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형의 일본 스케치
일본을 읽으면 돈이 보인다
차례
추천의 글:"지켜볼 것은 일본이 아니라 이규형이다" 전유성
추천의 글:"뭐? 이규형이가 아이디어 가방을 공개했다고?" 김두호
워밍업:이 책에서 돈을 꺼내려는 분을 위한 준비운동
제1장 일본엔 있는 것, 한국엔 없는 것
현대인은 쉬고 싶다. 피곤하니까
최진실의 청바지, 박철순의 글러브
소득 1만불 시대엔 '라이프스타일 가게'를
창업자금 오십만 원, 집안에서도 OK
간판사진만으로 20판, 희한한 책 VOW
폭발적인 소아이템 CD 대여점
부가가치를 파는 꽃 인테리어점
관광의 새로운 돌파구 이벤트 관광
월세주택 임대업이 뜬다
제2장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것에 주목하라
일본의 중고품을 노려라
영화 현장을 패키지 상품으로
정보 다이제스트 인기 폭발
노년층 대상 실버잡지를 잡아라
기쁨 두 배, 장애자 운송 사업
짭짤한 부업, 워드프로세서 서비스
애완동물에도 소스가 있다
정성을 파는 우편광고 서비스
제3장 새로운 일, 떠오르는 직업
마이더스의 손 전자오락게임
방송 프로그램 프리랜서를 찾습니다
여행에도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로고송 만들어 드립니다
작은 통계회사가 성공한다
요리사가 실속 있는 직업 넘버 원
빈 시장을 파고드는 에스코트 사업
제4장 생각을 바꾸면 수입이 달라진다
섹스는 돈에 이르는 지름길
심야의 흐름을 읽어라
비싸야 잘 팔린다
스포츠는 돈이다
먹는 장사가 미래 사업이다
도박 관련 사업 이렇게 하라
'재미' 라는 새로운 발상
팔리는 이미지를 만들어라
세계의 트렌드를 활용한다
제5장 추억과 감동도 팔 수 있다
타임캡슐을 사업 아이디어로
'세대차'를 파는 골동품 가게
불꽃놀이 전문점이 버는 장사다
추억과 향수도 팔 수 있다
전차를 아시나요
이미지로 팔리는 밀리터리 상점
빌딩 옥상에 푸른 정원을
제6장 달라지는 돈의 흐름을 읽는다
젊은이 취미를 공략하라
위크엔드 사업에 주목하라
3D산업이 움직인다
광고비를 소비자에게 돌려드립니다
국제무역, FAX 한대로 충분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비디오 제작업
애프터서비스가 흐름을 바꾼다
워밍업
이 책에서 돈을 꺼내려는 분을 위한 준비운동
일본에 가면 동네마다 라면가게가 있다. 음, 간단히 한끼 때워 볼까 하는
식으로 들어갔다간 큰코 다치기 딱 알맞다. 맛도 다르고, 값도 다르기 때문이다.
일백 엔이 아니라 일천 엔, 웬만한 일급식사 한끼를 능가하는 값이다.
라면이라면 대체로 '끓는 물에 면과 스프를 넣고 3분 동안 더 끓인 후 식성에
따라 파나 계란을 곁들여' 먹는 거라 알고 있는 우리로선 쉽게 상상하기 힘은
풍경이다.
하지만 정확히 얘기하건대, 하루에 한 끼는 다른 어떤 음식도 싫다, 오직
라면만 먹고 싶다는 '라면 중독증'의 일본인이 적어도 수천만 명은 된다. 제
아무리 비싼 음식도 맛이나 만족도에서 라면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연구에 연구를 더하고 진화에
발전을 거듭한 끝에 이루어진, 수백만 '점주'들의 음식 전쟁터가 바로
라면가게인 것이다.
서두부터 난데없이 웬 라면 타령인가. '한국에는 없고 일본에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그 라면 가게란 걸 지적하기 위해서다. 동네 분식집 얘기가 아니다.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수십 년의 전통과 대를 이어 숙련된 요리사, 평생 그 집
문턱만 넘나든 수백 명의 단골을 갖고 있는, 전통 라면전문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건 틀림없이 돈이 된다.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 땅에 일식집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보시라. 정통 일실 라면전문점의 맛과 전통을 그대로
살려내면 그 희소가치만으로도 돈을 벌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규형 너는 왜 안 하느냐고 묻는다면, 무슨 일이건 임자는 따로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틀림없이 돈이 보인다 해도 소질이나 관심이 없으면
인연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돈을 꺼내려는 문이 제일 먼저 체크할
것은 내가 이걸 최소한 몇 년간 지겹다는 생각없이 진짜로 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 라면집? 맞아, 그 생각을 내가 왜 못했지?" 하는
분을 위해 얘기를 조금 더 해보기로 하자. 라면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이
'사업'을 시작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이런 경우에 이 책의
쓸모가 있다. 전업이나 부업을 하고 싶지만 아이템이 문제라거나, 아이템은
정했지만 막상 어떻게 시작할지가 막막한 분들에게 답을 주도록 노력했기
때문이다.
라면의 경우 정답은 이렇다. 일본의 유명 라면체인회사에 체인점 신청을 하면
된다. 6십만 엔(5백만원 정도)을 내면 견습생이 되고 합격할 때까지 가르쳐
준다. 기간은 보름에서 한 달에 불과하지만 기숙사에서 합숙하면서 가히 대학
4년간을 방불케 하는 고농도의 교육을 받는다.
학력이 높거나 나이가 많으니까 좀 편하겠지 하는 생각은 오산이다. 그곳의
라면 교육은 세상의 어떤 수업보다 엄격, 혹독하기 때문이다. 스무살에서
예순살에 이르는 연수생들은, 치욕에 가까운 질타와 죽고 싶을 만큼 처절한
자존심의 붕괴를 견뎌낸 끝에, 자기가 만든 라면으로 최종심사를 받는다.
합격판정을 얻으면 거의 대부분 젊은 시험관의 손을 붙잡고 엉엉 운다. 제
2의 인생이 시작될 수 있다는 감격에 울음이 터진다는 것이다. 본인이 연수생이
되어도 좋고 직원을 보내도 무방하다. 요는 가장 중요한 주방장이 해결된다는
점이다. 남은 건 관리 문제뿐이다. 여기서부턴 정말 하기 나름이다. 2억 정도를
들여 라면체인점을 차릴 경우 잘되면 하루 이백만원, 한달 사오천만원씩 매상이
오른다. 국물만 제대로 뽑아두면 재료값이 크게 들지 않는 만큼 순이익은 60%
이상, 즉 이천만 원 이상이란 얘기다. 투자할 때 빌린 돈을 갚아 나간다 해도
순수입 천만 원은 보장된다.
바로 이런 아이템들, 다시 말해 2억을 들이면 천만원, 1억을 들이면 5백만원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업종들이 이 책에 들어 있다. 굳이 라면가게 얘기로 책을
시작한 이유도 이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체적인
업종들을 일일이 소개하는 데 치우친다면 하나의 정보서에 그치고 말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정보서이기보단 아이디어의 보물상자가 될 구 있기를 바라며
원고를 썼다.
일본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게 무엇인가. 일본에서 볼 수 있는 돈의 흐름의
어떤 건가. 그들은 그걸 어떻게 가공해 돈다발로 만들고 있는가. 이런 점들을
생각하며 읽어 나가다 보면 분명하게 잡히는 게 있을 것이다. 그것은 확실한
사업 아이템일 수도 잇고, 구상 중이던 기획의 물꼬를 터 주는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건, 독자 여러분이 봉착한 고민을 풀어주는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의 소임은 충분한 것이 아닐까. 아무쪼록,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 풍요하게 살 수 있기를 기원한다. 최소한 일본사람들보다는
1996 초가을
도쿄에서 이규형
제1장
일본엔 있는 것, 한국엔 없는 것
현대인은 쉬고 싶다, 피곤하니까
일본 회사원들의 점심 시간과 오후 시간을 공략한 '낮잠 자는 방'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우리 매스컴에도 보도된 적이 있다. 이 사업은 피곤한
샐러리맨의 심리를 제대로 읽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점심을 마친 노곤한 오후에 단 10분만이라도 폭 고꾸라져 잘 수 있었으면
하는 심정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 봤을 것이다. 세상은 넓지만 낮잠 잘 곳은
많지 않다. 아니 회사원에겐 거의 전무한 편이다. 기껏해야 다방 한구석이나
사우나탕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꾸벅거리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다방은 너무
궁상맞고 사우나탕은 너무 귀찮다. 낮잠 자고 싶을 때의 그 마음은 그냥 옷
입은 채로 등짝이나 바닥에 붙였으면 하는 거지만, 그 소박한 희망을 풀어줄
곳이 없었던 거다.
이제 낮잠 자는 방을 줄여서 '낮잠방'이라고 부르자. 낮잠방은 우선 비싸지
않다. 좁은 공간에 한 사람이 누울 만한 캡슐 형태의 공간을 벌집처럼 만들면
되니까, 땅값 비싼 일본 다운 타운가에 자리잡고 있어도 원가를 낮출 수 있다.
한국 돈으로 1시간에 2000원 정도. 2000원 주고 낮잠 한 번, 절대 부담스러운
돈이 아니다. 사우나탕의 경우 비교적 시간이 넉넉한 영업사원이라면 모를까
잽싸게 사무실로 돌아가 책상을 지켜야 하는 회사원에게는 아늑한 장소가 못
된다. 하지만 낮잠방은 옷입은 채로 그냥 자고 바로 튀어나오면 되니까
번거롭지 않다.
뿐인가. 정말 제대로 한잔 자러 여관에 간다고 해보자. 돈도 돈이려니와,
낮시간에 여관을 출입한다는 게 보통 배짱으로 할 짓이 아니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덜컥 의심부터 받는다. 그러나 낮잠방에선 누구를 만나도 떳떳하다. 그
점도 낮잠방의 독특한 성공 비결이 된다. 나아가, 낮잠방은 다시 어머니
자궁으로 돌아가고픈 요나콤플렉스에 젖어 있는 현대인의 바람도 충족시켜
준다. 나만의 작은 공간에서 릴랙스하게 누워 있다 보면 아득한 모태 시절로
돌아가는 듯 아늑한 '퇴행'을 맛볼 수 있는 거이다.
이런 낮잠방의 성공이 다시 '마사지방'의 성공을 불렀다. 매슬로우의
욕망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욕망이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상승한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낮은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삭신이 온통 노곤하다. 누가 내 몸 구석구석을 주물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이 2단계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마사지방이다.
우리나라에도 마사지 업소들, 이른바 안마시술소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
고객은 한정되어 있다. 섹스 욕구를 가진 남자에 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마사지방은 우리의 전통적(?)인 업소와 판이하다. 낮잠방이 그 고유의 목적에
충실하여 성공했듯이, 마사지방도 마사지라는 고유의 목적에 충실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선 호텔이나 여관 같은 숙박업소가 안마시술소도 겸업하는 것과
달리, 마사지방에서는 오직 마사지만 한다. 밀실이 아닌 툭 터진 공간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마사지를 받는다. 옷도 입은 채로이다. 마사지 방법도 연구를 하여,
회사원들의 피로가 몰리는 눈과 어깨, 다리의 통증을 집중적으로 풀어 준다.
마사지를 하는 사람으로 늘씬한 젊은 여자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횐 유니폼을
단정히 입은 40__50대의 약간은 뚱뚱한 아줌마가 대부분이다.
낮잠방의 주 고객이 남자 회사원인데 비해, 마사지방은 앞의 특징들 덕분에
직장 여성들까지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오피스타운의 낮시간에 다른 사람
눈에 띄어도 얼마든지 괜찮은 곳으로 인식시킨 것이 주효한 것이다.
요즘 와서는 마사지 가격 파괴를 노려 발로만 마사지하는 새 상품도 나왔다.
하얀 양말을 신은 마사지 아줌마들이 발로 온몸을 밟아주는 것이다. 가격은
우리돈 삼만원, 성공할 수밖에 없다.
이제 낮잠과 마사지가 해결된 도시인들의 욕구는 무엇을 갈망할까. 낮잠방과
마사지방을 응용하면 얼마든지 생각을 넓혀 볼 수 있다. 도쿄 이케부쿠로의
세이부 백화점과 세존 미술관 사이에 수십 미터의 지하통로가 있다. 거길 지날
때면 양쪽 벽에서 새소리와 물소리가 들린다. 게다가 멱에는 물결 찰랑거리는
푸른 조명을 장치해 놓았다. 언젠가 여름 한낮에 정신없이 거길 지나가다
순간적으로 발을 멍춘 적이 있다. 그 후론 그 산뜻한 새소리와 조명을 듣고
보기 위해 일부러 지하통로를 이용할 정도가 되었다. 인위적이나마 정말 기분이
좋다. 자연의 고마움을 이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느끼다니.
그래서 '자연방'은 어떨까.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자연부족증'에 시달리고
있다. 낮잠방과 마사지방이 육체의 피로를 풀어 준다면 정신의 피로를 씻어
주는 곳이 자연방이다. 인공자연도 좋다. 실제 그대로의 자연도 좋다. 다음과
같은 요소가 갖춰진 자연방이 있다면 어떨까--빗소리,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등의 음향을 이용한 자연음, 시원한 바람을 대신하는 산소 바람,
나무와 풀, 꽃을 갖춘 실내공간, 그리고 흙을 밟는 감촉을 느낄 수 있는
바닥구조.
그것만으로 돈이 되긴 아직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카페나 패션소품점,
의류가게, 주차장, 중고급 음식점... 등의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우선 활용해 봐도
좋을 것이다. 나아가, '고객 감동'이 이슈로 떠오르는 요즘 세상에 회사나 병원,
관공서 등에서 서비스 차원으로 활용한다면 더욱 이상적이지 않을까. 그럴 경우
시설의 수준과 품질도 크게 높일 수 있을 테고, 막대한 홍보예산에 비하면 그리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자연방이 임직원(내부 고객)의 근로의욕을 높이고
시민들(외부 고객)의 회사 이미지를 바꿔 놓을 수 있음을 생각하시라. 투자 대비
효과는 분명하지 않은가.
최진실의 청바지, 박철순의 글러브
내 나이 스무살 때, 폴 뉴먼이 입었다는 코트를 선물 받아 겨울 내내 입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너덜너덜한 게 벌써 폐품이 돼야 마땅한 옷이었다. 미국
갔다가 연예인들 자선바자에서 샀다는 친구 형님 구라에 속아서, 두 해 겨울을
그것 하나로 버텼다. 그때 내 머릿속엔 나랑 폴 뉴먼이 다분히 오버랩되어
있었다. TV 명화극장에서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를 할 때 일부러 그
코트를 걸치고 봤던 것도 그런 이유다. 어차피 영화 쪽으로 갈 몸이었던지, 폴
뉴먼의 것을 몸에 감싸고 있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아, 확실하게 장사 되는 게 이런
거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 형님처럼 사기치지 말고 진짜 인기인의
물건만 갖다 놓는다면 이거야말로 박 터져 나가는 장사 아닐까. 몇 년 전 강남
어느 백화점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입던 옷 자선바자를 하던 날 강남 전체
교통이 마비되었다. 단발성 자선 바자가 아니라 지속적인 판매를 한다면 톡톡히
한몫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던 참에, 어느날 일본잡지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일본에선
진짜로 그런 걸 팔고 있었던 거다. 양복 저고리 몇 개가 상품으로 나왔는데, 그
옷을 입었던 탤런트랑 가수들의 이름이 옷 밑에 적혀 있고 가격도 쓰여 있었다.
별 유명한 연예인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옷들은 다른 페이지에 실린 신품
옷들보다 훨씬 더 눈길을 끌었다. 물론 중고품이니까 값은 싸다. 연예인들한테
손해는 없다. 얼굴도 한번 더 내비치고, 잡지사한테 말 잘 듣는단 칭찬도 받을
테니 말이다. 버리고 싶은 옷이 산처럼 쌓인 게 연예인인데, 인사받으면서 옷을
처리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반갑지 않겠는가.
이 정도면 사업 아이템은 확실해졌다. 인기인이라면 한국에도 많다. 연예인,
스포츠인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체험 삶의 현장'에 정치인까지 출연하는 걸
보라. 인기관리에 신경쓰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그만큼 사업의 폭도 넓다.
유명 작가, 저술가, 만화가, 또는 인기인이 아니더라도 유명한 사건의 주인공,
예를 들면 대형사고에서 살아난 사람 유명한 살인사건의 범인, 그 범인을 잡은
형사 등등이 모두 꺼리가 된다.
이제 남은 일은 당사자나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그들이 쓰던 물건 중 처분할
것을 적당한 가격에 사오는 것뿐이다. 인기인의 생활이라고 특별히 우리와 다를
것은 없다. 우리도 해가 바뀌면 물건들이 쌓이듯이, 옷이며 책이며 각종 소품
같은 잡동사니들이 계속 나온다. 이럴 때 그걸 사겠다고 하면 큰 어려움 없이
넘겨받을 수 있다. 똑같은 책이라도 탤런트 누구누구가 보던 책이라면 다르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좋은 값을 치를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물건을 확보한 다음에는 어떻게 다듬고 포장하여 광고하느냐에 이
장사의 성패가 달려 있다. 어차피 살 사람은 가격에 상관없이 산다. 조금만 더
근사하게 포장하면 값은 좀 비싸도 상관없다. 예를 들어 물건에 대한 사연, 즉
선물받은 거라든지 하는 스토리를(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상품'으로 활용하면
부가가치는 더욱 높아질 게다.
올림픽 열리던 88년에, 내 영화를 개봉하는 부산의 어느 극장 앞에서 겪은 일
한토막. 고객의 반응을 살피려고 그 앞에 서 있는데, 옆에서 예쁘게 생긴 중학생
여자애 하나가 얼굴이 새빨개진 채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훔쳐보았다. 내가
쳐다보면 얼른 고개를 돌려 딴전을 부렸다. 팬이거니 하며 모른 체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애가 확 뛰어오더니 내가 쓰고 있던 야구모자를 벗겨 도망쳐 버리는
것 아닌가. 난 쫓아가지 않았다. 그애가 얼마나 가슴을 두근거리며
힘들어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2천원 주고 산 모자라 다시
빼앗아 올 만큼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애한테만은 소중한
물건이 되지 않았을까. 인기인 프리마켓은 바로 이런 층의 심리를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욕구를 해소시켜 주는 것이다.
모든 연예산업이 그렇듯이 이 사업 최고의 고객은 중고생층이다. 그 나이
또래가 살 수 없을 만큼 비싸도 안되겠지만, 너무 싸도 희소가치가 줄어든다.
몇만 원대의 물건을 주력 품종으로 하고, 몇천 원짜리부터 꽤 비싼 것까지
다양하게 확보해 두면 충분할 것이다. 장소는 서울 시내도 좋겠지만, 대중문화
시설이 서울에 편중된 만큼 지방 대도시 쪽이 오히려 반응을 얻을 수도 있다.
이 사업을 가장 잘 할 구 있는 사람은 누굴까. 본인이 이 사업 자체를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일 거다. 언제나 연예가에 관심이 많고, 화제가
풍부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성공한다. 물건을 살 때와 팔 때 사람들에게 더 큰
공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연예계에 발이 좀 있는 사람을 '구매 담당'으로
활용하면 이 사업은 1백배 더 쉬워진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한가지. 적어도 이 사업으로 순수익 이백만원
이상을 매달 올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사는
사람은 실제 가치의 몇 배 몇십 배 값을 기꺼이 내놓는다., 좋아하는 인기인의
환상을 사기 때문이다. 천 번에 한 번이라도 그 환상이 깨어진다면 고객은 두번
다시 믿어주지 않는다. 이 사업은 세상에서 가장 철저한 '신용 장사'란 걸 부디
새겨 두시길.
소득 일만불 시대엔 '라이프스타일 가게'를
반드시 새로운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이미 있어 왔던 것들도 시대와 흐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소득 일만불 시대' 이후의 일본을
관찰하면 뚜렷한 흐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소득 일만불 시점을 고비로
'라이프스타일 가게'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지금도 번창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라이프스타일 가게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걸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흔히 보아 온 것들, 예컨대 향수니 영화 포스터, 장식용 미니어처,
드라이플라워 따위를 파는 가게가 모두 그 범위에 들어간다. 이런 가게들의
공통점 두 가지. 첫째, 꼭 필요하진 않지만 더 쾌적한 삶을 '꾸미는' 데 보탬이
되는 소품을 취급한다는 점. 둘째, 그러므로 사람들의 소득이 높아질수록 그
비중도 커진다는 점. 한마디로,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떠오르기 시작한 용어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일조하는 도구들을 파는 곳이 라이프스타일 가게인
것이다.
향수를 예로 들어 보자. 지금 일본에선 이른바 '그린숍' 이라 불리는 가게들이
거리마다 백화점마다 성업중이다. 향기가 나는 가공 꽃과 풀들을 파는 가게다.
예쁜 용기에 담긴 각종 향수나 향기 나는 비누를 파는 가게도 발에 채일 만큼
많다. 물론 그런 가게들은 한국에도 있다. 하지만 얼마나 많고 얼마나 잘
버느냐 하는 점에선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스민 향기를 맡으면 기분이 맑아지는 걸
느끼기 시작한 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어진 70년대 말, 80년대 초부터의
현상이다. GNP 1만불 시대에 접어든 90년대에는 한 단계 더 높은 향수,
향기문화가 자리잡아 갈 것이고 그것이 사업적으로 유용하리라는 건 당연한
얘기 아닌가.
쾌적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데는 후각과 함께 시각도 중요하다. 생활을 더
아기자기하게 꾸며 주는 인테리어 소품들은 이미 다양하게 개발되어 나와 있다.
하지만 소득과 여유가 늘어나면 뭔가 더 눈에 띄게 생활을 변화시킬 게 없을까
궁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여 일본에는 보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소품점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당장 생각나는 것으론
스테인드글라스 전문 상점과 풍선전문 가게를 들 수 있다.
교회나 성당에서 볼 수 있었던 스테인드글라스를 빛이 잘 드는 거실에 창문
유리 대신 달아 놓을 경우 집안 분위기가 확 바뀐다. 한마디로 '자연 조명' 이라
할 만하다. 낮에는 색색이 영롱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중세 영주가 살았음 직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밤이면 은은하고 낭만적인 기분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팔거나 주문에 따라 설치해 주는 것이 전문
상점의 업무이다. 그 무늬도 성당이나 교회의 일반 성화 위주의 모자이크에서
탈피하여 현대감각에 맞는 추상적이고 퍄격적인 디자인을 채택,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 일반 대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고가품은 아니다.
미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디자인하여 생각만큼 비싸지 않다.
다음은 풍선 가게 얘기. 풍선이 무슨 돈이 되겠어 하시는 분이 많겠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다. 요즘 잘 나가는 일본 자동차 판매장이나 휴대폰 매장 같은
델 가보면 풍선 몇 개로 디스플레이를 해치운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재질은
종래의 고무 위주에서 벗어나 은박 같은 걸 활용해서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게 대부분이고, 모양도 기린이나 코끼리, 해바라기 같은 동식물을
변형시킨 세련된 디자인으로 디스플레이 효과를 한층 높여 주고 있다.
이런 풍선도 있다. 먼저, 낙하산 모양의 풍선에 수소를 넣어 공중에 띄운다.
이때 아슬아슬한 무게의 추를 달아놓으면 풍선이 바닥에 스치듯이 끌리며
움직이는데, 이 추 아래에 귀여운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두꺼운 보드를 붙여,
만화 캐릭터가 낙하산을 타고 쇼윈도 속을 움직이는 광경을 연출해 내는
것이다. 또 낙하산 대신 비행기 모양 풍선을, 만화 캐릭터 대신 물고기를
연결시켜 방안에 놓으면, 위쪽에는 비행기들이 떠다니고 아래에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기발한 모습도 창조해 낼 수 있다. 풍선 가게는 이렇듯 다채로운
아이디어 풍선들을 팔고 필요할 경우 어드바이스까지 해주는 곳이다.
아트벌룬(Art Balloon)이라 하여 각종 이벤트의 대형 장식으로 쓰이는
풍선구조물을 전문적으로 디자인, 설치하는 업체가 우리나라에도 몇 개쯤
운영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커다란 그물망 속에 수천 개의 색색깔 풍선을
넣어 대형 아치 모양 따위로 행사장을 장식해 뒀다가, 테이프커팅 순간에 줄을
당기면, 그 수천 개의 풍선이 일시에 하늘로 날아 올라가며 장관을 연출하는
것이 아트벌룬이다. 하지만 그건 이른바 '대량구매자'를 고객으로 하는 기업형
사업이다. 여기서는 대중을 실수요자로 한 라이프스타일 가게의 예를 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풍선 가게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빨강, 파랑, 노랑색
고무풍선의 수요도 아직 많다. 어린애들이 야외에 나갈 때 수소풍선은 빠질 수
없고, 파티용이나 촬영용으로도 운영한다면 금상첨화다. 직접 연구하면서 풍선의
디자인과 질을 높여 갈 수도 있겠고, 일본이나 서구에서 유행하는 상품을
수입하는 걸 기본으로 하면서 여러 가지로 응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가게가
번창하면 앞서 말한 아트벌룬 업체와 같은 기업형 사업으로 발전하지 말란 법도
없다.)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은 이것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럼 이런 것도?" 하는 생각이 드는 분도 있으실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종류의 사업이나 가게가 '소득 1만불 시대'에는 돈이 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주제다. 한가지만 덧붙이자면, 라이프스타일 소품을 판매할 경우 '선물하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는 게 중요하다. 직접 자기 생활을 바꿔보려는 사람도
많겠지만 결정적인 물량은 역시 남자가 여자에게, 여자가 남자에게 선물하는
수요에서 나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즉, '하트'가 있는 사업인 것이다.
창업자금 오십만원, 집안에서도 OK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불법이다. 그러니 도망자가 되기 싫은 사람은 이
꼭지를 읽지 않고 넘어가도 좋다. 세상 사는 건 본인의 자유의지니까. 그렇지만
모든 일에 적법, 불법의 한계가 분명한 것도 아니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내용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각설하고, 비디오 대여점이 과거만 못한 것은 모두들 알고 있다. 그렇다고
비디오 대여점 자체가 당장 망하는 사업은 아니다. 오히려, 큰 자본금과 기술
없이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장점이 많은 장사여서 너도나도 몰리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 보지만 이문도 줄어드는 것이다. 책 대여점이다 뭐다 겸업도 해
보지만 어차피 경쟁 상태라 별로 신통할 게 없다. 그때, 이런 쪽으로 슬쩍 겸업
아이템을 넓혀 보는 건 어떨까? TV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대여해 주는 거다.
"난 또 무슨 얘기라고, 그딴 게 무슨 돈이 되겠어" 하시는 분을 위해, 이
아이템이 돈이 되는 이유를 한번 따져 보자. 우리나라 TV에서는 4개의 공중파
방송과 수십 개의 유선방송을 볼 수 있다. 또, 위성방송 시대가 본격 개막되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방송채널은 100여 개에 달한다. 하지만 '고작' 4개뿐인
공중파 방송만 해도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다 보는 사람을 거의 없다. 전
채널로 넓혀 보면,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시장 분석의 기본 항목인 '잠재
수요'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약녹화를 하는 거 아니냐고? 그건 당신같이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녹화라는 게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 서랍에서
VTR 매뉴얼을 찾아내 떠듬떠듬 녹화 예약을 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이다.
우선 머피의 법칙, 내가 꼭 필요할 때는 공테이프가 없다. 있는 테이프는 모두
녹화되어 있고, 뭐가 녹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하나 확인하기도 귀찮다.
힘을 내서 재생해 보면 애매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지우자니 찜찜하고 놔
두자니 필요 없을 것 같고. 선택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뿐인가. 아침부터
신문 찾아 프로그램 확인하는 것도 일이다. 녹화하려고 매뉴얼 뒤지는 건 더 큰
일이다. 와이프는 기계라면 질색을 하는 여자고,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려니 죄다
귀찮아하기만 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특히 여자들)이 기계를 다루는 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일본에서도 '비디오군'이란 말이 다 나왔겠는가. 젊은 여자들은
대부분 드라마를 좋아한다. OL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회식이다 뭐다 해서 볼
시간이 없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그녀를 짝사랑하는 남자들이 집에서
예약녹화한 비디오를 갖다바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런 남자들을
비디오군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녹화 수요는 얼마든지 있다. 그 수요를 돈으로 바꾸는 게
문제일 뿐이다. 인기 있는 주말 연속극이나 쇼 프로그램은 물론, 스포츠
중계방송이나 기타 명화극장 등 모든 TV 프로가 대상이다. 특히 특집
다큐멘터리의 경우 방송국이 의욕을 가지고 많은 시간과 인력을 동원하여
제작한 것이 대부분인 만큼 직장인, 전문직업가들을 대상으로 좋은 상품이 된다.
이 사업은 특별한 도구나 기술이 필요없다. 비디오, 정확히 비디오테이프 레코더
두 대만 있으면 충분하다. 손님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비디오 녹화시켜 두면
OK인 것이다.
자, 이제 조금 더 사업을 진전시켜 보자. 무슨 프로 녹화해 주세요 하길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TV 프로그램을 보고 오늘 인기 프로가 무엇인지, 어떤 게
재밌는지 나름대로 연구해야 한다. 다음에는, 두 대의 비디오를 활용하는 요령.
비디오 한 대에는 M방송 7__8시 프로, K방송 9__10시 프로, S방송 11__12시
프로 등과 같이 시청률이 높은 프로를 미리 골라 예약해 놓는다. 나머지 한
대는 고객이 원하는 방송을 위해 놔두면 그만이다.
매일 주요 프로그램을 확보해 두고 경우에 따라 1주에서 1개월까지 보관한다.
그리고 비디오를 빌리러 온 손님한테 슬쩍 녹화 상품을 소개한다. 적극적으로
신문 간지를 이용해도 좋다. 어느 정도만 지나면 분명히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주의사항. 글 머리에서 말했듯이 '대여'를 해주면 불법이 된다.
방송사에서 나오는 모든 프로그램을 허락없이 녹화, 편집, 대여, 판매 행위를 할
수 없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대여' 하지 말고 고객의 심부름으로 녹화를
해주면 된다. 같은 말 같지만 분명히 다르다.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대여,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 대신 녹화를 해주는 것이다. 녹화 수고료랑
공테이프값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즉 '친구여, 내가 대신 녹화 해 줄게'라는
논리다.
실제로 TV 방송국이 개인을 상대로 고소한다는 것도 우습다.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해서 자사 TV를 더 본다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다. 국영방송까지
CF로 먹고사는 형편이다. CF를 한 사람이라도 더 본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CF스폰서 입장에서.
어쨌든 이 사업은, 깜박깜박하며 사는 현대인에게 의외로 톡톡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오늘 특집을 못 봤다면 큰 아이디어를 놓칠
뻔했다"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여러분에게 확신을 준다면, 나 자신 이런 사업으로 지난
몇 년간 수천만 원을 벌었다는 사실이다. 일본방송을 녹화하여 한국에 보낸
것이 좀 틀리지만. 물론 법에 저촉될 것은 없다. 녹화하라고 있는 테이프로
녹화하여 한국의 방송관계자들, 내 친한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내가 받은
것은 테이프 녹화료가 아니다. 이런 프로를 보면 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나요? 라는 기획 아이디어료다. 중요한 선, 내가 이런 비디오 기획을 했을 때
대부분 나에게 크게 감사하며 한턱을 불사했다는 점이다.
이 사업은 굳이 비디오 대여점이 아니라도 집에서 비디오 두어 대로 시작할
수 있다. 창업자금 오십만원이면 충분하다. 좀 궁상맞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
떵떵거리는 대기업이 초라한 빌딩 한구석 사무실에서 시작한 경우도 허다하지
않은가.
