게 기뻐했다. 이
전처럼 용맹과  힘으로만 싸워 이긴  승리와는 자못 달랐기  때문이었다. 계책에 
따른 용병에 의한  승리였던 것이다. 유비는 선복을 더 높이  대하며 군사들에게
도 후한 상을 내려 치하했다.

  서서에 짓밟힌 조인의 팔문금쇄진법
  여 장군 형제의 비보를 들은  조인은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유비군을 치러 나
선다. 이에 맞선  서서의 탁월한 병법은 조인 군사의 팔문금쇄진을  일시에 깨뜨
리고 화공지계로 야습을 흔쾌히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조인의 본거지 번성까지 
취한다.
  한편, 가까스로 번성으로  도망쳐 온 여광 형제의 패잔병들은 조인에게  그 싸
움을 자세히 고했다.
  "여 장군 형제분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밖의 군사들도 떼죽음을 당하
고 말았습니다." 조인은  크게 놀라는 가운데도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하찮은 
지방 고을의 군사 정도로 여기고  있던 터에 무참히 패한 것이 그를 견딜 수 없
게 만들었다. 당장 신야로 밀고 들어가 단숨에  그들을 칠 생각으로 출병을 서두
는 한편 남은 장수 이전과 의논했다. 그러나 이전은 완강히 반대하고 나섰다.
  "신야는 작은 고을인데다 군세가  보잘것 없음을 보고 가볍게 여긴 탓에 참패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장군께서 어찌하여 그 전철을 밟으려 하십니까?"
  "그대는 나도 유비에게 패배한다고 생각하오?"
  "유비는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 됩니다."
  "그대는 어찌 내가 유비를 치지 못한다고 하시오? 싸우기 전에 겁부터 먹는 
자가 어찌 장수라고 할 수 있겠소!"
  "적을 알아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두려워해야  할 적을 두려워함은 결코 겁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성을 굳게 지키며  승상께 고하여 대군을 일으켜 토
멸토록 하는 것이 상책일까 합니다." 이전은  신중을 기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
자고 주장했으나 유비를 가볍게 여기고 있던 조인은 그 말을 끝내 듣지 않았다.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큰  칼을 쓰겠소. 거기다 장수들을 잃고 군마까지 
거의 잃은 판에 원수도 갚지  않고 어찌 승상께 고할 수 있겠소? 더군다나 신야
는 보잘것 없는 작은 고을인데 어찌 승상의 군대를 내라 하겠소?"
  "나는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기지  못함을 걱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장군께서 싸우러  가신다면 성은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이전의  말
에 조인은 그만 노기를 폭발시켰다.
  "그대는 두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유비를 그토
록 두둔하시오? 두고  보시오. 내 반드시 그  자를 사로잡고 말 것이오." 조인이 
그렇게 말하자 이전도 성을 지키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부득이 조인과 함께 군
사 2만 5천을 거느리니,  여광 형제의 군세보다 다섯 배가 더  많은 병력으로 번
성을 나섰다. 먼저 하수에 배를 띄우고 군마와 군량을 잔뜩 실었다. 뱃머리와 고
물에 세운 무수한 깃발이 강바람에 나부꼈다. 수백  척의 배가 하수의 흐름을 타
고 신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한편, 승전을 축하하는 술잔을 들 겨를도 없이 위급
을 고하는 급보가 꼬리를 물고 신야의 현성으로 들어왔다.
  "조인이 대군을 이끌고 신야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급보에 크게 당황한 
것은 유비였다.  이미 여광, 여상을 깨뜨렸으므로  만약 조인이 군사를 이끈다면 
그건 적은 군세가  아님이 분명했다. 그러나 선복은 다만 크게  웃으며 유비에게 
말했다.
  "조인의 군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스스로 찾아든 격입니다. 조인이 몸소 군사를 
이끈다면 번성은  필시 텅 비어 있을  것입니다. 비록 하수를 사이에  두고 있어 
지세는 불리할지 모르나, 번성을 취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유비
로서는 조인군과 싸울 일부터가  걱정스러웠으나 선복은 번성을 취할 것까지 염
두에 두고 있자 놀라는 한편 기쁜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적에 비해 우리의  군세가 너무 적어 신야를 지키기도 어려울 판인데 
어찌 번성까지 취할 수가 있겠소?"
  "계책과 군사를 밝게 쓰면 이기기 어려운  싸움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주공께
서는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선복은 어디까지나 여유만만했다. 선복은  조용히 
한 가지 계책을 유비에게  일러 주었다. 그 계책을 듣자 유비의  얼굴은 한결 밝
아졌다. 이때 조인, 이전의 군사는 신야를 불과 10리 남긴 지점까지 육박해 들어
왔다.
  "과연 제가 헤아린 대로입니다." 선복이 이렇게 말한 뒤 유비에게 출진을 권했
다. 양군이 진을 치고 마주하자 싸움은 조인군의  선봉 이전과 유비군의 선봉 조
운의 대결로 그  막이 올랐다. 조운과 이전은  서로 말을 달려 맞붙었다. 이전의 
조인 휘하의 유일한 장수였으므로 조운과 맞붙었으나 결코 그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다. 싸운지 10여 합이 못 되어 급히 말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게 섰거라!" 조운은  이전을 뒤쫓았으나 조인의 진중에서 비  오듯 화살이 날
아왔으므로 더  이상 쫓지 못하고  돌아왔다. 조운과의 싸움에서  쫓겨온 이전이 
조인에게 권했다.
  "보시다시피 적군의 사기가  드높고 그 기세 또한  사납습니다. 경솔히 맞서느
니, 차라리 번성으로  일단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말에 조인이 불같이 
노했다.
  "네가 출진하기 전부터 싸움을 반대하면서 군의 사기를 꺾어 놓더니  이번에는 
싸움에 지고 와서 한다는  말이 고작 그것이냐?" 조인은 그 말과 함께 군사들에
게 명을 내렸다.
  "저놈을 형장에 끌어 내어 당장 목을  베어라!" 조인은 도부수를 불러 당장 목
을 치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여러 장수들이 간곡히 만류하였다. 조인도 전
부터 형인 조조를 따라 싸움터에서  공을 세운 이전을 조조가 없는 자리에서 목
을 치는 것이  주저되었다. 이렇게 되자 이전은 가까스로 목숨만은  보전할 수가 
있었다. 다음 날이 되자  조인은 진형을 새로이 했다. 이전에게 후군을 담당하게 
하고 몸소  선두를 지휘했다. 조인은  새로운 진형을 펼치며  군사들에게 적군을 
조종하도록 했다.
  "너희들이 우리의 진을 알기나  하겠느냐?" 과연 진법에 밝지 못한 유비가  보
니 알  수 없는 진세였다. 선복은  유비를 언덕 위로 인도하여  채찍으로 적진을 
가리켰다.
  "저 요란스러운 진형을 보십시오. 적의 저 진형을 무어라 부르는지 주공께서는 
들은 바가 있습니까?"
  "모르겠소."
  "팔문금쇄진이라는 진입니다.  그럴 듯하게 포진은 하였지만  아깝게도 중군에 
약점이 있습니다."
  "팔문이란 무엇이오?"
  "이름하여 휴, 생, 상, 두, 경, 사, 경, 개의 여덟 문을 말합니다. 그 중 생문, 경
문, 개문으로 들면 길하지만 상문, 경문,  휴문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해를 입으며 
두문, 사문으로 들어가  싸우면 패하고 맙니다. 지금 각 문의  진세를 보건대, 각 
부문의 길이 엇갈려 있어 거의 완전한 진이나,  오직 중군에 중심이 빠져 있습니
다. 이 중군의 허를 찔러야만 합니다."
  "그 중군을 찌르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오?"
  "생문으로 돌입하여 서쪽의 경문으로  나가면 실이 빠진 천과 같이 전 진용이 
크게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놀랄 만한 선복의 밝은 병법이었다. 유비는 그의 해
박함에 놀라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군사의 한 마디는 백만 명의 군사와 비길 만하오." 유비는 곧 조운을 불러 군
사 5백을 주며 명했다.
  "동남각 생문으로 쳐들어가서  서쪽으로 적을 짓밟으며 달리다가 다시 동남방
으로 돌아오라." 조운은 명을  받자마자 장창을 추켜들고 말에 올랐다. 조운은  5
백 군사를  이끌며 팔문금쇄진의 일부인  생문으로 짓쳐 들어갔다.  이와 동시에 
유비의 본진에서도 요란한  함성과 함께 징이며 북  소리로 의기를 돋우고 있었
다. 진지의  한가운데를 조운의 5백  군사에게 돌파당하자  조인의 팔문금쇄진은 
금세 혼란이 일었다.  조인의 군사들은 밀리고 쫓기어 그 파급을  중군에까지 미
쳤다. 조인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진형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중군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때 조운은 조인의 옆을  스치듯 달려가면서도 굳이 대장인 
자신을 쫓지 않았다. 곧장 말을 달려 서쪽  경문까지 치달리며 앞을 가로막는 적
을 무찌른 후  그곳에서 말머리를 돌렸다. 조운은 다시 동남각을  향하여 그곳에 
포진한 군사를 유린하며 질풍처럼 내달았다. 전날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야심
만만하게 벌인 진형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니  조인은 크게 당황했다. 이렇게 되
니 팔문금쇄진은 허물어져 진형이고 뭐고 가릴 것 없는 대혼란이 일었다.
  "지금입니다. 총공격의 명을 내리십시오." 선복은 유비에게  총공격령을 내리도
록 했다. 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유비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인군
을 덮쳤다. 조인군은 크게 패한 채 군사를 물릴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은 뒤쫓지 마라!"  선복은 군사를 물리는 조인을 뒤쫓지 않도록 했다. 
조인의 군사가 많이 꺾였으나 유비군보다는 몇 배가 더 많은 군세였으므로 뒤쫓
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조인군을 멀리 쫓은  후 유비군은 신야로 
되돌아왔다. 한편 조인은 싸움에서  지고 나자 이전의 말이 옳았음을 알았다. 막
대한 손상을 입은 채 이전과 얼굴을 대할 면목이 없었으나 하는 수 없이 이전과 
상의했다.
  "이번에는 야습을  감행하여 치욕을 씻고야 말겠소."  조인은 이전에게 무안한 
감정을 은폐하려는 듯 이렇게 큰소리쳤다. 이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만두십시오. 팔문금쇄진조차 간파당하고 그것을 깨뜨리는 전법까지 알고 있
었소. 유비의 유막에는 필시 유능한 인물이 있어  그가 이 싸움을 지휘하고 있을 
것입니다. 신중을 기하도록 해야  합니다. 적은 이미 야습에 대한 대비까지 세워 
두었을 것입니다." 이전이 이렇게 말하자 조인은 다시 화를 벌컥 냈다.
  "그대와 같이 매사에 겁부터  낸다면 어찌 군사를 부릴 수가 있겠소? 정히 그
렇다면 공은 후군을  거느리시오. 내가 선두에서 그들을 치겠소." 조인이  화부터 
내며 그를 꾸짖었으나 이전은 굽히지 않고 또 한 마디 엉뚱한 소리를 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지금의 싸움터가  아니라 번성이오. 번성을 비우다시피하
고 이곳으로 왔으니 그게 걱정이오." 그러나 이전의 말을 조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이경이  가까워 오자 조인은 야습을 감행했다. 그러나 유비군은 
이전의 말대로 이미 야습에 대한 대비책을 철저히  해 두고 있었다. 그날 낮이었
다. 선복이 유비와 함께 진채에서 다시 적과  싸울 일을 의논하고 있는데 그날따
라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선복이 거센  바람을 가만히 지켜 보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오늘 밤 필시 조인이 우리 진으로 급습해 올 것입니다." 유비가 놀라 물었다.
  "아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하오?" 유비의 물음에 선복은 태연히 대답했다.
  "제가 이미 준비한 바 있습니다." 선복은 그렇게 말하며 유비에게 계책을 내자 
유비는 기뻐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유비는 선복의 말에 따라 장수들을  불러 선
복이 내린 대로 각자에게  명을 내렸다. 과연 밤 이경이 되자  조인이 군사를 거
느려 오고 있었다. 그들은 기척을 죽이고 유비의 진지로 접근해 왔다. 그때 매복
해 있던 유비군이 불을 지르자 불길이 사방에서 일어나며 주위는 순식간에 불바
다가 되었다.  조인은 유비군이 미리  대비하고 있었음을 알자  군사들에게 급히 
명을 내렸다.
  "화공지계다. 모두 물러가라!" 조인이 이렇게 소리치며 급히 군사를 돌렸다. 그
러나 앞에는 미리 조운이 군사를  거느리고 대기하고 있다가 숨쉴 틈도 주지 않
고 엄습해 왔다. 불길과  적군을 한꺼번에 맞게 된 조인군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혼비백산한 조인은 군사를  거두어 돌아갈 엄두도 못  내고 황망히 북쪽의 강을 
향하여 달아났다. 가까스로  강변에 이른 조인이 어둠 속을 헤매며  간신히 배를 
구해 강을 건너려 할 때였다. 어둠을 뚫고 한 떼의 군사가 달려왔다.
  "연인 장비가 네놈을 기다린 지 오래다. 조인은 어서 목을 내놓아라!" 유비 휘
하에서 용맹과 사납기로 이름난  장비가 놋그릇이 깨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치며 
다가왔다. 뒤에는 강물이었다. 더 물러설 수도 없게 되자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
데 후군인  이전이 군사를 이끌고 왔다.  이전이 나타나자 더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와  함께 급히 배에 올랐다. 구사일생으로 목숨만은  보전했으나 조인
의 군사는 이미 태반이 장비의 사모창에 찔렸거나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강을 
건넌 조인과 이전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어둠 속을 허둥지둥 달려 이윽고 번성
에 이르렀다.
  "문을 열라. 나는 대장 조인이다. 어서 성문을 열라!" 조인이 성 아래에서 소리
를 질렀다. 그러자 성 위에서 북 소리가  요란하더니 한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성문 밖으로 달려나오며 외쳤다.
  "패장 조인, 이놈아 어서 오너라! 유 황숙의 아우 운장 관우가 번성을 취한 지 
이미 오래이다."
  "앗!" 기겁을 한 조인은  놀라 자빠질 듯 비명 소리와 함께  지친 말을 채찍질
하며 달아나기에 바빴다. 관우가 그 뒤를 쫓으며  좌로 베고 우로 찌르니 조인을 
뒤따르던 군사는 거의  들판 위에 나뒹구는 시체가 되고 말았다.  조인은 갑주마
저 찢겨 나간  처참한 몰골을 하고 허창에 당도하였다. 쫓겨가는  도중에 조인은 
유비의 군중에 선복이  군사로 있으면서 군을 지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
다. 세 번 싸워 세 번  다 이긴 유비군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유비가 군
사들을 이끌어  번성으로 들어가니 현령  유필이 나와 유비를  영접했다. 유비는 
먼저 백성들을 달래고 성 안을 두루 순시한  다음에 유필의 관저로 들었다. 현령 
유필은 장사 사람으로 역시  한실의 종친이었으므로 유비를 청해 환영연을 베풀
었다. 유필은 온  가족을 데리고 나와 융숭하게  접대했다. 이때 유필의 곁에 한 
소년이 서 있었는데,  유비가 보니 인품이 서글서글해 보였고 외모  또한 훤칠했
다. 유비가 가만히 물었다.
  "저 잘생긴 아이는 자제입니까?"
  "아닙니다, 생질이지요." 유필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다시 말을 이었다.
  "본디 구씨의 아들로 이름은 봉이라  합니다. 조실부모하였으므로 제가 거두어
서 친자식처럼 길렀습니다."  유비가 보니 보면 볼수록 잘난 소년이었다.  유비가 
그 자리에서 청했다.
  "나에게 양자로 주시면 고맙겠소이다." 유필은 유비의 말에 두말 않고 그 청을 
들어 주었다.
  "좋습니다. 생질을 위해서도  더없는 다행입니다. 부디 훌륭한 인물로 키워  주
십시오." 유필은 구봉에게 유비를 아버지라 부르도록  이른 뒤 성을 유씨로 고쳐 
유봉이라 부르게 했다.  유비는 유봉을 데리고 나오자 관우와 장비에게  절을 올
리게 했다.
  "이 두 분은 너의 숙부가 되니  절하고 뵈어라." 유봉이 절하고 물러나자 관우
와 장비는 갑작스런  유비의 처사가 불만인 듯  서로 눈길을 주고받더니 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님께선 친아들을 두셨는데 왜 또 양자를 두십니까? 후일에 반드시 좋지 않
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내가 저를 친자식처럼  대해 주면, 저도 나를  친아비처럼 섬길 것이다. 좋지 
않은 일이 왜 생기겠는가?" 유비가 그렇게 말했으나 관우는 여전히 마땅치 않은 
얼굴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유비는 선복과 의논한  후, 번성은 조운으로 하여금 
군사 1천  명을 주어 지키게 하고,  대군을 휘동하여 신야로 돌아왔다.  그 무렵, 
하북 지방의 광대한 땅을 비롯하여 요동과 요서에서도 공물이 들어와 허도는 해
를 거듭할수록  번창과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이제는 천하의 중심이요, 천자가 
머무는 도시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이러한  허도에 조인과 이전은 목불인견
(차마 볼 수 없음)의 꼬락서니를 하고 돌아왔다.
  "3만의 병사가 도대체 몇 사람이나 남았는가!"
  "비참한 패배로군."
