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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불멸_4

by Casey,Riley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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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멸 4  제4부 마지막 이순신

김 탁환


   제4부 마지막 이순신


    1. 회생  
  정유년 4월 2일 밤. 봄비가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렸다. 길은 한양은 쥐죽은 듯이 조용한 폐허의 도시로 바뀌었고, 
야경을 도는 군사들의 딱딱이 소리만이 정적을 깼다. 숭례문을 지키는 문지기들도 칙칙한 봄비가 거추장스럽기는 마
찬가지였다. 비를 맞으면 이내 한기가 들었고 콜록콜록 기침을 쏟으며 김환을 앓았다. 대문을 열어두긴 했으나 오가
는 행인은 거의 없었다. 어둠이 짙어가면서 빗방울이 더욱 굵어졌다.  아무래도 한 며칠 또 줄기차게 쏟아질 모양이
었다. 유난히도 크게 들리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성벽에 기댄 채 꾸벅꾸벅 조는 군사들도 있었다. 십 년 
넘게 숭례문을 지키고 있는 텁석부리 막둥이 역시 길게 하품을 해대며 남문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
는 등짐을 진 보부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가볍게 몸을 놀리는  모양새가 여느 보부상과는 달랐다. 뻘밭 길을 되차
며 뛰어오는 꼴이 영락없는 물 찬 제비였다. 사내가 숭례문 앞에 거의 다다를 무렵 막둥이는 또 한 번 놀랐다. 사내
의 등에 장정 한 사람이 업혀 있었던 것이다. 
  장정을 업고도 저렇듯 빠르게 움직이다니...간자인가 왜군들이 바람처럼 내달리며 칼을 휘돌린다는 것은 널리 알려
진 사실이다. 산이나 강을 경계로 하지 않고 평야에서 왜군과 맞선다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  창을 쥔 막둥이
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신출귀몰한 왜군 간자라 하더라도 열 명이 넘은 숭례문의 문지기를 혼자서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성벽에 바짝 붙어 서서  사내가 가까이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창을 내지르려는 
순간 빗길을 달려온 사내가 품속에서 마패를 꺼냈다. 전쟁터를 오가는 전령에게만 특별히 내려진 마패였다.  그랬구
먼. 그래서 뻘밭 길도 쏜살같이 달릴 수 있었구먼. 막둥이는 긴장을 풀고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내의 어깨 위로 더운
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헌데 누군가? 많이 다친 것 같은데" 막둥이가 수염을 쥐어뜯으며 물었다. 겹이불이 
이마까지 덮고 있어서 등에 업힌 남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함께 남쪽으로 길을 나섰던 전령이오. 어젯밤부
터 열이 심하게 오르고 설사를 합니다. 보시겠소?" "아 아니오 허면 돌림병이오?" "돌림병은 아니오. 오늘 밤 안으로 
급히 비변사에 전할 장계가 있소이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게요? 정 의심나면 이 사람을  확인하시겠소?허나 혹 
일이 잘못되어도 나는 모르오." "되 됐소 어서 가시오." 막둥이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발열에 설사라면 돌림병일지도 모른다. 돌림병에 걸린 자는 도성으로 들일 수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에 돌림병을 확인하러 의원이 올 리도 없고 섣불리 환자를 살폈다가 병이라도 옳으면 자신만 손해인 것
이다. 대문이 닫힌 후에도 전령의 도성 출입은 자유로우니  그들을 통과시켰다고 큰 문제가 되지는 않으리라. "으으
응 으으으으으" 둥에 업힌 사내의 신음 소리가 막둥이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막둥이는 그 소리를 못 들은 체하며 사
내에게 물었다. "남쪽 사정은 어떠우? 가등청정이  지난 임진년처럼 올라오고 있다는 게  사실이우?" 사내는 무릎과 
허리를 차례로 튕기며 자세를 고쳤다. "걱정마슈. 여기까지 오려면  아직 멀었소" 사내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숭
례문에 당도할 때보다도 더욱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막둥이는 사내가 축지법을 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런 전령이 열 명만 있다면 한양에 앉아서도 하삼도의 전황을 훤히 꿰뚫을 수 있으리라. 
  사내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저잣거리를 가로질렀다. 진흙이 발목을 더럽히고 빗방울이 얼굴을  때려도 괘념치 
않았다. 가끔씩 고개를 돌려 미행이 없는가를 살폈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등에 업힌 남자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사
내는 어금니를 악다물었다.  역시 이 몸으로 빗길을 나선다는 게  무리였어.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사내는 천천히 걸
음을 늧추었다. 희미한 불빛이 쪽문을 통해 새어나오고 있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좌우를 살핀 후 
눈 깜짝할 사이에 쪽문 안으로 사라졌다. 
  "이보게, 여해 날세. 나야 정신이 드는가?" "여...영상대감"   유성룡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날발이  능숙하게 
이순신의 젖은 옷을 벗기고 온몸을 마른 수건으로 훔친 다음 준비해간 새옷으로 갈아입혔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차
다찬 몸을 정신없이 비벼댔다. 유성룡은 차마 눈을 똑바로 뜨고 이순신의 벗은 몸을 볼 수가 없었다. 새우처럼 잔뜩 
웅크린 채 벌벌벌 떨고 있는 몸은 인간의 것이 아니엇다. 검붉게 그은 흉측한 화상의 흔적들이 얼굴과 목덜미, 등과 
배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주리를 틀린  허벅지는 살점이 떨어져나가 허연 뼈가  드러났고, 곤자을 맞은 엉덩이가 
크게 부풀어올라 제대로 앉을 수도 없었다. 이것이 천하를 호령하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몸뚱이가 말인가?  
유성룡은 이 끔찍한 몸 안에서 신음하고 있는 영혼, 그 고통받은 영혼을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추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던가? 그의 이름을. 그의 명예를 패대기쳤으면 그만인 것을 그의몸까지 난도질할 필요가 있었던가? 여해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네. 자네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내게 속죄할  기회를 주어야지. 자넨 그저 나의 말을 충실히 
따랐을뿐. 무슨 죄가 있나. 반드시 기운을 차려 일어나시게. 이 전쟁이 끝난후, 자네가 만들어놓은 한산도 구경을 가
야 하지 않겠는가. 자네와의 뱃놀이를 그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네.  여해! 날 용서하게. 전하의 마음을 붙들지 
못한 내가 죄인이야. 이순신을 죽음보다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어제 아침 의금옥에서 풀려난 후,  두 차례나 피를 
토하느라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조카인 이봉, 이분, 둘째 아들인 이울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비명을 삼켰으나, 살갗을 찢는 고통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몸이 천근  만근 무거웠지만 이순신은 꼭 유성룡을 
만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고  자신을 잘 알고 이해해주는 은인과 재회하여 지친  몬과 영혼을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다.  
 유성룡은 손을 뻗어 이마까지 내려온 이순신의 흐트러진 머리카락들을 쓸어넘겼다. 이마에도 보기 흉한  피멍이 시
퍼렇게 들어 있었다. 김덕령처럼 최후를 맞지 않은 것만 해도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정탁이 신구차를 올리고 이덕
형이 최선을 다해 이순신을 변호했으나, 선조의 결심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고문을 하서라도 이실직고를 받아내
라는 어명은 이순신을 속히 죽이라는 뜻이었다. 선조는 이순신을 참하지 않고 고문으로 죽이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를 처형하면 삼도 수군과 전라도 육군의 반발을 사겠지만,  신문하던 중에 죽었다고 하면 세월과 함께 이 
일 자체가 유아무아혐의를 확정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선조는 이순신의 죄상을 낱낱이  밝히라고 위관
들을 추궁하면서도, 정작 이덕형과 정탁에게는 이순신을 꼭 처형할 필요까지야 없지 않겠느냐는 말을 넌지시흘렸다.  
선조는 이순신이 김덕령처럼 의금옥에서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일단 대역죄인을 방면하여 왕실의 자애로움을 널
리 알린 후, 그의 죽음을 기다리려는 것이다. 그가 며칠 내에 죽기만 한다면, 그를 위해 비망기 한  장과 어주 한 병 
정도는 내려줄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이순신은 죽지 않았다. 어젯밤, 죄인이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유성룡은 유용주를 급히 이순신에
게 보냈다. 숭례문 밖에서 이순신을 만나고 온 유용주는 그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그 정도이더냐?"  "고문으
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죠. 화상이야 치료하면 나을 테지만, 문제는 각혈이옵니다. 옥을 나서자마자 피를 토해 독
주로 겨우 다스렸다고 합니다."  유용주가 비관론을 펴고 있을 때, 이순신이 사람을 보내왔다. 윤기가  흐르는 긴 수
염과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낯이 익은 사내였다. "자네는...이순신이 아닌가?" "그러하옵니다. 영상대감 그간 별고 없
으셨사옵니까?"  
이순신은 방답첨사를 거쳐 이순신의 천거로  충청수사에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순신이  삭탈관직을 당하지 
직전 그 역시 군량미를 남용하였다는 죄명으로  경상우수사 권준과 함께 파직당했다. 이순신과 권준은  훗날을 위해 
군량미를 비축하였을 뿐 결고 사사로이 유용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이순신은 삼도 수군과 전라도 육균이 한 해
를 버틸 만큼의 군량미를 항상 비축하고 싶어했으나, 조정에서  파견한 순무사들은 그것을 월권 행위로 받아들였다. 
어찌 일개 장수가 군량미르 거짓으로 아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순신은 최소한 그 정도의  군량미와 무기들을 
보유해야지만 전쟁을 치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순신과 권준은  그의 가장 충실한 동조자였다. "그대가 한양에 있
었던가?" "통제사께서 방면되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히 상경하였사옵니다."  이순신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갑오년에 
충청수사로 임명되면서 인사차 잠시 한양에 들렀을 떄도, 그는  바위처럼 침착하고 단단했었다. 이순신이 찾아온 이
유를 말했다. "통제사께서 내일 저녁 영상 대감을  은밀히 찾아뵙겠다고 하셨사옵니다." "통제사가 나를? 성치 않은 
몸으로 어찌 이곳까지 온단 말인가?" 유성룡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소장도 그같이 말
씀드렸습니다만 통제사의 뜻이 워낙 굳으신지라...죽기 전에 꼭 영상 대감을 뵙겠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통제
사가 그랬단 말이지? 죽기 전에 날 만나고 싶다고." 유성룡의 목소리가 침물해졌다. "그러하옵니다. 허나 통제사께선 
쉽게 가실 분이 아닙니다. 영상대감께서 마음을 붙잡아주십시오. 지금 통제사께 삶의 기운을 불어넣을 분은 영상 대
감뿐이십니다." 유성룡은 잠시 시선을 거두어 천정을 바라보았다. 유언을 남기려고 찾아오겠는 것인가? 
 유성룡 역시 이순신을 만나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유성룡이 도성을 벗어났다가는 곧 선조의 눈에 띌  것이
다. 그렇게 되면 이순신의 방면은 취소되고 다시 혹독한 고문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저 경거망동하지 말고 
가만히 자리를 지키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이순신의 병이  그토록 위중하고, 만나고픈 마음이 그토록 간절하다면 
물리칠 수 없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유성룡은 그와 만나기로 마음을 굳힌 다음 이순신에게 물었다. "삼
도의 수군들은 어찌하고 있는가?"  "짐작하시겠지만, 군사들의 동요가 거친  파도와 같사옵니다. 탈여병이 속출하고 
장졸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사옵니다. 이런 상태로 왜군과 맞선다면 연전연패이옵니다." "원균이 수군을 잘 이끌고 
있다는 장계가 속속 올라오고 있네" 이순신의 음성이 커졌다.  "영상 대감! 그 말을 믿으시는지요? 원장군은 장졸들
에게 호통이나 치고 위협할 뿐이옵니다. 오직 이통제사만이 삼도  수군의 심장과 눈동자 노릇을 할 수 있사옵니다." 
심과 눈동자! "아아!"  이순신이 천천히 눈을 떴다. 충혈된 두 눈동자가  유성룡을 찾았다. 몸을 일으키려는 듯 고개
를 들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유성룡은 이순신의 부어오른 눈두덩이를 더듬었다. 그리고 갈라터진 윗입술과  피가 굳든 턱수염, 인두에 댄 자국이 
선명한 목덜미를 지나 오른쪽 가슴을 쓸어내렸다.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활화산과도 같은 격한 심장  박동이 느껴졌
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다 해도 조선 수군의 심장과 눈동자  노릇을 하기는 힘들리라. 아내와 자식들의 도움을 받아 
편안히 생을 이어갈 방도를 찾아야 하리, 유성룡의 두 눈에 다시 눈물이  어리었다. 눈물 한 방울 이 이순신의 이마
로 툭 떨어져내렸다. "여해! 날 용서하게. 내가 자넬 이렇게 만들었어."  이순신이 조용히 고개를 저은 후, 손을 들어 
방문 옆에 있는 옥주전자를 가리켰다. 갈증이  심한 모양이었다. 유성룡이 그를 부축하여  앉힌 뒤 옥주전자를 입에 
가져다댔다. 이순신은 캑캑 사례 들린 소리를 내며 힘겹게 물을 들이켰다. 다시 자리에 누운 다음 겨우 입을 열었다. 
"대감!...절 버리십시오. 저는 대감께 누만 끼칠 뿐입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대감께서 절  정읍현장에 앉힐 때부터 
제 목숨은 이미 대감의 것이었지요. 대감을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하고...이 꼴로 누워 있는 것이 원망스러울 따름...입
니다." "그 무슨 소리인가? 자넬 버리라니? 날 짐승만도 못한 사람으로 만들 셈인가? 괜한 소리말게.  
이게 내 집에 머무르면서 치료를 받도록 하세. 오늘 당장 천하의 명의  허준을 불러 자네의 몸을 살피겠네. 아무 걱
정 마시게나." 이순신은 가쁜 숨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이, 이미 전 틀렸습니다. 제게 사약을 내리라
고 전하께 아뢰십시오...그것만이 제가 대감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옵니다. 제가 대감의 주청에 의해 사약을 
받으면, 저로 인해 그 동안 대감께 쏟아졌던...많은 비난과 오해는 사라질 것입니다. 제게  마지막으로 결초보은할 기
회를 주십시오." "그만두게, 자넬 희생양으로 삼아 벼슬 자릴르 지키고 싶지는 않아. 사람 목숨보다 귀한 게 어디 있
단 말인가. 잔말 말고 쉬도록 하게. 뒷일은 내 다 알아서 함세."
이순신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감돌았다. "절 탄핵하는 어전회의에서...아무 말씀 없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습니
다....올가미에 둘 다 걸려들 필요는 없지요. 대감 이제 저 같은 놈은 잊으십시오. 어차피 죽을 목숨입니다." "여해...!"  
유성룡은 말을 맞지 못했다. 이순신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 죽음에 유성룡이 함께하지  않기를 바랐다. 
유서룡은 더 이상 그를 위해 할 일이 없었다. 권율의 막하에서 백의종군하라는 어명이 내렸으므로, 이순신은 늦어도 
내일 아침에는 남쪽으로 떠나야만 했다. 내의읜 허준을 데려오는 것도, 그의 집에서 며칠을 묵게 하는 것도, 그저 유
성룡의 때늦은 바람일 뿐이다. "하늘의  뜻에 따르는 자는...살아남고, 하늘을 뜻을  거역하는 자는...죽는다고 했지요. 
어명을 어긴 제가 어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대감! 구차하게 사느니 깨끗하게 죽음을 택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새
벽이 올 때까지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이순신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인연을 끊어달라 청했고, 유성룡은 마음을 고
쳐먹고 백의종군하기를 종용했다. 하늘이 다시 기회를 줄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미 많은 부분을 체념한 듯했다. 그의 허탈한 웃음은 삶에 지쳐 하루라도 빨리  죽음이라는 긴 안
식을 얻고 싶은 인간만이 지을 수 있는 것이었다. 유성룡은 이순신을 살리고 싶었다.  "난 자넬 아네. 자넨 들풀같이 
질긴 사람이야. 자네가 어떻게 삼도수군통제사까지 올라갔는지를 생각해보게. 자넨 늘 내게 말했지. 자네에겐 원균의 
용맹함도, 신립의 지혜도, 이일의 융통성도 없다고 말이야. 그러나 결코 쉽게 물러나지는 않겠다고 했지. 난 자넬 믿
네. 왠질 아는가? 자넨 패배의 아픔이  무엇인가를, 백의종군의 고통이 무엇인가를, 천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 
아득한 휘청거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야. 그런 자는 쉽게  모험을 않는 법이지. 지금 조선에 필요한 장수
는 용맹한 장수도, 지혜로운 장수도, 융통성이 넘치는 장수도 아니네. 다만 승장의 명예나 얻기 위해 모험을 걸지 않
는 장수, 군사들의 목숨을 제 것처럼 아끼는 장수가  필요해. 자넨 내 뜻을 충분히 이해했고, 그  누구보다 훌륭하게 
남해바다를 지켰어. 잠시 때를 잘못 만났을 뿐이라고  여기게. 곧 다시 복귀할 날이 올 걸세.  알겠는가?"  이순신은 
힘없이 팔을 늘어뜨린 채 조용히 웃기만 했다. 이제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 장졸들을 지휘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요신 형이 그랬지요...헉, 서애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그럼 넌 네 능력보다 더한 광영을 얻게 될 것이다. 허
어억..., 요신 형의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영상 대감의 과분한 은혜로 삼도 수군의 으뜸 장수까지 되어보았으니...이
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희신형과 요신 형을 뵈올 때가 가까운 듯합니다...헉헉 커어어억!" 손으로  가릴 틈도 없
이 검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이순신을 내려다보던 유성룡의 옷이 온통 피로 얼룩졌다. "여, 여해!" 유성룡은 쏟
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죽는구나. 네가 정말 죽어. 어찌 네가 나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간단  말이냐? 이 전
쟁이 끝나기도 전에 흙속에 묻히겠구나. 죽는구나. 네가 정말 죽어 너의 붉은 마음 아직 반도 거두지 못했는데, 죽는
구나, 아 여해! 날발은 동이 트기 전에 이순신을 업거 다시 숭례문을 나섰다. 밤새 쏟아지던 비가 그치자, 언제 그랬
냐는 듯이 붉은 기운이 동쪽 하늘을 덮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이순신은 이미 언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검은 눈덩자가 자꾸  위로 넘어가면서 사지에 경련이 
일었다. 입이 오른쪽으로 비틀렸고, 침이 질질 입 밖으로 흘러내렸다.  이울이 퍼질러 앉아 대서통곡을 했다. 이분과 
이봉은 침착하게 이순신을 아랫목에 누인후 전신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순신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심장
이 아픈 듯 자꾸 손을 들어 가슴을 치는 시늉을 했다. 이순신이 머리맡에 앉아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으나 알아듣지 
못했다.  반쯤 남아 있던 정신도 차츰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손 등을 꼬집어도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렁
그렁 거친 숨소리와 함께 식은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저러다가 어느  순간 그르렁 하는 순간 소리가 멈추면, 그
것으로 한 인간의  삶이 끝나는 것이다. 방안의 사람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이순신의 거친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
다. 그 신음 소리만이 그가 살아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 "계십니까?" 텁텁한 목소리가 이순신의 숨소리와 섞여 방안
까지 밀고 들어왔다. 집 앞을 지키던 군졸 하나가 문을 벌컥 열었다.  "거렁뱅이가 통제사 어른 뵙기를 청하옵니다." 
이순신과 날발이 밖으로 나갔다. 흰 천으로 얼굴과 온몸을 휘감은  사내가 문밖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눈을 찡그리
며 그에게 다가서던 이순신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호통을 쳤다. "네 이놈! 문둥이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왔느
냐? 썩 꺼지지 목할까?" 문둥이라는 말에 군졸들은 화들짝 놀라며 창을 비껴 들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 사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통제사를 뵙게 해주십시오. 위독하시지요? 소인이 그 병을 치료할 수 있습죠." 이순
신은 장창을 내리 뻗어 단숨에 찌를 자세를 취했다. "어떻게  그걸...?넌 누구냐?" 문둥이 사내가 한 걸음 앞으로 다
가서며, 이순신의 뒤에 서있는 날발으 향해 웃었다.  날발의 눈이 점점 켜졌다. " 아, 아니  당신은..." "오랜만입니다. 
정읍에서 폭우가 쏟아지던 밤에 잠깐 만난 적이 있죠? 여전히 통제사를 그림자처럼 뫼시고 있군요." 이순신이 두 사
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날발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최중화라고 정읍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의원입니다. 장군께
서도 그 이름을 익히 들으셨을 것입니다. 난이 터지자 강릉을 중심으로 피난민들을 구휼한 신의가 바로 저 사람이지
요. 헌데 문둥병에 걸리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최중화는 즉답을 피했다. "과거지사를 논하기보다는 통제
사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순신이 재차 물었다. "진정 통제사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가?" 최중화가 여유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통제사의 체질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죠. 의금옥에 오래 갇혀 
있었다는 것도 여러 가지 고문을 당했다는 것도 이미 들었습니다.  지금 약을 쓰지 않으면 결코 회생하지 못합니다. 
소인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래도 이순신은 선뜻 응낙할 수 없었다. 과거에 명의였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한낱 문둥이
가 아닌가. 자칫 방에 들여놓았다가 몹쓸 병이라도 옮는 날이면 그 일을 어찌할 것인가. 잠시 주저하고 있는데 이울
이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아버님께서...숨을 내쉬지 못하십니다." 이순신과 날발이 방을로 들어갔다. 이순신은 오른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왼손을 허공에 뻗어 무엇인가를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이 당
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판이었다. 이순신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다. "날발!  데려오게" 최중화의 
몸에서는 땀냄새와 흙냄새, 그리고 음식 썩는 냄새가 동시에 풍겨나왔다. 이분과 이봉, 이울은 최중화의 앞을 가로막
은 후 왜 이런 자를 청했느냐고 이순신에게 따졌다. 이순신이 그 시선을 되쏘아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맡
겨달라는 뜻이다.  
최중화는 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심장을 중심으로 목과등, 그리고 머리의 경혈을  짚어나갔다. 대여섯 군데
의 혈을 짚자 이순신이 푸우웃 탁한 숨을 토해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어싿. 최중화가 흰 천으로 
얼굴을 다시 감싸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나가주십시오. 치료에 방해가 됩니다." 그의 말투는 단호하고 힘이 넘쳤
다. "부탁하네" 이순신이 이봉과 이분, 이울, 그리고 날발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텅 빈 방에는 이제 이순신과 최중
화 두 사람만이 남았다. 이순신의 거친 숨소리가 메아리쳤다. 최중화는 천천히 손에 감겨 있던  천을 풀었다. 엄지손
가락을 제외하곤 손가락이 모두 떨어져나간 뭉툭하고 흉측스러운 손이  드러났다. 누런 진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머
리와 얼굴을 감싸고 있던 천도 풀어헤쳤다. 움푹 들어간 코와 심하게 일그러진 완쪽 눈두덩이가 드러났다. 최중화의 
상처투성이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는 엄지손가락 두 개를 사용해서 이순신의 속옷까지 남김
없이 벗겨냈다.  이순신의 몸뚱이는 최중화의 그것과 진배없었다. 갈라지고  터지고 허물어져서 살색이 도는 부위가 
한 군데도 없었다. 최중화 삐뚤어진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장군! 오랜만입니다. 정읍에서 헤어진 지도 벌써 칠 년이 흘렀군요.  우리들의 재회는 참으로 뜻밖입니다. 장군의 몸
은 고문 때문에 만신창이가 되었고, 저의 몸은 몹쓸 병 때문에 인간의 형체를 점점 잃어가고 있지요. 장군!  조선 제
일의 장수가 되겠다던 소원은 이루셨는지요? 청사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길 명장이 되셨는지요? 그동안 저는 명의가 
되기 위해 팔도를 돌아다녔답니다. 더러 신의라는 칭송까지 받았으나, 덜켝 불치의 병에 걸리고 말았군요. 운며을 깔
본 저의 불찰입니다. 장군! 정읍 시절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성취할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향해 밤을 지새울 
열정이 있었으니까요. 끝없이 펼쳐진 크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느라 눈코 뜰 새 없는 시절이었지요. 장군!  허나 우리
는 늘 봉우리에 오를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네 운명에서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으리라 자신했던 겁니다. 
아니 그 추락의 가능성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싶었겠지요. 장군은 백의 종군의 치욕을  원치 않았고, 저는 허준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싶었지요. 허나 운명은 다시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붙였군요. 장군은 또다시  백의종군을 댕했고, 
저는 이렇게 문둥이가 되었습니다. 장군께서 넘어서고 싶어했던, 장군의  우상이자 적이었던 원균 장군은 어디에 있
나요? 저의 우상이자 적이었던 허준은 어디에 있나요?  우린 둘 다 우리의 우사응을 죽이지 못했군요.  우리는 결국 
우리의 적에게 더 높은 광영을 헌납했을 뿐입니다.  
 최중화는 품에서 대침을 꺼내 엄지와 반쯤 떨어져나간  검지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이순신의  온몸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장군! 이제 저는 인생의 간계를 알겠습니다. 허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허준이 탁월한 의서를 편
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운명이었던 게지요. 제가 팔도를 유랑하며 약초를 캐고 새로운 치료법을 익힌 것도 따
지고 보면 제게 복수심과 경쟁심을 불어넣은 허준, 그 사람의 공이 아닐는지요? 제가 신의로 불릴 만큼 실력을 쌓은 
것 역시 허준, 그 사람의 덕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제 경험을 넘겨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상을 죽이거나 넘
어설 수는 없는 법이지요. 이제야 저는 그 흔한, 속되고 속된 삶의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장군! 저는 장군의 분노를 
알고 있습니다. 장군의 슬픔, 두려움, 아픔이 느껴집니다. 이대로 숨을 거둔다면, 장군은 저 세상에 가서도 그 지독한 
감정들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되지요. 장군!  우상을 위하십시오. 적을 품에 안으십시도.  그것만이 장군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길입니다. 장군! 느끼십니까? 이것이 이 세상에 배푸는 저의 마지막 의술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대침을 찌른 최중화는 벌렁 뒤로 나자빠져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천천히 이마 위로 오
른손을 들었다. 엄지 손가락 끝마디가 반쯤 떨어져나가 건들거렸다. 왼쪽 엄지손가락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손을 마
주 잡으니 손가락 두 개가 맥없이 콧등으로 툭 떨어졌다. 그는 두  팔을 벌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소리 없는 웃음이
었지만 참으로 크고 호방한 웃음이었다.  "컥...컥컥!" 그 웃음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이순신이 울컥울컥 피가 섞인 
가래를 뱉어다며 움찔거렸다. 최중화는 급히 일어나서 흰 천으로 다시 얼굴과 손을 정성껏 감쌌다. 엄지손가락이 없
기 때문에 훨씬 어렵고 까다로웠다. 이순신의 퉁퉁 부은 눈꺼풀이 파르르르 떨렸다. 장군! 부디 큰  깨달음 얻으시기
를! 최중화는 이순신에게 큰절로 작별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물러났다.  마루에 앉아 있던 이순신이 다급한 목소리
로 물었다. "통제사는 어떠신가?" 최중화는 대답대신 날발을 눈짓으로 불렀다. "내 바지춤을 찾아보시오"  날발은 아
무런 주저함도 없이 최중화의 옆구리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문둥이의 남루한 옷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깨끗하고 고운 비단보자기가 나왔다. 이순신이 그 보자기를 건네 받았다. 
"일단 응급처방을 해두었습죠. 허나 워낙 병이 깊어 침술만으로는 완치시킬 수가 없습니다.  사슬 전, 목몃산 자락에
서 거둔 약초이옵이다. 피를 맑게 할 뿐만 아니라 각혈를 막고 혈도를  계속 뚫어줄 겁니다. 그 약초를 달여 마시면 
더 이상 중병을 앓지는 않으실 겁니다." "고맙네" 최중화는 멀찍이 서 있는 이분과 이봉, 그리고 이울에게 허리 숙여 
작별인사를 했다. 이순신이 물었다. "좀더 장군 곁에 머무는 것이 어떠한가? 치료로 하고 옛 추억도 더 들으면서 말
일세" 최중화가 정중하게 그 청을 거절했다. "사람이 있을 곳과 문둥이가 있을 곳은 다릅죠" "어디로 갈텐가" "이젠 
살아서 더 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묘자리를 찾아봐얍죠.  어서들 들어가세요. 장군께서 깨어나셨을 겁니다. 마지
막으로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뭔가?" "장군께 소인이 문둥병에 걸렸다는 이야긴 마십시오. 돈도 많이  벌고 의술
도 훌륭하게 익힌 최중화가 우연히 둘렀었다고만 말씀드려주십시오. 이 불쌍한  놈의 마지막 소원이옵니다." "...알겠
네!" 최중화의 시선이 날발에게 옮겨갔다. "마지막까지 장군을 잘 보필해주오" 최중화는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인 후 
미련 없이 뒤돌아갔다. 생명의 은인을 이대로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지만 이순신은  최중화를 붙들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 문둥이가 가야 할 길과 장수가 가야 할 길은 너무나도 달랐다. 최중화기 이통제사를  뵙지 않고 서둘러 
길을 떠나는 것도 부끄러운 말년을 보이기 싫어서이리라. 열심히  공부하는 최중화, 밤낮없이 환자를 치료하는 최중
화 사시사철 산하를 누비며 약초를 캐는 최중화로 기억되고 싶어서리리라.  
이순신은 이분과 이봉의 부축을 받아 벽에 기대고 앉았다. 그는 힘에 겨운 듯 시선을 내린 채 간간이 숨을 몰아쉬었
다. 이순신이 바짝 다가앉았다. "누우시지요. 아직 일어나시면 아니됩니다." 이순신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야. 오늘 길을 나서야 하네. 기일을 어기고 싶지...않으이... 헌데 누가 날 ...돌보았는가?" 이순신이 대답했다. "옛날 정
읍에서 의우너 노릇을 하던 최중화란  사람이 왔었습니다." "최의원이..." 이순신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침 일찍 떠났사옵니다." "무, 무정한 사람! 칠 년만에 와선 그냥 가다니... 혹 날 만나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 겐가" 
"아닙니다. 급한 환자가 있어서 인사도 못하고 떠나는 것을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약초를 팔아 꽤 많은 돈을 모
은 것 같았습니다. 곧 다시 찾아뵙겠다고 하였지요." "약초를 팔아서...돈을  모아?" 이순신은 의심스러운 듯 눈을 크
게 뜨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순신이 서둘러 말머리를 돌렸다.  "날발을 뱃길로 여수까지 보
내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님께? ...그래주게" 이순신은 올해로  여든세 살인 어머니 변씨의 주름진 얼굴을  떠올렸다. 
어머니의 근심걱정을 하루라도 빨리 풀어드리고 싶었다.  통제사 아들의 곁에 있고 싶어해서 한산도  근처의 여수로 
모셨었다. 날발이 떠난 후 이순신은 조카 이분의 등에 업혀 남행을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온화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졌고, 최중화가 준 약초를  달여 먹으니 병세도 차츰 호전되었다. 초사흘에
는 수원성에는 머물렀고, 초나흘에는 오산에서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초닷새, 꿈에도 그 리던 충청도 아산에 도착했
다. 그는 곧장 아버지와 두 형이 묻힌 어라산으로 찾아갔다. 전쟁통에 산불이 나서 무덤 주위의 수목들이 모두 시커
멓게 타죽어 있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울음을 삼키다가 까무러쳤고, 다시 깨어나서  눈물을 쏟
았다. 벌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몰골로 이렇게 엎으리게 된 몹쓸 죄인이옵니다. 가문을 옥보인 되인이옵니다. 임금을 
업신여기고 나라에 누를 끼친 죄인이옵니다. 전쟁터에서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다시는 한양 땅을 밟지 않
고, 바다에서 삶을 끝맞도록 굽어 살피시옵소서. 이 몸이 죽기 전에, 조선의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인 저 왜놈들을 한 
놈이라도 더 베도록 허락하시옵소서. 제 칼은 무디고 제 활은 힘을 잃었나이다.  제 몸은 병들고 제 마음은 작은 바
람에도 흔들리나이다. 제게 힘을 주시옵소서. 영광스럽게 죽을 수 있는 자리를 살피시옵소서. 
 아침부터 시작된 통곡은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 저녁까지 이어졌다. 마침내 탈진하여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다음날 아침 여수로 떠났던 날발이 돌아왔다. 이순신은 날발의 손을 꼭  붙들고 차근차근 물었다. "어머님은 
어떠신가?" "건강하십니다." "소식은 전했는가" "예 장군! 무척 기뻐하셨사옵니다. 서해안 뱃길로 뒤따라오시겠다 하
셨습니다." 이순신이 깜짝 놀라며 언성을 높였다. "무엇이? 어머님이 배를 타신다고? 아니될 일이야. 여든 노인이 그 
험한 뱃길을 어찌 오신단 말인가?" "아무리 말려도 한사코 고집을꺽지 않으셨습니다.  장군과의 만남을 한시라도 미
물 수 없다시면서...이미 길을 나섰을 것이옵니다." "아, 어머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의 어
머니이지만 한 번 마음을 정한 일은  기어이 성사시키고야 말아싿. 이제는 무사히 올라오시기만을  기원할 도리밖에 
없었다. 날발을 내보내고 자리에 누웠다.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남편과 두 아들을 먼저 보내고, 
오직 나만을 의지하며 살아오신 분.  
장수의 길로 들아선 내가 좌절할 때마다 언제나 용기를 북돋워주신 분. 슬픔을 감내하는 법과 고통을 견디는 법, 절
망 속에서도 희망의 꽃봉오리를 찾는 법을 가르쳐주신 분. 내게 몸과 마음을  주신 분. 어머니!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순신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낯익은 얼굴이 그의 뒤를 따랐다. "장군! 권도원수께서 전령을 보내왔사옵
니다." 도원수의 전령이 눈물로 아뢰었다. "장군 그간 안녕하셨사옵니까? 송대립이옵니다." 아우인 송회립과 함께 독
전고를 두들겨대던 북의 달인 송대립이었다. "그대가 웬일인가?" "장군께서 잡혀가신 후 권도원수를 찾아 뵙고 모시
기를 청했사옵니다. 아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사옵니까? 이것은 모두 저  간사한 원수사 때문이옵니다. 분하고 
분하옵니다." 송대립이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다 내 잘못이야" 이순신은 짧은 대답으로 송대립의 마음을 달래었다. 
"도원수의 말씀은 무엇인가?" 송대립이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쳤다. 따로 서찰을 보낸 것은 아닌듯했다. 도원수가 무
군지회를 범한 죄인에게 전령을 보내거나 서찰을 전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래서 충성심이 남다른 송대립을 
택했으리라. "도원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씁하셨습니다.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급히 내려올 
생각 말고 고향에 머물러 잠시 몸을 치료하도록 하라.  
필요하다면 군사와 양식을 보낼수도 재회를  손꼽아 기다리겠다." "분에 분에  넘치는 배려로구나. 도원수께 감사의 
뜻을 전하게. 늦어도 이 달 말까지는 순천에 도착하겠다고 알겠는가?" "예, 장군" 이순신은 아산에서 어머니를  기다
리기로 마음을 굳혔다. 타향에서 상봉하기보다는 아산에서 어머니를 뵙고, 가족들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편이 나을 
성싶었다. 이레가 물처럼 흘러갔다. 열사흘날이 되었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초아흐렛날에 어머니를 
실은 배가 안흥량에 닿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그래도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저께 밤에 꾼  악몽이 자꾸 마
음에 걸렸다. 거대한 새가 방화산으로 날아들었다. 모에는 황구의 털이  나 있었고 돼지의 어금니가 이빨로 박혀 있
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새의 얼굴을 살폈다.  이목구비가 참으로 인간과 비슷했다. 이마에는 불효라고  적혀 있었고 
입술 아래에는 부자라는 붉은 글씨가  선명했다. 콧잔등에는 부도라고 적혀  있었다. 겨드랑이를 살펴보는데 갑자기 
그 새가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등뒤에서 다음과 같이 속삭였다. "불효조구먼" 그 새의 이름이 마음에 걸렸다. 어머니를 기다리
는 마당에 불효조가 날아든 것이 불쾌했던 것이다. "아버님 소자 면이옵니다." "들어오너라" 그 동안  이순신의 몸은 
몰라보게 회복되었다. 이제는 날발의 등에 업히지 않고서도 방화산을  마음대로 오르내릴 정도였다. 어느덧 셋째 아
들 면의 나이도 스물한 살이 넘었다. 얼굴이 갸름하고 눈매가 날카로운 것이 아주 아버지를 닮았다. "밤새 평안하셨
사옵니까?" "오냐, 너는 요즘 무슨 서책을 읽고 있느냐?" "사기를 읽고 있사옵니다." "그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들 중에서 누가 가장 마음에 드느냐?" "오자서 이옵니다." "오자서라, 그 이유가 무엇이냐" "오자서는 초나라 평왕이 
자기 가문을 멸하자 평생 복수를 꿈꾸며 살았사옵니다. 소자도 오자서처럼, 한 번 세운 뜻을 죽은 그 순간까지 지키
고 싶사옵니다." "허나 오자서는 복수심에 눈이 멀어 인륜에 어긋나는 짓을 많이 저질렀느리라. 초나라 평왕의 묘를 
파헤쳐 그 시신을 삼백 번이나 매질 한 것은 참으로 지나친 행동이다. 그렇지 않느냐?"  면이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
쳤다.  "어떤 일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그 일의 전후 사정을  모두 따져야만 합니다. 오자서가 타국에서 흘린 피눈물
에 비하면, 그 정도 매질은 약과가 아닐는지요?" 이순신은 이글이글 불타는 면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면아! 
애비가 관직을 잃고 백의종군을 당한 것은 모두 이 애비의  잘못이다. 그 누구도 원망해서는 아니된다. 특히 왕실과 
조정에 딴 뜻을 품어서는 결코 안 되는 일이리라.  알겠느냐? 설령 우리 가문이 멸문을 당한다 해도  왕실을 상대로 
복수를 할 수는 없다. 내 말 명심하렷다."  "하오나 아버님, 승장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여 죽이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지요?" 이순신이 호통을 쳤다. "닥치거라! 넌 사기의 참뜻을 모르고 있구나. 역사가  무었이냐? 대의를 지키고 
도를 따를 것이 역사이니라.  
한 나라의 장수된 자가 그것을 지키고 따르지 않는다면 어찌 역사에 맑은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느냐. 개개인의 사소
한 죽음은 대의에 어긋날 수도 있겠지만 역사는 거짓을 담지 않는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사옵니다." 면은 마지못
해 대답한 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순신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면은 세 아들 중에서 장수의 기질이 가장 넘
쳤다.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할 뿐마만 아니라 외가에서 배운 활솜씨가 보통 을 넘었고 장검을  휘두르는 실력은 이
순신을 능가할 정도였다. 이순신은 면이 오자서와 같은 길을 다더럭 허락할 수 없었다. 그 길은 참으로 고난과 아픔
의 가시밭길이 될 터. 이순신은 면이  곧고 바르게 자라서 되도록 이면 문신의  길로 들어서기를 원했다.  할머니를 
닮아 면의 고집도 보통이 넘지. 시간을 내서 다독거려야겠어. 장수의 길은 나 하나로 족해.  이순신은 채비를 차리고 
길을 나섰다. 해암 근처의 바닷가에서 숙소를 정하고 어머니를 기다릴  참이었다. 날발을 먼저 보내고  천천히 걸음
을 옮겼다. 몇몇 지인의 집에 들러  인사를 나누었다. 만류하는 손길을 뿌리치고  비릿한 바닷내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저점 다가갔다.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을 빙빙 도는 갈매기떼의 모습도 보였다.  그의 표정이 밝아
졌다. 안흥랴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하니. 어머니를 실은 배는 오늘 내일 안에 해암으로 들어  올 것이다. 어머니와의 
상봉을 생각하자마자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졌다.  
어머니!  푸른 하늘을 향해 가슴을 활짝 폈다. 팔순  노모의 주름진 얼굴이 하늘을 온통 뒤덮었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니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옹기종기 모인 섬들이 수면을 헤엄치는  물고기를 닮았고, 어선들이 그 섬 사이를 오
가며 숨바꼭질을 했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는 바로 이런 풍경을 지
키기 위해 장수가 되었다. 결코 헛된 나날들이 아니었다. 그토록 끔찍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적어도 서해만은 예외
였던 것이다. 해안선이 굽어지는 남쪽 끝에서 한  사내가 질풍처럼 달려어거 있었다. 날발이었다. 저렇게  있는 힘을 
다해 뛰어오는 것을 보니 어머니를 실은 배가 도착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점점 가까워지는 날
발을 그윽이 쳐다보았다. 날발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그대로 모래사장에 이마를  박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미소를 
머금었던 이순신의 얼굴이 차츰 일그러졌다. 눌라움과 답답함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무슨 일이냐?" 차갑게 물었다. 
"...대부인...마님께서..." 날발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날카로운 비수가 이순신의 가슴을 찔렀다. "어머님이 왜?" "지난 
열하룻날에 ...안흥량에서...돌아가셨다 하옵니다." "..."  이순신은 두 주먹을 치켜들다가 고목이 쓰러지듯 뒤로 넘어갔
다. 날발이 재빨리 달려들어 부축했다.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갔다. 눈앞에  검은 어둠이 비단처럼 펼쳐졌다.  어둠을 
찢고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이틀 전, 꿈에서 본 불효조였다. 불효조는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소리와 흡사
한 울음소리를 냈다. 곧장 북쪽으로 향하던  불효조가 갑자기 몸을 돌려 그의 머리위를  한 바퀴 비잉 돌았다. 그때 
이순신은 똑똑히 보았다. 불효조의 목덜미를 부여잡은채 손을 흔들고 있는 늙은 여인의 얼굴! 어머니였다.
    
2. 혁명을 찾아서  정유년 4월 14일 아침.  정칠품 세자시강원 설서 허균은 아침 일찍 입궐했다.  새벽에 광해군으로
부터 속히 오라는 전갈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경연이 열리는 날도 아니기에, 허균은  늦잠을 푹 잔 후 스승인 
이달, 한호와 어울려 술이라도 거나하게 마실 계획이었다. 예문관검열과 춘추관기사관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그
들과 어울릴 틈이 없었던 것이다.  작년 동짓달, 선조는 허엽의 아들이자 허성, 허봉의 동생인 허균을 지목하여 임진
년 이후 지금까지의 전란을 기록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춘추관의 사료들을 뒤적거려보니 지난 오 년여 동안 조선 팔
도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전투의 구체적인 정황이나 의병과 관군의 수, 조선에 들어온 명나라  장수들의 신상명세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기록된 것이 없었다. 그는 우선 세간에 떠도는 소문과 이름없는 선비들의  기록을 모조리 수집
하여 객관적인 사실만을 편년체로 기록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제 다음달이면 그 일도 일단락된다. 그는 내심 그 책
의 제목들 동정록으로 정해두었다. 북서쪽으로 몽진했던 조정이 다시 동정하여 왜군을 몰아내는 것을 기본  틀로 삼
았기 때문이다.  
사료들을 정리하면서 임진년 전란의 공과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전세를 반전시킨 일등 공신은 전라도를 지켜낸 수
군통제사 이순신과 도원수 권율이었다. 전라도가 무사했기에 북서쪽의 장수들이 수시로 연통을 취할 수 있었고 군량
미와 병력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만약 전라도마저 적의 주중으로 넘어갔다면 조정은 요동으로 물러나는 것 외에 별
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공을 세운 이는 하삼도의 의병이었다. 그들은 부산에서 평안도나 함경도로 
가는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군량미와 의복을 빼앗았다.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린 왜군들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졌
다. 곽재우와 조헌을 비롯한 대부분의 의병장들이 남명 조식의 제자라는 점도 이채로웠다. 조정 대신들 중에서 공이 
큰 사람은 유성룡과 이덕형, 그리고 윤두수였다. 유성룡과 윤두수는 요동으로 건너가려는 선조의 마음을 되돌렸을뿐
만 아니라 도체찰사로 직접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덕형은 목숨을 걸고 여러 차례 왜진을 넘나들었다. 분조를 이끌고 
강원도와 하삼도에서 각각 전쟁을 지휘한 세자 광해군의 공도 컸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은 궁궐을 불지르기까지 했
던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 왕실로 되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전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과오 역시 적지 않았다. 먼저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던 동인
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왜국을 미개한 오랑캐의 나라로만 치부하지 않고 풍신수길의 야망과  그 야망을 
현실로 옮길 수 있었던 저들의 군사력을 살폈다면 단숨에 평양까지 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
는 명나라와 왜가 강화 회담을 벌이는  동안 조선이 철저하게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유성룡과 이덕형, 이항복 드이 
백방으로 뛰었지만 심유경과 소서행장 사이에 오간 밀담의 내용을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끝으로 명나라에  대한 조
선 조정의 지나친 의존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느느 참전국들의 이해득실을  면밀히 따
져서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필요한데, 조선 조정은 명나라를 천장의 나라라고 하여 무조건 신뢰했다. 어히려 명나라
가 조선과 왜국이 힘을 합쳐 요동을  치지나 않을까 의심하고 두려워한 흔적이 원군의  파병을 미루던 개전 초기에 
속속 드러났다.  허균은 이 전쟁에서 가장  큰 잘못을 범한 사람은 군왕인 선조라고  생각했다. 왜군이 처음 부산에 
상륙했을 때 안일하게 대마도 정벌을 논한 것부터 시작해서 조선 팔도를 버리고 내부하려 했던 일툭하면 양위를 거
론해서 신하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지 못한 일, 명군의 작은 승리는 일일이 챙기면서 하삼도 의병의  큰 승리는 철저
히 외면한 일, 김덕령을 죽이고, 곽재우를 하옥시키고, 이순신을 고문한 일까지 끝없는 과오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대신과 장수들이 큰 전공을 세워도 군왕이 중심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승리는 요원하다. "오랜만이구나" 광해
군은 편전에 문안 인사를 다녀온 후 허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자시강원은 정일품 사전에서 정칠품  설서에 이르기
까지 덕성을 기르도록 돕는 기관이다. 정칠품인 설서는 직접 세자를 가르치기보다 공부에 필요한 서책을  구하고 해
제하는 일을 전담했기에 세자와 대면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더구나 허균은 사초를 정리하고 편찬하는  일을 맡았
는지라, 홍문관이나 춘추관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았다.  허균이 자리를 잡고  앉자 광해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차참으로 중요하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어야 할 것이야" "명심하겠사옵니다.  세자저하" 광
해군은 임진년 7월 강원도 이전에서의 만남을 잊지 않았다. 그때 허균은 도제천하를 이야기했었다. 도로써 만백성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승패에 집착하지 말고 민심을 먼저 살피라는 주장이었다. 그때보다는 얼굴에 살도 붙고  몸도 건
강해 보였다. 세자 앞에서도 거침없이 자기 주장을 펴기에 장차  조정에 꼭 필요한 인물이 되겠거니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세자시강원에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장원급제를  축하하기 위해 불렀느리라." "망극하옵니다." 허균은 3
월에 있었던 문과 중시에서 장원급제를 했다.  
중시는 이미 과거에 급한 젊은 신료들이 얼마나 학업에 매진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특별히 치르는  과거였다. 거기
서 장원을 하였다는 것은 허균의 글솜씨가 그 또래 신료들 중에서 으뜸에서 뜻이다.  "축하주 한잔이 없어서야 쓰겠
느냐? 여봐라! 주안상을 내오도록  해라." 세자가 세자시강원 설서와 낮술을 마시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더구나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의 왜군이 북상을 시작한 때에 아침부터 술상을 내오라는 것은 광해군답지 않았다. 허균
은 잠자코 주안산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기방 출입이 잦다고 들었는데 학문은 언제 닦았는가?" 광해군이 먼저 기
선을 제압하고 나섰다. 미행당했구나. 허균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답했다. "스승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이옵니다." 
"허설서의 스승이 누군가?" 광해군은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서애대감께 문을 익혔고, 손곡 이달로부터 시를  배웠
사옵니다." "손곡의 어미는 기생이라지?" "그러하옵니다." 손곡 선생의 뒷조사까지 한 것일까? 광해군은 사람을 풀어 
신하들을 살펴왔다. 분조에서 거느렸던 여러 대신들과  장수들의 크고 작은 일들을 챙겼는데 특히  전주와 홍주에서 
만났던 하삼도의 의병장들은 광해군에게 큰 힘이 되었다.  "십만 명이 넘은 왜군이 또다시 남해안에  상륙했다고 한
다. 허설서도 알고 있겠지?" "예 저하!" "전쟁이다. 강화 회담이 결력되었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이제다시 전면전
을 벌여야 해. 허설서!" "예 저하!" "이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편에 승산이 있다고  보는가?" "..."  광해군
은 오랑캐인 왜가 동방예의지국인 조선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식의 명분론을 버린 지 오래였다.  전쟁은 힘으로 하
는 것이다. "무엇하는 건가? 아무 걱정 말고 솔직하게 말해보거라."  
광해군에게는 마음놓고 현재의 전황을 논의할 사람이 필요했다. 유성룡이나 이덕형은 매일 편전에서  선조의 노여움
을 다독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생각난 이가 허균이었다. 허균은 강원도와 평안도에서의 피난 생활을 통해 민
심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세자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배짱을 지녔다. 더구나 그는 
서에 유성룡의 제자가 아닌가. "저하! 임진년에 들불처럼  일어났던 학삼도의 의병을 기억하시는지요?" 광해군이 고
개를 끄덕였다.  "임진년에 조선이 승기를 잡은 것은 의병의  역할이 컸사옵니다. 하온데 가등청정이 대군을 이끌고 
상륙한 지금, 하삼도에서 의병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셨는지요?" "듣지 못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
해보시옵소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광해군의  두 눈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먹이를 발견한 맹수의 눈빛이었다. 
허균은 그 눈빛을 외면한 채 말을 이었다.  "산천도  그대로이옵고 백성도 그대로이옵니다. 임진년에 거병했던 의병
장들도 하삼도에 그대로 머물고 있사옵니다. 헌데 그들은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 있사옵니다. 세자저하! 그 까닭을 아
시겠사옵니까? 민심이 돌아선 것이옵니다. 백성들이 이 전쟁 자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지 간에 개인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민심은 곧 천심이라 하였사옵니다.  
천심이 돌아섰는데 조선이 어찌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사옵니까. 저하! 먼저 민심을 살피시옵소서. 백성들의 아
픔을 어루만져주시옵소서."  광해군이 되물었다. "승리할 수 없다? 조선이 패한다 이 말이렷다?" 허균이 방바닥에 닿
을 만큼 머리를 조아렸다. "허설서! 그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허면 왜 민심이 돌아선 것이냐?" "상과 벌을 분명히 
하지 않아서이옵니다. 하삼도의 의병장들 중에서 전공에 합당한 상을 받은 자가 몇이나 되옵니까?  상은커녕 터무니
없는 중벌이 내려졌사옵니다. 전라도의 김덕령은 고문을 받다가 목숨을 잃었으며 경상도의 곽재우  역시 하옥되었다
가 겨우 목숨을 부지했사옵니다. 의병장의 최후가 이와 같은데 누가 나라를 위해 큰 뜻을 세우겠사옵니까. 그뿐만이 
아니옵니다. 임진년에 자기가 맡은 고을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친 수령들이 버젓이 원직으로 복귀하였사옵고 되려 벼
슬이 오른 자도 수십 명이옵니다. 저하! 백성들의 눈과 귀를 속일 수는 없사옵니다. 공을 세운 자들에게 합당한 상을 
죄를 지은 자들에게 엄한 벌을 내리시옵소서. 그리하면 백성들은 마음을 돌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허균의 목소리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힘이  넘쳤다. 광해군이 눈을 부라리며 이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번 내린 
결정을 바꿀 수는 없다. 이는 왕실의 위엄과 직결되는 일이니라.  나라가 위태로울 때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터
로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어찌 그 일에 공과를 따지겠느냐. 도망친  관리들을  용서한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드를 모조리 벌하고 나면 고을은 누가 다스린단 말이냐. 허설서와 같은 불만을 가질 수는 있겠으나 어찌 그
것이 이 나라 백성의 마음이리요. 지난번에 난을 일으킨 이몽학도 허설서. 그대와 똑같은 주장을  폈다. 허나 조정이 
잘못을 범했다고 해서 백성들의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무릇 백성들의 뜻은 수만 갈래도 나뉘게 마련이다. 민심이 
곧 천심이라면 백성들의 수만 가지 뜻 중에서 어떤 것이 천심이겠느냐. 전쟁을 하려면  우선 왕실과  조정이 안정되
어야 한다. 김덕령이나 곽재우는 왕실을 위협할만큼 권세를  누렸으니, 어찌 그들에게 죄가 없다 하겠는가.  나 역시 
김덕령을 죽인 것은 지나쳤다고 생각하지만 의병들에게서 무기와 군량미를 빼앗고 그들을 관군에 편입시킨 것은 너
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이 땅에는 사사로운 군대가 있을 수  없다. 김덕령이나 곽재우의 명령만을 따르는 군대가 있
어서는 결코 아니된다. 오직 어명만이 조선의 군대를 움직일 수 있다.  
그것만이 우리가 강해지는 길이며 힘을 갖는 길이며 승리하는 길이다. 아니 그런가?" 광해군은  산적한 현안들을 왕
권의 강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다.  "저하! 한나라가 무너질 때 황건적이 일어났듯이 수백 혹은 수천의 도적떼가 
방방곡곡을 휩쓸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이미  이 나라를 버렸사옵니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시옵소서."  "도적떼는 
도적떼일 뿐이다. 쳐서 멸하면 그만인 것이야" 허균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광해군은 강원도 이천에서의 입장과 조
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왕권의 강화를 위해서라도 민심을 살피는 것이 급선무라는 허균의 주장과  흐트러진 민심
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왕권을 먼저 강화해야 한다는 광해군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허균은 마음속  깊이 묻어두
었던 생각을 꺼냈다. "저하! 여명도 틀릴 수 있사옵니다." "그래?" 광해군의 눈길이 매서워졌다. "장수가 잘못된 명령
을 내려 군사들을 잃으면 중벌을 받사옵니다." "그래서?" "왕권과 신권의 대결은 헛것이옵니다. 어디에  힘을 실어주
는거보다 무엇이 옳은가를 살피시옵소서. 어명이라도 그릇되다면 고쳐야 하옵고 촌무지렁이의 이야기라도 옳다면 따
라야 하옵니다." "...어명과 촌로의 말을 함께 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내 의견보다 허설서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고?" "그러하옵니다." "아바마마의 뜻보다 이순신의 생각이  타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렀다?"  광해군의 
목청이 점점 더 높아졌다. "..." "대답해보라. 허설서의 말을 따르자면 아바마마의 뜻보다 이몽학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허균은 그때서야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몽학은 역적이옵고 이순신은 무군지죄를 범한 죄인이옵니다. 어찌 그들의 생각
과 주장이 옳을 수 있겠사옵니까?" 허균은 앞서 말한 자신의 논리와 상반된 주장을 폈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광해군 역시 더 이상의 언쟁을 원치않는  듯 시선을 아래로 거두었다. 허균으로부터 하삼도의 상황
과 조정 분위기를 들었으니, 애써 그를 몰아세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오늘 일을 약점으로 잡아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  "허설서! 이것만은 명심하라. 충신과 역적은 하루아침에 뒤바뀔수 있으나 군왕과 신하는 결코 자
리바꿈을 할 수 없다. 지방 수령과 백성들도 서로의 자리를  바꾸지 못하고 조선과 왜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비교
할 수 있는 상대적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을 혼동하지 말라. 역사는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게 마련이며 
인륜은 위에서 아래로 베풀어지는 법이다. 만약 이를 거부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오랑캐가 된다. 왜국의 풍신수길을 
보아라. 거렁뱅이 무식꾼이 칼춤으로 한 나라를 집어삼키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들은 오랑캐일  수밖에 없다. 조선에
서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혁명을  꿈꾸는 자에게는 능치처참만이 기다릴 뿐이다. 알겠느냐?" "명
심하겠사옵니다, 세자저하!" "그만 됐다. 물러가도록 하라."  광해군이  서책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허균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식은땀이 등허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너무 앞서가지 말고 항상 말조심을 하라던  허성의 충고가 떠올랐다.  
그러나 오늘의 대화가 헛된 것은 아니었다. 허균은 이제 광해군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렸다. 광해군이 용상에 올
라서 아무리 개혁정책을 편다고 해도 그것은 우물 안의 작은 파문일 뿐이다. 어쩌면 광해군은 선조보다도 더 엄하거 
무서운 왕실을 위해 백성들의 목을 가차없이 자르는 군왕이 될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러나 전쟁의 소용돌이가 조선 팔도를  휩쓸기 시작하면 백성들의 무관심도 분노로 바뀌리라. 
그때는 궁궐을 불태우는 머무르지 않고 그 궁궐의 주인까지 죽이려 들 것이다. 민심을 잃은 왕조는  오래 가지 못한
다.  전쟁이 터진 지 벌써 육 년이 흘렀다. 늦어도 이 년만 더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전주 이씨의 나라는 무너지
고 만다. 그렇다면 누가 그 뒤를 이을 것인가. 물론 왜에게 금수강산을 넘길 수는 없다. 민심을 하나로 모아 왜를 몰
아낸 다음 요순의 태평성대를 이 땅에 다시 펴야한다. 백성의 뜻에 따라 물 흐르듯 흘러가는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광해군이 그 길을 가로막는다면 마땅히 베고 지나가야 하라. 그를 죽이지 않으면 어차피 내가 죽을 것이다. 손에 피
를 묻히지 않고서는 혁명을 이룰 수 없다. 이 나라도 왕씨 일가의  피를 제물로 건국의 기반을 다졌다. 그렇다면 다
가오는 혁명에서 누구의 피를 제물로 쓸 것인가는 명확하지 않은가.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때까진 죽은 듯이 기다려아 하리. 더 이상 조정에서 말장난을 하지 말자. 차라리 후일을 
함께 도모할 인재들을 찾아서 변방을 둘어보는  편이 낫다. 조정에 불만이 큰 장수들을  찾아야 한다. 누가 있을까? 
백의 종군을 당한 이순신과 옥에 갇혔다 풀려난 의병장 곽재우라면 함께 대의 도모할 만하다. 이순신의 휘하 장수들
도 만나볼 필요가 있다. 권준, 이순신, 배홍립, 신호, 이영남, 김완 등은 하나같이  뛰어난 인물들이다. 이순신을 구심
점으로 모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그토록 지독하게  고문을 당했으니 회생하더라도 다시 장졸들을 통
솔하지는 못하리라. 허나삼도 수군이 거둔 불패의 신화는 아직도  백성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으니까. 이순신의 대의
에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리라. 이장군! 내내  건강하시오. 그대의 원통함을 풀기 위해 나 허균이 곧  가리
라.  정유년 4월 14일 저녁.  전쟁의 피비린내가 도성을 휘감았다. 조정이 다시 몽진을 떠난다는 소문이 돌았고 지난
밤에는 천년 묵은 은행나무가 벼락을 맞았다. 짐을 꾸려 피난을  나서는 백성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인육을 먹는 
도적떼가 하삼도에서 청주를 거쳐  한양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풍문과 함께 한양은  점점 죽음의 도시로  변해갔다.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술에 전 노랫가락이 어둠을 타고 멀리멀리 퍼졌다. 흥겨운 사랑가의 첫 대목이었다. 
