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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체 - 플라톤

by Casey,Riley 2020.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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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체

실재에 대한 관상(觀想)이 어떤 즐거움을 지니는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배우는 혼의 즐거움이 가장 크며, 이 부분을 지배하는 사람의 삶이 가장 즐거운 삶이다.

플라톤 지음

국가정체(政體) Politeia

플라톤 지음

 

저자 플라톤(B.C 428/7 - 348/7)

고대 희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카데미아를 세워 많은 제자를 양성하는 한편 숱한 철학 명저를 남겼다.

 

우스개 소리 즐긴 엄격한 원칙주의자

플라톤의 대화편인 테아이테토스는 소크라테스가 유명한 수학자인 테오도로스로부터 그의 애제자였던 테아이테토스를 소개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테오도로스는 그의 제자인 테아이테토스를 칭찬하면서 그가 소크라테스처럼 들창코에 퉁방울 눈을 하고 있으니 그의 외모에 혹해서 이런 칭찬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못생긴 걸로 유명했기 때문에 듣기에 따라서 이 말은 소크라테스를 점잖게 놀린 셈이 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테아이테토스더러 곁에 앉으라고 하면서 나를 닮았다고 하니 자네를 보면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겠군하고 나서, “과연 누가 무엇이 닮았다고 한다면, 그냥 그 말을 무턱대고 믿을 것인지, 아니면 그 말을 한 사람이 그 방면의 전문가인지를 먼저 따져봐야겠느냐?”고 되묻는다. 이 질문은 곧 누가 무엇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으로 이어져 테아이테토스편은 인식론의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는 골치 아픈 대화편으로 꼽힌다.

 

이 일화를 보면 객쩍은 농담을 철학적 문제로 이끌어 가는 소크라테스의 솜씨도 놀랍지만, 자신을 놀리는 말에 화내지 않고 되려 천연덕스럽게 다른 농담으로 눙치고 드는 그의 농담 솜씨도 여간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등장인물은 소크라테스지만 정작 이 대화편을 쓴 사람은 플라톤이어서 소크라테스의 성격에는 역시 플라톤의 성향이 적잖이 들어있다고 보아야 옳다. 이 대화편뿐 아니라 플라톤이 쓴 모든 대화편에는 거의 빠짐없이 격이 떨어지지 않는 농담이 있어서 읽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시라쿠사이에서의 이상사회 연습

다른 한편 플라톤은 아주 엄격한 원칙주의자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일찍이 극작가가 되기를 꿈꿨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시적 영감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이런 그의 문학적 성향은 그의 대화편들 곳곳에 스며 대화편들을 단지 철학적 명저로서뿐 아니라 서양 문학 사상의 걸작으로 자리잡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국가정체에서 자신이 상상으로 생각한 나라에 시인이 필요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자신이 누구 못지 않게 사랑했을 시인 호메로스를 비판하고 그를 위시한 시인들을 그의 나라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한다. 시는 아름답기는 하나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자칫 그 아름다움에 현혹돼 이성을 그르칠 우려가 있으므로 시를 추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국가정체에서 우리의 조선시대 이상으로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당시 아테네 상황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남녀의 동등한 능력을 주장했다. 이는 그가 특별히 여성의 인권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단지 여성과 남성을 능력면에서 구분되는 종으로 볼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철학적 원칙과 그 정당한 결론에 엄격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철학을 현실에 실천하는 데도 엄격한 철학자였다. 그의 국가정체에 나오는 나라는 사실 이상적인 형태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 있는 그대로 적용되기는 힘들었다. 그도 역시 이 사실을 알았고, 이를 현실적으로 보완하고자 말년에 죽는 순간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법률편에서 좀더 현실적인 국가 형태를 제시했다.

 

그런데 그가 젊은 시절 여행 중에 알게 되었던 디온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조카인 디오니소스 2세가 형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하자 플라톤에게 편지를 보낸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제시한 이상 국가를 바로 자신의 조카가 왕으로 있는 시라쿠사이에서 실현하자는 요지였다. 플라톤은 두 차례에 걸쳐 시라쿠사이로 가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으나 왕을 둘러싼 정치꾼들의 음모에 휩쓸려 그의 기도는 모두 실패하고 만다.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현실적으로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의 철학적 실천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라쿠사이의 실험 이후 플라톤은 그의 철학적 활동을 계속해서 소크라테스가 남겨 놓은 사상을 더욱 확충해 우주와 인간의 실천의 통일을 티마이오스에서 탐구하고 거기서 발견된 우주의 법칙을 현실 세계의 법률로 실현해 이상국가를 구현하고자 한 법률을 마지막으로 80세의 생을 마감한다.

 

플라톤의 저술

플라톤의 저술은 크게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그대로 전하는 경향이 강한 대화편들은 초기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면서 형상이론을 제기한 대화편들은 중기에, ‘형상이론에 대한 반성과 함께 재구성을 시도하면서 형상들끼리의 결합에 관련된 문제를 다룬 대화편들은 후기에 속한다.

 

40세 정도까지를 전기로 보는데, 여기에 속하는 저술은 소크라테스의 변론(변명),크리톤,에우티프론,카르미데스,라케스,()히피아스,이온,프로타고라스,리시스,() 히피아스,에우티데모스,메넥세노스,고르기아스,국가정체(1) 등이다.

 

중기 60세까지는 메논,크라틸로스,파이돈,향연,국가정체(2-10),파이드로스,파르메니데스,테아이테토스등을 발표했고, 그후 80세까지 티마이오스,크리티아스,소피스테스,정치가,필레보스,법률등을 저술했다.

 

국가 정체의 내용 구성

1(1) 올바름에 대해 통용되는 몇 가지 견해

1(327-331 D) 케팔로스. 말과 행위의 정직으로서 올바름

2(331 E-336 A) 폴레마르코스. 친구를 돕고 적을 해치는 것으로서 올바름

3(336 B-347 E) 트라시마코스. 강자의 편익으로서 올바름

4(347 E-354 C) 트라시마코스. 올바름보다 올바르지 못함이 더 이익이 될 수 있는가?