집에서 TV 시청으로 시간을 죽이는 분들이여, 죽이는 시간을 이용하여 돈
버는 방법을 생각하시라. 마냥 TV만 보는 것도 무료할 테니까. 그러나 혹시
경찰 아저씨가 다녀가시더라도 내 이름을 밝히지 마시라. 우리는 의리로 맺어진
사이이니까.
간판사진만으로 20판, 희한한 책 VOW
VOW, 이 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런 형태의 책이 우리나라에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넓은 세상에 우리나라에 없는 게 어디 한둘이랴만은,
VOW라는 책은 그 중에서도 희한스럽기 짝이 없다.
대개 단행본이라고 하면 소설이라든가, 수필, 교양서적처럼 뭔가 스토리가
있는 책을 상상한다. 그러나 VOW는 첫 장부터 우리의 상상을 깬다. 내가 이
책을 본 건 일본에 처음 도착했을 무렵이었는데, 책장을 넘기다가 '으악'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일본의 간판 사진만으로 나열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유명한 브랜드나 커다란 대형 간판이 아니라 시골 구석 가게 산판들, 담벼락에
쓴 낙서, 전봇대에 붙은 싸구려 포스터 등으로 꽉 차 있다. 아니 이런 걸
가지고도 단행본을 만드나.
아무리 일본이 무근 액을 내도 망하지는 않는 출판 천국이라고 하지만 이건
좀 뜻밖이다. '쯧쯔, 종이가 아깝게... 이런 책을 출판한 사람의 얼굴이
궁금하군' 하는 생각으로 맨 뒷장의 판권을 보던 순간 또다시 머리가 띵해졌다.
20쇄! 당당 20번을 찍어냈다는 것이다.
난 VOW를 집에 가져와 밤에 읽었다. 그리곤 놀랍게도, 무지무지 웃으며
"으아, 죽인다"고 몇 번이나 감탄을 거듭했다. 세계 유수 혹은 일본 굴지의
기업에서 나온 광고가 아닌, 어디까지나 시골 이발소 같은 간판들. 일본 전국에
흩어져 있는 그 간판들을 발로 뛰어 모으고, 편집부의 재치 있는 평을 곁들인
형식. 뭔가 좀 세련되지 못한, 좀 촌스러운, 좀 모자라는 듯한 느낌들. 그런데
그 속에 일본이 있었다. 일본인들의 생활상, 그들의 사고방식, 그들의 풍습이
거기 있었다. 한마디로, VOW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의 사회와
문화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야말로 오히려 최고의 감각이 아니고 무엇인가. 쉽게 얘기하자.
'전국노래자랑'이란 TV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단박에 이해가 가실 게다. 왜 많은
사람이 그 프로그램을 보는가. 분명한 건 시골 촌색시가 기막히게 노래를 잘
불러서가 아니란 사실이다. 촌스러움이 가득한 무대, 거기서 자기 노래에 심취한
아줌마, '땡' 하는 소리, 그 표정 같은 것들이 세련과 엄숙만을 강요받아 온
우리의 눈과 귀로 하여금 털털한 진실의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해 주는 것이다.
VOW는 'Voice of Wonderland'의 약자다. 이 경탄스러운 책은 현재 시리즈
형태로 10여 권까지 나와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발간될 전망이다. 간판만 찍은
책이 10권이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VOW의 발상이 출판이나 광고 기타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주는 두 가지 교훈. 책에 대한 일반의 상식과
통념을 깼다는 점, 그리고 꼭 샤프하고 세련되어야 대중의 호응을 얻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첨단과학의 시대로 접어들수록, 뭔가 촌스럽고 우직한 것에
대한 니즈도 커져 간다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굳이 응용할 생각이 없는
분이라면, 한국판 VOW 같은 걸 기획해 보셔도 좋겠다. 꼭 간판이 아니면
어떠랴. 모든 신문의 2__3쪽 이상은 반드시 차지하고 있는 줄광고나, 신문 간지
같은 것에도 재미 있는 게 좀 많은가. 생각만 있으면 찾아보기 나름이다. 단지
그 발상이 어려운 것이다.)
폭발적인 소아이템 CD 대여점
일본은 세계에서 외환 보유고가 가장 많은 나라다. 한때는 달러가 너무 많아
혹자관리가 어려워지자 부르는 게 값인 외국 유명 화가들의 명화를 무더기로
사들인 적도 있었다. 헤에세이 불황이 어쩌구 엔고불황이 저쩌구 하지만 그
와중에도 95년도분 흑자가 1천억 달러를 넘었다. 1년 흑자가 우리나라 총수출
액과 맞먹는 숫자다. 거기에 기여한 나라 중 우리나라가 미국, 독일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일이다.
일본은 이제 세계 경제의 척도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상품은 곧바로 세계
시장을 석권한다. 세계 경제를 이해하려면 일본 경제를 파악하는 게 더 빠르다.
지금 일본의 주력 상품은 아무래도 자동차와 전기전자제품 그리고 카메라이다.
전세계적으로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사업 부문도 역시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좀더 들여다보자. 메이드 인 저팬 상품 중 대미 수출 Top 10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위부터 10위까지 차례대로 자동차, 컴퓨터, 자동차 부품, 카메라,
비디오, 반도체, 원동기, 음향기기, 철강, 통신기기 등의 순이다. 이들은 모두,
전통적으로 일본의 전략 품목들이고 부가가치가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미 수출 10위권 안에 오른 품목은 일본의 내수 시장에서도 상당한 실적을
올렸다. 그 중에서도, 수출 7위에 오른 음향기기의 경우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10여 년 전 일본에 갔을 때의 일이다. 친구의 부탁으로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재즈 LP판을 사려고 도쿄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LP판을 취급하는 가게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당시는 우리나라에 CD판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고
미국에서도 LP판이 우세한 시기였는데 어떻게 일본에서만 LP판이 100%
자취를 감추었을까. 그때 가졌던 의문은 이후 일본에서 살게 되면서 자연히
풀렸다. CD밖에 없으니 CD플레이어를 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오디오
시장의 판도가 바뀐다. 끝없이 신개념 신제품을 만들어 내면서도 그 수요 역시
자연스럽게 형성해 내는 일본인 특유의 방식이 음향기기의 경우에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 음반시장이 CD위주로 개편되었다.
나도 일본에 살다 보니 어느새 CD의 편한 맛에 물들어 벼렸다. LP판이 트는
멋이 있다고 그 손맛이 어떻구 한 적이 얼마 전인데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젠
있던 판도 더 이상 듣지 않고 CD로 구입한다.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CD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바로 가격이다. LP판이나 테이프에 비하여 최고 세 배에서 네 배까지
비싸다. 그러니 아무리 간편하고 음질이 반영구적이라고 해도 LP판 사듯 선뜻
CD를 사진 못한다. 더구나 영화를 볼 때 흔히 느끼는 '비디오라면 한번 볼
만한 것 같지마는 극장에서 보긴 아깝지' 하는 심리는 음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있다. 빌려준다면 얼른 카세트테이프에 복사해 놓겠지만 비싼 돈 다
주고 사기엔 아까운 음악도 많은 것이다.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파고든 것이 일본의 CD 대여점이다. 현재 일본의 CD
대여점은 우리나라 비디오 대여점 정도로 많이 보급되어 있다. 운영 방식도
비디오 대여점과 비슷하다. CD 값의 십분의 일 수준의 대여료를 받고
빌려준다. 꼭 소장하고 싶은 CD는 사겠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CD 대여점에서 빌려 듣는다. 물론 집에서 테이프에 녹음한 후 돌려 준다. CD
한 개 값으로 십여 개의 CD를 확보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취향대로
편집까지 할 수 있으니 인기가 아닐 수 없다. CD 대여점의 주 고객은
하이텐에서 이십대 초반이기 때문에 고객 충성도 면에서는 비디오 대여점보다
몇 발 앞선다. 즉 고객수는 적더라도 대여 횟수가 더 많을 수 있다는 얘기다.
뿐인가. 비디오는 개봉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야 출시되기 때문에 이미
극장에서 본 사람들은 고객에서 빠지게 되지만, CD의 경우 신곡이 방송 전파를
타자마자 바로 대여할 수 있으므로 고객 확보에 유리한 점도 많다.
일본의 CD 대여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상업성에서 인정받았다. 큰 자본이나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조그맣지만 확실한 장삿거리이기 때문이다. CD의
특성상 아무리 많이 듣더라도 음질이 나빠질 걱정도 없다. 음악도 늘 듣고.
음악팬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장사다.
CD 일색인 오디오 시장을 보면, 이 CD 대여점은 우리나라에도 곧 상륙할
전망이다. 맘이 있는 분은 누가 시작하기 전에 선수를 쳐 보시라. 남들 다할 때
하면 늦다.
(비디오 가게를 하시는 분이 겸업이나 전업을 하신다면 더욱 손쉬을
아이템이다. 노하우는 그대로, 종목만 바꾸면 되니까. 단, 기왕이면 중고등학교
앞이나 적어도 대학가 정도의 입지는 생각하시는 게 좋겠다. CD의 주 고객도
그쪽이니까.)
부가가치를 파는 꽃 인테리어점
세상에서 사장 싼 값으로 가장 큼 감동을 안겨주는 선물이 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꽃은 사람과 함께 있다. 어버이 날의 카네이션부터 결혼식의 부케,
졸업식의 꽃다발, 생일날 나이만큼의 장미송이, 그리고 장례식의 국화에
이르기까지. 그러니까 꽃가게만큼 확실한 꺼리도 없다, 라고 생각해도 될까?
이건 확실하지 않다. 누구나 잘 될 거라도 생각하는 것 치고 경쟁이 심하지
않은 장사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시라. 얼마나 많은 꽃집들이 여러분의
동네에 진을 치고 있는가를.
이럴 때, 내가 늘 주장하는 '기획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꽃이면 다 같은
꽃이지 무슨 차별화가 있느냐, 인조꽃 같은 얘기라면 꺼내지도 말아라.
물론이다. 내 말은, 단순히 꽃을 잘라 파는 1차 판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꽃에서 부가가치를 생산해 내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일본에
있다. 아도야마 거리를 가 보라. 세계 최첨단 패션이 넘치는 아도야마는
일본에서 가장 세련된 거리다. 그곳에선 어떤 가게든 비싸다. 땅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그 와중에 꽃가게들이 성업하고 있다는 거다. 첨단
상품으로 개발되어 비싼 값에 팔리는 꽃 인테리어 덕분이다.
아도야마식 꽃 인테리어의 기본은 이렇다. 먼저 구부러진 꽃줄기 한송이를
적당한 길이로 자른다. 오이를 반으로 잘라 세운 다음 아까의 꽃줄기 두께만큼
속을 파내고 그 자리에 꽃줄기를 꽂는다. 짠, 참신하고 세련된 최신형 꽃꽂이의
탄생이다. 이렇듯 간단한 기본 구조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덧붙여, 기발하고
심플한 꽃의 미학을 수도 없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것도 있다. 2/3쯤 깨어진 계란 껍질 수십 개를 계란 담는 판에 가득
깐다. 각각의 계란 껍질 속에는 흙을 채우고 작은 꽃을 심는다. 그러면 말
그대로 초미니 꽃밭이 만들어지는데, 그 모습이 깜찍하고 신기하기 그지없다.
이때 계란 껍데기에 부활절 달걀처럼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 놓으면 더욱 재미
있는 작품이 된다.
아도야마의 꽃 인테리어는 유럽에서 눈동냥한 기술을 일본식으로 다시 연구
개발해 낸 것들이다. 이것이 일본 전체에 바람을 일으켜, 다른 지역의 일반
꽃가게들도 간단한 꽃 인테리어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가장 간단한 아이디어를 소개하면, 꽃씨를 심어놓은 종이컵을 아주 싸게 파는
것이다. 물론 꽃씨만 팔 때보다는 곱절로 비싸다. 종이컵에는 그 꽃이 피었을
때의 사진이 붙어 있다. 꽃씨 상태로 그냥 파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아파트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꽃씨를 그냥 줘도 심지 않는다. 귀찮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종이컵의 경우엔 비닐 포장을 따내고 물만 조금 주면 파란 싹이
돋아나온다. 귀찮기는커녕 그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 때론 이 싹이 너무 예뻐
꽃종이컵을 사는 경우까지 있다. 그리고 한달쯤 지나면 제법 푸릇푸릇 키가
자라고 컵이 작아 보인다. 그때는 누구든 빈 화분에 옮겨 심고픈 마음이 든다.
'내가 키운 것'이라는 애착이 들기 때문이다. 이 꽃종이컵 아이템은 꽃가게를
하고 계신 분이 당장 시작해 봐도 좋겠다. 일회용 종이컵 쓰레기가 산처럼
쌓이는 형편이니, 환경보호 차원으로도 한몫을 보태는 일이 되지 않을까.
이같은 꽃 인테리어에 대한 연구는 일본 서점에 가면 많이 있다. 사진까지
곁들여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교보문고 외서 파트 같은 곳에 가서 찾아봐도
되고, 없으면 주문을 해도 된다). 손맵시가 웬만하고 꽃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꽃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자본이 많이 들지 않으니까
가정주부가 별 부담없이 부업으로 택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아주 특색 있는
꽃 전문점이 되어 유명해질 소지도 많다. TV 정보프로그램이 가장 좋아할 만한
소재니까.
사족 한마디. 꽃 인테리어를 하든 그냥 꽃을 팔든 어쨌거나 '꽃가게'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드리는 말씀. 우리나라 꽃가게는 규모가 작다 보니
이른바 '고객만족' 차원의 배려가 전혀 없는 곳이 태반이다. 꽃과 나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고객은 서 있을 자리도 없게 해 놓은 가게도 많다. 요즘은
고객만족을 넘어서 '고객감동'을 지향하는 시대가 아닌가. 꽃가게도 고객감동의
서비스를 해 보자. 방법은 어렵지 않다. 꽃 자체가 인테리어 소품이니 만큼,
그저 아이쇼핑할 만한 공간을 확보해 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꽃 포장을
기다리는 동안 좀 넉넉하게 않아 있을 예쁜 의자 몇 개. 녹차잎을 준비해
뒀다가 한잔씩 서비스한다면 금상첨화다. 신기한 꽃 인테리어가 사방에 가득한,
정갈한 커피전문점 같은 분위기라면, 장미 한송이 사러 왔다가도 비싼 꽃
인테리어 소품을 집어들고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을까.(대학가라면
자유로이 약속 메모를 남길 수 있는 대형 메모판도 필수다. 그것만으로 일약
대학가의 명물로 떠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광의 새로운 돌파구 이벤트 관광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면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가 해외여행 붐이다.
강의 도중 "내가 외국에 갔을 때 말야"라고 할 수 있어야 선생님의 권위가 서는
때가 있었지만 그건 옛말이 되고 말았다.
신혼여행지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제주도가 이제 동남아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대학생 중심으로 해외 어학연수와 배낭여행 붐도 일어, 바야흐로 전
국민의 해외여행 시대가 열렸다. 김포공항은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입출국자로 미어터지고, '어글리 코리언'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까지
했다.
해외여행의 제일 큰 문제점이 과다한 지칠이다. 정부에서는 불필요한 지출을
막기 위해 '신용카드 해외 사용한도액을 정한다', '개인 환전 내역을 관리한다고
법석이다. 하지만 아직도 관광수지가 적자가 우리나라 전체 경상수지 적자에
만만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70년에 이래 우리나라가 직접 무역에 의한 국제수지 개선에만 역점을 두는
사이, 관광은 어느덧 한켠으로 밀려나 버렸다.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기획으로
외국인 여행객들의 발길을 한국으로 돌려야 한다. 가만 생각하면 관광만큼 쉽게
벌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까.
우리나라는 일본인이 제일 많이 가는 해외 여행지로 줄곧 1위를 고수하다
최근 미국에 밀려 2위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인들이
첫째로 꼽는 해외 여행지이다. 뭐니뭐니 해도 값이 싸기 때문이다.
값이 싸다는 것 자체가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속내를 살펴보면 거기에 큰
문제가 있다. 도대체 우리나라의 관광이 값쌀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일본에
비해 물가가 싸고 거리가 가까워 운임도 싸게 먹히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일본인들의 한국 여행비가 우리나라 국내 여행경비보다 싸다는 건 불가사의한
일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일본에서 팔리는 한국관광 패키지 상품 중에는 2만
9천원(20만원 정도)짜리 2박 3일 관광이 있다. 일본에 갔다 오신 분은 알겠지만
그건 왕복 비행기 삯도 안된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일본인들에게 한국이
싸구려 관광지로 비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왕복항공료, 호텔비, 관광,
식사를 모두 합쳐 20만원이라니. 우리나라 사람이 제주도 2박3일 여행을 가도
그보다 비싼 게 상식 아닌가.
거꾸로, 한국 사람이 일본 갈 때를 생각해 보자. 2박3일이라도 최소란
50__60만원 이상이다. 뿐인가. 그 비싼 일본 물가를 무릅쓰고 '일제'를
사들이느라 여행비의 곱절을 쓴다. 대일 관광수지가 언제나 적자인 것도
당연하다.
무역역조보다 더 심각한 관광역조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는가. 이쯤에서 일본
현지 여행 시스템을 한번 훑어보자. 일본 현지 관광은 값이 비싸긴 하지만 진짜
오밀조밀 개발을 잘 해 놓았다. 후지산, 하코네, 니코, 아다미 등 당일치기나
1박2일 코스만 봐도, 짧은 일정 속에서 빼낼 것은 최대한 빼내게 되 있다.
전세버스에서 케이블카, 유람선, 신칸센까지 다 타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호텔
음식점과 쇼핑센터 등등도 짭짤하게 관광수입을 나눠먹는다.
도쿄나 교토의 하루관광도 시스템은 비슷하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한껏 '볼거리'로 엮어 놓았다. 일본 전통극 가부키를 보여주든가(도쿄)
하며 끊임없이 오밀조밀한 관광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니코 민속촌의 경우도 재미있다. 옛날 건물들을 복원해 놓은 점이나 옛
가구를 그대로 배치하고 실물 크기의 배치하고 실물 크기의 사람인형을 그 시대
복장으로 세워 놓은 점 등은 우리 민속촌과 똑같다. 그런데 어느 것에서나 쇼를
하고 있다는 세 다르다. 포도청을 재현한 곳에선 재판과정 쇼가 열린다. 물론
대부분 코미디다. 잡혀온 범인과 증인,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사며 연기에서 찰찰 넘치는 웃음이 관광객들을 꼼짝없이 묶어둔다. 민속촌 내
여러 곳에 이론 식의 크고 작은 이벤트를 만들어 놓고 볼거리를 제공한다. 모든
쇼의 마지막은 관광객이 수고한 배우들에게 돈을 던지는 순서로 끝난다. 일본의
상혼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아예 민속촌에 들어설 때부터 '돈 던지기'용 봉투를
나눠준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니코 민속촌의 묘미는, 건물이나 소품 같은 '하드웨어'보다 는 그 시대의 삶을
드라마타이즈(dramatize)한 '소프트웨어'들로써 더 큰 즐거움을 준다는 데 있다.
또다른 예를 들어 보자. 예 이발소에 가면 실제로 이발도 하고 안마도 받으며
쉴 수 있다. 이발사도 안내원도 이발 가위도 면도칼도 다 옛날 그대로다.
뿐인가. 길거리엔 칼을 찬 시무라이가 잔뜩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는가 하면, 그
앞으론 예스러운 기생들이 화사한 웃음을 날리며 지나다닌다. 관광객을
타임머신에 태워 오백년 전의 일본으로 데려가는 기막힌 상술이다.
엔고와 물가고에도 불구하고 외국 관광객들이 일본에 꼬이는 이유는, 이같은
볼거리들을 국가 차원에서 민간단체와 연계하여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속촌 같은 하드웨어가 없는 경우에도, 대형 박람회나 기획 전시회
같은 국제적인 이벤트를 기획하여 그것 자체를 관광상품으로 만든다. 하다 못해
생활용품이나 어떤 특정 하나만으로도 전시회를 열어 일년 내내 세계인을
불러모으고 달러를 거둬들인다. 비즈니스건 전시회 시찰이건 일단 일본에 발을
딛고 나면 먹는 것, 자는 석, 타는 것이 다 수입이 되는 서 아닌가.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유물 유적이나 보여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나마
여행사끼리의 경쟁으로 엄청 싼 값에 팔린다. 당장 우리 민속촌에서도 신라촌,
백제촌을 만들고 칼쌈 공연이나 코미디 사극 같은 이벤트를 해서 뭔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덤핑 관광이 아닌 기획 관광, 이벤트 관광 시대로 돌입해야
할 때가 아닐까.
자, 이제부터 대일 관광역조를 혹자로 되돌려 놓을 차례다. 내가 관광
기획자라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이벤트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선
'사관과 신사' 캠프는 어떨까? 군대가 없는 일본 젊은이에게 군대 체험을
시켜주는 캠프다. 적성에 따라 각종 코스를 여러 단계로 나눈다. 공수 캠프,
해병 캠프. 잠수 캠프, 보병 캠프 등으로 눈물을 쏙 빼놓은 다음, '사관과 신사'
식으로 한국인 교관과의 멋진 추억을 얹어 주는 거다. 일본 TV 프로듀서들이
유일하게 '으악' 하는 한국 프로그램이 있는데 바로 '우정의 무대'다. '진짜
군대'라는 것엔 서바이벌 게임이 줄 수 없는 고유의 감동이 있는 것이다. "진짜
사나이가 되는 기회--한국의 군대가 당신을 부른다" 정도의 카피만으로 '뻑' 갈
일본애들은 숱하게 많다. 물론 나이 든 일본인도 포함해서.
이런 것도 있다. 이름을 붙이자면 '친구 만들기 캠프' 쯤이 될까. 일본
젊은이를 1000명쯤 경치 놓은 우리 야외로 불러들여 한국 젊은이 1000명과
캠프를 하게 하는 거다. 설악산은 좋고 경포대도 좋다. 한국측은 무료 선착순,
일본측엔 참가비를 받는다. 캠프의 취지는 한일 젊은이의 교류, 즉 여기서 사귄
친구를 각자 인생의 재산으로 만들자는 것. 한극 강좌, 한국말 강의, 한국 문화
체험 등을 기본 프로그램으로 하고, 스포츠와 장기 자랑 등을 통해 직접
부딪치며 재주껏 친구를 만들 기회를 제공한다. 가슴을 열고 서로 이해하는 것,
한일 모두에게 의미있는 일이다. 현실적인 이득도 만만찮다. 이 친구들을
가이드로 서로의 나라를 방문하면 좀 좋은가. 숙식이 해결되니까 비행기값만
들고도 해외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거다. 이런 캠프에 일본인들이 1000여 명
오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내 경험을 말하면 재일교포 2세, 3세들이 이런
캠프를 엄청 갈구하고 있으니까.
여태까지 우리나라의 이벤트 관광이래야 기껏 때밀이 관광 정도였다. 그것도
우리나라 호텔과 사우나탕 수가 한정되어 있고 한국 때밀이 측이 자꾸 웃돈을
요구하여 요즘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이제 2002년 월드컵을 공동 유치하여
여기에 관련된 이벤트 기회도 한층 넓어졌다. 한국의 여행관련 종사자 여러분
그리고 이 분야에 투자를 원하시는 분, 일본은 한국에 돈 쓸 준비가 되어 있다.
단지 마땅한 상품이 없을 따름이지.
월세주택 임대업이 뜬다
우리나라와 일본사람들의 '집'에 대한 생각은 근본적으로 틀리다. 우리는 모두
다 굶어죽어도 자기 집 장만을 안하면 안심을 못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런
마이홈에 대한 생각에서 오래 전부터 자유로워져 있다.
일본인들의 소비 행동을 살펴보면 두 종류의 부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진짜부자'와 '포기한 부자'가 있는데 진짜 부자는 말 그대로 진짜 부자,
포기한 부자는 금덩어리 땅값의 일본에서 집에 대한 욕심을 포기해 버린
샐러리맨들을 가리키는 사회용어이다. 후자에 속하는 새로운 타입의 부자들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많아서, 일본의 소비문화 패턴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가계
경제에서 마이 폼 플랜만 포기한다면 소비에 상당한 여유가 생기는 게
당연하다. 평생 월급을 모아 내 집 하나 장만하느니 젊을 때 마음대로 쓰고
놀면서 신나게 살자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어찌 보면 한국 샐러리맨 입장에선
꽤 부러운 상황이다.
큰맘 먹고 내 집에 대한 고정관념만 포기하면 일생 동안 풍요롭게 돈을 쓸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이런 생활패턴을 선호하여 '이거야말로 사는 것처럼
사는' 거라 생각하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거품처럼 부풀었던 부동산 투기의
시대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그들은 직감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미분양
아파트가 쏟아져 나오고 시세보다 비싼 아파트까지 등장하는 시대 아닌가.
요즘 우리나라 젊은 친구들을 보면 집 살 돈을 깨어 승용차를 산다. 전세를
살아도 해외여행은 간다. 부모 세대처럼 집 장만에 무턱대고 일생을
투자하기보다는 '삶의 질'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다. 집이란 이제 절대의
개념에서 선택의 개념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흐름이 바뀌면 제도도 달라진다. 새로운 '기회'도 만들어진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전세 제도를 한번 돌아보기로 하자.
전세는 외국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독특한 한국식 주택임대
시스템이다. 생겨난 배경부터가 '내 집 마련'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을 살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목돈은 있다. 이 돈을 깨지 않으려고
통째로 주인에게 맡기고 집을 빌린다. 반대로 집주인은 억지로 빚을 내어 집을
장만했는데 이자를 충당할 길이 없다. 그래서 구입한 집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임대해 주고 목돈을 빌려 빚을 청산하는 것이다. 주인이나 세입자나 모두
만족이다. 주인은 빚 안 지고 집 장만하고 세입자는 언젠가 집값이 될 목돈을
깨지 않고 보존하고.
전세는 지금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주택 임대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신세대 부부들의 등장으로 이 전세 제도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요즘 전세 계약의 속내를 보면 반전세나 반월세 혹은 완전 월세가 늘고 있다고
한다. 오피스텔이나 원룸 주택의 출현도 이같은 현상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택 임대 사업을 하시는 분들도 이제 새로운 시스템
쪽으로 맘을 바꿔 가져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일본에서 참 편리하다고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일본의 주택 계약
제도이다. 한마디로 전세는 없다. 5개월 내지 6개월 월세를 미리 주면 계약이
되고, 큰 탈이 없는 한 거의 영구적으로 그 집에서 살 수 있다. 집을 바꾸고
싶으면 선금으로 준 몇 개월치 집세를 되찾아 이사가면 된다. 일본의 젊은
부부들은 웬만한 집이면 다달이 10만엔(한화 80만원) 정도를 내고 살 수 있다.
선금 50만엔(400만원)만 주면 내가 고른 집에서 가족이 살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매달 10만엔을 내는 것도 그리 아깝지 않다. 대체로 맞벌이가 많은
일본이므로 결코 부담가는 액수가 아니다. 일본에서 땅이 조금 있는 사람들이
4__5세대용의 작은 임대건물을 지어 매달 나오는 집세로 평생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을 많이 봤다. 난 이거야말로 우리의 주택회사들, 아니면 건물을
가진 사람들, 또는 집장사 할 사람들이 참고할 제도하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세대 주택처럼 여러 세대가 같이 살 수 있는 집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임대 계약은 전세가 주종이다. 이것을 월세로
전환한다면 주인이나 세입자나 모두 편리할 것이다. 우선 주인은 매달 새로운
수입원 생겨서 좋다. 그리고 세입자는 큰돈 마련할 필요없이 월급에서 일부를
내고 원하는 집에서 살 수 있다. 전세는 목돈이 굳지만 월세는 돈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모르시는 말씀. 만약 큰 돈이 있다면 차라리 은행에 넣는 편이
낫다. 그 이자에 약간만 웃돈을 보태면 충분히 월세는 해결된다. 그 대신 내
맘대로 언제든지 쓸 수 있는 목돈이 생기고, 이사가고 싶을 때 당장 이사갈
수도 있다. 이사가려는데 전세금이 빠지지 않는 것만큼 고생스런 것도 없지
않은가.
(정년에 이르러 은퇴를 생각하는 분들, 장기근속 대신 두둑한 퇴직금을
선택한 명예퇴직자 분들, 얼마 있는 목돈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월세 주택 임대업은 딱 알맞은 사업이라 믿는다.)
제2장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것에 주목하라
일본의 중고품을 노려라
중고 자전거로 부자 된 사람의 기사를 보고 역시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일본은 동네 단위로 모든 시설이 완벽하게 되어 있는 만큼,
자동차보다는 자전거가 훨씬 생활에 기동력이 있다. 자동차를 끌고 물건을 사러
가면 주차하기도 힘들고 좁은 동네 길에 아이들 칠까 신경도 쓰인다. 아침
출근길도 서울 시내 못지 않게 꽉꽉 막히는 탓에, 많은 사람들이 차를 두고
출퇴근한다. 이때 이용하는 것이 자전거다. 역까지 타고 가서 역 앞에
자전거를 둔다. 이건 불법 주차다. 그걸 모를 리 없지만 그렇다고 자전거
주차장을 찾기도 만만한 일은 아닌지라 대개는 그냥 역 앞에 댄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쯤 불법 주차 자전거 단속반이 나온다. 어느날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날은 낮 동안 경찰이랑 트럭들이 와서 싹쓸이해 간다. 역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자전거들을. 나도 그런 식으로 자전거를 5번 가량
철거당했다. 역 앞에 내려오니까 아침에 놔둔 자전거가 없는 거다. 5번 중에
2번은 자전거 찾는 곳에 가서 다시 찾아왔고 3번은 안 가서, 결과적으로
일본에서 자전거 3대를 잃어버렸다. 꽤나 먼 곳까지 찾으러 가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오는 세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안 찾아간 자전거들은 약
2개월 후에 폐차(?)처리된다. 앞서 말한 자전거 부자는 그런 자전거들을 거의
공짜로 대량 구입해서 중고 자전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팔았던 것이다.
서두가 길었지만 자전거 부자 얘길 꺼낸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에 와서
중고품들을 챙기면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나라 사람이 일제 중고품 중개무역을 하면 톡톡히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이제 그 대답을 알아 보기로 하자.
일본에 살면서 늘 놀라는 일 중 하나가 쌩쌩한 물건을 쓰레기통에 마구
버리는 거다. 더구나 버려진 물건을 주어 가는 사람도 없다. 실험적으로
주택가에 버려진 것을 가져다 써 봤더니, 녹음기에서 TV, 에어컨까지 죄다
멀쩡한 거였다. 겉 보기에 색이 좀 바랬고 유행이 지나간 디자인이란 것 말고는
얼마든지 더 쓸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전자제품 개발 사이클이 워낙 빠르다
보니 구매력을 자극하는 신제품이 나오면 구형이 된 물건은 그 자리에서
'토사구팽' 되는 거다.
비단 전자제품뿐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가구, 옷, 인테리어용품, 책 등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신상품들을 끊임없이 사들이고 구상품들을 끊임없이 뱉어낸다.
굉장한 소비 대국이다. 소비가 미덕, 케인즈의 경제이론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곳이 바로 일본이다. 넘쳐나는 소비가 새로운 구매로 연결되어 오늘의 일본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도 짠돌이들은 있다. 내심으로 새 것을 사기는 아깝고 안 사면
불편하니 중고라도 있었으면... 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왜
중고가 흘러 넘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일본에는 중고품을 파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있다 해도 수소문해야 간신히 찾을 수 있을 정도. 아까 예로 든
자전거 부자가 가능할 수 있는 토양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중품
가게를 하자? 그거야 일본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거저
가져갈 수 있을 만큼 싼 일본의 중고품들을 대량으로 끌어모아 세계 각지에
팔자, 이건 틀림없이 되는 사업이다. 이런 얘기다.