한 사내가 두 손을 쳐들고 노래를 뽑으면 다른 사내는 몸을  비틀며 어깨춤을 덩실덩실 쳐들고 노래를 뽑으면 다른 
사내는 몸을 비틀며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장옷으로 머리와 얼굴을 가린 여인이 두어 걸음 뒤에서 미소를 지으
며 따랐다. 전운의 을씨년스러움이 감도는 도성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그들은 허리에 찬 술병을 주고받으며 막힘 없이  노래를 이어 불렀다. 그들이 아무리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도 대문 
밖으로 나와보는 사람은 없었다. 노래를 뽑던 사내가 다른 사내의 어깨를 툭 쳤다. "시인! 소피가 마렵소."  "천하의 
명필이 옷에다 실례를 할 수는 없는 일! 잠시 저 참나무를 빌리도록 합시다."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하고 길가에 서 
있는 아름드리 참나무 아래로 갔다. 시인은  바지춤을 내리려다가 고개를 돌려 뒤따라오던 여인을  불렀다. "청향아! 
저 모퉁이만 돌면 교산의 집이다. 우린 급히 의논할 일이 먼저 가려무나"  "예, 천천히 일들 보시고 오시와요"  그녀
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두 사내의 엉덩이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명필이 먼저  오줌을 내갈기며 탄
복했다. "살내음이 여기까지 나는구먼. 교산은 좋겠어." 시인이 맞장구를 쳤다. "올해 스물이니 영글대로 영글었겠지. 
허나 저 아인 아직 교산과살을 섞지 않았다네." 명필이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 농담말게. 교산이 저 아리를 만
난 지 햇수로 오 년이야. 오 년 동안 술만 따랐단 말인가? 천하의 난봉꾼 교산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지나가는 개가 
웃겠네" 시인도 슬슬슬 따라 웃었다. "교산이 여인네를 후리는 솜씨가 탁월하긴 해도 저  아이를 품지 못한 것은 사
실이네. 아만 손목도 쥐지 못했을걸." "나는 믿지 못하겠네." "그만큼 교산이 저 아리를 사랑하는 게야" "사랑? 허허
허허, 중시에 장원급제한 촉망받는 사대부가 기생을 사랑한다 이 말인가? 자넨 사랑을 믿나?" " 저 아이도 오 년 동
안 머리를 올리지 않았다네. 보통 인연은 아닌듯허이"   명필이 바지춤을 올린 후 주먹으로 이마를 가볍게  툭툭 쳤
다. "아무래도 전쟁이 교산을 망쳐놓은 것 같아." 시인이 가늘어지는  오줌 줄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럴까? 오히려 전쟁이 교산에게 삶의 비의를 가르쳤는지 모르지. 임진년 이전에는 박식함과 글재주만 믿고 함부로 날
뛰었네. 이백의 흉내나 내며 세월을 죽이지 않았는가? 허나 지금은  많이 진지해졌다네.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 박학 
대신 뭔가 자꾸 미끄러지고 어긋나는 현실에 눈을 뜰 걸세. 교산은 자네와 나처럼 한평생 방랑하지는 않을 듯허이." 
"우리가 어때서? 멋진 삶이 아니었나? 자네 설마 후회하는 건 아닐 테지?"  "후회는 무슨... 허나 교산이 걱정되는구
먼. 저렇게 파고들다가는 미쳐버리든가 큰일을 저지를 걸세." "큰일이라... 자네도 그걸 염려하고 있었구먼." "그럼 자
네도?" "교산은 하곡을 빼닮았네. 하곡이  율곡을 탄핵했을 때는 정말  대단했었지. 허나 지나치게 곧으면 부러지게 
마련이야." 서인이 표정을 바꾸고 진지하게 속삭였다. "그래서 저 아이를 교산에게 주려는 거네. 저 아리라면 교산의 
마음을 붙들 수 있지 않겠는가?" 명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계집한테 빠지면 나라도 팔아먹는다고 하네만 그
게 어디 그렇게 쉬울까? 내 생각엔 저 아이가 교산을 더욱 곧개 만들 수도  있다고 보네만" "운명에 맡기도록 하세. 
어쨌든 교산을 홀로 두고 떠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도와주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부탁을 들어줄 
테니 자네도 내 청 하나를 들어주게." "말해봐. 뭔가?" "자네가 가지고 있는 성당십이가를 빌려주게. 내 깨끗이 베껴 
쓰고 돌려주게." 시인이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넨 날 따라올수 없어. 허나 모처럼 자네의 부탁이니 내 들어줌세. 
대신 오늘 잘해야 하네." "염려 붙들어 매게나." 두 사람은 거나하게 취한 서로의 얼굴을 손가락질하며  모퉁이를 돌
았다. 막다른 골목에 아담한 기와집이 있었다.  장옷을 벗은 청향과 교산 허균이 대문  앞에 나란히 서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시옵소서. 그러지 않아도 오늘  밤에 찾아뵈려고 하였사옵니다. 별채로 가시지요. 주안상
을 봐뒀습니다.  
마침 어머님과 설경이 형님 댁에  가셔서 집이 비었답니다. 마음놓고 대취하셔도  좋사옵니다." 허균이 앞장을 서고 
세 사람이 뒤를 따랐다. 별채는 맑은  우물과 깨끗한 정자를 품은 뒤뜰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무리 크게 
노래를 불러도 소리가 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을 듯했다. 손곡  이달이 상석을 차지하고, 석봉 한호와 허균이 좌우
로 마주보며 앉았다. 이달의 맞은편에 앚은 청향이  부산하게 술을 따랐다. 한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쓰고 있다던 
서책은 어떠한가?"  허균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시원시원하게 답했다. "재주가 짧아 죽을 지경입니다. 무엇보다 왜군
이 평양에서 부산까지 후퇴한 대목을 쓰기가 힘이 듭니다. 아시다시피, 그들은 패퇴한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병력을 
되돌렸지요.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돌림병 등을 그 이유로  들 수도 있겠으나 그것만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
습니다. 명나라와 어떤 약속을 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오리무중이지요." 이달
이 입맛을 다셨다. "확실한 건 이번에는 결코 스스로 군사들을  후퇴시키지 않는다는거야. 한 번 속지 두 번 속겠는
가? 황폐해진 국토와 처참하게 죽어간 백성들의 모습을 찬찬히 그려넣어야 할 걸세." "전하와 사서 편찬의 총책임자
인 해평부원군 윤근수 대감은 명나라 장수와 군사들의 활약상을 부각시켜 사초를 정리하라고 하십니다.  
평양에서의 무자비한 학살, 하삼도에서 조선군이 왜군을 공격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해한 일 따위는 절대로 넣어서
는 안 된다 하셨는지요." 한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지.  그런다고 이미 저질러진 일들이 사
라질까?" "이 나라 왕실과 조정은 어차피 대의명분을 잃었습니다. 상실한 명분을  천자의 나라에 기대어 회복하겠다
는 생각들이지요. 명군의 활약이 빛나면 빛날수록 조선 조정의 과오는 묻히는 법이니까요. 그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
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더 이상 천자의 나라도 대의명분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명군이든 왜군이든, 조선의 산하와 
민초들을 짓밟기는 마찬가지란 것을"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이달은 울분에 찬 허균의 ㅇ러굴에서  하곡 허봉의 그림
자를 읽어냈다. "자네 혼자 세상을 바꾸겠다고 덤비진 말게. 글을 쓸 땐 더더군다나 조심해야  하네. 자네의 글이 비
수가 되어 자네의 심장을 찌를 수도 있어. 세자시강원 설서답게 말을 아끼며 글을 다듬도록 해. 알겠는가?"  한호가 
이달을 거들었다. "벼슬이 올라가면 권력도 커지는 법. 서애 대감을 보게. 사 년이 넘도록 이 나라의 모든 일을 관장
하고 있지 않은가. 혁명을 하기보단 영의정이 되게. 오히려 그쪽이 안전하고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이야.  
혁명은 위험해. 자네가 능지처참을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멸문지화를 생각하게나. 자네의 큰형 허성과 
자네 딸 설경까지 죽음을 면치 못할 걸세. 그래도 좋은가? 그만큼 자네의 신념이 확고한가?...허허허허, 나는 아닐세. 
나는 차라리 중심을 부수기보다 외곽을 떠돌겠네. 중심을 부수면 또다른 중심이 생겨나는 법이지. 자네가 혁명에 성
공하면 바로 허균 자네가 중심이 되는  거야." 허균은 잠자코 두 사람의  충고를 들었다. 어쩌면 그들은 허균보다도 
더 이 나라 왕실과 조정에 실망하고 분노하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식인의 계절을 몸소 겪으며, 열병에 들떠 죽어가
는 민초들을 직접 살피지 않았던가. 허균이 주먹을 굳게 쥐며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때마다  그들은 그 마음
을 헤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들은 힘으로 이 나라를 무너뜨리는 혁명의 길에 동참하지 않았
다. 허균은 그런 태도가 비겁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달은 조용히  웃기만 했고 한호는 성급하게 끝장을 보려는 것이 
바로 비겁이라며 화살을 되돌렸다.  "다시 전쟁이옵니다.  하늘이 제게 주신 기회가 아닐는지요?"  이달이 대답했다. 
"뜻이 옳다면 태평성대에서도 혁명을 이룰 수 있고 뜻이 그르다면 아무리 세상이 어지러워도 왕조를 무너뜨리지 못
하는 법이네. 내가 보기엔 자넨 아직 세상을 몰라. 뜻을 세울 만큼 도를 깨치지도 못했어.  조정에서 좀더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하게. 정치가 무엇인지, 대의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날이 올 거야.  
그때 다시 세상을 바꾸는 것을 진진하게 생각하게나. 지금은 설령 혁명의 때가 찾아온다고 해도  그냥 흘려보내도록 
해. 아직 자넨 아무런 준비도 못했네. 그렇지 않은가?" 한호가 사람 좋게 웃었다. "허허허허, 그 이야긴 그만하지. 공
자왈맹자왈로 이별의 술자리를 더럽힐 수야 있는가?" "이별의  술자리랴뇨?" 술잔을 기울이다 말고 러균의 두 눈이 
켜졌다. "뭘 그렇게 놀라는가? 전재이 다시 시작되었으므로 손곡과 나는 피난을 떠나기로 했다네. 우린 원래 비겁한 
족속이니까" 이달이 맞장구를 쳤다. "비겁한 족속이라... 오랜만에 멋진 말을 했군 그래. 그렇지. 잔재주로 사는  예인
은 원래 비겁한 족속이야. 세상이 두렵고 삶이 두렵고 죽음이 두려운 족속이지. 그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시를 짓고 
글씨를 쓰는 게야. 자기 위안이 없다면 당장에 목숨을 끊을지도 모르지. 교산! 언젠가 자넨 비겁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우리처럼 예인이 되어서는 안 돼. 자넨 조정에서  훌륭하고 큰 정치를 하게." 청향은 고개를 숙이
고 다소곳이 있었다. 이달로부터 어떤 인질을 받아서인지 이별을  언급해도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허균은 울상이 
되어 그들을 만류했다. "아니됩니다. 두 분을 아버님처럼 형님처럼 믿고 의지하며 지냈는데, 이렇게 훌쩍 떠나시다니
요? 가시려거든 저도 함께 데려가십시오 이젠 다시 두 분과 떨어져서  지내기 싫습니다. 제게 힘을 주십시오. 늘 곁
에 계시면서 저를 채찍질해주시고 제가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한호가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허허허! 
혁명을 하겠다는 사람이 어리광을 부려서야 쓰나.  중시에 장원까지 하였고 한 나라의  사초를 살피는 자네야. 이제 
곧 서른이니 누가 있다고 좋아하고 누가 없다고 슬퍼할 나이가 아니지.  
이제 손곡과 난 자네에게 거추장스러울 뿐이야. 오늘도 보게. 사사건건  자네에게 시비만 걸고 있지 않은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스승의 그림자를 따를 것이 아니라  자네 스스로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결정해야 하는 걸세." 
이달이 술잔을 비우며 물기가 배어나오는 음성으로 말했다. "우린 늙고 지쳤네. 얼마 남지 않은 생, 팔도유람이나 하
며 마감하고 싶으이. 한양은 답답해. 이젠  그 답답함을 배겨낼 힘도 없다네.  허허롭게 한평생 보내고 싶어. 알겠는
가?" "스승님!" 허균이 자세를 고쳐 무릎을 끓었다. "올해까지만이라도  제게 가르핌을 주십시오." 이달은 허균의 간
절한 눈빛을 외면했다. "서산대사가 그랬다네,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라고, 그러면 큰  잘못은 저지르지 않는다고 
말일세. 참으로 옳은 말이야. 아니 그런가?" 한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달은 남아  있는 술잔을 비우고 천천
히 자리에서 일어나싿. 한호 역시 마지막 잔을  거두고 몸을 일으켰다. "스승님!" 허균이 무릎걸음으로  다가가서 두 
사람의 팔을 붙들었다. 이달이 허리를 숙여 허균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자세를 허트러뜨리지 않고 시선을 나리깐 채 앉아 있던 청향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교산! 내 저 
아이에게 자네의 망처 김씨의 삶을 이야기했다. 네, 정삼품 숙부인의  직첩을 받기 전에는 편히 눈을 감지 못하리라
는 것도 알려줬어. 저 아이는 잠시 고집을 꺾고 세월을 기다리기로 나와  약조를 했네. 그러니 이제 저 아이를 거두
게. 시를 가르쳐보니 지난날 난설헌을 연상시킬 만큼 재주가 뛰어나네. 경우가 바르고 신중하며 매사에 맺고 끊음이 
분명하니 자네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부디 저 아이의 몸이 아니라 저 아니의 마음을 아껴주게. 부탁허이. 석봉! 가
세. 묘향산에 오른 지도 참으로 오래 되었군."  이달과 한호는  대문 밖까지 따라나와 만류하는 허균의 손길을 뿌리
쳤다. 이미 오랜 전부터 정한 길이다. 허균은 참을 수 없는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한양에는 아직 허성과 유성룡이 있
지만 마음을 탁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상대는 이달과 한호뿐이었다. 허봉과 허난설헌이 죽은 후 그는 이달과 한호에
게서 피붙이의 정을 느꼈다. 어머니와 설경을 거두어야 하는  가장의 책임, 예술에 대한 열망, 시대에  대한 불만 분
노, 슬픔, 좌절을 모두 그들에게 토로했다. 그들은 넉넉하게  그의 투정을 받아주었다. 그들과 함께라면 지옥의 유황
불도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자진해서 그의 곁을 떠났다. 아무런 정도 없었다는 듯이, 만난 적도 없었다는 듯이 그를 버린 것이다.  
별채로 돌아왔다. 두 사람이 앉았던 자리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청향은 문 앞에 서서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기
다리고 있었다. 허균은 설렁설렁 안으로 들어가 연거푸 술을 마셔댔다. 청향이 그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았다. "천천
히 드시어요." 허균이 다시 청향의 손에서 술병을 앗아들었다. "나는 지금 눈이  뽑히고 귀가 잘렸느니라. 술이 아니
면 어찌 이 고통에서 벗어나겠느냐." 청향이 술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허면 소녀에게도  한 잔 주시어요. 손곡 선생
과 석봉 선생은 제게도 아버지와  같은 분들이시니까요." 그때서야 허균은 청향의  얼굴을 보았다. 흘러내린 눈물로 
양볼이 온통 얼룩져 있었다. 세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시선을 내리깐채 소리 죽여 울고 있었던 것이다. "청...
향!"  허균은 술병을 내려놓았다. "소녀가 이곳까지 온 것은 두 분의 간절한 부탁 때문이어요. 나으리가 돌아가신 부
인께 숙부인의 직첩을 올리든 말든, 그것은 소녀와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나으리가 소녀를 아내로 받아들이기 전에
는 결코 몸과 마음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두 분은 나으리가 호로 계시는 것을, 독단과 아집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셨어요. 그래서 소녀
에게 나으리의 버팀목이 되어주라고 부탁하셨지요" "..." "물론 소녀는 죽은 사람을 대신하고 싶지 않아요. 큰일을 하
려면 마음의 평안을 찾으셔야 하는데, 나으리께선 명월관에만 오시면 망나니처럼 날뛰셨지요. 추억과 회한으로 스스
로를 탓하고 학대하셨지요. 이제 소녀는 나으리의 방종을 두고만  보지 않겠어요. 나으리께서 큰뜻을 이루실 때까지 
나으리와 함께 있겠어요." 허균이 천천히 술병을 들어 그녀의  술잔을 채웠다. 청향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단숨
에 술잔을 비웠다. 이번에는 청향이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허균이 술잔을 내려놓고 가만히 청향의 손을 잡아끌었
다.  "나는 네게 행복을 약속할 수 없구나. 부유함도 명예도 줄 수 없을  것이야" "그깟 것들, 보기에 좋은 노리개일 
뿐이지요. 소녀는 나으리의 한결같은 마음을 원할 뿐이어요."  허균이 주안상을 옆으로 밀고  성큼 다가앉았다. 청향
은 눈을 깜박이며 그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십중팔구 너는 불행해질 게야. 나 때문에 모진 고문을 받
을 수도 있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도 좋으냐?" "명월관에 팔려올  때보다 더한 불행은 없사와요. 나으리의 
뜻이 곧 소녀의 뜻이니, 어찌 그것을 불행이라 하겠어요. 소녀가  고문받게 되면 나으리의 역시 소녀의 곁에서 고문
받을 것이요, 소녀가 목숨을 잃게 되면  나으리 곁에 묻힐 것이 아니겠어요? 나으리가  세상을 버린다면, 소녀 혼자 
살아서 무엇하겠어요. 아황과 여영처럼, 소녀도 나으리의 뒤를 따를 뿐이랍니다." "청향!" 허균은 그녀를 끌어안았다. 
품안에 쏙 들어오는 작도 아담한 몸이었다. 청향의 두 손이 그의 둥을  감쌌다.뭇 사내의 손길을 오 년이 넘도록 뿌
리치면서, 참을 수 없는 수치도 맛보았고, 당장 목숨을  끊고 싶을 때도 있었다. 기생 따위가 어쩌고  하는 사내들의 
매몰찬 험담에 눈이 멀고 심장이 터져버릴 때도  있었다.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결코 기생이  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보낸 세월이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손곡 이달의 한결같은 보살핌과  허균의 따뜻한 눈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허균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하늘이 정해준 배필이라  여겼다. 그러나 사랑이란 세월과 함께 병들
고 시드는 법. 그녀는 이 만남이 한순간의 기쁨으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허균의 망설임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가문의 위신을 그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홀어머니와 형이 있었다. 가문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란  말처럼 쉬
운 일이 아니다. 허균은 자신의 머뭇거림을 숨기거나 속이지 않았고, 솔직하게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노라고 고백
하였다. 때로는 그의 눈에서 강한 욕정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철저하게 그 불길을 외면했다.  아직 그녀의 청
을 허균이 완전히 들어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벌써 오 년이 흘렀다. 더 이상 고집을 부리다가는 그를 영영 잃을 수
도 있는 일이다. 손곡 이달과 석봉 한호가 한양을 떠나고 나면, 허균은 더 이상 명월관을 찾지 않을 것이다. 함께 술
잔을 기울일 말벗이 없는데 명월관을  드나들 마음이 생기겠는가. "청향!" 허균이  그녀의 이름을 입안 가득 채우며 
저고리 고름을 잡아 쥐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청향은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나으리! 이제 
소녀는 나으리와 한마음 한몸이 되어요. 탕임금의 아내 유신이나 주나라 선왕의 아내 강후처럼 어질고  현명한 아내
가 될게요. 나으리의 마음에 꼭 드는 여자가 될게요.  
허균은 그녀의 저고리를 벗긴 후 양볼을 두 손으로 어루었다. 앵혈처럼 붉은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저 입술
에 입맞추고 싶었던가. 그녀의 몸이 눈사태를 만난 산비탈처럼 앞으로 쏠렸다. 그녀의 봉긋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향긋한 살내음이 코를 찔렀다.  "청향!"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빨았다.  앵무새의 그것처
럼 작고 날렵한 혀가 그의 입속으로  들어왔다. 눈을 꼭 감은 그녀는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겼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단정했던 그녀의 몸이 벼락 맞은 참나무처럼 뜨겁게 넘실거렸다. 허리를 돌려 그녀를 뉘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옷을 
풀어헤쳤다. 그녀는 양손을 확짝 벌린 채 허리와 엉덩이를 들어올려 그를 도왔다.  이윽고 드 사람은 알몸이 되었다. 
요를 깔지 않은 방바닥은 차고 딱딱했다. 그러나 청향은 이부자리를 원하지 않았다. 그와 한몸이 될 수만 있다면, 서
리가 낀 바위면 어떻고 얼음이 꽁꽁 언 강둑이면  또 어떠랴. 그의 거친 숨소리가 그녀의 심장을 활활  타오르게 했
고, 그의 손끝이 닿을 때마다 그녀의 몸은 꽃을 피웠다. 그가 그름이라면 그녀는 소낙비였고,  그가 하늘이라면 그녀
는 옥토였다. 드디어 천둥 번개와 함께 그가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고개를 젖히고 밀려오는 파도를 기
다렸다. 집채만큼 부풀어오른 파도가 해일이 되어 그녀의  몸을 덮쳤다. 그때 그녀는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그러나 
밤마다 독백처럼 되뇌었던 말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뱉었다. "사...랑해요!"

3. 반목과 질시 
 정유년 4월 25일 아침.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조선 수군을 한산도로 집결시켰다. 부산으로  진격하기 위해서였다. 
울산 근해에 있는 경상좌수사 이운룡은  왜선단에 뱃길이 막혀 합류하지  못했지만,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배설, 충청수사 최호의 군선들은 속속 통제영으로 모여들었다.  한산도는 짙은 전운에 휩싸였다.  아침 식사를  마친 
원균은 흙바람벽에 걸린 경상도의 해도를 노려보았다. 충청병사로 쫓겨가면서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살핀 일이었
다. 그의 시선은 한산도를 출발하여 거제도를 지나 가덕도를 스치고 부산에 닿았다. 씹어삼켜도 시원치 않을, 그에게 
처음으로 패배의 치욕을 안긴 왜 선단이 거기 있었다. 장검을 뽑아들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얍!" 비호처럼 칼
끝을 날렸다. 칼날이 해도에 닿기 직전, 장검은 바위처럼 멈춰 섰다. 칼끝과 지도 사이에는  새끼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간격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순신!"  그의 입에서 난데없이 이순신이라는  이름 석자가 흘러나왔
다.  
사흘 전, 무군지죄를 범하고도 참형을 면한 이순신이 도원수 권율의 막하에서 백의종군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
해졌다. 통제영의 장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눈물까지 쏟는 자들도 있었다.  원균  역시 
이순신이 목숨을 건진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아무리 전공을 다툰 장수라지만 죽일  필요까진 없는 것이다. 왕실의 
위엄을 가르친 다음, 평안도와 함경도로 백의종군시키기를 원했고, 판중추부사의 막하로 내려온다는 것이 마음에 걸
렸다. 지금 권율은 전라도 순천에 머무르고 있다. 순천에서 한산도는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이다. 이순
신이 순천까지 내려온다면, 전라좌우영 장졸들의 동요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가 이순신을 모함했
다는 괴소문이 통제영을 떠돌지 않았는가. 나대용이나 이언량처럼 이순신을 맹종하던 장수들은 드러내호고 원균에게 
적대감을 표시했다. 이순신이 몇 마디 말로 부추긴다면, 그들은 항명과 군무이탈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경상우수사
를 역임한 권준이나 타고난 독전가 송희립 드이  온데간데없이 몸을 숨긴 것도 마음에 걸렸다. 원균은  그들을 모두 
포용하고 싶었다.   
그대들은 이순신의 장수도 아니고 나 원균의 장수도 아니다. 그대들은 이 나라 조선의 장수이며, 주상전하의 충직한 
신하이다. 그러나 그가 설득을 하기도 전에 전라좌수영의 장수들은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었고, 장수가 모습을 감추
자 물고를 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원균은 이미 떠난 자들에게 연연하지 않았다. 가고 싶은 자는 얼마든지 떠나라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두어 달이 지난 지금 더 이상의 동요는 없었다. 그러나 이순신이 돌아오면 모든 것이 달라진
다.  또 하나 걱정되는 것은 이순신이 권율과 담합하여 음모를 꾸미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무군지죄를 범한 장수는 
이순신만이 아니다. 권율은 계사년에 행주대첩을 거둔 이후 지금까쟤 제대로 왜군과 맞선 적이 없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지난 사 년 동안 권율과 이순신을 서로 은밀히 서찰을 주고받으며 부산을 치라는 어명을 어겨왔다. 그
런데 이순신이 또다시 권율의 막하로 가서 그와 손을 잡는다면, 부산을 치기 위해 육군을 움직이는  일은 더욱 어려
워진다. 그렇지 않아도 권율은 안골포와 가덕도 방향으로 육군을 움직이라는 원균의 요청을 번번이 거절하지 않았던
가. 두 사람은 그 동안 자신들이 견지해온 전략이 옳았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부산으로의 진격을 거부할 것이다. 
"대감! 무옥이옵니다." "드시게" 원균은 장검을 놓고 자리이 앉았다.  
무옥이 꿀물을 받쳐들고 조용히 들어섰다. 여진 춤추는 보석. 그녀를 받아들인지도 십사 년이 넘었다. 함경도에서 한
양을 거쳐 남해바다로 다시 충청도와 전라도를 오가는 동안 무옥은 늘 그의 곁에 그림자처럼 머물렀다. 그가 청주에
서 토굴 생활을 할 때도 그녀는 성문 앞에 작은 초가집을 얻어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 날랐다. 서른다섯을 넘긴 그
녀의 눈가에는 세월의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무옥이 아기가  들어서는 것을 여진에서 
가져온 약으로 막는 눈치였다. 그는 아기를 꼭 가지고 싶다며 윽박지르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무옥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대감께 누가 될까 두려워요. 여진 계집의  소생이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할 리도 만
무하고, 소첩에겐 대감뿐입니다. 다른 것은 필요치 않아요." "허나 너무 적적하지  않소? 혹시 내가 잘못되면 임자가 
의지할 때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원균의 진심이엇다. 장수는 언제 어디서 목숨을 잃을 지 모른다. 또한 지금은 왜
군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상화이 아닌가.  
그러나 무옥은 그의 소원을 정중하게 물리쳤다.  "대감없는 세상에  소첩 혼다 살아 무엇하겠어요."  원균은 꿀물을 
내미는 무옥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처음에는 곧잘 뱃멀미도 했지만,  이제는 아무리 오랫동안 배를 타도 탈이 나지 
않는다. 조선말도 완전히 익혔고 조선의 춤과 노래에도 능숙했다. 원균은 무옥을 안을 때마다 두만강 너머에서 불러
오는 칼바람 소리를 들었다. 바다를 건너온  철새들이 북쪽으로 날아갈 때, 육진에서  그의 옛휘하 장수들이 찾아올 
때, 무옥의 눈은 더욱 촉촉해졌다. 고향이 못내 그리운 것이다. 그러나 무옥은 내색하지 않았다. 고향을 버리고 종족
을 버리면서까지 선택한 길이 아니었던가. 그녀의 삶이 다할 때까지 두만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
다. 귀향이 어려울수록 그리움은 더 단단해져만 갔다. "대감! 이제  몸 생각도 하세요" 무옥은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원균은 무옥의 손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허허허허, 내 나이 이제 겨우 쉰여덟이오. 임자, 아직 사십 년은 끄덕없
소. 걱정일랑 마시구려." "하오나 밤을 꼬박 새워 통음하는 일은  피하세요." 단검을 불꽃처럼 뿌리며 끝없이 공중제
비를 돌던 무옥도 어쩔 수 없는 여인네였따. 운균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거렸다.   
어제는 참으로 기쁜 날이었다. 사도첨사 김완과 흥양현감을 역임하고 이순신 휘하에서 조방장까지 지낸 배흥립이 조
방장이 되어달라는 그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병오년에 태어난 동갑내기 김완과 배흥립은 삼도  수군의 장수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갑오년에 여영담이 죽고, 올해 들어 삼도 수군의 버팀목 역할을 해오던 신호
마저 남원부 별장으로 차출되었기에, 수군 내에서 두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는 더더욱 컸다. 원균으로서는 그들을 통
해 나머지 장수들을 간접적으로 지휘할 필요가 있었다. 권준이나 송희립처럼 자진해서 통제여을 떠나는 장수들은 어
쩔 수 없다 해도, 나대용이나 이런량처럼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수들의  동요를 막아야 했다.  두 사람은 임
진년의 해전에서도 녹도만호 정운과 함께 유난히 원균의 뜻을 지지했었다.  처음 권유를 했을 때, 두 사람은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했다. 열흘이 넘도록 아무런 연통이 없기에, 그들도 자신의 곁을 떠나는 것이  아닌가 염려했었다. 김
완과 배흥립마저 등을 돌린다면 어떻게 삼도 수군을 지휘한단 말인가.  
그런데 어젯밤 두 사람이 웃는 낯으로 찾아왔다. 원균은 당장  주안상을 차리고 관기들을 불렀다. 밤이 꼬박 새도록 
김완은 술고래라는 별명답게 연거푸 술을 들이켰고, 배흥립은 그 큰 손으로 좌우에 앉은  기생들의 가슴과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원균도 갑옷을 벗어던진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들이켰다. 그 옛날ㄹ 강존부락을 초토화시킨 후 신
립, 이일과 어울려 밤을 꼬박 지새울 때처럼.  동이 터오기 시작할 즈음 원균이 물었다. "이순신은  그대들을 각별히 
아꼈다고 들었소. 헌데 나의 청을 맏아들인 까닭이 무엇이오?" 배ㅔ흥립이 대답했다. "소장은 불패의 신화를 이어가
고 싶소이다. 통제사는 바뀔 수 있지만 조선의 수군은 여원한 것이 아니오이까? 썅, 승리를 위해서는 통제사를 중심
으로 뭉쳐야 하오이다. 또한 통제사의 군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오이다." 배흥립은 원칙론을 제시했다. 통제사가 누구
든 조선 수군을 위해싸울 뿐이라는 것이다. 원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난 사 년여 동안 이순신은 전라도의 왕, 삼도 수군의  해상왕으로 군림했고, 배흥립과 김완은 이순신이 누린 권력
과 영광의 수혜자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통세사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겠다? 앞뒤가 맞지 않았고 무었인가를 감
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균의 시선이 과음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김완에게 향했다. 원균이 윳는 낯으로 물
었다. "김조방장은 어떻소?" 미리 조방장이라는  직책을 붙였다. 김완이 박쥐처럼  작은 눈을 더욱 가늘게 찡그리며 
대답했다. "배조방장의 뜻과 같소이다. 소장 역시 주상전하와 조선 수군을 위해 싸울 따름이지요. 이통제사께서도 그
리 당부하셨고..." 원균아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졌다. "이순신이 그런 말을 했단 말이오?" 김완이 자기도 놀란  듯 양
손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해흥립이 헛헛헛 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니미럴, 저놈의 주둥이가 문제라니까...허허
헛, 들켜버렸습니다그려. 이통제사께서는 당신이 자리를 옯기고 난 다음의 조선 수군을 늘 걱정하셨지요. 지난 정월, 
김조방장과 소장을 불러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벼슬 지라야 갈리게 마려니다. 누가 통제사로 오든지 군령에 따라 
최선을 다하도록 하라.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 아니오이까? 그때 소장은  미처 그 말뜻을 헤아리지 못했는데, 이제야 
이통제사의 마음을 알 것 같소이다." 원균은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이순신의 그림자가 이다지도 짙고 길단 말인가. "허면 왜 벼슬 자리를 버리고 통제영을 떠나는 장수들이 생기는가?" 
배흥립이 입맛을 쩝쩝 마시며 대답했다.  "그거야 인지상정 아니겠소이까? 이통제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함이겠지
요. 허나 그것은 정녕 이통제사의 뜻이 아니오이다."  원균은 갑자기 쓸쓸해졌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기효근의 부리
부리한 두 눈이 그리웠다.  숙흠, 그대만 있었다면... 기효근은 어영담처럼 돌립병을 얻어 벼슬에서 물러난 후 요양을 
떠났다가 왜군의 복병을 만나 목숨을 잃었다. 경상우수영의 선봉장이자 임진년에 왜선을 무수히  격침시켰던 맹장으
로서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죽음이었다. 원균은 전라병사로 있을 때 그 비보를 접하고 사흘밤 사흘낮을 통곡했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었고 살아 남은 자는  새로운 내일을 준비해야만 했다.  이제 확시랗 내 사람은  순천부사 
우치적뿐이구나. 김완과 배흥립도 조방장의 직무를 하겠으나 온전히 내게  마음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그들
은 이순신의 사람이다.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마치고 복직이라도 하면  그들은 둥지를 되찾은 새처럼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일단 전라좌수영의 장졸들을 묶어두는 데는  성공을 거두었다. 부산의 왜군을 쓸어버리고 이  전쟁을 승리고 
이끈다면, 이순신에게 돌아갈 자리도 없을 것이고 장수들의 아믕도 돌아설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오로지 부산을 함락시키는 길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원균은 포옹을 풀고 무옥의  불그레한 볼을 
양손으로 어루만졌다. 무옥은 잔잔한 웃음을 머금었다. 호수처럼 크고 깊은 눈이었다. 그 눈망울 속으로 따뜻함과 평
안을 오랫동안 이어가고 싶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구만강을  건너 네 고향으로 가자꾸나." 무옥은 여전히 웃는 낯
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이 아니니라. 전쟁은 결코 오래 가지 않아. 오 년 동안 서로의 장단점을 너무나도 잘 파
악했으니까. 피차 장기전을 할 필요가 없지." 무옥은 반벙어리처럼 입을 굳게 다문  채 다시 고개를 끄억였다. "함께 
범 사냥얼 가자꾸나. 눈발을 헤치며 하늘이 낸 영물을 뒤쫓자꾸나.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느냐?"  이번에는 고개를 좌
우로 가볍게 저었다. 한 떨기 오랑캐꽃이 한들한들거렸다. 원균은 무옥의 반짝이는 두 눈에 맞우었다. "대, 대감!" 무
옥이 움찔 몸을 뒤로 뺐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각에 살을 나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곳은 수많은 장수들이 수
시로 드나드는 통제영이 아닌가. 누가  언제 방문을 두드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쉬이! 가만..." 양팔을 붙든 원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느새 그의 두 눈은 붉은  기운을 배뿜고 있었다. 무옥은 가만히 고개를 모로  돌렸다. 원균의 
거친 숨소리에 그녀의 몸도 서서히 달아올랐다. 저고리 고름을 풀다말고 그의 양손이 쑤욱 젖가슴으로  밀고 들어왔
다. 그련가 어찌 할 겨를도 없이, 그의 양손이 봉긋한 젖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원균은 늘 그랬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홍수를 고기떼처럼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두서 없이 움직였다. 어떤 때는 치마 속에 머리부터 디밀어넣기도 했고, 어떤 때는 저고리를 풀지도 않은 채 성급히 
운우지락을 이루기도 했다. 벌써 십사 년이나 사랑을 나누었지만  무옥은 매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불쾌한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몸을 받아들이면 들일수록 새로운 정이 새록새록 움터났다.  그녀의 몸은 만주벌판을 
흐르는 장강처럼 늘어졌다. 원균의 손놀림은  벌판을 가로지르는 백마의 발놀림을  닮았다. 먹구름이 밀려오고 비를 
부르는 천둥 소리가 칼바람 사이도 어렁차게 터져나왔다. 어둠이 빛을  삼키고 빛이 다시 어둠을 갈랐다. 거대한 폭
포가 그 빛과 어둠 위로 쏟아지려는 순간이었다.  "아버님! 소자 사웅이옵니다." 문밖에서 원사웅이 그를 찾았다. 이
런! 원균은 이불을 걷어내며 외쳤다. 열에 들뜬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냐?" 원사웅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
름을 눈치챘다. 그제야 원사웅은 섬돌 위에 원균의 신발과 나란히 놓인 꽃신을 발견했다. 고개를 돌려 등뒤에 서 있
는 장흥부사 이영남의 표정을 살폈다.  
이 시각까지 삼도수군통제사가 애첩과 잠자리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흉이었다. 운주당에서  기다리겠다는 이영남
을 한사코 별채까지 데려온 것은  원사웅의 실수였다. 호형호제하던 그와의  너무나도 기뻤던 탓이다. 아버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시리라 생각하고 팔을 잡아  끌었건만.  "장흥부사께서 오셨습니다." 방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하늘로 향해있던 이영남의 시선이 섬돌로 내려갔다. 그의 양미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원사웅은 놓치지 않았다. "운
주당으로 가시지요" 원사웅은 허겁지겁 이영남을 다시 운주당으로 데리고 갔다. 이영남은 피식  실없는 웃음을 흘리
며 뒤를 따랐다.  곧 운주당으로 나온 원균은 원사웅을 쏘아보는  것으로 꾸짖음을 대신했다. 지금은 장흥부사 이영
남의 오해를 푸는 것이 급선무였다. "왔는가? 몇 번이나 전령을 보내도 오지 않기에 아예 나와의 인연을 끊은 줄 알
았지. 허나 이렇게 보니 반갑구먼. 몸이 좋지 않아 잠시 쉬고  있었다네. 헌데 얼굴이 몰라보게 야위었군. 어디 아픈 
데라도 있는 겐가?" "아니오이다." 여전히 어색한 분위기였다.  
원균은 가슴을 쭉 펴고 이영남을  찬찬히 훑어내렸다. 이영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통제께서 고문의 휴유증으로 
돌아가실 뻔하였소이다. 그 몸으로도 계속 남행중이십니다. 아시는지요?" "알고있네. 아직 순천의 권도원수 군영까진 
이르지 못했다고 들었네." "이통제사의 대부인께서 돌아가신 것은 알고 계시는지요?" "그 또한 들었네.  그가 순천에 
도착하면 내 친히 위로의 글을 띄울 생각이야" "이통제사가 그리  되신 것은 장군께서 부산을 당장 칠 수 있노라고 
호언장담하셨기 때문임을 알고 계시는지요?" 쉽게쉽게 대답해주던 원균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이부사! 그대는 말끝
마다 이통제사, 이통제사만 찾는구나. 그는 이제 더 이상 통제사가 아니라 무군지회를 범한 되인이야. 옥에서 풀려났
다지만 아직 그 죄가 씻어진 것이 아니란 말이지. 이제  백의종군을 하명받았으니 말 그대로 일개 군졸에 불과하다. 
그런 자를 이통제사라고 경칭해서는 아니될 것이야. 이순신이 그대를 아낀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나라의 법도를 그
르칠 수는 없는 일, 앞으로는 하대토록 하라." 이영남이 원균의 눈길을 피하지 않고 되받아쳤다.  "차라리 소장의 목
을 베시오고서. 이통제사의 죄 없음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오이다." 원균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두 주먹을 불
끈 움켜진 것이 당장이라도 이영남의 턱을 후려칠 기세였다.  
그러나 그는 눈을 지그시감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장흥부사, 그대와 나의 인연은 참으로 질기지 않느냐? 임진년에 
나의 휘하에서 수많은 해전을 치렀고,  경상우수영과 전라좌수영을 오가며 나의  분신처럼 일해찌. 내가 충청병사로 
쫓겨갔을 때, 그대로 곧 내 곁으로 와서 근 백 일이 넘도록 함께  토굴에서 지냈다. 그대처럼 날 잘 아는 사람이 있
을까? 내가 기쁨의 나래를 펼 때 그대는  내 곁에 있었고,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그대는 내 곁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이렇게 수군으로 돌아와  마주 앉게 되었구나. 이건 운명이야. 나로  하여금 그댈르 크게 쓸 수 
있도록 하늘이 배려하신 것이지. 이보게, 나는 그대가 필요해. 나를 도와주게."  이영남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먼
저 이통제사께서 잘못을 비는 서찰을 쓰십시오. 그러면 장군을 돕겠소이다." 원균의 분노가 폭발했다. "뭣이라고? 잘
못을 비는 서찰을 써라? 이런 배은망덕한 놈이 있나. 누가 누구에게 잘못을 했다는 말이냐? 이순신은  사 년 동안이
나 어명을 거역했다. 마땅히 참수형에 처해야 해.  
허나 그 동안의 자그마한 전공을 살펴 백의종군을 시킨 것만 해도, 이순신은 주상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죽음으
로써 감사해야 한다. 헌데 날더러 서찰을 쓰라고? 죄없는 이순신을 내가 죽게 했다 이 말이냐?" "장군께선 이통제사
께 복수할 마음뿐이었소이다. 토굴에 웅크리고 앉아 해도를  들출 때부터 소장은 알고 있었소이다." "무엇을 알았단 
말인가?" "이통제사의 암울한 미래를 보았소이다. 장군께서 이통제사를 모함하는 서찰들을 끝없이 조정이 올린 것이 
아니오이까?" 원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문안 서찰이었을 따름이야. 그래도 이순신의 곁에 있었으니 잘 알것
이 아닌가? 이순신은 사시사철 영의정 유성룡, 지중추부사 정탁, 이덕형, 이항복 같은 이들에게  서찰과 선물을 보내
지 않았는가? 왜 그대는 이순신의 허물을 감추고 내 허물만 말하는가?" "..." 이영남은 말문이 막혔다. 조정 대신들과 
이순신 사이에 서찰이 오고간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특히 서애 유성룡과는 한달에 꼭 한두번씩 서신 왕래가 있었
다.  변방의 장수들이 조정 대신들과 서찰을 주고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었다. 군왕은 조정 대신들과 의논
하여 장수를 임명하고 상벌을 내렸다.  
따라서 장수들이 벼슬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정 분위기를 파악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문신들과 교분을 두터
이 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정삼품 수군절도사나 병마절도사 이상의 지위에 오르려면 저정 대신들의  도움이 절대적
이었다. 이순신이 유성룡과 서찰을 주고받고, 원균이 윤두수와 뜻을 통하고, 왕실의 친척인  이억기가 선조에게 자주 
비밀 차자를 올린 것은 모두 이런 이유에서였다. 원균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꾸려는 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지나
간 일은 접어두세. 아직 남은 앙금이 있다면, 그건 이순신과 내가 풀어야 할 것이야. 그대가 나서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 이순신이나 나는 그대의 능력을 아끼고 있어. 그러니 나를  도와주게. 조방장을 맡아줘." "싫습니다." 이영남
은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김완과  배흥립도 조방장을 맡기로 약조를 했어.  그대까지 내 곁에서 머물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러니 부디 내 뜻을 거스르지 말게" "싫습니다. 다른 장수를 찾아보십시오" "그댄 내  밑에서 경상우수
영의 살림을 도맡아 했어. 그리고 통제영의 자질구레한 일들도  열심이었지. 과거시험을 치를 때도 꼼꼼하게 일처리
를 했고, 어영담에게서 해도 보는 법, 구름과  물살 살피는 법도 익혔지 않은가? 그대만한 적임자도  없어. 조방장을 
맡게. 이순신과의 의리 때문이라면, 마음을 고쳐먹도록 해.  
그와의 의리는 사사로운 것이지만 조방장이 되는 것은 나라를 구하는 큰일일세.  알겠는가?" "소장은 옹졸하고 생각
이 짧아 장군께 누가 될 뿐이오이다. 차라리 소장을  멀리 내쳐주십시오" 원균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영남의 
마음이 바위처럼 단단했던 거이다. 이순신이 죽기 전에는 아니 그가  죽은 후에도 결코 나를 좁지 않으리라. 원균은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쯤에서 이야기를 접었다.  "알았네.  그대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내 시간을 
더 주지. 허나 너무 오래 날 버려두진 말게나. 내가 그댈 친아들로 생각하고 있음을  기억하게." 두 사람의 실랑이가 
끝나자마자,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최호, 그리고 경상우수사 배설이 휘하 장수들을 거느리고 운주당으로 들
어섰다. 왜군의 동정도 살필 겸 어제 아침 칠천량 근방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원균은 반갑게 그들을 맞
이했다. 이억기는 임진년에 전쟁이 나고부터 줄곧 전라우수영을 지켰고, 최호는 충청수사로 있으면서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배설은 경상도 조방장을 지낸 후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경상우수사로 옮겨왔다. 원
균은 자신이 삼도수군통제사를 맡기 전에, 이순신의 측근인 권준,  이순신 등을 교체해달라고 윤두수에게 간곡히 청
했다. 조선 수군이 한몸처럼 움직이려면 통제사가 각 동의 수사들을 휘어잡아야 하는 것이다. 
저돌적인 최호는 원균의 젋은 날을 닮았고, 배설을 말수가 적고 겁이 많은 단점이 있으나 그만큼  군령을 충실히 따
르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억기는 여진족과 맞서던 육진 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 지내왔기에 눈빛만  보고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장수들이 모두 좌정한 후  원균이 먼저 이억기에게 물었다.  "왜놈들은 어찌하고 있
소?" "어디들 숨었는지, 바다에는 배 한  척 보이지 않소이다." 최호가 눈꼬리를  치뜨며 괄괄한 음성으로 주장했다. 
"당장 출정하십시다. 이렇게 한산도만 빙빙 돌고 있자니 좀이 쑤셔서  죽겠소이다." 원균이 호탕하게 웃었다. 이영남
과의 대화에서 상했던 마음이 금방 회복되었다. "최수사! 내 어찌 그대의 뜻을 모르겠소. 허나 수군만 출정하면 왜놈
들은 모조리 육지로 숨어버릴 것이오. 도원수의 육군이 함께 움직여야지만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어요. 내 도원
수께 다시 서찰을 띄웠고 조정에도 장계를 올렸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외다." 배설이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래도 매사에 조심해야 할 것이오. 척후의 보고에 따르자면 이번에 건너온 왜선들은 임진년의 왜선
들보다 크기도 곱절은 되고 두께도 탄환에 뜷리지 않을 만큼 두껍다고 하더이다." 최호가 혀를 끌끌 찼다.  "이보시
오, 배수사! 전투가 벌어지면 경상우수군이 응당 앞장을 서야 할 것인데, 그런 약한 소릴 해서 쓰겠소? 선성후실이라 
하였소. 먼저 기세로써 상대를 제압하지 않고서야 어찌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겠소?  
장군! 차라리 소장에게 경상우수군을 맡겨주십시오."  배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최수사! 다시 한 번 말해보
시오. 나는 어명을 받을어 경상우수사가 되었소이다. 헌데 그대가 어찌  내 자리를 빼았는단 말이오?" 원균의 두 사
람의 다툼을 말렸다. "배수사! 앉으시오! 허허허허,  그 동안 나는 배수사가 백면서생처럼  워낙 말이 없길래 걱정을 
많이 했소이다. 허나 오늘 보니 배수사도 용기와 패기를  지닌 조선 수군의 제일 가는 장수구려. 배수사! 지금의  그 
분노를 최수사에게 풀 것이 아니라 왜적을 향해 폭발시키도록하오. 군사들을 싸우게 만드는 것이 기세라면, 그 기세
를 촉발시키는 것은 분노가 아니겠소?" 배설이 머쓱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원균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자 휘하 장수
들도 모두 따라 웃었다. 바야흐로 승리의 기운이 넘쳐났고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었다.  순천
부사 우치적이 운주당 앞뜰을 가로질러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돌처럼 굳은 얼굴이 운주당에 모인 장수들의  환한 표
정과 묘하게 대조를 이루었다. 원균은 한산도에 오자마자 우치적을 조방장으로 임명하려 했다.  
그러나 우치적은 고개를 설헤설헤 저으며 그 청을 거절했다.  "장군! 장졸들의 마음을 살피십시오. 그들은  이순신이 
의금부에 압송된 것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때 소장이 조방장에 앉으면,  그 슬픔은 더욱 깊어져서 장군을 향한 원
망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조방장에는 이순이 수족처럼 부리던 장수들을 임명하도록 하십시오. 그래야지만 군사들
의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습니다. 소장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장군께서 돌아오셨으니 소장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
다." 원균은 우치적의 말을 받아들여 김완과  배흥립, 그리고 이영남에게 조방장을 권했던 것이다.  원균이 한산도에 
머물면서 삼도 수군의 전체적인 윤곽을 잡아가는 동안, 우치적을 판옥선 두 척을 이끌로 전라좌수영 곳곳을 누볐다. 
그는 임진년 해전에서 원균이 보여준 놀라운 활약상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면서 흩어졌던 장졸들의 마음을 하나
로 모았다. 때로는 왜군을 물리쳐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웠고, 때로는  삼도 수군이 곧 부산으로 진격할 것이라는 소
문을 흘려 군사들의 마음을 들끓게 했다. 이도저도 아니되면, 자신이 차고 있던 장검을 빼어 들고 나 우치적을 믿듯
이 원장군을 믿어달라, 만약 믿지 못하겠거든 이 칼로 나의 목을 치라고까지 했다. 그 덕분인지 많은 군사들이 마음
을 돌렸다.  
이순신이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왜군을 박살내는 지장이라면, 원균은 일단 부딪쳐서 끝장을 보고야마는  맹장인 것이
다. 군사들은 무엇보다도 곧 부산으로 진격하리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원장군을 따라 왜 선단을 궤멸시키고 부산
을 수복한다는 상상을 하니 저절로 가슴이 확 펴지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나랏님이 이순신  대신 원균을 택
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풍문이 뒤를 이었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순신보다는 원균이 훨씬 전투를 잘하다는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펴져나갔다.  "왔는가?" 원균은 우치적의 딱딱한  얼굴을 살피며 웃음을 거두었다. 우치적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순식간에 웃음이  사라지고 낯선 침묵이 이어졌다.  "전라도  옥과에 숨어 있던 정사준을 
잡아왔습니다." 우치적이 주먹을 높이 치켜들었다. 군사들이 오랏줄에 꽁꽁 묶인 정사준을 끌고 들어왔다. 격투를 벌
였던지, 이마와 볼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군사들은 그를 뜰 한가운데 꿇어앉혔다. 정수준은 들창코를 벌렁
이며 좌중을 둘러보다가 말석에 엉거주춤 서 있는  이영남을 발견하고 히죽 웃어 보였다. 원균이 직접  그를 신문했
다.  "너는 왜 몰래 통제영을 떠났느냐? 탈영은 목이 달아나는 중죄란걸 모르느냐?" 정사준이 고개를 뻣뻣하게 쳐들
고 대답했다. "장군! 소생은 장수가 아니오이다.  
이 통제사께서 군량미를 바치려고 찾아왔다가 잠시 머문 것뿐이지요. 전투에 참가한 적도 없고, 군중회의 참석한 적
도 없습니다. 헌데 어찌 소생에게 탈영의 죄를 물으시는지요?"  원균이  허리를 뒤로 젖히며 잠시 하늘을 우러렀다. 
정사준의 명석한 두뇌는 권준에 버금간다고 들었다. 곤장을 치거나 태형을 가하면, 그에게서 바른 소리를 듣는 것이 
더욱 힘들어간다. 원균은 조용한 어조로 물었다.  "좋다.   그 일은 잠시 접어두자. 허면 너는  그 동안 삼도 수군의 
군량미를 관리하였느냐?" 정사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옵니다. 어찌 소생 같은 놈이 그런 대임을 맡겠습니까. 천부
당 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군량미는 전 경상우수사 권준 장군이  도맡아 처리했지요. 의심 나시면 장흥부사께 물어
보세요. 소생은 그저 이통제사께서 심심하실 때 종정도나 놀고 말벗이나 해드렸을 따름입니다."  우치적이 무릎으로 
가볍게 정사준의 등을 내리찍었다. 정사준은 비명을 지르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네놈이 대장장이들을 거느리고 조
촐을 만들었으며, 군량미와 유황을 실질적으로 관리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어느 안전이라고 거
짓부렁을 늘어놓는 게냐. 네가 정녕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승과 이별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정사준이 오랏줄에 묶인 채 날개 꺾인 거위 새끼마냥 흙먼지를 풍기며 뒹굴었다. 어쩐지 그 행동이 과장스러웠고 비
명 소리도 어색했다.  "아야, 아야, 죽네...죽어. 정사준이 오늘 죽어" 원균이 눈짓으로 우치적을 말렸다. 군사들이  다
시 정사준을 이르켜 앉혔다. 굵은 눈물이 들창코로  들어갔고 그때마다 심한 기침을 해댔다. 원균이  빙그레 웃었다.  
"그놈, 연기가 제법이구나. 허나 괜한 짓 말거라. 내 이미 네놈 뒤를 캤느리라. 네놈은 이순신이 빼돌린 군량미를 감
춘 방본인이야. 자 말래보거라.  군량미는 어디있느냐?" 정사준이 눈알을  굴리며 시치미를 뗐다.  "금시초문인뎁쇼." 
"충청수사를 지낸 이순신이나 경상우수사를 지낸 권준이 어떤 죄를 짓고 벼슬을 삭탈당했는지 아느냐? 조정에 상납
할 곡물들을 빼돌린 죄이니라. 그들이 단독으로 그렇게 대담한 짓을 했겠느냐? 그것은 모두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였
던 이순신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빼돌린 곡물들은 어디로 갔느냐?" "그걸  왜 소생에게 물으십니까? 
이순신이나 권쭌 장군께 따지십시오." 정사준은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억기가 ㅁ마지막으로 정사준을 설득
하고 나섰다. "괜한 고집 피우기 말게나. 손바닥으로 하늘의 해를 가릴 수는 없는 일.  이통제사를 향한 자네의 마음
은 이해하네. 내가 왜 그걸 모르겠는가.  
허나 이제 조선 수군은 여기 계신 원장군의 지휘  아래 똘똘 뭉쳐 왜 선단과 싸워야 하네. 우리에겐  군량미가 필요
해. 헌데 자네도 알다시피 보릿고개는 올해도 높기만 허이. 이런  처지로 군사들을 이끌고 부산으로 나아갈 수는 없
네. 이통제사는 늘 내게 충고하였었지. 군사들을 위해 곡물과 유황을 미리미리 비축해두라고 말일세. 내게 그런 충고
를 하였으니, 이통제사는 분명히 군량미를 따로 모아두었을것이야. 그리고 자네에게  그 소임을 맡겼겠지." 정사준은 
코를 벌렁대며 딴전을 피웠다.  "소생이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이통제사께서 한산도를  떠나시기전, 한산도에 군량미
가 얼마나 있는지 소생에게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소생이 걔산에 조금 밝아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때 조
사한 것은 원장군께서 한산도로 이통제사를 잡으로 오셨던 바로 그날, 모두 내어드렸지요. 우부사,  아니 그렇소? 그
때 소생이 작성한 장부와 군량미를 직접 대조해서 살핀 이가 우부사가 아니었던가요?"  원균이 언성을 높였다.  "난 
오래 전부터 네놈들이 공문서 외에 따로 비밀 문서를 만들고 있드는 걸 눈치챘느리라. 이순신은  장기전에 대비해서 
충분한 군량미를 확보하려 했다.  
그는 조정으로 가야 할 곡물을 빼돌리도록 사주했을 뿐 아니라, 이미 확보한 곡물의 양도 부족하게 책정하여 조정에 
보고해왔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당장 네가 작성한 비밀 문서와 비밀 창고가 있는 곳을 대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죽은 목숨이니라." "곡물을 빼돌리고 문서를 중복해서 작성하다니요? 천벌을 받을 말씀이십니다. 이통제사는 무서우
리만큼 정확하신 분입니다. 화살촉이 하나만 비어도 밤새 섬을 뒤져  그 화살촉을 찾고야 마는 분입죠. 그런분이 어
찌 군사들을 굶기면서까지 곡물을 따로 빼돌릴 수 있겠느지요? 소생을 죽이고 싶으시다면 죽는  도리밖에 없겠으나, 
있지도 않은 창고와 쓰지도 않은 문서 때문에 죽는다면 그 원통함이 가슴에 사무쳐  구천을 떠돌 것이오이다." 원균
은 분노를 안으로 삭였다. "지금 바른 대로 고하면 너의 죄를 묻지 않겠니라. 우리에겐  군량미가 필요하다. 당장 부
산을 치면 이 전쟁은 끝이 날것이야. 그때 그 많은 군량미를 어디에 쓰겠느냐? 이순신도  네가 군량미를 내어놓기를 
원할 것이다. 자, 어찌하겠느냐?" "소생은 모르는 일이옵니다." "저런 발칙한 것! 아니되겠다. 저놈을 형틀에 묶어라." 
군사들은 형틀을 내와서 정사준을 그 위에  묶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말석에 앉아  있던 나대용이 앞으로 나섰다. 
"죄도 없는 사람에게 곤장을 칠수는 없소이다." 이언량이 나대용을 도왔다. "소장도 한산도 오래 머물러 있었지만 그
런 군량미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소이다."  
이영남도 차분한 어조로 부당함을 아뢰었다. "통제영을 떠난 것을 벌할 수는 있으나, 있지도 않은 군량미와 비밀 문
서를 밝히라며 곤장을 치는 것은 불가하오이다." 원균이 그들을  꾸짖었다. "그대들이 지금 항명을 하는 것인가? 이
순신이 전라도를 지배하기 위해 돈과 곡물과 무기를 숨겨두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야. 어찌 그대들만 모
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는가? 미망에서 깨어나라. 그대들이 기다리느느 이순신은 결코  돌아올 수 없다. 그는 대역 죄
인이야. 어찌 그런 자에게 다시 이 나라 수군을 맡길 수 있겠는가." 나대용이  고함을 버럭 질러댔다. "대역죄인? 도
대체 누가 대역죄인이란 말씀이오이까? 연전연승을 거둔 장수가  어찌 대역죄인이 될 수 있단 말씀이오이까? 장군! 
임진년을 기억하소서. 그때 이통제사께서 군선을 이끌고 경상우수영으로 가지 않았다면, 장군은 이미 죽은 목숨이오
이다." "저, 저놈을 당장 끌어내랏!" 군사들이 우르르 나대용에게 몰려들었다. 나대용이 포박되어 뜰로 끌려내려가는 
사이에 다시 이언량이 가시 목소리를 높였다. "하늘이 무섭지 않소이까? 장군께서 이통제사께 한 일을 생각해보십시
오. 이통제사를 모함해서 감옥에 보낸 것만도 천벌을 받을 일인데, 이제 이통제사를 균량미를 훔친 나랏도둑으로 몰
다니요." 원균이 눈을 부리리며 명령했다. "저놈도 포박하랏" 이번에는 시선이 일제히 이영남에게 쏠렸다.  
이영남은 원균을 쏘아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하늘을 우러러 크게 한숨을 내쉰 다음 자진해서 뜰로 내
려갔다. 형틀에 묶인 정사준 곁에 나대용과 이언량, 이영남이 나란히 섰다. 나대용이 눈물을 뿌리며 소리쳤다. "장군! 