 

2(2-4445 B) 나라와 개인의 올바름

5(357 A-367 E) 공인된 문제

6(367 E-372 A) 사회 조직의 기초

7(372 A-374 E) 호사스런 나라

8(375 A-376 E) 수호자의 성정

9(376 E-412 B) 수호자의 일차 교육

- 1(376 E-392 C) 교육 목적을 위한 문학의 검열제도

- 2(392 C-398 B) 희곡 암송의 영향

- 3(398 C-400 C) 음악 반주와 운율

- 4(400 C-403 C) 시가와 음악의 교육 목적

- 5(403 C-412 B) 체력 단련. 의사와 판관

10(412 B-421 C) 통치자 선발: 수호자의 생활 방식

11(421 C-427 C) 통치자의 의무들

12(427 C-434 D) 나라의 덕목들

13(434 D-441 C) 혼의 세 부분

14(441 C-445 B) 개인의 덕목들

 

2부 첨가(4445 B-5471 C) 여성의 지위와 전쟁의 관례

15(445 B-5457 B) 여성의 평등

16(457 B-466 D) 수호자 가족의 폐지

17(466 D-471 C) 전쟁의 관례

 

3(5471 C-7) 철인왕

18(471 C-474 B) 역설: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

19(474 B- 480) 철학자의 정의. 두 개의 세계

20(6484 A-487 A) 통치에 대한 철학자의 적합성

21(487 B-497 A) 철학의 본성은 왜 무용하거나 실제 사회에서 타락해 있는가?

22(497 A-502 C) 철학의 통치자는 불가능이 아니다.

23(502 C-509 C) 지식의 최고 대상으로서 좋음

24(509 D-511 E) 인지의 네 단계. 선분

25(7514 A-521 B) 동굴의 비유

26(521 C-531 C) 고등 교육 수학

- 1(524 D-526 C) 산술

- 2(526 C-527 C) 기하학

- 3(527 D-528 E) 입체 기하학

- 4(528 E-530 C) 천문학

- 5(530 C-531 C) 화성학

27(531 C-535 A) 변증술

28(535 A-541 B) 학문의 과정

 

 

4(8-9) 사회의 쇠퇴와 혼의 쇠퇴. 올바른 삶과 올바르지 못한 삶의 비교

29(8543 A-550 C) 이상적인 나라의 몰락. 명예 지상 정체와 명예 지상 정체적인 사람

30(550 C-555 B) 과두 정체(금권 정체)와 과두 정체적인 사람

31(555 B-562 A)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적인 사람

32(562 A-9576 B) 참주 정체와 참주 정체적인 사람

33(576 B0588 A) 행복의 관점에서 비교된 올바른 삶과 올바르지 못한 삶

34(588 B-592 B) 올바름, 즉 부정하지 않음은 이익이 될 수 있다.

 

5(10, 595 A-608 B) 철학과 시가의 분쟁

35(10595 A-602 B) 어떻게 예술의 묘사가 진리에 연결되는가?

36(602 C-605 C) 희곡의 시가는 감정에 호소하지, 이성에 호소하지 않는다.

37(605 C-608 B) 희곡의 시가가 성격에 미치는 영향

 

6(10608 C-) 불멸성과 올바름의 보상

38(608 C-612 A) 불멸성의 증명

39(612 A-613 E) 이승에서 받는 올바름의 보상

40(613 E-) 사후의 보상. 에르 신화

 

Short Summary

국가정체는 윤리에 관한, 국가에 관한, 인간 심리에 관한, 문학에 관한, 음악에 관한, 천문학에 관한, 수학 등에 관한 철학책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대화편 안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올바름에 대해 묻는다. 하지만 이 질문은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거듭해서 더욱 어려운 질문만을 낳는다. 따라서 그는 인간보다는 덩치가 큰 국가의 올바름은 쉽게 알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간의 올바름도 그에 미뤄봐 알 수 있으리라고 말하고, 국가의 올바름을 알아보자고 제안한다.

 

대화 상대자들이 이 제안에 동의하면서 국가는 국가에 관한 정치 철학으로 논의의 초점을 옮긴다. 올바른 나라는 각 분야의 사람들이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은 사람들은 각 분야의 사람들의 역할이 무엇인가로 논의를 옮긴다. 각 분야 종사자들은 각기, 생산과 국가의 수호에 종사하는 자들인데, 수호자들은 다시 보조자와 통치자로 나뉜다.

 

이들 중 보조자들은 용기의 덕을, 통치자들은 지혜의 덕을 갖춰야 하며, 각 종사자들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사자들의 역할을 넘보지 않는 절제가 필요하다. 이렇게 각 종사자들이 제 역할을 다할 때, 국가에는 올바름의 덕이 깃들어 국가에는 지혜, 용기, 절제, 올바름의 덕이 자리잡게 된다. 이 세 계층은 단지 국가에만 있지 않고, 인간의 혼에 그에 대응하는 부분이 있으니 욕구, 격정, 이성이 그것이다.

 

세 계층 중 생산 계층에는 소유가 허용되나, 나머지 계급에는 개인적 소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소유가 허용되면 수호자는 국가를 수호하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혜를 대변하는 통치자 계층은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친다. 또한 30세 전까지 체육, 시가, 기술, 수와 계산, 기하학, 천문학 등을 배우고, 그 이후에야 비로소 철학을 배우게 된다.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변증술을 익혀야 하고 그 과정을 거쳐 형상을 직관할 수 있게 되면, 비로소 통치자의 조건을 갖출 수 있다. 통치자는 형상을 (paradeigma)’으로 삼아 국가 경영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형상을 직관할 수 있는 자는 바로 철학자니, 플라톤은 철학자가 통치가가 돼야만 비로소 이상 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봤다.

 

 

 

 

 

 

 

 

 

 

 

 

 

 

 

 

 

 

 

 

 

 

 

 

 

 

 

 

 

 

 

 

 

 

 

 

 

국가정체(政體) Politeia

플라톤 지음

 

1 올바름에 대해 통용되는 몇 가지 견해

이 이야기는 여신의 축제일 저녁에 이뤄졌다. 소크라테스는 벤디스 여신의 축제를 보러 아테네의 외항인 피레우스로 갔다 오는 길에 평소 알고 지내던 케팔로스 노인의 아들을 만나 케팔로스 노인의 집에 가게 되어 올바름(dikaiosynē)’이란 뭔가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된다.

 

1) 케팔로스의 아들 폴레마르코스와 소크라테스가 나누는 얘기를 옆에서 듣던 트라시마코스는 부질없는 논의를 한다고 화를 내며 올바름은 더 강한 자의 편익이라고 일갈한다. 그는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쪽이 힘을 행사하는 쪽이고, 더 강한 자라고 더 강한 자의 정의를 내린다. 또한 법률은 지배자의 편익을 위한 쪽으로 제정되고 그런 법률을 공표함으로써 지배받는 자에게 무엇이 올바른지 지시한다고 말한다. ‘해야 할 것(올바른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올바르지 못한 것)’을 결정하는 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통치술도 일종의 기술이기 때문에 통치술은 그 통치술을 가진 통치자에게가 아니라 통치를 받는 사람에게 편익이 된다고 소크라테스는 반박한다. 모든 기술은 기술 자신이 아니라 기술의 대상이 되는 것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의술이 의술 자체에 좋은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좋은 것인 데서 알 수 있다.

