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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라함 링컨의 힌트 - 엘러리 퀸

by Casey,Riley 2023.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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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브라함 링컨의 힌트                 
                                      엘러리 퀸



 그 사건은 뉴욕 시 북부 변두리 유랄리아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칠이 다 벗
겨지고 펑퍼짐한 나선형 집의, 이리저리 마구 금이 간 셔터들 뒤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 집은 마치 화려한 1890년대의 속옷만 입은 헤픈 여자를 연상시
켰다.
 그 집의 소유자는 한때 부유했던 사람으로 이름이 디캄포였다. 그는 이미 늙
었지만, 그래도 자기 집과는 달리 웅장한 맛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매처
럼 생긴 그의 얼굴은 빅토리아적이라기 보다는 플로렌스적이라고 할 수  있었
는데, 집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운이 다함에 따라 이제 피폐한 모습이었다.  그
러나 피폐하더라도 오만하게 피폐한 모습이었다. 디캄포는  마치 군주처럼 진
홍색 벨벳으로 만든 실내용 재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비듬이 떨
어져 있었다. 사실 디캄포는 자신을 스스로 군주라고  부를 만한 자격이 있다
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그 말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아름다
운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비앙카였다. 그녀는 유랄리아 국민학교에서 아
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수입만으로 아버지와 자신의 생
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로렌조 산 마르코 보르헤스 루포 디캄포가 이 쇠퇴해 가는 저택
에서 살게 되었는가는 우리의 관심사가 이니다. 하지만  이 날 하비저라는 사
람과 텅스톤이란 사람이 그 집에 오게 된  것은 우리의 관심사이다. 하비저는 
시카고에서, 텅스톤은 필라델피아에서 왔다. 그들은 몹시 탐나는 어떤  물건을 
사려 왔는데 디캄포가 그것을 팔기 위해 이들을 자기 집으로 부른 것이다. 두 
방문객은 고물 수집가들이었다. 하비저는 에이브라함 링컨에 관심이 많았으며, 
텅스톤은 에드가 알렌 포우에 관심이 많았다.
 링컨 수집가는 나이 든 사람으로 마치 이민 온  과일 장수처럼 보였다. 사실 
그는 돈을 잘 벌었기 때문에 한 4백만 달러의 돈쯤은 링컨의 유물을 수집하는 
자신의 취미에 마음대로 써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비저와 비슷한 부자인 
텅스톤은 시인처럼 홀쭉하고 날랜 몸매에 굶주린 곰같은 사나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 몸매와 눈, 이것이 포우의 유물 수집가들 사이의 불꽃 튀기는 경쟁
에서 그를 지켜준 훌륭한 무기였다.
 하비저가 입을 열었다.
 "디캄포 선생, 우선 당신 편지가 나를 놀라게 했다는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하비저는 주인이 오래된 유명한 술병으로부터 따라준 포도주 맛을  음미하느
라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사실 디캄포는 그들이 오기 전에 그 병에다 값싼 캘
리포니아산 포도주를 채워 넣었었다).
 "무엇 때문에 그 책과 문서를  팔 생각을 하셨는지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
까?"
 디캄포는 그의 빈약한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링컨이 다른 맥락에서 사용한 말을 여기서 인용하자면, '조용한 과거의 도그
마들은 폭풍우가 치는 현재에는 부적합하다'라는 게 이유지요. 간단히  말해서 
배고픈 사람은 자기 피라도 파는 법이라, 이겁니다."
 늙은 텅스톤이 전혀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혈액형이 맞기만 하다면야. 당신은 이제까지  그 책과 문서를 수집가들이나 
역사가들이 손도 못대게 하셨지요.  지금 여기에 가져오셨습니까?  좀 조사를 
해보고 싶습니다만."
 "소유권을 가진 사람 외에는 아무도 거기에 손을 댈 수 없소."
 로렐조 디캄포가 냉랭하게 대답했다. 그는 이제까지  자기가 발견한 그 보물
들을 절대 내놓치 않겠다며, 구두쇠처럼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었다.  그런
데 이제 할 수 없이 팔게 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면서도 취
하는 태도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의심으로 가득한 늙은 노인이 간신히 금맥을 
발견하고는 세상 사람들이 그 위치를 모르도록 비밀 지도를 그려두는 것과 같
은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내가 두 분께 알려드렸듯이 그 책에는 각각 포우와 링컨의 서명이  들어 있
소. 그리고 그 문서는 링컨이 직접 작성한 것이오. 나는 만일 그것이 내가  말
한 대로 진본이 아니라면 돈을 되돌려주겠다는 조건하에 그것들을 판매하겠
소. 그래도 마음에 안 드신다면......."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 여기서, 이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합시다."
 "아, 앉으세요, 앉으세요, 디캄포 선생."
 하비저가 말했다.
 "당신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나는  물건을 보지 않고 
사는데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돈을 돌려준다는 보장이  있다면 당신 방식대로 
합니다."
 텅스톤이 말했다. 로렌조 디캄포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좋습니다. 그러면 둘 다 사실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아, 물론이죠!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디캄포가 되물었다. 그러자 하비저가 목을 가다듬었다. 목에는 침이 잔뜩  고
여 있었다.
 "만일 그 책과 서류가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라면, 디캄포 선생,  당신이 경매
를 주도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  5만 달러에서 시작하시겠다구요? 난 
그럼 5만 5천 달러를 부르겠습니다."
 "5만 6천 달러."
 텅스톤이 말했다.
 "5만 7천 달러."
 하비저가 말했다.
 "5만 8천 달러."
 "5만 9천 달러."
 하비저가 부르는 액수를 듣고, 잠시 멈춘 텅스톤이 이빨을 드러내어 맞섰다. 
 "6만 달러 내겠소."