장군께서 통제사에 오르실 때부터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소이다. 자, 어서 우리들의 목을 치시오. 구차한 변명일랑 하
고 싶지 않소이다." 원균의 눈두덩이가 가늘게 떨렸다. 삼도 수군의 장수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저들은 지금 통제사
에게 항명을 하고 있다. 군율에 따른다면 참형에 처하고도 남을 짓이다. 그러나 저들의 목을 베면 이순신에 대한 보
복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이순신이 내 아들 이라며 끔찍이 아낀 장수들이 아닌가. 경상우수사 배설이 
원균의 눈치를 살피며 끼여들었다. "자, 모두들 진정하십시다. 왜놈들을 치기도 전에 우리  장수부터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오이까?" 이억기가 배설을 편들고 나섰다. "그렇소이다. 지난 전공을 생각해서 나대용, 이런량, 이영남을 
이번 한 번만 용서하는 것이 어떻겠소? 정사준도 아직 그 죄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니, 통제영을 무단 이탈한 죄
만 우선 벌하도록  하십시다."  순천부사 우치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지요. 지금은  장수가 한 사람이라
도 더 필요한 때이옵니다. 정사준을 문초하여  군량미 숨긴 곳을 밝히는 일은  소장이 맡겠습니다. 정사준의 고향이 
옥과이니, 그곳을 중심으로 비밀 창고를 찾도록 하지요."  원균은 못 이기는 척하고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내 
특별히 그대들을 용서해주겠다. 허나 이번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지  못할 때에는 중벌로 다스릴 터이니 그리 알라. 
알겠는가?" 정사준은 곤장 열 대를 맞은 후 군사들과 함께 옥과로 돌아갔다. 나대용,  이언량, 이영남은 다른 장수들
에게 이끌려 다시 운주당으로 올라섰다. 그들의 얼굴에는 감사하는 빛이 전혀없었고, 오히려 오늘의 수모를 평생 잊
지 않겠다는 듯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원균은 장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주안상을 내오도록 명령했다. 술과  음식, 그리고 관기들이 나오자 영내의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나대용과 이언량은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슬그머니 뒤뜰로 빠져나왔다. 이영남도 그들이 사라
지는 것을 보고 곧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은 숲길을 따라 걸어싿.  그들은 거제도가 어렴풋이 보이는 산꼭대기에 이
를 때까지 말이 없었다. 꼬대기 바로 아래  그루터기들이 들쭉날쭉 자리잡은 빈 터가 나왔다.  원래는 솔숲이었는데, 
판옥선을 만들기 위해 소나무를 모두 베어버렸다. 그들은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영남이 먼저 혼잣말처
럼 입을 열었다. "정군관과 권수사가 군량미를 따로  모아두었을까?" 이언량이 화를 냈다. "이부사도 권장군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게요?" 이영남이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빙긋 웃어 보였다. 이통제사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언
량에게 거북선을 맡긴 것은 너무나도 잘한 일이다. "아니오! 허나 그럴 가능성은 있지 않겠소?" "무슨 소리! 만약 군
량미를 빼돌렸다면 우리가 모를 까닭이 없소." "과연  그럴까요? 이통제사께서 우리에게 일을 나누어주셨소이다. 각
자 맡은 일 외에는 다른 장수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게 사실이오. 군량미, 화약,  소금의 관리는 전적으로 정
군관과 권수사의 몫이었소. 아니 그렇소?"  
턱이 높은 그르터기에 앉아서 잠자고 이영남의 설명을 듣고 있던 나대용이 말했다. "설령  군량미가 있다 해도 원통
제사에게 순순히 내어줄 수는 없소이다." "그 무슨 말씀이시오?" "생각들  해보시오. 임진년 해전 때, 우리 전라좌수
영은 경상우수영에 화약과 군량미뿐만 아니라. 의복과 활까지 거저 주었소. 그들은 자신들이 왜선을 향해 용감히 돌
격하였다고 자랑을 늘어놓지만, 그건 우리가 전투를 치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물품들을 공짜로 주었기에 가능한 일
이라오. 원통제사가 저러는 것도그때 버릇이 들어서요.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놓았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심산
이 아니고 뭐겠소? 지금 우리가 군량미를 내어놓는다면, 원통세는 틀림없이 옛은헤를 잊고 이통제사를  더욱 모함할 
것이외다." 이언량과 이영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세 사람은 의금부로 끌려가던 이순신의 비참한 
몰골을 또올리고 있었다. "이통제사께선 무사하신지...어찌해서 아직까지 순천에 도착하지 않으시는 것일까..." 나대용
이 이언량을 다독거렸다.  "걱정 마시오. 날발이 곁이 있고 이수사까지 갔으니, 별일이야 있겠소? 곧 도착하실 게요" 
나대용이 고개를 돌려 이영남에게 물었다. "권수사와 송군관으로부터는 연통이 있소?" 권준과 송희립이 사라진 지도 
두 달이 넘었다. 급한 일이 생기면 이영남에게 연통을 넣겠다는 말만 남기고 전라도 내륙으로 숨어버린 것이다.  
오늘 같은 일을 당할까 염려해서 서둘어 통제영을 떠난 것일까? 권준이 이순신의 오른팔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
실이고 송희립 역시 지휘선에서 항상 출정의 북을 울렸다. 두 사람만 잡아들이면 그 동안 이순신이  계획한 모든 일
들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 이영남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삼도 수군을 강화하기 위해 이순신이 어명을 거역
하고 원권 행위를 일삼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권준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얻은 결론임을. "아직 
없소이다." 나대용이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언량은 답답한 듯 주먹으로 가슴을 퉁퉁 쳐댔
다. "배장군과 김장군이 조방장을 허락한 것이 사실이오?" 이영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도 조방장 자리를 제의했
소이다." 이언량이 다그쳐 물었다. "그래 무어라 하시었소?" "거절했소이다."  나대용이 손뼉을 짝짝 치며 가까이 다
가와서 속삭였다. "원통제사는 부산으로 반드시 진격할 것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칠천량 근처에 있는 왜 선단
과 정면대결을 벌려야만 하오.  이부사, 일이 그렇게  돌아가면 이부사는 어찌할 생각이오?"  "어찌할 생각이라니..." 
"이통제사께서는 칠천량에서 왜 선단과 맞서면 패할 수밖에 없고 누누이 말씀하시었소. 
그런데도 원통사를 따라 죽음의 바다로 들어갈 것인가 이  말이오." 이영남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것은 정말 
항명이었다. 나대용과 이언량은 이미 의논을 끝낸 듯했다. 다짐하듯 이영남의 두 어깨를  꾸욱 눌러 잡았다. "이부사
도 우리와 뜻을 함께 하리라 믿소."  이영남은 숲길로 내려오면서 내내 아래만  보여 걸었다. 좌우의 풍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대용과 이언량뿐만이 아닐 것이다.  원통제사가 삼도 수군을 이끌고 부산으로 나아갈  때, 
많은 장졸들이 기회를 노려 집단으로 탈영을 감행하리라. 전라좌수영의 젊은 장수들이 일제히  사라진다면 삼도수군
은 두 다리가 잘려나간 앉은뱅이아 다를 바 없다.   사해! 니대용은 앉아서 죽기보다 훗날을 기약하자고 했다. 어떤 
훗날인가? 원통제사가 큰 패배를 당한 후 이통제사가 다시 돌아오는  날을 뜻함인가? 그들은 정말 이통제사의 아들
들이구나. 어명보다고 군령보다도 이통제사의 복귀만을 염원하며 움직이는 구나.  
그러나 이건 너무나 큰 모험이 아니가. 해전에서는 단 한 번의 패배가  곧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군선들
이 모두 침몰하고 나면, 무엇으로 수백  척의 선단과 맞설 수 있단 말인가.  누구보다고 그들이 이 음모의 어처구니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원통제사를 죽음의 바다에  호로 두고 물러나려 한다.  이영남! 너는 어찌할 것인
가? 항명하여 훗날을 도모할 것인가. 나아가 죽음으로 장수의 본분을 다할 것인가?



  
    4. 전우 
  정유년 7월 1일 아침. 바다가 가까울수록 바람은 거세어지고 빗방울은 굵어졌다.  한 떼의 말밥
굽 소리가 정적을 깼다. 안장에 올라앉은 장졸들은  굵은 빗줄기에도 아랑곳 않고 말고삐를 더욱 
세게 잡아당기며 채찍을 휘갈겼다. 채찍 소리가 폭포수 흐르듯 가쁜 것을 보니 급한 용무가 있는 
모양이었다. 남원에서 구례를 거쳐 곤양으로 향하는 도원수  권율의 두눈은 핏발은 서서 붉게 충
혈이었다. 앙다문 입술, 부루퉁한 볼이 그의 표정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원균, 이놈! 감히 내
게 항명을 하다니, 그러고도 네가 살기를 바라느냐.  아직도 도체찰사 이원익의  불호령이 고막을 
찢는 듯했다. 권율은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6월 29일  밤, 권율은 이원익의 부름을 받고 급
히 남원으로 갔다. 영의정 유성료이 한양에 남아 조정의 중론은 이끌면서  전세를 총괄한다면, 우
의정 겸 도체찰사 이원익은 하삼도의 장졸들을 거느리고 전투를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나이
가 열 살이나 위인 권율이지만 이원익을 대하기란  늘 어려웠다. 이원익은 유성룡과 같은 남인이
면서도 성품이 강직하고 꼼꼼함 원칙주의자였다.
  왜군을 쓸어버리기전에는 편히 잠들 수  없다며 권율이 선물한 비단이불도  돌려보낸 위인이었
다.  이원익은 권율과 마주 앉자마자 앞위 가리지 않고 다그쳤다.  "권도원수! 그대가 삼도수군통
제사 원균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한다는게 사실이오?" "누가 그딴 망발을 입에 담소이까?" 이원이
이 서찰을 꺼내 쑥 내밀었다. "한양에서 온 것이오. 비변사에서 그대가  제대로 수군을 이끌지 못
한다는 논의가 있었소. 권도원수! 왜 원통제사를 군율에 따라 엄히 다스리지 않는 것이오? 지금은 
전쟁중이오이다. 아무리 통제사 원균이라 하더라도 항명을 하면 죽음으로 다스려야  하오."  권율
은 서찰을 빠르게 훑어나갔다.  ...제찰사는 대신이며 도원수는 주장이다. 그런데 체찰사와 도원수
가 수군통제사를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통제사가 항명하
면 마땅히 군율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이, 이런!"  권율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떴다. 조정의 분위기가 또렷하게 감지되었다.  이
순신에서 원균으로 삼도수군통제사가 바뀐 후, 권율은 조선 수군의 부산 출정을 독촉했다. 원균이 
전라병사로 있으면서 줄기차게 주창했던 것도 바로 부산 출정이었다. 원균의 삼도 수군이 앞장을 
서면 전라도의 육군을 동원하여 뒤를  받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원균은  오히려 육군이 안골포와 
가덕진을 선제 공격하기를 청했다. 권율이 그 요구를 거절하자, 원균은 저정에  직접 장계를 올려 
육군을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도원수 권율이 전투를 기피한다는 분위기를 은근히 풍겼
다.  "이건 터무니없는 모함이오이다. 대감께서 직접 종사관 남이공을 보내 출정을 독촉하였고 소
장도 사천 앞바다까지 갔다 오지 않았소이까? 헌데 조정에서는 마치 우리가 원통제사의 무책임한 
행동을 방임하는 것처럼 몰아세우고 있소이다." 이원익은 권율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목소리
를 높였다. 
  "지금 남의 탓만 하고 있을 때요? 원통제사가 부산으로 진격하지 않는 동안 왜군들이 경상도의 
바다를 완전히 장악한다면 이 전쟁은 승리하기 어렵소. 명나라의 원군이 남원, 성주, 전주까지 내
려왔다고 참으로 큰일이오. 권도원수! 도원수가 직접 원통제사를 만나서 조정의 뜻을 정확히 전달
하도록 하시오. 만약 끝까지 항명하면 군율오 다스리시오" "군율로 다스리라시면?" "무슨 수를 써
서라도 조선 수군을 당장 부산으로 출정하도록 만들라 이 말이오. 만약 이번에도 조선 수군이 움
직이지 않는다면 그땐 도원수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오. 알겠소?" 권율은 앞산 너머에서 밀려오는 
먹구름을 바라보았다. 오리 대감이라면 내 벼슬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다. 그래, 이건 최후통첩이
야. 조정에서 끊임없이 인책론이 제기되고 있음을 도체찰사도 알고 있는 것이다. 원균과 나 둘 중 
하나에게 책임을 둑겠다는 뜻이지. 하긴, 조선 수군이 왜군의 급습에 계속 당하고만 있으니, 누군
가가 그 책임을 뒤집어써야 할 테지.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내가 수군의 패전까지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응당 그 책임은 수군통제사 
원균에게 있다. 이순신이라면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장계를 조정에  올려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 년이 넘도록 이순신과 함께 전라도를 지켰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일은 없지 않았는가? 혹시... 
원균은 수군통제사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도원수 자리까지 넘보고 있는 게  아닐까? 충청병
사, 전라병사를 지냈으니, 이 나라의 수군과 육군을 모두 손아귀에 넣고 싶어  윤두수 낵감과 윤
근수 대감을 충동질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순신을 몰아낸 것도 원균의 장계 때문이 아닌가. 허
나 어림없지.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 걸려들 것 같은가. 나는 이순신과 다르다. 뒤통수를 치는 놈
은 어느 누구도 용서치 않으리라.
  곤양에 도착한 권율은 곧장 전령을  경쾌선에 ㅌ태워 한산도로 보냈다.  그리고 아침도 거르고 
방에 틀어박혔다. 원균을 어떻게 질책하여 군선들을 움직이게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니 머리가 지
끈지끈 아파왔다. 원균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사십 년 가까이 조선 팔도를 호령하며 전공을 세
운 맹장이 아닌가. 몇 번이나  글로 꾸짖고 말로 타일러 보았으나  원균은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권율은 언젠가 이순신에게 원균이 어떤 사람인지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이순신은 씁
쓸하게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장졸들은 심장을 손아귀에 틀어쥐는 접을 아는 장수지요. 휘하에 
둔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나, 함께 쟁공을 다툰다면 백만 대군과 맞서는 것보
다 힘이 듭니다. 어쨌든 조선에 꼭 필요한 장수입니다."  이순신은 제 살을 파먹는 한이 있더라고 
자신의 고뇌와 바람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위인이 아니다. 
  무군지죄로 끌려갈 때나 백의종군을 당해 도원수의 휘하에 배속된 후에도  권율에게 아무런 도
움을 청하지 않았다. 처음에 권율은 이순신이 물귀신처럼 자신을 끌고 들어가면 어쩌나 걱정했었
다. 부산으로의 진격을 늦춘 데는 이순신보다 오히려 도원수인 그에게 더 큰 책임이 있었다. 그러
나 이순신은 끝까지 모든 죄를 홀로 짊어졌다.  이순신과는 달리, 원균은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관철시키기를 즐기는 위인이었다. 문단속을 하며 가만히 제  집을 지키는 거으로도 성이 차지 앟
았다. 왜군을 무찌를 전략과 전술을 만들고, 수많은 요구를 도원수와 도체찰사와 조정에 끊임없이 
해댔다.  권율은 원균의 월권 행위를 결코 좌시할 수 없었다. 그 높은 콧대를 단단히 꺾어놓지 않
는다면원균이 단독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와 육군들을 이끌고 수군과 함께 부산을 칠 수도 있는 일
이다. 도체찰사 이원익이 역시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었기에 군율로 엄히 다스리라는 말까지 나
온 것이다. 
  선수를 치는 것이 중요해!  권율은 원균에게 변명할 틈을 주지 않을 걱정이엇다. 마주 앉아  토
론을 벌이면, 주상전하의 어명을 등에 없은 원균에게 대의명분을 빼앗길 가능성이  컸다.  항명의 
죄부터 군율로 다스리자, 그 다음에 호통을 쳐서 출정하도록 만드는 것이 좋겠어. 제 아무리 천하
의 원균이라 하더라도 치도곤을 당한 후에는 고분고분해지겠지. 권율은 큰소리로  명하였다.  "형
틀을 준비하렸다!" 신시가 가까워지자 빗방울이  차츰 잦아들었다. 오색 무지개가  남동쪽 하늘에 
떠올랐다. 전쟁의 그림자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맑고  깨끗한 무지개였다. 군졸들의 
탄성 소리에 이끌려 대청마루로 나섰다. 땅에 떨어진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하늘의 배려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산도로 보냈던 전령이 황급히  동헌으로 뛰어들어와서 넙죽 엎으려 아
뢰었다. "통젯께소 도착하셨나이다." 
  무지개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권율의 표정이  삽시간에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그는 벗어두었던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후 장검을 챙겼다. 도원수의 위엄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동헌의 대청마루
로 나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원균이 뜰고 들어섰다. 원균 역시 갑옷과 투구로 중무장을 하였다. 
오른편에는 순천부사 우치적이 서 있었고, 왼편에는 조방장 배흥립이 눈을 부릅뜨고 좌우를 살폈
다.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눈이  매서운 장수들이었다. 원균은 권율을 향해  똑바로 걸어나오다가 
뜰 왼편에 마련된 형틀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원균은 고개를 숙
여 예의를 갖추었다.  "도원수께서 이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힘이 넘
쳐났다. 권율은 원균을 똑바로 쏘아보며 명령했다.  "죄인을  형틀에 묶어랏!"  원균의 눈이 놀라
움과 분노롤 이글이글댔다. "도원수! 이 무슨 짓이오? 수군통제사인 소장에게 곤장을 치겠다는 것
이오?" 권율이 원균의 항변을  무시하고 주위의 장졸들에게 다시  하명했다.  "무엇하는 것이냐? 
어서 저놈을 잡아!"
  이십여 명의 장졸들이 원균에게 다가섰다. 그 순간  우치적이 장검을 빼어 들었고 배흥립이 철
퇴를 휘돌렸다. 장졸들이  흠칫 놀아며 뒷걸음질을  쳤다. 원균은 권율을  쏘아보며 다시 물었다.   
"도원수! 소장은 종이품 수군통제사이오이다. 수군의 으뜸  장수오이다. 어찌 소장에게 이러실 수
가 있소이까?"  권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호통을 쳤다. "네 놈은 부산을 치라는 어명을 어
겼느니라. 군율에 따라 벌하려는 것인데 무슨 잔말이 그렇게 많으냐?"  원균이 지지 않고 대답했
다. "그것이 어찌 조정의 명이오이까? 주상전하께서는 수군과 육군이 합심하여 부산을 치라고 하
셨소이다. 어명을 따르지 않은 장수는 모두 원수이오이다."  권율은 원균의 당찬 반박에 화가 머
리끝까지 치밀었다. "이노옴! 닥치지 못할까? 네가 감히 내게 대드는 것이냐? 뭣들하는 게야? 저
놈은 군율을 어겼다. 참형에 처할 만큼 중한 죄를 지었다 이 말이니라. 어서  죄인을 잡아라. 물
러서는 놈은 살려두지 않겠다." 장졸들이  창과 칼을 움켜쥐고 다시  앞으로 다가갔다. 포위망이 
점점 좁혀졌다.  "이얏!"
  우치적이 장검을 휘돌리며 앞으로 나서니, 작아지던 원이 순식간에 커졌다. 배흥립도 때를 놓치
지 않고 철퇴를 휘돌리며 장졸들을 위협했다. 쉽게 결판이 날 것 같지 않았다. 겨우 세 사람에 불
과했지만 그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용장들이었다. 특히 여진족과 왜군을  물리친 원균의 검술을 
신화에 가까웠다. 권율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만약 원균을  포박하지 못한다면 도원수
의 체면은 땅에 떨어진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피를  보았다가는 자중지란의 책임을 면할수 없으
리라. 원균은 그땨까지도 검을 뽑지 않은 채 권율의 얼굴을 응시했다. 
  "안골포를 비롯한 몇몇 작은 패배와 보성군수 안홍국등  장졸들의 전사에 대한 책임을 피할 생
각은 없소이다. 허나 도원수! 어찌 그 벌로 수군통제사의 볼기를 칠 수 있단 말이오리까?  차라리 
소장의 목을 가지시오."  "묶어랏!" 장졸들이 다시 포위망을  좁혔다. 등을 맞대고 사방을 경계하
던 우치적과 배흥립은 당장이라도  앞으로 달려나갈 기세였다.  원균이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만들 둬! 우리끼리 피를 볼순 없다."  우치적이 검을 이마 위까지 치켜든 채  소리쳤다. "장군! 
순순히 오라를 받을 생각이십니까?"  배흥립이 옆에서 거들었다.  "저까짓 오합지졸들은 천 명이 
덤벼도 두렵지 않소이다." 원균이 언성을 높였다. "도원수와 토제사가 피를 보며 싸웠다는 소무니 
퍼지면, 조선은 이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어, 모든 건 나와  도원수가 해결하겠다. 그대들은 빠져 
어떤 이링 있어도 경거망동해서는 아니된다." "자,장군! 하오나..." 우치적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
거렸다. "배에서 기다리고 있게. 내 곧 가지." 우치적과 배흥립과 동시에 칼과 철퇴를 내려놓았다. 
장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세 사람을 묶었다. 원균이 고개를 치켜들고  권율에게 요구했다. "순천
부사와 조방장은 아무런 죄가 없소이다. 그들을 풀어주시오"
  장졸들의 시선이 일제히 권율에게 쏠렸다. 권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우치적과 배흥립은 
동헌 밖으로 끌려 나갔다. 장군, 장군하며 원균을 부르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형틀에 묶어라!" 
한 고비를 넘긴 권율은 근엄하게 명령 했다. 건장한 나졸  두명이 원균의 오라를 풀고 투구와 갑
옷을 벗겼다. 그리고 양 팔을 좌우로 벌려  다시 결박한 후 형틀에 뉘었다. 원균은 두  눈을 감고 
나졸들이 하는대로 몸을 내맡겼다. 방금전까지의 소란스러움이 일순간에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 권율의  호통에 원균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검푸른 안광이 권율의 
심장을 뚫을 듯 했다. "소장은 그래도 도원수를 믿었소이다. 행주대첩의 신화를 믿었소이다. 허나 
그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믿음이었소이다." "항명을  인정하는가?" "소장,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
은 몸이외다. 평생 단 한차례의 항명도 없었소이다. " "안 되겠다. 저 놈을 매우 쳐랏." 권율의 명
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좌우로 벌려선 나졸들이 장을  번갈아 쳤다. 고통을 참는 원균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열대를 친 후 권율이 손을 들어 형벌을  중지시켰다. "지금 당장 조선 수군을 부산으로 출정시
키라는 어명이 내렸느니라." "못하오이다, 도원수께서  육군을 먼저 움직이십시오. 그러면  소장이 
수군을 이끌고 낭가겠소이다." 원균이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흡사  거대한 호랑이가 
길목에 떡 버티고 서서 천하를 노려보는 듯했다. "이놈! 통제사에만 오르면 당장 부산을 치겠노라
고 장담을 한 놈이 누구냐? 이순신과 나를 겁장으로  몰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부산을  치지 못
하겠다? 조변석개로 말을 바꾸는 네가 어찌 조선 수군의 으뜸일 수  있겠는가?" "말을 바꾼 것이 
아니오이다. 이순신은 부산을 치려는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잡혀간 것이오이다. 소장
은 지금 당장이라도 부산으로 진격할 준비가 되어  있소이다. 허나 육군의 선공이 없다면 압승을 
거둘수 없소이다. 지금 왜적은 조선 육군이 움직이지 않으리라 판단하고 있소이다.  지난 사 년동
안 꿈적도 하지 않았으니, 마음을 놓고 바다에서만 응전 준비를 하고 있소이다.  이때 육군이 파
죽지세로 치고 들어간다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오이다. 병법에도 적이 예상사지 못한 곳으로 나아
가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닥치거라. 왜군은 벌써 동래, 기장, 울산, 김해, 진주 등지를 점령하였느니라. 어찌 육군을 움직
인다고 이들을 단숨에 물리칠 수 있겠느냐? 수군을 움직여 왜군의 시선을 후방으로 돌린 뒤 육군
으로 몰아치면 승리할 수 있느니라. 지금 당장 수군을 움직여라. 그리하면  지금까지의 죄는 불문
에 부치겠다." "불가하오이다." "에잇! 매우 쳐라" 나졸들의 매질이 한층 매서워졌다. 권율은 고개
를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퍽퍽, 퍽퍽퍽, 살이 터지고 피가 튀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원
균은 매를 맞으면서도 미친 듯이 외쳤다. "차라리...윽, 소자의 목을...치, 치시오" "멈추어라." 권율
의 목소리가 낮고 차분해졌다. 몸져누울 정도로 매타작을 해서는 아니된다. 오늘  그를 부른 것은 
부끄러움을 느낀 후 힘써 나아가  싸우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풀어주어라."  군졸들이 손과 발의 
오라를 풀자 원균은 몸을 기우뚱거리며 가까스로 일어섰다. 엉덩이에서 터진 피가 벌겋게 허벅지
와 발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 갑옷과 투구를 주시오"  원균이 일그러진 얼굴로 권율을 노려보
았다. 권율이 턱짓을 하자, 군졸들이 무거운 갑옷과 투구를  그 앞에 내려놓았다. 그는 천천히 갑
옷을 껴입기 시작했다.
  곤장을 맞은 후유증 때문에 제대로  허리를 돌리거나 두 다리를 우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꼬꾸라지면서도 그는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장졸들은 걱정 반, 존경  반의 심정으로 숨
을 죽인 채 지켜보았다. 갑옷 하나 제 힘으로 입을 수 없는 자가 어찌  장수일 수 있겠는가. 그의 
굳게 다문 입은 그렇게 줒장하고 있었다. 권율은 그의 옹고집에 몸서리를 쳤다.  평범한 사내라면 
벌써 땅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쉴 것이다. 그러나 원균은 악착같이 갑옷을 입고 있다. 이유
는 단 하나, 내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이다.  내게 지기 싫은 것이다. 자신의 정당함을 한
순간도 꺾지 않으려는 것이다. 원균의 온몸이  땀과 피로 뒤범벅이 되었다. 두 다리는  눈에 띄게 
흔들렸고, 비대한 허릿살은 오늘따라 더욱 부풀어올랐다. 헉헉대는 숨소리가 권율이 앉아 있는 마
루까지 들려왔다. 권율의 손에도 땀이 베었다.  이윽고 원균은 갑옷을 다시 챙겨 잆고  투구를 깊
게 눌러썼다. 짙은 눈썹이 투구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했다. 두 눈동자의 매서움이 한층 그 정도를 
더했다. 여기저기서 장졸들이 참았던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지독한 놈!  권율은 두 주먹을 불
끈 쥐고 명령했다.  "지금 당장 군사를 이끌고 부산으로 출정하라. 만약  이번에도 출정을 늦추거
나 싸우는 척하고 돌아온다면, 그대의 바람대로 그애의 목을 베겠다. 도체찰사와  나 권율의 이름
을 걸고 반드시 항명죄로 다스리겠다. 가라!" 
  원균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소장의 지휘검을 주시오" 권율은 갑옷과 투구만을 내
주었던 것이다. 지금 원균에게 장검을 쥐어주는 것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비호처럼 달려들어 권율의 목을 자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권율 역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내어주라" 장검을 품에 안고 있던 군졸이 쪼르르 달려나왔다.  장검을 앗아든 원균이 도
끼눈을 뜬 채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이까? 승전이오이까, 소장의 목이오이
까?" "...승전이다"  원균이 바람처럼 검을 뽑아들었다. 군졸들이 앞을 막아서려 하자 원균이 좌우
를 쏘아보며 검을 가볍게 흔들었다. 군졸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권율은 마른침을 꼴
깍 삼켰다. "소장의 목과 승전을 맞바꿀 수만 있다면 소장은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겠오이다. 소장
이 수군을 이끌로 나서면,  더우너수께서는 지체없이 육군으로  뒤를 받치실 것이오이까?" "그렇
다." "허면 소장이  왜 수군을 물리치고  부산에 닿을 때  도원수께서도 그롯에  도착하시겠군요" 
"그, 그렇겠지" 원균이 검을 천천히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소장과 하나만 약조해주십시오" "무
엇인가?" 
  "소장이 부산에 닿을 떼 도원수께서도 그곳에  계셔야 하오이다. 만약 도원수께서 그곳에 나타
나시지 않는다면 소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원수를 베겠소이다." "나를 죽이겠다? ...허허허, 좋
다. 내 약조하지" 권율이 대답을 마치자마자 원균은 검을 다시 칼집에  꽂고 휙 뒤돌아섰다. 억지 
웃음으로 위기를 넘긴 권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수군을 움직이는 데는 성공한 것이
다. 그러나 부산까지 진격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권율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는 처음부터 부산으로 육군을 몰아갈 뜻이 없었다. 수십 만의 왜군이 모여 있는 부산으로 진격한
다는 것은 마른 볏단을 지고 장작불로  뛰어드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이미  들판을 깨끗이 
불지르고 보루를 지키는 견벽청야의 병법을 펴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 병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참을성 많고 끈기 있는 장수가 필요했다. 원균은 이 전술에 맞는 장수가  아니었다. 권율은 어떻
게 해서든지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서  끄러내리고 싶었다. 아무리 육지에서  청야전을 
휼륭하게 치른다 해도 바다에서 방어선이 뚫리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이다. 권율은 투구를 벗
어 엎구리에 긴 채 동남쪽 하늘을 올려보았다. 
  오색 무지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원균!   나를 원망하지 말라. 그대는 삼도  수군을 맡을 
그릇이 아니다. 차라리 이순신의 휘하에서 돌격장 노릇이나 충실히 했더라면 부귀와 영화를 누렸
을 것을, 부디 왜 선단과 맞서 가볍게 지고 돌아오라. 내 그동안의 전공을  생각하여 그대의 목을 
베지는 않겠다. 조정에 아뢰어 그대를 함경도 병마절도사나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얾겨갈 수 있도
록 배려하겠다. 청야전이 끝날 때까지 제발 돌아오지 말아라. 내게는 호랑이  같은 그대보다 여우
를 닮은 이순신이 필요하다. 이 전쟁은 이순신 같은 장수만이 승리를 거둘 수  있다. 부디 자중하
라. 역사는 그대를 버렸다. 그대는 이것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두만강으로 가라.  다시 그곳에서 
마음껏 그대의 용기를 시험하라. 하지만 남해바다는 아니다. 알겠는가, 원균?  정유년 7월 7일 새
벽. 일찍 잠을 깬 이순신은 홀로 뜰을 거닐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어머니의 장
례를 치른 뒤 목골이 더욱 수척해졌다. 
  전쟁의 재개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지만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의 군사들이 수십만 명을 헤아린다
는 풍문은 언제 들어도 등골이 오싹했다. 적은 더욱 강해졌다. 이제 조선의 산하는 적에게 완전히 
노출되었다. 아군의 약점을 모두 꺼내보인 후, 적군과 맞서서 이기기는 극히 어렵다. 왜가 강해지
는 동안 우리도 강해졌는가? 몇몇 산성을 다시 쌓고, 훈련도감에서  장졸들을 양성했지만,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다. 여전히 명나라의 원군에 기대어 싸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걱정스러
운 일은 전라도의 민심이 완전히 조정에 등을 돌인 것이다. 백성들이 조정과 왕실을 위해 스스로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단 말인가?  이순신에게는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있었다. 7월로 접어들면서 매일 밤 악몽이 이어졌다. 검은 소가 방으로 뛰어들기도 하
고, 검은 배가 산꼭대기에서 미끄러져 내려오기도 했다. 어제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대한 
강을 건너가는 것이 보였다. 검은 소, 검은 배, 검은 말, 검은 사람들, 그는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
를 알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저승사자의 변형이었다. 저승사자가 그를 만나기 위해 매일 밤 찾
아오고 있는 것이다.
  죽을 때가 되었는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은하수를 
타고 쏟아지는 별무리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은하만 보면 박초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초희는 
저 수많은 별무리 속에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싶다고 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그녀를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다. 초희! 어머니의 품에서 버림받고, 모국에서 쫓겨난, 나약하고 가여운 여인,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정녕 은하수 속에 묻혔는가?  마른 바람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그가 서 있는 앞마
당에서 회오리를 질쳤다. 그는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며 잔기침을 해댔다.  최중화가 주고간 약초 
덕분에 근근이 목숨을 연명하고는 있지만 여름 감기에  시달릴 만큼 허약한 몸이었다. 아직도 아
침마다 옆구리와 허벅지의 통증을 이겨내며 몸을 추스르는  데 꽤나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러나 
고통은 살아 있음의 징표가 아닌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살아서 숨쉬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가볍게 허벅지를 주물렀다. 앙상한 뼈가 잡혔다. 쉰세 살, 이제 그도 늙
은 것이다. 젊은 시절 변방을 떠돌며 옺갖 고초를 겪은  그의 육신은 예순을 훌쩍 넘긴 노인들보
다도 보잘것없었다. 
  섬돌 위에 나란히 놓인 짚신 두 켤레가 눈에 띄었다.  그의 병을 살피기 위해 아산에서 찾아온 
훈련주부 변전서와 둘째 아들 울의 신발이었다. 내가 급사라도 할까봐 두려운 게지.  아산에 남아 
있는 아들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큰아들 회와 막내아들 면, 그리고 서자인 훈과 시느 그들에게 좋
은 아버지가 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수의 길을 걷겠노라는 
서찰을 보내왔다. 그때마다 그는 가족을 떠나 홀로 변방을 떠도는 것이 얼마나 힘에 겨운가를 밀
려오는 적과 맞서 죽음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답장을 썼다. 
다시 태어난다면, 결코 장수의 길을 걷지 않겠노라고까지 썼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그들의 서찰
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아버님! 오랑캐를 몰아내고 이 나라 조선을 더욱 강건하게  만들고 싶습
니다.  그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설득해도 막내아들 면은 그의 뒤를 이을 것이고 그
보다 더 뛰어난 장수가 될 것이다. "허허허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대문 앞에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서 있었다. 넉넉한 웃음이 귀에 익었다.
  이순신은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나이를 먹을수록 제일 먼저 힘을 잃는  것이 바로 시력이었다. 
이제는 스무 걸음만 떨어져도 사물을 제대로 구별할  수 없었다. 어느새 사내가 앞마당을 가로질
러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갑옷이 치렁치렁  소리를 냈다. 사내는 투구를 벗고 긴  숨을 내쉬며 
이순신의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당신은...!" 이순신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다른 누구도 아
닌, 원균 그가 이렇게 나타나다니. 이순신의 얼굴 위로  온잦 표정이 함게 피어올랐다. 원균이 목
소리를 낮추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조용히 하오. 모처럼 어렵사리 전우를  찾아왔는데 동네 사
람들을 모두 깨울 작정이오?" 이순신은 꿈꾸듯 서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한  시도 잊을 수 없었
던 원균과의 대면이었다. 빨리 정신을 수습해야 했다.  이순신은 찬찬히 원균을 살폈다. 예전보다 
몸이 많이 불었다. 어깨도 더 벌어지고 허릿살도 붙었ㄷ. 밤송이 수염과  짙은 눈썹은 그대로였지
만, 충혈된 눈망울은 통제사의 자리가 얼마나 힘겨운가를 나타내주었다.  오른손에는 변함없이 장
검이 쥐어져 있었다.
  "통제영은 어찌하고 이리 오셨소?" "조방장들이 잘 지키고 있소. 그대도 알다시피, 배흥립과 김
완은 용장 중의 용장이 아니오?" "그렇지요. 그들은 죽음을  두려원하지 않은 맹장들이지요. 배흥
립의 철퇴나 김완의 표창이 새삼  그립소이다."  원균이 바짝 다가앉으며  이순신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  이순신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지선을 곧추세워 응대했다. 원균은 대답대신 
이순신의 양손을 마주잡았다.  "고문 때문에 몸이 많이  망가졌다고 들었소이다. 손이 차구려. 얼
굴도 핼쑥하고 이장군! 장수는 전쟁터에서 죽어야 하오.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두 발 편
히 뻗고 죽는 것은 장수다운 죽음이 아니지. 그건 차라리  치욕이 아니겠소?"  "그렇지요, 치욕이
고 말고요, 헌데 여기까지 어인 일이신지요?" "도원수께서 부르셨다오.  당장 출정하라며 장을 치
더군." 이순신이 대청마루에 묻어나는 핏자국을 눈으로 흝었다.  "아무리 도원수라고 해도 수군통
제사의 볼기를 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원균이 고개를 들고 웃었다.  "허허허허! 이장군이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구먼... 하지만 이장군! 볼기짝 몇 댜 맞았다고 나 원균이 꺾일 사람이오?  도원수도
궁지에 몰렸던 게지.
  가지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날 들볶은 거요. 아장군!" "..."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자니 옛날 생각
이 절로 나는그려. 우리가 함께 자란 건천동을 기억하오?"  "기억하다마다. 원장군은 영원한 우리
들의 골목대장이었소이다." "내가 덩치도 크고 나이도 많아서 대장 노릇을 했을 뿐이오. 고집이나 
투지로 본다면 이장군이 마땅히 대장을 했어야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른 바람이 마당으로 몰
려들었다. 이순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만주벌판에서 두만강을 넘어오는 사풍은  참으로 대단했
지요" "참으로 힘겨운 나날이었소. 날로 강성해지는 여진족에 맞서 매일매일 죽음을 각오하고 싸
웠었지. 전투를 거듭하는 동안  많은 부하들을 잃었소. 이장군도  그때 목숨을 잃을 뻔하지  않았
소?" "그랬지요. 좁은 소견으로 제  고집만 부렸던 것이 후회가 되오이다.  원장군의 도움이 컸어
요." "허허허, 도움은 무슨, 만약 내가 그런 낭패를 당했더라면 이장군은 보고만  있었겠소?" 주위
가 갑자기 깜깜해졌다. 반짝이던 별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서쪽으로부터 밀려온 먹구름
이 하늘을 뒤덮더니, 이윽고 굵은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원균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장군! 역사를 믿소?" 
  이순신이 어깨를 움츠리며 되물었다. "역사 말입니까?" 원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사기
나 춘추를 들출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오. 역사란 전쟁을 담는 그릇이오. 태평성대를 구가
하는 시대에 무슨 역사가 필요하겠소? 환란이 끊이질 않을  때, 역사도 있고 인간들도 힘을 쓰는 
법이지. 임진년부터 시작된 이 전쟁도 조선의 건국 이래 최대의 전쟁이니 반드시 역사에 남을 것
이오. 사서에도 기록될 것이고, 여러  문집에도 우리가 남해바다에서 거둔 승전의  흔적들이 남겠
지." "그럴 테지요" "이장군! 우리는 역사에 어찌 남을 것 같소?"  이순신은 대답을 미룬 채, 원균
의 시선을 따라서 검은 하늘을 훑었다. "이장군! 그대와  나는 철부지 시절부터 지금까지 반평생
을 함께 보냈으니까 참으로 오랜 벗이 아니오? 더구나 대부분의 시간을  전쟁터에서 보냈으니 우
리는 말 그대로 전우일 것이오." "..."  "나는 그대를 한  번도 저으로 생각한 적이 없소. 그것은 
이장군도 마찬가지겠지? 우리에겐 너무나도 거대한 적이 있지 않소?  오랑캐라고 업신여겨왔지만 
조선의 산하를 피로 물들인 왜, 그 왜야말로 우리들이 맞서 싸울 진정한 적이오. 그대와 나의 이
견도 따지고보면 적을 어찌하면 더 빨리 격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사사로운 차이일 뿐이오. 내가 
이장군 그대를 왜군보다 더 미원하다거나 이장군이 나를 왜군보다 더 폄하한  일은 결코 없었소. 
그렇지 않소?" 이순신은 응답하지 않았다. 
  원균의 물음은 대답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순신은 원균의  이야기를 들으며 승전에 
기뻐하던 자신의 모습과 비참하게 끌려가 고문받던 모습을 함께 떠올렸다. 쓴웃음이 찾아들자 입
가의 근육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이장군! 허나 역사란 말이외다. 역사는 우리의 진심 따윈 아랑
곳하니 않을 것이오. 역사는 희생양을 요구할 거시오. 이순신 그대가 아니라면  나 원균을 제물로 
쓰겠지?" 희생양? 제물? 이순신은 그 말을  되씹었다. 원균, 그대가 지금 나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는가. 이순신의 손끝이 떠리듯 오그라들었다. 그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원균이 이
순신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권력을 움켜쥐고 흔들어대는 자들, 죽음이 무엇이닞도 모르는 
,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멍청이들, 버러지 같은 놈들!"  원균, 그대는 왜 이리 흥분하는가, 도
원수의 곤장이 그렇게도 분하던가. 무군지죄인  앞에서 겨우 곤장 몇대를 가지고  이러는 것인가. 
이순신의 윗입술이 씰룩였다. 
  "말씀이 지나치시외다. 조정에는 유성룡  대감이나 윤두수 대감  같으신 분도 있지 않습니까?" 
"허허헛, 허허허헛!"  원균이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웃음이
었다.  "원장군! 왜 그리 웃으시는 것이오?" "미,  미안하오, 이장군!" 안색을 바구며 원균이 목소
리를 깔았다. "이장군은 역사가 유성룡 대감이나  윤두수 대감 같은 양반의 붓끝에서 만들어진다
고 보시오?" "사관들은 문관들이 아닌지요? 그중에는 눈 밝고 귀 밝은 이가 있을 겁니다." 원균이 
호통을 쳤다.  "이장군! 정녕 모르시는 게요? 역사의 중심엔 누가 있소? 바로 군왕이외다. 역사는 
군왕을 위해 지어지는 것. 제 아무리 명신들이 조정에 우글댄다고 해도 군왕의 어명을 거역할 수
는 없는 일이오. 역사는 반드시 이 전쟁의 책임을 물을 것이고, 그때 누가 그  책임을 지겠소? 군
왕이겠소? 아니면 군왕의 눈과 귀가 되어 움직이고 손이  되어 글을 짓는 문신들이겠소? 아니오. 
그들은 결코 이 전쟁의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외다.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겠소?" 원균은 잠시 
뜸을 둘였다.
  "조선에는 지난 임진년에 왜적에게 패한 수많은 장수들이 있소. 조정에서 왜 그들을 살려둔 줄 
아시오? 일단 아량을 베풀어 왜군과 맞서 싸우게 한 수 역사의 죄값을 물을 작정인 게요. 이장군
이나 나도 벌써 그 덫에 걸렸지." "하지만 장군! 조선  수군은 승전을 거듭하지 않았소이까?" "허
허허! 사관들은 아마도 이렇게 쓸 것이오. 몰려오는 왜선을 격파하여 작은 승리를 거둔 것은 사실
이나 부산으로 먼저 나아가 치지 않은 죄를 면하기는 어렵다. 정유년에 왜군들이 다시 상륙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 수군이 나아가  왜선을 무찌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이제야 깨쳤단 
말인가. 그래서 내가 이 몰골로 이렇게  그대 앞에 서 있는데도 그  점을 이용한 자가 바로 원균 
당신인데도 이순신은 어이가 없었다. "그만! 그건 사실이 아니오이다. 터무니없는  모함이에요. 아
무리 어명이 지엄하다고 해도 패배와  죽음의 길이 나아갈 수는  없소이다." "패배의 길? 죽음의 
길?허허허, 그렇소 그대의 말이 맞소. 허나 역사는 두 눈이 멀었다오. 지엄하신 어명만 입에 올리
고 죽음의 길을 헤아리지는 못할 게요"  빗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처마 끝에서 물방울이 똑똑
똑 떨어졌다. 
  원균이 그 물방울들을 손바닥으로 움켜쥐며 쓸쓸하게 웃었다. "허허허, 이장군! 어차피 우린 이 
물방울과도 같은 존재들이오. 청명한 하늘,  눈부시게 맟나는 해를 예비하기 위해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물방울, 불멸하는 것은 승리의 역사이지, 피 흘려 싸운 장수들이  이대로 전쟁이 끝나면 
그대도 나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도. 잔인한 역사는  살아남은 장수들의 피를 모조리 요구할 테지
요. 허나 아직 늦지 않았소. 우리가 오명을  남기지 않을 방법이 아직 하나 남아 있소."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죽는 것이오"  이순신의 눈끝이  또다시 파르르 떨렸다. 유
성룡을 만나 죽음 청하던 기억이 새삼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원균의 말이 계솟이어지길 
바랬다. "어, 어찌 그런 말씀을..." "망인에게 한없이 관대한 것이 바로 역사라오. 더구나 전쟁터
에서 장렬하게 죽는다면 충신으로 영원히 남겠지. 이장군! 어떻소? 나와 함께  역사에 푸른 이름
을 남기도록 합시다. 전우로서 충고하는 것이오. 어차피 죽을 목숨, 자손들이  밟고 지나갈 섬돌 
노릇이라도 합시다.자!" 원균이 오른 손바닥을 편 채 앞으로 쑥 내밀었다. 
  어서 그 손을 마주잡고 길을 나서자는 것이다.  이순신은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뒤로 젖히며 그
의 손바닥을 노려보았다. 가느다란 불빛이 열린 방문을 통해 둘 사이오 흘렀다. 이상한 느낌이 들
었다.  "자, 갑시다.! 이장군, 어서 내 손을 잡으시오" 그제야 이순신은 무엇이 이상한지를 깨달았
다. 원균의 손바닥에 손금이 없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놀란 얼굴로 옆걸음질을 치자, 원균이 와락 
달려들어 그의 팔을 낚아채려 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원균을 밀쳤다. 그러나  원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집채만한 바위가 가슴을 찍어 누르는 듯 했다.  이럴  수가! 어느새 원균은 검은 갑
옷을 입고 있었고, 양볼도 썩어들어가  시커멓게 변했다. 이순신은 황급히 품안에서  단검을 빼어 
들어 원균의 배를 깊숙히 찔렀다. 피가 튀었다. 먹물보다도  짙은 검은 피였다.  "허허허! 이장군. 
아직도 살고 싶은가보지? 
  허나 내 오늘은 꼭 그대를 데리고 가야겠소. 자 어서 손을 이리 내미시오" 거대한 힘이 이순신
의 오른팔을 잡아당겼다. 이순신은 한사코 등뒤로 오른손을 감추며 버티었다. 원균이 장검을 빼어 
들었다. 칼날의 검은 빛이 그의 눈을 찔렀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이제는 원균을 따라 북
망산으로 가는 도리밖에 없었다. 참으로  악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많고  많은 저승사자 
중에서 왜 하필 원균이 나를 데려갈 저승사자로 온 것인가? 그렇다면 원균은 이미  저 세상 사람
인가? 아직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단 말인가?  "원장군! 언
제 저승으로 가셨소이까?" 원균이 이순신의 손을 틀어쥐며 웃었다. "허허허허, 아니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소" 그러자 웃음을 만들던 입이 먼저 사라지고, 코가 어둠 속으로 밀려들어가더니, 마지
막으로 번쩍이는 두 눈이 동시에 없어졌다. 가슴을 들어가더니, 마지막으로 번쩍이는  두 눈이 동
시에 없어졌다. 가슴을 찍어 누르던 무거움도 사라졌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것은 어둠에 휩싸인 
밤하늘이었다.
  "아버님! 밤바람이 차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이울의 동그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 변존서의 뾰족한 턱이 보였다. 이순신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섬돌  위의 짚신을 바라보
다가 대청마루에 모로  쓰러져 깜박 잠이  들었던 것이다.  원균의 너털웃음이 귀에  쟁쟁거렸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느냐?" 이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누가 감히 이곳을 기웃거린
단 말씀이옵니까?" 권율은 특별히 군졸들을 붙여  이순신의 처소를 보호했다. 호위병이 아니더라
도 백전백승의 명장 이순신의  잠자리를 방해할 백성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장주의 꿈이로다.   
이순신은 방으로 들어갔다. 이울이 떠온 냉수 한 사발을 들이켰다. 이순신은  꿈에 원균이 나타난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았다. 어젯밤 도원수로부터 장을 맞았다는 전갈을 받았기 때문일까? 예전에
도 간간이 꿈에 원균이 보였지만 이번처럼 그가 다정하게 군 적은 없었다. 원균이 누군가. 맞서기
에도 벅찬 평생의 경쟁자가 아닌가. 적에게는 가슴을  열어보일 수 있어도 원균과 진심을 주고받
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꿈은 반대라더니, 그와  나 사이가 더욱 악화될 조짐일까?  이순신은 
몸을 비스듬히 돌린 채 눈을 감았다.  원균과 함께 보낸 지난 세월이 병풍처럼  끝없이 펼쳐졌다. 
벌써 색이 바랜 부분도 있었고,  너무나도 또렷해서 어젯밤에 일어난  것처럼 떠오르는 사건들도 
있었다. 
  삶의 고비마다 그의 곁에는 원균이  있었다. 건천동 시절에는 패배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을 
심어주었고, 육진 시절에는 때론 강직하고 때론 한없이 부드러운 장수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임진
년에는 죽음을 뛰어넘는 용맹함으로 그를 이끌었고, 그  이후로는 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어떻게 
증오로 바뀌는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앞서가는 이는 늘 원균이었고 그는 옆이나 뒤에서 바라보며 
비판하고 흠모할 따름이었다.  초계로 내려온 후, 하루가 멀다 않고 옛 부하들이 찾아와서 원균을 
비난했다. 몸이 너무 무거워서 제대로 달지도 못한거나 계집들을 운주당에 데리고 들어가서 술자
리를 벌인다거나 함부로 군사들을 처형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삼도수군
통제사 원균, 여진족을 벌벌 떨게 했던 원균은 오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밤낮 없이 노력하는 
장수였다. 이순신이 옛 부하들을 꾸짖고 내칠수록, 그들은 더욱 입에 게거품을 물며 원균을 깎아
내렸다. 이순신이 겉으로는 원균을 감싸지만 속으로는 자신들과 같은 마음이리라고 믿고 있는 듯
했다.  역사란 이런 것인가? 내가 아무리 그를 아끼고 존경해도, 타인의 눈에 다르게  보이면 적
도 되고 원수도 되는 것인가? 
  물론 그에게도 원균에 대한 섭섭함, 정확히 말해 증오의 감정이 남아있었다.  의금옥에 갇혀 고
문을 받을 때는 심장이 터져버릴 만큼 분노를 느꼈다.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반드시 원균의 
이마에 화살을 꽂겠다고 다짐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초계로 내려온 후, 원균
에 대한 그의 이움은 많이  누그러졌다. 무엇보다 원균은 연합함대를  이끌고 부산으로 진격하지 
않고 있었다. 전라병사로 있으면서 큰소리는 쳤지만  막상 수군통제사에 오르고보니 쉽게 부산을 
칠 상황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이순신은 원균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장수들 같으면 
이미 내뱉은 말에 뒤가 캥겨 어쨌든 출정을 했을 터이지만, 원균은 깨끗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
하고 군선들을 통제영에 묶어주었다. 개인의 체면보다 조선 수군의 안전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불러만 준다면 나아각서 그를 도울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이순신을 찾지 않았다. 어쩌
면 그것은 그가 지닌 마지막 자존심일지도 몰랐다.  "장군! 기침하셨사옵니까?"  송대립이 앞마당
에서 큰소리로 아뢰었다. 
  이순신은 변존서에게 문을 열도록 시켰다. 문이 열리자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마른 바람이 방
안으로 휙 들이쳤다. 송대립이 서너 걸음 달려나오며  다급한 목소리로 아뢰었다. "장군! 지난 초
닷새에 삼도 수군의 연합함대가 통제영을  출발하여 부산을 향해 떠났다 하옵니다."  "뭣이라고?" 
이순신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기어이 원균이 권율의  강압에 못 이겨 죽음의 바다로 뛰어든 
것이다. 해안을 따라 견고하게 쌓아올린 왜성들을 피해 무사히  부산까지 당도하기란 불가능하다. 
거제도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패배의 쓴잔을 마실 것이다. 갑자기 천장이  빙빙 돌았다. 이순신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가 그대로 벌렁 드러누웠다. 변존서가 황급히 그를  안아 일으켰다. 반
쯤 감긴 눈망울에 지휘검을 휘돌리며  군사들을 독려하고 있는 원균이  보였다. 이순신의 입술이 
파르르르 떨렸다.  "원장군! 작별인사를 하러 왔던 게요? 원장군! 가서는 아니되오. 가면 죽음뿐이
외다."

    5. 장엄
  정유년 7월 13일 아침. 고성을 떠난  경쾌선은 거제도 외줄포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삼도수군통제사를 나타내는 붉은 깃발이 돛대 끝에서 펄럭였다.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고물에 앉은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술병을 거꾸로 들고 벌컥벌컥 탁주를 마셔대고 있었다. 남장
을 한 무오과 순천부사 우치적이 한사코 만류했으나,  원균은 그들의 손길을 단호히 뿌리치고 정
신없이 술병을 비원나갔다.  "대감, 이러시다 큰일나십니다. 고정하세요." 무옥이  아예 그의 오른
팔을 븥들고 늘어졌다. 원균은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술병을 내팽개쳤다.  "에잇! 술도 
마음대로 마사지 못한단 말이냐?" 순천부사 우치적이 그의 앞에 무릎을  끓었다. "장군! 왜놈들을 
쓸어버린 후에 대취하셔도 늦지 않사오이다."  원균이 고개를 숙인 채  웃기 시작했다. "왜놈들을 
쓸어버린후? 허허허, 자네도 도원수와 똑같은  소릴 하는구먼. 하지만 어떻게  왜놈들을 쓸어버릴 
수 있는가? 
  조선 수군이 나서기만 하면 죄다 육지와 섬으로 숨었다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도깨비처럼 나
타나는 왜놈들을 감당할 수 있겠나.  나는 못하네. 차라리 도깨비불을  쫓는 편이 나을 성싶으이. 
허허허."  원균은 곤양에서 볼기를 맞은 지 꼭 닷새 만에 삼도 수군을 이끌로 부산으로 떠났다. 7
월 7일 물운말을 돌아  절영도 앞바다에 도착했다. 외줄포에서  안골포 앞바다, 가덕진, 몰운말로 
이어지는 내해가 아니라 옥포와 몰운말로 이어지는 외해를  택한 것은, 왜 수군이 복병선과 만나
지 않고 곧장 부산까지 진격하기  위함이었다. 반나절이 넘는 힘든 항로였지만,  장졸들은 별다른 
불만 없이 그의 군령을 충실히 따랐다. 수군의 으뜸 장수가 도원수에게 장을 맞았다는 소문은 장
졸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아무리 수군통제사가 잘못한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어찌 감히 볼기
짝을 칠 수 있단 말인가. 원균은 장졸들의 분노를 왜군을 향한 적개심으로  바꾸었다. 그가 출정
을 서두른 것도 그 분노의 불길이 꺼지기 전에 왜군과 맞서기 위해서였다. 절영도 앞바다까지 함
대를 몰고 들어오긴 했지만, 눈을 씻고 봐도 왜선을 찾기 힘들었다. 모두  왜성으로 숨어버린 모
양이었다.
  해안으로 총 통을 몇 발 싸서 붙여보았지  왜군은 전혀 미동도 없었다.  원균은  초조했다. 도
원수 권율이 육군을 이끌고 왜성을 공겨하기만 하면  왜군들은 견디지 못하고 배에 오를 것이며, 
그때는 식은 죽먹기보다 쉽게 왜 선단을 수장시킬 수 있으리라. 그러나 육군이 밀고 내려오지 않
는 이상, 조선 수군은 왜군과 맞서 싸울 수 없다.   그날 밤, 파도가 서서히 높아지더니 동남풍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더 이상 바다에 떠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원균은 급히 함대를 가덕도로 
후퇴시켰으나, 그 와중에 스무 척이 넘는 판옥선을 잃었다. 바람이 거센 틈을 타서 왜선들이 기습
을 감행한 것이다. 조선 수군은 우왕좌왕 후퇴하느라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했다. 가덕도에서 지친 
장졸들에게 요기를 시킨 다음 거제도 외줄포를 돌아왔다.  외줄포는 께사년 이후 조선 수군의 전
진 기지로 활용되고 있었다. 7월 9일 아침 외줄포에 도착하여 잠깐 눈을 붙이는데 도원수 권율로
부터 연통을 받았다. 당장 고성으로 오라는  것이다. 원균은 왜 선단이 가까이에 있으므로  갈 수 
없다고 버티었다.
  그러나 다시 권율은 전령을 보내 고성으로 오지 않고 삼도 수군을 한산도로 후퇴시킨다면 목을 
베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원균은 하는 수 없이 7월  12일 새벽에 경쾌선을 타고 고성으로 들어갔
다. 권율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함대를 되돌렸다며 노발대발 화를 냈고,  원균은 육군이 뒤를 
받쳐주지 않았기에 패한 것뿐이라며 맞섰다.  이번에도 권율은 원균을 형틀에 묶어  고장을 쳤고, 
한산도로의 후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못을 박았다. 채 아물지 않은 볼기짝이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허연 뼈가 드러날 때까지 매질은 계속되었다.  술이라도 마시지 않고는 돌아버릴 것만 같
았다. 사십 년 가까이 전쟁터를 누볐지만 이처럼 굴욕적인 일을 두 번이나 연거푸 당하리라 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권율은 내 목을 달라는 게야.  그날  밤, 경쾌선이 외줄포에 닿았을 때 원
균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대취해 있었다. 우치적은 원균을 업고 숙소까지 뛰었고, 무옥
은 식은땀을 흘리며 허공을 향해 호통을  쳐대는 원균을 돌보느라 그 밤을  꼬박 지새웠다.  7월 
14일 오시 원균은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배설, 충청수사 최호를 지휘선으로 불렀다.
  원균이 고성에 가서 다시 곤장을  맞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좌중의  분위기는 어둡고 침침했다. 
처음 소문을 들었을 때는 분노가 앞섰지만 또다시 그런 소문이 나돌자 분노보다는 슬픔과 안타까
움이 컸다. 조선 수군만을 채찍질하는 조정에 대한 불만도 높았다. "몸은 어떠신지요?"  이억기가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소" 원균이 밝게 웃으며 답했다. 엉거주춤 엉덩이를  들고 앞으로 비스듬
히 허리를 숙인 것이 아직도 완전한 몸이 아니었다. "도원수께서는 뭐라 하셨는지요?" 배설이 바
짝 다가앉으며 물었다. "연합함대를 한산도로  후퇴시킨다면 수군통제사를 비롯하여 삼도의 수사
들을 모두 참형에 처하겠다고 하였소이다."  "우리들을 모두  참형에? 그 무슨 얼토당토 않은 소
리요" 최호가 기가 막힌 듯 주먹을 불끈 쥐며 따졌다. 원균이 최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수군을 모조리 육군에 배속시킬수만 있다고 협박하였다오. 임진년 전쟁이  일어나기 전
에도 그런 논의가 있었더랬소. 그땐 대마도를 정벌하기  위해 수군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서 벗
어나긴 했소만, 이번에 우리가 그냥 귀영하면 조선 수군은 정말 사라질지도 모르오." 최호가 가슴
을 쭉 펴며 말했다. 
