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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삼국지 8권

by Casey,Riley 202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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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제8권 슬프도다 회자필멸
    지은이: 나관중  평역: 김홍신
 

    유비도 한실 재건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떠나고...
  양양을 빼앗은 관 공이 번성을 치자 촉에서 투항해 온 위의 방덕은 관을 미리 
짜 놓고 죽기 살기로 결판을 내려 하는데,  방덕의 공이 커짐을 두려워한 우금은 
오히려 방덕을 살해한다.  그리하여 관우가 중구천에서 방덕과  우금을 사로잡지
만 조인의 궁노수들이 쏜  독이 묻은 화살을 맞는다. 그 소식을  듣고 화타가 찾
아와 칼로 살을 째고 뼈를 긁어 상처를 치료해  준다.  그러나 여몽의 계략에 빠
져 형주를 빼앗긴 관운장은 오군에게 사로잡혀 관평과 함께 손권에게 죽임을 당
한다. 관 공의  영혼은 죽은 후에도 지상을 떠돌며 나타나고  적토마는 주인에게 
충절을 바치듯 풀을 뜯지  않고 물을 마시지 않은 채 죽는다.  한편  관 공의 목
을 벤 손권은 유비의 보복이 두려워 관 공의 목을 나무상자에 담아 조조에게 보
내나 조조는  대신에 예로써 후히 장사를  지내 주지만, 그 소식을  들은 유비는 
혼절을 할 정도로 큰  슬픔을 느낀다.  건시전을 지으려 했던  조조는 병을 얻게 
되어 화타의 치료를 받으려 했지만  머리를 쪼개야 한다는 말에 그를 죽이고 만
다. 화타의 치료를 거부한 조조는 병이 악화되어  아들 조비에게 왕위를 잇게 하
고 결국 숨을 거둔다.   그리하여 위왕에 오른 조비는 헌제를  폐하고 제위에 오
르는데, 화흠 등이 황제에게 위협을  일삼아 조서를 쓰게 한다. 세 번 거절한 후
에야 헌제가 직접 조비에게 옥새를 바치게 하고  천하를 선양토록 한다.  조비가 
제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공명은 꾀를 내어  병을 핑계삼아 유비에게 한의 
대통을 잇게  한다. 유비는 천자의 자리에  오르자 먼저 관 공을  죽인 손권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군사를  일으킬 준비를 한다. 장비 또한 손권을  치러 갈 준비
를 하나 술이 화근이  되어 부하들에게 죽은 관우의 뒤를 따른다.   촉군이 오에 
쳐들어오자 오는 조비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한편 손환에게 나가 싸우게 하지만 
유비는 장포와  관흥을 보내는데 이들은  오군을 크게 물리치고  위엄을 떨친다. 
이 싸움에서 관흥은 관  공을 죽인 반장을 만나 원수를 갚는다.  이에 동오의 손
권은 유비가 대군을 몰고 오자  다른 장수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나이 어린 육손
을 대장으로 삼는다.  육손은 촉의 패잔병을  뒤쫓던 중 제갈공명의 팔진도 속으
로 쓸려 들어간다. 어둠 속에서 묘한 변화가  일어 어찌할 줄 모르는데 황승언의 
도움으로 석진에서 빠져 나온다.  한편 유비는  한실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 못한 
채 백제성에서  목숨을 거둔다. 이에  공명은 태자 유선을  제위에 오르게 한다.   
유비의 죽음을 틈타 조비는 사마의의 번득이는 계교대로 다섯 갈래로 군사를 낸
다. 공명은 세워 둔 계책대로 앉아서 조비의 오로군을 막아낸다. 그 즈음 손권은 
공명이 보낸  등지의 당당하면서 밝은  설변에 공감하여 촉과의  화친에 응한다.  
촉.오의 화친  소식을 들은 조비는  수천 척의 배를  마련하여 동오로 출전한다.   
한편 공명은 남만왕 맹획이 국경을 침범하자 남방 정벌에 나선다. 
    관을 메고 싸움터에 나선 방덕
  번성을 구하기 위해  조조는 방덕을 선봉삼아 우금과 함께 보낸다.  방덕은 관
을 미리 짜 죽기 아니면 살기로 관우와 결판을 내려 하는데 우금은 오히려 군사
를 뒤로 물리고 산  뒤만 방비토록 한다. 그러나 방덕은 타도계를  써 관우의 팔
에 화살을 메긴다.  동오로 돌아간 제갈근은  손권을 보자 감히 둘러대지 못하고 
관우가 한 말을 사실대로 전했다. 관우가 동오의  군주인 자신을 감히 개라고 지
칭했다는 말에 손권은 분을 이기지 못해 길길이 날뛰었다. 
  "그놈이 어찌 그렇게 무례할 수가 있다는 말이냐!"
  그렇게 소리친 손권은 그  즉시 장소를 비롯한 문무의 벼슬아치들을 불러모아 
형주를 칠  일에 대해 의논했다. 손권이  화에 치받혀 성급히 군사를  내려 하자 
보질이 조조의 속셈을 알려 주었다. 
  "조조가 오래 전부터 한을 없애고 천자가 될 마음을 품고 있었으나 유비가 두
려워 함부로 군사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우리에게 사자를 보내  촉을 치게 
함은 바로 동오에  모든 화근을 덮어씌우려는 뜻입니다. 그런 뒤에  촉과 동오를 
함께 취하려는 뜻입니다. "
  그러나 손권은 여전히 분을 누르지 못한 채 보질에게 말했다. 
  "그렇지만은 않소. 나 역시 오래 전부터 형주를 되찾을 궁리를 하지 않았소?"
  손권이 성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보질은 생각해  둔 바가 있는 듯 손권을 
달래며 의견을 내었다. 
  "섣불리 형주를 공격함은 위의 계략에  빠지는 일입니다. 그것보다는 위나라의 
군마를 오를 위해 쓰도록 하십시오."
  "그렇다면 무슨 계책이라도 있소?"
  보질이 그렇게 말하자 손권은 그제야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지금 조인은 양양과 번성에 둔병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우리처럼 장강의 험한 
강물이 가로막지 않아  뭍으로 직접 형주를 치러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
찌하여 스스로  치지 않고 주공께서 군사를  일으키라 했겠습니까?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조조의 속셉이  어떤 것인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사람을 하도로 보내시어 조조에게 조인으로 하여금 먼저 군사를 뭍으로 가소 형
주를 치게  하십시오. 그러면 운장은 반드시  형주 군사를 내어 번성을  치려 할 
것입니다. 그 틈을 타 장수를 보내 형주를  공격한다면 어렵지 않게 빼앗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
  손권이 보질의 말을 들으니 그럴 듯 했다.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곧 
글을 써 사람을 시켜  조조에게 보냈다.  조조는 손권이 군사를  낼 준비를 한다
는 사자의 말을 듣자  크게 기뻐했다. 조조는 동오와 촉이 손을  잡을까 마음 속
으로 두려워하고 있던 터에 동오와  촉의 화친을 미리 막고 촉을 고립시킨 것만
도 다행이라  여겨 두말 않고 손권의  말에 따랐다. 조조는 손권의  사자를 후히 
대접해 돌려 보낸 후 만총을 번성으로 보내면서 말했다. 
  "그대는 번성으로 가서조인의 참모관이 되어 형주를 치는 일을 돕도록 하라. "
  만총을 떠나 보낸 조조는 다시  동오로 격문을 보내 조인이 뭍으로 공격할 테
니 물길로 군사를 거느려 조인과 호응토록 했다.   그 무렵, 한중왕(유비)은 동천
을 위연에게  맡겨 지키게 하고, 자신은  문무관원을 거느리고 성도로 돌아갔다.   
유비는 왕위에 오른 터이므로 대궐과  관아를 다시 넓혀 짓게 하고 역관도 마련
케 했다. 성도에서 백수(사천성,  광원현 서북, 촉의 북쪽 경계)에 이르러 관사와 
우정(여행하는 관원들의 편의를 도모하는 역참)을 4백여 곳이나 세웠다. 또한 군
량과 마초를 비축하고 병기를 만들게 하여 중원으로 밀고 들어가기 위한 채비를 
했다.  유비가 나라 안의 일에 겨를이 없는 어느 날 급보가 날아들었다. 
  "조조가 동오와 손을 잡고 형주를 치려 합니다. "
  유비는 그  말에 깜짝 놀라 급히  공명을 불러 대책을 물었다.  그러나 공명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저는 이미 조조가 이런 꾀를 낼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오의 모사들은 
재주가 가볍지 않아, 반드시 조조로 하여금 조인을  시켜 먼저 군사를 내도록 했
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어찌하면 좋겠소?"
  "사람을 형주의 관운장에게 보내시어 먼저  번성을 치도록 이르십시오. 그러면 
적군은 두려워 저절로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
  공명이 그렇게 말해  유비를 안심시켰다. 이에 유비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전
부마사 비시에게 관고(벼슬의 사령)를 주어 형주로 보냈다.  비시가 형주에 이르
자 관우는 성 밖까지  나와 그를 맞아 들였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자 관우가 궁
금한 듯 물었다. 
  "한중왕께서 내게 어떤 벼슬을 내리셨소?"
  "장군은 오호대장의 으뜸이십니다. "
  "오호대장이라니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오?"
  관우가 의아스런 얼굴로 물었다. 
  "장군과 장익덕, 조자룡, 마초, 그리고 황충입니다. "
  비시가 다섯 장군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관우가 불끈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익덕은 나의 아우이니 그렇다치고, 마초도 여러 대에 걸친 명문  출신이요, 자
룡은 형님을 모신지 오래이고 내  아우나 다름이 없으니 나와 같이 나란히 해도 
괜찮소. 그러나 황충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나하고 감히 나란히  한다는 말
이오? 대장부로서 늙은 졸개와는 같은 줄에 설 수 없소이다. "
  관우는 자존심이 몹시 상한 듯 한중왕이 내린  인수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비
시가 관우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다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장군께서 반드시 그렇게만  말씀하실 일이 아닙니다. 옛날  한 고조의 공신인 
소하와 조참은 천자와  함께 대업을 이루어 가장 친근한 사이였고,  한신은 초에
서 투항해 온 장수였습니다. 그런데도 고조는  소하와 조참보다는 한신의 벼슬을 
더 높게 하셨소.  그러나 소하와 조참이 그것을 원망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소이
다.  이번에  한중왕께서 장군을 오호대장으로 삼으셨으나  장군과는 형제지간이
라 자기 한  몸처럼 여기신 것입니다. 장군이 바로 한중왕이시며  한중왕이 바로 
장군이니 어찌 다른 사람과 같게 여기시겠습니까? 장군은 이미 한중왕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으니 마땅히 기쁨과 슬픔, 화와 복을 함께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어
찌 남처럼 벼슬이 높고 낮음을 가리려 하십니까? 장군께서는 다시 한 번 헤아리
시기 바랍니다. "
  비시가 관우의 드높은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조리 있게 설명을 해 주자 관우
는 크게 깨달은  바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시에게 두 번 절하며 공손히 
말했다. 
  "내 판단이 밝지 못했소이다. 공의 가르침이  아니었더라면 큰 일을 그르칠 뻔
했소이다. "
  관우는 즉시 무릎을 꿇고 인수를 받았다. 비시는  인수를 관우에게 건낸 후 한
중왕의 영을 전했다. 
  "한중왕께서 군사를 일으켜 번성을 치라는 영을 내리셨습니다. "
  관우는 영을 받자 곧 부사인과  미방 두 사람을 선봉으로 삼아 군사를 형주성 
밖에 둔병케 하고,  성 안에 잔치를 열어  비시를 대접했다. 관우가 비시와 서로 
술잔을 권하며 즐겁게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 이경 무렵이 되어 가
고 있었다. 그때 수하 한 사람이 달려와 알렸다. 
  "성 밖 영채에 불이 났습니다. "
  그 소리에 놀란  관우는 급히 갑옷을 꿰입고 말  위에 올라 성 밖으로 달려갔
다. 부사인과  미방이 장막 뒤에서 술을  마시다 실수하여 장막 뒤에  불이 붙어 
불길이 화포에까지 옮겨 일어난 것이었다.  화포에  불이 붙자 벼락치는 듯한 폭
발음이 나며 영채를 뒤흔드는 가운데 병장기와  군량, 거기다 마초에까지 불길이 
번져 모두  태워 버리고 말았다.   관우가 군사들을 재촉하여 불을  끄는데 사경 
무렵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불길을 잡을 수가 있었다.   관우는 불을 끈 후 성 안
으로 부사인과 미방을 불러들여 성난 목소리로 꾸짖었다. 
  "내가 너희 둘을 믿고  선봉으로 세웠는데 군사를 움직이기도 전에 함부로 술
을 마겨 병장기와 군량을 태우고 화포가 터져  군마까지 상하게 했다. 이처럼 일
을 크게 그르치게 한 너희들을 믿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관우는 그들을 향해 호통을 친  뒤 좌우를 돌아보며 그들의 목을 베라는 영을 
내렸다. 그 자리에 있던 비시가 그런 관우를 간곡히 말렸다.  
  "군사를 움직여 싸움터에 나가는 마당에 장수를 둘씩이나 목베는 일은  이롭지
가 못합니다. 잠시 그 죄를 덮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
  관우는 화가 가라앉지  않았으나 비시가 나서 말리자  그들을 목베는 일 만은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사마 비시의 낯을 보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너희 둘의 목을 베었으리라. 
"
  관우는 그들에게 곤장 사십 대를  맞게 하고 선봉의 인수를 빼앗은 다음 미방
은 남군에, 부사인은 공안으로 쫓아 보내 그곳을 지키게 했다.  미방과 부사인은 
스스로도 잘못이 크다는 것을 알고  아무런 말도 없이 절하고 관우의 명을 받들
었다. 관우는 떠나는 그들에게 엄한 목소리로 일렀다. 
  "앞으로 이와 같은  실수를 다시 저지른다면 그때는  두 가지 죄를 함께 물어 
선 자리에서 목벨 것이니 그리 알라!"
  부사인과 미방은 관우의  엄명에 부끄러운 낯빛이 되어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물러갔다.  관우는 그들을 보낸  후 곧 요화를 선봉으로 삼고, 양아들 관평을 부
장으로 삼았다.  그리고 자신은 중군을 거느렸다.  또한 마량과 이적을 참군으로 
삼아 함께 번성으로 향했다.   관우가 군사를 내자 비시는 서천으로 돌아갔는데, 
그때 그는 형주성에 머물고 있던 호화의 아들  호반을 데리고 갔다. 호반은 관우
가 지난날 자기 목숨을 구해  준 적이 있는 호화의 은혜를 잊을 수 없어 데리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를 한중왕에게  천거하기 위해 비시에게 딸려 보낸 것이었
다.  한편 관우는 수자가 수놓여진 큰 기치에  제사를 올린 후 장막 안에서 잠시 
졸고 있었는데 예사롭지 않은 꿈을 꾸었다. 홀연  소만한 시커먼 멧돼지 한 마리
가 장막 안으로 뛰어들더니 관우의 발을 꽉  물었다. 그러자 관우가 화가 치밀어 
칼을 빼들어 돼지를  베어 버렸다. 돼지가 벼락치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
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관우가 깨어 보니 꿈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꿈 속
에서 돼지에게 물린 발이 욱신욱신 쑤시고 아파  오는 것이었다.  관우는 아무래
도 심상치 않은  조짐으로 여겨 관평을 불러 꿈이야기를 했다.  관평이 꿈이야기
를 듣더니 아버지를 안심시키려는 듯 좋는 해몽을 해 주며 위로했다. 
  "돼지를 저룡이라 했듯이, 돼지는 용의 기상이 있는 동물입니다. 용이 발에 와
서 붙은 것은 곧 높이 오르실 징조이니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
  그러나 관우는 그 말을 듣고도  개운치 않아 여러 관원들을 불러보아 놓고 꿈
이야기를 들려 준 후  물었다. 그러나 제각각 길한 꿈이니 나쁜  꿈이니 하며 떠
들어댔다. 관우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고개를 가로젓더니 말했다. 
  "내가 대장부로 태어나 나이 이미 예순에 가까우니 이젠 죽은들 무슨 한이 남
겠는가? 그대들은 더 이상 꿈얘기를 하지 말라. "
  관우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촉으로부터 사신이 도착해 한중왕 유비의 영을 
전했다. 
  "장군을 전장군으로  제수하시고 절과 월을 내리시어  형주와 양양 아홉 군을 
도독하시라 하셨습니다. "
  관우가 절을 올리며 왕의 영을 받들자 모든 관원들은 일제히 경하해 마지않으
며 말했다. 
  "꿈에 돼지를 보신 이후 이런  좋은 일이 일어났으니 그 꿈의 좋은 징조가 맞
아떨어진 것입니다. "
  관우도 그 말을 듣자  곧 꿈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군
사를 거느리고 양양으로 향하는 큰길로 나가 말을  몰았다.  이때 조인은 관우가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며 나가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성 안에 틀어박혀 지키기만 했다. 그런 조인을 보자 부장 적원이 권했다. 
  "위왕께서 장군께 사람을 보내 동오 군사와 함께 형주를 치도록 명하셨습니다. 
거기다가 관운장이 제 발로 걸어 오니 스스로 죽기를 청하는 것인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나가 싸우지 않으십니까?"
  적원이 관우를 지나치게 가벼이  여기고 있는 듯하자 이번에는 만총이 걱정스
런 얼굴로 나서며 조인을 말렸다. 
  "제가 알기로는 관운장은 용맹스러울 뿐만 아니라 지모 또한 대단하다고  하니 
경솔히 맞서서는 아니 됩니다. 성을 지키는 것이 상책일까 합니다. "
  만총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제법  사납고 날랜 장수로  알려진 하후존이 
나서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그건 한낱 글이나 읽는 선비들이 하는 말입니다. '물이 밀어닥치면 흙으로 막
고 적의 장수가 이르거든  군사를 내어 싸우라'고 했습니다. 거기다가 지금 우리 
군사는 편안히 앉아,  예까지 달려오느라 지친 적을 맞는 것인데  무엇이 두려울 
게 있겠소이까? 나아가 적을 치면 어렵지 않게 이길 것입니다. "
  조인 역시 싸움터를 누빈 장수인지라 두 장수가 나서 싸우기를 청하자 마음이 
달라졌다. 만총에게 번성을 지키게 한 다음 말  위에 뛰어올라 관우를 맞으러 나
갔다.  조인이 기세를 드높이며 군사를 이끌어 온다는 말을 듣자 관우는 관평.요
화에게 계책을 주어 먼저 나아가 그들을 맞게  했다. 관평과 요화는 군사를 이끌
어 마주 오는 조인과 맞닥뜨리게 되자 둥그렇게  진을 벌여 세웠다. 조인도 둥글
게 진을 벌인 가운데 먼저  요화가 말을 몰아 앞으로 달려가자 조인의 진에서는 
적원이 마주 달려나왔다. 두 장수가 맞부딪쳐 어우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요화가 
짐짓 대적할 수 없다는 둣 말을 돌려  달아났다. 적원이 기세를 올리며 달아나는 
요화를 뒤쫓자  형주군은 멀리 20여리나 군사를  물렸다.  다음 날이  되자 전날 
쫓겨 달아났던 형주  군사가 다시 조인의 군사를 맞으러 나왔다.  그러자 적원과 
함께 하후존이  한꺼번에 군사를 이끌었다.  단번에 형주군을 휩쓸어  버릴 듯한 
기세였다. 형주군이 그 기세에  눌린 듯 쫓겨나니 이를 본 조인이  신이 나 급한 
기세로 뒤쫓았다. 조인이  형주군을 뒤쫓아 한 20여 리 왔을까?  문득 등 뒤에서 
함성이 크게 일며 북  소리와 피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조인은 그제서
야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전군은 물러가라. 적의 계교다!"
  조인은 급히 소리쳤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등  뒤에서 달려오는 것은 자기 편 
군사가 아니라 쫓기고  있던 관우의 장수 요화와 관평이었다. 조인의  군마는 앞
만 보고 달려가다 이  뜻밖의 기습에 어찌할 바를 몰라 크게  어지러워졌다.  이
미 계교에 빠졌음을 안  조인은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한 떼의 군마를 
이끌고 양양으로 말을  달렸다. 한동안 뒤돌아볼 사이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양양이 불과  몇 리 남지 않은  지점에 이르렀을 때였다. 홀연  앞쪽에서 수놓은 
깃발을 바람에 휘날리며  달려온 한 떼의 군마가 앞을 가로막았다.  기가 바람에 
젖혀지면서 얼굴을 드러낸  장수는 청룡도를 비껴든 다름 아닌 관우였다.   조인
은 관우를 보자 손발이  떨려 감히 나가 싸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황급히 말을 
재우쳐 옆길로 달아나기에 바빴다. 조인이 옆길로  달아나자 관우는 굳이 뒤쫓지 
않고 그 자리에 말을 세운 채 서 있었다.   오래지 않아 하후존이 이끄는 군사가 
관우가 막고 서 있는  길에 이르렀다. 하후존은 길을 막고 서  있는 관우를 보자 
대뜸 크게 화부터  내더니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관우
를 너무 모르고 덤빈 무모한 도전이었다.   관우가 하후존을 맞아 청룡도를 번쩍
이는 순간 그는 1합 만에 그를 두동강  내고 말았다. 뒤따르던 적원이 그 모양을 
보자 얼굴색이  달라지더니 관우를 피해 달아나려다가  뒤따라오던 관평의 칼에 
맞아 그 역시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관우가  여세를 몰아 뒤쫓으며 휩쓸자 달아
나던 조인의 군사들 중  태반이 앞에 가로놓인 양양의 강물에 빠져  죽었다.  형
세가 이 지경에 이르자 조인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황급히 양양을 버리고 번
성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관우는  조인을 쫓아내고 양양성을 빼앗자 군사
들에게 상을 내리고 그곳의 백성들을 안무했다.  양양성이 안정되자 수군사마 왕
보가 관우를 일깨웠다.
  "장군께서는 북 소리 한 번  울려 양양의 큰 고을을 차지하고 조조 군사를 떨
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동오의 여몽은 육구에 군사를 머무르게  하여 형주
를 엿보고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기회를 보아  형주로 밀고 들어 간다면 어찌하
실 작정이십니까?"
  왕보의 말에 관우도 그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실은 나도  그 점을 걱정하고  있었네. 그대가 그  일을 맡아 주게.  강언덕에 
2,30리 간격으로 봉화대를  쌓고 군사 50여 명을 두어 지키게  하되 밤에는 불로 
군호를 하고, 낮이면 연기를 피워 신호를 하도록 하게. 내가 봉화대를 살피고 있
다가 불이나 연기가 오르면 즉시 달려가 동오 군사들을 들이치겠네."
  "미방과 부사인이 남군과 공안의 두 험한 길목을 지키고 있으나 힘을 다해 지
킬지가 걱정입니다. 그쪽에도  장수 한 사람을 보내 형주를 도맡아  지키게 해야 
할 것입니다. "
  왕보가 여전히 걱정스런 얼굴로 다시 관우에게 말했다. 
  "내가 이미 그곳으로 치중  벼슬에 있는 반준을 보냈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 
걸세. "
  그러나 왕보는 고개를 저으며 미심쩍은 얼굴로 말했다. 
  "반준이란 사람은 평소 시기심이 많고 자기의 이득만을 밝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 그런 중요한 일을 맡겨서는 아니 됩니다. 차라리 군전도독 양료관(양곡 
관리) 조루로 하여금 그 일을 맡도록 하십시오. 그 사람은 충성스럽고 청렴할 뿐
만 아니라 성정이 굳세니, 어떤 무거운 책임을 맡겨도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
  관우는 그 말에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나도 원래 반준을 알고 있으나 이미 결정해서 보낸 터이니 다시 딴 사람으로 
바꿀 필요는 없네. 조루도 지금 군량과 마초를 맡아  보고 있고 그 일 또한 중요
한 일이니 그대로 맡아  하도록 함세. 그대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서 봉
화대나 쌓도록 하게. "
  왕보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뒷날 자신에게 얼마만큼 엄청난 해를 끼칠 수 있
었는지 관우는 그때  알지 못했다. 관우가 자기의 말을 물리치자  왕보는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절하며 나왔다.  왕보가 형주로  돌아가자 관우는 관평을 불러 번
성을 치는 일을 서두르게 했다. 
  "많은 배를 모으도록 하라. 강을 건너 번성을 치리라."
  관평은 그날부터 되도록  많은 배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때  조인은 거느렸던 
두 장수 하후존과 적원을 잃고  많은 군사마저 꺾인 채 번성으로 들어가 만총에
게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공의 말을 듣지 않다가 두 장수와 군사를 잃고 양양마저 빼앗기고 돌아
왔소. 이제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관운장은 범같은 장수인데다  지모까지 갖춘 장수이니 가볍게 맞서서는 아니 
됩니다. 그저 굳게 지키도록 하십시오."
  만총이 좋은 말로  조인에게 말했다. 조인과 만총은 이런 말을  나누고 있는데 
군사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관운장이 양강을 건너 번성을 치러 온다고 합니다. "
  그 소리에 조인은 얼굴색이 달라지며 만총에게 물었다. 
  "어찌했으면 좋겠소?"
  "나가 싸우지 말고 굳게 지키기만 하십시오."
  만총이 다시 한 번  조인에게 알렸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여상이 분연
히 나서며 말했다. 
  "저에게 군사를 몇  천만 주십시오. 적이 양강을 건너기 전에  물리치겠습니다. 
"
  "그건 아니 될 말이오."
  만총이 여상의 말을 막았다. 그러자 여상이 벌컥 화를 내며 대들었다. 
  "도대체 그대들 문관들은 그저 지키라고만 하니 언제 적을 물리치겠다는  말이
오? 병법에 이르기를 '적이 강을 반쯤 건넜을  때 치라'하였소. 지금 관운장이 양
강을 건너고 있는 중인데 어찌하여 그들을 보고만 있으라 하시오? 적군이 성 아
래에 파 놓은 구덩이까지 밀고 들어오면 그때야말로 당해 낼 수가 없을 것이오."
  여상의 말을 듣고 조인의 마음도 달라졌다.  관우가 성 아래까지 쳐들어온다면 
가만히 앉아 성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어 여상의 말에 따르기로 했
다. 곧 여상에게 군사 2천을  주어 번성 밖으로 나아가 관우를 맞게 했다.  여상
이 군마를 이끌어  양강에 이르자 이미 강가에는 수놓은 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그 깃발 아래 관우가 수염을  날리며 청룡도를 비껴들고 말 위에 앉아 달려오는 
여상의 군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상이 칼을 빼들고 관우를  향해 달려가려는
데 뒤따르던 군사들이  주춤거렸다. 관우의 위풍당당한 범 같은 자태를  보자 미
리 겁을 집어 먹은 졸개들은 여상이 말을 몰아가는데도 싸울 마음을 잃은 채 뿔
뿔이 흩어질 뿐이었다.
  "무엇들 하느냐, 어서 앞으로 나아가 적을 쳐라!"
  여상이 소리쳤으나 졸개들의 대오는  이미 뭉그러져 어지러워진 채 앞으로 나
아가려 하지 않았다.   싸우기도 전에 적군의 혼란을 본 관우는  먼저 군사를 내
몰았다. 관우의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덮쳐들자 여상의  군사들은 달아나기에 
바빴다. 관우의  군사들이 달아나는 적을  베고 찌르며 들이치니  여상의 군사는 
마군. 보군을 가릴 것 없이 태반이 꺾인 채 번성으로 몰려들고 말았다.
여상이 이끈 군사가 반이나 줄어든 채 번성으로 도망쳐 오자 조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급히  구원병을 청하는 길밖에  없었다. 조인은 사람을  뽑아 장안의 
조조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조인의 사자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장안으로 달려 
조조에게 조인의 글을 전하며 아뢰었다. 
  "관운장이 양양을 빼앗고 다시 번성을  빼앗으려 에워싸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급히 용맹스런 장수를 보내시어 구원해 주십시오."
  조인의 글을 읽고 난 조조는 성난 눈으로 좌우를 살피더니 문득 한 장수를 손
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대가 가서 번성의 포위를 헤쳐 보겠는가?"
  "알겠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조조가 손으로 가리킨 장수는 바로 우금이었다.  우금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하
고 나서더니 조조에게 청했다. 
  "제게 선봉장 한 사람을 붙여 주십시오."
  우금의 청에 조조는 다시 여러 장수들을 휘둘러 보며 물었다. 
  "누가 선봉이 되어 나가겠느냐?"
  "제가 가겠습니다. 힘을 다해 관운장을 사로잡아  대왕 앞에 무릎을 꿇게 하겠
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장수가 있었다. 여러 장수
가 그를  보니 지난날  마초의 상장으로 용맹을  떨치다 투항해 온  방덕이었다.  
방덕의 용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조조가 기쁜 얼굴로 말했다. 
  "운장은 위세를 화하(전국토)에 떨치고 있는 자요. 아직 적수를 만나지 못했다 
했는데 이제 강하고 억센 영명(방덕의 자)을 만나게 되었구려."
  조조는 한껏 방덕의 의기를 추기며 그를 정서도선봉으로 삼는 한편 우금을 정
남장군으로 높여 일곱  갈래로 나눠 군사를 이끌게 했다. 그  칠로군의 군사들은 
모두 북방의 날랜 군사들로 가려 뽑았는데 평소 그 군사들을 거느리던 영군장교
로 동형과 동초가 있었다.  우금이 군사 낼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데 문득 그 장
교 중의 하나인 동형이 찾아와 말했다. 
  "이제 장군께서 날래기로 이름난 칠로군의 군사를 거느려 번성의 위급한  형세
를 풀어주려 하심은  곧 반드시 이기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방덕을  선봉으로 삼
았으니 일을 그르칠까 두렵습니다."
  그 소리에 우금이 놀란 얼굴로 동형에게 물었다. 
  "출진을 앞두고 그게 무슨 소리인가?"
  우금의 급한 물음에 동형이 열띤 목소리로 대답했다. 
  "원래 방덕은 마초 밑에서 부장으로 있었는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하여  마지
못해 투항해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전  주인이었던 마초는 지금 촉에서 오
호대장 중의  한 사람으로 있습니다. 뿐입니까?  그의 친형 방유도  촉에서 낮지 
않은 벼슬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방덕의 마음이 다른  싸움과 같겠습
니까? 어쩔 수 없이 마음에  동요가 일터인즉 그를 선봉으로 삼는 일은 곧 타오
르는 불을 기름으로 끄려는 것과 다름없는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이 사실을 위
왕께 아뢰지 않으십니까?  장군께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을 뽑아야  할 것입니다. 
"
  우금도 그 말을 듣고 보니 방덕이 마음에  걸렸다. 우금은 출정 채비로 바빴으
나 창황히 부중의 조조를  찾아가 동형의 말을 전했다.  조조도  그 말을 듣더니 
방덕을 선봉으로 삼은  일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곧 방덕을  불러들여 선봉
의 인수를 거두었다. 뜻밖에 선봉의 인수를 내놓게  된 방덕이 놀란 얼굴로 조조
에게 물었다.  
  "제가 이제 대왕을 위해 힘을 다해 싸우려는데 무슨 까닭으로 저를 쓰지 않으
시고 인수를 거두십니까?"
  조조가 짐짓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내가 굳이 그대를 의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한결
같이 그대의 옛 주인 마초가 유비의 오호대장이  되었고, 그대의 친형 또한 촉에
서 벼슬을 지내고  있다 하여 말이 많으니 어찌  그들의 입을 막을 수가 있겠는
가?"
  방덕은 조조의 말을  듣자 관을 벗어 던지고  머리를 땅바닥에 짖찧어 얼굴에 
붉은 피를 흘리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제가 한중에 항복한 이후 대왕께 두터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에 비록 간과 
뇌를 땅바닥에 쏟는다 해도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고 여기고 있는 터에 대왕
께서는 어찌 저를 의심하십니까? 지난날  제가 고향에 있을 때 형과 한 집에 살
았는데 형수가 매우 어질지 못해 제가 술취한  김에 형수를 죽여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형은 제게 대한 원한이 뼛속까지 맺혀 다시는 저를 보지 않으려 하니 이
미 형제의 정리는 끊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옛 주인  마초는 용맹은 빼
어나나 지모가 없어 싸움에 진  이후 지닌 땅을 모두 잃게 되자 외로운 몸을 서
천에 의지했습니다. 이제  섬기는 주인도 다르니 옛날의 의리도 벌써  끊어진 지 
오래입니다. 게다가 이  방덕이 대왕의 두터운 은혜에 감복하고 있는  터에 어찌 
눈꼽만큼이라도 딴 마음을  품을 수가 있겠습니까? 바라건데 대왕께서는 변함없
는 이 마음을 살펴 주십시오."
  방덕의 깨진  머리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  방덕을 지켜 
보고 있던  조조는 그의 말이 거짓으로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았다.  조조는 몸소 
방덕을 부축해 일으킨 후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나는 평소에 공의 충성스런 마음을 잘 알고  있는 터이나, 조금 전에 한 말은 
다만 여러 사람의 입을  막기 위함이었소. 공은 이번에 가서 힘을  다해 공을 세
우도록 하시오. 공이 나를  저버리지 않는 한 나 또한 공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
오."
  방덕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한 뒤 물러났다. 집으로 돌아온 방덕은  관 하나를 
짜게 했다.  다음  날이 되자 방덕은 출진하기 전에 가까운  벗들을 청해 잔치를 
열었다. 방덕의 집을 찾은  손님들은 술을 마시다 대청 위에 놓여  있는 관을 보
고 의아스런 얼굴로 물었다. 
  "장군이 군사를 거느려 떠나는 터에, 어째서  저같이 상서롭지 못한 물건을 만
들어 두었소?"
  그러자 방덕이 술잔을 치켜들며 다짐하듯 말했다. 
  "내가 위왕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니 이제  목숨을 바쳐 보답하기로 했소. 이
제 번성으로 가서 관운장을 맞아 싸울 터인데 내가 그를 죽이지 못하면 그가 나
를 죽일 것이 틀림없소.  설령 내가 그를 죽이지 못하고 나  또한 그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을지라도 내 반드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므로 관을 짜 두게 한 것
이오. 즉 관우가 죽든  내가 죽든 결코 빈 손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인즉 그런 
까닭으로 관을 메고 싸우러 나가는 것이오."
  방덕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라며 찬탄해 마지않았다.  방덕은 떠나기 
전 아내 이씨와 아들 방회를 불러 말했다. 
  "내가 이제 선봉대장이 되어  마땅히 죽기로 작정하고 싸우러 나가니 만약 내
가 죽거든 당신은 아이를  잘 길러 주시오. 우리 아이의 상이  범상치 않으니 뒷
날 자라면 반드시 내 원한을 풀어 줄 것이오."
  방덕의 말에 그  아내와 아들이 목놓아 울며 배웅했다. 방덕은  군사들에게 관
을 메고 따라오게 하고 여러 부장들을 불러 말했다. 
  "내가 관운장과 싸우다 죽거든 그대들은 나의 시신을 이 관 속에 넣어 거두라. 
만약 내가 관우를 죽인다면 그의 머리를 이 관 속에 담아 위왕께 바치리라. "
  방덕의 부장 5백여 명이 그 말을 듣고 일제히 입을 모아 외쳤다. 
  "장군께서 그토록  충성과 용맹을 바치시니 저희들이  감히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죽기로 작정하고 싸우겠습니다."
  방덕은 수하 장수들이 그렇게  대답하자 흡족한 얼굴로 군사를 이끌어 떠나갔
다. 이를 본 한  사람이 조조에게 나아가 방덕이 떠나면서 한 말을 전했다.  
  "방덕의 충성과 용기가 그러한데 내가 무엇을 걱정하리오."
  조조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곁에  있던 가후
는 조조와는 달리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방덕이 지나치게 자신의 혈기만 믿고 관운장과 결판을 내려 하니 그 점이 걱
정스럽습니다."
  조조도 은근히 그 점을 염려하고 있던 터라 가후의 말을 듣고 급히 사람을 보
내 자신의 뜻을 전하게 했다. 
  "관운장은 용맹과 지모를 함께 갖춘 자니 결코 경솔히 맞서지 말라. 취할 만하
면 취하되 그렇지 않거든 맞서지 말고 지키기만 하라."
  그러나 조조의 뜻을 전한 것은 방덕의 혈기를 더 부추긴 셈이 되고 말았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관운장을 그토록 높이기만 하시는가? 내가 이번에 가서 
기필코 그를 꺾어 30년이나 떨쳐 온 그의 이름이 헛된 것임을 보여 주리라."
  방덕은 여러 장수들에게 둘러보며 이를 갈았다.  방덕이 오히려 격동하자 우금
이 타일렀다. 
  "그렇지 않네. 위왕의 말씀에는 큰 뜻이 있으니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 될 
것일세."
  그러나 방덕은 그럴수록 더욱 분기가 치솟았다.  군사들을 호령하여 북과 징을 
크게 울리게 하며 의기를  돋우었다. 이때 관우는 장막 안에 앉아  번성 깨칠 방
책을 생각하고 있는데 홀연 탐마가 달려와 급보를 전했다. 
  "조조가 우금을  대장으로 삼아 칠로군의 날랜  군사를 이곳 번성으로 보냈다 
합니다. 그런데 전부 선봉 방덕은 괴이하게도 관  하나를 앞세우고 차마 입에 담
지 못할  욕설을 퍼부으며 장군과  결판을 내겠다고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지금 
번성 앞 30리쯤에 이르렀습니다. "
  그 말을 들은 관우의 얼굴색이 달라지더니 아름다운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천하의 영웅들도 내 이름을  들으면 두려워 떨지 않는 자가 없거늘 방덕이란 
더벅머리 애송이가 어찌 감히 나를 우습게 본다는 말이냐?"
  관우는 이어 관평을 불러 영을 내렸다. 
  "너는 번성을 들이치도록  하라. 내가 몸소 가서 그 버릇없는  놈의 목을 베어 
분을 풀리라."
  그러자 관평이 관우에게 간곡히 청했다. 
  "아버님께서는 태산처럼 소중한 몸으로 어찌 한낱 돌맹이처럼 무지한 자와  다
투려 하십니까? 제가 나가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방덕과 싸우겠습니다. "
  관평이 양아버지 관우의 드높은  자부심이 크게 상한 것을 진정시키며 말하자 
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네가 먼저 나가 싸워보도록 하라. 내가 곧 뒤따라가 너를 도우리라. 
"
  관우가 선선히 허락하자 관평은 장막 밖으로 나와 갑옷을 입고 군사를 거느려 
방덕이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말을 달렸다.  관평이 말을  달려 위군의 진영에 
이르러 보니 문득 검은 기가 높이 세워져  있는데, 그 기에는 '안남 방덕'이란 네 
글자가 흰 글씨로 크게 씌어 있었다. 검은  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데 방덕이 
푸른 전포, 은투구에 긴 칼을 빼들고 진문 앞으로 나섰다. 그 뒤에는 5백여 군사
가 바싹 뒤따르는데  보졸 몇이 어깨에 관을  메고 서 있었다.  방덕이  진 앞에 
나서자 관평이 소리쳐 꾸짖었다. 
  "주인을 버린 도적아, 네 주인이 있는 곳에다 창칼을 맞대려 하느냐?"
  그러자 관평을 알지 못하는 방덕이 가까이에 있는 군사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인가?"
  "관운장의 양아들인 관평입니다."
  관평을 알고 있는 군사가 대답했다. 방덕은 그  말을 듣자 대뜸 관평에게 소리
쳤다. 
  "나는 위왕의 영을 받들어 네 아비의 목을  베러 왔다. 너는 아직 머리에 쇠똥
도 벗겨지지 않은 아이이니 물러나고, 어서 네 애비더러 이리 나오도록 일러라."
  방덕의 오만불손한 말에  관평은 화가 치솟아 칼을 휘두르며 말을  달렸다. 방
덕도 말을 박차 관평을 맞으니 한바탕 싸움이  어우러졌다. 칼을 맞대 찌르고 막
으며 싸운 지 30여 합이  되었으나 승패가 나지 않자 두 장수는 잠시 싸움을 중
지하고 제각기 진으로 돌아와 숨을 돌렸다.   관평의 싸움을 궁금하게 여기고 있
는 관우의 귀에 그  소식이 전해졌다. 방덕이 관평에게 했던 말을  전해 듣자 관
우는 크게 노했다. 요화로 하여금 번성을 치라  이른 뒤 청룡도를 비껴들고 적토
마를 몰아 방덕의 진을 향해 나서며 소리쳤다. 
  "관운장이 여기왔다. 방덕은 어서 나와 목을 바쳐라!"
  그러자 위군 진영에서  북 소리가 크게 일더니  방덕이 말을 달려나와 대꾸했
다. 
  "나는 위왕의 뜻을  받들어 특별히 네 목을 베러왔다. 네가  믿을 수 없겠거든 
여기 있는  이 관을 보라. 만약  죽기가 두렵다면 어서 말에서  내려 항복하도록 
하라."
  관우가 눈을 부릅뜨며 벽력같이 소리쳤다. 
  "너 따위 하찮은 놈이 무엇을 어찌하겠다는 말이냐? 쥐새끼 같은 네놈을 베려
니 이 청룡도가 아까울뿐이다."
  관우가 그말과 함께 말을 박차 방덕에게 달려가자 방덕도 칼을 휘두르며 관우
를 맞았다. 두 장수가 억센 기운으로 창칼을  부딛치니 불꼴을 뿜는 가운데 한바
탕 눈부신 싸움이  어우러졌다.  방덕의 칼과 관우의 언월도가  번쩍이며 불꽃을 
튀길 때마다 회오리 바람이 일었다. 두 장수가  내뿜는 기합소리와 말과 말이 서
로 싸우듯  울며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차알을 부딪기를 무려 1백여합이나 
하였으나, 두 장수는 싸울수록  더욱 힘이 솟구치는 듯했다. 양쪽 진영에서는 마
치 용과 호랑이가  다투는 듯한 눈부신 한판 싸움을  모두 취한 듯이 바라 보고 
있었다.  싸움이 언제 끝날지 모른 채 계속되고  있을 때 문득 위군 쪽에서 크게 
징 소리가 울렸다.  방덕이 관우와 싸우다 끝내는 변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불러들이는 징 소리였다.  그러자 관평 또한  늙은 아버지가 걱정되어 징을 울려 
불러들이니 두 장수는 동시에 칼을 거두고 각기  진으로 물러났다.  관우와 처음
으로 싸운 방덕이 진으로 돌아오자  여러 사람이 그를 맞아 들이며 감탄하여 말
했다. 
  "사람들이 관운장을  영웅이라 하더니 오늘 보니  과연 헛된 이름이 아니었구
나."
  그때 총대장 우금이 말을 달려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우금이 물었다. 
  "내가 들으니 장군이 관운장과 1백여 합을 싸웠다 하나 아무런 이득도 없었다 
했소. 그렇다면 잠시 군사를 물리는 게 어떻겠소?"
  그 소리를 듣자 방덕은 분연히 우금에게 말했다. 
  "위왕께서 장군을  대장으로 삼으셨는데 어찌  그리 유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내일은 관운장과  죽기 살기로 싸워 기어코 결판을 내고야  말겠습니다. 결
코 물러나지 않을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방덕이 목소리를 높여  말하자 우금도 더 이상은  입을 열지 못하고 물러가고 
말았다.  관우도 그때 진영으로 돌아가 방덕에  대해 마음 속으로 감탄했던 것을 
관평에게 가만히 말했다. 
  "방덕의 칼 쓰는 법이 실로 능하더구나. 나의 적수가 될 만한 인물임에 틀림없
다."
  관평은 아버지 관우가 염려되어 방덕과의 싸움을 말리려 했다. 
  "아버님, 속담에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버
님께서 그의 목을 벤다 하시더라도  그는 한낱 서쪽 오랑케의 졸개에 지나지 않
습니다. 기어코  그를 죽이려다 실수라도  하시면 이는 서천에  계신 큰아버님의 
무거운 당부를 저버리시는 게 됩니다. 방덕과의 지나친 다툼을 거두십시오."
  "내가 그 자를  죽이지 않고 어떻게 분을 풀  수 있겠느냐? 내가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 너는 여러 말 하지 말도록 하라."
  관우는 관평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관우로서는 관까지 
떠메고 와  자신과 겨루려는  방덕을 그냥 돌려  보낼 수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다음 날, 관우가  군사를 거느려 나아가자 방덕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군사
를 이끌고 나왔다.  양군은  서로 마주보며 둥그렇게 진을 벌여 세웠다. 진을 세
우자 두 장수는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을 박차 칼을  부딪쳤다. 전날의 싸움
의 연속인지라  두 장수는 군말을  주고받음도 없이 불꽃을  튀기며 어우러졌다. 
그렇게 싸우기를 50여 합쯤이 되었을 때였다. 방덕이  문득 힘이 다한 듯 말머리
를 돌려 달라나기 시작했다.  달아나는 방덕을  보자 관우는 속임수라는 것을 짐
작하면서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뒤쫓기 시작했다.  관평도 방덕이 달아나는 것
을 미심쩍게 여기며  관우가 염려되어 뒤따르기 시작했다.  관우가  방덕을 뒤쫓
으며 소리쳐 꾸짖었다. 
  "방덕 이 좀도둑놈아, 네가 타도계(도망가다 급히 되돌아 공격하는 계략)를 쓰
려 한다마는 내 어찌 네놈을 두려워하겠느냐!"
  관우가 그렇게 외치며  더욱 말을 박차고 있을 때였다. 방덕은  관우가 자신의 
타도계에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자 타도계를 쓰는 척하다 급히 칼을 안장에 끼
우고 활을 내려 살을 메겼다.  뒤따르던  관평도 방덕의 속임수를 경계하던 터라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가 활에 살을 메기는 걸 보고 소리쳤다. 
  "방덕은 비겁하게 활을 쏘지 말라!"
  관우가 그 소리에 눈을 부릎떠 방덕을 바라보는데 시윗소리와 함께 화살이 바
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관우가 급히 몸을 제치며  피했으나 화살은 왼쪽 팔에 꽂
히고 말았다. 뒤따르던 관평이  아버지를 부축하여 진영으로 말을 몰았다.  방덕
이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말을 돌려 한칼에 치려고  관우와 관평을 뒤쫓는
데 문득 자신의 진영에서  요란스럽게 징 소리가 울렸다. 그 징  소리를 듣자 방
덕은 뒤쫓다 말고 말을 돌렸다. 거의 사로잡은  거나 다름없는 관우를 그대로 놓
치게 되어 한스러웠으나  급하게 울리는 징 소리로  보아 후군에 무슨 변이라도 
생겼는지 염려되었다.   방덕은 급히 말을 몰아  진영으로 돌아갔다.  징을 울려 
방덕을 불러들이게 한 장수는  우금이었다. 방덕이 활을 쏘아 관우를 맞히자, 그
가 큰 공을 세울까  봐 은근히 심술이 났던 우금은, 방덕이  총대장인 자신을 젖
히고 관우를 죽이게  되면 자신의 위신이 떨어지리라 여긴 것이었다.  그러나 우
금의 이런 심술이 끝내 자신에게 화를 부르리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그런 줄
도 모르고 방덕은 진영으로 헐레벌떡 달려와 우금에게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어찌하여 징을 울려 군사를 불러들였소?"
  우금이 궁색한 말로 둘러댔다. 
  "위왕께서 항상 경계하라는 말씀을 내리시지 않았소? 관운장은 지모와 용맹을 
함께 갖춘 사람이오. 비록  화살에 맞았다고는 하나 어떤 간계를 쓸지  알 수 없
어 군사를 거두게 한 것이오."
  방덕에게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방덕은  분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우금을 탓했다. 
  "장군은 공연한 짓을 했소이다. 만약  장군께서 군사를 불러들이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의 목을 베었을 것이오."
  "무슨 일이든 급히 서두르면  실수하기 쉬운 법이니 천천히 도모하는 것이 좋
지 않겠소."
  우금이 다시 그렇게 둘러대자 그의  속마음을 알 까닭이 없는 방덕은 분한 마
음을 달래며 한탄만 할  뿐이었다.  한편 관우는 영채로 돌아와  살에 박힌 화살
촉을 뽑았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아 금창약을  붙인 다음 여러 장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화가 나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맹세코 이 화살에 맞은 욕을 풀고야 말겠다."
  관우가 분에 이기지 못하여 이를 갈자 여러 장수들이 달랬다.
  "장군께서는 며칠 만이라도 편안히 쉬도록 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방덕과 싸워
도 늦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관우가 화살에 맞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방덕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
었다.  다음 날이 되기가  바쁘게 군사를 휘몰아와 싸움을 돋우었다.  관우는 달
려나와 방덕과 싸우려 했으나 장수들이 간곡히 만류했다. 
  "상처가 아물거든 출전토록 하십시오."
  관우가 장수들의 만류로 마지못해  영채에 머무르는 동안 방덕은 관우의 분을 
돋우기 위해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다. 
  "아버지께서 바깥 일을 허락없이 말씀드리지 않도록 하시오."
  관평은 관우의 귀에  욕설이 들어가지 않도록 여러 장수들에게 일렀다.   방덕
이 관우의 영채로 와 싸움을  돋운 지 열흘이나 되었으나 관우는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  방덕이 참다못해 우금에게 권했다.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관우의 상처가 깊어 움직일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칠로군을 모두 휘몰아  영채를 휩쓸
어 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번성의 위태로움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금은 여전히 방덕이 큰 공을 세우는   것에만 경계하고 있었다. 조조
의 훈계를 핑계괴며 군사를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관운장은 결코  우리가 쉽사리 영채를 휩쓸도록  허술히 방비하고 있을 리가 
없소이다. 위왕께서 가볍게  맞서지 말라고 훈계하였으니 우선은  천천히 기회를 
엿보도록 하십시다."
  마음이 급한 방덕은 우금에게 거듭 청했으나 우금은 허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
니라 오히려  군사를 뒤로 물렸다.   우금은 칠로군을 번성 북쪽  10리쯤 떨어진 
산 아래의 골짜기로 물려 둔병케 했다. 우금은  군사를 거느려 큰길을 막는 대신 
방덕을 산 뒤쪽에 둔병시켜 그가 마음대로 군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일렀다. 
  "방덕 장군은 산 뒤쪽을 맡아 지키되 군사를 움직이지 말고 지키기만 하시오."
  방덕으로 보면  우금이 자신과 관우가  맞붙지 못하도록 막아  버린 셈이었다. 
방덕은 마음 속으로 분을 억누를 길이 없었으나 총대장의 명령이니 거스를 수도 
없었다. 

    신의 화타 관운장의 뼈를 긁어 독을 빼다
  번성을 치고자 했던 관  공은 궁노수들이 쏜 독이 묻은 화살을  맞는다. 그 소
식을 들은 화타가 찾아와 치료를 하는데, 칼로 살을  째고 뼈를 긁는 동안 관 공
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치료가 끝날 때까지 바둑을 둔다. 
  한편 양군이 대치하고  있을 동안 관우의 상처가  아물어 가자 관평의 기쁨은 
컸다.  관평은 즉시 위군이 지쳐 있는 틈을  기다려 군사를 내기로 하고 여러 장
수들과 의논했다. 그때 위군을 살피러 갔던 군사가 소식을 전했다. 
  "우금이 칠로군을 모두 움직여 번성 북쪽 10여 리쯤으로 진을 옮겼습니다. 
  관평이 우금의 뜻을 헤아릴  수 없어 관우에게 이 일을 알렸다.   관우도 우금
의 속마음을 알 수 없기는 관평과 다를 바  없었다. 이에 수십 기를 거느리고 높
은 언덕 위에 올라가  살펴보았다. 먼저 번성 안을 보니 성곽  위의 기치가 어지
럽게 세워져 있는데다  군마들의 움직임에도 질서가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로 미루어 보아  아직 원군과는 연락이 닿지  않은 것 같았다.  다시  성 북쪽 
10여 리쯤 되는 곳을  보니 산골짜기에 군마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진 가까이
에 물살이 거센 양강이 흐르고 있었다.   관우가 문득 양강을 바라보다가 향도관
(길잡이)을 불러 물었다. 
  "번성 북쪽 10여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저 골짜기의 이름이 무엇인가?"
  "증구천이라 합니다."
  그러자 관우가 몹시 기뻐하며 외쳤다. 
  "이제 우금은 내게 사로잡힐 것이다."
  옆에 있던 장수들이 관우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장군께서 어떻게 우금을 사로잡을 것이라 하십니까?"
  "우금이 고기 잡는 그물  주둥아리인 증구로 들었으니 어찌 잡히지 않고 견디
겠느냐?"
  그러나 여러 장수들은  관우의 말을 믿지 않았다.  계절은  음력 8월인 가을이
었다. 때마침  가을이면 한두 차례 있게  마련인 장마가 시작돼 며칠  동안 비가 
쏟아져 내리자 관우는 군사들에게 영을 내렸다. 
  "모든 군사들은 배와 뗏목을 만들고 물에서 필요한 물건들도 갖추도록 하라."
  관평이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아버지 관우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는  뭍에서 싸우고 있으며 비마저  쏟아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배와 
뗏목을 준비하라 하십니까?"
  관우가 그 까닭을 말해 주었다. 
  "너는 아직 모르고 있구나. 우금은 지금 넓은 들판이 아니라 증구천의 험한 산
골짜기에 둔병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장마철이라 매일  비가 와 양강의 물이 나
날이 불어나고  있다. 이 틈을 이용하여  내가 군사들을 시켜 여러  곳에다 둑을 
쌓게 하여 물길을 막아 놓게 했다. 비가 더  쏟아져 강물이 넘쳐날 때 우리가 배
를 타고 둑을 무너뜨린다면 우금의 군사들은 모두 물귀신이 되고 말 것이다."
  관평은 그 말을 듣자  관우의 깊은 지모에 감복해 마지않았다.   그 무렵 증구
천에 있던 우금의 진에는  매일 비가 쏟아져 점차 물이 들기  시작했다. 이에 독
장 성하가 걱정스런 얼굴로 우금을 찾아가 권했다. 
  "우리 군사들이 강가에 머물고 있는데 지세가  매우 낮습니다. 비록 토산이 있
다 하나  우리 영채와는 너무 멀어  급히 오를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날마다 
가을 비가 쏟아져  군사들의 괴로움이 몹시 큽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형주
군은 높은 곳으로 진을 옮겼으며 한수 입구에다 배와 뗏목을 마련하였다고 합니
다. 이는 미리 강물이 넘치는 것에 대비한 것입니다. 우리도 강물이 넘치면 위태
로운 지경에 빠질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시는  것이 어떻
겠습니까?"
  그러나 우금은 성하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화를 냈다. 한낱  독장의 주제에 
전군의 우두머리인 자신에게 감히 대책을 묻는다고 여기자 비위가 거슬렸다. 
  "하찮은 놈이 무엇을 안다고  멋대로 지껄이고 있느냐? 헛된소리로 군심을 어
지럽히려 들다니, 다시 그런 소리를 하면 목을 베리라!"
  우금의 호통에 성하는  입을 다문 채 얼굴을 붉히며 쫓기듯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나 성하는 안심이 되지 않아  방덕을 찾아가 우금에게 했던 말을 다시 들려 
주었다. 방덕은 성하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성 독장의  말이 옳다. 만약 우 장군이 군사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일 
나의 군사들만이라도 빼내야겠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변고는 그날 밤에 일어났다. 밤이 
되자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방덕이  불안한 마음으
로 장막 안에  앉아 있는데 수만 마리의 말이  내닫는 듯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북 소리가 울리며 산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흔들렸다.   방덕이 놀라 장막 
밖으로 뛰쳐나와 말 위에 올라 보니 이게  웬일인가. 사면 팔방에서 산더미 같은 
흙탕물이 굽이치며 쏟아져 들어와 이미 본진을 물바다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
가.  칠로군은 아우성을  치며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가운데  흙탕물 속에 휩
쓸려 빠져 죽거나 물길에  떠내려가는 자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물은 점점 불어 평지도 한 길이  넘었다.  방덕은 물론 우금을 비롯한 
여러 장수들은 그대로 있다가는 물  속에 잠길 판이라 황급히 조그마한 산 위로 
올라가 물을 피했다.   관우의 명을 따라 관평이 여러 개의  둑을 무너뜨려 가두
었던 물을 일시에  내보냈던 것이었다. 그러하니 증구천에 있던 위군은  거의 물
에 빠져 죽고 군마의 태반은  떠내려갔다.  이윽고 날이 밝아 오자, 관우와 휘하 
장수들은 기치를 흔들어대고  우렁차게 북 소리를 울리며 배를 저어  왔다. 관우
의 배가 다가오자  우금은 사방을 둘러보며 달아날 길을 찾았다.  그러나 사방은 
망망한 흙탕물 바다로  변해 있어 어디로도 달아날 길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
니 거느리고 있는 군사도  5,60에 지나지 않았다. 싸울 수도 달아날 수도 없음을 
안 우금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에  우금은 다가오는 관우
의 배를 향해 소리쳤다. 
  "장군께 항복하겠소. 목숨만은 살려주시오."
  조조의 이름난  장수로 관우를 치러 원정나온  총대장으로서는 너무나 비참한 
몰골이 아닐 수 없었다.   목숨을 애걸하는 우금을 보자 관우는  그의 갑옷을 벗
긴 다음 결박지어 배에 실은 뒤 다시 방덕을  사로잡기 위해 배를 몰았다.  그때 
방덕은 동형, 동초, 성하 그리고  졸개 5백여 명과 함께 갑옷도 입지 못한 채 제
방 위에 모여 있었다.  관우가 배를 몰아오는 것 보면서도 달아날  길이 없고 병
장기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해 싸울 수도 없었다. 그러나 방덕은  우금과는 달리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관우를 맞아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걸 본 
관우가 군사들에게 영을 내렸다. 
  "배로 적을 에워싸고 화살을 날리도록 하라."
  관우의 영에 따라  배를 사방으로 몰고 가  방덕을 에워싸고 군사들이 일제히 
활을 쏘니 위군의 태반이 화살에  맞아 죽거나 화살을 피해 물 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 형세가 위급하게 되자 동형과 동초가 방덕에게 권했다. 
  "군사의 태반이 죽거나 상했으며 이젠 달아날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항복하느
니만 못합니다."
  그러나 방덕은 노한 얼굴로 그들을 꾸짖었다. 
  "내가 위왕의 태산 같은 은혜를 받은 몸으로 어찌 적에게 무릎 꿇고 항복하겠
느냐!"
  그 소리와 함께 방덕은 동초와 동형의 목을 벤 다음 외쳤다. 
  "누구든지 다시 항복을 말하는 자가 있으면 이 두 사람 꼴이 되리라."
  방덕이 두 장수의 목을 베자  다른 군사들은 죽기를 작정하고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군사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있는  힘을 다해 싸우니 싸움은 한낮까
지 이어졌다. 그러나 방덕은 지치기는커녕 싸울수록 더욱 힘이 솟는 듯했다. 
  "몇 안 되는 적을 가지고 왜 이토록 싸움을 끈다는 말인가?"
  관우가 방덕을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는 배들을 향해 소리치자 화살과 돌이 빗
발치듯 날아갔다. 방덕은 이에 군사들에게 군령을  내려 단검만을 가지고 위군과 
백병전을 벌이도록 한 후 성하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듣건대 용맹스런 장수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구차하게 죽음을 피하려  하
지 않으며, 식견이 높은 선비는 절개를 더럽혀  가며 목숨을 구하지 않는다 하였
네. 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네. 그대도 죽기를 작정하고 싸워 주기를 바라네."
  성하는 방덕의 말을  듣고 관우군을 향해 내달았다. 그러나 관우가  쏜 화살에 
맞아 물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성하마저  죽자 졸개들은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는 듯 모두 항복하고 말았다. 다만 홀로  남은 방덕만이 이리저리 내달으며 관
우군과 싸우고 있었다.  이때 형주 군사 수십  명이 작은 배를 몰아 제방 가까이
로 다가갔다. 방덕이 그걸  보자 칼을 움켜잡더니 몸을 솟구쳐 작은  배 위로 뛰
어내렸다. 배 위의 군사들이  놀라 방덕을 바라보았으나, 그 사이 방덕이 순식간
에 10여 명을 베어 버리자 나머지 군사들은 기겁을 하며 물 속으로 뛰어들어 달
아나기에 바빴다.  방덕은  배 위에 혼자 남자 한 손에 칼을 잡고  한 손으로 노
를 저으며 번성 쪽으로  향했다. 방덕이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젓고 있는데 홀연 
상류에서 한 장수가 뗏목을 타고  내려오다 방덕이 타고 있는 작은 배를 세차게 
들이받았다. 작은 배가 여지없이  뒤집히니 방덕도 그만 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방덕이 물에 빠지자 뗏목 위의  장수는 곧바로 물 속으로 뛰어들었고 얼마 있지 
않아 방덕을 사로잡아 배  위로 끌어올렸다.  형주군이 그 장수를  보니 그는 다
름아닌 주창이었다. 주창은 원래 물질이 익숙하였는데, 그 동안 형주에 머물면서 
더욱 솜씨를 닦은데다 힘까지 세어  어렵지 않게 방덕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
이었다.  방덕마저  사로잡히자 우금이 거느리고 왔던 칠로군의 대군은  거의 다 
물귀신이 되거나 다행히 살아 남은 자도 모두  항복하였다.  그리하여 살아서 조
조에게 돌아간 군사는 단 한 사람도 없는 꼴이 되고 만, 처참한 패전이었다.  뒷
날 사람들이 시를 지어 관우의 공을 기렸다. 
  한밤의 북 소리 하늘에 울려 퍼지니
  양양, 번성의 평지가 깊은 못이 되었네.
  관 공의 귀신 같은 계교 누가 당하랴
  중원에 드높은 그 이름 만고에 전해지네.
  조조의 대군을 깨뜨린 관우는 높은 언덕 위에 장막을 치고 앉아 사로 잡은 적
장들을 끌어오게 했다.   먼저 관우 앞에  꿇어앉은 사람은 우금이었다.  우금은 
땅에 엎드려 관우에게 절을 올리며 목숨을 빌었다. 
  "장군께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목숨 살려 주십시오."
  그러자 관우가 봉의 눈을 부릎떠 우금을 보며 물었다. 
  "네 어찌 감히 나와 맞서려고 했는가?"
  "윗사람이 시킨 명이니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데 군후께서 
가엾게 여기셔서 목숨만 살려 주신다면 맹세코 그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관우가 그런 우금을 내려다보며  아름다운 수염을 쓰다듬다가 껄걸 웃으며 말
했다. 
  "내가 너를 죽인다면 그것은 개나 돼지를  잠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공연
히 내 칼과 도끼만을 더럽힐 뿐이다."
  관우는 그렇게 말하더니 장수에게 영을 내렸다. 
  "우금을 묶어 형주로 보내 옥에 가두고 내가 돌아가 다시 처결할 때를 기디리
도록 하라."
  우금이 끌려 나가자 곧이어 방덕이 끌려  나왔다. 방덕은 도부수들에게 이끌려 
나온 후에도 눈썹을 치켜 세운 채 눈을 부릎떠 관우를 노려보며 무릎을 꿇지 않
았다.  관우가 그런 방덕을 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의 형은 지금 한중에서 벼슬을 지내고 있고,  너의 옛 주인 마초가 촉의 대
장으로 있다. 그런데 너는 어찌 항복하지 않느냐?"
  그러나 방덕은 여전히 눈을 부릅뜬 채 큰소리로 대꾸했다. 
  "내가 비록 칼에 맞아 죽을지언정 어찌 너에게 항복을 하겠느냐!"
  방덕은 그  말에 이어 관우에게 갖은  욕설을 다 퍼부었다. 관우도  그 용맹과 
의기를 가상히 여겨 그를 달래 보려 했으나 험한 욕설에 그만 화가 치밀었다. 
  "도부수들은 방덕을 끌어 내어 목을 베라!"
  관우가 화가 나  소리치자 도부수들이 방덕을 끌어 냈다. 방덕은  두말않고 목
을 늘어뜨려  도부수들의 칼을 받았다.   관우는 그의 헛된 의기를  가엾게 여겨 
그 시체를 거두어 후하게 장사 지내 주었다.   관우는 사로잡은 장수들을 처결한 
뒤 다시 물이 빠지기 전에 번성마저 깨치기 위해 장수와 군사를 거느려 배에 올
랐다. 이미 비는 그쳤으나 물은  줄어들지 않았다.  번성 주위로 흰 물살이 하늘
에 닿을 듯 거세지니  축대가 무너지고 성벽도 침수될 지경에 이르렀다.   성 안
에서는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고 흙과 돌을 날라 무너져 내리는 성과 담을 메우
느라 법석이었다.   모든 장수들이 이 위급한 형세에 당황해하며  조인에게 달려
가 말했다. 
  "지금의 위급한 사태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다만 
적군이 밀어닥치기 전에 성을 버리고 달아난다면 목숨만은 보전할 수 있을 것입
니다."
  조인도 달리 계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여겨 배를 내어 달아날 채비를 서두르는데 만총이 만류했다.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원래 산골물이란 오래 고여 있지 아니합니다. 불과 열
흘이면 밀려든 물은 저절로 빠지게 될 것입니다.  거기다 관우도 지금 별장을 섬
하땅에 보내놓고  있을 뿐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망설이고 
있는 것은 허도에서 군사가  와 뒤를 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성을 버
리고 달아난다면 황하 남쪽의 땅은 모두 버리는  것이 됩니다. 장군께서는 이 성
을 굳게 지켜 그 땅을 지키는 방패가 되셔야 합니다."
  만총의 말을 듣자 조인도 자신의 생각이 그릇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만약 백녕의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일을 크게 그르쳤을 것이오."
  조인은 두 손을 모아 잡고  만총에게 사례한 후 말을 달려 성 위로 올라가 여
러 장수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나는 위왕의 명을 받들어 이 성을 지키고 있겠다. 만약 성을 버리고 달아나자
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부터 목을 베리라!"
  조인이 그렇게 외치자 여러 장수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다짐했다. 
  "저희들도 목숨을 바쳐 이 성을 지키겠습니다."
  장수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성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자 조인도 크게 기뻣
다. 조인은 즉시 성을 지키기  위해 군사를 배치했다. 궁노수 수백을 성 위에 늘
어세워 적의 공격에 대비케 하는 한편, 성  안의 백성들에게는 노인들은 물론 어
린아이들까지도 흙과 돌을 져날라 무너진 성벽을  메우게 했다. 성곽이 이전처럼 
바로 세워지는 가운데  정말로 열흘이 되지 않아 성안의 물은  점점 줄어들었다.  
한편 위의 장수 우금과 방덕을  사로잡은데다 조조 군사들을 모두 물로 휩쓴 관
우는 그 위엄을 천하에  떨쳤다. 그 소문을 들은 사람은 모두  놀라며 감탄해 마
지않았다.  그  무렵 둘째 아들인 관흥이  형주에서 아버지를 뵈러 왔다. 관우가 
관흥에게 일렀다. 
  "때마침 잘 왔다.  이번 싸움에서 공이 많은 관리와 장수들의  이름과 그 공을 
적은 글을 줄 터이니 너는 성도의 한중왕께  바치도록 하라. 그리하여 이 사람들
에게 그 공에 따르는 상을 내리시도록 아뢰어라."
  관흥은 아버지 관우의 명을 받들어 그날로 성도를  향해 말을 달렸다.  관흥을 
성도로 보낸 광 공은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하나는 똑바로 겹하로 보내 조조 
군사가 올 경우를  대비케 했다. 그리고 자신은 나머지 군사를  이끌고 번성으로 
가 성을 에워싸고 공격을 서둘렀다.  관공은  번성의 북문에 이르러 말을 세우고 
채찍을 들어 성위를 가리키며 소리쳐 꾸짖었다. 
  "쥐새끼 같은 무리들아, 어서 나와 항복하지  않고 무얼 그렇게 꾸물대고 있느
냐?"
  이때 조인은 성루에서 관 공을 살펴보고 있었다.  관 공이 가슴을 가리는 갑옷
에다 푸른 전포만을 걸친 것을 보자 급히 숨겨 놓은 궁노수들에게 영을 내렸다. 
  "관우를 향해 모두 활을 쏘아라!"
  5백 궁노수들이 그 소리에 일제히 활고  쇠뇌를 쏘았다. 갑자기 화살과 쇠뇌가 
날아오자 관 고이 급히 말머리를 돌려 세우는데,  오른팔에 화살 한 대가 날아와 
박혔다. 관 공은  몸을 뒤집으며 말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조인은 관공이 
화살에 맞아 말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자 힘이 나 급히 군사를 이끌어 성 밖
으로 나갔다.  그러나 성 밖에 군사를  거느리고 있던 관평이 조인을  맞아 치니 
조인은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성 안으로 쫓겨갔다. 관평이 그 큼에  관 공을 구
해 영채로 돌아왔다.   영채로 돌아온 관평은 급히 팔에 박힌  화살부터 뽑게 했
다. 그러나 화살촉에  묻어 있던 독이 이미 뼛속까지 스며들어  오른팔이 퍼렇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오른팔이 몹시 부어오르자  관 공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관평이 어찌할 줄 몰라 하며 걱정스런 얼굴로 여러 장수들을 청해 의논했다. 
  "아버님께서 팔을 다쳐 움직일 수가 없게 되시었소. 이제 나가 싸울 수가 없으
니 잠시 형주로 돌아가시어 상처를 돌보도록 해야겠소."
  여러 장수들도 관평의 말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 여겨 관 공의 장막으로 들어
갔다. 
  "그대들은 무슨 일로 왔는가?"
  관 공이 다친 팔을 동여매고 누웠다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장수들이 관 공
에게 말했다. 
  "군후께서 오른팔에 상처를 입어 걱정이 되어  온 것입니다. 만약 다시 싸우시
다 상처가 덧날까 두렵습니다. 저희들의 생각으로는  잠시 형주로 군사를 되돌리
시어 상처를 돌보신 후에 다시 번성을 치는 게 어떻겠습니까?"
  장수들의 말에 관 공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제 번성을 무너뜨리는 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나는 번성을 빼았은 후 군사
를 이끌어 허도로 가 역적 조조를 쓸어 버린 후 한실을 평안케 해드릴 작정이었
다. 그런데 어찌 이런 조그만 상처 때문에  큰 일을 그르칠 수가 있겠는가? 너희 
장수들이 우리 군사들의 사기를 꺾을 작정이란 말인가?"
  관 공의외침에 장수들은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나는 수
밖에 없었다. 장수들은  관 공에게 형주로 물러날 뜻이 없음을  알았으나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상처라도  빨리 낫게 하기 위해 여러 곳에  사람을 보내 이
름난 의원을 찾아보도록 했다.   그런 어느 날, 한 사람이 강동에서 조각배를 타
고 영채에 이르렀다.  자신을 의원이라고만 밝히자 영채 밖을 지키던  군사가 그
를 관평에게 데리고 갔다.   관평이 그 사람을 보니 머리에는  방건을 쓰고 몸에 
비해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팔에는 푸른 주머니를 매고 있었다. 
  "뉘시기에 이곳을 찾으셨소?"
  관평의 물음에 그 사람이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패국 초군  땅 사람으로 이름은 화타라고  아며, 자는 원화라고 합니다. 
제가 듣기로 천하의 영웅이신  관장군께서 이번에 독화살을 맞아 고생한다고 하
니 그 생처를 고쳐드리고자 찾아온 것입니다."
  관평이 그 말에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며 물었다. 
  "그러시다면 지난달 동오에서 주태의병을 고쳐 주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렇소이다."
  관평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여러  장수들과 함께 화타를 이끌어 관 공의 장
막으로 들어갔다.  마침 그때 관 공은 마량을 상대로 바둑을 두고 있었다. 관 공
은 높은 열 때문에 입안이 바싹 말라 가시를 문 듯했고 상처는 욱신거려 온몸이 
덜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군사들의 마음이 흔들릴까  아픔을 억누르며 태연히 바
둑을 두는 것이었다. 관  공은 이름난 의원이 왔다는 말을 듣자  그를 장막 안으
로 맞아들였다. 화타가 들어오자  인사를 마친 다음 차를 대접했다. 그러자 화타
가 상처 보기를 재촉했다. 
  "다친 팔을 좀 보여 주십시오."
  그 말에 관 공이 옷을 걷어 팔을 내밀었다.  옆에 서 있던 근신들도 그 상처를 
보자 눈이 휘둥그래졌다. 상처는 마치 잘 익은  모과 열매처럼 벌겋게 부어 있었
다. 화타가 그 상처를 살피더니 말했다. 
  "이 상처는 활촉에  오두의 뿌리나 잎에 있는  독을 발랐기 때문에 난 것이며 
그 독이 이미  뼛속까지 스며들었습니다.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영영  이 팔을 
쓰시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관 공도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치료하면 좋겠소?"
  "고칠 방도가 있스니다만, 다만 군후께서 두려워하실까 걱정됩니다."
  화타가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듣자 관 공은 저으기 안도하며 소리내어 웃더니 
말했다.
  "내가 죽는대도 나는 마땅히 갈 곳으로 간다고 여기는 터이오. 그런데 또 무엇
을 두려워한다는 말이오?"
  관우는 화타의 염려가 어이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으나 화타는 그 말에는 대꾸
하지 않은 채 치료할 방법을 알려 주었다. 
  "우선 조용한  곳에다 큰 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큰쇠고리를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박도록 하십시오. 그런 다음 군후의 팔을  그 쇠고리에 끼우고 온몸을 밧
줄로 단단히 묶은 다음, 군후의 눈을 헝겊으로 가려 보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관우가 그 말에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화타에게 물었다. 
  "쇠고리에다 기둥은 무엇이며 어찌하여 눈을 가리려고 하시오?"
  "군후의 팔을 고리에  끼워 뾰족한 칼로 살을  가르고 뼈를 드러내어 뼛 속에 
스민 독을 긁어 내야 합니다. 그 다음 약을  바르고 벗겨 낸 살을 실로 꿰매야만 
상처가 낫게 됩니다. 그런데도 군후께서는 두렵지 않으시다 하시겠습니까?"
  가까이에서 그 끔찍한  말을 듣고 있던 근신들의 얼굴색이 변했다.  그러나 관 
공은 껄걸 웃으며 말했다. 
  "그처럼 쉬운 일이라면  기둥과 고리 따위는 필요가  없소. 그대로 긁어내도록 
하시오."
  관 공은  그렇게 말하더니 술상을 차려  오게 했다. 술상이 마련되자  관 공은 
화타에게 잔을 권하며 술을 대접했다.  술을 몇  잔 마신 관 공은 오른팔을 내밀
어 화타에게 내맡기고 다시  바둑판을 가져오게 하여 마량과 바둑두기를 계속하
였다.  화타는 날카로운 칼을 손에 들고 곁에  있는 군사에게 큰 대접을 받쳐 들
어 흘러내릴 피를 받게 했다. 
  "이제 칼을 댈 테니 놀라지 마십시오."
  "내 어찌 세상의 속된 무리들처럼 아픈 걸 무서워하겠소. 걱정 말고 어서 시작
하시오."
  화타는 칼로  관 공의 팔을 찔러  뼈가 드러나게 속살을 헤쳤다.  독이 스며든 
뼈는 이미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관 공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바둑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화타는  칼로 뼈를 긁기 시작했다. 갈그락거리며 오금을 저리
게 하는 뼈를 깎는 소리가 장막 안에 울려 퍼지자 관평을 비롯한 시신들은 모두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 중에는 그 자리에 더  머물 수 없어 장막 밖으로 나가
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곁에 있는 사람들은  관 공을 보고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살갗이 도려지고 뼈를 깎이는 가운데도 관  공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
으며 바둑을  두는데 조금도 아픈 기색이  없어 보였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화타가 뼈를 깎는 동안 흘러내린 피가 큰 대접을 가득 채웠다. 화타
는 독을 말끔히 긁어낸 후 약을 바르고 살을  여민 후 실로 꿰맸다. 치료를 끝낸 
화타의 이마에는 진땀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관  공은 치료가 끝나자 껄껄 웃었
다.  치료를 마친 다음 날이었다. 화타가 관우를 찾아와 물었다. 
  "군후께서 간밤에는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관 공이 팔을 휘저어 보이며 껄껄 웃더니 말했다. 
  "덕분에 잘 잤소. 이 팔은 이렇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며 조금도 아프지가 
않소. 선생이야말로 참으로 신의요."
  관 공이 화타에게 감탄하며 치하하자 화타도 고개를 저으며 감탄했다.  
  "저는 일생 동안 많은 사람을 치료해 왔습니다만 장군같은 환자는 처음입니다. 
장군이야말로 신장이십니다."
  뒷날 사람들이 이때 일을 두고 시를 지었다. 
  병을 치료하는데 내과.외과가 있으나
  세상을 놀라게 할 재주는 귀하네.
  그러나 천하의 용장은 관운장이고
  천하의 신의는 화타이네.
  관 공은 크게 잔치를 열어 자기의 팔을  낫게 해준 화타에게 극진히 대접했다. 
관 공이 화타에게 고마움을 나타내자 화타는 고개를 저으며 당부했다. 
  "이제 화살 맞은 자리는 나았으나 부디 그 팔을 함부로 쓰지 않도록 하십시오. 
결코 노하여 상처를 덧나게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앞으로 1백일이 지난 뒤에야 
완쾌될 것입니다."
  "잘 알겠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가 있겠소?"
  관 공은 황금 1백 냥을 내놓으며 사례하려 했으나 화타는 끝내 받지 않았다. 
  "큰 의원은 나라를 고치고 작은 의원은  사람을 고친다고 했습니다. 제게는 나
라를 치료할 만한 의술이 없기 때문에 천하의 영웅이신 장군의 몸이나마 치료해 
드리러 왔을 뿐입니다. 어찌 보답을 바라겠습니까?"
  화타는 그렇게 말하더니 상처에 바를  약 한 첩을 두고는 다시 표연히 조각배
를 타고 가 버렸다. 
   
