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영화,리뷰,

김용 소오강호5

by Casey,Riley 2023. 2. 18.
반응형




                               소오강호 제 5 권
-----------------------------------------------------------------------------

  [자네가 오늘 우리와  여기서 만난 것은 큰 인연이네. 자네가 만
약 나의 말을 듣는다면 여기에 있는 이 술을 다 마시게나.]

  그의 이 말은 위협의 뜻이 다분히 담겨 있었다. 영호충은 가슴에
서 뜨거운 피가 치밀어 올라오자, 낭랑한 소리로 말을 했다.

  [저의 몸에는  본래 치료할 수 없는병이 있어서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지요. 무의식 중에 교주의 신공대법을 배우게 되었고, 아픗
로 영원히 풀 수 없다 해도  그것은 단지 원상태로 회복되는 것 뿐
입니다. 그게 무슨 대단한 것입니까.  나는 나의 생명에 대해서 벌
써 그리 중시하지 않으며, 삶과 죽음은 하늘에서 정해져 있다고 합
니다. 화산파는 이미 수백년 동안  전해져 내려왔고 그 나름대로의 
생존의 방법이 있읍니다. 다른 사람이 끼여 들었다 해도 금방 전멸
하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  이만 말씀드리고 후에 기회
가 있으면 만나 뵙시다.]

  영호충은 몸을 일으켜 두 사람에게 공수를 한 다음 몸을 돌려 가 
버렸다. 상문천은 다시 무슨 말을  더 계속해서 듣고 싶었으나, 영
호충은 이미 멀리 가 버렸다. 영호충은  매장에서 나온 후 깊게 한
숨을 쉬고 나자, 몸에는 찬 바람이 와 닿고 그렇게 가쁜할 수가 없
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에는 초생달이 버드나무 끝에 와 걸려 
있었다. 멀리  호수에서는 달과 뜬 구름이  비쳐 있었다. 호숫가에 
가서 잠시 서 있자, 내심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임교주는 지금 눈  앞에 동방불패와 한판의 승부를 걸고교주자
리를 탈환해야 되니 금방 화산파를  찾아가 훼방을 놓지는 않을 것
이다. 그러나 만약 사부와 사모님, 사제, 사매들이 그 상황을 모르
고 그와 부딪친다면 틀림없이 어떤 고초를 당할 것이다. 반드시 하
루라도 일찍 알려 그들에게 방비를 할  수 있도록 하자. 그런데 그
들은 복주에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복주까지는 멀지 않
으니 어쨌든 할 일이 없으니까  내가 복건(福建)에나 한번 가보자. 
만약  그들이 벌써  돌아왔다면 가는  도중에 혹시  만날지도 모르
지.)

  그러나, 이때 사부가  무림에 편지를 띄워 자기를 사문에서 축출
하였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속은 자기도 모르게 또 시큰해 왔다. 그
래서 생각하였다.

  (나는 임교주가 나를  자기의 종파에 가입시키려고 했던 일을 사
부와 사모님에게 알려드리자. 그들은 틀림없이 이해하실 것이고 내
가 무의식중에 마교의 사람들과 교분을  맺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
이다. 어쩌면 사부님은 다시 그 명령을 철회하고 나에게 단지 사과
애에 가서 삼년 동안 면벽을 하라고 처벌을 내리실지 모르지. 그렇
게 되면 정말 좋겠는데.)

  다시 사문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다시 일진하
여 즉시 주점을 찾아가 묵었다.
  잠에서 깨어난 것은  그 이튿날 점심때가 되어서였다. 사부와 사
모님을 뵙기 전에 자기 본래의  면모를 나타내면 안 되리라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영영은 조천추에게 명해서 온  강호에다가 자기의 
생명을 빼앗아오라고 전하지 아니했는가. 아무래도 변장을 하여 그 
일에 휘말리지 않는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무슨 모습으
로 어떻게 변장을 해야 될까  마음속으로 골똘히 생각을 하며 방에
서 걸어나왔다. 막 정원 가운데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싹 하는 소리
가 들리면서 대야의 물이 자기의  몸을 향해서 날아왔다. 영호충은 
즉시 피했다.  그 대야의 물은 허공에  뿌려졌다. 영호충이 그곳을 
보니 한명의 군관이 손에 나무 대야를 들고 그를 향해서 화난 눈을 
치켜뜨며 보고 있었다.
  그는 굵은 소리로 말했다.

  [길을 가면서 눈을  차고 다니지 않느냐? 너는 이 어르신이 물을 
버리는 것조차도 보지 못햇느냐?]

  천하에 이렇듯 무례하고 야만인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고 생각이 
들자 영호충은 화가 충천하였다. 이  군관은 나이가 사십살 정도되
었으며, 구레나룻과 얼굴에는 수염이 가득 났으며 퍽이나 위엄스럽
게 보였다.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을  보니 교위인 것 같았고 허리에
는 요도(腰刀)를 차고 있었으며,  가슴은 펴지고, 아랫배는 밑으로 
축 처졌으며, 평소에 거드름이 몸에 배인 것 같았다.
  그 군관은 일갈을 했다.