  "귀영하긴 누가 귀영한다고 그딴 말씀을 하십니까? 여기까지 후퇴한 것도 화가 나서 미칠 지경
인데." 배설이 최호의 말에 이의를 제기했다.  "최수사! 진정하세요. 지금은 왜군과  맞설 때가 아
니오이다. 저들은 바다에서 싸우다가 육지로 피해 쉴 수 있으나, 우리는 마음 편히  닻을 내릴 항
구 하나 없소이다. 이곳 외줄포도 안전하지가 않아요. 왜군들이 견내량을 포위하면 우리는 독안에 
든 쥐 꼴이 되오이다. 한시바삐 통제영으로 돌아가야 하오." 최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
런, 겁쟁이 같으니라고...그러고도  그대가 조선 수군의  장수인가?" 배설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싸움만이 능사가 아니오. 병법에도 이르기를 승리의 확신이 선영후에 전투를 벌이라고 하였소이
다. 더군다나 외줄포를 돌아온 후, 몇몇 장수들이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소." 이억기가 물었다.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오?"  배설이 좌중을 둘러보면서, 이미 다 아는 일이 아니냐며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전통제사로부터 총애를 받던 장수들이지요. 이름을 대지 않더라도 아시지 않소이까?" 
최호가 고개를 숙이며 배설을 비웃었다. 
  "그래서, 배수사도 그들과 합류하겠다? 그들이야 이통제사와의 의리 때문에 그런다손 치더라도 
배수가가 동요할 이유는 없지 않소? 싸우기가 두렵다면 솔직히 그렇다고 말씀하시구려." "이노오
옴!" 배설이 장검을 빼어 들었다. 당장이라도  최호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그만! 다들  진정하고 
앉으시오.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갑시다. 나는 그깟 겁쟁이들 몇 놈 달아나는 데 연연하지 않소. 
오히려 그런 놈들은 함대에 없는 편이 더 낫소이다. 배수사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소. 나도 애초에
는 이곳 외줄포에서 며칠을 묵은 다음 한산도로 귀영할 계획이었소. 왜 수군의 규모가 어느 정도
이며, 왜 육군이 어디까지 전진했는지  모르는 상황이 아니오? 척후와  간자를 보내 적의 종정을 
살핀 다음 다시 싸우더라도 늦지 않다고 여겼소이다. 허나 이제는 귀영할 수 없게 되었소. 우리에
겐 다음 기회란 없소. 이번에 꼭 왜군을 몰살시켜야만 하오." 이억기가 맞장구를 쳤다. "돌아가서 
권도원수에게 모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이곳에서 싸우다 죽은 편이  낫소이다. 왜놈들에게 조선의 
연합함대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도록 하십시다. 불패의 신화가 무엇인가를 똑똑히 가르쳐줍
시다." 최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헛! 역시 원통제사는 소장의  마음을 헤아리시는군요. 소장이  선봉에 서리다. 맡겨주십시
오." 장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배설에게 쏠렸다. 그는  한숨을 몰아쉰 뒤 입을 열었다.  "통제사의 
뜻에 따르겠소이다. 허나 항시 퇴로를  살펴야 하 것이외다. 유비무환이란 말도  있지 않소이까?" 
워균이 웃는 낯으로 배설을 달랬다. "좋소, 이제  우리의 뜻이 하나로 모아졌구려.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으니 승리는 따논 당상이오. 최수사가 선봉을  맡고 배수사가 칠쳔량 쪽 후미를 책
임져주시오. 이수사와 나는 중군을 맡겠소. 이틀  정도 더 군선을 정비하고 격군들을 쉬게  한 후 
부산으로 가도록 하십시다" 외줄포의 조선 수군은 오후 내내 바삐 움직였다. 최호가 이끄는 충청
수군이 영등포 쭉으로 전진배치되었고, 배설은 경상우수군의 판옥선 두 척을 적진포 앞바다로 보
내 척후를 세웠다. 원균과 이억기는 각군선에 실려 있는 활과 화살, 그리고 유황을 일일이 확인하
며 군사들을 독려했다.  황혼 무렵, 원균과 이억기는 겸상으로 저녁을 먹었다. 보리밥에  배추, 젖
은 김이 전부였다. 
  원균이 보리밥 한 덩이를 꿀꺽 삼킨 후 이억기에게 물었다.  "이수사, 그대도 내가 이순신을 모
함했다고 생각하오?" 이억기가 수저를 멈춘 채 고개를  들었다. "지금 와서 그딴 걸 따져 무엇하
겠습니까?" "그대도 날 의심하고 있군. 삼도 수군의 장수드이 대부분  날 의심하고 있지. 나도 그
걸 아오." "..."  이억기는 원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왜군과의 
마지막 일전이 남은 마당에 이순신을 들먹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순신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
도 있었소. 내 인정하지. 허나 나는 합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를 끌어내리고 싶진 않았다오. 이
것도 인생의 승부라면 승부일 것인데 비겁하게 승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이순신이 억
세게 운이 좋은 것은 확실하지. 아, 그렇다고 나의  불운을 탓하는 것은 아니오. 이순신에게도 불
행이 잇따르던 시절이 있었지 않소?  이수사와 내가 유진에서 한껏  이름을 드날릴 때, 이순신은 
진흙탕을 헤매고 다녔소. 진흙탕을 뒹굴어보아야 광영이 무엇인가를 아는  법이지. 이순신과 내가 
지금 함께 여기에 있지  않는 것이...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지."  "...패전을 생각하시는 것이오이
까?"  "패전이라니, 당치도 않소. 허나 힘겨운  승부인 것만을 사실이오. 배수사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오. 장수라면 응당  이런 모험은 피해야  하오. 이순신이라면 당장  귀여했을테지. 아니 그렇
소?" 
   이억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곤장을 맞으면서 무슨 생각을 한 줄 아시오? 이건 모두 이순신이 
맞아야 할 매다. 그가 맞을 매를 내가 대신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오. 사 년이 넘
도록 부산으로 출정하지 않은 장수는 내가 아니라 이순신이니까. 억울한 생각도  들더군. 허나 이
순신이 맞든 내가 맞든, 그게 무슨 대수겠소. 문제는 육군이 수군을 업신여기고 강제로 우리를 죽
음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다는 사실이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임진년 전쟁에서  대반격이 가능
했던 것은 전적으로 조선 수군이  있었기 때문이오. 허나 이제는 주상전하께서도  조정 대신들도 
도체찰도, 도원수도 과거는 모두 잊고 오늘 일만 탓하는구려. 그렇다면 차라리 이순신이 맞는 것
보다는 내가 맞는 것이 더 낫지. 몸도 내가 더 튼튼하고, 도원수에게 대드는 것도  내가 더 잘할 
터이니. 이수사!" "예 장군!" "이 전쟁이 끝나면 이수사는 무얼 하고 싶소?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
남는다면 말이오." 
  "글쎄...올시다. 별다른 일이야 있겠습니까?"  원균이 공깃밥을 비우며  말했다. "그래, 이수사야 
타고난 무장이니 변방을 떠자지 않을테지." "장군께서는 무얼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  나는 벼
슬을 그만두고 남해바다를 벗삼아 낚시질이나 하고싶소.  이순신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고."  "..." 
"허허,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이구먼. 허나 이순신도 나와 같은 심정일 게요. 우리가 다툰 것은 다 
이 나라를 위해서지. 어디 사사로운 감정 때문이었겠소? 전쟁이 끝나면 우리들 사이의 묵은 감정
도 다 씻겨 내려갈 테고, 수군통제사에까지 올랐으니 벼슬에 대한 미련도  없을 터, 낚시동무로는 
그만이 아니겠소?" 이억기는 밥을 채 먹지도 못하고 망연히 앉아 있었다. 원균의 소박한 꿈이 금
방 손에 잡힐 듯 했다.  "장군! 청이 하나 있소이다." "무엇이오?" "낚싯배를 띄울 날이 오면 소장
의 자리도 하나 비워두시지요" "그래, 그럽시다. 이수사까지  동참한다면 그야말도 금상첨화가 아
니겠소? 허허허."  이억기가 자리를 뜬 후 원균은 무옥에게 술을 가져오라고 했다. 무옥은 장독이 
오른 상처가 덧날까 두렵다며 고개를 저었으나 원균은 막무가내였다. 그녀가 따르는 술을 연거푸 
마셔댔다.
  "취하지 않는구나. 취하지가 않아/" 그는 술이 취하지 않는다고 주문처럼 뇌까리며 무옥의 손을 
꼭 잡아쥐었다. 따뜻한 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모로 돌렸다. "무옥아!" 원균이 그녀를 천천히 앞
으로 당겼다. 무옥은 그의 넓은 품에  안긴 채 떨고 있었다. "왜군이  두려우냐? 죽는게 무서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허면 무엇 때문이냐?" 그녀는 마른 입술을 비벼댔다. 입이 바짝바짝 타들
어가는 모양이었다. "대감! 소첩은 언제나 대감을 뫼실 것이어요. 절 멀리 내치실 생각은 아예 마
시어요" 원균은 포옹을 풀고 그녀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았다. 내  마음을 읽었구나. "잠시 통제영
으로 물러가 있거라. 내 꼭 승전보를 들고 네게 돌아가마. 경쾌선을  준비해두었으니 서둘러 떠나
도록 해라." 그녀는 도리질을 쳤다. "싫어요. 차라리 예서 죽은 한이 있더라도 대감 곁을 떠날  수
는 없어요." "고집 부리지 마라. 네가 곁에 있으면 내가 마음 편히 싸울 수 없느리라."  그녀는 품
에서 단도 두 개를 꺼내들었다. 그 옛날 원균을 죽이기 위해 가지고 왔던 시퍼렇게 날이 선 단도
였다. 원균이 눈을 부릅떴다. "무옥아!" 그녀는  칼자루를 거꾸로 쥐고 턱밑에 고정시켰다. "대감! 
대감이 소첩을 버리시면, 소첩은 죽을 따름이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단도
를 자신의 턱밑으로 찔러넣을 참이었다.  
  어찌 그리 내 마음을 몰라준단 말이냐. "알았느니라. 떠나라는 소리 안 할 터이니 어서 그 단도
를 거두어라" "진심이신지요?" 원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무옥은 단도를 던지고 원균의  품
에 안겼다. 어느새 눈물이 뚜욱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보같이 울긴 왜 우느냐? 눈물을 아껴라. 
훗날 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면서 흘릴 눈물은 남겨두어야 하지 않느냐? 그만 그치고  내 술 한 
잔 받거라. 너를 향한 나의 정이니라."  무옥은 눈물방울과 뒤섞인 술잔을 말끔히 비웠다. 그리고 
원균의 품속으로 자꾸자꾸 밀고들어왔다. 그녀가 이렇게  대담하게 그의 몸을 더듬기는 처음이었
다. 원균은 눈을 지그시 감고 그녀의 손길에 몸을  내맡겼다.  사랑하고 싶으냐. 얼마든지 사랑하
도록 해라. 이 한갓 몽뚱이 널 위해 얼마든지 바치고 또 바치마. 드넓은 요동벌판처럼, 검푸른 남
해바다처럼, 사랑하자꾸나, 사랑하자꾸나. 여진의 춤추는 보석, 무옥아! 네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
고 깊은지 보여다오. 이 밤이 더디 새도록  오래오래 보여다오.    정유년 7월 15일 밤.   해시가 
가까운 시각, 판옥선 한 척이 영귀선 쪽으로 움직였다. 판옥선에서 짧게 북을 두  번 울리자 영귀
선의 등판으로 한 사람이 걸어올라왔다.
  거북선 돌격장 이언량이었다. 판옥선에서 손을 흔드는 장수가 나대용과  이영남이 분명했다. 이
언량이 판옥선으로 옮겨 타자마자 세 사람은 굳은 악수를 교환했따. 그들은 곧 장졸들을 멀리 물
리고 이물 쪽으로 갔다. 나대용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배는 춘원포 쭉으로  척후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왜 선단이 춘원포와 적진포를 잘아  견내량을 차단할 조짐이 보이오" 이언량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통제사께 알렸소?" 나대용이 고개를 저었다.  "알려봤자 소용없소이다. 원통제사
는 오히려 퇴로가 막히는 걸 다행으로 여길는지도 모르오. 그야말도 배수진을  치는 편이 낫다고 
보는 게지."  "그래도 일단 보고는 해야 하지 않겠소?" 나대용이  이언량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때가 이미 늦었소이다.  이통제사께서는 오늘과 같은 일을  항시 염려하셨소. 견내량을 
차단당하고 앞뒤에서 협공을 받는다면 살아남을 방도가 없소이다. 
  그양말고 죽음의 바다에 들어온 것이오. 함대가 모두 빠져나가기는 틀린 일이니, 우리라도 움직
입시다." 이영남이 되물었다. "도망가자 이 말씀이시오이까?" 니대용이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도
망이 아니오이다. 어차피 몰살당하 것이라면 우리라도 목숨을  아껴 훗날을 대비해야 한다 이 말
이외다." "그것이 도망과 무엇이 다르오이까?" 이언량도 이영남의 편을 들었다. "이통제사께 굳은 
약조를 드렸소이다. 죽은 한이  있더라도 영귀선을 떠나지 않겠다고."  나대용이 혀를 끌끌 찼다.   
"다들 어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오. 장수가 전쟁터에서 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오. 물
론 나도 이곳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소. 허나 생각들을 해보시오.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패한
다면, 만에 하나 원통제사와 수사들이 모조리 목숨을 잃기라도 한다면, 누가 그 뒤를  이을 것 같
소?" 이언량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그야...이통제사뿐이지" "바로 보셨소. 조정에서는 반
드시 패전의 책임을 물어 원통제사를  끌어내리고 다시 이통제사에게 조선  수군을 맡길 것이오. 
허나 전쟁이 어디 맨손으로 하는 것이오? 군선이 없고 장수가 없다면 천하의  이통제사라고 하더
라고 어쩔 도리가 없소. 통제사는 그 누구보다도 두 분을 아까워하실 것이외다. 아니 그렇소?" 이
영남과 이언량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목숨을 부지해야 합니다. 오늘의 패배를 깨끗이 설욕하기 위해 잠시 몸을 피하는 것이
외다."  이언량이 나대용에게 되물었다. "과연 이통제사께서도 우리의 행동을 이해하실까여?" "이
해하고말고 권수사와 정군관이 출전하지  않은 것도 훗날을  도모하기 위함이오이다."  이영남은 
고개를 끄억이면서도 기분이 씁쓸해졌다. 이순신의 휘하  장수들이 무엇인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거대한 계획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권준, 정사준, 이순신이 출전하지 않은 것
도, 나대용이 도망치자고 설득하는  것도 모두 우연일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앞뒤가 
딱딱 들어맞았다. 그들은 모두 훗날을 원균이 죽은 후의 일들을 조심스레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
은 처음부터 원균을 도울 뜻이  없었다. 하루라도 빠리 원균이 깊은  바다 소에 잠기기를 바라는 
눈빛이었다. 이영남은 그들의 그 은밀하고 질퍽질퍽한 시선이  싫었다. "어찌하시겠소?" 이언량은 
이미 나대용이 뜻에 따르기로 마음을  굳힌 듯했다. 이언량이 마음을 굳힌다면,  거북선 돌격장인 
이기남과 박이량도 그 뒤를 따를 것이다. 또한  전라좌수영의 다른 장수들도 나대용과 행동을 같
이하리라. 이영남은 잠시 대답을 미루고 눈을 감았다. 원균의 부릅뜬 두  눈동자가 또렷하게 보였
다. 이순신과 원균! 그들을 모두 존경하고 따를 수는 정녕 없단 말인가? 마침내 이영남도  나대용
과 마음을 합쳤다. 
  "좋소, 나도 함께 가겠소이다. 헌데 배조방장과 김조방장은 어찌할 작정이오?" 나대용이 부루퉁
한 얼굴로 대답했다. "살아남기를 기원할 수밖에 없지 않겠소? 그들까지 구하려다가는 일을 결행
하기도 전에 발각될 것이오" 이영남은 나대용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원균으로부터 조방장제
의를 받았을 때 선뜻 응한  배흥립과 김완을 곱게 보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이통제사를 배신한 
장수로 낙인한 찍었을 수도 있다. "퇴로는 어디요?" 이언량의  물음에 나대용이 선선히 대답했다. 
"적진포에 상륙합시다. 춘원포에는 이미 왜군들이 들어왔으니. 그 아래 쪽으로  많이 내려가야 할 
게요." "판옥선을 타고 직접 탈출하는 것이 낫지 않겠소?" 이영남의 반문에 나대용은 고개를 저었
다. "아니되오. 판옥선으로 나갔다가는 왜선의 척후에 발각될 가능성이 크오  그리고 무엇보다 원
통제사에게 들키는 날이면 패전의 책임을 고스란히 우리가  짊어지게 되오. 우리는 쥐도 새도 모
르게 사라져야 하오. 대신, 판옥선을 타고 도망치는 일은 배수사에게 맡길 작정이라오." "경상우수
사에게 말이오?" "그는 본래 겁이 많은 위인이니 우리가 적당히 언질만  줘도 발 등에 불이 떨어
진 사람처럼 황급히 달아날 것이오. 왜 수군과 조선 수군시선이 배수사에게 쏠린 틈을 타서, 우리
는 유유히 사라지면 그만이오. 어떻소?" "식은 죽 먹기겠구먼" 이언량이 웃음을 터뜨리자, 나머지 
두 사람도 따라 웃었다. 
  이영남과 슬쩍 고개를 돌려 원균의 지휘선이 있는  북동쪽을 바라보았다. 저 어둠이 끝나는 곳 
어디에선가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자기를 노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영남은 삶과 죽
음의 갈림길에서 이미 마음을 정했다.  이  밤이 지나면 다시는 장군을 만나지 못하겠구나.  셜령 
장군과 내가 이 전투에서 둘 다 살아남든다 할지라도 장군이 어찌 나를 살려두리요?  내 어찌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장군을 맞을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오늘 이 순간부터 장군과 나는 영영 이별
이겠구나! 원장군! 부디 못난 이 몸을 잊으소서.  꼭 살아남으소서. 어느덧 자시로 접어들고 있었
다.  전령 두 사람이 동시에 지휘선에 도착했다. 영등포 쪽으로 나가 있던 최호의 전령은 왜선 오
백여 척이 곧장 칠천량으로 오고 있다고 했고,  배설의 전령은 퇴로인 견내량이 막히기 직전이므
로 경상우수영군선들을 이끌고 먼저 퇴각한다고 전했다.   "이런, 버러지만도 못한 놈!" 염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배설이 줄행랑을 쳤으니 군사들의 동요가 심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
다. 곁에 있던 원사웅이 말했다. "아버님!  우선 외줄포를 벗어나야 하옵니다. 이 좁은  곳에서 왜 
선단을 맞으면 패퇴할 수 밖에 없습니다."  "퇴각의 불을 쳐랏!"  원균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
게 거대한 북소리가 어둠을 찢었다. 해안에서 무기를 손질하던 장졸들이 재빨리  배에 올랐다. 총
포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려왔다.
  "견내량으로 물러나는 척하다가 뱃머리를 돌려 적은 친다. 어서 이계책을 전라우수사와 충청수
사에게 전하라."  조방장 배흥립과 김완이 가각 판옥선을 나눠 타고 군령을  전하러 떠났다. 원균
의 곁에는 원사웅뿐이었다. 원균이 침착하게 말했다. "사옹아! 기다리던 결전의 날이  왔다. 저 포
성이 들이느냐? 오늘 왜선들을 모조리 격침시키는 것이다. 원수를 갚자. 왜놈들의 칼날 아래 무참
히 죽어간 수천 고혼들의 원혼을  갚자." 순천부사 우치적이 황급히 지휘선으로  옮겨 탔다.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우치적이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장군!" 원균이 힘끔 고개를 
돌렸다.  "오, 순천! 나를 도우러 왔는가? 괜한 걸음을 했구먼" "장군! 장수들이  빠져나가도 있사
옵니다." 원균은 우치적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소린가? 장수들이 빠져나가다니?"  "거북
선 세 척이 꿈쩍도 않사옵니다. 돌격장인 이언량, 이기남, 박이량이 벌써 몸을 피했사옵니다. 나대
용과 이영남, 그리고 잔라좌수영의 장수들 대부분이 모습을 보이지  않사옵니다. 장수들이 사라진 
것을 뒤늦게 깨달은 군졸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아무 곳에나 배를 대고 육지로  몸을 숨기고 있사
옵니다."  "무엇이라고?"
  원균은 꼿꼿하게 서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탈영병이 생기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장수들
까지 이렇게 대대적으로 도망칠 줄은 몰랐다. 우치적이  고개를 바닥에 닿을 만큼 처박도 울부짖
었다. "저들은 애초부터 싸울 뜻이 없었사옵니다. 장군을 죽음의 구렁텅이데  몰아넣기 위해 일부
러 따라온 것이옵니다. 장군! 이순신이  이 모든 일을 꾸몄을 것이옵니다.  이순신이 삼도 수군을 
궤멸시키고 있사옵니다. 장군! 어찌해야 하옵니까? 장군!"  원균의 양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무옥이 등뒤에서 그를 부축했다. 원사옹도 그의 팔을 이끌어 자리에 앉혔다. 그
는 깊은 숨을 몰아쉬며 원사옹에게 말했다. "우리측...군선들이 몇 척이나 따라오고 있는지 살펴보
아라." 원사옹이 바라처럼 고물 쪽으로 나갔다가 돌아왔다.  "스무 척 남짓입니다."  "스무척?  고
작 스무 척이란 말이냐? 나머지 백여 척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이냐?" 원균이 혀를  끌끌 차고 있
는 순간, 비보가 날아들었다. 선봉장으로 앞서 싸우던 최호의 배가 왜군이  쏜 불화살에 전소되었
다는 것이다. 바다에 뛰어든 최호를 구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호가 죽다니... 이순신, 이
노옴! 네놈이 끝까지 날 괴롭히는구나. 좋다. 얼마든지 수작을 걸어봐라. 나는 눈 하나  꿈쩍 않을 
것이다. 내 반드시 이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살아남아 네놈을 찾아가겠다. 가서  네놈의 생간을 씹
어삼켜 최호의 원한을 풀겠다. 기다려라, 이놈!"
  원균은 지휘검을 뽑아들고 이물 쪽 상갑판에 우뚝  섰다. 원사웅이 독전의 북채를 들고 정신없
이 북을 쳐댔다. 견내량이 가까웠다. 앞서 달아나던 판옥선들이 일제히 화염에 휩싸였다. 이미 견
내량을 차단하고 조선 수군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왜군들이 일제히 불화살과 포를 발사한 것이다. 
원균이 군선들을 모아 반격을 시작할  틈도 없이 조선 수군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화염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원균이 용단을 내렸다. "견내량에 상륙하자." 우치적이 만류했다. "적진
으로 뛰어들 수는 없습니다. 춘원포 쪽으로 피해야 하옵니다."원균이 장검을 들어 견내량과 춘원
포를 차례차례 가리켰다. "이건 함정이야. 조선 수군을 모두 춘원포로 몰아가려는 왜놈들의 간교
한 술책이지. 왜놈들은 춘원포에 수천 명을 매복시켜놓고 조선수군이 올가미에  걸려들기만을 기
다리고 있다. 차라리 견내량이 낫다. 적의 전략을 역이용하면 승리할 수 있어.  자, 어서 상륙의 
북을 쳐라!"  원사웅이 북채를 높이 들고 자진모리로 북을 치기 시작했다. 춘원포 쪽으로 몰려가
던 군선들이 북소리를 듣고 뱃머리를 하나둘씩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원균의 군
령을 따르지 않았다. 상륙명령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불화살과 포탄이 날아오는 
견내량에 배를 대라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군령이었다. 미적미적하는  사이에 다시 왜
군의 대포가 불을 뿜었다. 조방장 배흥립이  황급히 판옥선을 몰고 다가왔다. 그는  고물에 서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
  "춘원포에도 이미 왜선이 쫘악 깔렸소이다. 전라우수사께서도  전사하셨소이다." "이억기마저..."  
원균은 더 이상 지체할 틈이 없었다.  포탄 하나가 날아와서 배흥립의 배 이물  쪽으로 떨어졌다. 
"상륙!" 원균의 지휘선만이 화염을 뚫고 견내량으로 빠져들어갔다. 불화살과  조총과 포탄과 군사
들의 아우성과 비명 소리가 뒤섞였다.  물안개처럼 짙은 화염이 서서히 걷히자,  아우성과 비명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대포가 불을 뿜는 오른쪽 언덕을  멀리 비켜나서 왼쪽 해안에 배를 댔
다. 왜군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따. 원균은 원사웅과 우치적, 그리고 무옥의 부축을 받으며 배
에서 내렸다. 고성에서 얻어맞은 볼기가 아직도 얼얼했다. 그의 명령을 생명처럼  맏고 따르던 군
사들고 배가 육지에 닿자마자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우치적이 뒤를 쫓아가서 몇몇의 
목을 베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군사들은 어떻게든지 살아남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고,  통제사를 지
켜야 한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산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달렸다. 어느덧 군사들은 하나
도 보이지 않았다. 
  원사웅과 우치적과 무옥과 원균, 이렇게 네 사람만이 울창한 수풍을 헤치며 나아갔다. 비탈길을 
오르며 원균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빠르게  발을 놀렸지만 자꾸 뒤로 처졌다. 곤장을  맞은 지 
열흘도 되기 전에 산을 타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대감!  힘을 내셔요. 여기만 지나면 통제영이
어요. 복수할 수 있어요. 오늘 당한  걸 백 배 천 배 되갚아줄  수 있어요."  무옥은 원균의 왼쪽 
옆구리에 머리를 끼워놓고 정신없이 앞서  달렸다. 그녀의 자그마한 몸에서  어떻게 그런 괴력이 
나오는지 알수 없었다. 산등성이를 돌아들다가 기어이 발을 헛디딘 그녀가 원균과 함께 나뒹굴었
다. 열 길 아래로 굴러떨어진 두 사람의 몸은 피멍이 들어성한 데가 없었다. 원사웅은 하는 수 없
이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ㅣ 일단 적의 포위망으로부터는 벗어난 듯했다. 무옥이 허리에 
차고 있던 물병을 꺼내 원균의 입에 들이부었다. 원균이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신이 드
세요?"
  원균이 희미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잠시 쉬도록 해요. 아직 갈 길이 멀답니다." 그녀는 원균의 
왼손을 꼭 쥐었다. "사, 사웅아!" 원균이 아들을 찾았다. "예, 아버님!" 주위를 살피던 원사웅이 원
균의 오른손을 마저 쥐었다. "무옥이를 데리고...머,  먼저...가!" 원균은 그들의 목숨이라도 구하고 
싶었다. 네 사람이 함께 움직인다면 그것도 제대로 뛰지 못하는 병자까지 끼여 있다면, 적에게 발
각될 가능성이 많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두 사람을 먼저 보내고, 우치적과 함께  야음을 틈타 
천천히 이동하는 편이 나았다. 원사웅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아버님이 아니 가시
면 소자 한 걸음도 내딛지 않을 것입니다."  원균의 눈동자가 떠날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무옥과 
원사웅은 그의 바람을 외면했다. "엎드렸!" 앞쪽에서  망을 보던 우치적이 갑자기 소리쳤다. 능선 
아래에서 주위를 살피던 왜의 척후들이 원균 일행을 발견한 것이다. 타당, 탕탕탕탕. 조총이 불을 
뿜는 것과 동시에 무옥의 몸이 뒤로 휙 젖혀졌고, 오른쪽 가슴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올랐다. "안
돼"  원균이 엉금엉금 기어 무옥의 붉은 가슴을 감싸 안았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절명한 뒤였다. 
우치적이 황급히 원균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피해야 하오이다. 어서 저 산을 넘어야 하오이다." 원사웅이 원균의 오른팔을 우치적에게 넘기
며 말했다. "함께 달아나면 다 죽습니다. 먼저 아버님과 가십시오. 저는 이곳에 남아 시간을 벌겠
습니다." "아니된다."  원균이 원사웅을 붙들었다.  원사웅은 웃는 얼굴로 원균의  손을 뿌리쳤다.  
"아버님! 꼭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오늘의 치욕을 씻을 수만  있다면 소자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
니다."  원사웅은 칼을 빼어들고 언덕 아래도 뛰어내려갔다. 그리고  이백년은 족히 넘은 아름드
리 소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흠칙 뒤돌아보니. 우치적과 원균이 수풀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그는 깊이깊이 심호흡을 하며,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를 부렸다.  놈들이 코앞까지 다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먼저 나섰다간 한놈도 죽이지 못하고 조총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기다리
자, 기다리자. 공포와 두려움이 코끈에 닿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왜군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크게 들려왔다.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헤치며 허공을 향해 총을 쏘는 놈도 있었다. 일곱, 아니면  여덟?  발소리
로 왜군의 숫자를 가늠해보았다. 확실히 셀 수 있는 것만 일곱이었다. 그러나 인기척을 내며 다가
서는 왜놈들 뒤엔 발소리를 죽이고  박쥐 같은 눈을 번뜩이며 다가오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이 
검 하나로 그들을 모두 벨 수 있을까? 더구나 놈들은  조총으로 무장까지 하지 않았는가? 아, 힘
들 것이다. 어쩌면 오늘 나의  삶이 이곳에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싸워야 한다. 
내 앞에 완전한 어둠이 찾아들 때까지, 적의 손가락 하나라도 더 베어야 한다. 그래야만 아버님이 
살아남으실 수 있다. 조선 수군이 전멸하다손 치더라고 아버님만 건재하시면, 언제든지 오늘의 치
욕을 되갚을 수 있다. 아버님이 누군가.  조선 제일의 장군,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아닌가. 이놈
들! 네놈들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리면 어찌 되는가를. 더 이상 우리
에게 자비를 구하지 말라. 이놈들! 오랑캐놈들!  발소리가  뚝 멎었다. 왜놈들은 아름드리 소나무 
앞에서 잠시 좌우를 살피는 듯했다.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원사웅은 발  끝에 힘을 잔뜩 주었
다. 올느쪽에서 휘익 하는 휘파람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그의 그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서 오른쪽에 서  있던 왜군 넷의 목을 벴다. 왼쪽에 있
던 왜군들이 일제히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며  총구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몸을 휘돌리며 달려든 
원사웅의 칼날이 먼저 세 사람의 목을  찔렀다.  일곱, 휴우! 원사웅이 땅  위로 내려서며 호흡을 
골랐다. 발소리를 내며 다가서던 일곱 명의 목을 모두 벤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열 걸음쯤 앞에서 
번뜩이는 총신이 보였다. 그 지독한 푸른빛이 원사웅의 눈을 가득채웠다. 탕. 원사웅이 몸을 날릴 
틈도 없이 조총이 발사되었다. 총알은 정확히 원사웅의 이마에 날아와 박혔고,  그의 몸은 그대로 
부웅 떠서 아름드리 소나무에 거꾸로 처박혔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십여 명의 왜군들이 원사웅
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사웅아! 원균은 그 총성을 듣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직
접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아들이  전사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팔을  끌던 우치적이 고개를 
돌렸다.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살아 있을 것입니다." 원균이 지휘검을 움켜쥐며 말했다. "위로하
지 말게...무옥이도 죽었고 사웅이도 죽었네. 내 사랑하는 삼도 수군의 장졸들도 죽었어...이억기도, 
최호도 모두 죽었네.
  이제 내가 죽을 차례야." "아니옵니다. 장군! 장군은 불사신이옵니다." "허허허, 이보게 치적이...
자네도 그딴 걸 믿나? 불사신 따윈 이 세상에 없다네. 다만 죽음을 조금 덜...겁낼 뿐이지" 우치적
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치적이!...우리 좀더 솔직해지세. 난 결코 이 산을 넘어갈 수 없
어. 자네도 그걸 알지?" "장군!" "자네 혼자라면 살 수 있을 게야... 통제영으로 돌아가서 이순신에
게 전해주게...그대가 나를 미워하는 만큼 내 그대를 아꼈노라고...그리고 꼭 이치욕을 대신 씻어달
라고...전우로서 부탁하는 것이야. 알겠는가?" "장군!" 우치적의  양볼을 타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
렸다. "자, 그럼 어서 가게!"  원균이 우치적의 등을 힘껏 떼밀었다. 우치적은 두 번 세 번 뒤돌아
보며 산등성이를 올랐다. 원균은 천천히 장검을 빼어들었다. 몸을 꼿꼿하게 세운  채 발길을 돌려 
성큼성큼 산비탈을 내려왔다. 나무와 수풀 사이를 오가며  뒤를 쫓던 왜군들은 선뜻 나서지 못했
다. 적장이 검 하나에만 의지해서 내려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들은  잠시 산등성이를 살
폈다. 복병이 숨을 만한 곳을 샅샅이 살폈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찾을 수 없었다.   원균이 걸음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왜군들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들은 원균을 삥 둘러쌌다.  조총을 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생포할 작정인 듯했다.
  "어림없다. 이놈들!" 원균이 장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칼을 빼든 왜군 넷이 일제히 달려들
었다. 원균은 검을 휘돌리며 단숨에 네 사람의 오른팔을 베었다. 다시 세명이 칼을 들고 달려나왔
지만, 그의 칼날에 목이 떨어졌다.  왜군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렸다. 그들은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서 활을 쏘았다. 화살을 정확하게 원균의  오른쪽 어깨와 허벅지에 꽂혔다. "윽!"  비명과 
함께 그의 몸이 기우뚱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왼손으로 화살 두 개를 뚝뚝 
부러뜨린 후 검을 곧게 들고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다시 화살이 비오듯 쏟아졌다. 이번에는 왼쪽 
가슴과 배, 장딴지에 화살이 꽂혔따. 그는 눈을 부릅뜨고 그 화살들까지  오른손으로 꺾었다. 화
살을 든 채 뒷걸음질을 치던 왜군들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듯이 고함을  질러대며 조총을 
겨누었다. 그는 가슴을 쭉 펴며 소리쳤다.  "이놈들! 모가지를 분질러 줄테다."  탕탕탕탕.  조총
이 불을 뿜었다. 왼쪽 허벅지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았다. 오른쪽 어깨도  검붉게 물들었다. 그러
나 그는 결코 치켜든 검을 놓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다시 두어 걸음 나아갔다.  그 순간 왜군
들의 조총이 다시 불을 뿜었다. 양쪽  감슴에서 동시에 피가 뿜어져나왔다. 그의  몸뚱이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원균의 목숨이 끊어진 후에도 왜군들은 한참 동안  그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이윽고 그의 몸이 
싸늘하게 시은 후, 용감한 왜군 하나가 다가갔다. 그  왜군은 적장의 대장검을 빼앗으려 했다. 움
켜진 손을 풀어헤칠 길이 없었다. 왜군은 원균의 오른 손목을 잘라서 대장검과 함께 부산으로 가
져갔다.  이날 하루 삼도 수군은 완전히 궤멸되었다. 남아 있는 배라고는 경상우수사 배설이 약사
빠르게 빼돌린 판옥선 열두 척이 전부였다. 왜군은  이제 조선 수군이 영원히 사라졌노라고 기뻐
했다. 그 웃음은 손쉽게 조선을 빼앗게 되었다는 안도의 한숨과도 같았다.


    6. 태초의 어둠  
  정유년 7월 18일 아침.  이순신은 정좌하여 서책을 넘기고 있었다. 순천에 도착한 4월부터 읽기 
시작한 장자였다. 권준이 마음도 달랠 겸 읽어보시라고 인편에 보내온 것이다.  초계로 숙소를 옮
긴 후에도 계속 정독해오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장자의 삶을 간략하게 읽은 적은 있었다. 장
자는 송나라 사람으로 몽이라는 땅에서 칠원을 관리하며 평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순신은 장자의 
삶이 변변친 않고 궤변만 늘어놓는다기에 멀리했었다. 그러나  막상 서책을 접하고 보니 그 세계
가 참으로 넓고 깊었다. 공자의 가르침을 가볍게 뛰어넘어 전혀 낯선 곳으로 그르  이끌었다.  이
순신은 만물을 상대적으로 파악하는 장자의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공맹처럼 항상 정명에 입각하
여 만물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  여기와 저기의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사물들의 
본모습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천지가 벼의 피알만큼 작다는 것과 털끝이 산만한 크기의 것
을 안다면' 이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그는 적잖이 위로를 받았다. 천지가  벼의 피알만큼 작을수도 
있고 털끝이 태산만큼 클 수도 있다는 것은 절대적인 큼과 작음이 없다는 것이며, 절대적인 선과 
악도 없다는 것이며, 절대적인 행복과 불행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속언도 있듯
이, 지극히 가변워진 자신의 처지를 견뎌내는 논리를 장자에서 발견했다.  지난 석 달간은 너무나
도 한가로운 나날이었다.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마음은 무거웠지만, 어떤한 책무도 없이 홀가분하게 지냈다. 권율은 숙소
에서 푹 쉬라고만 할 뿐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다. 전쟁이  재개되었지만 왜군은 아직 전라도 
내륙까지 진격하지 못했다.  안빈낙도.  이순신은 매일매일을 책과 자연을 벗삼아 흘려보냈다. 가
끔씩은 옛 부하들이 찾아와서 그의 가슴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불덩어리를  건드리기도 했
다. 원균이 그의 부하들을 냉대하고 그가 만들어  놓은 군제와 진법을 완전히 뜯어고쳤다는 소식
을 들을 때면 당장이라고 한산도로 달려가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몇잔 술로 그 불덩어
리를 잠재웠다. 지금 삼도 수군의 으뜸 장수느 원균이며, 군사들을 통솔하고  군제를 개편하는 것
은 삼도수군통제사의 고유한 권한이었다.  세월을  낚는 태공망이로세.  이순신은 자주 강태공을 
입에 올렸다. 거기에는 성급하게 나서기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무엇을 기다린단 말인가. 문와이 태공망을 찾았듯이, 이순신은 선조가 다시 자신을 불러줄 날만을 
학수고대했다.
  원균이 승승장구한다면 그이게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원균이 작은 잘못으로 물러
난다면, 이억기나 최호가 그 뒤를 이을 수도 있다. 그가 다시 통제사로  복귀할 가능성은 희박했
다. 삼도 수군이 완전이 궤멸되고, 이순신이  아니고서는 이 환란을 다스릴 장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야지만 그에게 기회가 다시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환란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잃었던 
자리를 되찾기 위해 삼도 수군의 전멸을 기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책과 자연과 술을 벗삼아 세
월을 낚을 도리밖에 없었다. 원균과 권율의  불확도 남의 집 불구경 하듯 멀거니  지켜보기만 했
다. 원균이 삼도 수군을 이끌고 부산으로 떠났을 때도 침묵했다. 그저께  밤, 절영도까지 나아갔
던 군선들이 후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움
직임에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어느새 그는 거인이 되어 있었다.  전라도 곳곳에는 그의 명령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는 수많은 장졸들이 있었다. 권준과 정사준은 군량미와 무기를 이미 마련해
두었다.
  이순신이 움직인다는 것은 곧 왜군과의 전면전이 임박했거나 아니면 반역의 순간이 찾아왔음을 
의미했다. 함부로 몸을 놀려 오해를 사는 것을 피해야만 했다. 그의 의미 없는  말이나 행동 하나
가 군왕의 신경을 거스를 수도  있다. 그는 쥐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절대절명의 순간에 봄을 
일으키리라 마음먹었다.  그날은 의외로 빨리 찾아들었다.  오늘 새벽, 이순신은 견내량으로 갔던 
날발로부터 삼도 수군이 전멸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군선들이 모조리 격침되었을 뿐만 아니라 삼
도수군통제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가 전사했으며, 경상우수사 배설만이 전투
가 벌어지기 전에 미리 후퇴했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소리 높여 통곡했다. 수만 명의  장졸들이 
죽었고, 불패의 신화를 이어가던 조선 수군의 명성이 땅에 떨어진 것이다. 그가 사년이 넘도록 밤
낮을 지새우며 만든 군선과 총통과 활과 검극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분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온몸이 저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기회가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수군 장수들이 모두 죽거나 도망쳤으니, 이 
난국을 타계할 사람은 이순신뿐이었다. 땅을  치며 엎으려 눈물을 쏟는  이순신에게 날발이 서찰 
한 장을 내밀었다. 그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서찰을 펼쳤다.  참으로 호천통곡할 일입니다. 
세 척의 귀선을 포함한 조선의 군선이 모두 침몰되었으며, 물에 빠져 죽고 총에  맞아 죽고, 불에 
타 죽은 장졸이 부지기수입니다. 다행히 저희들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제 장군께서 나서실 때입
니다. 연통 기다리겠습니다.  나대용, 이언량, 이영남, 이기남, 박이량  급히 쓰느라 글자도 들쭉날
쭉이고 먹도 고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순신에게는 그것이 그 어느 서찰보다고  더 소중했다. 아들
처럼 아끼던 옛 부하장수들이 모두 죽음의 바다에서 살아나온 것이다. "어디서 이 사람들을 만났
느냐?"  "고성에서 만났습니다. 적진포에 상륙하여 무사히 그곳까지 몸을 피한 것이지요."  "앞으
로 어떻게 한다더냐?"  "일단 이기남의 고향인 옥과로 가겠다고 했사옵니다"  "알았다."  그때부
터 이순신은 장자를 읽었다.
  패잔병들이 속속 몰려들었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만나기르 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
만 날발을 시켜 멀리 내쳤다. 그는 흡사 참형을 당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
고 지난 생을 되돌아보는 사형수처럼 자기 자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아침 식사도 건너뛰고 
사시만 되면 습관처럼 마시던 작설차도 끓이지 않았다. 진시와 사시를 지나는  동안, 책장을 넘기
지 않고 오직 한 부분만을 뚫어져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를 떨어
뜨리지는 못한다....그늘로 들어서면 그림자는 사라진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를 떨어뜨리
지는 못한다...그늘로 들어서면 그림자느 사라진다. 그림자는 사라진다.  그림자는 사라진다.  그림
자란 무엇인가? 삶의 부채나 멍에 같은 것. 희마을 부여잡기위해 어쩔 수 없이 범하고 마는 필요
악, 뒤돌아볼 때마다 항상 내 뒤에 드러누워  내가 얼마나 못난 인간인가를 공공연하게 떨벌리는 
존재. 내게도 참으로 많은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두 번의 백의종군, 용기없는 장수, 문신들에게 아
부하여 단숨에 벼슬이 오른 장수, 무군지죄를 범한 장수, 나라의 안위보다 개인의 영달을 쫓은 장
수, 삼도수군통제사의 영광 뒤에는 이렇게 많은 어둠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 어둠을 자
극하는 존재가 바로 원균이었다.
  원균은 내가 짊어진 그림자를 하나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진정 그림자가 쫓아오지 못할 만큼 
빠르게 질수했던 것일까? 언제나 그는 눈부셨다. 내게는 그림자일 수 있는 일들도 그에게는 빛이
었다. 임진녕에 많은 군선들을 잃고 내게  원군을 청할 때도 그는 결코 어둡거나  비굴하지 않았
다. 오히려 왜 빨리 원군을 보내지 않느냐며 당당하게 말했다. 장문포에서  졌을 때도, 충청병사
도 쫓겨갔을 때도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며 
수도 없이 장계를 올렸다. 참으로 원균은 담백하고 솔직한 장수였다.  그에 비하자면  나는 너무
나도 길고 짙은 그림자에 넋을  잃어버리기 십상이었다. 잠깐잠깐 빛 가운데로  걸어가더라고 곧 
그보다 더한 어둠이 그림자에 들러붙었다.  임지년의 일기를 꺼내서 다시  잃어보노라면, 사흘이 
멀다 않고 원균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원균의 악행이 아니라 내 그림자의 흉포함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원균의 이름이 적힌 곳마다 지긋지긋한 나의 그림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러나 더욱 기막힌 점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서 있을수 없는 나  자신이었다. 빛으로 
둘러싸인 내게서 나의 그림자를 분리시키고 그 흉측한 그림자를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속성
으로 변화시켜야지만 겨우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나!  아, 나는 너무나도 나약한 인간이다. 
  부하들은 나를 불패의 덕장, 빈틈없는 지장이라 부르고 백성들은 나를 영웅으로 칭송한다. 그러
나 나는 안다. 나는 한낱 인간일 따름이다. 하루라도 스스로를 합리화하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
하는 인간, 자신의 그림자를 잊고자  폭음하는 인간, 조금이라도 으스대고자 활시위를  당기는 인
간, 조정에서 벌어지는 당파놀음에 귀기울이는 인간, 입신양명을 꿈꾸는 인간, 눈물 많고 겁 많은 
인간.  그러나 나는 부인하지 않겠다. 나는 평범한 사내로 일생을 마치기를 원치 않았다. 저 거대
하고 흉측한 그림자를 키운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운명의 간교함에 의탁한 것도, 삶의 표리부동
함을 이용한 것도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나를 그들과 똑같은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부하들과 백
성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죄값을 따진다면, 그것은 당연히 나의  몫이다.  이렇게 세상을 속인 내
게 하늘을 어떤 벌을 내릴 것인가?  적어도 나는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내 그림자를 짊어지고 
가야하리라. 그늘에 숨거나 질수하지 않으리라.  내가 얼마나 큰 그림자를 등에  지고 다녔는가를 
역사는 증거하리라.
  다시 내게 기회가 온다 하더라도 나는 내 방식대로 할뿐이다. 내 그림자를 살찌우면서 빛을 향
해 뚜벅뚜벅 걸어가리라.  "도원수께서 오셨습니다."  신시 무렵, 도원수 권율이 드디어 찾아왔다. 
이순신은 장자를 덮고 방문을 열었다. 용린갑을 입고 첨주를 쓴 권율이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새
도 없이 마당을 가로질렀다.  "어인 일이시온지?"  이순신은 딴청을 피웠다.  마음이 조급한 쪽은 
권율이 아니겠는가. 그가 원균을 두 차례나 불러  출정을 종용하였기에 삼도 수군이 부산으로 나
간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전사한 장수들이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형편이니, 비난의 
화살은 당연히 도원수 권율에게 집중될 것이다. 권율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으로서는 사태를 수습하여 남아 있는 군선과 장졸이라도 추스르는 것이 급선무였다. 줄행랑을 핀 
배설이 그 일을 맡을 리가  만무했고, 유일한 대안은 이순신이었다.  권율은 잠시 호흡을 골랐다. 
아무리 급하기로서니 이순신에게 무조건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그는 한나라의 도원수
이고,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당한 죄인이 아닌가.  "수군의 형편이 어려운 듯하오..."  권율은 말꼬
리를 흐리며 여운을 남겼다. 
  두 사람은 사 년이 넘도록 힘을 합쳐 전라도의 바다와 육지를 지켜왔다. 어명을 거스르는 일까
지도 불사한 그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이순신을 잘못 구슬렸다가는 오히려 권
율 자신의 죄만 분명해진다. 최대한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패전의 책임을  원균에게 덮어씌울 도
리밖에 없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이순신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권율은 마른침
을 꼴깍 삼킨 후 이야기를 꺼냈다.  "그대의 옛 부하 장수들은 원통제사에게 대들면서 항명을 일
삼고, 원통제사 또한 도체찰사의 명을  어겼소. 명령 체계가 이렇듯 흐트러져서야  어떻게 전쟁을 
치를수 있겠소."  "나라에는 국법이 있고,  군대에는 군율이 있지 않소이까? 그에  따라 처결하면 
기강이 바로 설 것이외다."  이순신은 한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원균 휘하의 수군이
라 하더라고 수군을 힐책하는 말은 귀에 거슬렸다.  "해서, 원통제사를 불러  호되게 꾸짖고 곤자
을 쳤소."  "들어서 알고 있소이다."  
  "지난 초닷새, 원통제사는 삼도 수군을 이끌고 부산으로 향했소. 그리고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
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칠천량과 견내량 사이에서 패배한 듯하오." "..." "원통제사가 왜 칠천
량에서 왜군과 맞서지 않고 후퇴하였는지는 의문이 아닐수 없소. 전투란 모름지기  물밀 듯이 밀
어붙이든가, 성문을 걸어잠그고 지키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오. 헌데 무턱대고 달아나다가 
퇴로마저 끊겨 큰 낭패를 본 것이오." 이순신이 이의을 달았다. "칠천량, 외줄포에 그대로 머물며 
버티었다손 쳐도 견내량을 가로막는 왜군을 물리치지는 못했겠지요. 원장군이 누굽니까?: 빗발치
는 화살 속에서도 앞으로 돌진하는 호랑이 같은 장수가 아닙니까? 그런  장수가 뱃머리를 돌렸다
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외다. 칠천량으로 들어서는 오 선단과 맞서기에는 중과부적이었을 수
도 있고, 견내량근처로 일단 피해 육군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을 수도 있고, 견내량에서 고성은 
반나절 거리도 아니되오이다."
  권율이 화를 버럭 냈다.  "지금  패자을 두둔하는 게요? 삼도 수군이  궤멸된 것이 견래량으로 
육군을 전진배치하지 못한 내 탓이라 이거요?"  이순신도 지지않고 맞받아쳤다. "이 몸은 일찍이 
도원수께 이런 청을 드린 적이 있소이다. 삼도수군통제사에  이 몸이 아닌 다른 장수가 임명되더
라도 섣불리 조선 수군을 부산으로 내몰지 말라고  말이오이다. 특히 원통제사는 그 성미가 불과 
같아서 자칫 큰 위험을 자초할 우려가 있다고 말이오. 기억하시오이까? 헌데 도원수께서는 두 차
례나 원통제사를 죽음의 바다로 내몰았소이다." "닥치시오!" 권율은 오른손을 들어 이순신의 양미
간을 똑바로 가리켰다. 권율의 목소리가 불을 뿜을수록  이순신의 자세는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
처럼 잔잔했다. 권율은 더 이상 분노를 참지 못하여 방문을 걷어차고 나가버렸다.  이순신은 눈을 
꼭 감았다.  그에게는 더 이상 양보할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권율과 흥정을  하더라도 확실한 
우위를 점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런 조건도 제시하지  못하도록 모가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밀
어붙여야 한다.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는가 싶더니 권율이 곧 되돌아왔다. 이순신은 자세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
고, 그가 다시 정좌할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지나쳤소. 사과하리다." 그제야  이순신은 감았던 
눈을 스르르 떴다.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져 무엇하겠소이까? 앞으로가 문제이지요" "옳은  말씀
이오." 권율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순신이  그의 제의를 거절하면 어찌하나 걱정을  많이 한 것이 
사실이었다. 모진 고문을 받고 백의종군까지 당했으니 나랏일이라면 몸서리를 칠 만도 하지 않은
가. 그러나 이순신은 앞으로가 문제라고 했다. 그 말을 조선 수군을 재건하는 데  자신의 힘을 보
태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순신이 서책들 사이에서 해도를 꺼냈다. 남해바다가 소상
하게 그려진 지도였다. 이순신이 견내량을 손으로 짚었다.  "이곳까지 왜군이 들어왔고, 우리에겐 
남은 군선이 거의 없소이다. 혹 있다손 펴도 전의를 상실한  장졸들을 이끌고 왜 선단과 맞설 수
는 없소. 허면 도원수께서는 어디까지 왜선이  들어오리라 보시오이까?" 권율의 시선이 부산에서
부터 천천히 왼쪽으로 내려왔다. 
  가덕도, 거제도, 남해도, 한산도, 한산도까지 잃을 각오는 해야 되겠지. 권율이 한산돌를 손으로 
짚었다. 이순신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더니 그보다 훨씬 왼쪽에 있는 완도를 가리켰다. "최소한 여
기까지는 밀린다고 봐야 하오이다." "그렇다면 남해바다를 모두 빼앗기는 형국이  아니오?" "그렇
소이다." "그대가 다시 수군을 맡는다고 해도 그렇단 말인가?" 순간 이순신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권율의 속마음이 은연중에 드러난 것이다. "다른 수가 없소이다. 보화도나  고금도에서 군선을 만
들고, 군사들을 만들고, 무기들을 다듬은 후에라야 왜선과  맞설 수 있소이다. 그때까지 남해바다
는 왜 수군이 점령할 수 밖에 없소... 그리고 이 몸은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소이다." 권율이 말꼬
리를 몰고 들어왔다.  "무슨 소리! 그대가 아니라면 누가 이 일을 하겠소? 듣자 하니  원통제사와 
이억기, 최호 등도 모두 목숨을 잃었다 하오. 이제 남은 사람은 그대뿐이오." 이순신이 차분한 어
조로 말했다. "도원수께서 아무리 이  몸을 천거히셔도 조정에서는 결코  이 몸을 다시 중요하지 
않을 것이오. 전하께서 무군지죄를 범한 죄인에게 군권을 맡기실 리가 있겠소이까? 괜히 이 몸을 
편들다가 도원수께서 곤란에 빠질까 걱정이오이다. 속히 다른 사람을 찾으시지요." 권율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성심이 잠시 흐려진 것은 원통제사가 그대를  모함하는 장계를 줄기차게 올렸기 때문이오. 이
제 원통제사도 없고, 그가 이끌던  조선 수군도 패퇴하였으니, 전하께서도 마음을  돌리실 것이외
다. 아무염려 마시오. 내 도체찰사 영감과 조정 대신들게 청하여 그대가 꼭 다시 통제사에 오르도
록 하리다!" "어허! 괜한 고생 마십시오. 이 몸은 그 일을 담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사
람이외다. 보시다시피 몸도 말라비틀어진 촌늙은이예요. 군선에 오를 힘도, 군사들을  독려할 자
신도 없소이다." 권율은 이순신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더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
는 벌써 마음을 정하였다오. 내 그대를 적극적으로 도우리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당장 말씀하시
오. 들어드리리다."  이순신이 잠시 뜸을 들였다. 무명천으로 눈을  훔쳤고, 왼손을 들어오른 어
깨를 툭툭 쳤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겨운 모습이었다.  "허면...부족한 이 몸을 도울 사람
들이 있어야겠소이다." "말씀만 하시오" "우선 권준과 이순신을 복직시켜 주시고, 또한 이번 패전
에서 살아남은 장수들에게 그 죄를 묻지 않겠다는 약조가 필요하오." 권준과 이순신.  권율은 이
순신의 입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오는 순간 모든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순신은 오래 전
부터 이런 날을 예견하였던 것이다.
  원균과 최호와 이억기는 죽었고 배설은 전쟁터에서 도망쳤으니 적어도 네  자리가 공석으로 남
게 된다. 이순신은 그 자리에 자기 사람을 앉힐 작정이다. 또한 살아남은 장수들의  죄를 묻지 않
겠다는 말은 옛 부하 장수들을 다시 불러  중용하겠다는 뜻이며, 임진년에 불패의 신화를 만들었
던 장수들오 친정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미이다. 권율은 목덜미에 소름이 돋아날 만큼 긴장했다.  
이순신, 정녕 무서운 사람이다!  "좋소, 내 그리 되도록 노력하리다." 이순신이 이어서 말했다. "청
이 하나 더 있소이다. 이것은 도원수께서 응낙한 하면 되는 일이오이다." "말씀해보시오" "아시다
시피, 수군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많은 돈과  곡물, 그리고 무기가 필여하오이다. 이 몸
에게 전라우도 해안 지역을 관할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시오. 장사치들을 다스리는 것은 물론 군사
나 곡물을 징발하는 일이나 백성들을 부리는 일도 이 몸에게  일임하여 주시오" 목민관의 일까지 
도맡겠다?  현재 조정의 힘이 변방까지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다면 이순신은  전라우
도에서 거의 군왕과 맞먹는 권력을 쥐려는 것이다.  권율로서도 휘하 장수가 그같이 막강한 권력
을 지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문제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었다. "좋소, 내  특별히 그대를 믿고 맡기
리다." "감사하오이다. 또한 조선 수군의  상황이 어떠한가를 직접 보고  확인할 필요가 있을 터! 
밤을 좇아 노량 쪽으로 가보고 싶습니다만." "그래주시겠소?  그리만 해준다면 한 시름 덜 수 있
을 것 같소." 아직 통제사에 재등용된 것은 아니지남 이왕 일을  맡는다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권율은 무엇이든지 돕겠다고 했고, 이순신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송대립을  비롯한 아홉 명의 
군관을 내어줄 것을 청했다. 왜군이 배를 타고  한산도를 지나 깊숙이 들어왔다면 노량해협도 안
전하지 못했다. "좋소" 논의를 끝마치고 마당으로 나섰을 때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권율은 두 
번 세 번 이순신의 손을 맞잡고 약조를  지키겠노라고 맹세했다. 이순신도 따뜻한 웃음으로 권율
의 급한 마음을 다독거렸다. 권율이 떠난 후, 이순신은 잠시 남동쪽의 깜깜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기 어딘가에서 나뒹굴고 있을 원균의 시체가 눈에 선했다. 그 주검을 딛고, 이제 다시 일어서야
만 한다. 태초의 어둠을 향해 걸어가야만 한다.   정유년 7월  22일 새벽.  고기떼를 만났는지 갈
매기들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이순신은 밀린 잠을 잠시 접어두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상쾌한 바닷바람이 온몸으로 훅 밀어닥
쳤다. 그는 동헌으로 처소를 옮기자는 주위의 권유도 뿌리치고 거제현령 안위의 판옥선에서 밤을 
지냈다. 18일 밤에 초계를 출발한 이순신 일행은 폭우 속에서도 삼가, 단성, 진주를 지나 어제 아
침 곤양에 도착했다. 이순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견내량에서 탈출해온 장졸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 총탄을 맞았거나 칼에 찔기고 불화살에 그은 장졸들은 땅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통곡했고 
백의의 이순신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장군! 저희를 구하소서!" "장군, 이 원통함을 풀어주십시오." "원통제사는 저 혼자만 살겠다고 견
내량에 내려 도망치다가 왜놈들의 칼에 무참히 도륙되었소이다."  "우리에겐 장군뿐입니다. 장군!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이순신의 얼굴은 차디차다 못해 싸늘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판옥선의 안
내를 맡은 거제현령 안위를 돌아보며 나직이 물었다. "이게  다요?" "그러하오이다. 모두 열두 척
이오이다." "격군의 수는?"
  갑작스런 질문에 안위가 말을 더듬었다. "사, 사백 명이 조금 못 되오이다." "사백 명이라고? 판
옥선 네척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숫자가 아닌가? 다른 군사들은 다 어리로 갔소?" "...탈영하였
소이다" 안위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이순신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다른 판옥선들을 둘러보았
다. 송대립과 날발, 그리고 안위가 그 뒤를 따랐고, 장졸들이 줄을 이엇다.  이순신이 다시 물었
다. "배수사는 어디에 있소?" "잠시 적저을 살피기 위해 나가셨습나다." "우수사가 직접 최후를 나
갔단 말이오?" "척후가 아니옵고..." 이순신이 말허리를 잘랐다. "열두 척 모두 이 배와 같소?" 안
위가 허둥지고 대답했다. "그러하오이다." "전투를 벌인 흔적이 전혀 없군. 왜군과 맞서기도 전에 
퇴각을 했단 말이오?" 이순신의 눈초리가 날카로웠다. "배수가께서 직접 퇴각 명령을  내리렸소이
다." 안위는 화살을 배설에게 돌렸다. 이순신이 말투를 확 바꾸며 안위를 몰아세웠다. "삼도 수군
이 모두 출정하지 않았는가? 허면 모든  군령은 통제사에 의해 직접 내려지는  법이다. 배수사가 
통제사의 퇴각 명령을 그대들에게 전한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허나 이상하지  않느냐? 왜 
경상우수영 군선들만 이렇듯 무사히 견내량을 빠져나왔지? 원통제사가ㅑ 경상우수군에만 퇴각 명
령을 내렸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그건..." "배수사의 독단적인 명령이었는가? 허면  죽음을 면키 어렵다. 전우들이  피흘리며 
죽어갈 때 너희들은 도망을 친 것이다. 전우들의 죽음을 담보로 목숨을  전졌다 이 말이다." 안위
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왜 선단은 소리  없이 견내량을 차단한 후 외줄포로 총공
격을 감행하려 했소이다. 배수사는 수 차례 이러한 위험을 원통제사께 경고했지만 번번이 묵살되
었소이다. 앉아서 죽느냐, 후퇴해서 후일을 도모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고, 배수사는 
후자를 택하셨지요. 잘못이 있다면 삼도 수군을 죽음의 마다로 밀어넣은 원통제사께 있는 것이지, 
배수사는 아니오이다."  이순신이 갑자기 오른손을 쭉 뻗어 안위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에 아무도 만류하지 못했다. 이순신은 코끝이  닿을 만큼 안위의 얼굴을 바싹 끌어
당겼다. 안위가 다시 말을 더듬었다.  "자,장군께서 떠나신 후 조선 수, 수군은 오합지졸로 바뀌었
소. 원통제사는 운주당에서 매일 잔치를 통음난무의 나날을 보내었고..." 이순신이 다그쳤다. "배설
이 시켰느냐?" "무, 무슨 말씀이시온지?" "원통제사를 모함하라고  배설이 시켰느냔 말이다." "자, 
자, 장군!"안위의 고개가 팍 껶였다. 
