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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이나미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

by Casey,Riley 2023.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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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
이나미

  이 책에 부쳐 - 때론 미치고 싶다는 심정이 뜻하는 것   최일남(소설가)
  나는 이나미 씨가 (문학사상)을 통하여 소설가로 등단할 때부터 유심히 눈여겨
보고 있다.
  우연히 (물의 혼)이라는 소설의 심사를 맡았던 나는 기교 면에서는 미숙한
점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장래를 기대케 하는 재기 넘친 창작의 기틀은 잡혀
있어 주저없이 추천했던 것이다.
  그녀의 첫 수필집 (여자의  허물벗기 )발문에서 박완서 씨가 (타고난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문학성)을 높이 평가했는데, 나 역시 이나미 씨는 무엇인가
앞으로 대성할 것 같은 기대감을 갖고 있다.
  이제 30대에 접어든 젊은 여성으로서, 이나미 씨만큼 다재 다능하고,
종횡무진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은 그리 흔치 않을 것 같다.
  정신과 의원의 원장으로서 본업에 열중하면서도, 두 아들의 어머니로서, 또
종가집 맏며느리로서의 고달픈 삶을 딛고, 그녀는 글쓰기와 방송에도 남다른
정열을 쏟고 있다. 그야말로 1인 5역인지 6역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녀는 신문은 물론 달마다 서너 군데 잡지에 고정 칼럼을 쓰고 있다고 한다.
라디오나 텔레비젼 프로그램에도 등장하는데, 특히 토요일마다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 (생방송 여성)의 사회를 맡고 있으니, 의욕도 대단하고 정력도 보통이
아닌 것 같다.
  그녀의 글을 읽거나 방송을 들으면서 내가 감탄해 마지않는 것은,
현학적이라고 할 만큼의 박학 다식함이다.
  그것은 그녀가 갖고 있는 교양과 지식의 폭이나 깊이를 가늠케 한다.
  그녀가 수재 중의 수재라고 이를 만한 것은, 어려운 의학도의 길을 걷는
한편으로 동서고금의 명저와 문학 작품을 중학생 시절부터 10여 년간 낮밤을
가리지 않고 섭렵했다는 점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런 폭 넓은 교양과 여러 분야의 학문적 지식에다가, 그녀의 뚜렷한 주관과
신념, 그리고 사물을 관찰하고 비판하는 안목도 대단해서, 우리 사회와 문화가
안고 있는 비리와 부조리를 예리하게 파헤치고 고발하는 왕성한 비평 정신을
지니고 있다.
  그런 그녀가 젊음, 남부럽지 않은 가정과 직업을 갖고도, 늘상 울분과 불만과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아직도 남녀 불평등의 전통이 확고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진정한
해방을 희구하는 그녀의 투철한 소명 의식과 불꽃 같은 투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여성의 진정한 해방은 성에 있어서의 평등을 쟁취하고, 여성을 옥죄고
있는 갖가지 타부의 올가미를 벗어나야 한다는것을 그녀는 힘주어 외치고 있다.
  첫 번째 수필집에서와 같이 그녀는 이번 수필집에서도 (책을 써나가면서 얻게
된 또 다른 기쁨은, 여자의 입으로도 성에 대해 대담하게 말할 수 있으며,
동시에 품위를 지킬 수 있다는 가능성 )을 찾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지난해에 낸 수필집 (여자의  허물벗기 )에 수록된 (첫 경험으로부터의
자유)에서, 여성에게 강요되는 순결성이란 (처녀성에 대한 신화화를 통해 여자
혹은 자신의 딸들을 옭아매는 것)이라고 갈파함으로써, 획기적인 여성의 성
해방을 용감하게 선언한 바 있다.
  남자들의 첫경험은  개방적인 사건 이고 자랑거리일 수 있다고 전제하며,
그녀는 이렇게 썼다.
  (처녀막이 파괴되었다고 해서 그녀가 더럽다는 말인가. 우리를 낳아주신
어머니들은 모두 처녀가 아님이 분명한데, 그러면 그분들이 모두 더럽다는
말인가)
  내가 아는 한 사회적인 명성 있는 여성으로서 그처럼 대담하고 솔직하게
남녀의 성 평등을 주장한 글은 이나미 씨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남성 본위의 사회적 제도와 규범, 그리고 가부장 제도 아래의
가정에서, 오랜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온 한국 여성들의 한맺힌 울부짖음과 같은
것이며, 그 때문에 뜻있는 여성들의 한결같은 박수 갈채가 이나미 씨에게
보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번째 수필집은 현대인의 내면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광기와 이성 에
대한 글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녀는 이 수필집에 실린 여러 그에서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라고 또 한번
어느 누구도 감히 입 밖에 내기 어려운 고백을 하고 있다.
  (마음속에 숨어 있던 미친 기운과 은밀한 욕망들이 아메바처럼 커지면서
흉물스럽게 변하기 시작하는데, 때론 감당할 수가 없을때도 있다. 광기와 이성,
내 마음속에 동거하고 있는 그 둘의 서먹한 관계가 앞으로 좋아지기를
바란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벗어난 사람들, 이른바 미친 사람들을 치료하는
입장에 있는 정신과 의사가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컬하고 기막힌 현실의 물구나무서기인가.
  이 수필집의 여러 글에서 이나미 씨가 미치고 싶을 때란, 근원적으로는 남성
본위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감내해야 하는 억압과 속박에서 오는 스트레스의
항존성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겠다.
  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정숙하고 완벽한 주부라는 껍데기를 벗고, 살아
있는 영혼의 숨쉬는 자유를 떳떳하게 꿈꾸고 싶다)라는 것이며, 그래서 (나도
가끔은 미치고 싶을 때가 있다)라고 토로하는 것 같다.
  미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어떤 정상 상태에서의 일탈과 자기 행동에 대한
몰지각 내지는 무의식적 상태에 빠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때, 누구든지
대소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광기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느 모로 보면 우리가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20세기는 문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대요, 변전무상한 광기의 시대였다고 부를 만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했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치르고, 세계 도처에
무자비한 파괴와 대량 학살의 광기가 판을 치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설상가상으로 국토 분단의 비극과 동족상잔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채,
한국병이라고 일컬어지는 온갖 사회의 병폐와 부조리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일상 대화에서 (미치고 싶다)든가 (미치겠다)든가 (미쳤다)라는 말이
빈번하고 자연스럽게 마구 튀어나오는 까닭을 이 수필집의 첫 번째 장 (천사의
광기, 악마의 광기)를 통하여, 저자는 정신 분석학에 기초한 이론을 알기 쉽게
풀어 가며, 그 건전한 승화의 방법을 제시해 준다.
  그래서 (광기는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촉매제)일 수도 있다고 전제한 다음,
누구의 마음에도 존재하는 광기 혹은 광기에 대한 부러움을, 이른바  끼 라고
하는 활력의 촉매제로 활용하도록 권하기도 한다. 광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럴싸한 삶의 지혜라고 부를 만하다.
  두 번째 장 (여자 속의 남자, 남자 속의 여자)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그 뒤틀린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서, 여자는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길을 찾아야 하고,
남성을 여성의 적이 아니라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보고, 남녀간의
고민과 갈등을 건강하게 풀어가야 한다는 묘법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여성의 외도, 죄악인가 인간 해방인가)에서는, 남성들의 외도만을
당연시하는 사회 통념을 공박하며, 그런 성 차별의 풍속이 지속되는 한 여성의
외도도 어느 모로는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대담하고 신념에 찬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세 번째 장 (마음이 아픈 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 있는 (자살의
충동과  한중록 ) (강간 피해자가 받는 또 다른 고통) (의처증과 의부증)등의
글은, 상처받은 여인들에게 정신과 의사로서의 상담을 통해서 삶에 대한 의욕을
북돋고 희망을 안겨 주는 열정을 담고 있다.
  특히 자살의 충동을 느낀 적이 있던 이나미 씨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들려주며, 그 죽음의 늪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생생하게 고백한 대목은 누구나
공감과 감동을 가질 만하다고 느껴진다.
  네 번째 장 (껴안음의 문화 사랑)에서는 (내가 흘린 눈물의 세가지 의미)
(사랑이 지나치면 상처도 깊다)등의 글을 통해 책과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저자 특유의 문화 접근법, 단순한 비판이 아닌 따뜻한 마음으로 껴안는 문화
사랑을 재미있게 들려준다.
  이상 여러 편의 글에서 정신과 전문의, 종가집 맏며느리, 검사의 아내, 두
아들의 어머니, 텔레비젼의 고정 엠시 등 다양한 이름표가 붙는 그녀 자신에
대해 정직하게 해부하고 있는 대목도 흥미 진진하다.
  한마디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현대인, 특히 현대 여성들의 시대적이며
공통적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저자의 독특한 진단과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글이 저자의 체험을 중심으로, 답답한 어둠의 그림자에 가려진 부분의
삶과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케 하고 있어, 특히 많은 현실적 난관 속에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거나, 삶에 지쳐 고민하는 이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라고
싶다.
  저자는 이것이 자신의 신변을 중심으로 한 세상 일과 사람의 일을 써모은
마지막 수필집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나미 씨가 너무 여러 방면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 데 대한
자성적인 결심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그녀를 아끼는 뜻에서 이제 팔방미인적인 자리를 차츰 멀리하고,
그녀의 의욕과 재능을 집약적으로 발휘하여 대성의 길을 지향해 주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그녀가 모든 제약과 자기 구속성을 극복하고 보다
자유롭고 진솔한 글을 열심히 쓴다면, 소설가로서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글쓰기를 위한 긍정적인 의미의 광기, 끼 를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저자의 말 - 진짜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차례
천사의 광기, 악마의 광기
나도 가끔은 미치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안에 잠자고 있는 광기에 대한 매혹.
광기 없는 세상은 없다.
광기야, 나도 미치고 싶다.
광기냐, 창조성이냐.
정신병 공포증.
정신과 의사, 무엇하는 사람입니까.
컴퓨터와 백마 탄 왕자.
뜨거운 반항의 계절 십대.
포스트 모더니즘과 정신 의학.
매력적인 독신 남자 칸트.
도덕 불감증 시대의 영웅.
(생방송 여성)과의 새로운 만남.
나의 길, 나의 인생.
나를 치료하는 글쓰기.
여자 속의 남자, 남자 속의 여자
여자다운 남자, 남자다운 여자.
행복이라는 환상 깨기.
안 팔리는 여자 신드롬.
여자가 여자에게 보내는 화살.
여자를 키우는 남자, 남자를 키우는 여자.
이 시대의 거인.
여자를 죽이는 여자들의 본성.
속하지 않은 자의 길 찾기.
완숙한 사랑은 권태와 방황의 터널 끝에 있다.
사랑과 증오의 이중주.
여성의 외도, 죄악인가 인간 해방인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사랑.
비오는 날의 추억, 어머니.
천재를 키우는 법.
마음이 아픈 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못생긴 미인에게 보내는 박수.
착한 여자들에게 보내는 이상한 사랑 이야기.
자살의 충동과 (한중록).
정신의 지배를 받는 육체의 표정.
강간 피해자가 받는 또 다른 고통.
술을 사랑하시나요.
의처증과 의부증.
행복을 만들어 내는 영약은 없다.
사각 지대에 갇힌 남자의 고민.
기쁨을 위한 전주곡.
만점 엄마, 빵점 엄마.
전자 게임기 증후군.
천국을 떠나는 예수님과 부처님.
어린 아들과 나눈 죽음 뒤에 오는 세상 이야기.
우리의 희망이 있는 곳.
껴안음의 문화 사랑
 자기만의 방 이 있나요.
 후남 의 홀로 서기, 그 고통스런 시작.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둘 다 피해자다.
내가 흘린 눈물의 세 가지 의미.
 맹구와 오 서방 을 좋아하는 까닭.
브라운관 속의 진짜 스타.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나는 여인, 까미유 끌로델.
사랑이 지나치면 상처도 싶다.
프롬이 일깨워 준 사랑의 기술.
나는 누구인가.
사회적 성공과 사랑의 균형 잡기.
문화는 반드시 효율적인가.
아메리카 콤플렉스.
달콤함을 위한 변명.
정신 의학과 미술의 결혼은 가능할까.

    나도 가끔은 미치고 싶을 때가 있다
  까마득히 높은 탑 위에서 트럼펫을 불고 있는 늘씬한 미인. 카메라의 위치가
옮겨지면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이 파란색 배경을 뒤로하며 점점
멀어진다.
  식자들에게는 그 상업성 때문에 예술적 가치를 높이 인정받지 못하지만,
나같이 별것 아닌 것에도 잘 감동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나는 순진하게도 그 광고를 볼 때마다 가슴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르는
묘한 떨림을 경험하곤 한다. 높은 탑의 상징은 복잡한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하고, 트럼펫의 맑은 선율은 속세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를 표상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가끔은 그런 여인을 흉내내고 싶다. 하루하루를 빠듯하게
동동거리고 살면서, 사람들에게 부대끼며 실망하고 화내고 속상해 하면서, 가슴
한구석에서 은밀하게 꿈꾸는 완벽한 자유, 혹은 절대 고독 때문일까?
  아이를 둘이나 키우는 서른이 넘은 여자가, 게다가 그럴듯한 의사라는
껍데기를 쓰고 남들에게는 짐짓 점잖은 체하는 사람이, 그런 광기를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몰래 키우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자신을 왜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까.
  성실한 주부로서의 자의식과 현숙한 어머니로서 가져야 할 덕목이 스스로를
구속하기 때문에, 내 안에 잠자고 있는 뜨거운 삶에 대한 갈망을 억압하고
질식시키려는 건 아닐까.
  주부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나는 그런 식의 은밀한
소망까지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일까.
  주부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아름다운 이미지 --근면함, 따뜻함, 정숙함, 사려
깊음, 성실함-- 뒤에 숨어 있는 어두운 느낌의 그림자들 --반복되는 일상, 보상
없는 노동,권태, 무의미함--이 내 자유로운 언어까지 숨죽이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하루 일과 가운데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시간이 가장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주부 라는 직업이다. 아니 중요하다기보다 내가 아무리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일종의 종신 직업이다.
  나는 스스로를  의사 이나미  이전에  주부 이나미 로 생각할 때가 더 많다.
실제로 내가 더 많이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며 동시에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부분도 가정 주부로서의  나 다.
  즉, 나는 자신을 주부와 동일시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주부안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혹 주부가 아닌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뒷바라지를 완벽하게 받고
있는 남자들이 주부 스트레스니, 주부들의 정신 건강이 어떻느니, 문제가 있느니
하고 얘기할 때, 스트레스를 풀려면 이렇게 해라 이러쿵저러쿵 충고할 때,
당당하게 살아라, 자신있게 살아라, 즐기면서 살아라 하면서 그럴듯하게
위로하고 격려하는 척할 때 몹시 화가 난다.
  심지어는 도대체 주부 노릇이 어떤 것인지나 알고 그런 좋은 말로 우리를
가르치려 하느냐고 따지고 싶기까지 하다.
  그런 말들 속에는 주부들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생기면 그 모든 책임은 제대로
인생 사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주부들 자신에게 있다는 숨은 뜻이 있어, 마음을
상한 주부들을 더욱 좌절의 늪 속으로 빠지게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부들의 불행, 권태, 미칠 것 같은 마음, 불만이 모두 주부 자신의
미숙함 때문인 양 매도한다. 그 사람들의 논리는 사회 전체가 썩어도 가정을
지키는 여자들은 절대로 도덕적으로 오염되어서는 안된다. 일탈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떳떳하고 진실하게 산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남편들 대부분은 속된 말로 바람도
피우고 이런저런 남자들만의 재미도 보면서, 주부들의 답답증과 터질 것 같은
욕구 불만을 해소하려는 몸부림은 왜 못 본 체하는가.
  자기들은 울화가 쌓인다며 술도 마시고, 밤새워 도박도 하며, 골프도 치고,
낚시도 하며 삶을 즐기려고 하면서, 그 뒷바라지를 뼈빠지게 하고 있는 아내들이
뭔가 출구를 찾으려고 한다든가, 자기를 찾으려고 노력하면, 무슨 바람이다
탈선이다 하면서 경멸하거나 도덕적 타락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이중적 도덕군자들에게 난 가끔은 조금
큰소리로 따지고 싶다.
  제발 여자들의 심리적 갈등이나 사회적 소외감을 단순화시켜 마치 우리들의
스승인 양 가르치고 훈계하려 들지 말고, 주부가 지금 어떤 괴로움을 겪고
있으며, 그 갈등의 원인인 사회적인 모순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함께해
볼 의향은 없느냐고 말이다.
  많은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이 여러 가지 다양한 집단을 연구해 왔지만,
거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간의 삶을 지속해 나가는 데 가장 필수 불가결하고
기초적인 일을 하는 주부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들에 대한 조사는 이제껏
적극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부는 가정에서 마치 공기와 같은 것이어서, 없으면 잠시도 살 수 없지만
있을 때는 그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다.
  남자들처럼 월급을 갖다 주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무언가 -경제적
용어를 쓰면 재화-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일까.
  주부는 항상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뒷바라지만 하게 되어 있기 때문일까.
주부들의 노고는 그 힘든 정도만큼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보편적인
경우라 하겠다.

  우리나라 같이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가정 주부 집단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매우 완충적인 역할을 맡는다.
  그 첫째는 고용 면에서의 신축성 있는 쿠션 역할이다. 경기가 나빠져 일자리가
모자라면 주부들은 집에 머물면서 조용히 남편이나 아이들 뒷바라지를 한다.
  또 반대로 경기가 좋거나 전쟁이 나서 사람이 모자라면, 남자들이 하던 자리를
시간제 근무 혹은 임시직으로 메워 준다.
  그런 식의 비상근직은 얼핏 아이를 키우는 주부들에게 매력적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얼마나 억울하고 서러운 자리인지 모른다.
  단순 노무직도 근로기준법상 신분 보장이 되어 있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해고를 당하지 않지만, 주부에겐 그런 일정 기준의 신분 보장 제도가 없다.
  물론 퇴직금도 없고, 고용 조건에 대해 다른 사원들과 힘을 모아 협상할 수도
없어, 열악한 조건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참고 견디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고
하겠다. 그러니 집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비정규
고용직이라, 다른 가족들이 조금 불편하다고 불평하거나 그녀의 일을 이해하지
못할 때, 직업에 대한 의무감 혹은 소명 의식의 부족 때문에 충동적으로 일을
그만두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주부의 바깥일은 아무리 가정 경제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해도 일종의
떳떳하지 못한, 주부 자신을 위한 욕심이라고 오해받기도 한다.
  둘째, 주부가 맡는 완충 역할은 스트레스 많은 현대 생활 속의 유일한 휴식
공간인 가정을 꾸려 나가면서, 사회적 갈등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 해결해 주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사회적 불평등이나 소외감이 폭발적인 문제로 비화되지
않는 이유는, 그나마 이 땅에서 희생적인 주부들이 가정을 지키고 힘든 일을
도맡아 참고 견디며 살아가기 때문이 아닌가.
  즉, 바깥 세계에서 아무리 설움받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집에 들어와 부인에게
혹은 어머니에게 어떤 식으로라도 위로를 받으면 그냥저냥 참을 수 있으므로,
가정은 사회적 갈등과 긴장을 풀어 주는 기능이 있다는 뜻이다.
  많은 남편들이 부인과 아이들을 때리거나 학대하기도 하는데, 이는 물론 그
사람들의 심리적인 병리 현상이기도 하지만 복잡한 산업 사회에서의 구조적
갈등이 드러난 한 예라고 볼 수도 있다.

  흔히 가정은 재생산의 공간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런 말 뒤에는 숨은
뜻이 있다. 바깥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해서 다시 일할 힘을 얻는다는
논리다. 나는 그들에게 그러면 주부들은 어디서 재충전을 하느냐고 묻고
싶어진다. 가정이 휴식의 공간이라면 그 쉼터를 만들어 주는 그 누군가, 즉
주부가 있다는 얘기인데, 그럼 그 주부들은 어떤 것을 보상으로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희생을 무한정 계속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집안에서도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느라 자기 자신의 건강은 저만치 뒷전에 놓아두기 쉽다.
  생각해 보라. 맛있는 음식을 자기만을 위해 만들어 본 적이 있었는가. 자기의
취미 생활을 위해 목돈을 용기 있게 써본 적이 있었는가. 주부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무슨 일을 시작하려 하면 쓸데없는 일에 돈을 낭비하는 것 같아 괜히
죄스럽고 불안하지는 않았던가. 그런 식으로 우리는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들을 길들여온 것은 아닌가. 자신을 버리고 죽여 가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몽땅 희생하고, 자기를 조금씩 조금씩 죽여 가지는 않았던가.
  주는 만큼 받지 못해 절망하고 외로워하는 자신의 영혼을 느낀 적은 없는가.
  그것을 감히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왜 불행을 느끼고
답답해 하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한 것은 아닌가.
  그저 이제껏 살아온 방식대로 모든 것이 내 탓이라며 스스로를 닦달하고 벌한
것은 아닌가. 그래서 의사기 이전에 한 평범한 주부로서, 여자 환자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더 이상 스스로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당신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욕하고 싶은 대상이 있으면 큰소리로 외치십시오. 원망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가서 따지십시오. 그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구조적 불평등이
느껴지거든 비슷한 사람들끼리 단결해서 그것을 깨보도록 노력하십시오.
  나 자신도 이 땅에서 여자 노릇을 하며 겪는 나름대로의 절망과 외로움을
어리석고 미숙하게나마 감당해 나가야 하기에, 주부들의 문제에 대해 아마 더욱
예민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주부라는 이름에서 도망쳐 나와 나만의 비밀스런 공간속에 숨어
버리려고 하는 소망이, 아마도 텔레비젼 광고의 그런 심상한 장면에 괜히 감동해
코끝이 찡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 궁상스러움을 이제는 좀 떨쳐 버리고 싶다. 정숙하고 완벽한 주부라는
껍데기를 벗고, 살아 있는 영혼의 숨쉬는 자유를 떳떳하게 꿈꾸고 싶다.
  나도 가끔은 미치고 싶을 때가 있다고 말이다.
    내 안에 잠자고 있는 광기에 대한 매혹
  [정신과 의사예요]하고 내 직업을 밝히면, 사람들은 몇 가지 재미있는 반응을
보인다.
  첫째 반응은 [어머, 무섭지 않으세요]하며 마치 내가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살아 돌아온 탐험가기라도 한 것처럼 경외의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정신병자라는 사악하고 위험한 존재가 우글거리는 그런 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나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다.
  [그런 이상한 환자들은 전기 치료나 화끈하게 약물 치료를 해야죠?]하며 다소
비극적이고 비장한 얼굴로 묻기도 한다.  나는 정신 질환자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그들에게 대다수의 정신병자들이 얼마나 다감하고 예의바르고 착한지 보여
주고 싶을 때가 많다.
  그 둘째 반응은 [아이구, 내 심리를 다 분석하시겠네요. 말조심해야지]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마 정신과 의사가 등장하는 영화나 책을 본 적이 있어,
신경증이나 심리적인 접근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하다.
  유능한 정신과 의사라면 물론 통찰이나 직관으로 환자를 쉽게 파악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오랜 시간 깊은 면담 치료를 해야만 그 사람의 정신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 때문에 내가 그들의 정신을 단박에 해부해 버릴 거라는 걱정 은
사실 부질없는 망상이다.
  소녀 시절 정신과 의사가 되리라고 마음먹었을 때, 난 정신병자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한창 남을 위한
희생적인 꿈을 키웠던 사춘기다운 낭만으로, 아무리 위험하고 어려운 길일지라도
그들을 위해 내 일생을 바치리라고 결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좀더 정직하게 자신을 돌이켜보면, 남을 위한다는 건 뻔히 속이
보이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때 내가 생각한 정신 의학은 나
자신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주지 않을까 하는 비밀스런 통로처럼 보였던
것이다.
  정신 의학을 공부하다 보면 내 안에 곪고 있는 마음의 병을 자가 치료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얄팍한 기대 말이다. 아마도 내 안에 잠자고 있는 광기에 대한
매혹이, 오히려 비참한 정신병자들에게 홀린 듯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해서 날 끌어당겼던 정신 의학이라는 학문은, 그러나 내게
신비로운 황홀경보다는 실망과 좌절을 안겨 줄 때가 더 많았다.
  인간의 마음에 대해 프로이트나 융의 정신 역동을 말하고 있으면, 생물학적
인식을 하는 자연과학자로서의 또 다른 나 자신에게 사정없이 경멸당하곤 했다.
  그 반대로, 화학 물질과 분자로 인간의 정신 세계를 설명할라치면, 마치
영혼을 헐값에 팔아 버리라고 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빠져 버린 파우스트
박사 같다는 묘한 느낌에 빠지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은 어떤 식으로 설명해도 뭔가 미진할 수 밖에 없다는 느낌은,
의사로서의 내 게으름을 적당히 합리화시켜 줬던 것이다.
  자신의 정신을 어떤 식으로 접근해서 파악하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세계관에 연결된 문제기도 하다.
  흔히 사람들은 모든 것이 물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유물론을 택하느냐,
아니면 그래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한 형이상학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느냐 하는 두 갈래 길에 서 있게 된다.
  아직 내 자신의 세계관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고 말할 입장이 아니어서
그런지, 난 항상 정신과 의학을 보는 태도가 어정쩡하다.
  그럴 때면 저물어 가는 이십 세기의 스타였던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가끔
한자리에 놓고 차이점을 저울질하곤 한다.
  전자는 유물론, 후자는 정신적 환원론의 딱지를 붙여 보통 간단히 생각하는
듯하다. 말하자면 마르크스는 세계를 경제 원리로, 프로이트는 성과 무의식의
원리로 파악한다고 보는 셈인데, 요즘엔 그 둘에 대한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
  우리 시대에는 절대적인 유물론도, 정통파 심리주의도 그 절대적인 힘을 잃어
가고 있다. 모든 것을 상대적이며 다양하고 융통성 있게 파악해야 된다는 말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따라서 아무리 그 둘을 놓고 고민한다 해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요즘 나도 유행따라 포스트 모던 식으로 정신과 의사로서 내
색깔을 적당히 타협해 가며 사는 것 같다. 유물론과 심리주의는 사실 동전의
앞뒤처럼 서로를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어설픈 상대주의적 무소견에 빠져
있어, 어떻게 보면 퇴폐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고통받는 환자를 구출하는 전쟁 영웅 같은 모습의 정신과 의사와
사람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는 무당 같은 정신과 의사, 그 둘은 솔직히 말하면
다 허상에 불과하다.
  정신병이 있으면 뇌에 작용하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투여하고, 신경증이 있으면
가벼운 항우울제나 진정제를 주면서 자기 능력껏 면담 치료를 하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의사는 자연 이라는 옛 라틴 속담이 있다. 사실 정신과 의사란
환자들 안에 있는 멋진 신통력을 재발견해 키워주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조수임에
불과하다. 따라서 물질이냐 정신이냐를 고민하는 내 모습도 자연의 신비
앞에서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일에 불과한 게 아닐까.
    광기 없는 세상은 없다
  김씨는 정신병원에 2년 가까이 입원해 있는 이혼녀다. 남편은
술주정뱅이에다가 툭하면 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다고 가족들은
말한다.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결국 정신병을 얻었지만, 미친 여자를 부인으로 둘
수 없다는 남편에 의해 친정으로 내쫓겼다. 그러나 친정에서도 남부끄러워
정신병자와는 같이 살 수 없다고 하여, 이젠 병이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생활인으로 돌아갈 길이 막혀 버렸다.
  박군은 이십대 초반을 조울증과 싸우면서 보냈다. 조울증은 비교적 예후가
좋은 편이라 증세가 가라앉으면 일반인들과 별차이 없이 지낼 수 있는 병이다.
  그는 지금도 별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지만 번번이 취직 시험에 떨어져
고민하고 있다. 그처럼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몇 번의 정신병원
입원으로 군대 복무를 마치지 못한 그가 면접 때마다 병역 면제 이유를 물어
보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정신병 치료를 받은 사실을
얘기했기 때문이다.
  정신 장애자나 신체 장애자들은 일종의 허약한 소수 집단이기 때문에 사회의
강한 다수는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대신, 이기적인 통념으로 그들을
일종의 속죄양으로 낙인 찍어 따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즉, 그들에게는 아무 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편견이라는 그물에
가둠으로써, 자신들 안에 숨어 있는 진짜 추한 얼굴을 감추려 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자신이 썩고 미쳐 있으면서 겉으로는 점잖고 건강한 척 가장하는
자칭 정상인들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정신 장애자들을 경원하고 박해한다는
얘기다.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교묘한 사회 폭력은, 모든 고정 관념과 그의 시녀인 권력이 드리우는 어둠
가운데 단연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광기에 대한 두려움, 일탈 행위(사회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에 대한 양가 감정 (남모르게 금지된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와
한편으로는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질투 섞인 증오)때문일까.
  사람들은 자신이 정상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로맨스니 뭐니하는 그럴듯한
말로 미화하지만, 똑같은 일을 남이 저질렀을 때는 비도덕적인 스캔들로
매도하려 한다. 또 자기 안에 있는 욕구 불만이나 상대적인 박탈감을 그보다
강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정면으로 대결하기보다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 대한
억압에 앞장섬으로써 엉뚱하게 해소하려 든다.
  사회가 불안할수록 그 사회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교묘한 권력 조작이
필요하다. 독재자들 혹은 썩은 권력자들일수록 박해 받는 소수의 희생 집단을
만들거나 용인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연장하려 한다는 말이다.

  전체주의 사회일수록 매스 미디어를 장악하고 대중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사실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굳이 들먹거리는 것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나치 치하에서 6백만의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하고 모진 핍박을 받았던 것은
히틀러 개인의 잔혹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군국주의가 사회를 일원적으로 지배하고 통치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적개심과
갈등을 배설할 분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즉, 독일 국민들은 열렬한 충성심을
나치에게 바치고, 대신 유대인이라는 분노와 살의의 해소 대상을 선물받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도 비슷한 얘기가 남아 있다. 컴퓨터와 로켓이 생활의 일부가 된
현재까지도 케이케이케이 단이라는 인종 차별 테러 집단이 존재한다. 백두건을
쓰고 흑인들을 무차별 약탈,방화,린치하여, 그들이 백인 사회에 끼여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사실 케이케이케이 단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주로 백인들
가운데서도 하층 계급이기에, 자신들도 여러 가지면에서 불평등한 대접을 받고
있다. 때문에 사회에 대한 증오심과 불만이 많은 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정적 충동과 공격 본능을 흑인들에게 전이시켜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보다는, 자기 안의 살의나 갈등을 임시 변통적인 방법으로 해소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났던 한인에 대한 흑인들의 폭동도, 사실은 백인이
장악하고 있는 매스 미디어와 공권력이 교묘히 선동한 것이라는 주장도 이런
논리와 통하는 것이다.
  조금 덜 억압받는 사람이 그보다 더 억압받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핍박함으로써
자신이 지배 계층에 속해 있다는 착각에 빠져,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엉뚱하게
환기시키기도 한다.
  한편 권력의 정점에 있는 진짜 지배 집단은 약한 집단들끼리 이렇게 서로
으르렁거리는 광경을 느긋한 마음으로 즐긴다.  안타깝게도 그런 일들이
미국이나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뿐 만아니라 이 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장애자들이 이웃에 살면 땅값이 떨어지고 아이들 교육에 나쁘다고 데모하는
이기적인 지역 주민들이 있는가 하면, 정신병자들은 치료할 필요 없이
기도원이나 복지 시설에 수용하는 게 상책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이도
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미국의 인종 차별주의자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보낸
독일의 나치에 비해 결코 낫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경제적으로는 고도의 후기 산업 사회에 속할지 모르겠지만 의식 구조는
아직까지 봉건 시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미친 사람들은 귀신에
씌웠으니 굿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든가, 광증은 치료해야 소용없으니 평생
동안 가두어 두고 짐승처럼 밥이나 먹이면 된다든가 하는, 정신과 의사인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들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자기 주장이 강한 개성적인 사람보다는 동조화 경향이
강하고 타자 지향적인 사람들이 점수를 많이 받고 출세도 빠른 획일화된 사회기
때문에, 정신과 환자들은 자폐적인 아웃사이더에 불과하다. 그래서 혹 자신의
불행을 딛고 건강을 되찾아도 부비고 들어설 자리가 없을 수밖에 없다.

  여학교 시절, 나는 순진하게도 영화 (초원의 빛)에 나오는 것 같은 이상적인
정신병원, 즉 완벽한 재활 시설을 갖추어 놓고 있으며, 퇴원 후에도 무리 없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병원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하리라고
꿈꾸던 적이 있었다.
  또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은 마음을 앓고 있는 정신병자들이며, 나는
그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리라고 결심하기도 했었다.
  물론 거기에는 사춘기 소녀다운 치기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사회에 나와
정신과 의사가 되고 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고 실망스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너무나 많은 환자들의,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스스로의
감정과 영혼의 활기가 익사할까 봐 오히려 무감동해지는 내 모습.
  열심히 치료해 봤자 데려갈 사람이 없어, 평생 동안 병원에 갇혀 지내야 하는
환자들 때문에 생기는 사회에 대한 격렬한 분노를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 묻어
두어야 하는 얄팍한 나, 괴상하고 객관성 없는 보험 행정과 의료 체계 속에서
잔돈푼에 불과한 면담료를 받고 오랜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어야 하는 정신 분석
치료를 과연 해야만 하느냐는 문제로 회의하는 나, 그리고 면담중 가능하면
에너지를 아끼려 애쓰는 지금의 이기적인 나는 분명 예전에 상상했던 내가
아니다.

  이렇게 자신도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못하니, 완전히 나은 정신병자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지 않으려는 보호자들이나, 사회와 무조건 격리시키면 능사인 줄 알며,
수용소 경영자들의 로비 활동에 넘어가 엉터리 정신 보건법을 어물쩡
통과시키려는 사람들을 큰소리로 비판할 용기도 나지 않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돌이켜보면 단테. 바이런. 실러. 휄더린.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스트린트버그. 카프카. 헤밍웨이 등의 작가들과 미켈란젤로. 다빈치. 고호.
캐링턴. 카로 등의 천재 화가들, 또 베토벤. 슈만 같은 음악가들뿐 아니라
크롬웰. 나폴레옹. 처질 등의 정치가들은 모두 그 강도야 다르겠지만 분명 정신
질환을 앓았다.
  물론 모든 정신 질환자들에게  비상한 능력이나 천재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수의 천재들 중에는 분명 그들 속에 공존하는 광기 때문에 이
사회에서 내쫓기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나혜석. 이중섭 등의 화가나 성악가 윤심덕. 또 현재 살아
있는 몇 사람의 작가 가운데에도 정신병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겪었던 고초는 편견으로 가득 찬 사회 전체가 책임질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힘있는 사람들의 무기 놀음이나 땅 뺏기 싸움보다는 자신의 영혼 안에 남다른
광기를 품고 있는 비상한 천재들의 작품에 의해, 역사는 아름답게 빛나지
않겠는가. 자신의 재능으로 이 세상을 축복해 줄 가능성을 가진 그들의 개성이
비틀리고 억압받지 않으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독특함과
비일상성을 조금은 더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정신 장애자들은 더럽고 위험하고 포악하다는 잘못된 고정 관념을 버리고,
우리 안에도 그런 부분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 또 누구나 일생에 한번 쯤은
그들처럼 고통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할 수는 없을까.
  그들에게도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더불어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우리가
약하고 핍박받는 그들과 사랑을 같이 나눔으로써, 우리 자신의 삶도 더욱
성숙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들이 겪어 보지 못한 어려움을 훌륭하게
극복한 탓에, 훨씬 더 깊이 있는 영혼으로 빛난다는 사실을 왜 우리 사회는
외면하는 것일까.
    광기야, 나도 미치고 싶다
  얼마 전 모 교수가, 정신과 의사들은 미친 사람을 오래 상대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들도 정신병자가 된다고 말했다 한다. 적잖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던진다. 융이나 설리반 등의 천재적 정신 분석의가 정신 질환을 앓았다가
회복되었다는 일화는 있지만, 통계적으로 정신과 의사가 보통 사람보다 정신
질환의 발병률이 더 높다는 보고는 없다.
  단지 환자들과 오랜 시간 상대하는 것 자체가, 심리적 고민과 거리가 먼
이들에겐 이상한 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치료자 자신은 여러 가지
감정을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 도대체 우울증이 뭐냐, 열등감을 왜 느끼냐고
반문하는 의사에게, 자신의 갈등을 호소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한편, 치료자 자신이 내면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경우 환자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질 수도 있지만, 역전이 현상이 생겨, 자신의 과거 경험에 오염된 채
치료에 임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해롭다.
  예를 들어, 자기 아버지가 알콜 중독 환자였기 때문에 지나친 적개심으로
술꾼을 본다든가, 가정에서 고부 갈등으로 시달리는 남자 의사가 시부모에 대한
원망을 호소하는 젊은 여성의 상담을 기피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의학, 즉 메디신의 어원이 무당에있듯, 특히 정신과 의사는 영적으로 더욱
풍부해야 할 것이다. 미숙한 의사가 인생 상담을 한다고 나서는 것은 참으로
코미디 같은 일이다.  나도 때로 어느 순간, 탈진된 듯한 느낌이 몰려올 때가
있는데, 스스로에게 능력 이상의 것을 너무 요구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생긴
대로 살아야 속편한데,  더 완벽해라, 더 성숙해라 는 닦달에 지친 까닭이다.
  이성과 더불어 광기를 품에 안을 수 있는 성품을 만드는 과정은 마치 도와
진리를 찾는 수련 과정과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면, 혼자말을 하며 씩
웃는다. [광기야, 나도 미치고 싶다!]
    광기냐, 창조성이냐
  잭 니콜슨이 주연한 (샤우트)란 공포 영화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개봉되지
않았다. 장면 장면이 너무 끔찍한데다가 설정이 비윤리적이고 황당무계한 면이
많기 때문이다.  그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작가와 그의 아내, 그리고 외아들이 외진 호텔로 향한다. 관광시즌이 아닌
겨울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주인공 남자는 소설을 쓸 작정이다. 그들은 비어
있는 호텔을 관리해 주는 대가로 약간의 돈을 받기로 했다.
  눈이 너무 많이 와 아무도 찾지 않는 넓은 호텔에서 주인공 남자는 하루 종일
타자기 앞에만 앉아 있다. 아내와 아들은 그가 멋진 소설을 쓰고 있는 줄은 알고
있으나, 근접을 못하게 하니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남편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예감이 들어 몰래 쌓여
있는 원고지를 들춰 본다. 놀랍게도 똑같은 알파벳 활자 하나만이 수백 장 쌓여
있는 원고지에 찍혀 있다. 남편은 하루 종일 똑같은 알파벳만을 두드렸던
것이다. 아내의 놀란 모습을 본 남편은 영 다른 사람이 되어 광기를 드러낸다.
그리곤 호텔에서 도망가려는 아내와 아들을 끔찍한 방법으로 죽이려 든다.
  쫓고 쫓기는 장면은 한치의 여유도 없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운데, 잭
니콜슨의 환상과 현실을 오버랩해서 보여 준다.
  영화의 후반 동안 잠깐잠깐씩 니콜슨의 광기를 상징적으로 설명해 주는
장면들이 삽입된다. 몇십 년 전 바로 그 호텔에서 억울하게 죽은 한 악령에
사로잡혀, 아내와 아들을 죽여야 된다는 망상과 환청이 주인공을 지배했던 것.
  영화의 압권은 도끼를 들고 있는 니콜슨과 그의 아들이 미로로 만들어진 덤불
숲을 헤매는 장면. 공포에 질린 아들을 쫓는 아버지의 광기 가득한 눈동자는
이미 악마의 그것. 몇 번이나 죽음의 위협을 넘긴 모자는 마침내 연락을 받고 온
사람들에 의해 구조된다.
  십여 년 전에 본 영화라 세세한 부분까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도
붉은 피로 가득 찬 방안, 칠흑 같은 어둠 속, 하얀 눈으로 덮인 정원의 나무들과
선명하게 대비되던 남자 주인공의 헐떡이는 얼굴이 생생하다.
  별것도 아닌 공포 영화를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아마도 정신과
의사로서의 직업 의식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소설가는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는 유능하고 따뜻한 가장이었는데, 광기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의
창조성도 멈추어 버렸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지닌 창조적 충동이 한순간 흉포한 살해욕으로 바뀌어 자신과 가족을
지옥으로 모는 과정은, 천재의 광기가 정신병자의 망상으로 타락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실제로 환자를 만나다 보면, 그 같은 괴기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
때가 없지 않다. 최근에 면담하고 있는 한 중년의 점잖은 화가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평소에는 그지없이 신사적이고 따뜻하지만, 일단 작품의 구상이 잘
안된다거나 창조적인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꼬투리를 잡아 아내를 구타하기도 하고, 가재 도구를
집어던지기도 한다. 아내를 의심해서 다른 남자와 지낸 사실을 고백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심리 검사상, 망상적 경향이 높고 자기 중심적이며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그는 그야말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이중적인 그와는 도저히 살지
못하겠다는 아내를 결코 놓아줄 수도 없다. 어린애처럼 아내에게 매달리는
심약한 부분 때문이리라.
  그에 대한 진단은 망상형 정신 장애 혹은 편집증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 질환
중에서도 가장 치료하기 힘든 이 병은, 합병증인 알콜 중독이나 파괴적 행동등이
더 문제일 때가 많다.
  일전에도 처갓집 식구와 아내를 몰살한 한 살인범의 기사가 신문지상에 실렸던
적이 있다. 범행 당시의 상황은 아마 웬만한 공포 영화 이상이었으리라.

  천재적인 예술가 중에는 그 같은 광기 혹은 성격 질환을 가진 경우가 드물지
않다. (희랍인 조르바)로 유명한 시인 카잔차키스, 간질 발작과 폭발적 성격의
도스토예프스키, 우울증에 시달렸던 바이런, 망상형 정신 분열증 환자였던 고호.
그렇다고 광인은 모두 천재적인 사람이라거나 천재에게는 전부 광기가 있다는
식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천재성은 그들 안에 있는 광기가 너무
강할 경우 희생되고 분열된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작품을 쓸 때 물론 번뜩이는 영감과 독특한 감성도 중요하겠지만, 더욱
절실한 것은 자기의 작품 혹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균형 감각과
이성의 힘이다.
  예를 들어, 너무 지나치게 자기 작품에 몰입해서 자제력을 잃고 자기애적
환상에 빠질 경우, 제삼자에게 오히려 혐오감을 줄 수도 있다.
  프로이드는 모든 예술적 충동 혹은 지적 활동의 기본은 리비도라고 했다.
  흔히  리비도는 곧 성욕이다. 라고 잘못 오해해서 프로이드를 범성주의자라고
공격하거나, 성적 방종이 인간의 해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프로이드의 성욕설은 포르노에서 묘사되는 싸구려 성욕과는 명백히 다르다.
오히려 리비도란 인간의 삶의 의지, 혹은 모든 행위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인간의 리비도가 광기의 모습으로 나타날지 혹은 창조적인
영감으로 승화될지는 그 자신의 자아 강도에 달려 있다. 즉, 리비도가 좋은
방향으로 승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예술적 행위라고 한다면, 나쁜 방향으로
변질되는 것은 파괴적인 행동이다.
  이때 어느 길로 가는가를 갈림길에서 결정해 주는 것은, 인간 안에 있는
광기의 성숙과 미성숙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의 마음속에나 광기 혹은 광기에 대한 부러움은 존재한다. 쉬운 예로,
걸핏하면  미치겠다  혹은  차라리 미쳐 버렸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는 것,
정신병자들이나 할 수 있는 기괴하고 반윤리적인 행동을 꿈속에서 거침없이
저지르는 것, 괴상한 장면과 잔인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공포 영화나 괴기물을
즐기는 취미 등이 그 증거다.
  이런  광기 는 일정한 수위를 넘지 않은 상태에선, 오히려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촉매제가 된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끼 라고 말한다.
  광대끼. 장사꾼끼. 환쟁이끼. 훈장끼 등이나 수집광. 음악광. 등산광 등 어느
한 분야에 미치도록 몰두할 때도 우리는 광기의 개념을 빌린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심성을 멸시하는데, 그것은 사실 각자가
가진 개성과 강한 직업 의식, 혹은 기호에 다름 아니다.
  보들리야르나 푸코 같은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을 굳이 들먹거리지 않아도,
자본주의적 상업화, 획일화된 기계 문명만이 남은 요즘같이 황량한 시대에
그래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인간내부에 존재하는  자연  혹은
생명체로서의 본성  즉  광기 일 것이다.
  딱딱한 이성에 의해 잠식되고 뒤틀린 인간성을 어떻게 되살릴 것이냐 하는
문제는 자기 안의 광기를 살리는 법과 통하지 않을까. 중세 시대, 마녀 사냥이란
이름으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화형에 처해졌다. 안타까운 것은 그 이후에도
조금씩 다르게 변형된  광기 사냥 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어서, 인간이 갖고
있는 창조성의 샘물이 고갈되고 있다는 점이다.

  항상 정신 질환자들과 하루를 씨름하는 자신의 한 가지 치료법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내게,  광기 란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참으로 묘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일상적인 편안함과 나른한 행복감에 빠져 있을 때면, 내 안의  광기 는
혀를 날름 내밀고 내게서 도망간다.
  이때 제멋대로 구는 이 골치 아픈  광기 란 친구는  창조성 이란 내 우상도
물론 함께 낚아채어 줄행랑을 치고 만다. 나는 그때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창조해 내려면, 결핍이나 불안한 상황 속에 빠져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마치 에너지 전위가 조금은 들뜬 상태로 있어야 전자가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물리학의 원리처럼.
  그럴 때면 나는 도망가는  광기 를 허겁지겁 쫓으며 사정해야 한다.
   잘못 했다. 다시는 너를 무시하거나 홀대하지 않을 것이니 제발 다시
돌아오라!
  이때 내가 진심으로 뉘우치는 기색이면, 광기는 관용을 베풀고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물론 내 초라한 창조성도 같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되풀이해서 광기를 달래야만 한다. 한번
마음이 상한 뒤에 그들이 다시 제 빛깔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함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초조하게 생각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때로는 그 반대일 경우도 있다. 이성의 힘을 잃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때,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좌절감에 빠질 때, 절망감과 고독을 느끼며 자신을
학대할 때, 갑작스런 충동에 몸을 맡길 때, 나는 광기라는 불량한 친구로부터
확실하게 도망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갈가리 해체되어, 끝을
모르는 나락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
  그런 식으로 광기가 너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면, 창조성이란 그의 수줍은
동반자는 오히려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너무나 강한 자기의 파트너에게 모든
에너지를 빼앗겨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광기로부터 냅다 줄행랑을 칠 때,
대개 그는 슬그머니 모른 체하고 나를 놓아준다. 아무리  광기 라고
이름붙여졌긴 하지만, 그동안 내가 받은 사랑과 교육의 힘으로 실은 순하고
착하게 변했기 때문이리라.
  여학교 시절, 나는 어머니께 음악가나 작가가 되면 어떻겠냐고 지나가는
말처럼 비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내게 단호히 말씀하셨다.
   너는 예술에 미칠 아이가 아니야.  쟁이 가 되기에는 너무 논리적인
성격이야. 게다가 자기 내부로 완벽하게 들어가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는
건데... 예술에만 빠질 자신, 정말 있니?
  누구보다도 나를 잘 파악하시는 어머니의 충고대로 나는 지금 의술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아직도 때로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부질없이
반추할 때도 없지 않다.  되지도 않는 소설 나부랭이를 남몰래 끄적거리거나
구상하느라 잠을 못 이루기도 하니 말이다.
    정신병 공포증
  의과 대학 삼학년쯤 되면 임상 실습을 하는 의과 대학생들에게 생기는 가벼운
노이로제 증상이 있다. 이른바  의과 대학생 증후군 이 그것이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너무 많은 의학 지식을 한꺼번에 섭취하려고 하니,
정신적인 배탈이 나는 것이다. 지나치게 의학 공부에만 몰두하다 보면, 마치
자신이 환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정신과 임상 실습을 돌면서 학생들은 적잖은 당혹감을 겪는다. 환청이나
망상이 주요 증상인 정신 분열증은 물론 확실하게 달라 쉽게 구별이 되지만,
우울증이나 성격 장애 같은 질환은 일반인들에게서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된 의학 공부와 경쟁적 분위기에 탈진해 버린 누구 누구가 정신
분열증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든가, 열등감에 시달리다 자살해 버렸다는 풍문이
돌아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그래서 많은 의과 학생들은 나도 그들처럼
정신병자가 되는 게 아닐까, 이러다 미치지나 않을까 초조해 하기도 한다.
  물론 대개는 그런 불안한 시기를 무난히 지나 의사가 되지만, 때로는 심한
열병을 앓듯 자기의 신체적 혹은 정신적 건강에 대해 예민해져서 선배 의사의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런 건강 염려증은 비단 의과 대학생들만의 병은 아니다. 바쁘고 힘든 현대
생활, 소위 스트레스가 자꾸 쌓여 가면서 현대인들은 자신의 정신 건강에
대해서도 점점 더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상사와의 언쟁, 동료와의 보이지 않는 암투, 마누라와의 쓸데없는 신경전,
고부간 게임에서 샌드위치 되기 등등...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라, 이러다 정신병에 걸려 병원에서 일생을 마치는 게 아닌가 하는
끔찍한 상상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정신 분열증이나 조울증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사는 게 좀
힘들다고 그렇게 쉽게 덜컥 걸리는 병은 아니다.
  한해에도 몇백 편씩 정신병에 대한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정신병의
원인으로 요즘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은  기질적 이상설 이다. 쉽게 말해 뇌에
아주 미세한 병변이 있기 때문에 정신병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녀 교육을 잘못 받아서, 시집살이가 너무 고되기 때문에, 부부간 궁합이 잘
맞지 않아서 정신 분열증이 생겼다고 하는, 이른바 소설 같은 정신 역동적
설명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실은 훨씬 더 많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지없이 헌신적인 부모님을 만나 따뜻한 분위기에서
자란 자녀들에게도 난데없이 생길 수 있는 병이 정신병이다.
  따라서 가족 가운데 누군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면 서로에게 책임을
돌린다든가 원망을 해서는 안된다. 서로에게 책임을 돌려 봐야 오히려 환자에게
해롭고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만 미치기 때문이다.

