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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우 마취과의사는 이름표가 없다

by Casey,Riley 2023.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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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취과의사는 이름표가 없다
이관우

  



    제 1장 수술실
    1. 병원교회 심목사님!
    한 마취과 의사에게 기도를 전해준 목사님
  우리 병원교회는 심목사님이 원목이다. 한국인 치고는 다리와 목이  쭉 빠진 분이라 무슨 
색의 양복을 입든지 어울리는 멋쟁이 신사요, 느릿느릿 점잖은 말씨 때문에 일견 충청도 양
반임을 알 수가 있다. 목사님을 만나려면 점심시간 직후에  원목실로 만화책을 빌리러 가거
나 수술실 앞에서 수술받을 환자를  기다리고 서있으며 된다. 환자들이  목사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목사님의 기도 때문이라고 한다. 기도할 때 목사님은 그 큰 키를  반으로 
접으시듯 수술대에 머리를 숙이는데 그 긴 목을 통하여 바리톤 음색의 기도가 시작되면 환
자들은 수술실 앞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문 앞에 와있는 것처럼 편안해하고 좋아한
다. 어떤 할머니 환자는 수술실 문앞에서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데 목사님은 할머
니에게 "할머니 저같은 목사 만나니 너무 좋아서 그러시지요?" 농담을 한다. 원목사님 때문
에 수술실 앞이 화기애애할 때가 많다.

    40 노총각과 40 노처녀의 천생연분 만남
  그 분의 이야기는 무엇이든 그 특유의 표정과 분위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압권은 단연 당신의 결혼이야기이다.
  그는 집이 너무나 가난하여 고학으로 신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공사장에 다
니고 밤이면 책을 보았으나 식사를 자주 거르다 보니 영양실조로 길을 가다 쓰러져버린 적
도 있었다. 그 지독한 고생 때문인지  이십대에 이미 머리칼이 세어 버리고 말았다.  허약한 
몸과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칼 때문에 그는  결혼 적령기가 지나도록 결혼상대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노총각 심전도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30대의 허약하고 머리칼이 다 세어버린 가난한 심전도사에게 일생을 맡길 만한 천사는 세
상에 없는 듯 하였다. 친구들은  그래도 그의 인간됨을 알고 여기저기  소개를 해 주었지만 
매번 쓰라린 경험만 되풀이 되었다. 본인도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럭저럭 
그의 나이는 마침내 40에 다가서게 되었다. 40이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특
히 여자의 나이는 절대  상관않겠으니 이제는 왠만하면  결혼을 시켜주십시오"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해에 친구의 소개로 부산에서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한 여성과 맞선을 보
게 되었다. 여성은 약사였다. 그러나 예상대로 예의 그 허약함과 흰머리 때문에 5분도  안돼 
퇴자를 맞았다.
  심전도사는 눈물을 삼키며 천안으로 올라와야  했다. 이제는 낙심하는 것도  이골이 나서 
천안에 올라오자 금방 그 일을 잊어버리고 교회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서 뜻밖에 그 부산 여성의 여자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한다. 내용
인즉 친구가 "당신의 흰머리를 이유로 심하게 한 것을 너무 괴로워하고 있으니 다시한번 만
나보라"는 것이었다. 그 여성은 기대하고  선을 보았는데 상상외로 심한  몰골을 한 상대에 
놀라서 즉시 퇴자를 놓았지만, 집에 돌아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람이 그래서는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점차  고통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 남자는 장차 
목사가 될 사람이었기 때문에 괴로움이 더했다. 할 수 없이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
니 하나님이 '네가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성경말씀으로 마음을 심히  찔
리게 하셨다는 것이었다.

    10가지 조건을 갖춘 '바로 그 남자'
  이렇게 해서 두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었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점차 마음에 들게 되어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사실 심목사님은  말솜씨가 일품이다. 이미 남자는 여자의  나이를 
안보겠다고 하나님께 다짐한 상태였다.
  그런데 남자는 점점 여자의 나이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아무리 하나님께 맹
세했지만 나이가 궁금하였다. 할 수 없이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어느 조용한 공원에서 남자
는 여자에게 "내가 하나님께 맹세는 했지만 이제 우리는 결혼식을 하기로 하였으니 당신 나
이나 알아 보고 싶소"하였다. 그때 여자가  "어머 제 나이를 아직 모르셨어요,  당신하고 똑 
같은 40인데, 다 아시는 줄 알았는데"하면서 수줍게 웃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전도사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하였다. '40이라구요!, 아
니 40이라구요?' 그때 머리를 스치고 가는 생각이 '남자 40과 여자 40이 같은가'였다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히더라고 한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싶더란다. 아무리 나이를 상관 않겠다고 
했지만 노처녀와 결혼하게 하시다니.
  그러나 그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조용히 마음을 정돈하고 여자에게 
점잖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피차 참으로 다행한 일이요, 내가 만일 3일전에 당신 나이를 
알았으면 결혼을 취소했을 것이요, 그러나 이제는 내 약속을 지키겠소. 하나님이 특히  당신
을 도와주신 것이요"하고. 그리고 이 허약한 흰머리 노총각이 여자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놀랄 일은 결혼 후 2년만에 벌어지게 되었다.
  본래 심전도사는 허약하고 흰머리였지만 목소리는 좋았는데 결혼 후 영양보충이 잘  되어 
한결 노래를 잘하게 되었다. 흰머리는 염색을 하니 총각보다 더 멋지게 되었다.
  결혼 2년 후 천안시 대강당에서 심전도사가 독창회를 멋지게  마친날 밤, 그 아내가 처녀
적의 공책을 하나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자기가 바라는 남편상이 10가지 적혀 있었고 "이런 
남자와 결혼하게 해주세요" 하고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되어 있었다. 이 처녀는 약사로 약국
을 하면서 40 노처녀가 되기까지 그 10가지 조건을 갖춘  남자를 찾고 있었고, 마흔살에 심
전도사와 결혼할 때 그 공책도 소중히 가지고 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밤 그 공책을 보여
준 것이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 아내가 전도사와 결혼한  이후에 과연 하나님이 나의 기
도대로 들어주셨나 하고 심전도사 모르게 체크를 해온 것이었다. 공책에 적힌 그 10가지 제
목대로 체크를 하였는데 마침내 오늘 독창회로서 그 10가지 제목이 다 이루어졌기 때문이라
는 것이었다.

    마취 시작 전 환자 위해 기도하시오
  심목사님은 10가지 제목이 무엇무엇이었는지 다 말해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제일 마지막 
기도 제목은 '내 남편은 목소리가 바리톤처럼 좋게  해주세요'였다고 한다. 심목사님 부부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행복하게 되었던 것이다. 심목사님은 흰머리에서 살아났고 40 노처
녀는 10가지 꿈을 이루었다.
  병원교회 원목은 바로 이 심목사님이다.  이분이 수술받을 환자들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주기 때문에 병원의 분위기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른다.
  이 심목사님이 나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그것은 마취를 시작하기 전에 환자의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해주라는 것이었다. 어떤 암환
자가 큰 수술을 여러번 받다가 마침내 죽게 되었는데 의사가 기도해준 것을 그렇게 행복해
하며 하늘나라로 가더라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심목사님의 부탁을 어길 수가 없어서  요즈음 환자들의 손을 잡고 기도해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나의 기도시간은 길어야 15초, 환자가 나의 기도를 듣고 내 손에 들린 마
취제를 맞고 잠에 빠지는 시간도 길어야 15초, 그러니까 합이 30초이다. 그러나 나는 심목사
님 덕분에 앞으로도 마취하는 환자에게 먼저 기도를 해주는 의사가 될 것 같다.
  심목사님 덕분에 나도 환자도 기도 속에서 편안해진다.

    2. 내가 좋아하는 수술실
    성격만 맞으면 수술실도 낙원
  우리 마취과 의사들은 수술실을 수술장이라고 하기도 한다. 수술실이 수술이 행해지는 하
나의 공간이라면 그 공간을 포함해 외부의  준비 공간까지 합해 수술장이라고 해야  하는데 
통상 둘 중 아무거나 택하여 그렇게 부른다.
  나는 수술실에 들어가면 안심이 된다. 수술실의 약간 어둑한  분위기와 무거운 침묵이 나
를 반긴다. 마취과 의사로서 수술실을 드나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조금씩 이 은밀한 분
위기를 즐기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다소 무서웠다. 그러나 점차 수술실 분위기에  익숙해
지게 되었다.
  수술실의 무거운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것은 새로운 세계 하나를  알게 되는 것과 같았다. 
그곳은 분명 하나하나의 현상적 공간이면서도 정신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나는 수술실에 거
하면서 사람들이 흔히들 왜 가끔씩 자기도 잘 모르는 다소 괴이하고 은밀한 곳을 찾고 싶어
하게 되는지 그 심리를 나름대로 조금 간파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실처럼 중요하고도 비밀
스런 장소에 있다보면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엄청난 그 무엇과 마주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럴 때면 그동안 간직해온 자신의 은밀한 내면세계의 위력을 마주 대하
는 듯한 묘한 기분이 느껴진다.
  정녕 그것은 살갗이 시큰하도록 쾌락적이기도 하다.

    최후의 가능성 가득 담은 요술공간
  어느 병원이건 수술실은 병원을 움직이는 동선의 가장 중심에  있기 마련이다. 가장 위급
한 환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수술실 앞의 복도는 항상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진 도로처럼 긴장감이 넘친다.
  한편 수술실은 병원의 가장 깊은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술실에서는 밖에 드러나지 않
는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러나  그곳에
서 현대의학에 있어서 가장 진보적이고 핵심적인 사항들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사람
들은 수술실에서는 언제나 극적인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적인 사고에 얽매여 있는 병원 경영자들에게는 수술실이 병원수입에 결정적인 역
할을 하는 장소일 것이다. 수술을 통한 치료는 환자들에게는  부담이 크지만 병원 경영자들
에게는 가장 확실한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한편 환자들에게는 수술실이 최후의 가능성을 가득 담은 요술 공간처럼 여겨질지도  모른
다. 환자의 보호자들은 수술실의 닫힌 문을 통하여 언제나  새로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
한다. 그들의 꿈이 늘 수술실의  유리문에 반사되어 현란스럽게 느껴진다. 이처럼  사람들의 
고통과 희망이 극단적으로 맞부딪치는 수술실의 풍경은 언제나 불똥 튀기는 인생만사의  파
편들로 요란스럽다고나 할까.
  수술실의 구조상 특징이라면 손을  움직이지 않고도 열리는 자동문이  많다는 것과, 복도 
구석이든 벽의 한 가운데건 오밀조밀  무엇인가를 넣어둘 공간들이 즐비하다는  점일 게다. 
그래도 그것들이 늘 부족하게 여겨지고, 또 있는 것이라도 못마땅해 보여 자꾸만 새로 고치
고 싶어지는 곳이 그곳이다. 그러니 병원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수술실의 설계와 관련해 얼
마나 고심했을 것인가. 게다가 수술실 안에 있는 기구들은  그 구조만큼이나 복잡하게 생겼
다.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붉게 반짝이는 의료기들을 다 모아다 놓다보니 공간 전체가 쟁쟁
거리고 반짝거린다. 이곳 수술실은 사람들의 생명이 보여지고 만져지는 곳이다.

    마취과 의사의 일상 엮어지는 일터
  일단 수술실의 이런 분위기가 싫은 사람이라면 마취과 의사가  되기 어렵다. 수술실은 마
취과 의사의 일상이 엮어지는 일터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흔히들 쉽게 생각하듯 외과 의사가 마음껏 활개치는  작업실이 아니다. 외과 의사
는 수술실의 손님이다. 그들은 지극히  잘 관리된 축구장에서 한 게임  축구를 하며 묘기를 
뽐내고 홀연히 퇴장해버리는 선수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마취과 의사는 수술실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마취과 의사는 수술실에서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수술
실 어느 귀퉁이 작은 약상자 속의  1cc짜리 주사기의 행방에도 신경을 써야만 하는  사람이 
마취과 의사들이다.
  그들은 환자를 마취하여 잠재우고 생명을 잠시 잠재우다가 깨울 뿐 아니라 수술하는 외과 
의사들의 손놀림에 대해서도 점수를 매기고 심판하다.  수술실만큼 치열한 게임이 벌어지는 
삶의 현장이 이 세상에 그리 흔할까. 거기는 누가 소리쳐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최고의 
소수만이 최선의 대접을 받게 되는 그런 곳이다.
  언제나 나는 수술실에 들어서면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 그곳에서는 주로 사람들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피가 흐르고, 떄로는 몹시 긴장하여 모든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타인이 되고 만
다. 하지만 거기에서 나는 한 모금 시원한 냉수와 같은 중성의 짜릿함을 맛보게 된다.  그래
서 나는 마취과 의사가 된 것이 좋다. 그리고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이나 수술실의 침묵이 
더 없이 정겹다.

    3. 마취과 의사는 누구인가
    생명의 파수꾼은 이름표가 없다
  당신이 병으로 입원하여 수술을 받을 때, 당신이 마취되어  잠자는 동안에 당신의 심장박
동이 멈추지 않고 힘차게 뛰는지 줄곧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당신의 호흡이 이상
해지지나 않을까 하고 감사하며,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인공호흡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
고 있다. 또 수술의 자극으로 당신이 무의식 중에 혈압이 높아지지 않도록 약을 주며,  영양
을 공급하며, 소변을 잘 보도록 유지시키면서, 출혈이 심해지면 수혈을 시작하고, 신체에 고
르게 산소가 돌아가도록 고심하며 보살핀다.
  당신은 그들의 존재를 알 수가 없다. 그들이 그렇게 바쁘게  활동을 하고 있을 때는 이미 
당신이 의식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수술을 하는 동안 당신의 폐와 심장에서 나
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심전도를 감시하고, 호흡을 도와주며, 체온이 내려가지 않도록 신
경을 쓴다.
  이 작업이 마취이다. 마취는 마취과 의사만이 할 수가 있다.

    재기 넘치는, 오만한 마취과 의사
  마취는 의학의 여러분야 중에서도 대단히 독특하고 인상적인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의
대를 졸업한 한 인턴은 수술실에서 마취과 의사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수술실에서 굉장히 성격이 대비되는 두 그룹, 즉 외과 의사와 마취과 의사의 그룹을 
보았다. 외과 의사들이 완고하고 정력적인  한편 싹싹하고 붙임성 있으면서  거친 자신감을 
갖는 집단이라면, 마취과 의사들은 지적이고 재기가 넘치는 관찰자이면서 초연해 뵈는 오만
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수술을  받는 환자들의 생명을 시시각각  지켜주는 사람은 
외과 의사가 아니라 바로 마취과 의사들이었다. 외과 의사들의 일은 기계적인 것이었다.  대
부분의 수술에서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위험은 자르고 꿰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신마
취에 달려 있었다. 마취과 의사들은 인간 의식의 화학요법사들이며 통증에 대한 기능사들이
며 삶과 죽음의 둑길을 끊임없이 넘나드는 환자들을 인도하는 안내자들이다. 그들의 치밀한 
눈길에 의해서 환자의 혈액과 뇌 속으로 망각의 안개가 흘러들어가고,  또 그들의 단 한 번
의 실수에 의해서 환자의 정신은 영원히 떠나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중략> 나는 학교 다
닐 때 마취과 의사가 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마취과 의사는 외과 의사에 소속되
어 조종을 받는 사람들일 줄 알았다. 마취과 의사가 되려면 그러한 조종을 받는다는 느낌을 
이겨내는 강인한 정신을 가져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마취과 의사들은 그런 생각을 지니
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을  그 오묘한 마취의 과학으로 계획
하고 연출하는 연극에 외과 의사들을 배우로  쓰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였
다. 나는 그들의 천연덕스러운 우월감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수술한 환자 생명의 청지기 자부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환자들의 병을 고치고 감사의 말을 들으며  보람을 느끼게 된다. 흰 
가운을 입고 이 병실 저 병실 회진을  다닐 때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전하여져 오는 애절한 
눈빛을 통해서 자신의 권위를 누리고 만족을 얻는다. 그러나  마취과 의사에게는 이런 것이 
없다.
  마취과 의사는 환자로부터 '의사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한마디 말조차  들을 수 없다. 왜
냐하면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오면  소개하거나 인사할 겨를도 없이  마취에 들어가야 하고, 
또 마취가 깰 때 쯤이면 다른 환자의  마취를 위해서 떠나고 환자는 회복실 간호사의 손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설령 인사할 시간이 있다 하더라도 마취과  의사와 환자는 서로를 기억
할 수가 없다. 수술실 안에서  마취과 의사들은 수술복을 입은 데다  얼굴엔 마스크를 하고 
머리엔 수술모자를 쓰고 있다. 환자들은 마취를 전후하여 긴장에 휩싸여 정상적인 기억능력
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심만만하여 남 앞에 나서기 좋아하고, 가시적인 인기와 만족감을 즐기려는 성격
의 사람이라면 마취과 의사로 장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남의 눈에 띄지 않아도 부지런
히 일하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도 혼자 미소짓는 비밀을 배운 사람
들에겐 마취과 의사만큼 좋은 직업이 따로 없다. 그런 사람에게 마취과가 있다는 것이 행운
일 것이다.
  마취과 의사들은 그동안 조용한 곳에서 많은 일을 해왔다. 마취란 마치 대지나 호수 같은 
존재로 의학의 나무가 자라는데 기초가 되고 양분이 돼왔다.  본래 마취는 질병이나 상처로 
손상된 육체의 아픔을 제거하는 기술이었으나 이제는 인간이 그 어떤 공격적인 수술에도 고
통을 느낄 수 없도록 깊이 잠재우는 생명유지과학이 되었다.  마취 앞에서는 야수나 미물도 
항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취의학은 외과수술 뿐 아니라 현대의학의 전반적인 발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인
간에게 수술이나 투약이 이루어지기 전에 행해지는 수많은 동물실험들은 마취의학의 기여없
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사경을 헤메이는 중환자의  관리나 난이도 높은 현대적
인 장기이식의학에 있어서는 마취의학의 핵심적인 생명유지 기술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말기암의 죽음같은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통증 제거술이 마취의
학의 새로운 분야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는 마취의학이 고대의 마취술의 개념으로 회귀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 흥미롭다.

    마취과 의사의 이름은 없다
  당신이 수술을 받을 때, 혹시 의식이 있으면, 가만히 눈을 뜨고, 당신 주위를 둘러보라. 그
러면 반드시 누군가 당신이 본 적 없는  의사가 당신을 위해 뭔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의 얼굴은 수술용 모자와 마스크로 가리워져 있고 가슴에 이름표는 
달려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그의 얼굴이나 이름은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당신이 그를 
기억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바로 마취과 의사이다.
  그는 이제부터 당신을 그 지독한 수술의 고통 가운데서 잠들게  한다. 그 잠은 그가 당신
에게 준 것이고, 또 당신이 깊이 잠든 사이에는 바로 그가 당신 생명의 문고리를 충실히 지
켜주게 된다.

    4. 수술실의 큰 손님, 외과계 의사
    외과 의사들은 창조적이고, 낙천적이며, 고집이 세다
  세상에 의사는 많다. 의사가 된 사람의 숫자도 많지만 하는  일에 따른 의사의 종류도 많
다. 의사가 되려면 의과대학을 나오고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의사자
격을 가졌다고 다 비슷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일단 의사가 된 후에  그들의 하는 일은 
각자의 얼굴 생긴 모양만큼이나 서로 다르게 변하여 가기 때문이다.
  같은 이름으로 불려지면서 그 하는 일의 차이가 의사만큼 다양한 직업도 흔치 않을 것이
다. 의사가 되면 각자의 전공 과목이 있고 그 전공 과목도 극히 세분화된다. 그래서  심지어 
같은 전공을 한 사람도 동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의사로서 생활을 꾸려나가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종합병원에서 일
하는 월급쟁이이고, 어떤 사람은 개업을 하여 월급을 주는 사람이 된다. 어떤 사람은 공무원
이 되고 어떤 사람은 기자가 되고, 외국의 어떤 의사는 대통령이 되기도 했고, 또 어느 나라
에서는 의사가 영업용 택시기사를 한다고 한다. 그래도 그들의 직업란에서 의사라는 글자는 
지워지지 않는다.

    적극적, 창조적이며 모험심이 강해
  그 많은 의사 중에서 수술실에 들어올 수 있는 의사는 많지 않다.
  수술실에 들어오는 의사들은 늘 수술실에서 생활하는 마취과 의사 이외엔 거의  예외없이 
일반적으로 외과 의사라도 불리는 외과계 의사들이다.  외과계의사란 수술로서 치료가 되는 
류의 질병들을 다루는 의사들이라고 보면 된다. 수술은 손등의 사마귀만한 종기를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온 몸에 퍼진 악성종양인 암이나 심장과 간의 이식수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 각종 사고로 인한 골절과 타박, 절개 및 화상 종류 등도 외과계 질환들이다.
  수술은 칼종류, 가위종류, 바늘종류와 실종류로 병소를 제거하고 건강하게 하는  작업이라
고 볼 수 있는데, 종류라고 한 것은 그 각각의 가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에 따라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거나 행동하는 방식, 얼굴
의 모양도 바뀌어 간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외과 의사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외과 의사
들은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성격의 모험심 많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학교다닐 때에 대체로  친구들 모임에 잘 안빠지던  사람들이고, 남자라면 연애를 
한 번 이상 하던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판단력이 빠르고 낙천적이며 고집이 센 것
도 공통점이다. 어쨌든 그들은 같은 의사무리 중에서 보면  일반적인 수준에 비해서 양기가 
충만한 사람들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의 캐릭터라 하면 대충 아주 돈키호테이거나 
아주 세련되고도 거만해 뵈는 스타일 사이에서 스펙트럼을 이룬다고  보면 된다. 너무 온순
한 사람이나 기가 꺾인 듯한 성격의 외과 의사는 거의 찾을 수  없다. 혹 있다면 성격이 바
꾸어지거나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어느날  이후 수술실에서는 영영 안보이게  되고야 만다. 
그러나 누구나 인정하는 완전한 타입의 외과 의사들은 수술실에서 대단히 치밀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는 외과 의사들이 체구가 자그마하고 군살이 없어
서 일견 약해 보이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메스와 같이 날카롭다는 느낌을 주는데, 
바로 그것이 외과 의사의 진면목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외과 의사란 오직 그가 행한 수술로써 평가받는다는 확신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이다.

    능수능란한 손재주로 행운을 가져와
  외과 의사들이란 뭐니뭐니해도 수술을 잘 해야 최고다. 수술은 언제부턴가 현대의학의 꽃
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고대나 근대의 의학에서는 현대의학에  비해 수술이 
가장 발달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인간이 인체를 자유자재로 수술할 수 있게 된 시기는 극히 
최근에 들어서였다. 그것은 마취술과 수술 기계들의 발달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점에서  외
과 의사들은 현대적 의학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들에게는 우선 능수능란한 손재주가 생명이다. 수술은 역시 외과 의사의 손끝에서 이루
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과 의사가 되는 길은 예술가가 되는 길 만큼이나 험난
하고 고통스러운 고난의 여정이다. 그들은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는 과중한  훈련을 극복해 
연단되어지는 의사들이다. 외과 의사가 되려면 먼저 신체와 정신이 건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기본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난해한 의학적인 기술들을 소화해낼 수 있고 주위 사람
들과 화합하면서 현란하게 수술 테크닉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외과 의사들은 현대의학의 근위병과 같이 화려한 모습으로 그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래서 외과 의사들은 의사 중에서도 돋보이는 멋쟁이들이었다. 특히 수술실에서 그들은 멋
있어야 하고 힘차 보여야 하는 의무를 지닌 사람들과 같아 보였다.
  인격이 고매하고 재능이 비상한 외과 의사  한 사람을 수술실에서 만나는 기쁨은  상상을 
초월하기에 신앙의 기쁨과도 같다. 수술실은 묵묵히 그런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외과 
의사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항상 메아리칠 날은 언제인가.  그는 환자들에겐 행운을 주
고 수술실에 꽃향기가 가득 깃들게 하는 멋진 사람이다.
  외과계의사는 산부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일반외과,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흉부외과, 
비뇨기과, 안과 등의 전문과목을 가진 의사들이다.

    5. 수술실의 간호사들
    눈만 예쁘면 천하일색?
  수술실에는 마취과 의사와 외과 의사 외에 수술실 전문  간호사들이 있다. 사실 언제든지 
수술실에서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수술실의 간호사들이다. 그들은 의사보다 
숫자가 많고, 이곳 저곳을 오가며 다양한 일을 하기 때문에 훨씬 활동적으로 보인다.
  수술실의 간호사들은 각자 세분화된 분야에 따라 일을 하게  되어 있다. 수술을 같이하는 
간호사가 있고 수술에 필요한 기구들을 체크하고 끝없이 보충하는  간호사가 있다. 또 전반
적인 연락을 담당하면서 각각의 기능을 통괄하는 간호사도 있다.

    수술실의 경찰 같은 미더운 존재
  오늘날 수술실에서의 간호사는 더 이상 '의사의 일을 도와주는' 조력자의 위치에 있지  않
다. 그들은 의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일하는 전문인들이다. 수술실에서의 간호업무는 육
체적으로도 대단히 힘들기 때문에 사실상 남자  간호사에게 제격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
서도 앞으로 남자 간호사들이 많이 나와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수술실의 일들은 아직은 여성들이 대부분인 간호사들에게 담대함과 치밀함 등의 공격적인 
성품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수술실에서  오래 근무한 간호사들은 특수부대  요원과 같은 
견고함이 전신에서 풍겨질 정도이다. 처음엔 나약해 보이던 사람도 날카로운 긴장의 연속인 
공간에서 지내다 보면, 어느새 심성이 변화되는  간호사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수술실을 떠나는 간호사들도 있기 마련이다.
  마취과 의사나 외과 의사들에겐 영리하고 일에 능숙하며 수술실 분위기가 몸에 밴 경력이 
많은 간호사 한 사람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모른다.
  그들은 또한 수술실의 경찰과 같은 역할을 해낸다. 누구든지  수술실에 처음 와서 서투르
게 머뭇거리면 어김없이 수술실 간호사들에게 붙들려서 신분을 확인 당하고 경우에 따라 호
되게 야단을 맞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의과대학생들이  임상실습을 위해 수술실에 들어오
면 선배 의사들보다 수술실  간호사들을 더 무서워하는데, 이는  간호사들의 예리한 눈길이 
서투른 예비의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샅샅이 훑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는 처음 들어와 본 수술실의 분위기가 한없이 낯설고 어렵기 마련이다. 게다가 
복잡한 기계는 많고,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뭔가 몸에 닿아  수술을 곤란하게 만들 것만 같
아 긴장하다 보면 반드시 자그마한 실수라도 저지르게 된다.  그때에 옆에서 도와주는 간호
사의 가르는 듯한 한마디는 순진한  실습학생을 순식간에 무너뜨려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실습학생들에게 간호사가 수술실에서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러한 감정은 졸업 후 인턴이 되어 수술실에서 다시 만나 일하고 싸우며 정이 들 때까지 
지속된다.