  "저 두 사람은 목을 베어 저잣거리에 효수해야 돼." 백성들과 군사들의 수군거
림이 그치지 않았다. 따가운 시선과 비난 속에  기가 죽은 조인과 이전은 승상부
로 가 조조를 알현했다.
  "여광, 여상과 수많은 군사를 잃고 돌아온 저희들에게 중벌을 내려 주십시오."
  "어찌 된 일인가. 자세히 말해 보라." 조인과 이전의 행색으로  보아 미루어 짐
작할 수  있었으나 조조는 그렇게 물었다.  조인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수차에 
걸친 패배의 실상을 낱낱이 고했다. 그들의 보고를  잠자코 듣고 있던 조조는 한 
차례 크게 웃더니 말했다.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에 항상 있는 일이다. 너무 크게 마음에 두지 
말라." 조조는 패전의 책임을 그들에게 묻지도 않았으며 질책도 하지 않았다. 그
러나 단 한 가지  조조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비록 이번 싸움에
서 참패를 하고  돌아왔지만, 조인은 전략과 용병과 용맹에 있어  조조 휘하에서
는 손꼽을  수 있는 맹장이었다. 그러한  조인을 번번이 분쇄하고 그  허를 찌른 
적의 솜씨는 유비를 잘 알고 있는 조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싸움에서 전부터  유비를 도왔던 장수 이외에 도  다른 사람은 없더냐!" 
조조가 묻자 조인이 얼른 입을 열었다.
  "밝게 보셨습니다. 선복이란 자가 군사로서 참가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선복? 그가 누구인가?" 조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천하에 지혜로운 인물이 많지만 선복이라는  이름은 금시초문이구나. 이 중에 
그를 아는 사람이 있느냐?"  좌우를 둘러보며 조조가 묻자 정욱이 홀로 껄껄 웃
었다. 조조는 정욱이 웃고 있자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선복을 알고 있는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 무슨 연고로 그를 아는가?"
  "예. 같은 고향 사람으로 제 죽마고우입니다."
  "음, 선복의 사람됨은 어떠한가?"
  "대단히 지조가 굳고 담대하여 의를 숭상하는 친구입니다."
  "역시, 짐작대로군. 그의 학문은 어느 경지인가?"
  "육도를 꿰뚫고 항상 경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선복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 보라."
  "그 사람은 어려서부터 즐겨 칼을 썼습니다. 중평 말년에 남의 원수를 갚아 주
느라고 사람을 죽였습니다. 관가에 쫓기는 몸이  되자 머리를 풀어헤치고 얼굴에
는 숯가루를 칠하고 미친 척하며 거리를 헤매고 다니다 그만 관가에 사로잡혔습
니다. 그러나 이름을 물어도 끝내 대답하지 않자  그를 결박하여 수레에 싣고 북
을 치며  조리를 돌려 그를 아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은 
그를 가엾게 여겨서인지 아무도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조조는 정욱
의 말에 크게 흥미를 느낀 듯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그때 그의 친구가 밤중에 옥사에서 그를 구출한 후 포승을 풀어 멀리 
달아나게 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이름을 고치고  마음을 바로잡고는 학문에 힘을 
쓰며 널리  이름 있는 학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일찍이 사마휘(수경 선생)와도 
상종하여 둘이 만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학문과 천하를 두루 논하기도 하였습
니다. 그  사람의 본명은 서서로 자는  원직이요, 영주 태생입니다.  선복은 그의 
가명입니다."
  "선복이란 자가 서서란 말이렷다."
  "그러하옵니다. 서서라 하면 아는 사람이 많겠지만 가명으로 행세하니 그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서서의 재주를 그대와 비교하면 어떤가?"
  "저 같은 것은 그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설마, 그건 겸손의 말이 아닌가?"
  "아니옵니다. 서서의 인물, 학식, 재주를 열이라 한다면 저의 천품은 둘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흠, 그대도 이토록 칭송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인물임이 분명하군. 조인과 이
전이 패하여 돌아온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로군. 아아......"  조조는 길게 한탄을 
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실로 애석하다. 그토록 훌륭한 인물을 유현덕의 휘하로 들어가게 했으니 그에
게 날개를 달아 준 격이로구나. 서서는 후일,  현덕을 위해 큰 공을 세우리라. 어
찌하면 좋겠나?"
  "서서가 비록 지금은 유현덕에게  있으나 그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일은 어려
운 일이 아닙니다." 정욱의  말에 조조는 귀가 번쩍 띄었다. 조조는 정욱을 다그
쳐 그 방법을 물었다.
  "어서 그를 이리로 데리고 올 방도를 말해 보라."
  "서서는 어려서 아버님을 여의고 집에는 늙은  어머니 한 분밖에 없습니다. 어
머니는 그의  아우 서강의 집에 있었는데,  서강도 지난번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서서는  원래 어릴 때부터  효자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지금은 현덕의 
군사로 있으나 마음 속에는 홀로 계실 어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을 것
입니다."
  "음-." 조조는 정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정욱이 
어떤 뜻으로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짐작이 갔다.
  "승상께서 사람을 시켜 그의 어머니를 허도로 모셔다 놓은 뒤 글을 써서 서서
를 부르시면 될 것입니다.  필시 그 글을 받으면 그는 밤낮을  도와 허도로 달려
올 것입니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즉시 노모를 허도로 모시기로 하자!" 조조는 크게 기
뻐하며 서서의 홀어머니를  모셔 오도록 사람을 보냈다. 다음 날이  되자 서서의 
홀어머니는 허창에 이르렀다. 이에 조조는 후히 대접했다. 서서의 홀어머니는 어
디로 보나 평범한 시골의 노파에 불과했다. 입고  있는 옷도 그렇고 음식도 가려
먹지 않는 질박하고 검소한 촌로였다. 이미  허리가 구부정했으며 사람에게 익숙
하지 않은 산비둘기 같은 눈으로 호화찬란한 귀빈각의 이모저모를 두리번거리며 
바라보기도 했다. 이윽고 조조가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나타나, 마치 자기의 친
어머니를 대하듯 공손히 예를 올렸다.
  "듣건대 아드님 서원직은  지금 선복이라는 가명으로 신야에서 유현덕을 섬기
고 있다 합니다.  천하의 기재인 아드님이 어찌하여 일정한 근거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적도와 한패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서의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여전히 산비둘기의 눈처럼 작은 눈으
로 조조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조조가 다시 말을 이었다.
  "서서와 같은 뛰어난 인물이  하필이면 현덕 같은 역신을 섬기고 있으니 실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만약 노부인께서 승낙을 하셨다면  그것은 손바닥 속의 구슬
을 진흙 속에 떨어뜨린 것과 다름없는  일이지요. 그러니 노부인께서 수고스럽지
만 아드님에게 글을  보내시도록 하십시오. 만약 노부인께서  아드님을 이곳으로 
불러들여서 벼슬살이를  시키고 싶으시다면 내가 천자께  상주하여 높은 관작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조조는 좌우 신하에게  명해 붓과 벼루와 
종이를 가져오게 일렀다.  서서의 어머니는 가져온 지필묵은 보지도 않은  채 입
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나는 시골 사람입니다. 세상사는 아는 게 없지만 유현덕이라는 분
의 소문은  나무꾼도, 농부도 다들  자주 이야기하므로 귀동냥으로  알고 있습니
다."
  "그래 무슨 말을 들었습니까?"
  "유 황숙이야말로 백성들을 위하여 태어나신 당세의 영웅이며 참으로 어진  어
른이라 했습니다." 서서의 어머니는 보기와는 달리 분명하고 힘있는 어조로 말하
였다.
  "하하하......" 조조는 짐짓 크게 웃었다.
  "시골 아이들이나 늙은이들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현덕은 패군이라는 보잘것 
없는 시골에서 태어나  젊어서는 신을 만들고 자리를 짜며 지내던  자입니다. 때
마침 난리가 나자 인근의 부랑배를 모아 명분도 없는 군사를 일으켜 도적질이나 
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겉으로는  군자를 가장하고 속으로 악역무도한  마음을 품
고 있으며 스스로  한실의 후예라고 자처하고 다니는  자입니다." 조조가 이렇게 
말을 둘러대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서서의 어머니는 대뜸  언성을 높여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는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다지도 거짓말이 심한가? 내가 오래 전부터 듣
기로는 유현덕은 중산정왕의 후예요, 효경 황제의  현손으로서 요순의 기풍과 우
탕의 덕을 품은 자라  하였다. 몸을 굽혀 어진 이를 맞이하고  사람을 대할 때는 
공경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어질고  덕이 있는 분임은 세상에 이미 널리 알려진 
바다. 철부지 아이나  백발 노인, 목동이나 머슴들도  다 그의 어진 이름을 알고 
있으니 그가 어찌  당세 영웅이 아니더냐. 그런데 어찌하여 그를  역신이라 비방
하느냐. 아무리 시골의 늙은이이지만 무엇이 충이고 무엇이 역인가는 알고 있다. 
거기에 비해 말로만 한의  승상이라면서 천자를 핍박하니 승상이야말로 한의 역
신이 아니냐! 어찌 내 아들로 하여금 명주를 버리고 암군에게 오라 하겠느냐!"
  서서의 어머니는 말을 마치자 무릎 앞에 놓여 있는 붓을 들어 정원에 다 팽개
쳤다. 조조가 격노하여 서서의 어머니를 참수하라고 외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서서의 어머니는  다시 벼루를 들어 조조의 면상을 향해  던졌다. 날아오
는 벼루를 황급히 피한 조조가 다시 외쳤다.
  "이 늙은  것을 끌어 내어 목을  쳐라!" 조조의 명에 좌우의  무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서서의 어머니의  두 팔을 붙들어 당하로 끌어내리려 했다.  조조는 치
솟는 분기를 참지 못해 스스로 칼자루를 쥐며 칼을 뽑으려 했다.
  "승상께서는 고정하십시오." 정욱이 급히 조조를 말리며 말했다.
  "서서의 어미가 승상을 노엽게  해 드린 것은 스스로 죽음을 청한다는 뜻입니
다. 승상께서 그 어미를 죽이면 의롭지 못하다는 말만 들을 뿐입니다. 반면에 그 
어미는 덕을 높여 칭송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서서는 목숨을 걸고라도 현덕
을 도와서 원수를  갚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기보다는 저 노인을  이곳에 머물게 
해 두십시오. 그렇게 하면 서서는 현덕에게 있어도  마음은 허도에 있게 되니 비
록 현덕을  돕더라도 제 힘을 다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제게  하나의 계책이 
있으니 이 일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조조가 홧김에도 정욱의  말을 듣고 얼른 
그 뜻을 헤아렸다.  노파 하나를 죽여 백성들로부터 민심을 잃고  서서에게도 쓸
데없는 원한을 살  필요가 없다고 여긴 까닭이다. 조조는 노기를  가라앉히고 서
서의 어미를 별당에  머물게 했다. 정욱은 그날부터 매일 서서의  어머니를 찾아 
문안을 드렸다.
  "지난날 동문수학할 때 서원직과 저는 형제처럼 지냈지요. 우연히 노부인을 모
시게 되니 마치 돌아가신 어머님이 살아서 오신 것 같은 심정입니다." 정욱은 그
렇게 말하며 정말 친부모를 모시듯 극진히  공양하였다. 그리고는 때때로 사람을 
시켜 귀한 음식과 의복을 보내곤  했으며 그럴 때마다 항상 염려의 서한을 동봉
하였다. 서서의 어머니는 정욱이 어릴 때 아들과 친한 친구였고, 또한 그 정성이 
여간 극진하지 않아 정욱에게만은 점차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
다. 그리하여 귀한 음식과 옷가지가 올 때마  정욱처럼 고맙다는 뜻을 글로 적어 
답서로 보냈다. 정욱은 그  친필을 차곡차곡 보관하고 그 필적을 흉내냈으니, 이
는 서서에게 그의  어머니가 쓴 것처럼 하여 서한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마침내 
정욱은 서서  어머니의 거짓 서한을 썼다.  조조에게 그 서한을 보인  후 사람을 
시켜 신야의 서서에게로 보냈다. 선복 곧 서서는  지난번 조인과의 싸움 후 유비
가 마련해  준 저택에서 독서를 하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해질녘, 서서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어머님이 보낸 사람이라 하
자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를 걱정하고 있던 터라 그를 불러들였다.
  "어머님이 보내셨다고? 어머니께 무슨 변고라도 있는가?"
  "아닙니다. 소인은 본댁에서 심부름을 하는  머슴으로 노마님의 글을 전하라고 
하기에 왔습니다." 서서는 그 서한을 받아들고  거실로 돌아와 등잔 심지를 돋우
었다. 그런 후 어머니의 서한을 펼치자 낯익은  어머님의 필적을 보니 벌써 눈물
부터 흘러내렸다.
  서야. 잘 있느냐? 어미도 무사하다.  근자에 네 아우 강이 죽으니 의지할 사람
이 없어 슬픈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조 승상이 사람을 
보내 허창으로 나를 데려다 놓고, 네가 조정을  배반하였다 하며 나를 옥에 가두
려 하였다. 요행히 정욱과  몇몇 사람이 청을 들여 나를 구해  주어 목숨을 부지
하고 있구나. 그러나 아직 온전히 풀려난 몸이  아니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느
냐? 네가 이곳으로  와 항복을 하면 나도  죽음을 면한다고 한다. 이  글을 보면 
즉시 달려와 이 어미가 너를 길러 준  은공을 생각하여 효도를 다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나 짓는다면 너와  이 어미는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어미의 목숨은 실오라기에 매달린 것과 같구나. 오직 네가 
달려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달리 이를 말이 없으니 이만 붓을 놓으마.
  읽기를 마친 서서는 비 오듯 눈물을 쏟았다.  그의 입에서는 마침내 나직한 오
열까지 새어 나왔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이었다. 서서는 참새 소리와 함께 대문을 
나섰다. 지난밤에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서서였다. 서서는 곧장 신야의 
성문으로 들어서자 유비에게로 다가갔다.
  "군사가 이른 아침에 어인 일이시오?" 유비도 그의 수심에 찬 얼굴을 보자  걱
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서서는 얼굴을 숙인 채 가만히 절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주공께 죄를 빌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군사가 죄를 빌다니요? 대체 무슨 일이오?"
  "제 이름이 선복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으나 이는 고향에서 저를 숨기기 위한 
가명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영주 출신으로 이름은  서서이며 자는 원직이라 합니
다. 어떤 일로 쫓기게  되어 부득이 가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서서의 말에 유비
는 크게 놀라는 듯했다. 서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전에 듣자하니 형주의  유표가 어진 선비를 공경하여 불러들인다는 소문이 
있기에 그를  만나러 갔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학문을 논하여도  그렇고 실제로 
그의 다스림을 보아도  장래를 기대할 수 없는 인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
서 글을 남겨 두고 형주를 떠나 깊은 밤중에 수경 선생 사마휘의 장원으로 갔었
습니다. 저는 그분께 유표에게 갔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수경 선생
은 저를  꾸짖었습니다. '너는 눈이 있으면서도  사람을 볼 줄  모르는구나. 지금 
신야에 유 예주께서 계신데 어찌 그를 섬기지 않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
을 듣자 유비는 단계를 뛰어넘은  그날 밤 수경 선생 사마휘와 이야기를 나누던 
손님이 머리에 떠올랐다.  유비는 그가 갑자기 지난날의 얘기를 꺼내는  것이 의
아스러워 새삼 살피오 물었다.
  "그런데 군사는 왜 불현듯 이른 아침에 지난 일을 내게 들려 주시오?"  서서는 
유비의 물음에 대답 대신 하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저는 수경 선생의 말을 듣고 몹시  기뻤습니다. 즉시 신야로 달려갔으나 아는 
사람이 없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지라 짐짓 미친 체하며 거리를 다니며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  어느 날 주공께서 길을 지나시다가 다행히  들으시게 되
어 저를 버리시지 않고  중히 써 주셨습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
다." 유비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작별 인사의 서두
를 꺼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유비가 뭐라고 입을 열  사이도 없이 서
서가 한 통의 서한을 품속에서 꺼냈다.
  "그런데 이것을 보옵소서." 서서가 어머니로부터 온 글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저의 늙으신  어머니께서 조조의 간계에 빠져  허창에 감금당한 채 조조에게 
목숨을 빌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어머님께서 친히 글을  보내 저를 
부르시니 자식된 도리로  그리로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으로는  유 황숙
께 견마지로(개나 말의 수고,  충성의 뜻)를 다하고 싶습니다만 어머님께서 위급
한 처지에 놓여 있으니 제가 어찌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주공께 사
정을 고해 올리며 언젠가 다시 뵈올 날을 기대할 뿐입니다." 서서는 죄스러운 듯 
허리를 굽혀 절했다. 서서가 고개를 들자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유비도 서서의 그  같은 모습을 보니 슬픔이 더하여 눈물을  글썽이었다. 총애하
던 그가  떠나려 하니 섭섭함과  아울러 안타깝기가 그지없었다.  이제야 유비가 
원하던 사람을 만나 모든 일을  맡기고 의지하던 터였는데 그가 불쑥 떠나려 하
니 유비는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마음을  가다듬은 유비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와 아들은 이미 하늘이 정한 사이요. 어찌  그 도리와 정을 끊을 수 있
겠습니까. 그대는 나의 걱정은  하지 말고 어서 가서 늙으신 어머니를 구하시오. 
후일 다시 돌아와 나를 가르칠 기회가 오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서서는 다시 유
비에게 절을 올린 후 떠나려 하자 유비가 황급히 그의 소매를 붙들며 청했다.
