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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삼국지5권

by Casey,Riley 202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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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5권
  지은이: 나관중 
  편저: 김홍신


  권머리에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간신히 목숨을 구하나...

  공명은 조조와 대적키 위해  민병을 조직하고 하후돈의 10만 대군을 유인하여 
화공법으로 첫 용병을 승리로 이끈다. 이에 크게  노한 조조는 유비와 손권을 치
기 위해 강남 정벌을  단행하기로 작정하고 50만 대군을 일으킨다.
  그 무렵 유표는 병이 깊어  형주를 유비에게 물리려 하나 유비의 거절로 장남 
유기에게 후사를 맡긴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에 불만을 품은 유표의 후처 채 부인과  그녀의 오라버니 채모, 심복 장윤은 
거짓 유언장을 만들어 차남 유종으로 하여금 후사를  잇게 한다. 그때 조조의 대
군이 남하하여 완성에 이르렀다는 급보를 전해 들은 유종은 크게 놀라 채모등과 
의논을 하지만 결국 항복하여 하루 아침에 형주, 양양을 송두리째 바친다.
  한편 유비는 조조의 대군을  맞이하여 공명의 군령에 따라 화공과 수공작전으
로 간신히 조조의 예봉을 꺾고 번성에 든다.  조조는 서서로 하여금 항복을 권하
는 사자로 유비에게  보내나 유비는 이를 거절하고  조조는 즉시 군사를 휘몰아 
번성으로 향한다. 유비는  중과부적으로 패주하여 양양으로, 또다시 양양에서 강
릉으로 후퇴한다. 그뿐만 아니라 신야에서부터 뒤따르는  양민을 뿌리칠 수 없어 
그들과 함께 행군하다 당양  벌판에서 조조군에게 도륙을 당하고 가까스로 몸만 
빼쳐 달아난다.
  위급에 처한 유기의 도움으로 하구에 머물러  한숨을, 돌리고 공명은 동오에서 
사신으로 온 노숙과 함께 강동으로 건너가 손권과 주유에게 천하 삼분지계를 논
하며 그들을 충동질해 조조와 대적토록 설전을 편다.
  마침내 손권은 군사를 내고 대도독 주유는 장강에서 3백여리에 뻗친 조조군과 
일전을 겨룬다.  조조군을 크게 이겨 주연을  베풀던 주유는 조조의 수채에서 수
백리에 걸쳐 휘황한 등불이 밝혀지자 내심 불안해  한다. 염탐에 나선 주유는 수
군의 묘리에 뛰어난 조조의 수채에 놀란다.  마침 장간이조조의 세객으로 동오의 
수채를 방문하자 주유는  장간을 이용하여 일을 꾸민다. 과한 환대에  넘어간 장
간은 취중에 두 수군 도독의 서신을 발견하고 밤을 틈타 본진으로 도망한다.
  한편 주유는 빈틈  없는 준비에도 불구하고 한겨울인  탓에 화공에 꼭 필요한 
동남풍이 불지 않아 근심이 쌓여 몸져 눕는다.  주유의 병인을 꿰뚫은 공명은 몸
소 칠성단을 쌓아  천기를 움직이고, 공명의 신통력에 놀라 주유는  살의를 품으
나 경모하게 된다.
  때아닌 동남풍을 타고 동오군이  벌떼처럼 몰려오자 조조는 넋이 나가고 아우
성으로 출렁이는 적벽강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된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조조는 
공병의 선방이 숨어 있는 오림으로 도망하나 조조의 불길한 웃음은 매번 죽음의 
고비를 부른다. 

  강동의 손권 
  장강을 넘나들다.

  강동에 자리잡고 있던 손권은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어 착실히 그 기업을 키
워 나가고 있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조조보다 스물여덟이나 아래였으며, 유비보
다는 스물두살이 어린  젊은 나이였다. 손권은 널리 어진 선비를  받아들이며 오
회 땅에다 모여든 선비가 묵을 수 있도록 큰 집을 짓게 하였다.
  모사인 고옹과 장평으로 하여금 그 집에서 선비들을 대접하게 하고 숨어 있는 
인재들을 천거하게 하니  많은 선비들이 줄을 이어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는 회
계의 감택, 팽성의  엄준, 패현의 설종, 여남의  정병, 오군의 주환, 오정의  오찬, 
회계의 능통 등의 선비들이 이때 모여드니   손권은 그들을 모두 후히 대접했다. 
뿐만 아니라 장수들도 모여들었다. 이때 얻은 장수로는 여양땅의 여몽, 오군에서 
육손, 낭야의 서성, 동군의 반장, 여강의 정봉등이었다. 그렇게 모인 인재들이 손
권을 좌우에서 보좌하니 그 위세가 날로 드높아 갔다. 
  그러나 손권과  조조 사이에는 일찍부터  예사롭지 않은 조짐이  일고 있었다. 
그일은 건안  7년쯤 전에 이미 시작된  것이다. 유비가 초려에서  공명을 데리고 
신야로 돌아오기 6년전 일이었다.
  아름다운 한  척의 배가  허도의 기를 달고  양자강을 내려왔다. 조조가  보낸  
사자를 태운 배였다.  사자 일행은 오회의 빈관에 들렸다가 손권을  만나 아뢰었
다. 
  "귀공의 아들을 허도로  보내어 조정에서 천자를 모시라는 분부를 내리시었습
니다." 
  말만 들으면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었으나 이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볼모를 요
구한 것이었다. 손권도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곧 문중과 의논한 뒤에 회답을 올리겠소"
  손권은 일단 그렇게 말한 후 사자를 돌려  보내고 지연책을 쓰고 있었다. 이후
에도 손권의 장남을  허도로 보내라는 조조의 독촉이 있었다. 조정을  끼고 있는 
만큼 그의 명은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어머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손권은 마침내 노모  오 태부인에게 물었다. 오 태부인은 아들  손권에게 말했
다.
  "네게는 이미 어진 신하가 많이 있지 않느냐? 왜 이런 때에 여러 신하를 불러 
의논하지 않느냐?"
  손권이 생각해 보니 이 문제는 아들 한  사람의 일이었다. 볼모를 거부하면 당
연히 조조와는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손권은  오회의 빈관에서 여러 모사와 장
수를 불러모아 의논을 했다.  장소, 장광, 주유, 노숙 등의 숙장을 비롯하여 일찍
이 수경 선생이 말한 봉추 방통도 이날의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지금 조조가 오에  볼모를 요구해 온 것은 제후의 예에  따른 것이오. 볼모를 
내면 조조에게 복종을  맹세하는 것이며, 그것을 물리침은 곧 적대의  표시가 되
오. 바야흐로 오는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러분의 기
탄없는 의견을 말해 주길바라오." 
  장소가 의장격으로 일어나  좌중에게 발언을 청했다. 모사와  장수들이 번갈아 
일어나 각자가 주장하는  바를 말해 그 의견이 구구했다. 볼모를  보내야 한다는 
의견과 안 된다는 의견이 두 갈래로 나뉘어 토론은 언제 그칠지 몰랐다.
  "이 주유에게 한 마디 말할 기회를 주시오."
  오 태부인의 여동생의 아들이자 손권의 형 손책과 동갑인 주유는 이날 좌중의 
신하들 중에는 최연소의 나이였다. 그러나 손권은 그가 발언하도록 허락했다.
  "우리 주군께서는 부형의 업을  이어받아 삼대를 내려오는 동안 6군의 백성을 
거느리며 정병을 길러왔습니다. 양식은 넉넉하고 산을  파서 구리를 얻고 바닷물
을 끓여 소금을  만들고 있습니다. 백성은 난리를 근심하지 않고  군사는 용맹스
럽습니다."
  주유가 유창하게 말을 이어가자  여러 장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
다.
  "...... 그렇거늘 무엇이 두려워 조조의 지위와 권세에 눌려 볼모까지  보내 가며 
아첨할 필요가  있습니까? 볼모를 보내는 것은  속령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볼모를 보내면  손 장군이라 하더라도 조조가 부르면 어느  때고 허도
로 달려가야 합니다.그  때는 조조에게 허리를 굽히고 위계는 일개  제후를 넘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천하의 패업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코 볼모를 보내서는  아니 됩니다. 볼모를 보내지 말고 서서히  조조의 동정을 
엿보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조조가 진실로 할실의 충성된 신하로  천하에 임한
다면 그때 가서 그의  뜻에 따라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조조가 찬
역을 할 때는 그야말로 대업을 도모할 큰 뜻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주유의 서슬퍼런  의기에 모두 위압당한  채 주위는 숙연한  기운이 감돌았다. 
손권이 그런 좌중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공근의 말이 옳다."
  이날 주렴뒤에서 지켜보던 손권의 어머니 오 태부인도 조카 주유의 도량을 믿
음직하게 여겨 나중에 그를 불러당부했다.
  "너는 손책과는 어릴 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이니 꼭 내 친자식처럼 생각된다. 
앞으로도 손권을 잘 도와다오."
  이에 손권은 끝내  허도로 아들을 보내지 않았다. 조조는 손권이  자기의 뜻을 
거역하자 그때부터 강동을 정벌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아직 북방 평정이 끝나
지 않은 때라 남으로  군사를 낼 수가 없었다. 북방에는 기회를  엿보고 있는 원
소의 세력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손권은 허도로 볼모를 보내지  않는 대신 
오와 가까이  인접해 있는 조조의 장수  황조를 치기로 했다. 조조가  군사를 낼 
경우를 대비해 강동부터 평정해 두기 위해서이다.  때는 건안 8년 동짓달 무렵이
었다. 손권은 군사를 거느려  강하로 가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병선을 정비하
고 군사를 가득 태운 오군은 장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 군용은 실로 오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었다.  처음 강 위에서의 싸움은 오군 쪽이  황조의 군사를 크
게 패퇴시켰다. 군사들은 황조의 군사가 점점 밀려나자 기뻐하며 떠들어 댔다.
  "황조의 목은 우리 손에 든 거나 다름없다."
  오군은 싸움에서  다 이긴 것처럼  황조군을 얕보았다. 그러나  싸움은 뭍으로 
옮겨지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오군의 부장 능조는  단숨에 황조군을 깨뜨릴 심산
이었다. 그러나 군사를  거느리고 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갔다가 적의  매복에 걸
려 황조 휘하에 있는  감녕의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장수가  죽자 오군의 군
사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때 홀로  오나라의 군사들을 위해  적진에 뛰어든 
젊은 무사가 있었다.  부장 능조의 아들 능통으로 아직 열다섯  살의 소년이었지
만 아버지가 난군 중에 화살을 맞아 쓰러지자 단신으로 적중에 뛰어들어가 시체
를 찾아가지고 돌아왔다.  손권은 배 위에서 이 싸움을 처음부터  지켜보다 형세
가 이롭지 못함을  알아차렸다. 불리한 싸움에 매달려 피해만 늘릴  필요가 없다
고 여긴  손권은 군사를 물렸다. 그러나  이 싸움으로 능조의 아들  능통은 일약 
전 군에 그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능통의 이름을 떨치기 위해 출정한 셈이 되고 말았군."
  군사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능통의 용맹을 칭찬했다.  싸움을 피해 동오로 돌아
오자 손권에게는 또 한가지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그 무렵 손권의 동생 손익
은 단양의 태수로  있었다. 그는 나이가 아직 어린데다가 윈래부터  성격이 거칠
었으며, 몹시 술을 좋아 했다.  평소 못마땅한 일이 있으면 술을 마시고 부하 관
원이건 장졸이건 불문곡직 하고 면박을 주거나 매질하는 버릇이 있었다. 
  "죽여 버리세!"
  "자네가 그럴 작정이면 나도 거들겠네."
  부하들의 미움을  사고 있던 손익의  휘하에는 도독에 규람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같은 원한을 품고 있는 군승 대원과 모의하여 손익을 죽이기로 했
다. 마침내 뜻을 정한 이들은 은밀히 손익의 동정을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손익
이 나이는 어렸지만  억센 사나이였다. 항상 칼을 차고 빈틈없는  매서운 눈초리
로 주위를 살피고 있어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 꾀를 짜냈다. 
부근의 산적을 토벌하고  싶다는 뜻을 오주 손권에게 상신한 것이다.  손권은 즉
시 이  일을 허락하고 규람은 은밀히  손익의 장수 변홍을 포섭했다.  규람은 각 
산적 토벌에 대한 의논이 있다고  알리며 각 고을의 현령으로 있는 장수들을 불
렀다. 회의가 끝나면  잔치가 있을 예정이었다. 태수  손익도 물론 빠질 수 없는 
회합이었다. 손익이  새옷으로 갈아입은 후  집을 나서는데 아내  서씨가 간곡히 
만류했다.
  "오늘만은 다른 일을 핑계대고 나가지 마십시오."
  오에는 원래 미인이 많기로 유명했지만 손익의 아내 서씨는 그 중에서도 외모
가 출중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외모 못지  않게 총명하며 
어릴 때부터 역학을 배워  점을 잘 쳤다. 이날도 점괘를 보니  불길한 점괘가 나
왔다. 그러나 손익은 아내 서씨의 만류를 귀담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당치도 않은 소리요. 오늘은 긴히 위논해야 할 일이 있소."
  손익은 그길로  회의장으로 갔다. 회의가  끝나고 잔치가 벌어져  손익은 밤이 
늦어서야 만취된 채  비틀거리며 문 밖으로 나왔다. 곁에서 그를  따르던 변홍은 
손익이 문 밖으로 나오자 지체하지 않고 칼을  빼들어 한칼에 쳐죽여 버렸다. 이
때 손익의 아내 서씨는 남편의  귀가가 늦어지자 자기 점괘가 맞지 않기만을 안
타깝게 빌고 있었다.
  더욱이 그날 밤따라 몸이 떨리고 마음이 흉흉했다.  문득 휘장 밖으로 나와 불
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중문 쪽에서 우르르 한 떼의 군사들이  달려오고 있
었다. 앞선 사람은 도독  규람이었다. 규람은 일찍부터 자색이 뛰어난 주군의 아
내인 서씨의 미색에 홀려 있었다.
  규람은 군사를 뒤에 세워놓고 성큼성큼 서씨에게 다가가 윽박질렀다.
  "주군은 오늘 밤 변홍이 칼에 맞아 죽었다.  내가 그를 붙잡아 목을 베어 그대
의 원수를 갚았으니 그대는 마땅히 나를 섬겨야  할 것이니라. 그렇지 않으면 죽
음이 있을 뿐이다."
  규람은 이글러기는 눈으로 서씨를 바라보더니 팔을  잡고 내실로 이끌었다. 서
씨는 정신이 아득했으나 그 경황 중에서도 황급히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남편이 죽은 날 어찌 딴 사람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믐까지만 기다리시면 
제사를 올리고 상복을 벗은 다음에 따르겠습니다."
  서씨의 말이 어긋나지 않으며  자기를 거역하는 말도 아닌지라 규람은 서씨의 
팔을 놓아 주었다. 서씨는 비탄 속에서 남편의 장사를 치렀다. 총명한 서씨는 변
홍이 남편을 죽였다는 규람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 동안 자기 집의 재산과 
시첩까지 규람과 대원이  모두 빼앗아간 것만 봐도 그랬다. 서씨는  몰래 남편의 
심복이었던 손고, 부영을 부른 뒤 사실을 알리고 계책을 논의 했다.
  원래부터 충직한 가신이었던 손고와  부영은 서씨를 통해 주군의 죽음이 규람
의 짓이었음을  알았다. 그리고는 기필코  선주의 원한을 품겠다며  펑펑 눈물을 
쏟았다. 
  "평소 태수의 각별한 은혜를  입었으며 이때까지 살아 있음도 바로 태수의 원
수를 갚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인까지  명하시니 어찌 목숨을  바쳐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손고와 부영은 서씨가  상복을 벗는 그믐날에 규람, 대원을 쳐  없애기로 하며 
서씨의 방을 나왔다.
  이윽고 그믐날이 되자  서씨는 약속한 대로 규람을 술자리에 청했다.  눈이 빠
지게 기다리던 규람인지라 단숨에 서씨가 기다리고  있는 대청으로 달려갔다. 대
청에는 이미  술상이 마련되어 있었고,  서씨는 요염한 미소까지  지으며 규람을 
맞았다.
  규람이 술상 앞에 안자 서씨는 술잔에다 술을  따르며 권했다. 얼마 되지 않아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취기가 올랐다. 서씨는 규람이 몹시 취하자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장군께서는 이제 술은 그만 드시지요. 서씨가 속살거리듯 말하자 규람은 비틀
거리는 가운데도 뱀눈을 번뜩이며 이미 밀실로  들어섰다. 그러자 서씨가 소리쳤
다. 
  "손고, 부영 장군은 어서 나오시오!"
  서씨가 외치자마자 카을 빼들고  기다리고 있었던 손고와 부영이 휘장을 젖히
고 달려나왔다. 술에 취해  있던 규람은 취한 눈으로 그들을 보며  칼을 빼려 했
으나 두사람이 한  칼씩을 내리치자 맥없이 나뒹굴고 말았다. 서씨는  규람이 쓰
러지자 피가 낭자한 바닥에 엎드려 목놓아 울며 말했다. 
  "아직 원수를 다 갚은 것은 아닙니다. 또 한 놈이 남아 있습니다."
  서씨는 시녀를 보내어  규람이 부른다고하여 대원을 술자리에  청하도록 했다. 
대원은 규람이 술자리로 청한다고 하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뜰안으로 들어
서다 손고, 부영이  내리치는 칼에 쓰러졌다. 서씨는 규람, 대원을  죽인 후 그날 
밤을 두  집안과 그를 가까이서  따른던 졸개들까지도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런 
다음에 다사 상복을 입고 빈소에 규람, 대원의 목을 놓고 제사를 지냈다. 
  "이제 원한을 풀었습니다. 소첩은 평생 개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씨는 정성스레 절을 올리며 맹세했다. 손권이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단양으로  달려온 것은 서씨가 규람,  대원의 목을 남편 영전에  바쳐 제사 
지낸 후였다. 손권은 서씨를 도와 규람, 대원의 목을 벤 손고와 부영을 아문장에 
명하여 단양 땅을 다스리게 했다. 계수 서씨는 땅을 주어 친정으로 보냈다. 사람
들은 서씨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오의 사서에도 서씨일을 기록했다. 
  그로부터 3,4년에 걸쳐 오  땅에는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됐다. 그 동안 손권은 
각처에서 출몰하는 산적들을 평정하며 장강에 있는 병선 7천여척을 조련하여 뒷
날에 대비했다. 또한  주유를 대도독으로 중용하여 강동의  수륙군마를 총지휘하
게 했다. 형  손책의 친구인 주유를 손권은 신하로서보다 스승이나  형님처럼 모
셨다. 그러나 주유는 그런  손권에게 신하로서의 예를 깍듯이 지켰다. 그러는 동
안 해가 흘러 건안 12년이  되었다. 이해 겨울인 12월, 손권의 어머니 오 태부인
은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갑자기 병세가  위독했다. 어느 날, 오 부인 
스스로도 자기의 최후가 왔음을 깨닫고 방으로 장소,  주유 등의 중신을 불러 뒷
일을 부탁했다.  
  "내 아들 손권은 이 나라의 기틀을 이어받은 지 아직 몇 해 되지 않거니와 또
한 나이도 연소하오. 장소, 주유 두 분은 부디 스승의 마음가짐으로 손권을 가르
쳐 주오. 그밖에  여러분들도 합심하여 오 나라왕을 도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나라를 잃는 일이 없도록 힘을 북돋아 주오.  강하의 황조는 지난날 나의 남편을 
죽인 집안의 원수이니 반드시 원수를 갚도록 해  주오. 그러면 나는 죽어서도 그
대들의 은공을 잊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오 태부인은 아들 손권에게도 일렀다.
  "너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지녔느니라. 아버지 손견,  형 손책은 모두 얼마 
되지 않는 군사를  이끌고 전란 속에 몸을  일으켰으며 천신만고의 고초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오나라의 기업을 열었다. 그러나 너는  그분들과는 달리 이 성 안
에서 태어나 낙원처럼  편안한 곳에서 자라 지금 3대째 주군이  되었다. 만에 하
나 안락에 빠져 아버지와 형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된다. 명심할 것은 장소나 주
유 같은 분들은  어진 신하이니 오나라의 보배라고  여기고 평소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하느니라. 또  너의 이모도 후당에 계시니 앞으로는 너의  어머니로 섬
겨야 할 것이다."
  오 태부인이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손권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
는데 오 태부인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조실부모하여  동생인 오경과 월중으로 이사해 살다가 너의 
아버지에게 시집왔다. 그리하여 4남매를 두었다. 큰아들 책을 낳을 때는 꿈에 달
이 내 품에 들었느니라.  둘째인 너를 낳을 때는 꿈에 해와  달이 품속에 들어왔
다. 점치는 이가 말하기를  꿈에 해와 달이 함께 품속에 들면  크게 귀한 아들을 
둔다고 했다. 어찌 된 일인지 맏이인 책도 죽고  셋째인 익도 얼마 전에 횡사 했
다. 이제 남은 것은 너와 네 누이 뿐이다. 그러니 저 하나뿐인 누이도 극진히 사
랑하고 보살피기를 잊지 말아라."
  오 태부인은 나라를 일으킨 선주의 아내답게 나라일에서부터 집안일에 이르기
까지 두루 당부한 뒤 홀연히 눈을 감고  말았다. 오 태부인의 머리맡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슬픈 통곡  소리가 문 밖에까지 흘러 나왔다. 손권은  어머니를 고릉의
금을 아름답게 갖춘 후 정성을 다해 장례를  모셨다. 상중에 겨울은 지나고 해가 
바뀌어 건안13년이 되었다.  강남에 봄이 오자 새싹이 돋고 청명한  나날이 이어
졌다. 손권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긴 유언을 잊은 적이 없었다. 날씨마저 따
뜻해지자 급히 중신들을 불러들였다.
  "황조를 쳐야겠는데 경들의 의도는 어떠하오?"
  손권이 이렇게 말하며 신하들을 둘러보자 먼저 장소가 입을 열었다.
  "아직 거상한지돌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찌 군사를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유가 일어나 단호한 어조로 장소의 말을 반박했다.
  "황조를 토벌하라는 것은  모당의 유언이었습니다. 어찌 거상에  구애 받을 수 
있겠습니까?"
  두 의견이 맞서니  손권으로서는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북
평의 도위 여몽이 나와 손권에게 고했다. 
  "제가 용추의 수구를 지키고  있는데 상류인 강하 쪽에서 한척의 배가 표류해 
오더니 20명쯤 되는  해적 떼들이 강가에 상륙해 왔습니다. 곧  이들을 에워싸고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우두머리가 바로 황조의 부장 감념이었습니다. 제가 
그를 심문하니 그는  자세히 지난 일을 일러주었습니다. 그의 자는  흥패며 파군
의 임강땅 사람입니다. 소싯적부터 주먹쓰기를 좋아하고  힘이 센데다 그 기개가 
호탕해 떠도는 무리들을  모아 대강을 휩쓸고 다녔다고 합니다. 항상  강궁과 도
끼를 옆에 끼고 갑옷을 걸치고 허리에는 큰 칼과 방울을 달고 강호를 휩쓸고 다
녀 방울 소리만  듣고도 사람들은 그인줄 알고  두려워서 피해 달아났다고 합니
다. 금범땅에서 좋은  비단으로 돛대를 만들어서 배를 타고 대강을  휩쓸었기 때
문에 그들을  금범적이라 불렀답니다. 그러다  감녕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과거를 뉘우쳐  한때 형주의 유표를  섬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표의 인품이 
믿음직스럽지 못함을 보고 우리 동오에 가서 뜻을 세울 결심으로 이곳을 향하다
가 강하에서 황조가  가로막고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한동안  황조 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지난번 우리가 황조를 칠  때 감녕 
때문에 하구 땅을 보전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어느 해의 싸움에서는 포위당한 
황조를 구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황조는 그를  중히 쓰지 않고 마냥 졸자로 
부리기만 했습니다. 황조의  신하 중엔 소비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감녕
의 처지를 깊이 동정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황조에게 감녕이 공이 많으니 상
도 내리고 벼슬도 내리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권했습니다. 그러나 황조는 '감녕이 
근본은 강상의 수적인데  어찌 그를 등용한다는 말이요. 그저 길러  두었다가 맹
수 대신으로  쓰면 십상이오' 하고 말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소비는 그를 
더욱 동정하여 어느  날 밤 술자리를 마련하여 감녕에게 권했다고  합니다. 소비
가 감녕에게 '인생이 얼마나  길겠소 하루 바삐 다른 곳으로 가  맑은 주군을 구
하시오. 여기서는 아무리 충성을 다하더라도 한평생  허물을 벗지도 못할 터이니 
벼슬은 꿈도 꾸지 못할 거이오' 하고 강권했다 합니다. 이에 감녕이 소비에게 탈
출할 방책을 묻자, 소비가 '내가 그대를 악현현장으로 가게 해 줄 테니 달아나건 
거기 머물러 있건 마음대로  하라' 고 말했다 합니다. 그리하여도중에 임지로 간
다고 말한 후 여러  날 강을 내려와 우리 영토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
나 감녕은 지난 해 우리와 싸움에서 우리 장수 능조를 화로 쏘아 죽였기 때문에 
저에게 이 일을 걱정하였습니다. 제가 사정을 듣고 보니 그가 딱하게 여겨져 '주
군께서 쓸지 어떨지는  알수 없으나 유능한 장수와  현인은 후히 대접하여 예를 
잦춰 맞는 명군이시오.   제가 주군께 잘 말씀드려 보겠소.'  하고 그를 기다리게 
한 후 이리로 달려온 것입니다. "
  여몽의 기나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손권은 감녕에게 이미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여몽의 말이 끝나자 손권은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고 손뼉을 쳤다.
  '때가 왔구나!'
  손권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여러 중신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방금 황조를 칠 계략을  의논하고 있는 자리에 감녕이 부하까지 거느리고 우
리에게 투항해  온 것이오. 이는 마치  밀물이 넘쳐 강가의 풀이  흔들리는 것과 
다름 아니오."
  손권은 여몽에게 감녕을 데려오도록 분부했다. 며칠  후 여몽이 감녕을 데리고 
왔다. 감녕은 손권에게 절하며 예를 올렸다. 손권이 그를 웃음 띤 얼굴로 맞으며 
입을 열었다. 
  "장군이 나를 찾으니 여가 기쁘지 않소. 이제  와서 지난 일을 돌이켜 본들 무
엇하겠소. 바라건대 조금도 괘념치 말고 황조를  무찌를 계교가 무엇인지 그것을 
일러주오."
  손권의 말에 감녕은 다시 고개를 숙인 후 입을 열었다.
  "한실의 사직은 바야흐로  더욱 위태로우니 조조가 찬탈의 역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날도 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조조는 반드니  남쪽의 형주 
일대를 차지하려고 손을 뻗칠 것입니다."
  감녕의 이야기가 형주에  미치자 손권은 급히 형주에 대해 물었다.  손권이 조
조의 허도에 못지않게 궁금하게 여기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형주는 오와  인접해 있는 곳이오. 그러니  형주의 내정을 자세히  말해 주시
오."
  "형주는 강천의 물줄기가 산기슭을 굽이쳐 흐르고 있는 천연의 요해입니다. 거
기다 땅은 기름지고  백성은 풍족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하늘의 혜택을  받은 나
라이지만 취약점이 많습니다."
  "취약점이라니 그게 무엇이오? 유표는 학문이 뛰어나고 성품이 온화하며 인재
를 잘 길러 문화를 융성시키니  천하의 어진 이들이 모두 그곳에 모였다고 들었
소만....."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표의 장년시대의 일일 뿐 만년에 이른 지금, 기
력은 줄고 잔병이 잦습니다.  게다가 장남은 업을 이어받을 그릇이 못되고, 유표 
또한 먼 장래를 도모할 뜻이 없고 우유부단하기만  합니다. 그 틈을 타 처첩들의 
불화와 반목, 휘하 신하들의  갈등과 암투가 그치지 않습니다. 안으로 사정이 이
러하니 이젠 망할  징조를 감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형주를 도모하실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그 형주로 들어가려면 어디로 가는 것이 좋겠소?"
  "물론 강하의 황조를 치고 그곳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황조의 허실은 무엇이오?"
  "황조는 두려울게 못  됩니다. 그도 이제 노망기가 있는 노령입니다.  그런데도 
재물에 눈이 어두워 백성들을 쥐어짜니 그곳의 민심은 이제 황조에 대한 미움으
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군량과 무기는 어느 정도이오?"
  "군비는 모자람이 없으나 전투를  할 만한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습
니다. 거기다가 법도의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군율까지 어지러운 형편입니다. 
명공께서 이때를 놓치지  않고 군사를 내신다면 북소리  한 번에 그를 무너뜨릴 
수가 있습니다. 명공께서  이제 군사를 몰아 양양을 찔러 초관  까지 진격하시면 
파촉을 도모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연후에  천하의 대세를 
정하십시오."
  손권은 감녕의 말에 만족하며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금옥같은 말이오. 이는 하늘이 내게 주신 절호의 기회일것이오."
  감녕이 강호를 떠돌며 유표와  황조를 거치며 지금까지는 주인을 정하지 못했
으나 그가  천하를 보는 눈만은 그리  얕은 것이 아니었다. 손권은  감녕을 후히 
대접하며 그의 말에  따라 즉각 군사를 일으켰다. 손권은 출정하기  전에 축배를 
들며 감녕에게 말했다.
  "그대로 인해 황조를 치게 되었소 .단숨에 쭈욱 들이키시오. 만일 황조를 쳐부
수면 그 공은 그대의 것이오."
  이리하여 주유를 대도독으로  명하고 여몽을 선봉대장으로, 동습, 감녕을 좌우
군의 부장으로 삼아 10만대군은 장강을 거슬러  강하로 밀려들었다. 손권의 병선
이 강하로 몰려들자  이 사실은 곧 황조에게로 전해졌다. 황조의  놀라움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고 휘하 장수들을 불렀다.
  '전에도 싸워서 우리가 이겼다.  오의 햇병아리들이 어디를 감히 겁도 없이 쳐
들어온다는 말이냐!'
  항조는 내심 허세를  부리며 오군을 맞은 준비를 했다. 황조는  소비를 대장으
로 삼고 진취, 등룡을  선봉으로하여 강으로 나아가게 했다. 대강의 파도는 거셌
다. 동오군은 면구로  진격해 들어갔다. 진취, 등용도 각기 한  떼의 전선을 이끌
고 마주  나왔는데 배 위에는 크고  작은 노궁을 배치해 놓았다.  또 전선끼리는 
한줄로 밧줄을 비끄러매어 연결시켜 놓았다. 
  이윽고 동오군이 면구에  이르자 진취, 등요의 배 위에서 요란스럽게  북 소리
가 울리더니 화살과  쇠뇌살이 일제히 오군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오선은 
화살 벌집이 되어  배마다 진로를 잃고 갈팡질팡하며  더 나아가지를 못하고 몇 
리나 물러났다.
  '대세는 이번에도 불리하단 말인가?'
  주유의 마음은 어두웠다. 그때 주유에게 감녕이 다가와 말했다.
  "더 나아가기 힘드니 다른 방책을 써야 하겠소."
  감녕은 작은 배 1백여척을 내어 날랜  군사 50여명을 태웠다. 20여명의 군사는 
노를 젓도록하고, 나머지30여 정병들은 갑옷을 받쳐입고  칼을 들어 싸울 태세를 
취했다.
  "자 싸움은 지금부터다!"
  감녕이 배 위로 올라 이렇게 소리치며 화살과 쇠뇌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적의 
함대 속을 뚫고  들어갔다. 1백여 척의 작은 배들이 적진  깊숙이 들어가 배끼리 
연결해둔 밧줄을  도끼로 끊으니 적의  배들이 뿔뿔히 흩어졌다.  감녕은 등용이 
탄 배로 접근해 몸을 날려 배 위로 뛰어  들었다. 등용은 감녕이 배 위로 오르자 
칼로 그를 막으려 했으나 감녕의 재빠른 칼을  막지 못했다. 감녕의 한칼에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다른 배에서 이 모양을 지켜  보고 있던 진취가 간담이 서늘해져 배를 갈아타
고 달아나기에  바빴다. 이를 본 여몽이  작은 배 위로 뛰어내려  진취를 뒤쫓기 
시작했다. 이때쯤 감녕이 거느린 정병들이 황조군의 배  위로 기어 올라 불을 지
르며 적군을 닥치는  대로 베고 있었다. 이미 황조군의 제1진은  무너지고 제2진 
또한 육지의  동오군에 쫓기고 있었다.  도망가던 진취를 뒤쫓던  여몽이 진취의 
배에 이르자  한창에 그를 찔렀다. 거꾸러진  진취를 보자 여몽은 큰  칼을 뽑아 
목을 쓱 베었다.
  함대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대장 소배가 군사를 이끌고 강가로 달려왔으나 그
때는 이미 손권의  장수들이 일제히 상륙한 이후였다. 동오의 군사들이  적의 대
장 소비를 보자 앞다투어 달려가 그를 사로잡으려 했으나 일개 장졸들이 대장을 
당해낼 수 없었다.  소비의 주위에 오군의 시체가 즐비하게 널렸는데  오의 장수 
반장이 달려갔다. 반장은 달려드는 적군을 휩쓸며  곧장 소비에게 달려가더니 말 
위에서 소비의 몸을  덮쳐 그를 사로잡았다. 반장이 소비를 결박지어  아군 진지
로 돌아왔다. 반장이 소비를 손권에게 바치자  손권은 소비를 노려보며 군사에게 
명했다. 
  "당장 베어버리기에는 아깝다. 여기에 황조의 머리를  보태 개선한 후 두 머리
를 나란히 선산에 바치리라. 저놈을 함거에 넣어 호송하라!"
  손권은 그렇게 명을 내린 후 3군을 독력하여 황조가 있는 하구를 향해 맹공격
을 퍼부었다. 황조는 크게 당황하였다. 동오군에게 이미 크게 패했던 군사들인데
다가 장수들마저 모두 사로잡히거나 목이 떨어진 터였다.
  그토록 오랫동안  '강하에  황조가 있다'고 뽐내던 기반도 이제는 오군의 말발
굽아래 짓밟힐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오군이 성  밑에 이르자 감녕이 성을 둘러 
보았다. 서문,  남문에는 오군이 밀어닥치고 있지만  동문에는 아직 오군이 없었
다. 감녕은 황조가 필시 이 문으로 도망치리라고 여겼다.
  '황조의 목은 기필코 내가 베리라!'
  감녕은 이렇게 생각하며 성 밖 5리쯤에  매복하고 있었다. 이때쯤 오군은 황조
가 있는 성에다 맹렬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황조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음
을 알고 군사20여기를 거느리고 황급히 동문을 빠져나와 형주로 달렸다.
  황조가 성을 빠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윽고 강하성에는 검은 연기가 오
르고 있었다. 성은 마침내 손권에게 떨어지고 만 것이다. 황조가 뒤돌아 볼 새도 
없이 형주를 향해 말을 달리고  있는데 홀연 길섶에서 기병 수십기가 불쑥 앞을 
가로 막았다. 황조가 놀라 보니 그는 바로 감녕이었다. 황조는 그래도 이전에 거
느렸던 부하인지라 다급한 마음에서 짐짓 부드러운 목소리로 수작을 걸었다.
  "내가 지난날 너를 후히 대하지 않았느냐?어째하여 옛 주군의 길을 막으려 하
는가?"
  그러나 황조의  능청스런 말은 감녕의  노기를 더욱 부채질할  뿐이었다. 이에 
감녕이 황조를 노려보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내가 전에 네놈에게 몸을 굽히며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후히 대하기는커
녕 너는 나를  한낱 강에서 도적질이나 일삼는  해적의 무리로만 대했거늘 무슨 
되잖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느냐!"
  감녕이 그렇게 나오자  황조는 일이 글러버렸음을 알고  급히 다른 길로 말을 
몰았다. 감녕도 말을 몰아  황조를 뒤쫓았다. 한참을 쫓기고 쫓는 가운데 감녕의 
등 뒤에서  홀연 크게 함성이 일며  요란스런 말발굽 소리가 들려  왔다. 감녕이 
돌아보니 그는 바로 손권의 장수 정보였다. 정보라면  황조 때문에 원정 도중 허
망하게 전사한 손견에서부터 3대 손권에 이르기까지 용맹을 떨치고 있는 장수가 
아닌가.
  정보도 옛 주군의  원수를 갚겠다고 황조가 동문으로  도망친 것을 알고 기병 
수십기를 이끌어 추격해 오고 있던 중이었다. 감녕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여차하
면 공을 정보에게 빼앗길 처지였다. 이에 감녕은  허둥지둥 허리에 찬 철궁을 빼
어 화살을 메긴 후, 황조의  등을 향해 쏘았다. 화살은 어김없이 황조의 등에 가
서 꽃혔고, 황조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몸을  뒤집으로 말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
았다. 감녕이 달려가 그 머리를  베어 들었다. 감녕은 뒤쫓아 온 정보와 함께 성
으로 돌아가 손권에게 황조의 머리를 바쳤다.
  "나무 상자에 그놈의 목을 넣어 두도록  하라. 내가 강동으로 돌아가면 선친의 
영전에 바쳐 제사를 올리리라."
  황조의 목을 베고 성까지 빼앗자 손권은 3군에 후한 상을 내렸다.
  "감녕의 공이 크오. 그대를 도위에 봉하겠소."
  손권은 감녕을 치하하고 강하의 성에  군사 일부를 남겨 그에게 이 성의 수비
를 맡기려 했다. 그러나 장소가 이를 말렸다.
  "이 작은 성 하나를 지키기 위해 군사를 남겨두면 훗날 두고두고 여기에 매달
려야 합니다. 차라리  깨끗이 버리고 돌아가면 반드시 유표가 군사를  움직여 황
조의 복수를 꾀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앉아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먼길을 와 
지쳐 있을  그들을 쳐부수면 될 것입니다.  거기서 내친 김에 곧장  쳐들어 가면 
형주, 양주 두 주를 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강하를 미끼로 삼아 유표를 꾀어내자는 장소의 말에 손권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훌륭한 묘안이오."
  이에 손권은 강하성을  두기로 하고 모든 군사를 이끌어 강동으로  향했다. 함
거에 감금당한 황조의  대장 소비는 은밀히 사람을  감녕에게 보내 자기를 구해 
달라고 간청했다. 감녕도  지난날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으므로 강동  땅에 이
르러 손권에게 적장 소비의 구명을 호소 했다.
  "지난날 소비의 도움으로 목숨을 보존하여 오늘날 장군을 섬기고 있습니다. 소
비의 죄는 죽어 마땅하나 그가 제게 베푼 은혜를 생각하면 차마 이대로 있을 수
가 없습니다. 부디 청컨대 소비의 죄를 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손권은 감녕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만약 소비가 그 어진  일을 행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대승도 없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손권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소비가 그대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면 나도 그대를  위해 용서할 수 있소. 그러
나 만약 그가 달아나면 어찌할 것이오?"
  "소비가 지를 면해 목숨을 건졌으면 그 은혜에 감격할 지언정 어찌 달아날 수
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가 달아난 다면 저의 목을 장군께 바치겠습니다."
  감녕이 결연한 어조로 대답하자  손권은 소비를 용서하고 황조의 머리만 제물
로 바쳐 제사를 지냈다. 손권은 황조의 머리를  제물로 삼아 제사를 끝내고 모든 
문무관원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어 이번 싸움에서의  노고를 위로했다. 또한 감녕
을 귀순시킨  여몽에게도 은상을 내리어  그에게 횡야 중랑장의  벼슬을 내렸다. 
잔치가 바야흐로 무르익어 가고 서로 술잔을 권하며 좌중에는 호탕한 웃음 소리
가 일고 있었다. 그때  문득 한 사람이 소리내어 울더니 벌떡  몸을 일으켜 칼을 
빼들고 감녕에게 달려들었다. 감녕은 대경실색한 가운데  황망히 칼을 피하며 엉
겁결에 의자를 들어 칼을 막았다.
  손권이 놀라 그를 보니  그는 능통이었다. 지난 해 하구를 칠  때 아버지 능조
를 활로 쏘아 죽인 감녕과 한 자리에 앉자 원한이 북받쳐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
려 했던 것이다.
  이를 본 손권이 직접 능통에게 다가가 그를 붙들며 달랬다.
  "내 그대의 효심을 보아 이 자리의 무례를 탓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한 주인을 
섬기는 사람들은 모두 한 형제와 같다. 흥패가  그대의 아버지를 죽인 것은 당시 
섬기던 주군에 대해 충성을 다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사사로운 원한은 아니었다. 
이제 황조는 망하고 흥패는 이미 우리의 장수가  되어 있지 않는냐. 지금 지난날
의 원한을 들추어 낼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사사로운 원한에 집착함은 효는 알
되 충의 큰길을 망각하는 것이다. 이 손권을 봐서라도 원한을 잊도록 하라."
  손권이 준엄한 어조로  타이르자 능통은 칼을 놓고  엎드려 통곡해 마지 않았
다.
  "황공하옵니다. 그러나 살펴 주십시오.  한 하늘 아래서 더불어 살 수 없는 원
수이거늘 어찌 그를 용서하라 하십니까?"
  능통은 원한에 찬  눈으로 감녕을 노려보았다. 이에 손권은 그날로  능통을 승
렬도위에 봉하고 감녕에게는 전선 1백척에 수군 5천을 주어 하구의 수비를 맡게 
했다. 감녕을 능통과  떨어져 있게하여 능통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원한
을 잊게 하려는 것이다.
  황조 정벌 이후 나라 안의 일이 마무리되자  손권은 다시 밖으로 눈을 돌렸다. 
형주의 유표가 언제 강하로 군사를  이끌고 올지 모르는 터라 그에 대비한 준비
를 서둘러야 했다.
  동오가 국력을 쏟아  가장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수군의  양성이었다. 싸움
에 필요한 큰 배를 만들고  강 언덕마다 수군을 배치 시킨 후 수군 대도독 주유
로 하여금 수군을 조련시키게 했다. 또한 숙부  손정에게 오회를 지키게 하고 자
신은 친히 대군을 거느려 파양호 부근의 시상군까지 군영을 전진 시켰다.  

  그 무렵 유비는  신야에 공명을 맞아들여 날마다  천하 대사를 의논하고 있었
다. 공명이 어느 날 유비에게 홀로 생각하던 바를 권했다.
  "조조가 지금 기주에다 현무지라는 못을 만들어 수군을 조련하고 있다고  합니
다. 이는 반드시 강남을 치기 위한 조치이니  세작을 보내어 강동의 동정을 엿보
게 하십시오. 그런 다음에야 우리가 해야 할 바를 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명의 말에 유비는  지체하지 않고 강동으로 사람을 보냈다. 며칠  후 강동으
로 보냈던 세작이 돌아왔다.
  "손권은 이미 하구를 토벌하고 황조를 죽였습니다. 지금은 시상현에 나아가 군
사를 머물게 했으니 수군을 활발히 양성하고 있습니다."
  세작의 말을 듣고 유비는 생각에 잠겼다. 손권이  황조를 치는 것은 그 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것이리라. 그러나 수군을  양성하며 군사를 시상에까지 이끌어 
나온 것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유비가  공명에게 이 일을 묻자 공명
이 침착한 어조로 고했다. 
  "손권이 형주를 엿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조조가 또한 남쪽을 노리고 있으니 
앞으로 큰 세력 다툼이 일 것입니다."
  유비와 공명이 앞일을  의논하고 있는데 형주에서 보낸 사람이 와  알렸다. 유
비에게 급히 의논할  일이 있으니 형주로 와 달라는 유표의  전갈이었다. 유비는 
지난번 잔치 자리에서 도중에 뛰쳐나온 이후라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공명
에게 물었다.
  "가는 편이 좋겠습니까, 그만두는 편이 좋겠습니까?"
  그러자 공명이 유비에게 권했다.
  "이번에 주공을 부르는 것은 손권이 황조를  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표는 주
공을 청해 함께 오의 손권을 치자고 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주공을 모시고 
가서 그때  그때의 일을 의논하겠습니다.  주공께서는 아무 걱정  마시고 부름에 
응하십시오."
  "그렇다면 유표를 만나서는 어떤 태도를 취하면 좋겠소?"
  "먼저 양양에서 잔치 도중에 몸을 빼낸  일을 사과하십시오. 그런 다음 유표가 
동오를 치자고 말하거든 핑계를 대고 응하지 마셔야 합니다."
  유비는 공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장비에게 군사 5백을 거느리게하여 호위
케 한  뒤 함께 형주로 향했다.  형주에 이르자 유비는 장비에게  거느린 군사와 
함께 성밖에 머물도록 하고 공명과 함께 성  안으로 들었다. 유비는 유표를 보는 
예를 끝내자 계하에 엎드려 지난 일을 사죄했다.  유비가 양양 잔치의 일을 빌자 
유표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나는 지난번 양양의 모임에서 아우가 뜻밖의 난을 당한 것을 알고 있네. 그때 
채모를 참하여 아우에게 보내고  싶었으나 여러 신하들이 간곡히 만류하기에 본
의는 아니나마 용서해 주었네. 아무쪼록 그 일은 잊어주기 바라네."
  유표의 말에 유비는 웃으며 말했다.
  "그 일은 채 장군이 꾸민 것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 말단의 소인배들의 짓이라 
여겨집니다. 이미 잊고 있습니다."
  유비가 이렇게  말하며 유표의 난처한  입장을 면해 주었다.  그제서야 유표는 
의논할 일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런데 손권이 강하의 황조를  친 소문을 들어 알고 있겠지만 이 일을 그
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나?"
  "황조가 성미가 사납고 신하를 부릴 줄 몰라 자멸한 것입니다. 어느 때고 이런 
일이 있을 줄 짐작했습니다."
  "아우를 청한 것은 함께 보복할 좋은 방책을 상의하기 위해서네."
  "만약 지금 군사를 일으켜  강남의 손권을 치신다면 조조가곧 허를 틈타 바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그때는 어찌 하시겠습니까?"
  "그렇네 , 바로 그  점이 걱정이네. 나도 근래에는 노령인데다 병이 잣으니 아
우가 나를 도와 주어야  겠네. 아우는 한의 종친이니 내가 죽은  후에는 이 형주
를 맡아 주어야 겠네."
  유표의 말에 유비가 놀라며 급히 사양했다.
  "형님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 큰 나라, 또 이 난국을 어찌 불민
한 아우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옆에서 이를  지켜 보던 공명이 유비에게 눈짓을 했다.  유표가 유비에게 
형주를 맡으라고 할  때 거절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유비는  공명의 눈짓
을 보고도 유표의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말을 덧붙였다.
  "형님 께서는 그런  심약한 말씀은 거두십시오. 천천히  생각하며 좋은 계책을 
세우도록 하십시오."
  유비가 그렇게 말을 한 후 자리를 물러났다.  유비와 공명이 함께 역관으로 돌
아오자 공명이 물었다. 
  "유경승이 형주를 맡으라고 할 때 어찌하여 거절하셨습니까?"
  "유경승은 내게 은의와 예절로써 대해 왔습니다.  어찌 그의 위기를 틈타 형주
를 차지할 수 있겠습니까?"
  유비의 말에 공명은 안타까운 가운데서도 한편으로는 새삼 감탄하며 중얼거렸
다.
  '과연 너그럽고 어진 주군이구나.'
  공명은 더 이상 그  일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손님이 왔다는 전
갈이 왔다.
  "형주의 공자 유기 공이 오셨습니다."
  유비가 급히 일어나 유기를 맞아 들였다. 후사  문제로 예사롭지 않게 일이 얽
혀들고 있음을 알고 있는  유비로서는 찾아온 유기가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무거
웠다. 유비가 찾아온 연유를 묻기도 전에 유기는  절을 하면서 벌써 울먹이고 있
었다.
  "저는 형주의 맏공자로  태어나기는 했으나 계모 채씨에게는 유종이란 아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항상 저를  죽이고 종을 후계자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성
에 더 이상 머물러  있다간 언제 죽음을 당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숙
부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겨 구해 주십시오."
  유비가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유기의 처지가 딱했
으나 지난번 후사 문제로 실언을 한 적이 있던 유비로서는 경솔히 입을 열 계제
가 아니었다. 유비가 단호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조카의 집안일은 다른 사람이 참견해서 수습될  일이 아니네 , 나한테 이야기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유비가 말을 마치고 슬며시  공명을 떠 보았다. 공명은 미소짓고 있었다. 유비
가 유기의 청을 거절한 것에 대해 찬동을  표시하는 웃음이었다. 유비가 그런 공
명에게 물었다.
  "조카를 위한 좋은 방도가 없겠습니까?"
  공명도 머리를 저으며 잘라 말했다.
  "남의 집안일이니 어찌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겠습니까?"
  유비와 공명이 그렇게 말하니 유기는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유기를 측은히 여긴 유비가 그를 전송하면서 귀엣말로 속삭였다.
  "내일 조용히 자네에게  공명을 보내겠네. 그때 그에게 묘책을 물어보게.  반드
시 좋은 가르침이 있을 것이네."
  다음 날 유비는 공명에게 병을 청탁하고 부탁을 했다.
  "어제 공자의 방문을 받았으니 답례를 하러 가야겠는데 웬일인지 오늘  아침부
터 복통이 심합니다. 나를 대신해서 인사를 치러주시오."
  공명은 곧 유기의 관으로 갔다. 유기에게 인사한 후, 공명이 관을 나오려 하자 
유기가 한사코 놓아주지 않았다. 어제 유비가 한  말을 듣고 오늘은 꼭 공명에게 
방책을 묻고야 말리라고  작정을 한 후라, 유기는 공명을 후당으로  맞아들여 차
를 대접한 뒤 일어서려는 공명을 붙들었다.
  "이렇게 귀한 걸음을  하셨는데 이 기가 어찌  대접도 하지 않고 그냥 보낼수 
있겠습니까?"
  유기는 공명을 밀실로 이끌어 술을 대접했다. 술이  몇 순배 오가자 유기가 공
명에게 하소연했다.
  "계모가 이 기를 미워하니  바라건대 선생께서는 부디 한 말씀만 일러 주십시
오."
  공명은 유기의 말에 싸늘한 어조로 거절했다.
  "나는 이곳의 손님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찌  남의 집안일을 간섭할 수 있겠습
니까?"
  공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유기가 황급히 일어나 공명을 붙들며 만류했
다.
  "말씀을 않으시면 그만이거늘  어찌 술자리도 파하지 않았는데 가시려고만 하
십니까?"
  유기가 그렇게 말하며  공손히 자리에 앉기를 청하자  공명도 그의 손길을 더 
이상은 뿌리칠 수  없었다. 공명이 주춤거리며 자리에 안자 유기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선생이 찾아 주신 이 기회에  꼭 한 번 보여드려 가르침을 받고 싶은 고서가 
있습니다. 희귀한 책이니 선생께서 한 번 보아 주십시오.."
  공명의 호학심을 충동질한  말이었다. 희귀한 책이라는 말에  공명도 궁금증이 
일었다. 유기가 누각으로 인도하자 공명은 각 위에 올라가 자리에 앉았다. 
  "책은 어디에 있습니까?"
  공명이 묻자 유기가  공명의 발 밑에 꿇어  안자 눈물을 흘리며 애걸하다시피 
부탁을 했다.
  "선생 용서하십시오. 선생께 저의 죽음을 면하기  위한 길을 묻고자 거짓을 고
했습니다. 부디 뿌리치지 마시고 한 말씀만 일러 주십시오."
  공명은 그 말에 얼굴색까지 달라지더니 벌떡  일어나 누각을 내려가려했다. 그
러나 어느 새  누각에 놓여있던 사닥다리가 치워지고 없었다. 유기가  공명을 따
라오더니 여전히 울먹이며 호소했다.
  "선생은 혹시 말이 새어  나갈까 염려하시어 말씀을 아니하십니까? 그러나 이
젠 하늘에 닿을 수도 없고  땅에 닿을 수도 없으니 누가 말을 엿듣겠습니까? 부
디 이 기에게 살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바깥 사람은 가까이  지내는 사이를 이간시키지 말며  낯선 사람은 오래도록 
함께 지낸  사이를 떼어 놓지  말라' 하였습니다. 어찌  저를 끌어들이려 하십니
까?"
  공명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럼 끝내 선생의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유기가 비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러자 유기는 별안간 칼을 뽑아 자기 손으로  제 목을 찌르려고 했다. 공명이 
놀라 황망히 유기의 손을 붙잡았다.
  "선생님이 끝내 말씀을 않으시니  이왕 죽을 몸이라면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
겠습니다."
  공명은 유기의 손에서 칼을 뺏으면 말했다.
  "내 좋은 계책을 일러 드리겠소이다."
  "바라건대 가르침을 주십시오."
  유기가 칼을 놓고  공명 앞에 엎드렸다. 그제서야 공명이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옛 춘추시대에 진나라  헌공의 부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형을  신생, 
아우를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헌공의 둘째부인 여희에게도 아들
이 태어났습니다. 여희는  그 아들로 하여금 나라를 계승시키고 싶어  항상 본처 
소생인 신생과 중이를  헐뜯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헌공이 보니 정실  소생은 모
두 총명했으므로 여희가 아무리  헐뜯어도 그들의 폐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습니
다. 여희는 이에 계략을  꾸미기로 했습니다. 어느 화창한 봄날 헌공을 후당으로 
모셔 주렴 안에서  후원의 봄경치를 즐기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는  슬쩍 옷
에다 꿀을 바르고  신생을 후원으로 불렀습니다. 많은 꿀벌들이 단꿀  향기를 맡
고 여희의  몸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이때  여희가 불러 후원으로  들어온 신생은 
깜짝놀라 달려드는 벌을  쫓으며 여희의 몸을 감쌌습니다. 그 후에서  이런 정경
을 지켜 본  헌공은 대로하였습니다. 신생이 여희를 희롱하는 줄  알았던 것입니
다. 그 후 헌공은 신생을 의심하고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채 부인도 그와 같았습니다. 까닭없이 아버지가 저를 멀리하시도록 이간
시키고 있습니다."
  공명이 들려 주는 신생과 중이의  일이 자신의 입장과 너무 비슷해 절로 터져 
나온 감탄이었다. 공명의 이야기는 다시 감탄이었다.
  "첫번째 계교가 성공하자  여희는 다시 간사한 꾀를  내었습니다. 선후의 제사 
때가 여희는 몰래 재삿상에 놓을  제물 속에 독을 넣어 두었다가 신생에게 일렀
습니다. '제물을 그대로 부엌으로 물려 버리기는 아까우니 아버님께 드리도록 하
라' 고 말입니다.  여희의 간계를 알리 없는  신생이 그 음식을 아버지에게 갖다 
드리자 여희가  나타났습니다. '밖에서 들여온 음식은  함부로 드시면 아니 됩니
다' 하고 독약을 넣은  음식 하나를 개에게 던지자 개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
고 죽었습니다. 헌공은 대로하여 신생을 베고 말았습니다."
  "그럼, 아우 중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 몸에 미칠 화를  중이는 미리 알았으므로 타국으로 도망하여 몸을 숨겼습
니다. 그리고 뒷날 관중을 얻어 헌공의 뒤를 계승하였습니다. 이가 곧 진의 문공
입니다."
  공명은 신생과 중이의 이야기를 들려 준 후 유기에게 한 가지 계책을 일러 주
었다.
  "지금 형주의 동남쪽 강하의 땅은 황조가 죽은 후 지키는 이가 없습니다. 공자
께서 화를 면하고 싶으시면 아버님께  말씀드려 그 성의 수비를 맡게 해 달라고 
하십시오. 이는  중이가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해 일신의 재난을 피한  것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유기는 공명의 말을  듣더니 비로소 얼굴이 밝아졌다. 강하의 성을  지키고 있
으면 채씨로부터  떨어져 있게 되니 화도  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군사를 이끌어 가게 되니 뒷날도 기약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유기는 공명에게 
여러 번 절을 올리며 감사를 표했다.
  "선생의 말씀을 들으니 어두웠던 눈앞이 훤히 밝아오듯 합니다."
  유기는 가신을 불러  사닥다리를 놓게 한 후 공명을 전송했다.  공명이 유비에
게 돌아와 이 일을 자세히 들려 주었다.
  "그것은 참으로 좋은 계책이었소."
  유비는 짐짓 시치미를 떼고는 그렇게 말했다. 이튿날, 유기는 부친인 유표에게 
나아가 강하의 수비를  맡겨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유표는 선뜻  허락하지 않았
다. 후처 채씨의 아들과  후사 문제로 시달리고 있을 때라 그를  멀리 보내는 것
은 짐을 더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아들  유기가 그 성을 지킬만큼 믿음직
스럽지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표는 생각 끝에  유비를 불렀다. 유비가 성으로 
들자 유표가 물었다.
  "큰애 기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자기 강하의  수비를 맡겨 달라고 하였네. 아
우는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유비는 스스로가 구민 일이므로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강하는 오와의 경계이기도 한 중요한 곳입니다. 다른 사람보다는 가까운 일족
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는 것이 좋으니 공자를 그곳으로 보내십시오.  그래서 동
남족의 방비는 형님과  아드님께서 맡으십시오. 서북쪽은 이  아우가 맡아보겠습
니다."
  유비가 적극 찬동하고 나서자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던 유표도 가볍게 고개
를 끄덕였다. 유기는 부친  유표의 허락이 있자, 그날로 군사 3천을 이끌어 강하
로 떠나고 유비도 신야로 돌아왔다. 

  공명의 첫 용병 
  유랑하는 십만 대군

  이 무렵, 허도의  조조는 삼공의 직책을 없애고 승상인 자신이  삼공의 직임을 
맡아 권세를  한 손에 쥐었다. 이어  모개를 동조연에, 최염을  서조연에 명했다. 
또 주부  사마랑의 아우로서 하내 온  땅 사람인 사마의, 자가  중달이라고 하는 
사람을 문학연으로 등용했다.
  사마중달은 그 당시 문관으로서 인재 등용의 직무에 종사하고 있어 아직 그의 
역량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그의 번뜩이는 기지와 재주를 
엿보고 등용한 것이었다. 
  조조는 이런 인재들을  문관으로 삼아 진용을 갖추어 내정을 다진  후, 무장들
을 불러모아 남방의 형세를 의논하였다.
  하후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즈음 유비는 신야에서 제갈량을 군사로 삼아 군사를 조련하고 있다고  합니
다. 그냥 두면  뒷날의 큰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우선 유비를 쳐 걱정거리를 
없앤 후 뒷일을 도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조는 하후돈의  의견을 좇기로 했다.  조조 또한 유비를  치기로 오래전부터 
작정해 온 터였다. 형주를  바로 쳐 유표가 유비와 힘을 합하게  하는 것보다 유
비가 홀라  신야에 있을 때 그를  제거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여긴  조조였다. 곧 
하후돈을 총군의 도독으로  삼고 우금·이전·하후란·한호를 부장으로 삼은 10
만 군단을 이끌게 했다.
  출정이 있기 전 모사 순욱이 조조에게 이를 말렸다.
  "듣기로 제갈량이라는 자는 범상한 인물이 아닌 모양입니다. 지금 경솔히 출정
을 도모함은 이기더라도  이익은 적고, 만약에 진다면 승상의 위명에  손상이 가
게 되니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하후돈이 그 말에 껄걸 웃으며 말했다.
  "유비나 제갈량은 모두 제 영토도 변변히 갖고 있지 않은 들쥐에 지나지 않소. 
내가 꼭 그들을 사로잡아 올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아니오. 장군! 유현덕을  얕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거기다가  제갈량까지 가세
했으니 이는 범에게 날개가 돋친 격이오."
  하후돈이 웃으며 순욱의 말을 하찮게  여기는 듯하자 불쑥 입을 연 사람이 있
었다. 조조가 보니  얼마 전가지 신야에서 유비를 준군으로 섬기고  있던 서서였
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서서가 그렇게 말하자 조조가 물었다.
  "제갈량은 대체 어떤 인물인가?"
  "제갈량은 자를 공명,  또 도호를 와룡선생이라 합니다. 위로는 천문에  통달하
고 아래로는 지리·민정에 밝으며  육도를 통달하고 삼략을 가슴에 새긴 자입니
다. 실로 천하에 그와 비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재사입니다."
  서서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를 높이자 조조가 다시 물었다.
  "공에 비한다면 어떠하오?"
  "저 따위와는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저를 작디작은 반딧불로 친다면 제갈량
은 밝은 보름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재주가 그렇게 놀라운가?"
  "그렇습니다."
  서서의 말을 곁에서 듣고 있던 하후돈이 불끈 화를 내며 소리쳤다.
  "원직은 어찌하여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오? 내가 보기에 제갈량은 아직 
싸움 한 번 해  본 적 없는 애송이에 지나지 않소. 만약 내가  이번 싸움에서 그
를 사로잡지 못한다면 이 목을 기꺼이 승상께 바치겠소."
  하후돈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언성을 높이자 조조도 하후돈의 의기를 북돋
워 주며 출진을 명했다.
  "도독의 말은  언제 들어도  믿음직하오. 싸움에서 이겼다는  소식을 기다리겠
소."
  조조의 명을 받자 하후돈은  그날로 분연히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박망성으로 
향했다. 박망성은 신야와  가까운 곳이니 우선 그곳에 진영을 펼치고  신야를 엿
보기로 한 것이다.
  한편 신야의 공명은 유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불쑥 물었다.
  "명공께서는 스스로 유표와 비교하여 어떻다 보십니까?"
  "나는 아직 유표에 미치지 못하오."
  "그렇다면 조조와는 어떻다 보십니까?"
  "더 미치지 못하오."
  "명공께서는 그 두 사람에게도  미치지 못하는데 휘하의 병력조차 겨우 몇 천
에 불과합니다. 만약 조조가 내일이라도 군사를  내어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막겠
습니까?"
  "내가 근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오. 그러나  아직 좋은 계책이 떠오르지 않습
니다."
  "계책을 세우지 않는 근심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그 계책을 일러 주오."
  유비의 청에 공명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급히 신야의 호적부를 만들고 백성들 중에 군사로 뽑을 만한 사람을 모아 민
병을 조직하십시오. 제가 그들을 가르쳐 날랜 군사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유비는 공명이 이른 대로 호적부를  만들고 군사로 기를 수 있을 만한 장정들
을 뽑으니 3천여 명이 되었다.
  다음 날부터 공명은 몸소 교관이 되어  3천 명의 민병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군사로서의 극기정선을 불어넣기 시작하여 칼쓰는 법에서 고도의 전술인 진법에 
이르기까지 공명은 하나하나 민병들에게 가르쳐 나갔다.
  농사나 짓던 민병대는  날이 갈수록 그 모습이  달라지더니 오래지 않아 여느 
군사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훌륭한 정예병이 되어 가고 있었다.
  유비는 물론 관우·장비는  크게 감탄해 마지않았다. 군사를  조련하는 방법이
나 병가를 꿰뚫고 있는 그 탁월한 식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달쯤이 되자 3천의 민병대는 공명의  수족처럼 움직이게 되었다. 공명이 기
른 군사로 유비의 군사는 이전보다  두 배나 늘어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그들
을 바라보고 있는데 홀연 사람이 와서 아뢰었다.
  "하후돈을 대장으로 10만 대군이 신야로 쳐들어온다고 하옵니다."
  유비가 크게 놀라며 관우·장비를 불렀다.
  "10만 대군이 몰려온다고 하니 이들을 어떻게 막아야 하겠나?"
  유비의 물음에 장비가 공명을 빗대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형님께서는 이전에 고기가 물을 만났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 
'물'더러 막으라고 하시지요."
  유비가 공명을 윗자리에 앉히고  침상과 식사를 함께하며 그를 깍듯이 받드는 
데 대한 비아냥이었다. 유비가 장비의 마음을  짐작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타일렀
다.
  "지혜는 공명을 믿고 용맹은  아우들을 믿고 있는데 어찌하여 모든 일을 공명
에게 미루는가?"
  관우·장비는 유비의  타이름에도 시무룩한  얼굴로 물러갔다. 유비는  공명을 
불러 이 위급한 사태를 전하고 그 대책을 물었다.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공명은 우선 말문을 열어 유비를 안심시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다만 염려되는 바는 밖에보다 안에  있습니다. 아마 관우·장비는 제 명령
에 복종치 않을 것입니다. 군령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까 그것이 염려됩니다."
  공명도 이미 관우·장비가 자신을 마땅치 않게 여기고 있음을 헤아리고 한 말
이었다.
  "실로 그것이 걱정이오. 그러니 어쩌면 좋겠소?"
  "황송하오나 주공의 검과 대장인을 이 양에게 빌려주십시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되겠소?"
  공명은 유비의 검과 대장인을 건네 받았다.  주공의 권한을 위임받아 관우·장
비를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유비에게 검을 받자  공명은 급히 장수들에게 모이도
록 군령을 내렸다.  공명의 군령을 전해 듣자 장비가 못마땅한  얼굴로 관우에게 
말했다.
  "오라고 하니 가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고  어디, 가서 하는 꼬락서니나 한 번 
봅시다."
  여러 장수들이 모이자 공명은 군사의 자리에 앉고 유비는 가운데에 자리를 잡
아 앉았다. 공명이 일어나 엄숙한 목소리로 군사의 배치를 명했다.
  "이곳 신야 90여 리밖에   박망성이 있으며 그 박망성은 가파른 고개 위에 있
다. 왼쪽은 산이 있는데 예산이라 한다.  바른쪽에는 숲이 있는데 안림이라 한다. 
그러니 각자는 그곳이 싸움터임을 알라!"
  공명은 먼저 싸울 곳의 지세를 설명한 후 군사와 장수들의 배치를 명했다.
  "운장은 군사 1천 5백을 이끌고 예산에 매복하라. 적군이 그곳을 지날 때 남쪽 
산에서 불이 일거든 후진을 쳐서  적의 치중을 습격하고 불을 질러 섬멸토록 하
라. 익덕도 역시 1천 5백의  군사를 이끌고 안림에 매복토록 하라. 숲 뒤의 골짜
기에 매복해 있다가 남쪽에서 불길이 오르면 곧장 적의 중군 선봉을 무찌르도록 
하라. 또 관평과  유봉은 각각 군사 5백을 이끌고 불지를  것을 준비하여 박망성 
양쪽에 매복해 있다가 초경 때쯤 적이 이르거든 즉시 불을 지르도록 하라."
  관우와 장비에게 이렇게 군령을 내린 공명은 급히 번성을 지키고 있는 조자룡
을 불러 오게 했다. 조자룡이 공명 앞에 이르자 공명은 그에게 영을 내렸다.
  "자룡은 선봉에 서서 하후돈을 맡으라."
  조운이 공명에게 절하며 영에 따르겠음을 표하자 공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룡은 자기  하나의 공명심은 반드시 삼가고  다만 가서 싸우되 패한척하고 
도망하라. 이기기를 목적으로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다만 적을 우리 쪽으로 깊
이 끌어들이는 것이 자룡의 소임이니 결코 계책을 그르치게 하지 말라."
  공명은 모든 군사의 배치가 끝나자 유비를 바라보며 아뢰었다.
  "주공께서는 한 떼의 군사를  거느리시고 선봉 자룡의 뒤를 받치며 싸움을 살
피시다가 후원이 필요할 때를 기다렸다가 나가십시오."
  장수들에게 영을 내린 후  주공인 유비에게까지 배치를 정하자 관우가 공명에
게 언성을 높여 물었다. 
  "군사의 영은 잘 알겠소. 그런데 한 가지  알고 싶은 것은 군사께서는 어느 방
면으로 출동하시오?"
  "나는 여기서 성을 지킬 거싱오."
  그 말에 그때까지 뒤틀리던 심사를 억누르고 있던 장비가 크게 웃으며 빈정댔
다.
  "하하하, 우리는 모두 나가 싸우도록 하고  선생은 편안히 앉아 성을 지키겠다
는 뜻이구려."
  공명은 엄한 얼굴로 냉엄하게 장비를 꾸짖었다.
  "주공의 검과 패인이 여기에 있다. 명을 어기는 자는 가차없이 목을 벨 것이며 
군기를 어지럽히는 자 또한 다름 아니다."
  그렇게 말한 공명이 매섭게 장비를 쏘아보는데 유비도 큰 소리로 공명을 거들
었다.
  "'장막 안에서  계책을 세우고 천리 밖의  싸움을 이기도록 한다'는 말도  듣지 
못했는가? 두 아우는 군령을 어기지 않도록 하라!"
  유비까지 추상같이 영을  내리니 관우·장비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하
는 수 없이 물러나며 관우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어디 두고 보는 수밖에. 그의 계책이 들어맞지  않을 때는 내가 엄히 따져 보
리라."
  관우·장비가 못마땅한 마음을 씻지 못한 채 자리를 물러났을 때 조운을 비롯
한 다른 장수들의 마음도 밝지가 않았다.
  겉으로는 명을 받들어 각각 싸움터로  향했으나 내심 공명의 재주를 알 수 없
어 의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적은 10만 대군이다. 싸움 한 번 해 보지 않은 백면서생이 성 안에 앉아 세운 
계책만을 믿고 싸우다니......'
  장수들이 미심쩍은 불안한 마음을 드러내자 공명은 유비에게 청했다.
  "주공께서는 군사를 거느려 박망산 아래에 진영을 세우십시오. 내일 저녁이 되
면 필시 적군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진영을 그대로 두고 군사를 물리십
시오. 그리고 산 위에 군호로 올리는 불길이  보이거든 그때 군사를 되돌려 적을 
치십시오. 이 양은  미축.미방과 더불어 군사 5백을  거느려 성을 지키며 준비할 
것이 있습니다. 손건.간옹에게 적는 공로부를 마련해 두고 이기고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싸움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으니 공로부까지 미리 만들어  놓겠다는 말이었다. 
유비가 공명의 재주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공명과는 첫 싸움을 치르는 터라 
한 가닥 불안마저 지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는 공명을 의심하는 말
을 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묵묵히 군사를 이끌고 박망산으로 향했다.
  이 무렵 하후돈은 대군을 거느려 박망성 부근에 이르렀다.
  "이 곳은 어느 곳이냐?"
  하후돈은 그곳에 사는 사람을 불러 지리를 물었다.
  "이곳은 박망파라는 곳인데 뒤는 나구천 이라는 냇물이며 좌우는 예산과  안림
이라는 산과 숲입니다. 
  하후돈은 군량과  치중이 있는 후진을 우금.이전  두 장수에게 맡겼다. 그리고 
몸소 군사의 반을 이끌고 부장 하후란.한호를 데리고 전진했다.
  하후돈은 먼저 여러 장수들을 데리고  적의 진용을 살피기 위해 언덕 위에 올
랐다.
  한참을 유심히 살피고 있던 하후돈이 말 위에서 크게 웃었다.
  "하하하, 저것이 우리를 맞으러 오는 유비의 군사들인가?"
  장수들은 하후돈이 크게 웃자 모두 입을 모아 물었다. 
  "장군께서는 무엇이 그렇게 우스우십니까?"
  하후돈이 여전히 빈정거리며 말했다.
  "전에 서원직이 승상 앞에서 공명의 재주를 칭송하며, 마치 신통력이라도 있는 
듯이 말하지 않았는가? 이제 그의  포진을 내 눈으로 보니 어찌 웃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저렇게  빈약한 병력에다 포진마저 저  모양이니 어찌 우리와 맞싸울 
수가 있겠느냐! 이는 흡사  개나 양을 살살 달래 범과 싸움을 시키려는  꼴과 같
다. 내가 지난번 승상 앞에서 유비와  제갈량을 사로잡겠다고 호언장담했더니 이
제 그 말대로 되겠구나!"
  하후돈이 이같이 말하더니 군사들에게  공격명령을 내린 후 몸소 말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이때 유비군의 선봉인 조운도 말을 몰아 하후돈을   맞으러 나왔다. 하후돈이 조
운을 보며 목청을 높여 외쳤다.
  "너희들이 유비를 따르는 것은 죽은 귀신을  따르는 것과 같다. 그럴바에야 말
에서 내려 항복하라!"
  조운은 그  소리에 분기를 참지  못하고 창을 휘두르며  하후돈에게 달려갔다. 
창과 칼이 불꽃을 튕기며 싸우기를 10여 합,  조운은 슬며시 말머리를 돌려 달아
나기 시작했다.
  "이놈 게 서지 못할까!"
  이미 언덕  위에서 적진을 살필  때부터 유비군을 얕보고  있던 하후돈이었다. 
하후돈은 신명이 나 뒤쫓고 조운은 바로 그의 눈앞에서 말을 달리고 있었다. 
  하후돈이 조운을 덮치자  조운도 창으로 응수했다. 그렇게 몇 합을  싸우다 다
시 조운은 말을 달렸다. 이렇게 쫓기고 쫓는 싸움이 몇 번인가 되풀이되었다. 
  부장 한호가 뒤쫓아와 하후돈을 만류했다.
  "너무 깊이 추적하면  위험합니다. 조운이 달아나는 꼴을  보니 필시 유인책을 
쓰는 것 같습니다. 복병이 있을지도 모르니 뒤ㅉ지 마십시오."
  그러나 하후돈에게는  그 소리가 먹혀들지  않았다. 이미 적의  하찮은 군세를 
살핀 뒤라 더욱 큰소리만 칠 뿐이었다.
  "복병이 있으면 그 복병도 물리치면 될 것이다. 이 정도의 적병이라면 비록 열 
방위의 매복군을 만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다. 그대는 공연한 걱정을 하지 말라."
  하후돈이 한호의 말을 일소에 부치고 추격을 멈추지 않고 달리니 어느덧 박망
파에 이르렀다. 그때 크게 포향 소리가 울리며  한 떼의 군마가 북소리를 울리며 
나타났다. 하후돈이  깃발을 보니 유비가  거느린 군사들인데 그  숫자가 몇백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하후돈은 껄걸 웃으며 한호에게 말했다. 
  "이게 바로 적의  복병이라는 거겠지. 어리석은 좀벌레들. 내 저들을  신야까지
라도 뒤쫓아 깨뜨리리라!"
  의기충전한 하후돈은  한달음에 유비의  본진에까지 치달을 기세였다.  유비는 
휘하를 거느리고 분전하다 공명이 준  계략대로 당해낼 수 없다는 듯 돌연 조운
과 한덩어리가 되어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유비의 군세
가 워낙 적으니 하후돈의 군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군세가 적은 유비가 도
망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유비가 말을 몰아 도망가고 하후돈이  뒤쫓는 가운
데 어느 새 해가  지고 안개와 같은 검은 구름이 달빛을  가렸다. 게다가 낮부터 
일던 바람이 밤이 되자 점점 거세어졌다.
  하후돈의 뒤를 따르던 후진인 우금과 이전은 하후돈이 워낙 급히 유비를 뒤쫓
는 바람에 그들과 10리나 뒤떨어져 있었다. 이전이  저만치 앞서 가는 우금을 불
렀다.
  "이전, 왜 그러시오?"
  우금이 비지땀을 씻으면서 뒤돌아보았다.
  "하후 도독께서는 어찌 되었을까요?"
  "군마를 휘몰아 현덕을 추격했으니  우리가 지금 뒤쫓아도 만나지 못할 것 같
소."
  "위험하오. 너무 깊숙이 추격하면....... "
  길은 점점 좁아지는데 이전이  주의를 둘러보니 사방은 모두 우거진 갈대밭이
었다. 이전이 주위를 휘돌아보며 겁먹은 얼굴로  말하자 우금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현덕군은 보기에도 하찮은 세력이었소. 이렇게 추격이 빠른 것은 그만큼 적은 
약하고 우리가 강하다는 증거요. 무엇을 염려한다는 말이오!"
  우금의 말에 이전은 여전히 주위를 살피며 염려하는 눈치였다.
  "적을 너무 가볍게 보면 반드시 패한다는 것은 병법의 초보요. 험한 길이 갈수
록 좁아지고 산과  들이 이어져 있으며 거기다가 초목도 무성하오.  이런 지세는 
화계를 베풀기 좋은 곳이라는 병법이 생각나서 하는 말이오."
  이전의 말에 우금도 문득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앞서 간 하후돈만 뒤따르는라
고 그런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우금이었다. 과연 주위를  보니 이전이 
말한 대로였다.
  "그대 말이 옳은 것  같소. 급히 도독에게 이를 알려야겠소. 그대는 내가 다녀
올 동안 후진을 맡아 주오."
  우금이 이전에게 당부한  후 말을 몰아 하후돈을 뒤쫓기 시작했다.  우금이 말
을 달려가자 이전은 말을 돌려 뒤따르는 군사들에게 명했다.
  "군사를 급히 몰지 말고 천천히 가라!"
  그러나 적은 군사가 아니었다. 급히 오던  군사들이 한꺼번에 질서정연하게 멈
추어질 리 없었다. 거기다가 후진은 군량과 치중대를  이끌고 있어 짐을 실은 말
들을 멈추는 일이 쉽지 않아 한동안 소란이  일었다. 이때 우금은 가까스로 하후
돈을 쫓아가 만났다.
  "무슨 일이오?"
  하후돈은 우금이 숨가쁘게 달려오는 걸 보자 적을 뒤쫓는 데 방해꾼이나 만난 
듯한 눈초리로 물었다. 우금이 주위를 가리켜 가며 하후돈에게 지세를 설명했다.
  "남으로 난 길이 점점 좁아지는데다가 양쪽으로 산천이 있습니다. 숲에는 나무
와 숲이 울창하니  만약 적군이 화공이라도 편다면 큰일입니다. 너무  깊이 뒤쫓
을 것만이 아니라 이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말에 하후돈을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아뿔사! 너무 깊이 들어왔구나."
  하후돈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급히  말을 돌려 세우고 뒤따르는 군사에게 외
쳤다.
  "군사들은 모두  말을 멈추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말고  말머리를 돌려
라!"
  싸움에 이골이 난  하후돈이었다. 주위의 지세를 살피는 순간 조용한  갈대 숲
에서 불현  듯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하후돈이 그렇게 외쳤다.  그러나 마치 
그 소리를 군호로  삼은 것처럼 뒤에서 홀연 큰  함성이 일며 검은 하늘이 훤히 
밝아오는 듯했다. 하후돈이 놀라 뒤돌아보니 뒤편에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퇴각하라!"
  하후돈이 소리치며 말을 몰자 이번에는 사면에서  일제히 불길이 치솟았다. 때
마침 광풍까지  몰아치니 사면팔방에서 일기 시작한  불길은 삽시간에 갈대밭을 
휩싸고 말았다.
  "복병이다! 적이 불을 질렀다!"
  하후돈이 이끄는 군사들의  대오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방에서 덮
치는 불길이라 서로  밀고 당기는 가운데 허둥지둥  날뛰기 시작한 사람과 말은 
서로 밟고  뒹굴었다. 불길과 함께 천지를  뒤덮는 듯한 함성과 북  소리로 귀가 
멍멍하니 겁을  먹고 우왕좌왕하는 군사들은  얼이 빠지고 말았다.  불길이 옷에 
옮겨 죽는 자, 말에 짓밟히고 사람에 짓밟혀 죽는 자의 수가 부지기수였다. 천지
가 떠나갈 듯한 함성 가운데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외침이 들렸다.
  "하후돈은 어디 갔느냐? 어서 나와 조자룡의 칼을 받아라!"
  조운이 군사를 이끌어 마구 적을 베며  하후돈을 찾아다녔다. 용맹을 자랑하던 
하후돈이었지만 형세가  이 지경이 되자 조운을  맞이하여 싸우기보다는 혈로를 
찾기에 급급했다.
  "말에 의지하지 말라. 말을 버리고 물줄기를 따라 퇴각하라!"
  하후돈은 휘하 장병들에게 이렇게  소리치며 자신도 말을 버리고 물줄기를 따
라 달아나기에 바빴다. 후진에 있던 이전은 선봉  쪽에서 엄청난 불길이 일자 급
히 군사를 돌리려는데  불쑥 앞에 관우가 군사를 거느려 나타났다.  이전에 관우
군과 맞서 싸웠으나  이미 기운 싸움이었다. 이전은 가까스로 목숨을  보전할 길
을 찾아 달아났다. 관우는 이전을 뒤쫓는 대신  군량과 마초를 모두 불태워 버리
고 말았다. 우금도 하후돈에게 달려갔다가 되돌아오며  보니 이미 군량과 마초가 
불길에 휩싸여 있자 급히 살 길을 찾아 달아났다.
  한편 한호와 하후란도 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군량과 마초를 지키기 위
해 말을  몰다 보니 한떼의 군사가  앞을 가로막았다. 놀라 군사를  거느린 자를 
보니 바로 장비였다. 물러설  수도 없게 된 하후한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장비가 고리눈을  부릅뜨고 사모창을 휘두르자 하후란은  맥없이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하후란이 장비의 한  창에 목이 떨어지는 걸 본 한호는  칼을 빼들 생각
도 못 하고 정신 없이 달아나기에 바빴다.
관우·장비를 비롯한  조운, 거기다 유비까지  가세하여 닥치는 대로  적을 치니 
싸움은 일방적인 살상의  형태로 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시체는  들판을 메
웠으며, 박망파의  산천은 냇물이 아니라 붉은  피로 채워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싸움은 새벽이 되어  끝났다. 관우·장비는 군사들을 점고하면서  어젯밤의 전과
를 두루 살펴 돌아보고 있었다.
  "적의 시체는 3만을 넘을 것 같소. 이것을 보면 무사히 도망친 군사는 반도 못 
될 것 같소."
  장비가 관우에게 말했다.
  "이번 싸움을 보니 제갈공명의 지모가 실로 가볍지 않네."
  관우가 장비에게 말했다. 장비도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나도 속으로 감탄했소."
  이번 싸움에서는 많은 적군을 꺾었을 뿐만 아니라 군량을 비롯한 병장기와 각
종 전리품도 막대한 양이었다. 뒷날 사람들은 이 참혹한 싸움을 시로 읊었다.