    수술실의 간호사, 눈빛 하나로 의사 매료시켜
  수술실에서 의사와 간호사간의 로맨스는 병원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 거리이다. 
수술실의 사랑 이야기는 전쟁터의 사랑 이야기 만큼이나 애틋하고  감동적일 때가 많다. 의
사들과 거칠게 부대끼던 간호사가 어느날 선배 의사의 부인이  되는 순간을 상상해보라. 그
래서 수술실에서 오래 지내게 되면 사람 대하기가 조심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래 전부터 수술실 의사들 사이에 '눈만 예쁘면 천하일색'이라는 말이 회자돼 왔다. 그것
은 긴장감이 감도는 수술 중에 총각 의사들에겐 오직 간호사들의 눈망울만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의대를 갓 졸업한 순진한 총각의사들은 눈망울 하나에도 마음을 다 뺏
기고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은 처음엔 여자의 눈이 다 같은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
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에게 맞는 기막힌 눈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속눈썹
이 긴 간호사의 이름은 총각 인턴들의 입에서 입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눈화장
에 신경을 쓰는 수술실 간호사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찌 되었건 수술실에서 사랑까지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능력있는 친구들이다. 그들의 사
랑으로 수술실이 따뜻해진다. 그들의 능력은 결혼해서도 대부분 아주  재미있게 잘 사는 것
을 보아도 족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수술실의 간호사들은 적극적이고 쾌활한 여성들이다. 야유회를  가도 재미있고 회식 후에 
에프터를 가도 신난다. 특히 갓 졸업하고 수술실에 들어온  간호사들은 수술실 의사들의 애
정을 많이 받고 자라게 된다. 그들은 부원들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인턴과 싸우면 지지 않
는다.
  점차 수술실에 익숙해진 간호사들은 의사들의 세계를 잘 알게  된다. 의사들 속에 감추인 
과장과 권위의식의 약점도 꿰뚫고 있다. 유능한 간호사만큼 외과 의사들의 손기술을 객관적
으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날 그들이 정색을 하고 의사들을 평가
하면 그 말이 창끝처럼 무섭고 옳다. 그러면서 그들은 나이가  들고 슬슬 능구렁이 같이 변
하게 되는데 아무도 그 속을 파낼 수는 없다.
  그렇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십년 내외이며 적어도 서른 다섯이 넘은 수술실의 간호사
치고 의사가 만만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6. 수술대, 그 한없이 무거운 그림자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무정한 공간, 수술대
  수술실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기구는 아마도 수술대일 것이다.  수술대는 수술 받는 사람
이 눕게 되는 침대이다. 그래서 수술대만큼 사람들이 피하고 싶은 차가운 침대는 세상에 없
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 편에서  보면 수술대는 주부에게 싱크대만큼이나  요긴하고 절실한 
기구이다.
  수술대의 유래는 이집트 벽화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오래전 이집트의 장의사들이 가장 
먼저 수술대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환자를 수술해 병을 고치는 기구가 아니었다.  그
들의 수술대는 미이라를 만드는 작업대였다.  그들은 거룩한 시체를 들어다가  수술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 그 머리와 배를 열어 장기들을 꺼내어 씻어서 따로따로 병속에 넣어 보관하
고 몽둥이 속에는 박하와 유향같은 향기나는 방부제로 채워  미이라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시체에서 뇌를 꺼내고자 할  때에는 수술대의 머리 부분이 위쪽으로  20도쯤 
꺾어졌으면 하고 바랬을 것이다. 그리고 높이도 좀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 
심장을 도려낼 때에는 침대의 가슴부분이 뒤로 볼록하게 젖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
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의 심장은  생각보다 깊은 곳에 감추어진 듯  질긴 막에 싸여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시체의 허벅지 부분을 닦을 때에는 '침대가 다리 모양처럼 양쪽으로  벌어
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라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중얼거렸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이놈의 시체와 작업대를 한꺼번에 방 귀퉁이로 옮겨 놓고 잠깐 방가운데서 다
른 일을 보았으면 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수술대 옆에 서면 인생이 보인다
  오늘날의 수술대가 그렇다.
  그것은 고대 이집트의 장의사들이 바라던 바와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다. 수술대는 머리부
분을 원하는 각도만큼 굽힐 수  있고 들어 올릴수도 있으며, 가슴이나  배 부분을 볼록하게 
또는 오목하게 만들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높이를 들어 올리거나 낮출  수 있으며 수술방 
가운데서 한 바퀴 빙 돌릴 수도 있고 원하기만 하면 모퉁이나 벽 가까이 끌고 갈 수도 있게 
되어있다.
  수술대는 의료기구 중에서도 가장 먼저 자동화된 기구에 속할  것이다. 그러기에 좋은 수
술대의 가격이 조그만 개인 병원을 만드는 것보다 비싸다는  말도 나오게 되었다. 수술대도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왠만한 것은 전후중 상하좌우 높낮이와 경사도를 정교하게 조절
할 수 있고 여기저기 옮길 수 있다. 외과 의사가 환자의 수술에 필요로 하는 범위에서는 모
든 각도로 회전이 가능하다.
  수술대는 사람들에게 있어 어쩌면 사형대 다음으로 가장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기구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술대 위에 오르지만,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기도를 할 것이다.
  수술대는 무정하고 차갑다. 수술대는 그가 누구이든지 그 위에  누운 사람에게 온정을 베
푸는 법이 없다. 그래서 더욱 거기에 눕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약이란 
약은 다 써보고 결국 수술을 해야만 되겠다고 할 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수술대에  눕기
로 결심을 한다. 그래서 수술대에 누워야 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수술대가 비명을 지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수술대  위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병이다. 수술대 옆에서 인생을 생각하면  산다는 것의 그림자가 무엇인
지 어렴풋이 보인다. 
  그 정교하게 움직이는 차가운 수술대는 보통 수술실의 한 가운데에 있다.

    7. 수술실에는 기계들도 살아있다?
    사람의 생명을 느끼는 기계들
  현대의학은 물리학, 전자공학과 같은 통합적인 과학 발전과 함께 더불어 발전해왔다. 수술
실은 첨단과학이 의학에 응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시스템 공간이라고  볼 수가 있다. 수술실
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고도의 복잡성을 지닌 기계처럼 구성되어 있다. 수술실의 독특한 점은 
전반적인 기능이 병원의 일반적인 기능과 연결이 되어 있으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독립적
으로 보호되어 운용되기도 한다는 데에 있다.
  수술실은 병원의 여러 설비와는 독립된 아주 특별한 기능단위이다.  가령 병원 전체에 정
전이 돼 모든 불이 꺼진다 하더라도 수술실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되어 있다. 또 병원 전
체의 수도 시스템과는 별도로 수술실만의  수도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수술실의 기계설비들이 독립적으로 운행됨으로써  급한 수술이 늘 가능하고,  또 수술 중에 
외부 요인으로 수술이 중단되지 않도록 장치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수술실 기계장치의 특
징은 모든 것이 사람의 생명을 최악의 상황에서라도 어떻게든지 건져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수술실에서는 언제든지 쉽게 인공호흡이 가능하며  인간의 생명을 최후까지 소생시킬  수 
있는 기구나 약품이 늘 구비돼 있다. 그러므로 의학적으로 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생명구조 장치가 설치되고 항상 가동되고 있는 곳이 바로 수술실인 것이다.
  이러한 기계장치들은 물론 사람이 관리를 하고 있지만 이중 삼중의 경보체계가  갖추어져 
있어서 절대적으로 믿을만 하다. 이를 보면 마치 기계들이  살아서 기계를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나아가서는 그 기계 장치들이 수술받는 환자의 생명을 지켜주고 있는 셈
이다. 그래서 수술실에는 기계가 가장 정상적으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산소공급장치가 가장 중요
  수술실의 가장 중요한 기계장치 중의 하나는 산소공급장치이다. 산소는 생명의  가스이다. 
대부분의 대형 병원에서는 산소를 액체상태로 보관한 후 기화시켜  사용하게 된다. 이때 액
화산소는 저온고압상태로  보관되는데,  온도는 영하   105도씨 이하이며  압력은 약   7000 
mmHg 이상이 된다. 이러한 저장 산소는 파이프를 통하여 수술실로  운반되면서 상온의 기
체로 변화되고 숨쉬기에 적합한 압력으로 조절되어야 한다. 수술을 받는 전신마취상태의 환
자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것은 생명유지의 절대적인 조건이다.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수술실
에서 효과적으로 산소를 공급할 수  있었고, 의학의 획기적인 발전이 가능했다.  근대의학의 
초기에 수술실에서 사망사고가 많이 발생하게 된 것은 산소공급장치의 불안과 밀접한  관계
가 있었다. 산소공급장치의 발달로 인해 다른 기체들의 공급기술도 발전되었다. 마취에 반드
시 필요한 이산화질소와 정제된 공기의 공급장치, 감압흡인 장치의 개발도 동시에 이루어졌
다.
  또 하나 수술실의 중요한 기계는 전신마취기계와  그 부속기계들이다. 전신마취기계는 인
간의 몸속으로 마취약물을 정밀한 농도로 주입시키는 장치이다.
  전신마취를 위한 마취약들은 주로 폐를 통하여 들어가기 때문에 반드시 인공호흡기와  연
결되어 있다. 인공호흡기는 수술 중의 환자를 기계적으로 숨을 쉬게 하는 장치이다.  인공호
흡기는 기계로 숨을 쉬게 하지만 거의 인간의 호흡기능과 유사하게 작동하도록 하여 부작용
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있다.
  전신마취에는 마취약이 적당한 농도로 조절되도록 하는 정밀한 조절장치가 하나 더  달려 
있다. 마취약이 과도한 농도로 투여되면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고 너무 적게 투여되면 마취
가 되지 않게 되므로 엄밀한 시험과 반복적인 테스트를 거친 초정밀의 조절장치이다.
  전신마취의 부속기계들로는 심전도  측정장치, 자동혈압 측정장치,  산소포화도 측정장치, 
이산화탄소 농도 측정장치 등이 있다. 이러한 장치들은 모두 정상치와 비정상치를 구분하고 
비정상시에는 비상음을 울리며 붉은 신호를 깜박이도록 안전장치가 되어 있어 환자의  생명
을 어떠한 경우에도 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외의 수술실 기계장치는 그 수술실에서 행하는 수술의 종류와 병원당국의 수술실에 대
한 수술장비 현대화 의지에 따라 대단히 다양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것들은 고도의 생명
소생장치, 약물주입장치, 수술용 현미경을 비롯한 정밀수술장치, 수혈장치, 각종 방사선 촬영
장치 등이다. 이러한 각종 장치설비들은 수술실이 이제 몇몇  의사의 손기술에 의지하여 수
술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그러므로 이제 수술은 인간의 지적 의지와 과학이 결합된 현대의료의 총화적 개념으로 이
뤄진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제2장 마취
    1. 마취의 역사
    수술이 잘 되려면 마취 성공해야
  마취란 무엇인가?
  마취란 한자어대로 사람의 의식과 근육운동을 마비시켜 그 어떠한 고통스런 자극에도  신
체적인 반응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의학적인 기술을 말한다. 그래서 마취가 된, 또는 마취걸
린 사람은 의식을 잃어 가사상태가 되고 온 몸의 근육은 힘을 잃어 신경을 자극해도 움직일 
수 없는 무반응 저항불가의 기능해제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인체에 생긴 병소를 수술로 제거
코자 할 때 마취기술이 꼭 필요하다.
  오늘날은 마취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이다. 지금은 잘 정제되고 정확히 계산된 약물의 
투여로 마취의 시작과 끝, 마취심도의 조절을 지극히 미세하게 조종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래
전 옛날, 마취역사의 초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고대에는 그야말로 마술인지  마취인지 
구분할 수 없는 방법으로 마취가 이루어졌다.
  고대 인류의 조상들이 흔히 사용하던 마취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겠는가?
  기록에 나타나 있는 것들로는 아편의 즙과 열매를 씹거나  환부에 바르는 것, 코카나무의 
잎사귀를 입으로 잘근잘근 깨무는 것, 알콜(술)을 마시고 취하게  하는 것, 의도적으로 머리
를 때려 기절시키는 것, 정령을 부르면서 도취상태에 있게 하는 것 등이 있다. 이러한  방법
으로 각종 통증을 해소하려 했으며, 외과수술이나 기타 질병으로 인한 통증을 무마시키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방법들은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극히 무지하고 거칠어 보이는 마취법이
지만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런 고대인들의  마취방법이 현대의학에도 그대로 응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옛날의 오솔길에 고속도로가 놓이듯이  오늘날의 마취의학에도 고대마취의 자
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고대인이 썼던 아편제제는 이 시대에도 가장 훌륭한 마취제로서 고난도 심장수술이나  각
종 중요 장기의 이식수술 마취에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고, 코카인은 국소도포마취제로서 현
재도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 더구나  이집트인들이 아편을 쓸 때에
는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히요캄이라는 식물의 즙도 같이 썼다는데, 이 히요캄은 오늘
날의 스코폴아민으로서 역시 아편제제인 몰핀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 같이 투여되고 있다. 
이집트인의 처방이 현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오늘날에는 자연산의 약물을 순수하게 정제하는 기술이 발달했고, 화
학적 구조를 밝혀내어 새로운 합성 약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고대에는 오늘날과 같이 정밀한 방법으로 폐까지 관을 넣어 인공호흡을  시키면서 
전신마취를 시행하는 식의 마취법은 없었다. 고대의 의사들은 산소가 허파에 들어가 피속으
로 녹아서 세포로 전달되는 것을 몰랐고, 현대의 의사들은 그것을 아주 자세히 알고 마취에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취의 일면에서 볼 때 고대와 현대의 차이는 생명 밖에서 기술을 
이용한 것과 생명 안에서 그것을 사용한다는 데에 있다.  오늘날의 마취술은 사람의 생명기
관인 심장과 폐의 기능까지도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일반인이 마취의료 혜택 누려
  서양에서 오늘날의 마취를 의미하는  'Anesthesia'라는 말을 문헌에  최초로 남긴 사람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스코리데스(Pedanius Dioscorides,  ?∼A.A.68, 네로 황제의 주치의)이
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종군의사이기도 했는데 전쟁터를 다니면서  각종 식물의 약효를 조
사하던 중 만드라고라(mandragora)라는 식물의  중독성과 최면성을 확인하고, 처음으로  이 
용어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것이  1721년의  Bailey사전(Universal Etymological   English 
Dictionary)과 1771년의 대영백과사전(The Encyclopedia Britanica)에 '감각의 소실(a  defect 
of sensation)' 또는 '감각의 박탈(a deprivation of the sense)'을 의미하는 단어로 나타나게 
되었다. 'Anesthesia'로부터 파생된 용어들로는  Anesthesiology(마취과학), Anesthesiologist
(마취과전문의사), Anesthetist(마취간호사), Anesthetics(마취약제) 등이 있다.
  이 'Anesthesia'란 단어가 의학의 한 분야인 마취의학을 의미하게 된 것은 미국에서 최초
로 공식적인 마취간호사 모임이 이루어졌던 1911년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간호사들이 마취를 하였고 마취에 관한 기술이나 지식은 의사들의 관심밖에  있
었던 것이다. 그런데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항생물질의  개발과 정맥주사법의 발달, 새
로운 소독술의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수술의 성공률이 높아지자 비로소 마취의 중요성이  깊
이 부각되게 되었다. 마취의 성공이 곧 수술의 성공과 직결되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
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마취과  전공의사들의 모임이 결성된  시기는 1945년으로서, 
이는 현대 마취의학의 발전이 2차대전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급속도로 이루어져 
왔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이는 또한 일반인들이 마취의료의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이  극히 최근으로, 불과 20∼30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는 아직도  지구상 과반수 이상에 해당하
는 사람들이 현대적인 마취의학을 경험하지 못한  채 수술이 가능한 작은 병에도  죽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뒤늦게 출발한 마취의학은 이제 의학의 각 분야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
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다른 영역의 전문의사들이 새로이 마취과 레지던트로 들어오는 경우
도 흔히 있는 일로, 이제 마취분야는 관심있는 의료영역이 되었다. 미국에는 1997년 현재 약 
32,000명의 마취과 전문의가 있고, 매년 약 1,300명의 새로운 마취과전문의가 탄생한다.

    경험이론 정립 못한 극동의 마취의학
  극동지역에서는 1947년 일본인 해부학자 스기다씨가 네덜란드 의사인 살리우스(J. Salius)
의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Anesthesia'를  '마취'란 말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이 말이 
당시 일본을 통해서 서양의학을 접하게 된 한국과 중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오
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전의 동양의학에서는 감각을 없애는 특수한 의학적 기술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 있지 않
다. 동양의 의학은 다른 학문에서와 마찬가지로  통합적인 질병치료의 개념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양의 의사들에게는 내과니 외과니 하는 개념이 애당초 없었고,  따라
서 마취술도 전체적인 의료의 한 부분으로서 침술이나 탕약에 섞어 녹아 들어가 있었던 것
이다.
  기록에서는 중국의 신농(또는 염제)이란 지도자가 기원전  2800년경에 이미 '본초경'을 편
찬하여 자신이 스스로 씹어 시험한  365가지 약초의 효능을 입증했다고  한다. 그는 아마도 
마취식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으리라고 짐작이 된다.
  그 이후 마취술과 외과술을 겸비한 보기드문 의사는  후한시대(A.D 230년경)의 화타였다. 
그는 관우라는 장수의 뼈에 박힌 화살촉을 수술로 제거하고 독특한 외과적 해독술을 이용해 
생명을 구했다. 중국역사에 이처럼 구체적인 질환과 치료의 예를  그 시술자의 이름과 함께 
기록한 것은 희귀한 경우이다. 그만큼 그의 시술이 탁월하였던 모양이었다. 나중에 그는  조
조의 두통을 두개골 개방 및 부분적 뇌절제술로 치료하고자 하였으나 그의 마취술을 의심한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여 무의로 끝나고  말았다. 미루어 보건데 동양의  의학사에서 위대한 
마취과 의사 한 사람이 죽어간 것이었다.
  이러한 동양의 마취의학은 끝내 이론의 정립을 이루지 못하고 무의미한 민간요법만을  난
마처럼 얽히게 하다가 마침내 서구의 의학에 송두리채 넘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독특한 침술 마취법이 존재하기는 하였으나 그 효과가 모든  경우에 
동일하지 않았다. 그리고 특수한 몇몇 사람의 기술로만 머물렀기  때문에 결국 분명한 약품
을 이용한 조절마취식의 서양 마취술을 앞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 6.25전쟁기에 미군 군의관을 통해  근대적인 마취술과 마취의학이 
전달되었다. 우리나라 의사를 미국에 보내어 마취과  전문과목을 공부하도록 도와준 유엔군 
군의관의 이름은 팔머(Palma)대위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우리 군의관에게  우선 국내에서 
단기마취교육을 시켜주었다가 점차 미국에 파견시켜 정식마취를 배우게 해주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마취과 전문의(미국에서 받음)는 해군 군의관이던 김인현(1953) 중령이었다.
  대한마취과학회는 1956년에 출발했으며 현재 마취과 의사 수는 1,717명이다(1997년 현재). 
그리고 매년 180여명의 새로운 마취 전문의가 탄생하고 있다.

    2. 제발 '마취'라고 써주세요!
    마취과 의사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글자
  마취를 한자로 어떻게 써야 바른가? 대한마취과학회에서 인정하는 한자어 표기는 '마취'이
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마취'라고 써야 올바른 한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신문에서조차 계속  잘못 표기하고 있다. 신문에서는 
흔히들 '마취'라고 쓰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표기인데 왜  계속하여 그렇게 쓰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 대한마취과학회에 한 번이라도 물어 보았다면 그런 오
류가 그토록 반복되지는 않을 터인데.
  아마 독자들도 마취를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
기도 한다. 그러나 글은 정확하게 써야 되는 것이다. 신문에서조차 마취라고 쓰고 있는 것은 
신문을 편집하는 분들이 무성의하거나 무지하다고 밖에 볼수 없는 일이다.

    의사들 조차 혼돈하는 마취
  물론 '마취'라고 써도 의미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혹자는 일본이나 중국에
서는 다 '마취'라고 쓰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
나라에서는 반드시 '마취'라고 써야 한다. 왜 마취인가?  왜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마취'라고 
쓰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마취'라고 써야 하는가? 거기엔 우리 나라만의 사정이 있
다.
  마취란 말은 1847년에 스기다라는 일본의 한 탁월한 해부학 선생이자 저술가이던  사람이 
제자들을 위해서 서양의학서를 번역하면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후 그 책이 일본의 의학교
육에 사용되면서 한국과 중국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원래 마취의 올바른 한자표기는 마취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마취를 한자
로 마취라고 썼다고 한다. 이는 일본이나 중국과 같았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쓰지 않게 된 이유가 있었는데,  이는 비슷한 글자로 인하여 발음상의  문제가 자주 발생한 
탓이었다.
  한자를 비교적 정확히 쓴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마' 자와 '임' 자를 구별하여 쓸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글자는  한글 발음상 '마'와 '임'으로서 아주 다른 
글자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마취'를 '임취'라고 부르고 또 한자로는 '마취'를 '임취'라고 쓰는 
일이 반복적으로 생겨나게 된 것이었다. 심지어는 의사들조차 이를 구분하여 쓰지 못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마'자를 자꾸 '임'자와 혼동하여 기록하였고 또 '마취'로 읽기도 
하고 '임취'라고 읽기도 했다. 게다가 그 '임'이라는 글자와 '임질'이라는 질병을 생각게 하는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에 마취과 의사들의 자존심을 자극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아직 마취과 전문의도 많지 않았고, 마취의학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관심도 없
었으므로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전반적인 의학의 발달과 함께 마취의  중요성이 깊이 강조되고, 마취
과 전문의사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대가 오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마취과 의사가 의대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과목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전세계적
으로 마취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대한마취과학회의 영향력도 그만큼 커지게 되었다. 그러
자 자연히 그동안 마취를 한자로 오기하던 문제가 심각히  논의되었다. 마취과 의사들은 누
구나 '마취'가 '임취'로 불려지고 '임취'로 쓰여지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서 팔을 걷어 부치고 오해없는 다른 글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들이 찾는 글자는 발음은 분명히 '마' 하나이면서, 삼척동자라 할지라도 다른 글자와 혼
동할 염려가 없는 모양으로 생기고, 그 의미에 '마취' 또는 '마비'의 뜻이 담긴  한자였다. 그 
작업은 마취과의 미래를 담는 작업이었고 마취과 의사의 자존심이 걸린 작업이었다. 그러나 
적당한 글자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삼베옷의 운명처럼 사라져가던 글자
  그래서 찾은 글자가 '마'자였던 것이다. 이 글자는 강희자전에서 부수를 찾기조차 쉽지 않
을뿐더러, 그 흔한 한시귀절에도 잘 등장하지 않아 사람들의  주목이나 사랑을 받지 못했었
다. 그나마 삼베옷을 입던 때에는 마의태자 운운 하는 식으로 잊혀지진 않았으나,  20세기에 
들어서는 마침내 삼베옷의 운명처럼 사라져가던 가련한  글자였다. 그러나 마취과 의사들의 
눈에 뜨임으로써 그 신세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 글자는 첫째, '임' 자와 혼동될 염려가 전혀 없었다. 아예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면 몰라
도 이 '마' 자를 '임' 자로 읽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둘째로 이 글자는 본래의 '마'와 
의미가 상통하였다. 더구나 마약제재가 한창 마취제로서 떠오르던 때였기 때문에 더욱 안성
마춤이었다.
  그러므로 글자를 찾던 마취과 의사들에게는 둘도 없이 알맞은 글자였던 것이었다. 글자를 
보아하니 모양도 점잖게 생겼고 더구나 마취의학의 신비스런 효과를 넌즈시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마취'가 대한의학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한자가 된 것이다. 마취의 '마'
자는 그렇게 탄생한 글자였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마취를 '마취'라고 써야 한다.  지금까지는 잘 몰라서 그
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후에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고집스럽게 계속
하여 마취를 '마취'니 '마취'니 하고 적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내 친구들 중에는 심지
어 '마취'로 적는 녀석도 있고 '마취'라고 적겠다는 놈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그래도 마취는 마취인 것이다. 마취!!!

    3. 마취의 종류
    마취의 기술은 예술처럼 다양하다
  마취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수술에 따른 마취방법이 있고, 마취기술에 따른  마취방
법이 따로 있다. 또 수술을 받게 되는 환자의 연령과 건강상태, 질병에 따라 각각 다른 마취
의 기술이 요구되고 있다. 마취과 의사는 이러한 마취법을  환자와 수술에 적합하게 선택하
고 세련된 마취기술로 환자에게 실행하게 된다.

    환자의 심리적 안정감도 주요 잣대
  마취는 크게 전신마취와 국소마취로 양분할 수가 있다. 전신마취는 말 그대로 온 몸이 다 
마취상태에 이르게 하는 마취방법이다. 전신마취를 시행하면 환자는 의식을 잃게 되고 오직 
마취과 의사에 의해서 생명현상이 유지되게 된다.
  국소마취가 전신마취와 다른 점은 마취상태에서도 환자의 의식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
다. 국소마취는 환자의 수술부위의 감각만을 잃게 함으로써 전신마취로 인한 생명의 위험과 
정신적인 무방비 상태를 예방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수술 중에도 의식이 있다는 것이 꼭 
환자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어서 마취과 의사는 환자의 육체상태 뿐 아니라 심리적인 안정
감도 반드시 알아보고 난 후 마취법을 결정하게 된다.
  현대에 들어서는 특수한 환자의 경우에  전신마취와 국소마취를 같이 시행해서  마취약의 
양을 줄여 환자를 마취제의 독성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이 새롭게 강구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특히 나이가 많은 환자나 과도한 출혈이 예상되는 환자들에게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마취의학을 새로운 의미의 치료의학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전신마취방법은 마취제의 투여방법에 따라 흡입 마취법, 정맥 마취법으로 양분되고 있다.
  흡입마취법은 마취약을 코와 기도를 통하여 폐속으로 투입시켜 마취하는 방법이고 정맥마
취법은 마취약을 정맥주사를 통하여 투여하고 마취한다.
  또한 전신마취방법의 특징에 따라 독립적인 전신마취종류가 세분되어 있는데 임산부를 위
한 산과 마취법, 유아와 어린이를 위한 소아 마취법, 심장과 폐의 수술을 위한 심폐 마취법, 
뇌신경 마취법, 노인 마취법, 수술실 밖에서  시행하는 외래 마취법, 신장. 간과  심장이식을 
위한 장기이식 마취법 등이 일반적으로 세분되어 있는 전신마취 방법들이다.