  "바라건대 하룻밤만 더 보내고 내일  떠나도록 하십시오." 유비가 못내 아쉬운 
듯한 얼굴로 간절히 청하자 서서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에 서서가 하룻
밤을 더 묵어가기로  하고 물러났다. 그날 밤에는 유비 휘하의  모사와 장수들이 
모여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술잔이 돌아가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잔치는 밤중까
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서서는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가끔 술잔을 든 채 
이렇게 한탄했다.
  "어머님께서 지금 허도에 감금당해 계시니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르겠고  술에
도 술의 향기를 느끼지  못합니다. 금파옥액(금과 옥처럼 귀하고 향기로운 술)도 
목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잔치에 모인 여러 사람들은  석별의 말을 되풀이하며 
마지막 잔을 비우고 나서 각기 물러갔다. 유비는  탑에 의지하여 잠시 눈을 감고 
있는데 서서가 떠나가려  하자 이를 걱정하고 있던  손건이 가만히 다가와 말했
다.
  "주공, 지모가 뛰어난 원직을 조조에게 보낸다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입
니다. 되도록이면 그를 잡아  두어야 합니다. 원직은 우리의 병력이나 내정을 소
상히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그가 가면 조조는  그를 높이 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필시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주공께서는 마땅
히 그를 붙잡아 두셔야 할 것입니다. 조조는  원직이 자기에게 오지 않으면 당연
히 그의 어머니를  죽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원직에게는 조조가  어머니의 원
수가 되므로 그 지모를 다해 주공을 돕게 될  것입니다. 이는 곧 화를 복으로 바
꾸는 일이니 주공께서는 밝게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손건의 말에 유비는 준엄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건 옳지 못한 일이다. 남을 시켜 그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아들을 
나에게 이롭게  쓴다는 것은 결코 다스리는  자가 할 짓이 아니다.  그리고 그를 
붙들어 두는 것은  모자간의 천륜을 끊음이니 이도 의롭지 못하다.  내가 차라리 
죽음을 맞을지언정 어찌 어질지 않고 의롭지 않은 일을 행하겠느냐?" 눈앞에 닥
칠지도 모르는 낭패를 보고도 인의만 내세우는  유비가 손건은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나 이를 전해  들은 사람들 모두가 유비의 인품에 감탄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유비는  성 밖에다 다시 술자리를 마련하여 서서를 배웅했
다.
  "선생이 떠나니 이제 이 유비는 왼손과 오른손 모두를 잃게 되었습니다. 이 자
리에 용의 간이나 봉의 살로 마련된 안주가 있다 해도 어찌 입에 달다 할 수 있
겠습니까?" 유비와 서서는 술상을 가운데 놓고  또 한 번 눈물을 뿌렸다. 이윽고 
서서가 말을 타고 떠나자  유비는 여러 장수들과 함께 나란히 교외의  장정(나그
네를 전송하는 휴게소)에까지 이르렀다.  사람들은 유비의 깊은 정분에 감탄하였
고 또한 서서가  그토록 높이 받들어짐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장정에  이르자 유
비는 마지막 이별주를 들며 조용히 말했다.
  "나는 분복이 박하고 인연이 없어 선생의 가르침에 접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새 주인을 잘 섬겨 부디 공명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서서가 눈
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저와 같이 학문도 얕고 재주도 없는  사람을 사군께서는 높이 써 주셨습니다. 
이제 불행히도 중도에서  작별하게 된 것은 실로 저의 어머님  때문입니다. 비록 
조조를 섬기게 되더라도 평생토록 그를 위해서는 한 가지 책모도 내지 않겠습니
다." 서서의 말에 유비는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선생이 가버리고 나면 나도 속세를 떠나  산 속에 들어가 숨어 살고 싶구려." 
유비가 서서를 보내는  애절한 마음을 이렇게 전하자, 서서는 잠시  고개를 숙였
다가 다시 얼굴을 들며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사군을 도와 왕업을 도모코자  한 것은 오직 한 조각 제 마음만을 믿었
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머님의 일로 제 마음이 어지러워  제가 여기 
머문다 해도 사군께  아무런 도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사군께서는  달리 높으
신 선비를 구하셔서  함께 대업을 이루도록 하십시오. 제가 가는  일로 상심하셔
서는 아니 됩니다." 서서는 유비의 뜨거운  정분 앞에 흔들리는 마음을 추수리기
라도 하는 듯  이렇게 못박았다. 그리고 주위의 여러 장수들에게도  서둘러 작별 
인사를 고했다.
  "여러분들은 모두 사군을 도와 이름을 죽백에 남기시고 공을 청사에  떨치도록 
하십시오. 결코  이 서서와 같이 시작과  끝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
다." 이를 지켜 보고 있던 유비가 침통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아무리 천하의 높은 현사라 할지라도 선생을 능가할 사람은 없을 것이오."
  "저는 그럴 만한 재목이 되지 못합니다. 어찌  그토록 큰 명예를 감당할 수 있
겠습니까?" 유비는 다시 눈물을 비  오듯 쏟았다. 그리고 한 마장, 한 마장 말머
리를 나란히 하여 서서를 배웅했다.
  "이제는 그만 돌아가십시오.  저는 여기서 작별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서서가 
말을 세우고 더 이상의 전송을 굳이 사양하였다.  유비가 말 위에서 손을 내밀었
다. 서서도 손을  내밀어 굳게 잡았다. 이윽고  서서는 눈물을 뿌리며 말을 달렸
다. 유비는 숲가에 말을 멈추고 서서가 사라져 가는 뒷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아아, 원직은 가 버렸다. 나는 장차 어찌하여야 좋은가?"  유비가 탄식하며 바
라보니 서서의 모습은 숲에 시야가 가려 보이지  않았다. 유비는 채찍을 들어 숲
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숲에 가려 서원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구나. 저 숲의 나무를 베어 버리고 
싶구나." 유비가 끝내 떨쳐 버리지 못한 미련을 담은 눈으로 숲을 바라보고 있는
데 서서가 말을 되돌려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오오, 원직이 저기  돌아오지 않는가. 허도에는 가지 않으려는가?" 유비가  밝
은 얼굴이 되더니 말을 몰아 마주 나가면서 물었다.
  "선생, 무슨 까닭으로 돌아오십니까?"  서서는 다가오자마자 유비의 말 옆으로 
다가오더니 급히 말했다.
  "제가 어젯밤부터 마음이 어지러워 그만 여쭐 말씀을 잊고 있었습니다. 양양성
에서 20리 떨어진  곳에 융중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학식과 재
주가 빼어난 선비가 살고 계십니다. 사군께서는 그 사람을 찾도록 하십시오." 양
양의 서쪽 20리라면 여기서 멀지 않는 곳이었다.  유비는 그렇게 가까운 곳에 그
토록 뛰어난 선비가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융중에 그토록 어진 이가 있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하였습니다. 정말 
현인이 거기 계시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명예나 벼슬을 초월한 사람이며 사귀는 선비들도 적어 
그가 현사임을 아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군께서는  신야에 오
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으니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그 사람과 선생은 어떤 관계입니까?"
  "오래 전부터 학문을 논해 오던 사이였습니다."
  "선생과 벗이라면 오히려 잘 되었습니다. 가시는  길을 하루 더 미루시고 나를 
위해 그 사람을 신야로 청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유비가 서서에게 그렇게 청
했으나 서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 사람은 부른다고 하여 몸을 굽혀 올 사람이 아닙니다. 사군께서 몸소 가셔
서 청하셔야 합니다. 만약 그 사람만 얻는다면  주의 문왕이 태공망을 얻고 한나
라가 장자방(유방을 도와 한나라의  창업을 이룬 사람)을 얻는 것과 다를  바 없
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선생에 비해 재주와 덕이 어떠하오?" 서서가 그 선비를 워낙  크게 
높여 말하자 유비가 자못 놀라는 얼굴로 물었다.
  "하하, 저와 비교함은 달구지를 끄는 말을 기린 곁에 가지런히  세움이요, 까마
귀를 봉황과 짝지우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그 사람은 평소에 스스로를 관중(춘
추시대의 명제상)이나  악의(춘추시대의 명장)에 비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건대 오히려 관중이나 악의도 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늘을 거느리고 땅을 주름잡을 재주가 있으니 천하에 그를 능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유비를 놀라게 하는 말이었다. 서서가 저런  정도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하니 유비는 가슴이 뛰는 듯했다.
  "바라건대 그 사람의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그는 낭야군 양도 사람으로 성은 제갈이요, 이름은 양, 자는 공명입니다. 원래 
한의 사예교위(경찰 책임자)를  지냈던 제갈풍의 후손입니다. 부친의  이름은 규, 
자는 자공이라 하며 태산군승을 지내다가 일찍이 세상을 떠나 숙부 현에게 양육
되었습니다. 이 제갈현이라는 사람은 형주의 유표와  아는 사이여서 그에게 의지
하여 양양에 거처를  마련하여 살았습니다. 제갈현이 세상을 떠난 뒤로  그는 다
시 아우  제갈균과 함께 남양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거문고를  키며 양부음이란 노래를  짓기도 했습니다. 살고  있는 근처에 
'와룡'이라 불리는 큰 언덕이 있으므로 스스로 호를 '와룡 선생'이라 칭하기도 합
니다." 서서는 유비에게 그 사람의 내력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그
를 찾으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 사람이야말로 불세출의  기재이니 사군께서는 한시바삐 그를 찾도록 하십
시오. 만약 그 사람의 도움만 받을 수 있다면  어렵지 않게 천하를 다스릴 수 있
을 것입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자 문득  유비는 지난날 수경 선생 사마휘에
게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이제야 생각이 떠오르는구려. 전에 수경 선생께서 '지금 복룡과 봉추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얻으면 족히  천하를 편안히 할 것이오' 하셨습니다. 그때 몇 번이
나 그 이름을 알고자 했으나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제갈공명이 그 
두 분 중의 한 분이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 복룡이 바로 제갈공명입니다." 서서가 시원스럽게  대답하자 유비
는 오랫동안의 궁금증을  풀게 되어 가슴이 후련했다. 유비가 서서에게  다시 물
었다.
  "그럼 또 한 분  봉추는 바로 선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까?" 그 말에  서서
는 황망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봉추란 양양의  방통으로 자는 사원이라 합니다."  유비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밝은 얼굴로 말했다.
  "오늘에야 비로소 복룡,  봉추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같은 대현이 바로 곁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나는 눈은 있으되 장님이나 다름이 없었을  뻔했습니다." 유비가 뛸 듯이 기뻐하
며 서서에게 절한 후 고마움을 표했다.
  "그럼 꼭 공명의 여막을 찾아가도록 하십시오."  서서는 이렇게 일러 준 후 후
련한 듯 마지막 배례를  하고 채찍을 휘둘러 날 듯이 허도를  향해 달렸다. 서서
가 말을 달려 그의 눈앞에서 멀어져 가자 유비는 지난날 수경 선생 사마휘가 하
던 말을 되살렸다. 서서가 한 말을 미루어  보아 수경 선생의 말뜻도 깨우쳐지는 
것 같았다. 유비는 서서가 떠나게 되자 가눌  길 없었던 허탈감은 새로운 기쁨으
로 충만했다. 마치 취한 듯  꿈을 꾸다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유비는 즉시 
모든 문무 장수들을 불러 많은 예물을 준비하게  했다. 그리고 스스로 관우와 장
비를 거느리고 남양으로 향했다. 유비는 남양이란 연못  속에 깊이 숨어 있는 용
을 기어이 자신의 곁으로 일으켜 세우리라 굳게 결심했다.

  제갈씨의 일가와 와룡의 언덕
  열네 살에 부모를 모두 여읜 공명은 숙부에게 의탁하고 공명의 나이 열일곱에 
대학자 석도를 만난다. 군계일학의 재주를 꽃피우며  학문을 익히던 공명은 스물
이 되기 전에 배움을 떠나고 양양의 명사 황승언의 딸을 아내로 맞아 부부의 연
을 맺는다.
  제갈공명의 가문, 제갈씨의  자제와 일족은 뒷날 삼국의 각 나라에  걸쳐 벼슬
을 지내게 된다. 그들은 각 시대의 한 분야를 움직인 것이다. 그 중 제갈풍은 전
한의 원제시대에 사예교위 경찰  책임의 벼슬을 지냈는데 원래부터 강직한 성품
을 지닌 사람이었다.  법에 따르지 않거나 어기는 자가 있으면  어떤 특권계급도 
용서하지 않았다. 그때 원제의 외척으로 허장이라는 벼슬아치가 있었다. 이 자가 
국법을 어기는 행위를 자행하자  제갈풍은 언젠가는 법의 위엄을 보이겠다며 기
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허장은 또 법을  어기고도 반성하는 빛이 추호도 없
었다. 기회를 엿보던 제갈풍은  친히 부하를 이끌고 그를 사로잡으러 갔다. 그런 
줄도 모르고 허장은 궁궐에서 나오다 제갈풍과 마주치자 황망히 궁궐 안으로 도
망쳐 버렸다. 그리고는  허둥지둥 천자에게로 달려간 허장은  곤룡포의 소맷자락
을 잡고  제발 살려 달라고 울며  호소했다. 제갈풍은 천자 앞에  나아가 국법은 
결코 어길  수 없음을 설복하며 그를  옥에 가두어 버렸다. 이에  천자는 오히려 
제갈풍을 미워하여 성문교위라는  벼슬자리로 좌천시켰다. 그런 뒤에도  그는 조
금도 위축됨이  없이 자주 벼슬아치들의  죄를 가차없이 규탄하고  벌주려 했다. 
마침내 벼슬아치들의  미움을 받아 그는  벼슬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는  그 뒤로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고향에서 서민의  한 사람으로 생을  마쳤다. 제갈이란 
성은 초기에 '갈'이라는 외자 성이라는 설이 있다.  중국 대륙의 여러 한인 성 중
에도 두 자  성은 극히 귀한데 제성현에서 양도로  이사했을 때 양도의 성 안에 
같은 성을 가진 가문이 있어  이와 구분하기 위해 '제갈'이라는 두 자 성으로 했
다는 것이다. 공명의 부친  규는 태산군승의 관직을 가졌었고, 숙부 현은 예장태
수였다. 이렇게 볼 때 이  무렵의 가세는 꽤 번성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공명의 
형제는 넷이었는데 남자가 셋이요,  여자가 하나였다. 공명은 그 중의 두 번째였
다. 형인 근은 일찍부터 낙양의 대학에 들어가 유학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의 
생모는 세상을 떠나고  부친은 후처를 맞이하였다. 그런데 그 후처를  남겨 놓고 
이번에는 부친 규가  죽었다. 공명이 열네 살쯤이  될 때의 일이었다. 배가 다른 
어린 세 아이를 거느린  후처 장씨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런  시기에 대학 공
부를 마친 장남  근이 낙양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낙양에서 큰  난이 일어났음을 
알려 주었다.
  "앞으로 이 세상은  어떤 혼란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황건의 난은 
여러 고을에서 시작되어  낙양에까지 그 불길이 번졌습니다. 이 북쪽  땅도 머지
않아 전란 속에  휘말릴 것이니 우선은 남쪽으로 난을 피해  떠나야겠습니다. 그
리고 강동에 사시는  숙부에게 의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남 근은 계모에게 
그렇게 말하며  강동으로 갈 것을  종용했다. 근은 정직하고  고지식하여 계모를 
성심성의껏 모셔 생모 모시듯 한다고 주위에서  칭송이 자자했던 터였다. 전란과 
재해가 빈번했던 대륙이라  그 당시의 백성은 전란과  재해를 피해 넓은 대륙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에 익숙해 있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북방과 산동의 농민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각자
의 살림살이 도구며  노인과 어린이를 등에 업고 강동 지방으로  이주했다. 열네 
살에 불과했던 공명의 눈에도 이 처량한 유랑민,  굶주린 백성의 모습이 가슴 깊
이 새겨지고 있었다. 열네 살의 나이면  이미 사서삼경을 읽었을 나이였다. '이것
이 사람 사는 원래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에 한  사람의 위대한 인물이 
나타나면 그 무수한 백성들은 겁에 질리고 생활에 찌들린 눈이며 백골처럼 여윈 
얼굴이 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천하에도  해와 달의 
광명을 지닌 인물이 있을 것이다. 해와 달  같은 인재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소인
들끼리 뺏고 뺏기는  가운데 악한 성질만 드러내어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있는 
것이리라. 불쌍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넓은 천하를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이
다.' 소년 공명도 가족과 함께 유랑민들 속에 섞여 광야에서 끝없는 여행을 계속
했다. 유랑  생활은 괴롭고 고통스러웠으며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도  여러 차례 
넘겼다. 대륙의 모래 먼지,  호우와 무더위에 시달리며 야수와 독충의 공포에 휩
싸이기도 했다. 20대의 장남, 열네 살의 공명,  그 아래 아우와 누이는 이 유랑의 
시기 동안 삶에는  강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러한 간난과 
신고를 거듭한 끝에 간신히 숙부 제갈현의 집에 당도한 것이 초평 4년의 가을이
었다. 그때는  동탁이 피살되고 이각, 곽사가  난을 일으킨 다음  해였다. 숙부의 
집에 한 반 년쯤을 머무르고  있었는데 숙부는 형주의 유표와 연고가 있어 형주
로 옮겨 가게 되었다.  이때 공명과 아우 균은 숙부의 가족과  함께 형주로 이주
하였는데 장남 근은  계모 장씨와 함께 강남으로 건너갔다. 근은  오나라에서 따
라 뿌리를 내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남쪽으로 이주한  한 민족은 그 풍부한 산물
과 넓고 기름진 땅에서 금세 새로운 생활의  터전을 잡기 시작했다. 유랑민의 대
부분은 노비 출신이  아니면 농부들이었고, 그 중에는 공명의 가족과  같이 사대
부나 학자  등 지배 계급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각자가 선택한  토지에 생활의 
터전을 잡고 그곳에서 새 사회를 형성하고 새  문화를 건설했다. 그 분포를 보면 
남방의 연해 지방인  강소 방면에서 안휘, 절강에 미치고 양자강  기슭의 형주에
서부터 북방으로 다시 올라가 익주까지 퍼져 있었다.  계모를 모신 공명의 형 제
갈근이 오나라에 장래의 기대를 걸고 양자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간 것은 과연 
지식인다운 행동이었으리라. 이후 7년째가 되는 해, 오의 손책이 죽은 해에 오주
가 된 손권의 눈에 들어  제갈근은 손권을 섬기게 되었다. 한편, 숙부와 그 가족
들과 함께 형주로 이주한 공명과 막내 아우 균은 숙부의 보호 아래 한동안은 평
탄하게 지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운명은 형인 제갈근과는 정반대였다. 소년 공
명을 단련하기 위해 온갖 시련이 덮씌워진 것이다.