    서황과 관운장 면수에서 부딪다
  우번은 공안의 부사인과 남군의 미방을 꾀어  조조에게 항복하도록 한다. 관평
과 요화는  여몽과 육손의 계략에  빠졌음을 깨닫고, 형주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은 관우는 직접 선봉에 서서 형주로 향한다. 
  그 무렵, 관  공이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베었다는 소식은  멀리 허도에까지 
전해졌다. 관 공의 위엄이  온 천하에 떨쳐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관 공을 경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 소문을 듣고 누구보
다 놀란 건  조조였다. 조조는 황급히 문무의 벼슬아치들을 불러모아  놓고 의논
을 했다. 
  "내가 일찍부터 관운장의 용맹과 지모가 뛰어남을 잘 알고 있다. 이제 그가 형
주와 양양에 걸쳐 그 세력을  굳혔으니 이는 범에게 날개가 돋친 것이나 다름없
다. 그가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죽인 기세로 허도로 밀고  들어온다면 어찌하
겠는가? 나는 도읍을 옮겨  그의 예기를 피할까 하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
가?"
  그러자 사마의가 일어나 조조에게 말했다. 
  "천도란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우금과 방덕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물에 휩쓸렸기 때문에  패한 것입니다. 설령 두 장수를 잃었다하더라도  그로 인
해 국가 대계까지  흔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손권과 유비의  사이가 좋지 
못한 터에 운장이 저렇듯 싸워  이겼으니 손권이 그걸 달갑게 여길 리가 없습니
다. 대왕께서는 사자를  동오로 보내셔서 이익됨과 해가 됨을 따져  손권으로 하
여금 군사를 일으키게  하여 관운장의 뒤를 치게 하고  그 뒤에 강남 땅을 그의 
땅으로 인정하겠다고 하십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번성의 위태로움은  저절로 풀
릴 것입니다."
  사마의의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주부 장제가 맞장구를 쳤다. 
  "중달(사마의)의 말이 옳습니다. 사자를 동오로  보내도록 하십시오. 도읍을 ㅇ
긴다면 공연히 민심만 흔들릴 뿐입니다."
  조조도 두 사람의 말을 듣자 마음을 가라앉혔다.  곧 도읍 옮길 마음을 바꾸어 
사마의의 말을 좇기로  했다. 그러나 조조는 우금이 관우에게 항복한  것만을 끝
내 한탄스러워 했다. 
  "우금이 나를 섬긴  지 30년이었건만 위급하니 항복하고 말았구나!  나를 따른 
지 얼마되지 않는 방덕만도 못하지 않는가."
  조조가 그렇게 탄식하며 곧 사람을  뽑아 동오로 보내는 한편 관 공의 예기를 
꺾기 위해 장수들에게 물었다. 
  "누가 번성의  위급함을 구하고 위나라의 위엄을  떨치기 위해 관운장과 맞서 
싸우겠는가?"
  조조의 말이 떨어지자 계하에서 한 장수가 나섰다. 
  "제가 가겠습니다."
  조조가 그를 보니  바로 서황이었다. 서황이 결연히 나서자 조조는  크게 기뻐
하며 그에게 날랜 군사 5만을 주고 여건을  부장으로 삼게 했다.  서황은 그날로 
5만 군사를 이끌어 양릉파에 이르러 군사를  머물게 했다. 그곳에 둔병하고 있다
가 동오에서 호응할 것을 기다려 관 공을 칠  작정이었다.  한편 조조가 보낸 사
자가 동오에 이르자 손권은 조조의 글을 보고 두 말 없이 그의 뜻을 받아들이기
로 하고 응낙하는 글을 써 사자에게 주어  보냈다. 손권은 이어 문무 벼슬아치들
을 불러 관 공을 칠 일을 의논했다.   장소가 먼저 조조의 속마음을 헤아리며 말
했다. 
  "근래에 듣자니 운장이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죽여 그  위세를 온 화하(중국
을 높여 부른 말)에 떨치고 있다  합니다. 조조는 그 기세를 피하기 위해 도읍을 
옮기려고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번성이 위급하니  사자를 보내 구원해 주기
를 청하고 있지만, 일이 끝난 다음에는 딴 말을 할까 염려됩니다."
  손권이 장소의 말을  듣고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사람이 들어와 알렸
다. 
  "육구의 여몽 장군께서 급히 배를 타고 오시어 주공을 뵙자고 하십니다."
  "손권은 그를 불러들이게 하고 물었다. 
  "무슨 일로 급히 왔는가?"
  "지금 관운장이 번서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이 틈을 타 비어 있는 형주를 손에 
넣어야 합니다."
  손권은 여몽의 말에  귀가 솔깃했으나 슬며시 말을  돌려 서주에 대한 여몽의 
생각을 알고자 했다. 
  "그보다는 나는  북쪽으로 가서 서주를 얻고자  하는데 장군은 어떻게 생각하
오?"
  "조조는 멀리 하북에 있으므로 동쪽으로 눈을  돌릴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또
한 서주는 군사의 수도 얼마  되지 않으므로 공격만 하시면 빼앗을 수는 있습니
다. 그러나 그곳의 지형은 뭍에서 싸우기 좋을  뿐 수전은 불리하니 설령 빼앗는
다 하더라도 지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보다는 먼저 형주를 쳐서  장강 일대
를 모두 차지하신 뒤에 서주를 거두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손권은 여몽의 말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본심을 털어 놓았
다. 
  "서주 일은 장군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소.  실은 나도 형주를 빼앗을 생각이
었소. 장군에게 모든 걸 맡길 테니 곧 형주를 빼앗도록 하시오. 이 몸도 곧 뒤따
라 군사를 일으킬 것이오."
  손권이 그렇게 뜻을 정하자 여몽은 그날로 육구로 돌아가 군사들을 풀어 형주
의 형세를 살피게 했다.  이윽고 형주를 살피러 갔던 군사가 돌아와 알렸다. 
  "장강의 강줄기를 따라 2,30리 거리의  높은 언덕마다 봉화대가 늘어서 있었습
니다. 동오와 경계에 변이 일어나면 형주 본성에  알리기 위해서 세운 것인 듯합
니다. 또한 형주의 군마가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어 적의 기습에 대비하고 있
는 둣 합니다."
  뜻밖에도 형주군의 치밀한 방비에 여몽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급하게 뜻을 이루기는 어렵겠구나. 그걸 모르고 오후께 형주를 빼앗
으라고 권했으니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손권에게 형주를 단번에 빼앗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왔던 여몽은 아무리 궁
리해 보아도 좋은 방책이 서지 않았다. 여몽은  생각다 못해 병이 났다는 핑계를 
대며 문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형주를 치러  간 여몽이 뜻밖에도 병이 나 드러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은 손권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손권이  초조한 얼굴로 
생각에 잠기고 있는데 육손이 말했다. 
  "그렇다면 백언(육손의 자)이 가서 무슨 까닭인지 알아보도록 하시오."
  손권의 명을 받은 육손이 밤을 틈타 육구로  가 여몽을 만나 보았다. 짐작했던 
대로 여몽은 몸져누워 있는 병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오후의 분부를 받들어 자명의 병환을 보러 왔소."
  여몽이 면구스런 얼굴로 대답했다. 
  "천한 몸이 병이 좀 났기로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오실 것까지 뭐 있겠소?"
  육손이 그런 여몽에게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오후께서는 공에게 무거운  책임을 맡기셨소. 공은 이  좋은 기회에 움직이지 
않으시고 헛되이 시름에만 잠겨 계시니 어찌된 일이오?"
  육손의 물음에 여몽은  물끄러미 육손을 바라다볼 뿐 말이 없었다.  육손이 목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실은 내가 병환에 잘 듣는 처방을  가지고 왔는데, 어떻습니까? 한번 써 보시
겠습소?"
  육손의 은근한 말투에 여몽도 그 뜻을 알아차렸다.  여몽은 곧 좌우에 있는 사
람을 물러가게 한 뒤 육손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백언께선 좋은 처방이 있으시거든 어서 가르쳐 주시오."
  "장군의 병환은 형주의 군마가  방비를 굳게 해 두고 있는데다 봉화대 연기도 
볼도 못 올리게  하여 형주군들을 꼼짝 못하게 하면 될  것이오. 어떻소? 그렇게 
하면 나을 병이 아니오?"
  육손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여몽은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얼굴로 물었다. 
  "어찌 그리 내 마음을  들여다보신 것처럼 잘 아시오? 그런데 그 계책이란 어
떤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여몽이 육손의 팔소매라도 붙들 듯 다가가며 청했다. 
  "관운장은 스스로 자신을 천하의 영웅이라 칭하며 감히 자기에게 맞설  사람은 
없다고 여기고 있소.  그러나 실은 마음 속으로는 은근히 장군을  꺼리고 있습니
다. 이번에 장군께서 병이 났다고 했으니 군무를  담당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다른 사람에게  육구를 맡기십시오. 그리고  새로 육구를 맡은  사람으로 하여금 
온갖 말로 관운장을  치켜세우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관운장은  교만해져서 이쪽
을 얕보고  형주의 군사들을 모두  번성으로 거두어들일 것이오.  그래서 형주의 
방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 깜짝  놀랄 계책을 써 들이친다면 형주도 어렵지 않게 
우리 손 안에 떨어지게 될 것이오."
  육손의 말에 여몽이 감탄해 마지않으며 무릎을 쳤다. 
  "실로 묘한 계책이오."
  여몽은 그날로 자리에 누워 점점 병이 심해졌다는 말을 퍼뜨리며 손권에게 글
을 올려 병을  핑계대고 사직을 청했다. 육손은 손권에게 돌아가  여몽에게 얘기
했던 계책을 들려 주었다.   이에 손권도 육손의 계책에 따라  여몽이 정말 병이 
난 것처럼 영을 내렸다. 
  "여자명의 병이 깊다 하니 건업으로 돌아와 병을 돌보게 하라."
  영을 받들어 여몽이 건업으로 돌아오자 손권이 물었다. 
  "일찍이 육구를 지키던 주공근이  자경에게 자리를 물려 주고 뒤에 자경은 또 
경을 천거 했소. 그러니  경 또한 경을 대신할 재주와 덕망을  갖춘 인물을 천거
해 보시오."
  그러자 여몽이 생각에 잠기다 말했다. 
  "만약 그 자리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을 쓰면 관운장은 경계를 늦추지 않
을 것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육손은 생각이 깊으나  그 이름이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니  관운장도 가볍게 여길  것입니다. 그를 육구로  보낸다면 관운장도 
별로 경계하지 않을 테니 반드시 이 일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손권도 여몽의 말을  옳게 여겼다.  육손은 여몽보다 10여  살이나 아래였으며 
외방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재주가 
얕지 않음은 오후도 잘  알고 있었다.  손권은 즉시 육손을  편장군 우도독을 삼
아 여몽을 대신해 육구를  지키게 했다. 처음 육손이 그 일을  알고 놀라며 손권
을 찾아와 극구 사양했다.  
  "제가 아직 나이가  어리고 배운 것이 없어  그토록 무거운 일을 감당해 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이미 자명이 경을 천거했으니 반드시 그 일을 이루어 낼 것이오. 경은 사양하
지 마시오."
  손권이 다시 말하니  육손도 더 이상은 사양하지 못했다. 마침내  손권에게 절
하며 인수를 받아  그날로 육구를 향해 떠났다.  육구에  이른 육손은 마군.보군.
수군을 거둔 후 계책을 펴기  위해 먼저 관운장에게 자기가 육구를 맡아 다스리
게 되었다는  인사장을 닦았다.  관  공을 한껏 치켜세우고 자기를  낮추어 글을 
닦은 후 좋은 말과 진귀한 비단에 술과 안주를 갖추어 사자로 하여금 번성의 관 
공에게 받치게 했다.   관 공은 그때 화살에 맞은 상처를  치료하느라 군사를 움
직이지 않고 있는데 문득 전갈이 왔다. 
  "강동의 육구를 지키던 장수  여몽은 병이 위중하여 손권이 그를 불러 들이고 
대신 육손이라는  사람을 도독으로 부임시켰다  합니다. 그 육손의  사자가 글과 
예물을 들고 와 장군을 뵙고자 합니다."
  관 공은 육구와 같은 요긴처를 육손 같은 이름도 없는 젊은 사람으로 하여 맡
아 지키게 한 손권이  어리석게만 보였다.  사자를 불러들인 관  공은 육손의 글
을 읽어 보았다. 자기를 한껏 치켜세운 글을 본 관 공이 껄걸 웃으며 말했다.
  "손중모가 식견이 짧고 얕아 그런 아이를 장수로 삼았구나!"
  그러자 사자가 예물을 바치며 엎드려 절하고 말했다. 
  "육 장군께서는 글과 예물을  받들어 올려 군후의 승리를 축하드리는 한편 두 
집안의 화친을 구하셨습니다. 부디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 글과 예물이  육손의 계책임을 알 리 없는  관 공은 예물을 거두어들인 뒤 
사자를 돌려 보냈다.  육구로 돌아온 사자는 육손에게 말했다. 
  "관운장은 매우 흡족해하였습니다. 장군을 얕잡아보며  강동의 일은 전혀 염려
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일이 뜻대로 되어 가자 육손은 기뻐하며 사람을 시켜 형주의 사저을 알아보게 
했다.  며칠 후, 형주를 살피러 갔던 군사로부터 관 공이 형주에 있는 군사 태반
을 뽑아  상처가 낫기만 하면 번성을  치려고 준비한다는 전갈이 왔다.   육손은 
곧 손권에게 사람을 보내 이 소식을 알렸다. 손권은 즉시 여몽을 불러 물었다. 
  "지금 운장이 과연  형주 군사를 움직여 번성을 치려고 한다고  하오. 이 틈을 
타 형주를 빼앗아야겠소. 경이 내 아우 교를  데리고 대군을 움직이는 것이 어떻
겠소?"
  손권의 아우 손교는 손권의 숙부 손정의 둘째  아들로 자를 숙명이라 했다. 여
몽이 그 말을 듣더니 금게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주공께서는 이 여몽이 합당하다 하시면 여몽을 쓰시고 숙명이 합당하다  여기
시면 그를 쓰십시오. 지난날 주유와 정보를 좌.우 도독으로 삼았을 때 서로 화목
하게 지내지 못했던 일을 잊으셨습니까? 그때 모든 결정권을 주유에게 주었으나 
정보는 나이 많은 장수로서 젊은 장수 밑에서 명을 받들게 되어 이를 마땅치 않
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되니 자연히 사이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으나 후에 주
유의 뛰어난 재주를  보고서야 그를 받들게 되었습니다. 군사를 이끌어  큰 일을 
이루려는 마당에 만약  장수끼리 조금이라도 틈이 생긴다면  이는 곧 동오에 큰 
해를 끼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거기다 이 여몽의 재주가 주유에 미치지 못하고, 
숙명은 주공과 가깝기가  정보보다 더 합니다. 이로 인해 일을  그르칠까 걱정됩
니다."
  손권도 여몽의 말을 듣자 깨달은 바가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여몽을 대도
독으로 삼아 강동의 모든 군사를 거느리게 했고 손교에게는 군량과 마초를 대는 
일만 맡도록 했다.   여몽은 절하며 인수를 받고 군사 3만과 빠른  배 80여 척을 
수습했다. 선봉으로 내세운 배에는 헤엄 잘 치는  군사들에게 흰 옷을 입혀 장사
치로 꾸민 후 노를 젓게 했다. 또한 가려  뽑은 날랜 군사들을 배 안에 숨어있게 
하여 형주군의 눈에 띄지  않도록 했다.  그 뒤를 따르는 배에는 한당.장흠.주연.
반장.주태.서성.정봉의 일곱 장수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게 했다. 손권은 나머지 
장수들을 거느리고 그 뒤를 따르기로  하는 한편 조조에게 이 일을 알리고 군사
를 내어 관 공의  뒤를 치라는 글을 보냈다. 또한 육손에게도  군사를 일으킨 일
을 알려 호응할 채비를  갖추게 했다.  모든 준비가 다  갖추어지자 여몽은 영을 
내려 모든 배를  형주로 나아가게 했다. 여몽의 영이 떨어지자  군사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를 저어 심양강을 거쳐 관 공의 봉화대가 있는 북쪽 언덕에 닿았
다. 
  "어디서 오는 배인가?"
  배가 닿자 관  공의 봉화지기들이 소리쳤다. 그러자 흰 옷을  입고 장사꾼으로 
꾸민 동오 군사들이 거짓으로 둘러댔다. 
  "저희들은 모두 장사를 하는 나그네들입니다.  장강에서 풍랑을 만나 이곳까지 
떠내려왔습니다. 잠시 바람을 피했다가 날이 새면 물러가겠습니다."
  흰 옷을 입은 군사들은 그  말과 함께 봉화지기에게 재물뿐 아니라 술과 안주
를 바쳤다. 재물을  건네받은 군사들은 입이 벌어져서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배
를 강변에 대게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이경쯤  되자 돌연 배 안에 숨어 있던 군
사들이 뛰쳐 나와 봉화대 위에 있는 봉화대  위에 있는군사들을 덮쳤다.  동오의 
군사들이 형주군을 생선두름 엮듯 묶은 후 군호를 내지르니 기다리고 있던 80여 
척의 큰  배들은 강변에 닻을  내린 후 배  안에 있던 날랜  군사들을 쏟아냈다.  
동오군들은 봉화대 근처의 길목을  지키던 형주군의 진을 덮쳐 모조리 사로잡아 
타고 온 배 안에 가두었다. 봉화대에서 군호를  보낼 군사들을 모두 사로잡자 동
오군의 모든 배는  유유히 형주를 향해 짓쳐나갔다. 강변 근처의  사람들은 동오
군의 배가  무리지어 형주로 향하였지만  아무도 수상쩍게 여기지  않았다. 배가 
형주 가까이 이르자 여몽은 사로잡은 군사들을 달랬다. 
  "너희들은 이제  사로잡힌 몸이니 만약 살아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 죄값을 
받으리라. 차라리  우리를 도와 공을 세우면  목숨은 물론 후한 상까지  받게 될 
것이다. 어떠냐, 우리 일을 돕겠느냐 아니면 돌아가 죽음을 택하겠느냐?"
  형주군으로서는 거역하면 당장 목이  떨어질 판이므로 여몽의 말에 따를 수밖
에 없었다. 
  "시키는 대로 따르겠으니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여몽은 형주군이 모두 입을 모아 대답하자 군사들에게 성문에 군호로 불이 오
르거든 일제히 공격하도록  이른 뒤 형주군을 앞세워 성문 앞으로  나아갔다. 한
밤중이 되기를 기다려 성문 앞에 이르른 형주 군사들이 소리쳤다. 
  "성문을 열어 주시오. 봉화지기 군사들이오."
  성 위에서  군관이 내려다보니 틀림없이 형주군인지라  아무런 의심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성문이  활짝 열리자 여몽을 뒤따르던 군사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
르며 성 안으로 밀고  들어가 불을 질러 군호를 보냈다.   형주 군사들은 마음놓
고 문을 열어 주다 일시에  밀려든 동옥군의 위세에 제대로 싸워볼 생각도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때 군호를 보고 들이닥친  동오의 대군이 성 안을 휩
쓸자 마침내 형주성은 동오 군사에 의해 점령되고  말았다.  형주성을 빼앗은 여
몽은 난리를 만나 어찌할 줄  모르고 헤매고 있는 백성들을 보며 군사들에게 엄
한 목소리로 영을 내렸다. 
  "만약 함부로 백성를 죽이거나  재물을 약탈하는 자가 있다면 군법에 따라 벌
을 내리리라!"
  여몽은 그렇게 영을 내려 백성들을 안돈시킨 뒤 형주성 안에 있던 관리들에게
도 모두 이전처럼 자기가 맡은 일을 보게  했다. 뿐만 아니라 관공의 가족들에게 
따로 집을 주어 옮겨 살게  하고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영을 
내렸다. 그런 한편 형주성을 빼앗은 일을 손권에게 알렸다.  형주성을 빼앗은 여
몽은 군법을  엄히 시행하여 군사들이 이를  어기지 않도록 했다. 그런  어느 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성문을 돌아보고 있던 여몽은 군사 하나가 백성의 삿갓을 
빼앗아 투구 위에 쓰고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저놈을 붙들어 오라!"
  따르던 군사들이 달려가 그 군사를 잡아 왔다.  여몽이 그를 보니 바로 자기와 
한 고향 사람이었다. 여몽이 군사를 꾸짖었다. 
  "네가 비록 나와 같은 고향 사람이나 내가 내린 군령을 어겼으니 너에게도 마
땅히 군법을 시행하리라."
  그러자 그 군사는 엎드려 죄를 빌었다. 
  "저는 관에서 주신 투구가 비에 젖을까 봐  잠시 갖다 쓴 것입니다. 결코 사사
로운 욕심으로 빼앗은 것이 아니나, 장군께서는 부디  같은 고향 사람의 정을 보
아서라도 한 번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몽은 엄한 목소리로 그 군사에게 말했다. 
  "나도 네가 관에서  준 투구를 덮느라고 한 것임은 알고  있다. 그러나 백성의 
물건을 빼앗지 말라는 영을 어겨 군령을 어지렵혔으니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여몽은 좌우에 영을 내려 그 군사의 목을 베게  했다.  여몽은 그 목을 거리에 
내다가 높이 매달게 한 후 그 시체를 거두어  스피 울며 장사지내 주었다.  이후
부터 삼군은 더욱  삼가 백성들의 물건은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았다.  
이때 여몽의 기별을 받은 손권은 대군을 이끌고  형주에 이르렀다. 여몽이 성 밖
으로 나가  손권을 맞아들인 후 관아로  안내했다.  손권은 여몽의  공을 치하한 
후 반준을 치중으로 삼아, 형주를 다스리게 하고  우금을 옥에서 불러내 목의 칼
을 풀어  주고 조조에게 보냈다. 또한  이번 싸움에 공이 많은  장졸들에게 상을 
내리고 방을 붙여 백성들을 안심시킨 가운데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손권은 유
표가 죽은  후 그토록 바라던 오랜  소망을 이제야 이룬 것이었다.  손권은 물론 
여러 문무 벼슬아치들의 기쁨은 컸다. 

  
  이날 흥겨운 잔치 자리가 무르익어 가는데 손권이 여몽에게 물었다. 
  "이제 형주는 우리 손에  들어왔으나 아직 공안을 지키는 부사인과 남군의 미
방이 있으니 이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여몽이 무어라 말을 꺼내려고 하기도 전에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
다. 
  "화살 한 대 쏘지 않고  세 치 혀만을 놀려 부사인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와 항
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돌아보니 회계의 여조 땅 출신인 우번이란 사람이었다. 
  "그대는 어떤 계책이 있기에 부사인을 항복시키겠다 히시오?"
  손권이 반가운 얼굴로 우번에게 물었다. 
  "저와 부사인은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낸  사이였습니다. 득과 실을 따져 그를 
달랜다면 그는 반드시 항복해 올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손권은 크게 기뻐하며 군사 5백을 주어 우번으로 하여 공안으로 
가게 했다.  한편 공안을 지키던  부사인은 형주가 손권에게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을 굳게 닫아  걸고 지켰다.  우번이 공안에 이르러  보니 성문이 굳게 
닫혀 있으므로 글을 써서  화살대에 매어 성 안으로 쏘아 보냈다.  성 안에 있던 
군사가 그 글을 주워  부사인에게 전했다.  부사인이 글을 받아  보니 어릴적 친
구였던 우번이 항복을 권유하는 글이었다. 글을 읽고  나니 부사인은 전에 관 공
이 술을 마시다 군량과 마초를 태웠다고 매질하여 이곳으로 내쫓았던 일을 돌이
켰다. 그 일로 한을 품고 있는데다 형주마저  동오의 손에 떨어졌으니 일찍 항복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여겼다. 
  "성문을 활짝 열어라."
  부사인은 군사들에게  영을 내려 성문을  열고 우번을 맞아들였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 인사를  마친 후에 옛정을 나눴다. 우번은 오후가  너그럽고 도량
이 넓어 어진 이를 두텁게  대한다는 것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늘어놓으며 항복
을 권유했다.  부사인은  이미 마음을 정하고 있던 터라 두말  않고 우번의 뜻에 
따르기로 하고  그 길로 인수를 가지고  형주로 가 손권에게 항복했다.   우번의 
말대로 화살 한 대 쏘지 않고 부사인이 제 발로 걸어와 항복하자 손권도 기뻐해 
마지않았다. 이에 부사인을 다시 공안 땅으로 돌려  보내 그로 하여금 그곳을 맡
아 다스리게 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여몽이 가만히 손권에게 귀띔했다. 
  "아직 관운장을  사로잡지 못한 터에 부사인을  다시 공안으로 보낸다면 뒤에 
무슨 변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를 공안으로 보내지 말고  남군에 있
는 미방에게로 보내어 항복하도록 달래보라 하십시오."
  손권이 들으니 그 또한 좋은 계책이라 곧 부사인을 불러들여 청했다. 
  "경이 미방과 교분이 두터우니  남군으로 가 경이 나에게로 왔음을 알리고 항
복을 권해 보시오. 만약 미방이 나에게 온다면 경에게 후한 상을 내리겠소."
  "알겠습니다. 제가 달래보겠습니다."
  부사인은 쾌히 승낙하고 곧 10여 기를 거느리고  남군으로 달려갔다.  그 무렵 
미방도 형주가 동오의  손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크게 당황하고 있었
다. 그때 문을 지키는 군사 하나가 들어와  공안을 지키는 장수 부사인이 왔다는 
말을 전하자 반가운 마음에 급히 성 안으로 맞아들였다. 
  "어쩐 일로 오셨소?"
  인사를 마치자 미방이  부사인에게 물었다. 부사인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숨
김없이 말했다. 
  "나라고 해서 충성심이 부족했겠소? 순식간에 형주가 동오에게 넘어가니 형세
가 위태로운데다가 외로워  버틸래야 버틸 수가 없었소이다. 남군 또한  나와 다
름없는 처지이니 장군도 항복하는 것이 어떻겠소?"
  "우리가 이미 한중왕의 후한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그 은혜를 저버릴 수가 있
겠소?"
  미방은 부사인의 권유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부사인이 다시 미
방을 부추겼다. 
  "관운장이 지난번에 우리 두  사람을 꾸짖으며 잔뜩 벼르고 갔으니 이번에 이
기고 돌아간다 하더라도  우리를 너그러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공은  부디 깊
이 헤아려 처신해야 할 것이오."
  그러나 미방은 선뜻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나는 형님 미축과 함께 오랫동안 한중왕을  섬겨 왔소이다. 어찌 하루 아침에 
저벌릴 수가 있겠소?"
  미방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관 공으로부터  사자가 이르렀다는 전갈이 왔다. 
미방은 그 소리를  듣자 부사인과의 얘기를 뒤로 미룬 채  사자부터 맞아들였다.  
사자가 관 공의 명을 전했다. 
  "관 공께서는 진중에 군량이 떨어졌으므로 이곳 남군과 공안 두 곳에서 쌀 10
만 석을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만약 늦어지면 두 분을 목베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미방과 부사인은 얼굴을 마주 보았다.  군량 10만 석을 급히 마련하는 
것도 어렵지만 형주가  동오의 손에 떨어진 지금 군량을  싣고 가는 일은 더 큰 
일이었다. 
  "군량을 싣고 간다면 형주 땅을 거쳐 가야 하거늘, 어떻게 그곳을 지나갈 수가 
있겠소?"
  미방은 얼굴색이 달라지면서  탄식했다. 그러자 부사인이 갑자기  목청을 높여 
외쳤다. 
  "더 이상 망설일 것 없소!"
  부사인은 칼을 뽑아 사자의 목을 베었다. 미방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오?"
  "관운장은 이 일을 빙자하여 우리를 죽이겠다는 뜻이오. 그런데도 어찌 우리가 
두 손을 묶고 앉아  죽기만을 기다릴 수가 있다는 말이오. 공이  빨리 동오에 항
복하지 않는다면 뒷날 반드시 그의 손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부사인이 미방을 재촉하고 있는데 군사가 급히 달려오더니 알렸다. 
  "동오의 대도독 여몽이  대군을 이끌고 급히 성  아래로 밀려 오고 있고 합니
다."
  미방은 그 소리를  듣자 얼굴색이 달라졌다. 이미 형세가 기울었음을  안 미방
은 마침내 부사인과 함께  성을 나가 항복을 하고 말았다.   여몽도 미방이 항복
하자 기뻐하며 손권에게  데리고 갔다. 손권은 남군마저 절로 손안에  굴러 들어
오자 크게 기뻐하며 부사인과 미방에게 후한 상을 내리고 백성들을 안심시킨 후 
잔치를 베풀어 삼군을 위로했다.  한편 조조는  허도에서 여러 모사들과 함께 형
주와 번성의 일을 의논하고 있는데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동오에서 사자가 글을 가지고 왔습니다."
  조조는 사자를 들게 하고 가지고  온 손권의 글을 읽어 보았다. 내용인 즉, 강
동에서 형주를 칠 테니 관운장의  뒤를 공격해 달라는 말과 함께 관운장이 알아
채고 방비하지 않도록 비밀을 지켜 달라는 것이었다.   조조는 사신을 돌려 보낸 
후 다시 모사들과 의논을 하는데 주부인 동소가 의견을 내었다. 
  "번성에서는 지금 위급한 지경이라 목을 빼어 들고 구원병이 오기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시켜 화살을 글에 매달아  성 안으로 쏘아 보내도록 하
십시오. 먼저 지쳐 있는 군심을 달래고 안심시키는  한편 동오가 형주를 칠 소문
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그 소문을 관운장이 듣게 되면 관운장은  형주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번성에 있는 군사를 형주로  돌릴 것입니다. 그 틈을  타 서황으로 
하여금 운장을 덮치게 하면 틀림없이  우리가 그들을 크게 깨뜨릴 수 있을 것입
니다."
  조조가 동소의 말을 들어  보니 그럴 둣한 계책이 아닐 수  없었다. 곧 사람을 
양릉파로 보내 서황으로 하여금 군사를 움직이게 하고 자신도 조인을 구하기 위
해 몸소 대군을 이끌어  낙양 남쪽의 양릉파로 향했다.  한편  서황은 장막 안에 
앉아 있다가 위왕  조조가 보낸 사자가 왔다는 말을  듣고 급히 나가 그를 맞았
다. 
  "위왕께서는 이미 친히 대군을 거느려 낙양을 거쳐 오시는 중입니다. 장군께서
는 급히 관운장을 쳐 번성의 어려움을 풀어 주라는 분부를 내렸습니다."
  사자가 조조의 영을 그렇게 전하고 있는데 탐마가 달려와 알렸다. 
  "지금 관평이 군사를 언성에 머물게 하고,  요화는 사총에 진을 세웠는데 앞뒤
로 열두 개의 진과 책이 서로 잇대어 있습니다."
  탐마의 말을  듣자 서황도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었다. 먼저 서상과  여건 두 
부장에게 자신의 거짓 깃발을 주고 언성을 달려가  관평를 치도록 했다. 이어 자
신은 날랜 군사  5백을 뽑아 면수를 돌아  샛길로 가 관평의 뒤를  치기로 했다.  
한편 관평은 서황이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전갈을 받자 군사를 이끌어 진을 벌
여 세우고 적을 맞았다. 위군이 맞은편에 진을  세우자 관평은 말을 박차 앞으로 
내달았다. 위군 쪽에서도 한 장수가 달려나오는데  겨우 3합이 되지 못해 서상이 
당해내지 못하겠다는 듯 슬며시 말머리를 돌렸다.  서상이 물러나자 여건이 함성
를 지르며 달렸나왔다. 그러나 여건 역시 싸운지 5,6합도 못 되어 달아나고 관평
은 그 여세를 몰아  여건의 뒤를 쫓았다. 서상과 여건은 관평이  뒤쫓자 20여 리
나 달아났다.   관평이 그들을 뒤쫓고 있는데 뒤따르던 군사들이  문득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장군님, 성 안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관평이 그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성에서 벌겋게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그제야 적의 계교에 빠진 것을 알고 말을  돌려 언성으로 내달았다. 관평이 한동
안 달려가는데 한 떼의  군마가 함성을 울리며 앞을 가로 막았다.   앞을 가로막
고 있는 군마를 보니,  문기 아래 말을 세우고 있는 장수가  있었는데 바로 서황
이었다.  서황은 관평을 보자 큰 소리로 외쳤다. 
  "애송이 관평아! 아직도  죽음이 네 코앞에 닥친 것을 모르느냐?  형주는 이미 
동오의 군사들이 치지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여기서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말이냐?"
  관평은 서황의 빈정대는 소리를 듣자  벌컥 화가 치솟아 대꾸도 하지 않고 말
을 달려 서황에게 덤벼 들었다. 그러나 3,4합을 부딪기도 전에 군사들의 고함 소
리가 어지럽게 터져 나왔다. 
  "언성의 불길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관평이 보니 과연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불길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걸 본 
관평은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어졌다. 적군을  헤지고 길을 열어 사총의 영채를 
향해 말을 달렸다.   관평이 사총의 영채로 달려가자 요화가  달려나와 맞아들였
다. 관평을 맞아들인 요화는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형주를 이미 여몽에게  빼앗겼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네.  이로 인해 군사들의 
마음이 뒤숭숭해져 있으니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그 엄청난 소리에 관평은 고개를 저으며 잘라 말했다. 
  "그건 필시 누가 거짓으로 퍼뜨린 말일 걸세. 만일 군사들 중에 함부로 그따위 
말을 하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도록 하게."
  그때 탐마가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ㅂ쪽에 있는 첫 번째 영채를 서황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첫 번째 영채를 빼앗기고 나면 다른 영채도 지켜내지 못할 것일세. 이
곳은 앞에 면수를  끼고 있는데다 뒤편으로는 계곡이  있어 적이 쉽게 여기까지 
이르지 못할 것일세. 그러니 함께 가서 첫 번째 영채부터 구해야겠네."
  관평의 말에 요화는 부장을 불러 뒷일을 당부했다. 
  "너희들은 영채를 굳게 지키도록 하라. 만약 적병이 오거든 즉시 불을 올려 군
호를 보내도록 하라."
  그러자 부장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사총의 영채는  녹각(장애물)이 열 겹이나  둘러쳐져 있어 나는  새도 들어올 
수 없을 것입니다. 어찌  적병이 침범할 수 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걱정하지 마
십시오."
  관평과 요화는 부장의 말을 믿음직스럽게 여기며 날랜 군사들을 뽑아 첫 번째 
영채로 달려갔다. 첫 번째 영채에 이르른 관평은  맞은편 얕은 산기슭에 진을 치
고 있는 위군을 살펴보다 요화에게 말했다. 
  "지금 서황은 지세가 이롭지  못한 곳에 군사를 머무르게 했으니 오늘밤 기습
하여 진을 빼앗아야겠네."
  요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장군은 군사 반을 거느리고 가게. 내가 이곳을 지키며 조응하겠네."
  언성을 잃은 관평은  적병의 진을 빼앗아 그  분을 풀겠다는 초조한 마음으로 
그날 밤이  되기를 기다려 군사를  이끌고 위군의 진으로  짓쳐들어갔다. 그러나 
위군의 진에는 군사는커녕 개미 새끼 한 얼씬하지 않았다. 
  "어서 물러나라!"
  관평은 그제야 적의  계교에 빠졌음을 알았다. 급히 말을 돌려  물러나는데 왼
편과 오른편에서 서상과 여건이 군사를 이끌어  왔다. 관평은 양쪽에서 밀어닥치
는 적병을 당할 수가  없어 크게 패한 채 달아났다. 달아나는  관평을 뒤쫓는 위
군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관평은 가까스로  영채에 돌아왔으나 이미 그곳도 안
전한 곳이 되지 못했다. 뒤쫓아온 위군이 영채를 겹겹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관
평과 요화는 밀물처럼 밀려드는 적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황망히 첫 번째 진을 
버리고 사총의 영채를 향해 말을 몰았다. 그러나  가까이 이르러 본즉 사총의 진
에도 시뻘건 불길이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총의 영채만은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관평은 영채 안의 여기저기에  위군의 기치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평과 요화는  황급히 번성으로 통
하는 큰길을 택해  뒤돌아볼 틈도 없이 말을 모는데  문득 앞에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났다. 앞선 장수는 바로  서황이었다. 관평과 요화는 죽기 살기로 서황과 싸
워 가까스로 길을  열어 달아났다. 겨우 서화을 따돌리고 보니  남은 군사라고는 
몇 백에 지나지 않았다.   관평과 요화는 패잔병을 거느리고 관  공의 대채에 이
르로 그 동안의 일을 말했다. 
  "지금 서황이 언성과 다른 영채들을 빼앗고 있으며, 조조도 몸소 대군을 세 갈
래로 나누어 번성으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주가 이미  여몽의 손
에 넘어갔다는 말이 떠돌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 그건 적이 우리 군사들의 마음을 흩어 놓으려고 거짓으로 퍼뜨
린 소문이다.  동오의  여몽이 병이 중해 어린 육손으로 하여금  그 일을 대신하
게 했는데 무슨 걱정이냐?"
  형주가 이미 동오 군사들에게 떨어진  걸 모르고 있는 관 공이 관평에게 꾸짖
듯 말했다. 그때 홀연 탐마가 달려와 알렸다. 
  "서황이 대군을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관 공이 그 말을 듣더니 좌우를 보며 호령했다. 
  "내 말에 안장을 얹도록 하라."
  관 공이 말 위에 올라  서황을 맞으려 하는데 관평이 걱정스런 얼굴로 만류했
다. 
  "아버님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습니다. 지금 나가  싸우셔서는 아니 됩니
다."
  "서황과 지난날 가까이 지낸 적이 있어 그의  용맹을 잘 안다. 만약 그가 물러
나지 않으면 내가 그를 목베어 다른 장수들에게 본보기로 보여 줄 것이다."
  관 공은 관평의 말을 물리치며 청룡언월도를 잡고  분연히 말을 박찼다. 관 공
이 긴 수염을  휘날리며 말을 달려나가자 조조군은 깜짝 놀랐다.  무거운 상처를 
입어 누워 있다는 관 공이  뜻밖에도 무장을 갖추고 나는 듯이 달려오자 모두들 
두려움에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관 공은 적진 앞쪽에 이르자  말을 세우며 우
렁찬 목소리로 물었다. 
  "서 공명은 어디 계시오?"
  그러자 위군의 문기가 열리며 서황이 말을 달려나오더니 몸을 석여 예를 올리
며 말했다. 
  "군후와 헤어진 후  여러 해가 되도록 뵙지  못했더니 어느 새 수염과 머리가 
희끗희끗 백발이 되셨습니다그려. 지난날 많은 가르침으로  이 몸을 깨우쳐 주시
던 때를 돌이키니  실로 고마움과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제 군후의  영걸스런 위
풍이 온  화하에 떨치시어 부러움과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뵈옵게 되니 가슴의 회포가 저으기 풀리는 듯합니다."
  서황의 정중한 인사말을 듣고 난 관 공이 부드러은 얼굴로 물었다. 
  "나와 서 공명의 교분이 두터운 것은 다른  이와 견줄 바가 아니오. 그런데 어
찌하여 이번에 내 이를 몇 차례나 어려움에 빠뜨렸소?"
  그러나 서황은 관 공의 물음에  대답 대신 갑자기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며 소
리 높이 외쳤다. 
  "어느 누구든 관운장의 목을 베어 오는 자에게는 천금의 상을 내리리라!"
  그 외침에 관 공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서 공명은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하오?"
  "오늘 나는 나라일을 하러 왔소. 사사로운 일에 나라 일을 저버릴 수는 없소이
다."
  서황은 그 말과 함께 대뜸 도끼를 휘두르며 관  공을 향해 말을 박찼다. 관 공
도 그제야 크게 노해 청룡도를 휘두르며 서황을  맞았다. 한바탕 불꽃 튀는 싸움
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80여 합이나 부딪쳤으나 승패가 가려지지 않았다.   거기
다 관 공이  비록 뛰어난 무예를 지녔다 하나  화살을 맞은 오른팔의 상처가 다 
낫지 않았으니  전과 같을 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싸움을 말렸던  관평은 혹시 
관 공에게 실수라도 있을까 두려워 징을 쳐 말을  돌리게 했다. 관 공이 징 소리
를 듣고 말을 돌려 진으로  달려갈 때였다.  홀연 사방에서 크게 함성이 일었다. 
번성에 갇혀 있던 조인 이 구원병이 왔음을 알고 성 밖으로 군사를 이끌어 나온 
것이었다. 조인이  서황과 함께 왼쪽과  오른쪽에서 들이치니 형주  군사는 크게 
어지러워졌다. 관 공은 하는 수 없이 장졸들을  이끌어 양강 상류 쪽으로 달아나
는데 위군이 급한 기세로 뒤쫓았다.   관 공이 한동안 말을 달렸을 때였다. 홀연 
맞은편에서 군사 하나가 달려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형주는 이미 여몽에게 빼앗기고, 장군의 가족들도 사로잡혔습니다."
  관 공은 그 말을  듣자 크게 놀라 한동안 말이 없었다.  떠돌던 소문이 사실임
을 알자 하늘을 우러르며 비통해했다. 관 공은  형주가 떨어졌다는 말을 듣자 감
히 양양으로  갈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공안으로 향하는데  얼마가지 않아 
또 탐마가 달려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공안을 지키던 부사인이 동오에 투항했습니다."
  관 공은 그 소리를  듣자 이를 갈았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소식도 관 공의 
화를 머리 끝까지  뻗치게 했다. 공안의 부사인에게 군량미를 재촉하러  갔던 군
사 가운데 하나가 달려와 남군 소식을 전했다. 
  "부사인이 군량미를  청하러 간 사자를 죽이고  미방까지 꾀어 함께 동오에게 
항복하게 했습니다."
  이미 형주도 잃고,  거기다 부사인 뿐만 아니라 혈육처럼 오랫동안  가까이 지
내왔던 미방마저 배신했다는 소리에 가슴이 터질 듯했다.   관 공의 눈이 찢길듯 
위로 치켜지고 어금니를 가는데 그만 화살에 맞았던 상처가 터지며 그대로 땅바
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장수들이 깜짝 놀라 황황히 관 공을  장막 안으로 떠메
고 가 자리에 눕힌  후 상처를 돌보았다. 얼마 후에 정신이 든 관  공이 문득 왕
보를 돌아보며 탄식하듯 말했다.
  "내가 그대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오늘 이꼴을 당하는구려."
  그런 가운데도 관 공은 까닭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탐마에게 물었다. 
  "강변에 늘여 세웠던 봉화대에서는 어째서 불을 피워 알리지도 않았다는  말이
냐?"
  "여몽이 장사치로 꾸민 군사들을 배에 싣고 강을 건넜습니다. 흰 옷 입은 장사
꾼 차림에 속아 마음놓고 있는 군사들을 동오의 날랜 군사들이 배 안에 숨어 있
다 갑자기 봉화대로  뛰어올라 봉화지기들을 덮쳤습니다. 봉화지기들이  모두 사
로잡힌 터라 불을 피울 수 없었습니다."
  탐마가 그렇게 대답하자 관 공은 그제야 여몽과 육손의 계교에 떨어졌음을 알
았다. 관 공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며 주먹을 부르르 떨어  한탄해 마지않
았다. 
  "내가 간사한 도적들의 계략에 빠졌구나. 내 무슨 낯으로 형님을 뵈올 수가 있
단 말이냐?"
  관 공의 애끓는 한탄을 듣고 있던 관량도독 조루가 관 공에게 권했다. 
  "이제 형세가 매우 위급하니 사람을 성도로 보내 구원을 청하는 한편, 급히 뭍
으로 나아가 형주를 되찾도록 하십시오."
  관 공도 그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곧 조루의 말을 좇아 마량과 이적
에게 글을 주어  성도의 한중왕에게 달려가 구원병을 청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
은 군사를 이끌어 형주로 향했다.   관 공 자신이 선봉이 되었으며, 관평과 요화
에게 뒤를 맡겨 뒤쫓는 적을 막게 했다.   한편 관 공이 물러나고 번성이 포위에
서 풀려나자 조인은 조조를 찾아가 절한 후 울면서 죄를 빌었다. 
  "모두 하늘이 정한 운수로 너희들 탓이 아니니 죄를 청하지 말라."
  조조는 너그럽게 조인을 위로할 뿐 아니라 오히려 삼군에게 후한 상까지 내렸
다.  조조는 몸소  사총 땅의 영채를 둘러보고 여러 장수들을  보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 
  "형주 군사들은 원래 날랜데다  이토록 녹각을 여러 겹 둘러쳤는데도 서 공명
은 용케도 적진 깊숙이 밀고 들어와 큰 공을  세웠구나. 나도 군사를 부린 지 30
여 년이나  되었으나 아직도 이처럼 적진  깊숙이 뚫고 들어가 보지  못했다. 서 
공명이야말로 식견이 넓고 담이 큰 빼어난 장수라 아니 할 수 없구나."
  조조는 천하의 맹장으로 위엄을 떨치고  있는 관 공을 쫓은 것이 무엇보다 기
뻤다. 그리하여 조조가 관 공을 쫓은 서황에  감탄해 마지 않으니 여러 장수들도 
모두 서황의  용맹에 탄복했다.  조조는  사총의 영채를 돌아본 후  군사를 마파 
땅으로 돌려 그곳에  영채를 세웠다. 조조가 마파에 이르자 서황도  군사들을 이
끌고 조조를  보러 왔다. 조조는 서황의  군사가 이르자 몸소 영채  밖까지 나가 
맞아 들였다.  서황의 군사들이 다가오는데 보니  모두 대오가 흐트러짐 없이 정
연할 뿐 아니라 그 기상이 늠름했다.  조조는 다시 서황에게 감탄하며 치하했다. 
  "과연 서 장군께서는 주아부(서한의 명장)의 풍도가 있구나."
  조조는 서황의 손을 잡아 영채로 이끈 후에 평남장군에 봉하고 하후상과 함께 
양양을 지키며  관 공의 군사들을 막도록  했다.  조조는 그때까지  형주의 일이 
어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 우선 마파에 진을  세우고 형주의 일을 살피게 했
다. 
  
