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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의천도룡기 21~25

by Casey,Riley 2023.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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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4 권


     제 2 장  괴짜들의 모임 


 장무기의 몸이 다시 허공을  날아오르는 순간 홀연 멀리서 낭랑
한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설불득, 왜 이제서야 오는 거요?"

 장무기를 포대에 짊어지고 있는 자가 대꾸했다.

 "도중에서 사소한 일이 생겨 늦었소. 위일소는 벌써 와 있소?"

 먼곳에 있는 자가 다시 말했다.

 "아직 오지 않았소. 거참  이상하단 말야. 그가 이렇게 늦을 리
가 없는데..... 설불득, 혹시 오는 도중에 그를 보지 못했소?"

 그 자는 물으면서 차츰 가까이 다가왔다.

 장무기는 내심 별일이 다 있다고 느껴졌다.

 '이제 보니 이 사람의 이름이 정말 설불득(말못해)이구나. 그러
니 내가 이름을 물었을  때 말 못해(설불득)라고 대답했군. 세상
에 이런 이상한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니.....'

 그의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게다가 그는 이곳에서 위일소와 만나기로 약속한 모양이야. 주
아가 과연 무사할까? 그는 위일소와 친한 친구인 것 같은데 과연
날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설불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철관도형(鐵冠道兄), 우리 위형을  찾아봅시다. 아무래도 무슨
변고가 생긴 것 같소."

 철관도인이란 자가 그의 말을 받았다.

 "청익복왕은 누구보다도 꾀가  많고 무공도 탁월하니 별다른 사
고가 없을 것이오."

 "이제까지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소."

 이때 아랫쪽으로부터 제 삼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설불득, 땡중과  철관도사인지 돌팔이도사인지  몰라도 거기서
한가롭게 잔소리만 늘어놓지 말고  어서 이리 내려와 좀 도와 줘
야겠소! 큰일났소! 아주 큰일이 생겼소!"

 설불득과 철관도인은 일제히 놀란 음성으로 외쳤다.

 "주전(周顚) 형이오?  대관절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소?"

 이어 설불득이 혼자 중얼거리듯이 다시 말했다.

 "음성에 힘이 없는 것을 보니 부상을 입은 것 같은데....."

 그는 철관도인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장 장무기를 짊어진 채 아
랫쪽으로 뛰어내려갔다. 철관도인도  그의 뒤를 따랐다. 이어 철
관도인의 놀란 음성이 터졌다.

 "앗! 주전이 업고 있는  자가 누구요? 아니..... 저건 위일소가
아니오?!"

 설불득도 소리쳤다.

 "주전, 당황하지 마시오. 우리가 도와 주겠소!"

 주전이란 자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당황하긴 내가 왜  당황해! 곧 숨을 거둘 사람은 내
가 아니라 이 위일소인데!"

 설불득이 그의 말을 받았다.

 "위형이 어떻게 된 거요? 어디에 부상을 입었소?"

 이렇게 물으며 걸음을 빨리 했다.

 장무기는 포대안에서 흡사 구름을 타고 날으는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 나직이 한 마디 내 뱉었다.

 "선배님, 일단 날 내려놓고  사람부터 구하는 게 시급하지 않겠
습니까?"

 설불득은 갑자기 포대를 허공에서 세 바퀴 돌렸다. 장무기는 가
슴이 철렁했다. 만약 설불득이  포대를 휘두르다가 손을 놓는 날
엔 그 결과를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설불득도 음성을 낮추어 말했다.

 "이놈아, 내 말을 똑똑히 들어라.  나는 포대화상(布袋和尙) 설
불득이고, 뒤에 있는 자는 철관도인 장중(張中), 그리고 아래 있
는 자는 주전이다. 우리 세 사람에다가 냉면선생(冷面先生) 냉겸
(冷謙)과 팽영옥  화상을 합하면  바로 명교의 오산인(五散人)이
다. 넌 명교가 뭔지 아느냐?"

 "압니다. 이제보니 당신도 명교의 사람이었군요."

 "그렇다. 나하고 냉겸은 사람  죽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
만, 철관도인, 주전, 팽화상은 살인을 밥먹듯이한다.  그들이 만
약 네가 포대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면 즉시 묵사발로 만들
것이다."

 "난 그들에게 아무 잘못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이런 맹랑한 녀석 봤나? 그들이 사람을 죽이는데 꼭 이유가 있
어야 하느냐? 죽고 싶지 않거든  그 속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어
라. 알겠느냐?"

 장무기는 한 마디 쏘아붙였다.

 "나더러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설불득은 멍해지는 모양이었다.

 "아니..... 이런 고약한 녀석,  네가 알았다면 됐다.... 앗! 위
형은 어떻게 됐소?"

 마지막 한 마디는 주전에게  묻는 것 같았다. 과연 주전의 꺼칠
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 그는 끝장났소! 이젠 끝장이야!"

 설불득의 음성이 이어졌다.

 "음..... 위형의 심장이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군. 주전, 당신이
위형을 구해 줬소?"

 "두말하면 잔소리지. 아니, 그럼  그가 날 구해 준 거라 생각했
소?"

 이번엔 철관도인이 입을 열었다.

 "주전, 그가 대관절 어딜 다친거요?"

 주전의 대답은 간단했다.

 "난 그가  송장처럼 빳빳하게 노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
소. 그래서 모처럼 자비심을 베풀어 살려 주려고 몸을 만져 봤더
니 얼음장처럼 차가왔소. 그의 체내에 진기를 주입시켜도 소용이
없었소. 바로 그렇게 된 거요."

 설불득이 말했다.

 "주전, 자네의 말대로 정말 난생 처음으로 좋은 일을 했군."

 "빌어먹을,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이고 간에 그를 살리려다가 한
독(寒毒)이 내  체내로 주입되어 오히려 나까지  목숨을 잃게 될
것 같소."

 철관도인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체내에 스며든 한독이 그렇게도 심하단 말이오?"

 주전은 코웃음을 쳤다.

 "흥! 이 모든 게 인과응보가 아니겠소. 나하고 흡혈복쥐는 여지
껏 살아오면서 나쁜 일만  행하다가 모처럼 마음을 곧게 먹고 좋
은 일을 했는데 이런 꼴을 당했으니....."

 설불득이 그에게 물었다.

 "위형도 무슨 좋은 일을 했단 말이오?"

 "그렇소. 그는 체내의 한독이 발작돼 사람의 피를 빨아먹어야만
했소. 당시 곁에 분명  계집애가 하나 있었는데도 피를 빨아먹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로 한 것이오."

 장무기는 위일소가 주아의 피를  빨아 먹지 않았다는 사실에 내
심 뛸 듯이  기뻐했다. 설불득은 포대를 툭  치고 나서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그 계집애는 도대체 누구요?"

 주전이 대답했다.

 "흡혈복쥐의 말에 의하면 백미 늙은이의 손녀라고 합디다. 그는
지금 우리 명교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절대 그녀의
피를 빨아먹을 수 없다고 했소."

 설불득과 철관도인은 일제히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건 정말 옳은  예기요. 백응(白鷹)과 청복(靑輻) 즉, 백독수
리와 청박쥐가 서로 아웅다웅하지 않고 손을 잡는다면 우리 명교
는 천하무적이 될 것이오!"

 설불득은 위일소의 몸을 받았다.

 "몸이 이렇게 차가우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주전이 뜻밖의 제의를 했다.

 "지금으로선 생사람의  피를 빨아먹게 하는  수밖에 없소. 한데
이 주위엔 잡아먹을 만한 사람이 없으니 설불득, 당신 포대 속에
있는 녀석을 위형에게 주는 게 어떻겠소?"

 장무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보니 내가 포대속에 있다는 걸 벌써 알고 있었군.'

 설불득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이 녀석은 본교에 대해 큰 은혜를 베푼 바
가 있소. 위형이 만약  그를 잡아먹는다면 오행기가 모두 목숨을
걸고 위형과 생사결단을 낼 것이오!"

 철관도인이 그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오행기를 굴복시키기 위해 그 녀석을 포대속에 넣
어왔단 말이오?"

 설불득은 자못 진지하게 말했다.

 "본교는 현재 사분오열되어 있소. 이런 어려운 판국에 천응교는
멀리서 도우러 왔다가 엉뚱하게도 오행기와 지난 일을 갖고 다시
맞붙게 되었소.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린 자멸하고 말 것이오.
포대 속에  있는 자는 본교의 형제들이  다시 협심합력하는데 큰
공을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소."

 여기까지 말한 그는 위일소의 등 뒤 영대혈(靈坮穴)에 손바닥을
붙여 내력을 주입시켰다. 그것을 본 주전이 한숨을 내 쉬었다.

 "설불득, 당신이 친구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것은 좋지만 자신
의 목숨이 달아나지 않도록 조심하구료."

 철관도인도 앞으로 나섰다.

 "나도 그를 돕겠소."

 그는 설불득의 왼손을 잡았다. 설불득을 통해 자신의 내력을 역
시 위일소의 체내에 주입시켜 주었다.

 밥 한  끼 먹는 시간이 경과되었을까?  위일소는 나직이 신음을
토하며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몸뚱아리는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
가왔다.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주전, 철관도형, 도와줘서 고맙소."

 그는 설불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생
사지교를 맺은 사이이므로 구태여 일부러 고맙다는 인사를 할 필
요가 없었다. 철관도인은  공력이 심후하지만 위일소의 체내에서
배출된 한독을 저항하느라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설불득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동쪽 산봉우리 쪽에서 홀연 금성(琴聲)이 쨍쨍 울리며 간
간이 맑은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주전은 이내 그 소리의 주인공
을 알아보았다.

 "냉면선생과 팽화상이 온 모양이오."

 그는 곧 음성을 높여 외쳤다.

 "냉면선생, 팽화상, 부상을 입은 사람이 있으니 빨리 오시오!"

 금성이 다시 쨍쨍 울렸다. 알았다는 표시인 것 같았다.

 팽화상이 묻는소리가 들려왔다.

 "누..... 가..... 부..... 상을..... 입..... 었..... 소?"

 그의 외침소리가 멀리서부터 차츰 가까이 들려오며 산울림이 되
어 퍼져 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이미 가까이 달려왔다.

 "아니..... 위일소가 부상을 당했단 말이오?"

 주전이 대답했다.

 "그렇게 허둥대지 말고 우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시오. 냉면
형, 아무래도 당신이 수를 강구해 줘야겠소."

 냉겸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일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물론
자세한 경위도  묻지 않았다. 팽화상이  틀림없이 세세하게 물을
것이므로 자기는 구태여 기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과연 팽화상이 연방 질문을  내뱉고 주전은 뒤죽박죽 대꾸해 주
었다. 그간의 경위를 다  얘기해 주었을 무렵 철관도인과 설불득
도 운기조식을 마쳤다. 이번에는 팽화상과 냉겸이 내력으로 위일
소의 한독을 몸 밖으로 배출시켰다.

 위일소와 주전의 원기가 약간 회복되자 팽화상이 말했다.

 "나는 동북쪽에서 달려오는 도중, 소림의 장문인 공문이 사제와
공지, 공성 그리고 백여 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광명정(光明頂)으
로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소."

 냉겸이 즉시 그의 말을 이었다.

 "동쪽, 무당오협!"

 그의 말은  매우 간략했다. 그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쓸데없는
말은 한 마디도  더하지 않는 성미였다. 그가  방금 내뱉은 여섯
글자는 '동쪽에선  무당오협이 공격해  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무당오협이 바로 송원교, 유연주, 장송계, 은이정, 막성곡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힘들여 입을  더 놀리지 않은 것이
다.

 팽화상이 다시 말했다.

 "육파가 합세하여 진격해 오며  차츰 포위망을 좁히고 있소. 오
행기가 몇 차례 접전을  했지만 상황이 매우 불리하오. 아무래도
우리가 먼저 광명정으로 가야 할 것 같소."

 주전이 버럭 화를 냈다.

 "빌어먹을, 개 같은 소리 작작하시라고! 양소 그 녀석이 우리에
게 구원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우리 오산인이 자발적으로 그를 도
우러 가란 말이오?!"

 팽화상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전, 만약 육파가  광명정을 공파하여 성화(聖火)를 꺼뜨린다
면 앞으로 우린 무슨 낯을 들고 살아가겠소? 양소가 우리 오산인
의 비위를 건드린 건  사실이오. 하지만 우리가 광명정을 지키자
는 것은 양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명교를 위한 일이 아니겠소?"

 설불득도 한 마디 거들었다.

 "팽화상의 말이 맞소. 양소는 비록 무례하고 건방지지만 그와의
사적인 원한보다도 명교를 수호하는 일을 앞세워야 할 것이오."

 주전이 욕설을 터뜨렸다.

 "개소리야, 개소리! 두  땡중이 한꺼번에 개소리를 하니 개소리
가 요란하군. 철관도인, 양소 그 녀석이 왕년에 어깨뼈를 으스러
뜨린 일을 벌써 잊었소?"

 철관도인은 잠시 생각을 굴리는 듯 하다가 입을 열었다.

 "교를 수호하여  외적을 퇴치하는 일이  더 시급하오. 양소와의
빚은 외적을 물리친 후에 따져도 늦지 않소. 그 때 가서 우리 오
산인이 힘을 합친다면 양소도 굴복할 것이오."

 주전은 흥! 하고 냉소를 날리며 이번엔 냉겸의 의사를 물었다.

 "냉겸, 당신의 생각은 어떻소?"

 냉겸은 지체없이 한 마디 내뱉었다.

 "같이 갑시다!"

 주전은 대뜸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당신도 양소에게 굴복하겠다는 거요? 당시 우리 오산인은 어떠
한 상황이 닥친다 해도 교의 일을 관여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
는데, 그게 모두 개소리였단 말이오?"

 냉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소리요!"

 주전은 발끈하여 벌떡 일어났다.

 "모두 개소리를 한 모양인데 난 짖은 일이 없소이다!"

 철관도인이 그의 손을 잡았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우리에게  불리하오. 어서 광명정으로 갑시
다!"

 팽화상도 주전을 달랬다.

 "주전, 왕년에 교주의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서로 등을 돌리게
된 것은 물론 양소의 흉금이 좁았던 탓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
면 우리에게도 잘못이 없는 건 아니외다."

 주전이 다시 눈을 부라렸다.

 "닥치시오! 우리 오산인 중에 어느 누구도  교주의 자리를 탐낸
자가 없거늘 무엇을 잘못했다는 거요?"

 설불득이 나섰다.

 "본교에서 일어난 과거지사에  대해 옳고 그릇됨을 따진다면 아
마 석달 열흘 동안 논쟁을  벌여도 결과가 나지 않을 것이오. 주
전, 내가 한  마디만 묻겠소! 당신은 명존화성(明尊火聖)의 제자
가 아니오?"

 "누가 아니라고 했소? 왜 갑자기 그걸 묻는거요?"

 "오늘 본교는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소. 그런데 우리가 수수방
관만 한다면 죽은  후에 무슨 면목으로 명존과 양교주(陽敎主)를
대할 수 있겠소?  당신이 만약 육파를 겁낸다면  가지 않아도 좋
소. 우리가 광명정에서 죽거든 나중에 유해라도 묻어 주시구료."

 주전은 펄쩍 뛰며 냅다 설불득의 뺨을 후려쳤다.

 "개소리!"

 철썩 하는  소리가 들리며 설불득은 그에게  뺨을 맞았다. 그는
천천히 입을 벌려 부러진 이빨 몇 개를 뱉어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뺨은 이내 불그죽죽하게 부어올랐다.

 팽화상 등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놀란 것은 주전 자신
이었다. 설불득의 무공은 주전과 백중지세를 이루고 있으므로 충
분히 피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뺨은 맞은
것이다. 주전은 오히려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는 악을 쓰듯 소
리쳤다.

 "설불득! 어서  내 뺨을 때리시오! 만약  때리지 않으면 당신은
사람도 아니오!"

 설불득은 담담하게 웃었다.

 "힘을 아껴  두었다가 적을 때려야지 왜  한집안 식구를 때리겠
소?"

 주전은 대노하여 손을 들어올리더니 다짜고짜 자신의 뺨을 때렸
다. 찰싹! 그도 곧 퉤! 하고 부러진 이빨 몇 개를 내 뱉었다.

 팽화상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주전, 이게 무슨 짓이오?"

 "무슨 짓이냐고?  흥! 애당초 내가 설불득을  때린 게 잘못이었
소. 그래서 내 뺨을 때리라고 했는데, 출수를 하지 않으니 내 스
스로 자신의 뺨을 때려 속죄하는 도리밖에 더 있겠소!"

 설불득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주전, 당신과 나는 형제나 다를 바가 없소. 이제 우리 네 사람
은 광명정으로 달려가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까짓 뺨을
한 대 얻어맞은 게 뭐가 대수롭소?"

 주전은 격한 감정이 북받쳐 그만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함께 가겠소! 양소와의 옛 일은 당분간 따지지 않겠소!"

 팽화상은 매우 기뻐했다.

 "정말 생각 잘 했소. 역시 우린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형제임에
틀림없구료!"

 장무기는 포대 안에서 이들의  대화를 한 자도 빠짐없이 똑똑히
들었다. 그는 이 다섯  사람이 무공도 고강하지만 그보다 의리가
돈독한데 경의를 금치 못했다. 명교의 제자들이 한결같이 사악한
무리라는 강호의 일반 인식과는  다른 것 같았다. 아울러 명교에
이러한 고수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
다.

 장무기가 생각을 굴리고  있는데 갑자기 포대가 위로 올려졌다.
아마 설불득 일행이 광명정으로 향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주아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한  가지 걱정을 덜어낸 셈이다. 광명
정에 당도하면 어릴 적에 헤어졌던 양불회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
는데, 과연 그녀가  자기를 알아볼는지? 또한 육대문파가 광명정
을 공격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장무기는 결코 마
음이 편치 않았다.

 설불득 일행은 이날 밤새도록 길을 재촉했다. 장무기는 포대 속
에서 갑갑해 죽을 지경이었다.  설불득은 가끔 포대의 끈을 풀어
그로 하여금 신선한 공기를  들이키게 해 주었다. 다음날도 계속
길을 재촉했다. 오후쯤  되었을까, 장무기는 갑자기 포대가 땅에
질질 끌리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랐으
나 나중에 우연히 고개를 쳐들다가 머리가 암석에 부딪치자 비로
소 낮은 동굴,  혹은 산중턱을 꿰뚫은 통로  안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통로 안은  한기가 대단하여 몸이 움츠러질 지
경이었다. 약 반 시간이 지나서야 통로를 빠져나와 다시 높은 지
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또 낮은 통로로
들어갔다. 이렇게 하여 모두 다섯 군데 통로를 지났다.그제서야
주전의 냉랭한 외침이 들려왔다.

 "양소! 흡혈복쥐와 오산인이 당신을 찾아왔소!"

 잠시 후, 앞쪽에서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렸다.

 "청익복왕과 오산인이 행차를 하셨는데, 이 양소가 미처 마중나
가지 못해 죄송하오."

 주전이 다시 말했다.

 "그 따위 마음에도 없는 말은 듣고 싶지 않소! 속으로는, 이 녀
석들이 다시는 광명정에  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면서 무엇 때문
에 제 발로 달려왔는지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겠지?"

 양소는 껄껄 웃었다.

 "육파가 사면팔방에서 협공해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청익복왕과 오산인이 대의(大義)
를 위해  나와의 사사로운 감정을 접어두고  이렇게 달려와 주신
것에 대해 그저 감사할 따름이오."

 주전이 냉소를 날렸다.

 "그게 진심이라면 다행이군!"

 양소는 곧 그들을 안내했고 나이 어린 동자를 시켜 향차와 술을
대접했다.

 그러는 가운데 갑자기 동자의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 비명소리에 포대 속에  있는 장무기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
는 눈으로 볼 수 없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랐다. 잠시 후 위일
소가 웃으며 말하는 게 들려왔다.

 "양좌사(陽左使), 당신이 부리고 있는,  어린 동자를 상하게 한
데 대하여 나중에 필히 보답을 해 드리겠소."

 그의 음성은  정기가 넘쳐 흘렀다. 장무기는  이내 깨달은 바가
있어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그는 동자의  뜨거운 피를 빨아 먹어  체내의 한독을 억제시킨
거로구나.....'

 양소가 태연하게 말했다.

 "우리 사이에  보답은 무슨 보답이오?  청익복왕이 와 주신것만
해도 나로서는 더 없는 영광이라 생각하오."

 이 일곱 사람은 모두  명교의 절정 고수들이었다. 그들이 한 자
리에 모이자 새로운 힘이 샘솟는 것 같았다. 술을 곁들여 식사를
마치자 이들은  적에 대항할 대책을  의논했다. 설불득은 포대를
한쪽에다 아무렇게나 방치해 두었다. 장무기는 목이 마르고 허기
를 느꼈으나 설불득의 충고를 되새기며 감히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일곱 명은 잠시 상의를 하고 나서 팽화상이 말했다.

 "광명우사(光明右使)와 자삼용왕은  행방불명이고, 금모사왕 또
한 생사를 알 길이  없으니 그들을 제쳐놓고서라도, 현재로서 가
장 불행한 일은 오행기와 천응교의 마찰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는 사실이오. 며칠 전 정면  대결을 벌여 쌍방이 모두 큰 피해를
입었소. 만약 그들도 광명정으로  달려와 손을 잡고 적과 대항한
다면 육파가 아니라 십 이 파라 할지라도 우리 명교는 유리한 고
지를 선점할 텐데....."

 설불득이 한쪽에 놓여 있는 포대를 발로 살짝 걷어차며 말했다.

 "이 포대 속에 있는 녀석은 천응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한
편, 최근에 오행기에게도 은혜를 베푼 바가 있소. 나중에 어쩌면
이 녀석을 통하여 쌍방의 질분을 해결하게 될지도 모르오."

 위일소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새로운 교주가 정해지기 전에는 본교의 분쟁이 그치지 않을 것
이오. 그러니 이 녀석이 제아무리 하늘을 날으는 재주가 있다 한
들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진 못할 것이오. 양좌사, 내가 한 마디
묻겠는데 허심탄회하게 대답해 주시오. 일단 강적을 퇴치한 후에
누구를 교주로 내세우겠소?"

 양소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당연히 성화령(聖火令)을 갖고  있는 자를 교주로 추대할 것이
오. 그것이 바로 본교의  교칙이기 때문이오. 한데 왜 갑자기 그
것을 묻소?"

 위일소가 즉시 그의 말을 받았다.

 "성화령을 잃은 지 벌써 백 년이 가깝소. 그렇다면 성화령을 되
찾기 전에 명교는 교주를 내세울 수 없다는 뜻이 아니오? 육파가
감히 광명정으로 침공해 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본교에 통솔자가
없고 내부가 사분오열되었기 때문이 아니겠소?"

 설불득이 나섰다.

 "위형의 말이 맞소. 나는  어느 계파에도 소속돼 있지 않소. 누
가 교주가 되어도 좋으니 하루속히 교주를 정해야 하오. 설령 교
주가 아니더라도 좋소. 부교주  라도 있어 형제들을 호령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서 만족하오."

 철관도인이 모처럼 입을 열었다.

 "나도 설불득의 말에 동감이오."

 양소는 안색이 변했다.

 "여러분들은 날 도와 외적을  퇴치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오,
아니면 날 난처하게 만들기 위해 온 것이오?"

 주전이 대소를 터뜨렸다.

 "하핫.....! 양소, 당신이 교주를 새로 추대하지 않으려는 속셈
이 뭔지 난 잘 알고 있소. 명교에 교주가 없는 한 광명좌사의 직
책이 가장 높기 때문이  아니오? 흥! 그러나 직위가 높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 아무도 당신의  호령에 따르지 않으니 혼자의 힘
으로 오행기를 움직일 수 있나, 아니면 사대호교법왕(四大護敎法
王)을 지휘할 수가 있나? 우리 오산인만 하더라도 광명좌사 따위
는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소!"

 양소는 대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오늘 막강한 외적을 맞이해 나 양소는 여러분들과 이런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소. 그러니 명교의 존망에 대해 수수방관하겠다면
당장 하산을 하도록 하시오. 요행히 나 양소가 죽지 않는다면 나
중에 여러분들을 일일이 방문하겠소이다!"

 팽화상이 얼른 나서서 만류했다.

 "양좌사, 우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힙시다. 육파가 명교를 협
공하는 이 마당에 본교의  제자라면 누구나 교를 지켜야 할 책임
이 있소. 이건 당신 혼자만의 일이 아니외다."

 양소는 냉소를 날렸다.

 "본교 중엔 눈에 가시를 없애기 위해 이 양소가 육파의 손에 죽
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을 것이오!"

 주전이 즉시 따지고 들었다.

 "방금 그 말은 누굴 겨냥해서 한 것이오?"

 "당사자가 더 잘 알고 있을 게 아니오?"

 "그럼 날 지칭해서 한 말이란 말이오?"

 양소는 다른 곳에 시선을 준 채 그를 외면했다.

 팽화상은 주전의 눈에서 이상한 광채가 발해지는 것을 발견하고
그가 어쩌면 양소에게 출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나섰다.

 "옛말에 이웃과의 싸움 때문에 집안 싸움 사라진다는 말이 있지
않소? 자, 우선 외적에 대항할 대책을 상의합시다."

 양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팽대사는 생각이 깊구료."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얼씨구! 그렇다면 팽땡중은 생각이 깊고 이 주전은 옹졸하다는
뜻이외까?!"

 그는 황소고집이 발작돼 앞뒤 가리지 않고 소리쳤다.

 "오늘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교주를  정해야겠소! 난 위일소를
교주로 추천하겠소. 흡혈복쥐는  무공도 높고 지모(智謀)도 뛰어
났으니 본교에서 그를 따를 인물이 없을 것이오!"

 사실 주전은 평상시 위일소와 별로 교분이 두텁지 못했다. 오히
려 서로 좋은  감정보다 나쁜 감정이 더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일부러 양소의 심사를 긁어놓기 위해 위일소를 교주로 앞
세운 것이다.

 양소는 즉시 광소를 날렸다.

 "하핫..... 내가 보기엔 주전을 교주로 내세우는 게 더 좋겠소!
명교는 현재 사분오열되어 있으니 내친 김에 우리의 추대 교주를
내세워 아예 풍지박산을 면하면 만사가 깨끗이 해결될 게 아니겠
소!"

 주전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튀어나왔다.

 "개 주둥아리에서 상아가 나올 리 없다더니 이런 죽일 놈의...
....."

 그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냅다 양소의 면상을 향해 쌍장을 뻗어
냈다. 양소는 설불득처럼 순순히 당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도 지
체없이 우장(右掌)을 밀어내 주전이 뻗쳐낸 손을 맞이해 갔다.

 위일소는 양소의  무공을 잘 알고 있었다.  주전은 비록 체내의
한독이 제거됐다고  하나 원기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 양소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위일소는 다급
한 나머지 잽싸게 일장을  뻗어 주전 대신 양소의 장풍을 맞받았
다. 순간, 두 사람의  손이 허공에서 맞닥뜨려졌다. 뜻밖에도 아
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양소는 비록 주전에게 감정을  품고 있었으나 같은
명교의 형제라는 점을 감안하여  차마 살수를 전개할 수 없어 이
번에 전개한 일장에 전력을  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가 갑자
기 위일소로 바뀔  줄이야! 위일소의 한빙면장(寒氷綿掌)과 맞닥
드리는 순간, 양소는 오른팔에 심한 충격을 느끼며 한 갈래의 음
한지기(陰寒之氣)가 팔을 통해 체내로 뻗쳐 들어왔다.

 이렇게 되자 양소의  생각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주전등이
광명정에 나타난 것은  외적을 대항하는데 협력하기 위함이 아니
라 그것을  구실삼아 자기를 제거하려는  걸로 오해하게 되었다.
하여 즉각 내력을 끌어올려  정면으로 맞섰다. 이와 때를 같이하
여 주전이 상식 밖의 행동을 취했다.

 "양가야! 내 장풍의 맛을 보아라!"

 그는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가 내 뻗은
두 번째 장풍이  곧장 양소의 가슴을 향해 휘몰아쳐 갔다.  그의
이러한 행동이 양소의 오해를 더욱 가중시켰다.

 설불득이 황급히 소리쳤다.

 "주전, 이게 무슨 짓이오!"

 팽화상도 외쳤다.

 "양좌사, 위복왕! 어서 손을 거두시오!"

 그는 자세히 생각을 굴릴 겨를도 없이 왼손을 쭉 밀어내 주전의 
우장에 붙였다.

 설불득이 다시 소리쳤다.

 "주전, 둘이서 한 사람을 공격하는 법이 어디있소!"

 그는 손을 뻗어서 주전의 어깨를 나꿔잡았다. 그를 뒤로 끌어내
기 위함이었다. 한데 손이 어깨에 닿는 순간 주전의 몸이 희미하
게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내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설불득
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광명좌사의 공력이 대단하여 본
교의 절정 고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단 이장에 주전
에게 내상을 입힌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주전의 우장과 양소의 
좌장이 계속 맞붙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소리쳤다.

 "주전, 형제끼리 이렇게 목숨을 내걸고 싸울 필요가 있겠소?"

 그는 상대방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이번에는 양소에게 말했다.

 "양좌사, 속히 손을 거두시오!"

 이 순간, 주전의 몸이 비틀거리며 한 갈래의 뼈를 에일 듯한 한
기가 손바닥을 통해 곧장 가슴으로 스며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흠
칫했다.

 '이것은 위일소의 독특한  한빙면장인데, 어찌 양소가 주전에게 
전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서둘러 공력을  끌어올려 한기에 저항했다. 그러나 한기가 
갈수록 그 강도가 심해져 이내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철관도인과 팽화상도 일제히  출수하여, 한 사람은 주전을 돕고 
한 사람은 설불득을 호위했다.  네 사람이 힘을 합치니 그런대로 
한기를 견뎌낼 것 같았다.  그러나 양소의 장심(掌心)을 통해 뻗
쳐오는 힘줄기가 엄청나게 강해졌다가 다시 느슨해지며 시시각각
으로 변화를 일으켰다. 네  사람은 감히 손을 거둘 수가 없었다. 
장을 거두는 순간 양소의 손에서 뻗쳐오는 엄청난 힘줄기에 설령 
목숨을 잃지 않더라도 중상을 입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팽화상이 안타깝게 소리쳤다.

 "양좌사! 강적을 눈앞에 두고 우리끼리 이게 무슨....."

 그는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입을 열어 말을 내뱉는 새에 무지막지한 한기가 체내로 스며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태가 차 한  잔 마시는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냉면선생 
냉겸은 줄곧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한쪽에서 냉철한 표정으
로 지켜보았다. 그가 보기에  위일소와 사산인의 표정이 모두 긴
장으로 굳어  있는 반면, 양소는 태연자약했다.  이 점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양소의 무공이  비록 높다 해도  위일소와 백중지세일 것이다. 
한데, 설불득 등 넷까지 합세했으니 양소가 당해 내지 못해야 당
연하데 어째서 도리어 여유작작한 것일까?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
군.....'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해답을 
얻지 못했다.

 이때 주전이 소리쳤다.

 "냉면귀(冷面龜)! 어서..... 녀석의 등을..... 공격....."

 냉겸은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기 때문에  섣불리 출수하지 않았
다. 이런 상태에서  설령 자기가 합세한다 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품속에서 은으로 정
교하게 만들어진 다섯 자루의 작은 붓을 꺼내 손에 꼬나쥐었다.

 "이 오필(五筆)로 곡지, 거골,  양곡, 오리, 중도 다섯 군데 혈
도를 노리겠소!"

 그가 사전에 명시한 다섯 군데  혈도는 모두 손과 발 부위에 있
어 치명적인 요혈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전에 그것을 밝힘으로써 
양소로 하여금  손을 거두게 하는데 목적이  있음을 미리 통지한 
것이다.

 양소는 빙긋이 웃을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냉겸이 다시 
외쳤다.

 "그럼 실례해야겠소!"

 말을 내뱉자마자 손을 살짝 떨치니 다섯 줄기의 은빛 광채가 양
소를 향해 날아갔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양소는 뻗어냈던 왼팔
을 갑자기 가슴 안쪽으로 모으며 주전 등 네 사람을 끌어당겨 방
패로 삼았다. 순간, 주전과  팽화상의 나직한 신음이 터졌다. 다
섯 개의 소필 암기가 그들  두 사람의 몸에 꽂힌 것이다. 주전이 
두 개, 팽화상이 세  개를 맞았다. 다행하게도 냉겸은 양소를 상
하게 하기 위해 암기를 발출한 것이 아니고 두 사람이 당한 부위
가 또한 혈도가 아니므로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지장이 없었다. 
그러니 놀라운 일이 못 되었다.

 진짜 놀란 일은 팽화상의 외침에서 비롯되었다.

 "앗! 건곤이위신공이다!"

 그의 외침에 냉겸 등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건곤이위신공!

 그것은 명교 역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무공 중에 가장 무서운 무
공이었다. 그 근본적인  이치는, 자신의 잠재력을 우선 격발시켜 
상대방의 힘을 흡수해 다시  제 삼의 적을 공격하는 것으로서 별
로 오묘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신기한 변화는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전임 교주였던 양정천(陽頂天)이  세상을 떠난 후로부터 명교에
서 이 신공을 구사하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팽화상 등 여섯 명
은 양소에  의해 이 신공이 재현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은 확연히 알았다. 양소가 위일소의 장력을 흡
수해 사산인의 공력을 이용해 위일소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양소가 시종일관 태연자약할 수 있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
었다.

 냉겸은 스스로 턱을 끄덕이며 말했다.

 "축하! 무악의!"

 그의 말은 간단했다.  '축하'라는 말은 양소가 명교에서 실전된 
지 오래 된 건곤이위신공을 터득했다는 것을 축하한다는 뜻이며, 
'무악의'는 피차 악의가 없으니 어서 손을 거두라는 간곡한 부탁
이었다.

 양소는 그가 평소에 말수가 적은 반면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무악의'라는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곧 껄껄 웃으며 말했다.

 "위형, 사산인, 내가 하나, 둘, 셋을 셀 테니 동시에 장력을 거
둡시다!"

 위일소와 사산인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는 천천히 외쳤다.

 "하나, 둘, 셋!"

 셋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양소는 건곤이위신공을 거두었는데, 
그 찰나 한 갈래의  비수처럼 예리한 지풍이 등심 신도혈을 파고 
들었다. 

 양소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런 악랄한 위복왕! 비겁하게 기습을....."

 그는 반사적으로 장풍을  떨쳐내려 했는데 위일소도 비틀거리더
니 그 자리에 쓰러졌다. 누구에게 암수를 당한 게 분명했다.

 양소는 여지껏 살아오면서 숱한 싸움을 치루어 왔으므로 창졸간
에 생긴 변화에도 당황하지  않고 앞으로 미끄러지며 일단 등 뒤
에서 다시 뻗쳐올 암습을 피하는 동시에 몸을 돌렸다.  순간, 주
전, 팽화상, 철관도인, 설불득도  모두 땅에 쓰러져 있고 냉겸이 
회색 장포를 입은 자에게 장풍을 떨쳐내는 게 시야에 잡혔다.

 회의인과 냉겸의 장풍이 맞닥뜨러지자 냉겸의 입에서 나직한 신
음이 새어나왔다.

 양소는 냉겸을 돕기 위해 또 한 모금의 진기를 끌어올리며 앞으
로 몸을 솟구치려 했는데, 돌연  한 줄기의 빙백 같은 차가운 기
운이 신도혈로부터 급상승하여 삽시간에 신주, 도도, 풍부 등 전
신의 독맥(督脈) 각 혈도로 퍼지는 것을 의식했다.

 양소는 내심 아뿔사를 토했다. 상대방의 무공은 그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고강하며, 수단 또한 악랄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적은 
자기와 위일소, 사산인이 일제히  공력을 거두는 그 간발의 기회
를 노려 전광석화처럼 기습을  전개한 것이다. 양소는 얼른 진기
를 끌어모아 체내에서 유동되는 한기에 대항해야 했다.

 그런데 이 한기는 위일소가 전개한 한빙면장의 장력과 판이하게 
틀렸다. 한  갈래의 실처럼 가느다란  빙선(氷線)이 독맥을 따라 
급속도로 유동되며 혈도를 지날  때마다 마비 현상이 왔다. 만약 
정면으로 적을 맞이했다면 호신진기(護身眞氣)가 있어 절대 어떠
한 지풍도 침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기치 못한 상
황에서 암습을 당했으니 억지로 이를 악물고 버텨야만 했다.

 그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우장을 떨쳐내려 했으나 돌연 온
몸에 극렬한 진동이  일며 끌어올렸던 장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졌
다. 이 무렵 냉겸은  이미 상대방과 이십여 초식을 겨루었다. 그
는 완전히  궁지에 몰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같이 위태로왔다. 
양소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냉겸이 오른쪽 
발을 걷어차 내는 순간 상대방은 잽싸게 옆으로 미끄러지며 그의 
팔에 지풍을  적중시켰다. 냉겸은 비틀거리더니  곧 뒤로 쓰러졌
다.양소는 놀라움과 분노가 겹쳐  체내에 남은 마지막 진력을 모
조리 끌어올려 상대방의 가슴팍을 강타해 갔다. 그러나 역부족이
었다. 회의인이 튕겨낸 지풍에  팔꿈치 부위 소해혈이 적중돼 이
내 전신이 나무토막처럼 굳어져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회의인이 냉랭하게 말했다.

 "광명좌사는 과연 명불허전이군.  나의 현음지(玄蔭指)를 두 번
씩이나 당하고도 스러지지 않으니 정말 대단하오."

 양소가 이를 갈아부쳤다.

 "너의 탄지공(彈指功)은 소림의  수법임에 분명하지만, 이 현음
지는..... 흠! 소림파엔 이런  음독한 무공이 있을 리 만무하다. 
너의 정체가 대관절 무엇이냐?"

 회의인은 껄껄 웃어제쳤다.

 "빈승은 원진(圓眞)이라 하외다. 빈승의 스승은 법명이 공견(空
見)이시니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소. 이번에 육대문파
가 손을 잡고 소탕군마에 나섰으니 여러분들이 소림제자 손에 죽
음을 당하는 건 당연지사가 아니외까?"

 양소의 눈가에 파르르 경련이 일었다.

 "육대문파라면 정정당당하게  한 판 승부를 걸어야  할 게 아니
냐? 공견신승은 협의지심으로 천하에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
는데, 너같이 비겁한 제자가 있을 줄이야....."

 여기까지 말한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 앉았
다.

 원진은 다시 광소를 터뜨렸다.

 "하핫..... 기습을 노리는 것도 병법 중에 하나이거늘. 나 혼자
의 힘으로 명교의 칠대고수(七大高手)를 쓰러뜨렸는데 뭐가 억울
하단 말이오?'

 양소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어떻게 이곳 광명정까지  잠입해 들어왔느냐? 이 비밀 통
로를 어떻게 알았는지 솔직하게  얘기를 해 준다면 나 양소는 죽
어도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양소로선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광명정까지 올라
오는 비도(秘道)에는 수십 군데 관문이 있어 관문마다 명교 제자
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무사히 이곳까지 
올라와 기습을 전개한 것일까?

 원진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당신네 마교에선  광명정을 난공불락의  절지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우리  소림승이 보는  견지에선 탄탄대로에 불과하오. 
당신네들은 모두 나의  현음지를 당했으니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이승으로 가지 못하고 저승으로 가게 될 것이오. 빈승은 곧 좌망
봉으로 달려가 수십 근의  화약을 매복시킨 후 다시 마교의 마화
(魔火)를 종식시킬 작정이오. 그러면 그 무슨 천응교니 오행기가 
허겁지겁 달려올 것이고, 빈승은 때맞추어 화약을 터뜨리면 한때
나마 세상을 주름잡던 마교도 영원히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오."

 양소 등은 이 말을 듣고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상대방의 행
동거지로 보아 방금 한 말을  필히 행동에 옮길 것이다. 그의 흉
계가 성공을  거둔다면 삼십 삼 대(代)를  면면히 이어온 명교의 
오랜 명맥이 이 소림승에 의해 멸하게 될 것이다.

 원진은 갈수록 득의양양해졌다.

 "명교에는 비록 고수가  많지만 서로 아웅다웅하며 내분이 그칠 
날이 없으니 자멸을 당하는  게 필연적인 귀결이 아니겠소? 오늘 
일만 해도 만약 당신네 일곱이 서로 다투지 않았다면, 내가 제아
무리 광명정까지 무사히  잠입해 들어온들 일격에 당신네들을 전
부 굴복시킬 수야 있었겠소? 모든 것이 자업자득이니 과히 날 원
망하지 마시오."

 양소, 주전  등은 자신들의 죽음과 명교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 
이러한 말을 듣자, 지난 이십 년간의 일을 생각하며 모두 후회막
급했다. 솔직히 말해  원진의 말도 전혀 일리가  없는 게 아니었
다. 

 주전이 갑자기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양소! 내가 죽일 놈이오. 내가 잘못했소! 당신은 비록 내 맘에 
안 들지만 교주로 추대하였다면 오늘과 같이 교주가 없이 명교가 
멸망하는 것보다야 나았을 것이오!"

 양소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무슨 덕을 쌓았다고  감히 교주의 자리를 탐하겠소? 잘못
은 모든 사람에게 있소. 우린 이제 구천에 가더라도 역대 교주를 
뵐 면목이 없을 거요!"

 원진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왕년에 양정천이 마교
의 우두머리를 하면서 그 얼마나 기고만장했소이까? 그가 살아서 
오늘 명교가 멸망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야 하는 건
데..... 으악!"

 여기까지 말한 그는 별안간 짤막한 비명을 내질렀다. 실로 뜻밖
의 변화였다. 원진은 위일소가 난데없이 전개한 일장에 등줄기를 
강타당한 것이다. 그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위일소도 원진이 반
사적으로 전개한 지풍에 가슴  부위 당중혈이 찍혔다. 두 사람은 
모두 비칠비칠 뒤로 몇 걸음씩 물러났다.

 위일소는 앞서 원진의 지풍을 맞아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내력이 
남보다 한  수 위인지라 그 즉시  반항할 힘을  완전히 상실한게 
아니었다. 단지 기절한 척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원진이 
득의양양해 있는 틈을 타서 결정적인 기습을 가한 것이다.  그는 
은천정, 사손 등과 함께 명교의  사대호교법왕 중에 한 사람이니 
만치 공력이 대단했다.  게다가 명교의 존망이 달려 있으므로 자
신의 목숨 따위는 도외시한 채  사력을 다해 일장을 전개한 것이
다.

