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선의 국모다(상)
제1권 철(鐵)의 시대
이수광
----- 차 례 -----
작가 소개
제1장 여우사냥
제2장 기인(奇人)과 야인(野人)
제3장 잠용(潛龍), 일어서다.
제4장 감고당(感古堂)의 천재 소녀
제5장 피를 부르는 바람
제6장 멀고 긴 봄의 시작
제1장 여우사냥
1
땡~.
인정(人定:인경)을 알리는 보신각(普信閣)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자 야경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딱따기(擊析)를 치며
순라를 돌기 시작했다.
1895년 10월 7일"음력 8월 19일". 조선왕조 5백 년의
고도(古都)인 한성은 푸른 달빛 아래 지극히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만호 장안은 불이 꺼진 채 조용했고 푸른 달빛만이
신비한 광망(光芒)을 뿌리고 있다.
그러나 자정이 가까워 지면서 대검을 꽂은 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의 대오 (隊伍)가 한성으로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살기가 번뜩이고 대오는 기세가
삼엄했다.
이따금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한겨울 삭풍처럼 밤공기를
흔들어대고, 그 사이 사이에 말을 탄 사관(士官)이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병사들을 질타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들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있나 보지?"
"낸들 어떻게 알겠어? 왜놈들이 도성에서 활개를 치고
다닌것이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임진년에 그 꼴을 당하고도 또 왜놈들이 판을 치게
놔두다니....."
야경꾼들은 일본군의 대오를 발견하고 불안한 기색으로
수군거렸다. 그것은 야경꾼들뿐만이 아니었다. 성민들은 군마가
움직이는 소리에 잠자다 말고 밖으로 뛰어나와 웅성거렸다.
성 안은 달빛이 교교했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고
6조관청을 종로에 번듯하게 세워 임진왜란 이후 모처럼 한성이
나라의 위용을 갖춘 것도 잠깐, 민비(閔妃) 세력이 정권을 잡고
병자년(丙子年)에 일본과 수호조약(修好條葯)을 체결함으로써
일본인들의 조선침략의 길이 트이게 되었다. 병자수호조약은
일본의 강압에 의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은 기아에 허덕이는 농민들로부터
미곡(米穀)을 헐값에 사들여 제 나라로 실어가고 그들은 조악한
상품을 비싼 값에 팔아 조선 경제를 파탄에 빠뜨렸다.
이에 당황한 조선정부는 급기야 미곡 반출 금지령까지
내렸으나 일본이 군대를 앞세워 협박을 하는 바람에 오히려
손해배상금을 물어 주어야 했다.
"상감이 정치를 잘못해서 그래"
"나랏님이 왜 정치를 잘못해? 나라가 이 꼴이 된 건 모두 민씨
일파가 매관매직을 해서 그래....."
"저놈들은 사무라이인가?"
"사무라이가 아니라 낭인이래...."
"낭인?"
"부랑배 말이야. 그러니 옷차림이 저렇게 숭하지...."
하오리 차림에 일본도를 허리에 찬 낭인들 무리도 자주 눈에
띄었다. 그들은 살벌한 기세로 한성신보사(漢城薪報社)와
파성관(巴城館)으로 바쁘게 몰려가고 있었다. 한성신보사는
일본인이 발행하는 신문사였고 파성관은 일본인이 경영 하는
술집이었다.
성민들은 여기저기서 수군댔다. 성 안이 온통 뒤숭숭했다.
"수비대의 이동 상황은 어떤가?"
그 시간 미우라 고로오(三浦梧樓) 일본 공사는 정동(貞洞)에
있는 공사관 관저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각하! 인천에 있는 우리 군대가 한성까지 무사히
잡입했습니다."
스기무라 후카시(杉村濬) 일등서기관이 빳빳하게 서서 대답을
했다. 미우라 일본 공사는 육군 중장 출신의 무인이었다.
외교에는 전혀 경험이 없었으나 이번 작전을 위해 전권공사로
임명된 사람이었다.
"차질없이 해치워야 한다.!"
"핫!"
"이 일이 열국 공사들에게 알려지면 우리는 조선침략에
희생양이 된다. 공을 세우고도 처벌을 받는다는 말이다. 내말
알아듣겠나?"
"핫! 심려하지 마십시오. 각하! 쿠스노세 중좌의 수비대는
특공대나 다름없는 부대입니다. 반드시 장애물을 제거하고
여우사냥에 성공할 것입니다.!"
"미야모토 소위도 대기하고 있겠지?"
"핫!"
"미야모토 소위도 그의 부하 다섯을 낭인으로 변장시켰습니다.
파성관 패와 함께 출발할 예정입니다."
"좋다. 나가서 다시 한번 작전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피도록 하라!"
"핫!"
스기무라가 절도 있게 경례를 한 뒤 관저에서 물러갔다.
미우라 공사는 술잔을 든 채 2층으로 올라갔다. 거실의 창을
통해 깊이 잠들어 있는 조선의 수도 한성을 내려다보기
위해서였다.
조선은 아름다운 나라였다. 특히 한성은 5백 년 사직을 이어온
왕도답게 고색창연한 건물이 즐비했고 숲이 울창했다. 한을
풍부한 강(江), 때로는 연두빛으로, 때로는 초록빛으로 옷을
바꿔 입는 조선의 사계(四季).... 어느 날은 불이라도 붙은 듯이
단풍이 붉고, 또 어느 날은 하얗게 눈이 내리는 조선의 사계를
그는 가슴 시리도록 좋아했다 .
정치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조선은 얼마든지 풍요롭게 잘 살 수
있는 나라였다. 농토는 비옥하고 자원은 풍부했다. 일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천혜의 나라였다
그러나 5백 년을 백성들 위에 군림한 왕조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대신들은 무능하고 백성들은 기아에 허덕였다. 일본에는
이때 정한론(征韓論)이 팽배해 있었다. 청일전쟁(淸日戰爭)에
승리를 하고서도 삼국간섭에 의해 요동 (遼東)을 러시아에
빼앗긴 일본은 '이토오 내각은 할복하라!'는 일본 우익 청년들의
격렬한 항의에 고심하고 있었다. 이에 일본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장주벌(長州閥)은 우익 청년들을 달래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인아거일(引我拒日)정책을 쓰고 있던
조선의 왕비를 제거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 실행의
책임자로 미우라 중장을 내세운 것이다.
(이제 이 나라는 우리 대일본제국의 지배를 받아야 돼.....)
미우라는 2층 서재로 올라가자 커튼을 열어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다. 군인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인지
민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달은 중추절이
지난 지 나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반달이었다. 거리는 달빛이
희미해 군대가 이동을 하고 있는 것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희미한 달빛 속에서 일사분란하게 정동으로 몰려오고 있는
일본군대가 믿음직스러웠다.
조선의 군대는 허울뿐이었다.
일본군은 이미 지난 해(年)에도 경복궁을 점령한 일이 있었다.
(오늘은 조선의 국모가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미우라는 머리 속에 한 여인의 조야한 얼굴이 떠오르자 전신이
바짝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일본의 조선침략 정책은 그
여인으로 인하여 번번이 실패를 거듭 하고 있었다.
2
피리소리가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삭풍처럼 길게
여운을 끌면서 들려왔다.
조선의 제26대 국왕 고종(高宗)은 잠결에 어렴풋이 그 소리를
들었다. 고종은 눈을 번쩍 떴다. 그 소리는 어릴 때
사가(私家)에서 듣던 소리였다. 한겨울 언 하늘이 갈라지고
문고리가 쩍쩍 달라붙던 밤이면 봉사가 퇴창 밑을 지나가며
피리를 불었었다. 폐부를 찌르듯, 혹은 죄리를 파고 들듯이
날카로운 소리였다.
고종은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 왔다. 대궐 밖 어느
여염집에서 개 짖는 소리 가 사납게 들리더니 뜰에서 쿵하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담장을 뛰어 넘은 것 같았다. 고종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내 창문에 거한의 그림자가 비쳤다.
거한이 들고 있는 일본도의 그림자에서 섬뜩한 살기가 뻗쳐
왔다.
(자, 자객....!)
고종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중전!"
고종은 옆에 누운 중전을 다급하게 불러댔다. 그러나 소리가
목구멍에서 꽉 막혀 입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방문이
소리도 없이 스르르 열리고 거한이 그림자처럼 방으로 스며들어
왔다.
고종은 머리 끝이 곧추서고 등골이 오싹해 져 왔다. 대궐을
수비하는 시위대는 어디로 가고 무감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주, 중전....."
고종은 허공으로 팔을 내뻗고 쇠리를 힘껏 질렀다. 다급했다.
그런데도 소리가 전혀 입 밖으로 터져나오지 않았다.
자객이 민비를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일본인이었다. 어둠
때문에 자세히 보이지 않았으나 미우라 일본공사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펄럭거리는 하오리 자락 사이로 미우라의
사타구니가 드러나 보였다. 흉칙하게 미우라는 사타구니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그것이 뚜렷이 보였다.
(저, 저런 짐승 같은 놈.....!)
고종은 분기 때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흉악한 자였다. 감히
조선국 국모 앞에서 짐승처럼 그것을 드러내 놓다니! 그런데 왜
온몸이 결막을 당한 것처럼 꼼짝을 할 수 없는 것일까. 고종은
몸부림을 쳐댔다.
"주, 중전.....!"
고종은 기를 쓰고 민비를 불러댔다.
"전하!"
"....."
"전하!"
그때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 고종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고종은 그 순간 눈을 번쩍 떴다.
(아!)
고종은 그때서야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꿈이었다. 사위가 칠흑처럼 어두웠으나 미우라 일본공사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전하! 꿈을 꾸셨사옵니까?"
민비가 조용히 물었다.
"그렇소."
고종은 필흑 같은 어둠 속을 더듬어 민비의 손을 잡았다.
등줄기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불길한 꿈이었다.
대전(大殿)뜰 밖에서 나뭇잎들이 우수수 몸을 떠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일고 있는 것일까. 나뭇잎을 흔들고 자나가는
바람소리가 스산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었다.
"신첩이 옆에 있으니 안심하시옵소서"
민비가 다정하게 속삭이며 고종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올려
놓았다.
"고맙소"
고종은 탄력을 잃어가는 민비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느끼며
편안한 기분이 되었다. 민비의 나이 벌써 마흔 다섯, 이제는
결코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였다. 열 여섯 꽃다운 나이에
중전으로 간택되어 대궐에 들어왔으니 그 세월이 얼마인가.
열강(列强)의 조선책략과 시아버지인 대원군(大院君)과의
갈등으로 젊은 시절을 훌쩍 보낸 민비였다. 고종은 새삼스럽게
민비가 안쓰러웠다. 그 30년 의 세월은 남자도 견기기 어려운
파란의 나날이었다.
"전하......"
민비가 고종을 나직히 불렀다. 고종은 대답 대신 민비의 둥근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젊었을 때처럼 탄력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민비의 가슴에서 고종은 포근하고 아늑한 어머니의 가슴을
연상했다. 사사로이는 자신의 자식을 낳고 키우는 아내였다.
후궁이 여럿 있었으나 고종이 민비에게 느끼는 감정은 여염집의
장부나 다를 바가 없었다. 때때로 아내의 가슴을 아이들처럼
만지고 싶어 했고 아내의 가슴에 안기어서 잠들고 싶어 했다.
"전하, 흉몽을 꾸셨사옵니까?"
민비는 철의 여인이었다. 냉혹할 때는 눈에 서릿발이 서려
감히 마주보는 자가 없었다.
"그렇소"
고종이 낮게 대답을 하였다.
"어인 흉몽이길래 식은땀까지 이렇게 흥건히 흘렸사옵니까?"
민비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고종은 우두커니 어둠 속의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꿈이 흉칙해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전하!"
민비가 살갑게 고종을 불렀다. 민비의 음성은 고종을 향한
애정이 듬뿍 실려 있었다.
"제 팔베개를 하소서"
"고맙소"
고종이 망설이지 않고 민비의 팔을 베고 누웠다. 민비의
몸에서 향긋한 살(肉) 냄새가 풍겼다. 고종은 그 냄새에 가슴이
뛰었다. 민비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자객이 드는 꿈이었소. 거한이 일본도를 따르고 낭인
복장으로 우리 침전까지 뛰어들었소. 그래서 중전을 그렇게
불렀었소."
이윽고 고종이 천천히 꿈 얘기를 했다.
"일본인이었습니까?"
"그렇소"
"왜인들은 꿈속에서까지 나타나서 전하를 괴롭히는군요"
민비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민비도
일본인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뒤로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미 경제는 파탄이 났고 군대조차 유명무실했다.
민비는 그로 인해 인아거일(引我拒日)정책을 펴왔는데 그것은
러시아를 이용해 일본을 견제하려는 등거리 외교 정책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일본은 민비를 격렬히 미워하고 있었다.
"중전"
고종이 민비의 어깨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예?"
"이렇게 누워 있으니 옛 생각이 나는구려. 내가 중전을 아줌마
아줌마 하고 따라다녔지......."
"전하두......"
민비가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왜? 그때가 싫었소?"
"아니옵니다. 그때도 전하에게 외가 쪽으로 아줌마이지만
지금도 아줌마인 것입니다."
"내 아낙이 되었는데두?"
"그렇지 않구요? 신첩은 전하에게 아낙이기도 하지만
외가쪽으로 13촌 아줌마가 되는 것도 변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허허......"
고종이 공허한 웃음을 터뜨렸다. 민비가 따라 웃으며 고종의
어깨를 아기 안듯이 품에 안았다.
"중전"
고종의 어수가 민비의 허리에서 둔부로 미끄러져 내려가
둥글게 원을 그렸다.
"예?"
민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합궁합시다."
"아이...."
고종은 민비의 서양사(西洋紗)로 지은 속치마 위로 계속
둔부를 쓰다듬었다. 서양사는 명주보다 더 부드러운 옷감이었다.
위에는 한삼(汗衫)을 입었는데 역시 비단보다 더 부드럽고
가벼운 서양사였다.
"예."
민비가 교태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숨이 가빠오고 몸이
더워져 왔다. 그러나 심음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밖에는 지밀(至密)상궁 넷이 직숙(直宿:숫직)을 하고 있다.
비록 나이가 6,70대인 노상궁이라고 하지만 합방을 하는 소리가
그들에게 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고종은 한 손으로 민비의 한삼 옷고름을 풀었다. 이내 민비의
둥근 가슴이 뽀얗게 윤곽을 드러냈다.
고종은 민비의 가슴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민비가 가늘고
긴팔로 고종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들은 국왕과 왕비이기에
앞서 부부였다.
대전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얼추 두 시간쯤 뒤의
일이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고종이 잠이 오지 않아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민비의 옆에 일어나 않아서 우두커니 허공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게 누구 없느냐?"
고종은 나직한 음성으로 직숙 상궁을 불렀다. 민비는 가늘게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었다.
"김 상궁 대령해 있사옵니다."
밖에서 김 상궁이 조용히 대답했다. 또 바람이 이는지 뜰에서
나뭇잎이 우수수 몸을 떠는 소리가 들렸다.
"내전이 소란스러운데 무슨 까닭이냐?"
"방금 무예별감이 다녀갔사옵니다."
"무예별감이?"
고종은 누썹을 꿈틀했다. 공연히 가슴이 철렁했다.
"궐 밖에 병정들이 집결하고 일본인들의 왕래가 빈번하다고
하옵니다."
"무슨 연유라 하더냐?"
"무예별감도 영문을 모르겠다고 하옵니다."
"이런 변고가 있나? 무예별감을 들라 하라!"
"예."
문밖에서 김 상궁이 대전 밖으로 나가는 기척이 들렸다.
고종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 불을 밝히고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전하, 불러 계시옵니까?"
고종이 의관을 정제하고 곤령합(坤寧閤)의 대청으로 나섰을 때
무에별감이 황망히 달려와 부복했다.
"궐 밖이 소란하다는데 사실인가?"
"그러하옵니다."
"무슨 연유냐?"
"연유는 알 수 없으나 병정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고
일본인들의 왕래가 잦은 줄로 아옵니다."
"연유를 모른다고?"
고종은 언성을 높여 소리를 버럭 질렀다. 갑신정변이
일어날때는 김옥균(金玉均), 박영효(朴泳孝)등이 미리 정변이
일어날 것을 알려 주었으나, 임오군란 때는 사정이 그렇지 못해
민비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충주(忠州)까지 피신을 했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왔던 것이다.
고종은 불길했다. 아무래도 꿈이 예사롭지 않게 생각되었다.
"황공하옵니다."
"답답한 위인 같으니... 그러고도 어떻게 대전의
무예별감이라고 할 수 있느냐?"
"황공하옵니다. 이제 궁성을 지키는 직책은 시위대가 맡고
있사옵니다. 시위대 대장 현흥택(玄興澤)에게 하문하소서"
"오늘의 당직은 누구냐?"
"농상공부 협판 정병하이옵니다."
"정병하를 들라 하라"
"분부 받자옵니다."
무예별감이 깊숙이 허리를 숙이고 뒷걸음으로 물러갔다.
고종은 혀를 찼다. 가슴이 답답했다.
"김 상궁은 들으라"
"예."
"김 상궁은 장아당에 가서 세자를 기침하도록 하라. 궐 밖이
소란스러운 것은 필히 곡절이 있을터, 속히 변란을 대비하라고
이르라."
"분부 받자옵니다."
김 상궁이 허리를 깊숙이 숙인 채 장안당으로 가기 위해
조심스럽게 곤령합의 대청을 나섰다. 고종은 다시 침전으로
들었다. 민비는 그때서야 밖이 소란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있었다.
"방이 야심한데 궐 밖이 무슨 일로 소란하옵니까?"
"아직 모르겠소."
"무예별감은 무엇이라 하옵니까?"
"자신은 무슨 까닭인지 모른다 하오, 이제 궁궐을 지키는
직책은 시위대의 현흥택이 맡고 있다고 하오."
"저런 고약한 위인이 있나!"
민비의 누썹이 파르르 떨렸다. 불빛에 드러난 얼굴이 약간
창백했다.
"전하, 장안당으로 납시옵소서."
"장안당으로?"
"장안당에는 세자가 있지 않사옵니까?"
"세자에게는 기침을 하라고 김 상궁에게 일렀소"
"우리도 세자와 함께 있어야 하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합시다."
고종이 먼저 보료에서 일어나고 민비가 뒤를 따랐다. 궁녀들이
재빨리 고종과 민비의 앞과 뒤에서 호위를 했다.
장안당(長安堂)에는 세자(世子)척(拓)이 김 상궁의 전갈을
받고 일어나 있었다. 문약(文弱)한 얼굴이었다. 기백이 보이지
않았다. 고종은 세자의 문약한 얼굴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장차 국왕이 되어 조선의 운명을 짊어질
세자였다. 그 세자가 문약하기 짝이 없어 고종은 가슴이 아팠다.
"아바마마, 야심한 시각이온데 어인 행차시옵니까?"
"궐 밖이 소란하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구나."
"밤바람이 찬데 어서 안으로 드시옵소서."
"괜찮다. 모처럼 우리 세 식구 북연이나 거닐자꾸나."
고종이 낮게 한숨을 내쉬고 북연(北椽:북쪽 서까래)쪽을 향해
걸음을 떼어놓았다. 궐 밖은 어느덧 조용해 져 있었다. 궐 밖이
조용한 탓인지 숲과 뜰에서 풀벌레가 요란하게 울어 댔다.
"중전, 정말 오랜만에 함께 걸어 보는 것 같구려. 나라에
변란이 끊이지를 않으니 우리 부부가 이런 시간을 가질 틈이
없었구려."
지아비의 말이었다. 민비는 고종의 말에 가슴이 찌르르 울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하옵니다,전하....."
민비는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했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새벽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밤이슬이 내리고 어느 여염집에서인지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라가 너무 어지러워....."
고종이 새벽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을 했다.
그때 장안당 앞뜰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농상공부(農商工部)협판(協辦)정병하(鄭秉夏)가 황급히
달려왔다.
"전하, 불러 계시옵니까?"
"궐 밖이 소란하여 잠을 깼더니 궐 밖에 일본인들이 배회를
하고 병정들이 무리를 지어 다닌다고 한다. 무슨 연유인지 알고
있는가?"
"전하, 소신이 어제 아침 미우라 공사의 초대를 받고 공사관을
방문 하였사옵 니다. 그때 미우라 공사가 공사관에 있는
일본병사들은 모우 후비병이므로 인천에 있는 상비병과
교체시켜야 할 터인데, 아직 조선국의 결정이 없으므로 입궐하여
전하의 윤허를 받아 달라 하였사옵니다. 이로 미루어 병정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은 일본 공사관을 수비하는 병사들을
교체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옵니다."
"그렇다면 걱정할 일이 아니구만."
고종이 비로소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농상공부 협판."
그때 민비가 조용하고 낮은 음성으로 정병하를 불렀다.
"일본 공사관 수비병을 교체하는 것은 밤에 해야 하오?"
"황송하옵니다."
"또 우리 병정들 외에 일본인들이 배회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얼마 전 훈련대의 한 병정이 일본 공사관의 순검을 살해한
일이 있는데, 그 일로 송사가 있어서 안(安) 군부대신의 집으로
가는 것으로 아옵니다."
"훈련대가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오?"
"그런 것은 아닌 줄로 아옵니다. 또한 훈련대가 반란을
일으킨다고 하여도 일본군이 충분히 진압할 수 있사옵니다."
"아니 우리 훈련대의 반란을 일본군이 진압한다는 말이오?"
민비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병하를 쏘아보았다.
"중전마마, 동학민란이 일어났을 때도 청군에게 도움을
요청해......"
"닥치시오!"
민비가 언성을 높였다. 정병하가 움찔하여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때 청군이 들어와서 얻은 것이 무엇이오? 청일전쟁이
일어나 우리 조선 땅이 온통 남들의 전쟁터가 되지 않았소?"
"송구하옵니다."
"일본군대는 하루빨리 이 나라에서 물러가야 하오!"
"그러하옵니다. 중전마마."
"또 일본군이 훈련을 시킨 훈련대를 일본군이 진압한다는 것이
사리에 맞는 일이오? 일본군과 훈련대가 한 도당이 분명한데
어찌 일본군이 훈련대를 진압한다는 말이오?"
"중전마마, 미우라 공사는 두 분 양전마마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소신과 약조하였습니다."
"그 말에 어김이 있으면 그대에게 역적의 죄를 물어도 좋소?"
"예."
"정녕 틀림이 없고?"
"그러하옵니다."
정병하가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대답했다.
"됐고. 협판은 돌아가서 일을 보도록 하시오."
"홍송하옵니다."
정병하는 뒷걸음으로 세 걸음 물러선 뒤에
근정전(勤政殿)쪽으로 서둘러 걸음을 떼어놓았다.
"중전, 우려할 일은 아닌 것 같소."
고종이 물러가는 정병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민비에게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민비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바람이 찬데 침전으로 듭시다. 세자도 들어가 자고......"
"예."
세자가 허리를 굽히고 물러갔다.
고종과 민비는 달빛을 밟으며 곤령합으로 걸음을 떼어놓았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우수수 흔들렸다. 벌써 새벽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고종은 곤령합에 이르러 월대로 바로
오르지 않고 몸을 돌려 하늘을 쳐다보았다. 허전했다. 마치
무엇인가 소중한 것이 떠나가고 있는 듯 가슴속이 쓸쓸하고
공허했다.
민비도 고종을 따라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빛이 점점 사위어
가는 북쪽 하늘에 기러기가 떼를 지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하늘은 푸른빛이다. 대궐의 울창한 숲과 전각 위로는 희뿌연
달빛이 흐르고 있다. 새벽이라 달빛도 기울어 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시위대 대장 현흥택은 자정이 조금 지났을 때 대궐의
경비사태를 평소처럼 순찰했다.
궁성 시위대는 약5백 명으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미국인
퇴역장군 맥이 다이(McEntyre Dye)가 훈련을 맡고 있었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궁성 수비와 황실 경호였다. 시위대는
처음엔 우수한 무기를 공급받아 미국식으로 훈련을 했으나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청일전쟁 발발 3일 전:1894년 6월 21일)때
성능이 우수한 총기는 몰수하고 일부는 궁궐의 연못에 버려
무기다운 무기조차 확보하고 있지 못했다. 일본은 그 이후에도
시위대에서 필요한 탄약의 반입을 차단하고 공이와 대검이
부착되지 않은 낡은 소총을 지급하여 시위대의 화력을 약화시켰
다. 비록 우수한 군인이었던 다이 장군이 연못헤서 총을 건져
보수를 했다고 해도 시위대의 화력은 유명무실한 처지였다. 5백
명의 시위대 병사 중 절반이 비무장 상태였다.
현흥택은 시위대의 이러한 현실에 참담한 기분을 느끼며
대궐을 순찰했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동학군(東學軍)의 진압을
빎로 사실상 조선의 내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그날 밤은 달빛이 비치는 맑은 날로 모든 것이 조용했다.
달빛은 5백 년 고도 의 심장인 대궐의 숲과 누각에 신비스럽게
흐르고 나뭇잎들은 달빛에 씻기어 하얗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바람은 이따금 불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서늘한 바람이
불때마다 나뭇잎들 이 살랑살랑 몸을 떨었다.
가을이었다. 중추절인 추석을 쇤 지 어느새 닷새째 되는새벽,
중천에 걸린 달이 점점 서쪽으로 기울면서 달빛도 흐끄므레하게
시들고 있었다.
현흥택은 대궐을 순찰한 뒤에 다이 장군과 함께 사용하는
당직실로 들어가 취침했다. 별다른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대궐은 안팎이 조용하여 지극히 평화로운 가을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성 안에 유포되어 있는 훈련대 반란설, 일본인들의 왕비
시해설은 단순한 유언비어인 모양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현흥택이 눈을 뜬 것은 다이 장군의 통역관으로 있는 장교
이학균(李學均)이 허겁지겁 달려와 어깨를 흔들어 댔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가?"
현흥택은 눈을 부릅뜨고 이학균을 쏘아보았다.
"일본군 수비대 병사들이 추성문과 춘생문 밖에 몰려와
있습니다."
"일본군이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일본군 동태가 수상합니다."
"다이 장군을 깨우게. 나는 전하에게 달려가 보고하겠네."
"예."
현흥택은 가슴이 급박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닥쳐온 것 같아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렸다.
현흥택은 부랴부랴 건청궁(乾淸宮)의 곤령합으로 달려갔다.
고종가 민비는 궁녀들을 거느리고 대전 뜰을 산책하고 있었다.
양전(兩殿)도 잠이 오자 않는 모양이었다. 군대를 앞세운
일본의 행패가 심해 지자 고종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하!"
현흥택은 고종 앞에 다가가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무슨 일이냐?"
고종이 떨리는 목소리로 하문했다. 민비는 서릿발처럼 차가운
눈으로 현흥택을 응시하고 있었다.
"전하, 일본군이 3군부에 들어와 있사옵니다. 변란을
대비하소서."
현흥택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고종은 가슴이 철렁했다. 일본군이 무엇 대문에 궁궐가지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으나 불길한 꿈이 머리 속에서 되살아나
불안했다.
"일본군이 3군부에 들어왔다고?"
고종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무슨 연유로 일본군이 궁궐을 침입했다더냐?"
"아직 연유를 알 수 없사옵니다."
"답답한 일이 아니냐? 일본군이 침입을 하면 마땅히 문정을
하여 연유를 묻거나 군사로서 내쳐야 하지 않느냐?"
"소신은 중전마마의 안위가 걱정되어....."
"현 부령은 당장 돌아가서 일본군을 대궐에서 내치시오! 내일
미우라 일본공사를 불러 엄중히 따지겠소!"