 하비저도 여기서 입을 다물었다. 디캄포는 기다렸다. 그러나 디캄포는 기적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 두 사람한테는 6만 달러의 다섯  배라 하더라도 지금 그
들이 마시고 있는 평범한 포도주 만치도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경
매장에서 뼈가 굵어진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에게는 그 물건을 얻는냐 못 얻는
냐 하는 문제에 못지않게, 그 가격을 얼마에 정하느냐 하는 점도 재미를 돋구
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궁핍한 군주 디캄포는  하비저의 이같은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텅스톤 선생과 잠시 둘이서만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디캄포는 일어나서 방을 나왔다. 그리고는 한때는 이탈이라식 정원이었던 잡
초밭에 서서 창문 틈으로 몰래 그들 모습을 훔쳐보았다.
 디캄포를 다시 들어오라고 부른 사람은 포우 수집가인 텅스톤이었다.
 "하비저 말을 듣고, 우리가 계속 경합을 벌이다가는 터무니없는 가격만 올라
가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디캄포 선생을 재미있게 해드
리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비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내가 텅스톤 선생에게 그 책과 서류에 6만 5천달러를 지불하자고 제안했고, 
텅스톤 선생도 동의하셨습니다. 우리 두사람 다 그 돈은 기꺼이 드릴 수 있습
니다. 하지만 거기서 한푼도 더 올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디캄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국 거기서 매듭이 지어지는군. 하지만 난 이해할 수가 없소.  두분이 똑같
은 액수를 부른다면 그 물건은 누가 가지게 되는 것이오?"
 텅스톤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디캄포 선생, 우리는 그결정을 당신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이제까지 놀라운 일을 볼 만큼 보아온 디캄포도 이 말에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제서야 디캄포는 그 두 부자를 자세히 뜯어보았다.
 "정말 재미있는 제안이구료. 나한테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겠소?"
 두 사람이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에 디캄포는  생각에 잠겼다. 마침내 디캄포
가 고개를 들자 그의 얼굴에는 여우같은 미소가 번졌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소! 내가  타자를 쳐서 보내드린 문서의  사본을 보셨을 
테니 아시겠지만, 링컨은 그 책이 어디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단지 그 감추
어둔 장소에 대한 힌트만 이야기 해 놓았소. 얼마전에 나는 링컨 대통령이 낸 
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었소. 나도 링컨 대통령의 힌트에 따라서 책과 문서
를 감추어 두겠소."
 "당신 말씀은, 우리둘 가운데 링컨이 낸 문제를 풀수 있는  사람만이, 당신이 
책과 문서를 감추어둔 장소도 알아낼 수 있단 뜻입니까? 그리고 그것을 찾는 
사람이 그 두가지 모두, 아까 얘기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뜻입니까?"
 "바로 그렇소."
 링컨 수집가인 하비저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글쎄.....나는....."
 그러자 텅스톤이 눈을 반짝이며 하비저의 말을 가로챘다.
 "이봐요, 하비저. 디캄포 선생에게 맡기기로 했으면 그걸로 족하오. 좋습니다, 
수락하겠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나한테 시간을 좀 주시오. 사흘 후에 다시 볼까요?"

 엘러리는 사무실로 들어오자 가방을  옆에 던져놓고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는 사건 때문에 한 일 주일간 사무실을 비웠었다. 아버지인 퀸 경감은 애틀
란틱 시에서 열리는 경찰 회의에 가 있었다.
 한숨 돌리고 난 엘러리는 일 주일간 쌓인 우편물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우편
물 중의 하나가 그를 잠시 멈추게 했다. 그것은  등기 항공 우편으로 온 것이
었다. 그리고 나흘 전의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다. 봉투 왼쪽 밑에는  빨간 
글씨로 '긴급'이라고 쓰여 있었고,  인쇄된 주소는 'L.S.M.B.-R.  디캄포, 뉴욕, 
유랄리아, 남구 사서함 69'이었다.  이름의 머리 글자만 잔뜩  나열된 그 이름 
위에 '비앙카'라고 손으로 쓴 글시가 적혀 있었다.
 봉투를 뜯어보니 값비싼 종이에 여자 글씨로 급하게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
다.

  퀸 선생님께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추리 소설 책이 사라졌습니다.  저를 위해 그것을 찾
아주시겠습니까?
  기차로 유랄리아 PR역에  오시거나, 비행기로 오셔서  전화를 주시면 제가 
모시러 나가겠습니다.
                                                   비앙카 디캄포

 그리고 또 하나의 노란 봉투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그것은 어제 날짜로 되
어 있는 전보였다.
 
 왜 소식이 없습니까? 당신의 도움이 정말 필요합니다.
                                                  비앙카 디캄포

 전보를 다 읽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장거리 전화였다. 전화에서 저음의  여
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퀸 선생님이세요? 맙소사, 이제야 연락이 닿았군요! 하루 종일 전화를......."
 "그동안 사무실을 비웠었습니다.  유랄리아의 비앙카  디캄포 양이신가보죠? 
간단히 여쭈어보죠, 디캄포 양.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큄 선생님, 에이브라함 링컨 때문이에요."
 엘러리는 깜짝 놀라하며 껄껄 웃었다.
 "내가 안 가고는 못 뱃길 사건을  내미시는군요. 사실 나는 링컨에 중독되어 
구제 불능이 된 사람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네요. 하여간, 편지
를 보니 책 이야기를 하셨던데요, 디캄포 양. 무슨 책입니까?"
 그 저음 목소리가 또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 이런 일이었습니다. 오실 수 있으시죠, 퀸 선생님?"
 "가능하면 오늘 밤에라도 가고 싶군요! 가만있자.....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
자 내 차를 타고 가면...... 유랄리아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비저와 텅스
톤도 그 근처에 있겠죠?"
 "물론이죠. 그 분들은 시내 모텔에 묵고 있습니다."