 

2) 여기서 트라시마코스는 논점을 바꿔 올바름은 남에게 좋은 것이며 자신에게는 해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올바르지 못함은 자신에게는 좋은 것이며 남에게는 해가 되는 것이 된다. 그 근거로 그는 실제로 계약 관계에 있어서나 나라일을 보는 데 있어서도 올바른 자는 손해를 보고 욕을 먹는 반면 올바르지 못한 자는 이익을 얻는다는 점을 든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집단의 경우에 올바르지 못한 집단이라도 그 집단이 분열하지 않고 유지되려면 내부적으로라도 올바름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올바름이 올바르지 못함보다 더 강력하다. 또한 올바른 이들이 올바르지 못한 자들보다 더 훌륭하고 행복하게 산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사는 것은 혼의 기능인데 혼에는 훌륭한 상태가 있다. 그런데 올바름은 훌륭함이기 때문에 올바름은 혼의 훌륭한 상태다. 따라서 올바른 혼과 올바른 사람은 훌륭하게 살게 되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잘못 살게 된다. 결론적으로 올바른 사람은 행복하되,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며 올바르지 못함은 이익이 되지 못한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대화를 마치면서 소크라테스는 정작 이 대화가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한다. 1권에서는 올바른 것이 도대체 뭔지정작 캐내지 못하고, ‘올바름나쁨’, ‘무지’, ‘지혜’, ‘훌륭함등의 성격을 갖고 있는지 어떤지만 훑어봤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정작 올바름이 나쁜지, 훌륭한지등에 대해 제대로 알 가망도 없다. 왜냐면 정작 올바름이 뭔지를 모르고서는 그것이 어떤 속성을 가질지 안 가질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권 이론상의 나라를 세워 올바름을 검증함

논의가 끝났으려니 했던 소크라테스는 이번에는 그 자리에 같이 있던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의 공격을 받는다. 우선 글라우콘이 트라시마코스가 포기한 주장을 더욱 강화시켜 소크라테스를 공격함으로써 소크라테스로부터 올바름에 대한 적극적 주장을 끌어내려 한다. 그는 먼저 좋은 것들을 구분한다. 좋은 것들에는 그 자체로 좋은 것과 그것에서 생기는 결과 때문에 좋은 것, 그 자체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에서 생기는 결과 때문에도 좋은 것, 이렇게 세 가지 있다고 말한다. 아데이만토스와 합세한 글라우콘은 짐짓 올바름은 그 자체로는 기피할 성질의 것이지만 그것이 갖다 주는 보수나 평판 따위의 결과 때문에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는 것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더욱더 강화된 논의에 오히려 기뻐하는 소크라테스는 이제 본격적으로 올바름이 도대체 뭔지 밝히는 일에 착수한다. 그러기 위해 그는 올바름은 한결 큰 것에 있어서 더 큰 규모로 있을 것이며, 또 알아내기도 쉬울 것이라며 이론상으로 한 나라를 수립해 보자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그 나라의 올바름과 올바르지 못함 역시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이론상으로 나라를 세우는 데 있어서 그 기원은 각자가 자족하지 못하고 여러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하고 다른 이들에게 동의를 얻는다. 이런 필요에 따라 맨 처음 세워지는 나라는 최소 한도의 나라(최소 필요국)’.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만 충족하기 위해 성립한 이 나라를 소크라테스는 참된 나라건강한 나라라고 말하지만 글라우콘은 그것은 사람의 나라가 아니라 돼지들의 나라라고 못마땅해 한다. 글라우콘은 사람들은 그런 최소한의 욕구에 만족할 수 없고, 고생스럽게 살고 싶어하지 않으며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만 먹지 않고 즐기기 위해서도 먹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이 나라를 떠나 호사스런 나라를 고찰하게 된다.

 

호사스런 나라에서는 욕구가 필수적인 것들을 넘어서게 되고, 따라서 나라의 규모가 확장돼야만 한다. 이 나라는 구성원들의 계층이 다양해질 뿐만 아니라 영토 역시 커져야 하기 때문에 최초로 전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반대로 전쟁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나라를 수호할 계층이 필요하게 된다. 여기서 처음으로 욕구를 넘어서는 기개를 지닌 계층이 출현하게 된다. 이들이 바로 수호자 계층이다.

 

수호자층은 그 본성이 용감하면서도 지혜로워야 한다는 데 사람들은 뜻을 모으고 그것이 좋은 의미에서 개의 본성과 닮았다는 데 합의한다. 그런데 이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뒤따른다. 이들이 먼저 하게 되는 교육은 시가 교육이다.

 

3권 수호자층의 교육과 선발

시가 교육은 한 마디로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라고 정리한 소크라테스는 이어 체육 교육을 논의한다. 소크라테스는 체육은 훌륭한 혼이 자신의 훌륭함에 의해서 몸을 최대한 훌륭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 말한다. 결국 체육이라 해서 몸을 보살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시가와 함께 혼을 위한 것임을 소크라테스는 강조한다. 시가 및 체육을 통해 혼의 격정적인 면과 지혜를 사랑하는 면이 적절하게 조장되고 이완됨으로써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되는데 시가체육 교육의 일차적 목표가 있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이다.

 

이런 교육 과정을 거친 아이들 가운데 장차 완벽한 수호자들, 즉 통치자가 될 사람들을, 넓은 의미의 수호자들 즉 그들의 보조자들 또는 협력자들과 구별해서 선별해 내기 위한 온갖 시험을 해야 한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시험기준은 그들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신을 끝까지 지켜내는가다.

 

이들의 선발이 끝난 다음, 이들의 성향을 무시한 신분 이동을 막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건국 신화를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언제라도 성향에 맞게 지위를 변경시켜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런데 넓은 의미의 수호자들에게 그들의 성향, 즉 주인격인 시민들을 깔보고 해치지 않으며 그들에게 온순해야 하는 성향에 걸맞은 거처와 생활 방식을 줘야 한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유재산을 가져서도 안 되고, 출입이 통제되는 사적인 집이나 곳간도 없어야 하며, 식사와 생활을 공동으로 하고 나아가 처자까지 공유해야 한다. 또한 이들이 황금을 멀리 하게 해야 자신들의 성향을 지킬 수 있으리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4권 행복한 사람의 올바름

이에 대해 아데이만토스는 수호자들로 선발된 사람들이 특혜를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엄격히 통제된 공동 생활을 하도록 강요 당하기 때문에, 이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 나라가 특정한 한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라 시민 전체가 최대한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상기시킨다.