  자기가 혹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건 아닌가 괜히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듯싶어, 정신 분열증의 증상을 간단히 소개해 보겠다.
  하지만 몇 줄의 피상적인 정보를 통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상태를 진단해
보겠다고 나선다면, 이는 매우 경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명백하게 정신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의사에게 자세히 상담을 받아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멀쩡히 걸어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뿌리 깊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이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신 분열증 환자들은 우선 자신의 교육 수준이나 문화적 배경에 어울리지
않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안기부 사람들이 자기를 뒤쫓고 있다거나, 못된 귀신이
괴롭힌다든가 하는 얼토당토않는 말을 하기도 한다.  또 환청이라고 하는 증상이
있다.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있어도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 그 말에 대답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유 없이 중얼거리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 외에도 건강하던 시절에 비하면 여러 가지로 생활 능력이나 지능 수준이
많이 퇴행되어, 직장이나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기도 한다.
  우울증 환자나 기분이 너무 좋아서 탈인 조증 환자들은 발병전에 매사에
강박적으로 집착해서 완벽을 추구한다든가, 기분이 자주 바뀌는 순환성 인격이나
의존적인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정신 분열증 환자들은 남들로부터, 의심이 많고
내성적이고 위축되어 있다. 뭔가 괴팍하다는 말을 자주 듣기도 한다.
  정신 분열증에 걸리기 직전, 환자들은 자기에게 그런 일이 닥치리라는 것을
예감하기도 한다. 지구에 종말이 올 것 같다는 세계 몰락감에 빠지기도 하고,
자기가 갈가리 해체되어 부서지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여러 가지 신경증의 증상들, 예를 들어 우울하다, 여기저기 아프다, 대인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등의 불평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기괴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들의 고민에 공감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괜히 자신이 정신병 환자가 되는 게 아닐까 미리 겁부터 먹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만약 지나치게 자기가 무슨 병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염려한다면 실제로  건강 염려증 환자가 아닌가 짚어 보는 게 맞는 순서일지
모르겠다. 머리가 조금 아프면 혹시 뇌암이 아닐까, 뇌졸중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뇌파 검사를 한다, 씨티 활영을
한다며 법석을 떨기도 한다. 소화가 안되거나 배가 아프면 위암이 아닌가 내시경
검사에다 방사능 활영을 해봐야 하는 것처럼, 쓸데없이 자기가 정신 분열증
환자가 되는 게 아닌가 고민하는 것이다.
  그들은 의사 한 사람이 괜찮다고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이리저리 더
좋은 병원을 찾아 돌아다니기도 한다.(이를 흔히  의사 쇼핑 이라고 한다.)
  그들은 대개 강박적이고 꼼꼼하며 자기애적 성격이라, 남들에게 향할 관심을
모두 자기 자신에게 쏟기 때문에 사회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신적인 갈등이나 고민이 많은 현대 사회에서는 정신 의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고조되는 게 당연하지만, 체계적인 학습이 아닌 간헐적이고 피상적인
정보 습득이 건강에 꼭 도움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듯, 건강에 대해 관심은 넘치지만 전문가의
독특한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의사 노릇을 하려
들기에 오히려 치료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무슨 병에는 어떤 약을 써야 좋다, 무슨 음식이 몸에 어떻게 좋다, 어떤
약국에 가면 대학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하는 병을 감쪽같이 고친다등, 의사보다
자기의 어설픈 의학 지식에 더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를 보면 난감해진다.
  주사가 필요 없는 환자인데도 왜 영양 주사를 놓지 않느냐, 입원 기간을
연장시켜라, 퇴원을 빨리 시키라는 등 의사들에게 짐짓 명령조로 얘기하는
환자와 보호자도 꽤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어쩌면 잘못된 지식 전수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란 사람은 이러저러하게 썼는데, 왜 당신은 전혀 다른
말을 하느냐고 엉뚱하게 따지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괜히 걱정도 된다.
  자신의 정신 건강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전문가의 도움 없이 일방적으로 혼자 결론을 내리고 처방하는 것은 아예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명의란 의사 쪽만 일방적으로 노력해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환자가
신뢰감을 갖고 의사의 전문적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면 화타나 히포크라테스 같은
유능한 의사를 만나도, 그가 진실로 훌륭한 의사인지 알아볼 방법이 없지
않겠는가.
    정신과 의사, 무엇하는 사람입니까
  존경하는 와이 선생님!
  평소에 자주 찾아 뵙고 좋은 말씀 듣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그저 사느라
바빠, 제대로 제자 구실을 못하고 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학회 일도 열심히
하고 논문도 나름대로 써보고 싶지만 여러 선생님들이 제가 의국에 들어갈 때
걱정하셨던 대로  여자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러 가지 제약이 많습니다.
  어쩌다 늦으면 밤 늦게까지 밥도 안 먹고 저를 기다리는 아이들 걱정으로
여자가 밤중에 돌아다니면 싫어하실 시부모님 눈치보느라, 또 쉽게 피로를
느끼며 힘들어 하는 약한 체력이 두려워, 여러 세미나에도 거의 참석하지 못하고
병원과 집을 쳇바퀴 처럼 도는 생활을 몇년 동안 해왔습니다.
  사실 이 말은 자폐적인 제 성향을 적당히 둘러대려는 핑계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자지만  남자 못지않게, 활발한 연구와 대외적 활동을 하고
계시는 선배님들이 많으니까 말입니다. 저는 제 게으름을 이런 식으로
뻔뻔스럽게 감추려 하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유능한 정신과 의사인 선생님
앞에서는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도 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제 의중을 눈치채셨지만 모르는 척 눈감아 주시고 계시겠지요.
  돌이켜보면 확실한 남녀 불평등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그래도 이제까지
그럭저럭 사람 대접을 받고 사는 것은, 어쩌다 운이 좋아 의대에 들어가 많은
분들의 배려로 전문의까지 대학 병원에서 마치게 된 덕인 듯싶습니다.
  또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정신과 의사의 성격이, 얽매이거나 눈치보는 것
싫어하는 조금은 괴팍한 기질조차도 넉넉하게 포용해 주어 남보다 예민해서 혼자
쉽게 아파하는 저 같은 사람도 이제껏 신경 쇠약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겠죠. 아마도 일생 동안 제가 붙잡을 수 있었던 행운 가운데는, 서울대
정신과 의국에 들어가게 된 것도 들어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제껏 제가 받은 여러 고마움의 십분의 일도 의국에
돌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사람을 답답하게 하는 묘한 느낌이
대학으로의 발걸음조차 사실은 쉽게하지 않습니다. 관료주의가 구석구석 배인
대형 종합 병원이 갖는 배타성 때문일까요.
  하다못해 엘리베이터 걸이나 안내원까지도 모두 딱딱하고 근엄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대학에서 연구 생활에 몰두하시는 여러 선생님들 눈에 저는 그저
돈벌이나 하는 삼류 의사로 비칠것 같아 괜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가 두렵습니다.

  또 요즘같이 여기저기 잡문을 써보내느라 시간을 보내는 저를 상업성에
일찌감치 편승한 경박한 의사로 생각하실 거라는 자격지심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쩌다 얼굴을 비치는 저를 변함 없는 얼굴로 반겨 주시던 선생님께,
멀리서나마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보내고 있음을 아시는지요.
  전문의가 된 후 지금까지도 저는 진료 시간 짬짬이 엉뚱한 책들을 읽느라
바쁩니다. 본래 생물 정신 의학이나 약리학의 단어들은 듣기만 해도 골치가 아픈
사람인지라 전문의 시험이 끝나자마자 저는 그동안 억눌러 왔던 제 지적
호기심을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돌렸습니다.
  재작년에는 문화인류학 쪽을, 작년에는 여성 문제에 관한 책을 집중적으로
읽고 올해에는 문학 이론, 특히 포스트 모더니즘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저를 선배님들은 이상하고
우스꽝스럽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요즘에는 정신 분열증의
유전학적,생화학적 연구가 대세를 이루고 있어 저같이 자기 관심 있는 공부만
하는 변두리 의사는 아무래도 조금 모자란 별종 취급을 받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정신과 의사 집단뿐 아니라 바깥 사회에서도 그런 기분을
느낍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진료를 통해서만 남들과 소통하는 일인지라, 어찌
보면 왜곡되고 좁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같은 여자들과 만나서도 남과는 조금 다른 직업을 갖고 있고 바쁘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깃거리가 나와는 상관없을 때가 많죠. 이래저래 저는 주변만을 빙빙
돌며 살고 있는 외로운 아웃사이더인 듯합니다.
  그래도 자기 뿌리를 잊지 못하는 탓에 무슨 책을 읽어도 정신의학과 관계가
있는 것이 나오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 예를 들어, 푸코나 라캉과 관계된 글들이
그렇습니다.  전후에 사르트르와 카뮈가 한 시대를 풍미했고, 7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하버마스와 마르크스가 유행했던 것처럼, 1990년대는 아마도 그
사람들의 시대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분야에서 그들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선생님께서 잘 알고 계실 푸코는 (광기의 역사) (성의 역사) (임상 의학의
탄생)등을 쓴 역사학자며 심리학자 겸 철학자라고 합니다. 그는 파리 대학에서
심리 병리학 분야의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프로이트 이론에 심취했죠.
  라캉 역시 정신 분석학자로 그의 이론은 언어학과 철학, 사회학을 정신 분석에
용해시킨 듯싶습니다. 한국의 정신과 의사들에게는 생소한 그들이 이 땅의 다른
학문 분야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컬합니다.
  그 사람들에 관해서 쓴 다른 분야 사람들의 논문들을 보면서 정신 분석학을
제대로 배웠으면 적어도 이런 오류는 범하지 않을텐데 하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들의 피상적인 지식을 정면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이론 무장을 하고 싶습니다만 의욕뿐입니다.
  바쁜 시간을 할애해 제 글을 읽고 계시는 선생님께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는
이유는 정신 의학이 인문 사회과학으로서도 굉장한 깊이를 가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젊은 정신과 의사들이 스스로를 너무 자연과학자로만
한정시키는 것 같아서입니다.
  물론 실험실에서의 첨단 과학 연구도 좋지만 저같이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들은 비싼 기계나 시약이 필요한 그런 일보다는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문 쪽에도 좀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제 견문이 좁은 탓인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의사의 지위가 점점 격하되는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들이
너무 상아탑 혹은 자신의 진료실에만 파묻혀 살아, 세상 돌아가는 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가 아닌가요.
  사회가 의사들에게 원하는 게 무엇이냐, 또 왜 의사들은 기득권에 집착하는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혔다고 공격당하느냐 등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물론
로비 활동이나 술자리에서 나올 수도 있겠지만, 학문 자체의 방향성을 조금
다양하게 해 사회의 다른 지식인들과도 밀접한 연관을 지속해 나가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안에서 어떤 목표를 갖고 대다수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소수의 엘리트들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학문에 정진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들이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도 활발하게 지적 토론을 했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이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이것저것 신경 쓰실 일이 많으실텐데 괜한 요설을 읽으시게 하는
번거로움을 끼친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항상 선생님의 따뜻한 모습을 제 가슴
한쪽에 묻어 두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선생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걸 쑥스럽지만 고백하고 싶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길 빕니다.
    컴퓨터와 백마 탄 왕자
  허둥대며 의사 노릇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레지던트 시절, 나는
서투른 엄마 노릇과 미숙한 시집살이로 쩔쩔맸었다.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자격증을 따고 나면 조금은 나아지겠거니 하는 희망이 그나마 나를 간신히
지탱시켜 주었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이어졌다. 청운의 꿈을 안고
모교의 병원을 나섰지만,  여자기 때문에  취직 자리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라는 대학 병원에서 수련을 끝냈고, 남보다 조금 빨리 석사
학위를 취득한 프리미엄이 있다 해도 여자로 태어난 죄로 원장 얼굴 한번 못 본
채 돌아선 적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취직한 곳이 오산 미 공군 부대의 병원이었다. 어려서부터
미국인과 자주 만나며 성장해 왔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 나라
전문의가 아니었으니, 단박에 미국인 환자들을 의사로서 치료할 수는 없었다.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은 조금씩 늘어났지만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미국인들은 하루에 상담하는 환자의 숫자를 엄격하게 제한하기 때문에
여유 시간이 많았다.  다행히 같이 일하는 미국인 동료들과 죽이 잘 맞아 나는
그들로부터 컴퓨터를 조금씩 익히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해 보이기만 하던
컴퓨터가 나같이 그저 간단한 문서 편집이나 하는 이들에게도 편리한 문명의
이기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았다. 일단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니 가속도가
붙었다. 내 끔찍한 악필을 남에게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후련한 기분이었다.
  급하게 변하는 생각의 흐름이 금방 활자화되어 종이에 찍히는 맛도 좋았다.
인쇄되어 나오는 종이들을 보면 마치 그럴듯한 책의 훌륭한 저자인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 같은 아줌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치기
어린 외로움이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했다.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하는 성격에다 병원과 시댁을 오가는 생활을 하느라
친구들을 만나 이것저것 속내를 실컷 털어놓을 여유도 없었고, 군 복무중이라
일주일에 한번 삐쭉 얼굴을 내밀고 아쉽게 사라지는 남편에게도 속시원하게 내
마음을 보이지 못했을 때였다.
  그때 나는 할말은 많은데 배설하지 못하는 일종의  생각 변비증 환자였던
셈이다.

  그런 내게 컴퓨터는 비밀스런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고 다시 한번
되새김질해 주는 매력적인 애인으로 다가왔다.
  모니터 앞에서 나는 갖가지 공상의 나래를 펴며 기분 내키는대로 어떤
주장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마음에 맞지 않으면 통째로 지워 버리면
그만이었다.  내 가치관이 잘못되었다고 두고두고 기억해서 사람을 괴롭힐것도
아니고,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도 않으니 눈치볼 일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활자로 객관화시켜 놓은 후, 시간이 지나 내가 냉정을 되찾을 때면 투명한
거울처럼 비추어 줄 뿐이었다.
  과거의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그 당시 내가 왜 그런 생각들을 했는지, 또 왜
그런 잘못들을 범하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했는지 돌이켜볼 수가 있었다.
  혹시 나 자신, 미처 준비가 안되어 그때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면 그는 그저
조용히 기다려 줄 뿐이었다. 언젠가 내가 그 파일을 들추어볼 것이라고 믿으며.
  그런데 요즘, 내 컴퓨터는 그런 수동적인 역할만 하려 하지 않는 듯싶다. 미리
어떤 내용을 마음속에 품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써내려 가다 보면, 처음
그리던 것과는 영 다른 방향으로 나가게 될 때도 있다.
  미리 잡아 놓았던 윤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 제멋대로
긴 문장이 되어 춤추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한 삼년 넘게 가까이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는 내 정신 세계를 컴퓨터가
송두리째 파악하고 있만 말인가. 정말 초현실주의자 브르통이 주장한 자동증에
의해 글이 써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판 위에 얹힌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둔 다음, 한참후 내 글을 정신 분석해 보면, 갖가지 엄청난 무의식적
상징들이 튀어나와 스스로를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들이 자꾸 계속되다 보면 흰 종이 앞에서 쩔쩔매며 컴퓨터의 분부만을
기다리는 비굴한 정부 노릇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비밀스런 정사를 벌일 때는 분명 고상한 백작 부인이었지만,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된 채 자존심도 없이 아무 남자 앞에나 초라하게 무릎꿇어야 하는 창녀의
고단한 영혼처럼 말이다.  글쓰기가 점점 두려워지면서 기계와의 달콤한 사랑에
중독되어 있는 자신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가끔 난감해질 때도 있다.
  이 아름다운 지구 위에는 그와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달팽이처럼
안으로만 움츠러드는 내 자아 바깥에는 많은 고통이 들끓고 있다는 현실을 자꾸
외면하려 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내 자폐증을 일단 임시 변통으로나마 해결해 주었을는지 모르지만
보다 근본적인 치유법은  진실로 사람 사랑하기 에 있다는 것을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것이다.  자꾸 원수 같아지는 활자들을 어쩔 수 없이 지금도 두드려대고
있지만, 나는 요즈음 컴퓨터에게 우리 관계를 조금 냉정하게 정리해 보라고
설득중이다.
  [당신은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 나를 구원해 준 백마 탄 왕자님이었지만
이제는 날 놓아주세요. 우리의 사랑이 부패하여 타락하지 않으려면 아름다운
꿈만 붙잡을 게 아니라 진흙탕 같은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부딪치고 피 흘려야
할 거예요. 때가 되면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새롭게 만나고 싶어요.]
  물론 이것은 내 일방적인 바람이다. 과연 그는 언제 나를 놓아줄 것인가 ?



















































    뜨거운 반항의 계절 십대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 날을 회고하며  아름다운  혹은  빛나는 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때, 입을 삐죽 내밀던 내 십대가 생각난다. 
  [뭐가 아름다워, 답답하고 힘들기만 한데. 권리를 주장하고 싶을 땐 아이
취급하고,의무라는 짐을 지울 땐 어른 취급하는데]라고 짜증내던 그때가.
  결손 가정의 자녀였던 것도 아니고 찌들게 가난하지도 않았으며 공부도
웬만큼은 하는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는 왜 그렇게 세상이 불만스럽고
나 자신을 못나게만 생각했었는지 모르겠다. 
  넓적한 얼굴에 쌍커풀이 없어 작은 눈, 펑퍼짐한 코에 코끼리 같은 다리통,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자신을 끔찍하게 못생긴 여자로 생각해 남과의 교류를 애써
피하려고만 했었다. 혼자 있는 것을 즐기다 보니 자연히 사회성이 부족해 자꾸
자신이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자꾸만 사람들을 피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런 열등감을 책 읽는 것으로 보상하기 위해 방학이 되면 하루에도 서너 권씩
어려운 책들을 독파해 가며, 마치 은둔자처럼 보름이고 한달이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도 했다. 틈만 나면 책을 들고 시험 공부나 성실히 하던 내성적인
한 모범생이 나이답지 않은 외로움과 우울증 때문에 자살 충동이나 가출 환상에
시달려 매일 밤 눈물을 흘렸다면 다른 사람들은 믿어 줄까.
  그때 난 분명히 불행했었고 힘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아, 어째서 다시 그
좌절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내가 혐오하던 기성 세대들, 내가 젊은 시절엔 이러이러했다, 지금이라도 그
아름다운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그 진부하고 케케묵은 사람들을 닮아 또다시
앵무새처럼 그 얘기를 흉내내고 있는 것일까. 과거에 대한 아쉬움은 자신에게는
아름다운 감정일지도 모르지만, 남들의 눈에는 한심스런 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나는 어느새 서른 고개를 훌쩍 넘어 버렸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람 사는
일로 즐거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워하는 지금을, 아마 십 년이나 이십
년쯤 후에는 또다시 그리워하며 추억하게 될 거라는 예정된 스토리를 생각하면
또 묘하게 우울해 진다. 
  그러나 지금 [다시 십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그 진부한 말을
정말하고 싶다. 난 정말 못해 본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감히 실행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 뉴키즈 온더 블록 같은 팝 스타가
공연을 하면 친구들과 떼를 지어 구경가 괴성을 질러 보는 일, 멋쟁이 남자
선생님을 짝사랑해서 몇 날 며칠을 끙끙거리며 앓아 보는 일, 친구들과 공모해서
몰래 가출 계획을 짜 어디론가 멀리 사라져 버리는 일, 여럿이 동맹해서 어렵고
재미없는 수업을 사보타지하는 일....그런 신나는 일들을 한번쯤 친구들과
어울려 벌여 보고 싶다. 조금은 비뚤어지고 장난기와 불량기가 있는 것이
십대에게 걸맞다. 소녀 시절의 나처럼 얌전하게 하라는 대로 하고, 그래서
음울하게 책만 보는 사람은 정말 바보다.

  이 글을 읽는 십대들에게, 난 정말 비밀스럽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초여름
같은 싱싱한 젊음에게는 터질 것 같은 본능의 분출과 끝을 예측할 수 없는
충동의 발산이 어울린다는 사실을. 그대들의 발랄한 젊음을 음산한 활자와
숨막히는 규율 속에만 묻어 버릴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면 어차피 이런저런 형식에 얽매이게 되고,하고 싶은 일의 십분의
일도 감히 시작할 엄두를 못낸다. 어른은 자기 입과 자기 몸뚱어리를 책임져야
하니까. 그러나 눈부시게 발랄한 아름다운 십대. 학비는 아버지가 대주고, 밥은
어머니가 해줘도 비난받지 않는 그 나이에는, 끔찍하게 되풀이되는 생활의
짐으로부터 좀 자유로울 수 있다. 
  낭만적인 사랑에 빠져 열병을 앓아도 밥 먹으라고 잔소리하는 부모가 있고,
반항의 몸짓으로 짐짓 세상사와는 무관한 척해도 기댈 집이 있으니 길거리에
나앉지는 않는다. 이 글을 혹 부모님들이 보게 되면 명색이 정신과 의사라는
사람이 참 좋은 것 가르친다고 나무라시거나, 학교 선생님들이 읽게 되면 당신은
직접 교육 현장에서 부대끼지 않으니 그런 속 편한 말을 할 수 있는 거라시며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사람은 당신이 모범생이었으니까 자기가 갖지 못했던 불량기가 좋게
보이는 거라며, 날 한심스런 눈으로 쳐다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부모님과 의견이 맞지 않아 숨막혀 하는 십대에게,
공부만을 강요하는 학교를 끔찍이 증오하는 십대에게, 가슴속 불만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같이 때묻은 기성 세대들에게 속시원하게 의논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깊이 얘기하다 보면 그네들도 똑같이 좌절하고 상처받았던 기억을 남모르게
간직하고 있는, 방황하는 십대들의 영혼과 꼭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정신 의학
  1990년대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다. 몇년 전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말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우선 그 단어에서 풍기는 뉘앙스에 겁부터 먹었었다.
모더니즘만 해도 어려운데, 거기에다  그 이후 의 의미를 가진  포스트 란
글자가 자리잡고 있으니 얼마나 으스스한가.
  최첨단 과학으로 포장된 우주 핵물리학이란 것을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듯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그 기원이 현대 건축에 있다고 하니, 좋은 건물을 보면 그저 [아,
좋구나!]하고 감탄이나 하는 정도의 미적 수준을 가진 나 같은 사람에게는 강
건너 불 구경하는 얘기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포스트 모던이란 단어가 여기저기에서 자주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아닌가. 문학 비평은 물론, 미술, 연극, 영화 등
거의 모든 예술 작품을 감상하려면, 그 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가
되었다.  결국 예술에 대한 내 짝사랑 때문에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책들을
한동안 집중적으로 읽었다. 물론 사상이나 문예 사조에도 유행이 있어서
피상적이고 경박한 아마추어로서의 내 지적 호기심을 유발한 탓이기도 했다. 
  나 같은 딜레탕트의 눈에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것은 대충 다음과 같이
이해가 되었다. 
  첫째는 권위주의 혹은 엄숙주의의 배격이다. 경박하게 표현하자면 괜히 폼잡지
말라는 얘기다. 포스트 모던의 시대에는 학자나 교수들이 더 이상 전문 지식을
독점하지 못한다. 텔레비젼이나 라디오, 컴퓨터 통신의 대중화, 각종 전문
잡지의 홍수 속에 정보는 이제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즐기는 대상물이 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지식인의 소명 의식이니 고뇌니 하는 말들은 때로 우스꽝스럽게
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결국 대중 예술과 순수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져 버렸다는
게 그 두 번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잘 팔리는 작품은 곧 예술성이
없다는 등식이 가능했는데, 요즘은 독자의 전반적인 의식 수준이 높아진 탓에
그런 고정 관념이 서서히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과거에도 물론 자기의 작품이 예술성도 인정받고 돈도 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작가들에게 없지는 않았겠지만 차마 그 얘기를 떳떳하게 할 수는
없었는데,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런 어정쩡한 심리적 갈등을 해소해 준 셈이다.
그래서 대중성에 영합하려는 데 따른 예술가들의 죄의식을 조금은 가볍게 해준
점도 없지 않다.
  세 번째 특징은 엄격한 의미에서 완벽한 작가의 창조물은 없다는 것이다. 소위
혼성 모방 기법이 떳떳하게 거론되어, 남의 원고를 몇 백 장씩 단어 하나 고치지
않고 도용해도 무슨무슨 큰 상을 받는 것은 물론 표절 시비가 붙어도 무식한
소리 말라고 도리어 큰소리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네 번째는 저자와 독자의 명백한 이분법적 사고 방식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작품은 읽는 사람의 독법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고, 저자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해체하는 과정을 보여 주게 된다. 

  위와 같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성격들은 정신 의학이 주장하는 바와 너무나
유사한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기수인  라캉 이나  크리스테바 가 정신분석의인 점,  푸코
역시 정신 의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광기나 병원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를
집중적으로 한 역사학자면서 심리학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자기의 무의식적인 욕망과 본능적 충동에 대해 통찰하는 과정인 정신 분석을
거치고 나면, 권위주의 혹은 엄숙주의의 껍질을 깰 수밖에 없게 된다. 즉,
그럴듯한 껍데기 혹은 가면에 연연해 하지 않는 걸 배워 가는 것이다. 
  인간 내부의 어두운 그림자를 잘 알고 난 후에는 그 누구도 스스로를 오염되지
않았다고 강변할 수 없을 터이니, 순수예술이라는 말도 자연 남사스럽게 된다.
또 집단 무의식과 과거의 기억들, 타자와의 복잡한 관계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개인의 허약한 심성에 눈을 뜨게 되면  나라고 하는 사람의 완벽한
홀로 서기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는 사실도 자각하게 된다. 
  즉, 타인을 모방하는 것이 자아 정체성 확립의 기본 전제며 자기 자신은
끊임없는 타자와의 관계에 따라 얼기설기 만들어져 가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한 원칙이 되기도 한다.  더하여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해체해서 남김없이 분석해 나가는 것 역시 정신 분석의 기본 원리가 아닌가.
  마지막으로 상호 의사 소통을 통해 환자와 치료자가 같이 성숙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점은, 작가와 독자의 변증법적 관계를 인정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원칙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어떤 또 다른 사상이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르지만 아마 당분간은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을 것
같다.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이 주먹구구 식으로 책 몇 권 읽어 보고 이렇게
성급한 결론을 내릴 것이 아니라, 기회가 닿으면 좀더 체계적으로 공부해서 정신
의학과 포스트 모더니즘을 나름대로 연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매력적인 독신 남자 칸트
  나는 원래 복습하는 것을 싫어한다. 좋은 습관이 아니란 것을 뻔히 알지만
똑같은 말을 두 번 듣는다든가 같은 내용을 다시 읽는 것이 무척 싫다.
  게다가 거의 속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 책을 훑기 때문에, 속을
씹고 잘 되새김질해 내 것으로 얼마나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러면서도 웬만한 책은 두 번 다시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저 손꼽을
정도긴 하지만 물론 예외는 있다. 나가르쥬나의
(중론송),(성경),(불경),(주역)프로이트나 융의 책들이 그것이다. 
  [정말 좋다]하고 무릎을 치면서 읽게 되는 그런 책들은 대개 여러 번 들추고
읽는 속도도 늦게 마련이다. 밑줄도 긋고 나름대로 주석도 달아 놓는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도 그렇게 책에 지저분한 메모가 많이 남아 있다. 
  십오 년 전 내가 칸트를 만나 감격했던 시절은 자신의 모든 상황을 불안해
하며 내 삶에 대해 이것저것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때였다. 
  젊은이답게 모든 학문에 관심을 갖고는 있었으나 미처 어떻게 그 많은
지식들을 정리해 솎아 내야 할지 모른 채, 그저 지적 호기심만 왕성하던 열여덟
청춘이었다.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어 부푼 가슴으로 의예과에 진학했지만 막상
내가 만난 대학 생활은 영 죽을 맛이었다. 쳐다보기도 싫은 물리나 화학, 수학이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혔을 뿐 아니라 여기저기 서클인지 잡다한 모임인지에
기웃거려 봐도 영 신통치가 않았다. 
  사회학이나 역사, 철학, 문학 등 전공과 관계없는 학문에 대한 갈증만 자꾸
더해 갈 뿐, 그들에 대한 내 짝사랑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잘나고 똑똑한 수재들만 모인 의대생들 틈에 끼여 미운 오리새끼처럼
그저 열등감이나 삭히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웃사이더 역할에 눈치껏
익숙해지는 한편 언제 의사 공부를 때려칠까 남몰래 궁리하기도 했다. 
  운동권 학생들은 마르크스에 탐닉하고, 쾌락주의자들은 당구나 포커, 미팅에
빠졌으며, 현실주의자들은 열심히 학점을 따서 본과 공부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을 때, 나 같은 적응 장애자에게는 그저 혼자 앉아 활자의 세계에 파묻히는
것이 최고의 자기 치유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해 여름, 나는 일종의 칩거 생활로 들어갔다. 어디 멀리 암자에라도
들어갔으면 하고 꿈꾸었지만 물론 그럴 수는 없었다. 대신 방안에 틀어박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 다섯 권까지 독파한 적도 있었다.
  (보한집) (목민심서) (성호사설)류의 고전을 원문과 대조하면서 읽기도 했고
불경을 섭렵하기도 했다. 골치가 아프면 최인훈, 이청준, 윤흥길 등 당시에 인기
있었던 소설가들이나 강은교, 정현종, 고은 등의 시인들을 만나 건조한 내 정신
세계를 위로받았다. 한편으로는 헤겔이나 막스 베버,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들에게 심취해, 그들의 사고법을 익혔다. 
  모두 내 전공이나 미래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외로움을 견뎌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바쁜 의과 대학 생활, 수련의 과정, 또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여자로서의 삶에 괴팍한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어야 하는 삶이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 그때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학자 흉내나 어설프게 내며 지식이라는 영양분을 탐욕스럽게 먹어대던
시절이었다(불행히도 지금은 마치 치매 환자처럼 그때가 가물가물할 뿐이다).
 
  그러던 중 칸트라는 한 매력 있는 독신 남자를 우연히 만나 그나마 그의
천재적인 강의 덕에 지루하기만 했던 무더운 여름을 행복하게 넘길 수 있었다. 
  물론 내가 그의 심오한 정신 세계를 제대로 파악해 철학자로서의 실력을
갖추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사상을 멋대로 단순화시켰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 일 것 같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그의 철학을 쉽게 생활에
응용하곤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종류의 근엄한 주장이라도 그 뒷면에는 개인의
유치한 감정적인 예민한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한번쯤 돌이켜보게 되는 점.
  뜬구름 잡듯,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진리를 찾아 나서기보다는 자신의
사고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반성해 볼 것.
  또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론적 형이상학 과,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실천적 형이상학 을 구분한 점 등은
명쾌하고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상 이 우리의 불안전한  인식 에 종속된다는 주장, 게다가 그 인식이라는
것 자체가 대상과 주관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성립된다는 지적,  감성 만이
우리에게  직관 을 제공하며, 감성을 통해 우리의 직관에 주어진 다양한 형태가 
사고 로 결정지어진다는 말들은 내게 두고두고 영향을 미쳤다. 
  감성이라는 것이 그저 열등한 사고 방식이 아니라 정신 세계 모두를 지배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 정신과 의사의 존재 가치도 그만큼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는
편한 해석도 혼자 해보았다. 
  자신이 느끼는 세계인 가감계를 초월해서 생각이 가능한 세계인 가상계에까지,
정신으로서는 능력에 부치는 욕심을 부리는 건방진 태도를 반성해 보라고 지적한
점은 종교에 관한 회의나 신에 대한 갈등을 벗어 버릴 수 있게 만들기도 했다.
이성이라는 새로운 우상에게 자꾸 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종교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이론적으로 설 자리를 든든하게 마련해 주었던 그가, 당시 프러시아
국왕에 의해 종교에 관한 집필 일체를 금지당했던 것은 지금도 되풀이되는
역사의 아이러니인 듯 싶다.
  생각 같아서는 아예 머리 싸매고 칸트에게 몰입해 보겠다는 충동을 느꼈던
적도 있었지만 나는 끝내 경박한 딜레탕트의 호기심만으로 그를 만나는 데서
그쳤다.  그러나 칸트의 바다에서 헤엄치던 그 잠시 동안 나는 무척 자유롭고
행복했었다. 칸트의 철학이 캄캄한 무지와 아집에 갇혀있던 나를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혹 정말 윤회가 있다면 칸트 같은 대철학자가 요즘 같은
이념부재의 시대에 다시 나타나, 사람들에게 가야 할 곳을 알려 줄 수 있지
않을까 가끔 공상해 본다. 
    도덕 불감증 시대의 영웅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이는 남편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한때
내게도 남몰래 흠모하는 사람이 있어 가끔 텔레비젼 화면에 비치는 그의 모습에
괜히 마음이 설레던 적도 있었다. 
  사자의 울음을 연상시키는 목소리,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매, 넓은 어깨와 굳은
의지가 담긴 꽉 다문 입매, 남편과 함께 있을 때도 나는 [어머, 저 사람, 너무
멋지다!]라며 실없이 주책을 부렸던 적도 있다. 
  그의 이름은 보리스 옐친이다. 
  내가 그토록 그에게 반했던 건 탱크 위에 올라간 그의 모습을 본 이후부터다.
정의롭지 못한 정변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그의 대담함에, 그만 [아!]하는 탄성과
함께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전쟁이나 위기 상황이 닥치면 그저 꽁무니나 뺄 궁리만 하는 평범한
정치가들에 비해 그의 목숨 건  투신 정신은 정말 빛나는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클린턴이라는 미국의 새 대통령도 꽤 괜찮은 남자인
듯하다. 자신의 혼외 정사 소문이 매스컴의 도마 위에 올라 사정없이
난도질당하고도 끄떡없이 대선 경쟁에서 물러나지 않은 점, 어머니가 세 번이나
재혼한데다가 의붓아버지 가운데 한 명은 알콜 중독자였던 걸 떳떳하게 밝힌 점,
또 아내가 훨씬 똑똑한게 아니냐는 못난 사내들의 빈정거림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아내의 일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점 등 때문에 상당히 호감이 간다. 
  자신의 족보까지 조작하기도 하고 세상이 다 아는 바람둥이가 짐짓 도덕
군자인 척하는 우리 남정네들보다는 훨씬 건강해 보인다. 
  물론 정치가의 사사로운 집안일이나 순결, 혹은 도덕성은 그의 경제 운용
능력이나 정치적 역량에 비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복잡한 경제 지표나 정치인의 고차적인 역학 같은 것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성격과 인물 됨됨이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다. 내게는 흠이 없다고 주장하면
오히려 더 어색하기에, 보통 사람들은 그런 위선자들에게 의심하는 마음을
품기도 하는 것이다. 
  정신 의학에서 자주 쓰는 용어 가운데 방어 기제라는 말이 있다. 
  너무 고통스러워 인격이 모두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아를 지켜 주는
일종의 내부 저항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 제일 유치한 초보 단계에  부정 이란 단어가 있다. 
  즉,[난 그런 짓 안했다]혹은 [내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라고 주장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원시적 방어 기제에는  투사 가 있다.      
  [내 안에는 그런 나쁜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잘못이 있다면 모두 네
탓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선택 하는 메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처럼 끔찍스러운 방탕을 피눈물로 후회하고 참회록을 집필한
이들도 방어 기제를 쓰기는 한다. 그러나 그들은 승화라는 방법을 통해 숨어
있는 갈등을 극복 한다. 
  몇 해 전 용감한 시인이 일종의 (고백록)을 한 일간지에 기고해 설왕설래했던
기억이 난다. 의외였던 건, 그의 용기 있는 자기 비판을 따뜻하게 받아
주기보다는 차갑게 옆눈으로 바라본 사람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겠냐는 등의 체념이나, 세상이 다 썩었다는
우국지사풍의 걱정은 꽤 하지만, 막상 진실하게 자신의 잘못을 떳떳이 밝히거나,
그런 사람을 기다리는 이는 아주 드문 것 같다. 
  도덕 불감증 시대, 모두 자기만 챙기려는 비겁한 왜소인의 시대에, 자기에게는
이런 과오가 있지만 뼈아픈 반성을 통해 거듭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또 온몸으로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남자 중의 남자가 나타난다면,
옐친에게 쏠렸던 내 감정을 몽땅 그에게 쏟아 부을 것만 같다. 
  중세 시대에는 지그문트나 리차드왕 같은 기사들이, 근세에는 갈릴레오 같은
학자와 루터 등의 개혁가가 시대를 대표하는 영웅이었다면, 요즘 세상에는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적어도  람보 나  마이클 잭슨 같이 십대들이나 한때 열광하고 말아 버릴 거짓
우상말고, 진짜 호걸은 정말 없는 것일까?
  그런 남자만 나타난다면 옐친같이 멋진 외모를 타고나지 않아도 나는 그의
용기 하나에 그냥 반해 버리고 말 것만 같다. 
  [어머, 저 배짱! 죽기 전에 한번 만날 수 있으면] 하고 남편의 질투심을 또
한번 자극할 수 있는 기회가 올까?
    (생방송 여성)과의 새로운 만남
  조금 한가하게 앉아 좋은 글도 쓰고 두 아이를 돌볼 시간도 갖고 싶어 개업을
결정한 다음날, 케이비에스 (생방송 여성)팀이라며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또 한번 전문 연사로 나와 달라는 부탁인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했는데 상대방은 엉뚱한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새 진행자를 찾고 있는데 혹시 해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
  나는 당황해서 무슨 뜻인가 다시 되짚어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수필을 쓰네,
소설을 쓰네 하면서 자기가 가진 재능 이상으로 한껏 벌려 놓고 사는 나 같은
사람이 방송 일까지 맡게 된다면, 바람이 너무 많이 들어가 마침내 처참하게
공중 분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짧은 순간에 들었다. 
  창자까지 간지럽게 만드는  유명 인사 니  다재 다능 이니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빈정대는 게 아닌가, 나를 비난하는 게 아니냐 하는 피해 의식이
생길 정도로, 나한테는 소심하고 겁많은 구석이 있다. 
  (여자의  허물벗기 )란 책을 내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도 했고 내 글을
원하는 곳도 많아 분에 넘치는 일년을 보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 엠시 노릇을 하라니 이것도 하고 저것도 건드리고 하는 욕심
사나운 낙지 같은 여자라는 소리를 듣기 딱 좋은 일이었다. 
  게다가, 음침하고 답답한 구석을 몰래 감추고 있어 툭하면 그곳에 숨어 버리곤
하는 나 같은 여자가, 많은 이들이 보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의 진행을 재미있게
해낼 수 있을까? 
  오락 부장의  끼  같은 것이 있어 농담도 잘하고 사람들도 편하게 만들어
주어야 제격일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명색이 의사인데
아무리 교양 프로그램이라지만 여러 사람 앞에 나선다면 학식 있는 선배들이나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다른 의사들로부터 걱정 어린 소리나 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의사가 경박하게 무슨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맡느냐, 바보
상자 너무 좋아하다간 큰코다칠 거라는 비난도 예상되었다. 
  또 자신이 가진 것 이상으로 과대 포장되어 여기저기 팔려 다니는 것 같아
생기는 회의 때문에 자주 불안해지는데 게다가 또 새롭게 방송 일을 시작해서
어쩔 거냐, 하는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도 없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정말 겁없이 내린 무모한
결정이었다. 환자가 아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나 자신도 많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또 내가 누군가로부터 배워 알고 있는 지식을 이제 다시 남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짐짓 그럴듯한 변명들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내 무의식을 해부해
보면 그런 고상한 이유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일종의 자기 현시욕이 담긴 공명심이거나 자기가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치기
어린 호기심 같은 것 때문이 아닐까. 어쨌거나 내 결심의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노련한 정신 분석의에게 다시 심리 분석을 받아 보아야 알
노릇이니 더 이상의 왈가왈부는 그만두기로 하자.
  너무 솔직한 것도 예의는 아닐 듯싶다.

  원래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용감하다지 않는가. 겁도 없이 (생방송
여성)을 진행하겠다고 대답한 날 밤, 나는 거창하게도 미국의 유명한 인터뷰어
코니 장과 앵커우먼 바바라 월터즈를 떠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쑥스럽고
우스꽝스러워 킥킥 웃음이 나올 노릇이다. 
  그녀들의 재치 있으면서도 날카로운 질문들과 출연자들의 시원시원하고도 깊이
있는 답변들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탄과 부러움이 내 기억의 창고에서 나와
어지럽게 춤을 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또 처녀 시절 흥미 진진하게
보았던프로그램인 오프라 윈프리 쇼나 필 도나휴 쇼도 생각했다. 방송에서는
다루기 어려울 것 같은 예민한 주제들을 아주 대담하고 밀도 있게 말하는 그들의
용기 있는 대화가 왜 우리나라에는 적합하지 않을까, 혹은 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같이 떠올랐다. 
  자기의 감정을 거침없이 토로해 스튜디오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그들의 솔직
담백한 태도를 그저 문화적인 차이나 국민성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도매급으로
넘기기에는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었다. 좀더 성의와 열성을 가지면 그동안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했던 자기 억제와 점잖음이 극복될 수도 있을 거라는 자못
낙관적인 전망도 해보았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그런 거창하고 황당한 꿈의 실현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준비 과정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방송에 대한
헛된 환상을 벗고 내 현실 감각이 돌아오게 될 만한 일이었다. 
  첫 번째 기획한 주제가 초청 연사를 구할 수 없어서 뒤틀려 버렸던 것이다.
내가 만나고 싶었던 비평가들이 끝까지 출연을 거절하자 불안해졌다. 
  방송은 고상한 비평가나 학자가 나올 자리가 아닌가? 또 여성문제에 관한
토의는 지식인들이 발벗고 나설 만한 것이 아닌, 조금은 하위 개념의 작업인가?
  의사가 경박하게 대중 매체의 진행을 맡고 나서는 것이 과연 잘한 결정인가?
여기에까지 생각의 흐름이 이르자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본래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보는 사람이지만 글쓰기나 방송 일이 모두
자기를 남들에게 남김없이 드러내는 작업인 탓에 자칫 잘못하면 스스로의
값어치가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객관적인 지식에 대해 짐짓 권위 있게
말하며 그럴듯한 어휘를 구사하려 노력한다 해도 스스로를 해부해서 대중의
호기심 어린 진열대 위에 전시해 놓는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게다가 점점 의식 수준이 높아져 이제는 아무리 화려하고 현란한 문체를 쓰고
현학적인 체해 봐야 그것에 쉽게 속아 넘어가는 독자는 거의 없다. 
  그래도  글쓰는 작업 은 여러 번 심사 숙고해서 다듬는  퇴고 라는 작업을
거치지만 방송에 나와 무심히 내뱉는 단어는 다시 주워담을 수 없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매스컴의 속성이란 걸 너는 뻔히 잘 알지 않느냐? 한번 이용해 먹기
시작하면 간 빼고 쓸개 빼고 마침내 오장육부까지 다 드러내 놓으라고 한다지
않는가. 실컷 이용한 후 낡아빠져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지면 미련 없이 내치는 게
그네들의 생리다.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첫 방송 직전까지 몹시 심란했다.
  어쨌거나 이미 저질러 놓은 일, 다시 돌이킬 수는 없어 카메라 앞에 서게
되었다. 그동안 몇 번 텔레비젼에 출연할 때마다 느낀거지만 나는 기계를 보면서
말하는 것이 무슨 큰 거짓말이나 하고 사기나 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람을 보고 말을 해야지, 왜 영혼도 언어도 없는 기계에다 대고 공허하게
말을 한담?]하는 고집이었다. 그러나 진행을 맡고 난 후까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 조금 낮은 톤으로 환자들에게
속삭이도록 교육받은 정신과 의사가, 갑자기 활기차고 명랑하게 마이크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도 무척 생경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그전까지 나는 텔레비젼이나 라디오에 나오는 명랑하고 활기찬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움 섞인 짜증을 내곤 하던 사람이었다. 
  [도대체 저이들은 무슨 기운이 넘쳐 나서 저렇게 기분이 좋은거야? 난 이렇게
기운 없고 지치고 힘들어 죽겠는데....]
  그리고는 스위치를 끈 적도 있었다. 물론 속상한 일이 있었을 때다.
  그런 내가 얼굴에 미소를 띠고 다소 높은 톤으로 아주 즐거운척 이야기를 해야
하다니, 이런 걸 보고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하는 건가?
  또 막상 사람들에게 내놓는 일종의 쇼라고 생각하니, 제작진이 던지는
메시지의 진지함이나 주제의 무거움에 못지않게  재미 나  시청률  따위의
비본질적인 것들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재빨리 고려하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 해도 사람들이 지루해 하면서 채널을 돌려 버리면 그만이니,
흡인력 있는 얘기 마당을 마련해 보는 것이 급선무인 듯도 했다. 
  그러나 내 성격적인 특성도 물론 있지만, 의사라는 자의식이 아직은 날 많이
웅크리게 한다. 이런저런 작고 지엽적인 일들에 아직까지는 쑥스럽고 익숙하지도
않다.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방송을 통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이렇다저렇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 듯하다.
  애초에 내가 꿈꾸었던  이 땅에 사는 여성들의 진솔한 모습을 꿈틀거리는 듯한
기분으로 표현할 수 있는 토크 쇼 를 만드는 것은 아직까지 내 공상 속의
사상누각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다.
  [텔레비젼을 움직이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한다]라는 말이 심심찮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 바보 상자를 무시하고 살 수는 없게 된
시기가 왔음을 부정할 수도 없다. 
  활자에 대한 중독증과 고집스런 애정이 있는 나 같은 이가 비록 제한된 시간
동안이라 해도 과감하게 방송이라는 외도를 하게 된 것도 변명 같지만 그런 흐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문화의 중심이 활자 매체에서 영상 매체로 옮아 가는 건 어찌보면 움직일 수
없는 대세다. 그러나 영상 매체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책의 매력은 죽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영화나 드라마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상상력의 자유로운 세계나,
깊은 사색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오직 활자만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가능한 한 책 얘기도 많이 끌어들이고
싶다. 소설가나 시인, 그리고 교수처럼 글쓰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하는 분들도
많이 모시고 싶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 (생방송 여성)을 주로 보는 주부들이나 잠재적
실업자들인 젊은 여성이 갖고 있는 문화적인 허기를 조금이나마 채워 주고 싶다.
  덧붙여 이제는 지식인과 대중의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도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아, 그나마 방송 일을 시작하는 내 망설임을 조금은 가볍게 해준다는 점을
들고 싶다. 미국의 유명 시사 주간지에 자국 문화를 움직이는 중요 인물들을
리스트에 쭉 올려 놓은 기사를 보고 전혀 예상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깜짝
놀랐다. 
  섹스 어필을 상품으로 팔아 엄청나게 재산을 긁어 모으는 마돈나나, 중성의
목소리에 너무 많이 성형 수술을 한 탓에 얼굴이 일그러진 마이클 잭슨 같은 팝
가수들이 정치인보다 오히려 좋은 평을 받으면서 당당히 그 대열에 올라 있지
않은가.  동양식의 수직적이고 획일화된 내 사고 방식--문화는 고상한 것, 지위
있는 사람들이나 누리는 것--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그 어떤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도 천재적인 학자나 지식인도 유아독존
식으로 존재할 수는 없는 시대가 왔다. 지금은 자기가 가진 재능과 학식이라는
재산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미덕인 때가 아닌가. 특히 소수의 사람들이
지식을 독점한다면 결국 썩을 수밖에 없다고 나는 믿는다.
  비록 나는 대단한 학자도, 심오한 학식을 자랑하는 지식인도 아니지만, 내가
갖고 있는 작은 경험과 정신과 의사로서의 독특한 체험들을 여러 사람과
나누는데 큰 보람이 것을 것 같다. 
  나같이 평범한 임상 의사로서는 방송 일을 맡는다는 게 사실 큰 행운임은
확실하지만, 동시에 여간 부담스러운 짐이 아닐 수 없다. 전문 엠시들에 비하면
여러 가지로 모자라는 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는 자세로 여러 사람들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좋은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미처 겪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체험, 또 그 사람 자체가 자아내는 고유의 향기와의 아름다운 만남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길, 나의 인생
  나의 길, 나의 인생을 남들에게 떳떳이 얘기하려면 적어도 나이 오십은 넘어,
어려웠던 세월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는 주름진 얼굴과 백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거나, 아니면 남다른 아픔을 겪은 바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내 고생이래야, 14대 종가의 맏며느리지만 남들도 다하는 정도의 주부
노릇이나 간신히 하려 애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남들도 다하는 공부를 어거지로
좀더 한 덕에, 사람들이 더럽고 위험하다고 믿는 정신병자들과 하루를 씨름해야
한다는 정도일까. 사실 이정도 어려움이야 많은 사람들의 눈물나는 고통스런
삶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가끔 엄청난 좌절의 아픔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정신과 환자가 되어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사람, 팔다리가 없는 사람, 화재로 전 가족을 잃은 사람,
강간을 당한 후 인신 매매 조직에 팔려 갔다가 구출된 사람들을 면담하면서,
내가 그 사람들의 입장에 처한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 그 사람들보다 더 훌륭하게 재기해서 사회에 적응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없다. 그동안 잘 보호받고 길러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
바깥 세상의 거친 비바람을 직접 온몸으로 겪어 보지 못한 자신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는 환자들에게 군림하여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같이 나누고, 그들 스스로가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동반자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이 내게는 퍽 다행스럽게 느껴지기조차
한다.
  내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정신과 의사 노릇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중학
졸업반, 나름대로 한참 사춘기를 앓던 때였다. 
  프로이트와 융의 책을 우연히 읽으면서 내 안에 있는 엉뚱한 본능적 욕망,
무의식이라는 컴컴한 부분, 사람들의 위선적인 모습등에 대해 단순한 윤리적
판단이 아닌 과학적 인식을 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해 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자연히 내 우상은 그들과 같은 정신 분석의나 심리학자였고 난 그들을 닮기
위해 의사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꿈은 원래 깨지기 위해 있는
것인가. 이류건 삼류건 정신과 의사가 되긴 했지만 그들처럼 독자적인 학문의
길을 가기는 커녕 사는 데 허덕허덕, 쓸데없는 일에 바쁘기만 하다.
  더군다나 내가 생각했던 위대한 정신 분석의의 길을 못 가는 것에 대한 원망과
속상함조차 요즘에는 잊고 산다. 그저 소시민적인 삶에 무덤덤하게 안주하고
있는 초라한 기분마저 든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철이 든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의 중심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진 빚만큼의 죄의식 이
있다. 오로지 공부만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신 부모님, 나의 모난
심성을 사랑으로 받아 주셨던 스승들, 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내 아이들과 가족에게 좀더 나은 나를 보여 주고 싶다.
  끊임없이 내게 베풀어 준 사랑이라는 채무를 어떤 식으로든 갚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내게 있어 나의 길, 나의 인생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선물들로 잘 포장되어 있어 오히려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끝이 안 보이는
여로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치료하는 글쓰기
  직업이 정신과 의사다 보니 직장에 나가면 주로 환자들의 고민거리를 들어주는
입장이다. 대개는 괴로운 일, 병적인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내가 환자들을
따뜻이 대하려고 애쓴다 해도, 여러 번 반복해서 같은 말을 듣다 보면 지칠 때가
많다.
  집에 돌아가도 엄마의 사랑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관심을 쏟아
주어야 한다.  동시에 아이들을 돌보아 주시는 시부모님에 대해서도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자신 안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만성 정신
분열증 환자처럼 가슴속이 텅 비어 황량해진 상태가 된 듯한 느낌 속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만나거나 돌아다니는 일을 번거롭게
여기는 타입인지라, 병원과 집 사이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오가는 생활만을
고집스레 계속해 온 편이다. 
  시집가기 전에는 친정 부모님이나 동생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나의 그런 자폐적인 성격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는데, 친정을 떠난 순간부터
전혀 딴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해도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는
피붙이들의 너그러움을 시집 식구들에게 처음부터 기대한다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조그만 일로도 자신의 닫힌 세계로 숨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라 남과의 마찰로부터 받은 상처를 두고두고
간직하는 나쁜 버릇까지 있었다. 
  그런 식으로 쌓인 감정의 앙금들은 무의식 깊은 곳에서 푹푹 썩어, 질척한
배설물을 뿜어내어 정신 세계를 조금씩 오염시켰고 그것이 난데없이 의식의
수면으로 올라올 때면 흉물스런 모습으로 변하여 허탈 상태에 빠지게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이비 허무주의에 빠져 조금씩 매사에 의욕을 잃고
사는 게 시들했던 것 같다. 그런 마음 뒤편에는 내가 품고 있던 숨은
소망들--이왕 의사가 된 바에는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게 잘해 보자는 욕심, 또
정신 의학에 대한 공부를 몸과 마음을 바쳐 열심히 해나가고자 하는 희망들--을
내 아이들과 가족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지워버리면서 느끼게 된 좌절감도 컸다.

