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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부의 흑역사

by Casey,Riley 2021.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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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컬러스 색슨 지음 / 부키
이 책은 금융이 생산 부문에 자본을 공급하는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 거대한 부의 약탈 기계로 변모
하는 ‘금융화’의 전모를 추적한다. 저자는 금융화의 결과로 금융 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적정 규모
를 넘어서면, 오히려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불평등이 심화되고 또 시장이 무력해진다면서, 약탈자들의
탐욕에 맞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똑똑한 자본 통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부의 흑역사
니컬러스 색슨 지음

▣ 저자 니컬러스 색슨
글로벌 경제와 정치 분야 저널리스트이자 분석가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부연구위원, 조세 및 역
외금융 전문가 집단인 조세정의네트워크의 상근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조세 회피와 금융 문제의 세
계적인 전문가로 BBC, 로이터,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배너티페어》, 《인터내셔널
어페어스》, 《포린어페어스》, 《아메리칸인터레스트》, 《아프리카콘피덴셜》 등에 기고해 왔다. 지은
책으로 『금융의 저주』(2018)를 비롯해 『오염된 우물: 아프리카 석유를 둘러싼 더러운 정치』(2008),
『보물섬: 절세에서 조세 피난처 탄생까지 현대 금융자본 100년 이민사』(2011)가 있다.


▣ Short Summary
생산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융통하려는 기업에게는 금융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영국의 은행 대
출 가운데 생산 활동을 위한 대출은 고작 1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대신 은행들끼리 서로
돈을 빌려주거나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 주요 업무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문제는 은행과 같
은 금융기관의 지나친 비대화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도 설비에 투자하거나 일자리를 늘리기
보다는 금융활동을 통해 주주에게 돌아갈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열을 올린다.
이 책은 금융이 생산 부문에 자본을 공급하는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 거대한 부의 약탈 기계로 변모
하는 ‘금융화’의 전모를 추적한다. 저자는 금융화의 결과로 금융 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적정 규모
를 넘어서면, 오히려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불평등이 심화되고 또 시장이 무력해진다면서, 약탈자들의
탐욕에 맞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똑똑한 자본 통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금융 부문이 적정한 규모를 넘어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과정을 파헤치고, 이 금융화가 경제와
사회 전반 그리고 개인의 삶에 끼치는 피해 양상을 고발한다. 그리고 금융화의 결과로 부패가 자행되
고 대체 경제 부문이 설 자리를 잃고 민주주의와 사회에 막대한 폐해를 안기는 역설을 자원이 풍족한
나라가 오히려 가난에 허덕이는 ‘자원의 저주’에 빗대 ‘금융의 저주’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아울러 파생상품, 신탁, 특수목적회사, 사모투자 등 첨단 금융 기법들의 작동 원리를 속속들이 해부하
면서 2007년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는 금융위기를 경고한다. 또한
독점금융에 포획된 정부가 이들의 탐욕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는커녕 막대한 수익만 뽑아먹고 그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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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험은 외부로 떠넘기는 금융이라는 이름의 사기도박을 방조하면서, 그것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이
라고 강변하는 정치적 선전의 허구성을 비판한다. 나아가 회계사, 법률가, 경제학자 등 전문가집단이
왜, 어떻게 부의 약탈자들과 결탁하고 약탈 행위를 옹호하는지 밝혀낸다.

▣ 차례
머리말 - 그 많은 부는 다 어디로 갔을까
기차표 예매 수수료의 기이한 여정 / 영국이 앙골라만큼 위험한 이유 / 금융화의 덫: 좋은 것도 지나치
면 독이 된다 / 국가경쟁력을 위한 일이라고?
1장 경쟁과 세금은 부의 적이다
괴짜 경제학자 베블런의 신랄한 통찰 / 석유왕 록펠러보다 막강한 금융왕 J.P.모건 / 월스트리트가 세
운 나라, 파나마 / 정치ㆍ산업ㆍ금융 지도자의 기막힌 사업 수완
2장 신자유주의,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정부 정책에 민간 시장 모형을 적용할 수 있을까 / 브레턴우즈 체제의 강력한 규제와 자본주의 황금시
대 / 신자유주의, 반격에 나서다 / 기업 유치라는 이름의 제 살 깎아먹기 경쟁 / 국가가 기업처럼 될
수 있다는 허튼소리
3장 악의 소굴이 된 제국의 심장
대영제국의 영광을 이끈 주역 / 제국의 몰락과 새로운 부의 원천의 출현 / 금융해적 소굴의 심장부가
되다 / 생선은 머리부터 썩고, 권력은 돈에서 나온다
4장 우리에게 독식을 허하라
시장경쟁을 막아서 경쟁력을 높인다? / 옛날 옛적에 반독점이 살았는데 / 뻔히 보이지만 존재할 수 없
다는 괴상한 논리 / 독점은 어떻게 경제를 좀먹는가 /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5장 제3의 길은 없다
룩셈부르크에서는 금융에 대한 태클 걸지 마라 / 돈은 정치의 일부다 / 제3의 길에 맛을 들인 진보 좌
파 / 국가경쟁력이라는 헛소리 / 영국은 왜 룩셈부르크가 될 수 없나 / 금융위기 이후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6장 켈트 호랑이의 폭풍성장과 추락
아일랜드는 금융화의 모범 사례? / 켈트 호랑이는 어떻게 탄생했나 / 그림자금융 전문가와 입법자의
합작품 / 금융위기의 원흉이 되다 / 노동자의 구세주 호히 일당의 사기행각 / 자기기만으로 변질된 켈
트 호랑이의 포부
7장 누가 금융위기를 불렀나
월스트리트와 시티오브런던, 누가 더 흉악한가 / 범죄은행 보호에 앞장선 영국 중앙은행 / 런던, ‘금융
수소폭탄’ 파생상품을 실험하다 / 자산 유동화가 만들어낸 멋진 신세계 / 은행이 스스로 규제 기준을
결정한다 / 리먼브라더스가 삼킨 마약, 환매조건부채권 / 2007년 금융위기의 화려한 식전 행사 /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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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책임지지 않는다
8장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 신탁의 마법
주택담보권 400억 파운드의 수상한 행방 / 신탁은 어째서 마법을 부릴까 / 신탁이 비밀 장막을 치는
방법 / 자산관리 산업의 성장과 부의 영원한 대물림 / 부자들은 왜 더 많은 부를 원할까 / 자산관리 전
문가와 조세 도피처가 부를 지켜주고 얻는 대가
9장 단순하지만 위력적인 수탈 장치 사모투자
환자ㆍ간병인 거래 사업의 복잡한 구조 / 앞면이 나오면 내가 이기고 뒷면이 나오면 네가 진다 / 가장
흔한 수법, 부동산회사와 운영회사 분리 / 착취당하는 간병인과 푸대접받는 환자 / 빚 떠넘기기, 세금
회피하기 / 수익률은 형편없는데 어떻게 떼돈을 벌까 / 똑똑한 투자자가 어리석은 투자를 하는 어처구
니없는 이유
10장 왜 금융은 경제를 망치는 악당이 되었나
공공지출을 민간 부문에 떠넘길 때 치르는 대가 / 가치창출에서 가치수탈로 / 지식, 기술, 사람의 대량
유출 / 감사 대상과 회계법인의 은밀한 동거 / 정부와 언론까지 장악한 회계법인
11장 부의 약탈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들
법인세 감면이 투자를 늘린다고? / 과세는 삶의 일부다 / 민주주의의 가치는 얼마일까
맺는말 - 부의 약탈자와 창출자,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국가 안보마저 위협하는 금융 개방 / 금융의 저주를 물리칠 똑똑한 자본통제
감사의 말 / 미주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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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부의 흑역사
니컬러스 색슨 지음

머리말 - 그 많은 부는 다 어디로 갔을까
기차표 예매 수수료의 기이한 여정
온라인 기차표 판매처인 트레인라인에서 표를 사면 예매 수수료를 조금 낸다. 한 75페니 정도? 그런데
이 작은 예매 수수료가 은행 계좌를 떠난 뒤 지나는 여정은 놀랍기 그지없다. 트레인라인닷컴 유한회
사라는 회사가 런던에 기반을 두고 이 사업을 운영하는데, 이 회사의 소유자는 다른 회사인 트레인라
인홀딩스 유한회사다. 그리고 이 트레인라인홀딩스 유한회사는 또 다른 회사가 소유하고, 이 또 다른
회사는 또 다른 회사가 소유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렇게 트레인라인닷컴 위로 층층이
쌓인 다섯 회사를 거치고 나서 우리가 낸 작은 예매 수수료는 영국해협을 빠져나가 조세 도피처인 저
지섬을 들러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다. 또 런던에서 다섯 회사를 더 거치고 저지섬에 한 번 더 휙 다녀
온 다음, 유럽 본토로 넘어가 역시 조세 도피처인 룩셈부르크의 두 회사 계좌로 들어간다.
