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구엘 세라노 지음 / BOOKULOVE
인간과 세계에 대해 탐구하던 청년 미구엘 세라노가 노년의 헤르만 헤세와 칼 융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기록한 책이다. 영혼의 닮은꼴이었던 헤세와 융은 1917년에 처음 만나 깊게 교유했으
며 서로의 작품과 학문에 영향을 끼쳤다.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을 삶의 의미이자 최종 목적
지로 여겼던 두 사람은 노년에 이르러 깨달은 바를 영적인 대화로 풀어낸다. 두 사람과 정신적으
로 누구보다 깊게 교감한 저자는 꼼꼼한 기록으로 두 지식인의 무르익은 지혜를 생생하게 전해준
다.
헤세와 융
미구엘 세라노 지음
▣ 저자 미구엘 세라노
칠레 출신의 작가, 외교관, 정치가로 독일과 스위스를 여행했고, 스위스에서 말년의 헤세와 융을 만났
다. 이 만남은 수차례 계속되었고 1965년에 두 인물과의 만남을 기록한 『헤세와 융의 비밀 클럽El』(본
서)을 출간했다. 스페인어로 쓰인 이 책은 다음 해에 영어로 번역되어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1997년에는 영어 개정판과 독일어판이 출간되었다. 세라노는 1953년부터 1963년까지 인도에 외교관
으로 체류하는 동안 힌두교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 후에는 유고슬라비아와 오스트리아에서 대사로
재직했다. 1970년 칠레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잠시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1973년에 다시 정치에
복귀했다. 대표적인 저술로 『빙원으로의 초대』(1957), 『시바 여왕의 방문들』(1960), 『낙원의 뱀』
(1963), 『노스, 부활의 책』(1980) 등이 있다.
▣ 역자 박광자, 이미선
박광자 - 충남대학교 독문학과 명예교수. 저서로 『괴테의 소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독일영
화 20』, 『독일 여성작가 연구』 등이 있고, 역서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마를렌 하우스호퍼
의 『벽』,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 크리스타 빈슬로의 『제복의 소녀』, 비키 바움의 『그랜드 호텔』,
테오도어 폰타네의 『얽힘 설킴』, 에두아르트 뫼리케의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 등이 있다.
이미선 - 뒤셀도르프대학교에서 독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역서로 『1세대 목사 가정 이야기』, 『루터:
신의 제국을 무너트린 종교개혁의 정치학』, 『소송』, 『수레바퀴 아래서』, 『세 편의 동화』, 『유대
인의 너도밤나무』, 『존넨알레』, 『별을 향해 가는 개』, 『불의 비밀』, 『막스 플랑크 평전』, 『불
순종의 아이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 『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
『멜란히톤과 그의 시대』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헤세와 융은 둘 다 1870년대에 태어나 1960년대에 세상을 떠났다. 정여울 작가의 말처럼 영혼의 닮은
꼴이었던 두 사람은 1917년에 처음 만나 깊게 교유했으며 서로의 작품과 학문에 영향을 끼쳤다. 헤세
는 심각한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앓았지만 융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정신적 문제를 극복한 것으로 알려
져 있다. 그는 실제로 융에게 직접 심리 분석을 받기도 했다.
1951년 6월, 33세 청년 작가 미구엘 세라노는 스위스 몬타뇰라에 있는 헤세의 집 복도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옅은 백단향의 향내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흰옷을 입은 호리호리한 사람이 어둠 속에서 나타
났다. 헤세였다. 그는 일어나서 헤세를 따라 커다란 창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헤세는 갸름한 얼굴
에 밝고 빛나는 눈을 하고 있었다. 위아래로 흰옷을 입은 그는 세라노의 눈에 고행자나 고해자처럼 보
였다. 세라노는 존경하는 사람과의 만남에 전율하며 긴장한 와중에도 헤세의 작품과 동양의 지혜에 대
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것이 세라노와 헤세의 첫 만남이었다. 그때 헤세는 이미 70대였지만 이후 세라노는 헤세와 여러 차
-2-
헤세와 융
례 편지를 주고받고 만남을 이어간다. 헤세는 세라노를 만난 뒤 부인 니논 헤세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찾아왔는데 내가 알던 사람, 친구 같은 사람이야. 칠레에서 온 젊은 친구였어.” 이후 세
라노는 스위스에 머물고 있는 융과도 만나 인연을 맺는다. 융의 말년을 함께 보냈던 루스 베일리도 세
라노에게 이렇게 전했다. “제 생각에 융 박사님과 당신 사이에는 엄청난 유대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박사님은 당신을 만나면 늘 아주 쾌활하고, 오늘 당신이 오기를 기대하셨어요.” 헤세와 융을 존경하고
배우려 했던 세라노는 두 사람의 충실한 이해자이기도 했다. 그는 헤세의 말을 따서 세 사람의 관계를
‘비밀 클럽’이라고 부르며 우정을 다졌다.