  이순신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며칠만에 맞이하는 푸른 하늘이었다.  그는 죄중을 돌아보며 
큰소리로 안위를 꾸짖기 시작했다.  "원통제사는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안다.  자나깨나 오직 승
리만을 생각하는 장수이다. 잘 때도 갑옷을 벗지 않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얼굴도 씻지 않는 장수
이니라. 오직 자신이 죽인 적의 숫자만을 기억하고, 자신의 몸에 생긴 흉터를 자랑으로 여기는 장
수이니라. 조선 제일의 장수 원균이 운주당에서 통음난무의  나날을 보냈다고? 감히 누구 앞에서 
그 따위 망발을 일삼은 것이냐?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마지막 순간까지 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어간 원통제사의 혼령 앞에 부끄럽지도 않느냐?" "요,  용서를!" "원통제사를 비난하면 내가 기
뻐할 줄 알았더냐? 네놈들이 지금 나를 갖고 놀겠다는  것이냐? 잘 들어두어라. 나는 원통제사를 
평생 흠모하며 존경하였느느라. 임진년의 승리도 절반은 그의 공이다.  내게 수군통제사를 추천하
라고 했다면, 나는 지체 없이 원통제사를 천거했을  것이야/"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모름지
기 군대에서는 군령이 으뜸이다.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군령을 어길 수는 없는 일, 그런데도 너희들은 살  길만을 모도했구나. 한 
나라의 수사가 군령을 어겼고, 또한 그 휘하  장수들이 동조하였다면 어찌 군졸들이 장수를 믿고 
따를 것이며, 백성들이 편히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느냐? 승패의  결과로 군령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라. 살아남은 너희들이 옳다면 바다  속으로 사라진 수많은 장졸들의죽음은  모두 헛된 것이란 
말이더냐?" "..."  안위는 두려움에 떨며 더 이상 용서를 구하지도 못했다. 침묵이 흘렀다.  삐걱삐
걱, 판옥선이 파도가 밀려오는 대로 좌우로 흔들렸다.  저녁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진노한 
이순신의 음성이 인근마을에 까지 널리 퍼져나갔다.  이순신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거제현령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죄가 있다면 배설에게 있고, 배설을 경상우수사로 추천한 원균에게 있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앉힌 조정 대신들에게 있다. 죄 없는 장수를 앞에 놓고 죄인 다르듯 했
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어다. 이야기를 꺼낼 때만 해도 따끔한 충고  몇 마디로 멈
추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통제사에게 물러난 후 근 다섯 달이 넘도록 가슴속에 응어리진 것들
이 한순간에 터져나왔단 것일까?
  백의종군을 당하여 다시 절라도로 내려온 후, 이순신은 숱한 사람들로부터 그의 불행이 원균의 
탓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도 처음에는 귀가 솔깃했다. 그러나 그를 통제사의 자리에서 끌어내리
고, 의금부로 압송하고, 고문하고, 백의종군시킨  자는 원균이 아니었다. 그를  지옥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은 한양에 있는 조정 대신들이었고,  그 대신들의 주청을 받아들인 이  나라의 군왕이었다. 
물론 군왕과 대신들의 눈에 원균이  또다른 대안으로 내비쳤을 수도 있고,  또 실제로 원균이 몇 
마디 말과 몇 장의 장계로 그를 모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판단은 군왕과 대신들이 하는 
것이다. 그들의 눈 밖에 나는  날이면, 제 아무리 수군의 으뜸  장수, 육군의 으뜸 장수라고 해도 
하루아침에 목이 달아난다.  원균이라 해서 어찌 다를 수 있겠는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던  그
도 군왕과 대신들의 입김은 두려웠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칠천량
으로 군선들을 몰아갔을까?  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불덩어리가 치솟아  올라왔다. 두 눈이 
불에 그은 것처럼 뜨거워졌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그는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을 진정시켰다. 
백의 종군을 당한 후부터 툭하면  매서운 열기가 눈까지 확 밀고  올라오곤 했다. 그때마다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눈알이 아리고  쓰렸다. 의원들은 단순한 안질이라고 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안질이 아니라 그의 몸이 분노의 불길로 조금씩 타들어가는 징표였다.  남들이 원
균을 욕할때면 가만히 웃으며 들어주었다. 
  원균의 탓이 아니라고 받아친다면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불행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습니까? 이 나라 조정이라고 대답해야 할까? 이 나라 임금 탓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까? 그렇기에 원균 정도가 적당했다. 원균과의 쟁공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므로  이 나라 조정
의 대소신료들도 그의 대답을 기쁘게 받아들이리라.  좀더 철저하게 가면을 쓸 필요가 있었다. 안
위의 말쯤이야 가볍게 흘려버릴 수도 있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는 비참하
게 죽어간 원균을  더 이상 보신의 도구로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원균이 살아 있다면 얼마든지 
훗날을 기약하며 서로의 마음을 떠볼 수 있겠으나  이미 죽어버리지 않았는가. 망각의 강으로 끝
없이 밀려가는 원균의 이름에 더 이상 오명을 덧씌우기 싫었다.  나 역시 언제 원균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으랴.  "벌써 기침하셨습니까?" 거제현령  안위가 다가왔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옆구리에 낀 모습을 보니 밤새 판옥선을 지켰던 모양이다. 잠이 오지 않았겠지. 이순
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 동쪽으로 날아가는 갈매기떼를 바라보았다. "어젠 내가 지나쳤소. 미
안하오. 안현령!" "아닙니다, 장군! 모든 게 다 저의 불찰이지요." 안위가  사람 좋게 웃었다. 마음
이 여리고 순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저기, 저기를 보시오소서. 배수사께서 오십니다."  안위가 허리를 잔뜩 앞으로 숙인 채 남동쪽
을 가리켰다. 섬과 섬사이로 어렴풋하게 판옥선 한 척이 나타났다. 이순신은  눈이 침침해서 확연
히 구분할 수가 없었다. 잠시 기다리니 회군의 북소리가 들려왔다. 삼도  수군의 군선들이 통일되
게 움직이도록 송희립이 창안한 북소리 중 하나였다. 이쪽에서도 화답의 북소리가  빠르게 두 번, 
느리게 한 번 울려퍼졌다.  배설의 판옥선이 부두에 닿았다. 안위가 황급히 전령을 보내 이순신의 
방문 사실을 알렸으나 배설은 안위의  판옥선으로 오지 않았다. 안위는  이순신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전령을 보냈다. 이번에은 다음과 같은 대답이 전해졌다. "아무리 도원수가 보낸 특사라 할지
라도, 무군지회를 범하여 백의종군하고 있는 죄인을 경상우수사인 내가 어찌 먼저 가서 만나리요. 
마땅히 죄인이 먼저 나를 찾아와  인사를 올리는 것이 예의에  합당하다." 이순신은 눈을 지그시 
감고 그 대답을 들었다. 드리고 초계에서부터 함께 온 군관들을 모두 이끌고 선선히 안위의 판옥
선에서 내려 배설이 있는 경상우수영의 지휘선으로 향했다. 안위가 안절부절못하며 그 뒤를 쫓았
다. 
  이물 쪽 갑판 중앙에 배설이 떡 버티고 앉아서 이순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칼과  활, 그리고 깃
발을 든 장졸 백여 명이 좌우로 겹겹이 늘어섰다. 안위가  먼저 배설에게 달려갔다.  "장군! 이통
제사이십니다." 배설이 다짜고짜 안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리고 갑판 위에  모인 장졸들이 모
두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외쳤다. "통제사는  누가 통제사란 말이더냐?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며
칠전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충청수사 최호와 전라우수사 이억기도 그 뒤를  따랐고, 따하서 전
라좌우도와 충청도, 그리고 경상우도를 통틀어 조선 수군에 남아있는 수군절도사는 바로 나 배설
뿐이다. 새로 삼도수군통제사가 임명될 때까지는 내가 이 지역을 관할한다. 알겠느냐? 알겠거든, 
저쪽에 서서 깊이 뉘우치고 있으라."  안위는 정강이를 감싸쥐며 배설의 오른편으로 절뚝절뚝 물
러났다. 배설은 히죽 웃음을 흘리며 이순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백발이  성성하고 양볼이 움푹 
패였으며, 눈에서 계속 눈물이 찔끔찔끔 흘러나오고 있는 백의의 이순신은 참으로 초라했다. "그
대가 정녕 통제사라면, 그대를 통제사롤 임명하는 교지가 있지 않겠소?" "이 몸은 통제사가  아니
오이다."
  이순신은 낮고 단정하게 대답했다. 그 순간 배설은 흰 송곳니가 드러날 만큼 미소 지었다.  "허
면 그대의 품계와 벼슬은 무엇이오?"  이순신의 턱이 실룩거렸다. 배설은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그에게 모욕을 주고 있었다.  검을 뽑아들며 앞으로 나서려는 송대립을  이순신이 막았다.  
"백의종군하는 몸이 무슨 품계와 벼슬이 있겠소이까."  배설은  득의만만하게 좌중을 둘러보았다. 
"백의종군하는 죄인이 이곳까지 어인  말인가?" 배설은 아예  하대를 썼다. 철저하게 짓밟겠다는 
의도였다. "도원수께서 삼도 수군의 패인과 남아 있는 군선의 수를 파악하라고 이 몸을 보냈소이
다."  "패인? 흥!"  배설은 코방귀를 뀌었다. "무슨 패인을 조사하라고 백의종군하는 자까지 보낸
단 말인가? 모든 것은 불은 보듯 명확하다. 내 지금부터 일러줄 터이니 하나도 빼놓지 말고 그대
로 도원수께 아뢰도록 하라. 이번 전투의 패인은  무리하게 부산으로 출정을 명령한 통제사 원균
과 그 명령을 묵인한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에게 있다. 그들이 이 나라  수군을 몽땅 
죽음의 바다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도원수께 아뢰거라.  나 배설은 이 나라  수군을 살리겠다는 
우국충정으로 군선과 장졸들은 무사히 구해냈다고. 알겠느냐?"  "..."   이순신은 배설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배설이 재차 물었다. "알겠느냐?" "허면,  이 다음 수군통제사는 누가 되어야  하오리
까?"
  이순신이 질문을 되돌렸다. 배설은 지휘검으로 갑판을 퉁퉁 치며 답했다.  "나 경상우수사 배설 
이외에 누가 있겠느냐? 나는 열두 척의 배를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천여 명이 넘는 군사들을 이
곳까지 별탈 없이 이끌고 왔다. 조선 수군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네 눈앞에 보이는 경상우수영의 
저 열두 척 군선과 그 배에  타고 있는 장졸들이 주축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누가 
조선 수군의 으뜸 장수가 되어야 하는가는 이미 정해진 것이니라. 만약 나 외에 다른 자가 이 자
리를 넘본다면, 나는 마땅히 그 자를 베고, 어리석은 조정을  일깨울 것이다."  "알겠소이다."  이
순신은 짧게 대답하고 펄럭이는 깃발들을 뒤로 한 채 돌아섰다.  어느새 굵은 눈물 한 줄기가 그
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호랑이 없는 숲에서 여우가 왕 노릇을 하는 형국이 아닌가. 아, 이 나
라 조선은 불행하다. 어찌 저런 자가 정삼품 수군절도사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단 말인가. 굽이치는 
바다에 거꾸로 떨어져 이름 없이 사라져간 군졸들의 발바닥보다도 못한 위인이 아닌가. 아, 이 나
라 조선은 전쟁의 회오리에 휘감길 충분한 이유가  있다. 치욕을 맛보아야만 하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내 다시 돌아온다면 자들부터 베리라. 전장에서  쓰러져간 원통제사와 여러 장수들, 그리고 
수많은 군졸들의 이름을 더럽히는 저 부끄러운 꼬리부터 잘라내리라. 맹세코!



    7. 미궁 
  정유년 7월 21일 밤.  콸콸콸콸, 물 흐르는 소리에 이끌려  앞다망으로 나섰다. 별빛 하나 
흐르지 않는 적막한 밤이었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는데, 다시 콸콸콸콸 소리가 심장 박동  소
리처럼 들려왔다. 그 소리를 쫓아 정신없이 달렸다. 평야를 한참 동안 내달리니 가파른 산등
성이가 앞을 막아섰다. 산자락을 부여잡고 끙끙대는데, 어느새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라 그의 
등을 비추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거대한 바위 사이로 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비
는 한 장이 넘고 깊이는 석 장을 헤아렸다.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살피니 옥궤주라고 적혀 
있었다. 샘 옆에 놓여진 옥으로 만든 잔을  들어 샘물을 떴다. 그러자 샘에서는 다시 딱  한 
잔 분량의 샘물이 흘러나왔다. 천천히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휘황스런 달빛이 눈 속으로 젖
어들었고, 혀끝에선 감미로운 향내와 함께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그 
샘에서 흘러내린 것은 물이 아니라 술이었다. 
  그는 곧 취기를 느꼈고 편안해졌다.  이대로 시간이 멈취버린다 해도 아무런 미련이 없을 
듯했다. "나으리!" 누군가가 그의 귓볼을 핥았다.  겨우겨우 취기를 누르고 눈을 떴다.  희고 
고운 젖가슴이 시야를 가렸다. 청향의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방안을 살폈다. 어둠 속에서도 
누추한 살림살이가 쉽게 눈에  띄었다. "어머, 깨어나셨네." 청향은  포옹을 풀 생각도 하지 
않고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옥궤주, 세 글자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
냐?"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소첩을 안고 싶으시다고, 객사를 몰래 빠져나온 것이 기억나지 
않으셔요?" 그랬는가?  그제야 지난밤의 술자리가 떠올랐다. 조선으로  왔다가 환국하는 명
나라의 사신을 따라 여행길에 오른 것이 지난 7월 2일이었다. 한양을 출발하여, 서경,  정주, 
선천을 거쳐 어제 아침 의주에 당도한 것이다. 성대한 환송연이 열렸고 그 자리에서 만취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후 청햐의 손을 끌고 주막으로 온 것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청향 젖가슴을 드러낸 채 그의 곁에 누워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하나만으로
도, 그가 청향과 석별의 정을 나누기 위해 밤길을 재촉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나으
리! 소첩도 명나라 구경을 하고 싶어요." 청향은 한양을 떠나올 때부터 내내 같은 청을 되풀
이했다. 허균도 할 수만 있다면 청향과  함께 명나라로 들어갈 생각이엇다. 그러나 쉰  살을 
넘긴 눈치 빠른 역관 조충서는 그의 부탁을 한사코 거절했다. "압록강까지 함께 갈 수 있는 
것도 다행으로 아십시오." "남장을 하고  가는데도 아니된다 이 말인가?" "압록강을  건너기 
전까지는 무방합지요. 허나 일단 조선  따을 벗어나면 절대로 아니됩니다."  "이유가 뭔가?" 
"차차 아시게 될 겝니다. 압록강까지만 가겠다고 소인과 약조를 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의주까지 가는 것도 눈감아드릴  수가 없습죠." 조충서로서는  남장여인을 압록강 근처까지 
데리고 가는 것도 대단한 모험이었다.
  평소에 허균이 중국말을 배우면서 함께 내기바둑을 두고 술추렴을 하지 않았다면  그마저
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허균은 압록강까지 청향을 데려가겠다고 약조했다.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만도 크나큰 행복이었다.  이달과 한호가 떠난 후 울적해 있던 
청향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황해도와 평안도 땅을 처음 밟는다고 했
다. 허균도 강원도와 함경도 쪽으로는 허봉의 흔적을 찾거나  임진년의 전쟁을 피해 갔었지
만, 황해도와 평안도 땅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산자수명.   자연은 아름다웠으나 백성들
의 표정에는 전쟁의 상처가 짙게 드리웠다. 왜군이 다시  하삼도를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고을 수령들은 걱정스런 얼굴로 그곳 전황을 물어왔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또다시 군
왕과 대신들이 평안도로 몽진을 오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그런 물음을 접할 때마다 
허균은 괴로웠다. 한양이라고 해서 이곳보다 사정이 나을 리 없었다. 조정 대신들은  주먹구
구로 승리를 장담하거나 몽진을 조심스레 입에 올렸다. 임진년의 전쟁이 터진 지 오년이 흘
렀지만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상처받고 피 흘리고 절망하는 쪽은 착하디 착한 백성들이었다. 한양을 떠났을 때, 서애 유
성룡은 서북방의 수령들이 하삼도의 전황을 묻거든 승전보가 매일 탑전에 그득 쌓이는 중이
닌 안심하라고 대답하도록 시켰다. 그러나 허균은 차마 그들에게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승
전보는커녕 왜군이 경상도 땅을  대부분 점령할 때까지, 관군은  명나라의 원군을 기다리며 
전투다운 전투를 치르지도 못했다.  명나라로 가라는 유성룡의 권고를 받았을 때, 허균은 전
혀 승낙할 마음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전라도나 충청도로  내려가서 전쟁을 직접 목도하고 
싶었다. 유성룡는 그를 조용히 집으로 불러  명나라로 가야만 하는 까닭을 들려줬다.  "자넨 
평소에도 서책 욕심이 많지 않았는가? 이참에 가서  서책도 많이 사고 그러게." "지금은 서
책이나 들여올 때가 이니지 않습니까? 더구나 명나라의 사신들이 거들먹거리는 꼴은 눈뜨고 
못 보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시지요." 조선이 원병을 청하자, 명나라는 병부좌시랑 형개
를 총독군문으로 삼고, 우첨도어사 양호를 경리조선군무, 도독  마귀를 총병으로 삼았다. 그
리고 오만여명의 명군이 속속 압록강을 넘어왔다.
  그중 부총병 양원은 남원, 유격장군 진우충은 전주까지 내려가 왜군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군이 들어오자 명나라의 사신들도 왕래가 잦아졌다. 그중에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사신도 있었다. 인삼과 비단을 요구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하늘을 나는 매까지 잡아
달라고 했다. 이번에 들어온 사신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천자의 뜻을 전하는 것은 뒷전이었
고 황후와 공주들에게 선물할 보석들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쳐댔다. "도대체 세자저하께 무
슨 말씀을 아뢴 겐가? 자넬  만난 후 저하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시다고 들었네." 유성룡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속내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별일 아닙니다. 누군가 이  전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씀드렸습죠." "그게...그게 지금  세자저하께 드릴 말씀인가? 책임을  지라니? 
말조심을 하라고 내 그렇게 일렀거늘." 유성룡은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혀를 끌끌 찼다. 
"스승님!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이러십니까? 전쟁이 터지고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으
니,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 아닌지요?  그리고 책임을 따진다면야 응당 주상전하와 
세자저하께서..."
  "닥치게, 멸문지화를 당하고 싶은가?" "제 뜻은..." "자네 형이 귀뜀을  해주었어. 사헌부와 
사간원의 몇몇 대간들이 이일을 문제  삼을지도 모른다고 하네." "아니,  어떻게 세자저하와 
소생이 나눈 대화를 그들이 알고 있단 말이옵니까?" 허균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쯧쯧, 주
상전하와 세자저하의 처소에는 담벼락에도 눈이 달렸고, 문지방에도 귀가 붙어 있다네. 대간
들은 내가 만나볼 터이니, 자네는 잔소리 말고 잠시 한양을 떠나 있게. 자네가 다치면  자네 
형은 물론이고 자제 집안까지 위험해지네. 알겠는가?"  "비겁하게 몸을 피하고 싶지 않습니
다." "그리 생각 말게. 자네에게 내 특별히  부탁할 일도 있다네." 유성룡은 잠시 말을 끊고 
턱수염을 쓸었다. "의주 근처를 살펴주게. 아직 위험한 상황은 아니네만 전세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만에 하나 충청도의 방어선이 허물어진다면 몽진을 떠날 수 밖에 
없어. 그리니 자네가 미리 가서 그쪽 민심과 군사들의 동정을 살펴주게. 그리고 명나라에 들
어가거든 조정 분위기를 되도록 자세하게 파악하게. 이곳에 오는  사신들은 워낙 허튼 소릴 
많이 해놔서, 그곳 조정의 진심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네. 중요한 일이니 은밀하
면서도 꼼꼼하게, 알겠는가?" 
  꼼꼼하게 살필 필요도 없었다. 평안도로 접어들자마자 가난과 병고에 지친 백성들의 얼굴
이 너무나도 크게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들은 전쟁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 전쟁의 불길
이 몽진의 대열을 쫗아 다시 평안도로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임진년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그들은 겹으로 고통받았다. 밖으로는 왜군과 맞서 싸워야만 했고, 안으로는 몽진을  나
선 임금과 조정 대신들에게 양식과 옷을 갖다바치며 수족 노릇까지 해야 했다. "청향아!" 허
균은 청향의 봉긋한 젖가슴을 어루만졌다.  몸을 더욱 앞으로 밀착시키며 청향이  대답했다. 
"예, 나으리" "너는 이곳이 좋으냐?" 청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그리 좋으냐?" "산도 
높고 강물도 거울처럼 깨끗하고..."  그가 청향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다시 물었다. "청향아! 
우리 이대로 도망칠까? 어디 심심산천으로 들어가 화전이나 일구며 살까?" 청향이 검지손가
락으로 그의 목을 어루더니 가만히 볼에 입을 맞추었다. "내가 못할 성싶으냐? 너만 좋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자꾸나." 
  청향의 눈가에 웃음이 맴돌았다.  "나으리, 나으리는 손곡 선생과  다른 분이셔요. 소첩은 
그걸 알고 있지요. 나으리는 늘 노자와 장자의 세계를 동경하시자만 결코 속세를 등질 분이 
아니어요. 이곳까지 오면서, 소첩은 나으리가 숱하게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보았답니다. 나으
리는 백성들의 지친 얼굴을 볼 때마다 그냥 외면하고  돌아서지 못하셨어요. 헌데 나으리께
서 그들을 버리고 심심산천으로 들어가시겠다구요?" 그는  청향을 와락 끌어안았다. 정신없
이 눈과 코와 입과 귀의 목과 가슴에 입을 맞추었다. 답답해서 곧 터져버릴 것만 같은 그의 
마음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단 한 사람만이라고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준다면 삻이 완전히 
절망적이지는 않다.  청향은 천천히 몸을 좌우로 흔들며 급히 서두르는 허균의 몸을 감쌌다. 
꽃봉오리에 갇힌 꿀벌처럼 그의 몸짓을 점점 느려졌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녀의 하
얀 몸은 발갛게 익으며 수만 가지 빛깔로 탈바꿈했다. 압록강을 가로지르는 바람 소리가 더
욱 크게 들렸다. 멀리서 개들이 컹컹 소리  높여 짖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오랑캐의  피리 
소리도 구슬펐다. 
  급류가 흘러간 뒤 안온한 평화가 찾아들었다. 팔베개를 하고  누운 청향이 손톱으로 그의 
젖꼭지를 살짝 긁어댔다.  "나으리, 부디 많이 보고 읽고 많이 깨우쳐서 돌아오셔요. 나으리
의 뜻을 펼피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부가 필여할 터이니까요. 언젠가 손곡 선생님께서 그러
셨지요. 책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 최고라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사
물들, 사람들, 풍경들을 접하다보면 공부가 절로 된다고.  나으리께서 명나라에 들어가 계시
는 동안 소첩도 세상 공부를 해볼까 해요. 모름지기 시는 몸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구차한 
이별은 번거로울 것 같으니, 입 밤에 소첩은 떠나겠어요." 허균이 깜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북삼도를 홀로 여행하겠다는 것이냐? 아니된다. 여자 혼자  몸으로 이토록 험한 곳을 어찌 
다니겠다는 것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 잔말  말고 내일 당장 한양으로 가도록 해라. 내가 
함께 갈 사람들을 구해주마."
  청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어요. 소첩도 소첩만의 시를 짓고 싶
어요. 언제까지나 손곡선생과 나으리의 시를  흉내내고만 있을 수는 없답니다. 한양에  갇혀 
있으면 결코 두 분의 품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아무리 말리셔도 소첩은 떠나겠어요. 그래서 
나으리가 큰 뜻을 이루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요." "청향아!" 허균은 망연자실 
할 말을 잃었다. 청향은 몸을 일으켜 촛불을 밝히고 옷을 찾아 입었다. 도포를 입고 갓을 쓰
고 수염을 붙이니, 옥구슬처럼 맑은 눈망울만 제외하고는 영락없이 서생의 형색이었다. 허균
도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그는 청향의 뜻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이 나
라 조정에 품고 있는 분노만큼이나 삶의 깊이를 헤아리는 시를 짓고자 하는 청향의 욕구 또
한 강렬했다. 그녀가 늘 입버릇처럼 되뇌던 말이 떠올랐다.  "규방에서 사랑 타령이나  늘어
놓는 가사따윈 짓지 않겠어요.
  소첩은 이백이나 두보의 시를 따르고 싶어요." 미소년으로  변한 청향이 다소곳이 작별의 
큰절을 올렸다. "부디 몸조심하셔요. 한양에서 다시 만나 서로의 시를 품평하기로 해요." 허
균은 품에서 급히 주먹만한 금덩이를  꺼냈다. 어머니가 만일을 생각해서 넣어주신  것이다. 
청향은 자기에게도 노잣돈이 있다며 손을 저었다. "넣어두게. 내 마음이야." 그는 한사코 거
절하는 청향의 양손에 금덩이를 쥐어주었다. 그녀의 눈에서 한 방울이 뚝 떨어져내렸다.  그
는 그녀를 안고 말없이 등을 쓸어주었다. "목숨을 부지하고  나서야 시도 있고 사랑도 있는 
게야. 조금이라도 위급한 일을 당하면 지체없이 한양으로 돌아가도록 해. 알겠는가?" 청향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수 밖으로  나갔다. "청향!" 허균이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따라 
나섰지만 이미 그녀는 온데 간데 없었다.
  오직 그녀의 이름과도 같은 신새벽의 맑은 향내만이 코끝을  간지럽힐 뿐이었다.  다음날 
오후, 예정했던 대로 허균 일행은 압록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기 전에 역관 조충서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값나가는 금붙이며 서책이나 옷 따위를 거두었다. "무엇 때문에 이딴 걸 
모으는가?" 허균은 명나라 사신에게 뇌물을 주기 위해 그것들을 모으는 줄 알고 강력히  따
졌다. 그러나 조충서는 명나라 사신들로부터도 값비싼 비단이며 보석을 건네받았다.  허균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지만, 조충서는 아뭐런 설명도 하지 않고 잠시 기다리면 모든 것을 알게 
된다고만 했다.  압록강은 고요하고 잔잔했다. 배는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빙판 위를 미끄러
져 내려가듯 흘러가서 전너편에 닿았다. 그러자 갑자기 길게  울려퍼제는 말울음 소리와 함
께 백여 명의 사내들이 언덕을 넘어 허균 일행을 향해  달려내려왔다. 말로만 듣던 여진 오
랑캐였다. 
  허균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조충서가 기다렸다는 듯
이 양손을 휘휘 저으며 앞으로 쑥나섰다. 선두에서 달리던  여진족의 대장이 조충서 앞에서 
말을 내렸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마치 저잣거리에서 물건값을  흥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숨을 헉헉대며 돌아온 조충서가 낭패스러운 얼굴로 허균에게  말했다. "오늘
따라 길값을 많이 부르는뎁쇼. 우리가 거둔 걸로는  어림도 없겠습니다." "길값이라니?" "명
나라까지 무사히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보호해주는 값입죠." "그  무슨 소린가? 여기는 
명나라의 영토가 아닌가? 헌데 왜 여딘 오랑캐에게 길값을 내야 한단 말이지?" 조충서는 고
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곳은 이미 여진의  땅입죠. 대추장 건주위가 만주 곳곳에  흩어져 
있던 여진족들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명나라도 이제 여진족을  함부로 못합죠." "뭣이라고?" 
허균은 거대한 쇠뭉치로 뒷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여진족이 명나라와 맞설 만큼 강대해졌다? 그렇다면 조선의 북삼도도 위태로운 지경이 아
닌가? 왜와의 전쟁이 문제가 아니구나.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손 치더라도, 다음에는  여진족
이 만신창이가 된 조선을 먹으려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오겠구나. 이렇게 놀라운 사실을 
조정에서는 아무도 모르다니, 참으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조충서가 명나라 사신들과  의논
을 하고 돌아왔다. "어떻게 되었는가?" "저들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습죠." "저들이 청이 무
엇인가?" "일단 우리가 거둔 것들을 취한 다음,  부족한 양은 우리들 각자의 소지품 중에서 
가지겠다고 했습죠. 그리고 만약 일행 중에 여자가 있으면 순순히  내어놓으랍니다." 조충서
는 이런 일을 미리 염려해서 청향의 만주행을 한사코 막았던 것이다. "그, 그것은 약탈이 아
닌가? 어찌 저놈들이 명나라의 사신과 조선의  신하에게 함부로 손을 댈 수 있단  말이냐?" 
조충서는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자꾸 이러시면 나으리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무엇이라고?" "앞은 여진족이고 뒤는 압
록강입죠. 피할 곳이 없다 이 말입니다." 조충서가 손뼉을  짝짝 두 번 쳤다. 그러자 명나라 
사신을 필두로 방금 압록강을 건너온 사람들이 길게 일렬고 줄을 지어 섰다. 그리고 말에서 
내린 여진의 사내들이 좌우로  벌려 서 있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여진의 사내들은  책이며, 
칼, 옷 따위를 마음 내키는 대로 빼앗았다.  노략질을 하는 저들은 환하게 웃었고, 노략질을 
당하는 조선인들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갔다.  허균은 강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살폈다. 마
음만 먹는다면 저들이 압록강을 건너는 것은 아기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도 쉬우리라. 그러
나 저들은 강 이쪽에서 상납하는 물건만 받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 어찌 저
들이라고 해서 압록강을 건너가서 더 많은 물건을 빼앗고 싶은 욕망이 없겠는가. 그러나 저
들, 여진족들은 아직까지 조선 영토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있다. 왜일까?  때를 기다리는 것
이리라. 
  조선을 단숨에 무너뜨리고 한반도를 송두리째 집어삼킬 기회를 엿보는 것이리라.  허균은 
드넓은 만주벌판과 그 위를 내달리는 여진족들을 상상해보았다. 그들 수만의 기병들이 그대
로 압록강을 건너온다면 왜와의 전쟁보다  더 끔찍하고 힘든 전쟁이  시작되리라.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떻게든지 살아돌아가서 이 일을 조정에 알려야만  했다. "어찌
하시렵니까?" 조충서가 뽀로통한 얼굴로 물었다. "...맨 끝줄에 가서 서겠네." 조충서는 그렇
게 대답할 줄 알았다면 환하게 웃었다. 허균은 줄이 끝나는 곳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까마귀 한 마리가 머리 위에서 까악까악 시끄럽게 울어댔지만 그의 시선은 돌투성이 요동의 
흙바닥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다.  정유년 7월 22일 오후.  선조는 대신과 비변사의 당상관들
을 모두 별전으로 불렀다. 한산도로 갔던 선전관 김식이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경상우수사 
배설의 장계가 연이어 도착한 것이다.  연락을 받은 대신들이 속속 별전으로 들어섰다. 비보
를 접한 그들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용상 앞에는  전라, 경상, 충청도를 모두 아우르
는 거대한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먼저 도착한 판중추부사 윤두수와 우의정 김응남이  지도를 살피며 귀엣말을 주고받다가, 
지중추부사 정탁과 병조판서 이항복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이야기를 머추었다.  몸이 편치 
않은 영의정 유성룡은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김응남이 먼저 이항복에게 
물었다. "전멸한 것이오?" "그런 줄 아옵니다." 이항복이 짧게 대답했다. 설명을 늘어놓다가
는 시비가 붙을 수도 있었다. 윤두수가 그 말을 받았다. "그런 줄 안다? 한 나라의 병조판서
가 그게 할 말씀이오? 조선 수군이 완전히 남해바다에 수장되었는데, 그런 줄 안다라니.  병
판은 삼도 수군을 제대로 살피기는 하셨소?" 정탁이 이항복을 변호하고 나섰다. "말씀이 지
나치시외다. 임진년 이후, 조선 수군이 전투를 벌이는 시기와 장소는 모두 통제사에게  일임
되어 왔어요. 다들 그 일을 묵인하셨으면서도 이제 와서 병판만 나무라시면 어찌하오이까?" 
김응남이 혀를 찼다.
  "쯧쯧쯧, 나는 삼도수군통제사란 자리를 만드는  것 자체부터가 탐탁치 않았소이다.  일개 
장수에게 전라, 경상, 충청도의 바다를 모두 아우르도록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오이까? 통제
사 자리를 만들자고 극구 주장한  영상 대감이나 여기 계신  병판의 잘못이 참으로 크오이
다." 그때 잔기침을 쏟으며 유성룡이 들어섰다. 심하게 병을 앓았던 탓인지 몰라보게 야위었
다. 언성을 높이던 김응남과 정탁이 이야기를 멈추고 유성룡의 안색을 살폈다. 윤두수가  인
사를 건네었다. "영상 대감! 이렇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입궐하시다니요. 지금이라도 돌아가
서 누우시오. 대감이 빨리 기력을 회복해야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어요."  유성룡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으나 곧 다시 잔기침을 쏟았다. "고,  고맙습니다. 늙고 병든 이 몸 때문에 
걱정을 끼쳐 참으로 죄송하오. 허나 오늘은 견딜만 하니 과히  염려 마시오. 그나저나 병판! 
삼도 수군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가요?" "배설이 이끄는 경상우수영의 판옥선  십여 척을 제
외하곤 모두 격침되었다 하옵니다." 유성룡이 고개를 치켜들며 눈을 꼭 감았다. 눈썹과 입술
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통제사 원균은 물론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가  전사했다는 것이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김식의 보고와 배설의 장계로 볼  때, 틀림없는 사실이옵니다." 유성룡이 양손
으로 가슴을 부여잡으며 뒤로 휘청 물러섰다. 곁에 있던 정탁이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대신
들이 주위로 모여들었다. 유성룡은 숨을 들이마시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괜... 찮소이다. 잠
시 어지러웠던 것뿐이오." 이항복이 물기 어린 목소리로 권했다. "대감, 쉬셔야 하옵니다. 조
정 일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우선 몸을 돌보도록 하세요.  주상전하께는 따로 말씀 올리겠습
니다." 유성룡이 이항복의 손 등을 토닥거리며 웃었다. "허허허! 괜찮다는데 왜들 이러시오? 
내 나이 겨우 쉰여섯이오이다. 아직 물러날 나이는 아니지요." 유성룡의 고집을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대신들은 은근히 그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선조가 진노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그에 맞서 조리 있게 답할 사람은 유성룡뿐이었다.  유성룡이 자리
를 잡고 서자 곧 선조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별전으로 들어왔다.  대신들은 고개를 숙인 
채 불호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병판! 충청, 전라 양도에는  군선이 몇 척이나 남았는
가?" "열두 척이옵니다." 
  "열두 척? 배설이 끌고 온 배가  전부란 말이냐? 원균이 군선이란 군선을 모조리  이끌고 
절영도 앞바다를 향햐 갔다 이 말이렷다?" "그러하옵니다." 이항복은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날 때 물러나더라도 엉거주춤하게 피할 마음은  없었다. 선조가 시선을 윤
두수에게 돌렸다.  "판주추부사는 어찌 생각하는가? 한산도에서 호표가 버티고 있듯이 지키
기만 해도 지난 오 년간 왜선들이 얼씬을 못했다. 원균도 수군 단독으론 출전하기 어렵다고 
거듭 아뢰지 않았는가? 헌데 군선을 모조리 끌고 나가 남해바다에 빠뜨렸다. 원균이 그렇게 
어리석은 장수인가?" "아니옵니다. 원균은 용맹과 지략을 아울러 갖춘 장수이옵니다. 전황을 
오판하고 절영도로 나갔을 리가 만무하옵니다."  윤두수의 대답에 선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듣자하니, 원균은 처음부터 출정하지 않으려  했고 배설 또한 군율에  의해 죽임을 당할지 
언정 군사들을 죽음의 바다에 빠뜨릴 수 없다며 전투를 피해 돌아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원
균과 배설에게 출정을 독촉한 자가 누구인가?"
   유성룡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선조는 이미  원균과 배설이 칠천량으로 나가기
에 앞서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를  훤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원균과  권율 사이의 갈등도 
알 것이고, 이순신 휘하의 장수들이  전투를 벌이기 전에 대부분 탈영한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유성료은 오늘 아침에 도착한  이순신의 비밀서찰을 받고 그간의 사정을  알았지만, 
선조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도원수 권율과 도체찰사 이원익이옵니다." 김응
남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권율과 이원익이 짜고 원균의 등을 떼밀었다면 정녕 그들
을 살려 둘 수 없다. 명나라의 원군은 조선 수군이  남해안을 굳게 지킨다는 전제하에 남원
을 비롯한 전라도에 주둔하지 않았는가. 도독 마귀의 군사가 만여 명, 부총병 양원의 군사가 
삼천 명을 넘지 않는다. 헌데 왜 수군이 경상, 전라의 바다를 완전히 장악하고 강화도  근처
까지 배를 몰아 들이친다면 어찌  우리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는가. 하삼도가 적의 
수주에 들어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로구나." 윤두수가 맞장구를 쳤다. 
  "속히 강화도에 군사들을 배치하여야 하옵고, 의주 방면으로 논의 되던 몽진 계획도 취소
해야 하옵니다." "그렇지, 강화도까지 올라올 왜선이면  평안도까지 못 올라갈 이유가 없지. 
영상! 어찌해야 하겠는가?" 선조의 질문이 드디어 유성룡에게 날아들었다. 유성룡은 고개를 
더 깊이 숙인 채 오전 내내 준비하였던 대답을  아뢰었다. "우선 하삼도의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이옵니다. 수군이 전멸하였으니 하삼도의 백성들은  물론 군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을 것이옵니다. 속히 통제사와 각 도의 수사를 새로  임명하여 흩어진 민심을 추스르
고 군사들을 모을 필요가 있사옵니다. 그리고 도원수과 도체찰사를  바꾸는 것은 시기가 적
절치 않사옵니다. 수군의 으뜸 장수가 전사한 상황에서 육군의  으뜸 장수까지 바꾼다면 하
삼도의 방어선이 한꺼번에 무너질 가능성이 크옵니다." "그렇군. 허면 누가 새로 수군통제사
가 되어야 하겠는가?" 선조의 물음이 허공에서 떠돌가가 사라진 후에도 대신들은 의견을 내
지 않았다. 답답한 듯 선조가  먼저 장수들을 거명했다. "배설은 어떠한가?"  이항복이 반대 
의견을 냈다. "아니되옵니다. 배설은 군령을 어기고  전쟁터에서 달아나 자이옵니다. 중벌을 
내려야 마땅한 자를 통제사에 임명할 수는 없사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배설이 물런난 것은 군사들의 목숨을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
는 군선과 군사들이 모두 경상우수영 소속이니, 배설을 임명하면  쉽게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는 않겠는가?" 윤두수가 이항복을 두둔하고 나섰다. "전쟁터에서 한 번 등을 보였던 자는 
그런 난국을 다시 만나면 또 뒷걸음질을 칠 뿐이옵니다. 배설을 통제사에 앉히면 군선과 군
사들을 지킬 수는 있사오나, 전투를 기피하고 남해바다를 모두 왜군에게 내어줄 것이옵니다. 
배설에게는 엄히 문책하는  교서를 띄우고, 경상우수사에  그대로 둠이 마땅하옵니다."  "그
래...? 판중추부사의 뜻도 그러하다면 배설은 안 되겠군." 선조는 윤두수를 흘깃 살피며 자신
의 뜻을 거두어들였다. 배설을 경상우수사로 발탁한 사람이 윤두수였는데, 그가 스스로 배설
은 통제사를 맡을 그릇이 아니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지중추부사는 어찌 생각하는가?" 
선조가 정탁을 지목했다. 정탁은 고개를 약간 들고 큰소리로  아뢰엇다. "전하! 현재 조선수
군을 부활시킬 장수는 이순신뿐이옵니다." 김응남이 곧바로 반대 의견을 냈다. "이순신은 아
니되옵니다. 
  그는 무군지죄를 범한 죄인으로 언제  역심을 품을지 모르는 자이옵니다.  차라리 당분간 
통제사 자리를 비워두시옵소서." "영상의 생각은  어떠한가?" 선고가 유성룡의 의향을 물었
다. "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한 지  아직 일 연도 되지 않았사옵고 그간  죄를 씻을 만한 큰 
공도 없사옵니다. 허나 전하께서 그에게 통제사를 맡기실 뜻이 있으시다면 반대하지는 않겠
사옵니다." 반대하지는 않겠다? 선조는 자신의 질문을  미꾸라지처럼 유유히 비켜가는 유성
룡이 싫지만은 않았다. 명나라의 원군을  끌어오고 하삼도에 방어선을 구축한  것도 따지고 
보면 유성룡이 고비마다  유연하게 대처한 덕분이었다.  이항복이 정탁을 지원하고  나섰다. 
"도체찰사 이원익과 도원수 권율도 이순신의 중용을 원하고 있사옵니다." "판중추부사의 뜻
을 어떤가?" 선조는 마지막으로 윤두수를 지목했다.  "신의 생각으로도 이순신밖에 다른 장
수가 없을 듯하옵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이순신은 도원수 권율 휘하에  배속되어 전라도 
땅에 머물고 있사오니, 교지를 내리면 통제사의 직무를 즉시  행할 수 있으리라 사료되옵니
다." "그렇다면 좋다.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는 이순신으로  하고, 배설은 그대로  경상우수사에 두도록 
하겠다. 허면 전라우수사와 충청수사는 누가  좋겠는가?" 유성룡이 제일 먼저 의견을  냈다. 
"모름지기 전투는 손발일 맞아야 제대로 싸워 승리할 수 있사옵니다. 이순신을 통제사로 삼
으시겠다면, 그 휘하의 수사는 마땅히 이순신과 함께 오랫동안  남해바다를 지킨 장수 중에
서 뽑아야 할 것이옵니다." "이억기나 최호 외에 누가 또 있단 말인가?" "전 수군절도사 권
준이나 이순신이라면 능히 통제사를 보필살 것이옵니다." 김응남이  이의를 제기했다. "권준
이나 이순신은 군량미를 빼돌리고 백성들을 괴롭힌 죄로 삭탈관직된 자들이옵니다. 어찌 그
런 자들에게 다시 벼슬을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유성룡이 거듭 아
뢰었다. "임진년에 전쟁이 일어난 후 대장군 이일을 비롯한 수많은 패장들에게 성은을 내리
사 전공을 세울 기회를 주신 전하이옵니다. 지금 수군에는 변변한 장수가 남아 있지 않사옵
니다. 바로 이런 때에 수군절도사까지 올랐던 자가 있다면, 대역죄인이 아닌 이상 다시 불러 
공을 세울 기회를 주어야 하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선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김응남은 계속 반대 의견을 냈고, 이항복과 정탁은 유성룡을 두둔했다. 윤두수와 유성룡은 
고개를 숙인채 선조의 하명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선조가 결정을 내렸다.  "전라우수사는 차
후에 뽑기로 하고, 우선 권준을 충청도  수군절고사로 삼겠다. 더 이상 이 문제는  논의하지 
말라." 어전회의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교지를 만들고 선전관을 급파하는 일은 승정원과 병
조판서 이항복이 맡아서 처리하기로 하였다.  선조는 별전을 나와 광해군의  처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직접 광해군을 찾아가는 것은  드문 일이엇다. 더구나 아직도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광해군의 처소에 거의 다다를 즈음, 선조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대들보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지 때문이다. 선조가 걸음을 멈추자 대들보 뒤에 있던 사내가 발간된 것을 알
고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너는 허준이 아니냐?" "그러하옵니다. 전하!" 허준의 품에는 서책이 가득했다. 제대
로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광해군의 처소에서  나오다가 선조의 눈을 
피해 잠시 몸을 숨긴 듯했다. "그것들이 다 무엇이냐?" "의서이옵니다" "네가 지은 것이냐?" 
"예, 전하!" "그렇게 많은 의서를 세자에게 왜 가져갔던  것이냐?" "그, 그것은..." 허준은 우
물쭈물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선조가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서며 다시 물었다. "대답하렸다." 
"세자저하께서 가져오라 하셨사옵니다." "무슨 병을 다루는 책이냐?"  "도, 돌림병이옵니다." 
"돌림병? 세자가 돌림병을 알아서 무엇한단 말인가?" "여기에 적힌 것들은 임진년에 전쟁이 
일어난 후로 새롭게 생긴 돌림병이  종류와 증상, 그리고 그  치유법들이옵니다. 어제 아침, 
우연히 세자저하를 뵈었사온데 한 번 가져와보라고 하시기에..."  선조가 다시 서너 걸음 앞
으로 다가섰다. 허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줄 흘러내렸다. "허면 왜 대들보 뒤로 숨었느
냐?" "갑자기 전하께서 납시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사옵고...신의 꼴이 하도 우스꽝스러워
서 그만..." 선조가 그의 말을 자르며 호통을 쳤다.  "이놈! 뉘 앞이라고 감히 거짓을 아뢰는 
것이냐? 과인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연통을 받고 급히 세자의 거처에서 나온 것이 아니더
냐? 헌데 어찌 과인을 보고 놀랐다고 하는고?"
  "...저, 전하!" 허준의 두 팔이  아래로 축 처지는가 싶더니  들고 있던 서책이 아무렇게나 
떨어져 나뒹둘었다. 허준은 털썩 그 자리에  무릎을 끓은 후 이마를 바닥에 대고  엎드렸다. 
임금을 속였으니 죽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의 두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동안 저술한 의서를 편찬하지 못하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선조는 내관과 궁녀들을 
멀리 물리고 천천히 허준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친히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전...하!" 허
준의 얼굴은 눈물로 온통 범벅이 되어 있었다. 선조가 그의 어깨를 다돌거리며 나직이 위로
했다. "그만 그치거라. 과인은 네가 누구보다도 과인을  위한다는 것을 잘알고 있느니라. 헌
데 너는 오늘 이상하게도 과인을  피해서 대들보 뒤에 몸을 숨겼다.  무엇이낙 과인이 알면 
안 되는 일을 했지 때문이냐?" "저, 전하!"  "아무 걱정 마라" "전하!" "말해보래두." 선조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졌다. 허준은  이것이 그가 회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직감했다. 
"세자저하께서..." "세자가 왜?" "전하의 옥체가...얼마나  강건하신지를 아시고 싶어하셨사옵
니다." "과인의 병세가 어떠한가를 네게  물었다, 이 말이렷다?" "예,  전하!" 허준의 어깨를 
잡은 선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허준은 땅에 머리를 박고 다시 엎드렸다. 
  이제 죽는 일만 남은 것이다.  어제 아침, 광해군이 허준을 불러 의서를 편찬하려면 그 내
용을 세자인 자신이 우선 살펴야  한다며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오후 그 서책들을 
찾으러 갔는데, 광해군이 난데없이 선조의 병환이 얼마나 깊은가를 물어왔던 것이다. 군왕의 
병환은 내의원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일급비밀이었다. 아무리 군왕의  아들이자 장차 이 나
라의 보위를 이을 세자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알려고 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허준은 몸을 
떨면서 결코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지만 광해군은 의서를 편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
와주겠다며 조금만 귀띔해 달라고 했다. 두 사람이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선조
가 광해군의 처소로 오고 있다는 연통이 닿았다. 북쪽 길이 아니라 남쪽 길을 택한 것이 실
수였다. 선조는 이제껏단 한 차례도 별전에서 곧바로 광해군의  처소까지 오는 일이 없었기
에 안심하고 남쪽 길로 종종 걸음을 쳤던 것이다. 급한 마음에 대들보 뒤에 숨긴 했지만 선
조의 매서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잠시  잦아들었던 울음이 다시 터져나왔다. "흐흐흑, 
전하! 신을 죽여주시옵소서." 바람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나뭇잎 바스락대는 소리까지도 크
게들렸다. 불호령 대신 선조의 작고 낮은 목소리가 내려왔다. 
  "한 가지만 묻겠다. 세자에게 과인의 병을 이야기했느냐?"  "아, 아니옵니다. 신이 어찌..." 
"그럼 됐다. 오늘 너는 과인을 만난 적이 없느니라. 알겠느냐?" "...예!" "어서 일어나서 서책
들을 챙겨라. 그리고 당장 사라져!" "예, 전하!" 허준은 서책들을 되는대로 끌어모아 그 자리
를 떴다. 목숨을 살려준 은혜에 감사할 겨를도 없었다. 광해군은 마당까지 나와서 선조를 기
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시옵소서, 아바마마!" 선조는 광해군의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하고 
방으로 들어섰다. 말끔하게 정리된 방 어디에더 허준이 다녀간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
다. 책상에는 시경이 펼쳐져 있었다. "책을 읽고 있었느냐?" "시경  왕풍편을 읽고 있었사옵
니다." "오늘 읽은 부분을 어디 외워보거라." 광해군은 거리낌없이 시를 읊기 시작했다.  "저
기 기장 이삭 늘어지고 피까지 돋아났네 갈수록 걸음이 느려지고 슬픔은 물결처럼 출렁거리
네 내 마음 아는 사람이애 시름이 가득하다 하겠지만 내 마음 모르는 사람이야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하겠지 아득하게 뻗은 푸른 하늘이여, 이는 누구의 탓이옵니까."  "아주 책을 열심
히 읽었구나. 
  당장 보위를 이어도 손색이 없겠어." "송구하옵니다." "몸 생각도 하면서 쉬엄쉬엄 읽도록 
하라.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 해도 병들어 죽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광해군의 표정을 살피는 선조의 눈매가 날카로웠다. 그러나 광해군은  조금의 흐
트러짐도 없이 단정하게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바마마! 헌데 이 시각에 이곳까지 어
인 행차이시온지요?" 너도 별전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궁금하겠지? 광해군은 먼저 묻는 
법이 없었다. 스물세 살의 장성한 청년  광해. 그 나이에 선조는 이미  용상에 앉아 있었따. 
광해군이라고 해서 못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광해군은 두 차례나 분조를 이끈 경험
까지 있었다.  선조는 요즈음 아침 문호를 받을 때마다 점점 광해군이 두려워졌다. 이 영특
하고 겁없는 아들은 분조를 이끌면서 민심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젊고 똑똑한 신진관료
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태평한 시절이 오면  틀림없이 전쟁의 책임을 묻
게 된다. 그때 상처를 입는 사람은 선조 자신이고, 광해군은 정치적 기반을 더욱 굳게  다질 
것이다. 
  임진년에 거병한 의병장들도 대부분 광해군과 은밀히 서찰을 교환하고 있다지 않은가. 생
각 같아서는 당장에 폐세자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벌써 육 년이 넘게  전쟁
을 치르느라 왕실의 권위와 기반이 눈에 띄게 흔들리지  않았는가. 뛰어난 장수들이 백성들
의 신망을 얻고, 사림의 지도자들이 조정 공론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럴 때 왕실 내부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신권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우선 광해군의 마음을 살
펴 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제사와 충청수사, 전라우수사가 모두 죽었다. 알고 있느냐?" 
"예, 아바마마!" "별전에서 대신들과  그 일을 논의하였느니라. 세자가  보기에는 누가 새로 
수군을 맡아야 한다고 보는가?" "수군이 전멸하였다고 들었사옵니다. 군사와 군선이 없는데 
장수만 임명해서 무엇하겠사옵니까?" "경상우수영의 군선 열두 척이 있느니라. 영상과 병판
은 바다를 빼앗기면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세자의 생각은  그와 다른
가?" "아, 아니옵니다. 허나 겨우 열두 척으로 하여 천여 척의 왜선과 어찌  대적할 수 있겠
사옵니까? 새로 통제사가 되는  장수는 반드시 죽을 따름이옵니다."  선조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세자도 그리 생각하는가?" "생각해보시옵소서. 올해 바다를  건너온 왜선은 임진년
의 왜선과 다르옵니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과 맞서기 위해 틀림없이 더 크고 단단한 배를 만들었을 것이고, 어쩌
면 총통까지 배에 장착했을 수도 있사옵니다. 또한 물길의  방향과 물살의 세기까지 소상히 
알고 있을 터인즉 쉽게 무너질 상대가 아니옵니다. 차라리 당분간 수군을 도원수 권율 휘하
로 모두 배속시킨 다음 강화도 근방에서 수군을 새로 훈련시키면서 명나라의 수군이 오기를 
기다리는 편이 어떠하올는지요?"  "이순신을 통제사로 임명하기로  결정을 보았느니라." 그 
순간 광해군의 표정이 이상야릇하게 바뀌었다. 안심하는 미소같기도 했고 놀라는 표정 같기
도 했다. "제 아무리 이순신이라고 해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옵니다." "세자의 말이 옳다. 그
러나 대신들은 이순신에게 기회를 주자고 아뢰었다. 기적을 바라는 것이겠지. 과인이 이순신
을 수군통제사에 재임명한 것은 왕실의 자비로움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고 또한 훗날의 화
근을 미리 제거하기 위함이다." "화근이시라면?" "이순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전쟁이 끝
나고 나면 어차피 참형을 당하리라는 것을 무군지죄를 범한 장수가 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
는가. 틀림없이 이순신은 전쟁이 끝나기 전에 역심을 품을 것이다. 난을 당하고  후회할때는 
이미 늦느니라. 명심하렷다." 
  "예, 아바마마!" 광해군의 얼굴이 딱따가게 굳었다. 오늘따라  선조의 목소리가 더욱 차고 
날카로웠다. 이순신을 통제사에 앉힘으러써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하려는 생각은, 절묘한 인
사를 통해 정치를 풀어가는 아버지다웠다. 중요한 것은 법이 아니라, 그 법을 집행할 사람인 
것이다. "충청수사와 전라우수사는 어찌하셨는지요?" "이순신이 통제사가 된  이상, 그의 옛 
부하 장수들이 중용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권준을 충청수사로  임명했느니라." 광해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조를 이끌고 하삼도로 내려갔을 때, 그도 권준을 만난 적이 있었
다. 키가 작은 백면서생이었으나 제갈공명보다도  전술에 밝은 사내, 숨어 있는 이순신의 오
른팔이었다. "하오면 전라우수사 역시 이순신의 휘하 장수를 두셨사옵니까?" "전라우수사는 
임명하지 않았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옵니까?" 선조가 잠시 말을 끊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까닭을 정녕 모른단 말이냐?" "..."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순신에게 군권을 주는 마당에 전라우수사 자리를 비워둔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선조
의 입가에 잠시 미소가 머물렀다.
  그리고 신하들을 제압할 때 의도적으로 쓰는 말머리에 힘을 실으면서 문장과 문장 사이를 
끊는 어법으로 광해군을 깨우쳐주었다.  "임진년부터 지금까지 전라우수사는  이억기 단 한 
사람이었느니라. 왜 과인이 이억기를 육 년 동안이나 전라우수사에 두었는지 아는가? ...그것
은 이억기가 왕실의 친족이기 때문이니라. 전라도는 반역의 땅이다. 과인을 죽이고 이  나라
를 도둑질하고 싶은 놈들이 우글대는 그곳을 누구에게 함부로 맡길 수 있겠는가? 아직까지
도 이순신은 전라도의 민심을 휘어잡고 있다. 헌데 전라우수사까지 그의 수족에게 내어준다
면 반란을 일으키라고 부추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 자리는 최소한 이순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 장수를 임명해야 한다.  이억기가 살아 있다면 소리소문 없이  그 일을 훌륭히 
해주련만...세자! 가슴에 새겨두거라. 전라도를 살펴야 한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사림이나 
전라도에서 민심을 얻는 장수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죽이거나 멀리 내쳐야 한다. 결코 조정
에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아니되느니라. 명심, 또 명심하렷다."
  
    10.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정유년 10월 26일 새벽.   명량으로 나갔던 척후선 한 척이 빠르게 안편도로 들어오고 있
었다. 가는 비가 촉촉하게 바다를 덮었다.  겨울 바람이 간간이 파도를 몰아서 섬을  휘돌았
다. 이순신은 10월 11일부터 이곳 안편도에 머물렀다. 소금을 직접 생산, 관리하기 위해서였
다.  처음 며칠은 배에서 숙박을 했지만, 닷새 후부터는 아예 염간의 집으로 들어갔다. 강막
지는 대궐에서 사용하는 소금과 바다 생선 등을 공급하는  사재감의 사노였다. 그는 전라우
도에 있는 염자의 현항에 대해 누구보다도 소상히 알고 있었다. 나흘 동안, 강막지의 집에서 
소금 만드는 법을 살펴보고, 소금 생산에 필요한 인력을 가늠한 이순신은 곧 군관 김종려를 
불러 열세 곳의 염전 생산을 총감독하는 감자도감검으로 임명하였다. 이제 전라우도에서 생
산되는 소금은 모두 삼도수군통제사의 군령에 따라 쓰이게 되었다. 
  소금은 곧 돈이었다. 물물교환의 기준인  소금만 확보하고 있으면, 군량미는 물론  유황을 
구하는 것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군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물이 필요한데, 이순신은 그것을 소금으로부터 얻고자 했다. 물론 권준, 정사준 등과 오랫
동안 논의를 거듭한 끝에 얻은 결론이었다. 조정에서 유황과  무기를 공급해줄 리가 만무했
으므로, 삼도 수군이 직접 나서서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수군 중에서 부상을 입었거나 몸이 
약한 군사들을 추려서 소금밭을 일구게 했다. 염분이 많은  바닷가의 개흙이나 모래를 바닷
물에 거르는 작업은 군졸들이 맡았고, 그것을 다시 가마솥에 넣어 불을 때는 것은 강막지의 
지휘 아래 사재감의 솜씨 좋은 사노들이 담당했다. "아직도 슬픔에 잠겨 계실까요?" 척후선
의 이물에 선 이영남이 안편도를 바라보며 물었다. "쉽게 벗어나시지는 못할 것이오.  세 아
드님 중에서도 막내를 가장 아끼셨으니." 배흥립이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고,  이영남도 말없
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표정은 어둡고 침침했다. 안편도는  벌써 열흘째 눈물과 안타까움에 잠겨  있었다. 