일단 룩셈부르크에 도착하면 작지만 용감한 우리 75페니는 금융 터널로 들어간다. 여기서부터는 추적
하기가 좀 까다롭다. 하지만 곧 다시 모습을 쏙 드러낸다. 이번에는 카리브해 지역이다. 이곳에서 예매
수수료는 널뛰듯 위로 올라가면서 철옹성처럼 굳게 닫힌 비밀스러운 케이먼제도의 회사 서너 개를 거
친다. 여기까지 이르면 은행 계좌를 떠난 뒤 이미 스무 개 정도 회사를 거치기 때문에, 우리 예매 수수
료는 전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금융의 시내와 강물에 휩쓸려 둥둥 떠내려간다. 그러다 한데 합
쳐 미국으로, 나락처럼 목구멍을 벌리고 있는 미국의 거대 투자회사 KKR로 흘러 들어간다.
도도한 돈의 강물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흘러 흘러 KKR 주주의 계좌로, 다시 말하면 세계에서 규
모가 가장 큰 은행과 투자 펀드와 부유한 개인들의 계좌로 들어간다. KKR이 주로 돈을 벌어들이는 수
법은 이익이 나도록 회사를 재편해서 매각해 버리는 것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KKR은 실재하는 회
사를 180개나 소유하고 있다. 내가 ‘실재’라고 말하는 까닭은 KKR이 실제로는 4000개가 훌쩍 넘는 법
인체를 소유하거나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4000개 법인체 가운데 20개 이상이 저지섬에, 200개
이상이 룩셈부르크에, 800개 이상이 케이먼제도에 있으며 대개는 회계사가 설계한 가상현실 세계에서
만 존재한다. KKR 제국의 바닥에 놓인, 부츠나 트레인라인 같은 실재 회사는 각각 자신 위에 우렁잇속
같은 기업 구조를 얹고서 여러 법인체와 뱀처럼 꼬불꼬불한 사슬로 이어져 있다.
내가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은 불법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솔직히 사업이 점점 이런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런데 예로 든 트레인라인의 기업 구조는 몇 가지 커다란 의문을 낳는다. 첫 번째 의문,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반드시 ‘금융화’를 이해해야 한다. 이 현상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70년대였다. 이후 서서히 우리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금융화는 금융과 보험과 부동산(FIRE) 부
문이 규모도 세력도 급격히 성장한 배경과 맞물려 있으며, 금융과 관련한 시장과 기술, 동기와 사고방
식이 우리 경제와 사회, 심지어 문화에까지 깊숙이 침투하는 현상을 낳았다. 트레인라인의 기업 구조
는 금융화가 지닌 이 두 번째 측면을 보여주는 한 예시이기도 하다. 작은 장치나 톱니를 만들고 말라
리아 치료법을 찾아내고 장난감이나 단체여행을 팔고 기차표를 편리하게 예매하는 플랫폼을 개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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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경제 체제 안에서 진정한 부를 창출하는 회사 경영자에게, 생산성을 높이고 기업가정신을 북돋는 힘겨
운 강행군에서 이제는 벗어나라고, 소유자에게 더 큰 이익을 안기는 방법을 연구해서 더욱 짭짤한 수
익을 보장하는 금융 설계로 눈길을 돌려 그 달콤한 맛을 음미하라고 부추긴다.
두 번째 커다란 의문은 기업이 지닌 복잡성이다. 여러 회사로 이루어진 트레인라인 그룹이 2017년 영
국 고객에게서 벌어들인 수익은 약 1억 4800만 파운드에 달한다. 이는 75페니짜리 예약 수수료가 어
마어마하게 많다는 의미다. 트레인라인은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번거로움 없이 기차표를 끊을 수
있다. 그런데 2017년 영국에서 기차를 이용한 승객에게 이 서비스를 제공해 1억 4800만 파운드를 다
벌어들였을까? 비용을 절반으로 줄여도 그에 못지않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1억 4800만 파운드에서 순부가가치는 얼마나 될까? 또 위험을 감수한 대가에 걸맞은 적절한 보상
은 얼마쯤일까? 기차표 판매에서 우세한 지위를 누리는 이 회사가 부를 뽑아간다면 얼마가 적당할까?
이 질문들에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금융 배관이 대부분 저지섬과 룩셈부르크와 케이먼제도에 숨어 있
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하나의 사회로서 우리는 어디쯤에 선을 긋고 수익이 과도하다고 판단해야 하
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사실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철도여행
객이 트레인라인에 돈을 엄청 내고, KKR과 그 투자자들이 돈을 왕창 긁어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화 시대에 기업의 경영자와 자문가, 그리고 금융 부문은 경제에 부를 창출하는 방향에서 멀어지고,
금융 기술을 이용해 경제에서 부를 수탈하는 방향으로 옮아갔다. 금융화는 회사 소유자와 경영자를 위
한 이익 분출구를 열어 놓았다. 반면 토대를 이루는 경제가, 우리가 삶을 살고 일을 하는 터전이 무너
져 갔다. 수익과 불경기는 부의 수탈이라는 한 동전의 양면이다. 이것이 내가 ‘금융의 저주’라고 일컫
는 내용에서 중심을 이룬다. 금융의 저주라는 개념은 금융 부문이 확장하여 합당한 규모에서 벗어나
유용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면, 이 금융 부문을 지탱하는 국가에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경쟁과 세금은 부의 적이다
괴짜 경제학자 베블런의 신랄한 통찰
경제학자이자 사상가인 소스타인 베블런이 쓴 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유한계급론』은 1899년에 출간
되었다. 이 책이 예리하게 폭로하는 세계에서 생산력이 높은 노동자는 장시간 힘겹게 일하고, 기생충
같은 지배 계층은 이 노동이 내놓는 결실을 먹고 살았다. 부 역시 ‘과시 소비’와 ‘과시 여가’를 섬겼다.