민비가 재빨리 대책을 지시했다.
"황송하옵니다. 소신 물러가옵니다."
현흥택이 허리를 깊숙히 숙이고 건선문(建善門)쪽으로 총총히
달려갔다. 민비는 고종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고종은 망연한
표정으로 현흥택이 달려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민비는 고개를 떨구었다 가슴으로 찬바람이 불고있는 듯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같은 시간.
훈련대 연대장 홍게훈(洪啓薰)은 막사 앞에서 새벽하늘을
우두커니 쳐다 보았다. 별빛이 전에 없이 초롱초롱했다. 1895년
10월 8일. 미명의 새벽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야간훈련에 동원된
제1,2훈련대 병사들이 동아오지 않고 있었다. 제1훈련대는
대대장이 이두황(李斗璜)이고 제2훈련대는 대대장이
우범선(禹範善) 이었다.
홍계훈은 연대장이면서도 휘하 병력이 야간훈련에 동원되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연대 부관으로부터 병영을
지키는 1소대만 남기고 연대 병력이 야간훈련에 동원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어리둥절했다.
훈련대는 국왕으로부터 10월 8일자로 해산 명령을 받고
있었다. 훈련대의 대대장들이 모두 친일파인데다 교관들이
일본군 중대장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훈련대는
조선의 군사들이면서도 일본군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국왕파라고는 지난6월 17일에 연대장으로 보임된 홍계훈
자신뿐이었다.
민비는 신식 군대로 양성하기 시작한 훈련대가 일본군의
꼭둑각시가 될 기색이 보이자 연대장에게 홍계훈을 임명하여
훈련대를 장악하라고 지시했었다. 그러나 홍계훈은 일본군
장교에 의해 교육을 받은 훈련대를 장악할 수 없었고, 차선책
으로 훈련대의 해산을 국황과 민비에게 건의했던 것이다.
민비는 총명한 여인이었다. 일본인들은 민비를 조선의
'여우'라고 비하했으나 서구 열강의 공사들은 민비를 조선의
여걸이라고했고 '철의 여인'이라고도 불렀다.
3국간섭(三國干涉)이 날로 극심해 지자 민비는 교묘하게 줄타기
외교 솜씨를 발휘하여 일본의 조선침략 정책을 와해시키고
있었다.
시정(市井)에서는 민비로 인해 조정이 어지럽고, 국왕의
총기가 흐려져 나라가 도탄에 빠졌다면서 민비를 비난하는
풍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그러나 민비로 인해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민비는 무너져 가는 조선 왕조를
지키고 우유부단한 국왕과 세자를 적들로부터 지키려는 가냘픈
여인에 불과햇다. 나ㄹ가 부패하고 혼란에 빠진 것은 개국초부터
유교를 바탕으로 한 계급사회가 형성되었고, 지배층인
양반계급이 부패하므로써 나라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
탓이었다. 게다가 서구 열강이 봉건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격한
발전을 하고 있을 때 조선은 지배층이 소모적인 당쟁만 일삼고
민중을 수탈한 결과였다.
홍계훈이 민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임오군란(任午軍亂)때였다.
임오군란은 군제개편으로 신식 군대인 별기군(別技軍)이
창설되어 구식 군대에 대한 차별이 심하고 봉급미까지 밀리게
되자 구식 군대가 일으킨 폭동이었다. 이로 인해 민비는
군인들에게 쫓기게 되었는데 무예청 별감으로 있던 홍계훈이
구출하여 장호원(長湖院)까지 피신시켰던 것이다.
경영군(京營軍)은 그 해 불만이 높았다. 대궐에서 쓰이는 돈은
끝이 없었다. 호조나 혜청(惠廳)의 창고는 모두 비어서 경은
끝이 없었다. 호조나 혜청(惠廳) 의 창고는 모두 비어서
경관(京官)의 봉급미도 13개월이나 밀리고 있었다. 이때 호남
세선(稅船)수 척이 경창(京倉)에 도착했는데 민비는 그것으로
밀린 군료(軍料)를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헤청
당상관(堂上官)인 민겸호(閔謙鎬)의 하인이 배급을 담당했다.
그러나 하인은 군료를지급하는 쌀에 겨와 돌을 섞어 지급하는
바람에 군인들이 분노하여 그를 구타했다. 이때 민겸호가 나타다
주모자를 잡아 가둔 다음 목베어 죽이겠다고 위협을 했다.
이에 군인들은 땅을 치고 통곡하며 "굶어 죽는 것이나 법에
의해 처형을 당해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차피 죽을 바에야
탐관오리를 잡아 죽여 원한이라고 ㅆ자." 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민겸호는 군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재빨리 담을 넘어 대궐로
달아났다. 폭동을 일으킨 군인들은 민겸호의 집을 부수고
창고에서 재물을 꺼내어 불을 질렀다. 이때 중국 비단, 주옥,
패물이 타는 불꽃은 오색(五色)연기가 났고 인삼, 녹용,
사향노루 찜이 타는 냄새는 5리(五里) 밖에서도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폭동을 일으킨 군인들은 성 안을 누비고 다니며 부패하고
원성을 많이 산 관리들을 주살한 다음 대궐로 짓쳐 들어갔다.
그들은 민비를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민비에 의해 별기군이
창설되었고 민비에 의해 구식 군대의 봉급미에 돌을 섞어
주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원군이 군인들을
선동한 것이라는 풍문이 파다했다. 별기군을 창설한 것은
조정에서 결정한 일이었고 봉급미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은
조정의 재정이 바닥나 있는 상태여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구식 군대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관리들이
부패하여 매관매직을 일삼는 학정까지도 민비가 뒤집어써야
했다.
대원군은 반란군들에게 옹위되어 입궐했다. 즉흥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구식 군대는 사태를 수습해애 했고 대원군은 최대의
정적인 민비를 제거해야 했다. 대원군도 구식 군대도 임금을
폐위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들은 고종의 지위 보장과
민비의 제거에 합의하고 대궐을 점령했다.
민비는 서슬퍼런 대원군과 반란군의 총칼을 피해 궁녀로
가장하고 궐문을 나서려다가 반란군들에게 발견되었다.
"멈춰라!"
"중전이 여기 있다!"
"중전을 죽여라!"
반란군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와 민비의 가마를 에워쌌다.
누군가는 가마를 들고 있는 궁녀들을 발로 차서 쓰러트리기도
하고 가마를 세우고 민비를 끌어내려고 하였다.
무예청 별감인 홍계훈(초명:洪在熙)은 민비의 가마를 뒤에서
따르다가 흠ㅊ 했다. 창졸지간에 민비의 가마가 반란군에 의해
박살이 나고 민비가 땅바닥에 나 뒹굴고 있었다.
"민비다! 민비를 죽여라!"
반란군들이 화하는 함성을 지르며 민비를 에워쌌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멈춰라!"
홍계훈은 칼을 뽑아 들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무예청 별감 홍계훈이다!. 어느 놈이 감히 국모이신
중전마마를 해하려 하느냐? 삼족멸문의 화를 당하고 싶은 놈이
있으면 썩 나서라!"
홍계훈은 목청이 컸다. 칼을 뽑아 들고 고함을 지르며 눈알을
부라리자 반란군들은 주춤했다.
"길을 열어라! 중전마마의 옷깃 하나라도 건드리는 놈이
있으면 역적의 죄를 물어 종로 네거리에서 효수할 것이다!"
반란군들이 조용해 지자 홍계훈은 재빨리 민비를 들쳐 업었다.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자를 한칼에 베어라!"
홍계훈은 무예청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무예청 병사들이
엉거주춤 홍계훈의 앞과 뒤에서 호위했다. 홍계훈은 반란군들이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에 민비를 등에 업고 궐 밖으로 대달렸다.
13년 전의 일이었다. 홍계훈의 나이 마흔 한 살, 민비의
나이가 서른 두살일 때였다. 여염집 아녀자를 등에 업어도
기분이 야릇하기 마련인데 홍계훈이 등에 업었던 여인은 국왕의
왕비였다. 막연한 살(肉)냄새와 함께 가슴 뭉클한 여인의 감촉은
홍계훈에게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일이 엊그제처럼 선연한데.......)
홍계훈은 한숨을 쉬듯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민비를 위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민비만
생각하면 그는 지금도 가슴이 자맥질을 하듯이 뛰었다.
"훈련대가 실탄까지 가지고 야간훈련에 나갔나?"
홍계훈은 부동자세로 서 있는 부관에게 물었다. 훈련대 출동
소식을 듣고 잠자다 말고 뛰어나온 홍계훈이었다.
"옛!"
"지휘자들은 누구인가?"
"대대장 이두황, 우범선...중대장은 이범래, 남만리와 일본군
교관들입니다."
"군부대신도 알고 계시나?"
"모릅니다!"
"이런 변고가 있나? 군부대신 댁으로 가자."
홍계훈은 병영에 남아 있는 1개 소대를 지휘하여 안경수
군부대신의 집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훈련대가 야간훈련을 하다니 이 무슨 변괴인가?"
자다가 일어난 안경수 군부대신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훈련대는 오늘 해산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홍계훈은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 자들이 혹시 훈련대 해산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꾀하려는
게 아닌가?"
"소인도 그렇게 의심하고 있습니다."
"낭패로구만. 이 일을 어쩌지? 시위대만으로 훈련대를 막을 수
없을 텐데..."
"일단 대궐로 달려가야 합니다. 이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면
중전마마가 목표가 될 것입니다."
"허어!"
안경수 군부대신이 탄식을 했다.
"아무튼 서둘러 행차하셔야 하겠습니다."
"알았네. 어떤 일이 있어도 훈련대가 대궐에 난입하는 것은
막아야 하네. 자네는 먼저 광화문으로 가게. 나도 의복을 갖추고
곧 뒤따라가겠네."
"알겟습니다."
안경수 군부대신의 지시를 받고 홍계훈은 즉각 건춘문 밖에
가서 영문도 모르고 도열해 있는 제1훈련대의 1중대를
설득하였다. 1중대는 다행히 홍계훈의 설득을 받아들여 무장을
한 채 홍계훈의 뒤를 따라 돈화문(敦化門)쪽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성벽의 망루 부근에 일본군 수비대가 삼엄한 기세로
주둔하고 있는 것을 바련하고는 도지부청(度支部廳)을 우회한 뒤
광화문(光化門)으로 달려갔다.
홍계훈은 초조했다. 훈련대 병사들이 일본군 사관들의 지시를
받아 궁성으로 들어가면 민비의 생명이 위태로울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광화문 가까이 이르렀을 때야 한경수 군부대신이 말을
타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어떻게 되었나?"
"돈화문 성벽엔 이미 일본군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훈련대의 반란이 아니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일본이 음모를 꾸민 것 같습니다."
"어서 광화문으로 가세."
안경수 군부대신이 다급하게 재촉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광화문 앞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훈련대 제2대대가 대로 양쪽에
도열해 있고 일단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문 안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큰일이다.!"
"훈련대 병사들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홍계훈이 다급하게 안경수 군부대신을 재촉했다.
"병사들은 대궐에 들어가지 마라!"
안경수 군부대신이 말 위에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이다! 병사들은 대궐에 들어가지
마라!"
홍계훈도 악을 쓰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군부대신이 여기 계신다!. 병사들은 절대로 대궐에
들어가지마라!"
"병사들은 대궐에 들어가지 마라!"
"병사들은 대궐에 들어가지 마라!"
훈련대 1중대 병사들도 일제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광화문을 통해 대궐로 들어가던 병사들이 주춤했다.
대궐로 들어가는 훈련대는 홍계훈이 설득 하여 광하문으로
데리고 온 병사들보다 월등히 인원이 많았다. 게다가 일본군
수비대까지 앞뒤에 포진하고 있어 무력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홍계훈은 그들을 저지할 수가 없어 목이 터질 듯이 소리만
질러댔다.
"훈련대는 대궐로 들어가지 마라!"
"훈련대는 국법을 어기지 마라!"
"군부대신이 여기 계신다.!"
홍계훈은 병사들에게 더 크게 소리를 지르라고 한 뒤 광화문을
향해 달려 나갔 다. 훈련대의 병사들이 연대장인 자신을 향해
총을 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홍계훈의
착각이었다. 홍계훈이 광화문에 도착하기도 전에 몇 발의 총성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아!)
홍계훈은 참담했다. 그에게 총을 쏘고 있는 것은 말을 탄
일본군 사관이었다. 광화문 양쪽 가로에 도열해 있던 훈련대가
홍계훈을 알아보고 주춤했다. 그들은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때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포성이 들렸다. 병사들이 갑자기
우왕좌왕하면서 사방으로 달아났다.
"병사들은 대궐로 들어가지 마라!"
홍계훈은 말을 탄 일본군 사관을 쏘아보며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일본군 사관이 그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홍게훈은 일본군 사관을 노려보았다.
탕!
홍게훈은 총소리와 함께 뜨거운 것이 가슴을 꿰ㄷ고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화끈하면서 눈앞이 아득해 져 왔다.
다시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복부가 화끈했다. 홍계훈은
복부를 움켜쥐었다. 복부에서 뜨거운 것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중전마마를 도와야 할 테데......)
홍계훈은 복부를 움켜쥐고 땅바닥으로 뒹굴었다. 그때 '와'
하는 함성이 들리면서 일본군 수비대가 광화문 안으로 달려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귓전으로 연달아 포성이 들리고, 병사들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훈련대 병사들의 소리가 귓전으로
웅웅거렸다.
"연대장님이 전사하셨다!"
"연대장님이 일본군 수비대의 총을 맞았다!"
홍계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느새 광화문 위의 하늘이
의끄무레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고종과 민비는 바깥이 뒤숭숭하여 잠을 이루지 못햇다. 새벽
바람을 쐬고 방으로 돌아왔으나 불길한 생각이 두 사람의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고종과 민비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궁녀들이 화들짝 놀라 고종과 민비를 전도(前導)했다.
그때 건선문 쪽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궁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 했다. 총소리는 영추문(迎秋門)과
춘성문(春成門)쪽에서도 들리고 있었다. 건청궁이 일본군들에게
완전히 포위된 것이 분명했다.
(기어이 놈들이 야욕을 드러냈어......)
민비는 어금니를 꽉 개물었다 가슴이 쿵쿵거리고 뛰었으나
속으로는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하. 어서 안으로 드시옵소서."
"전하. 시위대를 들라 하여 옥체를 엄호하게 하소서."
상궁들과 환관들이 다투어 고종에게 외쳤다. 고종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공연히 대전의 월대로 항망히
올라서다가 다시 내려왔다.
"시위대를 들라 하라!"
고종이 명을 내렸다.
"멈춰라!"
민비는 상궁들이 우왕좌왕하면서 고종의 어명을 빙자하여
달아나려고 하자 호통을 쳤다.
"왜 이렇게 가볍게 입을 놀리느냐?"
상궁과 환관들이 민비의 추상같은 호통에 흠칫했다. 고종의
명을 받고 춘성문 쪽으로 달려가던 오 내관도 멈칫하여 되돌아
왔다.
민비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 상궁은 장안당에 가서 세자를 이리 오라 이르고 오 내관은
건선문, 춘성문, 영추문에 달려가서 어찌하여 궁성이 소란한지
소상히 알아 오도록 하여라...."
"예."
오내관과 김 상궁이 황급히 민비의 명을 받들고 곤령합을
떠나갔다.
(과시 여걸이로다.....)
고종은 경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민비에게 감탄을 했다.
연약한 민비의 몸 어느 곳에서 그토록 당차고 서슬퍼런 기상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전하, 이제 안으로 드시옵소서."
민비가 다소곳이 고종의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총소리가 더욱
요란해 지고 있었다.
"아니오. 보다는 중전이 먼저 피해야 할 것 같소."
고종이 민비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민비의
해오라기처럼 창백한 얼굴이 새벽빛에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전하, 전하는 이 나라의 지존이시옵니다."
민비가 고종을 재촉했다. 그때 세작 척이 김 상궁과 함께
허겁지겁 달려왔다.
"어마마마."
"세자야."
민비가 세자의 손을 꼬옥 잡았다. 민비의 눈에 눈물이
글썽해졌다.
"중전, 어서 피하도록 하시오."
고종은 꿈을 생각했다. 훈련대의 해산은 민비가 지시한
것이었다. 일본군이 3군부(三軍府)로 쳐들어온 것은, 일본군의
휘하에 있던 훈련대를 해산하여 일본의 세력을 견제하고자 한는
민비를 제거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민비는 일본인들에게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전하!"
그때 농상공부 협판 정병하와 궁내부 대신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고종은 다급했다. 정병하는 민비가 총애하는
신하였으나 일본 공사 미우라에게 이용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
훈련대의 반란은 아니었다. 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해도
훈련대는 일본군 사관들과 친일파 장교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정 협판, 이게 어찌된 변사인가?"
고종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정병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 협판!"
민비가 고종을 가로막고 나서며 정병하를 쏘아보았다.
"이 총소리는 어찌된 것이오?"
"황송하옵니다. 중전마마."
"어찌 대답을 못하시오?"
"훈련대가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아옵니다. 훈련대를 진압하란
어명을 시위대에 내려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라."
고종이 힘없이 윤허했다.
"정 협판!"
"예, 중전마마!"
"시위대 부령 현흥택에 의하면 일본군이 3군부로 쳐들어왔다고
하오. 이래도 훈련대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말할 수 있고?"
민비가 고종의 윤허를 무시하고 정병하를 날카롭게 다그쳤다.
정병하의 말이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그러하옵니다. 중전마마."
"그럼 현흥택이 훈련대가 반란을 일으킨 것을 일본군이 쳐들어
왔다고 보고를 했다는 말이오?"
"그러하옵니다, 중전마마. 밤이 깊어 현흥택 부령이 잘못
본것이옵니다."
"이 대신은 어떻소?"
민비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궁내부대신(宮內府大臣)인
이경직(李耕稙)을 쏘아보았다.
"소신이 보기에도 조선 병사들이 있었는 줄 아뢰오."
"그러하옵니다. 중전마마."
이경직이 허리를 깊숙이 숙여 대답했다.
민비는 잠시 생각에 잠겻다. 궁내부대신 이경직이 조선
병사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면 훈련대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
사실일 것이다. 게다가 궁내부대신 이경직과 농상공부 협판
정병하는 민비가 임명한 심복들이었다. 그들이 국왕에게 거짓
보고를 할 까닭이 없었다.
"중전마마, 궁성이 잠시 소란하더라도 위급한 일은 없을
것이오니 안심하시 옵소서."
민비가 입을 다물고 있자 정병하가 안심을 시켰다.
"정녕 아무 일도 없겠는가?"
고종이 그때서야 정병하에게 물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그렇다면 다행이지....."
고종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소신들 물러가옵니다."
"물러가라."
정병하와 이경직이 읍을 하고 총총걸음으로 물러갔다.
민비는 그들이 건청궁 밖으로 물러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훈련대가 반란을 일으켰든지
일본군이 쳐들어왔든지 목적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고종과 세자와 함께 있으면 그들도 위험하리 라고
생각했다. 민비는 비감해 졌다. 이제 자신의 목숨이나 왕조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같다는 생각을 하자 가슴 저 밑바닥에서
슬픔의 응어리가 목울대를 차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내 목숨이 경각에 처한 것인가....?)
민비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농상공부 협판 정병하와 궁내부
대신 이경직의 보고는 믿을 것이 못 된다. 그들은 일본이 조선을
병탄하려는 야욕을 간과하고 있다. 개화파의 인사들조차 일본의
흉계를 간파하지 못하고 이용만 당했던 것이다.
총소리가 잠시 뜸한 사이 풀벌레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민비는
오늘따라 그 소리가 유난히 가슴을 울리는 기분이었다.
"전하."
민비는 낮은 목소리로 고종을 불렀다.
"신첩은 옥호루에 가서 잠시 쉬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렇게 하겠소?"
고종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와
헤어지는 것처럼 불안한 기색이었다.
"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오."
고종이 힘없이 대답했다.
"세자야."
민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예, 어마마마."
세자가 공손히 대답했다. 민비는 세자에게 생모가 되지만
엄격하고 매섭게 세자를 양육했다. 그런 까닭에 왕세자 척은
국왕인 고종보다 어머니 민비를 더 무서워했다.
"부디 전하를 잘 모셔라."
"예."
세자 척이 허리를 숙이고 대답했다. 민비는 세자에게 할 말이
남은 듯 입을 열었다가 다물고 고종을 응시했다.
"신첩 물러가옵니다."
민비가 고종에게 다소곳이 절을 했다. 고종은 의아한 표정으로
민비를 응시하 다가 건춘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또 총소리가
요란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총소리는 점점 곤령합 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고종은 다시 민비에게 시선을 돌렸다. 민비가 고령합 안뜰을
거쳐 옥호루(玉壺樓)쪽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옥호루는
곤령합에 딸린 부속건물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고종은 갑자기
민비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 민비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고종을 쳐다보았다.
(아!)
고종은 가슴이 뻐근해 왔다.
민비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솟아 오르고 있었다.
이보다 앞서 현흥택은 달음질을 쳐서 시위대 사령부로 돌아와
무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이학균의 보고대로 추성문 밖에
일본군 수비대 병사 40~50명이 총검으로 무장하고 도열해
있었다. 현흥택이 그들에게 여기에 왜 왔느냐고 묻자 그들은
일제히 담벽 아래로 몸을 숨겼다.
(저 놈들이 기어이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군.......)
현흥택은 전신이 팽팽하게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시위대 전 병사에게 교전 준비를 하라고 하시오!"
다이 장군이 다른 곳에도 척후병을 보내면서 현흥택에게
말했다. 현흥택은 시위대 병사들을 시무문(神武門)쪽으로
집결시켰다. 그때 척후병들이 돌아와 일보군 수비대 옆에 조선군
2백 명 정도도 함께 있다고 보고하였다. 조서군은 훈련대를
말하는 것이었다.
5시 경에 광화문 쪽에서 먼저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러자 춘생문(春生門)과 추성문(秋成門)쪽에서도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춘생문은 왕궁의 동쪽에 있고 추성문은
왕궁의 서쪽에 있다.
현흥택은 다이 장군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건청궁 수비에
나섰다.
그때 광화문이 일본군 수비대에 점령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러나 현흥택은 시위대를 광화문으로 파견할 수가
없었다.
야간 당직 시위대 군사가 소수였기 대문에 광화문, 영추문,
춘성문, 춘생문 등 광활한 수비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고종이
거처하는 건청궁 수비가 다급했기 때문이었다.
시위대는 2개조로 나누어 일본군 수비대와 격렬한 총격전을
벌였다. 현흥택은 시위대 군사들을 독려하여 신무문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맞섰다.
"어명이요!"
현흥택이 시위대를 독려하여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을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았을 때 곤령합으로부터 내관들이 황급히
달려왔다.
"사격을 중지하시오! 어명이요!"
현흥택은 어리둥절하여 내관들을 노려보았다.
"무슨 일이오?"
"전하께서 일본군 수비대에게 감금당했소."
"뭐요?"
현흥택은 가슴이 철렁했다.
"전하께서 볼모로 잡히셨소."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일본군들이 불경하게 전하를 위협하고 있소. 사격을
중지하시오."
"사격중지!"
"사격중지!"
현흥택은 재빨리 시위대 군사들에게 사격중지 명령을 내렸다.
고종이 일본군 수비대의 포로가 되었다면 전투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로다......)
현흥택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고종은 그때 비참한 처지에 몰려 있었다. 작전이 개시되자마자
춘성문을 통해 벌떼처럼 몰려들어 온 일본군 수비대는 단숨에
건청궁을 에워싸고 시위대의 무장을 해제해 버렸다.
그들은 무엄하게도 고종의 어깨를 흔들어대며 왕비의 소재를
말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을 하기까지 했다.
불경스러운 짓이었다. 그들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다.
왕세자 척도 곤경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군 수비대는
왕세자 척을 잡아 관을 찢고, 상투를 쥐고 흔들며 왕비의 소재를
자백하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왕세자 척이 자백을 하지 않자
칼등으로 마구 후려쳤다. 왕세자 척은 비명을 지르고 혼절했다.
다음은 궁녀들 차례였다.
궁녀들은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일본군
수비대는 궁녀들까지 마구 폭해을 하면서 왕비의 소재를 물었다.
그러나 궁녀들은 일본말을 알아 듣지도 못할 뿐 아니라 발길에
채이고 칼등으로 얻어맞으며 울부짖기만 할 뿐이었다.
술에 취한 일본인 낭인들은 그 와중에도 궁녀들을
희롱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고종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목불인견의 참상에
몸을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3
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은 가마에서 내려 건청궁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민비의 제거는 비록 일본의 힘을 빌려서 하는
일이었지만 만감이 교차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미우라
공사가 예상한 대로였다.
오카오토 류유노그케(岡本柳之助)는 이하응의 늙은 얼굴을
힐끗 쳐다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미 조선의 왕궁은
일본군 수비대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왕비의 거처인 건청궁에서 왕비를 찾아내어 살해하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약간 지체되기는 하였으나 만족스러웠다.
날은 점점 훤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오카모토는 조선의 궁내부 문관이었다. 그는 처음에 조선의
궁내부 문관에 임명되었을 때 조선이 예상보다 훨씬 허약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왕실의 재정은 바닥이 나 있었고
나라엔 제대로 된 군대조차 없었다. 대대로 귀족 노릇을 해온
양반들은 백성들을 착취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산업사회의 척도를 잴 수 있는 상공업은 원시 수준이었다.
백성들은 마을 단위로 자급자족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대부분이 소작농을 하고 있었고, 양반과 토호들이 소출의
대부분을 빼앗아 갔기 대문에 기층 민중들은 초금목피로
연명하다 못해 굶어 죽는 자가 허다했다.
민란이 계속 일어났다. 강력한 쇄국정책을 펴던 조선은,
이제는 외세의 힘을 빌어 민란을 진압하고 정권을 유지해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려는 것은 시의적절해 보였다. 조선은
대륙 진출의 야망을 갖고 있는 일본에게는 발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본이 조선의 내저을 좌지우지하면서도 병합의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러시아와 영국, 독일을 비롯한 서구
열강 때문이었다. 서구 열강도 병들어 있는 조선에서 철도 부설
,금광 채굴을 비롯한 각종 이권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조선은 일본뿐만 아니라 탐욕스러운 서구 열강에게도
고깃덩어리였다.
서로서로 견제하며서 조선이란는 고깃덩어리를 한 입에 삼킬
기회만 노리고 있있다.
미우라 공사와 스기무라 일등 서기관이 민비 시해를 계획한
것은 서구 열강으로부터 항의를 받지 않고 조선이라는
고깃덩어리를 요리하기 위해서였다. 민비를 제거해 버리면
국왕은 일본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다.
오카모토는 왕비의 거처인 건청궁 족으로 천천히 걸음을
떼어놓았다.
대궐 침입이 지체된 것은 대원군 때문이었다. 미우라 공사와
스기무라가 작성한 방략서(方略書)에 의해 하기하라
히데지로오(荻原秀次郞)가 이본 순사와 낭인들을 동원해
공덕리(孔德里)에 있는 대원군저(大院君邸)를 습격, 조선 순경
10여 명을 창고에 감금한 뒤 대원군에게 입궐을 요구했으나
대원군이 한사코 거부하여 시간이 지체되었던 것이다.
대원군을 입궐하게 한 것은 민비 제거를 대원군의 조종에 의한
훈련대의 반란으로 뒤집어 씌우기 위해서였다.
새벽 3시였다. 대원군은 풍운을 꿈꾸며 깊이 잠들어 있었다.