지난 14일, 이순신의 막내아들 면이 왜적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는 비보가 충청도 아산으
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 활쏘기에 특출나고 마음이  넓고 담대해서 장차 훌륭
한 장수가 되리라고 누구나 칭찬하던 아들이었다. 장수의 험난한 길을 자식들에게 권하기를 
꺼렸던 이순신조차도 막내라면 한 번 믿고 맡길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피를 토하며 혼절
한 이순신은 이틀 동안 자리보전을 했고, 그 후에도 시름시름 앓으면서 눈물로 시간을 보냈
다. 황혼 무렵이나 새벽 어스름에 홀로 뜰에 안장 눈물을 훔치는 경우도 많아졌다. 자식으로
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지지 못했다는 
자책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허나 곧 기운을 되찾으시겠지. 지금으로선 다시  군선을 만들
어서 왜놈들과 맞서는 것만이 원혼을 달래는 길이 아니겠소? 누구보다고 통제사께서 망인의 
바람을 헤아리실 것이오.
  그나저나 해로통행첩을 만드는 일은 어찌  되고 있소?" "권수사와 정군관이  맡아서 하고 
있으니 곧 끝날 겝니다." 이순신은 염전을 일구는 것과 함께 해로통행첩을 만들도록 충청수
사 권준에게 지시했다. 간자를 색출하고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조치였다.  전
라우도를 통행하는 배들을 크기 별로 대선, 중선, 소선으로 나누어 곡물을 각각  부과하였는
데, 이는 삼도수군이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라도 지역의 상권까지 손
에 넣는 획기적인 방안이었다. "이제 그 누구도 통제사께 덤비지는 못할 것이오. 권도원수라 
해도 말이오. 허허허" 이영남도 따라 웃었으나  그의 미소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염전을 
일구고 해로통행첩을 발행함으로써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전
라도 해안의 모든 권력이 이순신에게 집중되었다. 세금을  거두고, 소금을 일구고, 군사들을 
직접 징발하는 것이, 아무리 도원수의 묵인과 조정의 승인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하
더라도 구설수에 오를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무군지죄를  범했던 장수가 월권을 일삼으며 
군사들을 키우고 있다는 식으로 소문나면 이순신은 결코 무사할 수 없다. 그저께 밤, 정사준
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요. 조방장의 말씀이 참으로 옳소. 허나 그렇다고 조정의 눈치나 살피며 웅크리고 있
을 순 없지요. 어차피 외길이니까요. 지금부터 조선 수군이 단 한번이라도 패하면, 그 날 곧
바로 통제사의 목이 달아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군선을 만들고 
무기들을 모아서 왜선을 격파하는 길뿐입니다. 다시 불패의 신화를 이어가는 것이지요. 모래
알고 산선을 쌓을 수는 없는 일, 통제사께서 전라도의 민심을 확실히 틀어쥘 필요가 있습니
다. 그걸 월권이라고 하면...그렇지요. 월권이겠지요. 허나 대승을 거두면 그런 사소한 잘못쯤
은 묻히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걸 트집잡아 통제사를 흔든다면, 우리도 생각을 다시 해야겠
지요." "생각을 다시 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치가 그렇다 이 말입니다." 경쾌선이 부
두에 닿았다. 배흥립이 앞장을 서고 이영남이 뒤이어 배에서 내렸다. 아직 새벽 어스름이 걷
히지 않았는데도 나대용이 횃불을 든  군졸들을 데리고 미리 마중을  나와 있었다. "추운데 
예까지 왜 나왔소이까?"
  나대용이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배조방장께 긴히 보여드릴  게 있어서 이렇게 왔습
니다." "내게? 허허 나군관이 내게  보여줄 것이 무엇이오?" 나대용이 오른손을  들자, 군사 
하나가 대나무로 엮은 새장을 들고 어둠 속에서 썩  나섰다. 배흥립과 이영남은 휘둥그레한 
눈으로 새장속을 들여다 보았다. 송골매 한 마리가 머리를  꼿꼿하게 들고 좌우를 두리번거
리고 있었다. 배흥립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이것은 김조방장의 매가 아니오?" 나대용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이놈이  방금 영내로 날아들었습니다. 이  무명천이 발목에 묶여 
있었지요." 배흥립이 황급히 무명천을 받아서 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
았다. 이영남이 벅찬 기분을 누르며 말했다. "아마도  붓을 구할 수 없었던가봅니다. 어쨌든 
김조방장이 살아 있는 것은 확실하지 않소이까?" "김완...이 육시할 놈아! 살아 있었구나. 암, 
네가 이 형님보다 먼저 죽어서는 아니되지. 허허헛 허허허헛!" 배흥립이 그 자리에 털썩 주
저앉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김완과 배흥립은 병오년 동갑내기로 수많은 나날을 전쟁터에서 지내며 술과 여자를  나눈 
사이였다. "김조방장이 어디에 있는 걸까요?" 이영남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나대요이 
겨울 바람에 꽁꽁언 양손을 비비며 답했다. "아직 정확히는 모릅니다. 아마도 경상도 어디쯤
이겠지요. 이렇게 송골매를 띄워보낸 걸  보면 머지않아 우릴 찾아올 겁니다.  기다려보십시
다." 배흥립이 자리를 털며 일어섰다. "통제사께서는 어떠시오?" "아침저녁으로 미열이 있지
만 기력을 많이 회복하셨소이다. 자, 가십시다. 권수사와 이수사께서도 와 계시다오." 나대용
이 강막지의 집으로 앞장을 섰다. 배흥립은 다시 한 번 새장속의 송골매를 노려본 후 그 뒤
를 따랐다. 새벽비가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어서들 오시오.  명량 쪽은 어떻던
가?" 해도를 펼쳐놓고 회의에 열중하던 이순신이 그들을 맞았다. 이틀전보다 통제사의 안색
이 한결 나아 보였기에, 이영남과 배흥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별다른 조짐은 없었습
니다. 다만 벽파진 근처에서 왜의 척후들이 사나흘에 한 번씩 왔다  간다고 합니다." "그래? 
수고들 했소.
  물러들 가서 쉬도록 하시오. 내일 아침부터는 군영을 옮길 준비를  서둘러주고." 배흥립이 
물었다. "어디로 가는지요?" "보화도라오. 우부사와 송군관이 먼저 그곳에 가 있소." "알겠습
니다." 배흥립과 이영남이 예를 갖춘 후 방문을 열고 나갔다. 고개를 돌렸던  권준과 이순신
이 다시 해도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니까 권수사는  보화도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고금도로 가자 이 말이오?" 이순신의 음성은 물기가  많이 베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끝이 
조금싹 떨렸다. 아직까지도 아들을 잃은 슬픔을 털어내지 못한 것이다. 권준이 차분하게  답
했다. "그렇습니다. 허나 서두를 필요는 없지요. 왜군들은  당분간 명량을 건널 엄두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 보화도에서 군선을 만들고 군사들을  훈련시켜 왜선과 맞설 힘
늘 키워야겠지요." 이순신이 물었다. "군선을 몇 척이나 만들 계획입니까?"  "석 달 정도 보
화도에서 지낸다고 보고, 전라우도의 배 만드는 장인들을 끌어모은다면, 최대한 서른 척  정
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순신이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렇게나 많은 배를 그 짧은 시간에 다 만든다 이 
말씀이십니까?" 권준이 빙긋 웃어 보였다. "지금부터 준비한다면 열 척도 채 만들지 못하겠
지요. 허나 지난 초봄부터 쭉 장인들을 살피고 소나무들을  벌목해두었으니 석 달이면 충분
할 것입니다."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는 그렇게 만든다고치고 군량미는 어떻게 마련
해야겠소?" 권준이 머뭇거리지 않고 답했다. "강제로  백성들에게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이
지요. 그 동안 저와 정군관이 모아두었던  곡물도 이제 바닥이 난 상태입니다. 그러나  과히 
크게 염려하실 일은 아니지요. 해로통행첩을 발행하여 남김없이 곡물들을 거둔다면 곧 만여 
석 정도는 쉽게 모일 겁니다." "만여 석?  그렇게나 많이 거둬들일 수 있단 말이오?" "지금 
조선 팔도의 장사치들이 모두 전라도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전라도가  조선 팔도를 먹여 살
리는 형국이지요. 왜군들이 남원성을 함락시키고 전라도 내륙 깊숙이 들어와 있으니 안전하
게 장사를 할 수 있는 길은 뱃길뿐입니다.
  조선 수군이 확실하게 장사치들의 배를 해적이나  왜군으로부터 보호해주기만 한다면, 그
들은 자진해서 더 많은 곡물을 바칠 겁니다.  헌데 장군! 해로통행첩을 통해 거둬들인 곡물
의 수량을 조정에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순신과  권준의 시선이 마주쳤다. 권준의 말
을 겉으로만 들으면 곡물의 양을 조정에 알리자는 것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곡물의 양
을 곧이곧대로 알릴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순신도 그 마음을  눈치채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 석이 넘는 군량미를  확보했다고 보고하면, 조정에서는 반란의 조짐이라며  당장 
그의 목을 베려 할 것이다.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겠지! "권수가가 알아서 해주오." "알겠습
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순신이 긴 수염을 쓸면서 정적을 깼다. "경기도까지 올라갔던 
왜군이 왜 다시 하삼도로 후퇴했을까요?" 이순신은  지휘봉으로 직산을 짚었다. "서애 대감
의 서찰에 따르자면, 조정에서는 이곳  직산에서 명군이 왜군을 격퇴했기 때문이라고  하오. 
직산대첩이라고 부른다는군."
  이순신이 코웃음을 쳤다. "그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이신지요? 직산에서 죽은 왜군은 서
른명도 채 넘지 않소이다. 더구나 명나라 기병은 삼백 명이나 목숨을 잃었는데, 그것이 어찌 
대첩일 수 있겠습니까? 명량에서 우리가 거둔 대승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상도 내려주지 않
았으면서 직산대첩이라니, 대체 조정 대신들은 무엇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모두 눈이 먼 
송장들이오이까?"  권준이 그를 다독거렸다. "진정하세요. 지금은 오히려 직산대첩이니 뭐니 
하며 조정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리는 편이 더 낫습니다. 괜히  삼도 수군에 순무사라도 
파견해보십시오. 얼마나 골치가 아프겠습니까? 조금  입맛이 쓰긴 하지만 이대로가  좋아요. 
이수사! 이제 우리가 받을 상이 뭐가 더 있겠소이까? 통제사를  모시고 삼도 수군의 영광을 
재현하는 일에만 진력하십시다. 
  재물이 필요하다면 내 재물을 드리리다." 이순신이 이내 사과를 했으나 화가 완전히 풀리
지는 않은 듯했다. "미안하오. 소장이 너무 흥분했던 것 같소이다. 허나 언제가지 이렇게 당
하고만 지내야 하는지 모르겠소이다. 전쟁을 시작한 지도 어언  칠 년이 넘어가는데 조정의 
대신들은 하나같이 변한 게  없으니, 답답해서 하는 소리오이다."  권준이 웃으며 말했다. " 
허허허허, 이 몸도 문신 출신이에요. 문신이란게 원래 앞뒤가 콱막힌 책상물림들이지  않소? 
세상물정 모르는 족속들이지요. 이수사같이 뛰어난 장수가 넓은  도량으로 헤아리세요." "권
수사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오히려 소장이 부끄럽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르  듣고 있
던 이순신이 천천히 해도를 접었다. 그쯤에서 회의를 끝낼 심산이었다. 권준이 이순신과  함
께 하직 인사를 했다. "장군! 그럼 소장들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수고들 
많으셨소." 두 사람이 나간 걸 확인한 이순신은 잠시 요를 깔고 몸을 뉘었다. 뒷머리가 다시 
지끈지끈 아파왔다. 부하들에게 감정을  숨기느라 지나치게 눈물을 삼켰던  탓일까? 충혈된 
두 눈을 가볍게 비비던 그는 불현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리고 쌓아놓은 서책 뒤에서 국화
주 한 병을 꺼냈다. 명량해전의 승리를 기념해서 권율이 보내준 술이었다. 술병을 거꾸로 들
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면아!" 술병을 내동댕이치며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하염없
이 흐러내렸다. 막내의 죽음이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았다. 하늘이여!  정녕  막내가 이 세상
을 떠난 것입니까? 그애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제 겨우 스물을 넘긴 애를  데려가셨나요. 
차라리 늙고 병든 이 몸을 데려가실 일이지. 아직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때이른 
죽음을 주시다니요...아, 아닙니다. 이 모두가 저의 잘못입니다. 가족도 군대로 나라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저의 불찰입니다. 그애는 저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저를 대신해서 죽은 것입니
다...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제  심장이 터지고, 
제 두 눈이 뽑히고, 제 혀가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막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
습니까.  이마를 벽에 쿵쿵 찧었다.  부질없는 이 모든 바람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되돌
아보는 헛된 욕망들, 아쉬움들!  그렇지만 이토록 사무치는 그리움을  어찌할거나, 어찌할거
나. 얼굴을 이불에 파묻고 울었다. 울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안으로 안으로 슬픔을 삼켰다. 
이마에 상처가 났는지 피가 흘렀다.
   그러나 그는 피가 흐르는지조차 모른는 듯했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낯익은 목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막내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면아!" 버선발로  마당까지 내달았
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새벽에 내린 보슬비로 추적추적해진 땅바닥에서 사늘한 
냉기가 올라왔다. 두 무릎에서 힘이 쭉 빠졌고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강막
지의 집을 나온 권준과 이순신은 판옥선을 정박시킨 부두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나와 언덕 
위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니, 이순신이 마당에  멍하니 서 있었다. 이순신이 장창을  오른손에 
곧게 든 채 입을 열었다. "아직도 마음이 불편하신가봅니다. 어젯밤에도  꿈속에서 막내아드
님을 만나셨다지요?" 권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삶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한 분이 아니십
니까. 적어도한 달은 망인의 손을 놓지 못하실  겝니다. 이수사!" "예" "내가 이수사께 긴히 
충고할 것이 있어요. 불쾌하게 듣진 마시구려." "가르침을 주십시오." 이순신의 얼굴이 딱딱
하게 굳었다. 권준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
닙니다. 
  다만 통제사 앞에서는 왕실과 조정에 대한 비판을 삼가주시오." "비판을  삼가라. 이 말씀
이십니까?" "그렇소. 직산과 명량을 비교해보면, 누구나 우리 수군이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
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통제사께서도 손바닥 보듯이  그 사정을 아시지요. 모르긴 해도, 
통제사께서 가장 분노하고 계실 것입니다. 헌데 자꾸 이수사가  곁에서 울분을 토로하면 마
른 볏단에 횃불을 던지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내 말뜻 아시겠소이까?" 이순신이 순순히 고
개를 끄덕였다. "권수사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겠소이다. 허나 부당한 것은 부당한  것이 
아닐는지요? 조정의 잘잘못을 이야기하고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 통제사와 권수사 외에 또 
누가 있겠소이까?" "통제사께서 흔들리시면 조선 수군은  제자리를 찾지 못합니다. 올한 해
는 통제사께 불행이 두 겹 세 겹으로 겹친 해가 아닙니까?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의금옥에 갇혔고,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또한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들을 잃었
소이다. 그 심정을 헤아려보세요. 언제 통제사의 몸과 마음이 흐트러질지 모를 일입니다. 미
리미리 방비를 해야겠지요. 
  통제사의 어깨에 또다른 짐을 지워서는  아니된다 이 말씀입니다. 조정을 자꾸  비판하면, 
통제사께서는 틀림없이 조정과 삼도 수군의 불화를 염려하실 터이고, 더 나아가 주상전하의 
불신 때문에 괴로워하실 겝니다. 우리가  그 일을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통제사께서는 이미 
조정과 왕실의 곱지 못한 시선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고심하고 계시지요. 지금 이수사
와 내가 해야 할 일은  되도록 통제사의 마음을 편히 해드리는  겁니다. 보화도에 통제영이 
만들어지면 사소한 일들은 우리가 나누어 처리하도록 하십시다."  "알겠소이다. 권수사의 뜻
에 따르지요." 권준이 흡족하게 웃으며 이순신의 장차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지나가
는 말투로 사족을 달았다. "그리고 나는 곧 충청수사에서 물러날까 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순신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나같은 문관에게 정삼품 수군절도사가 가당
키나 합니까? 이 자리는 마땅히 용맹한 장수에게  돌아가야지요." 이순신은 눈에 힘들 가득 
실은 채 권준의 얼굴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권준이 양어깨를 으쓱하며 나지막하게 본심
을 털어놓았다. 
  "앞으로 궂은일이 많이 닥칠 겝니다. 수사 자리에 연연해서는 그 일을 다 감당할 수 없지
요. 통제영의 살림은 옛날부터 정사준과  내가 도맡아왔으니, 앞으로도 내가 계속  책임지는 
것이 좋을 성싶소." "아닙니다. 이번에는 소장이 그 일을 맡지요." 권준이 어림도 없는 소리
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수사의 장창을 그런 일에 썩혀서야 되겠소?  사실 나는 칼 잘 쓰는 
왜군과 맞닥뜨리면 죽음을 면키 어려워요. 이수사는 통제영이 있던 한산도를 되찾을 궁리나 
하세요. 통제영의 잡일은 내가 다 알아서 하리다."    무술년 3월 20일  오후.  전라도 예교
를 떠난 왜의 쾌선 한 척이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남해도를 왼쪽으로 끼고 내려갔다. 여수
를 지나 방답을 통과한 배는  사도와 발포를 지나 계속 서쪽으로  나아갔다. 간혹 왜선들이 
뱃길을 막고 행로를 물었지만 그때마다 이물에 서 있던 왜인이 장검을 높이 들자 왜의 척후
들은 꽁지 빠진 생쥐처럼 물러났다. 절이도를 끼고 한참을 가니 회령포 앞바다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조선 수군의 통제영이 있는  고금도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회령포로 
접어들면서 쾌선은 돛대에 흰 깃발을 내걸었다. 
  전투를 벌일 의사가 없음을 알리는 표식이었다. 왜의 쾌선을 조선 수군의 척후선 두 척이 
주위를 살피며 빠르게 접근해왔다. 서로 얼굴을 확인하고 대화를  나눌 만큼 거리가 가까워
지자, 이물에 서 있던 왜인이 장검을 높이 들며 소리쳤다. "반갑소, 소서행장 장군의 서찰을 
가지고 왔소이다." 완벽하게 한국말을 구사하는 왜인은 이순신을 함정에 빠뜨렸던 소서행장
의 심복 요시라였다.  먼저 소서행장의 서찰이 고금도의 이순신에게 전해진 후, 요시라 일행
은 쾌선과 함께 고금도로 이송되었다. 요시라는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한 것처럼 불편한 대우
를 묵묵히 참아냈다. 그는 통제사 앞에 가서 모든 것을 말하겠다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일행 
중에는 조선인 사내 십여 명과 노란 저고리에 분홍 치마를 곱게 차려 입은 조선 여자도  끼
여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보화도에서 겨울을 난 조선 수군은 2월 18일 고금도로 통제영
을 옮겼다. 낙안과 흥양 등을 마음대로 활개치며 돌아 다니는 왜군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겨울을 보내는 동안 판옥선이 서른 척이나 만들어졌고, 군사와  무기들도 해전을 치를 만큼 
충분히 확보되었다. 
  그 동안 전라우수사 김억추를 대신해서 거제현령  안위가 전아우수사로 승진하였고, 충청
수사인 권준의 후임으로 오응태가 임명되었다. 이순신은  충청수사를 가화도 근처로 배치하
여 후방을 지키게 하고, 이순신과 안위를 거느린 채 고금도에 머물렀다. 권준은 정사준과 함
께 통제영의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느라 벼슬을 할 때보다 더욱  바빠졌다. 겨울 동안 왜군의 
사정은 매우 악화되었다. 울산으로 밀어닥친 조명연합군을  가등청정의 군대가 막아낸 것은 
다행이었으나,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군사들이 떼로 목숨을 잃었다. 한양으로 진군하라는 풍
신수길의 독촉이 거의 매일 날아들었으나 경상도와 전라도로 후퇴한 왜군은 다시 올라갈 엄
두를 내지 못했다. 명군이 속속 압록강을 넘어 왔고 왜군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
러나 선뜻 배를 타고 귀국할 수도 없었다.  풍신수길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  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할복과 멸문뿐이었다. 예교에 성을 쌓고 구축한 소서행장으로서는 고
금도의 이순신 여간 신경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
  보화도에 조선 수군이 물러나 있을 때만 해도, 남해바다는 온통 왜선의 독무대였다.  배가 
고프면 마음 내키는 곳에 상륙해서 노략질을 하면 그만이었다. 가등청정의 군사들이 굶주리
는 데 비해, 소서행장의 군사들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그런데 이순신의 수군이 고
금도로 나오자마자 상황이 순식간에 악화되었다. 조선  수군은 대담하게도 사도나 방답까지 
진출하여 왜선들을 심심찮게 격파하기 시작했다. 만약 고금도의 조선 수군이 여수를 점령하
고 예교까지 들이닥친다면 그야말로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소서행장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순신의 동진을 막고 싶었으나 방책이 없었다. 그때 나선  이가 바로 소서행장의 사위이자 
대마도 도주인 종의지의 휘하 장수  요시라였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우선 뇌물을 써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서로 오가며 대화를 나누면 허점을 찾을 수 있겠지요." "이순신이 우리가 주는 물건을 받
을까? 풍문으로 듣기에 이순신은 청렴결백하다던데." 요시라가  툭 튀어나온 윗니를 드러내 
보이며 히죽거렸다. "히히힛, 그건 어떤 선물을  보내느냐에 달렸지요." 곁에 있던 종의지가 
요시라를 거들었다. "박초희를 기억하십니까? 세스페데스 신부와 함께 귀국한 조선 여자 말
입니다." "알고 있다." 소서행장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천주교 신도들을 거론해서 득
이 될 것이 없었다. 요시라가 다시 히죽거렸다. "그녀를 선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녀가 이
순신의 여자였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소서행장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니된다. 그녀는 
이미 대마도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녀를 고금도로 보내면 죽음을 면치 못해. 허락
할 수 없다." 종의지가 굳은 얼굴로 간청했다. "장인어른!  우리는 이미 그녀를 임진년 전쟁
이 터지기 전에 사화동과 함께  조선에 보낸 바 있습니다. 우리가  그녀를 대마도로 데려간 
사실을 조선 조정에서 알면 또다시 큰 문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순신에게 우리의 호의를 
표시하는 데는 박초희만큼 합당한 선물이 없습니다. 그녀도 말은 안 했지만 왜인들 틈에 섞
여 사는 것보다 어머니의 나라 조선에서 사는 것을 원하고  있을 겁니다. 조선의 속언에 피
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장인어른! 박초희를 이용해서 훗날을 도모하시지요. 그녀는 보내는 것이 곧 우리 군사 만 
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소서행장이 종의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꼭...그래야겠느
냐?" 종의지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예, 장인어른!"  소서행장은승낙의 뜻으로 눈을 질끈 감
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시라는 쾌선을 타고 한달음에 대마도로 건너갔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대마도를 떠나 왜국의 본토로 떠나간지 오래였다. 종의지의  집에 머물며 아비 잃은 
자녀들을 돌보던 박초희에게 요시라가 나타났다. 그녀는  요시라의 히죽거리는 웃음을 보는 
순간, 또다른 불행을 직감했다. 요시라는 박초희를 태우고  예교로 돌아왔다. 박초희는 순순
히 요시라의 명령에 따랐다. 반항해봤자 이미 내린 결정을 뒤엎을 수 없는 것이다. 예교까지 
오는 동안 그녀는 갑판 아래  좁은 방에서 기도를 드렸다. 세스페데스  신부를 따라 왜국의 
본토로 옮겨가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다.  허나 모든 것이  천주의 뜻이라면, 천주여! 
뜻대로 쓰시옵소서.
  예교에서 하룻밤을 묶는 동안에도 그녀는 배에 그대로 갇혀  있었다. 간간이 조선말로 웅
성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그녀는 엎드린 채 기도에 열중했다. 동이 틀 즈음 인기척이 
났다. 헛기침을 두어번 뱉은 사내는 문을 빠끔히 열고 곱게  접은 노란 저고리와 분홍 치마
를 놓았다. 어둠이 짙어 사내의 얼굴을 구별할 수 없었다.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선 사내의 낮
고 굵은 음성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마리아! 천주의  높고 높으신 뜻을 어찌 우리가 알 수 
있겠소. 그대가 조선으로 다시 온 것은  이 전쟁에서 피를 조금이나마 덜 흘리기  위함이오. 
천주께선 일찍이 우리에게 평화를 가르치셨소. 이제 칠 년동안 계속된 이 전쟁도 끝마칠 때
가 되었소이다. 그대가 먼저 가서 그대의 동포들에게 천주의 뜻을 가르쳐주오. 나도  이곳에
서 그대를 위해 기도하리다. 나는 하루속히 이 부도덕한 전쟁을 끝내고 싶소. 그대가 이순신
에게 내 뜻을 전해주오."
  아침 일찍 예교를 출발한 쾌선은 순풍을 등에 업고 서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애초에 목적
했던 회령포 앞바다에 다다랐다. 이순신은  요시라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쾌선에 
그대로 머물도록 군령을 내렸다. 쾌선은 조선 수군의 척후선에  삼중사중 포위된 채 고금도 
앞바다에 떠 있었다. 다시 한 번 몸수색을 당한 요시라는 눈을 가리우고 두 손을 뒤로 묶인 
채 이순신이 머물고 있던 군막으로 끌려들어갔다. "풀어주어라!" 눈을 가린 검은  천이 풀렸
다. 잠시 눈앞이 흐릿했으나 차츰 시력이  돌아왔다. 이순신이 상석에 앉고 그 옆에  권준이 
서 있었다. 요시라가 넙죽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다. "오늘에야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
을 뵙사옵니다." 이순신은 요시라가 절을 하고  엉거주춤 일어설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곁에 있던 권준이 물었다.
  "그대가 요시라인가? 김응남 대감께 거짓  정보를 흘려 조선 조정을 미혹케  하고, 또 이 
통제사께 누명을 씌운 그 요시라가 맞는가?" 요시라가 무릎을 꿇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오
해이십니다. 소인은 다만 조선과 왜, 두 나라가 싸우지 않고 서로 화친을 맺기를 바라는  마
음에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었던 것이옵니다.  통제사 어른 해칠 마음은 전혀  없었사옵니다. 
믿어주십시오." 이순신이 짧게 말했다. "소서행장의 서찰을 읽었다. 철천지원수와 어찌 평화
를 노할 수 있겠는가? 오직 싸워서 죽일 따름이다." 요시라가 머리를 바닥에 대고 간청했다. 
"통제사 어른! 소서 장군께서는 평화를 원하고 계시옵니다. 그래서 친필서한과 함께 장군의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온 가보인 장검을 선물하신 것이구요. 또한 소서 장군께서는 칠천량에
서 사로잡은 조선수군 십여 명을 특별히 풀어주셨습니다. 이만하면 함께 평화를 논할 수 있
지 않겠습니까?" "닥쳐라. 이놈! 제 집에 들어온  도적떼와 평화를 논하는 주인은 없느니라. 
썩 돌아가거라." 요시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또한 소서장군께서는 박초희라는 조선 여
자를 보내셨사옵니다..." 
  이순신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됐어! 요시라는 이순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권준이 요시라를 다그쳤다.  "네놈들이 잡아간 조선인이 어디  한둘이라더
냐? 그들은 모두 돌려보내고 사죄해도  그 죄를 씻을 수  없거늘 어디서 생색을 내는  것인
가?" 권준 역시 요시라를 힐책하면서도 이순신의 표정을 힐끔힐끔 살폈다. 이순신이 자리에
서 일어서며 짧게 명령했다.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고금도 앞바다에서 지내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돌아가라. 또한 일방적으로 조선인  포로들을 받을 수는 없다. 우리가 잡은  왜군 
포로 열한 명을 내어주마. 그리고 다시는 이런 식으로 나를 찾지 말라. 다음에 만났을  때는 
무조건 참하겠다. 알겠느냐?" "예, 장군!" 쩔쩔매는 시늉을 하며 대답을 마친 요시라의 얼굴
엔 음흉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순신이 일단 박초희르 받기로 한 것이다. 요시라가  끌려나
간 후, 권준이 작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를 만나면 아니되옵니다. 돌려보내야 합
니다." 
  이순신이 권준의 시선을 외면하며 중얼거렸다. "내가 알아서 하리다. 내  품에 날아들었던 
병든 새라오. 권수사! 내가 알아서 하리다. 내게 맡겨주오." 이순신은 그녀를 만나기로 마음
을 굳힌 것이다. 권준은 다시 한 번 이 일의 부당함을 말했다. "조정에서 아는  날이면 끝장
이오이다. 이것은 소서행장의 파놓은 함정이예요.  장군! 그녀를 돌려보내셔야 합니다. 아니
면 그녀를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녀를 죽이겠다는 뜻이다. 이순신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되오. 그녀는 누구보다도 더 전쟁으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사람이라오. 내가  알아서 하
리다. 권수사는 모른 척하시오. 부탁이오." 이순신은 권준을  내보내고 급히 날발을 불러 귓
속말로 속삭였다. 날발은 눈에 힘을 잔뜩 준 채 이순신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밤하늘은  칠
흙 같은 어둠 그 자체였다. 간간이 뱃전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가 적막을 깼다. 조금  전까지
만 해도 다시 예교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접한 왜군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갑판을 흔들
어댔다. 그러나 곧 침묵이 찾아들었고, 며칠간의 피곤한 항해에 지친 그들도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묘시가 가사 넘은 시각. 포작선 한 척이 어둠 속을 달려 왜의 쾌선에 접근했다.  쾌선에서 
왜군들을 지키고 있던 초군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소리쳤다. "누구냐?" "통제사의 군령을 
가지고 왔소이다" 날발이 뿔피리를 흔들며 말했다. 출정할 때 항상 울려나오는 송희립의 북
과 날발의 뿔피리를 모르는 군사는 없었다. "올라오시우." 날발은 나는 듯이 갑판 위로 올라
섰다. "조선인 포로 열한 명을 군영으로 데려오라 하시오. 직접 문초를 하시려는가보오." 밤
새 보초를 선 군사가 길게 하품을 해댔다. "아니, 통제사께선 잠도 없으시우? 이  새벽에 그
들을 만나시겠다니, 해가 뜬 후에 찾아도 늦지 않을 일을." 날발이 웃으며 대답했다. "한 사
람씩 몸수색을 한 연후에 배에 태우시오. 혹 통제사 앞에서 망측한 짓을 할 수도 있으니 꼼
꼼하게 천천히 살피도록 하시오. 간자가 섞였을지도 모르니, 눈을 모두 천으로 가리시오. 헌
데 포로들 중에는 여자도 있다고 들었소만..." "갑판을 내려가서  이물 쪽으로 가 보시구랴." 
군사들은 포로로 잡혀갔던 조선인들을 깨워 일렬로 세웠다. 그리고 몸수색을 한다는 구실로 
발가벗겨 샅샅이 조사를 한 후 차례차례 포작선에 태웠다. 날발은 어둠 속을 더듬으며 이물 
쪽 골방으로 갔다.
  삐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잠들어 있던 박초희가 화들짝  놀
라며 몸을 움츠렸다. 날발이 발소리를 죽이며 박초희에게 다가갔다.  "아씨, 소인입니다." 박
초희는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순신 곁에서 분신처럼 움직이는, 정읍에서 죽을  뻔
한 그녀를 들여업고 수십 리  길을 달렸던 날발이었다. 날발은 가져온  옷을 재빨리 내밀고 
뒤돌아섰다. 스삭스삭. 어둠 속에서 박초희의 옷 갈아입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날발
은 남장을 마친 박초희를 황급히 포작선으로 이끌었다. 배는  어둠속으로 천천히 모습을 감
추었다. 포작선이 부두에 닿기 직전 날발은 박초희와 함께 협선으로 옮겨탔다. 포작선이  시
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날발은 박초희를 갑판 아래 숨김 채 항로를 오른쪽으로 꺾었
다. "잠시만 참으십시오." 박초희는 눈을  감고 다시 기도를 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천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나요? 바다보다도 더 넓은 사랑을  주신 그분과 다시 만
나다니...아, 이것은 꿈인가요?
   끝없이 끝없이 암흑으로 곤두박칠치던 제게 빛을  주시는 건가요? 그분을 다시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그분의 빛나는 눈, 오뚝한 코, 넓은 가슴에 안길 수만 있다면 어떤 고통이 와
도 감내하겠다던 제 기도에 내리신  답인가요? 천주님! 아, 벅찬  기쁨과 함께 밀려드는 이 
무시무시한 울음은 누구의 것인지요? 저의 지나친 바람으로 인해 누군가가 또 죽게되는 것
은 아닌가요? 천주님!  그러나 오늘은 그분과  저의 해후만을  생각하겠어요. 용서해주세요. 
아, 그분의 사랑이 저를 숨쉬기 힘들게 해요.  천주님! 제게 힘을 주세요. 그분의 상처를 씻
을 수 있도록 제게 힘을 주세요. 천주님의 능력을 제 손과 눈동자와 입술에 내려주세요.  고
금도의 통제영을 끼고 돈 협선은  가리포 근처 암초가 삐죽삐죽 나와  있는 해안에 닿았다. 
날발은 협선을 어렵사리 바위에 묶고 박초희에게 등을  내보이며 웅크리고 앉았다. "업히세
요. 기다리고 계십니다." 
  박초희는 얼굴을 붉히며 마지못해 날발의 목을 양팔로 감았다.  날발은 가볍게 이 바위에
서 저 바위로 건너뛴 후 가파른 숲으로 들어섰다. 길도  없고 소나무만 빽빽하게 들어찬 숲
을 용케도 헤치며 뛰어올랐다. 한참을 뛰어오르니 자그마한 암자가 나왔다. 몇 년 동안 인적
이 끊겼던지, 잡초만 가득하고 마루가  썩어서 내려앉은 집이었다. 날발이 재빨리  마당으로 
들어선 후 조심스럽게 그녀를 내려놓았다. 덜컥, 방문이 열렸다. 융복을 입은 이순신이 성큼
성큼 마당으로 내려섰다. 짙은 눈썹, 날카로운  콧날, 깡마른 볼, 예전보다 더욱  야위었지만 
그녀의 사랑이 분명했다.
  "아아!" 그녀는 이마를 짚으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순신이 황급히  다가와 그녀
를 품에 안았다. "괜찮소?"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시는 당신을 잃지 않겠
소? 당신이 있을 곳은 바로 여기, 나의  품안이라오. 알겠소?"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이마 
위로 툭 떨어졌다. "장...군!" 그녀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풀피리처럼 떨렸다. 그녀는  번쩍 안
아든 이순신은 섬돌을 지나 마루를 건너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찬바람이 등뒤에서 그들을 
떼밀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뒤를 힐끗 쳐다보았다. 쌍칼을 뽑아든 날발은 이미 숲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11. 내부의 적 
  무술년 4월 15일 밤. 전쟁은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왜군은 부산을 중심으로  경
상좌도에 진을 친 후 겨울잠 자는 곰처럼 웅크렸고, 조명  연합군도 감히 전면전을 벌인 엄
두를 내지 못했다.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 몇몇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졌지만, 쌍방 
모두 사상자가 열 명을 넘지 않는 지극히 미미한  싸움이었다. 장기전에 돌압하던 계사년의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당장 부산으로 진격하라는 어명 고금도로 날아들었고,  장수들은 
되풀이하는 역사의 아리러니에 혀를 찼으며, 이순신은  한산도를 탈환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변명하는 장계를 올리기에 바빴다.  조정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그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전쟁이 소강상태로 질질 끈 근본적인 책임이 명나라와  왜의 강화 회담을 방조한 
영의정 유성룡과 이덕형 이하 남인들에게 있다는 상소가 줄을  이었다. 유지할 방안을 찾던 
유성룡으로서는 최대의 고비가 아닐 수 없었다.
  계사년부터 밀어붙였다면 왜군을 벌써 물리쳤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지금이라도 
좀더 강력하게 왜군과 맞설 수 있는 조정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순신이 
문안 서찰을 올릴 때마다 유성룡은 아무 염려 말고 군무에만 힘쓰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내
일 곧 죽어도 불편한 소리를 할 유성룡이 아니었다. 이순신은 행간을 읽으며 유성룡의 눈물
과 한숨을 찾아냈다.  ...나 때문에 여해까지 다칠까 걱정이야. 이젠 내게 글 보내는 것도 줄
이고, 한양 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말게. 설령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자네는 자네의 소
임만 다해야 할 것이야. 생각해보니 물러날 때도 되었지. 내 나이 벌써 쉰일곱이네. 이제 고
향으로 돌아가 책이나 벗하고 싶네.  퇴계 스승님도 늘그러셨지. 쉰다섯만 넘으면  물러나야 
한다고 말일세. 남은 일들은 한음에게 맡기려 해. 이제  한음도 정승의 반열에 올랐으니, 자
네를 힘껏 도울 수 있을 걸세.  
 ...여해! 전쟁이란 참으로 인륜을 더럽히는 것 같으이.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아비를 
팔아넘기며, 군왕이 신하를 의심하고 신하가 군왕의 덕을 바로 보지 못하는 세상이  아닌가. 
돌이켜보면 나 역시 올곧게 살아온 것만은 아닌 것 같네. 많은 이들을 속였고, 많은  이들을 
궁지에 내몰았지. 결단코 나 자신을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니라도 말일세. 죄가 있다면  벌을 
받아야겠지. 다만, 안타까운 건 죄인지도 모르고 죄를 짓고 말았다는 것이야. 누구를 탓해서
는 안 될 일. 우리 모두를 죄인으로 만든 것은 바로 이 전쟁이야.    ...없는 길로는 가지 말
라고 퇴계 스승님께서 늘 말씀하셨다네. 이미 곧게 뻗은 길로만  다녀도 이 세상 이치를 다 
깨닫지 못한다고 말일세. 출사한 뒤로 늘 스승의 크고 긴 그림자만 쫓은 것 같아. 나는 지금 
참으로 보잘것없는 내 삶의 그림자를 보고 있다네. 남아 있는  나날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중이야. 자네와 함께 한산도 앞바다에서  노닐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고 있다네.  전쟁이 
끝나면 우리 홀가분한 마음으로 뱃놀이나 다니세. 나는 곧 또다시 사직차자를 올릴  것이야.  
  유성룡의 글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이번에 올릴 사직의 차는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는 느
낌이었다. 고금도에서의 생활은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조선 수군은 이제 예교를  완
전히 포위할 정도로 강해졌다. 경상우수사  이순신이 판옥선 이십여 척을  이끌고 방답이나 
여수 근처까지 진출하였으며, 결정적인 시기가 오면 남해도를 둘러싸고 방답과 사천을 외해
로 잇는 거대한 포위망을 구축할 수도 있었다. 여수와 노량이  왜군을 전멸시킬 수 있는 최
적의 장소로 지목되었다. 고금도의 내부살림은 권준과 정사준이 도맡아 했다. 이순신이 챙기
겨고 하면, 권준이 나서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등을 떼밀었다. 한
산도에서의 전성기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장졸들은 자신감이 넘쳤고, 새로 만든  판옥선도 
예전보다 더 크고 단단했다. 불패의 신화를 이어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진용이었다. 이순신은 
종종 고금도를 떠나 후방의 섬들을  살폈다. 완도와 안편도를 자주 방문하여,  해로통행첩을 
통해 벌어들인 곡물과 매달 생산되는 소금의 양을 확인했다. 막대한 재물이 쏟아져들어오고 
있었다. 
  이순신은 번거로운 일들을 꼼꼼히 살핀 후, 날발만 거느리고 잠적하기를 즐겼다. 수행군관
들이 볼멘 소리를 하면 민심을 살피기 위해서라고 둘러댔다.  그의 잠적은 백성을 보살피려
는 통제사의 따뜻한 마음으로 부풀려 해석되곤 했다. 오직  권준만이 날발을 불러 통제사를 
각별히 모시라고 신신당부할 따름이었다.  암자 위로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평복에 벙
거지를 쓴 이순신과 날발은 발소리를 죽이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안편도를 살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박초희가 이곳에 머문 후 다섯 번째 방문이었다. 그는 조용히 마루에 올라서서 문
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무릎을 꿇고 묵주를 손에 맞잡은  초희가 고개를 반쯤 치켜들
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참으로 티없이 맑고 깨끗한 얼굴이었다.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사
랑의 불길이 확 피어올랐다. 그 불꽃의 흔들림을 느낀 초희가 고개를 돌렸다. "안심하오. 나
요." 이순신이 벙거지를 벗으며 방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고개
를 숙였다. 
  "적적하지 않소? 사람의 그림자라곤 구경도 할 수 없는 이곳에 당신을 홀로 남겨두는  것
이 늘 가슴 아프오. 나와 함께 고금도로  갑시다." "소녀는 조금도 힘들지 않아요. 천주님께
서 늘 함께하시는걸요. 장군을 보살펴달라고 매일매일 기도한답니다." 이순신의 얼굴이 딱딱
하게 굳었다. "천주...? 당신이  믿는다는 양의 신 말이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면 
천주는 이번 전쟁에 아무런 관심도  없겠군. 이건 조선과 왜의  전쟁이니까." "천주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셔요. 특히 전쟁으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에게 평
안과 위로를 주시지요." 이순신은 말머리를 돌렸다. "어쨌든 그 신이  당신에게 평안과 위로
를 준다니 다행이오. 하지만 너무 천주만 찾지는 마시오. 내 앞에서는 나만 생각하오. 내 몸
과 마음만 보시오." 이순신이 그녀의  팔을 끌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그의 팔에 안겼다. 
그는 천천히 그녀의 작은 입술을 손으로 더듬었고, 불그레한 볼과 반짝이는 눈, 오뚝한 콧날
을 차례차례 어루만졌다.
  그녀는 예수를 잉태한 성처녀 마리아를 생각했다. 마리아는 그녀의 세레명이기도 했다. 갑
자기 이 남자를 닮은,  따뜻하고 세심하고 강한 사내아이를  낳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하
오?" 그녀의 목덜미에 입맞추던 그가 물었다. "아니에요." "아무 생각도 마오. 피비린내 나는 
과거는 모두 잊어요. 이제 당신곁에 내가  있소. 이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당신을  지키리
다." 이순신은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몸은 만개한 수천 송이의 꽃봉오리였
다. 그가 입맞추는 곳, 쓰다듬고 핥는 곳마다 향긋한  꽃내음이 불어왔다. 그녀는 손을 들어 
그의 거칠고 차가운 얼굴을 매만졌다.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근
근이 삶을 이어온 훈장이었다. 그녀는 그  흉터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찾아 그것을 치유하는 의원이었다. 그들은 흉터를 하나씩  찾아낼 때마다 동시에 몸
을 떨었다.
   추악한 사건들이 기억날 때면 눈물을 흘리며 상대를 와락 끌어안기도 했다.결코 등을 돌
리거나 피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흉터가 볼품없고 흉물스러워도 그들은 기꺼이 상대의 아픔
을 보듬었다. 한 차례 사랑이 끝난 다음, 이순신이 그녀를 품에 꼭 안은 채 속삭였다. "당신
과 나는 닮았소. 나는 당신이 꼭 내 어머니, 내 누이, 아니 꼭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드오.  당
신과 함께라면 새로운 날들을 준비할 자신이 있소." 그녀가 그이 가슴을 엄지손가락으로 빙
빙 돌려대며 말했다.  "모든 것이 천주님의 뜻이랍니다. 방금 우리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
럼,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데 평생을  바치고 싶어요. 가난하고 병들고 몸과 마음을  다친 
이들을 돌보고 싶어요. 자식을 죽인 부끄러운 어미의 잘못을 속죄하고  싶어요." "당신은 죄
를 짓지 않았소. 죄는 전쟁을 일으킨 자들에게 있는 것이오. 당신의 신도 당신의 죄  없음을 
알 것이오. 이 전쟁이 끝나면 나도 당신을 도우리다. 참혹한 상처들을 보듬는 것은 나의  일
이기도 하오." 그녀의 눈가에 촉촉하게 물기가 내비쳤다.  "울지 마오. 우린 이젠 웃을 일만 
가득할 게요. 내 약속하리다." 
  그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누구냐?" 갑자기 마당에서 날발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순신 황급
히 장검을 빼어들고 방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간자들이 지붕에!" 날발이 쌍칼을 빼어
들고 지붕 위로 솟구쳤다.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쿵 소리와 함께  복면을 
쓴 사내가 마당 위로 떨어졌다. 남서쪽 숲에서 나뭇잎 바스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순신
이 번개처럼 숲으로 달려갔다. 바닷바람이 바위를 타고 휘이잉  소리를 내며 숲으로 몰아쳤
다. 이순신은 걸음을 멈추었다. 살기가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디인가, 어디에 있는가?  주위를 살폈지만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살기가 점점 더 
강해져서 벌거벗은 그의 등을 뚫을 정도였다.   이대로 있으면 당한다.  그는 눈을  감았다.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몸을 숨긴 사내가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식은땀이 이마에서 코끝
을 지나 턱으로 흘렀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무거운 바람이 불어내렸다. 반사적으로 장검을  양손에 움켜진 후 머
리 위로 뻗었다.  "윽!" 외마디 비명과 함께 검은 복면의 사내가 목덜미에 피를 뿜으며 쓰러
졌다. 나무 위에서 곧장 그의 심장을 노리며 뛰어내렸던 것이다. 이순신은 황급히 몸을 돌렸
다. 불길한 기운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사내가 일부러 그를 이곳까지 유인했다는  느낌
이 들었다. 날발은 지붕 위에서 사내들과  싸우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는 솔숲에 와  있었다. 
그렇다면 초희는? 초희는 방에 혼자 남은 것이다. 놈들이 노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초희다. 
암자로 돌아왔다. 시체 셋이 마당에 널브러져 있었고 날발은  마지막 남은 사내와 공중제비
를 돌며 격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방문을 활짝 열려 있었다. "초희!"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초희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날발은  마지막 사내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네  명의 
사내와 혈투를 벌이느라 그 역시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 오른쪽  허벅지를 찔려 뼈가 다 드
러났고 칼날에 패인 옆구리에서는 피가 철철철 흘러나왔다. 날발은 엉금엉금 섬돌까지 기어
와서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장군, 구룡절벽으로!" 이순신은 구룡절벽이 있는 북동쪽으로 내달렸다. 완만한 능선을 타
고 정신없이 가다보니 찬바람이 아래에서 휘익 올라왔다. 떨어지면 뼈마디까지 산산이 흩어
진다는 절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천천히 좌우를 살피며 걸었다. 절벽으로 가는 길은  외길이
었다. 초희를 납치한 사내는 이 부근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군데군데  솟아 
있는 바위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시야를 가렸다.  눈을 감았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풀잎 
흐느끼는 소리, 절벽의 울음소리가 귓전을 어지럽혔다. 그는 점점 더 절벽에 다가서고  있었
다. 다시 눈을뜨고 좌우를 살폈다. 살기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그는 절벽  바로 앞에 서 
있는 아름드리 참나무를 노려보았다. 달빛에 반사된 칼날이 푸른빛을 뿜으며 흩어졌던 것이
다. 그는 잰걸음으로 참나무로 향해 걸어갔다. 검은 나무 뒤에서 튀어나왔다. 사내는 초희의 
목을 왼팔로 틀어쥔 채 칼을 휘둘렀다. 그녀의 눈에서는  안타까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
렸다. 위험해요. 
  오지 마세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만류했다. 이순신의 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내가 
꼭 구하리다. 사내는 낭떠러지까지 뒷걸음질을 쳤다. 산바람이 한 번만 들이쳐도 그대로  곤
두박질을 칠 상황이었다. 이순신이 장검을 머리 뒤로 넘긴 채 소리쳤다. "모두 죽었어. 항복
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사내의 눈이 희미하게 떨렸다. 사내는  초희의 턱밑에 칼끝을 갖
다댄 채 이순신을 노려보았다. 칼을 버리지 않으면 그녀를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제발...가세
요. 어서 가세요!  초희는 도리질을 치며 이마를 찡그렸다. 이순신은 천천히 장검을 내렸다. 
그리고 손이 미치지 않는 오른편 바위로 장검을 휙 집어던졌다. 사내의 눈가에 웃음이 맴돌
았다. 사내는 그녀를 옆으로 밀어내고 있는 힘을 다해 앞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이순신의 목
을 향해 힘껏 검을 내리그었다. 이순신은 몸을 날려 울퉁불퉁한 땅바닥을 굴렀다. 칼끝이 그
의 상투를 자르고 지나쳤다.
  사내는 곧 자세를 고치고 이순신에게 다가왔다. 이순신은 미처  몸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사내가 천천히 검을 치켜올렸다. 사내의 등뒤로 보름달이 환하게  비
쳤다.  끝이구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저 칼날이 목덜미에  닿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견내
량에서 죽은 원균의 부릅뜬 두 눈이 또렷하게 보였다. 죽음이란  이런 것인가? 그때 갑자기 
사내의 몸이 기우뚱 오른쪽으로 흔들렸다.  이순신이 바위에 버렸던 장검을  찾아든 초희가 
사내의 오른쪽 허벅지를 찌른 것이다. 그러나 찌르는 힘이 약했던지, 사내는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주먹으로 꽝 내리쳤다. "이야야앗!" 그 순간 이순신이 사내의 
몸을 감싸쥐고 앞으로 밀어붙였다. 뒤걸음질치던 사내가  왼손으로 초희의 머리채를 잡아챘
다. 절벽 아래에서 차가운 바람이 훅 불어올라왔다. 그제야 이순신은 자신이 지금  낭떠러지
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는 것은 깨달았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사내를 살폈다. 사내의 왼손에 
머리채를 잡혀 질질질 끌려오는 초희가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내가 구해
주리다.  이순신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낚아채려는 순간, 막 산등성이를 넘어온 바람이 
세 사람의 몸을 확 밀어젖혔다. 
  그녀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사내의 몸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목이 뒤로 꺾였다. 이순신이 가까스로 그녀의 옷소매르 부여잡았다. 글는 두 사람의  몸무게
를 버티지 못해 앞으로 질질질 끌려갔다. 세 사람이  함께 낭떠러지로 곤두박질할 상황이었
다. 왕방울처럼 커졌던 그녀의 눈이 순간적으로 초승달처럼 변했다.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
는 자신의 옷소매를 쥐고 있던 그의 손을 뿌리쳤다. "안 돼!" 그가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
에 그녀의 몸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바다에서 불어닥친 차가운 바람이 산바람과 마나 소용
돌이를 일으켰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초,초...희!"  그는 넋을 잃은 사람처
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이 순긱간에 끝나버렸다.  초희는 죽고, 그만 홀로 살아남은 
것이다. 내가 그녀를 죽인 거야. 내가 그녀를 죽였어. 그는 엉금엉금 기어 절벽 끝으로 갔다. 
차디찬 바림이 양볼을 때렸다. 
  마지막 미소를 머금을 초희의 얼굴이 눈앞에 와 박혔다. 초희의 눈길이 그를 자꾸 잡아당
겼다. 아득한 편안함이었다. 손을 뻗어 안나주기를 기다리는  미소였다. 이순신의 몸이 자꾸 
절벽 아래로 기울어졌다. 바로 아래, 바로 눈앞에 초희가 웃고 있었다. 그가 눈을 질끈 감고 
절벽으로 뛰어들려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뿔피리가 뒤통수를 갈겼다. 그의 몸이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머리에 맞고 튕긴 뿔피리가 그 대신 절벽 아래로 사라졌다. 옆구리를 감싸안
고 쩔뚝거리며 뒤쫗아온 날발이 던진 뿔피리였다. 가슴이 답답했다. 눈을 뜨니 크고 작은 물
고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있었다.  햇살이 바다 속으로 들어오며 무지개빛을  뿜었다. 
초희!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찾았다. 어디에도 그녀의 흔적은 없었다. 저 어두운 
심연으로 가라앉은 것일까? 그때 무엇인가가 진흙 속에서 반짝였다. 그는 손을 뻗어 그것을 
끄집어냈다. 십자가 문양이 달린, 초희가 늘 몸에 지니고  다니던 묵주였다. 그는 묵주를 그
의 목에 걸었다. 갑자기 묵주가 그의 목을 휘감고 죄어들기 시작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사지를 버둥거리며 묵주를 떼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묵주는 점점  더 죄어와서 살갗을 찢었
다. "장군! 정신이 드십니까?" 낯익은 목소리, 이영남이었다. 천천히 눈을 떴다. 뒷머리가 묵
직하고 쿡쿡 쑤셨다. 
  격군들의 노 젖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배 안이 분명했다. "여기는...?" 권준이 그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이조방장의 판옥선이지요. 연통을 받고 은밀히 왔으니 심려 마십시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나, 날발은?" 이순신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방에는 
권준과 이영남뿐이었다. "옆방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자, 머리를 움직이지 마시고 편안
히 누우세요." 권준과 이영남은 그가 천장을 바라보며 똑바로 누울 수 있도록  거들었다. 박
초희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권수사! 절벽 아래는 살폈소?" "예, 장군! 허나 워낙  수
심이 깊고 주위에 암초가 많아서 시신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자, 이제 아무 말씀  마시고 
좀더 주무세요. 고금도까진 아직 반나절은 가야 하니까요." 권준과 이영남은  방에서 물러날 
기색이었다. "이보시오, 권수사!" "예, 장군!" "그, 그들은 누구였소?" "..."  권준은 즉답을 피
한 채 이영남과 시선을 교환했다. 이순신이  좀더 기력을 회복한 다음 말을 하  작정이었다. 
"그들은 왜... 왜놈의 간자가 아니었소. 낯익은 몸놀림...우리 군사들이 배우는 택견...같았소." 
이영남이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바로 보셨습니다. 장군! 그
들은 모두 조선 사람입니다."
  "조선...사람?" 권준이 끼여들었다. "또한 그들은 모두 사내 구실을 못하는 자들이지요." 사
내 구실을 못한다? "...그렇다면?" 이순신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권준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그렇지요. 내시들이 틀림없습니다. 그  동안 줄곧 우리 곁을  맴돌면서 전하의 눈과 귀 
노릇을 하던 자들이지요." 그랬는가? 눈을 꼭 감았다.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 모
든 것이 명명백백해졌다. 권준이 몇 번이나  내부의 적을 운위했을 때, 이순신은 믿지  않았
다. 아무리 그를 미워하는 선조이지만 설마 이 먼  남해바다까지 간자를 보내지는 않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선조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기 위해 간자를 붙였
다. 전하! 어이하여 신을 믿지 못하시나이까? 권준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며칠 후면 우리
가 내시들을 죽였다는 게 밝혀질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더욱더  장군을 죽이려고 묘책을 짜
내겠지요. 장군! 이제 우리의 항해도 태풍 가까이 접근한 듯합니다. 배를 돌리면 살 수 있으
나 그대로 나아간다면 죽음뿐이지요. 
  태풍은 그 누구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습니다. 배를 돌리면 살 수 있다?! 이순신은 권준
의 말을 음미했다. 권준은 이런 날이 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초희가  아니
더라도, 놈들은 내게서 반역의 기운을 밝혀내려고 덤볐겠지. 만약 놈들이 박초희를 납치해서 
한양으로 끌고 갔다면 어찌 되었을까? 왜군과 내통한 결정적인 증거로 간주될 것이고, 내게
는 사약이 내려졌으리라. 왜군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두어도 기다리는 것이 죽음뿐이라면, 전
하를 설득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서애 대감까지 조정에서 물러나신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권수사, 시체들은 거두었는가?" "암자와  함께 불을 질렀습니다. 이제  그곳 일은 
잊으세요. 이조방장과 저 외에는 아무도 그 일을 모릅니다. 내시들을 죽인 것을 장수들 모두
에게 알려야 할 때가 오겠지요. 그 전에 장군께서 마음을 정리하시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권준과 이영남은 촛불을 끄고 방을 나갔다. 그의 몸이 어둠 속에서 좌우로 흔들렸다. 파도가 
꽤 높은 듯했다. 눈을 감았다. 박초희의 맑은 눈동자가 손에 잡힐 듯 맴돌았다. 그녀의 작은 
입술이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치유하고 싶었던 바로 그 전쟁의 상흔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이제 
이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곳으로  가버렸다. 그는 살아 숨쉬는 그녀를 더  이상 품에 안을 
수 없다. 머리가 점점 무거워지더니 거대한 돌덩이가 그의 얼굴을 짓누르는 듯했다. 그는 이 
무거운 꿈속으로 그녀가 찾아오기를 바랐다. 다시 한번 그에게 평안과 위로를 가져다주기를 
기원했다. 그녀가 양이의 천주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
르고 있었다.  초희! 내게 오오 초희! 내 품으로 오오, 초희! 내 사랑, 나의 분신이여!   무술
년 7월 18일 밤. 이순신의 함대는  금당도 앞바다에서 야영하고 있었다. 7월 16일  고금도에 
도착한 명나라의 수군도독 진린은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았다며 통제영에 남았다. 여독이라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이틀 동안 계속 마신 술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진린이 도착하기 
전 유성룡은 밀서를 보내 진린을 깍듯하게 대접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성격이 포악하여 한
양에서도 조정 대신들을 함부로 대했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군스들을 풀어 사슴과 멧돼지를 사냥하게 했고, 술을 종류별로 그득하게 준비했
다. 진린이 고금도데 내리자마자 이순신은 성대하게 잔치를 열어 술과 음식, 그리고  여자를 
안겼다. 진린을 비롯한 오천 명의 명나라 수군은 융숭한 대접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
리고 어젯밤, 이순신은 녹도만호 송여종으로부터 급전을 받았다. 전조방장 김완이 걸인 행색
을 하고 녹도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조방장 배흥립을 급히 녹도로 보낸 후에도, 이순신은 잠
을 이루지 못했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이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경쾌선이 통제영
으로 들어섰다. 김완보다 먼저 송골매들이 통제영의 하늘을 맴돌았고  곧 초췌한 몰골의 김
완이 배에서 내렸다.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순신이 황급히 달려나가 김완을  포옹했다. 
"장군! 흐흐흐흑." 김완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흐느꼈다.  이순신의 눈도 붉게  충혈되었다. 
"언수! 살아 있었군. 살아 있었어." 김완이 진흙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이순신은 김
완의 손을 꼭 잡고 놓을 줄을 몰랐다. 배흥립을 비롯한 장수들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칠천량에서 왜군과 맞섰을 때, 김완은 견내량으로 후퇴하지 않고 오히려 해안을 다
라 전진해서 안골포쪽으로 피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왜군 복병에게 사로잡혀  대마도까지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왜선에 
몸을 숨겨 다시 안골포로 돌아왔다. 낮에는 숲에 숨고 밤에는 산등성이를 타면서 보름을 넘
게 이동하여 녹도에 이르렀던 것이다. 근 일 년만의 귀환이었다. "자, 들어가세. 오늘은 맘껏 
취해보게나." 그는 김완을 이끌고 군영으로 돌아갔다. 막사에 들어서자마자 뒤  따라온 조방
장 배흥립이 말했다. "장군! 이러고 있으실 때가 아니오이다. 곧 왜놈들의 내습이 있을 것이
라고 하외다." 김완이 걸걸한 음성으로  배흥립을 거들었다. "예교 근처  바닷가를 지나는데 
출전 준비를 마친 왜선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소이다. 무기를 모두 실은 걸 보니, 하루이
틀 내에 통제영을 기습하려는 것이 틀림없소이다."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권준을 돌아
보았다. "우선 절이도쪽으로 가시지요. 그 동안의  회포는 가면서 풀도록 하시구요." 이순신
은 오십여 척의 판옥선을 거느리고 녹도와 절이도를 둘러보았다. 아직까지 오선의 움직임은 
없었다. 