  남들이 보면 웃을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패배자의 심정으로 그저 최소한의
의무감을 갖고 살면서, 아이들이나 남편에게서 내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직장은 그저 돈이나 버는 공간이었고 집은 끝도 없이 가사
노동을 요구하는 일터에 불과하다고 극단적으로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문학사상사로부터 수필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처럼에는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남김없이 보여 준다는 것이 어설프고 유치한
자기 현시욕이나 드러내 보이는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무척
망설였다. 
  그래서 사실은 그저 심리학에 대한 정보만을 피상적으로 다루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래야 내 글 때문에 부질없이
여기저기서 구설수에 오르거나 다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출판사 사람들의 세련된 유도 작전에 넘어간 건지,
그만 자신을 너무 낱낱이 드러내 놓고 말았다. 더 정직하게 얘기하자면, 책을
쓰는 도중에 그만 내 글이 남들에게 읽힐 거라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고 마치
일기를 쓰는 듯한 기분에 빠져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설거지를 하고 걸레질을 하면서, 혹은 출퇴근 버스에서 무슨 글을 쓸까
공상하는 기분은 나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기쁨을 주기도 했다. 
  컴퓨터 앞에 혼자 있는 시간에 나는 누구로부터도 명령받지 않았고 어떤
생각도 강요받지 않았다. 평소에 혹 공격받고 비난 받을까, 마음속에 꼭꼭 숨겨
놓았던 생각들을 내 마음대로 피력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내 안의 감추었던 말들을 바깥으로 쏟아 붓고 나니, 나 자신도
모르게 그동안 주눅들었던 마음과 패배감이 당당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내
자신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수확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 우울증은 조금씩 치료되었던 것 같다. 전보다 더 가족들에게
친절해지고, 자주 웃을 수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나같이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비교적 많이 받고, 그래도 자유로운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이 땅에서 무난한 여자로서 생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겪어야 될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일 것이다.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 식의 시집살이를 성인식을 치루듯
거치면서, 겉다르고 속다른 생존 방법을 익혀야 한다든가, 직장에서는
그림자같이 조용히 시키는 일이나 하는 아름다운 꽃 같은 존재로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위장술에 우리 여자들은 너무나 익숙해져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땅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직도 나름대로 말해 보고 싶은 욕구,
나름의 사고 방식을 갖고 싶어 하는 가장 기본적인 소망을, 감히 꿈꾸어 보거나
펼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그런 여성들이 남자 문화의
전유물인 활자를 자기 것으로 뒤틀리지 않게 갖는다는 건 이제껏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말 은 일회적이고 사적인 것이 대부분이라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수도 있지만
 글 은 영구히 남아 공식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억압받기 쉽다.
  굳이 조선 시대의  세초 같이 여자의 글을 몽땅 없애 버리는 전통이나, 이조의
여류 시인 허난설헌이 죽기 전 방안 가득한 자신의 유작들을 태워 버리라고 했던
일화를 들지 않아도 이해가 될 것 같다. 
  듣기만 하고 복종만 하는 일종의 노예 근성을 강요받아 왔기 때문에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능동적이고 정직한 글쓰기도 낯설고
거북했던 것이다. 또 여성들이 이 땅에서 이제껏 살아왔던 방식으로는 건강한
글쓰기의 전제가 되는 사회 구조적인 전체적 인식을 할 수가 없었다고 본다. 
  논리적이고 전체적인 조망을 하도록 교육받기는커녕 그저 자기 가족, 자기
몸뚱어리나 잘 가꾸어 나가면 성공적인 여자의 삶이라고 생각하도록 강요받기도
했었다. 현모양처로서 쓸데없이 어두운 면이나 불만스러운 면을 입에 올리면,
가정의 화평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금지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자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것은 겨우 자연이나 계절에 대한
감상같은 신파조의 타령과 실속 없는 신세 타령의 나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자들이 쓰는 수필은 보통  행복한 신변 잡기  혹은  사랑 타령 이
되거나, 자의식만이 과잉되어 사회적, 역사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는  사소설
이라는 비난도 전혀 근거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이제껏의 적잖은 여류 문인이나 여류 명사들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항상
답답하다고 느낀 점이, 바로 그런 식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눈감음이었으며
지고지순한 사랑 운운하는 감상에 몰입해 있음이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여자들의 문제를 고립시키고 탈사회화시키는 글들이 싫어
완전하고 전문적인 이론 체계는 비록 갖고 있지 못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읽기
쉽게 풀어 써가면서 나를 비롯한 여성의 삶을 제대로 인식해 보고 그 대안에
대해서도 여러 사람과 같이 고민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생산적이고 건강하지 않은 감상은 배제하려 애쓰는
동시에 인간에게 소중한 정서를 무시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안타깝게도 그
성과는 대단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때로 나를 비롯해서 지식인층의 일부 여성들은 배우지 못하고 세련되지 못한
아주머니들의 거의 원시적이라고 할 만한 감정의 표출에 대해 일종의 혐오감이나
경멸감을 갖게 되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내게도 한때 아주 슬픈 소설이나
영화를 봐도 눈물 짓거나 감동하지 않았던 미숙한 이성적인 시기가 있었다. 
  아무데서나 질질 짜고 서글프게 우는 것은 무식한 아녀자들이나 하는
짓거리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따위 시시한 일 갖고 눈물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비뚤어진 특권주의식 발상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선택받고 교육받은 여자니, 그런 평범한 여자들과는 다르다는 이기적이고
잘난 체하는 남자들과 나를 동일시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 스스로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가 엄존하는 이 땅에서
불행하지 않은 여자로 살아 남기 위해 상처를 받는 한편으로 스스로를 치료해
가면서 그런 내 어설픈 엘리트 의식이 깨지게 된 것은 퍽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주머니들이 유치한 영화를 보고 왜 우는지, 시시한 연속극을 보면서
왜 감동하는지, 말 안해도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내게 몹시 소중한 부분이
되었다.  그런 공감의 능력은 내 자신이 여성이며 다른 여성들과 비슷한 체험을
공유하고 있어, 그 영혼의 악보가 비슷하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그런 연대감과 일체감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 그 속에서 살아 나갈
힘을 얻으며 자신이 여성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점점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다른 여자들과의 그런 감성적인 공감이 내 글쓰기를
보다 솔직하게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책을 써나가면서 얻게 된 또 다른 기쁨은 여자의 입으로도 성에 대해 대담하게
말할 수 있으며 동시에 품위를 지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금은 찾아 나갔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여성의 손에 의해 씌어진 성에 대한 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문적인 논문이어서 일반 독자들과는 거리가 너무 멀거나, 간접적으로
성을 기술한 문학 작품 일부만이 있을 정도다.
  그 밖에는 모두 성을 소외시키는 상업주의와 타협한 것들이 범람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여자와 남자 사이의 뒤틀린 관계를 얘기하자면,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인 성적인 문제를 대담하게 정면에서 다루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보통 성적인 억압을 문제시하는 것은 곧 선정적 상업주의라는
발상을 갖고 있는 경우가 아직은 많다. 그래서 여성의 성적 억압에 대한
글쓰기를 점잖은 지면에서는 아예 할 수 없게 만들어 오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성적인 문제 들은 감히 번듯한 가문의 정상적인 여자가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수치스러운 이야기고 그런 글들은 싸구려 주간지나 포르노
잡지에서나 다루어야 된다는 믿음들이 적잖이 퍼져 있기도 했다. 
  여자들이 공식적으로 감히 성적인 대화를 할 수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남자들은 열심히 여성을 대상화하는 글들을 썼다. 그만큼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남자들만이 독점해 오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는 스스로의 육체에서 소외되어
왔다. 
  남자들의 시각, 그것도 왜곡된 남성 우월주의의 편향적 시각으로 본 여성의
성은 대상화되고 객체화 혹은 물화되어, 인간인 여성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비본질적이며 주변적인 것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성적인 주제는 여자들이 공식석상 혹은 지면에서 주체적으로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묵시적 약속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자의 성이야말로 더러운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드러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번진다. 
  그러니 말 못하고 가만히 있는 여자들이 남자들의 성적 잘못까지 뒤집어쓰게
되는 억압적인 기제로 변하게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강간이나 인신 매매를
당한 여자들의 경우, 여자의 성적 경험은 더러운 것이기 때문에 실제 피해
당사자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문제화시켜 제기할 수 없다. 
  게다가 폭력을 행사한 것은 분명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여자는 남자를 유혹하고
타락시킨 원인인 양 매도당하기도 한다. 
  그런 모순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논의되어서는 풀리지 않는 사회적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입을 봉하게 함으로써 모순을 해결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전제가 되는 자연스러운 의사 소통이 불가능했었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싫어서 정신과 의사인 동시에 여자로서 내가 느끼는 성에
대한 문제도 대담하게 다루고 싶었다. 물론 한정된 지면과 모자라는 학식 때문에
입만 떼다 말았지만 말이다. 언제가 기회가 닿으면 성적인 것과 관련된 여성들에
대한 억압을 좀더 밀도 있고 심도 있게, 그러나 누구나 봐서 이해 할 수 있도록
쉽게 쓰고 싶다는 의욕을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는 글쓰기를 하면서 내가 얻게 된 비교적 긍정적인 면만을
기술했는데, 이제부터는 내가 해결하지 못한 한계와 극복해야 할 과제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우선 주부로서의 역할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더불어 글까지
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 능력 밖의 과욕을 부리는 일이었다. 
  이런 넋두리를 하는 것은 어리광을 부리며 남들에게 푸념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자아를 찾아 나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만만찮은 걸림돌인  슈퍼우먼
콤플렉스 에 대해 다른 이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싶어서다.
  나는  집안일 이 남자들의 고상한  바깥일 못지않게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청소나 빨래, 밥짓기 등은 남자 여자를 불문하고
자기 몫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숨어 있는 믿음이다(우리나라에서는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그런 생각까지 숨기고 살아야, 다치지 않고 생존해 나갈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실 일부 성공한 여자들은 실제 그런 일들에서 해방되어
있다. 파출부들이나 친정 어머니들이 그 귀찮은 일들을 모두 맡아 준다. 사실
그래야만 바깥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운이 좋은 그녀들에게 가정은
남자들에게 처럼 좋은 쉼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집안일과 바깥일을 한꺼번에 하며 살 수밖에 없는 여자들에게는 
슈퍼우먼 콤플렉스 에 걸렸다고 말한다.  다행히 남편은 내 글을 읽고 나서
예전보다 훨씬 많이 집안일을 도와주긴 하지만 난 그것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이 집안일에서 해방될 성질이 아니라고
본다. 
  공적인 일을 사적인 술자리에서 해결하려는 우리나라의 직장문화에서
남자들에게 직장에서 곧장 들어와 아이를 보고 집안일을 하라는 것은 어쩌면 그
남자에게 사회적인 고립을 강요하며, 자신의 성공 욕망에 대한 포기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과 같을 때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일부 사회주의 국가에서처럼 육아나 가사 노동 일부를 정부나
공공 기관에서 될 수 있으면 많이 담당해 줬으면 하고 바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처럼 육아 문제를 여성들만 담당하게 강요한다면 일손이 딸려
야단인데다가, 맞벌이를 해야 겨우 살 수 있는 부부들이 많아, 출산률은 점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결국 얼마 안 가 노동 생산 인구가 부족해 전체적인 국민
총생산도 줄어들 것이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자 보건이나 탁아 시설 문제는 국가 생산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제껏의 고루한 생각, 즉 아이는 엄마가
온전히 맡아 키워야 한다는 고정 관념으로 그런 과감한 투자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물론 여자들도 끼리끼리 집단을 만들어 서로서로 품앗이를 하면서 살 수
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쉽게 말해 집에서 할일이 없어 권태로워하는
여자들은 직장생활을 하는 여자들의 아이들을 돌보며 인생의 보람을 느끼는 것도
좋을 것이고, 직장 구하기 어렵다고 한탄만 할것이 아니라 놀이방이나
공부방이라도 차려, 스스로 돈도 벌고 일하는 다른 여자들의 일손도 좀 덜어
주면 좋을 것이다.    두 번째로 책을 쓰며 내가 안타깝게 느낀 것은 성적인
선입관의 고정 관념들로부터 해방되어야 된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독특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싶은 생각이 의욕만 앞섰지 쉽게 표현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는 요즘 생리적인 조건들 때문에 여자들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인 갈등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즉, 월경 전 긴장 증후군, 산후 정신병, 폐경기 증후군,
강간 등의 외상후 신경증 등이 그것이다. 
  또 역사나 소설책 속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정신
의학을 하는 사람의 눈으로 다시 한번 정리해 보고 싶어서다.  그러나 아직
너무나 일천한 현장 경험과 얕은 지식이 남 앞에 선뜻 나서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앞으로 많은 이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세 번째 내가 책을 쓰면서 극복하고 싶었던 과제는, 왜곡된 성 문화로부터의
해방은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를 어떻게 현실화시킬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원래 타고난 성격이 사교적이지 못한데다가 어미로서의 아이들에 대한
죄의식으로 사회적인 모임이라고는 전혀 참여를 안하고 있는 나같이 폐쇄적인
사람에게, 다른 여성들과의 활발한 연대 활동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나의 계층적인 한계와 자폐적 성격을 건강하게 극복하려면,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활발한 만남이 필요할 것으로 보는데, 내 게으름과 약한 체력이
얼마만큼 감당해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행히 (여자의  허물벗기 )에 대해 많은 여성들이 공감을 표시해 주었고
호응을 해서 뜻하지 않았던 도움을 벌써 많이 받고 있다. 
  나의 심리학적 의학적 기초 지식과 다른 사람들의 여성학적인 인식 태도가
합쳐지고, 또 역사나 문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풍부한 가르침을 받는다면 보다
새로운 연구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꿈꾸기도 한다. 
  네 번째로 내 책에서 부족한 것은 여성의 해방이 곧 남성의 해방을 뜻한다면,
어떻게 남성들을 그 신나는 광장에 즐겁게 동참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이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더러 그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것, 노예를 부리는 사람보고 너는 노예에 역설적으로 예속되어
비인간화 되어 있으니 그 노예를 해방시키라는 말은 이론적으로는 쉽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진 자는 쉽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 법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본능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들은 교묘한 보수 이데올로기를 통해, 특히 여성과
남성의 문제에 있어서는 낭만적인 사랑의 환상이라는 당의정을 제공해줌으로써
소외된 여성들을 다스려 왔다. 
  실제로 단순히 남성 대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대결 구도만으로는 가정과
직장에서의 구체적 여성 운동이 실패하기 쉽다고 본다. 여성 해방은 곧 남성
해방이며 동시에 인간 해방이라는 가치 전제를 어떻게 정교하게 이론화시키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더 활발하고 다양한 공동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 깊이가 있는 책도 아니고 어떤 이론서도 아닌 단순한 수필집이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여성적인 사고를 하고 여성적인 글을 쓰고 싶었다. 
여기서 여성적이란 것은 남자들이 말하는 복종적이고 감상주의적이고 유혹적인
여성과는 거리가 멀다.
  글쓰기는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일종의 자기 치료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억눌려 온 꿈과 감추었던 욕망들이 터져 나온 계기가 되었다는 점,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자신의 변화를 스스로 지켜 볼 수 있다는 점은
뜻하지 않았던 즐거움이었다.  가끔 잡지 등에서 좋은 문학적 재질과 생각들을
가졌지만 간판이 시원치 않아, 일회용 저자로 끝나는 평범한 독자들을 발견 할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한다. 
  반면에 여류 무엇이라는 요란한 이름과는 달리 오히려 남성 본위 사회에서
억울한 처지에 있는 여자들에게 해로운 글들을써, 평범한 독자들을 현혹케 하는
글을 볼 때면 화가 난다. 물론 잘못된 여성관을 갖고 식자인 척하는 속물
남자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여성의 몸을 소외시켜 영혼과 분리된 성적 대상물로 만들면서도 성에 대한
글만 아무렇게나 쓰면 마치 여성 해방인 양, 그래서 자신이 큰 선심이나 쓰는 양
생각하는 한심한 남자들, 여자들을 착취하며 살아가는 것을 무슨 대단한
전통이고 민족주의적인 유산인 양 생각하는 사이비 보수 인사들, 그런 사람들의
글을 대할 때면 정말 가끔은 불에 태워 버려야 옳지 않나 하는 과격한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처음 내가 책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느꼈던 망설임과 당혹감이
떠오른다.  나 같은 평범한 젊은 여자가 책을 내다니,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자신감의 결여, 또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비난받지 않고 우스갯감이 되지
않을까 하는 피해 망상적인 태도는 어떻게 보면 이제껏 뭐든지  나는 못해, 나는
무능해 그러니까 조용히 있어야 해 하고 길들여진 다른 여성들의 모습과도 통할
것 같다. 그런 망설임을 밀어낸 것은 아마도 억울하게 짓눌려 왔던 이땅의 여자
노릇에 대한 뿌리 깊은 분노와 엉뚱하게 잘난 척하는 못난 남자들에 대한 반발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도 여류 누구라는 껍데기가 없는 탓에 훌륭한 능력을
갖추었으면서도,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야 하는 많은 평범한 여자들의 참여가
활발해질 수 있게,  또 하나의 문화  같은 모임이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다. 
  책 한 권을 낸 후, 엉뚱하게 이런저런 원고 청탁에 바빠진 것도 변화라면 큰
변화였다. 그러나 틈틈이 써나간 글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내 정신 세계의 빈곤과
부박함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글을 쓰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
너무 한 군데에 생각이 고여 있어 부패하게 되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철없이
헤프게 써버려 그 자원이 고갈되어 버린다면 더욱 볼썽사납게 될 것 같아서다.
그런 함정에 빠져 들지 않기 위해서 보다 근면하게 살아야 한다는 죄의식과
강박증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전보다 더 고달프기까지 하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느끼는 것을 글로 남길 수 있다는 행운은 사실 자신에게
너무 과분한 일인 줄을 잘 알고 있어 요즘에는 매사가 더욱 조심스럽다.
    여자다운 남자, 남자다운 여자
  지금도 가끔 그런 느낌이 들지만 어린 시절 나는 스스로를 여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했었다. 내 또래의 여자 아이들이 인형을 갖고 소꿉장난을 하며 놀거나,
거울을 보면서 예쁜 머리핀을 꽂을 때 그리고 어머니를 도와 부엌일을 할 때,
나는 혼자 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것밖에 몰랐기 때문이다. 
  친척들은 나에게 그렇게 남자처럼 자라서 어떻게 시집을 가겠느냐고 걱정을
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옷 한 벌 사달라는 응석도 부리지 않고, 예쁜 액세서리가
갖고 싶다는 말도 하지 않으며, 애교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나에게, 도대체
딸 키우는 재미가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으셨던 적도 있었다. 
  그만큼 나는 여자로서의 성 역할에, 서툴고 모자랐던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보통 여자다움이라고 얘기하는 수동성, 조신함 겸손함, 자기
희생, 겸양의 미덕 등이 내게는 많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신과
의사가 된 다음에도 여자다움 혹은 남자다움이란 뭘까에 대해 고민하고, 관심
있게 책을 들추어 보곤했다. 
  물론 진보적인 서양의 학문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의 요즘 추세는 양성성의 이론에 기대고 있는 듯하다.
  양성성 이론이란, 어떤 사람이든지 그 내면에는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을 다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남자들은 여자와 남자가 전혀 다른 존재라는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흔히 (주역)에 나오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말을
자주 들먹거린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꼼꼼히 읽다 보면 [양괘음다 며
음괘양다]라는 구절에 눈이 멈춰지게 될 것이다. 
  우리 말로 쉽게 풀이하자면 양괘 안에는 음의 성질이 많고, 음괘 안에는 양의
성질이 많다는 뜻이다. 즉, 음과 양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서로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지, 배타적 혹은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주역)에 나오는 구절은 정신 분석학자 융의 아니마/아니무스 이론을 연상케
한다. 그는 정상적인 남자 안에도 여성적인 성질인 아니마가 있으며, 건강한
여자의 내면에도 물론 남성적인 아니무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요즘 같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기에는 어떤 것이 진짜 남자다움이고, 어떤 것이 진짜
여자다움인지 모호할 때가 많다.
  웬만한 남자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육체노동을 끈기와
열정으로 해내는 여자들이 있는가 하면, 여자 못지않은 따뜻한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모성적인 남자들도 많다. 이제는 그들을 더
이상 병적이거나 비정상적으로 보지 않는 추세다.
  지나치게 성적 차별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는 그 사람들의
경직된 사고 방식에 조금은 호흡 곤란을 느끼곤 한다. 
  중요한 건  인간답게, 남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잘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 인데,
엉뚱한  다움  혹은  스러움 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의 진짜 알맹이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나치게 강하고 굳센 남성의 이미지만을 강요하는 아버지 때문에, 일종의
남성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평생 동안 고생하는 이기적이고 거친 남자들, 그저
복종하고 피동적인 여자로만 교육 받았기에 끝내 홀로 서기를 하지 못하는
유약한 여성들, 그들에게 (주역)과 융의 책들을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음과 양은 서로 도우며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던 옛 성인들과
철학자들의 생각을 왜곡하여, 제멋대로 해석하려고 드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행복이라는 환상 깨기
  광고와 영상 매체에 나오는 주부들의 사는 모습을 한번 묘사해 보자.
  앤티크 무늬의 싱크대 위에는 서양 영화에나 나옴직한 긴 빵과 열대 과일이
놓여 있다. 클래식 무드의 세련된 장식, 우아한 패브릭 침대와 가구들, 무스와
헤어 스프레이를 잔뜩 뿌려 부풀린 머리와 여성미 넘치는 정장이 조화를 이룬다.
인테리어 역시 세련되기 그지없다. 화려한 소파와 벨지움산 카펫,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그런 방에서 살면 부부 싸움도 왠지 고상하게 하고 커피 한잔을 마셔도
고급스럽게 느껴질까? 삶의 질이 좀 높아 보일까?
  잡지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들에 대한 기사도 마찬가지다. 만 두살 때부터 글을
읽었다는, 김시습 빰칠 만한 영재들은 왜 그리 많고 한국의 모차르트인 음악
신동은 또 어찌 그리 흔한지. 좁아만 가는 세계에 일찌감치 대비하느라, 대여섯
살만 되면 모두들 영어 한마디씩은 한다. 
  남편들 역시 완벽하다. 젊고 잘생긴 그들은 능력도 뛰어나, 아내에게 모든
것을 다 제공하면서도 몹시 자상하다. 일요일이면 빨래도 해주고 청소도 하는,
부지런한 남편 노릇을 거절하지 않는다. 아내가 아프면 약도 사다 주고 안마도
해주는, 그야말로 천사 같은 남편이 자주 등장한다.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남자들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그녀들의 남다른 재능과 진취적인 사고 방식, 적극적인 생활 태도는 다른
사람들의 열등감을 자극할 정도다. 그들은 대개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는 처지다. 뒷바라지를 해주는 친정 어머니나 살림을 대신해 주는
가정부가 있다. 그래서 오로지 바깥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그야말로 대단한
행운아들이다. 
  대중 잡지나 영상 매체는 근본적으로 읽을 거리가 아니라 볼 거리기 때문에,
화면의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구성과 색깔이 좋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히
내용물에 알차게 치중하기보다는 눈을 즐겁게 하는 데 치중할 수밖에 없다. 
  또 아이들 뒷바라지에 쩔쩔매며, 하루 종일 끝도 없이 계속 되는 집안일에
매달리는 주부의 입장에서는 주제가 있고 교양 있는 글만 읽기는 정말 힘들다.
  고작해야 밤 시간, 몸도 마음도 지쳐서 잠이 쏟아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주부는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곤에 지쳐 깜빡깜빡 졸면서, 어려운
철학책이나 역사책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러니 그저 흥미 위주의
잡지로만 눈이 가는 건,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심각한 논쟁 거리나 교양은 다른 전문지나 단행본에서 해결하면 되니까,
무조건 가벼운 대중 잡지나 영상 매체들을 비판할 필요는 없다. 만약 모두가 다
근엄한 얼굴로 세상을 비판하고 권위있는 글만 쓴다면 그것처럼 답답한 일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때로는 그런 광고나 산뜻한 기사들의 홍수 속에서 자신을 그 화면 속의
허상과 비교하여, 자꾸 초라하게 느끼거나 상대적으로 위축감이 든다면 그것도
문제인 것이다.  누구는 매일 설거지통에 손 집어 넣고 사느라 하루 종일 손에
물이 마를 때가 없는데, 어떤 사람은 저렇게 화려하게 살까 하는 느낌이 괜히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동시에 사회나 가족들로부터 별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가치있게 여겨지지도
않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집안일이 한심하고 답답하게만 생각된다. 
  내가 이런 하찮은 일들을 하고 있을 때, 그저 겨우 방 두 개짜리 아파트 하나
마련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운 좋고 팔자 좋아 저렇게
화려하게 사는구나, 하는 일종의 위화감과 소외감이 밀려오는 것이다. 
  나도 열심히 공부했고, 사느라고 나름대로 애쓰기도 했는데, 세상은 왜 이리
공평치 못할까. 또 난 왜 이렇게 복이 없을까. 이런 생각들 때문에 괜히
초조하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런 느낌은 사람을 지치고 불행하게 만든다. 쓸데없는 열등감과 자기 비하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텔레비젼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완벽하고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모든 물질적인 조건을 갖추고 나면, 아무 걱정도
없고 괴로움도 없는 일종의 무균실 속에 들어앉게 되는 것일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구체적인 예로 이십 세기의 마지막 신데렐라들인 다이애나와 퍼거슨비를 예로
들어 보자.
  그들의 세기적인 결혼식을 보면서, 지구 위 여자들은 거의 대부분 부러워했을
것이다. 단번에 부와 명예를 갖게 된 그녀들 앞에는 장미빛 인생만이 펼쳐져
있을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몇년도 채 안된 지금, 샘 많은 호사가들을 기분 좋게 해주려는
의도인지 그들은 각종 악성 루머를 뿌리고 다니고 있다. 
  자살 기도를 몇 번씩 했다는 둥, 심각한 정신과적 문제로 정신치료를 받고
있다는 둥, 그들 정부와의 뜨거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사진이 세계 곳곳에
뿌려지는 등, 당사자들에겐 굉장히 모욕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만 봐도, 이 세상에는 화려하고 황홀하기만 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가.
  60년대 이후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셀러,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란 책이 있다. 
  대학 시절, 난 그 책을 사면서 환상적인 여성, 사랑의 신비 따위의 조금은
선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렸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가 행복의 전형적인 모델이라고 생각했던 주부들의 삶이 얼마나 허구로
가득 차 있는지, 또 사회가 가정 주부들을 어떻게 소외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고 해부해 놓아, 그런 내 환상들을 깨게 만든 책이었다. 
  그 책을 기폭점으로 해서, 여성만의 특별한 삶에 대해 재조명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상류층 여성은 여성대로, 또 빈민 계층은 빈민 계층대로 여성이기
때문에 덤으로 붙여지는 여자의 질곡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기 전에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가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일세기, 참정권이 주어진 지는 겨우 몇십 년밖에 안된 탓인지, 아직까지도
여성의 삶이 제대로 조명되기보다는 왜곡되는 경우가 더 많다.
  즉,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살아 있는 삶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신화화되거나 혹은 정반대로 극단적인 추문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그림 엽서나 동화책에 나오는 현대판 신데렐라, 아니면 옐로우 저널리즘에
영합해서 창녀의 진부한 스토리를 만든다. 그런 식의 접근 방법은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면서, 여성 내부를 자꾸 분열시켜 버린다. 
  헌신적인 가정 주부냐, 혹은 아름답지만 매춘부 노릇이나 하는 악녀냐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이 있는가 하면, 바깥에서 일하는 여성은 유능한 반면,
직업이 없는 여자들은 열등하고 부족하다는 성숙되지 못하고 성급한 태도도
있다. 
  게다가 여자들끼리 서로 질투하고 시기하도록 잘 길들여져 있는 한국적인
전통에서, 동지 의식을 느끼고 연대감을 맛보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한국 여성의 상황과 미국 내 흑인들의 상황은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에, 그 접근법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간단히 소개하겠다. 
  심한 인종 차별이 아직까지 당연시되고 있는 미국의 흑인들은 계층적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그 첫 번째 집단은 보수적인 흑인들, 즉 수직적인 계층 상승을 통해 백인
집단에 속하게 되어 상대적으로 높은 수입도 올리고 지적인 수준도 높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을 흑인이라고 여기기보다는 백인 집단과 동일시한다.
그래서 어떤 의사 결정을 할 때 백인들보다 오히려 훨씬 더 보수적이어서,
흑인들의 민권 운동에 더 적대적인 사람들도 없지 않다.
  두 번째 집단은 할렘이라는 빈민촌에 살면서 돼지고기와 콩 통조림으로 하루
세 끼를 연명하고 있는, 그야말로 최하류층을 이루는 흑인들이다. 마약과 폭력,
무분별한 성생활과 범죄로 얼룩진 그들의 일생은 비극적이기 그지없다. 
  같은 흑인들이지만 그 두 계층은 매우 적대적이다. 상층에 있는 흑인들은
게으르고 못난 하류 계급 흑인들을 무시한다. 그들이 못사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의 처신이 잘못되었고,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식의
말을 쉽게 뱉어 버린다. 하층 계급 흑인들은 상류층 흑인들을, 백인들 흉내나
내는 박쥐 같은 배반자라고 백안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내의 흑백 문제는 해결이 나지 않는다. 백인들은
유유자적하게 자기네들의 기득권을 즐기면서, 흑인 내부가 서로 분열되는 것을
즐겁게 지켜 본다. 적당히 대학 입학의 일정량을 쿼터제로 할당해 주고, 마이클
잭슨이나 빌 코즈비 같은 연예인 재벌도 탄생시킨다. 매직 존슨 같은 운동
선수에게는 비록 에이즈에 걸렸더라도 스타로 추켜 세우면서 거액의 돈을
제공하는 제스처도 쓴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봐라, 흑인들아, 너희들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고, 백인
집단에 속할 수도 있지 않느냐. 흑인들이 현재 못사는 것은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종 문제 등을 시끄럽게 떠들어서 괜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자기 할 일이나 열심히 해라.]
  뭐 이렇게 짐짓 충고인지 조언인지도 해준다. 그러나 실은 대다수의
흑인들에겐 고용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 또 게토화된 흑인 지역에선 어린
시절부터 학습이나 성공에 대한 동기의 싹이 잘리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자기 부모를 보고 배우기 때문에, 빈곤과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여성들도 그런 흑인 내부와 비슷한 면이 없지 않다.
  돈이 많은 여자들은 대부분의 하층 계급 여성들의 문제인 고용의 불평등,
열악한 생활 조건이나 심각한 탁아 문제를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보거나,
오히려 같은 여성으로서 남성보다 더욱 적대적인 면을 보인다. 
  상대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또 화려하게만 보이는
잘사는 여성들을 질시하고 혐오한다. 극단적으로 이분화되어 있는 이런
분위기에서, 여성으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잘살건 못살건, 직업이 있건 없건, 이 땅에서 여자 노릇을 하려면 거의 모두
겪어야 하는 어려움들이 많은데도, 그것이 모두 자기만의 특수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부간의 갈등, 취업이나 승진에서의 상대적인 기회 박탈, 결혼
시장에서의 물신화 경향, 물질 지향적인 아이들의 교육 문제 등은 어떤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들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자기의 가치관이 어떻든 간에 여성들끼리 단결해서 고민하고
해결해야 될 것이다. 
  우선은 기초적으로 여성 내부의 눈뜸이 급선무다. 따라서 그저 잡지나 영상에
나오는 화려한 여성의 삶에 현혹되어 한숨짓고 있을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직시해야,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또 매스컴 쪽에서도 일부 상류층 여성들만 집중적으로 조명할 게 아니라
진솔한 사람들의 살림살이에도 주목해야 할것이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나, 또
어떻게 꾸며 놓고 사는가도 물론 중요하고 고민해야 될 일이지만, 현재의 내가
과연 내 의지대로 소신껏 살고 있는지, 또 여성으로서 정당하게 대우를 받고
있는지, 또 내 건강한 자아와 인간성이 왜곡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전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변화와 의식의 전환이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작은 모임을 만들고 또 그 모임이
새끼를 치고 인쇄물을 만들어 서로에게 영향력을 주는, 그래서 모인 움직임들이
여성들의 거대한 사회 운동으로 변한다는..... 다소 순진하지만 가능성 있는
공상을 해본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지는
의문이다. 내 생각과 조금 다르다면, 또 내 의견이 고깝게 들린다면, 그들의
생각을 주의 깊게 경청해 보고 싶다.
    안 팔리는 여자 신드롬
  에이양은 스물아홉 살의 미혼 여성이다. 모델같이 늘씬한 미인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매력적이고 지적인 여성이다. 그런 그녀가 심한 열등감과 좌절감을
겪고 있다면 아마 주위 사람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그녀의 경험들은 이 땅의 여자들이면 누구나 겪는, 어쩌면 그리 독특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일류대에 들어가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학과에 들어가
어영부영 졸업했다. 여기저기 입사 시험을 보았으나 아쉽게도 그녀가 원하는
직장은, 대학을 졸업한 여자에게는 바늘 구멍만큼이나 좁은 문이었다. 취직
시험에 몇 번 낙방을 하고 일년을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진짜 노처녀인 언니의 눈치를 보느라 둘째딸
중매는 생각지도 않는 부모님 덕에 맞선다운 맞선조차 보지 못했다. 
  결국 별로 큰 뜻도 없으면서 대학원 시험을 보고 2년간의 유예기간을 가졌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취직 시장이나 혼인 시장에서 그녀는 이미 그리 값나가는
존재가 아니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득의양양하게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친구들을 볼 때, 자신은
뭔가 모자라는 듯한 열등감을 맛보기도 했다. 또 마흔이 가까운 언니의
히스테리를 지켜 볼 때마다, 자신도 언니처럼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남편과 시집 식구들로부터 항상 억눌리고 종처럼 부림을 당하는 어머니의
서글픈 결혼 생활,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지만, 언니처럼 외롭고
초라하게 늙어 가는 것도 싫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소위 캐리어 우먼으로
성공하는 길이 가능해 보이지도 않았다. 취직 시험에 낙방할 때마다 겪어야 할
마음 고생은 자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초조해 하다가, 결국 나를 찾아왔다. 
  물론 그녀의 생각에 문제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일류대를 나왔지만
그녀의 전공이 인기 학과도 아니고 여자니까, 사회와 타협해서 적당한 취직
자리를 알아보다가 시집이나 가면 될지도 모른다.  결혼을 한다고 전부
어머니처럼 서글픈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미혼으로 산다고 해서 반드시
언니처럼 외롭고 한심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어쩌면 지나치게
걱정하는 여자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문제들을 모두 그녀 자신에게로 돌리면
속은 편할 것이다. 
  긍정적으로 살아라, 자신 있게 살아라 같은, 그럴듯한 말로 짐짓 격려하고
위로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런 공허한 말들은 오히려
독일 될 뿐이고, 그녀를 구석으로 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자본주의 시장에서 꼭 쓸모 있는
학과는 아니지만 일류대를 졸업했으니, 대기업의 사원으로 당당히 취직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신부감을 구할 터이고,자기가 어떤
값에 팔릴지 안 팔릴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패배주의적 발상이지만, 때론 왜 여자들에게 쓸데없이 고등교육을 시키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현모양처가 되는 데 유기 화학이 무슨 필요가
있으며, 직장에서 커피 심부름이나 하는 데 사회학적 인식 방법이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이제까지의 대학 교육은 어쩌면 여자들에게 일종의 환상을 심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게 주어진 기회는 동등하며
평등하다고.
  어쩌면 그런 착각 속에 그녀도 빠져 있었는지 모른다. 일찌감치 여자로서의
자기 처지를 깨닫고, 타자나 배워 적당한 곳에 취직해서 그럴듯한 배우자를 물어
결혼했으면 정신과 의사를 찾아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여성 해방론자나 평등 제일주의의 사회주의자는 아니지만 남자들에 비해
모든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여자들을 볼 때마다 몹시 화가 난다. 아주 선택받고
복받은 내 위치가 어떤 때는 죄스럽기까지 하다.
  여자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인식을 일찌감치 내게 깨우쳐 주신
부모님 덕분에 자격증을 갖고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내 직업이 때론 부끄럽다.
  지금 결혼 시장에서 어떤 남자에게 어떤 값(지참금과 혼수)을 지불하고 팔릴까
전전긍긍해 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에게, 또 자신이 생각하는 진로와 사회가
여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달라 실망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그야말로 마술적이고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답답하기만 하다.
  나야 그저 평범한 의사일 뿐이고, 정치하는 사람도 사회의 저명 인사도 아닌  
                  
                                       
                  
                     
       
                           
   
                  
          
            
                        
                           
                             
                       
               
         
                     
                             
         
                         
                         


                 
           
          
                     
             
              
                   
                   
           
                               
           
                                  
                             
          
                
                 
                 
                        
          
      
              
                      
                              
          
                                     
              
                                 
                                                 
  
 까닭이다. 그러나 무조건 실망하고 좌절해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말해 주고
싶다. 얼마 전 이혼의 아픔을 딛고 구두 가게의 점원부터 시작해서 십 년 만에
몇개의 점포를 거느리게 된 한 여자 사업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녀의 입지전적인 성공담을 취업 전선과 결혼 시장에서 좌절하고 있는 보통
여자들에게 거짓 환상을 심어 주는 데 써먹을 필요야 없지만 일부러 축소 평가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조금 황당무계한 연상 같지만 유대인들이 지금처럼 세계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핍박받아 온 탓에 이를 악물고 일어섰기 때문이며, 또
현재의 일본인들이 누리고 있는 부와 영광은 전후의 폐허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말을, 에이양을 비롯하여 절망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다.   
  여자들도 왜 안 팔리느냐고 남자들에게 보채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일본인들처럼 이를 악물고 남자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힘든 일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야금야금 성공해 나가면 적어도 한 세대 이후 우리의
딸들과 후배들에게는, 지금보다는 좀더 당당하게 그들의 진로와 앞날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허황되게 보이는 이런 생각이 과연 몇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희망을 줄 수 있을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여자가 여자에게 보내는 화살
  옛날 이야기, 신화, 소설, 영화 속에 나오는 여자들은 크게 네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아름답지만 강한 소유욕을 가진 위험 인물인 (카르멘)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같은 여인들, 둘째는 아름답지만 질투도 없어,
남자들에게는 그지없는 이상형인 (구운몽)이나 (사씨 남정기)의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여인들, 셋째는 아주 못생겼지만 심성은 착해, 투기 같은 것과는 상관
없어 보이는 펄벅의 소설 (대지)의 주인공 오란 같은 여인들, 넷째는 몰골도
흉악하면서 질투로 똘똘 뭉쳐 있기까지 한 (장화홍련전)의 계모 같은 악녀들.
  여자들은 대개 이런 네 가지 유형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그 가운데 자신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섣불리 저울질할 필요는 없다. 대신
왜 그런 여성들이 문학 작품 속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라.
  혹 여자는 인간 그 자체보다는 남자와의 연결 관계에서만 형상화되기 때문에
그런 유형화가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다시 말해서 남자의
타자로서만 여성 주인공들이 존재 가치가 있다는 잘못된 결론을 알게 모르게
유도 하는 것은 아닐까? 