  [뭘 쳐다보느냐? 너는 이 어르신도 몰라 보느냐?]

  영호충은 영감이 떠올랐다.

  (이 군관처럼 변장을 한다면 재미있겠구나. 거드름 피우고 이 강
호바닥을 지난다면 무림의 친구들은 그 누구도 나를 쳐다보지도 않
겠지.)

  그 군관은 또 일갈을 했다.

  [뭘 웃느냐 제미랄 놈아! 무슨 못 볼거라도 봤다는 말이냐!]

  영호충은 무엇인가 묘안이  떠오르자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
가 번지는 것이었다. 영호충은 계산대에  가서 하룻밤 묵은 방세를 
내고 낮은 소리로 물어봤다.

  [저 군관 나으리는 어디서 왔읍니까?]

  그 주인은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 누가 안답니까? 자칭 북경성에서 왔다고 합
디다. 단지 하룻밤 묵었는데 심부름하는  아이가 이미 그에게 세번
이나 뺨따귀를 얻어  맞았지요. 좋은 술과 좋은고기를 적지 않게 
주었는데 돈이나 줄지 모르겠군요.]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서 부근의  찻집에 가서 앉았다. 
차를 한 주전자 시키고는 천천히 마시면서 기다렸다. 반 시간쯤 기
다리자 말굽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그  군관은 네 마리의 빨간 말
을 타고 객주집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큰 소리로 호통을 치고 떠들
어댔다.

  [비켜라! 비켜라! 이놈들아!]

  몇명의 행인은 조금  늦게 피하여 그의 채찍에 맞아 아파서 고통
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영호충은 이미 찻집에 돈을 지불하고 있
었기 때문에몸을  일으켜 빠른 걸음으로 말의  뒤를 따라갔다. 그 
군관은 서문을 나가 서남쪽의 큰 길을 달려갔다.
  수리를 달려가니 노상에는 행인이 점차 적었다. 영호충은 발걸음
을 빨리 하고 말 앞에 서서 우측손을 휘둘렀다. 그 말은 깜짝 놀라 
히잉 소리를 내면서 앞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군관은 자칫 잘못했으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영호충은 일갈했다.

  [제기랄 놈아! 길을  달릴 때 눈을 차고 다니지 않느냐. 너의 말
이 까딱 잘못했으면 나를 잡을 뻔하지 않았느냐.]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군관은 이미 크게 노했다. 영호충의 욕
지거리에 그 군관은  너무가 어이가 없고 기가  찼던 것이다. 말의 
앞발이 땅에 닿자,  싹 하고 채찍을 휘두르니  영호충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영호충은 큰 길에서 이러기가  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
어 외치듯이 말했다.

  [아이고!]

  흔들거리며 머리를 사매고 작은 길을 향해서 도망쳐 갔다. 그 군
관이 어지 가만히 놔두겠는가. 말에서 내려 천천히 말 고삐를 나무
에다 묶어 놓고 미친 듯이 뒤따라 왔다. 
  영호충이 외쳤다.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

  숲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 군관은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뒤쫓아 
왔다. 그러나 갑자기 그 군관은 옆구리가 마비되어 털썩 소리를 내
면서 땅바닥에 쓰러졌다.
  영호충은 좌측 손을 그의 가슴에 짓누르고 웃으면서 말했다.

  [제기랄 놈.  재주가 이렇게 없는 놈이  어떻게 군관행세를 하고 
싸움을 하느냐?]

  그의 품속을 뒤지니  품속에서는 큰 편지봉투가 하나 나왔다. 봉
투의 위에는 병부상서대당정인(兵府尙書大堂正印)의 새빨간 도장이 
찍혀져 있었고, 또한 고신(告身)이라는 두  개의 큰 글자가 씌어져 
있었다. 봉투를 열고 안에 있는 종이를 꺼내서 보니 그것은 다름이 
아닌 한 장의 병부상서 위임장이었다.  임명장에는 하북 창주 유격 
오천덕(吳天德)은  복건천주부참장(福建泉州府參將)으로  승급하여 
즉시 부임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알고 보니 참장 나리시군요. 당신이 바로 오천덕입니까?]

  그 군관은 영호충의 발 밑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얼굴은 일그
러지고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일갈했다.

  [빨리 나를 일으켜  세워라. 넌...... 넌...... 어찌 감히 이 조
정의 명관을 우롱하려고 하느냐.  왕법(王法)...... 왕법이 무섭지 
않느냐?]

  입으로는 호통을 쳤지만 기세가 꺾인 것 같았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 어르신께서 여비가  없어서 너의 웃을 좀 빌려다가 전당포에
다 맡겨야겠다.]