박망 싸움에서 웃으며 화공법을 쓰며
여의봉을 쓰듯 군사를 지휘했네
조조 크게 놀라 간담이 서늘했겠네
초당에서 나온 후 첫 번째 공이로다.

  이윽고 관우·장비는 군을 거두어 의기양양하게 싸움터를 등지고 신야롤 향하
는데, 저쪽으로 수레를 호위하며 5백여 명의 군사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관우
·장비가 가까이 다가오는 수레를 보니 수레 위에는 군사 공명이 단정한 모습으
로 앉아 있었고, 그 앞에 말을 타고 오는 두 장수는 미축·미방이었다.
  관우와 장비는 공명을  보자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수레  앞에 엎드
려 절하고 어젯밤의 대승을 공명에게 보고했다.
 "주공의 덕망과  장군들의 충성어린 무용  덕분이오. 나도 기뻐  마지않는 바이
오."
  공명이 수레 위에서 관우·장비의 노고를 치하하니 범하기 어려운 그 위엄 앞
에 관우·장비는 다시 엎드려 절할 뿐이었다.
  잠시 후 조운·관평·유봉이  군사를 거둬 왔다. 관우의 영자 관평은  적의 군
량을 70여 수레나 빼앗아  오니 첫 출진에 의기 충천해 있었다.  이어 백마를 탄 
유비가 나타나자 모든 군사들은 일제히 숭전의 함성을 외치며 주공을 맞았다.
  이윽고 유비와  공명은 장수들과 군사를  거느린 채 신야로  개선했다. 수많은 
기치를 펄럭이며 개선하자 백성들은 길을 메우고  그들을 마중하며 환호했다. 손
건은 신야성을 지키고  있었으므로 성 밖의 촌로들과  함께 마중을 나오고 있었
다. 
  "이 고장이 적의 침략을 면한 것은 오직 영주님이 어진 사람을 후히쓰신 때문
입니다."
  유비가 성밖에 이르자 촌로들은 유비의 덕망을 칭송하는 한편 공명의 귀신 같
은 지모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백성들이 이제  든든한 영주를 만났다고 기뻐했으
나 공명은 한가하게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유비와  함께 성 안으로 들자 공명은 
기쁨을 나눌 사이도 없이 뒷일을 유비에게 말했다.
  "이제 하후돈의 10만 기는 철저히 무너졌으니 당분간은 위급한 일이 없겠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조조가 군사를 이끌어 올 것입이다."
  조조가 몸소 군사를 이끌어 온다면 그 세력은 북쪽의 원소와 기북, 요동, 요서
까지 휩쓴 기세를 뜻한다. 유비가 저으기 근심스런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유비의 근심스런  물음에 공명은 말문을 열려다가  가만히 주위를 돌아다보았
다.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만......."
  공명은 말소리를 낮추었다.
  "신야는 영토도 좁고 더구나  성도 견고하지 못하니 여기는 조조군을 맞을 곳
이 못 됩니다. 제가 듣기로 형주의 유표는 요즈음 병이 깊어 위독하다고 합니다. 
이는 하늘이 주공께 내리시는  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기회를 빌어 형
주를 차지하여  뒷일을 도모하십시오. 형주는  땅이 넓고 영곡이  넉넉하며 적을 
막는데는 천혜의 요충지가 되는 곳입니다."
  공명이 다시 형주  정벌을 주장했다. 유비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심각한 어
조로 입을 열었다.
  "그것은 분명 좋은 계책이긴 하나, 나의 오늘이 있음은 유표의 은혜로 인한 것
입니다. 은인이 위독함을  틈타 그 나라를 빼앗는 것은 차마  군자로서의 지녀야 
할 바가 아닙니다."
  "지금은 사사로운 정리를 논할 때가 아닙니다.  대의를 세우고 그 뜻에 따라야 
합니다. 지금 형주를 차지하지 않으면 훗날 뉘우쳐도 때는 늦습니다."
  "그러나 어찌 정에 어긋나고 의에 벗어나는 지승ㄹ 할 수 있겠습니까?"
  공명은 결연한 어조로 유비를 채근했다. 그러나 유비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화를 당할지언정 의리를 저버리지는 못하겠습니다."
  공명은 그런 유비를 물끄러미 지켜 보다 감탄과 한숨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
다.
  "그러면 이 일은 다음에 다시 의논하도록 하겠습니다."
  공명도 그 이상은 강권할 수 없음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 
  한편 하후돈은 출진 전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참패하여 겨우 목숨만을 건져 허
도로 돌아왔다. 하후돈은 스스로 제 몸을 묶고 상부에 나아가 계하에 엎드렸다.
  "천하의 죄인, 어찌 얼굴을 들 수 있겠습니까?"
  하후돈은 조조 앞에 엎드려 벌을 청했다. 조조는  이 모양을 보자 씁쓸하게 웃
으며 말했다. 
  "죽인들 패한 싸움을 다시 이길 수 있겠느냐? 당장 결박을 풀어 주도록 하라."
  조조가 시신들에게 턱으로 하후돈을  가리키며 그렇게 이른 후 하후돈을 당상
에 불러 앉혔다.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지 자세히 말해 보라."
  조조가 싸움의 경과를  물었다. 이토록 참혹한 패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조조였던지라 싸움의 전말이 궁금했다. 조조의 물음에 하후돈이 대답했다.
  "무엇보다 큰 실책은 적에게  화계가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박망파를 넘어 너
무 깊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로 인해 많은 군사를 잃은 죄  만번 죽어 마땅합니
다."
  하후돈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이렇게 말하자  조조가 의아스럽다는 듯 다시 
물었다.
  "그대는 어렸을 적부터  병법을 배웠으며 오늘날까지 허다한 싸움터를 오가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좁은 곳에서는 화공이 있다는  것쯤을 짐작하지 못했다는 말
인가?"
  "제가 제갈량을 너무 가볍게 보았습니다. 우금이 그것을 미리 깨닫고 저에게도 
주의를 주었습니다만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우금에게는 대장군이 될  식견이 있군. 그대도 원래 범상한 장수이지  않은가. 
다음 기회에 오늘의 수치를 씻도록 하라."
  조조는 하후돈에게 그렇게  꾸짖었을 뿐 더 이상 책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활공이 있ㅇ르  것을 미리 알고  대비하려 했던 우금·이전에게  상까지 내렸다. 
우금과 이전으로서는 패장에게 상까지  내리니 실로 감격스런일이 아닐 수 없었
다.
  하후돈 역시 감격스럽기는  우금과 이전에 못지않았다. 이번  싸움의 총대장으
로서의 책임을 묻기는커녕 심한  질책도 없이 너그러이 대하니 감격과 회한으로 
조조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유비가 이렇듯 날뛰니 실로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우환거리
가 될 것이니 그를 없애야 합니다."
  조조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걱정하고 잇는 것은 유비와 손권뿐이다. 나머지 무리들은 하찮은 세력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기회에 내 마땅히 강남을 평정하리라."
  조조는 오랫동안 별러 오던 강남 정벌을  단행하기로 작정했다. 조조는 남정을 
결심하자 다른 의논을 할 것도 없이 곧장 군 편성으로 들어갔다. 
  조조는 50만 대군을 일으키기로 하고 군대를 5개 대로 나누었다.
  조인·조홍을 제1대로,  장요·장합을 제2대로, 하후돈·하후연을  제3대로, 우
금·이저을 제4대로, 그리고 조조는 몸소 5대를 이끌기로 했다. 이들 각 대로 하
여금 군사 10만을 이끌게 하고 허저를 절충장군에 명해 군사 3천을 주어 선봉으
로 삼았다.
  조조는 빠른 시일 안에  좋은 날을 잡아 출정하기로 했다. 때는  건안 13년 가
을, 7월 병오일이었다. 출진을 앞둔 어느 날 태중대부 공융이 조조 앞에 나와 출
진을 말렸다.
  "지난날 북정 때조차  이런 대군을 거느리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대군을 내어 
전쟁을 벌이시면 아마 많은 군사를 죽게 함은  물론, 백성을 괴롭혀 천하의 원성
이 온통 승상께  돌아올지 모릅니다. 왜냐 하면 유비는 한실의  종친으로 지금까
지 조정을 거역한  일이 없습니다. 거기다가 손권 또한 불의가  없으며 강동·강
남 6군에 웅거하여  장강의 요해를 끼고 있습니다. 이 천연의  요해를 치기도 쉽
지 않거니와 뚜렷한 대의명분도 없이 대군을 일으키니 자칫 천하의 신망만 잃게 
될까 걱정입니다."
  공융의 말에 조조가 불끈 화를 냈다. 유비를  한실과 빗대어 두둔하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자신의 군대를 대의명분이 없다고 말하자 조조는 심사가 뒤틀렸다.
  "유표와 유비·손권  모두가 조정을 거스르는 역적들이다.  어찌하여 역적들을 
치지 말라는 말인가? 역적들을 치는 것이 곧 대의명분이다."
  조조는 공융에게 호통을 쳐 물리쳤다.
  출진을 앞둔 때에다 노기가 끓어올라  조조는 또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
록 엄하게 명을 내렸다.
  "앞으로 또 이와 같은 말을 하는 자가 있으면 그 목을 베리라!"
  참담한 마음으로  승상부에서 쫓겨 나오던 공융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
다.
  "아, 어질지 못한 자가 어진 자를 치니 어찌 패하지 않으리오!"
  공융이 한스러운 마음으로 탄식하자  부근에 서 있던 마구간의 하인이 귓결에 
이 말을 드드고 상전에게  고자질했다. 그 하인의 상전은 어사대부 극려였다. 극
려는 평소 공융으로부터 그  자질이 천박하다하여 업신여김을 받아 오던 터여서 
공융을 미워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하인이 공융의 말을 극려에게 
일러바친 것이었다.
  극려는 마음 속에 품고 있던 한을 씻을 좋은 기회로 여겨 조조에게 달려가 없
는 말을 보태어 고해 바쳤다.
  "공융은 아무래도 승상께 앙심을 품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어제 저녁 퇴청할 
때 한 말분만이  아닙니다. 언젠가 승상께서 금주령을 내리셨을 때도  공융은 비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늘에도 주기의 별이 있고  땅에는 주군이 있다.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샘물이  없다면 세상에 어찌 환호성이 있겠는가. 술이  나라를 망치
기 때문에  술을 금할 정도라면 '여자  때문에 천하를 잃는 자가  있으니 혼인도 
금해야 할 것'이라는 등의 무례한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또 그 이전의 말입니
다만 조정에서 베푼  연회석상에서 알몸이 되어 승상을 모욕한 예형과  친해, 예
형을 가리켜  '살아 있는 공자'라 하는가  하면 또 예형을  치켜세우기를 '예형은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남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예형이 
승상께 폭언을 퍼부은 것도  다 공융이 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
는 형주의 유표와는  오래 전부터 편지 내왕을  하고 있으며 현덕과는 이전부터 
각별히 친밀한 사이입니다. 그 사실 여부는 그의  집을 급습하여 뒤져 보면 반드
시 그 증거가 나올  것입니다. 내일 형주로 떠나시기 전에 반드시  그 일만은 가
려내고 출진토록 하십시오."
  극려가 공융을 한껏  헐뜯자 조조도 크게 노했다. 그러나 조조가  극려와 같은 
소인배의 혓바닥에  놀아날 만큼 귀  여린 주군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극려를 물러가게 한 뒤 정위를 불러 명했다.
  "공융을 잡아 처단하라!"
  정위가 공융의 집으로 급습했을 때  공융은 그의 두 아들과 바둑을 두고 있었
다. 공융이 정위에게 잡혀가자 하인이 두 아들에게 황급히 말했다.
  "노대갑께서 붙잡혀 가셨으니 머지않아 참수를  당하실 것입니다. 두분 공자님
께서는 급히 피하도록 하십시오."
그러자 두 아들은 태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둥지가 이미 부서졌는데 깨지지 않을 알이 어디 있겠느냐."
  두 아들은  조금도 동요 없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얼마 지나자  않아 정위가 
다시 들이닥쳤다. 공융의 집안  식구들은 물론 두 아들도 끌어갔다. 끌려간 공융
의 식구들은 그날로 목이 베어졌으며 공융의 목은 저잣거리에 효수되었다.
  이때 경조 벼슬에 있는 지습이란  자가 있었는데 공융의 목 앞에 엎드려 울었
다. 이 일은 곧 조조에게 알려졌고  화가 난 조조는 그를 불러 목 베게 했다. 그
러나 순욱이 이를 알고 말렸다.
  "제가 들으니 지습은 항상 공융에게 '공은 성미가 너무 강직하여 결국 화를 당
하리라'고 나무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공융의 죽음을 알고는 곡을 하니 그
는 우의가  두터운 자입니다. 어찌 두  사람의 우의까지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를 죽이면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순욱이 그렇게 간청하자  조조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풀어주었다. 지습은 
공융 부자의 시체를 거두어 후히 장사지내 주었다.

  제갈공명의 지략
  화공과 수공 작전

  제갈공명의  군령에 따라  유,관,장 삼형제와 조자룡은 조조 편인 조인,조홍,   
허저가 이끄는  군마를 손쉽게 물리친다. 이로써  조조의 노여움은 하늘에 달하    
고 서서가 항복을 권하는 사자로 유비에게 간다.

  조조는 공융의 일이 마무리되자 순욱에게 허도를 지키게 한 후 강남으로 군사
를 내었다.
  한편 이때 형주의 유표는 베개에서  머리를 들지 못할 정도로 중태에 빠져 있
었다. 이에 유표는 사람을 신야로 보내 유비를 불러오도록 했다.
유비가 관우,장비와  함께 형주에 이르자 유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유비에게 
말했다.
  "나는 이미 명이 깊어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 아우에게 특히 청하
고 싶은 것은  내 아들을 잘 돌봐 달라는 것일세.  내 아들이 재주가 없어 능히 
아비의 기업을 계승치 못하니 아우가 이 형주를 다스려 주게."
  유언이나 다름없는 유표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그러나 유비는 울며 엎드린 채 
말했다.
  "이 아우가 있는 힘을 다해  조카를 도울 것입니다. 어찌 딴 뜻이 있을 리 있
겠습니까?"
유비는 끝내 유표의 청을 물리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 사람이 와서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오고 있다고 전하자 유비는 황망히 
신야로 돌아왔다.
  "공명은 뒤에 형주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고 통탄했다.
  "주공의 고지식한 의리로 형주는 튼 화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유표는 병중에서  조조군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며 수하들에게 
유 언장을 만들도록 했다.

  내 맏아들  유기를 형주의 주인으로 명하며,  유현덕은 그를 적극 보필하도록 
하라.

  유표가 이렇게 유언장을 만들어  놓자 유표의 후처 채 부인은 대로했다. 그녀
의 오라비 채모와 심복 장윤도  불만을 품고 밤낮 유기를 물리치고 유종으로 하
여금 후사를 잇게 하기 위해 모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장남 유기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멀리 강학성
에서 말을 몰아 급히 형주로 돌아왔다.
  그러나 유기가 성  앞에 이르자 성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채 부인이 채모와 
장윤을 시켜 성문을 닫게 하고 밖에서 지키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병구완을 위해 멀리  강하에서 달려왔다. 어찌하여 성안에 들지 못
하도록 하는가?"
  성밖에서 채모가 성문을 열어지지 않자 유기가 물었다. 채모가 엄한 목소리로 
유기에게 대답했다.
  "부친의 명을 받들어 국경을 수비하러 나간 돌자가 아니오. 무단히 강하를 떠
나 귀국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거동이오. 도대체 누구의 허가를 받고 이곳으로 
오시었소. 만약 그 동안에 강동의 군사라도 쳐들어온다면 어쩔 셈이오? 비록 장
남이라 하더라도 이 문을 열 수가 없으니 돌아가시오."
  채모의 말은 사뭇 위협적이었다.
  "만약 주공을 뵈옵더라도 크게 화를 내실 것이오. 그러면 병환은 더욱 위증해
질 것이니 이는 자식으로서도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오."
  채모가 위협하고 달래니 유기는 하는 수 없이 말을 타고 강하로 돌아갔다.
  유표는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으면서도 유기를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마침내 유표가 숨을 거두자 채 부인,채모,장윤 등은 거짓 유언장을 만들었다. 
채 부인의 아들인 차남 유종을  형주의 주인으로 세우기로 한 후 비로소 장례를 
지낼 준비를 했다.
  이때 유종의 나이 겨우 열 넷이었다. 그러나 유종은 나이에 비해 사람됨이 총
명하고 밝았다. 비록 자신이  형주의 주인으로 정해졌으나 그 일이 사리에 맞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는 형주성의 관원들을 불러모은 후 말했다.
  "선친께서 세상을 떠나셨으나  강하에는 형님이 계시고 신야에서는 외숙부 유
현덕이 있소. 그런데 그대들이 나를 형주의 주인으로 삼았소. 만약 형님과 숙부
가 군사를 거느려 그 잘못을 밝히려 들면 그대들은 어떻게 하 작정이시오?"
  유종의 준엄한 물음에 채 부인과 채모는 물론 모든 관원들이 안색을 달리하며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자 말단에 있던 무관 이규가 대답했다.
  "공자 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도리가 있고 형제에
도 순서가 있으니, 형님을 제쳐 두고 대통을 이으시면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 됩
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부고를 보내어 형님을 맞아들이고 형주의 주인
으로 세우시는 한편, 유현덕을 보좌로 삼아 정사를 보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
하여 북으로는 조조를 막고, 남으로는 손권에 대비하여 해야 아래를 가릴 것 없
이 한마음 한뜻이 되지 않으면 형주의 파멸은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자 채모가 자리를 막차고 일어났다.
  "너는 어찌하여 함부로 입을  놀려 돌아가신 주공의 유명을 모욕하고 나라 안
의 민심을 어지럽히려 하느냐!"
  채모가 큰 소리로 이규를 꾸짖었다.
그러나 이규도 지지 않고 채모를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희들 채씨  문중은 안팎으로 손발을 맞춰  거짓유서를 만들고 차남을 세워 
이 형주를 수중에 넣으려  하지 않느냐! 만약 주공의 영혼이라도 계시다면 너희
들에게 벌을 내리시리라!"
  체모는 이규가 유서를 거짓으로  만든 것까지 들먹이며 자기를 꾸짖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좌우를 돌아볼  것도 없이 스스로 칼을 빼들고는 그대로 목을 
쳐버렸다. 채모의 서슬에 여러 관원들은  숨을 죽일 뿐 그 뒤로는 누구 하나 후
사 문제를 입에 담지 않았다.
  이규의 시체는 성밖에 던져졌는데 사람들은 이 소문을 전해 듣고 눈물을 흘리
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규를 참하고 나자 채모는 유종을 형주의 주인으로 내세웠다. 유종을 국주로 
삼자 형주의 벼슬은 모두 채씨 일족이 차지하게 괴었다.
  군사를 거느리는 것도 바꿔져 치중 벼슬에 있던 등의와 별가 유선에게 형주를 
지키도록 했다.
  채 부인은 유종과 합께 양양을 다스리며 유비와 유기가 쳐들어올 것에 방비하
기로 했다.
  채씨 일족이 형주와 양양에 자리를 나눈 후, 양양 동쪽 70여리에 있는 한양에 
유표의 영구를 성대히 치렀으나 유비나 유기에게는 끝내 알리지 않은 채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조조의 대군이 시시각각 남하하여 이미 완성에 이르고 있
었다.
  이 급보가 유종에게 전해지자 유종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급히 괴월
과 채모를 불러 이 일을 의논했다.
  "조조와의 싸움은 피할 수가 없다."
  무장들 중에는 싸울 것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문관들은 의견이 분분했
다.
  그때 동조의 장인 부손이 나서며 고했다.
  "우리에게는 유기가 국주의  형이면서 완전히 배척되어 강하에 머물고 있습니
다. 그러니 선친의 업을 잇지  못한 불만 때문에 언제 형주의 배후를 찌를지 알 
수가 없습니다. 둘째는 신야에 있는 유현덕입니다. 신야는 이 양양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그 또한 언제 양양으로 쳐들어올지 알 수 없습니다. 셋째는 
선주께서 별세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아 아직  신하들이 마음을 합하지 못했으며 
내정이나 모든 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임전태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
니다."
  부송은 이상의 세 가지 부실한 점을 열거하여 조조와의 화친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었다.
  부손의 말을 듣자 유종이 꾸짖었다.
  "그렇다면 조조에게 항복하란 말인가?  내가 부친의 기업을 물려받아 아직 제
대로 자리에도 앉기 전인데 모든 걸 송두리째 조조에게 바치란 말이냐?"
  "우리 형주 양양 아홉 군을 모두 바친다면 조조는 반드시 주공을 높이 대우할 
것입니다. 이것이 형주,양양을 빼앗기지 않는 방책입니다."
  옆에 있던 괴월이 부손을 거들고 나섰다.
  "부공제의 말이  옳습니다. 무릇 거스르거나 따름이  시국에 좌우되는 법입니
다. 강하거나 약한 것도 어쩔 수 없이 정해진 형세가 있는 법입니다. 오늘날 조
조는 남전과 북벌을 도모하여 조정을  등에 업고 천하를 호령하니 그 위세가 하
늘에 떨칩니다. 그러므로 주공이  이를 거역하면 이는 순종함을 모름입니다. 거
기다가 주공께선 새로이 위에  오르셨는데 형세는 안팎이 모두 우환거리밖에 없
습니다. 이런 판국에 조조의 대군이 형주,양양을 휩쓸어 온다면 백성들은 그 위
세에 미리 겁을 먹게 될 것이니 어찌 그들을 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유표 때부터 형주의 모사로  지내 온 괴월이 유종을 달래듯 말했다. 괴월까지 
조조에게 항복을  권하고 나서니 유종은 서글픈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동안 
어두운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공들의 말을 내가 따르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선친께서 남기신 기
업을 하루아침에  남에게 바치자니, 이는  곧 천하의 웃음거리밖에  안 될 것이
오."
  이때 또 한 사람이 불쑥 나섰다.
  "부손, 괴월의 말은 모두 지당합니다. 그런데 주공께서는 어찌 주저하고 계십
니까?"
  큰소리로 이렇게 외치자 모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왕찬이란 사람이었는데 산양  고평 땅 출신으로 자를  중선이라고 했다. 
왕찬은 얼굴이  수척하고 키가 작아 외모는  볼품이 없었으나 재주가 놀라웠다. 
그가 어렸을 적에 당시에 문사로 이름을 크게 떨치고 있던 채옹을 찾아가자, 채
옹은 신발을 거꾸로 신고 나아가  그를 반기며 맞아들이자 합께 모여 담소를 나
누던 선비들이 의아롭게 여기며 물었다.
  "채 중랑께서는 어찌하여 한낱 어린아이를 이렇듯 공경까지 하십니까?"
  그 물음에 채옹이 주저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천하에  둘도 없이 빼어난 재주를  지녔으며 내가 그를 당해 내지 
못합니다."
  왕찬은 일찍부터 많은 책을 일어 아는 것이 많았으며 산술과 문장이 뛰어나고 
특히 기억력이 남달랐다. 어느  땐가는 길가의 비석을 한번 훑어보고는 그 비문
을 모두 외웠다.  또 남들이 바둑 드는 것을 보다  그 판을 흩고 다시 놓았는데 
한 점도 틀리지 않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왕찬을 열 일곱이라는 어린 나이에 
조정으로부터 황문시랑이라는 벼슬을  받았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그후 
난리를 피해 형주로 갔다가 유표가 그를 아껴 귀빈 대접을 받아 오며 이곳에 머
물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동조장께서 말한 세 가지 약점 외에 세 가지 불리한 접이 
더 있습니다."
  "말씀해 보오. 그것이 무엇이오?"
  왕찬의 말에 유종이 물었다.
  "첫째는 조조의 대군은 천자를  등에 업고 있으니 그를 거스르면 조정에 거역
한다는 오명을 쓴다는 것이며, 둘째로는 조조의 장수들은 용맹한데다가 그 군사
들은 실전  경험이 없습니다. 셋째로는 우리가  비록 유현덕을 의지한다고 해도 
유현덕이 능히 막을 수  있는 조조가 아닙니다. 만약 유현덕에게 조조를 대적할 
만한 세력을  준다면 어찌 유현덕이 주공  밑에 엎드려 있겠습니까? 주공께서는 
이 점을 감히 살피어 헤아리십시오."
  유종은 왕찬의 말을 듣고 근심에  찬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부손이 말하는 3
약, 왕찬이 말하는 3해,  이것을 헤아린다면 형주는 도저히 조조의 대군과 싸워 
이길만한 강점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항복하는 길밖에 없는 터였다. 이에 유종은 항복하는 글을 쓰게 하여 송
충에게 그 글을 주어 남진중인 조조 진중에 바치도록 했다.
  이때 조조는 드디어 하남의 완성에 이르러 부근의 현에서 군량과 군수품을 징
발한 후, 공격을 위한 재정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때 형주에서 항복의 사자로 송충의 일행이 당도했다. 송충은 완성으로 들어
서 조조에게 항복하는 글을 바쳤다.
  "유종의 휘하에는 현명한 신하가 적지 않구나."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송충에게 의복과 안장을 상으로 내리며 말했다.
  "유종을 충렬후어 봉하고 오래도록 형주의 태수가 되도록 하리라. 곧 우리 군
이 형주에 들어갈 것이니 그때는 성에서 나와 이 조조를 영접하도록 하라."
  조조가 성충에게  이렇게 이르자 송충은 즉시  형주로 돌아갔다. 그런데 가는 
도중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났다. 송충이 강을 건너 나루터를 오르는데 한때
의 인마가 달려와 앞을 가로막았다.
  "누구냐? 게 섰거라!"
  쩌렁쩌렁하게 강변을 울리는 듯한 목소리에 송충이 놀라 보니 이 부근을 수비
하고 있는 관우였다.
  '아뿔싸!'
  송충이 놀란 가슴을 쓸며 짐짓 태연한 체했으나 관우가 형형한 눈으로 다그치
자 사실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뭐, 항복하는 글을 가지고 조조에게 갔다오는 길이란 말이냐?"
  관우는 송충을 끌고 그 길로 신야로 달려갔다.
  신야에서도 처음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놀라움이 컸다. 특히 유비는 북받
치는 분기를 누를 길이 없어 통곡해 마지않았다.
  장비가 씩씩거리며 유비에게 말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먼저  송충부터 죽여 없앤 후, 군사를 일으켜 양
양을 칩시다. 채부인.유종 모자를 처단하고 조조와 맞붙어 싸웁시다."
  유비는 깊은 근심에 싸여  있었다. 이제 형주가 조조의 수중에 들어가면 신야
는 실로 바람 앞에 촛불과도  같은 위급한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유
비가 그런 생각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사람이 와서 알렸다.
  "강하성의 공자 유기가 보낸 이적이 왔습니다."
  유비는 그 소리에 놀라며 계하에까지 내려가 그를 맞아들었다. 이적은 지난날 
채모의 계략을 자신에게  알려 목숨을 구해 주었으므로  유비는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다.
  유비가 지난날의 은혜에 감사하며 거듭 치하한 후 형주와 강하성에 대해 궁금
한 바를 묻자 이적이 입을 얼었다.
  "대공자 유기께서 강하에 계시는  동안 주공께서 돌아가시자, 채 부인은 대공
자에게 부음도  전하지 않은 채 유종을  새 주인으로 세웠습니다. 대공자께서는 
나에게도 부음을 전하지 않았으면 필시 유황숙께서도 이 일을 모르고 계실 것이
라 여기시어 제게 이 글을 주며 긴히 보내신 것입니다. 대공자께서는 신야의 군
사를 일으켜 함께  양양성을 치고 채씨 일족의  죄를 묻도록 함이 어떻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유비는 이적이 전해 준 유기의 서찰을 읽고 난 후 말했다.
  "공은 유종이 형주의 주인 자리를 가로챈 것만 알고 있으나 그보다 더 가슴아
픈 일이 일어나고 있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유종이 선주의 분묘에 아직 흙도  마르기 전에 이 형주 9군을 송두리째 조조
에게 비치며 항복하였소."
  "사군께서는 어떻게 그 일을 알았습니까?"
  이적이 놀라며 물었다. 유비는  송충을 사로잡아 와 알게된 사실을 전해 주었
다. 이적은 유비의 말을 듣고 나서 다급한 목소리로 권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군께서는  즉시 문상을 핑계삼아 양양에 가시어 유종으
로 하여금 맞으러  나오게 하신 뒤 그를  사로잡으십시오. 그런 다음 채 부인을 
비롯한 무리를 처치하시면 형주는 절로 사군의 수중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평소 온후한 이적조차 노기를 띠며 유비를 재촉했다. 곁에 있던 공명도 이적의 
말에 찬동했다.
  "기백의 말이 옳습니다. 주공께서는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유비는 그저 눈물만 흘릴 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오. 임종 때 그토록 자제들의 장래를 걱정하며 후사를 부탁한 형님의 말
을 생각할 때 그 신의를 저버리는  짓은 차마 할 수가 없소. 이제 그 아들을 사
로잡고 형주를 차지한다면 내 죽어 저 세상으로 갔을 때 무슨 얼굴로 형님을 대
하겠소?"
  공명은 유비의 그같은 말에  급히 되물었다. 신야의 어려운 처지를 깨우쳐 유
비의 마음을 돌려보기 위한 물음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신야는 곧 위급해지고 맙니다. 조조의 군사가 
지금 완성에 이르렀는데 어떻게 그들과 맞서겠습니까?"
  그러나 유비는 힘없이 신야를 버리겠다는 말만 꺼낼 뿐이었다.
  "이렇게 된 바에야 번성으로 몸을 피하는 수밖에 없소."
  유비의 말에 공명이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파발마가 와서 알렸
다.
  "조조군이 이제 박망파에 이르렀습니다."
유비가 놀라고 당황한 가운데  이적을 재촉해 급히 강하로 돌려보내며 군사들에
게 출동 준비를 서두르도록  일렀다. 이적을 보내고 나자 유비는 공명에게 조조
를 맞을 일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조조군을 막아야 하겠소?"
  "주공께서는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지난번에 하후돈의 군사에게 화공을 써
서 군사를 태반이나 꺾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조조가 군사를 거느려 왔으나 다
시 한 번 뜨거운 맛을 보여 줘야 갰습니다. 다만 어차피 이곳 신야를 버릴 바에
야 급히 번성으로 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명을 추호도 흔들림 없이  태연한 어조로 그같이 말했다. 이어 공명은 즉시 
장수들에게 명했다.
  "성 네 문에  방문을 붙이도록 하시오. 신야의  백성들은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오늘 안으로 번성으로 피난을 가도록 방을 붙이시오."
  공명의 명에 의해 곧 성  네 문에는 방이 붙여졌다. 방이 나붙자 공명은 손건
으로 하여금 백하에 있는 배를  징발하여 배로 건너게 하고 미축에게는 무든 관
리들의 가족을 책임지고 호송토록 했다.
  공명은 피난 가는 일에 대한 명을 내린 후 관우.장비.조운을 비롯한 장수들을 
불어 모은 후 각각 명을 내렸다. 공명은 먼저 관운장에게 명을 내렸다.
  "운장께서는 군사 1천 명을  거느려 백하 상류로 가서 매복토록 하시오. 군사
들에게 자루를 준비하게 하여  흙을 퍼담아 백하의 물을 막고 기다리시오. 그러
면 내일 삼경이 지날 때쯤 하류에서 사람의 함성과 말 울음소리가 크게 일 터이
니, 그때 막았던 물을 일제히 터놓아 물살이 하류로 내려가는 것을 따라 군사를 
거느려 적을 치도록 하시오."
  관우가 공명의 말을 다 듣고  나더니 공명의 계책을 헤아렸다는 듯 고개를 끄
덕였다. 공명은 다기 장비에게 영을 내였다.
  "익덕께서는 군사 1천 명을 거느리고 박릉 나루터로 가서 매복하시오. 그곳은 
물길이 세지 않은 곳이어서 조조군이 그곳으로 도망쳐올 것이오. 그러면 지체하
지 말고 즉각 그들을 치도록 하시오."
  장비는 고리눈을 번쩍이며 그 영에 머리를 힘껏 끄덕였다.
  이어 조운의 차례였다.
  "자룡에게는 군사 3천을  줄 터이니 그 군사를 네  대로 나누되 한 대는 몸소 
거느려 성의 동문밖에 매복토록 하시오.  나머지 세 대는 서. 남. 북의 세 성문
에 매복시키도록 하시오. 그런데 그  전에 마른 섶이나 갈대. 띠 등을 준비하여 
유황. 염초 등을 뿌려  두어 불이 잘 붙게 한 후  성 한 지붕 위에 얹어 두도록 
하시오. 내일의 날씨를 보니 아마 저녁 무렵부터 큰바람이 불 것이오. 승리감에 
취한 조조군은 바람이 불면 모두 성안으로 들어 집에서 쉬고 있을 것이오. 그때 
서.남. 북 세 곳에 매복해 있던 군사들로 하여금 화살에 불을 붙여 일제히 성안
으로 쏘게 하시오. 그렇게 되면  온 성은 불바다로 변할 것이오. 매복한 군사릉
에게 일제히 함성을 질러 조조군의 얼을 빼도록 하시오. 그러나 이때 동쪽 문만
을 터놓은 체  조조군이 달아날 수 있도록 해  두고 적군이 미려 나오면 자룡은 
그들을 섬멸토록 하시오. 달아나는  적을 치되 적당한 시기가 되면 군사를 물려 
관우.장비의 군사와 합세하도록 하고 합께 번성으로 오도록 하시오."
  각 장수들에게 내리는 공명의 지령은 이렇게 하여 끝이 났다. 명을 받은 장수
들은 용기 백배했다. 지난번의  싸움에서 공명의 빼어난 계책으로 크게 이긴 적
이 있었는지라, 관우.장비.조운은 두말 없이 각기 정해진 곳으로 군사를 이끌어 
갔다. 세 장수가 떠나자 그 자리에는 아직 미방.유봉 등의 장수가 남아 있었다. 
공명은 두 장수에게 영을 내리는 데 그 또한 괴이했다. 
  "그대들은 군사 2천을 거느리되 1천은  붉은 기를 들고 1천은 푸를 기를 들도
록 하라. 그런 후 신야성에서 30여 리 되는 작미파에 포진하고 있다가 조조군이 
이르면 붉은 기를 든 군사는 왼쪽으로, 푸른 기를 든 군사는 오른쪽으로 내닫도
록 하라. 조조군은  필시 무슨 계략이 있을  것으로 여겨 너희들을 뒤쫓지 않고 
그대로 성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성안에 불길이 일 때까지 몸을 숨
겼다가 불길이 일면 달려나와 쫓기는  조조군을 친 뒤 백하 상류의 운장과 익덕
을 돕도록 하라."
  공명은 영을 내린 뒤 유비를  사방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 위로 오르게 하
고 함께 자리를 펴고 않았다. 
  한편 조조는 완성에 군사를 주둔시킨 뒤 조인. 조홍을 대장으로 하는 선봉 제
1군 10만 군사와 허저의 정병 3천과 함께 신야로 진격하게 했다.
  얼마 후 조인. 조홍. 허저가 신야의 교외에 이르러 군마를 시게 한 것이 정오
쯤이었다. 
  "여기가 어디며 신야에서 몇 리나 되는가?"
  길잡이에게 대장 한 사람이 물었다. 
  "신야에서 30여 리쯤으로 작미파란 곳입니다."
  곧 이어 정찰하러 갔던 수십 기가 돌아와 알렸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산봉우리를 따라 진을  치고 있는 군사들이 보입니다. 
우리를 보자 한쪽 산에서 푸른 기를 흔들고 다른 한쪽 산에서는 붉은 기를 휘두
르고 있었습니다."
  선봉인 허저는 그 보고를 받자마자 몸소 군사 3천을 이끌며 전진했다.
  앞에는 온통 바위 천지인 산봉우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홀연히 한 산봉우리에
서 푸른 기가 팔랑거리기 시작했다. 허저가 한참 눈여겨보고 있는데 또 그 뒷산 
봉우리에서 붉은 기를  흔드는 것이 보였다. 그  모양은 마치 양군 사이에 무슨 
군호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더군다나 인마의 기척이 없이 산 속은 고요하
기만 하여 더욱더 가슴이 뜨악했다. 
  "멈추어라. 저편에서  필시 적의 복병이 있을  것이다. 나아가지 말고 여기서 
머물라!"
  허저는 부하들에게 명을 내린 후  혼자서 말을 달려 조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
다. 
  조인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첫 싸움이므로 신중을  기해야 하겠지만 평소의 장군답지 않네. 병가
에는 허실이 있는 법. 실한 체하면서 허가 있고, 허한 체하면서 실이 있는 법이 
아니겠나? 지금 말한  푸른 기, 붉은 기는  생각하건대 마치 대단한 계략이라도 
있는 듯이 꾸며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것이네. 그대는 주저 말고 진격하게. 
나도 곧 뒤따르겠네."
  조인의 말에  허저는 다시 군사를 이끌어  작미파로 향했다. 허저는 작미파에 
이르는 동안에 적군이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전진을 계속했다.
  '어찌하여 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허저는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니 불안감은 더해 
갔다. 
  해는 어느덧 서산에 걸려 있었다. 그러자 홀연 산 위에서 때아닌 풍악 소리가 
들려 왔다. 허저가 괴이쩍게 여기며 산 위들 쳐다보았다. 산봉우리 위쪽에 평지
가 있었다. 거기에는 많은 정기가  꽂혀 있는 가운데 일산을 치고 마주 앉아 있
는 두 사람이 보였다. 허저가  심란한 가운데 그 두 사람을 살펴보니 한쪽은 유
비요, 다른 한쪽은 공명인데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니 저 자들이 지금 무슨 수작을 벌이고 있다는 말인가?"
  그 모양을 보자 허저는 저들이  자기를 놀리고 있다고 여겨 화가 머리 꼭대기
까지 치솟았다. 
  "저것들을 단숨에 사로잡아라!"
  허저가 크게 고함을 치며 산 위로 말을 달렸다. 군사들도 이리 떼가 울부짖으
며 덤비듯 산 위로 기어올랐다. 그러나 산 위에서 바위와 통나무가 사태처럼 내
리쏟아졌다. 바위 하나와 통나무 하나에 한꺼번에 수십의 인마가 크게 상했다. 
허저가 도저히 산 위로 오를  수 없음을 알고 황급히 군사를 물렸다. 그러자 홀
연 산 뒤에서 크게 함성이 일었다. 이번에는 이편의 산봉우리에서 함성과 북 소
리가 크게 울렸다. 허저가  적을 찾느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조인. 조홍의 2대
가 도착했다. 조인은 허둥대고 있는 허저를 크게 꾸짖었다. 
  "애들 장난과 같은  적의 작전이다. 적이 모두  나와 있으니 신야성을 지키는 
군사가 없을 것이다. 어서 신야 고을부터 빼앗기 않고 무얼 하고 있나!"
  조인. 조홍은 무턱대고 진격을  계속하여 마침내 신야까지 밀고 들어갔다. 어
느새 해는 산 아래로 기울어 날이 저물었다.
  그들이 신야성 아래에 이르러  주위를 살펴보았다. 네 성문이 모두 열려 있는
데 사람의 기척 하나  없었다. 조인이 성안으로 들어가 보아도 역기 마찬가지였
다. 조인은 혹시 계책이라도 있을까 하여 백성들의 집을 뒤져보았으나 양곡이나 
쓸만한 가재조차 보이지 않았다. 적이 들어올 줄 알고 미리 피난간 것이 틀림없
었다.
  "어떤가. 계책은 없고 형세가  위태로우니 현덕과 공명은 군사와 백성을 이끌
고 재빨리 달아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군사는 오늘 밤 이 성에서 편히 쉰 다
음 내일 아침 그들을 뒤쫓도록 하세."
  조홍은 부하 장수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편히 쉬도록 했다.
  군사들은 오랜 강행군에 지쳐 있던  터라 각각 백성들의 집에서 밥을 비어 먹
고 잠에 빠졌다.
  조인. 조홍도 관아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초경쯤이 되자 바람이 세게 일었다. 바람은 점점 거세 지더니 모래 먼지가 휘
날려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때 성문을 지키던 군사가 관아로 달려와 황급히 알렸다.
  "성안에 불이 났습니다."
  장수들이 그 소리에 졸라  술잔을 놓고 일어서려는데 조인이 그들을 주저앉히
며 말했다.
  "장졸들이 밥을 짓다  실수하여 난 불일 것이다.  그만한 일에 놀랄 것까지는 
없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불이야 불!"
  바깥이 갑자기 소란스럽더니 잇달아 급보가 들어왔다.
  "서, 남, 북문에서 모두 불길이 일고 있습니다."
  허둥대는 말굽 소리, 흩어지는  발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울려 왔다. 조홍, 
조인도 그제야 크게 놀라며  밖으로 뛰쳐나가 보았다. 조인은 영을 내려 장수들
을 말에 오르게 했다.
  성안은 온통 뭉게뭉게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말이며, 투구, 병장기를 챙기느
라 군사들이 허둥대고 있는 사이 거센 바람을 타고 불길도 점점 거세어졌다.
  매캐한 연기는 눈도  못 뜨게 하며 코를  찔렀다. 물길이 점점 거세져 성안을 
훤히 밝히더니 성위에 솟아 있는 삼층의 누각과 그것에 이어져 있는 성곽에까지 
번졌다. 이어 불에 타 들어가던 누각은 일시에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리니 하늘
은 불기둥이 치솟고 그 불기둥은 땅위로 발을 치듯이 흘러내렸다.
  조인은 장수들을  거느려 연기와 불  속을 뚫으며 길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와!'하고 함성을 지르며 서문으로  가니 앞에는 불길이 가로막고 있었다. 북문
과 남문도 서문과 다름이 없었다.  영락없이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어 우왕좌왕
하고 있는데 누군가 외치고 있었다.
  "동문에는 불이 없다! 동문으로 빠져나가라!"
  그 소리에 수만을 헤아리는 인마가 한꺼번에 동문으로 밀어닥쳤다. 서로 밟고 
짓밟히는 가운데 머리 위에는 불덩이가 떨어지니 밟혀 죽거나, 불에 타 죽는 자
의 시체가 쌓여 성분 앞을 가로막을 지경이었다.
  조인과 여러 장수들이 가까스로 불  속을 달려 동문을 빠져 나와 정신없이 달
려가는데 홀연 들 뒤에서 함성이 일며 조자룡이 군사를 이끌고 왔다. 이미 사력
을 다해 불바다를 빠져 나온 군사들인지라 조자룡의 순대를 보자 달아나기에 바
빴다. 조자룡은 그들을 뒤쫓아 닥치는 대로 베고 찔렀다.
  조인은 감히 팔을 돌려 조자룡을 맞아 싸울 생각도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렸다. 
한동안 말을 달리는데  옆쪽에서 또 한 떼의  군마가 내달아와 따르는 장졸들을 
덮쳤다. 미방이 거느린 군사들이었다.  조인이 뒤돌아볼 틈도 없이 앞으로 내닫
는데 이번에는 유봉이 군사를  거느리고 왔다. 이미 태만이상이 몇 갈래로 찢기
고 꺾인 장졸들이었다. 다시 사냥꾼과 쫓기는 짐승 꼴이 된 조인의 군사는 도망
하는 가운데 수많은 장졸들이 상하고 죽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밤  사경이 되었다. 그때서야 추격에서 벗어난 조인은 얼
마 남지 않은  나머지 군사들을 이끌어 백하에  이르렀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데다 불에 그을린 머리와 화상을 입은 이마를 매만져 볼 틈도 없이 달려온 터라 
반쯤은 얼이 빠져 있었다.
  백하에 이르러서야 겨우 숨을  돌이면서 말에게 물을 먹이고 장졸들도 뜨거운 
불길에서 나온 터라 목을 축이며 강물에 몸을 적셨다. 물길이 깊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편 상류에 매복해 있던 관우는  신야 고을에서 크게 불길이 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하류  쪽에서 말소리와 사람 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이자 귀
를 기울이고 있던 관우가 명을 내렸다.
  "모래 자루로 쌓았던 둑을 일제히 무너뜨려라!"
관우의 명에 따라 군사들이 일제히 둑을 텄다.
그러자 마치 홍수  때의 탁류처럼 물이 하류의  강바닥을 행해 벼락같은 소리를 
내며 넘쳐 을렀다.
  하늘이라도 밀어낼 듯한 거센 탁류는 조인의 군사를 순식간에 덮쳤다.
  이른바 화공과 수공을 연달아 받고  난 조인의 군대가 온전해 배겨날 리가 없
었다. 물에 휩쓸려 죽고 떠내려가다 죽으니 백하의 강줄기는 시체로 메워졌다.
  조인은 가까스로 뒤따르는 장수들과 합께 물길이 느린 곳을 찾아 겨우 목숨만
을 보전한 채 박릉 기슭에 다다랐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에 난데없
는 함성이 크게 일며 한 떼의 병마가 길을 가로막았다..
  "역적 조조의 패잔병들아. 어서 복을 내놓아가. 연인 장비가 이곳이게 너희들
을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벽력 치듯 밤하늘을 가르는  우렁찬 목소리였다. 조인, 조홍과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나머지 군사들은  그만 얼이 빠지고 말았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
하고 있던 나머지 군사들은  그만 얼이 빠지고 말았다. 장비는 관우가 상류에서 
둑을 무너뜨려 수공을 편 것을 알자 도망가는 적을 치다 하류를 거슬러 온 것이
었다. 조인, 조홍은 황망한 가운데도 길을 뚫기에 바빠 장비에게 칼 한 번 부딪
지 뭇하고 달아났다.
  때마침 허저가 달려와 장비와  맞붙어 싸우는 바람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보
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허저도  장비와는 몇 번 칼을 부딪쳤을 뿐 싸울 기력을 
잃고 길을 찾아 달아나기  바빴다. 장수들이 모두 길을 앗아 달아나니 그야말로 
짓밟히고 찔려 죽는 것은 장졸들이었다.
  장비는 조인, 조홍,  허저를  뒤쫓으려 했으나  번성으로 가기 위해 말머리를 
돌렸다. 백하에는 조인,  조홍 군사들의 시체로 메워져  있는 것을 보고 장비는 
껄껄 웃으며 강기슭을 거슬러 올라갔다.
  "대어는 놓쳤다만 이쯤  두들겼으니 혼쭐났겠지. 아하 유쾌하다. 오랜만에 체
증이 확 뚫렸도다!"
  장비가 그렇게 떠들며 한동안 강기슭으로 올라가는데 앞쪽에서 유비와 공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이 상류로 올라가니 그곳에는 유봉과 미방이 뱃머리를 가
지런히 모아 놓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이 그 배를 타고 강을 건너자 공명이 명을 내렸다.
  "배라는 배는 모두 불살라 버려라!" 
  전군은 무사히 번성으로 향했다. 조조가 대군의 위용을 자랑하며 신야에 이르
러 첫 번째로 싸운 싸움이  대패로 끝나고 만 셈이었다. 이 소식은 완성에 있는 
조조의 귀에도 들어갔다.
  조조의 노여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배면서생 제갈량, 너 이놈 어디 두고 보자!"
  조조는 머리털과 수염을 알알이 곤두세우며 소리쳤다.
  조조는 즉각 삼군에 명을  내려 대병력을 동원하고 신야,백하,번성 등을 단숨
에 짓뭉개기로 작정하고 출동 준비를 서둘게 했다.
  "산을 샅샅이 뒤지고 백하의 물을 메워 전군을 이끌고 번성을 치도록 하라!"
  조조는 휘하 장수들에게 큰 소리로 영을 내였다.
  이때 유업이 간곡히 말렸다.
  "승상의 위세와 명망은 하북  땅에서는 널리 떨치고 있습니다만, 이 양양에는 
처음 오신 만큼 백성들은  두려워할 뿐입니다. 승상의 어지심과 너그러움, 그리
고 승상을 따름으로써 얻어지는 이로움도 알지 못합니다.
  유비는 우리군사가 모두들 백성을  짓밟는 나쁜 무리로만 여기게 하여 신야의 
백성들을 번성으로 옮긴 것입니다.  우리 군사가 신야, 번성을 짓밟으며 힘만을 
과시한다면 민심은  더욱더 승상을 경원하게 되며  따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백성이 없으면 아무리 영토를 빼앗아도 황량한 겨울 들판에서 꽃을 구하는 것
과 다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꾹 눌러 참으시고 사람을 보내 항복을 
권해 보십시오. 유비가 항복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싸워 신야, 번성이 폐허가 되
었을 때는 백성들은 유비를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또 만약 유비가 항복해 오는 
날에는, 우리는 싸우지 않고도 신야를 손에 넣게 될 것입니다."
  무장이 유업의 말을 듣고 보니 일개 무장으로서가 아닌 다스리는 자의 식견이
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인 후 분기를 누르며 그에게 물었다.
  "그럼 누구를 보내면 좋겠는가?"
  "마침 유비와 교분이 두터운  서서가 군중에 있습니다. 그가 적임자가 아닌가 
합니다."
  서서를 보내자는 유업의 말에 조조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를 보내면 필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서서가 승상의 신뢰를  저버리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는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
다."
  유엽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이에 조조는 즉시  서서를 불러 정중한 목소리로 
영을 내렸다.
  "나는 번성을 단숨에 짓밟아  뭉개려고 생각했으나, 그렇게 되면 백성들이 너
무 가없지 않겠고. 그러므로 공이 유비를 찾아가 달래도록 하시오. 만약 항복을 
하면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벼슬도 내릴 것이오. 그러나 어리석게도 고집을 
부려 나와 맞선다면 군사와 백성들을  가릴 것 없이 모두 도륙 하겠노라고 전하
시오. 내가  이미 공의 충의를 맡은  바이니 공의 부디  내 뜻을 저버리지 마시
오."
  서서는 조조의 명에 하는 수 없이 번성으로 향했다.
  "서서가 왔단 말인가?"
  번성에 있던  유비에게 성문을 지키는 군사가  전하자 유비는 저으기 놀랐다. 
황망히 서서를 멎은 후 공명과 함께 옛 정을 되새기고 있었다.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나누는 이야기가 끝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처지가 서로 창
칼을 맞대고 있는 적이었다.  이에 서서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찾아온 용건을 말
했다.
  "조조가 사군께 저를 보낸 것은 항복을 권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조조의 속
셈은 항복을 한 후 화신을  맺자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원망을 사군께 전가하려
는 간사스러운  계략입니다. 그러니 조조의 권유를  받아 한때의 안전을 꾀하려 
하신다면 뒷날 크게 후회하시게 될 것입니다. 지금 조조는 군사를 여덟 대로 나
누어 백하를 뒤덮으며 이곳을  치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번성
은 버티기가 어려울 것이니 다른 계책을 세우심이 좋을 것입니다."
  조조의 사자로서가 아닌, 진심으로 유비를 걱정하는 서서의 말이었다. 유비는 
그런 서서를 다시 자기 곁에 붙들어 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유비는 서서에
게 돌아가지 말고 합께 있을  것을 권했다. 그러나 서서는 유비의 그 샅은 권유
에 감사해하면서도 무겁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불행하게도 저는 사군의 적인 조조 밑에 몸을 굽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만
약 제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저의 지조 없음을 세상이 비웃을 것입니다. 이제 어
머님께서 조조로  인해 세상을 떠나셨으니 그  한이 하늘에 사무칩니다. 그러니 
몸은 비록 조조 곁에 있으나 그를 위해 계책을 세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사군께는 와룡이 있으니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반드시 대업을 이루리라 믿고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서서가 하직 인사를 고했다. 유비도  더 이상 그를 붙들 수가 없음을 알고 안
타까운 마음을 달래며 그를 전송했다.

  패주의 길
  번성에서 양양, 양양에서 강릉으로

  공명이 강동으로 떠난 후 미축은 불길한 점괘를 뽑으며 유비를 피신시키려 하
나 주군은 백성을 먼저  염려한다. 이어 조조의 군사와 맞닥뜨린 유비의 행렬은 
혼란에 빠지고 ,조운은 유비 가솔들의 행방을 찾아 헤매던 중 가까스로 감 부인
을 만난다.

  신야로 돌아간 서서는 조조에게 유비가 항복의 권고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조조는 크게 화를 내며 즉시 군사를 휘몰아 번성으로 향했다.
  유비도 서서가 돌아가자 공명에게 대책을 물었다.
  "급히 양양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번성보다는  양양이 지키기가 한결 
유리합니다."
  공명의 권유에 유비도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으나 그보다 앞서 한가지 걱
정거리가 있었다.
  "나를 따라서 이곳까지 피난해 온 백성들이 있습니다. 저 백성들을 어떻게 하
면 좋겠습니까?"
  "따르겠다는 백성들은 따르게 하고 이곳에 남겠다는 사람은 두고 가도록 하십
시오."
  공명은 먼저 관우를 강변으로 보내 배를 준비하게 하고 다시 손건과 간옹에게 
성안의 백성들에게 알리게 했다.
  이레 손건과 간옹은 성안을 돌아다니며 외쳤다.
  "조조의 대군이 쳐들어오고 있다. 이곳 번성이 작고 외따로 떨어져 있으니 지
켜내기가 어렵다. 그러니 우리와  같이 가기를 원하는 자는 함께 강을 건너도록 
하라!"
  신야와 번성, 두 고을의 백성들은 저마다 부르짖었다.
  "우리는 비록 죽는 한이 있더라도 유황숙을 따르겠습니다."
  백성들은 성문을 나서서  강변으로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젊은이는 노인을 부
축하고 어린것은 팔에 안았다.  남자는 등짐을 지고 여자는 머리에 보퉁이를 이
고 줄을 지어 걸으며 정든 집은 떠나니 통곡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관우를 비롯한 미축,간옹은 수많은 백성들을 차례로 배에 태워 건너편에 내려
놓았다.
  유비와 휘하 장수들도 배에  올랐다. 그가 배 위에서 바라보니 백성들이 떼를 
지어 건너고 있는데 가족을  찾는 소리, 어린아이의 울부짖음이 강 양쪽 기슭에
서 그치지 않았다.
  "아아, 나 한 사람 때문에 백성들이 이처럼 큰 난을 겪고 있으니 무슨 낯으로 
갈아가겠는가!"
  유비가 갑자기 뱃전으로 다가가더니 강물에 몸을 던지려 하였다. 좌우의 사람
들이 놀라 황급히 유비를 끌어안았다.
  "죽음은 쉽고  삶은 어렵습니다. 본디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투쟁입니
다. 저 백성들을 버리시고 주공만이 혼자 가시렵니까?"
  좌우에서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하며 유비를 진정시켰으나 이일을 전해들은 사
람 치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기구한 반생이 아닐 수 없었다. 탁군에서 몸을 일으킨 이래 지금
까지 변변한 근거지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전하를 떠돌았을 뿐이었다. 이제 다
시 조조에게 쫓겨  형주로 가고 있으나 그 형주도  자기를 받아 줄지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었다. 무능한 자신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백성들이 참담한 고초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니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유비였다. 좌우의 만류와 위로로 마음을 
가다듬자 유비는 다시 백성들을 살펴보았다. 아직도 강을 건너지 못한 백성들이 
울부짖고 있다 유비는 영을 내렸다.
  "어서 배를 재촉하여 강을 건너고자 하는 백성들을 모두 실어오도록 하라!"
 유비의 명에 관우가 뒤쳐져 있는 백성들을 도와 강을 건네주었다. 유비는 강기
슭에서 이들이 모두 건너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말에 올랐다.
  일행이 양양의 동문 앞에  이르러 보니 성 위에는 나부끼는 깃발이 즐비했다. 
해자를 따라 뾰족한 말뚝들이 빈틈없이  꽂혀 있어 말을 타고 들어갈 수조차 없
었다.
  유비가 말을 세우고 큰소리로 외쳤다.
  "조카 유종은 내 말을 듣거라.  나는 백성을 구하려고 할뿐이지 다른 뜻은 없
다. 그러니 성문을 열라!"
  유종은 유비가 왔다는 것을 알자 업을 먹고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채모
와 장윤이 성벽 위로 오르며 군사들에게 명했다.
  "활을 쏘아라!"
  유비를 따라온 백성들 머리  위로 화상이 비오듯 쏟아졌다. 비명과 통곡이 주
위에 메아리치면서 백성들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자 그  동안 유비를 믿고 신야,번성에거부터 따라온 백성들은 모
두 양양성을 바라보며 슬피 울었다. 그 때 송 안에서 헌 장수가 수백 명의 군사
를 이끌고 성벽위로 올라가더니 큰 소리로 꾸짖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 채모와 장윤은 듣거라! 유 사군은 인자하고 덕망이 높
으신 분으로 지금 백성들을 구하려고 여기까지 오셨는데 어찌하여 활을 쏘며 적
을 대하듯 하느냐!"
  모두들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니, 그 사람은 키가 여덟 자에, 얼굴은 무르익
은 대춧빛처럼 검붉었다. 그는 의양 사람으로 성은 위, 이름은 연, 자는 무장이
라는 장부였다. 호통을 친 위연은 칼을 휘둘러 수문장을 베어 죽였다. 그리고는 
성문을 활짝 열고 적교를 내린 다음 다시 소리쳤다.
  "유 황숙께서는 빨리 성안으로  드십시오. 나라를 팔아먹은 이 도적들을 치십
시오."
  "여부가 있나."
  장비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몰아 성안으로 달려들려고 하자 유비가 급히 소 
리쳐 말렸다.
  "경솔히 내닫지 말라. 백성들을 놀라게 해서는 아니 된다,"
  그럴 동안에도 위연은 빨리  유비에게 성안에 들도록 소리쳤다. 이때  성안에
서 한 장수가 군사를 거느라고 나오며 소리쳤다.
  "위연, 네가 이름도 없는 한낱 졸개의 몸으로 어찌 감히 함부로 나대느냐. 대
장 문빙을 몰라보느냐!"
  위연은 문빙이 호통을 치며  달려오자 성이 나 장창을 꼬나들었다. 두 장수는 
성벽 위에서 칼과 창으로  춤추며 거세게 얽혀들고 있었다. 눈앞에 뜻밖의 알이 
벌어지자 유비는 공명을 돌아보며 한탄했다.
  "백성들을 구하려다 오히려 고통을 주게 되었구려. 이러다가는 백성들을 모두 
죽일까 두렵소. 양양성 안으로는 들지 않겠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강릉은 형주의 요지입니다. 먼저 강릉을 
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럼, 어서 가십시다."
  유비는 다시 백성들을 이끌고 큰길을 따라 강릉으로 향했다. 양양성안의 백성
들도 혼란한 틈을 타서 성문 밖으로 나와 유비 일행을 따랐다. 
  그때 위연과 문빙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사시부터 미시까지 어지러운 싸
움이 계속되었다. 위연의 졸개들이 그 동안 죽거나 흩어져 얼마 남지 않았고 유
비까지 가 머리자 위연도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어졌다. 막상 말을 돌려 성밖
으로 도망쳐 나왔으나 유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장사로 향했다.  
  그곳의 태수 한현에게 몸을 의탁하기 위함이었다.
  양양에서 강릉으로 이르는 큰길은 사람의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유비와 동행
한 군사와 백성은  도합 10여 만 명에 이르렀고  크고 작은 수레는 수천 량이나 
되었다. 군사들은 모두 젊고 단련된 몸이어서 괜찮겠지만 백성들에게는 이 피난
길이 고달픈 여로가 아닐 수 없었다.
  병든 사람, 나약한 아녀자들이  많아 마음만 급했지 하루에 10리 가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일행이 지나가는 길에서 유표의  무덤이 멀지 않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유
비는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유표의 무덤을 찾아가 절하며 통곡했다.
  "이 아우가 덕과 재주가  모자라 형님께서 당부하신 바를 저버렸습니다. 모든 
죄는 다 저에게 있으며  백성들이 어찌 잘못이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형님의 영
령이 계시다면 이 가엾은 백성들을 구해 주십시오."
  유비가 눈물을 흘리며 비통한  목소리로 그렇게 기원하자 모든 백성들과 장수
들도 따라 모두 슬퍼하며 울었다.
  이때 전령이 달려와 급보를 전했다.
  "조조의 대군이 이미 번성에 들었습니다. 이어 군사를 풀에 배와 뗏목을 거둬
들여 강을 건너 우리를 뒤쫓고 있습니다."
  일이 이레 이르자 유비가 당황하는 중에 여러 장수들이 한데 입을 모았다.
  "강릉은 요지라 능히 조조의 군사로부터 성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수
만의 군사와 하루에 10여 리밖에 나가지 못하는 백성들을 이끌고는 언제 강릉에 
이를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몸을 가릴 만한 것도 없는 이 들판에서 만약 조
조군의 공격을 받는다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잠시 백성
들을 내버려두고 먼저 강릉으로 가서  조조를 막을 계책을 세우는 것이 좋을 것
입니다."
  공명도 여러 장수들의 말을 따르도록 유비에게 권했다. 그러나 유비는 눈물을 
흘리며 그 권유를 뿌리쳤다.
  "대사를 도모하는 자는 반드시  사람을 근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 백성들
이 나를 의지하고  이렇게 따르는데 내가 어떻게  저들을 버리고 간다는 말입니
까?"
  그 말을 전해들은  모든 사람들은 유비의 어진  마음과 넓은 도량에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유비의  백성들에 대한 사랑을 감탄하여 뒷날 사람들이 시로 
남겨 기렸다.

  어려움 중에도 어진 마음으로 백성들 살펴
  배타고 눈물지으니 삼군이 감동하네.
  양강 어귀에 가서 조상하니
  고을 노인들은 유 사군 못 잊네.