『헤세와 융』은 노년의 헤세와 융을 오가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세라노가 두 사람과의 대화를 기록
한 책이다. 1965년에 스페인어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다음 해에 영어로 번역되어 독자들의 많은 관심
을 받았고, 이후 유럽 각국 언어로 출간되었다. 두 사람보다 마흔 살 이상 어리지만 정신적으로 누구
보다 깊게 그들과 교감했던 저자는 꼼꼼한 기록으로 두 지식인의 무르익은 지혜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 차례
서문
헤세와의 만남
데미안 / 아브락사스 / 나르치스, 골드문트, 싯다르타 / 두 번째 만남 / 픽토르의 변신 / 아침 / 구지
선사 / 편지 / 마지막 만남 / 1961년 5월 7일 일요일 / 마지막 메시지 / 인도를 떠나고 / 나무 / 골드
문트 조각상 / 꿈 / 브렘가르텐 축제 / 두 장의 편지
융과의 만남
남극에서 / 융 박사와의 첫 만남 / 1959년 5월 5일, 두 번째 만남 / 마법의 결혼식 / 야코비 박사와 함
께 / 융 박사, 내 책에 서문을 써주다 / 아널드 토인비와 함께 / 융 박사로부터 마지막 편지를 받다 /
편지의 내용 / 또 다른 만남 /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설교 / 작별 / 인도의 아침 / 꿈 / 신비한 일
/ 우리 시대의 신화 / 결론
헤세와 융, 그리고 세라노
헤세의 생애
융의 생애
-3-
헤세와 융
헤세와 융
미구엘 세라노 지음
헤세와의 만남
데미안
1945년경에 나는 헤세의 작품을 처음 읽었다. 그때까지도 헤세는 칠레에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소수의 독자들만이 그의 작품을 읽고 간간이 이야기할 뿐이었다. 1946년에 헤세가 노벨문학상을 받자
그의 작품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헤세의 작품은 몇몇 나라에서만 열렬히 환경을
받았다. 예컨대 영어권에서는 그를 우울하고 재미없는 작가로 여겼다. 그것이 아직도 영어판 헤세 전
집이 출간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에 나는 문학을 좋아하지만 헤세를 모르는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인기 있는 헤세의 작품 중 한 권을 구하려고 런던을 며칠씩이나 헤맨 일이 있다. 반면
스페인어권에서는 사정이 전혀 달라서 헤세는 계속 많이 읽히고 있고, 스페인과 남미의 젊은이들은 그
를 일종의 예언가로 여기고 있다.
어느 멕시코 화가가 나에게 『유리알 유희』의 음악 명인과 크네히트를 그린 그림의 컬러 사진을 보내
준 적이 있다. 피아노 앞에 교사가 앉아 연주를 하고 있고, 어린 크네히트가 바이올린을 함께 연주하
는 그림이었다. 그 멕시코인은 『유리알 유희』에 매료되어 이 그림을 그려서 헤세에서 선물했던 것이
다.
이런 열정에 나는 너무나 동감한다. 중요한 책을 찾기 위해서라면 나는 오늘도 세계를 반 바퀴 돌 수
있다. 책이 손 안에 들어오기만 기다리면서 책을 찾지도, 열심히 읽지도 않는 오늘날의 열의 없는 젊
은이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책을 포기하느니 먹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나는 책을 빌리는 법이 거
의 없다. 책이 온전히 내 것이기를 원하고, 낮이고 밤이고 나의 동반자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책도 나름의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책은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다가가
서 딱 맞는 순간에 독자에게 나타난다. 그렇게 해서 생명 있는 원료로 만들어진 책은 저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빛을 발한다.