 한빙면장의 장력이 체내로  스며들자 원진은 눈앞이 캄캄해지며 
비릿한 기혈이  가슴팍으로부터 목구멍으로  용솟음쳐 올라 심한 
구역질을 느꼈다. 그는 진력을  끌어올려 몸을 고정 시키려 했으
나 천지간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주
저앉아 운기하며 한빙면장의 한독에 저항했다.

 한편, 위일소는  거듭 현음지를 당하자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뒤로 벌렁  나자빠져 움직이지 않았다.  삽시간에 주위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여덟 명의 고수들은 모두 중상을 입어 꼼
짝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제각기 운기료상하며 한 
순간이라도 먼저 회복되길  바랐다. 그래야지만 상대방을 죽음의 
궁지로 몰아놓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양소 등으로서는 명
교의 존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명교의 제자가 나타난다면 설령 무공을 모른다 
해도 몽둥이로 간단히 원진을 때려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는  자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양소
는 위일소 등과 조용히 대책을 세우기 위해 부름이 있기 전엔 아
무도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분부를  해 두었다. 게다가 양소의 시
중을 들어온 유일한  동자를 위일소가 잡아먹었으니 나머지 사람
들은 혼비백산하여 멀찌감치  달아났기 때문에 설령 부름이 있어
도 선뜻 달려올 사람이 없을 것이다.


                                 ----- 제 4 권 2 장 끝 -----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4 권


     제 3 장  벗겨지는 비사(秘事)


 장무기는 포대 안에서 비록  바깥에서 일어난 일은 보지 못했지
만 모든 경위를 똑똑히 들었다. 지금 주위가 쥐죽은 듯이 조용하
지만 짙은 살기가 감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갑자
기 설불득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봐, 포대 안에 있는 친구! 우릴 좀 도와줘야겠다!"

 장무기는 멍해서 물었다.

 "어떻게 도우라는 겁니까?"

 원진은 단전의 진기가 차츰  모아지고 있는 차에 포대안에서 사
람의 음성이 들리자 소스라치게 놀라 진기가 즉시 역류하며 온몸
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위일소 등을 상대하는데만 신경을 집
중시켰을 뿐 한쪽에 놓여  있는 포대 속에 사람이 들어 있으리라
곤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 역시 중상을 입어 꼼짝할 수 없는 형
편이다. 이젠 끝장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설불득이 다시 소리쳤다.

 "그 포대를 천사백결(天絲百結)로 묶었으니 나를 제외하고 아무
도 풀 수 없다. 하지만 넌 일어설 수 있겠지?"

 장무기가 대답하며 포대 속에서 일어났다.

 설불득이 다시 말했다.

 "네가 의협심을 앞세워  예금기 형제들의 목숨을 구해 주었듯이
우리의 목숨도 네 손에  달려 있다. 이쪽으로 걸어와 악승(惡僧)
을 때려 죽여라!"

 장무기는 망설이며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설불득은 재촉했
다.

 "이 악승이 우리에게 저지른  비겁한 행위를 넌 전부 들어서 알
고 있을 것이다. 네가 만약 주저한다면 명교의 수만 명이나 되는
인명이 모두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네가 그를 죽이는
것만이 공덕을 쌓는 일이며, 지용(智勇)을 겸비한 협의도의 본분
이다."

 장무기는 그래도 엉거주춤하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원진이 소리쳤다.

 "소형제, 자네도 이들에게 붙잡혀 온 모양이군. 게다가 난 자네
와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어떻게  날 죽일 수 있겠나? 이번 기회
에 이들 마교의 무리들을 모두 처치해 준다면 자네야말로 무림의
겁난(劫亂)을 구한 소년 영웅이 될 걸세."

 쌍방은 모두 숨을 헐떡이며 장무기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장무기는 입장이 매우  난처했다. 그가 판단하기로는 원진 화상
이 기습을 가한 행위는 비겁했다. 그렇다고 해서 반항할 힘을 잃
은 그를 무턱대고 죽일 수도 없었다. 만약 자기가 원진에게 일장
을 내리친다면 영원히 명교 편에 서서 육대문파와 적대시하게 될
것이며, 태사부와 무당육협,  주지약과도 등을 돌려야 할 입장이
된다.

 설불득이 다시 재촉을 하자 장무기는 가부간에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설불득 대사, 솔직히 말씀드려 저의 입장은 난처합니다. 이 소
림의 대화상을  상해하지 않고 여러분들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 방법에 따르겠습니다."

 설불득이 내심 투덜거렸다.

 '지금의 형국은 상대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할 판이데 어
떻게 쌍방을 다 보존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팽화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소형제, 자네의 인의지심(仁義之心)에 대해 경의를 표하네. 그
럼 우선 원진 가슴의 옥당혈(玉堂穴)을 찍게. 그러면 단지 몇 시
진 동안 자력을 사용할 수  없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네. 우리
사람을 시켜  그를 광명정 아래까지  데려다 주기로 약속하겠네.
옥당혈이 어딘지 알고 있겠지?"

 장무기는 의술에 능통하므로 옥당혈을 찍으면 단전의 진기를 끌
어올리는데 얼마 동안  지장을 줄 뿐 그  이상 신체에 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곧 대답을 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원진이 소리쳤다.

 "소시주, 절대 저들에게 속지  말게. 저들이 약속을 지킬 것 같
나? 일단 내력이 회복되면 즉시 날 죽일 걸세."

 주전이 대뜸 욕설을 터뜨렸다.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우리가 널 살려 주겠다고
약속한 이상 어찌 그 약속을 어길 수 있겠느냐? 명교의 오산인을
장터의 잡배로 취급하느냐?!"

 장무기는 양소와 오산인이 한 번 한 약속을 번복하지 않을 것이
라 믿었다. 단지 위일소가 염려되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위 선배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위일소는 떨리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나도 이번만은 그를 살려  보내겠다. 다음에 만나 다시 생사결
단을....."

 그의 음성은 차츰  미약해졌다. 장무기는 그에게 다짐을 받았으
니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좋습니다. 여러 선배님들은  모두 당세의 영웅호걸이니 약속을
어기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원진대사, 그럼 후배가 실례를 범해
야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원진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포대 속에 들어 있
기 때문에 굼벵이처럼 걸음이 느렸다. 그러나 원진 앞에 이를 수
는 있었다. 포대를 뒤집어  쓰고 천천히 옮겨오는 모습은 우스꽝
스러웠으나 아무도 웃는 자가 없었다. 장무기는 원진의 호흡소리
를 듣고 두 자의 간격을 유지한 채 걸음을 멈추었다.

 "원진대사, 후배는 쌍방 어느 쪽이 상해를 입는 것도 원치 않기
때문에 부득이 이 방법을 택한 것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원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난 꼼짝달싹도 할 수 없으니 마음대로 해 보아라!"

 접곡의선 호청우가 죽은 후로부터 혈도를 분별하는 기술에 있어
서는 장무기를 따를 자가 없었다.  그는 비록 포대 속에 들어 있
었지만 정확하게  원진의 옥당혈을 향해  찍어갔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느닷없이 양소 등의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앗! 어서 손을 거둬라!"

 그러나 장무기는 이미 손가락에  충격을 느끼며 한 갈래의 냉기
가 손가락 끝을  통해 뻗쳐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흡사 감전된
듯 이내 몸이 움츠러들었다. 주전, 철관도인 등이 일제히 욕설을
터뜨렸다.

 "이런 죽일 놈의 땡중아! 끝까지 비겁한 수를 쓰다니.....!"

 장무기는 전신이 오들오들  떨렸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원진은 비록  몸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안간힘을
다해 손가락을  자기의 옥당혈 앞에  세워놓은 것이다. 장무기는
포대 속에서 그것을 알  리가 만무하여 결국 쌍방의 손가락 끝이
맞부딪치는 순간 원진이 현음지력이 포대를 사이에 두고 그의 체
내로 뻗쳐온 것이다. 이번에 원진은 체내에 남은 모든 진력을 손
가락에 집결시켰으므로 쌍방의  손가락 끝이 맞부딪치자 이내 온
몸이 측 늘어지며 안색이 푸르죽죽하게 변해 송장과 같았다.

 대청 안에 본디 여덟 명이  중상을 입어 움직일 수 없었는데 이
제 장무기 하나가 더 늘어났다.

 주전은 성질이 급해 숨을  제대로 쉬기도 곤란한 상태인데도 계
속 원진에게 욕을 퍼부었다.

 원진은 이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탈진했지만,
속으로는 양양해 했다. 포대  속에 있는 녀석은 자기의 현음지를
맞아 반나절을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자기는 한
시진 후면 흩어진 진기를 다시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다. 최후의
승리는 역시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대청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반 시진쯤 지나자 네 자루의 촛불
마저 꺼졌다. 주위는 이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양소 등은
원진의 호흡이 차차 정상을  되찾아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기네들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운공을 시도할
때마다 현음지의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단전으로 침투해 몸을
심하게 떨어야만 했다. 그들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자꾸 흐름에 따라 실망은  절망으로 변했다. 이젠 오히려 원진이
좀더 빨리 회복되어 자기들을 속시원히 죽여 주길 바라는 마음이
었다.

 오랜 침묵을 견디기 어려웠는지 설불득이 처연하게 한숨을 내쉬
며 입을 열었다.

 "팽화상, 우린 몽고 오랑캐를 중원에서 쫓아내기 위해 노심초사
해 왔지만 결국 이 모양이 되었구료.  보아하니 한족(漢族)의 겁
난이 얼마 동안 더 지속되어야 할 모양이오."

 장무기는 단전에서 피어오르는 한 가닥의 열기로서 현음지의 한
기를 저항하며 설불득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절로 이상하
게 느껴졌다.

 '몽고 오랑캐를 몰아내기 위해 분주해 왔다니? 그럼, 악명이 높
은 마교가 천하의 백성들을 위해 이바지해 왔단 말인가?'

 팽화상의 입에서도 한숨섞인 말이 내뱉어졌다.

 "설불득, 내 일찌기 뭐라고  했소? 몰아낼 수 없으니 천하의 영
웅호걸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소? 당신의 사형 노성
구(盧聖求)와 구로파(九老波)의  임창식(林昌植), 종우산인(鐘佑
散人), 석부거사(錫父居士) 등  칠불도옹(七不倒翁)이 왕년에 의
거를 일으켜 실패한 것도  외부의 세력을 흡수하지 못한 탓이 아
니었겠소?"

 주전이 우악스럽게 소리쳤다.

 "빌어먹을!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도 두  땡중이 입방아를 찧고
있군. 내가 듣기엔 다  개소리야! 우리 명교는 집안 식구끼리 대
가리가 터져라 싸움질하는데 무슨 수로 오랑캐를 몰아낼 것이며,
팽화상은 다른 문파와 손을  잡아야 된다고 했는데 제기랄, 손을
잡지 않아도 우리를 몰살시키려는데 아예 호랑이를 집안으로 끌
어들이라는 말이오? 그 모든 게 개나발이 아니고 뭐겠소?"

 철관도인도 끼어들었다.

 "만약 양교주만 살아 있었다면, 육대문파를 벌써 굴복시켜 우리
휘하에 예속시켰을 것이외다!"

 주전이 광소를 터뜨렸다.

 "하핫..... 호랑말코  같은 철관도사의 개나발은  더욱 못 들어
주겠군. 제기랄,  양교주만 살아  있었다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
로..... 으윽.....!"

 현음지의 한기가 다시 폐부  깊숙이 뚫고 들어갔는지 주전은 갑
자기 신음을 토했다. 때맞추어 냉겸이 소리쳤다.

 "닥쳐!"

 이 한 마디를 내뱉자  찬물을 끼얹은 듯 모두 조용해졌다. 장무
기의 뇌리에 여러 가지 생각이 뒤죽박죽 어우려졌다.

 '보아하니 명교가 항간에 마교로 낙인 찍힌 것은 그릇된 것인지
도 모른다.....'

 그는 확실한 것이 알고 싶어졌다.

 "설불득 대사,  귀교의 교리(敎理)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설불득은 다소 의아해 했다.

 "응? 자네 아직 죽지 않았군. 따지고 보면 자넨 명교 때문에 공
연히 목숨을 잃게 된  셈이니 미안하게 생각되네. 어쨌든 자네는
얼마 살지 못할 테니  본교의 비밀을 털어놓아도 상관없겠지. 냉
면선생, 그렇지 않소?"

 냉겸은 침묵을 지켰다. 그의 침묵은 이런 경우에서 묵인으로 해
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설불득이 다시 말했다.

 "소형제, 우리 명교의  뿌리는 파사국(波斯國:페르시아)에서 비
롯된 것으로 당대(唐代)에 중원으로 전해져 왔네. 당시만 하더라
도 도처에 대운공명사(大雲光明寺)가  세워졌는데, 그게 바로 우
리 명교의 사원(寺院)이라네. 우리 명교의 근본 취지는 행선제악
(行善除惡)으로 중생의 평등을 이룩하기 위해 금은재물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육식과 술을 멀리하며 명존(明尊)을 숭
배하네. 명존은 바로  화신(火神)이며, 또한 선신(善神)이지. 그
러나 역대 왕조에  거쳐 탐관오리들이 본교를 핍박하였기에 형제
들이 왕왕 분연히  거사를 일으켜 북송(北宋) 방랍(方臘) 방교주
이래 그러한 예가 부지기수였네."

 장무기도 방랍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방랍은 북송 선
화(宣和) 연대 사대구(四大寇) 중에 하나로서, 송강(宋江), 왕경
(王慶), 전호(田虎)등과 같이 명성을 날렸다.

 "이제보니 방랍이 귀교의 교주였군요."

 설불득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렇다네. 본교의 형제들이 조정관부와 대립해 왔기 때문에 조
정에선 우리를 마교로 몰아  모든 행동을 엄히 금지시켰네. 우린
관부의 이목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 일거일동에 은밀을 기해야 했
네. 그러한 과정에서 각  문파와도 원한이 누적되어 물불과 같은
사이가 형성된 걸세. 물론  본교 형제들중에 자신의 무공을 믿고
살인, 방화, 간음 등의  비행을 일삼아 온 자도 있었기에 본교의
명예가 갈수록 나빠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설불득은 말끝을 흐렸다.  이때 장무기는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앗? 어째 내 몸에 한기가 사라졌지.....?'

 그가 처음 원진의 현음지를  당했을 때는 오한을 견디기가 어려
웠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그 한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물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열 살
때 현명패천장을 맞아 열  일곱 살이 되어서야 그 음독이 제거되
었다. 그 칠 년 동안  밤낮으로 한독과 씨름해 왔기 때문에 호흡
서부터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한독을 대항하는 일과 결부되었다.
하여 구태여 의식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오한을 퇴치할 수 있었
다. 더군다나 그가 수련한  구양신공이 비록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했지만 체내의 양기(陽氣)가  팽배되어 있어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되자 음독이 스스로 말끔히 제거된 것이다.

 설불득의 말이 계속되었다.

 "송조(宋朝)가 몽고 오랑캐 손에 멸망한 후 명교는 더욱 조정과
맞서게 되어 오랑캐를 중원에서 몰아내는 것을 과업으로 삼게 되
었네. 그런데 전임 교주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교내의
고수들이 교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암투를 벌여 기강이
일락천장된 걸세. 아울러 각 문파와 원한도 더욱 깊어졌고. 원진
화상, 내가 여지껏 한 말이 사실임을 인정하겠지?"

 원진은 냉소를 날렸다.

 "물론 인정하고 말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자가 구태여 거
짓말을 할 필요가 있겠소?"

 이렇게 말하며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양소와 오산인 등은 모두 크게 놀랐다. 그들은 원진이 자기네들
보다 먼저 회복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이렇게 빨리
닥쳐오리라곤 뜻밖이었다. 원진의  공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후한 게 분명했다.

 양소는 길게 숨을 들이켰다.

 "공견신승의 제자답게 과연 대단하군. 자, 이젠 죽을 준비가 되
어 있으니 앞서 내가  궁금하게 여긴 일을 솔직히 얘기해 주겠느
냐?"

 원진은 징그럽게 웃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그의 말투는
부상을 당하기 전보다 거칠어졌다.

 "죽어서 눈을 감을 수 없다고 하니 얘기해 주겠다. 내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무사히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너희들의
교주였던 양정천과  그의 부인이 친히 날  이곳으로 데려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양소는 이내 낯빛이 변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원진은 거짓말
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원진의 말을 받기에는
너무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주전이 이미 욕설을 터뜨렸다.

 "이런 낮도깨비가 물어갈 놈  같으니라고! 그 무슨 당치도 않은
개소리냐? 이 비밀 통로는 본교의 성역으로 양교주가 살아계셨을
때는 양좌사와  사대호교법왕도 와본 적이  없다. 단지 교주만이
이 비밀 통로를 이용했는데  어떻게 너 같은 놈을 이곳으로 데려
올 수 있겠느냐?"

 원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잠시 침묵을 지키고 나서 울적하
게 입을 열었다.

 "네가 그렇게도 꼬치꼬치 캐묻겠다면  이십 오 년 전의 비사(秘
事)를 털어놓으마. 어쨌든  너희들은 살아서 이곳을 벗어나지 못
할 테니.....  주전, 너의 말대로 이곳은  명교의 성지로써 역대
교주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설령 교주라 해도 절대 다른 사람을
데리고 들어올 수가 없었지.  그러나 양정천은 스스로 교율을 어
기고 그의 부인을 몰래 비도(秘道)로 데리고 들어갔다....."

 여기까지 들은 주전은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고, 팽화상
은 그더러 조용히 하라고 호통쳤다.

 원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양부인이 다시 날 데리고 들어왔다....."

 철관도인이 심각하게 물었다.

 "양부인이 무엇 때문에 너를 비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느냐?"

 원진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자세한 것을 말하자면 사연이  길어진다. 난 올해 고희를 넘긴
늙은이지만 젊었을 때는..... 좋다.  모든 것을 얘기해 주마. 너
희들은 내가  누군지 아느냐? 양부인은 바로  나의 사매였고, 난
불문에 귀의하기 전에 속세에서 사용하던 이름이 성곤(成崑)이며
외호가 혼원벽력수였다."

 그의 입에서 이러한 말이  내뱉어지자 양소는 물론 모두가 자지
러지게 놀랐지만 더욱 놀란  것은 포대 속에 들어 있는 장무기였
다. 빙화도에서 그날 밤  의부께서 들려준 얘기가 뚜렷하게 뇌리
에 떠올랐다. 의부의 스승이었던  성곤이 어떻게 해서 부모와 처
자식을 살해했으며, 그로 인해  의부가 성곤을 끌어내기 위해 온
갖 살검을 자행한  일 등등..... 장무기는 청천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이 컸다. 아울러 새롭게 깨달은 게 있었다.

 '이제 보니 그 당시  저 악랄한 성곤은 이미 공견신승을 사부로
모셨구나. 공견신승은 그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 의부를 감화하기
위해 강호로 나서 결국 애매하게 목숨을 잃었으니, 이 또한 성곤
이 저지른 엄청난 죄악이 아니겠는가!'

 그의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의부께서 가끔  광성이 발작돼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것과 각
문파가 무당으로 달려와  나의 부모님을 죽음의 궁지로 몰아넣은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이 성곤의 농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순, 장무기는 끓어오르는  분노로 인해 온몸이 불덩어리 처럼
달아올랐다. 설불득이  이 포대는 바람이  통하지 않아 장무기는
벌써부터 숨이 막힐 정도로  갑갑한 것을 억지로 참아왔다. 심후
한 내력과  구식지법(龜息之法)을 이용했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한데, 지금 심신이 흐트러지자 단전에 축적돼
있는 구양진기도 제어를 잃어 이내 온몸이 불덩어리로 변한 것이
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신음을 토했다.

 그러자 주전이 호통을 치듯 외쳤다.

 "소형제, 조금만 견디면 우린  모두 숨이 끊어져 편안해질 테니
대장부답게 이를 악물고 신음 따위는 내지 말게나!"

 장무기는 '네'하고 대답하며  곧 구양진경의 운공지법으로 마음
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러나  납득이 가지 않는 사실이 있었
다. 그가 공력을 운용할수록  사지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엄
습해 오고 전신의 각 혈도를 흡사 빨갛게 달군 바늘로 찌르는 듯
했다.

 그것은 언젠가는 그에게 닥칠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그는 몇 년
간 구양신공을 연마했지만  스승의 가르침이 없어 스스로 일깨운
것이므로, 비록 체내에 축적된 구양진기는 갈수록 많아지지만 그
것을 정석대로 운용하여  마지막 생사현관(生死玄關)을 뚫는데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물론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특별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러한 상태로 오래 머물수도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원진의 음독한  현음지를 맞은 것이
다. 그 한독에 대항하기 위해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양신공
이 격발되었고,  더욱 공교롭게도 그의  몸이 밀봉된 건곤일기대
속에 들어 있어 격발된  구양진기가 발산될 곳이 없어 다시 그의
몸에 충격을 가하게 된 것이다.

 결국 우연이 겹친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짧은 시간 동
안 그는 수도연기(修道練氣)하는  사람들이 일생을 두고 가장 험
난하고 위해한 순간을 졸지에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일반 무림인
의 입장에서 볼 때는 꿈에도 갈망하는 생사현관이 뚫리는 순간이
었다. 이 순간에 생사성패(生死成敗)가 결정될 것이다.

 주전 등은 그가 이런 죽음의 갈림길에서 또 하나의 생사투(生死
鬪)를 겪게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해 단지 그가 현음지를 당
한 고통으로 인해 신음을 내뱉은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는 견디기  어려운 극양(極陽)이 열기와  싸우며 원진의 말을
한 마디도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다.

 "나와 사매의 집안은 조상 대대로 친교를 맺어온 터라, 둘은 어
려서부터 혼인지약이 있었다. 그런데 양정천도 나의 사매를 짝사
랑해 오다가 명교의 교주가 되어 천하에 명성을 떨치자, 내 사매
의 부모는  익속이 밝은 위인인데다가 사매  역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해 결국 그에게 시집가고 말았다. 그러나 혼인을 한 후에
그녀는 생활이  원만하지 않아 가끔 나하고  만나게 되었으며 그
횟수가 잦아질수록 우리에겐  은밀한 장소가 필요했다. 양정천은
내 사매의  요구라면 무조건 따라 주었기  때문에 적당한 기회를
틈타 그녀가 이 비밀  통로를 구경하고 싶다고 하자 양정천은 비
록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끝내 그녀의 청을 들어 주게 되었다.
그 후로 이 광명정의 비도, 명교가 수백 년간 신성불가침으로 생
각해 온 성벽이 우리의 밀회  장소로 변했다. 그 동안 나는 수십
차례에 걸쳐 이곳을 무상  출입해 왔으니, 이번에 손쉽게 올라온
것도 당연지사가 아니겠느냐?"

 주전, 양소 등은 그의 말을 듣고 모두 아연실색을 할 수밖에 없
었다. 그들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수치로 인해 단지 눈에서 원독
의 불길이 뿜어질 뿐 할 말을 잃었다.

 원진은 그들의 일그러진 표정에 매우 만족해 했다.

 "너희들이 흥분해 할 것은 없다. 근원을 따지고 보면 모두가 그
양정천이 나의 정인(情人)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난 양정천과
사매가 혼례를 올리는  날 하객으로 나타나 희주(喜酒)를 마시며
내심 맹세를 한 바가  있다. 양정천을 죽이고 명교를 멸망시키겠
다고! 그  맹세가 사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루어진 것이다.
하핫..... 이제 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양소는 눈앞에 닥친 죽음과는 상관없이 말투가 냉랭했다.

 "내가 여지껏  마음 속으로 풀지 못한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주어서 고맙다.  양교주가 갑작스레 죽음을  당한 것이 이제보니
너의 소행이었구나!"

 원진의 음성은 표정만큼이나 차가왔다.

 "지금이라 할지라도 물론이거나와 왕년에도 난 도저히 양정천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나의 사매는 내가 행여나 암암리
에 독수를 전개할까봐 부단히 나에게 경고를 했다. 내가 만약 양
정천을 죽인다면 그 자신은  결코 살아남지 않겠다고! 그녀는 비
록 생활에 만족을 느끼지 못했지만 양정천을 유일한 남편으로 생
각하는 마음만큼은 요지부동이었다.  양정천,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뭐라고!?"

 "그럴 리가....."

 양소, 팽화상 등은 모두 놀란 외침을 토했다.

 원진은 그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든 자기가 할 말을 계속해 나
갔다.

 "만약  양정천이 내 손에  죽었다면  명교를  용서할지도  모르
지....."

 그의 음성은 차츰 낮아졌다. 그는 이십 오 년 전의 일을 회상하
듯 눈을 가늘게 집으며 천천히 말했다.

 "그날 밤에도 나는 사매와  비도 안에서 만났는데, 갑자기 가까
운 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린 소스라치게 놀라 조심스럽
게 다가가 보니 양정천이  어느 작은 석실에서 손에 양피지를 쥐
고 얼굴이 핏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는 순간 코웃음
을 치며 얼굴이 다시 푸르스름하게 변하는가 싶더니 재차 핏빛으
로 바뀌었는데, 순식간에 세 번이나 변했다. 양좌사, 넌 그게 무
슨 무공인지 알고 있겠지?"

 양소는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것은 본교의 건곤이위신공이다."

 주전이 즉시 물었다.

 "양소, 당신도 그 신공을 터득했소?"

 양소의 입가에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터득했다고는 할 수 없소. 왕년에 양교주는 나를 잘 봤는지 그
신공의 기초적인  구결(口訣)을 일러주었소. 난  그 동안 꾸준히
연마해 왔지만 겨우 제  이단계밖에 터득하지 못했소. 더 연마하
고 싶었지만 체내의  진기가 역류하여 온몸이 산산조각으로 찢어
질 것만 같아 중단했던  것이오. 양교주가 순식간에 얼굴색이 세
번 변했다면 그건 제  사단계까지 터득했다는 증거요. 그의 말에
의하면 본교 역대 교주  중에 제 팔 대 종(鐘)교주만 건곤이위신
공을 오단계까지 연성했다는 거요.  그러나 연성한 날 그만 주화
입마되어 목숨을  잃었소. 그후로 아무도  제 사단계까지 이룩한
사람이 없다는데....."

 주전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게도 연마하기가 어렵단 말이오?"

 철관도인이 불쑥 나섰다.

 "만약 그렇게 어렵지  않다면 본교의 호교신공(護敎神功)이라고
할 수 있겠소?"

 이들 명교의 무학고수들은 건곤이위신공에 대해 오래 전부터 흠
모해 왔기 때문에,  일단 그 신공이 거론되자  비록 위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인 것이다.

 팽화상은 시간을 끌 속셈으로 원진에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의 양교주께서 어떻게 목숨을 잃게 됐다는 거냐?"

 원진은 냉소를 날렸다. 그도  팽화상 등의 속셈을 모르는 바 아
니었다. 하지만 숨쉬는 걸 보아  한 두 시진 이내에 절대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장담할 수 있었다.

 "당시 사매와 나는 양정천의 손에 죽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
매는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면서 내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애
원했다. 그러자 양정천은 단지 눈을 부릅뜬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눈에서 피가  흘러내리며 몸이  빳빳하게 굳어갔
다....."

 양소 등은 그게 바로 주화입마의 현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
다. 양교주는 건곤이위신공을  연마하다가 긴급한 순간에 아내와
성곤이 밀회를 하는 것을  발견해 그 엄청난 충격으로 그만 주화
입마된 게 분명했다. 당시  성곤이 양교주를 죽인 것은 아니지만
양교주는 그로 인해 죽음을 당한 거나 다를 바 없었다.

 원진의 말은 계속되었다.

 "사매는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자 별안간 뒤쪽을 향해 '누구냐'
하고 소리쳤다. 나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 틈을  타서 사매는 이미 자신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
다. 흐흣....."

 여기까지 말한 원진은 입가에 묘한 웃음을 흘렸다. 차라리 울음
이라 해야 더 어울릴 웃음이었다.

 "양정천은 그녀의 육신을  소유했지만 마음을 소유하진 못했다.
그런데 나는 그녀의 마음을 얻었지만 결국 그녀를 차지하진 못했
다. 나는 사매의 시신 앞에서 통곡을 했다. 동시에 내 숨이 붙어
있는 한 명교를 멸망시키겠다고  스스로 맹세를 했다. 여지껏 살
아오면서 난 한시도 그 맹세를  잊은 적이 없다. 따지고 보면 나
성곤도 불행한 사람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남한테 빼앗기고 하나
뿐인 제자마저 날 불공대천의 원수로 생각하고 있으니....."

 장무기는 그가 사손을 거론하자  더욱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였
다. 이때, 체내의  구양진기가 더욱 팽배되어 사지백해가 터져나
갈 것 같고 머리카락마저 배로 팽창되는 것 같았다.

 원진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광명정을 떠나 중원으로  돌아가 오랫 동안 보지 못한 제
자를 찾아갔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다가 그가 마교의 사대호교법
왕 중에 한 사람이 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전에 난 비록 사매
와 자주 만났지만 마교  내부의 일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았고
사매 역시 교내의  일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 사손이
스스로 밝히지 않았다면  그가 마교에서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전혀몰랐을 것이다. 생각 같아선 당장 사손을 죽이고
싶었지만 난 내색을 하지  않고 그를 이용하기로 작심했다. 뿌리
가 깊은 명교를  송두리채 멸망시키려면 아무래도 장기적인 계획
을 세워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원진은 양양하게 웃었다.

 "며칠 후 난 일부러 술에 취한 척하며 사손의 아내를 겁탈하고,
그의 부모 형제 온 집안 식구를 살해했다. 난 그 결과에 대해 손
금보듯 잘 알고 있었다. 사손은 틀림없이 복수를 하기 위해 길길
이 날뛸 것이고,  날 찾아 내지 못하면 갖은  짓을 다 저지를 게
번했다. 하하..... 이 세상에서 나보다 그 녀석을 더 잘 아는 사
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문무를 겸비했지만 쉽게 흥분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일을 저지르는 게 흠이지....."

 여기까지 들은  장무기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도저히 억제할 수
없었다.

 '이제보니 의부께서 당하신 모든 불행이 전부 성곤 노적의 계획
적인 음모였구나.....'

 원진은 득의양양하게 말을 이어갔다.

 "사손은 내가 바라는 대로 도처에서 살생을 저지르고 내 이름을
남겨 내가  나서기를 바랐지만, 하하..... 내가  쉽사리 나설 것
같느냐? 결국 모든 살겁이 사손의 소행이라는 게 밝혀졌고, 그에
게 당한 그 숱한  희생자들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자연히 명교
를 적대시하게 되었다. 때로는  그가 일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위
기를 맞게 되면 내가 암암리에 도와주곤 했다. 나의 유능한 살인
도구가 파괴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지. 어쨌든 마교
는 갈수록 적을 많이  만들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교주 자리를
놓고 내분이 그칠  날이 없었으니,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었다. 사손이 송원교를 죽이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지만 소림의 공견신승, 공동오로 등 각 문파의 고수들을 고루 죽
였으니 그보다 더 기특한 제자가 또 어디 있겠나?"

 양소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심지어 너의  스승인 공견신승마저도 너의 독계에 걸
려 목숨을 잃은 것이란 말이냐?"

 "내가 공견을 스승으로 모신 게 진심일 리가 있겠느냐? 그는 비
록 나 때문에 죽었지만 죽음으로써 더욱 명성이 알려졌으니 오히
려 나에게 감사를 해야 될 것이다. 하핫.....!"

 원진의 광소가 들리는 가운데  장무기는 극도의 분노로 인해 그
만 까무라치고 말았다. 그러나 곧 깨어났다. 그는 여지껏 살아오
면서 겪은 온갖 능욕에 초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의부가 성곤의
음모로 인해  부모와 처자식을 잃고 무림의  공적으로 몰려 이젠
눈까지 실명된  채 외딴 섬에서 외롭게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으니, 이 심구대한(深仇大恨)을 어찌  갚지 않을 수 있단 말
인가!

 그는 노기(怒氣)가 걷잡을 수  없이 끓어오르자 전신에 퍼진 구
양진기가 더욱 격탕하며 질주하였다. 그 진기가 바깥으로 발산될
수 없자 건곤일기대가 점점 바람을 넣은 공처럼 팽창하기 시작했
다. 그러나 양소 등은 원진의 말에 정신이 집중돼 아무도 그것을
유의하지 않았다.

 원진은 이제 모종의 행동을 취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양소, 위일소, 팽화상, 주전.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있느냐?"

 양소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원진, 내 딸만큼은
살려줄 수  있겠느냐? 그의 어머니는  아미파의 기효부이니 반은
명문 출신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아직  정식으로 우리 명교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원진은 야멸차게 대꾸했다.

 "호랑이 새끼를 살려두면 후환을 자초하게 된다. 잡초는 뿌리째
뽑아야 하는 법!"

 이렇게 말하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뎌 양소의 머리를 향해 천천
히 손을 뻗어냈다.

 장무기는 포대안에서도  상황이 긴박하다는  것을 알고,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르는 것도  무시한 채 소리로서 위치를 간파
해 대뜸 몸을 솟구쳐 원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동시에 왼손을 뻗
어내 포대를 사이에 두고 원진의 손을 노렸다.

 원진은 이때 간신히 행동을 취할 수 있을 뿐 원기가 정상적으로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흠칫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외쳤다.

 "이놈! 네가..... 네가 감히!"

 그는 포대를 향해 냅다 일장을 떨쳐냈다. 그런데 불룩하게 팽창
한 포대에 장풍이 닿는 순간 더욱 강한 힘이 튕겨져 와서 원진을
두 걸음 뒤로 밀어냈다. 원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장무기는 이 무렵 목이  바싹바싹 마르고 입술이 갈라지면서 정
신이 어질어질했다. 체내의  구양진기가 이미 최고봉으로 팽창되
어 건곤일기대가 터져나간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을 경우 강렬무
비한 진기로 인해 살갗이 갈라지며 온몸이 숯덩어리처럼 타 버릴
것이다.

 원진은 이 포대가  해괴하다고 느끼면서 다시 장풍을 격출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원진은 다시  반탄지력에 의해 뒤로 두 걸
음 밀려났다. 이 즈음  장무기는 커다란 가죽공처럼 팽창된 포대
속에서 마구  뒹굴었다.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 없었다. 이제는
숨을 내쉬기조차  곤란했다. 원진은 거듭하여  출수를 했지만 그
때마다 힘줄기가 반탄되어 왔다.  포대 속에 있는 장무기는 그러
한 사실조차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양소 등은  이런 해괴한 현상을 보자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설불득조차 자기의  건곤일기대가 왜  갑자기 공처럼 부풀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순간, 원진은 허리춤에서 비수  한 자루를 뽑아 힘껏 포대를 찔
러갔다. 그러나 비수의 끝부분만  포대 속으로 약간 오목하게 패
어 들어갈 뿐 뚫리지가않았다.  연거푸 찔러 보았지만 역시 헛수
고였다.

 원진은 장력과 비수로도 포대를 어떻게 할 수 없자 생각을 달리
했다.

 '이 녀석과 실랑이를 벌일 필요가 없으니.....'

 그는 냅다 포대를 걷어찼다. 공처럼 팽창된 포대는 데구루루 문
쪽으로 굴러갔다. 한데, 문지방에 부딪친 포대는 즉시 튕겨져 질
풍 같은 속도로  원진을 향해 날아왔다. 원진은  몸을 피할 새도
없이 필사의 힘을 다해 쌍장을 떨쳐냈다. 그러자,

 펑!

 청천벽력과 같은 굉음이 터지는 가운데 포대가 산산조각으로 찢
겨져 흩날렸다. 원진, 양소, 위일소 등은 모두 한 갈래의 불기둥
같은 기류가 뻗쳐오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그들 앞에 남루한
차림새의 젊은이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게 보였다.

 알고 보니, 끝없는  고통이 이어지는 사이에 장무기가 연마했던
구양신공이 드디어 생사현관을 뚫고 완성 단계로 돌입한 것이다.
앞서 팽창된 포대 속은  진기로 넘실거려 흡사 수십 명의 고수가
내력을 발출해  동시에 그의 전신에 수백  군데의 혈도를 안마해
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제 생사현관이 뚫리자 전신 경맥(經
脈)속에 수은(水銀)이 굴러가듯 상쾌하기 이를데 없었다. 자고로
이러한 기연(奇緣)을 얻은 사람이 없었다. 이제 건곤일기대가 과
열됐으니 앞으로도 이러한 기연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원진은 이 포대 속에서  나온 젊은이가 얼빠진 모습으로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자, 즉시 현음지의 내력을 끌어올려 그의 가슴팍
담중혈을 찍어갔다.

 장무기는 얼떨결에  손을 떨쳐 그의 공격을  막았다. 그는 비록
구양신공을 터득했지만 무공  초식이 극히 평범하여 도저히 원진
같은 정정고수의 맞수가 될 수 없었다. 순간, 그의 손목 부위 양
지혈(陽池穴)이 원진에 의해 찍히고 말았다. 그 즉시 몸을 한 차
례 오싹 떨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그와 때를 같이하
여 그의  체내에 넘쳐 흐르는 진기가  원진의 손가락으로 전해졌
다.

 쌍방의 힘은 음과 양으로서 마침 서로 상극되었다. 게다가 장무
기의 내력은 구양신공에서  비롯된 것이니 만치 웅후하기 이를데
없었다.

 원진은 손가락이 불에 데인  듯 뜨거워지는 것을 의식하며 전신
의 경력(經力)이 흩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중상을 입은 데다가
공력이 평상시에 비해 일성(成)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상황 판단이 빨랐다. 눈앞에 전개돼 있는 상황이 자기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즉시 몸을 돌려 달아났다.

 장무기는 이내 뒤쫓아가며 소리쳤다.

 "성곤! 이 천하의 악적아, 목숨을 내놔라!"

 성곤의 뒷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잽싸게 옆문으로
달려들어갔다. 장무기는 다급해져 걸음을 재촉하자 갑자기 쿵 하
는 소리가 들리며 몸이  허공으로 떠올라 천정에 머리를 박고 말
았다.

 '왜 갑자기 몸이 이렇게 가벼워진 것일까?'

 그 자신은  어리둥절했다. 사실은  구양신공이 연성되어 일거수
일투족할 때마다 전에 비해 열 배가 넘는 힘이 발휘된다는 걸 모
르고 있었다. 그는 얼른 옆문으로 들어가 보니 작은 석실이 펼쳐
져 있을 뿐 원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의부를 위해 복
수를 하겠다는 일념에 곧장 석실 뒷문으로 쫓아갔다.

 석실 밖은 제법 넓은 뜨락이었다. 뜨락 한복판에는 화단이 만들
어져 있고 서쪽 어귀에  자리한 아담한 누각에 창문을 통해 불빛
이 새어나왔다. 장무기는 지체하지  않고 누각 앞으로 달려가 문
을 밀고 들어갔다. 그 순간 회색 그림자가 번뜩이며 원진이 앞쪽
에 드리워져 있는 휘장을 젖히며 뛰쳐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장무기도 뒤따라가  휘장을 젖히고 들어가  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장무기는 멍해지며  주위를 두리번 살폈다. 그러자 비로
소 자기가  어느 여염집 아가씨의 규방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창문 쪽에 화장대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붉은 촛불이 
밝혀져 주위를 환하게 비춰  주었다. 모든 것이 휘황찬란하게 꾸
며져 있어 주구진의 집과 비교해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다른 한
쪽에는 자단목으로 짠 침상이 있고 봉황이 수놓아진 휘장이 드리
워져 있었다. 침상 앞에 분홍색 꽃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으
로 미루어 여인이 침상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이 규방은 문이 
하나뿐이며 창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런데 분명히 규방 
안으로 들어온 원진이 삽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귀신이 곡
할 노릇이었다.

 장무기가 납득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속세를 떠난 원진이 
여인의 침상으로 뛰어들었다는  것뿐이었다. 과연 침상의 휘장을 
젖혀 확인을 해보아야 할지,  장무기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
고 망설이는 사이에 홀연 가벼운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장무기
는 자세히 생각을 굴릴 겨를도 없이 서쪽 벽에 세워놓은 병풍 뒤
로 몸을 숨겼다. 곧이어  두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장무기
는 병풍 뒤에서  슬그머니 엿보니, 두 사람  모두 묘령의 소녀였
다. 한 사람은 연분홍빛 비단옷을 입고 있으며, 또 한 사람은 나
이가 다소 어리며 청색  무명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비녀인 
것 같았다. 비녀는 째지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아가씨, 밤이 깊었으니 편히 쉬세요."

 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찰싹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라
고 불리우는 소녀가 난데없이  비녀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비녀
는 비칠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아가
씨라는 소녀는 고개를 살짝 돌렸고 장무기는 촛불을 빌려 그녀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유난히 큰 눈에 둥그스름한 얼굴, 
바로 자기가 불원천리 중원에서 서역까지 호송해 준 양불회였다.

 그 동안 세월이 흘러 그녀는 늘씬한 몸매의 성숙한 처녀로 성장
해 있었다. 그녀의 앙칼진 음성이 들려왔다.

 "나더러 자라고? 흥! 육대문파가 광명정을 공격해 오는 통에 나
의 아버님은 여러 사람들과 밤을 세워가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데, 나 혼자 편히 잠을  잘 수 있겠느냐? 넌 나의 아버지와 내가 
하루속히 죽길 바라고 있겠지만 어림도 없다!"

 비녀는 아무 변명도 못하고 그녀를 부축해 침상에 앉혔다. 그러
자 양불회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어서 내 검을 갖고 와!"

 비녀는 벽 쪽으로  걸어가 그곳에 걸려 있는  한 자루의 장검을 
내렸다. 이때 장무기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비녀의 
양쪽 발목과 손목에 가느다란  사슬이 묶여 있었다. 게다가 그녀
는 한쪽 다리를  절며 등이 곱추처럼 굽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한쪽 눈은 크고 한쪽  눈은 작은데다가 코와 입이 모두 일그러져 
괴물처럼 생겼다.

 장무기는 왠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저 소녀의 용모는 주아보다도 추하게 생겼구나. 주아는 중독되
어 얼굴이 부었기 때문에 치료될 수가 있겠지만 저 소녀는.....'