  공명은 더 이상 유비에게 먼저  강릉으로 떠날 것을 권하지 않는 대신 관우에  
게 군사 5백을 주며 명을 내렸다.
  "조조군이 곧 추격해 올 것이오. 장군께서는 강하에 있는 공자 유기에게 가서 
우리의 형편을 소상히 전하고 급히 군사를 일으켜 강릉에서 합류하도록 전해 주
시오."
  공명은 유비의 글을 곁들인  후 손건을 거느리고 가서 원군을 청하도록 했다. 
이어 장비에게는 군사를 거느리게 하여 뒤를 막도록 했다. 조운에게는 늙은이와 
어린이를 돌보게 하고 나머지 장수들도 백성들을 보살피도록 했다. 장수들과 군
사들이 백성들을 돌보며 행군하니 하루에 10리 이상은 갈 수도 없었다.
  이 무렵, 조조의 중군은  번성에 머무르며 사람을 양양으로 보내 유종을 불었
다. 그러나 유종은 막상  조조가 사람을 시켜 부르자 두려움이 일었던지 움직이
려 들지 않았다. 채모와  장윤이 아무리 타이르고 권해도 유종은 막무가내였다. 
유종은 오히려 그럴수록 채모와 장윤에게 대신 갔다 올 것을 청했다.
  그러나 항복하는  문서를 보낸 이후 처음으로  조조가 부른 것이었다. 주군이 
가지 않고 신하가 대신가는  것은 항복한 주군으로서의 예의가 아니니, 자칫 노
여움이라도 산다면 화를 자초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조조에게 가는 일
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 어느 날 왕위가 살며시 유종에게  진언했다.
  "장군께서 이미 항복하시었고  거기다가 유비도 달아나고 말았으니 조조는 틀
림없이 마음이 풀어져 아무런 방비가 없을 것입니다. 이 기회에 군사를 가려 뽑
아 각요지에 배치해 놓고 일시에  조조를 습격하면 그를 사로잡을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조조만 격파하면 그  위명이 천하에 떨칠 것이니 중원이 비록 넓다고는 
하나, 격문을 돌리기만 하여도 천하는 평정될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천재일우
의 기회입니다. 결코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나 유종은  어린 나이인데다 채씨 일족에게  둘러싸인 몸이었다. 그 일을 
채모에게 둘려 주며 의논했다. 채모가 펄펄 뛰며 왕위를 불렀다.
  "무엇이, 조조를 칠 수 있다고? 천명을 알지 못하고 어찌 감히 요망스런 말을 
지껄여 혼란스럽게 하느냐?"
  채모는 왕위를  힐책하며 욕설까지 퍼부었다. 그러나  왕위도 지지 않고 성난 
목소리로 마주 꾸짖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주제에 어찌 감히  내게 욕을 한단 말이야? 내 너의 살이라
도 씹어 먹고 싶구나!"
  왕위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꼿꼿이 맞서자 채모가 칼을 빼들고 그를 죽이
려 했다. 그러나 괴월이 나서 채모를 가까스로 달래어 마음을 돌리게 했다.
  그 당시  형주성에는 내분이 그칠 사이가  없었다. 지난날의 유비를 따르려고 
성을 빠져나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중신들 사이에서도 국론이 통일을 이루지 못
하고 의견이 분분하기만 했다.  뿐만 아니라 무관과 문과 사이에도 대립과 반목
이 싶어 갔다.
  형주의 주인이 채씨 일족의  간계로 옹립된 것부터 불씨를 안고 있었는데다가 
이제 조조에게 항복하고 나니  지급까지 억눌렸던 세력들에 대한 반발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채모와 장윤은 이러한 내부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방편으로 조조와의 화친
을 강화하기로  작정했다. 그리하여 채모는 장윤과  함께 번성으로 가서 조조를 
만났다. 채모와 장윤은 항복한다는 뜻을 다시금 아첨을 떨어가며 전했다.
  조조는 높다란 탑 위에 앉아서 채모와 그 일행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형주의 군사와 곡식과 돈, 전선은 얼마나 되오?"
  채모가 재배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마군이 5만, 보군이 15만, 수군이 8만, 도합 28만이며 곡식과 돈은 대부분이 
강릉에 있으며  그밖에 각 처에 있는  것만 가지고도 1년은  족히 견딜 만 합니
다."
  "그럼 전선은 얼마나 되며 누가 관장하고 있는가?"
  "크고 작은 병선이 모두 7천여 척인데 저희들이 맡아 거느렸습니다."
  채모가 그렇게 대답하자 조조는 흡족한 듯 웃으며 말했다.
  "이번 일에는 그대들의 독이 컸소."
  조조는 그 자리에서  채모를 진남후 수군대도독, 정윤을 조순후 수군부도독으
로 삼았다.
  생각지도 않은 벼슬까지 얻자 채모와 장윤은 조조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절
을 올렸다. 조조가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일었다.
  "유표는 이미 죽고 그 아들이 항복해 왔으니 나는 마땅히 천자께 상주하여 그
로 하여금 영구히 형주의 주인이 되도록 해 주겠네. 가서 그렇게 전하게."
  채모와 장윤은 더욱 기뻤다. 조조에게 이미 벼슬을 받은 터라 이제 천하에 부
러울 것이 없다고 여긴 채모와 장윤이었다.
  채모와 장윤은 형주가 조조에게 항복하게 된 석이 마치 자기들에게 튼 행운을 
준 것인 양 기뻐하며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고 나자 순유가 조조에게 물었다.
  "채모와 장윤은 아첨밖에 모르는 무리입니다.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그처럼 높
은 벼슬을 주시며, 또한 수군까지 맡기셨습니까?"
  조조가 껄걸 웃었다.
  "내가 어찌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겠소? 그러나 북쪽에서 내려온 우리 군대는 
수전에는 익숙지 못하오.  잠시 저 두 사람을  써서 강남을 평정하면 그 뒤에는 
내가 달리 생각한 바가 있소."
  조조의 말에 순유는 자기의  물음이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속으로 감탄
해 마지않았다.
  한편 양양으로 돌아온 채모와 장윤은 유종과 채 부인 앞에 나아가 의기양양하
게 고했다.
  "조승상은 조정에 주창하여  장군으로 하여금 형주와 양양을 다스리게 하겠다
고 약속하였습니다."
  그 소리에 유종과 채  부인도 기뻐해 마지않았다. 항복을 했으나 조조가 어떻
게 나올지 몰라 두려움에 차 있던 유종은 밝은 얼굴로 채모와 장윤의 노고를 치
하했다.
  다음날이 되자 유종은 생모 채  부인과 함께 인수와 병부를 들고 번성으로 향
했다. 조조가 자신을 형주의 주인으로 삼겠다고 했으니 더 미룰 필요 없이 인수
와 병부를 바친 후 조조로부터 직접 그 말을 듣고 싶었다.
  조조는 유종과 그의 어미를 좋은 말로 달랜 뒤 그들과 함께 군사를 거느려 양
양으로 갔다. 조조는 군사들을  성밖에 머무르게 한 뒤 호위하는 군사들만 따르
게 하여 양양성으로 들었다.  채모와 장윤이 백성들을 나오게 하여 꿇어앉힌 뒤 
조조가 가는 길에 향을 사르고 절을 하게 했다.
  조조는 좋은 말로 백성들에게 일일이 위무하여 안심시킨 뒤 성안의 부중에 좌
정했다. 모든 문무의 관원들이  조조를 절하며 뵙는데 괴월의 차례가 되자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나는 형주를 얻은 것보다 이도를 얻은 것을 더욱 기쁘게 생각하오."
  조조는 그 자리에서 괴월을 강릉태수 번성후로 삼았다. 또한 부손이나 왕찬에
게도 관내후에 봉해 그  공에 보답했다. 그들은 조조에게 항복을 권유한 형주의 
신하들이었다.
  조조는 형, 양을 차지하는데  공이 많았던 사람들에게 논공행상을 베푼 뒤 유
종에게도 벼슬을 내였다.
  "그대들은 청주자사로 삼겠다. 그러니 지금 즉시 청주로 떠나도록 하라."
채모와 장윤에게 했던 말과는 너무나도 다른 엉뚱한 관직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조조의 명에 유종이 크게 놀라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이윽고 마음을 추스
른 유종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저는 관직에는 욕심이 없습니다. 다만 선친의 분묘가 있는 이 고장을 지키고 
싶을 따름입니다."
  유종이 간곡히 청했으나 조조의 대답은 차갑기만 했다.
  "모르고 하는 말이네. 청주는  허도에서 가까운 곳이니 그대를 조정에 추천하
기가 편리하도록 해 주려는  뜻이다. 그대가 형주, 양양에 머무른다면 목숨마저 
위태로워짐을 모르는가? 그대를 위해 내린 벼슬이니 급히 떠나도록 하라!"
  유종이 거듭 애원하였으나 조조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의 명인
데 거역할 수 있겠는가. 유종은  하는 수 없이 어머니 채 부인과 합께 울며불며 
태어난 고향을 떠나 청주로  향했다. 변하기 쉬운 것은 사람의 마음인지 그토록 
따르던 사람이 많았으나 청주로  떠나려 하니 몇 사람만이 그들을 따랐다. 다만 
조조를 급습하라고 아뢰던  왕위만이 몇 사람의 군사를  거느리고 와 유종과 채 
부인의 거가를 경호했다. 형주와 양양의 주인이었던 이들 모자가 초라한 행렬로 
청주를 향해 길을 떠나고 난 후였다.
  조조는 몰래 우금을 불러 은밀히 영을 내렸다. 우금은 곧 날랜 군사 5백여 기
를 가려 뽑아 유종의 뒤를 쫓았다.
  이윽고 우금이 유종의 일행을 발견하고 그들을 덮쳤다. 
  "나는 승상의 명을 받아 너희를 베러 왔다. 어서 명을 따르라!"
  이름도 알 수 없는 들판에서 잡초를 시뻘겋게 물들인 처참한 살육이 시작되었
다.
  채 부인은 기겁을 하며  유종을 끌어안고 몸부림쳤으나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
다. 여인의 분별없는 야심과 허욕이 끝내는 자신은 물곤 그의 어린 자식을 죽음
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채무인과 유종이 칼에 맞아  숨지는 걸 본 왕위가 칼을 
빼들고 우금에게 달려들었으나 왕위가  어찌 우금의 상대가 될 수 있으랴! 우금
의 한칼에 목이 떨어지니 의로운 충신으로서의 도리를 지켰을 뿐이었다. 유종의 
거가 주위에는 우금이 거느린  5백의 군사가 이리 떼처럼 엄습하니 한바탕 살육
전이 전개되었다. 검붉은 피가 튀고 비명과 절규가 들판에 메아리 쳤다.
  이윽고 행렬을 따르던 사람과  호위하던 장졸들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번 뒤에
야 우금은 군사를 거느라고  돌아갔다. 우금이 양양으로 돌아와 조조에게 이 일
을 보고했고, 이에 조조는 우금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채 부인과 유종을 죽여 형주, 양주를 다스리던 유표의 혈족을 끊은 조조는 다
시 융중 방면에 군사를 풀었다. 공명의 아내와 아우를 비롯한 그 가솔들의 행방
을 찾기 위함이었다.
  "사방을 이 잡듯하여 그의 삼족을 몽땅 잡아오라!"
  조조의 엄명이었다. 명을 받은 장수들이 수하의 군사를 독려하며 와룡강의 초
려를 비롯, 인근 마을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그들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을 줄을 미리 헤아린 공명이 가솔들을 삼강 으슥한 곳에 숨겼기 때
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공명의 덕을 우러르고 있었으므로 조조의 장졸들이 아
무리 다그쳐도 입을 다물 뿐이었다.
  조조는 이런 일 외에도 많은 정사를 처리해야 했다. 형주의 치안과 유표의 옛 
신하들에 대한 조치, 이곳 백성들을 다스릴 새로운 법령을 만드는 등의 일을 돌
보아야 했다.
  그런 어느 날 순유가 조조에게 진언했다.
  "유비와 그 무리들이 강릉으로 달아난 지 벌써 열흘이 넘었습니다. 강릉은 형
주와 양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지이며 곡물과 물산이 풍족한 곳입니다. 만약 
유비가 그곳을 차지하여 근거지로 삼는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내가 어찌 그것을 모르겠는가? 급히 군마를 뽑아 유비를 뒤쫓아라."
  "유비는 수만의 백성들을 이끌고 있으니 빨리 행군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철
기 수천으로 질풍처럼 추격하면 며칠 사이에 따라 접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즉시 양양성에 있던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 중에서 갈 안내
를 할 장수를 뽑을  작정이었다. 장수들이 모두 모였는데 오직 문빙만이 보이지 
않았다.
  "왜 문빙은 오지 않았는가?"
  조조가 사람을 시켜 찾아보게 한 뒤에야 문빙이 나타나 장수들이 늘어선 대열 
속에 끼여들었다.
  "그대는 어디 있다가 이렇게 늦었는가?"
  조조가 의아롭게 여겨 묻자 문빙은 숙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남의 신하된 몸으로서 주인으로 하여금 강산을 보전하지 못하데 하였습니다. 
스스로 슬프고 부끄러워 일찍 와서 뵙지 못했습니다."
  문빙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조조는 문빙의 그런 모습을 보자 감탄
했다.
  "그대야말로 참다운 추신이로다."
  조조는 그 자리에서  문빙의 관직을 올려 강하태수  관내후에 봉한 후 유비를 
추격하는 길잡이로 삼았다.
  이때 유비를 살피러 보냈던 군사가 달려와 알렸다.
  "유비는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가기 때문에 하루 10여리 밖에 가지 못하고 있
습니다. 지금 그들이 가고 있는 곳은 양양에서 3백여 리쯤 될 것입니다."
  조조는 장수들에게 영을 내려 날랜 군사 5천을 뽑아 하룻밤 사이에 유비를 따
라잡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은 몸소 대군을 이끌고 그 뒤를 따랐다.
  한편 유비는 십만여 남녀노소를  데리고 가면서 군세는 고작 3천에 불과했다. 
천리길이나 되는 들판을 개미 떼가 행진하듯 그 여로는 지지부진했다.
  "강릉은 아직 멀었는가?"
  "이제 반쯤 왔습니다."
  양양을 떠난 지 벌써  10여일, 이렇게 간다면 언제 강릉에 당도할까 생각하니 
유비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유비가 공명에게 말했다.
  "앞서 강하로 원군을 청하러 간 운장으로부터 이렇다 할 소식이 없구려. 수고
롭지만 군사께서 한 번  더 다녀오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유기는 지난날 군사
의 가르침을 받아 목숨을 구했으니 군사의 말을 거역하지 못할 것입니다."
  유비의 말에 공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겠습니다. 어떤 연유로  운장이 오지 않는지 알  수 없으나 지금 유기밖에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공명은 유봉이 거느리는 군사  5백의 호위를 받으며 강하로 원군을 청하러 떠
났다. 공명이 강하로 원군을 청하러  가고 난 후 유비는 행군을 계속했다. 행군
을 계속하던 이틀째 낮이었다.
  갑자기 일진의 광풍이 말 앞에서  일어나며 티끌과 흙을 휘말아 올려 해를 가
리더니 괴이쩍은 소리가 땅 속 깊을 곳에서 울려 나오는 듯했다.
  유비가 크게 놀라며 말을 세웠다.
  "이게 무슨 징조인가?"
  유비가 좌우에 있는 간옹과  미축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음양에 대해 남다른 
식견이 있는 간옹이 점을 쳐보더니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아주 흉한 징조입니다. 그것도 바로 오늘밤에 있다고 점괘에 나와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곧 백성들을 버리고 몸을 피하셔야 겠습니다."
  "백성들은 신야에서부터 이곳까지 나를  따라왔소. 내 어찌 저들을 버리고 갈 
수가 있겠소?"
  "주공께서는 백성들 생각만 하시다가는 큰 화를 당하게 되십니다."
  간옹이 간곡히 권했으나 지금까지 백성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해 온 유비었다. 
간옹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앞쪽을 바라보고 있더니 손으로 앞을 가리키
며 물었다.
  "저 앞쪽은 어디요?"
  이곳의 지리에 밝은 한 사람이 나서며 말했다.
  "앞쪽의 휘게 보이는 곳은 당양현의 물이옵고, 그 뒤의 산은 경산이라 하옵니
다."
  "그럼 저곳에서 잠시 머물다 가도록 하자."
  유비는 피로에 지친 일행을 쉬게 하려는 듯 그곳에 진을 치라고 분부했다. 간
옹은 더 이상 권해 보았자 소용이 없음을 알고 유비의 분부에 따랐다.
  때는 늦은 가을이었다.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서고 있어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
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어슴푸레한 황혼이 깔리고 끝없는 행군과 추위에 
괴로워하는 백성들의 흐느낌만이 산야를 메웠다.
  당양에 진을 치자 모두가 지쳐  잠들거나 쉬고 있는 가운데 어느덧 밤 사경쯤
이 되었을 때였다. 홀연 서북쪽에서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이 일어났다. 
  유비가 크게 졸라며 황망히 말 등에 올라 본진의 정병 2천여를 거느리고 다가
오는 조조군을 맞으러 갔다.  유비는 거세게 달려오는  조조군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눈사태가 나듯 덮쳐오는 조조의 대군에 밀려 순식
간에 에워싸이고 말았다.
  조조군은 곧 유비를 사로잡을 듯 틈을 주지 않고 달려들었다. 이때 다행히 후
진에 있던 장비가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왔다. 장비가 장팔사모를 휘두르며 조
조군의 장졸들을 베고 찌르며 가까스로 혈로를 열어 유비에게 길을 터 주었다.
  유비는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앞을 향해  달렸다. 이윽고 앞쪽에 넓은 내가 
나타났는데 그 내를  끼고 길다랗게 둑이 뻗어  있었다. 그러자 그 둑의 후미진 
것에서 한 무리의 병마가 나타나 유비의 앞을 가로막았다.
  "유 예주 ,유 예주께서는   거기 서시오. 이미 운이 다했으니 그 목이나 내놓
으시오."
  한 장수가 이렇게 외치며 달려왔다. 그는 형주의 옛 신하 문빙이었다.
  유비는 문빙을 보자 큰 소리로 꾸짖었다.
  "그대는 형주 장수 중에  으뜸이라는 문빙이 아닌가? 나라가 어려워지자 즉각 
나라를 팔고, 싸움이 일어나자 창끝을 돌려 적장에게 아첨하며, 무슨 얼굴로 나
를 대하려 하느냐?"
  유비의 꾸짖음에 문빙은 달려오던 말을 세우고 주춤거렸다. 유비의 송곳 같은 
꾸짖음에 문득 괴로운 얼굴을 짓더니 아무런 대꾸도 않고 군사를 거두어 물러났
다. 곧 이어 장비가 뒤따라왔다.  장비는 유비를 달아나게 한 뒤 뒤따르는 적을 
막으며 후퇴했다. 
  날이 밝을 무렵이 되자  적병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유비는 말을 세우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둘러보았다. 그를 따라온 군사는  겨우 1백여 기에 불과했
다. 백성들은 물곤 가솔들과 미축,간옹,미방뿐 아니라 조운의 모습도 보이지 않
았다.
  "아아, 어찌 이토록 가혹한 것인가?"
  유비는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했다.
  "10여 만이나 되는 백성들이 모두 나를 따르다가 그만 이처럼 큰 화를 당하고 
가솔들과 장수들의 생사도 알 길이 없지 않은가? 목석이라 한들 어찌 슬프지 않
겠는가?"
  유비의 탄식에 모두 비탄에 젖어 있는데 홀연 미방이 몸에 꽂힌 활도 뽑지 않
은 채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났다.
  그는 유비 앞에 무릎을 꿇더니 고했다.
  "주공께서 무사하시어 마음을  놓았습니다. 하오나 비통하게도 조자룡이 배반
하였습니다. 그는 조조의 진중으로 가버렸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미방이 토하듯 한 말이었다. 실로 놀라운 말이었다. 여러 사람
이 아연 실색하여 눈만 크게  뜨고 있었다. 그러나 유비만은 그 말을 믿지 않았
다. 오히려 미방을 꾸짖을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가. 자룡은  나와는 형제와 같은 사이이다. 그가 어찌 배반한
단 말이냐? 다시는 그런 말을 입밖에도 내지 말라!"
  장비가 옆에서 불쑥 끼여들었다.
  "아닙니다, 형님. 지금 우리가  이처럼 궁지에 몰린 것을 보고 조조에게 가서 
부귀를 누리고자 함인지도 모릅니다."
  유비는 장비의 말에도 흔들림 없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자룡과 나는 온갖 간난을 함께  해 오지 않았느냐? 그의 지조는 맑기가 눈과 
같고 마음은 쇳덩이와 돌처럼 굳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다. 그는 결코 부귀 따
위에 눈이 어두워서 지조와 이름을 저버릴 사람이 아니다."
  "그가 서북쪽으로 가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곳은 조조의 본
진이 있는 곳입니다. 유비가 자신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자 미방이 본 바를 말
하며 우겨댔다. 장비가 이 말을 듣자 고리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네가 가서 알아보겠소. 만나기만 하면 한창으로 그의 목숨을 끊어 놓겠소."
  장비가 불쑥 분기를 일으키자 유비가 급히 그를 말렸다.
  "익덕은 공연히 의심치 말라.  아우는 지난날 둘째형이 판단을 잘못하고 조조
에게 가담하여 안량,문추의 목을 벤 일을 잊었는가. 자룡이 그쪽으로 갔다면 그
럴 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자룡은 결코 나를 저버릴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불길처럼  치솟는 화를 억누르지 못한  장비는 유비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군사 20여 기를 이끌고  말을 달렸다. 장비가 한참을 달리다 
보니 앞쪽에 큰 내가 있고 튼튼한 나무다리로 된 장판교가 가로놓여 있었다.
  다리의 동쪽 기슭에는 그다지 넓지 않은 숲이 보였다.
  장비는 장판교에 이르러  수하 군사들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한 다음 그 들을 
숲 속에 감추었다. 군사들은 장비의 계책에 따라 말꼬리에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잡아매고는 숲 속을 헤집고  다니게 했다. 말발굽 소리와 나뭇가지가 나무에 부
딪치고 흙먼지를 일으키니 숲  속에는 수많은 군마가 들끓는 것처럼 왁자지껄했
다.
  "하하, 어더냐 나의 계책이, 설마 스무 명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비가 껄걸 웃으며 큰소리쳤다. 장비가 큰소리칠 만도 했다. 싸움만 하던 장
수가 낸 꾀로는 제법 보기 어려울 만큼 훌륭한 계책이었다.
  정바눈 숲에서 나와 장판교  다리 위로 오르더니 말을 세웠다. 그리고는 장팔
사모를 옆구리에 비스듬히 끼고 서쪽을 바라보았다.
  한편 조운은 밤중에 조조군이 함성을 지르며 몰려들자 말을 달려 조조군을 맞
아 좌충우돌하며 적을 무찔렀다. 그러나 날이 밝아오자 유비를 찾아보았으나 보
이자 않았을 뿐더러 유비의  가솔들마저 보이지 않았다. 조운은 가슴이 덜컥 내
려앉은 듯했다.
  그는 양양을 떠날  때부터 주군인 유비의 가솔  20여명과 그 종자들, 특히 감 
부인과 미 부인이며  또한 유비의 아들인 아두를  경호하라는 명을 받은 터여서 
그 책임의 크고 무거움을 통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밤에  조조군과 싸우다 보니 그들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의기와 
책임감이 남다른 조운이 어찌 그냥 갈 수가 있겠는가.
  '내 무슨 얼굴로 돌아가 주군을  뵈올 것인가.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고 두 마
님과 공자님을 찾으리라!'
  조운은 이렇게 작정하고 혈안이 되어, 난군 속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조운은 이제 서른 명도 안  되는 수하 군사들과 함께 몇 차례나 적진 속을 뚫
고 들어가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두 마님과 공자님을 보지 못했는가?"
  백성들과 군사들을 볼  때마다 조운이 미친 듯이  수소문하고 다니는 동안 신
야, 번성 백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고 있었다. 화살에 맞고 창에 
찔려 죽거나 상한 사람들,  창칼을 피해 가족도 버리고 이리저리 달아나며 울부
짖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복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조운이 그런 백성들 
사이를 달려 말을 달려 지나가는데 문득 길가 풀숲 속에 쓰러져 있는 장수가 보
였다. 다가가 보니 그는 바로 간옹이었다.
  조운이 간옹의 몸을 안아 일으키자 그는 의식을 되찾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조 장군 아니시오?"
  "그렇소. 상처는 깊은 것 같지 않으니 기운을 내시오."
  "두 마님께서는 ?........공자님은 어디 계시오?"
  간옹이 주위를  휘둘러보더니 조운에게 물었다. 조운은  귀가 번쩍 뛰어 급히 
물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오. 공께서 이곳까지 모시고 왔소?"
  "두 마님께서는 수레를 버리고 아두 아기를 안고 도보로 달아나셨소. 나는 말
을 달려서 뒤를 쫓다가 이곳에  이르러 한 적장의 창에 찔리고 말았소. 이 상처
로는 싸울 수도 없어서 누워 있다가 잠시 의식을 잃었던 것이오."
  조운은 수하 군사가 타고 있던 말에 간옹을 태우고 군사들에게 그를 부축하게 
하여 돌아가게 하며 일렀다.
  "너희들이 주공을 뵙거든, 이 자룡이  두 분 마님과 공자님을 찾아 모시고 뵙
겠다고 일러라. 만약에 그분들을 찾지 못하면 흙이 될 뿐이다. 이 말을 꼭 여쭈
어라."
  말을 마친 조운은 즉시 군사들을 거느리고 말을 몰아 장판교 방향으로 달려갔
다.
  장판교가 멀지 않은 지점에 이르렀을  때 한 무리의 군사들이 부상을 당해 길
섶에 누워 있었는데, 그 중의 군사 하나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조 장군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조운이 보니 수레를 경호하던 군사들이었다.
  "두 분 마님과 공자님은 어디로 가셨는가?"
  조운이 그들을 보자 급히  물었다. 조운을 불렀던 군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
다.
  "저위들은 두 마님의 수레를  호위하다 적의 화살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그러
자 감 부인께서 머리를 풀고 맨발로 한 떼의 백성들 틈에 섞여 남쪽으로 가셨습
니다."
  그 군사는 손가락으로 남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운은 그 말을 듣자 군사들을 돌볼 생각도 할 틈이 없이 말을 박차고 남쪽을 
향해 달려갔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과연 앞쪽에 남녀 수백 명이 손에 손을 잡
고 엎어지고 쓰러지며 달려가고 있었다.
  조운은 그들의 한가운데로 말을 몰면서 큰소리로 물어 봤다.
  "여기에 혹시 감 부인은 안 계십니까?"
  조운이 목이 터져라고 거듭  외치자, 사람들 무리 뒤에서 따라오던 한 부인이 
조운의 말 앞에 쓰러지더니 목을 놓아 통곡했다. 감 부인이었다.
  조운은 말에서 뛰어내려 창을  땅에 꽂아 세운 후 울먹이며 말했다.
  "두 마님은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것은 다 저의 죄입니다. 그런데 미 부인과 
공자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나와 미 부인은 적에게 쫓기던 중 수레를 버리고 백성들 틈에 숨어서 걸어왔
소. 그런데 또 한 무리의  조조군이 엄습해 와 모두 흩어졌는데 그때 미 부인과 
헤어지고 말았소. 그 이후 나는  혼자서 도망쳐왔소."
  감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백성들이 아우성을 치며 사
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한 무리의 적군이 돌진해왔다.

  피로 물든 당양 벌판
  조운과 장비
  
  유비를 만난 조운은 미 부인의 죽음을 고하며  공자 아두를 바치고, 자룡의 목
숨 건 충의를 본 유비는 아두를 땅바닥에  팽개쳐 고마움을 표한다. 한편 장비는 
장판교 위에서 홀로 조조의 군사와  맞서고 벽력 같은 호통과 살기 등등한 위세
로 그들을 물리친다.
  
  조인의 휘하에 부장 순우도라는 장수가 있었다.
  이날 유비 일행을  추격하는 도중, 앞을 가로막는 미축과 한바탕  싸우다가 마
침내 미축을 사로잡아 자기의 말 안장에다 붙들어 매었다.
  "오늘 첫째 가는 공훈은 유비를 사로잡는  것이다. 조금만 더 달려가면 유비를 
따라잡을 수 있다. 다들 숨도 쉬지 말고 달려라!"
  미축을 사로답은 순우도는 크게  기세를 올리면서 1천여 명의 수하 군사를 이
끌어 소나기 쏟아지듯 급히 달려오던 길이었다.
  순우도는 앞쪽에 한 떼의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는 중에 한장수가 말
을 타고 있는 것을  보자 곧장 그리로 말을 달렸다. 그를  보니 유비군의 장수임
에 틀림없었다.
  미축을 사로잡은 순우도는 다같은  장수로만 여기고 겁없이 칼을 빼들고 조운
을 한칼에 내려칠 기세로 덮쳐 왔다. 
  한편 조운은 앞서 달려오는 적장의  말에 미축이 꽁꽁 묶여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조운은 즉시 창을 높이 들고 순우도를  맞아 싸우니 처음에는 제법 거세
게 부딪쳤다. 순우도도 역시 장수였던 까닭이다. 그러나 순우도는 이번에 상대하
는 적장이 자기가 사로잡은 장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음을 깨닫고 슬며시 말머리
를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조운의 날카로운 창날이 이미 순우도의 몸을 산적 꿰듯 찌르고
는 그 창을  휘두르니 순우도의 몸은 선혈과 함께 땅바닥에  패대기쳐졌다. 뒤따
르던 군사들이 그 모양을 보고 주춤거렸다.
  조운은 졸대들을 향해 쏜살같이 말을  몰아 창을 휘둘러 수십 명의 군사를 찔
렀다. 나머지  졸개들은 조운이 달려가지 전에  이미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조운이 몇 명의 졸개들을 휩쓸자 그들은 모두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조운은 적의 말을 빼앗아 감 부인을 태우고 미축의 결박을 풀어 말 위에 앉힌 
후 장판교 쪽으로 달려갔다.
  장판교 위에는 아직 장비가 말을 세운 채  있었다. 장비는 안장 위에 장팔사모
를 걸치듯 옆으로 들었는데 이글거리는 횃불 같은 눈으로 이쪽을 향해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앞쪽으로 조운이 달려가자  장비가 창을 꼬나잡더니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쳤다.
  "옳지, 저기 오는 자는  사람이냐, 짐승이냐? 무슨 까닭에 우리 형님을  배반했
느냐?"
  조운이 들으니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분기가  치솟기도 했을 뿐  아니라 미 
부인을 구해야 할 다급한 처지라 큰 소리로 외쳤다.
  "물러서시오. 감 부인이 여기 계시오!"
  그제서야 뒤따르는 감 부인과 미축을 본 장비는 머쓱해하며 언성을 낮추었다. 
  "조운, 자네는 조조의 군문에 투항한 것이 아니던가?"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실은 그런 소문이 있어, 만약 자네가  이곳에 오면 일격으로 요절낼 작정이었
네."
  "두 마님과 공자를 찾아 헤매다 간신히 감 부인만을 찾아 여기까지 모시고 온 
것인데, 주공은 어디 계시오?"
  "저기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고 계시네. 형님께서 두 마님과 공자의 소식을 몰
라 걱정하고 계시네."
  조운은 미축을 돌아보며 말했다.
  "미자중은 부인을 모시고 한 걸음 먼저 가시오.  나는 다시 가서 미 부인과 공
자를 찾아보겠소."
  말을 마친 조운은 다시 거느린 몇 기를 이끌며 말을 몰아 오던 길로 되돌아갔
다.
  한참을 달리는데 저쪽에서 10여 명의 수하를 거느린 젊은 장수 하나가 이쪽을 
향해 마주 오고 있었다. 등에는 장검을 짊어졌고  손에는 제법 화려한 장창을 비
껴 든 것으로 보아  지체가 높은 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자는  조운이 몇 사람
만을 거느리고  달려오고 있었으므로 감히 적군이  마주 달려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모양으로 태연했다.
  조운은 불문곡직하고  쏜살같이 말을 달려  그에게 창을 휘둘렀다.  마주 오던 
장수도 놀라며 창을 들어 맞섰고, 뒤따르던 10여  명의 군사들도 칼을 빼들고 맞
섰다. 조운은 마주 오던 장수와 엇갈리기가 무섭게  한 창으로 그를 찌르고 말았
다. 그 나머지 졸개들은 조운의 창에 찔려  순식간에 몇이 죽고 나머지는 달아나
기에 바빴다.
  조운은 적장의 등에 멘 칼이  범상한 칼이 아님을 알고 시체의 등에서 장검을 
뽑아 살펴보았다. 칼자루에는 금빛으로 '청홍'이란 글씨가 상감되어 있었다. 조운
은 그 글씨를 보자 크게 기뻐했다.
  "오, 이 사람은 조조가 아끼는 신하 하후은이었구나."
  조운이 듣기에는, 하후은은 맹장으로 이름 높은 하후돈의 아우였다. 그리고 조
조의 가까운 신하 중에서도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는 자였다.
  조조에게는 보검이 두 자루가 있었는데 하나는 의천이며 또 한 자루는 청홍이
었다. 조조 자신은 의천검을 차고 다녔으며, 청홍검은 총애하는 하후은에게 주어 
자기를 뒤따르게 했던 것이었다.
  이 청홍검은 아무리  강한 쇠도 무 베듯이 끊어버리는 명검  중의 명검이었다. 
조운은 다시 말 등에 올라 적진을 향해 달렸다.
  이때 이미 조운의  시야가 미치는 곳에는 모두 조조군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무수한 군사들이 미처 도망가지  못한 백성들과 유비군의 패잔병들을 찾아 무차
별 살륙하고 있었다.
  조운은 그 적중을 향해 두려움도  없이 오직 미 부인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뛰
어들고 있었다.
  "마님, 마님은 어디 계십니까?"
  이미 주위는 구름 떼 같은 적군들이었다. 힘을  다해 그들을 무찌르다 얼핏 뒤
돌아보니 그나마 뒤따르던 몇몇 군사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가 된 조운은 때마침 상처를  입고 땅에 쓰러져 있는 여인에게 미 부인을 
보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 여인은 꺼져 가는 듯한 목소리로 숨을 헐떡이며 가까스로 말했다.
  "장군께서 찾으시는 미 부인인지는 모르나 왼쪽 다리를 창에 찔린 채, 저기 농
가의 흙담 아래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귀부인을 보았습니다. 어서 가 보십시오."
  조운은 그 말을 듣자 귀가 번쩍 띄었다. 말을 달려 단숨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과연 그곳에는 불에  반쯤 탄 농가가 있었는데  뒤꼍의 곳간과 무너져내리다 만 
흙담이 남아 있었다.  조운이 말에서 내려 사방을 휘둘러 보는데  흙담 아래쪽에
서 여인의 흐느낌 소리와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조운이 보니 아두 아기를 안고  말라 버린 우물가에서 미 부인이 흐느껴 울고 
있었다. 조운은 급히 달려가 미 부인 앞에 엎드렸다.
  미 부인이 울음을 그치더니 반색을 하며 말했다.
  "장군을 만났으니 이제 아두는 살았습니다. 이 아이의 부친은 쉰 살이 되는 오
늘날까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자식이라고는 오로지  이 한점의 혈육밖에 
없습니다. 이 어린 것을 가련하게 여겨 주십시오. 장군께서 이 아이를 잘 보호하
여 제 부친의 얼굴을 다시 보게 하여 주시면 이몸은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미 부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운은  송구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미 부인에게 권했다.
  "부인께서 이 난을  겪으시게 된 것은 오로지 이 운의  죄입니다. 말씀은 뒤로 
미루시고 어서 제 말에 오르십시오. 제가 죽기로  싸워 적군을 뚫고 부인과 아두 
아기를 모시고 가겠습니다."
  조운이 미 부인에게 말에 오르기를 권했으나 미 부인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
었다.
  "아니 됩니다. 말이 없으면 장군은 어떻게 싸우며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가겠습
니까? 아두는 오로지 장군께 맡겼으니 장군은 이  아이를 보호하셔야 합니다. 나
는 이미 중상을 입은 몸, 이제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습니다. 어서 이 아이를 안
고 떠나시오. 이 몸으로 하여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적군의 함성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저들이  닥치기 전에 어서 말에 오
르십시오."
  조운이 다시 미 부인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에 오를 것을 재촉했다.
  미 부인은 아두를 조운에게 내밀었다.
  "자, 이 아이의 목숨은 오로지 장군께 달렸소이다."
  조운은 미 부인이  건네 주는 아이를 받으면서도  어서 말에 오르라고 간청했
다. 적군의 함성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 부인은 손을 저을 뿐이었다. 조운이  이번에는 언성을 높이며 말 위
에 오르기를 강권했다.
  "부인께서는 적이 들이닥치면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그때였다. 미 부인은 그  말에도 대답도 하지 않고 몸을 홱  돌려 우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자기의 목숨을 던져 유씨의 뒤를  이을 외아들을 살린 미 부인의 용기와 결단
은 주군의 아내답고 백성의 어미다운 것이었다.
  조운은 목놓아 울었다. 조운은 풀과 나뭇가지를  우물에 던져넣고 흙담을 밀어 
부인의 시체를 숨겼다. 혹시라도 조조군이 미  부인의 시체를 알아볼까 염려해서
였다.
  조운은 자신의 갑옷  끈을 늦추고 엄심갑안에 아두를 품고 갑옷을  덮었다. 이
때 아두는 세 살의 나이였다.
  아두를 갑옷 속에  품어 안고 조운이 말에 오를  때는 이미 흙담 밖과 부근의 
풀섶에는 적의  보군이 몰려와 있었다. 적의  대장은 조홍의 부장인 안명이었다. 
조운은 그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말을 박차 흙담을 뛰어넘었다.  안명은 삼첨
양인이란 칼을 잘 쓰는  인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는 조운을  보자 칼을 휘두
르며 덤벼들었다. 조운의 창과 안명의 칼이 강한  기운으로 한 차례 부딪치니 섬
광을 일으키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갈 길이 바쁜 조운이 기합  일성과 함께 창으로 찔러 들어
가니 안명은 창에 찔려 말 위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조운은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곧장 창을 휘둘러  안명의 졸개들을 헤치며 쏜살
같이 내달았다.
  조운이 말을 달려 갈 길을 재촉하는데 또  한 무리의 군마가 앞을 가로막았다. 
선두에 달려오는 장수를 보니  '하간 장합'이라 쓴 대장기를 머리 위에 나부끼고 
있었다.
  조운은 달리던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나는 화살처럼 말을 몰  뿐이었다. 장합은 
용력이 가볍지 않은 장수였다. 조운의 장창을 맞아 10여 합이나 다투었다.
  조운은 아두를 품에 안고  있어, 그와 오랫동안 다툴 마음이 없었는지라, 거세
게 찔러 들어가며 그가 주춤거리는  사이 길을 열어 말을 몰아 달아나기 시작했
다.
  장합은 조운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 기세를 올리며 뒤쫓았다. 조운은  말에 채
찍을 가해 앞으로 내달았다. 그러자 갑자기  말이 허공에 뜨는 듯하더니 '쿵'하는 
소리와 함께 말과 사람이 한꺼번에 큰 구덩이 속에 떨어지고 말았다.
  장합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구덩이에  빠진 조운을 향해 장창을 겨누
어 힘껏 찌르려 할 때였다.
  한 줄기 붉은 빛이 구덩이  속으로부터 뻗쳐 나오는가 싶더니 조운의 말이 껑
충 몸을  솟구쳐 구덩이 밖으로 뛰어올랐다.  땅 위에 오른 조운은  그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힘차게 달렸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뒷날 사람들이 이 일을  찬탄하여 시를 지
어 기렸다.
  
  공자의 몸을 붉은 빛이 싸고 용처럼 날아올라 
  말은 장판파의 포위를 뚫었네. 
  아두는 하늘로부터 타고난 운이기에
  조자룡도 신위를 떨쳤네.

  장합은 그 모양을 보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감히  뒤쫓을 엄두를 내
지 못한 채 군사를 거두어 진지로 돌아가고 말았다.
  조운은 쉬지 않고 말을 몰았다.
  그때 홀연 뒤쪽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 왔다. 
  "조자룡은 달아나지 말고 게 섰거라!"
  뿐만 아니라 앞쪽에서 두 장수가 한꺼번에 나타나 창칼을 휘두르며 길을 끊었
다. 
  뒤에서 쫓는  장수는 마연과 장의이며,  앞쪽의 장수는 초촉과  장남으로 모두 
지난날 원소의 수하에서 이름을 떨치던 장수들이었다.
  진퇴양난이었다. 조운이 앞과  뒤의 네 장수를 상대로 있는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데 조조의 군사들이 일제히 몰려 겹겹이 에워싸이고 말았다. 
  조운은 창 대신 등에 멘 청홍검을 빼들었다.
  청홍검은 과연  보검이었다. 칼날이 번뜩일  때마다 적장의 칼이나  철갑도 무 
잘리듯 잘려져 나갔다.
  칼과 철갑이 잘리니  네 적장도 견뎌내지 못했다. 청홍검을 몇  차례 휘두르자 
피가 튀고 비명이 일었다. 네 장수가 차례로  조운의 청홍검에 낙엽지듯 목이 떨
어지자 졸개들은  간담이 서늘했다. 조운이  보검을 휘두르며 길을  여니 수많은 
졸개들이 죽고 상했다.
  조운은 마침내 졸개들을 모조리 쳐서 물리친 후 길을 열었다.
  이날 조조는 경산  높은 곳에서 싸움터의 정세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러다 좌
우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 장수는 대체 누구인가? 마치 무인지경을 달리듯 나의 진중을 바람처럼 달
리고 있구나."
  조홍을 비롯한 여러 장수들이 손을 이마에 갖다대고 저게 누구냐고 제각기 묻
고 있었다.
  조조가 답답하다는 듯 다시 말했다.
  "급히 가서 알아보고 오라!"
  조홍이 말을 달려 산을 내려가 조운을 앞질러 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거기 싸우는 장수는 누구인가? 이름을 밝혀라!"
  그 물음에 조운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나는 상산의 조자룡이다!"
  조운이 청홍검을 움켜쥐며  조홍을 노려보았다. 덤벼들면 한칼에  내려칠 기세
였다.
  조홍은 말머리를 돌려 조조에게 달려가 장수의 이름을 밝혔다.
  조조가 무릎을 치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저 장수가 바로 말로만 듣던 조자룡이었구나. 적장이지만 참으로 대단한 호걸
이로다. 그야말로 보기드문 호장이 아닌가. 만약 그를 얻어 나의 진중에 둘 수만 
있다면 비록 천하를 손바닥에 넣지 못하더라도 한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급히 각 
진지에 알려라. 조자룡이 가까이  오거든 활을 쏘지 말도록 하라. 단기 필마이니 
사냥하듯 에워싸서 사로잡아 데려오도록 하라!"
  조조의 영에 장수들은 즉시 10여 기의 전령을 각 진지에 보냈다.
  참다운 용사나 훌륭한 장수를  보면 비록 적장일지라도 자기의 휘하로 받아들
이고 싶은 것이 조조의 성정이었다.
  조조의 훌륭한 무인이나  선비에 대한 욕심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마치 남자
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듯한 열정까지 가미되어 있는 듯했다.  이전에는 관우에
게 그와 같은  사모에 가까운 마음을 가졌다가  후회를 한적이 있는 조조였지만 
그 병적이랄 수도 있는 인재에 대한 욕심과 열정은 변함이 없었다.
  조조의 이 같은 욕심은 조운에게는 하늘의 도움이나 다름 아니었다. 
  달려가는 곳마다 적군은  열 겹 스무 겹  에워쌌으나 조운은 필사적으로 싸워 
번번이 길을 열었다.  그럴 동안 칼로 찍어 쓰러뜨린  큰 기가 2개, 빼앗은 창이 
세 자루, 창으로 찌르고  칼로 베어 죽인 조조 수하의 제법  알려진 장수가 무려 
50여 명이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몸에는 화살 하나  꽂히지 않았고 칼과 창에 의한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그러나 조운의 온몸은 선혈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의 청홍검도 자루까
지 피에 얼룩져 있었다.  물론 적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선혈이었다. 뒷사람이 
그의 용맹을 기리며 노래했다.
  
  전포와 갑옷 붉게 물들었네.
  그 누가 당양에서 그를 맞서랴.
  예나 지금이나 위태로운 주인 구한 이는 
  상산의 조자룡이 있을 뿐이네.
  
  조운은 한동안 말을 달려 산기슭의 언저리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곳에도 하후
돈의 부장 종진.종신이라는 형제 장수가 두 편으로 나누어서 진을 치고 있었다.
  형인 종진은 큰 도끼를 잘  쓰며 아우인 종신은 방천극의 명수로서 이름난 장
수였다. 이 형제들이 조운이 달려오자 좌우에서 고함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뿐만 
아니라 장요와 허저의 휘하  군사들도 그를 사로잡고자 폭풍처럼 들판을 휩쓸며 
몰려왔다.
  좌우의 적과 후방의 대군을 함께 맞이한 셈이었다.
  "조자룡, 어서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형제는 조운의 앞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조운이  창을 치켜들며 형제들을 노려
보자 종진이 먼저 큰 도끼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조운도 말을 몰아 도끼와 창
이 부딪쳤다. 그러나 세  번을 어우르기도 전에 종진은 조운의 창에  찔려 말 아
래로 굴렀다.
  조운은 말을 박차며 그대로 달렸다.
  형 종진이 조운의 창에  찔려 죽는 걸 보자 종신이 급히  뒤를 쫓았다. 종신의 
말이 조운의 말꼬리를 입으로 물 수 있을  만큼 따라붙자, 종신은 방천극을 들어 
조운의 등을 향해 내리쳤다. 그 순간 조운이  별안간 말머리를 홱 돌리며 창으로 
방천극을 막았다. 두 사람은  팔을 뻗으면 얼굴이 닿을 거리였다. 조운의 왼손에 
들린 장창이 '휙'하고  위로 치켜올려지며 종신의 방천극을  튕겨냈고, 그와 동시
에 오른손으로 청홍검을 뽑아 종신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종신의 얼굴은 투구와 
함께 반쪽으로 갈라지니,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 
끔찍한 죽음을 지켜  보던 종진.종신의 휘하 군사들은 모두 한결같이  기겁을 한 
채 뿔뿔이 흩어졌다.
  조운은 말을 박차며  다시 장판교를 향해 질주했다. 그러나 미처  장판교에 이
르기도 전에 등  뒤에서 또 함성이 일어났다. 형주의 장수였다가  조조에게 항복
했던 문빙이 이끄는 군사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천하의 조운이라지만 그도 이
젠 말과 함께 기진맥진해 있었다. 말머리를 돌려  싸우는 대신 말을 박차며 앞만 
보고 내달았다. 한동안을 그렇게 달리다 앞을 보니, 장비가 장팔사모를 비껴들고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 있었다.
  "익덕! 익덕!"
  조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문빙은 기력이 쇠진한 
조운에게 함성을 더욱 크게 지르며 몰려오고 있었다.
  "익덕, 나좀 도와 주시오!"
  조운이 거듭 외치며 장판교를 향해 달렸다.
  장판교 위에서 조운을 지켜 보던 장비가 마주 달려나오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
했다.
  "자룡은 어서 가라. 저것들은 내가 맡을 테니!"
  조운은 장비에게 뒤를  맡기고 단숨에 다리를 건넜다. 조운은 지친  말을 몰며 
20여 리쯤 달려가니, 유비가 군사들과 함께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모습이 보
였다. 조운은 급히 달려가 말에서 뛰어내리자 울음을 터뜨렸다.
  유비도 온몸에 피범벅이  된 조운의 모습을 보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조운
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했다.
  "조운의 죄 만 번을 죽어도 씻을 길이  없습니다. 미 부인께서는 몸에 큰 상처
를 입으신 채 제가 아무리 권해도 말에 오르시지 않고 끝내 우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조조에게 시신을 뵈지  않으려고 흙담을 쓰러뜨려  그 우물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공자만을 품에  안은 채 적의 포위를 뚫었습니다. 공자는 조
금 전까지 제 품속에서 울고 있었는데 이제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두렵기만 
합니다."
  조운은 그 말과 함께 갑옷의 가슴막이를 풀어헤치고 아기를 꺼내고 보니 아두
는 세상 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다행히 공자께서는 무사하십니다."
  조운은 그제서야  가슴을 쓸며 아두를  안아 유비에게 바쳤다.  조운의 손에서 
아버지 유비 손으로  넘겨지는 것도 모르고 아두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유비는 아두의 얼굴도 보지 않은 채 받자마자 땅에다 내던지며 소리쳤다.
  "이 못난 핏덩이 때문에 하마터면 훌륭한 장수를 잃을 뻔했구나!"
  거느린 사람들에 대한  두터운 정과 아낌이 혈육의  정보다 더한 것임을 보게 
된 조운은 목이 메었다.
  "이 운이 주공의  크신 은의에 답하려면 이  목숨을 다 바쳐도 모자랄 것입니
다."
  조운은 마침내 땅에 떨어진 아두를 감싸안은 채 울먹이며 말했다.
  온갖 고초를 헤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돌아온 조운은 유비의 그 같은 마음
을 보자 고통도  사라지고 새로운 힘이 불끈 솟았다. 주공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고 다시 한 번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한편, 조운을  뒤쫓던 문빙은 장판교에  이르러 장비와 맞닥뜨리자  덜컥 겁이 
나 황급히  말을 세웠다. 장비가  호랑이 수염과 머리칼을  곤두세우고 고리눈을 
무섭게 부릅뜬 채  장팔사모창을 움켜쥐고 말 위에  턱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
다. 거기다가 다리  동쪽에 있는 숲에서는 먼지가 자욱 일면서  바스락대는 소리
와 함께 말발굽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 왔다. 숲에는 필시 수만  명의 복병을 숨
겨 놓았다고 여긴 문빙은 섣불리 장비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더 나아가지 못
한 채 잠시 말을 세우고 동정을 살필 뿐이었다.
  조금  있으려니까 조인.이전.하후돈.하후연.악진.장요.장합.허저  등의 장수들이 
각기 휘하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도 문빙과 같은 생각이었다. 
장비가 혼자 고리눈을 부릅뜨고 있자 공명이 무슨 계책을 꾸민 것인지도 모른다
는 의심이 들었다.  아무리 장비가 용맹한 장수라고 하지만 수십만의  대군이 몰
려오는데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홀로 맞을 리가 없을 터였다.
  이때 조조도 경산에서 내려와  중군을 이끌어 장판교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었
다.
  "조운이 달아난 곳을 뒤쫓으면 그곳에 유비가 있으리라!"
  조조가 중군까지 이끄니 깃발과  군마의 흐름은 격류가 계곡에서 분출하듯 금
세 들판 위로 쏟아져 메워졌다. 
  이때 장비가  여전히 고리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으려니 조조군의 후진에 
푸른 비단 일산과  모월과 정기가 보였다. 장비는 틀림없이 조조가  정세를 살피
러 왔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의기를 돋우며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연인 장비, 익덕이 여기  있다. 어느 놈이든지 나와서 나와 자웅을 겨루어 보
자!"
  장비가 목청을 돋워 소리치자 그 목소리는  들판을 뒤흔드는 벽력과도 같았다. 
조조군은 등골이 오싹해지며 모두들 얼굴빛이 달라졌다.
  조조가 서서히 가까이 다가가  보니 말 위에 한 장수가 떡  버티고 있었다. 호
랑이 수염은  양쪽으로 갈라졌고 커다란  입은 굳게 다물었는데  눈썹과 눈꼬리, 
머리털이 모두 곤두서 있었다.
  조조는 좌우에게 일러  일산과 모월과 정기를 치우게 했다. 장판교  위의 장수
가 일산을 보고 자신이 있는 곳을 짐작하여 곧장 달려올까 두려웠다.
  이어 조조는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난날 관운장이 내게 말하기를, 나의 아우  장비와 스스로를 비교하면 그 발
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가 화를  내어 백만의 군사들 속에 뛰어
들어도 대장의 목베어  오기를 주머니 속의 물건 꺼내듯한다고 했다.  그 장비가 
저기 있으니 모두들 경솔히 나서서는 안 될 것이다!"
  조조는 여러 장수들을 제지하는 한편 장비를 노려보았다.
  그때 장비가 다시 부릅뜬 눈으로 군사들을 휘둘러보며 호통을 쳤다.
  "연인 장비가 여기 있다. 어느 놈이든 어서 나오라!"
  장비가 말을 몰아 몇 걸음 나서며 횃불 같은 눈으로 휘둘러보았다.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조조의 주위를 호위하던 군사들이 물결이 일 듯 동요를 
일으켰다. 아니 그 위압적인 고함 소리와  자태는 호위병뿐만 아니라 전군에게도 
공포의 물결을 일게 했다.
  조조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만히 영을 내려 군사를 물리도록 했다.  장비가 저
토록 위세를 부리는  것은 틀림없이 공명이 내린  계책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
다. 공명의 계책에 몇  번 낭패를 당했던 조조인지라 군사를 물린  후 뒷일을 정
하기로 작정했다.
  장비가 가만히 지켜  보니 조조군이 슬며시 군사를  물리고 있자 더욱 의기가 
솟구쳤다. 이번에는 사모창까지 휘두르며 목청껏 소리쳤다.
  "이놈들아 싸울 것이냐 도망칠 것이냐? 그도 저도 아니면 내가 건너가리라!"
  그러자 조조 곁에  있던 하후걸이라는 장수가 깜짝  놀라는 통에 그만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 광경을 본 군사들이 더욱 동요하며 겁에 질렸다.
  조조는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위축되었음을 보고 말머리를 돌렸다.
  "물러나라!"
  조조가 영을 내리니  장수들도 일제히 조조를 뒤따라  서쪽을 향해 말을 달렸
다. 모든 군사는 산이  허물어지듯 앞다투어 달아났다. 등 뒤에 장비가 금세라도 
뒤쫓는 듯하여 창과 칼을 버리고  달아나니 마치 어린 아이가 벽력 소리에 놀라
고, 사냥꾼이 범과 표범의 울부짖음에 놀라 넋이 빠진 꼴이었다.
  가까스로 뒤따라온 장요가 조조의 말고삐를 잡고 말했다.
  "승상께서는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장비 한 사람을 이토록 두려워하시다니 연
유를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군사를 돌려 장비를 쳐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
시 유비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소리에 조조는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듯한  얼굴이 되었다. 즉시 장요와 허
저를 시켜 다시 장판교로 가서 형세를 살펴보도록 했다.
  장비는 조조 군사들이 한꺼번에 물러가는 것을  보자 뒤쫓지는 않았다. 조조군
에 비해 거느린 군사가 너무  적었을 뿐만 아니라 장비의 계책이 탄로나면 대군 
앞에 유비까지도 또다시 위급한 지경에 빠질지 모를 일이었다.
  이에 장비는 매복시켰던  부하 20여 기를 급히  숲 속에서 불러내어 말고삐에 
달았던 나뭇가지를 풀게 했다. 그리고는 장판교를  끊어 조조군이 건너지 못하게 
한 다음에야 유비에게 돌아갔다. 
  유비에게 이르른 장비는 그때까지의 일들을 소상히 전했다.
  그 소리를 듣자  유비가 장비를 칭찬하는 가운데도  한 마디 애석하다는 듯이 
탄식했다.
  "과연 아우다운 용맹이로다. 그러나 생각이 모자랐구나!"
  조조의 대군을 장판교에서 홀로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계책까지 내었으니 무
용과 지모에서도 가히  뽐낼 만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던 장비였다.  그런데도 유
비가 뜻밖에도 생각이 모자랐다고 탄식하니 장비는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
다.
  "생각이 모자랐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조조는 술책에 능한  사람이다. 아우가 다리를 끊지  않았다면 오히려 뒤쫓지 
않을 것이었다."
  그 말에 장비가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그놈은 내 호통소리 한 번에 10리 밖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어찌 감히 뒤쫓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다리를 끊지  않았더라면 조조는 복병이 있는  줄 알고 감히 쫓아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리가 끊긴 것을 보면  우리에게 군사가 많지 않으니 겁을 
먹고 다리를 끊은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에게는 대군이 있으니  장강이건 한
수건 그 강을 메우고  건너 올 것이다. 그 까짓 작은 다리 하나  끊어 보았자 무
슨 소용이 있겠는가?"
  유비가 이렇게 말하자  장비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유비는 곧  말에 올
랐다. 조조군이 끊긴  다리를 보고 뒤쫓을 것이므로 군사를 이끌어  면양으로 가
기 위해 길을 서둘렀다.
  유비는 샛길을 택해 한진을 거쳐 가리라 작정했다.
  이때 장요와 허저는 다시 장판교를  살핀 후 조조에게 장비가 다리를 끊고 도
망갔음을 조조에게 알렸다.
  "다리를 끊고 갔다는 것은 우리가 뒤쫓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시 군사 1만을 내어 세 개의  부교를 놓도록 하여 오늘 밤 안으로 건널 수 있도
록 하라!"
  조조는 좌우 장수들에게 영을 내렸다. 그러자 이전이 조조에게 가만히 말했다.
  "그러다가 다시 제갈량의 계교에  말려드는 것은 아닐까요? 함부로 군사를 내
시지 마십시오."
  그러나 조조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다리를 끊었다면 이는 장비가  낸 계교이지 제갈량이 낸 계교가 
아니다. 장비는  한낱 용맹을 지닌  장수일 뿐 또다시  무슨 꾀를 낼  수 있겠는
가?"
  조조는 이전의 말을 일축하고 급히 진군할 것을 명했다.
  유비가 생애 중 몇 번의 패전과 도피를 했었으나 이번처럼 위급하고도 고단함
은 없었다.
  조조는 처음에는 휘하  장수들에게 추격을 맡겨 놓고 있었다. 그러나  순욱 등
이 조조를 부추겼다.
  "이번에 유비를 놓치면 들판으로 호랑이를 풀어 놓는 것과 같습니다."
  조조도 휘하 모사들의 말을 옳다고 여겼다.  언제까지나 유비에게 이끌려 다닐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조조는 뒤쫓는 군사를 수만 기로 늘리고  몸소 지휘하
여 군사를 재촉했다.
  이 무렵 유비는 한진  가까이에 이르러 있었는데 후방으로부터 흙먼지가 뭉글
뭉글 피어 오르고 북 소리와 함성이 천지를 진동시켜 왔다.
  "앞에는 큰 강이요, 뒤에는 적군이 추격해 오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 것
인가?"
  유비는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그러나  뒤쫓는 적에게 앉아서  사로잡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유비는 조운을 불렀다.
  "자룡은 어서 적을 맞을 채비를 하라!"
  유비는 다른 장수들에게도 싸울 준비를 하게 한  후 각기 배치를 정했다. 그리
고 몇몇 장수들은  유비의 가솔들을 이끌고 계속하여  한수 나루로 나아가게 했
다.
  조조는 멀리 유비의 행렬이 보이자 여러 장수들에게 엄명을 내리며 의기를 돋
우었다.
  "이제 유비는 가마솥에  든 물고기요, 함정에 빠진  범이다. 이번에 그를 잡지 
못하면 고기를 바다에 놓아 줌이며, 범을 산으로  보내는 것과 같으니 모든 장수
들은 이 점을 명심하여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
  이에 장수들은  유비를 뒤쫓기 시작했다.  멀리 가물가물 유비  일행의 모습이 
보이자 조조군은 말에 채찍을 가하며 달렸다. 그때  홀연 언덕 뒤에서 북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며 한 무리의 군마가 달려나왔다.
  "어서 오너라! 내가 너희들을 기다린 지 오래다."
  앞선 장수가 들판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손에는 청룡도
를 비껴쥐었는데 온몸이 시뻘건 말을 타고 있었다.  이렇게 온몸이 붉은 말은 천
하가 넓다 하되 적토마밖에는 없다.
  관우는 강하로 가서  유기에게 군사 1만을 얻어 급히  돌아오던중이었다. 그러
다 당양 땅 장판파에서 싸움이  크게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수쪽의 길로 앞
질러 온 것이었다.
  "저 장수는 운장이 아닌가?"
  조조는 한눈에 관우를 알아보고 즉시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 여러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장수들도 그 장수가 관우임을 알아보았다.
  "또 제갈량의 계책에 빠졌구나."
  관우가 불쑥 나타나자 이는 곧 공명의 계책이라고 앞질러 헤아린 조조는 즉시 
군사를 물리라고 전군에게  명했다. 조조가 보니 관우가 거느린 군세  또한 적지 
않았고 거기다가 공명의 계책이 있다면  가볍게 맞설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지
레 짐작했던 것이다. 조조의 명에 따라 급하게  뒤쫓던 수만 기가 이번에는 갑자
기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니 썰물이 빠져나가듯 사라졌다. 
  관우는 10여 리나  그들을 뒤쫓다 말을 멈추었다. 조조군을 뒤쫓는  것보다 유
비의 안위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관우가 한수  나루에 이르자 그곳에서 유비
를 만날 수 있었다. 관우가 유비에게 절하며 뵈온 후 그 동안의 일을 고했다.
  한수 나루에는 이미 수십 척의 배가 준비되어  있었다. 관우는 유비와 감 부인 
아두 등과 함께 배에 올랐다.
  "둘째 형수는 어찌하여 보이지 않으십니까?"
  관우가 의아히 여기며 유비에게 물었다. 유비가  그제서야 당양의 난리속에 우
물에 몸을 던진 미 부인의 일을 말하자 관우는 크게 탄식하며 분기를 감추지 못
한 채 말했다.
  "이전에 허전에서 사냥하실 때  이 아우가 조조를 척살하려 하자 형님께서 말
리셨습니다. 그때 저를  그대로 놓아 두었더라면 오늘 이런 통탄스러운  일은 일
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가 않네.  그때는 쥐를  잡으려다 좋은 그릇을  깨뜨릴까 염려해서였다
네."
  유비가 관우를 아껴 그 일을  말렸다는 말에 관우도 숙연한 얼굴로 입을 다물
고 말았다. 유비와 관우가  서로 지난 일들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강 남
쪽 언덕에서 북 소리와 함성이 크게 울렸다.  유비가 바라보니 수많은 배가 돛을 
올리고 개미 떼처럼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적의 수군이 아닌가?"
  유비가 안색을 잃은  채 말하자 관우도 황급히 뱃머리로 나가  바라보았다. 다
가오는 배들 중 맨 앞의 한 척은 유별나게 켰다.  그 배 위는 흰 전포에 은빛 갑
옷차림의 젊은  장수가 서 있었는데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배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숙부님은 그간 별일 없으십니까? 숙부님과 헤어진 이래 이 조카는 소식을 드
리지 못해 죄가 큽니다."
  유비가 자세히  보니 그는 다름아닌  유기였다. 유비와 관우는  근심이 일시에 
기쁨으로 바뀌자 안색이 밝아지며 유기를 반겼다.  뱃전과 뱃전이 맞닿자 유비는 
얼른 유기의 손을 잡아 맞아들였다.
  "실로 위급한 때에 달려와 주었구나!"
  유비는 기쁨과 감회가 뒤섞인 어조로 말했다.  지난날 공명으로 하여금 계교를 
내게 하여 유기를  살린 것도 새삼스러운데, 이제 그가 군사  1만과 수군까지 내
어 도우러 왔으니 그 감회가 남달랐다.
  유기도 유비에게 큰절을 올리고 나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숙부님께서 조조에게 쫓기신다는 말씀을 듣고 급히 마중 나오는 길입니다."
  유기가 수군을 이끌고 오자 유비의 배는 길게 줄을 이은 채 강 위를 미끄러지
듯 나아갔다. 유비와 유기는 그 동안 일어났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강
의 서남쪽으로부터 또  한 떼의 전선이 쏜살같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병서는 한 일자로 대열을 이루며  질풍처럼 따라 다가오는데 그 진세가 질서 정
연했다. 전선을 바라보던 유기가 두려운 목소리로 유비에게 물었다.
  "강하의 배란 배는 제가 모두 이끌어  왔습니다. 그런데도 또 전선이 다가오니 
필시 저 전선은 조조의 전선이거나 아니면 강동의 손권이 이끄는 군사들일 것입
니다. 저들의 세력이 만만치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유비가 유기의 말에  놀라며 뱃머리로 가서 유심히 그 배들을  살폈다. 유기의 
말대로하면 조조군이  아니면 손권이 이끄는 전선임에  틀림없는데 특히 손권이 
이 전선을 내었다면 그 또한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저편의 뱃머리에 한  사람이 이쪽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머리에  윤건을 쓰고 
몸에는 흰 도포를 입고 있었는데 얼른 보아도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오오, 저건 제갈량이 아닌가!"
  유비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흰 윤건을  쓴 사람은 바로 공명이었고 그 
옆의 배를 보니 거기에는  손건이 타고 있었다. 이에 유비는 급히  배를 마주 대
게 하며 공명을 자기의 배로 가까이 오게 하여 물었다.
  "군사는 어찌하여 이곳으로 오시게 되었습니까?"
  유비가 궁금한 나머지 우선 그 일부터 물었다.  공명이 조용히 웃으며 입을 열
었다.
  "제가 강하에 이른  뒤 운장을 한진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주공께서 조조에게 
쫓기면 반드시  강릉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되어 한진으로  가리라 짐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공자  유기에게 먼저 한진으로  가서 주공을 맞도록  청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하구로 가서 그곳에  있는 군사를 모두 불러모아 이리로 오는 길입니
다."
  공명의 말을 듣자  유비는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우에 이어 유기, 
그리고 공명까지 군사들을 이끌고 속속 모여드니 이제는 두려울 것이 없다는 심
정이었다.
  유비는 의기가 솟구치는 듯 휘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제는 조조를 깨뜨릴 일
을 의논했다. 공명이 먼저 입을 열어 군사의 배치부터 정했다.
  "하구를 보니 지세가 험준하고 수리도 좋으며 양곡 또한 넉넉했습니다. 주공께
서는 그리로 가시어 조조군을 방비하도록 하십시오.  공자 유기께서는 강하로 돌
아가셔서 전선을 정돈하고 병기를  수습하여 우리 주공과 돕고 의지하는 의각지
세를 이루면 조조를 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명의 말에 동의했다.
  "군사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하오나 제  생각으로는 숙부님께서 잠시 강하에 
들르셔서 군사를 정돈한 다음에 하구로 가셔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기가 유비를 만나자마자 헤어지는  것이 섭섭한 듯 강하성으로 유비를 청했
다. 그리고  유비 또한 유기의 말을  거절하지 않고 따르자 공명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유비는 관우에게 군사 5천을 주며 명을 내렸다.
  "아우는 먼저 하구 땅으로 가서 그곳을 지키도록  하라. 내 잠시 강하 땅에 들
렀다가 그리로 가리라."
  혹시 조조군의 진격이  있을지 모르니 하구를 관우에게  방비케 한 뒤 유비와 
공명은 유기와 함께 강하성으로 들었다.
  한편 다 잡은 듯하던 유비를  놓친 조조는 유비가 수로로 가서 자기보다 앞질
러 강릉을 취할까 염려되었다. 이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강릉으로 말을 달렸다.
  이때 강릉은 형주의 치중 등의와 별가 유선이  맡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조
조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조조에게 성문을 열고 백성들을 이끌어 주며 나
와항복했다. 이미 유종이 조조의 장수에게 죽임을  당한 마당에 자기들만이 외롭
게 조조에게 대항할순 없다고 여긴 것이다.
  조조는 성 안으로 들어가 먼저 그곳의 백성들을 위무하고 옥에 갇혀있던 한숭
을 불러내었다. 한숭은 유표가 살아 있을 때  일찍이 조조에게 항복을 권했던 유
표의 신하였다. 유표가  살아 있을 당시 조조가 사신으로 온  한숭에게 시중벼슬
을 내렸는데 그 일로  유표의 노여움을 산 적이 있었다. 조조는  그를 풀어 주고 
벼슬을 내렸다.
  "공에게는 대홍려의 벼슬을 내리노니 앞으로는 나를 돕도록 하라!"
  한숭에게 벼슬을 내린 조조는  형주에서 벼슬을 살던 문무의 관원들에게 각기 
합당한 관작을 내렸다.
  그렇게 되니 조조가 형주로 입성했으나 백성들과 문무관리들은 이전과 다름없
이 평온을 되찾았다.  형주가 자신의 수중으로 들어오자 조조는 다시  동오로 시
선을 돌렸다.
  '이제 동오를 칠 차례다.'
  조조는 다년간에  걸쳐 마음 속으로  다져 오던 생각을  실현하기로 결심했다. 
동오를 취하지 못하면 그의 패업은 완성을 볼 수 없음을 뜻한다.
  조조는 여러 장수들을 모아 놓고 그 대책을 의논했다.
  "지금 유비가 강하로 가서 발판을 굳혔으니 필시 다음은 동오와 손을 잡을 것
이다. 유비와 손권이 손을 잡으면 일이 까다롭게  되니 그 이전에 동오를 깨뜨려
야 하리라!"
  순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의 위세는 당금 천하를 덮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때를 틈타 사자를 강
동으로 보내어 함께  강하를 토멸하고 유비를 사로잡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다
음 형주 땅을 반씩 나누어  영원히 의롭게 지내자고 손권에게 권하면 손권도 기
꺼이 이에 따를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미  천하의 일은 성사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조조는 순유의 계책대로 될 경우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도 동오를 자기의 휘하
로 넣을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다. 조조는 즉시 격문을 써서  동오로 사자를 보
냈다.
  그러나 조조는 이러한 한  장의 격문만으로 동오가 자기에게 굽히고 들어오리
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사자를 보내는 한편으로 동오의  기를 꺾어 놓기 위한 군
세를 과시하는 양면 작전을 꾀했다. 기마군.보군.수군 등  총 83만의 병력을 일으
키고 백만 대군이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조조가 군사를 내는데 강물을 따라 강동으로 나아가는 그 군세가 실로 장관이
었다. 수로와 육로를 동시에 진병시키니 물의 전선과 뭍의 기마군.보군이 나란히 
열을 이뤄 나아갔다.
  조조의 군사가 나아감에 서쪽으로는 형주.협중에 이르고 동으로는 근춘.황주에 
이르기까지 3백여 리에 걸쳐 진영과 진책이 이어졌다.
  이 무렵 강동의 손권은 시상군에 군사를 주둔시킨 채 조조군의 동태를 엿보고 
있었다.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양양에 이르러 유종을  항복시키더니 이번에는 
대군을 이끌고  강릉도 그의 수중에  넣었다는 것이었다. 동오와  국경이 맞닿은 
형주마저 조조의 손에 떨어지자 손권도 더 이상은 조조군의 형세만을 살필 처지
가 아니었다.
  이에 손권은 여러 장수들을 불러모은 뒤 대책을 의논했다.
  "이제 우리도 태도를  결정할 때가 되었다. 공들의  의견을 기탄없이 밝히도록 
하라!"
  동오에서 대현으로 불리는 노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유표를 조상한다는 명목으로 제가 형주에  다녀오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은
밀히 강하에 들러  유비와 만나 이해득실을 설명한  다음 그에게 동맹을 맺자고 
밀약을 맺고 오겠습니다."
  노숙의 말에 손권이 물었다.
  "유비와 동맹을 맺는다면 조조는  더욱 화를 내며 우리에게 그 칼끝을 들이댈 
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유비의  세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조조는  유비를 뒤로 하고 
강동으로 대군의 방향을 돌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비의 군세가 강해지면 배후
가 염려되니 조조가 곧장 우리에게 밀고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손권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숙의 말에 수긍이 가기 때문이었다.
  "이 숙이 형주로 가려는 데에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형주에서 
강하에 이르기까지 조조와 유비의 허실을 분명히  보고자 함입니다. 형주는 우리
와는 이웃해 있는  땅으로, 그 강산이 천연의 요해로서 지키기가  좋으며 백성들
이 많고 양곡이  넉넉한 곳입니다. 만약 유비와 손잡고 조조를  쳐부수는 날에는 
우리는 형주를 취할 수가 있습니다. 형주를 취하는  날에는 바로 천하 패업을 이
룰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손권은 노숙의 말을 옳게 여겼다. 이에 그날로  예물을 마련해 주고 강하로 향
하게 했다. 
  조조가 형주를 떨어뜨리자 동오로서는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또한 동오의 움직임은  동오 스스로에게 뿐만  아니라 조조에게도 
유비를 깨뜨릴 수 있는 중대한 열쇠가 되는 것이었다.
  이때 강하 땅에 이른  유비도 공명.유기와 함께 앞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공명
이 계책을 내었다.
  "동오는 멀리 있고  조조는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품고 있는 삼국정립을 
실현시키려면 먼 곳의  동오로 하여금 조조와 싸우게  만들지 않으면 아니 됩니
다. 커다란 두 세력이 서로 싸우게 하여 그  힘을 반으로 줄이고 나서 우리가 도
모하는 바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손권에게 구원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유비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공명에게 물었다.
  "강동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습니다. 반드시 그들도  앞을 멀리 보고 있을 터
인즉 어찌 우리와 손을 잡겠다고 할 것입니까?"
  유비의 말에 공명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두고 보십시오.  머지않아 동오에서 사자가  올 것입니다. 조조가 백만대군을 
이끌어 장강.한강에 걸쳐 진을 치고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노려보고 있는데 
어찌 손권이 보고만 있겠습니까?  동오에서 사자가 오면 제가 배를 타고 동오로 
가겠습니다. 저의 변변치  않은 변설로나마 남과 북 양쪽을 서로  싸우게 하겠습
니다. 그래서 만약 남쪽이 이기면 힘을 모아  조조를 치고 형주를 수중을 거두어
야 합니다. 반대로 조조가  이기면 우리는 그 기회를 타서 강남을  취하면 될 것
입니다."
  공명이 이렇게 말하자  여러 사람들은 선뜻 납득하지 않았다. 공명의  말은 어
디까지나 그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손권의 군세가  또한 강성한데 
어찌 유비에게 손을 잡자고  사자를 보내 온다는 것인가? 유비는 걱정하며 공명
에게 거듭 물었다.
  "군사의 말씀은 매우 높은 계교이나 먼저 강동에서 사람이 와야 할 것 아닙니
까?"
  유비의 걱정스런 물음에 공명은 다만 웃으며  위로할 뿐이었다. 그런데 강변을 
지키는 군사로부터 급한 전갈이 왔다.
  "강동의 손권을 대리하여 문상을 하러 왔다면서 노숙이라는 분이 왔습니다."
  그 말에 유비 이하 여러 사람들은 그저  놀랄 뿐이었다. 강동에서 노숙이 왔다
고 하자 공명은 유기에게 물었다.
  "동오의 손책이 죽었을 때 형주에서 주문하는 사신을 보낸 적이 있습니까?"
  공명의 뜻밖의 물음에 유기가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것 보십시오. 동오와 형주는 대대로 앙숙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경
조의 예를 갖추는 것은 문상이  아니라 이쪽의 허실을 엿보기 위한 것임이 분명
합니다."
  공명은 유비에게 가만히  웃으며 노숙이 온 뜻을 깨우쳤다. 그리고  낮은 목소
리로 유비에게 무언가 귀엣말로 속삭였다.
  이윽고 유기는 사람을 내보내 노숙을 맞아들였다.  노숙은 유기에게 조문을 하
고 유비에게도 예물을 전한 후 인사를 올렸다.
  문상을 마치자 유비는 술자리를 마련하고 노숙을  후당으로 청했다. 술잔이 오
고갔다 노숙은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유비에게 슬며시 물었다. 
  "유 황숙의 명성을 들은 지 오래이지만 만나 뵈올 길이 없었는데 이처럼 뵙게 
되니 큰 기쁨입니다. 그런데 유 황숙께서는  근자에 조조군과 싸우셨으니 그쪽의 
실정에 매우 밝으시리라  믿습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만 도대체  조조의 군사는 
얼마나 됩니까?"
  "글쎄올시다. 나는 군사도 적고 믿을 만한 장수도 많지 않은 터입니다. 그러니 
조조가 온다는 말만 들으면 곧  달아나고는 해서 조조군의 수효를 잘 알지 못합
니다."
  "유 황숙께서는 제갈공명의 계략을 쓰셔서 두 번이나 화공으로 조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셨다는데 어찌하여 모른다고 하십니까?"
  유비가 대답을 회피하자 노숙은 단념하지 않고 다시 대답을 청했다.
  "허허, 사실이 그러한 것을 어쩌겠습니까?  공명이라면 자세하게 알고 있을 것
입니다."
  유비가 슬며시 공명을 쳐들었다. 노숙이  조조군에 대해 물으면 '모른다'라고만 
얘기한 것도, 또 공명을 내세운 것도 다 공명이 은밀히 꾸민 계책이었다.
  노숙은 유비가 공명을 거론하자 몸이 달았다.  유비에게 공명을 만나게해 달라
고 청했다. 유비는 마지못한 듯 공명을 불러 오도록 했다.
  이어 공명이 들어왔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기다리고 있던 공명이었다. 노
숙이 공명에게 절하자  공명도 절을 하며 첫 대면의  예를 다한 뒤 자리에 앉았
다. 노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의 재덕은 일찍부터 듣고  흠모해 왔는데 오늘 다행히 이렇게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쭤 보겠습니다. 천하가 위급한 지경에 빠진 이 사
태를 어떻게 보시는지 높은 가르침을 바랍니다."
  "조조의 간교한 계교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만, 그를 당할 힘이 없어 이처럼 
피할 따름입이다."
  공명이 무거운 어조에 한숨까지  내쉬며 말하자 노숙은 갑자기 말머리를 바꾸
어 엉뚱한 물음을 던졌다.
  "황숙께서는 당분간 이곳에 머무르실 작정이십니까?"
  노숙의 물음으로 보아 공명에게  묻는 말이라기보다 차라리 유비에게 묻는 말
로 보아야 했다. 그러나  유비가 입을 여는 것을 막기라도 하듯  얼른 공명이 대
답했다.
  "주공께서는 창오 태수 오신을  이전부터 잘 알고 계시므로 장차 그곳에 가시
어 몸을 의탁하실 생각이십니다."
  노숙이 공명의 대답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노숙뿐만 아니라 유비도 공명
의 그 같은 말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명의 말에는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라 여긴 유비는 공명이 말하는 데 따라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유비마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노숙이 말했다.
  "오신은 군량미의 저축도 없고  군사도 적어 홀로 견뎌내기도 힘에 겨운 실정
입니다. 도저히 남을 도울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찌 여러분을 받아들
일 수 있겠습니까?"
  노숙이 그렇게 말하며 유비와 공명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공명이 태연
히 대답했다.
  "오래 머물러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선 잠시 가서 의탁하고 보자는 것이
외다. 그런 후에 따로 뒷일을 정해 볼 생각입니다."
  공명의 말에 노숙은  잠시 입을 다물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이윽고 
본심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우리의 주군 손 장군은 강동 여섯 고을을 수중에 장악하고 있으며 군사는 강
성하고 양곡 또한 넉넉합니다. 거기다가 어진  선비들을 공경하시는 까닭에 장강
일대의 영웅들은  거의 손 장군의 휘하에  몰려들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건대, 
유 황숙께서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시어 동오와 손을 잡고 함께 대사를 도모하
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동오와 동맹을 맺자고 은근히 권유해 오는 노숙의 말에 공명은 속으로는 기뻐
했으나 짐짓 근심스런 얼굴로 말했다.
  "황숙께서는 손  장군과는 이제까지 교분이 없으시니,  누군가가 간다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거기다가 믿고  보낼 만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
다."
  공명이 노숙의 말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하자 노숙이 황급히 다시 입을 열
었다.
  "양 선생의 백씨께서  지금 강동의 모사로 계시는데,  항상 선생과 만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내 비록 재주와 덕은  없으나 양 선생과 동맹하여  손 장군을 
뵙고 더불어 대사를 의논함이 어떨까 합니다."
  옆에서 두 사람의 설왕설래를 듣고 있던 유비는 짐짓 불안해하는 얼굴을 하며 
슬며시 딴전을 피웠다.
  "공명은 내 스승이므로 한시도 곁을 떠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공명이 짐짓 목소리를 가다듬어 유비에게 청했다.
  "사태가 워낙 급하니 아무래도 다녀오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하건대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공명이 정중한 목소리로 청하자  유비는 차마 물리치지 못하는 척하며 승낙했
다.
  노숙은 유비와 유기에게 작별을 고하고 공명과 함께 배에 올랐다.