오카모토는 운현궁을
경비하는 조선인 순경들을 포위하여 무장해체시키고 조선인
순경들의 옷을 벗겨
일본 순사들에게 입힌 뒤 대원군을 깨웠다. 그리고 통역을
통해 대원군과 견원지간인 민비를 제거하겠다, 국왕의 안전을
절대로 조장한다, 대원군의 장자 이재면(李載冕)을 궁내부대신에
임명하겠다.... 하고 설득했으나 대원군은 완강히 거절했다.
뜻밖의 사태였다. 오카모토는 두 시간 반 동안이나 설득을
하다가 안 되자 대원군을 강제로 끌어내 가마에 태운 뒤
협조하지 않으면 국왕까지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을 했다.
대원군은 그때서야 국왕의 목숨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협조를
약속했다.
오카모토는 대원군의 가마를 일본 순사들에게 호위하게하여
서대문(西大門) 으로 향해 달려갔다. 망략서에는
남대문(南大門)에서 가까운 고개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합류하게
되어 있었으나 대원군 추대에 시간이 오래 걸렸고, 연락이 안
되어 서대문으로 진출한 것이다
그들이 서대문 바깥의 대로가 의주로(義州路)와 만나는
네거리의 한성부청(漢城附廳)앞에 도착했을 때 우범선이
지휘하는 훈련대 제2대대의 병사들이 가로 양쪽에 도열해
있었다. 일본 수비대의 병사들도 다수 보였다. 그러나 수비대의
본진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카모토는 대원군의 가마 행렬을 그곳에서 대기하게 하였다.
날이 점점 밝아 오고 있었다. 부지런한 조선인들은 두 셋씩 모여
누련대와 수비대 그리고 대원군의 행렬을 괴이한 눈빛으로
살피고 있었다.
그때 수비대 본진이 도착했다. 대원군의 가마를 중앙에 두고
일본 수비대가 전면에 서고, 훈련대는 가마 앞뒤를, 그 뒤를
다시 수비대가 따랐다. 이 진(陣) 은 왕궁을 수비하는 시위대의
반항을 무력화시키고 대원군과 훈련대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었다.
그들은 구보로 정동을 지나 광화문을 향해 달렸다. 서둘러야
했기 때문에 그들이 광화문에 도착했을 때는 숨이 가빠 모두
헐떡거렸다.
오카모토가 광화문 앞에 도착하자 파성관 낭인부대와 쿠스노세
유키히고(楠賴辛彦)중좌가 기마로 도착해 수비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들은 광화문 옆의 석벽을 사다리를 타고 너어가 성문을 열고
돌진했다.
그때서야 뒤에서 함성이 일어나며 요란한 총성이 들렸다.
조선의 안경수 군부대신과 훈련대의 대궐 난입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었다. 시위대 군사 외에 병사들이 대궐에 들어가는
것은 불법이었다.
훈련대 병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광화문 서쪽으로
달아나려고 하였다. 조선의 훈련대 병사들은 그때서야 자신들이
야간훈련에 동원된 것이 아니라 일본군의 대궐 침입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구스노세 중좌가 기마로 돌아다니며 대오를
정리하느라고 소리를 지르고 후위에 있는 일본군 수비대가
사납게 함성을 지르며 돌진을 하자 엉겹결에 광화문 안으로
내몰렸다.
시위대의 저항은 미약했다. 미국인 퇴역장군 맥이 다이와 부령
현흥택이 시위대를 지취하고 있었으나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을 때 총과 실탄을 연못 속에 버리고 실탄의 반입을
차단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쯤에는 이미 건청궁의 북족
담벽을 넘은 일본군 수비대가 조선 국왕을 제압하고 있었다.
오카모토는 건청궁의 남쪽 문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건청궁은 이미 일본군 수비대에 의해 삼엄하게 에워싸여 있었다.
문(門)마다 일본군 수비대가 2명씩 보초를 서고 있었고 옥호루
앞에는 조선군 훈련대 복장을 한 일본군 수비대 40여 명이
무기를 내려놓고 도열해 있었다.
오카모토는 옥호루의 남쪽 문으로 들어섰다. 역사적인 시간,
조선의 왕비 민비 살해현장을 직접 목격하기 위해서였다.
4
미야모토 타케타로오(관본죽태랑) 소위(小尉)는 궁녀의 가슴에
군도(군도)를 겨누고 잠시 동안 가픈 호흡을 진정시켰다.
가슴이 뛰고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궁녀는 의외로 조용했다. 두려워하는 빛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서둘러야 해.....)
미야모토 소위는 눈을 부릅떴다.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하면
'여우사냥'이라는 작전명이 붙어 있는 조선왕비 살해가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이다. 이미 건청궁은 일본군 수비대에 의해
겹겹히 에워싸여 있었고 내전 안에서는 왕비를 찾으려는 낭인
무리들과 군인들, 조선인으로 변장을 한 일본 순사들이 사방에
늘어선 방을 휘젓고 다니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왕비를 찾는
것이 절대절명의 과제였다.
"왕비는 어디에 있는가?"
미야모토 소위는 궁녀의 가슴을 겨누고 있던 군도를 궁녀의
목줄기에 옮겨 핏자국을 내며 다그쳤다. 조선말이었다. 궁녀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면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너희들 중에 누가 왕비인가?"
미야모토 소위는 눈을 부릅뜨고 재차 궁녀를 다그쳤다. 아직도
취기가 깨지 않고 있었다. 눈은 몽롱하고 군도를 쥔 손이
떨렸다.
"하기하라!"
여우사냥 작전의 왕성 침입 및 왕비 살해 책임자인 호리구치
영사보(領事補)가 하기하라를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기하라는 공사관의 경부(警部)로 여우사냥 작전에서 순사 동원
책임을 맡고 있었다.
"핫!"
하기하라 경부가 재빨리 호리구치 영사보에게 달려갔다.
"궁녀들에게 누가 왕비인지 ㅊ아내라고 하라!"
호리구치가 살벌하게 소리쳤다.
"핫!"
"궁녀들이 반항을 하거나 왕비의 소재를 말하지 않으면 베어도
좋다!"
"핫!"
조선의 왕비가 거처한는 곤령합에는 방이 열 여덟 개나 되고
궁녀도 수십 명이 있었다. 그들 중에 누가 왕비인지 알 수 없어
일본인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하기하라는 낭인들과 함께 방마다 돌아다니며 궁녀들의
머리채를 끌고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낭인들은 궁녀들의 머리채를 끌고 나와
마당에 내던지고 발로 짓밟으면서 왕비가 있는 곳을 말하라고
살기등등하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나 궁녀들은 일본말을
알아듣지 못해 울부짖기만 하고 있었다.
"왕비는 어디 있는가?"
궁녀는 겁에 질린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미야모토 소위의
물음엔 대꾸하지 않고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를 쳐다보고 서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죽인다!"
"......"
"요시!"
미야모토 소위는 군도로 궁녀의 목줄기를 힘껏 찔렀다. 궁녀의
입에서 헉,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미야모토 무사시의 후예다!)
다음 순간 미야모토 소위는 짧은 기합소리를 내뱉고 궁녀의
목줄기에서 군도를 뽑아 궁녀의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께로
내려쳤다.
(베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속으로 환성을 질렀다.
궁녀의 입에서 짧은 신음소리가 터졌다. 미야모토 소위는
얼굴을 찡그렸다. 군도가 사선으로 비껴간 궁녀의 가슴에서 그때
서야 붉은 피가 주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궁녀가 재빨리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감싸쥐었다. 군도에
베어진 옷자락 사이로 궁녀의 하얀 젖무덤이 얼핏 보였다.
그곳에서 선혈이 쏟아지며 옷자락을 흥건히 적셨다.
(설 베었어!)
미야모토 소위는 가슴이 뜨끔했다. 궁녀는 가슴을 베였는데도
쓰러지지 않고 있었다. 궁녀가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탓인지도 알 수 없었다.
"탓!"
미야모토 소위는 또 다시 큰 소리로 기합을 지르며 군도로
궁녀의 허리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힘껏 그었다. 그러자 궁녀가
그의 얼굴을 향해 뜨거운 것을 왈칵 뱉아냈다. 미야모토 소위는
얼굴을 찡그렸다. 궁녀가 쿵하고 마룻바닥으로 쓰러졌다. 군도가
정확하게 궁녀의 복부를 가른 것이다. 궁녀의 아랫배에서 하얀
것이 뭉틀거리고 쏟아져 나왔다.
미야모토 소위는 또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얼굴이 끈적끈적
했다.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자 피가 묻어났다.
"더러운 조센진......"
미야모토 소위는 쓰러진 궁녀의 얼굴을 군화발로 내질렀다.
궁녀의 얼굴에서 퍽 소리가 났다. 어디선가 피비린내가 역하게
풍겼다.
잠시 주위가 조용했다. 궁녀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고 흐느껴
울고 있었다. 낭인들도, 순사들도 궁녀들을 구타하다가 말고
미야모토 소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일본 제국 육군 사관이야. 너희들 같은 낭인들과는
달라....!)
미야모토 소위는 잠시 얼이 빠진듯한 낭인들을 향해 차가운
웃음을 날려 보냈다.
(저자는 궁내부대신......)
그때 양복을 입은 조선 사내 하나가 옥호루의 동쪽 방으로
황급히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미야모토 소위는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었다. 양복을 입은 궁내부대신 이경직이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조선군 훈련대의 교관으로 있으면서 이경직을 본 일이
있었다.
"서라!"
미야모토 소위는 이경직을 향해 후닥닥 달려갔다. 이경직이
있는곳에 조선의 왕비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녀들이
비명을 지르면 갈라섰다.
"궁내부대신! 왕비는 어디에 있소?"
미야모토 소위는 이경직에게 피에 젖어 번들거리는 군도를
겨주었다. 이경직이 들어간 방에는 궁녀로 보이는 여자가 넷이나
있었다.
"모른다! 중전마마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이경직이 두 팔을 벌려 미야모토 소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얼굴에 낭패한 표정이 역력했다.
"비켜라!"
"안된다! 여기는 조선국의 지엄한 궁궐이다! 일본국 군대는
난입할 수 없다.!"
"왕비가 누구인지 말하라!"
"모른다!"
"그대는 궁내부대신이 아닌가? 궁내부대신이 왕비의 얼굴을
모른다는 말인가?"
"모른다!"
"이 방에 있는 궁녀들 중에 왕비가 있지 않는가?"
"너는 일본군의 일개 사관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침입하여
소란을 피우는가? 미우라 공사에게 엄중히 항의하겠다!"
그때 미야모토 소위의 등 뒤에서 나카무라(中村), 테라자키,
하리야마(平山) 같은 낭인들이 사진을 들고 달려오면서,
"여우다!"
"조선왕비가 저기 있다!"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미야모토 소위는 다급해 졌다.
잘못하면 일본 본국에서 하릴없이 정쟁이나 벌이고 있는
국권당(國權黨)과 자유당(自由黨)의 낭인들에게 조선왕비를
살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뺏길 염려가 있었다.
"물러서라!"
미야모토 소위는 낭인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조선의 여우는 천황폐하의 군대가 잡는다!"
미야모토 소위의 살기 띤 고함에 낭인들이 주춤했다. 게다가
낭인으로 변장을 한 미야모토 소위의 부하들이 순식간에
마루위로 달려 올라오자 그 기세에 눌려 뒤로 물러났다.
"궁내부대신 비켜라!"
미야모토 소위는 이경직을 향해 군도를 겨누고 소리를 질러
댔다.
"안 된다.!"
이경직 궁내부대신이 완강하게 버티었다.
"요시!"
미야모토 소위는 짧은 기합소리를 내뱉고 이경직 궁내부대신의
오른쪽 팔목을 향해 군도를 힘껏 내리쳤다.
쉬익! 허공을 가르는 파열음이 들리면서 이경직 궁내부대신의
오른쪽 팔이 군도에 의해 잘라졌다. 궁녀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댔고, 이경직이 끙,하는 신음을 뱉았다. 이경직
궁내부대신의 팔에서 선혈이 분수처럼 쏟아졌다. 마룻바닥이
금세 선혈로 흥건했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죽는다!"
미야모토 소위는 다시 훙광을 번뜩이며 군도를 쳐들었다.
"이놈!"
이경직 궁내부대신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며 왼족 팔로
미야모토 소위를 막아섰다. 무모한 짓이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이경직 궁내부대신을 쏘아보며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떠올렸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 근육이 푸르르 떨렸다.
"탓!"
미야모토 소위는 또다시 짧게 기합을 내뱉고 이경직 궁내부
대신의 왼쪽 팔을 잘랐다. 궁녀들이 눈을 감거나 외면을 하면서
일제히 비명을 질러댔다. 어떤 궁녀는 벽에 얼굴을 기대고
흐느껴 울었다.
그러나 이경직 궁내부대신은 양쪽 팔이 모두 잘라져
버렸는데도 눈을 부릅뜨고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무서운 놈!)
미야모토 소위는 소름이 오싹 끼쳤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격렬하게 뛰었다. 마룻바닥은 이미 이경직 궁내부
대신이 흘린 피로 낭자했다.
(좋다!)
미야모토 소위는 권총을 뽑아 이경직 궁내부대신을 향해
겨누었다. 이경직 궁내부대신이 비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입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은 이미
몽롱하게 풀어져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이경직 궁내부대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이경직 궁내부대신의 몸이 풀쩍 떠올랐다가
쓰러졌다.
"어리석은 놈......"
미야모토 소위는 낮게 뇌까렸다.
(왕비가 누구지?)
미야모토 소위는 가쁜 천천히 가다듬었다. 이경직
궁내부대신이 쓰러지자 궁녀들이 방구석으로 몰려가 몸을 떨고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이경직 궁내부대신의 시체를 넘어 방으로
들어갔다. 피비린내가 코를 튕기고 있었다.
(왕비인가?)
미야모토 쇠위는 걸음을 멈추었다. 궁녀들 중에 섞여 있던 한
여인이 그를 물처럼 고요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바짝 긴장했다. 여인은 궁녀들과 똑같은
평복을 입고 있었으나 은연중 귀인의 풍모를 풍기고 있었다.
검고 윤이 나는 머리카락에 진부분을 사용한 얼굴이 창백했다.
눈은 차고 날카로웠다.
(조선의 왕비가 틀림없어!)
여인은 자신의 눈앞에서 궁내부대신이 피를 흘리며 죽었는데도
두려운 빛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조선의 왕비가
여걸(女傑)이라는 말이 한성에 거류하는 일본인들 사이에
파다하게 떠돌던 것을 미야모토 소위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미야모토 소위가 멈칫하고 있는 틈을 노려 여인이 재빨리
마루로 뛰어 나갔다. 궁녀들도 황급히 여인의 뒤를 따라 뛰었다.
"여우가 도망간다!"
"여우를 잡아라!"
낭인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러댔다. 여우는 조선의 왕비 민비의
별명이었다. 미우라 공사와 스기무라 일등 서기관이 조선의 왕비
살해계획을 세우면서 방략서에 '여우사냥'이라는 제목을 붙였던
것이다.
미야모토 소위는 비호처럼 몸을 날려 여인의 어깨를 나꿔챘다.
다급했다. 여인은 걸음이 빠르지 못했다. 미야모토 소위가
어깨를 나꿔채자 옷자락에 걸려 마룻바닥 위에 쓰러져 뒹굴었다.
그러자 궁녀들이 일제히 여인의 앞을 가로 막았다.
"베어라!"
호리구치가 소리를 질렀다. 낭인들이 궁녀들에게 달려들어
일본도를 휘둘렀다. 궁녀들이 비명을 지르고 피를 뿌리며
죽어갔다.
미야모토 소위는 몸을 날려 마룻바닥에 쓰러진 여인의 가슴을
군화발로 밟고 군도를 복부에 힘껏 내려찍었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고 있던 여인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두 손으로
미야모토 소위의 군도를 움켜잡았다.
"여우를 잡았다! 내가 조선의 왕비를 잡았다!"
미야모토 소위는 군도를 뽑아들고 맹수처럼 포효했다. 그러자
낭인들이 와하고 함성을 지르며 여인에게 달려왔다.
"아들아, 내 아들아......"
여인은 군도를 움켜 쥐고 있던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군도에 영니의 손이 갈라져 피투성이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다시 한번 여인의 복부를 군도로 힘껏 내려
찍은 다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낭인들이 앞을 다투어
여인에게 난도질을 해댔다. 난도질 하는 낭이들 중엔 테라자키도
보이고 니카무라도 보였다.
"어이, 미야모토 소위!"
호리구치 영살보가 미야모토 소위를 불렀다.
"핫!"
미야모토 소위는 재빨리 호리구치 영사보에게 달려가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대는 조선 왕비의 얼굴을 알고 있는가?"
"모릅니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저 여인을 여우라고 부르는가?"
미야모토 소위는 대답이 궁해 우물쭈물했다. 여인에게서
풍기던 기품이나 위엄을 호리구치 영사보에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제군들, 비켜라!"
호리구치 영사보가 품 속에서 사진을 꺼내며 낭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낭인들이 재빨리 여인의 몸에서 떨어져 양쪽으로
갈라섰다.
"횃불을 가져 와라!"
낭인 복장을 한 하리야마가 서둘러 횃불을 들고 달려왔다.
호리구치 영사보가 횃불을 비쳐 가면서 여인의 얼굴과 사진을
대조했다.
"여우가 틀림없다!"
드디어 호리구치 영사보가 횃불을 하리야마에게 넘겨 주며
말했다. 낭인들이 또다시 와하고 함성을 질러댔다.
"그러나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다. 미야모토 소위!"
"핫!"
"그대는 곤령합으로 가서 조선 왕세자 척을 끌고 와라!"
"왕세자 척 말입니까?"
미야모토 소위는놀라서 호리구치 영사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선의 왕세자 척은 조선의 대통을 계승할 인물이었다. 그러나
척은 곤령합에서 왕비의 소재를 알려고 혈안이 된
일본인들로부터 상투를 휘어잡히고 일본도 칼등으로 얻어맞아
혼절을 한 뒤 일본인들에게 연금되어 있었다.
"그렇다! 조선의 왕세자 척에게 왕비의 얼굴을 확인하게
하겠다!"
미야모토 소위는 부동자세를 취하고 나서 몸을 돌렸다.
"제군들!"
미야모토 소위는 낭인 복장으로 변장을 한 부하들을 불렀다.
"핫!"
그들이 재빨리 미야모토 소위 앞에 달려와 정렬을 했다.
"제군들은 나를 따르라!"
미야모토 소위는 하오리 차림의 부하들을 이끌고 곤령합으로
달려갔다. 어느덧 날이 번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가 옥호루의 동쪽 모퉁이를 돌면서 남쪽 하늘을 쳐다보자
조선의 국왕과 대신들이 정사를 보는 근정전(勤正殿)의 지붕이
희미한 새벽빛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근정전 뒷뜰고
일본군과 낭인들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어 있었다. 여우사냥에
동원된 일본 수비대 병력은 자그마치 1천 명이나 되었다.
조선의 왕세자 척은 곤령합의 큰 방에 갇혀 있었다. 조선
국왕이 지난 밤에 잠을 잤던 방이었다. 그러나 조선 국왕은
일본인들에 의해 장안당으로 옮겨져 연금되어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부하들을 지휘하여 왕세자 척을 끌어내었다.
왕세자 척은 일본인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수모를 당했기
때문인지 얼굴이 창백했다. 눈빛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옥호루로 갑시다!"
왕세자 척은 모을 부들부들 떨면서 미야모토 소위를
쳐다보았다.
"끌고 가라!"
미야모토 소위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했다. 부하들이 재빨리
조선의 왕세자 척의 어깨를 나꿔채 옥호루로 달리기 시작했다.
왕세자 척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비틀대며 옥호루로 끌려왔다.
"이 여인이 조선 왕비가 맞소?"
호리구치 영사보가 조선 왕세자에게 물었다. 조선말이었다.
"이 여자가 조선국 왕비냐고 묻지 않았나?"
호리구치 영사보가 재차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척은 그때서야 비틀대는 걸음으로 여인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옥호루의 넓은 마루는 일본도를 뽑아든 낭인들에 의해 살벌한
기운이 감돌았다. 여기저기 궁녀들의 시체가 나뒹굴고 선혈이
낭자했다.
조선의 왕세자 척은 일본인들의 살벌한 기세에 짓눌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똑똑히 보아라!"
호리구치 영사보가 왕세자 척의 상투를 쥐고 흔들었다.
"마, 맞소......"
왕세자 척이 몸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그는 어머니인 조선
왕비의 죽음보다 그 참혹한 시신으로 인해 공포에 질려 있었다.
"틀림없나?"
"틀림없소. 이분은 조선국 국모요."
"데리고 가라! 조선국 국왕과 함께 있게 하라!"
"핫!"
미야모토 소위는 부동자세를 취하며 미소를 지었다. 조선의
왕세자 척에 의해 그가 여우사냥 작전의 1등 공을 세운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는 기쁨을 감추지 않고 조선의 왕세자 척을
옥호루에서 끌어내었다. 이제는 미우라 공사의 지시가 있을 때
까지 왕세자 척을 장안당으로 옮겨서 연금해야 했다.
"어마마마!"
그때 왕세자 척이 갑자기 미야모토 소위를 뿌리치고 옥호루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어리둥절하여 왕세자 척을
내려다보았다.
"어마마마!"
왕세자 척은 비통한 음성으로 울부짖으며 땅바닥에 이마를
짓찧고 있었다. 그때서야 생모를 잃은 슬픔이 북받치는
모양이었다. 울음소리가 처절했다.
"빨리 끌고 가라!"
미야모토 소위는 부하들을 다그쳤다. 그의 부하들이 조선
왕세자 척을 발길로 내지르고 잡아 일으켜 잡아당기고 달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소리가 요란했다.
미야모토 소위가 왕세자 척을 장안당에 연금시키고 돌아오자
미우라 공사가 도착해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미우라 공사를
향해 부동자세를 취했다. 미우라 공사는 육군 중장 출신이었다.
미야모토 소위에게는 하늘 같은 존재였다. 미우라 공사는
귓속말로 호리구치 영사보에게 무엇인가 지시하고, 호리구치
영사보는 그럴 때마다 하이, 하이...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낭인들도 순사들도 미우라 공사에게 깍듯이
존봉(尊奉)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윽고 미우라 공사가 일본군 정장을 한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옥호루를 떠나갔다.
"하기하라!"
미우라 공사가 떠나가자 호리구치 영사보가 하기하라 경부를
불렀다.
"핫!"
"조선 왕비의 옷을 벗기고 시신을 불태운다! 미우라
공사게서도 조선 왕비가 맞다고 확인해 주셨다. 여우사냥의 1등
공은 미야모토 타케타로오 소위가 세웠다.!"
"핫!"
"하기하라 경부에게 2등 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다. 조선인과
열국 공사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왕비의 시신을 불태울 준비를
하라!"
"핫!"
하기하하 경부가 부동자세를 취한 뒤 순사들을 이끌고
옥호루의 정원으로 뛰어나갔다.
"테라자키 무사!"
"핫!"
"그대에게 3등 공을 세울 기회를 준다. 그대들은 조선 왕비의
국부를 검사해 보도록 하라! 요사스러운 조선 왕비가 조선
국왕을 하문(下門)으로 사로잡아 조선이 일본을 멀리하고
러시아를 가까이 하는 정책을 펴게 하였다고 하니 국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검사해 보도록 하라."
"핫!"
호리구치 영사보의 명령이었다.
테라자키와 낭인들이 일제히 조선 왕비의 시신에 달려들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한성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은 일본을
반대하는 인물로 조선의 왕비를 첫 손가락에 꼽고 있었다.
조선의 국왕은 아버지인 대원군과 부인인 왕비의 싸움 때문에
갈팡질팡하고 있었고, 대원군이 권력쟁탈에서 패배하여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 왕비의 재가를받아서 국사를 결정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조선 국왕의 뒤에는 언제나 발이 쳐져 있었고 왕비는
발 뒤에서 국왕을 조종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조선의 대일본
정책은 왕비로 인해 언제나 불리하게 결정되고 있었다. 일본의
역대 공사들은 왕비가 국사에 참여하지 않도록 조선 국왕에게
건의했으나 그럴수록 조선 왕비의 반일 정책은 오히려 공고해
질뿐이었다. 이에 한성에 거주하는 일본인들 사이엔 조선 왕비를
제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분분하게 나돌았고, 호사가들의
입에서는 조선 왕비의 하문이 명기(名器)라 조선 국왕이 꼼짝을
못한다는 야릇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호리구치 영사보는 그것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내 조선 왕비의 시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호리구치 영사보가 먼저 조선 왕비의 국부를 살핀 뒤
낭인들이 차례로 조선 왕비의 국부를 들여다보며 희롱했다.
"미야모토 소위!"
"핫!"
"그대는 여우사냥의 1등 공을 세웠다. 그대도 왕비의 국부를
확인하라!"
"핫!"
미야모토 소위는 조선 왕비의 시신으로 가까이 가서 국부에
시선을 떨어 트렸다. 그는 스물 한 살 때 일본 교오토(京都)에서
유곽의 여자를 안은 적이 있었다. 그때 에이꼬(英子)라는 이름의
그 유녀 (遊女)의 알몸을 샅샅이 살펴 보았었다. 스물 세살 때는
오오사카의 방직공장에 다니는 공녀(工女)와 함께 6개월을 함께
산 일도 있었다. 그 여자들의 비고(秘庫)를 머릿속에 아련히
떠올리며 조선 왕비의 국부와 비교해 보았으나 특별히
다르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보았나?"
호리구치 영사보가 물었다.
"핫!"
"어떤가?"
회리구치 영사보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여우의 하문일 뿐입니다!"
"여우의 하문이라....좋다."
미야모토 소위는 뒤로 물러섰다.
"여우의 하문을 무사들에게 준다. 화장 준비가 끝날 때까지
무사들이 마음대로 처리해도 좋다! 일본 무사의 진취적인 기상을
보여 주어라!"
호리구치 영사보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낭인 하나가 빠르게
조선 왕비의 시신으로 달려들었다. 테라자키였다. 니카무라를
비롯한 다른 낭인들이 왕비의 시신에 엎드리는 테라자키를 향해
환호성을 질러댔다. 시신에 대한 능욕이었다.
"화장 준비가 끝났습니다!"
하기하라 경부가 뛰어들어와 보고를 한 것은 낭인들이 황비의
시신을 능욕하기 시작한 지 20분이 지났을 때였다.
"어디인가?"
"옥호루 동쪽 녹원입니다!"
"좋다. 끌고 나가 태워라!"
"핫!"
하기하라 경부가 낭인들을 지휘하여 조선 왕비의 시신을
이불에 둘둘 말아서 동쪽 녹원(綠苑)으로 달려갔다.
미야모토 소위는 천천히 옥호루의 마당으로 내려섰다. 마침내
조선국 왕비를 살해하는 작전이 성공리에 끝난 것이다. 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일본에 돌아가면 영웅이
된다.미야모토 무사시(官本武臟)의 후예로서 당당히 이름을 떨칠
것이다.
갑자기 옥호루 동쪽 녹원에서 화광(火光)이 치솟았다. 동시에
낭인들의 함성이 지축을 흔들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화광이
치솟고 함성이 진동을 하는 옥호루 동쪽 녹원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조선 왕비의 시신은 이불에 둘둘 말려서 장작단 위에 던져져
있었고 낭인들이 장작단을 둘러싸고 환호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먼저 조선왕비의 시신을 말아 싼 이불이 빠르게 타들어 갔다.