 그가 생각을 굴리고 있는 사이에 양불회는 장검을 받아 쥐었다.

 "언제 적이 나타날지 모르니 난 순찰을 돌아야겠다."

 비녀가 얼른 그녀의 말을 받았다.

 "저도 아가씨를 따라가겠어요. 만약 적을 만나게 되면 아가씨를 
도울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의 음성은 모래를 씹은 듯 듣기가 거북했다. 양불회는 대뜸 
냉소를 날렸다.

 "흥! 또 무슨 엉큼한 수작을 부리려는 거냐!?"

 그녀는 왼손으로  다짜고짜 비녀의  오른쪽 손목을 나꿔쥐었다. 
비녀는 그 즉시  꼼짝 못하게 되었다. 비녀는  겁먹은 표정을 한 
채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아가씨..... 저는....."

 "닥쳐라! 적이 대거  진격해 오면 우리 부녀는  언제 죽을 지도 
모른다. 네년은 틀림없이 적이 이곳으로 보낸 첩자일 것이다. 너
에게 당하기 전에 아무래도 내 손으로 널 죽여야겠다!"

 이렇게 야멸차게 말하며 대뜸  비녀의 목을 향해 장검을 들이댔
다. 그렇지 않아도 비녀에게  측은한 생각을 갖고 있던 장무기는 
생각을 굴릴 겨를도 없이 앞으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불회누이!"

 양불회는 흠칫 놀라 얼른 검을 거두더니 몸을 돌리기도 전에 격
동되는 음성으로 외쳤다.

 "무기 오빠예요?"

 뜻밖에도 그녀는 장무기의 음성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장무기는 후회스러운 생각이 들었으나 부인할 순 없었다.

 "그래 나야. 불회 누이, 그 동안 잘 있었나?"

 양불회는 비로소 천천히 몸을 돌렸다. 순간 남루한 차림에다 얼
굴에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장무기를  보자 멍해지며 눈살을 
찌푸렸다.

 "다.....당신이 정말 무기  오빠예요? 어떻게..... 어떻게 이곳
에 오게 됐죠?"

 장무기는 자세한 것을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누이의 아버님이 부상을 입었으니 어서 보살펴 줘야겠어!"

 양불회는 이내 안색이 크게 변했다.

 "아버님이 부상을  당했다고요? 무기  오빠, 여기서 기다려주세
요. 내가 곧 갔다 올  께요. 그 동안 별고 없었죠? 난 가끔 오빠
를 생각했어요....."

 이렇게 외쳐 대며 그녀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장무기는 비녀에게 물었다.

 "낭자, 화상 한 명이  이곳으로 도망쳐 왔는데 감쪽같이 사라졌
소. 혹시 여기에 다른 곳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소?"

 "그 화상이 어떤 사람이죠? 그를 꼭 쫓아가야 하나요?"

 "그 화상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엄청난 죄를 저질렀소. 난 무
슨 일이 있어도 그를 쫓아가야 하오!"

 비녀는 잠시 생각을 굴리는 듯하더니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좋아요! 당신은 내 목숨을 구해 줬으니 도와드리겠어요."

 그녀는 곧 촛불을 끄고  장무기의 손을 잡더니 앞으로 걸어나갔
다.

 장무기는 그녀에게 이끌려 걸음을  옮기다 보니 침상 앞에 이르
렀다. 비녀는 주저없이 휘장을 젖혀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여
전히 장무기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상태였으므로 장무기는 깜짝 
놀랐다. 그는 이 추하게  생긴 비녀가 자기를 침상으로 끌어들이
는 걸로 생각했다. 그로서는 도저히 응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무기는 비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비녀가 나직하게 말했
다.

  "통로가 바로 침상에 있어요."

 장무기는 그 말에  오히려 자신의 경솔함을 쑥스러워했다. 비녀
는 다시 그의 손을 잡더니 이불을 젖히고 침상에 누었다. 장무기
도 남녀유별을 따질 상황이 아닌지라 그녀와 나란히 침상에 누웠
다. 비녀가 어느  곳을 건드렸는지 알 수  없지만 침상이 갑자기 
뒤집어지며 두 사람이 일제히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곧장 수장  아래로 떨어졌다. 다행하게도 바닥에 푹신한
보료가 두껍게 갈려 있어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다. 윗쪽에서 
팍 하는 소리가 들리며  침상 바닥의 열렸던 부분이 원상 복귀되
었다. 장무기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실로 절묘한 장치군. 비밀 통로의 입구가 바로 여인의 규방 침
상에 있을 줄이야 누가 생각이냐 하겠는가?'

 비녀는 그의 손을 잡고 앞으로 달려갔다. 어디서 광선이 스며들
어오는지 몰라도 주위가  어슴프레했다. 장무기는 그녀의 발목에 
묶여 있는 사슬이 땅에  끌리는 소리를 듣고 문득 이상하게 느껴
지는 게 있었다.

 '아니..... 이  낭자는 다리를 저는데다가  양쪽 발목이 사슬에 
얽매여 있는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빨리 달리는 것일까?'

 그는 곧 걸음을 멈추었다.  비녀는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빙
긋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다리를 저는 것은 주인 어르신네와 아가씨를 속이기 위해 
위장한 거예요."

 장무기는 원진을 쫓아야 한다는  생각에 자세한 연유를 묻지 못
했다. 꼬불꼬불한 통로를 따라 수십 장 가량 따라 나가자 막바지
에 이르렀다. 그래도 원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비녀가 입을 열었다.

 "이 통로는  여기가 끝이예요. 틀림없이  앞쪽으로 연결된 다른 
통로가 있을 텐데 찾아 내지 못했어요."

 장무기는 어두침침한 주위를 살펴보았다. 알고보니 통로 천장에 
작은 야명주가 박혀 있어 희미한 광채를 비춰 주고 있었다. 장무
기는 앞쪽을  가로막은 석벽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보았다. 간혹 
울퉁불퉁한 부분이 있긴 해도 틈새라곤 찾아 낼 수 없었다.

 비녀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전에도 횃불을 갖고 들어와 수십 차례나 시도해 보았지
만, 바위문을 작동하는 단추를 찾아 내지 못했어요. 당신이 말한 
화상이 분명 이곳으로 들어왔다면 바위문을 통해 다른 곳으로 빠
져 나갔을 거예요."

 장무기는 한 모금의 진기를  끌어올려 두 손으로 석벽 좌측부터 
힘껏 밀어보았다. 전혀 반응이 없자 다시 우측을 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석벽이 약간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장무기는 속으로 
옳거니 하며 다시 두  모금의 진기를 끌어올려 힘차게 밀자 석벽
이 천천히  뒤로 밀려났다. 두꺼운 석벽은  또한 육중한 석문(石
門)이기도 했다.

 이곳 비밀 통로의 구조는  정교하여 때로는 기관 장치가 설치돼 
있기도 하지만 이러한 석문에는  아무런 장치도 돼 있지 않았다. 
그대신 엄청난 실력(實力)을 가졌거나 상승무공을 지니지 않으면 
석문을 열 수 없었다.

 석문이 석 자 가량 열리자 장무기는 바깥쪽을 향해 느닷없이 일
장을 뻗어냈다. 행여나 원진이 석문 뒤에 숨어 기습을 가할까 봐 
신중을 기한 것이다. 

 석문 밖은 다시 긴  통로와 연결돼 있었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
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통로는 갈수록 아래로 경사졌다. 약 오십
여 장 걸어나가자 뜻밖에도  홀연 왼쪽으로 뻗친 통로 안에서 기
침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지만  주위가 워낙 조용해 뚜렷하게 들
려왔다.

 장무기는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이쪽이다!'

 그는 앞장서 왼쪽 통로  속으로 뚫고 들어갔다. 이 통로는 지세
가 갑자기  높아졌다가 낮아졌다 하며  지면 역시 울퉁불퉁했다. 
얼마쯤 달리자  지세가 나선형으로 계속  아래로 향했다. 게다가 
폭이 갈수록 좁아져 한  사람이 간신히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우르르 꽝! 하는 소리가 들리며 
방금 장무기와 비녀가 지나왔던 천장 쪽에서 육중한 석문이 와르
르 떨어져내려  통로를 완전히 봉쇄시켜  버렸다. 졸지에 일어난 
변화에 장무기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통로가 봉쇄된 곳은 그들로
부터 약 열  자 가량 떨어진 지점이므로  얼른 몸을 돌려 간신히 
비녀의 곁을 비집고  가까이 다가가 석문을 밀어보았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체내의 진력을  모두 발휘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
다. 

 이때 석벽 맞은편에서 원진의 음성이 미약하게 들려왔다.

 "이놈아, 그곳은 죽음의  절지다. 이쪽에서 기관 장치를 작동하
기 전엔 절대 빠져나올 수가  없다. 물론 이 통로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 넌 영락없이 죽게 될  것이다. 계집과 함께 죽는 것을 복
으로 생각해라!"

 장무기는 그와 입씨름을 벌여  보았자 하등의 소용이 없다는 것
을 알고 몸을  돌려 다시 좁은 통로를  따라 앞쪽으로 걸어갔다. 
이젠 야명주의  광채도 없어 주위가  칠흑처럼 어두웠다. 손으로 
더듬으며 삼 장  가량 뚫고 나가자 통로의  끝이 되었다. 그곳은 
또 하나의 작은 석실인 듯 싶었다.

 "낭자, 혹시 부싯돌이 있소?"

 비녀가 있다고 대답하자  장무기는 나무통을 부서뜨렸다. 통 속
에서 많은 분말이 쏟아졌다.  그것은 석회인지 밀가루인지 알 수 
없었다. 장무기는 나무 조각 하나를 집었다.

 "이제 불을 밝히시오."

 비녀는 부싯돌을 꺼내 불을  당겨 나무 조각에 갖다 대었다. 순
간 부지직! 소리가 나며  나무 조각에 이내 불이 붙었다. 동시에 
불꽃이 튀며  짙은 유황냄새가 풍겼다.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비녀가 소리쳤다.

 "화약이예요."

 불이 붙은 나무 조각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통 속에서 쏟아진 가
루는 모두 시꺼먼 화약이었다. 비녀가 나직이 웃었다.

 "만약 저 화약에 불이 붙었다면 우린 죽었을 거예요."

 이때 장무기는  그녀를 뚫어지게 주시하며  만면에 경악의 빛이 
역력했다. 비녀가 생긋이 웃었다.

 "왜 그러죠?"

 장무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보니 낭자는..... 매우 아름답구료."

 비녀는 입을 삐쭉거리며 웃었다.

 "놀란 나머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것을 깜박 잊었군요."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몸을 똑바로 폈다. 장무기는 비로소 그녀
가 곱추도 아니며 다리도  멀쩡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게다가 이
목구비도 빼어났다. 장무기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 있었소?"

 비녀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대꾸했다.

 "아가씨는 저를 몹시 미워했어요.  그러니 제가 추한 모습을 하
고 있어야 그나마 그녀의 환심을  살 수 있었어요. 만약 제가 추
한 모습으로 위장하지 않았다면 아마 벌써 저를 죽였을 거예요."

 장무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무엇 때문에 낭자를 죽이려 한단 말이오?"

 "아가씨는 제가 주인  어르신네와 자기를 죽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어요."

 장무기는 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둘렀다.

 "그것 참 납득이 가지 않는군요....."

 장무기는 필시 다른 사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이 비
녀의 신분에 대해 새삼 흥미를 느꼈다. 그녀가 일부러 추한 모습
을 하여  양소와 양불회의 눈을 속여왔다는 게  결코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비녀는 그 사연을 밝히려 하지 않으려 하니 장무
기도 꼬치꼬치 캐물을 수가 없었다.

 비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당..... 아니 공자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을 알면 아가씨
께선 더욱 의심을  할 거예요. 하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니 우린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겠죠."

 이렇게 말하며  불이 붙은 나무를 들고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지금 그들이 몸담고 있는  석실에는 녹슬은 무기가 잔뜩 쌓여 있
었다. 이곳은  왕년에 명교가 무기를  저장하는 장소로 이용했던 
모양이다. 사면의 벽을 유심히  살폈지만 틈새를 찾아 내지 못했
다. 원진은 이곳이 사지(死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
부러 기침을 하여 두 사람을 유인한 게 분명했다. 

 비녀는 맥이 풀리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공자, 저는 소조(小조)라고  해요. 아가씨가 공자를 무기 오빠
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는데 성함이 무기라고 하나 보죠?"

 "그렇소. 나의 성은 장이라....."

 여기까지 말한 그는 다시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여기 있는 많은 화약을  이용해 막힌 석문을 파괴할 수 있을지
도 모르겠소!"

 소조는 즉시 손뼉을 치며 표정을 활짝 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그녀가 손뼉을 치자 양쪽 손목에 묶여 있는 사슬이 찰랑거렸다. 
그러자 장무기가 입을 열었다.

 "낭자, 그 사슬  때문에 행동이 불편할 테니  내가 끊어 드리겠
소."

 소조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내둘렀다.

 "안 돼요! 어르신네께서  아시면 날벼락아 떨어질 거예요. 더군
다나 이 사슬은  그 어떤 보검이기(寶劍利器)로서도 절단시킬 수
가 없어요.  열쇠로 열어야만 하는데, 아가씨가  그 열쇠를 갖고 
있어요."

 장무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곳을 빠져나가는 즉시 그녀에게 말해 사슬을 풀어 주도
록 하겠소."

 "아마 아가씨는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그녀와 보통 교분이 아니니 부탁을 하면 들어줄 것이오."

 그는 곧 바닥에서 긴 창 한 자루를 집어 석문이 닫힌 곳으로 걸
어갔다. 잠시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았으나 석문 저편에서는 아
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원진은 이미 멀리 떠나간 모양이다.

 장무기는 곁에서 횃불을 들고 있는 소조에게 말했다.

 "한 번으로는  폭파시키지 못할 테니 여러  차례 나누어 시도해
봐야겠소."

 그는 곧 예리한 창끝으로 석문 밑 부분을 뚫었다. 곧 이어 소조
가 화약을 갖고 왔고, 장무기는  그 화약을 석문 아래 패인 부분
에 쑤셔넣었다.  이어 옷자락을 찢어  화약가루를 묻혀 도화선을 
만들어 석실까지  연결했다. 그들은 계획대로  곧 도화선에 불을
당겼다. 도화선이 타 들어감에 따라 잠시 후 요란한 굉음이 터지
며 한 갈래의 거센 열기가  몰아쳐 왔다. 석실이 무너질 듯 요동
하였다. 소조는 놀라  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장무기는 본능적으
로 그녀의 몸 위에 엎어졌다. 그녀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였다.


                                 ----- 제 4 권 3 장 끝 -----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4 권


     제 4 장  명교(明敎)의 건곤이위신공(乾坤移位神功) 


 허공에 흩날리는 뿌연 흙먼지가  가라앉자 두 사람은 몸을 일으
켰다. 소조는 얼굴을 약간 붉히며 장무기를 쳐다보았다.

 "공자께선 귀하신 몸인데, 왜 저와 같은 천한 계집을 엄호해 주
셨죠?"

 장무기는 멋적게 웃었다.

 "내가 무슨  귀한 몸이겠소?  난 단지 낭자가  연약한 여자이기
에....."

 그는 말끝을 흐리며 비탈진 석문 앞으로 걸어나갔다. 아직도 주
위에 깔려 있는 뿌연  연기를 뚫고 가까이 가보니 석문은 아무런
손상도 없이 마치  위용이라도 과시하듯 멀쩡하게 제자리에 버티
고 있었다.  오히려 석문 우측 벽면  모퉁이가 파괴되어 있었다.
장무기는 실망을 했다.

 "아마 대여섯 번 폭파해야지만 석문이 뚫릴 것 같소. 그러나 남
은 화약으로 두 번밖에 폭파하지 못할 텐데....."

 그는 창끝으로 그 파괴된  벽 모퉁이를 쿡쿡 찔러 보았다. 순간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며  석벽을 받치고 있는 커다란 돌덩어리
가 통째로 흔들렸다. 자연히 그 부분에 틈새가 생겼다. 장무기는
지체하지 않고 창끝을 그  틈새로 밀어넣어 쑤셔 보았다. 그러자
돌덩어리가 빠져나와 비탈진  통로를 따라 아랫쪽 석실로 굴러갔
다. 돌이 빠진 부분에 구멍이 뻥 뚫렸다.

 장무기는 놀라움과 기쁨이 엇갈렸다. 그 구멍은 한 사람이 몸을
숙여 기어들어가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화약으로 석문을 폭파
시키지 못한 대신 우측 석벽에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구멍을 통해 살펴보니 또 하나의 통로가 앞쪽으로 뻗쳐 있었다.
장무기는 소조로부터 횃불을  건네받아 앞장서 구멍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소조도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따랐다. 이번에 새로 발
견한 통로도 나선 모양으로  아랫쪽을 향해 경사져 있었다. 장무
기는 왼손에 창을 쥐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원진의 암습에 신법
을 곤두세웠다. 약  사, 오십 장 걸어  들어갔을까, 석문 하나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장무기는 창과 횃불을 소조에게 맡기고
장력을 끌어올려 석문을 밀었다.  석문이 쉽게 열리며 또 하나의
석실이 나타났다. 이 석실은 매우 넓었다. 석실 천장에는 종유석
이 고드름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천연적인  동굴임을 알 수
있었다.

 장무기는 횃불을  쥐고 조심스레 앞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돌연
바닥에 두 구의  해골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해골의 옷은
아직 완전히 삭지 않아 한 쌍의 남녀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소조는 겁이 나는지 장무기의 등 뒤에 바싹 붙어섰다. 장무기는
횃불을 높이 쳐들어 석실 안을 한 번 살피고 나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여기가 막바지인 것  같소. 혹시 다른 곳으로 연결된
출구가 있는지 찾아봅시다."

 그는 창끝으로 석실의 벽면을 고루 두드려 보았다. 한결같이 둔
탁한 반응만 들려올 뿐 공간이 있는 부분을 찾아 내지 못했다.

 그는 다시 해골이 널부러져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
자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여자 해골은 자신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죽은 것이다. 순간, 장무기는  원진의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앗! 이 두 사람이 바로 양정천 부부란 말인가?"

 다시 남자의 해골을 자세히 살펴보니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손 옆
에 양피지 한 장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장무기는 양피지를 집어 살펴보았다. 양피지의 앞면은 매끄럽고
뒷면은 털이 있을 뿐 그 외에는 별로 이상한 것이 없었다.

 소조는 그 양피지를 건네받아 유심히 만져보더니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소리쳤다.

 "공자, 정말 축하해요.  이것은 명교의 무상심공(無上心功)이예
요!"

 이렇게 소리치며 자신의 왼손 식지를 깨물어 양피지에다 선혈을
엷게 발랐다. 그러자 놀랍게도 매끄럽기만 했던 일면에 시나브로
글자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  명교성화심법(明敎聖火心法),  건곤이위신공(乾坤移位神
功) -----

 첫줄에 드러난 건 열 두 글자였다.

 장무기는 우연한 기회에  명교의 으뜸가는 무공비급을 발견했지
만 별로 기쁘지가 않았다.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면 소조와 나는 머지않아 죽게 될텐데,
제아무리 천하 제일의 무공을 배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두 구의 시체를 살피며 다시 생각을 굴렸다.

 '그 원진은 왜 이  건곤이위신공의 비급을 갖고 가지 않았을까?
그의 말대로 양부인의 뜻하지 않은 죽음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일
까? 그래서 다른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 그냥 떠난 것일까?
아니야! 당시  그는 이 양피지가  무공비급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거야. 나도 처음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소조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낭자는 이 양피지의 비밀을 어떻게 알았소?"

 소조는 잠시 우물쭈물 하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주인 어르신네와  아가씨가 얘기하시는  것을 엿들어서 알았어
요. 그들은 명교의 교도이므로 감히 교칙을 어기고 이 비도로 들
어와 양피지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장무기는 두 구의 해골을 다시 쳐다보며 감회에 젖었다.

 "저들을 묻어 줍시다."

 두 사람은 양정천 부부의 유골을 나란히 옮겨 놓았다. 순간, 소
조는 양정천의 해골 밑에서 무엇을 주웠다.

 "장공자, 여기 서찰이 있어요."

 장무기가 받아보니, 겉봉에  부인친전(夫人親展)이란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탓으로 겉봉은 부식되어 네 글자
를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장무기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양부인이 미처 이 서찰을  뜯어 보기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
은 모양이군....."

 그는 서찰을 정중하게 해골  위에 놓아 주었다. 소조가 얼른 입
을 열었다.

 "서찰을 뜯어 읽어 보세요. 어쩌면 양교주께서 유언을 남겼을지
도 모르잖아요."

 "남의 서찰을 뜯어 본다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오."

 "만약 양교주께서 못다 이룬  뜻이 있다면, 공자께서 저의 주인
어르신네와 아가씨께 알려  그들로 하여금 양교주의 소원을 성취
케 할 수도 있잖아요!"

 장무기는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돼 곧 서찰을 뜯었다.
그 속에 아주 엷은 흰 비단천이 접혀져 있었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 부인, 그  동안 여러모로 소홀히 대해  미안하오. 삼십 이
대 의교주(衣敎主)의 유명에 따라 건곤이위신공을 완성하여 형제
들을 이끌고 파사(波斯:페르시아)로 가서 성화령(聖火令)을 모셔
와야 하므로, 한시도 신공  연마에 소홀히 할 수가 없었소. 본교
의 발원지는  비록 파사국이지만  중원(中原)에서 뿌리를 내딛고
열매를 맺은 지  이미 수백 년이 지났소.  오늘날 몽고 오랑캐가
우리 강산을 차지했으니, 본교는  그들과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
했소. 그러나 파사국  총교(總敎)쪽에서는 몽고를 받들라고 무리
한 명령을  내렸소. 이런 상황에서  성화령만 다시 되찾아온다면
우리 명교는 파사국 총교와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오. ----

 여기까지 읽은 장무기는 내심 생각을 굴렸다.

 '명교의 총단은  파사국에 있군. 이  의교주와 양교주는 총단의
명령대로 원조(元朝)에  투항하지 않았으니  이 또한 한인(漢人)
남아의 진정한 기개가 아니겠는가!'

 그는 명교에 대해  한층 더 경위를 느끼며  서찰을 읽어 내려갔
다.

 ----- 나는  신공을 제 사단계까지  터득했지만, 부인과 성곤의
관계를 알게 되어 혈기가  역류하는 것을 자제치 못해 결국 진력
이 흩어지는 주화입마의 길로 들어섰소.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주
어진 운명이니 누구를 원망하겠소. -----

 장무기는 잠시 서찰에서 시선을 떼며 장탄식을 했다.

 "이제보니, 양교주는 이 서찰을  쓰기 전에 이미 양부인과 성곤
이 비도에서 밀회를 갖는 것을 알았군!"

 소조가 궁금해 하는 것을 본 장무기는 양정천 부부와 성곤 사이
에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얘기해 주었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
분개했다.

 "모든 게  양부인의 잘못이예요. 그녀가  만약 성곤을 생각하는
마음이 진실했다면 양교주에게 시집을 오지 않아야 했을 거예요.
그리고 양교주에게  시집온 이상은 절대 성곤과  밀회를 해선 안
되죠."

 장무기는 턱을 끄덕이며 속으로,

 '어린 나이에 제법 생각이 깊군.'

 하고 생각하며 서찰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 이제 내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소. 의교주의 유명을 달성
하지 못한 채 죽으니 본교의  죄인이라 아니 할 수 없구료. 바라
건대 이 친필 유서를 갖고 좌우광명사, 사대호교법왕, 오행기사,
오산인을 소집해  나의 유명을 전달해  주시오. 누구를 막론하고
성화령을 되찾는 자를 본교의  삼십 사 대 교주로 내세워 본교의
업무를 처리하도록 해 주시오. -----

 장무기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양교주께서 나의 의부를  잠정적으로 부교주에 임명했구나. 의
부께서는 문무를 겸비했으니  양교주가 그를 부교주로 꼽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 정말  애석한 일이다..... 양부인께서 이 서찰을
보았다면 명교는 그 동안 서로 아웅다웅하며 내분을 일으키지 않
았을 텐데.....'

 그는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서찰을 다시 읽었다.

 ----- 건곤이위신공은  당분간 사손으로  하여금 계승토록 하여
차후 새로운  교주에게 봉환케 하시오.  부디 오랑캐를 축출하고
행선제악(行善除惡)을 보여  명존의 성화가  천하 제인에게 고루
비치도록 새로운 교주께 나의 당부를 전해 주시오. -----

 장무기는 내심 경탄을 금치 못했다.

 '양교주의 유명으로 보아 명교의 교리는 실로 광명정대하다. 각
문파가 사사로운 편견을 앞세워 명교를 몰아붙이는 것은 결코 옳
은 일이라 할 수 없다.'

 서찰의 글이 계속 이어졌다.

 ----- 나는 체내에 남은 공력으로 석문을 밀폐시켜 성곤과 죽음
을 함께 할 것이오. 부인은 비도전도(秘道全圖)대로 이곳을 벗어
나시오. 당세에  다시는 건곤이위신공을 터득할  자가 없을 테니
이 무망위(無妄位)의 석문을 열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오. 후
세 본교의 교주가 신공을  완성해 무망위의 석문을 연다면, 나와
성곤의 해골을 묻어 주시오. -----

 서찰 맨 끝에는 양정천의 이름이 적혀 있고 비도 전체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각 통로와 출입문의 위치를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장무기는 크게 기뻐했다.

 "양교주는 본디  성곤과 함께  이곳에서 동귀어진할 계획이었던
모양인데, 좀더 버티지 못하고  먼저 숨을 거둔 게 분명하오. 다
행하게도  이 비도 전체의 그림이 있으니  우린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게 됐소."

 그는 그림에서 우선 자기가 있는 위치를 찾아 내 자세히 살펴보
더니, 마치 만년빙굴에 떨어진 듯 온몸이 싸늘해졌다. 알고보니,
유일한 출로의 길목이 바로 원진이 바깥쪽에서 봉쇄시킨 그 통로
였다. 그러니 비도를 얻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소조가 그를 위로했다.

 "장공자, 조급해 할 것  없어요. 어쩌면 다른 출로가 있을 지도
몰라요."

 장무기는 쓴웃음을 지었다.

 "양교주의 유서에는 만약 건곤이위신공을 터득하면 석문을 열고
나갈 수 있다고 했지만, 당세에서 양소 선생만이 그 신공을 연마
했지만 아직은 경지가 부족해  설령 이곳에 있다 해도 도움이 돼
주지  못할  것이오.  게다가  무망위가 어디인지  설명이  없으
니....."

 "무망위라면  바로 금시화(金時化)의  육십사괘(六十四卦) 방위
중에 하나이니 쉽게 찾아 낼 수 있을 거예요."

 말을 끝낸 소조는 석실  안에서 방위를 신중하게 밟으며 서북쪽
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바로 여기일 거예요."

 장무기는 반신반의했다.

 "그게 정말이오?"

 그는 곧 무기를 쌓아둔 석실로  달려가 큰 도끼 한 자루를 갖고
와 석벽에 바른 흙을 긁어냈다. 과연 그곳에 석문의 흔적이 드러
났다. 그는 곧 새로운 생기(生機)가 생겼다.

 '난 비록 건곤이위신공을 모르지만, 구양신공의 위력이 그 신공
에 못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곧 단전에 진기를  모아 궁보(弓步)를 취한 자세에서 천천
히 석문을 밀었다. 그러나 아무리 밀어도 끄떡하지 않았다. 거듭
대여섯 번을 시도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때, 소조는 다시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양피지에다 발
랐다.

 "장공자, 이 건곤이위신공을  연마해 보지 않겠어요. 예상치 못
한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장무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둘렀다.

 "명교의 역대 교주들 중에도  평생을 두고 이 신공을 연성한 분
이 몇명 되지 않는다는데 내가 어찌....."

 "장공자, 이곳에 앉아 죽음을  기다리느니 운에 도전해 보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요?"

 장무기는 빙긋이  웃으며 양피지를  건네받아 나직이 읊조렸다.
양피지에 적힌  것은 모두  운기행공(運氣行功) 이궁전위(移宮轉
位)의 방법이었다. 장무기가 그 방법에 따라 시도해 보니 뜻밖에
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해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양피지에 분명 다음과 같은 주석이 적혀 있었다.

 ----- 이 제  일단계의 심법을 오성(悟性)이 높은  자는 칠 년,
오성이 뒤지는 자는 십 사 년을 연마해야 완성할 수 있다. -----

 장무기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대관절 뭐가 어렵기에 칠  년을 연마해야 터득할 수 있다는 거
지?'

 이어 제 이단계  심법을 읽어 내려가며 그  방법에 따라 시전했
다. 역시 앞서와 마찬가지로  삽시간에 진기가 관통되어 열 손가
락에서 차가운 기운이 줄줄이  뻗쳐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제
이단계 심법 뒤에도 오성이 높은  자는 칠 년 만에 완성할 수 있
고, 오성이 뒤지는 자는 십  사 년을 연마해야 터득할 수 있다는
주석을 달아놓았다. 아울러 이십 일 년을 연마하여 더 이상의 진
전이 없으면 절대 제 삼단계를 연마해선 아니 되며, 만약 무리해
서 연마할 겅우 주화입마되어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명시돼 있었
다.

 장무기는 의아해 하는 한편 가슴 벅찬 희열을 느꼈다.

 이어서 세 번째 심법을 읽어나갔다. 양피지의 글이 뚜렷이 드러
나지 않아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묻히려 했는데 소조가
앞을 다투어 자신의 선혈을 발랐다.

 소조는 옆에서 그의 얼굴이 피빛처럼 붉게 변했다가 파르스름하
게 바뀌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장무기가
제 오단계 심법으로 돌입하자 얼굴색이 바뀌는 속도가 더욱 빨라
졌다. 아울러 안색이 파랗게  변할 때는 몸에서 얼음장처럼 차가
운 기운이 뻗쳐나오고, 얼굴이  빨갛게 변할 때는 열기가 발산되
며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다.

 소조는 보기가  안타까와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 주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이 장무기의 이마에 닿는 순간
팔에 심한 충격이 전해져 와 비틀거리며 뒤로 쓰러질 뻔했다. 가
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장무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소매로 땀
을 닦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제 오단계를 연성한
것이다.

 이 건곤이위신공은 간단하게 말해 내력을 가장 적절하게 운용하
는 지극히 절묘한 방법에 불과했다. 그 근본 원리는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하는데 있었다. 모든 사람
의 체내에 축적돼 있는  잠재력은 엄청난 것이다. 단지 평상시에
는 그 잠재력이 나타나지 않을 뿐이었다. 막상 위급한 상황이 닥
칠 때, 닭 한 마리 잡을 힘조차 없는 약한 자가 왕왕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잠재력이다.

 장무기는 구양신공을 연마한 후  체내에 축적된 진력이 천하 으
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지 고인의 가르침을 받지 못
해 그 힘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지금 건곤이위신공의 심
법을 배우게 되자  체내에 잠재돼 있는 힘이  둑 터진 강물인 양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이라서 일반인으로선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심법이 연성하기  어렵고 자칫하여 주화입마되는 이유도, 사
실은 운공하는 방법이  복잡 미묘한데다가 심법을 연마하는 당사
자의 내력이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었다. 다시  말해, 대여섯 살짜리 어린애가  백 근이 넘는
철추를 휘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추법(錘法)이 오묘할수록 철
추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쳐 두개골이 파열될 가능성이 짙었다.

 반면, 철추를 휘두르는 자가 대역사(大力士)라면 절묘한 추법을
쉽게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애가 이에 대응하는 힘을 키우
자면 계획을 느긋하게 잡아야  하며 오랜 시간이 걸릴 것도 당연
지사였다.

 명교의 역대 교주 중에  내력의 한계가 있으면서도 억지로 연마
하려다 원만한 결과를 거두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그들
도 전인후과(前因後果)를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
성이면 감천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앞세워 과욕을 부렸던 것이다.

 장무기가 제 오단계를 연성하자  전신에 힘이 고루 퍼지며 생각
을 굴리는데 따라 그  힘이 자유자재로 제어되는 것을 뚜렷이 느
낄 수 있었다. 아울러 사지백해가 구름 위를 날으듯 개운하며 표
연했다. 그는 여세를  몰아 제 육단계 심법을 답파하고  한 시진
후에는 제 칠단계로 접어들었다.

 제 칠단계  심법의 오묘함은 육단계보다  월등히 차이나게 깊고
난해했다. 다행하게도  장무기는 의도맥리(醫道脈理)에 통달하여
어려운 관문에 부딪치면 의리(醫理)에 결부시켜 확연히 깨우침을
얻은 경우도 있었다.

 제 칠단계 중에 절반 이상을 연성했을 때 갑자기 혈기가 용솟음
치며 심장이  극렬하게 뛰었다. 그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처음부터 다시 연마해 나갔다. 한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첫 단
계 신공을 연마한 이래 이러한 현상은 처음이었다.

 그는 이 한 귀절을  건너뛰고 다시 연마해 나갔다. 그러자 막힘
이 없이 순조로왔다.  하지만 몇 귀절 후에  다시 난관에 봉착했
다. 그 뒤로 막히는 부분이 속출했다. 결국 장무기는 모두 열 아
홉 귀절을 연성하지 못한 채 제 칠단계를 마무리지었다.

 장무기는 잠시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더니 양피지를 유해 위
에 내려놓고 공손히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제자 장무기 우연한 기회에 명교의 신공심법을 읽게 되어 구상
지책(求生之策)으로 연마를 했으니, 위경에서 벗어난 후 필히 이
신공으로 귀교를 위해 이바지할 것이며 역대 교주의 은혜에 보답
할 것을 맹세합니다."

 소조도 큰절을 올리고 나서 진지하게 말했다.

 "역대 교주시여,  부디 장공자를 굽어살펴  명교의 위명을 다시
빛내게끔 도와주십시요."

 장무기는 몸을 일으켰다.

 "나는 명교의 교도가 아니며 또한 태사부님의 엄명이 있어 감히
명교에  가입할 수 없지만,  명교의 교리가 광명정대하다는 것을 
각 문파에게 설명하여 쌍방의 질분을 종식시키겠소."

 소조는 그를 똑바로 주시하며 말했다.

 "장공자, 아직 열 아홉  귀절을 연성하지 못했으니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연마하는 게 어떻겠어요?"

 장무기는 빙긋이 웃으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세상만사가 모두 완벽할 순  없는 법이오. 더군다나 나는 명교
의 제자가 아니니  열 아홉 귀절을 남겨놓는  것도 예의라 할 수
있을 것이오."

 "공자의 말씀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군요."

 소조는 양피지를 건네받아 연성하지  못한 열 아홉 귀절을 지적
해 달라고 하더니 몇 번 암송해 뇌리에 새겨 두었다.

 장무기는 담담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것을 기억해 무엇 하려는 거요?"

 소조는 얼굴을 약간 붉혔다.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장공자께서도 연성하지 못한 귀절이
니 도대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궁금해서....."

 장무기가 열 아홉 귀절을 연성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애당초 건곤이위신공을 만든  사람도 사실은 제 육단계밖에 연성
하지 못했으며, 그가 양피지에  수록한 제 칠단계는 자신의 공력
으로선 도저히 수련할 수  없는 상상의 경지에 불과했다. 그것이
어쩌면 구양신공의 경지일지도 모른다. 장무기는 그 고인의 이상
(理想)을 실현시킨 셈이다. 그가  연성하지 못한 열 아홉 귀절은
그 고인의 상상이  근본적으로 빗나간 것으로서 현실로선 도저히
불가능한 경지였다. 만약  장무기가 완벽함을 추구하겠다고 고집
했다면 마지막 관문에  이르러 주화입마되거나 경맥이 끊이는 불
상사를 겪게 되기 십상일 것이다.

 소조와 장무기는 주위에 있는 사석(沙石)을 옮겨와 양정천 부부
의 유해를 덮어 주었다.  장무기는 곧 석문 앞으로 다가갔다. 이
번에 그는 석문에 오른손만 붙인 채 방금 터득한 건곤이위신공의
심법에 따라 운공하며 힘을 주자 석문이 삐걱소리를 내며 흔들렸
다. 이어 힘을 한 단계 높이자 석문이 천천히 열렸다.

 알고보니 이  석문은 천연적인 대암석으로서  암석 아래 부분에
철구(鐵球)모양의 문추(問樞)를 박아놓았다.

 장무기는 왕년에 명교가 이 성역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
력을 동원했으며 얼마나 오랜 세월을 거쳐 심혈을 기울였는지 능
히 상상을 할 수 있었다. 그는 통로망이 그려진 비도(秘圖)가 있
으므로 쉽게 산동(山洞)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일단 바깥으로 나오자 햇살이 눈부셨다. 햇살을 받은 소조의 모
습은 너무도 아름다와  전에 위장했던 추한 몰골과는 천양지차가
있었다. 장무기는 한 순간 그녀의 빼어난 용모와 자태에 넋을 잃
었다.

 "이젠 그 추한 모습으로  위장하지 않도록 하시오. 지금의 낭자
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소."

 소조는 얼굴을 붉혔다.

 "그게 정말이예요?"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소?"

 소조의 입가에 천진무구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좋아요. 공자의 분부이시니  제가 어찌 거역하겠어요. 설령 아
가씨가 저를 죽인다 해도 다시는 추한 꼴로 위장하지 않겠어요."

 장무기는 새삼스레 그녀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피부색이 유
난히 하얀데다가 콧날이  일반 여인들보다 높고 눈동자도 바다의
내음이 풍기듯 파란색을 띠고 있었다.

 "낭자는 혹시 서역의 사람이  아니오? 우리 중원 여인에게선 흔
히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구료."

 소조는 그의 말에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저는 중원의 낭자와 생김새가 똑같았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이들은 곧 주위의 지세를 살폈다. 장무기는 건곤일기대 속에 갇
혀 있는  상태에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으므로  지세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자 소조가 서북 방향을 향해 소리쳤다.

 "주인 어르신네와 명교의 고수들이 모여 있는 곳은 바로 저쪽이
예요!"

 장무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조의  손을 잡고 산길을 따라 질
주했다. 지금 그의  체내의 구양진기는 마음먹는대로 유전(流轉)
되며 건곤이위신공을 제  칠단계까지 터득했으므로, 비록 소조의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신법이 비호철검 민첩했다. 그런데 도중에
서 그들은 수십 구의  시체를 발견했다. 육대문파의 제자들과 명
교 교도들의  시체였다.  육대문파가 이미 광명정까지 진격해 온
게 분명했다.

 장무기는 양소 등의 안위가  염려되어 신법을 최고 경지로 전개
했다. 그들이 산꼭대기에 올랐을  때 병기가 부딪치는 요란한 금
속성이 들려왔다. 장무기는  지체없이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순
간, 그의 등 뒤에서는  예리한 파공음과 함께 냉랭한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멈추어라!"

 장무기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달리며 뒤쪽을 향해
손을 살짝 떨쳐냈다. 그러자 그의 등을 겨냥해 날아오는 두 개의
강표(鋼標)가 즉시  거꾸로 날아가며  뾰족한 비명소리가 뒤따랐
다.

 장무기는 흠칫하여  고개를 돌려보니 희의승인  한 사람이 땅에
스러져 있고, 오른쪽  어깨에 두 개의 강표가  꽂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장무기는 생명의 위험이  없다는 것을 알고 다시 신법을
전개했다.

 곧이어 장무기와  소조는 금속성이 들려오는  높은 담장 안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었다. 다시  대청 두 군데를 뚫고 나가자 눈앞
에 넓은  광장이 펼쳐졌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서쪽에 무리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은 수적으로 적었고,
대부분이 선혈이 낭자해 땅에 주저앉거나 누워 있었는데 바로 명
교의 교도들이었다.

 그들 맞은편  동쪽에 포진하고 있는  인원수는 어림잡아도 명교
교도에 비해 두, 세 배가 더 많았다. 그들은 여섯 무리를 이루고
있어 육대문파가 모두 당도했다는  걸 짐작케 했다. 이들은 반원
을 형성해 명교 교도들을 포위한 상황이었다.

 장무기가 자세히 살펴보니  양소, 위일소, 팽화상, 설불득 등도
모두 명교 쪽에 앉아 있었는데 여전히 행동이 불편한 것 같았다.
양불회는 바로 부친 곁에 앉아 있었다. 지금 광장 한복판에서 두
사람이 치열한 싸움을 벌리고  있어 모두 그곳에 신경이 집중돼,
장무기와 소조가 불쑥 나타난 것을 아무도 유의하지 않았다.

 장무기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두 사
람은 모두 적수공권이었다. 날카로운 장풍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수  장 가량 비껴나가니 그  위력이 대단했다. 두
사람 모두 절정고수였다.

 그들의 용모를 확인한  장무기는 가슴이 철렁했다. 몸집이 왜소
하고 몸집이 차돌처럼 단단하게 생긴 중년인은 바로 무당칠협 중
에 네째인 장송계가 아닌가!  그의 적수는 허우대가 우람한 노인
으로서 대머리가 훌렁 벗겨지고 긴 눈썹이 백설같이 희고 매부리
코에 입은 독수리처럼 뾰족했다. 장무기는 내심 궁금했다.

 '명교에 저런 고수도 있다니 대관절 누구일까?'

 이때 화산파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냉랭하게 외쳤다.

 "백미응왕, 어서 패배를  시인하시오! 당신이 어찌 무당 장사협
의 적수가 될 수 있겠소?"

 장무기는 백미응왕이란 네 글자에 격동을 금치 못했다.

 '앗.....! 그가 바로  나의..... 외조부이신 백미응왕이란 말인
가?'

 그는 당장 앞으로 달려가 자신의 신분을 알리고 싶었다.

 두 사람의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져 장송계와 은천정의 머리 위
에서 모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제각기 평생 동안
쌓은 내력과 진기를 전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한 순간, 그들
의 날렵하게 움직여지던 동작이 멎어지며 서로 쌍장을 맞붙였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내력(內力)의  대결로 돌입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곧 승부가 판가름날 것이다.

 명교와 육대문파는 모두 숨을 죽였다. 내력을 겨루고 있는 당사
자들도 돌부처처럼 굳어졌다.