  슬프도다 관 공의 마지막 길
  여몽의 계략에 빠진 관운장은  오군에게 사로잡히고 관평과 함께 손권에게 죽
임을 당한다. 관 공의 영혼은 죽은 에도 지상을 떠돌며 나타나고, 적토마는 주인
에게 충절을 바치듯 풀을 뜯지 않고 물을 마시지 않은 채 죽는다.
  한편 관 공은 형주로 군사를  이끌기는 했으나 가는 도중에 나아갈 수도 물러
날 수도 없는  어려운 지경에 빠져들고 말았다. 앞에는 동오의  군사가 있는데다 
위의 대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 공은 답답한 나머지 관량도독  조루를 돌아
보며 물었다.
  "지금 앞에는 오군이, 뒤에는 위병이 있는데  구원병은 오지 않으니 이를 어찌
하면 좋겠는가?"
  조루라고 별다른 묘안이  있을 리 없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기다  궁한 대로나
마 의견을 내었다. 
  "지난날 여몽이 육구에 있을 곧잘  군후께 글을 올리기를 '우리 양쪽이 우호를 
맺어 함께 역적 조조를 치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여몽이 도리
어 조조와  손잡고 우리를 쳤으니이는  그 맹세를 거스른  것입니다. 군후께서는 
군사를 잠시 이곳에 머물게 하시고 그에게 글  보내 꾸짖어 보십시오. 그가 어떻
게 대답하는가를 본 후에 움직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조루의 말이 신통한 계책은  아니었으나 관 공에게 별다르게 떠오르는 계책이 
없는 터라 그의 말을 쫓기로 했다. 관 공은  글을 닦아 사자를 뽑아 형주로 보냈
다.  이때 여몽은 형주  백성들을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형주 여러 고을에 영
을 내려 관 공을 따라 싸우러 나간 장수나 졸개의 집일지라도 함부로 동오 군사
들이 뛰어들어 해를 끼치지 못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달마다 대어 주던 양식도 
이전과 다름없이 대어 주게 하고 병자가 있는 가족에게는 의원을 보내 돌보도록 
했다.  여몽이 그토록  극진히 대해 주니 관 공을 따랐던  장졸들의 가솔들을 모
두 하나같이 여몽의 두터운 보살핌에 감격했다.   성 안의 백성들이 모두 여몽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을 무렵 관 공이 보낸 사자가  형주에 이르렀다.  관 공의 사
자가 온다는 전갈을 받자 여몽은 몸소 성 밖까지 나가 귀한 손님을 대하는 예로 
맞아들였다. 사자를 성 안에 맞아들이자 사자는 절을  올리며 관 공의 글을 올렸
다. 여몽이 그 글을 읽어 본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자에게 말했다. 
  "지난날 내가 관 장군과 우호를 맺은  것은 내 사사로운 마음에서였소. 그러나 
지금은 우리 주공의 명을 받든  몸이니 어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소? 돌아가
거든 이 사람의 뜻을 관 장군께 좋은 말로 말씀드려주시오."
  여몽은 그렇게 말하며 잔치를 열어  사자를 대접한 뒤 역관으로 보내 편히 쉬
도록 했다.   관 공의 사자는 여몽이  자신을 후하게 대접하자 매우 고마워했다. 
그러나 여몽이 형주 군사의 가솔들을 극진히 돌보는 일이나 사자에게 후히 대접
하는 것 또한 마음 속에 품은 계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 공의 사자가 역관
에 머물고 있음을 안 형주  군사들의 가솔들이 역관으로 몰려와 사자에게 관 공
을 따라간 남편이나 형제, 아들의 소식을 묻는가  하면 글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
는 이도 있었다.  그 중에는 말로 안부를  전해 달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이 
전하는 안부의  내용이 한결같았다.   여몽 장군은 너그러운  다스림으로 곡식은 
물론, 아픈 사람에게는 약을 주시고 재난을 당한  사람을 도와 주시니 아무 걱정
하지 말라.  바로 여몽이  노린 바대로 된 것이었다. 사자로 하여금 형주에 있는 
가솔들의 소식을 전하게 하되 형주  백성들이 편안히 살고 있음을 알려 형주 군
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자는 계책이었다.  다음  날이 되자 사자는 여몽에게 작
별의 예를 올리고 형주성을 물러나왔다. 여몽은 몸소  성 밖까지 따라 나와 그를 
배웅했다. 여몽의 원대한 계책을 알지 못한 사자는  돌아와 관 공에게 여몽의 말
을 그대로  전했다. 또한 관 공의  가족들 뿐만 아니라 모든  장졸들의 가솔들도 
아무 탈 없으며, 여몽이  양식과 입을 것 등을 도자람 없이  주며 후히 대접하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관 공이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 모두가 다 여몽의 간사한 계교다. 내가 살아서 그놈을 죽이지 못하면 죽은 
뒤에라도 반드시 그 놈을 죽여 한을 씻으리라!"
  관 공은 사자를 소리쳐  꾸짖으며 물러나게 했다.  사자가 관  공의 장막을 물
러 나오자 여러  장수들이 몰려와 궁금한 가솔들의 안부를 물었다.  사자는 장졸
들의 가솔들이 편안하다고 본 대로  말하고 여몽이 후히 잘 돌보아 주고 있다는 
말과 함께 가지고 온 글과 안부의 말도 전해  주었다.  사자를 통해 가족들이 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군사들은 가솔들에 대한 그리움의 정이 새삼스럽게 되살
아나 여몽과 싸울 마음이  없어졌다. 사자의 말을 듣고 더욱 화가  치솟은 관 공
은 군사를  이끌어 형주로 향했다.   그러나 사자를 통해 가솔들의  소식을 전해 
들은 여러 장수들  중에는 슬며시 대오를 빠져나와  형주로 달아나는 자가 많았
다. 가족들을 살려두어  형주군의 군심을 흩어 놓으려던 여몽의 계책이  보기 좋
게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장수들이 하나 둘 달아나자 관  공은 더욱 화
가 났다. 형주로 군사를  재촉하고 있는데 홀연 함성이 크게 일며  한 떼의 군마
가 앞을 가로 막았다. 앞선 장수는 동오의 장흠이었다. 장흠이 창을 추켜들고 말 
위에 앉아 소리쳤다. 
  "관운장은 빨리 항복하라."
  관 공이 눈을 부릎뜨며 외쳤다. 
  "나는 한나라 장수다. 어찌 역적놈들에게 항복하겠느냐?"
  꾸짖음과 함께  관 공은 말을 몰아  장흠을 향해 짖쳐들었다. 장흠이  관 공과 
부딪친 지 삼 합이 되자 버티지 못하고 달아났다.   관 공이 장흠을 뒤쫓아 20여 
리쯤 달렸을  때였다. 홀연 왼편 산  골짜기에서 고함 소리가 크게  일며 한당이 
군사를 이끌어 왔다. 관 공이 한당을 맞아  한바탕 싸움을 벌이려는데 오른편 골
짜기에서 주태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나왔다. 관 공이 한당과 주태를  맞아 싸우
는데 달아나던 장흠이 군사를 되돌려 관 공을 향해  덮쳐 왔다.  수가 많지 않았
던 관 공의 군사는 세 갈래로 몰려오는 적병을  당해 낼 길이 없었다. 거기다 형
주성 안의 가족 소식을 듣고  마음이 흐트러져 있는 군사들이라 힘을 다해 싸우
지 않았다. 관 공은 급히 군사를 되돌려 오던 길로 달아나는 수밖에 없었다.  관 
공이 길을  되돌려 몇 리쯤을 달려가는데  남산 언덕 위에 연기가  자욱했다. 관 
공이 놀라 보니  언덕 위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화톳불을 피우고 있는데 
한쪽에는 흰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 깃발에  글씨가 씌어 있었는데 그 글씨
가 이상했다. 
  '형주토인(형주 본토 사람)'
  형주토인이란 글씨를 보자 관 공이 거느린 군사들은 걸음을 멈추고 언덕 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군사들의 대부분은 형주 토박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군사들을 보고 소리쳤다. 
  "형주에 사는 토박이 여러분들을 어서 항복하시오."
  군사들이 그 소리를 듣자 가족들에 대하 그리움이  얼굴에 역력해졌다.  관 공
은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는 걸 보고 말을 달려 언덕 위로 달려가 그들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양쪽 산골짜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한  떼의 군마
가 쏟아져 나왔다. 왼편은  정봉이 거느린 군사요, 오른편은 서성이 거느린 군사
였다. 거기다 언덕 위에서도 한 떼의 군마가 쏟아져 내려오는데, 앞선 장수는 장
흠이었다.  세 갈래 길로 달려온 군마는 고함  소리, 북 소리, 징 소리와 함께 하
늘을 뒤흔드는  가운데 순식간에 관 공을  에워싸고 말았다.  관  공은 다가오는 
적병을 닥치는 대로 쳐죽였으나 이미 싸울 마음이 없던 장졸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거나 항복하는 자가  점차로 늘어났다. 그럴 동안 어느 새  으스름 황혼이 
되었다.  관 공이  달려드는 적병을 찌르고 베는 가운데 문득  사방의 산을 바라 
보니 산꼭대기마다 형주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데 애절한 목소리로 가족을 부르
고 있었다.   부모는 자식을 부르고 형제는  형이나 아우를, 혹은 여인이 남편을 
부르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 오고 있었다. 
  "아버지!"
  "형님!"
  "어서 가족들에게 돌아오시오."
  "이 고장 사람들은 어서 항복하십시오."
  그 소리를 들은 군사들은  너도나도 마음이 산란해 산꼭대기를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관 공은 청룡도를 추켜들고 달아나는 군사들에게 소리쳤다.  
  "서지 못하겠느냐? 달아나는 자는 목을 베리라!"
  그러나 이미 싸울 마음을 버린 군사들이 죽음을 무릎쓰고 달아나니 다시 부른
다 하여  돌아올 리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형주 토박이 군사들은  모두 달아나고 
남은 군사는 겨우 3백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관 공은 3백여 명의 군사를 거느
린 채 겹겹이  에워싼 적병을 쳐죽였다. 밤  삼경쯤 되었을 무렵, 문득 동쪽에서 
고함 소리가 크게 일며  두 갈래 길로 군마가 달려왔다. 그  군마는 조조 군사를 
헤치며 관 공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바로 관평과 요화가 관  공을 구하기 위
해 달려온 것이었다. 겨우  관 공을 구한 관평이 함께 길을  열어 달아나면서 말
했다. 
  "군심이 매우 어지러우니 어디든  성을 얻어 잠시 머무르며 기회를 엿보는 것
이 좋겠습니다. 가까운 맥성이 작기는 해도 우선 잠시 머무를 만합니다."
  달리 길이 없는 관 공은 관평의 말에  따랐다. 군사를 재촉하여 맥성에 이르른 
관 공은 성문을 굳게  지키게 한 후 장수들과 앞일을 의논했다.   조루가 의견을 
냈다. 
  "여기서 상용 땅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곳에 유봉이 맹달과 함께 있으니 급
히 사람을 보내  구원을 청하도록 하십시오. 그런 한편 한중왕께도  사람을 보내 
구원병을 청하신다면 군사들의 마음도 안정될 것입니다."
  관 공도 그 말을 옳게 여겨 고개를 끄덕이는데 군사 하나가 들어와 알렸다.  
  "오병이 뒤쫓아와 성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관 공이 급히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누가 상용으로 가서 구원을 청하겠는가?"
  "제가 가겠습니다."
  요화가 나서며 대답했다.  
  "내가 장군을 호위하여 무사히 포위를 뚫고 나갈 수 있게 해 보겠소."
  관평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듯이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관 공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글을 닦아  주었다. 요화는 그 글을 옷 속에  넣어 꿰메고 간단히 
요기를 한 후 관평과 함께 성문 밖으로 나갔다.   요화가 성문 밖으로 나오자 동
오의 장수 정봉이 길을 막았다. 관평이 정봉을  맞아 힘을 다해 밀어붙이니 정봉
이 당하지 못하고 달아났다.   요화가 그 틈을 타 상용을  향해 달려가자 관평은 
다시 성 안으로 돌아와 굳게 문을 닫고 지키기만  했다.  유봉과 맹달이 상용 땅
에 머무르게 된 것은 이전에 두 사람이 이곳을 빼앗고 태수 신탐의 항복을 받았
을 때였다.  한중왕은 그들의 공을  치하하여 유봉을 부장군으로  봉하고 맹달과 
함께 상용 땅을 다스리게 했다.  그때 유봉과  맹달도 관 공이 싸움에 졌다는 소
식을 듣고 있었다.  이에 어찌해야 할지를 의논하고 있는데 사람이  들어와 알렸
다. 
  "관 공이 보낸 요화가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두 사람은 급히 요화를 불러들여 물었다. 
  "어찌 된 일이요?"
  "관 공은 싸움에 져 맥성에 계시는데 지금 적병이 에워싸고 있어 위급한 형세
입니다. 그러나  촉땅과는 너무 멀어 급히  구원병이 올 수 없는  까닭에 특별히 
나를 보내 두  장군께 구원을 청하게 하셨습니다. 바라건대 두  장군께서는 급히 
상용 군사를 일으키시어 관 공의 어려움을  풀어 주십시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
다가는 관 공께서 목숨을 잃으실까 두렵습니다."
  요화가 간곡한 어조로 말하자 듣고 난 유봉이 말했다. 
  "장군은 잠시 편히 쉬도록 하오. 우리가 의논을 해 보겠소."
  이에 다급한 요화는  그들이 빨리 군사 내기만을 기다렸다. 유봉은  요화가 역
관으로 간 후 맹달에게 말했다. 
  "작은 아버님께서 곤경에 빠졌다는데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유비의 양아들인 유봉은 관 공의 위급한 처지를 전해 듣고도 한가롭게 맹달에
게 의논하듯 물었다. 그런데 맹달은 미리 겁부터 먹고 있었다. 
  "동오군은 날래고 굳셀 뿐만  아니라 장수들 또한 용맹스러워 이미 형주 아홉 
군을 빼앗았는데 이제 별 쓸모 없는 맥성만이  남았소. 거기다 내가 들은 바로는 
조조가 몸소 4,5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마파 땅에  머무르고 있다 하오. 우리가 
거느리고 있는 산성의 보잘 것  없는 군사로 어찌 손권과 조조의 군사를 대적할 
수 있겠소? 함부로 군사를 내어 그들과 맞설 수 없는 일이오."
  맹달이 군사 내는 일을 마다하자 유봉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그건 모르는  바가 아니오. 그러나 관 공은 내  작은 아버님이신데 어찌 
차마 이대로 앉아 보고만 있겠소?"
  맹달이 유봉의 말에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로 대꾸했다. 
  "장군은 관  공을 작은아버님으로 생각하는지 몰라도  관 공이 장군을 조카로 
여기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오."
  "그게 무슨 말이오?"
  맹달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유봉이 낯빚을 달리하며 물었다. 맹달이  열을 올
리며 말을 이었다. 
  "제가 듣기로는 한중왕께서 장군을  처음 아드님으로 정하셨을 때 관 공은 이
를 마땅치 않게 여겼다 합니다. 이후 한중왕이  왕위에 오르신 후 후사를 세우려
고 공명에게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공명이  그건 집안 일이니 관운장과 장
비, 두 분에게 물으라고 해서 한중왕께서는 형주로  사람을 보내 관 공에게 물었
습니다.   그러자 그때 관 공은  장군이 양아들이니 후사로 세우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중왕께  권하기를 장군을 멀리  상용 산성으로 
보내오 후환을 없애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장군이 상용에 머물게 된  것도 실
은 관 공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을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어
찌하여 장군만 모르고 계십니까? 이제 이토록 위험한 판국에 어찌 작은아버님이
라는 허울 좋은 의리에 얽메이려 하시오?"
  평소 관 공을 마땅치 않게  여겼던 유봉도 맹달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군
사를 내자는 말은 하지 않고 핑계댈 궁리부터 했다. 
  "그대의 말이 옳으나 무슨 말로 요화의 청을 거절하면 좋겠소?"
  "그건 어렵지가 않지요. 이 산성을 다스린 지가  이제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민
심이 안정되지 않았다고 하십시오. 섣불리 군사를  일으켰다가는 무슨 변고가 일
어날지 알 수 없으며 그렇게 되면 이곳마저 지키기 어렵게 된다고 하십시오."
  맹달이 핑계댈 구실까지 만들어 주자 유봉은 마침내 그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요화를 불러들였다. 요화가 역관에서 급히 달려가자 유봉이 말했다. 
  "이 산성은 빼앗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소. 군사를 
일으켰다가 어떤 변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아무래도 맥성으로 군사를 내기
가 어려울 것 같소이다."
  요화는 그 말에 깜짝 놀라며 이마를 땅바닥에 짓찧고 울며 말했다. 
  "군사를 내지 않으시면 관 공께서는 돌아가시고  말 것입니다. 부디 도와 주시
오."
  그러자 맹달이 나서며 잘라 말했다. 
  "우리가 간다 해도 달라질 건 없소이다. 어찌 한 잔 물로 한 수레 마른 나무의 
불을 끌 수 있겠소? 장군은 어서 돌아가 촉에서 구원군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이오."
  요화가 목을 놓아 울며 애걸했으나 유봉과 맹달은 소매를 떨치며 황급히 밖으
로 나가 버렸다.  요화는 그들에게 구원군을 청하는  것이 더 이상 소용 없는 일
인 줄 알게 되었다. 그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라 요화는 한중왕에게 구원을 
청하기로 작정하고 말 위에 올랐다. 말 위에  오른 요화는 유봉과 맹달이 괘씸해 
한바탕 크게 꾸짖어  욕한 후 성도로 말을  몰았다.  한편 맥성에 있는  관 공은 
상용에서 구원군이 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을 기다
려도 구원군은 오지 않았다.  이제 남은 군사는 5,6백에 지나지 않는데 그나마도 
태반이 성한  군사가 아니었다. 거기다가  식량마저 바닥나고 보니  그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관 공이 초조하게 있는데 군사 하나가 들어와 알렸다. 
  "성 아래에 한  사람이 활을 쏘지 말라고  외치며 군후께 들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
  관 공이 그를 불러들이게 하여 보니 그는  바로 제갈근이었다. 서로 예를 마치
자 관 공이 차를 대접했다.  차를 마신 제갈근이 찾아온 연유를 말했다. 
  "오늘, 오후의 분부를 받들어 특별히 장군께 권할 말씀이 있어 왔소이다. 일찍
이 시무를 아는  이가 바로 뛰어난 영걸이라 했습니다. 이제  장군께서 다스리던 
한상 아홉 군이  모두 남의 손에 넘어가고 남은  것은 이 외로운 성 하나뿐입니
다. 그나마 안으로는  양식마저 떨어지고 밖으로는 구원 오는 군사가  없으니 위
태롭기 아침저녁을 기약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장군께서는 어찌하
여 오후께 귀순하지 않으십니까? 우리 오후께 귀순하면  다시 형주. 양양의 아홉 
고을을 이전처럼 다스릴 수 있으며 가족과 함께 안락을 누릴 수 있으니 부디 깊
이 헤아리도록 하시오."
  그 말을 듣자 관 공은 정색을 하며 제갈근을 꾸짖었다. 
  "나는 원래 한낱 해량  땅의 무부에 지나지 않았으나 우리 주공께서 손발처럼 
나를 아끼셨으며 형제의 의까지 맺은 몸이다. 내  어찌 그 의를 저버리고 적국에 
항복할 것인가? 성이 떨어지면 오로지 죽을 따름이다.  옥은 부서질지언정 그 흰
빛을 잃지 않으며 대나무는 불에 타도 그 곧음을  잃지 않는다. 내 몸은 비록 죽
을지언정 이름은 죽백(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대는 여러  소리 말고 빨리 성을 
물러나도록 하라. 나는 죽기로 작정하고 손권과 결판을 낼 것이다."
  관 공이 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제갈근이  목소리를 낮추어 다시 말했
다. 
  "오후께서는 군후와 더불어 옛날  진과 진처럼 우호를 맺고 힘을 합해 조조를 
쳐 한실을  세우려 하실 뿐입니다. 그  외의 딴 뜻은 없는데  군후께서는 어째서 
이토록 오후의 뜻을 몰라 주십니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곁에 있던 관평은 참지 못하고 칼을 빼들어 제갈근
을 베려 했다. 관 공이 관평을 급히 타일렀다. 
  "칼을 거두어라. 저  사람의 아우 공명이 촉에서  너의 큰아버님을 돕고 있다. 
지금 저 사람을 죽인다면 그들 형제의 정을 해치는 것이 된다."
  관 공은 관평에게 그렇게 말한 후 좌우를 둘러보며 명을 내렸다. 
  "저 사람을 밖으로 끌어내라!"
  관 공이 그렇게 말하니 제갈근도  더 이상 버티고 머물러 있을 처지가 아니었
다. 부끄러움으로얼굴을 붉히고 말 위에 올라 성을 빠져 나갔다.  손권에게 돌아
간 제갈근이 손권에게 말했다. 
  "관운장의 마음이 마치 쇠처럼 굳으니 말로는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손권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득 탄식하듯 말했다. 
  "과연 충신이로구나. 그렇다면 이제 어찌해야 하겠는가?"
  그러자 옆에 있던 여범이 나서며 말했다. 
  "제가 점을 쳐 그 운수를 헤아려 보겠습니다."
  여범이 원래 점을 잘 치는 모사라 손권도  마다하지 않았다. 여범은 산통을 흔
들어 점괘를 뽑기  시작했다. 점괘에 나타나는 상을  보니 바로 지수사괘(주역의 
한 괘, 출군을 뜻함)에 현무(북쪽)의  호응이 있으니 풀이하면 '으뜸가는 적이 멀
리 달아난다'는 점괘였다. 
  "으뜸가는 적이 멀리  달아난다는 괘가 나왔는데 으뜸가는 적이라면 관운장이
니 어떻게 그를 사로잡겠소?"
  점괘 풀이를 본 손권이 여몽에게 물었다. 여몽이  그 물음에 빙긋이 웃으며 대
답했다. 
  "나타난 점괘가 제가  꾸민 계책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관운장이 설령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달린  몸이라 해도 제가 파 놓은 그물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
다."
  여몽은 그렇게 말하며 흡족한 얼굴로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여몽이 관 공을 
사로잡겠다고 호기롭게 웃으니,  관 공은 마치 바다의 용이 개울에  잘못 떨어져 
가재에게 희롱당하고 봉황새가 새장  속에 잘못 들었다가 참새에게 조롱을 받는 
격이 되고 말았다.   여몽이 웃으며 관 공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말하자 손권이 
얼른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어떤 계책으로 관운장을 사로잡겠소?"
  "제가 생각하는 바로는 관운장의 군사가 불과  5,6백 명에 지나지 않으니 큰길
로 달아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맥성 바로 북쪽에 험한 오솔길이  있으니 반드시 
그 길로 달아나려 할 것입니다. 그러니 주연에게  날랜 군사 5천을 주어 맥성 북
쪽 20여  리 되는 곳에 매복케  하십시오. 그러나 그들이 이르거든  맞서 싸우지 
말고 그들을 보낸 뒤 뒤를 치게 하십시오."
  "왜 그들을 치지 않고 보내라 하는가?"
  손권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여몽에게 물었다. 여몽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들의 뒤를 치면 적은 군세가 적으니 싸움을 피해 반드시 임저로 달아날 것
입니다. 그러니 날랜 군사 5백을 번장에게 주어  임저의 산 속 길에 매복케 했다
가 쫓겨오는 관운장을 사로잡는다면 그도  도리 없이 산 채로 묶이고 말 것입니
다. 이제 장수들을 보내  맥성을 치되 주공께서는 북쪽 문을 비워  그들이 그 문
으로 달아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손권이 들어 보니 관운장이 아무리 영용하다 하나 빠져나갈 길이 없는 계책이
었다. 머리를 끄덕이며 여몽의 말을 듣고 난  손권은 다시 여범을 불러 관운장이 
정말 사로잡힐  것인가를 점쳐 보게 했다.  여범이 점괘를 뽑아 본  후 손권에게 
말했다. 
  "적의 우두머리가 서북편으로 달아나다가  오늘밤 해시(밤 10시경)에 사로잡힐 
점괘입니다."
  손권은 크게 기뻐하며 주연과 반장에게 각기 군사를 주어 여몽이 말한 곳으로 
가서 매복케 했다.  한편 맥성의 관 공은  마군과 보군을 점고해 보니  겨우 3백 
명에 지나지 않았고 군량과 마초도 이미 바닥이 나  있었다.  그날 밤이 되자 성 
밖에는 오병들이  몰려와 형주 군사의  이름까지 불러대며 항복을  권했다. 형주 
군사들의 마음은 그 소리를 듣자 더욱 산란해졌다. 
  "헛되이 목숨을 버리지 말고 성을 뛰어넘어라!"
  오병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 오는 가운데 참지  못하고 성벽을 넘어 도망가는 
군사들도 있었다. 위태롭기가 내일 아침을 기약할  수 없는 지경인데도 기다리는 
구원병은 끝내 오지 않았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관  공도 달리 묘책이 
떠오르지 않아 왕보에게 한탄하며 물었다. 
  "지난날 내가 그대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렀소. 앞으로 
어찌하면 좋겠소?"
  왕보도 이젠 달리 길이 없다고 여겼다. 관 공의 물음에 눈물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의 위급은 비록 자아(강태공)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조루가 권했다. 
  "상용서 구원병이 오지 않는  것은 유봉과 맹달이 군사를 내지 않았기 때문입
니다. 이제 군후께서는 차라리  이 외로운 성을 버리고 서천으로 가십시오. 서천
에서 다시 군사를 일으켜 빼앗겼던 땅을 도로 찾도록 하십시오."
  관 공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겠네. 이 성에서 빠져나가도록 해야겠네."
  관 공은 그렇게 말하고 성 위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았다. 성 밖은 동오군으로 
뒤덮여 있는 듯한데 그  중 북문만은 군사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는 듯했다. 관 
공은 그곳 지리를 잘 아는 맥성의 백성을 불러오게 하여 물었다. 
  "저기 북쪽으로 가면 지세가 어떠한가?"
  "북쪽은 모두 좁은 산길인데 서천으로 통합니다."
  관 공이 마음을 정한 듯 왕보에게 말했다. 
  "오늘 밤 북문을 뚫고 나가야겠네."
  그러자 왕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관 공에게 말렸다. 
  "산길에는 반드시 적병이 매복하고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큰길로 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왕보가 그렇게 말했으나 관 공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찌 그따짓 매복을 두려워하겠는가?"
  이미 마음을 정한 관 공은 그 말과 함께 마.보군에게 군령을 내렸다. 
  "군사들을 병장기를 갖추고 성을 나갈 채비를 하도록 하라."
  왕보는 관 공을 말릴 수 없음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군후께서는 가시는 도중 부디 조심하시어  옥체를 보중하십시오. 저는 보졸 1
백여 명과  함께 죽기를 작정하고 이  성을 지키겠습니다. 만약 성이  적의 손에 
떨어지더라도 결코 항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군후께서는  빨리 돌아
오시어 구해 주십시오."
  관 공도 왕보의 간곡한 말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말 위에 올랐다.  그날 밤, 관 공은 떠나기 전에 주창에게 영을 내렸다. 
  "왕보가 이 맥성을  지키겠다 하니 주창 그대도  함께 남아 이 성을 지키도록 
하라."
  관 공은 관평.조루와 함께 2백여 명의  군사만을 이끌고 북문으로 달려나가 산
길로 접어들었다. 청룡도를 비껴든 관 공이 많지  않은 적을 좌우로 휩쓸며 20여 
리쯤 달렸을 때였다.  문득 맞은 편 골짜기에서  갑자기 징 소리와 북 소리가 요
란히 일며 한 떼의 군마가 내달아왔다. 앞선 장수를 보니 주연이었다. 
  "운장은 달아나지 말고 빨리 항복하여 목숨을 구하라!"
  주연이 창을  쳐들며 길을 막고 소리쳤다.  관 공은 주연 같은  하찮은 장수가 
호통을 치자 화가  치멸어 청룡도를 휘두르며 곧장 말을 박차며  달려갔다. 주연
은 관 공이 내려친  칼날로부터 급히 몸을 피했다. 관 공이  다시 청룡도를 치켜
들자 주연은 싸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달아났다.  관 공이 그 기세를 몰아 주연
의 뒤를 쫓았다. 관 공이 말을 박차며 주연과의  거리를 점점 좁히고 있을 때 홀
연 북 소리가 크게 일더니 사방에서 복병이 쏟아져  나왔다.  관 공은 어둠 속에
서 쏟아져 나오는 수  많은 복병을 보자 더는 싸울 마음이  없었다. 적과 싸우기 
위해 나선 길이 아니므로 임저 땅으로 뻗은 샛길을 향해 급히 말머리를 돌려 달
아났다.  주연이 군사를 이끌고 달아나는 관  공을 쫓으며 뒤따르는 군사들을 덮
치니 그나마도 적은  군사가 점점 줄어들었다.  임저의 산길을  원래가 험한데다
가 밤길이라 더욱  헤쳐나가기가 어려웠다. 관 공이 뒤따르는 적을  막으며 한편
으로는 길을 헤쳐 4,5리쯤 갔을  때였다.  홀연 앞쪽에서 함성이 크게 일며 불길
이 하늘을 사를 듯이 일었다.   미리 이곳에 매복해 있던 반장이 지른 불이었다. 
반장은 관 공을 보자 칼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관  공이 보니 그 역시 한낱 이름 
없는 장수라 봉의 눈을 부릅뜨며 한칼에 베어  버릴 기세로 청룡도를 후렸다. 반
장은 불과 서너 차례밖에  부딪지 않았으나 힘이 부친 듯 달아났다.  관 공은 이
번에는 달아나는  반장을 뒤쫓지 않았다.  매복이 있을까 경계한데다  한시 바삐 
서천으로 가는 것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관  공이 가던 길을 재촉해 말을 달리
는데 관평이 급히 뒤쫓아와 소식을 알렸다. 
  "조루가 적군과 싸우다 죽었습니다."
  관 공은 그 소리를 듣자  경황 없이 말을 달리던 중에도 한 줄기 눈물이 눈가
에 돌았다. 위급한 지경에  이르러 끝까지 자기를 따랐던 장수였다. 그러나 우선
은 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일이 급했다. 관 공은 슬픔을  억누르고 관평에게 
일렀다. 
  "너는 뒤쫓는 적을 막아라. 내가 앞장 서서 길을 열겠다."
  관 공이 앞장 서 산길을 헤치고 나가는데 어느 새 뒤따르는 군사는 겨우 10여 
명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한동안 말을 달려 이른 곳이 결석이었다. 양쪽이 모두 
높은 산인데 산 아래쪽은 가시나무와 덩굴이 뒤엉키고 갈대와 억새가 뻗어 있어 
길을 헤치고 가기가 몹시  어려웠다.  험한 길을 힘을 다해  헤쳐 나아가는 동안 
어느덧 오경(새벽 4시)이 되었다. 날이 밝기 전에 험한 길을 벗어날 작정으로 무
성한 잡풀을  헤칠 때였다. 갑자기 산이  떠나갈 듯 함성이 크게  일더니 땅에서 
솟은 듯 복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긴 창과  장대에 매단 갈고리와 밧줄을 든 군
사들이 어둠 속에서 달려  들었다. 관 공이 에워싸고 있는 적병을  뚫기 위해 말
을 박차는데 적병이 먼저 관 공이 타고 있는 적토마의 다리를 갈고리로 걸어 쓰
러뜨렸다. 밧줄에 다리가 걸려 말이 쓰러지자 관 공도 말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반장의 수하인 마충이 갈고리를 뻗어  관 공의 허벅다리를 끌어 당기자 때를 놓
치지 않고 오병이 달려들어  관 공의 팔을 비틀어 눌렀다. 그리고는  관 공이 허
리의 칼을 뽑아들기도 전에 오병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관 공을 꽁꽁 묶고 말았
다.  온 화하에  그 위세를 떨쳐 울리던 장수로서는 너무나  한스러운 순간이 아
닐 수 없었다.  관평은 아버지 관 공이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황급히 달려
가 구하려 했으나 그  역시 오병에게 에워싸인 몸이 되었다. 어느  새 반장과 주
연이 군사를  몰아와 몇 겹으로 에워싼  채 관평을 덮쳤다. 관평은  이를 악물고 
홀로 다가오는 적들을  찍고 베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로잡히는 몸이 되었
다.  그럴 동안 이미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관 공 부자를 사로잡았다는 소식은 
곧 손권에게 전해졌다.  손권은 기뻐 어쩔 줄 모르는 가운데  문무관원들을 장막
으로 불러들였다. 손권이 관 공을 끌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
아 마충이 사로잡힌 관 공을 끌고 왔다.   손권은 관 공이 거미줄에 얽메이듯 묶
인 채 앞에 나타나자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장군의 높은 덕을 사모하여 옛날 진과 진나라처럼 서로 의
를 맺고자 했는데 어찌하여  거절하였소? 장군은 스스로 천하에 맞설 만한 사람
이 없다고 여긴다  들었는데 오늘은 이 몸에게 사로잡히셨구려.  어떻소? 이제라
도 이 손권에게 투항하시겠소?"
  이전에 자기를 괴롭혔던 관 공이었으나  그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는 손권
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평생을 드높은 자존심으로 살아온 관  공에게는 적에
게 사로잡힌 것부터가 이미 죽음보다 더한 수모로 여겨졌다. 
  "이 눈알 푸르고 수염 붉은 쥐새끼 같은 어린놈아!  나는 유 황숙 어른과 복사
꽃 핀 동산에서 형제의 의를 맺고 한실을  다시 일으키고자 맹세했던 몸이다. 어
찌 너 같은 역적과 손을  잡고 함께 하겠느냐? 내가 이번에 너희들의 간사한 꾀
에 잘못 빠져들었으니 다만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 밖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
냐?"
  관 공이 눈을  부릎뜨며 소리쳐 손권을 꾸짖었다. 그러나 손권은  그 꾸짖음에
도 선뜻 관 공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문득 여러  관원을 돌아보며 목소
리를 낮추어 말했다. 
  "관운장은 천하의 호걸이라 내가 깊이 존경해  왔던 터이다. 두터운 예로 대접
해 항복을 권해 보고자 하는데 그대들의 뜻은 어떤가?"
  그 물음에 주부 좌함이 일어나 대답했다. 
  "아니 됩니다. 지난날 조조가 그를 얻었을 때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자 후에 봉
하고 사흘 동안 작은 잔치,  닷새 동안 큰 잔치를 열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말을 탈 때마다 금을 걸어 주고, 말에서  내리면 은을 걸어 주며 온갖 은혜
를 베풀어 그의 마음을 거두려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
습니다. 오히려 관운장은  다섯 관을 지나며 조조의 여섯 장수들을  죽이고 유비
에게로 떠났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지난번엔  조조의 칠로군을 모두  죽이자 
조조는 그의 용맹이 두려워 도읍을  ㅇ겨서라도 관 공의 공격을 피하려 했을 정
도입니다. 이제 주공께서는 그를 사로잡으셨으니 그를  죽여 없애 뒷날의 걱정거
리를 남기지 않도록  하십시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가는 뒷날  큰 어려움
에 빠지게 될 터인즉 깊이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듣자  손권도 좌함의 말이 어긋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한동안 생각에 
잠기던 손권은 마침내 무거운 목소리로 영을 내렸다. 
  "그대의 말이 옳다. 관운장 부자를 끌어내 목을 베라."
  관 공과 관평 부자는 손권의 영에 의해 목숨을 잃으니 때는 건안 24년 10월이
었다. 관 공의  나이 쉰여덟이었다.  이날  늦가을의 구름은 나직이 들판을 덮었
고, 비도 안개도 아닌 축축하고  습한 바람이 차갑게 대지에 감돌았다.  한 시대
를 뒤흔들던 맹장 관 공의 죽음을 슬퍼하며 뒷사람이 시를 지어 기렸다. 
  한말의 인재들 중 대적할 자 없어
  다만 운장 홀로 뛰어났구나. 
  신 같은 위엄, 무로 떨쳤고
  선비의 고고함으로 글도 알았다. 
  하늘의 해 같은 마음 거울처럼 맑고
  춘추의 높은 의기 구름을 헤쳤네.
  밝은 그 이름 만고에 드리우니
  삼분 천하의 때만의 것이 아니네.
  관 공을 기린 또 다른 시도 있다. 
  인걸은 다만 옛 해량 땅에만 났으니
  사람들은 한나라 운장에게 절하네.
  도원에서 형제의 맺어
  이제는 천자와 왕으로 사당에 모이었네.
  기상은 바람과 우레 같아 당할 이 없고
  뜻은 해와 달처럼 드높아
  지금도 모시는 사당 간 곳마다 있네. 
  고목의 갈가마귀 지는 해에 비끼기 몇 해이더냐.
  관 공이 세상을 떠나자 명마 적토는 마충에게 이끌려 와 손권에게 바쳐졌다. 
  "은상으로 관운장이 타던 말을 내리겠다."
  손권은 마충에게 적토마를  도로 내 주었다. 마충은 명마를 받고  몹시 기뻐했
으나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적토마는 관 공이 죽은  그날부터 풀을 뜯지 
않았다. 아무리 향기로운 사료를 주어도, 물가에 몰고 나가 입을 대 주어도 고개
를 돌릴 뿐  끝내 먹지 않더니 마침내 주인에게  충절을 지키려는 듯 굶어 죽고 
말았다.  한편 관  공이 죽던 날 맥성에 있던 왕보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살이 떨렸다. 게다가 전날 밤 꿈자리마저 어수선하기 그지없어 주창에게 말했다. 
  "어젯밤 꿈에 군후께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나시었소. 까닭을 물으려
다가 그만 놀라  잠이 깨었는데 그 꿈이 좋은  조짐인지 나쁜 조짐인지 알 수가 
없소."
  왕보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군사  하나가 급히 뛰어와 얼굴색이 변한 채 알
렸다. 
  "동오군이 성 아래에 이르러 관  공 부자의 목을 걸어 놓고 항복을 권하고 있
습니다."
  왕보와 주창은 크게 놀라며  성벽 위로 달려가 보았다. 성 밖에  오병이 두 개
의 머리를 들고 있는데 틀림없는 관 공 부자의  목이었다.  그걸 본 왕보는 치솟
는 노기와 한스러움을 억누르지 못한  채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성 아래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주창도 왕보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칼을 
뽑아 자기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왕보와 주창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얼
마 남지 않은  군사들은 제각기 목숨을 구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그리하여 
맥성도 동오에  떨어지고 말았다.  한편  관우의 그 무덕과 충절을  우러르며 그 
죽음을 애석히 여겨  한탄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가  죽은 후에 일어난 갖가지 
불가사의 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관 공이 죽은 후에도  한이 서린 영혼은 
흩어지지 않고 허공을  떠돌다 한 곳세 이르른  그곳은 바로 형문주 당양현이었
다.   그곳에는 경치가 빼어난 옥천이란  산이 있었는데 그 산에  보정이란 늙은 
스님이 살고 있었다.  이전에 사수관 진국사의 장로였는데 다섯 관을  지나던 관 
공이 그곳에 이르렀을  때 관 공을 구해  준 바로 그 스님이었다. 관  공을 구해 
준 이후 몸을 피해 구름처럼 떠돌다 이 산의 높고 물 맑은 것을 보고 암자를 지
어 좌선하며 도를 닦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어린 상좌 중  하나가 있어 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그날  밤엔 달이 유난히 밝고 바람이 시
원하여 삼경이 지나도록 참선을 하고 있는데 홀연 허공에서 사람의 외침 소리가 
들려 왔다. 
  "어서 내 목을 내놓아라!"
  보정이 놀라 허공을  바라보니 한 장수가 적토마를  타고 청룡도를 비껴 들고 
서 있었다. 그의 왼쪽에는  젊은 장수(관평)가 서 있었고 오른쪽에는 메기수염을 
단 무장(주창)이 따르고  있었는데 모두 구름을 밟고  산 위쪽으로 오고 있었다.   
보정은 한눈에 그가 관 공임을 알아보고 먼지떨이로 문을 열어 청해들였다. 
  "관 공은 어디 계시오?"
  관 공의 혼령도 보정 스님의  부름을 알아듣고 말에서 내려 바람을 타고 암자 
앞에 이르렀다. 관 공은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물었다. 
  "스님은 누구이십니까? 바라건대 법호를 알려 주십시오."
  관 공은 이전에 자기를 구해 준 보정을  알아보지 못하고 물었다. 그러자 보정
이 관 공에게 되물었다. 
  "보정이라는 화상이외다. 지난날 사수관 진국사에서 군후와 뵌 적이 있는데 군
후께서는 저를 잊으셨습니까?"
  관 공도 그제야 보정을 알아보았다. 
  "전에 나를 구해 주신  그 은혜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미 
나는 화를 입어 죽은  몸이 되었습니다. 원컨대 떠돌고 있는 이  몸에게 부디 가
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보정은 관 공이 한을 품고 있음을 알고 혼령을 향해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지나간 일과 오늘날의 일을 일체 말하지 마십시오. 결과는 이미 그 까닭이 있
기에 일어났음이니  서로 가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지금  장군께서는 여몽에게 
해를 당하시고 머리를  돌려 달라고 하시나, 그렇다면 지난날 장군에게  해를 당
한 안량과 문추, 그리고 오관의 여섯 장수는  누구한테 머리를 돌려 달라고 소리
쳐야 하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관 공의 혼령은 그제야 문득  모든 것이 환히 깨달아지는 듯했
다. 마침내 머리를 땅에  대고 불법을 받들어 부처님을 따를 뜻을  표한 후 거느
린 두 장수와  함께 홀연 사라졌다.   그러나 관 공은 옥천산 보정  스님을 잊지 
못한 듯  그 이후에도 가끔 나타나  백성들을 돌보아 주었다. 가물면  비가 오게 
하고 홍수가 나면 해가 뜨게 했다.  고을  사람들은 관 공의 은혜로운 덕에 고마
워하여 산꼭대기에 사당을 지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사를 올렸다.  뒷날 사람
들이 그 사당에 관 공을 기리는 글을 써붙였다. 
  붉은 얼굴 붉은 마음으로
  적토마를 타고 바람을 쫓을니
  달릴 때도 적제(유비) 잊은 적 없고
  푸른 등불 아래 사기를 읽고
  청룡언월도를 드니 
  어디에도 푸른 하늘 우러러
  부끄러울 것이 없네.

    혼절하여 쓰러진 한중왕
  관 공의 목을 벤 손권은 유비의 보복이 두려워 관 공의 목을 나무상자에 담아 
조조에게 보내나 조조는  대신의 예로서 후히 장사지낸다. 이 소식을  들은 유비
는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혼절하고 만다. 
  한편, 손권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 이루어지자 매우 기뻐했다. 관 공
을 죽이리라고 어찌  생각이나 해 볼 수가 있었겠는가. 거기다가  형주와 양양을 
되찾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삼군에게 상을 내리고  술과 고기를 내려 위로했
다.  손권은 잔치를 열어 여러 장수들의  공을 사례하며 누구보다 으뜸가는 공을 
세운 여몽을 높은 자리에 앉힌 뒤 말했다. 
  "내가 오랫동안 형주를 얻지  못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근심하다 이제야 단번
에 손바닥을 뒤집듯 쉽게 얻었으니, 이는 다 여 장군의 덕이오."
  "제게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 여러 장수와 군졸들, 그리고 주공의 높으신 복일 
뿐입니다."
  여몽이 공을 사양하며  고개를 저었다. 손권이 그런 여몽을 보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난날 주량(주유)은 계략이  빼어나 적벽에서 조조를 깨뜨렸다. 그러나 불행
히도 일찍 죽으니 자경(노숙)으로 하여금  그를 대신하게 했다. 그 자경 또한 식
견이 뛰어나  큰 공을 세웠다. 나에게  제왕이 되는 길을 일러  주었으니 그것이 
첫째요. 또 조조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침범해 왔을 때 모든  사람이 항복을 권
했다. 그러나 그만은 주유로 하여금 조조와 싸우게  해야 한다고 고집한 것이 둘
째이다. 그러나 형주를 유비에게  빌려 주돌록 권한 것만은 실수였다. 그런데 지
금 자명은 계책을 세워 형주를 되찾게 했으니 그 공은 주량과 자경보다 더 낫다 
아니할 수 없구나."
  손권은 말을 마치고 친히 잔에 술을 가득  따라 부어 여몽에게 권했다. 여몽이 
무릎을 꿇어 술잔을 받았다.  그런데 술잔을  받아 마시려던 여몽이 갑자기 술잔
을 땅바닥에 내던지고 손권의 멱살을 잡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눈알 푸른 어린놈아, 붉은 수염난 쥐새끼야, 네가 나를 알아보겠느냐?"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말은 관 공이 죽기 전 손권에게 한 소리였다. 
모든 장수들이 깜짝 놀랐다. 급히 달려가 여몽을  말리려는 데 어느 틈에 손권을 
쓰러뜨리고는 성큼성큼 손권의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눈을 부릎떠 호통을 쳤
다. 
  "나는 황건적을 쳐부순 이래 30여 년 동안  천하를 거칠 것 없이 종횡했다. 이
번에 너의 간사한 꾀에 빠져 오늘날 내가 해를 입었으니 살아서 너의 고기를 씹
지 못한 것이 한이다. 이제 죽어서라도 마땅히 너와 여몽의 넋을 뒤쫓으리라. 나
는 한수정후 관운장이다!"
  그 호통에 놀란 손권은 황망히 여러 장수들과 함께 계하에 내려가 관 공의 혼
령을 뒤집어쓴 여몽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러자  여몽은 홀연 피를 쏟으며 죽었
다. 모든 장수들은 그 참혹한  광경에 몸을 떨었다.  이것도 당시 사람들의 입에
서 떠돌던  얘기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실제로 여몽은 형주를 차지한  뒤 얼마 
못가 이전부터 앓던 병이  도져 죽고 말았다. 그 죽음을 사람들이  관 공의 혼령
에 의한 것이라  꾸몄으며 관 공을 죽인 자에  대한 미움이 이런 얘기를 만들어 
내게 했으리라.  오후는 여몽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며 시체를 거두어 정중히 장
사지내 주었다.  이어 여몽에게 남군태수에  잔릉후로 봉하고 그의  아들 여패로 
하여금 아비의 벼슬을 잇게  했다.  손권을 여몽이 죽던 날  이후로는 왠지 마음
이 편치 않았다. 관 공의 혼령에 대한  두려움이 일어 혼자서 까닭없이 놀라거나 
의심을 할 때가 많아졌다.  그런 어느 날  건업에서 장소가 왔다는 전갈이 와 급
히 불러들이게 했다.   손권은 장소에게 관 공의 혼령이 여몽을  죽인 일과 그로 
인한 자신의 두려움을 들려 주었다. 듣고 난 장소가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주공께서 이번에 관 공 부자를 죽인 것은 잘못 생각하신 일입니다. 그로 인해 
머지않아 강동에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 관 공은 유비와 함께  도원에서 형제
의 의를 맺을 때 살고 죽기를 함께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유비는 동천과 
서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데다 제갈량의  지모와 장비.황충.조운.마초 등의 용
맹한 장수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유비가 관 공 부자의 죽음을  안다면 반드시 
전군을 일으켜 힘을 다해 원수를 갚으러 올  것입니다. 우리 동오가 그들과 맞서 
싸울 수가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손권은 그 말을 듣자 얼굴색이 달라졌다. 만약  장소의 말대로 유비가 모든 군
사를 일으켜 죽기로 작정하고 짓쳐든다면 동오도 온전히 버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손권이 발을 구르며 후회했다. 
  "내가 일을 크게 그르쳤구나. 장차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주공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게 한 계책이 있으니 서촉의 군사로 하여금 
동오로 밀고 들어오지 않도록 하고  형주도 바위 위에 있는 것처럼 든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장소가 이미 생각해 둔  계책이 있는 듯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손권
의 얼굴이 밝아지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게 어떤 계책이오?"
  "지금 조조는 1백만 대군을 거느린 채 온 화하를 차지하기 위해 마치 범이 먹
이를 노리듯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비가 단숨에 원수를 갚으려면  반드시 조
조와 손을 잡으려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동오는  바람 앞의 등
불처럼 위급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사람을 보내  관 공의 목을 조조에게 바
치고 유비에게는 이번  일을 조조가 꾸며서 한 것처럼 알리십시오.  그러면 유비
는 반드시 조조에게 원한을 품고 위나라를 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싸움의 형세
를 보아 가며 가운데서 이로움을 택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손권은 장소의 말에 크게 감탄하며 곧 그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사람을 뽑아 
관 공의 머리를 나무상자  안에 담아 조조에게 보냈다.  한편  조조는 그때 마파
에서 낙양으로 군사를  돌렸는데 동오의 사자가 관  공의 머리를 가지고 왔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관운장이 죽었다 하니 이제부터 나는  베개를 높이 베고 편히 잘 수 있게 되
었구나."
  조조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말하는데 문득 계단 아래에서 한 사람이 나
서서 말했다. 
  "대왕께서는 기뻐하신 나머지 동오가 보낸 화근까지 함께 받으시면 아니  됩니
다. 이는 동오가 우리에게 화를 떠넘기려는 수작입니다."
  조조가 보니, 그는 주부 사마의였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지난날 유비.관운장.장비 세 사람은 도원에서 형제의 의를 맺을 때 죽고 살기
를 함께 하기로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동오에서 관운장을 죽여  놓고 그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  관운장의 머리를 대왕께 바친 것입니다. 유비의  한을 대
왕께 돌려 동오를 치는 대신 우리 위를  치게 하려는 것이지요. 그들은 가운데서 
구경하며 형세를 보다가 이득을 취하려는 속셈입니다."
  조조가 사마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중달의 말이 옳구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계책을 베풀어야 하겠는가?"
  "그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대왕께서는 관운장의 목에  좋은 향나무로 몸을 
깎아 붙인 뒤에 대신에 대한 예로서 후히  장사지내 주도록 하십시오. 유비가 그
걸 알면 반드시 손권을  몹시 원망하며 죽을 힘을 다해 동오를  칠 것입니다. 우
리는 그 싸움을 지켜 보다 촉이 이기면 오를  치고, 오가 이기면 촉을 치면 됩니
다. 두 나라 중  한 나라만 빼앗게 되면 나머지 한 나라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
입니다."
  조조는 사마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했다. 그 말에  따르기로 하
고 곧 동오에서 온  사자를 불러들이게 했다.  이윽고 동오의  사자가 들어와 나
무상자를 바치자 조조는 그 상자의 뚜껑을 열어  보았다. 관 공의 얼굴은 놀랍게
도 살아 있을 때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조조가 슬며시 웃으며 관 공에게 
우스갯소리로 말을 건넸다. 
  "운장 공은 그 동안 별고 없으셨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관 공의 목은  살아 있는 얼굴인 듯 갑자기 눈
을 부릎뜨고 입을 벌리며 수염을 올올이 뻗쳤다.   그 모양을 본 조조는 그만 기
겁을 하여 까무러치고  말았다. 모든 벼슬아치들도 놀란 가운데 급히  조조를 구
하여 자리에 눕혔다.  조조는 한참 뒤에야 겨우 깨어나서 주위를  돌아보며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관운장은 참으로 천신이로구나."
  그러자 동오에서 온 사자가 그간에 있었던 일을 알려 주었다.
  "관운장의 혼령이 여 장군의  몸으로 ㅇ겨 붙어 우리 주공을 소리쳐 꾸짖었습
니다. 또한 여 장군은 그 자리에서 피를 쏟고 죽었습니다."
  조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이쩍고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조조는 관 공을 
후히 장사지내 주기로 하고 침향목 좋은 향나무를 구해 관 공의 몸을 조각해 다
듬도록 했다.   관 공의 몸이 만들어지자  목과 함께 이어 관에 넣은  다음 소와 
돼지를 잡고 날을 잡아 왕후의 예로 낙양성  남문 밖에 장사지냈다. 이날 조조는 
여러 벼슬아치들로 하여금  영구를 배웅하게 하고 몸소  절하며 제사를 맡아 했
다. 관 공에게 형왕의 칭호를 더하고 관리를 두어  그 묘소를 지키게 한 다음 동
오에서 온 사자를 돌려 보냈다. 
  한편 그 무렵,  한중왕 유비는 한중을 평정하고 동천에서 성도로  돌아와 있었
다. 그러던 어느 날 법정이 유비를 찾아와 권했다. 
  "주상의 선부인은 돌아가시고, 손 부인도 강동으로 가셨습니다. 비록  제왕이라
고는 하더라도 인륜의  도를 폐하실 수 없습니다. 주상께서는 새로  왕비를 맞으
시어 내정을 보살피게 하십시오."
  한중왕도 법정의 말을 물리치지 않았다. 
  "오의란 사람에게 누이가 있는데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성품이 어질다고  들었
습니다. 언젠가 상을 보는 이가 그 여인의 상을  보고 장차 반드시 크게 될 것이
라고 말했다 합니다. 일찍이 유언의 아들 유모에게  시집 갔으나 유모가 일찍 죽
어 지금까지 홀몸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그녀를 맞으시어 왕비로 세
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유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유모는 나와 성이 같은 유씨가 아니오? 도리에 어긋나외다."
  법정은 단념하지 않고 다시 유비에게 권했다. 
  "같은 성이라 하나 촌수도 따질 수 없는 먼 일가입니다. 가깝고 멀고를 밝히려 
든다면 진문공이 회영을 아내로 삼은 것과 무엇이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법정이 춘추시대 진문공의 조카 며느리 뻘인 진나라 희영을 아내로 삼은 일까
지 말하며 권하자  마침내 한중왕도 윤허하고 오씨를 왕비로 맞이했다.   오비는 
뒤에 두 아들을 낳았는데  맏이가 유영이고 자는 공수였으며, 둘째가 유리요, 자
는 봉효였다.  한중왕이 왕비를 맞아들인 후 동.서 양천의 백성들은 편안하고 나
라가 넉넉한데다 풍년이  계속되니 그야말로 태평성대가 이어지는  듯했다. 그런 
어느 날 형주에서 사자가 와서 소식을 전했다. 
  "이번에 동오의 손권이 관  공께 구혼을 했으나 관 공께서는 이를 물리치셨습
니다."
  그러자 한중왕 곁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공명이 말했다. 
  "구혼을 거절했으니 형주가 위태롭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어 형주를 지키게 
하고 관 공을 불러 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관 공에게 청혼하여 만약 마다할 경우에는 반드시 동오가 군사를 내어 형주를 
치리라고 여긴  공명이었다.  유비도 공명의  말을 받아들여 관 공  대신 누구를 
보낼까 의논하고 있는데 다시 형주에서 사람이 와서 알렸다. 
  "관 공께서 조조와 싸워 크게 이기셨습니다."
  그 소식이 있은지 하루가 지나지 않아 관흥이 와서 또 기쁜 소식을 알렸다.
  "아버님께서 조조의 칠로군을 강물로 휩쓸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방덕을  목베
고 우금을 사로잡았습니다."
  형주를 걱정하면서 관 공을 불러들이려  했던 유비는 그 말에 크게 놀라며 기
쁨을 감추지 못했다.  거기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형주에서 또  소식이 날아들었
다. 
  "관 공께서 장강의 강변에다  잇대어 봉화대를 쌓게 하여 동오의 침입에 대비
하고 계십니다. 형주는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없도록 경계하고 있습니다"
  들리는 소식은 모두 유비와 공명의 염려를 전부 부질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뿐
이었다. 이에 유비는  크게 기뻐하고 비로소 마음을  놓고 지냈다.  그러던 며칠 
후 어느 날이었다. 유비는 까닭없이 온몸이 저려  오고 살이 떨리는 가운데 불안
했다. 앉으나  서나 몸과 마음이 진정되지  않더니 밤이 되어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고  있다가 어느 새 정신이 혼미
해져 책상에 엎드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방 안에 서늘한 바람이 일어 등불이 꺼
질 듯 흔들리다가 다시 밝아졌다.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어 유비가 고개를 들어 
보니 등불 아래 어떤 사람이 서 있었다. 
  "누구인가? 누구인데 이 깊은 밤중에 남의 방으로 들어왔느냐?"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유비가  괴이하게 여겨 벌떡 몸을 일
으켜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촛불  그늘로 몸을 숨기는데 보니  바로 관 
공이었다. 유비가 반가운 가운데도 의아히 여기며 물었다. 
  "아우 아닌가? 그래 그 동안  별고 없었는가? 이 밤중에 나를 찾아온 걸 보니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다. 자네와  나는 형제 사이인데 어찌  하여 나를 
피한다는 말인가?"
  유비는 관 공이 평소의 그답지 않게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 더욱 의아
스러웠다. 관 공은 유비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형님! 어서 군사를 일으켜 이 아우의 원한을 풀어 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유비가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또 한 가닥 서늘한 바람이 일
며 관 공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유비가 깜짝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유
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니 밤도 깊어 어느  새 삼경이었다.  유비는 그 
꿈이 기이하고 불길하여 그 길로 달려나가 공명을  불러 오게 했다. 공명이 자다 
말고 달려오자 유비는 꿈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들려 주고 그  뜻을 물었다. 꿈
이야기를 듣고 난 공명은 좋은 말로 유비를 안심시켰다. 
  "대왕께서는 지나치게 관 공을 걱정하시다 보니  그런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고단하셨기에 꾸게 되신 꿈이니 그렇게 염려하실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소. 낮에도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살이 떨렸소. 아무래도 심상치 않
은 꿈이오."
  유비는 공명의 위로하는  말을 듣고도 의심과 걱정을 누르지 못했다.   공명이 
다시 좋은 말로 유비를 안심시키고 물러나 중문에 이르자 태부 허정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기밀을 말씀드릴 것이 있어 군사의 부중에 갔더니 군사께서  입궁하셨다
는 말들 듣고 뒤따라왔습니다."
  "기밀이라니? 무슨 기밀이오?"
  깊은 밤중에 급히 자기를 찾은  허정을 보자 공명은 심상치 않은 일임을 깨닫
고 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제가 들으니 동오의 여몽이 형주를 빼앗고 관 
공께서는 이미 해를 입으셨다 합니다. 먼저  군사께 말씀드리고자 이렇게 달려온 
것입니다."
  허정의 말을 들은 공명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탄하듯 말했다.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소. 지난 밤에 내가 천상을 보니 장성 하나가 형.초 땅
으로 떨어지길래 관 공이  이미 해를 입은 줄 알았소. 그러나  대왕께서 너무 놀
라실까 두려워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오."
  두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의논하고  있을 때였다. 불쑥 전각 안
에서 한 사람이 급히 오더니 공명의 옷소매를 잡고 물었다. 
  "그런 끔찍한 일을 알고도 공은 어찌하여 내게 말하지 않았소?"
  공명과 허정이 깜짝 놀라며 보니 그는 바로  유비였다. 유비는 끝내 마음이 진
정되지 않아 전각  안을 거닐고 있다가 문득 두  사람의 얘기를 엿듣게 된 듯했
다. 공명과 허정이 당황하며 함께 말했다. 
  "아직은 소문을 전해 들은 것이라 믿을  것이 못됩니다. 대왕께서는 마음을 너
그럽게 가지시고 진정하십시오."
  그러나 유비는 고개를 저으며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나는 일찍이 운장과 더불어 삶과 죽음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사이요. 만약 운
장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내가 어찌 혼자 살 수 있겠소?"
  공명과 허정은 다시  온갖 말로 유비를 안심시키고 있는데, 신하  하나가 들어
와 알렸다. 
  "마량과 이적이 왔습니다."
  유비가 급히 그들을 불러들여 물었다. 
  "형주는 어떻게 되었는가? 어서 말하라."
  두 사람은 형주가  여몽에게 함락되었음을 말하고 관  공이 싸움에 져 구원을 
청한다고 전한 후 관  공이 써 준 글을 바쳤다. 유비가 그 글을  읽고 있는데 또 
가까운 신하 하나가 들어와 알렸다. 
  "지금 요화가 이르러 대왕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유비가 급히 요화를 들게 했다.  요화는 들어서자마자 울음부터 터뜨렸다. 
  "어서 아우의 소식부터 말하라!"
  유비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요화를 재촉했다.  요화가 눈물을 
거두고 입을 열었다. 
  "관 공께서는 지금  맥성에 갇혀 계십니다. 제가 관 공의  명을 받들어 유봉과 
맹달에게 구원을  청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지금쯤 관 공께서  어찌되셨는지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유비가 그 말을 듣더니 얼굴빛이 달라지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내 아우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그러자 공명이 유비를 달래듯 말했다. 
  "유봉과 맹달이 그랬다면 죽이는 것만으로는 모자랄 것입니다. 제가 군사를 거
느리고 가서 형주와 양양의 위급을 구하고 그 둘을 잡아 오겠습니다."
  그러자 유비가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만약 운장이 죽었다면 나는 결코 혼자 살아 남지  않을 것이오! 내일 내가 한 
떼의 군사를 이끌어 가서 운장을 구할 것이오!"
  그렇게 말한 유비는 낭중에 있는  장비에게 사람을 보내 관 공의 위태로운 소
식을 알리게 하고 한편으로는 군사를 일으킬 채비를  했다.  그런데 날이 밝기가 
무섭게 신하가 들오와  형주에서 사람이 왔음을 알렸다. 곧 군사  하나가 쓰러질 
듯 들어오는데 먼길을  급히 달려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바닥에 엎드려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한 채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관 공 부자께서는 한밤중  맥성을 빠져 나와 임저로 가시다가 오의 장수에게 
사로잡히는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손권이 항복을  권했습니다만 관 공께서는 끝
내 절개를 꺾지 않고 아드님과 함께 장렬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유비는 그 소리을 듣더니 외마디 비명을 크게 지르며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
다. 유비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문무의 여러 관원들이 유비를  부축해 안으로 
들인 뒤 구호를 했다. 유비가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내전으로 들자 공명이 
유비를 위로했다. 
  "대왕께서는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옛부터 죽고 사는 것은 다 명에 달린 것
이라 하였습니다.  관 공의 성품이 굳세고  굽힐 줄을 몰랐던 까닭에  이런 해를 
입게 된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부디 옥체를 보양하신  후에 천천히 원수 갚을 대
책을 세우도록 하십시오."
  "나와 관우.장비 셋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어  비록 같은 날에 태어나지는 않
았으나 죽기를 함께 하기로  했다. 이제 운장이 이 세상에 없는데  어찌 나 홀로 
부귀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유비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관 공의 작은 아들 관흥이 소리 높여 울면서 들
어왔다. 유비는 관흥을  보자 또다시 비통함과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외마디 비
명을 크게 지르더니  혼절하여 땅바닥에 쓰러졌다. 문무관원들이  부축해 돌보자 
정신을 되찾았으나 슬픔이 가시지 않는 듯 깨어나서는 또 울며 기절하기를 하루
에 네댓 번이나 하였다. 사흘이 되어도  물 한 모금, 죽 한 숟갈 먹지 않고 목을 
놓아 울더니 마침내  눈에서 피눈물이 떨어져 옷자락에 아롱졌다.   공명이 그대
로 보고 있을  수가 없어 문무백관들과 함께  슬픔을 진정하라고 간곡히 위로했
다. 공명의 간곡한 권유에 유비가 한맺힌 다짐을 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맹세코 동오의 손권하고는 같은 하늘에서 숨을 쉬지 않으리라!"
  공명은 유비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낙양에 소문을 알려 주었다. 
  "동오가 관 공의 목을  조조에게 바쳤는데 조조는 왕후의 예로 친히 장사지내
고 형왕의 칭호를 내렸다 합니다."
  유비도 그 말에는 뜻밖이라는 듯 공명에게 물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까닭이 무엇이오?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오"
  "동오는 화가  두려워 그 화를 조조에게  떠넘기려 했습니다만 조조가 손권의 
속셈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주상의 분노를 동오로 돌리기 위해 관  공의 장
사를 후하게 지내 준 것입니다."
  공명이 조조의 속마음을 그렇게 헤아리자 유비가 목소리를 한껏 높여 말했다. 
  "이젠 지체할 수가  없소. 지금 군사를 일으케 손권에게 그  죄를 묻고 하늘에 
맺힌 이 한을 씻을 작정이오."
  유비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공명이 유비를 만류했다. 
  "지금은 아니 됩니다. 동오는 우리로 하여금 위를 치게 할 작정이며 위는 우리
가 동오를 치지만을  바라며 갖은 계책을 다 꾸미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상께
서는 군사를  움직이지 마시고 관  공의 장례부터 치르도록  하십시오. 그러다가 
위와 동오가 다투기를 기다려 군사를 내신다면 우리는 그들의 계책을 거꾸로 이
용하여 우리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문무백관들도 모두 공명의 말에  따를 것을 거듭 권했다. 유비
도 마침내 군사 내는 일을 뒤로 미루고 먼저 관 공의 장례부터 치르기로 작정했
다.  동천과 서천의  모든 장수들에게 상복을 입도록 영을 내리고  좋은 날을 잡
았다. 장례일이 되자 유비는  친히 남문 밖에 나가 초혼제를 지내  관 공의 넋을 
위로하며 하루 종일 목놓아  울었다.  남문에 세워진 관 공의  사당에는 그 이후 
차가운 겨울  바람에도 관 공의 죽음을  슬퍼하는 조기가 내려지지 않았다.   그 
무렵 낙양에 있던 조조는 관 공의 장례를 치른 이후 괴이쩍게도 눈만 감으면 관 
공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아무래도 관운장의 넋이 씌운 게 아닌가?'
  조조는 은근히 놀랍고도  두려운 마음이 일어 여러  관원들을 불러 놓고 물었
다. 
  "밤마다 눈만 감으면 관운장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
가?"
  그러자 관원 하나가 권했다. 
  "낙양 행궁의 전각들은 오래 되어 이전부터  괴이한 일이 많았습니다. 새로 전
각을 지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조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조는 그전부터 건시전이라  이름지어 큰 
궁을 지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새로 궁을 하나 짓고 싶으나 좋은 목수가 없어 걱정이구나."
  그러자 모사 가후가 말했다.
  "낙양의 소월이란 목수가 있는데 그가 집을 가장 잘 짓는다고 합니다."
  조조는 곧 소월을  불러들여 새로 지을 전각의 그림부터 그리게  했다. 소월은 
오래지 않아 아흔 칸 큰 전각에 앞뒤로 낭하와 누각을 배치한 그림을 그려 바쳤
다. 그걸 본 조조가 소월에게 말했다. 
  "너의 그림을 보니  내 마음에 든다면 기둥과  대들보로 쓸 만한 재목이 있을 
것 같지가 않구나."
  그러자 소월이 입을 열었다. 
  "낙양성 밖 30여리쯤 가면 약룡담이라는 큰 못 하나가 있습니다. 그 못가에 약
룡사란 사당이 있고 그 옆에 큰 배나무가 하나 있는데 높이가 10여 길이나 됩니
다. 그 나무는 능히 대들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그 말을 듣자 곧 영을 내려 그 배나무를 베어다 대들보감으로 쓰게 했
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자 나무를 베러 갔던 사람들로부터  조조는 뜻밖의 말
을 전해 들었다. 
  "그 나무는 어찌나  단단한지 톱으로 썰어도 톱날이  들어가지 않으며, 도끼로 
찍어도 찍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나무를 벨 수가 없습니다."
  조조가 그 말을 듣고 이상히  여겨 몸소 수백의 기병을 거느리고 악룡사 사당 
앞으로 가 그 배나무를 쳐다 보았다. 하늘을 찌를  듯 굽은 데 없이 밋밋하게 뻗
어 있는 그 나무는 많은 가지에 잎이 무성했는데 마치 비단 일산처럼 퍼져 있었
다.
  "어디 내가 보는 데서 한 번 베어 보아라."
  조조가 새로 지을 전각의  대들보감으로 더없이 안성맞춤이라 여기며 함께 따
라 온 군사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곳의 토박이 노인 몇 사람이  조조 앞에 나서
며 말했다.
  "이 나무는 여느  나무와 다릅니다. 수백 년이 된 나무로  신인이 살고 있다고 
하니 함부로 베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노인들이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나서자 조조는 벌컥 화를 내며 소리
쳤다.
  "내가 천하를 종횡한 지 40여 년,  위로는 천자로부터 아래로는 ㅂ댁성에 이르
기까지 모두 다  나를 두려워했다. 어떤 요사스런 귀신이 나의  뜻을 거스른다는 
말이냐?"
  조조가 소리쳐 그 노인들을 꾸짖으며  허리에 찬 보검을 뽑아 힘껏 나무를 찍
었다. 그러나  '쨍그렁' 소리와 함께 홀연  나무에선 검붉은 선지피가  뻗쳐 나와 
조조의 온몸을 물들였다. 조조는 깜짝 놀라며 얼른  칼을 던져 버리고 말을 타고 
궁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상서롭지 못한 조짐으로  여겨져 말에서 내린 조조의 
얼굴색은 좋지 않아 보였다.
  그날 밤 이경 무렵이었다.   조조는 배나무에서 피가 튀어 나온  낮의 일 때문
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잠이 오지 않았다.  마음을 달래려 책상에 기대앉아 있었
다. 그런데 홀연 조조 앞으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검은 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칼을 집고 다가온 그 사람이 조조에게 손가락질하며 꾸짖었다.
  "조조 이놈! 나는 제가 칼로 베려 했던 배나무의 귀신이다. 건시전을 짓겠다니 
역적질이라도 하겠다는 말이냐? 오늘 네가 신목을 베려했다만 나는 너의 목숨이 
다한 걸 알고 있다. 내가 오늘 네놈의 숨을 끊어 주리라."
  조조는 깜짝 놀랐다.
  "여봐라! 무사들은 어디 있느냐? 어서 나를 구하라!"
  조조가 급히 소리쳐 무사들을 불렀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검은 
옷을 입은 배나무 귀신이 칼을 뽑더니 조조를  향해 내리쳤다. 조조가 외마디 비
명을 지르며 그 소리에 스스로 놀라 눈을  뜨니 꿈이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온몸엔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는 마치 도끼로 찍은 듯이 쑤시고 아팠
다.  날이  밝자 조조는 영을 내려 널리 용한  의원을 구해 데려오게 했다. 여러 
의원들이 여기저기서 불려와 조조를 치료했다. 그러나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그 
증세에는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여러 신하들이 조조의 병이 낫지  않아 근심하
고 있는데 화음이 들어와 말했다.
  "대왕께서는 신의 화타를 아십니까?"
  "강동의 주태를 치료했다는 사람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름을 들은 적이 있으나 그 의술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조조가 미심쩍은 얼굴로 말했다. 화홈이 자세히 화타에 대해 일러 주었다.
  "화타의 자는 원화이며, 원래 패국 초군 땅 사람입니다. 그의 의술의 신묘함은 
세상이 다 아는 바입니다. 환자들을 약이나 침으로  고치기도 하고 뜸을 놓아 고
치기도 하는데, 그의  손이 닿는 데치고 그  병이 낫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만약 오장육부에 병이 있어 약으로 낫게 할 수 없을 때는 마폐탕을 다려 마시게 
하여 병자를 마취시킨다 합니다. 그런 다음 조그마한  칼로 그 배를 가르고 내장
을 약물로  씻는데 병자는 추후도 아픈  줄을 모르며, 씻은 뒤에는  바늘로 배를 
꿰맨다고 합니다.  그 상처에 다시 약을  바른 다음 스무날이나 한  달이 지나면 
아픈 곳이 씻은 듯이 낫는다  하니 그 의술의 신통함은 실로 신의라 할 수 있습
니다.  하루는 화타가  길을 가다가 문득 어떤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를 듣자 대
뜸 '저것은  먹는 게 내려가지 않아  앓는 것이다'하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물어 보았더니 과연  화타의 말이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화타가 그  사람에게 마
늘즙을 석 되나 먹였더니 곧 길이가 두어 자나 되는 뱀 한 마리를 토해 내고 곧 
음식이 내려가 씻은 듯이 나았다 합니다. 또  화룡태수 진등은 항상 가슴이 답답
한데다 얼굴이 붉어져 음식을 잘  먹지 못하던 중에 화타에게 약을 지어 먹었습
니다. 화타가 지어 준 약을 먹은 후 진등은  붉은 머리를 한 살아 꼬물거리는 벌
레를 서너 되나 토해 냈다고 합니다.  진등이 의하히 여겨 '이 벌레가 내 뱃속에 
생긴 까닭이 무엇이오?'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화타가 '그것은 비린 생선을 날 
것으로 많이 잡수셨기  때문에 생긴 독입니다. 이제 병이 낫기는  했으나 3년 후
에는 다시 재발할 터인즉 그  때는 낫게 할 수 없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과
연 3년 후에 진등에게는 그런 증세가 나타나  죽고 말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마에 혹이 생겼는데 몹시 가려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화타에게 그 혹
을 보이고  까닭을 몰었습니다. '혹 안에  날짐승이 있소'하고 화타가  혹을 보고 
그렇게 말했으나 모든 사람들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
런데 화타가 그  혹을 째자 노란 참새  한 마리가 나와 날아갔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개에게 발가락을  물렸는데 그 상처에 새살이 두 군데로  솟아 올랐는데, 
한 군데는 몹시 가렵고 한 군데는 아팠습니다. 화타에게 그 상처를 보이자 '아픈 
곳에는 바늘 열 개가, 가려운 데는 희고 검은 바둑돌 두 개가 들어 있소'라고 했
습니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않았으나 살을 째고  보니 과연 화타
가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야말로 옛날 편작이나  창공과 비할 
만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여기서 멀지 않은 금성에 살고  있다 합니다. 대
왕께서는 그를 불러 병을 돌보게 하십시오."
  화흠의 말을 듣고 나자 조조도 망설이지 않았다. 곧 그를 불러오게 했다. 화타
는 한동안 조조의 맥을 짚어 병을 살펴본 후 입을 열었다.
  "대왕의 머리가 몹시 아프신 까닭은 머릿속에  바람이 일어 생긴 병입니다. 이
미 병의 뿌리가 골에까지 괴었습니다. 이 바람을  걷어 내려면 약으로는 고칠 수
가 없습니다.  제게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만 대왕께서  허락하실지 걱정입니
다."
  조조는 병을 낫게 할 방법이 있다는 말에 얼굴이 밝아지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말해 보라."
  "먼제 마페탕을 달여 잡수신 후에 제가 날카로운 도끼로 두 개골을 열어 골에 
괸 바람기를 씻어내면 병의 뿌리를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병이 거뜬히 나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도끼로 머리를 쪼갠다는 말에 몸을 떨더니 대뜸 화를 내며 소리쳤다.
  "네가 나를 죽이려 하느냐?"
  조조는 지난날 길평이 약탕기에다 독을 넣어 자신을 독살하려 했던 일을 떠올
렸다. 뿐만 아니라 자기를 없애려는 모의를 몇  차례 겪었던 조조라 대번에 의심
부터 들었다. 그런데 화타가 또 조조의 그런 마음을 뒤집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대왕께서는 전에 관  공이 오른팔에 독화살을 맞았을  때 제가 그 뼈를 긁어 
독을 걷어 내어 상처를 치료한  일을 알지 못하십니까? 그때 관 공은 조금도 두
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대왕께서는 어찌 저를 의심만 하십니까?"
  하필 예로 든 사람이  관 공이었다. 조조는 자신과 견주의 관  공을 은근히 높
이는 듯하자 더욱 화가 뻗쳐 꾸짖었다.
  "닥쳐라! 팔과 뇌가 어찌 같다는 말이냐? 팔이  아프면 뼈를 긁어낼 수는 있지
만 어찌 두 개고를 쪼갤  수가 있다는 말이냐? 네놈이 관운장과 가까운 터라 내 
병을 기회로 원수를 갚으려는 수작이구나."
  조조는 그 말과 함께 좌우를 돌아보며 외쳤다.
  "여봐라, 이 놈을 옥에 가두고 그 속마음을 밝힐 때까지 고문하여라."
  그러자 가후가 나서며 만류했다.
  "화타와 같은 명의는 세상에서 다시 또 구할 수 없습니다. 결코 죽여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나 화타가 자기를  죽이러 온 것으로 믿고  있는 조조는 가후에게도 벌컥 
소리를 질러 꾸짖었다.
  "저놈이 의원임을 내세워 이 기회에 나를 죽이려 하는 수작이 바로 길평과 다
르지 않다. 어서 문초하여 실정을 밝히도록 하라!"
  조조가 길길이 뛰며 소리치자  좌우의 무사들은 화타를 끌어내려 옥에 가두었
다.

    화타의 <청낭서> 조조 또한 한줌 흙으로
  
  명의 화타는 조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화타의 치료를 거부한  조조는 병색
이 짙어져 맏이 조비로 하여금 왕위를 이어받게  하고 숨을 거둔다. 일세의 영웅
이며 당대의 으뜸 가는 조조의 마지막 길 또한 여느 사람과 다름없었다.

  감옥에 갇힌 화타는  날마다 엄한 문초를 받았다. 그런데 감옥을  지키는 졸개 
중에 오압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소 화타의 의술과  인품을 우
러르고 있었는데 죄 없이 고초를  당하고 있는 화타가 딱하게 여겨져 몰래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화타도 매우 고맙게 생각하던 중  어느 날 오압옥을 불러 말했
다.
  "나는 이제 곧 죽게 될 몸이오. 죽는  것은 한스럽지 않으나 다만 의술의 비결
인 <청낭서>를 세상이 전하지 못함이 한이오.  나는 그대에게 각별한 은혜를 입
었으나 갚을 길이 없어 마음이 무거웠소. 이제 내가  글 한 통을 써 줄테니 그대
는 내 집으로  가서 <청낭서>를 가져오시오. 그대로 하여금 책을  읽어 내 의술
을 잇게 하겠소".
  오압옥은 화타의 말에 몹시 기뻐하며 다짐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만약 그 책을 얻는다면  당장 옥사쟁이 노릇을 그만두고 의
원이 되어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주며 선생의 덕을 천하에 전하겠습니다."
  화타는 그 즉시 글을 써서 오압옥에게 주었다.     때마침 조조의 병이 위중해
졌다는 소문이 돌면서  궁문 안팎과 각 청의 경계가 엄해졌다.  오압옥은 화타로
부터 받은 글을 품에  간진한 채 틈을 내지 못해 10여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
러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칼을 든 무사 몇사람이 위왕의  명을 받든다며 우
르르 감옥으로 달려와  옥문을 열게 했다. 옥문을 열자 무사들이  안으로 달려오
고 얼마있지 않아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오압옥이 달려가 보니 칼을 든 
무사들이 돌아가며 말했다. 
  "대왕님의 명령으로 방금 화타를 죽였다."
  오압옥은 관을 사서 화타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낸 뒤 그날로 옥사쟁이를 그
만두고 금성으로 갔다.   화타의 집으로 찾아간 오압옥은 글을 보여 주고 <청낭
서>를 받아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옥리를 그만두고 의원이 되겠소. 천하의  명의가 되어 병든 사람을 구할 
것이오.  그의 아내는 남편의 말에 아무런 대꾸 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오압옥이 무심코 뜰을 내다보니  아내가 낙엽을 쓸어 모아 모닥
불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오압옥이 보니  그 낙엽과 함께 <청낭서>가 불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오?"
  오압옥이 달려가 급히 발로 불을 껐으나 이미 책은 다 타버리고 끝에 한두 장
만 겨우 남아 있을 뿐이었다. 오압옥은 벌컥 화를 내며 아내를 꾸짖었으나, 아내
는 펄펄 뛰는 남편에게 눈물을 머금으며 말했다.
  "설령 당신이 이  책을 읽어 화타처럼 유명한  의원이 된다 하더라고 만약 그 
의술 때문에 당신이 옥에 갇혀 죽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는 그 화근
이 될 책을 태워 버린 것입니다.
  오압옥은 어리석은 아내가  자기의 앞날을 걱정하여 그 <청낭서>를 태워버렸
다는 말에 꾸짖어도 소용 없음을 알고 길게 탄식만  할 뿐이었다.  이로 인해 화
타의 <청낭서>는 세상에  전해지지 못했다. 다만 닭이나  돼지를 거세하여 살찌
게 하는 등의 하찮은 것만 전해졌는데 타다 남은 끝의 한두 장에서 전해진 내용
이었다.  뒷날 사람들이 화타의 죽음을 시로 지어 탄식했다.
  화타의 선술, 장상군과 견줄 만하고
  담 안 들여다보듯 오장육부 훤휘 아내.
  슬프다 사람 죽고 글마저 끊어지니
  뒷날 사람들 청낭서 다시 못보네.

  조조는 화타가 죽은  후로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거기다가 오와  촉에 대한 
일을 어떻게 결정지어야 할지 근심하고 있는데 근신들이 들어와 알렸다. 
  "동오에서 사자가 글을 가지고 왔습니다."
  조조는 사자를 불러들이고 글을 읽어 보았다.
 
  신 손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천명이 주상께로 돌아갔음을 알고  있습니다. 엎
드려 바라건대 하루라도 빨리  대위에 오르시고 장수를 보내시어 유비를 쳐없애 
양천을 평정하옵소서. 양천이 떨어지면 신은 곧  따르는 무리들을 거느리고 항복
하겠습니다.