  이순신은 경상우수사 이순신에게 스무 척의  판옥선을 맡겨 절이도 앞바다에  머무르도록 
한 후, 서른 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금당도로 후퇴했다. 하루 종일 노를 저은 격군들을  쉬게 
하기 위함이었다. 진린은 곧 뒤따라오겠다는 전령을  아침저녁으로 보냈지만 여전히 고금도
에 머물러 있었다. 밀려드는 잠을 쫓으며 이물 쪽에 서  있는 이순신에게 권준이 웃으며 다
가왔다.  "잠시 눈을 붙이시지요. 어제도 김조방장을 기다리느라 잠을 설치지 않으셨습니까? 
오늘 밤에 전투가 벌어지진 않을 듯합니다." 이순신이 어두운 바다를 응시하며 말했다.  "권
부사! 서애 대감께선 진린을 경계하라 하셨소. 안하무인으로 조선의 장졸들을 업신여긴다고 
말이오. 과연 그는 이틀 동안 호언장담을 늘어놓으며 거들먹거렸소. 천병이니 천장이니 하면
서 말이오. 허나 그가 이끌고 온 명나라 수군은 우리에게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아요.  사선이
니 호선이니 자랑을 해도, 우리들의 판옥선에 비해 크기도 반밖에 되지 않고 무기도 보잘것
없소. 아직까지 오지 않는 걸 보면 왜군과 맞서 싸울 뜻도 없는 것 같소. 앞으로 이일을 어
찌 해야 되겠소?" 권준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통제사으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
다.
  진도독의 군사들은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  전혀 도움이 아니되지요. 허나  명나라 수군이 
고금도까지 내려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명나라의  육군과 수군이 모두 참전하였으니 
왜군들은 더욱 부담스럽겠지요. 우리로서는 진린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그를 후대하여 전투
에 참가시키는 것은 물론, 그를 통해 조정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 필요해요." "명나라 조
정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주상전하께서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장군을 죽이려 할 겁니다. 
조선 왕실과 어리석은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도록 하려면 그보다 더 큰 힘을 빌리는 수밖
에 없지요. 명나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면  전하께서도 함부로 장군을 죽이지는  못할 겁니
다." "그래...그렇겠군."  이순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명나라로부터 인정만  받는다면 
그보다 더 큰 방패막이가 없을  듯했다. 명나라의 일개 유격대장에게까지  머리를 조아리는 
전하가 아니신가. "허나 장군! 그건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결국  전하께서는 장군을 치실 것
입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합시다." 이순신은  말머리를 돌렸다. 권준을 비롯한  휘하 장수들이 
왕실과 조정에 퍼붓는 비난의 강도는 점점 도 높아만  갔다. 작년처럼 삼도수군통제사를 제
멋대로 잡아가게 두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힘에는 힘으로 맞서고,  명분에는 명분으로 맞서
서, 누가 옳고 그른가를 확실히 하겠다고 했다.  이순신은 그들으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
해했다. 칠 년 동안의 해전에서 거둔 수많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수군의 장졸들에게  돌아오
는 상은 너무나도 작고 미미했다. 그러나 힘으로 맞서서는 아니된다. 어명을 거역하거나  어
명을 전하는 관리들을 다치게 한다면 이는 곧 반역인 것이다. 권준은 군사를 일으킬 생각까
지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이순신 개인  뿐만이 아니라 조선 수군 전체의 
존폐를 건 모험이다. 함부로 입에 담을 문제가 아닌 것이다. 권준도 더 이상의 언급을  삼갔
다. 아직까지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여기는 듯했다. "장군! 경쾌선이옵니다." 송희립이 붕채를 
들어 동북쪽 바다를 가리켰다. 절이도에서 곧장 금당도를 향해  작은 배가 미끄러지듯 내려
오고 있었다. 녹도를 지나 발포  근처까지 나갔던 이언량의 척후선이었다. 이언량이  선상의 
이순신을 발견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장군! 왜 선단이 녹도를 향해  곧장 오고 있습니다. 속히  출정하셔야 하오이다." 이순신 
지체 없이 군령을 내렸다 "출장하랏!"  "출정!" 송희립이 출정의 북을  크게 울렸다. 그러나 
뿔피리 소리를 뒤따라 흘러나오지 않았다.  옆구리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날발이 아직까지 
복대를 두 겹이나 차고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다시 이언량에  명령했다. "경상우수사에게 
가서 일러라. 왜선들은 절이도 쪽으로 유인하라. 금당도의 수군이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정
면으로 돌격하여 당파한다. 알겠는가?" "예, 장군!"  이언량은 정면으로 맞선다는 명령을 득
고 신이 나서 절이도로 돌아갔다. 권준이  끼여들었다. "진도독에게도 알려야 합니다." 이순
신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고금도에서 출항한다 해도 전투가 모두 끝나서야 절이도에 도착
할 것이오." 권준이 다시 독촉했다. "그러니까 더욱 연통을 넣어야죠. 나중에 알리지도 않고 
전공을 도둑질했다는 억지를 부리면 큰일이니까요. 일단  알져주고 전투를 끝낸후에 기다리
도록 하지요." 
  "그래, 그렇게 하오." 권준은 정사준을 급히 고금도로 보냈다. 연합함대는 순풍을 타고 절
이도로 접근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의 밤바다는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소리와 빛, 그
리고 그 사이를 움직이는 사람과 사물을 모두 집어삼킬 것 같은 어둠이었다. 송희립의 북소
리도 멈추었고 모두들 입을 굳게 다문 채 서서히 녹도 쪽으로 돌아드는 밤풍경만을 눈에 넣
고 있었다.  "장군! 적입니다." 웅성거림이 점점 더 커지더니 불꽃이 하늘로 피어올랐다.  불
길에 휩싸인 판옥선들이 필사적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돌격하랏!" "돌겨!" 송희립의 북소리
가 쉴 새 없이 빨라졌다. 비, 비, 비. 새처럼  날아가서 왜선과 부딪치라는 신호였다. 경상우
수사 이순신의 배가 단숨에 뱃머리를 획 돌렸다. 후퇴하던 군선들도 곧 중군으 배와 합류하
여 돌진했다.  권준이 이순신에게 다가왔다. "장군! 여기서 멈추시지요. 적선은 백 척이 넘습
니다. 장군까지 나서실 필요는 없지요." 이순신이 큰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이미 나는 바다에서 죽겠다고 장졸들과 약속을 했소. 송군관! 무얼 
하는 게야? 돌격한다. 왜선 중에서 가장 큰 배는  우리 몫이야. 어서 서두르게." "예, 장군!" 
송희립의 북소리가 더욱 빨라졌다. 권준은 걱정스런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원균
처럼 싸우시겠다 이 말씀입니까? 장군! 이제  우리에겐 팔십척이 넘는 군선이 있습니다. 명
량에서처럼 죽기살기로 장군이 나설 필요는 없지요. 조선 수군을  움직일 장수는 오직 장군 
한 분이십니다. 몸을 아끼세요. 뒤에 그저 계시기만 해도  조선 수군은 승리할 것입니다. 이
순신의 판옥선이 어느 틈에 선봉으로 나섰다. 통제사의 깃발을  발견한 조선 수군들이 함성
을 지르며 더욱 힘차게 나아갔다. 태산이라고 무너뜨릴 조선 수군의 기세에, 왜선들은  제대
로 싸워보지 못하고 뱃머리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총통들이  불을 뿜었고 불화살이 밤
하늘을 수놓았다.적의 기습에 충분히 대비한  조선 수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오십여  척의 
왜선이 격침되었고, 나머지 오십여 척은 예교로 달아났다. 이제는 함부로 녹도까지 나오지도 
못할 것이다. 
  적의 기세를 확실히 꺾었으니 예교에 웅크리고 있는 소서행장의 군대를 직접 칠 수도 있
으리라.  이순신은 적의 수급을 걷 어들이도록 군령을 보냈다. 명량에서처럼 승전 장계와 함
께 수급을 조정에 보낼 작정이었다. 수급을 모아보니 모두 일흔두 개였다. 이순신은  수급을 
거둔 장졸들의 명단고 각 군선이 왜선을 몇 척씩  격침시켰는가를 소상하게 조사했다. 권준
이 곁에 서서 물었다. "장군! 이 수급을 모두 우리가 거두었다고 쓰실 것인지요?"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준이 다시 말했다. "곧 진도독이  올 겁니다. 그에게도 전공을 나눠줘야 
합니다." 이순신이 옆에서 거들었다. "모두  다 쥐버리십시오." 이영남이 반대  의견을 냈다. 
"허나 우리 군사들이 피흘려  얻은 수급이오이다. 어찌 진도독에게  그냥 준단 말씀입니까? 
오늘의 전공이 모두 진도독에게 돌아가면 조선  수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뒷짐만  지고 
있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권준이 중재를 했다. "이조방장의  주장도 일리가 
있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는지요? 일단 진도독과 수급을 나누도록 합시다. 그
리고 내용이 다른 장계를 두 장 쓰도록 하지요." 이영남이 물었다. "내용이  다른 장계를 쓴
다 이 말씀입니까?" 권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한 장은 진도독과 조선 수군이  함께 공을 세워 수급을 각기 취했다고  쓰고, 또 
한 장은 조선 수군이 왜군을 몰아낸 뒤에 도착한 진도독이 조선 수군이 취한 수급을 빼앗았
다고 쓰는 것입니다. 먼저 언급한 장계를 보낸 뒤, 상황을 보아서 남은 장계를 보내면  조정
의 비난을 적절히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만..." 이순신이 권준의 뜻에  동의했다. "그렇게 합
시다." 회의가 끝날 즈음, 진린이 군선들을 이끌고  절이도 앞바다로 들어섰다. 전투가 이미 
끝났음을 눈으로 확인한 진린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이순신의 지휘선에 옮겨 탔다. "이장
군! 일부런 연통을 늦게 넣은  이유가 무엇이오?" 진린은 양볼에 바람을  잔뜩 넣고 고함을 
질러댔다. 이순신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왜선들은 진도독의 이름만 듣고도 두려워  모두 물
러간 것이오이다. 싸우다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소이다." 통역을 통해 이순신의 말을 전해들
은 진린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순신이 이물 갑판 위에 쌓아둔 
수급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도독께  드리려고 모아둔 수급이오이다." "내게  수급을 준다고 
했소?" 벌어진 진린의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이번 승리는  진도독이 거두신 것이니 
모두 가져가십시오. 
  조방장! 저 수급들을 도독의 배로 싣도록 하라." 진린이  이순신의 팔을 붙들며 만류했다. 
"어찌 저 수급을 모두 내가 가질 수 있겠소? 왜선을 물리치고 수급을 거둔 것은  조선 수군
의 전공이니 우리 저 수급을 반반씩 나누도록 합시다." 이순신이 고개를 저었다. "어찌 천병
이 이룩한 전공과 우리가 쌓은 미미한 전과가 같을 수가 있겠소이까? 정 그러시다면 도독께
서 우선 갖고 싶으신 만큼  가져가시지요. 나머지를 소장이 취하도록  하겠소이다." "진심이
오?" "허허, 소장이 어찌 천장께 거짓을 아뢸 수가 있소이까. 아무염려 마시고 가져가세요." 
진린이 이순신을 덥석 껴안은 다음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핫, 내 이장군의 명성은  익히 들
어서 알고 있었소이다. 오늘 이장군을 보니, 과연 경천위지지재와 보천욕일지공이 있소이다. 
내 천자께 오늘 일을 꼭 글로  올리겠소. 장군과 같은 장수가 조선에 한두  명만 더 있다면 
왜군은 곧 물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오. 하하핫, 하하하핫!" 진린이 마흔다섯 개의 수급을 가
져갔으므로, 스물일곱 개의 수급만이 조선 수군의 몫이었다. 배석한 장수들의 표정은 어둡고 
딱딱했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전공을 배앗겼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이순신이 잔잔한 미소
를 머금은 채 그들을 다독거렸다. "돌아가오. 가서, 오늘은 마음껏 취하도록  합시다. 김조방
장의 귀환도 축하하고, 오늘의 승전도  자축해야 하지 않겠소? 수급의  많고 적음으로 어찌 
우리의 이 뜨거운 가슴과 불타오르는 눈동자를 가늠할 수 있겠소. 그깟 벼슬이나 재물은 모
두 저들에게 던져버리도록 합시다. 우리는 재물이나 벼슬에 눈이 먼 개돼지가 아니지 않소? 
우린 조선의 바다를 지키는 장수들이오. 오늘도 적을 물리치고 저 아름다복 푸른 바다를 지
켰으니, 그것으로 그만이 아니겠소? 돌아가오. 가서 서로에게 술 권하며 오늘의 무용담을 나
누도록 하오." 회군의 북이 장중하게 울렸다. 연합함대의 판옥선들은 일제히 닻을 올리고 고
금도로 향했다. 산들바람이 격군의 피로를 덜어주었고, 붉은 태양을 가린 뭉게구름이 함대의 
뒤를 종종종종 따라왔다.
  
    12. 사필귀정  
  무술년 10월 7일 밤.   정릉동 행궁으로 들어서는 유성룡의 발걸음은 무겁기 그징없었다. 
찬바람이 흰 수염을 흔들고 지나쳤지만 몸을 움츠릴 힘조차  없었다. 내시감 윤환시가 그의 
집까지 찾아와서 은밀히 입궐하라는 어명을 전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삼십여 년이 넘는 관
직 생활에서 드디어 물러날 때가 된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는 책임을 질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풍신수길이 이미 죽었다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했고, 왜군의 철군 움직임이 두드러진다는 장계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올
라오고 있었다. 길어야 두달, 올해가 가기 전에 전쟁은  끝이 날 것이다. 그때까지만 국정을 
살필 수 있다면, 그 후에는 설령 붙든다고 해도 스스로 관복을 벗고 낙향할 작정이었다.  후
학들을 가르치며 안빈낙도를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9월로  접더들자마자 광풍이 몰아쳤고 
그의 꿈은 한낱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조짐은 지난 7월  명군의 실질적인 지휘자인 양호가 
만세덕으로 교체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선조가 큰절을 오리려고 할 정도로 양호는 조선 조
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명나라로  송환된 양호는 천자를 
속였다는 죄명으로 목이 달아나게 생겼다.  정유년 12월부터 올 2월까지 조명연합군은 양호
의 지휘하게 가등청정이 진을 친 공격하였으나, 왜군의 저항이  워낙 거세어서 특별한 전과
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양호는 마치 대승을 거둔 것처럼 천자에게 장계를  올렸던 것이다. 선조는 지난날
의 의리를 생각해서 양호를 변호하기 원했고, 조정의 중론도  양호는 조선의 은인이므로 모
른 체할 수 없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명나라의 오해를 풀고 양호의 결백함을 아뢰는 진주사
를 보내기로 결정되었는데,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정승 반열에 오른 이들 중에서 뽑기
로 했다. 도체찰사로 하삼도를 총괄하고 있는 우의정 이덕형이 우선 제외되었고, 양호를  도
와 지난 겨울 울산으로 내려갔던 유성룡 역시 중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에 곤란했다. 좌의
정 이원익이 선뜻 자청하고 나설 때가지만 해도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러
나 이원익의 호의는 한 순간에  유성룡을 꽁꽁 묶는 덫이 되었다.  진주사를 보내서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던 조선 조정의 의도는 엉뚱한 방향으로 오해를 샀다. 평소 양호와 사이가 나
빴던 동정찬획주사 정응태가 조선이 고구려의 옛  땅을 수복하기 위해 왜와 짜고  명나라를 
속이고 있다는 장계를 올린 것이다. 이 일을 해명하기 위해 진주사를 한 번 더 보내자는 논
의가 있었다. 
  유성룡은 이번에도 스스로 가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이덕형이나 윤두수 등이 
거론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선뜻 응낙하지 않았다. 조선과 왜가 담합하여 요동을 치려  한다
는 정응태의 장계가 명의 조정에 일으킨 파문을 상상해보라. 이번에 가면 정말 살아 돌아올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대신들이 잘 알고 있었다.  먼저 칼을 뽑아든 것은 선조였다. 졸지에 
인적반군의 죄를 뒤집어 쓴 선조는 조회도 보지 않고  양위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그 전에
도 몇 번 양위를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매우 심각했다. 조선 국왕이 천
자의 나라를 배신했다는 추궁을 받았으니, 이제 조선은 오랑캐의 나라로 전락한 것이다.  선
조는 그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며 선수를 쳤다. 그런 한 나라의 군왕이 그 치욕을 감내할 수
는 없는 일이었다. 군왕을 대신하여 대신들 중에서 죄를 받을 사람이 필요했다. 사헌부와 사
간원의 대간들은 유성룡을 지목했다. 두 차례나 진주사를 회피하여 명나라의 노여움을 더했
다는 죄명이었다.
  탄핵이 시작되자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칠 년 동안 전쟁을 질질 끈 것도 강
화 회담을 묵인한 유성룡의 책임이며, 하삼도의 왜군을 몰아내지  못하는 것도 유성룡의 뜨
뜻미지근한 성품 때문이라는 상소가 줄을 이었다. 9월  25일 유성룡은 두문불출하고 석고대
죄를 했다. 관직에서 물러나게 해달라는 소를 매일 어전에 올렸으나 선조는 번번이 그의 청
을 되돌렸다. 그럴수록 유성룡을 탄핵하는 상소가 빗발쳤다. 이제는 관직에서 물러나는 정도
가 아니라 아예 삭탈관직을 처해야  한다는 요구도 심심찮게 올라왔다. "영상  대감, 바람이 
차옵니다. 속히 따르시지요." 윤환시가 눈을 끔벅거리며  채근했다. 입궐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 유성룡은 두려움과 함께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선조와의 독대를 기대하고 있었다. 조정 
중론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관직에서 물러나긴 하겠지만,  그에게는 선조의 속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 일을 기회로 남인들을 친다면 참으로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원익, 이덕형, 이항복 
등이 줄줄이 그 때문에 옥에 갇힐 수도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일만은 막고 싶었
다. 옥에 가도 그 혼자 가고, 사약을 받아도 그  혼자만 받기를 원했다. 그는 선조에게 가서 
아뢸 참이었다.  모든 벌을 신에게 내려주시옵소서. 하옵고 다른 대신들에게는 맡은 바 소임
을 다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옵소서. 희미한 불빛이 별전에서 새어나왔다. 대전 내관과 상
궁, 그리고 궁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윤환시가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와서 속삭였다. 
"아뢰지 말고 그냥 드시라 하셨사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 후  별전으로 들어섰다. 용상 
앞, 작은 촛불 하나만이 빛을 발했다.어두컴컴한 실내로  찬바람이 휘잉휘잉 떠돌았다. 오른
손으로 이마를 짚고 비스듬히 앉아 있던  선조가 시선을 내리깐 채 말했다.  "가까이 오라." 
"예, 전하!" 그는 허리를 굽힌  채 용상으로 나아갔다. 평소 그가  자리를 지키던 곳에 멈춘 
후 꿇어 엎드렸다. 
  "전...하!" "좀더 가까이 와." 선조의 목소리가 더욱 낮고  침침했다. 유성룡이 다시 자리에
서 일어나서 대여섯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용상에서 두 걸음도 채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땅에 닿을 만큼 숙인 채 하명을 기다렸다. 툭 소리와 함께 반쯤 펼쳐진 상소문 하나
가 그 앞에 던져졌다. "소리내어 읽어라."  "예, 전하!" 주섬주섬 상소문을 펼쳐들었다. 그를 
탄핵하는 상소문 중 하나라고 여겼다. 신하의 기를 꺽어놓기 위해 선조는 이런 방식을 즐겼
다. 그러나 첫 구절을 읽은 순간, 유성룡은 왈칵 솟구친 눈물 때문에 앞을 잘 분간할  수 없
었다. "...대저 유성룡은 ...성상께 인정을  받아 시종의 반열에 있은  지가 이미 삼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국사에 손을 댈 곳이  하나도 없는 이토록 위급한 때를  당하여 왕령을 받들고 
혼란을 평정하기를 도모하여 마음과 힘을 다해서 오래도록 국사를 대처하는 지위에  있었으
니, 그간 시행한 일의 잘잘못과 이해에 관해서는 성상께서도 잘 아시는 바이므로 한 마디도 
덧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청렴하게 처신하고 진심으로 국가를 염려한 일에 있어서는 옛날 사람과 비교해도 또한 부
끄러울 것이 없으며, 결백을 자수하여  교유를 좋아하지 않은 것은 남들이  다 아는 사실로 
더욱 속일 수 없는데, 간악한 자들이 이리저리 죄로 얽어매니 이것은 성룡한 사람만 모함하
려는 것이 아니라 일세의 청류를 모두 중한 죄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저, 전하!" 유
성룡이 읽기를 멈추었다. 홍문관 부제학 김늑,  부응교 홍경신, 수찬 심액이 올린  상소였다. 
왜 이 상소를 내게 읽히시는 것일까? 혹  이 사람들에게 죄를 주시려는 것이 아닐까? 이들
은 홍문관에서 고지식하게 글만 읽는  선비들이다. 이들에게 화가 미쳐서는 아니될  일이야.  
"계속 읽어라." "전하! 이들은 신의 일과  아무런 연관이 없사옵니다." "계속 읽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선조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유성룡은 시선을 내리고 다시 상소를 읽어나갔다. "이 무리들이 서로 규합한 것이 하루아
침의 일이 아닙니다. 전일 경솔하고 추잡한 자들이 서로 사귀고 작당하여 더러운 짓을 하였
으니 패려한 행실이 청의에 버림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청선에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속에 감정을 품고 뜻이 같은 자들과  결탁하여 남을 모함하려고 하였습니다...그러
자 못된 무리들이 앞을 다투어 서로 좇아 밤낮으로 추종하여 심복이 되어 은밀히 사술을 부
렸는데, 그들의 작태에 사람들이 모두 분개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친한 자들까지도 걱정하
였습니다." "그만!" 유성룡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조가 고개 숙인 그에게 
물었다. "대소신료들이 무두 영상을 탄핵하고  있는데, 오직 홍문관만은 그대를  싸고도는구
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든  것이 신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비롯되었사옵니다." 
"영상이 홍문관에 오랫동안 머물렀고,  홍문관의 관리들을 아낀다는  것은 과인도 일찍부터 
알고 있다. 허나...홍문관이 이런 소를 올릴 줄은 몰랐느니라. 이들이 과인의 신하인지,  영상
의 신하인지 모르겠구나."
  선조는 말끝을 가볍게 감아올렸다. 차가운  비수가 그 속에 숨어 번뜩였다.  " 전하! 신을 
죽여주시옵소서." 유성룡은 바닥에 이마를 박고 흐느꼈다. 선조는 그의 울음을 외면한 채 이
야기를 계속했다. "또 누구는 그런다는구나. 전쟁을 이만큼 승리로 이끈 것은 모두  서애 유
성룡의 공이라고. 조선의 군왕은 의주로 도망이나 다니고 명나라의 장군에게 머리나 조아리
며 나라 망신을 시켰다고. 차라리 세자가 보위를 물려받는 편이 낫다고,과인도 이 나라 군왕
으로서 권위를 드높이며 당당하게 살고 싶다. 허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명나라 장
수들에게 아첨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과인이  치욕을 감내할 때 이 나라 대소신료들은  다 
무엇을 했느냐? 그들은 조금이라도 체면 깎이는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영상! 그래도 과인
은 영상과 해원부원군 윤두수만은 믿었다. 두 사람은 내부하려는 과인을 결사적으로 만류하
며, 목숨을 걸고 조선을 지키겠노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 동안 어찌 영상의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으리. 
  허나 과인은 영상을 믿었다. 영상이라면 목숨을 아끼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영상은 변했다. 이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진주사가 되는 것조차 피하고 있다. 지금 명나
라로 가면 옥에 갇힐 수도 있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허나 과인은 영상이 나서주기를 바
랐다. 영상이 나서서 진주사를 자청하면 과인이 영상을 그 죽음의 땅으로 보내겠는가? 헌데 
영상은 과인의 마음을 받지 않았다. 아직도 세상에 미련이 많은 것이다. 그 동안 쌓은  명성
과 재물들, 그리고 휘하에 거느린 신료들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런가?" 
"..." "그러나 이것이 어찌 영상 혼자만의 잘못이겠는가?  삼십여 년 동안 관직에 나선 자가 
그만한 집착도 없다면 그야말로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느냐? 조정 대소신료들과 비교하면 오
히려 영상의 죄는 가볍고 가볍구나.당연히 죄보다 공이 많을 것이야." "저, 전하!" "풍신수길
의 죽음이 사실이면, 이제 곧 종전이 된다. 
  종전이 되면 영상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  선조의 물음이 그의 가슴을 마구 흔들
었다. 그가 걱정하고 있는 바를 정확히  집어낸 것이다. 이대로 전쟁이 끝나면 어치피  그는 
중벌을 받을 것이다. 칠 년 전쟁 동안 범한 세세한 잘못이 하나씩 밝혀질 것이고,  조정에서 
범한 과오들은 궁극적으로 영의정인 그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명나라와 왜의 강화 회담
을 방임한 죄가 가장 클 것이며, 무군지죄를 범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앉힌 죄가 그 
다음이고, 명나라 장수 양호를 보필하지 못한 것이 그에 맞먹는 죄일 것이다.  "그때가 오면 
영상은 죽을 수밖에 없다. 영상!" "예, 전하!" "과인이 언젠가 영상을  살리고 싶다고 말했었
지?" "..." "사사로이 따진다면 우린 삼십 년 동안이나 함께 지낸 오랜 벗이 아닌가? 과인은 
벗을 죽이고 싶지 않다. 삭탈관직을 시키고 싶지도 않아. 오히려 이번 일을 통해서 옛  벗에
게 한가로움을 선물하고 싶다. 영상도  늘 입버릇처럼 그랬지. 낙향해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퇴계의 학문을 잇고 싶다고. 바로 지금 그 기회가 온 거야. 허나 이대로 물러나면 안 될 일
이지. 
  아무런 방비도 없이 조정을 떠나면 두고두고 그대를 탄핵하는 상소가 이어질 것이야." 유
성룡은 내심 안도했다. 선조가 남인을 전부 내칠 생각은아닌 것이다. 방비를 하라? 그는 선
조의 권유를, 뒷일을 충분히 감당할 대신을 천거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그도  그의 
빈자리를 메울 사람을 직작부터 점찍어두었다. "전하! 아직은 전쟁중이옵니다. 조정에 큰 변
화가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옵니다. 영의정은 진주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좌의정 이원익이 합
당하겠사옵고, 좌의정은 외교에 밝은 문무를 겸하였으며  만사에 합리적인 우의정 이덕형이 
적합한 인물이옵니다." 선조가 잠시 생각한 후 답했다. "그래, 영상이 물러가면 그들이 빈자
리를 채워야겠지. 허면  우의정은 누가 합당하다고  보는가?" 유성룡이 지체없이  대답했다. 
"이원익은 이미 진주사로 명에  다녀왔사옵고, 이덕형은 도체찰사로  하삼도를 책임져야 할 
것이니, 이번에 우의정의 자리에 오르는 대신은 곧 진주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야 할 것이옵
니다. 
  따라서 외교에 밝고 전황을 잘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전하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인
물이라야 하옵니다. 도승지로 전하를 가까이에서 뫼셨던 병조판서 이항복 외에는 합당한 인
물이 없사옵니다." 선조가 선선히 답했다. "그래, 과인과 생각이 같구나. 역시 영상의 지인지
감은 녹슬지 않았도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는 점점  어깨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덕형과 이항복이 정승의 반열에 나란히  있다면, 설령 내가 없더라도  이 전쟁을 
잘 마무리할 수 있으리라.  오히려, 내게 이런  일이 닥친 것이 전화위복일  수도 있겠구나.  
선조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느슨했던 분위기를 꽉 조여왔다.  "그런데, 영상! 이항복을 우의
정으로 앉히면 그대의 삭탈관직을 막을 수 있다고 보는가?" 유성룡은 뜻밖의 질문에 정신이 
산란해졌다. 아직도 그의 발목을 쥐고 있는 덫이 남았단 말인가? "영상! 그대가 낙향하기 전
에 꼭 해줘야 할 일이 있다."
  "하교하시옵소서." "이순신을 살려둘 수 없다. 그대가 앞장서서 이순신을 탄핵하라." "예?" 
유성룡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상황에서 이순신을 탄핵하는 것도 터무니없는데,  그 
일을 그가 맡아달라는 것이다. "전하!  이순신을 정읍현감에서 전라좌수사로 천거한  사람이 
바로 신이옵니다." "알고 있다." "헌데 어찌 신에게 이순신을 탄핵하라 하시옵니까?" 선조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영상이 이순신을 돌보아주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조
선팔도에 아무도 없다. 헌데 이순신은 무군지죄를 지었고, 무군지죄를 범한 장수는 죽어  마
땅하다. 이순신이 사약을 받는다면 이순신을 천거한 영상의 목숨 또한 무사하지 못할 터, 영
상이 사는 길은 먼저 이순신을 치는 것뿐이다. 과인의 마음을 헤아리겠는가?" "전하! 하오나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이순신은 명량에서 큰 공을 세웠사옵고, 지금도 고금도를 거점
으로 왜선들을 하루에도 몇차례씩 공격하고 있사옵니다" 선조가 얼굴을 찡그리며 그의 말을 
잘랐다.
  "무군지죄를 범한 장수를 살려둘 수는  없다. 명량에서의 승리도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야. 지금 전라도에는 이순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풍문이 돌고 있다. 이순신은  조정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소금을 마음대로 생산하고, 세금을 거둬들이고, 군사들을 은밀히  훈련
시키고 있다. 이런 자를 살려둬야 하겠는가?" "전하! 임진년 이래로 조선 수군은 자급자족하
며 해전을 치러왔사옵니다. 조정에서는 명령만  내릴 뿐 도움을 전혀 주지  못하였사옵니다. 
무릇 전투는 따뜻한 쌀과 두툼한 옷, 그리고 편안한 잠자리가 확보되어야 치를 수 있사옵니
다. 이순신은 전라도에서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구하며 힘껏 싸우고 있사옵니다.  이순신의 
충정을 헤아려주시옵소서. 전하!" 선조가 기가 막힌 듯 혀를 찼다. "허어...이제  보니 영상도 
이순신과 한통속이군. 이순신의 월권을 모두 알고 있지 않는가? 그  흉측한 짓을 알고 있으
면서도 과인에게 이르지 않았으니, 영상의 죄 또한 이순신만큼 크고 무겁도다." "..." 유성룡
은 고개를 들 힘조차  없었다. 선조는 이순신을 대역죄로  다스리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다. 
"영상! 과인은 영상을 살리고 싶다. 
  회생의 길은 하나뿐이다. 이순신을 먼저 탄핵하라. 홍문관에서 탄핵상소가 올라오면 그 다
음은 과인이 모든 것을 맡아 하겠다. 하겠느냐?"  "전하!" 유성룡은 흐느꼈다. 살기 위해 이
순신의 목을 칠 수는 없었다. "대답하라.  하겠느냐, 말겠느냐?" "전하! 그 일만은..." 유성룡
은 말을 잇지 못했다. 노신의 뜨거운 울음소리가 어두운 내실로 퍼져나갔다. 선조는 오른 주
먹으로 이마를 툭툭 치며 그를 꾸짖었다. "경연장에서 그토록 총명했던 영상이 어찌 이토록 
단순한 일에 답을 내리지 못한단 말인가? 정녕 이순신과 함께 죽기를 원하는가? 그대는 영
남 사림의 안위를 걱정해야 한다. 반란의 땅, 전라도 변방의장수 하나 때문에 퇴계의 제자들
을 모두 죽일 셈인가?" "전하! 이순신은 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장수이옵니다. 굽어 살피
시옵소서." 선조의 언성이 높아졌다. "닥쳐랏! 이순신은 어명을  어기고 쟁공을 일삼다가 원
균을 모함하여 죽이고 제멋대로 전라도를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군사를 몰아 한
양까지 넘보고 있는 나랏도적이다. 
  영상! 어차피 이순신은 죽는다. 영상까지 개죽음을 당할 텐가?" 선조는 이순신을 탄핵하라
고 거듭 독촉했다. 그때마다 유성룡은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물러가라. 과인도 더 
이상 영상을 살피지 않겠다." 선조의 차가운  목소리를 뒤로 하고 유성룡은 별전을  나왔다. 
어느새 여명이 밝았다. 남녀에 의지하여  귀가하는 동안, 몸은 지치고 병들었으나  정신만은 
더욱 또렷했다.  이제 다시는 입궐할 수 없으리라. 오늘내일 안에 새 영의정이 뽑힐 것이고 
나는 촌늙은이로 돌아가게 되리라. 지난 삼십 년 세월이 하룻밤 사연같이 눈에 선했다. 며칠 
밤을 세워 서책을 읽고, 경연장에 나가 박식을 뽐내던 젊은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그는  늙
었고 병들었으며 눈물이 많아졌다. 
  "스승님! 이제 퇴궐하십니까?" 대문 앞에 두루마기를 입은 사내가 허리를  굽혔다. 지난달
에 잠깐 보고 소식이 뜸했던 허균이었다. "자네가 이 아침에  웬일인가? 자 예서 이럴 것이 
아니라 들어가세." 유성룡은 표정을 고쳐 앞장을 섰고, 허균은 굳은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작년 여름, 명나라를 다녀온 뒤 허균은 정처 없이 북삼도를 떠돌았다.  잠깐잠깐 한양에 모
습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큰형 허성의 집에 들러 노잣돈만 얻은  뒤 곧 다시 유람을 나섰던 
것이다. 유성룡도 허균이 의주나 곽산 등지를 떠돌며 시를 짓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여자처럼 곱상한 사내가 늘 허균과 함께 유람을 다닌다는 것이다. 그들이 내외
지간처럼 정을 나눈다는 풍문의 끝에는 기생들을 맛보기에 지친 허균이 이제 사내 맛을 알
기 시작했노라는 듣기 민망한 사족까지  붙어다녔다. 유성룡은 가끔씩 서찰과  함께 허균의 
방랑시를 받았다. 곽산동상을 비롯한 몇 편은 읽을만 했다. 더 이상 아우를 떠돌이로 둘  수 
없다는 허성의 간곡한 부탁도 있고해서, 유성룡은 허균을 한양으로 불렀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랏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허균은 낄낄낄낄 웃으며 이렇게 반문했다.
  "하긴 해야겠지요? 이제 곧 호란이 터져 동래나 광주쯤으로 몽진을 떠날 터이니, 그 구경
도 볼만하겠습니다." "호란이라니? 그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 허균은 웃음을 뚝 멈추고 
작년 여름 명나라로 들어가며 겪었던 일을 남김 없이  털어놓았다. "이제 요동은 여진의 땅
이 되었습니다. 조선과 명나라가 왜를 막느라  여념이 없는 동안, 야금야금 그 넓은  벌판을 
삼킨 것이지요. 그들은 명나라와 조선이 모두 지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크게 상처를 입
은 두 마리 호랑이를 한거번에 삼키겠다는 생각이죠." "닥치거라. 어찌  여진 오랑캐가 천자
의 나라를 넘본단 말이냐?" "히히힛, 스승님! 왜도 명나라를 넘보는데 여진이라고 넘보지 말
란 법 있습니까? 지금 명나라를 넘보지 않는 오랑캐는 멍청하게도 우리 조선뿐입니다. 지금
이라도 북삼도의 민심을 살피십시오. 
  전쟁이 터진다고 수군수군 난리일 겁니다." "그만 됐다." 유성룡은  허균의 말을 가로막았
다. 몇 년 동안 잠잠했던 여진족들이 사군과 육진을 넘나들며 노략질을 일삼는 횟수가 늘어
나긴 했다. 그러나 호란이라니? 여진이 어지 조선과 명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
단 말인가? 허균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머리를 돌렸다. "스승님! 소생에게 나랏일을 할 때
가 되었다고 하셨습니까?" 유성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면  병조에서 일하게 해주십시오." 
"병조? 왜 하필 병조인가?" "전쟁이 터진 마당에 속 편하게 뒷짐이나  지고 있는 것은 소생
의 적성에 맞지 않사옵니다." "...알겠네. 내 의논해보지." 마침 병조판서 이항복이 정육품 병
조좌랑을 구하고 있었으므로 유성룡은 허균을 적극 추천했다. 이항복이 반승낙을 했으니 이
제 어전에서 낙점을 받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이 새벽에 웬일일까? 벼슬 자리가 어찌 되었
나 궁금해서 찾아온 겐가?
  허균이 큰절을 올리는 동안 유성룡은 코를 실룩이며 잔기침을  뱉어냈다. 새벽 서리에 감
기라도 걸린 모양이었다.  요즘엔 방안 공기가 조금만 바뀌어도 재채기가 나오고 콧물이 줄
줄 흘러내렸다. 늙으면 추해진다는 속언은 이 때문에 생긴 것인가. "곧 물러나신다고 들었사
옵니다." 허균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칼날 같은 성격을 보며, 유성
룡은 먼저 죽은 허봉을 그리워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이제 내가할 일이  없는 듯하구
나." 허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부귀와 권세도 한순갑입죠.  헌데 이원익 대감과 
이덕형 대감도 함께 물러나시는 것인지요?" 유성룡이 허균을 노려보았다. 무엇을 알고 싶어 
이곳까지 왔는가? 허균이 그 눈길을 피하지 않고 빙긋 웃었다. "탄핵을 당한 건 난데 왜 좌
상과 우상이 물러난단 말인가?" 허균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허면 깜짝 
놀랄 만한 일은 없겠군요. 이원익 대감이 영의정이 되시고, 이덕형 대감이 좌의정이 되시고, 
아마 병조판서 이항복 대감께서 우의정이 되시겠죠?" 
  유성룡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허균은  일찍부터 사람의 의중을 정확히  짚는 재주가 
았었다. 대답이 없자 허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항복 대감께서 진주사로 가시게  되겠군
요. 허면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어찌 되는지요?" 허균은  선조와 유성룡 사이에 오간 대
화의 맥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그걸 자네가 알아서 무엇하려고?" 허균이 능들맞게 답했다. 
"병조에 자리를 얻으면 제일 먼저 전라도를 돌아보고 수군을 살필 작정이거든요. 혹 수군통
제사가 바뀐다면 그에 따라  채비를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통제사가 바뀐다
고 누가 그러던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요. 이제 스승님이 물러나게 되셨으니 이
통제사도 무사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남인들을 그대로 두시기로 한 것은 남인
들과 내통하던 이통제사를 비롯한 장수들을 먼저 치시겠다는 뜻이 아닐는지요?" "닥치거라. 
어디서 감히 그딴 소리를 지껄이느냐? 
  이통제사는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나라를 구한 장수이니라.  상을 줘도 아깝지 않거늘 
어찌 벌을 내리겠는가?" 허균이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스승님께서는 그리 말씀하시고 싶
으시겠지요. 허나 스승님도 아시지  않사옵니까? 스승님이 조정에 아니  계시면 이통제사는 
날개 잃은 백조일 따름입니다. 백조가 날개를 잃고 흰 깃털을  사방에 내비치면 곧 죽을 뿐
이지요. 이대로 그냥 전쟁이 끝나버리면 이통제사도 죽고 스승님도 목숨이 위태롭사옵니다." 
"듣기 싫다. 되지도 않는 소릴 계속  하려거든 썩 돌아가거라." 유성룡이 고개를  획 젖히며 
돌아앉았다. "스승님! 결국 양 갈래 길이 남았을 뿐이옵니다.  스승님께서 스스로 수족을 자
르는 아픔을 감내하며 이통제사를 치시든가, 아니면 이통제사와 힘을  합쳐 이 전쟁의 영웅
이 누구인가를 똑똑하게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누가 영웅이고 누가 간인이었는가
가 명확해지면, 그 다음엔 민심을 따르면  되옵니다. 이대로 계시면 결국 모든 것이  전하의 
뜻대로 흘러갈 것이옵니다. 
  이통제사도 죽고, 스승님도 삭탈관직을 당하겠지요. 그리고 그 혼란을 틈타 여진족이 밀고
내려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나라  조선은 두 번다시 회생할 수  없지요. 스승님, 어서 
한쪽 길을 택하십시오. 어리석은 제자가 드리는  마지막 청이옵니다." 허균은 큰 절을  올린 
후 물러났다. 유성룡은 눈을 꼭 감은 채 허균의 말을 되새겼다.  수족을 잘라내든가 이통제
사가 영웅이 되는 것을 도우라? 수족을 자르라는 것은 전하께서 이미 하신 말씀이 아닌가? 
헌데 이순신을 도와 영웅과 간인을 구분하라는  것은 이순신과 함께 난을 일으키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전하께서는 이순신이 반란을 획책하고 있다는  의심을 풀지 않고 계신다. 
이미 왕실에서 반란의 조짐을 눈치채고 있다면 그 반란은 백이면  백 실패할 것이다. 제 아
무리 이순신이라고 할지라도 남해바다에서 이곳 한양까지는  천릿길이다. 육군도 아니고 수
군으로 조정과 맞선다는 것은 어림없는 짓이다.
  허균은 지니치게 민심에 의지하고 있다. 이순신 이 하삼도의  민심만 장악하면 난을 성공
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허나 민심이 무엇인가? 민심은 곧 천심이란 말도 있으나, 배불
리 먹여주고 따뜻하게 입혀주는 이에게 고개 숙이는 것이 바로 저 어리석은 백성이 아닌가? 
지금은 전쟁중이라 백성들의 마음이 이리저리 요동을 치지만, 전쟁이  끝나고 다시 한 철만 
풍년이 들면 민심도 안정되리라. 조금이라도 더 배운자가 덜 배운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 더
불어 사는 것이 공맹의 첫  가름침이 아니었던가. 내 어찌 촌무지렁이들의  거친 손을 믿고 
이름을 더럽힐 수 있으리. 배움을 지극히 하며 전하의 어명을 기다릴 일이다.  하지만 허균
의 말처럼, 이순신의 가슴속에서 불꽃 하나가 이글이들 피어오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토
록 핍박을 받았고, 또 그만큼 세상 이치에 밝은 이순신이므로 내가 영의정의 자리에서 물러
났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괜한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 
  그가 조금이라도 동요하면 그를 부추기는 휘하  장수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겠지. 아니될 
일이다. 경거망동 말라는 서찰을 보내야겠다. 이제와서 역적으로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유
성룡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지필묵을 준비했다. 밤을 꼬박  새웠기에 눈을 침침하고 등
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잠시도 늦출 일이 아니었다. 벌써 이순신의 마음이  흔들리
기 시작했을지도 몰랐다. 막  글을 쓰기 시작하려는데 마당에서  유용주가 아뢰었다. "대담, 
해원부원군께서 오셨사옵니다." 오음이 왔다고? 유성룡은 붓을 놓고 황급히  방문을 열었다. 
아직도 어둑어둑한 마당에 윤두수가 흰 수염을 쓸면서 서 있었다. 올해로 예순여섯 살을 넘
긴 노신 중의 노신이었다. 유성룡이 급히 마당으로  내려섰다. "어서 오십시오. 바람이 차니 
어서어서 안으로 드세요." "그럽시다." 윤두수는 군말  없이 안방으로 쑥 들어갔다. 그는 언
제나 몸가짐이 단정하고 힘이 넘쳤다.
  "서찰을 쓰고 계셨나보오?" 윤두수가 상석을 한사코 마다한 후 흘낏  지필묵을 살피며 물
었다. "낙향을 준비하기 위합입니다. 살 집도  그하고 읽을 서책들을 미리 마련해두려구요." 
유성룡이 느긋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요?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마당에 서애 혼자 
팔자가 피셨소이다그려." 윤두수가 수염을 쓸면서 슬쩍 비꼬았다. 유성룡은 사람  좋게 웃었
다. 이제 이 꼬장꼬장한 노인네와  말다툼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서애! 아직은 물러날 
때가 아니오. 세상물정 모르는 사헌부와 사간원의 철부지 서생들에게  이 나라를 맡길 작정
이시오? 서애가 아니고는 산적한 난제들을 풀어갈  수가 없소." "그리 말씀해주시니 고맙습
니다. 허나 해원부원군께서도 아시다시피 이  몸은 주상전하께서 양위를 언급하실  만큼 큰 
죄를 지었소이다. 물러나지 않을 도리가 없어요. 또한 이일이 아니더라도 아미 병이 깊어 제
대로 조정의 대소사를 살필 수가 없소이다." "어허, 서애! 어찌 그리 약한 말씀을 하시오. 서
애의 나이 올해로 겨우 쉰일곱이오.
  환갑도 아직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병을 칭해서야 쓰겠소?"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
르기 마련이지요. 제가 물러날 때가 된 것입니다. 물론 이 전쟁을 끝까지 마무리짓고 물러난
다면 여한이 없겠으나, 세상일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는가요? 허허허, 그나저나  해원부원
군께서 직접 위로를 해주시니 제가 물러나긴 물러나는가봅니다."  유성룡은 계속 삶을 정리
하는 듯한 말투로 일관했다. 윤두수가  언성을 높이며 그를 꾸짖었다. "서애!  내 그리 보지 
않았는데 여인네만도 못한 사람이구려. 아무시 전하의 말씀이 섭섭했기로서니, 이렇게  훌쩍 
떠날 수가 있소? 저나께서는 잠시 서애를 아끼셨다가 다시 중용하실 뜻을 감추고 계신게 분
명하오. 영상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풍원부원군으로 계속 조
정 일을 살펴주시오. 벼슬을 잃고도  몽진에 참여했던 임진년처럼 말이오."  "그때와 지금은 
모든 것이 변했소이다. 제겐 그만한 용기도  열정도 남아 있지 않아요. 더한 과오를  범하기 
전에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오이다."
  윤두수가 가까이 다가앉으며 그의 손을 붙들었다. 유성룡은 놀란 눈으로 윤두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서애, 이대로 힘없이 물러나면 철부지들이  서애를 죽이려 들게요. 지금으로는 
끝까지 조정에 나와서 버티는 것이 최선이오. 내 도와 주리다." 내 도와주리다? 유성룡은 가
슴 한켠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평생의 정적으로부터 도와주겠다는 말을 듣다니, 내게 
그만한 가치가 아직 남은 것일까? 아니면  이제 나는 전혀 그에게 위협되지 않는다는  뜻일
까?  윤두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직도 세상과 맞서 견딜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을 과
시하는 것만 같았다. 유성룡은 조용히 그 손을 풀었다. "당장 낙향하지는 않을 겝니다. 한양
에서 겨울을 나고 명년 봄쯤 남쪽으로 내려갈 계획이지요. 그 안에 전쟁이 끝난다면 어쨌든 
이 몸은 한양에  남아 있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윤두수는 곧바로 낙향하지는 않겠다는 
말을 듣고는 한시름 놓은 듯 물러나 앉았다. 
  "허허헛, 그렇소. 우선 한양을  떠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오.  지금 남쪽으로 움직였다가는 
괜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유성룡은 그 어색한 침묵을 놓치지 않았다.  "오해? 방금 오
해라 하시었소? 이 몸이 남쪽으로 가면 무슨 오해가 생긴단 말씀이오?" 윤두수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했다. "누구보다 영상이 잘  알고 계시지 않소이까? 지금 하삼
도에는 반란의 기운이 넘치고 있어요. 정여립이나 이몽학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반
란의 움직임이오. 그들은 수만 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각종 무기로 무장하고 있소. 또한 이
미 수만 석의 군량미를 확보했다는구려. 나는 서애가 괜히  그쪽으로 움직엿다가 전하의 노
여움을 사지나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오." "..."  유성룡은 윤두수를 노려보았다. 이순신이 반
란을 일으킬 것이니 괜히 남쪽으로 가서 오해를 사지 말라는  것이다.  전하뿐만 아니라 해
원부원군까지도 이순신이 반란을 일으키리라 생각하고 있구나.  왕실은 물론 조정 대신들의 
절반이 똑같은 의심을 품는다면 설령 이순신이 결백하다 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의심들이 조정을 감쌌단 말인가?  "해원부원군께서
도...이통제사가 그, 그런 일을 하리라 보십니까?" 윤두수의 대답은 시원시원했다. " 서애!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장수가 있소. 결코 왕실을 배신하지 않을 장수와 결국 왕실을 배신하는 
장수. 원균, 신립, 이일등은 차라리 자결을 할 망정 결코 왕실을 배신하지 않을  장수들이오. 
허나 이순신은 왕실을 향한 충정이 그다지 두텁지 않아요. 서애나 휘하 장수들에 대한 애정
은 지나칠 정도로 두텁지만..." "이통제사는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소." "허허헛, 함부로 그
런 소린 마시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는 첫째, 천자이시며, 둘째, 주상전하이시오. 한낱 수
군의 장수 따위가 어찌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단  말이오. 논공행상의 대상이 되어야 하
는 자를 전하와 동등하게 비교하지 마시오. 더군다나 이순신은  이미 전하를 배신했던 적이 
있는 장수요. 한 번 배신한 자는 반드시 또 배신하게 되어 있소. 위급한 때에는  이순신처럼 
민심을 휘어잡으며 적과 맞서 싸울 장수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그처럼 영악
하고 정치적인 장수는 사라져야만 하오.
  조선이 공맹의 나라임을 서애도 잘 알고  계시지 않소이까? 공맹의 나라가 무엇이오? 문
신들이 왕실을 도와 만사를 해결하는 나라라오. 헌데 일개 장수가 감히 문신처럼 말하고 글
쓰고 움직인다면 참으로 나라의 큰 화근이 아닐 수 없소이다.  내가 원균의 복수를 하기 위
해 이순신을 친다고 생각진 마시오. 이 모든 것은 다 이순신, 그가 스스로 만든 올가미라오. 
알겠소?" 윤두수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한양을 떠나지  말라는 그의 충고가 협박으로 느
껴졌다. 가만히 한양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이순신과 연루시켜 사약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용무를 끝마친 윤두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가볍게 웃었다. 패자에게 아량을 베푸는 승자의 
미소였다. "허허허, 서애! 나는 이 나라 왕실과 조정을 향한 서애의 단심을 믿소, 세상  일이
란 것이 사필귀정 아니겠소? 곧 전하께서도 노여움을 풀고, 서애의 마음을 헤아리실 것이오. 
그때까지는 자중하시오. 
  내 며칠 내로 또 들르리다." 유성룡은 윤두수를 대문까지 배웅한 후 하늘을 울려다보았다. 
참으로 높고 푸른 늦가을 하늘이었다. 언젠가 이순신은 남해바다가 늦가을 하늘빛이라고 했
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그 하늘이 처량하고 슬퍼 보였다. 천천히 안방으로 들어간 유성룡
은 밀쳐두었던 지필묵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그와 이순신에게 닥쳐오고 있
는 지독한 운명에 대해 한 자 한 자 정성껏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13. 반역 
  무술년 11월 16일 밤.   조명 연합함대가 예교 앞바다를 봉쇄한 지도 닷새가 지났다. 백서
량과 유도를 거쳐 장도를 중심으로 조선의 판옥선과 명나라의 전선이 벌려 서자, 예교의 소
서행장은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조명 연합함대는 단숨에 예교를 함
락시킬 수 없었다. 왜성이 워낙 견고한 데다가 조수간만의 차가 심했기 때문이다. 썰물 때만 
되면 끝이 보이지 않는 진흙 개펄이 펼쳐져 군선들의  이동이 불가능했다. 9월 15일부터 10
월 9일까지 벌어졌던 기습 공격도 무위로 돌아갔다. 소서행장으 저항이 심했던 것도 사실이
지만, 명나라의 군선들이 소극적으로 움직였던 탓이다. 그들은 타고넘어 백병전을 벌일 마음
이 처음부터 없었으며, 수급을 챙겨 상을 받은 후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왜군 역시 
조선을 정벌할 뜻을 버린 지 오래였다.
  8월 18일 풍신수길의 죽음과 함께 전의르 상실한 그들로서는 무사히 귀국하는 것이 유일
한 바람이었다. 이미 철군령이 내렸으며 부산과 울산의 왜군들이 귀국길에 올랐다는 풍문도 
들려왔다. 그러나 예교의 왜군들은 쉽게 귀국길에 오르지 못했다. 권율과 유정이 이끄는  조
명연합 서로군이 육로를 완전히 봉쇄했을 뿐만 아니라, 이순신과 진린의 연합함대가 해로를 
막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겨울을 난다면 예교의 왜군들은 아사나 동사를 면할 길이  없었다. 
경상도의 왜군들이 철수하면 할수록 소서행장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고립은 곧  죽음이었다. 
이순신은 기다리고 있었다. 왜군이 스스로 성문을 열고 배에 올라서 개펄을 지나 조선 수군
이 쳐둔 덫에 발목을 들이밀 날도 멀지 않았다. 조명  연합함대는 다급할 것이 하나도 없었
다. 날씨도 화창했고, 군량미도 풍족했으며, 군사들의 사기도 높았다. 그 어는 해전보다고 눈
부신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어둠이 내리자 판옥선과 판옥선 사이를 오가는 경쾌선의 움직임이 더욱 잦아졌다. 지휘선
의 군령을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어둠은 조명 연합함대의 가장 큰 적이었다.  길게 
늘어선 판옥선 중에서 한두 척만 적의 급습을 받아  침몰된다면, 봉쇄망은 일순간에 무너지
고 왜군들은 썰물처럼 그 틈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척후선을 두 배로 늘리고, 김완과 배흥립
의 판옥섡을 전진 배치시켜 주위를 살피게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왜선은 비
선이라 불린 만큼 작고 빠르지 않은가.  진린의 사선이 이순신의 지휘선으로 접근했다.  "이
통제사, 저녁은 드셨소이까?" 진린이 환하게 웃으며 건너왔다. 그는 권준 이하  장수들을 물
리쳐달라고 했다. 은밀히 나눌 대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진린을 성갑판 아래 그의 침
소로 안내했다. 어제 읽던 서책이 탁자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무슨 책이오?" 진린이 신
기한 듯 물었다.
  "중용이오이다. 서애 대감께서 보내셨지요" "대단하십니다.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
는 상황인데 중용을 읽는다 이  말씀이시오?" "사람 사는 이치야 어디든  같지 않겠소이까? 
소장은 늘 정도를 생각하고 있소이다. 도독 또한 많은 서책을 섭렵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진린이 헛웃음을 웃었다. "허헛, 허허허!  그래요, 나도 젊어 한때는  서책을 꽤나 읽었다오. 
허나 지금은 무경칠서나 간간이 들출 뿐이외다."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명나라 제일의 수장
이 아니시오이까?" "허허허, 그런가요? 허허허." 진린은 또 흐물흐물하게 웃었다. 둥근 얼굴
에 웃음꽃이 피면 전쟁터를 누빈 장수라기보다는 욕심 많은 장사꾼 같은 인상을 풍겼다. 그
러나 이순신은 그의 웃음을 쉽게 따라하지 않았다. 어차피  명나라의 원군은 실속만 챙기려
는 구경꾼이며, 전쟁을 책임지고 마무리짓는 것은  조선 수군의 몫이다. "말씀을 히시지요." 
진린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통제사, 이미 전쟁은 우리으 승리로 굳어졌소이다. 패잔병들을 몰살시킬 것까지야 없지 
않겠소? 듣자하니, 소서행장은 가등청정과는 달라서 조선인 포로들고 우대하고,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하는 위인이라고 합디다. 그러니  이만 포위망을 풀도록 하오. 왜군들은  남해도에 
집결하여 자기네들 땅으로 조용히  돌아가겠다고 나오 약속을  했소이다." 이순신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도독! 그저께 도독께서 왜선 두 척을 몰래 남해도로 보내주었다는 말을 들었소
이다. 사실이오이까?" 진린이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좌우로 흔들었다. "더 이상 쌍방
이 피를 흘리지 않고 전투를 마무리하기 위함이오." "도독! 소장은 칠 년 동안 죽어간 이 나
라 백성들과 장졸들의 피값을 받아야 하겠소이다." 진린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소서행장이 
나와 약속을 했소. 
  수급 이천 개를 주겠다고 말이오. 헌데 예교에는 그만한  수급이 없으므로 남해와 연통을 
취하겠다고 해서, 그들의 배를 통과시켜준 것이라오. 이통제사! 수급 이천 중 오백을 그대에
게 드리리다. 수급 오백이면 큰 상을 받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오. 피흘려 싸우지 않고  전공
을 세울 좋은 기회를 놓칠 셈이오?" 이순신은 두 손으로 허벅지를 누르며 분노를  가라앉혔
다. "도독! 소서행장이 왜군의 수급을 정말 보내리라고 생각하시오이까? 설령 수급을 보내온
다손 치더라도 그건 왜군의 수급이 아니라 이나라 백성의 수급일 것이오. 동포의 수급을 받
은 대가로 철천지원수를 무사히 돌려보내라 이 말씀이시오이까? 도독이라면 동포를 팔아 전
공을 세우고 싶으시겠소이까? 소장은  도독에게 실망이 크오이다. 어찌  천장께서 오랑캐의 
얄팍한 술책에 그리 쉽게 현혹되시오이까?" 
  진린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소서행장으로부터 수급을 넘겨받아 전공을 챙길 생각만 했
지. 그 수급이 누구의 것인가는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인의 수급을 왜군의  수급으로 
둔갑시켜 전공을 쌓았다는 소식이 명나라 조정에 알려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진린 역시 임
금을 속인 죄로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순신이 그의 명령을 정면으로 
되받아친 것이 몹시 불쾌했다. 어쨌든 이 연합함대의 주장은 진린이다. 그런데 이순신이  그
의 명령을 논박한 것이다. 조선 조정과 마찰을 일으킬 만큼 담이 큰 장수라더니. 과연! 진린
은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잘못을 시인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진린의  마
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이순신이 온화한 미소로 말했다. "도독께서 소장을 한 번 시럼해보려
고 그런 말을 하셨다는 걸 잘알고 있소이다. 도독께서  예교의 왜군을 섬멸하라 명령하신다
면 소장이 선봉에 서지요." "허허허" 진린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의 도움으로 일단 체면은 선 셈이다. "도독! 청이  하나 있소이다." "말해보오." "도
독의 사선은 그 크기가 왜선보다 작고 빠르기 또한 왜선에 미치지 못하오. 혹 왜 선단과 정
면으로 맞붙었을 때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소이다. 그래서  소장이 도독께 판옥선을 선물하
려고 합니다만..." "판옥선을?" 진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명나라의 군선 중에서 가장 큰 배인 
사선은 그 크기가 판옥선의 절발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 동안 진린이 조선 수군의 판옥선에 
눈독을 들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감히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순신이 자
진해서 판옥선을 주겠다니, 이 보다 더 기쁜 일이 없었다. 진린은 기쁨을 감추려는 듯  헛기
침을 두어 번 했다. "좋소, 내 통제사의 정성을 생각해서 특별히 받도록 하겠소.  그럼, 이만 
물러가리다. 우리가 오늘 나눈 대화는 비밀에 부쳐주시오." "알겠소이다. 도독!" 이순신은 미
리 준비해두었던 판옥선 두 척을 진린에게 내어주었다.