    국소마취법의 꽃은 말초신경차단술
  국소마취법은 전신마취법보다 더욱 세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소마취법을 크게 분류하면 척추 마취, 경막외 마취, 말초신경차단 마취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거시적인 구분이고 사실은 마취과 의사의 마취기술에 따라 대단히 다양하게 마
취가 시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국소마취는 마취과 의사가 선택하는 마취약의 선택에 
따라 그 마취정도와 효과에 민감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점도 대단히 흥미로운 점이다.
  척추마취는 등골의 척수강 내로 국소마취약을 투입하여 마취효과를 나타내는데, 마취약이 
도달한 척추 높이만큼만 마취가 이루어지므로 다리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다리만 마취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경막외 마취는 마취약을 척수강 내로 투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척추마취와 구별된다. 경
막외 마취기술은 마취과 의사의 손기술을 시험해볼 수 있을 정도의 고도의 기술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국소마취법의 꽃은 역시 말초신경차단술이다. 이것은  인체에 전화선과 같이 퍼져
있는 신경의 구석구석을 찾아서 마취하는 방법인데, 이러한 마취를  통하여 자신의 아픈 부
위가 기적처럼 마취되고 고통이 사라질 때 환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마취과 의사를 쳐
다보게 된다. 이러한 말초신경차단 마취술은  마취과 의사의 개인적인 공부와  경험에 따라 
시술하는 방법이나 효과에 차이가  많이 나므로, 마치 옛날의  의사들이 비법을 수제자에게 
전수하듯이 선배 마취과 의사로부터 기술을 익히게 된다.
  국소마취술의 또 하나 특징은 마취약의 다양성에서 찾을 수가 있다. 원시시대 아편즙이나 
코코아 잎으로부터 시작된 마취약은 이제 그  종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새로운 
약들로 채워지고 있다. 각 약마다 마취의 강도와 작용시간, 부작용의 차이가 많이 나므로 약
의 선택 자체가 일종의 마취기술이라고 불리워질 정도이다. 현재 가장 널리 쓰이고 있고 부
작용이 적은 국소마취제는 리도카인(Lidocaine, 0.5%,  1%, 2%, 4% 등)이며 우리가  치과에 
가서 흔히 경험하는 마취주사약도 바로 이것이다.

    4. 전신마취는 사람을 어디까지 마비시키는가?
    마취된 사람은 그 무엇을 느낄 수도, 기억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10∼20초 내외에 깊은 잠에 빠져
  전신마취는 오늘날 수술실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마취방법이다. 그런 점
에서 이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마취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전신마취는 말그대로 온몸과 정신을 다 마취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전신마취의 기술
이 개발되어 온 역사는 그 자체가 마취의 발달사였다.  전신마취술은 너무나 신비하였기 때
문에 초기엔 마술이나 최면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전신마취술의 발달은 의학발전의 가장 중심부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전신마취가 가능
해지자 비로소 외과학이 가능하게 되었고, 고난도의 동물실험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약물
의 개발과 진단기술의 발달을 가능케 하였던 것이다.
  전신마취의 방법은 수술대에 누운 환자에게 먼저 강력한 수면제를 주사하여 환자를  깊이 
잠들게 함으로 시작된다. 전신마취에 사용되는  수면제는 너무나 강력하여 일단  혈관 내에 
주사되면 그 어떤 사람이라도 10∼20초  내외에 깊은 수면 상태에 도달하게  할 수가 있다. 
이 같이 전신마취용의 강력한 수면제에 의해 잠이  들면 환자는 스스로 숨을 쉴 수도 없게 
된다. 이는 전신마취 유도용 수면제가 워낙 강력해 뇌의  기능을 거의 마비시켜 호흡중추까
지도 잠재워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마취과  의사는 인공적으로 호흡을 유지시켜
주기 시작함으로써 전신마취가 유도된다. 특히 이 순간에는 기도나  폐에 이상이 있는 환자
에게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나타날 수가 있으므로 마취과 의사들은 이 시기를 비행기가 이
륙하는 순간의 조종사처럼 절대적인 긴장을 하게 된다.
  이 때에 사고가 나면 100% 마취사고로서 만일 정당한 처치가 주어지지 않으면 마취과 의
사가 환자의 피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의학의 역사를 바꾼 흡입마취제
  그 다음 근육의 기능을 마취시켜야 한다.
  이는 근육이완제라는 특수한 약제를 정맥에 주사하여 시도한다. 이 약은 인체에 주입되면 
2∼3분 내에 모든 근육을 신경의 조절로부터 차단시켜버리기 때문에 근육은 마취되기  전의 
정상적인 긴장상태까지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이는  뇌로부터 근육의 조절기능을 빼앗
아 버리는 것과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근육이완제의 작용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환자의 
의식이 돌아와도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 근육이완제는 전신마취상태를 지속시키는데 필요할 뿐 아니라. 외과 의사가 수술을 쉽
게 할 수 있도록 근육의 움직임이 정지되고  또 축 늘어진 상태가 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흡입마취제를 사용한다. 이  흡입마취체가 마취의 역사, 의학의 역사를  바꾸어 
온 결정적인 약물이다. 흡입마취제가 공급됨으로써 마취과  의사는 전신마취를 몇 시간이고 
유지하면서 거의 한계가 없이 안정된 마취의 상태를 이루게 되었다. 마취과 의사는 이제 수
술을 할 수 있는 상태로 환자를 조절하면서 수술이 끝나기까지 마취를 유지하는 것이다.
  흡입마취제는 산소와 함께 주입되어 폐를 통하여 혈액내로 흡수되어 뇌의 기능을  마비시
킴으로서 수면제로 유도된 수면작용이 계속 지속되도록 함과 동시에 신체의 모든 감각을 완
전히 마비시킨다.
  흡입마취제는 여러 종류가 나와 있으며 아직도 더욱 완전한 약제의 개발이 시도되고 있는 
상태이다. 모든 흡입마취제는 그 흡입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특수한 용기에 저장되어  있고, 
그것이 산소흡입과 함께 폐내로 들어가게 함으로써 마취가 이루어지게 하고 있다. 흡입마취
제는 사람을 완전히 마비시킬 수  있는 기체상태의 농도에 따라 그  강도가 평가된다. 보통 
1∼2 vol%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완전한 마취상태에 도달하고 있다.
  그러나 술을 많이 마셔서 간기능이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나 심한 비만 상태에 있는 사
람, 또 연령에 따라서 마취상태에 도달하는 시간이나 마취의 심도 등에 차이가 많으므로 마
취과 의사는 환자 개개인의 혈액검사 및 병력을 세밀히 검토하고 마취를 시행하고 조절하게 
된다.
  수술이 끝나면 전신마취를 깨워야 한다. 이때는  근육이완제와 흡입마취제를 서서히 차단
시켜 나가면 된다. 이는 마취과 의사의 전임사항이다. 마취과 의사의 경륜과 지식정도에  따
라 다양하게 환자를 깨울 수 있다. 또 특별한 질병을  가진 환자는 특별한 방법으로 깨워야 
하는 것도 마취과 의사가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사항인 것이다.
  환자를 전신마취에서 깨우는 것도 비행기의 활주로 착륙과 같이 마취과 의사를  긴장시키
는 신중한 과정이다. 환자가 무사히  깨어나면 마취과 의사로서는 무한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전신마취는 환자를 어디까지 마비시킨  것인가? 그의 몸과 정신과 영혼의  전부인
가?
  환자는 전신마취에서 깨어나면 보통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한 숨 자고 일어난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마취과 의사는 그들이 잠자는  동안 한 숨도 
잘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환자는 아무도 이 충실한 마취과  의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지 않
는다. 그러므로 아마도 전신마취는 최소한 환자들의  예절까지는 마비시켜버리는 것이 틀림
없는 것 같다.

    5. 국소마취는 멋진 마취기술
    마취과 의사의 손재주가 마취의 질을 좌우한다
  사람 신체의 일부분을 통증이나 다른 감각으로부터 이탈시키되 의식이나 호흡과 같은  생
명기능 중추들은 그대로 정상기능을 유지하게 하는 마취를 국소마취법이라 한다.
  예를 들어 손가락 절단술이나 가슴의 피부  어느 한부분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의 
경우에 전신마취보다는 국소마취를 함으로써 수술 후 회복이 빨라지게 하고 마취사고로  인
한 생명의 위험으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게 되는 것이다.
  국소마취는 인류의 가장 원시적인 마취방법으로부터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고대의 
사람들은 신체 한 부분에 생긴 상처의 통증을 물리적 요법으로 진통시키거나 코코아(cocoa) 
나뭇잎, 만드라고라(mandragora) 풀잎 또는 아편추출물 등을 문질러 바르는  진통법을 사용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마취방법은 근대에 들어와서 생체내  물질을 정제 분리하는 기
술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단계의 마취법으로 발전하게 된다.
  근대적인 국소마취법의 기원은 1884년 안구수술에 정제된  코카인을 도포마취하고, 그 효
과를 기록했던 안과의사 콜러(K. Koller, 1857∼1944)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기초로 1885
년에는 코카나무로부터 코카인을 대량으로 분리시키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기도 했다.

    마취역사의 전환점 마련한 척추마취술
  한편 그 이전인 1836년에는 아편 연고를 피부에 주입하기  위한 주사침이, 1851년에는 피
하주사기가 이미 개발되어 있었다. 이러한 주사기의  발명은 코카인을 신경주위로 주사하여 
신경차단마취를 가능하도록 하였다.  외과 의사인  할스테드(W. S. Halsted,  1852∼1922)는 
1885년에 코카인을 피하에 주사하는 방법을 통해서 안면신경, 액와신경, 회음신경을  차단하
는 국소신경차단술을 시술해 보였던 것이다.
  만일 1894년에 조선에 왔던 알렌 등의 의료 선교사들이 마취제를 가지고 갑오경장의 칼에 
찔린 부상자들을 치료했다면 틀림없이 코카인을 사용했을  곳이라고 생각된다. 그러한 마취
와 수술기술 만으로도 조선이 발칵 뒤집혔으며 서양인들이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소문이 퍼
지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알렌은 고종의 주치의가 되었고  현대적인 의학이 고종황제의 직접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져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서양식 의학교라  할 수 있는 광혜원이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1898년에 일어난 마취역사에 대단히 획기적인 사건은 비어(A. Bier, 1861∼1919)가 코카인
을 척수강내로 주입하여 척추마취술을 개발한 것이었다.
  척추마취술의 개발은 마취의 역사를 새롭게  하였다. 또 이는 외과수술에  있어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척추마취술의 개발로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서도 목 이하부의 모든 수술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일의 시작이었을  뿐 실제적으로 널리 사용되기까지는  더 많은 
과학적인 기구의 발명이 요구되었다.
  만일 그 때에 아주 가늘고 긴 오늘날의 척추마취용 주사바늘이 개발되었다면 1, 2차 세계
대전에서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덧없이 죽어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력하면서도 독성 적은 국소마취제 나와
  국소마취법의 발전은 단계마다 몇몇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마취의사들의 무한한  도전정신
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는데 그 중에서도 비어는 가장  천재적인 국소마취의사였다. 이미 코
카인을 척수강내로 주입해 척추마취술을 개발한 그는 1908년에는 정맥내에 국소마취제를 주
사해 그 인접부위를 완전히 마취시키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그는 그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강아지를 주로 사용하였는데 마침내 그의 손등은 강아지 
이빨자국으로 딱딱해졌고 나중에는 강아지들이 그의 눈빛만 보고도 주저앉아 버릴 정도였다
고 한다. 아직도 마취과 의사들은 그의 마취기술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를 기념하여 
특별히 정맥마취술은 '비어스 블록(Bier's block)'이라고 따로 부르고 있다. 오늘날도 마취의
학은 21세기를 위하여 비어 박사와 같은 탁월한 마취과 의사를 고대하고 있다.
  한편 국소마취에 있어서 마취기술 뿐  아니라 마취약제의 개발도 급속히  이루어져 왔다. 
국소마취제로서 코카인(cocaine)이후에 1904년에는  프로카인(procaine)이 합성되었다.  이는 
코카인보다 독성이 적으면서 효과는 더 좋은 국소마취제로 알려져 널리 쓰이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널리 쓰이는 국소마취제의  이름들과 개발년도를 보면 테트라카인(tetracaine, 
1932), 리도카인(lidocaine,   1947), 메피바카인(mepivacaine,   1957), 프릴로카인(prilocaine, 
1960), 부피바카인(bupivacaine, 1963), 에티도카인(etidocaine, 1972) 등이 있다.
  이러한 국소마취제의 가장 큰 취약점은 혈관에 주입되었을 때에 발생하는 부작용들이다.
  일반적으로 국소마취제는 효과가 클수록 독성이 더 강력한 경향이 있다. 부피바카인과 같
은 국소마취제는 가장 강력한 마취효과를  나타내지만 혈관 주입시 소량으로도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어서 위험하다. 또 마취제를 주사액으로 제품화할  때 화학적 안정성을 위하여 
첨가하는 보존제를 통한 알러지 반응도 드물지 않아서 약제 선택에 신중함이 요구된다.
  따라서 국소마취제는 소량으로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는 강도측면과 함께 부차적으로 독
성을 줄이는 것이 신제품 개발의 중요한 목표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강력하면서도 독성이 매우 적은 로피바카인(ropivacaine, 1996년 개발완료)이 개
발되어 곧 임상에 사용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이 약이 20세기 국소마취제의 개발사
를 마무리하는 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국소마취제의 신기한 점은 뭐니뭐니 해도  의사의 손기술에 따라 마취효과가  다양해지는 
데 있다. 그래서 마취과 의사들은 늘 환자에게 고통을 덜주고 마취효과는 만점인 좋은 마취
기술을 개발해내려고 한다.
  국소 마취술의 다양함 때문에 마취과 의사는 나이 들어도 언제나 새로운 기분으로 환자를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6. 정맥주사가 마취 발전의 일등 공신
    현대 마취의 핵심 이루는 '정맥마취술'
  우리는 병원에 가면 우선 주사 맞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주사에는 근육주사와 같이 엉덩
이 같은 곳에 단번에 찔러주는  것이 있고, 정맥주사와 같이 혈관내에  주사침을 꽂아 놓는 
것이 있다. 혈관에 주사침을 꽂는 정맥주사법은 원하는 약물을  마음대로 조절하여 인체 내
부에 투여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조각품을  많이 만들었다. 특히 근육이  잘 발달된 
남성의 조각상이 얼마나 많은가? 미술가들에게 인체의 피부밑에서 불끈 솟아오른  핏줄들은 
무엇을 생각하게 했을까? 힘? 질감? 
  그런데 1855년의 우드(A. Wood)라는 의사에게는 그것이 온몸으로 무엇인가를  운반할 수 
있는 사통팔달의 통로요, 특히 약물을 주입할 수 있는 또 다른 입처럼 보였다.
  그는 사람의 혈관 안에 무엇인가를 집어 넣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하
여 그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혈관에 주사를 놓는 방법을 개발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의 혈
관에 주사를 놓는 방법이야말로 임상의학을 근대화시킨  가장 뚜렷한 분기점일지도 모른다. 
그는 정맥주사이론과 함께 정맥주사침과 주사기도 아울러 개발했다.
  정맥에 주사를 놓는다는 생각은 그리 간단한 이론이 아니다. 정맥은 동맥과 함께 우리 몸
의 모든 피가 순환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체의 어느  부분에서든지 정맥으로 
약물이 투여되면 필연적으로 그 약물은 혈관을 따라 온몸에 퍼지게 된다. 투여된 약물의 양
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체에 대한 약물의 효과도 증가하게 된다. 약물은 심장에도 가고, 간에
도 가고, 뇌에도 간다. 그래서 항생제를 정맥으로 주사하면 염증이 소멸되고 해열제를  주사
하면 체온이 내려가게 된다.

    마약성 마취제가 정맥마취술에 가장 널리 쓰여
  정맥주사술은 마취제를 정맥으로 주입하는 정맥마취술을  발전시켰다. 원시적인 정맥마취
술은 그전에는 입으로 씹어서 환부에 바르던  코카인의 잎사귀 즙을 짜서 혈관에  주사하는 
식의 기술에 불과하였다. 그러다가 클로르포름을 주사해 보기도 하고 몰핀을 주사하기도 하
는 식으로 마취술의 개발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오늘날은 정맥마취술이 마취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 할만큼 대부분의  마취약이 
정맥을 통하여 주입되고 있다. 정맥마취술의 장점은 마취과 의사가  원하는 만큼의 약을 정
확히 투여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마취과 의사는 이제 환자에 따라, 그리고 수술의 종류와 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마취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취의 깊이, 마취시간, 마취범위나 마취의 부분적인 효과들을 의도대로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맥마취술에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마취제는 마약성 마취제이다. 마약성 마취제들은 심
장 기능을 억제시키는 효과가 적기 때문에  혈역학적으로 가장 부드럽게 마취가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약성 마취제는 다른 마취제에 비해서 값이 비싸기 
때문에 일반적인 수술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의학적으로 극히 중요한 심장수술이나 뇌수
술의 일부에 집중적으로 사용된다.
  정맥마취술은 마취의학 뿐 아니라 의학의 역사에 있어서도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을 구분해
주는 시술이라도 볼 수가 있다.

    7. 마취의 신영역, 통증클리닉
    마취과 의사도 개업할 수 있다
  통증은 인간을 괴롭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신체감각이다. 통증은  인류가 생겨난 이후 그 
언제나 누구에게나 따라다녔다. 신생아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통증은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
  통증은 압력, 열, 전류, 약물 등 물리화학적 자극이나  찌르거나 자르는 기계적 자극에 의
하여 일어나는데 이 자극들은 신경의 종말감각체에 의해서 전기자극으로 변하여 척수로  들
어가 대뇌에 전달됨으로써 사람이 아픈 감각을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그 자극들이 뇌에까
지 도달하는 경로 중 어느 한  부분을 차단하면 사람은 통증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국소마취를 시행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므로 마취과 의사가 수술을 위한 감각차단이  아니라 
통증을 막기위한 감각차단을 시행하기 시작한 것이 통증클리닉의 시초이다.
  통증에도 치료할 필요가 없는, 병적이지 않은 것이 있다. 가령 일을 하다가 긁혀서 상처로 
아픈 것, 거칠고 몸에 안 맞는 음식으로 인한 복통, 극심한 스트레스로 생기는 두통 등과 같
은 것은 인체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고통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유익하다. 통증은 사람
이 자신의 신체에 피해가 되는 위험한 일을 할 수 없도록 신이 마련해놓은 실로 치밀한  경
보장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통증은 인간의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감각이다.

    신경차단술, 가장 효과적인 통증 치료법
  그러므로 통증클리닉에서 주로 다루게 되는  통증은 주로 병적인 통증을  말한다. 병적인 
통증은 신체를 위험에서 보호하여 주는 의미는 없고 단지 고통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악랄
한 감각을 말한다.
  병적인 통증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암성 통증인데, 이는  암세포가 정상조직에 침투하여 
그 감각 수용체를 누르고 찢음으로써  발생하게 된다. 특히 암세포가  신경세포를 건드리는 
경우에는 가장 직접적인 통증 발생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병적인 통증은 인간의 정상적인 
신체할동은 물론 정신적인 균형상태를 심각하게 파괴시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
할 수 없도록 몰아가 버린다.  그러한 측면에서 병적인 통증을 제거하는  것이 치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만성 병적 통증의 치료법은 크게  약물치료와 신경차단법, 경피적전기자극법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약물치료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와 마약성진통제들을 보조진통효과의 약물들과  적
절히 결합하여 환자에 따라 처방하게 된다.
  신경차단치료는 마취과 의사의 고유 영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독특한 분야이다. 한
때 신경차단술이 고대 동양의 침술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여 연구한 사람도 있었다
고 한다. 신경차단술은 통증전달의 경로를 차단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그것은 통
증신호를 가지고 대뇌로 가는 전화선을 자르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신경차단을 위해서 
일차적으로 국소마취제를 사용하지만, 그래도 통증이 계속되는 경우에는 결국 신경파괴제를 
사용하여야 한다.
  경피적 신경자극법은 이열치열식의 통증치료법이다. 이는 인체의 통증자극 전달이론의 하
나인 관문설(gate theory)에 근거하여 피부나 근육을 지속적인 전기자극으로 역으로 통증의 
전달이 감소하게 하는 방법이다. 만성요통이나 하배부 통증에서 극적인 효과가 입증되고 있
다고 한다.
  통증클리닉인 또 하나의 통증관리 영역은  수술 후의 진통에까지 이르고  있다. 과거에는 
모든 사람이 수술을 받으면 며칠은 통증을 참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수
술 후의 통증도 제거하는 것이 시도되고 있으며 그 효과는 수술 후의 합병증 발생률 감소와 
빠른 회복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술 후 통증의 관리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며 수술전
에 마취과 의사에게 요청함으로써 결정할 수 있다.
  자가통증조절장치(PCA, Patient Control Analgesics)라고 불리우는 기계는 환자가 자기의 
통증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진통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한 기구로써 현재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다.
  통증클리닉에 치료대상이 되는 증상 및 질환
  통증의 종류
  전신 : 악성종양(암)에 의한 통증, 외상후 통증, 대상포진, 변형성 척추증
  두부 : 편두통, 근수축성 두통, 기타 두통
  안면 : 삼차신경통, 설인신경통, 비정형안면통, 악관절통, 기타 안면통
  목, 어깨, 팔 : 경견환증후군, 외상성 경부증후군
  가슴, 등 : 협심증, 심근경색, 폐부전, 동맥류, 늑간신경통
  복부내장 : 급성만성췌장염, 담석, 신뇨관결석, 만성내장통, 월경곤란증
  허리, 다리 : 좌골신경통
  사지 : 작열통, 환지통, Buerger병, 급성동맥폐쇄증, 폐쇄성동맥경화증
  회음부 : 미골통, 고환통, 항문통
  마비 : 안면신경마비(Bell마비, Hunt증후군), 외상성신경마비, 반회성신경마비
  경련 : 안면경련, 틱(Tic)증, 경성마비
  기타 : 레이노드병, 다한증, 알러지성 비염, 돌발성 난청 등

    8. 동물마취술
    개를 처음 마취할 때 두려움 잊을 수 없어
  동물마취는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수의학의 전문 분야이지만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마취과 의사가 그 일을 같이 해오고 있는 상태이다. 선진국과는 달리 동물 전문 마취의사가 
거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동물실험이 선
행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동물실험에 의한 새로운 약제검사나 수술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이
루어지고 있다.
  동물마취의 특징은 먼저 각 동물의 생리학적 특수성을 철저히 파악하고 마취를  시행해야 
한다는 데 있다. 가령 다 큰 개는 분당 호흡수 16회, 일회 호흡량 400ml, 분당 심박수 80회, 
혈압(수축기/이완기) 112/56mmHg 정도로서 사람과  비슷하지만, 고양이는 분당 호흡수  26
회, 일회 호흡량 15ml, 분당  심박수 150회, 혈압(수축기/이완기) 120/75mmHg 로서  호흡과 
맥박의 정상치에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는 비슷한 동물인 경우이다. 소는 1회  호흡량이 
3000ml 이상이어야 하고, 쥐는 분당 호흡수가 100회 이상,  심장박동수는 400회이다. 게다가 
개구리는 정상혈압(수축기/이완기) 30/20mmHg 이다. 조류는 정상체온이 42도씨 안팎으로서 
대단히 예민한 신체구조를 지니고 있다.

    해부학적 다양성 여실히 들어나는 동물마취
  동물마취는 또한 그 해부학적 다양성도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소의 경우 인공호흡을 위
한 인공기관의 두께와 길이가 사람의 두세배는 되어야 한다.  반면에 쥐는 주사바늘 크기의 
기도를 구해서 사용해야 할 정도이다. 돼지는 마취를 하면  입으로 끝없이 분비액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양은 입을  다 벌려도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감각적으로 인공기도를 삽입해야 할 때가 많은데 실패하면 실험도 하기 전에 마취하다가 죽
는 양이 흔히 생긴다.
  어쨌든 동물실험은 현재도 수없이 계속되고 있다. 인공심장이나 인공폐, 그외의 특수한 인
조장기들의 개발은 필수적으로 여러번의 동물실험을 거쳐야만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런 수술의 분야가 아니라할지라도 동물의 유전자 실험이나 약품의 개발 부분에 있어서도 마
취 없이는 실험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동물의 마취약제는 인체에 쓰는 것을 그대로 사용하되 체중을 감안하여 용량을  조절하면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조류나 크기가 작은 포유류의 경우에는  계산된 용량보다 더 소량
을 써야 하고 말이나 소같은 큰 동물은 계산된 용량보다 더 많이 써야 동일한 효과를  보게 
된다.
  사람에게 가장 흔히 쓰는 치오펜탈(thiopental)에 해당하는 동물마취의 강력수면제로는 롬
푼(rompun, xylazine)이라는 약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 외 흡입마취제나 근육이완제
의 사용은 동일하다.
  나는 개를 처음 마취할 때의 두려움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마취해야 할 개는 한국산 잡
견으로서 성질이 난폭해서 실험실에서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공격적인 큰 개였다. 마취약
을 주사기에 꽉 채워 들고서 '저놈의 혈관에 어떻게 주사를 하나' 고민하며 개 옆을 빙빙 돌
아야 했다.
  짐승을 마취하다 보면 손등을 긁히기도 하고 심지어 그 이빨에 물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
다. 그러나 마취약의 위력은 확실해서 지금껏 마취약에 쓰러지지 않는 짐승은 본 적이 없다.