나의 첫 번째 헤세 책은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전에는 결코 느
껴보지 못한 감흥으로 나를 채웠다. 내가 읽은 책은 스페인어판으로 아마도 많은 오류가 있겠지만, 나
는 이 책에서 넘치는 마력과 힘을 느꼈다. 그 책을 헤세는 아직 젊은 시절에 바덴의 베레나호프 호텔
에 살면서 썼다. 온 마음을 다해서 쓴 이 작품은 수년이 흐른 지금도 생명력이 넘치고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데미안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다. 많은 사람이 그의 힘과 평정심을 닮고자 했다. 『데미안』을 읽
고 난 후 나는 내 고향의 거리를 몇 시간씩 걸으면서 내가 새로 태어났음을 느꼈으며, 내가 어떤 징표
혹은 메시지의 전달자같이 느껴졌다. 헤세는 나뿐 아니라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작가나 시인 이상의
존재였다. 그의 작품이 지닌 마법은 지난날 오직 종교만이 파고들던 세계를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데
있다. 『데미안』 외에도 『동방순례』, 『일기 모음』,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황야의 이리』,
-4-
헤세와 융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나에게 오래도록 깊은 감동을 남겼다.
데미안이라는 인물 자체는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다. 주인공인 싱클레어와 분리될 수 없는 까닭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 자신, 그의 깊은 <자기>, 우리의 심연에 내재하는 일종의 원형적인 인물이다. 다시
말해 데미안은 불변하고 본래적인 <자기>로, 헤세는 그를 통해 인간 존재의 마법적 본질에 관한 메시
지를 전하고 있다. 데미안은 어린 소년 싱클레어로 하여금 내면에 내재하는 본래적 존재에 대해 인식
하도록 함으로써 흔히 사춘기 시절에 겪게 되는 혼란과 위험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가 종종
인생에서 데미안같이 강하고 젊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존경과 경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데미안이 있다.
작품 결말에 야전병원의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나타나 키스하면서 이렇게 말한
다. “잘 들어, 싱클레어, 내가 필요하게 되더라도 내가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올 거라고 기대하지
마. 네 자신 속에서 나를 찾도록 해.” 이 말을 헤세는 개인적인 엄청난 고통 가운데, 즉 전 유럽을 뒤
덮은 전쟁 때문에 조국을 버리려 할 때 썼다. 헤세 역시 데미안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만 했다.
이런 메시지가 책에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마법적으로 암시되고 있다. 상징적 진
실은 오직 직관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때 그것은 당사자의 전 존
재를 환하게 밝혀준다. 그것이 바로 수년 전에 내가 고향의 거리를 걸으며 새로운 어떤 것이 내 삶으
로 들어왔음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나르치스, 골드문트, 싯다르타
헤세의 작품을 아는 사람에게 나르치스, 골드문트, 싯다르타 같은 이름은 동일한 개념이다. 이들은 공
통점을 가진 인물들로, 헤세의 모든 작품은 동일한 모티프를 가지고 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하나
의 동일한 인물인듯,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인간 내면의 두 가지 본질적인 성향, 즉 묵상과 행동을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싯다르타와 고빈다 역시 서로 상반되는 특성, 즉 순응과 저항을 보여준다. 이런
성격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지만 이웃에 대해서도 또한 자애롭다.
우리는 내향성과 외향성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유리알 유희』는 사랑, 연민, 이해라는 주제
를 가지고 있는데, 헤세는 그것을 독일인들이 너무도 사랑하는 음악의 푸가와 아라베스크 형식을 담았
다. 헤세의 사상은 힌두교와 중국의 도교, 선불교, 심지어는 수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모든 것
이 하나의 형식으로 용해되어 바흐의 푸가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처럼 순수하다.
헤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골드문트보다는 나르치스처럼 보였다. 방랑 생활을 끝내고 그는 몬타뇰라
에서 내면적인 노년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삶이 다할 때까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그의 내
면에 존재하고 있었다. 당시 나 자신은 아직도 두 인물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는데, 일종의 골드문트
였다. 싯다르타처럼 나 역시 여러 가지 이유에서 현자를 수차례 방문했다. 헤세를 처음 만나러 갔을
때 나는 배낭을 짊어지고 책 한 권을 들고 찾아갔다. 나는 젊었고 그때가 나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
다.