 "그럼 그 사람들도 댁으로 오게끔 해주시죠?"
 엘러리는 전화를 끊자마자 서가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쾌락을 위한 살인'이
란 책 한권을 뽑아들었다. 엘러리의 친한 친구  하워드 헤이크라프트가 쓴 추
리 소설의 역사에 대한 책이었다. 엘러리는 찾던 것을 26쪽에서 찾았다.

 ........ 젋은 윌리암 딘 하웰즈는 미합중국 대통령 지명자에게 다음과  같은 찬
사를 보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에이브라함 링컨의 정신적 특성은 수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링컨은 에드가 알렌 포우의 이야기와 소묘들의 추상적이고 논리적
 인 방법을 좋아했다. 포우의 글에서는 신비스러운 문제가 교모한 분석 과
 정을 통해서 일상적 사실로 환원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링컨은 포우의 
 작품을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고 보인다.

 하월즈는 1860년에 출판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선거운동 기록'이란 책에서 
위와 같은 말을 하였다. 에이브라함 링컨은 그것을  읽고 맞는 말이라고 확인
해 주었다..... 이 예는 아주 주목할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에이브라함 링컨과 
에드가 알렌 포우라는 이 두 위대한 미국인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있다고  생
각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엘러리는 파일에서  서류 몇 가기를 꺼내어 가방에  넣은 
다음, 아버지인 퀸 경감에게 메모를 남기고 유랄리아 쪽으로 차를 몰았다.
 엘러리는 디캄포의 집에 매력을 느꼈다. 마치  포우의 작품에 나오는 집같았
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것은 비앙카 때문이기도 했다. 비앙카는 북부  이탈
리아가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었다. 금갈색의 머리카락에  지중해처럼 푸른 
눈..... 그렇게 마르지만 않았다면  세계 미인 대회에도 충분히  나갈 수 있는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비앙카는 지금 상중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비운의  공주 
같은 모습이었다.
 비앙카는 좀 작아 보이는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퀸 선생님, 아버지는 뇌출혈로 돌아가셨어요. 하비저 씨와 텅스톤 씨를 만나
기로 한 전 날 밤에요."
 그렇게 로렌조 산 마르코 보르헤스 루포 디캄포는 사랑스러운 딸 비앙카에게 
궁핍과 비밀을 남겨놓고 죽은 것이다.
 "아버지가 남겨놓으신 것 가운데 가치가  있는 것은 그 책과 문서밖에  없어
요. 그것으로 6만 5천 달러를 얻게 된다면 아버지의 빚도 갚고 저도 새출발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퀸  선생님, 전 그걸 못 찾겠어요.  하비저 씨와 텅스톤 
씨도 마찬가지에요. 두 분은 곧 이리로 오실 거예요. 아버지는 그 분들에게 약
속하신 대로 책과 문서를 감추어두셨어요. 그런데 집을 다 뒤져보아도, 도대체 
어디다 숨겨 놓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 책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아야기를 해주시죠, 디캄포 양."
 "전화로 말씀드렸듯이 그 책은 '1845년이 선물'이라는 이름이래요. 해마다 크
리스마스 때면 나오던 책이라는데, 거기에  에드가 알렌 포우의 '잃어버린  편
지'가 처음 실렸대요."
 "케리와 하트가 필라델피아에서 발행한 책 말이군요. 표지가 붉은 색이죠?"
 비앙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엘러리가 말을 이었다.
 "아시겠지만 그 '1845년의 선물'의 보통  판본은 50달러 이상 나가지  않습니
다. 디캄포 양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판본이 그렇게 값비싼 까닭은, 디캄포 양
이 말씁하신 대로 거기에 두 사람의 친필 서명이 있기 때문이군요."
 "아버지가 그렇게 말씁하셨어요, 퀸 선생님. 제가 그 책을 보여드릴  수 있으
면 좋으련만. 그 책 속표지에는 아주 아름다운  글씨로 에드라 알렌 포우라고 
쓰여 있고, 그 포우의 서명 밑에는 에이브라함 링컨이라는 서명이 있어요."
 엘러리가 천천히 말했다.
 "원래 포우가 가졌던 책이라서 서명을 해  놓았는데, 그것을 다시 링컨이 읽
은 것이라는 이야기군요. 그렇다면 그것을 수집가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판본
이겠군요. 그런데 디캄포양, 그 링컨의 문서라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비앙카는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앨러리에게 해주었다. 

 1865년 봄날의 어느 아침, 링컨은  백악관 이층의 남서쪽 구석에  있는 그의 
침실의 장미나무 문을 열고 붉은 카펫이 깔린 홀로 나왔다. 시간은 오전 7시, 
링컨으로서는 아주 늦은 시간이었다. 평소에 링컨은  아침 6시면 일을 시작했
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렐조 디캄포가 가선을 재구성해본 바에 따르면) 그날 아침 링컨은 
침실에서 한동안 지체했다. 링컨은 평소대로의 시간에 일어나긴 했다.  그러나 
그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바로 집무실로  나가는 대신에 둥근 탁자 앞에  놓여 
있는 등나무 의자에 앉았다. 링컨은 가스로 켜는 독서용 램프를 켜놓고,  1845
년 연감에 들어 있는 포우의 "잃어버린  편지"를 다시 읽었다. 쌀쌀한 아침이
었다. 날씨는 흐려 있었고, 대통령은 혼자였다. 링컨 부인의 침실로 향하는 문
은 닫혀 있었다.
 언제나처럼 포우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링컨의 머리 속에 교묘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그 생각을 적거 놓으려 하였으나 주면에 종이가 없었다. 링컨
은 주머니에 있던 편지 봉투를 하나 꺼내 내용물은 버리고 볼투의 중간을 잘
라서 커다란 종이 한 장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주소가 적힌 반대 편의 백지에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 봉투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디캄포 양."