  손바닥을 펴 그의 정수리를 치니 그 군관은 금방 기절을 했다.
  영호충은 신속하게 옷을  벗겼다. 이 군관의 행동이 얄밉고 미워
서 당하는 김에 더 당하라는 심정으로 그의 속옷을 모두 벗기고 실
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하게 했다. 그의 보따리를 들어 보니 상당히 
무거웠다. 보따리를 풀어 보니 거기에는 몇백 량의 은이 들어 있었
고, 또 세 개의 금원보(金元寶)가 들어 있었다. 내심 생각하였다.

  (모두 이 개 같은 관리가 백성의 피를 빨아서 모은 것이다. 원주
인에게 돌려주기 어려우니 나 오천덕 참장 어르신께서 가져다가 술
이나 마셔야겠다.)

  영호충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즉시 옷을 벗고 그 참장
의 군복과 군화를 신고 요대를 찼으며, 보따리를 챙겨서 몸 가가이
에 두었다. 자기의 옷은 갈기갈기 찢어서  그 군관의 손을 묶고 나
무에 꽁꽁 묶어 두었다. 그리고 또  그의 입속에다 흙을 잔뜩 물려 
놓았다. 그리고 나서 무엇인가 더 생각을 하더니 몸을 돌려 단도를 
꺼내서 그의 얼굴에  나 있는 수염을 깎아  버렸다. 깎아낸 수염을 
돌돌돌 말아서 품속에 넣고 웃으면서 말했다.

  [네 놈은 흰둥이로 변하니 정말로 이쁘구나.]

  큰 길로 걸어 나와  나무에 묶여 있는 말 고삐를 풀고 몸을 날려 
말에 오르더니 채찍을 휘두르면서 일갈했다.

  [비켜라, 비켜라!  이놈들아! 길을 걸을 때는  눈을 차고 다니지 
않느냐! 하하하, 하하하.]

  큰 웃음이 터지면서 말머리는 남쪽을 향했다.
  그날 저녁 여항(餘杭)에 투숙을 하니 주인과 심부름 하는 아이는 
장군님! 장군님!  하고 부르면서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영호충은 
다음날 아침  복건에 가는 길을 확실하게  물어보고는 오전의 은을 
주니 주인과 심부름 하는 아이는 문밖까지 나와 배웅을 하였다. 영
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너희들이 재수가 좋다는 것을 알아라. 가짜 참장을 만났으니 망
정이지 만일 진짜 참장인 오천덕이가 와서 투숙을 해다면 너희들은 
아마 밤새도록 고생을 했을 것이다.)

  점포에 가서 거울과  한 병의 술을 사서 성 밖을 나오자,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거울을 보면서  한가닥 한가닥씩 수염에 풀을 묻
혀 얼굴에 붙였다. 한가닥 한가닥씩  얼굴에 붙이니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다  붙인 다음  거울을 보니 얼굴은  온통 수염투성이였으
며, 고슴도치가 실로 신기하여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껄껄 웃었
다.
  계속해서 남쪽으로 금화부(金華府), 처주부(處州府)를 지나니 남
쪽 지방의 말투는 이미 중주(中州)와  사뭇 달랐다. 심히 알아듣기
가 어려웠다. 모든 사람은 그가  군관인 것을 보자, 모두 혓바닥을 
말아 올려 관화(官話)로 말을 하여 심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그는 일생동안 수중에  이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없
어서 술을 마시면서 돈으 호탕하게 써버렸는데 그 나름대로의 돈쓰
는 재미도 있었다.
  단지 몸 속에 들어  있는 진기를 강제로 경맥 안에 흩어 놓고 조
금도 몸 밖으로 내보내지 못했다.  때때로 진기가 단전으로 치밀어 
올라오면 그는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를  하고 싶었다. 이때는 흑백
자의 진기까지 들어 있으니 옛날보다  더욱 견디기가 어려웠다. 매
번 발작을 할 때마다 임아행이 철판에 조각해 놓은 법문을 따라 단
전에서 다른  곳으로 진기를 분산시켰다. 진기가  단전을 떠나기만 
하면 바로 정신이 번쩍 들고  편하기가 이를데 없었으며 매번 이렇
게 연습을 할  때마다 자기 스스로 공력은 더  한층 깊었음을 느꼈
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위험한 한 걸음을 내디딘 것 뿐이었다. 다
행히 언제든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 생명은 즐거운 것이다. 하루를 지내면 그것이 나에게는 
공짜로 하루를 산 셈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그리도 편했다.
  이날 오후에 이미 선하령(仙霞嶺)에 들어섰다. 산길은 점점 구부
러지고 갈수록 높았다. 재에는  사람이 드물었다. 다시 이십여리를 
가니 민가를 볼 수 없었고, 이미 자기가 길을 재촉하느라 잠 잘 곳
을 지났음을 알았다. 날이 어두워 오자  들에 있는 과일 따서 배를 
채웠다. 절벽 아래 작은 동굴이  있고, 동굴 안은 퍽이나 건조하여 
벌레나 개미에게 물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곧바로 말을 나무에다 
매달아 스스로 풀을  뜯어 먹게 하고 마른 풀을  좀 찾아서 바닥에 
깔고 밤을 지낼 준비를 했다. 단지  단전의 기가 불편하여 즉시 앉
아서 공력을 운행했다. 임아행이 전해준  신공은 한번 연마할 때마
다 더욱  자기를 잡아 묶고  있었으며 연마를 할수록  재미를 느꼈
다. 일경 정도 연속 기를 돌리자 온몸이 편안해지고 마치 신선이나 
된 듯이 구름 속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긴 한숨을 쉬고 몸을 벌떡 일으켜 자기도 모르게 씁쓸히 웃
었다. 그리곤 내심 생각하였다.