내가 스위스에 도착한 것은 1951년 6월이었는데, 헤세의 거주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참을
수소문한 뒤에야 나는 그가 베른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루가노로 갔고, 거기서 카
스타뇰라로 갔다. 버스를 타고 갔는데, 헤세가 몬타뇰라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눈 덮인 알프스산맥과 루가노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 산속 마을로 향했다. 버스는 좁은 길
-5-
헤세와 융
을 올라가 목적지에 닿았다. 젊은 여성이 나와 함께 버스에서 내렸는데, 나는 혹시 헤르만 헤세의 집
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뜻밖에도 그녀가 자신이 바로 헤세 집의 가정부라면서 따라오라는 것이었
다.
우리가 정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정문 앞에는 ‘방문 사절’이라고 쓰여 있었
다. 나는 키 큰 나무들 사이로 그녀를 따라갔다. 현관 앞에 서자 두 번째 명문이 눈에 들어와TEk. 후
에 나는 그 글이 옛 중국 성현의 말씀임을 알 수 있었다.
맹자의 말씀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할 일을 다한 뒤에는 조용히 죽음과 친해져야 한다. 이제 그에게
사람은 필요 없다. 사람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고, 충분히 보아왔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고요함이
다. 그런 사람을 찾아가서 말을 걸고, 잡담으로 괴롭히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그런 사람의 집 앞을
지나갈 때는 빈집을 지나갈 때처럼 그냥 지나치는 것이 좋다.”
날이 너무 어두워 이 글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가 현관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 어두운 복도에
있는 작은 테이블 앞에 의자를 내주면서 명함을 부탁했다. 나는 명함을 갖고 있지 않아서 내 책 『산을
넘고 물을 건넌다 해도』를 건네주었다. 그 책에 나는 특별히 헤르만 헤세를 위해 스페인어로 헌정사를
써 가지고 갔다.
그녀가 사라졌고 나는 수도원 같은 분위기 속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옅은 백단향의 향내가 나는 것
같더니 문이 열렸다. 흰옷을 입은 호리호리한 사람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헤세였다. 나는 일어나 그
를 따라 커다란 창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나는 그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헤세는 갸름한
얼굴에 밝고 빛나는 눈을 하고 있었다. 위아래로 흰옷을 입은 그는 고행자나 고해자처럼 보였다. 백단
향의 향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내가 볼 때 헤세는 시간을 초월한 것 같았다. 그때 그는 73세를 넘은 나이였다. 그럼에도 그의 미소는
젊은이의 미소였다. 그의 육체는 절제되고 영적인 모습이었다. “저는 먼 길을 왔습니다.” 내가 말을 꺼
냈다. “선생님께서는 저의 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내 작품이 스페인어권에서도 그렇게 많이
읽힌다니 놀랍습니다.” 헤세가 대답했다. “이따금 라틴아메리카에서 편지가 옵니다. 새로 나온 번역서,
특히 『유리알 유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나는 『유리알 유희』에 관해 평소 생각하던 바를 이야기했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스페인어 번
역본이 원본의 정신과 정서를 잘 전해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영혼의 서
로 상반된 두 가지 성격을 나타냅니다.” 헤세가 말했다. “그것은 묵상과 행동으로, 이 둘은 언젠가 통
합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저 역시도 극단적인 둘 사이
를 오가면서 긴장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묵상의 고요함을 꿈꾸는데 생활이 어쩔 수 없
이 저를 행동으로 밀어붙입니다.”
“하늘의 구름처럼 흘러가게 하십시오. 거부하지 마십시오. 신은 산과 호수에 계신 것처럼 당신의 운명
안에도 계십니다. 그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람이 자연에게서, 그리고 자신에게서 자꾸 멀어지
기 때문입니다.” “동양의 지혜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물었다. “나는 우파니샤드
베단타보다 중국의 지혜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주역』이야말로 삶을 변화시
킬 수 있습니다.”