다음은 조선 왕비의 시신이 시뻘건 불길에 휩싸이고 있었다. 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미야모토 소위는 군도를 허리에 꽂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에서 도 피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비로소 자신이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1)민비 시해의 범인은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 지지 않고 있다.
일본은 민비 시해 사실을 철저히 은폐했으나 당시 사건에
개입했던 일본인들을 조사한 우치다 영사는 '왕비 시해의 범인은
미야모토 타케타로오 소위가 유력해 보인다'고 보고한 일이
있으므로 역시 그가 범인일 것이라는 지적이 가장 타당하다.
그러나 그는 하수인에 지나지 않고, 실질적인 시해자는 일본
장주벌을 대표하는 이노우에와 이토오 내각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2)민비가 시해된 후 능욕을 당했다는 기록은
"한일합병사"(야마베 겐타로 저 안병무 역)150쪽에 기록되어
있다. 능욕은 시간(屍姦)을 의미한다.
3)민비의 '국부를 검사했다.'라는 기록은 일본인 자신들의
기록에도 수없이 등장한다. ("청일전쟁과 조선",280쪽 ,박종근
저,박영재 역)
4)일본은 그 당시에 조선을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이에
비교했다. 그것은 그들의 외교문서에까지 기록되어 있다.
(상기의 "한일합병사"175쪽 아오키(靑木)외무대신의 북방경영
의견서 '.....언젠가는 열강들 사이에 이 고깃덩이를 놓고 서로
물어뜯는 상황이 발생하고.....)
제2장 기인(奇人)과 야인(野人)
1
명성황후 민비가 일본인들에게 잔인 무도하게 시해(弑害)된
것은 1895년 10월8일(음력8월 20일)미명의 새벽이었다.
주권국가의 왕비를 그 나라에 주재 하는 외국 공사가 군대와
낭인들을 동원해 시해한 일은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야만적인 일이려니와, 시해 후 시체를 능욕하고 불태워서
증거를 인멸하려 한 일본의 만행은 천인공노할 것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민비는 5백 년 조선사(朝鮮史)에 있어서 마지막 불꽃 같은
여인이었다는 것이 사가(史家)들의 일치된 견해다. 대원군에
의해 왕비로 간택된 나이 어린 소녀인 민비가 10년만에 궁중
암투에서 승리하고, 대원군과 반목하여 망국의 화를 자초 했다는
설이 있으나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과 비참한 죽음은 시대를 뛰어
넘어 세인들의 가슴에 슬픔과 분노를 서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민비가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45년의 생애를 보낸 풍운의
시대, 그녀가 사랑을 위해 불꽃처럼 살다가 간 그 시대는 수구냐
개화냐의 기로에서 한반도가 격랑에 휩쓸려 소용돌이치고 있던
시기였다. 이미 주변 강대국을 중심으로 개화의 물결 은 거센
파도를 타고 조선의 울타리를 두드리기 시작해 은자(隱者)의
나라 조선 의 운명은 풍전등화처럼 급박한 처지에 몰려 있었다.
민비는 이와 같이 황혼기에 접어든 조선왕조의 가장 불행했던
시기에 45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민비가 일본인들에게 시해된 후, 조선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1905년 을사 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이 일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되고, 1910년 한일합방(韓日合邦)이 됐다. 그러므로
민비가 시해되었을 때 조선은 이미 종명 (鐘鳴)을 울린 것이고,
일본에 합방되기까지의 15년은 차라리 상가(喪家)의 시대였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민비가 정치적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몇 가지 설이
흔재하고 있으나 우유부단한 고종을 비롯해 조정이 무능했던
탓이었다. 조선은 철종대에 이르러 삼정(三政)이 문란해 진 데다
해마다 거듭되는 호열자와 흉년으로 수많은 백성 들이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조정의 대신들은 매관매직을
하고 지방의 수령 방백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일에만
열중했다.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듯했고,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음의 고통 속에서 떠돌던 백성들의 민란은 그 당시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암담했던 시절에 시대의 풍운아 대원군이 등장하여
서정을 혁신하기 시작했다. 서원철폐, 세정개혁, 풍속개량 등
대원군은 백성들을 죽음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정책들을
과감하게 혁신하여 백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경복궁 중건 같은 무리한 토목공사와 피로 얼룩진
병인박해(炳寅迫害)를 불러일으켜 백성들을 다시 죽음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아울러 보국(保國) 이라는 무리한
쇄국정책도 그의 실각을 부추키는 원인이 되었다.
민비는 이러한 때에 고종을 앞세워 정치 일선에 나섰다.
민비의 나이 23세, 고종이 22세였을 때였다.
이 소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불꽃의 삶을 살다가
간 명성황후 민비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사랑, 그녀의 시대를
1851년 민비의 출생하던 해(年) 부터 전개해 나가기로 한다.
낮고 찌뿌등한 잿빛 하늘 아래 자갈밭 신작로가 황량한 들판을
가로질러 먼 산자락까지 곧게 뻗어 있었다. 신작로 양쪽
길섶으로는 미루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었고 바람이 일 때마다
노랗게 물든 잎사귀들이 우수수 떨어져 날렸다.
사내는 야산의 영(領)마루에 올라서자 시린 눈빛으로 먼
신작로와 들판을 응시 했다. 하늘이 점점 낮게 가라앉고 있었다.
음산한 날씨였다. 저 멀리 신작로와 들판은 빗발이라도 뿌리는지
한낮을 조금 지났을 뿐인데도 어둑어둑했다.
추색(秋色)짙은 가을이었다.
사내는 남루한 행색이었다. 머리엔 떨어진 죽립(竹笠)을
깊숙이 눌러 쓰고 손에는 단장(短杖), 등에는 미투리 두짝이
달랑거리는 괴나리 봇짐을 하나 지고 있었다.
(여기가 여주땅이지....)
사내는 가을걷이가 얼추 끝난 황량한 들판을 조망하다가
휘적휘적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사내의 입에서 목쉰
원정요(遠征謠) 한 자락이 흘러나왔다.
해는 지고 저문 날에 옥창애도가 다 붉었네. 시흐시흐는
부재라 원정 부지가 이 아니란 말인가. 송백 수양 푸른 가지
높다랗게 그네를 타고 녹의홍장 미인 들은 오락가락 추천을
하는데 우리 벗님은 어데로 가고 단오 호시절을 왜 모르는가.
생각을 하면 기가 막혀......
노랫가락은 길고 느리면서 신명이 있었다. 그러나 음색이 탁해
색주가의 늙은 작부가 소리를 뽑는 것 같았다.
삼강오륜으로 배를 모아라. 효자충신열녀로 돛을 달아
제갈무후로 배질시켜 요순 우탕을 싫었거든 제 아모리
질수풍파가 일어날지라도 배파선하기로는 종천리구나.
용천대금이 제 아모리 잘 드는 비수라도 우리 낭군의 정지심사는
못 베이리라......
사내는 야산을 내려서자 신작로로 꺾어들어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행인은 길을 비키시오!"
그때였다. 요란한 말발굽소리와 함께 장정의 고함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사내는 엉겁결에 자갈밭 신작로의 길섶으로
비켜섰다. 다갈색 필마 한 기(騎)가 흙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는데 말 잔등에 당하관(堂下官)관복을 입은 사내가
달라붙어서 사납게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행인은 길을 비키시오!"
필마가 요란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사내를 지나쳐
달려갔다. 사내는 몸을 돌려 흙먼지를 피한 다음 다시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무슨 난리가 났기에 저리도 황급하게 달려가는 것일까.....)
사내는 얼굴을 찌푸렸다. 말에 타고 있던 장정은 무반으로
보였다. 그러나 어느 관아의 소속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비가 오려나....?)
사내는 죽립을 비스듬히 치켜올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 잎사귀들이 검푸르게 나부꼈다.
(지금 비가 오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텐데.....)
사내는 다시 죽립을 내려썼다. 걸음을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욕망이 난망이요 불사가 자사로다. 동정에 걸린달도 그믐
이면 무광이요. 모진 광풍은 손이 없어도 만수장림을 흔드
는데 우리나 다정하고 유정한 사람은 세류같이 곱고....
사내는 다시 노랫가락을 뽑기 시작했다. 음력 9월이었다.
고즐지 못한 날씨에 빗발이 자주 날렸다.
1851년. 철종(哲宗)즉위3년. 논바닥이 갈라지고 우물이 마르는
극심한 가뭄이 음력 5월에서 6월까지 두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풀잎 하나 까딱하지 않는 폭염에 밭작물이 먼저
노랗게 타 죽었다. 다음엔 논바닥이 갈라지고 우물이 말랐다.
염천(炎天)이었다. 하늘에서는 두 달 동안 비 한 방울 뿌리지
않았다. 밭이나 들에서는 흙먼지가 풀썩풀썩 일어나고 건조한
공기는 더위로 부풀어 올라 숨이 턱턱 막혔다. 마치 보릿단을
태우는 것 같은 탄내가 공기 속에 섞여 있었다.
가뭄은 6월 말까지 계속되었고 7월 초순에야 비로소 늦장마가
시작되었다. 그 장마는 보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노랗게 타버린 농작물을 구제하기에는 늦어 버린 장마였다.
오히려 장마는 수재와 함께 무서운 괴질인 호열자(虎列刺) 를
가져왔을 뿐이었다. 전라도 어느 지방에서 호열자가 창굴했다는
소문이 도성 까지 올라오기도 전에 호열자는 삼남지방을 휩쓸고
경기도와 한성을 거쳐 관서 지방까지 번져 나갔다.
가는 곳마다 백성들의 시체가 무더기로 나뒹굴었다. 남루한고
헤어진옷, 구멍 뚫린 신발, 누렇게 부황이 든 얼굴을 한
백성들이 고열에 신음하고 토사를 하면 서 죽어갔다. 한 마을이
떼죽음을 하는가 하면, 호열자가 발생했다 하면 집과 농토를
버리고 달아나기 일쑤였다. 그러나 조선팔도 어디라도 안전한
곳이 없었다. 집을 떠난 백성들은 길거리에서 병들어 죽고 굶어
죽었다. 그런데도 조정의 대신들은 매관매직을 하고 목민관이나
아전들, 양반과 토호들의 수탈은 끝이 없었다.
(5백 년 종사가 어찌 되려는 것인지....)
사내는 울적하게 한숨을 내뱉고 걸음을 재촉했다. 살매 들린
바람은 논밭 간에 서 있는 미루나무의 검푸른 잎사귀를 미친
듯이 흔들고 사내의 얼굴에서 흐르는 구슬땀을 말리고 있었다.
경기도 여주 근동면(近東面)이었다. 찬바람이 불면서 호열자는
어느 정도 물러갔으나 극심한 훙년과 양반과 관리들의 토색질이
심해 백성들은 견디다 못해 화적이 되고 도처에서 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씨가 망한다는 참언(讖言)과 동요(童謠)도
끊임없이 나돌았다.
아이야 소년아
이화밭에 가지 마라
이화는 늙고 병들었나니
당나귀를 타고 놀아라.
이화(李化)는 오야꽃으로 전주(全州)이씨(李氏)를 말하는
것이고 당나귀는 정씨(鄭氏)를 말하는 것이었다. 대개 동요나
참언은 출처가 불분명한 정감록(鄭 鑑錄)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갑자년에 혁명이 일어난다 했는데...)
세간에 파다하게 퍼져 있는 정감록은 갑자년(甲子年:1863년)에
역성혁명(易 姓革命)을 예언하고 있었다. 역성혁명은 임금이
바뀐다는 뜻이었다.
임금을 생각하자 조정의 대신들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려왔다.
(안동 김문의 근(根)자 항렬이 지금은 득세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병(炳)자 항렬이 득세하게 되겠지....)
사내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동 김문의 근자 항렬엔
김문근(金汶根), 김유근(金遊根), 김홍근(金興根)등이 있고 병자
항렬엔 사영(思嶺)김병기(金 炳冀)를 비롯해 김병학(金炳學),
김병국(金炳國), 김병운(金炳雲), 김병덕(金 炳德)등이 있다.
그들은 벌써 조정의 각 요직에 등용되어 있었다.
안동 김문의 등든한 배경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신진
사대부들이었다.
(권불 10년이라고 했어. 결코 그들은 10년을 넘기지 못할
게야.....!)
사내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안동 김문에서 배출한 신진
사대부의 면면을 머리 속에 떠올리자 가슴으로 묵지근한 통증이
훑고 지나갔다. 그는 명치 끝을 지그시 눌렀다.
미루나무 잎사귀를 흔들어대는 바람에 마침내 성긴 빗방울이
묻어나기 시작 했다. 사내는 걸음을 재게 놀렸다. 때아닌
가을비가 쏟아지기 전에 비를 피할 인가를 찾아야 했다. 다행히
사내가 얼마 걷지 않자 개울 건너편에 마을이 하나 보였다. 마을
초입에는 커다란 홰나무도 한 그루 서 있었다.
사내는 걸음을 서둘러 잎사귀가 무성한 홰마무를 지나 마을로
향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신잘로 오른편의 개울을 건너
냇둑을 따라 가다가 다시 오른쪽 으로 오른쪽으로 꺾어지고
있었다.
(아!)
개울을 건너 냇둑을 따라 걷던 사내는 문득 가슴이 섬뜩하여
걸음을 멈추었다. 잡초가 무성한 냇둑에 시체가 두 구(具)가
버려 져 있었다. 거적때기에 둘둘 말아서 버린 시체였다.
(호열자로 죽은 모양이군......)
시체에서는 악취가 강하게 풍겼다. 시체를 내다가 버린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시체 한 구는 완전히 썩어서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두 구가 다 여인의 시체였는데 그래도
한 구는 온전한 편이었다.
사내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시체를 지나쳐 마을을 향해
빠르게 걸어 갔다. 날이 더욱 어두워지면서 빗발이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마을은 적막했다. 호열자가 돌아서인지 마을은 빗소리만
요란할 뿐 인적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찬바람이 불면 호열자가 수그러드는데 이 마을은 정말
이상하군....)
사내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초가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초가의 바깥 마당에 닭벼슬꽃이 요염하게 붉은빛으로
피어있고 흙담에는 호박넝쿨이 행랑채의 지붕까지 기어 올라가
잇었다. 중문은 열린 채였다.
사내는 삽짝문을 발로 밀고 들어가 주인을 불렀다. 그러나
안채는 빗소리만 요란할 뿐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사내는 두
번이나 주인을 불러도 대답이 없자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여기도 시체만 널부러져 있군...)
안방에 젊은 아낙과 노파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고
건넌방에는 아이의 시체 두 구와 남정네의 한 구가 쓰러져
있었다. 호열자 때문에 떼죽음을 당한 모양 이었다. 두번째
집에도 어른의 시체가 세구, 아이들의 시체가 다섯 구나 되었다.
(참담한 일이다. 하늘은 어쩌자고 조선에 이런 천재를
내리는가.....)
사내는 비감한 심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사내는 황급히 마을을 빠져나왔다. 호열자가 휩쓴 마을에서
비를 피하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는 벌써 그의 온몸을
후줄근히 적시고 있었다.
"저런 못된 놈의 축생....!"
사내는 개울 둑에 이르자 재빨리 단장을 휘둘러댔다. 여자들의
시체를 둘둘 말은 거적때기를 들개만한 고양이가 마구 파헤치고
있었다.
"이놈! 썩 물러가지 못할까?"
단장을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자 고양이가 시체를 훌쩍 뛰어
넘어 달아났다. 사내는 시체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고양이는
다행히 거적때기만 풀어 헤쳤을 뿐 시체는 손상을 입히지 않은
것 같았다.
한결 굵어진 밧발에 여자들의 시체는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음....."
빗발은 부패하지 않은 여자의 시체에 옷자락을 달라붙게 해서
몸의 굴곡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사내는 여자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무겁게 신음을 토했다.
갑자기 하체로 뻐근한 기운이 밀려오고 있었다.
(시체 앞에서 음욕이 동하다니 이 무슨 추태인가.....)
사내는 자신을 책망했다. 음욕은 의외로 맹렬해서 걷잡을 수가
없었다.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단장으로 여자의 젖무덤께를 찔러
보았다. 단장에서 손 끝으로 여자의 젖무덤의 뭉클한 감촉이
전해 져 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축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군....)
사내는 단장을 이용해 두 구의 시체를 거적때기로 덮었다.
멀리서 고양이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내는 돌멩이를 던져 고양이를 ㅉ았다. 그는 서둘러 개울
둑을 벗어났다. 비가 그치고 나면 날씨가 한결 더 쌀쌀해 질
것이다. 호열자는 찬바람이 불면 물러간다. 음력 9월
하순이었다. 모진 가뭄에도 살아남은 미루나무는 잎사귀들이
노랗게 물들어 바람이 불지 않아도 하늘하늘 떨어지고 들판에는
가을 곡식들이 누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호열자는 벌써 무럴갔어야 할 돌림병이었다.
사내는 홰나무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홰나무 밑에는 떨어진
갓을 쓴 남루한 행색의 과객이 먼저 도착하여 비를 피하고
있었다.
"가을비가 장하게 내립니다."
사내가 홰나무 밑으로 기어 들어가자 과객이 인사를 건네왔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지요."
사내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과객은 외눈으로 사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사내의 눈빛이
형형하고 언사가 오만했다.
"마을에서 나오는 길이오?"
과객이 얼굴의 빗물을 훔치며 사내에게 물었다.
사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경울을 재촉하는 비라 그런지
잠깐동안 비를 맞았을 뿐인데도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그렇습니다. 비를 피하려고 들어갔다가 시체만 보고 나오는
길입니다. 마을이 온통 시체 천지입니다."
"호열자가 돌았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찬바람이 불면 호열자가 물러가는데 여긴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군요. 삼남엔 호열자가 더욱 심했다지요?"
"그렇습니다."
사내가 울적하게 대꾸했다. 삼남지방은 호열자뿐 아니라
양반들과 토호들의 수탈도 극심했다. 왕권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조정이 우유부단했기에 백성들이 양반과 토호들,
아전들에게까지 토색질을 당하여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정녕 이씨 왕조가 망하려는 것인가.....?)
사내는 가슴 속으로 탄식을 했다. 철종은 무능했다.
국왕으로서의 자질을 갖고 있지 못했다. 왕실의 종친이라고 하여
안동 김문에 의해 조선의 국왕으로 추대되었으나 정치의
정(政)자도 모르고 있었다. 호열자가 창궐하고 대기근이
휩쓴것은 하늘이 내린 재앙이지만 목민관들의 토색질은 인간이
만들어 낸 재앙 이었다. 재앙을 만들어 내고 있는 인간들을
철저하게 응징해야 했다. 그런 인간 들을 다스리지 않고서는
백성들의 삶이 온전해 질 수가 없었다.
사내는 비가 오는 하늘은 참담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난세야. 난세... 도대체 누가 있어 이 나라를 구제할
것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생각을 하는 사내였다.
"우리 인사나 나누는 것이 어떨까요? 홰나무 아래서 이렇게
비를 피하는 것도 인연인데... 이 사람은 한성 사람으로
회현방의 박유봉이라고 합니다."
과객이 오만한 표정의 사내를 외눈으로 살피며 말했다. 사내의
기세가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그럼 일목거사가 아니시오?"
사내가 비로소 깜짝 놀란 듯한 낯빛을 했다.
"거사라고 불릴 처지는 못 되고 사람들이 외눈박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한 탓으로 일목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과객이 겸양을 떠는 시늉을 했다.
그의 이름은 박유봉(朴有奉). 한성 목멱산(남산)아래 회현방의
움막에 살고 있었는데 관상을 잘 본다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했다. 실제로 그는 천의(天意)를 헤아린다고 주위에
큰소리를 치며 돌아다녀 인근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박유봉이 외눈이 된 것도 자신의 운(運)이 눈이 하나뿐이라야
출세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스스로 왼쪽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다는 풍문이 나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박유봉이 외눈 이라는 사실이
그 풍문을 뒷바침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내는 새삼스럽게 박유봉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박유봉은
기인이었다. 눈이 하나뿐인데도 세상 이치를 꿰뚫어본다는
풍문이 파다했다. 일목요연(一目腰然)이란 박유봉을 두고 하는
말이 틀림없을 것이다. 두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보다 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더 명료하다고 해서 생긴 고사성어(故事成語)
일목요연.....
박유봉도 형형한 눈빛의 사내를 조용히 살피고 있었다.
(뛰어난 골상이다. 부귀와 영화가 극에 이르렀음은 물론
장수를 누릴 상이 아닌가?)
박유봉은 속으로 탄복을 했다. 다만 그의 양미간에 보이지
않는 살선(殺線)이 그어져 잇고 눈이 동광산대(瞳光散大)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었다. 동광산대는
눈의 동자가 쉴새없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하는 것으로 성격이
조급하거나 난폭한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공덕리 구름재의 이하응이오."
과객이 박유봉의 손이라도 잡을 듯이 반색을 했다.
"그러면 흥선군 이하응 대감이 아니십니까?"
이번에 놀란 것은 박유봉이었다.
"그렇소. 낙척한 종친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해 주니 기쁘기
한량없소이다."
"대감의 영명함이 장안에 파다하지 않습니까? 종친 중에
인물이 있다면 도정 이하전 대감과 흥선대감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다 옛말입니다. 그나저나 거사께서는 관상을 잘 보신다는데
이 사람 흥선이 비명에 죽지나 않을지 좀 보아 주십시오."
"거사라니 당치 않습니다. 그저 허명을 얻고 있는
것뿐입니다."
박유봉은 겸손하게 사양을 했다. 어쩐지 흥선군 이하응 앞에서
천기를 볼 줄 안다고 자부하던 자신이 왜소하고 초라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공연히 그러지를 마오. 내 골상이 나쁘다고 하더라도 허물치
않을 터이니 숨기지 말고 보아주오."
"그럼 복채를 넉넉히 주시렵니까?"
박유봉이 빙그레 웃었다.
"글쎄... 이 사람 행색이 워낙 곤궁한 형편이라 복채를 마련할
재간이 없소 이다."
"후일 대감께서 귀히 되실 때 미관말직이나마 한 자리
주시지요."
이하응이 갑자기 양천대소를 터뜨렸다.
"거사께서는 어떤 관리직을 원하오?"
"남양 부사 정도면 어떻습니까?"
"부사라....."
"수사 또한 괜찮겠지요."
"거사께서는 무반이오?"
"그러하옵니다."
흥선군 이하응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사(水使)란 수군절
도사(水軍節度使)를 말하는 것이다.
"자 이제 내 골상을 살펴보시오."
"대감의 골상은 부귀와 영화가 극에 이르러 있습니다.
수명운도 팔순을 넘기고 있으니 짝을 찾기 어려운 길상입니다."
"핫하....!"
흥선군 이하응이 빗발이 쏟아지는 어둥운 하늘을 향해 또다시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통쾌해서 웃는 소리가 아니었다.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생각하고 비분강개하여 터트린 공허한
웃음이었다.
"이 사람 흥선이 어찌 그런 복이 있어 광명한 천지를 보겠소?
외척보다 못한 종친이오. 풍양이 있고 안동이 있는데 종친이
어느 세월에 그런 세도를 누리 겠소?"
풍양(豊壤)은 풍양 조씨(趙氏)를 말하는 것이고 안동은 안동
김씨를 말하는 것이다.
"골상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허면 언제 그런 시절이 오겠소?"
"초년 운은 곤궁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마도 10년은
기다리셔야 할 것입니다."
"강태공은 평생을 낚시질만 하며 때를 기다렸지....."
이항응이 울적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빗발이 점점 사나워
지고 있었다. 홰나무의 무성한 잎사귀와 길바닥으로 세찬
비바람이 쏴아 소리를 내며 아우성을 쳐댔다.
"대감께서는 적지 않은 세월을 은인자중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하응은 대답이 없었다.
"어디를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청주를 다녀오는 길입니다. 호열자와 기와로 백성들이
찬바람에 낙엽지듯 죽어가고 있더군요."
민정을 살피고 돌아온다는 말이었다.
이번엔 박유봉이 침묵을 지켰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바람까지 을씨년스럽게 불고 있었다.
"어디를 가시렵니까? 한성으로 가시는 길이면 동행을 하는
것이...."
"추사에게 가고자 합니다."
추사(秋史)라면 김정희(金正喜)를 말하는 것이다. 김정희의
학문과 필체는 이미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 인물과 교유를 하고
잇다면 흥선군 이하응의 학문도 만만히 않을 것이다.
"추사는 금석학에 조예가 깊다더군요."
"필적도 뛰어나지요. 이미 추사체를 이룩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추사에게 필적을 배우시렵니까?"
"난 치는 법을 배우렵니다."
"허면 앞으로 석파란이 일세를 풍미하겠군요."
석파(石坡)는 흥선군 이하응의 호였다.
"글쎄올시다. 나는 이만 떠나겠소. 서 있으나 길을 떠나나
비를 맞기는 매한 가지이니 그럴 바에야 가던 길이나
재촉하겠소."
이하응이 등에 짊어진 괴나리 못짐을 추스르고 을씨년스러운
비바람 속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박유봉은 망연히 흥선군
이하응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장차 조선팔도를 '대원위본부'라는
한마디로 벌벌 떨게 만들 사람이었으나 비바람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기울어져 가는 조선왕조만치나 쓸쓸
했다.
2
흥서군(興宣君)이하응(李昰應). 그는 왕실의 얼마 안 되는
종친(宗親)의 한 사람이었다. 1820년데 출생했으니 그의 나이
불과 31세. 영조(英祖)의 4손으로 남연군(南延君) 구(球)의 넷째
아들이었다.
(천하를 호령할 골상이거늘......!)
박유봉은 설래설래 고개를 흔들면 가을비 속으로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무너져 가는 조선왕조를 떠받쳐야 할 흥선군
이하응도 가을비를 맞으며 유랑하고 있었다.
이내 근동면 섬락리 (蟾樂里)가 빗속에서 추레한 모습을
드러냈다. 박유봉은 개골산 밑의 후미진 골짜기에 나직하게
엎드려 있는 마을에 잠시 눈길을 던졌다. 언젠가 여주를
지나다가 섬락리 일대에 왕기(王氣)가 서려 있는 것을 발견한
일이 있었다. 섬락리는 여흥(麗興)민씨(閔氏)집성촌이엇다. 그때
박유봉은 민시 집성촌에 왕기가 서려 있는 괴이한 사실을
발견하고 몸서리를 쳤었다. 그것은 민씨가 이씨를 제거하고 왕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역천(逆天)의 기운이었다.
그러잖아도 역성혁명을 예언하는 풍문이 흉흉하게 나돌고
있었다.
마을은 음산하게 흩날리는 빗줄기 속에서 조용했다. 박유봉은
자신도 모르게 섬락리로 걸음늘 놀렸다. 저녁 지을 시간도
아닌데 마을 어느 집에서 푸른 연기 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아!)
박유봉은 논밭 간을 가로질러 가다가 우뚝 섰다. 을씨년스럽게
흩날리는 빗발 사이로 푸른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는 퇴락한
초가, 그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자색 (紫色)서기가 영롱하게 뻗쳐
있었다. 범인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는 빛이었다.
(저것이 왕기의 정체인가?)
박유봉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색은 붉은색이다. 붉은색은
여자의 색. 그렇다면 여아가 태어난다는 징조인데 어찌하여
저토록 강렬한 서기가 뻗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박유봉은 빗발이 흩날리는 잿빛 하늘을 우두커니 응시했다.
마치 하늘의 뜻을 묻고 있는 듯한 자세였다.
(혹시?)
박유봉의 외눈에서 신비스러운 광채가 발산되었다.
(왕비야!왕지의 재목이 태어나고 있는 거야!)