    9. 중환자와 안락사
    경제적이고 품위있게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
    중환자 관리체계, 보험회사 덕분에 크게 발전
  오늘날은 마취과 의사의 활동영역이 수술실에서 벗어나는 추세에 있다. 병원 수술실 밖에
서 마취과 의사의 역할 중 하나는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것이다. 중환자실은 그 입원환자의 
특성에 따라 내과계 중환자실과 외과계 중환자실로 나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마취과 의
사는 주로 외과계 중환자실을 담당하게 된다. 병원사정에 따라 내외과 구분없이 종합적으로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경우에도, 주로 마취과 의사 중심의 관리체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는 
마취과 의사들이 인공호흡기의 사용에 가장 익숙하고 또 경각을 다투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
하고 지켜주는 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중환자실 운영 초기만 해도 어떤 기준으로 중환자를 정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중환자실의 설비가 워낙 고가인데다가 한정돼 있어  참으로 경각을 다투는 환자
에게 먼저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의사들보다 더 관심을 가진 사람
들이 있었는데, 바로 보험회사 관계자들이었다. 입원한 환자의 치료비와 상태가 그들이 지불
해야 할 돈과 직접 연관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험회사 사람들 덕분에 중환자에 대한 기준
과 치료방법에 대한 의사들의 수고가 훨씬 줄어들게 되었다.  그들은 수시로 전국적인 중환
자 입원과 치료 관련 데이터를 의사들에게 제공했고, 그러한  통계자료 덕분에 조직적인 중
환자 관리체계가 빠르게 수립될 수 있었다.
  이제는 중환자관리 시스템이 어느 정도 구비돼 마취과 의사 편에서는 중환자관리가  한결 
수월해졌다는 느낌이다. 마취과 의사는 중환자실에 입원하고자  하는 환자의 차트와 증상을 
점수화하여 일정 기준을 넘을 때 입원을 허락할 수가 있다.  또 입원한 환자에 대해서 매일 
치료 효과를 점수화하여 환자의 향후 치료방향을 잡게 된다.  이런 세분화되고 전문적인 점
수채택 방식 때문에 환자가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적어도 이틀쯤이면 그 환자의  회복가능성
과 사망가능성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시대에 따라 '안락사'의 인식 바뀌어
  이러한 중환자실 운영과 관련해 발생한  또 하나의 문제점이 바로  안락사이다. 안락사는 
본래 중환자실 입원 환자가 의학적으로 회생의 가망성이 없을 때, 그 비용과 장비로 회생의 
가능성이 있는 다른 중환자에게 기회를 주고  치료를 중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소위 경제개념을 생명에 적용한 발상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는 즉시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그 이유는 분명하였다. 그러한 결정사항은  곧 
한 사람의 생사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환자실에서는 그 어떤 
환자라도 의사의 결정으로 환자의 생명유지 장비들을 제거할 수  없게 하였고, 심지어 보호
자가 원해도 의사는 동의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와중에 미국에서는 일련의 안락사 찬미그룹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들은 안락사의 개념을 중환자에서 일반 노인이나 악성질환 환자로 확대시켜 나갔다. 그
들은 안락사를 '품위있게 죽을 권리' 또는 '원하는 순간에 죽을 권리'로 그 개념을 바꾸어 버
렸다. 그리고 누구나 전화를 한 통화만 하면 즉시 달려가서 마약성 마취제를 혼합한 수면제
와 심장정지약제를 주사하여 생명을 중지시켜 주겠다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때에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전국 각지에서 또는 전세계에서  빗발치는 안락사 요구 
전화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지역에서는 합법적으로 안락사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윤리적, 종교적 이유로 안락사가 엄격히 금지되고 있으며 안락
사를 시행하면 살인죄로 체포된다.
  중환자들과 안락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제3장 마취약들
    1.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흡입마취제 이이터
    의학계를 송두리채 뒤흔든 한 임상의사의 쇼맨십
  사람에게 전신마취를 가능하게한 최초의 흡입마취제는 이이터(에테르, ether)였다. 이이터
라는 기체는 1540년에 발레리우스 코르두스(Valerius Cordus)라는  화학자에 의해서 발견되
었다. 그러나 그는 그 냄새나는  액체의 마취성은 알지 못했고 의학적인  목적에 쓸 생각도 
없었다.
  이 액체는 상온에서 휘발성이 대단히 강하여 금방 공기중으로 퍼져 들어가는 성질이 있었
다. 그런데 의사들 사이에서 이 물질에 진통효과가 있다는  것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
고, 이후 300년 동안 알게 모르게 진통을 위한 마취제로서 이용되고 있었다.
  은밀하게 사용되던 이 약을 동물실험 후 공식적으로 수술을 위한 사람의 마취제로 이용한 
최초의 사람은 롱(C. W. Long, 1815∼1878)이었다. 그는  이이터를 이용하여 환자의 의식을 
잃게 한 후 세 번의 수술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이터의 마취효과를 일반화시킬 만한 
야망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인류 역사상 첫 전신마취제, 이이터
  반면에 모르톤(W. T. G. Morton, 1819∼1868)은 이 약제의 감추어진 비밀을 세상에 퍼뜨
리기에 적합한 성격의 임상의사였다. 그는 넘치는 쇼맨십을 가진 사람이엇다. 그는 롱이  어
두운 수술실에서 혼자 행한 마취의 기술을  대중 앞에서 마술을 하듯이 행하고자  계획하였
다.
  그는 1846년에  당시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이던 하버드  의과대학 병원(Messachusetts 
General Hospital, Boston)에서 수많은 의사들과 일반인들을 관중으로 모아놓고 고통으로 펄
펄 뛰던 환자를 데려다가 이이터로 마취를 하여 잠재운 후 몇 개의 종양적출술과 발치술을 
시연하였다. 그의 공개적인 전신마취 시술은 당시 의학계를 송두리채 뒤흔든 대사건이 되었
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전신 마취제와 마취술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이 날은 전세계 의학사에 빛나는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모르톤 자신도 그토록 일이 크게 
벌어지게 될 줄은 예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전신마취  기술을 의료의 심장부에 가져다 
놓은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이었다. 지금도 당시  이이터 마취시연이 있었던  그 건물은 
1846년 10월 16일의 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수술실의 천정이 
돔처럼 둥그렇게 생겼다 하여 이이터 돔(ether dome)이라고 이름지어 졌으며 세계적인 의학
의 명소로 보존되고 있다.

    마취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이터'
  일순간에 의사들의 주목을 받은 이이터는 인화성이 강하고 폭발성이 있어서 밀폐된  수술
실에서 사용하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또 장시간  마취를 하는 경우 이이터
는 환자의 기도와 식도의 분비샘을 자극하여 분비물이 지나치게 많이 나왔다. 이에 따라 마
취중에도 환자가 질식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이터의 사용이 증가됨에 따라 마취중
에 발생하는 사고의 건수도 증가했다.
  사람들이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전혀 안심할 수 없는 시대가 지속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이터보다 부작용이 적은 마취제들에 대한 연구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때에 나오게 된 것이 할로텐, 시프록센, 에트렌 등이었다.  결국 점차 부작용이 적은 흡
입마취제가 새롭게 개발되자 마취과 의사들은 이이터의 사용을 피하게 되었고 현재에는  거
의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마취과 의사들은 이이터가 최초의  전신마취제였다는 한 
가지 사실만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르톤 박사의 쇼맨십도 마취의 역사와 함께 길이 빛나게 될 것이다.

    2. 마취제가 된 '웃음가스' 아산화질소
    치과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을 매료시킨 '웃음가스'
  이이터와 비슷한 시기에 존재 했으면서 두 번째로 사용된 흡입마취제는 아산화질소였는데 
이 기체의 첫 발견은 1772년에 프리스틀리(J. Priestly)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 가스도 처
음에는 마취제가 아니라 웃음가스(laughing gas)라 하여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쓰였다고 한
다. 이 가스를 두어번 깊이  들이마시면 누구나 기분이 좋아져 싱글싱글  웃게 되는 재미난 
작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럽에서는 명절이  되면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으로  이 가스를 
조금 담은 주머니가 인기리에 판매될 정도였다고 한다.

    공기 소통 잘 되는 곳에서 효과없어
  그때 영리한 치과의사들이 이 가스를 아이들의 치아를 뽑는데 이용하고자 시도하게  되었
다. 처음에 치과의사들은 치과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 장난삼아 이 가스를 마시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효과가 예견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한 마취효과였다. 그러다가 한 용감한  치과의사가 이 웃음가스의 마취효과를 
직접 시험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스를 마신 후 자기의 이빨을 뽑아보았는데 과연 아프지 않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그 때는 모르톤이 이이터의 공개실험을 한 직후였다. 개인적으로 아산화질소의 마취
효과에 확실히 자신을 얻은 그는 이이터를 공개실험한 모르톤처럼 자신도 공개실험을  하고
자 했다. 그러나 그 실험에 응할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없이 그는 가장 친한 한 친
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실험대상이 되어주기를 청했다고 한다.
  드디어 공개시술이 진행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이터와 견주게 될  또 하나의 마취제 
탄생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실험은 큰 실패로 끝나고 말았
다. 자기의 친구에게 아산화질소 가스를 먹인 후 이를 뽑고자 잡아 당겼을 때 그 친구가 고
통을 참지 못하여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모인 사람들은 웃음가
스 때문이 아니라 그 웃기는 광경 때문에 더욱 웃고 말았다.
  나중에 그 실험의 실패 원인이 아산화질소의 독특한 성질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
는데, 그것은 아산화질소는 마취강도가 낮아서 공기가 잘통하는 곳에서는 농도가 떨어져 마
취효과가 없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의사들은 점차 아산화질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아산화질소는 계
속해서 어린아이들의 장난가스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었다.

    가장 좋은 균형 마취제로 널리 쓰여
  그런데 1868년에 앤드류(E. Andrew)라는  의사가 아산화질소를 이이터와  혼합해서 쓰면 
이이터의 양을 줄여도 똑 같은 깊이의 마취를 이룰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
다. 즉 이이터 한 가지만 쓰면 부작용이 많이 나는 환자들에게 아산화질소를 같이 씀으로써 
그 부작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놀랍게도 바로 이러한 마취의 개념
이 오늘날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혼합마취요법이다.
  오늘날의 현대적인 병원의 수술실에서도 아산화질소는 단일 마취제의 부작용을  줄이면서 
효과적인 마취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균형마취의 가장 좋은 마취제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아산화질소는 단독으로 마취효과가 부족하여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쓰일 수밖에 없는 마취
제였다. 아산화질소의 마취제로서의 단점은 너무도 분명하였다. 그러나 다른 마취제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 다른 마취제의 효과를 강화시켜주고 그 마취제로 인한 인체의 해독을 상대적
으로 방어해주는 독특한 효과가 있어, 오늘날까지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마취제가  되었다. 
마취역사의 여명기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이터나 클로로포름은 오늘날 어디서도 사용
되지 않고 있지만 아직도 세계의 어느 병원에 가든지 수술실이 있는 곳에서는 아산화질소를 
반드시 만날 수가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단지 어린이들이 그토록 좋아했다던 웃음가스 놀이는 언제부터인지 사라지게 되어 유감일 
뿐이다.

    3. 여왕을 산통에서 구한 마취제 '클로로포름'
    '무통분만'의 신화 만든 마취제
  초기에 사용된 흡입마취제로서 또 한가지는 클로로포름이었다.
  아산화질소나 이이터가 미국에서 발견되고 사용된 것과는 달리 클로로포름은 영국에서 개
발되고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클로로포름은 1831년에 개발되었는데 특히 산과의사였던 심프
슨(J. Simpson)에 의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이이터도 사용했지만 독자적으로 클
로로포름을 더 애용하고 있었다.
  심프슨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출산의 고통은 신이 여자에게 준 당연한 고통이라고 하며 산
모의 진통에 반대하는 것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출산을 돕기 위한 클로로포름 마취를 계
속하였다.
  그가 산과의사로서 산모들의 죽을 것 같은 통증을 마취를 통해 제거해 줌으로서 그의 명
성은 점차 섬나라 영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그의 마취행위는 당시 종교와의 갈
등문제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사제들은 의사가  하나님이 주신 '아이 낳는 고통'
을 없애는 것에 대해 비신앙적이라고 공격하였다. 그는 졸지에  신의 뜻을 거스르는 악인으
로서 낙인 찍히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열광적인 종교인들에 의해서  화형당한 위기에까지 
몰리기에 이르렀다.

    치명적 간독성, 신독성으로 도태
  그런데 이때 영국여왕이었던 빅토리아(Victoria)대제가 마침 둘째아이를 임신 중이었고 분
만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첫  출산 때의 고통을 잊지 못하던  여왕에게는 사제들의 말보다 
'안 아프게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산과의사의 말이 백배 크게 들리고 있었다. 마침내 여왕
은 신의 뜻대로 고통 당하기보다 안아프게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심프슨은 왕실의 주치의이던 스노우(J. Snow)에게 클로로포름 마취약을 전해주었다. 스노
우는 여왕을 마취하기 시작하였다.
  여왕은 왕관을 쓴 채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둘째 왕자를 낳았는데 그의 이름은 레오
폴드(Leopold)라고 한다. 이 사건은 클로로포름과 심프슨 박사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
가 되었다. 클로로포름은 이 사건 이후 영국에서 벗어나 급속히 전세계로 퍼져 나갔고 순식
간에 가장 널리 쓰이는 마취약이 되었다.
  그러나 클로로포름 마취법은 이내 사용이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치명적인  간독
성과 신독성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심장에 작용하여 부정맥을 일으키면 환자가 사망
하는 예가 빈번했다고 한다. 이후  주로 동물실험용으로 사용되다가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4. 원주민의 '화살독'이 마취약으로
    '힘의 시대'가 아닌 '섬세성의 시대' 열다
  전신마취에 마취제 이외에 반드시 사용되는 약물이 근육이완제(muscle  relaxant)이다. 근
육이완제는 마취의 영역을 전기신경생리학적인 분야로까지 확장시킨 약물이다.
  근육이완제가 나오기 전까지의 전신마취는 환자의 의식과 감각만을 제거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환자가 수술을 받기에 가장 적절한 상태가 아니었다.  전신마취를 했더라도 환자의 근
육이 그 힘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과 의사가 몸속 깊이 손을 넣어 수술하거나 
근육이 많은 부분을 수술하려 하는 경우에 마취된 환자의 근육이 긴장하게 돼 제대로 시술
할 수가 없었다.
  근육이완제는 인체의 모든 신경과 근육의 접합부에 작용하여 신경이 근육을 움직일 수 없
도록 한다. 근육이 어떤 자극에도 긴장상태가 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작용을 한다.


        콜롬부스의 일행이 근육이완제 단초 제공
  이러한   근육이완제는    1942년   그리피스(H.   Griffith)가    개발한   큐라레(curare, 
d-tubocurarine)라는 약물이 시초이다. 그로부터 시작된 근육이완제의  역사는 마취과학적으
로나 외과학적으로 의학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환 전환점이 되었다.  비로소 이 때부터 인
체의 가장 깊은 곳까지의 수술이 실제로 가능하게 되었다.
  큐라레는 본래 고대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맹수를 사냥할 때 쓰던 화살독을 가리키는 말
이었다고 한다. 1492년 콜롬부스 일행은 아메리카에서 원주민들이 화살에 간단한 독을 발라 
쏘아서 맹수를 별 상처도 없이  잡는 것을 보게 되었다. 원주민들의  화살은 맹수의 급소를 
맞힌 것도 아니었는데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었다. 콜롬부스 일행은 
이 신비한 사냥이야기와 화살독을 유럽에 가져와 소개하였으나 의학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
다고 한다. 그 후 18세기에 들어와서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동물을 실험할 때에 동물
이 난폭하게 굴거나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이 화살독을 실험실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독약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사람은 베르나르(C. Bernard, 1873∼1878)
였다.
  그는 근육이 움직이는  것은 신경으로부터 전기적인  신호가 오기  때문이라는 갈바니(L. 
Galvani, 1737∼1798)의 이론에 따라 실험적으로  큐라레가 신경과 근육의 접점에서 작용해 
신경으로부터의 전기신호를 차단하여 근육을  이완시킨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1930년경 
신경과 근육사이에 미세한 간극이 있고, 그 사이가 아세틸콜린이라는 물질로 중개되며, 큐라
레가 이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멈추게 한다는 확정적 이론이 발표됨으로써, 이러한 베르나르
의 실험은 80년이나 앞선 기념비적인 연구임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이 물질이 마취에 사용되는 데는 장애가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이 물질이 사람
의 뇌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즉 마취시 의식이나 감각을  소실케 하지는 않는지 밝히는 일
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스미스라는 한 무명의 의사가 스스로 도전함으로써 해결점을 찾게 되었
다. 그는 친구에게 인공호흡을 부탁하고 자신에게 큐라레를 주사하게 하였다. 그리고 의식과 
감각에 어떤 차이가 오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로써 큐라레는  근육을 움직이지 않게 하
지만 마취작용은 전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던 것이다.

    전신마취로 인한 사망률 급속히 떨어져
  이렇게 하여 근육이완제가 본격적으로 전신마취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8년의 일이었
다. 이로써 외과 의사들의 수술에도 급격한 변화가 오게 되었다. 이제는 힘이 세고 수술  속
도가 빠른 사람이 명외과 의사가 아니라 섬세하고 정확하게 환부를 잘라낼 수 있는 사람이 
능력있는 외과 의사로 불리워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편 근육이완제는 이전에 근이완효과를 위해서 많이 투여하던 흡입마취제의 농도를 적당
하게 줄일 수 있도록 하여 과도한 전신마취로 인한 수술실에서 환자 사망비율을 급속히 떨
어뜨렸다.
  무슨 약이든 그러했지만 이후 근육이완제도 새로운 약물의 개발이 끊임없이 시도되기  시
작했고, 인체에 부작용이 적고 마취과 의사가 가장 수월하게 효과를 조절할 수 있는 약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명멸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제는 근육이완제도 환자의 신체상태,  수술시간 
등에 따라 가장 좋은 것으로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현재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근육이완제는 석시닐콜린(succinyl-choline, 1949), 판큐로니
움(pancuronium, 1967),  베큐로니움(vecuronium, 1980),  피페큐로니움(pipecuronium, 1990) 
등이다.

    5. 마약은 인류역사를 통해 가장 인기있는 마취약
    마약류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수술 덕본다?
  마약은 고대로부터 인간의 통증을 제거하는 주된  약제였다. 고대의 경험적인 진통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는 근대에 들어와서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다. 의사들은 실물재료에서 
추출한 마약의 성분을 정제하고 그 각 성분의 인체내에서의 작용기전을 연구하기  시작하였
다. 그리고 비슷한 마약제제라 할지라도 각각 그 특징적인 작용기전이 존재하며, 필요에  따
라서 질병과의 연관성이 깊은 종류의 마약제제만을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각 마약제제
들의 인체내 작용체제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극심한 호흡억제작용 등 부작용이 문제
  마취과 의사가 마약제재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마약은 수술실에서 인공호흡 루트만 완전하
게 확보해 놓으면 심장이나 신장의 기능이 불안한 환자일지라도 투여량에 비례하는 깊고 안
정된 마취효과를 언제나 보장해준다는 놀라운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마약류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개심술이나 뇌수술, 장기
이식술과 같은 인체에 대단히 공격적인 수술은 가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수술에서
는 강력하고 오래 지속되는 마약류를 이용한 마취가 필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마약류(opioids, narcotics)란 인체의 중추신경계에  있는 특수한 마약수용체와 
결합하여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약물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물질로는 몰핀
(morphine),   메페리딘(meperidine),    펜타닐(fentanyl),   날부핀(nalbuphine),    펜타조신
(pentazocine)을 포함한 10여가지의 약물이 나와있다. 이  중에서 현재 임상적으로 마취유도
에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은 펜타닐계통(fentanyl derivatives;  fentanyl, sufentanyl, 
alfentanyl)의 약물들이다.
  마약류 마취제의 대표적인 단점은 극심한 호흡억제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마약류
는 인공호흡기가 갖추어진 수술실이나 중환자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경험이 풍부한  마취
과 의사가 반드시 호흡상황을 체크해야만 하도록 되어있다.
  기타의 부작용들로는 뇌의 중심을 자극하여 오심, 구토를 유발시키거나 위장을 포함한 소
화기관의 운동기능을 저하시켜 소화작용이 더디게 된다. 일정기간 이상의 마약류 사용은 탐
닉 의존성을 나타내어 소위 '마약중독' 현상을 보이게 되는데 마약은 주로 간에서  대사되어 
소변으로 배설되므로 간이나 신장 기능이 나쁜 사람은 마약효과가 더 지속되며 마약중독 현
상을 일으킬 가능성도 더 높아지게 된다.
  마약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마취제이면서 현재도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고, 또 새로
운 종류가 연구되고 있는 독특한 약물이다.

    6. '열'을 세기 전에 잠들게 하는 초강력 수면제들
    마취약 앞에서 장사는 없다
  전신마취를 도입하는 데 이용되는 수면제 계통의  약들을 마취유도제라고 한다. 마취유도
에 사용되는 수면제는 수면제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 환자는 보통  마취유도제를 맞으면 
주사약이 다 들어가기도 전에 깊은 수면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마취과 의사는 이렇게 환자를 깊이 잠들게 한 후 마취제를 주입해 충분히 마취효과가 나
타난 후에야 외과 의사에게 수술 시행을 동의한다.

    케타민, 효과와 부작용이 신비스런 약재
  마취유도용 수면제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03년의  바비탈(barbital, diethy   barbituric 
acid)이라는 약이었다. 그것은 1927년까지 사용되었으나 부작용이 많은 약이었다.
  1927년에는 부작용이 훨씬 덜한 헥소바비탈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전의 바비
탈의 부작용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하였다.
  전신마취유도용 수면제로서 획기적인 약물은 1932년에 개발되고 1934년에 임상에  쓰이기 
시작한 치오펜탈(thiopental)이라는 급속수면유도성 수면제이다. 이 약제의 효과  발현시간은 
정맥주사후 불과 10여초 정도로서 흔히 알려지기는  수술대에 누운 환자가 열을 세기  전에 
잠들게 되는 약인 것이다. 이 약은 그 우수한 수면효과와 적은 부작용으로 인하여 아직까지
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전신마취유도용 수면제이다. 그러나 극히 드물지
만 치오펜탈도 환자에 따라서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켜 환자가 전신마취상태에 이르기도 
전에 수술대 위에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세상에 절대적으로 안전한 약물은 없다는 깊은 교훈을 주는 사실이다.
  치오펜탈 이후에도 수 많은 정맥주사용 마취유도제가  개발되었다. 특히 1955년에 개발되
기 시작한 벤조다이아제핀(benzodiazepine)계통의 약물들은 치오펜탈과 같이 강력하지는  않
지만 진정 및 수면 효과의 탁월성으로 인하여 경구용으로 제조되어 일반인에게도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약물이 되었다. 이 약물들은 부분적으로 기억상실작용, 항경련작용 및 약간의 
근육이완작용 등이 있어서 소량을 사용하여 국소마취의 보조제나 작은 수술시의 최면제로서
도 통용되고 있다.
  벤조다이아제핀계 약물로는 발륨(valium, diazepam),  아티반(ativan, lorazepam) 등이  있
다.
  잘 알려진 전신마취유도용 수면제 중에서도 1962년에 개발된  케타민(ketamine)이라는 약
은 그 효과 면에서 아주 특이한 약물이다. 이 약은  깊은 수면효과가 있으면서도 환자의 심
장 및 혈관계와 호흡기능을 정상상태와 같이 유지시켜 줌으로써 중환자와 아주 쇠약한 환자
의 마취유도에 독보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약의 단점은 마취중이나 마취에
서 깨어날 때 환자의 무의식에 작용해서 심한 악몽을 꾸게 하거나 환각상태를 경험하게 한
다는 것인데, 이 약의 효과와 더불어 그 부작용도 신비하기만한 희한한 약제이다.
  가장 최근에 개발된 마취유도제는 프로포폴(propofol)인데 이 약은 기존의  약들에 비해서 
수면, 진정, 기억상실 효과가 대단히 좋으면서 마취에서 깰 때에 가장 부드럽게  반응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종류의 마취유도제건 마취과 의사의 손에 주어지면 마취가 시작되는 것은 시간 문제
이다. 마취제 앞에서 잠들지 않고 견뎌낼 장사는 없다.

    7. 오늘날의 흡입마취제
    부작용 없는 완벽한 전신마취제 없나?
  오늘날 수술실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흡입마취제는   세종류이다. 각각  할로탄
(Halothane), 에트란(ethrane, enflurane), 포란(forane, isoflurane)이다.
  할로탄은 향긋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어린이 용이나 어른이라도 자극적인 냄새를  싫어하
는 사람에게 이용된다. 할로탄의 단점은 간독성에 있다. 할로탄 간독성은 심각해서 어떤  경
우엔 수술 중에 환자가 사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할로탄은  천식 환자의 기관지를 넓혀주는 
작용도 있기 때문에 천식환자 마취에 특별히 주문되기도 한다.
  에트란과 포란은 둘다 마취작용이 비슷하다. 포란은 가장 최근에 개발된 것으로서 뇌혈관
을 이완시키는 작용이 적기 때문에 뇌수술 환자에게 선택적으로 사용되어진다. 하지만 값이 
가장 비싼 것이 흠이다.
  세가지 중에서 가장 무난하게 널리  쓰이는 것이 에트란이다. 에트란은  간독성도 없으며 
비싸지도 않기 때문이다.
  마취약도 사람처럼 중도적인 특징이 있을 때 무리없이 널리 쓰이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마취과 의사들은 끝없이 부작용이 없는 완벽한 전신마취제를 추구하고 있다. 서보
플루란(sevoflurane)은 이러한 마취과 의사들의 여망 가운데 개발되어 있으나 아직 시판되지 
못하고 있다. 머지 않아 이 새로운 마취약이 수술실에서 사용되어질 전망이다.
  마취과 의사들이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마취제는 어떤 것일까?
  첫째는 환자의 혈액에 빨리 흡수되고 빨리 제거되는 기체여야  한다. 이는 환자를 신속히 
마취상태에 이르게 하고 또 원하는 시간에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심장과 혈관에 대한 마취 부작용이 없어야 한다. 흔히 강력한 마취제는 마취 후에 
환자의 혈압과 맥박에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는 노인이나 저혈압 상태의 환자
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간과 신장에 독성이 없어야 한다. 모든 약물은 간을 통해서 어느정도 분해가 이루
어지며 신장으로 배설된다. 마취약도 예외가 아니다. 간과 신장에 독성이 강한 마취약은  장
시간 수술에 사용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외에 냄새가 좋아서 마취과 의사의 코를 즐겁게 해주고 예쁜 용기에 담겨져 있어 보는 
즐거움도 더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

    제4장 마취의 위험성
    1. 수술실의 커튼은 왜 검은 색일까?
    그래도 마취는 늘 위험하다
  바깥에서 보면 수술실은 늘 검은 커튼이 처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술실 문 안으로 들
어가면 컴컴한 밀실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왠지 무지막지한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곳
에서 환자의 몸을 만지며 수술이라는 끔찍한 작업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당연히 마취과 
의사는 저승사자처럼 무정한 눈빛을 하고 긴 주사기에 차디찬 약물을 담아 들고 다가올 것
만 같다.
  이처럼 사람들은 의학적인 견지에서 마취를 생각하기 이전에 수술실에 대한 어두운  느낌
으로 마취를 생각한다. 이광수의 소설 <흙>에서는 외과  의사와 간호사가 이이터에 적셔진 
거즈로 환자의 코와 입을 막아 마취를 하는 장면들이 다소 끔찍한 묘사와 함께 등장하는데 
이런류의 문학작품들도 마취에 대한 어두운 인식을 고착시키는데 한 몫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을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모험의 세계로 들어가
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수술실에서 생명을 잃는 것은 저항할 수 없는 필연적인 비극으
로 당연시 되었다. 살아 나오고 병이 회복되면 기적이었다. 그래서 수술실 밖에는 언제나 통
곡소리나 흐느낌이 끊이지 않았다.
  비극적인 영화에 수술실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주인공이 수술실에 들어가면 
관객들은 가슴을 조아리며 긴장을 하고 영화관의 숨소리는 최고조로 거칠어 진다.