태국차의 90%가 일본차다. 자동차 생산 능력이 없는 만큼 모두가 수입차고,
그 대부분이 일제이다. 그런데 이 일제차의 또 대부분이 중고차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폐차되는 수준의 차가 어떻게 된 건지 택시로 변해 방콕 시내를 쌩쌩
잘도 달리고 있다. 러시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수입업자들이 일반 항구에 화물선을 대고 일본 중고품을 대량으로 쓸어담고
있다. 자동차는 물론이고 세탁기, TV 등의 생활용품을 있는 대로 싸담아서
가져간다. 거의 똥값에 퍼담은 것들이 자국에 가면 번듯한 물건으로 둔갑해 몇
배의 이문을 남기고 팔린다.
이간은 일본 중고품의 인기가 멀쩡한 제품을 싼 값으로 살수 있다는 이점
덕분만은 아니다. '메이드인 저팬'이라는 효과도 단단히 한몫한다. 일본은
싫어해도 일제는 좋아하는 게 동아시아 일원의 공통된 정서 아닌가. 몇몇 특정
품목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수요를 찾을 수 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판매 대상은
동남아 국가나 중국 등 저개발국이 알맞을 것이다. 운임만 해결할 수 있으면
동구, 남미나 아프리카도 괜찮고.
우리나라도 중고가 남아도는 사정은 비슷하다. 몇 년 동안 팔리지 않고
이월된 옷가지들이, 그러니까 중고품이 아닌 재고품들이 무게로 팔려 중국
등지로 수출되는가 하면, 아파트 단지 주변의 재활용 쓰레기통을 뒤지면 아직
괜찮은 옷들이 수도 없이 눈에 뛴다고도 한다. 하지만 일본만큼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도, 여유가 좀 있다고 집안 살림을 함부로 바꾸고 옛
물건을 버릴 정도는 아닌 것이다. 전기전자 제품의 경우 이젠 일본이나 우리나
개발 속도에서 거의 차이가 없지만, 우리 업체들이 일본보다 국내 수요 창출에
더 애를 먹는 것도 이러한 '국민 정서'의 차이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개발 자체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시대에 이미 와 있다. 그
기저엔 독특한 소비 중심의 메커니즘이 깔려 있다. 일본 열도에 수만 개의
중고품 체인이 일제히 생기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일본 거리엔 계속 괜찮은
물건이 쌓일 터이다. 이건 먼저 줍는 놈이 임자다. 국제 무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분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일본 중고품 해외판매업을 심사숙고해
보시길.
플러스 알파 한가지. 중고품 재판매업은 버려진 물건을 재활용하여
쓰레기까지 줄여주는 진정한 '그린' 사업이란 점도 특기할 만하다. 돈도 벌고
환경단체 표창도 받고, 말 그대로 '일석이조, 일타쌍피'의 사업인 거다.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서 돈을 만드실 분, 이 시대의 새로운 마술을 하고 싶은
분들은 일본 중고품을 잡으시라. 오늘도 도쿄 주택가엔 어저께 모델이 버려지고
있으니까.
영화 현장을 패키지 현장으로
앞장에서 외국인을 한국에 불러들이는 관광 아이템을 얘기했으니까, 우리나라
사람이 해외로 나가는 여행 상품 아이디어도 한번 생각해 보자.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해외여행 봇물이 터져 난린데 구태여 따로 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느냐. 하지만 여행 관계자들 얘길 들어 보면 사정은 의외로 어렵다. 연일
해외여행 광고가 신문잡지를 메우고 귀찮을 정도로 우편광고가 쌓이지만, 정작
상품 내용은 다들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관광지도 같고 현지 코스도 천편일률이다. 타고 가는 항공기나 현지 호텔까지
모든 것이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다. 단지 여행사가 다르고 요금이 약간 틀릴
뿐이다. 그러니까 여행사들이 유일하게 내세울 거라곤 '딴 데보다 단돈 몇천
원이라도 싸게 팝니다'란 카피밖에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어떻게 같은 코스, 같은 조건인 여행 경비가 다를 수
있나. 이윤을 깎는 것도 한계가 있다. 결국은 호텔 등급을 낮추거나 코스를 빼
먹거나 하는 요령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모처럼 해외로 나가는 우리 여행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반대로
해당 국가에선 한국 관광객들에 대한 불신이 쌓인다. 유망 분야의 하나인
해외관광업이 나날이 뒷걸음질치며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해외관광도 새로운 상품으로 돌파구를 열어야 할 때이다. 최고의 차별화 전략은
상품 그 자체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개인적으로 세계 여행에 큰 관심을 갖고 잇다. 그래서 어디를 가다가
여행 팸플릿이 있으면 어김없이 눈길을 주고 뭔가 특별한 상품이 없나
뒤적거린다. 알고 보면 여행 팸플릿을 보는 것만큼 머리가 시원해지는 일도
없다. 우선 공짜다. 어떤 호텔, 어떤 여행사의 두꺼운 브로슈어도 돈 받고
판다는 얘길 들어본 적은 없다. 뿐인가. 한 장만 들춰보면 바다가 있고 숲이
있다. 들판과 우정과 미인의 환한 얼굴이 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여행의
아련한 떨림, 거기에 사막의 바람 소리와 먼 바다새의 울음 소리를
오버랩시키면 꿈 같은 시간이 펼쳐진다. 이런 '상상 여행'을 나는 새 팸플릿을
볼 때마다 한다. '요번 것만은 진짜 가고 말 거야' 하고 다짐하면서.
그러던 참에, 이 글을 쓰기 얼마 전 발견한 2종의 팸플릿은 정말 좋았다.
니혼료코의 팸플릿이다. 니혼료코는 JTB와 함께 일본 최대의 여행사. 이런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니까 역시 잘 될 수밖에 없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세상에! 오드리 헵번과 클라크 게이블을 자기네 여행사의 모델인 양 과감하게
캐스팅해 버린 거다.
하나는 영화 '로마의 휴일'을 아이템으로 한 로마 여행 패키지 팸플릿, 다른
하나는 영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모델로 한 애틀랜타 여행 안내서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모든 장소를 영화
스토리에 따라서 가 보자는 것이다. 팸플릿 속엔 여행 일종에 맞춰 영화
장면까지 늘어 놓았다. 정말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팸플릿만 그렇게 만들었을 뿐 실제 여행 일정은 다른 여행사의 로마
여행 상품과 별 차이가 없다. 정말 아이디어 하나로 단순한 해외 여행을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의 사랑현장을 다시 훔쳐보는 환상 여행'이자 '특별한 사연이
깃든 속을 다시 찾는 추억 여행'으로 탈바꿈시켜 놓은 것이다.
그건 일본인들이 놀라운 상술이다. 이름난 영화일수록 저작권도 없다. 영화의
배경이 여행지로 이름난 곳이기만 하면 된다. 그 이상 매력적인 광고도 드문
것이다. 그 점에서 '로마의 휴일'은 당장 우리나라 여행사에서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애틀랜타도 96년 올림픽에 힘입어
상품가치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비비안 리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애수' 같은 영화도 쓸 만하다. 원제목인
'워털루 브리지'가 영국 런던에 있으니까, 런던 여행 패키지를 만들어 놓고
'애수'라는 타이틀을 붙이면 되는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카사블랑카'를
제목으로 단 여행 상품이 있다면 무조건 갈 생각이다.
(지금, 항공료와 현지 숙박료를 계산하면서 한푼이라도 요금을 낮추려고
고심하는 여행사 직원이 있다면 미련 없이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시라. 집에서
비디오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게 훨씬 이득이니까. 그러나 유의사항,
비디오 선택은 자 하시도록. 평소대로 '밤일'에만 도움이 되는 비디오를 골라선
안될 테니까.)
정보 다이제스트 인기 폭발
우리나라는 가정에서도 신문을 보통 두서너 개씩 본다. 일부 '극소수'
신문사들이 집집마다 억지로 넣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생활은 정반대다.
바쁜 아침에 무슨 수로 그 많은 신문을 다 보랴. 그나마 제일 많이 읽는 축이
후딱 넘기면서 헤드라인만 훑는 사람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회사에선 또
어떤가. 무슨 경제주간지, 시사주간지가 그리 많고 월간지도 그리 많은지.
어지간해선 목차도 한번 제대로 보기가 힘들다. 어쩌다 관심 있는 제목이라도
비치면 펼쳐보지만 끝까지 읽지는 못한다. 어느 누구의 죄가 아니다. 콩볶듯
돌아가는 요즘 세상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모르고 살 순 없다. 정보에 처지면 모든
면에서 뒤지게 마련이다. 이런 현대인의 딜레머를 해결해 주는 것이 일본에 뉴
트렌드로 등장한 '정보 다이제스트 사업'이다. 세상에 나오는 신문 잡지들을
깡그리 요약해서 필요한 이들에게 발송해 준다. 회원제로 사람을 모으는데 그
규모가 자못 거대 기업이다. 뿐만 아니다. 요약된 뉴스만을 다루는 새로운
새로운 형태의 잡지도 등장, 날개 돋힌 듯이 팔린다. 숫제 모든 TV 프로그램을
정리해 주는 TV 프로그램까지 나왔다. 바야흐로 정보 다이제스트 사업의
전성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다카포'란 월간지가 있다. 사진도 그림은 거의 없고 판형도 작아 겉 보기엔
무척 초라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제일 인기 있는 잡지 중 하나다. 정보
다이제스트 잡지이기 때문이다. 표지엔 언제나 이 잡지의 모토가 적혀 있다.
"현대를 3시간 만에 아는 책."
실제로 그렇다. 다카포를 펼치면 그 달에 벌어진 일들이 맨첫장에 놀랍도록
잘 간추려져 있다. 첫장을 넘기면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산케이 등 일본
규슈 일간지들이 낱낱이 분석되어, 거기서 추려진 주요 사건들이 다뤄진 빈도
순으로 정리돼 있다. 옴 진리교 문제 몇 번, 미일 안보 문제 몇 번, 고베지진 몇
번--이런 식으로 나열된 박스 옆에, 각 신문이 공통으로 다룬 키워드들이
요약돼 있다.
다음엔 가십과 스캔들을 주로 다루는 스포츠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들을 집계,
역시 빈도순으로 보여준다. 연예인 스캔들, 저팬 시리즈 우승 뉴스, xxx
살인사건 미스테리 등등. 또 다음 장을 넘기면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각계의 뉴스메이커들이 쏟아낸 어록(?)들을 정리하고, 편집진의 해설을 덧붙여
놓았다. 이런 방법으로 다카포를 읽고 나면, 그 달 동안 신문, 잡지를 전혀 못
본 사람의 머릿속에도 현대가 촤르륵 정리되는 것이다. 단지 세 시간 만에!
다카포보다 더욱 더 단박에 현대를 알게 해주는 잡지도 있다. '포커스' 같은
시사 포토 주간지가 그것이다. 포커스는 단 30분 만에 한 주일의 국내외 사건을
다 보여준다. 포커스에는 기사가 없다. 여러 장의 사진이 복잡한 행들을
대신하여 뉴스를 전한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얼마나 많은 얘기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가를 상기해 보시라. 내 경우에도 한두 주일 떠났다. 돌아올 때면
나리타 공항에 내리자마자 포커스 한 권을 산다. 가장 빠른 시간에 그동안의
일본을 정리해 주기 때문이다.
포커스는 글 읽기를 싫어하는 젊은이에게 인기가 높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그 정도만 알면 결코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처지지 않는다. 사진이
갖는 한계 때문에 정통 시사 문제에 대해서는 디테일이 약하지만 스캔들성
기사에는 오히려 더 강력한 임팩트를 보여주고 있다. 또 사진 한 장마다 영어
한 단어씩으로 표제를 달았는데 그것도 상당히 함축적이다. 예를 들어 Hero,
Heroine, Crime, Trouble, Top, Challenge, Nature, Erotica, Game... 이런
식이다.
포커스가 사진으로 한 주일을 간추려 준다면, '브로드캐스트'란 TV
프로그램은 영상으로 한 주일을 정리해 준다. TBS가 제작하는 이 프로그램은
일주일간 자기 방송에서 나온 전파를 통계내어 어떤 사건 어떤 인물이 가장
많이 다루어졌는지 베스트 10을 정하고 다시 보여준다. "다 지난 뉴스가 무슨
재미..."하실 분도 있겠지만, 의외로 브로드캐스트의 시청률은 톱이다.
학창 시절, 대입 참고서 중 전 교과과정을 한 권으로 정리한 책이 출판된
적이 있다. 시험 직전에 총정리는 해야겠다고 교과서를 전부 훑어 보기도
힘들어 난감해 하던 수험생들한테 제법 인기가 있었다고 기억된다.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나도록 그 아이디어가 정보 다이제스트 잡지 쪽으로 발전하지 않은 게
내겐 미스터리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는 분들께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정보화 사회가 다가올수록 그 비중도 커질 게 틀림없는 정보
다이제스트 사업--기획력과 감각, 끈기만 있다면 소자본 소인력으로도 당장
시작할 수 있다. 자, 만일 당신이라면?
노년층 대상 실버잡지를 잡아라
우리나라에도 노년층 인구가 많아져서 하나의 독립된 세대군으로 자리잡고
있다. 공무원 정년을 65세로 올린 지 몇 년이 되었다. 정년 퇴직한 노인들의
경험을 일반산업계에서 활용한다는 얘기도 종종 접한다. 현대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90년대 들어 71.5세를 웃돌고 있다.
노년층을 위한 실버산업이 확실한 유망사업으로 각광받을 시기가 된 것이다.
아시다시피 일본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장수국가다. 그런 만큼 실버산업도
다양한 형태로 개발되어 성공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노인층을 대상으로
발간되는 격주간지 '사라이'의 사례는 매우 눈길을 끈다.
한국에서 잡지하고 하면 그 대상이 최고 높게 잡아서 장년층이다. 시사잡지가
일부에서 읽히는 걸 빼면 노인들이 볼 만한 잡지는 거의 없다. 여성잡지의 경우
아무리 높게 잡아도 40대에서 끝난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잡지를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아니면 노인 대상 잡지가 팔리자 않기 때문인가? 내 생각엔
모두 정답이 아니다. 아직까지 이른바 '실버잡지'에 대한 시도 자체가 이루어진
적이 없는데, 누가 그런 평가를 섣불리 내릴 수 있겠는가.
물론, 막상 실버잡지를 기획해 보려 해도 특별한 소재가 잘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관심과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소학관에서
출간, 50__80대 연령층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 사라이의 성공은 우리에게
많은 얘길 시사해 준다. 사라이의 편집 방향은 노인에 대한 동정이나 맹목적인
존경이 아니다. 오히려 노인들을 직접 취재하여 그들의 육성을 기사화함으로써,
세월을 통해 얻은 경륜과 슬기를 자연스럽게 공유한다.
취재 대상은 주로 성공한 노인 집단. 즉 장인, 예술가, 사업가, 전문직업군
등을 망라하고 있다. 일본 사회를 이끌어 가는 정치경제 방면의 최고
인사에서부터 시골 조그만 전문음식점의 장어 조리사에 이르기까지, 나이만큼의
경험을 통해 전문가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성공의
뒷면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숨은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다. 사라이는 단지
성공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 뒷이야기와 그때의 고독하고 어려웠던 경험,
그리고 노년이 된 지금의 회고 등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잡지가 가장 귀중하게 다루는 소재는 나이 든 사람들이 어떻게
휴식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가이드이다. 더 재미 있게 살 수 있게 해 주는
엔터테인먼트 정보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그래서 갖가지 취미 컬렉션이
소개된다. 여행 정보도 특집으로 빠지지 않고 끼여든다.
또 '전국 공연 순례' 같은 오락과 문화의 장을 마련, 가부키 공연이나 축제의
정보를 싣는가 하면, 그 지방의 맛 있는 음식점과 편안하고 안락한 여관, 쾌적한
온천 정보를 덤으로 붙여 놓는다. 노인을 위한 음식 강좌와 술 강좌, 부부
자동차 여행, 건강의학 정보 등도 대단히 공을 들여 만든 기사들. 나아가 각종
그림교실, 공작교실, 광고 디자인, 실내 디자인, 통신 강좌 등도 꼼꼼하게
실었다.
사라이는 페르시아어로 '삶터'라는 뜻이다. 인생이라는 사막, 아니 노년이라는
사막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삶터를 제시해 주는 것, 그것이 모토라고 이 잡지의
편집장 이와모토는 말한다. 노인들도 그러한 삶터를 누릴 권리는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건만 만들어 준다면 스스로 그 권리를 찾아 나설 준비도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실버잡지의 당위성인 동시에 사업성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실버잡지가 태어날 여건은 무르익어 있다. 오히려,
일본에서보다 큰 성공을 기대할 수도 있다. 제대로만 만들어진다면
실구매집단으로 노인들이 아닌 그 자식들을 이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위해 정기구독을 신청하고 싶은 잡지, 이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잡지에 뜻을 둔 분이라면 실버잡지를 잡는 데 망설이지 마시라. 효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면 그 성공은 우리나라 효자효녀들이 보증한다.
기쁨 두 배, 장애인 운송사업
서울에 있는 내 친구는 일찍 장가들어 아기 둘 낳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일찌감치 음식점을 시작했는데 벌써 내 나이에 제법 큰 음식점 주인이
되어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신촌에 자리한 그 음식점은 교통도 좋아
가끔 친구들 모임 장소로도 이용되는데, 친구는 손님들 돈 계산 하느라 잠시
이야기 나눌 짬이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 돈도 꽤 벌었을 것이다. 이제
큰 애가 초등학교 3학년, 둘째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이 둘쨋놈이
언제부터인지 다리를 약간씩 저는 거다. 우리나라 큰 병원을 죄다 찾아다녔지만
뚜렷한 병명도 알아내지 못했다. 담당의사는 아이의 한쪽 다리가 약간 짧은데
나이가 들수록 심해질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결국 친구 부부는 고심고심하다가 미국 이민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처가쪽이 미국에 있어서 이민 수속은 그리 어려움 없이 진행된
모양이지만 그 친구 말이 한국에서 장애인 자식을 키우기가 두렵다는 것이다.
당장 학교에서 친구도 없을 테고 나중에 졸업해도 취직이 힘들고 더욱이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은 서울에서도 제로에 가까우니 말이다. 그래도 미국에
가면 신체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하니까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
이민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억척같이 살아온 친구인데 무척 가슴이
아팠다.
사실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부족할 뿐더러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의 시선도 동정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도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이들의 편의 시설에 대한 대책은 인4도적
차원에서는 물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당한 대우라는 측면에서도 이제부터
적극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언젠가 서울에서 택시를 탔더니 운전기사 아저씨가 미리 합승한 손님을 좀
부탁한다고 한다. 앞에 탄 손님의 지하철 탑승을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맹인이었다. 그날 그 맹인 양반 팔짱끼고 강남역을 들어갔다가 내친 김에
신도림역까지 에스코트를 해 줬는데 보통 난해한 일이 아니었다. 도와주는 사람
없으면 엄청 힘이 들 코스였다. 시간 낭비, 심적인 고통 게다가 사고의 위험.
실제로 그런 노약자나 장애인을 노리는 범죄자들도 있는 사회니까.
어쨌든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에도 조직적인 장애인 운송 사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도쿄, 우리 동네엔 Friend Bus란 이름의 버스가
지나다닌다. 정류장은 정해져 있지 않다. 장애인 특히 뇌성마비자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그들이 내리는 곳이 자연스럽게 정류장이 된다. 대개 버스에서
내리면 그 앞에는 보호자들이 나와 있다. 어떤 자선사업 단체에서 이 Friend
Bus를 운영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서울에서도 이 정도의 장애인
운송망은 조직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숫자가 전 국민의 0.2%란 통계가 나왔다. 한가족을
5명이라고 할 때, 0.2% 곱하기 5 하면 1%, 즉 전체 국민의 1%인 4십 5만
명이 이 사업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인구가 된다. 경제적 측면에서
이야기하기는 그렇지만 대상 인구를 볼 때 이보다 더 확실한 사업이 어디
있는가. 누구든 이 버스 사업을 빨리 시작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전철은 절대로 장애인의 교통수단이 될 수 없다. 택시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운전에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버스를 직접 운영하면 될 것이다.
자선사업으로 하라는 건 아니다. 장애인 가족은 장애인 전용버스가 우리나라에
생긴 것에 환영하면서 안심하고 이용할 것이다. 만약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이용요금 및 경비도 장애인 이용자가 아니라 국가와 자치단체가 그
경비를 충당해야 옳다. 장애인도 세금을 내는 국민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지하철이나 육교, 지하도의 구조상 장애인을 위해 해 놓은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맹인을 위한 청각 신호등과 우둘투둘한 신호대기가 있지만 실제로 그
숫자는 눈감고 아웅에 지나지 않는다. 또 길을 건너기만 해서 어쩌란 말인가.
맹인 장애인을 만났던 그날, 부산서 현해탄을 건너와 일본 공항을 나왔을 때
입구 로비에 휠체어를 탄 동양남자가 눈에 뛰었다. 생김새로 보아 중국이나
대만에서 입국하는 남자 같았다. 그리고 공항 직원인 듯한 일본 여자가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여직원은 공항 리무진 버스로 내린 뒤 시내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가야 하는지를 영어로 열심히 가르쳐 준다. 이윽고 버스가 와서
그녀는 다른 공항 직원들과 함께 휠체어를 들어올려 버스에 실은 후 손을
흔들었다. 거기까진 기본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으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나를 놀라게 한 건 다음 순간이었다. 그녀는 버스가 지난 다음에도 한참 자리를
뜨지 않고 멍하니 버스가 사라진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우선 장애인 전용 버스노선부터 서울시내에 생길 것을 기대한다. 이를 계기로
더욱 다양한 장애인 사업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업의 총대를 멜 그
누군가에게 신의 축복이 내려 기필코 부자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짭짤한 부업, 워드프로세스 서비스
최근 몇 년 새 우리나라 사무실에서 일어난 변화 중 가장 큰 것을 몇 개
꼽으라고 한다면 회사원은 주저없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첫째가 텔렉스가
없어지고 FAX와 컴퓨터 통신이 이를 대체한 것이고, 둘째가 타자기 대신
워드프로세서 내지 컴퓨터가 이 업무를 대행하는 거라고. 그런데 텔렉스가
FAX나 컴퓨터 메일로 바뀐 것은 그냥 좀더 편리한 기계로 바뀌었을 뿐이어서
큰 영향이 없지만, 문서작성 방법이 PC나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사무실 풍경에 큰 변화가 있었다. 타이피스트 여직원들이 사무실에서
사라진 거다. 컴퓨터의 워드프로세서는 종래 타자기와 달리 기능이 다양하여
문서편집이나 그래픽 삽입 및 기타 문서작성 지원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아무래도 남에게 맡기기보다 기안자가 직접 작성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다.
그래서 요즘 젊은 신입사원은 컴퓨터를 배운 후 입사하거나, 배우지
않았더라도 입사 후 신세대의 순발력을 발휘하여 금세 배운다. 그리고 자기가
기안한 문서는 워드프로세서로 예쁘게 뽑아서 결재를 올린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든 간부사원에게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꽤 심각하다. 아무 종이에나
이리저리 악필로 갈겨 써 놓고 그것도 모자라 여기저기 죽죽 줄을 긋고
수정하여 여직원한테 넘겨두면 한 시간도 안돼 타자로 말끔히 정리되어
돌아오던 시스템이 하루 아침에 없어져 버린 것이다.
신입사원에게 워드프로세서로 뽑아 달라고 시키는 것도 하루 이틀, 그노무
자식도 시간이 좀 지남에 따라 대갈통이 커져서 말을 잘 안 듣는다. 우리
만년과장의 애로사항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얼마 전 일본에서는 선상 워드프로세서 강습 이벤트가 열렸다. 대성공이었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도록 바다 위에 배를 띄워놓고 거기서 컴퓨터 교육을 했던
것이다. 대상은 기필코 이번에는 컴퓨터 활용법을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불타는 사오십대 중견 회사원들이다. 사오십대는 현재 사회구조에서 의사결정상
가장 중요한 위치에 이으면서도 회사에 설치된 컴퓨터에는 가장 백치인
세대이다.
이렇게 컴퓨터에 약한 사오십대를 타깃으로 컴퓨터에 대한 특별 서비스를
하는 것, 이거 괜찮은 사업거리다. 이들 대상의 컴퓨터 서비스는 방금 이야기한
선상 이벤트처럼 기발한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 컴퓨터 학에서 반편성을 따로
하여 기존의 젊은이 대상 프로그램과 병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공은 보장할
수 없다. 공부라는 게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님을 여러분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오십대의 컴퓨터 교육 대신 그들의 워드프로세서 업무를 직접
대행해 주는 사업은 어떨까. 사십대 이상 어른들을 상대로 워드프로세서로 문서
작성을 대행해 주는 거다. '컴퓨터로 무엇이든 도와줍니다' 라는 광고를 신문
간지나 기타 방법으로 다운타운가에 돌리면 그 효과는 금방 나타나리라. 물론
광고 전단에는 전화와 FAX 번호도 함께 기재해야 한다. 서론 광고 전단에는
전호와 FAX로 문서작성 신청이 몰려올 것이다 대상은 컴퓨터가 없는 일반
개인에서부터 사오십대 중견회사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문서로 작성한 후 원본이 필요하다면 요즘 성업중인 퀵서비스 택배회사를
불러 수취인 부담으로 전달하면 되고 원본이 필요 없다면 깨끗하게 작성된
문서를 다시 FAX로 보내면 된다. 싼 값으로 책정하여 대금지불을 월말
정산으로 유도하면 단골 손님도 많이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문서
작성에서 벗어나 편집이나 디자인, 레이아웃, 프리젠테이션 자료, 자료 정리 등
컴퓨터를 이용 가능한 모든 업무를 대행해 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종래의 복잡한 업무를 시중에 나와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간편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즉 일일이 고객 카드를 손으로
작성하는 비디오 가게라면 컴퓨터를 이용하여 작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큰
사업거리다. 설사 컴퓨터를 들여 놓은 비디오 가게라 해도, 그 많은 비디오와
고객을 일제히 입력해 넣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랴. 잘만 하면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판매를 병행할 수 있으니까 일거양득.
마지막으로 컴퓨터 도사인 20대 대학생,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가정교사 내지 출장교사를 하면 좋다. 일반 주부들도 컴퓨터 사용에 대한
욕구가 강한 만큼 교육을 원하는 사람을 몇 명 묶어 팀을 만들어 교육하면
된다. 50대 중견사원 대상의 개인 가정교사도 좋다. 그들은 컴퓨터 교육에 관한
한 주위에 노출되지 않고 은밀하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니까.(이 분야엔
이미 뛰어든 친구들도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컴퓨터 시대에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장삿거리는 무엇보다 다양하다. 지금
컴퓨터 도사들은 오히려 나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컴퓨터를 사신 분들이 계시다면 오락은 그만하고 컴퓨터를 배우시라. 지금
직장보다 컴퓨터가 더 든든한 밥줄이 될 수도 있으니까.
애완동물에도 소스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사'자가 끝에 붙는 다른 직업들과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며 신랑감 후보 영순위이다. 입시에서도 과거에 비해 대학간
격차가 훨씬 좁아져서 어느 대학이건 의대라면 모두 고득점을 얻어야 들어갈 수
있다. 한 해 수천 명의 의사가 배출되고 개업을 해도 병원은 항상 붐비고
의사의 인기는 계속 상종가다. 여기에 비하여 수의사는 그야말로 한직이다.
전국에 수의학과를 개설한 대학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가축병원도 시내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앞으론 수의사의 인기도 의사 못지 않게 높아질 게
틀림없다. 우선 우리나라에만 봐도 예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애완견을 품에 안고 다닌다. 조그맣고 앙증맞은 치와와부터 부쩍 인기를 얻는
중국산 태키니즈에 이르기까지 많은 개들이 그들 주인 품에 안겨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고양이에 관한 한 일본을 따라갈 수 없겠지만 아파트에서조차
용감하게 개를 키워대는 걸 보면 개에 대한 애정은 우리가 일본을 앞지를
정도다. 물론 여름철 보신용은 제외하고. 일본에는 아예 슈퍼에 고양이, 개 등
애완동물용 식품이 인간들의 음식과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바야흐로
애완동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완동물 사업이 유망한
산업으로 각광을 받을 때가 다가온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애완동물 가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서울 필동 퇴계로에 애완견 가게가 제법
많이 영업을 하고 있지만 크게 서민의 인기를 얻지 못했다. 지나가는
개구쟁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나 잠시 받을 뿐 애완동물 시장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개인소득의 향상, 가족 구성원의 축소 경향과 더불어 애완동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 사업은 확장일로에 있다. 애완동물 사업의 종류도
애완동물 판매가게나 가축병원 같은 고전적인 아이템부터 식품, 미용실
등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애완동물 사육에 관한 서적이나
출판물의 발간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 사업은 본격적으로 하지 않고 부업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파트에
사는 주민은 어렵겠지만 일반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면 혈통 좋은 순종 강아지
한 마리를 사서 일이 년 동안 잘 사육하여 되팔기만 해도 이윤이 몇 배는
남는다. 물론 이 경우 강아지 종류는 잘 선택해야 한다. 진돗개 강아지를 키워
파는 건 좀 곤란하다. 아시다시피 그놈은 대전에 팔려가서도 옛집 진도까지
찾아오는 놈이니까. 참, 진돗개라면 길러서 파는 대신 CF 광고 출연을 시켜도
좋겠다. 모 컴퓨터 회사 광고에 연일 출연한 바 있는 진돗개 백구를 보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으니까.
정성을 파는 우편광고 서비스
60년대에서 70년대 초반까지 편지는 국민의 유일한 통신수단으로 애용되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도 서간문이 빠지지 않고 실렸다.
부모님 전상서라고 시작하여 기체후 일양만강하옵시며로 이어지던 편지의
서두는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도 꼬마들까지 줄줄 외울 정도였다. 십대들은
이성끼리는 물론 동성간에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어떻구 데미안이 어떻구
하면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편지를 줄창 써 댔다. 심야 라디오 음악 방송이
여고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부터는 방송국에 엽서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연말마다 예쁜 엽서 전시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그렇듯 일세를 풍미하던
편지도 이젠 전화에 떠밀려 거의 뒷전으로 사라지고, 편지에 담겼던 설레임과
낭만도 함께 문명의 그늘에 묻혀 버렸다.
난데없이 웬 편지 타령이냐. 우편광고, 그러니까 DM(Direct Mail)에 대한
예길 좀 따져 보고 싶어서다. 90년대에 새로운 광고의 총아로 등장한
DM이지만, 우리는 이 유력한 매체를 너무 못 써먹는 경향이 있다. 일방적으로
보내오니 어쩔 수 없이 받긴 한다. 내 이름 석자에 우표까지 붙어 있으니
혹시나 하고 뜯어보긴 한다.l 하지만 그뿐이다. 광고전단에 비해 불과 4__5초간
소비자의 손에 머무를 뿐, 뒤이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긴 매한가지인 것이다.
이유는 많겠지만, 나라면 딱 한가지를 꼽겠다. 우리들의 DM엔 가슴(?)이 없는
것이다. 매체는 그 옛날의 편지 그대로인데, 거기 있어야 할 설레임이나 감동을
찾아볼 길이 없는 것이다.