박유봉은 하마터면 입 밖으로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는 서둘러 마을로 걸어 들어갔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천기(天機)를 안다는 것은 기쁜
일일 수도 있으나 두려운 일이기도 하였다. 천기는 누설할 수도
없고 거역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박유봉은 이내 쓰러져 가는 초가 앞에 이를렀다. 초가는
찬채와 행랑채로 나위어 있었고 울타리도 없는 바깥 마당 문간에
금줄이 하나 걸려 있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금줄엔 고추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숯검정만 매달려 있었다.
박유봉의 예상대로 여아(女兒)가 태어난 것이다.
"응애....."
이내 쓰러져 가는 초가 안에서 아기의 맹렬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1851년 9월 25일의 일이었다.
3
날은 어둑하고 진눈깨비는 쏟아지듯이 자욱하게 날리고
있었다.
이하응은 여자가 부시럭거리며 옷을 입는 것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여자는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여자의 몸에서
시지근한 땀냄새가 풍겨왔다.
이하응은 문득 산일(産日)이 오늘 내일하는 아내의 초라한
얼굴을 머리 속에 떠올렸다. 그러자 가슴이 싸하게 저려 왔다.
그는 속이 미슥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찾아 입었다.
"술 한 잔 올릴까요?"
이하응이 대님을 치고 갓까지 쓰고 나자 여자가 눈웃음을 치며
물었다.
"그러지."
이하응은 건성으로 대꾸하고 길가 퇴창을 열었다. 자욱하게
날리는 진눈깨비 사이로 나루터와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눈발이 저렇게 날리는 걸 보니 금년엔 풍년이 들겠어요."
여자가 방 한쪽에 밀어 두었던 술상을 이하응의 앞으로 끌어
당겼다.
송파(松坡)나루였다. 저잣거리는 조용했다. 강원도 오대산
어디선가 시작된다 는 물길과 충청도 내륙지바이 육로로 만나는
나루이기 때문에 항시 난전이 번다 하고 팔도의 장사치들이 다
몰려들어 장이 크게 서는 저자였다. 그러나 진눈깨비 가
어지럽게 날리고 있는 탓인지 저잣거리는 중 떠난 절간처럼
스산했다.
(남아 이십에 치국평천하라 했거늘....)
이하응은 가슴 속에서 찬바람이 불고 지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옆집 봉노방 에서 또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보부상패들이었다. 강화에서 물길을 타고 올라와 충청도
내륙지방으로 떠나려던 차에 진눈깨비가 쏟아져 발이 묶여
있었다. 보부상들이 취급하고 있는 물품은 비린 것이라고 했다.
"이름이 무어라고 했지?"
"화선이요."
"좋은 이름이군."
이하응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화선(花仙)은 전라도에서
들병이를 하다가 송파나루까지 흘러와서 색주가의 작부로
들어앉았다고 했었다. 미태는 없었으나 조신한 데가 있었다.
"나으리는 기력이 넘치시나 봐요. 두 번씩이나 접구를
하시고도 숨조차 가빠히시지 않으니....."
화선이 교태를 담아 눈웃음을 쳤다. 공연한 수작이었다.
"접구만 했으니 숨이 찰 까닭이 없지."
"말이 접구지 그게 어디 접구인가요?"
화선이 이하응의 잔에 탁주를 따랐다.
"그럼 접구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하응은 코웃음을 치며 화선이 따른 탁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입 안이 텁텁했다. 화선이 젓가락으로 안주 한 점을
집어서 이하응의 입에 넣어 주었다. 편육이었다. 이하응은
그것을 입에 넣고 으적으적 씹었다.
가슴 속에서 또 불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난 밤의 일이었다.
이하응은 김병학을 찾아갔다가 조보(朝報)에 실린 김병기의
훈련대장 보임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파격적인 인사였다.
안동 김문이 세도를 잡고 있는 탓에 서른을 갓 넘긴 김병기가
훈령대장에 보임된 것이다.
김명국은 철종 1년(1849년)에, 김병학은 철종 2년에 각각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서 있었다. 그리고 이하응보다 불과
두세 살이 더 많을 뿐이었다.
철종이 김병국의 종매(從妹)를 왕비로 맞아들여 김문근이
국구(國舅:왕의 장인 )가 됨으로써 안동 김씨 세도가 더욱
확고해 진 것이다. 순조가 보위에 있을 때는 김조근이 국구가
되어 척족정치를 했었다. 순조에서 철종에 이르기까지 3대가
안동 김씨에서 왕비를 맞아들여 조정이며 지방이 안동 김씨
천하였다. 항간에서는 안동 김씨가 아니면 왕비가 될 수 없다는
말도 파다하게 나돌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안동 김씨로 태어났더라면......)
이하응은 이따금 그런 생각까지 하였다. 안동 김씨라면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요직에 등용되고 있었다. 왕실은
무력했다. 철종이 영명한 군왕이라면 종친들을 골고루 응용할
것이나 그렇지가 못했다.
김좌근은 벌써 지방 방백 수령 자리를 팔고 있었다. 나주 기생
양씨까지 세도가 판서에 버금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양씨는
김좌근의 첩으로 들어앉아 재산 불리기에 급급했다.
"술 더 드시겠어요?"
"그만하겠네."
이하응은 소매 품에서 엽전 다섯 닢을 꺼내어 화선에게 던져
주고 일어났다. 이미 취기가 불콰하게 올라 있었다.
그가 송파나루까지 행보를 한 것은 새로운 실세로 등장하고
있는 김좌근을 찾아가기 위해 나섰다가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송파나루는 장이 번다했다. 충청도
내륙지방에서 육로로 올라오는 장사치들, 강원도에서 물길을
따라온 장사치들, 서해에서 샛강을 따라 올라온 장사치들이 한데
어울려 항상 와글거렸다. 한성에서 가장 장이 큰 나루였다. 종로
육의전 거리는 양반들 이 찾지만 송파나루의 장은 상민들이 주로
찾았다. 송파나루는 항상 활기에 넘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았다.
이하응은 색주가를 나서자 저잣거리를 휘적휘적 걸었다.
진눈깨비 때문에 길바닥이 질척러렸다.
(김좌근의 집에 도착하면 밤중이겠군....)
이하응은 진눈깨비가 어지럽게 날리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이 눈발로 자욱했다. 그는 취기를 빌어서라도 김좌근을
찾아가리라고 모질게 결심을 했다.
흥선군 이하응.그는 공덕리의 구름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던 해는 천재이변이 속출하여 민심을 뒤숭숭하게 했다.
봄에는 일식(日蝕)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살별"彗星"이
떨어지고 여름에는 백홍(白虹)이 관일(貫日)했다. 그것은 흰
무지개가 태양을 지나간다는 것으로 임금이 바뀔 때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음력 6월에서 8월까지는 장마가 쏟아지고 장마가 그치자
호열자가 창궐했다. 홍수에 호열자까지 휩쓸어 경향 각지에서
10여 만의 인명이 속절없이 죽어갔다. 흥선군 이하응은 이런
비참한 시절에 태어났으나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남달리
굳강했다. 남연군(南延君)구(球)는 이러한 흥선군 이하응을
가리켜,
"우리 집안을 일으킬 자는 이 아이뿐이다."
하고 큰 기대를 걸었다.
이하응은 당시의 조혼 풍습에 따라 민치구(閔致久)의 딸을
12세에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어머니가
죽고, 18세가 되던 해에는 아버지인 남연군까지 잃게 되었다.
이때 남연군 구는 슬하에 아들 넷을 두고 있었는데 이들
형제들은 남연군이 죽자 장지을 충청도 덕산땅으로 결정하였다.
이들이 무엇 때문에 남연군의 장지를 덕산땅으로 결정하였다.
이들이 무엇 때문에 남연군의 장지를 덕산땅에까지 찾아가서
정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는
다음과 같은 야사가 전해 지고 있다.
흥선군은 아버지 남연군이 죽자 지관을 따라 덕산에 있는
대덕사(大德寺)로 갔다. 지관은 대덕사의 오래된 탑을 가리키며
저 곳이야말로 천하의 대명당 이라고 이하응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하응은 대덕사의 주지승에게 절을 팔라고 요구했다. 주지승은
2만 냥을 내놓으라고 했다. 이하응은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와
재산을 모두 처분한 뒤 다시 내려가 대덕사 주지승에게 주고
절을 불을 지르라고 하였다. 주지승은 돈을 받고 절에 불을
지르고 떠났다.
그날 밤 꿈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나는 이 절의 탑신이다. 너희들은 어찌해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빼앗느냐? 끝내 여기에 장례를 지낸다면 네 형제는 한 날
한 시에 죽게 될 것이다."
하고 말했다. 이하응의 형제들은 모두 똑같은 꿈을 꾸었다.
그들은 당황하고 두려워하면서 이하응이 절에 불을 지르게 한
것이 잘못이라고 책망을 했다. 그러자 이하응은 분연히 일어나서
형제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흰 옷을 입은 노인이 탑을 지키는 귀신이라면 이 곳이야말로
천하 대명당 이다. 이런 천하 대명당을 두고 어느 뫼에 산소를
쓴다는 말인가? 사람의 명이란 하늘이 정한 것인데 귀신이
죽으라고 죽겠는가? 우리 형제가 안동 김씨 문전에서 기웃거리며
구차하게 살고 있는데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으니 한날 한시에
죽는다면 기쁜 일이 아닌가? 형님들은 자식이 다 있으나 나는
자식도 없다. 그러니 지금 죽는다고 해도 억울한 것은 나뿐이
없다."
이하응의 기세에 놀라 형제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이튿날 아침 탑을 깨트리자 그 자리가 온통 바위였다. 도끼로
내려치니 도끼가 튀기만 하였다. 이하응은 도끼를 들고 허공을
향해 크게 꾸짖은 뒤에 바위를 내려쳤다. 바위가 그때서야
깨어졌다.
이하응은 그 자리에 남연군의 상여를 모신 뒤 다른 사람들이
천하 대명당을 훔치지나 않을까 하여 철 수만 근을 녹여서
부었다. 장례가 끝나고 수원(水原) 대보진(大浦津)을 지나는데
일행에 섞여 있던 대덕사 주지승이 배 안에서 갑자기 구해
달라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다가 물 속에 뛰어들어 죽었다.
사람들은 탑신이 노하여 주지승을 죽였다고 하였다.
매천야록에 있는 기록이다.
흥선군 이하응은 헌종(憲宗) 7년에 흥선정(興宣正)이 되었고,
헌종 9년에 군(君)으로 봉해 졌다. 동 13년에는
동지사(冬至使)로 사신(使臣)의 물망에 올랐으나 뽑히지 못했고,
종친부(宗親府)당상관(堂上官)이나 오위도총부 (五衛都摠府)의
도총관(都摠官)같은 한직만 전전하였다. 특히 헌종이 죽고
철종이 즉위하면서 경쟁 상대인 풍양 조씨를 누르고 명실상부한
척족정치를 실현한 안동 김시의 서슬 아래서 이하응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곤경에 처하였다. 자연히 생활은 비참해 지고
종친의 위엄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1852년 정 1월.
이하응은 송파나루 색주가에서 나와 비틀거리며 김좌근의
집으로 향했다. 국구는 김문근이지만 안동 김문을 실질적으로
ㅇ르고 잇는 사람은 김좌근 이었다. 그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김좌근을 찾아가는 것은 어떻게 하든지 김좌근에게
잘보여서 정계로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김자근에게 잘못 보이면
아무리 학문이 뛰어나고 경륜이 높아도 정계에 진출할 수가
없었다. 비굴해도 일단은 정계에 진출해야 했다.
(철종 임금을 내세운 안동 김문이야. 어차피 안동 김문의
세상이니 그들에게 붙지 않으면 판서 자리 하나 넘볼 수가
없어.......)
이하응은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쓸쓸했다.
날씨는 차가웠다. 성 안으로 드러서자 진눈깨비가 그치면서
찬바람이 불고 길바닥이 얼어붙은 그의 마음이었다.
그는 한식경쯤 지나서 김좌근의 집에 도착했다. 이하응은
거대한 김좌근의 집 솟을대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첬다.
대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대문 안은 불빛 이 환했다.
"개감은 계시는가?"
이하응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청지기가 재빨리 뛰어나와
앞을 가로막았다.
"계시기는 하옵니다만은 손님이 계셔서....."
"손님이 계시면 어떠냐?"
"소인이 먼저 안에 기별을 한 뒤에 드심이....."
"이놈아. 그러고는 다시 나와서 주무신다고 할 참이냐?"
"그. 그것이 아니옵고....."
"허면 앞을 비켜라, 다리 몽둥일 분질러 놓기 전에.... !"
목소리는 낮았으나 이하응의 목소리엔 이미 범접하지 못할
위엄이 서려 있었다. 청지기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김좌근의 사랑채엔 문객 서넛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좌근의 옆에는 애첩 나합이 앉아서 술 시중을 들고 있었다.
"대감들. 별래무량하셨습니까?"
이하응이 들어서자 좌중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
졌다. 문객들은 벌레를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종친이지만
이하응의 출현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양이었다.
"무슨 얘기들을 하시는데 흥선이 들어오자 입들을 다무시오?"
김좌근은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이하응은 좌중을 둘러보다가 나합에게 시선을 멈추었다.
미인이었다. 시정에서는 나합에게만 잘 보이면 고을 수령 자리
하난 얻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하였다. 게다가 나합은 음기가
대단해서 미소년들을 데리고 산다는 말도 파다 했다.
"궁도령께서는 궁이나 지키실 일이지 어찌하여 짚신자락이나
끌면서 재상집을 기웃거리오?"
그때 심의면(沈宜冕)판서가 허연 수염을 스다듬으며 이하응을
조롱하였다. 궁(宮)도령은 철종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던 소년을 저들이 국왕으로 모셔 놓고는'
강화도령'이니 '궁도령'이니 하고 비웃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하응은 머리 끝이 곧추서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좌중에
폭소가 터지고 나합은 무릎을 치며 박장대소했다.
"겨울밤이 길기도 하여 하옥 대감께서는 무얼하시나 궁금하여
들렸소."
이하응은 심의면에게 날카롭게 일갈한 뒤 한쪽에 털썩 앉았다.
임금의 종친 이었다. 정승 판서라고 해도 이하응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었다.
"오신 목적은 따로 있겠지?"
김인근(金仁根)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이하응을 살폈다.
"하는 일 없이 놀고 있으니 무료하기 짝이 없소이다 무엇인가
일을 해야 할 터인데....."
"벼슬을 달라 이 말씀이오?"
김문근이 눈을 부릅떳다. 좌중이 일시에 조용해 졌다.
"뭐 굳이 벼슬을 달라는 것은 아니고 하도 적적하기에 드리는
말씀이오."
이하응은 헛기침을 했다. 공연히 걸음을 했다는 후회가
일어났다.
"그럼 벼슬이 싫소?"
"벼슬이 싫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그대에게 돌아갈 벼슬은 없을 걸... 종친은 예부터
벼슬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니....."
"이젠 다 지나간 일이올시다."
이하응은 입을 다물었다. 종친이 벼슬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사문화된 법 이었다.
"내 집에 마실을 온 것은 아닐 테고...."
김좌근이 비로소 이하응을 쳐다보았다.
"실은 가내가 궁색하여 돈냥이라도 빌릴까 하여 들렸소이다."
이하응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김좌근 일파에게
조롱을 받아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으면 참을 수 있겠으나
그렇지도 못하면서 수모를 당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럴
바에야 궁상을 떠는 것이 속 편한 일이었다.
"돈이라니?"
"아내가 산달이외다. 구차한 일이기는 하나 미역 값이라도
밀릴까 하여...
..."
"부인께서 산달이오?"
김좌근이 짐짓 놀라는 체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종친부에서 양곡이 나가지 않소?"
"종친부에서 나오는 곡식은 투전판에서 날려... 대감 면목이
없습니다만 돈 2백 냥 만 구어 주시면 다음에 꼭 갚겠습니다."
"아니 종친이 투전까지 한단 말이오?"
"송구하옵니다."
"지금 없는 돈이 다음엔 어디서 나온다는 말이오?"
"이번에는 반드시 투전판을 싹 쓸겠습니다."
좌중에 또 폭소가 터지고 김좌근이 혀를 찼다.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돌리는 것이 못난 위인이라고 탓을 하는 것 같았다.
폐의파립이엇다. 나이가 서른 두 살에 이르렀으면 종친으로서
당당한 위엄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하응 의 행색은
걸인(乞人)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시정잡배들이 마시는
탁주를 얼마나 마셨는지 혀가 꼬부라지고 술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부인이 산달인데 명색이 서방이라는 위인이 투전판에나 쫓아
다니니 딱도 하구려. 대감 몇 푼 주어서 보내십시오."
나합이 김좌근에게 눈웃음을 쳤다.
"흥선."
김좌근이 흥선을 가만히 불렀다.
"예."
이하응이 머리를 조아렸다.
"돈 2백 냥이 필요하오?"
"그러하옵니다."
"그럼 내 집에 와서 집사 일을 하겠소?"
"예?"
"집사 일이라고 해야 어려운 것은 없고 아랫것들 단속이나
하면 될 게야. 상가집 개보다야 낫지."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이하응이 호기 있게 대답을 했다. 좌중은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핏 보면 권력의 정점에 있는 김좌근의 집 집사자리니
만큼 커다란 영예라고 볼 수도 있었고 출세가 약속된 자리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하응은 종친이었다. 임금의 친척인 것이다. 종친에게
세도가의 집사 를 하라는 것은 종친에 대한 조롱이요,
모멸이었다. 그 당사자뿐 아니라 임금까 지도 욕을 보이는
일이었다. 옛날 같으면 대역죄에 해당될 것이지만 안동 김문이
권력을 잡고 있는 터라 아무도 그 죄를 탓하지 않았다.
(능지처참을 할 놈.....!)
이하응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으나 내색하자는 않았다.
(흥선은 역시 시정잡배에 지나지 않아.....)
김좌근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김좌근이 이하응에게
자신의 집에 와서 집사를 하라고 한 것은 이하응을 떠보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두게. 농이었네."
"대간. 농이라니 어찌 그런 서운한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어찌 종친을 집사로 쓰겠나?"
"종친이면 무얼 합니까? 지금 세상은 돈이 최고입니다."
"어허 그만두라니까......"
김좌근이 역정을 냈다.
이하응은 김좌근의 집에서 돈 2백 냥을 빌린 뒤 술까지 도리어
마시고 나왔다.
(그래. 이 흥선에게 네 놈 집의 집사 일을 하라고.... ?)
그 생각을 하자 이하응은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서대문을
지나 공덕리 구름재로 빠르게 올라섰다.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안동 김문의 천하였다. 분하고 원통해도
숨을 죽이고 살 수밖에 없었다.
이내 구름재에 이르렀다. 이하응은 가쁜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얼굴을 찡그렸다. 그의 집에서 때아닌
연기가 어두운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군불을 때나?)
이하응은 의아했다. 비틀대는 걸음을 서둘러 기울어져 가는
대문 앞에 이르자 금줄이 걸려 있었다.
(아하, 부인이 해산을 했군.......)
이하응은 자신도 모르게 숙연해 지며 고개을 끄덕거렸다.
금줄엔 고추가 끼워 져 있었다. 한밤중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은
갓 태어난 아이를 씻길 물을 덮이 려는 것이 분명했다.
임자(壬子)년에 아들을 넣으면 천하를 얻을 것이다.
일목 박유봉의 말이 문득 귓전을 때렸다. 이하응은 정신이
번쩍 났다. 천하를 얻는다는 말, 그것은 임금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1)명성황후 민비가 출생한 곳은 정교의 <조선계년사>에 의하면
여주군 근동면 섬락리이나 여흥 민씨 계보엔 여주읍
능현리(陵峴里)로 되어 있다.
2)민비가 감고당(感古堂)에서 출생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성장한 곳으로 여겨 진다. 현재의 덕성여고 자리다.
3)호열자는 콜레라로 1800년대 초 조선에 들어와 해마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 갔다. 특히 1859년에는 전국에서 40만 명이
호열자로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천주교회사>상권561쪽
,유홍렬 저.
제3장 잠용(潛龍), 일어서다.
1
민승호(閔升鎬)는 안국동의 감고당(感古堂)에 이르자 눈살을
찌푸렸다. 감고당은 생각보다 훨씬 더 퇴락해 있었다. 명색이
여양부원군(驪陽附院君)의 후손이 사는 집인데 이토록 몰락할 수
있을까. 화초 담장은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기와는 금방이라도
허물어져 내릴 것 같았다. 마치 주인 떠난 절간처럼 감고당은
퇴락해 있었다.
민승호는 누님인 민씨(閔氏)부인의 처사가 마땅하지 못했다.
흥선군 이하응은 파락호나 다름없는 위인이었다. 그런 위인과
더불어 살고 있는 누님의 처지가 오죽할까마는 그래도 이토록
몰락한 집으로 출계(出繼)를 하라는 것은 마음에 닿지 않는
일이었다.
집은 조용했다. 안에는 병든 민치록(閔致綠)과 그의 계실
이씨(李氏), 그리고 여덟 살 난 딸이 있었다. 민치록은 첫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소생을 얻지 못하였고, 그 부인이 죽자
두번째 부인을 맞아들였으나 그 부인도 딸하나를 겨우 낳았을
뿐이었다. 민치록은 병이 들고 늙어서 이제는 아들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집은 아직도 겨울이군.....)
밖에는 봄이 완연했다. 어둡고 쓸쓸한 겨울이 물러 가자
봄볕이 길바닥에서 사금파리 조각처럼 반짝거리고 담장 안에는
봄꽃들이 다투어 피었다. 그런데도 감고당은 기나긴 겨울잠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을시년스러운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민승호는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마당은
깨끗하게 비질이 되어 있었고, 담 밑으로 푸릇푸릇 봄풀이
돋아나고 있었다. 자세히 보자 봄풀이 아니 라 부추였다. 부엌
앞에는 깨끗하게 다듬은 쑥도 한 소쿠리 있었다.
(저것으로 죽을 쑤어 먹으려는 것이군.... )
민승호는 가슴이 묵지근해 왔다. 작년에도 흉년과 괴질이 돌아
권세를 자복 있는 축족들이 아니면 양반이라도 대부분 죽으로
연명을 했었다. 삼남지방으로 내려가면 아사지경에 빠진
백성들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어 소나무가 하얗게 말라죽고
있다는 풍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그때 안방에서 책을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왔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민승호는 그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손자(孫子)는 이름을 무(武)라고 했다. 제(濟)나라 사람으로
병법의 대가였다. 하루는 오왕(吳王)에게 불려 나가 병법을
시험받게 되었다. 오왕은 손자에게 여자도 군사로 조련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손자는 여자도 군령만 엄격하게 세워 놓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오왕은 자신들의 궁녀를 군사로
조련하라고 손자에게 지시했다. 손자는 오왕에게 군사(軍士)의
지위를 주려면 군령을 세울 수 있는 검도 달라고 하였다. 오왕은
손자에에 군령검을 하사한 뒤, 누구든지 손자의 명을 듣지
않으면 군령검으로 목을 벨 것이라고 명령했다.
그것은 사기(史記)였다. 중국의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것으로
무인(武人)들이 즐겨 읽었다.
손자는 오왕의 궁녀 1백 80명을 반으로 나누어 90명씩
2대(二對)로 변성하고, 각 대(對)의 대장에 오왕이 가장
총애하는 후궁 둘을 뽑아 임명했다. 그리고는 궁녀들에게
열(열)을 짓는 방법과 행군하는 법을 교수한 뒤 앞으로! 뒤로가!
훈련을 시켰다. 궁녀들은 손자의 지시에 잘 따랐다.
민승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기를 읽고 있는
여자가 누구인 지 알수 있었다.
(설마 자영이가 저 어려운 책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민자영(閔紫英)은 민치록의 무남독녀였다. 이제 겨우
여덟살이므로 사기를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자영은
계집아이이고, 기껏해야 천자문(千字文) 이나
동몽선습(童蒙先習), 소학(小學) 읽어야 제격인 것이다. 그것도
총명한 사내 아이들이나 읽지 웬만한 사대부가에서는 독선생을
놓고 가르친다고 해도 깨우치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오왕은 손자가 궁녀들을 조련하는 것을 보기 위해
월대(月臺)로 나왔다. 이때 궁녀들은 오오앙이 친히 조련하는
것을 관전하자 부끄러워하면서 대오를 어지럽혔다. 손자는 세
번이나 군령을 듣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고 하였다. 그래도
궁녀들은 허리를 비틀고, 입을 가리고 웃기만 하였다. 손자는
궁녀들이 군령을 듣지 않는 것은 대장의 책임이라면서 오왕이
총애하는 두 후궁을 끌어 내어 목을 베었다. 이때부터 궁녀들은
손자의 군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대오를 갖추어 움직였다.
민승호는 갑자기 쇠망치로 두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안방에서 들려오는 책 읽는 소리는 분명히 어린 소녀의
목소리였다.
(다산 정약용이 강목을 10여 일만에 암송했다더니..... )
강목(綱目)은 중국 송(宋)나라 때 사람 주희(朱熹)가 쓴
것으로 자치통감강목 (資治通鑑綱目)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다산(茶山)정약용(鄭若鏞)은 그 어렵다는 강목을 10여일 만에
암송하여 소년 시절부터 쟁쟁한 문명을 날렸었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야....)
민승호는 심호흡을 하고 큰 기침을 했다. 그때서야 책 읽는
소리가 뚝 그치고 방문이 열렸다.
"뉘시옵니까?"
방문이 열리고 댕기머리 소녀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민승호는
한 번도 얼굴을 본 일이 없었으나 그 소녀가 민장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녀는 얼굴이 희고 갸름했다.
"네가 자영이냐?"
"예."
소녀가 의아한 눈빛으로 민승호를 쳐다보았다. 눈빛이
서늘했다.
"아버님께 민승호가 왔다고 전하여라."
"아버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그러자 자영이 마루 옆으로 재빨리 비켜서며 말했다. 어른들
사이에 오고 간 양자 입적문제를 자영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버님은 좀 어떠시냐?"
"기력이 점점 쇠하여 지고 있사옵니다."
"음."
민승호는 낮게 한숨을 내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민치록은
어둠침침한 안방에 누워 눈만 꿈벅거리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쓰디쓴 탕약 냄새가 풍겼다.
"기력이 좀 어떠십니까?"
민승호는 민치록에게 큰 절을 했다. 먼 친척이기는 해도
적조한 편이었다.
지난 설에도 민승호는 집안의 어른인 민치록에게 세배조차
드리지 않았었다.
"절은 무슨......"
민치록이 손을 내저었다.
민승호는 민치록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민치록은 벼슬이
장약원(掌藥院) 첨정(儉正)의 한직박에 오르지 못했으나 학문은
깊은 사람이었다.
"댁내는 모두들 무고하신가?"
"예. 어르신의 염려 덕분에 무고합니다. 거동은 하시는지요?"
"글쎄... 내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 같은데 오늘은 길한
내객이 올 줄 아는지 기력이 정정하네."
"어머님께서는 어디 행차하셨습니까?"
민치록의 계실 이씨를 두고 묻는 말이었다.
"산나물을 뜯으러 갔을 게야... 어떻게 출계하기로 결정을
보았나?"
"예."
민승호는 무겁게 대답했다. 민치록의 양자로 들어가는 일이
마뜩하지는 않았 으나 문중에서 결정한 일이었다. 게다가
민치록은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의 직계 후손이었다. 비록
몰락한 명문세가라고 하더라도 만만히 볼 수 있는 집안이
아니었다.
"고마우이. 이제는 내가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네. 내가
죽으면 조상의 제사를 누가 모실지 걱정을 했는데....."