  여자 정신과 의사로서 대답하기 곤란한 물음 가운데 하나가 [여자의 심리적
특성은 무엇인가요]와 같은, 매우 모호할뿐 만아니라 증명할 수도 없는, 섣부른
일반화를 유도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다.
  예를 들어 [여자는 변덕스럽죠?] [여자는 속이 좁죠?] [여자는 사랑을 더욱
목말라 하죠?]등의 물음들은 그 자체가 별로 생산적이지 않다. 그 뒤에는 대개
여자를 비하하려는 음흉한 속셈이 깔려 있어서, 듣는 사람만 기분 나쁠 뿐이다. 
  [여자는 질투가 심한 동물이죠?]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봐라, 어린애같이 샘이나 부리고 있는 여자들의 꼬락서니를. 큰일을 도모하는
남자에 비해 그저 서로를 헐뜯기나 하는 소인배에 불과한 여자들의 심리적
특성이 그러하니, 작금의 불평등한 남녀 관계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런 질문에는 성에 대한 이런 결정론적 남녀 차별주의가 밑바닥에 깔려 있게
마련이다. 여자가 정말 남자들에 비해 질투가 심한지 어떤지는 대대적인 역학
조사를 해보아야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설령 대단위
조사를 거쳤다 해도, 사회적 혹은 심리적인 현상이나 특성에 대한 단정은 쉽게
내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계적 의미가 있을 정도로 어떤 명확한 결론이 나온 듯하지만, 그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또다시 여러 가지 해석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주장을 외치기 전에 우리가 가진 가치관, 고정 관념 등에 대해서
일단은 반성을 해보아야 하는 게 순서다. 그래야 보다 중립적인 통계 조사도
가능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과학적인 결론이 나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객관적인 회의나 천착 없이 그저 목소리만 높여 자기의
맹신을 고집할 뿐이다. 
  세상에 떠도는, 여자의 속 좁은 질투에 관한 소문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적어도 몇 가지 생각의 단계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본다. 
  우선 [질투는 여자에게만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많은
동물학자들의 관찰을 굳이 들먹거릴 필요 없이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동물들의 생식 본능은 동성 간에는 적개심을, 이성간에는 친화력을 유발시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간도 동물에 속하는 한, 자기와 다른 성을 가진
상대방에게 잘 보여 선택되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즉, 같은 동성간의 질투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남자들의 질투는 별로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데, 여자들의 질투는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왈가왈부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 우선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남자는 성취 지향적인 삶을, 여자는 관계 지향적인 삶을 산다는 점이다. 
  즉, 남자는 자기 일을 위해 살고 여자는 사랑을 위해 산다. 따라서 옆의
동료가 잘되는 것을 보면, 남자들은 심기 일전해서 더욱더 자기 일에 충실하려
들 것이다. 자기 분야에서 남보다 앞서기만 하면 아름다운 부인은 부수적으로
그냥 따라오게 되어 있으니, 번거롭게 여자를 쫓아다닐 필요 없이 자기 일에만
충실하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
  그러나 여자들의 경우는 문제가 조금 다르다. 어떤 남자에 의해 선택되느냐에
따라 자기의 인생이 결정되는 수가 많기 때문에, 어떡하든 좋은 남자를 만나
그의 눈에 띄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흔히들 성공한 여자는 사랑에는 실패하게 마련이라든가, 혹은 그 반대로
사랑에 충실한 여자들은 성공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등 여자의 사랑과 성취는
상호 배제적인 관념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 
  구체적으로 한 여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상황을 한번 가정해 보자. 자기
인생을 확 바꾸어 줄 만한 멋지고 능력있는 남자를 드디어 발견했다. 그런데
여자인 자기에게는 그 남자를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다. 대부분, 여자가 먼저 남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사랑의 주도권을 잡을
수는 없지 않는가?
  그 남자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자기 인생이 행복해질 것 같은데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기와 똑같은 입장의 여자들이다. 혹
자기보다 더욱 아름다울 수도 있고, 배경이 좋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공격과
적개심의 화살은 어디로 갈 것인가? 자연히 여자들은 서로를 헐뜯게 된다. 그
여자 겉만 번지르르하다느니, 그 여자 심성이 사납다느니, 그 여자 과거가
있다느니...얘기는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쉬운 예가 시몬느 보봐르의 (위기의 여자)다. 주인공은 굳게 믿고 있던 남편의
외도에 경악하지만, 남편을 미워하는 대신 엉뚱하게 남편의 정부만 증오한다.
오로지 사악한 그 여자가 유혹했기에, 남편이 뜻하지 않게 자기를 배반한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같이 축첩제 등의 봉건적 관습이 아직까지 잔존하는
사회에서, 여자들은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질투가 칠거지악의 하나로 이혼
사유가 되었던 시절이 바로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였다.
  문제는 아들이 그 아버지의 생활 태도를 보고 그대로 배운다는 사실이다. 
  첩을 여러 명 거느리고 살았던 아버지가 남자답고 떳떳했다고 믿고 있다면,
자기 자신 역시 외도를 해도 크게 도덕성에 흠집이 가지 않는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다. 외국의 사정도 우리와 별 차이는 없다. 창세기 16장 1-2절의
다음 구절을 보라.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직 아이를 낳지 못했는데, 마침 사라에게는
하갈이라는 이집트인 몸종이 있을 것이다.....야훼께서 나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시니 내 몸종을 받아 주십시오. 그 몸에서라도 아들을 얻어 대를 이으려
합니다.]
  (성경)에는 이 밖에도 많은 일부다처제에 대한 언급이 있다. 현명한 임금
솔로몬이 7백명의 부인과 3백명의 후궁을 거느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 다음 여자들의 질투를 유발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는, 느슨하게 용인되고
있는 매음의 전통이다. 매춘이란 여자의 성을 돈으로 사는 것이다. 
  사랑 혹은 결혼이라는 배타적인 성역은 겉으로 드러나는 앞모습일 뿐이지,
실상 우리의 용기 있는 남성들은 얼마든지 자기 부인을 배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 집과 자기 가족밖에 모르는 현모양처들은 안심이 되지
않는다. 남편의 와이셔츠에 루즈가 묻어 있거나 수첩에 여자 이름이 적혀
있는데도, 이런 상황에서 질투를 하지 않거나 남편을 의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같은 여자끼리의 질투는 또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고부간의 갈등을 보자.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는 부부 중심이라기보다는 모자 중심의 봉건적인
농업 사회였다. 부부의 만남은 서로의 사랑 때문이라기보다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생식의 의미가 더 컸었다. 며느리는 아이를 낳아 주고 집안의 모든 궂은
일을 다하면서도, 아무 소리도 할 수 없는 노예였던 시기도 있었다. 모든 의견
결정에서 며느리는 소외되고, 시부모와 아들이 집안의 중심이었던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해 가고 있다. 불과 몇 십년 사이에 후기
산업 사회가 되면서, 모든 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부부 중심의 현대적 가족 구조에서는 젊은 아내의 목소리가 자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자기가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와
입지를 며느리가 감히 넘보는 것이 되고, 거꾸로 젊은 여느리의 입장에서는
시어머니가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으로 자기의 앞길과 정당한 의사 결정권을
빼앗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자기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현대 여성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과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남자들은 이런 갈등의 와중에서도
어머니와 아내 양쪽을 저울질하면서, 남자로서의 특혜를 놓치지 않으려는
약삭빠른 계산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엄한 어머니 밑에 자기의
부인을 교육시켜 보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든가, 자기에게 향할 공격의 화살을
어머니에게 돌린 후 자기는 그저 엄정 중립의 자세를 취하는 척하는 경우도
있다. 
  시누이와 올케 사이, 동서 사이의 반목도 역시 마찬가지 정신역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시누이는 친정에서의 자기 입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올케는
올케대로 새로운 자기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동서 사이에는 시부모의 사랑이나
집안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할 수 있다. 
  그 다음 유형은 어머니와 딸의 질투 관계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만큼이나
부녀간의 엘렉트라 콤플렉스도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심리 용어다.
  즉, 아버지를 사이에 놓고 딸과 어머니가 서로 경쟁심을 느낀다는 프로이트의
가설이다. 심리학적 지식을 굳이 들먹거릴 필요 없이, 우리 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어머니와 딸의 묘한 관계다.
  자식을 키우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비교적
딸은 아버지를 어머니보다 더 좋아하고 아들은 어머니를 더 따른다는 것이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간에 대략 만 다섯 살쯤 되면, 자기의 성 역할에 대해
어렴풋이 눈을 뜨면서 성적 정체감이 확립된다. 유아 소년기에도 성인과는 물론
조금 종류가 다르지만, 성욕 혹은 성적 충동이 있을 수 있다. 
  이때 남자 아이에게는 어머니가, 여자 아이에게는 아버지가 이상적인 이성의
상대가 된다. 즉, 딸인 경우 [커서 나는 아빠와 결혼할 거야]라고 하고, 아들인
경우 [이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예뻐. 나는 크면 엄마랑 결혼 할 거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심리적 발달 과정이 물론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 몇 단계를 거쳐 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게 되면, 어린 시절 품고 있던
그 같은 본능적 희망이 자연스럽게 용해되어 아버지나 어머니 아닌 다른
이성에게 눈을 돌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만약 어떤 심적인 상처가 있다거나, 인격의 발달이 그 단계에서 멈추어
퇴행하게 되면, 성적 본능까지도 그때 수준으로 고착된다. 즉, 다 커서까지
어버지나 어머니만을 자기의 영원한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물론 육체 교섭은 없지만 정신적으로는 일종의 근친 상간적
관계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해도,
무의식적인 소망 속에서 딸과 어머니는 서로를 경쟁 상대로 여기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모녀 사이의 갈등이 자연스럽게 풀리지 않고 한 여성의 정신
세계에 그대로 잔존하는 경우, 사회 생활을 하면서 그 같은 갈등이 형태를
달리해서 또다시 재현될 수 있다.  즉,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연장자와 괜히
쓸데없는 트러블을 일으키는 젊은 여성들, 혹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딸 같은
여성들에게 비정상적으로 몹시 혹독하게 구는 여성들의 심리에는 그런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숨어 있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위와 같은 종류의 심리적 설명만으로는, 여성끼리의 지나친 질투를
전체적으로 포괄해서 설명해 주는 해답을 구할 수는 없다. 
  사회학자나 구조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묘하게 고안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내 한계를 인정하지만, 같은 여자끼리의 질투 혹은 뿌리 깊은 적대감의
원인은 보다 근본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남성의 종속적인 위치에 있던 여성들은 인격적인 건강한 교류의 기회를
상대적으로 박탈당해 왔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에 대한 불만을 풀 수 있는
출구가 없었다. 즉, 자신의 성적 욕구 혹은 사랑에 대한 욕망, 더 나아가 자기
성취감 등을 당당하게 주장해서 획득하기보다는 왜곡된 방법으로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고여 있는 파괴적 정신 에너지와 억압된 공격성은, 상대적으로
약자고 아무래도 자주 만나게 되는 다른 여자에게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결핍감을 느끼게 되고 자기 박탈감의 원인에
대한 깨달음 없이 엉뚱하게 같은 피해자인 여성들을 박해하거나 미워함으로써
고식적인 만족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나는 과격한 여성 해방론자나 급진적인 사회 개혁주의자는 아니다. 또 소리
높여 어떤 주장을 할 만큼 박식하지도 않고, 든든하게 이론 무장도 되어 있지
않다. 한 평범한 정신과 의사로서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여성을 억누르고 있는
사회 모순에 대한 해결책은 의학적 접근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혹 지금 질투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여성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같은 여성들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당신과 똑같이 불쌍한 희생양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타파해야 할 대상은, 여성의 자유로운 인간적 발전을
억압하는 잘못된 사회 구조와 고정관념들입니다. 엉뚱하게 우리가 서로 엉겨
붙어 싸우는 동안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들--불평등한 가족 제도, 여성들에게
정당한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 분위기 등--이 쓰레기처럼 썩어 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충고만으로 단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리라. 다른 이들은
여성의 질투에 대해 어떤 견해와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가?
    여자를 키우는 남자, 남자를 키우는 여자
  풍경 하나.
  이십대의 한 총각 은행원이 서른 살쯤 된 여성 대리에게 쩔쩔매고 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호되게 꾸중을 듣는 듯. 남자는 아무리 상사라고 하지만
여자에게 그런 식의 취급을 받는 게 몹시 못마땅한 표정이다. 감히 사내
대장부를 이렇게 취급할 수 있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여자와 남자의 상하 관계였지만,
요즘에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 되었을 정도로 심심찮게 여성 간부들이
남자 직원들을 거느리며 활동하고 있다. 
  풍경 둘.
  삼십대의 선배 직원에게 꾸중을 들은 신입 여사원. 파르르 화를 내더니 그날로
사표를 써놓곤 집으로 가버린다. 집으로 돌아가서 전화로 달랑 한마디.
  [오늘부터 회사 안 나가겠습니다. 치사하고 더러워서요.]
  꾸중을 듣게 된 동기는, 힘든 일할 때는 여자임을 내세우고 권리를 찾을 때는
남자와 똑같이 대해 달라는 얄팍함 때문이란다.  속사정이야 당사자들 마음속에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여자와 남자라는 관계 때문에 문제는 더욱더 복잡하다.
  [남자라면 적어도 그런 무책임한 짓은 하지 않을 거 아니냐. 여자들은 역시
인간 관계의 기본을 모른다]등의 비난이 퍼부어지고, 덧붙여 [다시는 여자 직원
뽑나 봐라]하는 성급한 일반화가 정당화될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풍경 셋.
  직장에서 인기있는 한 아가씨. 아침이면 일찍 와서 책상도 닦고 커피 심부름도
솔선수범. 상냥하고 얼굴도 예쁜 그녀였지만 엉뚱하게 직장 상사와의 스캔들이
터져 버렸다.
  [과연 그렇지. 도둑놈 같은 남자들이 그런 아리따운 여자를 가만두겠어.]
  소문의 진위 여부에는 관계없이 결국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뒷
소식은?  건전한 우정이나 동료 의식보다는 상품화된 성, 착취적인 성 관계만
범람하는, 건강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건이다. 
  상대방을 대상물로만 보는 타락한 세태의 한 반영일까?
  일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남자들끼리만 있을 때는 상상하지 못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자꾸 터진다. 조금 억울하다 싶으면 여성 차별을 들먹이고,
반대로 조금 밉보이면 [여자는 역시...]라는 말이 날아온다. 
  이렇게 되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를 일들이 자꾸 꼬이기
시작한다. 여성의 피해 의식을 자극하는 여러 가지 불평등들이 산적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자들 스스로도 반성해야 할 점이 없지 않다.
  융이 말한 미숙한 아니무스를 굳이 인용할 것도 없이, 여성들 내부에는 제대로
익지 않은 남성성이 자리잡고 있고,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미숙한 여성성이
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다.
  남자는 자기 안에 있는 여성적인 면을, 여자는 자기 안의 남성적인 면을 잘
조절할 줄 알아야 인격적인 성숙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외로
그러한 양면성을 원만하게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은 듯싶다.
  만약 직장에서 여자들과 쓸데없는 트러블이 자꾸 생기는 남자는 한번쯤 자기
안을 들여다보아라. 혹 마음속에 풀리지 않은 여성 콤플렉스가 있지 않은지.
어머니 혹은 누이 또는 부인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여자들만 보면 소름이
돋는 건 아닐까. 이런 문제 등에 대해 짚어 보는 것도 좋다.
  반대로 자꾸 남자들과 마찰이 있는 여자 역시 한번쯤  쌈쟁이  자신을
돌아다보아야 할 것이다. 왜 남자들만 보면 두드러기가 돋을까. 혹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나 오빠들한테 받은 상처 때문이 아닐까. 남편과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건 아닌지, 약하고 순종적인 어머니의 굴종적인 삶에 대한
반작용은 아닌지, 이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정신과적 용어에 전이 현상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에 받은 상처 때문에 상관이
없는 전혀 다른 경우에도 이상하고 엉뚱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자기가
극도로 증오하는 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사를 흠씬 두들겨 패는
환자도 있다. 
  그처럼 직장이나 사회에서 어떤 사람에게 이유 없이 화가 나거나 적개심이
불쑥불쑥 솟는다면, 자기 자신의 숨은 상처를 돌이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모든 문제를 개인의 심리적인 갈등으로 환원시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도 물론 부당한 일이지만, 사람 하나하나의 미숙함을 전체 구조적인
접근만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똑똑한 이들이 잘 빠질 수 있는 함정임을 기억하라.
여자를 키워 주는 남자나 남자를 키워주는 여자, 그 둘은 모두 성숙한
인간상이다. 그러나 자기에게 부족한 부분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상대방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있는 인간성은 쉽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모두 잘난 이 세상, 척박함 속에서 그런 넓은 아량을 베풀 수 있다면 사실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못마땅한 계집이 끈질기게 버티고 있어
직장 생활이 껄끄러운 남자, 또 반대로 꼴보기 싫은 사내가 눈에 거슬려 오늘
당장이라도 일을 때려치우고 싶은 여자가 있으면 오히려 대담하게 상대방에게
가까이 가보는 게 좋다.
  그 같은 행동이 실은 매우 좋은 치료 방법일 수가 있는 것이다. 끔찍하게 싫은
대상, 혐오하는 상대방을 오히려 더욱 강하게 껴안으면 그런 증상이 사라져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행복하게 살며 여자와 남자가 부족한 부분을 
맞잡으며 서로 격려해 주는 것이, 째째하게 남자가 잘났니 여자가 잘났니
아웅다웅하는 유치함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남자들이 점점 더 작아지는 건 아닐까. 별것도 아닌 일에 울상짓는 허우대만
멀끔한 연속극의 주인공, 아웅다웅하며 이합집산하고 있는 정치꾼들, 답답한
조직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리 다툼에 바빠 나이보다 빨리 늙어 버린
소인배들. 정말 이제는  여성 해방 만 진부하게 외칠 게 아니라  남성의 위기 에
대해서도 펼쳐놓고 의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해 불안하고 자신 없기만 한 보통 사람들 속에서 그래도 당당하고
힘있게 사는 이들도 분명 있을 터이다.  여학교 시절, 끔찍하게 싫어했던 수학을
너무나 재미있게 가르쳐 주시고, 물리나 화학 점수가 거의 빵점에 가까운 나에게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셨던 정구영 선생님도 아마 그런 예외에 속할 듯싶다.
자가용에 중독되어 있는 요즘 젊은이들과는 달리 그분은 광화문에서 마포까지
매일 두 시간 이상 걸어서 제일 먼저 출근하셨다.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새벽마다 손수 빗자루를 들고, 학교를 청소하시는 선생님 앞에 내 게으름과
이기심은 큰 부끄러움이었다. 
  스승님께 지금까지 많은 빚을 지고 살아왔지만, 그저 가끔 연락을 드리는
것으로 내 마음을 대신할 뿐이라 항상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얼마 전, 병원 개원을 한 제자의 시작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몸소 찾아오신
선생님의 근황은 또 다른 신선함이었다. 정년 퇴직 후 청소년 심리를 강의하는
문화 교실에, 학생으로 등록하셨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교재인 프로이트의 책을
아예 원서로 구해 번역까지 준비하고 계셨다. 
  사십 년 동안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욕심 없이 평교사 생활을 하시더니,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 다시 즐겁게 학생으로 돌아가신 셈이다. 
  얼마나 상쾌한 전환인가. 소식과 근면으로 깡마른 체구에다 세월의 주름이
깊이 팬 얼굴이었지만, 깨알같이 정리한 원고를 들고 있는 그분의 희망에 찬
눈동자는 어떤 젊은이보다 더 패기만만했다. 쓸데없는 집착으로 먼지처럼
무기력해지는 조로한 남자들에게 이 시대의 거인임이 분명한 선생님의 건강하고
힘찬 노년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여자를 죽이는 여자들의 본성
  지난 1992년의 3.24총선은 갖가지 일화들을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여성 지역구
의원이 한 명도 당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앞으로 가족법 개정의 마무리, 간통법 문제, 성 폭력에 관련된 특별법 제정,
탁아소법, 모자 보건법 등 법을 전혀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의 머리에도 쉽게
떠오르는 여성과 관련된 이슈들이, 여성이 거의 없는 국회에서 어떻게 해결될지
걱정스럽다.
  한국 여성들과 정치는 왜 그렇게 서로 궁합이 잘 맞지 않을까. 여성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그 원인을 유추해 보면서 여성 문제의 핵심이
그곳에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구한말 갑신정변에 참가했던 무수리 고대수의 삶과 죽음을, 여성이 활발하게
참여하지 못하는 현대 한국의 정치 상황과 비교해 보면, 그 당시나 지금이나
약간의 외적인 변용만이 있을 뿐이지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는 점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무수리 고대수는 7척 장승에다가 힘이 세어서 보통 네다섯 명의
남자를 당해 내고도 남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반항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어서 급진적인 개화 사상가인 김옥균 등의 인물들과 가까이 지내며, 정변 당시
폭약물을 터뜨리는 등 맹활약을 했지만 갑신 개혁이 3일 천하로 끝나자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추계 최은희는 고대수의 최후를 이렇게 묘사한다.
  [정변이 실패한 후 그녀가 형장으로 끌려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길가에서 구경하던 여인들이 달려들어 할퀴고 쥐어뜯어 옷이 발기발기 찢어졌다.
상여가 빠져 나가는 수구문을 벗어날 때는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앞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치마폭이 떨어져 나갔다. 왕십리 청무밭쯤에서는 잔인한 여인들이
빗발치듯 돌멩이를 던져, 골이 깨지고 뼈가 부서지고 유혈이 낭자한 채 그대로
숨졌다.]
  구한말 여성들의 지위와 삶의 질은 지금의 우리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한심했다. 양반 여자들은 유교 이데올로기에 묶여 왜곡된 삶을 살아야 했고,
상민이나 천민은 계층적인 수모와 더불어 여자라는 한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무수리 같은 한 평범한 여성이 개혁 운동에 참여해
맹활약을 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선각자적인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이 남자가 아니라 성난
군중인 여자들이라는 역설적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선 한국 여성들의 머리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분열된 분위기와 문화
전통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고대수를 보고도 같은 여성으로서 연민의 정을
느끼지 못하게 방해했을 것이다.  오히려 억압적인 사회 속에서 구차하게 생존해
오느라 뒤틀려버린 자아의 내부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성향을 같은 여성인 고대수에게 향하게 해 자신의 한을 엉뚱한 희생자에게
풀었던 것이다. 
  정신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투사 현상이다. 사랑하지만 힘이 세기
때문에 여자로서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남자들에게는 큰소리 한번 못 치지만,
흉물
스럽고 난폭하다고 이름붙여진 고대수같이 괴상하고 반역적인 여자에게는
그렇게도 잔인하게 대했던 것이다. 
  한국의 여성들은 자신이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는 자기
방어적인 경향이 아직까지도 많다. 자신이 예속되어 있는 대상, 즉 남편이나
아버지 혹은 아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해서 같은 여성들을 남자보다 더 핍박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다.  같은 여자끼리의 건강한 동일시를 습득하지 못하고
자신만은 권력 있는 남성들과 같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들끼리의 연대감 부족은 어쩌다 예외적으로 성공한 스타 여성들까지 곱게
보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하든지 눈에 띄는 여자들을 끌어 내려
백안시하려는 사람들이 더 흔하다. 정치나 경제 일선에 나서 남자 못지않게 자기
몫을 해내는 여성들 주위로 떠도는 스캔들이 그것이다. 
  [그 여자 남편은 건달이래. 이혼하고도 숨기는 거야.]
  [그 여자 누구 정부래...그래서 그렇게 돈이 많은 거지, 지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 나이에 그렇게 성공했겠어.]
  이런 흑색 루머는 남성들보다 여성들을 더 질식시킨다. 도덕적인 잣대는
여성들에게 훨씬 더 엄격하기 때문이다. 다른 여자들의 공적 활동을 사적
사건으로 환원시키면서 그들을 평가 절하해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위로하려 한다. 
  [여자인 주제에...여자가 뭘 알아서...여자는 그저 아무 소리하지 말고
살림이나 해야지]하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내면화시켜, 자기도 모르게
같은 여자들을 무시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다. 
  남자들이 흔히 여자들을 경멸할 때 쓰는 [시샘이나 하고, 질투나 하는 유치한
종자]라고 하는 말을 한번쯤 뼛속 깊이 새겨 볼 일이다. 
  고대수의 육체는 그 당시 돌에 맞아 죽었지만 2000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같은
여성들의 무관심과 연대 의식의 부재, 혹은 뒤틀린 선입관에 의해 정신적으로
야금야금 살해당해 고통스러운 삶을 외롭게 지속시켜야 하는 여성들이 있다.  
  남녀 차별의 극복은 남성들에게만 외칠 것이 아니라 여성 내부에 숨어 있는
우리의 적들을 먼저 퇴치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여성들이 서로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정치에도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지역구에 똑똑한 여성 후보자가 나와서 여성 유권자들이 몰표를 주어 여성
선량들을 국회로 보내는, 기초적이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해내는 것도 그때가 되면
가능하게 될지 모르겠다. 고대수가 환생해 씩씩한 여성 정치가가 되어 국회로
나아가 크고 유창한 소리로 여성의 권익을 주장하는 환상적인 장면을 한번 그려
본다. 생각만 해도 몇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것 같다. 
    속하지 않은 자의 길찾기
  에이 기자님께!
  처음 만나 뵌 분이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아마 같은 애 엄마며 자기 일을 갖고 있는
삼십대라, 굳이 이것저것 털어놓지 않아도 그 속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자로서는 하기 힘든 사회부 기자로서 남달리 능력을 인정받으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높은 이름 날리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에이 기자님처럼 똑똑하고 비판 의식 있는 여성들이 많이 나와 역량이 조금씩
축적되다 보면, 적어도 기초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같은 상황이
점차 달라지리라고 믿기 때문 입니다. 
  사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지만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 때문에 급히 집으로
돌아가느라 긴 얘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남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에이 기자님 같은 분들이 여성 문제를 보는 시각에 대하여 제 개인적인 견해를
이 자리를 빌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진행을 맡고 있는 (생방송 여성)이란 프로그램에서  뛰는 이십대 여성 에
대해 다루고 싶다고 기자님께 말씀드렸을 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죠.
  지금 젊은 여성들의 피해 의식, 무기력, 의존욕 등이 지긋지긋 하다구요.
나약하고 이기적인 그들에 대한 믿음도 없다고 말씀하셨죠. 저도 어느 정도는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적잖은 여성들이 건강하고 긍정적인 삶보다는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모든 무능을 사회에다 책임 전가하는 태도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뻔히 떨어질 곳만 찾아 기웃거리고는 취직문이 공평치 않다고 보채면서, 공채
시험에는 감히 응시할 용기도 없다고들 하죠. 또 꼭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자신만의 일을 독립적으로 할 수도 있는데, 그런
노력은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맞습니다. 
  결혼한 여성들도, 남편들에게 예속되어 답답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막상 자기
실현을 해보라 하면 움츠리고 숨으려고만 든다고 비난받죠. 그래서 미혼
여성들도 여차하면 결혼하면 되지 않느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적당히 시간이나
죽이고 있다, 뭐 그런 얘기들도 많이 합니다. 나이든 여성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의존해, 자기의 억울한 과거를 보상받으려고만 한다고
합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제가 볼 때도 저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 내부에는 노예 근성이 알게 모르게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 희생, 자기 비하를 통해 거꾸로 상대방을 교묘히
지배해 보려는 치사한 속셈이 있는 경우도 자주 봅니다. 사랑과 굴종, 헌신과
자기 학대를 혼동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여튼 지금 우리나라 여성들은 안팎으로 모두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에이 기자님!
  저는 그 모든 문제들이 여성들의 앞날을 어둡게만 하는 절망적인
조건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순들이 있고 갈등이 있기 때문에,
역사가 변하고 사회가 움직이는 게 아닙니까? 
  굳이 거창하게 말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여성 문제는 다른 여러
가지 사회적 부조리에 비해 다소 하위의 개념이라고 보신다 해도
상관없습니다(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고급과 저급, 상위와 하위, 뭐 이런
비본질적인 얘기들 때문에 파르르 떨면서 흥분하지 않는 법을 배워서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여성이 안고 있는 모순들이 끝내 해결되지 않는 난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여기저기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마침내 역사적인 큰 기폭제를 만나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어,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나 보니 세상이 변했더라]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 예를 들까요?
  한때 우리나라에선 엽전이란 말이 유행했지 않습니까? 일제 시대에 교육받았던
기성 세대들이 한국인의 민족성을 탓하며 자주 들먹거렸던 말이죠.
  [엽전인 주제에 뭘 하겠어. 엽전이니까 그 모양이지,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을
따라갈 수 있겠어. 우리나라는 애시당초 틀렸어.]
  이런 말이 우국지사들의 애국심과 혼동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비록 문제가 많긴 하지만 이제 십여 년만 지나면 국민소득 2만 불을
바라본다고 합니다. 그만큼 국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해졌습니다. 
  물론 돈만 많이 번다고 해서 일등 국민이라고 할 수는 없죠. 그러나 그만큼
열심히 일해 땀 흘려 얻은 결과라면 가치 있는 일이 아닙니까.
  게다가 자원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 비좁은 땅덩이,  안보 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이 동강난 한반도에서 그 같은 경제 수준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는,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아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죠.
  저는 그런 일이 우리 여성들에게도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아이 수준에 불과할지도 모를 여성 운동이 몇 해만 지나면
성숙한 성인이 되어 빛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여성끼리 서로 비하하고
경쟁하며 불신하는 지금 같은 풍토가 바뀌어 서로에게서 동지 의식을 발견하고
함께 힘을 모아 갈 날도 올 거라고 봅니다. 
  에이 기자님! 한국 여자들, 지긋지긋하다고 말씀하셨죠. 물론 그런 말씀을 왜
하셨는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 (생방송 여성)을 진행하다가
울분을 혼자 삭인 적이 있습니다. 
  남성 연사들이 나온 자리에서, 한 육십대 여성이 아내 노릇 못하고 있는 젊은
부인들을 비난하는 전화를 했었죠. 우리 어머니들에 비해 요즘 여자들의 팔자가
너무 많이 폈다면서, 자기 뒷바라지나 잘하라고 하는 남자들의 비위를 아주 쏙
맞추어 주었죠.
  하지만 남자들의 팔자도 옛날보다는 편해지지 않았습니까? 사는 게
편해졌다면, 그것은 여자들의 말소리가 거세서라기보다는 모든 게 풍족해진 현대
문명 때문이 아닙니까? 
  저는 남자들 또는 우리의 의식이 그만큼 전폭적으로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겉으로는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황당 무계한 말로 여성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사람이 많은지, 아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건 같은 여성이면서도 일단
보수주의자로서의 설 자리를 확보하고 나면 약한 여성들을 더욱더 억압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시어머니들, 높은 지위에 앉은 여성들이 이렇게 말하죠. 난 이러이러한
고생을 하고도 이렇게 꿋꿋하게 견뎌 왔다. 그러니 너희가 받고 있는 불평등이나
굴종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말로 젊은이들의 기를 꺾으려고도 합니다.
그렇다고 노동의 즐거움을 외면한다거나 예의를 지키지 않는 그야말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성이 옳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자기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남편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성실히 하고,
자기를 키워 주신 부모님을 존경하는 가장 기초적인 윤리까지 거부하고 나서자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단지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능동적인 희생과 강제적인
굴종은 다르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만약 어떤 여성이 헌신적인 조선 시대 여성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면, 그녀의
자율적인 선택으로 그것을 존중해 주고 싶습니다. 또 대가족제의 끈끈한
한국적인 가족 관계가 견디기 싫어 박차고 나오려 한다면, 그것도 그녀 자신만의
사는 방법입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여성이라고 해서 돌팔매질당하고 비난받고
거부당하며 살 수는 없다고 믿습니다. 
  그런 변화를 위해서라도 아마 에이 기자님 같은 똑똑한 여성이 비록 지금은
여러 가지로 한심한 우리 여자들에게 지속적인 애정을 보내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추 하나 달지 못하고 태어났다며 구박받았기에, 상처투성이에다 결점이 너무
많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스스로를 보듬어야 합니다. 같은 여성들을 사랑하는
건 곧 나 자신을 고귀하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절망해서 좌절하고 있을 때면, 난 내가 여성이라는 자각을
다시 합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나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고 나면 다시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속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방황하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여성 의 세계에 속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에이 기자님! 
  우리 함께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며 이만 줄입니다.
    완숙한 사랑은 권태와 방황의 터널 끝에 있다
  [둘째 아이까지 학교에 보내고 나니 시간은 많이 남는데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렵게 집 장만도 했고 남편도 착실한 편이라 걱정이 없는 처진데,
자꾸 사는 게 재미가 없고 그렇다. 권태기 같애.]
  친구의 하소연에 [어머, 나도 가끔 그래]하고 맞장구를 치고 나니, 명색이
정신과 의사면서 상담을 해오는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틈에 내 나이가 결혼 생활이 권태로워질 만큼 되었나. 신혼 초만 해도
내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고백하기 쑥스럽지만 요즘 들어 나도 부쩍 이것저것 다 털어버리고 훨훨 날아
보고 싶은 공상을 자주 한다. 그만큼 자신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아직까지 눈 주위의 잔주름 따위를 걱정할 나이는 아닌데도, 우스운
일이지만 이제는 옛날만큼 자신의 젊음이나 건강함에 자신이 없다. 
  비가 오면 삭신이 쑤시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면 가끔 허리가 아파 할머니처럼
꾸부정하게 걷기도 하면서, 내게 남은 젊음의 시간이 얼마나 되나, 자못
비장하게 계산해 보기도 한다. 여자 나이 사십이 넘으면 아무도 여자로 취급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남자들이야 나이가 들수록 돈도 많아지고 지위도 높아져, 가만히 있어도 젊은
여자들이 꼬리를 친다지만 여자는 자식과 남편에게 다 주어 버리고 빈 쭉정이만
남게 될테니 그때가 되면 너무 허무하다는 것이다. 
  [너무 늙어 여자 취급도 받지 못하기 전에 아주 아름다운 연애나 좀 해봤으면
좋겠어요.]
  이제 막 중년의 고개를 넘고 있는 한 정숙한 여성의 이야기다. 그런 그녀의
고백을 그저 부정한 바람기로만 단순하게 매도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걸 보면,
이제는 나도 순수한 젊은이 특유의 결벽증을 완전히 벗어 버린 것일까?
  소녀 시절에는 중년 여인의 방황 같은 것을 주제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추잡하다는 말까지 덧붙여, 젊지도 늙지도 않은 그녀들의 갈등을 경멸하기도
했었다. 여자가 나이 드는 것만 해도 볼썽사나운 일인데, 거기다 사춘기처럼
무슨 감상이야 하고 말이다. 
  아마도 나이가 든다는 건 여자로서의 매력을 상실하는 것이라는 생각, 평범한
여자라면 그저 아이들 뒷바라지, 남편 수발이나 잘하지 무슨 사랑, 어울리지
않게...하는 남자들의 고정 관념이 내 안에 가득 들어앉아 있었던 것 같다. 
  하기야 광고 속의 여인들만 해도 하나같이 젊고 예쁜 데 비해 그들의 돈 많은
남편들은 나이가 지긋한 중년 신사다. 텔레비젼 드라마에도 늙수그레한 중년
남자들의 상대역은 대부분 이십대 초반의 상큼한 아가씨들이다. 
  게다가 소설 속의 중년 여자들까지 거의 대부분 길을 잃고 헤매거나 우울증에
빠진다. 아니면 남편에게 버림받아 강한 생활력만으로 똘똘 뭉친, 못생긴 고집
덩어리로 그려지기도 한다. 중년 여자의 사랑은 차탈레 부인, 엠마뉴엘 부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 낭만적인 성애에 대한 헛된 환상과 싸구려 불륜의
관계로만 묘사되곤 한다. 
  그런 식의 선입관은 나이 든 여자들에게 볼장 다 본 여자, 혹은 추한 여자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다 붙이게 된다. 그래서 보통 여자들은 시간이 흘러
갈수록 남자들에 비해 훨씬 빨리 초조해 하고 위축되기 쉽다.
  여자는 사랑을 위해 살고 남자는 성공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는 게 통념인데,
성공이라는 것은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점점 더 알차게 되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으니, 사랑이 없는 여자는 살 가치를 잃는다. 불타던 연애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시들해지게 마련이지 않는가? 낭만적인 사랑에만 자신의 인생을
걸다 보니 그 불꽃이 다 사그라진 다음 재만 남은 허전한 공간이 두려워진다. 
  자신의 허무함을 메우기 위해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목숨을 걸고 극성을
부리기도 하고 재산 증식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호화스런 가구와 치장, 비싼
보석에 기대어 인생 자체에 대한 회의와 시름을 잊으려 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억압된 갈망을 종교 활동이나 봉사 활동으로
승화시키는 경우도 없지 않다. 어떤 식으로 자신의 갈등과 외로움을 해소하건
그건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며 자유가 아닌가. 다 자란 성인이 어떤 식으로
살아가다 어떤 식으로 상처받고 깨지건 간에 상황을 잘 모르는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중년 여인들의 방황을 도덕 군자처럼 비판하지 않으려 하는건, 아마도 내
마음속에서 비밀스럽게 똬리를 틀고 있는 진부한 삶에 대한 두려움, 늙음에 대한
공포, 외로움과 잊혀짐에 대한 절망 때문이 아닐까.
  반짝이는 생명력으로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쏟아 부을 수 있는 완숙한 사랑의
팡파르를 울리기 전에, 어쩌면 우리는 권태라는 이름의 서곡을 반드시 연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방황과 회의의 감정을 느끼지 않고서는 안정된 행복과
평화에 대한 고마움을 깨달을 수가 없다고 믿는다.
    사랑과 증오의 이중주
  얼마 전에 사십대의 아름다운 부인이 자녀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 답답하다며
날 찾아왔었다. 중년의 원숙한 분위기로 애써 자신의 불안감을 감추려 했지만,
나는 그녀의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우울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껏 희생만 하며 살아왔는데, 자녀들이 사춘기를 지나고부터는 자기의 말은
귀담아듣지도 않고 뭐든지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모자라 보여 싫은
소리라도 한마디 던지면 자녀들은 용수철 튀듯이 반항한다고 했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다시 옛날처럼 자녀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내게 자문을 구했다. 
  누구나 다 겪는 것이지만 사춘기 이후 이십대 초반까지는 격렬한 아픔과
변화의 시간이다. 그 격정적인 시절을 보낸 성인들에게는 그런 젊은 날들이 그저
아스라한 추억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게 마련인가.       
  기성 세대들은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아픔을 흔히 [내가 젊었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라는 말만 연발할 뿐 이해하지 못한다. 부모 자식 사이의 대화 뒤에
남는 것은 골 깊은 의견 차이일 뿐이라는 말도 있다. 
  사실 세대 차이는 젊은 세대들보다도 기성 세대들에게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진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어머니, 아버지의 말이라면 자동 인형처럼
순종하던 토끼 같은 자식들이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의 생각은 구닥다리입니다.
그런 케케묵은 생각으로 제 인생을 강요하지 마십시오]하고 외치면, 마치 대못에
가슴이 찔린 것 같은 아픔을 느끼게 된다. 
  아아, 내가 어느 틈에 이렇게 늙었구나, 온몸으로 사랑하고 희생해서 키운
자식들이 이제는 내 품에서 떠나가는구나, 사회는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나
혼자만 이렇게 뒤처져 설거지통에 손이나 담그며 늙어 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들은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밀려온다. 
  그런 소외감이 깊어지면 세상 만사가 다 귀찮아지고 절망적이 되면서
우울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갱년기가 되면 여자의 경우는 다달이 맞는 생리의
양이 조금씩 줄어들어 여성으로서 남은 시간을 예감케 한다. 피부의 탄력도 점점
없어져 주름살만 는다. 머리칼의 윤기도 사라져 부석부석한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 보기도 싫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아침이 되어도 꼿꼿이 서지 않는 자신의 성기를
바라보며, 또 혹 조루가 된 게 들통날까 봐 의식적으로 잠자리를 피하는
스스로의 비겁함에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 신체적인 변화와 더불어 사회적인 여건도 여러 가지로 변한다. 성공한
인생이건 실패한 인생이건, 이제는 미래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희망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돌이켜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지나간 좋은 일들은 이제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려
마음이 저리는 안타까움으로 남게 마련이고, 나빴던 일들은 후회스럽지만 어쩔
수 없으므로 고통스럽다. 
  그런 마음속의 파도를 겪으면 그때까지 한번도 느껴 보지 못하던 심각한
회의가 일기 시작한다. 일종의 자아 정체감의 혼란, 즉 나는 누구냐에 대한
물음과 함께 인생에 대한 허무감을 뼛속 깊이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부모가 갱년기를 앓을 때, 아이러니컬한 일이지만 자녀들도 새 인생을
시작하느라 일종의 통과 의례를 거쳐야한다. 순수하기만 하던 자신의 몸에
징그러운 체모가 나, 스스로가 추하게 생각되기도 하고 넘쳐나는 성적 본능에
어쩔 줄 몰라 당황하기도 한다. 다달이 맞는 생리는 성가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여러 가지 질곡을 거쳐야 하는 여자로서의 삶을 예감케 하여 자신을 우울하게
만든다. 
   나도 엄마처럼 남자와 결혼해서 그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구나. 그리고 또
아이를 낳는 극심한 고통을 혼자 겪어야 할 테지 하는 생각들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볼 때도 사춘기 시기에는 체내의 도파민과 성 호르몬의 양이
갑자기 많아져 감정이 아주 예민해지고 갱년기에는 성 호르몬의 양이 급격히
떨어져 몸과 마음이 겪어야 하는 부담이 크다.
  말하자면 십대와 그들의 부모는 몸과 마음 모두 격변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서로 지나치게 닮은 사람들끼리 만나면
더욱 으르렁거린다던가. 비슷한 정서적인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그 둘이
부딪치면, 서로에게 내뱉는 말들은 파랗게 날이 선 칼같이 변해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갱년기를 맞는 부모들의 삶도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지만 우리 나라의
십대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 입시라는 고통스러운 인생의 몫이 덤으로 하나 더
있다. 그래도 기성 세대들에게는 원하면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십대들에게는 그 무엇 하나 허용되는 것이 없다. 오로지 학교와
도서실, 그리고 집만을 오가며 그저 공부만 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몸은 이미 하나의 성숙한 인간이 되었는데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철저히
부모에게 예속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학교나 가정에서는 독립심이 강한
어른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부모들은 행복한가. 물론 대부분 그렇지 않다. 그들은
나름대로 극심한 경쟁 시대에서 과로에 시달리면서 자식들의 교육비,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뼈빠지게 일해 왔을 뿐이다. 그래서 사실 [그동안의 내 고생이 모두
가족들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게다가 사회는 엄청나게 변화해서 이제 노력하지 않는 기성세대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까지 되었다. 발전하는 문화가 오히려 그래서 더욱 무거운
숙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린 자식들은 그 어마어마한 컴퓨터를 마치
친구처럼 다루는데 자신은 그쪽에 관한 한 깡통이니 은근히 자존심도 상한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따라잡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알게 모르게 스멀스멀 기어드는 열등감을 만회하기 위해 초조해진
부모들은 오히려 더 큰소리를 치거나 권위 주의적이 되기도 한다. 
  심리학적으로도 이때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시기다. 부모들 입장에서는 낡고 진부해진 아내보다는 아름답고
젊은 딸이, 무능하고 무력해진 남편보다는 건강하게 피어나는 아들이 더욱
매력적이다. 그러나 부모의 그런 짝사랑은 자녀들이 제각기 애인이나 배우자를
찾아 헤매면서 깨어지게 마련이다. 
  자식 사랑은 역시 내리사랑이라면서 스스로를 달래지만 그 허전한 마음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부모들의 이런 마음 고생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딱서니 없는 자식들은 다 제
갈 길을 가느라 바쁘다. 다행히 비뚤어지지 않고 영혼을 죽여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학교에서 끝까지 이겨낸 경우, 무난히 성인 대접을 받게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뜨거운 반항의 시기를 거친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자기 주장의 방법은 서글프리만큼 한정되어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니  뉴키즈 온 더 블록 이니 하는 스타들에게 열광하는 것은
그래도 애교스러운 편이다. 남학생들의 경우 술, 담배를 하거나 대마초에 빠지는
수도 있고 심지어는 갱단을 만들어 조직 폭력배 노릇을 하기도 한다. 
  여학생들은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에 빠지거나 가출을 하기도 한다. 그들의
그런 탈선 뒤에는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나 자신을 주장하자는 강력한 의지가
있지만, 제대로 된 독립의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엉뚱한 방법으로 문제가
터지는 것이다. 
  흔히 십대들은 단순하느니, 미숙하느니 하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오십대의 중년들보다 십대들이 오히려 더 복잡한 생각으로 성숙한 경우도
있다. 
  성인이라고 모두 다 어른답게 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장이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거꾸로 퇴행해 나이만 먹은 애어른이 더 많은지도 모른다. 
  그런 자기의 미숙한 점을 보지 못하고 십대들의 반항을 무조건적인 권위와
나이로 누르려고만 하면 젊은이들로서는 비뚤어지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 
  혹 지금 자신들의 자녀와 세대차 때문에 대화가 안 통한다고 생각한다면
자녀들이 왜 내 말을 안 듣나 고민하기 이전에 내 자신의 문제는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그것이 꼬인 실타래를 훨씬 쉽게
풀 수 있는 마법의 거울이 될 수도 있다. 
  허심탄회하게 자녀들과 우선 자기의 이야기를 먼저 시작해 보라. 한쪽은
사춘기를, 다른 한쪽은 사추기를 지내면서 인생을 아파하는 일종의 동지로서
말이다. 부모는 자녀를 통해, 자녀는 부모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게
건강한 방법이다. 세상에서 부모 자식 관계만큼 힘들게 유지되는 사이도 없지만
그며 어려움을 헤쳐 나가면 또 그만큼 인간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다.
  갱년기, 어떻게 생각하면 서글프지만 조금 시각을 달리하면 그 끔찍한 삶의
짐이 오히려 고마울 수도 있다. 이제까지 쓸데없는 외부적인 일에만 매달려서
앞으로 앞으로만 향하던 껍데기 같던 스스로가, 이제는 자신의 깊숙한 내면으로
침잠해서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이 무엇이냐에 대해 막 눈뜨기 시작하는 사춘기의 철없는 자녀와
나이 먹는 게 싫어도 인정해야만 하는 갱년기의 부모는 서로에게 더욱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인생에 대한 회의와 불안을 부모 자식이 허심탄회하게
주고받는 장면을 한번 생각해 보라. 그 어떤 대화보다 더욱 진실하고 깊이가
있지 않겠는가. 그 둘 사이는 이 세상 어떤 관계보다 더욱 진한 사랑으로 빛나지
않겠는가 말이다. 
    여성의 외도, 죄악인가 인간 해방인가
  델마 헤인이 쓴 (성의 침묵)은 묘한 책이다. 우선 성이란 단어에서 풍기는
통속성 때문에 말초 신경이나 자극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책을 읽고 나면 그런 오해는 말끔히 가실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진지하고 품위 있게 성생활이라는 예민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 성과 관련된 선정적 상업성이 저자의 철저한 중립적 태도 앞에 무릎을
꿇어 버린 것이다. 냉정한 저널리스트의 과학적 태도가 성이라는 비밀스런 
부분을 너무나 철저히 파헤친 탓에, 마치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벌거벗은
육체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병인을 제거하기 위해 마취 상태에 빠져 있는 환자가 아무리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의사들에겐 성적 대상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은 다만
병자일 따름인지라, 의사는 환자의 몸을 보고 성적 흥분을 느끼기는커녕 실수
없이 치료를 잘해 낼 수 있을지 초조해 하고 긴장할 뿐이다.  
  비유하자면, 이 책의 저자는 수술을 집도하기 위해 환자의 병세를 살피는
의사와 같다. 그만큼 가정 주부들의  외도 라는 예민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외설스런 호기심이나 만족시키는 다른 책들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왜곡된 채
숨겨져 있는 비밀을 냉정하게 파악해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만 전한다.  그것은 아마도 여자의 성, 특히 기혼녀의 성 관념과 행동
양식을 바라보는 저자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녀에게는 경직된 도덕적 윤리관이란 잣대를 가지고 간통이라는 깨끗하지
못한 행동을 파헤치는 성급함도, 난잡한 성생활을 옹호하는 퇴폐적인
진보주의자의 경박함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무너져 내려가는 일부일처제의
실상을 담담하게 보고하고 있을 따름이다. 
  섬뜩한 차가움이 느껴질 정도로 사실 그대로를 기술하고 있어, 자기의
주관적인 생각이 조금쯤은 들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독자의 기대를 그녀는
단호하게 배격하고 있다. 이십 세기 초까지 처녀의 순결성은 절대로
파괴되어서는 안 될 신성 불가침의 가치였다. 그래서 정조를 유린당한 여자들은
자살의 길을 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몇년 사이에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제는 순결이라든가 동정이라는 단어 자체를 오래 된 고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만큼 시대는 변했다. 
  미혼자들뿐 아니라 결혼 관계에 있는 많은 부부들도 점점 도덕적으로
느슨해지는 듯하다. 일부다처제가 불변의 진리처럼 군림하여 아녀자들의 질투를
칠거지악이라고 해서 이혼감이 되었던 때가, 불과 이삼십 년 전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지금도 일부일처제란 제도는 표면적인 약속일 뿐, 남자들은 유곽과 술집,
심지어는 직장에서까지 혼외 정사를 즐기고, 부인들은 또 부인들대로 은밀하게
남자 친구를 만나고 있다. 
  무엇보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부부 생활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얘기를
대담하게 취재해서 엄청난 분량이 될 때까지 모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가 왜 저널리스트로서 성공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여 성에 얽힌 인간의 생활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그녀의 태도는 인류학적
접근 방법과도 통한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실제
케이스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태도는 웬만한 인류학자들보다
오히려 더 훌륭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이 책을 통해 여자들의 성적 충동과 행동에 대해
저널리즘의 입장에서 보고하고 있는 그녀의 작업을 감히 프로이트의 성욕설과
푸코의 (성의 역사)와 비견해 본다. 헉슬리의 공상 소설 (멋진 신세계)에
나오듯, 단순한 쾌락만을 위해 성생활이 존재하고 도덕적인 관념은 실종되어
있는 미래 세계가 다가올지, 아니면 가정이라는 성채가 굳게 보존되어 보다
진실한 부부 생활의 시대가 올지는 나 같은 개인이 판단할 일은 아닐 것이다. 
  사회적인 변화에 따르는 윤리적인 갈등을 어떻게 풀어 나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이냐는 온전히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리라.
  그녀의 저널리스트적 기질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가치 판단도 철저하게
유보하고 있는데 어떤 방향으로 사회가 변하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해서 다른 사람들의 가치 판단과 인생 항로에 도움을 주는 것은
그녀 같은 언론인들의 책임일 것이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주부들에게 새해란 결코 즐겁지만은 않다. 선물 걱정으로 가계부 쓰는 손이
떨리고, 차롓상 준비와 손님들의 술 심부름에 어깨도 뻐근하고 다리도 아프다.
  즐겁게 음식을 먹고 헤어지면 그나마 다행이다. 어지러운 남의 험담들과
알맹이 없는 얘기들. 밤을 새우는 고스톱 판이 평화롭게 지속되는 일상의 흐름을
깨게 마련이다. 명절은 평소에 쌓인 스트레스와 갈등을 풀라는 축제의
장이라는데 우리네 풍속을 따르자면 여자들은 왜 그렇게 고단하기만 한지. 일년
내내 땀 흘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한 주부들이 편히 쉴 휴가는 언제나 올까.
  바깥에서 지친 남자들이 집에 돌아와 고단한 몸을 쉬고, 가까운 친척들을 만나
정서적인 위안을 얻는다면, 주부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휴식을 얻는단 말인가.
계 모임이나 여자들을 위한 교양 프로그램 등에 참가해 본다지만 그나마 유한
부인들의 소비 지향적 문화라고 매도당하기 십상이니 말이다. 
  물론 사는 데 여유가 있고 풍족한 경우야, 여행도 다니고 골프도 치고 쇼핑도
하면서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겠지만 이도저도 아닌 주부들로서는 죽어라 일만
해야 하는 명절이 원수같이 느껴지기만 한다. 
  게다가 아무리 아이들 키우는 재미가 있다 해도 달력을 또 한장 넘기면서
피부로 절감하게 되는 자기의 나이에 생각이 미치면, 젊고 예쁜 여자들만
대우받는 사회에서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자신의 세월이 점점 짐스러울 뿐이다. 
  이래저래 분홍빛 꿈에 부풀어 있던 처녀 시절과는 달리 새해를 맞는 주부의
마음은 그리 편치만은 않다. 올해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어떻게 달라질까
궁리해 보다가도 매일같이 되풀이 되는 집안일,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생각하면 올 한해도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나 절망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사회로부터 자꾸 고립되고 뒤처지는 것 같은 자신이 불안하고
못마땅하다. 맞벌이하는 친구들이 남에게 아이들 맡기느라 동분서주할 때는
처량맞고 불쌍해 보이더니, 어느 틈에 번듯한 직장인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나는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투자했나 생각해 보게 된다.
돌이켜보면 휑한 빈 공간만 보이는 듯, 가슴에는 바람만 지나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아 절망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고, 능력도 아깝다.
누구 못지않게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던 여성들도 아이들 교육 때문에, 시댁과
남편의 반대 때문에, 집안에 들어앉아 반복되는 집안일에 자기도 모르게
길들여져 살아야만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가사 노동이 단순하고 가치 없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복잡하고 전문적인 일이
집안일이다. 깔끔하고 계획성 있는 주부들과 아무렇게나 살고 있는 여자들의
부엌 살림이 얼마나 다른가.
  문제는 집안 살림 그 자체의 반복성과 가치 없음이 아니다. 단지 노동의
대가가 언어로 결정화되지 않아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는 점과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오  하는 직함을 통한 자아 정체감이 안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제, 시해에는 주부라는 자기 직업에 대해 좀더 확실하게 긍지를 가져 보자.
그냥 앉아 짜증만 내고 허무감만 반추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무언가 창조적인
일에 몰두해 보자. 이것저것 찔끔찔끔 배우고 마는 취미 생활이 아니라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 끝까지 진지하게 몰입한다면,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 하나, 지역 사회의 경제 활동에 활발하게 동참하는 방법도 있다. 쓰레기의
재활용이나 무공해 비누 쓰기 같은 환경 운동에 참여할 수도 있고 소비자
모임이나 모니터의 일원이 되어 강력한 사회적 감시 기구의 일원이 될 수도
있다. 
  자녀들을 위해 학교 주변을 정화하거나 안전한 교통 환경을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기 자신만의 소규모 사업도 물론 가능한 방법이다. 놀이방 운영이 그 한
예다.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어 쩔쩔매는 이웃을 위해 봉사도 하고 부업도
한다면, 품앗이의 좋은 전통을 새롭게 잇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조건 기존의
거대한 조직에서 날 받아 주지 않는다고 보채고 주저앉아만 있을 것이 아니라
나의 길을 당당하게 가보자.
  제 인생의 주인인 남자들을 부러워하면서 여자로서 단순하고 수동적으로 살며
행복을 느끼는, 쓸데없는 지식이 잔뜩 들어 있는 머리 속을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억압과 불평등이 결국에는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보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사랑
  새학기가 되면 학생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입시에 실패한
학생은 실패한 대로 또 다른 삶의 길을 모색해야 하고, 합격한 학생들은
설레임과 기대로 학교 문을 들어서게 된다. 
  이런 변화를 지켜 보는 부모의 마음은 뭐라고 쉽게 표현하기 힘들다. 자식의
성공과 좌절은 부모에게 옮겨질 때 훨씬 더 그 무게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자식이 슬픔을 십의 무게로 느낀다면 부모에게는 백에 해당하는 고통으로
다가오며, 자녀의 작은 성공과 행운도 부모에게는 큰 기쁨과 행복이 된다는
말이다.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녀들은 다 자기 갈 길을 찾아 바쁘기만
하다. 입시의 관문을 뚫고 상급 학교에 진학한 자녀는 잠 못 자고 애태운 부모의
정성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것 같다. 
  그저 새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쁘기만 하다. 뭐가 그리 할 일이 많은지 하루
종일 바깥에서 돌아다니다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돌아오고, 미팅이다 서클이다
하면서 자기네들끼리 어울리느라 정신이 없다. 
  어쩌다 너무 늦는 게 아니냐고 잔소리라도 하려 들면,[이제 저도 성인이에요,
저를 아이 취급하지 마세요]라고 반발이나 할 뿐, 부모의 속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기쁜 일이 있을수록 더욱 몸조심하고 자중자애해야 할텐데,
그런 부모의 마음을 노파심으로 일축하는 발랄한 젊음은 한없이 자유로운 세상에
떠다니고만 싶은가 보다.  따지고 보면 철없는 자식 탓만 할 수도 없다. 입시
위주의 억눌린 사춘기 시절을 지내고 이제 겨우 바깥 공기를 쐬고 사람답게 살려
하는데, 거기에 제동을 거는 기성 세대의 구태의연함이 그저 귀찮게만 느껴지는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입시의 문턱에서 무릎을 꿇은 가정은 훨씬 힘들고 견뎌 내기 어려울 것이다.
자식의 실패와 좌절을 부모가 얼마나 마음 아파하는지 부모가 되어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차라리 자기가 고통스럽고 실패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낫겠다는 부모의 마음을 자녀들이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자녀가 겪은 좌절과 상처를 달래 주려고 일부러 더욱 잘해 주려 하면 예민해진
마음에 오히려 짜증만 내는 아이들, 짐짓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자기에게
무관심한 것 같다며 서운해 하는 아이들. 
  부모로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자식의 마음을 돌리고 새롭게 시작할 힘을 줄
수 있을지 종잡을 수 없을때가 많다.   
  십오륙 년 전,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대학에 들어가 부모에게 작은 기쁨을
안겨 주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 철이 없던 나는 그때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부모님이 힘드셨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새벽에 공부하겠다는 딸아이를 깨워 주기 위해 밤을 꼬박 새웠던 어머니의
정성, 공부에 방해될까 봐 생활의 무거운 짐들을 도맡으셨던 부모님의 희생을
나는 알지 못했었다. 인사 치레로라도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말이나
고맙다는 말로 어머니께 딸 뒷바라지한 보람을 안겨 준 기억도 물론 없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고 후회스럽기만 하다. 요즘에도 부모님께 진 빚을 갚아
나가기는커녕 점점 더하기만 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
  이제 내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다. 세월이 흘러 아이가 커서 대학에 들어갈
때쯤이면, 입시 제도의 짐은 물론 지금보다야 훨씬 덜할 것이다. 
  하지만 일류 학교에 입학하고 못하고를 떠나, 내 자신이 얼마나 부모 노릇을
잘해, 십여 년 후 내 아이가 성년의 문턱을 무사히 넘어 누구에게나 떳떳하게
나는 성실한 어머니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사랑을 앞으로 내 아이들에게 얼마나 완벽하게
베풀 수 있을까? 부모님이 나에게 베풀어 주셨던 사랑과 배려의 반만이라도 내
아이들한테 되돌려줄 수 있을까? 그래서 아이들을 반듯하고 건강하게 키웠다는
칭찬을 나의 부모님으로부터 과연 듣게 될까?
    비오는 날의 추억, 어머니
  어린 시절, 여름 장마가 지면 난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느낌 속에 끝없이 모습을 달리하던 비의 군무는 어떤
그림이나 음악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는 고구마나 옥수수를 쪄주시기도 하고, 신식으로 도넛이나
핫케익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방에 가득 차는 빗소리를 들으며 어머니의
정성이 안겨 주는 포만감 속에서 책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괜한 설레임으로 가슴이 뛰곤 했다. 때로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한강 다리가 모두 물에 잠겨 버려 학교를 가지
않게 해달라는 엄청난 바람을 품기도 했을 정도다. 그만큼 어머니가 있는 집은
따뜻하며 평화롭고 안락했었다. 
  어려서는 어머니의 알뜰한 살림 솜씨를 너무나 당연하게만 생각했었다. 항상
정갈한 밥상과 집안 구석구석 어느 한곳 허술함 없이 꾸며 놓는 어머니,
고만고만한 아이들의 말썽과 반항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는 한편, 스무 명이 넘는
대가족을 거의 혼자 수발하시던 어머니, 게다가 일주일이 멀다 하고 몰려오는
손님들의 술대접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당신의 종횡무진한 활약의 실상을 사실 난
전혀 몰랐었다. 어머니가 뼈빠지게 일하고 고생하는 시간에, 겨우 비 내리는 걸
보면서 시덥잖은 책에 빠져 공상에 잠기곤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께서 비 때문에 집안일이 밀린다고 걱정을 하거나 집안일로
삭신이 쑤신다고 하면 [비 오는 날이면 난 이렇게 행복한데 엄마는 멋도 없어,
몸은 왜 저렇게 약하시지]하며 불만스러워했었다. 
  아아, 그렇게 일을 많이 하는데 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이제
나도 한 사람의 주부로서 가정을 꾸려 나가야 하고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비가 오면 그때처럼 가슴이 뛰고 즐겁기는커녕 이것저것
짜증스럽고 걱정스럽기만 하다.
  빨래를 내다 말릴 수 없으므로 뽀송뽀송하지 않은 이불이나 습기 찬 지저분한
다용도실이 신경에 거슬리고, 오래된 샷시 탓에 베란다까지 비가 홍건하게 차서
속상하다. 눅눅한 벽장이나 옷장에 곰팡이가 필 것 같아 찝찔하기도 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빗속을 걸어 돌아갈 일도 아득해진다. 그런저런 생활을 직접
몸으로 겪는 나이가 되어서야, 이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비가 오는 날, 내가 평화롭게 앉아 책이나 보는 시간에 왜 어머니가
노이로제 환자처럼 지하실에 들락날락하며 물이 찰까 노심초사하셨었는지,
눅눅한 게 싫다며 선풍기까지 틀어 놓고 빨래를 말리셔야 했는지 말이다.
어머니는 마술적인 솜씨로 앉아서 쉽게 집안 살림을 하신 것이 아니라 애태우고
속상해 하면서 우리의 편안함을 위해 자기 자신을 죽이며 살아오신 것이다.    
        