일본의 민선 자치단체는 재정운영도 민간회사의 방법을 따르고 있는데, 내가
일본에서 받은 제일 감동적인 DM은 그런 관공서에서 보내온 것이다. '아기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우유값을 보내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아니 관공서에서
우유값을 준다고? 그 말에 너무 놀랄 필요는 없다. 진짜 '광고'는 그 다음에
있기 때문이다. '아기를 위해서 국민의료보험료 및 관련 세금을 안 내면 아기의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세상사다. 마음을 움직이는 DM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도 이처럼 미묘한 대목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DM이
좋은가. 그 방법론인데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으시면 머릿속 꺼져 있던 전구에
불이 팟! 켜질 것이다.
어떤 여학생한테 자기 이름으로 편지가 왔다. 무심코 뜯어보니 생일축하
카드였다.
"당신의 생일을 축하하며 꽃을 말려 보냅니다."
편지 카드 속엔 책갈피에 끼워 성의 있게 말린 것이 틀림없는 꽃잎이
테이프로 정성껏 붙여져 있다. 여학생은 깜짝 놀랐다. 누구냐 이게, 누가
나에게...? 친구 장난인가?? 아니다. 편지 속엔 정확하게 보내는 회사의 이름과
사장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가. ABC 방송국 사장. 사랑이 빛나는 낱에... 무슨
방송인지가 중요하진 않다. 공중파일 수도 있고 라디오일 수도 있고 CATV일
수도 있다. 우리는 당신을 위해서 좋은 방송을 하려고 많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보시고 모자라는 점이 있으면 지도해 주십시오. 카드 속엔 이런
글귀가 인쇄되어 있다. 그 밑엔 사장(또는 진행자)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다. 그
방송 보지 말라(듣지 말라). 때려 죽인다 그래도 그 여학생은 그 프로를
편애하게 될 것이다. 방송국이 내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 줬는데 무슨 얘기냐
이거다.
위의 예는 큰 감동을 줬던 어떤 DM의 실례를 응용한 것이다. 원래는 어느
극장 회원들을 위한 DM이었는데, 컴퓨터에 있는 주소와 생년월일을 이용해
생일 전날 받을 수 있게 생일 축하 장미카드를 보냈다. 수많은 방송이 난립하는
이 시기에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서 제작비를 조금씩 떼어 이런 DM으로 시청자
관리를 한다면 어떨까. 고정 시청률이 5%는 더 올라가지 않을까.
언젠가 초창기 SBS 간부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SBS 시청자들에게
생일카드를 보내자고 제의한 적이 있었다. "새로운 방송국이 성공하게 새 줘서
감사합니다."라는 카드. 사장 이름으로 보내면 수도권에 있는 사람들은 감격할
게 틀림없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문제는 누가
그걸 일일이 생일 확인해 그때마다 귀찮게 보내느냐. 그렇다고 방송국에 그럴
담당하는 부서를 만들 수도 없고. 그래서 이 아이디어는 묻혔다.
그때 생각한 게 있다. 아하, 이런 수요를 해결해 줄 수 있는 DM 업체를
만들면 말이 되겠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우편 광고의 대향 발송
체제는 부적당하다. 소규모 발송 체제, 소규모 대행 업체로 전환해야 한다.
여기에 새로운 사업의 기회가 있다. 아파트에 사는 약간의 주부들끼리 팀을
만들어 우편 광고 대행 회사의 하청을 받는다. 우편 광고는 회사의 주문에 따라
주부들이 정성껏 글씨를 쓸 수도 있고 아니면 아이템에 따라 개발한 선물을
동봉할 수도 있다. 이런 작업은 수작업으로 할 수밖에 없으므로 소규모팀
단위로 하청 받기가 좋다. 회사 직원을 이용할 경우 정성도 없을 뿐더러
마구잡이로 발송하는 경우 오히려 효과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편 광고
시장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그 종류가 더욱 다양해짐에 띠리 주부들이
부업으로 할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런 주부들 학생들을 모아 일정한 아르바이트 인력을
확보하여 아르바이트 뱅크를 차릴 수 있다. 그래서 우편광고를 많이 발송하는
회사에 연락을 해 놓으면 회사에서 요청이 올 때마다 필요한 만큼 인력을
수배하며 그때 그때 일을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아르바이트 뱅크에 가입한
사람은 자기가 원할 때만 일을 하면 되니까 자유스럽고 아르바이트 뱅크의
운영자의 경우 지속적으로 일감을 확보하고 인력을 수급할 수 있어서 사업
규모를 어느 정도까지 확장할 수도 있다. 개 같은 날 오후 모여서 수다만 떨 게
아니라 중지를 모아 신문 광고라도 내면 어떨지. "명단을 주시면 정성을 다해
우편 광고를 대행해 드립니다." 요즘 벼룩신문 광고 같은 데 말이다.
제3장
새로운 일, 떠오르는 작업
마이더스의 손 전자오락게임
일본 어린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3대 잔소리는 무얼까?
1위 공부해라. 2위 빨리 일어나라. 그리고 3위가 바로 '비디오 게임 좀
그만해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1,2위는 오래 전부터
어쩌면 삼국시대부터 개구쟁이들을 닦달하던 말이다. 그러나 3위의 멘트는
기껏해야 수년 전에 부상한 신세대용 잔소리다. 지금 일본 꼬맹이들은 아침에
눈만 뜨면 하기 싫은 공부하든지 비디오 게임하든지 둘 중의 하나다. 일본
전역에, 아이들의 노는 시간에는 온통 비디오 게임이다. 얘기가 이쯤 되면
심각한 문제다. 비디오 게임이 어린이들에게 좋으냐 나쁘냐를 따지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경우다. 일단 못 말린다고 봐야 한다. 기껏해야
부모와 자식간에 상호 호혜평등의 조건에서 데탕트가 가능할 뿐이다. 즉 "공부
1시간 하면 비디오 게임 1시간이다."
어른들이 술, 담배가 몸에 해로우면서도 스스로 못 끊는데 가치관조차 제대로
정립이 안된 어린이들에게 설득은 애당초 무리다. 강제로 한들 막을 수 있는
건가? 천만에. 미국의 금주법 시대에도 술 마실 친구들은 다 마셨고, 오히려 그
기간 동안 현재 미국사회의 큰 골칫거리 중 하나인 마피아가 거대조직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강제로 비디오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것은 부모가
선택하는 최악의 방법이다.
어린애뿐만 아니다. 고교생, 대학생은 물론 직장인들도 전자 비디오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서너살 꼬맹이부터 30대 어른들의 24시간 중 가장 많이
공유하는 시간이 전자 비디오 게임 시간이다. 이제 어린애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될수록 전자 게임에 몰두하는 연령층이 높아가고, 언젠가 '전연령의 전자
게임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비디오 게임은 더 이상 어린애들의 장난감이나 어른들의
킬링타임용 수단이 아니다. 이미 비디오 게임 시장은 엄청나게 성장을 해
버렸다. 단지 현재 비디오 게임 시장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산 적인 면을 추구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전자오락을 잘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 방면으로 소질을 키워 줘야 한다.
음악에 재능이 있으면 어릴 때부터 법석을 떨어 해외 유학을 보내는 것처럼. 그
정도는 아니라도 재미로 시작한 전자오락에서 나중 프로그램 개발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뒷바라지해야 한다. 앞으로 전자오락은 예능계 못지 않게
어릴 때부터 소질을 개발해야 하는 최고 분야로 성장할 것이다.
21세기가 컴퓨터 시대인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전자오락은 컴퓨터 산업
가운데서도 최고의 상업성 종목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벌써 일본에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거리 풍경 중 최근 몇 년 간 특이한 추세를 든다면, 거리 요지의
음식점, 다방, 전기가게 등이 있던 자리가 어느날 전자오락센터로 변해 가는
현상이다. 깜짝 놀랄 정도로 그 숫자가 늘어난다. 원래 가게들이 파리를 날려서
없어진 것이 아니고 비디오 게임이 훨씬 잘 되니깐 업종이 바뀌는 것이다. 원래
업소의 권리금을 주고서 말이다. 이런 전자 비디오센터는 낮시간 동안
어린애들이 놀다가는 것으로는 비싼 가게 임대료를 충당 못한다. 가게 안에는
당연히 성인들도 놀고 있다. 20대가 많고 커플 단위로 놀고 있는 모습도
상당수이다.
보다 전문화된 전자오락게임 센터는 아예 빌딩의 몇 개 층을 통채로 임대,
층마다 전자오락 종류를 구분하여 운영한다. 이를테면 1층은 자동차 및 격투
오락류, 2층은 경마, 경정(보트 도박), 파친코, 카드, 마작 등 도박류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정식 도박장에서 돈을 내고 도박하면 파산할지도 모르지만,
전자게임은 불과 천엔으로 30분 이상 놀게 해 준다. 기분은 똑같다. 단승식,
복승식, 성공 확률, 모든 장치와 게임 진행이 실전과 같다. 돈 대신 코인이
이용될 뿐이다. 갤러그류의 건전한(?) 전자오락도 최근 입체 프로그램이
결합되면서 전보다 훨씬 실감이 나기 때문에 집에서 프로그램을 구입하여 하는
게임과는 감각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비디오 게임 대여가게도 장사가 된다. 통상 비디오 대여점에서 병행하는데,
비디오 대여보다 오히려 수입이 좋다. 이렇게 전자오락가게나 비디오 게임
대여점이 장사가 잘 되니까 자식들 키워 전자오락 프로그래머 만들기 전에 당장
가게를 차리는 게 승부가 빠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장사는 자본금이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 빈털털이는 뭘하냐고 묻는다면 게임연구자가 되면 된다.
게임연구자라니 좀 거창하게 들리지만 한 게임에 대해 도사가 되면 그 세임을
하러 오는 초보 손님들에게 게임요령을 한 수 가르쳐 주는 것이다. 실제
전자오락 센터 주인한테도 게임도사의 도움은 필요하다. 고객보다 모르는
주인은 잔돈이나 바꿔주는 것 이외에 할 일이 없으니까. 게임도사가 여기저기에
바람을 잡고 다니면 가게는 훨씬 활기에 넘칠 것은 당연하다. 또한 비디오 게임
대여점에서는 하드웨어를 갖추고 손님 앞에서 게임도사가 실력을 발휘하면
손님들이 두말 없이 빌려갈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게임 좋아하는 청년들의
아르바이트는 풀리게 되어 있다. 공부 잘해서 과외공부 아르바이트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게임도사들이 보다 전문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부문도 있다. 전자오락 게임이
인기를 얻게 됨에 따라 관련 게임 잡지도 많이 출간되는데 여기에 필요한
사람이 바로 게임 기사 프리라이터들이다. 신종 게임의 소개 게임 공략법,
유사게임과 비교 등의 기사는 게임잡지의 주요기사들. 이들 게임도사들 외에
누가 담당할 것인가.
게임도사들의 최고 경지는 비디오 게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게임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단계다. 일단 여기에 이르면 이제는 세계적인 사업자 대열에 들 수
있다. 닌텐도가 뭐 별 거냐. 별볼일 없던 인형 제조 회사가 슈퍼마리오 게임 등
몇 개를 히트시킨 후 SONY를 젖히고 일본 전자업계 매상 1위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예상컨대 전자오락업계는 대기업이 유일하게 중, 고교졸업자를
대졸사원보다 월급 더 주고 정식 채용하는 직장이 도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유행하는 파괴라는 단어를 쓴다면 학력 파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학력이
최고의 잣대인 우리 사회에서 학력보다 전문인 우대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전자오락 업체가 그 선구자 역할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달면 전자게임기 과외선생 등장이 예상된다. 게임이
어려우면 가족이 같이 연구해도 어렵다. 게임은 머리가 딱딱한 어른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거니까. 기껏 비싼 게임기를 사서 자식 기쁘게 해주려다
안타까움만 더하게 된다. 이때 필요한 사람이 전자게임 가정교사다. 전자게임
가정교사는 인력관리 회사에서 사전 인원을 확보하여 수시로 필요한 경우
인원파견으로 운용하면 훌륭한 인력관리 사업이 될 것이다.
내가 만약 50년대에 태어나지 않고 70년대에 태어났더라면, 절대로 소설가나
영화감독이 되지 않고 게임 스토리 작가나 게임제작 총감독(일본엔 이런 직업이
있다.)이 되었을 거다. 수입에서, 일의 즐거움엣 세상에 비교될 수 있는 직업이
떠 있을까.
아직 머리가 말랑말랑한 10대들이여, 그대들은 축복받은 세대들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제 누구나 마이다스의 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손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손. 그러나 요주의 사항, 여러분의 마음까지
황금으로 변화시키진 마시길.
방송 프로그램 프리랜서를 찾습니다
지역 민방이 생기고 유선방송이 출범하고 프로덕션이 늘어나면서 방송국 밥을
먹는 사람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제 기존 방송국과 광고업체 및
영화, 음반 제작업자 등 재야업체(?)를 합치면 서울의 경우 한 집 건너 한 집은
방송국과 관계 있는 가족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듀서와 리포터,
방송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그 문은 아직 엄청 좁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성경은 말하지만 방송계의 문은 진정 좁은 문이어서 많은 예비
방송인들을 안타깝게 한다. 그러나 일본을 살펴보면 이 문은 그리 좁지만도
않은 것 같다. 마음만 조금 바꿔 먹는다면 말이다.
지금 일본 방송계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1인 5역의 영상전사에 의한 TV
혁명이 바로 그것. 한 사람이 작가이고 연출자이며, 리포터이고 음향조명
엔지니어이면서 편집자라는 얘기다 믿을 수 없는 얘기지만 도쿄에 새로 생긴 한
TV 방송사는 이런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다. 메트로폴리탄이라는 방송사는
도쿄지역을 커버하는 24시간 종일 방송을 내보내는데 도쿄지역에 관한 뉴스,
정보 등을 주로 방송한다. 일반 방송사가 시청률 중요시하는 것에 반해, 이
방송국은 나름대로의 기획과 프로그램으로 시청률 전혀 의식하지 않고 운영되고
있어 당연히 시청률도 형편없고 따라서 방송사로의 영향력도 미미하다.
그러나 1인 5역의 방송매니아들이 방송사를 주도해 나간다는 사실이 기존
방송국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틀림없다. 메트로폴리탄 방송사의 만능재주꾼들은
모두 24명, 이중 17명이 여자다. 이들은 현재 방송사가 사용하는
ENG카메라보다 훨씬 소형인 디지털 핸디캠을 사용한다. 저마다 제각기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생각하고 조사하여 직접 인터뷰하고 연출한다. 다 찍은
테이프는 디지털 빅시스템이라는 컴퓨터에서 편집하며, 그때 편집실에서 영상과
대조하여 일일이 자신이 직접 원고를 정리한다. 무엇이 이들 겁없는 신세대
방송인들이 방송의 모든 분야를 혼자서 해치우도록 하는 것인가?
기성 방송인들은 컴퓨터를 배우지 못했거나 뒤늦게 배웠다. 그러나 이제부터
방송사 일을 시작한 세대들은 어릴 때부터 깨우쳤고 컴퓨터적 사고에 적응되어
있다. 컴퓨터의 최대 장점은 많은 사람이 하는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훨씬 짧은 시간에. 이제부터 TV 프로도 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모든 회사 공장이 업무전산화 자동화로 인원절감의 혁신을 단행하는데
방송사라고 예외일 순 없다. TV 쇼프로나 드라마의 경우 투입되는 인원은
그야말로 대가족이다. 스태프나 캐스트가 세분화되어 같은 프로에 참가해도
경우에 따라 서로 모르는 얼굴들도 있다. 이런 경우 너무 방대한 인원으로
비효율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TV 쇼나 드라마 말고 가장 작은 ENG 현장
취재 프로그램이라도 최소 4__5명은 필요했다. 연출, 카메라, 조명음향보,
리포터 등. 그런데 이 상식이 깨어졌다. 질이 나쁘건, 재미가 없건, 어쨌든
방송이 혼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메트로폴리탄 방송사가 증명했다. 작고하신
길옥윤 선생님께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여자가 8밀리 카메라와
DAT 녹음기로 말레이시아에 가서 다큐멘터리를 찍어 왔는데 NHK 방송국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화질이 약간 떨어지는 것 외는 내용면이나
연출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입을 모아 한 말이 혼자서 이
정도만 한다면 굳이 외국에 5명씩 파견할 필요가 없다고.
앞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컴퓨터 세대들이 1인 5역의 방송 슈퍼스타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장차 100개 채널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21세기
위성방송 시대에는 또다시 방송혁명이 올 것이다. 이때에 기존 방송사에서 찾을
수 없었던 대담하고 효율적인 기획으로 방송사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1인 방송 프로그램 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역사를 돌이켜 볼 때 1인의 전제정치가 가장 효율적이고 발전적인
시스템일 수 있다. 전제자의 선의와 성실만 가정한다면. 요즘 학문의 새 경향은
종래 세분화된 각 분야의 종합화라고 한다. 너무 세분화되다 보니 종합기능이
떨어져서 그 전체 조정을 위한 학문통합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수에
의해 제작을 진행하다 보면 어느덧 기획 자체의 의도가 흐려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1인에 의한 방송프로 제작은 진정 개인의 노력에 따라서 가장 완벽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미래의 방송인을 꿈꾸는 여러분이여, 구차하게 방송국에 들어가기 위해
방송과 아무 상관없는 영어, 상식 공부하느라 시간 죽이지 마시라. 어차피
공부해도 문은 좁다. 여러분이 컴퓨터 감수성을 가진 신세대라면 혼자서
여러분의 프로그램을 제작해 볼 것. '작품'만 된다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여행에도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여행에 대해서 또다른 각도에서 한마디. 내가 이렇게 해외 여행에 집착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좋아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개인생활이
윤택해짐과 더불어 여행사업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행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행
산업은 외국인에 대한 국내관광 유치는 물론 한국인의 해외여행 모집에
있어서도 모두 기획의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규모나
종사하고 있는 사람 수는 제법 규모가 커졌으나 이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싱크탱크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
이제 모든 것이 전문화 시대이다. 관광사업도 단순히 여행사 사무실만 차리고
관광객이나 모집해서 비행기 태워 보내면 현지 가이드가 일사천리 정해진
코스대로 한바퀴 돌린 후 다시 본국으로 보내는 단순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위 사람들 가운데 해외여행을 서너 번 다녀와서 동남아, 유럽, 미주 등
웬만한 곳은 한번씩 다 훑어본 분들도 외국 관광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미루어 볼 때 관광시스템은 많은 부분을 개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관광사업에 활력을 불어 넣고, 개인적으로도 확실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작업이 바로 여행 디자이너 혹은 여행
코디네이터이다. 일본의 경우 수년 전부터 이 직업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들의 주 업무는 특별한 여행을 기획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NBA
농구여행이나, 유럽축구 여행, F-1 자동차 그랑프리 여행 등의 스포츠 여행이
가장 초보적인 것이다. 브로드웨이 유명 연극 관람과 함께 메이저리그 야구를
연계하여 상품을 만들 수도 있고 세계의 유명 축제 즉, 리오축제나 스페인 투우
등을 기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기획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현지 일정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기획
아이템들이 늘상 정규적으로 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니어서, 한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해외 현지 파트너와 협의하여 여행일정을 현지인에게 떠맡겨
버리는 일반 관광 상품과 다르기 때문이다. 항공권과 호텔예약은 물론 현지
이벤트 티켓도 구하고 현지안내 가이드를 동시에 섭외해야 하는 관계로,
기획능력이 뛰어나고 어학능력이나 세계 시사에 자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 행동적인 성격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들의 업무는 독특한 여행상품을 개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영화나
드라마의 해와 전지 로케이션 촬영 때 촬영팀의 촬영장소도 헌팅해 주고 현지
촬영 협조는 물론 외국 생활에서 필요한 호텔, 교통, 식사 등을 섭외하는 등
촬영의 전체 일정을 리드하는 업무까지 확대될 수 있다. 또한 외국 비즈니스나
이벤트 행사 때 필요한 업무를 도와주고 자문해주는 등 사업 영역을 무한정
넓힐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전문적인 여행 디자이너는 향후 여행사업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분야이며 그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에서 이 자격을
원하시는 분은 일본 여행협회(전화 03__3592__1271)에 문의하시길. 참고로
일본에서 여행 디자이너가 어떤 상품을 기획하고 받는 돈은 그 패키지 또는
여행단 가격의 10% 선이다. 예를 들어 NBA 투어를 기획해서 200만원에
20명을 여행시켰다고 한다면, 20명*200만원*0.1=400만원. 즉 한달에 한두 건만
기획하면 천만원 안팎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많은 예비 직장인들이여, 대기업 들어가기 위해 머리 싸매고 공부하지
마시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여행 디자이너를 꿈꾸어 보시라. 그러나 이를 위해선 어학 능력은 물론
여러 분야에 두루 능통할 수 있는 식견과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마시길.
로고송을 만들어 드립니다
예전부터 부산 하면 항구를 뜻하는 항도를 수식어로 붙였다. 그러나
프로야구가 시작된 이래로는 부산 사람들끼리 야도 부산이라고 한다. 그만큼
부산시민의 야구 사랑은 뜨겁다. 물론 관중 동원 측면에서도 인구가 훨씬 많은
서울에 뒤지지 않는다.
많은 부산 사람들은 자기들 말대로 야구 미칭개이(미친 사람)들이다. 부산
사직구장의 응원열기도 뜨겁다. 최초로 파도타기 응원을 시작했고 이른바
라이터 응원이 자발적으로 시작된 곳도 사직구장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부산 야구팬의 응원을 더 확실하게 특징지어 주는 것이 바로 부산 주제곡
열창이다. '이별의 부산 정거장' '돌아와요 부산항에' 같은 대중가요들이
사직구장에 울려 퍼지면 열기는 절정에 이른다. 연안 부두나 가수 윤시내가
특별히 부산 시민의 요청으로 불렀던 부산 주제곡도 빠질 수 없는 메뉴이다.
이런 면에서 부산에 프랜차이즈를 둔 롯데 자이언츠는 행복한 팀이다. 롯데와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어 결국 롯데가 통산전적 4:3으로 이긴 적이
있었다. 이때 도하의 신문들이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성불사의 밤'을 이겼다고
했다. 삼성 응원단은 대구 주제곡을 찾을 수 없어서 '성불사의 밤'을 택했는데
실제 효과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만큼 응집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만큼 잘 제작된 주제곡이나 타이틀 곡은 그 집단의 단결을 도모하는 데 큰
몫을 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개발이 미진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타이틀 곡을 아주 유효하게 사용한 것이 있다. 바로 '독도는
우리땅'이다.
독도 망언은 너무나 기분 나쁘다. 독도 분쟁은 늘 일본인들의 국민적
무관심과 우리의 국민적 초흥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일본에 살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이가 없을 정도다. 도대체 일본인들이 독도를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는지 생각하면 약이 바짝 오른다. 몇 년 전에 일본정치가들이 똑같은 망언을
해서 시끄러웠던 때 일본애들한테 심각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독도를 아냐?
모른다. 그럼 다케시마는 알고 있냐? 그건 또 뭡니까? 백이면 백, 다 몰랐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는 얘기다. 만약 배웠다 하더라고 기억해 둘 가치가
없기 때문에 금방 잊어벼렸을 것이다. 젊은이들이나 학생도 모르지만
일반인들은 더욱 모른다.
그런데 꼭 일본 정치가 몇 명이 심심하면 독도 문제를 들고 나와 우릴 바짝
약오르게 만든다. 자기 국민들은 전혀 무관심한 이야기를 몇 년 주기로 한 번씩
들고 나오는 거다. 그러면 우리는 열받아서 일장기 불지르고 나라가 온통
난리다. 두 나라를 비교할 때 같은 문제로 우리만 엄청 에너지를 소모하는
느낌이다. 최근의 독도 망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인들은 뭐 그런 일이 있는지
없는지도 관심이 없는 반면 우리는 연일 독도 문제를 신문 1면의 주요기사로
다루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본 규탄의 집회가 열렸다.
그런데 이번엔 일본 쪽에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본인들중 상당수가
'독도'라는 곳이 어딘 줄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에서 배워서 안 게
아니라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이다. 쿠메
히로시라는 최고 인기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에서 독도 문제가 특집으로
꾸며졌다. TV 아사히의 서울 특파원과 쿠메 히로시가 서울--도쿄를 연결한 뒤,
일본 대사관 앞에서 화형식을 하며 규탄집회를 하는 군중들을 비추고 나서,
아사히의 특파원이 우선 노래를 하나 듣자고 얘기했다. 그리도 독도 스케치와
풍경, 바다 화면이 나오면서 '독도는 우리땅'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독도의 위치가 어딘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일본인들은 이
노래와 화면을 함께 보면서 알게 되었다. 이때 느꼈다. 노래라는 게 이런
거구나. 화형식하고 군중집회하는 것보다 훨씬 강렬한 효과가 있구나. 이날
일본인들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주제곡까지 있는데
우리가 무슨 개소리하는 거야? 학교를 나왔으면 교가를 알아야 하는 법이니까.
모르면 가짜고.
교가, 응원가가 자연스럽게 애교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회가, 모임, 단체도
노래가 있으면 응집력에 플러스 알파가 생긴다. 바로 그렇게 주제곡을 만들어
주는 일을 나서서 해 보면 어떨까. 음악을 전공했거나 대중 음악 작곡에 관심을
가졌던 분이라면 의외로 짭짤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 MIDI를 활용하면 혼자서
편곡까지 끝낼 수 있어 부가가치가 더욱 높다. 기존 프로덕션에서도 이
아이템을 주력할 경우 망외의 소득이 생길 것이다.
우선 서울만 봐도 '서울의 찬가' '서울 서울 서울' 둥 서울 주제 노래가 여러
개 있지만 뚜렷한 대표곡이 없다. 또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가 외국팀과 싸울
때도 대표적인 응원곡이 없다. 뿐인가, 지방자치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각 지역
단위로 시가, 도가, 군가, 등이나 시민의 노래, 도민의 도래를 찾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기업 CI가 대기업 단위에서 중소기업 단위로까지
확산되는 과정에서 기업체 사가의 수요도 급증하는 추세다. 선거철엔
정치인들조차 앞다투어 로고송을 만들지 않는가. 1인 기업이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로고송 작곡 대행 사업을 시작해 보시라. 지금만큼 잠재시장이 크고
경쟁은 덜 치열한 시기는 다시 오기 어려울 테니까.
작은 통계회사가 성공한다
통계는 누가 뭐라 해도 현대 정보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지난 14대
국회의원 총선 때는 언론사가 시도한 출구조사를 못하게 하여 꽤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에는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통계조사 기관이 바로
당선 예상자를 발표하고 이것은 거의 예외없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 그
득표율과 함께. 방송국의 방송 기획에 있어서도 제일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시청률 조사이고 그 결과에 의해 각 방송국 간판 프로그램이 미련 없이
바뀌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시청률 조사 대상이 불과 몇백 가구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모두 놀라시리라. 그런 극소수의 인원으로 전국의 시청률을
가늠한다는 사실에. 그러나 이 몇백 가구에 의한 통계도 큰 오차 없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 통계 기술과 방법이 날로 과학화되어 편차를 최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몇백 명의 보통사람만 통계망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회사 하나
차려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아니 몇 명의 전문 통계기술자만 고용해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통계에 대한 인식은 국가의 공식적인 자료 생산 정도에
머물러 있다. 대기업의 마케팅 자료만 하더라도 현재에는 초기단계에 불과하다.
일본의 유명한 TV 정보지인 가도가와 출판사의 '텔레비전'이라는 잡지를
보자. 일본 '비디오 리서치' 라는 통계 기관에서는 텔레비전 시청률을 전국 종합
Top 30으로만 단순히 발표하는 데 비해 텔레비전지는 각 지역별, 연령별 Top
30을 세분화하고, 상호 비교하여 원인을 분석해 놓았다. 많은 일본 TV
방송사들이 비디오 리서치 자료보다 텔레비전지의 데이터를 참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텔레비전지는 TV 프로그램 통계 외에도 재미난 아이템을 선정하여
통계자료로 발표하는데, 예를 들면, 세뱃돈을 받은 초등학교 사오륙학년
어린이들 508명이 받은 평균액이 얼마인가?(2만 7천엔. 우리 돈 20만원 정도),
어디에 주로 썼나? (장난감 46%, 만화 17%, 학용품 16%)등 일반 생활과
밀접한 사항을 통계내어 기사로 싣는다. 일본의 많은 부모들이 이 통계를 보고
자기 자식들은 세뱃돈 액수를 조정할 것은 물론이고 세뱃돈을 준 다음 어떻게
사용하라고 교육시킬 것도 뻔한 이치다.
또 재미 있는 통계로는, 도쿄에 거주하는 주부 500인을 대상으로 일본의
방범에 대한 생각을 조사해 놓았다. 일본 방범이 불안한 편이다(69%), 그다지
불안하지 않다(32%), 방범 문제 가운데 불안하다고 생각되는 것 Top 5 (1위
빈집에 도둑, 2위 자동차 도난, 3위 장난 전화, 4위 악덕 상법, 5위 독가스
테러) 등이다. 민간인이 펴내는 통계 잡지의 내용이 충분히 일본 행정부의
정책자료에 반영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특히 독가스 테러에 대한
불안이 일본 전역에 홍역처럼 번지고 있을 때에도 여기에 대한 불안은 5위에
불과하고 1위에서 4위는 여전히 민생관련 부문으로 집계되었다.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통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가정에 현재 설치하고 싶은 것 세 가지로는 1위 방범센서 2위 TV
도어폰 3위 가스누출 탐지기를 들었는데, 이 경우 이것을 읽는 독자에게 이
3가지 상품을 사라고 광고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어서 해당 기구
생산업체는 그야말로 쾌재를 부를 일이다. 마지막 예로, 방범센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에, 필요하다 80%, 필요 없다 18%로 집계하여 이 제품에
대한 시민의 반응과 수요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생산업체는 이 통계를
근거로 그들 사업이 계획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고, 광고, 판매 전략을
적극적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떠 일반시민의 입장에서는 다시금 방범
센서의 필요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통계는 우리가 접하는 일상 생활을 보다 분명하게 손에 잡히게
해준다. 앞으로는 기업체에서 개인까지 모든 의사결정을 통계에 의존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따라서 이 통계사업은 운용 여하에 따라 크게 성공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러면 실제로 어떻게 회사를 운영할 것인가. 현재 일반
통계회사들에 의하여 운용되고 있는 방법, 즉 전문 조사요원을 두고, 그들이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요원이 정밀 분석하는 방법은 여기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선거 때나 대기업의 마케팅용으로나 활용될 수 있는 덩치 큰
사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좀더 부담 없이 시작하자. 우선 기본적인
통계기법은 활용할 수 있는 통계 조사요원이면 족하고, 여기에다 언제든지
조사가 이뤄질 수 있는 고정된 조사대상자를 확보하면 된다.
우리가 통계로 팔고자 하는 정보는 국자 정책이나 기업체의 전략 상품이 아닌
일상 생활에 필요한 평범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계층의 조사 대상자를
사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언제든지 필요할 때 질문하면 즉각 응답할 수 있는
조사 대상자 체인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자기들의 응답한 통계결과를
팸플릿이나 소책자로 매월 우송해 주는 정도의 일정한 메리트만 제공하는
조건으로 오백 명에서 천 명 정도의 적극적인 협조자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학교나 기타 인맥을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조금씩 노하우가 쌓이는 대로 조사대상군을 적정한 기준, 즉 나이
성별 직업 등으로 분류하여 보다 객관적인 표본집단을 형성할 수 있다면 더욱
확실하다. 자, 이제 어떻게 통계로 돈벌이를 할 것인가.
우선 책이나 영화 및 레코드 판의 흥행여부를 조사하는 것도 큰 사업이다.