 "기다란 편지 봉투예요. 아마 그 속에는 두툼한 편지가 들어 있었던 것 같아
요. 받는 사람 주소에는 백악관이  적혀 있는데, 보내는 사람  주소는 없어요. 
그리고 필적을 판독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저희 아버지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실 수 없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우편으로 배달되었다는 사실
은 알아냈어요. 봉투에 링컨 초상화를 그린 우표 두 장이 붙어 있었거든요. 그
리고 희미하긴 하지만 분명 우체국 소인도 찍혀 있었고."
 "링컨이 그날 아침 그 편지 봉투 안쪽에다 무슨 이야기를 써놓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비앙카는 그녀의 아버지가 링컨이 쓴 내용을 다시 타자로 쳐놓은 종이 한 장
을 엘러리에게 건네주었다. 편지를 읽어내려 가던 엘러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
에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1865. 4. 14
 포우 씨의 '잃어버린 편지'는  독특한 독창성을 가진 작품이다.  그 단순성은 
위대한 작가에게만 가능한 기교이다. 그것은 늘  나에게 놀라움을 불러일으킨
다.
 오늘 아침에 그 이야기를 다시 읽다가 나한테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만일 
내가 책을 한 권 숨기려 한다면? 바로  이 책을 숨기려 한다면? 그렇다면 어
디가 좋을까? 포우 씨의 이야기에서 편지가 편지들  사이에 숨겨졌듯이, 책도 
책들 사이에 숨겨지는 것이 어떨까? 만일  이 책을 도서관에 갖다 놓고 등록
을 하지 않는다면.... 도서관은 의회 도서관이 가장 낫겠지!.... 그러면 이 책
은 거기 놓인 채 한 30년은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포우 씨의 '생각'을 한번 거꾸로 보도록 하자. 만일 책이 책들 
사이가 아니라, 책이 놓여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될 수  없는 곳에 놓여 
있는다면? (그러면 나는 포우 씨의 예를 따라서 하나의 '추리'를 쓰는 셈이 될 
것이다!)
 이 '생각'이 나를 기쁘게 하고 있는데, 시간은 벌써 7시다. 오늘 중에 언젠가, 
만일 그 욕심쟁이들과 약속들 사이에서 몇분만이라도 한가한 시간을 낼 수 있
다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책을 감추는 장소에 대해서 더 써 볼수 있을 것 같
다.
 나도 잊어먹으면 안 돼지. 책을 감춘 장소는 30d. 그곳은

 엘러리는 고개를 들었다.
 "문서는 여기서 끝납니까?"
 "아버지는, 링컨이 이 순간 다시 시계를 보고는  얼른 일어나서 집무실로 갔
을 것이라고 하셨어요. 문장을 다 끝내지도 못한 거죠. 그리고 다시 그것을 이
어서 쓸 시간은 없었던 것이 분명해요."
 엘러리는 생각에 잠겼다. 디캄포의 말이 맞는다. 그 성 금요일 아침 에이브라
함 링컨은조끼에 걸린 두툼한 금시계를 만지며 침실문을 나섰을 것이다. 링컨
은 아직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야간  경비병에게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안녕
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하고 홀의 맞은 편에 있는 집무실을 향해  걸어나갔다. 
그때부터 링컨의 바쁜 하루  일정이 시작되었다. 링컨은 부탁을  하러온 군중 
하이를 온화한 얼굴로 참을성 있게 뚫고 나갔다.  그리고 그 군중의 대부분은 
홀의 카펫 위에서 밤을 새었다. 링컨은 간신히  피신처인 넓은 집무실로 들어
가 공문서들을 읽고, 아침 8시에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링컨 부인은 저녁 계
획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했다. 언청이인 12살짜리  아들 태드는 불분명한 
발음으로 '아무도 나한테는 같이 가자고 안  그래'하며 투덜거렸다. 막 제대를 
하고 돌아온 젊은 아들 로버트 링컨은 전쟁의 영웅인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에 
대한 이야기, 최근의 전쟁 상황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를 했다. 식사 후
에 링컨은 대통령  집무실로 돌아와 아침  신문들을 훑어보았다.(한때 링컨은 
자신은 '결코' 신문을 읽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날은 어디나 
좋은 소식만 들어 있는 행복한 시절이었으니까  신문을 보았을 것이다.) 링컨
은 두 개의 서류에 서명을 하고 문간에 있는 경비병을 불러 아침의 첫 방문객
을 들여보내라고 일렀다. 첫 방문객은 대변인인 슈일러 콜팩스였다.(이자는 내
각의 자리 하나를 얻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신중하게 다루러랴 했
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루가 흘러갔다.... 아침 11시에는 역사적인 내각 회
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그랜트 장군이 직접 참석했다. 그 회의는 오후까지 
이어졌다. 2시반쯤에는 링컨 부인과 함께 서둘러 점심을 먹었다. (평균 체중에
서 45 파운드나 모자라는 사나이는 이 날도 그의 평소 점심인 비스켓 한조각, 
우유 한잔, 사과 하나만  먹었을까?) 식사 후에  다시 집무실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였다(그 중에는 예정에 없던 낸시 부쉬로드 부인도 끼어 있었다. 그 부
인은 탈출한 노예이자 탈출한 노예의 아내였고, 세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포토맥 부대의 사병인 자기 남편 톰의 월급을  못받고 있다고 훌쩍거렸다. 키
가 큰 대통령은 '당신은 당신  남편의 월급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십시오'라고 말한 다음 그 흑인  여자가 마치 귀족 부인이라도 
되는 양 문간까지 배웅해 주었다.). 오후 늦게 4인숭 대형 쌍두마차를 타고 해
군 공장에 갔다가 부인과 함께 돌아왔다. 저녁  8시 5분에 에이브라함 링컨은 
백악관 공식 마차에 부인의 뒤를 따라 올라탄 뒤 포드 극장에서 공연되는 연
극 '우리 미국인 사촌'을 보러 갔다. 링컨은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엘러리는 링컨이 그 글을 쓴 날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비앙카 디캄포
는 전문가의 진단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근심스러운 얼굴로 엘러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비저와 텅스톤은 택시를 타고 왔다. 그들은 수평선에서 난파당한 사람들처
럼 열광적으로 엘러리에게 인사를 했다. 엘러리는 그들을 진정시킨 다음에 말
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두 분 다 링컨이  남긴 힌트를 디캄포 씨가 어떻게 해석
했는가 하는 문제를 풀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 책과 문
서를 찾아내게 되면 두 분 가운데 어느 분이 그것을 갖게 됩니까?"