  "형주는 큰 고을이다.  너희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이  참으로 많은 곳이
다. 숙부께서는 형주의 유표와는 각별한 사이인데다  이번에 부름을 받고 갔으므
로 그곳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들도 곧 여러 사람들로부터 '도
련님'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하니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한다." 숙모나 주변의 어
른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소년  공명의 가슴은 기대와 희망으로 크게 뛰고 있
었다. 그리고 막상 형주에 머물면서 그곳의  문화에 얼마나 신기해하고 놀라워했
는지 모른다. 그런데 1년이  채 못 되어서 숙부 현은 다시 유표의  명을 받게 되
었다.
  "예장태수 주술이 죽었으므로 그곳을 다스려 주게." 이번에는 태수가 되었으니 
영전이었다. 그러나 막상  임지인 남창에 부임해 보니 문화는 보잘것  없고 거기
다가 신임  태수에 복종하지 않는 세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더욱  곤란한 것은 
조정에서도 새로운 태수를 임명한 것이었다.
  "그는 한실의 조정에서 임명한 태수가 아니다. 우리들은 근거도 없는 지방관에
게 복종할 이유가 없다!" 그를  탄핵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져 갔다. 중앙에서 한
조의 사령을 받는 주호라는 사람이 임지로 내려오니 이미 제갈현이 태수로 앉아 
있었다. 성 안에도 들지 못한 주호가 그를  비방하는 목소리를 높이니 그에 동조
하는 세력 또한 늘어 갔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당연히 싸움이 일어났다.
  "내가 예장의 태수다!"
  "아니다. 나야말로 진정한 태수다!" 양쪽은 서로 이렇게 외치며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주호는 책융과  유요의 호족들이 뒤를 밀어  주고 있어서 제갈현은 금세 
전쟁에 패하여 성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소년 공명과 아우 균은  이때 처음으로 
전쟁을 몸으로 겪었다. 숙부  일가와 함께 난군 속에서 피신하여 성  밖 멀리 몸
을 숨기고 재기를 꾀하였다.  그러나 숙부 현은 어느 날 밤  토민의 반란으로 목
이 잘리고 말았다. 공명은 아우 균을 데리고  처참한 패잔병과 함께 이곳 저곳으
로 몸을 피해 다녀야  했다. 그때는 이미 숙모의 가족은 모두  반란군의 손에 죽
임을 당한 뒤라 주변에는 낯선 군사들만 있었다.  이 무렵 영천의 대학자 석도는 
각 고을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형주에 머물고 있었다. 원래 형주와  양양 지방은 
호학하는 기품이 높았다. 낡은 유학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이 추구되었고, 당금의 
군사, 법률, 문화  등이 정치 위에 새로운  학설을 추구해 보려는 기운이 왕성했
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를 지어 학문 진흥에 주력했다. 숲과 샘물이 있는 곳에는 
많은 새들이 모여드는  법이다. 자연히 이 지방의 호학하는 풍조를  흠모하여 모
여드는 학도와 선비가 많았다. 영상의 서서, 여남의 맹건도 다 이때 모여든 사람
들이었다. 숙부를 잃고  의지할 데가 없어서 세파에 시달려 오던  공명이 대학자 
석도를 찾아가 배움을  청한 때가 그의 나이 열일곱이었다. 이듬해  석도는 주변
의 여러 고을을  유람하며 다녔는데 그때 스승을 따라다닌 제자들  중에는 공명, 
서서도 있었다. 또한 온후하고  독실한 학자풍의 인물 맹건이 있었다. 서서와 맹
건은 공명보다  나이가 위였으며 학문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공명보다 빨랐다. 
그러나 두 사람 다 공명을 결코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
  "저 사람은 장래에  한몫을 할 수재이다!" 서서와 맹건은  공명을 보고 이렇게 
칭찬했다. 과연 공명은 날이  갈수록 그 재주가 빼어나 군계일학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됨도 나이가 들수록 천성적인 재질을 나타내어 이른바 흔히 말하
는 수재와는 그 궤를  달리했다. 그러던 중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공명은 학문의 
장에서 떠나갔다. 학문을  위한 학문을 하는 학도의 무능과 이론을  위한 이론만
으로 나날을 허송하는 곡학아세(세상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정도를  벗어난 학
문)의 무리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공명은  그 이후 양양의 서쪽 교외에서 아우와 
더불어 농사를 지으며  글을 읽는 반농 반학자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문자 그대
로 청경우독이었다.
  "꽤나 노숙한 체하는군."
  "벌써부터 은둔생활을 자처하다니......" 학우들은  모두 그를 비웃었다. 그를 인
정하고 존경하던 사람까지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모두 그를 떠났다.  그러나 공
명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때야말로 
뒷날을 위한 준비를 다지고 있었다. 그 후에도  그의 초려에 자주 왕래한 사람들
이 많았다. 서서와 맹건도 그 중의 한 사람들이었다. 양양에서 공명의 집이 있는 
융중에 가려면 교외의 길을 20리 정도 걸으면  되었다. 융중은 산수가 수려한 곳
이었다. 멀리 호북성의  고지에서 흐르는 한수의 흐름이  동백산맥으로 이어지다
가 육수와 합쳐진다. 이 강물은 중부 대륙의  평원을 굽이쳐 흘러 면수로 이어지
는데, 그 서남쪽 기슭에  양양을 중심으로 하는 해묵은 고을이 바로 융중이었다. 
공명의 집에서는 개인  날에는 그 강물과 시가가 한눈에 바라다보였다.  그의 집
은 융중의 남쪽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에 있었다. 그 언덕은 마치  누워 있는 용
과 같은 모습이라  하여 와룡강이라 하였다. 하루는 친구인 맹건이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곧 고향에 돌아가야겠기에 오늘은 작별  인사차 왔다네." 공명은 이렇게 말하
는 선배의 얼굴을 잠시 말 없이 지켜 보다 입을 열었다.
  "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겁니까?"
  "양양은 지나치게 화평스러워 명문 명졸의 선비가 학문을 닦거나 천하를  논하
며 소일하기는 좋은 곳이네.  그러나 나 같은 서생에게는 어울리는 곳이 아니네. 
그래서 그런지 근자에는 자꾸만 고향 여남이 그리워진다네." 한참 야망과 혈기에 
차 있던 젊은  선비로서 양양의 안온한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있던 맹건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조용히 고개를 흔들며 그를 말렸다.
  "양양이 너무 평화롭다고 했지만 이 평화가 백년 동안 계속된다고 보시오? 더
구나 고향인  북방이야말로 옛부터 문벌이 많아  벼슬아치들 사대부들이 즐비하
오. 그곳이야말로  명문 호족의 배경이 없는  서생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소이다. 
거기에 비하면 오히려 남방의  신천지에서 유유자적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낫
지 않겠소?" 맹건도 젊은  혈기를 다스리지 못해 그런 말을 했으나 공명의 말을 
듣고 헤아려 보니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듣고 보니 그대의 말이 지당하네. 내가  너무 답답했던 나머지 앞뒤를 헤아리
지 못했네." 맹건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바꾸었다. 맹건과 서서가  곧잘 
공명의 재주를 찬양해서인지 양양의 명사들 가운데에서도 어느덧 공명의 존재와 
그 인물에  대해 점차 이름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이른바  양양의 명사인 
지식계급들 중에는  최주평, 수경 선생 사마휘,  방덕 공 등  대선배들이 있었다. 
공명은 이들과도 폭넓은  교유를 가졌다. 그 중에는 하남의 명사  황승언은 공명
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내게도 딸이 있지만, 만약 내가 여자라면 융중의 한 젊은이에게 시집 갈 것이
다." 융중의 젊은이란 물론 공명을 가리킨 말이었다. 그가 얼마나 공명을 아끼고 
있었는지를 짐작게 하는 말이었다. 그러자 중매를  서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어
서 황승언의 말은 마침내 실현되었다. 그리하여  공명은 황승언의 딸과 맺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신부는 아버지 황승언의  얼굴을 닮아서  박색이었다. 정숙하고 
얌전하여 명문의 자녀로서 교양에는  손색이 없었으나 타고난 용모는 보잘것 없
었다. 그러나 공명은 그를  쾌히 아내로 맞아들였다. 공명의 결혼을 보고 사람들
은 웃으며 이런 노래를 불렀다.
  공명에게 아내 고르는 것만은 배우지 말라
  볼품 없이 못생긴 추녀를 얻을라.
  공명은 키가 훤칠하니  컸으며 살갗은 희고 몸매는 다소 여윈  편이었다. 그의 
아내는 아버지 황승언을 닮아 찢어진 작은 눈에다  살색도 검고 키도 작았다. 그
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형주 제일의 명문인 채씨 일가의 딸이었으며 유표의 부인
과는 형제간이었다.  공명은 그의 아내를  택함으로써 형주의 두  명문과 결속을 
맺게 된  것이었다. 공명이 황승언의 딸을  택한 것은 반드시 그것을  노래 택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공명과 그 신부는  실제로 금슬 좋은 부부였기 때문이
었다. 이렇게 그의  융중에서의 생활은 몇 해 동안은 지극히  평화로운 일상이었
다. 어느 날,  공명은 친구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각기 시국을 논하고 
장래의 포부를 얘기하고 있었다. 공명이 그들의  이야기를 미소지으며 듣고 있다
가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다 관계에 나가면 자사나 군수  정도의 출세는 할 것이네." 친구 중 
하나가 즉시 그에게 물었다.
  "그럼 자네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나 말인가?" 공명은 그렇게  되묻고는 싱글싱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
다. 그의 뜻은  그런 데에 있지 않았다.  관리, 학장, 영달, 이 모두가  그의 넓고 
깊은 뜻을 담기에는 부족했다. 그는 일찍부터 춘추시대의 재상 관중, 전국시대의 
명장 악의 이  두 사람을 마음 속에 두고 있었다.  '나의 문과 무의 재간은 바로 
이 두  사람과 견주어야 하리라.' 문으로는  관중처럼 되고, 무로는  악의가 되고 
싶은 것이  그의 포부였다. 따라서  학자보다는 천하를 바라보며  선정을 베푸는 
법가와 병가에 탐닉하고  있었다. 악의는 춘추 전국 시대에 연나라  소왕을 도와 
다섯 나라의 병마를  지휘하여 제나라 70여 성을 얻은 명장이었다.  또한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보좌하여 부국강병책을  써서 열국을 누르고 마침내 패업을 이룬 
명재상이었다. '지금이 바로  그 춘추 전국 시대와 흡사한  난세가 아닌가?' 젊은 
공명은 이렇게 천하를 보고  있었다. '관중, 악의, 지금 그들과 견줄 만한 인물이 
나말고는 누가 있겠는가!'  공명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학문에 전념하는 
한편 명사들과 교우하며  융중에서의 10년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가끔 집 
뒤의 낙산에 올라가서 망망대해와  같이 끝없이 펼쳐진 대륙을 종일토록 바라보
곤 하였다. 이미 형 제갈근은 오나라에서 벼슬길에 들어서 있었다. 그 당시 오나
라의 손권은 남방에서 착실히 그 세력을 구축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손권의 속
마음을 알  수 없는 공명이었다. 그가  한실에 대해 반역의 마음을  품는다면 그 
역시 공명의 뜻과는 맞지 않았다. 거기다가 형  제갈근이 이미 그로부터 받은 벼
슬을 살고 있지 않은가. 북쪽 하늘, 조조가 있는 허도는 공명에게는 어두운 하늘
로만 비쳐지고 있었다. 원소가 죽고 난 이후  조조의 위세는 우레처럼 사방에 떨
치고 있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과연  조조의 위세에 진심으로  복종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가  천자를 앞세우고는 있지만  언제 그의 야심을  드러낼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천하에 내노라 하는 재사와 무장이 많았다. 공명
의 눈에는 그들이 거슬렸다. 익주,  파촉의 오지는 아직 태풍권 밖에 있는 듯 두
터운 구름에 싸여 있었다.  그러나 장강의 물은 그곳에서 흘러오지 않는가. 은빛 
비늘을 번쩍이며 무수한 물고기들이 그곳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곳이 천하의 
중심이 되리라. 그러나  아직도 구름이 걷히고 찬란한 햇빛이 비칠  기운은 일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내가 있는 위치는 바로 오, 촉, 위가 셋으로 나누어
지는 그 한가운데가  아닌가? 형주는 그리하여 천하의 중앙이다.  그러나 이곳에
서 지금 천하의  심장을 쥐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유표가 있지만 그는 다음 
세대의 인물이 아니다.  선비나 무장 중에도 그런 인물이라 여겨지는  사람은 없
었다. 홀연히 저  하늘에서 내려지는 신인은 없는가? 홀연히  땅에서 솟아오르는 
영웅은 없는가?' 날이  저물면 공명은 양부음의 노래를 나직하게  읊조리며 산을 
내려오곤 했다. 양부음의  노래는 옛날 제나라의 재상 안평중이 복숭아  두 개로 
세 용사를 죽인  것을 노래한 것이었다. 세월의 흐름은 장강의  물처럼 쉴새없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덧  건안 12년, 공명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유비가 서서로
부터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초당을 방문하고자  마음먹고 있었던 시기는 바로 
그 해의 늦가을 경이었다. 서서는 유비에게 공명을  찾아가 보라고 권한 뒤 말에 
채찍질을 가하며 길을  떠났다. 그러나 서서는 여전히 유비의 은덕과  두터운 정
에 뒷덜미를 잡히고 있는  듯한 감정에 휩싸인 채 말을 달리고  있었다. 그 어떤 
이별이던 슬프지 않은 것이 없으나 남자에게는 주인과 신하의 이별 또한 간장을 
끊는 아픔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말을 달리면서도 한동안 유비  생각을 떨
치지 못하고 있던 서서는 문득 한 가지  걱정이 떠올랐다. 헤어질 무렵에 자기가 
유비에게 천거했던 제갈공명의  일이었다. 어김없이 주군 유비는  금명간 공명을 
찾아갈 것인데 과연 공명이 그 청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무래도 공명이 주군의 
청을 쉽사리 들어 주지  않으리라!' 공명을 잘 아는 서서는 그  일이 걱정되었다. 
'그렇다. 와룡강에 들렀다 가도 그렇게 먼  거리를 돌지는 않는다. 작별 인사라도 
나눌겸 공명을 만나고 가자. 그리고 주군의  간청에 응하라고 부탁해 보자.' 서서
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머리를 돌려 양양 서교로 향했다. 와룡 언덕이 보이고, 이
윽고 공명의 초당이  시야에 들어왔다. 때마침 늦가을이라 온 산은  단풍으로 물
들었다. 찾아오는 이도 없는 공명의 집 지붕 위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서서가 공명의 초당으로 들어가자 객과 주인은  인사를 나누었다. 공명이 서서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갑자기 웬일인가?" 공명의 물음에 서서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실은 나는 얼마 전부터 신야의 유현덕을 섬기고 있었네."
  "그 소문은 나도 듣고 있었네."
  "그런데 시골에 남겨 두고  온 홀어머님을 조조가 허도로 데려가 옥에 가두고
는 내게 글을 쓰게 하였네. 내 가지  않으면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이니 자식된 
도리로 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네."
  "음-. 사정이 그렇게 되었군.  벼슬은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우선 노모님부터 
구해 드려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길을 떠나며 작별 인사를 나누고 청을 하나 드리고자 하네."
  "어디 말씀해 보게."
  "다름이 아니라 오늘 주군께서  몸소 멀리까지 배웅을 해 주시며 몹시나 서운
해 하시기에 내가 보다못해 자네를 천거했네.  그래서 송구스러운 가운데도 주군
이 찾아오면 부디 이를 물리치지 말라고 청하러  왔네. 옛 정을 생각해서라도 그
의 청을 뿌리치지 않고 그를 도와 준다면 나는 더없는 다행으로 여기겠네." 그러
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서서의 말을 듣고 있던 공명은 불현듯 언성을 높였다.