    약물 과민반응이 마취사고의 주범
  수술실에서 환자가 생명을 잃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첫째는, 환자 자신의 질병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사망이다. 극심한 외상이나 대단히 위험
한 부위의 종괴 같은 환부는 그 자체로도 환자의 생명을 앗아갈 수가 있다.
  둘째는 수술사고이다. 수술사고는 외과수술에 의한  것과 마취에 의한 것으로  나눌 수가 
있다.
  오늘날엔 과거와 달리 수술실에서 환자가 생명을 잃으면 의사의 잘못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오늘날의 수술실에서 사고로 생명을  잃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로서 무조건 의사를 의심하는 자세는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수술실에서의 마취사고란 마취약에 의한 환자의 돌발적이고 예상치 못한 치사반응이나 마
취기구의 불완전한 취급으로 인한 환자 생명의 위기 상황, 또는 마취시술자의 마취부작용에 
대한 적절치 못한 대응 등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일련의 마취 연관성 의료사고를  가리키고 
있다.
  마취사고의 두려움은 그 특성상 일단 발생하면 환자의 생명을 직접 위협하고 만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현대의 마취의학은 마취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모든 과학적인 감시체크 시스템
을 갖추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발전해왔다. 그래서 이제  수술실에는 이중 삼중의 전자감시 
장치가 환자를 불의의 사고로부터 보호하게 되어 있다. 그 결과 사람의 부주의에 의한 마취
사고의 발생률은 현저히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책이 없는 마취사고는 약물에 의한 특이성 반응으로부터 발생한다. 화학
합성물질인 약제들은 모두 엄밀한 동물실험과 임상실험을 거쳐서 시판되지만 부작용이 없는 
약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약효가 강한 약일수록 부작용은 더욱 심하게 된다.
  특히 유전적으로 어떠한 약물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는 사람의 경우 그 가족들도 동일한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마취과 의사는 수술을 받게 되는 환자나 보호자에게 이러한 마취의 부작용들을 미
리 설명해주고 마취시행 동의서를 받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을 
볼 때 중대한 수술을  앞두고 마취사고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마취과 
의사로서는 언제나 만일의 사태를 준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수술실에서 의사들이 가장 겁내는  것은 마취사고이다. 수술은 작은  수술도 있고 
큰 수술도 있지만 마취는 작은 마취가 없다. 왜냐하면  마취약은 극소량이라도 환자를 금방 
위험에 빠뜨려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도 수술실은 여전히  검은색 커튼이 쳐진 것
처럼 보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2. 마취와 사망
    마취관련 사망, 사고 통계 믿을만 한가?
  마취 관련 사망률은 보고자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이는 연구된 지역, 사용된 마취제의 종
류, 사망시간의 범위, 단순히 마취 이외의 요인을 포함시킬 것인가의 여부 등에 따라서 연구
의 결과가 매우 다르게 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1978년에서 1982년 사이에 2000여 병원에서  보고된 190,389 건의 마취에서 
마취사망률을 분석한 결과 1 : 13,599의 비율로 나타난다. 이는 비쳐(Beecher)와 토드(Todd)
가 1954년에 보고한 1 : 2,680 과는 다섯배 이상의 차이가 나고 있다. 시대 차이를 감안하더
라도 메메리(Memery)의 1965년 보고인 1 : 3,145와도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통계는 마취과 의사들이 합병증 발생이나 사망에 관해서는 명예나 그 외 여러 가
지 이유로 인해 정직한 보고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고려할 때 통계보다 사망 비율이 
더 높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할 수 있겠다.

    마취관련 사망사고 급격히 감소
  그러나 1980년도 이후 최근에 이르는 기간에는 노령인구에 따른 합병증이 동반된  대수술
의 빈도가 증가하고 질병자체도 그 양상이 더 위협적인 경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률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망률의 감소는  마취사망요인에 대한 
마취과학적 지식의 증가, 마취중 환자의 생리기능에 대한 이해와 감시장치 사용의 발달,  이
전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치명적인 마취약의 해독에 대한 발견과 대체 약물의 개발 증가 등
의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통계적으로 알려진 마취와 연관된 환자의 사망률은 다음과 같다.
  마취와 연관된 환자의 사망률
  조사자              연도   마취예수 사망의 빈도(마취가 주원인 , 마취는 부원인)
  Beecher and Todd   1954   599,584                 1 : 2,680       1 : 1,560
  Dornette and Orth   1956    63,150                 1 : 2,429       1 : 1,344
  Dripps et al*        1961    33,224                 1 :   852      1 : 415 
  Clifton and Hotten** 1963   205,640                 1 : 6,048      1 : 3,955
  Memery             1965    69,291                 1 : 3,245      1 : 1,082
  Harrison***          1968   177,928                    -          1 : 3,007
  * : 척추마취 예와 근육이완제를 사용한 전신마취 예
  ** : 마취 중이나 마취 후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사망한 예
  *** : 마취 후 24시간 이내나마취 후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사망한 예

    3. 전신마취와 선천성기형 발생
    전신마취약, 태아에 별 영향 없다
  전신마취약은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러한 의문은 특히 수술실의 간호사들에게나 마취약에 노출되기 쉬운 여의사들에게 심각
한 질문이 된 시절이 있었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임신중인 여자가 급성맹장염이나 교통사
고 등으로 전신마취하에서 응급수술을 받게 되는  경우에 그 태아를 유산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만일 마취제로 인해 기형을 유발시키는 부작용이 발생된다면 그것은 보통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비단 가임기 여성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수술실에서 일하는 남자들에게도 그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신마취와 선천성기형 발생과의 연관성 연구는 
근대 마취역사 초기에 많이 시도되었다.
  이를 위하여 주로 이용한 연구방법은 임신한 부인이 전신마취를 받은 모든 경우를 조사하
여 그 태아의 출생시에 기형발생률을 계산하고 그것을 일반적인 기형발생률과 비교하는  것
이었다.

    마취제가 태아에 미치는 영향 연구 활발
  그런데 이러한 조사연구 과정에서 대단히 복잡한 새로운 문제들과 부딪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인구중에 기형발생률이 대단히 낮은 점, 임산부들이 임신 중에  마취
제 이외의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으므로 그런 약물의 효과와 마취약제  효과와의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점, 임신부가 수술을 받은 경우에 그 질병과 수술의 태아에 대한 효과
를 마취제의 효과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나타났다.
  그러나 반복적이고 대규모적인 연구를 통해서 마취와 태아와의 관계가 일부 의미있게  밝
혀진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임신부의 태아 임신  기간에 상관없이 마취제의 작용이  태아의 신체구조 형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둘째, 태아의 저체중이나 조산의  가능성은 임신부의 마취와 수술에  의해서 그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높게 나타났다.
  셋째, 임신부가 태아를 임신하고 출산일이 임박했을 때 마취와  수술을 받게 되는 경우에
는 태아의 출산이후 사망률이 더 높았다.
  단 동물실험에서는 임신한 쥐로 실험한 경우,  임신 8일째에 24시간동안 50% 아산화질소
로 마취했을 때에 기형발생률이 비교군보다 높았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사람의 경
우에는 아직 확정된 연구결과가 없는 실정이다.

    4. 나는 의사들이 하는 소리를 다 들었어요!
    마취중에도 깨어있는 환자들
  1979년 영국마취과학잡지(British Journal of  Anaesthesia, 1979;51)에는 편집자 이름으로 
전신마취의 문제점 하나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제왕절개수술을 받은 한 여의사
가 익명으로 기고한 글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여의사는 전신마취를 당하여 수술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산부인과의사들의 주고받는 말, 수술하는 움직임들, 그리고 마취과 의사의  중얼거
림과 움직이들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수술실에서 경망스런 농담은 금물
  그 기고문의 제목은 '깨어 있었어요(On Being Aware!)'였다. 마취과 의사는 마취를 했고, 
산부인과의사는 마취된 것을 믿고 수술을 했는데 환자는 깨어 있었던 것이었다.
  환자는 자신이 깨어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는데 마취과  의사가 
다가와서 근육이완제를 한 방 놓더라고 하였다. 다행히도 환자는  의식은 깨어 있었지만 통
증은 느낄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말짱한 정신으로  자신을 수술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와 기구들이 뱃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을 느꼈으며, 심지어 아이의 울음소리까지 
다 들었다고 했다.
  이는 마취과학에서 소위 '전신마취중 각성상태'라고 부르는 불완전한 마취의 전형적인  모
습이다.
  외과 의사들이나 마취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처럼 마취중인 사람이  의사의 
말을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비공식적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수술실에서는 경망
스런 농담이나 환자의 신상에 대한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오고 있었다. 마
취과 의사는 이런 환자를 위해서 기억상실의 효과가 있는 마취약제들을 추가로 투여하고 있
기도 하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1∼2%의 전신마취 환자들이 수술중  각성상태나 그외 환각 
상태를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전신마취중의 각성상태를 경험하기  쉬운 환자들로는 제왕절개수술을  받는 산모, 
교통사고 등의 출혈이 심한 상태에서 응급수술을 받게 되는  환자, 심장수술과 같은 대규모 
수술로서 주로 마약성 약제를 이용하여 마취를 시행한 환자들의 경우로 나타나 있다.
  물론 외과 의사나 마취과 의사는 수술을 받을 환자에게 이러한 현상이 생길 수 있는 가능
성에 대해서 설명해줄 의무가 있다.

    5. 수혈의 부작용
    수혈, 가능하면 피해야
  의학역사상 다른  사람의 피를   환자에게 수혈했다는 기록은   1828년 영국의 브룬델(J. 
Blundell, 1790∼1878)이 의학잡지인 란세트(Lancet)에 기고한, 대량출혈의 환자 10명에게 시
도하여 반수에서 생명을 살렸다는 보고서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이는 1900년에 란트스타이
너(K. Landsteiner, 1868∼1943)가 인간의 혈액형을  ABO형으로 구분하는 연구를 시작하기 
72년 전의 일이었다.
  혈액형이 정하여지고 동족혈액 끼리는 수혈 거부반응이 없다는 것이 인정되자 수술실에서 
본격적으로 수혈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이어  혈액형의 종류가  ABO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MN형 및 Rh형은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추적 가능한 혈액형이 무려 400가지가 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들은 수혈직후에는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지만 세포병리적으로 어디엔가에서  부적합한 작용을 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그런데 수혈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수술실이며,  수혈의 부작용은 마취과 의
사의 중요한 결정사항이 되어 있다. 그래서 마취과  의사들에게는 '수혈이 과연 안전한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은 지금 이시간에도 반복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답
은 '가능하면 수혈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수혈이란 사람의 몸속에 다이너마
이트를 집어 넣는 것과 같다고 말하며 수혈에 신중하도록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수혈, 인체내에 다이너마이트 넣는 것 같아
  수혈을 피해야하는 중요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적합한 면역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현재의 ABO, Rh 수혈검사만으로는 부적
합한 면역반응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은 이미 확증된 사실이다.  400여개의 항원들은 어떤 
모양으로든 항체반응을 야기시키는 확실한 것이다. 이들은 수술 부위의 조직 재생을 지연시
킬 수 있다. 실제로 동일한 질병의 외과적인 수술에서 수혈받지 않은 그룹과 수혈받은 그룹
의 비교연구를 한 결과 수혈을 받지 않은 환자의 수술 성공률이 30% 이상 높았다는 보고가 
있다.
  둘째는 감염의 위험성이다. 수혈에 의한 감염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가리지 않는다. 수
혈을 받는 경우 공혈자의 피에 섞인 병균이 그대로 수혈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잘 알려진 수혈전달성 질병으로 매독, 사이토메갈로 바이러스, 말라리아, 헤르페스 바이러
스, 발진티푸스, 홍역, 살모넬라 등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AIDS와 간염  바이러스
가 긴급히 추가되었다. 물론 공혈자의 혈액은 엄격한 검사 후에 수혈이 되지만 감염은 명백
히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간염의 경우 수혈자의 7∼10%가 수혈 후 간염 바이러스를 갖
게 되며, 그 중 90 이상이 검사에 걸리지 않는 Non-A Non-B 형인 것으로 밝혀졌다.
  셋째는 혈액응고장애의 발생이다. 수혈은 혈소판 감소증, 혈액응고인자의 결핍, 혈관내 응
고증 등을 일으켜서 수술부위의 정상적인 혈액응고 작용을 방해한다. 이로 말미암아 상처가 
잘 아물지 않고 수술부작용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외에도 수혈을 하는 순간부터 환자의 체내에서는 일시적이지만 다양한 비정상 반응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일례로 체액의 산성화, 고칼륨증, 저체온 등의 위험한 반응도 있다.
  혈액은 생명이 깃든 개인 고유의 체액으로 그 안에는 대단히 복잡한 내용물이 담겨져 있
다. 이 시대 의학계에서는 수혈의 부작용에 대해서 심각히  염려하는 주장들이 주류를 이룬
다.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의 혈액이 아니라 혈액대체용액을 주사하는 게 이상적이라는 얘기
이다. 그 동안 마취과에서는  수술에 적당한 헤모글로빈의 양을,  정상인의 경우 최소한  10 
mg% 정도로 인정해왔다(성인의 정상치는 14∼16 mg%정도). 그리고  이 기준치 이하가 되
면 수혈을 해서 혈액량을 보충하도록 권고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헤모글로빈 1.8 mg%를 가진  환자가 수혈없이 고농도 산소공급만으로 생
존했다는 보고서(Anaesthesia, 1987.1) 내용에 겸손히 귀를 귀울여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6. 전신마취를 하면 머리가 나빠진다?
    내 아들이 전신마취를 한다구!!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10년 만인가? 11년 만인가?  잠시 생각해보는 사이에  그가 거두절미하고 물어보는 말이 
"야, 전신마취하면 혹시 머리가 나빠지는 거 아니야?" 였다. 뜻밖의 질문이라  뭐라 할 말을 
찾을 새도 없는데 그가 덧붙이는 말이 "내 아들이 이번에 전신마취로 수술을 하게 됐어."이
다.
  그제서야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감을 잡았다.  그는 아마도 아이가 너무 어린
데 전신마취를 하면, 마취는 뇌의 기능도 마비시키므로 혹시  뇌세포가 손상을 입어 지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 자신이 머리가 좋기로  소문난 친구였으니, 아들에 대해 기대가  큰 것도 무리는 
아닌 터였다. 내가 그런 처지라도 그런 걱정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무슨  대답도 
생각나지 않고 해서 자세히 한번 알아봐 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뇌리에 남아 있는 
그의 목소리는 정녕 걱정과 염려로 가득차 있는 듯 했다.

    전신마취 중 뇌세포는 얼마나 안전하가
  전신마취를 하면 뇌세포의 기능이 극히 감소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뇌파측정으로 이미 
입증이 되었다. 사실 전신마취라는 것은 뇌를 마비시킨다는 말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전신마
취에 걸린 사람은 의식을 잃고, 아무런 지능적인 혹은 신경적인 반응을 할 수 없게 되는 것
이다. 마취약은 신속히 뇌로 올라가서 뇌세포를 잠들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뇌세포 중에 마취약에 의해 완전히  기능을 상실해 버리는 세포도 생겨나지  않을
까? 그래서 머리 좋던 사람이 전신마취 후에 왕성하던 뇌기능이 줄어들어 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마취약은 일종은  화학물질로서 휘발성이 대단히 높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마취약은 특징적으로 뇌세포의 전기발생작용을 위축시키지만 외부로부터 약물 공급이 
중단되면 급속히 다시 빠져 나오게 된다. 그 시간은 길어야 5분이라고 밝혀져 있다.
  전신마취중에 뇌세포가 안전한 또 한가지  이유는 전신마취시에 사용하는 산소의  농도와 
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대기 중에는 20% 정도의 산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전신마취
시에는 보통 50% 정도의 산소를 마취기를 통해서 공급하게 된다. 그래서 마취를 시작한 후
와 마취를 시작하기 전의 환자 혈액 색깔이 차이가 나는데 마취를 시작한 이후의 혈색이 더
욱 맑고 밝은 선홍색을 띄게  된다. 그러므로 전신마취중에 오히려 뇌의  세포들은 더 많은 
양의 산소를 공급받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뇌세포들은 전에 없이 좋은 조건을 맞이하게 되
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마취 중에는 뇌세포가 일체의  외부자극과 차단되어 일정기간 휴식을  취함으로써 
도리어 전신마취 이후에 더 좋은 기능으로 발휘할 가능성도 있다.
  20세기 천재 중의 한 사람이라고 불리우는 프로이드는 고질적인 구강질환으로 20회  이상
의 전신마취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움직이는 병원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지혜와 두되는 갈수록  왕성하였을 따름이었다. 내가 아는 친구 중의  한 
사람은 교통사고로 거의 절명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수술 후에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졌는데, 
중환자실에서 2달 가량을 인공호흡기로  지내야 했다. 그리고 회복되어  지금은 유명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 친구의 전화가 아직도 끊어지지 않고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야, 쓸데 없는 걱정하지 말고, 오늘 저녁식사나 하자!"

    제5장 수술과 마취
    1. 임산부 마취
    마취는 하나님이 여성에게 베푼 구원의 손길
  산과마취는 전신마취법상 가장 먼저 개발된 마취방법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출산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말하여 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산과마취의 
특성은 마취를 하면 임산부 뿐만  아니라 태아도 마취를 당하게 되는  것에 있다. 산모에게 
투여되는 모든 마취제는 신생아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처음부터 산과마취의 기본원칙
은 '모든 마취제의 가능한 소량투여'에 있었다.
  그런데 마취제의 소량투여는 결과적으로 마취를  얕게 할 수가 있어서 '불완전한  마취'의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또한 임산부의 늘어난 체중과 임신에  관련된 각종 신체생리적 변화
의 요인 때문에 마취제 효과의 일반적인 계량적 기준이  산모에게는 적용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산모의 마취는 전신마취의 특수분야로서 발전하게 되었다.
  오늘날은 전신마취 뿐만 아니라 척추마취와 경막외마취 및 정맥마취법의 개발로 무통분만
에서 제왕절개수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마취법을 선택하여 산모들에게 시행하고 있
다.

    산모 전신마취 위해서는 '금식' 필요
  산과마취를 최초로 시행하고 널리 전한 사람은 영국의 심프슨(James Y. Simpson, 1811∼
1870)이라는 산과의사였다. 그런데 당시 유럽의 캘빈파 목사들은, 하나님이 성서에서 여자에
게 주신 고통을 없앤다고 해서 그를 마귀의 아들이라고 공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은  1857년에 레오폴드 왕자를  낳을 때 왕실의사였던  스노우(John 
Snow, 1813∼1858)에게 무통분만을 해주도록 요청하였다. 스노우는  클로로포름을 사용하여 
무통분만을 시행했다.
  여왕은 고귀한 영국 왕의 품위를 지키며 미소 가운데 해산을 했다. 그후 '마취는 하나님이 
여자를 구원하도록 보낸 손길'이라고 선포케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노우는 최초의 마취과 전
문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이터 대신 새로이  클로로포름이 산과마취에 가장 많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산과마취는 마취의 효과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입증하면서 마취 전분야의  발전을 
앞당기는 견인차가 되었던 것이다.
  산과마취의 위험성은 대부분 산모가 언제 진통이 와서 수술실에 오게 될 지 모르기 때문
에 생기는 문제들이다. 즉 전신마취를 하기 위해서는 산모가  어느 정도의 금식기간을 가져
야 하는데, 산과마취에 있어서는 산모에게 갑자기 진통이 오면 마취과 의사는 어쩔 수 없이 
금식기간이 부족한대로 응급 전신마취를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때엔 위에서 아직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과 위산이 식도로 역류하여 폐로 흡인될 가능성
이 높아지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한 상황으로서 만일 위산과  함께 대량의 흡인이 일어나면 
사망률이 50% 이상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산모가 위험해지면 태아도 같이 위험
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마취과에서는 산모와 함께 태아를 위한 응급시스템도 갖추어 놓고 수술을  시작하
게 되는 것이 원칙이다.

    환자의 심한 출혈현상 극복이 과제
  산과마취의 또 다른 위험성은 환자의 심한 출혈현상 때문에 야기된다. 제왕절개수술의 경
우에 보통 1000 ml 내외의 출혈이 있는데 이는 건강한 산모의 경우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궁의 수축이 지연되거나 자궁근육의  무기력증에 의해서 과도한 출혈이  계속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 때는 응급 수혈이 불가피한 경우이다.
  그래서 산과의사의 일을 마취과에서는 'bloody job(피튀기는 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경우 응급수혈이 신속하지 못하면 산모가 사망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오늘날 산과마취는 마취영역 중에서도 가장 깊이 연구된 분야로 꼽히고 있다. 산과마취방
법은 환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시술되고 있다. 그래서  마취방법까지 산모의 취향에 따
라 선택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마취의 발달은 여성을 해산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고, 또 획기적인 산과마취술
의 발달은 난산이 예상되는 산모가 제왕절개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임산부와 신생아
의 사망률을 현저히 낮추는 효과를 낳았다. 이는 마취의학이  인류사에 기여한 공적으로 기
록될 소중한 일이리라.
  요즈음은 산모가 병원에 아이를 낳으러 가면서 고무신을 거꾸로 해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이처럼 안전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
다. 불행하게도 불과 이삼십년 전의 우리 어머니들은 산과마취의 기적을 알지 못한 채 세상
을 살았던 것이다. 산과마취의 발달은 여인을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켰지만, 그 짐은 
아직도 마취과 의사에게 지워져 있어서 산과마취는 여전히 마취과 의사에게는 가장  까다로
운 마취분야에 속해있다 하겠다.

    2. 어린아이 마취는 감기가 가장 위험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라야 소아마취 성공
  소아마취의 어려움은 대부분의 마취를 전신마취로 시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전신마취
의 주된 마취제 투입처인 폐가  대단히 여리고 기도가 좁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소아는 
다시 신생아기와 유아기, 소아기로 세분되는데,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모든 신체기관이 빠른 
성장과 발육과정에 있다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소아환자를 마취할 때에  성인의 기준을 적용할 수가  없고, 전체적인 마취관리를 
다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아마취는 성인마취와 구별되어 새로운 마취영역을 형성
하게 되었다.

    마취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폐기도가 문제
  수술실에는 소아를 위한 마취기와 마취기구들이 모두 별도로 갖추어져 있다.
  소아마취를 하는 마취과 의사는 섬세하고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여야 한다. 수액이나 마취
제 사용에 있어서 조그만 실수라도 체중이 작고 약물반응이 예민한 소아에게는 치명적일 수
가 있는 것이다.
  또한 소아마취를 위해서는 보호자도 아이에게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특히 병실에서 감기
에 걸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마취과 의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소아는 작은 감기에 걸려도 
폐의 기도가 협소해서 마취제가 들어가면 이내  자극을 받아 산소가 폐포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소아환자의 경우 감기 때문에 수술이 지연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이처럼 마취제에 예
민하게 반응하는 폐기도와 연관돼 있다.
  그리고 소아마취시에는 주입되는 수액의 양을 잘 조절해야 한다.  체중이 작기 때문에 주
사액이 조금만 과다하게 투입돼도 몸이 붓거나 차가운 수액으로 인한 이상체온이 나타날 수
가 있기 때문이다. 그 외 흡입마취제와 근육이완제, 마취유도제 등의 선택과 용량에도  세밀
한 준비와 약물반응에 대한 분명한 감시가 필요하다.
  또 하나 소아마취의 난점은 체온 관리문제이다. 소아는 성인과  달리 신체의 온도 변화에 
대한 저항력이 없다. 오랜기간 차가운  수술실에서 환부를 드러내고 수술을  받으면 대부분 
저체온 상태가 된다. 저체온 상태는 마취약의 작용시간을 길게  하고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
아오는데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그래서 소아 수술실에는 항상 가열기와 가온용 물담요가 비
치돼 있어야 한다.
  소아의 마취는 이처럼 섬세하고 까다로운 일이지만 어린아이란 마취를 해놓고 보아도  귀
엽고 사랑스러운 것이 마취과 의사에게는 위로가 된다.

    3. 장기이식 환자의 마취
    수술도 고난도, 마취도 고난도
  오늘날은 장기이식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대이다.
  장기이식 수술을 받는 환자들을 마취하기 위해서는 수명이 다해 이식수술을 받아야만  하
는 장기의 정상적인 기능상태와 이상상태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게 되어  있
다. 예를 들어 간이식 수술을 받는 환자를 마취하기  위해서는 간기능부전으로 인하여 환자
에게 이미 나타나 있는 심혈관계 및 호르몬 상태의 변화에 대해서 숙지해야 한다.
  이러한 이상상태에 대한 마취과 의사의 처치방법은 내과적인 치료와는 사뭇 다르다. 그렇
기 때문에 장기이식 환자의 마취과적 관리가 마취의학의 한 특수한 분야로서 연구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시술되고 있는 장기이식 수술은 골수이식, 신장이식, 간이식, 심장이식
이 일반화돼 있고, 그 외 소화기 계통의 장기 이식술은 아직 시험단계에 있다. 미래의  의학
은 인간의 신체장기 중에서 신경계통의 극히 일부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이식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성공적인 장기이식을 위해서는 각 분야별로 특수한 마취기술이 반드
시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장기이식에 있어서의 마취과 의사의  역할은 외과 의사가 수술
로서 새로운 장기를 붙여주는  동안 환자의 신체기능을 정상화  시켜주고, 이식후에 새로운 
장기가 제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유리한 환경을 예비해 주는 데에 있다.
  이는 수술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장기이식을 위한 전문 마취과 의사
가 꼭 필요하다.