민치록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우리 자영이를 부탁하네."
민승호는 자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자영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심려 놓으십시오."
민치록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 안은 어둠침침했다. 민승호는 민치록이 입을 다물자
민치록의 늙은 얼굴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자영이 사기를 읽고
있었던 것은 민치록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민치록은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영향을 받아 학문이 높았으나 경기도
여주의 초가 삼간에 살았었다. 안국동의 감고당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은 민유중 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그래 언제 우리 집으로 들어오려나?"
"저쪽 집이 정리되는 대로 들어오겠습니다."
민치록이 눈을 감았다. 민치록의 눈가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민승호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영이 사기를 읽던 것 같은데...."
"내가 심심하여 가르쳤네만 재주가 없어."
"얼핏 듣다 보니까 총명하기 짝이 없더군요. 규수의 몸으로
그만한 학문을 익혔으니 크게 쓰일 것입니다."
"화나 되지 말아야지....."
민치록이 혀를 찼다.
민승호가 감고당을 나온 것은 봄볕이 나른하게 내려쬐이는
한낮이었다. 민치록이 잠이 들자 민승호는 자영의 방으로 건너가
한담을 나누었다. 자영이 규수이기는 하지만 아직 어린
소녀였다. 게다가 자영은 손수 감잎차까지 끓여서 내왔다.
"혈륙이 없어서 적조했는데 이제 저에게 오라버니가 생겼으니
기쁘기 한량 없습니다."
자영이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두 너처럼 총명한 동생을 두게 되어 기쁘구나."
민승호는 진심으로 말했다. 감고당으로 들어설 때만 해도
거미줄을 친 토굴에 들어선 듯 기분이 씁쓸했으나 자영을 대하자
그런 기분이 일시에 사라졌다.
민치록은 민승호를 양자로 들인 다음 달에 세상을 떠났다.
음력 4월이었다.
흥선군 이하응은 민치록의 장례에 부인과 함께 참석하였다.
민승호가 흥선군 이하응의 부인의 친동생이었고, 친동생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민치록과 이하응은 먼 척족이었다.
(어쩌면 저리도 눈빛이 사나울까? 마치 불을 뿜는 범의 눈빛
같지 않은가?)
자영은 흥선군 이하응의 눈빛을 대하자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었다. 흥선군 이하응은 키가 5척(五尺)단신이었다.
익살스럽게 생긴 얼굴에 체구가 작아 체신머리 없어 보였다.
그러나 목소리가 찌렁찌렁 울리고 눈빛이 사나워 범의 기개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특하게 생긴 아이다. 비록 계집아이라고 하지만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기상을 갖고 있지 않은가?)
흥선군 이하응은 민자영의 얼굴을 보고 탄복했다. 장차
시아버지가 될 흥선군 아하응이요, 며느리가 될 운명에 처해
있는 민자영의 기묘한 해후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헤아리지 못한 채 서로를 외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2
명성황후 민비가 탄생하고 고종이 탄생한 1851년과 1852년,
그리고 명성황후 민비의 부친 민치록이 안국동 감고당에서
유명을 달리한 1859년을 전후해 국내 외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명성황후 민비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그
시대는 확실히 국내외가 커다란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있었다.
서구 열강은 봉건 농경사회에서 근대 산업사회로 급격하게
전환되었고, 자국 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을 수출하는 무역과
통상이 활발해 지는 한편, 약소국들에 대한 침략과
식민화(植民化)정책이 노골화되어 있었다.
일본은 1854년에 미일(美日)조약을 맺고 개국을 단행했다.
1841년 이미 정치, 사회, 경제의 대변혁을 꾀하여
에도바쿠우(江戶幕府)시대를 끝내고 왕정복고로 인한 강력한
중앙정부 시대를 이끌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저
유명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의 시작이었다.
영국은 1802년에 스리랑카를 점령하고 1819년에는 싱가포르를,
1824년에는 말레이지아를, 1858년에는 광할한 인도를 무력으로
점령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 프랑스도 뒤질세라 1862년
베트남을 점령하고 1863년에는 캄보디아를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시기에 조선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외척정치로
매관매직이 성행 하고 계속되는 흉년과 괴질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신음하고 있었다.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유교는
스스로가 갖고 있는 모순, 일부다처제의 허용, 엄격한
사농공상(士農工商)에 의한 계급 형성으로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방식 을 차단하여 위에서부터의 부패가 아래까지
계속되었다. 철종이 보위에 오른 것은 1849년이었다. 그러나
그가 재위에 있던 기간은 조선왕조사에 있어서 가장 혼란했던
시기로, 철종 말년의 전국을 휩쓴 민란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누대 에 걸친 왕실과 조정의 병폐는 지방관리와 토호들, 소위
양반 계급의 부패로 이어져 백성들을 기아에 허덕이게 했다.
철종은 전계군(全溪君)의 후인으로 순조대황(純祖大王)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대왕대비 김씨(純元王后)에 의해 조선조 제 25대
임금으로 옹립되었다. 그러나 그는 무지랭이 농사꾼으로 정치는
제대로 하지 못했고, 따라서 장김(長金)에 의해 정치가
좌우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순원왕후마저 70세의 나이로 죽게
되고 왕의 장인인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김문근까지 죽제 죄자
신정황후 (神貞王后)조씨가 왕실의 가장 어른이 됨으로써 조선조
말기의 파란을 예고하게 되었다.
철종은 1858년에 첫 왕자를 얻었으나 이 왕자가 돌도
지나기전에 죽자 더욱 방탕한 생활을 하여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리하여 철종은 1862년 2월에 위중한 상태에 빠졌다가 회복되고
다음해인 1863년 8월에도 위급한 지경을 당했다. 이 무렵 한성
장안에는 철종이 승하했다는 소문까지 파다하게 나돌았다.
젊은 철종이 모처럼 기력을 회복하여 정사를 돌보려고 하면
대신들이 약을 먹여 흔미하게 만들고 정신을 잃게 한다는
소문까지 부중에 은밀하게 나돌 정도 였다. 그런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후궁의 치맛자락에 숨어서 세월을 보내고
밤낮으로 술을 마시게 되니 육신과 정신이 멀쩡했던 철종은 끝내
병을 얻어 정신이 몽롱하게 되었다.
철종은 18세에 왕이 되었다. 초명은 원범(元範). 강화도에서
출생했으나 농사 를 짓고 나무도 하러 다니던 초동이었다.
그러한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세도를 잡고 있던 안동 김씨가
허수아비 왕을 세워 놓고 정사를 마음대로 요리하기 위해서였다.
철종은 보위에 오르자 김문근의 따님을 왕비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글조차 제대로 모르는 철종은 모든 정사를 안동 김씨
일문에 의탁한 채 주색에 골몰했다. 강화도의 보잘 것 없는
초동에서 남인지상의 귀한 몸이 된 철종은 산해진미와 향기로운
술 꽃같은 영니들의 치마폭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점점
몸이 허약해 져 갔고 말기에 이르러서는 몇 번이나 혼절을
하기까지 했다.
1863년 11월에는 과거를 보러 한성에 올라온 선비들의 입을
통해 철종이 승하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장안에 파다하게
퍼졌다. 대신들은 이러한 소문이 나도는 것을 우려해 왕을
보련에 태우고 종로에 거동하게 하였다. 그러나 왕이 보련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자 선비들이 웅성거리며,
"대신들이 빈 보련을 끌고 다니며 백성들을 기만한다."
하고 말했다.
이에 대신들이 보련에 올라가 억지로 왕을 백성들에게 보이게
했는데 왕은 온몸이 붓고 손발을 움직이지 못해 시체와
같았으므로 선비들은 국상(國喪)이 났다고 외치고 울면서
흩어졌다.
이때 장김과 구름재의 아하응은 철종의 죽음을 예상하여
긴박하게움직이고 있었다. 장김은 안동 김씨를 일컫는 것으로
김조순(金祖淳)이 자하동(紫霞洞)에 살았기 때문에 붙여 진
이름이었다. 김조순은 순조대왕의 장인으로 외척정치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었다.
자하동은 경복궁 북쪽 창의문(彰義門) 바깥으로,
북악산(北岳山)과 인왕산 (仁旺山)사이의 골짜기였다. 자하동을
사람들은 자동(紫洞)으로 부르기도 했고 장동(壯洞)으로
부르기도 했다.
김조순은 국구(國舅)가 되어 권세를 잡고 3대에 걸쳐
국혼(國婚)을 맺어 국명(國命)을 왕 대신 집행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김조순의 일족을 장김이라 불렀다. 장동
김씨라는 뜻이었다. 말년에 김조순의 일족을 장김이라 불렀다.
장동 김씨라는 뜻이었다. 말년에 김조순은 교동으로 이사를
했다. 그의 아들 김유근과 김좌근, 손자 김병기는 계속해서
장동에 살았다.
김문근은 철종의 장인이 되었는데 아들 병필은 어렸고, 조카
병학과 병국은 김병기와 함께 정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문근이 1863년 8월에 죽자 뒤을 이어 김좌근이 다시 영의정
자리에 앉았다.
이들은 철종이 승하할 때를 대비하여 종친(宗親)중에서 13세
소년을 골라 왕으로 삼고 김병국의 딸을 왕비로 간택하여 장김의
세도를 계속해서 누릴 계획 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공덕리
구름재에서는 흥선군 이하응이 대권을 탈휘 하기 위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대궐에서는 조 대비(헌종의 모친)와 옹 대비 (헌종의 왕비),
그리고 김비 (金妃:철종위 왕비)가 대권을 잡기 위해 철종의
승하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 이었다.
이들 중에 조 대비와 흥선군 이하응, 김비의 움찍임이 가자
민첩하고 왕성 했다. 조 대비는 영의정을 지낸 조만영(趙萬永)의
딸로 아직도 일족이 조정에서 활약하고 있었고, 김비는 장김
일문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어서 조 대비나 흥선군 이하응이
정면으로 대적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흥선군 이하응은 이러한 처지를 감안하여 자신의 둘째 아들
재황(載晃)과 김병학의 딸과 정혼하게 하여 장김의 박해를
피하는 한편 상가집 개 노릇을 하면서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대왕대비 김씨가 죽고 철종의 죽음이 임박해
오자 누구보다도 흥선군 이하응의 움직임이 민첩해 졌다.
1863년 가을 어느 날 밤. 빗발이 추적대는 회현방의 허름한
움막에 약관의 청년이 나타났다. 청년의 깨끗한 무명 도포에
널직한 통영갓, 용모가 준수해 지제 높은 집안의 자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쓰러질 듯 허름한 움막 앞에
이르자 재발리 주위를 살피고 낮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그것이 군호이기나 하듯이 움막 안에서 수염이 더부룩한 사내가
뛰어 나와 허리를 굽혔다.
"어서 오십시오."
청년은 사내의 얼굴을 대하자 얼굴을 찡그렸다. 사내의 얼굴에
난 큼직한 칼자국이 그러잖아도 험상궂은 사내의 얼굴을 더욱
흉칙해 보이게 하고 있었다.
"오셨는가?"
청년은 낮게 한마디 하였다. 청년의 이름은 조성하(趙成夏).
대왕대비 조씨의 조카로 승후관(承候官)의 벼슬에 있었다.
"예. 어서 드십시오."
사내의 이름은 장순규(張淳奎). 흥선군 이하응의 심복
처하장안(千河張安)의 1인이었다.
조성하는 움막 안으로 들어가 보오 올라섰다. 일자(一字)집에
흙벽이 앙상 했다.
"들어오시게."
조성하가 다시 기침을 하자 흥선군 이하응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성하는 방문을 열었다. 흥선군 이하응은 주안상을 놓고
석상처럼 오연하게 앉아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조성하는 절을 올리고 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식경밖에 아니 되었네."
"송구하옵니다. 주위의 눈이 있어...."
"괜찮네. 상께서는 어떠신가?"
"아무래도 해를 넘기기 어려울 듯싶습니다."
"음."
이하응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조성하는
슬그머니 아히응의 얼굴 을 쳐다보앗다. 아하응은 여전히
폐의파렴이었다. 수염이 더부룩하고 얼굴이 초췌했다. 최근에
술독에 빠져 살다시피하고 투전까지 일삼는다는 말이 헛소문은
아닌 듯 싶었다.
(내가 천하의 술주정꾼하고 손을 잡은 것이 아닐까?)
조성하는 은근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하!"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이하응이 침묵을 깨트리고 입을
열면서 조성하를 쏘아 보았다.
"예?"
"대비마마의 심기는 어떠신가?"
"노심초사하고 계시옵니다."
"그러시겠지."
이하응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문의 동태는 어떤가?"
"김문도 연일 버리를 맞대고 구수회의를 하고 있사옵니다."
"사왕은 결정되었나?"
사왕(嗣王)은 임금이 사가 없을 때 종친 중에 양자를 삼아
대통을 잇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직 결정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일은 전적으로
왕실의 어른께서 정하는 것이 법도이옵니다."
"어디 법도대로만 되었던가?"
"도정 이하전 대감을 두고 이르는 말씀이옵니까?"
도정(都正)이하전(李夏銓)은 선조(宣祖)의 부친인
덕홍대원군(德興大院君)의 장손으로, 종친 중에 덕망이 높고
학문이 깊어 헌종(憲宗)이 승하했을 때 신왕의 물망에 올랐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장김의 사주를 받은 당시의 왕대비 김씨에
의해 강화의 초동인 철종이 임금으로 보위에 오르고 이하전은
오히려 역적의 누명을 쓰고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이하전은
왕대비 조씨가 유난히 총애하던 종친이기도 했다.
"과거를 돌이켜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사뭇 다르옵니다. 지금은 종친의 가장
어른이 조 대비 마마이옵니다."
"방심해서는 안 되네."
"허면 어띠해야 하옵니까?"
"궐 밖의 일은 내가 처리하겠지만 궐내의 일은 자네가 주장이
되어 움직여야 할 것일세. 주상전하의 침전을 한 시도 거르지
말고 살피게."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네의 심복이나 다름없는 승전빗이 필요할
것일세."
"승전빗이라고 하셨습니까?"
승전빗이란 왕명을 전하는 내시를 일컫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마땅한 승전빗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니
여관의 대비전을 통해 들이게."
조성하가 멍청한 표정으로 이하응을 쳐다보았다.
여관(女官)이란 상궁을 말하는 것으로, 임금이 있는 대전에
출입하는 여관은 선발도 까다롭기 짝이 없으려니와 오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조 대비마마가 궐내의 가장 어른이 아닌가? 조
대비마마께서 내리는 궁녀라 하면 내명부나 김문에서도 소홀히
하지 못할 것일세."
조성하가 비로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금세 의혹이
가득한 눈빛으로,
"허면 마땅한 인물이 있사옵니까?"
하고 물었다.
"내 어찌 그런 준비가 없겠나?"
이하응이 빙그레 웃었다.
"밖에 순규 있느나?"
이하응이 문밖을 향해 낮게 말했다. 조성하는 바깥의 동정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추적대는 빗소리 사이로 저벅꺼리는
사내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투박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인 장순규 대령했사옵니다."
"들라 이르라."
"예."
장순규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한동안 빗소리만 들렸다.
그러더니 얼마 후에 나뭇잎을 밟듯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리고
문밖에서 여인의 기침소리가 들렸다.
"들라."
이하응이 문밖을 향해 말했다.
"예."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 뒤에 문이 열렸다. 조성하는 재빨리
문쪽을 쏘아보았다. 젊은 처자였다.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으나
자태가 곱고 단정했다.
"승후관 나으리다. 인사 올려라."
"예."
여인이 장의를 벗고 조성하를 향해 다소곳이 절을 했다.
"밖에 있는 장순규의 여동생일세."
"......."
조성하는 대꾸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궁중법도는 가르쳤네. 자네의 수족 노릇은 톡톡이 할 테니
대비전에 올라갈 때 데리고 들어가게."
"예."
"수나야. 승후관 나리께 술 한 잔 부어 올려라."
"예."
이하응의 지시에 장순아(張淳阿)가 섬섬옥수를 뻗어 상 위의
호로병을 잡았다. 조성하는 자신의 앞에 놓인 작주잔을 잡았다.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또 한가지."
조성하가 탁주 잔을 비우자 이하응이 조성하를 지그시 쏘아
보며 입을 열었다.
"대비마마를 일간 뵈올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게."
"궐내에 마련하옵니까?"
"궐내는 이목이 번잡하여 아니 되네. 탑골승방에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좋을 듯한데 어떤가?"
"탑골승방이 어디옵니까?"
"동대문 밖 탑골에 있는 절 말일세."
"거기는 비구니들만 있는 절이 아니옵니까?"
"그러니 안동 김문이 의심을 하지 못할 것일세."
"허나 대비마마의 궐 밖 출입이 용이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마땅한 명분이 없으면 대비마마라 하더라도 궐 밖 출입을 할 수
없습니다."
이하응이 빙그레 웃었다. 조성하는 궁금한 낯빛으로 이하응을
쳐다봤을 뿐이었다.
"주상전하의 쾌유를 비는 불사를 올린다고 하면 아무도
그릇되다 하지 못할 것일세."
"과연 공명도 따르지 못할 계교입니다."
"성하."
"예?"
"우리는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하네."
"명심하고 있사옵니다."
"김문이 세도를 하여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네. 이를
바로잡지 못하면 5백 년 종사가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음일세."
"예. 대감께서 말씀하시는 뜻 익히 알고 있사옵니다."
"매사에 주의를 하고 언행에 조심하게. 안동 김문의 간자가
곳곳에 널려있네."
"명심하겠사옵니다."
조성하가 새삼스럽게 머리를 조아렸다. 이하응이 말하는
간자(間者)란 첩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조성하가 장순아를 데리고 밤길을 재촉해 돌아가자 이하응도
장순규의 움막을 나섰다. 꽤 깊은 밤이었다. 비는 그때까지도
추적추적 내리고 민가엔 불빛이 하나 둘 꺼져 가고 있었다.
(드디어 국상이 날 때가 되었는가?)
이하응은 문득 뒷짐을 지고 어우운 하늘을 쳐다보았다. 빗발이
차갑게 얼굴을 때렸다.
국상. 철종 임금의 승하. 후사가 없는 임금.... 그런 단어들을
머리 속에 떠올리자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우럭 치밀고
올라왔다.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황대비 조씨는 안동 김문에 깊은 원한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아드님 헌종이 승하했을 때 헌종의 승통을 조정 이하전으로 잇게
하려던 꿈이 안동 김문에 의해 무참히 깨진 탓이었다.
헌종은 왕대비 조씨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헌종 역시
후사가 없었다. 왕대비 조시는 이하전을 아들처럼 사랑하여
헌종이 숨을 거두자 대보를 손에 넣고 이하전을 신왕으로
옹립하려 했었다. 그러나 당시의 왕대비인 순원왕후에 대해
대보를 탈취당하듯이 뺏겨 왕통이 철종에게 넘어간 것이다.
왕대비 조씨는 그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피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이제는 왕대비 조씨가 왕실의 가장 어른이 된 것이다.
철종의 뒤를 이을 사왕을 뽑는 것은 전적으로 왕대비 조씨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었다. 그녀가 안동 김문과 반목하는 인물,
안동 김문의 세도를 일거에 무너뜨릴 인물을 내세워 철종의
승통을 잇게 하리라는 것을 이하응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대감 빗발이 차갑습니다."
어느새 따라왔는지 장순규가 옆에 와서 나직하게 고했다.
바람까지 일기 시작 한 것일까. 빗발이 쏴아 소리를 내며 몸으로
들이쳤다.
"순규야."
이하응이 한숨을 뱉듯이 나직하게 장순규를 불렀다.
"예."
"너는 이 흥선을 어떻게 보느냐?"
"대감마님.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너도 이 흥선을 거리의 부랑자로 보느냐?"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감께서는 불요불굴의 정신을
가진 대인이십 니다. 때만 만나면 승천하실 것이옵니다."
"그때가 언제라고 생각하느냐?"
"멀지 않았으리라고 여겨지옵니다."
"허허......."
이하응이 공허한 웃음을 터뜨렸다.
장순규는 이하응의 공허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묵지근해
져 오는 것을 느꼈다. 이하응은 확실히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나는 거리의 부랑자로서의 이하응이요, 둘은
산천초목을 벌벌 떨게 하는 군왕으로서의 위엄을 갖춘
이하응이었다. 성격도 판이하게 다른 두 개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한가롭게 난초 한 폭을 치며 신선처럼 지낼 때가 있는가
하면 상가집과 투전판을 기웃거리고, 대제학 김병학,
시원임대신(時原任大臣) 정원용(鄭元容)등과 고담준론을
나눌때는 당대에 둘도 없는 경세가(經世家)였다. 낙척한 종친의
위치에 있다고는 하지만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다.
"가자."
이하응이 휘적휘적 걸음을 떼어놓았다.
"어디로 행차하시옵니까?"
"내가 어디로 갈 것 같으냐?"
"대제학 김병학 대감 댁이옵니다."
"옳거니!"
이하응이 무릎을 치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이 교동의
김병학의 집에 이른 것은 빗발이 제법 굵어져 있을 때였다.
"대감 어인 행차이십니까? 비를 이렇듯 흥건히 맞으시고....?"
김병학은 밤중에 찾아온 이하응을 보고 깜짝 놀라 서둘러
사랑채로 맞아들 였다. 연배가 비슷한 김병학과 이하응은
소년시절부터 허교를 하며 지내는 사이 였다.
"가을비 오는 소리에 벗이 그립고 술 생각이 간절하여
들렸소."
"과연 풍류남아이십니다."
김병학이 파안대소를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그의
얼굴엔 이하응의 돌연한 방문을 궁굼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영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사영은 김병기의 호였다. 이하응이 사영의 안부를 묻는 것은
안동 김문 전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김병학은 이하응으로부터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답했다.
"사영이야 굳강한 사람이지요."
김문근이 지난 8월에 죽자 김좌근이 안동 김문의 좌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안동 김문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김좌근의 양자 김병기였다. 현재는 병조판서의 자리에
있었다.
"왕대배께서 돌아가셨으니 이제는 왕실의 가장 어른이 조
대비마마겠군요."
"그런 셈이지요."
"허면 상감께서 승하하시면 풍양 조씨가 득세를 하겠군요."
"그럴 수야 없지요. 사왕이 누가 되는냐에 따라 세도를 잡는
문중이 결정되겠
지요."
"사왕은 누가 될 것 같습니까?"
"모르는 일 입니다."
"장김에서 벌써 사왕을 점 찍고 잇는 것이 아닙니까?"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사왕은 종친부에서 옹립해야
마땅합니다.."
"60년 장김의 세도 아래 종친다운 종친이 남아
있어야지요.역모로 죄를 쓰지 않기 위하여 초야에 숨어 들어가
농사를 짓거나 종친임을 숨기고 연명하는 사람 들이
고작인데....."
"대감. 소인도 안동 김문의 한 사람입니다."
"영초!"
이하응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듯
한 눈빛이었다.
"장김이 60년 세도를 누린 후 삼정이 문란해 졌습니다. 민란이
그치지를 않고 있어요! 이러고도 장김의 일원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습니까?"
"삼남의 민란은 안동 김문의 실정 탓만이 아닙니다.."
"안동 김문이 매관매직을 하고 있습니다. 김병기의 곳간에는
금은 보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하옥 대가마의 집은 대궐보다
더욱 좋습니다. 평양감사 자리가 5만 냥군수나 현감, 목사의
자리는 2만 냥에서 3만 냥... 그래 수령 방백의 자리가 돈으로
매매되는 자리입니까? 그들이 지방 수령으로 부임해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목민관들이 백성들을 토색질하니 어느 백성이 난을
일으 키지 않겠습니까?"
"대감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영초. 달도 차면 기웁니다. 후세에 영초의 이름이 더럽혀
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석파!"
김병학의 안색이 핼쓱해 졌다.
"흥선을 도우시오!."
"오늘 말씀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사옵니다. 때가 어느 때인
데 그런 말씀을 하고 다니십니까?"
"영초. 우리는 사돈의 언약을 맺었소."
"대감. 고정하십시오. 그런 말씀을 하시면 목숨이 열 개라고
부지하기 어렵습 니다."
"흥선은 이미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했기에
영초에게 도와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
"이 흥선에게 친구가 있다면 영초와 영어 형제뿐입니다."
영어(領漁)는 김병국의 호였다. 김병학의 네 살 아래
동생이었다.
"제가 무엇을 도와 드려야 합니까?"
"흥선을 반대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장김이 회의를 할 때 이 흥선이 반드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흥선도 종친 이니까요. 그때 흥선의 인물됨을 가볍게
평해주십시오."
"우리 장김이 석파 대감을 경계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장김을 배신하리라고 보십니까?"
"배신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사왕은 종친 중에서 옹립됩니다."
김병학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하응의 말은 타당한
것이었다. 어차피 철종의 뒤를 이을 사왕은 종친 중에서
옹립해야 하는 것이다. 그 동안 무지랭이 농사꾼 이 철종을
대신해 국명을 집행해 온 장김이었으나 철종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 다. 안동 김문이 아무리 세도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조선조의 국왕이 될 수는 없었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철종이 승하하면 조대비를 윽발질러 안동 김문에 유리한 종친을
시왕으로 옹립하는 것 뿐이었다.
"영초. 내 말을 알아 듣겠소?"
"알겠습니다."
김병학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1863년 11월 8일.철종이
승하하기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철종의 죽음이 임박하자 안동 김문은 긴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종은 가을부터 하체가 썩기 시작하여 안동 김문과 흥선군
아하응을 바짝 긴장시켰다. 이하응은 교동에서 김병학을 만난 뒤
다음날은 좌의정 조두순 (趙斗淳)을 만났고 이틀 후에는
원임대신 (原任大臣)정원용(鄭元容)까지 만났다. 뿐만 아니라
이하응은 무반인 이경하(李景夏), 신관호(申觀浩),
신명순(申命純) 까지 두루 찾아다니며 자파세력을 끌어모았다.
위기를 만나자 이하응의 대응은 신속하기 짝이 없었다.
안동 김문은 이하응의 발빠른 행보를 따라가지 못하고 안일한
대응을 하고 있었다. 하옥 김좌근은 영의정의 자리에 있었으나
좌장이라는 이유로, 김병기는 오만한 성격 탓으로 임금의 자리가
누구에게 돌아가도 상관이 없다는 투였다. 그들은 신왕에 옹립될
만한 인물들을 차례로 꼽아보았다. 그중엔 흥선군 잉하응 이
예상했던 대로 그의 둘째 아들 재황도 끼어 있었다.
"흥선군의 둘째아들이 열 두 살이니 신왕으로 옹립하면 꼭
알맞겠군."
"그러면 흥선군이 대원군이 되게?"
"흥선군이 대원군이 되면 왕실의 체면은 어찌되겠나? 당치않은
일이야....."
"흥선군의 둘째아들이 총명하기는 한가?"
"총명하기는 해도 글은 안 가르쳤다는군."
"아니 왜 글을 안 가르쳐?"
"흥선군이 들을 가르칠 짬이 어디 있었을려구... 허구헌날
상가집에 투전판 이나 ㅉ아다니기 바빴을 텐데....."
안동 김문은 모이기만 하면 신왕에 옹립할 만한 인물을
물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뚜렷한 대안을 내세우지
못햇다. 그때마다 흥선군의 둘째아들 명복(재황의 다른 이름)도
거론 되었으나 배척되지도 않고 신왕의 후보로 옹립 되지도
못햇다. 그들은 흥선군 이하응의 인물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흥선군 이하응은 선이 굵은 인물이었다. 안동 김문의 누구도
흥선군 이하응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흥선군 이하응의 부랑자
행각이 성내에 파다하게 알려져 있기도 했지만 어느 자리에서건
한 번씩은 그를 만났었다. 그것은 기이한 일이기 까지 했다.