  "자네는 나를 제향의 제물로  바칠 작정인가?" 공명은 불쾌한 듯 소매를  휘저
으며 나가 버렸다. 서서는 섬뜩하니 가슴이 내려앉았다. 유비를 위해 달려왔지만 
오히려 일을 그르친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공명이  희생 제물이라
고 말하자 서서도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옛날 어떤 임금이  장자를 등용하려고 
사자를 보냈더니 장자가 그 사자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대는 희생되는 소를 보지 않았느냐? 목에 금방울을 달고 맛있는 음식을 주
며 기르지만 나중에는 끌고 가서  제사 때 제단에 오를 때는 피를 짜고 뼈를 부
수지 않더냐?" 이는 곧 벼슬살이를 나가  녹(맛있는 음식)을 먹고 지내지만 결국
은 그 목숨마저 바쳐야 함에 비유한 것이었다.  서서는 공명의 말에 서운함과 부
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물론 경외하는 친구를  소로 팔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서서였다. 공연한 말을 하여 잠시나마 그에게 언짢은  기분이 들게 한 것을 후회
했다. '어느 날엔가 내 뜻을  헤아릴 날이 있을 것이다.' 서서는 갈 길이 바빠 그
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밖으로 나오니 
황혼이 물든 하늘에 낙엽이 떨어지고 있고 벌써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리듯 바람
이 싸늘했다. 여러 날을 달려 서서는 허창에 이르렀다. 곧장 상부로 나가 허창에 
당도했음을 알리자, 조조는 순욱, 정욱 두 사람으로 하여금 정중하게 영접하도록 
했다. 다음 날 조조는 몸소 서서를 대면했다.
  "공이 서서 원직인가? 자당께선 무사하시니 공은 안심하라." 조조는 서서가 무
엇보다 그 어미의 안위를 궁금해 할 것으로 여겨 그를 안심시켰다.
  "승상의 은혜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서서는 어머니가 안전하시다는 말에 고
마움을 표한 후 절을 하며 예를 표했다.
  "저의 어머님은 어디 계십니까?  한시바삐 먼길을 달려온 아들에게 가서 뵙고 
싶습니다." 서서는 조조에게 청했다. 우선 어머니의 무사함을 두 눈으로 보고 싶
었기 때문이었다. 조조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자애롭게 말했다.
  "공의 노모는 정욱으로 하여금 조석으로 불편  없이 지내시게 하였소. 오늘 공
이 온다기에 저쪽  당에 모시도록 했으니 곧 뵙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제부터는 
오래도록 곁에 모시고 아들된 도리를 다하시오. 나  또한 공 곁에서 유익한 가르
침을 받고 싶소."
  "승상의 자비를 입어 이 서서는 실로 감격할 따름입니다." 서서가 다시 고마움
을 표하자 조조가 넌지시 물었다.
  "공과 같이 고명한 선비가 어찌하여 몸을 굽혀 현덕과 같은 자를 섬겼소?"
  "저는 일찍이 사정이 있어 강호를 떠돌아다니다 우연히 신야에서 유현덕을  만
나게 되어 두터운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제 노모가 승상의  돌보심을 받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으니 실로 부끄럽고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공은 노모를 뵙도록 하시오." 조조가 서서에게 말했다.  서서는 절하며 물러났
다.
  "저 집에 계십니다." 길을 안내하는 자가  별당에 들어서자 정결한 마당 한 구
석에 있는 집을 가리켰다. 그  집을 보자 서서는 벌써 가슴이 메이는 듯했다. 서
서는 당하에 엎드려 흐느껴 울며 문안을 드렸다.
  "어머님! 서가  왔습니다." 그러자 방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놀란 얼굴로 되레 
물었다.
  "아니, 네가 어찌하여 여길 왔느냐?"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근래 신야에서 유현덕을 섬기다가 어머님의 글을 받
고 밤낮없이 달려온 길입니다." 서서가 의아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글이라니 무슨 글 말이냐?"  서서는 출발 전에 신야에서 받은 서한을  어머니
에게 보이자 어머니는 돌연 성난 얼굴로 상을 치며 울부짖듯 꾸짖었다.
  "변변치 못한 자식이로다!  그래 이 어미의 뱃속에서 나왔으면서  나이 서른이 
되도록 아직 이 어미가 그런  글을 아들에게 쓸 사람인지 아닌지도 분간을 못한
단 말이냐?"
  "아니! 그럼 이 필적은 어머님이 쓰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서서가 놀
라 소리쳤다. 어머니가 준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너는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웠다. 커서는  세상을 유랑하기도 십수년, 세상의 
간난, 사람들의 고생도 모두 살아 있는 학문이라  여겨 어미는 외로움도 마다 않
고 학문과 덕을 쌓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이따위 거짓 글을 받고  그 진위도 가
려 보지 않은 채  주군을 버리고 오다니 이게 무슨 짓이냐?" 어머니의 꾸짖음은 
추상 같았다. 서서는  그제야 조조의 간계에 빠졌음을 알았으나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어머니의 꾸짖음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네가 효에 눈이 밝은  줄은 알겠다만 충에는 소경이 아니냐? 또한 이미 글을 
읽었으니 충과 효를 한꺼번에 다할 수 없다는 것도 알 줄 알았다만 그도 아니구
나. 어찌하여 조조가  천자를 속이는 역적임을 모른다는 말이냐?  지금 유현덕은 
한실의 맏아들이요, 영재가 빼어나실 뿐 아니라  인의를 행하니 백성들도 흠모하
고 있다. 그런 주군을  섬김은 이 어미도 영예라고 여겼거늘 어찌하여  한 번 섬
긴 주군을 버리고  말았느냐? 이제 거짓 글에 옳은  길을 버리고 더러운 누명을 
썼으며 조상을  욕되게 했으니 내 무슨  낯으로 너를 보겠느냐!"  서서는 엎드린 
채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몸을 떨며 흐느끼더니 문
득 일어나 병풍  뒤로 모습을 감춰 버렸다. 서서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어머니의 
훈계를 되새기며 자신의 가벼운 행동을 뉘우치고  눈물을 흘렸다. 서서가 한동안 
기다려도 어머니가 나오지 않자 몸을 일으켜 병풍 쪽으로 가려는데 하인이 달려
나왔다.
  "자당께서 대들보에 목을 매셨습니다." 서서가 놀라 달려갔으나 어머니는 이미 
숨진 뒤였다. 서서는 차디찬 어머니의 유해를  안고 울부짖다가 혼절하여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뒷날 사람들이 서서의 어머니를 기려  지은 시 중에 이런 구절
이 있었다.
  어질구나 서서의 모친 천추만대 빛나리라.
  절개를 지켜 깨끗하고 집 다스려 덕이 있네.
  자식 가르침에 힘쓰고 자신의 고난 달게 받네.
  높은 기상 산과 같고 장한 의기 하늘 같네.
  조조는 서서의 어머니가 자결한 것을 알자 사람을 조문하게 하고 몸소 영전에 
나와 제물을  올렸다. 그리고 며칠 뒤  겨울 바람이 몰아치는 허도  교외의 남쪽 
양지 바른 곳에 훌륭한 묘지를 만들게 했다.  조조가 서서를 위로하여 장사를 지
내 준 것이었다.  이때 조조는 다시 남쪽으로  군사를 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여러 모사를 불러 이 일을 의논하는데 순욱이 나서며 말렸다.
  "날씨가 추워 군사를 움직이기가 어렵습니다. 따뜻한 봄이 되기를 기다려 크게 
군사를 내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그 동안 큰  연못을 만들어 수군을 
조련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조조도 한겨울에 군사를  움직이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던 터였다.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순욱의 말을 좇는 대
신 수군을 훈련하기  위해 장하의 물을 끌어들여 현무지란 큰  호수를 만들었다. 
그 호수에서 수군을 조련하며 뒷날  장강을 건널 대비를 하며 봄이 되기를 기다
리고 있었다. 한편 유비는  서서와 헤어지고 난 후 그가 일러  준 제갈량을 찾아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갈량에게 줄 예물이 다 준비되었을 때였다. 성
문을 지키는 군사 한 명이 달려와 알렸다.
  "어떤 노인 한 분이 와서 주공을 찾고 계십니다." 유비가 그 군사에게 물었다.
  "행색이 어떻더냐?"
  "높직한 관을 쓰고 손에는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있었습니다. 눈썹이 희고, 얼
굴이 복숭아 꽃같이 붉은데 언뜻 보기에도  범상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에 
유비는 얼른 머리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혹시  그 사람 공명이 찾아온 것이 
아닐까?' 유비는 의관을  갖추고 찾아온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몸소 나가 맞으니, 
그는 뜻밖에도 수경 선생 사마휘였다.
  "아아, 선생님이셨습니까?"  유비는 그가 제갈공명은  아니었지만 몹시 반가웠
다. 서서가 가고 없는 지금 앞일에 대해 큰  가르침을 줄 만한 분을 만난 기쁨에 
유비는 반갑게 사마휘를 당상으로 맞아들였다.
  "하직한 뒤로 군무에  얽매여 선안을 뵈옵지 못했습니다.  한 번 찾아뵈오려던 
중 먼저 왕림하셨으니 늘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 크게 위로됩니다." 사마휘는 고
개를 저으며 말했다.
  "요즈음 이곳에 서원직이 와 있다기에  내쳐 한번 만나고자 왔소이다." 사마휘
의 말에 유비는 힘없는 목소리로 그간의 일을 말했다.
  "조조가 서원직의 자당을 데려다 감금했었습니다.  이에 서원직은 자당의 글을 
받잡고 급히 허창으로 갔습니다." 유비의 말에 사마휘는 안타깝다는 듯이 탄식해 
마지않았다.
  "허허......, 간계에 넘어갔구나!" 유비가 사마휘의 탄식에 놀란 얼굴로 물었다.
  "간계에 넘어가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원직의 어머니라면 나도  잘 알고 있소. 그 부인은 보기  드물게 현명한 분이
오. 만약 위험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글을 보내 아들을 부를 분이 아니오. 그 글
은 필시 거짓으로 누가  대신 필적을 흉내내어 쓴 글일 것이오.  그런데 만약 원
직이 가지 않았더라면 그 노모는  무사했을 것을 원직이 갔기 때문에 그 노모는 
살아 있지 않을 것이오."
  "그건 또 어찌 된  까닭이십니까?" 유비로서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말이었
다. 사마휘는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서원직의 어머니는 의기가 높은  분이니 그 아들을 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어미 때문에  아들이 마음에도 없는 곳으로 오게 되었으니  필시 스스
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오." 사마휘가 보기라도 한  듯이 헤아렸다. 유비는 이내 
말뜻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비가 잠시  침통한 얼굴로 있다가 사마휘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실은 원직이 떠날 때 남양의 제갈공명을 천거하고 갔습니다. 떠나는 마당이라 
자세한 것을 물어 볼 틈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그 말에 
사마휘는 실소하더니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원직이 떠나는 주제에 쓸데없는 말을 해서 남에게 폐를 끼치려 들다니... 변변
치 못한 자가 아닌가?"
  "선생님께서 어인 일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공명이나 또 우리 도우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말이오. 공명이 없으면 우리 도
우들은 모두 쓸쓸하게 여길 것이오."
  "도우라고 하셨는데 그분들은 누구누구이십니까?"
  "박릉의 최주평, 영주의 석광원, 여남의 맹공위,  그리고 서원직 그 밖에 열 손
가락도 남을 정도외다."
  "다 각기  저명 인사이십니다만 일찍이 공명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없습니
다." 유비는 사마휘가 거명한 이름 중에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도 있었다. 그러
나 제갈공명은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그 사람은 읾 내놓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오.  이름 아끼기를 가난한 자가 구슬
을 가진 것과 같이 여긴다고나 할까......" 사마휘는 말끝을 흐렸다. 유비는 지난번
처럼 사마휘가 대답을 피할까 염려하며 급히 물었다.
  "도우분들 중에 공명의 학식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의 학문은 높을 것도 없고 낮을 것도  없소이다. 모든 학문에 걸쳐 그는 대
략을 터득하고 있소.  다만 법가와 병가만을 깊이 파고들고 있으며  그는 스스로
를 춘추 전국 시대의 관중과 악의에  비견하고 있소이다." 유비가 문득 감탄하며 
다시 물었다.
  "어찌하여 이곳 영천 땅에 명사와 현인이 이토록 많습니까?"
  "지난날 은규라는 이가 있어  천문에 두루 잘 통했소. 그가 이르기를 '뭇 별이 
영천 지방 위에 모여 있으니  그 땅에 반드시 어질고 재주 많은 선비가 많이 나
리라'고 한 적이 있소. 그뿐만 아니라 여기는 장강의 중류에 해당되며 촉, 오, 위
의 3대륙의  경계와 그 중축에 해당되오.  이런 지형적인 위치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외다."
  "선생의 말씀을 듣고 보니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이 어디쯤인가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소이다. 그것을 분명히 아는 것은 다음  걸음을 내딛는 데 있어 무엇보다 
유의해야 할 일이오. 공을 이 땅에 오도록 만든 것은 공 자신의 뜻도 아니오, 그
렇다고 다른 사람의 힘에 의한  것도 아닐 것이오. 커다란 자연의 힘, 시대의 흐
름을 따라 흘러온 것이오. 그러나 공이 머물고  있는 곳에는 하늘의 뜻인지 아니
면 우연인지 알 수 없으나 지금 햇볕을 받아 꽃을 피우려는 봄기운이 왕성한 곳
이외다." 사마휘의 말에 유비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이 말에는 유비가 가
슴 속에 품고 있는 뜻을 일깨워 힘을  돋우는 암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유비와 사마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관우가 불쑥 끼여들었다.
  "듣기로 공명은 스스로  관중, 악의에 비견하고 있다고  합디다. 그 두 사람은 
지난날 그 공이 천하를 뒤덮었다고  하온즉 스스로를 그 두 사람에 견줌은 실로 
지나침이 아닙니까?" 관우의 물음에  사마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정색을 하
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스스로 그 두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기는커녕 오히려 
모자람이 있소. 나는 차라리  또 다른 두 사람과 비교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
소만......" 관우가 다시 물었다.
  "다른 두 사람이라면 누구를 말씀하시겠습니까?"
  "주나라 8백년을 일으킨 태공망, 혹은 한의  창업 4백년 기초를 닦은 장자방이
오." 실로 깜짝 놀랄  만한 소리였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사
마휘는 몸을 일으키더니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유비가 황급히 떠나려는 사마휘
를 만류했다.
  "선생님, 천천히 쉬셨다가  가십시오." 유비가 고개를 숙이며 청했으나  사마휘
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느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며 큰 소리로 웃더니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아, 와룡 선생, 그 주군을 얻었다고는  하나 아깝도다. 그 때를 얻지 못하였
도다!" 사마휘는 유비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큰  소리로 웃으며 표연히 사라지
고 말았다. 수경 선생이  떠나가자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시종들을 거느리고 
제갈량에게 줄 예물을 가지고 따르게 하며 길을  떠났다. 융중으로 나가 멀리 맞
은편 산기슭을 바라보고 가는데 농부  몇 사람이 호미로 김을 매며 노래를 부르
고 있었다.
  푸른 하늘 둥그런 덮개 같고 대지는 바둑판과 같구나.
  사람들은 검은 돌 흰돌로 나누어 오가며 영욕을 다투네.
  영화로움은 스스로 안일함에 머묾이요 욕된 자 번거롭구나.
  남양에 숨어서 사는 이가 있어 높이 든 잠 오히려 모자라네.
  유비가 그 노래를 귀를 기울여 듣고 있다가 농부에게 물었다.
  "그 노래는 누가 지은 것인가?"
  "와룡 선생께서 지은 것입니다."
  "그 와룡 선생의 댁은 어딘가?" 농부는 손을 뻗어 언덕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산 남쪽에 높은 언덕이 하나 있는데 그 언덕을 와룡강이라 합니
다. 거기서 조금 낮은 곳에  숲이 있습니다. 그 숲 속에 사립문이 있는 초가집이 
바로 와룡 선생 댁입죠." 유비는 농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곧장 말을 몰았다. 3, 
4리 정도를 달리자 길은 이미 산록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겨울 나뭇가지는 푸른 
하늘을 훤히  드러냈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맑게  퍼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작은 
폭포 소리가 나는가 했더니  '솨아솨아'하며 솔바람 소리가 새어 나오는 한 그루 
커다란 소나무가 보였다. 얼마 가지 않아 높고  긴 언덕이 나타났는데 그 경치가 
과연 청아하고 맑았다. 후세 사람들이 그곳을 이렇게 노래했다.
  양양성 서쪽 20리에 길다란 언덕이 냇가에 누웠네
  높고 높은 언덕 구름을 이고 흐르는 물은 돌 속까지 스며드네
  그 형세 바위에 용이 튼 듯하고 형상은 지친 봉이 송림에 잠긴 듯
  싸리문 반쯤 닫혀 초려를 가렸는데 어진 선비 누워 일어날 줄 몰랐네.
  대숲은 푸른 병풍을 두른 듯하고 울타리엔 사철 떨어진 꽃향기 풍기네
  책상 위에 고서가 그득하고 찾는 이 중에 속된 자가 없더라
  잔나비 철따라 과일 바치며 문 지키는 학은 경소리 듣네
  주머니 속 거문고가 비단에 싸여 있고 벽에 걸린 칠성검에 솔그림자 어리네.
  초려 안 와룡 선생 홀로 그윽하고 고우니 한가하면 손수 밭 갈고 씨 뿌렸네
  봄 우레 소리에 꿈 깨기를 기다려 한 소리 크게 외쳐 천하를 정했네.
  대로 엮은 울타리를  두른 사립문 곁에서 유비는 말에서 내렸다.  유비가 문을 
두드리자 사립문 안에서는 한 아이가 나오더니 물었다.