 은천정의 눈에서는 형형한 신광이 발해졌다. 장송계는 무당심법
중에 이정극동(以靜克動)의 원칙을  고수한 채 역시 정면으로 은
천정의 눈을 주시했다. 그러는 사이에 쌍방은 진력을 최대한으로
뻗어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생사투를 계속했다. 만약 어느 한쪽
의 진력이 달리면 즉시  승패가 판가름나는 동시 패하는 쪽은 생
명을 잃거나 중상을 입게 될 가능성이 짙었다.

 장무기는 안타까왔다. 한쪽은 외조부고 자신의 혈육이며 한쪽은 
자기를 친자식처럼 보살펴 주셨던  부친의 사형이 아닌가!  그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앞으로 달려나가 두 사람을 뜯어 말리려
는데 때맞추어 은천정과 장송계가  동시에 기합을 내지르며 제각
기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장송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은 노선배님의 탁월한 신공에 그저 감탄할 따름입니다."

 은천정은 우렁찬 음성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장대협의  내가진력(內家眞力)이야말로  초범입성(超凡入聖)할
경지에 도달해 있으니, 노부로선  도저히 감당해 낼 자신이 없소
이다. 귀하는 노부의 사위와  동문이거늘 오늘 꼭 승부를 가려야
되겠소?"

 장송계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후배는 조금 전에 한  발짝 더 물러났으니 솔직히 패배를 시인
하는 바입니다."

 그는 몸을 숙여 읍을 하더니 태연히 뒤로 물러났다.

 그 즉시 무당파에서 한 사람이 뛰쳐나왔다.

 "은교주, 당신이 나의 장오협을 거론하지 않았다면 모르되 막상
그 말을 들으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소이다. 나의 유삼협과 장오
협은 모두 천응교로 인해  살상되었으니, 나 막성곡이 그들을 대
신하여 한 수 가르침을 받겠소이다!"

 이렇게 소리치며 한 자루의 장검을 뽑았다. 햇살에 반사된 검광
이 뿌려지는 가운데  그는 만악조종(萬嶽朝宗)의 자세를 취했다.
이것은 무당 제자가  윗사람과 겨룰 때 취하는 기수식(起手式)이
었다.

 막성곡은 비록 울화가  끓어올랐지만 상대방이 무림에서 상당한
지위를 지니고 있는 인물임을  감안해 예의를 잃지 않았다. 은천
정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

 "노부는 딸애가  죽은 후로부터 검을  사용하지 않았소. 그러나
빈손으로 무당대협을 상대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니....."

 그는 말끝을 흐리며 한쪽에 서 있는 교도에게 말했다.

 "너의 철봉(鐵棒)을 잠시 빌려야겠다."

 명교의 교도는 즉시 그에게 다가가 철봉을 두 손으로 공손히 건
네주었다. 은천정은 철봉을  받는 즉시 두 동강이로 부러뜨렸다.
반 토막의 철봉으로 막성곡의 장검을 맞이하겠다는 뜻이었다.

 막성곡은 그가 선제공격을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므로 먼저
장검을 떨쳐 백조조봉(白鳥朝鳳)의 초식을 펼쳤다. 일순, 검끝이
파르르 떨리며  허공에 검화(劍花)를  떨쳐내는 가운데 상대방의
복부를 노려갔다. 이 초식은  비록 날카롭지만 역시 예의를 갖춘
검법이었다.

 은천정은 부러진 철봉으로 막으며 힘주어 말했다.

 "막칠협, 겸허할 필요는 없소."

 이번에는 그가 부러진 철봉으로 비스듬히 공격을 펼쳐냈다.

 삽시간에 쌍방은 심여  초식을 겨루었다. 주위에서 관전하고 있
는 사람들은 모두 눈이 어찔어찔 했다. 막성곡의 검은 살아 있는
뱀이 혀를  날름거리듯 영활하기 이를데  없었다. 게다가 검광이
종횡으로 절도있게 허공을 수놓으며 일초일식마다 명문의 기상이
서려 있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은천정의 뭉뚝한 철봉은  느릿하고 둔해 보였
다. 그는 마치 선무당이 굿거리를 하듯  철봉을 동쪽으로 떨쳤다
가 서쪽으로 내리치며 엉성해 보였다.  그러나 식견이 넓은 사람
들은 그것이 바로 허중유실(虛中有實)이라 일컬어지는 무학의 높
은 경지임을 알고 있었다.

 다시 십여  회합이 지나자 막성곡의 검초는  더욱 빨라졌다. 곤
륜, 아미 등 검법을 위주로 하는 문파의 제자들도 막성곡이 펼치
고 있는 변화무쌍한 검법에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당 검법은 과연 명불허전이군.....'

 그러나 막성곡이 아무리 위력있는 검법을 구사해도 은천정이 펼
친 수비망을 뚫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급해지는 것
은 막성곡이었다.

 '은천정은 이미 화산, 소림의  고수 세 명을 연파한데다가 사사
형과 내력을 겨루어 많이 지쳐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내가 그를
꺾지 못한다면 사문의 체면을 손상시킬 게 분명하다.....'

 그는 갑자기 맑은 기합을  토하며 검법을 변화시켰다. 순간, 그
의 장검이 부드러운 띠로  변한 듯 유연하게 좌우로 휘어지며 검
끝이 어느 부위를 노리는지  허허실실을 종잡을 수 없었다. 이것
이 바로 무당의 독특한 검법인 요지유검(繞指柔劍)이었다. 이 검
법은 모두 칠십  이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막성곡이 십 이
초식을 전개했을 때 은천정은  더 이상 수세만 취할 수 없었는지
몸놀림이 빨라졌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긴장되어 갔다.

 돌연, 막성곡의 장검이  허공을 꿰뚫고 은천정의 가슴을 노리며
뻗쳐나가다가 도중에서  검끝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옆으로
휘어져 오른쪽 어깨로 표적을  바꾸었다. 뜻밖의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웅후한 내력을  이용해 도중에서 검을 휘게 만들
어 표적을 엉뚱한 부위로  바꾸는 것이 바로 이 요지유검의 특색
이었다.

 중인의 입에서 짤막한 외침이 내뱉어졌다.

 "앗!"

 그와 때를  같이하여 뭉뚝한 철봉이  은천정의 손에서 벗어나더
니, 그의 오른쪽이 마치 별안간  반 자 가량 늘어난 듯 막성곡의
손목을 스치며  그의 장검을 빼앗아왔다.  동시에 왼손으로 이미
그의 견정혈을 눌렀다.

 주위에 있는  군호들은 그가 어떠한  수법을 전개했는지 자세히
본 사람이 없었다.

 금나수법(擒拿手法)!

 백미응왕 은천정의  금나수법은 백여  년 이래 무림일절(武林一
絶)로 공인돼 왔으며 당세에 그 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막성곡의 견정혈이 상대방  손아귀에 포착됐으니 은천정이 진력
을 뻗어내기만 하면 영락없이 어깨뼈가 으스러져 평생 불구가 될
것이다. 무당 제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앞으로 뛰쳐나가 그
를 돕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은천정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어찌 또 하나의 한(限)을 남기겠는가.....?"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막성곡의 견정혈에 얹힌 손을 풀
었다. 그의 왼팔에서는 선혈이 샘솟듯 흘러내렸다. 그는 손에 쥐
어져 있는 장검을 응시하며 다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노부는 평생 누구에게도 초식을 겨루어 패한 적이 없는데 과연
장삼봉이군! 과연 장진인은 대단해!"

 그는 비록  부상을 입었지만 장삼봉이  창출한 요지유검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막성곡은 넋빠진 사람마냥  잠시 제자리에 굳어져 있었다. 자기
는 비록 먼저 한  초식을 이겼지만 상대방이 마음먹기에 따라 목
숨을 잃게 됐을 것이다.

 "선배님이 자비를 베푼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은천정은 아무 말 없이 장검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막성곡은 자
신의 검법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상대방에게
검을 빼앗기자 스스로 수치심을 느껴 검을 받지 않고 물러났다.

 장무기는 옷자락을  찢어 앞으로 달려가  외조부의 상처난 팔을
동여매 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무당파
쪽에서 한 사람이 나섰다.  검은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뜨린 무당
칠협의 맏이인 송원교였다.

 "제가 선배님의 상처를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품속에서 약을 꺼내  상처에 발라 주고 손수건으로 동여매
주었다. 천응교와 명교의 교도들은 송원교가 절대 공공연히 암수
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
지 않았다.

 은천정은 그에게 정중히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장무기는 이 광
경을 지켜보며 내심 기뻐했다.

 '송사백님은 나의  외조부께서 막칠숙을  살상하지 않은데 대한
보답을 하는 거다. 쌍방이 영원히 저렇게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
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뜻밖에도 송원교는 상처를  치료해 주고 나서 뒤로 멀찌
감치 물러나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은 선배님, 무당과 천응교는  원한이 얽혀 있지만 지금과 같이
천응교가 불리한 상황하에서는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육대
문파는 이번에 명교를 겨냥해  온 것이니 만큼 이미 명교에서 탈
퇴한 천응교는 이쯤에서 물러나 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천응교와 정면대결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은천정은  그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었다. 양
소, 위일소 등 명교의 고수들이 모두 부상을 입은 지금 상황에서
만약 자기가 물러난다면 그들을 죽음의 궁지로 몰아넣는 것과 다
를 바 없었다. 은천정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송대협의 호의는  고맙소. 그러나 노부는  비록 스스로 문파를
세웠지만 명교  사대호교법왕 중에 한  사람임이 분명한데, 어찌
이번 일을 수수방관할 수 있겠소?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으니
서슴치 말고 출수를 하시구료."

 이렇게 말하며 쌍장을 가슴 앞에 모았다.

 송원교는 그의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 좋습니다. 이 후배는 선배님의 무학이 고심막측하다는 것
을 스승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선배님은
이미 여러 사람을 상대하여  진력이 많이 소비된 상태이니, 공평
을 기하기 위해 진력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초식만으로 한 수 가
르침을 받겠습니다."

 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한쪽 발을 걷어차냈다. 물론 이것은 허초
(虛招)였다. 쌍방의 간격이 일 장 남짓 벌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송원교의 이 퇴법(腿法)은 실로 절묘하여 만약 쌍방의 간
격이 가까운 상태였다면  은천정이 막아내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훌륭한 퇴법이오!"

 은천정은 찬사를  내뱉으며 주먹을 교차시켜  쪽 밀어내는 동시
좌우로 갈랐다. 수비와  공격을 겸한 동작이었다. 송원교는 살짝
옆으로 미끄러지며 일장을 반격했다.

 삽시간에 두 사람은  권(拳), 장(掌), 각(脚), 퇴(腿)를 민첩하
게 움직이며 물샐 틈  없는 공방전을 펼쳐나갔다. 물론 시종일관
일 장 남짓한 거리를  유지한 채였다. 하지만 그들은 눈꼽만치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한  초식의 실수를 저지르면
패배를 시인해야 하기 때문에 실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관전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았다. 장무기
역시 이들이 전개하는 일초일식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두 사람
의 출초는 갈수록 빨라졌다.  잠시 지켜보던 장무기는 내심 이상
한 생각이 들었다.

 '외조부와 대사백은 모두  무림의 일류 고수들인데 어째 초식에
저렇게 많은 헛점이 있는 것일까? 외조부께서 방금 전개한 일 장
이 만약 조금만  왼쪽으로 기울였다면 틀림없이 대사백의 가슴을
적중시켰을 게 아닌가? 그리고 대사백이 조금만 늦게 금나수법을
썼다면 외조부의  왼쪽 손목을 나꿔잡았을  게 분명한데..... 두
분이 서로 양보하는 것 같지도 않고.....'

 앞서 은천정과 장송계, 막성곡이 대결을 벌였을 때는 단지 어느 
한쪽이 다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며 장무기는 그들의 초식을 
관찰할 심적인 여유가 없었다. 하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
느 쪽도 손상을 입을 우려가 없어 유심히 살펴본 결과 납득이 가
지 않는 헛점이 많이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 눈에는  헛점이 보일 리 만무했다. 단지 장무기
는 건곤이위신공을 제  칠단계까지 터득하여 무학상의 경지가 그
들보다 한 수 높기 때문에 헛점이 보이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수
가 높은 자가 하수끼리  장기를 두는 것을 지켜보면 헛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홀연, 송원교의 초식이  일변되며 쌍장을 허공에다 연속 휘저었
다. 언뜻 보아 무희(舞姬)가  장삼자락을 떨치며 비무하는 것 같
았다. 이것이 바로 무당파의 정통무학인 면장(綿掌)이었다.

 은천정은 거기에 맞추어 광풍노도와도 같은 기세로 장풍을 밀어
냈다. 두 사람은 극유(極柔)와 극강(極剛)의 서로 상반되는 절예
를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곧이어 송원교가 좌장을 밀어내는가  싶더니 한 호흡 늦게 출수
한 우장이 좌장을 앞질러  뻗어나갔다. 그와 동시에 좌장이 변화
를 일으켜 아래로  긁어내리는 듯하면서 잉어가 수면으로 솟구치
는 양 불현듯 위로 튕겨져 올랐다.

 은천정은 자신의 상반신과  복부, 하반신이 모두 상대방의 공격
권 안에  노출되는 것을 느끼며 대갈일성과  함께 잽싸게 오른쪽 
무릎을 세웠다가 앞으로 반  보 내디뎌 기마자세를 취하고, 쌍장
을 복부와 가슴의 수평기준으로  쭉 뻗어냈다. 그리고 그 자세에
서 돌부처처럼 굳어졌다.

 송원교도 마찬가지였다. 쌍방이 모두 망아지경에서 초식을 펼쳐
나가다 보니 무의식중에 정면으로 내력을 겨루는 자세가 된 것이
다. 서로 일 장 남짓  떨어져 있으므로 이러한 자세는 무위한 것
이었다.

 송원교는 입가에 담담한 미소를  띄우며 뒤로 가볍게 몸을 솟구
쳤다.

 "선배님의 심오한 무학에 그저 감탄할 따름입니다."

 은천정도 자세를 거두었다.

 "무당권법은 과연 명불허전임을 깨달았소."

 두 사람은 애당초 내력을 겨루지 않기로 약조했으므로 이것으로 
대국을 마무리지었다.

 무당파 쪽에선 아직 유연주와 은이정이 출장을 하지 않았다. 그
러나 은천정이 안색이 불그스름하게  상기된 채, 비록 내력을 겨
루지 않았지만 체력이 많이 소비되어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라
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설 수 없었다. 그들 중에 누가 나서
더라도 즉시 은천정을 쓰러뜨려 백미응왕을 격패시켰다는 영예를 
얻을 수 있겠지만, 유연주와 은이정은 서로 마주 보며 모두 고개
를 절레절레  내둘렀다. 그들은 역시  성인군자다운 풍도를 잃지 
않았다.

 한데, 엉뚱한 사람이 어부지리를  얻기 위해 나선 것이다. 공동
파의 체구가 왜소한 노인이었다.  그는 몸을 날려 사뿐히 은천정 
앞에 내려서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이 당문량(唐文亮)이 한 수  놀아볼까 하는데, 응해 줄 용의가 
있는지 모르겠구료?"

 은천정은 그를 힐끗 쳐다보며 냉소를 날렸다.

 "평상시라면 공동오로  따위는 감히 내 앞에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할 텐데, 호랑이가 덫에 걸리면 들개한데 업신여김을 당한다더
니..... 내가 바로 그런 꼴이군..... 그러나 어림없을 것이다!"

 그는 내심  괘씸하게 생각하며 흰  눈썹을 치켜세우며 싸늘하게 
외쳤다.

 "고약한 놈, 어서 공격해라!"

 당문량은 은천정의 내력이 이미  고갈 상태에 이르러 몇 초식만 
겨루면 스스로 쓰러질 것임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는 행여나 은
천정이 말을 번복할세랴  쌍장을 교차시키며 냅다 선제공격을 취
했다. 은천정은 간신히 그의  일초를 피하자 당문량은 그에게 숨
돌릴 기회를 주지 않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원숭이가 오도
방정을 떨 듯  줄기차게 공격을 퍼부었다. 약  십여 초식을 피한 
은천정은 그만 눈앞이  캄캄해지며 비릿한 기운이 목줄기로 뻗쳐
올라 울컥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하고 비칠비칠 그 자리에 무너지
듯 주저앉았다.

 당문량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은천정, 결국 넌 내 손에 죽게 됐구나."

 그는 즉시 몸을 솟구쳐  독수리가 모이를 덮치듯 은천정의 정수
리를 향해 쌍장을  떨쳐냈다. 이 순간 장무기는  즉시 몸을 날려 
외조부를 구하려 했다. 한데  그가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은천정
이 비스듬히 누우며 해를 가리키듯 절묘한 자세로 쌍장을 받아냈
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누군가의 입에서 놀란 외침이 터져나왔다.

 "응조금나수(鷹鳥擒拿手)!"

 급속도로 덮쳐내리는 당문량이  신법의 변화를 구사하기에는 이
미 때가 늦었다.

 다음 순간 -----

 으드득!

 당문량의 두 팔이 응조금나수법에 의해 부러졌다. 이어 다시 으
드득 소리가  들리며 그의 양쪽  다리뼈마저 으스러졌다. 그리고 
그의 몸은 다섯 자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사지가 부러진 그는 꼼
짝도 할 수 없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은천정이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이러한 
위력을 발휘하자 모두 아연실색했다.

 공동오로 중에 세째인 당문량이 이런 꼴을 당했으니 공동파에서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과연 공동오로 중에 둘째인 종유협(宗
維俠)이 싸늘하게 기합을 지르며 다짜고짜 은천정에게 덮쳐갔다. 
은천정은 이미  풍전등화와 마찬가지이므로  생의 종지부를 찍게 
될 일보직전에 놓였다.

 바로 이때였다.

 "잠깐만!"

 장무기가 전광석화같이 몸을 날려 종유협의 앞을 가로막았다.

 "반항할 힘을 잃은 자에게 살수를 전개하다니! 천하영웅들의 비
웃음을 살 게 두렵지도 않소이까?"

 그의 호통소리는 거종(巨種)처럼  주위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군호들은 모두 멍해지며 그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한편, 종유협은 거렁뱅이 같은 녀석이 난데없이 나타나 앞을 가
로막자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손을 뻗어 그를 밀어내려 했다. 장
무기는 그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본능적으로 왼손을 떨쳐냈다.

 순간, 한 갈래의 무지막지한 힘줄기가 그의 손에서 격출되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종유협의 가슴에 닿았다. 그 즉시 종유협은 쪼
르르 뒤로 석  자 가량 미끄러져 나갔다.  그래도 몸을 고정시킬 
수 없어 황급히 발끝으로 살짝  망을 찍으며 뒤로 일 장 가량 솟
구쳤다. 그러나 땅에 떨어지는 순간 여력이 아직도 살아 있어 다
시 비틀비틀  뒤로 대여섯 걸음이나 밀려나  겨우 몸을 고정시켰
다. 그는 마치 귀신에  홀린 느낌이었다. 뒤에서 이 광경을 비켜
본 사람들도 어리둥절했다.

 '종유협이 지금 무슨 꿍꿍이  속을 보이는 거지? 뒤로 물러났다
가 몸을 솟구치더니 다시  물러나니 뭘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
겠군.....'

 사실 어리둥절한  것은 장무기도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가볍게 
전개한 일 장이 이렇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줄이야 꿈에도 생
각지 못했다.

 종유협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오며 장무기에게 삿대질을 했다.

 "이놈아, 넌 누구냐?"

 장무기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난 증아우라고 하오!"

 이렇게 말하며 한쪽 손을  은천정의 등심 영대혈에 붙여 내력을 
주입시켰다. 그의 구양진기는 웅후하기 이를데 없어 은천정은 몸
을 몇 차례 움찔하더니  곧 눈을 뜨고는 망연한 표정으로 장무기
를 쳐다보았다.

 장무기는 그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며 계속 내력을 주입시켰
다.

 삽시간에 은천정의 가슴 부위와  단전에 진기가 막혔던 곳이 후
련하게 뚫렸다.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젊은이 고맙네."

 그는 곧 몸을 일으켜 종유협에게 분연히 외쳤다.

 "종가야, 공동파의  칠상권(七傷拳) 따위는  내 안중에도 없다. 
기꺼이 너의 공격을 받아주마!"

 장무기는 칠상권이란 세 글자를 통해, 빙화도에서 그날 밤 의부
가 자기를 깨워 칠상권으로  공견신승을 죽인 얘기를 들려 준 생
각이 퍼뜩 뇌리에 떠올랐다.

 이때 은천정은 종유협의 대답도 듣지 않고 소림의 공지대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공지대사, 나 은천정은 아직  죽지 않았으니 패배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설마 우리의 약조를 저버리진 않겠죠?"

 공지대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그러나  우리가 총공격을 전개할  시각이 곧 눈앞에 
닥쳐올 것이오."

 알고 보니 -----

 은천정이 광명정에 나타났을 때 양소 등이 부상을 입은 것을 보
고 상황이 결정적으로 불리하다는  걸 간파해, 미리 선수를 쳐서 
공지대사에게 혼전을  피하게끔 다짐을  받아놓았다. 공지대사는 
무림의 법규에 따라 각개투(各個鬪)로 승부를 결정짓기로 약정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응교의 각당과 각단, 명교
의 오행기,  그리고 광명정에 상주했던 양소의  부하 -- 천(天), 
뢰(雷), 풍(風), 지(地),  사문(四門)의 고수들은 줄줄이 부상을 
입거나 죽음을 당했다. 맨  마지막으로 남은 자가 바로 은천정이
었다. 만약 그마저 패배를 인정한다면 육대문파쪽에선 즉각 총공
세를 취할 것이다.

 장무기는 외조부의 진력이 비록 다소 회복되었지만 무리하게 진
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므로 얼른 종유협 앞으로 나섰
다.

 "당신은 은 노선배님과 겨룰 자격이 없으니 정녕 꼭 겨루어야겠
다면 우선 나를 꺽어 보시오!"

 종유협이 대노하여 호통을 쳤다.

 "어디서 굴러온 녀석이냐? 네놈은 아직 공동파의 칠상권이 얼마
나 무서운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장무기는 내심 생각을 굴렸다.

 '오늘 원진의  음모를 밝혀야지만 쌍방의 싸움을  말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정면대결을  벌어진다면 나 혼자서 무슨 수
로 육대문파의  이렇게 많은 고수들을  당해 내겠는가! 더군다나 
무당파의 백부님과 숙부님도  이곳에 계신데 어찌 그들과 적대시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곧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공동의 칠상권이  무섭다는 것은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
소. 소림의  공견신승께서도 바로 귀파의  칠상권에 목숨을 잃지 
않았소이까?"

 그가 이러한 말을  내뱉자 소림파에서 몇몇이 웅성거렸다. 왕년
에 공견대사가 낙양에서 변을  당했을 때 겉엔 아무런 상흔이 없
었는데, 시신의 골격이 무수히  파열돼 있었던 것이 바로 공동파
의 칠상권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공문, 공지, 공성은 며칠간 이 
문제를 놓고 비밀리에 협의를 하였었다. 그들이 알기로 공동파엔 
금강불괴지신을 연성한 공견사형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만한 고수
가 없었다. 그러나 공견의 치명적인 상세를 보아 가장 의심이 가
는 것이  칠상권이었으므로, 암암리에 제자들을  시켜 알아본 결
과, 공견대사가 낙양에서 변을 당하던 날 공동으로 가 모두 서남 
지방에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공동오로를 제외한다면 공
동파에선 더욱 공견사형의 적수가  될 만한 고수가 없었다. 그리
하여 공동파에  대해 풀었던 의심이  시나브로 사라졌다. 게다가 
당시 낙양 살겁 현장에 성곤이 공견신승을 죽였노라는 글이 남겨
져 있었기 때문에, 그  방면으로 파고들어 결국 사손의 소행이라 
판정짓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금 장무기의 입에서  그 일이 다시 거론되자 소림들은 
모두 섬뜩한 느낌이 든 것이다.

 종유협이 다시 성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공견대사가 사손 악적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것은 천하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 우리 공동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냐?"

 장무기는 당당하게 따지고 들었다.

 "사 선배님이 공견신승을 죽이는 것을 직접 보기라도 했단 말입
니까?"

 "이런 발칙한 놈! 그  당시 우리 공동오로는 운남(雲南) 점창파
(点蒼派) 유대협의 집에 있었는데, 어떻게 그 광경을 볼 수 있겠
느냐?"

 "바로 그 점이 중요하외다.  당시 운남에 있었다면 사 선배님이 
공견신승을 죽이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게 분명하오. 그러나 한 가
지 분명한  사실이 있소. 공견신승께선  공동파 칠상권에 목숨을 
잃었소. 사 선배님은 공동파의  제자가 아니거늘 어째서 그 분께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지 모르겠구료!"

 "이런....."

 종유협은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장무기는 그를  거들떠보지 않고 뒤쪽에  서 있는 공지대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공지대사, 영서형이신 공견신승이  공동파의 칠상권에 의해 살
해당한 게 분명하죠? 그리고  금모사왕 사 선배님이 공동파의 제
자가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죠?"

 공지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붉은 가사를 걸친 우람한 체구
의 승인이 앞으로 뛰쳐나와  금광이 번뜩이는 선장을 쥔 채 우악
스럽게 소리쳤다.

 "이놈! 너는 어느 문파의 제자인데 감히 나의 스승님께 그 따위 
방자한 말을 뇌까리느냐?"

 장무기는 이 승인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소림의 원음
화상이었다. 왕년에 무당산에서  한사코 장취산이 소림제자를 살
해했다고 고집스럽게 증언한 장본인이었다.

 그를 보는 순간 장무기는  왠지 모르게 분노가 끓어올랐으나 꾹 
참았다.

 "귀파에 원진대사가  있으면 나오라고 하시오.  그에게 직접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소!"

 원음은 멍해졌다.

 "원진사형이라고? 네가 원진사형께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냐? 
어서 비켜서지 못하겠냐? 넌 대관절 누구의 제자이냐?"

 그는 우선 이  소년의 내력부터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장
무기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나는 명교의 사람도 아니고  또한 중원 어느 문파의 제자도 아
니외다. 이번에 육대문파가 명교를  협공하게 된 것은 단순히 한 
간교한 자의 계획적인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오. 나는 비록 보잘
것없는 존재지만  그 우여곡절을 잘 알고  있으므로 쌍방이 일단 
싸움을 중단하기를  청하는 바이오. 우선  진상을 조사한 연후에 
옳고 그른 점을 가려 공정한 판단을 내려주길 바라는 바이오."

 그의 말이 끝나자  도처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가소롭다는 것
이었다.

 "이런 교활한 녀석, 원진사형이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을 알고 그 
따위 허무맹랑한  잠꼬대를 하는 모양인데,  차라리 저승으로 간 
무당의 장취산을 불러내 대질하는 게 어떻겠느냐?"

 그가 비꼬는 말에 화산, 곤륜, 공동파의 제자들 중에 일부는 재
미있다는 듯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단지 무당파만이 모두 분연
한 표정으로 변했다.

 원음은 서호에서 은소소에 의해 한 쪽 눈이 실명된 것이 아직도 
장취산의 소행이라 생각하며 그 원한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장무기는 그가 망부를 모독하는  언사를 발하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장오협의 성함을 감히 멋대로 들먹거리다니..... 이.....!"

 원음은 냉소를 날렸다.

 "장취산은 스스로  타락하여 마교 요녀의 유혹에  빠져 결국 그 
댓가를 받게 된 것이니....."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무기는 몸을 번뜩여 이미 그의 허리
춤을 잡아 번쩍 들어올리는 동시에 왼손으로 그의 선장을 빼앗았
다. 원음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조차 모른 채 꼼짝없이 당하게 된 
것이다.

 이때 소림 승려 중에 두 사람이 동시에 뛰쳐나와 선장으로 장무
기의 좌우를 협공해 왔다. 그들은 바로 원심과 원업이었다. 장무
기는 왼손으로 원음을 나꿔잡고  오른손에 선장을 쥔 채 즉시 솟
구쳐올라 두 발로 원심과 원업 수중의 선장을 걷어찼다.

 "윽!"

 "음.....!"

 신음소리가 들리며 원심과 원업은 동시에 벌렁 나자빠졌다.

 군호들의 놀란  외침이 터지는 가운데  장무기는 여전히 원음의 
육중한 몸과 선장을 든 채 절묘한 자세로 사뿐히 땅에 내려왔다.

 그 순간 육대문파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무당의 제운종(梯雲縱) 신법이다!"

 장무기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님과 태사부님, 여러 사백, 사숙을 
따라 무당무학의 기초가 되는  설흔 두 가지 자세의 무당장권(武
當掌拳)을 정식으로 배운 게 고작이지만, 듣고 보고 한 무당무학
은 굉장히 많았다.  지금 건곤이위신공을 터득하자  어느 문파의 
무공이든 쉽게 자신의 무공으로  소화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자
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시적  가장 많이 보아온  제운종의 신법을 
구사한 것이다.

 이제 소림파 쪽에서 감히  섣불리 나설 자가 없었다. 원음은 이
미 혈도가 찍혀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태이니 장무기가 선장
을 떨치면 즉시 내장이 파열돼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이젠 공
지와 공성을  비롯해 아무도 이 남루한  차림의 소년을 무시하는 
자가 없었다.

 장무기는 당장 원음을 때려죽여야  화가 풀릴 것 같았지만 결국 
자신의 감정을 억제했다.

 '만약 내가 육대문파 중에  어느 한 사람을 죽인다면 즉시 육대
문파와 적대시하게  될 테니, 중간에서  화해를 주선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원음의 혈도를 풀고 놓아주었다.

 "원음대사, 당신의 눈을 멀게 한 사람은 장오협이 아니니 더 이
상 그에게 원한을 품을 필요가 없소. 더군다나 장오협은 이미 스
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설령 어떠한 원한이 있다 해도 화해를 하
는 것이 옳지 않겠소?  대사는 속세를 떠난 불자로써 무욕무념을 
추구해야 할 입장이거늘, 어찌  지난 일에 대해 그다지도 오매불
망하는지 모르겠구료."

 원음은 죽음의 가장자리에서  목숨을 새로 건진 느낌이었다. 그
는 멍하니 장무기를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장무기가
선장을 건네주자 자석에 이끌리듯 손을 내밀어 받더니 고개를 숙
인 채 물러났다. 돌이켜 생각하면 자신이 그 동안 장취산에게 계
속 원한을 품어온 것이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다.

 한편, 소림의  고승과 무당의 송원교 등은  장무기의 말을 듣자
모두 암암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 제 4 권 4 장 끝 -----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4 권


     제 5 장  구양신공(九陽神功)의 위력 


 종유협은 장무기가 원음을 가볍게  제압하는 걸 보자 몹시 경악
했다. 그러나 자신도 장내에  있는 입장이라 어찌 이대로 호락호
락 물러설 수가 있겠는가. 순간 큰 소리로 외쳤다.

 "증가야, 도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고 나서는 것이냐?"

 "난 오로지 육대문파가 명교와 화해하기를 바랄 뿐 누구의 지시
도 받은 적이 없소."

 "흥, 우리보고 마교와 손을 잡고 화해를 바라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다. 이 은(殷)가란  도둑놈들은 나에게 칠상권의 삼기를 빚
진게 있어 우선 내가 혼내 줘야 하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종유협은 말이 끝나자마자 소매자락을 걷어부쳤다.

 "종 선배님은 자꾸만 칠상권, 칠상권 하시는데 후배가 보기에는
종 선배님의 칠상권은 아직 극치에 도달하도록 수련하지 못한 것
같소. 모든 사람의 몸에는 음양의 이기(二氣)와 금목수화토(金木
水火土)의 오행(五行)이 있소.  즉 심장은 화(火), 폐는 금(金),
신장은 수(水), 비장은 토(土), 간장은 목(木)에 속하오. 칠상권
을 수련하면 이 일곱군데의  내장이 그만큼 상하게 되오니, 따지
고 보면 먼저 자신이 상해야만  적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것이오.
그래도 다행히 종 선배님은  이 권법을 수련한 지 오래되지 않아
서 아직은 구할 수 있는 약이 있소."

 종유협은 장무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가 틀림없는 <칠상권
보>의 총강(總綱)이었다. 권보에  경계하길, 만약에 내공이 기주
저혈 수발자여(氣走渚穴收發自如)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게 수
련했을 때는 절대로 이  권술을 수련치 못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칠상권은 공동파의 진상절기였다.  종유협은 내공이 어느 정도에
도달하자 즉시  시련(試鍊)해 보였다. 막상  수련해 보자 권술의
무공무진한 위력에 도치해 버린 것이다. 그 땐 자신도 이미 억제
하지 못하게 되고 권보총강의 말을 벌써 잊어 버렸던 것이다. 더
구나 공동오로들도 수련하였고,  자신의 위치는 오로의 다음인데
어찌 남에게 뒤지겠는가. 지금  막상 장무기가 말을 꺼내자 그제
서야 놀라워하며 물어 보았다.

 "네가 어떻게 또 알게 됐느냐?"

 "종 선배님의 어깨에 있는 운문혈을 눌러보면 경미한 통증을 느
끼지 않소? 운문혈은 폐에  속하니 이는 폐맥을 상한 것이오. 당
신의 상비(上臂)에 있는  청영혈은 자주 마비되고 가려워서 참지
못할 때도 있죠? 청영혈은 심장에 속하니 이는 심맥을 상한 것이
오. 당신 다리에 있는 오리혈은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쑤시
고 아프지요?  오리혈은 간에 속하니 그건  간맥을 상한 것이오.
당신은 수련해  갈수록 이런 증세들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다시
팔, 구 년을 수련하게 되면 온몸을 가누지 못할 것이오."

 종유협은 장무기의  말을 열심히 듣고  나더니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솟아났다.

 본시 장무기는 사손에게  전수받아서 칠상권의 권리(拳理)를 통
달하였다. 더구나 그는 의술을  깊이 연구하였기에 경맥 손상 후
의 증세를 분명히 알았던 것이다.  종유협의 몸에는 몇 년 새 확
실히 그런 증세가 있었으나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지금 장무기
에게 하나 하나 지적되자  그만 얼굴색이 변하고 한참 후에야 말
을 했다.

 "네..... 네가 어찌 알았느냐?"

 장무기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후배는 의술을 약간 아는 바가 있소. 선배님이 만약 믿어 주신
다면 여기의 일이 수습되고  나서 당신 몸에 있는 증세를 몰아내
주겠소. 하지만 칠상권은  유해무익이라 다시는 수련해서는 아니
되오."

 "칠상권은 우리 공동의 절기인데 어찌 유해무익이라 하느냐? 왕
년에 우리 장문 사조이신 목령자(木靈子)께서 칠상권으로 천하에
명성을 떨치시며 구십 일  세까지 사셨는데 어찌 자신의 몸을 상
한다고 하느냐? 넌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게 아니냐?"

 "목령자 선배님께서는 필시 내공이 심후했을 것이오. 그러기 때
문에 수련을 하셔도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장부가 튼튼하게 되
는 거죠. 후배가 보기에는 종 선배님의 내공이 그 경지에 미치지
못하고 억지로 수련을 고집하면 아마 나중에는 전혀 쓸모가 없을
것이오."

 종유협은 공동의 명숙(名宿)이다. 비록 그가 말을 한 게 일리가
있다 해도, 각파의 고수들  앞에서 이 소년에게 지적받아 공동파
의 진산절기가 쓸모없다 하니  어찌 화가 치밀지 않겠는가. 그래
서 큰 소리로 호통치며 말했다.

 "네가 뭔데 우리 공동파의  절기를 쓸모있다 없다 노하느냐? 네
가 쓸모없다고 여겨지면 한 번 시험해 보자."

 "칠상권은 본시 신묘정오의  절기이기에 권력에는 강맹하면서도
유연하고, 부드러운가 하면 날카로우며, 옆으로 비켜가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안으로 오므라들기도 하면서 변화무쌍
하여 적이 막아내기 힘들고..... 방어하기도 힘들....."

 종유협은 장무기가 칠상권의 신묘함에 갈채를 보내자 얼굴에 살
짝 미소를 보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무기는 다시 말을 이었다.

 "..... 후배가 말하는 건  단지 내공이 부족한 상태에서 칠상권
을 연마하게 되면 절대로 무용지물이라는 것이오."

 주지약은 여러 사저들  뒤에 숨어서 장무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 소년의 장난기가 있는데도 억지로 노숙한 표
정을 해가며  공동오로 중의 이로인 종유협을  가르치려 하는 걸
보자 우습게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위해서 걱정했다.

 공동파 중에 성격이 난폭한 젊은 제자는 장무기의 말이 점차 무
례해지는 걸 듣자 참다못해 입을 열고 호통을 치려 했지만, 종유
협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 소년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는
것을 보자 금방 튀어나올 욕지거리를 다시 되삼켜 버렸다.

 "너의 말에 의하면 나의 내공이 아직 미숙하다는 거냐?"

 "선배님의 내공에 관해서 후배는 감히 망발을 할 수 없소. 하지
만 선배님은 칠상권 때문에 자신의 몸이 상하게 되었으니 연마하
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아서....."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등 뒤에서 한 자가 벼락
같이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둘째 형님은 뭣 때문에 저  녀석과 승강이 하는 거요? 그가 우
리의 칠상권을  얕본다면 제가 본때를 보일  것이니 맛좀 보라고
하시오."

 그 사람의 소리가 그치자 주먹도 덩달아 다가왔다. 출수가 빠르
면서도 악랄하여, 바람을 일으키면서 장무기의 등에 있는 영대혈
에 정통으로 일권을 가했다. 장무기는 등 뒤에서 기습해 오는 줄
알면서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종유협에게 말을 건넸다.

 "종 선배님....."

 이때 갑자기 쇠사슬소리가 나면서  한 자가 급히 튀어나오며 교
성(嬌聲)으로 호통을 쳤다.

 "비겁하게 암습을 가하다니!"

 그러면서 사슬을 뻗쳐서 그  자의 옷을 휘감으려 했다. 이 자는
소조였다. 그러자 그 자는 왼손을 뒤집어서 쇠사슬을 막아내면서
퍽 하며 일권을 장무기의 등에 무섭게 후려쳤다. 이 일권은 영대
혈을 명중했으나 장무기는 전혀 느끼지 못한 듯이 소조에게 미소
를 지으며 말했다.

 "소조, 이같은 칠상권은 별로 쓸모가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소조는 숨을 한 번 몰아 쉬더니 백옥 같은 흰 얼굴을 약간 붉히
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난 그대가 수련한....."

 여기까지 말을 하더니 얼른  입을 다물고 쇠사슬을 끌면서 물러
갔다.

 장무기는 몸을 뒤로 돌려서  기습해 온 자를 보니, 그는 머리가
크고 몸은 마른 노인이었다. 이 사람은 공동오로 중에 네째인 상
경지였다. 그의 일권이 장무기의 급소에 명중하였는데도 그가 전
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걸 보자 몹시 의아해했다.

 "너..... 너는 이미 <금강불괴체> 신공을 터득했구나! 그렇다면
소림파가 아니냐?"

 '전 소림파의 제자가 아니....."

 상경지는 알고 있었다. 모든 호신신공은 전부 진기를 모아서 형
성되는 것이라 일단 입을 열고 말을 하게 되면 즉시 진기는 흩어
지고 만다. 상경지는 미리 알고 있기에 그가 입을 다물기를 기다
리지 않고 다시 일권을 뻗어 그의 흉구에 후려쳤다.

 그러자 장무기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분명히 말을 하지  않았소. 칠상권은 내공의 뒷받침이 없
으면 쓸모가 없다고 말이오. 만약 당신이 그래도 못 믿겠다면 다
시 일권을 후려쳐서 시험해 보시오."

 그러자 상경지는  질풍처럼 팍팍 연거푸 이  권을 가했다. 그는
분명히 사  권을 상대방의 몸에  후려쳤는데, 장무기는 웃으면서
받아 넘기고 전혀 아프거나  간지럽거나 하는 느낌이 없었다. 이
사초는 비석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강맹한 위력을 지녔는데 그
의 몸에 단지 마치 바람이 스쳐가는 것 같았다.

 상경지의 별명은 일권단악(一拳斷嶽)이다.  비록 과장은 했으나
권력의 강맹함은 무림의 대선배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러나 여러 사람들은 그가  연거푸 사 권을 출수해도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한결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자 종유협이 포권의 예를 취하며 말했다.

 "증소협의 신공엔 정말 탄복했소. 이 몸도 삼 초의 가르침을 받
을 수 있겠소?"

 그는 자기의 칠상권 공력이  상경지보다 심후하다는 걸 믿고 있
기에 자신을 갖고 말한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 공동파의 절기인 칠상권을 진정으로 터득하였다
면, 그 위력은 어느  것도 막을 수가 없소. 소림파의 공견신승은
<금강불괴체> 신공을 몸에 지니고 계셨어도 결국에는 귀파의 <칠
상권>에 목숨을 잃었지  않소. 저의 무공은 공견신승과는 비교도
안 되는데 어찌 막아낼 수가 있겠소. 그러나 염치를 무릅쓰고 당
신의 삼 권을 받는다 해도 별 탈은 없을 것 같은 느낌이오."

 장무기의 말 뜻은, 칠상권은 본시 훌륭한 무공이지만 당신은 아
직 그걸 쓸 자격이 없다는 말이었다.

 종유협은 그의 말뜻을 생각지도 않고 몰래 진기를 몇 모금 운기
하여 한 발 내디디면서 팍 하며 일 권을 장무기의 흉구에 후려쳤
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권면(拳面)과 흉구가 맞닿자 갑자기
그의 몸에는 한 줄기  강력한 흡인력이 있는 것처럼 일시에 끌어
들일 수가 없었다. 몹시 놀라워하고 있는데 한 줄기 부드러운 열
력(熱力)이 권면에서 자기의  단전으로 직접 들어오는 느낌이 들
었다. 그러자 흉복지간에는  말 할 수 없는  평안한 느낌이 들었
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팔을 끌어들여서 다시 일 권을 후
려쳤다. 이번에는 상대방의 하복부에 적중했는데 마치 절벽에 부
딪친 것처럼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힘이 너머나 강해서 그는 뒤로
한 발자국을 물러나서야 몸을 똑바로 가눌 수가 있었다. 그런 다
음 호흡을  다시 가다듬어서 다시 다가가  주먹을 쳐들고 맹렬히
공격했다.