  뜻밖에도 손권이 자신을 한껏 높이며 스스로 항복해 오자 조조는 껄껄 웃더니 
문무관원들에게 글을 보여 주며 말했다.
  "이 아이가 나를 화롯불에 올려 앉히려는 수작이로구나."
  참으로 묘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원래  한 나라는 화덕으로 일으킨 나라이니 
한 황실을 뜻한 것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손권이 자신을 대위에 오르게 
함으로써 위험한 지경에 빠뜨리려는 것을 화로에 견주어 한 말일 수도 있었다.
  그러자 시중 진군등이 입을 모아 말했다.
  "한실은 이미 기운이 다해 기울어진 지  오래입니다. 전하의 공덕은 날로 높아
가니 천하의 백성들이  우러르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손권도  스스로 신
하 되기를 청하며  항복하니 이는 하늘의 뜻과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이 원하는 
것임을 뜻합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하늘의 뜻을  받드시고 백성들의 소원을 따
르시어 하루 빨리 대위에 오르시도록 하옵소서."
  조조는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그 말을 받았다.
  "내가 한조를 섬긴 지 오래다. 비록 공덕이 백성들에게 미쳤다고 하나 이제 왕
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름과 벼슬은 이미 오를대로  오른 것이다. 어찌 딴 마음을 
품을 수가 있겠느냐? 만약 천명이 내게 이르렀다면 나는 다만 주의 문왕과 같으
면 족하리라.  조조가 그렇게 잘라말했다.
  주의 문왕은 그  아들 주 무왕대에 이르러서야  천자가 되었으며 자신은 끝내 
은나라를 섬겼다. 곧  스스로는 천자가 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으나 
다음 대에 대한 양망을 암시한 말이기도 했다.  조조가 그렇게 말하니 여러 신하
들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있는데 사마의가 나서 손권의 일을 꺼냈다. 
  "지금 손권이 스스로 신하라고 일컬으며 따르니, 대왕께서는 그에게 벼슬을 내
리시고 유비를 막도록 하십시오."
  조조도 그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오와 촉을  싸우게 할 구실이 생겼으니 실로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조조는  곧 황제계 표문을 올려  손권을 표기장군 
남창후에 형주목으로 삼고  사자를 동오로 보내 조칙을 전하게 했다.  천자의 조
칙을 손권에게 전하게  한 조조는 이제 발을 뻗고  잘 수 있었으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밤 조조는 꿈을 꾸었는데 세  필의 말이 
한 구유에 머리를 박고 여물을 다투어 먹는  꿈이었다. 아핌이 되어서도 그 꿈이 
잊혀지지 않아 문안차 온 가후에게 물었다.
  "나는 오래 전에 말 세 마리가 한 구유통에서 여물을 먹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그 때는 마등 삼부자가 화근이  되리라 여겨 그들을 죽였으나 어젯밤에 또 그와 
똑같은 꿈을 꾸었다. 이 꿈의 길흉이 어떠한가?"
  가후가 조조를 안심시키려는 듯 길흉을 헤아려 주었다.
  "대왕께서는 길한 꿈을 꾸셨습니다. 녹마는 길조이며  그 말이 조로 모인 것인
데 대왕께서는 걱정하실 게 무엇입니까?"
  조는 구유토을 뜻하는 조자와 조조의 조자가 같으니 말들이 밖에서 돌아와 구
유의 여물을 먹는다는  뜻으로 둘러댄 말이었다. 그러나 세 마리의  말이 암시하
는 실제의  뜻은 사마의.사마사.사마소의 세  부자였다. 마침내  조가를 대신하여 
사마씨의 새로운 시대가 열림을 뜻하는 꿈이었으나 조조는 가후가 한 말을 좋은 
뜻으로 넘겨 듣고 말았다.  그날 밤이었다.  조조가 침실에 누워 있는데 삼경 무
렵이 되자 머리가 몹시  어지럽고 눈앞이 흐려 왔다. 잠을 이룰  수 없어 가까스
로 일어나 탁자에 엎드려 있는데 갑자기 비단을  찢는 듯한 소리가 났다. 조조가 
깜짝 놀라 소리나는 곳을 보니 홀연 눈앞에 복황후와 동귀인, 두 황자와 복완.동
승등이 나타났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스무여명은  모두 그에게 끔찍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었는데 음습한 구름 속에서 소리쳤다.
  "조조 네 이놈! 네 목숨을 내놓아라!"
  조조는 그들을  보자 몸을 떨며 급히  칼을 뽑아 허공을 향해  후렸다. 그러나 
그 칼이 서남쪽 전각 한  모서리를 베니 전각 한구석이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했
다.  조조는 그  솔리에 놀라 뒷걸음질치다 넘어졌다. 가까이서 모시던 신하들이 
그제야 달려와 조조를 부축해 일으켜 별궁에다 옮기고  보살폈다.  다음 날이 되
자 또 괴이스런  일이 일어났다. 전각 밖에서 남자와 여자들의  구슬픈 곡소리가 
울려 왔다.  그 소리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조조는 날이 새기가 무섭게 여
러 신하들을 불러 놓고 입을 열었다.
  "내가 말을 타고 싸움터를 누볐으나 요사스런  일은 믿지 않앗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일어나는 이 괴이한 일들은 대체 무엇인가?"
  "대왕께서는 도사들을 불러 초제를 베풀어 악귀들을 물리치도록 하십시오."
  신하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권했다.  그러나 조조는 고개를 젓더니  한숨 지으
며 탄식했다. 
  "성인께서 이르시기를 '하늘에 죄를 지은 자는  빌 곳이 없다'고 했다. 이제 나
의 천명이 다 된 듯싶으니 하늘에 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조는 신하들의 권고를 물리치고 말았다.  다음  날이 되자 조조의 병세는 더
욱 나빠져 눈앞도 잘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조조도 스스로  그 명이 다
했음을 알고 뒷일을 의논하기 위해 하후돈을 불러  오라 했다.  하후돈이 조조의 
부름을 받고 급히  전문으로 드는데 문든 음습한 구름 속에  복황후,동귀인과 두 
황자 및 ㅂ고완,동승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하후돈은 놀라 그 
자리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좌우 사람들이  하후돈을 부축해 나가 보살폈으나 
그 이후에는 일어나지 못하고 병들어 눕고 말았다.  조조는 다시 조홍과 진군,가
후,사마의 등을 불러 오게 했다. 그들이 조조의 병상 앞에 이르자 조조가 뒷일을 
부탁하려는데 조홍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옥체를 보중하시옵소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실 것입니다."
  그러나 조조는 조홍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채 이미 다가오는 죽음을 알고 
있다는 듯 조용히 뒷일을 당부했다.
  "내가 천하를 종횡한 지 30여 년에 모든 영웅들을 평정했으나 다만 강동의 손
권과 서촉의 유비만 남았다. 그러나 이제 내  병이 위중하니 그대들과 다시 의논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다.  특히 그대들에게 집안일을 부탁하려  하니 부디 
잘 돌봐 주기 바란다.   나의 맏아들 앙은 유씨의 소생이나  불행히도 지난날 완
성싸움에서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지금  나에게는 그대들도 잘  알다시피 변씨 
소생의 비와 창, 식과  웅, 이렇게 내 아들이 있다. 내가 평생  사랑한 자식은 셋
째 식이었으나 겉으로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성실함이 부족하며 술을 좋아하고 
태도가 단정치 않아  세자로 세우지 않았다. 둘째 창은 용맹스럽기는  하나 지혜
가 모자라고, 넷째  웅은 몸이 약해 앓기를  자주 하니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거기에 비해 맏이  비의 사람됨은 인정이 두텁고  공손한데다 치밀하니 내 뒤를 
이을 만하다. 경들은 내가 죽고 없더라도 그를 도와 내 뜻을 이루게 하라."
  조조가 후사를 정해 부탁하니,  그 자리에 있던 조홍 등은 그  말이 조조가 남
긴 마지막 말이라 여기고  눈물을 흘리며 그 말을 받들었다.   조조는 근시를 시
켜 평소 간직해 오던 좋은 향과 옥기들을 가져 오게 하여 자기를 섬기던 시녀들
에게 나누어 주며 말했다.
  "내가 죽은 뒤에 너희들은 부지련히 여공을 배우도록 하라. 길쌈을 하고 그 실
로 신이라도 만들어 팔면 너희들이 쓸 돈은 충분히 벌 수 있을 것이다."
  조조는 다시 첩들을 불러 말했다.
  "너희들은 동작대에 모여 살며  매일 제사를 올리도록 하되 상식을 올릴 때마
다 기생들에게 춤을 추고 노래하게 하라."
  또한 조조는 뒷사람들이 자기의 시체를 파헤칠까 봐 염려하여 다음과 같은 말
을 당부했다.
  "창덕부 강무성밖에 거짓 무덤  일흔 개를 만들어 나의 무덤이 어느 것인가를 
알지 못하게 하라."
  조조는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끝내며 긴 탄식과 함께 눈물을 주르르 쏟더니 마
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나이 예순 여섯이요, 건안 25년 봄인 정월이었
다.  일세의 영웅이며 무장으로서나 치자로서나  당대의 으뜸가는 인물이었던 조
조의 마지막 길은 천하의 패자답지 않은 조용하고  담담한 것이었다.  후세 사름
들이 한 편의 시를 지어 조조의 일생을 노래했다.
 업군 업성에 물은 장수이니
 이 땅에서 나야 할 이인이 일어났네.
 계략과 빼어난 일, 글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임금과 신하가 형제와 부자같이 지냈다.
 어찌 영웅을 속된 마음으로 알랴.
 들고 나는 일 또한 여느 사람 모르네.
 큰 공 큰 죄 두 사람이 아니고 
 악행과 선행이 모두 한몸이었네.

 글 빼어나고 패기 드높아
 어찌 속된 무리와 함께 될 수 있으리.
 창을 놓고 대를 쌓아 태행산과 맞서니
 기운과 운세 따라 쳐들기도 굽히기도 했네.
 이런 사람이 어찌 역적질은들 못할까.
 작게는 패자요, 크게는 왕이네.
 패왕되어 아녀자도 울리니
 불평해본들 어찌할 수 없구나.
 
 목숨 비는 일 빌어야 소용 없음 알았고
 여인들에게 향 나누니 무정하다 못하리라.
 오호라!
 옛사람 일 크고 작음 가리지 않으나 
 적막하든 호화롭든 모두 뜻이 있네.
 서생들아, 무덤 속 사람 가벼이 말하지 말라.
 오히려 무덤 속 그 사람이 서생 행태 비웃겠네.

  조조가 죽자 모든  문무백관들이 모여 소리 높여  통곡하며 발상을 하는 한편 
아들인 세자 조비,  언릉후 조창, 임치후 조식,  소회후 조웅에게 부음을 보냈다. 
그런 다음 조조를 염하여 금관에  들인 뒤 은으로 만든 곽을 둘러 밤을 도와 업
군으로 갔다.  조비는  여러 관원들을 거느려 성 밖 10여  리까지 나아가 통곡하
며 엎드려 곡을 하는데  곡소리가 언제 끝날지 몰랐다. 그때 문든  한 사람이 일
어나 조비에게 말했다.
  "바라건대 세자께서는 잠시 슬품을 누르시고 대사를 의논하십시오."
  모두 그를 보니  그는 다름아니 중서자 사마부였다.  사마부는  여러 관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위왕께서 돌아가셨으니 천하가 들썩일 것입니다.  급히 세자를 받들어 왕위를 
이어 천하의 민심을 안정시키도록 하십시오. 지금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닙니다."
  사마부의 나무라는 듯한 말투에  여러 신하들이 조비를 대신하여 목소리를 높
이며 물었다.
  "세자께서 마땅히 왕위를 이으셔야 하나 아직 천자의 조칙을 받들지  못했소이
다. 어찌 함부로  즉위식을 행할 수가 있겠소?"
  그러자 병부상서 진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대왕께서 밖에서 돌아가셨다  해서 사랑받았던 아들들이 제각기 왕위를 잇겠
다고 나서서는 아니 될 것이오. 그렇게 되면  골육간에 변고가 일어나게 되어 사
직이 위태로워지고 말 것이오."
  진교는 그 말과 함께 칼을 뽑아 소매를 후려쳐 잘라 보이며 외쳤다.
  "오늘 세자께서는 왕위를 이으셔야 합니다. 만약 딴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소맷자락 자르듯 베어 버릴 것이오."
  진교의 험악한 기세에  눌려 여러 관원들은 두려운  얼굴로 입도 열지 못하고 
있는데 사람이 와서 알렸다.
  "허창의 하흠께서 이르렀습니다."
  조조의 팔다리와 다름없는 화흠이 급히 말을 달려오자 여러 신하들은 그가 온 
까닭을 알 수 없어 놀라며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화흠이 들어오자 백
관들이 물었다. 
  "무슨 일로 급히 오시었소?"
  화흠이 백관들을 둘러보며 나무라듯 대답했다.
  "지금 위왕께서 돌아가시어  천하의 인심이 어지러운데 경들은 어찌하여 세자
를 왕위로 받들지 않고 있소?"
  "그렇지 않아도 왕후 변씨의 뜻을 받들어  세자를 왕으로 모시려는 참이오. 다
만 천자의 조칙을 받들지 못해 의논하던 중이었소."
  백관들이 그렇게 대답하자 화흠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
다.
  "내가 이미 천자의 조칙을 받아 왔소."
  화흠은 원래가 한실을 받들기보다 조조를 따르던  사람이었다. 조조가 죽자 바
로 조서를 만들어 헌제에게 강요했다. 헌제는 하는  수 없이 조비를 위왕으로 삼
고 승상에 기주목을 겸하게 하는 조칙을 내린  것이었다.  천자의 조칙까지 얻자 
조비는 지체하지 않고 그날로 왕위에 올랐다.  조비는 여러 문무관원들의 하례를 
받고,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크게 경하의 잔치를 열었다. 잔치 기운이 무르익어 
갈 즈음 문득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언릉후 조창이 군사 10만을 거느리고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조비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형제  중 용맹이 뛰어나 
창이 군사를 이끌어 온다는 소리에 조비가 낯빛을 달리하며 신하들에게 물었다.
  "수염 노란 아우는 원래 성정이 거칠고  무예에도 능하오. 지금 군사를 이끌어 
온다 하니 반드시 나와 왕위를 다투려는 뜻일 것이오. 어찌했으면 좋겠소?"
  그러자 계하에서 한 사람이 나서며 소리쳤다.
  "바라건대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제가 언릉후를 만나 말 한 마디로 그를 물리치
겠습니다."
  조비가 바라보니 그는 간의대부 가규였다. 그  자리에 있던 관원들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소이다. 대부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맡아 하겠소?"
  조비도 기뻐하며 대부로 하여금 성 밖으로 나아가  조창을 맞게 했다.  가규가  
성 밖으로 나가 조창이 머물고 있는 곳에 이르자 창이 대뜸 먼저 물었다.
  "아버님의 옥새와 인뒤웅이는 어디 있는가?"
  그 물음에 가규가 정색을 하며 되물었다.
  "집안에는 맏이가 있고 나라에는 세자가 있는 법입니다. 둘째 왕자이신 군후께
서는 물어 볼 바가 아니지 않습니까?"
  가규의 엄한  목소리에 조창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가규가  성 안으로 
조창을 인도하자 말 없이  뒤따랐다.  창이 성 안으로 들어가자  궁문 앞에 이르
자 가규가 문초라도 하듯 조창에게 물었다.
  "군후께서 이곳에 오신  뜻은 분상하려 오신 것입니까,  아니면 왕위를 다투러 
오신 것입니까?"
  "나는 분상하려 왔을 뿐 딴 뜻은 없소이다."
  조창이 얼른 머리를 내저으며  그렇게 대답하자 가규가 다시 나무라듯 되물었
다.
  "군후께서 다른 뜻이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장수와 군마를 거느리고  오셨습니
까?"
  조창도 그 말에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얼른 따르던 군사들을 물렸다. 조
창이 군사들을 물러가게 하고 홀로  궁 안으로 들어오자 조비도 마음을 놓고 반
가운 마음으로 맞았다. 두 사람은 아버지를 여윈  슬픔에 서로 끌어안고 목을 놓
아 울었다.  분상을  마친 조창은 자기가 이끌고 온 군마를  모두 조비에게 바쳤
다.  자신이 군마를 이끌어 온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님을 밝혀 두고자 함
이었다. 조비는 아우에게 군마를 다시 돌려 주며  언릉 땅으로 돌아가 그곳을 지
키라고 당부했다.   조창이 언릉 땅으로 돌아가고 업성이 안돈되자  조비는 건안 
25년의 연호를 연강  원년으로 고쳤다.  이어 문무백관들의 벼슬을  높이고 상을 
내려 사기를 드높였다.  가후를 태위로 삼고, 화흠은  상국으로, 왕릉은 어사대부
로 삼았다. 그리고 다른 문무백관들에게도 상을 내려 위로했다.  조비는 또 아버
지 조조의  시호를 무왕이라 내리고  업군 고릉에 장사지냈다.  그리고 우금으로 
하여금 그 무덤을 지키게하여 고릉으로 떠나게 했다.   우금이 조비의 영을 받들
어 그곳에 가보니  무덤 안의 흰 벽에는 군사들이  싸우는 그림 한 편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니 관운장이 물로 칠로군을 무찔렀을 때의 광경이었다. 
관운장이 윗자리에 위풍당당히 앉아  있는데 방덕이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우금  자신은 땅에 엎드려 살려 달라고 애걸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은 조비가 그리게 한 것이었다.  전에 우금이 관 공과 싸
워 패해 사로잡혔을  때 절개를 지켜 목숨을  버리지 못하고 투항했다가 동오가 
살려 주어 되돌아온 것을 보게 된 이후로  조비는 우금을 비루하게 여겼다. 이에 
미리 사람을 시켜 무덤 벽에  그 그림을 그려 놓게 하고 우금을 그리고 보낸 것
이었다. 그 그림을 보게 함으로써 스스로의 욕스런  지난날을 되돌아 보게 한 것
이었다.  우금은 그림 속에 그려진 자신의  꼴을 보자 부끄러움과 괴로움으로 견
댈 수 없어 울화로 마음  속을 끓이다 마침내 병을 얻어 자리에 눕더니 숨을 거
두고 말았다.  조창이 언릉 땅으로 돌아간 이후  어느 날 상국 화흠이 넌지시 조
비에게 말했다. 
  "언릉후는 군마를 대왕께 바치고 자기 땅으로 돌아갔습니다만 두 아우이신  임
히후 식과 소회후 웅은  끝내 분상도 오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그  죄를 물어 기
강을 바로잡으셔야 합니다."
  조비도 화흠의  말을 옳게 여겼다.   조창이 다녀간 뒤로 마음에  걸리는 것은 
넷째보다 셋째인 식이었다.  식은 한때 아버지  조조가 세자 자리를 그에게 물려 
주려 했을 만큼 재주있는 아우인데다 아직도 그를 세자로 받들려는 무리들이 있
었다. 이에 조비는 화흠의  말에 따라 사신을 보내 장례에도 오지  않은 죄를 물
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지 않아 소회후에게  갔던 사자가 돌아와 눈물을 흘리
며 알렸다. 
  "죄를 묻는 영지를 받으시자 병약한 마음에 두려움이 일었던 듯 그만 목을 매
어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넷째 아우 웅은 항상 병이 들어 앓는 몸인데닥 마음까지 약해 죄를 묻자 그만 
겁이 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조비가  그제서야 그에게 죄를 물은 것을 
뉘우쳤다. 조비는  조웅을 후하게 장사지내  주게 하고 벼슬을  올려 소회후에게 
소회왕으로 봉했다.  다음 날이 되자 임치로  갔던 사자가 돌아와 임치후 조식을 
만난 일을 알렸다.
  "임치후는 날마다 그의 신하 정의, 정이 형제와 함께 술을 마시며 지내는데 그 
태도가 오만스럽고 무례했습니다.  신이 들어가 왕명을 전하려  하는데도 일어나
지도 않았으며 정의만이 신을  보고 개 꾸지지듯 험한 말로 꾸짖었습니다. '지난
날 선왕께서는 우리 주인을  세자로 삼으시려 했는데 간신들이 가로막아 금상에
게로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장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형제지간에 
어찌 죄부터 묻는다는  말인가? 친형제에게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  뿐만 아니
라 정이도 덩달아 나서며  저를 나무랐습니다. '우리 주공께서는 그 재주를 천하
에 떨치신는  분으로 마땅히 왕위를  이어받으서야 할 분이시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셨으니 너희들 조정의 신하들은 어찌  이리도 인재를 몰라 보느냐?' 정
이가 그렇게 신을 꾸짖자 임치후도 벌컥 성을 내며 좌우 사람을 시켜 신을 몽둥
이 찜질하여 내쫓았습니다."
  조비는 그 말을 듣자 격분했다. 곧 허저에게 소리쳐 영을 내렸다.
  "그대는 호위군 3천을 이끌고 임치로 가서 조식의 무리를 잡아 대령하라!"
  허저는 그 길로 군사 3천을 거느리고  바람처럼 임치로 내달았다. 임치성에 이
르자 성을 지키는 장수가  허저를 가로막았다.  허저는 여러 소리  할 것도 없이 
한칼에 그 장수의 목을 베고 말았다.
 허저가 그길로 바로 성 안으로 뛰어들어가니 그 기세에 겁을 먹어 감히 덤벼드
는 자가 없었다.  허저가 부중 당에 이르러 보니, 임치후  조식은 정의,정이 형제
와 함께 술에 취해 코를 곯며 자고 있었다.  허저는 그들을 꽁꽁 묶어 수레에 싣
고 조식을 따르는  무리들을 사로잡아 업군으로 돌아왔다.  조비는  성난 눈으로 
정의,정이 형제를 노려보더니 영을 내렸다. 
  "우선 그 두 놈부터 목을 베어라!"
  조비의 영이 떨어지자  그들 형제는 이끌려 나가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조식
을 따르는 문사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이었다.
  정의의 자는  정례요, 정이의 자는 경례로  패군 사람이었다. 일찍이 글재주가 
뛰어나 이름을 떨쳤으나 조식을 따르다 덧없이 죽으니 그들을 아깝게 여기지 않
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조비의 어머니 변씨는 막내아들 조웅이  목을 매 자결
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식마저 
사로잡혀 오고 그의 신하 정의 형제가 죽임을 당했다는 말을 듣자 깜짝 놀라 내
전으로 달려나왔다.  변씨가 황급히 조비를 청해  부르며 전에 이르자 조비는 황
망히 어머니를 맞아 절하며 뵈었다.  변씨가 눈물을 흘리며 조비에게 말했다. 
  "네 아우 식이 평소 술을 좋아하며 몸가짐에 거리낌에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건 자기의 재주를  믿고 제 마음대로 구는 것일 뿐이다.  네가 같은 피
를 나눈 형제간의  정리를 생각해서라도 그의 목숨만은 살려 주도록  하거라. 그
리하면 내가 죽어서라도 편히 눈을 감을  있을 것이다.
  조비는 어머니의 간곡한 청을 물리칠 수 없었다. 
  "저 역시 그 아이의 재주를 아끼는  터입니다. 어찌 그 애를 죽이겠습니까? 다
만 그 버르장머리 없는 성정을 고쳐 주려 했을 뿐입니다."
  조비가 그렇게 말하며 안심시키자 변씨는 눈물을  씻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조
비는 편전으로 나가 조식을 불러들이라고 분부를  내렸다. 그때 화흠이 다가오더
니 가만히 물었다.
  "조금 전에  태후께서 나오셨는데 혹시 전하께  자건을 죽이지 말라고 청하러 
오신 것이 아니십니까?"
  "그러하오."
  조비가 무건운 목소리로 대답하자 화흠은 근심스런 얼굴로 말했다.
  "자건은 재주가 있고 지혜가 있으니 끝내  못 속에서만 있을 인물이 아닙니다. 
빨리 없애 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말씀을 어길 수는 없지 않소."
  조비가 퉁명스런  어투로 대답했다. 화흠은  생각에 잠기다 조비의  귀 가까이 
입을 대고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자건은  입을 열기만 하면 바로  문장을 이룬다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업슨ㄴ 말입니다. 주상께서는 그를 불러  재주를 한 
번 시험해 보십시오. 만약  그 말대로 글을 잘 짓는다면 살려  주시어 귀양을 보
내시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천하 문사들도 뒷공론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실로 묘책이 아닐 수 없소."
  조비가 머리를  끄덕이며 화흠의 말에  찬동했다. 화흠의 말대로만  하면 천하 
선비들의 원성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식을  불러들이게 했다.  조식은 조비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엎드려 죄를 빌었다. 
  "술에 취해 앞뒤를 헤아리지 못하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형님께서는 
너그럽게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자 조비는 조식을 굽어보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으로 말한다면 너와  나는 형제이나 예로 보면  임금과 신하이다. 그런데도 
너는 어찌 감히  네 재주만을 믿고 예를 우습게  여겼느냐? 이제 임금과 신하의 
예로 너에게 명을 내릴  것이니 너는 내 말을 잘 듣도록  하라. 아버님께서 살아
계실 때에 너는  항상 글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뽐냈으나 나는 그 글이 정말 
네가 지은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니 이제 내가  너의 글솜씨를 한 번 시험해 
볼 것인즉 너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틈을 줄 테지 그 사이에 시 한수를 짓도록 
하라. 만약 시를 잘 짓는다면  살려 둘 것이오, 만약 잘 짓지 못한다면 방자하게 
군 죄까지 더해 그 죄를 물을 것이다.   그러자 조식이 얼굴을 쳐들며 흔연히 대
답했다. 
  "바라건대 시제를 주십시오."
  그 말에 조비가 주위를  둘러 보았다. 벽에는 마침 수묵화 한  폭이 걸려 있었
다. 두 마리의 소가 흙담 옆에서 싸우다  한 마리가 상대에게밀려 우물에 떨어져 
죽는 그림이었다.  조비가 그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금림을 제목으로 삼으라. 그러나 시 속에 '두 마리 소가 흙담 옆에서 싸우
다 한 마리는 우물에 떨어져 죽었다'는 말이 한 마디도 들어가서는 아니 된다."
  그 자리에 있던  문무백관들은 조비의 가혹한 명에  깜짝 놀라며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러나 조식은 담담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한 걸
음 두 걸음, 그리하여 일곱 걸음을 옮긴 후에 낭랑하게 시를 ㅇ기 시작했다.
  두 고깃덩이가 함께 길을 가는데
  머리 위에 오목한 흰 뼈가 달렸다.
  서로 볼고한 산 밑에서 만나니
  홀연 머리 맞부딪쳐 서로 받았네.
  두 적수가 다 함께 굳세지 못해
  한 고깃덩이는 토굴 속에 스러졌네.
  힘이 없어 쓰러진 것이 아니라
  넘치는 기운 한꺼번에 내쏟지 못함일세.
  조식이 시를 다 읊자 그 자리에 있던 문부백관들은 모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을 나타내는 직접적인 말은 한 마디도  넣지 않고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그  그림을 읊는 훌륭한 시  한 편을 지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비는 
거기서 조식을 용서해 주지 않았다. 다시 조식에게 말했다. 
  "일곱 걸음 만에 시를 지었으나 너의 요란스런 이름에 비해 그건 시간을 너무 
많이 준 것 같다. 정말 재주가 있다면 말이  떨어지는 즉시 시를 지을 수 있어야 
한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조비의 물음에 조식이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짓겠습니다. 제목을 주십시오."
  조비가 조식을 굽어보며 새로운 시 제목을 말했다.
  "너와 나는 형제간디다. '형제'란 말을 시제로 삼되 '형'이니 '아우'니 하는 말이 
들어가서는 아니 된다.."
  조식은 그 말을 듣자 생각에  잠기는 기색도 없이 그 자리에서 낭랑한 목소리
로 시 한수를 읊었다.
  콩깍지를 태워 콩을 볶으니
  콩이 솥 안에서 울고 있네.
  본디 한 뿌리에서 났는데도
  어찌 이다지도 급히 볶아대는가.
  조비는 조식이 콩과 콩깍지로 자기  형제의 일을 비유한 시를 읊는 소리를 듣
자 그제야 뉘우치는 마음이  일었다.  문득 눈물을 흘리며 새삼  형제의 정을 되
살리고 있는데 어머니 변씨가 편전 뒤에서 달려나오며 나무랐다.
  "형이 되어 어찌 그리 아우를 괴롭힌다는 말이냐?"
  어머니 변씨의 말에 조비는 급히 용상에서 내려오며 대답했다.
  "나라에 법이 있으니 어찌 그 법을 어길 수가 있겠습니까?"
  조비는 법을 핑계대어 그렇게 대답한 후 조식의 벼슬을 안향후로 낮추고 임지
로 가게 했다. 조식은 절하며 하직한 후  형이 있는 위왕궁에서 쫓겨나듯 물러났
다. 그런데 봉건  중국에서 드문 예가 조씨  형제의 경우이다. 유교 도덕에 의해 
지배당하던 그 당시에 부모 자식의 단절이나 형제간의 불화는 다른 나라에 비해 
드물었다.  그러나 조비의  동생 색은 물론 창에 대한 비정함은  그 뒤에도 이어
졌다. 조비가 왕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가혹한 처사는  하지 않
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란 높은 지위에  오르면 누구나 자기를 앞지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권력자는 자기보다 명
성이 높거나 인기가  있는 사람을 몹시 싫어한다. 설사 그  사람이 육친간이더라
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비는 이후에도 식에게  근거를 마련할 
땅도 주지 않고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게 했으며  끝내 궁에 드는 것조차 막았다. 
조식은 건안 시대의 대표적인 문사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그의 문집으로는 조
자건집이 있다. 일곱 걸음의 시는 그의 문집에는  들어 있지 않으나 다른 서적에 
실려 전해진다.  중국  시인 사이에 우상화 되기도 했던 조식은  형 조비와의 불
화로 인해 한과 울분으로 세월을 보내다 병이 들어 마흔한 살에 죽고 말았다.

  조비는 왕위에 오른 뒤로 법령을 고치고 자신의 위세를 드높였는데 한제를 핍
박함은 아버지인 조조 때보다  더 심했다. 이 일은 세작에 의해  곧 성도에 알려
졌다.

    조비 위황제에 오르다
  한편 한중왕 유비는 조조가 죽고  그 아들 조비가 뒤를 이었는데 천자를 가혹
하게 핍박하고 있다는 세작의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한중왕 유비는 문무백관
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조조가 죽고 그 아들  조비가 왕위를 이었다는데 천자를 핍박함이 오히려 그 
아비보다 더하다고 하오. 그런데도 동오의 손권은  스스로 조조의 신하임을 자청
하고 있으니 어찌 한탄할 일이  아니오? 이제 내가 먼저 동오를 쳐서 운장의 원
수를 갚고 그 다음에 중원으로 밀고 들어가 그 역적놈을 없애겠소."
  그러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요화가 엎드려 목놓아 울며 말했다.
  "관 공 부자께서 죽임을 당하신 것은  실은 유봉과 맹당 때문이었습니다. 바라
건대 그 두 놈부터 죄를 물어 죽인 다음 동오로 나가십시오."
  유봉과 맹달로부터 매정하게 원군을  거절당한 요화가 그 한을 풀고자 유비에
게 청한 말이었다. 
  "그 두 놈을 잡아로라!"
  유비도 그들 둘이  이가 갈리도록 괘씸한 것은 요화와 다름없었다.  즉시 영을 
내려 그 두 사람을 잡아오게 하자 공명이 나서며 말렸다. 
  "아니 됩니다. 그 일은 서서히 손을 써야지  너무 급히 서둘다 보면 변고가 생
길 지도 모릅니다. 그 둘을 군수로 높인 다음  따로 떼어 놓은 뒤에 사로잡는 것
이 좋습니다."
  한중왕은 공명의 말을 듣자 얼른 그 뜻을  헤아렸다. 그들을 사로잡아 오게 하
려다 다툼이 일거나 혹은 그  둘을 위나라에 투항하게 만드는 결과가 될지도 모
를 일이었다. 이에 한중왕은 공명의 말을 좇아  사람을 보내 유봉의 벼슬을 올리
고 면죽 땅을 지키도록 했다. 맹달은 상용태수로  높여 그대로 머물게 하여두 사
람을 떼어  놓았다.  그런데 그날  모였던 신하 중에 팽양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맹달과 교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팽양은 집으로 가서  그 사실을 글로 쓰고 심복
에게 그 글을 주어 맹달에게 전하게 했다.   그런데 그 심복이 성도 남문을 빠져 
나가다 순시를 돌던  마초의 군사들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마초가 그  사자를 문
초하던 중 그 글을 찾아 내어 읽어 보고는  크게 놀랐다. 마초는 먼저 팽양의 속
마음을 엿보기 위해 몸소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마초가 찾아온  까닭을 알 리 
없는 팽양은 마초를 반갑게 맞아들이며 술상을 차려  대접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마초가 넌지시 팽양의 마음을 떠보았다.
  "지난날 한중왕께서는 공을 끔찍이 높이시었으나 요즈음은 서슴없이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그 늙은 자가  이미 정신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나를  업신여기고 있소. 내가 
반드시 그 앙갚음을 하고야 말겠소."
  마초도 그 말을 듣자 맞장구를 쳤다. 
  "실은 나 역시도 원한을 품은 지 오래요.  그러나 지금은 어찌할 수 없어 한을 
달래고 있을 뿐이오."
  그러자 팽양이 놀라운 소리를 했다.
  "그렇다면 망설일 것이  없소. 공께서 거느린 군마를  일으키시고 맹달과 짜고 
쳐들어 가면 나는 서천의 군사를 거느려 호응할  것이오. 그렇게 되면 대사는 능
히 이룰 수 있을 것이오."
  마초는 팽양이 그렇게 말하자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
섰다.
  "선생의 말씀이 어긋남이 없소이다. 내일 다시  와서 이 일을 의논하도록 합시
다."
  팽양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렇게 말한 뒤  팽앙의 집을 나섰다.   마초는 그 
길로 팽양의  글을 가지고  한중왕에게 가서 팽양이  꾸민 일을 자세히  고했다.  
한중왕은 크게 노하여  당장 팽양을 잡아다 옥에 가두고 문초하게  했다. 팽양은 
그제야 자신이 경솔했음을  뉘우쳤으나 소용 없는 일이었다.  한중왕  유비가 공
명에게 물었다.
  "팽양이 나를 거스릴 뜻을 품었으니 어찌했으면 좋겠소?"
  공명이 서슴없이 자르듯 말했다.
  "팽양이 비록 미치광이  같은 선비라 하나 살려  두면 뒷날 또 변고를 일으킬 
것입니다. 뒷날의 화근을 없애도록 하십시오."
  공명이 그렇게 말하자 한중왕도 지체하지 않고 그를  목베게 했다.  팽양이 옥
에 갇힌 채 목이 떨어졌다는 소식은 상용  땅의 맹달에게도 전해졌다. 맹달은 그 
소식을 듣자 불길한 예감이라도 드는 듯 놀라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때 문득 성도로부터 사자가 와서 유봉에게 한중왕의 영을 전했다. 
  "면죽태수로 봉하니 즉시 임지로 떠나라는 분부이십니다."
  유봉은 한중왕의 명을  받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로 맹달과  헤어져 상용을 
떠나 면죽으로 갔다. 유봉이  떠나가자 맹달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지 못했다. 관
우게게 구원병을 보내지  않아 끝내 죽게 만든  일이 마음에 걸리는데다 유봉을 
불쑥 면죽으로 보내는 것도 이상했다.  맹달은  급히 상용 방릉의 도위인 신탐과 
신의 형제를 불러들이고 의논했다.
  "나는 원래 법효직과  함께 한중왕이 서천을 얻을 때 콘  공을 세웠다. 그런데 
효직은 이미 죽어 없는데다 한중왕은  지난날의 공을 모두 잊고 나를 죽이려 하
고 있다.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그러자 신탐은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는 듯 맹달에게 말했다. 
  "그 일이라면 제게 한 계책이 있습니다.  이 계책에 따르신다면 한중왕은 공의 
손가락 하나 해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게 어떤 계책인가? 어서 말해 보라."
  맹달이 반색을 하며 대답을 재촉했다. 
  "우리 형제는 원래부터 위에 몸을 위탁하려  한 지 오래였습니다. 공께서는 글
을 써서  한중왕에게 알리고 벼슬을  내놓은 다음 위왕에게로  가십시오. 그러면 
위왕 조비는 반드시 공을  무겁게 쓰실 것입니다. 우리 형제도 곧  공을 따라 위
로 가겠습니다."
  신탐이 맹달에게 위에  투항할 것을 권했다. 굳이 계책이랄 것도  없었으나 맹
달은 몹시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위급함을  깨닫고 있는 터라 더 머뭇
거릴 까닭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벼슬을 내놓겠다는 뜻을 밝힌  글을 써서 사
자로 하여금 한중왕에게  전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40여 기만을  거느리고 위
로 달려가 항복해 버렸다.   맹달이 보낸 사자는 한중왕에게 맹달이  써 준 글을 
바쳤다. 한중왕은 맹달의 글을 뜯어보았다.
  신 맹달은 엎드려 아룁니다.  신은 지난날 앞으로 이윤, 여상이 나라를 일으킨 
공업을 이루고자, 제환공과  진문공처럼 패후의 대업을 이루시려는  전하를 받들
었습니다. 전하께서  오,초에서 그 발판을 삼으실  때 천하에서 빼어난 인재들이 
전하의 덕망을 우러러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신이 전하께 몸을  의탁한 이
래 그 잘못이 산같이 많음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으니 대왕을 노엽게 해드린 적
이 어디 한두  번이겠습니까?  지금 전하의 조정에는  빼어난 인재들이 모여 있
어, 신은  안으로는 전하를 받들 만한  그릇도 못 되고 밖으로는  장수의 재질도 
지니지 못했으니 공신으로  자처하기가 부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이 듣기
로 범여는 구천을 받들어 오를  멸해 상장군이 되었으나 뒤에 오호에 배를 띄워 
은둔했습니다. 또한 구범도 진문공을 도와 패업을  이루었으나 문공이 자기의 죄
만 따져 황하에서  사죄하고 강을 따라 떠났다고 했습니다. 또한  구범도 진문공
을 도와 패업을  이루었으나 문공이 자기의 죄만  따져 황하에서 사죄하고 강을 
따라 떠났다고  했습니다. 공을 이루었을 때  물러나는 것은, 나아가고 물러섬을 
분명히 하려는 뜻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신은 원래 재주가 없고  세운 공도 없
이 지금까지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진 이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때 앞
으로 다가올  부끄러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날  신생은 지극한 
효자였으나 도리어 부모의  미움을 샀고, 자서는 오와 부차를 잘  받들고도 임금
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 몽념은  북방의 흉노를 막아냈으나  조고의 음해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악의는 제나라를 쳐 70여 성을  빼앗았으나 참
소를 당했습니다. 신은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비통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눈
물을 흘렸습니다만 이제 스스로가 그런  일을 당하고 나니 더욱 슬퍼 가슴이 아
플 따름입니다. 거기다가 지난번 형주가 적의 손에  넘어간 일은 어찌 신의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신은 스스로 상용 땅을 돌려드리고 떠나고자 
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저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려  주시고 불쌍
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신은 하찮은 소인이라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하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신이 듣건대 '사귀기를 끊으며  나쁜 말이 나지 않게 하고, 떠
나가는 신하는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신이 삼가 군자의 가르침을 따르려 
하니 전하께서는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면 더 이상 고마움이 없겠습니다.
  한중왕은 그 글을 다 읽자 글을 찢으며 크게 노했다. 
  "되지 못한 놈이 나를 거스르며 어찌 감히 글로 나를 놀리려 든단 말이냐? 내
가 이놈부터 사로잡고 말리라!"
  곧 군사를 일으킬 기세로 그렇게 외쳤다.   그러나 공명이 나서며 한중왕을 만
류했다.
  "그러실 것까지 없습니다. 유봉을 시켜 맹달을  사로잡게 하여 두 호랑이가 서
로 물어뜯도록 하십시오. 유봉은 맹달을 죽이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간에 반드시 
성도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때에 맹달을 이끌어 오면  곧 두 사람에게 죄를 묻고 
유봉만이 돌아오더라도 그때  처결하면 됩니다. 이대로 군사를  이끌었다간 자칫 
일을 그르칠 수가 있습니다."
  유비가 그 말을 듣자 치솟는 화를 억눌렀다.  그러고는 공명의 말에 따라 사자
를 면죽으로 보내  유봉에게 맹달을 사로잡으라는 영을 전하게 했다.  유봉은 한
중왕의 영을  받들어 곧 군사를 이끌어  맹달을 사로잡으러 성을 나갔다.   한편 
50여 기를 거느리고 위나라로  향한 맹달은  밤을 도와 달려가 허창에 이르렀다.  
조비는 그때 문무 신하들을 모아  놓고 앞일을 의논하고 있었는데 문득 촉의 장
수 맹달이 투항해 왔다는  말을 듣자, 얼른 그를 불러들이게 한  뒤 엄함 목소리
로 물었다. 
  "네가 여기 온 것은 거짓으로 항복하려 함이 아닌가?"
  조비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묻자 맹달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전에 관운장이 위급했을 때 신이 구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한중왕은 신을 죽
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두려워 이곳으로  왔을 뿐 결코 다른  뜻이 없으니 
부디 너그러이 거두어 주십시오."
  조비는 그래도 선뜻 믿지 못하고 있는데 문득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유봉이 군사 5만을 이끌고 양양성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싸움을 돋우며 하
는 말이 다만 맹달 한 사람만 죽이고 물러나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조비는 맹달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조비가 좋은 기
회라 여기고 맹달에게 말했다. 
  "네가 과연 진심으로 항복했다면 가서 유봉의 목을 베어 오라. 그러면 네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으리라!"
  그러자 맹달이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굳이 군사를 움직이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가서 이로움과 해로움을 따져 유
봉을 달래겠습니다. 그리하여 유봉도 대왕께 투항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조비는 크게 기뻐하며 맹달에게 양양,번성을 지키게 하고 산기상시,건
무장군,평양정후에 신성태수의 벼슬을 내렸다.  그때 양양은 하후상과 서황이 지
키고 있었다.  이들이 기회를 보아 상용의  여러 고을을 빼앗으려 하고  있을 때 
맹달이 이를른 것이었다. 맹달은 양양에 이르러 두  장수와 예를 나눈 후 유봉이 
있는 곳을 물었다.
  "성에서 50여 리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있소."
  맹달은 그 말을  듣고 곧 글 한 통을 쓴  후 사람을 시켜 유봉에게 전하게 했
다. 한중왕이 전에 관  공을 구원하지 않은 죌르 물을 것인즉  자기처럼 위에 투
항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유봉은 맹달과는 달랐다. 그 글을 읽더니 글을 북
북 찢으며 외쳤다.
  "이 도적은 전에 나에게 숙질간의 의를  저버리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시 
부자간의 의마저 끊게 하여 나를 불충불효한 사람으로 만들려 하는구나."
  유봉은 그  자리에서 맹달의 글을 가지고  온 사자의 목을 베게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기가 바쁘게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움을 걸었다.   맹달도 유봉이 
사자를 목베고 군사를 이끌어  왔다는 것을 알자 화를 발끈 냈다.  곧 군사를 이
끌어 유봉의 군사와 마주한 채 등굴게 진을 벌여  세웠다.  유봉이 먼저 문기 아
래로 나서더니 칼을 번쩍 들어 맹달을 가리키며 소리쳐 꾸짖었다. 
  "나라를 거스른 역적놈아, 네 어찌 감히  어지러운 글로 나를 불충불효한 사람
으로 만들려 하느냐?"
  맹달도 서슴없이 유봉의 꾸짖음을 맞받았다.
  "네 놈은 어리석기가 짝이 없구나. 죽음이 바로 네 머리 위에 닥쳐 왔거늘, 아
직 그걸 살피지 못하고 그따위 소리를 찌걸이느냐?"
  맹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봉이 말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맹달도 마주 
달려나와 칼을  맞부딪쳤다. 두 사람이 어우른  지 서너 합이 되자  유봉의 거센 
기세를 당해  내지 못하겠다는 듯이  맹달은 달아나기 시작했다.  유봉이 승세를 
몰아 맹달을 20여 리나  뒤쫓았다.  그러자 홀연 좌우에서 크게  고함 소리가 일
며 하후상과 서황이 군사를 거느리고 짓쳐나왔다.  달아나던 맹달도 돌연 말머리
를 돌려 유봉을 향해 달려들었다. 맹달의 유인책에 빠진 것이었다. 세 갈래의 군
사가 유봉을  에워싸고 달려드니 유봉도  마침내당해 낼 수가  없었다. 거느렸던 
군사들을 크게 찢긴 채 밤을 도와 상용으로  달아나려 할 뿐이었다. 뒤에는 맹달
이 거느린 군사들이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유봉이 가까스로 성문 앞에 이르러 
소리쳤다.
  "문을 열라. 내가 왔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성문은  열리지 않고 성 위에서 어지럽게 화살이 쏟아
지는 것이 아닌가.   유봉이 놀라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문루에  신탐이 서서 소
리쳤다.
  "나는 이미 위에 항복했으니 이 성은 그대의 성이 아니다."
  신탐이 배신한 것을  알게 된 유봉은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쳐 활을 땅겨 그를 
쏘려 했다. 그러나 뒤쫓던 적병이  바로 등 뒤에 다가오고 있었다.  머뭇겨릴 겨
를이 없었다. 유봉은 하는 수  없이 방릉을 바라보고 급히 말을 돌렸다. 뒤도 돌
아보지 않고 달려 방릉에 이르렀으나 그곳에도 이미 위의 깃발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성 위에서  신탐의 아우 신의가 기를  한 번 흔들자 성 뒤에서  한 떼의 
군사가 쏟아져 나왔다.  유봉이 보니 그들이 앞세운  기에는 '우장군 서황'이라는 
글이 크게 씌어 있었다.  유봉은 그 기를 보자 싸울 마음이 없어졌다. 이미 방릉
성도 위군에게 떨어진데다 범같은 장수 서황이 달려오니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아 
서천을 향해달아나기  시작했다. 유봉이 있는  힘을 다해 달아나는데  서황의 칼 
아래 많은 군사가 찢겨져 나가고 뒤따르는 군사는 겨우 1백여 기에 지나지 않았
다.  유봉이 간신히  성도에 이르러 한중왕을 뵙고 엎드려 울며  그 동안의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한중왕은  유봉의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은 채  큰 소리로 꾸
짖었다.
  "욕된 자식이 무슨 낯으로 나를 보러 왔느냐?"
  "숙부를 구원하지 못한 것은 맹달이 가로막고 나서 말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봉이 눈물을  흘리며 때늦은 변명을 했다.   그러나 한중왕은 그  말에 더욱 
노하여 소리쳤다.
  "너도 사람이 먹는 밥을 먹고 사람이 입는 옷을 입고 있는 놈이 아니냐? 네가 
흙으로 빚어 만든 사람이 아니고  나무로 만든 허수아비가 아닌 담에야 어찌 역
적놈의 말을 들을 수가 있다는 말이냐!"
  한중왕은 이미 유봉이 관 공을  구원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를 살려둘 수 없
다고 여기고  있었다. 비록 아버지와 아들의  의를 맺은 사이이나 관  공의 죽음 
앞에는 그 어떤 정리도  용서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한중왕  유비는 좌우에게 엄
한 목소리로 영을 내렸다.
  "사람 같지도 않은 저놈을 끌어내 목을 베라!"
  영에 따라  좌우의 무사들이 유봉을 끌어  내어 목을 벴다. 유봉의  목을 베고 
난 며칠  후에야, 유봉이 관 공을  돕지 않은 일을 뉘우쳤으며  맹달로부터 받은 
항복을 권하는 글을 찢어 버리고 그 사자의 목을 베었다는 애기를 듣게 된 유비
는 마음이 아팠다.   한중왕은 양아들 유봉을 죽인 일이 마음  아픈데다 관 공을 
잃은 슬픔이 겹쳐 그만 병이 들어 자리에  눕고 말았다. 거기다가 한중왕 유비도 
이제 예순  살의 노령이 되었다.   유비가 몸져눕게 되니 군사도  그대로 묶이고 
말았다. 한바탕 회오리 바람이 일 것 같았던  천하가 한중왕의 병으로 인해 고요
히 가라앉고 말았다.  그 무렵, 위왕 조비는 왕위에 오른 뒤 모든 문무의 벼슬아
치들의 벼슬을 올려 주고 상을 내려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정이 안정되자 조비
는 무장을 갖춘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고향인 남쪽 패국을 찾았다.   조비의 고
향인 초현에서는 백성들이 길을 쓸고 의장을 갖춰 입은 후 술과 떡을 바치며 조
비를 환영했다.
  "한 고조가 고향에  돌아오셨던 예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는 성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성들은 조비를 맞으며  기뻐했다.  조비는 조상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고
향을 순시하며 노인들을  후히 대접했다. 고향의 노인들도 길을 메울  듯 거리로 
나와 술잔을 바쳤다. 마치  옛날 한 고조가 자기 고향인 패땅에  들렀을 때와 다
름 없었으니 조비가 바로  그 한 고조를 본뜬 것이었다.   조비가 백성들에게 둘
러싸여 대접을 받고 있는데 홀연 사자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하후돈 대장군께서 병환이 위급합니다."
  조비는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고향에 머물 수 없어  즉시 업군으로 돌아갔다.  
조비가 업군에 이르니  하후돈은 이미 죽은 후였다. 조비는 스스로  상복을 입고 
선왕때부터의 공신인 하후돈의  죽음을 슬퍼한 뒤 후하게 장사지내 주었다.   아
버지 조조의 죽음에 뒤이어 아우  웅이 죽었고 다시 하후돈이 죽으니 이해는 정
월 이래 반년  동안 장례가 이어졌다. 조정의 관원들도 마음이  자연히 뒤숭숭해 
있었다.  그런데  8월이 되자 이상하게도 상서로운  일만 일어났다.  석읍현에는 
봉황새가 내려와서 춤을 추었고 임치성에서는 기린이 나타났고 업군에서는 황룡
이 나타났다.  이런 상서로운 조짐이 일어나자  이상하게도 그 일은 엉뚱한 일에 
연관지어졌다.   조조 때부터의 중신이었던  중랑장 이복과 태사승  허지는 어느 
날 서로 만나 의논했다.  
  "요즈음 갖가지 상서로운 조짐이  일어나니 이는 바로 위가 한을 대신해 천하
를 다스려야 함을 뜻하는 듯하오. 즉시 수선의  예를 베풀도록 하고 한의 천자로 
하여금 천하를 위왕에게 양도하시도록 해야겠소."
  두 사람은 뜻을 함께 하자  화흠, 왕랑, 신비, 가후, 유이, 유엽, 진교, 진군,  환
해 등 문무관원 40여 명에게도 그 뜻을 알렸다.   조조가 죽고 나자 제위를 빼앗
을 음모를 드러내  놓고 논의하게 된 것이었다. 문무관원들은 뜻이  모아지자 바
로 내궁으로 들어가 헌제를 보고 아뢰었다.
  "엎드려 살피건대  위왕께서 왕위에 오르신 이래  덕은 사해에 떨치셨고 어진 
일이 만물에 미쳐  옛날과 지금을 뛰어넘습니다. 비록 당우의 시대라  해도 이보
다 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신하들이 모여  의논하였으되 이
제 한나라는 그 기운이 이미 다한 듯합니다.  바라건대 폐하게서 옛 요순의 도를 
본받으시어 강산과 사직을 위왕 전하께 넘기시도록  하십시오. 이는 위로는 하늘
의 뜻에 따르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뜻에 맞추는  것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폐하께서도 깨끗하고도 편안한  복을 누리시는 길이 될 것입니다. 이는  곧 조종
과 만인에게 실로 큰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논을 정한  후에 특별히 폐하
께 주청하는 바입니다."
  헌제는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랐다. 한동안 얼이 빠진 듯  입을 열지 못하다가 
이윽고 눈물을 흘리며 백관들에게 말했다.
  "짐이 돌이켜 보건대 우리 고조끼ㅔ서  석 자 칼로 흰 뱀을 베시고 의병을 일
으키시어, 진을 평정하시고 초를 없앤 뒤 기업을  이루어 대대로 전하여 온 지가 
4백년이오. 짐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허물이 없는데 어찌 물려
받은 조종의 대업을 함부로 버릴 수가 있다는 말이오? 그대들 백관들은 다시 한 
번 공론에 부쳐 의논해 보시오."
  헌제가 말을 마치자 화흠이 대뜸  이복과 허지를 데리고 헌제 앞으로 성큼 나
서더니 말했다.
  "폐하께서 신들의 말씀을  믿지 않으시겠다면 이 두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러면 어찌하여 한의 운수가 다했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러자 헌제가 묻기도 전에 이복이 먼저 나서 아뢰었다.
  "위왕께서 위에  오르신 후에 봉황이 춤을  추며 나타났으니 기린이 나타났고 
또한 황룡이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화가  무성하고 감로가 내렸으니 이는 
곧 하늘이 위로 하여금 한을 대신케 하라고 상서로운 조짐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복의 말이 끝나자 헌제가 입을 열려 하는데 이번에는 또 허지가 나섰다.
  "저희들은 원래 천문을 보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밤에 건상을 보니, 타오르던 
한의 기수는 이미 다했고 폐하의 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그
러나 위의 건상은  하늘에서부터 땅에 이르기까지 가득해  그 찬란한 빛이 말로 
다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뿐만 아니라 도참에 나와 있는 글자도  어긋나지 않
았습니다. 참서에 적혀있는 글은 이러합니다. 즉,  이 글을 보면 '귀자 옆에 위자
가 연이어 있으니 한을 대신할  것은 말할 것도 없구나. 언은 동쪽이오, 오는 서
쪽이라, 두 해가  서로 빛나며 위와 아래로  옮긴다'라고 했습니다.  즉  이 글을 
풀이하면 귀변에 위가 연해 있으니 이는 바로  위자며 언은 동쪽에, 오는 서쪽에 
있다 했으니 이를 합치면 허자가 됩니다.  떠, 두 개의 해가 서로 빛나며 위아래
에 있다 했으니 두  자를 합치면 창이 됩니다. 그러니 곧  위가 허창에서 한나라 
천하를 이어받는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이와 같은 하늘과 
사람의 뜻을 아울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허지의 말을 듣고 나서도 헌제는 쉽게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정
색을 하며 그들의 말을 물리쳤다.
  "상서로운 징조니, 도참이라  하는 것은 원래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어찌 
그런 허황한 일로 조종 대업을 내놓으라고 하는가?"
  그러나 몰려온 문무관원들도 헌제의 거절에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었다. 이번
에는 왕랑이 나서 말했다.
  "예로부터 흥하면 반드시 무너짐이 있고 성하면  쇠가 있다 했습니다. 어찌 망
하지 않는 나라가 있겠으며, 기울지 않는 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한실은 4백
년을 이어 오다 폐하의  대에 이르러 이제 그 운세가 다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
니 폐하께서는 마땅히 물러나셔야 하며 부질없이  머뭇거려서는 아니 됩니다. 만
약 지체하시다가는 어떠한 변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니 부디 깊이 헤아
리시기 바랍니다."
  이제 진심으로 한조를 받들려는 신하들은 없었다.  그런 신하들은 대부분 조조
의 칼 아래 목이  떨어졌거나 산과 들에 파묻혀 있을 뿐이었다.  헌제 앞에 몰려
온 백관들은 공손히  청하는 대신 거리낌없이 드러내 놓고 핍박했다.   헌제로서
는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을 말로써 물리칠 수  없음을 알고 통분함
을 억누르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후전으로 들어가자  백관들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흩어졌다.  다음  날이었다. 문무백관들이 대전에 모여 환관을 시켜 헌제
를 불러 오게 했다. 백관들이 또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알고 있는 헌제로서는 시
름과 두려움으로 감히  대전에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황후  조씨가 물었
다.
  "백관들이 모여 폐하  나오시기만을 기다린다 하였는데 어찌하여 나가지 않으
십니까?"
  조 황후는 지난날 조조가 복 황후를 죽인 후 자기 딸을 헌제에게 시집을 보내 
황후로 삼게 했던 조비의 누이였다. 
  "그대의 오라버니가 제위를 빼앗으려고 백관을 시켜 나를 핍박하니 내가  차마 
나가지 못하고 있소."
  헌제가 눈물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조 황후가 펄쩍 뛰며 물었다.
  "나의 오라버니가 어찌 그 같은 역적질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때였다. 조홍과 조휴가 칼을 들고 어전으로  들어와서 헌제에게 대전으로 나
갈 것을 재촉했다. 
  "백관들이 기다린 지 오래입니다. 어서 나가십시다."
  조 황후가 그들을 소리쳐 꾸짖었다.
  "바로 너희들이 부귀에 눈이 멀어 서로  짜고 역적질을 도모하고 있구나. 나의 
아버님께서는 그 공이  세상을 뒤덮고 그 위엄을  천하에 떨쳤으나 감히 나라의 
신기만은 넘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오라버니는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한나라의 천자  자리까지 빼앗으려 한다는 말이냐? 하늘이 너희들에게 
벌을 내리리라!"
  조 황후가 원통함을 못 이긴 채 그렇게 소리치더니 통곡하며 내궁으로 들어가
자 조 황후를 따르는 자 가운데 흐느껴 울지  않는 이가 없었다. 조 황후가 내궁
으로 들어가 버리자 조홍과 조휴는 다시 헌제를  재촉했다.  헌제는 더는 버티고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옷을 갈아입고 대전으로 나갔다. 헌제가  대전으로 나가자 
화흠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엄포를 놓았다.
  "폐하께서는 어제 저희들이  의논한 바를 따르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큰 화를 
입지 않으실 것입니다."
  "경들은 모두 한의 녹을 먹은  지 오래 된 신하들이며 이 중에는 공신의 자손
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차마 신하로서는 해서 아니 될  일을 꾸미고 있다
는 말인가?"
  백관들은 상대로 외롭고 쓸쓸한 몸이 된 헌제가 남은 기력을 가다듬으며 꾸짖
었다.  그러자 화흠이 목소리를 높이며 윽박질렀다.
  "폐하께서 끝내 저희들의 뜻을 좇지 아니하시다가 궁전 안에서 변고라도  당하
게 되면 그때는 폐하께서도 신을 불충하다 하지 마십시오."
  그 소리에 헌제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소리쳤다.
  "누가 감히 이 몸을 죽이려 한단 말이냐?"
  헌제의 노한 외침을 듣고도 화흠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 마치 신하에게 꾸짖듯 소리쳤다.
  "폐하께서 임금으로서 복이 없기 때문에 천하가 이처럼 어지럽다는 것을  만백
성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만약 위왕께서 조정에 계시지 않았다면  폐하를 죽이
겠다는 사람이 어찌 한둘 뿐이었겠습니까?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그 은혜를 덕으
로 갚지 아니하시니,  그렇다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폐하를  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씀입니까?"
  자신이 내ㅉ지 않더라도 어차피 천자의 자리는 물론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처
지라는 말이었다. 헌제도 그 낌새에 크게 놀랐다. 우선 그 자리를 피할 생각으로 
소매를 떨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왕랑이 화흠에게  눈짓을 보내 헌제를 붙들게 했다. 이  자리에서 헌제의 
대답을 받아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화흠이 그 뜻을 모를 리 없었다. 성큼성
큼 헌제 앞으로 다가간 화흠이 융포자락을 움켜잡고 윽박지르듯 말했다.
  "허락하겠소, 아니 하겠소? 어서 대답만 하시오."
  그들 백관들에게 헌제는 이미 천자가 아니었다.  그들 모두는 거리의 불한당에 
지나지 않았다. 헌제는 그 지경이 되자 몸을 떨며 얼른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
자 조홍과 조휴가 칼을 빼들며 소리쳤다.
  "부보랑은 어디 있느냐? 어서 썩 나서지 못할까?"
  조홍은 천하의 옥새지기를 소리쳐 불렀다.
  "부보랑은 여기 있소이다."
  부보랑 조필이 큰 소리로 대답하며 나섰다.
  "부보랑은 어서 옥새를 내놓아라"
  조홍이 조필을 보자  얼굴을 붉히며 호통쳤다. 그러나 조필은 그런  조홍을 오
히려 꾸짖었다.
  "옥새는 천자의 보물이다. 어찌 함부로 그걸 내놓으라 하느냐!"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정색을  하고 꾸짖자 조홍은 지체하지 않고 무사들에게 
영을 내렸다.
  "저 자를 끌어 내 목을 베라!"
  조필은 무사들에게는 끌려가 목이  떨어질 때가지도 눈을 부릅떠 꾸짖기를 멈
추지 않았다. 헌제는 조필이 끌려가 목이 떨어지는  걸 보자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고개를 돌려 바깥을  보니 갑옷을 입고 창을 든 위군  수백 명이 늘어서 
있었다.  헌제는 하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이 바라는 대로  천하를 위왕에게 내 주겠소.  바라건대 남은 목숨이나 
보존토록 하여 내 명이 다할 때 눈을 감게 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오."
  언제 어느 때 칼끝이 날아들자 모를 일이라  헌제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가
후가 나서며 헌제를 위로했다.
  "위왕께서는 결코 폐하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폐하께서는 급히 조서
를 내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케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헌제는 진군에게  나라를 넘겨 준다는 조서를 짓게 했다.  조서가 다 
되자 화흠은 옥새와  함께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위  왕궁으로 가 조비에게 바쳤
다.  조비는 조서와 옥새를 받고는 몹시 기뻐하며 조서를 근신에게 읽게 하였다.
  짐이 천자의 위에 있은 지 서른다섯 해,  천하는 크게 어지러워 뒤집힐 뻔했으
나 다행히 조종의  영령이 도와 위태로움을 면하고 다시 위를  이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 백성들의 마음을 살피건대 한나라의 
기수는 이미 끝나고 모든 운수는 조씨에게로 돌아가는  듯하다.  이는 전왕의 신
무한 공적에다 금왕의 밝은 덕을  떨치어 때를 맞춰 응한 것이니 역수가 뚜렷하
고 밝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무릇 대도를 행함에는 천하의  공론을 따라야 
할 것인즉 당요는 아들에게 사사로이  천하를 넘기지 않아 그 이름이 대대로 전
하게 되었다.  짐은  그 일을 우러러사모하다 이제 요 임금을  본받아 승상인 위
왕에게 나라를 넘겨 주려 한다. 왕은 이를 사양치 말지어다.
  조서를 다 읽자  조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서를 받으려고 했다.  그러자 가까
이에 있던 사마의가 말렸다.
  "아니 됩니다. 비록 조서와 옥새를 받았다  하여도 전하께서는 표문을 올려 사
양함으로써 천하 사람들의 비난을 사지 않도록 하셔야 합니다."
  조비도 사마의의  말을 옳다고 여겼다.  머리를 끄떡이며 곧  왕랑에게 표문을 
짓게 했다.  왕랑은 조비를 대신해 자신은 덕이  없으나 따로 어진 이를 뽑아 천
자의 위를 물려 주기  원한다는 글을 지었다.  조비가 울린  표문을 보자 천자는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웠다. 조비가  천하 사람들의 나무람을 면하기 
위해 거짓으로 사양한 것임을 헌제가 모르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위왕이 겸양하여 조서를 받지 않으려 하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그러자 화흠이 선뜻 나서 그 뜻을 밝혔다.
  "지난날 위 무왕께서 왕호를 받으실 때  세 번 사양하신 후에야 받으셨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다시  한 번 조서를 내리시도록 하십시오. 그때는  위왕께서도 받
으실 것입니다."
  헌제는 마지못해 환해로 하여 다시 다시 위왕에게 제위를 권하는 조서를 짓게 
했다. 그리고 고묘사 장음에게 절을 갖추고 옥새와  조서를 주어 위 왕궁에 전하
게 했다.  조비가 두 번째 조서를 받아 읽어 보니 거기에 쓰인 내용은 이러했다.
  그대 위왕이여, 글을  올려 사양하나 짐은 이미 한의 운수가  쇠한지 오래임을 
알고 있노라.  다행스럽게 무왕 조조는  높은 천운에 부응하고신무를  크게 떨쳐 
흉악한 무리들을 쳐없애  이 땅이 깨끗해지고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또한 금왕 
비는 그 선왕의 위업을 이어지극한  덕을 밝게 비추니 그 가르침은 사해를 덮고 
어진 이들을 천하에  일으키니 하늘의 운수가 마땅히 그대에게 있도다.  옛 순은 
스무 가지 큰  공이 있어 방훈이 그에게  천하를 물려 주었으며대우에게는 산과 
물을 다스린 공적이 있어  중화가 제위를 그에게 물려 주었다. 한은  옛 요의 운
을 이었으니 다시  그 거룩한 뜻을 전해야  할 의가 있다 할 것이다.   신령스런 
혼령의 뜻에 따르고  하늘의 밝은 명을 받들어  어사대부 장읍으로 하여금 절을 
갖추어 황제의 옥새를 받들게 하니 왕은 사양치 말고 받들지어다.
  조비가 다시 그  조서를 읽어 보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사마의에
게 들은 말이 생각나 가후에게 물었다. 
  "비록 두 차례나 조서를  내렸으나 천하와 후세 사람들로부터 내가 천자의 자
리를 빼앗았다는 말을 듣게  될까 봐 두렵소. 어떻게 하면 그  나무람을 면할 수 
있겠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시 장음에게 옥새를 가지고 가게 하시어 두 번 사양
하십시오. 그리고 화흠에게  일러 천자께서 대를 쌓게 하시고 그  이름을 수선대
로 부르라 하십시오. 좋은 날을 골라 문무백관들을  수선대 앞에 불러모은 후 천
자가 친히 옥새를 내려 나라를 위왕께 넘겨  주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의심
도 풀릴 것이며 사람들의 비난도 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조비는 그 말을 듣자 크게 기뻐했다. 곧  장음에게 옥새를 도로 가져가게 하고 
다시 사양하는 글을 헌제에게 올렸다. 헌제는 두  번째 조소도 다시 돌아오자 다
시 군신들에게 그 뜻을 물었다. 
  "위왕이 또다시 사양하니 그 뜻이 무엇이오?"
  그러자 그 물음을 기다리고 있던 화흠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대 하나를 쌓아 수선대라  이름하십시오. 대가 쌓아지면 문무백관
들을 모아 놓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제위를  물려 준다는 뜻을 밝히십시오. 그
리하신다면 폐하께서는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위나라의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
다."
  실로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으나  헌제는 화흠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
었다. 곧 태상원의 관원을  보내 번양에 터를 잡게 하여 삼층으로  높은 대를 쌓
게 했다.  그리고 따로 날을 잡아  시월 경오날 인시에 선양의  의식을 치르기로 
했다.

    천자 유비 장비마저 관 공을 뒤따르고...