  "어디서 온 뉘신지요?"
  "나는 한나라 좌장군 의성정후, 영은 예주의목 신야의 황숙, 유비, 자는 현덕이
라고 한다."
  "그렇게 긴 이름은 외울 수가 없습니다."
  "허허, 내가 미처 몰랐군. 그냥 신야의 유비가 왔다고 일러라."
  "그런데 선생님은 오늘 아침 일찍 나가셔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어디로 가셨는가?"
  "자취가 일정하지 않으시니 가신 곳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 언제쯤 돌아오시느냐?"
  "돌아오시는 때도 일정치가 않으십니다. 아마 3, 4일, 혹은 열흘 만에 돌아오시
기도 합니다. 유비가  아이의 말에 낙담하여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장비가 
불쑥 나섰다.
  "안 계시다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만 돌아가야지요." 관우도 장비의 말을 좇아 
한 마디 거들었다.
  "다음 날 사람이라도 보내서  미리 계신지 안 계신지를 알아보고 오도록 하시
지요." 유비는 잠시라도 더 기다려 보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하는 수 없이 아이에
게 말씀을 전하라  일러 놓고 언덕을 내려왔다. 수려하면서도 높지  않은 산에서
는 깨끗하고 맑으면서도  깊지 않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무성한  소나무와 대나
무가 서로 어우러져  푸른 숲에는 학과 원숭이가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수려하
고 맑은 그곳의 경치를 취한  듯 바라보며 언덕을 내려오고 있는데 문득 맞은편 
언덕 아래에서 한 사람이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이목이 수려하며 푸른 옷을 걸치고 머리에 두건을 썼으며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 
산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깊은 계곡에 고고하게 자라고  있는 향
기 높은 난과 같은 기품이 풍기는 사람이었다. '이분이야말로 제갈량 바로 그 사
람이다!' 유비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급히 말에서 내려 대여섯 걸음을 
걸어갔다. 마주 오던  그 사람도 유비가 말에서 내려 그에게로  다가오자 지팡이
를 멈추었다. 유비가 그에게 절을 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이 와룡 선생이 아니십니까?" 불쑥 유비가 묻자 그  사람은 당황해하며 
되물었다.
  "장군은 뉘시오?"
  "신야의 유비 현덕이라 합니다."
  "예, 당신이?"
  "선생께서는 공명 선생이시지요?"
  "아닙니다. 나는  공명의 친구인 박릉 땅  최주평이라고 합니다." 유비는  그가 
공명이 아님을 알자  적이 실망스러웠으나 이내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공
명의 친구라면 그 또한 높은 선비임에 틀림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존함은 오래 전부터 들었습니다만 이제 다행히 만나 뵙습니다. 원하건대 자리
가 마땅치 않으나마 잠시 앉으시어 한 말씀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유비의 청
에 최주평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숲 사이에 있는 돌 위에 자리를 정해 앉았
다. 관우와 장비도 옆에 앉았다. 최주평이 유비에게 먼저 물었다.
  "장군은 무슨 일로 공명을 만나러 오셨소?"
  "천하는 지금 크게 어지러우며 사방은 풍운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내가 공명을 
만나려 함은 사방에 평안을  도모하고 나라를 바로잡을 계책을 듣기 위해서입니
다." 그 말에 최주평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공은 어지러움을 바로잡으려 하심에 그 뜻을  두고 계십니다. 이는 어지신 마
음에서 비롯된 것이나 자고로 다스림[치]과 어지러움[난]은 그 변화가 무상한  것
입니다."
  "혹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라건대 어지러운  천하를 다스릴 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지난날 한 고조가 흰 뱀을 죽이고 의거를 일으켜 무도한 진을 정벌하여 어지
러움을 다스림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어 평, 애제의 2백여 년에 걸쳐 태평 세월이 
지속되다가 왕망의  찬탈로 어지러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광무제가  왕업을 
중흥하니 이는 다시  어지러움을 다스림으로 되돌린 것입니다. 그로부터  꼭 2백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천하가 어지러우니 바야흐로 다스림에서 어지러움으로 옮
겨 가는 시기가 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로부터 치가 다하면 난
이 일어나고 난이 일어난 후에는  다시 치로 돌아가는 순환 속에 역사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어지러움은 졸지에 다스려질 난이 아닙니다. 모두가 하늘
의 이치겠지요.  장군께서 제갈공명으로 하여금  하늘과 땅의 일을  살피게 하여 
천하를 평안케 하고 만민을 구하려고 하시는 것은 부질없이 몸과 마음을 헛되이 
소모하는 결과가 될까  두려울 뿐입니다. '하늘의 이치에  좇으면 편안하고, 하늘
의 이치를 거스르면  스스로를 괴롭히며, 하늘의 운수는 이치로써 막을  수 없고 
천명이 정한 바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옛말도 있지 않습니까?" 최
주평은 하늘의 뜻인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역설
하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유비가 그의 말을 받았다.
  "선생님의 말씀은 참으로  높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이  비는 한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몸으로 기우는 한실을 붙들어 세워야  함이 마땅한 도리라 하겠습니다. 
어찌 하늘이 정한  이치와 운수에만 맡기고 마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
까?" 유비가 모든 것을  하늘의 수와 명에 따라야 한다는 최주평의 말에 사람의 
도와 의지를 내세우며 되물었다.
  "나는 산야에 머물고 있는 일개 유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천하를 논할 처지가 
되지 못합니다. 마침  높고 밝은 질문을 받았기에 망령되이 말씀드린  것에 지나
지 않습니다." 최주평은 유비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그런 말로 얼버무렸다. 유비
와 더 이상 얘기를 주고받는 것이 부질없음을 느꼈음인지 최주평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유비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공손한 어조로 물었다.
  "오늘은 뜻밖에 좋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공명께서 어디로 가셨는지 
혹시 모르시겠습니까?"
  "나도 지금 공명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저  역시 알 수 
없으니 이대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유비가 다시 그에게 청했다.
  "선생을 모시고 함께 신야로 갔으면 합니다. 신야에서 높으신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최주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산야의 일개 유생은 본디 한가롭게 떠도는 것만 좋아할 뿐 세상의 공명을 얻
을 생각은 없습니다. 뒷날  다시 뵙기로 하겠습니다." 최주평은 그 말과 함께 길
게 절을 하더니 멀어져 갔다.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와룡강을 뒤로 하고 말
에 올라 신야로 향했다.  공명을 만나지 못했을 때부터 몹시 심술이  나 있던 장
비가 말을 몰며 투덜거렸다.
  "공명은 만나지도 못하고, 겨우 썩은 선비를  만나 쓰잘데없는 말만 듣게 되었
습니다." 유비가 그런 장비를 달랬다.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로서 할 수 있는 말이다. 반드시  하찮게만 여길 일이 
아니다." 그러자 관우가 유비에게 말을 가까이 대며 물었다.
  "지금 저 선비의 말을  주군은 옳은 말로 여기십니까?" 유비가 고개를  저으며 
씽긋 웃더니 말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그들 무리 중의 진리이지 천하에 통용되는 진리는 아닐 것
이다. 천하에는 수억의 민중이 있으며 초야에 묻혀  있는 선비나 인격이 높은 선
비는 그에 비해  손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는 얼마든지 
바라는 바와 뜻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최주평의 그런 지루한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듣고 계셨습니까?"
  "혹시 말 가운데 일언반구라도 세상을 구원하고 만민의 고뇌와 상통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유비가 신야로 돌아온 며칠 후, 사람을 공명의 집으
로 보냈다. 얼마 후 갔던 사람이 돌아와 고했다.
  "와룡 선생이 돌아와 계십니다."  유비는 곧 떠날 준비를 하도록 일렀다.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장비가 불평했다.
  "천한 시골 선비를 데리러  이렇게 몸소 다시 가시다니 백성들이 보아도 이상
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사람을 보내  공명을 성으로 불러들이면 그만이지." 유비
가 장비를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는 맹자께서 하신 말씀도 모르느냐? '어진이를 보려 하면서 도로써 맞지 않
으면 이는 그 사람을 불러 놓고도 문을  닫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았느냐? 공명
은 당대의 대현인데 어찌  그를 찾아보지 않고 불러다 볼 수 있겠는가?" 유비의 
호통에 장비가 입을 다물었다. 유비가  말을 타자 관우, 장비도 말에 올라 그 뒤
를 따랐다. 때는 12월 중순이었다. 한겨울이라 날씨는 몹시 추워 삭풍은 살을 에
는 듯했다.  회색 하늘에는 눈발이 분분히  휘날리더니 순식간에 길을 뒤덮었다. 
솜덩이 같은 눈발은 세찬 바람과 함께 더욱 거세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삼고초려와 제갈공명
  마침내 공명을 만난  유비는 한실을 구하고 난세를 해쳐 나갈  지혜를 구한다. 
유비의 삼고초려에 감복한 공명은 혜안을 열어  천하삼분의 계를 설명한다. 또한 
유비의 눈물어린 호소에 출려를 결심하고 공명은 와룡강을 걷는다.
  일행이 융중 마을에 가까이 갈  무렵에는 눈에 뒤덮여 백옥같이 흰 산이 병풍
을 두른 듯했고, 숲은 온통  은빛으로 꽃을 피운 듯했다. 말발굽이 눈에 묻혀 옮
기기가 힘든 듯 말은 허연 입김을 허공에 내뿜었다.
  "젠장 엄청나게 춥군.  대체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몰아치는 눈보라에 
장비는 얼굴을 찌푸리며 혼자 투덜거리더니 유비에게 다가가 말했다.
  "형님, 날은 춥고  땅이 얼어붙어 싸움 중에도 이런 때에는  잠시 쉬는 법입니
다. 무익한 시골  선비 하나를 이렇게 고생해 가며 찾아야만  합니까? 차라리 신
야로 바람과 눈을 피한 후에 다시 찾도록 합시다."
  "그럴수록 공명에게 나의 성의를 보이고 싶네. 추위가 두렵거든 아우들이나 돌
아가게." 유비가 관우, 장비를 보고 잘라 말했다. 무안해진 장비가 얼굴이 뻘게지
며 말했다.
  "싸움터에서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어찌 이까짓 추위를 두려워하겠소? 다
만 형님께서 쓸데없이 고생만 할 것 같아 걱정이 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 소리 할 것 없네. 그저 따라오기만 하게."  유비가 언성을 높이
자 관우, 장비는 잠자코  뒤따랐다. 이윽고 공명의 초려 가까이에 이르자 길가의 
술집에서 큰 소리로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그 노랫말이 범상치 않아 유
비가 말을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장사가 아직도 공명을 이루지 못하니 오호라 아직 봄을 맞지 못한 탓이구나.
  그대 보지 못했는가
  동해의 늙은이 때늦게 높이 되어 문왕과 수레 타고 함께 간 것을.
  8백 제후 기약 않고 함께 모여 흰 물고기가 배에 들어 맹진나루 건넜네.
  목야벌 싸움에서 적을 무찌를 때 매처럼 떨친 용맹 무신 중에 으뜸이었네.
  쩌렁쩌렁한 그 목소리는 피가 약동하는 듯한 의기를 느끼게 했다.
  그대는 못 보았나 고양 땅 술꾼이 초야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을.
  절하며 일어나니 망탕산의 융준공이네.
  왕패의 고담 사람들은 놀라서 몸씻음도 잊고 그 위풍 흠모하네.
  제나라 일흔두 성 단숨에 얻으니 천하에 그 공적 뉘라서 따르리오.
  유비가 우두커니 눈발에 젖는 것도  잊은 채 홀린 듯이 귀기울이고 있는데 노
래가 끝났다.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곧이어 그 노래를 이어받는  음조가 탁자
를 치는 소리와 함께 흘러나왔다.
  고조 황제 칼 뽑아 천하 평정하고 창업의 기반 닦은 지 4백 년.
  환, 영제에 이르러 화덕이 쇠하니 간신 적자 멋대로 재상 넘보네.
  푸른 뱀이 용상에 떨어지고 요사스런 무지개가 옥당에 비끼네.
  사방에서 도적 떼 개미처럼 모여들고 도처에서 간웅들이 매처럼 활개치네.
  괴로워 장단치고 소리치며 촌주막에 앉아 술로 시름 달래네.
  이 한 몸 조용히 지내니  종일 평안하구나 부질없이 천추에 이름 전해 무엇하
리!
  노래가 끝나자마자 큰 웃음소리를 터뜨리며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가 어찌나 크고  우렁찬지 대들보의 먼지라도 털 것 같았다.  유비는 문
득 말에서 내려 주막 안으로  들어갔다. '필시 둘 중의 한 사람은 와룡 선생이리
라.' 술집 안에는 판자로 만든  기다란 탁자에 기대어 두 선비가 술을 마시고 있
었다. 불쑥 들어선 유비를 보자 두 사람은 놀라며 쳐다보았다. 한 사람은 모과꽃
처럼 주기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으나 용모가 청결하고 군자의 기풍이 엿보
이는 노인이었다. 또 한  사람은 넓직한 등을 보인 채 노인과  마주하여 술을 들
고 있는 얼굴이 희고 수염이 긴 장년이었다.  유비는 정중하게 주흥을 깨뜨린 무
례를 사과한 후 그들에게 물었다.
  "두 분 중에  와룡 선생이 안 계십니까?"  그러자 수염을 길게 드리운  사람이 
유비에게 되물었다.
  "이런 눈 속에  와룡을 찾으러 오셨다니 대체  무슨 일로 와룡을 찾으십니까? 
그리고 장군은 뉘십니까?"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한의 좌장군 예주목 유현덕이라는 사람입니다.  와룡 
선생을 찾는 까닭은  난세를 다스리고 백성들을 구하는  길을 묻기 위함입니다." 
유비가 정중한 어조로 대답하자 수염이 긴 사람이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럼 신야의 성주가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 길을 가다  밝고 큰 음성으로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고 짐작컨대 
와룡 선생이 아닐까 하여 들어왔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유감스러우나 우리는 둘  다 공명이 아닙니다. 다만 공명의 친구일  뿐입니다. 
나는 영주의 석광원이고,  저 사람은 여남 땅의  맹공위라고 합니다." 유비는 그 
두 사람  중에 공명이 없었으나 실망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양양에서 이름난 
선비로 유비의 귀에 익은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두 분의 높은 이름을  들은 지 오래였으나 뵈올 길이 없더니 여기서 만
나 뵙게 되었습니다. 마침 끌고 온 마필이 있으니 두 분께서 저와 함께 와룡 선
생의 장원으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높은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
자 석광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우리는  신야에 틀어박혀 게으름이  몸에 밴 사람들입니다. 백성을 
편안케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알지 못하니 더 이상 묻지 마시고 어서 와룡
이나 찾도록 하십시오." 두  사람은 유비의 청을 거절했다. 유비도 더 이상 청하
지 않고 두 사람과  작별을 고한 후 선술집을 나와 공명의  초려로 향했다. 공명
의 집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사립문을 두들기자 지난번에 만났던 그 아이가 
또 나왔다.
  "선생께서 오늘은 계시냐?"
  "예. 오늘은 어쩐 일인지 초당에  계십니다." 유비는 관우, 장비를 데리고 얼른 
그 아이가 가리키는 초당 쪽으로 향했다. 서재  비슷한 당이 하나 있었고 마루도 
처마도 온통 눈으로 덮인 채 인기척이 없이  고요했다. 당의 현판에는 큰 글귀가 
한 구절 적혀 있었다.
  욕심 없이 마음을 깨끗이 가져 뜻을 밝히고
  편안하고 고요히 앞일을 생각한다.
  유비가 그  글귀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안에서 시를 읊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리에 유비는 자신도 모르게 문 옆으로  다가가 초당 안을 가만히 엿보았다. 
안에는 적연히 무릎을  꿇은 채 화로를 앞에 두고  한 젊은이가 앉아 시를 읊고 
있었다.
  봉황이 천길 하늘도 날건만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이지 않네.
  선비가 한 구속에 숨어서 살지라도 제 주인 아닌 이를 섬기지 않는다.
  스스로 밭갈기를 즐기고 이는 내 집을 사랑함이네.
  거문고와 책 읽어  무료함 달래며 오로지 하늘이  내리실 때가 오기를 기다리
네.
  유비는 살며시 층계에 올라가 마루 끝에 서  있었다. 흥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조금 있으니  노래가 끝나고 더  이상은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주무십니까?" 유비는  그제야 기척을 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
했다. 이어서 안에서 문이 열리고 유비는 초당으로 들어가 인사했다.
  "오래도록 선생의 존명을  흠모해 왔으나 인연이 닿지  않아 뵙지 못했습니다. 
실은 저번에 서원직의 권유로 선장을  찾은 적이 있으나 뵐 기회를 얻지 못했습
니다. 오늘 눈과 바람을 맞으며 이렇게 왔다가  친히 존안을 뵙게 되었으니 이보
다 더한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황망히 옷매무새를 바로 하며 답례
했다.
  "장군은 신야의 유예주가 아니십니까?  오늘도 제 가형을 만나러 오신 것이겠
지요?" 유비가 그 말에 깜짝 놀라 다시 물었다.
  "그럼 선생도 또한 와룡 선생이 아니시오?"
  "예. 저는 와룡의 아우 되는 제갈균입니다. 저희들은 삼 형제로 장형은 제갈근
이라 하며 지금은  오 손권의 막빈이 되어  있습니다. 와룡은 제 둘째형입니다." 
유비는 그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공명의  아우 제갈균은 유비의 그런 모습
이 딱해 보였던지 송구스런 얼굴로 말했다.