 상경지는 장무기의 옆에 서 있었다.  종유협의 얼굴이 울그락붉
으락 하는 걸 보자  이미 내상을 입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제 삼 권을 후려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라서 일권을 후려쳤다. 
종유협은 앞 가슴을 공격하고  상경지는 등을 공격했다.  쌍권이 
앞뒤로 협공하는 것은  모두 무시무시한 경력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권력이 장무기의 몸에  닿자 마치 허공을 대고 치는 느낌
뿐 두 줄기 강경한 권력은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상경지는 자기의 신분과 위치로는  맨 처음 기습한 것도 잘못인
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상대방이 공동의 절기를 모욕하
였기에 화가 치밀어서 가한 거라고 어거지로 말할 수 있지만, 두
번째 기습한  것은 분명히 소인배들의  비겁한 행동이었다. 그의
진짜 속셈은 두 사람이  칠상권의 위력을 합친다면 이 소년을 죽
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일단 그가 죽게 되면 설사 나중에
옆 사람들이 군말을 하게  되더라도, 자기는 육대파를 위해서 거
추장스러운 녀석을 하나 제거해 줄 심산으로 기습을 했다고 변명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나도 기이한 일이 벌어지자 그만 자기도
모르게 오른손을 들어서 머리를 몇 번 긁적거렸다.

 장무기는 미소를 지으며 종유협에게 말했다.

 "선배님의 느낌은 어떠하죠?"

 그러자 종유협은 깜짝 놀라더니  얼른 몸을 굽히면서 포권을 하
며 아주 공손하게 말했다.

 "증소협께서 내력으로  이 몸의 상처를 치료해  준 걸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오. 증소협의 신공의 놀라움은 말할 것도 없고, 덕
망으로 원한을 갚는 대인대의한 처사에 이 몸은 더욱 감계무량하
는 바이오."

 그가 이 같은 말을 하자  모든 이는 한결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
다. 옆 사람들은  종유협이 연거푸 삼 권을  가격할 때 장무기가
구양진기를 끌어올려서 그의 체내에 주입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비록 잠깐 사이에 왔다 갔지만 그 구양진기는 종유협에게 대단한
도움이 되었다. 만약에 상경지가  장무기 뒤에서 기습해 오지 않
았다면 제 삼권에 받은 도움은 지금보다도 훨씬 많았을 것이다.

 장무기가 말했다.

 "대인대의한 말을 어찌 감당하겠소. 지금 종 선배님의 기경팔맥
(氣經八脈)은 모두 심히 놀래  있으니 될 수 있으면 즉시 운기조
식 해야만 칠상권을 수련할 때 축재돼 있는 독을 이, 삼 년 안에
제거할수 있소."

 중유협은 자신에게 있는 잔병을  자기가 알기 때문에 포권을 하
며 말했다.

 "감사하오, 감사하오."

 말이 끝나자 즉시  앞으로 물러나서 좌정하여 운공하였다. 물론
이같은 행동은 불미스러운 것인 줄 알면서도 생사안위에 관한 것
이라 다른것들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장무기는 몸을 구부려서  당문량의 골절을 맞추면서 상경지에게
말했다.

 "회양오룡고(回陽五龍膏)를 좀 주시겠소?"

 상경지는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을 그에게 주었다.

 "수고스럽지만, 무당파에게서 삼황보랍환  한 첩을 얻어 오시고
화산파에게서 옥진산을 좀 얻어다 주구료."

 상경지는 장무기가 시키는 대로 얻어다가 그에게 주었다.

 "귀파의 회양오룡고에 사용한  초오(草烏)는 아주 좋은 것이오.
무당파의 삼황보랍환에 있는 마황,  웅황, 등황, 삼황도 아주 쓸
만 하오. 해서  앞에 있는 두가지와  옥진산을 보태서 치료하게
되면 상 선배님은 두 달 후면 사지가 종전과 같이 멀쩡해질 것이
오."

 장무기는 말을 하면서 뼈를 맞추고 약을 발라 주더니 금방 모든
일을 끝냈다.

 그러자 상경지는 당문량을 안아들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물
러났다. 그러나 당문량은 갑자기 소리를 쳤다.

 "증가야, 네가 나의  골절을 치료해 준 건  몹시 고맙게 생각한
다. 나중에  잊지 않고 보답할 것이다.  그러나 공동파와 마교는
바다처럼 깊은 원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네가 이런 작은 선심을
베풀었다고 이대로 손을 뗄 수가 있겠느냐? 네가 싸움을 말릴 속
셈이면 우린 들어 줄 수가 없고, 네가 만약에 나보고 배은망덕하
다고 말을 하면 얼마든지 나의 사지를 다시 절단시켜도 좋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자 모두 같은 생각을 하였다.

 '같은 공동의 기숙(耆宿)인데, 이 당문량은 상경지보다 훨씬 골
기(骨氣)가 있구나.'

 장무기가 공손히 물었다.

 "당 선배님은 제가 어떻게 해야만 권고를 받아들이시겠소?"

 "너의 무공을 보여라. 만약에  공동파가 너를 따르지 못하면 너
의 뜻을 따르겠다."

 "공동파의 고수는 구름같이 많은데 후배가 어찌 다르겠소? 하지
만 후배는 주제넘게 이 일을 꼭 말려야 하기에 사력을 다할 수밖
에 없겠군요."

 장무기는 말을 끝내고  사방을 둘러보니, 광장 동쪽에는 높이가
삼 장 정도 되는 큰  소나무가 있었다. 나뭇 가지가 사방으로 뻗
어 있어서 마치 지붕  같았다. 그러자 느린 걸음으로 다가가면서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후배가 전에 귀파의 칠상권을 좀 배운 게 있소. 만약에 틀리게
하더라도 공동파 여러 선배님께서는 비웃지 마시기 바라오."

 각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자 모두 놀라워 했다.

 '저녀석이 공동파의  칠상권까지 할 줄 아는구나.  그건 어디서
배웠을까?'

 장무기는 낭랑한 음성으로 칠상권의  총결을 외우고 나서 그 소
나무 앞으로 다가가더니, 팍  하며 일 권을 후려쳤다. 갑자기 눈
앞이 번뜩거리더니  큰 소나무의 윗  부분이 잘라지면서, 곧바로
선 채 이 장 밖으로 날아가더니 꽝 하는 소리가 나면서 내동댕이
쳐졌다. 지면에는 네 치  정도 되는 나무줄기만 남아 있고, 마치
칼로 자른 것처럼 매우 깔끔했다.

 그러자 상경지는 중얼거리며 말했다.

 "이..... 이건 절대로 칠상권이 아니다."

 칠상권이란 강중유연 연중유강을  강조한다. 큰 나무를 진단(震
斷)한 권법의 위력은  놀라우나 그건 순강(純剛)의 힘이었다. 그
는 다가가서 살펴본 순간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다물지를 못했다.
그 나무의  줄기가 절단된 곳을 보니  맥락(脈絡)이 모두 울려서
부서져 있었다.  바로 칠상권을 깊이  수련해야만 이같은 공력이
나오는 것이다.

 장무기는 이 상황을  위력으로 눌러 버리려는 속셈이었다. 만약
오직 칠상권으로 수맥(水脈)을  울려서 부수려 하면 열흘이나 보
름 정도 기다렸다가 소나무가 시든 다음에야 공력이 나타날 것이
다. 그러기  때문에 칠상권의 경력을  발출하면서 바로 양강맹경
(陽剛猛勁)으로 나무를  절단한 것이다. 이건  바로 왕년에 의부
사손이 빙화도에서 수맥을 진열(震裂)시키고 다시 도룡도로 나무
의 줄기를 절단시키는 수법과 동일했다.

 그러자 갈채를 보내는 소리가 들리면서 각파에서는 한참동안 술
렁거렸다.

 "좋다. 과연 대단한 칠상권법이다. 정말로 감탄했소. 하지만 증
소협은 아무래도 이 권법의 출처를 말해 줘야겠소."

 장무기는 미소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당문량은 무
서운 소리로 말했다.

 "금모사왕 사손은 지금 어디에 있소?"

 그는 신경이 예민해서,  어렴풋이 사손과 눈앞에 있는 소년지간
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짐작했다.

 장무기는 깜짝 놀라며,

 '아차! 큰일이구나.  내가 칠상권을  과시하는 바람에 의부와의
관계를 노출시켰구나. 만약에 의부와의 관계를 밝힌다면 그건 육
대파를 나의 적으로 만드는 건데. 그렇게 되면 이 일을 말리려는
나의 계산은 빗나가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귀파가 도난당한 칠상권보의 범인이 금모사왕이라는 거
죠? 틀렸소, 틀렸소. 그날  밤 공동산의 청양관에서 권보 때문에
격투를 할 때 귀파의 사람 중에 혼원공(混元功)에 부상을 입어서
온몸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게 한 장본인은 바로 혼원벽력수 성곤
이오!"

 왕년에 사손이 공동산에 가서  권보를 탈취할 때 성곤은 명교에
게 많은 적을 심어줄 속셈으로 오히려 몰래 도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혼원공으로  당문량, 상경지 이로를 격상한 것이다.
그 당시  사손은 전혀 몰랐는데 나중에  공견이 지적하자 그제야
그 연유를 알았던 것이다.  장무기는 성곤이란 사람은 평생 간사
한 수법으로  남을 해쳐 왔기에 그의  수법으로 그를 모함하자는
속셈이었다.

 당문량과 상경지는 이 십여  년 동안 의심을 해왔는데, 지금 장
무기가 그 일을 들춰내자 그제서야 그랬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서
로 눈치를 주고 받을 뿐  금방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종유협
이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증소협은 그 성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소?"

 "혼원벽력수 성곤은 육대문파와 명교를 이간질시킬 속셈이었소.
나중에 소림파의  문하로 투입하여 법명을  원진이라 했소. 어제
밤 그는 명교의 내당에 잠입하여  명교의 수뇌급 인물에게 이 일
을 자기의 입으로 실토했소. 양소 선생, 위복왕, 오산인 등 모두
다 알고 있소. 이 일은 절대 정확한 일이오. 만약에 거짓이 있다
면 하늘이 날 그냥 두지 않을 것이오."

 그의 말이 너무나도 진지하였기에  모든 이는 그의 말에 수긍이
갔다. 그러나  오직 소림파의 승려들은 야유를  보냈다. 이때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염불을 외우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몸에는 회
색 승복을  입었고 용모는 위엄있었으며,  왼손에는 염주를 쥐고
있었다. 바로 소림 삼대신승 중의 하나인 공성이었다. 그는 광장
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말했다.

 "증시주, 그대는 뭣 때문에 우리 소림의 문하를 모욕하는 거냐?
여기 계신 천하영웅들 앞에서 소림의 청명을 그대가 멋대로 더럽
혀도 되는 것인가?"

 장무기는 몸을 구부리며 말했다.

 "대사님께서는 노여움을 푸시고  원진 승을 불러내어 후배와 대
질하게 되면 즉시 진상을 알게 될 것이오."

 "증시주는 자꾸만 원진 사질의 이름을 들추는데, 그대처럼 젊은
사람이 어찌 마음이 그토록 험악하느냐?"

 "소인의 뜻은 원진 화상을 나오게 해서 천하영웅들 앞에서 흑백
을 가려내자는데 어찌 마음이 험악하다고 하오?"

 "원진 사질은 우리 공견사형의 입실 제자기에 불학이 매우 심오
하다. 이번에 여러 사람들을  따라서 명교를 원정하는 일 외에는
여러 해 동안  사문을 나간 적이 없다.  그런데 어찌 혼원벽력수
성곤이라 할 수 있느냐? 더구나 원진 사질은 우리 육대문파를 위
해서 사력을 다해  싸우다가 결국 역진원숙(力盡圓宿)하였다. 그
가 죽은 다음의 청명을 어찌 네가 감히....."

 장무기는 <역진원숙>이란 말을 듣자  귀에서 윙 하고 소리가 나
더니 얼굴이 금방 창백해졌다. 공성이 나중에 한 말들은 한 마디
도 듣지 못하고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 그 자가 정말 죽었소? 절..... 절대로 그럴 리 없소!"

 공성은 서쪽에  있는 승려들의 시체더미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네가 직접 확인해라!"

 장무기가 그 시체더미의  앞에 다가가 보니, 얼굴에는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두눈은 뜬 채로 죽어있는 시체 한 구가 보였다. 과연
소림에 투입한 후 이름을 원진으로 바꾼 혼원벽력수 성곤이었다.
몸을 엎드려서 숨을 쉬나 확인하려는데 손에 닿은 얼굴의 근육이
얼음같이 차디찼다. 이미 죽은 지 몇 시간이 된 것이다.  장무기
는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자기 의부의 평생을 망친 원수
가 드디어 악이 넘쳐서 여기에 이렇게 죽어 있는 걸 보자 가슴에
뜨거운 피가 솟아올라,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여 고개를 들고 크
게 웃어대면서 소리를 외쳤다.

 "이놈아, 이놈아. 넌 평생 너무도 많은 나쁜 짓을 했다. 결국에
는 너도 이런 날이 있구나."

 그 몇 마디의 큰 웃음소리는 산을 울려서 메아리처럼 멀리 퍼져
나가자 사람들은 모두 섬 찟한 느낌을 받았다.

 장무기는 뒤로 머리를 돌려서 물었다.

 "이 원진은 누가 살해한 것이오?"

 공성은 옆눈으로 쳐다보면서 얼굴에는  찬 서리가 한 겹 씌워진
것처럼 보였을 뿐 대답해 주지 않았다. 은천정은 진작 한쪽에 물
러나 있었는데 이때 그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나의 작은 아들 야왕과 장력을 겨루었는데, 결국에 한 사
람은 죽고 한 사람은 부상을 입었다."

 장무기는 몸을 굽혀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마 원진은 위복왕의 한빙면장(寒氷綿掌)을 맞고 심한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우리 외숙부님의 장력도  대단하기에 그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외숙부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이 원수를 갚았
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느냐?'

 그러면서 은야왕의 곁에 다가가서 그의 맥박을 재어보니 생명에
는 지장없다는 걸 알자, 즉시 마음을 놓고 말했다.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공성이 옆에서  보고 있자니 점점 화가  치밀었다. 순간 소리를
높여서 호통쳤다.

 "이놈 죽어 봐라!"

 장무기는 어이없다는 듯이 머리를 뒤로 돌리며 말했다.

 "뭐라 했소?"

 "너는 원진 사질이 죽었다  해서 모든 죄를 그에게 뒤집어 씌우
려 하는구나! 이처럼 악독한데  어찌 널 용납할 수 있겠느냐! 노
화상은 오늘 살계(殺計)를 열어 버릴 것이다. 네가 자진 하겠냐,
아니면 내가 죽여 줄까?"

 그러자 장무기는 내심 망설였다.

 '원진은 죄를 많이 범해서 마땅한 보답을 받은 건 매우 큰 경사
인데, 그러나 앞으로는 대질할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진상을 밝
힐 수가 없게 됐으니 이건 정말 어찌하면 좋을까?'

 혼자 중얼거리며 생각하고 있을 때 공성은 몇 발을 앞으로 내디
디면서 왼손으로 그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이 일조(一爪)는 손목
에서 손가락까지 마치 붓대처럼 똑바로 세운것이라 그 경도의 예
리함은 대단했다.

 그러나 은천정이 소리쳤다.

 "용조수(龍爪手)다. 방심해서는 안 된다!"

 장무기는 몸을 살짝 돌려서 가볍게 피해 버렸다. 공성은 일조가
실패되자 다시 일조를 공격했다.  이 일초는 더욱 신속하고 강맹
했다. 장무기는 몸을 틀어서 다시 왼쪽으로 피해 버렸다. 공성이
제 삼조, 제 사조, 제 오조를 순식간에 발촐하자 한 회포승(灰袍
僧)이 마치 한 마리  회색 용으로 둔갑하면서, 용의 그림자가 공
중에서 날으고 용의 발톱이  빠른 춤을 추면서 장무기를 꼼짝 못
하게 가두어 놓았다. 갑자기  찌직 하고 소리가 나더니 장무기는
몸이 누워 있는 상태로 날아갔지만 오른손 소매자락은 이미 공성
의 손아귀에 잡혀  있어서 오른팔이 노출되면서 길다란 핏자국이
다섯 줄이나 되는 선혈을  뚝뚝 떨어뜨렸다. 소림의 승려들이 환
호하는 소리에 섞여 한 소녀의 비명소리가 있었다.

 장무기가 비명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자, 소조는 놀란 얼굴을
하면서 소리쳤다.

 "장공자, 조..... 조심하세요!"

 그러자 장무기의 마음에 약간  동요가 오면서, '저 낭자는 나에
게 잘 대해 주는구나' 하며 생각했다.

 공성은 유리한 고지에 서자  몸을 솟구쳐 올리더니 다시 맹렬한
위세로 덮쳐왔다. 이번의 조법(爪法)은 빠르면서도 악랄했다. 장
무기는 생전 보지 못한  수법이라 일시에 막아낼 대책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뒤로 물러나서 몸을 튕겨서 그의 일조를 피했다.

 공성의 용조수가 끊임없이 출수하자 장무기는 다시 몸을 튕겨서
뒤로 물러섰다. 공성은 연거푸  아홉 번이나 공격했으나 모두 헛
탕이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두 치 정도의 간격을 유지했다. 비
록 공성이 연석으로 급공해 왔으나 장무기는 전혀 반격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경공의 조예는 명백히 고하를 갈라 놓
았다. 공성이  아무리 빨리 다가서도  장무기를 따라잡지 못하니
경공으로는 그에게 패배한 것이다. 만약에 장무기가 뒤로 돌아서
몇 발자국만 뛰어가도 즉시 두 사람의 간격은 엄청나게 벌어지는
것이다.

 사실 장무기는 몸을 돌리지  않고 뒷걸음질만 해도 상대방의 공
격을 뿌리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계속해서 공성과 맞서지
도 않고, 또 거리를 넓히지  않은 이유는 그의 용조수 초수에 있
는 오묘한 것을 관찰하기 위함이었다.  막상 제 삼십 칠 초를 맞
게 되었고, 또한 그는  왼손으로 공격하며 덮쳐오는 자세를 취했
다가 다시 제 팔 초 노운식(弩雲式)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의 제
삼십 팔 초는 쌍장을 위에서  아래로 같이 찍는 것이다. 비록 위
치는 변했어도  자세는 제 십이  초 창주식(창珠式)과 똑같았다.
장무기는 이런 초식의 명칭은 하나도 모르지만 출수의 자세는 매
초식마다 똑똑히 보았고 분명히 기억해 두었다.

 그 용조수는 원래 삼십 육 초밖에 없었다. 요지(要指)는 오로지
예리하고 악랄하면서 많은 변화를 요하지 않았다. 공성이 종년시
절에 여러번  강적을 만났어도 이 용조수만  사용하게 되면 항상
유리한 고지에 섰었다. 그것도 항상  십 이 초 안에 승리를 하였
기에 제 십  삼 초부터는 자기가 평상시에  연습만 했을 뿐 적을
맞이하여 사용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는 계속해서 제
삼십 육 초까지 사용했으나  여전히 적을 제압하지 못하는 건 평
생에 한 번도 없는 일이다.  막상 제 삼십 칠 초가 되자 하는 수
없이 전초(前招)를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녀석이 경공만 믿고 이리저리 피하는데, 만약에 진짜로 맞서
게 되면 나의 십이 초 용조수를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장무기는 이미 용조수 삽십 육 초 조법을 모두 다 보았다. 비록
자신은 빈틈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건곤이위심법은 상대방의 어느
권초(拳招)에서든 빈틈을 만들어 줄  수가 있다. 그러나 내심 망
설이고 있었다.

 '지금 내가 그를 죽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성대사 저분은  소림사의 삼대기숙(三大耆宿)의  한 사람인데,
만약에 천하의 영웅들앞에서 패장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소림파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느냐? 하지만 그를 조용히 물러나가게 한다는
건 나로서는 정말 힘든 일이다. 저 사람의 무공은 공동파의 저로
(渚老)보다 한 수 위가 아니더냐.'

 장무기가 주저하고 있는 찰나  갑자기 공성은 큰 소리로 호통쳤
다.

 "이 녀석아, 이게 도망다니는 거지, 어디 무공을 겨루는 거냐?"

 "무공을 겨루는 건....."

 공성은 그가 입을  열자 진기가 흩어진 틈을  타서 연거푸 이초
(二招)를 공격했다. 장무기는 몸을  튕겨서 피하며 다시 말을 이
었다.

 "..... 무방하나  만약에 제가 대사님을  꺾어 버리면 어찌되겠
소?"

 이 몇 마디를 하는데 전혀 끊어진 감은 없었다. 눈을 감고 들었
다면 마치 편안히 앉아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어느 누구도 그
가 말을  하는 동안 공성의 오초(五招)를  피했다고는 믿지 않을
거다.

 "너 비록 경공은 뛰어나도 권술에서는 나를 이기려 들지 마라!"

 "무공을 겨룰 때는 누구도 장담을 할 수가 없소. 후배는 나이기
어려서 대사님의 무공보다는 뒤질지 몰라도 기력(氣力)에서 만큼
은 제가 덕을 보지 않을까요?"

 "만약에 권술에서 내가 패하게 되면 죽이든 어찌하든 네 마음대
로 해라."

 "그런 일이 어찌 있을 수가 있소. 후배가 패해서 대사님의 처분
을 받는 건 당연하나, 후배가 요행으로 일초 반식을 이기게 되면
소림파가 광명정을 떠나 버리면 그만입니다."

 "소림파의 일은 우리 사형 손에 달려 있어서 난 나 자신의 일에
만 간여한다. 나의 이 용조수가 널 꼭 제압하리라고 믿고 있다."

 "소림파의 용조수 삼십 육초는 전혀 빈틈없는 천하의 금나법 중
에 무상절예이오. 그러나 대사님께서 수련한 것은 좀 틀린 것 같
소."

 "좋다. 네가 용조수를  파해(破解)하게 되면, 난 즉시 소림사로
돌아가서 평생 동안 사문을 나오지 않겠다."

 "그럴 것까지는 없소."

 두 사람의 대화하는 도중에  사방의 사람들은 우뢰 같은 갈채를
보냈는데, 소리가 점차 더 커졌다.

 두 사람은 입으로  말은 하고 있어도 몸놀림은  전혀 쉬지 않았
고, 오히려 싸울수록 빨라졌던 것이다. 그러나 말하는 어조는 평
상시와 똑같으며 전혀 흐트러졌다든가 중단되지는 않았다. 두 사
람이 싸우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눠도 방관자들의 갈채소리는 그
들의 말소리를 시종 덮어 버리지는 못했다.

 장무기의 몸이 착지되자 공성은  이미 그의 몸 앞으로 다가오면
서 큰 소리로 외쳤다.

 "시작해 볼까?"

 "좋소. 대사님, 발초(發招)하시오."

 "너 여전히 뒤로 물러나기만 할 거냐?"

 "만약에 후배가 다시 뒤로 물러서기만 하면 패한 것으로 인정하
겠소."

 장무기는 살짝 웃으면서  이 말을 하자, 명교에  있는 양소, 냉
겸, 주전, 설불득, 이천환  등은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으나 그의
이 같은 말을 듣더니 모두  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모
두가 견다식광(見多識廣)해서 공성승의 용조수 일초를 받는 것도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비록 장무기의
무공이 뛰어나서 그를 이긴다  해도 백여 초 후에야 가능할 것이
다. 더구나 공수추피(攻守趨避)하게  되는데 어찌 뒤로 물러나지
않는단 말인가! 모두다 이 말은 좀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그럴 필요는 없다. 이겨도 공평하게 이기고, 지게 되더라도 군
말없이 져야 한다."

 공성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왼손을 허탐(虛探)하더니 오른손으
로 장무기의 왼쪽 어깨에  있는 결분혈을 후려쳤다. 바로 노운식
일초였다.

 장무기는 그의 왼손이  살짝 움직이는 걸 보자  그가 이 초식을
사용할 줄 이미 알고  있었다. 즉시 장무기도 왼손을 허탐하면서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결분혈을 후려쳤다. 두 사람이 사용한 초식
은 전혀 하나도 다름없이  똑같은 초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장무
기가 후발선지(後發先至)하였다.  공성의 손가락이  그의 어깨에
두 치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장무기의 다섯 손가락은 이미 공성
의 결분혈을 움켜 잡았다. 순간 공성은 혈도가 마비되는 것 같으
면서 오른손의 힘이 쭉  빠졌다. 그러나 장무기는 손가락에 힘을
더 가하지 않고 바로 거두어 들였다.

 공성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쌍장으로 창주식 일초를 전개하면서
장무기의 좌우 태양혈을 강타했다. 그러자 장무기는 이번에도 여
전히 후발선지하면서 공성의 양 태양혈을 강타했다. 그러나 장무
기의 손은 그의 양 태양혈을 살짝 스치더니 바로 용조수의 제 십
칠 초인 노원식으로 변하며 공성의 뒷통수에 있는 풍부혈을 허나
(虛拿)해 갔다.

 그러자 공성은 즉시 뒤로 반 장 정도 물러나면서 호통을 쳤다.

 "네.....  네가 어떻게  소림파의 용조수를  도둑질해서 배웠느
냐?"

 "천하의 무공은 본시  하나로 되었는데 사람들이 억지로 파벌을
나눈 것이오. 그러니 그  용조수의 금나수법도 귀파의 독점이 될
수 없는 것이오."

 장무기는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내심 탄복했었다.

 '이 용조수가 이토록 예리할 수가 있는 것은 소림파가 수 백 년
동안 전해온 절수일 것이다.  내가 만약에 용조수로 공격하지 않
았더라면 그를 패색으로 몰아넣기엔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더구
나 내가 배운 권법과 장법은 소림파의 이, 삼류급에 속하는데 어
찌 소림의 삼대신승 중의 하나인 공성대사와 비교가 되겠는가.'

 공성은 머리를 숙여서 생각을 해봐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용조수의 조예로 말할  것 같으면, 사형인 공문, 그리고 왕년
의 공견사형도 자기만 못하였는데. 어찌 이 소년은 양초(兩招)를
연거푸 후발선지할 수 있고, 또 출초에서 수법의 경력, 방향, 부
위마저도 안정되고 신속함이 겸비된  것이 마치 수십 년 동안 몰
두해서 수련한 공력 같단 말인가!

 공성은 멍청하게 서 있으면서  말을 하지 않자, 광장에 있는 천
여 명의 눈동자가 일제히  그를 주시했다. 그러자 공성은 갑자기
대갈일성하면서 몸을 솟구쳐서 앞으로 다가갔다. 쌍장은 마치 광
풍호우처럼 포풍식,  조영식, 부금식,  고슬식, 피항식, 도허식,
포잔식, 수결식, 팔식을 돌아가면서 질풍처럼 공격해 왔다. 그러
자 장무기도 여유있게  초식을 따라서 했는데 여전히 초초(招招)
는 후발선지했다.

 공성신승의 이 팔식연환의 용조수는 마치 일초에는 여덟개의 변
화가 있는 것처럼 신속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장무기는 그보다
더 빠르면서도 매 초식마다  모두 선수를 차지했다. 공성은 일초
마다 출수할 때는  그의 공력에 눌려서 뒤로  한 발씩 물러갔다.
막상 일곱 발자국째 물러설 때는 포잔식과 수결식을 계속해서 전
개했다. 이 두 식은 용조수의 마지막인 제 삼십 육초, 삼십 칠초
의 초수였다. 얼핏 보기에는  빈틈이 많은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이 두 초의  빈틈은 모두 무섭기 짝이  없는 함정이 매복돼 있었
다.

 그러자 장무기는 발을  앞으로 내디디면서 포잔식, 수결식의 허
식을 보이더니  갑자기 노운식으로  바꾸면서 곧장 중궁(中宮)을
공격해 들어갔다.

 공성은 몹시 기뻐하며 자기의 함정에 걸렸다 하면서, 쌍장을 돌
려가며 장무기의 팔꿈치를  공격했다. 그런데 쌍장의 장연(掌緣)
이 그의 오른팔에 닿는  순간 갑자기 부드럽고 두텁고 무거운 경
력이 그의 팔에서 발출하며  자기의 쌍장을 가로막았다. 바로 이
때 장무기의  오른손 다섯 손가락은 공성의  가슴에 있는 담중혈
주위를 감돌고 있었다.

 순간 공성의 마음은 몹시  허탈했다. 수십 년 동안 몰두해서 수
련한 무공이  모두 일장춘몽 같았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거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증시주는 빈승보다 훨씬 고명하오."

 왼손으로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움켜쥐고 경력을 주입하여 꺾어
버리려는 찰나, 갑자기 왼쪽  손목이 마비되면서 경도를 전혀 사
용할 수가 없었다. 바로 장무기의 손가락이 그의 손목 혈도를 살
짝 스친 것이다.

 "후배는 소림파의 용조수로 대사님을 굴복시켰으니 소림의 위명
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후배가 만약 소림파의 절예로 대사
님을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대사님을 꺾을 수 있겠습니까?"

 공성은 순간의  수치심 때문에 손가락을  절단하여 평생 무공을
다시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상대방의 말을 듣자 몹시 감격하
여 눈물을 글썽거렸다.

 "증시주의 대인대의에 빈승은 탄복을 금치 못하오."

 "후배가 윗 사람에  불경(不敬)한 죄를 대사님께서는 용서해 주
기 바라오."

 "이 용조수가 증시주의  수중에서는 그토록 위력이 대단할 줄은
빈승도 정말 뜻밖이오.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폐사에 와서 지도
해 주기 바라오."

 공성이 웃으면서 말을 하자 장무기는 얼른 입을 열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소림파의 무공은 박대정오(博大精奧)합
니다. 후배는 나이가 어리고 배운 것도 없으니 나중에 기회가 있
으면 대사님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의 이 몇 마디는 모두 가슴에서 우러나온 말이라 전혀 거짓이
없었다.

 소림파의 공지일행은 공성의 행동을 보게 되자  기분이 좋지 않
았다. 그런데 장무기가 소림파의  체면을 유지해 주는 것에 대해
서는 속으로 고마워했다.

 공지대사는 육대파가 이번에 명교를 토벌하는데 수령이었다. 그
런데 정세가 이처럼  도는 걸 보게 되자  마음이 몹시 난감했다.
마교를 소멸하는 일이 곧 이뤄지려는데 이름도 없는 이 소년에게
간섭을 받게 된 것이다. 만약에 이대로 물러서게 되면 천하의 호
걸들이 분명히 그를 비웃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슨 뾰족한 수도
없기에 옆눈으로  화산파의 장문인  신기자(神機子) 선우통(鮮于
通)에게 눈치를 주었다.

 선우통은 지혜가 풍부하고 계략  또한 많아서 이번 명교를 공격
하는데 군사(軍師)직을 맡고 있었다. 공지대사가 눈치를 주며 자
기에게 구원을 청하는 것을  보자 즉시 부채를 살며시 흔들며 천
천히 걸어 나왔다.

 장무기는 다가오는 자가 사십여 세의 중년 문사며, 용모또한 준
수하게 생긴 걸 보자, 마음에 호감이 생겼다.

 "선배님께서는 무슨 가르침이 있으신지요?"

 선우통이 말을 하려 하자 은천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화산파의 장문 선우통이다. 무공은 대수롭지 않지만 계략은 많
다."

 선우통은 일 장  앞으로 다가오더니 자세를 똑바로 취했다.

 "증소협, 안녕하십니까?"

 "선우 장문께서도 안녕하신지요?"

 "증소협의 놀라운 신공에 몹시 탄복했소. 어느 고명하신 선배님
의 문하인지요?"

 장무기는 어디서 누구에게 그의  이름을 들은 걸 생각하고 있었
기에 그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선우통은 고개를 쳐
들고 몇 번 웃더니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뭣 때문에 증소협께서는 자기의 사승내력을 숨기려 하는 거요?
고인(古人)의 말에는 <견현사제(見賢思齊) 견불현(見不賢)....."

 장무기는 견현사제란 말을 듣자 갑자기 <견사불구(見死不救)>란
말이 생각났다.  오년 전 호접곡에서  호청우는 자기의 여동생이
화산파의 선우통에게  살해되었다고 그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장무기의 작은 마음 속에는 선우통이란 자는 나중에 하늘의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었다. 그 일에  정신을 집중하다 호청우가
말한 것을 똑똑하게 기억해 냈다.

 '한 소년이 묘강(苗彊)에서 금잠충(金蠶蟲)의 독에 중독되어 죽
어가는 걸 난 사흘 밤낮을  잠을 자지 않은 채 심혈을 다해서 그
를 구해 주었다. 나중에 의형제를 맺었고 수족처럼 지내왔다. 그
런데 나의 친여동생을 살해할 줄이야...... 불쌍한 여동생......
우리 남매는 어려서부터  부모가 없어서 서로 목숨처럼 의지하고
살아왔다.'

 호청우는 그 이야기를 할 때 온통 주름살진 얼굴에 눈물을 글썽
거리며 애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때 장무기는 너무나도 슬퍼했
었다. 호청우는 그에게 복수를  하려고 여러 번 찾아갔으나 화산
파에는 사람이 많고 세력도  막강하며, 또 선우통이 교활하고 계
략 또한 많아서 오히려  호청우가 하마터면 그의 손에 죽을 뻔했
었다.

 장무기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무서운 눈초리로 선우통을 노
려보았다.

 그는 선우통의 제자인 설공원의  일이 또 생각났다. 그 자는 금
화파파에게 부상을 당한 걸  자기가 살려 주었는데, 나중에 오히
려 자기를 끓여 먹으려 했었다.  이 두 놈은 은혜를 원수로 갚으
려 하는  파렴치하고 간악한 놈들이다.  설공원은 이미 죽었지만
눈앞에 있는  선우통 저놈은 단단히 벌을  좀 줘야겠다고 생각했
다. 순간 장무기는 웃음을 살짝 조이며 입을 열었다.

 "난 묘강에서 극독에 중독되지  않았고, 또 내 의형제의 여동생
을 살해한 적이 없는데 무엇을 숨기려 하는 게 있겠소?"

 선우통은 그 말을 듣자 그만 몸에 경련이 일어나면서 등에는 식
은땀이 솟아났다. 왕년에 그는 호청우에게 목숨을 구제받고는 호
청우의 여동생 호청양을  사랑했었다. 나중에 호청양이 임신하자
선우통은 화산파의 장문 자리가 탐나서 호청양을 버리고 당시 화
산파 장문의  외동딸과 혼인을 했다.  그러자 호청양은 분노하여
자진을 했는데, 한 시체에  두 생명이 우는 참사를 빚었다. 선우
통은 그 일을 계속 숨겨 왔는데,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
소년에게 갑자기 들추어지게 되자 어찌 그가 당황하지 않겠는가!

 '저 소년이 어찌해서 나의  비밀을 알았을까? 반드시 독수를 가
하여 즉시 제거해야만  한다. 절대로 잠시도 살아  있게 할 수는
없다! 만약에 저놈이 떠벌이고 다니면 그건 상상할 수도 없다!'

 선우통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장무기에게 말했
다.

 "증소협께서 사승내력을 말해  주지 않는다면 무공을 겨루어 봅
시다!"

 말이 끝나자 우장을 비스듬하게 세우고 좌장으로 장무기의 어깨
를 후려쳤다. 그의 속셈은 장무기의 입을 막으려는 것이다.

 그러자 장무기는 속셈을  알아차리고 자연스럽게 손을 쳐들어서
살짝 막으면서 입을 열었다.

 "화산파의 무예는 아주 고명하여 겨루어 보지 않아도 익히 알고
있소. 그러나 은혜를 원수로 갚고, 배은망덕한 무공은 어느 누구
도 선우 장문을 따를 수가 없소....."

 선우통은 그의 입을 막으려고  즉시 덮쳐가더니 몸을 붙여서 화
산파 절기의 하나인  응사생사박(鷹蛇生死博)을 전개하면서 맹렬
히 공격했다. 그는 부채를 접어서 오른손에 쥐었다. 부채 손잡이
에는 뱀머리 형태를 새겼는데 몹시 예리하게 보였다. 왼손으로는
응조공(鷹爪功)을 사용했다. 오른손에  있는 뱀머리로 찍고 후려
치고 찌르고  했지만, 왼손으로는 금나와  비틀고 갈구리로 찍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 응사생사박은 화산파에서  전해 내려온 지
백여 년이나  되는 절기였다. 응사(鷹蛇)  쌍식을 함께 전개하기
때문에 일식에 동시 나타났다.  신속하고 민첩하고 악랄한 게 모
두 겸비돼 있었다.

 장무기는 몇 초를 막아내더니 상대방의 초수는 절묘하지만 경력
이 부족한 걸 금방 알았다.

 "선우 장문인, 소인은 한  가지 이해 못하는 일이 있소. 왕년에
당신이 맹독에 중독돼  있을 때, 남은 사흘씩이나  잠을 안 자며
정성을 다해서 당신을  살려놓고, 또 당신과 의형제를 맺었는데,
뭣 때문에 당신은 그의 여동생을 죽게 만들었소?"

 "허튼....."

 선우통은 대답할 말이 없어서 어거지로 <허튼소리>란 말을 하려
는데 막상 <허튼>이라는 말이  나오자 갑자기 한 줄기 대단히 무
거운 장력이 다가와서 그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순간 폐에
있는 기식(氣息)이 상대방 장력에 의해서 밖으로 밀려 나오려 했
다. 그러자  내력을 잠운(潛運)하며  고통스럽게 버티고 있었다.
나중엔 질식해서 호흡이 끊기려고 하자 선우통은 급히 연거푸 삼
초를 공격했다. 장무기가 장력을 살짝 풀어주자 비로소 선우통의
가슴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서 얼른 긴 호흡을 한 번 했다.

 "너....."

 선우통은 장무기에게  호통을 치려 했지만  <너>란 말이 나오자
상대방의 장력이 다시 다가와서 가슴을 누르며 말문을 말아 버렸
다.

 "대장부가 하는 일은 항상 시비를 분명히 가려야 하오. 뭣 때문
에 그렇게  지저분하게 굴려하는 것이오!  의선 호청우가 당신의
목숨을 구했죠? 그의 여동생은 당신이 손수 살해했죠?"

 장무기는 호청우의 여동생이  어떻게 살해됐는지 모르고 있기에
상세히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선우통은 상대방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줄 알고 변명을 하지 못하자 얼굴이 더
욱 창백해졌다.

 방관하는 사람들은 선우통의  말재주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얼굴에는 야릇한 표정을 짓고 상대방이 어떠한
말을 해도 변명을 하지  못하자 모두 장무기의 말을 믿는 눈치였
다. 장무기는 절정의 신공으로  그의 숨통을 짓누르고 있으니 선
우통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화산파의 명숙과 문인들은 장문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있는 걸 보자 모두 창피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리 같은 무림 사람은  은혜를 은혜로 갚고 원한이 있으면 원
수를 갚는다. 그 접곡의선은 명교의 사람이오. 당신은 명교의 큰
은혜를 입었는데 오늘은 오히려 은인인 명교를 공격하다니! 남은
당신의 목숨을 구해줬는데 당신은 오히려 은인을 해치려 하는 그
런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어찌 일파의 장문으로 있을 수 있단 말
이오!"

 그는 너무나 통쾌하게  꾸짖었다. 만약에 호선생께서 오늘 여기
서 직접 들었다면 가슴  속에 쌓인 분노가 조금이라도 풀어질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은  그의 목숨을 다치지 않기로 하
고 즉시 장력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네가 잘못을 인정하니 당분간 너의 모가지를 보류하겠다."

 선우통은 갑자기 숨이 탁 트이자 즉시 호통을 쳤다.

 "이놈, 거짓말 하지 마라!"

 그러면서 부채 손잡이를 장무기의 면문(面門)에다 한 번 찍더니
얼른 옆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장무기는  갑자기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 같으면서 바로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이놈아, 화산의 절예인 응사생사박의 무서움을 맛좀 봐라!"

 선우통은 말을 끝내자 몸을  튕겨서 앞으로 다가가서 왼손의 다
섯 손가락으로 장무기의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 있는 연액혈을 찍
으려 했다. 그는  장무기가 전혀 반항할 수  없는 줄 만 알았다.
그러나 그의 손이 닿는  곳은 마치 미끄러운 생선 뱃가죽을 잡은
것처럼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장무기는 살짝 웃더니 선우통의 코에다 숨을 한 모금 불어 넣었
다. 선우통은 갑자기 달콤한  향기를 맡게 되자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놀래서 혼비백산하여 입을 열고 뱉어내려
했다. 장무기는 그의 양무릎 안쪽을 왼손으로 살짝 스치니, 선우
통은 서 있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지면서 장무기의 면전에 엎어지
고 말았다. 마치 절을 해가며 애걸하는 것 같았다.

 이 갑작스런 변에  모두들 너무나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좀전만
해도 장무기가 중상을  입은 것처럼 휘청거리며 쓰러지려 했는데
순식간에 선우통이 그의 면전에  꿇고 있으니, 그렇다면 그가 요
법(妖法)을 할 줄 안단 말인가!

 장무기는 허리를 굽혀서 선우통의 수중에서 부채를 빼앗아 들고
낭랑한 소리로 외쳤다.

 "화산파는 명문정파라 하며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독을 가하는
절예를 지니고 있는 줄은 몰랐을 겁니다. 자 여러분 보십시오!"

 그러면서 꽃나무 한 그루  앞으로 다가가서 부채 손잡이로 선화
에다 몇 번 흔들었다.  잠시 후 꽃송이는 시들어지면서 떨어지고
꽃잎마저 점점 노랑색으로 변해 갔다.

 그러자 사람들은  선우통이 무슨 독약을  숨겨 놓았길래 저토록
무서울까 하며 생각했다.

 이때 선우통은 바닥에 엎어져  있으면서 되지 목따는 소리로 비
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악, 아악,  하는 게 마치 예리한 칼로 그
의 몸을 한 칼 한  칼 베일 때 지르는 비명소리 같았다. 그는 몇
번 소리를 지르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빨리..... 빨리 날 죽여라..... 빨라 죽여다오....."

 "난 너를 치료해 줄 수도  있다. 그런데 너의 부채에는 무슨 독
물을 숨겨  놓았느냐? 독원(毒原)을  알 수 없으면  구하기 힘들
다."

 "그건..... 그건 금잠(金蠶)..... 금잠충독이다..... 빨리 죽여
다오..... 아..... 아....."