  마침내 그  날이 되자 헌제는 위왕  조비를 청해 수선대에 오르게  했다. 삼층 
높이의 대와 식장의 네 문이 호화롭게 꾸며진 가운데 높고 낮은 문무관원들 4백
여 명이 늘어서 있었다. 또한 어림, 호분의  금군은 30여 명이나 되었다.  조비를 
청해 수선대에 오르게  한 천자가 몸소 옥새를 받들어 조비에게  바쳤다. 조비가 
옥새를 받자 모든 조신들은 무릎을 꿇고 앉아 조비에게 천하를 선양한다는 헌제
의 책문읽는 소리를 들었다. 
  아아, 그대 위왕이여, 옛적에  당요는 우순에게 천하를 물려 주었고 순은 또한 
우에게 그 자리를 전해  주었다. 이처럼 천명은 머물지 않고 오직  덕이 있는 이
에게 돌아가는 법이다.  한의 운수가 점점 쇠하더니 짐의 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어둡고 어지러워 천하가  뒤집힐 뻔하였다. 다행히도 무왕이  신무하여 어려움에
서 건져내고 천하를 평정하여 나의 종묘를 보전할  수 있게 하였다. 그덕을 어찌 
짐 한 사람만이 얻었다 할 수 있겠는가. 천하의  모든 곳에 그 덕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리라.  금왕(조비)이 또한 그 덕을 이어받아 더욱 그 덕을 빛내고 문무 
대업을 되살려 무왕의  홍렬함을 더욱 밝게 하였다. 이에 황령은  상서로운 기운
을 드러내고 사람과  귀신마저 징조를 보여, 모든 것을 그대에게  주기를 짐에게 
명했다. 또한 모두  말하기를 그대는 능히 우.순에 비할 만하다  하므로, 나는 옛 
당요 임금을 본받아 그대에게  제위를 물려 주려 하노라. 오호라, 하늘의 운수가 
그대에게 있으니 그대는 대례에 따라 만국을 받아 하늘의 뜻을 잇도록 하라.
  책문을 다 읽고 나자 위왕 조비는 수선의  대례를 치르고 제위에 올랐다. 가후
가 높고 낮은 모든 관원들을 거느리고 대  아래에서 조례를 드렸다. 조비는 연호
를 연강, 원년을 황초 원년으로 삼고 국호를 대위라고 고쳤다. 이어 천하에 대사
령을 내려 모든 죄수를 감옥에서 풀어 주는 한편 그 아비 조조에게 태조 무황제
의 시호를 내렸다. 위왕 조비가 천자의 위에  오르고 뒷일이 마무리되자 승상 화
흐이 조비에게 말했다.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백성은 두 임금을  받들 수가 없습니다.한제는 이제 
천하를 폐하께 선위했으니 마땅히 제후가 되셨습니다.  이제 조서를 내리시어 유
씨를 어느 땅으로 보내면 좋을까 분부를 내리십시오." 
  화흠은 그 말과 함께 헌제를  이끌어 대 아래로 끌어내려 신하들과 더불어 무
릎을 꿇고 위제 조비의 명을 받들게 했다.  조비가 용상에 앉아서 서슴없이 영을 
내렸다. 
  "헌제를 산양공에 봉하노니 헌제는 지금 즉시 그곳으로 떠나도록 하라!"
갑작스런 조비의 영에 망연히 앉아  있는 헌제에게 화흠을 칼을 짚은 채 꾸짖듯 
외쳤다.
  "한 천자를 세우면 한 천자는 폐하는 것이  예로부터 전해 온 보내 온 법도요. 
금상께서 어지시어 그대를 해치지 아니하고 산양공에 봉하셨으니 그대는 오늘로 
떠나도록 하되 부룸이 없으면 결코 조정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헌제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돗한 분함과 슬픔으로 눈물을 머금은 채 조비에
게 절하고 말에 올라  말에 올라 산양으로 떠났다. 대 아래에서  이 모양을 보고 
있던 군사와 백성들은 모두 비통해 했다.   헌제마저 산양으로 쫓아 보내자 조비
는 이제 거릴낄 것이 없었다. 껄껄 웃고  군신들을 휘둘러 보며 혼자말처럼 중얼
거렸다. 
  "순 임금이 우 임금에게 선위한 일이 어떠했는지를 내 이제야 알겠소." 
  조비가 얼른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흐뭇해 하자 대 아래에 
있던 군신들은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비위를 맞추었다.   뒷날 사람이 그날 수선
대에서의 헌제를 보고 시를 지어 한탄했다. 
  서.동한 다스림에 어려움도 많더니
  하루 아침에 그 강산 모두 잃었네.
  황초는 당우의 일 본받으라 했으나
  사마씨가 뒷날 이 꼴 다시 만들려고 지켜 보네.
  문무백관들은 만세가 끝나자 조비에게 하늘과 땅의 신에게 감사드리기를 청했
다. 조비가 단 위에서 천천히  일어나 하늘과 땅을 향해 절을 올리려 하는데, 홀
연 거센 회오리바람이 크게 일었다. 그 바람에  모래가 날리고 돌이 구르더니 하
늘에서 모래와 돌이 소나지처럼  쏟아지는 캄캄해지는 가운데 수선대 위에 세워 
두었던 촛불이 한순간에 모두  꺼지고 말았다.  조비가 그 불길한  짐에 크게 놀
라더니 대 위에서  기절하여 쓰러졌다. 백관들이 황급히 조비를 부축해  대 위에
서 내려 뉘었으나  한나절이 지나서야 깨어났다.  조비가 깨어나자  군신들이 궁
궐로 모셨으나 그 놀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그로부터 며칠간은 정사도 
돌보지 못하다 얼마 후에 기운을 회복하여 대전으로 나가 신하들의 하례를 받았
다.  조비는 자신을 사도로 삼고, 왕랑을  사공으로 삼았다. 그리고 다른 문무 백
관들에게도 벼슬을  높이고 상을 내려  신하들의 마음을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제위에 오르던 날 크게 놀라 얻은 조비의 병은  얼른 낫지 않았다. 조비는 그 병
이 허창의 궁전에 요망한 일이  많았던 탓이 아닌가 마음에 걸려 낙양으로 도읍
을 옮기고 새로 큰 궁궐을 짓게 했다.   조비가 대위의 황제에 올라 헌제를 산양
공으로 쫓아 내고 낙양에 새로 궁궐을 짓는다는 소식은 성도의 유비에게도 전해
졌다. 거기다가  헌제가 조비가 보낸  자객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엉뚱한 소문도 
돌았다.  그 소문을 들은 한중왕 유비는 하루  종일 목을 놓아 울며 모든 신하들
에게 상복을 입게 하고  멀리 허도를 향해 제례를 올렸다.   유비는 제례를 올리
며 헌제에게 효님왕제라는 시호를 바쳤다.  그때  유비의 나이 이미 예순한 살이
었다.  관 공의 죽음 이후 연이은 비탄과  울분에 쌓여 있던 유비는 다시 헌제의 
죽음을 전해 듣고 상심하더니 끝내 병이 들고  말았다.  유비가 몸져누워 정무를 
돌보지 못하게 되자 모든  일이 공명에게 맡겨졌다.  이에 공명은  어느 날 태부 
허정과 광록대부 초주를 불러 의논했다. 
  "천하에는 하루라도 임금이  없어서는 아니 되오. 한중왕을  높여 황제의 위에 
나가시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그러자 초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말을 받았다. 
  "근래에 때맞춰 여러 가지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도 서북쪽에
는 누런 기운이 수십 길이나 하늘로 뻗쳐  올랐습니다. 또 한 천자의 별이 필.위.
묘 세 별이 맞닿으며 달빛처럼 환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는 곧 우리 한중왕께
서 제위에 나기시어  한의 대통을 이으시라는 걸 뜻하는 징조입니다.  다시 무엇
을 더 의논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초주가 그렇게 말하며  오히려 공명을 재촉했다. 공명은 곧 허정과  더불어 문
무백관을 거느리고 한중왕께  표를 올려 제위에 오르기를 권했다.   그러나 한중
왕 유비는 표문을 읽고 나자 펄쩍 뛰었다.
  "경들은 나를 불충불의한 사람이 되게 하려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조비가 한을 빼았고 스스로 천자가 되었습니다.  주상께서는 
한실의 혈통을 이어받으신 분이니  대위에 오르시어 종사를 이으시는 것은 이치
에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공명이 정색을 하고 말했으나 유비는 얼굴빛을 달리하며 잘라 말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한의 신하요. 어찌 역적을 본받으라 하시오?"
  유비는 그 말과 함께 소매를 떨쳐 일어나  후궁으로 들어가 버렸다. 유비가 더 
이상 말 붙일 틈도 주지  않으니 문무백관들은 하는 수 없이 그자리에서 물러나
고 말았다.  공명은 그로부터 사흘 뒤에  다시 백관들을 거느리고 대전으로 들어
가 한중왕을 뵙기를  청했다. 한중왕이 나오자 백관들은 엎드려 절한  후 허정이 
아뢰었다. 
  "한의 천자께서 이미 조비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도 주상께서는 제위에 오르시지도 않고 또 의로 군사를 일으키시어 역적을 치지 
않으신다면 이 또한 충과 의를 함께 저버리시는  것이 됩니다. 지금 천하의 모든 
사람들은 주상께서 천자가 되시어 효민황제의 한을 풀어드리기를 바라고 있습니
다. 만약 주상께서  저희들의 청을 물리치신다면 이는 곧 백성들의  바람을 저버
리시는 것이 됩니다."
  유비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허정이 이치를  따져가며 말했다. 그러나 유비는 
ㄲ내 허정의 말도 물리쳤다. 
  "내가 비록 경제 폐하의  후손이라고는 하나 아직 백성들한테 은혜와 덕을 베
풀지도 못했소. 이런 터에 갑자기 스스로 제위에  오른다면 이 또한 제위를 빼앗
은 거나 무엇이 다르겠소?"
  공명이 다시 나서며 간곡히 청했다. 그러나 유비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공명은 유비가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자 말로서는 더 청하지 
않는 대신 계교룰 꾸미기로 작정했다. 문무백관들에게  무엇인가 당부의 말을 남
기고 승상부로 돌아간  후로는 병을 핑계대고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중왕 유비
는 공명의 병이 위중하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자신도  몸이 불편한 터에 
공명마저 몸져누웠으니 걱정이 되어  몸소 공명의 집으로 찾아가 공명을 문병했
다. 
  "군사께서는 어디가 편챦으십니까?"
  "걱정 근심으로 가슴이 타는 듯합니다. 아무래도 오래 가지 못할 듯합니다."
  공명이 애써 괴로운  얼굴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유비는 근심스런  얼굴로 다
시 물었다. 
  "무슨 근심이 있기에 그토록 가슴이 타는 듯하오? 군사께서는 어서 말해 보시
오."
  유비가 공명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그러나 공명은 눈을 감고 대답하지 않았다. 
공명의 그런 태도를 유비는 병이 심한 것으로 여겨  두 번, 세 번 공명의 근심거
리를 물었다. 공명도 그제야 마지못한 듯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신이 일찍이 저의 초려를 나와 대왕을 모신  지 10여 년, 그간 대왕께서는 신
이 무슨 말씀을 드려도 또 어떤 계책을  내어도 물리치지 않고 들어 주셨습니다. 
이제 다행히도 양천의 땅을 얻으시니 신이 밤낮으로 바라던 바를 저버리지 아니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만 걱정스러운 일을 앞으로 벌어질 천하의 일입니다. 이제 
이곳을 근거로 삼아  대업을 이루어야 할 때에 조비가 한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에 모든 신하들은 대왕을 받들어  제위에 오르시게 한 다음 역적을 쳐없애 유
씨를 일으켜 한나라를  잇게 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대왕께서는 끝내 
사사로운 명분에만 얽매여  마다 하시니 그저 딱하고 원통할 뿐입니다.  만약 백
관들이 모두 대왕께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 오래잖아 뿔뿔이 흩어진 후에 조비와 
손권이 공격해 온다면 이 서촉마저도 지켜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 
어찌 근심이 되지 않으며 병이 나지 않겠습니까?"
  공명의 말을 듣자 한중왕도 고개를 끄덕인 후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도 무작정 따르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오.  다만 천하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까 두렵소."
  공명은 유비의 속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유비가  그렇게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이 입을 열었다. 
  "성인께서 말씀하시기를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따라 주지 않는다. '했습
니다. 이제 대왕께서는 명분도 바르고 말이 또한 바르거늘, 누가 비난할 수 있다
는 말입니까? 대왕께서는 옛부터 '하늘에서 내리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해
를 입는다'는 말도 들어 보지 못하셨습니까?"
  "그 일이라면 군사의 병은 나은 후에 의논해도 늦지 않을 것이오."
  유비는 그래도 얼른 마음을 정하지 못한 듯했으나 몸져누워 있는 공명을 위로
하듯 마지못해 그렇게라도 대답했다. 그러자 여태까지  앓고 있던 공명이 자리에
서 벌떡  일어나더니 주먹으로 병풍을  쳤다. 그러자 병풍이  쓰러지면서 밖에서 
문무백관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 일제히 엎드려 유비에게 절을 올렸다. 
  "주상께서 이제  윤허하셨으니 곧 좋은 날을  잡아 대례를 올리도록 하시옷소
서."
  한중왕은 문무백관이 입을 모아 말하자 놀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곳
에는 태부 허정,  안한장군 미축, 청의후 상거, 양천후 유표,  별가 조조, 치중 양
홍, 의조 두경, 종사랑 장상, 태상경 뇌충, 광록경 황권, 제주 하증, 학사 윤묵, 사
업 초주, 대사마 은순, 편장군 장예, 소부 왕모, 소문박사 이적, 종사랑 진복 등이 
모여 있었다.   유비는 그때서야 공명이 아프다는 것은 거짓으로  꾸민 계교였음
을 알고 놀란 얼굴로 말했다. 
  "나를 불의로 빠뜨린 것은 모두 경들이로다."
  그러자 공명이 유비의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백관들을 채근했다. 
  "주상께서 이미  우리들의 청을 받아들이셨으니 이제  서둘러 대를 쌓고 날을 
잡아 대례를 올리도록 하시오."
  공명은 한중왕을 궁궐로 배웅한  다음 백관들에게 대례를 올릴 채비를 서두르
게 했다.  박사 허자, 간의랑 맹광으로 하여금 성도의 무담 남쪽에 대를 쌓게 했
다.  모든 채비가 다 갖추어지자 문무백관들은  천자가 타는 가마에 태워 단으로 
모시고 제사를 올리도록 청했다.   초주가 소리를 높여 축문을 읽었다.  건안 26
년 사월 열이틀,  황제 비는 감히 황천후토께  고합니다. 한의 천하는 그 국운이 
무궁하여 지난날 왕망이  나라를 다시 돌이키셨습니다. 그런데  조조가 잔인하여 
황후를 죽이고 임금을 업신여기고  능멸한 죄가 하늘에까지 미치더니 이제 다시 
그 아들 조비가  흉악하여 역적질로 신기마저 빼앗았습니다.  이에  모든 장수와 
선비들이 한의 종사가 무너짐을 안타까이 여겨 이 비로 하여금 고조와 광무제의 
업적을 이어 하늘을 대신하여 역적에게 벌을  내리기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비는 
제위에 오를 만한 덕이 없어  모든 백성과 멀리 변방의 군장들에게 널리 물었습
니다. 그들이 한결같이 말하기를  천명을 거스를 수 없고, 조상들의 위엄을 그토
록 오래도록 끊어지게 할 수 없으며, 사해에는  주인이 없어서는 아니 된다 하여 
이 비에게 모든 바람이  쏠려  있었습니다. 이 비는 천명을  거스름이 두렵고 고
조.광무제께서 이루신 대업이 무너질까 두려웠습니다. 이에 길일을 잡아 단에 올
라 제사를 올려  하늘에 고하고 황제의 옥새를  받들어 사방을 다스리고자 합니
다. 천지신명께서는 부디 한실에  복을 내리시고 길이 편안함을 내리소서.  초주
가 축문을 다 읽자 공명은  모든 백관들을 이끌고 나와 한중왕에게 옥새를 바쳤
다. 그러나 한중왕은 옥새를 받아 단 위에 올려 놓을 뿐 사양한 채 말했다. 
  "이 유비는 재주와 덕이 없으니  부디 재주와 덕 있는 사람에게 이 옥새를 드
리도록 하오."
  그러자 공명이 아뢰었다. 
  "주상께서는 사해를 평정하셨고 공덕이 천하를 밝히셨습니다. 거기다가 한실의 
피를 이어받으신 몸이니  마땅히 대위에 오르셔야 할 분입니다. 이미  하늘에 제
사를 올려 고한 일을 어찌 다시 물리칠 수가 있겠습니까?"
  공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문무백관들을 소리 높여 만세를 부르며 춤추
어 절을 올리는 예를  마쳤다.  유비는 그때서야 옥새를 거두고  연호를 장무 원
년으로 하고 왕비  오씨를 황후로 높였다. 이어  맏이 유선을 태자로 삼고, 둘째 
유영을 노왕으로, 셋째 유리를  양왕으로 봉했다.  한중왕이 천자의 위에 오르니 
관제와 관작도  달라졌다. 제갈량은 승상이  되고 허정은 사도가  되었으며 다른 
높고 낮은 관료들에게도  벼슬을 높이거나 상을 내렸다.  유비는  대사령을 내려 
죄인들을 풀어 주니 동천.서천의 백성과 군사들이  모두 한결같이 유비가 제위에 
오름을 축하하고 기뻐하며 춤을 추었다.  다음  날이 되자 조회가 베풀어지고 모
든 문무의 신하들이 두 줄로 나누어 늘어선 가운데 선주(유비를 말함, 그의 아들 
후주에 대칭하는 뜻)가 조서를 내려 말했다. 
  "집은 도원에서 관운장.장비와 형제의 의를 맺으며 함께 살고 죽기를 맹세했었
다. 불행히도 운장이  동오의 손권한테 해침을 당했으니 이 원수를  갚지 않는다
면 맹세를 저버리는 일이다.  짐은 온 나라의 모든 군사를 일으켜  동오를 쳐 무
찌르고 산 채로 역적을 사로잡아 한을 씻으리라!"
  제위에 올라 선주가 된 유비는 그 동안 미루어 왔던 관공의 원수 갚음부터 서
둘렀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사람이 대열에서 빠져  나와 계하에 
엎드리며 말했다.
  "그건 아니 됩니다."
  선주가 그를 보니 호위장군 조운이었다. 조운이  뜻밖에 그일을 반대하고 나서
자 선주가 의아로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데 조운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나라를 빼앗은 역적은 조조이지 손권이 아닙니다.  지금 그의 아들 조비가 한
을 빼앗았으니 귀신과 사람이 함께 분노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관중부터 취
하도록 하십시오. 먼저  위하 상류에 군사를 내어 역적을 치신다면  관동의 의사
들을 모두 양식을 싸들고 달려와 왕사를 맞을  것입니다. 반대로 위를 제쳐 놓고 
오를 치게 된다면  싸움은 단번에 끝나지 않을 것이며  또 뒷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부디 깊이 살피옵서소."
  조운의 뜻밖에 말에 선주는 못마땅한 얼굴로 꾸짖듯 말했다. 
  "손권은 나의 아우를 해쳤을 뿐  아니라, 오에는 우리를 배반한 부사인.미방.반
장.마충이 있다. 그들 모두의 살을  씹고 그 일족을 쓸어 버려야만 내 한을 씻을 
수 있는데 경은 어째서 말리는가?"
  선주의 꾸짖음에도 조운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한나라를 빼앗은  원수는 공의이며, 형제의  원수는 사사로운 것입니다. 공과 
사를 가리시어 천하의 일을 더욱 무겁게 여겨 주십시오."
  그러나 선주는 조운의 말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미 마음을 정한 듯 조운
의 말을 물리치며 영을 내렸다. 
  "짐이 아우의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만리의 강산을 차지한들 귀한 게 무엇이
겠느냐? 군사를 크게 일으켜 오를 치도록 하라!"
  선주는 그렇게 영을 내리는 한편 오량캐들이 사는 오계에 사신을 보내 구원군 
5만을 요청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자를 낭중에 보내 장비를 거기장군.사례
교위.서향후에 낭중목을 겸하게 했다.  장비는 그때 관 공이 동오의 손권에게 죽
임을 당했다는 소문을  들은 이후 아침 저녁으로 목놓아 울었다.  눈물이 마르자 
나중에는 피눈물이 떨어져  옷깃을 붉게 ㅈ셨다.  여러 장수들은  보다못해 그를 
위로하기 위해 술을 권했다. 그러나 술이 오를수록  분노와 슬픔은 더 한층 심해
질 뿐이었다. 원래 술이 취하면 더욱 과격해지는  성품인데다 관 공의 일까지 겹
치니 장졸들의 조그만  잘못에도 사정없이 매질을 했다. 그 매질이  어찌나 심했
던지 맞아  죽은 장졸들도 많았다.   장비는 매일같이 손권이 있는  남쪽 하늘을 
향해 눈을 부릎뜨고 이를 갈며 노려보다가 통곡하곤  했다.  이럴 때 선주한테서 
사신이 온 것이었다. 장비는  황망히 사자를 맞아 들이고 조서를 받들었다. 장비
는 선주가 내린 벼슬을 북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 받아들인 다음 술상을 차려 사
자를 대접했다. 술잔이 몇 순배 돈 다음 장비가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형님 관 공이 해를 당한 일은 그  원한이 바다보다 더 깊소. 그런데 어찌하여 
묘당의 신하들은 군사를 일으켜 동오를 치려 하지 않으시오?"
  "대신들은 먼저 위부터 친 다음 오를 치자 하여 의논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사신이 사실대로 알리자 장비는 참고 있던 울화를 터뜨렸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지난날 우리 삼 형제가 도원에서 의를 맺을  때 살
고 죽기를 함께 하기로 맹세했소. 이제 불행히도  둘째 형님 운장께서 먼저 돌아
가셨는데 어찌 나 혼자 남아 부귀를 누릴 수 있소? 내 한 번 천자를 뵈온 후 전
부선봉이 되어 상복을  입고 오를 쳐부수겠소. 역걱들을 모조리 사로잡아  산 채
로 묶어서 형님의 영전에 제물로 바쳐  지난날의 맹세를 지키겠소."
  장비는 그 말과 함께 사자를  재촉하여 선주를 만나기 위해 성도로 말을 몰았
다. 

  한편 선주는 매일 교련장에 나가 군마를 몸소 조련시키며 군사를 일으켜 오를 
칠 채비를 서둘렀다. 여러 신하들은 선주 유비가  친히 군사를 이끌어 오를 치려
고 하자 승상부로 공명을 찾아가 말했다. 
  "천자께서는 이제 대위에 오르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는데 몸소 군사를 이끄
시겠다니 이는 사직을 중히 여기는 처사가  아니옵니다. 승상께서는 나라의 무거
운 책임을 앝으셨으면서도 어찌 보고만 계십니까?"
  "나도 역시 여러 차례 말렸으나 도무지  듣지 않으시니 답답하구려. 마침 오늘 
여러분이 이렇게 오셨으니 함께 교련장으로 가서 한 번 더 말씀드려 봅시다."
  공명도 그 일을 걱정하고 있던 터에 때마침 백관들이 왔으므로 함께 교련장으
로 선주를 찾아가 아뢰었다. 
  "폐하께서는 보위에 오르신 지 이제 얼마  되지 않으십니다. 만약 북의 한적을 
쳐 대의를 천하에  펴시기 위해 몸소 육군을 거느리신다면 마땅한  일입니다. 그
러나 형제의 복수를  갚기 위해 사사로이 군사를  이끄신다면 이는 아니 되십니
다. 한 사람 상장에게  군사를 이끌고 가게 하면 될 것을  어찌하여 폐하께서 몸
소 나서려 하십니까?"
  여러 백관을 거느린  채 공명이 간곡히 만류하자 선주도 마음이  흔들렸다. 유
비가 공명의 말을 ㄷ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근시 하나가 와서 알렸다. 
  "낭중의 거기장군께서 오셨습니다."
  "어서 들도록 하라!"
  선주는 장비가  왔다는 말에 공명과의  얘기를 뒤로 미루고  급히 불러들였다. 
장비는 연무청으로 들어와 땅에 엎드려 절을 올리자마자 선주의 다리를 안고 목
올 놓아 올기부터 했다. 선주는  장비를 보자 새삼 슬픔이 복받쳐 통곡했다.  한
동안 울고 난 장비가 문득 울음을 멈추더니 선주에게 불쑥 물었다. 
  "폐하께서는 천자가 되셨다고  옛 도원에서의 맹세를 잊으셨습니까? 어찌하여 
둘째 형님의 원수를 갚아 주지 않으십니까?"
  "많은 관원들이 말려 가볍게 군사를 움직이지 못했을 뿐, 어찌 옛 맹세를 잊을 
리 있겠느냐?"
  선주가 장비를 달래듯 말했다. 그러자 장비가  목소리를 높여 선주에게 원망하
듯 외쳤다. 
  "다른 사람들이 어찌 우리들의 옛 맹세를 알겠습니까? 만약 폐하께서 아니 가
신다면 제 한 몸을 던져서라도 둘째 형님의  원수를 꼭 갚고야 말겠습니다. 만약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을지언정 다시는 폐하를 뵙지 않겠습니다."
  선주는 장비가 그렇게 말하며  주먹으로 눈물을 닦자 흔들렸던 마음을 다시며 
분연히 말했다. 
  "내가 어찌 너만을  보내겠느냐? 나도 너와 함께 가겠다.  너는 낭중으로 돌아
가 네가 거느리고 있던 군사를 모두 이끌고  나오도록 하라. 나도 정병을 이끌어 
강주로 가겠다. 너와 함께 동오를 쳐서 이 원한을 씻으리라."
  장비는 그 말을  듣자 힘이 솟구치는 듯 벌떡  몸을 일으켜 그 길로 낭중으로 
돌아가려 했다. 선주가 생각난 듯 장비에게 일렀다.  
  "나는 네가 술을 마시면 성격이 급하고 거칠어지는 것을 알고 있다. 거느린 군
사들에게 매질을 해 놓고 가까이 두는 일은 자칫 화를 부를 수도 있으니 이제부
터는 부디 너그럽게 대하고 전처럼 매질을 하지 않도록 하라."
  "잘 알겠습니다."
  장비는 주저 없이 큰 소리로  대답하고 선주에게 절을 올린 후 곧바로 낭중으
로 돌아갔다.  다음 날이 되어 선주는 군사를  정돈한 후 떠나려 하는데 학사 진
복이 나아가 아뢰었다. 
  "폐하께서는 나가셔서는 아니  됩니다. 만승(천자)의 소중하신 몸을 돌보지 않
으시고 이토록 작은 의를 좇으려  하시니 이는 일찍이 옛사람도 취하지 않던 바
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다시 한 번 깊이 헤아려 주십시오."
  "운장은 짐과는 한몸이나  다름없다. 대의가 분명한데 어찌  잊을 수가 있다는 
말이냐?"
  선주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러나 진복도 물러나지 않고 땅에  엎드린 채 
다시 간했다. 
  "페하께서는 신의 말을 듣지 ㅇ으시다가 일을 그르치실까 두렵습니다."
  선주는 그가 끝까지 물러나지 않고  불길한 말마저 서슴지 않자 화를 벌컥 냈
다. 
  "짐이 지금 군사를 일으키려는  마당인데 네 어찌 이같은 불길한 말을 한다는 
말이냐? 여봐라, 이놈을 끌어 내어 목을 베라!"
  진복은 무사들에게 끌려가면서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선주를 돌아보
고 웃으며 말했다. 
  "신이 죽는 것은 한스러울 게 없으나 다만 새로 창업하신 기업이 곧 무너지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선주는 더욱 노해  그를 죽이라고 소리쳤으나 모든  관원들이 나서 그의 죄를 
빌며 살려 주기를 ㅊ했다. 
  "짐이 원수를 갚고 올 때까지 잠시 옥에 가두어 두라. 짐이 돌아와서 처결하리
라."
  선주는 마지못해 그를 죽이는 대신 옥에 가두게  했다.  진복이 선주에게 출병
을 막다가 옥에 갇혔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된 공명은 곧 표문을 올려 진복을 구
하려 했다. 공명에게서 표문이 올라오자 선주가 읽어  보았다.  신, 량 등은 오적 
손권이 간사한 계책을  써서 형주를 빼앗아 장성을 두우(북두칠성과  견우성) 사
이에서 떨어뜨리고 하늘을  받치던 기둥을 초(남방)땅에서 꺾어지게 한  일을 생
각하니 그 비통한 심정 어찌 차마 잊겠습니까? 그러하오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
이 있으니, 한을  조각낸 죄는 조조로부터 시작된 유씨의 제위를  빼앗은 조비에
게 있는 것이지  손권이 아닙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진복의 옳고  귀한 말을 
받아들이고 군사들의 힘을 기르시어 따로 좋은  계책을 세우도록 하십시오. 사직
을 위해서나  천하를 위해서 그보다 좋은  일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주는 
이번만은 공명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는 말리지 못하도록 표문을 땅
에 던지며 말했다. 
  "짐의 뜻이 이미 정해졌으니 누구든 다시는 나를 막지 말라!"
  선주는 마침내 군사를  내기로 하고 진용을 배치했다.  승상  제갈량에게는 태
자를 보로하여 양천을  지키도록 했다. 표기장군 마초는 그의 아우  마대와 함께 
진북장군 의연을 도와 한중을 지키게 하고 선주가 군사를 이끈 틈을 타 위가 쳐
들어오는 것을 방비케 했다.  이어 선주는 오를 치러 갈 군사들을 배치했다.  호
위장군 조운을 후군으로 삼아 군량과 마초를 맡도록 하고 황권과 정기를 참모로 
삼았다.  또 마량과 진진에게는  문서를 맡아 보게 했다.  전부선봉은 황충이 맡
도록 했으며  풍습.장남을 부장으로, 부동.장익을  중군호위로 삼았다. 또 조융과 
요순은 그 뒤를 받치며 따르게 했다.   동서천의 장수에다 오계에서 원군으로 온 
번장까지 가세하니  장수가 수백이요, 군사가 모두  75만이었다. 좋은 날을 잡아 
대병이 나아가니 그날이 바로 장무 원년 7월 병인날이었다. 
  
  한편 낭중으로 돌아온 장비도 단번에  동오를 쳐 관 공의 원수를 갚겠다는 기
세로 출병을 서둘렀다. 장비는 군중에 엄한 군령을 내렸다. 
  "사흘 안에 흰 기와 군사들에게 입힐 흰 갑옷을 만들도록 하라!"
  흰 기에다 흰  갑옷을 입는 것은 관 공의  복수를 하러 온 군대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다음 날이었다. 흰  기와 갑옷 만드는 일을 맡은 하급 장수 범강과 
장달이 장비의 장막으로 찾아와 말했다. 
  "많은 군사가 입을 흰 갑옷을 갑자기 마련할 수가 없습니다. 기한을 좀 넉넉히 
주십시오."
  사흘 안에 수만의 군사가 입을 흰 갑옷과 흰 기를 마련한다는 것은 원래가 무
리였다. 그러나 마음이 급한 장비는 그 말을 듣자 대뜸 눈에서 불이 났다. 
  "이놈들아, 나는 원수를 갚는 일이 급해  내일 당장이라도 역적놈의 땅으로 달
려가지 못하는 것이 한이다. 그런데도 어찌 내 장령을 어기려 드느냐?"
  화가 치솟은 장비는 두 장수를  결박지은 후 나무에 매달고 등허리에 쉰 대씩 
매를 때렸다. 두  장수의 등허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렸으나  장비는 손가락질하며 
다시 호령했다. 
  "내일까지 흰 기와 흰 갑옷을 다 만들도록 하라. 만약 내 말을 어길 때는 너희 
둘을 본보기로 목을 벨 것이다."
  장비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주먹으로 입을 때려 입에서도 피가 흘러
내리는 두 장수에게 엄포를 놓았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두 장수는 
통분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범강이 장달에게 가만히 말했다. 
  "오늘은 이미 매질을 당했지만 내일은 또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장비가 
원래 성미가 급하고  사납기가 불과 같으니, 내일까지 모든 걸  마련하지 못한다
면 두리 두 사람은 꼼짝없이 죽게 될 걸세."
  범강이 그렇게 말하자 탄식하자 장달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저 자가  우리를 죽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저 자를 죽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겠나?"
  "그러나 가까이 갈 수가 없으니 어찌 죽일 수가 있겠는가?"
  어차피 내일이면 죽을 목숨으로 여긴 범강도 장달의 말에 고개를 꼬덕이며 말
했다. 
  "우리들이 죽을 운수가  아니라면 그는 오늘 술이  취해서 곯아떨어질 것이요, 
우리가 죽을 운수라면 그는 오늘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일세."
  장달이 죽기는  매한가지이니 이판사판으로 한  번 해 보자는  뜻으로 말했다. 
범강도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있었으므로 두 사람은 의논을 끝내고 기회를 엿보기
로 했다.  그런데 장비는 그날따라 정신이  어수선하고 어지러워 마치 꿈을 꾸는 
듯 몽롱해 있었다. 괴이하게 여긴 장비가 곁에 있는 부장에게 물었다. 
  "이상한 일이다. 별안간 가슴이 울렁거리고 살이 떨려 앉으나서나 가라앉지 않
으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아마 군후께서는 관 공을 너무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술이나 한
잔 드시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장은 장비를 위로하느라  그렇게 말했다. 장비도 그 말을 듣고  별다른 생각 
없이 술상을 차려 오게  하고 부장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러나  장비는 술을 마
시면 취하도록 마시는 것이 화근이었다.  이날도  술잔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 새 
몹시 취하고 말았다. 장비는 그대로  장막 안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범강과  장달은 장비의 장막을 살펴보았는데  장비는 부장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일이 뜻대로 되어가자  기뻐하며 장비가 잠에 곯아떨어지기
를 기다렸다.  초경  무렵이 되자 둘은 품안에 단도를 품고  발지국 소리를 죽이
며 장비의 장막으로 갔다. 
  "급히 군후께 은밀히 아뢸 일이 있어 왔소이다."
  장막을 지키는 군사가 앞을 가로막자 둘은 그렇게  둘러대었다. 흰 기와 흰 갑
옷 만드는 일을  책임맡은 장수라 보초 서는 군사는 의심하지  않고 들여보냈다. 
이에 범강과 장달은  장비가 누워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둘은  장비를 바라보다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원래 장비는 눈을 뜨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 장비의 
그런 버릇을 모르는 둘은 장비가 두 눈을 부릎뜨고 수염을 빳빳이 세운 채 누워 
있는 것을 보자 깜짝  놀란 것이었다. 둘은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는데 장비의 코고는 소리가 우렛소리처럼 들려  왔다.  그제야 장비가 깊은 
잠에 빠졌었음을 알고 칼을 뽑아 동시에 장비의  배와 가슴을 찔렀다. 장비가 외
마디 소리를 크게 내지르고 숨을 거두니 그때  그의 나이 쉰다섯이었다.  뒷사람
이 천하의 영웅 장비의 죽음을 슬퍼하며 시를 지었다. 
  안희에서 독우를 매질하고
  황건적을 쳐 유비를 도왔네. 
  호뢰관에서 용맹 천지에 떨치고
  장판교에서 호령하니 물이 거꾸로 흘렀다.

  의로 엄한 풀어 주어 촉 땅 편케 했고
  지모로 장합 속여 정주 안정시켰네.
  오를 쳐 이기기 전 몸 먼저 죽으니
  가을풀만 오래도록 낭중의 한을 전하네.
  범강과 장달은  장비를 죽이고  그 머리를 잘라  밤을 도와 도오로  도망쳤다.  
군중에서 장비의 죽음을  안 것은 다음 날이었다. 장수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범
강과 장달을 뒤쫓았으나 이미 멀리 동오로 달아난  뒤였다.  장비가 거느리고 있
던 장수 중에는   오반이란 부장이 있었다. 그는 형주에서 선주를  뵈러 오자 선
주는 그를 아문장으로 삼아 낭중으로 보내 장비를  돕게 했던 장수였다.  오반은 
장비가 죽자  뒷일을 맡아 처리했다.   급히 표문을 써서 선주에게  올리는 한편 
장비의 맏아들 장포로  하여금 시신을 거두어 관곽에 갖추어 모시게  하고, 둘째 
아들 장소로  하여금 낭중을 지키게 했다.   이때 선주는 출병하기로  정한 날이 
되어 군사를 거느려 나아가는데 벼슬이 높고 낮은 관원들이 배웅하기 위해 뒤따
랐다.  공명도 선주를 10여리 밖까지 전송한  후 성도로 돌아갔으나 선주가 끝내 
동오로 군사를 이끌어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공명은 문득 모든 관원들을 돌
아보며 탄식하듯 말했다. 
  "법효직(법정)이 살았더라면 반드시 선주를 말렸을 것이오."
  한편 군사를 이끌어  가던 선주는 그날 밤  까닭없이 가슴이 울렁거리고 살이 
떨려서 음식을 입에 댈  수 없었고  자리에 들어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선주는 
장을 들치고 밖으로 나가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니 홀연 서북쪽에 말만한 크기의 
별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크게 놀란  선주는 그날 밤으로 사람을 공명
에게 보내어 물어 보게 했다. 공명에게 보냈던  사람이 오래지 않아 돌아와 공명
의 말을 선주에게 전했다. 
  "이는 상장 한 사람을 잃을 징조이며 사흘 안에 반드시 놀라운 소식이 전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  선주는 더욱 놀라며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다.  선주가 격정스런 
얼굴로 동정을 살피고 있는데 시중드는 신하가 서 알렸다. 
  "낭중게서 거기장군의 부장 오반이 보낸 사람이 표문을 바치러 이르렀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선주는 얼른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발을 구르며 외쳤다. 
  "이럴 수가? 셋째 아우 익덕이 죽었구나!"
  그 말고 함께 선주가 급히 표문을 읽어 보니 과연 장비가 죽었다는 기막힌 소
식이었다.  선주는  그 자리에서 목을 놓아  울다가 그만 혼절해 버리고 말았다. 
모든 시신들이 선주를 구호하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장포과 관흥 적장의 목을 베고 이름 떨치다
  촉군이 오에 진병하자 오는  조비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한편 손환으로 하여금 
나가 싸우게 한다.  이에 선주 유비는 장포와  관흥을 보내고, 이들은 장수 셋을 
죽이는 등 오군을  크게 물리치고 위엄을 떨친다. 이에 손환은  이릉성으로 쫓겨 
구원을 요청한다. 
  다음 날이었다.   선주가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누워 있는데  신하가 들어와 
알렸다. 
  "한 떼의 군마가 급히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선주가 영문 밖으로  나가 바라보니 흰 갑옷에 은빛 투구를 쓴 한 젊
은 장수가 달려왔다. 그 장수는 말에서  내리자마자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는데 
그는 바로 장비의 큰아들 장포였다.  장포가 눈물을 흘리며 선주께 아뢰었다. 
  "범강과 장달이 신의 아버님을 죽이고 목을 베어 강동의 손권에게러  달아났습
니다."
  선주는 그 말을 듣자 다시 분노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음식을 입에 대지 못했
다. 밥은커녕 물도 마시지 않으니 여러 신하들은 걱정이 되어 선주를 일깨웠다. 
  "폐하께서는 두 분 아우님의  원수를 갚고자 하시면서 어찌 몸을 상하게 하십
니까? 이럴수록 더욱 몸을 중하게 지키셔야 합니다."
  선주 유비도 그 말을 듣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슬픔에만 잠겨 있는 때가 아님
을 잘 알고 곧 음식을 대한 후 장포를 불렀다. 
  "너는 오반과 함께 그곳의 군마를 이끌어 네 아비의 원수를 갚지 않겠느냐?"
  장포가 눈믈을 흘리면서도 결연히 대답했다. 
  "나라를 구하고 아버님을 위해서라면  만 번을 죽는다 해도 마다하지  않겠습
니다."
  이에 선주는 장포를  보내 낭중의 군사를 일으키게  하려는데 한 떼의 군마가 
바람같이 달려온다는 전갈이었다.  선주는 그들 군마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하 한 사람이 흰 갑옷에  은빛 투구를 ,쓴 젊은 장수를 데리
고 왔다.  그  장수도 선주 앞에 이르자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는데 바로 관흥
이었다.  선주는 관흥을 보자  다시 관 공이 생각나 그를 붙들고 목놓아 울었다. 
여러 관원들이 간곡히 말리자 그제야 선주는 눈물을 거두며 말했다. 
  "짐이 벼슬길에 오르지 전 관우.장비와 함께  의형제를 맺으며 죽고 살기를 함
께하기로 다짐했다. 이제 내자 천자가 되어 부귀를  함께 누리려 했으나 두 아우
는 모두 비명에 가고  말았구나. 오늘 두 조카를 보니 실로  가슴이 아프고 창자
가 끊어지는 듯 하구나!"
  그 말고 함께  선주가 다시 통곡했다. 이에 보다못한 신하들은  관흥과 장포에
게 눈짓하며 가만히 말했다. 
  "두 분 젊은 장군은 잠시 물러나시오. 성상께서 좀 쉬도록 하셔야겠소."
  두 사람이 신하들의 말을 알아듣고 슬며시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폐하께서는 이미 예순이 넘으셨습니다. 지나치게 슬퍼하시다가는 옥체를 해치
게 됩니다. 부디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두 아우가 죽었는데 어찌 짐 혼자서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선주가 따에다  이마를 짓찧으며  울부짖었다. 선주의 슬픔이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해가자 신하들은 근심스런 얼굴로 모여 의논했다. 
  "천자께서 저렇게 괴로워하시니 어떻게 하면 슬픔을 풀어드릴 수 있겠소?"
  마량이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주상께서 몸소 대군을 이끄실 터인데, 하루  종일 울기만 하시니 군사들의 사
기에도 이롭지 못할 것이오. 어찌하면 좋겠소?"
  그러자 진진이 생각해 둔 바가 있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듣건대 성도 청성산 서쪽에 이의란 사람이 몸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고 합니다. 들리는 말로는  그 노인은 나이가 이미 삼백 살이  넘었는데  사람이 
죽고 사는 것과 길흉을 훤히  아는, 이 세상의 신선이라 할 만하다 했습니다. 천
자께 말씀드려 그 도인을  불러와 길흉을 물어 보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들이 말씀드리는 것보다 더 나을 것입니다."
  여러 신하들이 찬동하자  곧 선주께 가서 이의를 불러 오도록  권했다. 선주도 
여러 신하들이 한결같이 권하므로  선선히 응낙하고 진진에게 조서를 내려 청성
산으로 보내 전하게 했다.   진진은 밤을 도와 청성에 이르자, 그곳 사람을 길잡
이로 삼아 깊은 산  골짜기에 있는 이의가 기거하는 곳으로 향했다.   이윽고 산
길에 접어들자 신선이 살 만한 곳으로 보이는 집이  한 채 있었다. 멀리 푸른 구
름 사리로 은은히 집  한 채가 솟아 있는데 예사롭지 않은  서기가 서린 듯했다.  
진진이 한동안 넋을 잃고 신선의  집을 바라보다가 길을 재촉하는데 문득 한 어
린 동자가 그를 맞으며 물었다. 
  "오시는 어른은 진 선생이 아니신지요?"
  "어찌 내 이름을 알고 있는가?"
  진진이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스승님께서 어젯밤에 제게 말씀하시기를, '내일은 반드시 천자께서 나를  부르
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조서를 받들어 올 분은 아마 진 선생일 것
이라고 하셨습니다."
  동자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과연 신선이라 할 만하구나! 사람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로구나."
  진진이 감탄하며 동자와 함께  초당으로 들어가 이의에게 절하고 천자의 조서
를 내리며 함께  가기를 청했다. 그러나 이의는 늙었음을 구실로  선뜻 따라나서
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진이 다시 간곡히 ㅊ했다. 
  "천자께서는 신선을  한 번 뵙고자 하시니  부디 학가(도사의 수레를 높여  한 
말)를 내어 함께 가 주시기 바랍니다."
  진진이 두 번  세 번을 그렇게 간청하자 그제야  이의가 함께 갈 것을 허락했
다. 이의가 어영에 이르자 선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의가 들어오는데 보니 머
리가 하얗게  세었으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은데다  눈은 푸르고 눈동자는 
모가 져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마주  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네모난 눈동자에
서는 빛이 나고 몸은 마치  늙은 동백나무 같아 첫눈에도 그가 예삿사람이 아님
을 알 만하게 했다.  선주가 귀한 손님을  맞는 예로 그를 맞아들이자 이의가 고
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 늙은이는 깊은 산 곳에 사는 한낱  촌 늙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배운 것
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데  폐하께서 조서를 내려 부르셨으니 실로 부끄러울 따
름입니다. 무슨 이르실 말씀이라도 계십니까?"
  이의의 물음에 선주가 대답했다. 
  "짐이 관운장.장비 두 아우와 의를 맺고 삶과 죽음을 함께하기로 다짐한 지 30
년이 되었는데  두 아우가 다 죽임을  당했소. 이에 몸소 대군을  거느려 원수를 
갚으려 하나 앞일의 길흉을 알 수가 없소.  오래 전부터 듣기로 선생께서는 하늘
의 아득한 이치를  깨치고 있다 하시었소. 바라건대 앞날의 밝은  가르침을 내려 
주시오."
  "그것은 다 하늘의 운수입니다. 이 늙은이가 어찌 알겠습니까?"
  이의는 대답하기를 마다했으나 선주가 두 번 세 번 거듭 묻자 마지못한 듯 입
을 열었다. 
  "정 그러시다면  종이와 붓을 주십시오."
  선주가 시신들에게 명해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했다. 이의는 종이를  펴 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그림은 병마와 무기들이었는데 40여 장을  그린 다
음 한 장씩을 손으로 집더니 찢어 버렸다.  이의는 다시 한 장의 그림을 그렸다. 
큰 사람 하나가 땅에 반듯이 누워 있는데 그 곁에서 한 사람이 땅을 파서 그 사
람을 묻으려고 하는 그림이었다. 이의는 그 그림  위에다 흰 백자를 쓰더니 선주
에게 절을 올린 후 아무 말없이 떠나가 버렸다.   그림을 본 선주는 불쾌한 마음
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의의 그림 가운데 누워 있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뜻
하는 것같아 마음이 언짢아 신하들에게 명했다. 
  "미치광이 늙은이가 아닌가!  어찌 저런 늙은이를 믿을 수 있겠는가?  저 그림
을 태워 버려라!"
  그리하여 이의가 그린 그림은 모두 불에 태워지고  말았다.  선주가 곧 군사를 
재촉하여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데 장포가 들어와 아뢰었다. 
  "낭중에서 오반이 거느린 군마가 이르렀습니다.  바라건대 소신이 선봉이 되어 
그 군마를 이끌도록 해 주십시오."
  장포가 분연히 말하자  선주도 그 의기를 장하게 여겼다. 선봉인을  꺼내 그에
게 넘겨 주었다. 장포가 절하며 그 인을 받아  허리에 꿰는데 한 소년 장수가 달
려나오며 분연히 외쳤다. 
  "그 선봉인은 나에게 넘기도록 하라!"
  그 소리에 모두 그를 보니 바로 관흥이었다.  그러나 장포가 한마디로 잘라 말
했다. 
  "나는 폐하의 분부를 받들어 이 인수를 받았다. 어찌 함부로 이 인수를 넘기라 
하는가?"
  그러나 관흥은 장포가 미덥지 못하다는 듯 캐물었다. 
  "네가 무슨 재능이 있다고 감히 어려운 일을 떠맡는다는 말이냐?"
  "나는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혔다. 활을 쏘면 빗나가는 일이 없다."
  장포는 관흥의 말에 화가  난 듯 그렇게 말했다. 옆에 섰던  선주는 서로 싸움
터에 나가겠다고 다투는 걸 보자 오히려 흐뭇했다.  그러나 둘다 두 아우의 아들
이라 선뜻 어느 편을  들기도 어려웠다.  둘 사이의 입씨름을  한동안 보고 있던 
선주가 마침내 공평한 결론을 내렸다. 
  "짐은 조카들의 무예를 보아 그 우열을 가려 정하리라!"
  선주가 무예를 보아 선봉을 정하겠다는 말에 장비의 아들 장포는 군사를 시켜 
1백 걸음 밖에 기를 세우고 그 기폭에  붉은 동그라미 과녁을 하나 그리게 했다.  
장포가 시위에 살을 먹이더니 활을 당겨 쏘는데, 세 대를 이어 쏘았다.  화살 세 
대가 하나도 빗나감이  없이 기폭의 붉은 과녁을 꿰뚫었다. 숨소리를  죽이며 이
를 지켜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감탄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자 관흥이 나서며 
소리쳤다. 
  "과녁을 맞히는 것쯤으로 무엇이 그리 대견스러운가?"
  관흥은 장포의 활솜씨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비웃었다. 그때 관흥의 머리 
위에는 기러기 떼가 날아가고 있었다. 관흥이 그걸 보자 다시 소리쳤다. 
  "나는 저 날아가는 기러기를 쏘겠다. 기러기 떼 가운데 앞에서 세 번째를 쏘아 
맞히겠다."
  관흥은 그  말과 함께 힘껏 시위를  당겼다. 시위 소리와 함께  날아간 화살은 
정말로 세  번째 기러기를 맞혀 하늘에서  떨어뜨렸다.  그걸 지켜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놀라운  솜씨에 일제히 소리치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장포는 그걸 
보자 화가 불끈 치솟아 말  위로 몸을 날리더니 아버지가 쓰던 장팔사모를 비껴
잡고 관흥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네 감히 나와 무예로 맞서 보려 하느냐?"
  관흥도 질세라 말 위로 뛰어올라  관 공에게 물려받은 청룡도를 높이 들고 달
려나오며 외쳤다. 
  "네가 장팔사모를 쓸 줄  안다면 난들 어찌 칼을 쓸 줄  모르겠느냐? 자, 어디 
네 창솜씨나 보자꾸나."
  관흥이 청룡도를 휘두르며  달려가자 장포도 창을 추켜들고  달려나갔다. 그러
자 선주가 소리쳐 꾸짖었다. 
  "두 조카는 무례한 짓을 하지 말라!"
  선주의 꾸짖음에 장포와  관흥은 황망히 말에서 내려  무기를 거둔 채 무릎을 
꿇었다. 선주가 엄한 목소리로 그들을 일깨웠다. 
  "짐이 탁군에서 그대들의 아비와  의를 맺어 형제로 지내 왔으니 마땅히 그대
들에게도 형제의 의가 있지  않느냐? 어찌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 아비의 원수를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 다투어 대의를 잃으려  하느냐? 아직 아비의 상을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럴진대 앞으로는 더할 것이 아니냐?"
  "잘못했습니다. 어리석은 저희들에게 벌을 내려 주십시오."
  두 사람은 얼굴을 붉힌 채 두 번 절하며 죄를 청하자 선주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두 사람 중에 누가 나이가 위인가?"
  "신이 관흥보다 한 살이 위입니다."
  장포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윗대에서는 관우가 장비보다  네댓살이 위
였으나 관우가 늦게 가정을 꾸리는 바람에 뒤바뀐  것이었다. 선주가 그 말을 듣
더니 관흥에게 조용히 타일렀다.  
  "그렇다면 너는 아우의 예로 절한 후 포를 형님으로 섬기도록 하라."
  선주의 분부에 따라 두 사람은 화살을 꺾어 형제의 의를 다짐하며 언제까지나 
서로 돕고  구해 주기로 맹세했다.   선주는 조서를 내려 오반을  선봉으로 삼고 
장포와 관흥으로는 어가를 좌우에서 호위하게 한 다음 물과 뭍으로 대군을 휘몰
아 나아갔다. 말탄 군사와  배를 탄 군사가 나란히 하여 동오로  밀려드니 그 기
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한편 그에 앞서 장비의 머리를  베어 달아난 범강과 장달은 오후를 찾아가 그 
목을 바친 다음 장비를  죽이게 된 내력을 밝혔다.  손권은  두 사람을 거두어들
인 후 문무백관을 모아 놓고 앞일을 의논하기에 다급했다. 
  "유비가 천자의 위에  오른 뒤 70만 대군을  몸소 이끌어 우리 동오를 향하고 
있다 하오. 그 세력이 매우 크다 하니 어째했으면 좋겠소?"
  그 말을 들은 백관들은 크게 놀라 낯빛이 변한 채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
다. 그러자 제갈근이 선뜻 나서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신은 군후의 녹을 먹은 지 오래이나 아직 제대로 은혜에 보답한 적이 없었습
니다. 바라건대 신으로 하여금  촉주를 만나도록 해 주십시오. 남은 목숨을 던져
서라도 이해로 달래, 두  나라가  서로 화친을 맺고 함께  조비를 치도록 하겠습
니다."
  손권은 제갈근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제갈근이 만약 실패하더라도 적의 
예기를 피하는 동안  아군을 수습할 틈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거기다가 
제갈근은 공명의 형이니 함부로  대하지 못하리라고 여겨 그날로 제갈근을 선주
에게로 보냈다.  때는  장무 원년 8월 가을이었다. 선주의 대군은 기관에 이르러 
백제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전부선봉은 이미 강하구까지  진병하고 있었
다.  이때 오의 사자로 제갈근이 왔다. 
  "오에서 제갈근이 와 뵙기를 청합니다."
  선주는 이미 만나 보지 않아도 손권의 속셈을 짐작할 만했다. 
  "만나지 않겠다. 돌려 보내라!"
  선주가 그렇게 잘라 말하자 곁에 있던 황권이 아뢰었다. 
  "제갈근의 아우는 우리의 승상입니다. 분명 무슨 까닭이 있어 왔을 터인즉, 폐
하께서는 한 번 만나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의 말을 들어본 뒤 좇을 만
하면 좇으시되 그렇지  않으면 그에게 손권의 죄를  따져 돌려 보내도록 하십시
오."
  선주도 들어보니  옳은 말이었다. 곧 제갈근을  불러들이게 했다. 제갈근이 성 
안으로 들어와 땅에 엎드려 절을 올리자 선주는 온 까닭부터 물었다. 
  "자유가 무슨 일로 먼길을 오셨소?"
  "신의 아우 공명은 오랫동안 폐하를 모셔 왔습니다. 폐하께서는 조금이나마 신
을 미쁘게 여기시라고 짐작하신 주군 손권께서 특별히 신을 보내 동오의 진심을 
말씀드리라 하셨습니다."
  "무슨 말이오? 어서 말해 보시오." 
  선주가 제갈근을 재촉했다. 
  "특히 형주 일을 아뢰러 왔습니다. 지난 날  관 공께서 형주에 계실 때 오후께
서는 여러 차례 화친하기를 원했으며  혼인까지 청한 일이 있었으나 관 공은 끝
내 마다하셨습니다. 그 이후 관 공께서 양양을 칠  때 조조는 여러 번 글을 보내 
그 틈에  형주를 빼앗으라고 권했으나  오후께서는 그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여몽이 관 공과 사이가 좋지 않아 제멋대로 군사를 일으켜 일을 그
르쳐 놓고 말았습니다. 오후께서는  그 일을 막지 못했음을 뉘우치고 계시나, 실
은 모든 죄는 여몽의 죄이지 오후의 허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몽도 이제 죽고 
없는 몸이니 그 원수 갚음은 절로 끝났다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손 부인
께서도 늘  폐하께 돌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이에  오후께선 신을 
사자로 삼아 부인을 폐하께 돌려 보내드리고,  더불어 항복한 장수들을 결박지어 
보내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또한 형주 땅도  폐하께 내어드리고 오래도록 우애
를 맺어 함께 조비가 제위를 빼앗은 큰 죄를 묻고자 하십니다."
  관 공의 죽음을 죽은 여몽에게 뒤집어씌우는 제갈근의 말을 듣고 있던 선주는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너희 동오가 내 아우를 죽여  놓고 지금 와서 교묘한 말로 꾸며 나를 달래려 
드느냐?"
  선주의 화난 외침에도 제갈근은 움추러들지 않고 대답했다. 
  "신은 일의 크고 작음과  무겁고 가벼움을 들어 폐하께 말씁드리는 것이지 결
코 교묘한 말로 꾸며대는 것은 아닙니다. 폐하께서는 한조의 황숙이십니다. 그런
데 한제를 이미  조비에게 빼앗겼는데도 그 역적을  쳐없앨 생각은 아니 하시고 
도리어 성도 다른 형제들을 위하여 만승의 존귀하신 몸을 수고롭게 하고 계십니
다. 이는 곧  큰 의를 버리시고 작은 의를 따르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중원은 천하의 가운데이며 허창과 낙양은 모두 대한을 일으켜 세운 곳인데 폐하
께서는 그곳을 버려 두시고 다만 형주 하나만을  다투려 하십니다. 이는 곧 무거
운 것을  버리시고 가벼운 것을 택하시는  것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은 폐하께서 제위에  오르시면 반드시 한실을 일으켜 잃었던 강산을 
다시 되찾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조비의 큰 죄는  묻지 않으시고 오
히려 오를 치려 하시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제갈근이 말이 끝나자 선주는 더 크게 화를 낼 뿐이었다. 
  "내 아우를 죽인 자들과는 함께 한 하늘 아래 설 수가 없다. 짐이 군사를 물릴 
때는 짐이  죽고 나서일 것이다. 승상의  낯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대의 머리를 
먼저 베었을 것이나 특별히 그대를  돌려 보내니 손권에게 목을 씻고 죽음을 기
다리라고 일러라!"
  선주가 그렇게 말하며  화를 내니 제갈근도 하는 수 없었다.  쫓겨나다시피 하
여 무연히 동오로 돌아갔다.  한편 제갈근이  촉으로 떠난 이후 장소는 손권에게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제갈근은 촉병의 형세가 큰  것을 보자 주상을 배반하고 화친하러 간다는 핑
계를 대고 촉으로 간 것같습니다. 그는 이미  떠났으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입니다."
  그러나 손권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장소의 말을 물리쳤다. 
  "나와 자유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두터운 맹세를 한 바 있소. 내가 그를 저
버리지 않았는데  그가 나를 저버릴 리가  없소. 지난 날 자유가  시상에 있었을 
때 마침 그의 아우  공명이 온 일이 있었소. 그때 내가  자유에게 공명의 마음을 
돌려 보라고 한적이 있소.  그러자 자유가 말하기를 '아우는 이미 유비를 섬기고 
있으니 의를 저버리고 두  마음을 품을 리가 없습니다. 아우를 오에  붙들 수 없
음은 제가 주공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가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라고 하
였소. 그  말만 보더라도 자유는 능히  귀신의 밝음을 꿰뚫을 만한데  어찌 촉에 
투항하겠소? 나와  자유는 이미 마음과 마음이  믿음으로 이어져 있으니 아무도 
우리 둘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없을 것이오."
  손권이 그렇게 말을 끝맺는데  근시가 들어와 제갈근이 돌아왔다는 말을 전했
다. 손권이 웃으며 장소를 보고 말했다. 
  "어떻소, 내 말이 맞지 않소?"
  그 말에 장소는 얼굴 가득 부끄러운 빛을  띠며 물러나고 말았다. 장소가 물러
나자 제갈근이 들어와 선주를 만난 일을 자세히 전했다. 
  "그렇다면 우리 강남이 실로 위태롭게 되었구나!"
  그러자 계하에서 한 사람이 나서며 소리쳤다. 
  "제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이 위태로움을  능히 풀 수가 있을  것 입니
다."
  모두 놀라며 보니, 그는 중대부 조자였다. 
  "덕도에게 무슨 좋은 계책이 있는가?"
  손권이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주공께서는 표문 한 장만 지어 주십시오,  신이 조비에게 이해득실을 따져 그
로 하여금  한중을 치도록 달래겠습니다.  만약 위가 군사를  일으킨다면 촉병을 
저절로 위태로움에 빠지게 될 것이니 어찌 물러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계책이 좋기는 하오, 그러나 경이 위로 갈지라도 결코 동오의 굳센 기상을 
떨어뜨려서는 아니 될 것이오,"
  손권이 문득 정색을 하더니 다짐을 두었다. 
  "제가 가서 동오의 기상을  떨어뜨리는 일이 있다면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버리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비굴하게  보인다면 무슨 낯으로 다시  강남으로 돌아
올 수 있겠습니까?"
  조자가 분연히 마랗자  곧 그의 계책에 따르기로 하고 손권은  표문을 지었다. 
그러나 손권은 조자에게 동오의  기상을 떨어뜨리지 말라는 기세와는 달리 스스
로를 신이라 낮추며 동오를 구하기  위해 한중을 치라는 표문을 주어 허도로 가
게 했다. 
  밤을 도와 허도에 이른 조자는 우선 채위가후를 비롯한 높고 낮은 관원들부터 
만나 보았다. 먼저  그들에게 환심을 산 후  조비를 달랠 속셈에서였다. 다음 날 
조회 때가 되자 가후가 나서 아뢰었다. 
  "동오에서 중대부 조자가 폐하께 표문을 올리러 왔습니다."
  조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촉병을 물리쳐 달라고 온 것이리라."
  조비가 사자를 불러들이게 하자 조자는 붉은 빛으로 칠한 계하에 엎드려 손권
이 준 표문을 올렸다. 표문을 다 읽고 나자 조비가 조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오후는 어떠한 사람인가?"
  "밝고, 어질고, 슬기로우시며  영웅의 기상을 품으신 가운데도 계략을 아는  임
금입니다."
  조자가 조비를 쳐다보며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조비가 웃으며 빈정
거리듯 말했다. 
  "경은 주인을 너무 지나치게 치켜세우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오후께서는 노숙을 대수롭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찾아 내어 
무겁게 쓰셨으며, 여몽을 행진하는 졸개들 틈에서  뽑아 대장으로 쓰셨으니 이는 
곧 밝음입니다. 우금을 사로잡았으나 죽이지 않고  위로 보냈으니 이는 어지심이
며, 형주를 ㅃ앗되  칼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니 이는 슬기로움입니다. 또한 
삼강을 의지하여 천하를 범처럼  굽어보고 계시니 이는 영웅의 기상이라 하겠습
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폐하에게 몸을 굽힐 줄도  아니 이는 계략을 쓸 줄 안다
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할진대 어찌  밝고, 어질며, 슬기롭고  영웅의 기상에다 
계략을 함꼐 지닌 주인이라 아니 할 수 있겠습니까?"
  조비는 그 말에 조자를 노려보았다. 오후가 스스로  몸을 굽혀 위를 받드는 것
을 스스럼없이 계략이라고 말한 조자의 담대함에 조비의 근신들도 놀라 그를 바
라보았다. 그러자 조비가 다시 조자에게 물었다.
  "그대의 주인은 학문도 아는가?"
  조비의 모욕적인 물음에 조자는 태연히 입을 열었다.
  "오후께서는 물 위에 1만 척의  배를 띄워 놓고 뭍에는 무장을 갖춘 1백만 대
군을 거느리셨습니다. 또한  어진 이를 쓰며 일  잘하는 이를 부릴 줄 아십니다. 
게다가 천하를 경략하는  데에 뜻을 두시고 조금만 틈이 나면  책을 읽으십니다. 
글과 전기, 그리고 역사책을 두루 읽어 그 대강의 요지만을 취하시니, 결코 서생
들처럼 좋은 문장이나 따지며 좋은  구절이나 따서 쓰는 그런 짓은 아니 하십니
다."
  그러자 조비가 이번에는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짐은 오를  치고자 하는데 그대의  생각으로는 짐이 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
  뜻밖의 물음에도 조자는 당황하지 않았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칠 만한 군사가 있다면 작은 나라는 능히 막아 낼 만
한 대책이 서 있는 법입니다."   
  "오는 위를 두려워하는가?"
  "오에는 갑옷을 갖춰  입은 군사 1백만이 있으며  장강과 한수가 못처럼 둘러 
싸고 오를 지켜 주고 있습니다.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가?"
  조자가 단숨에 대답하자 조비는 다시 물었다.
  "동오에는 대부와 같은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특별히 총명한 이는 팔구십 명쯤 되고 저같은 무리는 수레에 실어 나르고 말
로 세어야 할 만큼 그 수효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조자의 대답이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이 없는데다  그 말에는 사리가 정연했다. 
조비도 그제야 조자에게 찬탄의 말을 했다.
  "'사자로 사방을 다녀도  자기 임금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그 
말은 바로 그대를 두고 한 말이리라."
  조비는 조자를 칭찬한 후 곤 태상경 형정에게 손권을 오왕으로 봉하고 구석을 
더한다는 조서를 쓰게 했다. 조자는 조비의 은혜에 감사하고 궁에서 물러나왔다. 
조자가 무러나자 대부 유엽이 조비에게 말했다.
  "지금 손권이 항복을 청해 온 것은 촉군의 세력이 커져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
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촉과 오가 싸우기만 한다면 이는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때 용맹스러운 장수에게  수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오를 치게 하신다면 촉군은 밖에서 그들을 칠  것입니다. 안과 밖에서 군사를 맞
는다면 오는 열흘도 못 가시  망할 것이며 오가 망한다면 촉고 외로우니 어렵지 
않게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무슨 까닭에 그리 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유엽이 걱정스런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손권이 비록  굳세고 재주가 있으나 겨우  한의 표기장군 남창후라는 하찮은 
벼슬을 지내고 있습니다. 벼슬이 낮으면 기세가  약하므로 중원을 두려워하는 마
음 또한 그만큼  커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제 왕위를 내렸으니  그의 마음이 
달라질까 두렵습니다. 왕이 되면 폐하의 바로 아래가 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그의 거짓 항복에 속아 그의 벼슬을 높이고 세력을 넓혀 주시니 이는 범한테 날
개를 달아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조비는 그런 유엽의 말을 받으며 속마음을 밝혔다. 
  "그렇지 않소이다. 짐은 오도 촉도 돕지 않을 것이오, 오와 촉이 서로 싸워 그 
중에 하나가 망하게 될 때를 기다릴 뿐이오,  그렇게 되면 남은 하나만을 쳐없애
는 데 무슨 어려움이 따르겠소?  짐이 이미 그렇게 뜨스을 정한 터인즉 경은 더 
이상 여러 말 하지 마오."
  그제야 유엽도 조비의  뜻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 조비는 태상경  형정을 불러 
조자와 함께 오롤  가도록 일렀다. 손권을 오왕으로 봉하고 구석을  더한다는 조
서를 내리기 위함이었다.  한편 손권은 백관들을  모아 놓고 촉병을 막을 계책을 
의논하고 있었다. 그런데 홀연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위제가 주공을 왕으로 봉한다는  조서와 함께 사자를 보냈는데 성 밖에 이르
렀습니다. 예법에 따라 주공께서 나가시어 맞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손권이 곧 사자를 맞으러 나가려 했다. 그러자  오래 전부터 손권이 위에 투항
하는 것에 속이 뒤틀려 있던 고옹이 보다못해 손권에게 말했다. 
  "주공께서는 변함없이 당당한 상장군  구주백(천하의 최고위의 자리)이심을 내
세우십시오. 이제 와서 위제 조비가 주는 벼슬을 받아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아니오. 옛적 패공도 항우로부터 책봉을 받아 한왕이 되었소. 모든 일이 그때
의 형편에 따르는 것이니 굳이 물리칠 것까지는 없소."
  손권은 고옹의 말에 그렇게 대꾸한  뒤 문무백관을 이끌어 성 밖으로 나가 사
자를 맞았다.   형정은 손권이 몸소  백관들을 거느리고 나와 사자를  맞자 대국 
천자의 사신으로서 한 번 뽐내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일었다. 그래서 손권이 성 
밖까지 나와 맞는데도 수레에서 내리지 않고 곧장 성  안으로 들려 했다.  그 오
만스런 꼴을 본 장소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예란 공경함이 따라야 하고, 법은 엄숙함이 없어서는 아니 된다. 그대는 감히 
스스로를 높이고 큰 채하며  철없이 으스대니, 우리 강남에는 네 목을  벨 칼 하
나 없는 줄 아느냐?"
  장소의 호통에 형정은  그제야 창황히 수레에서 내려와  손권을 본 다음 함께 
수레에 올라 성 안으로 들었다. 늘어서 있던  백관들이 모두 형정의 오만스런 모
습에 분개하고 있는데 또 한 사람이 통곡하며 말했다. 
  "우리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고 조조와 유비를  쳤어야 했었다. 그러지 
못해 주인으로 하여금 남의 벼슬이나 받게 하니 이 얼마나 수치스런 일인가?"
  백관들이 놀라  보니, 그는 바로 편장군  서성이었다. 서성의 울부짖음을 들은 
형정은 속으로 감탄했다.  
  '강동의 장수와 신하들이  저러하니 손권은 결코 오래도록 남의  밑에 있을 리
가 없겠구나!'
  그러나 손권은 조비가  내린 왕작을 기꺼이 받고  모든 백관들은 절을 올리며 
하례했다. 손권은 금은과 옥돌,  그리고 아름다운 구슬 등을 은혜에 감사하는 예
물로 마련해 조비에게 바쳤다. 장소는 비위가 상한 듯이 손권에게 말했다. 
  "주공께서 이렇듯 예물까지 바치실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지금은 위와 화친하는 것이  이득이 되오. 뒷날, 저런 예물은 한낱 돌이나 기
왓장에 지나지 않을 것이오."
  손권은 가볍게 웃으며 장소를 달랬다. 
   
  손권이 위의 조비로부터 왕작까지  받으며 화친을 맺었으나 선주 유비의 진병
은 멈추지 않고 동오의 산천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손권이 사자를 위에 보낸 
뒤 풀어 놓은 염탐꾼으로부터 급보가 전해졌다. 
  "촉주 유비는 본국의 대병에다  만왕 사마가의 오랑캐 군사 수만 명까지 더했
습니다. 또한 동계에  있던 한장 두로.유녕의 두  갈래 군사까지 이끌어 물과 뭍 
두 길로 밀려 오고  있습니다. 그 기세가 하늘을 뒤흔들 듯한데  물길로 오는 군
사는 이미 무구를 지나고 있으며 뭍의 군사는 자귀에 이르렀습니다."
  손권은 그  전갈을 받고 깜짝 놀랐다.   비록 조비가 왕작을  내리기는 했으나 
얼른 구원군을 보내 주지 않고 있으니 손권으로서는 촉군을 막을 일이 걱정되었
다. 손권은 급히 문무백관을 불러모아 놓고 의논했다. 
  "촉군의 세력이 크다 하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백관들도 달리 방책이  생각나지 않아 모두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한숨을 내쉰 채 묵연히 앉아 있자 손권은 탄식하며 말했다. 
  "주유가 죽은 뒤에는 노숙이 있었고, 노숙이 죽은 뒤에는 여몽이 있었다. 그런
데 이제 여몽도 죽고 나니 나와 근심을 함께할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홀연 한 소년  장군이 나서 땅에 엎드리며 결연한 
목소리로 외쳤다. 
  "바라건대 저를 보내 주십시오. 신의 나이가  비록 어리나 약간의 병서를 읽었
습니다. 제게 군사  몇 만만 주신다면 나아가 서촉의 군사들을  쳐서 물리치겠습
니다"
  손권이 얼른 그를  보니 무위도위 손환이었다. 그의 자는 숙무로  그의 아버지
의 이름은 하였으며  원래의 성은 유씨였다. 손책이 일찍부터 그를  사랑하여 손
씨성을 쓰게 하니 그 이후부터 오왕의 일가가  된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 손하
에게는 아들 넷이 있었는데,  손환이 그중 맏이었다.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잘해 
손권이 나가는 싸움터를 따라다니며  놀라운 공을 자주 세워 벼슬이 무위도위에 
올랐던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손권은 손환이 나서 싸우기를 
청하자 기꺼워하는 가운데도 너무 어린 나이라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네게 적을 깨뜨릴 만한 무슨 계책이라도 있느냐?"
  "신에게 장수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이이며 또  한 사람은 사정입니
다. 둘 다 능히 1만  명의 적을 당해 낼 만한 용맹을 지닌 장수입니다. 바라건대 
군사 수만 명만 주신다면 유비를 사로잡아 보이겠습니다."
  손환이 힘찬 목소리로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손권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
이지 않는다는 듯이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조카가 비록 영용하다 하나 아직 나이가 어리다.  누구 한 사람 도와 주는 사
람이 었어야 하리라."
  그러자 호위장군 주연이 나서며 아뢰었다. 
  "바라건대 신으로 하여금 작은 장군과 함께  가도록 해 주십시오. 작은 장군을 
도와 유비를 사로잡아 보겠습니다."
  손권은 주연이 함께 갈  것을 청하자 쾌히 응낙했다. 그리하여 손환을 좌도독, 
주연을 우도독으로 삼아 군사 5만을 주고  각기 2만5천을 거느려 나아가게 했다.  
이때 촉병을 살피러 갔던 군사가 달려와 손환에게 알렸다. 
  "촉군이 이미 의도에 이르러 영채를 세웠습니다."
  손환은 그 말을 듣자 2만5천 군사를 이끌어 의도 언저리로 가 영채 셋을 나누
어 세웠다.  한편 촉장 오반은 선봉이 되어  서천을 떠난 뒤로 가는 곳마다 드높
은 기세에 겁을 먹은 적이 항복해 와 칼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의도까지 이
르렀다. 의도에 이른 오반은  손환이 영채를 세우고 있는 걸 보자  이 사실을 선
주에게 알렸다.  그때  선주는 자귀 땅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벌컥 
화를 냈다. 
  "그런 어린아이를 내세워 감히 짐에게 맞서려 한다는 말이냐?"
  그러자 옆에 있던 관흥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손권이 어린아이를 내세웠으니  폐하께서도 굳이 수고로이 장수를 보내실 필
요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제가 가서 그 어린 것을 사로 잡
아 오겠습니다."
  선주는 관흥의 말에 웃음을 띠고 말했다. 
  "그렇다면 짐이 너의 장한 기상을 한 번 보리라!"
  선주는 군사를 주며  관흥으로 하여 나아가게 했다. 관흥이 선주께  절을 올린 
후 말에 오를 때였다. 
  "관흥이 싸우러 간다면 이 몸도 함께 보내 주십시오!"
  장포가 이에 질세라 달려나오며 선주께 아뢰었다.  선주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
를 끄덕였다. 
  "두 조카가 함께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가는 것 또한  좋으리라. 그러나 너무 
서두르지 말고 무겁게 움직여 실수가 없도록 하라."
  선주의 명이 내려지자 두 사람은  선주께 절을 올리고 함께 선봉이 되어 군사
를 이끌어 갔다.  손환은 촉병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세 곳 영채의 군사를 모두 
모아 진을 벌였다. 이윽고 촉병이 이르러 맞은편에  영채를 세우니 두 진이 둥글
게 진을 벌이게 되었다.   손환은 이이와 사정을 거느리고 문기  아래 말을 세운 
후에 촉병의 진세를 훑어보았다. 촉의 영채에서 두  대장이 나서는 데 보니 모두 
은빛 투구에 갑옷을 갖춰 입고 흰 기를 앞세운 채  흰 말 위에 앉아 있었다.  오
른쪽은 장포로 길이가 여덟 자나  되는 그 아버지 장비가 쓰던 장팔사모창을 비
껴들고 있었고, 왼쪽의 관흥은 큰  칼을 차고 있었다.  장포가 먼저 앞으로 나서
며 소리쳐 손환을 꾸짖었다. 
  "손환 어린 것아 듣거라. 죽음이 네 눈앞에 닥쳤는데 그래도 감히 천병에게 맞
서려 하느냐?"
  손환도 마주 나서며 큰 소리로 대꾸했다. 
  "네 아비가 이미 머리 없는  귀신이 되었는데 너 또한 죽어 목이 떨어지고 싶
으냐? 참으로 어리석은 놈이로구나."
  손환이 죽은  아버지를 들먹이자 장포는  불같이 화가 치밀었다.  말로 맞서는 
대신 말을 박찼다. 장포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자  손환의 뒤에 있던 사정이 말
을 달려 장포를 맞았다.  두 장수가 부딪기를 30여 합이 되자  사정은 당해 내지 
못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장포가 신명이 나 급한 기세로 사정을 뒤쫓았다.  이
이는 사정이 장포에게 쫓기고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말을 몰아 큰 쇠도끼를 휘
두르며 장포를 가로막았다.  장포와 이이가 부딪친 지 20여 합이나  되었으나 승
부는 가려지지 않았다.  이때 오군의 비장 가운데 담웅이란 자가 있었는데, 장포
가 사납고 날래 이이가 이겨  내지 못할 것 같자 가만히 활에 살을 메겨 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장포가 타고 있던 말에 꽂히고 말았다. 화살에 맞은 말은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길길이 날뛰다 본진으로 달렸으나 미처 진에 이르지도 못하고 쓰
러졌다. 장포도 쓰러지는 말과 함께 땅 위에 뒹굴었다. 장포를 맞아 싸우던 이이
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급히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가  장포의 뒤통수를 
찍으려 했다.  그때였다. 홀연  한 줄기 붉은 빛이 번뜩이는 듯하며 오히려 이이
의 머리가 땅에  뚝 떨어졌다.  이이의  머리를 떨어뜨린 건 관흥이었다. 장포의 
말이 쓰러지고 이이가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오자 관흥이 쏜살같이 내달아 한 발 
먼저 이이의 목을 날려 버리고 장포를 구해 낸  것이었다.  이이의 목을 벤 관흥
은 그 기세를 몰아  손환의 군사를 향해 덮쳐갔다. 이이의 목이  떨어지는 걸 본 
동오 군사들은 싸우기도  전에 기세가 꺾였다. 관흥이 군사를 휘몰아  닥치는 대
로 찌르고 베자  이미 기세가 꺾인 군사들을 거느린  손환은 당해 낼 수가 없었
다. 첫 싸움에서 크게 패한  채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어들였다.  그렇다겨 그대
로 군사를 물릴 손환은 아니었다.  다음 날  날이 밝기가 무섭게 전날 패한 싸움
을 만회하려고 군사를 이끌고 나와 싸움을 돋우었다.   관흥과 장포가 함께 나와 
손환을 맞았다.  관흥이 손환을 보고 놀려댔다. 
  "장수를 죽이고 패해 달아난 놈이 무슨 낯으로 다시 싸우러 왔느냐?"
  손환이 그 소리에  분이 치밀어 말을 달려나오자 관흥도 마주  달려나갔다. 칼
과 칼이 부딪치며 한바탕  거센 싸움이 어우러졌다. 싸운 지 30여  합이 되자 손
환은 힘이  부친 듯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관흥과 장포가  달아나는 손환을 
뒤쫓아 곧장 오군의  영채까지 짓쳐들었다. 그때 대군을 이끌어 오던  오반도 장
남.풍습과 함께 군사를 휘몰아  오군에게 불시에 덮쳐들었다.  장포가 적진을 헤
집으며 장팔사모를 휘두르다가 문득 손환의 아장인 사정과 마주쳤다. 
  "이놈! 잘 만났다. 네놈 목은 내가 맡겠다."
  그 소리와 함께 사모창이 번쩍 치켜들리자 어느 새 사정의 목이 말 아래로 굴
렀다. 사정이 죽는 것을  본 오군은 그렇치 않아도 크게 흔들리고  있던 터라 더 
이상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뿔뿔히 흩어져  달아나기에 바빴다.  촉병의 대승이
었다. 오군이 멀리 달아나자 장수들은 군사를  거두어들이는데 장포가 문득 살펴
보니 관흥이 보이지 않았다. 장포가 깜짝 놀라 물었다. 
  "관 장군은 어디 계시냐?"
  "관 장군께서는 보이지 않으십니다."
  가까이에 있던 군사 하나가 대답했다. 
  "만약 안국(관흥의 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다면 내 어찌 홀로 살겠느냐."
  장포는 그렇게  외치며 말 위에 올라  관흥을 찾으러 나섰다. 장포가  몇 리를 
채 가지 않았는데 앞쪽에서 한 장수가 달려오고  있었다. 장포가 자세히 보니 관
흥이었다. 왼손에는 칼을 잡고 있었는데, 오른손에는 오나라 장수 하나를 사로잡
은 채였다. 
  "아우는 웬놈을 사로잡아 오는가?"
  장포가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관흥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난군 중에 원수를 만났기에 사로잡아 오는 길이오."
  장포가 그자를 힐끗 보니 바로  어제 활을 쏘아 자신의 말을 맞혔던 담웅이었
다. 장포는 몹시 기뻐하며  영문으로 들어가는 즉시 그 자의 목을  베어 죽은 말 
위에 그 피를 뿌려  주며 제사를 지냈다.  장포와 관흥은  선주에게로 사람을 보
내 싸움에 크게 이긴 소식을 전하게 했다. 