이는 자신은 부자라서 일할 필요가 없다고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낭비 행위를
가리켰다. 베블런이 지적했다시피 부자는 항상 부와 권력을 더욱 탐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부
자의 방종과 무절제가 점점 분노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숭배를 낳았다는 것이다! 억압받는 대중은 사
회가 부자에게 베푸는 혜택을 타도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따라하고 싶어 했다.
베블런이 다음으로 쓴 중요한 저서는 1904년에 출간한 『기업론』으로, 덜 알려졌지만 더 급진적이고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금융의 저주를 살짝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베블런은 산업화와 ‘기계 처리
과정’, 즉 팔을 걷어붙이고 유용한 일을 척척 해치우는 능력 있는 공학자와 사업가를 소위 수익을 창출
하는 ‘사업’과 대조해 놓았다. 신용, 대출, 소유권, 투기, 시장으로 이루어진 금융 상부구조가 생산 토
대 위에서 지배하고 착취했다. 마르크스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긴장에 주목했다면, 베블런은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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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언뜻 달라 보이지만 관련 있는 투쟁에 집중한다. 부의 ‘창출자’와 부의 ‘수탈자’, 만드는 자와 빼앗는
자, 생산자와 약탈자 사이의 싸움이다. 중산모를 쓴 무리를 상상해 보자. 히스 로빈슨이 그리는 기계처
럼 얽히고설킨 가느다란 배관 장치를 경제 체제 위에 놓고 조작하면서 저 아래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
동자나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동전과 지혜와 차용증서를 마구 빨아들이고 있는 모습을.
여러 세대에 걸쳐 경제사상가는 이 간극을 인지하고 있었는데, 적어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
간한 177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주된 문제는 누가 부의 창출자인지를 두고 서로 의견이 달
랐다는 점이다. 보수적인 전통에 따르면 이들은 부자들이었다. 돈과 자본을 소유한 이들이 공장을 세
우고 정부에 세금을 내면 정부는 가난한 보조금 수령자에게 이 부를 재분배했다. 이런 역사관에 비추
어 보면 가난한 사회적 약자는 자본가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베블
런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부유한 부의 수탈자를 자기 배만 불리는 두꺼비에 비유했다. 이 두꺼비는
“파리와 거미가 수없이 오가는 혼잡한 길을 따라 자신만의 지정석을 이미 찾아 놓았다”고 주장했다.
이리하여 베블런은 더욱 격렬한 논란이 벌어지는 영역으로 한 걸음 성큼 걸어 들어가며 논지를 펴 나
갔다. 사업가는 대개 지나가는 파리나 잡아먹는 게으른 두꺼비처럼 수탈을 통해서 뿐 아니라 적극적인
사보타주를 통해서, 다시 말해 베블런 특유의 가시 돋친 언어를 그대로 옮기자면 “효율성을 양심적으
로 반납”해서, 부자가 된다. 이들 사업가는 결실을 낳는 일정한 흐름 중간에 개입해 나무를 흔들고는
별 힘 들이지 않고 열매를 주워 도망가 버린다.
비판자들은 헛소리라며 비웃었다. 누가 그런 바보 같은 몹쓸 짓을 하느냐고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한
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베블런은 자본주의의 공공연하면서도 중요한 비밀 하나를 폭로했다. 거대 자본
가는 효율적인 경쟁을 반기지 않으며 자유 시장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그렇다고 말하
지만, 경쟁다운 경쟁이 일어나면 가격이 내려가고 임금이 올라가서 결국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자본가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자기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는 시장이다. 노동자에게 불리하고 소비자에
게 유해하고 납세자에게 잔인한 시장, 바로 이런 곳에서 노다지를 캘 수 있다. 베블런은 이렇게 쓰고
있다. “부재 소유자들은 지금 패배만 안겨줄 뿐인 경쟁을 서로 벌이느니 그 경쟁의 노력을 오롯이 소비
자를 대상으로 퍼붓고 있다. 따라서 사업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경쟁이 아니라 사업계 전체와 나머지
공동체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이 되었다.” 이 갈등이 금융의 저주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석유왕 록펠러보다 막강한 금융왕 J.P.모건
『기업론』은 당시에도 탁월했고 지금도 탁월한 탐사보도의 위업을 이어받은 결과물이었다. 존 D. 록펠
러가 세운 스탠더드 오일 독점기업의 진면목을 폭로한 이 보도 기사에서 언론인 아이다 타벨은 그때까
지 세상이 결코 알지 못한 음모와 담합을 파헤쳤다. 아이다가 들추어낸 바에 따르면, 록펠러는 베블런
이 말한 사보타주의 달인이었다. 원유와 경유의 생산과 유통 시장을 조종하고 인정사정없이 때로는 폭
력까지 휘두르며 경쟁사를 사들이거나 몰아내서 미국 전역을 망라하는 독점기업을 세웠다. 록펠러가
사업 활동을 벌이던 초창기에는 기업이 주 경계선을 넘어 사업할 수 없었다. 하지만 틈새를 찾아냈다.
여러 주에 흩어져 있던 기업을 한데 합쳐 하나의 트러스트(독점적 기업결합) 소유 아래 두었다. 트러스
트는 유연하고 강력한 중앙통제 체계를 통해 전국 단위로 비밀스럽게 활동할 수 있었다(이런 이유로
이후 독점금지법과 조치가 반트러스트법으로도 알려짐). 이 트러스트 체제를 이용해 록펠러는 미국 정
유 사업의 90퍼센트를 지배하며 소비자에게서 막대한 돈을 뽑아내고 분수처럼 솟구치는 수익을 올렸
다. 그리고 이 수익은 핵심 사업을 넘어 철도와 은행, 철강과 구리, 그 외 여러 분야로 콸콸 쏟아져 들
어갔다. 이 모습에 오늘날의 아마존을 떠올렸다면 제대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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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한편 1913년 베블런이『기업론』을 출간하고 10년 가까이 지나서 미 하원 위원회가 지금은 유명한「자
금 트러스트 조사 보고」를 내놓았는데, 이 보고서는 미국의 사업 지도자들이 나라 경제의 절반을 조종
하려는 어마무시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폭로했다. 록펠러가 연루되었다고 의심을 받았지만, 이는 록
펠러나 스탠더드오일보다 규모가 더 컸다. 자금 트러스트는 적어도 18개 주요 금융기업의 300개 이상
임원직과 지시 계통을 가로지르며 바둑판처럼 맞물려 있는, 미국 산업계 대부분을 지휘하고 금융어음
교환소와 뉴욕 증권거래소마저 조종하는 어마어마한 조직이었다. 교활하게도 ‘은행윤리’라고 알려진 불
한당들의 비밀 선언에 기반을 두었는데, 여기서 이들은 서로 경쟁하지 말자고 합의했다. 이 조직 꼭대
기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은행가 존 피어폰트 모건이었다.