-6-
헤세와 융
저녁 하늘이 점점 흐려지더니, 연한 푸른빛이 창에 물들어 헤세의 가냘픈 몸 위에서 나풀거렸다. “선생
님께서는 이곳 산속에서 평온을 발견하셨나요?” 내가 물었다. 헤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어려 있었다. 우리는 저녁의 고요한 속삭임과 사물의 침묵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그
가 입을 열었다. “자연에 가까이 있으면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나는 내가 떠나야 할 때인 것을 느꼈다. 헤세는 자신을 그린 조그만 수채화 한 폭에 ‘몬타뇰라 기념’이
라고 서명을 해서 주었다. 헤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훌륭한 수채화 화가이기도 했다. 그는 문까
지 전송해주며 오랜 친구처럼 나와 악수했다. “이곳을 다시 방문하게 되시면,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나와 헤세의 첫 만남이었다. 그날 오후에 내가 헤세에게 했던 질문, 혹은 싯다르타가 부처에게
했던 질문을 할 정도로 젊은 사람이라면 내가 받은 감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몬타뇰라의 좁은
길을 따라 돌아 나오면서 버스 한 대도 만나지 못하던 차에 어느 청년이 오토바이로 나를 루가노까지
태워다 주었다. 그날 밤 나는 르네상스의 매력으로 가득한 피렌체에 도착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탈리아는 점령군의 달러와 알코올에 의지하고 있었다.
융과의 만남
남극에서
나는 1947년에 남극을 여행했고, 내 책 『빙원으로의 초대』에서 이 여행에 관해 기술했다. 그런데 그
책에서 나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를 여행 가방에 넣고 갔었다는 말은 하지 않
았다. 그 책은 내 여행 목적에 방해가 되었다. 그 책에 빠져들수록 지나쳐 가고 있는 빙원을 세심하게
살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의 마지막에야 나는 그 책과 내가 찾아갔던 그 먼 세상 사이에 어
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융의 저서와 처음으로 진지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프로이트와 아들러를 읽은 적
은 있었지만 융의 『심리 유형들』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것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제대로 된 만남이 그
제야 성사된 것이다. 나는 융의 책을 파카 주머니에 넣은 채 칠레의 긴 해안을 따라 천천히 항해를 계
속했다. 파타고니아를 지날 때는 계속 비가 내렸다. 배는 티에라 델 푸에고 섬을 지나고 혼곶을 돌아
드디어 비글 해협과 드레이크 해협을 통과해 남극의 거대한 설원에 도착했다. 순백의 빛과 아려오는
추위가 대기에 가득하고 바다로 미끄러져 떨어지는 얼음덩이가 천둥 같은 굉음을 울리는 거대한 빙산
으로 에워싸인 곳, 그곳에서 나는 융의 책으로 주의를 돌렸다. 다른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나는 현대
인의 <자아>와 잠재의식을 분리하는 틈을 좁힐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때 그 장소에서 융의 책이 왜 그렇게 내 관심을 끌었는지 말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남극에서
확연하게 알게 된 원형의 개념, 또 슬쩍 던진 예수에 관한 언급, 그리고 예수가 황량한 빙원과 다르지
않은 가혹한 세계에 갇혀 있었다는 암시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책은 내게 놀라운 세계를 보여
주었고, 남극의 새하얀 정적만큼이나 커다란 두려움을 불러왔다. 그 책은 내 존재의 한 부분을 강력하
게 건드렸고, 막연히 인식했지만 구체화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밖으로 드러내도록 만들었다.
남극에서 돌아온 나는 여행이 더 중요했는지 융의 책이 더 중요했는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융의 책을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나는 여행의 기억에 깊이 빠져들어 마음속에서 다시 검토하면서 여행
과 내 존재의 관계를 이해하려 애썼다. 동시에 인도 여행을 더욱 더 갈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남미
-7-
헤세와 융
의 전설과 신화의 근원을 밝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요가의 가르침에 매혹되어 요가 공부도
시작한 상태였다.