  (그날 내가  임교주에게 물어보지 않았는가? 규화보전(葵花寶典)
이라는 최고의 무술 검법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재서 또 이 흡성대
법을 연마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그는  대답을 하지 아니했지. 그 
이유를 나는 지금에서야 알았다. 알고  보니 이 흡성대법을 연마하
기만 하면 다시는 손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르자, 내심 깜짝 놀랬다.

  (옛날 사모님께서 묘인(苗人)이 벌레를 기르는 일에 대해서 말씀
해 주시지 않았던가. 묘인은 독을 기르면 독의 피해를 알고 있으면
서 손을 놓기가 아쉽고 만약에 벌레를 놓아 사람을 물게 하지 아니
하면 벌레는 반대로 주인을 문다고  하였지. 장래에 내가 독벌레를 
기르는 묘인의 꼴이 되겠구나.)

  동굴을  걸어나오자 하늘에는 온통 별들이  가득 찼고, 사방에서 
벌레가 처량하게  울어댔다. 갑자기 산길에서 사람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그 사람과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으나, 그의 내공이 
강하여 귀가 멀리까지 들릴 수 있었다. 마음이 동하여 즉시 나무에
서 고삐를 풀어 말 엉덩이를 살짝  치니 그 말은 천천히 산허리 쪽
으로 달아났다.
  그가 나무 뒤로  몸을 숨겨 한참 지나니 산길에서는 발자국 소리
가 점점 가까이 들렸다. 사람수는 실로 적지 아니했으며 희미한 별
빛 아래서 보니  오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
며, 그 중의 한 사람은 허리에 노란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의 차림
새를 보니 마교 사람인 것 같았고 그 나머지는 서른명 가까이 되었
다. 모두들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사람의 뒤를 따랐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이들은 지금 남쪽을 향해서 민( )의 땅에 들어가고 있구나. 그
렇다면 나의 화산파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설마하니 임교주
의 명을 받들고 사부와 사모를 괴롭히러 가는 것이 아닐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멀리 가자, 그는 그들의 뒤를 따랐다.
  얼마를 가니 산길은  갑자기 가파랐으며, 길 양쪽에는 절벽이 있
었고, 중간에는 좁디좁은 길 하나가  나 있었다.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삼십여  인은 긴 장사진을 
이루고 산길을 기어 올라갔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뒤따라간다면, 그들은 위에 있고  내가 아래에 있는 
셈이니 한 사람이라도 뒤를 돌아본다면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잽싸게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들이 산언덕을 올
라가서 아래로 향할 때 그는 그  뒤를 쫓아가기로 작정을 했다. 그
런데 그 일행은 언덕끝에 오르더니  갑자기 흩어져 각기 바위 뒤에 
숨어 버렸다.  순식간에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맨처음 생각하기를,

  (그들이 나를 보았단 말인가.)

  그러나 곧바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심 생각하기를,
  (그들이 이곳에서 매복하는 것은 언덕을 오르는 사람을 습격하기 
위해서이구나. 그렇다. 이곳의 지세는 상당히 절묘하여서 이곳에서 
갑자기 습격을 한다면 언덕을  오르는 사람은 틀림없이 빠져나가지 
못하리라. 그들이  누구를 습격하려고 매복하고  있는가? 설마하니 
사부와 사모님은 그들이 북쪽으로 간 다음,  또 무슨 급한 일로 복
건(福建)에 가야만  했을까?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밤낮으로 길을 
가는가? 오늘밤 나는 또 소사매와 만날 수 있을까?)

  악영산을 생각하니 갑자기  온몸이 달아 올랐다. 살며시 풀 속에
서 기어 곧장 산길 먼 곳까지  갔다. 비로소 여기저기 흔킹어진 바
위 사이에서 잽싸게 산을 내려갔다. 모퉁이를 돌아보니 이미 그 언
덕과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다시 돌아 산길에서 북쪽을 향해서 걸
어갔다.
  그는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여 앞에서 사람이 오
는가를 살폈다. 십여 리를 걸어가니  갑자기 좌측 산언덕에서 어떤 
사람의 힐책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 이 못된  놈을! 너는 그래도 그를 위해서 억지를 부리는
구나!]