 

덧붙여서 소크라테스는 한 나라가 지나치게 부유해지고 그 부가 특정한 계층에 집중돼 더 이상 한 나라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면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지시사항을 밝힌다. 그것은 나라가 커지더라도 하나를 넘지 않는 한도까지만 키워야 하고, 시민들이 저마다 타고난 성향에 따라 한 가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민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가 통치를 하는 최선자 정체가 탄생했다.

 

그런데 시민 전체가 최대한으로 행복해지도록 하는 이유는 그런 나라에서 올바름이 가장 잘 구현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이 나라에서 올바름 혹은 올바른 상태는 이 나라를 구성하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자신의 일을 함으로써 실현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바로 이것이 올바름에 대한 의미 규정이다.

 

그 다음으로 행복한 사람이 지니는 것이 올바름인지 알기 위해, 그보다 먼저 이 나라에서 확인한 올바름이 개인에게도 타당한지 따져보기로 한다. 이것이 혼의 삼분설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의 한 가지로는 배우고, 다른 한 가지로는 발끈하며, 셋째 것으로는 음식과 생식 또는 이것들과 동류인 것과 관련된 쾌락을 원한다. 혼이 헤아리는 부분은 배우는 부분이고, 그것으로써 격하게도 되는 부분은 격정이며, 혼이 사랑하고 배고파하며 목말라하거나 또는 그 밖의 다른 욕구들과 관련해서 흥분 상태가 되는 부분은 비이성적이며 욕구적인 부분이다.

 

이렇게 해서 헤아리는 부분에는 지혜가 있고, 격정에는 용기의 덕목이 있게 된다. 욕구하는 부분 자체에는 독립적으로 어떤 덕목도 속하지 않지만, 절제는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헤아리는 부분과 욕구하는 부분, 발끈하는 부분들끼리 서로 지배하고 지배받는 일을 받아들이는 데서 생긴다. 자신 안에 있는 부분들의 각각이 제 일을 하면, 이 사람이 올바른 사람이요, 제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될 때 혼에는 올바른 상태가 실현돼 올바름의 덕목이 생긴다.

 

따라서 장차 행복하게 될 사람은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을 지녀야만 할 것인가란 문제에 대해 거의 결론이 내려진 상태가 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 결론을 잠시 미루고 사태를 좀더 명확하게 볼 수 있기 위해 훌륭한 상태의 반대가 되는 나쁜 상태의 여러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

 

 

5권 철학자란 무엇인가

하지만 이런 소크라테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다. 폴레마르코스와 아데이만토스를 비롯한 모두가 이를 제지하고 앞에서 언급된 처자의 공유와 그에 따른 혼인 및 출산 문제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먼저 소크라테스는 수호자들이 개와 흡사하다고 말했던 논의에 따르라고 한다. 개가 그렇듯 남녀는 신체적인 능력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수호자로서 동일한 의무를 져야 한다. 또한 여성에게도 같은 양육과 교육을 해야 한다. 이는 관습과 습관에 기대 판단하기보다는 합리적 추론에 따른 결론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말이 다른 것이 아니라 사실이 어떻게 다른가다. 따라서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성과 여성이 어떤 기술이나 다른 일(업무)과 관련해 서로 다른가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향상 알맞다는 말을 정의해야 한다. 이 말은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뭘 쉽게 배우거나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알고, 신체적 기능들이 그 사람의 생각에 충분히 봉사한다는 말로 정의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성이 수호자가 되는 일은 가능하고 다만 여성은 개인적으로 적합하거나 부적합할 뿐이다. 이는 남성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문제의 출발은 처자의 공유였으나 남녀의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강조하는 것으로 끝맺었으니, 이는 공유의 문제는 공동 관여의 문제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런 제도의 유익함에 대해 논의한다. 이런 제도의 유익함은 나라를 분열시켜 하나 대신 여럿으로 만드는 최대악을 피하고 나라를 단결시켜 최대선을 실현함에 있다. 왜냐면 공유에 의해 이 나라 사람들은 한몸과 같이 같은 한가지 일에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치 한 몸과 같이 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처자의 공유가 필연적이라고 소크라테스는 결론 내린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이런 제도의 성립 가능성이다. 이에 대해 먼저 소크라테스는 이 논의가 실현 가능성보다 본보기로 제시됐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런 제도를 최소의 변혁만으로 실현할 방법을 소개한다. 그것은 이 철학자(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이 나라를 군왕들로서 다스리거나, 아니면 현재 이른바 군왕 또는 최고 권력자들로 불리는 이들이 진실로 그리고 충분히 철학을 하게(지혜를 사랑하게)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 권력과 철학이 한데 합쳐지는 한편으로, 다양한 성향들이 지금처럼 그 둘 중의 어느 한쪽으로 따로따로 향해 가는 상태가 강제적으로나마 저지되지 않는다면, 인류에게 있어서 나쁜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플라톤은 경고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철학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반발을 일으키거나 조롱거리가 될 소지가 크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이런 문제는 진정한 철학자를 정의함으로써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면 철학자들이 어떤 사람인가 분명해지면,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철학에 종사하면서 동시에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게 성향에 적합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철학에 종사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지도자를 따르는 것이 제격임을 보여주기 때문에 모든 반론을 막아낼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것을 사랑하다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 왜냐면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배움을 선뜻 맛보려 하고 배우는 일에 반기며 접근하고, 또한 지금 알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을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경거리를 좋아해 합창 가무를 쫓아다니며 듣지만 논의를 하는 데는 열성이지 않은 사람들도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부를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을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구경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구분한다. 이들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소리나 빛깔 및 모양을 그리고, 이같은 것들로 만들어진 온갖 걸 반길 뿐, 이들의 사고(마음 상태)아름다움(아름다운 것) 자체의 본성을 볼 수도 반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물들은 믿으면서도 아름다움 자체는 믿지 않고, 누군가 그것의 인식에 이르도록 그를 인도할지라도,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은 꿈꾸는 상태로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 자체를 믿을 뿐 아니라, 이것과 이것에 관여하고 있는 것들을 알아볼 수 있는, 그래서 관여하고 있는 것들그것 자체로 생각하거나 또는 그것 자체관여하고 있는 것들로 생각하는 일도 없는 사람은 깬 상태로사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 사람의 사고는 알고 있는 자의 것으로 이를 인식(epistēmē)이라 함이 옳겠으나, 앞엣 사람의 사고는 의견을 갖는 자의 것으로서 의견(doxa)이라 함이 옳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다음으로 걸리는 문제는 도대체 인식하는 자의 인식 대상이 뭔가 하는 문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먼저 인식하는 자는 뭔가를 인식하며 그 인식 대상은 존재하는 것임이 분명하고, 완벽하게 있는 것은 완벽하게 인식될 수 있지만 어떤 식으로도 있지 않은 것은 무슨 방법으로도 인식될 수 없다고 한다. 여기서 완벽하게 있는 것은 있다가 없다가 하지 않는 것이고, 있기만 한 것이다. 이것은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한 모습만을 가진 것이지만, 어떤 식으로도 있지 않은 것은 없기만 한 것이다.