    고난도 신장이식수술 성패, 마취에 달려
  장기이식분야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이미 일반화되었고  가장 널리 시행되고 있는  분야는 
신장이식수술이다. 신장은 하나만 있어도 정상적인 신체기능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
에 굳이 뇌사환자의 신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바로  이점에서 간이식이나 심장이식에 비
하면 특수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신장이식환자의 마취는 환자의 만성신기능부전 상태에 대한 마취과적 접근으로부터  이루
어진다. 만성으로 신기능이 떨어진 환자는 반복적인  혈액투석으로 생명을 유지해온 사람들
이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혈액내의 전기적인 물질들의  불균형과 노폐물의 불완전한 배
설문제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 순간만 방심할 경우에도 수술이 시작되기도 전에 환자를 사망으로 이끌 
수가 있기 때문에 마취과 의사는 대단히 예민하게 환자의 혈액과 심장의 기능을 조절하면서 
마취를 시행하게 된다. 가령 혈액의 전해질 검사에서 K+ 이온의 농도는 3mEq/L와 5mEq/L 
사이에서 정밀하게 유지되도록 이뇨제나 전해질이 담긴 수액을 투여해서 조절해야 되는  것
이다.
  또 마취과 의사는 외과 의사가 건강한 신장을 환자의 병든 신장과 교환하는 수술을 진행
하는 동안에 그 수술과정을 계속 지켜보면서 혈관이 연결될 때에는 혈압을 조금 높여주기도 
하고, 뇨관이 연결되기 직전에는  이뇨제를 투여해 소변량이 늘어나  새로운 신장의 소생을 
도와주는 식의 중요한 마취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노련하고  경험이 많은 마취과 의
사는 외과 의사의 수술에 직접적인 동역자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게 된다.
  장기이식 시술에는 그 수술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마취과 의사의 역할이 수술성과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신장이식수술에 비추어 볼 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간이식이나 심장이식 수술은 초보단계
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외과 의사의  기술도 문제이지만 전문적인 마취과 의사
가 부족한 것도 문제이다. 앞으로 인류가 더욱 활발한 인공장기의 시대로 나아가에 될 것은 
자명한 일이므로 장기이식에 대한 마취과적인 연구가 시급하다고 볼 수 있다.

    4. 정형외과 환자의 마취
    피와 뼈가 같이 튄다
  정형외과의 모든 수술은 뼈와 관계가 있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뼈는 인체의 구성성분 중
에서 가장 단단하고 질긴 조직이다. 또 모든 뼈들의 단단한 껍질 속에는 스폰지처럼 부드러
운 속조직이 있고, 거기에는 뼈를 먹여 살리는 혈관들이 모여있다. 그래서 정형외과  수술은 
늘상 때리고 자르고 잡아 당겨 맞추는 작업이 반복되게  되어 있다. 소위 '피튀기는' 수술인 
것이다.
  이러한 정형외과 수술 환자를 마취하는 것은 어지간히 마취를 즐기는 마취과  의사들에게
도 지겹고 긴장되는 시간이 되고 만다. 반면에 정형외과 의사들은 하는 일이 그래서 그런지 
매사에 대범하고 공격적이기 마련이다. 그러니 금요일  오후쯤 되면 정형외과 수술실에서는 
마취과와 정형외과 레지던트 사이에 티격태격 거친 말들이 오가곤 하게 된다. 정형외과에서
는 몇 개의 수술을 더 하고 주말을 맞고 싶고,  마취과에서는 귀찮은 자들이 끝까지 속긁네 
하는 식으로 대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번은 싸워야 서로를 이해하는 정이 들게 된다.

    담당 의사와 몇 번 싸워야 하는 마취과 의사
  정형외과 수술은 사고로 인한 골절을 제외하면 대부분 퇴행성관절염이나 척추이상으로 인
한 수술이라고 볼 수 있다. 척추교정술은 정형외과 수술 중에서도 가장 대규모의  수술이다. 
출혈도 단기간에 급속히 발생하고 수술시간도 적게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정형외과수술 환
자를 마취하게 되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정형외과 마취의 또 하나 어려운  점은 겨울에 일어난다. 겨울에 골목길이  얼면 집 앞에 
막 나오려던 노인들이 살얼음에 넘어져 골절상을 잘 입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응급으로 
정형외과에 오게 되는데, 이미 허약해진 몸이라 마취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게다가 노인 
환자들은 수술과 마취가 다 끝난 후에도 절대로 안심할 수가  없다. 노인 환자를 많이 다루
는 병원에서는 수술이 잘 끝난 후 병실에서 잠깐 사이에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왕왕 생기
는데, 이는 골절부위에서의 출혈이 계속되어 쇼크도 생기고 연로해진 신체가 마취약제를 완
전하게 소화하지 못하므로 약효가 오래 지속되는 현상 때문이라고 볼 수가 있다.
  정형외과 마취의 또 다른 특징은 교통사고나 가정에서의 사고와 같이 갑작스런 사고로 인
한 응급수술이 많다는 것이다. 교통사고 환자의 처참하게 부서진  몸을 잘 수술해주는 정형
외과 의사와 같이 일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정형외과 수술은 대부분 힘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형외과 의사중엔 여자가 거의 없다
는 것이 마취과 의사로서는 좀 심심한 일이다. 그래도 '피와 뼈가 같이 튀는' 정형외과 마취
를 즐기는 화끈한 마취과 의사도 많다.

    5. 성형외과 마취는 유행따라 흐른다
    성형외과 수술을 보면 유행이 보인다
  수술실에서만 일하는 마취과 의사들이 세상의 유행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마
도 성형외과 수술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다른 질병들도 다 시대에 따라서 유행처럼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성형외과만큼 유행을 많이 타는 수술은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 이전엔 선천성 기형을 교정하는 성형수술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언청이 교정술같은 수술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또 화상으로 인한 흉터제거술은 당시 성형외
과의 단골메뉴였다. 그래서 성형외과를 중심으로 피부 이식술이 대단히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환자의 마취는 구강외과나 이비인후과 환자의 마취와 비슷한 방법으로 시행하면  되
었다. 단 선천적으로 기도자체까지 기형이 동반된 경우엔 거기에  따른 기도 확보를 해야만 
했다.

    80년대 후반 이후 붐 이룬 쌍꺼풀 성형수술
  그런데 1980년대가 시작되면서 급속히  미용을 위한 성형수술이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처음에는 쌍꺼풀 수술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성형수술을 위한 마취는 그동안
의 상식적인 마취의 개념에서 다르게 변화하였다.  왜냐하면 성형외과 환자들은 신체적으로
는 건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쌍꺼풀 수술은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 유행이 극에  달하게 되었고, 마취방법도 전
신마취가 아니라 국소마취로 성형외과 외래에서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오천년 우리나라 역사상 여성들의  눈이 가장 혁명적으로 크고  아름답게(?) 바뀐 
때가 서기 1980년대 후반이 아니었을까 짐작이 된다.
  성형수술 잘 되면 좋지만 가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코를 
높이기 위해서 전문 의사도 아닌 아마추어를 통해 파라핀을 주입받았다가 부작용이  생겨서 
수술 받으로 오는 사람들이었다. 파라핀은 얼굴을 피하에서 움켜쥐고 피부를 녹여내는 경우
가 많았다. 그야말로 혹 떼려다 혹 붙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쌍꺼풀 수술에서 비롯된 성형수술의 바람은 90년대로  뜨겁게 이어져갔다. 그때부터는 수
술실에 하나 둘씩 지방흡입술을 받으러 오는 중년의 아주머니 환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
다.
  이어서 유방 성형술이 선풍을 일으켰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수술실에 올 때에도 진지하게 화장을 하고 왔는데 마취를 하다보면 
손에 끈적끈적 화장품이 묻어나곤 하였다.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눈썹화장을 하는 사람들이 
수술실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1990년내 초무렵부터였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그런 성형은 의사가 한 것이 아니라  미용실에서 한다고 하였다. 문신
으로 눈썹을 그리는 것도 처음에는 이상해 보이더니 나중에는 너무 흔하니까 당연하게 여기
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나라 성형외과 수술실에서 주름 제거술, 광대뼈나 턱뼈의 교정술은 보편화 되
었다.
  성형외과 수술실에서 바라보는 21세기는 어떻게 변할지  새삼 궁금하다. 일본에서는 원하
는 얼굴 모형을 들고 와서 수술을 받고 간다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까 생각하면 사뭇 흥
미진진해진다.

    6. 신경외과 환자의 마취
    철야하기 일쑤니 마취과 의사는 괴롭다
  신경외과 환자는 주로 뇌출혈이나 뇌종양, 척추병 수술을 위해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
  뇌는 마취약물이 주로 작용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특별한 마취제의 선택이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펜타닐(fentanyl)과 이소플루렌(isoflurane)은 신경외과수술을 위한  마취에서 가
장 효과적인 마취작용을 이루게 하는 약물이다.
  한편 뇌는 인체기관 중에서 단위무게당 가장 많은 양의 혈액이 공급되는 부분이므로 언제
나 관련 수술시 대량수혈의 가능성을 지닌다. 그러면서도 수술을 대부분 직접 손으로 할 수
는 없고 현미경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외과 의사로서는 극한의 인내와 섬세성이  요구된
다.
  마취과에서는 특히 환자가 미동도 없이 마취상태가 유지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신경
외과 환자의 수술은 마취과에서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수술  중의 하나이다. 신경외과 환
자의 마취는 아직도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는 특수마취분야이다.

    마취과 레지던트와 신경외과 의사는 천적
  마취과 레지던트들은 신경외과 의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레지던트 당직 
때에 그날 밤을 가장 괴롭히는  수술이 신경외과 수술이기 때문이다.  응급으로 신경외과에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갑작스런  뇌출혈이나 사고로 인한 뇌파열  환자들인데, 이런 환자의 
수술이 시작되면 그날 하루밤은 꼬박 뜬눈으로 새야 하기 때문이다.
  응급수술이 아닌 신경외과수술은 주로 뇌나 척수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기 위한 경우가 대
부분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환자는 수술이 끝난 후에도 바로 입원실로 가서 회복하지 못
하고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아야 한다. 병원에 따라서는 신경외과 환자를 위한 중환자
실의 관리도 마취과 의사가  담당하여 인공호흡기와 심장과 간,  신장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시키는 업무를 지속적으로 감당하기도 한다.

    7. 안과, 이비인후과 환자의 마취
    누워서 떡먹기?
  안과와 이비인후과 수술은 마취방법면에서 볼 때  가장 단순한 형태의 마취라고 볼  수가 
있다.
  전신마취를 유도하고 마취깊이가 적정한 수준에 이르기만 하면 마취과 의사는 크게  하는 
일 없이 수술이 끝날 때까지 점잖게  기다렸다가 수술이 끝나면 부드럽게 마취를  깨워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인턴이나 1년차 레지던트들이  이런 수술실에서 가장 먼저 
마취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수술과 달리 마취가 간단치 않은 이비인후과
  이비인후과 수술에서 마취하기에 가장 까다로운 환자는 어린아이의 편도선 수술이라고 볼 
수가 있다. 편도선은 목구멍 좌우에 있는 일종의 임파선으로서  염증이 생기면 심하게 부어
서 통증과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나아가 중이염, 부비동염(축농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편도선 제거술은 간단한 수술 같지만 마취를 할 때에 인공 기도를 그곳으로 통과시켜야 하
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일이다.
  수술이 쉽게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지만 어려운 경우에는 수술 중에 인공기도가 빠져나와
서 응급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안과 환자의 마취는 비교적 평이한 편이다. 수술도 안구를  중심으로 대단히 섬세하게 현
미경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취과정은 가장 단순하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요즈
음에는 고혈압과 당뇨의 합병증으로 안구내에 미세한 망막출혈 현상이 일어나 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아져, 마취 자체보다 마취 중에 혈압과 혈당을 유지시켜 주는 문제가 마취과 의사
의 중요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전신마취는 환자에게  스트레스가 되므로 혈압의 불규칙적인 
상승을 유발시키고 심하면 수술 중에 뇌출혈을 야기시킬 수 있다. 또 당뇨환자의 경우 마취
과 의사는 수술 중에도 매 시간 혈당을 측정하고 적절한 양의 인슐린을 투여하여 정상이 유
지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안과, 이비인후과 마취를 하다보면  '수술은 간단하나 마취는  간단하지 않다'는 선배들의 
명언을 때마다 깊이 새기게 된다.  외과 의사들은 종종 그들의 수술  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마취과의 일도 가볍게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마취과 의사는  작은 수술에도 긴장을 풀
어서는 안된다. 수술은 작은 수술이 있고  큰 수술이 있지만, 마취는 언제나 환자의  의식을 
잃게 하고 깨워야 하는 한결같이 심각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안과, 이비인후과 수술의 마취를 '누워서 떡먹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
한 것은 마취사고가 발생하면 안과,  이비인후과 환자에게 많다는 사실이다. 마취는  쉬운데 
마취사고는 많은 것이다. 누워서 떡먹기라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데.

    8. 구강외과 환자의 마취
    마취기구관리에 만전 기해야
  구강외과에서 하는 수술은 주로 악안면 골절상의 고정이나 악안면부위를 근원으로 발생하
는 종양제거술이다. 따라서 구강외과적인 수술은 대부분 입술과 입안의 구조물, 상악 및  하
악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수술을 위한 마취는  다른 외과수술과 달리 마취
기에서부터 환자의 폐까지 연결하는 기구들의 관리가 대단히 중요하게 된다.
  외과 의사들은 일단 수술에 들어가면 대부분 마취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쓰기 때문에 구강
외과 수술의 경우 정신을 집중하여 수술만 하다보면 마취기와 환자의 산소연결부가  느슨해
지거나 빠질 수 있고 입안에 가득 고인 혈액이 기도내로 들어갈 위험성도 대단히 높아지게 
된다.

    비강을 통한 마취용튜브 사용 보편적
  구강외과수술을 위해서 마취과에서 특수하게 마취하는 기술의 하나는 기관지내에  삽입하
는 전신마취용 튜브를 입이 아니라 콧구멍을 통하여 넣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이비인후과 
수술이나 성형외과 수술실에서 가끔 사용하지만 구강외과에서는 거의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코를 통해서 마취튜브가 들어가 있는 것은 겉으로 보기엔 어색하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의
외로 환자에겐 목구멍의 자극이 적은편이라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
와서 아직 마취제를 투여받기 전, 의식이 있을 때 국소마취와 진정제를 투여하고 이를 시행
하기도 하는데 10명중 7명 쯤은 별 저항감 없이 참을 수 있게 된다.
  구강외과 환자를 마취하다보면 사람의 입과 코의 감각이 대단히 예민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환자들은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여 가만  있질 못한다. 하긴 사람이 구별해낼 수  있는 
그 많은 종류의 음식 맛들과 그 많은 종류의 냄새들을 생각할 때 입과 코의 감각이  그토록 
예민한 것이 이해가 된다. 그  예민한 것을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바로 구강외과 
환자를 마취하는 기술이다.

    9. 노인환자의 마취
    연세 많으신 분들에겐 특별한 마취를
  현대의학의 놀라운 발달과 생활 수준의 향상, 각종 사회복지  제도의 개선으로 인간의 평
균 수명이 점차 연장되어서 노인인구의 증가는 자연적 추세이다.
  통계에 따르면 신체 기능의 노화로 수술 후 회복력이 감소하여 수술의 합병증과 사망률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일생에 한 번 수술을 받는 노인환자는 약 50%로 추정된다.
  환자를 연령적으로 구분하여 어디서부터 노인환자(geriatric  patient)라고 부를 것인지 명
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현재까지는 관례상 65세 이상의  연령을 가진 환자를 노인환자
라고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연령적 나이보다는 생리적 나이가 더 중요하며, 사람의  신체는 
일반적으로 20대 후반 또는 30대 전반에 생리적 기능이 최고에 달했다가 그 후 점차 감소하
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노화현상은 사람과 장기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노화의 생리적 기능 이상을 잘 이해하고 
개인적인 노화정도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수술과 마취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노인환자 마취시 심장, 폐에 영향 커
  노인 환자가 젊은 환자에 비해서 대수술시에 사망률이 증가하는 것은 분명하다.
  노인환자의 수술 후 합병증 발생과 관련된 중요한 세가지 인자들은 수술시간, 비만,  70세 
이상의 나이 등이다. 노인환자가 수술 전후의 합병증과 사망의 위험이 높은 이유는 첫째 연
령에 따른 동반질환에 대한  이환률의 증가이고, 둘째는 연령에  관계된 기초적인 생명기관 
기능의 저하이다.
  노인에게 다양하게 수반되는 질환들은 현재의 외과적 질환외에 이전의 질병 및 수술경험, 
백내장, 골관절염, 빈혈, 골다공증, 당뇨증 등을 들 수 있다. 악성 종양, 뇌혈관 질환, 파킨슨 
병, 노인성 치매, 대퇴골절 등은 노인 환자에게서 종종 관찰할 수 있으며, 또한 수술전 면담
에서 고혈압, 동맥 경화증, 신장 질환 등도 가끔 발견된다.
  노인 환자의 수술 전후의 합병증과 사망의 위험은 수술이 응급으로 이뤄지면 더욱 증가하
게 된다. 응급수술을 받는 두 노인환자 중에서는 필경 질환  경험이 있는 환자가 더욱 사망
률이 높다.
  노인환자의 마취에서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장기는 심장과 폐이다.  심장은 젊은이에 
비해서 분당 박동수와 일회 박출량에서 모두 현저히 떨어진다.  이는 노인의 심장이 마취와 
수술의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에서 떨어지게 됨을 말한다. 또한 말초 및 중심 혈관들의 탄
력성 감소로 인해 심장의 펌프기능이 더욱 압박돼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상태에까지 이르
게 된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노인연령에 이르면 폐기능이 저하된다. 환기량의 감소와 폐포내 
가스교환기능의 감소가 현저해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정상적으로도 폐기종과 유
사한 폐실질의 병적 변화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폐기능의 저하는 흡입마취제를 사용하는 
전신마취에 있어서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한가지 노인 환자의 특징은 약물에 대한 대사기능의  저하이다. 일반적으로 몸에 들어
간 약물들은 간에서 해독 대사되어 분해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러나 노인 환자들은 간기
능의 저하로 적절한 약물분해 작용이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노인환자는 젊은 환자에 비해
서 몸속에 투여된 약물을 파괴시키고 배설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수술이 다 끝나도 마취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노인환자도 드물지 않게  나타나기
도 한다.
  그래서 노인환자를 마취할 때에 가장 중시해야  할 점은 가능한 심폐기능에 변화를  적게 
일으키도록 마취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마취약의 선택과 마취방법의  선택에 있어서 
심사숙고해야 한다.
  최근에 노인 환자에게는 전신마취와 국소마취를 병행함으로써 단일 마취약의 용량을 줄여 
가능한 한 약제의 해독으로부터 환자를 보호하는 새로운 방법이 시도되고 있기도 하다.

    10. 뇌사환자의 마취
    이식장기들의 기능, 정상상태 유지가 관건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일련의 순차적인 과정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먼저 신체기관의 기능이 파괴되고 이어서 심장이 정지하고 뇌의 혈액공급이 
멈춤으로 호흡이 멈추고 뇌기능이 정지하는 것이 그 순서이다.
  그런데 뇌사란 사고로 인하여 뇌의 손상이 먼저 초래돼 뇌기능의 정지가 가장 먼저 오게 
된 경우를 말한다. 뇌사의 경우에 신체는 곧이어 호흡이 정지하고 심장정지, 신체기관의  기
능해체 순서를 밟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뇌사가 발생하면  환자의 죽음은 기정사실화 되
는 것이 의학적인 진실이다. 만일 인공호흡을 시켜주지 않으면 곧이어 호흡정지와 심장정지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이 죽음에 대해서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현대의학을 발전시켜온 미국  등 
서구에서는 뇌사환자로 판정된 사람에 대해서는 사실상의 죽음 상태를 인정하고, 아직 죽음 
과정에 있는 뇌 이외의 다른 장기들을 필요로 하는 다른 환자에게 이식수술을 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즉 교통사고 등으로 회생불능의 뇌손상을 입은 환자는 폐나 심장, 신장의 기능
이 중지하기 전에 적출술을 시행하고, 뇌는 살아 있으나  장기의 기능이 파손된 환자들에게 
해당장기를 신속히 이식하는 길을 택했다.
  이를 위해서 병원에서는 이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명단이 마련되고, 응급수술과 마취를 
시행할 수술팀이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희생자의 사전 동의가 있어
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신분증에  자신의 의사와 혈액형 등 수술에  꼭 필요한 사항들이 
명기되어 있어서 장기이식수술의 진행을 신속히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서양인 사고방식의 특징으로서 생명이  떠나간 시체도 끝까지 보호하는  동양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생명관이라고 볼 수가 있다.

    혈압, 맥박, 체온유지가 고난도 업무
  마취과에서 뇌사환자에게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수술이 이루어질 때까지 혈압과  맥박과 
체온을 유지시켜 체내 장기들의 기능이 정상상태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대단히 어렵고 미묘한  일이다. 뇌사환자를 관리하다 보면  뇌의 신경기능을 
통한 인간의 자연적인 생명유지 기능이 얼마나 고도의 기능인지 체험을 통해 알게 된다. 가
장 현대적인 약물로도 뇌사를 당한 인간의  신체기능을 단 2∼3일도 안정되게 유지할  수가 
없다.
  뇌사환자의 장기이식수술에 대한 또 한가지 문제점은 뇌사의 진단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은 데에도 있다.
  반대론자들은 장기이식수술을 하는 의사들이 아직 뇌사가 확정되지 않은 회생가능한 단순 
뇌손상 환자를 뇌사판정하고, 이식수술을 하는 위험성을 강력히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서 뇌사의 판정기준을 더욱 엄밀히 하고 장기이식수술을 집도할 의사는 뇌사판정에  관여하
지 못하게 하는 새로운 기준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11. 심장수술 마취는 현대 마취의 꽃
    21세기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심장수술의 마취는 모든 마취와 구분되는 대단히 특이한 마취이다.
  그 이유는 환자의 심장을 정지시키고 신체에서 인공 심폐기를 통해서 환자의 생명이 유지
되고 마취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심장수술 중의 환자는 자기의 심장 박동은 전혀 이루어 질 
수 없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인공심폐기는 이 기계를 잘  다룰 수 있는 전문적인 기술자인 
심폐기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취과 의사는 이 인공심폐기사와 호흡을 맞추어야 한다.
  세계 최초의 심장수술은 1961년에 시작되었다. 이후 심장수술의 시대가 열렸다. 이는 인간
이 마침내 심장까지도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의학적인 의미와 함께, 한편으로는 수
술의 개념을 한 외과 의사 개인의 기술이 아니라 주위의 수많은 동역자들에 의해서 이루어
지고 완성되는 팀웍의 개념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마취술이 심장수술의 성공 좌우
  심장수술을 위해서는 먼저 인공판막 제작기술과 같은  공업상의 발전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수술을 시행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수술을 위해 작동이 중지된 심장을  대신하여 
피를 전신으로 순환시키는 인공심폐기의 개발이었다. 이  인공심폐기는 수술중에 환자 자신
의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 맡아서 혈관 속으로 산소화된 혈액을 순환시켜주는 장치는 말
한다. 그러므로 사실상 이 인공심폐기가 환자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기계인 셈이다.
  이 때 외과 의사는 멈추어진 심장에서 병소를 제거하고 정상기능을 하도록 수술적인 조작
을 하면 되는 것이다. 실로 많은 투자와 희생이 있었기에 이러한 인공심폐기의 개발과 실험
이 가능했다. 생리, 해부, 약리 등 기초의학의 종합적인 지식이 활용되었다.
  또한 심장수술을 위해서는 심장과 함께 뇌에 대한 연구도 먼저 이뤄져야 했다. 체온의 변
화에 따른 뇌기능의 변화여부를 뇌파를 통해서 점검하고 회복기의 변화도 체크해야만  하였
다. 초저온 상태에서의 뇌기능 회복에 관한 의학적인 지식은 60년대 겨울에 한 호수에서 보
트를 타고놀다 익사한 어린아이의 사고가 큰 시발점이 되었다. 그 아이는 차가운 겨울 호수
에 빠져 즉사했는데 놀랍게도 몇 시간 후 다시 심장이 뛰고 의식이 돌아오더니 급기야 살아
났다. 이 사건은 사람이 저체온 상태에서는 심장과 호흡이 다 멈추어도 죽지 않고, 냉동상태
가 풀리면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 셈이었다.
  또 한가지 심장수술에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이며 강력한  마취제가 반드시 요구되었다. 이
러한 마취약제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각광을 받게 된  것이 마약성 마취제들이었다. 마약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마취제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마취제로 확인되었다. 또한 마약의 
성분과 화학적 구조식을 밝혀 자연산보다 더 강한 효과를 가진 슈퍼 마약들이 합성되어 심
장수술에 투입되게 되었다.
  이처럼 심장수술은 종합적인 의학지식과 의료기기, 약제의  개발에 힘입어 눈부신 발달을 
거듭해 왔다. 사실 수술 이외의 비약적인  발전을 고려할 때, 외과 의사의 손기술은  그다지 
경이로운 것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고대의 의사라 할지라도 오늘날
과 같은 주위 환경이 갖추어져 있었다면 능히 심장수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장기이식의 보다 새로운 시대 열려
  심장수술이 시작되면서 마취과에서는 심장마취를 '마취의 꽃'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심장마취를 하는 마취과 의사는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마취기술을 사용하게 되었
고, 인공심폐기와 투여되는 모든 약물과 수액, 혈액에 대한 관리와 조절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마취과 의사를 누군가 수술실의 선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심장마취술을 
계기로 마취과 의사는 그 어떤 환자라도 마취할 수 있는 기술과 그 어떤 생명의 위급한  상
황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식과 역량을 구비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심장 수술의 시대가 끝나고 서서히 수술실의 중심축이 장기이식의 영역으로  옮아
가고 있다. 이제는 심장을 수술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심장으로  바꾸어 넣는 수술의 시대가 
될 전망이다. 간도 이식을 하고 심장도 이식을 한다. 이러한 수술은 마치 한 사람의  생명을 
떼었다 붙이는 일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의미가 실로 크다. 아울러 이에 따르는 전문
적인 마취과 의사의 등장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21세기의 마취과 의사는 아마도 수술
실의 선장에서 함장쯤으로 격상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제6장 질병과 마취
    1. 고혈압 환자의 마취
    고혈압 증세, 복용약물 정보 사전 파악해야
  고혈압은 중년기 이후에 아주 흔한 내과적 질환으로 평상시에도 혈관의 압력이  병적으로 
높아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고혈압 환자는 마취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내과 의사로부터 그동안 받아오던 치료를  지속
해야 한다. 그리고 수술이 예정된 전날 밤에는 경구로  복용하던 항고혈압 약제를 주사용으
로 바꾸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
  평상시에는 고혈압이 아닌 사람이 수술을 위해서 입원한 후 고혈압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수술실에 오기 전에 미리 내과 의사와 상의하여 혈압이 약물로 조절
되는 것을 확인한 후 마취계획을 잡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다.  마취를 위한 혈압의 적정 한
계치는 평소 정상혈압이었던 경우에는 수축기 140 mmHg,  이완기 90 mmHg이고, 평소 고
혈압의 치료를 받던 사람의 경우에는 수축기 160 mmHg, 이완기 100 mmHg 정도를 기준으
로 하고 있다. 또 고혈압 환자는 수술실에 들어오기 전에 적당량의 진정제를 투여해 심리적
인 자극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취 중 과도한 혈압 상승 늘 유념해야
  그러나 이러한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수술 중에 병태생리학적 자극이 가해지면 혈압이  위
험수위 이상으로 상승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이것이 고혈압환자의 마취에서 어려운 점
이다. 특히 평소 고혈압의 치료가 적절치 못한 환자의 경우에는, 해당 혈압의 상승이 대단히 
불안정한 양상을 보이게 되어 마취하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내과 의사가 알 수 없는 마취와 수술반응의 특이한 양상의 하나로서 노련하
고 경험 많은 마취과 의사의  발빠른 처방이 요구된다. 심하면 고혈압성  위기(hypertensive 
crisis)라는 급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하는데, 이는 평상시  환자의 혈압에서 수축기 혈압이 
30∼50 mmHg, 이완기 혈압이 10∼20 mmHg이상 상승될 때로 정의되고 있다.
  마취중에 혈압이 짧은 기간이라도 심하게 상승되면, 뇌출혈, 대동맥 박리,  심근경색, 수술
부위 과다출혈 등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가 있으므로 마취중의 과도한 혈압상승은  가장 
신속히 진단되고 조절되어야 한다. 심하면 고혈압환자는 수술 중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
  한편 고혈압에 대해 지나친 약물 대응으로 말미암아 역으로 저혈압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
는데, 이 또한 고혈압 못지 않게 위험한 상황이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평소에 고혈압으로 약물을 복용하던 환자는 수술을 받기 전에 마취과  의사에게 
반드시 고혈압 증세와 사용하던 약물의 종류를 이야기해줘야 한다. 아무리 심한 고혈압이라 
하더라고 미리 알고 대응하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결핵환자의 마취
    결핵환자는 전신마취가 불가능하다?
  결핵은 호흡기 분비물을 통해서 전염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박테리아 감염성 질환이다. 
결핵의 주증상은 저녁나절에 특히 심해지는 피로감과 미열, 체중감소를 들 수가 있다.  심해
지면 기침할 때 피가 입으로 나오는 각혈에 이르게 된다.
  결핵은 나병과 함께 대표적인 빈곤성 질병이었다. 우리나라는 경제 수준이 높아짐으로 발
병률이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나 실제로  병원에서 느끼기에는 그렇지 않다.  아직도 결핵은 
우리가 쉽게 감염될 수 있는 질병이다.