그러나 그 까닭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흥선군의 둘째아들이 신왕이 되면 흥선군이 정치에
참여하려고 할 게 아닌가?"
"그렇지는 못할 것입니다. 신왕의 보령이 유츙하면 대비께서
섭정을 하시지요."
"그럼 흥선군의 둘째아들을 신왕으로 삼고 우리 김문에서
신왕의 왕비를 간택 하게 하면 문제가 없겠군요. 신왕이 성년이
될 때까지는 대비게서 섭정을 하시고 성년이 되어 친정을 하게
되면 왕비의 외척인 우리 김문이 정사를 좌우할 수 있을
테니까요."
"참 그러고 보니 영초의 따님과 흥선군의 둘째아들이 정혼을
한 사이라면서요?"
"그럼 여초가 부원군이 되겠군요."
"영초의 학문이나 임품으로 보면 부원군감으로 손색이 없지.
우리 김문의 인재가 기라성같이 많기도 하지만 굳강하기로는
사영이요, 학문과 인품으로는 영초를 치지 않은가?"
"좀 더 두고 보기로 하지요."
안동 김문의 모임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끝이 났다.
"주상께서 승하하시면 대보는 중전께서 필히 손에 넣으셔야
합니다."
"그야 이를 말인가?"
안동 김문의 회의에서 결정한 것은 임금의 대보를 철종의
왕비가 손에 넣게 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하응은
왕대비 조씨를 동대문 밖 탑골승방 (普門寺)에서 은밀히 만났다.
"대비마마, 삼가 무력한 종실의 흥선이 문후 올립니다."
이하응은 왕대비 조씨에게 인사를 올리는데 눈물이 비오듯이
흘러내렸다. 조 대비에게는 조성하를 통해 철종 사후의 대책을
논의해 왔었다. 그러나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종친이라고 해도 사사로이 대궐에 출입할 수도
없으려니와 대비전에 올라가 문후를 드린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감. 이제 내가 할 일을 알려 주오."
왕대비 조시는 이하응의 얼굴을 대변하자 실망스러운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조성하에게 듣기로는 천하를 호령할
기개를 갖고 있다는 흥선군 이하응 이 5척 단신인데다 얼굴조차
볼품이 없었다. 의관은 폐의파립으로 거리의 부랑자 나 다름없는
행색이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이런 인물과 어떻게 천하대사를
논의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친
김이엇다. 철종의 숨은 경각에 달려 있어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이런 기회가 돌아오지 않으리 라는 생각에 왕대비 조씨는
이하응을 똑바로 응시했다.
"대비마마. 먼저 소신을 믿어야 하실 것으로 아옵니다."
"대감을 믿지 않으면 내가 여기까지 무엇때문에 행차했겟소?"
"그럼 말씀 올리겠습니다."
"어서 말하오."
왕대비 조씨가 재촉을 했다. 어디선가 불공을 드리는지
목탁치는 소리와 비구니의 독경소리가 청하하게 들려왔다.
"먼저 주상전하께서 승하하시면 대보부터 넣으십시오."
"옥새 말씀이오?"
"그러하옵니다. 대보는 안동 김문의 사주를 받고 잇는 중전
마마께서도 넣으려 하실 것입니다. 대비마마께서는 왕실의
어른이시니 대비마마께서 간수한다 하십 시오."
"음."
왕대비 조씨가 무겁게 심음을 토했다.
"다음은 엄문교지를 내려 흥선의 제2자 재황을 익종의
사왕으로 삼는다 하시고, 정돈녕 대감 정원용으로 원상을 삼는다
하십시오."
"가만 익종의 사왕이라니 그러면 승통이 어찌되는 것이오?"
왕대비 조씨는 어리둥절하여 이하응을 쳐다보았다. 철종이
승하하면 사왕은 철종의 대를 잇는 것이 관례요, 법도였다.
그런데 익종의 승통을 잇는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대비마마. 24대 헌종대왕께오서는 순조대왕의 대를
이었사옵고 25대 철종 대왕께오서도 순도대왕의 대를
이었사옵니다. 이제 제 26대 신왕이 철종대왕의 대를 잇지 않고
익종대왕의 대를 잇는다 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사옵니다. 오히려
왕실의 가장 어른인 대비마마께서 저의 미천한 아들 놈을 양자로
삼아 익종 대왕 의 대를 잇는 것이 당연 지사인 줄 아옵니다."
"허면 재황이 나의 양자가 되는 것이오?"
"그러하옵니다. 대비마마!"
"과연 묘책이오!"
왕대비 조씨가 무릎을 쳤다. 그녀는 왕세자였던 익종이 보위에
오르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자 왕비의 자리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대비가 된 불우한 여인이었다.
"대비마마. 성하로 하여금 대전의 일거일동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하십시오. 흥선이 죽고 사는 것은 오직 대비마마께
달려있사옵니다."
"그렇게 하리다. 내가 어찌 안동 김문에 두 번씩이나 수모를
당하겠소."
왕대비 조씨가 입술을 깨물었다.
안동 김문과 흥선군 이하응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철종대왕은 음력 1863년 12월 8일 승하했다. 재위 14년, 슬하엔
후사가 없었다.
이소식은 장순아를 통해 조성하에게 보고되었고 조성하는
왕망히 대비전으로 달려가 보고를 했다.
"대비마마 주상전하께서 승하하셨사옵니다."
"뭣이?"
왕대비 조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철종이 조만간 승하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듯이 뛰었다.
"대비마마. 촌음을 아끼지 말고 대보를 차지하여 원임대신
정원용으로 원상을 삼고, 흥선군의 둘째아들 재황을 사왕으로
정하여 익종대왕의 승통을 잇는다고 밝히소서."
조성하가 재촉을 했다.
왕대비 조씨는 황황히 철종의 침전으로 달려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눈앞이 캄캄했다.
침전은 이미 궁녀들과 내관이 꿇어 엎드려 구슬프게 곡을 하고
있었다. 희정당(熙政堂)에서 정사를 보고 있던 대소신료들도
비보를 듣고 달려와, 품계가 높은 정승은 대조전 마루에서
품계가 낮은 신료들은 월대와 뜰 아래 꿇어 엎드려 곡을 하고
있었다. 대소신료뿐이 아니었다. 궁중의 비빈들까지 급보를 듣고
달려와 곡을 하느라고 대조전이 어수선했다.
"대보는 어디 있소?"
왕대비 조씨는 철종의 침두로 가서 죽을을 확인한 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중전은 영해 앞에서 곡을 하다가,
"어찌하여 대보를 찾으시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곡소리가 일시에 그치는 것을 보면 대조전
마루에서 곡을 하고 있는 안동 김문의 권신들도 대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주상전하의 승하는 망극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오. 그러나
망극한 일이라고 해서 나라의 대보를 소홀히 할 수 없는 법,
내가 대보를 간직하겠소."
"대비마마 아니되옵니다."
"중전! 내가 궁중의 주장이오! 여염집이라도 주장에게
복종하는 것이 법도이거 늘 하물며 궁중에서 이 무슨 해괴한
짓이오? 중전은 국상을 당한 죄인 이니 근신 하시오!"
왕대비 조씨의 추상 같은 한마디는 김비의 온몸을 부르르
떨리게 했다. 국상을 당한 죄인이라는 말에는 항거할 명문이
없었다. 김비는 재빨리 우릎을 꿇었다.
"대보를 내놓으시오!"
왕대비 조씨가 다시 호통을 쳤다.
김비는 그때서야 치마폭에 감추었던 대보를 떨리는 손으로
꺼냈다. 눈치 빠른 대비전의 노 상궁이 재빨리 대보를 받아서
왕대비 조씨에게 바쳤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대조전 마루에
꿇어 엎드려 곡을 하던 영의정 김좌근, 지중추부사 김병학,
공조판서 김병국, 호조판서 김병기는 눈을 부릅뜨고 왕대비
조씨를 쏘아보았다.
왕대비 조씨는 노 상궁에게서 어보를 받아 무릎 위에 놓고
가만히 쓰다듬고 있었다.
"영중추부사 정원용 대감은 선왕 순조, 헌종, 익종대왕께서
승하하셨을 때도 원상의 중임을 맡아 수고하였으니 이번에도
원상의 중책을 맡아 처리하게 할 것이다!"
왕대비 조씨의 지시는 나지막하면서도 또렷했다.
"황송하옵니다."
원임대신 정원용이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주상전하의 시신 앞에서 승통을 논하는 것은 망극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나 나라에서는 한 시도 상감이 없어서는
아니되겠기에 흥선군의 제2자 재황을 익성군에 봉하여 절사된
익종대왕의 승통을 잇도록 하시오!"
어보를 가지고 있는 왕대비 조씨의 분부였다. 대신들은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왕대비 조씨는 숨쉴 틈도 주지
않고 대신들을 몰아세웠다.
"사왕의 보령은 이제 열 둘, 아직 궁중법도도 모를 것이 분명
한즉 이 노파가 당분간 섭정을 맡아 보겠소!"
"......"
"이제 사왕이 결정되었으니 영상과 도승지는 속히 봉영 차비를
차리시오!"
"황송하옵니다."
원상에 임명된 정원용이 명을 받들겠다는 뜻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영의정 김좌근은 눈을 질근 감았고, 철종의 왕비인
김비는 곡하는 것도 잊고 왕대비 조씨를 쳐다보고 있었다.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속수무책으로 사왕을 정하는
자리에서 한마디의 말도 꺼낼 수 없었던 것이 안동 김문의 권신
들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척족으로서의
한계였다.
조선왕조가 개국한 지 4백 73년. 서구 열강이 근대산업사회로
발전하여 침략 행위를 일삼고 있을 때, 조선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불과 12세의 어린 소년이 국왕으로 등극함으로써 대원군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고 개화의 소용돌이 에 휘말리게
되었다.
12월 8일은 날씨가 살을 에일 듯이 추웠다. 그러나 국상이
났다는 소문과 새 임금으로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아들 재황이
결종되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장안 에 퍼졌다. 아직 임금의
죽음을 알리는 천아성(天鵝聲)은 울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새
임금을 모시는 행렬인 봉영행렬이 대궐을 떠났다는 소문을 들은
백성 들은 구름처럼 거리로 몰려나와 웅성거렸다. 그들은 철종의
죽음에 망극함에 앞서 신왕의 봉영행렬에 더 호기심이 많았다.
"상가집 개라는 흥선 대감의 둘째아들이 정말 새 임금이 되는
건가?"
"왕대비마마가 언문교지를 내렸다네."
"허 똑똑하기로 소문이 난 도정 이하전 대감 같은 이는 역모에
휘말려 죽고, 상가집 개라는 소문이 나 흥선 대감의 아들은
신왕이 되었으니 세상 참 공평치 못하네."
백성들은 입을 모아 수군거렸다.
"저기 가는 분은 영상ㅎ하가 아닌가?"
"도승지 대감도 계시는 걸......"
김좌근은 백성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착찹한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창덕궁에서 공덕리의 구름재까지는
지적지간이었다. 사왕을 봉영하러 가는 길이기에 영의정
김좌근은 일인지상만인지하(一人之上萬人之下)의 몸이지만
가마를 사용할 수 없었다. 70객의 노구였다. 그러나 걸어서
사왕을 맞이하러 가는 불편함보다는 흥선군 이하응의 얼굴을
머리 속에 떠올리자 쓸쓸하기만 했다.
(내가 용을 미꾸라지로 보았음이 아닌가....)
흥선군 이하응을 잘못 평가한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가난하고 낙척하여 궁도령이라고 얼마나 비웃었던가.
종친 중에서도 가장 보잘것 없었던 소족(疏族). 그가 바야흐로
정치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김좌근은 탄식을 했다. 철종이 승하하자마자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조 대비가 대보를 가로채고 원상에 정원용 대감을 임명한
것은 뒤에서 흥선군 이하응이 조종한 것으로 여겨졌다.
(무서운 인물이야.....)
김좌근은 대권이 흥건군의 제2자에게 넘어간 뒤에야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안동 김문은 조정의 중용한 직책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아버지 김조순은 순조의 장인이고, 헌종의 장인인 김조근은
8촌, 철종의 장인인 김문근 역시 8촌이었다. 비록 그들은
죽었지만 좌의정을 지낸 김홍근 (金弘根), 영의정을 지낸
김홍근(金興根)은 연로했지만 아직도 원임대신으로 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김병기는 호조판서로
있으면서 안동 김문을 이끌고 있고, 김병학, 김병국 형제와
대호군 김병주(金炳柱), 형조참판 김병지(金炳地), 예조판서
김병덕(金炳德), 한성판윤 김병운(金炳雲)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족들이 요직을 장악하고 있었다.
(같이 공존하려고 한다면 몰라도 김씨 가문을 핍박하려 한다면
흥선군의 제2자도 순순히 대통을 잇지는 못할 것이다......)
김좌근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필요하면 반정(反正)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장김의 멸문지화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지만 흥선군으로부터 장김이 제거될 위치에 놓인다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길이었다.
(나에게는 병기가 있어.......)
김병기는 호조판서의 직위에 머무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김의
신진세대를 이끌고 있는 인물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었다. 일찍이
흥선군 이하응조차도 '아들을 낳으려면 사영 김병기처럼 웅특한
아들을 낳던가, 홍원식 형제와 같이 단수묘아해야 한다.......'
하고 김병기를 칭찬한 일이 있었다. 홍원식(洪遠植)형제는
과거에 나란히 급제하여 인물 또한 출중했다. 홍대비의
일족이었다.
"합하, 흥선둔저에 다 왔습니다.."
도승지 민치상(閔致庠)이 김좌근의 상념을 흔들어
깨웠다.김좌근은 묵묵히 흥선 군저를 바라보았다. 솟을 대문이
우뚝 솟아 있기는 했으나 흥선군저는 담장이 무너지고 기와가
퇴락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자하동에 잇는 아흔 아홉
칸의 그의 별장에 비교하면 행랑채나 다름없이 초라했다.
"합하!"
도승지 민치상이 김좌근을 재촉했다. 흥선군 이하응의 형
흥인군(興寅君) 이최응(李最應)도 김좌근을 재촉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승전 내관은 무엇을 하는가?"
김좌근이 그때서야 낮게 호통을 쳤다. 벌써 흥선군저의남면
하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흥선군은 속히 나와서 왕대비전의 전교를 받으시오!"
승전 내관이 찌렁찌렁 울리는 목소리로 안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미 하인들을 통해 봉영행렬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터였다. 그런데도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흥선군은 속히 나와 왕대비전의 전교를 받으시오."
흥선군 이하응은 승전 내관이 두번째 소리를 질렀을 때야 아들
재홍을 데리고 황황히 나타났다.
"오늘 왕대비마마의 국명으로 대감의 제2자 재황을 익성군으로
봉군을 하고 익종대왕의 승통를 이으라 하시어 봉영차 나왔소.
어서 대비마마의 교지를 받들어 입궐할 차비를 하시오."
김좌근의 말이었다.
이하으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감회가 깊은 듯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왕대비 조씨가 실수없이 일을 처리한 것이다.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흥선군 이하응이 김좌근 일행을 안으로 청했다. 김좌근과
민치상, 흥인군 이최응, 기사관(紀事官)박해철이 영락한 흥선군
저 안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이하응의 둘째아들 재황은
대청 위에 서 있었다. 익성군의 임명장은 이미 좌승지
서당보(徐堂補)가 흥선군저로 가지고 온 탓에 조선의 제 26대
국왕에 옹립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재황은 잔뜩
긴장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익성군은 왕대비마마의 전교를 받드시오!"
도승지 민치상의 말에 재황이 황급히 대청에서 내려와 몸을
굽히고 남쪽을 향해 섰다. 흥선군 이하응의 식솔들도 황황히
뜰로 내려와 고개를 숙였다.
"익성군의 성명이 어찌 되오?"
민치상이 재황에게 이름을 물었다. 재황의 신분 확인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재황이 흥선군 이하응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하응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거려 대답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초명은 명복이고 지금은 재황으로 쓰고 있습니다."
재황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재황은 몸까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이는 어찌 되십니까?"
"임자생입니다."
임자생이면 열 두 살이었다. 이로써 재왕의 신분 확인이
끝나고 대왕대비의 전교를 받는 예절이 대청에서 행해 지게
되었다. 먼저 대청 위에 교지를 얹어 놓는 상이 놓이고,
민치상이 왕대비 조씨의 교지를 상 위에 올려 놓았다. 재황이
대청 위에 올라가 상 앞에 무릎을 끓자 민치상이 교지를 펴서
읽기 시작했다.
"죽지 못해 사는 이 늙은이가 차마 당하지 못할 기막힌 변을
당하고 보니 그저 원통한 생각뿐이다. 그러나 임금의 자리는
촌각도 비워 둘 수 없는 법이니 무엇 을 더 망설이겠는가? 이에
흥선군의 제2자 명복으로 하여금 익성군에 봉하여 사왕의 승통을
계승하게 한다. 화성군은 촌음도 지체하지 말고 입궐하여 대정을
담당하라!"
지엄한 왕대비의 교지였다. 재황은 대청 아래서 네 번 절하고
대청에 올라가 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도승지 민치상이
그때서야 무릎을 꿇고 왕대비의 교지를 전해 올렸다.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아들 재황이 조선의 제26대 국왕에
임명되는 순간이었다.
3
하늘은 암울한 잿빛이었다.
소년왕이 탄 보련(寶輦)이 공덕리 구름재로 올라섰다.
백성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연도에 몰려들었다.
무력한 왕조였다. 국명을 빙자하여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일문이 국사를 전횡해 온지 어언 70년. 그들의 세도정치는
나름대로 국가와 백성을 위해 봉사를 해왔겠으나 해독을 끼친
일이 더 많았다. 지방 곳곳에서 수령들과 양반들의 토색질에
견디다 못해 백성들은 민란을 일으켰다. 삼남을 휩쓴 민란은
관서와 관동지방까지 번져 하루에도 몇 군데식 수령들이
쫓겨나거나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철종 말년에는 호열자까지
창궐하여 백성들이 죽음의 고통에서 헤매었다. 굶주림, 추위,
남루한 의복과 누렇게 부황이 든 얼굴... 가을 바람이 불면
사람들의 시체가 길바닥에 나뭇잎처럼 무수히 뒹굴었다.
사람들은 소나무 껍질을 벗겨 빨고 칡뿌리를 캐어 굶주림을
견디었다.
그러나 조정 대신들의 곳간과 지방 관리들의 집에는 재물이
넘쳐나고 있었다.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토색질이 계속되어
농토를 버리고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이 줄을 이었다. 그들은
들짐승처럼 떠돌다가 차례로 죽어갈 뿐이었다. 이러한 대에
신왕이 등극한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나온 백성들은 당연히
조정이 혁신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신왕이 불과 연치 12세의
소년이므로 희망을 굴왕의 생부인 흥선군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흥선군은 종친이지만 빈한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들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까닭으로 백성들은 가벼운
설레임과 흥분 속에서 신왕의 입궐 행렬을 바라보고 있었다.
행렬은 삼엄했다.
선두에는 근장군사(近杖軍士)대호군(大護軍)과
선전관(宣傳官)이 행렬을 인도했고, 창검으로 무장한 근장군사
2백여 명이 보련의 ㅎ뒤에서 엄중하게 호위를 하고 있었다.
근장군사는 왕실 경비병으로 왕의 행차에만 수행을 했다. 영의정
김좌근과 흥선군 이하응은 보련의 바로 뒤에서 초헌을 타고
행렬을 따라가고 있었다.
(재황이 마침내 보위에 오르는가...... )
연도의 백성들 중엔 아녀자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 노랑
저고리에 호박색의 무명치마를 입은 13세의 한소녀가 보련 위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소년왕을 바라보며 나직히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소년의 이름은 민자영(閔紫英). 후일 고종의 왕비로
간택되어 시아버지이 대원군과 피를 말리는 싸움에서 승리한 후,
고종의 총애를 받아 고종의 두에서 발을 치고 정사를 좌지
우지하다가 마침내 일본인들에게 비참한 죽음을 당하는 철의
여인 명성황후 민비였다.
그녀의 옆에는 생보 이씨(李氏)도 부러운 듯이 보련 위에 앉아
있는 소년왕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서 있는 사람은 감고당 아줌마로군.....)
소년왕은 연도에 늘어선 백성들을 살피다가 감고당(感古堂)의
규수를 발견하고 흥건히 미소를 떠올렸다. 감고당과 민 규수는
소년왕과 외가 쪽으로 13촌이 됩니다. 명절 때면 민 규수는 생모
이씨와 함께 구름재로 찾아와 문안을 드리곤 했는데 어쩐 일인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내가 왕이 되었으니까 대궐로 놀러 오라고 해야지......)
소년왕은 그런 생각을 했다. 연도에 나와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근장군사의 삼엄한 호위, 생전 처음 타본 보련 때문에 기분이
이상했으나 우쭐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민 규수네는 가난했다. 종친인 소년왕의 집도 가난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으나 그래도 견딜 만한 편이었다. 어머니
민씨는 이따금 12촌 동생인 민 규수를 불쌍히 여겨 양식거리를
보내주었는데 소년왕은 그럴 때마다 어머니를 따라가 감고당에서
놀다 오곤 했었다.
소년왕은 민 규수를 좋아했다. 민 규수는 소년왕보다 한 살이
더 많았으나 나이보다 훨씬 조숙했다.
문득 민 규수가 잔잔한 미소를 보내 왔다.
아.......
소년왕은 갑자기 가슴이 뛰면서 얼굴이 화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일이었다. 소년왕은 재빨리 민 규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보련이 민 규수 옆으로 지나갔다.
(민치록의 딸이군.....)
흥선군 이하응도 초헌(招軒)에 앉아서 민 규수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일별도 던지지 않고 근엄한 표정으로 앞만
응시했다.
연도엔 그가 아는 인물들도 적지 않았다. 시정잡배들가 어울려
다닌 탓에 행세깨나 하는 권신들보다 시정잡배들 쪽에 더 안면이
많았다.
"오입장이 대감 아니신가?"
"상가집 개라는 흥선군이 어쩐 일로 초헌에 타고 계시지?"
"궁대감이 궁궐에서 벼슬을 얻은 것은 아니겠지"
신왕의 행렬을 알아보지 못하는 백성들이 그렇게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천아성이 울렸나?"
"아니. 천아성이 울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네."
"천아성은 새 임금이 보위에 올라야만 울리는 것일세."
연도 한족에서는 소년재사라는 명성이 자자한 김옥균도
문우(文友)들과 함께 소년왕의 행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나이 14세였다.
"신앙의 연치가 불과 12세라니 조 대비가 섭정을 하겠군."
"흥서눅은 어찌 되겠나?"
"국왕의 생친이니 막강한 권세를 누리겠지."
"그러면 장김이 몰락을 하겠군."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네. 흥선군이 정사에 관여하려면
살얼음 위를 걷듯이 해야 할 거야. 장김이 요직이란 요직은 모두
장악하고 잇으니 섣불리 건드렸다가 는 오히려 반격을 당하게
되지..... 그러나 흥선군은 그렇게 녹녹한 인물이 아니야, 벌써
지중추부사 김병학의 따님과 정혼을 언약했다지 않은가?"
김옥균의 말을 두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 듣고 있던 민규수,
민자영은 가슴이 싸하게 저려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소년왕이 김병학의 딸과 정혼의 언약을
했다는데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으로 찬비가 내리는 것처럼
쓸쓸했다.
"그럼 정략결혼을 한다는 얘기인가?"
"국상이 끝나면 국혼이 선포될 것일세."
"그럼 3년 후가 되겠군. 3년 후에는 장김이 다시 세도를
잡는다 이뜻 아닌가...."
"현제의 정세로 보면 그리 되는것이 당연지사겠지....."
김옥균이 낮게 중얼거렸다. 소년왕의 봉영행렬은 벌써
창덕궁을 향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자네는 어찌 그렇게 앞 일을 훤히 알고 있나?"
"나는 아직 제대로 아는 것이 없네. 내가 아는 것은 모두 어느
역관과 그의 지우로부터 배운 것이네."
"아무튼 자네만한 재사가 없네. 나는 경운동으로 갈 터인데
자네는 어디로 가나?"
"나는 수표교로 가네."
"수표교에 누가 있나?"
"백의정승이 있지 않은가?"
김옥균이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백의정승이라는 것은 기인
유대치(劉大致)를 일컫는 말이었다.연암문집(燕巖文集)과
열하일기(熱河日記)등을 암긴 박지원(朴趾源)의 후손인
박규수(朴珪壽)와 역관(譯官)을 지낸 오경석(吳慶錫)과 함께
일찍이 개화사상에 눈을 뜬 인물이었다. 대치는 호고 본명은
홍기 (鴻基)인데 사람들은 그의 박식함을 일컬어 백의정승이라는
별호로 부르고 있었다.
"선비님."
김옥균이 문우와 헤어져 몇 걸음 떼어놓았을 때 조심스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김옥균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14,5세쯤 되어 보이는 규수가 몇 걸음 떨어져
그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민자영이었다.
".....?"
김옥균은 의하한 얼굴로 민자영을 바라보았다. 민자영은 노랑
저고리에 호박색의 무명치마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서부터
허리까지 장의(長衣)를 쓰고 있었으나 용모가 단아했다. 비록
몸종도 없는 단신이었으나 범접할 수없는 기상이 엿보였다.
"규수께서 나를 부르셨소?"
김옥균은 선연하게 맑은 민자영의 눈을 응시했다.
"선비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외람된 일인 줄은
아옵니다만은 궁금한 일이 있어 여쭙고자 하오니 허물치
마십시오."
"궁금한 일이 무엇이오?"
"조금 전에 백의정승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분을 뵈올 수
있사옵니까?"
"우리 말을 엿들었소?"
"엿듣고자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김옥균은 입을 다물었다. 민자영의 행동은 당돌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양반가의 규수라면 길거리에서 외간남자와 얼굴을
마주치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민자영은 말까지
건네고 잇는 것이다.
"낭자의 부친 존함이 어떻게 되오?"
김옥균은 예사로운 규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녀의 선친은 극진할 치(致)자에 복 록(祿)자를 쓰십니다.
본관은 여흥 입니다."
민자영의 목소리는 낭랑했다.
"낭자의 성명을 물어도 되겠소?"
김옥균이 다시 물었다.
"자주 자(紫)자에 꽃부리 영(英)자를 쓰고 있습니다."
역시 주저함이 없었다.
"나는 구슬 옥(玉)자에 고를 균(均)자를 쓰고 있소. 본관은
안동이오."
"장안에 명성이 자자하신 소년재사시군요."
민자영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홍원식 형제에게 비길 수야 있겠소?"
김옥균이 머쓱하여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민자영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싫지 않았다.
"무슨 연유로 백의정승을 보려 하는지 모르오만 내 일러
드리리다."
김옥균이 앞에 서서 수표교를 향해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민자영은 고개를 다소곳이 숙여 예를 표한 뒤 서너 걸음 뒤쳐져
김옥균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갑신정변(甲申政變)의 김오균,
그리고 조선의 여걸로 성장하게 되는 민자영의 기묘한 해후였다
4
부우우웅.
천아성이 대궐의 성벽에서 구슬프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국상(國喪)이었다. 문무백광들은 흰 상복을 입고 입궐을 하고
선비들은 대궐 앞으로 몰려와 임금의 죽음을 슬퍼했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소라고등의 음조는 비감했다. 아침부터 낮고 찌뿌등하던
하늘에서는 그예 흰 눈발이 어지럽게 날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늘도 슬허함인가. 백성들은 잿빛 하늘에서 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철종대왕의 승하를 슬퍼했다. 무지랭이 국왕이었다.