    원수는 갚았으나 한은 더 맺히고
  관흥은 산 속에서 관  공을 죽인 반장을 만나 원수를 갚는다.  이에 놀란 손권
은 장비를 죽이고  오로 투항했던 두 군졸을  결박지어 선주에게 보내고 화친을 
제의하나 선주는 더욱 손권에게 한을 품는다. 
  한편 손환은 이이.사정.담웅의 세 장수와 많은 군마를 잃고 나자 더 싸울 엄두
가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손권에게 사람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촉의 장수 장남과 풍습은 손환의 군사가  이미 크게 꺾여 있는 것을 알
고 오반에게 말했다. 
  "오의 군사가 싸움에 져서 기세가 꺾여 있습니다.  이 틈을 타 적의 영채를 휩
쓸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오반은 두 장수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손환이 많은 군사들과 장수들을  잃었다 하나 아직 주연이 거느린 수군이 강 
위에서 늘어서서 버티고 있다. 우리가 적의 영채를  치는 동안 적의 수군이 뭍으
로 올라와 돌아갈 길을 끊는다면 그때는 어찌하겠는가?"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관흥과 장포 두 장군에게  각기 군사 5천을 
주어 산골짜기에 매복케  하시면 됩니다. 만약 주연이 손환을 구하러  오면 양쪽
에서 달려나가 그들을 치게 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우리가 이길 것입니다."
  장남이 그렇게 말하자  오반도 그럴 듯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반은 적
을 유인하기 위해 또 한 가지 계책을 내었다. 
  "주연의 군사를 치기 위해 그들을 뭍으로 꾀어 내도록 해야겠네. 먼저 졸개 몇
을 주연에게 보내 거짓으로 항복하게 하세. 그런  다음 우리가 손환의 영채를 치
기로 한 걸  일러 바치게 한 뒤 불을  지르면 그들을 손환의 진영이 위태롭다고 
여겨 곧  구원올 것이네. 그때 우리  복병들이 나가 그들을 친다면  어렵지 않게 
적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네."
  장남과 풍습도 듣고 보니 묘안이 아닐 수  없었다. 두말 없이 계책대로 복병을 
배치하고 거짓 항복할 졸개들을 뽑았다.  한편  주연은 손환이 크게 졌다는 소식
을 듣고 구원병을  거느려 나가려는데 뜻밖에도 촉병  몇 사람이 항복해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주연은 그들을 데려 오게 하여 물었다. 
  "너희들이 항복한 까닭이 무엇인가?"
  "저희들은 원래 풍습 아래에  있던 졸개들로서 상과 벌이 분명치 못하고 저희
를 함부로 하여 고초를 겪던 중 장군께  항복하러 왔습니다. 이렇게 왔으니 특별
히 장군께 은밀히 한 가지 기밀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주연은 졸개들의 말에 귀가 번뜩 띄었다. 
  "그래 그 기밀이란 것이 무엇이냐?"
  "오늘 밤에 풍습은  오군이 싸움에 져 방비가  약한 틈을 타서 불시에 손환의 
영채를 치기로 했습니다. 불을 올려 군호로 삼을 것이라 합니다."
  주연은 그 말을 듣고 곧 사람을 보내 그  사실을 손환에게 전하게 했다.  그러
나 사자는 미처 손환에게 이르기도  전에 미리 숨어서 길목을 지키고 있던 관흥
에게 붙들려 죽고 말았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주연은 사자를 손환에게 보낸 
후 군사를 거느려 손환의 구원군과  함께 기습하는 적의 뒤를 덮쳐 깨뜨릴 심산
이었다.  그러자 부장 최우가 나서며 말렸다. 
  "항복해 온 한낱 사졸들의 말만을 믿고 군사를 일으킬 일이 못됩니다. 만약 일
을 그르치게 되면 물과 뭍의 군사가 모두  화를 입게 됩니다. 장군께서는 수채를 
지키고 계십시오. 제가 대신 군사를 거느려 가겠습니다."
  그 또한 옳은 말이라 주연도 고개를 끄덕이며 최우에게 군사 1만을 주어 이끌
어 가게 했다.   그날 밤이 되자  풍습과 장남은 오반과 함께 세  갈래로 군사를 
나누어 손환의 영채로  밀고 들어가 영채에다 불을 질렀다. 손환의  영채에서 크
게 불길이 일자 군사들은 크게 어지러워졌다. 오군은  제대로 싸워 볼 엄두도 내
지 못한 채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군사를 거느리고 손환의 영채로 향
하던 최우는 과연 항복해 온 사졸들의 말대로 불길이 일자 군사들을 재촉했다. 
  "급히 내닫도록 하라!"
  최우가 군사들에게 호령하며  한 산모퉁이를 돌아가는데 갑자기 산골짜기에서 
북 소리와 징 소리가  크게 일며 두 갈래로 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관흥과 장
포가 거느린 군사들이었다.  최우가 모든 것이  적의 계략임을 알았으나 때는 이
미 늦은  뒤였다. 오른쪽과 왼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적에게  꼼짝없이 거느렸던 
군사들이 찢기고 있을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최우가 말머리를  돌려 급히 달
아나는데 어느 새  장포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최우는 장포를  맞아 싸웠으나 
그는 장포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칼을 부딪친 지  몇 합이 못 되어 장포에게 덜
미를 잡히고 말았다.  수군을 거느리고 있던  주연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돌아온 
패잔병들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주연은 나머지  군사들만이라도 지킬 
작정으로 급히 군사를 5,60리나  물린 후에야 배를 세웠다.  한편 손환도 오반이 
거느린 군사들에게 야습을 당해 군사  태반이 꺾인 후 정신 없이 달아나다가 뒤
쫓는 적이 멀어지자 겨우 숨을 돌리며 뒤따르는 부장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면 높은 성벽에 양식이 넉넉한 성이 있는가?"
  "여기서 북쪽으로 가면 곧장 이릉성이 있습니다. 그곳이면 가히 군사들이 머무
를 만합니다."
  부장이 그렇게  대답하자 손환은 뒤따르는 군사들을  이끌고 이릉성으로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오반은  손환을 뒤쫓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손환이 이릉성 
안으로 달아난  것을 알자 성 밖에서  에워싸고 말았다.  이때  최우를 사로잡은 
관흥과 장포의 다른 한  갈래 촉군은 선주가 있는 자귀로 돌아갔다.   선주의 기
쁨은 컸다. 관 공과 장비의 아들들이 나란히  나아가 적장을 셋이나 죽이고 최우
를 사로잡은데다 싸움에서  크게 이기고 돌아오자 그 기쁨이 각별했다.  이에 선
주는 사로잡은 최우의 목을 베게  한 후 삼군에게 후한 상을 내려 그 공을 치하
했다.  촉군을 맞으러 나갔던 손환이 여지없이  무너지자 촉군의 위세는 강남 일
대에 떨쳐 울렸다.  한편 동오에서도 이 소식이 전해지니 오나라의  장수들은 모
두 한결같이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제 선주가 이끄는 촉병의 말  발굽 소리만으
로도 오의 건업 성  안은 침통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편  이릉성에서 오반이 거
느린 군사들에게  에워싸인 손환은 급히  오후에게 구원을 청했다.   사자로부터 
자세한 소식을 전해 들은 손권은 크게 놀라며 문무백관을 모아 놓고 의논했다. 
  "지금 손환은 이릉에서 위급한 처지에 빠져 있고, 주연은 강에서 크게 패해 멀
리 쫓겨나 있는  지경이오. 촉군의 세력이 이처럼 매섭고 크니  어찌했으면 좋겠
소?"
  그러자 장소가 나서며 입을 열었다. 
  "이제 많은 장수들이 세상을  떠났다 하나 아직 우리에게는 10여 명의 용맹스
러운 장수들이 있으니 어찌 유비를 물리치지 못하겠습니까? 한당을 대장으로 삼
으시고 주태를  부장으로, 반장을 선봉으로,  능통을 후군으로  삼으십시오. 또한 
감녕을 전군의 형세를 보아 구원케 하고 군사 10만을 일으키시어 유비를 물리치
도록 하십시오."
  장소가 힘찬 목소리로 그렇게 권하자 손권도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곧 모든 
장수들이 군사를 일으켜  촉군과 맞서기 위해 떠나도록 했다. 감녕은  이때 이질
을 앓고 있었으나 형세가 급해  병을 무릎쓰고 나아갔다.  그 무렵 선주는 무협.
건평에서 이릉  경계까지 70여 리에 걸쳐  영채 40여 채를 늘여  세우고 있었다. 
그럴 때 관흥과 장포가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오자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백관들에게 말했다. 
  "지난날 짐을 따르던 장수들은  모두 늙어 쓸모가 없는 터라 짐이 걱정스러웠
다. 그러네 두 조카가 이처럼 용맹스러우니 손권을 치는데 무슨 걱정이 있으랴."
  선주가 관흥과 장포에게 감격해 마지않는데 문득 군사 하나가 들어와 알렸다. 
  "동오의 한당과 주태가 군사를 이끌고 왔습니다."
  선주는 곧 장수를 보내 동오 군사를 치려 하는데 군사 한 사람이 급히 달려와 
아뢰었다. 
  "노장군 황충이 군사 대여섯을 거느리고 동오로 투항하러 갔다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선주는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황충은 결코 나를 저버릴 사람이 아니다. 아마 짐이 장수들이 늙어 쓸모가 없
다는 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황 장군은 자신이 쓸모없는  늙은 장수가 
아님을 보이려 떠났을 것이다."
  선주는 그 말과 함께 곧 관흥과 장포를 불러 분부를 내렸다. 
  "황충이 군사도 거느리지 않았으니 해를  입을까 두렵다. 조카들은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말고 가서 돕도록 하라. 그가 작은  공이라도 세우면 곧 돌아오게 하고 
실수를 하여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라."
  관흥과 장포는 선주의 영을 받들어 곧바로 황충을  도우러 갔다.  이때 황충은 
선주 유비의 늙은 장수는 쓸모가  없다는 말에 울컥 치미는 오기를 억누르지 못
한 채 말을 몰아 오반의 영채로 달려갔다.  황충이 군사를 거느리지 않고 대여섯
만을 이끌어 오군과 맞서 있는 이릉으로 불쑥 오자 오반이 놀라며 물었다. 
  "노 장군께서는 무슨 일로 이렇게 급히 오셨습니까?"
  황충이 무거운 얼굴로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분연히 말했다. 
  "나는 장사 땅에서 천자를 모신 이래로 지금까지 많은 싸움터를  떠돌아다니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싸웠다. 이제 비록  일흔이 넘었으나 지금도 고기  열 근은 
너끈히 먹고, 쌀  두 섬을 들 만한 힘이  드는 활을 쏠 수 있으며 말을  달려 천 
리를 갈 수 있다.  그런데도 어찌 늙어 쓸모없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어제 선
주께서 옛 장수들은  늙어 쓸모없다 하시기에 내가  동오 군사들과 싸우기 위해 
이렇게 달려왔다. 반드시 동오  장수들의 목을 베어 과연 늙었는지, 그렇지 않은
지를 보이리라."
  황충이 목소리를 높여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군사 하나가 달려와 오병의 전부 
선봉이 영채 가까이에 이르렀음을  알렸다.  황충이 그 말을 듣자  대뜸 장막 밖
으로 나가 칼을 들고 말 위에 올랐다. 그러자 풍습과 다른 두 장수가 말렸다. 
  "노장군께서는 가볍게 나아가지 마시고 잠시 살피도록 하십시오."
  "무슨 말인가. 그대들도 나를 늙었다고 하려는가?"
  황충은 그렇게 외치더니 그대로 말을 채찍질하며  달려나갔다. 이에 오반은 풍
습에게 군사를 이끌고 가서  황충을 돕게 했다. 황충은 나는 듯이  말을 달려 오
군의 진 앞에 이르자 벽력같이 소리쳤다. 
  "관 공의 원수를  갚으려고 왔다. 누구든 이 황충에게 맞서려거든  썩 나서 보
라."
  오병의 선봉 장수는  반장이었다. 반장은 황충이 나와 맞자 부장  사적을 내보
내 싸우게 했다. 사적이 황충을 늙은 장수라  얕잡아보고 기세 좋게 달려나가 한
칼에 벨 듯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황충과  칼을 부딪친 지 3합을 넘기지 못하
고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부장 사적이 제대로 싸워보지
도 못하고 죽는 걸 보자 반장은 화가 치솟았다.   반장은 지난날 관 공의 분신이
었던 청룡도를 휘두르며 달려나왔다. 반장은 사적과는 달랐다. 황충과 어우른 지 
수 합이 되었으나 얼른 승부가 가려지지 않았다.  황충이 힘을 다해 반장을 공격
하자 반장도  그 힘을 당해 내지  못했다. 점점 기운이 떨어지자  반장은 슬며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황충이 달아나는 반장을 그대로 둘 리 없었다.  반장을 
뒤쫓으며 오병을  짓밟았다. 황충이 크게  오병을 깨뜨린 뒤  돌아오는데 관흥과 
장포가 그곳에 이르렀다. 
  "저희들은 성지(천자의  명)를 받들어 노장군을  도우러 왔습니다. 장군께서는 
이제 공을 세우셨으니 그만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폐하께서 염려하고 계
십니다."
  그러나 황충은 그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자 반장이 다
시 와서 싸움을 걸었다. 황충은  무장을 갖추며 분연히 말 위에 올랐다. 이에 관
흥과 장포도 황급히 무장을 갖추며 말했다. 
   "저희들도 함께 따르겠습니다."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라."
  황충이 성난 얼굴로  그렇게 외쳤다.  황충은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하고 5
천 군마를  이끌어 적을 맞으러 나갔다.   칼을 휘두르며 달려나간  황충은 곧장 
반장을 향해 달려갔다. 반장은 그런 황충을 맞아  싸웠으나 칼과 창이 부딪친 지 
불과 몇 합이 되기도 전에 반장이 힘이 부친 듯 달아났다. 
  "적장은 게 서지 못할까. 내 기어코 관 공의 원수를 갚으리라!"
  황충은 반장을 사로잡을 욕심에 급하게 그 뒤를  쫓았다. 그러나 그 것이 탈이
었다. 반장을 뒤쫓아 30여리를  달렸을 때였다. 홀연 사방에서 크게 함성이 일며 
쏟아져 나왔다.   오른쪽은 한당이,  왼쪽은 주태가 이끄는 군사들이었다. 달아나
던 반장도 말머리를 돌려  황충을 마주 보며 달려들었다. 뿐만 아니었다. 뒤에서
는 능통이 달려왔다. 그렇게 되니 황충은 적에게 갇힌 꼴이 되고 말았다. 황충이 
계략에 빠졌음을 알고  급히 군사를 물리려 하는데  갑자기 거센 바람까지 일며 
흙먼지와 돌까지 구르니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적장  마충이 산 위에서 
한 떼의 군사를 이끌어 오더니 활을 당겼다.  화살은 오병의 한가운데에 갇혀 있
는 황충의 어깨에 꽂혔다. 화살을 맞은 황충은  말에서 떨어질 뻔하다가 급히 말
갈기를 잡으며 몸을 바로  한 뒤 길을 뚫으려 했다. 오병들은  황충의 화살에 맞
은 걸 알자 떼를 지어  덤벼들었다.  그때였다. 오병의 뒤쪽에서 함성이 크게 일
더니 두 갈레의 군마가 바람처럼 오병을 향해  달려들었다.  관흥과 장포가 거느
린 군마였다. 오병이  크게 어지러워지는 사이에 관흥과 장포는 황충을  구해 내
어 선주가 있는  어영으로 돌아갔다. 황충이 어영에 들어가자 의원이  황충의 상
처를 돌보았으나 워낙 나이가 많아  혈기가 쇠한데다 화살에 맞은 상처는 쉬 아
물지 않았다. 황충의 병세가 점점 깊어지자 선주가  몸소 문병을 와 황충의 어깨
를 쓰다듬으며 탄식했다.  
  "노장군께서 이렇듯 상처를 입게 된 것은 모두 짐의 허물 탓이외다."
  황충은 주름진 눈에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신은 한낱 무부에 지나지 않으나 다행히 폐하를 만나게 되었으며  폐하께서는 
신을 두터이 대하셨습니다. 이제 신의 나이  일흔다섯이니 수도 넉넉히도 누렸다 
할 수 있습니다. 바라건데 폐하께서는 용체를  보중하시어 부디 중원을 도모하시
기 바랍니다."
  황충은 그  말을 마치고는 정신을 잃더니  그날 밤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오호대장의 한 사람이었던 황충이 죽자 뒷사람이 시를 지어 기렸다. 
  늙은 장수라면 황충,
  서천을 거두고 큰 공 세웠네, 
  금쇄 갑옷을 껴입고
  철태궁을 둘씩이나 당겼네.
  그 담력과 기운은 하북을 놀라게 하고
  그 위엄 촉땅을 진정시켰네.
  죽을 때 머리 눈처럼 희었으나
  오히려 영웅임을 스스로 드러냈네.
  선주는 황충이 숨을 거두자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선주는 조
칙을 내려  관곽을 마련한 다음 성도로  보내 엄숙히 장사지내게 했다.   성도로 
황충의 관곽을 보내며 선주는 길게 탄식했다. 
  "오호대장 중에서 이미 세사람이 죽었다. 그런데도 아직 원수를 갚지 못했으니 
실로 원통하구나!"
  황충의 시신을 성도로  보낸 선주는 어림군을 거느려 효정으로 나아갔다.   그
곳에서 모든 장수와 군사를 불러모은  후 다시 군사를 여덟 갈래로 나누어 물과 
뭍으로 대군을 휘몰아가니 그 기세가 자못 드높았다.   선주가 몸소 뭍의 군사를 
이끌고 물길의 군사는 황권이  거느리게 했다.  때는 장무 2년 이월 중순이었다.   
한편 오의 장수 한당과 주태는  선주가 몸소 군사를 이끌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이끌어 나가 진을 벌여 촉병과 맞설  태세를 갖추었다. 이윽고 선주의 어
림군이 이르러 마주 진세를 벌이자  한당과 주태가 말을 달려 진 앞으로 나아가 
촉의 진영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촉 진영의 문기가 열리면서 선주가  나오는 것
이 보였다.  선주는  금빛 비단에 금색의 일산을 받은 가운데  좌우로 백모와 황
월을 세웠으며  앞과 뒤의 금.은 빛의  정기와 절이 한껏 천자의  위엄을 떨치고 
있었다.  한당이 그런 선주를 보고 격동시키기 위해 소리쳐 나무랐다. 
  "폐하께서는 이제  촉주가 되셨는데 어찌  이처럼 가볍게 몸소 나오셨습니까? 
만약 실수라도 있으시다면 그때는 뉘우쳐도 이미 늦으실 것입니다."
  그러자 선주가 한당을 손가락질하며 꾸짖었다.
  "네놈들 동오의 개들이 감히 짐의 손발과  같은 아우들을 죽였다. 짐은 맹세코 
네놈들과 함께 같은 하늘, 같은 땅에서 살지 않으리라!"
  한당이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누가 나가 촉군을 치겠는가?"
  "제가 나가 촉병을 깨뜨리겠습니다."
  부장 하순이 창을 높이 들며 말을 몰아  달려나갔다. 선주의 뒤에 있던 장포가 
불쑥 장팔사모를 휘두르며 하순을 맞으러 나갔다.  장포가 벼락치듯한 고함 소리
와 함께 하순을 한 창에 꿸 듯 달려가자 하순은 그 고함 소리에 혼이 나가 주춤
거렸다. 장포가 하순을 덮치며 어우러지는데 몇 합이  되지 않아 하순은 이미 달
아날 궁리부터  했다.  주태의 아우  주평은 하순이 장포의 상대가  아님을 알고 
하순을 도우러 칼을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질세라 관흥이 말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양쪽 진영에서 각기 장수  한 사람씩 달려나오니 네 장수가 
어우러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용케 버티고 있던 하순을 장포가  큰 고
함 소리와 함께 한  창으로 찔러 말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렇게  되니 당황한 건 
주평이었다. 하순이 처참한  몰골로 죽는 걸 본 주평은 한꺼번에  관흥과 장포를 
맞게 될  판이라 급히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관흥이 더 
빨랐다. 달려오던  기세로 말을 박차더니  주평을 한 칼에  두동강 내고 말았다.   
두 적장을 단번에 꺾어버린 관흥과  장포는 그 기세를 몰아 한당과 주태를 향해 
짓쳐들었다. 동오 대장인 한당과 맹장 주태도 성난  범처럼 달려드는  관흥과 장
포를 보고는 맞서 싸우는 것이 두려웠던지 황급히 진속으로 달아나며 진문을 닫
아 버렸다,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선주가 흐뭇한 마음으로 감찬해 마
지 않았다. 
 "범 같은 아버지에게 어찌 개 같은 아들이 있겠는가?"
 선주가 그 말과 함께  말채찍을 들어 군호를 보내자 군사들이 일제히 동오군을 
향해 밀고들어갔다.  관흥과 장포가 한바탕  적진을 휩쓴 터라  촉군들은 사기가 
드높았다. 그 촉군의 여덟  갈래의 군마가 사방 팔방에서 밀려들었다. 그 기세로 
마치 큰 파도가 바닥을 휩쓸  듯 두들겨 부수니 이미 기가 꺾여 있던 오병이 어
찌 당하랴. 촉군의  칼날 아래 오병 시체가  들판에 가득히 깔렸으며, 피는 흘러 
내를 이루었다. 이때 병든 몸으로 싸움터에 나왔던  오의 장수 감녀응ㄴ 배 위에
서 몸을 추스리고 있는데 적군이 밀려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누운 채 그대
로 적을 맞을 수는 없는  일이라 황망히 말에 올라 달려가는데 마주 오는 한 떼
의 만병과 마주쳤다. 그들은 모두 머리를  풀어헤친데다가 맨발이었는데 활과 쇠
뇌, 긴 창과 도끼에다 칼과  방패를 든 군사들이었다. 맨 앞에서 말을 달려온 장
수는 번왕 사마가였다. 얼굴은 피를 바른 듯  붉은데다 푸른 눈알이 불거져 나와 
있었다. 손에는 칠질려골타르 들고  허리에는 낫 두 개와 활을 차고  있어 그 위
풍이 자모 당당했다.  감녕은 만병의 기세가 대단하고 그 생김새마저  흉악한 것
을 보자  몸도 성치않은데다 감히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감녕이  말을 돌려 
달아나는데 사마가가 활에  살을 메겨 시위를 당겼다. 살은 감녕의  머리를 맞혔
다. 감녕은  화살 뽑을 사이도  없이 부지구까지 달아났는데  최후가 다가왔음을 
알고 말에서 내려 큰  나무 밑에 기대어 숨을 고두고 말았다.  감녕의 죽음을 슬
퍼하듯 수백 마리의  까마귀 떼가 나무에서 내려와 시신을 에워싸고  울었다. 오
왕 손권은 감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해 마지않았다. 지난날  기백의 군
사로 조조의 진영을 휩쓸던 용맹스럽던 장수가  아니었던가. 손건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성대히 장사지내고  사당을 지어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게  했다. 한
편 선주는 오병을 크게 깨뜨린 뒤에더 계속해서 오병을 뒤쫓으며 효정을 빼앗았
다. 오병은 촉군이 뒤쫓아오자 사방으로 ㅎ어져 달아났다. 뒤쫓을 오군이 보이지 
않자 선주는 군사를 거두어 점고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관흥이 보이지 않았다. 
 "어찌하여 안국이 보이지 않는가?"
 선주는 걱정스런 얼굴로 장포와 여러 장수들에게 관흐을 찾아오라고 영을 내렸
다. 그때 관흥은 오군을  뒤쫓다가 난구 속에서 아버지 관 공을  죽인 반장을 만
났다.
 '어찌 그를 놓칠 수 있으랴.'
관흥은 눈에 불을 켜고 그를 뒤쫓았다. 관흥이  뒤쫓자 깜짝 놀란 반장은 허둥지
둥 말을 달려 산 속으로 도망쳤다. 관흥이  산 속을 이리저리 찾아다녔으나 보이
지 않았다. 그럴 동안 어느덧 해는 떨어지고 관흥은 길마저 잃었다. 다행히 달이 
밝은 밤이어서 산기슭을  따라 내려오는데 때는 어느덧 이경 무렵이  되었다. 그
때 무득 멀리 산장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관흥이 그곳으로 달려
가 말에서 내려 문을 두드리니 한 노인이 문을 열며 물었다. 
 "그대는 뉘시기에 이 밤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가?"
 "나는 싸움터에 나온 장수로 길을 잃고 헤매다 이곳에 이르렀소이다. 지금 매우 
시장하니 밥한 그릇만 내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관흥이 그렇게 대답하자  노인이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관흥이  등촉이 밝혀진 
방안으로 들어가 보니 벽에는 뜻밖에도 아버지 관  공의 화상이 걸려 있었다. 아
버지의 화사을 보자 관흥은 새삼  슬픔이 복받쳐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눈물을 
흘렸다. 노인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장군은 어찌하여 그토록 슬피 우시오?"
 "이 어른은 바로 저의 아버님이십니다."
 관흥이 눈물을 거두며  대답하자 그 노인은 얼른  관흥과 함께 관 공의 화상에 
절을 올렸다. 궁금한 건 관흥도 마잔가지였다. 관흥이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장께선느 어찌하여  돌아가신 제 아버님의  화상을 이같이 받들어 모시고 
계십니까?"
 관흥의 물음에 노인이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이 지방 사람들은 관 공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습니다. 살아 계실 때도 집
집마다 관 고으이 화상을 모셨는데  하물며 신이 되신 지금에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이 늙은이는 다만 촉이  하루 빠리 관 공의 원수를 갚아 주기르 빌
고 있습니다. 오늘  밤에 관 공의 아드님이신 장군께서 오셨으니  이곳 백성들의 
복인가 합니다."
 노인은 그렇게 말하더니 술과  밥을 내어 와 정성스레 관흥을 대접하고 말죽을 
쑤어 말에게 먹였다. 관흥이 밥과 술을 먹는 동안 삼경이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집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나더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노인이 방을 나가며 
물었다. 
 "누구시오?"
 "산 속에서 길을 잃어 하룻밤 재워 주기를 청할까 합니다."
 그는 바로 반장이었다.  관흥을 따돌리고 산속을 헤매다 그도 이  집을 보고 찾
아온 것이었다. 관흥은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그 말소리를 듣고  그가 반장임을 
알았다.  집주인이 반장을 방  안으로 들게 했다. 반장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관
흥은 칼을 덥석 들며 소리 높이 외쳤다. 
  "이놈 반장, 꼼짝 마라!"
  반장이 관흥을 보자 깜짝 놀라며 몸을 돌려  문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그때
였다. 문득 문 밖에  한 사람의 대장군이 황금빛 투구를 쓰고  푸른 전포에 갑옷
을 입고 칼을 잡은 채 버키고 서 있었다. 얼굴은 잘 익은 대추빛이요, 봉의 눈에 
눈썹은 누에를 그린 듯 뚜렷하고  세 가닥의 아름다운 수염이 길게 드리워져 있
었으니 틀림없는 관 공이었다.  눈앞에 나타난  관 공을 보자 반장은 소스라채게 
놀라 크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몸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뒤쫓아나온 관흥이 
반장의 목을 한칼에 베어  떨어뜨렸다.  관흥은 반장의 목을 관  공의 화상 앞에 
놓고 목놓아  울며 제사를 드렸다.  관흥은 아버지가 쓰던  청룡언월도를 되찾고 
반장의 목을 말에 매단 후 집주인 노인과  작별하고 말을 달렸다. 관흥이 떠나가
자 집주인은 반장의 목없는  시신을 끌어내 불에 태워 버렸다.   관흥이 말을 몰
아 3,4리쯤 달렸을 때였다.  홀연 말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더니 한 
떼의 인마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앞선 장수를  보니 바로 반장의 부하 마충이었
다. 반장이 산 속으로 도망간 걸 알고 군사를 이끌어 찾아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마충은 관흥이 반장의 목을 말에 매단데다 청룡도까지 되찾아오는 걸 보자 벌컥 
화가 치솟았다. 말을 박차며 칼을 빼들며 관흥에게 달려들었다.  마충도 역시 관 
공을 죽인 자였다. 관흥도 원수를 보자 온몸의 피가 위로 끓어오르듯 했다. 아버
지가 쓰던 청룡언월도를 빼들며  마충의 목을 찍으려는데 마충의 졸개 3백여 명
이 일제히 함성을 울리며 관흥을 에워쌌다. 혼자인  관흥이 적병 속에 겹겹이 에
워싸이니 위급한  지경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관흥이 힘을 다해  조여 오는 
적병을 치며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데 홀연 서북쪽에서  한 떼의 군마가 달려왔
다.  관흥이  보니 바로 장포가 아닌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만난 격이었
다.  마충은 장포가 군사를 이끌고 오는 것을  보자 싸울 생각을 버린 채 황망히 
군사를 거두어 달아났다. 관흥과 장포는 달아나는 마충을 뒤쫓았다. 한동안 마충
을 뒤쫓고 있는데 이번에는 마충을 찾아나선 미방과 부사인이 군사를 이끌어 왔
다.  관 공의 위태로움을 구원해 주지 않고  끝내 동오로 투항해 버린 그 두사람
을 보자 관흥은 더욱 화가 치솟았다.  이에  관흥과 장포는 있는 힘을 다해 오군
을 치는데  장포가 거느리고 왔던 군사의  수가 오군에 비해 너무  적었다. 양쪽 
군사가 혼전을 벌이다 보니 관흥과  장포는 다시 위급한 지경에 빠져 황급히 군
사를 물려 본영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본영으로 돌아온 관흥은  선주께 반장의 
머리를 바치고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소상히 전했다.   선주는 관 공의 화상을 모
시는 고을 사람들과 반장이 달아나려 했을 때 관 공의 혼령이 나타나 앞을 가로 
막았던 얘기를 듣고 감탄했다. 
  "아우가 너로 하여금 반장을 사로잡게 해 주었구나."
  선주는 관흥에게 상을 내려 반장의 목벤 일을 칭찬하는 한편 삼군에게도 술과 
고기를 내려  그 동안의 노고를 위로했다.   한편 자기 진영으로  돌아간 마충은 
한당과 주태에게 반장이 관흥에게 죽었음을 알렸다.  한당과 주태는 패잔병을 수
습하고 군사들을 나누어  각진을 굳게 지키기만 하고 나아가지 않도록  했다. 그
러나 오군의 군사 중에는 상한 자가 많아  그마저 어려움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이들 군사들  중에는 전에  관 공을 떠나  여몽에게 항복했던 형주병이  많았다.  
마충은 부사인.미방과 더불어 강변의 방비를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삼경 무
렵이었다. 문득 군중에서 울음소리가 은은히 들려 왔다. 때아닌 울음소리에 놀란 
미방이 가만히 다가서서 엿들으니 군사들의 말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원래 형주 군사인데 여몽의 속임수에 빠져 관 공의 목숨을 잃게 했다. 
이제 유 황숙께서 대군을  거느리고 몸소 쳐들어오시니 동오도 오래잖아 무너지
고 우리 또한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관 공을 저버리게 한 역
적은 미방과 부사인 그 두 놈이다. 우리가 차라리  그 두 놈을 죽이고 촉의 진영
으로 간다면  그 공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죽이고  촉으로 항복해 
가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 말에 다른 군사가 말을 받았다. 
  "너무 서둘지 말게.  그들이 마음놓고 있는 틈을 엿보아 얼른  해치우면 될 걸
세."
  군사들의 말을 엿들은 미방은 깜짝 놀랐다. 몸을  떨며 부사인을 찾아가 이 사
실을 알렸다. 
  "군사들의 마음이 변했소이다. 그러니 우리 두  사람은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일이오. 그런데  유 황숙은 실제로 마충에게  원한을 품고 있소. 우리가 그 
자의 목을 베어다 유 황숙께 바치고 빌어 보는 게 어떻겠소.?"
  "그렇지만 유 황숙이 받아 줄 리가 있겠소?"
  부사인이 걱정스런 얼굴로 되물었다.
  "우리들은 마지못해  동오에 항복했는데 이번에 어가가  오신 것을 보고 죄를 
빌러 왔다고 하면 될 것이오."  
  "아니 되오. 그리로 갔다가는 반드시 화를 당하게 될 것이오."
  부사인이 끝내 안심이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촉주는 덕이 많고 어진  사람이오. 게다가 아두 태자는 바로 내 생질이오. 국
적의 정을 보아서하도 차마 죽이지는 않을 것이오."
  부사인도 아두 태자가  미방의 생질이 된다는 말에 은근히 기대를  걸었다. 미
방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달아날 때 타고 갈  말부터 마련했다. 그날 밤 삼경 무
렵이 되자  둘은 영문으로 들어가 곤히  잠든 마충의 목을 베었다.  마충의 목을 
벤 미방과 부사인은 그들을 따르는 군사 10여 기를 거느린 채 효정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달렸다.  길을 지키던  촉군은 그들을 장남과 풍습에게 데려
갔다. 두 사람은 투항해 오기까지 있었던 일을  말하자 장남과 풍습은 그들을 선
주에게 보냈다. 두  사람이 선주에게 인도되자 마충의 목을 바치고  울며 엎드려 
빌었다. 
  "신들은 진실로 페하를 저버릴 마음이 없었습니다.  여몽의 거짓에 속아 관 공
께서 돌아가셨다기에 하는 수 없이 항복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폐하께서 동오를 
정벌하러 나오셨다기에 마충의 목을 베어 폐하의 한을 조금이나마 씻어드리고자 
합니다. 폐하께서는 아무쪼록 신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선주는 크게 화를 내며 그들을 꾸짖었다. 
  "짐이 성도를 떠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여태껏 죄를 빌지 않고 있다
가 동오의 형세가 위태로워지니 이제 찾아와 간교한 말로 꾸며대며 목숨을 구하
려 하는가? 만약  짐이 너희들을 살려 주었다가는 죽어서  무슨 낯으로 관 공을 
대한다는 말이냐?"
  선주는 두 사람을 소리쳐 꾸짖은 다음 관흥을 불러 영을 내렸다. 
  "안국은 영문 안에다 아버님의 위패를 모시도록 하라."
  관흥은 선주의 영을 받아 영문 안에 제사를 지낼 상을 마련하고 관 공의 위패
를 모셨다. 선주는 몸소  마충의 목을 바쳐 제사를 지낸 후에  다시 관흥에게 영
을 내렸다. 
  "미방과 부사인을 아버님의 영전에 꿇어앉히고 옷을 벗겨라!"
  관흥은 미방과 부사인의 옷을 벗긴  알몸으로 관 공의 영전 앞에 무릎을 꿇게 
했다. 선주는 두 사람의 죄상을 낱낱이 밝힌 후  몸소 목을 베고 살점을 도려 내
어 영전에 바쳐 관 공의 영혼을 위로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장포가 선주 앞
에 엎드려 울며 아뢰었다. 
  "이제 둘째 아버님의 원수는 갚았습니다만 신의 아버지를 죽인 놈들은  언제나 
목을 베어 한을 씻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선주도 눈물지으며 장포를 위로했다. 
  "조카는 조금만 참아라. 짐은 강남을 휩쓸어 동오의 개들을 모두 죽여 없애되, 
네 아비를 해친 역적 두 놈을 잡아 네게  넘겨 주겠다. 너도 그놈들로 젓을 담아 
아버지의 영전에 바치도록 하라."
  그제야 장포는 선주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울면서 물러났다.  그때  선주의 위
세는 강남 천지를  떨게 했다. 닥치는 대로 동오군을 깨뜨리며  밀려드니 오병들
은 겁에 질려 싸우려고도 하지  않은 채 모두 밤낮으로 울며 관 공을 죽인 일만 
탓하고 있었다.  군사들의 이런  움직임을 본 한당과 주태는 크게 놀랐다. 곧 손
권한테 그 사실을 알리면서 이와  함께 미방과 부사인이 마충의 목을 베어 선주
에게 투항했음도 아울러  알렸다. 또한 투항해 온 미방과 부사인마저  선주가 몸
소 목을 베어 관 공의 영전에 바친 일도  전했다.  손권도 선주의 원한이 그토록 
매서운 것임을 알자  슬며시 두려움이 일었다. 곧 문무백관을 불러  놓고 대책을 
물었다.  보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촉주가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은 여몽.반장.마충.미방.부사인 등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은 다  죽었고 다만 남은 것은 범강과 장달뿐입니다.  이 두 사람
을 묶어 장비의 목과  함께 촉주에게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형주 
땅과 손  부인을 돌려 주면서 글을  올려 화친을 청해 보도록  하십시오. 화친을 
맺어 함께 위를 치자고 하면 촉병은 두말없이 군사를 거두어들일 것입니다."
  손권도 마땅한 계책이  없던 터라 보질의 말에 따르기로 하였다.  곧 향나무로 
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장비의  목을 담은 후에 장달과 범강을 결박지어 수레에 
실어 보냈다. 또한  정병을 사신으로 삼아 오왕의 국서를 받들어  효정으로 함께 
가게 했다.  그때 선주는  다시 군사를 이끌고 동오로 밀고 가려던 중이었다. 그
런데 신하 하나가 달려와 아뢰었다. 
  "지금 동오에서 사신을 보내 왔는데 거기장군의  목과 범강.장달 두 역적도 함
께 결박지어 보내 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 선주는 감격에 겨워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며 말했다. 
  "이는 하늘이 내리신 것이요, 셋째 아우의 영혼이 시킨 일이리라."
  선주는 얼른 장포를 불러 영을 내렸다. 
  "조카는 급히 아버님의 영위를 갖추어 놓도록 하라."
  장포가 서둘러 영문  안에다 아버지 장비의 영위를 차려 놓았다.  선주는 그제
야 장비의  목을 담은 나무상자의 뚜껑을  열어 보았다. 장비의 목을  본 선주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죽은 지 오래였으나 장비의  얼굴은 살아 있
을 때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선주는 그 얼굴을 보자 다시 목을 놓아 울었다.  
선주는 약속대로  범강과 장달을 장포에게  넘겨 주었다. 장포는  날카로운 칼로 
범강과 장달의 몸을  산 채로 도려 내고 잘라  뼈에 사무친 한을 풀고 아버지의 
영전에 바쳐 제사드렸다. 이로써 두 아우의 죽음에  직접 관계된 자들을 모두 죽
인 선주였으나 여전히 그의 얼굴에 끓어오르는 노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손권 이놈의 목을 내 손으로 치리라."
  선주가 이를 갈며 동오칠 일만을 생각하자 마량이 아뢰었다. 
  "원수들은 모두 죽었으니 이제 한을 씻으셨다  할 만합니다. 오나라 사신 정병
이 형주 땅과  손 부인을 돌려드릴 테니 화친을  맺고 함께 위를 치자는 국서를 
받들고 왔습니다. 폐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으니  밝으신 헤아림으로 오주의 뜻
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선주는 노기로 얼굴을 붉히며 분연히 외쳤다. 
  "짐이 가장 한을 품은 자는 손권이다. 이제 만약 동오와 화친을 맺는다면 이는 
두 아우와의 맹세를 저버리는  일이다. 짐은 먼저 오를 치고 다음에  위를 쳐 천
하를 평정함으로써 옛 광무의 큰 업적을 본 받으리라!"
  선주는 두 번 다시 동오와 화친을 입에 담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정병의 목을 
치라고 소리  높여 영을 내렸다.   모든 신하들이 한결같이 말린  덕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정병은 머리를 싸안고 황망히 동오로 달려갔다. 

    대도독 강구의 서생 육손
  동오의 손권은 선주 유비가 대군을 몰고 오자 다른 장수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육손을 대장으로 삼는다. 이 전에 관 공을  죽음에 몰아넣었던 육손은 선봉이 되
어서도 나가 싸우기도 않고 오로지 때만을 기다린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해 동오로 돌아간 정병은 손권에게 아뢰었다.
  "촉주는 화친을 마다할 뿐만 아니라 먼저 동오를 치고 그 다음에 위를 치겠다
고 다짐했습니다. 신하들이  그런 촉주를 말렸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정병이 화친을 맺고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손권은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랐
다. 손권이 크게 당황해 얼굴빛까지 달라지고 있는데 감택이 나서며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늘이라도  떠받들 만한 사람이 있는데 주상께서는 어찌하
여 그를 써 보지 않으십니까?"
  "아니, 그게 누구요?"
  손권은 귀가 번쩍 띄어 얼른 되물었다. 
  "지난날 동오의 큰 일은 주랑이 도맡았고, 그 뒤에는 자경이 그 일을 대신했습
니다. 노자경이  죽은 뒤에는 다시 여자명이  맡았습니다. 여자명이 죽은 지금은 
그 뒷일을 육백언(육손의 자)이 맡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단지 선비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은 웅대하고 큰 책략을 지닌 인물로  결코 주랑에게 
뒤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전에 여몽이 관  공을 죽일 수 있었던  적은 육백언의 
지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주상께서는이 사람을 쓰신다면  반드시 촉병을 쳐 부
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에게 실수라도 있다면 신도 함께  죄를 받을 터인
즉 그를 한 번 써 보도록 하십시오."
  그제야 손권도 잊고 있었다는 듯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내가 깜박 잊고 있었소.  덕윤(감택의 자)의 말이 아니었던들 일을 크게 그르
칠 뻔했소."
  손권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장소가 나서며 말했다. 
  "육손은 한낱 서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코  유비의 적수가 되지 못하니 무겁
게 쓰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육손은 나이가 어릴 뿐 아니라 사람들이  우러르지 않습니다. 그를 무겁게 쓰
더라도 모든 장수들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변이 생겨 반드시 큰 
일을 그르치고 말 것입니다."
  고옹이 나서 장소의 말에 찬동했다. 옆에 있던  보질도 장소와 고옹의 말을 거
들었다. 
  "육손은 한 고을을 다스리는 군수 정도의 사람이올시다. 큰 일을 맡길 만한 인
물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자 감택이 참다못해 소리쳤다. 
  "만약 육백언을 쓰지  않는다면 동오는 이제 끝장이 나고 말  것이오. 내가 온 
가족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를 보증하겠습니다"
  "육백언이 기재임을 나도 전부터 알고 있소.  내가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 경들
은 여러 소리 하지 마시오"
  손권은 그렇게 말한 후 급히 사람을 강구로 보내 육손을 불러 오게 했다. 
 육손의 원래 이름은 육의였는데 후에 이름ㅇ르 손이라고 고쳤으며 자는 ㅂ맥언
으로 오군사람이었다. 한의  성문교위 육우의 손자요, 구강도위 육준의 아들인데 
키가 8척이었으며 얼굴은 백옥같이 희었다. 
  벼슬은 진서장군으로서 여몽이 지키고 있던 강구를  지키고 있었다. 육손은 소
권의 부름을 받자 궁으로 와 손권에게 절을 올렸다. 손권이 육손을 보자 말했다. 
  "지금 촉주가 대군을 이끌고 동오를 향해  밀려오고 있소. 내가 경에게 전군을 
맡기겠드니 경은 기어코 유비를 쳐부숴 동오의 위세를 되살리도록 하시오"
  그러자 육손이 사양했다.  
  "동오의 장수들은 모두 다 대왕의 옛신하들입니다.  신은 나이가 어린 데다 재
주도 없어 도저히 그런 무거운 일을 맡을 수가 없습니다."
  손권은 육손이 무겅누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다시 권했다. 
  "경은 사양하지 마시오. 감덕윤이 가족들의  목슴을 걸면서까지 경을 천거했을 
뿐만 아니라 나 또한 경의 지주가 뛰어남을  알고 있도. 이에 대도독으로 삼고자 
하오"
  그러자 육손이 손권에게 물었다. 
  "그러나 문무관원들이 신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며 어떻게 합니까?"
  손권은 육손의 말뜻을  알아듣고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육손에게 주며 
말했다.  
  "만약 경의 말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다면 이 칼로 먼저 목을 벤 뒤 내게 밝
히도록 하시오."
  육손은 손권의 이 같은 다짐을 받고서야 다시  사양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러나 손권이 주는 칼은 받지 않은 채 말했다. 
  "이토록 무거운 분부를 신이  어찌 받들지 않겠습니까? 다만 바라옵건대 내일 
문무백관이 모인 자리에서 신에게 그 칼을 내려 주시옵소서."
  손권이 직접 여러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어린 육손의 위세를 드높여달라는 뜻
이었다. 손권도 그 말뜻을  알아듣고 쾌히 응낙했다. 그러자 자기의 뜻대로 육손
이 대도독이 되자 감택은 육손의 의엄을 한층 더 높이고자 말했다. 
   "예로부터 대장을 세울  때는 반드시 높은 제단을  쌓고 사람들을 모아 예를 
치렀습니다. 백모와 황월과 인수와 병부를 내려야 그  위엄이 서고 그 호령이 무
거워집니다. 이제 대왕께서 그 옛예법에 따라 날을  가려 단을 쌓게 하시고 문무
관원들을 모은  뒤 대도독의 절월을  내리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모든 
관원들이 대도독의 명에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손권도 그 말에 기꺼이  따랐다. 그날 밤 안으로 제단을 쌓게  하고 모든 문무
관원들을 불러들였다. 제단이  다 쌓아지자 손권을 육손을 단 위에  오르게 하고 
대도독 우호군  진서장군을 겸하여 누후로  봉했다. 그러고는 칼과  인수를 내려 
강동의 여섯 군과 여든한 주의 형, 초의 모든 군마를 맡아 다스리게 했다. 
  "나라안의 모든 일은 내가 맡아 다스릴 것이다.  그러나  성문 밖의 일은 모두 
장군이 맡아 다스리도록 하라!"
  손권은 소리 높여 육손에게 영을 내렸다. 손권의  영을 받든 육손은 단을 내려
서자 마자 출전명령을 내려 서성과  정봉을 호위로 삼고 스스로 물과 뭍의 군사
를 거느리고 나아았다. 
  육손이 새로 대도독이 되어 전군을 다스리게 되었음을 알리는 글이 효정 땅에 
이르자 한당과 주태는 크게 놀라는 한편 한탄해 마지 않았다. 
  "주상께서는 어쩌시려고 한낱  서생에게 모든 군마를 다스리게 하셨다는 말인
가?"
  이윽고 육손이 효정에 이르렀으나  장수들은 한결같이 나이 어린 서생인 육손
을 마음  속으로는 마땅치 않게 여기며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육손은 조금도 
거리낌없이 군중에 장막을 치게 한 후 앞일을 의논하기 위해 장수를 불러모으자 
그때서야 마지못해 들어와 경허하는 예를 올렸다.  육손이 그들의 속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여러 장수들이 자리에 모이자 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주상께서는 나를 대장으로  삼아 군사들을 맡기시며 촉병을 쳐부수라 하셨소
이다. 군중에는 법이 있을 터이니  공들은 마땅히 그 법에 따라야 할 것이오. 만
약 어기는 자가 있다면 왕법에 따라 사사로움이 없이 그 죄를 물을 것인즉 뒤늦
게 뉘우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여러 장수들은 육손의 엄중한 선언을 듣고도 시큰둥한 얼굴로 말없이 앉아 있
을 뿐이었다. 그러자 주태가 일어나 입을 열었다. 
  "안동장군 손환은  바로 주상의 조카로 지금  이릉성에서 매우 곤란한 처지에 
빠져 있습니다. 안으로는 양식과 마초가 떨어졌고, 밖으로는 구원해 주는 군사도 
없으니 그보다 더한 어려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라건데 도독께서는 급히 좋은 
계책을 세우셔서 손 장군을 구해  내고 주상의 마음을 편안케 해 드리도록 하십
시오."
  손환의 일을 들먹여  육손이 어떤 계책을 세우나 보기 위함이었다.  육손은 그 
물음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힘주어 말했다. 
  "나는 이전부터 손환이 군사들로부터  우러름을 받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
소. 반드시  군사들과 힘을 합해 이릉성을  지켜 낼 것이니 구하러  갈 것까지는 
없소. 내가 촉병을 쳐부수고 나면 그때는 저절로 성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여러  장수들은 육손의 말에  속으로 비웃으며 돌아갔다.  아직 싸움도 
해 보지  않은 나이 어린 서생이  멋대로 지껄인 말로만 여겼다.  한당이 주태를 
보고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제 저 어린아이를 대장으로 삼았으니 동오도 갈  데까지 다 간 것 같소. 공
은 어떻게 생각하오?"
  주태 또한 한당과 다를 바 없었다.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한 마디 떠 보는 말을 해 본 것이오. 그러나 아무런 계책이 없지 
않소. 그래가지고 어떻게 촉병을 쳐부술 수가 있겠소?"
  한당과 주태는  탄식하며 물러갔다.  다음  날이었다. 육손은 여러 장수들에게 
군령을 내렸다. 
  "모든 장수들은 각 처의 관과 험한 길목을 지키고만 하고 가벼이 나가 싸우지 
않도록 하라."
  그러나 육손을 업신여기고 있는 여러 장수들은 그가 겁이 많다고 빈정대며 그 
말에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그 다음 날이  되자 육손은 장막 안으로 모든 장수
들을 불러들이고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나는 지금 왕명을 받들어 군마르 거느리고 있소. 어제 서너 차례나 군령을 내
려 각 처의  관을 굳게 지키라 했는데  내가 보니 그 명에 따르지  않는 듯했소. 
도대체 그 까닭이 무엇이오?"
  그러자 한당이 일어나 서슴없이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손견 장군을 따라 강남을 평정하면서 수백 번의 싸움을 치렀소. 여
기 있는 다른 장수들도 토역장군(손책)을 따르거나 지금의  대왕을 따라 갑옷 차
림에 무기를 들고  싸움터를 누비며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오. 이번
에 주상께서 공을  대도독으로 삼아 촉병을 쳐부수도록 하셨으니, 하루  빨리 계
책을 정한 다음  군마를 수습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오. 그런데도  도독께선 굳게 
지키기만 하고 싸우려하지 않으니  하늘이 촉병을 죽일 때까지 기다리기라도 하
겠다는 말씀입니까? 우리는 살기만을 바라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런 사람이 아
닙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우리의 날카로운 기세를 떨어뜨리려 하십니까?"
  한당이 제법 기세 좋게 말하자  다른 장수들도 힘을 얻어 한 목소리로 한당을 
거들었다. 
  "한 장군의 말씀이 옳으십니다. 우리들은 목숨을  돌보지 않고 한바탕 싸워 보
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육손은 홀연 칼을 빼들고 장수들을 보며 외쳤다.
  "나는 비록 한낱 서생이나 지금은 주상의 무거운 명을 받들어 이곳에 온 것이
다. 한치의 땅이라도 소중하기  그지없다. 그대들은 각기 맡은 곳을 굳게 지키고 
마음대로 움직이지 말라. 다시  나의 영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모두  목을 벨 것
이다."
  육손이 칼을 빼들고  소리치자 장수들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모두 잔뜩 불만을 품은  채 물러났다.  그 무렵, 선주는 효정 땅에서부
터 천구에 이르기까지  군마를 나누어 벌여 세웠다.  그 사이가 무려 칠백 리요, 
사십여 개의 영채를 늘여 세우니 낮에는 깃발과  창검이 해를 가렸고, 밤이면 저
마다의 모닥불빛이 하늘을 밝게 밝혔다. 
  그런 어느 날 적의 형세를 살피러 갔던 세작이 달려와 알렸다.
  "동오는 유손을 대도독으로 삼아 모든 군마를 거느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육손
은 모든 장수들에게 영을 내려  각기 지키던 곳을 굳게 지키게만 할 뿐 나가 싸
우지 않으려 합니다."
  "육손은 어떤 사람인가?"
  선주가 그 말을 듣더니 신하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마량이 나서 대답했다.
  "육손은 비록 동오의 한낱 서생으로 나이는 어리나 재주가 많고 지략을 잘 쓰
는 자입니다.  전에 여몽이 형주를 빼앗은  것도 실은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온 
꾀였습니다."
  그 말을 듣자 선주는 화부터 냈다.
  "그 어린놈의 속임수로 짐의 두 아우를 잃었구나! 내  반드시 이 자를 산 채로 
사로잡으리라!"
  그 말과  함께 선주는 곧 군사를  움직이기 위해 영을 내렸다.  그러나 마량이 
급히 말렸다.
  "육손의 재주가 결코 주유에 뒤지지 않습니다. 가볍게 나아가셔서는 아니 됩니
다."
  "짐은 이 나이가  되도록 싸움터를 누비며 살아 왔다. 어찌  주둥이 노란 어린 
아이보다 못하다는 말이냐?"
  선주는 버럭  소리치며 마량의 말을  물리치고 몸소 전군을  이끌어 나아갔다. 
선주가 각 처의 관과 험한  길목으로 군사를 휘몰아오자 한당은 곧 사람을 육손
에게 보내  알렸다. 육손은 한당이 함부로  나가 맞설까 걱정이 되어  급히 말을 
달려왔다.  그때 한당은  산 위에 올라 멀리 산과 둑을  뒤덮으며 다가오는 초병
의 형세를 살피고 있었는데 문득  촉군의 군중에 있는 황금빛 일산이 눈에 띄었
다. 육손도 산 위에 올라 말을 나란히  하여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황금빛 일산
을 가리키며 말했다.
  "적군 속에 유비가 있는 것이 분명하오. 내가 군사를 이끌고 가서 사로잡아 오
겠소이다."
  그러나 육손은 한당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유비는 동오로 군사를  이끈 이후 10여 번을  싸워 거푸 이겼으니 그 기세가 
한창 날카로울 때요. 우리는 다만 높고 험한  곳에 의지해 지키기만 하고 가볍게 
나가서는 아니 되오. 나가면 반드시 이롭지 모할  것이니 다만 군사의 의기만 돋
우어 주고 지키면서 촉군의 형세를 살펴야 될  것이오. 지금 유비는 넓은 들판을 
거리낄 것 없이 달려와 모든 게 저희 뜻대로  된 것이라 여겨 으스대고 있소. 그
러나 우리가 굳게 지키고 나가지  않으면 저들은 싸울 상대가 없으니 ㅏ드시 산
이나 수풀 속으로 군사를 옮길 것이오. 나는  그때를 기다려 계책을 써서 그들을 
치겠소."
  대도독 육손의 말에 한당은 입로는 그 말을  따르는 척했다. 그러나 싸움을 가
로막는 육손에게 의심을 품은  채 지켜 볼 뿐이었다.  이때  선주는 오병이 싸우
러 나오지 않으니 앞쪽 군사들에게 시켜 갖은  욕설을 퍼붓게 했다. 그러나 육손
은 군사들의 귀를 틀어막게 한 채 나가 싸우는  것을 금했다. 각 진영을 몸소 돌
아보며 군사들을 격려할 분 굳게 지키라는 군령만 내릴 뿐이었다.