  "먼길을 오셨는데 번번이 결례를 거듭해서...  오늘 마침 최주평 선생이 오시어 
함께 출타하고 안 계십니다."
  "어딜 가셨을까요?"
  "어느 날은 강호에  배를 띄워 노닐기도 하고  어느 날은 산사를 찾아 승문을 
두드리시기도 합니다. 또 벽촌의 벗을 찾아 산  속 굴에서 거문고와 바둑을 즐기
거나 시를  읊으며 흥을 돋우시기도 합니다.  하여 통 왕래를 추측할  수 없으니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 제갈균은 딱하다는  듯이 바깥에 내리는 눈을 보며 대
답했다. 유비는 터져 나오는 탄식을 억누르지 못했다.
  "어찌하여 유비의 연분이 이토록 박하다는 말인가? 두 번이나 찾아와도 뵐 수
가 없다니......" 유비의 탄식에 제갈균은 보기가 민망했던지 말 없이  옆방으로 갔
다. 조그만 질화로에 불을 담아 차라도 끓여 대접하려는 것 같았다. 장비가 나서
며 불퉁거렸다.
  "형님, 어차피 만나지 못할 바에야 그만 말에 오르시지요. 어서 돌아갑시다."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어찌 말 한 마디도 듣지 않고 그냥 갈 수가 있단 말인
가? 아우는 잠깐만  더 기다리게!" 유비가 장비에게 엄한 눈길로  꾸짖고는 마침 
차를 끓여 온 제갈균에게 물었다.
  "와룡 선생은 육도를 외우시고  삼략을 밝으시며 또한 매일 병서도 읽는다 하
였습니다. 과연 그러하시오?"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제갈균은 유비의  물음에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바깥은 지독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장비가  뜰안에서 큰 소리로 또다시 
재촉했다.
  "형님, 본인도 아닌데 물어 봤자 무슨 소용이시오? 눈보라가 더 기승을 부리니 
날이 저물기 전에 이만 돌아갑시다."
  "닥치지 못하겠느냐!" 유비가  장비를 뒤돌아보며 언성을 높여 꾸짖었다. 제갈
균이 장비를 보더니 유비에게 권했다.
  "이다지도 눈보라가 심하니 저의 가형께서는  아마 돌아오기 어려울 듯합니다. 
뒷날 가형이 돌아오시는 대로 찾아가 뵈라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유비가 고개
를 저었다.
  "아닙니다. 어찌 감히 선생께서 오시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훗날 이 비가 다
시 찾도록 하겠습니다. 지필을  빌려 주시면 선생께 글이나 한 장  남겨 제 뜻을 
전할까 합니다." 유비가  청하자 제갈균은 책상 위에  있는 문방사우를 가지런히 
유비 앞에 옮겨 놓았다. 유비는 추위에 언 붓을 입김으로 녹여 가며 운전지(구름
무늬가 있는 종이)에 글을 써내려 갔다.
  이 비는 오래 전부터 선생의 높은 이름을  사모하여 왔습니다. 이에 두 차례나 
왔다가 뵙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려니 실망과 울적한 심정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 유비는 한실의  후예로 태어나 외람되게도 분에 넘친 벼슬을  지내고 있으나, 
살펴보건대 지금 조정은  힘이 없어 기강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또한  자칭 영웅
들은 나라를 어지럽히며  악한 무리가 군주를 거스리고  있으니 이 비는 가슴이 
메어지는 듯하고 간담이 찢어지는 듯합니다. 그러나  나라를 바로잡고 도탄에 바
진 만민을 구하고자 하는 정성은  있으나 경륜과 방책이 없으니 실로 가슴이 답
답할 따름입니다. 엎드려 비오니 선생께서 어질고  자비로운 마음과 충의로운 기
개를 펴시어 저 여망(강태공)의 빼어난 재주와 자방(장량)의 뛰어난 책략을 베푸
시기 바랍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천하를 바로잡고 사직을 위해서도  더 이
상의 다행이 없겠습니다. 한 번 뵙고자 했으나  거듭 이루지 못했으니 먼저 글로 
선생께 뜻을 펴  보입니다. 다시 목욕재계하여 직접 존안을 뵈온  후에 말씀드리
겠습니다. 선생께서는 제 뜻을 굽어 살펴 주시기만을 바랄 따름입니다.
  유비가 글쓰기를 마치고 문방사우를 제갈균에게 건네 주었다.
  "선생이 돌아오시거든 이  글을 전해 주십시오." 유비는 뜰로  내려와 말 위에 
올랐다. 제갈균이 허리를 굽혀 절하자 유비도 작별을 고한 뒤 말을 몰았다. 유비
가 문 밖으로 나와 길을 떠나려는데 제갈균과 함께 배웅 나온 아이가 문득 손님
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
  "노선생님이시다!" 아이는 기다리다  못해 달음질쳐 갔다. 유비 일행도 아이를 
뒤따라갔다. 공명의 집 긴 울타리가 끝난 곳에  좁은 여울에 걸린 조그만 다리가 
있는데 한  사람이 그 다리를 건너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은  두건을 쓰고 
여우 가죽 옷을 입었는데 아이가 술을 담은  호리병을 들고 뒤따르고 있었다. 울
타리 모퉁이에서 매화가지가 바람에 떨고 있었다.  그 사람은 그것을 쳐다보더니 
시흥을 느낀 듯 소리내어 시 한 수를 읊었다.
  하룻밤 북풍이 몰아치더니 만 리에 먹구름이 뒤덮였구나.
  가없는 하늘에는 눈송이 휘날리고 산천은 온통 흰 눈으로 덮였구나.
  낯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옥룡이 어우러져 싸우는 듯하고
  옥비늘 떨어지듯 어지럽게 날아 한순간 우주에 가득하구나.
  백발의 쇠약한 노옹 황천의 은혜 느끼며
  나귀 타고 작은 다리 건너며 홀로 매화 질까 근심하네.
  유비는 그 사람의 시 읊는 소리를 듣자 그의 고아한 지조를 엿보며 이 사람이
야말로 틀림없는 공명일  거라고 여겼다. 유비는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며 말했
다.
  "오래 전부터 기다렸습니다. 선생님 이제 돌아오십니까?" 그 사람은 유비의 말
에 깜짝 놀라 말에 내려 답례한 다음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와룡의 장인  황승언이라 하오. 귀공은 뉘시오?"  이번에도 역시 사람을 
잘못 짚은  것이었다. 그는 공명의 아내  황씨의 친정아버지였다. 유비는 실수한 
것이 민망하여 얼른 다른 말로 둘러댔다.
  "읊으신 싯귀가  실로 고상하고 절묘했습니다." 유비의  말에 황승언이 겸양의 
말을 했다.
  "이 늙은이가 사위집을  드나들다 양부음(공명이 지은 시)을 보게  되어 그 중
의 한 구절을 읊었던  것이외다. 그러나 귀한 손님이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유비는 그가 공명의 장인이라는 말에 우선 궁금한 것부터 물어 보았다.
  "그러십니까. 저는 신야의  유현덕입니다. 와룡 선생의 초려를 두 번  찾았습니
다만 뵙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대체 사위님은 어디를 가셨을까요?"
  "글쎄. 나도 지금 막  사위를 만나러 오는 길이오. 오늘도 집에 없습니까?"  황
승언은 유비에게 되묻고는 눈을 맞으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딸이라도 만나고 가겠습니다. 굉장한 눈이군요.  도중에 
비탈길을 조심하십시오." 유비는 하는 수 없이 황승언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말 
위에 올랐다. 황승언도 다시 나귀에 오른 뒤 공명의 초당으로 향했다. 눈도 바람
도 점점 더 세차게 불어 그치지 않았다.  지척을 분간키 어려운데다 눈마저 얼어
붙는 길이 이만저만 심난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올  때 들렀던 선술집이 있는 마
을까지 왔을 때 이미 날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제아무리 궁둥이가 무거운 호주
가라 하더라도 낮에  본 석광원이나 맹공위는 가고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때 선
술집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 왔다. 사투리까지  뒤섞인 노랫소리
는 유비의 귀에도 들려 왔다.
  마누라 고르길랑 대충 하슈 공명이 좋은 뽄 아닌가베.
  고르고 골라 봤자 추녀 아승 아닌가베.
  노래가 끝나자  재미있다는 듯이 한바탕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명의 
아내가 못생겼음은 이 노래가 말해 주듯 마을에도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모양이
었다. 조금 전 여울 다리에서 만난 노인이 신부의 아버지다. 그 황승언조차도 딸
을 시집보낼 때 미리 공명에게 알리고 출가시켰다지 않은가.
  "내게 딸이 있긴 있는데 살결은 검고  머리카락도 붉어 용모는 박색이지만, 재
질은 자네 배필로 손색이 없을 걸세." 어버이로서도 면구스러워할 정도로 추물이
었던 모양이다. 술집 앞을 지나며 그 노래를  들은 장비가 빈정대듯 유비에게 말
했다.
  "저 노래를 들어 보십시오. 그의 부인을  대강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새댁
에게 정나미가 떨어져 공명 선생은 가끔 딴 곳으로 미인을 보러 다니는 것일 테
지요." 그러나 유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세찬 눈보라를 맞으며 미끄러
운 얼음길 위에서 고개를 돌려 와룡강을  뒤돌아보았다. 유비의 얼굴에는 하늘을 
뒤덮은 검은 눈구름처럼  원망과 수심의 그늘이 어둡게 뒤덮여 있었다.  뒷날 사
람들이 유비가 눈보라를 무릅쓰며 공명을 찾았던 일을 읊었던 시가 있다.
  눈보라 무릅쓰고 어진 이 찾았다가 만나지 못하고 헛되이 돌아옴이여.
  시내의 다리 산돌이 미끄러운데 말안장에 스며드는 찬바람으로 길은 멀구나.
  머리에는 배꾳 같은 흰 눈 쌓이고 얼굴에는 솜버들 같은 눈 휘날린다.
  말 세워 고개 돌려 아득히 바라보니 찬란한 은빛으로 와룡강 뒤덮이네.
  유비 일행이 신야로 돌아와 군사를  조련하며 고을 일을 돌보는 사이 어느 새 
그 해도 저물어  버리고 말았다. 해가 바뀌어  건안 13년. 신야에서 해를 보내고 
신년을 맞이하는 동안에도  유비는 하루도 공명을 잊은 적이 없었다.  유비는 봄
을 맞는 제를 올린 후 공명을 뵙기 위해  복자(점치는 사람)에게 명해 길일을 택
하게 하고 사흘 동안 부정을 멀리하며 몸을 깨끗이 했다.
  "와룡 선생을 찾으리라!" 유비가 관우, 장비를 불러 이렇게 말하자 둘 다 언짢
은 얼굴이었다. 장비는 원래부터 못마땅히 여긴  터였으나 이번에는 관우마저 나
섰다. 시골 선비 주제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성주가 두 번이나 그를 찾았음에도 
아무런 답례도 없으니  그의 심사가 뒤틀렸다. 관우가 참지 못하고  유비에게 말
했다.
  "형님께서는 이미 두 번이나  그를 찾았으니 그만하면 오히려 예가 지나친 바 
있습니다. 저희들 생각으로는 제갈량은 공연히 이름만  높았지 그 재주가 보잘것 
없는 자여서  형님과 만나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인물에 현혹되어 
괜히 마음을 쓰시면 오히려 남들이 비웃을까 두렵습니다."
  "그렇지 않다." 관우마저 나서 말리자  유비는 관우를 바라보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아우는 [춘추]를 읽지 않았더냐? 지난날 제나라의 환공은 제후의 몸으로 동곽
에 사는 한낱 야인을 만나기 위해 다섯 번이나 찾아가지 않았던가? 하물며 그보
다 더 어진 이를 만나려고 하는데 그만한 정성이 어찌 지나치다 할 것인가?" 유
비의 무거운 목소리에 관우는 더는 말리지 못하고 장탄식했다.
  "형님이 현인을 사모하기란  마치 강태공을 찾은 문왕과  같습니다. 그 지극한 
정성에 감탄할 뿐입니다." 그러자 장비가 얼굴이 붉어지며 끼여들었다.
  "아니 문왕이 무엇이며 태공망은 또 어떤 작자입니까? 우리 셋이 무를 논하는
데 천하에 감히 맞설 놈이 어디 있느냐  말이오. 그런데 일개 촌부에게 삼고지례
(세 번이나 예를 다함)를  다하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오. 공명을 오게 
하려면 밧줄 하나만 있으면 족합니다. 내게  명만 내리신다면 당장이라도 묶어서 
끌고 와 가형께 뵙도록 하겠습니다." 장비가 또 분을 삭이지 못하며 목소리를 높
이자 유비도 언성을 높여 꾸짖었다.
  "아우는 지난날 주의 문왕이  위수에 가서 강태공을 찾은 때의 고사도 모르는
가? 강태공은 낚시를 드리운 채 문왕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문왕은 강
태공의 뒤에 선 채  낚시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 강
태공도 그 성의에 마음이 움직여 마침내 문왕을  보좌할 생각이 들었고, 그 공적
이 주대  8백 년의 기초를 세웠다.  옛사람이 현인을 공경하기가  다 이러했거늘 
너는 어찌 이리 망발을 할 수 있다는 말이냐? 이번에 가기 싫거던 너는 오지 말
고 운장만 데리고 가겠다." 장비를 크게 꾸짖은 유비는 말 위에 올랐다. 호된 꾸
지람을 들은 장비는 불끈하여 부어 있었으나 관우가 아무 말 없이 말 위에 오르
자 풀이 죽어 중얼거렸다.
  "두 분 형님께서  가시는데 어찌 제가 여기 머물러  있겠습니까." 유비가 그런 
장비에게 다시 다짐을 두었다.
  "만약 함께 가려거든 그곳에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는 아니된다."
  "잘 알겠소." 장비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자 유비가 천천히 말을 몰기 시작
했다. 이른 봄이라 잔설이 휘날리고 바람이  쌀쌀했으나 하늘이 맑아 지난번보다
는 가는 길이 한결 수월했다. 이윽고 와룡강에  이르자 유비는 말에서 내려 걸어
갔다. 공명에게 더욱  무겁게 예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관우, 장비도  하는 수 없
이 유비를 좇아 말에서 내렸다. 그들이 공명의  초려를 향해 걷고 있는데 앞쪽에
서 제갈균이 걸어오고 있었다. 유비가 예를 갖추며 물었다.
  "형님께서는 지금 집에 계십니까?"
  "예, 마침 어제 저녁에  돌아오셨습니다. 어서 들어가셔서 만나도록 하십시오." 
제갈균은 그렇게 말하더니 발걸음을 옮겨  가던 길을 재촉하는 듯 표연히 가 버
렸다. 유비는 공명이 집에 있다는 말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해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다행히 선생을  뵐 수 있게 되었구나." 그러나  장비는 조금 전부터 
묻는 말에만 대답해 주고는  뻣뻣이 걸어가는 제갈균을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
보다가 한 마디 거들었다.
  "저 자가 무례하기 짝이 없소! 안내도 하지 않고 만나 보라니......" 유비가 그런 
장비에게 엄한 눈길을 주며 타일렀다.
  "사람마다 각자 제 일이 있다. 어찌 그런 일로 화를 내느냐!" 사립문을 들어서
서 뜰을  조금 지나가니 또 옆에  아담한 안문이 보였다. 지난번에는  열려 있던 
그 문이 오늘은  닫혀 있었다. 문을 두드리니 울타리의 매화나무에서  꽃잎이 하
늘하늘 떨어졌다.
  "누구십니까?" 두드리는  문 소리를 들었는지 지난번  맞아 주었던 그  아이가 
또 달려나왔다.
  "오. 너냐! 자주 찾아와서 귀찮겠다만 선생님께  여쭈어라. 신야의 유비 현덕이 
뵈러 왔다고......" 유비가 아이에게 청하자 아이가 유비를 쳐다보며 대꾸했다.
  "선생님은 계십니다만 지금 초당에서 낮잠을 주무시는 중입니다. 아직 깨지 않
으셨는데요." 아이의 말에 유비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그럼, 그대로 주무시게 해라."  유비는 두 아우에게 안문 밖에서 기다리게  한 
뒤 조용히 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 봄의  부드러운 햇살이 초당을 포근히 감싸
고 있었다. 문득 초당  안을 들여다보니 침상 위에 편안히 누워  있는 사람이 보
였다. '이분이 바로 와룡  선생이구나.' 유비는 계하에 서서 공손히 두 손을 모으
고 그가 낮잠에서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침상머리에 앉
았다가 서재 창  밖으로 날아갔다. 중천에 떴던 해는 서당의  벽에 한 치, 두 치 
그늘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유비는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이구, 졸려. 형님은 대체 어떻게 된 거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투덜대는 
소리가 울타리 밖에서 들렸다. 너무 오래  기다리니 지루해하는 장비의 목소리였
다. 장비는 궁금증을  못 이겨 울타리 틈으로 초당을 들여다보더니  그만 얼굴이 
시뻘게지며 관우에게 대들듯이 내뱉았다.
  "아니, 형님은 아직까지 댓돌 위에 선  채로 아닙니까? 저 선생인가 뭔가 하는 
작자가 어찌 저렇게 무례하오?  사람이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자빠져 잠만 자
고 있다니, 형님은 보고만  계시오. 내 이 집 뒤에다 불을 지를  테니, 그래도 저 
자가 일어나나 안 일어나나 한번 봐야겠소." 관우는 장비의 고리눈과 호랑이수염
이 곤두서는 것을 보자 황급히 장비를 제지했다.