사실 이들은 투기사업이나 마찬가지다. 투입 제작비에 비해 성공만 한다면 몇
배, 아니 몇십 몇백 배 더 벌 수도 있고, 한푼도 건지지 못하는 수도 있으니까.
이들 책, 영화, 레코드의 기획단계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사전 조사를 해 보고 그
결과에 따라 제작규모를 정할 수 있게 해 준다면 확실한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단순히 흥행성만 조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언 제목이 좋은지를 찾아낼
수도 있다. 이들 3대 도박은 제목이 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제목이 흥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일 표를 많이 받는 제목을 선정한다면 그만큼 흥행성을
놓일 수 있고 리스크도 최소화할 수 있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지만 책이나 영화,
레코드의 기획은 모두 그 방면의 도사들이 하고 제목도 전문가들이 정한다.
그런데 그 책이나 레코드를 사고 영화를 보는 사람은 모두 보통사람이다.
전문가와 보통사람 간의 인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전문가의 기획을
보통사람에 의해 검정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통계이다.
대중은 가장 무서운 비평가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흥행결과를 보면 100%
수긍가는 이야기야. 이제 '그것이 알고 싶다'는 TV 프로그램 제목만이 아니다.
통계회사의 슬로건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은 '그것을 알고 싶어 한다.' 통계
사업의 틈새시장, 소규모 통계기업을 개업하자. 거기에 목마른 수요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요리사가 실속 있는 직업 넘버 원
요즘 우리나라 회사원의 대부분이 잠재 실업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건만 된다면 모두들 더 좋은 직장으로 가고 싶어한다. 직장은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 없다. 오래 있으면 조인 취급을 당하는 게
요즘 직장 풍토니까. 그래서 많은 회사원들이 서로 뭐 좋은 아이템 없나 하고
끊임없이 개인사업 차릴 궁리를 한다.
그래도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공부 잘한다고 어깨 힘주고 다니고, 회사에서는
과장입네 부장입네 넥타이 매고 책상 앞에 않아 폼잡고 있지만, 막상
개인사업을 하려니 기술도 없고 재주도 없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어놓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이 좀더 들면 나도 기술이나 한 가지 배워 둬야지.
자격증이라도 한 가지 따놔야지 하는 생각에 빠진다. 하지만 그것도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젊은이들의 직업관도 많이 바뀔 것이다. 확실한 기술
하나 혹은 확실한 아이템 하나가 평생 동안 정년 없이 안정된 소득원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일본도 직업관에 있어서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유교 전통 때문인지
고급관료에 대한 선호가 강하고, 많은 대졸 고급인력이 대기업 회사원이 된다.
그래도 구태여 우리하고 다른 차이점을 찾는다면 일본에는 장인문화가 있고,
우리만큼 학력과 직업을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도쿄의 일류대학을
졸업하고도 아버지가 경영하는 시골의 우동집을 인수받기 위해 우동 조리사가
되었다는 스토리는 언젠가 한번쯤은 들어 본 듯하다.
직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사회적 지위와 같은 여러 가지 변수가 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소득의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소득의 측면과 그외의 것은
비교될 수 없다. 소득이 있은 후에야 지위나 명예를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정작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 소득 측면보다도 사회적
평판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이런 의식구조에서 탈피하여 실속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경제적
소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죽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면 된다.
재벌이 귀족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돈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인 사업으로 가장 권할 수 있는 직업은 역시 요리사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요리사는 일본 젊은이들의 유망직업 베스트 10에 항상
포함된다. 일본의 많은 고급인력이 요리사란 직업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소득은 물론이요. 전문 기술자로서 직업 만족도도 타직종에 비해 놓은
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업으로서 요리사의 전망이 밝다. 95년부터 개인국민소득이
1만불을 넘었다. 국민소득 1만불이 넘으면 외식산업 시대가 된다. 이제 밥 먹는
것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다. 즐기기 위해서도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외식은 어느덧 우리 사호의 자연스런 풍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더구나 궁극적으로 인간의 최고 욕구는 먹는 것이다. 인간은 일생 동안 최소
오만 번의 식사를 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요리사의 위치를 확실하게 보장해
준다.
일본 TV의 황금시간대에도 음식 프로그램이 상당수 자리잡고 있고, 전체
편성을 통틀어 음식 프로그램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프로그램 종류도
단순한 요리 프로그램이 아닌 음식 소재 오락 프로그램, 음식을 통한 사회풍자
및 음식 기행 프로그램 등 다양하다. 따라서 대상도 주부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학생, 직장인, 음식업계 등 광범위한 고정팬을 가지고 있다.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고 내가 만든 요리를 남이 즐겁게 먹는 것이 행복한
사람은 이 길로 매진하시라. 학력에 상관 없이 실력만큼 대우받을 수 있다.
실력이 뛰어나면 연예인만큼 인기인이 될 수 있는 직업, 그것이 바로 요리사인
것이다.
빈 시장을 파고드는 에스코트 사업
에스코트 사업은 일본에 오면 금방 아! 하고 머리를 치는 비즈니스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남녀 출장 에스코트'라는 간단한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게
눈에 뛴다. 거기서 중요한 단어가 '남녀' '출장' 이다. 여자한테는 남자가,
남자한테는 여자가 출장갈 때 같이 가준다는 뜻이다. 이 출장의 한계가 묘한데,
일본의 에스코트 사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아주 세련된 섹스산업의 일종이라고
봐야 한다. 남녀 에스코트원 모집 광고들도 눈에 많이 띄는데, 일금 30만원에서
1백만원이라는 액수를 보면 우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지 알 수 있다.
아 물론, 그 사업을 소개하려고 얘길 꺼낸 건 결단코 아니다. 이 에스코트
사업의 기본 원리를 잘 응용하면 의외로 기발한 비즈니스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언젠가 아주 겁나는 외국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가장 절실했던 생각이,
누군가 같이 가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거였다. 보디가드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외국어 능력도 뛰어나고 내 심부름도 해줄 조수가 필요했던 거다.
말하자면 여행 가이드를 겸한 개인 에스코트 요원인 셈이다. 그러나 그건 말도
안되는 몽상이었다. 일주일씩이나 갑자기 빼 여행을 따라가 줄 친구도 없거니와,
회화 솜씨까지 뛰어나야 한다면 조건이 너무 까탈스럽지 않은가. 여행사에
부탁해도 갑자기 그런 사름을 어디서 찾겠는가. 현지에서 연결해 준다고 하지만
현지 가이드를 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지 가이드란 대개
자기 생활이 있어서 딱 일하는 범위까지만 도와주고 자기 집으로 가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에스코트 사업을 보고 내가 떠올린 게 이거였다. 순수하게 출장
에스코트만 전문으로 처리하는 회사가 있다면 어땠을까. 오늘 일단 만나본 뒤
OK 되면 내일 떠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출장 에스코트 사업이란 본디
그런 기동력을 생명으로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나같은 사람은 있는 거니까 잠재수요는 충분하다고 보고, 이제 출장
에스코트 업종의 사업성을 한번 따져 보자. 출장사업은 뭐가 되든 가격이 따블
따따블이다. 집 '키'를 평소 복사할 땐 싸지만, 자칫 잃어버려 열쇠공을 집으로
부를 경우엔 엄청 비싸진다. 그런 개념이니 상당한 이익을 예상할 수 있는 건
당연하다. 남의 시간을 산다는 것만큼 비싸게 먹히는 일도 드문 것이다.
일본의 에스코트 출장(국내외)이 거의 섹스 산업이라면, 우리의 경우는 같이
이익을 나눌 사람을 매칭시켜 주는 거다. 평소 많은 사람들을 여러 가지 광고나
인맥으로 확보하는 게 노하우가 될 테고, 사람 보는 눈도 있어야 하겠다. 이쪽에
센스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생각해 봄 직한 사업 아닐까?
제4장
생각을 바꾸면 수입이 달라진다
섹스는 돈에 이르는 지름길
섹스는 새삼 말하지 않아도 벌이가 되는 가장 확실한 아이템이다. 그러나
자칫하면 미풍양속 파괴의 주범으로 찍혀 지탄을 받기 일쑤고, 아차하면 경찰에
구속되기까지 한다. 시중 광고의 태반이 감각적으로 섹스에 호소한 것이지만 그
덕에 톡톡히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많이 보아 왔다.
어떻게 해야 이 'sex' 라는 상품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까. sex 천국이라
불리는 일본의 경우를 한번 넘겨다보자. 일본 라디오는 거대한 TV에 눌려
왜소한 매체가 된 지금에도 자생력을 갖추고 그들의 빛깔을 우지하고 있다.
일본 문화방송을 취재했을 때, 아주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했다. 이 방송국의
인기 코너인 불륜 고백의 녹음 현장을 본 것이다. 이 불륜 고백 프로는 낮에
방송되는데 시청자들이 프로진행자에게 전화하여 자신의 불륜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이다. 불륜 내용은 우리의 상식으로선
대담하지 그지없다. 지금 상대는 치과의사라느니, 매일 낮에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몇 차례 관계를 가진다느니, 남편과 비교해 어떻다느니 그 내용이 아주
적나라하다. 여기에다 남녀 방송진행자는 바람을 잡기 위해 부러워도 하고
놀라기도 하면서 참여자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춘다. 일본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또 누드사진 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누드사진 전문출판사 '다케쇼보'의
경우 그것만으로 일본 전국 3위 출판사로 급신장하여 일본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다케쇼보 출판사는 먼저 유명 탤런트 몇 명의 누드사진을 화보집
형태로 기획, 단행본을 만들어서 대히트를 쳤다. 바로 뒤이어 'Big 4'라는
누드잡지를 창간했는데 인형 같은 미인 4명을 매월 조금씩 차례차례 완전히
벗긴다는 기발한 아이템을 만들어 광고에 주력한 결과 일본 전역에서
전대미문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일본인들이 잡지를 펴는 순간 '으악' 소리를 낼
만큼 완전한 알몸 누드사진을 파격적으로 게재하여 일본 열도에 완전히
녹아웃시킨 것이다. 물론 남자에 한하여. 그렇다고 여성 고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예쁜 몸에 대한 바램은 여성의 궁극적인 목표인 만큼 일본에서 화제가
되자 부러움과 시기심d; 뒤섞인 묘한 심리상태의 일본 여성들도 Big 4의
판매에 한몫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본에 비해 성에 대해선 상당히 보수적이고 이에 대한
명확한 잣대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출판, 방송, 영화, 연극,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이 허용수치를 넘으려 늘 안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건데 그 수치는 엄청나게 높아져 있다. 이제 더 이상 섹스는 금단의
영역이 아니며, 보조상품이 아닌 독립된 상품으로 서서히 자리를 굳혀 가고
있다.
그런데 섹스에 대한 역사가 짧으니 여기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나 섹스
관계자(?)의 기획 자체도 너무 직접적인 것에만 국한되어 있다. 즉, 벗는 영화,
벗는 비디오, 벗는 광고가 전부인 것이다. 아직 섹스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재미있게 응용한 독특한 섹스상품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콘돔 전문 체인점인 '콘도미니움'을 살펴보자.
콘돔 전문회사답게 예쁜 콘돔, 야광 콘돔, 바나나 냄새 나는 콘돔 등을 기획해
큰 인기를 모았다. 이 특별한 콘돔은 섹스를 하는 새로운 구매효과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길거리를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쇼윈도에 진열된 이 귀여운 콘돔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게끔 만든 것이다.
일부러 이 특별한 상품들을 구경하러 오는 고객도 상당하다. 일전에
하자주쿠의 한 콘도미니움 가게에서 몇 시간 동안 손님을 취재한 적이 있다.
연인들끼리 혹을 여자들끼리 끊임없이 몰려와 콘돔을 고르면서도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다. "호기심으로 왔어요"라는 여고생들이나 젊은 여성들도
상당히 있었다. 콘도미니움의 상품의 성공요인은 먼저 섹스에서 긴장감을
제거하고 유머를 제공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겠다. 콘돔 하나 하나가 웃음을
자아내고 귀여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용감하게 섹스 관련 전문 상품을 기획한다면 대단한 미래 사업이 될
것이다. 섹스 관련 전문 서적, 섹스에 필요한 기구, 섹스 소설 시리즈 등
섹스에서 관능을 제거하고 전문을 표방한다면 초기의 상당한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승산은 있다.
여러분이 승부사라면 한 번 덤벼 볼 만한 아이템이다,. 그러나 섹스를
생각하면서 침을 삼킨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으실 듯.
심야의 흐름을 읽어라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는 주인공 로버트 드 니로가 뉴욕의 밤 당번
택시기사로 나온다. 밤잠이 없기 때문에 밤에만 택시를 모는 것이다. 밤에 못
잔다면 본인의 입장에서는 괴롭겠지만 돈을 버는 데는 왔다다. 즉, 심야체질은
딴 건 몰라도 돈벌이에 관한 한 무지 복받은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세상이
돌아가려면 심야시간이라고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군인, 경찰, 전화교환수, 병원
의료진 등 심야시간의 업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더욱이
우리가 잠을 자는 한밤중에도 지구의 반대쪽은 한창 낮이다. 지구촌 시대의
비즈니스는 밤에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상식적인 얘기지만, 밤시간에는 야간수당이 붙는다. 낮시간의 임금보다
높다. 영화 엑스트라의 경우 저녁 7시 이후에는 따블, 새벽녘에는 따따블이다.
일본에는 오래 전부터 심야방송이 정착되어 있는데 국영 NHK 방송을 제외하곤
모든 TV 방송이 새벽 4__5시까지 방영된다. 심야방송의 시청자 중에는 일부러
TV를 보려고 안 자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른 일을 하며 TV만 켜놓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낮에 TV를 켜놓고 일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늦은 밤,
새벽까지 일하는 경우는 직장에서도 TV를 켜놓은 채 일을 하는 광경을 많이
본다. 야간 빌딩 경비, 호텔 식당, 심야 주차장, 야간 간이 매장 등에는 TV가
자연스레 켜져 있다. 이렇게 TV 보는 사람들은, 잠을 자지 않는 낮 동안과
거의 동일한 수요를 창출한다. 그런데 수요에 비해 공급은 거의 제로 상태다.
물론 최근 24시간 편의점도 생기고 커피 담배 자판기도 24시간 영업을 하는
셈이지만, 아무래도 야간의 서비스는 턱없이 모자란다.
밤에 생기는 수요는 낮에 생기는 욕구에 비해 그 강도가 한층 더 강렬하다.
학구적으로 말하면 한계효용이 더 높다는 뜻이다. 한번 상상해 보라. 겨울밤
할머니의 귀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는 개구쟁이들에게
따끈따끈한 군고구마는 최상의 선물이 될 것이다. 낮이라면 지천에 맛있는
과자들이 널려 있으니 군고구마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지만.
정말 밤에는 낮보다 더 먹고 싶고, 읽고 싶고, 사고 싶고, 하고 싶고... 그런
것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 심야극장이 있었다. 술집 심야영업 단속으로
심야극장까지 덩달아 없어져 버렸지만. 처음 서울시내 심야극장이 생겼을 때
많은 극장업자들이 코웃음을 쳤다. 누가 그 시간에 그 넓은 극장 좌석을
채우겠느냐고.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고 심야극장은 전국적으로 번져 갔다.
요즈음은 심야 볼링장도 대히트, 심야 카페도 마찬가지. 옛날 같았으면 누가
새벽까지 볼링 치러 오겠나. 커피는 또 무슨, 술이나 마신다면 모를까. 그러나
요즘 풍속도는 인천에 있는 괜찮은 심야 커피숍까지 서울 친구들이 일부러
찾아간다. 자동차가 일상화되면서 심야 영업은 그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제 심야영업은 그대로 황금어장이다. 누가 심야시간의 고객인가. 먼저 밤에
일하는 '물장사' 아가씨들이다. 그들이 자정을 전후하여 일대 변화를 한다.
장사꾼에서 선심좋은 고객으로 변하는 것이다. 물론 옆에 헤퍼 보이는 물주
아저씨까지 대동한 경우라면 완전 VIP다. 이들을 상대로 한 간이 음식점, 카페,
슈퍼 등은 낮시간 영업에 비할 바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곧 방송시간이 늘어나면 TV 때문에 잠 자지 않는 군상들이
생긴다. 이들이 그 세력(?)을 키워 새로운 구매 집단을 형성할 것이다. 이
새로운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는 분명히 돈이 된다. 우선 밤에 잠을 안
자면 생기는 생리 현상에서 아이템을 잡는 게 좋다. 쉽게 말하면 음식점이다.
일본에는 벌써 전문 새벽 음식체인점이 성업을 하고 있다. 데니스, 선데이선,
로얄 로스트, 구토 등 아메리칸 스타일의 레스토랑이 동네마다 목 좋은 자리를
잡아 늦은 밤과 새벽에 찾아드는 손님에게 커피랑 간단한 식사를 팔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심야영업 규제 조치로 심야영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웃기는 발상이다. 밤에 일하는 사람은 배 곯고 있으란 말인가.
공무원들이 모두 낮에 일하니까 밤에는 영업을 금지시켜도 된다는 발상인가.
그들이 받는 봉급에는 늦은 밤 새벽까지 열심히 일한 시민이 낸 세금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차피 없어질 심야영업 규제라면 빨리
시작하여 자리를 잘 잡으라. 그만큼 더 안정된 사업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심야시간에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똑같은 음식도 새벽에 먹으면 어 비싸다.
심야에는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택시요금의 할증료와 마찬가지 이치다.
사회구조도 어차피 시민의 편리를 따라가게 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 토요일
심야극장은 자가용 없이는 보기 힘들다. 영화 마치고 귀가할 때 택시비가
한국돈 5만 원에서 10만 원, 영화삯 15000원 보다 5배 이상 비싸기 때문이다.
이런 시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새벽 전철 운행 시각까지 영화를 상영하게
되었다. 즉 도쿄에서 저녁 먹고 한쯤 지나 전철역으로 가면 5시 첫 전철로 집에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귀가 후에 어떡할지는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지만.
새벽을 하얗게 새우는 심야체질들이여, 이제 더 이상 라디오 심야방송이나
듣는 궁상을 떨지 마시라. 밤하늘을 보라, 이제 지구는 24시간 영업장이다.
비싸야 잘 팔린다
왕창 비싸든가 왕창 싸든가 둘 중의 하나가 성공한다. 아니 둘 다 성공할
확률도 높다. 적어도 평범한 상품보다는. 요즘 가격파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생산자로부터 직접 구매하여 중간 유통마진을 없애고, 인기상품을 중심으로
대량구매하여 구입 단가를 낮추며, 창고식 매장에서 상품을 팔아 불필요한
인건비, 건물 임대료 등의 부가 비용을 최대한 억제하여, 일반 가게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 가격파괴란 말은 싸게 판다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뜻
그대로라면 훨씬 비싼 값으로 파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도쿄에서 물가가 비싸기로 소문난 동네가 있다. 긴자, 아도야마, 세이조 같은
동네들인데 이른바 우리나라 강남의 로데오 거리쯤 된다. 이 동네는 세계에서
가장 물건 값이 비싼 동네다. 비싼 상품만 파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같은
상품이라도 다른 곳에 비해 배 이상 비싸다. 그러나 사람들은 끊임 없이
모여든다. 옷가게건 레스토랑이건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건 구경꾼이건 좌우간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이른바 귀족심리다. 여기서 먹고 여기서 마시고 여기서
사고 여기서 놀면 왠지 신분이 상승한 느낌이다.
이 자리를 찾는 사람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하철 몇 정거장씩 떨어진 곳에서 많이들 몰려온다. 물론 그들이 사는 곳
인근에는 경제적인 쇼핑센터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그곳에선 성이 안 찬다.
결국 일부러 비싸게 먹고 마시고 놀고 사러오는 외부사람들과 비싸게 소비해도
별 지장이 없는 그동네 진짜 부자들이 뒤섞여 있는 게 이런 고급타운의
풍경이다.
최근 '하나코 마마'라는 잡지가 출간되어 화제인데 어쩌면 곧 유행어로 굳어질
것 같다. 보통 '하나코' 는 소비성이 강한 직장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런
하나코들이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하나코 마마'가 되는 것이다. 이 잡지에는
애들을 데리고 멋지고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귀족처럼 즐길 수 있는 음식점이나
가게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선 비싸고 사치스러운 유아 아동상품이 주종목. '내
아이는 귀족으로 키운다' 는 심리는 많은 엄마들의 공통된 정서로, 그들의
욕구를 아이를 통해 대리 발산하도록 소비심리를 부추긴다,.
이전에는 '아오야마 마마'라는 유행어도 있었다. 비싼 동네 아오야마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노는(?) 엄마들을 가리킨다. 많은 엄마들이 아오야마에 애들을
데리고 나타나 먹고 쇼핑한다. 여기까지 나와 기죽지 않으려면 남보다 많이
먹고 많이 사야 한다. 또한 아오야마에 나가기 위해 애들이나 자신의 옷이
멋지고 고급스러워야 한다. 멋진 옷이 있으면 또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오야마에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나가선 사고 먹고 마신다.
자기 애들을 연예계 스타로 키우려는 극성 엄마도 아오야마 거리를 찾는다.
꼬맹이 스타를 발굴하려고 연예계 프로덕션 스카우터들이 이런 물좋은 거리에
쫙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눈에 들기 위해 귀족 같은 엄마는
공주처럼 꾸민 딸을 데리고 아오야마로 나간다. 그리곤 자기들보다 더
귀족스럽고 고급스러운 사람들에게 자극받아 더 좋은 물건을 산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일본뿐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계 어디에나
공통된 귀족심리이며 소비심리이다. 즉 비싸도 잘 팔리는 것이다. 아니 비싸야
잘 팔리는 경우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아 아동용품은 상대적으로 비싸게 팔린다.
부모들은 불평은 하면서도 자기 애들에겐 최고급으로 입히고 비싼 것으로
먹인다.
또한 화장품, 액세서리도 비싸야 팔린다. 값이 문제가 아니라 어느
브랜드인가가 관건이다. 유명 프랑스 향수는 여자들 선물로 무조건 OK이다.
이탈리아제 넥타이는 까다롭게 고를 필요도 없이 왔다이고. 일본 전자제품은
비쌀수록 제품에 신뢰가 느껴지고 독일 카메라는 그 값이 성능을 대변한다.
왕창 비싸게 값을 매기면 그만큼 쉽게 팔린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싸게 만들어 어렵게 판다. 뭐 비싼 거 없나. 우리
예전에 유행하던 말, 깐깐한 거 말이다.
스포츠는 돈이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스포츠 붐이 일기 시작한 시기는 아무래도 81년
프로야구 출범과 더불어라고 생각된다. 물론 60년대 군사정권 출범 후, 체력은
국력이란 구호에 익숙해져 있었고 70년대 들어 애향심을 바탕으로 한 고교
야구의 인기는 가히 전국을 휩쓸었다. 이런 스포츠의 대중적인 인기를 이용하여
박스컵 등의 이벤트로 스포츠가 정치에 이용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는
TV가 있는 이웃집에 한데 모여 동시에 고함을 지르는 정도였고, 스포츠 시장도
80여 명이 되는 한 반에 축구공 한 개라도 가진 친구가 있으면 감지덕지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2002년 월드컵의 한일공동개최가 결정난 이후 스포츠
가게마다 축구공, 축구화가 없어서 못 판다는 보도를 접하고 나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
그러나 이 같은 스포츠의 대중적인 확산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스포츠 시작이
개발될 여지가 많은 것 같아 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를 스포츠웨어 용품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스포츠가게는 대부분 특정상품 즉 유명 상표 대리점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창조한다는 17세기 애덤 스미스 시대의
시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젠 관점을 좀 넓혀 볼
필요가 있다. 종목별, 팀별로 매장을 만들어도 좋을 만큼 스포츠 시장이
성숙되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J리그점의
경우, 일본 축구구단의 스포츠 유니폼과 캐릭터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축구
전문 매장에서 한 발 더 진화한 형태다. 농구면 농구, 야구면 야구로 전문종목을
정하고 그 종목에 대한 전세계 각팀과 유명선수의 캐릭터를 그때 그때 기획,
판매하는 스포츠용품점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 있어서 95년은 노모의 해였다. 경제로 이미 미국을 앞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를 버리지 못하는 일본인에,
메이저리그에서 왜소한 체구로 키 큰 흰둥이를 셧아웃시키는 노모는 새로운
우상이었다. 그의 독특한 투구 동작과 공을 던질 때 기묘하게 변하는 얼굴
모습은 인기 있는 캐릭터 소재감으로 그만이었다. LA 다저스의 노모 모자가
일본 전역에 히트란 것은 물론이려니와 일부 눈치 빠른 옷가게는 노모 전용상품
가게임을 표방하여 한밑천 톡톡히 잡았다.
농구의 경우는 훨씬 다양하게 고객의 소비패턴을 이끌어낼 수 있다. 미국
NBA 팀들의 유니폼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폭발적인 매상고를 올렸다.
특히 길거리 농구에서 응용된 '스트리트 패션'이 일본 개구쟁이들의 유행을
리드했다. 농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모두들 NBA 농구팀의 마크가 찍힌
모자를 거꾸로 쓰고 T셔츠에 스웨터, 무릎까지 오는 헐렁한 바지에 투박한
농구화를 신고 거리를 헤집고 다녔다. 집집마다 아이들의 성화로 농구골대가
뒷마당을 장식하고, 골목마다 자기 머리통보다 큰 농구공을 튀기며
뛰어다니느라 전국의 농구용품이 동이 난 적도 있었다.
캐릭터 상품이 성공하면 그 정도 인기야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실 수
있지만 스포츠의 경우 일반 캐릭터 상품과 달리 연령의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디즈니 상품이야 꼬맹이용이고 영화의 경우 하이틴용 캐릭터가 대부분인데
반해,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층은 코흘리개 어린애부터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을 포괄하고 있다. 20세기 소비시대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열광하는 최대 공약수가 바로 스포츠인 것이다.
물론 스포츠용품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해결은 간단하다. NBA의 경우 NBA 전문용품 회사를 차리고
NBA에 적당한 로열티를 지불하면 된다.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 NBA
마크만 빼면 상관없다. 국내팀이나 국내선수의 경우 적당한 선에서 캐릭터
상품계약을 하면 당장 상품으로 개발해 판매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계약된
자체가 엄청난 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스포츠 소비시대가 막 열리고 있고 소비자의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그런데 그 욕구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이제 LA 다저스의 박찬호 선수가 저녁 스포츠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여러분의 꼬마 악당이 박찬호의 LA 다저스 모자를 사달라고 떼를 쓰면 어찌 할
것인가.
먹는 장사가 미래 사업이다
한국이 국가적으로 돈버는 데 지금보다 훨씬 기여할 수 있는 품목이
한국요리, 한국음식이다. 오래 전 영향력 있는 한 미국신문이 새로운 칼럼을
만들었는데 극 우리 식으로 해석하면 음식 암행어사. 신문에 어느 집 음식에
대해 좋은 평가가 나오면 사람들이 급작스럽게 늘어나 명가가 됐다. 레스토랑
업계에선 작가가 누구인가를 알려고 혈안이 됐다. 그래야 그가 왔을 때
종업원들이 빨리 알고 특별 대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행어사는
계속 변장을 하고 다녔고 자기 사진이 절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신문사
차원에서 조심하여 그 칼럼을 성공시켰다.
난 미국의 음식문화라는 것이 그런 시대를 즈음하여 제자리를 잡았을 거라
생각한다. 영향력 있는 대신문이 음식 칼럼을 맛배기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외식산업이란 아주 중요하다고 느끼는 시점 말이다. 프랑스의
음식문화가 확실하다는 것은 모두 아시다시피 레스토랑마다 이미 별표가 다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별 셋, 별 둘의 좋은 음식점부터 형편없는
음식점까지 아예 책으로 공식화되어 있다. 정부 차원의 전문가가 맛을 보고
점수를 매겨 놓은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그 별표에
따라 음식점으로 몰려간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은 누구나 음식에도 문화가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프랑스 요리나 중국 요리에 대해선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일본 요리도 이젠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이 되었다. 일본 사회는 식생활 문화의 중요성과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우선 음식을 잘 만드는 사람, 어떤 음식에 전문인이 된 사람들을
명인으로 대우하며 진짜로 경외심을 품는다. 그러니까 연구하는 지망자가
이어지는 것이리라. 몇 대째 내려오는 메밀집, 초밥집, 우동집, 스시집,
사시미집이 그렇고, 중화요리의 달인, 프랑스 요리의 대가가 된 수많은
일본인들은 사회적 지위와 함께 엄청난 보수를 받는다.
TV 요리 만드는 프로가 많은 건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저녁
골든타임에도 수없이 편성돼 있다는 건 한번 다시 생각해볼 만하다. 일본 TV의
수많은 퀴즈프로의 소재 1위가 요리다. 또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프로그램도
인기이고, 싸고 맛있는 정감 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프로가 저녁시간대에
무수하게 편성된다. TV도쿄 같은 경우에는 음식문화 정보에 대한 프로그램들로
1주일 내내 저녁시간을 도배질한다. 의외로 전체 시청률(1주일 통산 평균)에서
뉴스를 주무기로 하는 아사히 TV보다 TV도쿄가 앞서고 있다는 사실은 일본의
음식문화가 얼마나 정착되어 있는가를 나타내는 예다.
해외 여행을 해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이 음식에 대해 만족하는 기준이
판이하다는 걸 느낀다. 한국 단체여행객들에게 패키지 여행에서 한국 식사를
제공하지 않으면 난리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따위 먹지도 못할 외국음식
먹인다고 사기 운운하는 사람들을 꽤나 봤다. 반대로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일식을 제공하면 이거야말로 난리난다. 기껏 여기까지 와서도 자기 나라 음식을
먹으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성을 내는 거다.
요즘 와서 가만히 인생을 생각해 보면, 이 식생활 문화라는 게 결코 우스운
게 아니구나 하는 걸 느낀다. 하루 세 끼씩을 먹는 게 인간이라면 이건
인생에서 보통 중요한 행사가 아니다. 시간적 금전적으로나 육체적
정신적으로나 식생활은 인생에서 너무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거다. 대충
먹으면 되는거라 생각하기엔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크지 않은가. 음식문화란
건은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살자는 게 아니다. 똑같은 걸 먹어도 즐겁게 먹고
거기서 행복을 찾자는 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저녁 식사만 두 시간이라 한다. 먹으면서 웃고 떠들고
정보를 나누고, 진지하게 얘기하다가 또 웃고 떠들며 즐겁게 식사를 끝내는 것.
우리네는 어떤가. "먹을 때는 예의 없이 떠들지 마라. 다 먹고 얘기해." 어릴
때부터 교육받은 음식 예절은 대개 그랬다. 그래서 식사도 10분 내에 뚝딱
해치우는 게 우리들이다. 두 시간 대 10분, 좀 너무 한다 싶기도 하다. 좋은
사람이랑 좋은 얘기를 나누며 즐겁게 음식을 먹으면 같은 음식도 훨씬 가치
있는 것이 아닌지?
음식문화가 정착되면 그 나라 국민의 즐거움과 행복도 증폭되는 거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매스컴, 특히 신문과 TV의 관계자들은 오래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부모들 세대도 이 분야에 관한 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한국만의 음식문화를 만들어서, 세계에 그 맛과 멋을 수출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주방장이라고 하면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다.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도 않지만, 좋은 소리도 듣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더 많은
TV 프로그램과 신문이 제대로 된 지면과 시간에 음식문화를 게재해야 한다.