이 보고서가 내놓은 경고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산업계의 독점보다 더 위험한 세력이 존재했으며 이들
이 산업계와 경제 전반에 신용을 배분하는 수단을 독점 지배하는 경우 훨씬 위험했기 때문이다. 보고
서는 신용을 지배하면 경제를 지배한다고 경고했다. 베블런 시절 가장 유명한 변호사인 루이스 브랜다
이스는 이 보고서의 조사 결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이제까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가장 귀한 재산
이라고 여겨 왔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큰 수익을 누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이 키우는 거위가 황금알
을 낳으면 이 알을 빼앗을 특권이 있으면 된다. 투자은행은 지금 그런 특권을 누리고 있다. … 금융 과
두 체제에서 중요한 인자는 투자 금융 전문가다.”
월스트리트가 세운 나라, 파나마
독점이 사보타주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수단이지만, 베블런 시절에는 이 외에도 갖가지 수법이 존
재했다. 「자금 트러스트 조사 보고」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가장 규모가 큰 형태 역시 모건의 은행
과 관련이 있었다. 이 대하소설은 1899년 모건의 법률고문인 윌리엄 크롬웰이 미국 파나마운하회사라
는 새 회사를 설립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파나마는 콜롬비아의 한 주였는데, 수익을 꽤 낳는
철도가 남북 아메리카를 잇는 좁은 지협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J. P. 모건과 작당하
여 분리주의자를 무장시키고 지원했다. 분리주의자들은 파나마를 콜롬비아에서 빼앗아 수익성이 좋은
열차 환전 수수료를 손에 넣고 싶어 했다. 더구나 운하를 만들면 수익도 더 크게 늘어날 터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파나마는 콜롬비아에서 독립했지만 사실상 미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나
라에 처음으로 파견한 공식 재무대리인이 J. P. 모건이었고, 파나마운하는 1914년에 개통했다. “파나마
의 독립은 월스트리트가 기획하고 자금을 대고 완성했다.” 이는 모건의 변호사였던 오비디오 디아스
에스파노가 『월스트리트는 어떻게 국가를 세웠는가』라는 책에서 이 사건을 다루며 요약한 말이다. 이
일로 “콜롬비아 정부가 물러나고 새 공화국이 들어섰으며 워싱턴 내의 정치 토대가 부패로 흔들리고
라틴아메리카에 미 제국주의가 들어섰다.” 요지는, 월스트리트 일파가 정부의 군사자원을 이용해 교역
의 중추 역할을 하는 세계적 요충지에 거대한 요금소를 세우고 사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베블런은 이를 애국으로 포장한 “사보타주 운하”라고 덧붙였다. 국가대표가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려면’
일반 시민이 짐을 짊어져야만 한다. 국가대표라는 개념은 경제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페이스북
을 설립한 마크 저커버그가 2018년 4월 사생활 침해 때문에 미국 상원에서 호된 추궁을 당할 때 미리
준비해 온 쪽지가 사진에 찍혔다. 쪽지에는 이런 짤막한 글이 씌어 있었다. “미국 기술회사는 미국에
매우 귀중한 자산이다. 날로 강해지는 중국 회사를 무찔러야 한다.” 이 헛소리를, 이 독점회사가 계속
큰 수확을 거두어들이고 국가 안전보장을 위해 미국 사용자의 소중하고 민감한 정보를 팔겠다고 요구
하는 태도를 베블런은 이렇게 정리했다. 육군과 해군을 동원하여 “특정 지역에서 특정 수법으로 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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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먹으려 드는 특정 기득권 무리의 실무적인 권리를 강화하거나 옹호했다. 일반 시민은 그 비용을 감당
하고 자부심으로 의기양양해했다.” 베블런은 그때나 지금이나 국제 금융이나 경영에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심하게 착각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간파했다. 바로 국가 ‘경쟁력’이다.
그런데 사보타주는 독점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파나마는 선박등기소를 세우자 때맞춰 조세 도피처 설
립을 향해 첫 발자국을 떼었다. 조세 도피처는 두루두루 이용되는 또 하나의 현대적 사보타주 도구다.
조세 도피처가 무엇인지 일반적인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개념은 간단히 ‘다른 곳으로’와
‘피한다’가 핵심을 이룬다. 돈과 사업을 다른 곳으로, 예컨대 역외로 빼돌려 달갑지 않은 국내 규제와
법을 피한다. 이 법은 대개 세금과 기업공개, 금융규제와 노동규제, 선적 조건 등등과 관련이 있다. 그
래서 ‘조세 도피처’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못하다. 그저 세금만 피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ㆍ산업ㆍ금융 지도자의 기막힌 사업 수완
베블런과 아이다는 동시대인에게 신랄한 비판을 받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옳았음이 거듭해
서 드러났다. 베블런은 1929년에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이론이 옳았음을 입증할 증시 대폭락이 일어
나기 몇 주 전이었다. 이 폭락과 뒤이은 혼란은 어둠의 세력에 먹잇감을 제공했고, 결국 세상을 피비
린내 나는 세계전쟁으로 또다시 몰아넣었다. 이때에도 아이다는 여전히 살아 있었으며 1944년에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이 이룬 연구 업적과 걸어온 자취에는 엄중한 경고가 담겨 있다. 자본주의의 이 커다
란 암 덩어리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기업 유치라는 이름의 제 살 깎아먹기 경쟁
아마존은 2017년 본사를 하나 더 세울 계획이라고 발표하면서 통합우대정책으로 입찰에 응해 달라고
여러 도시에 요청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총 238개 지역에서 ‘제2본사(HQ2)’ 사업에 응찰했는데, 가
장 높게 제안한 곳이 메릴랜드였다. 세액 공제와 다른 혜택을 포함해 무려 80억 5000만 달러를 제시
했다. 정작 아마존은 이 사업에 예상 비용으로 50억 달러를 책정한다고 했는데도! 더구나 메릴랜드는
작은 주다. 설사 낙찰을 받는다 해도 수많은 아마존 직원은 주변의 다른 주에서 올 수밖에 없다.
아마존의 예는 제 살 깎아먹기 경쟁에 대해 2가지 중요한 점을 더 보여준다. 첫째, 이 경쟁은 0에서도
멈출 줄 모른다. 일단 납부할 법인세가 없어지면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 그리고 보조금과 판매세ㆍ
급여세 인하나 다른 금융 꼼수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한없이 불어나는 산더미 같은 부가 납
세자에게서 빠져나와 한없이 커지는 기업한테로 넘어간다. 주 경계를 넘나드는 대기업 경영자와 부자
가 그 나머지에 속하는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어느 정도까지 무임승차하기를 바라는지, 말 그대로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다. 세금을 깎아라, 보조금을 달라, 아직도 배고프니 더 내놓으라, 요구사항이 점점
늘어난다. 놀이터에서 동네 꼬마를 협박하는 불량배처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둘째, 승자의 저주다. 이 개념은 경매에서 흔히 보는 현상으로 낙찰자가 필요 이상으로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자신이 응찰한 대상의 가치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자신이 무엇을 내주는지 모르기 때문
이고, 사기를 당하거나 협박에 못 이기거나 유혹에 넘어가서 지나치게 많이 지불하기 때문이거나 남의
돈을 만지고 있어 그 비용에 전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 한 상세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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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존의 HQ2 사업처럼 기업의 대형 거래를 쫓는 일을 경제발전 부문에서는 물소 사냥이라고 일컫는데,
일자리를 한 개 직접 창출할 때마다 미국의 주정부가 평균 65만 8000달러의 비용을 부담했다. 주정부
가 대형 거래를 성사하면 대체로 손실을 낳는다는 말이다. 기술정보 분야를 중심으로 살피면 일자리
한 개당 평균 비용이 200만 달러였다. 이와 반대로 미국의 주정부는 직업훈련계획에 노동자 한 명당
600달러도 쓰지 않았다. 이 계획이 일자리 창출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평판이 자자한데도.