 사람들은 <금잠충독>이란 말을 듣자 젊은이들은 그 무서움을 모
르겠지만 각  파의 기숙(耆宿)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또 정직한 인사들은 큰  소리로 선우통을 호되게 나무랐다. 금잠
충독이란 천하의 독물 중에서 으뜸이다. 무형무색이라 중독한 자
는 마치 천만 마리의  누에가 동시에 온몸을 물어뜯는 것처럼 그
고통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장무기는 다시 선우통에게 물었다.

 "너는 금잠충독을 부채에 숨겨 놓았는데 어찌 네 자신을 해치게
했느냐?"

 "빨리..... 빨리 죽여다오. 난 모른다. 난 모른다.....!"

 선우통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을 내밀어서 자신의 몸을 긁
고 때리며 땅바닥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너는 부채  안에 있는 금잠충독을 방출하여  나를 해치려 했지
만, 오히려 내가 내력을 사용해서  그 독을 되돌려 보낸 것에 대
해서 아직도 넌 할 말이있느냐?"

 "나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내가....."

 선우통은 비명을 지르더니 양손으로 자기의 목을 누르면서 자진
을 하려 했다. 그러나 이  금잠충독에 중독되면 전혀 힘을 쓸 수
가 없었다. 그러자 다시  머리를 땅바닥에 마구 박아도 보았지만
역시 아무런 상처도  가할 수 없었다. 이  독물에 중독되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살자니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정신 만
큼은 분명하여 몸 구석구석의 고통을 배 이상으로 똑똑히 느끼게
한다. 그러니 그 무서움은 실로 말하기 어렵다.

 왕년에 선우통이 묘강에 있을 때 묘가 여자 하나를 시란종기(始
亂終棄)하자 그 여자는  그의 몸에다 금잠충독을 중독시켰다. 그
러나 그의 마음이 돌아서 준다면 다시 구할 수 있도록 적은 양을
투입하였다. 선우통은  중독된 채 즉시 도주를  했다. 도주할 때
그가 여자의 금잠 두 쌍을 훔쳐갔지만 얼마 못 가서 바로 쓰러지
고 말았다. 그런데 마침 호청우가 바로 묘강에서 약초를 캐고 있
었기에 그를 구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선우통은 금잠을 길러서
독분(毒粉)을 제조하여 부채에 숨겨 놓았다. 부채 손잡이에는 기
관장치가 돼 있었다. 일단  장치를 풀고 다시 내력으로 뿜어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장무기의 내력이 심후하여  위험이 닥칠 때 호흡을 중단
하여 독기를 되돌려서 뿜은  것이다. 만약에 그의 내력이 심후하
지 못했다면 바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은 선우통이 아니
라 장무기였을 것이다. 그는  왕난고의 독경을 자주 읽었기에 금
잠충독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막상 선우통의 고통스런 모
습을 보자, 그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를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의 입으로 자기가 왕
년에 저지른 악행을 실토하게 해야 한다.'

 "그 금잠충독의 구치법은 나도  알고 있으니 내가 묻는 대로 이
실직고해야 한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난 손을 떼
고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넌 칠 일 동안 밤낮으로
고생을 할 것이며, 그 때 가서는 살이 썩고 뼈가 보일 것이니 그
고통은 참기 어려울 것이다!"

 장무기가 낭랑한 소리로 말을  하자 선우통은 잠시 생각에 잠겼
다.

 '왕년에 그 묘가  여자도 내 몸에 독을  투입하고는 내가 칠 일
동안 밤낮으로 고통을 당하다  살이 썩고 뼈가 보인 다음에 죽게
된다고 했는데, 저녀석이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러나 그는  접곡의선 호청우의 신기(神技)를  갖고 있는 것을
여전히 믿지 못했다.

 "나..... 나를 구하지 못하....."

 장무기는 살짝 웃더니 부채로 그의 요안(腰岸)을 가르키며 말했
다.

 "여기에다 구멍을 내서  약물을 투입하고 다시 꿰매버리면 충독
을 몰아 낼 수 있다."

 "맞다, 맞다. 너무나..... 너무 정확하다."

 "그렇다면, 너의 일생 중 양심에  어긋난 일을 한 것을 네가 직
접 말을 해라."

 "없.....없다....."

 "그럼 실례하겠으니, 여기서 칠 일 동안 누워 있으시오."

 "말.....말하겠다....."

 선우통은 급히 말을 했으나  군중들 앞에서 자기가 잘못한 일을
직접 말을 한다는  건 몹시 난처하게 여겨졌다.  그는 한참 동안
꾸물대며 말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화산파 중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솟구쳐서 그의 앞
으로 다가왔다. 하나는 키가 크고, 또 하나는 키가 작았다. 나이
는 오십세 정도였고  수중에는 긴 칼을 번뜩거렸다.  그 중 키가
작은 노자(老者)가 입을 열었다.

 "증가야. 우리 화산파는 죽으면  죽었지 모욕을 받아서는 안 된
다. 네가 이토록 선우  장문에게 모욕하는 건 절대로 영웅호걸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러자 장무기는 포권을 하며 말했다.

 "두 분의 존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너는 우리 사형제의 이름을 물어볼 자격이 없다!"

 키 작은 노자가 화를 내며  말을 하고 나서 몸을 굽혀 왼손으로
선우통을 안으려 하자, 장무기는 일장을 후려쳐서 그를 한 발 뒤
로 물러서게 한 후 냉랭하게 말했다.

 "그의 온몸에는 독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닿게 되면 그와 똑같이
되니 각하께서는 조심하는 게 좋겠소."

 그 키 작은  노자가 깜짝 놀래서 온몸을  떨고 있는데 선우통이
다시 소리를 쳤다.

 "빨리 구해 주쇼..... 빨리 구해 주쇼..... 백단 백사형은 내가
금잠충독으로 살해한 것이오. 이밖에는 없소."

 그가 이 말을 하자 키가 크고 작은 이로(二老)와 화산파의 사람
은 일제히 경악했다. 그러자 키 작은 노자가 선우통에게 물었다.

 "백단을 네가 죽였냐? 그런데  넌 명교의 수중에 죽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백.....백사형..... 당신에게 부탁하오. 날 용서해 주시....."

 선우통은 비명을 지르며 절을  연신하더니 그 때의 일을 실토했
다.

 "백사형..... 당신은 아주  비참하게 죽었소. 그러나 당신은 날
너무나 억압을 했소..... 당신이  호소저의 일을 말해 버리면 사
부님은 절대로 날  용서치 않을 것이오. 나.....  난 할 수 없이
당신을 죽일  수밖에 없었소. 백사형.....  날 놓아 주시오.....
날 용서해 주오....."

 선우통은 두 손으로 목을 힘껏 누르며 다시 말했다.

 "내가 당신을 살해하고 그  죄를 명교에게 뒤집어 씌웠소. 그러
나..... 그러나..... 난 당신을  위해서 많은 지전을 태웠고, 또
많은 법사(法事)를 했는데 당신은 어째서 나의 생명을 앗으려 하
는 거요?  당신의 처자식도 계속 돌보아  주고 있고..... 그들의
의식도 부족함이 없소."

 광장에는 햇빛으로 덮여 있는데  선우통은 그 몇 마디 애걸하는
말을 하더니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백단의 혼백이 진짜로
그의 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화산파 중에 백단을 알고 있는 자
는 더욱 경악했다.

 장무기도 그의 말을 듣자 너무나도 뜻밖이었다. 그는 단지 은혜
를 원수로 깊은 호청우의  여동생을 죽게 한 일을 고백 받으려고
했는데 그는 오히려 자기의  사형을 살해한 일을 자백한 것이다.
당시 백단이 금잠충독에  중독되어서 고통을 받던 비참한 상황을
오늘 그가 일일이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머리 속에는 오
직 <백단>이란 두 글자만  생각났다. 마치 백단의 혼백이 나타나
서 목숨을 앗아가려는 것 같았다.

 장무기도 그 백단이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선우통이
백단을 살해한 후 그  죄행을 명교에게 뒤집어 씌워서, 화산파가
광명정 공격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낭랑한 소리
로 말했다.

 "화산파 여러분들은 들으시오. 백단 백사부는 명교가 해친게 아
닙니다. 여러분들은 남을 오해한 것입니다."

 그 키가 큰 노자가 갑자기 칼을 쳐들고 선우통의 머리를 쪼개려
하듯 후려쳤다. 그러자 장무기는  부채를 내밀어서 그의 칼을 찍
자 강도(鋼刀)는 비켜나면서 콱 하는 소리를 내더니 땅바닥에 한
치 정도 깊이 꽂혔다. 그 키가 큰 노자는 화를 내며 말했다.

 "저 자는 본파의 반도라 우리들이 우리의 문호를 정리하려는데,
네가 간섭할 게 무엇이냐?!"

 "전 이미 그의 몸에 있는 충독을 완치해 준다고 약속했소. 귀파
문호의 분쟁은 나중에 화산에 다시 돌아간 다음에 천천히 정리해
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키 작은 노자가 말했다.

 "사제, 저 사람의 말이 맞다."

 그러면서 몸을  날리더니 선우통의 등에  있는 대추혈을 걷어찼
다. 그러자 선우통의 몸은  날아서 화산파의 사람들 면전에 떨어
졌다.

 선우통은 혈도를 걷어채여 비록 온몸의 고통은 감소되지 않았지
만 이미 소리를 지를 수 없고 바닥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을 뿐이
다. 물론 그에게도 친신(親信)  제자가 있었지만 그의 몸에 극독
이 있기 때문에 누구도 다가가서 구조하지 않았다.

 그 키 작은 노자가 장무기에게 말했다.

 "우리 사형제는 선우통 저놈의 사숙이오. 당신이 화산파를 도와
서 문호 중에 큰일을  밝혀준 것에 대하여 우리 백단사질도 고맙
게 생각할 것이오. 정말 고맙소."

 그러면서 포권의 예로 인사했다.  그러자 그 키가 큰 노자도 따
라서 읍을 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장무기는 얼른 답례를 하며 말했다.

 키 작은 노자가 칼을  쳐들고 일도를 후려치면서 무서운 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우리  화산파의 명성도 네 녀석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몰골 사납게 훼손되었다! 우리  사형제는 늙은 목숨을 받쳐서 너
와 사생결단을 할 것이다!"

 키가 큰 노자도 말했다.

 "우리 사형제는 목숨을 받쳐서 너와 사생결단을 할 것이다!"

 비록 그의 체격은 크지만 키 작은 노자의 흉내만 내고 있었다.

 "화산파의 여러분, 청자자청, 탁자자탁(淸者自淸 濁者自濁)이라
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다 파렴치한 놈 한 명이 나오더라도 귀파
의 위명에는 지장 없습니다.  무림에 있는 못난 놈들은 육대문파
에도 모두 있는  일인데 두 분께서는 뭣  때문에 그 일에 마음을
쓰는 것이오?"

 키 큰 노자가 말했다.

 "네가 보기에는 지장이 없느냐?"

 "지장 없습니다."

 "사형, 저 녀석이 지장없다는데 우리도 그만 둡시다."

 그는 장무기를  두려워하고 있기에 그와  싸움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

 키가 작은 노자가 무슨 소리로 말했다.

 "선제외모, 재청문호(先除外侮 再淸門戶),  화산파가 만약에 오
늘 저 녀석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찌 다시 무림에 발을
들여 놓겠느냐?"

 "맞습니다! 이봐 젊은이, 우리  둘이서 너와 싸우게 될 것이다.
만약에 네가 불공평하다고 생각되면 얼른 졌다고 인정해라."

 그러자 키가 작은 노자는 이마를 찌푸리며 호통쳤다.

 "사제, 너....."

 장무기는 그의 말을 가로챘다.

 "둘이서 나 혼자하고 싸우겠다?  그것 참 잘 됐군요. 만약에 당
신들이 패하게 되면 절대로 명교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시오!"

 키가 튼 노자는 몹시 기뻐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 둘이서 너 하나와 싸우게 되면 넌 절대로 살아 남을 수가
없다. 우리 사형제에게는 양의도법(兩儀刀法)이라는 게 있다. 그
도법의 변화는 예측할 수가 없고 연도(聯刀)로 적을 공격하면 어
느 누구도 막아 내지 못한다. 내가 걱정한 것은 일 대 일로 상대
하는 건데, 네가  혼자서 우리 둘을 상대한다고  했으니 그건 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네가 한 말을 번복해서는 안 된다!"

 "전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노 선배님의 공격에서 좀 사
정을 봐주십시오."

 "난 절대로 사정을 안  봐준다. 우리의 그 양의도법은 전개하면
할수록 점점  더 예리해지는데, 어찌 사정을  봐줄 수 있겠느냐?
내가 보기에는 네 녀석이 그렇게 나쁜 인간도 아닌데 막상 내 칼
에 죽게 되면 정말 불쌍한....."

 그러자 키 작은 노자가 말했다.

 "사제, 입 다물지 못하겠느냐!"

 "그렇게 할 수는 있지만 난 미리 그에게 힌트를 줘서 경계를 하
라는 겁니다. 우리  사형제의 양의도법은 반양의(反兩儀)라서 식
(式)마다 정상적인 규칙을 따르지 않고....."

 그러자 키 작은 노자가  무서운 소리로 호통치며 고개를 장무기
에게 돌려서 받아랏! 하면서 칼을 들어 후려치며 다가갔다.

 장무기는 선우통의  부채를 쳐들고 그의 칼  등에다 대어 보니,
키 큰 노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봐,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우린 겨룰 수가 없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부채에는 독이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중독될지도 모른다!"

 "맞습니다. 이런 극독을 지닌  물건은 절대로 세상에 남겨 놓을
수 없습니다."

 장무기는 말을 하며 오른손의  인지와 장지 사이에 부채의 손잡
이를 끼어서 바닥 아래 던지자 땅 속으로 숨어 버리고 작은 구멍
하나만 남겨 놓았다. 이런 신공은 광장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할
수가 없었다. 순간 사람들은 큰 소리로 환호성을 쳤다.

 키가 큰 노자는 단도를 겨드랑이에 끼고 힘껏 손뼉을 치면서 말
했다.

 "넌 빨리 가서 병기 한 가지를 갖고 오너라!"

 장무기는 군중들 앞에서 자기의 무공을 과시하고 싶지 않았지만
오늘의 상황이 특수했다. 만약에  신공을 보여서 이 국면을 슬기
롭게 제압하지 않으면 육대문파가 이대로 손을 떼고 중원으로 되
돌아가게 한다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선배님께서 보기에는 제가 무슨 병기를 쓰면 좋을 것 같소?"

 그러자 키가 큰 노자는 그의 어깨를 두 번 토닥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너 매우 재미있구나! 네가  쓰고 싶어하는 병기를 어찌 나에게
묻는 거냐?"

 장무기는 그가 몇 번  토닥거린 것은 노인네들이 젊은이들을 좋
아해서 하는 표시인 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방관하는 사람들
은 모두 깜짝 놀랬다. 두  사람이 대적하여 싸우는 판에 한 사람
이 손을 내밀어서  적수의 어깨를 토닥거렸는데 상대방은 피하지
않았다. 키가 큰 노자가 손에 힘을 쓰거나 또 틈을 타서 그의 혈
도를 찍어 버리면 무공을  겨룰 필요도 없이 승패는 판가름 나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 장무기에게 신공이 몸을 보호하고 있는 줄
은 모르고 있었다. 설사 키가  큰 노자가 암수를 쓴다 해도 절대
로 그를 상하게 하지는 못한다.

 키가 큰 노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보고 무슨 병기를 쓰라면 넌 내 말을 들을 것이냐?"

 "가능합니다."

 "넌 무예가 뛰어나서 십 팔  번 병기를 모두 쓸 줄 안다고 생각
된다. 만약에 빈  손으로 우리 두 늙은이하고  겨루게 하면 그건
또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빈 손으로도 무방합니다."

 키가 큰 노자는 사방을 둘러보면서 제일 형편없는 병기를 한 가
지 찾아서 그에게  주려 했다. 갑자기 그의  시선은 광장 왼쪽에
놓여 있는 큰 바위 몇 개 위에 멈추었다.

 "너에게도 덕을 주기 위해서  아주 무거운 병기를 쓰는 게 좋겠
다."

 그는 말을 하면서 큰 바윗돌을 가리키며 깔깔대고 웃었다.

 그 바위 하나의 무게는 무려  이, 삼백 근은 족히 되었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다. 더구나 오랫동안 사람들
이 의자 대용품으로 앉아서 사방이 모두 매끄러워서 손잡이가 없
는데 어떻게 병기로 사용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장무기는 미소
를 지으며 말했다.

 "저 병기야말로 좀 거북한 데가 있는데, 노 선배님께서 제 무공
을 시험하시는 겁니까?"

 그는 말을  하면서 바위 앞으로 다가갔다.  왼손을 내밀어 바위
한 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조심하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위와 함께 솟구쳐서 두 노자 앞으로 다
가갔다. 그러자 사람들은 갈채를 보내는 것도 잊은 채 입만 크게
벌리고 있었다. 키가 큰 노자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소리쳤다.

 "그..... 그건 좀 망칙하구나!"

 키 작은 노자는 오늘이야말로  평생에 최고 적수를 만났다는 걸
알고는, 자세를 바로하면서  상대를 주시했다. 갑자기 파란 빛이
번득거리더니 장무기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공격했다.

 "사형, 진짜 싸우는 겁니까?"

 "그럼 장난하는 줄 아느냐!"

 강도(鋼刀)를 반 바퀴 돌리더니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장무기의
어깨를 옆에서 후려쳤다.

 장무기는 옆으로 물러서면서 피했다. 그러자 키가 큰 노자의 칼
이 다시 다가왔다.  그는 바위로 막으면서 바로  칼이 오던 길로
바위를 밀어갔다.

 "아니, 이건 순수추주(順收推舟)가 아니냐?! 넌 큰 바위를 사용
해도 초수가 있는 거냐?"

 "사제, 혼돈일파(混沌一破)!"

 "태을생명, 양의합덕(太乙生命 兩儀合德)!"

 "일월매명(日月每明)!"

 두 노자는 입으로 외쳐대면서 도초(刀招)를 쉴새없이 전개했다.
장무기는 구양신공을  전개해서 큰  바위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두 노자는 반양의도법(反兩儀刀法)을 전개하자, 몹시 맹
렬하였으나, 장무기 수중에 있는  바위는 너무나 커서 살짝 돌리
거나 옆으로 조금만 움직여도 이로(二老)의 초수를 모두 막어 버
렸다. 그러자 키가 큰노자가 말했다.

 "너는 병기에서  너무나 많은  덕을 보고 있다.  이건 불공평하
다."

 "그럼 이 둔하고 무거운 병기를 사용하지 않겠소."

 장무기는 웃으면서 말을 하더니  갑자기 큰 바위를 공중으로 던
져 버렸다. 그러자 두 노자는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쳐
들고 쳐다보는 순간  뒷덜미의 혈도가 동시에 장무기에게 잡혀서
꼼짝 할 수 없었다. 장무기는  몸을 뒤로 튕겨서 물러나자 큰 바
위는 두 노자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놀래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장무기는 몸을 튕겨 앞
으로 다가가서 장풍을 뻗어 큰 바위를 일 장 정도 밖으로 밀어내
자 꽝 하고 소리를 내면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 다음 손을
내밀어서 두 노자의 어깨를 몇 번 두드리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후배가 장난 좀 했습니다."

 그가 몇 번 두드리자 두 노자의 혈도는 즉시 풀어졌다. 키 작은
노자는 잿빛 얼굴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두자, 그만둬."

 키가 큰 노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무효다!"

 "어째서 무효란 말입니까?"

 "넌 힘이 세서 큰 바위를 움직인 것뿐이지, 초수에서 우리 형제
를 이긴 건 아니다!"

 "그럼 다시 겨루어 봅시다."

 "다시 겨루는  것도 괜찮지만 좀  신선한 방법을 생각해야겠다.
그래야만 우리가 지더라도 할 말이 없지 않겠느냐?"

 소조는 장중(場中)의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이때 손을
내밀어 얼굴을 훑으면서 소리쳤다.

 "창피하다. 창피해! 자기네들이  항상 덕을 보고 있으면서 오히
려 손해라 하는구나!"

 그녀의 손이 아래 위로  움직일 때마다 쇠사슬은 찰랑찰랑 하며
소리가 났다.

 키가 큰 노자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먹은 소금도 네가 먹은 쌀보다는 많고, 내가 지나간 다리
도 네가 걷던 길보다도 길다. 조그만 계집이 뭣 때문에 종알종알
대는 거냐?"

 고개를 장무기에게 돌려서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만약에 원치 않으면  그만 두어라. 어차피 이번 시합에서
는 서로가 승패를 판가름하지 못했으니, 삼 십년 후에 다시 겨뤄
도 늦지 않는....."

 키 작은 노자는 그의 말이  점점 더 엉뚱해지자 즉시 호통을 쳤
다.

 "증가야, 우리는 패배를  인정한다. 네가 처치하는 대로 따르겠
다."

 "두 분 편리할 대로 하시오. 소인은 단지 명교와 귀파의 오해를
풀어드리려고 했을 뿐 절대로 다른 속셈은 없습니다."

 그러자 키가 큰 노자는 큰 소리로 외쳤다.

 "그건 안 된다. 아직 신선한 방법을 채택하지 않았는데 뭣 때문
에 회피하려는 거냐?"

 키 작은 노자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입을 열지 않았다.

 "선배님의 뜻은 어찌하면 타당한 것 같습니까?"

 "우리 화산파의 반양의도법의 절예신공은 너도 맛을 봐서 잘 알
고 있지만, 곤륜파에도 정양의검법이라는  게 있는 것은 넌 모를
것이다. 그 변화의 정기오묘함은  화산파의 도법과 각기 다른 장
점이 있다. 만약에 도검이 합쳐서 양의를 사상(四象)으로 변화시
키고 다시 사상에서 팔괘(八卦)가 생겨나고, 음양을 서로 조절하
고 주화를 서로 배제하면, 아유....."

 그는 여기까지 말하더니 연신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다시 말을
이었다.

 "위력이 너무나 강맹하여 넌 절대로 막아내지 못한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곤륜파 쪽으로 돌려서 말했다.

 "곤륜파 중에서 어느 고인께서 나오시겠습니까?"

 키가 큰 노자가 얼른 입을 열었다.

 "곤륜파 중에서 철금(鐵琴) 선생 부부 외에는 어떤 사람도 우리
형제와 연수(聯手)할 자격이  없소. 하지만 하(何) 장문인께서는
담력이 있는지 모르겠구료."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했다.

 '저 노인네는  멍청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누구보다도 똑똑하군.
그는 곤륜파의 양대  고수를 충동질해서 자기들을 도와 달래려는
속셈이구나'

 하태충과 반숙한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저 두 노자
가 어떤  사람인 줄은 몰랐다. 단지  선우통의 사숙이고, 평소에
강호에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만 생각했다. 더구나 자기들은
서역에 있기 때문에 그들을 알  까닭이 없었다. 이때 키가 큰 노
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곤륜파의 하씨 부부는 너와  겨루는 것을 꺼려한다. 그들의 정
양의검법은 비록 그런대로  위력이야 있지만, 화산파의 반양의도
법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뒤떨어지기 때문에 망설일  수 밖에 없
지."

 반숙한은 화가 치밀자 몸을  튕겨서 장안으로 들어오더니 키 큰
노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각하의 존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나도 성이 하가요, 하부인 시작하실까요?"

 그의 말이 끝나자 옆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
았다.

 반숙한은 곤륜파의 태상장문(太上掌門)이다. 하태충마저 그녀를
무서워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곤륜산 일대 수백 리 안에서 여
왕처럼 군림해 왔는데 어찌  자기를 놀려 대는 걸 보고만 있겠는
가, 순간 검을 뽑아들고 바로  키 큰 노자의 왼쪽 어깨를 찌르러
갔다. 검을 뽑아서 출초한  수법이 너무나 빨라서 눈깜짝할 사이
에 검끝이 키 큰 노자의 어깨에 불과 반 치 정도에 다가갔다. 그
러자 키 큰  노자는 깜짝 놀라며 얼른  칼을 눕혀 그녀의 일검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반숙한이  사용한 것은 금침도겁(金針渡
겁) 일초였고, 키 큰 노자가 사용한 것은 만겁불복(萬겁不復) 일
초였다. 일정일반(一正一反)은 모두 양의술수(兩儀術授) 중의 극
치를 전개한 것이다. 비록 키 큰 노자는 장무기의 수중에는 손발
이 묶인 것처럼  무공을 멋대로 전개할 수는  없지만, 사실 그의
도법의 조예는 대단한 경지에 도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도검이 맞부딪치자 각각 뒤로 일보씩 물러섰다. 서로
가 상대방의 그 일초의 정묘함을 몹시 감탄했다. 두 사람의 파벌
이 다르고, 무공도 다르고, 평생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마치 
평생 혼자서  고독하게 살다가 갑자기 마음이  통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즐거워했다. 그러자 반숙한은 잠시 생각을 굴렸다.

 '저 자의 화산파 반양의도법은  과연 대단하구나. 만약 그와 연
수공적(聯手攻敵)한다면, 천하의 모든 병기 초수 중의 극치를 발
휘할 수 있다.'

 '화산파의 이 두 늙은이는 저 소년의 적수가 아니다. 우리 곤륜
파가 저 소년하고 겨루게 되더라도 꼭 이간다는 보장은 없다. 우
리가 이대로 장안으로 내려오게 되면 이는 곤륜, 화산 양파의 사
대고수가 한  무명 소년과 합전(合戰)하는  꼴이다. 비록 체면을 
깎이는 일이지만 이건 화산파에서 생각해 낸 방법이다.'

 그녀는 뒤로 머리를 돌려서 하태충에게 소리쳤다.

 "이봐요, 이리로 오세요!"

 하태충은 부인의  명을 감히 거역하지는  못해도 여러 눈동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여전히  장문인다운 거드름을 피우면서, 흥! 하
고 콧방귀를 귄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작은 동자 네 명이 앞에
서 인도하였다.  하나는 장검을 안았고,  하나는 철금을 안았고, 
나머지 두 명은 각각 불진(佛塵)을 들었다. 광장 중심에 다섯 명
이 들어서자 검을 안고 있는 동자가 두 손으로 검을 받쳐들고 몸
을 굽혀서  올려바쳤다. 하태충이 검을  받아들자 그제서야 동자 
네 명은 몸을 굽히면서 물러났다.

 반숙한이 말했다.

 "화산파의 반양의도법의 초수도 그런 대로 쓸 만하오."

 그러자 키 큰 노자는 능글맞게 말했다.

 "칭찬해 주어서 고맙소."

 반숙한은 그에게 눈을 흘기면서 다시 말했다.

 "우리 네 사람이  저 꼬마를 데리고 곤륜,  화산 양파의 무공을 
한 번 전개해 봅시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 고개를  그에게 돌리자 갑자기 그를 뚫어지
게 쳐다보았다.

 "너.....너....."

 그녀와 장무기는 오 년 전에 헤어졌다. 비록 그가 오 년 사이에 
꼬마에서 소년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의 얼굴은 아직도 그때와 많
이 닮았다.

 장무기가 말했다.

 "우리들의 과거 일을 모두  얘기해 버릴 겁니까? 나는 증아우라 
합니다."

 반숙한은 그의 저의를 알았다. 그는 진짜 이름을 사람들에게 밝
히기 싫은 것이다.  만약 자기가 그의 비밀을  밝히게 되면 그들 
부부가 은혜를 원수고 갚은  여러 가지 일들을 군중들 앞에서 밝
히게 될 것이다.

 즉시 장검을 쳐들고 말했다.

 "증소협의 무공이 몹시 진전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오. 그러니 
출수하여 가르침을 주기 바라오."

 그녀의 말뜻은, 우린 무예만  겨룰 뿐 지난 일들은 발설하지 말
자는 것이다. 그러자 장무기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현부처(賢夫妻) 검법이 신통하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익히 들
어왔으니, 무예를 겨룰 때 아무래도 사정을 봐줘야겠소."

 하태충이 말했다.

 "증소협, 무슨 병기를 쓰겠소?"

 장무기는 그를 보자 독을 빨 줄 아는 금관은관(金冠銀冠) 한 쌍
의 작은 뱀이 생각났다. 그가 절벽 밑으로 떨어진 후에 그 한 쌍
의 작은 뱀은  먹을 독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굶어 죽었다. 
바로 또  생각난 것은 그가 무당산에서  자기의 부모를 억압하여 
죽게 한 것과, 자기와 양불회를 억압하여 독주를 마시게 하고 자
기를 때려서 눈과 코에 시퍼런 멍이 들게 하고는 절벽 밑으로 던
져 버렸던 일이다. 만약에  양소가 옆에서 때마침 출수하여 구하
지 않았더라면  자기는 지금쯤 시체가 벌써  썩어 없어졌을 테니 
어떻게 지금의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자기는 좋은 뜻으로 그
의 애첩 생명을 구해 줬는데, 그는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으며 
수차 자기에게 해꼬지  한 것이다. 그는 이것  저것 생각을 하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하태충 이놈아, 그날 너에게 당한 분풀이로 오늘 널 죽이지 않
더라도 최소한 너를 실컷  두들겨서 그날의 사무친 한을 풀 것이
다!"

 하태충 부부와 화산파의 두 노자는 각각 사각(四角)에 나누어서 
서 있었다. 양도와 쌍검이 햇빛 아래서 번뜩거렸다.

 장무기는 갑자기 양팔을 한  번 진동시키자 몸이 똑바로 솟구치
더니 공중에서 살짝 한 번 몸을 돌려서 서쪽에 있는 매화나무 쪽
으로 덮쳐갔다.  왼손을 내밀어서 매화가지  하나를 꺾은 다음에 
그제서야 몸을 돌려서 착지했다.

 그는 매화를 손에 들고 천천히 네 사람 중간으로 들어갔다.

 "소인은 이 매화가지를 병기로 사용할 것이오."

 그 매화가지는  십여 송이의 매화가 달려  있었고, 반수 이상은 
미처 피지 못한 꽃봉오리였다.  사람들은 그가 이같은 말을 하자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매화가지는 부딪치기만  하면 부러질 것인데 어찌 상대방의 
보검과 보도하고 겨룰 수가 있겠는가?!'

 반숙한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다. 넌 화산, 곤륜 양파의 무공을 아주 우습게 보았구나!"

 "전 선친에게서 들은 적이  있소. 왕년에 곤륜파의 선배인 별건
가 선생님의 금, 검, 기 삼절을 세칭 <곤륜삼성>이라 하였소. 하
지만 우리가  너무 늦게 태어나서 그  선배님의 풍범을 전망하지 
못한 건 몹시 안타까운 일이오."

 이때 갑자기 곤륜파 중의 한  사람이 마치 징 깨지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런 도적 종자  같으니, 네가 얼마나 큰  재주가 있기에 감히 
나의 사부님과 사숙님에게 무례하는 거냐?!"

 호통치는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얼굴에 온통 털투성이로 
된 도인 한 사람이  군중 틈에서 달려나오며 검을 쳐들고 장무기
의 배심(背心)으로 찔러갔다.  이 도인의 신법은 매우 신속했다. 
비록 사전에  경고를 했지만 검초가 너무나  빨라서 마치 암습해 
가는 것 같았다.

 장무기는 오히려 몸을 돌리지 않고 검끝이 등에 있는 옷에 닿으
려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왼발을 들어 몸을 한 바퀴 돌리면서 
검을 발로 밟아서 바닥에 눌러  놓았다. 그 도인이 힘껏 끌어 보
았으나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장무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뒤를 돌아보자 이 도인은 바로 그가 중원에 처음 돌아갈 때 배에
서 만났던 서화자(西華子)였다.

 이 사람은  성격이 포악해서 장무기의  모친인 은소소에게 몹시 
무례했었다. 순간 장무기의 마음에 찡하고 와 닿는 것이 있었다.

 "당신은 서화자 도장이 아니오?!"

 서화자는 상기된 얼굴로 대답은 하지 않고 힘껏 검을 뽑아 내려 
안간힘을 썼다. 장무기는 갑자기 왼발을 놓아주고 발바닥으로 검
에다 한 번 찍었다. 서화자는 뜻밖에 일어난 일이라 힘을 너무나 
가해서 휘청하더니 뒤로 주저앉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무공으로 
견주어 봐서는 비록 갑자기 일어난 일이지만 즉시 몸을 바로잡을 
수가 있었다. 그가 천근추(千斤墜)를 막 사용하려는데 갑자기 검
을 통해서한  줄기 강력한 역도(力道)가 전해  오면서 그의 몸을 
뒤로  밀어 버리자  즉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따라서 탱
탱..... 하며 몇  번 경쾌한 소리가 나더니  수중에 있는 장검이 
한 토막씩 절단되더니 손바닥 안에는 검자루만 남아 있었다.

 서화자는 경악과 창피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반숙한의 
친전 제자라 반숙한을  사부라 부르고 하태충을 장문사숙이라 불
렀다. 이때 사부의 화난  얼굴을 보게 되자, 자기가 사문의 체면
을 훼손했기에 나중에 문책을  면치 못하는 줄 알고 있어서 더욱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얼른  몸을 튕겨서 일어나더니 호통을 쳤
다.

 "이런 도적 종자 같으니.....!"

 장무기는 이대로 그를 돌아가게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가 욕
을 하는 건 부모님까지  모욕했기에 수중에 들고 있는 매화 가지
로 그의 몸을  스치니, 이미 그는 흉복지간의  급소를 세 군데나 
찍히고 말았다. 그런 다음에 두 노자와 하씨 부부에게 말했다.

 "자, 시작하시죠."

 반숙한은 서화자에게 낮은 소리로 호통쳤다.

 "물러서라. 그만큼 창피를 당해도 아직 부족하느냐?"

 "네."

 그러나 서화자는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자 반숙한은 또 
화를 내며 말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네, 네, 사부님, 네."

 말은 몹시  공손하게 해도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반숙한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속으론 저 녀석이 뭣 때문에 자기 말
을 듣지 않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녀의 안력이 비록 뛰어나도 장무기의 불혈(拂穴) 수법이 너무
나 빨랐기에, 또 부드러운 물건을 빌려서 경력을 전달 할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장무기가 매화가지로 살짝 한 번 스친 게 
마치 판관필로 혈도를 연거푸 찍은 것 같았다. 순간 그녀는 서화
자의 어깨를 무겁게 한 번 밀면서 말했다.

 "여기서 창피당하지 말고 물러서라!"

 "네, 사부님, 네."

 서화자는 대답하면서 몸은 서 있는 채로 옆으로 수치 정도 옮겨
졌지만 수족의 자세는  하나도 변하지 않아, 마치  석상 한 개가 
사람의 일장에 의해 밀려난  것 같았다. 그러자 반숙한과 하태충
은 그제야 그가 모르는  사이에 장무기에게 혈도를 찍힌 것을 알
아채고 몹시 놀라와 했다.  하태충은 손을 내밀어서 서화자의 요
혈(腰穴)을 몇 번 주무르면서 그의 혈도를 풀어 주려 했다. 그러
나 경력이 투입되어도 서화자는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

 장무기는 양소의 몸을 기대고 있는 양불회를 가르키며 말했다.

 "이 낭자는 오 년 전 그대들이 혈도를 봉해 놓고 독주를 억지로 
먹이려 한  사람이오. 난 그녀를 풀어주는  방법이 없었소. 오늘 
당신들의 제자도 똑같이 된  것이오. 귀아(貴我) 양파의 점혈 수
법이 다르다는 건 이상하게 여길 것 없소."

 군중들은 그의 말을 듣자 시선을 모두 양불회에게 쏟았다. 지금
도 별로 크지 않은 소녀인데,  오 년 전이면 더욱 어린애가 아니
더냐. 그런데 하태충 부부는  일파의 장문 신분으로 저토록 작은 
낭자를 대했다는 것이 너무했다는 생각을 하며 몹시 분개했다.

 반숙한은 군중들의 눈빛이 이상해지는 걸 보자, 옛일을 자꾸 얘
기하게 되면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자  검을 쳐들어서 그의 미심
(眉心)을 찌르려 했다.  바로 이때 하태충은 장 검으로 장무기의 
배심(背心)을 공격하고  화산파의 두 노자도 따라서 공세를 전개
했다.

 장무기는 몸을 흔들거리더니  도검 사이에서 빠져나오면서 매화
가지로 하태충의 얼굴을 살짝 스치었다. 하태충은 검을 비스듬히 
세워서 그의 요협(腰脅)을 찔렀다.  무기는 왼손 식지로 키 작은 
노자의 단도를 튕기고 매화가지로 하태충의 장검을 쓸어갔다. 하
태충의 검신이 살짝  돌려지면서 검날은 매화가지를 향해 자르려 
했다.

 속으론, 내가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다 해도 목질의 나뭇 가지로 
어찌 나의 검날을 막아낼 수 있겠느냐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
무기의 매화가지도 따라서 살짝 돌려지더니 그대로 검날에 와 닿
으면서 한 줄기 연화한 경력을 내보내며 하태충의 장검을 막아냈
다. 순간 탱 하는 소리가  나더니 키 큰 노자의 일도를 하태충의 
검으로 막아내는 것이다. 그러자 키 큰 노자는 소리쳤다.

 "아하, 하태충! 너는 오히려 적을 돕는 것이야?"

 하태충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자기의 검초가 적의 내경(內勁) 때
문에 그랬다는 걸 인정치 않았다.

 "허튼 소리!"

 라고 말을 하면서, 일검에 죽여 버리겠다는 것처럼 장무기를 찌
르려 했다.

 하태충이 출초하여 적을 공격할  때 반숙한은 마침 장무기의 퇴
로를 막고 있었고, 두 노자는 따라서 반양의도법을 전개했다. 정
양의검법과 반양의도법은 비록 정반유별(正反有別)하였지만 모두 
팔괘 중에서 변화해서 나온  것이고, 다시 팔괘로 되돌아가는 것
이다. 그러니 수초가 지나자 네 사람의 호흡이 갈수록 맞았고 양
도와 쌍검의 배합은 더욱 날카롭고 전혀 빈틈이 없었다.

 장무기도 네 사람이 연수하게 되면 몹시 상대하기 힘들 줄은 예
상했지만 과연 정,  반 두 무공이 함께  합해지니까 음양이 서로 
보안되어 전혀 빈틈이 없었다.  그가 몇 번씩이나 위험한 초수에 
몰려 있을 때, 만약에  수중에 들고 있는 게 병기였다면 운경(運
勁)을 하기만 하면 충분히  상대방의 도검을 진단(塵斷)할 수 있
었는데, 하필이면  건방지게 매화가지를 하나  들고 있었던 것이
다. 갑자기 키 작은  노자의 강도가 땅에서부터 후려쳐오자 장무
기는 옆으로 피했다. 그러나 반숙한의 장검이  뻗어 오면서 그의 
대퇴를 찔러오더니 그의 바지통을 가르고 말았다.

 장무기가 손을  돌려서 찍으려 하자, 하태충의  장검은 또 다시 
다가오고, 두 노자의 단도도 아래위로 공격해 왔다. 일시에 장무
기는 막아내기가 힘들었다. 순간  뭔가 생각난 듯 얼른 서화자의 
등 뒤로 미끄러져 갔다.  그러자 반숙한은 따라 붙으면서 일검을 
찔러 왔다. 초수의 악랄함과  경력의 강맹함은 마치 장무기를 죽
여 버려야겠다는 속셈이다. 장무기는 서화자의 등뒤에서 몸을 살
짝 움츠리자 반숙한의 그  일검이 하마터면 제자의 몸을 찌를 뻔
했다. 그러자 서화자는 아이구 하며 비명을 질렀다. 하태충이 왼
쪽에서 공격해 오자 장무기는  다시 서화자의 몸 옆으로 피해 버
렸다.

 그는 일시에  그 정반양의 무공의  요지(要旨)를 찾아내지 못했
다. 파해(破解)의 방법도 생각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서화자
를 방패로 삼아서 이리저리 피하기만 하였다.

 '장무기야, 장무기야, 넌 너무나도 천하 영웅을 과소 평가했다. 
교자필패(驕者必敗)란 말은 오늘부터  분명히 마음 속에 새겨 놓
아야겠다. 비록 세상에서 건곤이위신공보다 더 무서운 무공이 없
고 구양신공보다 더 심후한 내경이 없다 해도, 사람은 항상 겸손
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늘 밖에 하늘 있고 사람 위에 사람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이때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서화자는 마치 인형처럼 꼼짝하지  않고 장무기는 그의 등 뒤에
서 왔다 갔다  하면서 피할 때마다 서화자는  아이구! 아! 으잉! 
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화산파의 키 큰 노자가 소리쳤다.

 "하부인, 당신이 손을 쓰지 않는다면 내가 손을 쓸 것이오!"

 "내가 어찌 당신을 간섭하겠소."

 키가 큰 노자는 칼을 휘두르면서 서화자의 허리 쪽을 후려쳤다.

 순간 그는 속으로 큰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일도가 만약에 서
화자를 베게 되면 자기에게는  병기를 막아 줄 방패가 없어지고, 
또 서화자의 죽음 때문에 다시 분란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래서 
왼손의 소매자락으로 한  줄기 경풍을 불출(拂出)하면서 키가 큰 
노자의 일도를 막아냈다.

 키 작은 노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단도를 그의 목덜미를 
향해서 옆으로 후려쳤다. 장무기는 오른쪽으로 몸을 피했지만 노
자의 일도는 방향을 바꾸지  않고 서화자의 어깨로  후려쳐왔다. 
마치 자세를 거두어 들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의 몸을 베일 
것 같이 입으로는 <서화도형, 조심하시오>라고 하며 다가왔다.

 장무기는 몸을 돌려서  노자의 가슴에다 일장을 후려쳤다. 그러
자 노자는 숨을 잠깐 멈추더니 좌장을 밀어내면서 수중의 단도는 
여전히 서화자를 향해서 후려쳐갔다. 쌍장이 맞닿는 순간 노자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게 되고,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
다.

 서화자는 장무기가 두 번씩이나  출수하여 자기를 보호해 준 것
에 대해서는 몹시 고마워했다.

 '오늘 만약에 생명을 보존하게 되면 화산파의 두 늙은 도적놈을 
절대로 그냥 두지 않았다.'

 하태충, 반숙한 부부는 장무기가 서화자를 보호해 주는 걸 보면
서도 구도지덕(救徒之德)에 고마워하지 않고 도리어 검초가 갈수
록 더욱 예리하고 악랄해졌다.