  컴컴한 밤에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갑자기 어떤 사람이 자기 이
름을 분명하게 부르는 소리를 듣자,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그래서 사부님 일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여자 목소리였고, 또한 사모님이나 악영
산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곧바로  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단지 거리가 상당히 멀고 말소리  또한 작아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하게 들을 수가 없었다. 영호충이 그 언덕을 향해서 보니 삼사
십 명의 검은 그림자가 서 있는게 눈에 띄었다. 마음속으로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나를 그렇게 욕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만약에 정말로 
화산파 일행이라면 소사매가 다른 사람이 나를 그렇게 욕하는 소리
를 듣고는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는 즉시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춰 길  옆 관목숲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 언덕의 옆쪽을 돌아  허리를 숙이며 급히 갔다. 그리
고는 큰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한 여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사백님, 영호 사형께서는 의리를 행하고......]

  그러나, 단지 이 반 마디의 말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머리속
에는 아름답고 수려한 얼굴이 떠올랐다.  가슴 속에서 약간의 열기
가 올라오면서 이 말하는 사람이 바로 항산파의 비구니인 의림이라
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 사람들이 항산파 사람들이고 화산파 사람
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크게  실망했다. 마음이 격동되어서 의
림이 말하는 소리를 계속해서 들을 수 없었다.
  단지 조금 전에들려왔던 그 날카롭고 늙은 목소리가 화난 듯이 
말하는게 들려왔을 뿐이었다.

  [너는 나이가 어린데  어째서 고집을 부리는냐? 설마하니 화산파
의 장문인  악성생께서 보내주신 편지가 가짜란  말이냐? 악선생의 
편지에 의하면  영호충은 이미 그의 문중에서  쫓아내 버렸고 그가 
마교의 사람들과 작당을 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악선생이 억울하
게 그에게 죄를  덮어 씌웠다는 말이 되느냐?  영호충이 옛날 너를 
구해준 적이 있기 때문에 그는 아마 이 작디작은 은혜를 가지고 우
리들에게 어떤 가해를......]

 의림이 말을 했다.

  [사백님, 그건 절대로  어떤 은혜가 아닙니다. 영호 사형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그 늙은 목소리가 일갈했다.

  [너는 아직도 그를 영호 사형이라고 부르느냐? 그는 마음이 흉악
하고 악독한 사람이다. 그는 점잖은 척 가장을 하여, 너희 같은 어
린애를 속이는 것이다. 강호의 사람들은  음흉하고 교활한 자가 많
다. 너희들은 나이가  어려 견문이 적으니 더욱  쉽게 그의 꼬임에 
빠질 것이다.]

  의림이 말을 했다.

  [사백님의   분부신데  제자가   어찌  듣지  않겠읍니까?   그러
나...... 그러나...... 영호 사......]

  결국 영호 사형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억지로 참았다. 그 노인이 
물어보았다.

  [그러나 어쨌단 말이냐?]

  의림은 무서운 듯 더 계속해서 말을 하려들지 않았다.
  그 노인이 말을 했다.

  [이번에  숭산 좌맹주께서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마교들은 대거 
민( )땅에 들어와  복주 임가의  벽사검보를 탈취하려  한다고 했
다. 그래서 좌맹주께서는 오악검파의 사람들이 모두 합심하여 검보
가 그들 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하셨지. 이 요망한 악당
들이 그 검보를 탈취하게 된다면  그들의 무공이 크게 개진될 것이
고, 오악검파의 사람들은 처신할 장소를  잃게 된다. 그러나 그 복
주의 임씨 성을 가진 아이는  이미 악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있으니 
검보가 만약  화산파 수중에 들어간다면  그 이상 좋을  것이 없겠
지. 그러나 마교의 수법은 간교하기 이를데 없고, 더우기 화산파의 
옛제자인 영호충이 합세했으니 그들은 우리들의 사정을 잘 알 것이
다. 그래서 우리들의 처지가 대단히 불리하지. 장문께서는 이 막중
한 짐을 내 어깨에다 맡기셨어. 나에게  모두를 데리고 이 민 지방
에 데리고 가라고 명령하셨지. 이  일은 정.사 쌍방의 운명을 바꿔
놓을 일이지.  그러니 절대로 가볍게 여기면  안된다. 앞으로 삼십 
리를 더 가면 절민(浙 ) 두 지역의 경계이다. 오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오느라고  모두들 수고했다.  입팔포(卄八鋪)에 도착해서 
집으로 가자. 우리가 먼저 길을 재촉해서 그뒤에 가서 마교의 사람
들이 대거 쫓아 왔을 때를  기다려 우리는 거기에는 수비게 일망타
진을 할 수가 있지. 그러니 모두들 조심해서 일을 해야 한다.]