  진린은 거듭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명나라의 군선들이 모여 있는 장도쪽으로  사라졌
다. 이물에 서서 배웅을 마친 이순신이 권중에게  짧게 속삭였다. "들어들 오게." 십여 명의 
장수들이 앉기에는 공간이 부족했다. 정례적인 군중회의 상갑판에 살치한 군막에서 여는 것
이 보통이었으나, 오늘은 주위의 호위병들도 모두 물리고 어둠침침한  그의 침소를 택한 것
이다. "다 왔는가?" 이순신이 맨 마지막에 문을 닫고 들어온 이영남에게 물었다. "예, 장군!" 
이순신은 눈을 들어 좌중을 살폈다. 권준, 이순신, 배흥립, 김완, 이영남,  정사준, 나대용, 이
언량, 박이량, 이기남, 송희립이 그의 시선을 받았다. 그가 전라좌수사로  부임하면서부터 생
사고락을 함께 한 수족과도 같은 장수들이었다. 전라우수사 안위와 순천부사 우치적은 부름
을 받지 못했다. 삼도 수군의 장수들이 모두 참여하는 군중회의가 아닌 것이다. 이순신과 마
주 앉은 권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잘하셨습니다. 이제 진도독도 마냥 몸을 사리지만은 못할 테지요. 문제는  남해도로 빠져
나간 왜선 두 척인데, 틀림없이 구원병을 이끌고 우리의 배후를 칠 겁니다.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겠지요."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상우수사 이순신을 쳐다보았다.  "입부가 뒤를 맡
도록 하오." 그는 공식석상에서 장수들의 호나 자를 부른 적이 없었다. 방안의  분위기가 더
욱 끈끈하고 단단해졌다. "예, 장군!" 이순신은 고개를 끄덕인 후 좌중을 다시  살폈다. " 서
애 대감의 서찰은 다들 읽어보았소?" 지난 한 달 동안 이순신은 유성룡으로부터 서찰을  두 
장 받았다. 서찰을 전한 유용주는 이제 곧 유성룡이 삭탈관직을 당할 것이라는 풍문이 저잣
거리까지 파다하게 퍼졌음을 알렸고, 귀양은 물론 사약까지 받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울먹이
는 유용주에게서, 이순신은 한양의 상황이 최악임을 직감했다. 유성룡은 늙고 병들어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서 낙향한다고 적었지만,  그것은 그를 안심시키려고 꾸며낸  거짓말이었다. 
오늘 오후, 유성룡의 서찰을 이영남 편에 들려 장수들에게 읽혔다. 그리고 각별히  입조심을 
시켜 비밀 회의을 연 것이다. 정사준이 들창코를 벌렁이며 말했다.
  "다들 느꼈겠지만, 서애 대감께서 자진해서 물러나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서인과 북인
의 협공을 받으신 듯합니다." 이언량이 눈을 부라렸다. "아니 어떤 놈들이 서애 대감을 공격
한단 말이오?" 권준이 이언랴의 말을  잘랐다. "조정에서 큰 소용돌이가 일고  있군요. 헌데 
장군! 우리를 이곳에 모이게 한 까닭이 무엇인지요? 한양의  분위기를 알려주기 위함이라면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혹 어떤 명령을 내리시려는 것인지요?" 어색한 침묵이 
방안을 감쌌다. 배가 좌우로 천천히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파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모양이
다. 이윽고 이순신이 입을 열었다. "나는...그대들의 뜻에 따르겠소.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들
을 말해주오." 권준이 이순신의 말꼬리를 잡아챘다. "다들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를 알겠
지요? 자, 그럼 허심탄회하게 각자의  의견을 말해봅시다." 나대용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
다. "서애 대감께서 물러나셨다고는 하나, 아직 조정에는 이원익 대감과 이항복 대감이 정승
의 반열에 있소이다. 또한 이덕형 대감도 도체찰사의 소임을  계속 맡아 하삼도를 지휘하고 
있소이다. 조정의 분위기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볼 것은 아인 듯하오." 
  정사준이 반대 의견을 냈다. "칠 년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의병을 주도했던 쪽은 북인이었
소. 전쟁이 끝나고 논공행상이 시작되면 그들의 입김이 가장 강할 것은 불을 보듯 확실하지
요. 서인 역시 그 동안의 잘잘못을 가리면서 서애 대감을  비롯한 남인들을 치려고 덤빌 테
지요. 서애 대감이 물러난 것이 첫 조짐입니다. 이 달 안에 왜군이 완전히 물러가면  전쟁도 
끝날 것인즉, 서애 대감이 삭탈관직을 당하고 나머지 정승들도 탄핵을 받을 날이 멀지 않았
어요. 미리미리 대책을 세워야 하오이다." 이기남이 끼여들었다. "문신들이야 예전부터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 않았소이까? 저들의 당쟁이 격화된다손 치더라도 조선 수군의 전공이 명명
백백하게 드러났는데 우리에게 무슨 화가 미치겠소이까?" 권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요. 
정유년에 통제사께서 한양으로 압송되실 때도  무슨 죄가 있어서 그랬나요? 우리는  변방에 
있습니다. 
  조정 대신들의 논의에 참여할 길이 없다 이 말이지요." 권준은 잠시 말을  끊었다. 주위의 
시선을 좀더 집중시키기 위함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내로라  하는 장수들을 대대적으로 잡
아들여 죽일 것입니다." "장수들을  죽인다? 그 이유가 무엇이오?"  김완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 큰 파도가 해안을 덮치면 곧이어 그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힘이 넘치는 파도들
이 연달아 밀려옵니다. 왜군은 단숨에 조선을 삼키려 들었지요. 허나 그들은 전투에서 졌고, 
이제 빈턴터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큰 파도가 지나간 셈이지요. 왕실과 조정  대신들
은 틀림없이 그 다음 이어질  파도를 걱정할 것입니다. 제일 먼저  그들은 왜군과 맞서려고 
변방 장수들의 힘을 터무니없이 키웠다고 생각할 터이지요. 그리고 정여립, 이몽학 등을  떠
올리고 내부의 적을 찾을 것입니다. 자, 생각해봅시다. 
  의병장 김덕령은 죽었고, 곽재우는 은둔했습니다. 도원수 권율은 아침저녁으로 한양에  장
계를 띄워 충성을 맹세했고, 대장군 이일은 아예 왕실과 조정을 지키겠다며 나섰지요.  그렇
다면 왕실과 조정 대신들은 누구를 지목할까요? 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파도가 누구겠느냐 
이 말씀이니다." 박이량이 답했다. "조선 수군의 으뜸 장수 이통제사가 아니겠소이까?" 권준
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보셨습니다. 정여립의 난 이후로 조정 대신들은 전라도를 역적의 
땅이라고 규정했지요. 지금 우리는 그 전라도의 바다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조선 수군을  통
솔할 수 있는 실제적인 권한은  이통제사게 집중되었고, 민심도 우리편입니다. 만약  우리가 
군선을 이끌고 황해를 거슬러 올라 곧장 강화도를 치고 한양으로 진격한다면 어찌 되겠습니
까?" 이순신이 반문했다. "그것은 반역이 아니오이까?" "그렇지요. 반역입니다. 대역죄로  몰
지 않고는 장수들을 참형에 처할 수 없지요." 나대용이 물었다. 
  "허나 우리는 반역을 도모한 적이 없소이다." 정사준이 끼여들었다.  "우리가 반역을 도모
하고 아니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애 대감이 없는 조정은  틀림없이 조선 수군을 역도
의 무리로 매도할 겁니다. 우리가 쌓은 불패의 신화가 저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 또한 사실
이니까요." 배흥립이 말했다. "썅!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소이다." 권준이 대꾸했다. "그렇지
요.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지요. 전쟁이 끝나면  당장 통제사를 잡아들일 것입니다." 김완이 
물었다. "무슨 죄목으로 통제사를  잡아들인다는 말씀이오?" "죄목이야  만들기 나름이지요. 
철군하는 왜군을 힘껏 치지 않았다는 누명을 씌울 수도 있고, 전라도에서 월권 행위를 일삼
았다고 몰아 세울 수도 있지요. 어쨌든 통제사를 압송하여  대역죄로 얽어맨 다음에는 우리
들 차례이겠지요. 반역을 혼자서 도모할 수는 없는노릇이니, 작당한 무리가 필요하지 않겠습
니까? 나 권준은 물론이고 여기 모인 장수들은 모두 반역을 꾀한 주모자로 몰려 죽음을 면
키 어려울 것입니다. 능지처참을 당하고 삼족이 죽어나가겠지요."  권준의 목소리가 한층 날
카로워지자 장수들도 사태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멸문지화를 당할 순간이 눈앞에 닥친 것이다. 송희립이 나섰다. "의금부에서  또다시 어명
을 받들고 오는 자가 있다면 소장이 나서서 먼저 베겠소." 박이량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
다. "피흘리며 싸울 때는 코빼기도 아니 보이던 놈들이  이제 전쟁이 끝나고 나니 우리들의 
공을 훔치려고 해? 어림도 없지, 개새끼들!" 나대용이 박이량과 송희립을 진정시켰다. "흥분
하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소. 조정의 움직임을 보시오. 저들은 누구보다도 사리에 밝고  일
처리에 빈틈이 없소이다. 서애 대감을 치면서도 나머지 사람들은  그대로 둬서 우릴 안심시
키고 있지 않소? 우리도 역시 무분별하게 분노하는 것보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전략을 짜야
만 할 것이오." 정사준이 나대용을 거들었다. "그래요. 그 말씀이 참으로  옳아요. 지금 당장 
배를 돌려 한양을 칠 수는 없지요. 명분을 쌓는 일이 중요합니다. 명나라 조정도 깜짝  놀랄 
만큼 대단한 승리를 이번 전투에서 거두도록 합시다. 그리고 배를 정비하고 군량미를 더 모
으고 군사들과 백성들의 마음을 다독거린 후 거병을 해야 합니다." 거병!  군사를 일으킨다
는 것은 곧 이 나라 왕실과 조정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뜻이다. 장수들의 시선이 일제
히 이순신에게 쏠렸다.
  이순신은 그들의 눈빛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려달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화살을 다시 권준에게 돌렸다. "권수사의  생각은 어떠시오?" 권준
이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차분히 답했다. " 장군께서 무군지죄로 끌려가실 때부터 이미 조선 
수군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지요. 이제 남은 길을 외길입니다. 우리가 모두 죄인이 되든가 저
들이 모두 죄인이 되든가 양단간에 결정이 나겠지요. 이 마지막  전쟁의 승자가 칠 년 전쟁
의 진정한 승자로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왕실과 조정 대신들이 먼저 칼을 뽑았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지요. 이대로 묵묵히 하명만 가다린다면, 저들은 우리의 손발을 자르고 눈을  뽑고 
심장을 도려낼 것입니다." 장수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우리에겐 미약하나마 팔
십여 척의 판옥선과 이만 명이 넘는 군사, 그리고 또  그만큼의 활과 화살, 총통, 수만 석을 
헤아리는 군량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성들로부터 진정  존경받는 통제사께서 계시지요.  전라도를 제외하면 
하삼도의 다른 지역은 아직까지 전쟁의 상처가 깊습니다. 북삼도의  백성들 역시 혹독한 추
위와 기근, 그리고 병마 때문에 선뜻 이 나라 왕실과 조정을 돕지는 않을 것입니다. 봄이 오
고 전쟁의 상처가 아물면 승산이 없어요. 왜군이 물러나자마자  최대한 빨리 전열을 정비하
여 거병해야 합니다." 권준의 입에서도 거병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더군다나 그는 그 시
기를 이번 겨울로 못박기까지 했다. 배흥립이  물었다. "이번 겨울은 너무 촉박하지  않소이
까?" "마지막 전투에서 최대한 손실을  줄여야 합니다. 준비 기간을  많이 잡을수록 저들도 
대비를 하지 않겠어요? 그 전에 통제사를 잡아들일 모략을 구밀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왜군 패잔병을 무찌르고 장졸들의 사기가 높을 때 곧바로 그 여세를 몰아 거병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여러 장수들의 생각은 어떠시오?" 이언량이 먼저 답했다. "찬성이오. 빠르면 빠
를수록 좋지! 내 이번에는 나라를 이 꼴로 만든 놈들을  그냥 두지 않겠소이다." 김완, 배흥
립, 박이량, 이기남도 그 뒤를 따랐다. "찬성이오." "따르겠소이다." "소장에게 선봉을 맡겨주
십시오." "소장 역시 앞장을 서리다." 이영남이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미...
우리는 한배를 탔소이다. 통제사를 모시고 지옥에라도 가십시다." 이제 장수들의  시선은 일
제히 경상우수사 이순신에게 쏠렸다. 그는 윤기 흐르는 긴 수염을 바닥에 늘어뜨린 채 아무
런 대답이 없었다. 성미가 급한 이언량이 대답을 재촉했다. "이수사는 우리와 생각이 다르시
오이까?" 이순신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튀어나온 광대뼈와 날카로운 눈매가 점점 통제사
를 닮아가고 있었다. 
  "쉽게 답할 문제가 아니오이다. 우리가 지면 우리들의 가족은 물론이고 조선 수군이 몰살
당할지도 모르오. 해전이라면 자신이 있지만 우리는 육지에서 전투를 벌인 경험이 없소이다. 
만약 왕실과 조정이 내륙으로 몽진하고 장기전을 편다면 우리에겐  승산이 없소. 조선의 백
성들은 대부분 땅을 파먹고 살아가는 농민들이오. 그들은 바다를  떠도는 우리보다 땅 위에 
뿌리박고 있는 조정을 택할 것이외다."  권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수사의 말씀이 
옳소. 시간을 끌수록 우리에게 불리하지요. 그러므로 급습을  해야 합니다. 다행히 한양에는 
한강이 흐르고 있지 않나요? 군선을 몰아 한양의 한복판까지  나아간 후, 단숨에 일을 끝내
는 것입니다. 물론 몇몇 대신과 왕실 족친들이 도망치는 것을 막을 수 없지요. 허나 일단 한
양을 장악하고 대세를 굳히면 우리의 거병은 성고할 수  있습니다." 좌중의 시선은 다시 이
순신에게  옮겨갔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중 또 신중해야 할 것이외다." 승낙을 한 
것이다.
  장수들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뜻을 모은 것을 자축했다.  이제 통제사 이순신의 마지막 
결정만이 남아 있었다. 권준이 장수들을 대신해서 청했다. "중심을 지켜만 주십시오. 나머지
는 저희들이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순신은 장수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빛을 나누었다. 
"고맙소, 이 나라아 수군의 장래를 걱정하는 그대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았소이다."   무술년 
11월 17일 새벽.  삼도 수군의 지휘선은 밤길을 좇아 유도로 물러났다. 닷개동안 잠시도 눈
을 붙이지 못한 이순신이 함대의 지휘를 이순신에게 맡기고 잠시 휴식을 위해 배를 돌린 것
이다. 이순신을 호위하던 조방장 이영남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경쾌선 한 척이  다가와
서 은밀히 서찰을 건넨 후부터 이순신은 갑자기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유도에 정박한 다음 
이순신이 이영남을 조용히 불렀다. "협선을 타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보게. 해안에  두 사내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모시고 오게. 딴 사람의 눈에 띄어서는 아니될 것이야." "서찰을 보낸 분이신가요?" "자넨 
알 필요 없네. 속히 다녀오게." 이순신이 짧게  명령하고 냉정하게 돌아섰다. 통제사가 저토
록 차가운 태도를 취할 때는 더 이상 말을 붙여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영남은 잘  알고 
있었다. 이영남이 떠난 후, 이순신은 갑옷  속에서 서찰 두 장을 꺼냈다.  한 장은 유도에서 
만나고 싶다는 병조좌랑 허균의 서찰이었고, 또다른 한 장은  이틀 전 해원부원군 윤두수가 
적어보낸 것이었다. 그는 먼저 허균의 서찰을 살폈다. 서애 유성룡 대감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했으니 함께 만나 앞으로의  일을 의노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순신은 허균이 
병조좌랑에까지 오른 것이 믿어지지 않았고, 하필 지금 그를 찾아온 것도 의심스러웠다.  그
러나 어쨌든 그는 서애 대감께서 특별히 아끼는 제자이니 조정의 분위기와 곤경에 처한 서
애 대감에 대해 좀더 자세한 소식을 접할 수 있으리라. 그는 허균의 서찰을 품에 넣은 다음, 
윤두수의 서찰을 살폈다.  해원부원군 윤두수로부터 서찰이 온 것은 참으로 뜩밖이었다. 갑
오년, 당시 도체찰사였던 윤두수로붙 거제도 장문포를 공격하라는 공문을 받은 적은 있으나 
사사로운 서찰은 처음이었다. 
  그는 이 서찰을 유성룡의 서찰과  함께 휘하 장수들에게 보일까  망설이다가 그만두었다. 
유성룡의 서찰이 조선 수군을 염려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큰 공을 세워 명분을 찾으라는 내
용인데 반하여, 윤두수의 서찰은 좀더 그 범위를 좁혀 이순신 개인의 미래에 대해서만 언급
하고 있었다. 벌써 두세 번 거듭 읽어서 낯이 익은 부분이 눈에 먼저 띄었다.    ...그러므로 
무군지죄를 범했던 통제사는 일의 전후를 살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오. 위로는 주상전하를 위하고 아래로는 이 나라 백성들을 위하는 용단 말이외다. 서
애가 물러난 것으로부터 가르침을 얻으시오. 사람이란 나서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뚜
렷하게 구별해야만 하오. 통제사 자신을 위하고, 통제사의  가문을 위하며, 통제사의 후손들
을 위하고, 나아가 통제사가 아끼는 휘하 장수들과 삼도 수군을 위해, 통제사가 할 일을  신
중히 생각하오. 만약 통제사가 정도에 맞는 합당한 행동을  취한다면 그대의 이름이 청사에 
빛날 것이며, 그대 후손들에게도 그 영광이  고루 돌아갈 것이외다. 또한 그대가 피땀  흘려 
만들어놓은 삼도 수군의 위용도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오.
  부디 불멸의 길을 가시오. 허나 만약 그대가 시대를 잘못  읽고 사도를 택한다면 그대 가
문은 물론 조선 수군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오. 뒷일은 내가 책임지리다. 사사로이 목숨을 아
끼고 시간을 벌다가는 김덕령처럼 개죽음을 당할 뿐이란 것  명심하오. 서애로부터 나는 그
대가 그 어떤 문신들보다고 글을  잘하고 세상 이치에 밝다고 들었소.  그대가 올린 장계를 
살필 때, 과연 그대는 전하의 마음을 헤아리며 추호도 흐트러진 마음을 보이지 않았소. 이제 
마직막으로 다시 한 번만 그대의 이름을 스스로 높여주시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뿐이
외다...   번거로운 문장으로 변죽으로 울리고 있지만 윤두수의 뜻은 분명했다. 왕실과 만백
성을 위해 전사하라는 것이다. 그가 죽음을 택한다면 그의 사랑스런 부하들과 가문,  그리고 
후손까지 광영을 입게 된다. 그것은 윤두수의 생각일 뿐만 아니라 이 나라 군왕의 생각이기
도 하리라. 그 혼자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짐으로써 수많은 장졸들이 성은을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이 온종일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잠을 청해도 정신이 더욱 또렷했다.  목숨을 건 바뀌치기를 하자는 말이군. 해원부원군 윤
두수는 참으로 큰 인물이었다. 그는 이미 전쟁이 끝나면 조선 수군과 통제사 이순신의 처지
가 어찌 될 것인가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권준은 양자택일을 하라고 했다. 군사를 일으켜 
운명을 시험할 것인가, 앉아서 사약을 받을  것인가. 윤두수는 그 위에 또다른 길을  제시했
다. 한 사람의 죽으으로 만인을 구하는 길, 휘하 장수들은 이미 거병을 하기로 가닥을  잡았
으나, 그는 아직도 세 가지 가능성 속에서 휘청대고 있었다. 어느 것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손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이영남이 불쑥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이순
신은 펼쳐보던 서찰을 급히 감추었다.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이영남을 뒤따라 호리호리한 
사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들어왔다. 이제 갓 서른 줄을 넘긴 허균이었다. "나가 있게, 사
람들의 출입을 막아주고." 이순신은 이영남을 밖으로 내보내다. 이영남이 군막을  나서자 이
순신이 허균에게 자리를 권했다. 
  "언제 병조좌랑이 되셨소?" "지난달 중순입니다. 한  이 년 북삼도를 떠돌았더니 서애 대
감께서 벼슬자리를 하나 주시더군요." "헌데 이곳까지  어인 일이신지...?" "전라도를 암행하
라는 어명을 받았소이다." 어명? 이순신의 표정이 달라졌다. 전라도를 암해하라는 것은 반역
의 기운을 은밍히 살피라는 것이 아닌가?  "히히힛, 왜  그리 놀라십니까? 천하의 이통제사
께서 이 몸에게 감추어야만 하는 무슨 죄라도 지셨소이까?" 머리를 후벼파는 날카로운 웃음
은 여전했다. " 죄는 무슨...서애 대감은  어떠하시오?" "속병이 깊습니다. 제대로 몸을 가누
지도 못하시지요. 꼼짝없이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서애 대감!  이순신은 저
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서애 유성룡이 누구닝가. 이 나라 최고의 학시과 덕망을  갖
추고 있으며, 이 나라를 제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분이 아니던가. 그런 분이 절망에  빠지
고 병들어 죽게 생겼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 한켠에 쌓아놓은 큰 둑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조정의 분위기는 어떠하오?" 
  "서애 대감께서 물러난 후에도 계속 탄핵상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서애 대감이 군
권을 함부로 휘둘렀다는 상소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어요."  허균은 잠시 말을 끊고 이순
신으 표정을 살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서애 대감뿐만 아니라 이원익 대감이나 이덕형, 이항
복 대감은 물론 권도원수와 이통제사까지 위험하오. 대역죄로 몰릴지도 모르는 일이오이다." 
대역죄? 이순신은 허균에게서 그 단어를  듣고 씁쓸하게 웃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죽음의 벼랑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장군!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소생이 잠시 장군을 찾아
뵌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그때 장군은 이 나라 조정과  왕실에 대한 굳건한 충성
심으로 소새을 내치셨지요. 허나 칠 년이  지난 지금, 장군께서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바쳐 
충성했던 이 나라 조정과 왕실은 장군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습니까? 왜군을 물리친 후 곧바
로 죽여야 하는 또다른 역적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장군! 서애 대감은 장군 때문에 저리 되신 것이오이다. 어전에서 장군을 모함하는 신료들
과 맞서 싸우고, 성심과 반대하는 간언을 했기 때문에 영의정에서 쫓겨난 것이지요. 서애 대
감이 누구십니까. 그 누구보다 전하의 마음을 깊숙한 곳까지 헤아리시고 물 흐르듯 말과 행
동을 가다듬난 분이오이다. 헌데 장군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던지셨어요. 이제 장군께서  그 
은혜를 갚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이들을 쳐야하오이다."  이순신이 차
갑게 물었다. "나더러 반역을 하라  이 말이오?" 허균이 좀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 반역이 
아닙니다. 역사를 바로 잡는 길이지요. 이 전쟁의 진정한 승자를 가리는 일이오이다. 마땅히 
서애 대감과 장군께서 영웅이 되셔야 하오이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참화를 겪지 않을 것입니다. 얼렁뚱땅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지나치
면 이 나라는 다시 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치욕적인 전쟁을 말입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하오이다. 허나 지금 조정에서 거들먹거리는 자들
은 책임을 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깨우쳐야 합니다.  말로 안되면 힘으로라도 말입니
다." "허나 서애 대감은 내가  거병하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이오. 또한 나는 일개  장수일 
뿐,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도 없소이다." 허균이 히죽  웃었다. "군왕의 기이 뭐 별건 줄 아
십니까? 이미 장군은 지난 칠 년 동안 성군의 길을  걸어왔소이다." 이순신 깜짝 놀라며 물
었다. "무슨 말이오?" "소생은 이곳으로 오면서 확인했소이다. 전라도의 어느  곳에 가서 누
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장군만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만백성의 가슴속에 희망으로 고이 간직
된 이가 있다면 그가 곧 성군이 아니고 무엇이겠소이까? 
  장군께서는 반역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백성들이 택한 길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오이
다." "그것이 어찌 나의 공이겠소?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가 천하에 미치는 것이오." 허균
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직도 소생을 믿지 못하십니까? 이것을 보시지요." 허균이 소
매에서 지도 한 장을 꺼냈다. 한양전도였다. 군데군데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소생은 이미 
한양을 지키고 있는 장졸들의 수와 군영을 파악했소이다. 이제  일을 성공시키는 것은 어린
애 손바닥 뒤집기보다도 쉽소이다." 이순신은 그 지도르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허균의 말대
로 이 지도를 참조하여 진격한다면 단숨에 한양을 점령할  수 있다. "서애 대감께서 문신으
로 평생 조정을 지키셨듯이, 나 이순신 또한 장수의 길을 걸었을 따름이오. 이제 와서  다른 
길을 엿보는 것은 가당치도 않소." "허어, 장군! 이대로  하명만 기다리시면 장군의 그 영광
스런 이름이 보존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전쟁이 끝나자마자 저들은 장군의 이름 앞에 역적
이란 두 글자를 새겨넣을 것이오이다. 
  그리고 장군이 이 전쟁에서 거둔 모든 전공을 훔친 다음, 장군을 나라를 빼앗으려고 발버
둥친 소인으로 폄하하겠지요. 처음에는  충신이었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역적으로 둔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장군이 대역죄인으로 몰려 사약을  받는다면 장군의 삶 
전체가 대역죄인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믿는다고 하시겠지요? 허나 이 세상에는 죽
음을 무릎쓰고 장군의 명예를 되찾아줄 사관은 없소이다.  도대체 역사가 무엇입니까? 승리
한 자, 힘있는 자들이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자리가 아니오이까? 장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소이다. 장군의 지난 삶은 기키고 앞으로의 삶을  당당하게 꾸려나갈 미지막 기회입
니다. 지금 조정에는 소생과 뜻을 같이하는 젊은 신료들이 상당수 있소이다. 한양의  백성들
도 장군의 편입니다. 장군! 검을 뽑으십시오."  이순신이 말머리를 돌렸다. "한 가지만  묻겠
소. 그대는 왜 나를 지목하였소? 
  왜 내게 자꾸 찾아와서 뜻을 합치자고 하는 것이오?" 허균은 예상 밖의 질문을 받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건 아마도 소생이 장군을 믿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순신이 반문했다. "나를 믿는다? 내가  누군 줄 알고 믿는단 말이
오?" 허균이 답했다. "꼭 함께 지내야만 상대방을 아는 것은 아니지요. 장군은 두 번이나 백
의종군을 당했습니다. 장군은 절망이 무엇인가를, 삶의 나락이 무엇인가를 누구보다도 잘 아
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 왕실과 조정 대신들이  얼마나 무능하며 백성들을 착취하는가
를 똑똑히 알고 계시지요. 장군은 그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저 뿌리 깊숙한  곳에서부터 
해결하는 방도를 찾고 계신 분입니다. 장군께서 칠 년 동안 전라도를 다스리며 행하였던 그 
많은 일들은 일개 장수가 즉흥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장군께선 오래 전부터 
새로운 왕실, 새로운 조정, 새로운 정치를 꿈꾸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나라의 군왕이 장군을 죽이려 한 것은 장군이 하고 있는 일들이 정여립이나 이몽학이 
일으킨 난보다 훨씬 두려운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장군의 품에서 평안을 누린 백성
들은 이제 썩어빠진 왕실과 조정의 명령에 호락호락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전라도를 조
선 수군 아래 둔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함이었소. 또한 목민관으로서 행한 일들은 휘하 
장수들의 도움이 컸소." 허균이 말꼬리를 붙들었다. "군왕이 모든 일을 다 하는 법은 아니지
요. 성군 아래에는 언제나 탁월한 재상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순신은 다시 허균의  말을 
부인했다. "아니오. 천하의 주인은 따로 있소이다. 나는 나를 아오. 삼도수군통제사는  이 자
리가 내가 차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자리오. 그 이상은 원치 않소. 자, 이제 그만 돌아가시오. 
곧 날이 밝을 테고, 남들의 눈에 띄어 좋을 이유가 없을 터이니까."  허균은 안타까운 듯 주
먹으로 가슴을 쳤다. "시간이  없소이다." "돌아가시오." 이순신의 언성이  높아졌다. 허균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습니다. 전라도를 한 번 더 암행한 후 다시 들르겠소이다. 그땐 장군의  마음이 돌아서 
있기를 바랍니다." 허균의 목례를 받으며 이순신이 잘라 말했다. "들르지 마시오. 앞으로 그
대를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요." 허균이 군막을 나섰다. 저만치 서 있던  이영남이 종종걸
음으로 달려왔다. 허균은 힐끗 뒤를 살피며  이영남에게 말했다."통제사를 잘 보좌하십시오. 
조선 수군 전부를 합친 것보다도 더 소중한 분입니다." "알겠소이다."  이영남이 앞 뒤 문맥
도 모르고 굳은 얼굴로 답했다. 시뻘건 태양이 동쪽 섬과 섬 사이에서 불끈 솟아올랐다.  그 
붉은 기운 사이오 허균은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그 길의 끝에서  여자처럼 선이 고운 
사내가 다소곳이 허균을 기다리고 있었다.
  
    14. 운명의 소용돌이 
  무술년 11월 18일 밤.   해시가 가까웠다. 바람은 잔잔했고 보름을 넘긴 달은 아직도 두둥
실 높이 떠서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예교의 왜군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해도와  부산
의 왜군 중 일부가 서진을 시작했다는 급보가 계속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총통이 불을 뿜고 
불화살이 날면서 전투가 벌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사위는 조용하기 이를데 없었다.  이영남
의 판옥선에 협선 두 척이 닿았다. 나대용과 이언량이 주위를 살피며 판옥선으로 옮겨 탔고, 
갑판에 서 있던 이영남은 그들과 반갑게 손을 잡았다.  군사들을 물리자마자 이영남이 그들
을 부른 이유를 말했다. "통제사께서 이상한 군령을 내리셨소. 이번 전투에는 조방장 지휘선
에 동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오."  이언량이 물었다. "조방장이 번갈아  통제사의 지휘선에 
타는 것은 오랜 관례가 아니오?" 
  "소장의 말이 바로 그 말이오. 헌데 통제사께서는  한사코 배조방장이나 소장이 동승하는 
것을 금하셨소이다. 다른 판옥선을 이끌고 왜선을 더 많이 격침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참으로 이상한 일이오이다." 나대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허면 누가 지휘선에 타게 
되는 것이오?" "일단 독전군관 송희립이 탈 것이고, 오랫동안 통제사를 보필해온 날발과 통
제사의 장남 회, 그리고 조카 완이 동승할 것이오이다." 이언량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
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장남과 조카라...가족들만 거느릴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인
가?" "어쨌든 이번 전투만 치르면 왜와의 칠 년 전쟁도 끝이 나는 것이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통제사를 지켜야 하오.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이 말입니다." 나대용이 근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이번에도 통제사께서 선봉에  서신다고 하셨소?" 이영남이 고개를 저
었다. 
  "아닙니다. 선봉은 이미 노량에 나가 있는 경상우수사가 맡을 것이오.  통제사께서는 당신
이 나서겠다고 극력 주장했으나, 권수사와 이수사가 만류했소이다. 권수사는 특별히  소장을 
불러 통제사의 지휘선을 철저히 보호하라고 하셨소. 두 분과 함께 말이외다." 이언량이 몸을 
뒤로 젖히며 답답해했다. "헌데 왜놈들은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거지? 예교에 갇힌 왜군
들을 포기하고 벌써 귀국해버린 게 아니오?" 이영남이 대답했다. "예교에 갇혀 있는 소서행
장은 저들의 으뜸 장수요. 결코 버려두고 물러가지는 않을 것이외다. 통제사께서도 오늘내일 
결판이 난다고 보시고 계시오. 놈들이 남해도에서 내해를 택한다면 노량으로 올 것이고,  외
해를 택한다면 미조목으로 올 게요. 지금으로선 노량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크오이다. 그쪽이 
지름길이기도 하고." 나대용이 물었다. "허면 우리가 노량이나 미조목으로 군선을 이끌고 가
는 사이에 소서행장이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갈 수도 있지 않소?" "그렇소이다. 허나 소서행
장을 잡으려고 유도에 그냥 머무르다가는 적의 협공을 받아 오히려 우리가 몰살당할 위험이 
크지요.
  일단은 운신의 폭이 자유로운 관음포쪽으로  빠져나가야 할 것이오. 그리고  전황을 봐서 
앞뒤의 적을 동시에 쳐야지요." 이언량이 주먹으로 이마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렇다면 통
제사를 후미로 돌려서도 아니되겠군. 중군에 두고, 우리 셋이 지휘선을 앞뒤로 완전히  감싸
도록 합시다." 이영남과 나대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뒤의 적과 동시에 맞서는 것은  쉽지 
않은 싸움이다. 이영남이 사족처럼 덧붙였다.  "만약 통제사께 불상사가 생기면  죽음으로써 
함께 해야 할 것이외다. 통제사는 우리의 목숨보다 더  귀한 분이오." 같은 시각, 경쾌선 한 
척이 지휘선으로 곧장 나아왔다. 어제 오후, 이순신의 명을 받아 고금도의 통제영으로  갔던 
날발이 가볍게 배를 옮겨 탔다. "수고했네." 이순신은 날발의 얼굴을 보고 짧게 노고를 위로
할 뿐이었다. 이순신이 비단보자기에 싼 것을 통제영 자신의  숙소에 갖다두고 오라는 명령
을 내렸을 때, 날발은 그 보자기에 든 것이 이순신이 오래 전부터 써오던 일기라는 것을 직
감했다. 
  몇 권의 사서가 함께 들어 있었으나, 눈썰미가 좋은 날발은 이순신이 이른 새벽부터 일기
를 정리하는 것을 보았었다. 일기를 왜 통제영으로 보내는 것이옵니까?   이 물음이 혀끝까
지 올라왔지만 날발은 꾹 눌러 참았다. 십 년이 넘도록 통제사를 모시면서, 통제사의 수족이 
되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통제사가 내린 명령에 토를 달지 않았다. 
이해되진 않는 명령이 있더라도 그저 묵묵히 따를 뿐이었으며,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 명령
의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무조건 통제사를 믿기로 했다.  이순신은 저
녁을 먹고나서부터, 맏아들 회와 조카 완을 좌우에 앉히고, 그의 아버지 이정의 일생은 물론 
일찍 세상을 떠난 두 형 회신과 요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전투가 곧 벌어지
려는 상황에서 가문의 일을 들려주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았으나, 그들은 감히 이순신의 말
을 끊을 수 없었다. 그는 오늘따라 유난히 따뜻하고 촉촉한 음성으로 흐릿한 추억들을 더듬
었다. "너희들의 할아버지는 강직한  분이셨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저잣거리에서 곧잘 
싸움도 하셨지. 
  승패를 떠나 일의 옳고 그름을 항상 생각하시는 분이셨다. 학식도 깊으셨지. 그  아들들에
게 삼황오제의 위대한 임금들인 복희, 요, 순, 우의  이름을 내린것도 난세를 태평성대로 바
꾸는 데 큰 일을 하라는 뜻으로 그리 하신게다." 완이 물었다.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할아버지 처럼 곧고 단단한 분이셨다. 동생들을 자애하시면서도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할 
때는 할아버지보다 더 엄하게 꾸짖으셨지." 회가 물었다.  "작은 아버님은요?" "물처럼 부드
럽고 매사에 합리적인 분이셨다. 서애 대감께서는 지금도 형님의  높고 맑은 사람됨을 그리
워하시지."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황해바다를 돌고 온 바람이 연합함대를 스치고 동쪽으로 
지나갔다. "우리 가문은 빈한할 때나 부유할 때는 늘 종묘사직을 위하는 마음이 한결같았느
니라. 비록 그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세월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지 
않았다. 너희들도 그처럼 곧고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야. 장수의 길을 가더라도 서책을 
가까이 하도록 해라.
  몸은 비록 변방에 떨어져 있어도 사촌끼리 우애 있게 지내야  한다. 알겠느냐?" "예." "특
히 집안을 각별히 챙기도록 해라. 나는 비록 너희들 할머니의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했고 면
의 죽음도 막지 못했으나, 너희들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고 살거라. 항상 몸가짐을 바
르게 하고 말을 아끼도록 해라."  "예" 회와 완은 고개를  숙인 채 이순신의 당부를 끝까지 
들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주위를 맴돌았다. 임종 직전의 유언을 듣는 느낌이었다. "화
연입니다." 송희립이 큰소리로 아뢰었다.  밤하늘에 작은 불꽃 하나가  맴을 돌았다. 노량에 
나가 있는 배흥립이 올린 연이었다. 곧이어  불꽃 두 개가 더 올라왔다. 왜선들이  노량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관음포 앞바다로  가자!" 출정을 알리는 송희립의 북과  날발의 
뿔피리가 동시에 어둠을 뚫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오랫동안 쉬고  있던 격군들이 잠을 쫓
으며 힘차게 노를 젖기 시작했다. 판옥선들은 순풍을 타고 바람처럼 내달렸다. 한참을  나아
가는 중에 진린의 판옥선이 접근해왔다. 이순신이 속력을 늦추자, 진린이 허겁지겁 배를  옮
겨 탔다. 
  "무슨 일이오?" "남해도에 있던 왜 선다니 노량으로 접근하고 있소이다." 진린은 이순신을 
만류했다. "이 밤에 해전을 벌인다는 것은  무리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적을  치도록 합시
다." 이순신이 지휘봉으로 해도를 짚으며 말했다. "적들이 이곳 지형을  알기 전에 공격해야 
하오이다. 경상우수사가 왜군들을 노량으로 끌어들이면 기다렸다가 적을 치는 것이지요.  노
량을 지나 예교로 가는 뱃길은 이곳 죽도를 지나는 거소가 그 아래 관음포를 지나는 길뿐이
오이다. 도독께서는 윗길을 맡으십시오. 소장은  관음포에서 적을 기다리겠소이다." "왜선들
이 관음포로 가지 않고 죽도로만 몰려오면 어찌 하오?" 진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걱정 마
십시오. 죽도 근처는 암초들이 많아서 복병선을 배치한 쪽이 훨씬 유리하오이다. 또  왜선은 
백여 척이 넘을 것이니, 좁고 암초가 많은 죽도보다는 아래쪽 넓은 뱃길을 택할 것이오이다. 
혹 죽오데서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소장이 급히 달려가겠소이다." "알겠소. 약속은 꼭 지켜야
만 하오?"
   진린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의 판옥선으로 돌아갔다. 11월 19일 축시를 넘길 무렵,  조
선 수군은 관음포 앞바다에 도착했고, 진린이 이끄는 명나라  수군은 북상하여 죽도의 암초 
속에 배를 숨겼다. 이순신은 불빛 하나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라는 군령을 내렸다.  밤하늘
에 떠 있는 화연들이 점점 더 커졌다. 어둠 속에서 이순신이 옆에 서 있는 송희립이게 불쑥 
물었다. "자넨 운명을 믿나?" "예?" 송희립은 갑작스런 질문을 받고 머뭇머뭇거렸다. 이순신
은 마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어둠을 응시했다. 귀를  긁는 웅성거림이 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총통 소리가 뻥뻥  들려왔다. 노량해협 어디쯤에서 전투가 시작된  모양이었
다. 불꽃 하나가 더 하늘로 솟구쳤다.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소장은 장군
을 믿사옵니다." "운명을 믿지 않고  나를 믿는다? 허허허허!" 이순신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나 송희립은 따라 웃을 수 없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따. 조선 수군의 장졸들은  어둠 
속에 숨어 있다 뒷덜미를 잡아끄는 운명보다  폐허 속에서도 삼도 수군을 재건한  이순신을 
더 믿고 있었다.
  이순신의 명령이라면 지옥에 가서 염라대왕과도 맞설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럼 나도 어
디 나를 믿어볼까?" 이순신의 혼잣말이 어둠 속에 파묻혔다. 그  어둠을 뚫고 송골매 한 마
리가 이순신의 장검위에 내려앉았다. "왜선이 곧 들이닥친다. 즉시 전투를 할 수  있도록 마
지막 준비를 하라."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쪽 바다가 환해지면서 경상우수
영의 판옥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왜군들의 총탄이 닿지 않을만큼  거리를 유지한 채 총통
을 쏘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기다려!  놈들이 완전히 노량을  지나칠 때까지 기다려야 
해." 이순신은 몰려오는 왜선들을 침착하게 살폈다. 북채를 쥔 송희립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
혔다. 이윽고 왜선들이 관음포 앞바다를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밤하늘에 빛나던 화연들이 
일순간에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왜선들이 모두 노량해협을 통과한 것이다. "진격하랏!"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송희립이 북채를 휘둘러 군령을 전했다.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판
옥선들이 일제히 총통을 발사했다. 이순신의 배가 되돌아서는 것과 동시에 경상우수영의 판
옥선들이 적진으로 곧바로 달려들었다.
  우치적과 권준이 이끄는 판옥선들이 그뒤를  따랐다. 기습 공격을 당한  왜선들은 전열을 
가다듬을 사이도 없이 우왕좌왕했다. 이순신의 경상우수영의  소속 판옥선들은 윗길로 돌아
서 퇴로를 끊은 후 왜선들을 계속 아래쪽으로 몰았다."돌진하랏!" 이순신은 적진으로 뛰어들
라는 군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무슨 일인가? 왜 돌진하지 
않는 게야?" 이순신이 화를 버럭 냈다. 송희립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돌격장과 나군
관의 배가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나아갈 수가  업사옵니다." "이언량과 나대용이 앞을 막았
다고?" 이순신의 두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렇다면  뱃머리를 왼쪽으로 틀어라." "그것도 
어렵사옵니다. 이조방장의 배가 너무 가까이 붙었습니다." "이영남까지 내 앞을 막아섰단 말
인가? 도대체 무슨 짓들을 하는 게야?" 송희립은 이미 이영남으로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지
휘선을 선봉에 나서게 해서는 안 된다는  귀끰을 받았다. "장군! 이곳에서도 전황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사옵니다. 저쪽을 보십시오. 왜선들이 불타고  있사옵니다. 우리가 쳐놓은 덫에 
걸려들었으니 저들에겐 죽음뿐이옵니다. 
  장군! 이쪽을 보십시오. 왜선들이 관음포 쪽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놈들은 거기
에 거제도로 탈출할 수 있는 뱃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자진해서 막다른 길로 들
어갔으니,이제 이곳에서 총통만 쏘아도 놈들은 전멸입다." 후군을 거느리고 조금  뒤처져 있
던 정사준에게서 급보가 날아들었다. "소서행장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유도를 지나 미조
목 쪽으로 달아날 것 같사옵니다."  "이, 이런!" 이순신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대용에게 
전해. 어서 판옥선 열 척을 이끌고  정사준과 합류하여 후방을 맡으라고. 순순히 놈을  보낼 
수는 없지. 매복해 있다가 단숨에 쳐야 할 것이야." 군령을 받은 나대용의 배가 뒤로 빠져나
갔고, 그를 따라 열 척의 판옥선이 뱃머리를 돌렸다. 그 틈을 타서 후퇴를 거듭하던  왜선들
이 일제히 앞으로 쏟아져나왔다. 어느새 이순신의 지휘선이 나대용의 자리로 헤집고 들어가 
선봉에 합류했다.
  이번에는 이영남의 판옥선이 앞으로 나와서 지휘선을 막아섰다. 왜선들은 길을 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조선 수군은 좌우로 협공하며 왜선들을 격침시켰다. 어느덧 어둠이 걷히고 신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화염에 휩싸인 왜선들과 살려달라며 비명을 지르는 왜군들이 관음
포 앞바다에 부지기수로 깔렸다. 백여 척에 가까운 왜선을 격침시켰으나, 아직도 오십여  척
의 왜선이 남아 있었다. 사방이 밝아오자 왜선들의 저항은 더욱 완강해졌다. 그들은  새로운 
활로를 찾기보다 어젯밤 이순신의 함대를 따라왔던  노량해협으로 되돌아가는 쪽을 택했다. 
십여 척의 왜선이 앞으로 쭉 나서서 노량 쪽으로 돌진했다. "잡아라. 한  놈도 살려보내서는 
아니된다." 밤새 북을 두드린 송희립은 장검을 높이 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는 이순신
을 곁눈질로 살폈다. "아, 아니 장군!" 하마터면 북채를 놓칠 뻔했다. 어느 틈에 이순신이 황
금갑옷과 투구를 벗어던지고 붉은 융복 차림으로 군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황
금갑옷은 임진년 5월 이순신이 사천해전에서 어깨 관통상을  당한 후, 정사준이 대장장이들
을 거느리고 직접 만든 방탄복이었다. 
  갑옷 속에 환삼을 여러 겹 붙였기에 정면에서 조총을 쏘아도 탄환이 뚫고 나가지 못했다. 
"갑옷을 입으십시오. 왜선이 바로 코앞에 있사옵니다." 송희립이 갑판에 내던져진 갑옷과 투
구를 챙기며 소리쳤다. 이순신이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  명령을 내렸다. "저놈들을 쫓아라! 
퇴로를 열어쥐서는 아니된다." 송희립은 하는 수 없이 북채를 다시 들고 힘껏 북을 쳤다. 동
쪽 하늘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순신의 융복은  그 햇빛 아래에서 더욱 빛
났다. "당파하랏!" 왜선들이 총통과  불화살을 요리조리 피하며  북상하였다. 이순신은 직접 
충돌하여 격침시키라는 군령을 내렸다. 이언량의 판옥선이 미친 듯이 앞으로  돌진했다. "이
언량의 뒤로 배를 붙여라." 이순신은 그  틈으로 빠져나가 이언량의 뒤를 따랐다.  이영남의 
판옥선이 나란히 옆으로 붙었다. 이물에 서 있던 이영남이  큰소리로 외쳤다. "장군! 물러나
십시오. 장군!" 이순신이 장검을 들어 이영남을 똑바로  가리켰다. "당파하라는 명령을 듣지 
못했는가? 어서 진격하라."
  이영남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순신은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이언량은  벌써 왜선 한 척을 
당파하고 다음 제물을 찾고 있었다.  이영남의 판옥선이 잽싸게 지휘선의 뒤쪽으로  붙었다. 
송희립의 북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지휘선은 이언량의 배를 젖히고 앞으로  나섰다. "불화살
을 쏴랏!" 불꽃이 뚝뚝 떨어지는 화살들이 허공을 날았다. 왜선과의 거리가 채 열 걸음도 떨
어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곧장 왜선허리를 들이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 
갑자기 고물 쪽에 엎드려 있던 왜군들이 일제히 조총을 발사했다. 활시위를 당기던 궁수 서
넷이 뒤로 벌렁 자빠졌다. 회와 분은 뒷걸음질치는 군사들을  독려하며 다시 불화살을 날렸
다. 이제 이순신 곁에는 송희립과 날발뿐이었다. "윽!" 장검을 높이 치켜든 이순신이 왼손으
로 가슴을 감싸쥔 채 앞으로 푹 앞으로 꼬꾸라졌다.  송희립이 북채를 집어던지고 이순신을 
안아 일으켰다. "장군!" 이순신의 가슴에서 시뻘건 피가 콸콸 쏟아졌다. 송희립의 가슴과 손
도 온통 피로 물들었다. 그 순간 쿵 소리와 함께 지휘선이 왜선과 부딪혔다. 송희립은  이순
신을 품에 꼭 안고 두세 바퀴 앞으로 뒹굴었다. 당파당한 왜선에서 왜군들이 원숭이처럼 지
휘선으로 옮겨 타기 시작했다. 
  송희립에게 달려드는 놈들도 십여 명이  넘었다. 쌍칼을 뽑아든 날발이  앞을 가로막으며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송희립은 이순신을 들쳐업고 고물 쪽으로 피했다. 회와 분이 달려
왔다. 송희립은 이순신을 품에 안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회가  송희립을 옆으로 밀어냈다. 
이순신의 얼굴은 얼음처럼 창백했고, 오른손에는  여전히 장검이 굳게 쥐어져 있었다.  회는 
피로 물든 이순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슴에 관
통상을 입고 이미 절명한 뒤였다. "아버님!" 회가 울음을 터뜨리자 송희립과 분도 통곡했다. 
뒤따라오던 이영남이 이상한 분위기를 알아채고 지휘선으로 옮겨 탔다. 그느 이순신을 시신
을 둘러싸고 흐느끼고 있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장...군!" 전투를 지휘하던 장수가 사라지
자 지휘선의 궁수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허둥댔다. 이대로 있다가는  지휘선이 침몰할 
위기였따. 이영남은 눈물을 철철철 쏟으며 급히 울고 있는송희립에게 다가갔다.  "북을 치시
오. 이봐 송군관! 정신 차려. 이 원수를 갚아야지. 어서 북을 치란 말이오." 이영남은 송희립
을 강제로 끌고 북이 있는 곳까지 갔다. 송희립은 눈물을 쏟으면서 둥둥둥둥 북을 쳤다.  이
영남은 다시 급히 회에게 달려갔다. 
  "이제 아버님 대신 이 배를 지휘해야 합니다. 자 어서, 아버님의 장검을 높이 치켜드세여. 
어서!" 그러나 회는 고개를 떨군 채 몸을 가누지 못했다. 곁에 있던 분이 갑옷을 벗고  융복 
차림으로 이순신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던 장검을 빼들었다. "이종방! 어찌 된 일이오?" 이언
량이 갑판을 쿵쿵쿵쿵 가로질러 뛰어왔다. 그의 두 눈이 왕방울 만큼 커졌다. 놀람과 분노로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 주먹만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영남은 뒤에서 이언량
의 어깨를 붙잡았다. 눈물로 얼룩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짧은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
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언량이 먼저 몸을 돌려  자신
의 판옥선으로 옮겨 탔다. 그리고 적진을  향해 곧장 돌진했따. 이영남은 두어 걸음  앞으로 
걸어나와 이순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장군!  곧 다시 뵙겠습니다.  이영남은 배를  옮겨 
탄 후 이언량의 뒤를 따랐다. 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이언량과 이영남의 판옥선은  좌충
우돌하며 왜선을 격침시켰다. 그러나 그들의 배는 연합함대로부터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그
들은 다른 판옥선과 보조도 맞추지 않고 무작정 앞으로만 나아갔다. 권준과 배흥립 등이 그
들을 구하려고 뒤쫓았으나 미치지 못했다. 왜군들은  이언량과 이영남의 판옥선에 올라타는 
대신 계속헤서 조총을 발사했다.
  갑판 위에 있는 장졸들을 모두  죽인 후에 배를 빼앗으려는 속셈이었다.   이언량이 먼저 
머리와 배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그는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장검을 휘둘렀다. 곧
이어 이영남도 가슴을 움켜주고 갑판을 뒹굴었다. 이순신을 절명시켰던  바로 그 왼쪽 가슴
에 총탄이 박힌 것이다. 권준과 배흥립이 왜선들을 뚫고 판옥선  두 척을 구했을 때는 이미 
그들의 목숨이 끊어진 뒤였다.  왜선 오십여 척은 노량으로 달아났고, 소서행장의 왜군들도 
미조목을 통해 거제도 쪽으로 빠져나갔다. 조선 수군은 관음포  앞바다에서 왜선 백여 척을 
격침시켰다. 거둬들인 수급이 오백 개가  넘었고, 빼앗은 왜선도 이십여  척에 이르렀다. 칠 
년 전쟁의 승리였다.

    에필로그  불멸의 길 
  무술년 11월 28일 저녁.  성긴 눈들이 어머니의 품속에 안기듯  관음포의 잔잔한 바다 위
로 떨어졌다. 첫눈이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정자 뒤 대숲에서 푸드덕 날아올라 회황하는 고
깃배들을 향해 날아갔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낙성정에 나란히  앉아서 겨울 바다를 내
려다보던 두 사내의 시선이 일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들은 섬과 섬 사이로 까마귀가 숨
을 때까지 침묵했다. "진실을 알고 싶소." 키가 크고 이목구비학 뚜렷한 이덕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이미 이순신의 죽음과 왜군의 패퇴에 대한 장문의 글을 탑전에 올렸다. 그러나 
선조는 관음포의 승첩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관음포 해전의  전황과 이순신의 최후를 소상
하게 살펴 장계를 다시 올리라는 유서가 내려왔다. 이덕형은  이순신의 오른팔이자 조선 수
군의 안방살림을 도맡아 했던 권준을 만나기 위해 직접 배를 타고 남해도로 건너왔다. 권준
은 희미하게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퀭한 눈과  음푹 패인 두 볼이 만
들어내는 미소에서는 귀기마저 흘렀다. "내게만이라도 진실을 말해주오."  이덕형이 다시 채
근했다. 
  "...이미 늦었습니다. 좌상 대감!" "무엇이 늦었다는 게요?" "정녕 모른신단 말씀이옵니까?" 
이덕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권준은 먼 바다를 바라보며 열흘 전의 격전을  떠올렸다. 
이순신과 이영남과 이언량을 삼킨 죽음의  바다. 이윽고 권준은 그 바다의  한 끝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통제사가 이미  조선 수군의 앞날을 걱정했으
니까요. 이젠 그 결정에 따르는 길 외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소생은 이  길만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천운이라고 여길 밖에..." "도대체 그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요? 이통제사의 전사가 어찌 조선 수군의 앞날을 결정짓는다는 말이오?" 이덕형은 
끝없이 솟아나는 질문들을 이 즈음에서 붙들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물음을 던져서는 아
니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던 것이다. "좌상 대감! 열흘 전, 관음포 앞바다의 해전에서 왜
군은 만여 명이나 죽은 데 반해  조선 수군의 전사자는 서른 명도 채  넘지 않습니다. 헌데 
그 서른 명 중에는 수군통제사 이순신, 조방장 이영남, 돌격장 이언량과 같은 조선 수군에서 
가장 뛰어난 장수들이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지요..."
  "그 말은...이통제사가 일부러 죽음을 택했단 말이오?" "삶 대신 죽음을 택하는 인간은 없
습니다. 허나 불멸을 위해 죽음을 이용할 수는 있겠지요. 세상에 대한 복수일 수도 있겠고...
이제 그 누구도 이통제사를 두 번 죽이지는 못할  테니까요." "그래도 그렇게까지..." 권준이 
고개를 획 돌려 이덕형의 시선을 맞받아쳤다. "이통제사가 살아남았다면, 전쟁이 끝난 이 마
당에 이통제사는 물론이고 좌상 대감은 무사하시리라고 보십니까? 서애 대감께 편안한 노년
이 보장될 수 있을까요? 전하께서 조선  수군이 거둔 마지막 승첩을 믿지 못하시기  때문에 
좌상 대감께서 이 먼 곳까지 직접 오신  것이 아닌지요?" "..." "그토록 지독한 삶의 무게를 
이통제사가 홀로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십시일반, 그 고통을  나누고 싶었는데..." 권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쨌든 이통제사는 좌상 대감이나 소생보다 더 오랫동안 역사에 푸른 이름을  남길 것이
외다. 나라가 어지럽고 민초들이 도탄에 빠질 때면,  전라좌수사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 이
순신이 아니라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영원히 되살아날 테니까요.  이통제사가 원한 것은 벼
슬도, 재물도, 불패의 신화도 아니었습니다. 원통제사와의 쟁공이란 하찮은 놀음에 불과했지
요. 이통제사가 정녕 꿈꾼 것은 불멸이었습니다. 왜와의 전쟁은 그 불멸을 앞당기는  지름길
이었지요." 이덕형이 뒤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나머지 장수들은 어떻게들 지내고 있소?" 권
준이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 소생이 앞서  말씀드리지 않았는지요? 이통제사가 이미 앞날
을 정했으니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가 택한 불멸의 길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제각기 남은 
인생을 조용히 보낼 겁니다. 좌상  대감! 더 이상 조선 수군을  살필 필요가 없음을 탑전에 
잘 아뢰어주세요. 살아남은 모두를 위해서라도 대감의 충언이 필요합니다. 진실이  무엇인가
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감이 올리는 장계로부터 새로운 진실이  만들어질 테니까요. 소생은 다만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죽음을 당하는 이가 없기를 바랄 뿐이지요."  권준은 가볍게 읍하여 예를 
차린 후 조용히 정자르 내려갔다. 이덕형은 대숲으로 사라지는  권준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
켜보았다. 궁금증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으나  더 이상 권준에게서 들을  이야기가 없음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이덕형은 고개를 돌려 관음포 앞바가를 살폈다. 어느새 어둠이  바
다를 완전히 휘감았다. 권준을 닮은 이덕형의 미소가 보이지 않을 만큼, 하얀 눈발이 사라질 
만큼, 깊고 넓은 어둠이었다. 12월  7일 새벽. 관음포 해전을 살핀  좌의정 이덕형의 마지막 
장계가 올라왔다.  ...신은 직접 이순신을 만난 적이 없기에 그의 사람됨이 어떠한지 전혀 모
릅니다. 예전에 이순신의 처사가 옳지 못하다는 원균의 말을 듣고, 이순신이 재간은  있어도 
진실함과 용감함은 남보다 못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헌데 신이  본도에 들어가 해변 주민
들의 말을 들어보니, 모두가 이순신을  칭찬하며 한없이 아끼고 추대하였습니다. 또  듣건대 
이순신이 고금도에 통제영을 세우고  군정을 매우 잘하였으므로, 겨우  삼사 개월이 지나자 
민가와 군량의 수효가 지난해 한산도에 있을 때보다 더 많았다고 합니다. 
  명군이 싸우는 데 뜻이 없다는 것을 간파한 뒤에는, 국가의 큰일을 전적으로 조선 수군이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이 통제영에 자주 사람을 보내어  이순신으로 하여금 은밀히 일
을 주선하게 하였더니, 그는 성의를 다하여 나라에 몸바칠 것을 죽음으로써 맹세하였습니다. 
그가 영위하고 계획한 일들이 모두 볼만하였기에, 신은 나름대로 생각하기를, 해전은 훌륭한 
주장이 있으므로 우려할 바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불행하게도 이순신이 전사하였으니,  앞으
로 바다의 일을 책임지워 조치하는 데 그만한 사람을 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참으로 애통
합니다. 첩보가 있던 날, 군량을 운반하던 임부들이 이순신의 전사 소식을 듣고서는, 무지한 
노약자라 할지라도 대부분 눈물을 흘리며 서로 조문하기까지 하였으니, 이처럼 사람을 감복
시키는 것이 어찌 우연이라 하겠습니까. 이순신이 나라를 위하여  순직한 정상은 옛날의 명
장에게도 부끄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포장하는 거조를 조정에서 각별히 시행하소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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