국가가 기업처럼 될 수 있다는 허튼소리
여기에서는 정책 입안자에게 커다란 질문을 세 가지 던진다. 첫 번째 질문, 감세를 비롯한 여러 혜택
이 외지의 사업 투자를 우리 지역에 끌어들이는가? 대답은 꽤 자명하다. 때에 따라서는 그렇다는 것이
다. 1969년 프린스턴 대학 교수인 월리스 오츠가 논문을 발표한 뒤로 이 문제를 되풀이해서 측정하고
확인했는데, 미국 주정부 차원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 차원에서나 일어난다.
두 번째 질문. 주정부나 국가가 사업과 사람을 끌어들이려고 경쟁을 벌일 때 대체로 세상에 이로운가?
아니면 경쟁에 뛰어든 주끼리 제 살이나 깎아먹는 해만 끼치는가? 신자유주의자들은 노스웨스턴대학
교수인 찰스 티부의 엉뚱한 생각을 이용해서, 이 같은 ‘경쟁’이 유익하며 효율성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결국 호소력 있는 간결한 한마디로 요약된다. 경쟁은 좋다. 그리고 기업에 잘 들으면
국가에도 잘 듣는다. 주정부와 국가도 사업체인 양 경쟁을 해서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학문적
신뢰성을 부여한 이들은 티부와 오츠와 시카고학파였다. 그리고 이 생각은 세상을 바꾸어 놓을 만큼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티부의 주장에는 한 가지 결함이 있다. 완전히 허튼소리라는 점이
다. 티부조차도 자신의 모형에 현실성이 없다고 인정했다.
세상에 불평등이 깊어지는 때에 이런 종류의 ‘경쟁’은 항상 그리고 일반적으로 해롭다. 경쟁은 다국적
대기업에, 세계적인 은행에, 부유한 개인과 요동치는 자본의 소유자에게 보상을 준다. 그래서 이들은
수익도 자신도 쉽게 국경을 넘나들게 하고, 가장 짭짤한 거래와 가장 싼 세금, 노동조합 조직률이 가
장 낮은 노동자와 재정 활동에 대해 입이 가장 무거운 자, 금융규제가 가장 느슨한 곳을 찾아다니며
주정부가 지원금을 주지 않으면 다른 데로 가 버리겠다고 협박할 수 있다. 내가 정책 입안자에게 던지
는 세 가지 질문에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제 분명하다. 주정부 사이에서 법인세를 두고 벌
이는 ‘경쟁’은 실로 제 살을 도려내는 경쟁이며, 불평등을 심화하고 대체로 세상에 해악을 끼친다.
세 번째 질문은 좀 더 거창하다. 솔직히 역대 가장 커다란 경제학 문제다. 바로, ‘경쟁’이 제 살 깎아먹
는 해로운 경쟁이어서 대개 세상을 다치게 하든 말든, ‘우리’ 국가나 주정부가 ‘경쟁’에 나서는 일을 지
역이기주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까? 르넥사의 상공회의소 회장인 블레이크 슈렉은 자신이 사는 지역
에서는 적어도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 소신이 다소 약해진 듯 보인다. 국가가 법인
세나 금융규제 같은 부문에서 ‘경쟁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많은 이에게 그럴듯하게 들린다. 사실
이 생각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영국의 주요 국내경제 전략에서 토대를 이루어 왔다.
하지만 이 신념체계는 완전 잘못되었다. 티부의 이론처럼 이 신념 체계를 받치는 토대는 경제학의 기
본 오류이며 학생이 어이없이 적어낸 오답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국가는 경제에 아무런
불이익도 입히지 않고 실은 오히려 국가에 순편익을 안기면서 이 시합에서 일방적으로 손을 뗄 수 있
다. 이웃을 거지로 만들려다가 실상 스스로 쪽박 차는 신세가 된다. 이런 시합은 남들이나 하게 놔두
자. 왜 그런지 살펴보려면 수면이 비교적 잔잔한 미국의 일개 주와 사업계를 떠나 더 거칠고 사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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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험난한, 전 지구를 휘도는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영국이 이 시합을 좀 더 냉철하고
숨 돌릴 틈 없이 무자비하게 치르기 위해 어떤 주요 경제 정책을 결정했는지 그 실상과 대면한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세계 경제에 엄청난 폐해를 야기했다. 그러고도 빈털터리가 되었다.

악의 소굴이 된 제국의 심장
대영제국의 영광을 이끈 주역
수백 년 동안 시티오브런던은 현금을 퍼 올리는 대영제국의 심장부 역할을 하며 지금까지 고안한 부의
수탈 체계 가운데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체계를 운영했다. 영국 해군 소속 함정은 동인도 회사처럼 시
티오브런던에 기반을 둔 약탈집단을 오랫동안 떠받쳤다. 시티오브런던이 이 같은 제국의 모험을 지지
한 핵심 이념은 자유, 무엇보다 금융과 무역이 아무런 제제도 받지 않고 국경을 넘나들 자유였다. 시
티오브런던이 이 이념에 바치는 헌신은 너무나도 열렬해서 곧 제국의 비공식 종교가 되었다.
“자유무역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곧 자유무역이다”라고 존 보링 경은 선언했는데,
보링 경은 영국이 중국 시장을 억지로 열어 자국의 상품과 서비스를 팔려고 할 때 영국령 홍콩 총독을
지낸 인물이다. 1839년 영국은 1차 아편전쟁을 일으켜 승리했다. 당시 중국은 영국이 산업적 규모의
아편을 중국으로 수출하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다. 1856년 중국이 이를 다시 거부하자 보링 경이 영국
해군에게 광둥을 포격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2차 아편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에서도 패한 중국은
문을 활짝 열 수밖에 없었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열강은 중국에 자유무역 체제를 강요했다.
금융과 관련한 일이 다 그렇듯 시티오브런던이 제국을 위해 한 역할도 선과 악이 분명한 단순한 이야
기가 아니었다. 무력을 앞세운 온갖 약탈과 더불어 시티오브런던은 전 세계에 걸쳐 철도와 도로, 여러
사업과 서비스에 자금을 댔다. 네이선 로스차일드의 말처럼 런던은 “전 세계를 호령하는 은행이었다.”
이 세계전망이 토대가 되어 영국은 관대하게 다문화주의를 용인했다. 덕분에 수백 년 동안 런던은 지
구상에서 가장 다양하고 흥성한 도시가 되었다. 그런데 시티오브런던으로 흘러든 부는 영국에 이익을
주지 않았다. 영국 내 일부 이익집단에게만, 다른 이들을 빈번히 희생하면서 이익을 안겼다.