 

 

반면 의견의 대상은 있으면서’ ‘있지 않기도하는 그런 상태, ‘순수하게(절대적으로) 있는 것어떤 식으로도 있지 않은 것과의 중간에(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감각적 경험에 의지하기 때문에 상대적이고 가변적 판단 능력에 대응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해서 있는 것에는 인식이, 있지 않은 것에는 무지가, 무지와 인식의 사이의 어떤 것에는 의견이 대응한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각각의 실재 자체를 반기는 사람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철학자들)’로 불러야 한다고 소크라테스는 덧붙인다.

 

 

6권 지도자의 자격

철학자를 정의한 데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나라의 지도자의 자격을 논한다. 이들은 나라의 법률과 관례를 수호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각각의 실재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누구 못지 않게 경험이 풍부하며 또한 다른 어떤 부분의 훌륭함에 있어서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데이만토스는 철학을 오래 하면 아주 이상하게 되는가 하면, 가장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일지라도, 나라에 쓸모 없는 이들이 된다고 통념에 비춰 반박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이 타락하고 마는 것은 철학의 탓이 아니라 그를 시기하는 주변 사람들 때문이라는 점을 길게 설명한다.

 

철학할 능력을 갖춘 자가 이렇게 타락하게 된다는 것을 밝히면서 화제는 자연스레 나라가 철학을 어떤 식으로 대하면 파멸하는 일이 없을까란 문제로 옮겨간다.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들은 성장기에 갖은 시험도 거치지만 각종 교과로 단련을 받아 그 심성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통치자들은 신체를 단련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만 하며 그렇게 해서 가장 중요한 배움의 목표에 이르게 된다.

 

가장 중요한 배움이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배움이다. 이것은 모든 혼이 추구하는 바로 그것이며 또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을 행하게도 되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우리의 수호자로 삼을 수 없다. 하지만 좋음의 이데아 자체가 뭔가 설명하는 일은 현재로서는 힘에 부치는 일이라서 할 수 없고 소크라테스는 비유를 들어 고찰하겠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드는 비유는 태양의 비유다. 우리는 시각과 그 대상이 있더라도 태양이 없으면 그 대상을 볼 수 없다. 따라서 태양은 보이는 것들에 보임을 제공해 준다. 뿐만 아니라 보이는 것들에 생성과 성장 그리고 영양을 공급한다. 마찬가지로 인식되는 것들의 인식됨이 가능한 것도 좋음으로 인해서일 뿐 아니라, 그것들이 존재하게되고 그 본질을 갖게 되는 것도 그것에 의해서요, ‘좋음(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지위와 힘에 있어서 존재를 초월해 있다고 말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또 선분의 비유로 좋음의 이데아를 설명한다. 이것은 한 선분을 두 부분으로 나누게 되면 한 부분에는 눈에 보이는 부류, 다른 한 부분에는 지성에 알려지는 부류가 대응한다는 비유다. 다시 눈에 보이는 부류에는 얼마나 명확하냐 불명확하냐에 따라 상(영상,모상)이나 그림자 따위가 한 부분으로 속하고 나머지에는 이 상들이 닮아 보이는 것인 우리 주변의 동물들과 식물 그리고 인공적인 일체의 것들이 속한다.

 

다시 지성에 알려지는 부류에는 명확성 여부에 따라 기하학이나 계산(산술) 등이 한 편에 속하고 나머지 한 편에는 이데아나 형상이 속한다. 기하학이나 산술은 각 학문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 예컨대 홀수와 짝수, 도형들 등을 이미 알고 있는 것들로서 가정하고 이것들에 대해 모두에게 명백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이 가정들에서 출발해 곧 나머지 것들을 거쳐서 애초에 고찰을 시작하게 된 대상에 이르는 일관성 있는(모순되지 않게) 결론에 도달한다.

 

반면에 이데아나 형상은 이성 자체변증술적 논변의 힘에 의해 파악하게 되는 것으로서, 이때 이성은 가정들을 원리로서가 아니라 모든 것의 원리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나 출발점으로 대한다. 끝으로 소크라테스는 이 네 부분에 대응해 네 가지 상태가 혼에 생긴다고 덧붙인다. 맨 윗 것에 대해서는 지성에 의한 앎(이해, 직관)’, 둘째 것에 대해서는 추론적 사고(dianoia)’, 셋째 것에 대해서는 믿음(확신)’, 그리고 마지막 것에 대해서는 상상을 배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7권 동굴의 비유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비유적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이번에는 소크라테스가 동굴에 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예로 설명한다. 소크라테스는 사지와 목을 결박당한 채 어려서부터 동굴에 갇힌 사람들을 설정한다. 동굴에 비친 그림자를 진실이라고 알고 있던 그들 중 어떤 이가 동굴 밖으로 나와 밝은 태양 아래 참된 사물들을 보고 와서 동굴에 있는 사람들에게 참된 사물에 관해 이야기해 준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비유된 것들은 동굴은 시각을 통해 드러나는 곳을, 감옥 속의 불빛은 태양의 힘을, 오름과 높은 곳에 있는 것들의 구경은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영역으로 향한 혼의 등정을 비유한다. 이 동굴 속의 죄수가 한 행동은 바로 좋음의 이데아를 관상한 것이다. 이렇게 좋음의 이데아는 모든 것에 있어서 모든 옳고 아름다운(훌륭한) 것의 원인이고, ‘가시적 영역에 있어서는 빛과 이 빛의 주인을 낳고,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영역에서도 스스로 주인으로서 진리와 지성을 제공한다. 장차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슬기롭게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이데아를 봐야만 한다.

 

바로 이런 혼의 등정을 위해 교육은 필요하다. 교육은 혼 안에 지식이 있지 않을 때, 마치 보지 못하는 눈에 시각을 넣어주듯, 지식을 넣어주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교육이 이뤄지려면 혼 전체와 함께 생성계에서 전환해야 한다. 또한 이는 실재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밝은 것을 관상하면서도 견뎌낼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한다.

 

이런 교육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소크라테스는 예비 교과를 제시한다. 이들 교과들은 생성되는 것에서 실재로 혼을 끌어당기는 교과여야 하며 통치자들은 젊은 시절에는 투사여야 하므로 전사에게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혼을 끌어당기는 교과로 수와 계산을 꼽는다. 그밖에 평면기하학과 입체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을 추천한다.