    수술실에서 결핵을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
  수술실에서 결핵을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환자에게 감염시킬 우려가 높기 때문이
다.
  현재 활동성인 결핵환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전신마취를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전
신 마취하는 경우 폐에서 나온 분비물들이 마취기의 호흡회로에 결핵균을 옮겨 놓을 가능성
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다음 사람이 그  수술실에서 마취를 받게 되는 경우 
결핵에 감염된다. 그뿐 아니라 전신마취를 하게 되면 마취기를 통해서 강제적으로 자신에게
서 나온 공기를 다시 호흡하게 되고 기도내 본래의 방어체계는 마취약에 의해 상당히 억제
되어 있기 때문에 결핵이 폐전체에 확산될 위험성이 생기게  된다. 이처럼 결핵환자는 자신
을 위해서나 타인을 위해서 일단 수술실에 들어와서는 안되는 불청객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러면 결핵환자는 전신마취를 영영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결핵의 활동성을 약으로 조절하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결핵약을 계속적으로 2주간 복용
한 환자는 전염의 위험성은 사라지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므로  결핵환자는 수술을 
받기 전에 먼저 반드시 결핵약을 뵥용해야 한다. 결핵약을  복용한 후에도 여러번 객담검사
를 시행해 결핵균이 완전히 기도분비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마취과 의사는 마취
결정을 내리게 된다.
  만일 결핵환자가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의 위험을  받는 위급한 상황이라면, 마취
과 의사는 별도의 마취기를 갖춘 수술실에서 수술을 진행시켜야  한다. 그리고 수술실은 당
분간 폐쇄하고 완전히 소독한 다음에  사용해야 할 것이다. 수술실에는  결핵환자의 수술에 
사용된 모든 기구들은 특별소독하는 시설이 되어있다.
  이처럼 결핵과 같은 감염성 질환에 걸린 환자의 수술은 본인의 수술도 수술이거니와 다른 
사람에게 수 많은 복잡한 일거리를 제공하는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평소에 결핵에 걸리지 
않도록 위생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고, 결핵에 걸렸으면 즉시  치료를 받아야 위급한 수술을 
받게 될 때도 아무런 문제없이 수술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3. 당뇨환자의 마취
    당뇨관리 정보를 마취과 의사에게 상세히 제공해야
  마취과 의사가 대하는 당뇨환자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미  당뇨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
을 알고 인슐린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이고, 하나는 수술을  받으러 와서 혈당 검사를 통해 
처음으로 당뇨진단을 받게 된 환자이다.
  당뇨병은 음식으로 섭취한 당분을 몸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함으로 혈액의  당도가 
지속적으로 올라가 일어나는 현상이다. 혈당이  올라가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고혈당 자체로도 사망할 수가 있다. 혈관에 변화가 생겨 작은  혈관이 터지기도 하고 큰 혈
관은 경화상태로 빨리 변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저혈당이 되기도  한다는 점도 중요한 문제
이다.
  당뇨환자가 마취를 받기 위해서는 평상시의 당뇨관리에 대한 정보를 마취과 의사에게  소
상히 제공해야만 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수술실에서의 당뇨관리는 내과 의사가 진찰실이나 
병실에서 하는 관리와 그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내과 의사가 다루는 당뇨병과 마취과 의
사가 다루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마취과  의사는 내과에서 관리하던 당뇨
관련 치료약들을 모두 수술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제로  바꾸어야 한다. 이는 밖에서와는 
달리 수술실에 오면 당뇨병의 증상이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마취가 가능한 혈장의 범위는 대체로 150∼250  mg% 사이이다. 일단 전신마취가 시작되
어도 마취과 의사에 의해서 수술중에 혈당 검사가 이루어지고 혈당을 조절하는 약물이 투여
된다.
  당뇨환자의 문제는 혈당 뿐만이 아니다. 당뇨의 부작용으로 발생하기 쉬운 혈압이상, 말초
신경이상, 전해질이상의 복합적인 부작용도 큰 문제이다. 당뇨환자 마취의 부작용으로는  마
취에서 늦게 깨는 현상, 심근경색, 심장마비 등이 있다.

    4. 갑상선 기능항진증 환자의 마취
    갑상선 수술시 전신마취 필요
  갑상선 기능항진증은 20∼40대 여성에게 가장 잘  발생하는 질병이다. 갑상선 기능항진증
을 가진 환자는 일반적으로 목부위에서 갑상선이 눈에 띄게 커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갑상선
은 인체에 꼭 필요한 갑상선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인데 종양에 의해서 그 분비량이 증가
되어 수술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갑상선 기능이 증가된 환자는 체중감소, 설사, 피로감,  정서 
불안정, 과도한 땀, 안구의 돌출 등의 증상을 보이게 된다. 심장박동이 불안정하고 고혈압을 
보일 때도 있다.
  마취과에서는 외과 의사에게 관련 환자가 수술실에 오기 전까지 반드시 분당 심장 박동수
가 80회를 넘지 않도록 약물로 조절하도록 요구한다. 조절이  안된 상태에서 전신마취를 하
게 되면 수술 중에 환자가 대단히 불안해지게 된다.
  수술실에 환자가 도착하면 진정제를 우선 주사하여 환자의 심리상태  및 혈압, 맥박 등을 
안정시킨다. 이때 항부교감 신경계 약물은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갑상선  호르몬의 작용을 
오히려 자극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술 중 갑상선 발작증 경계
  갑상선을 절제하기 위해서는 목부분을 수술해야 하기  때문에 전신마취로 해야한다. 전신
마취 유도를 위한 수면제는 치오펜탈(thiopental)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 약은 갑상선 호르몬
의 발작적인 작용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신마취는 가능한 마취약을 대량 투여해 깊은 전신마취 상태가 끝까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현재까지 갑상선 수술을 위한  가장 좋은 흡입마취제는 이소플루레인(isoflurane)이다. 
이 약은 갑상선 호르몬의 교감신경성 자극을 막아주는 작용을 한다.
  수술 중에 마취과에서 가장 긴장해야 하는 것은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갑상선 발작증이
다. 이는 갑상선을 수술하면서 만지는 중에 호르몬이 혈관속으로 대량 분비됨으로 발생하게 
된다. 환자는 전신마취중인데도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심장박동이 불안정해지게  된다. 
심하면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
  마취과에서 외과 의사에게 미리 항갑상선호르몬  약물로서 갑상선 기능을 조절해  주도록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미리 조절된 환자는  그 약물을 즉시 
이용함으로써 큰 위험 없이 마취상태를 유지하고 수술을 끝낼 수 있게 된다.

    5. 감기환자의 마취
    감기가 전신마취 잡는다?
  감기를 대단한 질병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신마취에는 감기가 
중대한 장애를 일으키는 호흡기 질병 중의 하나이다. 감기는 전신마취를 받을 수 없게 하는 
가장 흔한 질병이다. 감기는 일반적으로  기도의 바이러스성 감염에 의하여 생긴다.  이러한 
감염은 기도가 물리적, 화학적 자극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한다. 그래서 감기든  사
람에게 마취가스가 들어가면 금방 재채기를 하고 기도가 경련을 일으켜 심하면 호흡이 불가
능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전신마취를 하기 위하여는 감기가 치료되어야 한다. 특히  소아의 경우는 기도 자
체가 가늘기 때문에 감기는 전신마취의 적과도 같다. 소아가  어렵게 수술날자를 잡고 입원
하였다가 감기로 인하여 마취를 할 수 없어서 수술을 연기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어른의 경우에는 마취과 의사가 특별한 약물과 마음의 준비를 했다면 심한 감기가 아니면 
마취를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감기 상태이면 전신마취는 연기되어야 한다는 것
이 세계 공통이다.
  감기는 보통 3∼4일 심하였다가 수그러 들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감기 증세가  누그러들면
서 2주가 지나면 전신마취를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환자들은 감기쯤이야 하고 쉽게 생각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수술을 받으려면 입원해도 감기에 걸리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그 하찮은 감기가 전능에 가까운 전신마취의 천적인 것이다.

    6. 천식환자의 마취
    폐의 경련성 반응 예의 주시해야
  천식이란 기도와 기관지가 여러 가지 외부의 자극에 대하여 반응성이 증가되어 있는 상태
를 말한다. 천식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발생하지만 결과적으로  호흡시 공기흐름에 대한 기
도의 저항이 현저히 증가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임상증상으로는  천명, 기침, 호흡곤란이 
있으며 심하고 오래되면 심장에 무리가 되어 심부전을 초래하게 된다.
  천식환자의 마취에서 위험한 것은 마취약과 기도를 자극하는 마취과적 조작에 대한  폐의 
경련성 반응 때문이다.
  폐의 경련성 반응은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심하면 폐 전체가 바윗돌처럼  딱딱하게 
변하여 단 한 숨의 공기도 들어갈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렇게 되
면 환자는 사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마취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심장마비는 살릴 수 있어도 폐경련은  절망적
이라는 말이 전해져 왔다. 폐가 마비상태가 되면 수술실의  분위기는 일순간 험악해지기 마
련이다. 그래서 천식환자는 마취과 의사가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환자 중의 하나이다.

    마취과 의사가 가장 신경 곤두세워
  천식환자 중에서 대부분은 평소에 내과에 다닌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환자는  마취과 
의사가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마취를 시행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그런 천식환자는 수술 전
날까지는 평소에 먹던 천식약을 그대로 복용하게 한다.
  수술 전날 저녁에 정맥주사용 기관지 확장제를 투여하여 수술실에서 응급으로 기관지  확
장제를 이용할 여지를 미리 조성해두게 된다. 그리고 스테로이드제제나 소염제 등으로 가능
한 마취시에 폐경련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조처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또한 수술실에서
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더 강력한 기관지 확장제와 보조 약제들을 미리 준비해 놓고 환
자를 기다리게 된다. 또한 천식은 심리적인 요인으로도 더 강화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수
술실 도착 후에도 신경안정제 등을 적절히 투여해 환자를 진정시킨 상태에서 마취를 시행하
게 되는 것이다.
  천식환자의 폐경련성 반응은 마취를 시작할 때와 수술이 끝나,  마취에서 깨어날 때 발생
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마취과  의사들은 천식환자의 마취도입과 마
취종결시 비행기의 이착륙에 임하는 항공기 조종사의 마음가짐으로 마취하고 깨우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그러나 사고는 나게 마련이다. 그것은 주로 평소의 천식경험이 없었던 환자에게서 느닷없
이 마취중에 천식발작성 폐경련이 일어나는 경우이다. 이런 환자는 미처 손을 쓸 겨를도 없
이 위험한 상태로 돌진하게 된다. 제발 그러한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천식발작이란  그렇게 
위험한 병인 것이다.

    7. 비만한 사람의 마취
    국소마취에도 큰 장애되는 비만
  비만이란 단순히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체중에서  지방질이 
차지하는 비율이 일정한 한도를 넘어 병적인 양상을 나타내는 상태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비만을 보이는 사람들은 신체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도 가지고 있다. 신체가 
비만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모든 신체기관이 정상상태를 벗어나 더욱 복합적인 문제들을 일
으키게 된다.
  비만은 젊은 여성들이나 중년 남성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비만한 환자들은 그들을 마취해
야 하는 마취과 의사들에게도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비만한  사람은 전신마취를 하면 마취
자 잘 되지도 않고, 또 일단 마취가 시작되면 수술이  끝나는 시점에서 마취제 투입을 중단
해도 잘 깨어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는 마취약물이 환자의 지방질 속에 깊숙히 녹아들어
가 있기 때문이다.

    마취에도 날씬한 사람이 최고
  비만한 사람은 몸은 비대하지만 상대적으로 폐나 심장의 크기는 커지지 않으므로  만성적
인 심폐기능의 부족현상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전신마취 중에도 여차하면 저산소증
이나 국소적인 빈혈현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지방질은 불어난  상태이지만 골격은 
커지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의 크기나 목의 굵기에 비해서 구강의 크기와 기도의 직경은 상
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이런 현상은 전신마취를 할 때 기도내부로 인공기도를 삽입하는데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
다. 심지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삽입할 수 없어서 기관지  내시경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복부의 지나친 지방질로 인하여 위 내용물이  입으로 역류하면서 호흡기도를 따라 
폐포에까지 도달하여 강력한 위산이 폐포를 녹여버리는 엄청난 불행을 차초하기도 한다.
  비만환자는 전신마취뿐 아니라 국소마취에도 큰 장애가 된다. 척추마취나 경막외마취,  말
초신경차단마취의 경우에 마취주사를 찌르는 부위는 주로 주변의 뼈구조물을 이용하여 결정
하게 되어 있는데 비만한 사람의 경우 뼈가 만져지지 않으므로 효과적인 국소마취술을 시행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마취를 하면서 날씬한 사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날씬한 사람은 마취도 잘되지만 나
중에 깨기도 잘 깬다. 마취 의사와 수술하는 의사를 즐겁게 하고, 어려운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게 하기 위해서라도 날씬해지기 위한 운동을 꾸준히 전개하면 어떨까 싶다.

    8. 악성 고열증
    마취과 의사를 가장 괴롭히는 괴물같은 질병
  마취과 의사에게 있어서 가장 악명높은 질병은 무엇일까?
  그것도 바로 악성고열증이다. 악성고열증은 대단히 드물게 발생하는 병이기는 하지만,  마
취과에서는 아직도 사망률이 거의 100%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악
성고열증은 평소에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오직 전신마취를 할 때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당황
스러운 질병이다. 이 병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가족들 중에서 악성고열증이 발생한 사람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것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일부 유전과 상관없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
부분 유전적인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이 정설이다.
  악성고열증은 전신마취를 하는 과정에서 체온이 상승하기 시작하는 초기증세를 나타낸다. 
전형적인 악성고열증은 체온의 상승속도가 분당 0.5도씨 또는 그  이상이 되면서 급속히 상
승하여 급기야 체온이 43도씨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 온도는 인간의  몸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다하면서 생존할 수 있는 온도를  넘어선 것으로서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악성고열증은 소아 및 젊은 근육질의 환자에게 잘 발생하며,  유아나 노인에게는 적게 발
생하고, 일반적인 전신마취환자에서 발생빈도는 60,000명당  1명의 비율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족중에 악성고열증의 발병경험이 있거나 근육세포이상의 질병을 가진 환자들의 경
우는 10,000명당 1명이나 그 이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악성고열증의 치료는 얼마나 빨리 체온의 상승을 확인하게 되는가에  달려 있다. 빨리 진
단이 내려지면 그만큼 생존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일단 악성고열증이 의심되면 수
술과 마취를 중단하고 즉시 체온을 떨어뜨리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체온을 내리는 
방법으로는 차가운 수액을 정맥주사로 공급하는 방법, 피부표면에 얼음보자기 싸기,  찬물로 
위세척, 찬물로 복강내 세척 등이 있다.  이러한 처치는 환자의 체온이 정상화 된  이후에도 
일정한 시간 동안 계속해야 한다.
  악성고열증을 치료할 수 있는 약물로는 세계적으로 단트롤렌(dantrolene)이라는 약이 유일
하다. 그러나 이 약은 비싸고 희귀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어서 미군병원에서 
구하여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술중에  악성고열증이 발생하면 다른 처치와  함께 즉시 
단트롤렌을 정맥으로 주사해야 하는데, 최초의 용량은 환자의 체중 2 kg에 2 mg이다. 최초 
용량에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거나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도 5분 간격으로 계속
하여 다섯 번 더 주사할 수 있으며, 그래도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악성고열증의  위험성이 
알려져 있는 환자에게는 전신마취 직전에 단트롤렌을 투여하면 악성고열증을 예방하는 효과
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마취과 의사라면 누구나 악성고열증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마취과 의사를 가장 괴롭히는 
괴물같은 질병이다.

    9. B형간염 환자의 마취
    AIDS보다 B형간염이 더 두렵다
  미국에서 한 때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자격을 얻은 사람들이 외과 과목을 전공으로 택하는 
것을 기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AIDS(후천성 면역  결핍증) 때문이었는데, 
AIDS는 환자의 피를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수술실에서 의사들이 무심코 이에 감염될 가능
성이 아주 높았던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수술실에서도 AIDS 감염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되었다. 외과 의사들은 수술용  장갑을 더 두껍게 껴야 하고  만일의 경우 수술중에 
장갑이 찢어지면 즉시 교환을 해야 한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메스나 바늘에 찔리는 경
우인데 이때는 철저한 예방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 AIDS 예방주사나 항 AIDS 약물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AIDS에 관한 한 
우리나라 수술실은 아직 무방비 상태에 있다고 보아야겠다.  우리나라에 AIDS 환자가 많지 
않은 현실이 수술실의 의사들에게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AIDS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B형 간염이다. B형 간
염은 AIDS와 달리 피 뿐 아니라 타액이나  다른 분비물로도 전염이 되기 때문에 수술실에
서는 더욱 전염이 용이한 상태에 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의 모든 병원에서 의료
진들에게 무료로 B형 간염 예방주사를  제공해오고 있다. 만일에 B형  간염의 항체가 없는 
상태에서 간염환자의 혈액에 노출되는 사고가 생긴 경우에는 그 치료비 또한 병원에서 보상
해 준다. 그러나 아무리 사고 예방대책을 강구하더라도 예외적으로 사고는 나고, 그로  인해 
의사들은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한 때는 의대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외과계 의사가 
이젠 기피의 대상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마취과 의사도 환자의 질병이 옮겨지는 의사로서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마취과 의사가 하
는 일이 주사놓는 것, 약 투입하는 것, 수혈, 그리고  기도와 폐의 분비물을 제거하는 것 등 
주로 혈액이나 분비물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젠 여간  깔끔하지 않으면 건강하게 마취
과 의사 노릇을 하기 힘든 시대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시대 마취과 의사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민첩하고, 예리하고, 유머러스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자기 생명을 지킬 만큼 깔끔할 것.'

    제7장 마취과 휴게실
    1. 술도 못마시는 놈
    마취과 의사들이 왜 술에 쩔어 사나?
  "자넨 누구야, 우리 마취과 맞아?"
  선생님의 눈길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오늘은 전체 의국원이  다 모이는 날이라 넓은 
식당인데도 낯익은 얼굴들로 꽉차 있었다. 그 중에 일부는  나보다 연차가 낮은 후배들이었
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오늘따라 왜 이리 크게 들리는지. 내가 또 실수를 한 모양이구나, 틀
림없이 술잔을 늦게 가져온 때문일거야, 아니면 또 술병을 든 자세가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
이겠지. 회식하러 왔다가 혼나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이다. 아, 이놈의 회식은 왜
이리 잦노!!

    경험해 보니 백해무익하다 싶었다
  나는 술이 싫었다.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른들은  술을 좋아하셨다. 집안에서도 가끔 술자리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술마시는 환경은 내게 낯익은 셈이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친구들과 술
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술이란 것이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액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
저는 술자리에서 술술 해대는 친구들의 의미 없고 잡다한  말들이 귀찮았고, 그다음은 술을 
마시고 난 후의 두통과 찌뿌등한 기분이 아주 싫었다.
  술을 갑자기 마셨을 때의 구토는 가장 기분 나쁜 경험이었다.
  한 번은 친구들의 술모임에 끼게 되었는데  나중에 술값이 없어 엉뚱한 고생을  실컷하고 
술집에서 나오게 된 적이 있었다. 참담한 마음이 나를 술에서 아주 멀어지게 하였다. 게다가 
철이 들면서 집안에서도 술 좋아하는 일가  분들이 분별없는 일들로 어려워지는 것을  자주 
보게 되자 술이 미워지게 되었다. 내 생각엔, 술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병들어 고생하게 
하고, 가난하게 하고, 자기 외의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경우가  많아 보였다. 나는 술을 
마셔서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술마시는 장면은 슬프
거나 절망적인 때, 또는 방탕하게 놀 때이지 않던가. 나는 점차 술을 가까이 하지 않는 그리
스도인들과 가까이 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기독신앙은 나의 빈잔을 진리의 편린
들로 가득 채워주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나는 술이 있는 사회에 깊숙이 내
던져진 자신을 보았다. 그곳에는 어디든  술이 있었다. 당직실에도 연구실에도 어떤  때에는 
간호사들의 잡종사니 넣어두는 서랍에도 술병이 있었다. 환자들이 준 것이라 했다. 그떄마다 
나는 저 가만히 누워있는 술병이 언젠가는 나를 덮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
다. 또 조만간 회식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 선배들이 저것으로  그 폭탄주인지 뭔지 하는 것
을 만들어 내 턱밑으로 돌진해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노라면 일을 하다가도 
어느새 뒤통수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회식날은 당
직을 하고자 하였고, 일과 후엔 아내와 한 살배기 아이를 핑계로 도망쳤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있는 전체 회식은 빠질 수가 없었다. 그런 모임은 일과의 연장이었
고, 교수님과 선후배간의 중요한 교육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에겐 회식시간이  곧 
고통의 시간이었다. 술자리에서 고집스럽게 술을 거절하는 것은  '오늘은 나를 잡아 드세요' 
선언한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은 '저게 사람인가?' 하는 눈으로 보기도  하였고, 
어떤 분은 '건방지다!'고 고함치기도 하였다. 거북스런 욕을 면하면 다행이었다. 어떤 사려깊
은 선배는 콜라를 마시게 해 주기도 했다. 그때는 세상에 복 받을 사람이 따로 있다면 바로 
이 사람일 것이라고 확신이 들 정도로 고마웠었다. 그런  회식시간이 끝나는 순간의 해방감
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서울의 밤하늘이 왜 그리 맑아 보이는지...

    피곤하고 서운해서 마시는 술
  "저게 누구야. 우리과 맞아?"
  선생님은 잘 아시면서도 내가 술잔을 올리면 받지는 않으시고 눈 앞의 나를  '저것'이라고 
하였으며, '우리과 맞느냐'고 하셨다. 그것은 오랜 마취과의 술전통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사
람들이 술을 좋아하고, 의사들이 술을 좋아하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마취과 의사들이 
더욱 술을 좋아했다는 것을 나는 그런 자리에서 배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취과 의사는 외과 의사가 수술을 하면 내내 마취기를 붙들고 손으
로 환자의 호흡을 유지시켜 주어야 했다. 수술이 한없이 길어져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것을 두고 백(bag)을 잡는다고 했는데, 백은  수동식 인공호흡기가 고무자루처럼 생겼기 때
문에 부르는 말이었다. 그렇게 마취를 하다 보면 수술을 하는 외과 의사보다 마취과 의사가 
더 먼저 지치게 되곤 하였다. 그리고 결과는 외과 의사는 자기의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었지
만 마취과 의사는 그야말로 백(back)이나 잡아준 셈으로  하루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아
무도 마취과 의사의 노고를 기억해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마취과 의사들은 
그 서운함과 육체적인 피로를 독한 술로 잊으려 한 모양으로, 일과가 끝나면 나가서 엄청나
게 마셔댔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점차 습관이 되고 기이한 술규율(?)들이 전설처럼 내려오면서 전통이 되어 
마취과 회식은 공포의 술돌리기로 악명을 드높이게 되었다.

    술 못 마셔도 마취과 의사 될 수 있다
  그래서 술 못먹는 나에게 회식날은  늘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다.  존경하는 선생님에게서 
'저게 누구야, 우리과 맞아'하는 말을 듣느니 차라리 밤새워  벌당직을 서는 편이 백번 낫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런 레지던트 시절도 세월과 함께 흘러가 버렸다. 이젠 아무도 나에게 억지로 술
을 먹이지 않는다. 술을 안마신다고 나를 마취과 의사로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도 없었다. 그
러고 보면 인생이란 참 재미있는 시간이다. 어쨌든 자기 뜻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회식에서 술을 안 마시고도 마취과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그런데 요즈음 레지던트 떄와 달리  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가끔 그 술자리에서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보고 싶어지기도 한
다. 나는 어쩌면 조용히 국화주를 주고받을 좋은 술친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2. 수술실에 올 때에는 제발 화장을 하지 마세요!
    수술실에 오는 여자 '화장'은 금물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려면 차림새를 바꾸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친구 결혼식에 
갈 때와 야구장에 갈 때의 차림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수술실에 수술받는 환자로 올 때
에는 어떤 차림새가 필요한 것일까? 가장 원칙적인 차림새의 기준은 '뺄 수 있는 것은 모두 
빼어 놓고(반지니 틀니, 안경, 시계 등) 벗을 수 있는  것은 다 벗는다'는 것이다. 이는 세상
의 모든 수술실에서 똑같이 적용된다.  물론 수술대에 눕기까지 병원에서  제공한 환자복은 
입을 수 있다.