  몇십 명의 여자들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이 사태는 틀림없이 항산파의 장문인은 아니다. 그래서 의림 사
매는 그를  사백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항산삼정(恒山三定), 
그렇다면 정정사태이다.  그녀는 나의 사부님의 편지를  받고 나를 
나쁜 놈으로 여기고 있구나. 그 일을  가지고 그녀를 탓할 수는 없
지. 그녀는 길을 재촉할 줄말 알았지 마교의 사람들이 이미 매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구나. 다행히 내가 발견을 했는데 어떻
게 그 사실을 그녀들에게 알려줘야 옳을까?)

  정정사태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이제 민 땅의  경계에 들어서면 모두들 조심을 해야 한다. 사방 
모두가 우리들의 적이니라. 어쩌면 주점의 심부름꾼이나 찻집의 다
박사도 그들 마교의 끄나풀일지도 모르니  벽 속에 귀가 있는 것은 
고사하고 이 수풀 속에도 적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모두들 벽사검보라는 말소리를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악선생, 영호
충,  동방필패(東方必敗)의 이름도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안된
다.]

  여러 제자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녜.]

  영호충은 마교교주인  동방필패의 신공이 무적함을 알았다. 그래
서 자칭 불패인데  그러나 정교의 사람들은 그를  말할 때, 때때로 
필패(必敗)라고 말한다. 불패나 필패는 음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방
을 낮춰서 상대방의 기를 꺾어 놓으려고 그런 것이다. 그녀가 자기 
이름과 사부 및 동방불패의 이름을 동시에 거론하니 영호충은 씁쓸
히 웃으면서 생각했다.

  (나와 같은 무명소졸을  당신 항산파 선배들이 이렇게 높이 대해
주니 정말로 몸둘 바를 모르겠구료.)

  정정사태의 말소리가 또 다시 들려 왔다.

  [자 모두들 출발하자.]

  제자들은 또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일곱 명의 여제자가 언덕을 
잽싸게 내려갔다. 한참을 지나니 또 일곱 명이 뒤따랐다. 항산파의 
경공은 그 나름대로의 맥을 이뤄 무림 중에 퍽이나 그 명성이 알려
졌다. 앞 일곱 사람, 뒤 일곱 사람의 거리가 똑같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 마치 하나의 전법을 구사하는  것과 같았다. 열네 사람이 
소매를 휘날리며 똑같은 걸음으로 앞으로 나가는 것을 멀리서 쳐다
보니 아름답기가 그지 없었다. 다시 좀  지나니 또 일곱 사람이 급
히 내려갔다.
  얼마 되지 않아,  항산파의 여러 제자들은 한무리 한무리씩 길을 
떠났다. 모두 여섯 무리가 되었는데, 마지막 무리는 여덟 사람이었
다. 아마도 정정사태가 기어 있어서  그럴 것이다. 이 여자들은 여
승은 아니고 일반 민가의 여자들이었다. 컴커만 밤중이라 영호충은 
의림이 어느 대열에  끼어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였다.

  (이 항산파의 사저.사매들은  비록 각기 저마다의 기량을 갖추고 
있지만, 그러나 일단 그 언덕의 마교 사람들이 습격을 하면 틀림없
이 큰 피해를 당할 것이다.)

  그는 즉시 풀을  뜯어다가 풀즙을 짜서 얼굴에 바르고 또다시 흙
을 발랐다. 더우기 온 얼굴에 수염이  나 있고 설령 대낮이라 해도 
의림이 자기를 알아 보지 못할 것이다. 산길의 좌측을 돌아 정신을 
집중하여 위를 향해 갔다. 그의 경공은 본래 높지 않았으나 경공의 
높고 낮음은 내력의 강.약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때 그의 내력
은 높아 걸음이 상당히 빨랐다. 마음을 먹고 달리니 순식간에 항산
파의 여러 사람을 금방 뒤쫓을 수 있었다. 그는 정정사태의 무공이 
대단해서 그가 뒤따라 가는 것을  알아차릴까 염려되어 크게 한 바
퀴를 돌아 비로소 여러 사람의앞쪽으로 갈수 있었다. 산길을 오르
자, 그는 더욱 빨리 달렸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자, 달은 이미 중천에 걸려 있었다. 영호충은 
가파른 언덕에 와서 몸을 세우고,  조용히 들어 봤다. 그러나 숨소
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였다.

  (만약에 내가 친히  이곳에서 마교의 사람들이 매복하고 있는 것
을 보지 못했다면 어찌 이 상황이  몹시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
었겠는가?)

  천천히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 양쪽 절벽으로 되어 있는 길 입구
에 도착했다. 마교의 사람들이 매복하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
지 않았다. 영호충은 주저 앉아 내심 생각했다.