  공명의 설전
  천하 삼분지계
  
  노숙과 공명은  강동의 뱃길 장강에  오른다. 유비의 의향과  군세를 파악하여 
동오에 당도한 노숙은  손권을 알현하고 공명의 동행을 알린다. 손권의  신하 대
부분이 부전론을 펴며 항복을  주장하는 가운데 공명은 강동의 뛰어난 인재들과 
지혜를 겨루는 설전을 벌인다.
  
  노숙과 함께 작은 배에 오른 공명은 그 길로 동오로 향했다. 
  배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동오의 북쪽 가장자기인 시상군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노숙은 배를  타고 가면서 가만히 공명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기고 있었
다. 
  '지금은 비록 부평초  같은 신세이나 유비는 그래도 한  방면의 세력임에는 틀
림없다. 그의 군사이고  재상인 공명이 사람 하나 데려가지 않는  그야말로 혈혈
단신으로 동오에 가기 위해 나선 것은 결코  범상한 각오가 아닐 것이다. 짐작하
건대 공명은 죽음을 각오하고 우리의 동오를 말로써 설득할 비책을 가슴에 품고 
있을 것이다.'
  같은 배를 타고 며칠 동안을  함께 여행하는 동안에 노숙은 비장한 공명의 심
사에 숙연한 동정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도 한 가닥 근심스러운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공명의 언변에 주군이 설복당하여 조조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면..., 이기
면 좋지만 대패하면 그 책임 또한 내가 져야 할 것이리라!'
  배가 시상군에 닿기 전 노숙은 공명에게 손권을 만날 때의 일을 의논했다.
  "선생께서 저의 주공과 만나실 때, 조조군의  군사와 장수가 많다는 말을 결코 
해서는 안 될 것이오."
  공명은 노숙의 마음 속을 꿰뚫어보고 가만히 웃으며 말했다.
  "그 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양이 생각하는 바가 있습니다."
  공명의 말에 노숙도 안심한 듯 더 이상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이윽고 배가 시상군의 강기슭에 닿았다.
  시상성에 이르자 노숙은  공명을 역관에 안내하고 나서  즉시 성 안으로 들었
다.
  이때 손권은  마침 문무관원들을 모아  놓고 앞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손권은 
노숙이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자 즉시 노숙을 불러들였다. 
  "강하의 형세는 어떠하였소?"
  "대략은 알아보았으나 그 일은 천천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손권은 노숙이 그렇게 말하자 굳이 더 이상 물으려 하지 않는 대신 탁자 위에 
놓인 한 장의 서찰을 내밀었다. 
  "이걸 읽어 보시오."
  "이것은 무엇입니까?"
  뜻밖의 서찰을 내밀자 노숙이 의아히 여기며 물었다.
  "조조로부터 보내 온 격문이오. 격문을 가지고 온 사신을 우선 먼저 돌려 보내
고 이 일을 의논하고 있는 중이오. 그러나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소."
  노숙은 조조가 보낸 격문이라는 말을 듣자 급히 펼쳐 보았다.

  내가 근래에 천자의  명을 받아 역도들을 치기 위해 달려왔소.  우리가 정기를 
남쪽으로 돌리고 유종이  항복을 청해 왔으며 형.양주의 백성들도 모두  따라 귀
순해 온 바  있소. 이제 백만 대군과  천하의 장수 1천여 명을  거느리며 강하로 
향할 것이오. 장군과 더불어 강하에서 사냥이나 즐기면서  유비를 친 후 그 땅을 
반씩 나누며 또한 길이 화친을 맺고자 하오.  살펴보아 주저하지 말고 부디 답장
을 급히 주기 바라오.
  
  조조로부터 온 격분은  일종의 '최후의 통첩'이었다. 나에게  항복하여 함께 강
하의 유비를 칠 것인가 아니면  나의 백만 대군과 대적할 것인가를 결정하여 즉
각 회답하라는 위협과 회유를 섞은 글이었다.
  "주공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글을 읽고 난 노숙이 손권에게 물었다. 
  "아직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소. 그러나 여러 사람들의  태반은 싸우지 않는 
편이 이롭다는 뜻이었소."
  손권의 말에 장소가 거들었다. 
  "조조는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천자의 이름으로 사방을 정복하고 있는  자입니
다. 그를 거역하면 천명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거기다가 주공께서 조조를 막을 
수 있는 곳은 장강뿐입니다. 그런데 조조가 형주를 손에 넣고, 장강의 험한 지세
를 우리와 나누어  가지게 되었으니 우리가 그를 대적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헤아리건대 항복만이 안전의 방책이 아닌가 합니다."
  '뭍의 군사라면 두려울  것이 없으나 조조의 수중에는 수천  척의 수군도 들어
가 있으므로 물과 뭍에서 합동작전을 펼친다면  대적하기 어렵다'는 것이 장소가 
주장하는 부전론의 요지였다.  그리고 그의 부전론에는 상당수의  사람이 동조하
고 있었다.
  '멸망을 각오하고 한판 싸움을 벌일 것인가, 아니면 항복할 것인가.'
  손권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장소는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여러  문무관원들을 보자 힘을 얻은 듯 다시 입
을 열었다. 
  "주공께서는 너무 조조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조조에게 항복하면 동오 
백성들은 물론 강남  6군도 아무런 손상 없이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강릉의 
예를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손권은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문득 자리를 떨치고 일어섰다.
  "공들의 의견은 옷을 갈아입고 나서 듣겠소."
  손권은 자리를 떴다.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은 잠시 휴식을 뜻하는 말이었다.
  노숙은 손권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손권도 노숙이 뒤따르자  할 말을 
하기 위해 뒤따랐음을 알아차리고 단 둘만 마주  앉았다. 손권은 노숙의 손을 잡
고 물었다.
  "경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
  노숙은 여러 사람들 속에 흐르고  있는 부전론에 대해 크게 반감을 품고 있었
다. 손권의 물음에 힘주어 말했다.
  "방금 여러 사람들이 한 말은 하나같이 주공을 크게 그르치고 있습니다. 저 사
람들은 조조에게 항복하여도 뒷날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공께
서는 결코 조조에게 항복하시면 아니 됩니다."
  "그건 무슨 까닭이오?"
  "저희들 같은 벼슬아치들은  만약 조조에게 항복하면 고향으로 쫓겨나 자사나 
군의 태수 같은  자리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공께서  항복하신다면 돌
아갈 곳조차 없습니다.  작위도 고작해야 후에 그칠 것이며, 수레는  한 채, 기마
는 한 마리, 시종은 몇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럴진대 어찌 천하의 주인 행세
를 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들 항복하라고 권하는 것은 다들 자기네들의 몸의 안
위만을 위하려는 것이니  결코 귀담아 들어서는 아니 됩니다. 주공께서  속히 대
계를 정하심이 옳으실 줄로 아옵니다."
  젊은 손권은 노숙의  말에 크게 자극을 받았다. 그러나 조조의  강대한 군세를 
생각하니 가슴이 무거운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들의 말이 나에게 크나큰 낙담을 주었소.  그러나 지금 공이 말씀하신 대계
는 바로 내가  뜻한 바와 같소. 이는  바로 자경을 하늘에서 내게 내려  주신 게 
아닌가 생각되오. 그런데 조조는 이미 원소의 군사를 차지했으며, 근래에 형주의 
군사도 수중에 거두었으니 대세로  보아 우리가 대적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오."
  손권이 그렇게 말하며 어두운 얼굴이 되자 그때서야 노숙이 공명을 데리고 온 
사실을 알렸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하에 가서 제갈근의 아우 제갈량을 데리고 왔습니
다. 그에게 물으시면 조조의 허실을 소상히 아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손권이 노숙의 말에 놀라며 물었다.
  "제갈근의 아우? 와룡선생이 여기 왔다는 말입니까?"
  "예, 지금 역관에서 쉬고 있습니다."
  손권은 공명이  왔다는 말에 크게  기뻐했다. 손권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그를 
부르는 대신 노숙에게 일렀다. 
  "오늘은 늦었으니 만날 수는 없소. 그러나  내일은 특히 여러 모사와 장수들을 
장하에 모으고 우리 강동의 뻬어난  인물들을 보여 준 다음 당상으로 청해 의논
하기로 합시다."
  손권이 공명을  청하는 것이 이렇듯  특별했다. 어떻게 보면  손권의 나이답지 
않은 신중함이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동의 인재와 공명을 한자리
에 모아 놓고 견주어 보려는 속셈도 있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자 노숙은 공명이  묵고 있는 역관을 찾아갔다. 어젯밤
에 이미 통보가 있었기 때문에 공명은 목욕재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노숙은 공명을 만나자 다시 한 번 당부했다. 
  "이제 우리의 주공을  뵙거든, 절대로 조조한테 군사가  많다는 말씀만은 하지 
마십시오."
  공명은 여전히 웃으며 대꾸했다.
  "양이 그때 그때의 형편에 맞춰 잘 대응하겠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노숙은 공명을 시상성의 한 전당 앞으로 안내했다.  공명이 보니, 이미 장소.고
옹 등 문무관원  20여 명이 높은 관과 폭이  넓은 띠를 맨 정장차림으로 자리에 
늘어앉아 있었다. 
  공명은 밝고 온화한 얼굴로  당내로 들어가 늘어앉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
를 나누며 이름을 물은 뒤 인사가 끝나자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 행동거지는 
조용하게 흐르는 구름 같았으며 풍채가 당당하고 기상이 드높아 보였다.
  '음-, 이 사람은 우리의 동오를 설복하여 조조와 싸우도록 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구나.'
  동오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명장  장소는 공명을 흘깃 바라보는 순간에 이런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일동이 빠짐없이 인사를 마치자 제일 먼저 공명에게 포문을 연 사람이 장소였
다.
  "저는 강동의 한쪽 구석에 살고 있는 하찮은 선비외다. 선생이 융중에 높이 누
워 지내실 때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견주셨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과연 그런 적이 있으십니까?"
  "그것은 이 제갈량이 스스로를 다른 사람에게 견줄 때 즐겨 써 온 말입니다."
  제갈량이 서슴없이 대답하자 장소가 다시 말을 이었다.
  "듣자하니 요사이 유 예주께서는  세 번이나 선생의 초려에 찾아가 간청을 하
여 겨우 선생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유 예주께서는 선생을 얻음이  마치 물고기
가 물을  만남 거나 같아서 형.양  땅을 석권할 기세였으나 이번에  조조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소이다. 이 일은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공명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잔뜩  비꼬는 질문이었다. 네가  그토록 대단한 
인물인데 왜 형주도 뺏지  못하고 신야에서도 쫓겨났느냐는 빈정거림이 가득 서
린 말이었다. 
  공명은 장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장소는 동오의 뛰어난 인재이다. 이 사람을 설복하지 못한다면 동오의 손권도 
움직일 수 없다'고 여겼다.
  공명은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로서는 형주 땅을 취하기가 마치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습니
다. 그러나 우리 주공 유 예주께서는 인의를  중히 여기시는 분이므로 차마 종친
의 기업을 빼앗을 수가 없어 극력 사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형주는 어린 유종
에게 넘어가고 철도 없고 분별도 없는 유종이 소인배들의 아첨에 넘어가 조조에
게 몰래  항복하여 조조의 안하무인격인  행동을 불러들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공 유 예주께서는 강하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계시는데 이제 좋은 계책을 세우
고 있소이다. 여러분들께서는 우리 주공의 계책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으셨으니 
쉽사리 이해하지 못할 것이외다."
  공명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소는 숨쉴 틈도 주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만약 그러하다면 선생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선생은 스
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견주고  계셨는데 관중으로 말하면 환공을 도와서 제후들
을 호령하는  패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악의는 힘없는 연나라를  떠받쳐 일으켜 
마침내 제나라의 70여 성을 굴복시킨 인물입니다. 실로  이 두 사람은 세상을 바
로잡을 만한 재간을 지닌 인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초려에 계실 
때는 풍월이나 즐기고 무릎을 끌어안고  시와 노래나 읊다가 이제 유 예주를 섬
기게 되셨소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천하  만민을 위해 해악을  제거하고 도적의 
무리를 무찔렀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유 예주는 선생을 얻기  전에 이미 천하가 좁다는 듯이 종횡하며 그나
마 성주까지 지냈습니다. 근래에 선생을 얻게  된 후부터는 삼척동자까지도 호랑
이가 날개를 얻었다고 말하며 한실의 부흥과 조가의 멸망도 머지않다고 말해 왔
소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선생께서 유 예주와 손을  잡은 이래 조
조의 군사들이 들이닥치기만하면  투구며 병장기를 내동댕이치고 싸우지도 않고 
패주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유표의 은의에 보답하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 주지
도 못했으며 아비  없는 유종을 도와 그 영토를 지켜내지도  못했습니다. 급기야
는 신야를 버리고 번성으로 달아나더니 당양에서 또 패하자 가까스로 하구로 달
려가 목숨을 보전했으니,  마침내 자기 한 몸도 의지할데가 없는  신세가 아닙니
까. 결국은 유 예주는 선생을 얻기 전이  훨씬 좋았던 것이 아닙니까? 선생이 비
유한 관중과 악의가 과연  그 주인을 그렇게 섬겼습니까? 지나치게 장황한 나의 
말을 허물치 마시고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공명이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견준 것을 신랄하게  꼬집은 독이 서린 말이었
다. 
  공명의 약점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말이어서 좌중의 분위기는 숨을 죽인 듯이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장소의 신랄한 공격에 공명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겠다고 여긴 여러 장수들은 공명의 입만 지켜 볼뿐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장소가 한껏 늘어놓은 독설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그대의 눈에는 그  일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요. 대붕이 만 리를 나
는 뜻을 제비나 참새  따위가 알아내지 못합니다. 비유컨대, 사람이 중병에 걸렸
을 때 우선 미음과 죽을 먹이고 순한 약부터 써서 오장육부의 혈기가 고르게 되
기를 기다려서 서서히 고기를 먹여 몸을 보양한 뒤 강한 약으로써 그 병근을 자
릅니다. 반대로 기맥이  고르지 못한 중환자에게 갑자기 고기와 강한  약을 주면 
그 환자의 병은 어떻게 되겠소? 지금 천하의 대란은 중환자의 기맥과 같으며 만
백성의 궁박함은 빈사지경의 숨결과도 같소이다.
  이를 치유하는 데 있어 어찌 성급하게 극약으로 다스릴 수가 있겠소? 우리 유 
예주께서 지난날 여남에서  조조와 싸워 패한 후, 유표에게 가서  몸을 의탁하셨
을 때 군사는 1천이 되지 못했소. 장수도 관우.장비.조운뿐이었소. 이것을 병으로 
비유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병이  깊어 위중한 때였다고 할 수 있지 않겠소? 신
야는 벽지에 있는 작은 현으로서 백성은 적고 군량미의 비축도 변변치 않았으므
로 우리 주군께서는 잠시 몸을 의지했을 뿐,  오래 지키고 유지하려는 뜻은 추호
도 없었소이다. 원래 군세도 미약하고 성곽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으며 군사들도 
조련되지 않았으며 군량도  댈 수 없었소. 그래도 유 예주께서는  박망에서는 화
공, 백하에서는 수공으로 하후돈.조인 무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그 같은 
승리를 거두었으니 관중과 악의가  용병을 했다 하더라도 이보다는 낫지 못했을 
것이외다. 유종이 항복한 일은 유 예주께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
이오. 오히려 형주의 어지러움을 틈타 같은  종친의 기업을 빼앗기를 삼가하였으
니 이는 실로 큰 인의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당양에서의 패전도 마찬가지로 유 예주의 대인과  대의에 비롯된 것입니다. 유 
예주께서는 수십만의 백성들이 어린  것들을 업고 늙은이를 부축하여 뒤를 따르
매, 차마 그들을 버리고 갈  수가 없어 하루에 10리씩 가면서, 강릉을 취해 충분
히 조조를 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들과 함께하다 패전을 당하셨
으니 이 또한 세상에 드문 큰 어짐과 의로움이 아니겠소이까?
  게다가 군사가 적보다 많다 하더라도 싸움에서 이기고 짐은 번번히 있는 일이
외다. 지난날 고조  황제께서는 항우와 싸우기만 하면  지셨으나 해하성싸움에서 
한 번 이김으로써  천하를 얻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한신의 좋은  계책이 있었기 
때문에 승리로 이끌었으나,  한신도 다른 싸움에서 패한 적이 여러  번 있었소이
다. 무릇 나라의 대계와 사직의 안위를 의논함에는  치밀한 계책을 세워야 할 것
이오. 그저 뭇  사람 앞에서 변설이나 늘어놓는 무리들이 헛된말로  사람을 속이
고 하찮은 승패로 공이나 떠벌려서는 아니 될  것이오. 그런 무리는 나라의 백년
지계를 앉아서 이야기하고 서서 이야기하기는 쉬우나 직접 일이 닥치면 백에 하
나라도 능한 것이 없어 결국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오."
  말투는 흐르는 물과 같고 표정은 잔잔했으나 그의 태도는 당당하고 자신에 넘
쳐 있었다. 장소의  비아냥이 신랄했으나 공명의 대답은 장소의 말을  뿌리째 뒤
흔든 것이었다. 장소는  공명의 말에 내심 노여움이 일었으나 다시  공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문득 한 사람이  일어나 언성을 높여 물었다.  회계군 여요 
사람인 우번, 자는 중상이었다.
  "솔직하게 질문하는 무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조조가 백만군사와 천
의 장수라고 하오. 천하를 한 입에 삼키려는  위세를 떨치고 있는데 선생은 어떤 
대책을 갖고 계시오?"
  우번은 불문곡직하고 눈앞에 닥치고 있는 형세를  물었다. 공명은 주저함이 없
이 우번의 물음에 답했다.
  "조조가 말로는 백만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7, 80만일 것입니다. 그것도  원소를 
공략하여 거두었으며 또한 유표의 군사들을 끌어들인 것으로 모두 오합지졸입니
다. 결코 두려워할 군사들이 아닙니다."
  공명의 대답에 우번이 기다렸다는 듯이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하하하, 선생은 당양에서 패하고 하구까지 쫓겨 구차하게 남에게 구원을 청하
고 있는 처지입니다. 조조의 군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입으로만 떠드시니 
이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야말로 큰소리만 쳐서  사람을 속이
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오?"
  우번이 공명의 말꼬리를  잡아 기세 좋게 반박했다. 공명이 이를  가볍게 받아
넘겼다. 
  "아니외다. 우리 주군 유 예주를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으나 모두가 인과 의로 
뭉쳐진 군사들입니다. 어찌 포악무도한 조조의 대군과  맞붙어 싸워 스스로 구슬
을 부수는 어리석음을 범하겠습니까? 지금 잠시 물러서서 하구를 지키고 있음은 
때를 기다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동오는 어떠하오? 이곳 강동의  군사들은 날
쌔고 양곡 또한 넉넉합니다. 거기다가 장강은 험준하니 지켜 내기가 수월합니다. 
그런데도 나라의 수치를 생각지 않고  손 장군으로 하여금 역적 앞에 무릎을 꿇
고 항복하기를 권하고  있으니 이는 천하의 비웃음조차 돌아볼 줄  모름이오. 거
기에 비하면 유 예주께서는 실로 조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소."
  공명의 명쾌한 결론에 우번도 얼른 입을 열  수 없었다. 경솔하게 입을 열었다
가 자칫 조조와의  부전론을 다시 이 자리에서  내세우는 결과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공명에게 어떤 공박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공명의 얼굴은 점차 홍조를 띠었고, 그의 말도 차츰 열기를 띠고 있었다. 우번
이 입을 다물자 즉시 또  한 사람이 일어났다. 회음 사람으로 보즐, 자는 자산이
었다.
  "선생께서는 지난날 소진과  장의의 궤변을 본받아 동오를 설득하러 오셨소이
까?"
  소진과 장의는 전국시대의  이름난 변설가였다. 보즐이 공명의  속셈을 꿰뚫듯
이 불쑥 입을 열었다.
  "자산은 소진과 장의를 다만  변설에만 능한 사람으로 알고 있을뿐 그들이 당
대의 호걸이었음을 모르시는구려.  소진은 여섯 나라의 승상인을 차지했으며, 장
의는 두 번이나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모두 사직을 돕고 천하를 올바르게 경영
하던 사람들이오. 결코  강한 자를 두려워하며 약한 자를 업신여기거나  하지 않
았소. 칼을 두려워하며 창을 피한 자들과 비할 바가 아니오. 여러분은 조조의 허
장성세에 지레 겁을 먹고 일신만  편키 위해 항복하려 들면서 어찌 감히 소진과 
장의를 비웃으신다는 말씀이오."

  "조조를 대체 어떤 인물로 보시오?"
  공명은 물음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잘라 말했다. 
  "조조가 한실의 역적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바이거늘, 어찌 그걸 물으시오?"
  그러자 질문을 한 패군의 설종은 억지를 부렸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고 하였소. 때문에 요임
금도 천하를 순임금에게  물려주었고, 순임금은 천하를 우에게 물려주었소. 한실
이 오늘에 이르러 천수가 다하였고, 조조가  이미 천하의 삼분지이를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심도 그에게로 기울어가고  있소이다. 그런데 유  예주는 하늘의 
뜻도 헤아리지 못하고 조조와 다투려 하니 이는 곧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
소. 어찌 패하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그 말에 공명은 언성을 높여 설종을 꾸짖었다. 
  "경문은 어찌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는 사람처럼  말을 하시오? 무릇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난 바에는 충성과 효도로써 입신의 근본을  삼는 법이오. 
경문은 이미 한실의 녹을 먹은 사람으로 역적을 보면 함께 힘을 합해 이를 물리
치려 함이 신하된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소? 그런데도 지금 조조는 조상 대대로 
한의 녹을 먹어 왔건만 이에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도리어 역모할 마음을 품
고 있으니, 천하가 다 함께 통분해 마지않은 터이오. 그런데도 공은 이를 하늘의 
운수가 조조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하니 이는 실로 부모난 임금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오? 공과 같은 사람과는  더 이상 얘기도 하기 싫으니 두 번 다시 
입을 떼지 마시오."
  공명의 꾸짖음에 설종은  얼굴만 붉힌 채 말문을 열지 못했다.  공연한 억지를 
부리다 무안만  당한 꼴이었다. 좌중에서 또  한 사람이 일어섰다.  이름이 육적, 
자는 공기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지난날  원술에게 갔다가 귤을  대접하자 귤을 
품속에 감추고  돌아와 그의 어머니에게  드린 일로 효자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육적은 엉뚱하게도 유비의 혈통을 들먹였다. 
  "조조가 비록 천자를  끼고 제후들을 호령한다고 비난하지만 어디까지나 상국 
조참의 후예입니다. 그러나 유 예주는  어떠하오? 말로는 중산정왕의 후손이라고 
하나, 그것을 밝게 밝힐 길이 없소이다. 듣기로 그의 출신은 한낱 돗자리나 짜고 
짚신이나 팔던 사람이었다고  했소. 그런 신분으로 어찌 조조와 나란히  견줄 수
가 있다는 말이오?"
  공명은 육적의 말에 다시 껄껄 크게 웃으며 말했다. 
  "공은 일찍이 원술 앞에서 귤을 품속에 감추었던 육량이 아니오? 거기에 편히 
앉아 나의  말을 들어 보시오.  옛날 주문왕은 천하의  삼분지이를 다스리면서도 
은을 섬겼으므로 공자도  주의 덕을 기리어 '지덕'이라  하시었소. 이는 어디까지
나 신하로서의 분수와 도리를 지키는 것을 기림이었소.
  조조가 조상국의 후예라면  대대로 한실의 신하인데, 지금  방자하게도 권세를 
희롱하여 조정을 능멸하니,  이는 비단 임금을 모르는 자의 소행이며  조씨 문중
의 불효자식이라  할 것이오. 그런데  유 예주께서는 당당히  한실의 종친으로서 
이미 당금의 천자께서는 제실의 세보를 뒤져 보시고 작위를 내리신 몸인데 어찌 
인정받을 길이 없다 하시오?  더구나 고조 황제께서는 하찮은 정장에서 몸을 일
으키시어 마침내는 천하를  얻으셨으니, 돗자리를 짜고 신을 판 것이  어찌 욕되
다 할 수 있겠소? 공의  어린아이 같은 소견으로는 이 자리에서 입을 뗄 자격이 
없소이다."
  공명이 일사천리로 말을 이어가자  육적은 말문이 막혀 일찌감치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좌중에서  또 한 사람이 벌떡 일어섰다. 팽성사람으로 이
름은 엄준, 자는 만재였다.
  "과연 공명 선생이오.  훌륭하게 설파하시었소. 우리 동오의 영웅과 호걸이  모
두 선생의 변설에 눌려 할 말을 잃고 있소. 도대체 어떠한 경전을 익히셨소?"
  공명을 치켜세우는  듯하며 슬쩍 학문  쪽으로 말문을 돌렸다.  공명은 엄준의 
물음이 떨어지자마자 얼른 입을 열었다. 
  "글줄이나 읽고 남의 글이나 인용하며 문장의 어구에 구애받아 세월을  보내는 
것은 속세의 썩은  선비들이라 할 것이오. 그러한 무리들이 어찌  나라를 일으키
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큰 계책을 알리오.  지난날 유신땅에서 밭 갈던 이윤이나 
위수에서 낚시하던 강자아와 한실의 천자를 창시한  장량.진평, 그리고 등우.경감
등은 모두 천하를 바로잡은  인재들이었으나 일찍이 경전에 밝았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소. 불초 공명 또한  구구하게 붓과 벼루 사이에 앉아 희고  검은 것을 논
하고 문장을 뽐내며 붓대를 가지고 장난으로 세월을 보내지는 않았소이다."
  엄준이 공명의 학문을 가늠하기 위해 경전을 얼마나 알고 있나를 시험하려 하
자 그 질문 자체를 일축했다. 글을 읽는  선비들의 고루함을 면박하자 엄준은 입
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나 공명이 엄준이 물은  바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자 공명의 말을 반박하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여남의 정덕추였다.
  "공은 큰소리치기만 할 뿐 아무래도 배운 바가  없는 것 같소. 공이 세상의 선
비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될까 두렵소이다."
  공명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선비에게도 군자와 소인의 구별이 있소이다. 무릇 군자와 같은 선비란 임금에
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올바름을 지키고  사악함을 미워함으로써 그 영향
을 당세에 미치도록 힘쓰며 이름을 후세에  남기는 것이외다. 그러나 소인선비는 
오직 한 글자 한 구절에  사로잡히며 젊어서는 부나 짓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
는 경서를 천착하여 비록  붓끝으로는 천언만언을 끄적거려 놓아도 실상 흉중에
는 단 한 가지의 계책도 가진 바 없는 무리지요. 예를 들어, 양웅같은 사람은 문
장으로는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으나, 몸을  굽혀 왕망을 섬겼습니다. 마침내는 
높은 누각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 지경에  이르니, 그것이 소인배 선비의 말
로입니다. 이런  선비가 비록 하루에 글을  만마다나 쓴다 해도 어디에다  쓸 수 
있겠소?"
  글만 받드는  나약한 선비의 무용함과 말로를  얘기하며 정덕추를 몰아붙이자 
그도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좌중의 모든 사람은 공명의  대답이 흐르는 물
과 같이 막힘이  없으니 모두들 낯빛이 달라지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미 좌중
에는 머쓱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러나 처음 말문을 얼어 무안을 당한 장소와 또 한 사람 낙통이 또다시 공명
을 몰아붙이려  할 때였다. 문득  밖에서 저벅거리며 좌중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뭇 사람이 그  발자국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영릉사람으로 
이름은 황개, 자는 공복으로 동오에서 금전이나  양곡을 관장하는 군량관의 직책
에 있는 인물이었다. 
  황개는 커다란 눈을 희번덕거리며 좌우를 둘러보며 우런찬 목소리로 말했다.
  "경들은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소?  공명 선생은 당대 제일의 기재요. 여
러분은 손님에게 입을 놀려 힐난만 하려 드니,  이는 결코 손님을 대하는 예의가 
아니오. 지금  조조의 대군이 나라의  경계선까지 이르렀는데도 적을  칠 계책은 
의논하지 않고 부질없는 입씨름만 해서야 되겠소?"
  황개는 이렇게 말한 후 몸을 돌려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알기로, 말을 많이 해서 이로움을 얻는 것보다 침묵을 지키는 것이 낫다 
했습니다. 어찌하여 선생께서는 저희 주군을 위하여  값지고 귀한 말씀을 드리시
지 않고 여기서 뭇 사람들과 부질없는 변론만 하고 계십니까?"
  "여기에 계시는 여러분이 세상의  정세를 알지 못하고 애써 질문하니 제가 대
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 저와 함께 내전으로 들어가시지요."
  황개는 국빈을  대하듯 정중한 태도로  앞장 서서 내전으로  공명을 안내했다. 
노숙도 공명의 뒤를 따랐다. 닭 쫓던 개 꼴이  된 것은 열을 올리며 공명을 힐문
했던 여러 장수들이었다. 공명을 공박하여 무안을  주기는커녕 크게 무안만 당했
을 뿐 아니라 황개의 꾸짖음까지 들었던 것이다.
  공명이 중문을 들어서는데  미리 나와 일행을 맞는 사람이 있었다.  공명의 형
인 제갈근이었다. 
  "네가 강동에 왔는데 어찌 나를 보러 오지 않았느냐?"
  공명이 걸음을 멈추고 예를  표하자 제갈근은 공명에게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
며 말했다. 
  "제가 지금 유  예주를 섬기고 있는 몸이니, 공무를 먼저  보고 사사로운 일은 
뒤로 미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공무가 끝나지 않았으니 형님께서는 양해
해 주십시오."
  오랫만에 형을 대하는  공명이 반가운 마음을 누른 채 공손히  답했다. 제갈근
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오후를 뵙고 나거든 내게로 오너라."
  제갈근도 아우를 맞이하는  형으로서가 아닌, 동오의 신하로서  빈객을 대하는 
예로 공명에게 고개를 숙인 뒤 물러났다. 
  제갈근이 떠난 뒤 노숙이 다가와 다시 귀띔하며 다짐을 받았다. 
  "어제 제가 말씀드린 것을 잊지 마십시오."
  조조의 군세가 크다는 것을 손권에게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공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웅장하고 화려한 전당이 이윽고 공명의 눈앞에 나타났다. 거기 주황색 
난간에 흰  돌층계가 있었다. 대청 앞에  나와 있던 손권이 섬돌  아래로 내려와 
공명을 정중히 맞아들였다.
  공명이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자  손권은 위엄 있는 태도로 반례로 답례한 뒤 
방으로 안내하여 자리를 권했다.
  공명은 그 윗자리를 굳이 사양하고 옆자리에 조용히 앉아 유비가 말한 안부의 
말을 전했다.
  공명의 음성은 서글서글하고 말은 간단명료하게 절제되어 있어서 듣는 이에게 
상쾌한 감흥을 주었다. 
  "먼길을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손권이 공명을 위로했다. 문무관원들은 두 줄로  나뉘어 좌우에 늘어서서 조용
히 공명을 지켜 보고 있었다. 공명은 슬며시 눈을 들어 손권을 살펴보았다. 눈은 
푸르고 수염은 불그레하며  당당한 풍채였으나 한인본래의 용모는  아니었다. 또
한 의자에 앉은 모습이 상체는 참으로 당당했으나 허리에서 아랫부분이 매우 짧
아 보였다. 
  손권을 살핀 공명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용모가 범상치 않으니 자극하기는  쉬워도 달래기는 어려울것 같구
나. 묻기를 기다려  차라리 그의 감정을 자극하여 격동시킨 뒤  우리쪽으로 이롭
게 이끌어야겠구나.'
  향기가 그윽한 차가 나오자 손권이 공명에게 권하면서 입을 열었다. 
  "선생의 재덕에 대해서는 노자경을 통해 이미 들어왔소이다. 오늘 다행히 만나
게 되었으니 여러 가지로 가르침을 받고자 하오."
  이에 공명이 겸양을 떨며 대답했다.
  "재주 없는 제가 모처럼의 물음을 욕되게 할까 두렵습니다."
  "선생은 앞서 신야에서 유  예주를 보필하여 조조와 크게 싸우셨으니 필시 그
쪽 군사의 허실에  밝으실 것입니다. 조조군의 허실에 대한 밝은  가르침을 주시
오."
  손권이 첫 대면에 대한 예의가 끝나자 알고 싶은 바를 묻기 시작했다. 
  "유 예주께서는 군사가 적고 휘하 장수가 많지 않은데다 또 신야성이 작고 군
량도 부족합니다. 어떻게 조조와 겨루겠습니까?"
  "도대체 조조의 병력은 어느 정도이오?"
  "마군.보군.수군을 합쳐 대략 1백만은 됩니다."
  공명이 어제 노숙과  약속했던 말과는 달리 엉뚱한 대답을 했다.  노숙이 놀라
며 공명을 쳐다보았다. 놀란  건 노숙뿐만이 아니었다. 조조군이 소문대로 1백만
이나 된다고 말하자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다시 물었다. 
  "혹시 조조가 뜬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아니오?"
  "확실합니다. 조조는 이미 북방의 연주를 쳤을 때부터 청주군사 20만을 거느렸
는데 거기다가 원소군  5, 60만을 얻었고, 중원에서 새로 모병한  군사 2, 30만을 
거두었으니 모두 합치면  1백 50만을 넘으면 넘었지 모자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백만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강동 사람들이 놀랄까 봐 오히려 줄여서 말씀드
린 것입니다."
  공명은 노숙이 당부한 것과는 달리  군사의 수를 줄이는 대신 더욱 늘려 말했
다. 공명의 옆자리에  있던 노숙은 당황한 표정으로 연신 공명에게  눈짓을 보냈
다. 그러나 공명은 짐짓 모른 체하며 시치미를 떼고 있는데 손권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조조 휘하의 장수는 얼마나 되오?"
  "훌륭한 장수가 2천에서 3천은 될 것입니다. 그들 중 지모가 뛰어난 모사와 싸
움에서 용맹을 떨친 장수들만도 1, 2천은 될 것입니다."
  실로 알 수 없는 공명의 속셈이었다. 공명은  손권이 조조의 군세를 물을 때마
다 실제보다 과장해서 대답할 뿐이었다.
  "모사 중에는 선생과 같은 인물도 있소?"
  "저 같은 정도는 수레에 싣고 말로 되질을 할 만큼 많습니다."
  "지금 조조는 형.초  땅을 평정했는데 다음에 노리는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시
오?"
  "그의 진용을 보면 수륙  양군이 장강연안을 따라 서서히 남진할 태세로 있습
니다. 동오를 도모할 생각이 아니라면 왜 그같이 군사를 움직이겠습니까?"
  공명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손권이 무거운 얼굴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동오는 그들을 맞아 싸워야  하겠소. 아니면 싸우지 않아야 하겠소? 
바라건대 그대가 나를 위해 결단을 내려 주시오."
  손권이 그렇게 말하며  공명을 바라보았다. 공명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라는 뜻
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가볍게 웃을  뿐 얼른 입을 열지 않았다. 손권은 다시 정
중한 목소리로 청했다.
  "원컨대 높으신 뜻을 들려 주시오."
  공명은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한 말씀 드리고 싶으나 장군께서 들어 주지 않으실까 두렵습니다."
  공명이 이렇게 서두를 열자 손권은 답답한 듯 재촉했다.
  "그 무슨 말씀이오? 어서 말해 보시오."
  공명이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지난날 천하가  크게 어지러울 때 가조께서  동오를 일으키시어 이제 동오는 
떠오르는 태양처럼 힘차게 융성하고 있습니다. 한편  유 예주께서는 한수 남쪽에
서 군사를 수습하여  조조에게 맞서 천하를 다투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조가 이
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천하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거기다가 이번
에는 형주 일대까지  평정하여 그 위엄을 천하에 떨치고 있습니다.  사태가 이에 
이르니 비록 뛰어난 영웅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으나 유 예주께서는 의지하여 군
사를 기르며 설  땅이 없으니 잠시 강하에 머무르신 것입니다.  원컨대 장군께서
는 부형의 기업을 이어받아 그 빛나는 뜻을 계승코자 하신다면 거느리신 군사의 
힘을 살펴 결단을 내리십시오. 만약 오.월의 수많은 군사를 이끌어 조조와 한 번 
자웅을 겨룰 수  있다고 여기시면 즉시 조조와 국교를 끊으십시오.  그러나 도저
히 조조와 천하를  다툴 만한 힘이나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신다면 여러 
모사들의 중론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군사의 갑옷을  벗기고 무기를 버린 뒤 조
조 앞에 몸을 굽혀 그를 섬길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두 가지 길  중 하나로 결단을 촉구했던 손권이  잠시 공명의 종잡을 수 없는 
대답을 헤아려 보고 있었다. 그러자 공명은 다시 말을 이으며 재촉했다.
  "장군께서 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딴 생각을 품으시고 헛되
이 시간만 끌어서는  아니 됩니다. 일이 급한데 결단이 늦어져  화를 자초하신다
면 그때는 후회하셔도 늦습니다."
  공명이 재촉하자 손권은 대답 대신 불쑥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유 예주는 어찌하여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았소?"
  손권의 그 같은  물음이 있을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공명이었다.  공명은 서슴
없이 입을 열었다.
  "옛날 제나라의  전횡은 한 장사에 지나지  않았지만 임금이던 형이 한신에게 
잡혀가자 한 고조에게 끝내 항복하지 않고 절조를 지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
다. 하물며 우리 유  예주께서는 한실의 종친으로서, 세상에 우러름을 받는 영웅
으로 어찌 조조 따위에게 항복하는 욕된 길을 택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기고 짐
은 병가에 매양 있는 일이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천명입니다. 형세가 불
리하다 하여 어찌 함부로 몸을 굽혀 적을 섬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손권은 갑자기  얼굴색이 달라지더니 자리를 박
차고 일어났다. 손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당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공명이 손권과 유비를 견주어 말한 데에 화가 치솟았던 것이었다. 
  손권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미리 두려워하고 있음에 비해 유비는 처음부터 
항복할 뜻이 없었음을 견주어 말한 것이었다.
  손권이 가 버리자 도열해  있던 문무관원들은 공명에게 조소어린 눈길을 보내
며 제각기 자리를 벗어났다. 공명의 불손한 말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고 여긴 노
숙이 공명을 책망했다.
  "선생, 이게 무슨 꼴입니까?"
  "무슨 말씀이오?"
  노숙의 말에 공명은 시치미를 떼고 되물었다.
  "선생은 왜 그런 말씀을  하셨소? 제가 선생께 보낸 성원도 다 허사로 돌아가
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우리 주군께서 도량이  넓으셔서 꾸짖지 않으셨으나 선생
의 말은 지나치게 불손한 말씀이었습니다."
  노숙의 나무람을 들은 공명은 껄껄 웃을 뿐이었다.
  "하하하, 무엇이 불손입니까? 손  장군이 이렇듯 도량이 좁을 줄은 몰랐소.  내
게 조조를 깨뜨릴 계책이 있으나  물어 오지 아니하니 내가 말하지 못했을 따름
이오."
  "그렇다면 선생에게 조조를 쳐부술 무슨 묘계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이다. 만약 그 계책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한 말은 모두 빈 껍데기에 지
나지 않을 것이오."
  "그렇다면 이 노숙이  들어가서, 우리 주공에게 다시  선생의 가르침을 받도록 
청해 보겠소."
  공명의 힘찬 어조에 노숙은 그가 결코 빈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공명은 그런 노숙에게 확신을 주려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조조의 백만 대군을 개미 떼같이 알고 있소. 내가 손을 한 번 들기만 하
면 그들은 죄다 가루가 되고 말 것이오!"
  공명의 말에 노숙은 곧 손권이 사라진 후당으로  들어갔다. 손권은 어느 새 의
복을 바꾸어 입고 있었다. 손권은 아직도 노기가  가라앉지 않은 듯 노숙을 보자 
대뜸 쏘아붙였다.
  "공명, 그 자가 나를 업신여기는구려!"
  노숙은 무릎을 꿇고 앉아 조용히 아뢰었다.
  "저도 그 일로  공명을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공명은  도리어 주공께서 도량이 
좁으시다고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조조를 깨칠 책략이  있으나 경솔히 말하지 않
았을 뿐이라 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주공께서 다시 한 번 물으시도록 하십시오."
  손권은 역시  한 나라의 밝은 주군이  될 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노숙의 
말에 화를 풀며 밝은 얼굴로 말했다.
  "공명이 좋은 계책을  가졌으면서 일부러 나를 격동시켰나  보오. 한때의 좁은 
소견으로 대사를 크게 그르칠 뻔하였소."
  손권은 지체하지 않고 그 길로  노숙과 함께 후당에서 나와 공명을 다시 맞으
며 말했다.
  "조금 전에 내가 선생의 깊고 넓은 뜻을  알지 못해 무례를 범했소. 부디 너그
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라로."
  공명도 손권이 먼저 사과까지 하자 고개를 숙이며 죄를 빌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장군의 위엄을 범하였습니다. 바라건대 그 죄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손권은 공명을 후당으로  청하고 주안상을 차려 대접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손권은 먼저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생각건대 조조가  평생에 걸쳐  미워하는 사람은 여포.유표.원소.원술  그리고 
유 예주와 나입니다.  지금은 그들이 죽고 다만  유 예주와 내가 남았을 뿐이오. 
그러나 나는 동오를 바치고 그에게 항복할 생각은  추호도 없소. 이미 나의 마음
은 굳혀졌소. 이제 한 가닥 믿고 의지할 곳은  유 예주뿐인데 유 예주는 패한 지 
얼마 되지 않는 터에 과연 힘을 합해 싸울수 있을지가 의문이오."
  "예주께서 비록 이번에 패하셨다고는 하나,  관운장이 아직 1만의 정병을 거느
리고 있고, 유기가 거느린 강하의 군사가 또한 1만을 헤아립니다. 그런데 조조군
은 먼길을 오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습니다. 앞서 우리 유  예주를 뒤쫓을 때에
도 가벼운 무장을 한 채  기마 무사로 하여금 하루에 밤낮으로 3백여 리를 달렸
다 합니다. 이는  곧 '강한 활로 쏜 화살일지라도 엷은  비단 한 장을 뚫지 못한
다'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정예병들이라고 하더라도 밤낮으로 멀리 강행군을 
하였으니 그 군사들이 무슨 수로 싸움다운 싸움을  하겠습니까. 센 활로 활을 쏘
아도 멀리 가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더구나 북방의 
군사는 수전에  익숙하지 못하며, 또한  조조에 항복한 형주의  군사들은 대세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을 뿐 결코 본심이 아닙니다.  그러니 힘을 다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장군께서 우리 유  예주와 힘을 모으고 마음을 하나
로 합쳐서 대적하면 조조를 깨치는 일은 어렵다 보지 않습니다.
  조조가 패하면 반드시 북방으로 군사를 물리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형.오의 
세력은 더욱 강성해질  것입니다. 그것은 곧 천하가 솥발처럼 셋으로  나뉘는 형
세가 될 것임을  뜻합니다. 그리하여 천하는 장군과  유 예주, 그리고 조조가 한 
솥을 바치고 있는 세발이  되는 형국이 될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고 안 되고
는 바로 오늘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이 점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
니다."
  공명의 말을 듣자  손권은 크게 기뻐했다. 공명의 말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헝클어져 있던 앞길을 훤히 내다보게 하는 듯했다.
  "선생의 말씀을 들으니 답답하던 가슴이  후련해졌소이다. 이제는 망설이지 않
겠소. 즉시 군사를 일으켜 유 예주와 함께 조조를 깨칠 일을 의논하겠소."
  손권은 공명에게 이렇게  다짐을 한 후 노숙에게  명해 문무관원에게 이 일을 
알리게 했다. 이어 공명을 다시 역관으로 보내 편히 쉬게 했다.
  한편 노숙으로부터 손권의  뜻을 전해 들은 장소는  문무관원 여럿을 부른 뒤 
말했다.
  "공명의 계책에 주군께서 빠져드록 말았소. 이를 그대로 보고 있을 수 만은 없
는 일이 아니오?"
  장소는 문무관원을 이끌고 그 길로 손권에게 달려가 말했다.
  "신들은 주공께서 곧 군사를 일으켜 조조와 싸우려 하신다는데, 주공께서는 스
스로를 원소와 비교하여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조조는 전에 적은 군사로도 강
한 원소를 일격에 무찔렀습니다. 이번에는 조조가  백만대군을 이끌고 남으로 몰
려오는데 경솔히 맞설 수가  있겠습니까? 제갈량의 말만 듣고 함부로 군사를 일
으키셨다가는 이는 마치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 뜻을 굳히고 있는 손권이었으나 장소의  말도 가볍게만은 들리지 않았다. 
손권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장소와 함께 온 고옹이 간했다.
  "유비는 조조에게 패한 후 우리 강동의 군사에 의지해 조조와 맞서 보려는 것
입니다.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유비의  술수에 말려들려 하십니까? 바라건대 
자포의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마음을 정했다고는 하나 오랫동안 그를 받들던 중신들이 한결같이 이 같은 말
을 하니 손권도 마음이 무거웠다.
  손권이 말 없이 생각에만 잠겨  있자 장소와 고옹은 주공의 불편한 심사를 헤
아리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물러갔다. 장소와 고옹이 손권을  만난 것을 
안 노숙이 그들이 나가고 나자 손권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방금 장자포등이 들어와 주공께 군사를 움직이지 말고 항복하기를 권한  까닭
은 오로지  가솔들의 안전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코 저들의  말으 좇아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대답이 없기는 장소가  아뢸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손권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노숙이 다시 몰아붙였다.
  "어서 결단을 내리십시아. 주군께서 마음을 정하지 못해 헛되이 시간만 끌다가
는 대사를 그르칩니다."
  "경은 잠시 물러가 있으시오. 내가 거듭 생각해 본 뒤에 결단을 내리겠소."
  손권은 그렇게 말해  노숙마저 내보냈다. 의견이 다른 한 사람만을  곁에 두어 
판단을 기울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동의 흥망이 걸린  중대한 일이
었으며 지금 이 순간의 결단이 나라의 성쇠를 결정짓는 중대사이기 때문이었다.
  노숙은 손권의 명에 하는 수 없이 물러났다.  후당과 내전 사이의 정원을 지나
는 동안 여기저기에서  조조와 화친을 주장하는 자와  맞서 싸우자고 하는 이의 
입씨름이 들려 왔다.
  노숙이 가까운 나무 그늘에 몸을 가리고 바라보니 무관과 문관들이 여기에 한 
무리, 저기에 한 무리씩 모여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의견과 주장이 분분했다.
  문관 대부분과 무관 일부가 싸움에 반대하고  있었으며, 일부의 젊은 무인들이 
주전론을 지지하고 있었다.
  노숙이 물러가고 난 뒤 한동안  홀로 자리에 앉아 있던 손권이 이윽고 내방으
로 들었다. 그러나 병든 사람처럼 이마에 손을 대고 있을뿐 침식도 잊고 있었다.
  동오가 일어나 3대에  이른 이때에 처음으로 맞는 크나큰  국난이었다. 부형이 
남긴 좋은 지반과 인재를  바탕으로 나라를 일으키는데만 힘써 온 손권으로서는 
백만 대군을 이끈 조조의 외침은 커다란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공명의 앞에서
는 마음을 정했으나  조조와의 결전을 벌이는 일은 실로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항복하면 부형의 대를 잊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큰 것이었
다.
  손권이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번민하고 있는데 이를 지켜 본 늙으신 이모 오 
국태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침식까지 잊고 잠을 설치며 번민하고 있느냐?"
  오 국태의 물음에 손권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 조조가 장강과 한수사이에 군사를 주둔시킨 채 동오를 엿보고 있습니다. 
여러 문무관원과 의논했으나 항복하자는  자와 싸우자는 이로 엇갈리어 뜻이 한 
가지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맞서자니 힘이 모자랄까 근심스럽고  항복하자니 조
조가 뒤에 우리를 온전히 둘까 의심스럽습니다."
  손권이 사실을 그대로 소상하게 밝히자 오 국태가 손권을 일깨웠다.
  "너는 아직도 어린애로구나. 그까짓 일로 침식까지 잊고 있다니, 어려울 것 하
나도 없다."
  오 국태의 말에 손권은 귀가 번쩍 띄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책이라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벌써 잊었느냐? 너의  어머님께서 숨을 거둘 때  당부하신 말씀이 있지 않느
냐!"
  손권은 그 말을  듣자 문득 꿈에서 깨어난 듯  지난날 어머니 오 태부인이 한 
말을 돌이켰다. 오 국태가 그 말을 다시 되살려 주었다.
  "너의 어머님께서 이르기를 '나라 안 일은 장소에게 묻고 나라 밖의 일은 주유
에게 물어서 하라'고 하시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주공근을 불러 물어 보
지 않느냐?"
  마침내 손권이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즉시 주유를 불러 의견을 묻겠습니다."
  손권은 그날로  사람을 파양으로 보내  주유를 부르도록 했다.  그때 수군도독 
주유는 파양호에서 군사를 조련하고 있었다.

  범려의 미인계
  천하일색 대교와 소교
  
  공명은 주유를 회유하기 위해 범려의 미인계를  인용한다. 조조를 쉽게 물리치
려면 천하일색의  대교.소교를 탐하는 조조에게  두 여인을 보내는 것이라  하고 
동작대부의 내용을 바꿔 읊는다. 이에 주유의  분노는 충천하고 조조와의 전쟁을 
결심한다. 
  
  주유가 수군을 조련하고 있는 중에 조조의 대군이 한수로 짓쳐들고 있다는 소
식을 들었다. 이에 주유는 조조군을 막을 방책을  세우기 위해 밤을 틈타 시상군
으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주유는 동오의 선주 손책과는  같은 나이이며 그의 아내는 손책의 처제이므로 
손권과는 친족간이었다.
  일찍이 손책에게 발탁되어 그의  장수가 되자 약관 스물넷으로 중랑장이 되었
을 정도의 영걸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동오의 사람은 이 연소 홍안의 장군을 군중의 미주랑이라 부르
며 우러르고 있었다.
  주유가 강하태수로  있을 때 교공이라는  명문가에는 두 딸이  있었다. 자매가 
다 절색의 미인이어서 '교공의 두 명화' 라고 하면 동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
을 정도였다.
  손책은 자매 중 언니를 맞아 비로 삼았고,  주유는 그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였
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손책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었지
만 동생은 지금도 주유가 더없이 사랑하는 아내로 가정을 지키고 있었다.
  당시 동오의 사람들은 이들 자매를 부러워하며 축복했다.
  "교공의 두  명화는 언니가 그의 지아비와  이별하였으나 천하에서 으뜸 가는 
신랑들을 만났으니 이 또한 으뜸 가는 복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주유였으나  수군도독의 중책을 맡아 파양호에  부임한 이래 애처와는 
따로 떨어져 지내고 있었다. 그토록 즐겨하는 음악으로  귀를 씻을 짬도 없이 오
로지 동오의  대수군을 조련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주유는 손권의 
사자가 막 길을 떠나려고 할 즈음 이미 시상에 이르른 것이었다.
  주유는 노숙과 교분이 두터운  사이였으며 손권에게 노숙을 천거한 사람도 바
로 주유였다. 노숙은 주유를 맞이하여 그 동안의 일을 자세하게 들려 주었다.
  "자경은 염려하지 마시오.  내게 생각이 있소이다. 아무튼 그 공명이라는  사람
이나 불러 주시구려."
  노숙이 말을 타고 공명에게로 떠나간 뒤 장소.고옹.장굉.보즐  등 네 사람이 주
유를 찾아왔다. 손권의 휘하 중에서 주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으므로 부전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주유를 움직여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킬 요량이었다.
  주유는 그들을 집  안으로 맞아들였다. 오랫만에 만나는  사람들이라 의례적인 
인사를 주고받은 뒤 자리에 앉자 장소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도독께서는 강동의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잘 알고 계시는지요?"
  장소의 물음에 주유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르고 있습니다."
  장소는 주유의 대답에 그를 설복시키려는 듯 힘주어 말했다.
  "지금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한수 일대에 포진하고 있는 조조가 며칠 전 우리
에게 격문을 보내  왔소이다. 주군께 강하에서 만나 함께 사냥이나  하자고 청했
소. 들어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뜻은  우리에게 항복하라는 권고가 아니겠
소? 이에 우리들은 강동을  전란의 재앙에서 구하기 위해 주공께 항복을 권하고 
있는 바이오. 그런데  노자경이 강하에서 데리고 온 유비의 군사  제갈량이 자신
들의 사사로운 원한을 풀기  위한 속셈으로 교묘한 변설로써 주공을 격동시키고 
있소이다. 우리의 힘을  빌려 조조에 대한 원한을 앙갚음하기 위해  강동을 조조
와 싸우도록 권하고 있소이다. 그런데도 자경은  제갈량은 검은 속셈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으니 실로 한심스러운 일이외다. 주공께서는  이 일을 정하지 못하시다
가 도독께 묻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장소가 말을  끝내고 주유를 바라보았다.  주유가 자신의 뜻을  밝혀 주리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유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대신 네  사람을 둘
러본 후 물었다.
  "그렇다면 공들의 의견은 모두 다 같으시오?"
  "그렇습니다. 의논을 해 본 바 네 사람이 모두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한결같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주유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역시 오래  전부터 항복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소.  오늘은 그만 돌아가십시
오."
  주유의 말에 장소  등은 갑자기 얼굴이 밝아졌다. 주유가 자기들과  같은 뜻이
라면 일은 자기들 뜻대로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장소가 감사해하며 물러났다. 
  잠시 후에 또  한 무리의 손님들이 몰려왔다. 정보.황개.한당  등의 장수들이었
다. 각기 인사를 끝내자 정보가 격양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독께서는 우리 강동이 머니않아 남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주유는 장소를 대했을 때와 같은  심정으로 표정 없이 무덤덤한 채 그저 짧게 
대답했다.
  "모르오만은...."
  "우리들은 선군  파로장군께서 창업의 기초를 다질  때부터 수백 차례의 크고 
작은 싸움을 치른  끝에 겨우 이 강동 6군을 거두어들였소.  그런데 지금 주군께
서는 모사들의  말에 현혹되시어 조조에게  투항하려 하니, 실로  한심하고 분한 
일이오. 우리는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결단코 그런 수모를 겪지 않을 것이오. 
바라건대 도독께서 주공께 권하시어 군사를 일으키도록  해 주시오. 우리들은 죽
기로 싸워 욕됨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소."
  정보가 비장한 목소리로 외치듯이 말을 끝냈다.
  "다른 분들의 의견도 다 같으시오?"
  주유는 정보의  격양된 태도에도 아랑곳없이 여전히  그들을 둘러보며 똑같은 
물음을 던질 뿐이었다. 
  "이 목이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맹세코 조조에게는 항복하지 않겠소."
  황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주먹으로 자기의 이마를  두드리며 외쳤다. 
다른 장수들도 한 목소리로 외치며 뜻을 같이했다.
  "우리 모두 차라리 싸워 죽을지언정 항복은 할 수 없소이다."
  "그 말씀 장하시오. 이 주유도 조조에게 투항할 마음은 추호도 없소. 장군들은 
그만 돌아가시오. 이 주유가 주공을 뵙는 대로  장군들의 뜻에 따라 계책을 정해 
보겠소."
  주유는 장소에게 했던 말과  같이 이번에는 장수들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말했
다. 주유가 태연히 그렇게 말하자 장수들은 기뻐하며 물러갔다. 
  주유가 양쪽의 의견에 모두 따르겠다고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하고 난 뒤 쉬고 
있는데 해질녘이 되자 또 한 무리의 손님이 왔다. 감택.여범.주치.제갈근 등의 문
관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중립파였다. 싸워야 하느냐, 항복하여 강동의 평온을 유지하
느냐에 대해 아직 뜻을 정하지 못해 주유를 찾은 것이었다.
  주유가 제갈근을 보고 먼저 물었다.
  "공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오? 공의 계씨 제갈량은 유비의 뜻을 받아 동오와
의 동맹을 도모하여 함께 조조와 싸우자고 설복하려 왔다고 들었소이다만...."
  "저로 말씀드리자면 친동생이 유 예주의 사자로 온 터라 감히 여러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도독께서 오셔서  이 일이 정해지기만을  기다릴 뿐입니
다."
  제갈근의 말에 주유가 다소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의 처지는 헤아릴  수 있소만 형이니, 아우니  하는 것은 사사로운 일이오. 
이번 일은 그런 사사로운 일에 얽매여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제갈량은 이미 유 
예주의 신하이며  공은 동오의 중신이니 사리는  분명하지 않겠소? 그러니 물어 
보겠소. 동오의 신하로서 공이  생각하는 바는 싸우는 데 있소, 아니면 투항하는 
데에 있소?"
  주유가 정색을 하고 묻자 제갈근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더니 이윽고 말문
을 열었다. 
  "투항하면 쉽게 편안함을 구할 수 있으나 싸우면 지키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
겠지요."
  제갈근은 두 가지  의견 중 끝내 어느 한쪽의  의견을 택하지 않은 채 그렇게 
말했다. 주유는 그런 제갈근을 보며 가만히 웃고는 말했다.
  "이 주유도 생각하는 바가 있습니다. 내일  주공을 뵙는 자리에서 함께 의논하
기로 하고 오늘은 그만 돌아가시오."
  주유도 제갈근 일행에게 속마음을 감춘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제갈근 일행이 물러간 뒤 여몽.감녕 등의  젊은 장수들이 찾아왔으며 문관들이 
잇달아 주유를 보러 왔다.  역시 두 가지 의견을 놓고 각기  자기들의 주장을 폈
다. 주유는 앞서 온  일행과 같이 그들의 속마음을 떠보았을 뿐  자신의 뜻을 털
어놓지 않았다.
  밤이 초경에 이르렀을 때 시종이 들어와 주유에게 가만히 전했다.
  "노숙 공께서 제갈량이라는 분과 함께 방문하셨습니다."
  주유도 나직하게 시종에게 일렀다.
  "다른 손님들이 모르게 별채로 모시도록 하라."
  주유는 아직도 시끄럽게 자기들의 주장을 펴고 있는 내방객들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들 하시오. 모든 일은 내일 주공을 모신 자리에서 결정하면 될 것이
오. 다들 돌아가셔서 내일을 위해 푹 주무십시오."
  그들을 내쫓듯 물리친 후 주유는 홀로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주유는 의복을 정갈히 갈아입고  노숙과 공명이 있는 수정으로 발걸음을 옮겼
다.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주인이나 손님이 모두 마음 속으로 궁금하게  여기는 바였다. 주유가 들어서자 
공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고, 주유도 주인의 예로써 첫  대면의 인사를 
나누었다.
  이윽고 노숙이 주유의 흉중을 알기 의해 물었다.
  "지금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남으로 내려오고 있는데,  그들과 화친을 하느냐 
아니면 싸우느냐 하는 두 가지  대책을 놓고 주공께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계
십니다. 장군의 의향을 듣고 뜻을 정할 터인즉 장군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노숙의 물음에 주유가 앞서 문무관원들을 대했을 때와 달리 서슴없이 입을 열
었다.
  "조조가 천자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으니 어찌 그  군사와 맞설 수가 있겠소? 
거기다가 그 군세가  강성하니 가벼이 맞서 싸울 수가 없소이다.  그들과 싸운다
면 패할 것이며 항복하면 편안할 것이오. 내가  이미 뜻을 정했으니 내일 주공을 
뵙고 즉시 사자를 조조에게 보내 항복을 받아들이시도록 권고할 작정이외다."
  주유를 은근히 믿고 있었던 노숙은 뜻밖의  말에 어안이벙벙해질 정도였다. 노
숙은 동오 제일의 호걸로 일컬어지는 주유가 한마디로 항복을 선언하자 문득 화
가 치솟아 언성을 높였다.
  "도독의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무릇  동오의 기업은 파로장군이래 3대째 전해 
오고 있는 터입니다. 어찌 하루 아침에 남에게  내준다는 말입니까? 지난날 백부
께서 돌아가실 때  바깥 일은 장군께 당부하시는 말씀을 남기셨소.  지금 강동의 
모든 사람들이 장군을 하늘처럼  의지하고 나라를 보전하려 하는데 장군께서 그
런 소리를 하실 수가 있다는 말이오? 어찌하여 저 겁쟁이들의 의견을 좇아 동오
를 조조에게 바치려 하십니까?"
  노숙의 격한 목소리를 듣고도 주유의 얼굴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강동 6군의 백성이 얼마나 많소? 이 사람들이 난리통에 해를 입게 되면 그들
의 원망은 나 한 사람에게 쏟아질 것이오.  그러므로 주군께 투항할 것을 권하기
로 마음을 정한 것이외다."
  주유가 자신의 뜻을 주저하지 않고 거듭해 밝히자 노숙도 좀처럼 물러서지 않
았다.
  "그렇지 않소이다. 도독의 무용과 우리 동오의 험준한 지세를 근거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 내면  아무리 조조라 하더라도 결코  가볍게 그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외다."
  노숙이 격한 목소리로  주유를 공박하자 주유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두 사람
이 제 뜻을 주장하니 대화는 차츰 논쟁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설왕설래를 잠자코 지켜 보던  공명은 소매에 손을 넣은 채 차갑게 웃
고 있을 뿐이었다.
  주유가 문득 그런 공명을 보고 언짢은 얼굴로 나무라듯 물었다.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웃고만 계십니까?"
  공명이 여전히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도독을 보고 웃은  게 아니올시다. 자경이 세상 일에 너무 어두워서 그
만 웃음이 나왔소이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아도 격해 있던 노숙이 대뜸 언짢은 낯색이 되며 공명에게 
쏘아붙였다. 
  "아니,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내가 세상 일에 어둡다 하시오?"
  공명이 마땅히 자기 말을 옹호하고 나설 줄로 알고 있던 노숙이었는데 공명의 
엉뚱한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  물음에 대한 공명의 대답은  더욱 기가 
막혔다.
  "공근께서 조조에게 항복하시려 함은 지극히 옳으신 판단이기 때문이외다."
  공명은 주유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자  주유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
구를 쳤다. 
  "과연 공명 선생은 세상사에  정통하시니 필경 나와 뜻이 같으신 줄 알았소이
다."
  주유가 그렇게 말하며 공명을 바라보았다. 항복을  주장하여 공명을 떠보려 했
던 주유였다. 그러나 공명은  주유의 뜻대로 말려들지 않았다. 다만 노숙만이 더
욱 언짢은 얼굴로 공명에게 노기 띤 음성으로 되물었다.
  "공명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이오?"
  공명은 그런 노숙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주유를 보고 말했다. 
  "생각해 보시오. 군사를 부림에 있어 당금 천하에 조조와 견줄 사람이 어디 있
겠소. 지금까지 여포.원소.원술.유표 등이  겁도 없이 그와 맞서 싸웠으나 그들이 
다 조조에 의해 멸망하고  보니 이제 그와 맞설 사람이 없소이다.  다만 우리 유 
예주만이 천하의 대세를 모르고 무턱대고 그와 맞서다가 지금은 그만 강하로 쫓
겨가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입니다. 주 도독께서  투항하기로 뜻을 정하신 것은 
가솔들도 안전하게 지키고 또 부귀도 누리실 수 있는 마지막 방도가 아니겠습니
까?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건 그것은 모두 하늘의 뜻이므로 굳이 애석해할 
것도 없소이다."
  주유가 공명을 떠보려 했으나 어느  새 공명이 주유를 슬쩍 건드려 그의 심사
를 긁고  있었다. 주유가 그런 공명에게  걸려들지 않기 위해 불끈  치솟는 화를 
참고 있었다. 
  다만 노숙만은 공명을 애써 주유에게 이끌어 주었는데 그 목적도 호의도 저버
린 듯한 말에 내심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대는 우리 주공으로 하여금 무릎을 꿇는 욕을 당하게 할 작정인가?"
  노숙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노숙이 드디어  크게 화를 내자 공명은 슬며시 
말머리를 돌렸다.
  "실은 나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소이다. 이 계책이 성사되면 동오의 명예도 그 
존립도 아무런 탈 없이 그대로 보존될 것입니다."
  화를 냈던  노숙이 그 말에는  귀가 솔깃해졌던지 공명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주유도 입을 열지 않았으나 공명을 지켜 보고 있었다. 공명이 말을 이었다. 
  "만약 이 계책대로만 된다면 구태여 양을 잡고 술통을 준비하고 강동 땅과 인
수를 바치려 강을 건너갈  필요가 없소이다. 다만 사자 한 사람을  뽑고 두 사람
을 딸려 배에 태워  조조에게 보내기만 하면 됩니다. 만일 조조한테  이 두 사람
만 보내면 당장 백만 군사의 갑옷과 투구를 벗기고 깃발을 말아든 채 군사를 몰
아 물러갈 것이오."
  노숙이 공명의 말에 다급한 목소리로 계책을 재촉했다.
  "만약 그런 묘책이 있다면 이는 동오로서는 더 바랄 나위 없는 일입니다. 바라
건대 자세히 그 계책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숙의 말에 공명이 가만히 웃었다.
  공명이 노리는 것은 노숙이 아니라 주유였다.  그러자 아까부터 공명의 뒷말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뜸을 들이고 있으므로 참다못해 급히 물었다.
  "그게 누구요? 대체 어떤 사람 둘을 보내면 조조가 군사를 이끌어 물러난다는 
말씀이오?"
  "동오의 여성들은 하늘의 별만큼 많습니다. 이들  중에서 단 두 사람을 보냄은 
마치 큰 나무에서 잎사귀 두 닢을 따는 것이나 곳간에서 좁쌀 두 알을 집어내는 
것과 같소. 그러나 조조로서는 그 두 사람만  얻으면 필시 기뻐하며 돌아갈 것입
니다."
  공명은 주유의 물음에 대한 답을 피한 채  말꼬리만 잇고 있었다. 주유가 다급
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두 여성이라니, 대체 어디에 사는 누구, 누구를 가리키는지 그것을  말해 보시
오."
  공명은 그제서야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다.
  "이 양이 융중에서 한가로이 지내고 있을 때 조조가 장하 강변에 누대를 쌓고 
이를 동작대라 이름지었다는 얘길 들었소. 공사를  시작하여 완공까지 천여 일을 
소비하여 호화로운 누각을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천하의  미녀들을 널리 뽑아 그 
안에 모아들였다 했소."
  공명이 주유의 묻는 말에 명확한 답변은 않고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자 주유
가 더욱 언성을 높여 물었다.
  "선생께서는 그 두 사람이 누구인지만 말해 주시오."
  주유의 말에 노숙도  그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공
명은 여전히 변함 없는 어조로 뒷말을 이었다.
  "조조는 원래 여자를 좋아하는 자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이 말을 꺼낸 뜻은 이
곳 강동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조는 일찍이 강동의 교공이란  이에게 두 
딸이 있는데 큰딸 대교, 작은딸 소교가 모두  고기가 물에 살랑이며 기러기가 앉
은 듯한 자태로 맵시가 뛰어나며 그 용모가 달도 빛을 잃고 꽃이 부끄러워할 만
한 얼굴을 지녔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소.  그리하여 조조는 일찍이 맹세하기를 
'내게 두 가지 바람이 있다면 하나는 사해를 평정하여 제업을 이루는 일이요, 하
나는 강동  교공의 두 딸을 얻어  동작대에서 만년을 더불어 보내는  것이니, 이 
두 가지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죽은들 어찌 한을 남기겠는가' 했다는 것이오. 그
러고 보면 그가 지금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강남을 노려봄은 실은 그 두 여인을 
얻고자 함이 아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비록 천금을 주더라도 그 두 딸을 사서 
사람을 시켜 조조에게 보내시도록 해야 할 것이오.  조조는 그 두 여인만 얻으면 
원래의 뜻을 이룬 셈이니 반드시 군사를 물리칠  것이외다. 이것은 곧 범려가 미
희 서시를 보내서 멸망시킨 계책과 같으니 급히 서두르셔야 할 것이오."
  공명은 말을 마치며 주유를 재촉했다.
  그러나 주유는 공명의 재촉을 가볍게 일축하려는 듯 나직한 어조로 물었다.
  "그것은 흔히 항간에 떠도는 말일 것이오. 조조가 대교.소교를 얻고자 하는 다
른 증거라도 있소?"
  주유가 자기의 말을 미덥지 못하게 여기자 공명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증거가 없는 말을 어찌 함부로 하겠소?"
  "그렇다면 그 증거를 대 보시오."
  "조조의 둘째 아들로 식이 있는데 자를 자건이라 하오. 아비를 닮아 곧잘 시를 
짓더니 이제는  천하의 문장으로 알려지고  있소이다. 조조가 이  아들에게 부를 
하나 짓게 하였는데 '동작대부'라는 그 글귀는 곧 저희 집안이 천자의 집안이 되
는 것과 2교를 데려다가 누대의 꽃으로 삼으리라는 바람을 노래한 것이오."
  "선생은 그 글을 기억하고 계시오?"
  공명의 말에 주유가 다시 물었다.
  " 그 문장이 유려하여 외고 있지요."
  "그럼 어디 한 번 외어 보시오."
  주유가 공명에게 청했다. 공명도 증거를 대야  하는 터이라 목소리를 가다듬고 
'동작대부' 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억양은 느리고 목소리는 맑았다.
  