    수술대의 사람, 자기 삶 여실히 보여줘
  여자 환자들은 화장을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평소 즐겨  화장을 하던 사람은 수술실에서 
보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술실에서 환자들을  대하다 보면 자연히 사람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게 되는 것을 느낀다. 사람의 몸에 담긴  또 다른 진실을 발견하는 순간
이 자주 다가온다. 예를 들어 왜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것도 환자를 마취하다
보면 그 몸에 배어 있는 담배 니코틴의 자취를 통해 깨달을 수가 있다. 육식보다 채식이 좋
은 것도 수술실에서 환자들의 몸을 볼 때 객관적으로 판단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를 테면 
수술받는 환자들은 자신의 맨몸을 통해 인생을 보여준다.
  위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어떤 아주머니는 집에서 농사를 짓는데 빨리 수술이 끝나면 집
에 가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50년이 넘게 햇볕에  그을린 이마와 팔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손이 대단히 큰 편이었는데 일을 많이 해서 손가락이 남자보
다 더 굵게 생겨 있었다. 마취가 무섭지 않으냐고 물으니 '아이고 무섭다고 한들 무슨  소용
이 있나요, 몸이 아프면 해야지'라고 했다. 또 그  아주머니는 마취약을 주사하기 직전에 한 
마디 더 하기를, '나는 60평생을 소처럼 일했어요'라며 웃었다. 그 유쾌한 성격의  시골 아주
머니는 마취가 잘되었고 감추어진 피부가 아주 뽀얗었다.
  몸집이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어떤 아저씨는 담배를 많이 피워서인지 마취중에도  가래가 
계속 그러렁거렸다. 기도 속으로 가는 고무호스를 집어 넣어  분비물을 흡인해 보면 누렇고 
거무튀튀한 가래가 빨려 올라왔다. 그와 같은 남자들은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마취과 의사
는 수술중에 그들의 폐에 차인 가래  때문에 마취 중 내내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이 남자와 평생 같이 자야 하는 부인은 밤새 얼마나 참고 살아야 할까라는 가련한  생
각이 들기 마련이다. 담배연기는 운치가 있어 보일 때도 있지만, 마취과학적으로 분명한  것
은, 그것이 사람의 폐를 하수구처럼 지저분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또한 환자들의 몸은 연령에 따라서 다른 느낌을 준다. 어린아이는 어른과 다르다.  어린아
이는 병들어도 그 몸이 아름답게 보이고 전체적으로 좋은 느낌을 준다. 아이가 침을 흘리거
나 환부에서 고름이 나오거나 피가 흘러도 싫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아
이를 마취할 때는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러나 나이가 든 사람들의 몸은 그렇지 않다. 어른들
의 몸은 추하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더 흔하다. 그래서  나이가 든 사람을 마취하려면 인
내심과 희생이 필요하다. 나이든 사람의 몸은 마취과 의사에게도 부담스럽다. 남자든 여자든 
그렇다. 사람이 수술대 위에 누우면 키가 크다거나 눈동자가 푸른색이라거나 쌍꺼풀이 멋있
다거나 허리가 잘록하여 매력적이라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단지 마취과 의사
에게 평화를 주는 몸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은 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인인데도 순
결하고 깨끗한 몸을 가진 사람이 있고, 젊은이라도 추해 보이는 느낌을 주는 몸이 있다.

    마취과 의사의 마음에 평화를 선사하는 사람이 있다
  수술을 받으러 오는 환자들의 마음도 참 다르다. 어쨌든 조용히 참고 감사하려하는  사람, 
두려움에 떠는 사람, 모든 의료진과 치료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 등 다양하다.  공격적이고 
불평으로 가득찬 사람도 있다. 우는 사람도 있다. 몸집이 크고 얼굴이 실하게 생기고도 소심
하기 이를데 없는 남자를 보았는데, 체구는 작고 신경질적으로  보이지만 마음에 여유가 있
고 수술실의 사람들을 재미있게 만들고 잠드는 아가씨도 있다.
  수술실에 와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주위의 의사들
에게 '감사합니다. 잘 부탁합니다'라고 인사까지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때 우리는 세상에서 
기적을 본 것처럼 기쁘다. 물론 마취도 잘 되고 수술도 잘 된다.
  어떤 아주머니가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마취를 하려다 보니 눈화장을 지우지 않은 것
이 아닌가! 아이섀도우가 짙게 드리운 환자에게 마취약을 주사하려니 왠지 한 마디 안할 수
가 없었다. 마취과 의사는 오후가 되면 신경이 날카로와진다. 그래서, '아주머니 화장하지 말
라고 했을 텐데요. 수술실에서 예뻐도 소용없어요'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가만 있고 곁에 
있던 간호사 왈, '어머, 그건 화장이 아니예요. 최신식 문신이에요'라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 정말 그랬다. 아주머니는 암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다. 괜히 멋적어져 얼
굴이 달아오르는 듯 했다.
  세상에, 눈에도 문신을 하나... 어쨌든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3. 사람 버릇 개 못준다더니
    좋은 마취과 의사 되기란 성자되기만큼 어렵다
  내가 나서 자란 곳은 경상남도 서남부 해안지방이었다.
  그곳에서는 '오광대'라는 탈춤이 전래되고  있다. 춤의 내용은  상놈들이 양반들을 욕하고 
비꼬는 식으로 일관하는데, 그 풍자하는 방식이 그 고장 사람 특유의 내면 세계를 보여준다. 
춤사위의 박진감 넘치는 변화나 탈바가지의 표정들, 그리고 듣는  사람도 따라서 욕설을 하
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직설적인 대사들이 그 지역 사람의 기질을 잘 말해주는 전래문화인 
것이다.
  나는 객지 생활을 하면서 그 '오광대'적인 기질이 나의 심리 저변에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
하게 되었다. 그것은 대체로 크고 투박한 음성, 직설적이고 예의조차 고려하지 않는  의사전
달 자세, 약간의 과장된 반응술, 그리고 강하고 분명한  상대를 만나면 역으로 한순간에, 진
심과 상관없이 위축되어 버리는 마음자세 등을 들 수 있다.

    경상도 서남부 해안에서 자란 사내의 말투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우리들의 말은  늘 목소리 자체가 클뿐 아니라  사용하는 
단어들이 하나같이 투박하고 몹시 거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나
타내며, 마음은 행위를 이끄는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우리들의  행동도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해서 튀어나게 공격적이고 계산이 없이 '무대포'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타지역 출
신의 친구들에게 오해를 받을 때가 많았고, 여자 친구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들이 잘 쓰는 말 중에 '니 죽을래?'라는 것이  있었다. 물론 '죽고 싶으냐'의 윽박지르
는 상투어였다. 이치적으로 따져 말하거나 논리가 이기기엔 자신이 없을 때 또는 자신이 옳
다 하더라도 감정적으로 상대방을 빨리 굴복시켜  버리고 싶을 때는 눈을 부라리면서  하는 
말이었다. 물론 우리끼리는 약방의 감초처럼 이  말을 써도 상관이 없었다. 좋을 때에도  쓸 
수 있는 말이었으니까. 그러나 '니 죽을래' 하는 말을 서울 친구들에게 하기는 늘  어색했다. 
제법 친해진 줄 알고 그 말을 썼다간 대화의 맥이 끊어지기 일쑤였다. 어쨌거나 서울에서는 
'죽인다'란 말을 함부로 쓸 수 없는 곳이었다.
  우리는 점차 이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순해지고 조심스러워져야 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삼가야 했다. 목소리도 낮추어야 했다. 특히 대인관계에서 소심했던 나는 그 말을 점차 
잃어갔다.
  세월이 가고 그렇게 나는 의대를 졸업하고 마취과 전문의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취
과 레지던트가 된 것은 개인적으로 행운이었지만 마취는 고달픈  일이었다. 아침 일찍 수술
실에 들어가면 햇빛 한번 구경 못하고 종일을 수술실에서 보내다가 겨우 집에 오면 오밤중
이었다. 그나마 집에 들어가는 날은  다행이었지만, 수술이래야 솔직히 외과 의사들  일이지 
마취과 의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까짓것 '잘 되도 그만, 못되도 그만'인 일이었다.
  갓들어온 마취과 레지던트에게는 메스를 들고 기세를 부리는 외과 의사들이 절대로  기분
좋게 보일 수가 없다. 마취과 의사가 상대해야 할 외과 의사들은 한 둘이 아니다. 그리고 시
간을 바꾸어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또 다른 환자를 싣고  나타나게 된다. 마취과 의사는 점
점 더 피곤해 진다. 그들은 무조건 자기들에게 마취를 잘해주기만 바랬다. 그러다 지치고 화
가 나면 막말로 자기들 집에 가서 마누라에게나 그렇게 해달래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
곤 했다. 냉정하게 일로써 대한다면야 수술은 수술이고 마취는 마취인 것이다. 피차  원칙에 
맞게 기계적으로 해내면 그만이었다. 시간이 되면 퇴근을 하고 날짜가 되면 월급을 받는 것
처럼. 그러나 환자의 마취를 한다는 것은 그런 식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좋은 마
취과 의사가 된다는 것은 성자가 된다는 것과 같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일단 많이 참아야 했다.

    참고 또 참아야 하는 마취과 의사들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거의 녹아버리는 날이 자주 닥쳐왔다.  나는 특히 마취과 내에서도 
의지하고 마음을 풀만한 친구가 없어 오직 기계와 씨름하며 낙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니 죽을래'하는 오광대식 언어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아! 그 잊혀지고 억눌렸던 것이 말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것이었다. 그것은 단
순히 잃어버린 한 마디 말을 되찾은 것이 아니었다. 마음  속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과 다름
없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람들이 '속시원하다'라고 하는 줄 그 때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내
겐 마취과 레지던트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해준 셈이었다. 그 때부터 
내 마음은 '오광대'의 말뚝이처럼 욕설도 하고 아무한테나 대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
곤 했다. 나는 나의 '그놈'들에게 '니 죽을래'하고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 
현대식 병원의 수술실에서 내가 '오광대'식의 탈춤을 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누구에게 
화를 낼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일 분에 몇 번씩이라도 '니  죽을
래'가 가능했다. 아! 그런 순간 순간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던가. 
입으로 말하지 않고도 누구엔가 욕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나를 자유롭게 하였던가. 
그렇게 마음으로 신나게 욕을 하고 나면 진짜로 마음이 풀어지는 것이었다. 여유도  생기고, 
그래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마취를 해낼 정도가 되었다. 속으론 욕하고 얼굴로는 웃고.  나에
게 그것은 일종의 생존 요령이었다.

    교수돼서도 입에 붙는 '니 죽을래?'라는 말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나는 병원에서 위치가 바뀌었다. 나는 마취를 가르치는  선생
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취과 레지던트와 인턴, 그리고 의과대학생들에게 마취술을 가르
치고 있다. 그런데 참 요상한 일은 내가 배울 때는 배우는 것은 어렵고 가르치는 것이 한없
이 쉬워 보이더니, 막상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보니 이것만큼 어려운 게 없는 것 같다. 누구
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든 어려운 일이겠지만 마취는 실제 환자에게 의술을 행하
면서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마취를 누구에게 가르친다
는 것은 한가닥 무의식에서 그를 깨워내는 기분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갖도록 주의를 기울여
야 할 때가 많다. 나는 그들에게 마취를 가르치고 또  한편 그들이 사고를 저지르지 않도록 
주의를 줘야 했다. 농담으로 구슬러도 보고, 저녁에 중국집으로 노래방으로 전전하기도 하였
다. 그리고 수술실에서는 눈을 부릅뜨고  그들의 손놀림 하나하나를 살펴보아야 한다.  나도 
그렇게 배운 것이었다. 나도 그런 선생들에게서 마취세계의 진면목에 대해 깨달아온 것이었
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있다. 그것은 내가 또 다시  '니 죽을래'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됐다
는 것이다. 지금의 나에겐 이  말이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면서도  이 말을 자주 
쓰게 된다. 실제로도 그렇고 마음 속으로도 그렇고.
  '니 죽을래?' 이 말만큼 효과 만점인 말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이다. 

    4. 마취과 의사는 아들을 잘 낳는다?
    마취과 의사가 아들을 잘 낳는 이유
  또 아들이었다.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다. 아들을 연달아 둘을 갖게 되다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아내가 고
맙다. 의사가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나 내 아이를 받아준 친구
나 아이가 탯줄을 끊을 때까지  아들인지 딸인지, 건강한지 병이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맨 처음 그랬듯이 긴장만 하고 기다렸었다. 적어도 아이를 낳을 때 무지한  마
음이 되어 떨며 애태우는 문제에 있어서는 천년 전의 사람들이나 나나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생명의 탄생이란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것인지... 아이를 들여다 보며  이리저리 
돌려도 보고 뒤집어도 보는데 어쨌든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마취를 열심히 하다 보면 아들도 쑥쑥
  그런데 동료 마취과 의사도 아들을 낳았단다. 가만 따져보니 주위에 아들이 많다.  가끔씩 
딸이 끼어 있지만 아주 드물다. 선배 마취과 의사들도 그렇다. 아들만 있는 집이 많고  아들 
딸이 있는 집도 있지만, 딸만 있는 집은 찾을 수가 없다. 최소한 마취과 의사의 집에는 아들
이 있다. 마취과 의사는 확실히 아들을 잘 낳게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떤 동료는  마취
약을 많이 마시면 아들을 낳게 되는 것 아니냐고 꽤  진지하게 농담을 건네기도 하였다. 그
는 한 술 더 떠 딸을 낳은 마취과 의사는 분명히 마취는 하지 않고 농땡이를 부렸을 것이라
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마취를 열심히 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어
쨌든 그런 말은 기분이 좋다.
  요즈음엔 그렇게 심하지 않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직도 아들을 낳지 못해서  엄청
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의 병원에서  행하는 인공유산의 
이유가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게 남아 선호 사상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일이다.
  아이를 임신하는 것도 참으로 고생스런 일인데, 아들이 아니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
람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이런  이유로 인공유산을 하게 되면  당사자도 괴롭지만 
의사도 대단히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태아감별로 인공유산을 하는 것은 법에 어긋난 일이
기 때문이다. 또한 뱃속에 있는 아이를 아들인가 딸인가 확진한다는 것도 무리가 따르기 마
련이다. 이제는 딸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아들이기 때문에 인
공유산을 시킨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커가는 아이를 보면 의사의 애환 더욱 돈독해져
  평상시 나는 자신이 그렇게 남아를 선호하는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첫아이
가 아들이었을 때는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나에게는 조상의  대를 
잇는다거나 나 자신의 대를 아들이  이어줄 것이라는 생각 같은 것은  추호도 없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만약 딸이었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 딸이었으면 조금 섭섭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어쨌든 아내에게는 내색하지 않
고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임신한 아내의 고생을  통해서 나는 인간의 오랜 깊은 
고통을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딸이든 아들이든 좋은  사람으로 일생을 살아주면 되
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들을 둘이나 낳았다. 남아를 선호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는 기
분이 좋았다. 연년생인 두 놈을 눕혀 놓고 이리보고 저리보고 하면서 마취과 레지던트의 고
달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
  어떤 날은 아들에게 줄 선물로  축구공과 배구공을 사가지고 들어갔다.  선물이 애들보다 
더 크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마음 속에서는 두 아이와 내가 이미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었
다. 아이들과 축구를 하면 내가 마취과 의사라는 사실이 잊혀진다. 아이들과 함께 아이가 된
다.
  최근에는 후배가 첫아이를 낳았는데 과연 아들이었다. '마취를 열심히 하더니 정말 아들을 
낳았네'라고 말하니 그 똑똑한 친구가 되받기를 '형님은  마취를 열심히 안했잖아요'하고 내 
아들을 가지고 시비를 걸려고 한다. 그러면 '열심히'는 빼자. 설마 '마취'까지  빼자고 하지는 
않겠지?
  누가 뭐래도 마취과 의사는 아들을 잘 낳는다?

    5. 마취과 의사가 좋아하는 외과 의사
    마취과 의사는 이러한 외과 의사를 좋아한다
  누구든지 수술을 받게 되면 좋은 외과 의사를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소위 명의를 찾아서 
수소문을 하게 된다. 대충 큰 병원에 가면 이름있는 의사가 있다고 믿고 무조건 큰 병원, 이
름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과연 어떤 의사가  좋은 외과 의사일까? 어떻
게 그것을 알 수 있을까?
  예로부터 외과 의사가 수술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마취과 의사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전
해져 내려온다. 노련한 마취과 의사는 처음보는 외과의사라도 그 손놀림 하나로 수술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고도 하였다. 마취과 의사는  그만큼 많은 외과 의사를 대하게 되고,  그만큼 
많은 종류의 수술현장을 관찰해왔기 때문이다.

    마취과 의사가 본 좋은 외과 의사상
  마취과 의사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외과 의사가 있다면, 그는 정말 좋은 외과 의사이다. 내
과, 소아과 계통의 의사들이야 제 삼자가 진료를 볼 수 없으니 인간적인 것 외엔 잘 모르겠
지만, 외과 의사의 인격이나 기술은 주위에 잘 노출될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다. 또한  수술
은 긴장이 많이 되는 일이고 빈번하게 급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도의의 
인격이 부지불식간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마취과 의사가  보는 좋은 외과 의사는 
어떤 의사일까?
  첫째는 수술을 잘 하는 의사이다. 수술을 잘 한다는 말은 듣기에 따라 참 미묘한 말일 수 
있다. 수술을 잘 한다는 것은  수술 기술이 좋고 전체적인 수술과정을  잘 리드해 나간다는 
뜻이다. 수술을 잘하는 외과 의사가 꼭 대형 병원에만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잡일에 덜 시달리며 수술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작은 병원에 더 기술 좋은 외과 의사가  있을 
가능성도 많다는 얘기다.
  둘째는 인격적으로 성숙한 외과 의사다.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은 행운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술실에서 인격이 훌륭
한 외과 의사를 만나는 것은 마취과 의사의 큰 줄거움이다.  어떤 외과 의사가 좋은 인격자
인가? 그는 먼저 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침착하고 질서있게  대응한다. 다른 사람들을 당황
시키지 않는다. 어려운 일에 책임을 지려고 한다는 느낌을 주위 사람들에게 준다. 좋은 외과 
의사는 목소리가 크지 않다는 것도 일반적인 특징이다. 노련하고  성숙한 외과 의사는 수술
실에서나 밖에서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거만해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환자의 몸을 
자기 몸처럼 소중히 다루는 생명 사랑의 무게가 느껴져 온다.
  셋째는 겸손한 외과 의사이다. 그는 따뜻하다. 사실 외과 의사만큼 겸손해지기 힘든  직업
도 드물 것이다. 그는 메스를 들고 환자의 병소를  제거하거나 파손된 신체구조를 정상적으
로 만들어 놓는 일을 한다. 환자에게 있어서 외과 의사는 얼마나 위대하고 절실한 존재인가. 
그래서 외과 의사는 편안히 있어도 어깨가 높아져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외
과 의사의 그 정당한 위엄과 자존심에 거부감을 나타낼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한 환
자의 소중한 신체를 올바르게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점에서 
외과 의사의 오만함은 다소 멋진 일이요,  우리에게 안심을 주는 자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폐일언하고 겸손한 외과 의사가 가장 좋은 외과 의사이다. 그는  수술을 마치고 나올 때 자
신의 수술을 도와준 간호사나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할 줄 안다. 가르치는 선생으로
서 레지던트나 인턴들에게 무언의 사랑을 전할 줄 아는 외과 의사의 분위기는 따뜻하다.
  마취과 의사는 좋은 외과 의사를 만날 때, 그가 마음껏 기술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껏 도
와주고 싶어진다.

    6. 중국 연길시의 복지병원 민선생님
    방한의 꿈 이룬 용기있는 총각 선생
  중국 길림성 연길시 연변대학복지병원의 민선생님은 중국의 조선족 마취과 의사 선생님이
다. 그는 한 달에 중국돈 700원의 월급을 받는다. 그 정도의 월급은 동년배의 간호사 월급보
다도 적은 것인데, 이처럼 중국에서는 의사의 벌이가 영 시원찮기 때문에 총각 의사들은 결
혼하는 것이 걱정거리라고 한다. 까무잡잡하고 반질반질한 이마의 두터운 살결이 입술 옆까
지 주욱 흘러내리고 선해 보이는 두 눈이 부리부리한 민선생님의 꿈은 한국에 한 번 다녀가
는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한국에 와서 새로운 마취기술을  배워서 연변에서 최초로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마취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중국에는 심장병 걸린 어린아이들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
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번 외부의사들이 와서  수술을 시도하고 했지만 마취기술이 
없어서 불가능했다는 말이었다. 병원에서는 이미 미국의  독지가가 보낸 인공심폐기와 심장
수술기구들이 가득 차있었다.

    환자들이 수술 중 벌떡 일어나기도
  그러나 내가 보기엔 심장수술을 하려면 먼저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수혈이 언제든지 가
능해야 하는 조건, 수혈이 안 되면 혈액을 대체해서 쓸  수 있는 수용액들이 구비되어야 할 
것이고, 또 심장 수술 중에  환자의 마취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신속한 혈액검사 기계들이 
필요했다. 또한 수술실의 전기가 안정되게 공급되고 수술중에 정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절박한 문제였다. 중국의 전기사정은  그런대로 부족함이 없지만, 갑자기 정전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마취과 의사로서 가장  급한 것은 수술실과 병실
에 정제된 산소를 공급해주는 일이었다. 산소탱크를  끌고 다니면서 심장수술을 시작한다는 
것은 상식밖의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중환자를 위한 작은 방을 따로 마련하는 것도 
필요한 것이었다. 그것은 민선생님이 사용하는  옆방을 약간 개조하면 가능할 것  같았는데, 
문제는 중환자를 관리할 간호사를 구하는 것이었다.
  민선생님은 그래도 용기에 가득 차 있었다. 까짓것 한국에 가서 심장 수술하는 것을 보기
만 하면 마취는 문제 없고, 다른 것도 알아서 마련할 수 있겠다는 투였다. 북한  사람들같이 
말씨는 느릿느릿했지만 말의 내용은 분명하게 전해졌다.
  저녁에 민선생님과 양고기를 구워먹으러 갔다. 화로에  철쇠가 놓여있는데 쇠꼬챙이에 꿰
인 양고기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구워서 양념가루에 찍어 먹는  식이었다. 민선생님의 
얼굴이 여름날 화롯불에 비쳐서 빛나고 있었다.
  중국에서 배운 마취는 엉성하다고 하였다. 마취약이 잘 듣지  않아서 환자들이 수술을 받
다가도 아픔을 못이겨 벌떡 일어나는 것이 다반사라고 했다. 문화혁명때에는 모택동 어록을 
읽어주며 마취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민선생님의 말대로 중국의 환자들은 참을성이 대단하다. 수술실에서 아픈 주사를 놔도 '아
프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착하기가 시골의 양같아 보이는 이 중년의  마취과 
의사선생님은 양고기 집에서도 '한국에 가서 마취를 배우고 오겠다'는 결심을 반복해 말하고 
있었다.
  민선생님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드디어 곧 한국에 오게 되었단다.  한국에 와 심장수술 전
문센터에서 마취를 배우게 된 것이다. 한국에 와서 나와 같이 일도 해보고 우리병원에도 나
녀가고 싶다고 했다. 중국연변의 민선생님, 대단한 마취과 선생님이다.

    7. 돌팔이 마취과 의사
    '이 병원에는 마취과 전문의가 몇이에요?'
  만일 당신이 병들어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 입원한 병원에 마취과 의사가 없어서 마취과 
전문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당신의 생명을 마취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의 소중
한 생명을 통째로 맡아 관리할 사람이 의사가  아닌 그 어떤 사람이라면 허락할 수 있겠는
가? 그러면서도 당신은 마취료를 해당 의사에게 정해진 대로 다 지불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놀랍게도 이 질문들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상황에 처한 마취 의료의 현주소를 정확
히 찌르고 있다.

    마취과 전문의 하나 없는 병원 많다
  1997년 현재 대한마취과학회에 정식 등록된 마취과 의사  숫자는 1,717명이다. 이 1,717명
은 우리나라에 마취과 의사가 배출되기 시작한 1963년부터의 모든 마취과 의사 숫자를 일컫
는다. 여기에는 이미 사망한 분도 있고 국내에 있으나 현역에서 떠난 사람, 외국에 나간  사
람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1998년 현재 국내에서 마취를 하고 있는 마취과 전문의 숫
자는 많아야 1,000여명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1998년 현재 전국의 병원수(입원실이 없는  개인병원과 군병원 제외함. 40∼50 병
상 정도의 지방병원을 포함한 도시의 종합 및 준종합병원, 대학병원)는  800개를 넘는다. 따
라서 일반적으로 500병상을 가진 병원이면 마취과  의사가 적어도 5명은 있어야 한다고  볼 
때, 전국의 많은 병원에 마취과 전문의가 근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미뤄 짐작할 수 있
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마취과 의사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마취과 의사가 없
는 병원이 전국에 수두룩하다. 그런 병원들은 수술시 개원하고  있는 마취과 의사들을 초빙
해 수술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어떤  위급 상황에서는 마취과 의사를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에 대비해서 마취간호사 제도를 시행하여 마취과 의사의 감독하에 마
취를 진행하도록 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마취과 의사의 
부족문제는 앞으로 더욱 많은 마취과 전문의가 배출돼야 해결이 가능한 사안이다.
  마취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취는 환자의 수술을  도와주고 환자의 생명을 
지켜주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는 위험한 의학분야이다. 그러므로 잘 훈련되고 역량있는 마취과  의사만이 그 일을 감당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당신 곁에 서서 마취를 해줄 사람이 마취과 전문
의여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수술실에서 당신의 생명은 더
욱 안전할 것이다. 혹시 의심스러우면 수술을 받기 전에 주치의에게 물어보라. "이 병원에는 
마취과 전문의가 몇이에요?"하고.
  들리는 말로는 우리나라에 돌팔이 마취과 의사들이 많다고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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