 하비저가 대답했다.
 "우리는 6만 5천 달러를 반반씩 부담한 다음에 그것을 공동 소유하기로 하였
습니다."
 그러자 텅스톤이 언짢은 듯 말했다.
 "원칙적으로는 그런 공동 소유에 반대합니다만, 현실이 현실이니만큼 어쩔수
가 없지요."
 하비저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뭐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텅스톤은 예전에 먹이로 점찍어 놓은 새한테 가까이 가는 고양이처럼 디캄포 
양 쪽을 바라보았다.
 "물론 이제 디캄포 양이 그 책과  문서의 소유자이십니다. 따라서 디캄포 양
의 의사에 따라서는, 새로운 조건으로 새로 협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디캄포 양은 전혀 밀리지 않고 텅스톤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저는 아버지 생각에 따를꺼예요. 아버지가 거신 조건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그러자 하비저는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정히 그러시다면 뭐 어쩔 수  없지요. 우리 둘중의 한  사람이 책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서류를 가지고 있다가, 일 년마다 그것을 바꾼다든가 해
야겠지요."
 텅스톤 역시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만이 현 상황에서는 합당한  결론이지요. 하지만 그  책과 서류를 찾기 
전까지는 그것마저도  탁상공론이오."
 엘러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 서류에 나와 있는 30d를 디캄포 씨가  어떻게 해석했냐
하는 것입니다. 30d라...... 참, 디캄포 양, 아니 비앙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 비앙카, 당신 아버지의 타자로  친 종이에는 3과 0과  d가 띄어쓰기 없이 
다 붙어 있었던 것 같은데, 원본에도 그렇습니까?"
 "네, 그래요."
 "음.... 30d라.....d자는 이(day)을 가리키니까 30일이란  뜻이 될 수도 있고... 
영국식으로는 돈의 단위인  펜스(pence)의 약자인데.... 신문  부고란에 죽었다
(died)는 말의 약자로도 쓰이고... 비앙카, 당신은 뭐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까?"
 "없어요."
 "혹시 당신 아버지가 약학에 관심이 있지 않았습니까? 화학? 물리학? 수학? 전기? 
소문자 d는 그런 학문들에서 다 약자로 쓰이는데......"
 그러나 비앙카는 그 우아한 머리를 옆으로 저을 뿐이었다.
 "은행 일은? 은행에서는 소문자 d가  달러(dollars)나 배당금(dividends)의 약
자로 쓰이는데...."
 "거의 관심이 없으셨어요."
 비앙카는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극 일은 어때요? 혹시 아버님이 연극 연출에 관심이  있으시진 않았나요? 
무대 연출의 대본에서는 d자가 문(door)의 약자로 쓰이는데.........."
 "퀀 선갱님, 저도 사전에서 d가 약자로써 나타내는 말들을  다 찾아보았어요.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아버지의 그 d자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할 만한 건 없
었습니다."
 엘러리는 얼굴을 찌푸렸다.
 "타이프로 친 종이가 정확한  것이라면, d자 다음에 점을  찍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약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순요. 30d..... 그 숫자에  관심을 가져봅시
다. 30이란 숫자가 당신한테 무슨 의미라도 있습니까?"
 "네, 있어요."
 비앙카가 대답하자 세 남자가 모두 자세를 고쳐 앉았다.
 "몇 년 있으면 제 나이가 30이 되지요. 저한텐 무척 큰 의미가 있지만...."
 세 남자는 다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엘러리는 비앙카의 무안함을 달
래주기 위해 농담을 했다.
 "당신 역시 30의 두배가  되는 나이에는 할머니가  되겠지요. 어쨌든 간에.... 
그 숫자가 당신 아버지의 생활이나 습관과 관련된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요?"
 "그런 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요,, 퀸 선생님. 그리고....."
 비앙카는 뺨을 붉게 물들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텅스톤이 신경질적인 목소리고 끼어들었다.
 "하던 이야기나 계속합시다."
 "아까와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비앙카. 내가 30에서 연상되는  것들을 죽 나
열할 테니까, 만일 그 중에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말해줘요. 30명의 전제  군
주.... 혹시 고대 아테네에 관심이 있으셨을까? 30년 전쟁..... 17세기 유럽 역사
에는? 30대 30(thirty all)....  테니스에는? 아니면... 혹시  당신 아버지가 30이 
포함된 주소에 산 적이 있으신가요?"
 엘러리는 계속 30에서 연상되는 것들을 나열하였으나, 비앙카 디캄포는 그때
마다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엘러리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디캄포 씨가 30d에 띄어쓰기가 없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요. 디캄포 씨는 자의적으로 그것을 3 Od라고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텅스톤이 그 말을 받았다.
 "세 개의 Od라고? 도데치 그게 무슨 뜻이요?"