  집안일은 정말 끝도 시작도 없어 보인다. 청소를 하고 돌아서면 아이들은
집안을 다시 어질러 놓고 점심 먹은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저녁할 시간이
다가온다. 마른 빨래를 개켜서 옷장에 넣고 나면, 식구들은 또 더러워진 옷을
벗어 놓는다. 일을 하지 않으면 금방 흠이 보이지만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도
생색이 날 만큼 번쩍대지 않는 게 집안일이다. 
  그렇다고 월급쟁이들처럼 한 달에 한번 씩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니, 만족할
만한 성취감을 얻기도 힘들다. 그러니 자연 짜증이 나고 우울해지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그런 심정을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토로할라 치면,[집에서 노는
사람이 그 정도 갖고 힘들다고 하면 나같이 이 험한 바깥 세상에 나가 돈 버는
사람은 다 죽어야 되겠구먼] 하며 짐짓 자신의 바깥일은, 여자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어려운 일인 것처럼 비극적인 얼굴을 할 뿐이다. 
  바깥일과 집안일을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다해야 하는 나는 그 중 어느 쪽이
어렵고 어느 쪽이 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둘 다 힘들다.
  왜 주부는 남편의 일을, 남편은 주부의 일을 모두 존중해 주고 서로의
어려움을 같이 나눌 수 없는 것일까? 서로 사랑한다면서 말이다. 
  흔히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우렁 낭자)나 (새엄마는 외계인)에 나오는
요술쟁이의 살림 솜씨를 기대한다. 자기가 없는 사이에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놓고 남자들이 오면 말끔하게 화장까지 하고 기다리는 천사를 꿈꾼다. 월급은
쥐꼬리만큼 갖다 주면서 밥상이 허술하다고 타박하거나, 자기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집안이 지저분한 건 못 견뎌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다. 
  맞벌이 부부인 경우, 돈도 많이 벌어다 주고, 집안 살림도 잘하며, 아이도 잘
키우고, 시부모에게도 곰살맞게 잘하는 그야말로 천의무봉의 선녀를 기대한다. 
  그런 남자들의 비위를 우리나라 여자들은 이제까지 참 잘 맞추어 온 편이다.
적어도 우리 위의 세대들은 그랬다. 그런 자신의 인생이 싫어서였는지 우리
어머니들은 딸들에게 [너희들은 나처럼 살지 말아라]하고 되풀이해 주입시키곤
했다. 그런 어머니의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겨 딸들 중에는 정말 자기의
어머니와는 닮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종의 부정적 동일화인
셈이다. 
  어머니가 그 힘든 집안 살림을 혼자 다하시면서 딸인 내게는 전혀 도와달라는
요구를 하시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일종의 무언의 교육 방침이 아니었는지.
  [너는 나처럼 이렇게 썩지 말아라. 비록 그 잘난 남자로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떳떳하게 살아라]라고 하는 바람이 들어 있지 않았을까.
  때로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은 어머니들이 딸을 통해  대리 만족 을
하느니, 자식의 독립을 방해할 정도로  자아 경계 가 불분명하다고 말한다. 
  어떤 남자들은 은근히 그런 어머니의 태도를 비난하기도 한다. 자녀들의
신경증을 유발한다, 자신의 억압된 소망을 자녀를 통해 만족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 여자의 삶을 살아 보지도 못한 남자들이 그렇게 겉으로 보이는
현상만 피상적으로 관찰해서 쉽게 왈가왈부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떡하든 살아 남기 위해 무한한 에너지를 일방적으로 공급해야 했던 이 땅의
억울한 여자 노릇을 정말 백분의 일이라도 이해한다면, 모든 잘못을 단순화시켜
한쪽만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청마루에 꼼짝 않고 앉아 발치에 있는 재떨이를 자기 앞에 갖다 놓게
하려고, 부엌에서 일하는 며느리를 불러 비를 맞고 뛰어오게 했던 우리의 선비
할아버지들. 역사와 사회를 위해 분주하게 뛰는 남편 대신 어려운 살림을 맡아
꾸려 와야 했던 아낙네들의 아픈 허리와 어지럼증을 꾸짖던 우리의 우국지사들.
  무능한 상대방을 비난할 때 [집에 가서 애나 보라]라고 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
똑똑한 남자들. 애 보는 일이 정말 그렇게 쉽다면, 바깥일이 그렇게 힘들어 맨날
때려치우고 싶다면, 한번 아이를 맡아 키워 보라고 하고 싶다. 며칠이나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눈에는 하찮고 대수롭지 않게만 보이는 집안 살림과 아이
키우기가 사실은 이 땅에 뿌리박고 살 수 있게 했던 든든한 토양이자 힘의
원천이었음을, 그들은 정말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어머니들의 말없는 희생과 봉사가 없었다면 가족 구성원의 자기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허장성세를 쫓느라 탈진된 스스로를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으리으리한 건축물, 그럴듯하게 씌어진 현학적인 책들,
사치스런 음악회 같은 것들보다는 우리 어머니들의 맛깔스런 음식과 깔끔한 집안
살림이 더욱 훌륭한 문화 전통이고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그 옛날, 어마어마한 피라미드를 짓기 위해 억울한 목숨들이 무수하게 죽어
갔다면, 후세 사람이 칭송해야 할 대상은 그런 대 역사를 시작한 잔인한 전제
군주 파라오가 아니라 그때 그 일에 참가해 자신의 목숨까지 송두리째 바쳐야
했던 평범한 노예들이 아닐까.
  비가 내린다. 그러나 이제는 소녀 시절처럼 낭만적인 치기로 비를 감상하지는
못한다. 대신 나를 포함한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느라 자신의 훌륭한 재능을 모두
감추었던 어머니, 또 내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삶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비를
바라보게 된다. 이젠 [아름다운 어머니의 대지를 적셔 주는 비]라는 상투적인
미사여구일랑 미련없이 내던져 버리자. 대신 [우리 어머니들을 고달프게 했던,
그래서 더욱 나를 화나게 하는 비]라는 건조하고 재미없는 문장을 솔직하게
써보자.
  펜대나 굴리고 활자나 들여다보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몹시 답답하고
진부하게만 보이는 생활 --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들-- 이, 사실은 더욱더
아름답고 찬란하다고 조금은 큰소리로 세상에다 외치고 싶다.
    천재를 키우는 법
  [여럿이 어울리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사랑함. 여기저기 쏘다니기보다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함. 쓸데없는 공상을 즐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별 관심 없음. 지극히 당연한 일도 당연하지 않다고 느낌. 과거의 상처를 쉽게
잊어버리지 못함. 빈둥거리거나 게으른 편임.]
  이상은 창조적인 사람들의 특성이다. 언뜻 보면 성격 이상자나 정신 장애자를
묘사해 놓은 듯하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우리나라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조선 시대 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조선에는 큰 인물이 나오기 힘들다고
했다. 나지막한 야산들이 만드는 복잡한 지세로 인해 광활한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한, 영웅이 나올 수 없다는 논리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런 지리적 결정론은 자칫 패배주의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 정말 우리나라에는 인재가 나올 수 없는지를, 통계적
검증이나 과학적 증명 없이 어떻게 단정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때로는 개성이나 독특한 광기가 살아 남기에, 우리나라 문화가 너무나
척박하다는 느낌이 들때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성이나
조금이라도 자기와 다른 점들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태도, 혹은 남보다 뛰어나다
싶으면 어떤 식으로든 고립시키려는 분위기에서, 김시습이나 정약용 같은 천재는
당연히 자기 뜻을 펼 수 없었을 것이다. 
  인재들이 제도권 안으로 포용되어야 역사가 발전할 수 있을터인데, 조선 시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그런 기인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키워 내지도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떤 문화적 토양이 개인이 가진 창조적 재능을 발전케 하는가? 
정신과 의사인 아리에티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들었다. 
  첫째, 문화 혜택을 언제라도 받을 수 있을 것. 둘째, 새로운 문화적 자극에
개방적일 것. 셋째, 변화를 강조할 것. 넷째, 정보를 보통 사람들도 공유할 것.
  이 밖에도 억압이나 차별을 극복하여 자유를 누릴 것, 자기와는 종류가 다른
문화적 자극에 항상 노출되어 있을 것, 중요 인물들과 언제든 만날 기회가 열려
있을 것, 장려 제도나 포상의 발달 등이 그것이다. 
  이쯤 되면 진정한 천재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무겁게 가라앉은 정체보다는 변화무쌍함이, 배타적 소유보다는 개방적인 나눔이,
경직된 자기 중심적 태도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받아들이는 너그러움이,
우리 안에 있는 창조성을 계발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반짝이는 신선함으로 가득한 젊은이들에게 쓸데없는 지식을 암기시켜 자발적인
호기심을 마비시키고, 그저 눈치나 보게 하는 우리 학교 교육의 해독에 나는
항상 소름끼치는 두려움을 느낀다. 
  획일적 교수법은 학생의 원기와 정신을 위축시킬 뿐이라며 새 교육 제도를
과감하게 주장했던  그룬트비히 의 뜻을 발전시켜 준 덴마크가 부럽다.
    못생긴 미인에게 보내는 박수
  [선생님, 저는 너무 못생겨서 다른 사람들이 전부 절 싫어하는 것 같아요.]
  세상에,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라 에이양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마릴린 먼로를 합친 후 동양적인 터치를 살짝 가한 듯한
굉장한 미인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 형편없이 평가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 스물한 살인 그녀의 인생은 멜로 영화의 소재감이라고 할 만큼 기구하다.
부모가 이혼한 바람에 어머니 집에서 몇년, 아버지 집에서 몇년, 이런 식으로
천덕꾸러기가 되어 사춘기를 허비하다가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부모의 사랑에 굶주렸던 그녀는 맹목적으로 그에게 매달렸고, 육체 관계를
요구하는 남자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동거 생활를 시작하게 되었다. 
            
             
                  
         
            
                 
                  
                 
               
              
        
        
                  
         
      
                       
                                      
                
             
              
                             
                            
     


   
 
     
    
  
   
      
      
    
  
  
     

   
  
     
     
 

   
 
    
 
 
   
    
  
 
 


 
     
         
       
     
 
  
                    
        
           
 
                
                      
             
                  
     

              
   
  
                                
의           
                     
       
                    
 
  젊기만 하고, 가진 것은 없어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그런대로 소꿉장난 같은
생활이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삼류 소설 같은 일이 정말 어이없게 일어나
버렸다. 갑자기 남자 친구가 공사장에서 사고를 당해 죽자, 생계는 물론 몸 하나
누일 곳도 없어져 버린 것이다. 
  갈 곳이 없어진 그녀는 결국 비뚤어진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다방 종업원과
룸 살롱의 호스테스를 거쳐 마침내 사창가에 흘러 들어 몸까지 팔게 되었다.
청량리 오팔팔까지 흘러 들어 창녀 노릇을 하던 그녀는 견디다 못해 아버지에게
연락을 했다. 결국 아버지와 다시 살게 되었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가득 들어앉아 버렸던 것이다. 그녀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다
결국 정신과 의사인 나를 찾아왔다. 
  면담 도중, 무엇보다 자기가 못생겼기 때문에 자신에게 불행이 닥쳤다고
생각하는 그녀를 앞에 놓고,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잠시 망연해졌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기 용모에 자신이 없다. 보봐르의 말대로 여자답게
키워지길 강요당한 탓에 장식적이고 연극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해 와서인지,
고도로 발달한 대중 매체의 조작 영향으로 서양화된 인위적인 아름다움만을
이상적으로 생각해서인지, 혹은 여성으로서 습관화된 자기 비하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신체의 결점을 찾아내서 열등감에 시달리는 경우는 꽤 많다. 몇년
전에도 멀쩡하게 잘생긴 턱이 너무 나왔다고 뼈를 깍아내는 수술을 받은 후 그만
정신병에 걸려, 사람들이 모두 자기가 수술받은 것을 알아보고 이상하게
생각한다며 고민하는 여인이 있었다. 
  다른 생활은 모두 정상적인데 자기의 용모에 대해서만은 망상을 품고 있는
경우 오히려 치료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지지부진한 편이다.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일종의 사회적인 관습 혹은 고정 관념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프리카 어디에서는 입술이 두꺼운 여자가, 봉건 시대의 중국에서는 발이
작고 가냘픈 여자가, 북한에서는 얼굴이 통통하고 둥근 여자가, 남한에서는 외국
사람처럼 홀쭉하고 쌍꺼풀이 진 여자가 미인이다. 
  서양 영화의 변천과 함께 미인에 대한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20세기 초반엔 얼굴이 통통하고 눈썹이 가늘며 입술이 도톰한 마릴린 디트리히
같은 타입이, 조금 지나 1940년대에는 그레타 가르보의 신비함이, 1950년대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미학적 완벽함이, 1960년대에는 브리지트 바르도나
마릴린 먼로같이 약간 모자라면서 섹시한 아름다움이, 1970년대에는 캔디스
버겐같이 청초하고 순결해 보이는 타입이, 그리고 마침내 1980년대에는 파라
포세트나 제인 폰다 같은 건강미 넘치는 여인이 스타가 되더니, 요즘에는 멜라니
그리피스나 킴 베신저 같은 개성이 강한 여자가 미인으로 인정받는 듯하다.
  그녀들이 각각 시대를 잘못 타고 나서 엉뚱한 시기에 등장했다면 아름답다는
소리를 듣기는커녕, 그저 그런 평범한 여자로 살다 죽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의사인 탓에 영화배우들을 보면서 저 코는 뭘 집어 넣은 수술을 받은
것이구나, 저 눈은 칼을 대었구나 하는 걸 나도 모르게 알아차리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나라 처럼 동조성이 강해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해야 마음이 놓이는
나라에서는 미인도 획일화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가끔 압구정동에 가면 웬 쌍둥이들이 그렇게 많은지, 똑같이 수술을 받아
비슷한 얼굴에,하고 다니는 행색까지 천편일률적이다. 그녀들의 영혼도 그처럼
외래 지향적인 물신 숭배에 똑같이 물들어 있을까 겁이 난다. 
  그런 뜻에서 보면 꾸미지 않고도 대중적인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이선희나
노사연, 노영심 같은 자연미 넘치는 당당한 미인들에게, 어쩌면 수술하지 않고
다듬지 않아 못생긴 여자들은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녀들이 상업적인 대중 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보통 여자들이 쓸데없는 외모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고 신경증에도
걸리지 않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에서 얘기한 에이양도 이제 쓸데없는 외모 콤플렉스를 버리고 자기 자신의
인생에 충실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녀가 매사에 자신이 없는 것은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아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자존심이 손상받은데다가,
여러 가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지, 외모가 못생겼기 때문은 아니다. 
  건강한 아름다움은 적어도 성형 수술 같은 인위적인 노력으로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착한 여자들에게 보내는 이상한 사랑 이야기 
  [얘, 너 그 사람하고 관둬, 아직까지 질질 끌려 다니니?]
  같은 여자로서 도대체 화가 나서 못 견디겠다. 바보 같은 년.
  [나 그이하고 헤어지면 못 살 것 같아. 그 사람 사랑해.]
  아이구, 사랑이 뭐 별건 줄 아니. 사랑한다는 사람이 왜 아직 본처하고 이혼할
생각도 안하니. 널 이용만 하는 거야.
  [얘, 너 그러다 네 몸만 버리고 좋은 청춘 다 간다.]
  [언니, 이미 얘기는 끝났어. 난 총각한테는 시집 못 갈 처지야.]
  세상에, 미련하기는. 제 몸 하나 간수도 못하고.....제일 조신하던 애가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
  [그렇다고 시집 못 가니? 요새 세상에 그런 것 따지는 남자 많지 않아. 네
마음만 돌리면 되는 걸 왜 그렇게 미련하게 구니.]
  [그 사람도 날 사랑하니까. 분위기 있고, 좋은 남자야.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는 없어.]
  이 케이스는 젊은 여자들이 잘 빠지게 되는  낭만적인 사랑 에 대한 환상이
가져온 비극이다. 아버지와 지나치게 가깝다거나 아니면 너무 아버지 사랑에
굶주렸을 때, 아버지같이 나이 많은 유부남과 사귀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 결혼에 대한 양가 감정, 즉 하고 싶기도 하지만 해서는 안될 것 같은
마음이 서로 싸우게 되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대상인 유부남과의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흔히들 젊은 여자들은 사랑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황홀경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진정한 사랑은 살며 같이 시간을
나누어야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결혼하기 전의 사랑이란 연애 감정이지 진짜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연애 감정은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들면 퇴색하게 마련이지만
자기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는 절대로 벗을 수 없는 숙제다. 달콤한 솜사탕을
빠느라 숙제를 안하고 있다가 나중에 닥칠 세월이라는 무서운 선생님의 꾸중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이혼해. 아니 왜 허구한 날 맞고 사니!]
  [그래도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항상 빌어. 내가 비위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그냥 어떻게 지낼 수 있을텐데...]
  [얘, 돈을 갖다 주기는커녕 뜯기만 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니!]
  [돈은 내가 어떻게 해서 벌어야지.]
  [어머, 그럼 뭐 때문에 그 남자하고 사니?]
  [애들 때문에. 내가 아버지 없이 자라서 그런지 우리 애들만큼은 후레자식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아.]
  [얘, 남들이 뭐라고 하는 게 중요하니? 애들한테도 그런 아버지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이 케이스는 사랑과 자기 학대를 혼동하는 여인들의 경우다. 흔히 우울증이
내적으로 잠재되어 있거나 습관적으로 자기를 비하하는 여인들은 일부러 그런
형편없는 남자와 사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정도의 남자나 자기와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미인이고 마음씨도 착한 능력 있는 여자가 짐승 같고 직업도 없는
건달과 사는 경우다.
  진정한 사랑의 토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자 아낌이다. 자기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그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남자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 혹은 자기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 이 모두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의 건강하지 못한 사랑관에서 연유된다. 
  지금이라도 남자로 하여금 더 이상 응석을 부리지 않게 하라. 당신의 배우자는
보살펴 주고 주어야 할 갓난아기가 아니다. 당신의 그런 태도를 그 남자가
용납하지 못한다면 지금이라도 미련 없이 그를 떠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너희 시어머니 너무하다. 어쩜 널 그렇게 부려만 먹니. 생활비도 남편한테
일일이 타서 쓰니?]
  [그렇게 사는 게 집안이 편해. 내가 뭐라고 그래 봤자 괜히 시끄럽기만 하지.
우리 남편은 워낙 그래.]
  [나 같으면 그렇게 안 살아. 그게 뭐니. 네가 그 집 파출부니!]
  [사랑하니까 희생하는 거야. 희생하지 않는 사랑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해.]
  [어머 얘 좀 봐. 요즘에는 사랑도 동등한 입장에서 평등하게 해야 하는 거야.
어떻게 일방적으로 그렇게 양보만 하고 살 수 있니.]
  [세상을 너무 이기적으로 보지 마. 내가 보기엔 넌 사랑의 진짜 의미를 모르는
것 같다.]
  [그래그래, 너 참 착하다.]
  이 케이스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만들어 낸 왜곡된 여인상의
비극이다. 물론 자기 희생도 좋고 봉사 정신도 좋다. 그러나 가족 사이의
일방적인 양보는 결국 흉물스러운 얼굴로 깨어지게 마련이다. 
  울분과 한의 세월을 보낸 우리 어머니들의 말년은 어떤가.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 하며 찌그러져 자손들에게 짐스런 존재가 되기도 하고, 애꿎은 며느리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희생은 가치 있는 대상에게 베풀어야 자기 자신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 
  가정은 갈등이 없는 무균실이 아니다. 서로 으르렁거리고 물어뜯으며 상처받을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런 시간들을 공유하지 않고서는 사실 살뜰한 정도 생기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자기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지금은 신사임당과 성춘향의
시대가 아니니까.
  착한 여자 콤플렉스, 여자들이 먼저 벗어 버려야 해결이 된다. 
  누구에게 부탁할 일도, 원망할 일도 아니다. 
    자살의 충동과 (한중록)
  정신과 의사로서 이야기하기 좀 쑥스럽긴 하지만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게는 나쁜 버릇이 하나 있었다. 별것도 아닌 일이 꼬인다거나, 누군가와 잘
풀리지 않는 어긋남을 맛본다든가 해서 절망적인 기분이 들 때면 일종의
도피처로 자살의 공상 속에 빠져 들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자살하고 싶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을 보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좀더 애처롭고 살뜰한 정이 가곤 한다. 
  작년에 자살한 비씨의 경우는 그래서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내가 좀더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지 못했던 것 같아 후회스럽다.
  비씨는 일류 대학을 나와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이었다. 부모를 일찍 여윈
슬픔을 딛고 공부도 열심히 잘해서 결혼하기까지는 그런대로 무난하게 살아왔다.
남편에게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기대했던 그녀는 남보다 결혼을
서둘렀다. 그러나 사랑의 열정이 식고 직접 생활에 부딪히자 여러 문제들이
생겨났다. 
  우선은 보수적인 시집 식구들과의 알력이 몰아쳐 왔다. 남편보다 돈을 많이
벌고 학벌이 좋은 며느리, 상냥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고 무뚝뚝하기만 한
그녀를 시어머니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의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은 마누라를 미워했고, 설상가상으로
연년생으로 낳은 아이는 모두 딸이었다. 2대 독자인 남편은 아이를 더 놓으라고
강요했으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키워야 했던 비씨는 아무도 몰래 피임
수술을 해버렸다. 아이가 왜 생기지 않느냐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닦달에 못 이겨
결국 그 사실을 고백하자 부부 사이는 더 악화되어 버렸다. 
  아들을 보겠다는 남편의 무분별한 외도와 더불어 싸움이 격해지면서 비씨는
심한 손찌검까지 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남편에게 떠밀려 층계에서
거꾸러진 후, 그녀는 몸과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고 고민하다가 며칠 후 날
찾아왔다. 갈등이 실타래처럼 헝클어져 있기 때문에 치료 기간이 상당히 걸릴 것
같아서 남편도 치료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으나, 그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병원에 오기가 힘들다고만 했다. 
  그후 예약된 시간에 전화를 걸어 부득이한 사정으로 못 오겠다는 말을 남긴 후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에 찾아온 그녀가 결국 남편과
이혼했다는 말을 하기에 나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위로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의 충동적인 결정에 대해 좀더 짚어 보았어야 했던 것 같다. 
  직장 일 때문에 또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다시 몇 달이 지난 다음에,
그녀는 진료실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재혼하게 되었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새출발을 축하해 주었지만 그녀는 전남편에게 두고 온
아이들 생각이 난다며 한참을 울고 갔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녀에게 전화가 왔었다. 죽고 싶다, 아이들에게 죄를 지은
것 같다며 전화를 끊지 않으려 했다. 나는 아이들이 좀더 자라면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말하고, 우선 만나서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 그녀는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으나 이번에도 예약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로 바빠 그녀의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얼마 후 그녀의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재혼한 남편이 출장을 떠난 후 혼자 집에 있다가 목을
매달았다는 것이며, 내 이름과 전화번호가 수첩에 적혀 있어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한참 동안이나 멍하게 있었던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혔고, 그 이후에도 꿈속에서까지 그녀의
비참하고 원망스런 얼굴이 나타나 괴로워 했다. 
  자살의 원인은 물론 일차적으로 그녀 자신의 약하고 여린 심성에 있겠지만
여러 가지 환경적 조건이 너무 나빴다고도 할 수 있다. 우선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들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때문에 그 남자의 사랑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지 못한 채 무모하게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또 보수적인 시집에서 전문직 여성으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점,
아내가 자기보다 잘난 꼴을 보지 못하며 아들을 낳으라고 윽박지르던 남편이라는
사람의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 자식을 버리고 재혼한 여자는 죄인이라는 고정
관념 등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나 싶다.
  그녀의 죽음은 많은 똑똑한 여자들의 불행을 생각나게 한다. 

  1960년대 초 우울하고 척박했던 전후 문단에 신선한 사람을 일으키다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전혜린, 그녀가 남긴 애절한 유고들에서 나는 비씨와 비슷한 점을
적잖이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남자 의사는 그녀를, 자기애적 성격 장애에 빠져 있었다고 이야기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녀는 자신만을 지나치게 사랑한 자기애적
인격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마땅히 받아야 할 정당한 사랑과 아낌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여자를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았던 척박했던 그 시절, 그녀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녀 자신이라도 스스로를 아껴야 했을 것이다. 
  봉건적인 가부장 제도가 지금보다 더욱 경직되었던 그때, 그녀가 시대를
앞서면 앞설수록 남자 중심 사회는 그녀의 천재성을 용인하지 않았고,
여자로서의 평범한 행복을 앗아 갔던 것이 아닐까.
  전혜린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위대한 문인 버지니아 울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1900년대 초, 서양의 시대적 상황은 지금의 우리나라와 같이 여자에게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았다. 그녀의 재능이 탁월하면 할수록 더욱 외로웠고,
따라서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은 그 당시 상황으로 보아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의 찬미를 외치고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이나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던 나혜석의 죽음도, 단순한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라거나 그녀들의
퇴폐적 인생 때문이라고 몰아붙이기보다는,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서 왜
그녀들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묻는 편이 더 옳을 것 같다. 
  이제는 어느 정도 여자들에게도 의식의 각성이 생기고, 여러 여성 집단이 생겨
여성끼리 일종의 동질성을 느끼게 해 서로를 도와주고 있지만 아직 너무나
소수만이 참여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앞서 말한 비씨도 좀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 나갈
힘을 키웠다면, 또 여성들끼리의 모임에 참여해서 그녀의 불행이 결코
그녀에게만 국한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 서로서로
의지했더라면...어쩌면 지금쯤 당당히 살아 남아 자신이 극복한 고통의 경험을
살려 같은 불행을 겪는 여성에게 재생을 위한 힘과 용기를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순결을 잃어서, 실연을 해서, 이혼을 해서 등등으로 차라리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혹 이 글을 읽는다면 바로 얼마 전에 내가 눈물을 흘리며
읽은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소개하고 싶다.
  혜경궁 홍씨는 소위 갑신 처분이라고 해서 남편이 찌는 듯한 더위에, 뒤주
안에 갇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죽어 가는 것을 그대로 지켜 보아야 했던
여인이다. 당파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의 부침과 숙부와 형제의 처형을
지켜 봐야 했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 정조대왕까지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아마 세계사에서 그녀같이 모진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 것이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절망 속에서 그녀도 자살을 생각해 몇 번이나 칼을 빼서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단식을 하기도 했다고, 그녀는 처절한 인고의 세월을 기록에 남겼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한중록)이라는 아름답고 진솔한 작품을 씀으로써,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을 승화시켜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을
위로해 주고 있지 않은가.
  자살하고픈 충동이나 유혹은 누구라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기
전,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 고통을 극복했는지
한번 쯤 돌아보라. 그리고 가능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구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귀한 생명을 가진 인간으로서 자살의 충동은 결코 혼자만의 비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신의 지배를 받는 육체의 표정
  첫째 얘기, 오십대의 부인. 어느 날 길을 가다 남편이 젊은 여자와 다정스레
팔짱을 끼고 가는 것을 목격한다. 두 사람을 미행해 보니 남편은 이미 그 여자와
딴살림까지 차린 상황. 그날부터 몸져누워, 며칠째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다
결국엔 기절해서 병원에 실려 간다. 
  둘째 얘기, 사십대의 남자. 자수성가해서 어렵게 모은 돈을 어처구니없게도
사기꾼에게 몽땅 떼이곤 충격으로 실신한다. 병원에 실려 갔다 깨어나니 몸의
반쪽이 마비. 컴퓨터 촬영 결과 뇌출혈.
  셋째 얘기, 건강하게 학교를 다니던 쾌활한 성격의 십대 소녀. 잇몸에서 자꾸
피가 나서 치과에 갔더니 종합 진찰을 권유, 혈액검사 결과 급성 백혈병. 사실을
알게된 소녀는 병마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극도의 혼란과 절망감을
겪으며 우울증에 빠진다. 결국 내과적 치료도 거부하고 자살 기도.
  넷째 얘기, 길을 가다 교통 사고를 당해 어이없이 다리 한쪽을 절단하게 된
이십대의 패기만만하던 청년. 오랜 투병 생활 끝에 퇴원했으나 직장도 애인도
이미 등을 돌린 후. 갈 길이 막막한 채 삶에 대한 의욕 상실 때문에 신경
정신과로 내원.
  앞의 두 케이스는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신체 질병을 얻게 된 예고, 뒤의 두
케이스는 신체적 질병 때문에 거꾸로 정신 질환을 얻게 된 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대로 몸과 마음은 서로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음은 큰 병이 들어 있지만 몸은 아주 건강하다든지, 몸은 심한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마음은 아주 행복한 상태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물론
가능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얘기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으면 제대로 먹을 의욕도 나지 않고 자기의 위생 상태에
대해서 신경 쓸 기분도 아니니 자연히 몸까지 축나게 될 것이고, 몸의 건강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고통을 꿋꿋하게 이겨
나가기 힘들다.
  옛 어른들은 [우환은 겹치게 마련이다]라고 했다. 예를 들어 가장이 직장을
잃자마자 그의 부모가 병이 난다든가, 아이에게 뜻하지 않은 사고가 나는 등
나쁜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날 때 흔히 그렇게 표현했다. 그럴 때면 [마가
끼었다느니,집안에 새 사람이 잘못 들어와서라느니, 부정이 탔다느니]라고 잘못
해석해 버리고는 굿을 하거나 부적을 갖다 붙이곤 했다. 
  사실 의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다 이해가 가는 일이다. 집안의 기둥인 가장이
직장을 잃게 되면 그에게 기대고 있는 다른 식구들이 상심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아무래도 저항력이 떨어지게 되어 여러 가지 병을 얻기 쉽다. 그렇게 되면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에게도 전보다 관심과 애정을 많이 쏟지 못하게 되어
아무렇게나 방치해 둘 수밖에 없다. 이럴 때면 뜻하지 않은 사고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불가항력적인 상황은 질병에 쉽게 무릎을 꿇게
되는 위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억울하게 실직을 당했다거나 거액의 손실을 본
경우, 이혼이나 별거 후, 사고 혹은 질병으로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사망했을
때 등, 살다 보면 평범한 사람들도 너무너무 속상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경험을 일생에 한두 번은 하게 된다. 
  이때를 정신 의학에서는 일종의  삶의 위기 상태 라고 간주한다. 
  객관적인 상황이 어려워지면 가족 사이에 잠재되어 있던 갈등이 겉으로
분출되면서, 가족 구성원은 서로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욱 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오랫동안 질병에 시달릴 때, 경제적으로만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아이의 간병으로 지칠 대로 지친 부부 사이도 멀어지는 경우를 진료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힘든 경험을 일종의 시련이라고 생각해 훌륭하게 잘
극복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낸 후 부부간의 사랑도 더욱
깊어지고, 인생을 보는 눈도 더욱 원숙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은 좌절감과 불행감, 상대방에 대한 원망등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멀쩡하게 잘 걸어다니던 신체에까지 그 여파가 미쳐,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망가지게 된다. 
  현대 의학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신체 구석구석을 통괄하는 체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혈액 및 임파계, 둘째는 신경계, 셋째가
호르몬계다. 이 세 가지 체계는 전부 마음으로 상징화될 수 있는 뇌의 영향과
지배를 받는다. 조금 쉽게 얘기를 풀어 보자. 
  사람이 충격을 받거나 화가 나면 얼굴이 새파래지거나 손발이 차갑게 된다.
갑작스런 뇌의 활동을 보충하기 위해 혈액이 머리로 몰리게 되면 상대적으로
말초혈관으로 가는 피가 부족해진다. 계속 신경을 쓰거나 속을 썩일 때 머리가
아프거나 어깨가 결리는 것은, 신경이 바짝 긴장해 있어 근육을 단단하게
수축시키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몹시 놀라면 심장이 두근두근대는 이유는 위험 상황을 알리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에피네프린, 노에피네프린 등이 갑자기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몹시 힘든 일을 겪거나 고통스런 상태에 처하게 되어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나온다. 위와 같은 체내의 물질이 오랫동안 많은 양이 분비되면 몸 안의
평형이 깨지게 되어 고장이 나기 쉽다.
  우리 몸에서 병을 막고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는 면역
체계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도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신체의 저항력이
떨어지면서 반대로 병에 대한 감수성이 커지게 된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렇듯 마음과 몸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주목해 정신 신체
의학의 항목으로 분류해 환자를 치료한다. 쉽게 말해, 강도가 높은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이 얻게 되는 정신적인 문제와 고통을 해결해 주는 한편, 마음의 병
때문에 얻은 신체의 질병 상태를 정신 의학적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다. 
  수술은 매우 잘되었는데 환자가 사망한 경우라든지 뇌사 환자들같이 차라리
죽었으면 좋을 사람을 어거지로 살려 놓고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하는 등, 몸과 마음을 분리시키는 비인간적인 현대 과학의 어두운 그림자에
주목하기도 한다.            
  모든 서양 문화가 그렇지만 사실 서양 의학도 근본적으로 데카르트의 이성적
사고 방식과 자연과학적 인식 방법에 기초하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한계가 있다.
이성적인 사고과 귀납법적인 태도로, 명백하게 구체적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나, 산업사회의 특성인 전문화나 분업화가 모든
일을 다 해결해 주는 왕도라고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서양 문물을 뒤늦게 받아들인 우리나라에서 오히려 그런 부정적인 폐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비인간적인 과학 문명에 엉뚱하게 집착을 보이는 사실은
상당히 아이러니컬한 얘기다.
  구체적인 예로 모든 병을 통괄해서 치료할 수 있는 일반 의사가 점점 사라지는
경향을 들 수 있다.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해도  의원 이라고 하면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등 모든 과목을 다 진료했었는데 요즘은 너도나도
이왕이면 전문의를 찾는다. 그것도 부족해 소화기 내과, 호흡기 내과, 혈액 내과
등으로 더욱더 세분화되면 무조건 좋은 줄로만 안다. 
  의사들 쪽에서도 자기가 전문으로 하는 분야가 아니면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이가 많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그래도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하에서 전인적인
치료를 하고 싶어하지만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획일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보험
제도, 원칙이 없는 의료 전달 체계--등이 그 같은 노력을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든다. 환자들은 어느 의사가 어떤 분야에 권위가 있다고 하면 불과 몇십 초 동안
몇 마디 물어 보고 한번 만져 보는 싱거운 진료도 몇 달씩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그 의사의 말 한마디에 맹목적으로 기대기도 한다. 
  단순한 감기나 소화 불량도 이왕이면 고명하신 박사가 치료하는 덩치 큰
종합병원을 찾는다. (원래 고급 물건은 쉽게 구할 수 없는가?) 그래야 보다
고급스러운 일류의 진료를 받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매사에 기계화된 첨단 기술이나 복잡한 물질 문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대형 병원의 컴퓨터 촬영 기계가 만병 통치약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심리가 답답하게 여겨진다. 
  컴퓨터로 인간의 몸을 들여다보아야 치료할 수 없는 난치병이 있다는 것을
확인이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청해서 복잡한 기계에 매달려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으려는 환자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런 시기에 한번 쯤 동양의 전설적인 의사들을 돌이켜보면 요즘 현실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해 본다. 
  예를 들어 후한 시대의 외과의 화타가 창안한 오금희 체조 요법은 병을
예방하려면 적절한 운동을 해야 한다는 오늘날의 예방의학적 사고 방식과도
통한다. 
  진 나라 때의 의학자 갈홍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응급 처치법이나
연단술의 대가였지만 예방 의학에도 일가견을 가졌던 사람이다. 
  추위를 느끼기 전에 옷을 제대로 입을 것, 배불리 포식하지 말고 날것을 먹지
말 것, 심한 수면 부족이나 반대로 지나친 잠도 좋지 않으며, 밖에서 잠을
자거나 이불을 덮지 않고 잠들지 말 것, 방사는 적당히 할 것 등을 권했다. 또
일을 할 때엔 지나치게 과로하지 말 것이며, 식사는 간단히 하고, 특히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음식을 먹지 말라고 권하기도 했다. 
  (황제 내경)이라든가 (동의보감) 같은 전통 동양 의학 서적을 보면 서양
의학보다 오히려 이런 심신 관계에 대한 인식 면에서 훨씬 앞서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동의보감)에는 정신이 신체의 근본이라는 [정위신본]이라는 구절이 자주
나온다. [오장개유정]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를 현대 서양 의학적으로 해석하면 인체의 장기는 정신의 지배를 받고
긴밀하게 연결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또 내가
아프면 그만큼 가족들이 고통을 당한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욕심만은 아니다.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의무감으로도 자기의 몸은
스스로가 잘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의사인 나 자신도 솔직히 말하자면 내 몸의 건강과 질병의
예방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할 때가 많다. 해야 할 일은 태산 같은데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래도 별 불평 없이 내 말을 잘 따라 주는 가장
만만한 대상인 죄 없는 몸을 자꾸 혹사하곤, 여기저기 아프다고 또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다. 오늘 저녁엔 밀린 일을 다 잊어버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푹
쉬고 싶은데 과연 그렇게 될까?
    강간 피해자가 받는 또 다른 고통
  조두영 교수가 쓴 (임상행동과학)을 보면 강간범들은 보통 흉기를 사용하거나
야비한 욕을 하면서 피해자의 몸에 상처를 입히고 몸에 대소변을 보거나
안면에다 사정을 하는 경우도 있고, 직장이나 질에 이물질을 삽입하기도 한다고
적혀 있다. 따라서 포르노 영화에서처럼 강간받는 도중 성적 쾌감을 느낀다든가
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강간당하는 도중, 여자들은 심적으로 고통스런 체험을 하게 된다. 우선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짓밟히기 때문에 굉장한 자기 혐오감에 빠지게
된다. 일부에서는 여자가 성적인 자극을 가했기 때문에 남자들이 성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시각도 있어, 당사자의 자기에 대한 모멸감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도저히 견딜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부정 이라는
가장 유치한 심리적 방어 기제가 필요하기도 하다. 즉,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꿈일 뿐이다라고 믿고자 한다. 
  따라서 강간범이 잡히게 되어도 피해자들은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하는 것을
기피하려 들거나, 법정에 나와 증언하려 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에게 일어난 그 같은 사건을 기억에서 빨리 지우고 싶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사건이 알려지면 겪어야 되는 여자로서의 불이익 또한 상처를 덧나게 할 뿐,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억울한 심정을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는 철저한 외로움도
함께 겪게 된다.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남자 수사관들 앞에서
피해자들은 여자로서 또 다른 모욕을 당하기 십상이고 사회 통념 때문에
심지어는 자기 가족들에게까지 죄인 취급을 당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특히 남편들은 아내가 그 순간 왜 자기 몸을 지키지 못했나 의심을 하기도
한다. 부모들도 일부러 그런 봉변을 자초한 게 아니냐고 책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피해자는 이럴 때 사면초가의 기분에 빠진다. 그리고 사실 자기에게
책임이 있지 않았느냐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전염되기도 한다. 
  강간은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일종의 강력한 사회적 최면에
빠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상 모두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윤락녀가 되기도 한다. 한번 순결을 바친 사람에게 평생 몸을 의탁해야 한다는
순결 이데올로기 때문에 강간 가해자에게 일생 동안 온갖 박해와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첩이나 처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강간은 지진이나 홍수 같은 천재 지변, 화재나 폭동, 아우슈비츠 같은
수용소에서의 끔찍한 경험들과 비견할 수 있다. 즉, 강간 피해자들은 대부분 그
사람들과 증상이 비슷한 소위  외상후 증후군 을 앓게 되는 것이다. 
  요행히 자신의 상처를 안으로 숨기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환자들은 여러
가지로 그때의 고통을 재경험한다. 반복해서 쫓기거나 폭행당하는 악몽을 꾸기도
하고 조그마한 일에도 자주 놀라고 불안해 한다. 
  세상 모든 남자들이 다 강간범 같아 보여 대인 관계를 회피하는 수도 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자기의 과거를 눈치채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게 되기도 한다.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는 사건이었으므로 시간이 흘러도 그
상처가 남게 되고, 후유증이 일생 동안 그 사람의 뒤를 쫓아다니는 것이다. 자기
몰락감, 자살 충동 같은 우울증의 증세에 빠질 수도 있다. 
  특히 정절을 목숨같이 여기라는 유교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보수적인 여성들의
경우, 자살하여 삶을 깨끗하게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강간 직후엔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철저한 검진을 받고 진단서를 떼어 두어야
한다. 더럽다는 생각 때문에 남자의 정액을 씻어버리면 안된다. 증거가 소멸되기
때문이다. 임신 여부, 성병 감염 여부, 다른 상해 여부도 면밀히 체크해야 한다.
조금 진정이 된 후에는 지속적인 심리 치료를 받아 빨리 사회에 복귀하는 것이
좋다. 만약 남자 의사에게 거부감이 든다면 여자 의사를 찾아가도 무방하다.
정신과 의사와의 지속적인 상담으로 빨리 자기 혐오감과 우울증, 대인 공포증
등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강간 피해자들 가운데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성은 더럽다,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들기 때문이다. 강간당한 후 불감증,
혹은 질 경련 등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외국의 경우에는 강간 피해자들의 모임이 있다. 거기에서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위로해 주고 격려하기도 한다. 또 자기가 강간당했다는 것을 남들에게
떳떳이 공포함으로써 다른 여성들의 수치심을 덜어 주기도 한다. 
  강간 피해자는 절대 죄인이 아니다. 더러운 여자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흉포한 범죄의 희생자일 뿐이다. 강간은 남자들의 성범죄를 느슨하게 용인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에, 그 책임은 사회 전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술을 사랑하시나요
  얼마 전 개봉된 영화 (최종 분석)에는 병적 알콜 중독이란 단어가 나온다. 
  주인공 킴 배신저는 단지 한 모금의 술을 마시고도 상스러운 욕을 하며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끔찍스러운 주정을 한다. 진정제 주사를 맞고 나서야
경련처럼 몸이 떨리는 것이 멈추어지는 그녀에게, 의사는 이제부터 절대로 술을
입에 대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그런 진료 차트를 이용해서 남편을 계획적으로
살해하려는 음모를 품고 있다. 자기의 살인 행위가 우발적인 주정 상태의
결과며,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듯이 위장한다. 영악한 그녀는 결국
배심원들의 무죄 판결을 받아 내고,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게 되지만 곧 풀려난다.