 키가 크고 작은 두 노자의 출도(出刀)도 더욱 빨라졌다. 그들은 
장무기까지 다치게 한다는 건 그리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서화자를 공격하게  되면 그의 신법에서 빈틈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되자 강도 두 자루는 오히려 
서화자의 몸을 공격하는 횟수가 더 많아진 것이다.

 소림, 무당, 아미 각파의 고수들이 이러한 광경을 보게 되자 내
심 창피한 마음이 들어서 고개를 떨구었다. 만약 그들 네 사람이 
장무기를 죽이기라도 하게  되면 자기네들도 죄책감을 느끼게 된
다는 것이다.

 장무기는 갈수록 전세가 불리하다는 걸 느꼈다. 

 '내가 그들에게  패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게  되는 건 무방하
나, 구태여 이 도인까지 다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생각을 하자 즉시 일장을 후려쳐서 키 큰 노자를 접근하
지 못하게 한 다음,  오른손에 있는 매화가지로 서화자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바로 이때 키 작은  노자의 일도가 다시 서화자의 하반(下盤)으
로 공격해 왔다.  장무기는 발을 날려서 그의  손목을 차려 하자 
노자는 얼른 손을 뒤로  끌어들였다. 뜻밖에 서화자의 혈도가 풀
려 있어서 갑자기 퍽  하고 일권을 노자의 콧잔등에 정통으로 가
격했다. 순간 선혈이 낭자했다. 키 작은 노자의 무공은 서화자보
다 한 수 위였지만 그가 그토록 오래동안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
가 갑자기 움직이는 바람에  피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군중들
은 그러한 광경을 보게 되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반숙한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서화자, 어서 물러나라!"

 "네! 저 키 큰 도적놈이 아직도 나에게 일권을 빚진 게 있소!"

 서화자는 출권하여 키 큰 노자를 후려치자 키 작은 노자는 좌권
으로 뒤를 공격하고 일도로 허식(虛式)을 보이더니 팍 하고 소리
를 내며 왼팔의 팔꿈치로 그의 흉구를 호되게 가격했다. 이 연환
삼식(連環三式)이 바로  화산파의 절기다. 서화자는  몸을 몇 번 
휘청거리더니 선혈을 한 모금 토해 냈다.

 하태충의 좌장이 그의 허리 뒤를 받쳐주면서 장력을 토해 내자, 
그의 비대한 체구가 선 채로  수 장 밖으로 보내졌다. 그런 다음 
키 작은 노자에게 말했다.

 "멋진 화악삼신봉(華악三神峯)이었소!"

 수중의 장검은  칙 하고 소리를 내며  장무기에게 공격해 갔다. 
크고 작은 두 노자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해서 
장무기에게만 공격해 갔다. 막상 서화자란 장애물이 없어지자 네 
사람의 도법과 검법의 배합이 더욱 빈틈이 없어지면서 마치 팔이 
여덟 개 달리고 다리도 여덟 개 달린 고수를 방불케 했다.

 화산, 곤륜 양파의  정반양의도검술을 중국 고유의 하도낙서(河
圖洛書)와  복희문왕(伏羲文王)의 팔괘방위에서  얻어낸 것이다. 
그 오묘함과 정철(精撤)한  곳을 극치에 도달토록 깊이 연구하게 
되면 서역의 건곤이위심법보다도 더 위력이 막강하다. 그러나 하
태충 부부와 크고 작은 두 노자는 이,삼 성(成) 정도밖에 터득하
지 못했다. 설사 장무기에게 심후한 내력이 있다 해도 그들이 만
약에 그 무공의 극치에 도달했더라면 벌써 그들의 도검에 죽었을 
것이다.

 장무기는 자기의 경공을 전개하면 포위망을 빠져나오는 것은 그
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자기가 도망가게 
되면 명교의 일은 더 이상  간섭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당분간은 수비태세를 강화하여  상대방을 지치게 만든 다음 다시 
기회를 포착하여 공격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방 네 사
람은 모두  내력이 심후한 사람들이었다.  장무기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억지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하태충 등은 비록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만 네 사람의 마음은 
모두 착잡했다. 그들의 신분으로 더구나 네 사람이 연수(聯手)하
였는데 삼백여  합(合)이 지났는데도  아직 장무기를 굴복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창피한 일이었다.

 이때 방관하고 있는  각파의 장노명숙(長老名宿)들은 손짓을 해
가며 자기파의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 제 4 권 5 장 끝 -----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4 권


     제 6 장  광명정(光明停)의 환난(患難) 


 아미파의 장문인 멸절사태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비록 저 소년의 무공이 몹시 괴이하지만 곤륜, 화산 네 사람의
초수에 이미 그의 수족은 묶여 버리는 형편이 되었다. 서역의 무
공이 제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중원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함을 따
를 수 없는  것이다. 양의(兩儀)는 사상(四象)으로 변하게 되고,
사상은 다시 팔괘로  변한다. 정변(正變)은 팔 팔  육십 사 초의
배가 되므로 모두  사천 구십 여섯 가지로  변하게 된다. 그러니
천하무공의 변화도 거의 그 안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지약은 장무기의 일거일동을 처음부터 관심있게 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미파 문하에  있으면서 멸절사태의 총애를 받고 있어서
이미 그녀에게 역경원리(易經原理)의 심전(心傳)을 받았다.

 이때 낭랑한 소리로 물어 보았다.

 "사부님, 정반양의 초수가  아무리 많아도 태극(太極)이 음양양
의의 원리로 변한 것이 아닙니까? 제자가 보기에 네 분 선배님의
초수가 과연 정묘합니다. 그  중에서도 발밑에 딛고 있는 보법의
방위(方位)가 제일 무서운 것 같습니다.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단전의  기(氣)로 천천히 토해
낸 것이어서 소리가 몹시 컸다.

 장무기는 비록 그들과 역전(力戰)하고 있으나 그녀가 하는 말들
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순간 그는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뭣 때문에  이토록 큰 소리로 말을  하고 있을까? 아마
날 지적해 주려는 속셈일 거다.'

 멸절사태가 말했다.

 "선배 무공의 핵심을 파악하다니, 너의 안력도 대단하구나!"

 주지약은 혼자 중얼거렸다.

 "양(陽)은  태양(太陽), 소음(小陰)으로 나누어지고,  음(陰)은
소양(小陽), 태음(太陰)으로 나누어진다.  그 네 가지를 사상(四
象)이라 한다.  태양은 건열(乾悅)이고,  태음은 간곤(艮坤)이고
소양은 손감(巽坎)이고, 태음은 간곤(艮坤)이다. 건남(乾南), 곤
북(坤北), 이동(離東),  감서(坎西), 진동북(震東北), 열동남(열
東南),  손서남(巽西南), 간서북(艮西北),  진에서  건까지가 순
(順)이고, 손(巽)에서 곤까지가 역(逆)이다."

 "사부님, 곤륜파의  정양의검법은 진위(震位)부터 손위(巽位)까
지가 순(順)이고,  화산파의 반양의도법은  손위(巽位)부터 곤위
(坤位)까지가 역(逆)입니다. 그렇죠?"

 멸절사태는 제자가 지적해 낸 걸 듣자 내심 몹시 기뻐했다.

 "넌 내가 평소에 가르친 보람이 있구나."

 멸절사태는 기뻐한  나머지 주지약의 말소리가  너무 컸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주지약은  많은 사람의 눈빛이 자기에게로 집
중되는 걸  보자 일부러 박수치고 소리를  지르며 몹시 좋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장무기는 팔괘방위(八卦方位)란  학문을 어려서  부친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막상  주지약이 사상순역(四象順逆)에 대해서 말을
하자, 그제서야 하씨 부부와 두 노자의 보법 초수를 살펴보니 과
연 사상, 팔괘에서 변화시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자기의 건곤이
위심법이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장무기가 여지껏 버티
고 있는 것은  그가 서역 무공을 최고  경지까지 수련한 것이고,
하씨 부부와 두 노자의 중토 무공이 아직 미숙하기 때문이다. 순
간 그의 머리가 번쩍하더니 칠, 팔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
러나 일시에 사용하기를 망설였다.

 '만약에 내가 지금  전개하게 되면 멸절사태가 주낭자를 나무랄
것이다. 그 노사태의  심성이 악독하여 무슨 일이든  능히 할 수
있는 위인이다. 그렇게 되면 주낭자가 다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자 그는 초식을 바꾸지 않고 네 사람의 초수를 눈여겨 관찰
했다.

 주지약은 그가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매우 초조했다.
더구나 하씨 부부의 공격이 더욱 그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그
녀는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사부님, 제자인 제가 보기에는 철금선생님의 다음 위치는 귀매
(歸妹) 위를 차지할 것 같은데 어찌 보시는지요?"

 멸절사태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반숙한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호
통쳤다.

 "아미파의 꼬마  아가씨! 저 녀석이 너의  무슨 사람이냐? 우리
곤륜파를 그렇게 호락호락 넘볼 수 없는 것을 모르느냐?"

 주지약은 그녀가 자기의 속셈을  알아채는 걸 알자 그만 얼굴이
홍당무처럼 됐다.

 "지약아, 더 이상 물어  보지 마라. 그들 곤륜파는 아무나 넘볼
수 없다는 걸 못 들었느냐?"

 멸절사태의 말은 자기의 제자를 감싸주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자 장무기는 큰 소리로 웃어대며 말했다.

 "나는 아미파의  수하폐장이고, 멸절사태의 포로가  된 적이 있
소. 그러니 아미파가 그대의 곤륜파보다는 훨씬 고명하오."

 그러면서 왼쪽으로 두 걸음  내딛더니 오른손에 있는 매화로 한
줄기 경풍을 일으켰다.  그 경풍은 바로 키  작은 노자의 후심을
덮쳐갔다.

 장무기의 이 일초는  바로 건곤이위심법을 사용한 것이다. 방위
와 시각이 안성맞춤이었다.  키 작은 노자의 몸이  말을 듣지 않
고, 강도는 반숙한의 어깨로 후려쳐 갔다. 그러나 반숙한은 얼른
검을 돌려서 막아냈다.  훅 하고 소리가 나더니  이번에는 키 큰
노자의 강도가 다시 공격해 왔다.

 하태충은 급히 달려가서 검을  쳐들고 키 큰 노자의 만도(彎刀)
를 막아냈다. 장무기는  다시 장풍을 보내서 키  작은 노자의 칼
끝이 하태충의 하복부를 찌르게끔 유도했다. 반숙한은 몹시 화가
났다. 순간 휙휙 삼 검을  연거푸 공격해서 키 작은 노자의 접근
을 막았다. 그러자 키 작은 노자가 소리쳤다.

 "저 녀석의 술수에 넘어가지 마라!"

 하태충은 금방 알아챘다. 장검을 되돌려서 그에게 공격했다. 장
무기는 다시  건곤이위심법을 전개하자  하태충의 검은 도중에서
방향을 바꾸었다. 순간 푹 하고  소리가 나면서 키 큰 노자의 왼
팔이 적중됐다. 그러자 키 큰 노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칼을 쳐들
고 하태충의 머리를 후려쳤다. 키 작은 노자는 칼을 막아 내면서
호통치며 말했다.

 "사제, 덤비지 마라. 모두 저 녀석의 술수다. 아이구....."

 바로 이때 장무기는 다시 반숙한의 검초 방향을 바꿔놓자 키 작
은 노자의 어깨 뒤를 적중한 것이다.

 삽시간에 화산 이로는 선후로 검을 맞고 부상을 입자, 방관하는
사람들은 모두 우왕좌왕했다. 비록 그들도 장무기가 중간에서 네
사람의 검법과 도법의  방향을 바꿔 놓은 줄  알고 있지만, 그가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오직 양소가 전에 건곤이
위심법의 초보적인 것을 배운  것이 있어서 대강 눈치를 챘지만,
저 소년이 그러한 신공을 터득했다는 것은 절대로 믿어지지가 않
았다.

 순간 장중에서는 부부끼리가  싸우고 동문끼리가 싸우는 양상이
되었다. 그러자 반숙한이 소리를 쳤다.

 "전기망(轉기妄), 진몽위(進蒙位), 창명이(창明夷)!....."

 그러나 건곤이위심법 무공이  사면팔방에서 감싸고 있기에 그들
이 아무리  방위를 변환시키고 몸부림쳐 봐도  막상 도검을 쓰게
되면자기도 모르게 자기편의 몸쪽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키 큰 노자가 소리쳤다.

 "사형, 출수할 때 좀 살살 할 수 없소?"

 "난 저 소적(小賊)을 치려는 것이지 너를 공격하는 게 아니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손에 있는
강도가 비스듬하게 키 작은 노자의 허리쪽으로 후려쳐 갔다.

 하태충이 말했다.

 "부인, 저 소적이....."

 탱 하는 소리가 나더니 반숙한은 손에 들고 있는 장검을 땅바닥
에다 던져 버렸다.  키 작은 노자가 생각해  보니 그녀의 행동이
맞는 것 같았다. 만약에  권장으로 상대하게 되면 장무기가 그런
사법(邪法)을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자 그도 따라서 단
도를 버리고  출권하여 장무기의 흉구를  향해 후려쳤다. 그런데
획 하고 소리가 나더니 하태충의 장검이 얼굴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키 작은 노자의  수중에는 병기가 없어졌기에 얼른 고개
를 숙여서 피할 수밖에 없었다.

 반숙한이 소리쳤다.

 "병기를 버려라!"

 그러자 하태충은 힘껏 던져 장검을 멀리 보냈다.

 키 큰 노자도 따라서 칼을 놓고 금나수로 장무기의 뒷덜미를 잡
으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손아귀에 뭔가  쥐어지는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이고 보니 자기의 강도를 다시 쥐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장무기가 주워서 다시  그의 수중에 쥐어 준  것이다. 그러자 키
큰 노자가 말했다.

 "난 병기를 안 쓴다!"

 그러면서 힘껏  던져 버렸다. 장무기는 몸을  옆으로 해서 그의
강도를 잡더니 다시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몇 번씩이나 되풀이
해봐도 키 큰 노자의 병기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
자 자신도 이상한지 그만 큰 소리로 웃어버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네 녀석이 마법을 쓰는 거냐?"

 이때 키 작은 노자와 하씨 부부는 권각(拳脚)을 함께 써가며 장
무기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화산, 곤륜의 권장지학(拳掌之學)도
병기만큼 위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장무기는 마치 미끄러운 물고
기처럼 요리저리 피해다니면서  이따금 일초 반식을 반격하면 세
사람 모두 쩔쩔매었다.

 이쯤되자, 승패는 판가름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네 사람의 무
공으로는 장무기를 도저히 당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키 큰 노자
가 갑자기 소리쳤다.

 "네 이놈, 암기다!"

 기침을 한 번  하더니 짙은 가래 한  모금을 장무기에게 뱉어냈
다. 장무기는 옆으로 물러나서 피하자  키 큰 노자는 얼른 등 뒤
로 강도를 던지더니 웃으며 말했다.

 "네가 또..... 아유..... 안돼....."

 순간 장무기는 좌장을 반인(反引)하여 반숙한을 자기 앞으로 데
려오자. 키 큰 노자의 가래침이 그녀의 양미간에 적중한 것이다.

 반숙한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순간 열 손가락을 빳빳하
게 세워서 장무기에게 공격했다. 키 작은 노자는 마침 그의 퇴로
를 막고 있으니 키 큰 노자와 하태충은 기회가 왔다 하고는 동시
에 덮쳐갔다. 그러자  장무기는 양손으로 동시에 건곤이위심법을
전개했다. 순간 그는 몸을  솟구치더니 공중에서 살짝 회전한 후
에 일 장 밖으로 날아가서 착지했다.

 그러자 하태충은 자기 부인의  허리를 안고 있고 반숙한은 남편
의 어깨를 잡고 있고, 키가 크고 작은 두 노자는 서로 힘껏 부둥
켜 안으면서 네 사람  모두 땅바닥에 넘어졌다.하씨 부부는 잘못
된 것을 알고 얼른 손을 놓고 일어섰다. 큰 노자가 외쳤다.

 "잡았다. 이번에 어디로 도망가겠냐? 아이구, 아니다....."

 키 작은 노자가 화를 내며 말했다.

 "빨리 놓아라!"

 "먼저 손을 놓지 않는데 제가 어떻게 손을 놓겠습니까?"

 "한 마디라도 덜 할 수 없느냐?"

 "한 마디 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키 작은 노자가 두 팔을 풀고 무서운 소리로 말했다.

 "일어나거라!"

 키 큰 노자는 사형이 몹시 무서운 눈치였다. 얼른 손을 놓고 같
이 일어났다.

 키 큰 노자가 다시 소리치며 말했다.

 "네 녀석은 무예를 겨루지  않고 사법(邪法)만 쓰고 있는데, 그
건 어느 문파의 영웅적인 행실이냐?"

 키 작은 노자는 장무기를 더  이상 물고 늘어져 봤자 창피만 당
할 것임을 알고는 포권을 하면서 말했다.

 "각하의 개세신공(蓋世神功)은 이몸이  평생 처음 보는 것이니,
화산파는 패배를 인정하겠소."

 장무기는 답례를 하면서 말했다.

 "후배가 요행으로 이긴 것이니 선배님들은 너무 마음에 두지 마
시오."

 키 큰 노자가 즐거워하며 말했다.

 "그렇지, 너도 요행으로 이겼는 줄 아는구나."

 "두  분의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나중에  만나게  되더라
도....."

 "내 사형은 위진....."

 "닥쳐라!"

 키 작은 노자는 사제에게 호통치더니 장무기에게 말했다.

 "패군지장은 몹시 창피한 일인데 이름은 알아서 뭐 하겠소?"

 말을 하면서 화산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승패란 병가지상사라, 난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키 큰 노자는 웃으며 말을 하고는 땅에 있는 두 자루 강도를 줏
어 들고서 느린 걸음으로 돌아갔다.

 장무기는 선우통에게  다가가서 그의 혈도를  두 군데 찍으면서
말했다.

 "여기 일이 마무리 짓게 되면 당신의 독을 치료해 주겠소. 우선
독기가 심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오."

 바로 이때 갑자기 등 뒤에서  찬 바람이 몸을 기습해 오면서 약
간 통증을 느꼈다. 장무기는  깜짝 놀랬다. 순간 그는 발끝에 힘
을 가해서 몸을 솟구치게  하더니 옆으로 날아서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푹푹 두 번 소리가  나면서 윽! 하는 소리가 따라서 나더
니 긴 비명 소리가 났다. 그가 공중에서 고개를 돌려보니 하태충
과 반숙한의 장검 두  자루가 나란히 선우통의 흉구에 꽂혀 있었
다.

 그들 부부는 장무기가 선우통의  혈도를 찍고 있는 걸 보자, 서
로 눈치가  오고 가더니 갑자기 <무성무색>  일초를 써서 동시에
그의 등 뒤를 공격한 것이다.

 이 무성무색 초식은 곤륜파 검학 중의 절초(絶招)였다. 필히 두
사람이 같이 사용해야 하고  내경도 비슷해야 된다. 그래야만 검
초가 나갈 때 두 자루 장검에 발생하는 탕격지력(탕檄之力) 파공
지성(破空之聲)을 서로 무마시킬 수  있다. 이 검초는 본시 야전
에 사용하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는 상대방이 소리를 듣지 못하
므로 식별하기가 힘든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낮에 등 뒤에서 사
용하게 되면 그 또한 방어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다행히 장무기
에게는 구양신공이 몸을  보호하고 있고 초식을 번개처럼 변화시
켰기 망정이지, 정말 너무나도 아슬아슬 했었다. 그래도 입고 있
던 옷 등에는 긴 칼자국이 두 개나 나 있었다. 하씨 부부는 미처
초식을 거두어 들이지 못하여 화산파의 장문인을 죽이게 된 것이
다.

 장무기가 착지하자 군중들은  몹시 웅성거리고 있었다. 하씨 부
부의 쌍검이 일제히 장무기를 공격했다. 그들의 속셈은 내친김에
아주 죽여 버리려는 것이다.

 장무기는 몇 검을 피하고 나서  뭔가 생각난 듯이 몸을 살짝 구
부리더니 왼손으로 땅에서 한  줌의 흙을 집었다. 한편으로 검초
를 피하고, 또 한편으로는 장심의  땀으로 손에 쥔 흙을 두 개의
작은 환약으로 반죽했다. 하태충이 왼쪽에서 공격해 오고 반숙한
이 오른쪽에서 공격해  오는 걸 보자, 그는  얼른 선우통의 시체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품에서 두 번 뒤적거리는 시늉을
하고 난 다음, 몸을  돌려서 쌍장으로 두 사람에게 가격했다. 이
쌍장은 육, 칠 성(成)의 공력을 사용했기에 하씨 부부는 그만 숨
통이 막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입을 벌려서 숨을 쉴려는 찰나,
장무기는 손을 들어서 두 개의 환약을 두 사람의 입으로 각각 하
나씩 던져 넣었다. 그  환약은 강렬한 힘으로 목구멍으로 돌진해
갔다.

 하씨 부부는 기침을 여러번 해 보았으나 그 환약을 토해지지 못
했다. 막상 선우통의 몸에서  꺼낸 걸 보고는 몹시 놀랐다. 순간
두 사람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아까 선우통이 금잠충독에
중독되어 괴로워하는 참상을 생각하자 반숙한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장무기는 담담하게 말했다.

 "선우장문의 몸에는 랍환(蠟丸)에  싸여 있는 금잠을 키우고 있
고, 두 분께서는 이미  한 알씩 삼키었소. 만약에 급히 토해내서
랍환이 미처 녹지 않았다면 혹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

 이쯤되자 하씨  부부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급해 내력을
운용하여 랍환을 토해내려 했다.  그들 두 사람의 내공이 뛰어나
서 몇 번 위를 누르더니 바로 위 안에 있는 랍환을 토해냈다. 이
때는 이미 위분비물과 범벅이  된 흙으로 변해 있었고, 랍환이란
것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화산파의 그 키가 큰 노자가 다가와서 웃으며 말했다.

 "아하, 이건 금잠의 똥이다. 금잠이 뱃속에 들어가서 똥을 쌌구
나."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나있는 반숙한은 마침 발설할 때가 없는 차
에 잘 됐다.  하며, 손을 되돌려서 무겁게  일장을 후려쳤다. 키
큰 노자는 머리를 숙여서  피한 다음 도망가면서 한 소리로 외쳤
다.

 "곤륜파의 여편네야, 네가 본파의 장문을 살해한 일은 화산파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이니라."

 하씨 부부는 그가 소리치는  걸 듣자 마음이 더욱 심란했다. 비
록 선우통의 인품이 간악해도 화산파의 장문인은 틀림없다. 자기
부부가 실수하여 그를 살해한  것은 이미 무림에도 드문 큰 화를
저지른 것인 줄 알고  있다. 그러나 금잠충독이 뱃속에 들어가서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판에 다른 일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
장에는 장무기 저 녀석만이 독을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기 부
부가 옛날에  그처럼 그를 대해 줬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들
생명을 구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장무기는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소. 비록 금잠이 뱃속에 들
어갔어도 독성이 발작하려면 여섯  시간이나 더 있어야 하오. 그
러니 여기 일이 끝나는 대로 후배가 꼭 방법을 찾아서 구해 주겠
소. 단지 하부인께서는 다시는  저에게 독주를 억지로 마시게 하
면 안 됩니다."

 하씨 부부는 몹시 기뻐했다. 그러나 고맙다는 말은 차마 하지를
못하고 조용히 물러나기만 했다.

 장무기가 말했다.

 "두 분께서는 공동파에게서  오동흑석단 네 알을 얻어 복용하시
오. 그래야만 독성이 심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가 있소."

 하태충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정말 고맙소."

 즉시 큰 제자를 보내서  공동파에게 단약(丹藥)을 얻어 와서 복
용했다. 장무기는 속으로  몹시 우스웠다. 그 옥동흑석단은 해독
하는 약물임엔 틀림없지만, 복용하게 되면 두 시간 동안 배가 뒤
틀리면서 고통이 온다.  잠시 기다리자  하씨부부는 즉시 복통이
시작됐다. 그들은 금잠충독이 발작한 줄만 알지 장무기의 속임수
에 넘어간 줄은 몰랐다.

 이때 다른 쪽에서 멸절사태가 송원교에게 소리치며 말했다.

 "송대협, 육대파  중에 귀파와 우리만 남았소.  더구나 이 몸은
여자의 몸이니 송대협의 책임이 막중하오."

 "난 이미 은교주와 겨루어  봤지만 그를 이기지 못했소. 사태의
검법이 신통해서 필시 저 후배를 제압할 것이오."

 멸절사태는 냉소를 한 번 날리더니 등에서 의천검(倚天劍)을 뽑
아들고 느린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무당파의 이협(二俠) 유연주는 장무기의 동태를 계속 눈여겨 보
고 있었다. 그의 무공이 이상한 점에 대해서 자신은 몹시 경이하
게 느끼고 있었다. 이때 그는 잠시 생각을 굴렸다.

 '멸절사태의 검법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곤륜, 화산의 사대고
수가 연수한 임에는 미치지  못한다. 만약에 그녀가 이번에도 패
하게 된다면 육대문파는 모두  그에게 패하는 것이다. 더구나 무
당파에서도 그를 제압할 힘이 없다. 그러니 내가 우선 그의 허실
(虛實)을 좀 시험해 봐야겠다!'

 그는 즉시 빠른 걸음으로 장중에 들어 가면서 말했다.

 "사태, 우리 형제  다섯 사람이 먼저 저  소년과 무공을 겨루게
해 주겠소? 우리가 그의  공력을 소모시켜 버리면 최후의 일전은
사태가 꼭 승리할 것이오."

 멸절사태는 그의 저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네
아미파가 무당파의 도움으로  저 소년에게 이기게 되더라도 그건
영광스런 일이 아니다. 아미파가  어찌 그런 비겁한 수단으로 후
생소배(後生小背)를 상대해서 무공을 겨루겠는가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교만한 성품이라 항상 안하무인격이었다. 더구나 장무기
가 전에 그녀에게 손쉽게 잡힌 적도 있지 않은가! 그러자 옷소매
를 한 번 흔들더니 말했다.

 "유이협은 돌아가시오. 이몸의  의천검이 출수하게 되면 절대로
그냥 검집에 꽂을 수 없소!"

 유연주는 그녀의 말을 듣자 하는 수 없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알겠소."

 그리고 물러갔다.  멸절사태는 검을 쳐들고 그의 앞으로 다가갔
다. 장반(場畔)이 있던 교중(敎衆)이  그녀가 나오는 걸 보자 모
두 눈을 부릅뜨고 큰  소리로 야유를 보냈다. 그러자 멸절사태는
냉소를 날리며 말했다.

 "웬 소란이야? 내 저  녀석을 요리한 다음에 너희들을 하나하나
씩 처치하겠다. 빨리 죽지 못해서 환장을 했구나!"

 은천정은 그녀의 의천검이  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명교
의 많은 고수가 일합(一合)도 견디지 못하고 병기가 절단되어 그
녀의 검에 죽어 갔었다.

 "증소협, 그대는 무슨 병기를 사용하겠소?"

 은천정이 장무기에게 물었다.

 "나는 병기가  없소. 그러니 어떻게  그녀의 보검을 상대했으면
좋겠소?"

 의천검은 아무리 단단한 물건도 자를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
했었다. 막상 생각하니  온몸이 섬찟했다. 그러나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은천정이 신변에 있는 봇짐에서 장검 한 자루를 꺼내며 말했다.

 "이 백홍검(白虹劍)을 그대에게 주겠소. 이 검은 의천검보다 유
명하지는 않아도 강호에서는 보기드문 병기라 할 수 있소."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검을 한  번 튕기자, 그 검은 갑자기 구부
러지더니 바로 똑바로 펴지면서  윙윙..... 하고 맑은 소리를 내
며 울었다. 장무기는 아주 공손하게 받아 들고 나서 말했다.

 "노인장, 정말 감사합니다."

 "이 검은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소.  그러나 근래 십 여 년 동
안은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소. 오늘 만약에 그 검이 저 도적같
은 늙은 비구니의 목에 있는 선혈을 마시는 걸 보게 되면 노부는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장무기는 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난 절대로 사태를 다치게 할 수 없다!'

 하고 생각하며 백홍검을 집어들었다. 몸을 뒤로 돌려서 몇 발자
국 다가갔다. 검 끝은 아래를 항하게 하고 양손으로 검을 쥐면서
멸절사태에게 말했다.

 "후배의 검법은 너무나  평범하여 절대로 사태님의 적수가 아닙
니다. 선배님은 명교의 예금기  아래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살려
주셨으니 저에게도 선심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멸절사태는 긴 눈썹을 밑으로 떨구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예금기의 도적놈들은 네가  구해준 것이다. 멸절사태는 절대로
용서해 주는 법이 없다! 네가  내 수중에 있는 장검을 이기게 되
면 그 때 가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명교의 예금, 거목, 홍수,  열화, 후토, 오행기에 있는 교중(敎
衆)은 모두들 야유를 보내며 소리쳤다.

 "도적같은 늙은 비구니야!  재주가 있으면 육장(肉掌)으로 증소
협과 상대해라."

 "너의 검법은 형편없다. 모두가 그 보검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이
다."

 "증소협의 검법은 너보다 고명하다. 내가 보통 장검으로 증소협
의 삼초를 막아낸다면 너의 아미파가 고명하다고 인정하겠다."

 "삼초라니? 아마 일초 반식도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멸절사태의 얼굴은 표정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에게 야유를 보
내는 말을 듣고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진초(進招)하라!"

 그러나 장무기는 검법을 수련한 적이 없었다. 이때 갑자기 진초
란 말을 듣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까 하태충의 양의검법 초수
가 몹시 정묘하다고 생각되자 그걸 흉내내서 옆으로 일검을 찔러
보았다.

 멸절사태는 이상하다며 말했다.

 "화산파의 초벽단운(초璧斷雲)이 아니냐?!"

 의천검을 살짝 옆으로 비스듬히 세우더니 상대방의 초수를 막아
내지 않고 검  끝을 똑바로 그의 단전에  있는 급소를 찔러갔다.
출수의 악랄함은 마치 도적 무리의 행실 같았다.

 장무기는 깜짝 놀랐다.  순간 걸음을 미끄러뜨려 피했으나 갑자
기 멸절사태의 장검이 번뜩거리더니 검 끝은 인후를 가리키는 것
이다. 장무기는 몹시 놀랐다.  얼른 땅에 엎드리면서 한 번 뒹굴
더니 막  일어나려는 찰나 갑자기 뒷덜미에  섬 한 기분이 들었
다. 그래서 오른쪽 발 끝에  힘을 가하여 몸을 비스듬히 해서 날
아갔다. 그는 절대로 불가능한 상태에서 목숨을 건진 것이다. 방
관하는 사람들이 갈채를 보내려 하자, 멸절사태는 몸을 솟구치더
니 궁중에서 검을 들어올리며  위로 찔러갔다. 그가 미처 착지하
기도 전에 검공은 이미 그의  몸둘레 수 치 밖을 봉쇄했다. 장무
기의 몸이 공중에 있기 때문에 피할 방도가 없었다. 만약에 몸이
밑으로 한  치 정도만 내려가도 멸절사태의  보검에 즉시 양발이
잘릴 것이다. 만약에 세 치  정도 밑으로 내려가게 되면 그 때는
허리가 잘려서 두 동강이 나게 될 것이다.

 순간 그는 최고의 위기에  놓였다. 그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장검을 뻗어서 백홍검의 검  끝을 의천검의 검 끝에 포개놓았다.
그러자 백홍검이 구부러지더니 툭 하고 살짝 소리 나면서 검신이
튕겨졌다. 그는 그 탄력을 이용해서 다시 높이 솟구쳤다.

 멸절사태는 얼른 따라가서  휙휙 하며 삼검을 연거푸 공격했다.
제 삼검이 공격될 때는  장무기는 몸이 다시 밑으로 내려와서 하
는 수 없이 검을 휘둘러서 막아야 했다. 순간 팅 하고 소리가 나
더니 수중의 백홍검이 반 토막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우장을 후려치면서  비스듬히 멸절사태의 정수리를 공격했
다. 그러자 멸절사태는 검을   휘둘러서 그의 손목을 치려 했다.
장무기는 손가락을 내밀어서 검신을 한 번 튕기더니 몸을 반대로
날려서 나갔다.  그러자 멸절사태의 팔이  마비되는 것 같으면서
손아귀가 몹시  아팠다. 하마터면 장검을 놓칠  뻔 했다. 그녀는
몹시 경악했다. 장무기를 보니,  그는 이 장 밖에 떨어져 있으며
반 토막의 단검을 쥐고 멍하니 서 있었다.

 이 몇 번의 공방전은  정말 전광석화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멸절사태는 연거푸  여덟 번 쾌초(快招)로  공격하며, 매 초마다
치명적인 악랄한 독수였다.  장무기는 열세에도 불구하고 구사일
생으로 살아났다. 공격하는 것도 정묘무쌍했지만 피하는 것도 너
무나 놀라왔다. 이 눈깜짝 할 시이에 사람들의 심장이 모두 가슴
밖으로 뛰어 나올 것만  같았다. 도저히 인간의 능력이라고는 믿
어지지가 않았다.

 한참 지난 후 그제서야 하늘을 찌르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멸절사태가 말했다.

 "병기를 바꾼 다음에 다시 겨루자."

 그러자 장무기는 수중의 단검을 쳐다보며 잠시 생각했다.

 '외할아버지가 나에게 준 보검인데, 내가 못쓰게 만들어 버렸으
니 그 노인장에게는 정말 면목 없구나. 이 보검도 막아내지 못하
는데 또 무슨 보검이 의천검의 일격을 막을 수 있을까?'

 잠시 망설이고 있을 때 주전(周顚)이 큰 소리로 외쳤다.

 "나에게 보도  한 자루가 있으니 이걸로  저 늙은이하고 겨루어
봐라. 자 가져가라."

 "의천검이 너무나 예리하기에  선배님의 보도도 못쓰게 될지 모
릅니다."

 "못쓰게 되면  그만이다. 네가 그녀에게  패하게 되면 우리들의
생명도 그만인데 보도가 무슨 필요 있겠냐?"

 장무기가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옳은 것 같았다. 그러자 다가가
서 보도를 받아 들었다.

 양소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장공자, 그대는 필히 속공을 가해야 하오. 다시는 얻어 맞아서
는 아니 되오."

 장무기는 그가 자기를 <장공자>라고  부르는 것을 듣자 약간 놀
라와했다. 그러나 즉시  알아차렸다. 양불회가 이미 자기를 알아
보았기에 자연히 그녀의 아버지에게 얘기했던 것이다.

 "선배님의 가르침, 명심하겠습니다!"

 위일소도 작은 소리로 말했다.

 "경공을 전개할 때 반 발자국도 주춤해서는 아니 되오."

 그러자 장무기는 몹시 기뻐하며 다시 말했다.

 "선배님의 가르침, 정말 감사합니다!"

 광명사자 양소와 청익복왕 위일소 두 사람의 무공은 멸절사태와
한판을 겨루어도 만만찮은 적수들이지만 애석하게도 원진의 공격
을 당했다. 중상을 입은 후 몸에 지닌 무공은 전혀 전개할 수 없
었었다. 그러나 보는 눈이 있기에  두 사람은 각자 한 가지씩 중
요한 관점을 지적해 준 것이다. 이는 바로 멸절사태가 가진 보검
의 쾌초를 대적하는 중요한 공식과 같은 것이다.

 장무기는 몸을 뒤로 돌리면서 말했다.

 "사태님, 후배가 공격하겠소."

 그러더니 경공을  전개하여 마치 연기처럼  멸절사태의 몸 뒤로
돌아갔다. 그녀가 미처 몸을 돌리기도 전에 좌우로 한 번씩 몸을
흔들더니 바로 한 바퀴 돌고 반대로 다시 한 바퀴 돌더니 연거푸
양도(兩刀)를 후려쳤다.

 멸절사태는 검을  눕혀서 막아내고 막  검을 뻗어 출초하려는데
장무기는 이미 어디론지 가 버렸다. 그가 건곤대나이법을 연마하
기 전에도 경공은  멸절사태보다 높았다. 시간이 갈수록 빨랐다.
마치 바람 같기도 하고 번개 같기도 했다. 평소에 경공에 자부심
을 갖고 있는 위일소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는 사방을
돌면서 가까이 다가가서 일검씩 공격했다. 그러나 의천검의 예리
함 때문에 감히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그가 공격을 할
때는 멸절사태는 전혀 반격할  기회가 없었다. 그가 수십 바퀴를
돌자 체내의 구양진기가 발동되어 땅을 딛지 않고 마치 비행하는
것처럼 빨랐다.

 아미파의 제자들은 이러한 광경을 보게 되자 몹시 불안했다. 이
렇게 나가다간 사부님에게 불리할  것 같았다. 그러나 정현이 소
리치며 말했다.

 "오늘은 우리가 마교를 쳐부수려 하는 거지 무공을 겨뤄서 승리
를 따내려는 것이 아니오! 사제, 사매 여러분, 우리가 일제히 다
가가서 저 녀석을 막읍시다.  그가 잔재주를 부리지 못하게 하고
진실한 무공으로 사부님하고 겨루게 합시다!"

 그러면서 검을 쳐들고  다가갔다. 그러자 아미파의 남녀 제자들
도 일제히 몰려갔다. 손에는  병기를 들고 팔면방위를 지키고 있
었다. 주지약은 서남쪽에 서 있었다.

 정민군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사매, 막아 내든가 피해 주든가는 너의 손에 달려있다!"

 그러자 주지약은 화가 치밀면서도 부끄러워했다.

 "뭣 때문에 나에게만 그러는 것이오!"

 바로 이때 장무기는 이미 그들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정민
군이 일검을 찔러 보았으나 장무기가 왼손을 내밀어서 그녀의 장
검을 빼앗아 버리더니 바로 멸절사태에게 던졌다. 그러자 멸절사
태는 검을 휘둘러서 다가오는 검을 두 동강이로 잘라 버렸다. 그
러나 장무기가 던진 힘은  너무나 강경하였다. 비록 감은 부러졌
어도 경력이 울려서 그녀의  손목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주춤하
지 않고 즉시  왼손을 내밀어서 빼앗고, 빼앗은  다음 던져 버렸
다.

 아미파의 제자들 중 이번에 서역에 온 사람들은 모두 파에 있는
고수들이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내밀어서  검을 빼앗으려 해도
전혀 피할 여지가 없었다. 순간  수십 자루의 장검은 흰 빛을 번
뜩거리며 계속 멸절사태에게 날아갔다.

 멸절사태는 얼굴에 싸늘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가오는 검을 일일
이 잘라 버렸다. 나중에는 오른팔이 시큰거렸다. 그러자 검을 바
로 왼손으로 옮겼다. 그녀의  왼손 검솜씨도 오른손에 못지 않았
다. 얼마 후 아미파 제자들은 모두 빈손이었으나 오직 주지약 수
중의 장검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장무기는 아까 그녀가 자기를 도운 것을 보답하는 것이다. 그러
나 이렇게 되고 보니 그녀의 입장만 난처하게 만든 것이다. 순간
주지약은 얼굴을 붉히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러자 정민군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사매, 과연 그는 너를 다르게 대하는구나."

 이때 아미파의 제자들이 비록  장무기를 막고 있어도 그는 하나
도 거북하게 생각지 않고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멸절사태의 급소
를 공격해 갔다.  멸절사태는 이미 반격할 수  없는 국면에 놓여
있어서 몹시 초조해하고 있는 판국에 정민군의 말소리가 귀에 전
해 왔다.

 "넌 사부님께서 저 녀석의  급공을 당하고 있는 걸 보면서도 어
찌 도우려 하지  않느냐? 넌 손에 검을  쥐고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저 녀석이 사부님을 제압하기를 바라는구나?!"

 그러자 멸절사태는 잠시 생각을 굴렸다.

 '뭣 때문에 저  녀석이 지약의 검만 뺏지  않았을까? 혹 둘이서
몰래 내통하는 게  아닐까? 내가 한 번 시험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지약, 넌 감히 기사멸조(欺師滅祖)하려느냐?"

 말이 끝나자 검을 쳐들고 주지약의 가슴으로 찔러갔다.

 주지약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감히 검을 들어올려서 막지 못했
다.

 "사부님, 전....."

 그녀가 '전'이란 말이 떨어지자 멸절사태의 장검은 이미 그녀의
가슴에 다가왔다.

 장무기는 멸절사태가 시험하는 줄  모르고 얼른 몸을 튕겨서 다
가가더니 주지약을 끌어안고 일 장 밖으로 날아갔다.

 멸절사태는 오랫만에 주객의 입장이 뒤바뀌어졌다. 즉시 장검을
쳐들고 그의 후심을 똑바로  찔러갔다. 장무기의 내력이 비록 강
해도 한 번도 제대로  경공을 연마한 적이 없어서 위일소같이 사
람을 안고 가볍게  달릴 수는 없었다. 막상  등 뒤의 바람소리를
듣자 할 수 없이 칼을 돌려서 다가오는 검을 막았다. 순간 탕 하
는 소리가 나더니  수중의 보도가 다시 반  토막이 잘려 나갔다.
멸절사태의 장검이  바로 따라서 공격해  왔다. 그러자 장무기는
손을 되돌려서  운경하여 반 토막  보도를 멸절사태에게 던졌다.
이는 구 성(成)의 공력을 사용했기에 멸절사태는 즉시 숨을 죽이
고 땅에 엎드려 피했다. 반 토막 보도는 그녀의 머리위로 스쳐갔
지만 경풍이 너무나 강했기에  그녀의 얼굴을 몹시 아프게 했다.
장무기는 찬스를 포착하자 주지약을 내려 놓지 않고 즉시 앞으로
다가가서 오른손을 뻗어 일장을 후려쳤다. 멸절사태는 오른쪽 무
릎을 땅에 꿇고 있었기에  검을 쳐들어서 그의 손목을 공격했다.
장무기는 후려치는 자세를  잡는 자세로 변하더니 손을 되돌려서
가볍게 의천검을 빼앗았다.

 이처럼 순식간에  화강위유(化剛爲柔)하는 수법은 건곤이위심법
의 제 칠 층 신공에 속한다. 멸절사태의 무공이 아무리 고강해도
상대방의 강맹한 장력이 몸에  기습해 올 때는 절대로 경연한 금
나수법을 막아내지는 못한다.