어느새 많은 시민들이 그런 정보를 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TV와 신문이
음식문화 만들기에 앞장서서 믿을 수 있는(!) 칼럼과 지면을 할애한다면
시청률과 구독률이 훨씬 오를 게 틀림없다. 그렇게 된다면 요리계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세계시장을 두드릴 것이고 우리음식과 인적 자원도 비싼 값에
팔릴 수 있으리라. 음식문화로 배부른 수출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도박 관련 사업 이렇게 하라
인간 생활의 모든 것이 섹스와 연관된 것이라고 일찍이 프로이드가 분석한 바
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점잖게 행동해도 속마음에는 섹스의 욕망으로 가득차
있다는 걸 개개인의 경험(?)으로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섹스보다 더 인간을 끌어당기는 것이 있다. 바로 도박이다. 어느
도박사는 결혼한 지 1년이 되었는데도 아내가 처녀라는 것이다. 결혼 후에도
밤마다 도박하느라 아내와 잠자리를 못했다는 것이다. 또 어떤 도박사가 마지막
돈까지 죄다 잃어버리자 자기 마누라를 판돈으로 걸었다는 소리도 가끔 듣는
이야기다. 이렇게 인간을 빨아들이는 것이 도박이지만 정작이 지구상에 도박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나 모로코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공식적으로 도박은 금지산업이고 관광목적으로 호텔 카지노만
허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 어찌 법으로만 다스려질 것인가.
그럴 바에는 이 세상에 감옥이 존재할 리 없다. 실제 우리 생활도 만나기만
하면 도박판이다. 초상집, 돌집에 끼리끼리 모여 고스톱을 치는 것은 차라리
건전한 편에 속한다. 아예 도박을 목적으로 주말이면 꾼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교외로 나간다. 음식점에서 점심 한 장 차려 놓고 오후 내내 판을 벌인다.
이때는 고스톱보다 큰 돈이 오가는 포커가 제격이다. 가정집에다 하우스를 열고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판을 벌이다 경찰에 적발되어 카메라를
들이대면 모두 얼굴을 가리고 혼비백산하는 보도도 심심찮게 보았다.
도박이라는 끝없는 유혹, 과연 여기에서 어떤 기회를 발견 할 수 있을까.
일본은 어느 동네를 막론하고 여러 개의 파친코 집과 마작 집이 밤 11시까지
늘 주민들의 헌금(?)을 접수하고 있다. 일본은 전국이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방불케 한다. '대중도박'에 관한 한 일본만큼 법적으로 자유롭게
풀려 있는 전세계에 없다. 우선 파친코가 그렇다. 한국은 슬롯머신 파동 이후
사라졌지만 일본의 파친코 사업은 불황을 모르고 욱일승천의 기세로 현재까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고 도박이 100% 자유화된 것은 아니다. 카지노의
경우는 전면 금지되어 있다.
일본이 파친코는 풀어주고 카지노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이유는
오락차원에서만 도박사업을 허용하고 본격 도박은 금지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매출량에서 보면 오락 차원이라고는 볼 수 없다. 1 년에 1 백조 원이 넘는
수입을 올리는 도박사업이 어찌 오락인가. 세계엔 GNP가 1백조 원이 안되는
나라도 숱하다. 결국 일본 정부는 이 사업으로 엄청난 세금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오락 차원의 액수가 아닌. 일본의 동네마다 파친코 가게 한두 개 없는
곳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언제 어디서나 집에서 슬리퍼 끌고 나가면 되는 곳에
파친코장이 있다. 줄잡아 2만여 개의 파친코 가게가 전국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다. 파친코에 열중하는 모습은 남녀노소 구별도 없다. 시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나 양복 입은 신사나 정신을 잃고 파친코의 스틱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한집에서 벌어들이는 액수는 하루 몇 백만엔, 한달에 보통 1억엔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0억원이나 되는 거금이다.
파친코 외에도 인기 있는 도박판이 또 있다. 바로 경마다. 일본 경마장은
전국에 퍼져 있고 TV와 라디오 정규프로에 경마방송이 편성돼 있을 정도로
인기도 좋다. 경마가 파친코와 다른 점은 갬블이면서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파친코엔 통반장배 쟁탈도 없지만 경마엔 천황배까지 있다.
말이 좋아 스포츠지 이 세상에 경마만큼 생돈 날리기 쉬운 도박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일본인들 가운데 수많은 남녀들은 경마를 위해 산다. 주말에는 아예
하루종일 경마장이나 TV 장외 경마중계소에서 살고, 월요일부터의 평일날들은
어떤 말이 우승할까를 열심히 공부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 나라의 스포츠신문들은 경마가 먹여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포츠신문과 거의 같은 성격인 전철신문도 마찬가지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자부터는 아예 경마란을 6면 이상 할애한다. 우리 신문이 6단 정도밖에
할애하지 않는 것과 비교해 보면 일본의 경마 열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많은 경마전문가들과 경마기자들이 매일매일 칼럼을 쓰고 있다. 'I LOVE
경마'라든가 '경마의 점성술' 같은 연재들을 보기 위해 독자들은 아낌없이
신문을 산다.
일본엔 한국에서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 하나 존재한다. 전국 어떤
동네의 슈퍼마켓에나 카운터 바로 옆엔 7__8종류의 경마신문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다. '일마'를 비롯한 이 경마정보지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팔린다. 우린 경마장에나 가야 그나마 경마정보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일본에서의 경마는 전국체인을 가진 유통사업과도
같다. 경마신문만이 아니다. 어떤 슈퍼마켓을 가도 문고판 단행본 코너엔
틀림없이 경마관계 서적들이 쭈르륵 꽂혀 있다.
경마가 이 정도 인기이니 TV 라디오가 가만 있을 리 없다. 주말은 어김없이
중계방송이다. 프로야구 중계하듯 여러 명의 경마전문가들을 불러모으곤
아나운서가 열불나게 떠들어 댄다. 낮에 장시간 경마중계를 하고는 저녁
밤시간엔 다시 그날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돌린다.
경마장엘 가봤다.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일본 열도를 열광하게 하는가?
그러나 실망했다. 진짜 별 볼일 없었다. '경마장 가는 길'은 재미있는지 몰라도
경마장 자체는 그 어떠한 매력도 없었다. 단순히 트랙에 말들이 달리고 그저
관중 스탠드에 앉아서 자기 점찍은 말이 우승하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어떻게 생각하면 한심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돈을 걸지 않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자기 돈 몇만 원, 몇십만 원이 투자되었다고
생각하면 이보다 더 스릴 넘치는 장면이 없다.
일본 경마는 1장당 100엔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100엔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경기에 최소한 몇만 엔 정도에서 최고 몇천만 엔을 건다. 열심히
공부해서 써낸 답안지와 함께 돈을 창구에 밀어넣는 그들의 표정은 대학 원서를
내는 분위기와 흡사하다. 그리고 잠시 후 합격자 발표. 어떤 말이 1, 2등으로
들어오는가의 한판승부가 벌어진다. 대학 합격자 발표가 그렇듯이 다수는
불합격. 순간적으로 어깨가 축 처지는 자들의 모습들. 일부 당첨된 사람들의
환호가 불합격 사람들을 더욱 음산하게 만든다.
그러나 곧 본전을 뽑고 한판 역전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다음 경기의
시험답안지를 메운다. 하루에 11경주까지 있고 많은 사람들은 대개 다섯 경주
이상은 시험본다. 순식간에 몇만 엔 날리는 것은 식은죽 먹기다.
경마장을 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표정은 불쌍하기 그지없다. 얼굴도
어둡고 발길은 힘이 없다. 터덜터덜 전철역을 향해 가는 기다란 행렬. 그러나
이들은 놀랍게도 다음주 내내 경마신문을 볼 것이 틀림없다. 넥스트 라운드를
위하여.
그러나 경마가 늘상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우선 다른 도박에선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배당이 놓다. 한 번 맞으면 최하 서너 배는 되고 보통 10배까지는
바라볼 수 있다. 여기에 모험까지 곁들여 수십 배짜리 구멍들을 보며 흥분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마는 일본 국민들의 엔돌핀을 팍팍 돌게 해 주는 에너지 중
하나이다. 경마뿐 아니라 경륜, 보트 경주 도박도 1년 수입으로 몇조 엔씩
올린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경제환경이 나아지면서 이런 오락성 도박이 대중화될
것으로 생각된다. 도박 산업의 잠재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돈 많은
사람이나 능력 있는 사람들은 외국으로 가거나 자기들끼리 재미를 보겠지만
서민들의 오락욕구를 수도꼭지 잠그듯 꼭 잠그면 틀림없이 수도관이 터진다.
상식선에서 도박 산업의 허용이 검토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경마 경륜은 법적으로 인정을 받아 일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지만, 다른 부분은 경찰 행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
시대에는 그 지방 특수성에 따라 허가할 수도 있다. 지방 재정에 엄청난 몫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박 장사는 업주의 경우, 무조건 따게 되어 있다. 난 가끔 미군부대 슬롯머신
가게에 갈 기회가 있는데 이용자는 미군보다는 대부분 한국인으로 손님의
90%에 달한다. 그 가운데 또 90%는 틀림없이 매일 돈을 잃을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미군 부대는 슬롯머신 업소 하나로 부대 전체에 근무하는 근속을
월급 다 주고도 남는단다. 건물 짓고 관리하고 청소하는 비용이 전부 슬롯머신
업소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방자치 시대를 열고 있는 지금, 행정부에서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서민 도박 사업을 연구해야 할 시기다.
서민에게 오락 레저를 제공하여 스트레스를 풀어 주고, 지방정부는 돈을 벌어
복지 및 환경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연구한다. 어떤 도박을
어떻게 풀어야 큰 부작용 없이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도박 허가의
수준이나 방법이 약간만 도를 넘어도 서민은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고 도박
사업은 범죄와 악의 소굴이 될 수 있는 만큼 여기에도 전문가들이 컨설팅이
필요하다. 그래서 앞으로 도박을 연구하고 도박을 새로운 사업 형태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의 출현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주 업무는 도박기구 소프트를 만들고, 관련서적과 잡지를
출판하며, 또한 전문 갬블러로서 도박 산업을 흥행시키는 일 등이 될 것이다.
만약 정부에서 이걸 막으면 한국의 도박수요가 마카오, 홍콩,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의 동남아로 빠져나갈 것이 틀림없다.
도박 그 끈적한 수요를 어떻게 건전하게 이용하여 새로운 사업분야로 만들
것인가. 새 시대의 새 분야임에 틀림없다.
'재미'라는 새로운 발상
'만화가 재미있어서 영화를 안 본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일본영화가 침체한 이유를 주제로 와세다대학의 영화
클럽회원들과 토론하던 중 나온 한마디였다. 누군가 이런 발언을 하자 모인
회원들의 상당수가 공감했다. 일본 만화에 비하면 일본 영화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품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일본 영화는 관객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결론은 역시 재미인 것이다.
일본 최대부수를 자랑하는 만화잡지인 '빅 코믹'의 편집장인 이노마타 부장
역시 같은 얘기를 했다. "엔터테인먼트!" 일주일에 4백만부가 팔리는 빅 코믹
시리즈의 성공요소는 뭡니까라는 물음의 답변이다. 당연한 답이다. 최대
발행부수 잡지의 성공요인은 역시 재미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빅 코믹지의 성공은
재미를 위한 피눈물나는 역사가 있기에 가능했다. 1968년 창간 이래 20여 년
간 빅 코믹지의 편집자와 관계자들의 많은 수가 과로사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정말 재미있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대중문화를 논할 때 재미라는 요소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은연중 재미는 저질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있다. 그래서 대중문화는 대중의
욕구인 재미는 제껴두고 좋은 문화, 나쁜 문화로 분류된다. TV 프로를 놓고
좋은 프로, 나쁜 프로로 분류하는 건 그래도 낫다. 만화는 통째로 저질, 나쁜
것으로 치부되어 온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래도 요즘은 우리
어릴 적에 비해 만화에 대한 대접이 많이 나아진 셈이지만.
그런데 이 좋은 프로 좋은 만화 영화가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그 본연의 목적에 벗어난 대중문화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대중에게 외면당하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대중의 문화가 아닌
것이다. 점잖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뭔가 의식있는 체 행동해야 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수도 없이 봐 왔고 나 자신도 직접 여러 차례 경험했다.
물론 좋은 작품이라고 재미 없다는 뜻은 아니다. 좋다 나쁘다가 당위성의
개념이라면 재미는 바로 존재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또 현학적인
말로 당위성과 존재를 구태여 부연하고 싶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재미가 있어야
하고 그런 다음에 좋고 나쁜 것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재미 그 자체가 아니라 저질스러운 재미일 따름이다.
빅 코믹의 이노마타씨에게 빅 코믹의 만화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서슴없이 오이신포(맛쟁이)라는 음식만화를 추천했다. 음식에도
철학이 있다는 걸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이기 때문이란다. 얼핏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가 어떻게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빅 코믹지의 노련한
만화장이들이 필경 재미있게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음식소재의 만화는 소재의
다양성이나 정보제공 측면의 실용성에서 좋은 만화가 틀림없을 것이다. 재미와
좋은 것은 동전의 양면이고 손등과 손바닥이다. 그들이 없으면 동전도 아니고
손도 아니다.
이제까지 매체 즉 영화와 만화가 재미있다 없다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매체
자체보다는 그 내용이 그렇다는 말이 우리에게 더 설득적이다. 즉 영화 '장군의
아들' 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보다 확실히 재미있다. 어느 것이 더
좋은 영화인지는 모르지만. 또 '다이하드'가 영화로 나온 '주홍글씨' 보다는 더
재미있는 게 사실이다.
이제 무엇이 재미있을까가 문제이다. 그러면 격렬하고 스릴 있고 통쾌하고
감동적이고 그야말로 화끈하면 재미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깨지고 부서지고
때리고 얻어맞아 이 세상에 남아나는 게 없겠네. 실제로 재미란 것은 오락의
측면 이외에 '관심'의 측면이 있다. 증권정보 같은 재미 없는 기사도 증권에
몇백만 원 투자한 월급쟁이라면 저녁 내내 증권기사만 보다 못해 꿈속에도
나타날 것이다. 내일 아침 초장에 이걸 팔어 말어.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대상, 이것이 재미있는 대상이다. 세대차 없이 시간적으로
영원한 우리의 관심은 가장 평범한 일상생활, 보편적인 문제들이다. 건강, 음식,
육아, 결혼, 레저, 기타 등등.
재미는 돈 버는 방법의 지름길이다. 이것은 동서 고금의 진리다. 우리는
체험적으로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 '좋다, 나쁘다'의
도그마에서 벗어나 '재미있다, 재미없다'로 일대 인식의 변화를 해야 한다. 재미,
그 '초록빛 황금나무'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사업은 반드시 성공한다.
팔리는 이미지를 만들라
디자인 경쟁력에 대한 논의가 달아오르고 있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반가운 일이다. 이미 90년대 초입부터 세계는 '이미지 마케팅'
시대에 들어선 지 오래고, 제품력의 기준도 기능과 품질에서 디자인 퀼리티
쪽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품의 품질면에서는 각 기업체마다 모두 전담 품질관리부서를 설치하여 품질
향상에 최선을 다하고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 다각도로 연구한다. 이제 웬만한
기업이면 제품의 질은 거의 상향 평준화되어 품질만으로는 더 이상 고객에게
어필할 수 없다. 제품의 네이밍과 스타일링에서 시작하여 광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대중의 마음속에 포지셔닝할 제품의 '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전략적으로 기획하여 강력한 '이미지 파워'를 창출해야 하는 시대가 온 거다.
팔리는 이미지를 만들라. 이는 비단 제조업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넓게는 세계 무대에 드러나는 국가의 이미지로부터 좁게는 시장통 구멍가게에
이르기까지, '차별화' 된 이미지를 구축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일본 TV뉴스 중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뉴스 스테이션'은 파격적으로
인기 만화가 에이지 하사시의 애니메이션을 뉴스의 시그널로 내보낸다. 뉴스의
딱딱한 인상을 피하고 고객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서다. 에이지 하사시는 일본
최고의 인기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션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인물. 일본
젊은이들의 방 세 개 중의 하나에는 에이지의 일러스트가 걸려 있다.
일본의 음식점 체인점 데니스 역시 에이지의 만화 주인공을 캐릭터로
채택했다. 음식점 내부 곳곳에 에이지의 만화 주인공을 캐릭터로 채택했다.
음식점 내부 곳곳에 에이지가 그린 자동차, 가로등, 바다 등의 일러스트레이션이
포스터로 제작되어 붙어 있고 식당 메뉴판에도 에이지가 그린 예쁜 소녀가 웃고
있다. 일본 젊은이들이 미국식 팝레스토랑에 들어와서도 실내 디자인을 보고
친근감을 갖는 것은 물론이다. 한국에서 실패한 식당 체인점이 일본에서는
대성공하여 동네 곳곳에 점포를 확장하고 있다.
이미지 메이킹이 디자인이나 캐릭터 등을 사용한 시각적인 방법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서비스든 판매 전략이든 무엇 한가지를 인상적으로 '차별화'하는
데서 진정한 이미지 파워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예로 내가 자주 가는
식당에는 독특한 장사법으로 주위 사무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내가 처음 갔을 때 메뉴판을 보니 '주인 추천, 오늘의 음식'이라는 강력한
메뉴가 있었다. 두말없이 주문했더니 종업원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 메뉴는
구하기 힘든 것이라서 하루에 30명분만 조리하여 판다는 것이다. 오기로 다음날
또 주문했더니 그날도 조금 전 '게임 셋'이란다. 되도록 예약을 하고 제시간에
오라는 것이다. 비싼 물건 샀을 때 비싼 만큼 품질의 질에 대한 기대가
생기듯이 특별한 메뉴에 대한 고객들의 기대로 이 식당은 계속 성업중에 있다.
얼마 전 우리 나라에서 개인의 이미지 메이킹에 대한 책도 나왔다. 회사
생활시 자기 관리를 잘함으로써 좀더 유능한 직원으로 보일 수 있고 사업할
때는 상대방에 신뢰감을 주는 행동으로 계약을 쉽게 성사시킬 수 있는 것이다.
고객들 앞에는 너무나 많은 상품이 펼쳐져 있다. 조금 노력해서는 고객의
시선을 끌 수 없다. 모두가 조금은 노력하기 때문이다. 팔리는 이미지를 만들라.
국가든 기업이든 상점이든 개인이든, 누구도 이 명제를 피해 갈 수 없는 시대에
여러분은 살고 있다.
세계의 트렌드를 활용하라
최근 세계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주목을 받고 있는 코엔 형제의 작품
중 '허드서커 대리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가 흥행에 참패해
많이들 못 보셨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쨌든 이 영화를 보면 여러분도 잘 아는
훌라후프가 등장하는데, 간단한 플라스틱 기구가 얼마나 엄청나게 전세계에
유행했고 또 돈을 벌여들였는지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영화에 의하면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재임시 훌라후프가 발명되어 폭발적인 유행을 불러
일으켰다. 나도 꼬맹이 때 한국에서 친구들이랑 그럴 허리에 감고 집집마다
돌렸으니까 당시 훌라후프의 위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이와같이 세계화 시대의 지구촌 장사꾼이라면 세계적인 아이템, 국제적
상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우리가 기억나는 세계적인 유행 상품이
한국에서 성공한 예로는 스카이 콩콩이라는 어린이 놀이기구와 벽돌놀이 같은
것이 있겠다. 라면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인기를 끌자 우리나라에 들여와 지금
재벌로 성장한 기업도 있지 않는가.
그런데 세계적 상품이라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결코 장난은 아니다. 현재
한국엔 없고 구미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 있다고 치자. 또는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 상품이 한국에 안 들어온 것이 있다고 치자. 지금 이 상품들을 잽싸게
국내에 들여와 대대적인 선전과 판매를 한다면 모두 성공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런 식의 무역을 한답시고 설치다가 수업료만 낸 사람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그러면 어떻게 외국에서 인기를 끌고 유행하던 상품을 국내에
들여와 성공할 수 있을까. 일본 하이틴 잡지 '뽀빠이'의 성공에서 나는 그
해답을 찾고 싶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하이틴들을 위한 잡지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아직 시장성에 비해 그 판매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뽀빠이라는 10대 잡지가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일본 최대 출판사인
'매거진 하우스'가 기획해 만든 잡지이다. 뽀빠이 이전에는 많은 잡지사,
신문사들이 이쪽을 두드리다간 포기하고 말았다. 말하자면 기획의 실패였다.
마침 뽀빠이를 기획했던 사람들과 술자리를 같이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돈 엄청쓰고 기획에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귀중한 정보였다. 뽀빠이 기획팀들은 10대가 무엇을 입고 싶고 무엇을
먹고 싶고 무엇에 열광하는지를 바로 국제화라는 개념에서 찾아냈다. 즉 당시
일본 10대들이 아메리칸 스타일을 꿈꾸었던 만큼 미국 LA의 캘리포니아
드림을 표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LA의 10대가 좋아하는 것을 바로 기사로
다루면 실패할 확률이 많다. 그래서 LA에 주재원으로 나간 일본인 10대
자제들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미국인도 아니고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 교포도
아닌, 일본에서 성장 후 1, 2년 전 미국으로 건너간 일본인 10대. 그들은 이미
일본인의 감수성이 충분히 형성되어 있는 만큼, 그들이 선호하는 패션, 음식,
작품 등의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면 틀림없이 일본에서도 성공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결과는 장외홈런, 이 '뽀빠이' 성공은 꼭같은 기획을 바탕으로
10대 소녀잡지 '올리브'를 탄생시켰고, 20대 전용잡지 '브루터스'까지 전국에
유행을 일으켜 일본 잡지계의 신화를 장식했다.
몇 년 전 칠부바지가 여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지금도 일부
스타일리스트 여성들은 칠부바지나 칠부 옷소매의 상의를 입고 다닌다. 바지
길이가 종아리 중간쯤에서 어정쩡하게 끝나는 칠부바지는 당시 꽤 유행하여
칠부바지 입은 여자애들을 볼 때마다 바지 만들 옷감이 모자라서 그렇게
만들었느냐고 놀리곤 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이 칠부바지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조그만 섬유회사의 말단 사원이다. 외국 패션잡지를
뒤적거리다가 일본,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은 물론 유럽에서도 오래 전부터
유행하던 칠부바지가 유독 한국에만 없는 것에 착안하여 처음으로 기획, 시장에
내놓았는데 결과는 전국적 유행으로 이어졌다. 이 역시 국제적 감각을 한국
상품에 응용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제는 지구촌 시대다. 전세계 어느 것이든 24시간 이내에 갈 수 있고, 매스
미디어를 통해 전세계의 정보들이 빠르게 소개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제 국경의 개념이 전보다 희미해지고, 이른바 역대 낭만주의
정치가들이 열망했던 코스모폴리탄 시대가 바야흐로 전개되고 있다.
회사의 정책 입안자나 새로운 아이템의 구상자, 혹은 디자이너들, 그리고
새로운 사업을 꿈꾸는 사람들은 필히 국제적 감각을 체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목적의식이 분명한 해외출장도 자주 해야 하며 인터넷이나 외국의 신문
잡지 등 정보망을 이용하여 국제적 흐름을 감지해야 한다.
국제화 시대, 모든 소비자들의 성향은 이미 국제화되었다. 이제 공급자들의
감각이 문제인 것이다.
제5장
추억과 감동도 팔 수 있다
타임캡슐을 사업 아이디어로
95년 정부는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으로 한국 방문의 해를 공포했다.
대대적인 관광객 유치 사업을 펼쳤고 국내적으로도 많은 행사를 치렀다. 이의
일환으로 서울시에서 타임캡슐을 제작했는데, 이 서울시 타임캡슐이란 95년
현재의 서울생활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추려서 보관함에 밀봉하고 일정 기간
동안 이르러서야 개봉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타임캡슐 덕분에 후대 사람들은
과거 1995년의 생활이 어땠는지 낱낱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 타임캡슐 이전에 비슷한 소재의 일본 드라마를 본 일이 있었다. 그때 난
엉뚱하게도 '야 저거 장사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드라마의 소재는 한
대학 서클의 멤버들이 졸업을 앞두고, 지금은 공개하고 싶지 않은 물건이나
편지, 사연이나 생각들을 모아서 타임캡슐에 넣고 10년 후에 다시 모여 열어
보자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흥미로운 그 드라마는 바로 사업거리로 응용될 수 있다. 이
사업의 기본조건은 조그만 창고 하나로 충분하다. 이름하여 타임캡슐 창고.
다른 창고업처럼 물건이 들어다 나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단체에서
타임캡슐을 만들어 가져오면 그것을 소중하게 약속기간 동안 보관해 준다.
이때 창고에 보관할 타임캡슐에 대한 계약내용이 이 사업의 핵심이다.
보관기관, 보관기간 만료 후의 통지의무, 찾을 때의 수취인, 수취인 부재시 대비
사항 등. 만약 10년이라고 기간을 정했으면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이전에는
타임캡슐을 건네주지 않는다.
또 만기일이 지나면 인수자가 스스로 찾아오도록 기다리느냐 아니면 창고측이
먼저 통지를 해주느냐도 계약사항이다. 또한 의뢰자가 다시 찾을 때 정확히
지정된 수취인에게만 돌려줄 것인가, 수취인이 다수일 경우 모두 모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사랑도 계약 내용에 포함된다. 정해진 수취인이
사망 또는 행방불명된 경우에 대비한 조항도 계약 때 아예 명기한다. 계약
내용에 따라 비용이 정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것이 사업거리가 되겠느냐고 반문하실지 모르지만, 간단히 한번
생각해보자.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그림 일기장, 낙서, 통지표, 생일선물
등의 물건들이 20여 년 후 고스란히 다시 배달돼 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라면 말할 수 없는 감동에 잠길 것이다. 과거는 그저 지나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다. 슬픈 일은 슬픈 일대로, 기쁜 일은 기쁜 일대로.
나의 과거 유품을 내 아들딸들과 같이 본다면 더욱 감개무량할 것이다. 내
아기의 모든 것을 타임캡슐에 보관하여 나중에 그애가 결혼하기 직전에 같이
본다면 그 감동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사실 자신이 보관해도 좋지만 살다보면
과거의 것들이 어떻게 없어지는 줄도 모르게 없어지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
아닌가.
이 사업이 가지는 부가적인 장점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옛날 물건들이
골동품이 되어 상당한 경제적 이윤도 가져다 준다는 점이다. 요즘 일본에는
옛날 사이다 병 하나가 몇백 원을 호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옛 물건을 보며
향수에 젖으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나간 전화카드 한 장, 하다못해 어릴
때 오 원 대신 사용되던 오십 환짜리 거북선 동전 하나가 지금 다 어디로
갔는가, 지금 얼마씩 하는가.
인간은 모두 환상을 꿈꾼다. 그리고 마술의 세계를 동경한다. 어릴 때
모자에서 하얀 비둘기를 만들어내는 마술사를 보며 얼마나 신기해 했던가.
타임캡슐 사업은 이러한 인간 환상의 욕구와 마술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어릴 때의 시절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게 해 주니까.
'세대차'를 파는 골동품 가게
흔히 골동품하면 돈 많은 사람들의 고상한 취미로만 여기고, 일반 서민은
아예 엄두도 못 낼 분야라고들 생각한다. 조선 시대 자기나 장롱, 옛날돈 같은
골동품은 가격이 워낙 엄청나서 아예 구매할 생각조차 못한다.
그래서 가끔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고, 골동품 수집하는 사람들을 욕한다.
'돈이 남아돌아 할 일어 없어 그런 것을 사? 지금 세상에 굶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 누구라도 능력만 된다면 골동품
한두 개 정도는 분명히 사고 싶어할 것이다. 골동품이 꼭 부호들의 사치만이
아닌 것은,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역사와 연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난 일본에 와서 몇 개의 골동품을 샀다. 한국에서는 골동품을 살 여유도 없고
일부러 골동품점에 갈 기회도 없었는데, 여기 와 보니 주택가 주변에
정기적으로 앤티크 시장이 열린다. 하라주쿠 뒷골목에서 일요일이면 늘
펼쳐지는 앤티크 노점이나 아오야마 신궁 야구장 근처에서 한달에 한 번 열리는
노상 앤티크 행사는 보기만 해도 재미있다. 비싼 가격도 아니고 혹시 속은 것
아닐까 하는 의심도 없다. 아주 먼 옛날 것이 아니고 불과 이삼십 년 전
것들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부담 없는 가격, 부담 없는 진품이다. 내용도 우리
벼룩시장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아, 거의 잡화에 가까운 물건들을 쌓아놓고
판다. 옛날 LP판, 잡지, 만화책, 옛날 장난감, 구식 라디오, 구식 선풍기 같은
전자제품들, 구식 타자기, 구식 카메라 그리고 좀 오래된 축에 속하는 일본
군복, 총알을 한방 맞은 태평양 전쟁 때의 일본군 철모, 그리고 어느 집에나
있는 옛날 가족사진 앨범 등. 종류 구분 없이 엄청난 양의 물건들이 널려 있다.
우리 동네 세라구야쿠에서 1년에 한번씩 대대적으로 열리는 중고 골동품
시장은 제법 유명한데 그 사업방식이 독특하다. 일요일이면 문을 닫는 시장통의
상점들을 하루 빌려 골통품과 재고품, 중고품들을 판다. 난 이걸 보면서 이런
식이라면 작은 자본으로 골통품상도 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노점에
널렸던 중고골동품을 종류별로 정리해서 사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보기좋게
디스플레이해 놓았다. 이처럼 좁은 상점을 임대하여 물건들을 빼곡히 모을 수
있다면 대단히 좋은 장사가 될 수 있다.
지금 일본에선 젊은이들 사이에 앤티크 붐이 일고 있어서 이런 상점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 상점들이 잘 되는 것은 당연하다. 조선 시대 고려 시대의
물건에서 역사의 향취를 맡을 수 있다면, 이삼십 년 전 물건들에서는 향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딱지 몇 장을 발견한다면 난
눈물이 나올 만큼 기쁠 것 같다. 보물이 제일 높지만 보물도 일병한테만은 지고
일병은 헌병한테 잡히고 그런 딱지가 있었는데, 그걸 보면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생각날 거고 그때 살던 동네까지 생각날 것이다. 장난감도 마찬가지.
지금 보면 조잡하기 짝이 없는 자동차나 권총, 로봇이지만 그걸 선물로 받던
날의 기쁨은 얼마나 컸던가. 그 시대의 추억의 향기를 맡기 위해서라면 난
기꺼이 비싸지 않다. 젊은이들이 용돈을 아껴서 충분히 한 개씩 모을 수 있다.
이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물건을 어떻게 모으고 얼마에 팔아야 하는가에 대한
감각이다. 물건을 사고 파는 데 있어 아르바이트를 할 사람도 필요할 것이다.
물건을 감정하는 능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한 이유는 정말로 그 시대의
향수에 빠져 있고 이런 물건 취급하는 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물건 하나하나에 애정을 가지고 수집하고 관리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가운데 물건은 생명력을 지니게 되고 그걸 찾는 고객에게도 그 기분이 전달되어
가게는 번창할 수 있다. 대학가나 젊은이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게를 내면
좋겠지만 그런 곳은 비쌀 테니까 교통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면 주택가 등 어떤
곳이라도 괜찮다.
이런 가게는 먼저 시작하면 희소가치가 있으므로 TV 등 많은 정보매체와
매이어 잡지들이 기사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대학가를 다녀보면 징그럽다
싶을 정도로 많은 게 커피집들인데 별도의 상점을 차릴 것 없이 커피
장사하면서 1/3 정도의 공간은 중고 골동품 진열대로 활용한다면 특색있는
앤티크 커피점이 될 거라고 본다. 참고로, 생각은 있는데 막연하다고 하는
분들을 위해 일본의 젊은이 상대 앤티크점의 운영방식과 규모를 조사해 봤다.