  하지만 실제로는 술에 취해 저지른 죄라고 해서 그 영화처럼 쉽게 무죄
석방되지는 않는다. 살인이나 강간, 강도 같은 강력범들은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보통이다. 
  영화기 때문에 다소 과장되고 극적인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보통
사람보다 빨리 취하는 체질이 있기는 하다. 간의 소화 효소 중 하나인 알콜
디하드로지네이즈의 일부가 부족한 체질의 사람들이 그 부류에 속한다. 
  그들은 조금만 술을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뛰며, 심지어는 정신을
잃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효소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쉽게 알콜
중독에 빠진다는 보고서가 꽤 여러 편 나오고 있다. 체질적인 이유말고도
한국인들의 음주 습관은 위험한 면이 꽤 많다. 유명한 소설 제목처럼  술 권하는
사회  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외국인, 특히 앵글로색슨족은 한국 사람들의 주거니받거니 퍼마시는
습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파티나 모임에서도 서로에게
억지로 술을 권한다든가 잔을 나누는 법이라곤 없다. 그저 자기가 원해서
찔끔찔끔 입술을 축일 뿐인 그들의 눈에는 걸핏하면 떼로 몰려다니며 폭주를
하고 길거리에 거리낌없이 토악질을 해대는 한국인들이 때론 야만적으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같이 술 마시는 것 이상으로 남몰래 혼자 술을 마시는 것도 위험하다.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는 주부들이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부엌에 술을 감추어
두고 마시다 중독 상태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다. 이를 흔히 키친 드렁커라고
한다.)                    
  어느 사회학자의 말대로 남들과 더불어 뭐든 똑같이 해야 마음이 편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주거니받거니 마음을 나누는 술자리는 집단의 동질성과
동료 의식을 확인하는 일종의 주술인 듯하다. 나도 마시고 너도 마시니 우리
모두 주정뱅이가 되어 서로간에 부끄러움도 격의도 없는 사이가 되자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술잔을 돌리는 만큼이나 위생상 해로운 일은 없다. 간염 등의
전염성 질환이 옮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술 마시는 것을 부추기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기 주량 이상으로 술을 마시게 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전세계에서
간염에 의한 여러 가지 질병들, 예를 들어 지방간. 간경화. 간암 등의 환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모두 같이 겪는 난리는 난리가 아니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듯, 같이 마시고
함께 빨리 죽자는 무의식적인 소망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술을
마셔 너도나도 병에 걸려 빨리, 그리고 비참하게 죽고 싶다면 술잔을 돌려도
무방하겠다. 
  요즘 신세대들만 해도 서로 술을 억지로 권하지 않는 풍습이 점차 일반화되어
가고 있는 모양인데, 이를 두고 꼭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세대 변화라고 말할 수
만은 없을 것 같다. 
  한국인들이 알콜 중독에 빠지기 쉬운 이유 가운데 또 하나는 남자가 술 마시고
주정하는 건 정상이라고 보았던 전통이다. 어려서 아버지가 술에 취해 밥상을
뒤엎고 가재 도구를 때려부셨던 경험을 한번 쯤 겪어 본 사람이 아마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남자들의 주사는 호쾌한 대장부의 징표라고 보는 사람도 있어,
마침내 폐인이 될 때까지 내버려두는 경우도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주달 이라고 해서 알콜 중독에 의한 간 질환이
기록되어 있는데, 황달 가운데 가장 중하며 가장 흔하다고 했다. 
  참고로, 알콜 중독 환자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체크 리스트를
소개한다. 
  첫째, 눈동자에 노란 띠가 둘러져 있는 듯 보이며 코가 빨갛다. 손바닥이
빨갛고 담뱃불에 덴 자리가 있기 쉽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술을 마시고
아무데나 쓰러져 자고, 여기저기에 부딪히기 쉽기 때문에 몸에 멍이 들어 있기도
하다. 또 간경화 등 합병증 때문에 딱딱하게 간이 만져지는 수도 있고, 말초
신경의 감각이 둔해져서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 매일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거나 한 달에 몇 번이나 폭주를 한다면, 이도 또한 중독 상태라고 본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 한잔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는 사람들, 소위 해장술을
즐기는 경우는 거의 중독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흔히들 얘기하는 필름이 끊기는 현상은 의학 용어로는 일시적인 의식 상실을
의미하는데, 이것도 알콜 중독의 중요한 한 징표다. 심하면 뇌세포에 손상이
와서 정신병이나 치매 현상이 오기도 한다. 기억력이 없어서 똑같은 소리를 자꾸
되풀이하고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못견디는 것은 물론, 술을 끊으면 금단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잃어버린 주말)이란 오래 된 미국 영화를 보면 아주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알콜 중독 환자의 금단 증상을 너무나 충실하게 묘사해서 일종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냐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주인공은 실업자로서 주로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인생의 낙오자다. 그는
열등감과 좌절감을 술로 달래다 알콜 중독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손이 경련
일듯 떨리는 것은 물론 금단 증상의 하나인 환각 현상도 보인다. 자기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촉각 환상, 천장 위에 끔찍한 괴물이 보이는 환시 현상
등도 나타나며 간질 발작도 일으킨다. 
  알콜 중독 환자들의 무의식적 심리를 분석해 보면 대개는 어머니와의 사랑이
건강하게 충족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과 정상적인 애정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고 있다. 술을 마시는 것은 마치 젖병을 빠는 것과 같아서 구강 만족이라고
프로이트는 설명했다. 
  알콜 중독은 쉽게 치료되지 않아 장기간 입원이 필요하고, 환자가 잘 협조하지
않아 자주 재발하기 때문에 가족들은 굉장히 지치고, 심지어는 환자를 미워하게
된다. 따라서 기도원이나 수용소 같은 사이비 의료 기관에서 비참하게 일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다.
  (솔로몬서) 1장 2절에 [그대의 사랑은 향기로운 와인보다 낫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자녀를 반듯한 사랑으로 키워, 혼자 설 수 있는 자립심을 키워주는
부모만 세상에 있다면, 알콜 중독이란 단어는 사라지지 않을까.
    의처증과 의부증
  (콜렉터)는 연극으로도 공연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작품이다.
여자를 나비처럼 채집해서 가두어 놓고 그녀를 소유하려 한 이상 심리 환자의
이야기다. 외로운 남자 주인공은 아름다운 젊은 처녀에 대한 사랑과 지배욕을
혼동한다. 죽은 나비를 한 군데 모아 쭉 진열해 놓고 그것을 완성하는 기분으로,
여자를 데려다 놓고 그 아름다움을 자기 품속에 간직하고 싶어한다. 
  양귀자의 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도 남자와 여자의 성만을
바꾸어 놓았지 이와 비슷한 이야기다.               
  여자 주인공의 유명 남자 배우 납치를 마치 페미니즘적 사건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
  진정한 사랑은 분명 서로의 자유를 구속하는 게 아닌데, 그런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여자 환자의 비뚤어진 증상으로만 독자에게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여성 해방이 갖고 있는 건전한 관점을 흐려
놓을 수 있는 가능성도 다분하다.
  흠모하는 대상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이란 점에서 일종의 편집증 환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에 여성의 인간됨을 주장하는것조차 병적으로 오해되는 게
아닌가 싶어 괜히 노파심이 들기도 한다. 
  두 작품의 주인공들이 모두 기혼인은 아니었지만 결혼한 사람들 중 일부는
(콜렉터)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주인공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그들을 우리는 의처증 혹은 의부증 환자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맥베드)나 (리어왕) 하이디의 (테스) 같은 작품에도 의처증
환자들이 등장한다. 아내를 의심해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망치는 것, 그리고
자신을 결국 파괴해 버리는 것은 문학 작품의 영원한 테마 가운데 하나인
듯싶다.
  널리 알려진 바대로, 의처증 환자들은 아내를 외출도 못하게 하고, 화장을
하거나 예쁜 옷을 입지도 못하게 간섭한다. 수시로 전화를 해서 아내가 집에
있는지 어떤지 감시해, 감옥보다 더한 감옥살이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아내의 머리카락을 숭덩숭덩 잘라 버리거나, 옷이란 옷은 모두 찢어
버리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러면서도 바깥에 나가면 멀쩡히 사회 생활을 잘해, 세상 사람들은 마치 그의
아내가 무슨 부정한 짓이나 저질러 자신의 죄값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오히려
의심하기도 한다. 
  한편 의부증 환자들 역시 의처증 환자 못지않게 집요하다. 남편이 바깥에서
돌아오면 온몸을 이 잡듯 뒤지기도 하고 다른 여자의 냄새가 묻어 있지 않나
사냥개처럼 킁킁거리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다른 여성들에게 한눈을 팔았는가
싶어, 늦게 돌아온 남편을 밤새 들들볶기도 한다. 
  왜 그녀와 서로 얼굴을 마주대고 웃었느냐, 왜 만났느냐, 과거에는 어떤
사이였느냐....새벽 서너 시까지 못 자게 하는 것이 예사여서, 남편은 사무실에
나와 내내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만약 결혼하려는 상대에게 의처증이나 의부증 증세가 있다면, 지금 단계에서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라고 충고하고 싶다. 데이트가 끝난 후 상대방의 귀가를
확인하지 못하면 몹시 안절부절못하고 화를 내는 사람,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옷을 입거나 화장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 서클의 다른
이성들과 같이 이야기를 하면 괜히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내고 그것이 사랑의
질투라고 착각하거나 끊임없이 자기만을 사랑하느냐고 확인하는 이들은
의부증이나 의처증의 조짐을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이들은 백 명 중에 아흔 명은 결혼한 후 비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하기
쉽다. 그들의 깊숙한 심리적 정신 역동을 단순화시켜 말하면 이렇다. 나는 남편
이외의 어떤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싶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이때 그들은 일종의  부정 이란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
  따라서 그들은 부정한 행동을 저지르는 건 내가 아니라 내 남편이다(이를 정신
의학에서는  투사 라고 표현한다). 남편은 지금 부정한 행동을 저지르고 다니는
게 틀림없다고 믿는다.
  의처증이나 의부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과를 찾아 의사의 도움을 구하기는
고사하고, 누가 뭐라고 충고만해도 펄쩍펄쩍 뛰기 때문이다. 
  이른바 병식, 즉 자기가 병을 앓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인식이 없으면 치료를
받으려는 동기도, 의욕도 없어 지속적으로 의사를 만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
때가 대부분이다. 
  의부증이나 의처증은 사실 정신 질환병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아가 모두 망가지는 정신 분열증 환자, 편집증적 성격 장애 환자,
가벼운 우울증 환자 등에게서 다양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별해야 할 질병들도 많다. 뇌의 기질적 장애가 있어서 전반적으로 의심이
많고 아이처럼 변하는 경우에서부터 원래 편집증적 성격 때문에 자기 이외의
사람 모두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환자에 이르기까지, 의처증이나 의부증의
원인 질환 또한 매우 복잡하다.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일단 전체적으로 어떤 상태인가 부터 확인해야
한다. 가벼운 우울증이나 적응 장애일 경우엔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증상이
호전될 테지만 정신 분열증이나 망상형 편집 장애인 경우 심하면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입원한다 해도 쉽게 병이
호전되지 않기에 의사나 보호자 모두 참을성이 필요하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요즘 와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탓이 아닌가 싶다.  남편의 여자 니  아내의 남자 친구 니 하는
단어들이 심심찮게 떠돌고 어떤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부부 관계의 배타성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종의 열린 결혼, 혹은 개방적인 성 관계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진보적인
사람도 꽤 있는 듯하다. 나 자신, 그런 이들의 도덕적 타락을 삿대질하면서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들을 그런 식으로 소리 높여 꾸짖을 만큼 내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극단적으로 말해 내가 오롯이 흠 없는 성모 마리아 같은 동정녀라고 해도
자기와 똑같이 살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자신의 잣대로 재어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스스로 어떤 틀을 만들어 그 바깥에 속하는 타인들은 모두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유치한 일도 없지 않을까. 다양한 삶의 형태가 넉넉하게
받아들여지는 풍토가 그 반대의 경직된 사회 분위기보다 조금 낫지 않나 하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하지만 너도나도 마음내키는 대로 배우자 이외의 사람들과 사귀어 서로에 대한
믿음이 흐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에는 자신의 상대방에 대해서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살게 되지 않을까?
  그것은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닐 듯하다. 남자와 여자 단둘이 만나도 울리는
불협화음이 대단한데, 거기다 얽히고설켜 여러 남녀의 동심원이 만났다 헤어졌다
한다면...상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의처증과 의부증은 개방적인 현대 사회의 한 합병증이랄까, 어두운 그림자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행복을 만들어 내는 영약은 없다
  아무도 못 말릴 정도로 행복한 사람들인 조증 환자들은 세상에 두려운 것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 매사에 자신이 넘친다. 잠을 자지 않아도 기운이 펄펄
나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다.   즐겁고 자신만만한 것은
좋은데,하지도 못할 일을 벌여 놓아 뒷감당을 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반대로 너무나 불행한 사람들인 우울증 환자들은 한심스러운 자신의 능력
때문에 무슨 일을 하건 결국 다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절망한다. 밥맛도 없고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다. 툭하면 눈물이나 짜고 심지어는 자살할 계획에
남모르게 탐닉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의
낯선 단어다.   
  정신 의학이란 궁극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행복과 불행에 관한 이론은 굉장히 많다.
  한때  이상구 신드롬 에 온 나라가 휩싸였던 적이 있다. 야채를 위주로
소식하고 자주 웃으면 몸 속에 엔돌핀이 나와 행복하게 장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실제로 엔돌핀에 대한 연구는 정신 의학에서는 조금은 물
건너간 이론으로, 현재 과학자들이 보는  행복과 불행에 대한 가설 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정신 세계는 각종 생화학적 물질들의 오묘한 조화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지
어떤 단일 물질의 과잉과 부족으로 단순 명료하게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헉슬리의 소설에 나오는  소마 같이 완벽하게 행복을 만들어 내는 영약은 아직
없다. 엘에스디 나 히로뽕 등의 향정신성 의약품을 복용하거나 마리화나를
피우면 잠시 황홀한 기분을 맛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약 기운이 떨어질 때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롭기 때문에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정신과 의사들이 불행한 사람들에게 흔히 처방하는 항우울제는 핏속의 부족한
물질을 직접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뇌 속의 수용체를 건드려서 간접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다. 게다가 투약과 함께 의사와 상담을 해야 진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인간의 행복은 단순히 몸 속의 물질적 변화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싶다.
  사실, 정신 의학이란 학문에 몰입하지도 투신하지도 못했으면서 여러 가지
가설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분명 주제 넘는 일인 듯하다. 때로 나는
[신성한 정신 세계를 과학으로 그만 파헤치고 내버려둬, 이대로 살다
죽을래]하고 외치고 싶을 때가 많으니 의학도로서의 자질이 몹시 의심스럽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라. 과학이 고도로 발달하여 완벽하게 행복할 수 있는
신비의 약품이 발명되었다고 치자. 불행은 사라질지 모르겠지만 고통도 없고
좌절도 없으니 하루 종일 행복하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인 줄 어떻게 알겠는가.
  또 변화에 대한 욕구와 극복의 재미가 없으니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의
차이는 무엇이겠는가.
  (탈무드)에 나오는 한 우화가 생각난다. 
  한 농부가 랍비에게 찾아와서 집이 좁다고 불평한다. 랍비는 아무 말없이
집에서 키우는 돼지를 같이 데리고 자라고 일러준다. 그 다음날 농부는 돼지
때문에 냄새가 나서 못 견디겠다고 말한다. 랍비는 그러면 양도 같이 데리고
자라고 충고한다. 그 다음날은 소를, 또 그 다음날은 말을....그런 식으로
며칠이 지나자 농부의 집은 수십 마리의 가축으로 가득 차버린다. 
  농부는 이제 더 이상 못 견디겠다고 랍비에게 씩씩거리면서 항의한다. 랍비는
마지막으로 이제 그 짐승들을 다 내쫓으라고 충고한다. 
  농부는 집에서 가축들을 모두 내몰고 나서야 과거 자신의 생활이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하고 조용했었다는 것을 깨닫고 오랜만에 행복에 젖는다.
  지금 자신의 삶이 불만스러워 투정부리는 사람이 있다면 항우울제를 투약하는
대신, 지금부터 불행을 찾아 나서라고 충고해주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고통과 실컷 씨름한 후에야 그의 쌍둥이 형제인 행복이라는 엉뚱한 친구가
장난기 짙은 미소를 띠며 그들 앞에 나타나 이렇게 얘기할 테니 말이다.
  [나 아까부터 여기 있었는데 어디 갔었어? 기다려도 안 오대.]
    사각 지대에 갇힌 남자의 고민
  겉으로 보기에 그는 분명 매력적인 사십대 남자다. 연륜이 얹힌 눈가의
주름살이 안정된 중년의 맛을 풍기고, 자기 일에 열의도 있어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속사정은 그게 아니다. 말 못할 고민이 요즘 부쩍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항상 젊고 건강할 것만 같았던 몸이 조금씩 나이를
먹음에 따라 눈에 띄게 변하는 까닭이다. 층계를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가쁘고,
허리를 구부려 물건을 주우려고 하면 군살이 붙은 아랫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직장에서도 연륜이 쌓인 직함 덕택에 남 보기에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은 진짜 높은 사장이나 회장과 세상 물정 모르는 채 자기만 아는 젊은 사원들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 고생만 하고 있을 뿐, 몸바쳐 일한 대가라고는 피로와
스트레스밖에 없는 회사가 그저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자기에게 점점 더 무심해지는 듯하다.
젊어서야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힘이 들어서겠지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이제
다 큰 자녀들이 으레 자기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편 대하는
태도가 소홀하기만 한 것이 못내 서운하다. 어쩌다 낮에 집에 전화라도 걸어
보면 집을 비울 때가 훨씬 많아 은근히 불안하기도 하다. 친구를 만나는지
쇼핑을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 종일 밖에 있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아내는 거의 집에 붙어 있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뭘 했느냐고 치사하게 닦달하려 들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일 것 같아 억지로 참아 넘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뭔가 개운하지 않은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보다 남들에게 떳떳이 말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그를 더 괴롭힌다. 다름아닌 잠자리 일이다. 
  이삼십대의 한창때와 비교해 보면 자신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자꾸
수세로만 몰리는 듯싶다. 아내가 머리라도 빗고 화려한 잠옷이라도 꺼내 입으면
덜컥 겁부터 날 정도다. 어느 틈에 그는 아내의 공격을 방어하는 비겁자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앵앵거리며 보채는 마누라와 언제 같이 잠자리를 했는지
아득하기만 한데, 그렇다고 술집 아가씨나 젊은 애인을 찾을 만큼 적극적이지도,
용감하지도 못하다.
  [요즘 젊은 여자들 잘못 건드렸다가 패가 망신한다더라] 하는 노파심과 걱정
때문일까.
  그러니 남자로서의 자신에 대해서 점점 더 불안해지고, 그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는지 아내도 젊었을 때와는 달리 자꾸 자기를 무시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다른 데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술자리나 친구와의
만남도 옛날 같지 않고 그저 몸이 축나는 것만 겁날 뿐 흥이 나지 않는다.
  고추 달린 사내가 계집처럼 무슨 감상에 빠지느냐, 또 무슨 헛바람이나 나려는
게 아니냐는 핀잔만 들을 것 같아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어 더욱 외롭기만
하다.
  이상은 한 평범한 중년 남성의 요즘 고민이다. 
  진료실에서, 혹은 개인적으로 만나는 많은 남자들이 위와 같은 숨은 갈등을
조금쯤은 공유하고 있었다. 억압에 눌려 산다는 여성들 못지않게 남성들도
남모르는 고민을 혼자 품고 사는 듯하다.
  오히려 여자들의 경우는 [난 이렇게 불평등한 관계에서 고생하고 있소]하고
남들에게 하소연이라도 한다지만, 남성들의 경우는 변명하고 도망갈 구멍도 없어
보인다. 그동안 많은 여성의 억압에 관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그에 못지않게 많은 남성들도 고통스러워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가부장제적 가족 관계, 또 복잡한 현대의 사회 구조가 남성들을 반드시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너는 집안의 대를 이어갈 사람이다. 사내 대장부라면 그런 것쯤 웃어 넘겨야
하지 않겠느냐, 부모님께 아들로서 할 도리를 다해라, 집안의 가장이 왜 그렇게
무능하냐, 왜 체신 머리 없이 그렇게밖에 일을 처리하지 못하느냐...]
  여자들과는 또 다른 이런 고민들이 그들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차라리 여자였다면, 찔끔거리고 울기나 하고 남들에게 하소연이나 할텐데,
남자라는 체면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혼자 삭이려고 하니 괴로워 죽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던 히스테리, 소위 전환 장애가 요즘엔 심심찮게 남자들에게서도
관찰된다. 
  상사와 한바탕 언쟁을 벌인 끝에 갑자기 손이 마비된다든가,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으로 실랑이를 한 끝이면 배가 참을 수 없이 아프다거나, 머리가 끔찍하게
아프다면 한번 쯤 이런 정신 질환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옛날 같으면 큰소리쳐서 마누라 앞에서라도 폭군 노릇을 할 수 있을텐데,
그래서 바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확 풀어 버릴텐데, 여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여권이니 뭐니 해서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니...눌린 언어와 쌓인 불만이 신체로
번져 여기저기 고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프고 마비되는 것도 물론 문제지만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남자로서 점점
무능해지는 느낌 때문에 오는 무기력과 우울증이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중년이 지나면 갱년기가 찾아온다. 여성들의
경우는 그래도 갱년기 장애니, 중년 여성의 우울증이니 하는 병명이라도 붙지만
남성들의 경우는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다. 

  지난 한해 동안 나는 여성의 심리적 갈등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많은
도움도 받고 독자들의 사랑도 과분하게 누렸다. 분에 넘치는 기회였지만, 그러나
뭔가 항상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곰곰이 살펴보면, 지구의 반쪽인 여성에 대한
논의만으로는 사람이 살면서 꼬이는 문제들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거라는 우려
때문인 듯싶다. 동시에, 또 이런 의문들도 항상 있어 왔다. 
  정말 여성들만 고통받고 있는가 ? 남의 불행을 밟고 산다고, 여자들이
공격하는 남자들은 과연 전적으로 행복한가 ? 여자들도 남자들에 대해 보다
폭넓게 이해해야 스스로도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
  소위 정신과 의사라면서 왜 너는 남성들의 고민에 대해서는 눈을
감으려하느냐? 여자로서의 자기 삶 때문에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지 않으려 하는
건 아니냐? 물론 남자가 아니면서 어떻게 남자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질문들은 질문으로 남기고,과욕을 부리지
말자는, 여자로서 길들여진 조신함이 더 이상의 발전을 막기도 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제까지 남자들은 여자의 심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많은
언어들을 뱉어 왔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달리 문제를 파악한다면, 비록 여자지만 여자가 보는 남자의
심리, 또 정신과 의사로서 만나는 남자의 심리에 대해 쓰지 못하라는 법도 없을
것 같았다. 남자들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더불어 사는 삶도 더욱 행복할
듯싶었다. 무모하게 남자 얘기를 시작하려 하면서,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무거운 추를 목에 걸고 끝이 안 보이는 캄캄한 밤길을 혼자 걸어가는 느낌이
든다. 여자에 대해 말할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의사 일에, 아직 어린아이들의 어머니와 대가족의 며느리
노릇에, 최근에는 방송 일까지 겹쳐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변명만으로, 다달이 독자에게 글을 보내 왔다. 그런데 어떻게 그 뒷감당을 할
것인가 하는 걱정이 사실은 크다.
  사실은 남자의 심리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이전에, 겁없이 춤추려 하는 무모한
내 펜을 꺾고 좀더 공부하고 좀더 깊이 사색해야 옳을 것이다. 
  그래야만 제멋대로 흘러가는 사고의 편린들이 아름다운 보석이 되어 맺힐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줄 뻔히 알면서, 또 하나 부끄러움을 내 마음에
얹는다.
    기쁨을 위한 전주곡
   아니, 이럴 수가! 남편이 이럴 수는 없어. 날 이렇게 만들어 놓고 자기는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 세상에, 기가 막혀. 
  심 부인은 도대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며칠 전 남편과 잠자리를
함께한 후 자꾸 거북하더니 오늘부터는 아예 치즈같이 생긴 하얀색의 냉까지
흐르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남편이 바람을 피웠으리란 짐작을 하고 보니
거울속에 비치는 부석부석한 자기 모습이 한없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아이를
갖고 나서부터는 입맛이 사정없이 당기기 시작하더니, 몸무게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이젠 스스로를 코끼리라고 불러도 무리가 아닐 정도였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실망으로 하루 종일 거울을 보며 훌쩍거렸다. 
   심한 성병에라도 걸렸으면 아이에게도 해로울텐데. 그이의 부정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으니, 이혼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 거야. 언제는 죽자 살자 쫓아다녀
결혼도 하기 전에 덜컥 임신부터 시켜 놓더니. 
  물론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 전까지는 순결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의 달콤한 꼬임에 넘어가 그만 덜컥 여름 바닷가에서 그
일을 당한 후 생긴 아이였다. 그리하여 부랴부랴 결혼을 하고 보니 뭔가 손해본
것 같기도 하고 속은 것 같기도 해서 신혼 초 한동안 우울하기도 했었다. 
  이제 간신히 마음을 잡고 뱃속에서 발길질을 하는 아기와 친해 보려 하던
참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의 외도에 의한 성병 감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그녀는 마침내 이혼을 결심하고 일단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 
  산부인과 대기실에 앉아 있는 다정한 부부들을 바라보며 별별 생각을 다하고
있으려니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이혼한 후 남편 없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차라리 낙태하고 새 삶을
시작할까? 그럼 아이가 너무 불쌍하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그럴 수는
없어, 그건 죄야. 
  진찰을 받고 나서 그녀는 비장한 마음으로 의사에게 물어 보았다. 
  [성병인가요?]
  동그란 안경을 쓴 젊은 의사는 그녀를 흘끔 쳐다보더니 웃기만 했다. 
   아니, 이 의사, 남의 불행을 보고 비웃어? 남자는 다 한통속 이지. 
  그녀는 그 남자 의사한테도 화가 나서 빰이라도 한대 때려 주고 싶었다. 
  [성병인 줄 아셨습니까? 아닙니다. 부인, 임신중에는 질의 산도가 높아져서
정상적인 부부 관계 후에도 칸디다 같은 곰팡이 균이 잘 생깁니다. 성병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고 며칠 부지런히 치료를 받으시죠.]

  아이를 가지면 자신의 여성적인 매력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데다가 유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부부 관계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다.
  게다가 우리의 문화권이 남편의 바람기에 대해서 느슨하게 생각하여 비교적
관대한 편이기 때문에, 임신한 여자들은 혹 남편이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갖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 
  임신 기간 동안에는 자궁을 비롯해 골반 내부가 충혈이 되어 있는 상태라
오히려 성적 충동이 더 강할 수도 있고 오르가즘을 잘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부른 배로 인해 체위가 익숙하지 않아서, 혹은 임신중에는 합방을 하지 말라는
전통 때문에 성 관계를 전혀 갖지 않는 부부도 있다. 
  임신 말기에 너무 깊숙한 체위를 갖지 않고, 습관성 유산의 병력이 있는 경우
조심하는 정도만을 빼고는 임신중에도 얼마든지 건강한 성생활을 즐길 수 있다. 
  더불어 임신한 여자는 흉하고 밉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요즘이나 황신혜처럼 날카롭고 가냘픈, 소위 카메라형 미인을 좋아하지, 본래
남자의 내부에는 아이를 가진 동그랗고 통통하며 따뜻한 여자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그녀들은 편안하고 풍요로워 보여 남자들을 그 옛날 어린
시절의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포근하게 해줄 테니까(그렇다고 남자들의 응석을
무조건 받아 주라는 말은 아니다).
  임신한 부인들은 스스로의 신체적인 변화에 대해 자신을 갖고, 임신 기간을
기쁘고 소중하게 보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부부 생활도 즐길 수 있게 된다. 

  아이를 가진 후 남편이 오히려 이것저것 반찬 투정을 하고 뭐가 먹고
싶다느니, 뭐는 입맛에 안 맞는다느니 하며 짜증을 내는 탓에 요즘 김 부인은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남들과는 달리 순하게 아이가 서서 별 무리 없이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아니 정작 임신하지도 않은 멀쩡한 남편이 왜 저 모양인가.
도대체 서운하고 속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신, 왜 그래요? 꼭 당신이 아이 서는 것 같구랴.]
  그 말에 남편이 벌컥 화를 내며 쳐다보더니, 마침내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게, 왜 아이는 이렇게 빨리 갖자고 했소! 난 집안에 아이가 있는 게
생각만 해도 끔찍해.]
  김 부인은 깜짝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김 부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결혼 후 오랫동안 직장에 다니면서 피임을
하자고 서로 동의한 것은 아직 경제적으로 안정이 안되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했지, 남편이 이렇게까지 아이를 싫어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팔 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줄줄이 동생을 보았다. 연년생 아니면 두어
살 터울의 동생들 때문에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 한번 제대로 받아 보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창 엄마로부터 관심을 받고 재롱을 부릴 나이에 툭하면
[넌 다 큰 애가 왜 그 모양이니, 네 밑으로 동생이 몇이니?]하는 면박이나 듣고
자라, 통 아이다운 어린 시절을 지내 보지 못했다.
  때문에 남들보다 빨리 어른스러워지고 조숙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고, 그래서
그런지 얼핏 남편은 자기 나이보다 훨씬 성숙해 보이기도 했다. 
  막내로 태어나 동생이 없는 것이 항상 섭섭하던 김 부인은 그런 남편을 처음
만나자, 마치 자기가 제일 따르던 큰오빠와 같은 느낌이 들어 한눈에 반해 먼저
결혼을 서두르기도 했다. 맏이라서 훨씬 어른스럽고 아버지 노릇도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편이 이렇게까지 아이가 생기는 것에 대해
생트집을 잡고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리라고는 김 부인으로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아이를 지울까요?]
  [아니, 지금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요? 내가 생긴 아이를
유산시키라고 하는 나쁜 아버지로 보인단 말이오?]
  [그럼 뭐예요. 임신한 내가 힘들어 해야지, 왜 당신이 더 난리예요?]
  [난리라니, 무슨 말을 그리 고약하게 하오. 남편에게 그 따위로 해도 되는
거요?]
  [남편이 남편다워야 존경을 하지. 허구한 날 반찬 투정이나 하고, 트집이나
잡고, 아이 가졌다고 원망이나 하고.]
  남편은 그 소리를 듣더니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혼자 아파트에
덩그마니 남은 김 부인은 도대체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이 왜 이렇게
민감하게 나오는 것일까?

  아버지 노릇,어머니 노릇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천성적으로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음을 통째로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자기 부모의 양육 태도를 그대로 본받는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기 부모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이 부모 노릇도 더
잘할 수 있다. 물론 부모 사랑을 항상 모자라게 받아야만 했던 결손 가정의
자녀들이나 고아들 가운데, 자기는 절대로 그런 식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부모 노릇을 아주 훌륭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한 덕에 훨씬 성숙해진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예외의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은 자신이 받은 사랑만큼 베풀게 된다. 김
부인의 남편도 어려서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못 받았고, 자기 자리를 빼앗아
간 동생들에게 숨은 적개심이나 분노를 가지고 자라났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기 자리를 빼앗았던 동생들과 유사한 자기의 자식들이, 어머니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인의 사랑을 빼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잠재적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겉으로는 점잖은 아버지 같은 타입의 남편도 알고 보면
어린애같이 부인에게 매달리고 어린애처럼 굴고 싶어한다. 
  때로 남편들은 아이가 생기고 나더니 부인이 자기에게 관심이 덜하다는 것을
불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고 방식의 밑바닥에는 자기 배우자에게
어린애같이 굴고 싶어하는 퇴행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무조건 병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저 왜 남편이 그런
서운한 행동을 하는지, 왜 자신이 아버지가 되는 것에 대해 불안해 하고 못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이해만 하면 된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남편과 열린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동시에 어린애처럼 매달리고, 너무 완벽한 아버지 노릇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이와 함께 병원에서 퇴원한 지 몇 주일이 지났지만 박 부인은 도대체 울적한
기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밤이 되면 아기가 몇 차례씩 깨어 우유를 달라고
하는 통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를 낳을 때 고생을 해서
그런지 툭하면 눈물이 나고 짜증스러웠다. 
  아이와 첫 대면을 했을때 박 부인은 감격스럽다기보다는 조금 징그러웠다.
빨간 핏덩이 같은 조그만 아이, 이제부터 자신의 인생을 지배할지도 모르는 작은
그놈이 두려웠던 것이다. 
  남편은 퇴근하는 대로 아이를 붙들고 앉아서 우유를 먹이네, 기저귀를 갈아
주네 법석을 떨지만, 자기는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사실이 영 흥이 나지 않았다.
아이를 가진 탓에 하고 싶었던 공부도 때려치워야 해서 그런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항상 돌봐 줘야 할 아이 때문에 집에만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싫어서인가 자문을 해보았지만 그런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못마땅했다.
게다가 자기가 좋은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생각 같으면 아이를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에게 맡겨 버리고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고 싶었으나 그럴 형편도 아니었다. 이래저래 짜증스러워 요즘엔 밥맛도
없고 젖도 잘 안 나오는 형편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 며칠 동안은 정상적인 산모들에게도 약간의 우울증 증세가
나타난다. 정신과적 용어로 말하자면 산후 우울증인데, 그 원인은 여러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는 생리학적인 변화다. 아이를 낳고 나면 호르몬의 변화와 몸 속의 여러
가지 전해질이 갑자기 변하는 바람에 몸이 적응하기 힘들어진다. 게다가 난산인
경우 관절이나 인대에 손상이 가서 여기 저기 쑤시고 아플 수도 있다. 
  둘째는 아이를 돌보는 일 자체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다. 밤에 여러 번 잠이
깨다 보면 수면 부족 때문에 주의력이나 집중력이 저하되고, 전반적으로 신체
에너지 레벨도 떨어진다. 게다가 핵가족 속에서 자라 아이 구경도 못하다가
갑자기 부모가 되면 당황하고 어찌할 줄 몰라 몹시 힘들다. 그럴 때는 집안의
어른들께 자문을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셋째는 아이의 심리적인 의미에 대한 혼란이다. 아이를 갖고 몹시 기뻐하던
사람도 막상 아이를 집에 데려다 놓고 보니 자기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신비스럽고 좋기만 한 것이 아님을 곧 깨닫게 된다. 끝도 없는 기저귀 빨래,
귀찮은 우유병 소독, 달래도 달래도 그치지 않는 아이의 울음 소리.
  무엇보다 아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 더 난감하다. 이제껏 한번도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인 탓이다. 첫아이와의 만남은 그래서 훨씬 어렵고
고달프다. 그러나 그 아이가 성장해 나가는 것을 지켜 보면서 자기도 같이
성장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경험을 하기도 한다. 
  산후에 생기는 우울증은 말하자면 그 다음에 다가올 기쁨과 보람을 위한
전주곡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과 고통을 모르고서는 귀한
자식을 얻을 수 없다. 육아를 전적으로 남 혹은 친척에게 맡기고 자신은 나
몰라라하던 부모들이 두고두고 아이와의 관계가 껄끄러워 결국 교육문제로
정신과에 찾아오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유대나 애착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언뜻 생각해 보면 귀찮고 성가신 일 같다.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너무나 행복하고 황홀한 경험 같기도 하다. 사실은 그 두 가지
극단적인 태도가 다 아이나 엄마에게 해롭다.
  아이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너무 지나치게 좋게만
생각하면 실망스럽고 괴로운 일이 많다. 자기가 자라나 성인이 되고 부모 노릇을
하게 된 과정을 생각해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만점 엄마, 빵점 엄마
  알콜 중독으로 코끝이 빨갛게 되어서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늘어놓는 아버지,
거의 정신 박약 수준으로 끝도 없이 남편에 대한 불평을 되풀이하는 어머니,
그런 부모를 모시고 병원으로 찾아온 우울해 보이는 한 미남 청년이 있었다. 
이미 그의 형은 심한 정신 분열증으로 5년이 넘게 정신병원을 들락날락거리고
있는데다가, 끝을 모르는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부서지고 망가진 집에는 한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지능이 모자라는 탓에 그동안 입에 풀칠하고 사는
일조차 아들인 그의 몫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괴기 영화에 나올 것 같은 괴상한 가정인데도 불구하고, 준수한
용모와 나이답지 않게 차분한 태도를 가진 아들이 그 부부의 사실상의 보호자일
것 같아 그의 직업을 물어 보았다. 
  놀랍게도 어지간히 공부 잘해서는 들어가기 힘들다는 일류 대학의 인기
학과를, 그것도 장학금으로 다니고 있다지 않은가. 사실 나는 그들을 돌려보낼
작정이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나는 그 부부를 내 환자로 받아들이기가 영
탐탁치 않아, 그들의 입원을 되도록 만류하고 싶었다. 
  알콜 중독자들은 보통 거짓말도 잘하고 자신의 병에 대해 진심으로 고쳐
보겠다는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얼핏 멀쩡해 보여도 예후가 안 좋은 편에
속한다. 
  정신 박약은 더하다. 기본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치료하는 사람들의
기력을 많이 소모시키면서도 그 성과는 미미하기 때문에 내게는 별로 매력적인
환자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치료하기도 힘들고, 치료비 문제나 보호자의
협조가 시원치 않아 말썽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돌려보낼
것인가만 궁리했다. 
  그들이 병원 문을 나서서 어떤 삶을 살게 되든지 어떤 운명으로 빠지게 되든지
그게 내 탓은 아니지 않은가? 온 세상의 불행을 의사가 다 뒤집어쓰고 고뇌하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알량한 속셈으로, 일정한 직업도 없는 사람에게 한
달에 몇십만 원의 병원비는 무리가 아니냐고 짐짓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이
부담스런 가족에게서 빨리 도망칠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다니는 대학 이름에 나는 그만 홀딱 넘어가 버렸다. 그의
부탁대로 흔쾌히 그들을 입원시키고 만 것이다. 물론 학벌이 좋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 것이라는 둥, 좋은 대학을 다니니 남보다 훌륭할
것이라는 둥의 속물적 사고 방식을, 남들에게 큰소리로 외칠 만큼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열심히 살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지 않은가.
  물론 그 청년도 비록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형편없는
부모 탓에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우울할지도 모른다. 남보다 어렵게 자신의
인생을 안고 살아왔으니, 스스로 지고 가야 할 짐이 무겁고 힘들 것임도
틀림없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나가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두고두고 그 가족에 대한 기억이 새로운 이유는 요즘 부모들의
열성적인 교육열과 맞물려 내가 남몰래 안고 있던 조바심과 불안감을 그 청년이
속시원하게 치료해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즉, 그 청년의 삶은 아무리 형편없는 부모 밑에 태어나 죽을 고생을 하며
자라도, 잘될 사람은 잘된다는 인생의 대역전 드라마가 아닌가. 가정 교육에
대한 내 자신없음을 똑똑한 그 청년은 시원스럽게 치료해 주었다. 

  나도 내 아이만 끔찍하게 생각하는 요즘 젊은 엄마들 가운데 한 사람이니,
아이들이 빨리빨리 자라서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이
나에게도 있다. 그러나 자기 직업을 가진 어미로서 잘한다고 해봐야 겨우 보통  
           
                    
            
       
          
        
              
      
       
 
                 
            
          
      
               
            
             
       
                 
                
                 
                   
                   
                
              
              
       
         
                
                    
                   
                             

             
                   
               
           
                     
        
                       
                        
                 
           
               
               
           
                       
                         
                                          
                        
              

      
  