 

이런 예비 교과들은 본 악곡을 위한 서론격으로, 본 악곡은 변증술이다. 예비 교과를 마친 사람들은 비로소 변증술적 논변을 배우게 된다. 이들은 변증술적 논변에 의해 일체의 감각을 쓰지 않는 이성적 논의를 통해 각각의 형상들 자체로 향해 출발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좋은 것 자체를 순수한 지성에 의해 파악하기 전까지 물러서지 않을 때, 이들은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것의 끝에 이른다. 이는 마치 동굴을 벗어난 죄수가 가시적인 것의 끝에 이르는 것과 같다. 다른 예비 교과들은 가정을 갖고 있는 반면 변증술적 탐구 방법은 가정들을 폐기하고,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원리 자체로 나아간다. 그래서 변증술적 탐구 방법을 행하는 자들은 궁극적 원리인 좋음의 이데아에 이르게 된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 교과들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배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17~18세에 이르기까지는 기초적인 체육과 시가 교육이 가급적 강제 없이 놀이처럼 이뤄진다. 그 다음에 20세에 이르기까지 2~3년 동안 배울 여가가 없을 정도로 집중적으로 육체적이고 군사적인 훈련이 뒤따른다. 그 다음 20세부터 10년 간이 바로 변증술 수련을 위한 예비 교육 기간이 된다.

 

그 다음에 비로소 변증술 수련을 받게 되는데, 다른 것은 일절 하지 않고 변증술적 논변에만 5년 동안 집중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동굴의 비유에서처럼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는 이들이 전쟁에 관련된 일들을 지휘하고 젊은 사람들에 걸맞은 관직을 맡아 경험에 있어서도 남들에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 기간이 15년이다.

 

이 기간을 지나고 어려서부터 받아 온 온갖 시험들을 무사히 치르고 난 이들은 이제 혼의 눈으로 모든 것에 빛을 제공하는 바로 그것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좋음 자체를 일단 보게 되면, 이들은 그것을 본보기 삼아, 저마다 여생 동안 번갈아 가면서 나라와 개개인들, 그리고 자신들을 다스리게 된다. 이들은 여생의 대부분을 철학으로 소일하지만, 차례가 오면 나랏일에 수고 하며, 저마다 나라를 위한 통치자가 된다.

 

 

8권 잘못된 정체의 네 가지 유형

긴 논의를 마치면서 소크라테스는 이 논의가 다른 논의에서 곁길로 들어선 것임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다시 전 논의로 돌아가 잘못된 정체들의 네 유형과 이것들을 닮은 혼의 유형들에 대한 논의를 재개한다. 네 가지 유형의 대표적 정체들은 최선자 정체가 점진적으로 쇠퇴해서 생기는 형태들이다. 이 정체들은 퇴락의 순서대로 명예 지상 정체’, ‘과두 정체’, ‘민주 정체’, ‘참주 정체. 또한 이런 정체에 상응해 같은 형태의 인간 유형이 있음도 지적한다.

 

먼저 명예 지상 정체최선자 정체에서 우생학적으로 훌륭한 자질을 가진 아이들의 출산에 실패해, 통치자들 속에 이질적 성향을 지닌 자들이 섞이게 된 데서 비롯된다. 이 정체는 최선자 정체와 과두 정체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체육과 전쟁 훈련에 힘을 기울이나 지혜로운 사람들을 관직에 앉히지 않고 시가에 소홀하다. 이 정체에서는 이성적인 것보다도 격정적인 것이 우세해, 승리와 명예에 대한 사랑이 지배적인데, 과도 정체의 특징인 축재에 대한 욕구도 대단하다.

 

그 다음으로 생기는 정체는 과두 정체다. 이 정체는 명예 지상 정체에서 축재된 재산에 의해 생긴다. 축재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축재된 재산을 소비할 길을 찾는데, 이를 위해 법률을 왜곡하고 그에 따라 부자들이 통치하고 가난한 사람은 통치하지 못하는 과두 정체가 등장한다. 이 정체에서는 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팔고, 다른 사람은 이 사람의 것을 사 갖는 것이 허용된다. 이에 따라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생기고, 한 나라가 두 나라로 갈라진다.

 

세 번째는 민중 정체다. 민주 정체는 과두 정체 하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이 대립하는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이김으로써 생긴다. 이들은 과두 정권을 장악했던 자들을 숙청한 다음, 모두가 평등권을 누리며 관직도 추첨에 의해 배정한다. 민주 정체에서는 자유가 넘쳐,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고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다.

 

마지막으로 발생하는 정체는 참주 정체다. 이 정체는 민주 정체인 나라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규정하는 것인 자유가 불러온다. 전반적인 자유의 만연은 무질서와 비윤리적인 상황을 가져온다고 소크라테스는 지적한다. 이런 극단적 자유는 오히려 극단적인 예속을 낳아 참주 정체를 낳는다. 결국 개인적 야망의 달성을 위해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민중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참주로 인해 나라 살림은 거덜난다.

 

 

9권 혼의 3분법에 따른 사람의 종류

이제 소크라테스는 2권에서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지금껏 한 논의를 바탕으로 행복에 있어 첫째 가는 사람은 최선자 정체적 인간이며, 그 다음은 순서대로 명예 지상 정체적 인간, 과두 정체적 인간, 민주 정체적 인간이 뒤따르고 맨 나중에 참주 정체적 인간이라고 판정한다.

 