전체 자본은 약 6백만 엔(5천만 원 정도). 물품 구입에 대부분 쓰이고 가게는
월세로 얻는다. 가게 넓이는 7평 정도. 입지는 큰길 상점가보다는 오히려
조용하고 느긋한 골목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성공의 열쇠는 물건이나 루트인데, 특별한 유통구조가 없는 만큼 동종업자
간의 교환이나 벼룩시장을 활용한다. 또 외국수입품 리빙잡지 구입 광고로
물건을 사는 방법도 있다. 옛날 것으로 그 시대의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최고다. 상품 회전율은 낮지만 상품당 이익이 높고 주인이 자신의
취미와 이익을 겸해서 할 수 있다는 독특한 잇점이 이 사업의 매력이다.
향수는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 돈 이상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좀 버는
것도 괜찮다. 전자제품 등 현대 과학의 산물도 제품에 따라서는 어느덧
골동품의 대우를 받고 있다. 축음기는 벌써 부유한 집 거실에 최신식 오디오와
함께 턱하니 자리를 잡고는 실내 장식품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요즘 없어져
버린 진공관식 TV나 오디오들도 점차 이런 반열에 오르고 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시라. 여러분의 공부방 한켠에 옛날 릴 녹음기라도 한 대 놓여 있다면
얼마나 운치가 좋은가. 작동을 하건 안 하건.
불꽃놀이 전문점이 버는 장사다
화약을 최초로 발명한 나라는 중국이고, 원래의 쓰임새는 불꽃놀이였다고
한다. 아직도 중국에서는 축제 때 시끄러운 경극의 타악기 소리와 불꽃놀이가
어우러진다. 홍콩영화 황비홍 시리즈를 보셨으면 쉽게 이해하시리라.
우리나라도 최무선이 독자적으로 화약을 발명하여 고려말에 외적을 물리치는 데
사용했다. 화약을 본격적으로 폭탄제조 등 실생활에 이용하고 발전시킨 것은
유럽국가였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 군사대국은 모두 서구 국가이다. 또한
이들이 경제적으로 선진국이고.
발명은 우리가 먼저였으나 그 응용에는 실패했다. 그런데 이제 그 실패에서
다시 아이디어를 찾자. 뭐 거창하게 우리가 핵폭탄을 제조해 서구에 대항하자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우리 아이디어의 전환으로 돈벌이를 좀 하자는 것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 애초의 화약 발명의 목적대로 불꽃놀이를 하자는 것이다.
불꽃놀이는 참으로 낭만적이다. 밤 하늘에 곱게 퍼지는 불꽃에 대한 기억을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우리나라의 불꽃놀이
시장은 거의 방치된 상태이고 불꽃놀이도 최소화되어 있다. 한강변엔 불꽃놀이
노점상이 출몰하기도 하지만, 사업적인 면모는 못 된다. 그리고는 국경일이나
대학 축제 때 가끔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에 반해 일본에는 불꽃놀이가 연중
생활화되어 축제는 물론 개인행사에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일본 어린이 생일날에 불꽃놀이가 빠지면 시체다. 생일을 맞은 아이가 먼저
불꽃에 불을 붙여 옆에 앉은 친구의 불꽃에 붙이면, 둘러앉은 친구들에게
차례로 불을 옮겨서 불꽃으로 커다란 원을 만드는 것이 생일 축제의 시작이다.
또, 집앞 공터나 마당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불꽃놀이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은 참으로 평화롭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데이트 남녀들도
쌍쌍이 불꽃놀이로 그들만의 언약식을 한다. 지역 단위의 축제 때는 말할
나위가 없다. 일본의 문방구, 슈퍼마켓, 장난감 가게 어디서든 불꽃놀이 기구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그 수요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개인 불꽃놀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설날
세뱃돈을 받으면 쪼르르 가게로 달려가 폭음탄과 로켓탄을 사곤 했다. 그리고
이슥한 밤 거리를 이리떼처럼 몰려다니며 밤하늘에 로켓탄을 쏘아 올리고
폭음탄을 터뜨리며 얼마나 환호했던가. 문제는 폭음탄을 잘못 사용한 데
있었다. 동네 개구쟁이들이 지나가는 아가씨의 미니스커트에 대고 터뜨려
어른들이 폭음탄 사용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고, 급기야
신문지상에서 개구쟁이들의 폭음탄 사용을 문제 삼으면서 우리나라 불꽃놀이
기구는 감추었다. 어린이 불꽃놀이가 어른들은 물론 경찰과 소방서 아저씨들의
감시를 받게 된 것이다.
일본의 불꽃놀이가 일년 내내 사용되고 있는 이면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일정한 룰이 있다. 일단 한국에서 문제된 공포성 폭음탄은 없다. 또한, 공원,
강가, 해변가 등 야외에 한해 사용되고 있고 어린이들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어른들의 교육에 의해 일본 사회의 불문율로 굳어진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놀이문화에 대한 기대욕구가 커지고, 대학 축제 때의
불꽃놀이를 잊지 못하는 신세대 부부들이 폭음탄 사용에 부정적인 부모님
세대를 대체하고 있다. 일단 불꽃놀이가 어떤 식으로든지 개방(?)되면 그
전파속도는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퍼질 것이다.
불꽃 가게 같은 작은 장사로 시작하든, 불꽃 이벤트 기획을 세워 이벤트
생사를 석권해 보든, "불꽃놀이 제품 전문기업"을 만들든 그건 어디까지나
여러분의 자유겠지만, 불꽃놀이가 돈이 된다고 너도 나도 덤비지 마시라.
불꽃놀이로 돈을 벌지 않더라도 매일 밤 아파트 창문 너머로 불꽃놀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므로.
추억과 향수도 팔 수 있다
몇 년 전 영화 '사랑과 영혼'이 우리나라에서 히트했을 때 영화삽입곡
'Unchained Melody'도 다시 유행을 탔다. 또 독특한 영상미학으로 주목받는
왕가위 감독의 최신영화 '중경삼림'에 삽입된 'California Dreaming'도 영화와
함께 인기를 얻어, 그 곡을 부른 '마마스 앤 파파스'의 내한공연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옛것이면서도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 말 그대로 'Oldies
but Goodies'다.
왕년에 히트한 곡들은 이미 대중의 호응에 대한 검증이 끝났기 때문에
리메이크되어도 신곡에 비해 쉽게 성공할 수 있다. 옛곡의 리메이크 현상은
미국 대중가요계에서 흔한 일인데 일부 비평가들은 쉽게 돈을 번다고
혹평까지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관우가 그의 2집 앨범에서 흘러간 곡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불러 젊은 세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옛것은
우리의 잊혀진 감정에 호소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공할 수 있다. 옛것에
깃든 추억과 향수를 사업으로 연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일본 비디오 가게의 새로운 유행 중 하나가 옛날 비디오를 이용하여 진열대를
새로 꾸미는 일이다. 영화발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비디오 가게의 한쪽 코너에
특별히 영화 100주년 기념 진열대를 차리고 여기에 각 영화사의 주옥같은
명작들을 줄줄이 진열해 놓았다. 진열대엔 손님들의 주목을 끌도록 주인의
간단한 해설과 추천 멘트도 붙여놓았다.
'키드' '황금시대'의 찰리 채플린을 선두로 '십계'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대형 스팩터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지상에서
영원으로' '자전거 도둑' '금지된 장난' '길' '카사블랑카' '가스등'. 제목만으로도
세계 영화사를 훑어볼 수 있을 듯하다. 거기에 더해 영화 매니아나 영화학도를
위한 '제7의 봉인' '시민케인' '칼리가리 박사' '안달루시아의 개' 같은 문제작도
판매용과 대여용으로 구분하고 추천서까지 끼워 놓았다.
이런 비디오 가게를 들르면 나는 괜시리 흥분되고 그날 내내 기분이 좋았다.
1960년대는 정말 한국영화의 전성시대였고, 나의 어린시절은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바로 그것이었다. 그 시절에는 오락이라곤 영화밖에 없었다. 영화는 당시
모든 사람에게 꿈과 환상을 주는 것이었다. 영화 보는 시간은 흡사 마술에 걸린
것처럼 황홀했고 꿈같이 지나갔다. 알랭 들롱은 미남의 대명사로 통했고,
여배우도 흡사 그린 듯이 아름다운 엘리자베스 테일러, 잉그리드 버그만, 데보라
카 등의 미인들이 스크린을 메웠다. '지하실의 멜로디'에서 장가방, 알랭 들롱
콤비는 정말 죽이는 연기를 했다. 한국영화도 작품수에서나 배우수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인기를 한몸에 모았다. '빨간 마후라'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그야말로 한국영화 불후의 명작이고 '미워도 다시 한번'은 많은 한국 여성들의
손수건을 눈물로 적시게 했다.
꼬맹이 때 느끼는 감수성이란 어른들이 갖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때
느낀 감동은 인생이 끝날 때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남 모를 결심하고 "나도 저런 여자(혹은 남자)와 사람을 해
봤으면" 하는 꿈으로 가슴 설렌다.
그런 꼬맹이들이 이제 어른이 되었다. 많게는 나이가 그윽한 할아버지부터
적게는 젊은 오빠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다시 자기의 옛 기억의 언저리를
더듬어 보고 싶을 것이다. 또한 이런 올드 팬이 아닌 젊은 세대들도 비록
영화는 못 봤지만 수도 없이 들었을 영화제목, 그 영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한번쯤 고전영화를 보고 싶을 것이다.
이렇듯 옛 비디오를 특화하여 새로운 상품으로 개발하면 은근한 수요가 있다.
지금 비디오 가게를 하시는 분은 당장 먼지에 쌓여 한구석에 묻혀 있는 옛
비디오를 다시 찾을 일이다. 비디오 코너를 따로 예쁘게 만들어 놓으면
추가경비 없이 스테디 셀러가 된다. 새로 비디오 가게를 차리실 분은 아예 옛날
비디오 전문 가게를 차려도 좋다. 이 경우는 한 번 왕창 비디오를 구입해
놓으면 일반 비디오 가게처럼 신작 비디오 구입에 따른 자금 압박도 없고
새로이 비디오를 구입할 때도 모두 중고품이니까 싼값에 구입할 수 있다.
더불어 앞서 말했던 영화 삽입곡이 있는 비디오는 녹음 테이프랑 같이 진열하면
테이프 판매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일찍 귀가하는 토요일 오후 '카사블랑카'를 빌려다가 와이프와 같이 숨죽이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옆에 지루하게 앉아있는 꼬맹이가 그럴 것이다. 아빠는 왜
재미도 없는 흑백영화만 보고 있어요? 그럴 때 한마디 해야 한다. 임마 저기
나오는 험프리 보가트가 세상에서 제일 담배 멋지게 피우는 사람이다. 저런
연기는 인생의 고독을 경험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거야. 하면서 담배 한 개비.
하지만 주의사항, 담배는 밖에 나가 피우시도록. 와이프의 벼락을 맞지
않으시려면.
전차를 아시나요
신세대들이 전차를 모른다 해도 그건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그들은 전차가
완전히 철거된 후에 태어났고 다른 곳에서 전차를 탄 경험도 없으며 시험문제에
전차가 출제된 적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서울에는 한동안 시민이
사랑한 최고의 대중교통 수단이 전차라는 걸 말해줄 그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 아니 초등학교 시절에 전차 운전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전차는 앞뒤로 간다. 얼마나 신기한가. 전차운전사 아저씨는 땡땡땡
소리를 내면서 앞에서 운전하다가 종점에 이르면 다시 반대편으로 옮겨가
운전을 한다. 그리고 그 운전이라는 건 솔직히 초등학생인 나에게 시켜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쇳덩이 레버를 치익 왼쪽으로 돌리고 다시 치익 오른쪽으로
돌리면 전차는 달리다가 서고 천천히 가다가 빨리 갔다. 그때는 하루종일
전차를 타도 좋았다. 내가 전차 운전사가 되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바로
하루종일 공짜로 전차를 탈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차는 60년대까지 최고의 교통수단이었다. 꼬마들은, 지금은 물론
40__50대가 되었겠지만, 전차를 타면 모두 흥분했다. 워낙 탈 것이 없는
때였고, 전차라는 게 한 번 타면 시내 구경을 다할 수 있는 황홀한 시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 표값은 당시 버스 요금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이 버스값을 주시면 전차표 사고 나머지로 왕사탕을
사먹었다. 여름에 왕사탕만큼이나 달콤한 전차를 타고 원효로 4가 전차 종점에
내리면, 한강에서 수영하거나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겨울에 노량진 정거장에서
내리면 한강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도 있었다.
전차길에 못을 놓아두면 전차가 지나간 뒤 못은 자석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때 자석을 지남철이라고 불렀다. 전차레일에서 놀다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몽땅 없어졌다. 단 한 대도 남기지 않고 하루 아침에 폐기됐다. 나 역시
전차에 대한 생각은 새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 전차를 실로 오랜만에 타본 것은 로마에서였다. 얼마나 가슴이
울렁거렸던지. 내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시대가 전차에 올라 앉는 순간 다시금
머리에 추억으로 방울방울 피어올랐다. 옛날 서울 풍경, 그 시대의 거리, 그리고
가난했던 생활들, 인정 많던 이웃들, 아름다웠다. 그 시대가 그리웠다.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일본 세와가야쿠에는 전차가 있다. 예전부터 계속 있었던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처럼 없어졌던 것을 다시 복원해 놓았다. 세와가야쿠는 일본에서
알아주는 부자 동네이고 주위 환경도 잘 꾸며진 곳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닥이 나무조각으로 된 예 전차가 구대로 땡땡땡땡거리며 달리고 있다.
그야말로 낡고 적당히 고물이 된 전차가 일본 최고 부자 동네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다.
언젠가 서울시 홍보관이라는 분이 나를 좀 만나자고 했다. 서울의 멋진
이미지를 만들기 위하여 이야기를 좀 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일본에 살고 있는
통에 본격 회합은 무산되고 말았는데 이 기회를 빌어 말하고 싶다. 서울의
이미지 메이킹에는 전차 복원도 한 방법이라고. 지금은 많이 황폐화(?)되었지만
서울에는 그래도 우리 옛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전차는 그들과도 잘 어울릴
것이다. 서울시가 추진하기에 경제적 이유로 시간이 걸린다면 관광 관계자나 이
방면에 뜻이 있는 민간인이 자금을 투자하여 서울 시내 관광코스로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의 높은 부동산 값 때문에 교통 목적이 아닌 관광 목적으로
전차를 복원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차의 묘미는
시내의 다운타운가를 구경하는 데 있을 것이므로 지하철의 한 구간을 지상으로
올려 전차전용으로 운행하거나 아니면 지상 전철의 한 구간을 복선화하여
운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히 특정구간 운행이 어려우면 놀이동산 같은
곳에서 운행할 수도 있고, 전차 차량만 백화점 입구나 일반 빌딩 한켠에 진열해
놓고 소속 빌딩의 홍보관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 점심시간쯤에
전차 소리도 울리고.
미국 영화에서는 지금도 초현대식 도시를 풍경으로 옛날 전차가 달리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많은 시민들이 직접 타기도 하거니와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그
한가로운 풍경에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 준다.
이번 글에선 일반에게 돈을 벌 수 있는 힌트는 별로 못 드린 것 같다. 그러나
혹시 서울시나 대기업에서 기획을 담당하는 분이라면 한번 고려해 보시는 것도
좋으시리라. 여의도를 전차로 한바퀴 돌린다든지 한강을 따라 전차 레일을 까는
것도. 그러면 서울 모습은 정말 평화로워질 것이다.
이미지로 팔리는 밀리터리 상점
우리나라 청년들은 성장기에 남다른 성인식을 치른다. 바로 군대이다.
청년기의 전반부는 거의 군입대에 대한 고민으로 소일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 빡빡 깎고 입대하면 불과 3년도 채 안되는 동안 최하 인간생활에서 말
한마디로 자기 부하 십여 명을 좌지우지하는 최정상의 지위까지 경험하고
제대한다. 분단의 현대사를 살고 있는 우리 청년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제대후 이른바 예비역들은 술만 먹으면 군 이야기다. 했던 이야기 또하고, 한
이야기 또 되풀이하면서 한동안 군 이야기로 세월을 지낸다. 알토란 같은 3년을
푸른 제복을 입고 지냈기에 할 이야기도 많을 거다. 군대의 영웅담은 늙어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도 그칠 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우리나라 남자들과 달리 일본의 청년들은 군대를 경험하지
못한다. 자위대가 있지만 우리같이 전국민이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개병제가
아니고 희망자에 한해서 직업으로 택하는 모병제다. 따라서 일본 청년들의 군
경험은 TV 드라마나 영화 속의 간접 체험이 고작이다. 그래서 그들은 군데
대해 갖고 있는 환상도 많다.
그들 가운데는 군대 환상을 쫓아서 군복을 사고 무기를 모으고 군 관련
상식을 다룬 책이란 책은 죄다 읽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밀리터리
매니아들이다. 일본에서는 이런 밀리터리 매니아를 대상으로 군 관련 이벤트도
많이 열린다.
후지산 밑 캠프에서 100여 명의 밀리터리 매니아들과 2차대전 모의 전투를
벌인 적이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서바이벌 게임과는 다른 이벤트인데
근본적으로 2차대전을 기념한다는 게 주된 취지다. 일본엔 독일군 매니아들이
많이 있다. 일본군과 동맹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 독일군의 군복
디자인과 휘장이 멋지고 무기, 오토바이, 자동차 등이 모두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절 표시와 비슷한 나치군 휘장이나 친위대
군복 등의 디자인에 있어선 현재까지 어느 나라 군대도 따라오지 못한다.
거기에다 독일군들의 상징인 귀를 가리는 철모는,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걸프
전쟁에서 미군들이 정식 헬멧으로 착용할 정도로 대단히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장비이다.
독일군으로 분장했던 오십여 명의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실제 2차대전
당시 독일군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뇌관과 노리쇠 부분이 밀납시킨 채 독일서
수입된 총들이다. 군복은 대부분 영국이나 미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진품은
아니었지만 겉보기엔 구별하기 힘들었다. 또한 장화나 철모 등은 일본에서
제작된 모조품이고, 액세서리, 혁대, 훈장 등은 진자도 있고 모조품도 있단다.
그날 독일군 한 명당 분장비는 최소한 백만 엔 이상(천만 원 상당)이었다.
독일군보다는 싸게 먹히지만 미군측의 분장비도 만만치는 않다. 미군 측
밀리터리 복장들은 모두 진품이었다. 독일군 것보다 물량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어 수입가격이 싼 때문이다. 난 어떤 친구에게 미군 사병용 동복을 빌려
입었는데 권총, 탄띠, 혁대가 진짜 그 시대 것이었다.
모의 전쟁은 연합군과 독일군 두 패로 나뉘어서 벌였다. 서바이벌 게임과
같은 방법으로 진지 탈환을 먼저 하는 쪽이 승리하는 것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서바이벌 게임과 달리 게임 승패엔 관심 없다. 그 시대 복장을 제대로
갖추고 독일군, 미군, 영국군의 기분을 맛보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게임은 빨리 끝나고 오후 내내 서로 마음 맞는 복장을 한 친구들끼리 기념
촬영을 하는 데 온통 시간을 보낸다. 모두 행복에 겨워하는 얼굴들이다. 그날의
이벤트를 주관한 것은 도쿄의 작은 밀리터리 상점이었다.
난 그날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날 모인 사람들 중에 우습게도 진짜
군대경험을 한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병영생활에 대한 내
얘기는 가짜 군인인 그들에게 무척이나 신비롭게 들렸을 것이다. 그들은 누가
군대지식을 더 많이 아느냐에 따라서 존경을 표시한다. 아무리 비싼 장비로
몸을 감고 비싼 무기를 지녔어도 그 시대의 군의 역사, 생활, 작전, 전사 등에
박식하지 못하면 매니아들 사이에서 주목받지 못한다.
이런 행사는 각 밀리터리 상품점에서 수도 없이 개최된다. 여기 참가하는
사람들은 최소란 우리 돈으로 천만 원어치 이상의 장비를 가지고 있다. 실로
엄청난 금액인데 모두 자기가 번 돈으로 구입한 장비다. 돈을 특별히 많이 버는
친구들도 아니고 연령층은 20대--30대가 대부분, 거의 샐러리맨이었다. 딴데
쓸 돈을 아껴 일년에 몇백만 원씩 장비를 구입하는 게 그들이다. 그래서 한
10년 정도 매니아 생활을 한 친구의 방은 독일군, 미군, 기타 각 특수부대의
군복, 무기, 군장 등으로 멋지게 장식되어 있다. 이런 취미생활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더 이상의 돈드는 딴짓은 절제하면서 여기에 투자한다.
다른 데서 만남 독일군 매니아들 한패는 이런 게임과는 별도로 자기들끼리
파티를 열고 자주 회합을 가진다. 친구의 결혼식 때 모두가 독일군 복장으로
가기고 하고 독일군이 나오는 영화엔 단체로 독일군 분장을 한 채 관람한 후
식사를 하면서 소감을 교환하곤 한다.
아무튼 일본의 밀리터리 상점은 이런 군장, 무기, 그리고 군 관계상품들을
모아 놓고 매니아들을 만족시키는 장사로 한 때 대단한 붐을 이루었는데 요즘은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밀리터리 상점이 등장한 지 이십 년이 흐른 지금은
기호에 맞는 것들도 하나씩 수입하기 때문에 상품판매가 예전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매니아들이 많이 늘고 있지만 이젠 서바이벌 게임세대가
된 느낌이다. 전쟁 역사에 흥미를 느끼는 밀리터리 매니아와는 그 구입 형태가
틀리다.
난 이런 장사가 우리나라에서 시작되면 대단한 붐을 일으키리라 생각한다.
일본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군대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군대 취향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 30대 이후 세대들은 실제로 군 생활을 체험했던
세대들이다. 자기 군대 시절 물건들을 보고 한번 몸에 감아보면 그때의 기억,
체험, 그리고 같이 복무했던 친구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 사업의 성공 포인트는 수입품목을 싸게 연결하는 것이 관건, 외국의 친한
밀리터리 숍과 그 구입시장 루트를 조사하고 친분을 맺는 게 선결문제이다.
그건 의외로 어렵지 않다. 일본 밀리터리 숍 주인들은 우리의 남대문시장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떼어가 그곳에서 개량하는 경우가 많다. 각국의 이런 시장들을
헤집고 다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재미를 붙이고 할 만한 장사다. 물론
서바이벌 게임 품목을 함께 취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군 복무시에는 모든 물품에 군용마크가 찍혀 있었다. 군복, 무기는 물론
속내의, 수건, 양말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이제 우리 생활 3년을 이겨낸 역전의
한국 청년들은 적어도 하나 정도 군용물품을 소지하고 싶을 것이다.
나름대로 새로운 사업이 될 수 있다.
빌딩 옥상에 푸른 정원을
조상들의 여유와 운치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유적을 들자면 정자를 빼놓을
수 없다. 물 좋고 경치 좋은 곳 치고 정자가 없는 곳이 없다. 그 정자 위에
올라서서 경치를 떡 하니 바라다 보노라면 산세는 더욱 수려하고 물은 한층
요요하다. 이쯤 되면 누구나 시조 한 수는 읊을 수 있어야 배달 민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울 시내 한복판에는 빌딩과 빌딩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그 속에는
뒤쪽부터 서열대로 배치한 성냥갑 같은 책상들, 담배 한 대 피우려면 우리
월급쟁이 이대리는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화장실로 갈 수밖에 없다. 그놈의
금연법인가 뭔가 때문에. 그래도 아버지 세대는 좋았다. 책상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우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으니까. 눈에 들어가지 않게 담배를 약간
비스듬이 꼬나물고 힘차게 허공으로 내뱉는 담배 연기는 그야말로 허공에
나부끼는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이대리는 화장실 창에 갇힌 조그만 하늘을
향하여 연기를 뿜으며 자조적으로 생각한다. 고교 시절 화장실에서 담배 배운
죄로 평생 화장실 신세를 못 면할 것 같다고.
이제 이대리를 화장실에서 탈출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해답은 의외로 쉽게
찾아진다. 빌딩에 정자 하나를 세우자. 어디에? 옥상에다 말이다. 어디건 옥상은
일단 그림이 좋으니까. 그 위에서 담배 피우면서 예전 조상님의 풍류도
생각하게 하자. 비단 흡연자뿐이랴. 옥상의 시원한 바람은 모든 빌딩인(?)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최근 일본의 두드러진 경향 중 하나가 동경 시내 건물 옥상에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다. 밋밋한 시멘트 바닥에 배관시설을 어디로 하고 흙을 깔아
제법 큼직한 정원수도 심고, 아담한 관목과 잔디로 옥상을 휴식공간으로 꾸민다.
물론 직원이나 손님들이 쉬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벤치를 놓고 차양막도
친다. 거기 앉아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도시 생활에 최소한의 운치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동경 시내 세계 최고의 토부 백화점이 처음 설계될 때에는 옥상이
아닌 백화점 내부 전체를 정원화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나무도 심고 새도
날아다니게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새들의 분비물에 대한 대책이 여의치 않아서
애초 계획은 축소되었고 1층에만 녹지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서울 종로에 세워진 제일은행 본점 1층 로비에 녹지가 조성된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는 녹지공간 조성에 대한
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은 것 같다. 토부백화점 8층에는 '그린하우스'라는 화원이
있는데 꽃만 파는 것이 아니라 노천 카페와 벤치 등이 화원의 녹지와 어우러져
손님이나 직원에게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 자체로 동경 시내의
명물로 자리잡아 백화점 매상에도 많은 보탬을 주고 있는 것이다.
빌딩을 지을 때 일정한 녹지공간을 조성하는 건설법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하지만 명목상일 뿐 오히려 좁은 공간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나무들을 봐야 할
때가 많다. 우리의 빌딩 옥상들은 회가, 병원, 관공서는 물론 아파트, 상가
건물에 이르기까지 그저 시멘트 바닥 일색이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그럴싸하게
보여도 죽지나 않을까 자물쇠로 입구를 폐쇄한 곳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삭막한
공간이니까 자살을 생각하는 것이다. 쾌적한 녹지공간에서 누가 죽음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일본에서 이미 번창하고 있는 빌딩 옥상의 녹지 조성 사업은 한국 사회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조경업을 운영하는 분이나 이
방면의 진출을 계획하시는 분이 있다면, 옥상조경 사업을 하나의 상품으로
개발해 보는 게 어떨까. 돈은 먼저 생각하고 빨리 행동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데. 이 사업은 도시환경에 일조하는 것인 만큼 환경 친화적 사업으로
각광받아 잘만 하면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 한복판 빌딩 옥상에 아담한 정원을 조성하고 그곳에 운치있는 정자라도
세워놓으면 바람이 정겨운 봄에는 휴식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외국인 바이어와 상담을 벌일 때에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제6장
달라지는 돈의 흐름을 읽는다
젊은이 취미를 공략하라
젊은이들 중에는 외곬수적인 생활을 고집하며 타인의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은
친구들이 많다. 아니 제멋대로 행동하는 게 차라리 현대 젊은이들의 특색인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영화감독 고다르와 트뤼포는 영화 '네 먹대로 해라'에서
현대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행동을 그린 적이 있다. 주인공이
차량절도 후 경찰을 죽이고 외국으로 도망가려다 결국 최후의 죽음을 당한다는
줄거리의 이 영화는 80년대에 미국에서 '브레드레스'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었는데 리차드 기어가 주인공으로 분해 열연했다. 이른바 굵고 짧게 한다는
이야기다.
굵고 짧게 살고자 하는 젊은이들은 꽤 많다. 그들에겐 미래가 없다. 현재가
있을 따름이다. 그들의 공통 분모는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이다. 브레이크 없이
계속 달려가는 기관차와도 같다. 누가 제동이라도 걸면 선로에서 퉁겨 나갈
것만 같다. 진짜 젊음의 열기 때문에 '숨도 쉴 수 없을 정도' 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의 생활방식도 시대에 따라 특성이 있다. 젊은 세대도
제멋대로인 점은 같지만 실생활로 나타나는 모습은 옛날과 좀 다르다. 간단히
말하면 어느 한 분야의 매니아가 된다.
일본에는 젊은 매니아들이 많다. 24시간 CD를 들으면 음악에 빠져 있거나
하루종일 비디오 게임에 미쳐 아예 화면 속으로 들어가 산다. 나아가 스킨
스쿠버나 트래킹 같은 등산여행에서 국제 봉사 활동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들의
취미는 실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이웃에 사는 와타나베라는 청년은 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게 그의 유일한 취미다. 그가 집에서 한푼의 원조도 받지 않는 걸
아는 터라 무슨 재주로 그 비싼 차를 몰고 다니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자기가
번 돈의 70%이상을 자기 차에 투자한다고 한다. 월급이 40만 엔 내외로
또래보다 4배. 특별히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게 아니라 3D직업 즉
위험하고(Dangerous) 불결하고(Dirty) 어려운(Difficult) 직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와타나베는 자기와 같은 자동차 취미족끼리 클럽을 만들어 자주
만나는 것 이외에 특별히 친구가 없으며 싸구려 방에서 끼니도 겨우 챙겨
먹는다. 술도 한번 마음껏 못 마시고 다른 레저 생활은 아예 즐길 엄두도 못
내지만, 퇴근 후 밤거리를 차를 몰고 다니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고 성취감을
느낀다고 한다.
비단 승용차가 아니더라도 이와 유사한 케이스는 많다. 예를 들어 페미콘
또는 게임보이라는 비디오 게임 소프트웨어가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열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미친놈으로 보일 정도다. 인기 있는
게임보이가 출시된다는 광고가 나오면 거리에 진풍경이 벌어진다. 꼭두새벽부터
아니 전날 밤부터 상점 앞에 진을 치는데, 아침에 상점문이 열릴 때쯤이면 1만
명 이상 줄을 서 있다. 누가 일본애들 아니랄까 봐 길거리에 질서 정연하게
도열한 그들과 함께 일본 경찰들도 줄지어 서 있다. 여기에 모인 1만여 명은
대개 20대 전후의 젊은이들이다. 이런 소프트웨어를 갖는 것이 최대 관심사인
그들은 엄청난 시간과 경비를 투자하는 것이다.
'오타쿠'라는 일본말이 있다. 원래는 집안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가지 않는
소극적인 친구들을 지칭했지만 현재는 넓은 의미로 매니아 또는
스페셜리스트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어 사용된다. 옛날엔 친구가 없는 애들이
혼자 집안에서 골몰할 수 있는 것에 매달렸지만, 요즘은 취미 생활에 빠져
친구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들이 바로 오타쿠족인 것이다.
이런 젊은이들이 특별히 몰리는 종목을 연구하면 그 사업은 절대 유망하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취미 대상에 대한 충성도가 강하여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영업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이런 젊은이들이 등장했다. 아직 사회적인 이목을 끌
만큼의 집단으로 성장하지 않은 것 같지만 컴퓨터나 레저 스포츠 쪽으로는
강력한 자기 취향을 가진 젊은 분중들이 포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각 기업체의
마케팅 부서나 광고 에이전시에 관련된 분들, 또는 중소기업체에서 직접 신상품
기획에 고심하는 담당자들이여, 이제 한국에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 한국의
오타쿠족을 연구하시라. 그들이 열중하는 아이템이 무엇인지, 무엇에 미치고
있는지, 그들의 다양한 취향을 상품을 개발해 시장에 선보인다면 여러분은
확실한 돈줄을 움켜쥐는 것이다.
워크엔드 사업에 주목하라
일주일은 7일이고 일요일은 휴일이다. 성서에 하느님이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쉬셨기 때문에 한 주일이 7일로 정해졌고 일요일도 쉰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일주일의 단위는 태음력을 사용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주일이 7일로 정해진 이유도 초생달에서 상현달
그리고 상현에서 보름, 하현, 그믐까지 변화하는 기간이 각각 7일이기
때문이라고 역학자들은 말한다.