금융과 다른 경제 부문 사이에 존재하는 충돌과 긴장은 무수한 형태로 일어났다. 예를 들어 해외로부
터 외화가 대량으로 유입하면 국내 통화가치를 밀어 올릴 수 있다. 그래서 국제 계약에서 지역 생산품
의 가격이 더 높아져 수출업자와, 대개는 런던에서 먼 영국 내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이들
의 역량에 타격을 입힌다. 또는 자유무역을 고수할 수도 있다. 수입과 수출 양쪽에 조력하며 수익을
얻는 시티오브런던 일파에게는 자유무역이 이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유무역은 지역 사업가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다. 지역 사업가는 무역 장벽으로 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무역장벽이 값싼 외
국산 수입품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미사여구를 늘어놓지만 보호무역주의는
영국과 미국, 일본과 한국, 그리고 여러 국가에서 산업화를 성공으로 이끈 핵심 전략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국외에 집중한 시티오브런던이 오랫동안 국내 산업계와 사업계에 자금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런던 이외 지역에 그랬다. 영국의 지방 사업가는 지역이나 지방의 경
로를 통해 아니면 유보이익을 통해 투자자금을 구했다. 시티오브런던이 누리는 우월한 지위 때문에 대
중의 뇌리에서 이 사실이 지워져 버렸다고 역사가 피터 케인은 설명한다. 공업 지역의 하원의원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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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리에서 일어나 지역구를 언급하면 지역 유권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시티오브런던의
하원의원이 의사당에 서면 국가를 위해 말하는 듯 여겨진다. 이런 사고방식이 계속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탈피하기가 무척 어렵다.” 한편 제국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즉 영국의 간계, 외교,
자금, 무력이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이때 영국은 나치 독일을 방어하는 데 모
든 국력과 자금을 쏟아 부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날 무렵 세계 주요 국가들이 브레턴우즈 협정을 설계
하고 조직할 때 주도권이 결정적으로 대서양을 건너 워싱턴으로 옮아갔으며, 케인스와 영국 기득권층
은 자칭 세계 경제활동의 중심지로서 영국의 지위를 회복하는 방식으로 이 새로운 체계를 짜려고 시도
했으나 실패했다. 이 무렵 제국은 빈 껍데기였으며 이제 파삭 부서질 일만 남아 있었다.
생선은 머리부터 썩고, 권력은 돈에서 나온다
20세기 후반 대영제국이 붕괴하면서 시티오브런던은 군함과 국가공무원을 이용해 외국에서 부를 뽑아
오는 능력을 잠시 잃었다. 하지만 해외령 조세 도피처가 유로마켓과 이어지면서 부를 수탈하는 마력을
되찾았다. 런던시티대학의 로넌 팰런 교수는 처음으로 조세 도피처를 심각하게 바라본 학자로 이 거미
줄을 일러 “오늘날 금융시장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두 번째 대영제국”이라고 말했다.
금융으로 쌓아올린 이 두 번째 제국은 전 세계에 걸친 푼돈의 거미줄의 중심에 런던을 거느리고 있는
데, 여러 특징이 옛 대영제국과 일맥상통한다. 첫째, 이 도피로가 지닌 자유주의적 특성은 옛 제국이
열렬히 혼신의 힘으로 전파하던 자유의 복음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따라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
도 그렇듯 감시에서 벗어난 자유 때문에 이런 역외 장소가 불법행위를 용인하는 도피처로 바뀐다. 아
니나 다를까 범죄자가 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모여들고 감시가 없는 공간에서 돈을 거래한다. 여름에
소풍을 가서 딸기잼 병을 열면 어디선가 말벌이 붕 나타나는 모습과 같다. 법이 신중하게 초안을 짜서
비밀을 최대한 보장하고, 마약자금이 가득 든 밀봉상자가 케이먼제도나 파나마로 흘러들어오면, 경찰
이 직접 이 상자를 공항부터 지역 은행까지 안전하게 호송한다.
영국령 조세 도피처에서 이처럼 돈에 자유방임주의로 접근하는 태도는, 단지 마약 거래와 조직범죄 수
익금을 다루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형 금융 거래에까지 이어졌다. 이 해외령은 은행 활동에 막강
한 자유를 보장하는 지역이다. 유로마켓에서 돈은 싹을 안에 품고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주류 경제 체
계 내의 금융안정성을 해치며 빠르게 변이를 일으키는 새로운 위험요소를 내뿜었다.
두 얼굴을 지닌 역외 사업 모형에서 문제점은, 이런 활동을 주관하고 조장하는 영국 같은 국가의 입장
에서 보면 이 검은돈과 범죄행위를 통제해 다른 경제활동과 민주주의와 사회에서 안전하게 격리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이 두 요소가 서로 만나 뒤얽힐 가능성이 가장 큰
데가 우리 정치체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돈도 많을뿐더러 최고 권력도 쥔 사회구성원이
모여 있는 곳. 당연한 소리지만 이들이 조세 도피처의 귀빈이기 때문이다.
속담에도 있듯이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 역외 금융에 기대 국가 경제 전략을 짜면 역풍은 당연히 피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역풍을 맞아 영국 지배층이 범죄자라는 낙인을 안는 길은 주로 네 가지다. 가
장 부유한 최고 권력층이 범죄자와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하거나, 지배계층에게 끊임없이 유혹의 손길
을 보내 범죄를 저지르게 하거나, 범죄자가 부자가 되어 지배층이 되거나, 규제나 법을 쉽게 피하면서
면책문화를 퍼뜨리고 법 위에 존재한다는 의식을 심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설명으로 조세 도피처에
대해 많은 이들이 어리둥절해하는 문제에 대답할 수 있다. 어째서 정부는 이 금융 매춘굴을 뒷짐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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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보고만 있을까? 손꼽히는 미국세금전문가 리 셰퍼드는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이
렇게 정리한다. “우리는 조세 도피처를 두고 야단스럽게 떠든다. 이런 행위가 불법이라고 아우성친다.
하지만 우리는 닫을 수 없다. 아직 그곳에 마을 어르신들이 있기 때문이다. 옹구바지를 입고서.” 이 때
문에 우리는 이 해외령이 지닌 두 번째 중요한 특성과 맞닥뜨린다. 영국령 조세 도피처의 전문가인 프
렘 시카의 말을 옮기면 해외령은 모두 “고용된 입법기관이다.” 옛 식민지처럼 해외령의 정치 경제 발
전은 대개 그 지역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외국의 이익집단이 좌우한다. 그리고 조세 도피처인 경우 이
는 곧 뿌리 없는 외화를 가리킨다. 영국의 국가기록보관소에 있는 1969년 보고서는 이 특성이 영국령
에서 얼마나 급속도로 발전했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누가 금융위기를 불렀나
월스트리트와 시티오브런던, 누가 더 흉악한가
2012년과 2013년 미국의 고위 금융단속관인 개리 겐슬러는 두 차례 연설에서 세계 금융위기가 남긴
잔해를 파헤쳤는데, “역외 사업체에서 사업을” 복잡하게 운영한 금융기관 때문에 “미국 경제가 거의 무
너질 뻔 했습니다”라고 피력했다. 그리고 역외 관할구역이라는 특정한 배경이 작용했다고 속으로 가늠
하고 있다면서 이 사태로 발생한, 잘 알려진 환란 사례의 목록을 차례로 나열했다. 우선 미국 금융과
보험계의 거대 기업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이 있었다. AIG는 AIG 금융상품개발이라는 자유분방
한 부서 때문에 무너졌는데, 이 부서는 런던의 메이페어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운영했다. 2008년 AIG
에 수혈한 긴급구제자금 1800억 달러는 미국 역사상 사기업에 들인 가장 큰 액수였다.