 "Od요? Od는 자연 전체를 지배하는 힘을 의미하는데, 바론 폰 라이헨바흐가 
1950년엔가 이야기 한 것입니다. Od는 자석이나 수정에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바론에 따르면, 그 Od를 가지고 동물의 자기적 성질이나 최면을 설명할 수 있
다고 하지요. 혹시 아버지가 최면술  같은데 관심을 가지시진 않았나요,  비앙
카? 아니면 초자연적인 일에............"
 "전혀 그런 적 없어요."
 하비저가 음성을 높였다.
 "퀸 선생, 당신은 지금 진지한 거요, 아니면 말장난을 하는거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하나 찾아내기  전에는 나도 모르는  일이죠. Od
라.... 이 단어는 접두사와  함께 쓰이기도 하는데...  biod, 동물적 생명력이란 
뚯이고.... elod, 전기의 힘을 뜻하는 말이고... 세 개의 Od...그러니까 triod라고 
해도 되는데, 이건 삼위 일체의 힘을 뜻하고.... 하비저 씨, 하비저씨를 무시하
는 게 아니고, 단지 말을 만들어보고  있을 뿐입니다... 삼위일체라..... 비앙카, 
혹시 아버지가 개인적으로든, 학문적으로든, 혹은 어떤 식으로든  교회와 관련
을 맺으셨나요? 아니라고요? 그것, 참..... Od라고 대문자로 시작하면, 이건  16
세기 이후에 하나님(God)을 조심스럽게  부를 때 쓰는 말이  되는데... 집안에 
혹시 성경 있습니까? 왜냐면......."
 엘러리는 앞으로 나아가다가 갑자기 절대 움직이지 않는 갈력한 물체와 부딪
히기라도 한 것처럼 멈추어버렸다. 나머지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비앙카는 별 
뜻없이 링컨의 글을 타자로 옮겨친 종이를 손에 들고 있었지만 비앙카는 그것
을 읽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아무렇게나 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엘러리는 그 종이를 가리키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순수한 발견
의 기쁨으로 가득 차 소리쳤다.
 "바로 저거야!"
 "뭔데요, 퀸 선생님?"
 비앙카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 종이 좀 이리 주세요."
 엘러리는 비앙카의 손에서 종이를 뺏듯이 집어들더니 말을 이었다.
 "바로 이거야. 여길 좀 보세요. 다른 한편으로, 포우 시의 '생각'을 한번 거꾸
로 음미해 보도록 하자. '거꾸로 보도록 하자!' 이 3Od를 '거꾸로 보도록 합시
다' 내가 금방 비앙카가 들고 있는 것을 거꾸로 보았듯이!"
 엘러리는 글씨가 거꾸로 보이도록 사람들한테 종이를 들어 보였다. 사람들은 
그 위치에서 3Od를 보았다. 텅스톤이 소리를 질렀다.
 "POE!"
 엘러리가 빠르게 말했다.
 "예, 어색하긴 하지만 그렇게 읽을 수 있겠지요. 따라서 우리는 링컨이 준 힌
트를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을 감춘 장소는 포우(poe)!'"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후 하비저가 띄엄띄엄 말을 했다.
 "포우라...."
 텅스톤이 그 말을 받았다.
 "포우라고? 디캄포의 서재에는 포우의  책은 두어 권밖에 없습니다.  하비저, 
우리가 다 뒤져보지 않았소? 우린 거기 있는 모든 책을 다 뒤져보았습니다."
 "디캄포 씨는 공공 도서권에 있는 포우의  책들 사이에 두었을 수도 있지요. 
디캄포 양........"
 "잠깐만 기다리고 계세요."
 비앙카는 빠른 걸으믕로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고개를 떨구
고 돌아왔다.
 "없어요. 유랄리라에는 공공 도서관이 두 개  있는데 제가 그곳 도서관장 두
분을 다 알거든요. 금방 전화를 해보았더니, 아버지가 들리신 적이 없대요."
 엘러리는 손톱을 깨물었다.
 "혹시 이 집에 포우의 흉상이 있습니까? 아니면 뭐 책 말고 포우와 관계된 
것은?"
 "안됐지만 없어요."
 "이상하군. 하지만 디캄포 씨가 '책을 감춘 장소는 포우'라고 링컨의 글을 해
석한 것만은 틀림없어. 그러니까 디캄포 씨도 그 책과 서류를 '포우'에 감추었
을 건데...."
 엘러리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점차 작아지더니 이윽고 침묵으로 변했다. 엘러
리의 눈꺼풀이 깜박깜박 하였다. 엘러리는  코끝이 빨개지도록 코를 잡아당기
고 죄없는 귀를 잡아당기기도 하였다. 입술을 질겅질겅 깨물기도 하면서.... 그
러다 갑자기 엘러리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자기에서 벌떡 일어났다.
 "비앙카, 전화 좀써도 되겠습니까?"
 비앙카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엘러리는 달려나갔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엘러리가 현관과 이어진  홀에서 전화를 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엘러리는 2분쯤 후 방으로 돌아와 힘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한가지 더요, 비앙카. 그러면 우린 숲에서  빠져나갈 수가 있습니다. 디캄포 
씨가 열쇠 꾸러미를 하나 가지고 계셨을 것 같은데요,  비앙카? 그걸 저한테 
좀 주시겠습니까?"
 비앙카는 나가서 열쇠 상자를  들고 왔다. 두 백만장자한테  그 열쇠 상자는 
참 꼴불견으로 보였다. 다 떨어지고 낡아빠진,  모조 가죽으로 만든 상자였다. 
하지만 엘러리는 그것이 마치 고분을 발굴하다 발견해낸 귀중한 골동품이라도 
되는 듯이 그 열쇠 상자를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그 상자를 아주 조심스럽게 
열어 그 안에 든 것을 과학자처럼 신중하게  살펴보았다. 마침내 엘러리는 그 
가운데 한 열쇠를 골랐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 말만 던지고 엘러리는 밖으로나갔다.