  선주는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오군이 두더지처럼 웅크린 채 나오지 않자 속이 
탔다. 마량이 그런 선주에게 아뢰었다.
  "육손은 원레 모략이  많은 사람입니다. 폐하께서는 먼길을  달려와 싸운 때가 
봄이었는데 지금은 여름입니다.  육손이 나와 싸우지 않는 것은 우리  쪽에 어떤 
변고가 생기기를 기다르는  듯합니다. 폐하께서는 부디 이를 다시 한  번 살피도
록 하십시오."  
  마량의 말이 육손의 마음을 꿰뚫어본 듯했으나 선주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웃음으로 답했다.
  "제까짓 놈에게 무슨 꾀가 있겠는가? 싸우러 나오지 않는 것은 우리를 두려워
해서이다. 지금까지  싸울 때마다  우리에게 졌으니 어찌  감히 나올 수  있겠는
가?"
  그때 선봉인 풍습이 선주를 찾아와 아외었다.
  "날씨가 몹시 더운데다 마치  불덩이 같은 들판에 진을 치고 있으니 군사들이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물을 길어오는 데도  어려움이 많으니 진을  옮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무 그늘 하나 없는 들판이라  뜨거운 햇ㅂ에 풀도 마르고 흙도 타는 듯하여 
군사들에게 어려움이 많은 터였다.  선주는 풍습의  말을 듣자 마침내 모든 영채
를 옮기게 했다. 숲이 빽빽이 들어선 산골짜기  시냇물 가까운 곳으로 영채를 옮
기고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풍습이 선주의 영에 따라  모든 영채를 
산 밑 숲 속으로 옮기는데 마량이 선주에게 물었다.
  "우리가 영채를 옮기고 있을 때 그 틈을 노려 동오 군사가 내달아오면 어찌하
시겠습니까"
  선주는 그에 대한 대비를 해 두었다는 듯 마량을 안심시켰다.
  "짐도 그걸 생각해 두고 있었다. 오반에게  나이 많고 힘없는 군사 1만여 명을 
주어 오영 앞쪽에 진을  치게 했다. 그리고 짐은 날랜 군사 8천을  거느려 산 속
에 숨어 기다릴 것이다. 육손은 우리가 영채를  옮기고 있다는 것을 알면 반드시 
그때를 놓치지 않고 군사를 낼 것이다. 오반이  싸우다 지는 체하며 달아나고 육
손이 뒤쫓으면 그때  짐이 군사를 내몰아 적이 돌아갈  길을 끊고 그 어린 놈을 
사로잡아 버릴 것이다."
  선주의 말을 듣고 있던 여러 관원들은 감탄해 마지 않았다.
  "폐하의 귀신 같은 헤아림은 저희들이 따를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량은 여러 관원들이  감탄하는 가운데도 ㅏ가닥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리지 못한 듯 선주에게 말했다.
  "듣자오니 요즈음 승상께서  동천에 이르시어 각처의 요해처를 살피시며 위군
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하고 있다 합니다. 동천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폐
하께서는 이번에 옮기는 영채를 그름으로 그리시어 승상에게 한 번 물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짐도 또한 벼업을 안다. 굳이 승상에게 물어 볼 것이 있겠는가?"
  선주가 잘라 말했다. 그러나 마량이 다시 한 번 간곡히 권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양쪽의말을 들으면 밝게 헤아릴  수 있으나 한쪽 말만 들으
면 그 헤아림이  좁다 하였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거듭 살펴  주시기 바랍
니다."
  마량이 거듭 권하자 선주도 끝내 그의 말을 물리칠 수 없어 허락했다.
  "정히 그렇다면 경이 가도록 하라. 각 진영을 돌아보고 벌여 세운 진과 주위의 
땅 모양을  그려 동천으로 가서 승상께  보이고 물어 보도록 하라.  만약 잘못된 
것이 있으면 급히 돌아와 알려라."
  마량은 곧 모든 영채를 그림으로 그려 그날로  동천으로 떠났다.  선주는 군사
를 산 속 그늘진  곳으로 옮겨 더위를 피하게 했다. 촉병의  이런 움직임은 세작
에 의해 곧  동오의 한당과 주태에게 알려졌다. 한당과 주태는  육손의 짐작대로 
촉병이 산골짜기로 옮겼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육손을 찾아가 말했다.
  "지금 촉병들은 40여  영채를 모두 산 아래  시냇물이 흐르는 숲 속으로 옮겨 
더위를 피하려 합니다. 도독께서는 촉병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 틈에 
적을 들이치는 것이 좋겠소이다."
  그 말을 들은 육손은 기뻐하며 두말 없이 몸소 군사를 이끌어 촉병이 진을 치
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육손은 바로  싸우지 않고 촉군의 형세부터 살
폈다. 촉병의 군사는  1만여 명이 안 되고 태반이 늙고  약한 군사들로만 이루어
졌는데 진 앞 선봉에는 선봉 오반이라는 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함께 적진을 살
피던 주태가 발끈 성을 내며 말했다. 
  "저까짓 늙고 약한 군사들은 어린 아이나 다름이  없소. 한 장군과 두 길로 나
누어 짓쳐들어 검불  쓸듯 하겠으니 내보내 주시오. 만약 이기지  못하면 군법에 
따라 처벌을 받겠소."
  육손이 그말에는 대꾸도 없이  한동안 여기저기를 살피더니 문득 말채찍을 들
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앞쪽 산골짜기에 은은히  살기가 일어나니 그곳에 반드시 적이 숨어 있을 
듯하오. 들판에 있는 늙고 약한 군사들은 우리를  꾀어내기 위해 풀어 놓은 군사
들일 것이오.  우리로 하여금 약한 군사들을  뒤쫓게 하고 산 속에  날랜 군사를 
숨겨 두어 우리의 뒤를 끊자는 것이오. 그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 되니 공들은 
함부로 나아가지 마시오."
  그 말에 한당과  주태를 비롯한 여러 장수들은  육손이 여전히 두려워 군사를 
내몰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속으로  비웃을 뿐이었다.  다음 날이 되었다. 촉병은 
계책을 써도 오병이 나오지 않으니  오반이 직접 군사를 이끌어 관 앞에서 싸움
을 돋우웠다. 욕지거리를 하며 칼과 창을 휘둘러  보는가 하면 가옷과 투구를 벗
어 놓은 채  벌거숭이가 되어 잠을 자는 등  오병을 한껏 깔보는 짓거리를 하였
다. 그 꼴을 보다못해 서성과 정봉이 육손에게 달려가 청했다.
  "촉병들이 우리를 업신여김이 너무 지나칩니다.  바라건대 저희들을 나가 싸우
게 해 주십시오."
  "공들은 단지 혈기만을 가졌을 뿐 손자. 오자의 병법을 모르오. 저것은 유비가 
우리를 꾀어 내려고  하는 계교요. 사흘이 지나면 그것이 속임수라는  것이 드러
날 테니 두고 보시오."
  육손이 분기를 억누르지  못하는 두 사람을 보며 달래듯 말했다.  서성이 끝내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볼멘소리로 물었다.
  "사흘이 지나면 촉병이  영문을 모두 다 옮겨  놓은 뒤인데 어떻게 그들을 칠 
수 있겠소?"
  그러자 육손이 잘라 말했다.
  "나는 그들이 영채를 다 옮기기를 기다리는 중이오."
  육손의 말뜻을 알 수 없는  서성과 정봉은 다시 육손을 겁쟁이라고 속으로 비
웃으며 물러났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자 육손은  모든 장수들을 관문 위에 불
러모으고 촉병을 살폈다.  관 앞쪽에 머무르고 있던 오반이 군사를  물리고 있는
데 육손이 맞은편 산골짜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산골자기에서 살기가 일고 있소. 반드시  유비가 저 산골짜기에서 나올 것
이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과연  산골짜기에서 무장을 갖춘  촉병이 선주를 
호위한 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동오의  군사들은 모두 그 촉병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들이 오반을 치자고 했을 때 내가 공들을 막은 것은 실은 이 때문이었
소. 지금 적의 복병들이 다 쏟아져 나왔으니 계략을 다 쓴 셈이오. 이제 나는 반
드시 열흘 안에 서촉의 군사들을 쳐부술 것이오."
  육손이 적의 복병이 있음을 알아차린 것에 감탄하고 있던 장수들도 그 말에는 
알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촉을 깨뜨리려면 그들이 쳐들어왔을 때 쳤어야 했습니다. 이제 촉군이 영채를 
5,6백 리에 걸쳐 벌여 세우고 그곳을  지킨 지도 7,8개월이나 지났습니다. 중요한 
길목을 차지한 채 굳게 지키고 있는 적을 무슨 수로 깨뜨린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육손이 여러 장수들을 깨우쳐 주었다.
  "장군들은 모두 병법을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하오. 유비는 천하가 다 아는 영웅
에 지모까지 갖춘 사람이오. 그런 그가 처음  군사를 일으켰을 때는 법도와 기율
이 엄했음이 틀림없소. 그러나 지금은 싸우러 나온  지 여러 달이 지난데다 우리
마저 나가 싸우지  않았으니 모두 지쳐 날카롭던 기세도 꺾였을  것이오. 그러니 
그들을 깨뜨릴 때는 바로 지금이오."
  여러 장수들은 그제야 비로소 육손의 속마음을  알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육손
은 손권에게 사자를 보내 서촉 군사를 깨뜨릴 계책이 서 있을을 글로 써서 전해 
올리게 했다. 손권은  며칠 안으로 서촉 군사를 쳐부수겠다는 육손의  글을 보자 
기쁨을 억누르지 못한 채 말했다.
  "우리 강동에 다시 이렇듯  뛰어난 인재가 났으니 내가 걱정할 게 무엇이겠는
가? 고든 장수들이내게 글을 오리기를 육손을 겁쟁이라 했으나 나는 그 말을 믿
지 않았다. 내가 이제 그의 글을 본즉 과연 그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이 어긋나지 않았음을 함께  기뻐한 손권은 육손을 받쳐 
주기 위해 크게 군사를 일으켰다.  한편  선주는 효정땅에서 모든 순군을 휘몰아 
간을 따라 내려왔다.  가는 곳곳에다 수채를 세우며 동오의 경계  깊숙이 들어갔
다. 그러자 황권이 선주에게 아뢰었다.
  "수군이 강물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기는 쉬우나 물러서기는  어
렵습니다. 신이  앞장 서서 밀고 들어가겠으니  폐하께서는 뒤를 맡아 주십시오. 
그래야만 만에 하나 실수가 있더라도 해를 입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선주는 껄껄 웃으며 황권의 말을 받았다.
  "동오 놈들이 이번에 혼이 나 모두 간담을  떨고 있다. 짐이 군사를 이끌고 여
기까지 왔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다. 이제 더 쳐들어간들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황권의 말을 옳게 여긴  여러 관원들이 다시 선주에게 황권의 말을 따
를 것을 권하자 선주는 황권에게 영을 내렸다.
  "정히 그러하다면 경이 강 북쪽에 남아 위가 쳐들어올 것에 대비토록 하라."
  선주는 황권을 강 북쪽에 남게  한 뒤 몸소 강남 쪽의 모든 군사를 이끌어 강
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영채를 세우며 진병하기로  했다. 선주가 그 렇게 마음을 
정하자 관원들도 더 이상은  말릴 수가 없었다.  이때 두  나라의 싸움을 염탐하
던 위의 세작이 밤낮없이 말을 달려 조비에게 그 형세를 알렸다. 
  "촉군이 동오를 치려고 대군을 몰고 나왔는데 7백여 리에 걸쳐 나무로 영채를 
세웠으며 그 군사는 숲  속 40여 곳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또한 황권에게는 강
북의 전군을 거느리게 했는데 이상하게도 매일 1백 리가 넘는 곳까지 군사를 보
내 살피게 하고 있습니다."
  세작의 말을 들은 조비는 고개를 젖히며 껄껄 웃더니 말했다. 
  "이번 싸움에서는 유비가 지겠구나!"
  그 말을 듣고 있던 여러 신하들이 까닭을 무었다.
  "촉군의 군세가 대단한데 어찌하여 싸움에 진다 하십니까?'
  그러자 조비가 그 까닭을 깨우쳐 주었다.
  "유비는 병법을 모르고 있음이다. 영채를 7백여 리에 늘여 세우고서야 어찌 적
과 맞설 수  있겠는가? 산과 물이 먼 거리에  있는 들판이나 험한땅에다 군사를 
머무르게 하는 것이 병법에서는 피하는 법이다.  유비가 동오의 육손에게 졌다는 
소식이 열흘 안으로 전해질 것이니라."
  그러나 신하들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촉군의  위세를 두려워하
며 촉이 동오를 꺾고 위로 쳐들어올 때를 대비하도록 청했다
  "만약 촉이 오를  깨뜨리면 그때는 우리에게로 군사를  돌릴 것입니다. 그러니 
엄중히 바이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만약 육손이 이 싸움에서 이기면 오는 그 여세를 몰아 반드시 서천으로 밀고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나라는  텅 빈 것이나 다름이 없다. 짐은 그때 군
사를 일으켜 거짓으로 오를 도우러  왔다 말하고 한꺼번에 세 갈래로 군사를 낼 
것이다. 그러면 동오를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
  조비의 말에 여러 관원들은  그가 과연 조조의 핏줄을 이어받았음을 돌이키고 
엎드려 절하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위주 조비는  곧 영을 내려 조인에게 군사를 
거느려 유수로, 조휴는 동구로, 조진은 남군으로  나아가게 했다.  조비는 그들을 
보내면서 일렀다.
  "그대들은 각기 정해진 곳으로  가되 날짜를 정해 한꺼번에 동오로 밀고 들어
가라. 짐도 그대들의 뒤를 받치리라."
  조비는 그들 조조의 군마를 떠나게 한 뒤 동오를 치기 위해 몸소 군마를 수습
했다.  그 무렵, 공명을 찾아간 마량은 그려간 영채의 도본을 보이며 말했다.
  "주상께서는 지금 영채를  옮겨 강을 끼고 7백여  리에 걸쳐 골짜기와 산림이 
우거진 40여 곳에  군사를 머무르게 하였습니다. 주상께서 이 도본을  상승께 보
여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승상께서는 도본을 보시고  잘못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
시오."
  도본을 받아 본 공명이 깜짝 놀라더니 탁자를 치며 괴로운 듯 외쳤다.
  "누가 주상께 이 따위의 영채를 치도록 말씀드렸는가? 목을 베어야 하리라."
  "주상께서 몸소 하신 일입니다."
  공명이 놀라 탄식해 마지않았다.
  "한조의 기수가 이제 다했구나!"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공명의 말에 마량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공명이 여전히 괴론운  얼굴로 길게 
한숨지으며 말했다.
  "원래 숲이 무성하고 거친 땅을 안은 채 영채를 세우는 것은 병가에서 꺼려하
는 바다. 만약 적이 불로 공격을 하면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뿐인가? 7백여 리
에 걸쳐 영채를  늘어 세웠으니 그토록 긴 싸움터에서  어떻게 적을 막아 낼 수 
있겠는가? 육손이 지금까지 웅크로고  지키기만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노린 것이
다. 그대는 급히 돌아가 주상께 모든 영채를 다시 세우라고 아뢰도록 하라. 영채
를 이대로 두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만약 가는 동안 동오의 군사가 싸워 이겼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얼굴빛이 달라진 마량이 물었다.
  "육손은 함부로 우리 군사를  뒤쫓지 않을 것이니 성도는 엄려하지 않아도 된
다."
  "이기고도 육손이 어찌하여 우리 군사를 뒤쫓지 않는다 하십니까?
  "육손은 위병이 자기  뒤를 들이칠까 두려워하고 있다.  만약 주상께서 싸움에 
졌을 때는 백제성으로  들어가시도록 말씀드려라. 내가 그때를  대비해 서천으로 
돌아오면서 어복포에 이미 10만의 군사를 보낸 바 있다."
  공명의 말에 마량은 다시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제가 그 동안 어복포를 수차례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나 군사는 한 사람도 눈
에 띄지 않았는데 승상께서는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하십니까?"
  "뒤에 가서 보면 알게 될 것인즉 여러 말 할 것 없네."
  공명이 정색을 하며  길 떠나기를 재촉했다. 이에 마량은 선주에게  올리는 공
명의 표문을 받아 말을 채찍질해 돌아갔다. 마량을  떠나 보낸 공명은 선주를 도
우러 가기  위해 군마를 수습했다.   그때 육손은 촉군이 오랫동안  싸우지 않아 
마음이 풀어져 느리고 게을러져 있는 것을 보고 모든 장수들을 불러 물었다.
  "내가 대왕의 명을 받들어 온  이후 한 번도 나가 싸우지 않았으나 이제는 촉
군의 움직임을 알게 되었소.  먼저 강 남쪽 언덕에 있는 촉의  영채 하나를 배앗
고자 하는데 누가 나가 보겠소?"
  육손이 처음으로 나가 싸우려 하자  한당.주태.능통이 한꺼번에 나섰다. 그러나 
육손은 그들을 물리치고 계하에 있는 한낱 말장인 순우단에게 영을 내렸다.
  "나는 그대에게 군사 5천을 줄 테니 가서 강 남쪽의 네 번째 영채를 빼앗으라 
그곳은 촉의 장수 부동이 지키고  있을 것인즉 반드시 오늘밤에 그 영채를 빼앗
도록 하라. 내가 뒤따르며 뒤를 받쳐 주겠다."
  순우단이 영을 받들어  군사를 이끌고 가자 육손은  서성과 정봉을 불러 영을 
내렸다.
  "그대들은 각각 군사 3천을 거느리고 5리  밖에 머무르고 있으시오. 만약 순우
단이 져서 쫓겨오거든 그때 나가서  구해 주되 결코 적을 뒤쫓지는 말도록 하시
오."
  서성과 정봉도 명에 따라  군사를 이끌어 갔다.  순우단이 떠날  때는 해질 무
렵이었으나 강 남쪽의 네  번째 촉의 영채에 이르자 어느 새  밤 삼경이 되었다. 
순우단은 군사들에게 크게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게 하며 촉의 영채로밀고 들어
갔다.갑작스런 오군의 기습을  맞았으나 촉의 영채에서는 부동이  군사를 이끌고 
나와 순우단을 맞았다.  부동이 순우단에게 덤벼들며  창을 휘두르자 몇 번을 부
딪지 못해 순우단이  벌써 힘에 밀렸다. 순우단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는데 앞
쪽에서 크게 함성이  일며 한 떼의 순사가 나타나  길을 막는데 보니 촉의 장수 
조융이 거느린 군사였다.   순우단은 깜짝 놀라 힘을 다해 싸워  간신히 길을 앗
아 달아났으나 그 동안 군사 태반이 꺾여  버렸다. 순우단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다리는데  산 뒤에서 한 떼의  만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앞선  장수를 보니 
얼굴이 흉악한 번장 사마가였다.  다시  간담이 서늘했으나 순우단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며  옆길로 달아나는데 뒤에서  부동.조융.사마가가 거느린 군마들이 
세 갈래로 뒤쫓아왔다.   순우단이 정신없이 5리쯤을  달아났을 때였다. 한 때의 
군마가 맞은편에서 달려왔다. 순우단은 이제는 달아날  기력도 없어 죽기로 작정
하고 있는데 보니  그들은 바로 서성과 정봉이 이끄는 구원군이었다.  오군과 촉
군이 부딪쳐 한바탕  어지러운 싸움이 벌어진 뒤  서성과 정봉은 순우단을 구해 
오군의 영채로 돌아왔다.  순우단은 투구에 꽂힌  화살을 뽑을 사이도 없이 육손
의 장막에 들어가 죄부터 빌었다.
  "5천 군마를 이끌고 가 반이나 잃고  말았습니다. 군율에 따라 저에게 벌을 내
리십시오."
  그러나 육손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네 죄가 아니다. 내가  적의 허실을 알고자 그대를 보낸 것이다. 이제야 촉군
을 깨뜨릴 계획이 섰으니 이는 바로 그대 덕이다."
  그러자 곁에 있던 서성과 정봉은 육손이 촉군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기는 듯해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촉군의 세력이 강해 쉽게 쳐부술 것  같지 않습니다. 함부로 싸우다가는 장수
와 군사만 잃고 말 것입니다."
  그 말에 육손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내가 순우단을 보낸 것은 공명을  속이기 위함이었소. 다행히 그 사람
이 여기 없으니 이번 싸움에서는 내가 크게 이길 것이오."
  육손은 그 말과 함께 모든 장수들을 불러들여 영을 내렸다.
  "주연은 물길로 싸움배를  이끌고 나가도록 하시오. 배에는  마른 풀과 갈대를 
가득 싣고 나가도록 하시오. 내일 오후에는 동남풍이  크게 불 것이니 그때는 내
가 이른 계책대로 하시오."
  육손은 다시 한당에게 영을 내렸다.
  "장군은 군사를 이끌어 강 북쪽을 치시오."
  이어 육손은 주태에게 영을 내렸다.
  "장군은 군사를 거느려 강 남쪽을 치도록 하시오."
  이어 육손은 다시 두 장수에게 일렀다.
  "모든 군사들에게 유황과 함께 마른 풀 한 다발과 불씨를 마련해 가게 하시오. 
그런 다음 창칼을 들고 한꺼번에 쳐들어가 촉의 영채에 이르거든 바람의 방향에 
맞춰 불을 지르도록 하시오. 그러나 사십 군데의  영채 중에 하나씩을 걸러 스무 
개만 태우도록 하시오. 또한  모든 군사는 마른 양식을 갖고 가  어떤 일이 있더
라도 물러나지 않도록 하시오. 적이 물러나면  유비를 사로잡을 때까지 밤낮없이 
뒤쫓도록 하시오."
  육손이 그렇게 영을 내리자  장수들은 앞일을 헤아리는 빈틈없는 말에 감탄하
며 군사를 이끌어 갔다.   한편 선주도 그때 동오를 쳐부술  계교를 생각하며 무
심히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홀연 중군기가 쓰러졌다. 선주는 바람도  불지 않았
는데 기가 쓰러지자 심상치 않게 여기며 곁에 있는 정기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징조인가?"
  "오늘 밤에 동오 군사가 쳐들어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정기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렇게 대답했다.
  "어젯밤에 저들이 왔다가 거의 다 죽다시피 했는데 어찌 감히 다시 또 오겠는
가?"
  선주가 당치않은 소리라는 긋이 정기에게 말했다.  정기는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어 선주에게 아뢰었다.
  "어젯밤의 오군은 육손이 우리를  한번 시험해 보기 위해 보낸 군사인지도 모
릅니다."
  선주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군사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산 위에서 보니 멀리 오ㅕ들이 산을타고 동쪽으로 갔다 합니다."
  선주는 육손이 유인책을 쓰려는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우리를 꾀어 내기 위한 의병일 것이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굳게 지
키도록 하라."
  선주가 그렇게 말한  후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관흥과 장포에게 각기 
군사 5백을 주어  사방을 돌아보게 했다. 해질 무렵이 되어  돌아온 관흥이 선주
에게 아뢰었다.
  "강 북쪽에 있는 영채에서 불길이 일고 있습니다."
  선주도 심상치 않은 생각이 들어  급히 관흥을 강 북쪽으로 보내고 장포를 강 
남쪽으로 가게 하며 일렀다.
  "만약 오병이 왔거든 즉시 돌아와 알리도록 하라."
  관흥과 장포가 제각기 군사를 거느려 남과 북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초경 무
렵이 되자 홀연 동남풍이 강하게 일었다. 그  바람과 때를 맞춰 어영의 오른쪽에
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군사들이 놀라며 불을 끄려는데 이번에는 어영  왼쪽 영
채에서 불길이 올랐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자 불길은 우거진 숲에까지 번졌다. 
바싹 마른 나뭇잎에 옮겨 붙은 불길은 바람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며 숲 
전체로 번져 가는데 함성이 크게일며 오군이 촉군을  덮쳐 왔다.  어영의 촉군들
은 정신을 차릴 새가 없었다. 적인지 자기  편인지 가름할 수조차 없는 그림자들
이 연기  속을 우왕좌왕하며 이리 쮜고  저리 뛸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오군의 
말발굽에 밟히거나 같은 촉군끼리 밟고 밟혀 죽거나 상하는 자가 헤아릴 수없이 
많았다. 촉의 어영에도  어느 새 불길이 이는 가운데 오군이  고함치며 짓쳐들었
다.  그러나 불길  속에서 서로 뒤엉키다 보니 촉군은 오군의  수가 얼마나 되는
지 살필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되니 싸워 보지도 않고 불길과  오군을 피해 달
아날 뿐이었다.  이에 선주도  급히 말에 올라 풍습의 영채로 말을 몰았다. 그런
데 달려간 풍습의 영채도 불길이 치솟으며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불길은 점점 
더 거세게 번져 강북과 강남이 온통 불바다가  되어 대낮처럼 밝았다. 풍습도 하
는 수 없이 급히 말에 올라 겨우 수십 기  만을 거느린 채 달아났다.  그러나 앞
쪽에는 서성과 정봉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바탕  어지러운 사움이 벌어지자 푸습
의 영채로 달려오던 선주가 이 모양을 보고 말머리 를 돌려 서쪽으로 길을 앗아 
달아났다.  서성이 선주를  보자 풍스과 싸우기를 마다하고 선주를 뒤쫓았다. 서
성이 뒤쫓아오자 선주는 크게  당황하며 말을달려가는데 앞쪽에서 한 떼의 군마
가 쏟아져 나오며  길을 막았다.  선주가  흠칫 놀라며 앞을 보니 앞  선 장수는 
정봉이었다. 서성과  정봉이 앞과 뒤에서 선주를  에워싸며 밀려들었다.  오군의 
한가운데 갇힌 꼴이 된 선주가 어찌할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였다. 문
득 크게 함성이 일며 한 떼의 군마가 오군의 뒤를 덮치더니 포위를 뚫고 선주레
게 달려왔다. 선주가 놀라 보니 그는 바로 장포였다. 선주는 장포를 보자 지옥에
서 만난 부처님처럼 반가웠다.    장포는 선주를 구하고 어림군을  거느린 채 길
을 열어 달아났다. 그러자 앞쪽에서 한 떼의  군마가 내달아 오는데 보니 그들은 
바로 촉의  장수 부동이 이끄는 군마였다.   장포와 부동은 군사를  합쳐 선주를 
호위하고 달렸다 뒤에는 오군이 선주를 사로잡으려는 듯 급한 기세로 뒤쫓고 있
었다.  한동안 말을 달려가다  보니 문득 앞쪽에 산이 보였다. 군사들에게 그 산 
이름을 물으니 마안산이라고 했다. 형주의 이릉주에 있는 산이었다. 장포와 부동
이 선주를 모시고 그  산으로 올랐다.   산봉우리까지 올라간  선주가 산 아래를 
굽어보았다. 그러자 함성이  크게 일며 육손이 거느린 대군이 산  아래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육손은 군사들을  재촉하여 산 위로 밀고 들어가고, 장포와 부
동은 있는 힘을 다해 기어오르는  적병을 막으며 산 어귀를 지켜 냈으나 군사의 
수가 부족했다.  선주가 참담한 마음으로 멀리  어둠 속을 내려다보니 어찌 놀라
지 않을 수 있으랴.  아득히 뻗은 수백 리의 들에 굽이굽이  이어진 불길이 하늘
과 땅을 태우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강물에는 시체가 쌓여 흐르는 물을 막다
시피하며 떠내려가고 있었다.  선주는 육손이 편  화계를 보며 하늘을 우러러 통
탄해 마징낳았다. 그러는 동안  날이 밝았다. 오군들은 다시 이 산마저 불덩이로 
만들려는지 여기저기에다 일제히 불을 질렀다. 촉군들이  그 불길을 피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선주도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어찌할 줄 몰라 허둥대고 있는
데 문득 타오르는 불길을  헤치며 한 장수가 몇 기를 이끌고  달려왔다. 그는 다
름아닌 관흥이었다. 관흥이 선주 앞에 엎드리며 급히 아뢰었다.
  "사방의 불길이 산으로 타오르니 이곳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습니다. 폐하께
서는 급히 백제성으로 가시어 다시 군마를 수습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선주도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뒤쫓을 오군이 걱정되어  힘없이 목소
리로 말했다. 
  "누가 뒤쫓는 적을 끊겠는가?'
  "신이 죽기로 작정하고 적을 막아 보겠습니다."
  곁에 있던 부동이 나섰다.   그날 해질 무렵이되자 관흥이 앞선  채 장포는 가
운데서, 그리고 부동이 뒤를 맡기로 하고 선주를  호위하여 오병을 헤치며 산 아
래로 내려갔다.   선주가 달아나는 걸  보자 장수들은 공을 다투며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짓쳐들었다. 그  기세가 하늘을 가리고 땅을 뒤덮어 둑이  무너져 강물
이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그 엄청난  기세에 선주는 다급한 나머지 군사들에게 
영을 내렸다.
  "군사들은 전포와 갑옷을 벗어 길을 막고 불을 질러라!"
  그 불길로 적의  급한 뒤쫓음을 잠시나마 멈추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불길로 위태로움을 벗어나기에는 부족했다. 잠시 적이  주춤하는 사이를 틈타 정
신 없이 달려갔다. 선주가 가까스로 강이 보이는 곳까지 달려왔을 때였다.  문득 
앞쪽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는 가운데 동오의 장수 주연이 군사를 거느리고 강 
언독을 넘어오더니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을 보자  선주도 이젠 온몸에 힘이 빠
지는 듯 탄식했다.
  "짐이 이제 이곳에서 죽는다는 말인가!"
  관흥과 장포는 선주의 탄식을 듣자 분연히 말을  박차 오군과 맞서 싸웠다. 그
러나 오군이 어지럽게 화살을 날리니 길을 열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홀연 
등 뒤에서 또 크게 함성이 일더니 육손이 군사를  이끌어 오고 있었다.  앞과 뒤
에서 적을 맞게 되자 선주는  다시 위급한 지경에 빠져드는 가운데 동쪽 하늘이 
밝아오며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앞쪽 주연의 군사 뒤쪽에서 크게 
함성이 일더니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떼의 군사가 선주  쪽으로 밀
고 즐어오는데 주연의 군사는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
다. 달아나던 군사는 개울물에 빠져 죽거나 바위  틈에 굴러 떨어지니 죽고 상하
는 자가 많았다. 그 난군 속에서 한 장수가 선주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선주
가 놀라며 그 장수를 보니 바로 상산 조자룡이  아닌가.  원래 조운은 강주에 있
었는데 한중보다 선주가  있는 것에 가까웠다. 촉과 오가 싸운다는  소식을 듣자 
선주를 돕기 위해 군사를 이끌어  오는 도중 문득 동남쪽에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르는 불길을 보고 크게 놀라 군사를 보내 알아  오게 했다.  그 군사가 달
려가 알아보니 선주가 오군에게  에워써여 위태로운 지경에 빠져 있다는 것이었
다. 그 말을 듣고 조운은 깜짝 놀라며 급히 군사를 휘몰아온 것이었다.

     유비 현덕 유선을 부탁하고...

  촉의 패잔병을  쫓던 육손은 공명의  팔진도를 발견한다. 어둠  속에서 기묘한 
조화가 일어 길을 잃은 육손은 황승언의 도움으로  석진을 빠져 나온다. 한편 유
비는 백제성에서 예순셋의  한 많은 생을 마감하고  공명은 태자 유선을 제위에 
오르게 한다.

   한편 육손은 승세를 몰아  촉군을 휩쓸고 있는데 뜻밖에도 조운이 군사를 이
끌고 오자 영을 내렸다.
   "전군은 급히 물러나라!1"
  육손은 더 싸울 생각을 버리고 군사들을 물렸다.   그때 조운은 오군에게 덮쳐
들며 닥치는 대로 적을 쳐  물리치다가 물러나라는 육손의 영을 듣지 못한 주연
과 맞닥뜨렸다.   주연이 말머리를 돌릴  사이도 없이 조운은 한칼에  그를 찍어 
말 아래로 떨어뜨렸다. 조운은 오병을 쳐죽이며 흩어  버린 다음 선주를 구해 백
제성을 달려갔다.  선주가 문득 조운에게 탄식하며 말했다.
   "짐은 비록 위태로움에서 풀려났으나  뒤에 있는 여러 장수와 군사들은 어찌
한다는 말인가?"
   그러자 조운이 선주를 위로했다. 
   "지금은 적이 뒤쫓고 있으니 더 머뭇거릴 수가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우선 백
제성으로 가셔서 쉬도록  하십시오. 신이 다시 군사를 이끌고 와서  그들을 구하
겠습니다."
   선주가 백제성으로 들어가는데 그를  뒤따르는 장졸은 1백여 명에 지나지 않
았다. 싸움에 졌다 하나 참으로  참담한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뒷날 사람들이 
촉의 대군을 여지없이 꺾어 버린 육손을 시로 지로 찬탄했다.
   홰들고 불질러 잇댄 영채 무찌르니
   현덕은 갈 곳 없어 백제성으로 달아났네.
   그 위명 하루 아침에 촉과 위를 놀라게 하니
   오왕이 어찌 한낱 서생 공경하지 않으리.
   한편 선주의 뒤를 쫓는  오군을 맞아 싸우던 부동은 오군들에 의해 에워싸이
고 말았다. 오군들의 한가운데에 갇힌 꼴이 된 부동을 보고 정봉이 소리쳤다.
   "서촉의 군사는 수없이  죽고 항복한 자도 엄청나다. 너의  주인 유비도 이미 
사로잡힌 지 오래이다.  너는 이제 힘도 다했고 형세도 고단하거늘  어찌하여 항
복하지 않느냐?"
   그러나 부동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정봉을 소리쳐 꾸짖었다.
   "나는 한의 장수다. 어찌 동오의 개들에게 항복할 수 있겠느냐?"
   그 외침과 함께 창을 높이 들고  말을 박차며 오군들에게 달려들었다. 부동은 
닥치는 대로 오군을 찌르고 베었으나  끝내 오군의 창칼에 찔려 온몸에 피를 뒤
집어쓰고 말았다.
   " 이제 나도 끝이로구나!1"
   부동은 탄식하며 입으로  피를 토하며 오군들 속에 쓰러졌다.   이때 촉의 좨
주 정기도 수군을 이끌어 치러 가려는데 어느  개 오군이 뒤에서 밀려들었다. 오
군이 밀려들자 촉군들은  그 위세에 겁을 집어먹고 놀라 달아났다.  정기의 부장
이 달아나다 문득 정기를 보고 소리쳤다.
   "적병이 옵니다. 좨주께서도 달아나십시오."
   그러자 정기가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나는 주상을 섬긴 이후 싸움에 나가 한 번도 달아난 적이 없다."
   그렇게 외치며 버티고 서  있는데 동오의 군사가 내달아와 정기를 겹겹이 에
워쌌다. 오군의 포위를 뚫을 길이 없음을 안  정기는 마침내 자신의 칼로 자기의 
목을 치니 위태로움을  맞아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은 채 의로운  죽음을 맞았다.  
그때 오반과 장남은 이릉성을 에웠나 채 공격하고  있었다.  홀연 풍습이 달려와 
촉병이 오병에게 크게  패했으며 선주가 쫓기고 있음을 알렸다.   오반과 장남은 
깜짝 놀라 이릉성을 버려  둔 채 선주를 구하러 달려갔다. 이릉성  안에 갇혀 있
던 손환은  그제야 촉병의 포위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장남과  풍습은 선주를 
구하러 달려가다 얼마  못 가 오병과 맞닥뜨렸다. 거기다가 이릉성을  빠져 나온 
손환이 달려와 장남과 풍습은 오의 대군을 헤쳐 나갈 길이 없자 죽기 살기로 싸
우다 마침내  오병의 칼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  오반만은 가까스로 
적의 창칼을 벗어나  달아났으나 얼마 가지 않아 오병이 뒤를  쫓아왔다. 오반이 
다시 위태로운 지경을 맞아 진땀을 흘리고 있을 때 마침 군사를 이끌고 나온 조
운의 구함을 받아 함께 백제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멀리 남만으로부터 원군
을 이끌어 왔던 만왕 사마가도 오병과 싸우다 군사들을 모두 꺾인 채 홀로 달아
나다 주태와 맞닥뜨렸다.  사마가는 주태를 맞아 20여 합을 싸우다  마침내 죽음
을 맞았다.  촉의  장수들이 오병과 끝까지 싸우다 흔연히 죽음을  맞는 중에 더
러는 오병에게 항복하는 장수들도 있었다.  두로와  유녕은 오병을 당할 수 없음
을 알고  군사를 거느린 채 영문을  열고 투항했다. 두 장수가  항복하니 서촉의 
영채에 쌓였던  군량과 마초는 고스란히  등오로 넘어가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서촉의 장수와 군사들이 오병 앞에 무릎을 꿇으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때  이전에 선주의 아내였던 손 부인은 동오에서  선주가 싸움에 
져서 죽었다는 잘못된 소문을 듣고 울며 강물에 뛰어들어 지아비의 뒤를 좇았다 
한다. 훗날 사람들이 그  강변에다 몸을 던져 정절을 지킨 손  부인의 넋을 모신 
효희사란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한편 촉군을 물리쳐 큰 공을  세운 육손은 군
사를 이끌어 촉의 패잔병을 뒤쫓다가 기관을 지나 얼마 가지 않아 문득 말을 세
웠다. 육손이 앞을 보니 맞은편 산자락을 끼고  강물이 은은히 흐르는데 한 줄기 
살기가 하늘을 메울 듯 감돌고 있었다.  육손은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앞쪽에 틀림없이 매복이 있소. 결코 가볍게 군사를 이끌어서는 아니 될 것이
오."
   육손은 장수들에게 그렇게 말한 뒤 군사를 10여 리나 물려 넓은 들판에다 진
영을 세웠다. 매복군의 기습에  대비하여 육손은 군사를 보내 살펴보게 했다. 살
피러 갔던 군사가 돌아와 알렸다.
   "적군은 한 명도 보이지 아니 하였습니다."
   육손은 미덥지가 않아  말에서 내려 높은 곳으로 올라가  살펴보았다. 육손이 
보니 여전히 괴이한 고요함과 은은한 살기를 머금은 구름이 산중턱에 감돌고 있
었다. 
   "어찌 복병이 없을 리가 있는가? 다시 한 번 더 살펴보라."
   육손이 다시 군사를 뽑아 살펴보게 했다. 살피러 갔던 군사가 돌아와 말했다.
   "군사나 말은커녕 적병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육손은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고 있었
다.  육손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산쪽을 바라보니 살기가 전보다 더했
다. 이번에는 믿을 만한 군사를 뽑아 자세히 살피도록 일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살피고 온 군사가 와서 알렸다.
   "인마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강변에 돌무더기가 어지럽게 팔구십 더미,  여
기저기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육손은 더욱 의심스러웠다. 군사들을 보내어 이곳  백성들 몇 사람을 불러 오
게 하니 군사들이 곧 고을 토박이 몇 사람을  데리고 왔다.  육손이 그들에게 물
었다.
   "누가 돌무더기를 강변에  저렇게 쌓아 두었는가? 거기다 어찌하여 돌무더기 
위에 살기가 서려 있는가?"
   토박이 중에 한 사람이 대답했다.
   "이곳은 어복포란 곳으로, 전에 제갈량이  서천으로 돌아갈 때 군사들을 풀어
서 세워  놓은 진입니다. 돌을 주워다  강변에 쌓아 만든 것인데  항상 괴이스런 
기운이 구름처럼 저 돌무더기 안에서 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공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육손은 그 말을  듣고 홀로 중얼거리며 말 위에 올랐다.  수십 기병을 거느린 
육손은 그 석진을  살피러 언덕 위로 갔다. 석진을 굽어보니  사면팔방으로 사람
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돌문이 나 있었다.   육손이 그 석진을 자세히 살펴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저것은 제갈량이 사람을 홀리려고 꾸며  놓은 요사스런 장난일 뿐이다. 저런 
것이 어디에 소용이 되겠는가?"
   그러고는 공연한 의심을 품었다는  듯이 육손은 기병 몇을 거느리고 언덕 아
래로 달려가 석진  안으로 뛰어들었다. 석진 안에 들어선 육손이  좌우를 살피고 
있는데 따라 들어온 부장이 말했다.
   "해도 저물었으니 도독께서는 이만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육손도 주위가 어두워지자  내심 불안하게 여겨 말머리를 돌리려  할 때였다.  
홀연 회오리바람이 크게 일어나며  모래가 흩날리고 돌멩이가 구르는 가운데 하
늘과 땅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육손이 정신을 가다듬어  보니 눈앞에 
어른거리는 돌무더기가 칼을 세운 듯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거기다가 거센 
바람에 출렁이는 물결 소리는 마치  창칼을 부딪고 북 소리가 울리며 수많은 말
들이 내닫는  소리처럼 소란스러웠다. 뿐만  아니라 모래와 흙으로  된 모래톱이 
바람에 쓸려와 태산이  앞을 가로막는 듯했다.  육손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
쳤다.
   "내가 제갈량의 계략에 빠졌구나!"
   육손이 급히 석진 속에서 빠져  나가려 했으나 어디로 달아나야 할 지 알 수
가 없었다.  육손이  정신이 어지러워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데  홀연 한 노인이 
말 앞에 나타나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장군은 이 석진에서 벗어나고 싶소?"
   "노인께서 길을 아신다면 가르쳐 주십시오."
   육손이 사색이 된 채 노인에게 빌 듯이 청했다.
   "내 뒤를 따르시오."
   노인이 그렇게 말하더니  지팡이를 끌며 천천히 걸어나갔다. 육손이  뒤를 따
라가다 보니  어느 새 돌무더기 진  밖이었다. 노인은 육손이 있었던  원래의 산 
언덕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제야 육손이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나는 제갈공명의 장인 되는 황승언이란  사람이외다. 전에 내 사위가 서천으
로 들어갈 때 돌로 만든 저 진을 세웠는데  그 이름을 팔진도라 하오. 여덟 문이 
시시각각 돌아가며 변화를 부리는 것으로 그 문은 곧  휴. 생. 상. 두. 경. 사. 경. 
개이오. 이 여덟 문을 번갈아  가며 들어가게 되니 그 변화가 끝이 없소. 적병이 
한 번 빠져 들면 헤어날 길이 없으니, 그 위력은 날랜 군사 10만과 견줄 만하오. 
사위가 떠나면서 '뒷날 동오의  한 장수가 이 진 안에서 헤매게  될 것이니 그때
는 밖으로 나가는 길을 일러 주지 마십시오'하고 당부했소. 그런데 오늘 이 늙은
이가 산 위에서 보니 장군이 바로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이 진을 알
지 못하고  들어갔으니 틀림없이 빠져  나오지 못하리라 짐작했었소,  그러나 이 
늙은이는 평생을 착한 일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오.  차마 장군을 버려 둘 수가 
없어 내 나서서 '살아나는 문'으로 나오도록 이끈 것이외다."
   육손은 공명의 장인인 그  노인에게 절하며 고마움을 표한 뒤 궁금증을 이기
지 못해 물었다.
   "어르신께서는 이 진법의 묘한 이치를 모두 알고 계십니까?"
   그러자 그 늙은이가 고개를 가로 흔들며 말했다.
   "변화가 워낙 무궁해서 늙은이 몸으로는 배울 수가 없었소이다."
   육손은 그 노인의 말을 듣자  더욱 고마운 생각이 들어 말에서 내려 거듭 감
사의 뜻을  전한 뒤에 진영으로 돌아갔다.   뒷날 당나라 시인  두공부가 말년에 
기주를 지나다 이 팔진도를 보고 시를 지었다.
   삼분하는 공 천하를 덮고
   그 이름 팔진도로 떨쳤네. 
   강은 흘러도 돌은 그대로이니
   동오를 못 삼킨 한 오늘에 이르네.
   석진은 장마철에는 고스란히 물  속에 잠겼으나 물이 빠지면 항상 원래의 모
습 그대로 돌아오는데 수백 년이 지나도록 남아  있었다.  육손은 본진으로 돌아
온 뒤에도 팔진도에서의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탄식했다.
   "공명은 참으로 와룡이로다. 도저히 따르지를 못하겠구나."
   육손은 더 이상 서촉으로 밀고  갈 마음이 없어 곧 군사를 물리도록 영을 내
렸다.  육손이 군사를 물리려 하자 좌우에  있던 여러 장수들이 한결같이 못마땅
한 얼굴로 물었다.
   "유비가 싸움에 크게 져서 이제 겨우  성 하나를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이긴 
기세로 밀고 들어가면 그를 쉽게 쳐없앨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쳐부수지 않
으시고 이까짓 돌로 만든 진 때문에 물러나려 하십니까?"
   그러자 육손이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석진 때문에 물러나는 것이 아니오,  나는 위주 조비가 그 아비 조조에 
못지않게 간사하고 속임수가  많음을 알고 있소이다. 내가 촉병의 뒤를  쫓는 것
을 조비가 알면 그는  틀림없이 우리 동오의 빈틈을 타 쳐내려  올 것이오. 우리
가 서천으로 깊이 들어간다면 무슨 수로 갑자기 군사를 돌려 그들을 막을 수 있
겠소?"
   그 말에는 여러  장수들도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육손은  마침내 한 
장수에게 영을 내려 촉군이 뒤쫓을  경우를 대비하게 한 다음 대군을 돌려 동오
로 돌아갔다. 육손이 군사를  되돌린 지 사흘이 채 못 되어  세 곳으로부터 급한 
전갈이 전해졌다.
   "위의 장수 조인이 군사를 이끌어 유수로 나오고 있습니다. "
   "조휴가 동구로 군사를 휘몰아오고 있습니다."
   "조진이 남군으로 군사를 이끌어 오는데 그 기세가 자못 급합니다."
   세 곳에서 온 전갈은 다시 이어졌다.
   "세 길로 오는 인마가 수십 만이며 밤을 도와 우리의 경계로 밀려 오는데 그
들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
   "과연 내가 헤아린 대로다. 내가 이미 그럴 줄 알고 군사를 내어 그들을 막게 
했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되리라."
   육손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  한편 그 무렵, 효정과 이
릉 싸움에서 육손에게 크게 패한 선주는 백제성으로 쫓겨가자 오호대장의 한 사
람인 조운이 성을 지키며 선주를  호위했다.  때는 장무 2년 6월이었다. 이때 공
명에게 갔던 마량이 선주에게로 돌아와 자기 편이 싸움에 크게 패한 걸 보고 몹
시 슬퍼했다.  마량은 이미 때가 늦었으나  선주에게 공명의 말을 전하며  써 준 
글도 바쳤다. 선주가 공명의 글을 보고 탄식해 마지않았다.
   "짐이 진작 승상의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과 같이  크게 패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 무슨 낯으로 돌아가 성도의 여러 신하들을 대한단 말인가?"
   그렇게 탄식한 선주는  성도로 돌아가기를 마다하고 백제성에 그대로 머물렀
다. 선주가 머물게  되자 역관을 고쳐 영안궁이라 이름짓고 다시  뒷일을 도모했
다.  선주가 백제성에 머무르며 군사를 수습하고  있을 동안 쫓겨온 군사들이 싸
움의 뒷소식을 알렸다. 장남. 풍습. 부동. 정기.  사마가 등의 장수가 모두 싸우다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선주가  몹시 슬퍼하며 눈물짓고 있는데 가까이 모시는 
신하가 다시 알렸다.
   "황권이 강 북쪽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위에 항복했다 합니다. 폐하꼐서는 
그 가솔들에게 벌을 내리십시오."
   그러나 선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황권이 강 북쪽에 있다가 위에 항복한 까닭은 오군에게 길이 끊겨 오도가도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황권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짐이 그를 버렸다. 
그런데 어찌 그 가솔들에게 벌을  줄 수 있겠는가? 전과 같이 양식을 대어 주도
록 하라."
   선주는 오히려 그  가솔들을 보호해 주도록 분부를 내렸다.   그때 위에 항복
한 황권은 위의  장수들이 이끌어 조비를 뵙고 있었다. 조비가  황권의 속마음을 
엿보려는 듯이 물었다.
   "경이 짐에게 항복한 것은 옛 진평과 한신을 우러렀기 때문인가?"
   진평과 한신이 원래는 항우의  신하였다가 뒤에 유방을 도와 항우를 쳤던 일
에 비유한 조비의 물음이었다.  황권이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신은 촉제의 은혜를 매우  두텁게 입어 강 북쪽의 모든 군사를 거느리게 되
었습니다. 이번에  육손에게 돌아갈 길이 끊겨  촉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에는  항복할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폐하께 투항하게  된 것입니다. 
싸움에 진 장수가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다행인데 어찌 감히 옛 사람을 우러름 
따랐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황권이 서슴없이 말하자 조비는 그의 꾸밈없는 대답에 크게 만족해하며 진남
장군의 벼슬을 내렸다. 그러나  황권은 끝내 벼슬을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그러
자 황권의 마음을  돌려 놓으려는 듯 곁에 있던  신하 하나가 슬쩍 거짓을 섞어 
조비에게 말했다.
   "촉에서 온 세작이 전하기를 촉주가 황권의 가솔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고 합
니다."
   그러나 황권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태연히 그 말을 받았다.
   "신과 촉주는 서로 마음 속으로 굳게  믿고 있습니다. 촉주는 신이 위에 투항
한 것이 결코 본마음이 아닌 것을 아실 터이니 결코 신의 가솔을 함부로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황권의 굽힘  없는 기개를 본 조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뒷날 사람들은 위에 항복한 황권의 지조 없음을 시로 지어 나무랐다.
   오에 항복할 수 없다고 어찌 조비에게 투항했다?
   충의로운 이가 어찌 두 조정을 섬기는가?
   한스럽다, 황권은 한 번 죽음을 아꼈구나.
   주자의 글 쓰는 법 너를 용서 않으리.
   오와 촉이 서로 싸우자 위주  조비는 마침내 때가 왔다는 듯 가후를 불러 물
었다.
   "짐이 이제 천하를  통일하고자 하는데 먼저 촉을 치는  것이 좋겠소, 동오를 
치는 것이 좋겠소?"
   가후가 한동안 생각에 잠기다가 입을 열었다.
   "유비는 영웅의 재질을 지녔으며, 제갈량을  중용하여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
습니다. 또한 동오의  손권은 허실을 잘 알아 대처하는데다 육손은  우리를 대비
해 험하고 요긴한  곳마다 군사를 머무르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강과 호수가 
가로놓여 있어 급히  도모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신이 보건대 우리  장수들 중에
는 손권과 유비에게 맞설 만한  장수가 없으며 설사 폐하께서 하늘 같은 위엄을 
앞세워 몸소 나아가시더라도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굳게 지키며 두 나라에 변고가 있기를 기다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조비는 가후의 말이 마땅치 않아 따지듯이 물었다.
   "짐이 이미 세  갈래 길로 대군을 보내 동오를 치게  하였소. 오와 촉이 서로 
맞서도 있는 지금인데 이기지 못할 까닭이 무엇이오?"
   조비가 뜻을  꺾지 않으려는 듯 가후에게  반문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상서 
유엽이 나서며 말했다.
   "요즈음 동오의 육손이  새로 촉군 70만을 깨뜨린  후라 아래위가 한 마음이 
되어 있습니다. 거기다가 동오는 강과 호수가  가로놓여 있어 갑작스럽게 도모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육손이 꾀가 많으니  반드시 우리에 대한 방비가 있을 
것입니다."
   유엽까지 나서 말리자 조비가 더욱 못마땅한 얼굴로 물었다.
   "경은 전에는 짐에게 동오를 치라고 하였소,  그런데 이제 와서는 또 치지 말
라고 말리니 대체 그 까닭이 무엇이오?"
   "그건 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동오가 촉병에게 여러 차례 패하여 기
세가 크게  꺾여 있었습니다. 그 틈을  타 들이치면 충분히 이길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동오가 촉을 쳐부순 뒤라 그 기세가 1백 배나 치솟아 있으니 쳐들어가서
는 아니 됩니다."
   그러나 조비는 뜻을 굽히지 않으려는 듯 잘라 말했다.
   "짐은 이미 뜻을 정했으니 경들은 딴소리 하지 말라."
   조비는 그 말과 함께 몸소  어림군을 이끌어 세 갈래 길로 보낸 군사들의 뒤
를 바쳐 주기 위해 떠나려 했다. 그때 초마가 달려와 알렸다.
   "동오는 벌써 우리를 위한 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범은 군사를 이끌어 조
휴를 막으러 떠났으며 제갈근은 남군에서 조진을,  주환은 유수에서 조인을 기다
리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유엽이 다시 조비를 말렸다.
   "적이 이미 우리를 맞을  채비를 갖추었으니 폐하께서 가셔도 이로움이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조비는  끝내 유엽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를  치려는 뜻을 
바꾸지 않고 대군을 이끌어 나아갔다.  그때  조인을 맞으러 나간 주환은 나이가 
겨우 스물일곱이었으나 담력이 굳세고 지략이 많았다.  손권은 주환의 나이가 비
록 어렸으나, 그를 미덥게 여겨 유수를 지키게 했다. 그런데 위장 조인이 대군을 
이끌고 와 선계 땅으로 밀고  들어오자 주환은 군사를 그곳으로 보내어 막게 한 
후 자신은 겨우 기병 5천만을 거느리고 유수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 홀연 군사
가 달려와 알렸다.
   "조인은 부장 상조에게 제갈건. 왕쌍과 함께  5만의 정병을 주어 유수를 치라
고 영을 내리고 상조가 그 영을 받들어 이리로 몰려오고 있다 합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위의 대군이 몰려온다는 말에 모두들 두려움에 찬 얼굴들이
었다. 주환이 문득 칼을 빼들고 소리쳤다.
   "싸움에서 이기고 짐은  장수에게 달려 있지 군사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병법에 이르기를  '안에서 지키는 군사는  밖에서 쳐들어오는 군사의  수가 배가 
된다 해도 능히  이길 수 있다' 했느니라. 지금  조인이 1천 리 먼길에서 군사를 
이끌고 와 말과 사람이  함께 지쳐 있을 터인즉, 우리는 높은  성에 머무르며 남
으로는 큰 강을 의지하고, 뒤로는 험한 산을  의지하여 편안히 기운을 길러 지친 
적을 맞고 있다.  내가 1백 번을 싸운다  하더라도 1백 번을 다 이길  수 있으니 
비록 조비가 오더라도 두려워할 바가 아닌데 하물며 조인 따위가 어쩌겠느냐?"
   주환이 그렇게 말해 군사들을 격려한 뒤에 다시 영을 내렸다.
   "모든 군사들은 기를 눕혀 두고 절대로  북을 울리지 않도록 하라. 성안을 마
치 아무도 지키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라."
   군사들이 주환의 영에 따라 기와  창칼을 눕혀 놓고 모두 성 안에 매복해 있
었다.  그때 위의 장수  상조가 군사를 이끌어 유수에 이르렀다. 상조가 성을 보
니 성 위에는 말  한 마리, 군사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 마치 텅 빈 성 같았다. 
상조는 군사를 급히 내몰아 성으로 짓쳐들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땅과 하늘을 
뒤흔들 듯한 초 소리가 나며 일제히 성  위에서 깃발과 창칼이 일어서더니, 주환
이 칼을 휘두르며  나는 듯이 달려나와 상조를 향해 덤벼들었다.  뜻밖의 사태에 
상조가 깜짝 놀라며 주환을  맞아 싸웠으나 갑작스런 일이라 단 3합도 맞싸우지 
못한 채 주환의 칼에  맞아 말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주환이 적장 상조
를 한칼에 베어버리자 오군들은  기세가 등등하여 일제히 함성을 울리며 위군을 
몰아쳤다. 대장을 잃은  위군들은 기가 꺾인데다 거센 오군들의 기세를  당해 내
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니  죽고 상하는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한바탕 싸움에
서 크게 위군을 깨뜨린 주환은 적군이 달아날 때 내팽개친 기와 말과 무기를 거
두어들였다. 그제야 조인이 군사를 이끌고 왔으나  그때는 선계에 있던 군사들까
지 달려나와 힘을  합해 들이치니 마침내 당하지 못하고 달아났다.  수많은 군사
만 꺾인 채 돌아가  위주에게 싸움에 진 경위를 말했다. 조비는  조인의 말을 듣
자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군의 대비가 뜻밖에 굳센  것을 알고 걱정
스런 얼굴로 여러 장수들과 그 일을 의논하는데 더욱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조진과 하후상이 남군을 둘러쌌습니다. 그러나  안에 숨어 있던 육손의 복병
과 밖에 숨어  있던 제갈근의 복병이 안팎으로  들이치는 발마에 크게 패했다고 
합니다."
   조비가 다시 크게 놀라고 있는데 탐마가 헐떡이며 달려와 알렸다.
   "조휴가 동오의 장수 여범에게 패했습니다."
   이렇게 되니 조비가 세 갈래 길로 보낸 군사들이 모두 패하고 만 셈이었다.
   "짐이 가후와 유엽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이처럼 패하고 말았구나."
   조비가 한숨지으며 탄식했다. 거기다가 진중에 예상치 못한 변고까지 생겼다. 
때가 한창 더운 여름철이라 병이 크게 번져 군사들 중 열에 예닐곱은 쓰러져 죽
었다.  조비는 더는 버틸 수 없음을 알고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낙양으로 되돌렸
다. 이렇게  되니 화친을 맺었던 위와  오는 서로간에 원한을 갖게  되어 사이만 
나빠진 셈이 되고 말았다.
   한편 백제성에 있던 선주는 병을 얻어  영안궁에 몸져누워 있었다. 두 아우의 
연이은 죽음에다 오와 싸워 크게  패하여 상심하던 선주는 나이가 든 탓인지 약
을 써도 낫지 않고 병세가 하루가 다르게 위중해졌다.   때는 장무 3년 여름인 4
월이었다.  선주는 병이 온몸에 퍼졌음을 느끼고  스스로 낫지 않을 병임을 알았
다. 몸져누워 있으니 더욱 먼저 죽은 관우와  장비 생각이 간절해 흐느껴우니 몸
만 더 크게 상했다. 마침내 두 눈마저 어른거리며 잘 보이지 않게 되자, 그를 모
시고 있던 사람들마저 싫어져 꾸짖으며  물리쳤다.  어느 날 밤, 선주가 홀로 침
상에 누워 있을  때였다. 홀연 음습한 바람이  일더니 등불이 꺼질 듯 깜박였다. 
선주가 이상한 인기척에 그 쪽을  보니 등불 아래로 파란 기운이 안개처럼 서리
며 문득 두 사람이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선주는 자신이 내쫓은 곁의 신하들
이 다시 들어온 줄 알고 짜증석인 목소리로 그들을 꾸짖었다.
   "짐이 마음이  편치 않아 너희들은 물러가  있으라 하지 않았더냐? 그런데도 
어찌하여 또 왔느냐?"
   그러나 꾸짖음을 듣고도  두 사람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제야  의아스럽게 여
긴 선주가  일어나 자세히 그들을  살피니 왼편은 관운장이요,  오른편은 장비가 
아닌가. 선주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두 아우가 살아 있었구나!"
   그러자 관우가 감나히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입니다. 옥황 상제께서는 저희들이 평생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높이  여기시어 신령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형님을 모시고 
다시 한 자리에 모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선주가 우선 반가움을 못 이겨 두 아우를 붙든 채 목을 놓아 울다가 문득 놀
라 깨보니 두 아우는  보이지 않았다. 선주는 아무래도 그 일을  심상치 않게 여
겨 곧 사람을 불러 시각을 물어 보니 때는  밤 삼경이었다.  선주가 길게 탄식했
다.
   "짐이 이제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날도 멀지 않았구나."
   다음 날, 날이 밝자  선주는 사람을 뽑아 성도로 보냈다. 승상 제갈량과 상서
령 이엄 등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공명이 이  급보를 받자 곧 채비를 갖추어 이
엄과 선주의 둘째 아들  노왕 유영, 셋째 아들 양왕 유리와  함께 영안궁으로 향
했다.  성도는 태자 유선을 남아  있게 하여 지키게 했다.  공명이 밤을 도와 영
안궁에 이르러 보니 선주의 병세는 위독한 지경으로 황망히 침상 아래로 엎드렸
다. 
   "승상은 가까이 다가와서 앉으시오."
   선주가 그렇게  말하며 가까이 다가온 공명의  등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짐이 승상을 얻어 다행히도 제업을 이루었소. 그러나 짐의 지혜가 얕고 모자
란 탓에 승상의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패하고 말았으니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후회와 한스러움으로 병을 얻어 이제 죽음이  눈앞에 이르른 듯하오. 그
러나 태자는 어리고 약하니 어쩔 수 없이 대사를 승상께 당부하지 않을 수 없소
이다."
   선주가 말을 마치자 얼굴 가득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공명도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용체를 돌보시어 온  천하 사람들의 바람을 저버리지 
마시옵소서."
   공명의 말에 선주는  대답 대신 문득 눈을 들어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 자리
에는 마량의 아우 마속이 있었다. 선주가 마속을  보더니 모두 물러가게 하고 공
명만을 남게 하더니 물었다.
   "승상께서는 마속의 재질을 어떻게 보시오?"
   선주의 뜻밖의 물음에 공명이 생각하고 있는 대로 대답했다.
   "그 사람 또한 당세의 영재입니다."
   그러자 선주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소. 짐이 그 사람을 보건대 그 말이 실제 행동보다 지나친  듯하오. 
큰 일을 맡겨서는 안 될 사람이니 승상께서는 깊이 살펴 쓰도록 하시오."
   공명에게 그렇게 당부한 선주는 다시 여러  신하들을 불러들이게 했다.  선주
는 여러 신하들 앞에서 붓을  들어 천천히 유조를 써서 공명에게 주며 탄식하듯 
말했다.
   "짐이 글읽기를 즐겨하지 않았으나 그 뜻은 대략 알고 있소. 성인께서 말씀하
시기를 '새는 죽을 때 그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착하다'
고 하였소. 짐은 경들과 함께 조적을 쳐없애고  한실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으
나 불행히도 중도에서 헤어지게 되었소. 승상께서는  번거롭겠지만 이 유조를 태
자 선에게 전해 주시고, 모든 일을 잘 가르쳐 주시오."
   공명이 당에 엎드려 울면서 말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용채를 돌보시옵소서. 신들은 개나 말의 수고로움을 다
하여 폐하께서 신들을 알아 주신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공명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선주는 내시에게 명해 공명을 부축해 일으키게 
했다. 선주는 한 손으로는 눈물을 씻으며 다른  손으로는 공명의 손을 잡고 숨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짐은 이제 죽어 가는 몸이오. 짐이 가슴 속에 묻어 둔 말 한 마디만 더 하려 
하오. 이 말만 더 당부해 두면 마음에 걸릴 것이 없겠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쪼록 거리낌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공명이 얼굴을 들어 선주를 바라보았다.  선주가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승상의 재질은 조비의  열 배나 되니 반드시  나라를 안정시키고 마침내 큰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오. 그때 내 아들이  도울 만한 인물이 되거든 도와 주시
오. 그러나 만약 그럴  만한 재주가 없어 그 재목이 되지  못하거든 승상께서 성
도의 주인이 되어 주시오."
   '내 자식이 돌보아 줄  만한 인물이면 도와 주되, 가망이 없으면 공명 스스로
가 제위에 오르도록 하라'는 말이었다. 자기 자식을 폐하고서라도 나라를 위하여 
신하에게 황제의 자리에  오르라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믿음과 유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공명은 그  말을 듣자 온몸에 땀이 흐르고 손발이 떨렸다. 제대
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엎드려 울면서 말했다.
   "신이 어찌 신하로서 힘을 다해 태자를 섬기지 않겠습니까? 이 목숨 다할 때
까지 충의로써 태자를 받들겠습니다."
   공명이 그렇게 말하며 땅에다 머리를 짓찧었다.  공명이 머리를 들자 그의 이
마에는 피가  흘러내렸다.  선주는 공명을  더욱 가까이 앉게 하고  노왕 유영과 
양왕 유리를 앞으로 불러 앉혔다.
   "너희들은 모두 나의 말을 가슴에 새겨 듣도록 하라. 너희 형제 셋은 내가 죽
거든 승상을 아버지 섬기듯 하여라. 섬김에  조금이라도 게으름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선주는 그렇게 당부한 후 두 왕에게 명하여 아버지를 받드는 예로 절을 올리
게 했다.  두 왕이 공명에게 절을 올리자 공명이 무거운 얼굴로 아뢰었다.
   "신이 간과 뇌를 땅에  뿌리며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찌 폐하께서 신을 알아 
주신 은혜에 보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어 선주는 여러 신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짐이 이미 외로운 아들을 승상께  맡겼고, 태자에게는 승상을 아버지로 섬기
라 일렀다. 경들도  모두 조금의 소홀함이 없이 승상을 섬기도록하여  짐의 당부
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라."
   선주는 또 조운을 불러 당부했다.
   "짐과 경은 더불어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오며 오늘에 이르렀으나 뜻밖에도 
이제 헤어지게 되었다.  경은 짐과의 오랜 정분을 생각해서라도 항상  내 자식들
을 돌보아 주도록 하라. 경은 짐의 말을 저버려서는 아니 된다."
   "신이 어찌 개나 말의 수고로움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조운이 엎드려 울며  아뢰었다. 선주는 이윽고 여러 신하들을  둘러보며 마지
막 작별을 했다. 
   "짐이 일일이 그대들을 불러 당부할  수가 없구나. 바라건대 스스로를 아끼며 
모두 힘을 합해 사직을 도우라."
   선주는 그 말을 마치자  홀연히 숨을 거두었다. 선주의 나이 예순셋, 촉의 장
무 3년 스무나흘이었다.  뒷날 두공부가 시를 지어 선주를 기렸다.
   촉주 오를 치러 삼협으로 갔다가
   그해 영안궁에서 세상을 떠났네.
   천자의 푸른 일산 텅 빈 산 속에서 생각만 하니
   허무하다 옛 궁터, 벌판에 절만 섰구나.
   오래된 사당 잣나무 소나무에는 백로만 깃들고
   설날 복날에는 촌늙은이만 찾는구나. 제갈량의 사당도 이웃해 있어
   그 임금 그 신하 함께 제사 받네.
   선주 유비가 세상을 떠나자 모든 문무의 관원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으로 
침식을 잊었다. 공명은  모든 관원들을 거느려 선주의 영구를 모시고  성도로 돌
아갔다. 태자 유선이 성 밖까지 나와 영구를 맞아들여 정전에 모셨다. 유선이 슬
피 울며 장례를 마친 다음 유조를 받들어 읽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짐이 처음 얻은 병은 하리뿐이었으나 점차 여러 가지 병이 더해져 마침내 일
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짐이  들으니 사람이 쉰까지 살면 요수라 할  수 없다 했
거늘 이제  나이 예순이 넘었으니 죽는다  한들 무슨 여한이 있으랴.  다만 너희 
형제들이 염려스러울 뿐이다. 부디  너희 형제들은 항상 힘써 노력하라. 악한 일
은 아무리 작다 하여도  해서는 아니 되며, 착한 일은 비록  작다고 하더라도 마
다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오직 어질고 덕이 있어야만 사람을 따르게  할 수 있
으리라. 너희들의 아비는 덕이 없는 사람이라 본받을  바 되지 못하니 모든 일을 
승상께 의논하고, 그분 섬기기를 아버지처럼 하라. 그 섬김을 게을리해서는 아니 
될 것이니 특히 가슴에 새겨 두도록 하라.  너희 형제들은 무엇이든 승상께 물어
서 행하기를 거듭 당부하노라.
   태자가 유조를 다 읽고 나자 공명이 나서며 말했다.
   "나라에는 하루라도 임금이  없어서는 아니 되오. 청컨대  태자께서는 제위에 
나가시어 한의 대통을 이으셔야 할 것입니다."
   공명이 그렇게 말하고  곧 태자 유선을 세워 제위에 오르게  했다. 이때 태자 
유선의 나이 열일곱이었다.   촉한의 후주가 된 유선은 연호를 건흥으로 고치고, 
제갈량으로 하여금 무향후  익주목을 겸하게 했다.  이어 선주를  혜릉에 장사지
내고 소열 황제라는 시호를 바쳤다. 또 황후  오씨는 황태후로 올리고 이미 세상
을 떠난 감  부인에게도 소열 황후라는 시호를  바쳤으며 미 부인에게도 황후의 
칭호를 더하게 했다.   이어 거느리게 될 모든 신하들의 벼슬을  높이고 상을 내
렸으며 대사령을 내려 많은 죄수들을 옥에서 내보내 주었다.

   공명은 앉아서 조비의 오로군을 막아 내다

   유비의 죽음을 틈타 조비는 사마의의 계책대로  다섯 갈래로 군사를 낸다. 손
권은 오의 병권을 거머쥔 육손의  진언에 따라 촉과 위를 관망하여 중립을 지키
고 그즈음 공명이 보낸 등지의 밝은 설변에 공감하여 촉과의 화친에 응한다.

   촉의 엄청난  변고들이 위군들에게 세세히 알려지게  되자 곧장 중원으로 이 
사실을 알렸다.
   "촉주 유비가 죽고 그 아들 유선이 대를 이어 제위에 올랐습니다."
   급보를 전해 받은 신하들은 그 사실을 위주 조비에게 알렸다.
   "무엇이, 유비가 죽었다고? 드디어 하늘이 정해 준 때가 왔나 보구나!"
   조비는 그 말을 듣자 몹시 기뻐했다.
   "유비가 죽었다고  하니 짐이 이제 걱정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주인이 없는 
틈을 타 크게 군사를 일으켜 촉을 쳐야 하리라."
   조비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곧 군사를 일으키려 하자 가후가 나서며 아뢰
었다.
   "유비가 비록 죽었다고 하나, 틀림없이  그의 아들을 제갈량에게 부탁했을 것
입니다. 제갈량은 또  유비가 그토록 무겁게 대했으니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반드시 몸과 마음을 바쳐 그 아들을 도울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급히 치시는 것
이 좀더 헤아림을 두셨으면 합니다."
   가후가 그렇게 말하자  조비도 얼른 그의 말을 물리치지 못했다.  지난 번 오
를 치러 갈  때 가후가 말리던 걸 뿌리치고  군사를 내었다가 크게 패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여러 관원들 중에서  앞으로 나서며 분연히 소리치
는 사람이 있었다.
   "촉을 칠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이때  치지 않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린다는 
말씀입니까?"
   사람들이 보니 그는 바로 사마의였다.  조비가 그 말에 기쁜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촉을 쳐야 하겠소?"
   그 물음에 사마의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우리 중원의 군사만 일으켜서는 단숨에  이기기 어렵습니다. 반드시 다섯 길
로 대군을 일으키시어  사방에서 한꺼번에 덮치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제갈량
이 머리와 꼬리를 돌볼 수 없도록 하신다면 촉을 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 길의 대군이란 어디를 말함인가?"
   조비가 급히 묻자 사마의가 말을 이었다.
   "사신을 뽑아 요도의  선비국왕 가비능을 만나 보게하여  칙서를 전하십시오. 
금은과 비단 등의 뇌물을 주고 달래어 요서의 강병 10만을 일으키게하여 물길로 
서평관으로 보내도록 하십시오.  역시 칙서와 뇌물을 주고 이해로 달래  만왕 맹
획에게 군사 1십만을  일으켜 익주. 영창. 장가.  월전 네 고을을 치게 하십시오. 
그곳 네 고을이 바로 서천의 남쪽이며 그곳으로 향하는 군사가 두 번째 길의 대
군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세 갈래 군사는 어디로 보내야 하오?"
   사마의의 말에 번득이는 계교가 담겨 있자 조비는 잔뜩 신이 나서 물었다.
   "세 번째 길은  오나라로 통합니다. 오로 사신을 보내  땅을 떼어주며 손권을 
달랜 뒤에 군사 10만을  일으켜 양천사이의 골짜기로 쳐들어가 부성을 빼앗으면 
됩니다. 그 다음은 촉에서  투항해 온 장수 맹달에게 상용 지방  군사 10만을 일
으키게하여 서쪽으로  한중 땅을 치는 것이  네 번재 길입니다. 다섯  번째 길은 
대장군 조진을 대도독으로 삼아 군사 10만을  이끌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경조를 
거쳐 양평관으로 나가  당당히 정면으로 서천을 치게 하십시오. 이와  같이 다섯 
길로 나누어 50만의 대군이  한꺼번에 나아간다면 제갈량이 제아무리 여망의 재
주를 지녔다 하나 어떻게 막아 내겠습니까?"
   사마의의 말을 듣고 있던  조비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
다.  지체하지 않고  사마의의 말을 좇아 말 잘하는 관원 네 사람을  뽑아 세 곳
에 사신으로 보내고 조진을 대도독으로 삼아  양평관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러나 
조진이 거느리고 갈 만한  장수들이 없었다.  그때 이미 조조  시대의 공신인 장
요. 서황. 등의 장수들은  모두 열후에 책봉되어 기주. 서주. 청주.  합비 등을 지
키고 있었다. 모두가 중요한 길목을 지키고 있으니  그들을 부를 수가 없는 처지
였다.  조조 이래 오랫동안 문관으로만 묻혀  지냈던 사마의가 그제야 재주를 드
러내기 시작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다.  그 무렵 촉도 후주  유선이 제위에 오
른 뒤 옛 신하들 가운데  늙고 병들어 죽는 이가 많아 안팎을 돌볼 사람이 없었
다.  조정의  법령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양곡과 돈을 관리하는  일이며 백성들의 
다툼을 처결하는 일까지 모두 제갈량의 재가를 거쳤다.   그런 중에도 공명은 후
주가 아직 왕후를 세우지 않았으므로 여러 신하들과 함께 아뢰었다.
   "돌아가신 거기장군 장비의 따님이 매우  어질고 정숙하다 합니다. 나이 열일
곱이니 정궁 황후로 맞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후주도 공명의 말을  받아들여 장비의 딸을 황후로 세웠다.   그런데 이 경사
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건흥 원년 가을인 8월에, 홀연  변방에서 급한 전갈
이 전해졌다.
   "위가 다섯 길로 대병을 일으켜 서천으로 밀려들고 있습니다. 첫째 길로는 대
도독이 된 조진이  10만을 이끌어 양평관으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두  번째 길
은 위에 투항했던  맹달이 상용 군사 10만을 거느리고 한중으로  오고 있습니다. 
셋째 길은 손권이 보낸 10만의 군사가 무협으로  해서 서천으로 오고 있으며, 넷
째 길로는 만왕  맹획이 10만을 이끌어 와 익주의 사군으로  짓쳐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째 길로는 번왕  가비능이 강병 10만을 이끌어 서평관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후주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얼굴빛이 달라지며 급히 사람을 보내 공명을 
궁으로 모셔 오게 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부름을 받고서도 공명은 얼른 달려
오지 않더니 보낸 사람이 반나절이 지난 후에야 돌아와 말했다.
   "실은 승상께 급히 이 일을 알렸습니다만 얼른 계책이 세워지지 않는지 아무
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승상부의 사람들로부터 지금은  승상께서 병이 
나셔서 밖으로 나오시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후주는 그 말을  듣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선제 유비를 여읜 지  며칠 되지 
않았으며, 후주의 위에 오른 지도 엊그제 일이라  당장 눈앞에 닥쳐온 일이 화급
을 다투자 그만 정신이 아득하였다.  다급해진  후주는 다음 날 황문시랑 동윤과 
간의대부 두경을 공명에게 보내며 일렀다.
   "승상께 가서 위군이 서천으로 밀려오고 있다고 전하도록 하라."
   동윤과 두경이 즉시 승상부로 찾아갔다.  그러나 문지기가 들여보내지를 않았
다.  마음이 다급한 두경이 문제게에게 꾸짖듯이 따졌다. 
   "선제께서는 승상께 어린  임금을 맡기셨다. 거기다가 지금  주상께서 제위에 
나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으셨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지금 조비가 
다섯 길로 대병을 일으켜  서천으로 밀려들고 있는데 승상께서는 어째서 병만을 
내세워 나와 보지도 않는단 말인가?"
   문지기도 그제야 마지못해 두경의 말을 전하러 갔다가 한참 후에 되돌아와서 
말했다.
   "승상께서는 이제 병이 좀 나으면 내일 도당에 나가서 의논을 하겠다고 전하
라 하셨습니다."
   후주를 비롯한 모든 관원들이  근심에 쌓여서 목을 빼고 공명을 기다리고 있
는 터였다. 그런데  너무나 느긋한 소리여서 두경과 동윤은 길게  탄식하며 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이었다. 그날은 승상이 나온다고 하였으므로 만조백
관은 아침부터 도당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대낮이 지나고  해가 저물
어도 끝내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냥 흩어져 돌아가는  길에 두경이 후
주에게 찾아가 말했다.
   "승상께서 나오시지 않으니 폐하께서  몸소 가 보시어 대책을 물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답답한 후주는 그 말을 듣자 여러 관원들을 거느리고 황태후를 찾아가 그 일
을 아뢰었다. 황태후가 깜짝 놀라며 한탄했다.
   "승상이 어찌  선제께서 당부하신 일을 이토록  저버릴 수가 있다는 말인가? 
내가 몸소 가서 알아보리다."
   그러자 동윤이 황태후를 만류했다.
   "낭랑께서는 가벼이 승상을 찾아가지  마십시오. 신이 헤아리건대 승상께서는 
반드시 밝은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  주상께서 다녀오실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십시오. 만약 그때도 선제 폐하의 당부에  게을리하신다면 승상을 태묘를 부르
시어 직접 물으셔도 늦지 않으실 것입니다."
   태후도 동윤의 말을  옳게 여겼다. 그 말에 따라 후주를  먼저 승상부에 다녀
오게 했다.  다음  날이 되어 후주는 몸소 어가를 타고  승상부에 이르니 문지기
가 깜짝 놀라 땅에 엎드리며 맞았다.
   "승상께서는 어디 계신가?"
   후주가 묻자 문을 지키는 관원이 대답했다.
   "황공하오나 어디에 계신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어떤 관원도 승상의 허락 없
이는 집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후주는 어가에서 내려 홀로  문 안으로 들어갔다. 세 번째 문을 
들어서니 제갈량이 대지팡이를 짚고 못가에 서서 물고기들이 노는 것을 보고 있
는 모습이 보였다.   후주는 한동안 그 뒤에 아무 말 없이 서  있다가 가만히 물
었다. 
   "상부께서는 별고 없으시오?"
   그 소리에 놀란  듯 얼른 뒤돌아 본  공명이 후주를 보더니 황망히 지팡이를 
버리고 땅에 엎드려 잘못을 빌었다.
   "오신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신의 죄 1만 번을 죽어 마땅합니다."
   후주는 엎드려 비는 공명을 부축해 일으키며 물었다.
   "조비가 다섯 길로 대병을 보내 경계를 침범하고 있소. 형세가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상부께서는 어인 까닭으로 나와서 나라의 일을 보지 아니합니까?"
   그 물음에 공명은 한바탕 크게 웃었다.  공명은 때아닌 웃음에 어리둥절해 있
는 후주를 방 안으로  모셨다. 후주가 방 안에 자리를 잡고  앉자 공명이 그제야 
정색을 하고 말했다.
   "조비가 다섯 길로 군마를  보낸 것을 신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신은 연못의 
고기를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생각에 빠져 그만 주상께서 이르신 것도 모르
고 있었습니다." 
   조급한 후주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그러자 공명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강왕 가비능과 만왕  맹획, 촉을 배반한 맹달,  위의 장수 조진이 거느린  네 
길의 군사는 신이 이미 물리친 바나 다름없습니다.  다만 손권이 거느린 한 갈래
의 군사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나  이 일을 맡아 
줄 만한 인물이 없어 깊이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후주는 공명의  말이 얼른 헤아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네  길의 군사를 
물리칠 계책을 세워 둔 듯한  공명의 말에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얼굴로 말했
다.
   "상부께서는 실로 귀신도 헤아릴 길이  없는 지모를 가지고 계시는구려. 어떻
게 네 길로 오는 군마를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이오? 먼저 그 말씀부터 들려 주시
오."
   "선제께서 신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있으신데 어찌 한시라도 게을리할 수 있
겠습니까? 다만 성도의 모든  관원들이 병법의 깊고 묘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일이란 남이 헤아리지 못하게  함이 귀한 것임을 아는  터라 다만 
신은 계책을 함부로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신은 이미  서번국왕 가비능
이 군사를 일으켜 서평관으로 들어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초는 
원래 서량 사람으로 대대로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강인 사이에 신위대장군으로 
우러름을 받고  있습니다. 신은 급히  사람을 보내 강인들에게  마초가 서평관에 
있음을 알려 싸움을 무마시키는 한편 마초에게도 영을 내려 굳게 지키도록 하였
습니다. 사방에 기병을 매복시켜 두고 그들에게 번갈아  싸워 막게 했으니 그 한 
갈래 길로 오는 군사는 걱정하실 것이 없으십니다.   다음 두 번째 길로 오는 남
만의 맹획이 이끄는 군사는 위연에게  이미 격문을 보내고 한 떼의 군사를 보내 
사군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원래 남만의 군사는  날래기는 하나 의심이 많고 
지혜롭지 못합니다. 위연에게  군사를 번갈아 가며 좌우로  움직이게하여 군세가 
많은 것처럼 보이도록  하게 했습니다. 남만의 군사는 반드시 겁을  먹고 나오지 
못할 것이니 그 한 갈래 군사도 걱정하실 것이 못 됩니다."