베어스스턴스도 예로 들었다. 베어스스턴스는 케이먼제도에 설립한 두 투자펀드 때문에 파산에 이르렀
다. 그리고 리먼브라더스와 런던에 기반을 둔 리먼브라더스 파생상품 사업이 있었는데, 이 파생상품이
리먼브라더스가 막을 내리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시티그룹도 있었다. 구조화 투자전문회사(SIV)
를 세우고 자산과 위험을 재무제표 밖으로 옮겨 투자자와 단속관의 눈을 피했다. 하지만 막상 파산이
닥치자 미국 납세자가 2차례에 걸쳐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긴급구제자금을 떠안았다. 겐슬러는 물었다.
“그럼 저 SIV는 어디서 출발했을까요? 런던입니다. 어디에 설립했을까요? 케이먼제도입니다.”
10년 전쯤 장기자본 투자운용사(LTCM)를 소재로 한 대하소설 같은 이야기가 세간에 오르내렸다. 코네
티컷에 기반을 둔 이 헤지펀드회사의 파생상품 약정에 1조 2000억 달러가 물려 있었는데, 일이 틀어
지면서 어마어마한 미국의 긴급구제자금을 불러왔다. 겐슬러의 말에 따르면 “이 사태가 우리 금융 체
계에 어떤 파문을 어디에 던질지 몰랐습니다. 이 사업을 케이먼제도에서 기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
고 JP모건체이스가 입힌 수십억 달러투자 손실도 있었다. 영국 지사에서 ‘런던 고래’로 알려진 한 중개
인이 신용부도 스와프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겐슬러는 엔론 사태를 언급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엔론은 금융화한 미국의 에너지회사로 2001년 무너졌을 당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부도였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케이먼제도와 그보다 혼탁한 터크스케이커스제도의 금융회사 수백 군데에
보이지 않게 자산을 숨겨두고 있었다. 알다시피 두 제도 모두 영국의 해외령이다.
매번 영국과 그 위성 같은 조세 도피처는 경기가 좋을 때엔 영업활동으로 알짜만 속속 골라 챙기고 위
험이 결국 재앙으로 번지면 “그 자리에서 바로 뒤돌아와 우리 해안에 굉음과 함께 부딪쳐 버립니다.
미국 납세자가 JP모건에 긴급구제자금을 쏟아부으면 JP모건은 다시 저 런던 사업체에 이 자금을 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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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란히 바쳤습니다.”라고 겐슬러는 말을 이었다. 캐럴린 멀로니 미국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정리했다.
“불온한 모형처럼 말 그대로 금융투자 재앙의 진원이 된 런던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시티오브런던의 투자분석가는 이 혐의에 반박하는 보고들을 내놓았다. 런던에 기반을 둔 한 투
자운용사의 책임자는 미국 금융계도 런던만큼이나 악당이 들끓고 있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그 사이 월
스트리트가 뿜어내는 박쥐동굴 같은 공포에나 익숙한 미국 금융전문가들은 비틀스와 다이애나 황태자
비, 홍차와 여왕의 나라가 그렇게 형편없으리라는 생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전혀 짐작
도 하지 못했다. 혐의는 시야 밖으로 가물가물 사라졌다. 하지만 겐슬러의 지적은 중요하다. 영국과 시
티오브런던이 금융규제 측면에서 월스트리트보다 얼마간 더 ‘흉악하기’ 때문에 세계 금융 붕괴에 더 무
거운 책임이 있을까? 대답이 ‘그렇다’라면 이는 저 금융위기를 에워싼 침묵 가운데 가장 중요할 수 있
다. 그리고 그 대답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다’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이제는 누구나 런던과 그 역외 위성들이 세계시장을 조직범죄와 부패, 탈세와
약탈한 재산의 해외은닉이 판치는 온상으로 변질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떠맡으며 앞장서 있음을 알
고 있다. 1970년대에 서로 협력하며 금융을 관리하던 브레턴우즈 체계가 무너지고 난 뒤, 런던이 연
유로마켓은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1980년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유로마켓에 대해 거의 말
하지 않았다. 자본이 좀 더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흐를 수 있게 되면서 유로마켓과 국내 경제 체
제 사이에 의미 있는 구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런던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금융망이 여러 방
법을 찾도록 유도하면서 규제에서 자유로운 역외 금융탈출로 같은 제물을 배로 늘렸다.
세계 금융이 성장함에 따라 세계의 범죄 물결이 거세지는 데 영국이 기여하는 역할에 일대 전환이 일
어났을 뿐 아니라 세계 금융위기로 이끈 잇단 변화에서 중심을 차지했다. 두 영역에서 런던과 그 거미
줄 금융망은 다른 나라의 금융 체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크게 두 방면이었는데, 첫째는 탈출로를 제공
하면서이고, 둘째는 ‘경쟁력’ 공성망치를 휘두르면서, 즉 ‘당장 시행하라, 그러지 않으면 런던으로 떠나
겠다’ 노선에 따라 미국에서 더욱 강력한 규제 완화를 정당화하는 본보기와 위협을 월스트리트 로비스
트에게 제공하면서이다. 영국 금융망은 뉴욕을 세계 규제 완화 시합으로 이끌었다. 그러는 동안 취리
히와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몇몇 역외 금융 중심지가 지원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이 월스트리트에 포획
된 것보다 영국이 시티오브런던에 더 꼼짝없이 ‘포획될’ 수밖에 없다. 세계 금융의 두 중심지는 규모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월스트리트는 훨씬 폭넓은 민주주의로 세력이 약했으며 영국 지배계층에서 시티오
브런던이나 그 조직이 누려 온 수백 년이나 되는 역사적 뿌리도 없었다.
미국의 전 은행감독관인 빌 블랙은 3가지 D-규제 완화(deregulation), 감시 완화(desupervision), 사실
상의 금융기업 불법화(de facto criminalisation of financial firm)-가 금융위기를 키웠다고 말한다. 그 결
과 부당한 대출관행을 비롯해 여러 폐해를 낳았다. 그리고 미국 내 역내 규제 완화 그 자체도 해롭지
만, 특히 블랙이 ‘반규제 기관’이라고 부르는 런던의 규제기관이 이끄는 제 살 파먹는 규제 완화 경쟁
이 훨씬 파괴적이었다. 2012년 블랙은 내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맹세컨대 런던은 규제 완화 경쟁에서
미국에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때문에 런던이 세계 금융의 시궁창이 된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려 한다. 위험한 금융 파생상품이나 그림자금융 사업체와 활동으로 금융위기를
키운 이 혈기왕성한 세계는 더욱 난폭한 범죄행위와 결탁하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BCCI와 콜롬비아
마약자금과 국제 조직범죄가 손잡은 역외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금융위기와 범죄는 보지도 듣지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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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하지도 말라는 똑같은 역외 규제 완화 ‘경쟁’ 이념에 따라 똑같은 영국 지배층이 본질상 똑같은 결정을
내린 결과였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는 돈을 런던으로 끌어들이는 게 목적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매우
다른 흐름이지만 동시에 나타났으니 우리도 함께 묶어 이해해야 한다.