  영명하신 아버님 모시고
  높은 대에 올라 정취 즐기리라. 
  태부는 눈앞에 활짝 열린 채
  힘없는 성덕으로 차 있네.
  으리으리한 전각을 세웠으니 
  두 대궐은 덩실 높이 솟아 
  중천에 우뚝 버티고 섰는가.
  공중 누각이 서성에 있노라.
  
  장하의 물 길게 흐르는데 
  바라보니 동산의 과일이 영글었구나.
  좌우에 세운 한 쌍의 누대 
  옥룡과 금봉이로다.
  이교를 데려다 동과 남에 두고
  아침 저녁으로 함께 즐겨 보리라.
  임금 계신 장려한 도읍 굽어보니
  구름과 안개 속에 아련히 떠 있노라.
  
  천하의 인재들이 한데 모였으니
  어찌 비웅의 길한 꿈이 없을소냐.
  화창한 봄바람을 우러름이여
  뭇 새들이 쉼 없이 지저귀도다
  하늘의 크마큰 조화를 빌어
  기운이 더 힘차게 뻗치려는가.
  온 세상이 인화를 펴고 보니 
  모두가 도읍을 향해 공경하고 우러르네.
  
  제 환공과 진 문공의 패업은 
  어찌 성명에 미칠까 보냐.
  좋구나! 아름답구나!
  은혜를 멀리 드날리는도다.
  우리 황실을 경건히 모시어
  이 천하 어디나 화평하네.
  천지의 법도와 함께하니
  해와 달의 광명과 다름없네.

  존귀하사 끝없음이여
  길이길이 장수하리, 우리 임금님.
  용기를 휘날리며 
  난가에 올라 두루 노니시네.
  그 은혜 널리 사해에 미치고 
  만백성 태평성대 누리네.
  원하노니, 동작대여 길이 견고하여 
  그 낙이 영원하리라.
  
  원래 조식이 지은 '동작대부'는 '두  다리를 동.서쪽에 이어 놓았음이여'의 이교
를 음이 같음을 이용하여 공명이 교씨의 '두 딸 이교를 동남에서 데려와서'로 슬
며시 바꾸어 읊은 것이었다. 뒷 연의  '아침저녁으로 함께 즐기리'는 공명이 원문
에도 없는 구절을 그럴싸하게 바꾸어 넣은 것이었다.
  공명이 동작대부를 다 읊자, 돌연 탁자  밑에서 '쨍그렁'하고 그릇이 깨지는 소
리가 들렸다. 주유가 손에  들었던 술잔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유
의 머리털은 알알이 곤두서고 얼굴은 마치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공명이 주유를 슬며시 보고 있자 그는 술기운이 감도는 얼굴에 노기를 띠우고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외쳤다.
  "그 교활한 역적놈이 나를 너무 욕뵈는구나!"
  공명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으나 짐짓 놀란 체하며 일어나더니 주유를 달
랬다.
  "지난날 흉노의 세력이 성하였을 때 곧잘 중원 천지를 침노하여 당시 한의 천
자도 시달림을 받았던 때가 있었소이다. 천자께서는  눈물을 머금고 사랑하는 공
주를 오랑캐의 우두머리에게 시집을 보내 화친을  맺었소. 또한 원제가 왕소군을 
오랑캐 땅에  보냈던 예도 있소. 그런데  장군은 어찌하여 한낱 백성의  두 딸을 
잃는 것을 그토록 애석히 여기십니까?"
  공명이 시치미를 떼고 달래는 말에 주유는 더욱 화가 나 소리쳤다.
  "선생은 몰라서 하는 말이오!"
  "무엇을 모른다는 말이오?"
  "교공의 두 딸 중 대교는 바로 돌아가신 손백부의 부인이시고 소교는 바로 나
의 아내이외다."
  공명이 크게 놀라는 척하며 사죄했다.
  "이 양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어 함부로 말씀을 드렸으니 참으로 송구합니
다. 용서하십시오."
  공명이 교공의 두 딸이 손책과 주유의 부인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
러나 주유도 손권처럼  격분시켜 화를 돋우기 위해 모른 척했을  뿐이었다. 공명
이 거듭 황공해하며 사죄하자 주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터라 공명의 속셈
을 헤아릴 만큼 냉철하지 못했다. 다만 소리쳐 맹세할 뿐이었다.
  "이 주유는 그 늙은 역적놈과는  맹세코 같은 하늘 아래서 숨을 쉬지 않을 것
이오!"
  공명은 노기가 뻗친 주유를 부추기는 대신 다시 달랬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일이란 모름지기 세 번은 생각해 본 후에야 행하라고 하
였소.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시려거든 다시 한 번 헤아리시오."
  이미 격앙된 주유였다. 공명은 함께 조조를  치자고 섣불리 부추겼다가 공연히 
속셈만 드러나는 결과만  될 뿐인지라 마음에도 없는 빈말을 하고  있었다. 주유
는 공명이 달래자 치솟은 화를 가누지 못한 채 말했다.
  "아니외다. 세 번은  커녕 오늘 종일토록 싸워야 하느냐, 아니냐로  심사숙고해 
왔소. 내가 손백부 장군이 세상을 떠나실 때에  내게 이르신 당부를 명심하고 있
는 터에 어찌 몸을 굽혀 조조에게 투항하겠소? 아까 항복을 주장한 것은 여럿의 
속마음을 떠보기 위한  것이었소. 나는 이미 파양호를 떠날 때부터  이미 조조와 
맞서기로 마음을 정하고 있었소. 비록 내 머리에  도끼가 떨어진다 해도 이 마음
을 굽히지 않을 것이오. 바라건대 선생께서는 나를  도와 함께 역적 조조를 물리
쳐 주도록 하오."
  주유가 노기에 들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공명도  정색을 하며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저를 버리시지 않는다면 미려하나마 제 모든 노고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언제
든지 장군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러나  손 장군을 비롯하여  중신들의 반대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공명이 염려하고 있던 바를 슬며시 주유에게  물었다. 그러자 주유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내일 주군을 뵙고 즉시 군사를 일으키도록 하겠소."
  주유가 힘찬 어조로 이렇게 다짐하자 공명은 노숙과 함께 각기 자기의 처소로 
물러났다. 
  이튿날 이른 아침이 되자  시상성의 크고 넓은 전각에는 문무관원들이 도열하
여 손권이 당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왼편으로는 장소.고옹 등의 문관 30
여 명이, 오른쪽에는 정보.황개 등 무관 30여 명이 늘어서 있었다.
  모두들 의관을 바로 하고 허리에  칼을 차고 잔뜩 긴장한 얼굴로 정렬해 있는
데 이윽고 손권이  나와 당상에 올았다. 손권과 문무관원들은 주유가  들기를 기
다리고 있었다. 오래잖아 주유가 늠름한 모습으로  전각안으로 들어와 먼저 손권
에게 예를 올린 후 유유히 자리에 앉았다.  손권이 주유에게 위로의 말을 끝내자 
주유가 먼저 입을 열었다.
  "듣자하니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한수 상류에 주둔하고 우리에게 격문을  보냈
다고 하는데, 주공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주유가 이렇게  묻자 손권은 대답하기에  앞서 격문부터 보여  주었다. 주유는 
격문을 다 읽고 난 후 가소롭다는 듯 웃더니 흔쾌히 말했다.
  "그 늙은 도적은  우리 강동에는 사람이 없다는  듯이 감히 이따위 글을 보내 
욕을 뵈려 한단 말입니까?"
  "장군의 생각은 어떠하오?"
  주유가 격문을 보고  노기를 띠자 주유의 생각이  궁금한 터라 손권이 도리어 
주유를 재촉하며 물었다.
  "대답을 올리기 전에 묻고 싶습니다. 주군께서는 그 동안 여러 관원들과 이 일
을 의논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화전 양론으로 갈리어 아직 결정을 보지 못하였소. 그 때문에 장군의 뜻을 물
어 이 일을 정하려는 것이오."
  "주공께 투항을 권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장자포를 비롯하여 그 열에 있는 사람들이오."
  "바라건대 장 공께서는 항복을 주장하게 된 까닭을 말씀해 주시오."
  주유는 전날 장소의 뜻을 들어 알고 있었으나  다시 물었다. 장소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다시  자기의 생각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장소가 압을 열었
다.
  "조조가 천자를  업고 사방을 정복하면서 걸핏하면  조정의 이름을 내 세우고 
있습니다. 근자에는 또 형주를 얻어 그 위세가 더욱 커졌습니다. 우리 강동이 조
조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장강을  의지할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형주까
지 취하게 되어 그 장강조차 일부는 조조가 차지하고 있으며 전선 또한 천 척이 
넘게 그의 수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만약 물과 뭍으로 일제히  밀고 내려
오는 날에는 우리가 어찌 그들을 당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일단 항복하
여 싸움을 피한 다음 달리 계책을 세우자는 뜻입니다."
  장소의 말을 듣고 난 주유가 차디찬 얼굴로 반박했다.
  "그것은 책장이나 넘기면서  세상을 보는 선비들의 생각에  지나지 않소. 우리 
강동의 기업이 이미  3대에 이르렀소. 이찌 하루 아침에 이  강동을 남에게 준다
는 말이오?"
  장소로서는 주유의  말이 전날과는 너무나  딴판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유의 꾸짖음에 가까운 반박에 장소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항복
을 주장하던 문관들도 주유의 기세에 눌려 장소를 거들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떤 계책을 쓰면 좋겠소?"
  이때 손권이 주유에게  물었다.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주유의 생각을  아직 말
하지 않고 있어 다시 한 번 대답을 재촉한 것이었다.
  손권이 그같이 재촉하자 주유가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조조가 한실의 승상이라고 하나 실은 역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주
군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주군께서는 출중하신 무예와  뛰어나신 용병를 갖추고 
계시며 부형께서 이루어 주신 기업을 계승하셨습니다.  또한 군사는 용맹하고 양
곡도 넉넉하며 지켜 내기에 좋은 천혜의 요해가  있습니다. 그러니 한 번 천하를 
호령하여 이 동오를 위해 저  잔폭한 무리를 쓸어 버리지 않고 어찌하여 도리어 
도적에게 항복하시려 합니까?  뿐만 아닙니다. 조조가 지금 대군을  이끌고 왔다
고는 하나 여러 가지 병가에서  피해야 하는 일들을 범하고 있으니 군사를 움직
이는 데 큰 결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 무엇이오? 자세히 말해 보오."
  손권이 주유의 말을 듣고 있다가 말을 막더니 물었다.
  "그 첫째가 아직 북쪽은 온전히 평정되지 않아 마등과 한수가 뒤를 노리고 있
는데도 남쪽을 치고  있다는 것이요. 둘째는 북쪽 군사는 물에서의  싸움이 서툰
데 말과 안장을 버리고 배를 타고 우리  동오와 싸우려 함입니다. 뭍에서만 싸워 
온 장수와 군사들이 어찌 강물 위의 군사를 지휘하며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셋
째는 지금은 추위가 한창인 겨울이라 군사를 움직여 군마를 먹이고 재우기 위한 
풀리 없습니다. 또한  중원의 군사들을 먼 강호로 이끌었으니 물과  기후 풍토가 
맞지 않아  지쳐 있거나 질병에 걸린  자들이 많음이 그 네  번째입니다. 조조는 
이토록 군사를 부림에 있어 피해야  할 네 가지를 어기고 있으니 그 위태로움은 
바위 위에 떨어지는 새알과 같습니다. 비록 거느린  군사가 많다 하나 반드시 패
할 것이니 주공께서  조조를 사로잡을 기회는 바로 지금입니다. 이  주유에게 정
병 수천을 주신다면 하구로 나아가 조조를 깨뜨리겠습니다."
  불길이 타오르듯한 주유의 기상이었다. 물 흐르듯이  흘러 나오는 주유의 말에 
좌중은 숨죽여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손권이 결연한  얼굴로 자
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도독의 말은 참으로 장하오. 그 늙은 도적은 오래 전부터 한실을 폐하고 스스
로 천자의 자리에 오르려고  했었소. 그러나 원소.원술.여포.유표 그리고 나를 두
려워하였소. 지금 다른 영웅들은  이미 세상을 뜨고 오직 나 손권  한 사람만 남
아 있을 뿐이니, 이 몸은 맹세코 그 늙은  도적과는 이 세상에서 함께 살기를 바
라지 않을 것이오. 방금 경이 한 말은 바로 나의 뜻이오. 경은 하늘이 나에게 내
리신 사람이오."
  "신은 주공을 위해 만 번을 죽더라도  조조와 결전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다
만 주공께서 이제 정한 뜻이 흔들릴까 두려울 따름입니다."
  주유가 다짐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손권에게 말했다. 그 말에 손권은  차고 있
던 보검을 빼들어 앞에 놓인 탁자 한 모서리를 내리쳐 두 조각을 낸 후 외쳤다.
  "두 번 다시 조조에게 항복이니 화친을 주장하는 자가 있으면 이 탁자처럼 베
리라!"
  손권은 자신의 매서운 뜻을 보인 후 그 보검을 주유에게 내렸다.
  손권은 그 자리에서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고  정보를 부도독으로, 노숙을 찬군
교위로 삼은 후 엄명을 내렸다.
  "만약 문무관원들 중 명을 어기는 자는 이 칼로 참하라!"
  손권의 명을 받은  주유는 보검을 받아들고 몸을  돌려 여러 문무관원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불초 주유가  주공의 명을 받들어 군사를 내어 조조를  칠 것이오. 모든 
장수와 관리들은 내일 아침 강가의 진영으로 나와 나의  영을 따르도록 하라! 만
약 시각을 어기거나  오지 않는 자가 있으면  7금령에 의해 54참의 벌을 내리리
라!"
  여러 장수들과  문관들은 주유의 명을  받고 돌아갔다. 주유도  손권에게 절을 
올린 후 부중에서 물러났다.
  주유는 거처로 돌아오자  즉시 공명을 청하여 들인  뒤 오늘 부중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 주며 앞일을 의논했다.
  "오늘 이미 결정은 보았으니  바라건대 이제는 조조를 무찌를 좋은 계책을 들
려 주시오."
  주유의 말을 듣고 난 공명은 엉뚱한 말을 했다.
  "손 장군께선 아직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으니 아직 계책을 정할 때가 아니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주유가 공명의 뜻밖의 말에 놀라 물었다.
  "손 장군께서는 조조가 군사가 많은 것을  근심하고 계실 것이오. 그러니 장군
께서 손 장군에게 잘 말씀드려 의심을 풀어  주도록 하시오. 그런뒤에야 큰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공명의 말에 주유는  의아심을 감추지 못했다. 공명이 손권의 마음  속을 꿰뚫
어 본 듯이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나라의 존망이 걸린 중대사이니 
손권의 마음이 한 가지로 편치 않을 수 있다고 헤아린 주유는 그 길로 부중으로 
들었다. 과연 손권은 아직 잠자리에도 들지 않고 있었다.
  "공근이 이 밤중에 찾아온 걸 보니 필시  무슨 연고가 있겠구려. 그래 무슨 일
이오?"
  "내일 출전의 군마를  내려 하는데 다시 한  번 주공의 결심이 변함이 없는지 
두렵습니다. 주공께선 혹시 아직도 의심을 품고 계시지 않습니까?"
  주유가 넌지시 묻자 손권이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실은 근심이 없는 바도 아니오. 워낙 조조의 군사가 많으니 과연 우리의 적은 
군사로 능히 대적할 수 있을까 그것이 근심이 되오."
  '실로 공명 그 자는 놀라운 인물이로구나!'
  주유가 손권의 말을 듣고 나자 얼른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공명의 말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는가? 주유는 손권에게는 내색하지 않
은 채 짐짓 여유 있게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제가 이 밤중에 주공을 뵈러 온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조조는 격문에 물
과 뭍의 군사가 백만이라 했으나 그 수효에는 허실이 있습니다."
  "그렇소. 나도 다소의 허실이 있다고 여기고  있으나 그래도 우리 동오와는 차
이가 너무 크오."
  손권은 아무래도 동오의 군사가 너무 작은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제가 헤아리건대 조조가  중원에서 거느리고 온 군사는 15,  6만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후에 원씨에게 얻은 군사가 7, 8만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태반은 아
직도 마음 속으로는  조조를 따르지 않는 군사들입니다. 무릇 먼길을  오느라 지
쳐 있는 군사나 속으로 의혹을  품고 있는 군사들은 그 수효가 많아도 두려워할 
바가 못 됩니다."
  "유표 휘하에 있던 형주의 군사도 적지 않게 가담하고 있지 않소?"
  "형주의 군사도 조조를 따른 지  얼마 되지 않고 조조 또한 그 군사나 장수들
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조조가 중요한 싸움에  그들을 선봉으로 쓰지 않을 것이
며 형주의 군사들도 조조를 겉으로만 따르는 체할  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조조
의 군세는 크게  잡아 20만에서 30만입니다. 그러나 우리 동오의  군사와는 비교
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게 군사 5만만  주신다면 능히 조조군을 깨뜨릴 수 있
으니 바라건대 주공께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자신에 넘친 주유의 힘찬 목소리였다. 주유는  실제보다는 군사의 수효를 줄여
서 말하며 그  허실을 들어 손권을 안심시켰다. 손권은 얼굴이  밝아지더니 주유
의 등을 쓸어 주며 말했다.
  "공근의 말을 들으니 이제야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구려. 자포가 밝게 헤아리
지 못하여  나를 크게 실망케 하더니  자경과 장군만이 내 마음을  알아 주었소. 
장군은 즉시 자경.정보와 함께 군사를 내어 먼저 떠나 주오. 나도 장군을 뒤따라 
군마와 양곡을  마련하여 장군의 뒤를  든든하게 받치겠소. 장군이  나가 싸우다 
뜻대로 되지 않거든 곧 나에게 알리시오. 그러면  내 몸소 나아가 조조와 결전을 
벌일 것이오. 이제 다시는 주저함이 없을 것이오."
  손권의 다짐을 받은데다 군사를  지휘하는 작전까지 듣게 되자 주유는 손권에
게 감사하며 부중을 빠져 나왔다. 거처를 향해  가는 동안 주유는 공명을 생각하
자 가슴이 무거웠다.
  '공명이란 자는 주공을  가까이서 모시고 있는 나 이상으로  주공의 심중을 꿰
뚫어보고 있다. 심중을 거울보듯 한다는 말은 곧 그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주유가 공명에 대해 감탄을 하다 보니 은근히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그냥 두었다가는 뒷날 동오의 화근이  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죽여 뒷날의 걱
정거리를 없애야 되겠다.'
  주유는 이렇게 생각하고 처소로 돌아오자 곧 사람을 보내 노숙을 불러 오게했
다. 노숙이 방장안으로  들자 주유는 공명을 죽여야 한다며 노숙의  의견을 물었
다. 그러자 노숙이 펄쩍 뛰며 말렸다.
  "그래서는 아니 되오. 아직 조조를 치기도 전에 먼저 어진 선비를 죽인다면 우
리를 도와 줄 사람을 스스로 없애 버리는 것밖에 안 되오."
  "그러나 공명은 유비를 돕고 있으니 필경 뒷날 우리 강동의 큰 우환거리가 될 
것이오."
  주유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노숙이 잠시 생각에 잠기다 주유에게  방책을 내
며 달랬다.
  "제갈근이 바로 그의 친형이오. 그에게 공명을  달래 형제가 함께 동오를 섬기
게 한다면 이는 해로움을 이로움으로 바꾸는 일이 될 것이오."
  주유가 그 말을 들으니 그럴 듯했다. 노숙의  말대로 된다면 동오에 천하의 어
진 선비 한 사람을 얻는 격이니 그를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실로 묘안이오."
  주유는 머리를 끄덕였다. 다음 날 아침, 장강의 물은 새벽 바람에 일렁이며 강
변에서 하얗게 부서지고  아침 햇살은 갑옷과 투구에 부딪혀 눈이  부셨다. 이윽
고 우렁찬  북 소리가 나며 대도독  주유가 나타났다. 천천히 말에서  내린 그는 
중군장에 높이 올라앉았다.
  그의 좌우로는 칼과  도끼를 든 군사들이 늘어서고  모든 문관과 무장들이 그 
앞에 도열했다. 다만 한 사람 정보만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정보는 주유보다 나
이가 한결 위였으며,  손권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아버지 손견을  섬긴 숙장이
었다. 동오가  그 기업을 다질 때부터  손씨를 섬긴 창업 공신인데다  세운 공도 
주유보다 많았다. 
  그런데도 이번에 주유가 높은 벼슬에 오르고 자신은 그 휘하에서 명을 받드는 
처지가 되자, 병을 핑계로 맏아들 정자를 대신 내보냈다.
  이윽고 주유는 중군반이며 사령기에 에워싸인 장대에 올라서서 여러 장수들에
게 훈령을 내렸다.
  "왕법에는 추호도 사사로움이 없으니 여러 장수는 각기 자기의 직분을 다하라. 
지금 조조는  조정의 권세를 빼앗아  희롱함이 지난날의 동탁을  능가하고 있다. 
그는 천자를 허창에  가두어 놓고 군사를 우리의 경계선까지 이끌어  왔다. 이제 
주공의 명으로 그를 토벌코자 하니 여러분도 모두  있는 힘을 다해 나아가라. 우
리 대군이 나아감에 있어  죄 없는 백성들을 괴롭히지 말 것이며,  공 있는 자에
게는 상을 내리고, 죄  지은 자는 벌을 주되 군령을 지킴에  추호도 어긋남이 없
도록 하라!"
  여러 장수들에게 영을 내린 주유는 한당.황개를 전부 선봉으로 삼았다. 
  "두 장수는 즉시 전선을 거느려 출진토록 하되,  삼강 어귀로 가 채를 내린 다
음 명을 기다리도록 하라."
  주유는 한당.황개에게 이렇게 명을 내린 뒤 장수들의 배치를 정했다.
  "장흠과 주태는 제2대를,  능통과 반장은 제3대를 이끌도록 하라. 그리고  태사
자.여몽은 제4대, 육손과 동습은 제5대, 여범.주치는 사방순경사의 임무를 맡도록 
하라."
  주유는 6대로 군사를 편성한 뒤 군사를 재촉해 물과 뭍으로 함께 나아가게 했
다. 군사의 부서, 배진이 끝나자 모든 장수들은 각기 전선과 병기를 수습하여 출
진하니 그 기세가 사뭇 하늘을 찌를 듯했다.  군사들이 출진하자 아비 대신 나아
갔던 정자는 집으로 돌아가 정보에게 말했다.
  "오늘 보니 주유가 군사를 부림에 있어 법도가 뚜렷하여 한 치의 어긋남이 없
었습니다."
  아들로부터 자세히 말을 전해 들은 정보가 감탄하며 말했다.
  "나는 본래 주랑이 나약하니 장수감이 되지  못한다고 가볍게 여겨 왔다. 지금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실로 빼어난 대장감이로구나.  그렇다면 내가 어찌 그의 명
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느냐?"
  정보는 그 길로  군영으로 나가 주유에게 죄를 빌었다. 주유는  정보가 찾아와 
죄를 빌자 오히려 겸허한 태도로 그를 대할 뿐 그 죄를 묻지 않았다.

  주유의 책략
  삼강구에 이는 핏빛 물보라

  배진을 끝낸 뒤 주유는 조조의 양도를 끊는다는 명분하에 공명을 보내 죽이려 
하나 실패한다. 한편  유비는 주유의 초청으로 동오의 진중을 찾고  주유는 이미 
유비를 죽일 계책을 꾸며 놓는다.
  
  다음 날 주유는 공명을 동오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의 형 제갈근을 불렀다. 제
갈근이 나타나자 주유가 간곡한 어조로 청했다.
  "선생의 아우 공명은 능히 임금을 보좌할 만한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어찌하여 
유비 같은 자를 섬기는지 알 수가 없소. 지금  공명이 우리 강동에 와 있으니 수
고스럽지만 선생께서 아우를 달래  유비를 버리고 우리 주공을 섬기게 하시었으
면 하오. 그러면 우리 주공께서는 어진 선비를 한  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선생 
또한 형제분이 함께 있게 되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소? 부디 한 번 다녀와 
주시오."
  주유의 말에 제갈근이 쾌히 승낙했다. 제갈근으로서는  아우 제갈량과 함께 있
는 것을 거절할 까닭이 없었다.
  "제가 이곳 강동으로 온 이래  한 치의 공도 세우지 못해 부끄럽기 짝이 없었
습니다. 이제 도독께서 그런 분부를 하시니 어찌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제갈근은 그 길로 말에 올라 역관으로 공명을 찾아갔다.
  "어서 오십시오, 형님. 며칠  전 성 안에서는 사사로운 정을 나눌 장소가 아니
어 이 아우도 안타까운 마음 달래지 못했습니다."
  공명은 형 제갈근의 손을 잡고 맞아들였다. 공명은  울며 절한 후 그립던 정을 
되살리며 육친의 정을  나누었다. 제갈근도 눈물을 글썽이며 잠시 말을  잊고 있
었으나 이윽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입을 열었다. 
  "너는 백이.숙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공명은 형의 느닷없는 물음에  의아롭게 여겼으나 동시에 마음에 짚이는 것이 
있었다.
  '필시 주유가 형님을 시켜 나를 달래 보려 하는구나!'
  공명은 이렇게 짐작하고 짐짓 시치미를 떼며 대답했다.
  "백이.숙제야 옛날의 어진 선비들이지요."
  "그렇지. 백이.숙제 형제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을지언정 죽을 때까지 헤어지
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너와 나는 피를  나눈 형제이면서도 각기 다른 주인을 
섬기고 있으니 아침 저녁으로  만날 수도 없구나. 그러니 백이.숙제를 생각할 때 
실로 부끄러울 뿐이구나."
  제갈근이 이렇게 말하자 이미 형의 속마음을 헤아리고 있는 공명이 고개를 가
로저으며 말했다.
  "형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인도의 의이며 또한 정입니다.  그러나 의와 정이 
인륜의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은 이 아우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충과 효
입니다."
  "본디 충.효.의 중에 하나가 빠져도 참다운 길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형제가 
일체가 되어 화목하는 것이 바로 효이며 충절의 근본이 아니겠느냐?"
  "아닙니다, 형님과 저는  다 같은 한조의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섬기
고 있는 유  예주는 중산정왕의 후예로 경제의 현손이십니다. 만일  형님께서 동
오를 떠나 저와  함께 유 황숙을 섬기신다면  위로는 한실의 신하로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아래로는 형제가 함께하니  돌아가신 부모님도 기뻐하실 것
입니다. 그야말로 세 가지 도리를 다 지키는 길이 되지 않겠습니까?"
  "...."
  "부디 끄트머리의 작은 의에 사로잡히지 마시고 대의로 돌아오십시오. 뒷날 조
정의 역적을 물리치고  유 황숙으로 하여금 한실을 수호하게 하여,  우리 형제가 
함께 고향의 선영을 벌초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갈근은 얼른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자기가  하려던 말을 아우가 먼저 말
하니 어찌  그를 달래겠는가. 제갈근은  공명을 달래려던 마음을  돌려 자리에서 
일어나 아우와 작별했다.
  제갈근은 주유에게 가 공명의 말을 전하자 주유는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공도 언젠가는 아우와 함께 유비에게로 갈 생각이오?"
  "당치도 않습니다. 이미  주공의 은혜를 두텁게 입었습니다. 어찌 주공을  저버
릴 수가 있겠습니까?"
  제갈근의 말에 주유는 부드러운 얼굴이 되며 말했다.
  "공이 충의로써 주공을 섬기시니 달리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겠소. 내가 공명
을 굴복시켜 동오로 오도록 할 것이니 두고 보십시오."
  주유가 웃으며 말했으나 마음  속으로는 다시 공명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있었
다.
  다음 날, 모든  장수와 군사들을 점고한 주유는 부중으로 들어가  손권에게 출
진을 알리는 인사를 올렸다.
  "공이 먼저 떠나시오. 나도 곧 군사를 이끌고 뒤따를 것이오."
  손권이 주유를 격려하며 말했다.
  주유는 부중을 물러나와 정보.노숙과 함께 군사를 거느려 출진했다. 그러다 문
득 공명을 불러 함께 가기를 청했다. 공명은  주유의 청을 흔쾌히 받아들여 그들
과 함께 배에 올랐다.
  돛을 올린 배들은  열을 지어 하구를 향해  출발했다. 삼강어귀에서 5, 60리를 
가자 배들은 차례로 닻을 내렸다.
  주유는 언덕 위의 서쪽 산을 의지하여 가운데에 진채를 세운 뒤 그 주위를 빙 
둘러 군사를 주둔시켰다.
  주유는 일체의 배진을 마치자 사람을 보내 공명을  불러 오게 했다. 공명이 장
막에 이르자 주유가 앞일을 의논했다.
  "지난날 조조의  군사는 적었는데도 군사가 많은  원소를 깨뜨린 것은 허유가 
낸 계책을 써  오소로부터 오는 원소의 군량을 끊었기 때문이었소.  지금 조조의 
군사는 83만이오. 우리의 군사는  겨우 5, 6만에 지나지 않으니 정면으로 맞선다
면 도저히 당해 내지를  못할 것이오. 역시 먼저 조조의 양도를  끊지 않고는 이
길 수가 없겠소. 내가  세작을 풀어 염탐한 바에 의하면 조조의  군량은 모두 취
철산에 쌓여  있다고 합디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선생께서는 한수 부근에 
오래 계셨으니 그곳 지리에 밝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관우.장비.자룡을 
데리고 취철산을 급습하여 조조의 양도를 끊어  주십시오. 내가 군사 1천을 내어 
선생을 돕겠소. 이는 나나  선생이나 모두 그 주인을 위하는 일이  될 것이니 선
생은 부디 물리치지 마십시오."
  공명은 주유가 자기를 취철산으로 보내려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형을 시켜 나를 달래려다가 되지 않으니 적군의  손을 빌려 나를 해치려는 속
셈이로구나. 가지 않겠다고 하면 비웃음을 살 테니  우선 가겠다고 해 두고 그에 
대한 계책을 세우자.'
  공명은 쾌히 승낙하고 돌아갔다. 공명이 선뜻  승낙하고 돌아가자 주유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있는데 노숙이 슬며시 물었다. 
  "장군께서는 왜 하필 공명을  시켜 취철산으로 보내 조조의 양초를 급습게 한 
것입니까?"
  주유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실은 내가 직접  공명을 죽일까 했으나 남이  손가락질할까 두려웠소. 그런데 
이제 조조의 손을 빌어서 그를 죽여 후환을 없애려는 것뿐이오."
  주유의 말을 듣고  노숙이 물러나왔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공명  같은 어진 
선비를 죽이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노숙은  공명이 주유의 계략을 짐작
하고 있는지, 아닌지가 궁금했다.  노숙이 공명의 속마음을 엿보기 위해 그를 찾
아가 보았다. 그러나  공명은 주유의 속셈을 헤아리지 못한 듯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 없이 군사와 말을 수습하며 출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노숙은 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슬며시 언질을 주었다.
  "선생은 이번에 꼭 공을 세울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공명은 노숙의 물음에 빙그레 웃으며 큰소리쳤다.
  "자랑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이 공명은 수전.보전.마전.거전에 대해  그 묘리를 
터득하지 않은 것이 없소. 어찌 미리 패할 것을 두려워하며 싸움에 나서겠소."
  노숙이 공명 자신을 염려하여  물었으나 뜻밖에도 큰소리만을 치자 핀잔을 주
었다.
  "그러나 상대는 꾀가 많기로 이름난 조조요. 전군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양초를 
저장한 곳을 조조가 소홀히 방비하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도 얼마 되지 않는 병
력으로 그들과 맞서겠다는 말이오?"
  "그러나 나는 강동의 공이나 주 도독처럼 한 가지 싸움에만 능한 사람이 아니
오."
  공명의 지나친 큰소리와 자기들을 가볍게 여기는 것에 화가 난 노숙이 목소리
를 높이며 물었다.
  "어째서 나와 공근이 한 가지 싸움에만 능하다 하시오?"
  "내가 이곳에 온 후로 강남  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
소. 즉 '험한 곳에 매복하여 관을 지키는  것은 자경이 뛰어나며, 강에서 배 띄워 
수전하는 데는 주랑만한 이가 없네' 라는 노래였소. 그러니 공은 뭍에서 복병 부
리기에나 능할 뿐이며 공근은 오직 물에서 하는 싸움만 알 뿐 뭍에서 싸우는 법
을 모른다는 말이 아니오?"
  "선생답지 않은 호언장담이시오.  이 노숙이야 원래 재주가  없으나 주 도독이 
반쪽 재능만 가졌다는 말씀은 지나친 것이오."
  공명의 말에 노숙은 불끈하여 쏘아붙였다. 공명은  여전히 빙그레 웃으며 말했
다. 
  "허허, 당장 눈앞에 벌어진  사태를 보면 아실 게 아니오. 이 공명에게 군사  1
천 명을 주고는 취철산의 양곡을  끊을 수 있다고 여기시니 그것 자체가 뭍에서
의 싸움에 어둡다는 증거가 아니겠소? 만약 내가 오늘 밤에 싸우다 죽는다면 주 
도독이 어리석은 장수라는 소문이 일시에 천하에 퍼질 것이오."
  노숙이 할 말을 잃고 그곳을 물러나 공명의 말을 주유에게 전했다.
  노숙에게 한 말이 공명의 계교였음을 주유가 알  리 없었다. 주유는 노숙의 말
을 듣자마자 불끈 화부터 냈다.
  "어째서 나더러 뭍에서는 싸울 줄을  모른다고 업신여긴단 말인가? 알았소. 다
시 공명에게  가시어 그의 출진을 중지시키시오.  내가 몸소 마군  1만을 이끌고 
취철산에 가서 조조의 양곡을 불태워 버리겠소."
  주유가 노기를 감추지 못한 채 이렇게 말하자 노숙이 공명에게 다시 가 그 말
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이 한동안 껄껄 웃더니 말했다.
  "공근이 나를 취철산으로 보내려  한 것은 양곡 나르는 길을 끊기 위함이라고 
하나 실은  조조의 손을 빌어 나를  해치려는 것이었소. 그리하여 짐짓  내가 몇 
마디 우스갯소리를 해 본 것인데 공근이  그처럼 노여워하시는군요. 지금은 조조
와의 결전을 앞두고 있는 때인 만큼 동오와 우리 유 예주가 한마음 한몸이 되어 
싸워야 할 때요. 우리가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서로 해친다면 반드시 일을 그
르치고 말  것이외다. 조조가 어떤 사람이오?  그는 꾀가 많아  싸움터에서 항상 
남의 곡식 나르는 길을 끊어왔던  자가 아니오? 그런 그가 어찌 자기 군량을 저
장해 둔 곳을  허술히 방비할 것이오? 공근이 가면  반드시 사로잡히고 말 것이
오. 그보다는 수전으로 적의 예봉을 꺾은 후에  따로 계책을 세워 조조군을 깨뜨
려야 할 것이오."
  노숙은 그제서야 공명이  이미 주유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노숙이 화가 나는 가운데도 감탄을  금치 못한 채 다시 주유에게 달려가 공명의 
말을 전했다. 주유도 지금까지 공명이 자기를 놀린  줄 알자 화가 치솟아 머리를 
흔들고 발을 구르며 말했다.
  "아아, 그의 식견이 나보다  열 배나 많구나. 지금 없애 버리지 않았다가는 반
드시 우리 동오의 후환이 될 것이오."
  노숙이 그런 주유를 좋은 말로 달랬다.
  "지금은 나라를 앞세워 사람을 써야 할 때입니다. 우선 급한 일은 조조를 깨뜨
리는 일입니다. 공명을  죽이는 일은 그 이후에 도모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입니
다."
  주유도 분한 마음에 그렇게 소리쳤으나 노숙의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강하에 머물고  있는 유비는 유기에게 강하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여러 
장수와 군사를 거느린 채 하구로 향해 길을  떠났다. 강변을 따라 길을 재촉하고 
있는데 며칠 전에 하구로 보냈던 척후가 달려와 알렸다.
  "동오는 마침내 조조와 싸우기로 결정한 듯합니다. 수천 척의 전선이 뱃머리를 
나란히 하여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북쪽 기슭의 형세를 살피니, 조조
의 대군이 강릉.형주  지방에서 물과 뭍으로 군사를 움직여 남쪽으로  향하고 있
습니다."
  유비는 이 말을 듣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군사의 계책이 성공했구나!"
  유비는 즉시 여러 장수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동오는 이미 군사를 일으켰는데도 군사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누가 강
을 내려가 동오의 출진을 격려할 겸 군사의 안부를 알아 올 수 없겠는가?"
  유비의 말에 미축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미축은 원래부터 언변에  재능이 있으며, 임기응변의 지혜가  남다른 인물이었
다. 그는 산동의  한 고을에서 태어났는데 집안은 담성에서 제일  가는 호상이었
다. 지금은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유비가  군사를 일으켰던 그 시절, 광릉에
서 병력과 군자금이  모자라 곤경에 처해 있을 때였다. 장사치의  아들인 미축이 
유비의 인품과 그 장래를  내다보고 막대한 군자금을 거리낌없이 바쳤으며 지난
번 조조에게  쫓길 때 우물에 몸을  던진 미 부인은 바로  그의 누이동생이었다. 
미축은 지금은 재무와 경리를 담당하고 있는 중신이었다.
  미축이 나서자 유비는 기뻐하며 그에게 양고기와 술 등의 예물을 주며 공명을 
만날 겸 동오의 허실을 살피도록 했다. 
  미축은 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내려가 주유가  진을 치고 있는 곳에 이르렀다. 
군사로부터 미축이 왔다는  말을 전해 듣자 주유는 미축을 불러  들였다. 미축은 
절을 올려 예를 표한 뒤 유비의 인사를 전한  다음 가지고 온 예물을 바쳤다. 주
유도 술자리를 마련하여 대접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미축이 슬며시 물었다. 
  "우리 군사 제갈공명이 이곳에 온 지 오래이니, 이번에 함께 돌아가게 해 주십
시오."
  주유는 짐짓 뜻밖으라는 표정을 짓고 미축을 보고 말했다.
  "공명은 나와 함께 조조를  물리칠 계책을 의논하셔야 할 분인데 어떻게 돌아
가실 수 있겠소?  오히려 나는 유 예주를 뵙고  계책을 의논하고 싶으나 대군을 
거느리고 있어 잠시도 이곳을 떠날 수가 없소이다.  만약 유 예주께서 이리로 와 
주신다면 그보다 더 큰 바람이 없겠소이다만...."
  공명을 데려가겠다는 미축에게 주유는 한술 더 떠 도리어 유비를 자기의 진중
으로 청했다. 미축은  주유가 조조와의 싸움을 앞두고 있는 때이므로  더 이상은 
입을 열지 못한 채 주유의 요구만을 듣고  물러났다. 미축이 돌아가고 나자 노숙
이 주유에게 물었다.
  "도독께서는 어찌하여 유비를 이 진중에 청하십니까?"
  "물론 그를 죽이기 위함이오."
  주유가 한 마디로 짧게 대답했다.
  노숙이 놀란 얼굴로 주유를 바라보자 주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유비는 당세의 뛰어난 영걸이니 결코 살려 둘 수 없는 인물이오. 이번 기회에 
그를 유인해서 죽인다면 이는 동오를 위해 미리 한 가지 후환을 없애는 것이 되
오."
  "그래서는 아니 됩니다. 유비를 죽이는 일은  오히려 조조를 이롭게 할 뿐입니
다." 
  노숙이 이렇게 만류했으나 주유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불러 가만히 영을 내렸다.
  "유비가 오거든 먼저 도부수  50명을 휘장 뒤에 매복시켰다가 내가 술잔을 던
지거든 그것을 군호삼아 일제히 달려나와 베어 죽여라."
  이때 미축도 유비가 있는 하구에 이르러 주유의 뜻을 전했다. 
  "주유는 유 예주님과 함께 계책을 의논하고자 진중으로 청했습니다."
  유비는 몸소 동오의 군진으로 가는 것이 주저되었으나 먼저 함께 조조를 치자
고 청한 것이 자신이었으므로 주유의 청을 물리칠 수도 없었다. 
  "빠른 배를 마련하라. 직접 동오의 군진으로 가 보리라."
  유비가 휘하에게 명을 내렸다. 그러나 관우가 나서며 말렸다.
  "주유는 원래가 술수에 능한 인물입니다. 거기다가  공명 군사의 글 한장도 없
으니 어떤 간계가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함부로 가실 일이 아닙니다."
  유비가 고개를 저으며 오히려 관우를 달랬다.
  "지금 내가 동오와 손을 잡고 힘을 합쳐 조조를 치려 하고 있지 않느냐? 그런
데 주랑이 나를 만나 계책을 의논하자고 하는데 아니 간다면 이는 내가 힘을 합
칠 뜻이 없다는 것이 되지 않느냐? 지금같이 중요한 시기에 서로 의심하고 시기
하면 큰 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유비의 말에 관우는 만류할 수 없음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형님께서 기어이 가시겠다면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옆에 있던 장비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기도 가겠다고 서둘자  유비는 장비
를 달랬다.
  "운장만 나와 함께  가도록 하자. 익덕은 자룡과  함께 진영을 지키도록 하라. 
또한 간옹은 악현을 지키도록 하라. 곧 돌아오겠다."
  분부를 마친 유비는 관우와 함께 작은 배에  올랐다. 관우가 거느린 군사 20여 
명이 함께 배에 오르자 배는 나는 듯이 강동으로 향했다.
  배는 강물을 타고  내려가 이윽고 강동에 이르렀다. 강동 일대는  과연 결전을 
앞둔 살벌한 싸움터의 분위기였다.  크고 작은 전선이 강위를 메우고 있었고, 정
기와 갑옷 차림의 군사가 그 좌우로 늘어서 있었다.
  유비는 이런  광경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조조에게 
쫓기던 그로서는 함께 동맹을 맺은 동오의 군세가 이토록 강성하니 조조군과 맞
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비 일행이 이르렀다는 군사의 전갈을 받자 주유는 급히 물었다.
  "배는 몇 척이나 이끌고 왔더냐?"
  "단지 배 한 척에 20여 명의 군사들만 거느리고 왔습니다."
  "무엇이? 20여 명?"
  주유는 이렇게 되물으며 크게 웃었다.
  '이제 그가 내게 죽는구나.'
  주유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먼저 도부수를 휘장 뒤에 숨긴뒤 건채를 나와 유
비를 맞아들였다. 유비는 관우 등 20여 명의  군사와 함께 중군의 장막으로 들어
갔다. 주유와 첫 대면의 예를 나눈 후  주유가 윗자리를 권했으나 유비는 사양했
다.
  "도독께서는 천하에 명성을  떨친 분이십니다. 하찮은 이  비가 어찌 윗자리를 
감당하겠습니까."
  유비는 주유와 같은  곳에 손님으로 자리를 정했다. 주유가 손짓을  하자 술과 
요리가 들어오고 주연이 벌어졌다.
  이때까지 공명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공명은 강변을  거닐고 있다가 
지나가는 군졸로부터 오늘의 손님은 하구에서 오신 유 황숙이라는 말을 듣고 깜
짝 놀랐다. 공명은 그 길로 급히 주유의 중군으로 달려갔다. 공명은 슬며시 중군
의 장막 안을 엿보았다.
  유비를 초대하는 술자리에 마땅히  공명 자신이 참석해야 함에도 주유는 자신
에게 유비가 왔다는 것조차 알려 주지 않았다.  공명이 휘장 밖에서 보니 주유의 
얼굴에는 살기가 감돌았고 양쪽 휘장 뒤에는 도부수들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공명이 탄식하며 유비를 보니 태평스럽게도 주유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런데 유비의 등 뒤에 한  사람이 칼을 짚고 버티고 선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다
름 아닌 관우였다. 공명은 관우를 보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음 속
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주공께서 위태롭지는 않겠구나!'
  가슴을 쓸어내린 공명은 다시  강변으로 나가 유비가 나오기를 초조히 기다렸
다.
  어느 새 몇 순배의 술잔이  돌고 흥이 무르익어 가자 주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며시 술잔을 집어들었다.  술잔을 던져 휘장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도부수들
에게 군호를 보내려고 하다가 문득 유비의 등  뒤에 있는 관우를 보았다. 대춧빛 
얼굴에 봉의 눈을 한 우람한 체구의 한 장수가 칼을 짚고 자기를 노려보고 있었
다.
  "저 장수는 누구입니까?"
  주유가 황급히 유비에게 물었다.
  "제 아우 관운장입니다."
  유비가 주유의 물음에 무심히 대답했다.
  그 말에 주유가 놀라며 다시 물었다.
  "관운장? 그렇다면 지난날 안량과 문추를 벤 장수가 아닙니까?"
  "그렇소이다."
  유비가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대답하자 주유는 어찌나 놀랐는지 등에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관우가 이 자리에 있으니 유비를  죽이기는 커녕 술잔을 던져 군
호를 보냈다간 자신의 목이 날아갈 판이었다. 주유는  손에 들었던 잔에 술을 따
라 관우에게 주며 마시기를 권했다.
  "천하의 맹장을 이 자리에서 뵙게 되어 기쁘오.  이 주유가 한 잔을 권하려 하
니 받아 주시오."
  관우가 예를 올리며  술잔을 받아 마시고 있는데  노숙이 휘장 안으로 들어왔
다. 주연이 벌어진 지  꽤 오래 되었으나 별다른 기척이 없자  슬며시 들어와 본 
것이었다. 노숙이 나타나자 유비는 그제서야 궁금히 여기던 바를 물었다. 
  "공명은 지금 어디 계시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자경께서 그를 불러 한번 만
나 보게 해 주시지요."
  그러자 주유가 얼른 노숙 대신 말했다.
  "조조를 물리칠 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때 만나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
다."
  주유가 그렇게 말하니 유비도 더 말을 하지  못했다. 이때 관우가 유비를 보며 
연신 눈짓을  했다. 관우의 심상치 않은  눈짓을 본 유비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유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 그만 가 볼까 합니다. 조조를 쳐 공을 거두신 다음에 다시 경하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손안에 들어온 유비를 죽이지 못한 주유였지만  굳이 유비를 만류하지 않았다. 
이미 유비를 죽이는 일을 단념한  주유는 유비를 원문 밖까지 정중히 배웅할 뿐
이었다. 
  주유와 헤어진 유비는  관우와 딸린 군사를 이끌고  말을 달려 강가에 이르렀
다. 공명이 언제 왔는지 배 안에서 유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오, 군사!"
  유비는 오랜만에 만나는  공명을 보자 그의 손을 붙들며 기뻐했다.  유비가 공
명에게 자리를 권하며 그 동안의 얘기를 나누려는데 공명이 불쑥 한 마디 했다.
  "주공께서는 오늘 얼마나 위태로운 자리를 하셨는지 아십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유비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만약 운장만 없었더라면 주공께서는 오늘 주유의 손에 죽임을 당하셨을  것입
니다."
  공명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몰래  휘장 밖에서 엿본 사실을 낱낱이 들려 주
었다. 유비는 그제서야 주유가 자신을 부른 속셈을 헤아리며 공명에게 말했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태연하게 술만 마셨소. 안 되겠군. 군사도 나와 함께 
번구로 돌아갑시다."
  유비가 공명에게 함께 돌아가기를 권했다.
  "저는 비록 호랑이의 아가리 속에 있으나 안전하기가 태산과 같으니  주공께서
는 심려하지 마십시오. 다만 돌아가시거던 전선과  군마를 수습하여 기다려 주십
시오. 그리고 11월 20일 갑자일에 조자룡에게 작은  배를 타고 이곳 남쪽 강변에 
와서 나를 기다리라고 하십시오. 절대로 어김이 없도록 하셔야 합니다."
  유비는 공명이 동오에서 몸을 빼낼 계책을 세워 둔 것으로 여겼으나 염려하는 
마음에 궁금증이 일어 다시 물었다.
  "잘 알겠소만, 군사의 뜻을 자세히 알려 주시오."
  "동남풍이 크게 일면 저는 반드시 돌아갈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배에 오르십시
오."
  공명은 유비에게 떠날  것을 재촉할 뿐 자세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비
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급히 물었다.
  "군사는 어떻게 동남풍이 부는  날을 알 수 있습니까? 만약 동남풍이 불지 않
으면 어떻게 되오?"
  "10년 동안 융중  언덕에 살면서 해마다 봄.여름.가을.겨울을  맞이하며 장강의 
물과 하늘의 구름과 바람을 관측한 바 있습니다.  저의 말에 어긋남이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자리에서 길게 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으니 어서 배에 오
르십시오."
  공명은 다시 한 번 유비에게 떠날 것을 재촉한 후 자기도 돌아갔다.
  배에 오른 유비는 지체하지 않고 돛을 올리게 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강을 몇 리쯤  거슬러 올라가자 상류 쪽에 한  무리의 배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유비가 가까이 다가가며 살펴보았다. 맨 앞 뱃머리에 한 장수가 창
을 짚고 서 있는데 바로 장비였다. 유비  일행을 걱정하여 수하 군사들을 이끌고 
도우려고 나온 것이었다.
  "무사하시니 기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유비.관우.장비는 무사함을 기뻐하며 하구로 되돌아갔다.
  유비가 떠나간 뒤, 동오의 진중에서 주유는  손바닥 속의 구슬이라도 떨어뜨린 
듯했다.
  노숙이 그런 주유에게 물었다.
  "도독께서는 유비를 여기까지  유인해 놓으시고 어찌하여 손을 쓰지 않았습니
까?"
  "관우가 유비의 등 뒤에 버티고 서서 눈을 바라리고 있었소. 관우는 세상이 다 
아는 호랑이 같은 장수요. 섣불리 손을 쓰다가는  유비를 죽이기도 전에 내가 그
의 손에 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소."
  주유는 아직도 심사가 뒤틀린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노숙은 동오를 위해서 주유의 계교가 실패한 것을 마음 속으로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다.
  이때 수하 한 사람이 들어와 급히 알렸다.
  "조조가 사자를 보내 왔습니다."
  조조의 사자라는 말에 주유가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어서 들여보내라!"
  조조의 사자가 주유 앞에  와 품속에서 한 통의 서찰을 꺼내  올렸다. 그 서찰 
겉봉을 보니  '한실 대승상이 주 도독에게  보내노라' 라고 씌여져  있었다. 마치 
자기 수하에게 대하는 듯한 어투였다.
  "이런 괘씸한 놈!"
  유비를 그냥 돌려 보낸 후  심사가 뒤틀려 있던 주유는 겉봉만을 보고도 울컥 
화가 치밀었다. 뜯어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 서찰을 발기발기 찢어 땅바닥에 
내팽개치면서 호령했다.
  "여봐라, 어서 저놈의 목을 베라!"
  주유의 명이 떨어지자 노숙이 황급히 나서 말렸다.
  "싸움 중에도 사자는 죽이지 않는 법입니다. 사자가 온 까닭을 물으십시오."
  그러나 주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차갑게 대답했다.
  "사자를 목베어 우리의 위엄을 보이려는 것이오!"
  주유는 그  말을 남긴 채 휘장  밖으로 성큼성큼 나가 버렸다.  주유는 사자의 
목이 떨어지자 그 목을 따라온 자에게 주어 조조에게 보냈다.
  주유는 사자의 목을 돌려 보낸 뒤 여러 장수들에게 군령을 내렸다.
  "감녕은 선봉이 되고 한당은 좌익에, 장흠은 우익에 서라. 나는 장수들을 거느
려 후군이 될 것이니라. 내일 새벽 사경에  군사들에게 아침을 먹이고 오경에 배
에 올라 북을 울리며 나아가도록 하라!"
  다음 날  새벽이 되자, 주유의 영에  따라 동오군은 크게 함성을  울리고 북을 
치며 조조군과의 결전을 치르기 위해 나아갔다.
  한편 조조는 주유가 자기의 글을  보지도 않고 찢고 사자를 죽여 버렸다는 말
에 크게  노했다. 즉시 채모와 장윤  등 형주에서 투항해 온  장수들을 선봉으로 
삼았다. 스스로는 대군을  이끌고 후군이 되어 강 위에 전선을  독려하여 삼강구
로 나아갔다. 주위는 이른 새벽이라 아직 어둠이  깔려 있는데 바람이 없어 물결
이 잔잔했다.
  때는 건안 13년  11월이었다. 조조군의 선단은 삼강 어귀를 향해  천천히 남으
로 강물 위를 미끄러지듯 떠내려가고 있었다.
  날은 밝아 오기  시작했으나 짙은 안개 때문에  시야가 몹시 좁아져 조조군의 
선단도 볼  수가 없고, 동오의  선진도 지척지간으로 다가올때까지  알아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윽고 조조군이 삼강구에 이르자 안개도 걷혔다.  조조가 보니 동오의 배들이 
강을 뒤덮다시피하며 오고 있는데 그 기세가 가볍지 않았다.
  돌연 조조의 전선에서  북과 징을 울리면서 동오의 선진 속을  향해 나아갔다. 
이때 동오의 전선  대장 감녕이 바다 용을 장식한  투구를 쓰고 맨 앞 뱃머리에 
앉아 조조군에게 조롱과 욕설을 퍼부었다.
  "형주의 개구리, 북방의 족제비들이 감히 사람의  흉내를 내어 배를 몰고 나타
난 꼴이란 정말 웃음거리로구나. 물에서의 싸움은  이렇게 하는 것이니 구경이나 
하고 저승에 가거라!"
  감녕은 먼저 배 위에 즐비하게 장치해 놓은  쇠뇌에 살을 먹여 쏘아댔다. 조조
군의 도독 채모는 적장의 조롱에 열화같이 노하여 스스로 뱃머리로 나서려 하자 
그 아우 채훈이 가로막고 나섰다.
  "용의 머리를 쓴  어부놈아, 너는 이름도 없느냐? 나는  대도독의 아우 채훈이
다. 멀리서 짖어대지  말고 배를 가까이 몰고  와라. 단칼에 고깃밥으로 만들 테
다!"
  그러자 저편의 배가 다가오는 가운데 배 위에 장수가 소리쳤다.
  "내가 바로 감녕이다. 나를 모른다면 너야말로  고기나 잡던 겁 많은 어부임이 
분명하다. 너 같은 어부가 나설 곳이 아니다!"
  감녕이 채훈에게 욕설을 하며 직접 석궁의 시위를  당겨 쏘았다. 감녕이 쏜 몇 
개의 화살이 채훈이 탄  배로 날아갔다. 그 중의 화살 하나가  채훈의 얼굴에 꽂
혔다. 채훈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싸쥐고 강물로 거꾸러지고 말았다.
  감녕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모든 배를 휘몰아 조조군의 배를  향해 다가갔다. 
동오의 배에서는 일제히 쇠뇌에 살을 먹여 쏘아대자 조조의 수군은 화살에 맞아 
강물에 떨어지고 배  위에 나뒹굴었다. 제대로 싸워 보기도 전에  아우가 화살에 
맞아 죽자 채모는  화가 치솟아 눈앞이 캄캄할 지경이었다. 단숨에  동오의 선단
을 깨뜨리라고 악을  쓰고 있었으나 동오 수군의  기세를 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크게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감녕이 조조군의  전부 선봉을  밀어붙이자, 오른쪽에서는 장흠이  왼쪽에서는 
한당이 조조군을 가운데로 몰며 들이쳤다.
  어느덧 해는 붉게 솟아올라 수천의 양군 전선을  비추고 있었다. 그 햇빛을 받
아 금빛 은빛으로 물결치는 장강의  물 위로 양군의 함성이 메아리치고 서로 엇
갈리며 어지럽게 화살이 날았다.
  그러자 수전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전세는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지
기 시작했다.
  조조의 군사들은  원래가 태반이 청주와 서주  출신들이므로 수전에는 익숙지 
못했다. 배가 한 번 흔들리면 몸을 제대로 가누고 서 있지도 못하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동오의 전선은 물 위를  종횡으로 누비고 다녔으며 군사들은 배 위를 제 
세상 만난 듯이 날쌔게 움직이고 있었다. 때마침  주유도 전선을 이끌어 와 싸움
에 가세하자 화살에 맞아 쓰러지거나 포에 맞아 죽는 북군의 군사는 그 수가 헤
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싸움이 사시부터 미시까지 계속되는 동안  전세는 동
오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러나 주유는 아무래도 조조군이  워낙 대군이라 끝까지 맞서 싸우다간 군사
를 잃을까 염려하여 징을 울려 일단 전선을 거두었다.
  주유가 전선을  물리자 조조도 군사를  이끌어 진영으로 돌아갔다.  뭍에 올라 
장강을 굽어보니 싯누런 강물에는 깨어진 배의  나뭇조각들이며 찢겨진 깃발, 무
수한 시체들이 홍수가 지난간 뒤처럼 무수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 많은 시체들은 거의가 조조군의 군사들이었다.
  첫 싸움에서 크게 패한 조조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다. 여러 장수들은 그의 입
에서 당장이라도 불호령이 떨어질까 몸둘 바를 몰랐다.
  이윽고 조조는 엄한 목소리로 명했다.
  "채모와 장윤을 불러라!"
  대도독 채모와 그의 휘하 장수 장윤이 패전의 책임이 추궁되리라 여겨 창백해
진 얼굴로 조조 앞에 넙죽 업드렸다.
  조조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미 지나간 패전의 변명을  듣거나 그 책임을 묻기 위해 그대들을 부르지는 
않았다. 다만 앞으로 또 싸워 다시 한 번  패배의 치욕을 안겨 준다면 그때는 군
율에 비추어 참수하리라!"
  뜻밖에도 관대한 조조의 말에 채모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고했다.
  "본디 이번의 패전은 저희들의 지휘가 미흡한  탓입니다만, 더 큰 결함은 형주
의 수군은 오랫동안  조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비해  동오의 수군
은 평소에  파양호에서 충분한 조련을 쌓았습니다.  또한 청주.서주 등 북방에서 
온 군사들은 물 위에서  나아가고 물러감이 미숙할뿐더러 조련도 없었기 때문에 
패했습니다."
  채모가 말하지 않더라도 북방의  군사들이 수전에 약하다는 것은 조조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조조의 물음에 채모가 대답했다. 
  "우선 나아가 공격하지 않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 한편 나루터는 견고히 
하여 요해를 구축하고  강 위에는 멀리까지 수채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
여 형주 군사는 수채  밖에서 조련하고, 청주.서주 군사는 수채 안에서 조련한다
면 능히 동오의 수군과 맞설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채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방책이다. 그대는 이미 수군을 맡은 도독이니 상책이라고 믿는다면 구
태여 나한테 물어 볼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조조는 채모와 장윤에게 그같이 말하자 두 사람은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리며 
물러났다.
  채모와 장윤은 먼저  조조군을 조련할 수채를 만들었다. 강변을 따라  수문 24
개를 나누어 세운 후  큰 배로 밖을 둘러싸게 하여 성으로  삼았다. 작은 배들은 
큰 배가 둘러싼 안으로 왕래할 수 있게 했다. 
  큰 배들이 둘러싼 그 안에서 채모는 매일  북방 군사들을 조련시켰는데, 그 규
모는 엄청난 것이었으며 조조군의 군세와 풍부한 물자를 과시하기에 족했다.
  밤이 되면 수채는 더욱 장관이었다. 약  3백여 리에 걸치는 수채와 뭍에서까지 
일제히 등불을 밝히게 했다. 물 위에는 그  불빛이 반짝이니 대낮같이 밝았고 뭍
에서는 수천 수만의 모닥불이 피오 올라 휘황찬란했다.

  군영지회
  공명의 화살 사냥
 
  주유는 세객으로  찾아온 장간을 역이용하고,  조조로 하여금 두  수군 도독의 
목을 치게 한다. 또한 공명의 뛰어남을 경계하여  함정을 만들지만 공명은 단 사
흘만에 조조의 군사를 격동시켜 얻은 10만 개의 화살을 푸른 휘장에 꽂은 채 유
유히 개선한다.
 
  한편 주유는 조조군을  크게 이기고 본진으로 돌아간 후에, 잔치를  크게 벌여 
술과 고기를 내리며  삼군을 치하했다. 또 사람을 오후에게 보내  첫싸움에서 이
긴 소식을 알리게 했다.
  그날 밤이었다. 주유가  높은 곳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는데 서쪽에  무수한 불
빛이 하늘로 향해 치솟고 있었다.
  "상류쪽 북방의 밤하늘이 붉게 보이는데 저건 무엇 때문인가?"
  "모두 북군 배에 매단 등불입니다."
  주유의 물음에 좌우에서 이같이 대답했다.
  주유는 이번 싸움에서 이겨 내심 조조의 수군쯤은 두려워할 것 없다고 가볍게 
여기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몇 백리에 걸친  휘황한 등불에 저으기 놀라지 않
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주유는 몸소 조조의 수채를  직접 살피기 위해 배에  올랐다. 주유는 
날랜 장수 몇 사람에게는 각각  강한 쇠뇌와 큰 활을 지니게 하여 함께 태운 채 
떠났다. 주유가 탄 배가 소리도 없이 조조의  수채 가까이에 다가가 정석을 내리
게 한 후 조조의 수채를 엿보았다.
  24개의 수문과 큰 배로 수채를  에워싼 배 안에 작은 배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고 있는 것을 보자 수군의 진법에 능통한 주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군의 진법을 잘 아는 자가 세운 것이다.'
  주유는 함께 간 장수들에게 물었다.
  "대체 조조의 수군을 다스리는 도독이 누구라 하더냐?"
  "채모와 장윤입니다."
  주유의 물음에 좌우에서 대답했다.
  그 말에 주유는 혀를 끌끌 차며 한탄해 마지않았다.
  "나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구나. 조조의 휘하에는 수군의 진법에 정통한 사람
이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것은 나의 불찰이었다. 그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강
동에 있었으므로  수전에 능할 것이다. 내가  반드시 계책을 써서 그  두 사람을 
없애리라. 조조를 깨치는 일도 그 두 사람을 없앤 뒤에만이 가능할 것이다."
  주유가 그렇게 말하며 수채를 살피고 있는데 조조의 군사들이 주유의 배를 발
견하고 급히 조조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주유가 우리 수채를 살피고 있습니다."
  조조는 즉시 그를 사로잡으라고 군령을 내렸다.  그러나 주유는 적진의 깃발들
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미 자기의  배가 적에게 발견되었음을 알았
다. 급히 닻을 거두어 올리게 하고 배의  양쪽에 늘어앉은 군사들에게 명해 일제
히 노를 젓게 하여 강 한가운데로 나는 듯이 달렸다.
  조조의 수채에서 군령을 받은 배가  나왔을 때는 이미 주유의 배는 10여 리나 
멀리 달아난 뒤였다. 뒤쫓아도 잡지 못할 만큼  주유가 멀리 가버린 것을 조조에
게 보고하자 조조는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제 첫싸움에 져서 우리의 예기가 많이 꺾였는데 이제 또 주유가 우리 수채
를 엿보고 달아났소. 내가 앞으로 어떤 계책을 세워 동오를 깨뜨려야 하겠소?"
  조조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장하에서 한  사람이 성큼성큼 걸어나와 예를 
갖추며 말했다.
  "승상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별로 재주는 없으나 주랑을 달래 승상에
게 항복하도록 해보겠습니다."
  걸쭉한 큰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조의 진중에  막빈으로 있는 구강 출신 사람으로, 성은  장, 이름은 간, 
자는 자익이라는 모사였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그대는 주유를 알고 있는가?"
  "저는 구강에서 태어났으므로  주유의 고향과는 지척에 있었으며 어렸을 때부
터 함께 글을 배웠습니다."
  "과연 그대가 주유를 달랠 수 있겠는가?"
  조조가 미심쩍은 듯 다시 물었다.
  "제가 강동에 가면 반드시 공을 이룰 것입니다. 승상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조조는 자익의  호언장담이 미덥지는 못했으나 만약  실패하더라도 해될 것은 
없었다. 조조는 좋은 말로 자익을 격려했다.
  "만약 주유를 동오에서 떼어  내면 동오의 군세는 뼈대 없는 허수아비에 지나
지 않을 것이리라. 만약 뜻한  바를 이루면 그대의 노고에 큰 상을 내릴 것이오. 
혹시 강동으로 갈 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어린 아이 한 명과 배 한 척이면 족합니다."
  "실로 세객의 의기는 그러하여야 할 것이오."
  조조는 장간을 슬며시  치켜세운 후 술자리를 열어  격려한 뒤 강동으로 보냈
다.
  장간은 머리에 갈포  두건을 쓰고 몸에는 무명베 도포를 입었다.  그리고 강물
에 두둥실 배를 띄워 한 단지의 술과 종자인 어린 아이와 함께 동오로 갔다.
  이때 주유는 여러  장수들과 함께 조조를 칠  일을 의논하고 있었는데 군사가 
와서 알렸다. 
  "도독을 뵈러 장간이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군사로부터 이런 보고를 전해 듣자 주유는 껄껄 웃고 여러 장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를 달래려 세객이 왔소."
  주유는 그를 모셔오도록 군사에게 명한 뒤 여러 장수들에게 계책을 가만히 일
러 주었다.
  여러 장수들이 주유가 일러 준  명을 받고 물러나자 주유도 손님을 맞으러 나
갔다.
  '조조의 막빈으로 있다는 소문이  이미 듣고 있었다. 장간 네가 나를 설복시키
려 왔구나.'
  주유는 혼자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빙그레 웃었다.
  이윽고 안내를 받아 진영으로 들어온 장간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주유가 의관
을 갖추고 수백의 종자를 거느린 채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종자들 모두가 
비단옷을 꽃모자를 쓰고 있어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장간은 푸른  옷을 입은 아이를 거느리며  배를 내민 채 성큼성큼  들어 섰다. 
주유가 절을 하며 그를 맞자 장간도 주유에게 안부를 물었다.
  "공근, 그간 별고 없었는가?"
  장간의 스스럼없는 말에 주유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익은 조씨를 위해 세객으로 먼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주유의 말에 장간은 가슴이 철렁했으나, 시치미를 떼고 응수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내가 그대를 못 본 지가 오래 되어 특별히 옛정을 
나누려고 온 것인데 어찌하여 세객으로 의심하는가?"
  장간은 짐짓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제서야 주유는  호탕하게 웃고
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허허, 내가 비록 사광만큼 음률을 판별하는  재간은 없으나 거문고 소리나 노
래를 들으면 그 운치는 짐작한다네."
  주유가 웃으며  말했으나 말 속에 뼈가  있는 한 마디였다. 장간은  더욱 화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옛 친구를 이렇게 대할 줄 몰랐네. 나는 이만 돌아가는 것이 좋겠네."
  그러자 주유가 장간의 팔을 붙들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혹시 그대가  조씨의 세객으로 온 것이  아닌가 두려워서 그랬을뿐이네. 
사실이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돌아갈 건 무언가? 자 안으로 들어가세."
  주유는 장간을 이끌어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자리를 잡고 앉자 주
유가 명을 내렸다.
  "우리 강동의 영웅 호걸들은 모두 들어와 뵙도록 하라!"
  이윽고 문관과 무장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비단옷 차림으로, 그 아랫사
람들은 은빛 나는 투구를 쓰고 들어와 두  줄로 갈라섰다. 주유는 그들에게 일일
이 장간과 인사를 나누게 했다.
  이어 술자리가 마련되자 상 위에는  금과 은으로 된 그릇과 술잔과 꽃 무늬가 
새겨진 아름다운  그릇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진중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호사스런 술상이었다.
  주인과 손님 앞에  각기 술잔이 놓이자 득승악이라는  싸움에 이겼을 때 켜는 
군악이 낭랑히 울려왔다.
  주유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여러 장수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 이분은 나와 동문수학한 옛 친구요.  비록 강북에서 왔으나 결코 조조의 
세객은 아니니 여러분은 조금도 의심하지 마시오."
  주유는 장간을 소개하며 세객이  아니라고 했으나 세객이란 말을 꺼내 장간의 
가슴을 또 한 번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문득 자기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풀어 태사자에게 주며 엄한 목소리로 명했다. 
  "공이 이 칼을  가지고 술자리를 돌보도록 하시오. 오늘 이  자리는 내가 특히 
옛 친구와 오랜만에  회포를 푸는 자리라오. 누구라도 조조나 우리  군사에 관해 
말을 꺼내는 자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목을 베도록 하시오!"
  태사자는 칼을 받아들고 윗자리에 가 앉았다.  주유를 달래보려고 왔던 장간은 
주유를 달래기는커녕 감히 입을 열지도  못한 채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듯한 심
정이었다.
  장간이 입을 열지 못하게 미리  엄명을 내린 주유는 술잔을 높이 들더니 주위
를 둘러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군사를 이끌고 나온 이래 술이라고는  한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오늘
은 옛 친구를 만났고, 또 의심할 것도 없으니 마땅히 마음놓고 마시리라."
  주유가 말을 마치고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잔을 연거푸 기울이자 무거웠던 술
자리가 부드러워졌다. 모인 사람들도 모두 주유를 따라 잔을 기울였다.
  술잔이 오가고 좌중에는 유쾌한  웃음소리와 한담이 피어 올라 주흥이 무르익
어 가고 있었다. 
  "오늘 밤의 주연은 이제 시작이네, 우리 바깥  바람을 좀 쐬고 나서 다시 마시
세."
  모두가 얼큰히 취한 것을 보자  주유는 장간의 손을 잡아 군막 밖으로 이끌었
다. 밖에는 칼을  차고 창을 든 군사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었다. 주유는 장간과 
함께 진중을 거닐면서  무기와 군량이 넉넉하게 쌓여 있는 창고를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 투구와  철갑으로 무장한 군사들이 진중을 지키고 있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어떤가? 우리 군사들이 용맹스럽게 보이지 않는가?"
  주유가 장간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과연 범이나 곰 같은 군사들이오!"
  장간이 놀란 척하며 맞장구쳤다.
  주유는 곡식과 말먹이풀이 산처럼 쌓여 있는 곳에 장간을 데려갔다.
  "우리의 마초와 군량일세. 어때 이만하면 넉넉하지 않은가?"
  주유가 다시 장간에게 자랑했다.
  "군사는 날쌔고 양곡도 넉넉하다던 풍문이 거짓이 아니었구려!"
  장간이 이렇게 감탄해 말하자 주유가 짐짓 취한 척하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 주유가 일찍이 그대와 함께  공부하던 시절에야 오늘날 내가 이렇
게 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했겠나?"
  주유가 거드름을 피우며 자신의  신분을 자랑하자 장간은 비위가 상했으나 이
를 내색하지 않은 채 주유의 말을 받았다.
  "그대의 높은 재주로 본다면 조금도 지나칠 것이 없네. 아무렴, 당연하지 않은
가?"
  그러자 주유가 이번에는 장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자기를  알아 주는 주인을 만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걸세. 그러나 나는  내가 만나야 할 주인을 만나 섬기고 있네. 밖으로
는 군신의 의리를 지키며  안으로는 골육과 같은 정으로 맺어져 있네.  한 번 말
한 것은 반드시  지키며, 계책을 내면 그대로 좇으니 더없는  복이 아닌가? 때로 
화가 미친다 하더라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  않은가? 비록 지난날의 소진과 
장의.육가.역생등이 다시 살아나서 물 흐르는 듯한 그치없는 말과 칼날처럼 매서
운 혀끝으로 나를 설득한다 해도 어찌 내 마음을 움직이겠는가?"
  장간의 입을 앞질러 막은 주유는 말을 마치고  또 껄껄 웃었다. 장간은 술기운
이 확 사리진 채  얼굴은 흑색이 되었다. 그런 장간을 주유가  다시 장막 안으로 
이끌어 여러 장수들과 더불어  또 한 차례 술판을 벌였다. 주유는  몇 잔을 연거
푸 마신 뒤에 술잔을 놓고 좌중의 여러 장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자리에는 강동의 영걸들이 모두 모였네. 그러니 오늘 이 모임은 가히 군영
회라고 불러 마땅할 것일세."
  주유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등불을 밝혔다. 
자리에서 일어난 주유가 칼을  빼어들고 아래 위로, 옆으로, 뒤로 흔들며 칼춤과 
함께 스스로 지은 노래까지 불렀다.
  