 "저 친구가 천재인지, 아니면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정신병자인지 알 수가 없
어."
 그러나 하비저와 비앙카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둘 다 같은 심
정인 것 같았다.
 그들은 장장 20분이나 기다렸다. 21분이 되었을 때 엘러리의 차 소리가 들렸
다. 세 사람 모두 현관에 나가보았다. 엘러리가 걸어들어고 있었다.
 엘러리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손에는 빨란 표지의책을 들고 있었다. 그 미소
에는 연민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 중 누구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당신.... 그 책을 찾았군요!"
 세 사람은 띄엄띄엄 각자 한 마디씩 했다.
 "그것은 링컨의 책이 맞소?"
 하비저의 물음에 엘러리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자 안으로 들어갈까요? 안에 들어가야 마음놓고 슬퍼할 수 있을
테니까....."

 비앙카와 두 수집가가 자리에 앉자 엘러리가 말했다.
 "좋지 않은 소식이 있습니다. 텅스톤 씨, 실제로 디캄포 씨의 책을 보신 일
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속표지의 포우의 서명을 지금 한번 보시겠습
니까?"
 곰이 발톱을 드러내듯 텅스톤이 긴장했다. 책의  속표지 위쪽에 희미한 잉크 
자국이 있었다. 에드가 알렌 포우라는 서명이었다.
 곰이 발톱을 오무리듯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텅스톤이 고개를 들었다.
 "디캄포는 여기 쓴 서명이 이름을 다 쓴 서명이라고 한 적은  없소. 그냥 '포
우의 서명'이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에드가 알렌  포우라.... 나는 포우가 웨스
트 포인트에 살던 시절 외에는 한 번도 그가 서명을 하면서 자기 가운데 이름
을 쓴 것을 본 적이 없어요! 포우가 이 서명을 아무리 일찍 했다 하더라도 이 
1845년판 연감이 나왔을 때야 가능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그 시기는 빨라
야, 1844년 가을이 됩니다. 1844년이면 포우는 '알렌'이란 가운데  이름을 약자
로 썼을 것입니다. '에드가 A. 포우'라고 말이오. 어디에나 그런 식으로 서명을 
했어요! 그러니 이건 가짜요!"
 "맙소사!"
 비앙카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포우의  작품에 나오는 르노어만큼이나 
창백해져 있었다. 그녀가 엘러리에게 물었다.
 "그게 사실이에요, 퀸 선생님?"
 슬픈 표정으로 엘러리가 말했다.
 "안됐지만 사실입니다. 나는 처음에 당신이  책 이야기를 해주면서 포우
의 서명에, 가운데 이름 '알렌'이 들어가 있다고 할  때부터 의심스러웠습니다. 
만일 포우의 서명이 가짜라면, 책 자체도 포우가 가지고 있던 책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하비저가 신음 소리를 냈다.
 "퀸 선생, 포우의 서명 밑에 있는 링컨의 서명을 좀 보시오! 디캄포는 나한테 
그것이 에이브라함 링컨이라고 쓰여 있다고 말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공
식 문서가 아닌 경우에 링컨은 늘 자기 이름을 'A. 링컨'이라고 서명했습니다. 
퀸 선생, 이것 역시 가짜라고 말하려는 거요?"
 엘러리는 풀이 죽은 비앙카를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하비저 씨, 나도 디캄포 양으로부터 '에이브라함'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
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검사해 볼 수 있도록 준비를 해왔습
니다."
 엘러리는 가방에 넣어 온 서류들을 꺼내며 말했다.
 "이것들이 링컨이 서명한 역사적 문서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들의 복사본
들입니다. 이제 이 추리 소설 책에 있는 링컨의 서명을 트레이싱 용지를 놓고 
정확하게 모사해 보겠습니다."
 엘러리는 그 책의 링컨 서명을 모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자, 그리고 이것을 진품의 링컨  서명 문서에 있는 링컨의  서명 위에 올려 
놓고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엘러리는 재빠르게 일을 처리해갔다. 세 번째의  비교를 끝내고 나서 엘러리
는 고개를 들었다.
 "자, 보십시오. 지금 이 책에서 모사해낸 서명은 노예  해방 선언의 복사본에 
있는 링컨의 서명과 조금도 틀리지 않고 딱  맞아 떨어집니다. 진짜라면 이럴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이름을 서명할 때  완전히 똑같이 두 번 쓸수 
없는 것입니다. 늘 약간씩의 차이는 있게 마련이지요. 오직 가짜만이  다른 서
명과 완벽하게 똑같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모사한  것이니까요. 그러
므로 이 책 속표지에 있는 '에이브라함 링컨'이라는 서명은 더  생각해볼 나위
동 없이 가짜입니다. 이것은 노예 해방 문서의 서명을 모사해 놓은 것입니다.
 이 책은 포우가 소유했던 핵이  아닐 뿐더라, 링컨이 서명한 책도  아닙니다. 
따라서 링컨이 소유했던 책도 아니지요. 디캄포 씨가 어떻게 이 책을 손에 넣
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비앙카, 당신 아버지는 사기를 당했던 겁니다."
 "불쌍한 아버지....!"
 비앙카는 그저 그 말만 했을 뿐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비앙카의 교양을 보
여주는 장면이었다.
 하비저는 다 닳아빠진 낡은 봉투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존경
하는 링컨 대통령의 친필이 들어 있었다. 하비저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게 있으니까."
 "그럴까요? 그것을 뒤집어 보십시오, 하비저 씨."
 엘러리가 상냥하게 말했다. 그러자 하비저가 고개를 들더니 소리를 질렀다.
 "안 돼! 당신은 나한테서 이것마저 빼앗아가려는 거지!"
 "뒤집어 보세요."