맺는말 - 부의 약탈자와 창출자,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금융의 저주를 물리칠 똑똑한 자본통제
우리에게는 부패한 현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하다. 경쟁당국이 어떻게 했기에
우리 경제를 파산으로 몰아간 대마불사 은행이 금융위기 전보다 규모를 더 키워낼 수 있을까? 단층선
처럼 이해충돌을 일으키면서도 세계 4대 회계법인은 어째서 해체되지 않을까? 아마존이나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독점 기술기업을 어째서 일반 대중의 이해에 맞춰 실질적으로 규제하지 않고 뒷짐만 지
고 앉아 있을까? 광고 수익 대부분이 온갖 정보와 내용물을 힘들게 제작한 이들의 손에서 빠져나가 미
디어그룹과 조세 도피처로 흘러들어 가는데도 ‘중개 독점기업’을 어째서 용인할까? 이 때문에 힘과 자
금이 막강한 이익집단이 세계 공급사슬에서 중요한 요충지에 자리를 잡고는 베블런이 말한 ‘지나가는
파리만 잡아먹는 욕심 사나운 두꺼비’처럼 관계망 속의 나머지 회사에서 부를 수탈해 가는데도?
물론 변화를 불러오기란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조직적으로 저항해 나가지 않는 한 변화는 어림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 금융의 저주에 맞설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 요컨대 이 같은 경쟁력 강
령이 제시하는 길과 정반대이며 ‘똑똑한 자본 통제’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 목표는 나라 ‘밖으로’ 나가
는 자본 흐름을 지나치게 통제하지 않고, 나라 ‘안으로’ 들어오는 요소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통제는 대개 국경에서 자본 흐름을 막는 장애물의 형태가 아니며, 위험한 성격을 지닌 세계 자금
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해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마련하는 정책의 형태를 띤다.
예를 들어 수십 억 달러의 자금이 옛 소련 공화국들에서 영국의 부동산시장으로 몰려든다고 해도 영국
전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유한 주택보유자가 더 부자가 되었다고 흡족해하거나 부동산중개
인과 시티오브런던의 은행가에게 뜻하지 않은 수익을 안겨줄 뿐, 다른 사람들을 부동산시장 밖으로 쫓
아낸다. 그리고 경기가 호황과 불황을 급작스럽게 오간다거나 돈 많은 외국인 소유자가 정치를 부패로
얼룩지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든가 하는 여러 위험을 낳는다. 하지만 이런 유입을 통제하는 정책은 부
동산시장에 특정 투자 유형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부터 철저하게 투명성을 확보해 영국 내 모든 부
동산의 수익소유자 이름을 공개에 부치거나 토지가치세를 부과하는 것까지 범위가 넓다.
특히 기초토지 1제곱미터당 가치를 따져 부과하는 토지가치세는 영국에 땅을 소유하고 있는 부유한 외
국인에게서 세수의 물꼬를 트게 해, 기초소득과 같이 누구나 공감하는 사회적 우선순위 정책으로 돌릴
수 있다. 올바르게 마련한다면 토지가치세는 아무도 피할 수 없다. 토지가 철통방어를 자랑하는 쿡아
일랜드 신탁의 보호를 받고 있더라도 누군가 땅을 소유하거나 관리하거나 수익을 얻고서도 매년 올바
르게 세금을 내지 않으면 땅을 (혹은 그 일부를) 몰수하고 집행관을 파견하면 된다. 이런 ‘똑똑한 자본
통제’는 주택시장이 다시 균형을 잡고 과잉과 과소를 오가는 주택공급이나 빈집 수를 줄이고 불평등을
막고 잠재적인 범죄요소를 우리 시장에서 몰아낸다.
이와 별개로 똑똑한 방법을 찾아 폭력적인 사모투자회사에서 영국으로 들어오는 자금 흐름을 막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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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있는데, 이 내부 투자가 생산력 높은 경제 토대를 약탈하고 파괴하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면, 이것을
제거해야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다. 똑똑한 자본통제로 약탈을 정당화하는 감세 조치와 유인책을 없애
고 영국에 생산력을 향상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진정한 투자의 길이 활짝 열릴 수 있다.
똑똑한 자본통제 정책은 또한 런던이 위안화 거래를 위한 역외 중추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영국의 정책 입안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개체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런 거래가 영국 경제에 금융의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기 때문이다. 또 금융의 저주가 보여주
듯 금융이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면 결국 우리에게 해롭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똑똑한 자본통제는 대
형 은행 내에서 늘어난 자본 안전 완충지대를 선호하기에, 시티오브런던의 수익이 줄어들더라도 금융
부문이 좀 더 안전을 확보하고, 납세자의 비용으로 도박을 거는 무모한 성향을 낮춰 대체로 나라에 이
익을 안긴다. 영국이 지배하는 조세 도피처에 철저한 투명성을 강제하고 세계적인 은행과 다국적기업
을 위해 규제나 조세 체계에 구멍을 뚫지 못하도록 하면 그 혜택은 고스란히 영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요컨대 우리는 부정부패를 뿌리 뽑고 단점을 몰아내고 장점을 지켜내야 한다. 금융의 저주가 보여주다
시피 영국 경제는 그 결과 더욱 탄탄하게 성장해 나가며 여러 다른 방면에서 이익을 얻는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쉽지’ 않다. 단기간에 그치겠지만 혼란과 정치적 후퇴를 낳을 수도 있다. 그리
고 자본은 자유롭게 이동한다는 유럽인의 신조는 몇몇 진보적인 조치를 방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겨낼 수 있다. 지금까지 경쟁력 강령은 정신적 장벽이 되어 사람들이 변화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시티오브런던을 보호해 왔음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경제 번영 사이에는 이율배반
적 요소가 있으며 따라서 민주주의가 시티오브런던에 해로워 우리 번영을 망가뜨린다고 여기지만, 이
는 틀렸다. 금융의 저주로 이 강령이 억만장자에게나 유리한, 곧 허물어질 속임수라는 사실이 밝혀졌
다. 역량 있는 경제학자라면, 이 같은 경쟁력 담론이 어리석기 짝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수백
만 국민도, 이 경쟁력 담론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 의견이나
주류 언론으로 판단하건대, 나라에서 힘깨나 쓰는 이들은 대부분 아직 진실을 모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정책은 쉽사리 허물어진다. 금융의 저주 분석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도구를 손에 잡을
수 있다. 민주주의가 성숙하면 번영을 구가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시티오브런던의 규모가 축소되
어 제 기능을 회복한다. 이 장벽을 부수면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이 열리며 탁 트인 전망을 보여준다.
변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정치활동을 하거나 영향력
있는 개혁단체에 기부를 하거나, 시위에 참여하거나(시위에 나가면 ‘금융의 저주 깨부수자’라고 또렷하
게 쓴 현수막을 볼 수 있다). 소극주의의 시대는 지나갔다. 페이스북 전사만으로는 이제 더 이상 성이
차지 않는다. 우리가 글을 띄우는 지인들은 이미 우리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우리 가운
데 다른 누군가를 설득해 비대한 금융 중심지가 퍼뜨리는 위험을 깨닫고 진심으로 생각을 바꾼다면,
벌써 크나큰 이바지를 한 셈이다. 좌파와 우파 사이에 놓인 오랜 정치적 간극은 케케묵은 과거의 잔재
다. 오늘날 영국에서 가장 첨예한 정치적 대립은 금융화와 금융의 저주를 지지하는 편파 금융을 제자
리로 돌려놓고 사회를 섬기기를 바라는 편 사이에 놓여 있다. 자, 어느 편에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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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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