  대장부의 처세는 공명을 이루려 함이라. 
  공명을 세워 평생을 위로하리라.
  평생을 위로함이여 내 이제 취하리라.
  내 이제 취하여 미친 듯이 노래하리라!
  
  주유는 칼을 휘두르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여러 장수들이  손뼉을 치
고 환호하는 가운데 밤은 깊어가고  흥은 갈수록 높아만 가니 모두들 만취가 되
었다. 그러나 장간만은 취하지  않았다. 술을 마셔도 정신은 더욱 맑아질 뿐이었
다. 그러면서도 짐짓 취한 듯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체하며 말했다.
  "이제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겠네. 그만 마셔야겠네 그려."
  장간이 술을 사양하자 주유는 술자리를 치우라 명하고 여러 장수들도 모두 자
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여보게 자익, 그대와 함께 자본 것이  언제인가? 오늘 밤은 옛날처럼 우리 함
께 발바닥을 맞대고 자보세 그려."
  주유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하며 장간의  옷소매를 이끌고 침실로 데려갔다. 
장간이 주유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니  주유는 옷도 벗지 않은 채 침상에 쓰러져 
지금까지 먹고 마신 것을 마구 토해냈다.
  한바탕 토한 주유는 이내 코를  골며 깊은 잠에 곯아 떨어지고 장간은 여기저
기 게워낸 음식물의  악취가 코를 찌르는데다 자기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유의 
장단에 끌려다닌 것이 어이가 없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을 멀뚱멀뚱 뜨고 
침상에서 몸을 뒤척이고 있으려니 이경을 알리는 군중의 북 소리가 들려 왔다.
  장간은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잠이 든  주유가 불
을 끄지 않아 아직도 방  안에는 등불이 켜져 있었다. 장간은 코까지 '드르릉 드
르릉' 요란스럽게 골며  자는 주유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문득  탁자 위의 문서 
뭉치에 눈길이  머물렀다. 문서 뭉치를 보자  슬그머니 장간의 마음이 달라졌다. 
장간은 가만히 침상에서 내려서서 탁자로 다가가 슬며시 문서를 들추어 보았다.
  조조에게 호언장담하고 왔으나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가게 된 처지였다.
  혹시 중대한 기밀이라도 얻게 된다면 조조에게 할 말은 있게 되는 셈이었다.
  그 문서 뭉치를 들추어 보니 모두가 서신이었다.  그 중 한 봉투를 보니 '채모.
장윤 삼가 올립니다'라고 씌어져 있었다. 장간은  깜짝 놀랐다. 채모와 장윤의 편
지가 주유의 침실에 있다니....
  장간은 급히 안에 든 글을 읽어 내려갔다.
  
  저희들이 조조에게 항복한 것은 벼슬을 원해서가 아니라 형세가 부득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북군을  속여 수채 안에 가두어 놓았으니 기회를  보아 조조의 
목을 베어 휘하에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머지않아  사람을 보내어 소식을 전하려 
하니 행여라도 의심하지  마시고 곧 소식 주십시오. 먼저 이것으로  답장을 대신
합니다.
  
  장간은 떨리는 손으로 그 서신을 옷 속에 가만히 감추며 중얼거렸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채모와 장윤이 동오와 오래  전부터 내통하고 있었구
나!"
  장간은 다른 서류도  뒤져보려 하는데 마침 주유가 몸을 뒤척였다.  놀란 장간
이 급히 등불을 끄고 침상에 누워서 자는 척했다.
  주유는 몸을 뒤척이더니 입 속으로 우물거리며 잠꼬대를 했다.
  "자익... 2, 3일만 기다리게나. 내가... 조조의 목을 보여 주겠네."
  잠결이지만 주유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않도록 장간도 입 속으로 우물거리
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주유가 다시 입 속으로 우물거렸다.
  "자익, 조금만 기다리라니까... 내 꼭 조조의... 목을 보여 줄 테니까."
  "공근, 지금 뭐라고 했나?"
  장간이 이번에는 슬쩍  주유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나 주유는 다시  코를 골며 
잠들어 버렸다.
  장간은 침상 위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도니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채모.장윤 그 자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너무 놀라워 그 생각에 빠져들다 보니 잠은 더욱 멀
리 달아나 버렸다.
  사경쯤 되었을까? 문득 장막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장간은 숨을 죽이고 있는
데 허리에 매달린 장검이 철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장막 안으로 들어왔
다. 잠자는 주유의 군막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그의 심복  장수인 것 같
았다.
  "도독께서는 주무십니까?"
  그 장수가 주유에게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몇 번을 부르자 주유도 자
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듯하더니 물었다.
  "이봐, 이 침상에서 자고 있는 자가 누구냐?"
  "도독께서는 어젯밤 자익과 함께 주무시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모
르고 주무셨습니까?"
  주유의 물음에 장수가 되물었다.
  그 말에 주유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자익이라고? 내가 평소에 술에 취한 적이 없었는데 어제는 그만 만취하여 인
사불성이 되었나 보구나. 혹시 이것저것 함부로  말을 지껄이지나 않았는지 모르
겠다."
  술김에 공연한  말을 지껄여 기밀이라도 흘리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스러움을 
담고 있는 말이었다.
  "강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그때 주유의 심복 장수인 듯한 자가 말했다. 주유가 황급히 나무랐다.
  "쉬, 목소리가 너무 크다."
  주유는 끝내 걱정스러웠던지 장간 쪽을 돌아보며 가만히 불러 보았다.
  "여보게 자익, 자익."
  혹시 장간이 깨어 있지나 않나 하고 불러본  것이리라. 장간이 이런 것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주유의 부름을 잠에  취해 못들은 척하며 대답하지 않았
다. 주유는 장간이  깨어 있지 않음을 확인하더니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밖으로 
나갔다.
  장간의 온 신경이 그  두 사람의 거동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두런거림 속에 장윤이니 채모
니 하는 이름이 섞여 있었다.
  조금 뒤에 '쿵쿵'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다른 음성이 두런두런  들려 왔다. 그 
말 소리에는 북방의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동오의 진중에 북방 출신의 군사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장간은 이렇게 생각하며  더욱 귀를 곤두세웠다. 다른 음성의 사나이는  이 진
중의 군사가 아니고  강북에서 온 밀사임이 분명했다. 채 대인이니  장 도독이니 
하며 채모와 장윤에게  존칭을 써서 말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의 부하가 아니면 
그들이 보낸 사람임이  분명했다. 장막 밖의 대화는 잠시 더  이어지더니 말소리
가 뚝 그쳤다. 이어 발자국 소리가 나고 조금 있다 주유가 침실로 들어왔다.
  "자익!"
  주유가 다시 장간을 불렀다.  장간은 깊이 잠든 체하며 대꾸하지 않았다. 장간
이 대답하지 않자 곧 등불을 끄고 옷을 벗어  침상에 놓고 눕는 기척이 났다. 장
간의 마음은 두근거렸다. 어제 서신을 볼 때만  해도 확신을 갖지 못했으나 이제
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여겨졌다.
  장간은 어둠 속에서 가만히 생각했다.
  '주유는 세심하고 빈틈없는 사람이  아닌가. 날이 밝은 뒤에 서신을 찾다가 없
으면 나를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장간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아침까지 주유의 침실에 있다가는 일을 그르치
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간은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오경이 되어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여보게, 공근!"
  장간은 주유를 넌지시  불러 보았다. 주유는 깊은 잠이 들었는지  코고는 소리
만 날  뿐 대답이 없었다. 장간은  두건을 찾아서 머리에 쓰고  살금살금 밖으로 
빠져 나왔다. 밖으로  나온 장간은 데리고 온 아이들 찾아  종종걸음으로 원문으
로 갔다.
  "선생께서는 이른 새벽에 어디를 가십니까?"
  원문의 문지기 군사가  의아로운 눈길로 물었다. 장간은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은 채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도독께서는 바쁘신 몸인데 내가 너무 오래 있다가는 방해가 될 것 같네. 그러
니 차라리 내가 떠나야만 마음대로 일을 볼 수 있지 않겠나?"
  장간이 이렇게 말하자 문지기는 군말 없이 내보내 주었다.
  장간은 문지기의 눈에서 벗어나자 쏜살같이 달려 강기슭에 매어 둔 작은 배에 
올랐다. 배에 오른 장간은 노복들을 다그쳐 나는 듯이 조조의 수채로 돌아갔다.
  조조는 장간이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일이 장간의 
말대로만 된다면 이번  싸움은 이긴거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은연중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돌아온 장간의  말은 기대가 컸던 만큼  그를 노엽게 
했다.
  "주유의 생각하는 바가 깊고 넓어 말로는 그를 달래기 어려웠습니다."
  조조의 얼굴에는 노기가 서렸다.
  "일도 성사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웃음거리만 되었다는 겐가?"
  장간이 뜸을 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비록 주유를 달래 항복은 받아오지 못했으나 그보다 더 큰 일을 동오의 진중
에서 알아내 왔습니다. 바라건대 좌우를 물리쳐  주시고 이것으로 서운함을 푸십
시오."
  장간의 말에  조조가 곁의 시신들을  물러나게 했다. 장간이  그토록 큰소리를 
치는 것을 보면 알아 왔다는 일이 가볍지 않음을 짐작했다.
  장간은 주유의 침실에서 훔쳐온 서신을 조조의 안상에  올려 놓은 후, 보고 들
은 일들을 빠짐없이 조조에게 말했다.
  "두 도적놈이 이따위 무례한 짓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조조는 분노가 치솟아  소리쳤다. 조조는 곧 군사들을 시켜 채모와  장윤을 불
러들이게 했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채모와  장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조조 앞에 엎드리자 
조조가 뜻밖의 영을 내렸다.
  "두 사람은 곧 군사를 내어 진군하도록 하라!"
  조조의 명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리 없는 채모가 말했다.
  "조련이 끝나지 않아 아직 군사들이 수전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경솔히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조조가 채모의 말에 버럭 성을 내며 소리쳤다.
  "조련? 조련이 끝나면 나의 목을 주유에게 넘겨 주겠다는 말이냐?"
  "예?"
  채모와 장윤은 느닷없는 조조의 말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 대답
을 하지 못하고 조조의 얼굴만 멀거니 쳐다볼 뿐이었다.
  "이 두 놈을 당장 끌어 내어 목을 쳐라!"
  두 사람이 그때서야 황급히  까닭을 물었으나 조조는 매서운 눈초리로 그들을 
쳐다보며 영을 재촉했다.  채모와 장윤이 무사들에게 끌려간 지 얼마  지나지 않
아 몸에서 떨어진 머리가 조조의 발 앞에 놓여졌다.
  채모와 장윤의 목을  보자 조조는 그때서야 문득 짚이는 것이  있었다. 조조의 
머리 속에 얼른  주유가 떠올랐고, 그토록 중요한 기밀인 서신을  장간이 손쉽게 
가져온 것도 수상쩍다는 생각이 들었다.
  '앗차, 내가 적의 계교에 넘어갔구나.'
  아무런 죄도 없이 죽은 두 사람의 목을 보며 조조는 혼자 중얼거렸다.
  여러 장수들이 채모와 장윤이 처형된 것을 알고  그 까닭을 물었다. 조조는 자
신이 적의 계교에 빠진 것을 알고 있었으나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서는 시치미를 
떼고 말았다.
  "그 두 사람은 군율을 어기고 직무에 태만하여 목을 베었을 뿐이오."
  여러 장수들은 수전에 밝았던 채모와 장윤의 죽음에 대해 아까운 사람을 잃었
다는 생각이었으나 아무나  감히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조조는  채모와 장윤의 
후임으로 모개와 우금을 새로이 수군 도독에 명하여 그 일을 대신하게 했다.
  채모와 장윤의 죽음은 동오의 세작들에 의해  낱낱이 주유에게 전해졌다. 주유
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어떻소, 나의 계략이. 명궁이 활을 쏘아 날아가는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 것과 
같지 않소?"
  주유는 노숙에게 자랑한 후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두 사람이  조조의 수군을 거느리고 있는 한 방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조의 대군도  두려울 것이 없지 않은가. 머지않아 조조의  운명은 나의 
손바닥 안에 있으리라."
  노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유를 치켜세웠다.
  "도독의 군사 일을 다루심이 그토록 빼어나시니 어찌 조조를 깨뜨리지  못할까 
걱정이겠습니까?"
  그러자 주유가 잠시 얼굴을 찌푸리더니 노숙에게 일렀다. 
  "이번 나의 계략은 다른 장수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오. 그러나 제갈량만
은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려. 그의 식견이  나보다 나으니 
자경이 제갈량을 찾아가서 그가 이번 일을 어떻게 평하고 있는지 넌지시 살펴보
고 오시오. 이것도 뒷날을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니겠소?"
  번번이 공명이 자기의 마음 속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터라 문득 이번 일에 대
한 공명의 생각에  궁금증이 일었다. 주유의 말에 노숙은 지체하지  않고 공명이 
거처하는 배를 찾았다.
  공명은 주렴이 드리워진 선창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노숙이 배 안으로 들자 
공명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얼른 그를 맞아들였다.
  "요즈음 군무가 바빠서 선생의 밝은 가르침을 받지 못했소이다. 선생께서는 안
녕하십니까?"
  공명이 노숙에게 자리를 권하자 노숙이 먼저 안부를 물었다.
  "나 역시 바쁜 몸이라 주 도독에게 경하의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공명의 말에 노숙은 찔끔했다. 그의 말투로 보아  이미 공명이 이번 계략을 알
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경하의 인사라니요? 대체 무엇을 경하하신다는 말씀입니까?"
  "공께서 모르실 리가 있습니까?"
  "저는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어리석은 저를 위해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공근께서 공을 나에게 보내어  나의 심증을 살피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실로 
그 일이 바로 경하할 만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노숙은 놀라 얼굴빛이 달라졌다.
  "선생께서는 그 일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노숙이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주 도독께서는 장간을  농락하며 그 계책을 잘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조조가 
잠시 계책에 떨어져 속았으나 지금은 알아채고 마음 속으로 후회하고 있을 것입
니다. 이제 채모와  장윤이 죽어 강동의 근심거리가 사라졌으니 어찌  경하할 일
이 아니겠습니까? 얼핏 들리는  말에 의하면 조조는 모개와 우금을 등용하여 수
군 도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원체 수군을 거느릴 그릇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 둘의 손에 조조의 수군은 떼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앞질러  말을 하니 노숙은 공명의  말을 멍하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의 심증을 헤아리려고 온 자신이  쑥스러워 엉뚱하게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잠시  지체하다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노숙이 떠나
갈 때 공명은 그를 전송해 주면서 넌지시 당부했다.
  "자경께서 돌아가시거든 부디  공근에게는 제가 이번의 계책을 알고 있었다는 
말씀만은 말아  주시오. 그런 말을 들은  도독이 또다시 나를 해칠  궁리를 할까 
두렵소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때때로 스스로도  걷잡지 못할 때가  있는 법입니
다."
  "잘 알겠습니다."
  노숙이 공명에게 그렇게  약속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돌아가서  주유를 만나자 
그 말을 숨겨 둘 수가 없었다. 주유에게  이야기하다 보니 공명이 비밀로 해달라
고 당부한 말마저 모두 털어놓고 말았다.
  주유는 노숙의 말을 듣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조조에게 베푼 
계책은 물론 노숙을 시켜 그의 속마음을 떠보게 한 것까지 훤히 알고 있자 얼굴
이 굳어지면서 말했다.
  "그 사람을 그대로 놔두어선 안 되겠소. 그를 죽여야겠소!"
  "그렇게 가볍게 처리하실 일이 아닙니다. 아무런 명분도 없이 공명을 죽인다면 
필시 조조에게 비웃음을 사게 될 것입니다."
  노숙이 조조까지 들먹이며 말렸으나 주유의 마음은 이미 굳어진 듯 오히려 노
숙을 달랬다.
  "걱정하지 마시오.  사사로운 원한으로 죽인다면  비난을 받을 것이오. 그러나 
공도에 의하여 죽인다면 그 자신도 나를 원망할 수 없을 것이오."
  "공도라니, 어떤 공도로 그를 죽이겠습니까?"
  "두고 보시오. 곧 알게 될 것이오."
  주유는 이미 공명을 해칠 계책을 가슴에 품고 있는 듯 결의에 차 있는 얼굴이
었다.
  다음 날이었다. 주유는  의논할 일이 있다 하여 여러 장수들을  불러들였고 공
명도 그 자리에 청했다. 공명은 주유의 부름을 받고 흔쾌히 주유의 청에 따랐다. 
각기 자리를 정하고 앉자 주유는 먼저 공명에게 물었다.
  "우리는 머지않아 조조 군사와 싸워야 할 것이오. 그런데 물 위에서 싸울 때는 
어떤 병기로 싸우는 것이 좋겠습니까?"
  "큰 강에서의 싸움은 역시 화살을 먼저 써야지요."
  공명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던 주유였던지라 고개를 끄덕
이며 말을 이었다.
  "선생의 말씀이 내 어리석은 생각과 같소이다. 지난날 주나라의 태공망은 자기
의 진중에서 장인들을  시켜 많은 무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군중에는 화
살이 매우 부족하니 수고로우나 선생께서  우리 동오를 위해 화살 10만 개만 만
들어 주시오. 이것은 공적인 일이니 부디  선생께서는 물리치지 마시기를 바랍니
다."
  주유가 공명에게 넌지시 올가미를 씌우기 시작했다.  출진을 며칠 앞두고 화살 
10만 개를 불쑥 만들어달라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공명은 전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태연히 물었다.
  "진중에는 지금 그토록 화살이 부족합니까?"
  "강 위에서 싸우자면 지금 보유하고 있는 화살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도독께서 특히 부탁하시는 일이니 힘써 만들겠습니다. 그런데 10만 개를 언제
까지 만들면 되겠습니까?"
  공명이 주유에게 묻자 주유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앞으로 열흘 이내에 만들어야 합니다. 그 날짜 안에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 말과 함께 주유가 공명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폈다. 공명의 대답에 따라 가
슴에 품었던 계책의 성사 여부가 판가름나는  순간이었다. 이미 스스로는 공명을 
함정에 반쯤 몰아넣었다고 여기고 있는 주유였다.
  공명이 사람을 부려 화살을 만들  텐데 그 기한은 은밀히 사람들에게 영을 내
려 주유의 뜻대로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공명이 한술 더 떴다.
  "조조의 군사가 당장이라도 밀어닥칠지도 모를 일이 아닙니까? 열흘씩이나 기
다리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까 두렵습니다."
  주유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공명으로부터 기일을  늘려달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던 주유는 내심 기뻐하며 물었다.
  "그럼 선생께서는 며칠이면 만드실 수 있습니까?"
  "사흘이면 화살 10만 개를 어김없이 갖다 바치리다."
  공명의 어처구니없는 장담에 주유가 엄한 목소리로 다짐을 두었다.
  "군중에서는 우스갯소리를 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주유의 다짐에 공명은 주유가 하고 싶던 말을 앞질렀다.
  "어찌 도독께 실없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흘 안에 마련하지 못하면 어
떠한 엄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바라건대 군령장을  써서 서약하게 해 주십시
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공명에게 군령을 빙자하여 일을  떠맡길 참이었
는데 스스로 기한을  줄이고 이제는 군령장까지 쓰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공
명을 보니 스스로 칼 아래 목을 내미는  격이었다. 주유는 이제야말로 계책이 이
루어진 것이다  다름없다고 속으로 기뻐하며 군정사를  불러 공명에게 군령장을 
쓰게 했다. 공명이 군령장을 써서 군정사에게 건네  주자 주유는 술상을 차려 오
게 하여 공명을 대접하며 위로했다.
  주유는 속으로 공명과는 마지막 술자리가 될 것으로 여기고 있었으나 짐짓 입
으로는 간곡한 목소리로 고마움을 늘어놓았다.
  "싸움이 끝난 뒤에 선생의 수고에 대해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바라건대 선생
이 군령장까지 쓰고 한 약조를 어기지 않도록 하십시오."
  주유가 다시 공명에게  다짐을 두었다. 주유의 말이 끝나자 공명은  더욱 태평
스런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내일부터 그 일을 시작할까 합니다. 바라건대 도독께선 
사흘째가 되는 날 군사 5백을 강변으로 보내시어 화살을 나르도록 하십시오."
  모를 일이었다.  사흘 후에 마치  강변에서 화살이 솟아나기라도  한다는 말인
가? 주유는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는 공명에게 묻지 않고 기꺼이 군사를 보내겠
다고 응낙했다. 공명은 얼마 있지 않아 술잔을  비운 후 자리에서 일어나 주유와 
헤어졌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돌아가자 노숙이 주유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습니다. 공명이 우리를 속이려 드는 것이 아닐까요?"
  주유가 비웃음을 날리며 고개를 저었다.
  "여러 장수들 앞에서 군령장까지 쓰고 한  약조이오. 어찌 빈말을 할수 있다는 
말이오?"
  "그러나 사흘 동안에 어떻게 화살 10만 개를 만든다는 말입니까?"
  "스스로 죽기로 작정했든가 아니면 무엇에 씐  것일 게요. 내가 그를 핍박하여 
그렇게 된 것은  아니오. 이젠 그가 양편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다 하더라도 
날아서 달아날 수는 없을 게요. 내가 화살  만드는 사람과 장인들에게 은밀히 영
을 내려 일부러 늑장을 부리게 하고 또 필요한 물건을 제때에 대지 못하도록 할 
것이오. 그런데 어찌 기일 안에 화살을 다  만들 수 있겠소? 그때 내가 군법으로 
죄를 물어 목을 벤다 하더라도 그가 달리 무슨 할 말이 있겠소? 그러니 이제 공
은 다시 공명에게로 가서 그의 동정이나 살펴주시오."
  주유 못지않게 공명의  거동이 궁금하던 노숙이었다. 이미  날이 어두웠으므로 
노숙은 이튿날 아침 일찍 공명이 거처하는 곳으로 갔다. 
  공명은 밖으로 나와  장강의 물에 세수를 하고 있었다. 공명이  노숙을 보더니 
어제 그토록 큰소리치던 때와는 달리 원망어린 어조로 말했다.
  "자경께서는 내가 그토록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도독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는 말입니까? 채모와 장윤을  죽인 일을 말하면 반드시 그가 나를 해
치려 들 거라고 말하지  않았소. 그런데 자경께서 그 일을 숨기지  않고 말을 해
버려서 일이 이 지경이  되었소이다. 도대체 사흘 안에 무슨 수로  화살 10만 개
를 만든다는 말씀이오? 그러니 자경께서 부디 나를 좀 구해 주시오?"
  노숙으로서는 헤아리기 힘든 공명의 태도였다. 어제의  그 당당하던 큰 소리가 
하룻만에 비명 소리로 바뀐 것이 아닌가. 그가  지금껏 보아온 공명과는 너무 다
른 모습이었다. 노숙은  그러나 자신이 주유에게 공명이 한 말을  빠뜨리지 않고 
털어놓았다는 걸 알고 있자 다시 한 번 감탄하면서 말했다.
  "공이 스스로 불러들인 화가 아니오. 또한 일이  이 지경이 될 걸 뻔히 알면서
도 공 스스로 기일을 앞당긴 터에 이제와서 나를 원망하면 어쩌자는 것이오? 내
가 무슨 재주로 공을 구해 드린단 말씀입니까?"
  노숙으로서는 이제 와서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는 일이라 어처구니없다는 얼
굴로 공명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공명이 다시 청했다. 
  "자경께선 나를 도와 주시오."
  "내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한단 말씀이시오?"
  노숙이 마지못해 묻자 공명이 대답했다.
  "자경은 부디 내게 배 20척과 군사 5, 6백만 빌려 주시오."
  "그것으로 무엇을 하시렵니까?"
  "한 척마다 군사 30명을 싣고  배 위에는 푸른 휘장을 둘러치고 그 안에는 풀
섶 1천여 개씩을  양쪽으로 나누어 쌓으면 되오. 그 배들만  강기슭에 끌어다 놓
으시면 사흘째 되는 날에는 틀림없이 10만 개의  화살을 구할 수가 있소이다. 다
만 바라건대  주 도독에게는 절대로 이  말을 하지 마십시오. 만일  도독이 아는 
날에는 허사가 되고 맙니다."
  노숙은 군자였다. 이제는 공명도 꼼짝없이 주유의  손에 죽게 되었다고 여기자 
그의 죽음을 아깝게 여겼다. 공명은 자신과 함께  하구에서 배를 타고 동오로 건
너왔던 자가 아닌가. 어쩌면 며칠 뒤에는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도 모를 그가 원
하는 어렵지 않은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던 노숙이었다.
  노숙은 공명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주유에게 돌아갔다.
  "공명은 살대와 살깃이며  아교.칠 따위는 쓰지 않고  화살을 만들겠다고 하였
습니다."
  노숙은 이번에는 주유에게 이렇게만 전하고 배와 풀섶 이야기는 입에 담지 않
았다. 노숙의  말을 들은 주유는 공명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어  한가닥 의심이 
일었다. 그러나  이제 이틀을 남겨 두고  있으니 그가 화살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어쨌든 사흘만 기다려  보면 알 것이오. 그날 어떤 대답을  하는가 어디 두고 
봅시다."
  공명을 이제 자기  손에 죽은 목숨이라고 여기고  있는 주유는 그렇게 말하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주유와 헤어진 노숙은  공명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둘렀다. 빠른  배 20척
을 내고 각 배마다 군사  30명, 푸른 휘장과 풀섶 등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날이 
다 저물었는데도 공명에게서는 아무런 전갈이 없었다.  이틀째가 되어도 역시 마
찬가지였다.
  그러다 사흘째되는 날 사경이 되자 비로소 공명으로부터 은밀히 사람이 와 노
숙을 불렀다. 노숙이 급히 달려가 공명을 만났다.
  노숙이 오자 공명이 기다리고 있었던 듯 말했다.
  "오늘 밤이 약속한 마지막 날이로군요. 수고스러우시지만 함께 가 주셨으면 합
니다."
  "아니, 어디로 말입니까?"
  "강북의 강기슭이지요."
  "거긴 왜 갑니까?"
  "화살 사냥이지요. 화살 사냥!"
  공명은 빙그레 웃으며 의아해 하는 노숙의 손을  잡고 배 안으로 끌어 들였다. 
배 위에 오른 공명은 군사들에게 영을 내렸다.
  "배 스무 척은 길다란 밧줄로 잇대어 묶도록 하라!"
  배 위의 군사들은 공명의 명에 따라 길다란 밧줄로 염주 구슬 꿰듯 배를 연결
했다. 그 일이 끝나자 공명은 북쪽 강 언덕으로 급히 노를 젓도록 영을 내렸다.
  배 위에 오른 노숙으로서는 더욱 어리둥절해질 뿐이었다.
  "이 배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하하하, 곧 절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
  공명은 한바탕 소리내어 웃을 뿐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았다.
  이윽고 하늘거리는 배 안에는 간단한 술상이 차려지고 공명과 노숙이 마주 앉
았다.
  "대체 이 배들을 어디에 쓰려는 것입니까?"
  누숙이 슬며시 궁금한 바를 물었다.
  "이 깊은 안개가 걷히면 알게 됩니다."
  공명은 끝내 자세한 대답을 들려 주지 않았다.
  '혹시 이대로 20여 척의 배를 이끌고 하구로 가려는 것은 아닌가?'
  노숙은 문득 이런 의심이 일어 공명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술잔만 기울이고 있
었다.
  그날 밤은 유난히 안개가 짙었다. 자욱한 안개는  남쪽 강변뿐 아니라 강북 일
대에도 검은 장막을  드리워놓은 듯하여 마주선 사람의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짙었다. 안개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이토록 짙은 안개가 끼는 장강
을 대하며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남겼다. 그 시 '대무수 강부'  중에는 이런 구
절이 있다.
  
  음과 양이 이미 뒤섞이니
  어둠과 밝음이 가려지지 않네.
  하늘이 한 빛임이 의아롭고 
  불현듯 사방은 짙은 안개로 뒤덮였다.
  땔나무 실었어도 눈에 띄지 않고 
  징 소리.북 소리만 울리누나.

  처음에는 다만 어둡고 침침하여
  남산 표범이나 숨길 듯하더니 
  점점 더 짙게 피어올라
  북해의 곤도 길을 잃겠구나.
  뒤이어 위로 하늘을 닿고 
  아래로는 땅에 드리워진다.
  
  아득하기 그지없고
  넓기는 끝간 데가 없구나.
  고래가 물에서 뛰어올라 물결 위에 놀고
  교룡은 못 속에서 숨쉰다.
  어둡고 침침함이 
  넓디 넓어 끝간 데가 없어라.
  
  눈앞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를 헤치고 강 위를 미끄러져 가고 있던 배들
은 오경이 되자  조조의 수채 가까이에 이르렀다. 공명은 배의  머리를 서쪽으로 
두고 꼬리를 동쪽으로 향하게 한  뒤 한 줄로 넓게 벌여 세운 후 군사들에게 명
했다.
  "모든 군사들은 배 위에 올라 일제히 북을 치고 함성을 울려라!"
  공명의 영을 듣자 노숙이 깜짝 놀라며 부르짖었다.
  "어이구 선생, 그 소리를 듣고 조조의  군사가 일제히 쏟아져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그러나 공명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조조가 아무리 간이 크다 해도 이렇게 짙은 안개 속으로 나오지는 못할 것이
오. 우리는 그저 술이나 즐기고 있다가 안개가 걷히거든 돌아가기로 합시다."
  공명이 시원스레 한 마디 던지더니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그날, 조조는 강변에 짙은 안개가 끼자 군사들에게 엄명을 내려 두고 있었다.
  "이런 밤일수록 방심하지 말라. 각 진영은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
  그의 머릿속에는 동오의 군사에 비해 수전에 약한 북군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 
차 있던 터였다. 그날 밤에도 휘하 장수들을  독려하며 그 자신도 밤이 이슥하도
록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조조의 수채에서는 갑자기 요란한 북 소리와 함성이 들려 오자 모개와 
우금이 황망히 조조에게 달려가 보고했다.
  물에서의 싸움이 서툰 장수들이라 우선 조조에게 사실을 알려 명을 받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다. 얼마 되지 않아 조조로부터 모개와 우금에게 영이 내려졌다.
  "이토록 짙은 안개 속을 헤치고 적군이 왔다면 필시 매복이 있을 것이다. 결코 
가볍게 군사를 움직이지 않도록 하라. 다만  수군의 궁노수들로 하여금 어지러이 
활과 쇠뇌를 쏘아 적이 물러가기를 기다려라!"
  조조는 역시 수전에  어두운 터라 신중을 기해  공격보다 방비를 하도록 명을 
내린 것이었다. 또 뭍에 있던 장요와 서황을 불러 명을 내렸다.
  "그대들은 각기 궁노수  3천을 이끌고 급히 강변으로  나가 수군과 함께 활과 
쇠뇌를 쏘도록 하라!"
  그러나 조조가 장요와 서황에게 명을 내리기 전에 이미 모개와 우금은 동오군
이 수채로 엄습해  올까 겁을 먹고 궁노수들을 내어 화살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이윽고 뭍의 궁노수들이 도착하자 도합 1만여 명의  궁노수가 북 소리.고함 소리
가 나는 쪽을 향해 무턱대고 빗발치듯 화살을 쏟아 부었다.
  화살은 공명이 이끌고 간  20척의 배 위로 비 오듯 떨어지고  있었고, 그 화살
들은 배 위에 있는 풀섶 더미에 꽂혔다. 풀섶  더미는 수많은 화살이 박혀 그 모
양새가 마치 고슴도치 같았다. 그러자 공명이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이제는 배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도록 하라. 뱃머리를 꼬리 쪽으로 돌려라!"
  배의 방향을 반대 방향으로 돌린  공명은 조조의 수채 쪽으로 더욱 가까이 접
근해 가도록 했다.
  "이번에는 더 크게 북 소리와 함성을 울려라!"
  북 소리와 함성이 더욱 가까워지자 조조군의 수채에서는 적이 더 이상 다가오
지 않도록 더 많은 화살과 쇠뇌를 쏘아댔다.  그 화살들은 이번에는 반대편의 배 
위에 있던 풀더미에 메뚜기 떼가 날아들 듯 빽빽하게 꽂혔다.
  이윽고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안개는  서서히 걷혀지기 시작했다.  공명은 곧 
영을 내려 배를  수습하며 조조의 수채에서 물러나게 했다. 공명은  배를 이끌고 
동오로 향했다. 20여 척의 뱃전 양쪽에 늘어  세운 풀섶에는 빈틈없이 화살이 꽂
혀 있어 마치 큰 화살더미처럼 보였다.
  "조 승상님, 화살을 주어 고맙습니다!"
  공명은 동오로 향하기 전 군사들에게 큰 소리로 일제히 외치게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의아하게 여긴 조조의  군사가 곧 조조에게 그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조조가 그 까닭을 헤아리고 이를  갈았으나 이미 때가 늦은 뒤였
다. 공명의 배는 빠른  물살을 타고 20여 리나 내려가 버린  뒤여서 뒤쫓을 수도 
없었다. 공명이 배를 되돌려 동오로 돌아갈 때였다.
  "배 1척에 화살이 5,  6천은 될 것이오. 이끌고 온 배가 스무 척이니  강동에서
는 반푼의 힘도 들이지  않고 화살 10만 개를 얻게 되었소.  내일이라도 당장 이 
화살로 조조의 군사를 칠 수 있으니 참 재미있는 일이 아니겠소?"
  공명이 웃으며 노숙에게 그렇게 말했다. 노숙은  어젯밤부터 공명의 계책을 깨
닫고 그 지모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공명의 물음에 감탄을 이기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선생의 높은 지모는 도저히 헤아릴 길이 없겠습니다. 사흘 안에 10만 개의 화
살을 만들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장인들을 동원하여 10만 개의 화살을 만들려면 열흘이 아니라 한 
달이 걸려도  만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주 도독이  장인들과 재료로 
쓸 물건들을 제때에 충분히 대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 도독의 목적
은 화살을 만드는 데에 있지 않고 이 공명의 목숨에 있었으니까요."
  노숙은 공명의 말에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실로 신인과 같은 분이십니다. 그런데 지나간 밤에 이처럼 짙은 안개가 낄 것
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장수 된 사람이 천문에 통하지 못하고 지리를 알지 못하며, 기문을 모르고 음
양에 어두우며 진도를 볼 줄 모르고 병세에 밝지 못하다면 참다운 장수라 할 수 
없습니다. 구름과 안개의 증발은 바람의 방향과  속도 등을 감안한다면 어리석은 
어부도 예측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 도독에게 사흘이라고 약속한  것은 그러한 
날씨의 예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 도독이 7일이나  열흘을 고집하였더
라면 이 양도 난감했을 것입니다."
  노숙은 공명의 말에 감탄한 나머지  절로 고개가 수그러져 손을 모아 절을 올
렸다.
  이윽고 공명의 배는 동오의 강기슭에 이르렀다.  강기슭에는 이미 주유가 보낸 
5백 명의 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명은  군사들에게 명해 배안의 화살을 거두
어 가게 하되 화살을  하나하나 살펴 촉이 무디어진 것, 대가  부러진 것을 가려
내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만을 다발로 묶게 했다. 10만  개의 화살이 채곡채
곡 쌓여졌다. 군사들은 10만 개의 화살을 중군장에 옮겨다 놓았다.
  군사들이 화살을 거두고 있는 동안 노숙은 주유에게 갔다.
  "그래 화살은 어찌 되었소?"
  주유가 즉시 군법으로 공명을 다스리겠다는 어조로 급히 물었다.
  "화살 10만 개를 가져왔습니다."
  주유가 노숙의 대답이 얼른 믿어지지 않아 반문했다.
  "자경은 지금 내게 무어라고 했소?"
  노숙은 공명이 화살을 조조군으로부터  밤새 거둬온 경위를 자상히 들려 주었
다. 주유는 그 말을 듣더니 길게 탄식해 마지않았다.
  "아, 나의 잘못이로다,  내가 소견이 좁아 제갈량의 지모를 미워하고  시기하여 
그를 헤치려고만 했다. 나로서는  그의 신기묘산을 따를 수가 없구나. 그는 실로 
하늘이 낸 사람이오."
  주유도 동오 제일의  영걸이다. 공명을 당할 수 없음을 깨닫자  스스로 부끄럽
게 여기며 노숙을 시켜 공명을 청했다. 오래지  않아 공명이 영채에 이르자 주유
는 스스로 장막 밖으로 나가 그를 경탄해 맞이했다.
  "선생의 귀신과 같은 지모는  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우러르며 따르게 하는 바
가 있소."
  "하하, 그렇나 속임수를 어찌 지모라  하십니까? 오히려 그릇이 큰 사람이라면 
부끄러워할 일이지요."
  "과찬이 아닙니다. 옛날 손자.오자도 아마 선생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주유는 그렇게  말하며 공명을 장막  안으로 이끌어 주연을  베풀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난 후 주유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오늘 주공께서 사람을  보내 빨리 군사를 내어 조조를 치라고 재촉하시
었소. 그러나  이 유에게는 아직 묘책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선생께서 
제발 우리 동오를 위해 조조의 대군을 물리칠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주유가 한결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도독은 강동의 호걸입니다.  녹녹한 둔재에 지나지 않는 
이 양에게 어찌 계책이 있을 리 있겠습니까?"
  공명이 겸양의 말로 대답을 비껴가자 주유가 속셈을 털어놓았다.
  "제가 어제 조조의 수채를 살펴보았는데, 물과  뭍이 하나의 밧줄로 연결된 듯 
빈틈이 없었습니다. 또한 전선의 배열이나 수채의  얽어 만듦이 정연하고 법도에 
합당했습니다. 적의 진용이  저러하니 깨치기는 커녕 가까이  나아가기도 어려워 
근심하고 있습니다. 겨우  한 가지 계책을 생각했으나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
습니다. 바라건대 선생께서 나를 위해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그 말에 공명은 그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도독께서는 지나친 겸사의 말씀이십니다. 이 양에게도 계책이 하나 없지는 않
습니다. 그러니 각자 자기의  계책을 손바닥 위에 쓴 뒤 같이  펴보는 것이 어떻
겠습니까? 그리하여 두 사람의 계책이 같은 것인지, 아닌지 보기로 합시다."
  그 말에 주유가  기뻐했다. 당장 출진을 서둘러야 하는 터라  공명에게 계책을 
물었지만 결코 유쾌한  마음일 리는 없었다. 또한 공명도 주유의  계책을 짐작하
고 있었으나 주유의 마음을 자극시키지 않고 계책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렇게 말
한 것이었다.
  주유는 붓과 벼루를 가져오게 하여 보이지 않게 자신이 먼저 손바닥안에 글씨
를 쓴 후 붓을  공명에게 넘겨 주었다. 공명도 붓을 들어  손바닥안에 글씨를 썼
다. 다 쓰고 나자 두 사람은 자리를 가까이 옮겨 앉았다.
  "자, 그럼 손바닥을 펴 글자를 맞추어 봅시다."
  공명이 주먹을 내밀며  말하자 주유도 주먹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주
먹을 뒤집어 손바닥을 폈다. 서로의 손바닥에 있는  글씨를 보자 두 사람은 함께 
소리내어 크게 웃고  말았다. 공명과 주유의 손바닥에는 똑같이 불  화자가 쓰여
져 있었던 것이었다. 
  "오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치하였구려. 두 사람의 뜻이 이같이 같으니 이젠 
주저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주유는 자신의 계책이  공명의 계책과 같자 크게 기뻐하며 그렇게  말했다. 공
명도 주유의 다짐에 선선히 동의하며 말했다.
  "동오와 우리 유 황숙 두 집의 대사인데 어찌 함부로 입 밖에 누설할 수 있겠
습니까? 조조는 나의 계책에 두 번이나 당하기는 했어도 아직 다른 계책을 세우
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도독께서 작정하신 계책으로  조조를 친다면 반드시 이기
실 것입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이렇게 이러지자 술자리는  더욱 흥겨워졌다. 이윽고 술자
리가 끝나자 두 사람은 헤어졌다.

  황개와 감택, 
  드디어 조조의 진중으로
  
  조조는 주유의 진중으로 채씨 형제를 첩자로  보내고, 고육지계를 감당한 황개
는 감택에게 도움을 청한다. 한편 조조는 적진으로  투항해 온 감택을 엄히 심문
하여 목베려 하지만 눈썹 하나 까딱 않는 당당한 태도에 마침내 신뢰를 보인다.
  
  그때 강북 조조는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공명의  계략에 보기 좋게 넘어가 화
살 15, 6만  개를 하룻밤 사이에 잃은데다 동오군이 가가대소  쾌재를 불렀을 것
을 생각하니 심사가 뒤틀렸다.
  조조의 불편한 마음을 헤아린 순유가 계책을 내었다.
  "동오에는 공명이 있으며 주유도 보기 드문 맹장입니다. 거기다가 장강을 사이
에 두고 있으니 적의  내정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동오에  사람을 보내 거
짓 항복을 하고, 그를  통해서 소식을 알아 오게 하여 계략을  세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조조가 순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네.  그런데 우리 군중에 누가 그 계책을 
맡아 잘 행할 수 있겠는가?"
  "이미 채모가 죽었으나 채씨 일족들은 모두  우리 군중에 있습니다. 특별히 그
의 족제  채중.채화는 모두 부장으로  있으니 승상께서 그들에게 특별히  은혜를 
베푸시어 그들을 달랜 다음 동오로 보내도록  하십시오. 동오에서는 채모가 억울
하게 죽었음을 알고 있는 터라 그들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조가 들어 보니  그럴 법한 일이었다. 그러나 일이 어그러질까  노파심이 일
어 재차 물었다.
  "만약 채중 형제가 그곳에  가서 오히려 동오에 투항하여 채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우리에게 불리한 소식을 전해 오거나 계책을 세우지 않을까 두렵네."
  조조의 걱정을 순유가 안심시켰다.
  "그런 염려는  아니하셔도 됩니다. 형주에는  채중.채화의 처자가 남아 있습니
다. 어찌 승상님을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조조는 순유의 계책을 좇기로  하고 그날 밤 채중과 채화를 자신의 군막
으로 불러들였다.
  "그대들 두 사람은 군사  수백을 데리고 동오로 건너가 거짓으로 항복을 하고 
그곳의 동정을 살핀  후에 사람을 보내 이쪽에다 알리도록 하라.  일이 성사되면 
후한 상을 내릴 것이니 다른 마음을 품지 않도록 하라."
  조조가 술잔을 내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자 두 사람은 결연한 어조로 대
답했다.
  "저희들의 아내와 자식이 모두 형주에 있는데 어찌 감히 딴마음을 품을 수 있
겠습니까? 승상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주유와 제갈량의 머리를 베어 
승상님의 발 아래 바치겠습니다."
  두 사람은 동오의 동정을 살피는 것은 물론 주유와 공명의 목까지 바치겠다고 
호언했다. 조조는 그  일이 말대로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
나 그들의 진정어린  말에 크게 기뻐했다. 조조는 후한상을 내려  그들을 위로했
다.
  다음 날 채중과 채화는 몇 척의 배에다  휘하의 군사 5백 명을 태웠다. 그리고
는 서둘러 배를 탄 것처럼 병기며 물건들을 두 척의 배 위에 어지럽게 흩어놓은 
후 동오로 향했다. 순풍에  돛을 단 배는 오래지 않아 동오의  남쪽 강기슭에 이
르렀다.
  이때 주유는 진중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적진에서 두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투항해 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주유가 곧 그들을  불러들였다. 주유 앞에 불려온 채화와 채중은  절을 하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주유가 두 사람을 쏘아보며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인가?"
  "북군의 부장 채중과 채화입니다. 조조군의 수군  도독을 지내다 죄 없이 죽은 
채모의 아우들입니다."
  두 사람이 채모의 아우들이라는 말에 주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채모의 아우라
면 조조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쉽게 의
심을 풀 수 없다고 여긴 주유가 다시 두 사람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동오에 투항하였는가?"
  주유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떨구고 다시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저희들의 형 채모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조조의 손에 죽었습니다. 형을 죽인 
조조는 저희 형제까지  의심하니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저희 형제
는 조조의 손길에서 벗어나는 한편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렇게 항복하러 온 
것이니 거두어만 주신다면 선봉이 되어 조조와 싸우겠습니다."
  그들 두 사람이  채모의 아우이므로 형의 억울한  죽음에 원한을 지니는 것은 
당연했다. 주유도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그들이 투항해  온 것을 매우 기뻐하며 
두 사람에게 후한 상까지 내리며 말했다.
  "그대들이 맹세코 동오를 위해 힘껏 싸우겠다니 정말 기쁘구나."
  주유는 쾌히 승낙하고  이들을 감녕의 휘하에 머물게 했다. 채중과  채화는 주
유가 자기들에게 속아 넘어간 것으로 여기고 속으로 기뻐하며 절하고 물러났다.
  그들이 물러나자 주유는 감녕을 부르더니 은밀히 분부를 내렸다. 그런데 채중.
채화에게 했던 말과는 전혀 달랐다. 
  "채중.채화는 아내와 자식들을  데려오지 않은 걸로 보아  거짓으로 항복해 온 
조조의 세작들이다.  그러나 내가 오히려  그들을 이용하여 그릇된  소식을 흘려 
보낸다면 조조가 오히려  낭패를 볼 것이다. 그대는 시치미를 떼고  은근하게 대
하여 우리가 속은 줄로 알게  하되 속으로는 항상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하
라. 조조를  치러 가는 날에 그들의  목을 베어 군기로 삼겠으니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명심하라."
  감녕이 주유의 분부를 받고 물러나자 노숙이 들어왔다.
  "채중.채화의 항복이  아무래도 거짓 같습니다.  그들을 진중에 머물게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노숙은 두 사람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주유가 쾌히 받아들이는 것을 보
자 걱정이 되었는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주유는 또 노숙에게는  감녕에게 했
던 말과는 달리 시치미를 떼고 다른 소리를 했다.
  "채중.채화는 그 형이 조조로부터 억울하게 죽은  것을 보고 그 원수를 갚으러 
온 것이오.  그런데 어찌 의심을 하려  드시오? 그토록 의심이  많아서야 어떻게 
천하의 인재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주유는 노숙에게도 자기의  계책을 밝히지 않고 비밀에  붙인 채 핀잔을 주었
다. 주유가 언짢은 얼굴로 잘라  말하자 노숙도 더 이상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채중.채화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고, 주유의 경솔한 행동이 마땅
치 않아 공명을 찾아가 그 일을 한탄했다.
  그러나 노숙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난 공명은 빙긋이  웃기만 했다. 
노숙은 주유에게 말했다가 꾸지람만 듣고 물러난 터라 공명의 그 웃음에 비위가 
상해 불쑥 따지듯 물었다.
  "선생은 어찌하여 웃으시오?"
  "자경께서 공연한 일을 걱정하시기에 그만 웃음이 나왔을 뿐이오."
  공명은 노숙의 이야기를 듣고 헤아린 주유의 계략을 들려 주었다.
  "채중.채화의 투항은 분명 거짓일 것이오. 그들의 가솔이 아직 강북에 남아 있
지 않습니까? 강북과 동오와는 큰 강이 가로놓여 있어 세작들이 오고 가기가 어
렵소. 그러니  조조가 채중.채화를 보내 거짓으로  투항하게 하여 동오의 허실을 
살피게 한 것이외다. 그러나 공근은 또 그것을  알고도 짐짓 모른 체하고 그들을 
역이용하려고 받아들인 것이 아니겠소? 그릇된 허실을 조조에게 알려 조조를 궁
지로 몰아넣으려는  계책이지요. '용병에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는 병불염사
란 말이 있거니와 이는 공근의 계책이 마땅한 것이 아니겠소?"
  "오오, 그렇군요?"
  노숙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공명과 헤어져 자기의 처소로 돌아갔다.
  그때 주유는 조조와의 결전에 대한 궁리로 군막 안에 불을 밝힌 채 홀로 생각
에 잠겨 있었다. 이미  화공으로 계책을 세운 바 있었으나 그  계책을 언제 어떻
게 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책이  세워져 있지 않았다. 주유가 생각에 
잠기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황개가 아무도 거느리지 않고 홀로 
진중을 찾아왔다.
  황개는 손견 이래  3대에 걸쳐 동오를 섬겨 온 공신이었다.  백설같이 흰 머리
는 젊음이 다한 것을 말해 주고 있었으나  눈동자만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어, 아
직도 젊은  장수를 능가하는 기개가  넘치는 노장이었다. 주유는  황개를 이제는 
나이가 든 장수로만 여겼으나 그의 형형한 기개를 보니 믿음직스런 마음이 들어 
반겨 맞았다.
  "공복께서 이토록 깊은 밤에 찾아오셨으니 필시 조조를 깨뜨릴 좋은  계책이라
도 있는 모양이구려."
  그러자 황개는 다른 말 없이 자신의 생각부터 털어놓았다.
  "이렇게 조조군과 맞서 오래  끌다 보면 조조에게 더욱 수채의 방비를 견고히 
하며 수군을 조련할  시간만 줄 뿐입니다. 게다가 그쪽은 대군이고  우리의 군사
가 적으니, 적은 군사로 대군을 치려 하거늘 어찌하여 화공을 쓰지 않으십니까?"
  황개의 말에 주유가  깜짝 놀랐다. 화공의 계책을 아는 사람은  자신과 공명밖
에 없지 않은가. 주유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화공을 쓰다니, 대체 누가 그런 계책을 일러 주었습니까?"
  황개가 주유의 물음에 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독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내 스스로 생각해 낸 계책이외다."
  황개의 말에 주유는 비로소 마음을 놓으며 입을 열었다.
  "오오, 장군의 생각이  바로 나의 생각이오. 실은 채중.채화가  거짓 항복을 하
여 우리 진중에 와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사항계를 베풀
기 위해 진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실로 좋은 계책이십니다. 헌데 도독께선 그들을 어떻게 이용하여 조조를 속일 
생각이십니까?"
  주유는 황개의 물음에 답하면서  그 동안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생각을 
말했다.
  "그 기책을 행하려면  동오에서도 거짓으로 항복할 사람을 조조에게 보내야만 
합니다. 조조가 투항한  사람의 믿게 하려면 채중.채화를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맡을 사람이 없어 한스러울 뿐입니다."
  주유가 한탄 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황개를  바라보았다. 주유의 얼굴에는 황개
가 그 일을 맡아 주었으면 하는 간곡한 바람이 서려 있었다.
  황개가 장수답게 불문 곡직하고 반문했다.
  "어째서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까?"
  황개는 서운하다는 듯이 따지고 들었다.
  "동오가 그 기업을 다진 이래  3대에 이르고 있는데 그깟 일 하나 해 낼 사람
이 없다  하시니 도독도 사람을 볼  줄 모르십니다. 여기에 불초  황개가 있지를 
않습니까!"
  황개는 얼굴을 붉히며  격한 어조로 말했다. 주유는 내심 기쁜  마음을 억누르
며 짐짓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러나 조조가 의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먼저 그곳으로 가는 사람이 큰 
고초를 겪어야만 합니다.  장군께선 동오의 원로이신데 제가 어찌 그  같은 고초
를 겪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조에게 거짓 항복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고육지계를 쓰리라고 작정하고 있
던 주유의 말이었다. 주유가 미리 고육계를 황개에게  말해 그의 각오를 다져 두
고 싶었던  것이었다. 황개는 주유의 말에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3대에 걸쳐  손씨로부터 두터운 은혜를 받은 몸이외다.  설령 간과 뇌를 
땅에 쏟고 죽는다 해도 아무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주유는 황개가 그렇게  말하며 맹약을 표시하자 크게 기뻤다. 함부로  입 밖에 
낼 수 없는 계책을 속으로만  감추어 두고 참담한 고심을 거듭해야 했던 주유는 
황개의 굳은 충성심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황
개에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장군께서 이 고육계를 감수하여 주신다면 이는 실로 강동으로서는 더없는  다
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나 또한 강동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니 무슨 여한이 남겠습니
까?"
  황개는 주유의 절을 받자  자신도 절하며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두 사람은 밤
이 깊도록 밀약을 주고받은 후 헤어졌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황개와 헤어진  주유는 잠시 눈을 붙였다가 아침이 되기가 
무섭게 북을  울려 여러 장수들을 불렀다.  주유의 명에 의해 공명도  불려 나가 
한쪽에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여러 장수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주유가 엄한 목소리로 영을 내렸다. 
  "조조는 백만 대군을 이끌고 3백여 리에  걸쳐 영채를 세우고 있다. 우리 동오
가 하루 이틀 만에 깨뜨릴 수가 없는  대군이다. 모든 장수들은 앞으로 3개월 동
안을 버틸 수 있는 양초를 마련하여 배에 실은 후에 적을 막도록 하라!"
  오랫동안 조조와 대치하고 있던  주유가 다시 장기전에 대한 대비만을 하도록 
영을 내리자 장수들은  석연치 않은 얼굴들이었다. 거기다가  주공인 손권으로부
터 군사를  빨리 내라는 재촉을 받은  터가 아닌가. 여러 장수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데 한 장수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도독께선 지금 몇 달 치의 군량과 말먹이풀을 마련하라 하셨습니까?"
  그 장수는 바로 동오군의 노장 황개였다. 주유가 황개를 노려보며 말했다.
  "석달 치라고 말하지 않았소?"
  주유의 말에 황개가 목소리를 높이며 대들었다.
  "석달 치 아니라 서른달  치의 양초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이러다가는 아무 일
도 이루지 못할 것이오.  이달 안으로 당장 조조를 격파하겠거든, 그대로 진병하
도록 하오. 만약 이달 안으로 조조를 깨뜨릴  자신이 없다면 그것은 영영 조조를 
깨뜨릴 자신이 없다는 것과 같소. 그러니 차라리  장소의 말대로 모두 갑옷을 벗
고 창을 거꾸로 잡은 채 조조에게 항복함이 나올 것이오!"
  황개의 외침에 여러 장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도독의 말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나섰기 때문이다.  과연 주유는 얼굴빛을 붉게 물들인채 크게  노해 소
리쳤다.
  "나는 주공의 명을 받들어 군사를 거느리고  조조를 치려고 왔다. 그런데 어찌
하여 내 앞에서 항복을 말하느냐! 주공께서는 또다시 항복을  입에 담는 자가 있
으면 누구든 목을  베라고 말씀하셨다. 더구나 우리가 지금 조조와  맞서고 있는 
이때 그런 말을 하여 군사의  사기를 꺾으려 드는가? 너 같은 자를 목베지 않고 
어찌 모든 군사를 거느릴 수 있겠는가?"
  주유는 말을 마치자마자 좌우를 돌아보며 엄명을 내렸다.
  "어서 저놈의 목을 베라!"
  무사들이 황개를 붙잡아 이끌자 황개도 큰 소리로 주유를 꾸짖었다.
  "나는 파로장군을 섬긴  이래 동과 남을 휩쓸며  지금까지 3대에 걸쳐 동오를 
위해 싸워 온 사람이다. 네가 감히 나에게 이 따위 수작을 부리는 것이냐!"
  황개의 말에 주유는 더욱 노기가  뻗친 듯 무사들에게 빨리 목을 베라고 외쳤
다. 장수들은 한결같이 몸을 떨었다.
  황개가 아무리 3대에 걸쳐  주공을 섬긴 원로라지만 대도독인 주유의 명을 거
역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조와 맞서고 있는  이때 동오의 
충신이며 노장인 황개의 목을  베게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이에 감녕이 주
유 앞에 나아가 간곡히 대신 죄를 빌었다.
  "공복은 강동의 오랜 신하입니다. 도독께서는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
랍니다."
  그러나 주유가 이번에는 더욱 화난 목소리로 감녕마저 꾸짖었다.
  "네놈도 감히 그따위 말을 지껄여 나의 법도를 어지럽히려 하느냐?"
  주유는 그렇게 꾸짖더니 좌우에게 영을 내렸다.
  "여봐라. 먼저 이 자부터 곤장으로 매우 쳐라!"
  감녕은 주유와 황개가  짜고 꾸미는 계책인 것을 전혀 몰랐다.  대도독 주유가 
불같이 노해 내린 명이니 감녕만  억울하게 곤장을 맞고 쫓겨나는 꼴이 되고 말
았다.
  그러나 감녕이 비록 매를 맞고 쫓겨났지만, 황개를  그 자리에서 죽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여긴 장수들은 모두가 한꺼번에 엎드려 빌었다.
  "황개의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를 참수하면 우리 동오에
게는 이롭지 못하며 오히려 조조에게 이로울  뿐입니다. 도독께서는 너그러이 살
피시어 잠시  그 죄를 뒤로 미루십시오.  황개의 목을 베는 일은  조조를 깨뜨린 
후에 하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장수들이 입을  모아 간곡히 청했다. 그래도 주유는 노기가  풀리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여러 장수들이 한결같이  나서서 청하자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윽고 주유는 마지못한 듯 황개의 목베는 일을 뒤로 미루었다.
  "살려 둘 수는  없는 자이나, 오늘은 여러 관원들의 낯을  보아서 특별히 목을 
베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  대신 저 자의 등에 곤장 백 대를 쳐서  그 죄를 밝히
도록 하라!"
  주유가 그렇게 명을 바꾸어 내리자 여러 관원들은 다시 주유에게 엎드려 빌었
다. 아무리 장수라  하지만 황개는 늙은 장수였다.  곤장 백 대를 등에 맞는다면 
그 매에 목숨이 붙어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척추에 백 대의 곤장을 친다는 것은 너무 심합니다. 곤장을 반으로 줄여 주십
시오. 황개가 이미 연로한 나이라는 것을 살펴 주십시오."
  여러 관원들의 말은  주유의 노리를 더욱 부추긴 결과밖에 되지  않았다. 주유
는 앞에 있는 탁자를 밀쳐  엎으며 여러 관원들을 꾸짖더니 벽력같이 소리쳐 영
을 내렸다. 
  "어서 곤장을 치지 못하겠느냐!"
  주저하고 있던 무사들도 하는 수  없이 황개의 옷을 벗긴 후 땅에 엎어놓고는 
곤장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
  곤장을 잡은 무사들은 황개의 좌우에서 사정없이  매질을 가했다. 땅에 엎드린 
황개는 일곱 대,  여덟 대까지는 이를 악물고 견디는 듯했으나  열대를 넘어서면
서부터 비명을 지르며 몸을 꿈틀거렸다.
  "열다섯, 열여섯 ...."
  매질의 횟수가 더해감에  따라 늙은 장수의 몸에서는  살이 찢겨 나가고 붉은 
피가 튀어 백발마저 붉게 물들었다.
  "마흔하나, 마흔둘 ...."
  쉰 대가 가까워지자 황개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땅바닥에 몸을 축 늘어뜨
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황개의 이런  모습을 보자 모든 장수들이  다시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주유도 그제서야 웬만큼 분이 풀린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매서운 얼굴로 황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꾸짖었다. 
  "네 이놈! 그래도 나를  하찮게 볼 것이냐? 내 오늘은 여러  장수들의 낯을 보
아 여기서 그친다만, 남은 쉰  대는 훗날을 기약하리라! 다시 한 번 무엄한 소리
를 하면 그때는 당장 목을 베리라!"
  주유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꾸짖음을 멈추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
나더니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주유가  돌아가자 장수들은 황개를  부축해 그의 
진중으로 돌아갔다. 진중으로 가는 동안에도 찢겨진  살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황개는 깨어났다가는 다시  혼절하기를 반복했다. 평소에 황개와  가까웠던 원로 
장수들을 비롯한 관원들은 그 참혹한  꼴을 보자 모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황개가 곤장을 맞고 처참한 몰골로 돌아가는 것을 본 노숙의 마음은 어둡기만 
했다. 조조와 결전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진중의 원로를 거의  죽음에 이르도록 
매질을 하니  앞으로 자중지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황개를 
따라가 위문하고 나온 노숙은 무거운 마음으로 공명이 있는 배를 찾아갔다.
  공명이 노숙을 맞아들이자 노숙은 원망어린 어조로 말했다.
  "오늘 도독께서 성이 나 황개를 꾸짖을 때, 우리는 모두 그의 아랫사람이라 감
히 맞대놓고 말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께선 손님 된 입장으로서  그 자리
에 있었는데 어째서 팔장만 끼고 구경만 하셨습니까? 선생께서 말려 주셨더라면 
일이 그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노숙의 말에 공명은 나직하게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자경은 지금 나를 속이려 하시오?"
  "속이려 하다니요? 이 노숙이 선생을 동오로 모시고 온 이후 한 번도 속인 일
이 없소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노숙은 공명의 말에 의아스럽다는 듯이 반문했다.
  "도독이 오늘 공복 노인을  매질한 것이 본심이 아니었다는 것쯤은 알고 계실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내가 어떻게 도독을 만류한단 말입니까?"
  노숙은 공명의 말을  듣고서야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다. 지난번  주유가 장간
에게 계책을 베풀었을 때처럼 이번에도 고육지계를 펴기 위한 것임을 알고 고개
를 끄덕였다. 두  번이나 주유의 계책을 헤아리지 못한 우둔함에  스스로 말문을 
닫고 있는데 공명이 말을 이었다.
  "조조 같은 인물을 속이기 위해선 고육계  같은 계책이 아니면 아니 될것이오. 
공복에게 거짓 투항을  하게 하고 그것을 채중.채화 형제에게 보여  조조와 내응
토록 할 계략인 것입니다.  채중.채화가 이 일을 조조에게 알린다면 조조도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그러나  자경께서는 결코 내가 그  계책을 알고 
있더라고 도독께는 말하지  마시오. 다만 나 또한 도독의 가혹한  처사를 원망하
고 있더라고만 전하십시오."
  공명의 당부에  노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숙은 공명과 헤어지고  나서 다시 
주유의 장막을 찾았다.  비록 공명에게 들어 주유의 계책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
게 사실인지 궁금했다. 주유를 보자 노숙은 넌지시 물었다. 
  "오늘 도독께서는 어찌하여 황개를 그토록 혹독하게 벌하였습니까?"
  그러나 주유는 대답 대신 노숙으로부터 무슨 낌새라도 엿볼 듯이 되물었다.
  "장수들은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이까?"
  주유가 자신으로부터 무엇이가 알아 내려는 듯 묻자 노숙은 공명의 말이 옳았
음을 알았다. 그러나 시치미를 떼고 대답했다.
  "모두들 걱정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공명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소?"
  "그도 도독께서 너무 박정한 사람이라며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주유가 빙그레 웃었다. 공명도 알아채지 못한  계책을 베풀었다고 생각하니 몹
시 기쁜 모양이었다. 주유가 은근한 목소리로 자랑하듯 말했다.
  "오늘 황개를 모질게 때린 것은 실은  고육계를 베풀기 위한 계책이었소. 황개
를 조조에게 보내어 거짓 항복을 하게 하여 그를 속인 뒤에 화공을 써야만 이길 
수가 있을 것이오."
  주유의 말을 들으며  노숙은 또 한 번 공명의  높은 식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치미를 뗀 채 주유에게는 입을 열지 않았다. 공명이 알고 있더
라는 말을 하여 또 주유로부터 두려움과 경계심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
자 노숙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주유가 여전히 웃음지은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는 공명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구려. 공명도 알지 못했다면 이번 계책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오."
  노숙은 주유가 기뻐하는 걸 보며 주유의 장막에서 물러 나왔다.

  한편 쉰 대의 곤장을  무자비하게 맞고 난 이후 황개는 4,  5일을 넘겨 진중의 
병상에 누운 채 신음하고 있었다.
  "정말로 애통한 일이외다."
  여러 장수들이 그치지  않고 찾아와 위문했다. 어떤 사람은 황개와  함께 슬퍼
하고 어떤 사람은  주유의 모진 처사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황개는 위로하
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길게 탄식만 토해 낼 뿐
이었다. 주유의 지나친 처사에 그만큼 깊게 마음의 상처가 난 듯했다.
  그런 어느 날 문득 수하 한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감택께서 오셨습니다."
  "이리로 모셔라."
  그와 가까이 지내던  감택이 왔다는 말에 황개는 아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황개는 좌우 사람들을 물리치더니 감택만을 불러들였다.
  "장군께서는 도독과 원수진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감택이 황개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물었다.
  "그런 일은 없네."
  황개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감택이 대뜸 물었다.
  "그렇다면 장군께서 매를 맞은 일은 고육계를 베풀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 뜻밖의 말에 황개가 놀란 눈으로 감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그걸 알았는가?"
  "도독의 얼굴과 거동을 보고, 열에 아홉은 그러리라 여겼습니다."
  감택이 서슴없이 말했다.  그러자 황개도 숨김없이 그 동안의 모든  걸 털어놓
았다.
  "과연 밝게 헤아렸네. 나는 3대에 걸쳐 동오를 섬기면서 은혜를 입었는데 보답
할 길이 없던 터에  이제 그 계책을 바쳐 조조를 깨뜨리고자  함일세. 비록 견디
기 어려운 고초를 겪었으나 아무런 한은 없네.  다만 한스러운 것은 우리 진중에 
나와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네. 이제 공을  만나니 이제
야 찾고 있던 사람을  만난 듯하여 근심이 사라지네. 공의 충의를  내가 잘 알고 
있는 터이니 털어놓고 못할 말이 어디 있겠나?"
  평소 가까운 사이이기는 했으나 황개의 말은 여느 때보다 더욱 간절하고 은근
했다. 황개의 그와 같은 은근한 말에 감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공께서 그러한  계책을 오직 저에게 털어놓으신  것은 저로 하여금 거짓으로 
항복하는 글을 조조에게 보내려 하시는 것이 아닌지요?"
  "그렇네. 어떤가? 공이 그 일을 맡아 해 줄 수가 있겠는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주군을 섬기며, 칼을 차고 풍운
에 몸을 던져 한  번의 공훈도 얻지 못함은 죽은 목숨과  다름 아닙니다. 하물며 
노장군께서 한 목숨 내던지시며 은혜를 갚기 위해 계책을 도모하시는데 어찌 이 
감택이 목숨을 아끼겠습니까?"
  감택이 분연히 말했다.
  "고마울 따름이오."
  황개는 감택의  재주와 성품을 잘 알고  있는 터라 그 일을  부탁한 것이었다. 
감택이 흔쾌히 응락하자 황개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그의 손을 잡았다.
  감택은 자가 덕윤이고  회계군 산음현 사람이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으나 
글읽기를 좋아해 날품팔이를  하면서도 남의 책을 빌려다가  읽곤 했는데 한 번 
읽은 것은 잊는  법이 없었다. 거기다가 말솜씨가 뛰어나고 담력도  남달라 손권
에게 발탁되어 모사가 되었는데 특히 황개와는 가까운 사이였다.
  황개는 감택의 말솜씨와 담력을 잘  알고 있던 터라 그에게 거짓 투항의 글을 
부탁하여 조조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감택이라면 능히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으
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황개와의 의논이 결정되자 감택은 그 일을 서둘렀다.
  "일이란 오래 끌면 기회를 놓칠 염려가 있습니다. 이렇게 결정된 이상 즉시 조
조에게 글을 쓰십시오. 글을 받는 즉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글은 이미 내가 써 놓았네."
  황개는 베개 밑에서 봉함을  한 두꺼운 서신 한 통을 꺼냈다.  감택은 그 서신
을 받아 품안에 넣었다. 감택이 작별 인사를  올리자 황개는 감격한 얼굴로 불편
한 몸을 일으켜 마주 절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조조군의 수채 부근에서 홀로 낚시줄을  드리우고 있는 
한 늙은이가  있었다. 원래 이곳에는  유유히 흐르는 장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온 어부들이 많았다. 여러 해 동안 이어지고  있는 전란 중이라 싸움이 없는 
날이면 한가로이 그물을 놓거나 낚시질을  하는 어부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
다.
  그러나 요즈음은 달랐다. 공명이 조조의 수채를  급습하여 화살을 거두어간 이
후부터는 한층 경계가 엄해져  누구든 수상한 자가 있으면 사로잡으라는 조조의 
엄명이 내려져 있었다.
  이날 조조군의 초병은 낚시질하는 한 늙은이가 수채에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
어 수상쩍게 여겼다.  비록 어부 차림새를 하고 있었으나 청결한  풍모와 거동이 
아무래도 여느 어부와는 달라 보였다. 초병들은 배를  타고 가서 그 노인을 묶어 
그대로 뭍으로 끌고 와, 문초하는 한편 이 사실을 조조에게 알렸다.
  조조가 알리러 온 군사에게 물었다.
  "그놈은 세작이 아니더냐?"
  "겉보기는 어부처럼 보였습니다만 스스로는  '동오의 모사 감택인데 기밀에 관
한 일이 있어 승상을 뵈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군사가 이렇게 말하자 조조는 즉시 그를 불러들이도록 했다.
  이윽고 행색이 초라한 한 늙은  어부가 군사들에 이끌려 와 조조 앞에 엎드렸
다.
  조조가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대가 동오의 참모라고 했다던데 무슨 일로 여길 왔는가?"
  조조의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잠시 조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감택이 탄식
부터 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조 승상은 어진 인재를  구하기를 목마른 이가 물을 찾듯 
한다더니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구나. 아아,  황공복, 그대가 생각을  잘못한 것 
같구려!"
  조조가 자신을 너무  무례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을  빗대어 놓고 하는 말이었
다. 그러나 조조는 여전히 감택을 노려보며 말했다.
  "적국의 모사라는 자가 홀로 우리 진중으로 왔는데 그 이유를 따져 묻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 말에 감택은 조조가 예사로운  인물이 아님을 느끼고는 더 이상은 다른 말
을 둘러대지 않고 온 까닭을 밝혔다.
  "동오의 황개는 3대에  걸쳐 손씨가문을 섬겨 온 오래  된 신하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별다른 잘못도  없이 여러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모진  매를 맞았습니다. 
노령의 몸에서 살이  찢어지고 온몸이 선혈로 물들 지경이었습니다. 이에  그 원
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승상께 투항하여 원수를 갚고자 특별히 저에게 긴히 의논
을 해  왔습니다. 저는 원래 공복과는  친형제나 다름없이 평소 가깝게  지내 온 
터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대신하여 밀서를 바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온 것이
니 승상께서 받아 주시겠습니까?"
  감택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조조는 그 말에 별다른 동요 없이 차갑게 말했
다.
  "그 밀서가 어디 있는가?"
  감택은 품에서 황개가  준 글을 꺼내 조조에게 바쳤다. 조조는  밀봉된 밀서를 
뜯고 그 글을 읽어 내려갔다.
  