이나 되지 않겠냐는 괜한 조바심이 사실 더 큰 부분을 차지해온 편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아이들과 많이 놀아 주고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싶어하는데,
그것은 내가 가정 교육에 열심이고 성실해서라기보다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스스로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자격지심 때문인 것 같다. 
  텔레비젼이나 비디오를 많이 본 탓에 약아빠지고 영악한데다가 집에서 버티고
있는 엄마라는 든든한 백을 가진 다른 애들한테, 우리 애들이 주눅들까 봐
걱정하면서 말이다. 
  사실 나로서는 요즘의 열성적인 조기 교육 바람을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내가 밖에서 일하는 여자니 아무래도 집에서 애들에게만
매달려 있는 전업 주부들에 비해 그 열성과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큰아이는 책 읽어 주기 귀찮아 하는 게으른 엄마의 주먹구구식 유도 작전에
넘어가서, 글자를 남보다 조금 빨리 익혔다는 점 빼고는 아무런 조기 교육을
받지 못했다. 
  휘황한 패물이나 비싼 옷가지, 화려한 집안 장식 같은 것은 눈꼽만큼도 좋아
보이지 않는데, 일류 학교에 자식을 보낸 엄마들은 몹시 존경스럽고 부럽다. 
  우리 아이들도 앞으로 공부도 잘하고 모든 일에 뛰어나야 할텐데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미리 하면서 말이다. 그런 내 안달을 가라앉히는 데 그 환자의
장한 아들이 큰 몫을 했으니 거꾸로 내가 그들에게 치료비를 줘야 되는 건
아닌지.
  여러 환자들을 겪다 보면 갖가지 유형의 부모들을 접하게 된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심한 노이로제 증세가 있기도 하고
너무나 한심스런 부모의 자식이 오히려 성숙하고 어른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형편없는 부모들의 든든한 지주가 되어 주기도 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우리 속담이 때로는 틀리는 데
인생 사는 재미가 있다고 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소위 과학이라는 의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명백히 인과관계를 밝혀야 하지 않나 싶어서 혼자 추측해
본다.
  정신 분열증이나 정신 박약, 간질병이야 사실 운이 나빠 걸리는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노이로제나 성격 장애 같은 것은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환자들의 이야기를 한꺼풀 벗겨 자세히 들어 보면 아이들의 교육에 가장
해로운 것이 무언가 조금 짐작할 수 있다. 
  첫째는 이랬다 저랬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부모가 변덕스러운
경우다. 아이들로서는 부모의 행동을 예측할 수가 없고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니 판단력도 생기지 않을 뿐더러 의욕도 나지 않는다.
  비록 부모가 모자라고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사랑을 정직하게 베풀
경우, 아이들은 힘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적이고 화려하지만, 자기 기분대로 중심 없이 살아가는 부모의 자식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여 우울증이나 성격 장애, 행동 장애 등에 걸리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일관성 없는 교육 태도 때문이다. 
  두 번째 나쁜 태도는 아이에 대해 지나친 과대 망상을 갖거나 반대로 아이들에
대한 비생산적인 실망을 되풀이하여 겪는 것이다. 보통, 첫아이를 낳고 나서
얼마 동안 엄마들은 누구나 자기 자식이 이 다음에 대통령도 되고 박사도 되고
하는 별별 꿈을 다꾼다. 자기가 하지 못한 모든 것을 아이가 대신 충족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다. 
  그건 내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사내아이를 낳았을 때 여자로서 억울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나는 기뻤다. 아이가 고추를 달고 태어났으니 여자인 내가
갖지 못했던 많은 부분을 누리면서 당당하고 씩씩하게 살아 나갈 수 있으리라는
철 지난 바람 때문이었다. 물론 이제는 생각이 달라져 여자의 삶이나 남자의 삶
모두,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성별의 차이가 아니라 그 자신의
건강한 삶에 대한 애정과 의지라고 느끼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 식으로 아이가 자신의 분신이자 욕망 충족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종의
도구자 수단이라는 생각을 갖고 자녀 교육에 임하다 보면,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반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엄마, 나는 엄마의 로봇이 아니란 말이에요. 내 인생은 내 것이에요. 내게
그런 허황된 기대를 갖지 마세요. 부담스럽고 짐스러워요. 나는 엄마처럼 그런
엉뚱한 생각으로 인생을 낭비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 정도로 얌전히 반항하면 오히려 다행이고 더 나아가 엄마들의 극성스런
뒷바라지가 지겨워 가출을 한다거나 비행 청소년이 되는 수도 있다. 어쩌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너무 기대가 큰 어머니들에게는 계속 실망해 나가는
과정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해로운 태도는 아이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희생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혹은 희생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너 하나 잘되라고 뼈가
빠지게 고생했는데....]
  [너만 아니었으면 벌써 아버지와 이혼하고 새 삶을 찾았을 거야. 너 때문에 저
짐승 같은 인간과 헤어지지 못하고 살고 있는 거야.]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세뇌 교육을 시키다 보면 아이들은 어머니의 불행이
자기 때문이라며 죄책감과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다행히 자아가 강해서 그런
부정적인 의무감들을 승화시켜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머니에 대해
극단적인 양가 감정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불쌍한 내 어머니, 호강시켜 드려야지] 하는 마음을 갖는 자녀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끔찍스런 어머니, 당신에게서 도망치고 싶습니다. 당신이라는 사람,
지긋지긋합니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그 모든 책임이 다 자기한테 있다고 생각해서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 기도
같은 극단적인 행동 외에도 스스로를 잔인하게 벌하는 행동, 즉 알콜이나 약물
같은 것에 탐닉해서 조금씩 조금씩 자기를 죽여 가며 어머니에게 복수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끔 [당신의 자녀는 어떻게 키우십니까? 혹은 무슨 책이 도움이 됩니까?
]하고 물어 보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되는 대로, 나 생긴 대로 자식을 키웁니다. 이론이나 논리로 대하지는 않죠.
대신 부모로서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애쓰고, 아이들에게는 인간 대
인간으로 정직하게 만나려고 애쓸 뿐입니다. 세상에는 만점 엄마도 없고 빵점
엄마도 없습니다. 성공적인 삶이냐 아니냐 하는 것도 사실은 주관적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야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느냐 하는 것에도 정답은 애시당초
있을 수 없는 게 아닌가요?]
  혹시 내가 자식을 잘못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자신 없어 하는 부모들,
내 자식은 영재나 천재가 아닐까 하고 꿈에 부푼 부모들에게 나는 소리 없는
응원을 보내고 싶다. 자기 인생의 드라마가 뜻한 바대로 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식의 삶도 분명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넘어지고 실망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데 살아가는 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전자 게임기 증후군
  한 해부학자에 의하면, 인간이 갖게 된 대부분의 질병은 두 발로 걷게 된 
직립  이후에 생겼다고 한다. 척추가 중력과 체중에 눌리기 때문에 디스크 등의
각종 관절염, 또한 위쪽에 있는 머리에 혈액을 보내기 위해 고혈압등의 혈관
질환이 생겼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고 수명이
길어질수록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질병이 늘어나고 있다. 
  브이디티증후군도 그런 질병 가운데 하나다. 컴퓨터 단말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의 경우 시력 감퇴, 어깨 결림, 허리 통증 등은 흔히 관찰되는
증상이다. 색깔 칠한 얇은 스크린 하나 덮는다고 해서 그 모든 증상이 사라질
리는 없다. 최근에 문제가 된 전자 오락기에 의한 간질 발작은 이미 기존의 정신
의학 책에 기술되어 있다. 즉, 광과민성 간질 발작이라고 해서 자외선이 강한
햇빛, 텔레비젼 혹은 컴퓨터에서 나오는 전자파 등에 의해, 특이 체질인 경우
간질 발작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즘 특히 이 증상이 새삼스럽게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아마도 전세계
첨단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 경제력에 대한 반감 탓도 있을 것이다. 
  이 기사를 읽고 서둘러 아이들로부터 오락기를 빼앗으려 하는 부모들이
많아질텐데, 집집마다 벌어질 조그만 소동이 걱정된다. 
  오늘날 아이들 사이에선 무슨 게임기를 갖고 있는가를 탐색하고 또 서로 어떤
게임기를 빌려 볼까 하고 열중하는 것 따위는 일종의 사회적 활동이다. 즉,
게임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은 또래에서 소외될 정도다.
  [모두가 다 하는데 왜 나만 거기에 못 끼느냐 ]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부모는
야멸차게 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전자 게임에 몰두하다 말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적당한 운동량도 부족해질
것이고, 사회성이나 창의력도 길러지지 않을 것임을 새삼스럽게 말해
무었하겠는가. 책을 읽거나 자연과 교감하며 느끼는 풍성함에 비해, 기계의
비정한 화면은 더 이상의 상상력이 전혀 필요 없는 단정적인 움직임만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화책 대신 폭력물을, 동요보다는 랩송을 좋아하며 들과 산으로
뛰어다닐 시간에 전자 게임기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걱정만 하고 꾸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바뀔까?  노래방에서 소리를 질러대고, 두세 명만 모였다 하면
고스톱판을 벌여야 직성이 풀리는 어른들이, 바로 그런 아이들의 부모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유해한 전자파를 걱정해서 아이들로부터 전자
오락기를 빼앗고, 공부는 안하고 텔레비젼 앞에만 붙어 있느냐고 으름장을
놓기보다는, 차라리 어른들이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게 옳은 순서일것이다. 
  책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회에서 건강하게 자라난 아이들이 갑자기 황폐해질
리가 없는 것처럼 술과 노름이나 즐기며 춤추고 놀자는 어른들 밑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학구적이거나 풍부한 정서를 가질 리도 없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인간과 자연을 숨막히게 하는 것이 어디 전자
오락뿐이겠는가. 닌텐도 회사 제품에 의한 간질 발작은 기계화 사회의 전반적인
타락과 병리 현상을 예고하는 작은 전주곡에 불과하다.
    천국을 떠나는 예수님과 부처님
  할머니는 열렬한 개신교 신자로 삶을 마치셨지만 본래는 성황당을 열심히
받들던 분이셨다. 또 이름 없는 지손이긴 하지만 왕손의 외며느리로, 봉제사도
나름대로는 성실하게 모셨었다.
  그분은 일생 동안 일곱 자손을 키웠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은 개신교, 다섯은
천주교, 나머지 한 명은 원불교 신자가 되었다. 덕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자손들은 여러 종교의 방법으로 각각 명복을 빌었다. 유교식의 제사 음식을 앞에
놓고, 신의 명복을 비는 모습은 다종교 사회인 우리나라가 아니면 보기 힘든
진풍경일 것이다. 
  팔순을 훨씬 넘기신 호상인지라, 모인 자손들은 극락이건 천당이건 그 가운데
한 군데는 가지 않겠느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종교 때문에
서로 충돌하지 않는 것은, 가족 의식 아래에 깔려있는 유교적인 심성--어떤
종교보다도 우위에 두는 이데올로기는  예의 혹은  효 인 것 같다--이라는
공통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학문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많은
분위기가, 종교에 대한 광신적인 몰입을 경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종교는 믿되 어느 정도의 회의나 종교적 신앙에 대한 일종의 조심성은
가지고 있으라고 서로에게 무언의 권유를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종교를 일종의 투사개념 혹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했다(물론 그의 종교는 거의 대부분 서양식의 기독교를 뜻했다). 
  쉽게 말해 하느님이라는 존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부모에 대한 해소되지
않은 갈등에서 생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이나 부처님은 자신들에게는 없는
강하고 전지전능한 아버지나 남편의 상징이고, 마리아나 관세음보살은 자애롭고
따뜻한 어머니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교회나 사찰에 가보면 신자들 대부분이 여자들이다. 물론 시간이 남고 여유가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이 쌓인 원한이나 원망이 더
많아서 종교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종교를 일종의
마약이라고 하면서 현실의 모순을 얼렁뚱땅 덮어 버리고 억압당하는 민중들을
미혹시키는 기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극단적인 입장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억울한 심정, 쌓인 분노를 종교에 의지하여 푸는 수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 같이 가부장적인 전통이 뿌리 깊은 사회에서 유일하게 허용되는
사회적인 활동은 종교적인 행위인 수가 많아, 여성들은 종교 생활을 하면서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내적 욕구를 만족시키기도 한다(물론 그런 행동들이 다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억압된 어떤 콤플렉스를 종교로 보상해 보려는 사람들일수록
미숙한 감정으로 신을 숭배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열광적인 신심과 깊이 있는
신앙을 혼동하기도 한다. 또 자기 자신, 자기 가족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복
행위를 종교적 기도로 착각하기도 한다. 샤머니즘적 전통이 외래 종교와 어울려,
우리나라 사람들의 종교 행위의 모습은 유럽이나 미국과는 조금 다르다.
  굿하고 부적을 써주는 자칭 보살이 있는가 하면, 방언과 은사라면서 의학적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을 흠씬 두들겨 패서 골병을 들게 하는 사이비 목사도
있다. 실제로 정신 분열증에 걸린 환자들이 안수 기도를 받고 온몸에 피멍이
들어서 병원에 실려 올 때, 자아 기능이 약한 환자들에게 어지러운 굿을 해서
병을 더 악화시킨 후 어쩔 수 없이 의사를 찾을 때, 나는 화가 난다. 
  그런 환자들은 적당한 치료의 시기를 놓치게 되고 그 후유증을 심하게 앓는다.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종교에 대한 경직된 사고 방식으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비하하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어떤 음침한 부분, 혹은 부정하고 싶은
점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할 때 더욱 흥분하고 상대방을 공격하게 마련이다. 
  자신 속에서 내버리고 싶은 나쁜 심성을 억압하고, 완전히 다른 것처럼
행동하는 일종의 반동 형성의 자기 방어 기제로 짐짓 선한 척, 도덕 군자인
척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믿는 종교가 미신이다, 혹은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다 도둑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일수록, 자기 안에 그런 어두운 부분이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옳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일수록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의 답답함과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고정 관념에서 쉽게 빠져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예수쟁이들은
어쩌구 하면서 기독교에 대해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불교 신자들을 만나거나,
우상 숭배니, 부적이나 지니고 다니는 미신이니 하면서 불교를 매도하는 기독교
신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래서 나는 몹시 우울하다.
  종교라는 것은 서로 사랑하고 자비롭게 살라는 가르침인데, 그 종교 때문에
인간 세상이 또 한번 어지럽고 시끄러워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종교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나같이 어정쩡한
태도로 종교를 믿는 사람을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열광적인 기독교 신자들이라면
나는 하느님을 받드는 데 게으른 죄인이 될 테고, 불교 신자들 입장에서는
부처님의 삼보에 귀의하는 영광을 누리지 못해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어리석은
중생이 될 테니, 사탄과 아귀들의 지옥으로 떨어질것이 분명하다고 나를
불쌍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정말 때때로 억겁의 세월을 하느님이 지배하는 지옥에서 고생한 뒤 기독교적
죄를 보속받아 겨우 빠끔히 얼굴을 바깥으로 내밀라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불교적 업보 때문에 이번에는 윤회의 사슬로 떨어져
다시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된다는 두려움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아직 죽어
보지 않은 탓이다. 그럴 때마다 [종교라는 것은 사람이 입고 있는 옷과 같다.
입었다 벗으면 그만이지. 중요한 건 그걸 입는 사람이야. 어느 나라에 사느냐,
언제 태어났느냐에 따라 종교가 결정되는 것뿐이다. 예수님도 교회에 다니지
않으셨고, 부처님도 절에 다니시지 않았지만 그분들은 모두 진리를
깨우치셨잖니]라고 말씀해 주신, 신심이 깊은 한 신부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공포심을 가라앉히기도 한다. 
  정신 의학을 전공한 나 같은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환자의 행복이 목표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서는 일반 사람들과 조금 다른 태도를 취하도록 교육받은
편이다. 나 자신은 견진례까지 받았지만, 때로 너무 지나친 종교에 대한
집착이나 죄의식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당분간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반대로 불교 신자들이 기독교 신자들을 비난할 때면, 환자와의 공감 형성을
위해 그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맞습니다. 그 사람들 전부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뭐니뭐니 해도 진리는
부처님이 설파하셨죠.]
  사실 그것은 내 마음에 없는 말을 아주 거짓말로 꾸며댄 것은 아니다. 아무리
내가 영세를 받아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지만 마음속 깊이 흐르는 동양적인
무의식과 정서가, 서양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불교를 쳐다보게 만드는
탓이다. 또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타인의 사고 방식에 대해 핏대를 올리고
원색적인 공격을 하는 대신, 엉뚱한 생각을 잘하는 나는 가끔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보며 혼자 웃기도 한다. 
  [열심히 하느님을 믿거나 절에 다니던 사람들이 죽어서, 깊은 신심 덕에
천당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서로 내가 잘났니, 옳으니 하고 싸우느라
천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려 지옥을 방불케 한다. 견디다 못한
하느님과 부처님은 그들에게  너희들끼리 잘 살아 보라 고 하며 그 시끄러운
천국을 떠나 지옥으로 간다. 그곳에는 예수도 부처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느라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한 예수님과
부처님은 그곳에서 진리를 설파하시고 죄인들은 깨달음을 얻는다. 지옥은 그
순간에 천국으로 변하고 만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공상을 내 안에만 두지 않고 남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을
때가 있다. 
  [자기 자신과 내 가족만을 위해서, 또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남을 비난해
가면서까지 종교를 믿는다면, 굳이 남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라는 교리 공부를
하며 절이나 교회를 나가느니, 열심히 돈 벌고 출세할 걱정이나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왜곡된 방법으로 신을 믿는 자신을 돌이켜볼 생각은 커녕, 자기
안에 있는 시커먼 이기심과 콤플렉스를 남들에게 뒤집어씌우려 하는 짓은
그만두십시오(그것은  투사 라는 미숙한 자기 방어를 하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얼굴을 붉혀 가면서 상대방을 비방하는 데 열올리는 대신, 지상에 하느님의 천년
왕국이 재림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지향한다면, 또 모든 중생이 부처라고
생각한다면, 남을 미워하지 말고 서로 따뜻하게 포용해서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려고 노력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겠습니까? 
    어린 아들과 나눈 죽음 뒤에 오는 세상 이야기 
  아파 쓰러질 정도가 되어야 겨우 쉬는 못된 주인을 만나, 비록 의사라고
하지만 내 몸은 자주 탈이 나는 편이다. 며칠 전부터 날 괴롭히는 감기가 영
떠나려고 하지 않는 걸 보더니 큰아들놈이 물었다. 
  [엄마, 병은 왜 걸려?]
  [나쁜 병균이 있기 때문이지.]
  [너무 많이 아프면 사람이 죽어?]
  [그럴 수도 있지.]
  [누가 그 나쁜 병균을 만들었어?]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셨지.]
  [왜 하느님은 그런 나쁜 걸 만드셨어?]
  [글쎄, 꼭 나쁜 것만은 아냐. 만약 사람이 병균 때문에 죽지 않는다면 사람이
너무 많아 지구가 터질 게 아니니.]
  [그럼 우리는 죽어서 어떻게 되는 거야?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들면 엄마도 죽는 거야?]
  [그래, 사람은 언젠가는 다 죽는단다.]
  [엄마,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영혼이 되어서 저 세상으로 간대.]
  [그럼 내가 죽을 때까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거야? 나보고 빨리
오라고 하셔? 한번 죽으면 다시는 살아날 수 없어?]
  [아니, 다시 살아날 수는 없지만 다른 몸을 빌어서 태어날 수는 있대.
부처님이  윤회 라는 걸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단다.]
  [윤회가 뭔데?]
  [죽었던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야.]
  난 아들 앞에서 기독교 신자가 되기도 하고, 불교 신자가 되기도 한다.
아들에게 보다 폭넓은 지식을 전해 주고 싶은 에미로서의 욕심 때문인 것 같다. 
  [엄마, 난 죽고 난 다음 또 태어나면 엄마랑 결혼하고 싶어.]
  삶과 죽음이라는 엄청난 화두 앞에서 아들과 나눈 선문답은 재미있게 결론이
났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즉 어머니를 자신의 애인처럼 생각하고 아버지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는 심리적 발달 단계를 거치고 있는 일곱 살짜리 아이에게
어울리는 결론 같다고 생각하면서 난 그만 피식 웃어 버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대답하기 힘든 문제가 죽음과 탄생, 또 성과 관련된
문제라고 한다. 그런 예민한 주제말고도 흔히 귀찮을 정도로 쏟아지는 아이들의
질문에 바쁘고 힘든 부모들은 그저 건성으로 대답해 주게 마련이다. 
  내 어머니는 그런 점에서 예외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자식을 키우면서 당신
스스로가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고 하실 정도로 우리의 질문에 성실하셨다. 
  미진하다 싶으면 책을 사서 더 공부할 정도로 열성이셨던 어머니 덕에 친구는
별로 없었지만 성장하면서 항상 정신 세계가 풍요로웠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가끔 어머니께 이것저것 여쭈어 본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내가 심리학 박사냐? 의사는 바로 너잖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물음에 언제나 성실하게 대답해 주신 어머니의
태도는 어떤 영재 교육보다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과연 어머니만큼 반듯하고
성실하게 내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지, 영 자신이 없다. 
  어마어마한 인간의 심리를 다루고 있다는 소위 정신과 의사지만 자기 새끼들
앞에서는 무지한 어미의 심정이 되는 것 같다. 
    우리의 희망이 있는 곳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별일도 아닌 병실 밖의 짧은 나들이가 입원중인 정신
질환자들에게는 굉장한 기쁨이고 삶의 낙이다. 하루 종일 먹고 자고 누워 있기만
해야 하는 그들의 일상은 그만큼 건조하고 지루하다.
  편안하게 햇볕을 즐길 수 있는 봄은 그만큼 환자들에게 더욱 정겹게 다가온다.
닫힌 공간에서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는 기분은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황홀경이다. 게다가 날이 풀리면 오랜만에 면회를 오는 가족들도 조금씩
늘어난다. 추운 겨울보다는 아무래도 먼곳으로 나들이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정신 분열증 환자뿐 아니라 우울한 사람들에게도 겨울과의 이별은
잘된 일이다. 특히 많이 자고 먹으며, 감정의 변화가 심한 비정형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자외선을 쬐면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괜한
감상으로 곧잘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이들에게 봄은 정녕 반가운 손님이다.
겨울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하며 골방에 틀어박히는 건 건강하지 않다.
  싱싱한 이십대들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짝을 지어 거리를 걷는 모습에 괜히
주눅이 들어, 좁은 방안에만 있다면 분명 비겁한 일이다. 
  몇년 전만 해도 실은 나도 그런 식으로 봄을 피하고 다녔다. 겉으로야
중국으로부터 날아오는 숨막히는 모래바람이 싫다느니, 따가운 봄볕이 두통을
유발한다느니 하는 핑계를 댔지만, 진짜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을 나는 남몰래 질투했다.
얼어붙은 땅에 갇혀 있던 싹들을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유혹하고, 추위로
갇혀 있던 이들을 밖으로 초대해 땅의 신성한 기운을 만날 수 있게 하는 봄의
생명력이 몹시 부러웠던 것이다.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자연의 눈부신 창조성을 갖고 해마다 변하지 않고
찾아오는 봄의 자태는 현란하기만 했다. 건강하게 삶을 노래하고 장미빛 사랑을
꿈꿀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게 노인처럼 죽음에 대한 상념에 자주 빠졌던 내게
봄은 낯설기만 했다. 
  [세상 모든 생명이 다 그렇듯, 나도 언젠가는 이 찬란한 땅을 이별해야
하는데, 내 사랑하는 사람들도 모두 때가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하는데,
봄, 너는 왜 마치 삶은 영원하고 아름다운 양 우리를 현혹시키는 것이니] 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그만큼 아름다운 봄을 편안한 마음으로 완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벗꽃 향기 대신 해부 실험실의 독한 포르말린 냄새에 취해야 했던 의대생 시절,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환자들의 배설물과 씨름하거나, 드라큘라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주사로 피나 뽑고 다녔던 인턴 시절, 햇병아리 정신과 의사로서
정신병자들의 고뇌에 자신을 가두고 그 무게에 허덕이던 레지던트 시절, 내게 
봄 이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방의 단어였다. 아니 오히려 생활을 더 초라하고
건조해 보이게 하는 침입자였다. 
  봄은 눈부신 꽃과 아름다운 새의 지저귐을 노래할 수 있는 낭만적인
시인들이나 완상하는 계절이었다. 자연의 변화에 대한 감상 운운은 사치스런
감정의 허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나는 열린 마음으로 봄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그만큼 봄은
내게 아주 고마운 손님이다. 소녀 같은 낭만 때문이 아니라, 날씨가 따뜻하면
살기 훨씬 편하고 아이들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긴 겨울 동안 아파트에 갇혀 지내는 애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안쓰러움을 떨쳐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우선 기쁘다. 비록 주차장으로 변해 버린 뜰 아닌 뜰이라
해도 좁은 거실보다야 훨씬 공기가 시원할 것이다. 
  고뿔 걸릴라, 괜한 걱정으로 빨리 돌아오라는 어른들의 닦달을 듣지 않아도
좋지 않은가. 혹 부모가 조금 시간을 내기만 하면 들로 산으로 얼마든지
뛰어다닐 수 있다. 무거운 외투를 벗어 버리고 날아갈 듯 가벼운 발걸음을
만끽할 그들의 작은 흥분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나는 박쥐처럼 웅크린 채 컴컴한 겨울의 공간에 갇혀 산다 해도, 아이들만은
자연과 벗하며 밝게 살았으면 좋겠다. 시시한 비디오 게임과 연속극으로부터
놓여나, 찬란한 노을 앞에서 반가움의 탄성을 지를 수 있게 그들을 너른 들판에
내놓고 싶다. 이름 없는 풀꽃 한 송이와 연푸른 버들잎 하나라도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순수한 아이들이 지금처럼 투명한 영혼으로 빛날 수 있게
말이다. 우리의 희망은 따스한 봄날, 아이들이 뛰노는 밝은 들녘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 이 있나요
  (자기만의 방)은 마치 여성학 입문서처럼 느껴진다. 본격 페미니스트
연극이라는 선언에 걸맞게 여자의 문제를 한꺼번에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의욕이
넘치는 작품이다. 이 연극에는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중산층의 허망한 꿈에 어쩔 수 없이 침몰한 채 가슴 깊이 자기의 불만을
가라앉히고 살아야 하는 부인, 성적 대상물로서 흰 허벅지와 탐스런 가슴만을
자랑하고 있는 영혼이 없는 배우, 생존 때문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아이들을
방안에 가두어 놓고 나가야하는 여성, 순결 이데올로기가 붙인 불결한 여자라는
딱지를 일생 동안 안고 살아가는 여인....
  여성들의 유형이 너무나 극단적으로 묘사되어 섬뜻한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특히 주인공 이영란 교수에 주목한다. 얼핏 그녀는 성공한
여자의 전형처럼 그려지고 있다. 당당하게 여성도 인간임을 선언하고, 여성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그녀는 매우 도전적인 동시에, 남자들의 시각과
논리의 허구성에 대해 통렬히 비판할 수 있는 지성도 가지고 있다. 
  인간 해방과 성적 타락을 구별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마광수 씨, 현학적인
언어로 여자를 묘사하려 하지만 문제의 중심에는 감히 접근하지도 못하고 결국
이제까지의 진부한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김용옥 씨, 생식과 성의 뒤틀림이
어떻게 여자를 억압하고 있는지 미처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김지하 씨가 그녀
앞에서 여지없이 조롱당할 정도다.
  자신의 재능을 죽이고 남자의 그림자로 일생을 마쳐야 했던 과거의 여인과는
달리 그녀는 자기만의 공간과 경제력을 갖고 있는 이른바 선택받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똑똑하고 당찬 그녀는 자기 안에 남모르는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정절 이데올로기와 착취적인 가족 관계 때문에 자살해 버린 어머니에 대한
기억, 노동의 도구가 된 채 결국 자식을 한꺼번에 잃어야 했던 일하는 어느
엄마의 그림자는 그녀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그녀가 뛰어넘고자 했던 건, 남성들의 이기적인 사고 방식과 여성의
비인간화에 앞장서는 사회 통념만은 아니다. 그녀는 더 나아가 여자들 내부에
있는 여성끼리의 동지 의식의 결여, 부패한 삶의 모습까지 해부하고 싶어한다. 
  [너는 기득권자야]라고 이 교수를 맹렬히 비난하는 뿌리뽑힌 여성들이나,
[조화로운 삶을 망치는 광신도 페미니스트는 사라지라]라고 외치는 인형 같은
여성들이 아마도 그녀를 더욱 괴롭히는 듯싶다.
  이 교수에게서 나는 내 자신을 읽을 수 있었다. 나만의 방인 진료실이 있고,
생존을 책임질 수 있는 경제력도 갖고 있는 나에게, 울부짖는 다른 여인들의
목소리를 혼자 삭여야 하는 이 교수란 사람은 남다른 감회로 다가왔다. 
  나도 상처받은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으며,
좁은 셋방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하루 종일 공장에서 씨름해야 하는 아낙의
이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가족이 모두 나가 버린 공허한 공간에서  나는
누구인가 를 끊임없이 물어 보지만 출구가 없어 좌절하게 되는 고학력 여성들의
친구인 동시에, 힘든 농삿일과 가사 노동으로 허리가 꼬부라질 것 같은 농촌
여성들 덕에 기름진 밥 먹고 편히 사는 게으른 도시 여성이기도 한 탓이다. 
  그들에게 난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비록 지난 십여 년 동안 수없이 밤을 밝혀
공부해 왔으며, 지금도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한다는 약간의
변명 거리가 있긴 하지만 선택받고 운 좋은 예외적 여성이 아닌가.
  만약 나 같은 사람이 자기 삶에만 급급해 같은 여성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뻔뻔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마음속 깊이 진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면, 우리가 공동의 방에서 탈출하여 혼자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하면,
이름없는 시인들의 삶에서 자기 생명을 이끌어 내어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는 탈출은 단순히 가정을 파괴하라거나 일상에서
일탈하라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화해와 사랑의 관계를 끝맺고
서로 적대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도 아닐 것이다. 
  이제껏 남녀 관계가 한쪽은 자기만 아는 주인 노릇을, 다른 한쪽은 심부름만
하는 종 역할에만 익숙해져 있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자기만의 방을 오롯이 갖고 있는 한편, 서울의 공간에서 어우러져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 집다운 진짜 집이 그녀가 꿈꾸는 세계가 아닐까.
  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불행하게도 이 교수는 그 대안을 세밀하게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이런 점에서
연극 (자기만의 방)이 일종의 입문서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 이것이 그
한계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는 여성학 개론이나 프롤로그식 연극이 아닌 각론적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주부로서의 삶이 너무나 허무해 죽으려고 가출했던 한 환자가 생각난다.
그녀는 자살을 결행하기 전, 이미 죽어 버린 사람들의 초상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내부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듣는다.
  [이미 죽어 버린 자와 넌 확실히 달라. 산 사람은 지금이라도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잖니!]
  그 새로움이 어떤 결정체가 되어 아름답게 빛날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치열한 자기 극복과 속찬 성장은 그 누구의 그럴듯한 조언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후남 의 홀로 서기, 그 고통스런 시작
  이십대 초반의 한 여성이 내 첫 번째 수필집 (여자의  허물벗기 )를 읽은 후
편지를 보내 왔다. 
  [선생님의 책, 잘 읽었습니다. 사물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날카롭게 보는
방식을 익힐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제일 중요한 게 빠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의식이 아무리 깨어 있으면 뭐합니까? 경제적으로 독립이 안되면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선생님이야 의사시니까 그런 문제를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실지 모르죠. 그러나 받아 주지 않는 문만 두드리고 사는 저희 같은 평범한
여자들에게는 선생님의 주장이 너무 멀게만 느껴집니다.]
  난 그녀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렇다. 경제적으로 홀로 설 수 없으면
의식이 아무리 깨어 있어도 소용없는 일이다. 
  박진숙의 드라마 (아들과 딸)의 주인공 후남이 집을 나와 삶의 현장에서
부대끼며 홀로 서기에 애쓰는 모습을 보며, 난 독자가 보낸 그 편지를 떠올렸다.
악독한 계모처럼 딸을 학대하는 어머니와 무능하기만 한 아버지가 있는 지옥
같은 집을 뛰쳐나와야 했던 후남은 그 여성 독자의 고단한 경험들을 생각나게
한다. 
  얼마 전, 미모의 여대생이 병원을 찾아왔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음식을
먹고 손가락을 넣어 토해 버리는 증상 때문이다. 무리한 다이어트와 체중 증가를
거듭한 끝에  불리미아 란 병에 걸린 것이다. 
  딸이 끝없이 먹어대는 걸 보고 그녀의 어머니는 이렇게 한마디했다. 
  [뒤룩뒤룩 살만 쪄갖고, 식탐이 왜 그 모양이냐.]
  고 3짜리 아들에게 줄 간식을 다 먹어 버리는 딸이 못마땅하기만 했던 것이다.
나는 순간 그녀에게 [당신이 그렇게 먹을 것에 매달리는 건 차가운 어머니,
자기를 거부하는 부모에 대한 의존 본능 때문이에요]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치료자가 그런 식으로 환자의 정신 세계를 결정짓는다는 건 매우 성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나는 환자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깨달을 때까지 우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어머니의 무심한 한마디가 큰 상처로 남기도 하고, 으레
딸은 함부로 키워도 된다는 옛 사고 방식이 딸을 주눅들게 하거나 비뚤어지게
한다. 딸들로 하여금 뒤웅박 팔자 타령을 하게 만드는 데, 억압받고 소외되었던
어머니들이 제일 큰 역할을 한다는 건 정신적 폭력의 악순환이기도 하다.
  시어머니가 너무 당신의 아들만 끼고 돌아 자신은 도무지 설 자리가 없다는 한
며느리가 있다. 그 시어머니는 무능하고 병들고 늙은 시아버지에게 향할
애정까지 전부 아들인 남편에게 쏟아 차라리 시앗을 보는 게 낫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둘 사이가 밀착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남자의
독립성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서양 사람들에 비해, 한국 남자들은 조금
나약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가끔 있다. 
  대를 이을  씨 라는 관념 때문에 다칠세라 병들세라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에
오냐오냐 하고 키워, 세상 어려운 줄도 모르고 생활력도 부족한 유약한 남자들이
없지 않다. 전쟁과 가난 때문에 걸핏하면 남자들이 죽어 나갔기 때문에 생긴
일종의 노이로제 증상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무의식 세계에 깔려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한바탕 변란을 치른 후면 사내란 사내는 모두 죽거나
병신이 되었으니, 상대적으로 여자의 값이 천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희귀한 것은 가치 있다]라는 말이 여기에 적용된다. 
  (아들과 딸)의  귀남 도 자손이 귀한 집안의 유일한 남자였으니 남달리
대우받으며 자랐다.  귀남 이 장가를 간 후에도 어머니는 앞서 말한
시어머니처럼, 아들을 사이에 두고 며느리와 시소 게임을 벌인다. 
  여기에선 또 하나의 모녀 유형이 나온다. 유난히 가깝고 친해서 딸이 가진
재능을 모두 키워 주는 미현과 그녀의 어머니 관계다. 딸을 통해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하는 일종의 대리 만족형 모녀 사이다. 어머니는 딸이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못다한 자기 실현을 경험한다. 다행히 서로의 성격이 잘 맞아
들어가면 딸을 세계적인 예술가나 학자로 키우는 장한 어머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물론 함정이 있다. 딸이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다. 내가 아는 한 여성은 어머니의 강권에 못 이겨 미술 대학에 들어갔지만
사실은 그림에는 취미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인문계통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화가가 되고 싶었던 어머니의 선택이 곧 자기가 갈 길이었기 때문에 대학 시절
몹시 괴로웠다고 한다. 이 경우, 어머니와 딸 사이의 자아 경계가 희미하다고
정신과 의사들은 지적한다. 
  이런 식으로 전횡을 휘두르는 것도 딸을 학대하고 거부하는 것만큼이나
자녀에게 전혀 도움이 안된다. (아들과 딸)이 천착하고 있는 모녀 사이나 모자
사이는 모두 사회 관계의 기본 구도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나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은 부모로부터 학대받아 마음속
깊이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통해 공감하면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불행을 간접
경험하면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건, 작가가 시청자에게 주는
또 하나의 좋은 선물이다. 박진숙은 시청자를 감동시킬 줄 아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녀가 쓴 드라마 (그 여자)를 보면서 내가 펑펑 울었듯, (아들과
딸)을 보면서도 아마 눈물을 몰래 흘릴 시청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둘 다 피해자다
  드라마 (궁합이 맞습니다)의 주인공 현자와 응석 부부가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난 가끔 착잡한 기분에 빠지곤 했다. 연상이라는 핸디캡과 친정이 가난하다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아내, 홀어머니의 외아들로 자라나서 사람은 좋지만
매사에 흐물흐물하기만 한 조금은 철없는 남편, 오로지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부자는 되었지만, 그동안 참아내야 했던 외로움의 한
때문에 아들 사랑을 빼앗는 새며느리가 껄끄럽기만 한 시어머니.
  그들의 삼각 관계를 보면서 그냥 웃고 지나가야 할지, 연민의 눈물을 흘려야
할지 난감할 때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특별히 흉악하지도 유별난 성격 이상자도
아닌,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임에 틀림없지만 같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옆에서 지켜 보는 사람들에게는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고달프고 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잃어버린 자기의 젊음과 행복을 장성한 아들에게 보상받고 싶어하는
시어머니에게 며느리는 사사건건 방해가 되는 존재고, 아들은 아들대로  개가도
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 고독하게 살아온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을 어떻게 덜 수
있느냐 와  시집살이로 고통받는 아내의 비위를 어떻게 맞추느냐 의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느라 바쁘다.
  아내는 또 아내 나름대로 고민이 있다. 못사는 친정을 도와주지 못해 안타까운
한편, 남편과의 행복한 삶을 방해하는 변덕스런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어린아이 같고 우유부단한 남편에게 느끼는 답답한 심정 때문이다. 사실 그런
남편을 만나는 것은 현자같이 현명하고 똑똑한 여자가 잘 빠지는 함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부 사이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문자 그대로 궁합이 잘
맞기만 한다면 어머니 같은 부인과 아들 같은 남편이 아주 행복하게 잘살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자네 집안에서 벌어지는 고부 갈등에 접근해 보려면, 우선 왜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반목하게 되는가부터 생각해 보는 게
옳은 순서일 것이다.  
  별나게 끈끈한 우리나라의 모자 관계를 생각해 보자.
  일찍부터 정착된 농경 사회와 유교 문화가 남아 선호 사상을 뿌리 깊게 심어
놓은 탓에, 여자는 어떡하든 아들을 낳아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었다.
여자들에게는 아들이 일종의 분신이며, 자기의 삶을 가치 있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었으므로, 남편에 대한 애정보다 아들에 대한 소유욕이 오히려
더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시 말해 아들이 여자들 인생의 목표자 행복이었다. 그만큼 가장 중요한 가족
관계의 핵심 축은 부부가 아닌 모자라고 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던 때가 불과
몇십 년 전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오륙십대들은 전쟁과 가난의 상흔으로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 집안을 떠맡아야 했던 세대다. 가장이 없거나, 혹 있다 해도
살림에는 무관심하기만 한 가운데 혼자 집안을 꾸려 나가면서, 오로지 아들
키우는 재미에 살았던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느끼는 며느리에 대한 묘한
경쟁심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성으로서의 가치는 남편이나 자식 뒷바라지에만 있다고 교육을 받았기에
아무 조건 없이 희생만 하고 살았던 것은, 훌륭하게 자란 자식이 그만큼 보상을
해주겠거니 하는 무의식적 기대 심리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결혼한 후 아들이 자기 마누라밖에 찾지 않고, 고생한 어머니는
뒷전으로 밀어놓는다면 얼마나 깊은 비애감이 밀려오겠는가. 그렇다고 내 몸으로
낳은 천금 같은 아들을 미워할 수는 없고, 애꿎은 며느리만 눈엣 가시같이
생각되는 것이다. 
  [난 아들을 그렇지 키우지 않았는데, 천하에 못된 며느리가 여우같이 꼬리를
쳐서 아들을 타락시키고 홀려놓은 거야.]
  이렇게 믿는 시어머니가 생각 외로 많다. 집안에 우환이 생기거나 일이 꼬일
때, 새사람이 잘못 들어와 그렇다며 며느리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응석 어머니의 경우만은 아니다. 하지만 며느리를 핍박하고 원망하는 시어머니의
마음도 결코 편하지만은 않다. 어머니로서의 모성이 아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또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부 갈등이란 그렇다고 시어머니 한쪽의 잘못 때문에 비롯되었거나 며느리가
못나고 악독해서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영영 풀리지 않는 여자들의
팔자 소관이거나 질투 많은 여자의 본성 때문에 지고 가야 할 업 이라고
생각해서도 물론 안된다.                 
  문제의 실마리는 우리나라 가족 제도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옛 중국
속담에 [이이제이]란 말이 있다. 오랑캐는 오랑캐로 다스린다는 말이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소작인은 며느리, 중간 마름은 시어머니, 지주는 남성들인
것이다. 
  실제로 교묘하게 여자들을 억압하는 것은 가부장제란 모순인데, 며느리는
자기를 착취하는 대상인 시어머니만을 원망하고 미워하기 쉽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고부 갈등의 가해자는 시어머니, 피해자는 며느리라는 도식이 가능했었다.
시어머니의 심술은 하늘이 낸 것이라는 둥,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 장님
삼 년을 거치는 것이 시집살이라는 둥, 이런 말들이 당연시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시어머니
노릇도 여간 고단하지 않다. 젊은 며느리들은 이제 더 이상 다소곳하고 순종적인
조선 시대의 여인들이 아닌 것이다. 
  (궁합이 맞습니다)의 시어머니가 그래도 시어머니 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경제력과 건강이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이다. 많은 노인들이
며느리들에게 갖은 설움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그래도 응석 어머니는 행복한
여인이 아닐까. 며느리인 현자도 시집살이라고는 하지만 가정부가 힘든 집안일은
다해 주기에 자기 나름의 일을 가질 수 있다는 점, 또 연하의 남편이 비록
아내에게 응석은 부리지만 남편과 아들 노릇을 다 잘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불행한 경우라고 보기는 힘들다.
  현자와 시어머니, 그들은 아슬아슬한 긴장 관계 속에서의 처절한 싸움 끝에
차츰 가까워진다. 그런 과정 속에서 같은 여성으로서 동질감과 동지 의식이 싹튼
것이 아닐까.
    내가 흘린 눈물의 세 가지 의미 
  한때 모든 사람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기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새삼스럽게 다시 들먹거리는 게 진부해 보이기는
하지만 작가 김수현에 대한 내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또
지은이와 대발이네 집 얘기를 해야겠다. 
  김수현의 드라마가 말초적이니, 감각적인 대화니, 너무 자극적인 반전이니
하고 공격도 많이 받는 모양이지만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는 웬만한 순수
소설보다 훨씬 낫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자폐적인 사변에 지나치게 빠져 있거나 얄팍한 감성에 의지하는 평범한
소설들과 달리 그녀의 주인공들은 마치 살아 있는 듯 뚜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그들이 벌이는 갈등이 우리의 정신 세계를 묘하게 건드려 너도나도
거기에 푹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 작품 속 플롯의 완결성이나 문장력
혹은 리얼리티 같은 문학적 성공 여부는 평론가가 아닌 나로서는 감히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그녀가 썼던 멜러물들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사랑이 뭐길래)는 단연 압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 희극적인 드라마를 보면서 꽤 여러 번 울었다. 
  어머니가 서운해 하는 것도 모르고 큰딸 지은이가 철없이 구는 장면을 보면서,
내가 멋모르고 어머니의 마음에 못을 박았던 기억들이 아프게 다가와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또 가부장적인 권위에 눌려 뒤틀리고 비뚤어진 대발이 어머니를
보면서 이 땅의 불쌍한 여인들의 신세가 한심스러워 같은 여자로서 분개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 대발이 동생 성실이가 오빠한테 맞을 때, 지은이가
시누이 대신 남편에게 대항하고, 맞을 짓을 했다고 말하는 맹한 시어머니까지
같은 편을 만들어 남성들의 폭력에 대항할 때 나는 뭔가 막힌 속이 뚫리는 것
같아 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맞다, 그렇게 여자들이 단결을 해야 폭력이나 행사하려는 못난 남자들에게
이길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그 드라마속으로 빠져 들어갔었다. 
  그녀의 대사 중에 [힘 세? 힘 자랑이 그렇게 하고 싶으면 가방이나 들어다
올려 놓아 줘!]라는 말이, 몇년 묵은 체증이 뚫리는 듯 시원한 감동을 주었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그만큼 나는 지은이의 당당한 저항에 반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힘센 남자들이 여자를 때리고 강간하고, 여자를 무슨 물건처럼
팔면서 내뱉는, 어처구니없는 말의 폭력에 우리는 얼마나 답답해 하고 있는가.
  [맞을 짓을 해서 때린다] [멀쩡하게 잘 있는 남자를 그 여우 같은 년이 꼬셔서
강간당했다] [처신이 똑바르지 못해 인신 매매범에 걸려들었다] 등, 모든 잘못을
여자에게 다 뒤집어씌우려는 못된 남자들의 언어 폭력에 질식할 것만 같았는데,
김수현은 그것을 속 시원하게 치료해 주었다. 
  김수현은 내가 보기에 적어도 비상한 사회 조작의 귀재다. 권위 주의에나
기대어 약한 여자에게 호령하면서 살고 싶어하는 모자라는 남자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유인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리고는 대발이 아버지 같은 독재자와 남성
우월주의자인 대발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들 속에 엉큼하게 숨어 있는 욕심을
대리 만족시켜 줬다. 그런 후 지은이라는 여성 평등주의자를 통해 그들을
야금야금 부셔서 패배시키고 변하게 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대발이나 대발이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던 남성들이,
지은이에 의해 대발이 부자가 변할 때마다 그들의 의식도 변해, 가부장적인 남성
우월주의의 빛이 조금이라도 바래졌길 빌어 본다. 
  어떤 여성 해방론자가 마이크 앞에서 큰소리로 떠드는 것보다, 어떤 이론가가
두꺼운 책을 써내는 것보다, 김수현의 드라마는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그녀의 작품은 보수적인 권력가로서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폭력 행사까지
불사하는 남자들과 지금보다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므로 진보적이지 않을 수 없는
압박받는 여자들과의 싸움을 너무나 재미있고 현실감 있게 표현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작가는 글을 쓸 때 몇 가지
목적을 품에 안는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자신의 잠재되어 있는 갈등 혹은 콤플렉스의 해소다.
  둘째는 글을 통해 남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권력욕이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민중 교화니 작품의 사회적 책임이니 하고 표현한다. 
  셋째는 글을 통해 새로운 인간형을 추구해,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해보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김수현은 작품의 깊이와 완결성을 떠나 그 세 가지 목적을
잘 만족시키는 듯하다.
     맹구와 오 서방 을 좋아하는 까닭 
  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엎어지고 넘어지는 장면의 남발이나
상소리만 하지 않는다면, 그 내용의 깊고 얕음에 상관없이 멍청하게 웃으며
행복해 한다. 누구는 우리의 방송 코미디가 저질이니 어쩌니 시비를 걸기도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당신네 인생은 그 천박한 코미디보다 얼마나 고상하냐고
반문해 보고 싶다.
  정신과 의사인 탓으로, 그렇게 잘난 체하는 사람들의 인생이 한꺼풀 뒤집어
벗겨 버리면 얼마나 한심스러운지 너무 자주 절감하는 탓일까.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 특히 (한바탕 웃음으로)의  봉숭아 학당 이라는 코너는,
고달픈 한 주일을 시작해야 하는 우울한 월요일 저녁 한때를 잠시나마 즐겁게
해준다. 큰아들놈은  봉숭아 학당 이 시작되면 누가 말을 걸어도 먹을 것을 갖다
줘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져 버린다. 월요일이 되면 신문의
텔레비젼 프로그램 안내를 미리 보아 두었다가 아예 채널을 고정시켜 놓을
정도다. 덕분에 나도  봉숭아 학당 을 유심히 보게 되는데, 요즘 우리나라 교육
현실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너무 근사해 보여 봉숭아 학당 학생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봉숭아 학당 의 주인공 맹구와 오 서방은 한마디로 말하면 지진아며 문제
학생이다. 
  그들은 남에게 들은 얘기를 이상하게 암기한 다음 괴상망측한 우스개로
만드는가 하면, 틀리는 답을 말하면서도 창피한 줄 모르고 [저요, 저요] 소리를
남보다 몇 곱절 더 크게 지른다. 또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해서 툭하면 수업을
방해하기도 한다. 
  만약 그들이 지금 이 땅의 학교에 다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식으로
그들이 자기 주장을 펴기 시작하면, 선생님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할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학부형을 불러 특수 학교로 보내라든가, 고액 과외를 시키라든가
하는 압력을 넣을 것이 분명하다. 학부모는 그런 선생님의 말에 주눅이 들어
돌아오는 길에 아마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우리나라 만큼이나 공부 잘하는 학생, 그것도 줄줄이 암기만 하고 시키는 대로
아무 소리 않고 원숭이처럼 따라해야 사람 대접받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그렇지 않은 평범한 학생들은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도 힘들고, 시지푸스의
신화처럼 계속되는 시험도 지겨울 뿐이다. 
  특히 엉뚱한 공상이나 하고 독특한 취미를 갖고 있는 학생들은 도매급으로
괴상한 문제 학생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얼마 전에 한 학생이 병원에서 퇴원했다. 그녀의 진단명은  급성 정신병
이었는데, 고 3이 되면서 성적 때문에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입학 시험이
다가오자, [누가 쫓아온다] [다른 사람들이 날 비웃는다]라며 고민하다가
급기야는 정신과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병에 걸린 상태에서도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만이 사람 대접받는
길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병원에서 시간 보내는 것이 아깝다고 했다. 
  또 요즘 치료하고 있는 한 대학생은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가 너무 후지다며 열등감에 시달리더니, 결국 정신과에 입원하게 되었다.
물론 정신병의 원인을 단순하게 고 3 스트레스다, 일류병이다 하고 도매급으로
넘길 수는 없지만, 공부 스트레스가 중요한 촉발 요인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학교에서 꽁생원처럼 공부만 잘하는 학생들보다는 유머가 풍부하고 인간 관계가
원만한 학생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뜻을 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사회가 학벌에 매달리지 않고 조금 융통성이 생긴다면,
지금처럼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정신 이상에 걸리거나 자살을 하는 학생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공부만 잘하면 행복해진다는 사회적 최면술에 걸려,
죽어라 공부해서 의과 대학에 입학하기는 했다. 때문에 청소년 시절 습득했어야
할 사회성이라든가 정서적인 안정 등이 부족한 탓에 대학 시절이 우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교에서 암기 공부 잘하는 기계만을 찍어 내게 된 까닭은 물론 사회에서 학벌
위주로 사람을 등용하고, 말 잘 듣는 사람을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네 어머니들의 잘못된 교육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첫째는 자식을 통해 부모의 허영심을 만족하려는 마음이 조금씩은 다 숨겨져
있는 탓이다. 우리나라 문화의 특성은 자신이 행복한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이느냐를 더 의식하기 때문에, 내 아이들이 자기 인생을 즐기고
있는지 어떤지보다는 남에게 보이는 몇 등이냐가 더 중요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학교 성적은 좋을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 설령 좋은
대학에 들어갈지라도 결국 사회에 적응을 못해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을, 우리
주위에서 숱하게 보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둘째는 규격화된 인생만을 자식들에게 강요하려는 경향이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나 같은 의사나 판 검사가 한때는 모든이들의 선망이 되어 공부만 잘하면
무조건 의대나 법대에 보내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의사나 법조인의
사회적 위치는 어떠한가. 너도나도 의대를 만들어 의사를 양산해 내니 희소
가치가 없어져, 다른 직업에 비해 월급이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형편없다.
법조인들은 조금 나은 듯도 하지만 과거의 번쩍하던 권위는 간데가 없고 그저
그런 전문 직종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반면에 우리가 어린 시절 소위  딴따라 라고 천시하던 연예인들이나 밥을
굶으리라던 스포츠맨들은 어마어마한 고소득을 올리는 우리 시대의 영웅으로
군림하고 있다. 말하자면 나 같은 사람은 막차를 타서 남보다 몇 배의 노력을
했지만 겨우 시시한 의사가 된 것이고, 부모와 선생들로부터 천대받았던 문제
학생들은 출세를 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인생은 계산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또 한번 절감하고 있는
참이다. 그러니 부모들도 머리를 굴려 자식에게 무엇무엇을 하라고
명령하다가는, 언제 사회가 변해 버려 땅을 치고 후회할지 모를 일이다.       
  사회가 안정이 되어  경쟁 지향적 이기보다는  행복 추구형 이 되면 우리
시대의 스타는 조금 모자라지만 남을 즐겁게 해주고 인생을 풍부하게 해주는
맹구나 오 서방 같은 이들이 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모자라서 괄시받는 자식이 될까 봐, 또 남들에게 뒤떨어질까봐 노심초사하는
어머니들! 걱정하지 마세요. 2000년대에는 맹하게 앉아서 공부나 하는
꽁생원들보다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융통성이 있는 당신들의 자식들이 훨씬
대접받는 시기가 온답니다. 그저 아이들의 창의력만 꺽지 않으면 문제없을
거예요!]
    브라운관 속의 진짜 스타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유치하다든지 비현실적이라고 몰아붙이며
날카로운 비판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재미에 멍청하게 웃거나
눈물을 흘리는 쪽에 속한다. 
  근엄한 분들의 엉뚱한 이야기 앞에서는 터져 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 없을때가
많은 것에 비해, 소위 바보 상자 앞에서는 너무 쉽게 바보가 되어 버리는 나
자신을 때로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다. 
  내가 즐기는 프로그램 가운데 꽤 오랫동안 방송되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던
드라마 (형)은 내게 조금 독특한 기쁨을 안겨 주었다. 내가 그 드라마를 즐겨 본
이유는 작품의 완결성과 예술성에 대한 왈가왈부를 떠나, 우선 드라마에 나오는
연기자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된 시절의 이야기도 아니건만 장면 장면들이 마치 옛날 옛적
이야기인 듯, 바쁘고 각박하게 돌아가는 요즘 세상과는 너무 많이 달라
신선했다. 
  착하고 참을성 있는 사람들, 너무나 순진한 사람들, 혹 나쁜 마음을 품거나
죄를 저질렀어도 악의가 없이 애교 있게 사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 종일
바짝 긴장해 있던 마음이 풀어지기도 한다. 
  압구정동이나 신촌에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일본풍의 90년대 젊은이들 앞에서는
괜히 주눅이 들어 그저 피하고 싶은 것에 비하면 세련되지도 않고 꾸미지도
않았지만 신선한 생명의 냄새가 나는 그들에게서는 아마도 묘한 푸근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김애경의 남도 가락같이 신명나는 신세 타령이나 꾸밈없는
아낙네의 삶에 대한 진솔한 묘사는 일품이었다. 
  김애경은 내가 보기엔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연기자다. 순식간에 스타가
만들어지고, 또 별똥이 지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우리나라 대중 문화 속성상,
그녀같이 꾸준히 자기의 연기 세계를 넓히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우선 그녀는 [나에게는 이런 배역이 맞소] 하는 자기 얼굴에 대한 고정 관념을
거부한다. 지적인 디자이너로 분장해서 현대적인 캐리어 우먼의 이미지를 풀풀
풍기는가 싶더니 어느 틈에 술집 마담이 되어 천연덕스럽게 천박한 연기를 잘도
했다. 
  이번에는 또 완전히 색깔을 달리해 드라마 (형)에서는 남편의 외도에 다리를
뻗고 대성통곡을 하면서도, 첩과 어울려 장고치고 창가를 배우는 순진한 아낙네
역할도 보여 주고 있다. 무엇보다 첩의 자식을 자기 피붙이처럼 따뜻하게 받아
주는 인간미를 자연스럽게 표현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꽤 여러 명의 훌륭한 중년 여성 연기자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한
가지 트레이드 마크를 갖고 있다는 장점이자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녀들은 한국의 영원한 어머니상으로, 혹은 지적인 여성으로, 아니면 조금
주책맞은 밑바닥 계층의 여성으로 등등 자기 얼굴이 정해져 있는 데 비해,
김애경은 그런 진부함을 거부해 드라마를 보는 사람을 신선하게 긴장시킨다.
  그렇게 자기를 꾸준히 계발해 온 덕인지 비록 조역이지만 그 성실성과
연기력이 돋보이는 사람이 그녀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어하는 무의식적인 소망을 갖고 있다. 특히 연기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희망이 더욱 강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애경은 내 기억엔 한번도 완벽한 주연급이었던
적은 없었다.그런데 그녀의 연기가 너무도 좋아 정작 시청자는 주인공보다
그녀가 나오는 장면을 더 기대한다. 결국에는 조연인 그녀가 드라마에서 제일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던 여러 드라마가 기억난다. 
  그녀의 생활 방식도 마음에 든다. 구질구질한 스캔들도 물론 없고 요란한 자기
치장도 하지 않는다. 야단스런 여우 주연상을 받은 적도 없으며, 그녀의
연기력에 비하면 매스컴의 번쩍거리는 각광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연기를 그만두는 성급함이 그녀에게는 없다.
경박하게 급조되어 능력 이상으로 과대 포장되는 젊은 스타들에 비해, 연기
경력이 쌓일수록 그녀가 더욱 돋보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는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는 장인
정신을 가진 여성이다. 그녀같이 대중 매체 속에서 나름대로 성실함을 보여 주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나는 가끔 곤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는 소위 대중 예술과 소수의 교양 있는
지식인층이 즐기는 고급 예술은 서로 어느 쪽이 더 가치가 있을까. 혹은
상업성과 예술성은 서로를 배제만 하는 상충적인 개념일까 하는,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없는 의문들이다. 아이러니컬한 얘기지만 우리가 현재 예술적 향기가
높다고 믿는 역사적인 고전 가운데는, 그 당시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질이라고
배척받았던 작품들이 많다.
  유명한 얘기로 근대 소설의 효시라고 하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소설의
재미를 보여준 복카치오의 (데카메론) 같은 작품도 발표 당시에
지식인들로부터는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대중들에게 더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미술 쪽도 마찬가지다. 마네나 모네의 눈부신 색깔의
향연을 그때의 보수적인 미술 비평가들은 도대체 말도 안되는 화법이라고
살롱전에 출품할 때마다 낙선시켰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지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는 아마 몇 세기 동안 그에 맞설 인물이 과연 태어날까말까 하는
천재적인 모차르트나 차이코프스키도, 그의 인기 때문에 당시의 음악 비평가들
중에서는 혹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춘향전) (심청전) (장끼전)같은 고전 소설들은
그저 아낙네들이 모여 앉아 읽는 유치한 얘기책 나부랭이에 불과했지, 소위 문화
활동을 주도한다는 지식인들의 주목을 받는 작품은 아니었다. 
  물론 일반화시킬 수는 없으나 예술 작품의 역사적 가치는 반드시 고도의 지적
훈련이 요구되는 현학적인 심미안만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닌 듯싶다.
  앞으로 몇십 년, 몇백 년이 지나 요즘의 예술 풍토에 대해 어떤 판단이
내려질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소위 대중
문화라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은 제대로 된 비평과 분석 방법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고급 예술 아니면 상업주의라는 이분법적 사고 방식의 경직성은
자칫 지식인과 대중을 분열시키기 십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이 일반
대중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혐오하거나 경멸한다면 그들의 배타적인 태도가
때로는 오히려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각종 정보의 홍수 속에 통신이 고도로 발달된 개방 사회에서, 지식이나 교양은
더 이상 소수의 독점물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어 보면 더욱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권위 주의적인 발상과 엘리트 의식은 이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 보일 때도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전문 지식을 익히느라 자기
분야 이외의 세계에서는 더욱 어리석을 수밖에 없는 것이,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나야 직업적 비평가가 아니니 뭐라고 딱 부러지게
어떤 주장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대중
예술도 고급 문학이나 연극처럼, 전문가가 조금은 제대로된 평가를 내려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금처럼 비전문가들이 텔레비젼 주평란
정도에서 [비현실적이니] [사회 계도적인 차원에서 해로우니]하는 일률적인
도매급 평가로 넘기지 않게 말이다. 
  김애경은 조금 과장해서 칭찬하자면 그저 잠시 즐기고 잊어버리기에는 아까운
사람이고,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훌륭하고 고상한 예술가들보다 훨씬 친밀한
즐거움과 편안한 기쁨을 주는 그런 연기자들에게 더 애정이 가기 때문에 아마도
생각이 꼬리를 물어 대중 예술의 재평가에까지 이르렀던 것 같다. 
  예술의 효용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뭐니뭐니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진한 감동이 아니겠는가. 고도의 지적인 집중이 요구되는
현학적인 작품만큼이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고 있는 단순한 대중 예술도
우리의 굳은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면,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따라서 그들을 소모품으로만 여길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감상법을 통해 그
나름의 깊이를 더해 줄 필요가 있겠다. 그것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게
마련인 앞으로의 문화를 포용하는 겸손한 자세라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칠까.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나는 여인, 까미유 끌로델
  까미유 끌로델, 로댕의 애인이자 열정적인 조각가. 그러나 삶의 절반 이상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마침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으며, 역사의 뒷자리에
숨어 있었던 여자. 로댕이라는 한 거대한 예술가의 정부면서, 창조적인 영감을
얻게 해준 아름다운 모델이자, 모든 일상으로부터 탈출해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던 동반자기도 했던 그녀.
  비록 남들로부터 간부라고 손가락질을 받긴 하지만 한 남자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던져 불꽃처럼 사랑할 수 있었던 그녀는, 자신의 뜨거운 열정만큼이나
상대방을 미워하고 원망했을 것이다. 
  까미유 끌로델을 보는 시각은 아마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녀를 한 이기적인 남자에게 희생된 비극의 주인공으로 보는 시각이다.
즉,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태어나 자기가 갖고 있는 재능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비참하게 삶을 마감한 여자로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까미유 끌로델은
다음과 같은 여성들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재능에 비해서 비평가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몹시
불행하게 살다 결국 자살을 택했던 버지니아 울프. 유명 작가의 부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자신이 가진 빛나는 창조력을 펼치지 못한 채, 마침내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던 젤다 피츠제랄드. 몇 세기에 한 명 나올까말까 한 천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이라는 유교 사회에서 여자로 태어난 죄 때문에, 자기의 작품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스물여덟의 나이에 요절했던 시인 허난설헌.
  이들처럼 지금도 우리 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외된 여성들과 같은 맥락으로
까미유 끌로델을 파악할 수 있다.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실현 불가능한 임무는
그동안 얼마나 많았던가. 재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다 해도 그 능력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사랑이라는 환상에만 운명을 걸라는 요구.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좋다, 그러나 집안일도 아무 흠없이 해야 네가 할 일을 할 수 있다는,
이래도 묶이고 저래도 묶이는 이중 구속의 보수성.
  그런 교묘한 억압 속에서 여성들의 건강한 자아는 조금씩 그 빛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기는 사회의 불평등에 희생되었다는 생각으로 피해
망상적이 되거나, 극도로 위축된 마음에서 엉뚱하게 자신의 공격성을 표출하기도
한다. 억눌린 한을 풀지 못해 마음과 몸의 병을 얻게 되거나 미래가 없는
퇴폐적인 생활에 탐닉할 수도 있다. 모두 건강한 자아가 맑은 공기를 호흡할 수
없을때 생기는 일들이다. 
  까미유 끌로델의 일생을 그린 영화를 보는 그 두 번째 감상법은 그녀가 가진
광기와 천재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소위 천재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정신 질환을 앓은 것으로 전해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에서부터, 자신의 우울증과 정신 증상을
그대로 화폭에 담았던 초현실주의자 칼로 같은 화가, 간질을 앓았던
도스토예프스키, 정신 분열증 환자라고 추정되는 카프카, 극도의 우울증으로
자살한 헤밍웨이 등의 작가들, 매독에서 오는 치매 현상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던 베토벤과 정신병으로 자살한 슈만 같은 음악가들, 조울증을 앓았던
처칠이나 극도의 열등감을 위험한 전쟁 놀음으로 보상하려 했던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같은 정치가들.... 천재의 명철함이 빛을 발하는 만큼이나 그들의 감성이
안정될 수 있으면 물론 좋겠지만, 세상이 공평한 것인지 재능 있는 사람들의
정신 세계는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까미유 끌로델도 아마 그런 비극적인 천재 가운데 한 명이었을 것이다. 
  천재가 천재로서 제대로 피어나기 위해서는 시대와 환경의 힘이 꼭 필요하다.
  헌신적이고 열성적인 어머니가 없었다면 정경화 같은 음악가나 에디슨 같은
천재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  스티븐 호킹에게 헌신적인 부인
제인이 없었다면, 파바로티에게 사십 년간 변함없이 헌신적이었던 부인이
없었다면, 그들이 자기의 일에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  따라서 까미유 끌로델의 천재성이 결국 무서운 광기로 변질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가 살던 시대와 공간의 척박함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녀 같은 여자가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나 가족들의 헌신적인 뒷받침
속에서 크고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녀의 삶이 그처럼
불행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지나간 역사에 대해  만약  이란 단어를
붙이는 것은 몹시 부자연스럽고 덧없는 일이다. 
  다만 그녀의 일생을 보면서 지금 여성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는다면,
그래서 보다 건강하고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은 의미가 실린 일이
될 수 있으리라.
  까미유 끌로델은 많은 메시지를 전하며 지금도 여러 여성들의 가슴속에 다시
부활하고 있기에, 삶 그 자체가 소설이요 시였던 그녀의 치열했던 삶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고 본다.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여성에게 있어  자기의 일 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 어떤 식으로 건강하게 자아를 키워나갈 수 있을까.
  이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을 그녀는 온몸으로 묻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그리고 왜 살고 있습니까? ]
    사랑이 지나치면 상처도 깊다
  나는 로빈 노우드가 쓴 (사랑이 지나치면 상처도 깊다)를 보면서 사실은 조금
답답했다. 자기 문제, 특히 사랑에 대한 갈등을 의사나 심리학자를 찾아가서
상담할 수 있는 미국적인 분위기가 부러웠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미군 병원에 근무하던 시절 내가 보았던 미국인
환자들은 자신의 성생활, 상처받은 체험을 집단 치료 시간이나 개인 상담 시간에
스스럼없이 토로했다. 그런 점에서 자기의 심리 문제를 그저 비밀스럽고
수치스럽게만 생각하는 우리의 환자들에 비하면 오히려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우는 유교의 봉건적인 억압과 서양의 자본주의 폐해라는
이중적인 질곡을 안고 살아야 하는 듯하다. 규방에 갇힌 여성들의 정절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서양 식의 자유 연애를 신봉한다고 나선 여성 해방론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서양의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위장된 신화들일 것이다. 
  여성들의 사랑에 대한 믿음은 도대체 얼마나 지리하게 많은가.
  중세 이후 지금까지 많은 여성들을 사로잡고 있는 믿음 가운데 하나가 멋진
왕자님과의 낭만적인 로맨스라는 당의정이다. 
  그때의 옛 이야기는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만화 속의 백마 탄
주인공, 절망에 빠진 무기력한 여자를 구원하는 영웅들을 그리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 비련의 여인을 위로하는 멋진 신사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을
담은 드라마.....  또 빅토리아 시대의 정숙해 보이는 서양 여성들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가치 체계를 갖고 살았다. 여성들에게는 오로지 아가페적인 순결한
사랑만이 가능하다는 신화가 여성들의 자유로운 사랑의 싹을 자르기도 했다. 
  그러나 서양 문명이 들어오면서 밀려든 남녀간의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주제도
껍데기를 벗겨 버리고 나면 사실은 한심스런 모습이다. 
  이기적인 남성들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혹은 최면에
걸린 환자처럼 잘못된 사랑을 찾아, 자신의 건강함을 일그러뜨리고 인간으로서의
싹을 아예 스스로 잘라 버리는 여성들이 많다. 그들에게 가면을 한꺼풀 벗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직시하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같은 여자로서 환자들의 비밀스런 고백을 듣고 함께 아파하는 경험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나 혼자안의 돈키호테식 싸움은 의미 없어 보일 때가 많다.
  그저 직업적인 호기심에서 여자들의 심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외국
서적들을 읽는 것으로, 여성들도 인간으로 당당하게 서야 한다는 나의 소망을
한쪽으로 밀어 둘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저자 로빈 노우드는 실제적인 치료 경험을 통해서 그러한 사랑이라는
환상의 본모습을 여성들이 어떻게 인식해 나가며,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는가에 대해 천작한다. 희생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이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그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여성들은 자기를 사랑하기보다는 혐오하는 데
익숙해 있는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을 하면서도 고통받는 여성들,
그들은 왜 그 진흙 구덩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해결 방법을 환자 자신의 자각을
통해 찾아가게 하는 것이다. 
  미국식의 사고 방식이 물론 다 옳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지향하는
독립적인 태도와 잃어버린 자신을 찾으려는 여자들의 진지한 노력을 거울 삼아
보면, 우리의 현실에서도 뒤틀리고 일그러진 여성의 삶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은 많이 참고 인내한다]라는 구호 대신 잠언 8장 17절의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한다]와 아모스 15장 15절의 [악마는 미워하고 선인은
사랑하라]라는 구절이 우습지만 갑자기 생각난다. 
  오랜 짝사랑 끝에 입원한 여자, 유부남과의 불륜 관계를 지속하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여자, 툭하면 두들겨 맞는 여자, 알콜 중독자며 노름꾼인
남편을 피해 숨어 살아야 하는 여자.
  나는 그들에게 (사랑이 지나치면 상처도 깊다)를 기쁘게 권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들의 한숨과 눈물이 사라져 당당한 삶을 꾸려 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말해 주겠다. 나는 이 책을 가능한 한 많은 여성들이 읽었으면 한다. 그래서
많은 우둔하고 이기적인 남자들을 제치고 신선하고 풍부한 여성들의 정신 세계로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말 이제는 알 수 없는 슬픔이나 사랑을 잃은 아픔 따위의 말이 여자들의
머리 속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아 깨어 있게
되면, 정체 불명의 감상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남자로부터 버림받았다고 해서
목숨을 내던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스스로 극복해 나갔는지 자세히 음미하며 읽는
동안, 스스로를 분석하는 방법을 조금은 터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롬이 일깨워준 사랑의 기술 
  십오 년 만에 에리히 프롬의 (사랑한다는 것)을 다시 읽으며 나는 여러 가지로
착잡한 기분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철없이 매사에 자신만만하기만 하던 열일곱 살 때의 내 모습에 대한 기억이,
이 책을 다시 대하는 순간 생생하게, 그리고 더욱 부끄럽게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당돌하게도 사랑이란 특히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그저
그런 감상주의자들의 배부른 유희자 시덥잖은 감상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대여, 당신이여]를 남발하면서도 감성적인 문장력 덕에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여류들의  사랑학 강의 에 사실은 넌덜머리를 내고 있었던
때문이었는지,  사랑 이란 단어를 앞에 걸어 놓은 이 책의 첫장을 큰 기대 없이
열었었다. 
  프롬이 아무리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라고는 하지만 사랑에 대한 진부한
언사에서 뭐 얻을 것이 있겠는가라는, 독서에 아주 해로운 선입관도 물론 가지고
있었다. 그런 경박한 자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프롬의 철학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인생 경험의 일천함 때문이었는지, 그 당시 나는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그다지 큰 감흥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나 요즘 프롬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소녀 시절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깊은 감동을 받았다. 단순하게만 생각했었고 그래서 때로는 경멸하기까지
했던 사랑의 감정이란 것이 사실은 가장 어렵고 힘들다는 사실, 그렇게 힘든
만큼이나 동시에 사람을 고통스럽게도 하고, 행복하게도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씩 절감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프롬 같은 차가운 머리의 소유자가 어떻게 그리도 뜨겁게 인간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어설픈 감상으로 인생을 낭비하던 스물두 살의 나이에 이미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철학, 심리학, 사회학, 정신 분석학을 모두 섭렵했던 천재적인
그 사람.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세우고 전후의 사상계를 주도했던 이성과 논리의
학자가 도대체 어떻게 삶을 그토록 치열하게 껴안을 수 있었을까?
  프롬은 독일에서 태어나 나치를 피해 고향을 등지고 미국으로 망명했고, 결국
스위스에서 삶을 마칠 때까지 결코 평탄한 삶을 누렸던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같은 고난 속에서도 건강한 낙천주의를 잃지 않았다. 단순한
정서적 고양감이나 미숙한 자들의 부박함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낙천주의를 그는
갖고 있었다.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극복해 결국에는 자신을 조이고 억압하는 현실 조건과
상황 앞에서도 사자후를 토해 낼 수 있었던 크고 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비록 엄청난 파괴성을 내면 세계에 감추고 있지만 결국 그런 비생산적인
면을 극복해, 진실로 평화로운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세계관은 실존주의와 마르크시즘이 결합된
인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휴머니즘이라는 기본적 태도, 인간의 자유 의지와 한계 상황, 그리고 절대
고독을 초극하고자 하는 실존주의, 사회적 제관계와 경제적 조건에 대한 명징한
의식을 지향하는 마르크시즘이 그의 사상에서 절묘하게 만나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보는 기쁨은 매우 크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동양과 서양을 조화롭게 포용하려고 시도했던
선각자적인 사람이었다. 불교나 노장 사상에 대한 지식과 동양적 심성과 소양도
서양사람답지 않게 풍부하다. 그의 불교관은 염세주의나 현실 순응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사랑한다는 것)을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 프롬을 만났던 행운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왜 오랫동안 그를 멀리했었는지에 대해서도 차츰 깨닫게 되었다.