 비록 장무기가 승리를 했어도 멸절사태 같은 막강한 적수에게는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치의 방심도 하지 않
고 즉시 의천검을 그녀의 인후에  갖다 댔다. 혹 그녀가 다시 괴
상한 초수를 펼칠까봐 천천히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주지약은 몸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빨리 날 내려 줘라!"

 "아, 네."

 장무기는 얼굴을 붉히면서 얼른 그녀를 내려 놓았다. 비록 그녀
의 표정은 두려운 것처럼 보였으나 눈빛은 좋아하는 듯이 나타났
다.

 멸절사태는 천천히 몸을 똑바로  일으키더니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주지약을 쳐다보고  다시 멸절사태를 쳐다보더니 얼굴색
은 갈수록 시퍼렇게 변했다.

 장무기는 검을 돌려서 검 끝을 잡고 주지약에게 말했다.

 "주낭자, 귀파의 보검이니 당신이 존사에게 돌려주시오."

 주지약은 고개를  돌려 사부를 쳐다보니  그녀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순간 그녀는 잠시 생각을 굴렸다.

 '오늘의 국면은 너무나도 난감했다. 장공자가 그처럼 나에게 대
해 줬으니 사부는 필시 나와  그가 무슨 관계가 있는 줄 알 것이
다. 앞으로 나는 아미파의  버려진 제자가 될 것이다. 이 망망한
대지 위에 나더러 어디로 가란 말인가. 장공자가 나에게 잘 대해
주지만 난 절대로 사문을 배반할 수 없다.'

 갑자기 멸절사태가 무섭게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지약, 일검에 죽여 버려라!"

 주지약은 장삼봉을 따라서  무당산에 갔던 해, 장삼봉은 무당산
에 여자가 없어서 모든 일이 불편하다고 하며, 즉시 추천서를 써
주었다. 그래서 멸절사태의  문하에 투입한 것이다. 그녀는 몹시
영특하고 또 어려서  부모가 비참하게 돌아가신 참변을 당했기에
이를 악물고 무예를 닦았다.  그래서 진보가 몹시 빨랐고 사부의
총애도 듬뿍 받고 있었다.

 지금까지 칠 년이  넘는 세월을 지내면서 사부의 일언일동(一言
一動)을 그녀는 마치 진리처럼 느껴왔다. 마음 속으로 한번도 위
배하고 또 무시한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이때 사부의 갑
작스런 호통소리를 듣자  엉겁결에 의천검을 받아들고 바로 장무
기의 가슴으로 찔러갔다.

 장무기는 그녀가 자기에게 출수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
다. 그래서 전혀  피하려 하지 않았다. 순간  검 끝이 가슴에 와
닿는 걸 느끼자 이미 때는 늦었다. 주지약은 손을 떨면서 생각을
굴렸다.

 '내가 정말 그를 죽이려 하는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손목을 약간 옆으로 하고 장검을 살짝 비
스듬히 해서는 척 하고  가벼운 소리를 내더니, 의천검은 장무기
의 오른쪽 가슴을 관통했다.

 주지약은 비명을 한 마디 지르며 장검을 뽑아내보니 검 끝이 빨
갛게 물들어 있었고, 장무기의  오른쪽 가슴에는 선혈이 마치 샘
솟듯 했다. 순간 사방에서 놀라는 외마디 소리가 크게 일어났다.
장무기는 손을  내밀어 상처 부위를  눌렀다. 몸을 휘청거리면서
얼굴에는 괴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네가 진정으로 날 죽
이려 했느냐 하고 묻는 것 같았다. 그러자 주지약이 말했다.

 "나..... 나....."

 얼른 다가가서 그의 상처를 살펴보고 싶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
러자 그녀는 얼굴을 가리며 뛰어 돌아갔다.

 소조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얼른 다가가서 장무기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당신..... 당신....."

 그러자 장무기는 소조에게 말했다.

 "네..... 네..... 네가 뭣 때문에 날 죽이려 했느냐.....?"

 이 일검은 다행히 살짝 빗나가서 심장을 피해갔다. 그러나 우측
폐엽을 상했다. 그가  몇 마디 말을 하더니  폐에 숨을 들이마실
수 없기에 허리를 굽히고 심한 기침을 했다. 그는 중상을 입어서
소조와 주지약을 분간하지 못했다.  선혈이 너무 많이 흘려서 소
조의 상의를 반이나 빨갛게 물들었다.

 방관하는 군중들은 육대파나, 명교, 천응교 할것없이 일시에 모
두 조용히 지켜 보기만 했다.

 소조는 그를 부축하면서 천천히 앉으며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최고로 좋은 금창약(金創藥)을 갖고 계신 분 있습니까?"

 그러자 소림파의  공성신승이 잽싸게 다가가서  품에 있는 약분
한 봉지를 꺼내면서 말했다.

 "비파의 옥령산(玉靈散)은 상과의 성약이오."

 손을 내밀어서 장무기의 앞가슴  옷을 찢어보자 상처는 무려 몇
치의 깊이에 달했다. 얼른  옥령산을 상처 부위에다 덮었으나 흘
러나오는 선혈에  의해서 약분은 씻기고  말았다. 그러자 공성은
속수무책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태충 부부는 더욱  조급했다. 그들은 금잠충독을 복용한 줄만
알고 있으니 만약에 이  사람이 중상으로 죽게 되면 자기 부부들
은 독을 제거해 줄 사람이  없어서 죽게 되는 줄만 알고 있었다.
그러자 하태충은 얼른 장무기에게 다가가서 급히 물었다.

 "금잠충독은 어떻게  제거하느냐? 빨리  말해라. 빨리 말하라니
깐!"

 소조는 울면서 말했다.

 "비켜 서시오. 뭐가  그렇게 바빠요. 장공자가 살아나지 못하면
모두가 죽게 될 것이오."

 그래도 하태충은 연신 물어보았다.

 그러자 공성이 화를 내며 말했다.

 "철금선생, 그래도 비켜서지 못하겠다면 빈승은 가만 있지 않겠
소!"

 바로 이때 장무기는 눈을 뜨고 약간 정신을 가다듬더니 왼손 식
지로 자기의 상처 주위에 있는  일곱 군데 혈도를 찍자, 즉시 피
가 흐르는  속도가 늦어졌다. 공성은  몹시 기뻐하면서 옥령산을
다시 그의 상처에 붙여 주었다. 소조는 옷자락을 찢어서 그의 상
처를 감싸주었다. 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돼 버리며 전
혀 핏기가 없는 걸 보자,  내심 말할 수 없이 초조하고 두려워했
다.

 장무기의 정신이 약간  돌아왔다. 내식(內息)을 암운(暗運)하여
유전(流轉)시켜보니 오른쪽 가슴에 와서 바로 막히는 것이다.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육대파가 명교 사람을 죽이게 할 수는
없다.'

 오직 이러한 생각을 하고  진기를 왼쪽 흉복간에 몇 번 운전(運
轉)하더니 천천히 일어서며 말했다.

 "아미, 무당 양파에서 만약에 소인의 조처가 부당하다고 생각되
는 분은 나오셔서 저와 겨뤄 보시죠?"

 그가 이같은 말을 하자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 멸절사태가 냉
랭하게 말했다.

 "아미파는 오늘 패배를 인정한다.  만약에 네가 죽지 않으면 나
중에 다시 계산하자,  우리는 무당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구나.
육대파의 승패는 모두 무당파의 손에 달려 있소!"

 육대파가 광명정을 위공(圍攻)해서 공동, 소림, 화산, 곤륜, 아
미 오(五) 파의 고수는 모두 장무기에게 패했지만, 유독 무당 일
파만 아직 그와 겨루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몸에는 중상을
입고 있는 터라 일류 고수는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한 자 몇 명이
달라붙어서 한동안 싱갱이하면 제풀에 지쳐서 죽을지 모른다. 그
러니 무당오협 중에 어느  한 분이 다가가도 전혀 힘들이지 않고
그를 죽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원래의 계획대로 명교를 섬멸할
수 있다.

 그러나 무당파는 예로부터  협의를 매우 중시했다. 그들에게 몸
에 중상을 입은 소년을 상대해서 출수하라 하면 아마 무당오협은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무당파가 출수하지 않는
다면 <육대파위공광명정>이라는 무림의 일대 거사는 너무나 허무
하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육대파는 강호에서 어떻게 얼
굴을 들고 다니겠는가!"

 송원교, 유연주, 장송계, 은이정,  막성곡 다섯 사람은 서로 얼
굴만 쳐다볼 뿐 모두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갑자기 송청서가 말
했다.

 "아버님, 네 분 사숙님, 소자가 그를 요리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유연주가 말했다.

 "안 된다. 우리가 너에게  출수하라고 허락하면 우리가 손수 출
수하는 것과 별다를 게 없다!"

 장송계가 말했다.

 "둘째 형님, 아우가 보기에는  대국이 중요하지 우리 오 형제의
명성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됩니다."

 막성곡이 말했다.

 "명성은 몸 밖에 있는 물건이오. 단지 우리가 중상을 입은 소년
을 상대해야 하니 양심에 미안할 따름이오."

 일시에 의논이 일치되지  않았다. 각자는 송원교의 눈치를 바라
보면서 그의 지시를 받기로 했다.

 송원교는 은이정이 시종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은 분노
해 있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약혼자인 기효부가 명교의 양
소에게 몸을 더럽힌 후  목숨까지 잃은 것이다. 실로 일생일대의
치욕이고 원한이다. 만약에  명교를 섬멸하지 않고 간악음도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의  분노를 어디에다 발설할 것인가. 그러자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교의 잔악무도 하였기에 제악무진(除惡務盡)하여야 하오. 이
거야 말로 우리  협의도(俠義道)의 대절(大節)이오. 명성도 중요
하지만 지금은 큰 일을  택하는 수밖에 없소. 청서, 몸조심 하거
라!"

 "네, 알겠습니다!"

 송청서는 허리를  굽혀서 대답한  다음, 장무기에게 다가가더니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증소협, 만약  그대가 명교의 사람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여길
떠나가서 상처를 요양해도 좋소. 육대파는 오직 마교의 사도들을
섬멸할 뿐 그대와는 무관하오."

 장무기는 왼손으로 상처를 누르며 말했다.

 "송형의 호의는 대단히.....대단히 고맙소. 하지만 이몸은.....
이몸은 명교와 동존공망(同存共亡)하기로 작정했소."

 그러자 명교와 천응교의 사람들은 모두가 외쳐 댔다.

 "증소협, 이쯤 됐으니 그만 두는 게 좋겠소!"

 은천정은 완만한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송가야, 노부가 너의 고초(高招)를 받을 수 있게 해다오."

 그러나 진기를  끌어올리지 못하여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송청서는 장무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증형, 소제는 대국을 위해서 실례를 범하는 수밖에 없겠소."

 소조가 장무기의 몸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나 먼저 죽여라!"

 "소조, 걱정하지 마라. 그는 나를 죽이지 못한다."

 "당신..... 몸에는 상처가 있잖아요?"

 "소조, 당신은 뭣 때문에 이처럼 나에게 잘 대해주는 것이오?"

 "그건..... 그건 당신이 날 잘 대해주기 때문이예요."

 장무기는 그녀를 한참 바라보더니 내심 생각을 굴렸다.

 '설사 내가 지금 죽더라도  진정으로 나를 잘 대해주는 지기(知
己)가 있어서 후회하지는 않겠다.'

 송청서는 소조에게 호통쳤다.

 "물러서라!"

 장무기가 분연히 말했다.

 "그대는 이 낭자에게 너무 거칠고 무례하게 대하는구나!"

 송청서는 소조의 어깨를 밀어서 몇 걸음 밖으로 물러나게 한 다
음 말했다.

 "요녀사남(妖女邪男)들 같으니! 빨리 일어나라!"

 장무기가 말했다.

 "영존 송대협께서는 천하가 인정하는 군자신데, 각하는 몹시 거
칠구료. 당신 같은 인간하고 싸움을 하는데 일어..... 일어설 것
까지는 없겠소."

 사실 그는 내경을 끌어올리지 못해서 일어설 힘이 없는 것이다.
장무기가 중상을  입은 후 허약무력한 상황은  모두가 알고 있었
다. 그러나 유연주가 낭랑한 목청으로 외쳤다.

 "청서야, 그의 혈도를 찍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된다. 구태
여 그의 목숨을 상하게 할 것까지는 없다."

 "알겠습니다!"

 송청서는 대답하고 나서  왼손을 허인(虛引)하더니 오른손을 뻗
어서 장무기의 어깨를 향하여 찍어갔다. 장무기는 꼼짝하지 않았
다.  그의 손가락이 견정혈에 찍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력을 사
인하여 그의 지력을 옆으로 옮겨 버렸다.  그러자 송청서의 인지
는 마치 물  속에 빠진 것처럼 전혀 힘을  가할 곳이 없었다. 너
무 뜻밖에 당한 일이라 몸을 정지하기가 힘들었다.  하마터면 장
무기의 몸을 부딪칠 뻔했다.  순간 몸을 급히 고정시켰으나 그래
도 다소나마 불안정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어서 오른발을 날려 장무기의 가슴을 걷어
찼다. 이 일격은 육, 칠 성의 공력을 사용했다. 비록 유연주가
그 보고 장무기의 목숨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웬지
모르게 그의 마음은 눈앞의 이  소년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
워진 것이다. 아마 이는 주지약에  대한 그의 질투심에서 일어
난 것 같았다.

 송청서는 문무쌍전(文武雙全)하여 무당파 제  삼 대 제자중에
서 제일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의  사람 됨됨이도 의를 편중하
는 외골수였다.  그러나 정(情)이란 걸 부딪치게  되면 감정을
가눌 수가 없었다.

 군중이 보기에는 송청서의 이 일격을 장무기가 피하려면 몸을
튕겨서 피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출장하여 받아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일어서기 조차 힘든 판국에 이 일격은 아
마 그의  목숨을 앗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발 끝이 가슴에 닿으려는 찰나 장무기는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살짝 흔들자 송청서의 오른쪽  다리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더니
그의 몸에서 세  치 거리나 빗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이
일격도 헛치고 만 것이다. 송청서는  이런 자세에서 발을 거둬
들일 수 없어서 바로 앞으로  한 발 내디디면서 뒷꿈치로 장무
기의 배심(背心)을 공격하였다. 이 일초는 너무나 빠르고 악랄
하여 누구라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장무기는 손가락을
다시 살짝 흔들어서 그의 발뒷꿈치 공격을 또 막아냈다.

 삼초가  지나자 방관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다고 생각됐
다. 그러자 송원교가 소리쳤다.

 "청서, 그의 몸은 전혀 경력이  없다. 그건 네 냥으로 천근을
움직이는 방법이다!"

 역시 그의 안목은 대단했다. 그는 장무기가 이미 경력을 전부
상실하였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비록 사용하는 무공이 괴이
하지만 기본 도리는 무학 중에서 차력타력(借力打力)에 불과한
것이다.

 송청서는 부친의  깨우침을 받자 갑자기 초수를  바꿔 쌍장을
살포시 후려치면서 공격했다. 이는 바로 무당절학 중의 하나인
면장(綿掌)이었다. 차력타력은  원래 무당파  무공의 근본이었
다. 그가 사용한 면장은 자신의 경력을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
고 안하는 것도 같아서 상대방은 전혀 힘을 빌릴 수 없었다.

 그러나 장무기는 건곤이위신공을 이미 제  칠 층 경지까지 연
마해서  제아무리 면장이  가볍다 해도  역시 유형유경(有形有
勁)했다. 그는 왼손으로 가슴에 있는 상처를 누르고 오른손 다
섯 손가락은 마치  가야금을 연주하듯 갑자기 튕기고  뜯고 하
며, 상체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삽시간에 송청서의 삼십 육
초 면장 장력을 모두 막아냈다.

 송청서는 내심 몹시 경악했다. 얼핏 고개를 뒤로 돌리자 갑자
기 주지약의  눈빛과 마주쳤다. 그녀가 몹시  염려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자, 그만 가슴에는 시샘과  분노가 엇갈렸다.
그녀가 염려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장무기란 걸 명백히 알고
있었다.

 그러자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왼손으로 일장을 후려쳐서 장
무기의 오른뺨을 맹격했다. 오른손으로는 그의 왼쪽 어깨의 결
분혈을 찍어갔다. 이 일초는  화개병제(花開병帝)라고 하는 것
이다. 이름이야 듣기  좋아도 초수는 몹시 예리했다.  양 손을
거둬들인 다음 바로 우장으로 그의 왼뺨을 후려치고 왼손 식지
로 그의 오른쪽 어깨 뒤에  있는 결분혈을 찍어갔다. 화개병제
양초를 일초로 묶어서 연속 사 식을 공격하기를 마치 광풍폭우
처럼 전개했다. 군중들은 이러한 광경을  보게 되자 일제히 비
명을 지르며 약속한 듯 앞으로 한 발씩 다가갔다.

 순간 팍팍 하고 맑은 소리가 두  번 나더니 송청서의 왼손 일
장은 자기의 왼뺨을 후려치면서 오른손 식지는 자기의 왼쪽 어
깨에 있는 결분혈을 찍었다. 바로  오른손 일장은 자기의 오른
뺨을 후려치고 왼손 식지는 자기의 오른쪽 어깨에 있는 결분혈
을 찍었다. 그의 화개병제 사  식을 장무기는 건곤이위 무공으
로 한꺼번에 그의 몸에다 옮긴 것이다. 비록 그의 왼쪽 어깨에
있는 결분혈은 찍혀도 수족은 아직  마비되지 않았다. 그가 나
중의 화개병제 이 식을 전개한 후 그제서야 수족이 마비되면서
꽝 하는 소리가 나더니 뒤로 넘어졌다. 몇 번 몸부림을 쳐보았
으나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그러자 송원교는 얼른 다가가서 왼손으로  몇 번 주물러서 아
들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그의 양쪽  뺨을 보니 몹시 부어 있
었고 손가락자국 다섯 개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비록 상
처는 깊지 않았으나 아들의 성품으로는 죽는 것보다 더 괴로워
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자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손
을 잡아서 본파로 돌아갔다.

 이때 사방에서는 환호성이 끊임없이 울렸고 말소리가 몹시 소
란스러웠다. 갑자기  장무기는 입을 벌리더니 몇  모금 선혈을
토해 내면서 상처를 누르고 다시  기침을 하였다. 군중들은 그
를 눈여겨 보면서 몹시 염려했다.  한결같이 똑같은 생각을 하
였다.

 '그가 중상을 입은 몸으로  송청서의 급공을 막아내면서 비록
승리는 했으나 내력은 너무나 많이 소모했을 것이다.'

 그러자 어떤 사람은 그를 쳐다보다가 다시 무당파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무당파가 이대로 패배를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으
면 다시 사람을 보내서 겨룰지 모두 다 궁금해 하고 있었다.

 송원교가 말했다.

 "오늘 일에 무당파는 이미 전력을  다했소. 아마 하늘에서 이
괴상한 소년을 보내면서 마인을 섬멸치  못하게 하는 것 같소.
우리가 이대로 물러서지 않으면  명문정파와 마교는 뭐가 다를
게 있겠소!"

 유연주가 말했다.

 "큰형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린 즉시 산으로 돌아가서 사부님
의 가르침을 더 받읍시다. 나중에 무당파가 다시 오게 될 때는
이 소년의 상처도 완쾌될 줄 믿습니다.  그 때 가서 다시 승부
를 가립시다."

 그러자 장송계와 막성곡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소."

 갑자기 획!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은이정이 장검을 뽑아 들었
다. 두 눈에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장무기에게 칼 끝을 들이대
며 말했다.

 "증가야, 난 너와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다. 지금 다시 너를
상하게 하면 나 은이정은 <협의>란 두 글자를 다시는 쓸 수 없
게 된다. 그러나 양소와 나는 바다처럼 깊은 원한이 있어서 나
는 그를 꼭 죽여야 한다. 그러니 물러서라!"

 장무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당신들이 절대로 명교 사람을 죽
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난 너부터 죽여야겠구나."

 그러자 장무기는 선혈을 한 모금  토해 내면서 희미한 소리로
말했다.

 "은육숙(殷六叔), 절 죽여 주세요."

 은이정은 <은육숙>이란 말을 듣자 몹시 귀에 익은 듯했다.

 '무기가 어렸을 때 나에게 자주  이렇게 불렀다. 그렇다면 이
소년.....?'

 자세히 그의  용모를 살펴보니  볼수록 무기와 닮은  것 같았
다. 비록 구 년이나 헤어져  장무기는 어린애에서 건장한 소년
으로 성장해 용모도 매우 달라졌지만,  기억 속의 무기의 용모
가 조금씩 나타났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네가 무기냐?"

 장무기의 몸은 힘이 하나도 없었다. 자기가 죽어가는 것을 알
고 있기에 더 이상 숨기려 들지 않고 소리치며 말했다.

 "은육숙, 정말..... 정말 보고 싶었어요!"

 은이정은 눈물을 흘리며 장검을  떨어뜨렸다. 얼른 그를 안으
며 소리쳤다.

 "네가 바로 무기구나. 네가 우리  다섯째 형님의 아들 장무기
구나!"

 송원교, 유연주, 장송계, 막성곡 네 사람도 일제히 무기를 둘
러싸면서 경악과  기쁨이 엇갈리고 있었다. 순간  기쁜 마음이
충만되어 육대문파와 명교의 일은 모두 잊어 버렸다.

 은이정이 소리치자 하태충 부부, 주지약,  양소 등 몇 사람은
놀라지 않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
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명교를 보호하려는 소년이 무당파 장취
산의 아들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은이정은 장무기가 혼절하는 걸  보자, 얼른 천왕호심단(天王
護心丹)을 한 알 꺼내 그의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를 유연
주에게 안으라 하고 장검을 주워 들고 양소에게 돌진해 가더니
칼 끝으로 그의 목에다 대면서 욕을 했다.

 "양가야, 이 개돼지만도 못한 음도야! 내.....내.....!"

 그러나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순간 장검을 뻗
쳐서 양소의 가슴을 향해 찔러갔다.

 양소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살짝 웃음을 보이더니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렸다. 갑자기 한 소녀가  달려와서 양소의 몸을 막
고 소리쳤다.

 "우리 아버지를 살려 주세요!"

 은이정은 검을 멈추고  그 소녀를 자세히 바라본  순간, 그만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온몸이 싸늘해졌다. 이 소녀의 몸매
며 눈동자는 영락없는 기효부였다. 그가 기효부와 혼인을 약속
한 후부터는 여가가 있을 때마다 항상 기효부의 모습을 회상하
곤 했다. 그러나 그녀가 양소에게  납치돼서 그에게 몸을 버리
고 목숨까지 잃어 버리게 되자 가슴에는 원한으로 사무쳐 있었
다. 갑자기 지금 그녀를 다시 보게 되자 몸이 휘청거렸다.

 은이정은 소리치며 말했다.

 "효부, 당신..... 당신 죽지.....!"

 그 소녀는 양불회였다.

 "전 성이 양입니다. 기효부는  저의 어머님이죠. 어머니는 돌
아가신 지 오래 됐습니다."

 은이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중얼거렸다.

 "아, 맞다. 참 나도 멍청하구나.  넌 물러서라. 오늘 난 너의
어머니의 한을 풀어 줄 것이다."

 그러자 양불회는 멸절사태를 가리키며 말했다.

 "좋습니다. 은육숙, 그렇다면 당신은  저 늙은 비구니를 죽이
세요!"

 은이정이 말했다.

 "뭣..... 뭣 때문이냐?"

 "우리 어머님은 저 늙은  비구니가 일장으로 후려쳐서 죽인거
예요."

 "허튼소리 마라. 너 같은 어린애가 어떻게 아느냐?"

 그러자 양불회는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

 "그날 호접곡에 있을 때, 저 늙은 비구니가 우리 어머님을 시
켜서 우리  아버님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님이  말을 듣지
않자 늙은 비구니는 우리  어머님을 타사(打死)했습니다. 제가
직접 목격했고 장무기 오빠도 목격했습니다. 그래도 믿지 못하
시겠다면, 직접 저 늙은 비구니에게 물어보세요."

 은이정은 멸절사태에게 고개를 돌려  의문스런 표정으로 물었
다.

 "사태, 말해 주시오, 기 낭자는....."

 "그렇소. 그처럼 염치를 모르는 인간을  뭣 때문에 세상에 남
겨 놓겠소. 그녀는 양소와 정을  통하고 그녀는 죽음을 무릅쓰
고 사문을 배반했고, 사부의 명을  거역하면서까지 그 음도 악
적(淫徒惡賊)을 죽이려 하지 않았소.  은육협, 당신의 체면 때
문에 난 도저히 입을 열 수 없었소. 흥, 그러한 여자를 당신은 
뭣 때문에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오?"

 "난 믿을 수 없소, 난 믿을 수 없소!"

 "그렇다면, 당신은 저 여자아이의 이름을 물어 보시오."

 "내 이름은 양불회예요. 어머님께서는 그 일을 영원히 후회하
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탕! 하고  소리가 나더니  은이정은 장검을  떨어뜨리고 말았
다. 순간 그는 몸을 뒤로 돌리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산 
밑으로 질주했다. 그러자 송원교와 유연주는 크게 소리쳤다.

 "여섯째 아우! 여섯째 아우!"

 그러나 은이정은 대답도 하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갑
자기 실족을 하여 한 번  넘어지더니 바로 일어나 눈깜짝할 사
이에 그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와 기효부의 일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 십여 년이 지
난 지금에도 그가 이처럼 상심하는 걸 보자, 모든 사람들의 마
음도 착잡했다.

 이때, 송원교, 유연주, 장송계, 막성곡  네 사람은 각각 사각
에 나누어 앉았다.  각자 일장을 내밀어서 장무기의  가슴, 복
부, 등, 허리 네 곳에  있는 대혈(大穴)을 누르면서 일제히 내
력을 운용하여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사 인의 내력이 장
무기의 체내로 투입되자, 즉시 그의 체내에서 한 줄기 강한 흡
인력이 사 인의 내력을 계속 빨아들였다. 순간 네 사람은 몹시 
놀랬다. 이처럼 빨아들이면 한 두  시간만 지나면 자기들의 내
력은 모두 잃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숨이 걸려 있
는 판국인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는
가! 잠시 후  장무기는 천천히 눈을 뜨고  외마다 소리를 질렀
다. 송원교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그의 장심에  한줄기 아주 
따스한 열력이 전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구양신공이 응화
(應和)를 일으키면서  네 사람의 체내로 내력을 되돌려 보내는 
것이다.

 송원교가 소리쳤다.

 "안 된다. 너 자신을 정양하는게 급하다!"

 네 사람은 급히 철장(撤掌)하며  일어섰다. 그러나 마치 한줄
기 흐르는 물이 온몸을 스치는 것처럼 말할 수 없이 편안한 느
낌이었다. 이는  그가 흡입한  내력을 네 사람에게  돌려 주면
서, 동시에 그의 체내에 있는 구양진기로 네 사람의 내공을 더
욱 강하게 해준 것이다. 송원교 등  네 사람은 서로 번갈아 쳐
다보면서 내심 놀라워했다.

 이때 장무기의 외상은 여전히 심했으나 내식(內息)은 이미 자
유롭게 운전되었다. 무기는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송대백, 유이백,  장사백, 막칠숙, 조카의  무례를 용서하시
오. 태사부님께서는 옥체 안녕하십니까?"

 유연주가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안녕하시다. 무기야,  너..... 너  많이 컸구
나.....!"

 백미응왕 은천정은  생명의 은인이 자기의 외손자란  걸 알고 
몹시 기뻐했지만, 끝내 일어서지는 못했다.

 멸절사태는 얼굴을 붉히면서 손을 흔들고 나서 아미파 제자들
을 이끌고 하산했다. 주지약은 고개를  숙이고 몇 걸음 옮겼으
나 끝내 참지 못하고 돌아서서  장무기를 바라보았다. 마침 장
무기도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자 주지약의 창백한 얼굴에는 금새 붉은 구름이 끼인 것 
같았고, 눈빛은 마치 내가 당신에게  그처럼 중상을 입혀서 몸
둘 바를 모르겠으니 부디 몸조심 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장
무기도 마치 그녀의 의사를 아는  양 살짝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주지약은 금방 밝은 얼굴을  하며 고개를 돌려 얼른 일
행을 뒤쫓아갔다.

 무당파와 장무기가 서로 알아보고, 더구나 아미파까지 떠났으
니, 육대문파가 마교를 섬멸하는 일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공
동, 화산 양파도 사상자들을 끌고 곧 떠나버렸다.

 하태충이 앞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젊은이, 당신들의 친인(親人)이 알아 본 것을 축하하오."

 장무기는 그가 말하는 걸 기다리지 않고, 품에서 피장기와 거
수악 환약을 두 개 꺼내더니 그에게 주면서 말했다.

 "하태충 부부께서는 각자 한  일씩 복용하시면 금잠충독을 제
거할 수 있을 것이오."

 하태충은 환약을  받아들고 보니 거무스름한 게  아주 볼품이 
없었다. 이걸로 천하 제일의 극독인  금잠충독을 제거할 수 있
다는 걸 믿지 않았다. 장무기가 다시 말했다.

 "소인이 제거된다고 말했으니 부디 믿어 주시오."

 '설사 그가 날  속인다 해도 무당 사협이  곁에 있는데, 어찌 
그를 협박하여 진짜 약을 달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소림파의 
저 공성 중놈도 이녀석을 보호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오
늘은 이대로 물러나는 게 좋겠다.'

 순간 그는 억지 웃음을 띄며 말했다.

 "대단히 고맙소."

 말을 마친 그는 반숙한과 환약을 하나씩 복용한 후, 제자들을 
지휘해 죽은 자의 시신을 정리하고 하산하였다.

 유연주가 말했다.

 "무기야, 넌 중상을 입어서 하산할  수가 없으니 여기서 요양
하는 수밖에 없겠다. 우리는 여기  남아서 널 돌봐주지 못하겠
구나. 부디 하루속히 완쾌되어서 무당산으로 한 번 오너라. 그
래야 사부님께서도 기뻐할 게 아니냐?"

 장무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는 많은 걸 
물어보고 싶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의 연약한 
표정을 보자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갑자기 소림파 중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원진사형의 시신이 안 보인다!"

 막성곡은 호기심이 일어 얼른 다가가  살펴보니, 칠, 팔 명의 
소림승들이 본문의 전사자 법채를  수습하고 있는데 유독 원진
의 시신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원음은 명교의 무리들을 가
르키며 큰 소리로 호통쳤다.

 "우리 원진사형의 법채를 빨리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불을 
질러서 모두 태워 죽이겠다!"

 주전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정말 우습고 괴이한 일도  다 있구나. 너처럼 살
이 있는 중놈도 우리는 필요하지 않은데, 죽은 화상이 무슨 쓸
모가 있겠느냐? 그를 소나 돼지처럼  잡아먹기라도 할 수 있느
냐?"

 소림의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즉시 십여 명의 승인이 
사방으로 수색해  보았으나 역시  원진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
다. 얼마 후 소림과 무당  양파 사람들은 모두 하산하였다. 장
무기는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가 허리를 굽히며 전송했다.

 송원교가 말했다.

 "무기야, 오늘의 일전에서 넌 천하에 이름을 떨쳤고 명교로서
는 태산 같은 은혜를 입은 것이다. 앞으로 명교는 네가 충고를 
많이 해줘서 명문정파로 인도하기 바란다."

 "소자, 사백님의 교훈을 헛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장송계가 말했다.

 "부디 몸조심하고 항상 잔악한 소인배들을 조심해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무당 사협과  무기는 오랫만에 만났는데 또다시  헤어지게 되
니, 다섯 사람은 모두 아쉬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양소와 은천정은 육대파 사람들이 모두  떠나 버리자 서로 얼
굴을 마주 보다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명교와 천응교의 전체 교중들은  장대협의 호교 구명의 대은
을 감사드리는 바이오."

 삽시간에 사람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그러자 장
무기는 어쩔 줄 몰랐다. 더구나 그 중에는 외할아버지, 외삼촌 
같은 사람들도 있기에 얼른 무릎을  꿇고 답례를 하였다. 그는 
급히 무릎을 꿇는  바람에 가슴의 상처가 파열되어  선혈을 몇 
모금 토해 내면서 즉시 기절해 버렸다.

 소조가 얼른 다가가서 일으켰다.  그러자 명교 중에서 부상을 
입지 않은  두목 두 사람이  그를 들어서 침대에다  눕혀 주었
다. 양소가 말했다.

 "빨리 장대협을 나의 방으로 모셔가서 정양토록 해드려라."

 그 두 목  두 명은 허리를 굽혀 대답한  후, 장무기를 양소의 
방으로 데리고가 눕혔다.

 소조가 양불회의 앞을 지날 때  양불회는 냉랭한 말투로 말했
다. 

 "소조, 넌 잘도 흉내내는구나. 난 벌써 알고 있었다. 단지 너
처럼 못생긴 것이 천교백미(千嬌百媚)한  미인일 줄은 정말 뜻
밖이다."

 소조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요 며칠 동안 명교도들은 상처를 치료하느라고 몹시 분주하였
다. 지옥같은 대전을 치르고 난 그들은 모두들 한 번씩 반성해 
보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들은 한결같이 장무기의 상처를 염
려하며 누구도 얽히고 설킨 원한 관계를 언급하지 않았다.

 비록 검상은 심했지만 장무기는 이미 구양신공을 수료한 터라 
칠, 팔 일 정도 정양하게  되자 상처는 차츰 아물어갔다. 은천
정, 양소, 위일소, 설불득 등은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매일 
사람들에게 들려서 장무기를 방문했다. 그가 날이 갈수록 회복
이 순조롭자 모두들 몹시 기뻐했다.

 팔 일째 되던 날 장무기는 일어나서 앉을 수 있었다. 그날 밤
도 양소와 위일소는 문병을 오자 장무기가 물어 보았다.

 "두 분께서 당하신 현음지(玄陰指)는 좀 어떠하십니까?"

 양, 위 두  사람은 날로 증세가 더욱 심해져  뼈를 깎는 듯이 
아팠지만, 그가 걱정을 할까 봐  많이 좋아졌다고 거짓말을 했
다. 장무기는 두  사람의 얼굴에 흑기가 서려  있고 말할 때도 
기력이 없는 걸 보자 다시 입을 열었다.

 "저의 내력이 육,  팔 성(成)이나 회복했으니, 제가  두 분을 
치료해 보겠소."

 그러자 양소가 급히 말했다.

 "아직은 안되오. 나중에 그대가 완쾌된 다음에 치료해도 늦지 
않소. 만약에 힘을 많이 써서 상처가 다시 재발되는 날에는 우
리의 마음이 더 괴로울 것이오."

 위일소도 말했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소. 장대협께서 귀채를 정양하는 일
이 더 시급합니다."

 "저의 외할아버지인 백미응왕과 의부  사왕은 두 분하고는 같
은 항렬입니다. 그러니 두  분께서는 저의 선배입니다. 그런데 
어찌 저에게 <대협>이라고 칭하십니까?  다시 그렇게 부르신다
면 저는 절대로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양소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장래에 모두 그대의 부하가 되고 그대의 앞에서는 감
히 앉을 수도 없는데, 무슨 선배 평배를 따지겠소?"

 장무기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양백백, 뭐라고 하셨습니까?"

 위일소가 말했다.

 "장대협, 이명교 교주의 중책을 당신이 맡지 않으면 누가 그 
중책을 맡겠소?"

 장무기는 양손을 마구 흔들면서 말했다.

 "그러한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때 동쪽 멀리에서 호각소리가 몇 차례 들려왔다. 이는 
바로 광명정 산하에 경계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양소와 위일
소는 깜짝 놀랐다.

 "육대문파가 다시 돌아온 게 아닐까?"

 양소가 말했다.

 "어제 잡수신 인삼은 괜찮지요? 소조, 네가 약실로 가서 인삼
을 더 꺼내와서 장대협에게 달여드려라."

 서쪽, 남쪽에서 동시에 호각소리가  들려왔다. 장무기가 물었
다.

 "외적의 침공입니까?"

 "본교와 천응교에도 고수가 많으니 장대협은 안심하시오."

 순식간에 호각소리가 가까와졌다.

 "제가 나가서 지시를 할 것이니,  위형은 장대협과 여기에 계
십시오. 허허, 명교가 약해지니까  아무나 와서 넘보려 하는구
나."

 그는 비록 상처를 입어 움직일  수 없었지만, 말 속에는 여전
히 호기(豪氣)가 충만했다.

 장무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소림, 아미 같은 명문정파들은 절대로 신의를 저버리고 다시 
오지는 않는다. 온 자들은 분명 잔악한 무리들일 것이다. 광명
정의 모든 고수들은  중상을 입었다.  이 칠, 팔 일 동안에 한 
사람도 완쾌된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절대로  외적을 막아낼 
수 없다. 만약에 이대로 출전하게 되면  목숨만 헛되이 버리는 
꼴이다.'

 갑자기 문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나더니 한 사람이 문을 박
차고 들어왔다.  얼굴은 피투성이고 가슴에는 단도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적들이 삼면에서..... 산 위로  공격..... 형제들이 적을 막
지..... 못해서....."

 위일소가 물었다.

 "어떤 자들이냐?"

 그 자는 밖을  가리키며 말을 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앞으로 
넘어지더니 그대로 죽고 말았다.

 곧이어 호각소리가 여기저기서 몹시 다급하게 들려왔다. 또다
시 두 사람이 실내로 뛰어들었다. 맨 처음 들어온 자는 홍수기
의 장기부사였다. 그의 온몸은 피로 목욕한 것 같고 안색은 마
치 귀신 같았다. 그래도 안간힘을 다해 침착한 자세로 살짝 몸
을 구부려 아뢰었다.

 "장대협, 양좌사, 위법왕님, 산 밑에서  공격해 오는 건 거경
방, 해사파, 신권문의 인물입니다."

 양소는 콧방귀를 한번 뀌더니 말했다. 

 "그런 오합지졸들이 감히우리를 넘보려 하느냐?"

 "적들은 대단치 않지만 우리 형제들 대다수가 상처를 입고 있
어서....."

 그가 여기까지 말을 하자 냉겸, 철관도인 장중, 팽영옥, 설불
득, 주전 등 오산인이 각각 사람에게 들린 채 들어왔다.

 주전은 식식거리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개방 이놈들, 잘 놀고 있구나.  우리 명교가 힘이 없는 틈을 
타서 삼문방과 무산방을 끌어들여서 공격해 오는구나. 나 주전
이 숨을 쉬고 있는 동안은 그들과 영원히....."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은천정 부자가 지팡이를 짚고 들어
왔다.

은천정이 말했다.

 "무기야, 너는  잠을 자거라.  제기랄! 그  <오봉도>와 <당혼
창> 같은 작은 문파들이 감히 우리를 어떻게 하겠느냐?"

 이들 중에서 양소가 명교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고, 은천정
은  천응교의 교주고,  팽영옥은 지계(智計)가  제일 풍부했었
다. 이 세 사람은 평생 동안  수많은 풍파를 만났어도 항상 슬
기롭게 헤쳐나가서 기사회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눈앞에 닥
친 정세는 실로 절벽에 부딪친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은 중상을 
입었으며 적은 대거 공격해 왔다.  다른 방회나 문파들은 별거 
아니지만 개방은  강호에서 제일 큰 방이다.  방내에 고수들이 
구름 같이 많아서 그 위세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러니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모
두는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장무기를 바라보았다. 그가 갑자
기 기계(奇計)를 생각해 내서  이 위기에서 모면해주기를 바라
고 있었다.

 장무기는 내심 생각을 굴렸다. 그는  자기의 무공이 양소, 외
할아버지, 위일소들보다 높은 줄은  알고 있지만, 견식계모(見
識計謀)로 따지자면 그 고수들이  당연히 그보다는 높았다. 그
들조차 별 대책이 없는데 자기가 또 무슨 대책이 있겠는가! 한
참 망설이고 있던 장무기는 순간적으로 뭔가 생각난 듯 소리치
며 말했다.

 "빨리 비도(秘道)에 들어가서 잠시  적을 도피하면 적들은 우
릴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설사 발견되더라도  금방 공격해 
들어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장무기는 이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웬지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 도무지 찬성하지 않았다. 마치 이 
방법을 절대로 행할 수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자 장무기
는 다시 말했다.

 "대장부는 굽힐 땐 굽힐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잠시 피신
을 하자는 것은 상처가 완쾌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적들과 
승부를 겨루자는 것이니,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자 양소가 말했다.

 "장대협 말대로 이 방법이 묘책입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소조에게 다시 말했다.

 "소조, 넌 장대협을 부축해서 비도로 들어가거라."

 "여러분들도 함께 갑시다."

 "먼저 가시오. 곧 뒤따라서 가겠소."

 장무기는 그의  말투에서 그들은 절대로 오지  않으리라는 걸 
느꼈다. 단지 자기만 피신시키려는  게 분명했다. 그러자 낭랑
한 소리로 말했다.

 "선배 여러분, 전 비록 귀교의  사람은 아니지만 그대로 귀교
와 일장 환난을 함께 겪었으니, 생사지교(生死之交)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여러분들을 버려두고 혼자 피신
하겠습니까? 제가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줄 아십니까?"

 그러자 양소가 말했다.

 "장대협은 오해하고 있는 것이오. 명교에는 역대로 전해 내려
온 엄한 규칙이 있소. 이 광명정의 비도는 교주 말고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소.  들어가는 자는 죽음만 있을  뿐이오. 당신과 
소조는 본교에 속하지 않으니 그 규칙을 지킬 필요는 없소."

 이때 사면  팔방에서는 죽이라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다행히 광명정의 도로가 꼬불꼬불하고 지세가 험한데다가 도처
의 관문에는 철갑(鐵閘) 석문이 있었다. 비록 명교에서 맹렬하
게 저항하지는 못해도 공격자는 쉽게  다가올 수 없었다. 더구
나 명교의 이름이 평소에 널리  퍼져 있어서 기습해 온 적들은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감히  깊숙하게 파고들지 
못했다. 그러나 여전히 한 발씩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피하지 않는다면  아마 명교의 사람들은 한  시간 내에 
모두 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

 장무기는 이러한 생각이 들자 즉시 입을 열었다.

 "비도에 들어가지 못하는 규칙은 절대로 변경할 수 없는 것입
니까?"

 그러자 양소는 엄숙한 표정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 제 4 권 6 장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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