  이 황개는 손씨로부터 두터운 은혜를  입어 온 터에 딴마음을 품어서는 안 되
는 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의 사세를 보건대, 강동 여섯 군의 군세
로 중원의 백만 대군과  맞서려 하니, 적은 군사가 많은 대군을  당할 수 없음은 
천하가 다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동오의  사람들은 벼슬의 높고 낮음과 지혜롭고 
어리석음을 가릴 것 없이  모두 그 일이 불가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젊
은 아이 주유는 도량이 좁은데다  보잘것 없는 재능을 뽐내며 달걀로 바위를 치
겠다는 망령된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유는 자신의  위세만을 믿
고 함부로 벌과 공을 내려 죄 없는 사람이 벌을 받고 공이 있는 사람이 상을 받
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황개는 3대에 걸친  동오의 신하로 까닭 없이 매를 맞고 
치욕을 당해 실로  그 통분함을 달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엎드려  듣건대 승상께
서는 사람을 정성을 다해  맞으며 선비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신다 했습
니다. 이 황개가 휘하의 무리들을 거느려 승상께  항복하여 공을 세우는 한편 주
유에 대한 한을  풀까 합니다. 양초와 수레,  병장기를 실어 배가 마련되는 대로 
바치고자 하오며, 피눈물을 흘리고 절하며 아뢰니  바라건대 저를 의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조조는 황개의  글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10여번이나 
읽어 보더니 '쿵'하며 주먹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눈을 부릅뜬 채 감택을 노려보
며 소리쳤다.
  "이 따위 고육계에 나 조조가 속아 넘어갈 줄 알았더냐? 너로 하여금 거짓 글
을 보내 우리 군중을 어지럽히려 하다니, 어찌  네놈들이 감히 나를 이토록 희롱
할 수가 있다는 말이냐! 여봐라, 어서 저 늙은이를 끌어 내어 목을 쳐라!"
  조조의 말에 감택은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천하의 조조가 그렇
게 호락호락하게 자신들의 계책에  넘어갈 리가 없다고 헤아리고 있던 감택이었
다.
  좌우의 장수와 군사들이 와락 달려들어 감택을  끌어 내었다. 감택은 끌려가면
서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하늘을 우러르며 껄껄 소리내어 웃을 뿐이었
다.
  "내가 네놈들의 간교한 계책을  꿰뚫고 있는데 네놈은 무엇이 좋아서 웃고 있
느냐?"
  조조는 끌려가는  감택을 보며 물었다.  조조의 물음이 있자  군사들은 감택을 
끌고 가려다 조조 앞으로 다시 꿇어 엎드리게 했다.
  "나의 웃음은 조 승상 때문이 아니외다. 다만 나의 친구 황개가 사람을 알아보
지 못한 것을 비웃었을 뿐이오."
  "어찌하여 사람을 잘못 알아보았다는 말이냐?"
  "죽이려면 빨리 죽일 것이지 무슨 물음이 그렇게도 많으냐!"
  끌려가면서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태연함을 가장하자 조조의 마음이 흔
들렸음을 안 감택이 허세를 부렸다.
  조조가 그런 감택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병서를 읽어 왔으므로 간교한 속임수로 꾸민 계책쯤은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를 속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글 중에 어느 대목이 간계라고 하느냐?"
  감택이 조조가 병서를 읽었다고 하자 이번에는  병서를 들먹여 물었다. 조조는 
감택의 물음에 냉기어린 조소를 날리며 말했다.
  "듣거라. 너희들의 허점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아야 죽어도  한이 없을 것이니 
내 특별히  말해 주겠다. 너희들이  진심으로 투항한다고 말을  하면서 어찌하여 
언제, 어느 때임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느냐? 그래도 대꾸할 말이 있느냐?"
  그 말을 듣자 감택이 가소롭다는 듯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그러고도 감히 병서를  읽었다며 떠들고 있느냐? 부끄러운 줄을 안다면 
빨리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라. 그렇지 않고 주유와 맞서 싸우려  들다가는 반드
시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이 무식한 자야, 내가 너 같은 것의 손에 죽는다 생각
하니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겠구나."
  감택은 조조의  비위를 긁기 위해 더욱  심한 말로 꾸짖었다. 감택의  그 말에 
조조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내가 어찌하여 무식하다는 말이냐!"
  "네놈은 간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치에도 어두우니 무식한 놈이 아니고  무
엇이겠소!"
  "내 말이 어디가 어긋났기에 그런 말을 하느냐?"
  조조가 격앙되어 자신의 말에 이끌려 오자 감택은 다시 슬쩍 비켜나며 조조의 
애를 태웠다.
  "너는 선비에 대한 예를 모르니 말을 해 무엇하겠느냐? 다만 이대로 죽기만을 
바랄 뿐이다."
  감택의 말에 조조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말했다.
  "그래, 어디 말해  보아라. 너의 말이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나도 예로써 
대할 것이다."
  감택도 그제서야 정색을 하고 정중한 목소리로 예를 갖춰 말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주인을 배반하고 도둑질을  하는데는 그 때를 미리 정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소? 만약 황개가 미리  날짜를 정해 두었다가  뜻밖에 형세가 
뒤바뀌어 미처 몸을 빼내지 못했을 때 이쪽에서는 그것도 모르고 맞으러 나섰다
가는 일이 탄로나 상대방에게 기밀만 드러내는 꼴이  될 것이외다. 이런 일은 다
만 형세나 기회를 보아서 할 일이지 미리 날짜를  정할 수는 없는 일 아니오. 그
런데 그런 이치도 살피지 않고  죄없는 사람만 죽이려 드니 정말 한심하고 무식
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듣고 보니  감택의 말 또한 이치에  어긋남이 없었다. 이에 조조도  얼굴 빛을 
달리하여 감택 앞으로 다가가 사과했다.
  "내가 보는 눈이 어두워 공의 높은 뜻을 몰라 보았소이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
기 바라오."
  "저와 황개는 마치 버려진  어린 아이가 부모를 찾으려는 것과 같은 마음입니
다. 어찌 거짓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감택이 한결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조는  기뻐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감
택을 달랬다.
  "그대들 두 분이 큰 공을  세운다면 장차 남들보다 더 높은 작록을 내릴 것이
오."
  "우리는 작록이 탐이 나서 투항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뜻에 따르고 사람
의 마음에 따랐을 뿐입니다."
  감택이 다시  그렇게 말해 조조를  안심시켰다. 조조는 손님을  대하는 예로써 
감택에게 자리로 청해 앉게 한 뒤 그의 노고를 치하하며 주연을 베풀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가고 있는데 조조가  믿고 있는 신하인 듯한 한 사람이 들
어와 조조의 귀에 입을 대고 소곤거렸다.
  "어디 글을 보자."
  조조의 말에 그 사람은 밀서로 보이는 봉함된 글 한 통을 바치고 물러났다.
  '옳지, 동오에 있는 채중.채화로부터 황개가 매를 맞았다는 소식이 온게로구나. 
그렇다면 조조는 나의 투항이 진심인 줄로 알겠구나.'
  감택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쾌재를 불렀으나 시치미를 떼고 술잔만 기울
였다.

  까마귀 울며 남으로 날고 
  의지할 가지 하나 없네...
  
  감택은 무사히  본진으로 돌아와 채씨  형제를 역이용 한다.  방통은 주유에게 
화공을 설파한 후  몸소 조조를 찾아가 연환계를 성공시키고, 서서는  허도의 위
기설을 퍼뜨려 조조로부터 벗어난다. 한편 만취한  조조는 노래의 불길함을 지적
하는 어진 신하 유복을 죽인다.
  
  조조는 밀서를 읽고  나자 얼굴에 기쁜 빛이 완연했다. 감택이  태연한 얼굴로 
술잔을 들이키자 조조는 밀서를  품속에 넣더니 감택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
을 꺼낸다. 
  "선생께서 수고스러우시겠지만 다시 강동으로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소. 황개에
게 나의 뜻을 전하고 날짜가 정해지는 대로 먼저 우리에게 알려 주고 함께 배를 
타고 오시오. 그러면 내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맞을 것이오."
  그러자 감택은 고개를 저었다.
  "그 일이라면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이미 강동을 떠났
던 몸이니 돌아가기가 어렵겠습니다."
  감택이 넌지시 조조에게 청했다.
  "바라건대 승상께서는 다른 사람을 뽑아 보내십시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갔다가 일이 어그러지면 기밀이 알려질까 두렵소. 아무래
도 강동을 잘 아는 선생이 다녀왔으면 하오."
  조조가 다시 청하자  감택이 마지못한 듯 승낙했다. 조조가 아직도  믿지 못한 
자신의 마음을 떠보려  한 말인지도 몰라 감택은 짐짓 뻗대어  본것이었다. 조조
는 감택이 강동으로 돌아가기를 꺼리는 것을 보자 더욱 그를 믿게 되었다.
  "그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몸이니 다녀올 바에야 얼른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감택은 내키지 않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조조는  많은 금과 비단을 상으로 내
렸으나 사양했다. 감택은 동오를 향해 조각배를 타고 쏜살같이 미끄러져 갔다.
  동오에 이르자 감택은 그 길로 황개를 만나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들려 
주었다.
  "처음에는 의심을 풀지 않던 조조가 어찌하여 그토록 깊이 믿게 되었소?"
  황개가 몹시 기뻐하는 가운데도 궁금한 듯 물었다.
  "아마 나의 구변만으로는 조조를 이토록 빨리 속여 넘기지는 못했을 것이외다. 
때마침 채중.채화의 밀서가 그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조조는 그 둘의 첩보와 
내가 말한 동오의 허실이 빈틈없이  들어맞았을 것이니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
습니까?"
  "장한 일을 하였소. 공의 용기와 빼어난  말솜씨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당한 고
초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뻔했소."
  황개가 감택에게 치하하자 감택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부터 감녕의 영채에 나가 채중.채화를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오만 어찌하여 그들을 살피려 하시오?"
  "다시 한 번 조조를 속이기 위해서입니다."
  감택의 말에 황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택이 속으로  또 다른 계책을 세워 두
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택은 곧 감녕의  영채로 가 감녕을 만났다. 감녕이 감택을  맞아들이며 물었
다.
  "무슨 일로 오시었소?"
  "지난번 장군께서 황공복을  구하려다가 주유에게 욕을 보셨으니 나도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감택의 느닷없는 말에  감녕은 으레 하는 위로의  말로 새겨듣고 웃기만할 뿐 
대꾸는 하지  않았다. 때마침 채중과 채화가  나란히 들어왔다. 감택은 감녕에게 
슬며시 눈짓을 주었다.  감녕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불현듯 격앙된  목소리로 푸
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즘은 매사에 유쾌한 일이 하나도 없소이다  그려. 도독은 자기의 재주만 믿
고 우리는 안중에도 두지 않더니  지난번에는 내가 여러 사람 앞에서 갖은 곤욕
을 겪지 않았소. 이러고도  어찌 내가 얼굴을 쳐들고 강동 사람을  대할 수가 있
다는 말이오?"
  말을 마친 감녕은  새삼스럽게 분에 북받치는 듯  탁자를 주먹으로 치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다가 뒤에  있는 채중.채화를 힐끗 보더니 갑자기 입을 다물
었다. 채중과 채화가 보니 그 두 사람이 주유에게 한을 품고 있음이 분명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감녕이 감택을 이끌었다.
  "공과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소."
  감녕은 감택에게 귀엣말로 속삭이고는 옆방으로 갔다.
  그 후에도 감택과 감녕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종종 무슨 말인가 수군대었다.
  누가 보아도 두 사람은 무슨 음모라도 꾸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해질녘, 두 사람은 또 몰래 만나 무언가를 수군대고 있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의 언동을  살펴온 채중과 채화는 장막 밖에서 귀를 기울였
다.때마침 거센 바람이 일어 장막의 한쪽 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는 통에 장막 안
의 두 사람은 얼핏 채화의 모습을 본 듯했다.
  "앗, 누가 엿듣고 있소."
  장막 안에서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다음 순간 감녕과 감택이 빠른 걸음으
로 달려나왔다.
  그들은 채중과 채화 앞으로 달려와 험악한 얼굴로 하고 물었다.
  "아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가만히  보니, 지금까지 우리들의  밀담을 
엿들은 게 분명하구나!"
  감택이 따지고 들자 감녕도 칼을 빼들며 말했다.
  "우리 일을 너희들이 알았으니 이제는 하는 수 없이 너희들을 죽여 입을 열지 
못하게 해야겠다. 너희들은 우리를 원망하지 마라!"
  감녕은 금방이라도  칼로 내리칠 듯한  기세였다. 채중과 채화는  급히 무릎을 
끓고 황망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마음을 놓으십시오. 우리도 가슴에 품고 있는 사실을 말하겠소."
  "무슨 소리냐? 빨리 말해 보아라!"
  감녕이 칼로 두 사람을 가리키며 재촉했다. 채화가 얼른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조 승상의 분부를 받고 거짓 항복을 해 온 사람들입니다. 두 분께서 
만약 투항할 뜻이 있으시다면 저희들이 길잡이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게 사실이냐?"
  감녕과 감택은 깜짝  놀란 얼굴로 두 형제의  얼굴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물었
다.
  "어느 앞이라고 감히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감녕은 마지못한 듯 칼을 거두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이오. 이는 실로 하늘이 우리를 도우심이오."
  감녕이 감격에 겨운 듯 그렇게 말하자 채중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황개와 장군이 지난번 주유에게 욕을 당한 일은 우리가 이미 조 승상께 알렸
소."
  두 형제가 완전히 속아 넘어간 것을 보자 감택도 기밀을 털어놓았다.
  "실은 내가 이미  황공복을 위해서 승상께 밀서를  바쳤소. 이번에 흥패에게도 
함께 항복하자고 권유하러 온 길이오."
  그러자 감녕이 결연한 목소리로 결심한 바를 밝혔다.
  "대장부로 태어나 밝은  주인을 만나는데 어찌 망설임이  있을 것인가. 마땅히 
달려가 힘을 다해 섬기리라!"
  네 사람의  손발이 척척 맞아가자  자리를 옮겨서 술자리를  마련했다. 그들은 
그날 밤 술을 마시며 밤이 깊도록 속마음을 열어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이 이에 이르렀으니 지체없이 승상께 보고를 올립시다."
  채중과 채화는 신명이 나 그렇게 말하며 그  자리에서 글을 써서 보냈다. 감택
도 따로 글을 써 사람을 불러 강북의 조조  진중에 전하게 했다. 감택의 글 속에
는 이런 말도 있었다.
  
  저희와 뜻을 같이  하는 감녕도 또한 승상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황개를 모주
로 하여 양초와 병장기를 배에 싣고 갈  것이오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일 내에 강을 건널  것이되 뱃머리에 청아기를 꽂고 가겠으니 행여 의
심치 마시기 바랍니다.
  
  이 두 통의 서신이 연달아 조조에게 전해지자 조조는 의심이 일기 시작했다.
  의혹의 눈으로 한 글자  한 구절을 거듭 읽어 보았다. 일이  지나치게 잘 되어 
가는 것에 문득 경계심이 일었던 것이었다. 스스로  결정을 짓지 못하고 있던 조
조는 여러 모사들을 불러모은 후 물었다.
  "며칠 전에 황개가 주유에게 형벌을 받은데 한을 품고 감택이란 자를 통해 투
항하겠다는 뜻을 전한 바 있다. 또 이번에는  황개와 함께 벌을 받았던 감녕이란 
자가 우리에게 내응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래도 깊은 믿음
이 가지 않는다. 누가  동오로 가서 그 두 사람의 항복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아 
올 사람이 없겠는가?"
  그러자 장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체면을 무릅쓰고 다시 한 번 청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번 강동에 갔다가 아
무런 공도 세우지 못한 채 돌아와 마음  속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
라건대 승상께서는 저를  보내 주십시오. 이제 다시 목숨을 걸고  동오로 건너가 
채 형제나 감택의 글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아온다면 만분의 일이나마 먼저 저지
른 죄를 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간의 말에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동오에  다녀오도록 쾌히 응락했다. 조조는 
장간이 주유와는 친구인지라 이 일만은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장간은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목적한  바를 이루리라 다짐하며 작은 배를 타고 
동오로 향했다. 주유의 수채에  이른 장간은 곧 사람을 보내 자기가  온 것을 주
유에게 알리도록 했다.
  
  그때 동오의 중군에는 장간보다 한 발 앞서 한 사람의 빈객이 와서 도독 주유
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양양의  명사 방덕 공의  조카로 방통이라는 인물이었다.  방덕 공이라면 
형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망가이며, 저 수경 선생 사마휘조차도  그 가
문에는 스승의 예를 갖출 정도였다. 또 그 사마휘가 매양 와룡.봉추라는 말을 잘
했는데 그 와룡은 물론  공명을 가리키며, 봉추란 바로 이 방통을  가리켜 한 말
이었다.
  방통의 자는 사원이었다.
  사마휘가 그토록 높이 여긴 까닭에 그 당시 선비들은 곧잘 이런 말을 하며 의
아히 여겼다.
  "와룡은 세상에 나왔는데 봉추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으니 무슨 까닭인가?"
  그런데 오늘  오의 중군에 표연히 와  있는 빈객이 바로 그  방통이었다. 방통 
또한 그 당시 난리를 피해 강동에 머물고  있었다. 일찍부터 노숙은 주유에게 방
통을 등용해서 쓰도록 천거한 바 있었다. 때마침  방통 또한 노숙의 간곡한 청에 
의해 주유를 찾아보러 온 것이었다.
  방통은 공명보다 나아가  두 살밖에 많지 않았으므로  그 명망에 비해 의외로 
젊었다.
  "선생께서는 요즈음 바로 이 근처에 사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형주.양양까지 조조에게 떨어진 뒤라 잠시 산림에 암자 하나를 꾸렸습니다."
  주유는 이렇게 문안  인사 겸 그의 소식을 알고  난 뒤라 그에게 묻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선생께서는 우리  강동을 위해 힘을  빌려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막빈으로서 
소홀히 모시지는 않겠습니다."
  주유가 정중한 목소리로 청했다. 그러자 방통 또한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본디 조군은 형주  땅을 유린한 적입니다. 도독께서  말씀하지 않으셔도 오를 
돕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유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감격에 찬 어조로 말했다.
  "실로 백만 대군을 얻은 것 같습니다."
  "지나친 과찬입니다. 산 속에 몸을 웅크리고  사는 한낱 서생을 어찌이토록 높
이십니까?"
  "지나친 겸양의 말씀입니다. 오늘 조조와 창칼을  맞대고 있는 터에 선생께 특
별히 한 가지를  여쭈고자 합니다. 조조군은 대군이고 우리 동오의  군사는 적습
니다. 어떻게 하면 그 대군을 깨뜨릴 수가 있겠습니까?"
  주유가 간곡한 어조로 방통에게 계책을 물었다.  그러자 방통은 서슴없이 한마
디로 잘라 말했다.
  "화공입니다."
  "예? 화공으로?... 선생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주유가 놀라는 가운데도 기뻐하며 물었다.
  방통이 다시 말을 이었다.
  "조조의 군사를 치기 위해선 마땅히 불러써  공격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
러나 배 한 척에 불을  지른다 해도 넓은 강 위라 나머지 배들이 사방으로 흩어
져 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소. 그러니 먼저  연환계를 쓴 후에야 불로 공격해야 
할 것이오."
  "어떻게 연환계를 베풀어야 합니까?"
  "조조로 하여금 그의 전선을 한  곳에 모아 두게 하고 그 배들을 쇠고리로 연
결하게 하는 계책이오."
  주유는 방통의 높은 식견에 감복하며 정중한 목소리로 청했다.
  "선생께서 이 강동을 위해 그 연환계를 베풀어 주실 수 없으신지요?"
  "잘 알겠소. 그러나 조조가 나를 의심하지  않도록 계책을 꾸민 후에라야 연환
계를 베풀 수 있을 것이오."
  방통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방통이 돌
아가고 나자 노숙이 근심스런 얼굴로 주유에게 물었다.
  "조조 또한 병서에  능한 자입니다. 아무리 방통이라지만  어떻게 그런 계략에 
빠뜨릴 수가 있겠습니까?"
  주유도 노숙의 물음에는 신통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유가 잠시 어두운 
얼굴로 생각에 잠기고 있는데 사람이 와서 알렸다.
  "강북에서 장간이라는 친구분이 오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주유의 얼굴이 밝아졌다. 방통을 조조에게로  보낼 궁리
를 하고 있던  터에 장간이 왔다는 말을 듣자  얼른 한 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
다.
  "내게 이 큰 일을 이루게 해 줄 사람은 바로 지금 나를 찾아온 장간이란 사람
이다."
  주유는 그렇게  말하며 장간을 불러들이도록  했다. 또 한편으로  노숙을 불러 
방통에게 보내며 말했다.
  "자경은 방사원에게 가서 나를 도와 달라고 하시오. 내가 이른 대로만 해 준다
면 조조를 깨뜨린 거나 다름이 없을 것이오."
  주유는 노숙에게 가만히 계책을 일러 주었다.
  한편 장간은 지난번  왔을 때 저지른 일이 있어  그 일로 주유가 노해 있지나 
않을까 은근히 두려움이 일어 마음을 다져 먹었다.
  장간은 부하에게 가만히 일렀다.
  "타고 온 배를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으슥한 곳에 매어 두어라."
  주유에게 몸을 빠져 나와 언제든  강북으로 갈 수 있도록 해 둔 후 장간은 주
유의 군막으로 들어갔다.
  주유는 높은 자리에 도사리고 앉아 있다가 장간이 들어서자 대뜸 눈꼬리를 치
켜 세우며 죽일 듯이 꾸짖었다.
  "자익! 어찌하여 나를 그토록 속였는가?"
  장간은 주유의 엄한 꾸짖음에 애써 웃음지으며 말했다.
  "자네는 나와 친형제와 다름없는 오랜  친구이기에 속마음을 털어놓고자 왔네. 
그런데 어찌하여 자네는 나보고 속였다 하는가?"
  "자익은 닥치지 못할까! 그대의 시커먼  속을 내가 모르는 줄 아는가. 이 주유
에게 항복을 권할 심산이 아닌가!"
  여전히 노여움이 서린 주유의 목소리였다.
  "어찌하여 오늘은 공답지 않게 화만 내려 드는가? 마음이 격해지면 만사를 그
르치기 쉬운 법이네.  자, 지난 이야기라도 하면서  다정하게 한 잔 나누는 것이 
어떻겠나? 내가 은밀히 자네에게 할 얘기가 있네."
  장간이 주유를 달랬다. 그러나 주유의 노기는 여전했다.
  "실로 후안무치가 아닌가? 그대가 아무리 웅변을 토하고 꾀를 부린다 해도 어
찌 이 주유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설령 바다가 마르고 바위가 모래 된
다 하더라도 될  일이 아니네. 지난번에는 옛정을 생각하여 취하도록  마시고 함
께 잠도 잤는데 자네는 나의  기밀 문서를 훔쳐 한 마디 말도 없이 달아나지 않
았는가. 자네는 그 기밀 문서를 조조에게 바쳐  채모와 장윤을 죽여 나의 계책을 
그르치게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오늘 또 특별한  연유도 없이 불쑥 나를 찾았으
니 반드시 간계를 품고 왔을 것일세."
  장간의 낯빛이  흐려졌다. 주유에게 달리  변명할 말이 없었으나  짐짓 태연한 
얼굴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여보게, 어찌 그렇게 나를 덮어놓고 의심만 하는가?"
  그러나 주유는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냉랭한 목소리로 꾸짖을 뿐이었
다.
  "옛정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장  한칼에 자네를 두 동강 낼 것이나 이번만은 
지난 일로 하겠네. 이제 2,  3일 안에 내가 역적 조조놈을 깨뜨릴것인데 그 동안 
자네를 우리 군중에 두었다가는 또 기밀이나 빼내려고 할 것 아닌가?"
  주유는 그 말과 함께 좌우를 둘러보며 명을 내렸다.
  "이봐라. 어서 이 자를  서산 오두막에라도 쉬게 하도록 하라. 그리고 내가 조
조를 깨뜨릴 때까지는 나가지 못하도록 하라."
  추상 같은 엄명이었다.  장간이 뭐라고 입을 열려고 했으나 주유는  자리를 박
차고 일어나 군막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어 장수와 무사들이 달려와 장간을 군막 밖으로  끌고 갔다. 무사들은 곧 안
장도 얹지 않은 말 한 필을 이끌고 와 장간을 태우고는 서산 뒤에 있는 작은 암
자로 데려갔다. 장간을 암자에  내려놓은 후 군사 두 사람만을 남겨  둔 채 나머
지 군사들이 모두 돌아가니 장간은 감금된 거나 다름없었다.
  장간이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스러워 입맛도 가시고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그날 밤, 장간은 잠을 못 이룬 채 암자를 나와 뜰을 거닐고 있었다. 밤 하늘에
는 별이 총총한데  주위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때 문득 어디선가  글읽는 소리
가 희미하게  들려 왔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파수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장간은 발소리를 죽여  가며 글읽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
이 다가갈수록 또렷이 들려 오는 그 소리는 맑고 우렁찼다.
  장간이 글읽는 소리를 따라 산  허리를 돌아가니 커다란 바위 곁에 두어 칸이
나 되는 암자가 보이고 그 안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장간은 조심스럽게 다가
가 창틈으로 방 안을  엿보았다. 한 사람이 등불 앞에 오롯이  앉아 손자의 병서
를 읽고 있었고, 벽에는 칼 한 자루가 걸려 있었다. 
  '범상한 인물이 아니로구나!'
  장간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가만히 문을 두드렸다.
  "누구시오?"
  조금 있다 조용하면서도 무거운 목소리가 들리더니 집 주인이 문을 열고 나와 
장간을 맞이했다. 그는 한눈에 보아도 몸가짐이나 풍채가 속되어 보이지 않았다.
  "밤중에 글읽는 소리가 들리기에  예가 아닌 줄 알면서도 선생의 높은 이름을 
듣고자 문을 두드렸습니다."
  장간이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그 사람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하찮은 사람의 성은 방, 이름은 통이라 하며 자는 사원이라고 합니다."
  장간이 놀라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봉추 선생이 아니십니까?"
  봉추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선생의 높은 이름을  들은 지 오래입니다.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궁벽한 
곳에 계십니까? 동오에서 어찌 선생  같은 분을 높이 쓰지 않는지 알 수가 없습
니다."
  장간은 방통을 만나자 크게 기뻐했다.
  그가 이런 산 속의 암자에 살고 있으나 혹시 동오의 도움을 받고 있을지도 모
르는 일이라 은근히 넘겨 짚어 보았다.
  장간의 말에 방통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주유란 자는 자기의 재주만 믿고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곳에 
숨어 살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선생께서는 뉘시오?" 
  방통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주유를 비난하며 그제서야 장간의 이름을 물었다.
  "저는 장간이라고 합니다."
  "높으신 이름을 들어도 세상에 어두워 알지  못합니다. 누추한 곳이나 마 안으
로 드시지요."
  방통은 장간을 알지 못하는 척하며 손님을 맞는 예로써 암자로 청해 들였다.
  암자에 들어가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방통은 장간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것처럼 시치미를 뗐다.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장간이 문득 목소리를 낮추
며 말했다.
  "선생같이 지략을 지니신  분이 어찌 산 속에  파묻혀 계십니까? 아마 강북의 
조 승상처럼 선비를 아끼는 명군이 아신다면 결코 선생을 그대로 두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간이 은근한 목소리로 방통의 마음을 떠보았다. 방통이 장간의 말을 받았다.
  "조 승상께서 선비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말을 들은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오를 떠나 조 승상에게로 가시지 않으십니까?"
  장간이 자리를 당겨 앉으며 물었다.
  방통이 속마음을 털어놓은 이상 일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겼다.
  "조 승상이 아무리 선비를 아낀다 하나 이미 동오에 머물고 있었던 터라 용납
할까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오."
  방통이 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장간이 다리를 놓아  드린다면 그런 염려는 하지 않으셔
도 될 것입니다."
  "무어요? 공께서?"
  "그렇소이다."
  장간은 그제서야 자신이 강북에서 조조의 명을 받아 동오를 살피러 왔음을 밝
혔다. 방통은 장간의 말을 듣고서야 마음을 정한 듯 정색을 하며 말했다.
  "실은 강동을 떠나리라 작정한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공께서 이왕 나를 이어 
줄 마음이 있다면 지체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머뭇거리
며 시각을 끌다가는 주유의 귀에라도 이 일이 들어갈까 두렵습니다."
  바로 장간이 기다리던  말이었다. 방통과 함께 간다면 지금 이대로  떠난다 해
도 조조에게 낯이 서는 일이었다. 장간과 방통은 그 길로 암자를 버리고 떠났다. 
때마침 낮에 지키고 있던 군사마저 보이지 않았다.  방통이 이곳의 길을 잘 알고 
있어 골짜기를 타고 은밀한 길로 내려와 강변에  이르렀다. 배를 찾아 낸 장간과 
방통은 배를 타고 나는 듯이 강북으로 달아났다.
  이윽고 조조의 영채에  이르자 장간이 먼저 조조를 보러 갔다.  장간은 동오에
서 있었던 일과 봉추와 함께 오게 된 경위를 조조에게 소상히 들려 주었다.
  유명한 양양의 봉추,  방통이 왔다는 말을 듣자 조조의 기쁨은  이만저만이 아
니었다. 몸소 진막 밖까지 마중 나가 그를 맞아들였다. 방통을 맞아 주인과 손님
의 자리를 정해 앉자 조조가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유가 나아가 어려 제 재주만 믿고 거느린 자들을 가볍게 여기고 계책을 쓸 
줄 모른다 하더니 과연 그러하구려. 선생 같은 분을  불러 높이 쓸 줄 모르는 것
만 봐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선생의 큰  이름을 듣고 있었
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렇게 찾아 주셨으니  바라건대 높은 가르침을 주십시
오."
  방통도 조조를 보자 기쁜 얼굴로 말했다.
  "나로 하여금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내 뜻이라기보다는 승상께서 나를 이끄
신 덕분인가 합니다.  나는 선비를 공경하고 어진 말을 잘  받아들인다는 승상의 
높은 이름을 흠모할 뿐이었습니다. 다행히 오눌 장  공의 안내를 받아 이렇게 뵙
게 되니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높은 가르
침을 아끼지 말아  주십시오. 제가 듣기로 승상께서 군사를 쓰심에  법도가 있으
시다 하였습니다. 한번 군용을 보았으면 합니다."
  조조는 마음이 흡족하여 장간의 노고를 치하하고 술상을 차려 오게 하며 방통
을 후하게 대접했다.
  밤 늦도록 주연이 베풀어지고 난 다음 날 조조는 방통과 함께 말을 타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언덕 위에서 조조군의 포진을 내려다보며 조조가 입을 열었다.
  "선생께서 저희 포진을 보신 후 그 허실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으면 합니다."
  견식이 높은 방통으로부터 포진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 조조가 자청한 말이었
다. 방통은 조조의 포진을 유심히 지켜 보다 서슴없이 대답했다. 
  "연안 2백 리의 진, 산기슭을 끼고 숲에 의지하며, 장강을 이용하여 수리를  살
린 훌륭한 포진입니다. 거기다가 각 진이 서로  내왕하며 지킬 수 있도록 드나드
는 문이 있으니 실로 나아가고  물러날 수 있음이 병가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습
니다. 옛 손무.오기가 다시 나와도 이 이상의 포진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방통은 조조의 포진을 보고 격찬해 마지않았다.  조조가 기쁜 가운데도 서운하
다는 듯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칭찬이 지나치십니다. 부디 높은 식견으로 부족한 점을 깨우쳐 주
시기 바랍니다."
  "결코 과찬이 아닙니다. 어떤 병가가 조예를  기울이더라도 이 강변 일대의 포
진에서는 그릇됨을 찾아 내지 못할 것입니다."
  방통의 말에 조조는  득의에 찬 웃음을 지으며 언덕을 내려왔다.  조조는 다시 
방통을 인도하여 이번에는 수채와 수군의 전선 배치를 보여 주었다.
  방통이 보니 남쪽으로 24좌의 수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큰 전함을 성벽처럼 둘
러놓았다. 그 안에는  작은 배들이 항구를 드나들듯 하는데 모든  배치가 질서정
연했다.
  방통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승상께서 군사를 놀랍게 쓰신다는  것은 일찍이 들었소이다만, 수군의 배치와 
방비에도 이렇게 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방통은 말을 마치고 문득 강남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껄껄 웃더니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주랑! 물 위에서의  싸움은 너보다 나은 사람이 없는 줄로  알고 있다만 마침
내 네가 망하고 말겠구나!"
  그 말을 듣자 조조는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통이 그토록 수채까지 
칭찬하니 수군에 대한 근심이 사라지고  어느 새 동오를 깨칠 수 있다는 자신감
이 일었다.
  조조는 방통을 장막 안으로 청해 술상을 차려 오게 하여 함께 술을 마시며 이
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주로 손.오의 병법과 고금의 역사에 비추어 병법가의 
진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방통은 뛰어난 식견과  말재주로 물흐르듯 조조의 물음
에 답하니 조조는 다시  한 번 감복해 마지않았다. 조조는 방통  같은 인물을 자
신의 진중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을  큰 다행으로 여기며 대접을 더욱 두터이 했
다.
  "잠깐 실례하겠소이다."
  그럴 동안 방통은 술자리에서 가끔 자리를 떠 밖으로 나갔다가는 다시 들어와 
앉아 얘기를 계속하곤 했다.
  "선생께서 안색이 좋지 않으신데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있으십니까?"
  "뭐 대단치 않습니다."
  "하지만 몹시 괴로우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배멀미가 가시지 않은 모양입니다. 저는 원래  배멀미가 심해 며칠 배를 타면 
언제나 몸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시다면 의원을 부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중에는 명의가 많이 있겠지요? 술자리를 어지럽혀 송구합니다만 의원을 청
해 주십시오."
  조조가 방통의 말을 듣고 문득 놀라 물었다.
  "의원이 많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승상의 군사는 거의가  북군 출신들 아닙니까? 모두  장강의 물과 풍토나 배 
위에서의 생활에 익숙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군사들을 오랫동안 배 위에서 
생활하게 하니 수군들 중에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자가 많을 것이니 좋은 의원
이 많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걱정거리는 수군들이 질병으로 몸과 마음
이 지친 나머지 정작 싸울 때에는 제대로 힘을 다하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점
입니다."
  방통의 말에 조조는 내심 뜨끔했다. 방통이  조조의 고민거리를 정확히 맞추었
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군사들 사이에는 물과  풍토가 체질에 맞지 않아 먹기만 하면 토악질
하는 풍토병에 걸려 목숨을 잃는 군사가 많았다. 
  군중의 골칫거리를 방통이 먼저  거론하자 조조는 놀라운 한편 당황한 마음이 
일었으나 툭 털어놓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실은 군사들 중에 질병을 앓는 자가 많아 걱정하고 있
습니다. 의원들이 있기는  하나 그들이 병든 군사들을 살려 내지는  못하고 있소
이다. 먼저 급한 일은 군사들이 병들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선생께서 그 방도를 
일러 주십시오."
  조조가 간곡히  청했다. 방통은 그럴  것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승상의 포진 병법의 묘는  물샐틈없이 완벽하나 유감스럽게도 단 한 가지 결
점이 있습니다. 군사들의 병이 그로 인해 생긴 것입니다."
  "포진과 군사들의 병과 관련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내게 한 계책이 있습니다. 그 계책을 따르신다면 수군이 병에 걸
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뭍에서 싸우듯 공을 이룰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많은 의원들이 약을 쓰기는 하나 그에 대해서는 다
만 풍토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만 하였소. 그 계책이 무엇이오?"
  조조가 계책이 있다는 말에 얼굴빛이 환히 밝아지며 방통의 대답을 채근했다.
  방통은 조조가 간곡히 계책을 묻자 그제야 대답했다.
  "큰 강에는 으레 조수가 드나들며 풍랑 또한 심합니다. 북군들은 배를 타는 일
에 익숙지 못하니 심하게 흔들리는 배를 타다 보면 멀미를 하게 되고 그게 거듭
되다 보면 병을  얻게 됩니다. 그러니 배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크고 
작은 싸움배들을 서로 잇대어  배치하여 30척, 또는 50척 씩을 한  대로 삼아 뱃
머리와 꼬리를 쇠사슬로 연결하여 탄탄하게 묶도록  하십시오. 그런 다음 쇠사슬 
위로 널빤지를 깔아 놓는다면 배와  배 사이를 사람은 물론 말도 마음대로 달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심한 날에도 배의 동요가 
적으니 군사들은 배멀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런 전선이  대를 이
룬 채 간다면  조수뿐만 아니라 풍랑을 만나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설사 
싸움이 벌어진들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방통의 말을 듣자  조조는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조조는 기쁜  나머지 자리에
서 내려앉으며 방통에게 치하했다.
  "선생께서 이런 묘책을 일러 주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동오를 깨칠 수 있겠
습니까?"
  방통은 조조의 말에 짐짓 고개를 저으며 결정을 조조에게 맡겼다. 
  "어리석은 소견으로 한번 생각해 본 것이외다. 승상께서 헤아려 보시고 처결하
십시오."
  방통이 그렇게  말하며 슬며시 물러나자  조조는 더욱 조급해졌다.  조조는 그 
자리에서 영을 내려 군중에 있는 대장장이들에게 밤낮없이 큰 쇠고리와 못을 만
들게 했다.  쇠고리와 못이 만들어지자  방통이 이른대로 배끼리  잇대어 붙들어 
매게 하니  군사들 또한 기뻐했다. 조조의  영대로 모든 배들을 얽어  두니 배의 
동요가 없어 앞으로는 배멀미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방통은 다음 일을 꾸미기 위해 슬며시 조조에게 다가가 말했다.
  "가만히 엿보건대 동오의 호걸들  중에 주유에게 한을 품고 있는 자가 많소이
다. 제가 세 치  혀를 놀려 주유에게 원한을 가진 자들을  달래 승상께 투항하도
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유는 그를 돕는  사람이 없게 되니 반드시 승상께 
사로잡히고 말  것입니다. 만일 주유만  깨뜨린다면 유비 따위는  저절로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이미 황개에 이어 감택과 감녕이 주유에게 한을 품고 투항하겠다는 글을 받은 
터라 조조는 방통의 말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말했다.
  "선생께서 큰 공을 세우신다면  이 조조는 천자께 상주하여 삼공의 벼슬을 내
리도록 하겠소."
  "나는 부귀를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만백성을 구하기 위함
이니, 승상께서 동오를 치더라도 부디 백성들만은  함부로 죽이지 않도록 하십시
오."
  방통은 조조가 행여라도 자신을  의심할까 경계하며 짐짓 동오의 백성들을 걱
정했다. 조조는 방통의 말에 다짐했다.
  "나는 하늘을 대신하여 군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어찌 함부로 백성들을 죽이겠
습니까?"
  방통의 계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조가 채중.채화를 동오에 거짓 항복시
켰지만 그의 가솔을 거느리지 않아 대번에 거짓 항복임을 알아 보게 한 것을 생
각했다. 이에 방통은 먼저 입을 열어 청했다.
  "이제 말씀을 받들어 강남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다만 승상께서 방문 한 장만 
내려 주신다면 일족들도 안심하고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조도 그제서야 문득 방통의 가솔들에게 생각이 미쳤는지 방통에게 물었다.
  "선생의 가솔들은 지금 어디에 계시오?"
  "강변에 살고 있습니다. 북군이 강동으로 쳐들어갔을 때도 나의 가솔들이 화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조조는 사람을 불러 방문을 쓰게 하고 스스로  수결을 주었다. 방통이 먼저 가
솔들의 문제까지  밝히고 나서니 조조는  방통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절하고 물러날 때까지 조조의 마음을 굳게 사로잡는 말을 했다.
  "승상께서는 내가 떠난 뒤에 될 수 있는  한 급히 군사를 내십시오. 날짜를 미
루다가 주유가 이 일을 눈치채지 않도록 하십시오."
  방통은 작별을 섭섭해하듯 몇 번이나 뒤돌아보았다.
  몸을 빼낸  방통이 강변으로 나와 거기에  있는 작은 배에 오르려  할 때였다. 
불쑥 버드나무 뒤에서 방통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사나이가 뛰쳐나와 방통의 
팔을 덥석 붙들었다.
  방통은 흠칫 놀라며 돌아다보았다. 그는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대나무관을 눌
러 쓰고 있어 얼른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너는 실로 대담하기 짝이 없는 놈이로구나! 황개는  고육계를 쓰고 감택은 거
짓 항서를 올리더니, 이제 네놈은 또 연환계를 일러 주고 가는구나. 화공으로 조
조의 배들을 불질러  버릴 심산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어림도  없는 수작이
다. 너희들이 독한 솜씨를 부려 조조를 속였을지 모르나 나는 속이지 못한다!"
  방통은 그  말에 정신이 아뜩했다.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  뿐만 아니라 
동오의 기밀을 모조리  꿰뚫어보고 있어 놀라울 뿐이었다. 방통은 몸을  숙여 그 
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서서였다.
  "아니, 자네는 원직이 아닌가?"
  방통은 그가 옛 친구임을 알아보자 비로소  마음을 놓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있나 살펴보았으나  다행히 그는 혼자였다. 방통은 서서
에게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직, 자네라면 이  방통의 마음을 헤아리고도 남을  걸세. 그러나 자네가 내 
계책을 조조에게 말해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면 강남 여든 고을의 백성들은 
모두 조조의 말굽에 짓밟혀  죽음을 면치 못할 걸세. 그러니 자네가  눈 감아 주
게."
  그러자 서서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북군 80만 인마는 모두 죽어도 좋다는 말인가?"
  그 말에는 방통도 얼른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다만 서서의 본심이라도 알고자 
대 놓고 물을 뿐이었다.
  "자네는 정말로 우리 계책을 그르치게 할 셈인가?"
  방통이 다급한 목소리로 묻자 서서는 웃음을 거두고 정색을 하더니 말했다.
  "그럴 생각은 없네.  일찍이 나는 유 황숙께  두터운 은혜를 입었던 사람이네. 
아직 한 번도 그 은혜를 잊은 적이 없네.  그뿐 아니라 조조는 나의 어머니를 돌
아가시게 한 원수가 아닌가? 일찍이 나는 유 황숙께 조조를 위해 계책을 세우지 
않기로 약속한  적이 있네. 그런 내가  어찌 자네의 그 계책을  어그러뜨리게 할 
수가 있겠나. 다만 내가 지금 북군에 있으니  싸움이 일어나면 돌과 옥을 가리기
도 전에  나도 진중에서 타 죽고  말 것일세. 그러니 자네는  내가 이곳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좋은  계책이나 하나 일러 주게. 그러면 나는  입을 다물고 다
른 곳으로 일찌감치 떠나가 버리겠네."
  서서가 난처한 얼굴로 방통에게 의논했다. 그러자  방통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
다.
  "자네처럼 높은 식견과 앞일을  내다볼 줄 아는 헤아림을 지닌 사람이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지 어찌 그만한 일을 가지고 내게 묻는가?"
  "갑자기 계책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러네. 어서 말해 주게."
  서서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방통도 더 지체하지 않고 귀엣말로  가만히 계책
을 일러 주었다.
  "허허, 참으로 묘책이로군!"
  방통의 말을  듣고 난 서서가  감탄했다. 방통은 기뻐하는  서서와 작별인사를 
나눈 다음 배에 올라 강동으로 향했다.
  이때 조조의 진중으로 돌아온 서서는  가까운 몇 사람을 부러 진중에 거짓 소
문을 퍼뜨리게 했다. 
  "서량의 마초가 모반하여 한수와 함께 대군을 일으켜 허도로 물밀듯  달려가고 
있다."
  이 헛소문은 조조의 진중으로 퍼져 나갔다.  군사들끼리 모이기만 하면 얼굴을 
맞대고 이런  소문을 수군거리고 있었다.  오랜 원정에 시달린  군심이라 입에서 
입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 갔다.
  오래지 않아 이  소문을 조조의 귀에도 들어갔다. 군사들이 심상치  않은 수군
거림을 캐물은 한 장수가 조조에게 알린 것이다.
  허도를 등지고 수천 리  떠난 온 이래, 조조의 가슴에는 줄곧  비우고 온 허도
에 대한 불안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 소문을 전해 듣게 되자 조
조는 크게 놀라기부터 했다. 곧 여러 장수들을 불러놓고 이 일을 의논했다. 
  "내가 이번에 군사를 거느려 남으로 내려왔으나, 줄곧 걱정해 왔던 것은 한수.
마등의 무리였소. 그들은  동탁이 죽은 이후 서량을 근거지로 삼아  세력을 키워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소. 그  소문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둘을 방비하지 않을 수 없소."
  조조는 그 소문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급한 마음에 서두르고 있었다. 
조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서가 일어나 아뢰었다.
  "저는 그 동안 승상의 후한  은혜를 입고 있었으나 아직 한 번도 공을 세우지 
못함이 항상 한스러웠습니다.  바라건대 제게 군사 3천만 주시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관으로 달려가 그 길목을 기키겠습니다. 만약  급한 일이 생기면 즉시 기
별을 올려 호응토록 하겠습니다."
  조조는 서서가  나서자 몹시 기뻐했다.  어머니로 인해 자신에게  투항한 이래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서서가 앞장 서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제 믿음직한 휘
하 장수가 된 것으로 여긴  조조는 곧 그에게 군사 3천을 주기로 허락하며 말했
다. 
  "원직이 가 준다면 무슨 걱정이겠소? 산관에도 우리 군사가 머물고 있으니 그
들도 맡아 함께 거느리시오. 장패를 선봉으로  삼아 지금이라도 3천 군마를 이끌
어 가시오."
  조조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서서는 조조에게 작별 인사를 올린 후 산관으
로 떠났다.  이로써 서서 또한 방통의  계책에 의해 조조의 진중에서  몸을 빼낸 
것이었다. 
  조조는 서서가 군사를 이끌고 가자 허도 일은  일단 마음이 놓였다. 조조는 다
시 동오를 깨뜨릴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가 영채를 살펴보았다. 조조는  뭍의 진
지를 한 바퀴 휘돌아본  후 강가로 나가 한 척의 큰 배에 올랐다.  그 배의 이물
에는 수자를 크게 쓴  대장기를 높이 세우게 했다. 그 배는  양쪽으로 진을 이루
며 도열해 있는 배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고  있었다. 뱃전에는 수천의 활과 쇠뇌
를 늘어 세웠는데  장대에 앉아서 보니 수채의  정경이 자못 웅대함에 스스로도 
감탄하는 마음이 일었다.
  때는 건안 12년 동짓달 보름이었다. 그날따라  하늘이 맑고 날씨가 포근한데다 
바람이 없어 물결마저 잔잔했다. 
  조조는 뭍의 영채와  수채를 휘돌아보며 그 위용에 흡족했다. 절로  흥이 일어 
좌우를 보며 모든 장수들을 불러오게 하고 가무를  준비하게 했다. 배 위에서 풍
악이 울리는 가운데 성대한 주연이 베풀어졌다. 
  날은 이미 저물었으나  동녘 산마루 위에 둥근  달이 떠올라 사방을 대낮같이 
밝혀 강 위는 마치 비단을 길게 펼쳐 놓은 듯했다. 
  "오늘은 특별히 여러 장수들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이니 모두들 흠뻑취할  만큼 
마시도록 하라!"
  조조가 흥에 겨워 상석에  자리잡으며 외치자 문무백관이 모두 수놓은 비단옷
을 입고 좌우에 늘어섰는데 무관은 각기 창을 짚거나 칼을 차고 있었다.
  그들이 각기 벼슬에 따라 자리를  잡고 앉자 조조는 사방으로 병풍의 그림 같
은 산을  휘둘러보았다. 마주 보이는 남병산이  달빛 아래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동쪽으로 멀리 시상의  경계가 아련히 보였다. 서쪽에는  하구로부터 흘러내리는 
강줄기가 보였으며, 남쪽으로  번산과 북으로는 오림이 보였다. 사방을 휘둘러보
면 경치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눈앞이 넓고 시원하게 트여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경치를 취한 듯이 바라보던 조조는 여러 관원들을 둘러보며 감
회에 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의롭게 군사를 일으킨  것은 나라를 위해 흉악한 무리를 없애고 해로운 
무리를 뿌리뽑으며 사해를  깨끗이 하여 천하를 편안하게하려  함이었다. 그러나 
아직 얻지 못한 땅이  있으니 이가 곧 강남이다. 이제 내가  백만 대군을 거느리
며 내 명을 받들고 따를 그대들이 있으니 어찌 뜻을 이루지 못하겠는가? 강남을 
취하면 천하가 안온해질 것인즉 나는 그때 그대들과 더불어 부귀를 누리며 길이
길이 태평성대를 즐기리라!"
  얼마 있지 않아 강남 땅도 자신의 수중에 거두어들인다는 생각에 한껏 호기를 
부리며 여러 문무관원들을 격려한 말이었다. 조조의  의기가 그토록 무지개 같았
으니 문무관원들은 조조의 말을 의심치 않았다. 모두  가득 찬 술잔을 들고 일제
히 일어나 입을 모아 외쳤다.
  "저희들도 하루바삐 개선가를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죽을 때까지 승상의 
복과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
  문무관원들의 말에 더욱 흥이 도도해진 조조는 좌우에게 술을 돌려 마시게 했
다. 취기가 돌자 조조는 남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유.노숙! 가련한  놈들아! 너희들은 천시도  모르느냐? 이제 너의  수하들이 
내게로 투항해 와 너희들을 없애겠다고  하니 하늘이 나를 돕는 게 아니고 무엇
이겠느냐?"
  곁에 있던 순유가 가만히 소매를 끌며 간했다.
  "승상께선 함부로 그런 말씀을 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행여 이 일이 밖으로 새
어 나갈까 두렵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내가 믿고 있는 신하들이다. 어찌하여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는 말이냐!"
  조조는 껄껄 소리내어 웃더니 다시 하구 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유비.제갈량, 강에 의지해  사는 송사리 같은 자들아! 송사리 같은  힘으로 태
산을 움직이여 하니 어찌 그리도 어리석으냐!"
  취기와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조조는 다시 여러 장수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 몸도 어느 새  쉰넷,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강남 
땅을 얻으면 따로 기뻐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지난날 교공이라는 사람과 내가 
각별한 사이였는데 그의  두 딸이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그러나 뒷날  그 미인들
이 손책과 주유의 아내가 될 줄을 어찌 꿈에나 생각할 수 있었겠나."
  "내가 지난번에 장수 언덕에 동작대를 지어  두었다. 이제 강남을 얻으면 반드
시 교공의 두 딸을 데리고 가 동작대에 두고 만 년을 즐기며 내 원을 풀리라."  
  조조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한 번 크게 소리내어 웃는데 홀연 까마귀 한 마리
가 울면서 남쪽으로 날아갔다.
  "이 밤중에 어찌하여 까마귀가 우느냐?"
  조조가 의아로운 듯 좌우에게 물었다.
  "달빛이 하도 밝아 날이 샌 줄 알고 울었나 봅니다."
  좌우의 사람이 좋은 말로 대답하자 그 소리에 조조는 또 소리내어 웃었다.
  조조는 취한 몸을 일으키더니 삭을  뱃머리에 꽂고 강물에 석 잔의 술을 뿌려 
제를 올리며 싸움에서의 승리를 빌었다. 조조는 다시  석 잔의 술을 연거푸 마시
더니 삭을 뽑아 비껴들고 문무관원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이 창으로 젊어서는 황건적을 무찔렀고, 여포를 사로잡았으며 원술을 깨
뜨렸다. 나아가 원소마저  평정했을 뿐만 아니라 위로는 깊이 새북에  군마를 진
격시켰다. 또한 옆으로는 요동까지 이르러 천하를  종횡으로 달리며 대장부의 뜻
을 펼쳤다. 이제 마지막  남은 남쪽을 평정하려 하면서 그 경치를  보는 내 마음
에 어찌 강개가  없겠는가? 나의 감회를 노래로 지어  부를 테니 그대들은 함께 
나를 따라 부르도록 하라!"
  조조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술이 있으니 노래하노라
  인생이 얼마나 되나?
  견주어 보면 아침이슬 같거니
  가버린 세월이 너무 많구나. 
  하염없이 지난날 돌이키니 
  자나깨나 근심이로다. 
  무엇으로 이 시름 풀어 볼까
  다만 술이 있을 뿐이네.
  
  푸른 그대의 옷깃이여
  끝없이 그리는 이 마음
  다만 그대로 하여
  이토록 사모하며 읊고 있네.
  사슴은 짝을 찾아 울며
  들에서 풀을 뜯는구나
  나에게 귀한 손님이 왔으니
  비파와 피리를 불며 맞이하네.
  
  휘영청 밝은 저 달
  언제나 비춤을 멈출까
  달빛 따라 이는 근심
  끊을 수가 없구나.
  언덕 넘고 밭두렁 길 건너 
  마음만 오락가락
  오랜만에 잔치 벌려 얘기하니 
  마음 속의 옛 정 새롭구나.
   
  달이 밝아서 별빛 사라지고
  까마귀 울며 남으로 나네. 
  나무를 세 번 감돌아도
  의지할 가지 하나 없구나.
  산은 높을수록 좋고
  물은 깊을수록 좋지 않은가.
  옛 주공 밥 뱉어 가며 사람 맞으니
  천하의 인심 그의 것이네.
 
  조조의 노래는 지난날, 밥을  먹다 말고 세 번이나 입 속의  밥을 뱉어가며 인
재를 영접했다는 주공을  우러르며 끝맺고 있었다. 문무백관들은  군주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 그 끝  구절에 이르러 더욱 흥에 겨워 소리를  높였다. 조조가 사람
을 아끼는 어진 주공을 높이  받드는 것에 문무백관 모두가 감복하는 마음이 일
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홀연 한 사람이 일어나 조조에게 간했다.
  "큰 싸움을 앞두고 있는  이 마당에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그토록 불길한 노래
를 부르십니까?"
  흥이 한참 무르익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는 듯한 말에 모두 놀라며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양주자사 유복이었다. 그는 합비 땅에서 몸을 일으켜 오랫동안 
조조를 섬겨 오면서 많은 공을 쌓았던 선비였다.
  조조는 유복의 말에 취한 눈길로 매섭게 쏘아보며 노기가 서린 목소리로 물었
다.
  "어찌하여 내 노래가 불길하다는 것인가?"
  "달은 밝아 별빛이 사라지니 까마귀 울며 남으로 나네. 나무를 세 번이나 감돌
았으나 의지할 가지가 없구나 하는 구절이 불길합니다."
  유복이 노래 중의 한 구절을 들먹였다. 조조는  흥이 가신 싸늘한 얼굴로 유복
을 노려보더니 비껴들고 있던 창으로 유복을 찌르며 소리쳤다.
  "네 어찌 감히 나의 흥을 깨느냐!"
  뜻밖에 유복이 조조의 창에 찔려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잔치 자리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문무백관들은  취기가 확 가시는 가운데 눈치를 보며  술자리를 빠
져 나가고 말았다.
  조조는 다음 날 아침 술이 깨자 지난 밤의 일을 크게 후회했다.
  유복은 지난날 고을을 덕으로  다스리며 난리통에 달아난 백성들을 모아 학교
를 세우고 둔전을 실시케  한 어진 신하였다. 조조는 술이 지나쳐  그 같은 일을 
저지른 자신을 뉘우치며 그의 아들 유희를 불렀다.
  "내가 어젯밤 너무 취하여 그만 너의 아비를 죽였다. 이제 뉘우친들 무슨 소용
이 있겠는가, 다만 장례라도 삼공의 예를 갖추어 치르도록 하라."
  조조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아들 유희를 위로했다.  조조는 유
복의 영구를 군사들에게 호송하게 한  뒤 유희를 돌려 보내고 그 장례를 삼공의 
예로 후하게 치르도록 했다.

  제갈공명 
  동남풍을 빌다

  조조는 탄탄한 수군의 전열을  보며 승리를 자신하고 신하들이 화공을 염려하
나 그는 이미 바람의 방향을 읽는다. 한편  주유는 병석에서 세월을 보내고 병인
을 꿰뚫은 공명은 몸소 칠성단을 쌓아 동남풍을 기원하여 바람을 불게 한다.

  이튿날이 되자 수군 도독인 모개와 우금이 조조를 찾아와 아뢰었다.
  "모든 배들을 크고 작은 배로 가려  5, 60척씩 쇠고리로 연결하여 그위에 널빤
지를 깔았습니다.  정기와 병장기도 모두  실었으니 승상께서는 한  번 둘러보신 
후 진군의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모게는 군사를 내기  전에 조조의 순시를 청했다. 싸움에 앞서  마지막 조련을 
할 생각으로 조조는 즉시  수군의 한가운데 있는 큰 배 위에  올랐다. 모든 장수
들을 불러모은 후 물과 물의  군사를 이끌 장수들에게 다섯가지 색깔의 기를 나
누어 주었다. 기를 나누어 준 후 조조는 각 대를 편성하여 영을 내렸다.
  "수군 중앙의 선단은 모두 노란 기를  달고 모개.우금이 이끄는 중군의 표식으
로 삼으며, 수군의 선봉은 붉은 기를 꽂고 장합이 이끌도록 하라. 그리고 후군은 
검은 기를 꽂고 여건이 거느리며, 좌군은 푸른 기를 꽂고 문빙이 이끌도록 하라. 
또 우군은 흰 기를 꽂고 여통이 이끌도록 하라."
  수군의 배치가 끝나자 이어 마보군을 배치했다.
  "선봉은 붉은 기를 쓰도록 하고 서황이 지휘한다. 그 뒤는 검은 기에다 이전이 
이끌도록 하며, 우군은  흰 기에다 하후연이 군사를 거느리도록 하고  좌군은 푸
른 기를 쓰며 악진이 맡도록 하라. 그리고 수륙 양군의 후원군 일은 하후돈.조흥
이, 위생과 싸움을 감독하는 일은 허저.장요가 맡도록 하라!"
  조조가 나머지 장수들은 자신이 몸소 거느리기로 정한 뒤 이윽고 진병 명령을 
내리자 배에서는 큰 북 소리가 울렀다. 각  대의 싸움배들이 차례대로 진문을 나
서는데 질서가 어그러짐 없이 정연했다.
  이날따라 서북풍이 심하게 불었다. 각 대의 싸움배는  돛을 높이 달고 거친 파
도를 헤치며 나아갔으나 크고 작기에  따라 수십 척씩 쇠고리로 묶여 있으니 흔
들림이 없이 마치 평지를 가듯 했다. 배의  요동이 전혀 없으니 군사들도 멀미를 
하지 않게 되어 의기가  치솟는 듯했다. 배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가 하면 
칼로 베거나 창으로  찌르는 사늉을 하며 서로  용맹을 겨루었으나 배의 대오는 
여전히 흐트러짐 없이 질서 정연했다. 작은 배 50여  척은 큰 배의 대오 사이 사
이를 오가며 선단의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게 독려하고 있었다.
  조조는 대장의 대에 앉아 조련하는 전함과 군사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 보
고 있었다.
  '이제 싸움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조조는 속으로 이렇게 기뻐하며 장수들에게 영을 내렸다.
  "이제 모든 배는 돛을 내리고 수채로 돌아가도록 하라!"
  조조의 영에 따라 각 선단은 차례대로 수채로 돌아갔다.
  잠시 후 장막으로 들어온 조조는 여러 모사들을 불러놓고 대견스레 여기며 기
뻐했다.
  "만약 하늘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찌 봉추의  묘책을 얻을 수  있었겠나! 배를 
쇠사슬로 묶어 놓으니 강을 건너가는 것이 평지나 다름없구나."
  모두들 조조의 말에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으나 정욱만은 근심스
런 얼굴로 간했다.
  "승산, 또 불길하다고  노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토록 심한 바람을 보니  문
득 근심되는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 불안하다는 말인가?"
  조조가 의아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배를 쇠사슬로 서로 비끄러맸으니  흔들림이 없이 평지를 달리듯 하는 건 좋
으나 만약 적이 불로써 공격하면 우리는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승상께선 그 점
을 잘 헤아리셔야 할 것입니다."
  정욱의 말에 조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껄껄 웃으며 말했다.
  "공은 앞일을 내다보고 염려할 줄은 알고  있으나, 그대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 
곳이 있소."
  순유는 조조가 웃으며 너무나 가볍게 말하자 까닭을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정욱의 말이 옳은 듯한데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웃기만 하십니까?"
  그제서야 조조가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무릇 화공이란 반드시 바람이 불어야 하는 법이오. 그런데 지금은 한겨울이라 
서풍과 북풍은 불어오나  동풍과 남풍은 불지 않는 계절이오. 우리는  지금 서북
쪽에 있으며 적군은  남쪽에 있소. 그들이 화공을 펼친다면 그것은  자기 군사들
만 불길을 뒤집어쓸 뿐이오. 그러니 무엇 때문에  화공을 두려워하겠소? 만약 지
금이 시월이거나 여름이었다면 나는 벌써 그에 대한 방비를 했을 것이오."
  조조의 말을 듣자  여러 모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두들  감복하여 엎
드려 절하며 말했다.
  "승상의 높은 식견, 저희들이 감히 따를 수가 없습니다."
  조조는 다시 한 번 장수들을 둘러보며 연환계를 내세웠다.
  "우리 군사들은 모두  청주.서주.연주.기주 출신들이라 배 타는  데에는 익숙하
지 못하다.  그러니 연환계를 쓰지 않고서는  어찌 물결이 거친 이  장강을 건널 
수 었겠느냐?"
  그러자 두 장수가 열에서 한 발짝 나서며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비록 연과 유주 땅에서 왔으나 배를 잘 부릴 수 있습니다. 바라건데 
저희들에게 순선 스무  척만 주십시오. 곧바로 강남으로 내려가 적의  기와 북을 
빼앗아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 북군도 배를 잘 부린다는  것을 보여 
주어 적의 사기를 꺾어 놓겠습니다."
  그들이 목소리가 우렁차고 의기가  드높아 조조가 바라보니 지난날 원소의 수
하 장수였던 초촉과 장남이었다. 그들은 일찍이 원소  밑에서 배를 타 본 경험이 
있어 이런 기회에 그 용맹을 떨쳐 보이고  싶어했다. 조조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
다.
  "그대들은 모두 북방에서 자란 사람들이라 배를 잘 부릴 까닭이 없지 않느냐? 
그러나 강남의 수군은  오랫동안 조련을 받아온 군사들이다.  애들 물싸움쯤으로 
여겨 귀한 생명을 버리려 하다니 어리석지 않은가?"
  그들을 가볍게 여기는 조조의 말에 불끈 오기가 치솟은 듯 두 사람은 소리 높
여 대꾸했다.
  "혹시라도 저희들이 실패하는 경우에는 군법으로 다스려도 좋습니다."
  "지금 큰 배와 싸움배를  모두 쇠사슬로 연결하여 작은 배와 중형배외에는 움
직일 수가 없다. 그러나 작은 배는 20여 명 정도가  탈 수 있으나 그런 배 몇 척
으로 어찌 동오의 수군과 싸우겠는가?"
  의기는 가상하게 여겼으나 아무래도 미덥지 못해  조조가 만류했다. 그러나 초
촉과 장남은 물러서지 않았다.
  "큰 배나 싸움배를 타고 간다면 장할 것도  없겠죠. 우리는 작은 배 스무 척이
면 됩니다."
  초촉이 나서며 큰소리를 쳤다.
  "그것으로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
  조조가 그들의 생각하는 바가 궁금해 물었다.
  "장남과 두 패로 나뉘어 강남의  수채를 쳐 기를 빼앗고 장수의 목을 베어 오
겠습니다."
  초촉의 우렁찬 목소리에 조조도 귀가 솔깃해졌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강남
이 자랑하는 수군의 예봉을  꺾을 수 있는 일이었다. 마침내 조조는  그 청을 들
어 주기로 했다.
  "정히 그렇다면 그대에게 작은 배 스무 척과 날랜 군사 5백여 명을 뽑아 창과 
쇠뇌로 무장시켜 딸려 보내겠다. 그러니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떠나도록 하라!"
  조조는 이어 싸움배를  내어 멀리서 접응토록 하고  또한 문빙에게 순선 30여 
척을 이끌게 하여 그들이 돌아오면 맞도록 했다.
  조조는 초촉과 장남이 공을 이루고  돌아올 때 만약 뒤쫓는 강남의 수군이 있
으면 내친 김에 그들도 깨뜨릴 심산이었다.
  초촉과 장남은  조조의 허락이 떨어지고 후원군까지  배치하자 크게 기뻐하며 
물러갔다.
  이튿날 사경 무렵이 되어 밥을  지어 먹은 조조의 군사들은 오경 무렵에는 출
진 준비를  갖추었다. 이윽고 수채 안에서는  북 소리.징 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작은 싸움배 주가는 수채를  나와 강 위에 늘어 섰다. 강  위에는 군호로 쓰이는 
붉고 푸른 기와 정기가 울긋불긋한데 어우러지니 그 화려한 정경이 장관이었다.
  초촉과 장남은 주가 스무 척이  강 위에 늘어서자 군호를 올려 기세도 당당히 
강남을 향해 출발했다.
  한편 동오의 주유는 전날 강북에서 북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자 군사를 보내 
알아보도록 했다. 얼마 되지 않아 군사가 달려와 보고했다.
  "조조가 수군을 조련하고 있습니다."
  주유는 그 말을 듣고 산등성이로 올라가 조조가 수군을 조련하는 모습을 살펴
보려 했으나 이미 조조군은 수채로 돌아간 뒤였다.
  다음 날 새벽이 되자 강북에서 북 소리.징  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자 군사 하나
가 높은 곳에 올라가 북쪽을 살펴보았다.
  멀리서 작은 싸움배가 물결을 헤치며 남으로 내려오는 것을 본 군사는 주유에
게 달려가 알렸다.
  "적선입니다. 주가 20여 척이 우리 진을 향해 쳐내려오고 있습니다."
  주유는 즉시 원문으로 나가 여러 장수들을 보고 외쳤다.
  "누가 나가 첫 싸움에서 공을 세우겠는가?"
  그러자 한당과 주태가 나섰다.
  "저희들이 선봉이 되어 적의 예봉을 꺾어 놓겠습니다."
  주유는 기뻐하며 그들을 출군하게 하는  한편 각 영채에 영을 내려 싸울 태세
를 갖추게 했다.
  한당과 주태는 각기  전선 다섯 척씩을 거느리고  좌우로 나뉘어 적을 맞으러 
나갔다. 초촉과 장남은 적이  다섯 척씩만 이끌고 오자 제 용맹만  믿고 급히 배
를 몰아왔다. 초촉이 명을 내려 한당의 배에다 화살을 쏘도록 했다. 화살이 어지
럽게 한당의 배로 날아들었다.
  양쪽 싸움배에서 화살을 쏘며 다가오자 거리는  점점 좁아들고 있었다. 한당은 
한 손에는 창을, 다른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날아오는 화살을  막고 있는데 어
느 새 초촉의 배와 창칼을 맞댈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다.
  초촉이 먼저 긴  창을 치켜들고 앞으로 나아가  한당을 찌르자 한당도 창으로 
초촉의 창을 막으며 찔렀다. 창과 창이 몇  번 어우러졌으나 한당이 창을 쳐들며 
크게 외치자 초촉은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물 위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초촉의 뒤를 따르던 장남이 초촉이  물 위에 떨어지자 한당을 향해 배를 몰았
다. 그러자 이를 본 주태가  장남의 배 쪽으로 급히 배를 돌렸다. 장남이 군사들
에게 활을 쏘게 하자  양군의 배에는 화살이 어지러이 오고 갔다.  주태는 한 손
에는 칼을 들고 한 손에는 방패를 들어 화살을 막고 있는데 두 배가 여덟 자 정
도 간격을 두고 가까워졌다.
  뱃전과 뱃전 사이에 높이 물보라가  치솟는 순간 주태가 훌쩍 몸을 날려 장남
의 배로 건너 뛰더니 한칼에 장남을 베어  버렸다. 주태는 대장이 한칼에 쓰러지
는 걸 보고 겁을 먹은 군사들을 닥치는 대로 칼로 베었다.
  초촉과 장남이 이끈 다른 배들은 이 모양을 보자 놀라 급히 뱃머리를 돌려 달
아나기 시작했다. 한당과 주태가 달아나는 배를  뒤쫓으며 강 한가운데쯤에 이르
렀을 때였다. 강 북쪽에서 문빙이 쫓겨오는 자기들 편의 배를 구하러 왔다.
  문빙이 거느린 배 서른 척이 쫓겨오는 배와 합치니 그 수가 주태와 한당이 거
느린 배의 다섯  배에 가까웠다. 그러나 주태와 한당은 물러서지  않고 이리저리 
적선 사이를 헤집으며 싸움을 벌였다.
  그때 주유는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가까운 산 위에 올라 불쪽의 진용을 살
피고 있었다.  크고 작은 싸움배가 강  위에 늘어서 있고 기치와  호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보기에도 질서가 흐트러짐 없이 정연했다.
  주유가 다시 강 한가운데를 바라보니, 주태와  한당이 자기들보다 몇배나 많은 
적선을 상대로 하여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조의 수군이  조련을 거쳤다
고 하나 온 힘을 다해 덤벼드는 주태와 한당의 날랜 솜씨를 당해 내지 못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문빙이 군사들은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형세르르  지켜 
보던 문빙은  슬며시 뱃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주태와 한당이  달아나는 적선을 
뒤쫓기 시작하자 주유는 그들이 너무 적진 깊이 들어가다 어려운 지경에라도 빠
질까 염려하였다. 북과  징을 울리고 흰 기를 흔들어 물러나라는  군호를 내리자 
그들은 이를 보고 뱃머리를 돌렸다.
  주유는 두 사람이 뱃머리를 돌리는  것을 보자 다시 눈길은 돌려 문빙이 조조
의 수채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조조의  수채에 들어찬 전선도 법도가 그
럴 듯 했고, 그 수 또한 엄청나 보였다. 
  주유가 한숨을 쉬며 여러 장수들에게 말했다. 
  "강북에 전선이 빽빽이 늘어선 것이 마치  갈대밭과 같구나. 또 조조의 지모가 
가볍지 않으니 무슨 계책으로 적을 깨뜨릴 수 있겠는가?"
  그때엿다. 장수들이 미처  입을 열 사이도 없이 홀연 조조의  수채 한가운데에 
세워 놓은 누런 기가  바람에 부러져 물 위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본 
주유는 어두웠던 얼굴이 밝아졌다. 
  "저것은 분명 조조에게 상서롭지 못한 징조가 아닌가!"
  싸움 첫날, 수채의 기가 부러져 내리는 것은  누구나 언짢아 하는 불길한 조짐
이 아닐  수 없었다. 주유가 기뻐하며  다시 조조의 수채를 살피고  있는데 돌연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커다란 파도가 일며 몇  길이나 되는 물보라가 일어났
다. 바람은 강물을 휘말아 올리고 솟구친 물기둥은 강언덕을 덮쳤다. 
  세찬 바람은 주유가 있는 산 위까지 휘몰아쳐 앞에 세워 둔 대장기가 뚝 부러
지더니 주유의 몸을 후러치며 떨어졌다.
  "아아!"
  주유는 문득 바람의 방향을 보며  어떤 불길한 생각이 떠올라 고통과 함께 외
마디 외침을 토하며 쓰러졌다. 장수들이 깜짝 놀라  황급히 달려 왔을 때 주유는 
이미 시뻘건 피를 토하고 있었다. 
  장수들이 놀라 주유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으나 이미 혼절해 있었다. 
  쓰러진 주유를 부하들이  급히 구호하여 장막 안의 침상에 눕혔다.  모든 장수
들이 달려와 주유를 보고는 한결같이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강북의 백만  대군이 범처럼 호시탐탐 우리  동오를 노리고 있는데 도독께서 
이 지경이 되셨으니  실로 큰일이다. 만약 조조가 군사를 내어  일시에 들이닥친
다면 장차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장수들은 의원을 데려다 주유의 병을  보게 하는 한편 손권에게 이 변을 알리
게 했다. 
  노숙도 주유가 몸져눕자 걱정하다 못해 공명을 찾았다.
  "이미 주 도독의 소식을 들어 알고 계시겠지만 실로 큰 근심이 아닐수 없습니
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러나 공명은 그다지 염려하는 기색도 없이 담담한 얼굴로 도리어 그에게 반
문했다. 
  "공은 무엇 때문에 일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조조에게는 이로운 일이요, 강남에는 화가 되는 일이겠지요."
  노숙은 공명의 물음을  얼른 알아듣지 못해 엉뚱한 대답을 했다.  그러나 공명
은 다시 묻는 대신 웃으며 말했다. 
  "그리 근심할 것은 없습니다. 주 도독이 몸이 아프다면 즉시 고치면 그만 아닙
니까? 도독의 병은 이 양이 능히 고칠 수가 있소."
  "예! 그 말씀이 정말이시오?  그럴 수만 있다면 강남을 위해 그보다  더 큰 다
행은 없을 것입니다."
  노숙이 공명의 말에  반색하며 말했다. 노숙은 공명에게 주유의 병을  보러 가
자고 재촉했다. 공명도 노숙의 재촉에 순순히 따라나섰다. 
  두 사람이 주유의  장막에 이르자 노숙은 공명은  잠시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먼저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주유는 침상에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도독께서는 병세가 어떠하십니까?"
  노숙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가슴과 배가 뒤틀리듯 아프고 머리가 심히 어지럽소."
  "약은 드셨습니까?" 
  "토악질이 심하니 약을 삼킬 수가 없소."
  "조금 전 공명을 찾아갔었습니다.그런데 공명이 도독의  병을 낫게 할 수 이ㅣ
다고 말하기에 그를 데리고 왔습니다. 지금 장막  밖에 있으니 불러들여 한번 치
료를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노숙이 그제서야 공명이 온 것을 알렸다. 주유는  공명이 자기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금세  기뻐하는 얼굴이 되어 그를 불러들리도록 재촉했다.  물에 빠
진 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공명이 장막 안으로  들어오자 주유는 이미 시종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며칠 동안 도독을 뵙지 못한 사이에 이토록 불편하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공명이 위로의 말을 하자 주유가 아픈 몸을 달래며 말했다. 
  "사람의 화와 복은  잦아 아침 저녁으로 있다고 합니다. 어찌  스스로야 알 수 
있었겠습니까?"
  "하늘에도 헤아리기 어려운 풍운이  있는 법인데 한낱 사람이 어찌 앞일을 헤
아릴 수 있겠습니까?"
  공명이 웃으며 말했다.  주유가 그 말을 듣더니 금세 낯빛이  흐려지며 무거운 
신음 소리를 토해냈다. 공명의 그 말은 분명  자신의 속마음을 엿보고 있다는 생
각이 들어 주유의  심사가 편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명은 다시  주유에게 물었
다. 
  "도독께서는 가슴 속이 무엇에 짓눌리듯 답답하지 않으십니까?"
  "그렇소이다. 가슴이 답답하여 곧 죽을 것 같소."
  "그러시다면 가슴 속의 응어리를 씻어 내릴 시원한 약을 써야지요."
  "이미 약을 써보았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습니다."
  주유가 다시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공명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먼저 기운부터 순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병은 절로 낫게 될 것입
니다."
  "기운을 순하게 하려면 무슨 약을 써야겠소?"
  공명이 자기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여긴 주유가 불쑥  물었다. 그러
자 공명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게 한 처방이 있습니다. 그 처방을 쓰신다면 필시 도독의 기운을 순하게 해 
드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오, 그러면 어서 그 처방을 베풀어 주시오."
  주유가 공명에게 청했다.
  "그러나 이 비방은 남에게 알려지면 그 효험이 없게 됩니다."
  공명의 말에 주유는  좌우의 시신을 물리쳤다. 공명은 종이와 붓을  가져와 가
만히 16자의 글자를 썼다. 
  