  첫째, 그가 스스로를 변증법적 인간주의자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급진적이었던
젊은 시절의 내게는, 아마도 비겁한 애매 모호함으로 비쳤기 때문일 것이다. 
  마르크스의 철학적 기초 제공자인 헤겔의 변증법과 실존주의자들의 용어를
뭉뚱그려 쓰면서 어중간한 회색빛을 표방하는 그의 태도를,  이것 아니면 저것
이라는 젊은 날의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 젖어 있던 내 과격함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둘째,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트에게 모두 영향받았다고 말하면서 너무 쉽게
그들을 극복하고 있다고 생각한 내 오해를 들 수 있겠다.
  그가 진실로 프로이트주의자라면 그처럼 확실하게 사회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골수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심리적 대안만으로 이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순진한 신념을 주장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내 고집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모두를 심정적으로 멀리 떠난 후에까지, 나는 프롬을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 오길
거부했다. 그의 눈부신 정신 세계를 어쩌면 몹시 질투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미처 찾지 못한 열쇠를 천재 프롬이 갖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괜한
시기심으로 그를 찾지 않았던 것일까? 갈 길을 찾지 못해 허우적거리면서, 닫힌
출구를 피가 나게 두드리면서도 난 그의 도움을 거절했었다. 
  지난 몇년 간, 날 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허무주의라는 끈적한 늪에서
고통스럽게 헤매면서도 그의 명철한 세계관에는 기대지 않겠다는 일종의
시건방진 오기기도 했었다. 나의 그 같은 거부는 나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좌절과도 통했다. 
  내가 그저 쉽다고만 생각해, 우시하고 폄하하던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제는 좀더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고 싶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사랑이 무언지
모르고 삶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물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공포 때문에 지난 날의 나처럼 주어진 운명과 마주치기를
피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이제는 확고하게 자리잡아 가고 있다. 
  진실로 삶을 대면하고 씩씩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풀어나갔던 프롬의
도움도 이젠 더 이상 거절할 이유가 없다. 우리를 지탱해 주던 여러 믿음과
버팀목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 흔적도 없이 해체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사랑한다는 것)을 다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내 개인적으로는 큰 행운이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삶과 사랑을 의심하고 회의하며 스스로에게 냉소를 던지는
내 고질병이 조금은 회복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프롬이 죽은 지 십몇 년. 그가 지적했던 대로 서글픈 소유만을 지향하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의 혼란, 또 그에 따른 진실한 영혼과 사랑의 쇠락이 그때보다
오히려 더욱 아프게 느껴지는 이때, 프롬 같은 이가 다시 등장해 어두운 우리
앞길을 비추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지금에 프롬을 뛰어넘을 수 있는 석학이 등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만 해준다면 이 땅의 세기말적 퇴폐주의가 어느 정도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그의 밝은 세계관만큼이나 그의 필치는 생기 넘치는 생명력으로
반짝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의 마음을 알게 모르게 환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그처럼 쉽고 명료한 얼굴로 자기의 복잡하고 심오한 철학
지식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저자는 흔치 않다.
  그러나 그의 쉬운 문장 뒤에 숨어 있는 크고 넓은 정신 세계는 경박한
독법으로는 쉽게 부여잡을 수 없을 것이다. 현학적으로 화려하게 쓴 글일수록 속
빈 강정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은 것에 비하면, 프롬은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는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때로 그의 철학
세계조차 그처럼 가벼울 것이라고 오해받을 정도가 아닌가.
  프롬을 온몸으로 이해한 후, 그가 말한 바대로 진짜 사랑을 제대로, 그리고
멋지게 할 수만 있다면, 성공적인 삶, 가치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프롬이 만약 지금 살아 있다면 꼭 한번 찾아가 사랑에 대한 그의 강의를 직접
들어볼텐데 하는 부질없는 공상을 하면서 순진한 처녀처럼 얼굴을 붉혀 본다. 
    나는 누구인가
  젊은 작가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소설이
무슨 문학상을 탔다고 해서 관심있게 본 적이 있다. 책 내용이야 표절을 했든
혼성 모방 기법을 썼든 간에, 제목이 내 마음을 건드렸는지 두고두고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게 했다. 
  평범한 의사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또 두 아이의 어미로서, 14대
종부로서, 4형제의 맏딸로서.....그렇게 싫든 좋든, 맡아서 꼭 해야 할 내
인생의 몫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때로는 그런 역할들로부터 도망쳐 버리고
싶지만, 막상 그 껍질들을 벗겨 놓았을 때 남게 되는 텅 빈 심연이 두렵기도
하다.
  마치 바닥을 모르는 깊은 우물에 대고 소리를 지른 후 메아리가 들리지 않을
때, 돌을 물속에 던져도  퐁  소리가 되돌아오지 않을 때 느끼는 공포감 같은
것이랄까.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결국 침묵만 가득할 거라는 상상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시작하는 것조차 망설이게 했다. 
  가장 중요한 물음이 결국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은 나를 사이비
허무주의자로 만들어, 그 어떤 것에서도 산다는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게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의사 노릇을 하면 혹 그 허무감이 잊혀질까, 자식 새끼를
기르다 보면 유한한 자기 인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소위 창조적
작업이라는 글쓰기를 하다 보면 내 안에 있는 패배감이 사라질까 하고 기대해
보곤 했지만 대답은 항상 똑같이 [아니다]일 뿐이었다. 
  의사로서 환자를 볼 때나 집안에서 여자 노릇을 할 때, 그 일에 완벽하게
매달리지 못하고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것만 절감하면서 지금보다는 좀 나은, 또
다른 삶의 형태가 있지 않을까 소녀같이 꿈꾸기도 했다. 자아 정체감 문제도
아직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때로는 경계형 인격 장애 환자가
아닌가 의심하는 것을 보면, 아직 의과 대학생 수준을 벗어 버리지 못한 듯도
싶다.
  그런 반면에 대학생 시절 갖고 있던 불타는 사명감과 햇병아리 정신과 의사
시절의 신선한 의욕이 불과 전문의가 된 지 몇년도 안되어 벌써 퇴색하고 있으니
남의 눈에도 보기 사나울 것 같다. 꾸준히, 그리고 변함없이 환자들에게
친절하게 봉사하면서 성공적으로 가정도 꾸려 나가는 선배 의사들의 인내심과
지구력을 배우면 내 병이 좀 나을까. 잡다한 일에 휘말려 정신 없이 살다 보니,
은인들께 인사 한번 드리러 가는 것도 여간 힘들지 않다.
  화창한 봄날, 움트는 생명력을 감상해 볼 여유가 있기는 커녕 컴컴한 진료실에
앉아 내가 해야 할 일들의 무게에 압사당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조절하는 데
남은 에너지를 겨우 쓰고 있으니........ 
    사회적 성공과 사랑의 균형 잡기
  메이브 하란의 소설 (세상은 내게 모든 것을 가지라 한다)는 살아 꿈틀거린다.
관념의 지루한 나열로 머리를 피곤하게 만들거나, 싸구려 감상에 잠겨 두 눈을
지그시 감는 자기애적 취미는 물론 보이지 않는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러하니,
당신은 내 말대로 따르시오 하는 섣부른 교훈도 없고 짐짓 정색을 한 채 사회를
싸잡아 비판하려드는 성급함도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솔직하게 사람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침이면 고양이 세수를 하고,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쓸어넘긴 채, 매달리는
아이를 피해 도망치듯 현관을 나선다. 순간, 서럽게 들리는 아이의 울음 소리,
자기를 버려두고 냉정하게 직장으로 향하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눈망울이
안쓰러워 남몰래 눈물을 삼키고 길을 나섰던 적이 얼마나 많은가.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파를 썰고 양념을 주무르느라 손에 밴 마늘 냄새,
머리칼에 밴 생선 냄새 때문에 직장에 들어서다 혹 남에게 불쾌감이나 주지
않을까 가슴 졸이던 기억들. 
  메이브 하란은 이런 내 삶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한다. 낡은 천 조각 조각이
모여 아름다운 조각보가 되듯, 시시하고 잡다한 에피소드들이 그녀의 손끝에서
되살아나 즐거운 화음으로 변하는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을 읽기 전, 나는 왜 그녀가 이 같은 배경 설정을 해서 일하는
여자들의 용기를 꺾으려 했을까 의심했었다. 일과 사랑과 가정, 그 셋을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말인지, 자기 성취욕이 강한 여자도 결국 무릎을 꿇고 주부의
역할로 복귀하게 될 거라는 예언인지, 단순히 소설의 기본적인 얼개만
전해듣고서는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그녀의 소설을 읽고 격분했다는 소문을 듣고,
나는 일종의 방어적인 태도로 이 소설을 읽었다. 보수적인 남자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것 봐라, 내가 이미 경고한 대로가 아니냐]라고 고소해 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기분 나빴다. 물론 그녀의 소설에는 그만한 부정적 오해를
받을 소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성공한 슈퍼우먼들의 뒷이야기, 그것도 화려하거나 멋지지 않은, 오히려 궁상
맞은 속사정이 드러나도록 벌거벗게 했다는 점은 어떻게 보면 조금은 잔인한
일이다. 휘황한 조명과 숙련된 카메라의 눈속임 없이 세월과 삶의 흔적이 곳곳에
나타나 있는 주름진 얼굴의 외로운 여배우를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은 성공한 여자에 대한 환상을 품고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는 많은
여자들의 사기를 얼마든지 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소설이 단순하게 [여자들이여, 가정을 박차고 나와서는
안된다.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라!]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씌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과 똑같이 작가 자신도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일터로 삼는 소설가의 길을 택했지만, 그녀는 결코 쉬운 해답을 찾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 자신, 의사기를 포기하고 집에 들어앉았으면 하는 꿈을 가끔 보듬고
한숨짓는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에게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는 순진한 희망에서다. 
  이 소설의 주인공 리즈같이 나도 남편에게 그 같은 생각을 비친 적이 있었다. 
  [이렇게 매일 전쟁 치르듯 동동거리는 데 지쳤어요. 나도 좀 사람답게 여유를
즐기며 살고 싶어요. 일에 쫓겨 허둥대며 사는 생활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런 내 말에 남편의 대답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의사가 그렇게 하기 싫으면 글쓸 생각도 아예 버려. 당신과 우리 가족
편하자고 의사를 그만두겠다고 ? 당신은 여자기 이전에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야. 그만큼 책임이 있다는 걸 왜 모르나. 그 정도가 힘들다고 직장을
관두면 이 세상에서 일을 계속할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아 ?]
  사회가 나 같은 의사 한 사람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지
모르냐는 소리였다. 그런 남편에게 나는, 남들 눈치만 보고 마누라 힘든 건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라고 서운해 했지만 솔직히 그의 말이 맞다. 남편은
페미니스트도, 가부장적인 보수주의자도 아니지만, 여자들에게도 사회적인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빈틈없는 법률가의 논리였다. 
  시시한 내 부부 싸움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아마도 주인공 리즈의
선택에 대해 내가 느낀 남다른 감회 때문인 것 같다. 
  그녀는 무엇보다 아이들과 남편에 대한 사랑이 소중하다는 것, 또 그전에 자기
자신, 무엇을 정말로 갈망했는지에 대해 진실했던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자기 일에 대해서만은 좀 경솔하지 않았느냐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는 있다. 제대로 직업을 가지려면 가정을 희생해야 한다든지, 가정을
잘 꾸려 나가려면 스스로를 포기하라든지 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찬성하지도 않는다.
  나도 항상 일이냐, 가정이냐 하는 것 가운데 끊임없이 양자택일하라고
강요받고 있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그 틈바구니에서 못살겠다고 비명을 지르지는
않는다. 어떤 것이 중요한지, 무얼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이력이 난
까닭도 있고 그런 선택이 반드시 여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여자들의 타고난 강한
생명력은 오히려 직장에서의 일과 집안일 등을 더 성실하고 늠름하게 꾸려 나갈
수 있게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사실 일하는 여자들의 삶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보일 때도 있고, 비겁한
타협처럼 오해받을 수도 있다. 반대로 미숙한 자의 섣부른 공격 본능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같은 갈등을 겪으면서 자아가 보다 깊이 있게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여성 문제를 거울에 비추듯이 그녀의 소설을 읽는 것이 그 첫번째 읽기의
방법이라면, 두 번째 방법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태를 반성하는 것이다. 
  영국이나 우리나라나 사는 모습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진보적
독신 여성들의 해방된 성생활, 기혼자들의 혼외정사, 이혼 혹은 별거에서 받는
온 가족의 상처가 때론 유머스럽게까지 묘사되고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주홍글씨)나 (테스) 같은 칙칙한 비극의 글감들이, 이제는 그저 일일 연속극
정도의 무게로밖에 다가오지 않는 것은 작가의 경박함 때문만은 아니리라.
  오히려 나름대로 진지하게 사실적인 접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이 시대의  사랑 과  삶 이 허공에 떠도는 것에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도 섹스도, 일에 대한 열망도, 그 어떤 것에도 자신의
삶을 내맡기지 않으려는 신세대들.
  전쟁의 쓰라린 경험에서 나오는 실질적인 고민이나 궁상스런 가난의 기억에서
벗어나, 인생 그 자체를 경쾌한 랩뮤직처럼 흥얼거리는 요즘 사람들의 한 단면을
진솔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 같은 삶을 치열하게 비판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것은 아마도 독자 자신의 몫이리라. 소설이란 자기의 주의나
주장을 쉰 목소리로 강변하고자 하는 장르는 아니지 않은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보라. 그리고 스스로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간접 경험해 보라. 그리고 스스로가 보수적인 전통주의자라고
여겨진다고 해도 이 책을 읽어라. 주부들의 진짜 모습이 어떠한지, 또 그들이 왜
좌절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하지만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삶을 구경하는 즐거움은 결코 하릴없는
자들의 무의미한 오락은 아니다. 
    문화는 반드시 효율적인가
  정신병원에서는 환자들에게 나일론 스타킹을 신지 못하도록 한다. 통기성이
없거나 환자의 건강에 해롭기 때문만은 물론 아니다. 듣기 섬뜩할지 모르지만,
환자가 그것으로 자살 기도를 할까 봐 미리 예방하는 것이다. 실제로 환자들
중에는 그것을 이용해 몰래 목을 매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아침마다 스타킹을 신으며 은근히 화가 날
때가 많다. 유달리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생활을 하다 보면, 걸핏하면 올이
풀리는 스타킹이 성가실 때가 여간 많지 않다. 빨래할 때는 또 어떤가. 스타킹을
세탁기에 다른 옷들과 같이 넣고 돌리면, 댕기머리 따듯 다른 빨래까지 칭칭
감아 엉켜 버리기 때문에, 꼭 손으로 비벼 빨아야 하므로 귀찮기만 하다.
  정신없이 하루 종일 뛰다 보면, 밤중에 스타킹 하나 더 널어야 하는 것도
힘들다. 마음 같아서는 편한 스웨터에 낡은 청바지나 걸치고 간편한 운동화나
신고 다니고 싶지만 그래도 명색이 의사인데, 그러고 다니면 남들에게 눈총받을
것이 틀림없다.
  의과 대학 본과 시절, 청바지 차림으로 병원 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자네, 등산 왔나? 그게 도대체 무슨 예의 없는 차림인가!]
  나이 지긋한 교수님으로부터 호되게 혼줄이 난 후로는 쉽사리 그런 옷차림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거추장스런 하이힐과 정장, 나일론 스타킹
모두를 벗어 버리고만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왜 그렇게 비경제적인 물건을 몸에 걸치고 살아야 하느냐는 말이 불쑥불쑥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면 양말을 신으면 잘 떨어지지도 않고 땀 흡수도 잘되니
여러모로 훨씬 좋을텐데, 모두 그런 생각은 안하는 모양이다. 단순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날씬하게 보이기 위해, 그런 얇고 약한 헝겊으로 종아리를
싸는 것이라면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한복이 거추장스럽고 비활동적이라는 이유로 배척받고 양장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면, 스타킹이나 넥타이 같은 것도 당연히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들은 버젓이 백화점 일층, 제일 눈에 띄는 진열대에서 의기
양양하게 뽐내며, 평범한 많은 여성들의 생활 필수품으로 행세하고 있다. 
  스타킹의 질긴 수명을 보면서 나는 또 한번 문화의 비논리성과 비효율성을
생각한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것, 세상에 꼭 필요한 것만 문화로 남는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돌이켜보게 된다. 오히려 엉뚱한 것,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버젓하게 역사의 주인공같이 행세하는 것처럼, 불필요하고 하찮은 것들이
문화의 핵심을 이루기도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된다. 
  의복을 비롯한 생활 전반에 침투해 있는 문화 현상은 누구 한사람이 [이런
것이 바람직합니다]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순식간에 바뀌는 것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그것은 고정되어 절대로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와는 분명 거리가 멀다.
  언어가 사람들이 미처 눈치 못 채는 사이에 알게 모르게 새로 태어나서 변하고
사라져 가듯, 문화도 그렇게 생성되었다가 소멸되는 것이 아닐까.
  스타킹은 과연 얼마나 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을까.
  의복이 더 이상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질식시키지 않을 때,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가치 있는 알맹이를 자연스럽게 주장할 때가 와야,
스타킹은 그 수명을 다하게 될까?
    아메리카 콤플렉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이 미국을 그리 쉽게 앞지를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고작해야 바지런한 모방의 천재라고 평할 정도였다.   
 거대한 미국을 패전국인 작은 섬나라 일본이 따라 넘을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본의 경제력
앞에 미국은 덩치만 큰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
  세상 어디에 가도 일본인 행세만 하면 극진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값비싼
미술품과 골동품들을 수집하고, 넘쳐나는 돈으로 자국의 문화 유산을 새롭게
재창조할 수 있으니 민족적 긍지도 대단하다. 그들은 이제 미국이나 유럽
콤플렉스를 거의 벗어났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1960년대 일본의 적군파나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일부 젊은이 못지않은
과격함으로 미국을 반대했었다. 극좌파들은 미제국주의가 일본을 삼키려 한다고
공격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부대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소위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은 격렬하게 [미국인 물러가라!]라고 외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구호는 변해야 할거라는 느낌이 든다. 
  일본이나 독일같이 잘사는 나라에도 현재 미군이 있지만, 그것이 자기들의
국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지 그들을 이용하면
그만이라는  실용성 의 눈으로만 볼 뿐이다. 일본에 사는 미군 부인들 중 일부가
엔고의 생활이 너무 힘들어, 일본 요식업소 등에 취직해서 여급 노릇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전쟁 직후 많은 일본인 여자들이 양색시
노릇을 하며 미군과 국제 결혼을 하기 위해 애썼던 것에 비하면 정말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변한 듯싶다.
  요즘 일본을 보면서 나는 이삼십 년 후 우리나라의 모습을 상상한다.
일본인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몇년 후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관계도 앞으로는 그만큼
많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과거처럼 구호 물자를 받아먹고 대형인 미국을
무조건적으로 흠모하던 시기는 이제 먼 옛날의 전설처럼 들린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어린 시절, 우리보다 훨씬 부자인 미국인들을 만나면서
나는 왜 못사는 나라에 태어났을까, 속상해 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미국과
유엔은 우리나라를 공산주의로부터 구원해 준 천사의 나라라고 믿기도 했다. 
  영화 (전투)를 보면서 독일군은 나쁜 놈, 미국은 아군이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할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그때와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미국에서 온 사람들은 거의 한국인들이
너무 화려해 주눅든다고 말한다. 그만큼 미국은 더 이상 파라다이스도, 유별나게
행복한 부자 나라도 아니며, 우리도 이제 궁상스럽지만은 않다. 
  약한 국민들의 뒤를 든든하게 봐주는 대형으로서의 엉클 샘의 이미지도,
(은마는 오지 않는다)에서 순진한 부인을 강간하는 나쁜 미군 병사의 기억도,
교활하게 한국의 경제를 착취하고 있다는 신식민제국주의 이데올로기도, 이제는
모두 사라져 가는 과거의 추억처럼 들린다.                
  기지촌을 무대로 한 소설들인 박석수의 (철조망 속 휘파람) (외로운 증언)과
강석경의 (낮과 꿈) (밤과 요람)을 읽으면서, 전쟁 후에 우리가 미군과 부대끼며
겪어야 했던 아픈 상처를 문학에서도 보다 본격적으로 깊숙이 파헤쳐 반성하고
넘어가야 할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우친 태도와 단조로운 시각보다는 보다 다양하고 열린
관점으로 미국과 우리의 관계를 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구호품이나 받아먹으며 몸이나 파는 열등 민족이 아니다.
  미국을  모든 악의 근원 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평화 수호의 천사 로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다. 어떤 대상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격렬한 증오는 동전의 앞뒤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와 똑같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민중들이 미국에도 있다는 시각으로, 양국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게 하는 건강한 대안을 제시하도록 돕는 것도 문학의 기능
가운데 한 부분이 아닐까?
    달콤함을 위한 변명
  행복한 사람의 엄살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병원에서는 항상 무언가 불평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말을 들어줘야 하고 집에서는 아이들에 매달려
집안일에 쩔쩔매다 보면 때로 모든 내 정신 세계가 타버릴 것 같은 기분에
침몰하곤 한다. 의사로서 살아야 하는 건조한 일상 생활에 대한 일종의 혐오감과
반발심 때문일까. 그런 날이면 묘한 허탈감에 빠져 몰래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눕혀도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한다. 내 손길, 내 위로, 내 사랑만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아서다.
  그럴 때, 내가 쉽게 택하는 자기 치료 방법 중의 하나는 감각기관에 호소하는
영화를 보는 것이다. 주로 남녀간의 사랑을 에로티시즘이라는 조금은 즉물적
도구로 표현하는 멜로드라마나, 아예 빠른 속도로 장면이 바뀌면서 내 음흉한
파괴적 공격 성향을 대리 만족시켜 주는 갱 영화나 스파이물이다. 때로는
부드러운 음악을 감상하며 긴장을 풀기도 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한결같이 시체말로 조금 야하다.
대중 음악 중에서는 이미배, 이광조, 장필순, 이문세, 샤데이 같은 가수들의
달콤한 정서를 주로 즐기고, 어쩌다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쇼팽의 발라드나 짧고 복잡하지 않은 에튜드 같은 소품들,
차이코프스키의 대중적 인기가 있는 유명한 교향곡들, 슈베르트의 서정적인
가곡같이 조금은 습기가 있는 무드의 끈적거리는 음악을 택하게 된다.   
  비평가들의 눈에는 말초적인 상업주의 예술이거나 소위 저속하다는 혐의를 둘
안한 것들, 즉 치열하지 못한 자세로 감상적 부르주아의 퇴폐적인 성향을
만족시키는 예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내게는 있는 듯하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물어 보면 대개는 그 사람의 성격도 파악할 수 있어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 자신이 사실은 조금은 계면쩍게 느껴지기도 한다. 
  비발디나 바하는 고전적 완벽주의를 지닌 사람들이 좋아하고, 모차르트나
하이든은 청량한 아름다움과 순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 베토벤이나
브람스, 드보르작은 격정적인 내면 세계를 감추고 있는 침울한 사람들이,
쇼팽이나 슈베르트는 여성적 낭만주의자들이 선호한다. 파가니니나 리스트는
세련된 댄디즘을 좋아하는 스타일리스트들이, 라벨이나 스트라빈스키의 현대
음악은 진보적 첨단주의자들이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칸트리 뮤직 스타일의 포크 송을 좋아하는 사람은 백이면 백 미국 문화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고 폴 앵카나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 같은 흘러간 팝송을
좋아하는 사람은 진보와 보수를 모두 껴안아 보려는 중도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하드 록이나 로큰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활동적이고 발랄한 외향적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요즘 유행하는 랩송은 무언가 억압된 사람들--예를 들어 미국의
뿌리뽑힌 흑인들--의 할말을 대신해 주는 음악이기에, 불만이 많은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본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 가운데는 식민 사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 가운데에는 애국자 아닌 경우가 별로 없을
것이다(물론 이런 식의 결정적인 논고를 일반화시키는 어투가 그러하듯이,
개인에 따라 들어맞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하지만 말이다.
  음악이라는 언어는 사라지는 순간의 한 정점을 지향하기 때문에, 의식과
무의식의 모든 정신 세계를 한꺼번에 통합해서 표현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끈적한 것을 좋아하는 내 음악적 기호도 역시 객관적인 거리에서 분석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고전적 프로이트학파의 입장에서 보면 억압된 성욕의
간접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될테고, 융 학파의 입장에서 보면 현대인들의
집단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감각적 경향이 나 개인에게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랭크 같은 사회적 예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서구 자본주의의 상업
예술 이데올로기에 내가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음악을 들으면 쌓인 피로와 권태를 풀어 보겠다는, 어떻게 보면 조금은
한심한 자신에 대한 정신 분석은 다음과 같은 회의의 꼬리를 물고 번진다. 
   예술의 효용  혹은  예술 그 자체의 가치 는 무엇이냐라는 의문이
그것이다(더 정확히 말해 예술은 그런 수단적 효용을 어떤 식으로 품에 안을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흔히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두 가지 중요한 문화적 요소를  과학  과  예술
이라고 한다. 전자는 사람의 오성에, 후자는 감성에 의지하는 것으로 단순화할
수도 있으며 그 본질상 인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해
가치 없는 과학이나 예술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행복을 위하지 않는 과학 그 자체의 발전은 핵 개발이나 무절제한 자연
파괴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니,  좋다, 나쁘다 에 대한 선택과 이해가 비교적
명료하다. 그러나 존재하는 그 순간부터 이성으로는 도저히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감각 기관에 뿌리를 두어야 하는 예술의 경우는 조금 문제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람의 행복을 위한다며 어떤 주장이나 가치관을 너무나 선명하게
표방하게 되면 일종의 선전술로 전락하게 되어 버리고 반면에 예술 그 자체에
목적을 두게 되면 자칫 잘못하다가는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이나 여유 있는
사람들의 호사거리가 되어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내가 선호하는 약간은 얄팍한 형식의 예술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가능하게 될 것 같다. 
  세련되지 못했지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영혼의 상처, 혹은
평범한 이들의 고달픈 일상 생활을 위로해 주는 조금은 유혹적인 치장을 한
유치한 작품들을 단순히 매도할 수만은 없지 않느냐는 입장과 그 같은 작품들은
대중의 영혼을 미혹시켜 결국에는 고삐 풀린 타락으로 인도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서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또 대중 예술에 대한 심의 -- 영화 필름 자르기, 위험 수위를 넘는 발언을
하는 사람에 대한 대중 매체 출연 금지, 외설적인 책에 대한 판금 조치--를
지금보다 조금 느슨하게 해야 하느냐, 아니면 보다 강화해야 하느냐 하는 것에
대한 태도 결정도 이런 질문과 연결해서 풀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 좁은 식견으로 볼 때 겨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대에 있어서는 예술에
대한 그 어떤 입장도 이제는 결코 단일화되거나 획일화될 수는 없다는 것 정도에
불과해서 가끔은 답답하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우주 속의 엔트로피 원리--모든
분자는 시간이 갈수록 그 운동하는 범위가 넓어진다--가 예술사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것 같아 복잡하고 다양한 이 시대의 문화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나는
길을 잃기도 하고 배멀미를 느끼기도 할 정도다.
  그리스 시대 예술의 자연을 뛰어넘는 완전성에 대한 추구, 중세의 신적 세계에
대한 모방,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개화의 지향,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합리주의적 경향들은 비교적 그 주장하는 바가 단순해서 설명하기가
쉬웠지만, 낭만주의를 지나 현대로 넘어오면 경향이 너무나 다양해져 한마디로
쉽게 말하기 힘들다. 구체적인 예로, 음악적 완성도가 높다는 쇤베르크 이후의
현대 음악을 들으며 내가 느끼는 불편한 심기를 들 수가 있다. 물론 내 거부감은
칠음계에 익숙하게 살아와 진부하다면 진부한 일종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다.
  하지만 아름다움뿐 만아니라 추함까지 예술 안에 포용하려 하는 이십 세기의
진보적인 현대 예술가들의 교묘한, 그래서 대중들은 도저히 미칠 수 없는 고결함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주장일까. 
  그렇다면, 그런 불쾌감과 적어도 나에게는 대비되는 현대의 상업적 음악이
추구한는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황홀경으로의 탐닉 자체를, 과연 어떤 잣대로
비난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또 나올 수 있을 게다.
  어떻게 자신을 합리화하건 간에 결국 나에게는 상업 예술, 혹은 키취같이
가볍고 저급한 쪽을 선택해 그저 하루 해를 행복하게 마치려는 알량한 속셈이
숨어있다. 때로는 음악이라는 거대한 예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이
조금은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달콤한 음악, 더 나아가 지식인들의 눈에는 깊이와 가치가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대중예술, 혹은 키취는 정말 죄가 되는 나쁜 예술일까?
    정신 의학과 미술의 결혼은 가능할까
  정신 의학과 미술은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한 평범한 임상 의사로서
예술에 대한 일종의 동경 혹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가끔 해보는
질문이다. 그 첫째 혼인법은 미술 작품을 통해 그 작가의 정신 세계를 분석해
보는 것이 될 듯싶다.
  프로이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연구에서 유아 시기 다빈치의 어머니와의
성애와 모나리자의 미소를 결부시킨 것, 리드가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를
분석해 작가의 상징들을 읽어내면서 리비도와 무의식의 세계를 언급한 것,
크나포가 초현실주의자인 실레와 칼로를 분석한 것 등을 읽은 기억이 난다.
  정신 분석학이라는 인식 도구를 가지고 있는 의학자들이 예술 작품에 대해
왈가왈부할 때 흔히 빠지기 쉽다고 공격받는 심리적 환원주의 혹은 범성주의등만
조심한다면 예술 비평의 훌륭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둘째 혼인법은 환자의 창조적인 능력을 고무시키면서 환자의 부서진
정신세계를 재건시키는 과정의 하나로 미술 치료를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소위 미술 요법이라고 일컫는다.
  미술의 치료적 효과를 단순화시켜 정리하면 의사가 표현 병리학적인 방법으로
환자를 이해 혹은 진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거나, 환자의 창조성을 북돋아
주어 망가진 자아의 재건에 도움을 주는 것, 그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의사인 우리가 재발견하게 도와주고 있다고 자칭하는 환자들의 창조성은
예술가의 창조성과는 어떻게 다를까. 미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얼핏 정신과
환자들의 그림과 현대 미술이 비슷해 보일 때가 많다.
  그 예로, 달리는 마치 정신 분열증 환자들의 자아가 용해된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분열되거나 변형된 세계를 그렸다. 샤갈은 마치 꿈을 읽는 것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내어, 때로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나의 무의식과
만나는 것 같은 묘한 감흥에 빠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비평가 브르통--그는 의과 대학 시절 쟈네의 히스테리아
연구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은 정신과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동증이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초현실주의는 의식적인 조작없이 무의식이 가는 대로 펜과 붓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기법이라고 한다.
  헨리 밀러 같은 추상주의자들은 예술 작품이 재현할 수 있는 소재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외부로부터 위축되어 자기 안에 숨어
있으려고 하는 정신 분열증 환자들의 알레고리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포스트 모더니스트인 데리다는 미적 대상뿐 아니라 예술가
자신의 충동까지 해체해야 한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 (의사는 환자들의
부서진 자아를 통합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거꾸로 그
자아를 분해하라고 하다니!)
  광기와 천재성에 대한 개념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상식적인 정신과 의사라면
다음과 같이 쉽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예술적인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는 경우는 자신의
정서적 소용돌이로부터 어느 정도 심적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이고
아리에티가 말하는 삼차적 과정(의식의 영역인 자아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이드를 조절, 관장하는 과정)을 수행할 수 있을 때만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무의식적 자발성, 일상적인 것에 대한 거부, 엉뚱한
상상력 등은 모두 창조성의 훌륭한 구성 요소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환자들에게는 창조적인 재능이 부족하다, 혹은 미학적
견지에서 보는 예술적 완전성이 부족하다고 간단히 결론짓는 것은 성급한
듯하다. 대신 사회적, 역사적인 틀 속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에
탐닉해 헤어나지 못하는 자폐성을 환자와 예술가를 구별하는 척도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가능한 예술과 정신 의학의 혼인법은 자기 치료적인 길로서, 정신
의학자가 예술을 품에 안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만으로는 만족되지 않는 실존적 좌절과 감성의
황량함을 극복하기 위해 예술가들의 독점물 처럼 보이는 창조 작업을 감히
넘보려는 낭만적인 꿈이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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