   공명은 크게 기뻐하며 웃음짓고 있는 후주에게 이어 세 번째와 네 번째 길로 
오는 적군을 방비할 계책을 말했다.
   "또 상용 땅의 맹달이  언젠가 군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나올 것도 신이 이미 
짐작한 바 있었습니다. 원래 촉의 장수였던  맹달은 이엄과는 생사를 함께하기로 
다짐할 만큼 허물없는 사이입니다. 그 때문에 신이  지난번 성도로 돌아올 때 이
엄을 영안궁에 남겨  두어 지키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은  이엄에게 명하여 
맹달이 군사를 이끌고  나오지 않도록 글을 써서 전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맹달
은 필시 병을 핑계대며 나오지  않을 것이니 그쪽의 군사도 근심하실 것이 없으
십니다.   또 조진이  양평관으로 나올 것도 신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땅이 거칠고  험한데다 높은 산이 있어  적이 밀고 들어오기가 어려우니 
우리가 지키기 좋은 곳입니다. 게다가 그곳은 조운에게  한 떼의 군사를 주어 지
키되 나가 싸우지  말라 당부해 두었습니다. 조진이 군사를 이끌어  오더라도 나
가 맞지 않으니 그도 하는 수 없이 군사를 거두고 말 것입니다."
   "실로 놀라운 용병술이 아닐 수 없소."
   후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공명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네 길은 말씀드린 대로 방비를 해 두었으니 걱정하실 일이 못 됩니다. 그
러나 만약을 염려하여 관흥과  장포에게 각기 3만의 군사를 주어 중요한 길목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세워 둔 계책대로 되지  않는 곳이 있으면 즉시 달려
가서 구원토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까닭은 관흥과 장
포에게 성도를 거치지 말고 은밀히 각기 맡은 곳으로 가게 했기 때문입니다."
   공명이 그렇게 네 길로 오는 군사의 방비에 대해 말한 후 나머지 한 길에 대
해서도 말을 이었다.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동오의 군사입니다. 그들은 아직은 움직이려 들지 않
을 것입니다. 가만히 형세를 지켜 보다가 네  갈래의 군사가 이겨 우리가 위급한 
지경에 빠지면 그제야 함께 들이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네 갈래의 군사
를 물리친다면 어찌  함부로 밀고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신이 헤아리건대, 손
권은 전에 조비가 세 길로  대병을 내어 동오를 친 일에 한을 품고 있어 쉽사리 
그의 말에 따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 말 잘하는 사람을  뽑아 손권을 이
해로 달랜다면 동오  군사가 움직이지 않을 테고 그렇게  되면 그 네 갈래 군마 
따위야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그러나  신은 손권을 달랠 만한 말 잘하는 사람을 
얻지 못해 지금까지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어찌 여기까지 수
고로이 납시었습니까?"
   공명의 물음에 후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밝은 얼굴로 말했다.
   "황태후께서 몸소 상부를 뵈러 나오겠다고  하시었소. 이제 상부의 말씀을 들
으니 마치 흉한 꿈에서 깨어난 듯하오. 짐이 다시 무엇을 근심하겠소?"
   공명은 술상을 내오게하여  후주와 더불어 몇 잔  술을 나눈 다음 문 밖까지 
배웅했다. 후주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으며 승상부를 나섰다.  승상부 밖에서
는 문무백관들이 후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주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자 백관
들은 저으기 안도했으나 후주가 말없이 어가에 올라 궁궐로 향하자 궁금한 마음
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공명이  보니 단 한 사람  호부상서 등지만이 
하늘을 쳐다보고 기쁜 듯이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그는  의양의 신야 사람으
로 자를 백묘라고  했는데 한의 사마를 지낸 등우의 후손이었다.  공명은 무언가
에 기뻐하고 있는 듯한 등지를 보자 그를 서원으로 불러들였다.
   "공은 무슨 까닭에 홀로 웃고 있었소?"
   "폐하께서 기쁜 얼굴로  나오시는 것을 보아 위의  다섯 길의 군마를 방비할 
계책이 마련되었으리라고 짐작했습니다. 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공명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불쑥 등지에게 물었다.
   "지금 천하는 촉과 위. 오가 솔밭처럼 나뉘어져 있소. 만약 우리가 두  나라를 
쳐서 다시 한실을 일으켜 세운다면 먼저 어느 나라부터 쳐야 하겠소?"
   공명의 뜻하지 않은 물음이었다. 그러나 등지는  주저함이 없이 선뜻 입을 열
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입니다만 위가 비록 한조의 적이기는 하나 그 형세가 워
낙 커 한순간에  뒤집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마땅히 천천히 대사를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주상께서 제위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이 안정되지 
않았으니 우선은 동오와 손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입술과 이처럼 서로 돕고 의
지하는 형세를 이루어 선제 때의 묵은 한을 씻고 먼 장래를 보는 계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승상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보다 동오에 더 원한을  가진 터에 동오와의 화친을 서슴없이 말하는 등지
를 보자 공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지 오래 되었소. 그러나 아직 그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을 
얻지 못한 것이 한이었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그 사람을 얻게 되었구려."
   "승상께서는 그 사람을 얻어 무슨 일을 시키려 하십니까?"
   등지가 궁금한 얼굴로 묻자 공명이 문득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을  동오로 보내 화친을 맺게 하고 싶소.  공은 이미 우리 촉이 
해야 할 바를 알고  있으니 반드시 군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리라  믿소. 그 일은 
공이 맡아 주어야만 되겠소."
   "신이 어리석고 재주가 없으니 그같이 무거운 일을 감당해 낼지 두렵습니다."
   "내일 천자께 말씀드릴 것이니 백묘는 사양하지 마시오."
   등지가 겸양의 뜻으로 사양하니  공명이 권하기를 몇 번 거듭하자 등지는 마
침내 공명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돌아갔다.  다음 날이 되자  공명은 후주 앞에 
나아가 동오와의  화친을 처하고 사신으로  등지를 보낼 것을  아뢰었다. 후주는 
공명의 뜻을 좇아 동오에 다녀올  것을 명하고 등지는 후주에게 하직 인사를 올
린 다음 곧 동오를 향해 떠났다.  한편  육손이 촉의 군사에 이어 위의 군사까지 
물리치자 오왕 손권은  그를 보국장군 강릉후 겸 형주목으로 높였다.  그렇게 되
니 모든 오의 권한은 모조리  육손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셈이었다.  이때 장소. 
고옹이 손권에게 연호를  고치기를 권했다. 오왕 손권도 그 말을  받아들여 연호
를 황무 원년으로 개정하였다.   이때 홀연 위주 조비가 사자를 보내 왔다. 동오
를 치기 위해  군사를 내었던 위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던 터라 손권이 사자를 
불러 들여 엄한 얼굴로 물었다.
   "온 까닭이 무엇인가?"
   "전에 촉이 사자를 위로  보내 구원을 청하므로 한때 밝게 헤아리지 못해 동
오로 군사를 내었습니다.  이제 폐하께서는 크게 뉘우치시고 네 갈래  군마를 일
으키시어 촉을  치고자 하십니다. 동오에서도  이 기회에 군사를  일으켜 호응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폐하께서는 만약에 촉을 얻게 되면  그 땅을 반씩 나누어 갖
자고 하십니다."
   사자가 변명을 늘어놓은 후에 함께 촉을  치자는 조비의 뜻을 말했다. 손권이 
조비에 대한 원한은 있었으나 슬며시 촉 땅에  대한 욕심이 일었다. 사자를 잠시 
물러나게 하고 장소와 고옹을 불러 그 일을 의논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손권이 의견을 묻자 장소가 말했다.
   "저희보다 식견이 높은 육백언에게 물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손권도 그 말을 옳게 여겼다. 곧 육손을 불러 오게하여 물었다.
   "조비는 저렇듯 중원을 굳게  차지하고 있으니 급히 쳐 무너뜨리기는 어렵습
니다. 그러니 그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면 필시 원수 간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
면 틀림없이 우리 오를 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이 헤아리건대 위나 오에 
모두 제갈량을 당해 낼 만한 이가 없습니다.  주상게서는 우선 당장에는 위의 요
구를 받아들여 군사를 정돈하며 채비를 하는 척하십시오.  그럴 동안 위의 네 갈
래 군마가 촉의 군사를 깨뜨리면  우리가 한걸음 앞서 성도를 차지하는 것이 지
혜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네 갈래 군사가  패한다면 그건 그때 
따로 의논해 보시면 될 것입니다."
   손권이 들으니 과연 그럴 듯한 계책이었다. 곧 사자를 불러 일렀다.
   "아직 군사를 일으킬 채비가 되지 않았소. 군량과 마초와 무기를 비롯한 군수
가 마련되는 대로 출병하겠소."
   사자는 오왕이 위주의 뜻을 받아들이자 기뻐하며 돌아갔다.
   손권은 사자를 위나라로 돌려 보내고  나자 곧 사람을 시켜 위의 네 갈래 군
사의 동정을 살펴보게 했다. 그런데 조비가 보낸  군사는 그의 뜻대로 촉으로 밀
고 들어가지 못했다는 소식이었다.
   "서평관으로 갔던 서번의 군사는 마초를 만나자 싸우지도 않고 되돌아섰습니
다. 또 남만왕 맹획도 역시 촉의 네 고을을  치려 했으나 위연의 계략에 말려 물
러서고 말았습니다."
   서평관과 촉의 사군을  살피러 갔던 군사가 그렇게 알려 왔다.  나머지 두 갈
래의 군사를 살피러 갔던 군사들의 말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상용 땅의 맹달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다가 도중에서 뜻밖의 병을 얻어 상
용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또 조진도 조자룡이 험한  길목마다 지키니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실로 1만 명의 군사가 한 장수를  깨뜨리지 못한 꼴이 되고 만 셈입
니다. 조진은  하는 수 없이 야곡에  진을 치고 있다가 어이없게도  싸워 보지도 
못한 채 돌아갔습니다."
   손권은 그 말을 듣고 여러 문무백관을 둘러보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육백언의 살핌이 참으로 귀신과 같구려.  내가 함부로 군사를 내었다면 촉의 
원한만 살 뻔했소."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문득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제갈량이 사자 등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러자 장소가 나서며 말했다.
   "이는 바로 제갈량이 군사를 내지  않고 우리 군사를 물리치자는 계책입니다. 
등지를 보내 우리를 달래려는 것이니 함부로 응대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좋겠소?"
   손권이 여러 관원들을  보고 물었다.  장소가 생각나는 바가  있다는 듯 다시 
말했다.
   "먼저 대전 앞 뜰에다 큼직한 가마솥을 걸고, 그 속에 기름을 가득 부은 다음 
숯불로 기름을 펄펄  끓이도록 하십시오. 그 기름이 끓거든 몸집이  큰 무사 1천 
명을 뽑아 각기  손에 칼을 들게 한 채  궁궐 문에서 대전 앞까지 늘여세우십시
오. 그런 다음 등지를 불러들이시되,  그가 입을 열어 우리를 달랠 틈을 주지 않
은 채 옛날 역이기가 제나라 세객으로 갔던  일을 빗대어 꾸짖도록 하십시오. 그 
일을 본받아 그를 기름솥에 넣겠다고 얼러댄 후 그가 어떻게 하는지를 살펴보십
시오. 그런 다음 그의 말을 들어 보고 뜻을 정하시면 되실 것입니다."
   역이기는 제나라 왕을 달래  70여 개의 성을 고조에게 바치게 했던 한고조의 
세객이었다. 역이기의 말을 듣고 화친을 맺은 제나라  왕은 싸울 채비를 하지 않
았다. 그러나 그 틈을 타  고조의 신하 한신이 군사를 이끌고 와 제나라를 치니, 
제왕은 노하여 역이기를 기름이 끓는  가마솥에 넣어 죽여 버린 일을 본떠 장소
가 등지의 기부터 죽이려고  한 말이었다.  손권은 두말 없이  장소의 말에 따랐
다.  곧 큰 가마솥을  대전 뜰에 걸게 하고 기름을 펄펄 끓인 후에  무사 1천 여 
명을 늘여세우고, 등지를 들게 했다.  등지가 의장을 바로 하고 궁문을 들어서며 
보니 무사들이 칼과 창과 도끼를  들고 두 줄로 늘어섰는데 모두가 우람한 채구
에 살기 등당한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등지는  곧 손권이 그들 무사들을 늘여세
운 속셈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고개를  쳐들고 당
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대전 앞에 이르러 보니  그곳에는 큰 가마솥이 걸려 있고 
솥 안에는 기름이  펄펄 끓고 있는데 무사들이  눈을 부라리며 자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등지는 그걸 보자 잔잔히 웃음까지  지으며 안내하는 신하를 따라 손권
앞에 드리워진 발까지 이르렀다.  등지가 발 뒤의 손권을 보고 길게  읍할 뿐 절
을 올리지 않자 손권이 발을  걷어 올리게 한 뒤 등지를 향해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너는 어찌하여 엎드려 절하지 않느냐?"
   등지는 조금도 멈칫거리는 기색 없이 고개를 세운 채 대답했다.
   "원래 큰 나라에서 온  사신은 작은 나라의 주인에게 절을 하지 않는 법입니
다."
   손권은 등지가 오를 작은 나라라고 말하자 화가 치솟았다.
   "네가 제 스스로를 헤아려 보지도 않고 세 치 혀끝을 놀려 옛날 역이기가 제
나라를 달랬던 일을 흉내내려 하느냐? 여봐라,  저놈을 얼른 기름 가마솥에 처넣
어라."
   그 말을 듣고도 등지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동오에는 밝고 어진  이가 제법 많다 하였는데 이럴 줄 어찌 알았
겠소? 나같은 한낱 선비를 이토록 두려워하다니."
   "닥치지 못할까? 누가 너 같은 필부를 두려워한다는 말인가"
   손권이 더욱 화가 나 소리쳤다. 등지가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이 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내가 세객으로 온 것을 걱정한다는 
말씀이오?"
   "너는 제갈량이 시키는 대로 위와 손을 끊고 촉과 손을 잡자고 말하려 온 것
이 아닌가?"
   손권은 등지의 말이 궁색해지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몰아붙였다.
   "나는 촉의 한낱 선비에  지나지 않으나 특별히 오를 위해 그 이로움과 해로
움을 가리려고 왔소이다.  그런데 병장기를 든 무사를 세우고 기름  가마를 끓여 
놓고 사신을 맞으니 이렇듯 도량이 좁아서야 어찌 큰 일을 해 내겠소?"
   손권도 그 말을 듣자 문득 화부터 낼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그
의 말을 들어 보고  뜻을 정하자는 생각에 무사들을 꾸짖어 물렸다.   손권은 등
지를 전 위에 오르게하여 자리를 권하며 물었다.
   "우리 오와 위의 이롭고 해로움이 무엇이오? 바라건대 나에게 말해 주시오."
   그러자 등지가 대답 대신 되물었다.
   "대왕께서는 우리 촉과 위 중 어느 나라와 화친을 맺고 싶으십니까?"
   손권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나는 촉과 화친을 맺고 싶소. 그러나  촉주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아는 것이 
얕으니 끝까지 그 화친을 지켜나갈지 그것이 걱정이오."
   "대왕께서는 당대의 영웅이며 제갈량 또한  이 시대의 영걸입니다. 촉은 산천
이 험하고 오는 삼강의 요해처를 가졌습니다. 만약  두 나라가 이와 입술의 사이
가 되어 서로 힘을 합친다면 앞으로 나아가서는  천하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또
한 물러난다 해도 솥발처럼  천하를 세 갈래로 받들고 함께 설  수 있습니다. 만
약 그렇지 않고 대왕께서 위에 몸을 굽혀 신하로 남으신다면 위에서는 대왕에게 
조정에 들기를 바랄  것이며 태자를 내시로 삼아 볼모로 붙잡으려  할 것입니다. 
반대로 대왕께서 마다하시면  위는 군사를 내어 오를 치려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세에 따라 우리 촉도  순풍에 돛을 단 배와 같이 위와 손잡고 오를 치게 
될 것입니다. 일이 그 지경이 되면 강남은 이제  두 번 다시 대왕의 땅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대왕께서 저의 말이 그릇된 것이라  여기신다면 저는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어 세객이란 이름을 씻어 버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등지는 옷자락을 걷어 올리며 전 아래로 걸어 내려가 가마솥으
로 뛰어들려고 했다.  손권이 급히 좌우에게 등지를 말리게 하고  후전으로 청해 
들인 후 귀한 손님을 맞는 예로 대하며 물었다.
   "선생의 말씀이 내 뜻과 다름이 없소.  나는 이제 촉주와 화친을 맺고자 하니 
선생이 나를 위해 그 일을 성사시켜 주겠소?"
   그러자 등지가 따지듯 물었다.
   "저를 삶아 죽이려  하신 것도 대왕이시며, 이제 저를  부리려고 하시는 것도 
대왕이십니다. 이는 대왕께서  아직 뜻을 정하지 못함이니 어찌 신이  대왕을 믿
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손권도 더 이상은 둘러대지 않고 말했다.
   "나의 뜻은 이미 정해졌소이다. 선생은 의심하지 마시오."
   손권은 등지에게 다짐을 해 둔 뒤 그를 물러나 있게 한 후 여러 관원들을 불
러 놓고 말했다.
   "내가 강남의 여든한 주를  차지한데다 다시 형. 초 땅까지 얻었건만,  도리어 
한쪽 구석에 있는 서촉만도 못한 듯하오. 촉에는  등지가 있어 그 임금을 욕되지 
않게 했소. 그런데  우리 오에는 촉에 들어가  내 뜻을 전해 줄 사람이  없는 것 
같구려."
   그러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바라건대 제가 사신이 되어 촉으로 가고자 하니 보내 주십시오."
   모두 그를 보니  그는 오군 사람 장온으로 자는 혜서요,  중랑장의 벼슬을 지
내고 있었다.
   "경이 촉으로 가서 제갈량을 만나  내 뜻을 전할 수 있겠소? 쉽지 않을 것이
오."
   손권이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말끝을 흐리자 장온이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
다.
   "공명 또한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이 어찌 그를 두려워할 리가 있겠습니
까?
   장온이 서슴없이 소리쳐  말하자 손권도 고개를 끄덕였다. 곧  장온에게 후한 
상을 내려 그의 의기를 북돋워 주는 한편, 등지가 함께 서천으로 가게 했다.  한
편 공명은 등지를 오로 떠나 보낸 후 후주에게 아뢰었다.
   "이번에 등지가 갔으니 꼭 그 일을  이루고 올 것입니다. 동오에는 밝은 선비
가 많으니 반드시  답례로 사람을 등지에게 딸려 보낼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동
오에서 사람이 오면  예를 갖추어 대하십시오. 우리가 동오와 손을  잡으면 위는 
함부로 우리를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와 위도 다투지 못할 터인
즉 한동안 주위가  조용해질 것입니다. 그때를 틈타 신은 군사를  거느려 남만을 
쳐서 그곳부터 평정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위를 도모하겠습니다. 위만 쳐없앤다
면 오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천하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큰 일
을 이룰 수 있습니다."
   후주 유선이 어찌  공명의 말에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두말  없이 공명의 말
에 따랐다. 그 일이 있은 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신하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동오에서 사신 장온이 등지와 함께 왔습니다."
   그 말에 후주는 문무백관을 단지에 모아 늘어서게 한 다음 등지와 장온을 맞
았다. 장온은 후주가 예를 다해 맞자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전에 올라 후주에게 
예를 올렸다.  후주는 전 안의 왼쪽에 비단  방석을 깐 의자를 내리고 장온을 청
하여 앉힌 다음 잔치를 열어 후히 대접했다.   잔치가 끝나자 문무백관들은 장온
을 역관까지 안내하여 편히 쉬게 하니 그야말로 귀한 손님을 맞는 예가 아닐 수 
없었다.  다음 날이 되자  공명이 따로 장온을 청해 잔치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
서 공명이 장온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
   "선제께서 살아계실 때는 오와  사이가 나빴으나 이제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
소. 지금의 주상께서는 오왕을 깊이 흠모하시어 옛  원한을 씻어 버리고 길이 화
친을 맺어 함께 위를 쳐없애기를 바라고  계시오. 바라건대 대부께서는 돌아가시
거든 오왕께 잘 말씀드려 주시오."
   장온이 공명의 말을 듣더니 선뜻 대답했다.
   "잘 알겠소이다. 내가 돌아가면 우리 대왕께 아뢰어 화친의 맹약이 굳게 맺어
지도록 하겠소."
   공명이 한껏 공손하게  자기를 대하자 장온은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거나해지자 장온은  거리낌없이 큰 소리로 떠들며 웃는데 그 태도
가 자못 오만스러웠다. 그러자 문득 한 사람이  얼큰히 취한 얼굴로 자리에 끼여
들더니 길게 읍하고  앉았다.  장온이 느닷없이 끼여든 사람을  보며 의아해하는 
얼굴로 공명에게 물었다.
   "이분은 누구십니까?"
   "저 사람의 이름은 진복이라 하며, 자는 자칙이라 하는데 지금 익주의 학사로 
있소."
   공명이 여전히 공손한 어조로 대답하자 장온이 호기를 부리며 업신여기는 기
색으로 물었다.
   "이름이 좋아 학사라고 하지만 과연 그의 머릿속에 배운 게 있는지 알 수 없
구려." 
   그러자 진복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우리 촉에서는 삼척 동자라도 모두 학문을 배우고 있는데, 어찌 나라고 학문
을 배우지 않을 수 있었겠소?"
   "그렇다면 공은 어떤 학문을 배우셨소?"
   장온이 여전히 진복을 가볍게 여기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위로는 천문과 아래로는  지리에 이르며 삼교구류와 제자백가에 이르기까지 
통하지 않은 것이 없소. 또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흥하고 망한 일의 기록
과 옛 성현의 경전도 보지 않은 것이 없소."
   진복이 주저하지  않고 일사천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장온은  여전히 비웃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공이 그토록 큰소리를 치니 하늘에 대해  한 마디 물어 보겠소. 공은 하늘에
도 머리가 있다고 여기시오?"
   진복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하늘에는 머리가 있소이다."
   "그렇다면 그 머리가 어느 쪽에 있다는 말이오?"
   "서쪽에 있소이다. 시경에  보면 '내권서고', 즉 '서쪽으로 돌아본다'  하였소이
다. 돌아본다는 것은 머리를  돌려야만 볼 수 있을 터인즉 이로  미루어 보아 서
쪽에 머리가 있소."
   "그러면 하늘에는 귀가 있소?"
   "있소이다. 하늘은 높은 곳에 있으나 낮은 곳의 소리를 모두 듣고 있소.  시경
에 이르기를 '학명어구고에  성문어천'이라 했으니, 즉 '학이 깊은 물가에서  우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린다' 하였소. 하늘에 귀가 없으면 어찌 들을 수가 있겠소?"
   진복이 단숨에 대답했다. 그러자 장온이 또 물었다.
   "하늘에는 발이 있소?"
   "발도 있소이다.  역시 시경에 이르기를 '천보간난'이라  했으니, 즉 '하늘에서 
발걸음은 옮기기가 힘들다'고 하였소.  발이 없으면 어떻게 걸음을 옮길 수가 있
겠소?"
   "그럼 하늘에도 성이 있소?"
   "어찌 성이 없겠소?"
   "그럼 성씨가 어떻게 되어?"
   "유씨이오."
   "어찌 유씨라 하시오?"
   "우리 천자의 성이 유씨이니 하늘의 성도 유씨가 아니겠소?"
   진복이 슬며시 촉의  천자가 유씨임을 빗대어 대답했다. 그러자  장온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오왕을 빗대어 물었다.
   "해는 동쪽에서 뜨오. 그러니 천자는 동오에 계시지 않겠소?"
   그러나 진복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해는 비록 동쪽에서 솟으나 결국 서쪽으로 지는 법이지요."
   해가 결국은 서쪽으로 돌아오게 되니 서촉에 천자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넘긴 
말이었다. 진복의 대답이  이처럼 분명하고 물 흐르듯 거침이 없자  모든 사람들
이 한결같이  감탄해 마지않았다.  진복의  대답이 막힘이 없자 장온도  얼른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진복이 장온에게 물
었다.
   "선생께서는 동오의 이름난 선비로  제게 하늘에 대해 물으셨으니 반드시 하
늘의 깊은  이치를 깨치고 계실 것입니다.  옛적에 모든 것이 엉켜  있던 하늘과 
땅이 음과 양으로 나뉘어지고 가볍고 맑은 것은  위로 떠서 하늘이 되었으며, 무
겁고 탁한 것은 아래로 엉켜 땅이 되었다  했습니다. 그런데 공공씨가 싸움에 져
서 머리를 불주산에  부딪는 바람에 하늘을 받치던  기둥이 부러지면서 땅의 한 
모퉁이가 뭉그러졌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은 서북으로 기울고 땅은  동남으로 내
려앉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이 가볍고 맑은 것이 위로 뜬  것이라면 어찌 
서북으로 기울 수가 있습니까? 또한 하늘에는 가볍고 맑은 것 말고는 또 무엇이 
있습니까? 바라건대 선생께서는 밝은 헤아림으로 가르쳐 주십시오."
   진복이 짐짓 장온에게  스승을 대하듯이 공손히 예를 올리며  물었다. 그러나 
장온은 얼른 그 물음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자리
를 고쳐 앉으며 슬며시 겸양의 뜻으로 둘러댔다.
   "서촉에 이렇듯 많은  인재가 있는 줄은 몰랐소이다. 높은  강론을 듣고 나니 
막혔던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합니다."
   장온이 그렇게 말하자 공명은 그가 난처해할까 봐 좋은 말로 그의 마음을 달
래어 위로했다.
   "이 자리에서 주고받는 말은 모두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은 나라
를 편안케 할 도리를 깨친 분이시니 그까짓 말장난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장온은 공명의 너그러움에 머리를 숙여 고마운  뜻을 나타냈다.  송명은 잔치
가 끝나고 나자 등지에게 영을 내려 다시 장온과 더불어 오로 가서 답례를 하도
록 했다. 이에 등지는 장온과 함께 하직 인사를 올린 후 동오로 떠나갔다.

   조비는 강남으로 30만 대병을 내다

   촉.오의 화친 소식을 들은  조비는 수천 척의 배를 모아 동오로 출진한다. 동
오군의 선봉 대장으로  나선 서성은 속임수를 써  조비군을 퇴각케 하고 회하를 
온통 불바다로 만든다.  한편 공명은 남만왕 맹획이 국경을 침범하자  남방 정벌
에 나선다.

   한편 동오의 손권은 장온을 촉으로 떠나 보낸 이후 그를 기다리며 날마다 촉
과의 동맹을 맺는 일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근시 하나가 들어
와 장온이 등지와  함께 돌아왔음을 알렸다. 손권은 기다리고 있던  장온이 돌아
왔다는 말에 얼른 그를  불러들이게 했다.  장온이 손권 앞에  이르러 절을 올린 
후 말했다.
   "촉의 후주와 제갈공명은 모두 덕이 있어 우리 동오와 길이 화친하기를 청했
습니다. 이에 등 상서를 보내어 답례를 하시고자 합니다."
   손권은 그 말을  듣자 몹시 기뻐했다. 곧 잔치를 베풀어  등지를 대접하며 물
었다. 
   "만약 오와 촉, 두 나라가 힘을 합해 위를 쳐없애고 천하를 두 임금이 다스린
다면 얼마나 즐겁겠소?"
   그러자 등지가 선뜻 대답했다.
   "하늘에는 두 해가 있을 수 없고 백성은 두 임금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만약 
위를 무너뜨린다고 해도  천명이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러나 임금 된 이는 그 덕을 닦고 신하 된 자는 충성을 다하면 천하의 다툼은 절
로 없어질 것입니다."
   등지의 거침없는 말에 손권은 짐짓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정성이 실로 지극하오."
   손권은 오와 촉이  화친을 맺는데 크게 공을  세운 등지에게 후한 상을 내렸
다. 오와 촉은 이로부터 동맹을 맺게 되니  등지는 손권과 작별하고 서촉으로 돌
아왔다.  촉과 오가 서로 화친을 맺자 곧 세작에 의해 조비의 귀에도 전해졌다.
   "오와 촉이 다시 손을 잡았다면 그건  반드시 우리 중원을 치려는 뜻이다. 그
렇다면 내가 먼저 그들을 치리라!"
   조비는 크게 노해 문무백관을 모아 놓고  그렇게 소리쳤다. 조비는 군사를 일
으켜 먼저 오부터 치기로  하고 문무백관들과 의논을 했다.  이때  위는 두 중신
을 잃었다. 대사마 조인과 태위  가후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위주 조비가 오
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려  하자 원로 중신 중의 한 사람인 시중 신비가 말
했다.
   "우리 중원은 땅이 넓으나 백성이 적어 군사를 쓰기에는 아직 이롭지 못합니
다. 그러므로  지금 세워야 할 계책은  앞으로 10년 동안 군사를  기르고 논밭을 
일구어야만 양곡과 군사가 넉넉해질 것입니다. 그런  뒤에라야 비로소 오와 촉을 
쳐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한 조비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그건 글이나 읽는 선비의 말에 지나지 않소. 지금 오와 촉이 동맹을 맺고 머
지않아 쳐들어올 터인데 언제 10년이나 기다린다는 말이오?"
   조비는 그 말과  함께 곧 영을 내려 군사를 일으키게  했다. 그러자 사마의가 
나서며 말했다.
   "동오에는 장강의 험준함이 있으니 배가  아니면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폐하
께서는 어가를 움직여 몸소  나아가시려면 먼저 크고 작은 전선부터 마련하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채하와 영수를 거쳐 회수로 드시도록 하십시오. 거기서 수춘을 
빼앗고 광릉으로 나아가신 뒤 다시 장강을 끼고 오의 수군과 싸워 이긴 후 곧장 
남서를 빼앗도록 하십시오."
   사마의의 빈틈없는 용병에 조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의 말을 좇아 그날
로 싸움빼  만드는 일에 들어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재촉하여  용주 10척을 
만드니 그 길이가 20여  장인데 2천여 명이 탈 수 있는 배였다.  뿐만 아니라 작
은 전선 3천여 척을 수습하게 했다.  위 황초 5년, 가을 8월이 되어 배들이 마련
되자 조비는 모든 장수들을 불러모았다.   조비는 조진을 전부로 삼고 장요.장합.
문빙.서황을 대장으로 삼아 먼저  출진케 했다. 이어 중군은 허저와 여건에게 맡
겨 거느리게 하고 조휴는 후군을 이끌게 했다.   유엽과 장제를 참모관으로 삼은 
조비가 뭍과 물길로 대군을  이끌어 가니 그 수가 30여 만이었다.   조비가 없는 
허도에는 사마의를 상서복야로  봉해 나라 안의 모든  정사를 도맡아 돌보게 했
다.  조비가 물과  뭍으로 대군을 이끌자 오의 세작은 밤낮없이  달려 이 사실을 
알리고 백관 하나가 급히 손권에게 받은 전갈을 아뢰었다.
   "지금 조비가 몸소 용주에 올라 물과 뭍의 군사 30여 만을 이끌어 오고 있습
니다. 채하.영수로부터 회수에 이르러 광릉을 빼앗은 다음 장강을 건너 강남으로 
내려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손권이 깜짝 놀라며 곧 문무백관을 불러모으고 위군을 막을 대
책을 물었다. 그러자 고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주상께서는 이미 서촉과 화친을 맺으셨으니 급히 제갈량에게 글을 보내시어 
그로 하여금 군사를 일으켜 한중으로 나와 적의 군세를 두 군데로 갈라 놓게 하
십시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우리가 대장을 뽑아  남서에 진을 치고 조비를 막으
면 될 것입니다."
   다급한 손권은 고옹의 말을 듣자 얼른 육손이 생각나 그를 찾았다.
   "이 일은 육백언이 아니고서는 해낼 사람이 없을 것이오. 그를 부르도록 하시
오."
   "육백언은 지금 형주를 지키고  있으니 함부로 불러들여서는 아니 될 것입니
다."
   고옹이 말렸다. 그러나 손권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내가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오. 그러나 급히 이 일을 맡길 사람이 그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손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한 사람이 앞으로 성큼 나서며 외쳤다.
   "신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군사를 이끌고 나가 위군과 맞서겠습니다. 만약 조
비가 강을 건넌다면 사로잡아 대왕께 바칠 것이며,  또 강을 건너지 않더라도 그 
군사 태반을 쓸어  없애 감히 두 번 다시  우리 오를 넘보지 못하도록 하겠습니
다."
   모두가 보니  그는 바로 서성이었다.   손권도 문득 서성의  의기가 드높음을 
보고 몹시 기뻐하며 그를 출전토록 허락했다.  서성을 안동장군으로 삼아서 건업
과 남서를 도맡아 지키도록 했다. 
   "경이 강남을 지키게 되었으니 내가 무엇을 근심하겠소?"
   서성은 자기를 믿고 그 일을 맡겨 준 손권에게 감사하며 그 자리를 물러나와 
군사들에게 영을 내렸다.
   "대장 이하 장졸들은 싸움에 필요한 모든 군기를 넉넉히 갖추도록 하고 많은 
깃발을 마련하도록 하라."
   서성은 군사들에게 모든 채비가 갖추어지는 대로 강 일대의 언덕을 지키도록 
일렀다. 그러자 한 사람이 달려나오며 외쳤다.
   "이번에 대왕께서는 장군에게  위군을 쳐없애고 조비를 사로잡으라는 무거운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강을  건너지 않고 이곳 회남에
서 적을  맞으려 하십니까? 조비의 군사들이  이르기를 기다리셨다가 일이 잘못 
될까 걱정입니다."
   서성이 보니 그는 오왕 손권의 조카 뻘  되는 손소였다.  손소는 자를 공례라 
하며 양위장군으로 광릉 땅을 지키고 있었는데 젊은 나이라 패기가 넘치고 담력
이 뛰어났다.  서성이 그의 젊은 의기를 달래듯이 말했다.
   "조비의 형세가 매우 큰데다  반드시 뛰어난 장수가 선봉을 맡을 것인 즉 가
볍게 나아가 맞아서는 아니 된다. 모든 적의  배들이 북족 언덕에 이르기를 기다
려 싸우는  것이 좋다. 내가 이미  그들을 쳐부술 계책을 세워  두었으니 그대는 
때를 기다려라."
   그러나 손소는 젊은 의기를 억누르지 못한 듯 싸우기를 청했다.
   "제가 거느린 3천의 군마는 광릉 땅의  지리에 밝습니다. 바라건대 강 북쪽으
로 건너가 그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여 남김없이 쓸어 없애겠습니다.  만약 싸움
에 져서 돌아오면 그때 가서 저를 군법으로 다스려 주십시오."
   그러나 서성은 젊은 혈기에만 들떠 있는 손소의 말이 미덥지 못해 그의 말을 
물리쳤다. 그러나 손소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고 두서너 번을 더  청하였으나 서
성이 거듭 거절했다.  그래도 손소가 물러나지  않자 서성도 마침내 화가 치솟아 
소리쳤다.
   "네가 이토록 군령에  따르려 하지 않으니 내가  어찌 모든 장수들을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냐? 여봐라, 이 자를 끌어다가 목을 베라!"
   일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미처 사태를 헤아릴  경황이 없는 손소였다.  서성의 
호령에 도부수들이 손소를  진문 밖으로 끌어내어 검은  기를 올리고 그의 목을 
베려 했다. 도부수의 칼이 휘번득거리자 새하얗게  질린 손소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가 손권의 조카라 차마 이런  일까지 벌어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이 위급해지자 손소의 부장이 급히 말을  달려 손권에게 이 일을 알렸
다.  손권은 부장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서성의 진중으로 말을 달려갔다. 손권
이 이르렀을 때는 도부수들이 막 손소의 목을 베려던 참이었다.
   "도부수들은 물러서라!"
   손권은 급히 도부수들을  꾸짖어 물리친 뒤 손소를 구출했다.  가까스로 목숨
을 건진 손소는 손권을 보자 통곡하며 말했다.
   "신은 전에 광릉  땅을 지킨 적이 있어 그곳 지리를  훤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조비를 맞아 치지 않다가 만약 위군이 장강을 건너와 밀려드는 날에는 
우리 동오는 결딴나고 말 것입니다."
   손권은 그  말을 듣고 바로 서성이  머물고 있는 진영으로  들어갔다. 서성은 
손권이 찾아온 것을 보나 온  까닭을 짐작하고 장막 안으로 맞아들인 후 정색을 
하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신에게 도독이 되어 군사를  이끌어 위병을 막게 하셨습니다. 양
위장군 손소는 군법을  따르지 않고 어겼으니 마땅히 목을 베어야  합니다. 그런
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구해 주십니까?"
   "손소는 젊은 혈기가 지나쳐 군령을 어겼으나, 부디 너그럽게 용서하시오."
   손권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용서를 청했다. 그러나 서성은 여전히  정색을 한 
채 말했다.
   "법은 신이 만든  것도 아니며 대왕께서 만든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라에서 
만들어 놓은 모범이  되는 본보기입니다. 대왕께서 그가 조카라는 것  때문에 그
를 구해 주신다면 앞으로 어떻게 군사들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손소가 군법을 어겼으니 그에게 벌을 주는  건 마땅한 일이오. 그러나 그 아
이의 원래 성은 유씨이나 돌아가신 형님께서 몹시 사랑하시오 손씨 성까지 내리
셨소.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 그가 세운 공 또한 적지 않소. 지금 죽인다면 형님
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오."
   손권도 군법을 어기면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벌을 주겠다는 서성의  뜻
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벌을 받아 목숨을 잃게  되면 형님의 집
안은 대가 끊기게 되는 것이므로  손권은 그런 사정을 내세워 목숨만은 살려 주
라고 간곡히 청한 것이었다. 오왕이 그렇게 나오니 서성도 마다할 수가 없었다.
   "대왕의 낯을 보아 그의 죄를 용서하겠습니다."
   서성이 그렇게 말하자 손권은 손소를 불러들이고 그간의 잘못을 아뢰어 절을 
올리고 고마움을 표하도록 했다. 그러나 손소는 절을  올리는 대신 소리 높여 서
성에게 대들었다.
   "내 생각은 즉시 군사를 이끌고 가 조비를 치는 것이 옳다는 것이오. 이 자리
에서 죽을지언정 당신의 생각에 따를 수 없소."
   그 말에 서성은 화가 치밀어 얼굴이  대춧빛처럼 변했다. 손권이 얼른 손소를 
꾸짖어 물러나게 한 다음 서성에게 일렀다.
   "저런 놈이 없다한들 동오에 손해날 게 무엇이겠소?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쓰
지 마시오."
   손권이 그렇게 말해 서성을 위로한 후 궁궐로  돌아갔다.  그날 밤 군사 하나
가 급히 달려와 알렸다.
   "손소가 군사 3천을 거느리고 몰래 강을 건너갔습니다."
   서성은 막상  손소가 강을 건넜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끝내  일을 저지른 
손소에게 화가 치밀기도 했으나 만약 그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손권을 대할 낯
이 없어지므로 급히 정봉에게 3천의 군마와 밀계를 주어 강을 건너 손소를 돕게 
했다.
   한편 위주 조비는  용주를 타고 광릉에 이르니  먼저 와 있던 조진이 군사를 
강 언덕에 늘여세우고 주군을 맞았다.
   "저쪽 강 언덕에 적군이 얼마나 있는가?"
   조비가 조진에게 물었다.
   "강 건너 언덕을 살폈으나 군사는 한 명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영채와 정
기도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속임수를 쓰려는 것이리라.  짐이 몸소 가서 허실을 살피리
라."
   조비는 곧 용주를 타고 강으로 나가서 언덕에  배를 대고 닻을 내렸다. 배 위
에는 용봉과 일월의 기치와 다섯  가지 색깔의 정기를 가득 세우고 갖가지 의장
을 갖추니 그 현란한  색깔은 보는 이의 눈을 부시게 했다.  조비는  배 위에 앉
아 아득한 강 남쪽을 살펴보았다. 한동안  주의 깊게 바라보았으나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자 유엽과 장제에게 물었다.
   "강을 건너도 되겠는가"
   그러자 유엽이 말렸다.
   "병법에 허허실실이라 했습니다. 적이 우리 대군이 오는 것을 보고 어찌 방비
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서두르지  마십시오. 며칠 동안 기다리
셨다가 저쪽의 움직임을 살피신 이후에 선봉을 내세워 강을 건너 살펴보게 하십
시오."
   조비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경의 말이 내 뜻과 다름이 없소."
   조비는 그날 밤은 강 위에서  보내기로 하고 배 위에 머물고 있는데 달이 비
구름에 가려 빛을 잃으니  군사들이 모두 등불을 밝혔다. 강 위에  진을 친 무수
한 군선이 일제히 등불을 밝히자  그 불빛은 하늘의 별빛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휘황 찬란하였는데,  동오의 연안만은  여전히 캄캄한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조비는 강 남쪽을 바라보다 문득 좌우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강남에는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가?"
   근시 하나가 듣기 좋은 말로 조비의 비위를 맞추었다.
   "폐하께서 몸소 천병을 거느리고  오시니 모두 놀라 쥐구멍이라도 찾듯 숨었
나 봅니다."
   조비는 그 말에 흡족한 듯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날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친 날이 밝았을 때였다. 새벽녘부터 짙은 안개가  강 위를 뒤덮어 한 발 앞
의 사람도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다 다시 바람이 불어  안개가 걷히자 멀
리 20여 리 앞이 훤히 내다보였다.
   "저것이 무엇인가?"
   그러자 배 위의  군사들이 놀라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강  언덕이 모두 성
으로 변해  있는데 성루마다 창칼이  번쩍이고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모두가 영문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사이에 연이어 소식이 전해졌
다.
   "남서의 강변에서부터 석두성까지 수백  리에 이르러 성곽과 배와 수레가 잇
대어져 있습니다. 이게 다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조비는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전해진 말대로라면 강남
을 치기는커녕  오히려 위태로운 지경에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서성이 거짓으로  꾸민 것들이었다. 갈대를 엮어 사람 모양으로  만들고 모
두 푸른 옷을 입혀 깃발이나 창칼을 꽂아 성처럼 만든 곳에 세워 두었던 것이었
다.  그걸 알 리 없는 위군이 성 위에  늘어서 있는 수많은 군사를 보자 깜짝 놀
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비가 길게 한탄하며 말했다.
   "짐에게 비록 천 무리의 무사들이 있다 하나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강남 사
람들이 저러하니 단숨에 쳐부술 수가 없겠구나."
   조비가 그렇게 한탄하고  있을 때 홀연 거센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강 위에
는 흰 물결이 하늘을 향해 치솟고 사납게  튀는 물방울은 조비의 용포를 적셨다. 
산처럼 큰 물결이 일렁이자 큰  배는 뒤집힐 듯 뒤뚱거리고 조진은 황급히 문빙
에게 명하여 작은 배를 저어 오게하여 조비를 구하려 했다.
   "작은 배를 급히 저어가 어가를 호위토록 하라."
   그러나 물결이 점점 더 거세어져 용주가 뒤집힐 듯 기울자 군사들은 배 위에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어지럽게 나동그라졌다.   문빙이 급히 용주 위로 뛰어올
라가 조비를 등에 업고 작은 배에 옮겨 탔다.  조비가 작은 배로 옮겨 타자 문빙
은 힘을 다해 노를  저어 강나룻가에 이르렀다.  그때 나는  듯이 유성마가 달려
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촉의 장수 조자룡이 양평관에서 군사를 내어 장안으로 밀려들고 있습니다."
   그 소리에  조비는 크게 놀라 얼굴빛이  달라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좌우에게 
영을 내렸다.
   "즉시 군사를 물려라."
   이에 모든 군사들은  일제히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처럼 흩어져  달아났다. 그
러나 어디서 달려왔는지 한 떼의 동오 군사들이 달아나는 위병을 급하게 뒤쫓아
왔다. 
   "어용물도 다 버리고 달아나라!"
   다급해진 조비가 다시  영을 내려 달아나기를 재촉했다. 조비의  군사들은 용
주에 가득 실려 있던 어용물들을 강물에 내던졌다.   위의 장수들이 조비를 구해 
용주를 몰아서  가까스로 회하에 이르렀다.  그러나 용주가 회하  강가로 들어설 
때였다. 홀연 북 소리, 징 소리와 함께 함성이 크게 일며 옆쪽에서 한 떼의 동오 
군사들이 달려와 위군을  덮쳤다. 서성의 영을 어기고 밤중에 몰래  빠져나온 손
소가 이끄는 군사들이었다.   갑자기 덮쳐드는 오군을 당할 수가  없었던 위병은 
태반이 꺾였으며  물에 빠져 죽는 자도  헤아릴 수 없었다. 위의  장수들이 그런 
가운데도 힘을 다해 조비를 구해 30여 리를  달려갔을 때였다. 돌연 좌우의 앞쪽 
강변이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해  버렸다.  이 부근에는 큰 배도  숨길 만한 갈대
와 억새가 무성했는데 오군은 여기에다 불이 잘 붙는 생선기름을 뿌려 두었다가 
일제히 불을  질렀던 것이었다. 불어 오는  거센 바람을 타고 불길은  강물 위를 
뒤덮는 가운데 하늘로  치솟으며 조비가 탄 용주를 가로막았다. 그렇게  되니 용
주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조비는 깜짝 놀라 황황히 작은 배를 
내리게하여 옮겨 탔다.  조비가 강언덕 쪽으로 급히 배를 젓게  하며 뒤돌아보니 
좀전의 용주도 이미 불길이  번져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작은  배가 강가에 이
르자 급히 배에서 내린  조비는 말을 타고 언덕 위로 향해  달렸다. 그러나 그곳
도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또 한 떼의  군사가 언덕 위에서 쏟아지듯 달려왔다. 
조비가 놀라 바라보니 위장  정봉이 이끈 군사였다.  이에 장요가  말을 박차 정
봉을 맞아 싸우려 할 때 정봉이 재빨리 활에  살을 메겨 날렸다. 정봉이 쏜 화살
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  장요의 허리에 꽂혔다.  이에 서황은  조비와 큰 상처를 
입은 장요를 보호하며  정신 없이 말을 달려 간신히 오병의  손길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꺾인 군사는 그 수효가 얼마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막급이었다.  
조비를 뒤쫓던 손소와 정봉은 위군이  버리고 간 수많은 말과 수레를 비롯한 병
장기와 배를 거두어들였다.   회하의 수백 리를 삼키며 타오르는  불길로 인하여 
위군의 배에서 내뿜는  검은 연기는 다음 날까지도 강과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이 때 조비가 입은 피해는 일찍이 선제 조조가 적벽의 싸움에 졌을 때와 비교하
여 그에 못지 않은  것이었다.  위군을 여지없이 두들겨 부수고  쫓아 버리자 오
왕 손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에 위군을 회하로  끌어들여 쳐부순 
서성에게 큰 상을 내리고,  적을 기습한 손소와 정봉에게도 상을 내려 치하했다.  
패군을 이끌고 허창으로  돌아간 조비는 원로 장수 장요마저 잃게  되었다. 장요
는 정봉에게 맞은 살독이 온몸에 퍼져 허창에  이르자 곧 숨을 거두었다. 조비는 
슬피 울며 장요를 성대히 장사지내 주었다.   한편 조운은 양평관에서 군사를 이
끌어 장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처 장안에 이르기도 전에  승상 제갈공
명으로부터 글 한 통이 날아들었다.  조운이 급히 그 글을 일겅 보았다.
   지금 익주의 늙은 장수 옹개가 남만왕 맹획과 손잡고 군사 10만을 일으켜 사
군을 노략질하고 있소. 장군은 급히 군사를 되돌리도록 하시오. 그리고 양평관은 
마초에게 맡겨 굳게  지키도록 하시오. 나도 군사를 일으켜 남만을  쳐서 그곳을 
평정하려고 하오.  조운은  그 글을 읽자 승상의 영을 받들어  곧 군사를 되돌렸
다. 공명 또한 성도에서 전군을 일으켜 몸소 남만을 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무렵, 제갈 승상은 성도에서 큰 일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를 몸소 처결
했다. 승상의 처결이 공평하고 한 치의 그릇됨이  없으니 모든 서천과 동천의 백
성들은 모처럼 태평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도둑이  없어 밤에도 문을 닫아 걸
지 아니하였고,  길가에 떨어진 물건이 남의  것이면 줍지를 아니하였다. 게다가 
해마다 풍년이 들어 늙은이 젊은이  가릴 것 없이 배를 두드리며 태평세월을 노
래했다.  마음이  즐겁고 먹을 것이 풍족하여 나라의 부역이  있으면 젊은이들이 
다투어 나가 힘을  다해 일했다. 그러니 싸움에 소용되는 군기나  물자가 갖춰지
지 않은 것이  없었고, 곡식은 곳간마다 그득했으며 재물은 부고마다  가득 채워
져 있었다.  태평스런 날들이 이어지던 건흥 3년, 익주에서 홀연 급한 소식이 날
아들었다.
   "남만왕 맹획이 오랑캐 군사 10만을  일으켜 국경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건녕
태수 옹개는 한나라 십방후  옹치의 후손인데도 맹획과 짜고 모반을 일으켰습니
다. 그러자 장가태수  주포와 월전태수 고정 두 사람도 항복하여  성을 바쳤습니
다. 다만 영창태수 왕항만이  충절을 지켜 항복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자 옹
개.주포.고정 세 사람이  맹획의 길잡이가 되어 영창구로 짓쳐들고  있습니다. 왕
항이 그들을 맞아 공조.여개와 함께 백성들을 모아  힘을 다해 싸우고 있으나 형
세가 매우 급하다고 합니다."
   공명은 그 말을 듣자 곧바로 후주를 찾아 뵙고 아뢰었다.
   "신이 보건대, 남쪽 오랑캐들이 폐하를  거스름은 실로 나라의 큰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즉 마땅히 신이 군사를  일으켜 그들을 
치고자 합니다."
   그러자 후주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동에는 손권이 있고 북에는 조비가 있소. 승상께서 짐을 버리고 떠나간 틈을 
노려 오와 위가 쳐들어오면 어쩌시겠소?"
   공명이 웃으며 후주에게 말했다.
   "동오는 우리와 손을  잡은 사이이니 지금은 딴 생각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딴 생각을  갖는다 하더라도 이엄이 백제성을  지키고 있으니 능히 육손을 
막아낼 것입니다. 또한 조비는 이번 싸움에 져서 그 기세가 크게 꺾여 있습니다. 
그가 다시  군사를 이끌고 먼 곳을  치러 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설령 조비가 
온다 하더라도 마초가  한중의 험한 관과 여러  길목을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신은 관흥과 장포에게 군사를 주어 형세에  따라 구원
하도록 대비해 두었으니 폐하를 돌보는 일에 만에 하나라도 어긋남이 없을 것입
니다. 이제 신은 먼저 만방을 평정한 후에  북으로 밀고 들어가 중원을 빼앗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선제께서  신을 세 번이나 찾아 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당부하
신 말씀을 받들고자 합니다."
   공명의 말을  듣고서야 후주는 비로소 안심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
다.
   "짐이 아직 나이 어려  아는 것이 없으니 승상께서는 모든 것을 살펴서 하시
오."
   그러자 홀연 한 사람이 나서며 소리쳤다.
   "아니 됩니다. 그래서는 아니 됩니다."
   모든 사람이 보니 그는 바로 남양 땅 태생의 왕련이었는데 자를 문의라 했으
며 간의대부 벼슬을 지내고 있었다. 왕련이 간했다.
   "남방은 불모의 땅이며 장역과 천연두 등의 병이 많이 생기는 고장입니다. 승
상께서는 나라의 큰 일을 맡아  계시는 몸으로 친히 먼 곳으로 군사를 이끄시는 
것은 옳지 않으십니다. 더욱이 옹개 같은 무리는  한낱 옴이나 부스럼 같은 하찮
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승상께서는 마땅한 장수  한 사람만을 보내 치게 하셔
도 반드시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명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만이 이곳과는 너무나 멀어 오랑캐들이 임금의 덕화를 잘 알지 못하고 있
소. 그 때문에 그들을  따르게 하기가 매우 어려운 바이니 내가  몸소 가려 하오 
그들을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형편을  보아가며 달래고, 누르기도 해야 
하니 내가 가려는 것이오. 결코 남에게 시켜서 될 일이 아니오."
   공명이 그렇게 말하며  채비를 서둘렀다. 왕련이 거듭해서 말렸으나  끝내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날로 후주에게 작별을 고했다.  공명은  장완을 참군으
로 삼고 비위를 장사로, 동궐.번건 두 사람은  연사로 삼았다.  그리고 조운과 위
연을 대장으로 세워 전군을 거느리게 하고 왕평과 장익을 부장으로 삼음과 아울
러 동천과 서천의 장수  수십 명을 함께 이끌게 했다.   조운이 양평관에서 군사
를 이끌어 장안으로 향하다 공명의 글을 받고  급히 달려온 것이 그 무렵이었다.  
공명이 전군을 일으켜  익주를 향해 나아가니 모두 50만 대군이었다.  대군을 몰
아 기세도 드높게 나아가는 도중에  뜻밖에도 관 공의 셋째 아들 관색이 찾아와 
공명을 뵙고 아뢰었다.
   "형주가 적의 손에 넘어갔을 때 포가장으로 몸을 빼내 상처가 낫기를 기다리
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항상 서천으로 가서 선제를 뵙고 원수  갚을 일만을 생
각하고 있었으나 싸움터에서 창에 찔린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지금에야 겨우 상처가  아물어 동오에 있는 원수들의 소재를 알아보니,  모두 죽
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천으로 천자를 뵈러 가던  도중에 남만을 치러 가는 군
사를 만나게 되어 이렇게 찾아 뵈었습니다."
   공명이 그 말을  듣자 다시 지난 일이 떠올라 탄식해  마지않았다. 곧 조정으
로 사람을 보내 관색이 찾아온  사실을 후주에게 알리게 하고 관색을 전부의 선
봉으로 삼아 함께  떠났다. 관색도 몹시 기뻐하며 분연히 선봉의  대오에 뛰어들
었다.  다시 대병이 익주를 향해 나아가는데  수많은 인미가 흐트러짐이 없이 대
오를 길게 이루어 나아가며, 배가 고프면 밥을  지어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
고, 날이 저물어 밤이 되면 조용히 밝음을 기다려 엎드려 있다가 다시 나아갔다. 
군사들이 이르는 곳마다 백성들을 해하거나 물건에 손을 대는 일은 더더욱 없었
다.  그때 옹개도 공명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곧 주포와 고
정을 불러 대책을 의논했다. 셋이 의논한 끝에  공명의 군사를 세 갈래의 군마로 
나누어 맞기로 했다.  즉, 고정은 가운데 길에서, 옹개는 왼쪽 길을, 주포는 오른
쪽 길을 맡아 각기 군사 5,6만을 거느려 맞기로 했다. 그들은 곧 각기 한 갈래씩
의 군마를 거느리고 세 길로  나누어 나아갔다.  이때 고정의 전.부 선봉은 악환
이라는 장수였다.  그는 키가 아홉 자에  얼굴은 먹칠을 한 듯  검었고 어금니가 
입술 바깥까지 튀어나와 있어 성을 낼 때는  마치 악귀처럼 보였다. 거기다가 용
맹이 뛰어나 한 자루 방천극을  손에 들면 1만 명의 군사들도 그를 당하지 못했
다.  악환은 공명의 군사를 맞기 위해 대채를 떠나 군사를 이끌어 나아갔다.  그 
무렵, 공명은 대군을 거느리고  익주의 경계에 이르고 있었다. 공명의 진에서 앞
장 선 대장은 위연이었다. 부장인 장익이 왕평과  함께 익주의 경계 안으로 밀고 
들어가자 마침 악환이 이끄는 군사와 마주쳤다.   양군이 서로 마주 보며 둥글게 
진을 세우자 먼저 위연이 말을 달려 나가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나라를 거스른 역적은 빨리 항복하도록 하라."
   악환은 대꾸도  없이 말을 박차 위연에게  덤볐다. 두 개의  창칼이 부딪치자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네댓 합을  부딪자 위연이 당해 내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을 돌려  달아났다. 악환이 기세를 올리며  달아나는 위연을 급하게 뒤쫓았다.   
악환이 그렇게  몇 리쯤을 뒤쫓을 때였다.   홀연 좌우에서 함성이  크게 일더니 
장익과 왕평이 양쪽에서 내달아나와 악환의 뒤쪽을  끊었다. 그때 달아나던 위연
도 말머리를 돌려  악환에게 말을 몰아왔다. 그제야 위연에게 속았음을  안 악환
이 세 갈래 군마에게 에워싸인  채 길을 열기 위해 좌우로 말을 몰며 닥치는 대
로 적을  쳤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세 장수에게 사로잡힌  채 공명이 
있는 대채로 끌려갔다.  사로잡혀 끌려온 악환을 보자 공명은 결박을  풀게 하고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물었다.
   "그대는 누구를 받들던 장수인가?"
   "저는 고정의 부장입니다."
   공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자 악환도 순순히 대답했다.
   "내가 알기로는 고정은 본디 충의가 깊은 사람이었다. 이번에 옹개의 꾐에 빠
져 이런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 이제 내가 특별히 너를 돌려  보낼 테니 고태수
에게 빨리 항복하여 큰 화를 면하도록 하라고 이르라."
   공명은 그 말과  함께 악환이 돌아가도록 허락했다. 악환은  뜻밖의 대접까지 
받고 풀려나게 되자  공명에게 감사를 표하고 돌아갔다.  고정에게  돌아간 악환
은 공명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하며, 그 덕을 입이 닳도록 칭송해 마지않았다. 악
환의 말을 들은 고정도 공명이 자신을 충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하며 악환을 풀어 
준 걸 보고  마음 속으로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옹개가 고정의 
진영으로 찾아와 의심스런 얼굴로 물었다.
   "적에게 사로잡혔던 악환이 어떻게 하여 되돌아왔소?"
   "제갈량이 의로써 되돌려 보낸 듯하오."
   고정이 악환에게 들은 대로 말했다.  그러자 옹개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제갈량이  우리 사이를 갈라 놓으려고 꾀를  부린 것이요, 바로 
반간계를 쓴 것이오."
   고정은 은근히 공명에게 마음이 이끌리고 있던 참이라 옹개가 그렇게 말하자 
그에게 의아심을 품었다. 그때 홀연 수하 한 사람이 와서 알렸다.
   "지금 촉의 장수가 와서 싸움을 돋우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옹개는 군사 3만을 이끌고  위연을 맞으러 나갔다. 그러나 옹개
는 위연과 맞설 만한 장수가 못 되었다. 두  장수가 어우러져 싸운 지 수합이 못 
되어 옹개는 말을  돌려 달아났다. 위연이 달아나는 옹개의 군사들을  20여 리나 
뒤쫓으며 닥치는 대로 쳐죽였다.  다음 날이  되자 옹개는 결판이라도 내려는 듯
한 기세로 다시 군사를 이끌어와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공명은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 옹개가 아무리 싸움을 돋우어도 사흘 동안  장수 한 사람 내보내지 않고 
영채만을 굳게 지킬  뿐이었다. 나흘째가 되자 촉군이 약한 것으로  얕본 옹개와 
고정은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촉의 영채로 밀려들었다.    그러나 공명은 땅 
위에 그림이라도 그린  듯이 정확한 계책을 세워 두고 있었다.  공명은 위연에게 
그들이 군사를 이끌고 올 만한  길을 살피게 하여 그곳에다 촉의 군사를 매복시
켜 두게 했다. 과연  짐작한 대로 옹개와 고정이 군사를 이끌고  오자 공명은 매
복군을 내몰아 일제히  덮치게 하였다.  옹개와 고정의 군사는  거꾸로 갑작스런 
역습을 당하자 크게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군사의 태반이 죽거나 상하고 사로
잡힌 자도 많았다.  옹개와  고정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해 달아났다.  공명은 사
로잡힌 적군을 두 곳에 나누어 가두게 하였는데,  한 곳에는 옹개의 군사들을 가
두었고 다른 한  곳에는 고정의 군사들만 몰아 두었다. 이어  군사들에게 일러서 
갇혀 있는 적병들 사이에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고정의 군사들은 살려 두지만 옹개의 군사들은 모조리 죽음을 면치 못할 것
이다."
   그 소문은 금세 사로잡힌 군사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다음 날이 되자 공명
은 옹개의 군사들을 끌어오게 하여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의 군사들이냐?"
   공명이 그렇게 물어오자 이미  소문을 듣고 있던 옹개의 졸개들이 모두 입을 
모아 거짓으로 대답했다.
   "고정의 졸개들입니다." 
   공명은 짐짓 그들의 거짓에 속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모두 결박을 
풀어 주게 하고 술과 밥을 내린 다음 그들을  돌려 보내 주었다. 공명은 다시 고
정의 군사를 데려오게 하여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의 군사들인가?"
   "우리들이 정말 고정의 군사들입니다."
   혹시라도 공명이 자신들을 옹개의 군사들로 알까 봐 고정의 군사들이 일제히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러자 공명은 이번에도 죽이기는커녕 술과 밥을  내리며 그
들에게 일렀다.
   "오늘 옹개가 사람을 보내 항복할 뜻을  내게 전해 왔다. 또한 너희들의 대장
인 고정과 주포의 목을  베어 자기의 공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내가 차마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물리쳤다. 너희들은 고정의  군사라 하니 내가 돌려 보
낼 터인즉 다시는  나라를 거스르지 않도록 하라. 만약 다시  사로잡히는 날에는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공명의 넓고 깊은 은덕에  감격한 고정의 군사들은 모두 절하며 감사함을 표
한 뒤 자기네 영채로 돌아갔다. 그리고 고정에게 공명이  한 말을 전한 뒤 그 덕
을 칭송했다.   고정은 졸개들의 말을 전해  듣자 옹개에게 부쩍 의심이 일었다. 
고정은 은밀히 세작을 보내 옹개의 영채를 살피게  했다. 세작이 가서 동정을 엿
보니 촉군에게 사로잡혔던 군사들이 한결같이 공명의 큰 덕을 기리자 다른 군사
들도 모두 옹개보다 고정을 따르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작이 이 사실을 
고정에게 알렸다.  그러나 고정은 그것만으로는 옹개의  속마음을 알 수 없어 다
시 다른 세작 한  사람을 공명의 영채로 보내 살펴보게 했다.  그러나 고정의 세
작이 공명의  영채로 숨어들려다가 도중에 매복하고  있던 촉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공명은 고정의  졸개가 사로잡혀 오자 짐짓 옹개의 군사로  잘못 안 듯
이 자신의 장막 안으로 불러들여 말했다.
   "너의 주인 옹개는 고정과  주포의 목을 바치겠다고 약속을 한 바 있는데 어
째서 기일을 어긴다는 말이냐?  그러고도 또 무엇을 엿보려고 너를 보냈다는 말
인가?"
   고정의 세작은 그 말을 듣자 속으로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자
신이 정말 옹개의 군사인 것처럼 얼버무렸다.   공명이 노린 것도 바로 그것이었
다.  공명은 그에게 술과 밥을 내려 대접한 뒤 글 한 통을 써 주며 말했다.
   "너는 이 글을 옹개에게 전하되, 빨리  손을 써서 일이 그릇되지 않도록 하라
고 일러라."
   공명의 말에 세작은  절하며 물러났다. 자기 영채로 달려온  세작은 고정에게 
공명이 준 글을 바치며 말했다.
   "옹개가 주인 어른과 주포  어른을 죽이기로 공명에게 약속한 것이 틀림없는 
듯 했습니다."
   고정은 공명의 글을 읽자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진심으로 옹개를 대했거늘 제놈은 도리어 나를 해치려고 하다니....... 이
건 정리로 봐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리라."
   그렇게 외친 고정은 곧 악환을 불러들여 공명의 글을 보여 준 후 그 일을 의
논했다. 그러자 공명에게 감복하고 있던 악환이 입을 열었다.
   "공명은 참으로 어지신 분이니 그분을  거스르는 것은 이롭지 않습니다. 우리
가 모반하게 된 것도  실은 다 옹개 때문입니다.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차라리 
옹개를 죽이고 공명에게 항복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모든 것이 공명의 계책임을 알  리 없는 고정이 악환의 말에 마음을 정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를 죽일 수 있겠는가?"
   "진중에 잔치를 베풀어 옹개를 청해 보십시오. 그가 떳떳하다면 올 것이고 만
약 딴 마음을 품었다면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오지 않는다면 주상께서는 군
사를 휘몰아 옹개의 영채를 들이치십시오. 그때 제가  영채 뒤의 좁은 길을 지키
고 있다가 옹개를 사로잡겠습니다."
   고정이 듣고 보니 좋은 계책이 아닐 수  없었다. 곧 잔치를 열고 옹개를 청했
다. 그러나 옹개도 그때 촉군에게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군사들로부터 들은 말이 
있었다. 느닷없이 잔치 자리에 청하는 고정에게 더럭  의심이 일어 끝내 그 청을 
물리쳐 버렸다.  그날 밤이었다.  옹개가 잔치 자리에 오지 않자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여긴 고정은 군사를 이끌어 옹개의  영채를 덮쳤다.  옹개에게 있
어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거기다가  고정의 군사들이 들이닥쳤으나 옹개
의 군사들은 그들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 고정 대문에 자기들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여긴 군사들이었다. 공명의 말을  들은 이후로는 자기들의 주인보다 
고정을 더욱 덕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던 터였다.  고정의  군사와 맞서 싸
우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도우니 싸움의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형세가 그렇게 
되니 옹개는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목숨을 구해 산길로  달아났다. 그러나 
두어 마장도 달리지 못해 북 소리가 울리더니 한 데의 군사가 나타나 앞길을 가
로막았다. 인마를 거느린 장수는 바로 악환이었다.  악환은 옹개를 보자 곧장 말
을 박차  방천극을 휘두르며 덮쳐들었다. 옹개가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악환이 
내리친 방천극에 온몸을 피로 뒤집어쓴 채 말  아래로 떨어졌다. 악환이 다시 방
천극으로 옹개의 목을 자르자 그렇지 않아도 싸울 마음이 없었던 옹개의 졸개들
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고정은  항복해 온 군사들을 거두어들인  후 양쪽 
군사를 함께  거느리고 공명에게로 갔다.  고정이 공명에게 옹개의  목을 바치며 
항복했다. 그런데 장대위에  높이 앉아 있던 공명이 엄한 얼굴로  좌우를 돌아보
며 소리쳤다.
   "저 역적을 끌어내어 목을 베라."
   옹개의 목을 바치고 항복하면 반갑게 맞으리라 여겼던 고정에게는 날벼락 같
은 소리였다.
   "저는 승상의 크신 은혜에 감복하여  옹개의 목을 들고와 항복하러 왔습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저를 목 베려 하십니까?"
   깜짝 놀란 고정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공명에게 물었다. 공명은  여전히 엄한 
얼굴로 고정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거짓으로 항복하러 온 터에 다시 나를 속이려 하느냐?"
   고정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승상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저에게 거짓으로 항복했다 
하십니까?"
   공명은 그 물음에 대답 대신  문갑 속에서 한 통의 글을 꺼내 고정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이 글을 읽어 보라. 그건 주포가 은밀히 사람을 보내 항복하는 글을 보내 왔
다. 그 글에 보면 옹개와 너는 함께 죽고 함께 살기를 맹세한 사이라고 했다. 그
런데 네가 어찌 하루 아침에 옹개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일로 미루어 보
아 네 항복이 거짓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건 거짓으로 주포가 꾸며댄 말입니다.  주포가 반간계를 쓴 것이니 승상께
서는 결코 그놈의 말을 믿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고정이 억울해 그렇게 소리쳤다.  공명도  고정의 말을 듣자 생각이 달라지는
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나 역시 한쪽 말만을 듣고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만약 네가 주포를 사로잡
아 온다면 그때는 너의 참뜻을 알 수 있으리라."
   공명이 슬며시 말고리를 그렇게 돌리자 앞 뒤 가릴 새 없이 다급해진 고정이 
다시 소리쳤다.
   "승상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주포를 사로잡아 오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어찌 너를 의심하겠느냐?"
   공명이 그제야 부드러운 얼굴로 가만히 말했다.   고정은 지체하지 않고 부장 
악환과 함께 이끌고 온  군사를 되돌려 주포의 영채로 달려갔다.   고정이 한 10
여 리를 달렸을 때였다.  문득 산 뒤에서 한 떼의 군마가  달려오는데 보니 앞선 
장수는 바로  주포였다. 자기를 치러 오는  줄을 알리 없는 주포가  고정을 보자 
반갑게 맞으려 했다.
   "네 이놈! 너는 어찌하여 제갈 승상에게 거짓  글을 보내 반간계를 써서 나를 
죽이려 했느냐?"
   고정이 대뜸 성난 목소리로  꾸짖자 주포는 날벼락이라도 맞아 얼이 빠진 듯 
두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그때 주포의 등 뒤로 달려간 악환이  넋을 놓고 있는 
주포를 방천극을 번쩍 쳐들어 찔렀다.  주포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말 아래로 
나뒹굴자 고정이 주포의 군사들을 보고 소리쳤다.
   "만약 순순히 따르지 않는 자가 있다면 모두 죽이리라."
   주포의 군사들은 자기 대장의  목이 잘리자 일제히 절을 올리며 항복해 버렸
다.  고정은  항복한 군사들을 거두어들이고 전군을 거느린 채  돌아와 공명에게 
주포의 머리를 바쳤다.  공명이 그제야 소리내어 웃더니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두 역적을  죽이게 한 것은 그대의 충성심을 떨쳐 보이게 하
기 위함이었소. 그대를 처음부터 의심한 것이 아니었소."
   공명이 고정의 공을 치하한  후 그에게 익주태수의 벼슬을 내려 삼군을 다스
리게 하고 악환을 아장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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