  (마교 사람들은 아마 나를 봤을 것이다. 단지 그들은 일망타진하
기 위해서 나에게 손을 쓰지 않을 것이다.)

  한참 기다렸다가 아예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마침내  은은하게 언덕 아래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내심 
어떤 생각이 들었다.

  (제일 좋은 것은  마교의 사람들이 나하고싸움을 하도록 시비를 
거는 것이다.  그들하고 싸움을 한다면 항산파의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중얼중얼 말을 했다.

  [이 어르신께서는 평생  제일 미워하는 것은 암암리에 숨어서 습
격하는 것이다. 씨가 있는 놈들이라면  정정당당히 앞에 나와서 겨
뤄야지. 몸을 숨겨 가지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을 습격이나 하니 
그것은 제일 염치가 없고 비굴한 행동이다.]

  그는 마교 사람들이 숨어 있는 쪽을 향해서 말을 했다. 말소리는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그늬 내력을  꽤 실어 보냈기 때문에 멀리까
지 잘 들릴 수가 있었다.  틀림없이 그 마교 사람들이 들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숨을 죽이고 달려나와 싸움을 걸지 않았다.
  얼마 안 있자,  항산파의 제 일차 일곱 명의 제자들이 이미 그의 
몸 앞에 당도하였다.
  일곱 명의 제자들은  달빛 아래에서 한 명의 군관이 사지를 뻗고 
땅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산길은 겨우 한 사
람만 지나갈  수 있을 뿐이고, 양쪽은  모두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만약에 언덕에 오르려면 그의 몸을  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제
자들은 몸을 약간  날려 그의 몸을 뛰어넘을  수도 있었으나, 남녀 
유별이라 남자의  머리를 타 넘는다는 것은  너무나 무례한 것이었
다.
  한 명의 중년 여승이 낭랑한 소리로 말을 했다.

  [실례합니다. 군관나리 길을 좀 비켜 주시겠읍니까?]

  영호충은 응응 두번 신음소리를 내고는 갑자기 코를 드르릉 드르
릉 골았다. 그 여승의  법명은 의화(儀和)인데, 성격은 호탕하였지
만 마음씨가 모가  나지 않았다. 군인 하나가  한밤중에 길을 막아 
잠을 자고 있는  것이 대단히 저돌적이고 또 코를  골고 자는 것이 
고의로 그러는 것 같아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화를 간심히 참으면
서 말을 했다.

  [당신이 만약  길을 비켜 주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정말로 당신 
몸 위로 지나가겠읍니다.]

  영호충은 코를 드르릉 드르릉 골며 흐리멍텅한 목소리로 말을 했
다.

  [이 길에는 악마와 귀신들이 많이 있어서 절대로 건너갈 수가 없
읍니다. 음 고통은 끝이 없구나. 그러나 뒤를...... 뒤를...... 돌
아보아도 절벽이고.]

  의화는 멈칫했다.  그의 이 말 속에는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 다른 한 명의 여승이 그녀의 옷소매를 흔들자, 일곱 사
람은 모두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한 사람이 조용한 소리로 말을 했다.

  [이 사람은 조금 이상한 데가 있군요.]

  또 한 사람이 말을 했다.

  [그는  마교에서 보낸 사람인지도  모르겠군요. 그래서 이곳에서 
우리들에게 도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이 말을 했다.

  [마교의 사람들 속에는 절대로 조정의 군관이 없읍니다. 설령 변
장을 한다해도 다른 모양으로 변장을 할 것입니다.]

  의화는 말을 했다.

  [누구든지 상고나하지 말아라. 그가 만약 길을 더이상 비켜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냥 그의 몸 위로 지나가 버리면 된다.]

  큰 걸음으로 앞으로 나오면서 일갈했다.

  [당신이  정말로 비켜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례를  하겠읍니
다.]

  영호충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
다. 그는 여전히 의림이 자기를  알아볼까봐 얼굴은 언덕을 향하고 
등은 항산파 사람들 쪽으로 향했다. 우측손은 절벽 위에 짚고는 몸
을 흔들흔들, 마치 술에 취한 사람과 같았다. 그리곤 말을 했다.

  [좋은 술이다! 좋은 술이야!]

  바로 이때 항산파의  두번째 대열의 제자들이 도착했다. 한 명의 
여제자가 물었다.

  [의화 사저, 이 사람은 이곳에서 무얼하고 있읍니까?]

  의화는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가 누군지 어떻게 아는가?]

  영호충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조금 전에 개를 한 마리 잡아 배불리 먹고 또 술을 늘씬하게 먹
었더니 게우고 싶구나, 아이고 큰일 났네. 정말로 올라오는구나.]