몇 해 동안 연구를 계속하면서 나는 신화와 전설에 뿌리 내린 오랜 지혜를 이성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재차 융에게 관심을 돌렸고, 『자아와 무의식의 관
계』를 다시 읽었다. 그런 뒤 융이 중국과 티베트의 요가에 관해 쓴 논평을 읽는 데 열중했다. 『태을
금화종지』 해설을 읽었고, 리하르트 빌헬름이 번역한 『주역』, 즉 『역경』의 서문도 읽었다. 이런 책
을 읽으면서 프로이트에게는 오직 성과 관련되었던 리비도가 융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라는 것, 즉 탄
트라 요가의 ‘쿤달리니’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융의 저서를 읽을수록 그는 ‘분석심리학’이 어떤 의미에서는 입회를 위한 노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었고, 그 바닥에 융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어떤 다른 내용이 깔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하자면, 정
신분석가는 구루, 즉 스승이 되고 분석 대상자인 환자는 시스야, 즉 제자가 되었다. 만일 환자가 실제
로는 분열을 앓거나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데 건강은 완벽하다면, 융의 정신질환 치료법은 현실이나 <
자기>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주기 위해 환자의 과거에서 환상에 불과한 환영과 그림자를 이끌
어내려는 시도를 하는 데, 이런 과정은 힌두교 구루의 가르침과 아주 유사하다. 융이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것은 인격 혹은 <자아>를 파괴하지 않고 개인과 우주 사이의 대화를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인도에서 지낸 수년 동안 나는 시드하라고 불리는 특별한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들은 연금술사
이자 마법사인데,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로 아리아인이 침입하기 전까지 인도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
했다. 그들은 <자아>와 <자기> 간의 대화를 유지하려 애썼는데, 베단타학파가 말하는 ‘사마디’가 아니
라 ‘카이발랴’라는 훨씬 더 깊은 무아지경에 도달하고자 했다. 카이발랴라는 단어는 ‘고독’ 혹은 ‘분리’
라는 뜻으로 우주로부터, 나아가 신으로부터의 완벽한 독립을 함축하고 있다. 시드하들은 육신의 불멸
을 얻고자 했고 이를 위해 금속의 연금술적인 결합을 사용했다.
1959년 5월 5일, 두 번째 만남
이튿날, 나는 헤르만 헤세를 만나러 몬타뇰라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융 박사를 다시 만나야겠다고 마
음먹었다. 그사이 융이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고 취리히 근처 퀴스나흐트에 있는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큰 기대는 안 했다. 융 박사가 방문객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전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융 박사와 나의 관계는 분명 끝났을 것이다. 인도에 있을 때 연락했던
융 박사의 비서 아니엘라 야페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내 요청에 머뭇거리더니, 융 교수는 아무도
만나지 않으며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로카르노에서 그와 만난 적이 있다며 방문해도 되는지
물어봐달라고 간청했다. 야페 여사는 전화를 내려놓더니, 잠시 뒤에 돌아와 오후 4시에 융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즉시 출발해서 퀴스나흐트에 있는 그의 집에 제시간에 도착했다. 출입문 위에는 라틴어로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부르든 부르지 않든 신은 존재한다.” 곧 융이 와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더니
서재로 가자고 했다. 그곳의 창문으로는 호수가 보였다. 방 한가운데는 종이가 수북이 쌓인 책상이 있
었고, 벽을 따라 많은 책꽂이가 세워져 있었다. 청동으로 된 불상 몇 개와 책상 위쪽에 걸린 카일라산
정상의 시바 신을 그린 큰 두루마기가 눈에 띄었다. 그 그림을 보자 여러 번 갔던 히말라야 순례 여행
이 선명히 떠올랐다. 우리는 창가에 앉았다. 융 박사는 맞은편의 커다란 안락의자에 앉아 편안한 자세
를 취했다.
-8-
헤세와 융
“시바 여왕에 대한 당신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소설이라기보다는 시에 가깝더군요.” 융이 말했다. “왕과
시바 여왕의 관계는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신성한 관계입니다.” 나는 조용히 듣
고 있었다. 융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만일 실제로 시바 여행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결혼만은 조심하
십시오. 시바 여왕은 마법 같은 사랑을 위한 사람이지 결혼을 위한 사람은 아닙니다. 만일 그녀와 결
혼한다면 당신과 그녀 둘 다 파멸할 것이고 당신의 영혼은 분열될 겁니다.” “압니다.” 내가 대답했다.
“정신과 전문의로 오랜 경험을 했지만, 충족한 결혼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결혼이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기는 합니다. 어떤 독일 교수가 자신의 결혼이 그렇다고 장담했기 때문입니다. 베를
린에 사는 그를 방문할 때까지는 믿었습니다. 그리고 상호 간의 이해에 전력하는 결혼은 개인의 인격
발달에 좋지 않습니다. 그런 결혼은 대중의 집단적 어리석음과 같은 가장 낮은 공통분모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쪽 혹은 저쪽이 그런 신비를 꿰뚫어 들춰내기 시작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보
십시오, 이런 것입니다…….”