또한 나라가 세 부류로 나뉨에 따라 나뉜 혼의 세 부분에 각기 상응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소크라테스는 지적한다. 먼저 욕구적인 부분의 즐거움과 좋아함은 이()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돈을 좋아하는 부분, 혹은 돈을 탐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격정적인 부분은 지배하는 것과 승리하는 것 그리고 명성을 떨치는 것을 지향한다. 따라서 이 부분은 이기길 좋아하고 명예를 좋아하는 부분이다. 배우게 되는 부분은 진리를 그대로 아는 것을 향하고, 이들 세 부분 중에서 재물과 명성에 대해 가장 덜 관심을 갖는 다. 이 부분을 배움을 좋아하고 지혜를 사랑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혼의 이 세 부분 중 어느 부분이 나머지 부분을 지배하느냐에 따라 지혜를 사랑하는 부류’, ‘이기기를 좋아하는 부류’, ‘()를 탐하는 부류로 나뉜다. 그런데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명예나 이익를 얻음으로 얻는 즐거움의 맛을 보는 게 불가피하다. 반면에 이를 탐하는 사람들은 사물들의 본성이 어떤 것인지 배워 그것의 즐거움이 얼마나 달콤한지 맛을 꼭 봐야 할 필요나 강제성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그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익를 탐하는 사람보다 양쪽 다의 즐거움에 대한 경험을 갖는다. 또 명예는, 각자가 목적한 바를 성취할 경우에는, 이들 모두에게 따라 온다. 따라서 용감한 사람뿐 아니라 부자나 지혜로운 사람도 존경을 받는다. 그래서 명예를 누림으로 인한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두 경험할 수 있지만 실재(to on)에 대한 관상(觀想)이 어떤 즐거움을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외에 다른 누구도 맛볼 수 없다. 따라서 배우게 되는 혼의 즐거움이 가장 크며, 이 부분이 지배하고 있는 사람의 삶이 가장 즐거운 삶이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즐거움 자체를 말하더라도 배우는 혼이 지배하는 사람의 삶이 가장 참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즐거움은 고통이 없거나 멈춘 평온의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인 것이 실현된 상태다. 또한 즐거움 중에는 고통을 수반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즐거움도 있다. 적극적인 것이 실현된 상태가 즐거움이라면 성질상 적합한 것으로 가득 찬 것이 즐거움이다. 더 충실하게 존재하는 것들로 가득 차게 되면 참된 즐거움은 더 즐겁게 된다. 따라서 이익를 탐하는 부분 및 이기기를 좋아하는 부분이 지식과 이성적 추론을 따르고 이들 둘과 함께 즐거움을 추구하게 될 때는, 분별있는 부분이 인도하는 즐거움만을 취하게 된다. 이 즐거움들이 가장 진실된 것이고 가장 좋은 것이다.

 

 

10권 시인을 쫓아내야 하는 이유

소크라테스는 이 나라가 시에 관련해 생각해 보면 특히 옳게 수립됐다고 말하면서 철학과 시에 대한 관계를 밝힌다. 소크라테스는 이 나라에서는 시 가운데서도 모방적인 것은 어떤 식으로든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점을 옳다고 봤다. 모방(mimēsis)은 예술의 핵심 행위다. 그런데 모방은 이미 있는 것들을 모방하고, 이미 있는 것들은 그것들의 본질이라 할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것이다. 침상의 형상을 본떠 목수가 침상을 만들고 다시 그 침상을 모방해서 화가가 그 그림을 그린 것과 같다. 따라서 모방자인 예술가들은 본성상 진리로부터 세 번째가 된다.

 

또한 모방자는 모방하는 것에 대한 지혜에 있어서도 세 번째가 된다. 한 대상에 대한 기술에는 세 종류가 있다. 사용하는 기술, 만드는 기술, 모방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아울로스 만드는 자는 아울로스를 아는 자인 아울로스 연주자에게서 좋은(유용한) 아울로스와 나쁜(무용한) 아울로스에 대해 듣고 그것의 훌륭함(아름다움)과 나쁨에 관한 옳은 믿음을 갖게 되고, 그것을 사용하는 자는 그것에 대해 지식을 갖게 된다. 하지만 모방자는 모방하는 것들에 대한 훌륭함이나 나쁨을 알게 되지 못하며, 옳게 판단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모방은 일종의 놀이지 진지한 것이 못 되며, 진리에서 세 번째가 된다.

 

예술가들이 하는 모방은 우리의 감각이 갖고 있는 착각에 기초하고 있다. 같은 크기의 것이라도 시각을 통해 가까이 보는 것과 멀리 보는 것이 같아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물 속에서 볼 때와 물 밖에서 볼 때가 다르며, 색채에 의해 오목하게도 볼록하게도 보인다. 반면에 이런 착각을 고쳐주는 것은 측정, 계산, 계량 등이다. 이것으로 인해 더 크거나 더 작아 보이는 것이나 더 많거나 더 무거워 보이는 것’(현상)이 우리 세계를 지배하지 못하고 계산된 것과 측정된 것 또는 계량된 것이 지배한다. 이것은 우리 혼에 있어 헤아리는 부분의 기능이다. 이 부분은 우리 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이와 반대되는 부분은 우리 혼의 가장 변변찮은 부분이다. 이 부분에 화가의 기술이 의존한다.

 

시인들은 희로애락을 겪는 사람들을 모방한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그런데 훌륭한 사람들은 고통을 견뎌내면서 이에 휘말리지 않는데 이렇게 괴로움에 저항하도록 하는 것은 이성과 법이다. 반면에 고통에 대한 기억 쪽으로 그리고 비탄 쪽으로 인도하는 부분은 비이성적인 감정이다. 그런데 화를 잘 내는 성격은 다채롭게 모방하기 쉬우나 침착한 성격은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며 모방하기 쉽지 않고 모방하더라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모방적인 시인은 화를 잘 내며 다채로운 성격을 모방하게 되고, 이런 모방이 인기도 끌게 된다. 시인의 이런 모방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성보다 감정을 따르게 해서 개개인의 혼 안에 나쁜 통치 체제가 생기게 만든다. 따라서 즐거움만을 위해서 감정을 모방하는 시인은 나라에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올바름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는 점을 논증한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으로 그 결과로도 올바름은 좋은 것이라는 점을 이제 입증하려 한다. 먼저 그는 혼이 불멸하는 것임을 입증한다. 그리고 올바른 사람들은, 올바르지 못하면서 영악한 사람들에 비해 처음에는 불리하지만 결국 모든 영광과 이익을 얻을 거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이것이 올바른 사람들이 살아서 받는 보답이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죽어서도 올바른 혼은 보답을 받는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죽었다가 열 이틀만에 되살아난 에르라는 사람의 이야기(신화)를 전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죽은 사람들은 환생하게 될 때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그런데 살았을 때 올바르게 살지 못한 사람들은 다시 태어날 삶을 신중하고 지혜롭게 선택하지 못한다. 반면 지혜롭고 올바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다시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됨으로써 올바르게 산 보답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사람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올바름의 보답을 받기 때문에 올바름은 그 자체로도, 그 결과 때문에도 좋은 것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더 깊이있게 알기 위하여

플라톤이 국가정체를 저술한 시기는 대개 기원전 380년대에서 370년대 사이로 추정한다. 이 시기는 아테네가 404년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거듭 패한 후 신흥 세력인 테베와 연합해 반스파르타 동맹을 체결, 스파르타에 대한 설욕전을 펼치던 시기에 해당한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아테네와 과두정을 지지하는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양대세력으로 서로 각자의 정치 체제를 그리스의 다른 도시국가(폴리스)에 전파하려 애써 왔고 서로 전면전도 서슴치 않았다. 긴 알력과 긴장 속에서 병적으로 신경이 곤두 선 아테네인들은 이미 20여 년 전에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민주정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한 후였다. 스파르타에 패해 잠시 과두정이 들어선 후 다시 들어선 민주정이 소크라테스를 형장에 세운 것이다. 이런 상황과 사건 속에서 플라톤은 올바른 나라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젖혀두고 철학을 생각할 수 없었다.