  그는 즉시 꽥꽥 소리를 지르며 토해댔다.
  여러 제자들은 눈쌀을  찌푸리며 코를 막고 너도 나도 비켜섰다. 
영호충은 몇번  게웠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여러 제자들이 
서로 말을 주고받는 사이 세번째 대열의 제자들이 도착했다.
  하나의 부드럽고 청초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 사람은 술에 취했으니 참으로 불쌍하군요. 그에게 좀 쉬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 가도 늦지는 않습니다.]

  영호충은 그 목소리를  듣고 마음이 으스스 떨렸다. 깊이 생각하
기를,
  (의림 소사매는 정말 마음씨가 선량하고 곱구나.)

  의화는 말을 했다.

  [이 사람은 이곳에서 억지로 부리는 것이고, 절대로 좋은 마음으
로 그러는 것은 아니다.]

  한 걸음 앞으로 가더니 일갈했다.

  [비켜라!]

  손바닥을 내밀어 영호충의  좌측 어깨를 쳤다. 영호충은 몇번 비
틀거리더니 외쳤다.

  [아이고, 아이고! 말을 잘 들어야겠는걸!]

  넘어질 듯 말  듯 앞으로 몇발자국 걸음을 옮겼다. 이 한 발빠이 
앞으로 나가니 사태는 더욱 난감해졌다. 그의 몸은 좁디 좁은 산길
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뒤에 오는  사람은 그의 머리위로 뛰어 넘
지 가지 않으면 절대로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의화는 곧바로 따라와서 일갈했다.

  [비켜라!]

  영호충은 말을 했다.

  [녜! 녜!]

  또 몇 발자국 앞으로 올라갔다. 그가 갈수록 언덕은 더 가파르고 
그 산길은 더욱 꽉꽉 막혔다. 영호충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보시오?  위에서 매복하고  있는 친구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시
오. 당신들은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당신들이 단숨에 함께 쳐내려 온다면  그 누구도 도망칠 수가 없읍
니다.]

  의화는 이  말을 듣자, 즉시 뒤로 물러섰다.  한 사람이 말을 했
다. 

  [이곳의 지형이 상당히  험악하여 만약 적이 매복해서 습격해 온
다면 정말로 막기가 어렵습니다.]

  의화는 말을 했다.

  [만약에 사람이 매복하고  있다면 그가 어째서 큰 소리로 외쳤겠
느냐? 이것은 거짓이고 믿을 것이 못된다. 위에는 틀림없이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만약에 이렇게 당황한 꼴을 보인다면 적이 우
리를 보고 비웃을 것이다.]

  또 다른 중년의 여승이 일제히 말했다.

  [녜, 맞소. 우리 세 사람이 앞에서 길을 터놓을테니 사매들은 뒤
를 따라 오시오.]

  세 사람은 장검을  칼집에서 뽑더니 영호충의 몸 뒤로 달려 들어
갔다. 
  영호충은 계속 숨을 헐떡이며 말을 했다.

  [이  산길은 정말로 가파르기 그지없구나.  아이고, 이 노인네가 
나이가 많아 움직일 수가 없어.]

  한 명의 여승이 일갈했다.

  [보시오. 길 좀  비켜 주시오. 우리가 먼저 가도록 하면 안 되겠
소?]

  영호충은 말을 했다.

  [출가한 사람이 어째서 성질이 급합니까. 빨리 가도 도착하고 천
처히 가도  도착하는 것인데 헥헥 염아대왕  앞으로 가는데 천천히 
갈수록 좋은 것이 아니오.]

  한 명의 여승은 말했다.

  [이 사람이 말을 빙빙 돌리면서 말을 하고 있구만.]

  싹 하는 검소리와 함께 의화의 좌측에서 영호충의 등짝을 향해서 
내리 찍었다. 그는  단지 영호충에게 겁을 주려고  했을 뿐이고 이 
일검이 그의 몸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더이상 손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영호충은 마침 이때 몸을  돌리자, 칼끝이 자기의 가슴을 겨
누고 있음을 보고 큰 소리로 일갈했다.

  [보시오. 당신은......  당신은...... 이것이 무슨 짓이오? 나는 
조정에서 보낸  명관인데 어째서 감히 이렇듯이  무례하오. 여봐라 
이 여승을 잡아 넣어라.]

  몇 명의 젊은 여자들은 킥킥킥 웃어댔다. 이 사람은 이 허허벌판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도 여전히 벼슬아치의 티를 내고 있으니 정말
로 우스운 것이다.
  한 명의 여승이 웃으면서 말했다.

  [군관 나리, 우리는  일이 좀 급해서 그러고 한시라도 빨리 갈데
가 있읍니다. 실례하지만 길 좀 비켜 주시겠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무슨 군관 나리고 안 

반응형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용 소오강호7  (0) 2023.02.19
김용 소오강호6  (0) 2023.02.19
김용 소오강호4  (0) 2023.02.18
김용 소오강호3  (0) 2023.02.18
김용 소오강호2  (0) 2023.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