  조조를 깨치려면
  마땅히 화공을 써야 하리 
  모든 것이 갖추어졌으되
  다만 동풍이 빠졌구나. 

  공명은 종이에 쓴 글을 주유에게 보여 주면서 말했다. 
  "이것이 바로 도독께서 병이 나시게 된 원인입니다."
  주유는 공명이 보여 준 글을 보고 크게 놀라며 속으로 감탄해 마지않았다.
  '참으로 귀신과 같은 사람이구나.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이토록 내 속을 
훤히 꿰뚫고 있다니.... 이렇게 된 바에야 숨기지 말고 모든걸 털어놓고 의논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이윽고 주유가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선생께서 이미 내 병의 원인을 알고 계시었소. 그러니 앞으로 무슨 약으로 이
병을 다스리겠습니까? 일이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바라건대 내게 가름침을 
주십시오."
  계절은 한겨울이라서 북풍만  불 때였다. 조조가 있는 북군에 화공을  쓰게 되
면 그 불길은  오히려 동오군이 뒤집어쓰게 되기 십상이었다. 공명은  주유의 마
음 속 근심이 거기에 있음을  알았고 그걸 혼자서만 근심하다 보니 마음에 병이 
생긴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주유가 정중한 말로  공명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공명은  눈빛을 곧게 하는 한
편, 정색을 하며 말했다. 
  "제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일찍이 한 이인을 만나 기문둔갑에 관한 천서를 얻
은 일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비법이 있
어 배운  바가 있습니다. 도독께서  동남풍을 쓰시려면 남병산에  칠성단을 하나 
쌓으십시오. 높이는 아홉 자에 3층으로 하되 군사  120명이 각기 깃발을 들고 그
곳을 에워싸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제가 그  단에 올라 술법을 부려 3일 밤낮으
로 동남풍을 빌어 보겠습니다. 3일이라면 도독께서  군사를 부리는 데 충분한 기
일이 될 것입니다. 도독께서는 어떻습니까?"
  공명의 말에 주유는 크게 기뻐했다.  되든 안 되든 그건 두고 볼 일이요, 이대
로 누워 조조가 쳐들어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3일 밤낮은커녕 단  하룻밤이라도 동남풍만 크게 불어  준다면 내 뜻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오. 다만 일이  위급하니 지금이라도 서둘러  시작하도록 해야겠
소."
  "동짓날 스무날 갑자일부터  바람이 일어 스무이틀 병인일에 그치도록 하겠습
니다. 도독께선 어떻습니까?"
  "좋소이다. 동남풍만 불게 해 주시오."
  공명이 자세한 날짜까지 일러 주자 주유는 어느 새 아픈 기색이 싹 가신 얼굴
이 되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주유는 그 길로 진중에 나가 군령을 내렸다.
  "오백 명의 정병을 뽑아 남병산에 제단을  쌓도록 하라. 또한 따로 120명을 뽑
아 기를 들고 단을 둘러싸고 지키게 하라!"
  공명은 노숙과 함께 말을 타고 남병산에 올라 지세를 살핀 다음 제단 쌓을 곳
을 정해  주었다. 공명은 또 군사들에게  일러 동남방의 붉은 흙을  파다가 단을 
쌓게 했다. 
  군사들은 공명이 이르는  대로 제단을 쌓았는데 단의 둘레가 24장이요,  각 층
의 높이가 석  자, 전체의 높이가 아홉  자였다. 맨 아래층에는 28수의 별자리에 
따른 기를 세웠다. 동쪽의  일곱 면에는 푸른 기를 28수 중 동방  7수에 속한 별
인 각.항.저.방.심.미.기의 자리에  세워 창룡의 모습을 꾸몄다. 북쪽 일곱  면에는 
검은 기를 28수 중 북방의  일곱 별인 두.우.녀.허.위.실.벽의 순서로 세워 현무의 
형세를 이루게 했다. 서쪽 일곱 면의 흰 기는 서쪽 일곱 별자리인 규.누.주.묘.필.
자.삼의 차례대로  세워 백호의 위엄을 보이게  하고 남쪽 일곱 면의  붉은 기는 
남쪽 일곱 별자리 정.귀.류.성.장.익.진에 세워 주작의 모양을 짓게 했다.
  둘째 층은 둘레에 누런 기를  예순넷으로 64괘에 따라 여덟 방위로 나누어 세
웠다. 맨 위층에는  네 사람을 세웠는데 모두  옛 법식에 따른 것이었다. 그들이 
모두 머리에 속발관을 쓰고 몸에는 나의를 걸치고 봉의박대에다 붉은 신발에 방
술때에 입는 긴 옷자락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중 앞쪽 왼편에  선 사람은 긴 
장대에 일산 모양으로 닭의 깃을 달았으며, 오른쪽  사람은 장대 끝에 칠성을 그
린 신호용의 띠를 매달아  함께 바람의 방향을 보게 했다. 그  뒤쪽의 왼편 사람
은 손에 보검을 들게 하고 바른편에 선 사람은 항로를 받쳐들게 했다. 
  제단 밑에는  스물네 사람을 세웠는데 각기  정기.황월.백월.보개.주번.조도등을 
나눠 잡게 하고 빙 둘러서게 하니 그 위용이 대단했다.
  때는 동짓날 스무날 갑자일.
  공명은 좋은 시를 가려 전날부터 목욕재계하고 도의를 갈아입은 뒤 머리를 풀
고 맨발로 칠성단 아래에 이르렀다. 공명은 단에 오르기 전 노숙에게 당부했다.
  "자경께서는 군중에 돌아가  도독이 군사를 낼 준비하는  것을 도우시오. 만약 
나의 기도에 아무런 효험이 없더라도 괴이하게 여기지는 마시오."
  노숙은 공명이 이른 대로 곧 말을 타고  주유에게로 달려갔다. 공명은 다시 칠
성단을 지키는 군사들을 보며 엄한 영을 내렸다.
  "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각자 정한 자리를 떠나거나 수군거려서는 아니 된
다. 또 어떤 괴이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놀라거나  떠들지 말 것이며 행실을 어지
러이 하거나 법도를 어기는 자는 목을 베리라!"
  이미 칠성단의 엄숙한 분위기에 위압되어 있던 군사들은 모두 공명의 말에 따
를 것을 맹세했다. 공명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단  위로 올라가 다시 한 번 방
위에 맞게 기치나  사람이 어긋남이 없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어 향로에  향을 사
르고 사발에 물을  부어, 하늘을 우러러 낮고 맑은 목소리로  2각동안 주문을 외
웠다. 주문 외우기가 끝나자  공명은 단 아래로 내려와 단 옆에  쳐둔 장막에 들
어가 잠시 쉬면서 군사들에게 번갈아 밥을 먹게  했다. 공명은 오후에도 단 위에 
올라 축문을 외우기를  세번이나 했다. 축문 외우기를 끝낼 때마다  잠시 묵도하
니 신비스런 기운이 사방에 감돌아  주위에는 기침 소리 하나 없이 천지간 만상
이 고요했다.
  이윽고 저녁 별빛이  하늘에 하얗게 어리며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초경부터 
공명은 단에 다시 올라 밤새도록 빌었다.
  그러나 깊은 밤중의 하늘은 별빛만이 냉랭하게 빛날 뿐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한편 주유는 정보.노숙에게 일러 공명의 기도가  효험을 나타내어 기다리는 동
남풍이 불어오는지를 살피게  했다. 한편으로는 손권에게도 이일을  알리고 군사
를 내면 접응해 주기를 청했다.
  이때 황개는 조조의 배에다 불을 지를 스무 척의 화선의 뱃머리에 큰 못을 수
없이 박아 적의 배에 부딪치면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배 안에는 마른 풀섶과 갈대  등을 가득 싣고 생선 기름을 뿌린 그 위에는 유
황.염초등 불을 지를 물건들을  얹었으며 기름먹인 푸른 천으로 덮었다. 또 뱃머
리는 푸른 기를 꽂아 두어  조조가 보면 방통이 한 약조대로 항복해 온 배로 알
게 했다. 그리고 수전에 능한 정예군 3백을  각 배에 태우고 출진 명이 떨어지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진중에 있는  감녕과 감택도 거짓으로 항복해 온 채중.채화를  수채 안에 
붙들어 두고 있었다. 매일 함께 술을 마시며  조조에게 항복할 일을 의논하고 있
었다. 
  "어떻게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동오를 벗어나 강북으로 무사히 건너갈 수 있
을까?"
  감녕과 감택은 채중.채화가 영채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눈치채지 못하도
록 하기  위해 매일 이런 의논에  골몰해 있었다. 그들이 거느리고  온 군사들도 
모두 전선 속에 가두어  두고 단 한 사람도 강 언덕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였다. 
사방에 동오의 군사들을 풀어 놓으니  그들도 감히 배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감녕.감택은 그렇게 채중.채화를 가두어  놓은 뒤 군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
고 있었다. 
  한편 주유는 공명이 칠성단에서 영험 있는 기도를 올려 동남풍이 불기만을 기
다리고 있었다. 그때 군사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오후께서 뱃머리를 가지런히 하여  수채에서 80여 리 떨어진 곳에 이르러 머
무르고 계십니다. 도독께서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손권이 거느리는 본진도, 최전선의 선봉도, 중군도 이제 대도독 주유의 명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주유는 다급해진 마음에서  노숙으로 하여금 다시금 군령
을 전하게 했다.
  "모든 군사는 배와 싸움에 필요한 모든 병장기와 돛 따위를 수습해 놓고 명을 
기다리도록 하라. 명이  떨어지는 대로 지체없이 출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채비
를 갖추라. 만약 조금만 어그러짐이라도 있을 때는 군법으로 다스리리라!"
  주유의 명이 떨어지자 각 진의 장수나 군사를 가릴 것 없이 군령을 받들어 숨
을 죽인 채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이윽고 밤이 되어 별은 맑게  빛나고 구름도 제자리에 머문 채 움직이지 않았
다.
  장강에는 작은 물결만이 고기비늘처럼 잔잔하게 반짝일 뿐이었다.
  주유의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급해져 갔다. 마침내 참지 못한  주유가 노
숙에게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어떻게 된 셈이오? 공명이 동남풍을 빈다고 했는데 아직 효험이 나타나지 않
고 있으니 필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소. 이 한겨울에  어찌 동남풍이 불겠
소?"
  "아닙니다. 공명이 되지 않는 일을 경솔히 말해 스스로 화를 자초할 까닭이 없
습니다. 도독께서는 좀더 기다려 보시기 바랍니다."
  공명이 아직 한 번도 허튼말을  한 것을 본 적이 없는 노숙이 공명을 믿고 정
색을 하며 주유를 달랬다.
  노숙이 그 말을  한 지 2각이나 흘렀을까. 하늘의 별빛이  점점 흐려지더니 장
강에는 가벼운 물결이 일고 구름이  빠른 속도로 흐르더니 차츰 바람이 불기 시
작했다. 바람은 점점 거세어졌다. 주유가 황급히 장막 밖으로 나가 보니 과연 깃
발이 서북 쪽으로 펄럭이고  있었으며 동남풍 특유의 뜨뜻미지근한 바람이 불어
오고 있었다. 
  주유는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동남풍이 불어오자 몹시 기뻐하는 중에도 슬
며시 두려운 마음이 다시 일었다. 
  "공명은 도대체 사람인가, 귀신인가?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부릴 줄 알며 귀신
도 헤아리기 어려운 술수를 지닌 자가 아닌가! 만약  그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동
오의 큰 화근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죽여 뒷날의 화근을 없애야겠
다."
  주유는 급히 호군교위로 있는 서성과 정봉을 불러 은밀히 영을 내렸다.
  "그대들은 각기 군사 1백을 거느리고 가되  서성은 강 위로, 정봉은 뭍으로 가 
남병산 칠성단으로 가라.  그곳에 이르거든 아무 말 할것 없이  제갈량을 사로잡
아 즉시 목을 벤 뒤 그 목을 가지고 와서 내게 공을 청하도록 하라!"
  주유의 명을 받은 정봉과 서성은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대도독의 명이라 받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서성은 1백 명의  도부수를 거느리고 뱃길로 노를 저어 갔
고 정봉은 1백  명의 궁노수를 이끌어 남병산을 향해 달려  갔다. 가는 도중에도 
후끈한 동남풍이 차츰 강하게 덮쳐오고 있었다.
  뒷날 사람들이 이 일을 감탄하여 시로 남겨 기렸다.
  
  칠성단 위에 와룡이 오르니 
  하룻밤 사이에 동풍이 일고 강물이 일렁인다.
  공명의 묘계가 아니었더라면
  주랑이 어찌 재능을 펼칠 수 있었으리?
  
  남병산에 먼저 이른 정봉은 칠성단  위를 보니 공명은 보이지 않고 기치를 든 
군사들만 세찬 바람 속에서도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서 있었다.  정봉이 칼을 빼
들고 달려가 군사들에게 물었다.
  "공명은 어디 있느냐?"
  군사 중의 하나가 정봉의 물음에 대답했다.
  "기도를 마치신 후 장막 안에서 쉬고 계십니다."
  정봉이 급히 장막 쪽으로 달려가는데 서성이 군사를 이끌고 이르렀다.
  정봉과 서성이 사방을 뒤지며 공명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강변을 
지키던 군사 하나가 다가와 알렸다.
  "지난 밤 빠른 배 한 척이 앞으로 펼쳐 있는 여울목에 머물고 있더니 조금 전
에 군사께서 머리를 풀어헤친  채 내려와 급히 그 배를 타셨습니다.  그 배는 곧 
상류 쪽으로 갔습니다."
  서성과 정봉은 그 말을  듣고 강 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멀리 강 위
를 떠내려가는 작은 배 한 척이 보였다.
  "저기 배가 보인다. 급히 뒤쫓으면 능히 공명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어서 서둘러 뒤쫓도록 하라!"
  서성과 정봉은 황망히  물과 뭍으로 군사를 나누어 공명의 배를  뒤쫓았다. 서
성이 모든 돛을 다 올리고  순풍을 따라 뒤쫓으니 얼마 가지 않아 공명이 탄 배
와 거리가  많이 좁혀졌다. 서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거리에  이르자 서성이 
소리쳤다.
  "군사께서는 잠깐만 기다리시오. 주 도독의 중대한 전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자 흰 도포를 입은 공명이 앞서가는 배의 고물에서 몸을 일으켜서더니 껄
껄 웃으며 말했다. 
  "오느라고 수고했네. 주  도독의 전갈은 듣지 않아도  잘 알고 있네. 그보다는 
돌아가서 전하게. 지금 동남풍도  불고 있으니 어서 조조나 깨뜨리라고. 나는 잠
시 하구로 돌아갔다가 뒷날 다시 찾도록 하겠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급해진 서성이 손을  흔들며 외쳤다. 그러나 공명은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나는 이미 도독이 나를 용납치 않고 해치려  들 줄 알고 있었네. 그래서 미리 
조자룡에게 마중을 나와 달라고 일러 두어 나를  태우고 가는 것이네. 그러니 그
대는 쓸데없이 뒤쫓지 말고 돌아가게나."
  그러나 서성은 공명이 탄 배에  덮개가 없는 것을 보고 군사를 재촉하여 배를 
뒤쫓아 가까이 다가갔다.

  적벽대전 
  불타는 강 
  
  미리 배를 준비시킨 공명은  무사히 유비와 재회한다. 적벽강은 순식간에 불바
다가 되고 조조는 공명의 선방으로 군사가 매복해 있는 오림으로 도망친다. 조조
의 불길한 웃음은  매번 죽을 고비를 부르고 감녕.조운.장비한테 혼이  나 관우가 
지키고 있는 화용도로 달아난다.
  
  배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갑자기 조운이 나서며 활에 살을 메기고  큰 소
리로 외쳤다.
  "나는 상산의 자룡  조운이다. 나는 유 황숙님의  명을 받아 오늘 강변에 배를 
대고 기다리다가 우리 군사를  마중하여 하구로 돌아가는 길이다. 너희들은 어찌
하여 함부로 뒤쫓아오느냐?  내가 너를 한 살에  쏘아 죽이고 싶으나 두  집안의 
화평을 깰까 걱정하여 그만두되 내 솜씨만은 조금 보여 주겠다."
  그 말과 함께 활을 힘껏 당겼다. 
  화살은 서성이 타고  있던 배로 쏜살같이 날아와  배 위에 있는 돛의  줄을 툭 
끊었다.
  그와 동시에 돛이  물 위로 떨어지며 배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조운이 
군사들에게 영을 내렸다.
  "돛을 전부 올려라!"
  공명이 탄 배가 돛을 모두 올리자 순풍을 타고  강 위로 미끄러지듯 상류 쪽으
로 나아갔다.
  물먹은 돛을 다시 다는  법석을 떨던 서성이 다시 공명을 뒤쫓으려  했을 때는 
이미 까마득히 멀어져 한 마리의 새처럼 가물가물거렸다.
  "이제 소용 없소. 그만두시오."
  강가에서 큰 소리로  그를 말리는 자가 있었다.  서성이 소리나는 강 언덕쪽을 
보니 함께 공명을 쫓던 정봉이었다.  서성이 강기슭에 배를 대자 정봉이 한 마디 
거들었다.
  "제갈량의 귀신 같은 헤아림과 기묘한 계책은 우리가 따를 바가 못 되오. 게다
가 또 조자룡은 만 명이 함께 덤벼도 당해 낼  수 없는 무용을 지닌 장수가 아니
오? 조자룡이 당양  장판에서 아두를 품에 안고  조조의 십만 대병을 헤쳐  나간 
일은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소. 그냥 돌아가 도독께 사실을 고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소이다."
  정봉의 말에 서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공명도 뒤쫓을 수 없을 만치 멀리 
가버린 뒤가 아닌가.  서성.정봉은 그 길로 주유에게 돌아가 있었던  일을 소상히 
전했다. 
  주유는 그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크게 놀라며 한탄했다.
  "그 사람이  그토록 지략이 빼어나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내가  편히 잠을 
잘 수가 없겠구나."
  노숙은 그런 주유를 일깨웠다.
  "그보다는 우선 조조를 치는 일이 더 급합니다. 동남풍이 불 때 군사를 내어야 
합니다."
  주유도 그제서야 꿈에서 깨어난 듯 여러 장수들을 불러들이고 영을 내렸다. 주
유는 먼저 감녕에세 명했다.
  "그대는 채중과 함께 항복해 온 군사들을 이끌고 남쪽 강 언덕으로 가라. 북군
의 깃발을 세운 후 오림에 이르면 조조가 군량을  쌓아 두는 곳으로 들어가 그곳
에서 불을 질러 군호를 보내도록 하라. 그러나 채화는 내가 달리 쓸 곳이 있으니 
장막 안에 두고 가도록 하라."
  감녕이 물러가자 주유는 태사자에게 영을 내렸다.
  "그대는 3천여 기를  이끌고 황주경계에 이르러 합비에  있는 조조의 군사에게 
일격을 가하라. 이어 곧장 적의 본진으로 쳐들어가  불을 지르도록 하라. 그때 붉
은 기를 앞세운 군사들이 오거든 바로 오후께서 이끄시는 원군인 줄 알라."
  태사자에게 길을 재촉하여 보낸 주유는 여몽에게 영을 내렸다.
  "그대는 3천 병마를 거느리고 오림으로 가  감녕을 도와 조조의 군영을 불살라 
버리도록 하라."
  다음은 능통이었다.
  "그대는 군사 3천을 이끌고 이릉경계에 가 있다가 오림에서 불이 일거든 감녕.
여몽과 접응토록 하라."
  다섯 번째가 동습이었다.
  "그대는 3천 군사를  거느리고 한양을 취한 뒤 한천을 따라  조조의 영채로 쳐
들어가라. 그러다 흰 기를 앞세운 군사가 오거든 우리 군사이니 접응토록 하라."
  이어 반장에게 영을 내렸다.
  "그대는 3천 군사를 거느리고 흰 기를 앞세우고 한양으로 가라. 거기서 동습이 
불리해지면 그를 도우라."
  주유는 선봉을  6대로 나누고 일일이 영을  내리니 한 치의 틈도  없는 치밀한 
공격 명령이었다.
  선봉 6대는 주유의 명에 따라 각기 길을 나누어 떠나갔다.
  이어 주유는 황개에게도 영을 내렸다.
  "장군은 화공을  베풀 배들을 한 번  더 수습하고 우선 군사를  시켜 조조에게 
글을 보내시오. 오늘 밤에 항복하러 갈 것이라고 전하고 전함을 이끌어 떠나도록 
하시오. 뒤에 네 대의 전선을 따르게 하여 접응토록 하겠소."
  주유는 수군 네 대를 내어 황개의 화선을  뒤따르며 도우게 했는데 제1대는 한
당, 제2대는 주태, 제3대는  장흠, 제4대는 진무에게 맡도록 한 다음 그들에게 싸
움배 3백 척을 거느리고 나아가게 했다.
  주유는 정보와  함께 큰 배에 올라  싸움을 지휘하기로 하고  서성과 정봉으로 
하여금 좌우의 호위를  맡게 했다. 이어 노숙과  감택에게는 여러 모사들과 함께 
수채를 지키게 했다.
  주유가 수군을 배치하는 것을 지켜 본 정보는  주유의 용병이 빈틈없고 법도가 
있는 것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들 네 장수는 각각 3백 척씩의 배를 거느렸고, 그 앞에 스무 척의 화선이 뱃
머리를 나란히 하여 밤을 기다렸다.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강 위의 물결
은 거세게 출렁이고  있었다. 새벽부터 일기 시작한  동남풍은 낮 동안에도 내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이때 주유에게 손권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손권은 육손을 선봉으로 삼아 이미 
기주와 황주의 경계를 넘어 진병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주유는 곧 사람을 서산
에 보내 군호로  삼을 불을 뿜는 포를  설치하여 때가 되면 쏘게  하고 남병산에 
기를 세우도록 했다. 모든 채비를 마친 동오의 군사들은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
리고 있었다.
  한편 하구의 유비는  오로지 공명이 돌아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
다.
  그런데 어제부터 때아닌 동남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동남풍이 불면 배를 보내 
달라고 하던 공명의 말이 생각나 급히 조운을 보낸 것이었다.
  오늘도 망루에 올라 이제나저제나  하며 강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한 떼의 배가 하구로 다가왔다.  가까이 오자 유비가 살펴보니 공명이 아니라 공
자 유기였다.
  "아무 기별도 없이 어쩐 일로 급히 오는가?"
  유비가 의아스러워하며 물었다.
  "어젯밤부터 파수병들이 하류에서  잇달아 와서 알리기를 동오의  배들이 동남
풍이 불기 시작하자 온통  술렁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보여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황숙께선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하셨습니까?"
  유비는 유기를 맞아 적루 위로 청한 뒤 자리를 정해 앉게 하자 유기가 물었다.
  "공명이 동남풍이  크게 일면 조자룡을  보내라 하여 보냈는데  아직도 공명이 
오지 않고 있어 걱정이네."
  그때 군사 하나가 달려오더니 알렸다.
  "방금 번구쪽에서 한 척의  작은 배가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배꼬리에 휘날리
고 있는 것은 조자룡 장군의 기인듯합니다."
  유비와 유기는 급히 적루에서 내려와 강변으로 달려갔다. 과연 그 배는 공명을 
태운 배였다. 공명과 조운이 천천히 언덕으로 오르자 유비는 반가움을 이기지 못
했다. 서로 무사했음을 천행으로 여기며 공명의 손을 덥석 잡았다.
  "무사히 돌아오셨구려!"
  공명이 서둘러 유비에게 말했다.
  "주공께서도 무사하셔서 기쁩니다. 그 동안 있었던 일은 차차 말씀드리기로 하
겠습니다. 지난번에 약조하신 대로 군사와 말,  그리고 전선은 모두 준비하셨습니
까?"
  공명은 먼저 군사 낼 일을 서둘렀다.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군사께서 부려 주시기만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럼 곧 부서를 정하여  군령을 내려야겠습니다. 우선 그 일부터 먼저 서둘러
야겠습니다."
  "군사를 부리는 일은 모두 군사의 권한과 계책으로 영을 내리도록 하십시오."
  유비가 공명에게 그렇게 말하자 공명은 지체없이 먼저  조운을 불러 영을 내렸
다.
  "자룡은 군마 3천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  지름길로 접어들어 오림으로 가서 숲
이나 갈대가 우거진 작은 길에  군사를 매복하고 있으라. 오늘 밤 사경무렵 반드
시 조조가 그곳으로 도망쳐  올 터인즉 그들 군사가 절반쯤 지나가거든  불을 놓
아 그들을 치도록 하라. 아마 조조군 모두를 깨뜨리지는 못하더라도 태반은 죽일 
수 있으리라!"
  공명의 명이 떨어지자 조운이 물러나려다 말고 물었다.
  "오림에는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한쪽은 남군으로 통하는 길이며 다른 한쪽
은 형주로 가는 길입니다. 조조가 어느 쪽 길로 갈지 알수가 없습니다."
  공명이 그 물음에 서슴없이 대답했다. 
  "조조는 형세가 급박하므로 감히 남군으로는  가지 못할 것이며 반드시 형주로 
향할 것이오. 그런 다음 다시 허도로 돌아가려고 할 것이오."
  공명은 흡사 손바닥 위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했다. 조운은 명을 받들어 즉시 
군사를 이끌어 오림으로 향했다.
  공명은 이어 장비를 불러 영을 내렸다.
  "익덕은 군사 3천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  이릉길을 막으며 호로곡에 군사를 매
복하도록 하시오. 그곳에 있으면  조조는 감히 남이릉으로 달아나지 못하고 북이
릉 쪽으로 갈 것인즉 내일 비가 개면 그곳에서 솥을  걸고 밥을 지어 먹게 될 것
이오.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이  보이면 즉시 불을 지르고 군사를 이끌고 치도록 
하시오."
  "그러면 비록  조조를 사로잡지는 못할지라도  익덕은 큰 공을  세우게 될것이
오."
  장비가 영을 받들어  곧 군사를 이끌어 떠나자,  공명은 미축.미방.유봉을 함께 
불렀다.
  "그대들은 각기 자기  배를 타고 강 위를 돌아다니다가  조조의 패잔병을 사로
잡으면 그들의 무기며 군량등 우리에게 소용되는 물건들을 거둬들이도록 하라."
  그들 세 사람도 공명의 영을 받자 즉시 강가로 달려갔다.
  공명은 이어 공자 유기에게 말했다.
  "무창일대는 가장 요긴한  요충지입니다. 공자께서는 급히 거느리고 계신 군사
를 이끌고 돌아가시어 군사를 연안 입구 일대에 배치하도록 하십시오. 조조가 한 
번 패하면 반드시 그리로  도망쳐 오는 군사들이 있을 것이니 그때  그들을 사로
잡으십시오. 그러나 경솔히 성을 떠나서는 아니 됩니다."
  공명의 말을 듣자 유기도 서둘러 유비와 공명에게  작별 인사를 올린후 군사를 
거두어 갔다. 군사들에게  영을 내리는 일이 거의  다 되어가자 공명은 그제서야 
웃으며 유비에게 말했다.
  "주공께서는 번구에 군사를 머물게 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시어 싸움을 살펴보
십시오. 오늘 밤  주유가 싸움에서 크게 이기는  것을 구경하실수가 있을 것입니
다."
  그러자 그때까지 아무 명령도 받지 못한 채 초연히 서 있는 장수가 있었다. 다
름 아닌 관우였다.
  관우는 처음부터 공명 옆에  있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공명은 못 본 체  할 뿐
이었다. 싸움이라면 언제든 선봉을 맡아온 관우였다.  그러나 모든 장수들에게 영
을 내리고도 자신에세는 한 마디 말도 없자  관우가 참다못해 공명에게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이 관우가 오랜 세월 동안 형님을 모시며  싸움터를 누볐으나 아직 한번도 남
에게 뒤진 일이 없었소. 그런데 오늘 조조 같은 큰 적을 맞아 싸우는데 어찌하여 
군사께서는 나를 쓰지 않으시오?"
  그제서야 공명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운장께서는 그 일을 언짢게  생각지 마시오. 실은 운장에게 가장 요긴한 곳을 
맡아달라고 당부할 참이었으나 다만  한 가지 미덥지 못한 것이 있어  보내지 못
하고 있소."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그 까닭을 밝히시오."
  관우가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화부터 냈다.
  공명이 부질없는 말로 자기를 붙들어 두고 있다고 여긴 관우였다. 공명이 그런 
관우를 깨우치듯 말했다.
  "지난날 운장은 조조에게 후히 대접을 받고 허도를 떠날 때, 그 후의에 감복하
여 훗날 그 은혜를 갚겠다고  맹세하지 않았소. 조조는 필시 오림 싸움에서 패하
여 화용도로 도망갈 것이 분명하오.  그러니 운장으로 하여금 그 길에 매복케 했
다가 조조의 목을 치게 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오. 다만 내가 걱
정하는 바는 장군이 옛날의  은혜를 못 잊어 틀림없이 조조를 그냥  놓아 보내고 
말 것이라는 점이오. 그래서 감히 운장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오."
  그러자 관우가 껄껄 웃으며 답했다.
  "군사께서는 참으로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계십니다. 그때 조조가 나를 두텁게 
대한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안량.문추를 죽여 백마땅이  포위된 
걸 열어 준 것만으로도 이미 그 은혜를 갚고도 남음이 있소. 어찌 싸움터에서 만
난 조조를 경솔히 놓아 보낼 리 있겠습니까?"
  공명이 얼굴에 웃음을 거두고 물었다.
  "만약 운장이 놓아 준다면 어쩌겠소?"
  "당연히 군법에 따라 처벌을 받겠습니다."
  관우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러시오? 그렇다면 군령장을 쓰시오."
  공명이 다짐이라도 받아야겠다는  듯 이렇게 말하자 관우는 주저하지  않고 군
령장을 써서 주며 공명에게 물었다.
  "만약 조조가 화용도로 오지 아니한다면 어찌하겠습니까?"
  "나도 군령장을 써서 운장에게  드리겠소. 만약 조조가 다른 길로 갈때에는 나
도 벌을 받겠소."
  공명도 즉시 군령장을 써서 관우에게 주자 관우도  서운했던 마음이 사라진 듯 
껄껄 웃었다. 그러자 공명은 관우에게 조조를 유인하는 계교를 일러 주었다.
  "운장은 화용산에 매복하되 산꼭대기에 마른  풀과 싸리를 베어 쌓았다가 그걸 
태워 일부러 연기를 피워 올리도록  하시오. 그러면 조조는 그 연기를 보고 그리
로 갈 것이오."
  관우가 그 말에 의아로운 얼굴로 물었다.
  "연기가 나는 것을 보면 조조는 앞에 매복이  있음을 알 터인데 어찌하여 그곳
으로 오겠습니까?"
  공명이 웃으며 설명했다.
  "병법에는 안과 밖이  있으며 허실이 있소. 조조는 원래 허실에  밝은 자요. 그
는 산길에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면 이는 적이  일부러 사람이 있는 것처럼 꾸민 
계략으로 보고 굳이 그 길로 갈  것이오. 조조가 제 꾀에 제가 넘어가 반드시 그 
길로 갈 터인즉 운장은 그곳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시오."
  공명의 말을 듣고서야 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관우는 즉시 관평과 
주창을 비롯한 군사 5백을 거느리고 화용도로 말을 몰았다.
  관우가 떠나자 유비가 수심에 찬 얼굴로 공명에게 말했다.
  "아우 운장은 본래  의리가 도터운 성품이라 다짐은 했으나  막상 조조와 맞부
딪치면 필시 살려 보낼까 염려스럽습니다."
  유비의 말에 공명이 조용히 웃으며 간했다.
  "그러나 운장을 보내지 않는  것도 양책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운장
을 보내는 것이 하늘의 이치에 따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비가 공명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자 공명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어젯밤에  천문을 보고 인명을  살피건대 이번 싸움에서  조조의 용운과 
그 군력은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조조의 명수는 여기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가 아직  죽을 때가 아닌 바에야 차라리 운장에게 인정이
나 속시원히 베풀게 해주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과연, 군사께서는 거기까지 헤아려  운장을 보내셨구려? 그 귀신 같은 헤아림
과 깊은 뜻은 실로 따를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유비가 공명의 깊은 뜻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군사를 제대로 부리기  위해서는 앞일을 헤아리지 않을 수가  없는 터라 잠시 
천문을 살핀 것 뿐입니다.  주공께서는 이제부터 주유가 싸우는것이나 살피러 가
도록 하시지요."
  공명은 손건과 간옹에게 성을  지키게 한 뒤 자신은 유비와 함께  번구로 향했
다.
  한편 조조는  요새 안에 여러 장수를  불러모은 후 강동의  황개에게서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며 앞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이때 어제부터 불어오기 시작한 동남풍이 점점 세차게 불고 있었다. 이를 보자 
정욱이 조조에게 아뢰었다.
  "동남풍이 점점  거세게 불어오고 있습니다. 만일을  위해 수채의 방비를 더욱 
엄중히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조는 정욱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정욱의 걱정을 달래기라도 하
듯 껄껄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동짓날이니 만물은  시들어 음기가 다하고 양기가  되살아나는 시기가 
아니오? 이때 잠시 동남풍이 불어온들 무엇이 이상하겠소?"
  조조와 정욱이 이런 말을 나누고 있는데 문득 군사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강동에서 작은 배 한 척이 왔는데 황개의 밀서를 승상께 바치겠다고 합니다."
  조조는 군사를 재촉하여 급히 그  사람을 들게 했다. 조조는 손수 겉봉을 뜯고 
급히 밀서를 읽어 보았다.
  
  그 동안  주유의 방비가 엄하므로 가볍게  움직이기가 어려워 틈을  엿보던 중 
마침내 때가 왔습니다. 이번에 파양호로 새로 군량이 오게 되었는데 다행히 제가 
그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 베푼 이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앞서 은밀히 알려 드린 바와 같이 오늘 밤 삼경쯤 저는 강동의 이름
난 장수의 목을 베고 아울러 수많은 군량과 병기  등을 싣고 승상께로 투항할 것
입니다. 배 위에는 청룡아기를  달겠사오니 승상께서는 휘하 군사들로 하여금 오
인하는 일이 없도록 조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연 노심초사하며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때마침 동남풍이 불어오니 황개가 
강동을 일사천리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조조는 황개의  글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각 대의 장수들에게  황개가 당부한 
대로 일렀다.
  "청룡아기를 단  전선이 다가오면 공격하지  말고 정중히 우리  영채로 맞도록 
하라!"
  조조는 장수들에게 적장 황개가 투항해 온다는 사실을  알린 뒤 서둘러 수채로 
나가 대장기가 펄럭이는 배 위에  올랐다. 황개가 오기를 기다려 몸소 맞기 위해
서였다.
  이날 석양은 남빛 구름에 가리워져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바람이 점점 거세
어지면서 강에는 파도가 드높아지니 마치 천 년을  묵은 황룡들이 춤이라도 추는 
듯했다.
  그 무렵, 강동의 진영에서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미 황개와 감념은 어디론가  가고 없고 텅 빈 듯한 영채에  채화만이 우두커
니 진을 지키고 있었다. 주유가  진병하기 전에 채중과 채화의 일을 처결하기 위
해 채화만을 남겨 두게 한 것이었다.
  채화가 진영에 홀로 있는데 갑자기  한 떼의 군사가 몰려와 그를 묶어 버렸다. 
채화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내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느냐?"
  군사들은 그 말에 대답도 않은 채 채화를 주유 앞으로 끌고 가 끓어앉혔다. 채
화가 주유를 보자 시치미를 떼고 항의하듯 물었다.
  "제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십니까?"
  주유는 노기로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꾸짖었다.
  "네 죄를 모르겠는냐?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거짓 항복으로 나를 속이려 했느
냐? 이제 출진을 앞두고  마침 군기에 제사 지낼 제물이 없던 터에  네놈의 목을 
베어 제물로 써야겠다. 도부수는 빨리 채화의 목을 베어 제사 지내게 하라."
  채화는 자신의  본색이 탄로났음을 깨달았다.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여긴 채화가 악을 쓰며 말했다.
  "너희 장수 감택과  감녕도 실은 너를 배반하고 조  승상께 투항하기로 했다는 
걸 알기나 하느냐!"
  그 말에 주유가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내가 베푼 계책이었다."
  채화는 그 모든 것이  주유가 베푼 계책임을 알고 통분을 금치  못했으나 이미 
때늦은 일이었다.
  주유는 군사에게 명해 채화를 강변에 있는 조도기 아래로 끌어내게 했다. 이어 
술을 따르고 소지를 태워 올리며 채화의 목을 한칼에  잘라 그 피를 뿌려 군기에 
제를 올렸다.
  채화의 목을 바쳐 제를 올린 주유는 마침내 출전 명령을 내렸다.
  이때 이미  선발 제1선대, 제2선대, 제3선대가  이물을 나란히 하여  출전 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개는 제3선대의 선봉 화선에  올라 엄심갑을 두르고 칼을 빼들고 있었다. 황
개가 탄 배에는 '선봉 황개'라고 쓴 큰 기가  펄럭이고 있었으며 그 밖의 크고 작
은 전선에도 모두 청룡아기를 꽂은 채 순풍을 타고 적벽으로 향해 나아갔다.
  어둠이 짙어가자 동남풍은  더욱 거세어지고 파도는 삼킬 듯이  거구를 들썩이
고 있었다.
  그때 조조는 군중에 앉아 강물을  지켜 보고 있었다. 강물 위에 달빛이 비치자 
파도치는 물결은 마치 수만 마리의 황금빛 뱀이 물결을 희롱하는 듯했다.
  조조는 때아닌 동남풍을 맞으며 거친 물살을 곰곰이  헤아리고 있는데 문득 군
사 하나가 강쪽을 가리키면서 외쳤다.
  "저 멀리 돛단배가 바람을 타고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뭣이? 배가 보인다고?"
  여러 장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뱃머리로 달려가 초병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
보았다. 조조도  높은 곳으로 가 앉은  뒤 그쪽을 바라보았다. 멀리  거센 물결을 
가르며 줄을 지어 오는 배의 돛이 보였다.
  그러자 배를 살피던 한 군사가 다시 소리쳤다.
  "저기 오는 배들은  모두 청룡기를 꽂았는데 그 중 큰  기에는 '선봉 황개'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습니다."
  조조는 그 소리를 듣자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 배야말로 투항하기 위해 오는 황개가 탄 것이리라. 이는 하늘이 나를 도우
심이다."
  그 배들은 동남풍을  업고 오므로 가까워지는 속도가  놀랄 만큼 빨랐다. 점점 
가까워지는 황개의 선대를 한동안 살피고 있던 정욱이  문득 조조에게 다급한 목
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저 배들이 이상합니다.  우리에게 속임수를 쓰는 듯하니 더 이상 수
채 가까이 오지 않도록 하십시오."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인가? 정말 속임수라도 쓴다는 얘긴가?"
  조조가 의아스런 눈길로 정욱을 바라보았다.
  "군량을 가득 실은 배라면 반드시 그 무게  때문에 흘수선이 깊이 가라앉지 않
으면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배가  오는 속도도 더딜 텐데 지금 오는 배들은 수
심이 가벼워 보이며  속도 또한 빠르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오늘  밤은 동남풍이 
거세니 만약 그들이 어떤 속임수라도 쓴다면 어떻게 대적하시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조조는  문득 그 배들을 살펴보다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급히 영
을 내렸다.
  "누가 가서 저 배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겠느냐?"
  조조와 가까이에 있던 문빙이 나섰다.
  "제가 물에 익숙하니 가서 그들을 막아 보겠습니다."
  문빙은 그 말과 함게 작은 배로 뛰어내려 명을  내리니 순선 10여척이 그 뒤를 
따랐다. 문빙은 순식간에 저편에서 오는 대선단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조 승상의 명령이시다.  지금 거기 오는 배들은  모두 수채 밖에 닻을 내리고 
돛줄을 늦추어 더 이상 수채 가까이 오지 말라."
  문빙을 뒤따른 조조의 군사들도 일제히 소리쳤다.
  "잠시 그곳에 멈추어라!"
  "들리지 않느냐. 급히 돛을 내려라!"
  그러나 저쪽 선단에선 웬일인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여전히 물결을 헤치며 
질주해 오던 선두의 배에서 갑자기 '쌩!' 하며 화살이 날아오더니 문빙의 왼쪽 팔
꿈치에 콱 박혔다. 문빙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배 안으로 나뒹굴었다.
  "항복이란 거짓말이다!"
  "적의 속임수이다!"
  문빙의 군사들은 우왕좌왕 혼란에 빠진 가운데 배를 돌려 달아나기에 바빴다.
  이때 강남의 기습 함대 한가운데 있던 황개는  강물 위를 미끄러지듯 돌진하여 
조조의 수채와 2리 정도의 거리로 육박해 가고 있었다. 그러자 황개가 칼을 치켜
들고 허공을 휘둘러 군호를 보냈다.  그 군호에 따라 황개를 뒤따르던 20척의 화
선에 일제히 불이 붙었다. 불은  거센 바람에 실려 타올랐으며 바람은 강한 불길
을 돋우는 가운데 배들은 쏜살같이 조조의 수채로 향해 달렸다. 화선에서 타오르
는 불길과 연기가 하늘을 메우며 일제히 조조의 수채로 밀고 들어갔다.
  그때 '쾅!' 하며 강동  쪽에서 군호를 울리는 포향 소리가 들려왔다.  스무 척의 
화선은 그대로 조조의  배들을 향해 덮쳐들었다. 마치  불새처럼 물 위를 달려가 
적선의 수채에  부딪친 화선들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화선의 
이물에 창과 같은 큰  못이 거꾸로 총총 박혀 있어 적선과 부딪치면 그  못이 적
선 옆구리에 깊이 박혀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조조의 전선들이 아무리 거대하다 해도 목조선 
아니면 피혁선이었다. 금세 조조의 수채는 불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거기다가 연
환계를 써서 대선과 대선, 소선과 소선끼리 서로 쇠사슬로 묶어 둔 터라 각기 흩
어져 달아날 수도 없었다. 따라서 한 척이 타오르면 그 다음 배로 불길이 옮겨졌
다. 한 척이 가라앉으면 묶어  둔 쇠사슬 때문에 차례로 가라앉으니 싸울 태세를 
갖출겨를도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삼강을 온통 붉게 물들인 불길은 어느새 동남풍을 타고 며칠을 굶은 맹수같이, 
강 언덕에 있는 조조의 영채까지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때 조조는 눈앞에 벌어진 믿어지지  않는 사태에 넋이 나간 듯했다. 문득 고
개를 돌려 강변의 영채를 보니  거기서도 불길과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오
림의 숲도 타고 각  진과 군량 창고, 책문, 마구간에 이르기까지  눈 안에 들어오
는 모든 것은 불길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제야말로 천하 패업의 꿈을 이루
었다고 기뻐하고 있었는데, 그 꿈이 순식간에 불길 속에서 한 줌의 재가 되고 마
는 순간이었다.
  조조가 다시 강 위를 바라보니  낮같이 밝은 불길 아래 황개의 모습이 보였다. 
황개는 몸을 날려 작은 배로 뛰어내리더니 군사들을  독려하여 치솟은 연기를 헤
치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조조 자신을 찾아 배를 몰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조는 이제 목숨마저 위급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조조가 급히 강 언덕으로 몸을 피하려 했으나 배와의  거리가 멀어 어쩔 줄 몰
라 당황하고 있었다. 때마침 장요가  작은 배를 몰고와 조조는 부축을 받으며 간
신히 작은 배에 올랐다. 뒤돌아보니  자기가 탔던 큰 배에도 이미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장요는 10여 명의 군사와  함께 간신히 조조를 구출해 강 언덕으로 향했
다. 강물 위에는 새카맣게 탄 인마의 시체와 타다 남은 뱃조각 등 갖가지 잔해들
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때 황개는 붉은 비단  전포를 입은 자가 작은 배로 옮겨 타는 것을  보자 그
가 틀림없이 조조라고 여기고 배를 재촉하여 그 뒤를 쫓았다. 황개는 뒤쫓아오다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역적 조조는 달아나지 말라! 황개가 여기 있다. 내 칼을 받아라!"
  조조는 황망한 중에서도 황개에 대한 증오감과 그들에게  속은 자신에 대한 어
리석음을 스스로 질책하는 한탄 섞인 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황개가 곧장 조조
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을 장요가 보고 손에 들었던 철궁에 살을 메겨 당겼다. 
이때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몰아쳤고, 타오르는 불길 소리와 군사들의 아우성이 
요란했기 때문에 황개는 날아오는 화살 소리를 듣지 못했다.
  화살이 황개의 어깨에 깊숙이 박히자  황개는 '악!'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몸
을 뒤집으며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당황한 동오의 군사들은 물  속의 황개를 찾고 있는 동안 조조는  가까스로 오
림의 강 언덕으로 뛰어내려 달아났다.
  그러나 그곳 역시 불바다였다. 불은 이미 마보군의 진에도 옮겨 붙어 어디로든 
얼굴을 돌릴 수 없는 열풍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아, 이게 꿈이 아닌가?'
  조조는 사방을 휘돌아보며  얼이 빠진 채 중얼거렸다. 강변의 적벽,  북쪽의 오
림, 서쪽의  하수 모두가 불바다가  아니면 적군의 그림자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거느리던 크고 작은 전선들은  모조리 불타버렸거나 맹렬히 타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혼란에 빠진 군중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조조는 하늘을 우러러 한탄하면서  하는 수 없이 달아나는 길을 찾아  말 잔등
에 올랐다. 
  이때 강동의 장수 한당은 불길과 연기를 헤치며  조조의 수채를 공격하고 있었
다. 문득 군사 하나가 한당에게 달려오며 외쳤다.
  "배 뒤쪽 밑에서 누군가 장군을 부르고 있습니다."
  한당이 그쪽으로 달려가 강물을 굽어보며 귀를 귀울였다. 
  "공의, 나를 좀 구해 주시오!"
  그 부르짖음을 듣자 한당은 깜짝 놀라며 좌우에게 영을 내렸다.
  "오, 틀림없는 공복의 목소리다. 급히 구하도록 하라!"
  군사들이 갈퀴로 황개를 배 위로 끌어올렸다. 한당은 황개의 어깨에 꽂혀 있는 
화살을 입으로 뽑았으나 워낙 깊이 박혀 대만 뽑히고  촉은 그대로 살 속에 박혀 
있었다. 한당은 싸움은 잠시 미룬 채 황개의 젖은 옷을 벗기고 칼끝으로 살을 도
려내어 활촉을 뽑아내고 깃폭을 찢어 상처를 싸맸다. 그리고는 자신의 전포를 황
개에게 입히고 배 한 척에 실어 대채로 보내서 치료를 받도록 했다.
  갑옷을 입은 채 추운 강물에 빠졌으니 여느 사람  같으면 살아 남지 못했을 것
이다. 그러나 황개가 워낙 물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날 강은 온통 불길로  뒤덮여 있었으며 강동 군사의 함성은 하늘과  땅을 뒤
흔들고 있었다. 적벽강 왼편에서는 한당.장흠 두  장수가 강의 서쪽으로부터 군사
를 이끌어 왔으며,  오른편은 주태와 진무 두  장수가 적벽 동쪽으로부터 달려와 
조조군을 덮쳤다. 가운데 길로는 주유가 몸소 정보.서성.정봉과 함께 선단을 이끌
어 와 수채를 급습했다.
  군사들이 이르는 곳마다 불길이 치솟았고, 그 불길에 따라 군사들은 더욱 의기
가 치솟아 두려움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삼강의 수전인 적벽대전이었다.
  조조의 군사들이 강동군에게 당한 피해는 실로 엄청났다. 모두 창에 찔려 죽거
나 화살에 맞아 죽고, 불에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으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뒤날 사람이 적벽 싸움을 시로 읊었다.
  
  위와 오 자웅을 겨루더니
  적벽에 있던 배 한 척도 보이지 않네.
  치솟는 불길 구름에 뻗치고 강물 비추는데
  주랑이 이곳에서 조 공을 깨뜨렸네.
  
  또 다른 사람은 이런 시를 남겼다.
  
  산 높고 달은 어두운 망망한 물 위에 
  군웅할거하며 전조를 다투었네.
  동오 선비들 무심히 조조 맞더니 
  다행히 동남풍이 불어 주랑편을 들었네.
  
  수채를 빠져 나가지 못한  조조군이 몰살을 당하고 있을 때 뭍에서도  역시 조
조군은 여지없이  동오군에게 짓밟히고 있었다. 동오의  감녕은 수채에서 뭍으로 
불길이 번지자 선봉이 되어 조조의 영채를 덮쳤다.
  감녕은 조조의 영채에 들기가 무섭게 주유가 이른  대로 먼저 거짓으로 투항해 
왔던 채중부터 목을 베었다. 이어  떠나올 때 내린 주유의 명대로 마초더미에 불
을 질렀다.
  조조의 영채에서 불길이 크게  이는 것을 보고 기다리고 있던 여몽도  마른 풀
로 여기저기에 불을 질렀다. 반장과  동습도 때를 놓치지 않고 길을 나누어 달려
와 불을 지르며 접응했다.  조조의 영채에서는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자 동오군이 
고함을 지르며 북을 울리니 그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 듯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조조군은 싸움다운  싸움을 해볼 겨를이 없었다. 
제대로 무기도 갖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동오군의 칼에 쓰러지거나 짓밟히는
가 하면 불에 타 죽는 자가 태반이었다.
  조조는 감히 군사를 수습할 염두도 내지 못한 채  황급히 말 위에 올라 달아날 
길을 찾을 뿐이었다. 조조를 따르는 것은 장요가 이끈 1백여 기뿐이었다.
  그러나 사방이 불길이라 빠져 나갈  곳이 없었다. 말을 타고 이곳 저곳을 두리
번거릴 뿐 불티와 재가 끊임없이 비 오듯 쏟아져 말은 한층 사납게 날뛰었다. 이
때 모개가 중상을 입은 문빙을  구하여 수십여 기를 거느리고 왔다. 조조는 그들
을 보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선 이 불길을 빠져 나가는 일이 급했다.
  "빠져 나갈 길을 찾아보라."
  조조가 다급한 목소리로 영을  내리자 장요가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키며 말
했다.
  "이제는 오림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은 길이 넓으니 급히 말을 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경황 중이라 다른 길을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조조는 장요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말을 몰았다.  한동안 채찍을 휘둘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데 뒤쫓는 
적의 군사가 있었는지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 왔다.
  "역적 조조는 달아나지 말고 게 섰거라!"
  조조가 그 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니 활활 타오르는  불길 너머로 여몽의 깃발이 
보였다. 그러자 장요가 나서며 조조에게 말했다.
  "제가 저들을 막겠습니다. 어서 급히 말을 모십시오."
  조조는 하는 수 없이  장요와 군사 몇십 기를 남긴 채 다시 앞으로  말을 몰았
다. 그러나 10여 리쯤을 가니  다시 앞쪽에서 횃불이 오르며 산골짜기에서 한 떼
의 군마가 쏟아져 나왔다.
  "오의 능통이 예 있다. 역적은 냉큼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맨 앞을 달려오던 장수가 소리치자 조조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앞뒤로 적을 맞
게 된 조조가  당황하며 무작정 옆길로 뛰어들려 할  때였다. 또 한 떼의 군마가 
옆쪽에서 내달아 오며 소리쳤다.
  "승상께서는 놀라지 마십시오. 서황이 왔습니다."
  "오, 서황인가!"
  위기 일발의 순간에 서황이  나타나자 조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뒤따르
던 군사들도 용기백배하여 능통이 거느린 군사와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이미  적진으로 뒤덮인 곳에서 조조군이  능통과 싸움을 오래  끌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바탕 싸움이 어우러진 뒤 조조는 군사를 이끌어 북쪽으로 길을 
뚫어 달아났다.
  그런데 한동안 달리다 앞을 보니 언덕 아래쪽에 한  떼의 군마가 진을 치고 있
는 것이 보였다. 이에 서황이 달려나가 그들이 적인지 아닌지부터 알아보았다.
  "그대들은 어디서 온 군사인가?"
  그들은 이전에 원소의  휘하에 있다가 투항해 온  마연과 장의였다. 두 장수는 
서황을 뒤따라 조조를 보러 왔다. 마연이 조조를 보자 말했다.
  "실은 저희들은 3천 군마를  모아 승상님을 돕고자 왔습니다. 그런데 어젯밤부
터 거센 바람과 치솟는  불길이 대채쪽에서 일어 먼저 형세를 살피기  위해 행군
을 멈추고 있던 중입니다."
  조조로서는 큰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군사 한 사람이 아쉬운 판에 그들이 가
세하게 되었으니 한결 마음이 든든했다. 조조는 크게  힘을 얻어 마연.장의 두 장
수에게 1천의 군마를  이끌게 하고 선봉을 맡겨 길을  열게 했다. 조조가 나머지 
군사를 후진으로 삼아 다시 말을  달려 10여 리쯤 갔을 때였다. 갑자기 여기저기
서 함성이 일더니 이편의  곱이나 되어 보이는 군사가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
닌가. 앞선 장수가 말을 달려오며 외쳤다. 
  "동오의 감녕이 여기 있다. 순순히 내 칼을 받아라!"
  그 외침과 함께 감녕이  곧장 말을 달려나오고 선봉 마연이 그를  맞으러 말을 
달려나갔다. 그러나 감녕은  동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장수였다.  한칼에 마
연을 베어 말  아래로 떨어뜨렸다. 이를 본  장의가 창을 휘두르며 덤벼들었으나 
그 역시 감녕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놈 감히 어딜 나서려느냐!"
  감녕의 벽력 같은 호통에 장의가 주춤하는 사이  칼을 내리치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군사들은 순식간에 두 장수의 목이 떨어지자 기겁을 하며 되돌아가 조조
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조조는 그때쯤 합비 쪽에서  원병이 오리라고 기대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합비에서 원병이 오는 대신 뜻밖에도 동오의 육손과  태사자가 군사를 이끌고 왔
다.
  합비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던 손권이 멀리 강물  위에 크게 불길이 이는 것
을 보자 조조의 수채에 화공을  베풀었음을 알았던 터였다. 싸움은 이제 이긴 것
이나 다름없다고 여긴 손권은 육손으로 하여금 불로  군호를 보내게 하여 태사자
를 불렀다. 그리하여 태사자와 육손은  조조가 도망갈 길을 끊기 위해 군사를 몰
아오던 중이었다.
  태사자와 육손까지  군사를 이끌고 오니 조조는  더 이상 무모한  싸움을 벌일 
처지가 아니었다. 도망쳐오던 길을 버리고 말을 후려 이릉을 향해 달아났다.
  조조가 말을 달리던 중 다행히 잔군이 된 장합을 만났다.
  "뒤쫓아오는 적을 막아라."
  조조는 장합에게 그렇게 명한 뒤 그대로 채찍이 부러져라 말을 몰았다. 그렇게 
달리다보니 이미 밤도 깊어 오경쯤 되었다. 그제서야 조조가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니 적벽이 불길도 웬만큼 멀어져 가물가물하게 보였다.
  겨우 적벽을 벗어났음을  깨달은 조조가 저으기 마음이 놓여  뒤쳐진 부하들을 
기다리는 여유를 되찾았다.
  조조가 좌우에게 물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인가?"
  본디 형주 출신이었던 한 장수가 대답했다.
  "오림에서는 서쪽이며 의도에서는 북쪽이 되는 곳입니다."
  "의도의 북쪽? 아아 그런 방향으로 왔다는 말인가?"
  조조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부근의 산세와 지형을 살펴보고 있었다.
  숲이 울창하고 산과 내가 높고  험할 뿐만 아니라 길이 몹시 가파랐다. 산세를 
살피던 조조가 문득 말 위에서 큰 소리로 웃었다. 그 때아닌 웃음 소리에 장수들
이 의아스러워 물었다.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그토록 웃으십니까?"
  "내가 달리 웃는 것이 아니라 주유의 꾀가  얕고 제갈량의 지혜가 보잘것 없어 
절로 웃음이 나온 것이다. 만약 내가 주유나 제갈량이었다면 반드시 이곳에다 군
사를 매복시켜 달아나는 적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패군의 장수는 감히 군사를 말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이날따라 조조는 말 위에
서 산과 숲을 가리키며 장수들에게 주유와 공명의 어리석음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홀연 양쪽 숲 속에서 북 소리가  크게 울리
면서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이제 적의 추격에서  벗어났다고 마음을 놓고 있던 
조조였다. 그 갑작스런 북 소리와  불길에 깜짝 놀라 하마터면 말에서 굴러 떨어
질 뻔했다. 조조가 정신을 가다듬어  말고삐를 움켜쥐는 순간 숲 쪽에서 한 떼의 
군마가 쏟아져 나오고 앞장 서 달려오던 장수가 소리쳤다. 
  "상산의 자룡  조운이 제갈 군사의 영을  받들어 여기서 너를 기다린  지 오래
다."
  조조는 조자룡의 이름만 듣고도  크게 놀랐다. 지난날 장판벌에서 떨치던 그의 
무용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서황과  장합으로 하여금 조운을 막도록  명한 뒤 급히  연기와 불길을 
헤치며 말을 달렸다. 다행히 조운이 조조군의 지치를 뺏고 군사 몇을 뺀 뒤 뒤쫓
지는 않았으므로 가까스로 그곳을 빠져 나갈 수 있었다.
  어느 새 날이 밝아올 무렵이 되자 거센 동남풍이  불더니 검은 구름이 산 위를 
뒤덮었다. 이윽고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하늘
에 구멍이라도 난 듯  쏟아붓는 비에 군사들은 갑옷을 적시고 몸  속까지 빗물이 
스며들었다. 동짓달이라 매서운 추위에  쏟아진 비로 길마저 질퍽하니 피로와 허
기에 지친 군사들은 발걸음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다.
  "마을이 보인다!"
  악몽 같은 밤을 지새고 먼동이 뿌옇게 밝아오자 군사 한 명이 기뻐 소리쳤다.
  "우선 허기진 배부터 채워야 할 것이니 먹을 것과 불씨를 구해 오도록 하라."
  승상 조조도  일이 이 지경이 되고  보니 마을을 발견하자마자  대뜸 좌우에게 
명했다. 그 말에  군사들은 앞다투어 마을로 달려갔다. 양식을 빼앗고  불씨를 얻
어 오자 곧 밥을 짓게 했다. 그러나 불을 피워 밥을 지어 먹을 틈도 없이 뒤에서 
한 떼의 군마가 달려왔다. 조조는  크게 당황해 앞서 오는 장수들을 바라보니 그
들은 바로 이전과 허저였다.
  "아니, 허저와 이전이 아닌가?"
  조조는 불탄 자리에서 보석이라도 줍듯 기뻐했다. 두 장수는 난전이 벌어진 가
운데도 눈에 띄는 군사를 수습해 모사들을 보호하며 산을 넘어 달려온 것이었다.
  조조는 밥을 지어 먹은 후 다시 서둘러 길을 떠났다.
  어느 새 오던  비도 그치고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조조는 말을 달리다 문득 
말을 세웠다. 앞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저 갈림길은 각각 어디로 가는 길인가?"
  조조가 좌우에게 물었다.
  "한쪽은 남이릉으로 통하는 길이고 다른 한쪽은 북이릉으로 가는 산길입니다."
  한 장수가 이렇게 대답하자 조조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느 길이 남군의 강릉으로 가기에 가까운가?"
  "남이릉 길입니다. 도중에 호로구로 넘어가면 빨리 닿을 수 있습니다." 
  그 대답을 듣자 조조는 지체하지 않고 남이릉으로 말을 몰았다.
  호로구에 이르자 말도 군사도  모두 지쳐 있는데다 허기가 저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조조는  그런 군사들을 보며 더  이상 행군이 힘들다고 여겨 
명을 내렸다.
  "여기서 쉬어 가기로 한다. 군사들은 밥을 짓도록 하라."
  이번에는 앞서 마을에서 약탈해 온 양식과 솥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군사들은 
곧 솥을 걸고 마른 섶으로 밥을 지으며 말고기를 구웠다.
  군사들은 빗물에 젖은 옷을 말리고 말은 안장을 벗겨  풀어 놓아 풀을 뜯게 했
다.
  조조도 말에서 내려 나무 아래  등을 기대어 쉬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문득 얼굴을 뒤로 젖히고  혼자서 껄껄 웃고 있었다. 가까이에 있던 군사
들이 가슴이 철렁한 듯 불안한 눈길을 하며 물었다. 
  "먼젓번 승상께서는 주유와  제갈량을 비웃으시다가..., 설마 그  때문은 아니겠
지만 느닷없이 조자룡이 튀어나와  적지 않은 인마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는 또 무슨 연유로 웃으십니까?"  
  "지난번에는 제갈량과 주유가  그래도 꾀를 내었다만 그들이  아무래도 지모가 
얕구나. 만약  내가 군사를 부렸다면  반드시 이곳에 군사를 매복시켰을  것이다. 
그러면 편히 앉아 쉬면서 지친 적을 기다리다 치는  격이 될 것이니 설령 우리가 
건진다 해도 지리멸렬할 것이다.  그런데도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으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느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느닷없이 군사들의 앞과 뒤쪽에서 고함소리가 
났다. 
  "적이다!"
  조조가 깜짝 놀라 미처 갑옷도 꿰입지 못한 채 말 위에 올랐다. 장졸들도 마찬
가지였다. 갑옷이나 속옷을 불에 말리던 중이어서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불길과 연기가 일어 산골짜기를 뒤덮는  가운데 한 떼의 군마가 
산 어귀를 막고 서서 조조군의 길목을 끊었다. 앞선 장수를 보니 그는 바로 장비
였다.
  "조조 이  역적놈아, 연인장비가 기다린 지  오래다. 네 감히  어디로 도망가려 
드느냐?"
  벽력 같은  소리로 장비가 이렇게 외치자  모든 장수들과 군사들이  한결 같이 
간담이 서늘해져 있는데 허저가 황망히  안장 없는 말 위에 올라 장비를 맞았다. 
이어 장요와 서황 두  장수가 말을 타고 달려낙 허저를 도우니  양편의 군사들이 
달려나와 한바탕 어우러져 혼전을 벌였다.
  군사들과 마찬가지로 간담이 서늘해졌던 조조가 이 틈을  타 말을 몰아 달아났
다.
  허저.서황.장요 새 장수가 장비를 덮쳤으나 장비를 꺾을 수는 없었다. 
  장비가 거느린 군사의 수가  많았을 뿐 아니라 몇 날을 쫓기며  지친 군사들이
라 꼼짝없이 죽음을 맞아야 했다.
  조조의 세 장수도 조조의  뒤를 따라 차례로 몸을 빼쳐 달아나기에  급급할 뿐
이었다.
  이때쯤 조조는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수십  리 거리를 혼비백산하여 정신 없
이 달리고 있었다. 이윽고  뒤쳐졌던 장수들과 군사들이 뒤따라왔으나 태반이 중
도에 죽어 나동그라지고 살아 남은 자도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한동안 말을 달려가는데 군사 한 명이 조조에게 물었다.
  "또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어느 길로 가시렵니까?"
  "이번에는 어느 길이 지름길인가?"
  "둘 다 남군으로 통합니다만 폭이 넓은 길은 50여 리를 돌게 됩니다. 화용도로 
이어진 길은 50여 리를 질러 갈 수 있으나 길이 좁고 험합니다."
  조조는 군사를 시켜 산 위를 살펴보고 오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위를 살
핀 군사가 달려와 말했다.
  "좁은 길이 있는  산기슭을 보니 여기저기서 희미하게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
었습니다. 그러나 큰길 쪽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듣자 조조는 곧 영을 내렸다.
  "화용도로 가는 좁은 길로 가도록 하라!"
  장수들과 군사들이 한결같이 조조의 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장수가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조조에게 물었다.
  "연기가 오르는 곳이면 반드시 군사가  있을 터인데 어찌하여 그쪽으로 가시려 
하십니까?"
  조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대들은 병서에 이른  '허하면 실하고, 실하면 허하다'  란 말도 듣지 못했는
가? 제갈량이 제법  꾀가 있는 자라 산마루와  골짜기에 군사 몇을 두어  연기를 
피워 많은 군사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그런 후 우리를 큰길로 유인한 
다음 그곳에 매보시켜 둔 군사로  하여 섬멸케 하려는 수작이다. 그러나 내가 이
미 그의 속을 꿰뚫어보고 있으니 어찌 그에게 속을 수가 있겠느냐!"
  여러 장수들과 군사들은  조조의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해 마지않았
다.
  "과연 승상의 높고 깊은 식견에 참으로 범상한 저들이 미칠 바가 못됩니다."
  군사들은 곧 화용산 기슭을 따라 산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이 급해
도 너무 주린 터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군사와 말이 한가지로 다 지쳐 있
었다. 거기다가 불에 머리를 그을리거나 화살에 맞거나 창에 찔린 부상자가 대부
분이었다. 간신히 나무 막대기에  몸을 의지해 걸음을 옮기는 처지인데 갑옷이나 
옷마저 비에 젖었고 병기와 깃발 또한 온전한 것이 없었다. 그나마 비에 젖은 옷
도 제대로 입지  못한 자가 허다한 지경이었다.  이릉에서 장비가 급습하는 통에 
제대로 옷도 꿰입지 못하고 달려온 것이었다. 때마침 한겨울이니 그 참담안 모습
과 고생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더욱이 화용도의 험한 길은 패잔병들을 더욱 괴롭혔다.
  앞장 서  가던 군사들이 한꺼번에 말을  세우자 조조는 무슨  일인가 알아보게 
했다.
  "새벽에 온 비로 곳곳에  구덩이가 패고 물이 고여 흙탕물 투성입니다. 흙탕물
에 말굽이 빠져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조조가 그 말을 듣자 버럭 화를 내며 군사들을 꾸짖었다.
  "본디 군사란 산을  만나면 길을 닦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 법이다. 어찌 
진흙 구덩이라고 나아가지 못하고 엄살을 부리고 있느냐."
  조조는 몸소 군사들을 부리기  시작했다. 늙고 부상당한 군사는 뒤에서 천천히 
따르게 하고 건장한 장수들만 앞세워 흙을 져 나르고  풀과 갈대를 날라 길을 메
우게 했다.
  조조는 뒤쫓는 적이 있음을 염려하여 군사들에게 엄명을 내려 길을 재촉했다.
  "게으름을 피우는 자는 목을 밸 것이다."
  조조는 장요.허저.서황에게  군사 1백여 기를 주어  각기 손에 칼을 들고  이들 
군사들을 감시케 했다.
  진흙탕을 메우며 마치 논 위의 황소처럼 일하는  군졸들 중에는 굶주림과 혹한 
때문에 픽픽 쓰러지는 자가 많았다. 그러면 조조는 그들을 질타하여 그대로 짓밟
고 지나가게 했다. 군사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 그들을 짓밟고 나가니 죽는 자가 
많았고, 울부짖는 비명 소리가 산 속을 메웠다.  그러나 조조는 엄한 명을 거두지 
않고 더욱 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죽고 사는 것이 모두  제가 타고난 명이다. 누굴 원망한다는 말인가? 만약 우
는 자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벨 것이다."
  이렇게 하여 간신히 첫번째 험지에서 벗어나는 동안  군사는 전체 인마의 삼분
지 일이 그곳에서 뒤쳐져 버렸다.  가까스로 그 험준한 지역을 벗어났을 때 뒤따
르는 군졸을 보니 불과 3백여 기였다. 그나마 제대로 갑옷을 입은 군사는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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