융은 성냥갑에서 성냥이 든 서랍 부분을 밀어냈다. 그렇게 서랍과 성냥갑을 분리해서 책상 위에 올려
놓자, 두 개는 멀리서 같은 크기로 보였다. 융은 서랍이 쑥 들어갈 때까지 성냥갑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렇습니다.” 그가 말했다. “두 쪽이 똑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한쪽이 항상 다른 것을 포함하거나, 아니면 다른 것의 바깥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
다.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면, 남자는 여성을 포함해야만 하고 동시에 그녀의 밖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
런데 이것은 인간이 얼마나 여성적이고 남성적인가 하는 정도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의 55
퍼센트가 여성입니다. 기본적으로 말해서 남자는 일부다처를 지향합니다. 이슬람 제국 사람들은 이것
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명의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원시적인 해결책이고, 오
늘날에는 돈이 많이 드는 해결책입니다.”
융은 한바탕 웃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가 보기에 프랑스인은 3이라는 숫자에서 제대로 된 해결책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이 숫자는 종종 당신이 시바 여왕을 만난 것과 같은 주술적 결혼에서 나타납니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성 해석이나 D. H. 로런스의 생각과는 아주 다른 어떤 것입니다. 예를 들면 프로이
트는 근친상간을 잘못 해석했습니다. 이집트에서 근친상간을 주로 종교적이었고, 개성화 과정과 관계
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왕은 개인이었고 백성은 단지 무정형의 대중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왕은 국
가의 개체성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나 여형제와 결혼해야 했습니다.
로런스는 어머니한테서 지나치게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성의 중요성을 과장했던 겁니다. 또 여성을 과
대평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계속 어린아이였고, 세상에 적응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종종 호흡기 질환을 앓습니다. 그런 질환은 주로 청소년들에게 나타납니다. 다른 특이
한 경우는 생텍쥐페리입니다. 저는 그의 아내에게서 그에 관한 중요하고도 세세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
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비행은 일종의 도피 행위입니다. 지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하
지만 지구는 받아들여야 하고 인정해야만 하고, 어쩌면 승화까지 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흔히 수많은
신화와 종교들 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마리아 승천 교리는 사실 물질을 수용한다는 의미이며, 물질의 신성화를 의미합니다. 꿈을 분석해보면
이를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연금술에서도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이 쓴 연금
술 저서가 없는 것이 참 유감입니다. 만일 있다면 여성의 환상에 관한 근본적인 것을 알게 될 텐데 말
입니다. 확실히 남성의 것과는 다를 겁니다.”
-9-
헤세와 융
융 박사에게 어떤 사람의 꿈을 분석하고 그 꿈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물어보았다. 나
는 나 자신의 꿈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활력이 증가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분석하지 않
았더라면 잃어버렸을, 숨겨진 에너지의 원천을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그런데
저는 인도에서 크리슈나무르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는 꿈이란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오직 관찰하는 것, 순간을 의식하고 완전히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전혀 꿈을 꾸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의식적, 무의식적 마음 두 가지를 관찰하기 때문에 그렇다
는 겁니다. 그는 꿈을 꿀 만한 것은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기 때문에 잠잘 때는 완벽한 휴식을 얻는다
고 했습니다.”
“잠깐 동안이면 그게 가능합니다.” 융이 대답했다. “몇몇 과학자들이 제게 말하기를 어떤 특정한 문제
에 온 신경을 집중할 때면 꿈을 꾸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답니다. 꿈 분석의 중요성에 대한 당신이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면,
단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본성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랑이는 좋은 호랑이여야 합니다. 또
나무는 좋은 나무여야 합니다. 그러니 사람도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무엇인가를 알
기 위해서는 본성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은 것의 중요성도 인정하면서 혼자 가야 합니
다. 그렇지만 사랑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심지어 연금술적 과정조차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
랑은 모든 것을 감행하게 하고 중요한 것을 주저하지 않고 허락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는 갖고 있던 헤세의 책 『픽토르의 변신』을 펼쳐 책에 수록된 그림을 보여주었고, 황야의 이리의 인
사를 전해주었다. “헤세와는 신화와 상징에 관심이 있는 공통의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융이
말했다. “그 친구와는 한동안 함께 일했는데, 그는 끝까지 따라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 길은 아주 힘듭
니다…….” 융의 집을 나섰을 때는 꽤 늦은 시간이었다. 나는 호수 쪽으로 걸어가면서 우리의 대화를
생각했고,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려 애썼다.