 엘러리는 역시 상냥한 어조로 반복했다. 하비저는 머뭇거리며 엘러리의 말을 
따랐다. 엘러리가 물었다.
 "뭐가 보입니까?"
 "링컨 시대의 진짜 봉투요! 그리고 링컨의  초상화가 그려진 진짜 우표가 두 
개 붙어 있소!"
 "그렇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살아 있는 미국인의 초상화를 그린 우표를 한번
도 발행한 적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한테만  그의 얼굴리 그려진 우표가 나올 
자격이 주어지게 되지요. 링컨 초상화가 그려진 우표가 미국에서 판매된 것은 
1866년 4월 15일, 즉 링컨이 죽은 지 꼭 1년이 되던  날입니다. 그러니까 생전
의 링컨은 지가 초상화가 그려진 우표가 붙은 봉투를 글 쓸 종이로 사용할 수 
가 없겠지요. 따라서 그 문서도 가짜입니다. 정말 안됐습니다, 비앙카."
 그러나 믿을 수 없게도 비앙카 디캄포는 얼굴에 미소를 짓더니 이탈리아어로 
말했다.
 "괜찮아요, 선생님."
 엘러리는 그녀 때문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 수집가 가운데 하비저는 충
격을 받아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텅스톤은 억지로 힘을 내어 입을 열었다. 그
러나 텅스톤은 억지로 힘을 내어 입을 열었다.
 "도데체 디캄포는 어디에다 이 책을 숨겨 놓았었소, 퀸? 그리고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았소."
 엘러리는 어서 그 두사람을 보내 비앙카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빠르게 설명
을 했다.
 "나는 디캄포가 링컨의, 아니 어떤  사기꾼이 만들어낸 힌트를 poe라고 읽었
다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감춘 장소는 포우'라는 말로는 그 이상 전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p,o,e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았지요.  만일 이 세 글자가 포우
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뜻할까? 그때 나는 비앙카,  당신이 내게 
보낸 편지가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아버지의  봉투를 사용했는데 거기에는 주
소가 나와 있었습니다. 뉴욕, 유랄리아,  남구, 사서함 69(Post Pffice  Box 69, 
Southern District, Eulalia, N. Y.)라고  되어 있었지요. 유랄리아에 만일 남구 
우체국이 있다면, 다른 구에도 우체국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인 일입
니다. 예를  들어 동구  우체국(Post  Office Eastern)그  머릿자를 따볼까요? 
P.O.E.가 됩니다."
 "포우군요!"
 비앙카가 소리쳤다.
 "텅스톤 씨의 질문에 계속 답을 하지요.  나는 중앙우체국에 전화를 걸어 동
구 우체국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위치를 물은 다
음 여기로 와서 디캄포 씨의 열쇠 상자에서 사서함 열쇠를 찾았던 겁니다. 그
리고는 동구 우체국으로 가서 디캄포 씨가 준비해 놓은 사서함 상자를 열었습
니다. 거기 책이 있었습니다."
 엘러리는 체념하는 투로 덧붙였다.
 "그건 그걸로 끝난 일입니다."
 
 "그건 그걸로 끝난 일이에요."
 비앙카가 두 수집가를 배웅하고 돌아와서 말했다.
 "우유병이 빈 걸 가지고 울지는 않을 거예요, 팽개쳐버리지요, 퀸 선생님. 어
떻게 해서든지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들을 정이해 보도록 하죠, 뭐.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아버지가  그 서명들과 문서가 가짜라는 것을 
모르고 돌아가져서 다행이라는 거예요. 언젠가는 전문가들이 밝여낼 일이잖아
요?"
 "비앙카, 난 아직도 당신 우유병에 우유가 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무슨 말씀이세요?"
 엘러리는 가짜 링컨의 봉투를 들었다.
 "당신은 나한테 이 봉투를 정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어요. 당신이 말한 것
은 우체국 소인이 찍힌  링컨 초상화 우표가  두 개 붙어 있다는  것뿐이었지
요."
 "그렇지 않나요?"
 "어린 시절을 재미없게 보냈군요.  아니, 여자 아이들은 뭘  수집하질 않던가
요? 어쨌든, 이 '소인이 찍힌 링컨 초상화 우표 두  개'를 잘 살펴보면, 이것이 
그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첫째로 이것은 두 개의 별도의 
우표가 아닙니다. 실제로는 한 쌍이지요. 즉 양쪽 우표의 가로면이  서로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이 붕투의 우표를 좀 봐요."
 비앙카의 파란 눈이 커졌다.
 "거꾸로 되어 있네요, 그렇죠?"
 "그래요, 거꾸로 되어 있어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한쌍이라도 각각 그 네면
의 가장자리 우표를 찢기 쉽도록 뚫어 놓은 구멍이 나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 두 우표가 서러 만나는 면에는 그런 구멍이 없지요?
 비앙카,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이 붕투를  만든 사기꾼이 링컨 
시대의 봉투를 만든다고 하면서도 모르고 었던 것은, 바로 우표 수집가들이 
말하는 이중의 인쇄 실수라는 것입니다. 가로  면의 가장자리에 구멍이 안 뚫
려 있는 실수가 그 하나, 한 쪽이 거꾸로 인쇄된 실수가 또 하나,  이 둘을 합
쳐서 이중의 실수라고 하는 거지요. 이것은 1866년의 15센트짜리 검정색의 링
컨 초상화 우표인데, 이제까지 링컨의 초상화가  그려진 우표 가운데 이런 이
중 인쇄 실수 우표가 있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어요. 따라서 비앙카, 당
신은 이제 미국 우표 수집에서 가장 진귀한, 그리고 가장 값어치가 있는 우표
의 소유주가 된 겁입니다."
 
 세상은 남의 일에 신경도 쓰지 않고, 또 남의 일을 오래 기억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런 세상의 관례도 비앙카 디캄포만은 비켜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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