  "또 고약한 그 버릇인가. 그 따위 짓을 하면 자네 수염에 먼저 불을 질러 버리
겠네." 이때 유비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너희들은 문 밖에 나가서 기다려라." 관우, 장비는 그 소리에  입을 다물고 말
았다. 그때  문득 공명이 돌아누웠다. 일어나려나  하는데 벽을 향해 돌아눕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아이가 곁으로 가  깨우려고 하는 것을 유비가  댓돌 위에서 
가만히 고개를 저어  말렸다. 다시 한 식경쯤이 지나서일까 그제야  공명은 겨우 
눈을 뜨며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직히 시를 읊었다.
  큰 꿈을 누가 먼저 깨닫는가? 평생을 나 스스로만 알 뿐이네.
  초당에 봄잠이 흡족한데 창 밖엔 아직 해가 남았네.
  시를 읊고 난 공명은 문득 인기척을 느꼈음인지 몸을 돌려 침상에서 내려오며 
아이를 불렀다.
  "밖에 속세의 손님이 오시지 않았느냐?" 공명의 물음에 아이가 급히 대답했다.
  "유 황숙께서 오셨습니다. 벌써 오랫동안 댓돌 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럼 왜 진작  깨우지 않았느냐? 의관을 준비하여라."  공명은 아이에게 이른 
뒤 후당으로 들어갔다. 후당에 들어간 공명은 한참  만에 의관을 갖춰 입고 나와 
유비를 맞아들였다.  공명은 키가 여덟 자나  되었으며 얼굴은 관옥처럼 희었다. 
머리에는 윤건(굵은 실로 짠 두건)을 쓰고 물빛 학창의(학의 깃털로 짠 옷)를 입
고 있었는데  조용하면서도 무게가 있는  그의 풍채는 얼른  신선을 연상시켰다. 
유비가 절로 우러르는 마음이 들어 무릎을 꿇어 절한 후 입을 열었다.
  "나는 한나라 황실의 보잘것 없는 후손이며 탁군 땅 출신의 미천한 몸으로 선
생의 크신 이름 우레처럼 듣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두 번이나 뵈러 왔다가 뵙
지 못하고 천한 이름으로 글을 남기고 갔는데 읽어 보셨는지요?" 공명은 유비의 
정중하고도 겸손함에 내심 감복하는 마음이 일었다.  잠이 깨기를 반나절이나 기
다린 것뿐만 아니라 한 고을 우두머리의 신분으로 자신에게 무릎을 꿇자 공명도 
공손히 절하며 말했다.
  "남양의 한낱 야인으로 지내다  보니 게으르고 소홀함이 천성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여러 차례 장군께서 이곳을 찾아 주셨으나  또 오시게 했으니 실로 부
끄러울 따름입니다." 유비는 공명의 말소리를 들으니 우선 그의 목소리에 청량함
을 느꼈다. 낮지도 않고 높지도  않고,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한 마디 한 마디
에 향기가  깃든 듯한 울림이 있었다.  유비와 공명이 마주 절하며  인사를 나눈 
후 각기 자리를 정해 앉자 아이가 차를 끓여 왔다.
  "작년 겨울, 눈 오는 날 두고 가신  글을 보니 장군께서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
을 사랑하심이 간절함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양(제갈량)이 워낙 젊고 
재주 또한 모자라 장군의 물으심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공명이 
먼저 입을 열어 겸양의  말을 했다. 그러자 유비가 다시 겸양의  말로 자신의 청
을 물리칠까 걱정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선생을 잘 아시는 수경 선생이나  서원직의 말에 어찌 거짓이 있겠
습니까? 바라건대 선생께서는 저를 어리석고 보잘것 없다고 물리치지 마시고 가
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수경 선생이나 서원직은 당대의 뛰어난 선비이나 저는 미련한 농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찌 감히  천하 일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지금 옥을 버
리고 하찮은 돌을 구하려 하고 계십니다." 공명이 다시 한 번 겸양하며 사양했으
나 유비가 놓아 줄 리 없었다.
  "돌을 옥으로  보이려고 해도 되지 않듯이  옥을 돌이라고 말씀해도 곧이들을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선생께서는 경세의 기재와  구민의 천품을 갖추고 계시면
서도 어찌 몸을 깊이  숨기고 계십니까? 바라건대 선생은 천하의 백성들을 위해
서라도 어리석고 어두운  이 비에게 크신 가르침을  주십시오." 유비의 목소리는 
은근하고 조용했으나 눈에는 공명을  향해 다그치는 간곡한 열의가 담겨져 있었
다. 공명은 더 이상 유비를 물리칠 수 없음을 알고 가만히 웃었다.
  "장군께서 이룩하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장군께서 품으신 뜻을 말씀해 
보십시오." 공명이 그렇게 말하자 유비는 그제야 밝은 얼굴이 되었다. 공명이 비
로소 유비의 청에 응했기 때문이었다. 유비는 힘있는 어조로 말했다.
  "지금 한실은 기울고 간신은 제각기 하늘을  거스르려 하고 있습니다. 이 유비
가 비록 힘은 없으나  천하에 대의를 받들어 펴 보려 하나,  지혜와 방책이 짧고 
얕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선생이 저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시어 다가
올 재앙을 막아 주신다면 이보다 더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공명은 지그시 눈을 
감고 유비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윽고 눈을  떠 유비의 모습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제가 생각하기로, 동탁이 나라를 어지럽게 한  이후 뭇 호걸들이 앞을 다투어 
일어났습니다. 특히  하북의 원소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자였지요. 그런데 
그보다 훨씬 세력이 약하고 나이도 어린 조조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넘어뜨린 것은 하늘이 내린 시류를 탔기 때문입니까, 또
는 지모에 의한 것입니까?" 유비가 문득 이렇게 물은 것은 힘이 약한 조조가 강
대한 원소를 물리친  것에 대해 공명의 자세한 대답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공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조에게는 천운과 함께 그를 도운 모사들의  지모에 의한 힘이 컸습니다. 군
사와 백성을 다스리는 경영, 작전, 인망 그리고 군주가 생각하는 모든 바가 진취
적이었습니다. 그 조조는 이제 중원에 나와 천자를  등에 업고 제후를 뜻대로 부
려 군, 정에 걸쳐 모든 흔들림 없는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그가 거느리는 군세만 
해도 1백 만에 가까운 대군이라 그 기세가 욱일충천하니 이제는 이와 자웅을 겨
룰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강남과 강동을 살펴보건대, 이곳에는 손
권이 이미 3세에 걸쳐 다스리고 있습니다.  오는 험한 지세를 이용하여 지키기가 
쉽고 바다와 산의 산물이 풍부하여 백성들은  충심으로 손권을 따르고 있습니다. 
어진 신하와 용맹스런 장수도 많아  그 기반이 단단히 잡혀 있으니 그의 도움을 
청할지언정 도모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때는  다 지나갔다는 말씀입니까?" 유비가  급히 물었다. 이에 
공명이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천하는 지금  조조와 손권으로 이분되어 남과 북 어느 쪽에도 
기족(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나 힘)을  뻗을 수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여기 
아직도 양자의 세력에 속해  있는 않은 영토가 있습니다. 그곳이 이 형주입니다. 
그리고 익주가 있습니다. 형주는 북으로는 한수와  면수가 가로놓여 있어 남해까
지의 이로움을 모두 차지할 수 있습니다. 또  동으로는 오희 땅과 잇대어 있으며 
서로는 파촉과 통해 있으니  이만하면 장군께서 군사를 거느리고 새로운 천하를 
도모할 만한 곳입니다. 그러나 참다운 주인이 될  만한 인물이 아니면 이곳을 지
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형주의 주인  유표는 우유부단하고 노환일 뿐만 아니
라, 그 아들 유기, 유종도  재주가 없고 나약하여 장래를 맡길 수 없는 위인입니
다. 이는 하늘이 장군을  위해 남기신 땅인데 장군은 어찌하여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십니까? 또 익주(사천성)는 천험의  요새로 지키기가 좋은 곳입니다. 장강의 
깊은 물이  흐르며 만산 기슭에는 기름진  벌판이 천 리에 걸쳐  뻗어 있습니다. 
한 고조께서도 그곳에서 마침내 기업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곳 주인인 유장
은 사람됨이  어둡고 거칠기만 합니다.  요사한 교리가 횡행하고  백성은 악정에 
시달려 모두 명군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한실의 후손인데다 
신의를 천하에 떨치신  분입니다. 뭇 영웅들 중에서도 우뚝 솟아  있으시니 모든 
현사들이 우러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익주  사람들이 원하는 어진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장군께서 형주에서  일어나 익주를 치고 두  주를 아울러 
지키며 서로는  융과 화친하고, 남으로  월을 어루만지고 밖으로는  손권과 손을 
잡는다면 이로써 훌륭한  기업을 이룰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기회를  엿보아 즉
시 한 장수에게는  형주의 군사를 이끌어 완성을  거쳐 낙양으로 향하게 하십시
오. 장군께서는 친히 익주의 군사를 거느려  진주로 향하신다면 백성들은 환호하
며 장군을 맞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다면 대업을 성취하실  것이며 한실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장군을  위해 말씀드릴 수 있는 계책이니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공명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바를 유비에게 소상히 털
어놓았다. 공명이 역설하는 바는 평소에  그가 주장하던 '천하삼분의 계'였다. '무
릇 우리 대륙은 너무  넓다. 그러므로 항상 어디서든 변란이 있어  그 여파가 전
대륙에 미친다. 이제 북에 조조가 있고 남에는  손권이 기반을 다진 지금 전대륙
을 통일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형주, 익주의 서촉 54주를 취해 새로운 독립 
왕국을 만들어야 한다. 북에 웅거한 조조는 천시를  얻은 것이고 남의 손권은 지
리를 차지하였다. 장군은  모름지기 인화로써 나라를 일으켜  천하삼분의 대기운
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  공명의 주장이었다. 유비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쳤
다. 공명의 이야기를  들으니 눈앞을 가렸던 구름과 안개가 한순간에  걷히고 대
륙의 구석구석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듯한 심정이었다. 앞일에  대해 뚜렷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던  유비에게 공명의 기우장대한 주장이야말로 그의 시
야를 밝게 열어  주는 듯했다. 유비가 한동안 감격하며 공명을  바라보고 있는데 
공명이 문득 아이를 불렀다.
  "서고에 있는 족자를 가지고 와서 보여  드려라." 이윽고 아이는 제 키보다 긴 
족자를 안고 오더니 벽에다 걸었다. 서촉 54주의 지도였다. 공명은 손으로 그 지
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십시오. 이것이 서천 54주의 지도입니다. 장군께서는 인화로 나라를  일으키
시어 먼저 형주에 터를 잡으십시오. 그런 다음  서천을 취하여 그곳을 대업의 바
탕으로 삼으십시오. 그렇게  되면 솥발에 달린 세 발처럼 조조와  손권과 더불어 
천하의 하나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중원을 도모하십시오."  유비
는 공명의 말을 들으며 그의 높은 식견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유
비는 공명의 말에 단 한 가지 망설임이 일었다. 유비가 조심스런 어조로 물었다.
  "형주의 유표나 익주의 유장이 모두 한실의 종친입니다. 어찌 차마 그 땅을 빼
앗을 수가 있겠습니까?"  유비가 가슴에 일고 있던 근심을  말했다. 같은 종친의 
땅을 빼앗음으로써  천하로부터 비방을 받는 것도  그렇지만 오늘날까지 얼굴을 
맞대온 유표를 친다는 것이 유비로서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유비의 
그 질문에 공명은 명쾌하게 잘라 말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가 밤에 천문을 보아 왔습니다만 형주의 유표는 머지않
아 그 명이 다할 것입니다. 그 아들들도 역시 괘념할 바 없습니다. 또 익주의 유
장은 아직은 건재하나 그  국정이 어지럽고 백성들이 괴로우니 그것을 바로잡으
라 하여 어느 누가  인의에 어긋난다고 탓하겠습니까? 오히려 그런 백성들을 구
하는 일이야말로 장군이 해야  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형주의 유표와 익주의 사
정이 그러하니 머지않은 장래에 그 땅은 반드시 장군께 돌아올 것입니다."
  "밝으신 말씀 잘 알겠습니다. 이 비가  어리석어 대의와 소의를 헤아리지 못하
였습니다만 이제야 확연히  깨닫는 바가 되었습니다." 유비는  공명의 말에 환한 
얼굴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직  초려를 나서기도 전에  거침없이 천하의 
일을 훤히 들여다보듯 하는 말이었다. 천하의 그  어느 누구도 따르지 못할 식견
이었다. 이에 유비는 다시 절을 하며 그를 청했다.
  "유비가 비록 이름이 없고 덕이 엷으나 바라건대 선생께서는 비천하다  버리지 
마시고 산을 떠나  가르침을 주십시오. 이 비는 마땅히 선생의  밝으신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유비가  마음을 졸이며 원래의  뜻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공명이 
천하대세를 논했으나 아직  유비를 도와 함께 몸을  일으킬 뜻은 정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저는 오랫동안 밭갈며 농사짓는 것을 낙으로 삼아 세상 일은 어두우니 그 청
을 받들 수가 없습니다." 유비가 걱정했던 대로 공명은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 
유비가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지  못해 깊은 한숨과 안타까움에 절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떨어뜨렸다.
  "선생이 그리하시면 저  불쌍한 백성들은 장차 어찌 될 것입니까......?"  유비는 
말문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쏟으며 간곡히 말했다. 흐르는  눈물을 도포자락으
로 닦으니 도포가  흥건히 젖었다. 유비의 눈물이 일신을 위해서나  사사로운 야
망으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공명은 그런 유비를 가만히 지켜 보고 있었다. 
천하를 위해 도움을 청하는 간절함에 공명도  마음이 숙연해지고 말았다. 공명은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말문을 열어 조용히, 그러나 힘있
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군께서 진정 이 양을  버리지 않으시니 개나 말의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고 
함께 국사에 미력을 다하겠습니다." 공명의 말에 유비는 가슴을 쓸며 기뻐했다.
  "그럼 함께 가 주시는 겁니까? 이  기쁨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유비는 즉
시 관우, 장비를 불러 경위를 들려 주며 절하고 뵙게 했다. 이어 가지고 온 금백
의 예물을 올리게 하자 공명은 사양했다.
  "이것은 대현을 청하는 예물이 아니고 이 비의 작은 정성일 따름입니다." 유비
가 그렇게 말하며 권하니 공명도 그제야 예물을  받았다. 유비는 그날 밤 공명의 
초려에서 묵었다. 다음 날 제갈균이 돌아오자 공명은 아우 균에게 일렀다.
  "별반 재주도 없는 이 몸에  대해 유 황숙께서 삼고의 예를 다하시고 또한 과
분한 뜻으로써 나를 부르셨다. 타고난 게으름뱅이라도  어찌 일어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나는 지금부터 황숙을  따라 신야로 가겠다. 너는 형수를 돌보고 초려
를 지키며  논밭을 잘 가꾸도록 하라.  만약 다행히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치는 
날이 오면 이곳으로 돌아오마." 제갈균이 형의  말을 받들겠다고 하니 공명은 유
비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초려를 나섰다. 뒷사람이 그때의 정경을 노래했다.
  몸이 높이 오르기 전에 물러남을 생각하네
  공 이룰 때 떠날 때의 말 잊지 않으리.
  유현덕의 간곡한 청으로 떠나니
  가을바람 부는 오장원에 별이 떨어지네.
  유비와 공명이 와룡강 언덕을  넘어오니 이미 종자들이 신야에 기별하여 수레
가 마중 나와 있었다. 유비는 공명과 함께  수레에 타고 신야성으로 돌아오는 길
에도 줄곧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때 공명의  나이 스물일곱 
살이었다. 신야로 돌아와서도 두 사람은 잘 때에도  침실을 함께 하고 식사 때도 
한 상에서 밥을 먹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천하를 논하고 
인물을 평하며 사를 궁리했다. 공명이 신야의 병력을  보니 겨우 몇 천에 불과했
으며 재력도 극히 옹색했다. 이에 공명이 유비에게 권했다.
  "형주는 인구가 적지 않으나 실제로 호적에  올라 있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러
므로 유표에게 권하여  호적부를 정리하고 유민을 호적부에  올리도록 하십시오. 
그래야만 유사시에는 즉시  병적에 옮길 수 있습니다."  공명은 남양의 부호이며 
대성인 민씨로부터 돈 1천만 관을 꾸어 이것을 유비의 군자금으로 돌려 쓰게 했
다. 공명의 성실과 진지한  인품은 점차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었다. 그리
하여 유비는 그의 배경과 그를 후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셈
이 되었다. 그런데 유비가 제갈량을 후하게 대하고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
지자 이를 불쾌하게 여긴 관우와 장비가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유비는 두 의
제에게 말했다.
  "제갈공명과 나는 말하자면  물과 물고기에 비유할 수 있으리라(수어지교). 물
고기는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군웅이 할거하고 있는 이  난세 속에서 끝
까지 이겨 우리들의 뜻을 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그같이 뛰어난 인재가 있어야 
한다. 아우들은 이 점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유비의 말에 관우, 장비는 그제야 
그 뜻을  알고 이후로는 불평을 말하지  않았다. 원대한 '천하삼분의  계'는 물론 
유비와 공명 두 사람만이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 계책이었다. 그 계책의 실현
을 위해 처음에는 이처럼 내실을 다지며 북지, 중지의 움직임과 강서, 강남의 동
태를 신중히 관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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