우리 시대의 신화
1960년 9월 14일자 마지막 편지에서 융은 이렇게 썼다. “나는 나의 빛과 보물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
무도 그것을 가질 수 없으며, 내가 그것을 잃어버리면 나 자신이 심하게, 심지어는 절망적으로 다칠
것으로 확신하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나에게뿐 아니라 창조주의 어둠에도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창조
주는 자신의 창조물을 밝히기 위해 인간을 필요로 합니다.”
이 생각은 융의 사후에 출판된 회고록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새벽에 태양이 뜨도록 자신이 돕고
있다고 생각하는 푸에블로 인디언 족장 오크와이 비아노의 이야기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융은 푸에블
로 인디언과 같은 초월적이고 중요한 신화를 현대인에게 찾아주려고 했다. 그리고 결국 수년간의 연구
끝에 “창조주의 어둠을 밝혀 주기 위해” 인간이 필요하다는, 그의 모든 작업을 요약하는 한마디로 그
것을 밝혔다. 그의 열망은 바닥 없는 무의식으로, 다시 말해 신 그 자체 안으로 의식의 빛을 투사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융이 현대의 인간에게 남겨준 살아 있는 신화이다. 물론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
은 아니다.
융 학파의 관점에서 볼 때 의식의 투사는 추론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의 신비한 ‘중심’에서부터
발산되는 내적 빛의 투사로, 그것은 끊임없이 역동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그림자의 왕국으로 향하게 해
준다.
- 10 -
헤세와 융
융은 새끼를 낳고 있는 동물의 눈에서 어두운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주는 엄청난 고통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는 이 동물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며, 우리가 세상의 본성과 그들의 고통스러운 존재의 신비
를 그들에게 밝혀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오직 우리만이 그들을 빛 속으로
투사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모든 창조물, 즉 동물, 나무, 강, 돌, 어쩌면 신 자체의
거울이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는 세계의 의식이며 꽃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멸 속에서 그것
을 관찰하고 전체성 가운데 드러낼 수 있도록, 자연은 영겁이 지난 후에야 우리를 창조했다. 창조물의
모든 요소는 우리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신성한 대상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런 것에 시선을 보내지도, 관찰하지도 않고 그냥 지나친다. 크리슈나무르티가
이런 단어들에게 준 의미에서 본다면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을 통해 보거나 관찰
하지 못한다. 우리는 꽃이 봐주기를 기다리다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고, 프라이팬이 우리의 아침 인사
를 기다리고 있으며, 태양이 하늘에 떠오르기 위해 우리를 필요로 하고, 지구가 회전할 때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관찰하면 꽃은 우리에게 인사로 답하고,
사랑의 형태로 돌려줄 것이다. 즉시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가 대지로 돌아갈 때면
그렇게 할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연에 반항한다. 자연이 인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것은 자연에도 존재하는, 희생하고 반항하라고 우리에게
밀어붙이는 다른 힘 때문이다. 그러나 이 힘은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충고하는 중심력의 한 양상, 혹은
한 측면일 뿐이다. 나는 이것이 진정 자연의 중심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어릴 적에 나를 에
워싼 자연 세계와 더불어 완벽한 편안함 가운데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쁨의 신과 함께 우
리가 그의 기쁨과 슬픔의 깊이를 드러내주기를 정말로 기다리고 있는 슬픔의 신도 있을 수 있다. 연금
술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자연이 불완전하게 남긴 일을 완성해야 한다.”
- 11 -
헤세와 융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약본)바빌론의 역사 (0) | 2021.09.13 |
---|---|
(요약본)마음의 연금술 (1) | 2021.09.13 |
(요약본)AI 임팩트 (0) | 2021.09.13 |
(요약본)프로부업러가 콕 짚어주는 디지털 부업 50가지 (0) | 2021.09.13 |
(요약본)인성이 내 아이의 인생을 바꾼다 (0) | 2021.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