현대인은 일주일 단위로 산다. 모두 주말만 기대하고 살기 때문이다.
서구사회에서는 토, 일요일 이틀이 휴일이다. 그래서 금요일 밤부터 휴일이
시작된다. 우리나라도 토요 휴무제나 격주 휴무제를 실시하는 회사가 제법
늘었다. 주말 휴일이 자꾸 늘어나면서 개인 생활이 중시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꼭 주말을 쉬는 날이나 노는 날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남들이 쉬는
주말에 버는 수입이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의 벌이를 상회하는 업종도
수두룩하다. 극장, 결혼식장, 백화점, 놀이공원 등 의외로 많다. 여러분이 주말에
놀러 다니는 곳을 생각하면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 업종은
남들이 쉬어야 영업이 가능한 직종이니까 당연한 것이고, 그래도 역시 주말은
쉬어야지 일해 봤자 일한 노임도 안 나온다고 하실 분도 계실 것이다. 우선 내
경험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자.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주변에 학교가 많은 곳이었다. 일요일이면 문방구가
문을 닫는다. 학생이 일요일날 등교를 안하니까 학생이 주고객인 문방구가 쉬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날은 갑자기 팩시밀리 용지를 사려고 온동네 문방구를 다
뒤진 적이 있었다. 영업을 하는 문방구가 하나도 없었다. 혹시 전기용품점에
팩시밀리 용지가 있을까 생각하여 동네 전기용품 가게까지 찾아다녔지만 역시
모두 휴무다. 잡화상도 문을 닫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히려 주말 전에
생활필수품을 미리 챙겨 놓을 정도다.
우리나라야 아직 이 정도는 아니지만 점차 일본을 닮아가고 있음이 틀림없다.
약국의 경우 주말이면 모두 휴무다. 동네별로 1개 점포씩 돌아가며 문을 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동네도 많다고 한다. 이발소 미장원도 마찬가지다.
사진관도 일요일에는 쉰다. 겨우 동네 구멍가게나 문을 열고 있을 뿐인데
이것도 언젠가는 일요일을 채길 것이다.
옛날의 헝그리 정신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계신 분이 주말에도 영업을
하신다면 평일보다 더 많은 수입을 확실하게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주인보고 매주말마다 일을 하라는 건 아니다. 평소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주말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면 아르바이트 비용을 제하고도 오히려 평일보다 벌이가
좋다. 거꾸로, 가게를 가지지 않은 분이라면 자기가 원하는 가게를 찾아가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면 어떨까.
주말 영업에는 평소와 다른 장삿법을 적용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문방구에는 요즘 유행하는 500원 코너, 1000원 코너를 꾸며서 무조건 1개
500원, 3개 1000원 하는 식으로 해 보아도 제법 장사가 될 것 같다. 일요일은
가족끼리 다니는 날이다. 엄마, 아빠가 애들과 함께 와서 필요한 물건을 사줄
수도 있다. 꼭 문구가 아니라도 장난감, 만화, 소프트게임 등 전략적 아이템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전시해 놓고 팔 수도 있다.
일본에서 늘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주말이면 항공기 회사에
아예 전화가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행기가 토요일 오후라고 안 뜨나,
일요일은 비행기 장사를 안하나, 서비스 업종이니 만큼 고객 응대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이라도 업무에 투입해야 되지 않겠는가. 자,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이것도 유망한 사업이다. '주말요원 파견회사' 즉
주말에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모집하여 그들의 능력대로 주말 요원이 필요한
회사에 파견해 주는 회사를 차리는 것이 앞으로 직원 복지 차원에서 주말에
휴업하는 회사는 더욱 많아질 것이고 이에 따라 주말의 회사 업무는 공동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 그런 회사가 있다. '포름 엔지니어링' 이라는 회사는 수천 명의
기능요원을 확보하고 필요한 업체들에 대해 일시적 혹은 상당 기간 인재를
파견하는데, 일본 전역에 지사를 두는 등 성업중이다. 물론 주말에만 한정하여
사람을 파견하는 것이 아니고 각종 전문 특수 기능직을 파견하는 업무가
주종이기는 하지만, 회사 관계자는 현재 주말 요원 파견을 하나의 독립된
상품으로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 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능인들 중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괜찮은 전문 직업인이 많은데, 로켓 설계사, 건축 기사,
컴퓨터 기사, 음향 영상 엔지니어 등이 수두룩하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어
능통자나 비서직을 전문적으로 파견해 주는 대행 회사가 업무를 개시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이 업종은 향후 번창할 것으로 확신한다. 어차피 세계 직업
추이는 프리랜서화되어 가고 있으니까.
이야기가 약간 옆으로 흘렀지만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은 하기도 쉽고 수입도
많다. 일을 억척같이 하지 않아도 요일을 바꿔 쉬고 싶은 분도 이런 방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은 아닐 테니까.
3D 산업이 움직인다
우리와 제일 비슷한 민족은 어디일까?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질문이다. 우선 유태인이 어떨까. 외국 타지에 나가 남들의 미움을 사가며
억척스레 돈벌이에 매달려 성공하는 점이나 부모들의 자식 교육열이 높은
점에서는 비슷하다. 80년대 들어 미국 동부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하는
외국인 학생 수가 유태인을 제치고 한국인이 수위를 차지했다고 해서 한때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이 점만 봐도 세계 1, 2위를 다투는 두 민족의
교육열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또 양국의 역사가 수난의 역사라서 그런지, 양국의 민요에도 단조가 많다.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비야 비야 비야 오지 말아라'로 시작되는 노래나
'하바나길라'는 이스라엘 전통 민요인데 모두 단조다. 그만큼 두 민족은 애와
한의 정서에서도 닮은 구석이 많은 것이다. 단지 역대 노벨상 수상자가 한쪽
국가는 세계 최고이고 다른 국가는 하나도 받지 못했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지만.
다음으론 아일랜드 쪽도 우리와 비슷한 민족으로 꼽아 볼 수 있다. 탐 크루즈,
니콜 키드만 부부가 주연을 맡은 영화 '파 앤드 어웨이'를 보면서 특히 그런
느낌을 받았다. 땅에 대한 집념, 쉽게 흥분하는 기질, 헝그리 정신, 그리고
복싱을 잘하는 것, 뭐 이런 것들을 비슷한 점으로 들 수 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은 성씨인 김 Kim과 이 Lee가 모두 아일랜드에 실제로
존재하는 성이란 거다. 아일랜드인과 영어서신을 주고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도 Lee 씨라는 서로 같은 성이라고 농담한 적이 있다.
그런데 유대인이든 아일랜드인이든 우리와 비슷하다고 느끼게 되는 가장 큰
공통분모는 역시 그 억척스러움이다. 70년대 헝그리 정신은 우리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근면하다는 말은 우리 한국인에게 늘 붙어 다니는 형용사였다.
중동의 건설붐 때는 바로 우리 삼촌, 형님들이 막노동으로 돈을 벌었다. 자주
드나드는 건물의 수위 아저씨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아저씨도 젊었을
때 싱가포르 공사 현장 막노동 반장으로 해외취업을 나갔단다.
몇 달 계속되는 공사로 남자의 욕망을 풀 길이 없던 아저씨는 동료들과 함께
그렇고 그런 집에 찾아갔었는데 국제교역 도시답게 아가씨들이 각 국가별로
즐비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인도, 필리핀, 중국 출신 여자와의 하룻밤은
비교적 싼 편에 속했고, 한국 아가씨도 있었는데 값이 비싸더란다. 그래도
고국의 아가씨와 정을 나누고 싶어 그 아가씨와 같이 방에 들어갔는데, 끝까지
별 말이 없던 그 아가씨는 수위 아저씨가 주는 돈을 마다하며 이렇게
한마디했다고 한다. 외국에서 고생하며 번 돈, 이렇게 헤프게 쓰지 말라고.
애잔한 추억에 젖어 드는 수위 아저씨의 모습이 두고두고 기억나곤 했는데,
평범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우리 현대사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찡했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 이만큼 살게 된 건 모두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3D 직종이란 용어가 신문에 보도되고, 힘든 일을 찾아 하는
젊은이들이 잘 눈에 띄지 않게 된 요즘 형편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일본에서 문제의 3D직종을 선호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수입이 좋다. 목수, 배관, 내장, 철근 등의 건설업이나
자동차 정비, 전기 수리 등 현장을 뛰는 직업의 경우 초봉이 대졸 신입사원에
비해 1.5배 이상이고 임금신장률도 훨씬 높다고 한다. 또다른 이유를 들자면,
좋아하는 일을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고, 육체노동으로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노는 '마이페이스'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 성취감이 일반 사무직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을 빠뜨릴 수 없다. 육체적 노동으로 얻는 만족감은 생활에 활력소가
될 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야구 선수가 슬럼프에 빠지면 가장 잘했을 때의 타격 모습이나 투구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보고 그 몸동작을 되뇌이며 자기 리듬을 되찾는다고 한다.
구조적 불황이라며 경제 걱정이 태산이다. 걱정만 하지 말고 잘 나가던 때를
돌이켜 보자. 그때는 우리 형님들이 하루종일 땡볕에서 일하고도 즐거웠다.
우리 누이들은 지금 임금의 절반도 훨씬 못 받고 하루 규정 노동시간이 8시간을
넘겨가며 밤늦도록 일을 했다. 모두 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다시
그때처럼 저임금 받고 야근까지 할 수는 없지만, 좋은 일 싫은 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는 일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린 한국인이니까.
광고비를 소비자에게 돌려 드립니다
현대는 광고의 홍수 시대다. 신문 잡지 TV 라디오 등 흔히 접하는 대중
매체는 몰론이요, 도심의 즐비한 광고판과 네온사인은 물론 달리는 버스와
택시에도 광고가 붙어 있다. 또한 각종 영화나 TV 드라마에 제작비의 일부를
제공하는 그 회사 제품이 영화나 드라마 속에 잠깐 비칠 수 있도록 하는
Product Place, 간접 광고라는 것도 생겨났다. 영화 '백 투더 퓨처'에서 주인공
마이클 J. 폭스가 나이키 신발을 신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장면은 대표적인
간접 광고이다. 직접 광고보다 그 효과가 대단하여 음료수 마시는 장면이
영화에 삽입되면 관객들은 그 음료수가 무슨 상표인지 관람 중에는 특별히
인식을 못하지만 영화 밖에 있는 상점의 해당 음료수 매상이 영화상영 전에
비해 상영 후에 15%나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이와 같이 광고는 우리 주위에서 쉬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를 세뇌시키고
있다. 그 결과 제품의 판매 성적은 광고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광고의 최대 문제는 엄청난 비용이다. 광고 비용이 제품 원가의 절반을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광고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회사는 대기업
쪽이고 아무래도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광고에 대한 영업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판매
방법이 여러 가지로 시도되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른바 피라미드식 판매
기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피해가 속출하여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 일본에서는 광고를 하지 않고도 판매 성과를 올리는 아주
이색적인 광고 전략이 성공을 거두었는데 바로 노브랜드 상품이다. 말 그대로
제품에 상표가 없다. 브랜드는 원해 그 제품을 고객에게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광고를 위해서 만들어졌으니 만큼 광고를 하지 않는 마당에 브랜드가 필요 없는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많은 노브랜드 상품들이 '무인양품'이라는 아이템으로 좋은
반응 속에 수익을 올리고 있다. 즉 브랜드가 없는 상품끼리 모아 하나의 그룹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 상품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브랜드
없는 자체가 또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이 노브랜드 상품 즉 무인양품은 냉장고, 밥솥, 전화기 등의 가전제품에서
의류 자전거 가구 침대 등의 생활용품은 물론, 라면 사탕 과자 등 음식류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맹 다양하다. 물론 이들 다양한 무인양품은 한 회사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여러 중소업체들의 상품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인데
자연스럽게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된 것이다. 여기에 힘입어 각 중소기업들은
상호협의하에 일관된 관리 체제를 형성하여 품질을 심사받고 중간 유통과정
없이 판매매장도 공동으로 운영함으로써 제품의 질도 유지하면서 원가를
절감했다.
일본인들은 무인양품에 대하여 신뢰감을 가지고 산다. 가격이 대기업에 비해
훨씬 싸고 품질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품목의 경우 오히려
무인양품의 질이 대기업을 앞선다고 믿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동네에서 판매되는 많은 두부는 브랜드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 제조 두부보다 동네 두부를 많이
산다. 두부는 제품의 특성상 상하기 쉬워 전국적인 체인을 가진 대기업
제품보다 동네 조그만 회사의 제품이 더 믿을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노브랜드 상품 성공에는, 동네 두부의 예에서 보듯이, 고객들의 품질에 대한
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전국적인 디스트리뷰터보다 동네 조그만
회사가 유리하다. 또한 대기업에서 판매되는 제품이라도 특정 아이템은 모두
중소기업에서 OEM방식으로 공급받아 판다는 사전 지식이 고객에게 인지될수록
좋다. 그리고 브랜드가 없거나 취약한 중소기업들도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대기업에 대응하는 판매 전략을 꾸준히 세울 경우 더욱 효과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특별히 인식을 못해서 그렇지 동네 두부 말고도 인기 좋은 노브랜드
상품이 많이 있다. 수도 없이 쓰러져 가는 우리 나라 중소기업이 나가야 할
길을 노브랜드 상품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내가 돈 버는 이야기를 풀었다. 써 놓고 보니 별로 뾰족한 것
같지도 않다. 단지 실제 돈을 번다기보다도 이런 각도에서 생각도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생각하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즉 딱딱한 여러분의 머리를 약간 말캉말캉하게 할 수 있는
트레이닝 정도였다.
이제 마지막 언저리에서, 내가 나이는 별로 안 들었지만 그래도 자격이
주어진다면 잔소리를 좀 했으면 싶다. 물론 돈 버는 데 필요한 잔소리다.
그런데 모든 잔소리가 그렇듯이 원칙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그 원칙적인 것이
잘 지켜지지 않을 때 말이 길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원칙적인 이야기 하나
하자. 약속은 돈이다. 현대 사회가 신용을 바탕으로 하고 계약에 근거하여 모든
비즈니스가 진행된다. 신용과 계약에 근본이 바로 약속이다. 약속을 깨면
벌금으로 바로 환산되는 사회가 일본이다. 약속에 관한 한 돈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그 사회에서 착오는 있을 수가 없다. 싱가포르의 경범죄 단속은
유명하다. 길거리에 침이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것은 물론이요, 건널목이 아닌
곳에서 차로를 횡단하면 벌금이다. 특히 공중변소에서 소변 후 소변기에 물을
내리지 않아도 벌금 대상이란 건 조금 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사회
전체에 유익하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면 문제될 건 없다.
얼마 전 TV퀴즈에 출연한 젊은 여성이 있었는데 TV출연의 변이 재미있다.
이 우승 상금이 필요해서 출전했다고 한다. 돈이 필요한 이유는 비디오 대여
연체료 때문이란다. 아니 무슨 비디오 대여 연체료? 그냥 미안해요, 하고
대가리 한번 벅벅 긁으면 그만일 텐데.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는다.
이 여성은 비디오테이프를 한 개 빌린 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비디오 대여 사실을 깜빡 잊고 1년 동안 가지고 있었다. 나중 이사간 집으로
비디오 가게 청구서가 날아왔는데 우리 돈으로 백만 원이 넘는 거금이다.
비디오 테이프 1개 사는 데 이삼만 원이 고작인데 무슨 백만 원씩이냐고
생각하는 게 우리의 상식이지만 그 청구서에는 하루 벌금 삼천 원 곱하기
365일해서 나온 액수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이러한 원칙이 우리의 상식을
넘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일본에서 한일 합작 만화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며칠 전 내 만화영화의
일본 측 애니메이션 감독이 갑자기 다리에 중풍기가 와서 난리를 쳤다. 약속한
날짜에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너무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있어서 그런
것이란다. 기가 찼다. 다리가 아파 오면 쉬어 가면서 자기 건강 자기가
관리해야지 약속 때문에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쯧쯧, 이게 우리 상식이다.
그러나 이 친구는 애초에 만화계 입문할 때부터 자기 선배에게 이런 식으로
일하는 것을 배웠고 또 그렇게 일해 왔기 때문에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다. 안
그래도 답답한 일본 생활에 이런 융통성 없는 갑갑한 일들은 한심하기까지
느껴지지만, 놀라운 일은 나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도 일본 생활에 적응하면서
그렇게 변하는 것이다. 사업의 약속도 철저히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비디오
테이프 반환 날짜도 철저하게 지킨다. 여기선 미안하다는 말 대신 돈이
나가니까.
그래서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융통성이 없으니 대형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우리나라의 대충대충 빨리빨리는 일면 현장에서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항상 사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일본은 약속이 있고 그것이 지켜지는 반면 우리는
약속이 있으나 지켜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본에는 벌금이 있고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개인이나 회사, 단체 또는 사회가 냉정하고 철저하게 약속을 잘
지켜야 하고 여기에 대한 적절한 제도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미안하다
말하고 적당히 넘어가려다가 안된다는 말에 화를 내는 우리 자신부터 먼저
바뀌어야 한다.
국제무역, FAX 통신판매로
'전화 한 대로 돈버는 법'에 대한 책들이 일본서점가에 즐비하게 꽂혀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현상이다. 전화 하나로 할 수 있는 장사야
예로부터 많이 있었다. 돈놀이든, 전화정보 사업이든, 하지만 앞의 책들이
다루고 있는 건 하나같이 '통신판매'란 업종이다. 특히 통신판매를 통해
국제무역을 거뜬히 해치우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는 게 공통점이다.
일본의 우리집 앞 길가에 자그마한 수입상품 코너가 있는데 하나는 '파리'라는
이름의 잡화상점이고 또 하나는 이탈리안 브랜드 전문 가게이다. 이 두
상점에는 완벽하게 프랑스제, 이탈리아제 외국상품이 빽빽히 들어차 있다. 일본
물가가 워낙 비싸다 보니 일제가 외국제품보다 비싼 것이 보통인데 예외가
프랑스, 이탈리아제 패션용품들이다. 적당히 비싼 가격의 외제품이 아주 다양한
상표와 품종으로 뒤섞여 있으며, 가격폭이 비교적 크다. 가게 주인들은 모두 이
분야에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개인상점치고 관리를 잘하여 장사는
잘되는 편이다.
어느 사업이나 마찬가지지만 주인이 자기 사업분야를 잘 알고 좋아해야
성공한다. 가게 주인 아줌마들은 둘 다 멋쟁이인데 브랜드 취향도 고급스럽다.
개인적으로도 가게 상품의 원산지인 프랑스, 이탈리아에 자주 가고, 또 그쪽에
아는 사람을 통해 도움을 받아 가게가 꽤 번지르르하다.
주인 아줌마들이 물건을 사러 직접 외국에 가는 경우도 있지만 구매
목적보다는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물품 구매는 외국
통신판매 카탈로그를 이용한다. 통신판매사업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발달해서 조금만 알아보면 외국의 통신판매용 카탈로그 한두 장은 쉽게 구할 수
있다.
일본에 있는 우리집도 통신판매를 가끔 이용한다. 슈퍼나 서점에서
통신판매용 잡지를 사온다. 필요한 제품 목록을 잡지 뒤에 붙은 신청용지에
작성하여 해당국가에 FAX로 보낸다. 2주 후 목록에 있는 광고보다 자세한
회사 카탈로그가 카드결재 안내문과 함께 우편으로 도착한다. 거기에 OK만
하면 물건이 배달되는 식이다.
집안에 앉아서 사진을 통해 물품을 확인하고 FAX로 주문하면 원하는 물건을
집까지 배달해 주니 얼마나 놀라운가. 따라서 통신판매용 잡지를 다양하게
구하여 알뜰하게 아이템만 선정한다면 외국 한번 나가지 않고도 수입품 전문점
운영은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시 제품 선정이다. 현지에서 싸고 한국에서 비싼 것을
찾거나 아예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것을 골라야 한다. 물건에 따라서 가격이
비싸도 품질이 어떠냐가 중요할 수 있고, 똑같은 물건을 현격하게 싸게 살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따라 수입국이 결정되고 수입상품의 성격이
결정된다. 악세사리 등 잡화만 팔 수도 있고 페르시아 카펫 같은 단일 품목으로
상품을 전문화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 가게를 오픈하고 물건이 팔리기 시작하면 본인이 외국을 한두 번
방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경우 본인의 여행하는 기쁨도 기쁨이려니와 그
나라를 직접 방문하여 상품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감각을 익힐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여행하기가 마땅찮을 때는 그 나라로 가는 패키지 여행편을
이용해도 좋다.
해외 단체 여행객들이 가끔 똑같은 포장을 한 물건들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여행사 가이드가 특별히 매장에 똑같은 물건 여러 개를
부탁해 놓은 경우이다. 이런 물건은 통상 그 나라를 대표하는 제품으로 가격도
저렴하고 누구나 한 개쯤 부담없이 갖고 싶은 것이 대부분이다. 유럽 여행의
경우 몇 개국을 경유하는데 이 때 여행사 가이드는 아예 각국마다 똑같은
물건을 사전 신청하여 단체로 배분한다. 이런 물건은 본국에 들어오면 그대로
돈이 되는 물건이다. 단체 여행지의 다수 구매에서 확인했듯이 인기도 있고
가격이 우선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여 다량 구매하는 것도
통신판매를 활용하는 또다른 방법인 셈이다.
통신판매를 이용한 수입가게는 무역의 오퍼와 개념이 틀려서 거래수량이 적고
최종판매까지 본인이 해야 하기 때문이 판매 타깃을 잘 잡아야 한다. 제일
무난한 대상이 직장 여성과 아줌마들이다. 그래서 회사 단위의 직장 여성을
공략하거나 아파트 아줌마들의 입선전에 의한 고객 확보가 효과적이다.
또 직접 수입용품 가게를 운영하기가 여의치 않을 경우 통신 판매 수출을
생각하면 된다. 대상은 일본이 좋다. 일본은 통신 판매다 활성회되어 있고
환율차가 커서 수출하기에 딱 알맞은 나라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아이템을 주변에서 고르거나 국내용 통신판매 카탈로그를 이용하여 아이템을
선정한다. 아이템이 결정되면 일본에서 판매되는 통신판매용 잡지에 광고 게재
신청을 한다. 광고 게재 요령은 잡지에 상세하게 안내되어 있으니까 일본어만
이해하면 만사 OK, 가격만 적당하면 어떤 아이템도 좋다. 내가 그 회사
해외영업 사원이 되는 셈이다.
외국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충분히 이익이 남는 돈을 받고 일본 전역에
퍼져있는 다큐빙 즉, 집까지 배달하는 운송체제 편으로 보내면 피니시. 어떤
상품이고 일본제품보다 한국 물건이 비싼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템만 잘
정하면 의외로 큰돈 벌 수 있는 장사다.
집안에서 혹은 주택가 조그만 가게에서도 팩스기 한 대로 무역도 하고 비교적
손쉬운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 통신판매의 장점이다.
인터넷으로 통신판매를 할 수도 있지만, 매스컴이 떠들어 대는 만큼
대중화되어 있지는 않으므로 팩스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사업이 정착되고
팩스로 충분한 노하우를 습득한 뒤라면 인터넷으로 무대를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마누라에게 은근히 돈 벌어오기를 바라는 분들이 계신다면 마냥 바라고
있지만 마시고 처음에는 조금 도와주시라. 통신판매용 잡지도 구해 주고
FAX나 인터넷도 설치해 주고, 그 다음은 마누라가 신이 나서 뛸 일만 남게
되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비디오 제작업
비디오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익히 아는 유명한 영화부터 제목조차 생소한
영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비디오가 우리의 대여를 기다린다. 일반적으로
비디오하면 영화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영화는 비디오로 담을 수 있는 많은 영상
중 한 부분일 뿐이다.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가 아닌 '기획
비디오' 라는 종목인데, 실제 생활에 관련된 취미나 교육 등을 다루는 비디오를
말한다. 예를 들면 여행 낚기 음식 육아 스포츠 등의 비디오가 여기에 속한다.
최근 일본 비디오 업계에 영화 이외에 이런 종류의 기획 비디오가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데 그 중 인기 있는 것이 직업이나 자격증을 따기 위한 비디오
강좌이다. 특히 인터넷 강좌 비디오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인터넷에 관한 한
일본도 한국과 같은 초보수준. 매스컴이 연일 인터넷. 인터넷 떠드는 시점에서
비디오 교육을 착안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웬만한 비디오 대여가게에 대여섯
개씩 비치되어 있는데 언제나 누군가 벌써 빌려간 상태인지라 빌리기도 힘들다.
하지만 막상 빌려 보면 30분짜리 작품에, 나레이터 한 명이 인터넷 화면을
차례로 설명한 것을 제작비도 별로 안 들이고 만든 것에 불과하다.
그럼 이 사업의 특징을 살펴보자. 이 사업은 제작 기술보다는 아이템을
포착하는 노하우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좋은 아이템을 선정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만 잘 섭외한다면 비디오 제작 기술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인터넷 강좌 테이프 중에서 '인터넷 서핑' 같은 작품은 단시일에 1억
엔(8억원)을 벌였다는 소문이다.
이 사업을 주저하는 분들의 주된 이유가 우선 자신이 비디오 제작을 못하니까
걱정이 앞서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비디오 제작에 대한 경비가 엄청날 것
같아서 고개를 내젓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비디오 촬영에 드는
비용이 전문 나레이터나 촬영기사 인건비 포함하여 일이천만 원선 그리고
테이프 복사비 및 공테이프 비용, 만 개를 제작한다면 천만 원선. 그러니까
삼천만 원 안짝이다.
특별한 촬영기법이 필요치 않고 촬영내용의 전문가를 초빙해 강좌식으로 주욱
찍은 작업이니 만큼 편집도 간단하고 큰 어려움이 없다. 만약 조금 욕심을 내어
특별한 영상 지원을 받거나 출연자가 인기인인 경우는 예외가 되지만, 그 영상
판권을 사고 출연 개런티를 지불한다 해도 이런 종류의 비디오를 제작할 때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하여 대충 5천만 원이 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비디오 강습물 제작 하나를 예로 들어 보자. 운전면허
비디오. 여러분 자신이 운전면허가 있고, 보기 싫지 않게 생겼다면 일단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아예 무사고 30년 모범 택시기사 아저씨가 있다면
더 좋다. 장소는 운전강습소 노는 날을 하루 이틀 빌려서 섭외하면 되고, 촬영은
비디오 전문 촬영 프로덕션에 맡기면 된다. 일반 결혼식 비디오 촬영 수준이면
OK! 나중에 비디오로 출시되면 운전면허를 막 따려는 10대들이나 운전에
공포감을 갖고 있는 여성들에게 좋은 기획물이 될 것이다.
이런 류의 비디오가 현재 일본에 출시된 것을 살펴보면 영어 검정시험 강좌는
급수별로 제작되어 있고 건설관련 자격증시험 강좌 등 많이 있다. 이 기획
비디오의 장점은 그 수요가 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사람은 꼭 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특징 분야의 아이템을 선정하면 그 시장규모를
가늠하여 수량에 맞게 제작하면 별반 손해 볼 것도 없다. 판매망은 기존 비디오
도매업자에게 위탁하여 일반 비디오 가게에 공급해도 좋고, 좀더 직접적으로
신문잡지에 광고를 내서 주문 판매를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비디오를 얼마나 세련되게 제작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이 기획 비디오 분야의 포커스는 실용성이기 때문에 일반 다큐멘타리나
영화의 영상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그냥 자막이 줄줄이 나오고 사림 얼굴만
장시간 고정되어 화면에 비쳐도 그 내용이 아하 맞아! 저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 이 비디오는 가치가 있다.
요즘 한국에서 건강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고 다이어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런 것을 기획해도 좋을 것이다.
애프터서비스가 흐름을 바꾼다
최근 우리 기업들의 주제어는 '고객'이다.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니 '고객감동
경영'이니 하는 슬로건들도 결국 기업 경영의 열쇠가 고객에게 있음을 고백하는
고해성사에 다름 아니다. 구호에 그쳤던 '손님은 왕이다'의 수준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고객의 불평과 평가를 직접적인 기업경영 아이디어로 삼는 시대가 될
것이다. 어떤 회사는 상징적으로 회사 서류 결재란의 사장 칸 위에 고객의 칸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고객이 최종 결재자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고객지향의 경영'의 열풍도 경영자나 오피니언 리더들의
일방적인 소망일 뿐,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요원한 이야기다. 항공기 탑승객이
악명은 높지만 스튜어디스까지 덩달아 같은 수준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다. 고객
감동을 외치는 회사의 애프터서비스도 약속한 시간에 맞춰 집을 방문하지
못한다. 직원의 고객 응대 태도는 전에 비해 많이 친절해졌다. 그러나 워낙
일이 많다 보니 일일이 약속 시간을 지키진 못한다는 하소연이다. A/S를
신청하려 전화를 돌려보면 계속 통화중이다가 겨우 통화가 되는 걸 생각하면
일이 바쁘긴 바쁜 모양이다. 회사도 직원들에게 친절하라고 강요만 했지, 진짜로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회사 차원의 시스템 마련에는 인색한 것이 아닌지.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모름지기 회사를 경영하는 데 애프터서비스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자동차 산업이 해외로 진출 할 때 완제품 차의 성능과
영업망 확보 못지 않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자동차 부품을 안정되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센터 시스템의 구축이다. 아무리 영업을 강화해도 철저한
애프터서비스만큼 효과적인 영업은 없다. 이런 접에서 일본의 애프터서비스는
한마디로 '칼'이다.
한번은 일본 우리집의 에어컨이 고장나서 서비스 센터에 연락했더니 약속된
시간에 회사 점퍼 차림의 30대 담당 직원이 왔다. 그 친구는 더운 방안에서
상의 작업복도 벗지 않고 땀을 흘리며 오랜 시간 에어컨을 수리했다. 무릎을
꿇은 채로 말이다. 한참 뒤 새로운 부속이 필요하다면서 본사에 들렀다
와야겠다고 한다.
"좋도록 하슈."
두 시간 뒤에 부속을 갖고 돌아온 그는 또다시 땀을 펑펑 쏟았다. 나랑
비슷한 연령으로 일본에선 소위 울트라맨 세대. 장시간 작업시간 중에도 내가
무슨 자신 선생이나 부모가 되는 것처럼 무릎꿇은 자세를 한번도 풀지 않았다.
이윽고 모두 고치고 그가 나가려 한다. 꼭 수고비를 주고 싶었다. 무더운
여름날 두 번씩이나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리고 성실하게 고장난 에어컨을
고쳐 주었다. 공손히 물었다.
"얼마면 됩니까?"
그는 정색을 하고 애프터서비스 했다는 사인만 해 달란다. 그리고 계속 주고
싶다고 해도 정중히 거절했다. 사례비를 거절한 것은 사례비가 적어서도 아니고
자기 월급이 많아서도 아니며 내가 한국인이라서 거절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원칙이 그렇고 교육을 그렇게 받았기 때문이다. 자기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애프터서비스는 진정 고객 감동을 준다,. 내가 그
회사의 열렬한 팬이 되었음을 물론이다. 입 선전만큼 효과적인 광고는 없다.
값비싼 TV CF도 감히 따라올 수 없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개인의 조그만 상점도 애프터서비스가 필요하다.
고객은 간사하다. 조금만 더 친절하면 죄다 거기 모인다. 우리가 왜 돈버는
일을 마다하랴 TV 한 대 팔기는 쉽다. 그러나 같은 사람에게 다시 또 한 대
팔기는 어렵다. 값비싼 신문 TV 광고보다 조용하지만 성실한 애프터서비스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는 건, 어느 시대에나 흔들리지 않는 불변의 진리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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