 

올바른 나라란 무엇인가

아테네는 다양한 국가 체제를 겪은 나라다. 전설적인 영웅이자 아테네의 마지막 왕 테세우스의 활약 시기가 대략 12세기라면 플라톤이 이 대화편을 쓴 시기까지 대략 800년 사이에 왕정, 참주정, 금권정, 민주정 등을 겪었고, 아테네의 맞수 스파르타는 오래 전부터 과두정을 유지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정체도 이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플라톤은 올바름이란 문제에 집중해 사람과 국가의 올바름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정체를 이 대화편에서 논의한다. 이것이 바로 최선자 정체로,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는 철인 정치다.

 

어떤 존재든 그 존재로서 최상의 상태인 훌륭한 상태는 있게 마련이다. 특히 사람의 손길이 닿는 것이나 사람 자신일 때는 더욱 그렇다. 사람의 경우, 우리는 이 훌륭한 상태를 덕을 갖췄다고 한다. 플라톤이 사용하는 희랍어로 훌륭함‘aretē’로 같은 말이다. 플라톤은 이 훌륭함으로 지혜, 용기, 절제, 올바름(정의)을 꼽는다. 이 덕목들은 그가 국가정체를 쓰기 전에 여러 대화편에서 밝혀 둔 덕목들이다. 그는 올바른 나라를 이론적으로 건설하면서 사람이 갖춰야 할 이 네 가지 덕목을 다 갖춘 나라를 실현하고자 했다. 또한 그의 나라에서는 사람이 나라에 의해 수단이 되면 안되고, 나라가 개인을 희생시켜 존립해서도 안 된다. 이에 따라 나라는 사람의 덕목과 나라의 덕목이 같은 나라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 사람들이 각자 성향에 맞게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워야 한다. 사실 희랍어의 훌륭함이라는 것은 어떤 한 분야에서 기량이 출중함을 가리키는 데서 출발한 말이다. 기량이 출중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그 일이 그의 적성에 맞아야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나라의 계층을 세 계층으로 나누고 국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성향에 맞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국가가 구성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적성에 맞더라도 최대한 그 적성과 성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계층의 성원에 알맞은 교육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길게 설명한다. 이렇게 해야만 자신의 본성에 맞는 일을 최선을 다함으로써 각 분야에서 출중함을 보일 수 있고, 그렇게 됨으로써 각 계층은 자신들의 훌륭함을 실현하고, 나라 전체도 훌륭한 나라가 된다고 플라톤은 본다.

 

플라톤은 이론적으로나마 이런 나라를 실현시키기 위해 그가 철학자로서 살아온 20여 년의 사색의 결과물들을 이 한 대화편 안에 모조리 쏟아부었다. 그래서 국가정체는 윤리학적인 문제에서 출발해서 정치철학, 인식론, 존재론, 형이상학, 교육철학, 학문 이론 등을 섭렵하는 형이상학적인 건축물을 구축한다. 하늘의 별들은 모여서 우주를 이루지만 사람은 모여 국가를 이룬다. 따라서 국가의 문제에는 사람의 문제가 도외시될 수 없으며 사람의 문제는 결국 모든 형이상학적 이론이 바탕이 되고서야 해결된다.

 

서양철학이 가장 높이 오른 봉우리

국가정체는 플라톤이 철학자로 활동하면서 최초로 가장 높이 오른 산봉우리다. 동시에 서양철학 전체가 최초로 가장 높이 오른 산봉우리이기도 한다. 서양 철학은 이 대화편에서 형이상학적 사고의 진수를 맛보고 다시는 그 맛을 잊지 못하게 되고, 철학의 이론과 실천이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 보고, 그 장면을 영원히 지울 수 없게 된다.

 

플라톤은 이 대화편 이후 다시 이 산봉우리를 내려와 깊은 계곡으로 내려선다.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국가의 단위만 가지고는 그의 실천을 충분히 철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더욱더 형이상학적인 사고의 깊은 계곡을 뒤지고 다니다 철학적 우주론인 티마이오스를 거쳐 법률이라는 또다른 봉우리에 오른다. 국가를 이루는 사람들을 다시 이루는 원소들의 세계에서부터 온 나라가 모인 세계를 넘어서는 우주까지 관통하는 철학적 원리를 찾아 다시 그 원리를 인간의 실천에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법률이 바로 그런 그의 철학적 실천의 정점이었다.

 

국가정체에서 플라톤이 전개하는 이론들 하나하나에는 후대의 모든 철학자들과 학자들이 그에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혹은 거기서 갈려나오는 이론을 덧붙이고 있다. 실로 국가정체는 서양 철학의 분화구요 빅뱅이다. 이제 플라톤이 활동한 시기로부터 25세기가 흘렀다. 하지만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나라가 존재하는 한 플라톤의 이 대화편은 끊임없이 문제를 던질 것이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은 이 대화편에서 해답을 길어낼 것이다.

 

플라톤의 생애와 작품

기원전 428/7 아버지 이리스톤과 어머니 페릭티오네 사이에서 출생

기원전 404 아테네에 30인 과두정치가 들어섰다. 여기에 외삼촌 카르미데스와 외당숙 크리티 아스가 포함됐는데, 플라톤에게 정치 입문을 권유

기원전 403 민주정 회복

기원전 399 소크라테스 사형. 소크라테스의 나이 70, 플라톤은 28

기원전 399~87 지중해 근방 여행

기원전 385 아테네에 아카데미아 설립(42)

헬라스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필요한 참된 지성인의 집단적 양성이 목표

아리스토텔레스가 17(367)에 입학했다.

기원전 385~67 중기 대화편들 저술

기원전 367 디오니시오스 2세의 철학 스승으로 시라쿠사이 여행(60)

기원전 361 시라쿠사이 2차 방문(66)

기원전 360~47 아테네 귀환 후 활발한 학문 활동

기원전 347 사망(80)

 

참고문헌

플라톤, 국가정체, 박종현 옮김, 서광사, 1997

G. C 필드, 플라톤의 철학, 양문흠 옮김, 서광사, 1990

요하네스 휠쉬베르거, 서양철학사(), 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1998

프레드릭 찰스 캅레스턴, 그리스 로마철학사, 김보현 옮김, 철학과 현실사, 1998

W. K. C. 거스리, 희랍 철학 입문, 박종현 옮김, 서광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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