강화도에서 나무꾼 노릇을 하며 농사를 짓다가 안동 김문에 의해
조선 팔도의 국왕으로 선택되었던 원범(元範), 슬하의
혈육이라고는 영혜옹주 (永惠翁主)뿐이었다. 국사 한 번 변변히
보지 못한 채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조선에 휘몰아칠 개국의 파란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영 김병기. 그는 교동의 집에서 근장 대호군 김병주를
은밀히 만나고 있었다. 대호군 김병주는 임금의 호위와 궁성
호위를 담당한 총책임자였다. 3군영에서 선발한 2백여 명의
근장군사를 휘하에 두고 있었다.
"근장군사는 철저히 장악하고 있느가?"
"이르다 뿐입니까? 근장군사는 모두 제 말 한마디에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자들입니다."
"흥선대원군의 둘째아들이 신왕이 되었어. 우리와 함께
공존하겠다면 몰라도 김문 일족을 제거하려 한다면 우리도
앉아서 죽음을 당할 수는 없는 일이네.
"당연한 일입니다."
김병주가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눈이
무리무리하고 몸이 우람한 사내였다.
"내 이러한 때가 올 것을 에상하고 자네를 대호군에
임명했네."
대호군이란 직책은 대장군에 해당하는 직책이었다.
"영상 합하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아직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아야 한다고 하셨네. 12일에
신왕이 관례를 올리고 13일엔 신왕이 등극을 하네. 그 다음에
조각을 하게 되겠지."
관례(冠禮)는 신왕이 등극하기 전에 성인이 되는 절차를 밟는
식이었다. 신왕이 등극을 한 뒤에는 전례대로 새로운 조각을
하는 것이다.
"그럼 그때 우리 안동 김문이 버림을 받느냐 버림을 받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겠군요"
"물론이지."
"흥선군에 대한 예우는 어ㄷ게 하기로 결정이 되었습니까?"
"조 대비께서 수렴청정을 하신다는 것만 결정이 되었네."
사영 김병기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흥선군에 대한 예우가
안동 김문으로 서는 가장 골치 아픈 문제였다. 흥선군은 임금의
생친이었다. 그에게 실권을 줄 수도 없고 실권을 주지 않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지중추부사인 영초 김병학 대감의 신왕의 혼담이 오갔다고
하는데 그 일은 어찌 되겠습니까?"
"실은 그 문제에 우리 김문의 사활이 걸려 있네."
"......"
"영초의 따님의 중전으로 간택되면 흥선군도 우리 김문을
박해하지는 않을 테니까...."
"흥선군과 한 번 그 문제를 담판을 지어 보시지요?"
"글쎄......"
김병기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신왕이 김병학의 딸과 국혼을
하게 되면 김문에서만 네번째 왕비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흥선군이 김문에게 그러한 혜택을 줄지 어쩐지 미심쩍었다.
"흥선군이 영초 대감의 따님과 혼약을 파하면 그때는
근장군사를 동원하여 거사를 도모하는 방법밖에 달리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반정을 일으키자는 겐가?"
"작금의 이 나라 형편을 보면 어디 이씨의 왕조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실상 이 나라 조선 팔도는 김문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역성혁명도 가능한 실정입니 다."
김병기가 눈을 질끈 감고 낮게 신음을 내뱉았다. 김병주는
무관이었다. 오랫동안 군사들과 함께 생활한 탓에 생각이
단순하고 조급했다. 역성혁명(易姓革命)이 무엇인가.민심을 잃은
왕조의 성(姓)을 바꾸어 천명(天 命)을 새로이 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반정(反正)조차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인데 하물며 역성을
입에 담는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말이
누설되기만 하면 안동 김문은 남녀노유(男女老幼)를 가리지 않고
도륙을 당하게 될 것이다. 조선왕조를 개국할 때
왕씨(王氏)일족이 얼마나 많은 죽음을 당했는 가. 왕씨가
전씨(全氏)로 성을 바꾸고 지금까지 벼슬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도 역성혁명을 성공시킨 이씨 일가로 인한 것이다. 물론
실패할 때는 그 이상의 참혹한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어허, 큰 일 날 소리! 말씀이 지나치네."
"신왕이 등극하여 조각을 할 때까지 기다려 보세."
"그럼 그때까지 제 휘하에 있는 근장군사들을 철저히 무장시켜
놓겠습니다."
"근장군사는 겨우 2백 명이야."
"삼군영 군사도 있지 않습니까?"
"안 되네. 지방의 관군들이 토벌하러 오면 간단히 제압되네."
"허면?"
"이제 더 말씀을 말게. 말씀이 지나치면 화가 되는 것이니
나에게 맡기고 자중하게."
김병기가 낮았으나 단호한 말로 김병주를 타일렀다. 반정이나
역성혁명을 거사하는 것은 죽음을 같이할 수 있는 동지를
규합해야 하는 일이었다. 단지 본관이 같은 안동 김씨라는
연대감만으로 이런 엄청난 거사를 계획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지방 관군이 반군을 토벌하러
한성으로 짓쳐 들어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그에게는 갑산(甲山)도호부(都護府)부사 이석(李奭)과
함경감사 이유원(李裕元)이 있었다. 갑산은 나라의 주전(鑄錢)을
제조하는 곳이고, 함경감영은 변방을 지키는 곳이다. 예로부터
함경도는 기질이 사납고 용맹하여 명장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군사들이 날랬다. 거기서 찍는 돈과 군사까지 동원 되어야
비로소 역성혁명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성혁명을 성공시키면 누구를 왕으로 앉힐 것인가.
군왕의 재목이 되려면 먼저 난을 평정하여 백성들과 군사들로
부터 신망을 얻은 인물이 있어야 한다.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안동 김문에는 그런 구심점 역할을
할만한 인물이 없었다. 아버지 김좌근은 나주 기생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은 지 오래였다. 사람들은 나주 기생을 나주
합하라고까지 불렀다. 나합은 아버지 김좌근이 70객의 노인이라
아랫것들과 사간(邪姦)을 서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관직까지
팔았다.황음하기 짝이 없는 여자였다. 장안의 온 성민이 나합과
아버지 김좌근을 비난했다. 나합이 방생을 할 때는 쌀 수십섬
으로 밥을 하여 강에 물고기 밥으로 던져 주곤 했다. 그러면
굶주리던 백성들이 물 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먹으라고 던져 준
밥을 건져 먹었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백성들이 그만큼 굶주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역성혁명의 기운은 무르 익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 김좌근과 나합에 대한 원성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역성혁명을 일으킬 구심점은 커녕 타도되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물론 김병기 자신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합이
미소년(美少年) 들을 데리고 황음한 짓을 저지른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목을 베어 버려야 했었다. 그러나 김병기 자신까지도
정사를 돌보기는 커녕 매관매직을 해왔던 것이다.
(어쨌든 조각이 끝나기를 기다려 보아야 해....)
김병기는 대호군 김병주가 돌아간 뒤에도 오랫동안 혼자
앉아서 깊은 상념에 잠겼다.
그 시간 흥선군 이하응은 구름재의 사랑채에서 천하장안에게
비밀 지시를 하고 있었다. 사태는 긴박했다. 아동 김문이
신왕옹립에 불만을 갖고 군사를 일으킨다든가 역성혁명ㅇ르
일으키면 피바람이 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것이
공염불로 돌아 가기전에 나동 김문을 무력하게 만들어야 했다.
"알겠느냐? 안동 김문의 움직임을 낱낱이 파악해서 보고해야
하느니라! 한 치의 틀림이 있더라도 너희들과 나는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다.!"
이하응은 천하장안에게 단단히 지시를 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대감마님."
천하장안이 긴장된 표정으로 허리를 숙였다.
"어서 가거라! 내가 잘 되어야 너희들도 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
"예!"
천하장안이 사랑채에서 총총히 물러가자 이하응은 사랑채
대청을 서성거리며 장고에 들어갔다. 마침내 아들이 신왕에
옹립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그것이 이하응 자신에게 실권이
돌아왔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안동 김문이 조정의 요직을
장안하고 있는 이상 허울뿐인 실권이었다.
다행히 왕대비 조씨와의 연합에 성공하여 주두순, 조성하,
정원용 같은 이들을 포섭할 수 있었다. 신관효, 이경하, 신명순
같은 무신(武臣)들도 이하응의 편으로 돌아서 있었다. 짧은
시간내에 안동 김문 대 이하응의 양대 세력이 형성되어 대립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안동 김문을 와해시키는 공작을 해야 했다. 이하응은
하인 이연식 (李連植)을 불렀다.
"영초 대감댁에 간다. 속히 행차 차비를 해라!"
"영초 대감댁이라 말씀하셨습니까?"
"그렇다. 조용히 행차할 것이니 소문 내어서는 아니 된다."
"예."
이연식이 허리를 숙이고 물러갔다. 이하응은 안채로 물러가는
이연식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연식은 서교도 (西敎徒)였다. 이하응은 서교도에
대해서 이렇다할 반감이 없었으나 왕대비 조씨는 서교도를
끔찍이 싫어했다.
이하응이 김병학의 집에 도착한 것은 자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밤이 야심한데 대감께서 어인 행차이십니까?"
김병학은 황망히 이하응을 사랑채로 맞아들였다.
"내가 영초를 방문하는 것이 예를 차려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밤중에 들렸소."
이하응이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예를 차려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이가 가까운 사이가 아니냐는 뜻으로
김병학에게 들렸다.
(설마 파혼을 하자고 온 것은 아니겠지....)
김병학은 이하응의 느닷없는 방문에 바짝 긴장했다.
"신세진 일도 많고 하여 인사라도 나누려고 들렸소."
"누옥을 찾아 주시니 영광입니다. 소인이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올려야 하는데...... 아무튼 감축드립니다. 큰 경사가
나셨습니다."
"허허...... 국상둥이라 그런 말씀 듣기가 민망합니다만
나만의 광영은 아닌 줄로 압니다."
김병학이 의아한 얼굴로 이하응의 낮빛을 살폈다. 이제는
어제의 이하응이 아니었다. 말투가 벌써 달라져 있었다.
"우리가 어디 남이오?"
김병학은 이하응의 속뜻을 아직도 짐작할 수 없었다. 김병학은
가슴만 졸였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하응과 오래 전부터 허교를 하고 지내왔지만 한
번도 속내를 드러내 보인 일이 없었다.
"내 말 뜻을 알겠소?"
"글쎄요. 말씀을 받자옵기가 황송해서...."
김병학은 말 끝을 흐렸다. 그가 이하응에게 명절 때마다
세찬을 보내 주고 돈독하게 우의를 나눈 것은 그가 사람을
사귀기를 좋아했기 때문이지 이하응을 특별히 평가해서는
아니었다. 그는 이하응뿐만 아니라 다른 종친들과도 가깝게
지냈고 안동 김문의 일원으로서도 맡은 일을 잘 처리했다. 안동
김문에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면 김병학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신중한 성격 이었다.
"영초, 왜 이러세요?"
이하응이 한 무릎 다가앉았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영초가 나를 도와 주겠다고 약조하지 않았소?"
"제가 어찌 대감을 도와 드리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남이 아닙니다."
이하응이 다시 남이 아니라는 말을 강조했다.
김병학은 비로소 내심으로 안도했다. 이하응이 우리가 남이
아니다라고 한 말은 당신과 내가 사돈이 아니냐는 뜻으로 들렸던
것이다. 한 달 전에 이하응이 찾아와서 그런 말을 했을 때는
현실감이 없는 먼 얘기로 들렸었다.
김병학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허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김병학은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그래. 빈객이 왔는데 한 잔 안 줄 셈이오?내가 폐의파립으로
지낼 때도 세찬을 보내 주던 대감이.....?"
"어찌 주안상을 올리지 않겠습니까? 잠시만 지체해 주십시오."
김병학은 하인을 불러 주안상을 내오라고 하려다가 재빨리
일어나서 내당으로 건너갔다. 그는 부인에게 직접 주안상을
차리라고 이른 뒤 딸에게도 사랑채로 나와 흥선군에게 인산를
드리라고 했다. 그것은 예에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열다섯이 된 딸의 용모에 자신이 있었다.그의 딸이 서시(西施)에
버금가는 미인이더라, 하는 소문이 장아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는 딸을 흥선군에게 선 보임으로써 흥선군의 마음을
잡아둘 계획이었다.
김병학이 사랑채로 돌아오자 이하으은 자신이 그린 석파란을
지그시 감상하고 있었다. 김병학이 세찬을 보냈을 때 이항응이
손수 그려서 답례로 보낸 것이었다. 김병학은 서화를 감상하는
것이 서툴렀으나 이하응이 추사 감정희에게 난을 치는 법을
배웠다는 소문을 들은 뒤 그 그림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 그림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소?"
"석파 대감의 정성이 담긴 그림인데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보면 볼수록 대감의 높은 기개가 절로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그렇게 칭찬을 해주니 고맙소. 영어 대감도 잘 지내고
있겠지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내 주안상이 들어오고 김병학의 딸이 들어와 다소곳이 절를
했다. 이하응은 무성한수염을 쓰다듬으며 김병학의 딸을 자세히
살폈다. 소문에 듣던대로 미인 이었다. 절을 하는 자태도
다소곳해서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국모의 재색이로군.....)
이하응은 속으로 감탄을 했다.
"영애의 재색이 지극히 아름답습니다. 마치 이 방에 매화가 핀
듯하지 않습 니까?"
이하응은 인사치레만이 아닌 찬사를 늘어놓았다.
"과찬이십니다. 미색만 뛰어나서 무엇에 쓰겠습니까?"
김병학이 겸손하게 대답을 했다. 김병학의 딸은 물러가라는
소리를 하지 않아서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학문은 어느 정도나 했습니가?"
"재주가 미거하여 학문이랄 것은 없지만 시경을 외고
있습니다.."
"시경이요?"
"예."
"그 나이에 시경을 외운다면 장한 일이 아닙니까?"
"부끄러울 뿐입니다."
"어디 영애의 시경 한 수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얘야, 시경의 시 한 수를 외울
수 있겠느냐?"
김병학이 딸을 향해 물었다.
"삼가 명을 받자옵겠습니다."
김병학의 딸은 단정하게 한족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앉아 있는 자세에 기품이 넘쳐 흘렀다.
두둥실 잣나무배가 황하에 떠 있네.
늘어진 다팔머리 총각이 내 낭군이었으니
죽어도 딴 마음 안 가지리이다.
어머님은 하늘 같으신 분
저를 몰라 주시나이까.
두둥실 잣나무배가 황하에 떠 있네.
늘어진 다팔머리 총각이 내 남편이었느니
죽어도 허튼 마음 안 가지리이다.
어머님은 하늘 같으신 분
저를 몰라 주시나이까.
시경(詩經)용풍(庸風)에 나오는 백주(栢舟)라는 시였다.
이것은 여자들의 절개를 노래한 시로, 한 처녀의 약혼자가
죽어 어머니가 다른 남자자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하지만 죽어도
다른 남자에게 출가하지 않겠다는 처녀의 깨끗한 마음을 읊은
시였다.
"참으로 아름답구나!"
이하응은 김병학의 딸이 옥음을 굴리듯 시를 외는 것을 보고
탄복했다. 김병학의 딸은 미색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송구하옵니다."
김병학의 딸이 또렷한 말씨로 대답했다.
"이제 그만 건너 가거라."
김병학이 딸에게 말했다.
"예."
김병학의 딸이 다시 한번 이하응에게 절을 올리고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뒷걸음으로 물러가기 시작했다.이하응은 치맛귀를 말아
쥐고 조심조심 물러가는 김병학의 딸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술잔을 기울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하응은 계속해서 술만 거푸 마셨다. 김병학도 입을 다물고
계속해서 이하응의 잔에 술을 쳤다.향긋한 죽엽주였다.
"영초도 한 잔 드시오."
이하응이 불쑥 김병학에게 술잔을 건넸다.
"예."
김병학이 두 손으로 술잔을 받았다. 이하응이 아직까지도
본심을 털어 놓지 않아 궁굼했다. 이하응은 이제 임금의
생친이었다. 밤 늦게 자신을 찾아온 것은 반드시 곡절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영초, 영초 대감께서 내일은 나를 도와 주어야 하겠소."
이윽고 이하응이 낯빛을 단정히 하고 김병학을 쏘아보았다.
"내일 왕대비마마의 하교가 있을 것이나 내가 서정에 참여할는
것을 극간하지 말아 주었으면 고맙겠소."
"서정에 참여하신다구요?"
김병학이 놀라서 이하응을 쳐다보았다. 이하응이 서정에
참여하겠다는 것은 왕대비를 대신하여 국정을 보겠다는 뜻인
것이다. 그것은 안동 김씨들로서는 결사적으로 반대를 해야 할
일이었다.
"물론 왕대비마마께서 섭정을 하시되 나는 그 밑에서 국사를
보고자 하오."
"그, 그것은 전례가 없는 일 아닙니까?"
김병학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침내 임금의 생친인
이하응과 안동 김문이 생사를 걸고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할 일이
닥친 것이다. 이하응이 국사를 본다면 그의 성격상 왕대비는
허수아비가 될 것이고 안동 김씨들은 궤멸을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안동 김씨의 편에 서야 할지
흥선군에 편에 서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관례란 만들면 되는 것,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가하오."
"......"
"우리는 남이 아니지 않소?"
"......"
"이미 원상과 좌의정께서도 다른 말씀이 없었소."
"하옥 대감과 사영은 어찌 하시렵니까?"
김병학은 한참 후에야 안동 김문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이하응의 눈빛이 타는 듯이 강렬했다. "하옥 대감은
연로하셨으니 물러냐야 할 것이오. 사영은 아직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오."
"중히 쓰신다는 말씀입니까?"
"중히 써야 하지요. 사영 같은 인물을 내치면 누가 있어서 이
나라를 경영합니까?"
김병학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정도라면 안동 김문으로서는
이하응을 경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자신의 딸이 신왕의
왕비로 간택되어 자신은 부원군이 되고, 김문 일족이 이하응에게
보복을 당하지 않는다면 굳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이하응과
대립할 필요가 없다. 김좌근이 물러나야 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그 흐름에 역행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김병학은 흥선군 이하응이 돌아간 뒤에도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골똘히 했다. 고약한 일이었다.
신왕은 12월12일 중희당(重熙堂)에서 성인이 되는 관례를
올리고 13일 인정전(仁政殿)에서 즉위식까지 올린 것이다.
내일부터는 회정당에서 왕대비가 발을 치고 섭정을 하게 될
것이다.그 중에서 가장 시급하게 논의될 문제가 이하응에 대한
것과 대비들에 관한 것이다. 왕대비는 대왕대비로, 홍 대비는
왕대비로, 김비는 대비에 봉해 질 것이다.그것은 의전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지만 흥선군 이하응이 서정에 참여하겠다고
하면 파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칼자루는 이미 흥선군이 쥐고 있지 않은가........)
이하응이 서정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하응은 이미 권련을 장악하고 있다. 섣불리 대립을 하는
것보다 가만히 있으면 부원군 자리를 보장받게 된다. 그것이
오히려 안동 김문을 위해서도 더욱 바람직한 일일지 모른다.
아니 능동적으로 이하응을 두둔하면 조 대비와 이하응으로부터
신임을 받게 될 것이다.
김병학은 그렇게 결정을 하고서야 겨우 잠을 잤다.
이튿날 흥선대원군으로, 신황의 생모인 민씨를
부대부인(府大夫人)으로 봉하고, 흥선군이 살고 있던 구름재
사저에 운현궁(雲峴宮)이라는 호(號)를 내렸다.또 흥선군은
임금에게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게 하고 지위를
삼공(三公:3정승)의 위에 두었다.
거기까지는 안동 김문에서도 아무런 반대를 하지 않았다.
임금의 생친으로서 그것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였다.
"이제 대원군의 서정 참여에 대해서 논할까 하오."
조 대비가 발 건너편에서 대신들에게 한마디 던졌을 때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대원군의 서정 참여, 그것은 꿈은
꾸지 못했던 일이었다.
"신 영의정 김좌근 아뢰옵니다."
김좌근이 조 대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안동 김문의 좌장인 김좌근으로서는 대원군의 서정 참여만은
결연히 막고 싶었다.
"영상은 먼저 내 말을 들으시오!"
조 대비의 목소리는 낮고 찌르듯이 날카로웠다.
"주상전하의 보령이 어린지라 아무것도 모른는 이 노파가
섭정의 대임을 맡았소. 국사다난한 이때에 나 같은 노파가
섭정을 맡아 국사를 어지럽힐까 심히 염려되는 바, 대원군으로
하여금 이 노파를 보필해 국사를 협찬케 하겠소."
그것은 일방적인 명령이었다. 김좌근은 얼굴이 핼쓱하게
질렸다. 호조판서 김병기는 몸을 부르르 떨었고, 지중추부사
김병학은 속으로 역시...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이 이하응의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신 영의정......."
김좌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영상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 늙은이가 왜 모르겠소?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있을 수 없고 주상전하가 익종대왕의 승통을
이었으니 대원군과 부자지간의 연이 끊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오.
그러나 임금의 생친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명분에 얽매여 외면할
수는 없소."
"신 김홍근 아뢰옵니다."
원임대신 김홍근이 조 대비의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김홍근은
직간을 서슴지 않는 사람으로 안동 김문의 죄장격인 김좌근이 조
대비의 말에 변변히 대꾸하지 못하자 스스로 나선 것이다.
"나라에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 하신 대비전마마의 하교는
지당하신 분부라 여겨지옵니다. 하오나 섭정으로 취임하신
대비전마마를 보필한다는 명분으로 대원군을 국사에 협찬케 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오니 분부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대원군은 임금의 사친으로 임금도 아니요, 신하도 아니옵니다.
그런 까닭으로 대원군을 운현궁에 모시고 홍마목을 세워
사친으로서 극진히 대접하여야 마땅한 일이옵니다."
"그러하옵니다. 한 나라에 어찌 두 섭정이 있을 수
있사옵니까?대원군이 대정을 보면 정사가 어지러울 것이옵니다."
호조판서 김병기도 분연히 반대를 했다.
"신 좌의정 조두순 아뢰옵니다."
"말씀하십시오."
"대원군이 대정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지사라 여겨지옵니다.
황공하온 일이오나 주상전하는 대원군의 훈도를 받았사오니
아비되는 이로서 막중한 국사를 보필하고, 성군의 재목으로
주상전하를 인도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지옵니다."
조대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두순은 영상의 재목으로 안동
김문의 세도 아래서도 굽히지 않고 자기 주장을 펴온
인물이었다. 그의 한마디는 천금과도 같았다.
"원상의 의견은 어떻소?"
"신은 대비마마의 하교를 받들 뿐이옵니다. 신하가
대비마마의하교에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불충이옵니다."
원상(元相) 정원용의 대답이었다.순조 때부터 4대째 국상을
치룬 인물. 팔순이 가까운 나이였으나 나라의 원로로서 김문도
손을 댈 수 없었던 인물이 었다. 이미 조 대비, 흥선군 이하응과
사전조율이 되어 있는 듯한 대답이었다.
안동 김문으로서는 이 이상 항거할 수가 없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원상 정원용이 불충이라고까지 못을 박은 것은 더 이상
언급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였다.
결국 이하응의 계획대로 신왕은 용상에 앉고, 조 대비는 발을
친 문 뒤에 있고, 이하응은 신왕의 바로 옆에서 대신들을
굽어보게 결정이 되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
그는 집권을 하게 되자 영의정 김좌근을 사직케 하고 그
자리에 좌의정 조두순을 앉혔다.좌의정에는 함경도 관찰사
이유원(李裕元), 우의정에는 이경재(李景在)를 임명했다가
홍문관 제학 임백경(任百經)을 임명했다. 이조판서에는 김ㅂ학,
호조판서는 김병국, 병조판서에는 원상 정원용의 아들
정기세(鄭基世), 선혜당상에 이승보(李升輔)를 임명했다. 또
좌포도대장 이경하(李景夏), 우포도대장 신명순(申命純),
금위대장 이장렴(李障廉), 어영대장 이경우(李景宇), 총융사
이방현(李邦玄)을 임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무관장상들을
자파로 바꿨다.
안동 김문을 이끌고 있는 김병기는 광주(廣州), 유수(留守)로
내보냈다. 유수는 정2품, 또는 종2품의 지방관으로 내직에서는
판서의 품계에 해당되었다.
(나를 지방으로 내치는군......)
김병기는 그렇게 생각하자 쓸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한때 안동 김문의 가장 촉망받는 신진 사대부로 떵떵거리던
위치에서 외직으로 밀려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안동 김문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행위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광주에는 남한산성이 있고 총융청(摠戎廳)이 있다.
총융사 이방현이 흥선대원군에 의해 임명된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김병기와도 막연한 사이였다. 그를 이용하면 총융청 군사를
동원하여 반정(反政)이나 역성혁명까지 가능한 것이다. 김병기는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여주 목사(牧使)에 경평군 이세보(李世輔)가
임명되자 김병기가 흉기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흥선이 이토록 노련한 인물일 줄이야........)
김병기는 탄식을 했다.
경평군 이세보는 이하전(李夏銓) 역모사건에 휘말려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하전 역모사건은 종친 중에
도량이 넓고 호방한 이하전을 왕으로 옹립하려고 역모를 했다는
사건으로 세간에서는 그 사건이 김병기가 조작한 사건이라고
의혹을 보내고 있었다. 그를 방면하여 여주 목사에 임명한 것은
김병기를 감시하기 위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계책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이제 우리 시대는 끝났어. 후대에 추함이나 남기지 말아야
해.......)
김병기는 몇 번씩이나 깊게 탄식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러나 나느 지켜볼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김병기는 유수부에 부임하자 한성 쪽을 바라보고 눈을
부릅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김병기가 지켜보고 있는 것을 의식이라도
하고 있듯이 차츰차츰 서정을 혁신해 나갔다. 70년 척족정치를
타파하고 영의정에 근엄하고 청렴한 재상으로 이름이 알려진
조두순을 임명하고, 우의정에 이경재, 임백경을 거쳐
유후조(柳厚祚)를 임명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유후조는
이조참판에 기용했다가 우의정으로 발탁한 것인데 그것은
파격적인인사였다. 사색당쟁의 여파로 남인(南人)까지 등용했고,
평민과 아전배까지 재주가 비상한 사람이면 반드시 귀하게 썼다.
정치는 조두순과 김병학 같은 당대의 거물들을 상대로 했고,
군사(軍事)와 치안(治安)을 논할 때는 이경하, 신명순 같은
무인(武人)들과, 민정(民政)을 살필 때는 천하장안 같은
인물들을 활용했으므로 백성들의 민심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그의 인사정책은 파격적이면서도 공정했고, 그런 까닭으로
철종말년에 전국을 휩쓸던 민란까지 가라앉았다.
(흥선대원군을 내가 잘못 보았어. 흥선대원군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정치가야.......)
김병기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혁신정치를 지켜보면서
진심으로 탄복했다. 그러나 김병기를 더욱 놀라게 하는 일이
터졌으니 그것은 대원군의 서원(書院) 철폐정책이었다.
대대적인 인사로 구시대의 인물을 과감하게 숙청한 대원군은
고종 원년 (1864년) 7월부터 대왕대비 조씨의 교명(敎命)을 빌어
전국의 서원과 향사 (鄕伺)를 조사하게 하는 한편, 고종
2년(1865년) 3월에 청주(괴산군 청천면) 만동묘(萬東廟) 안에
있는 화양서원(華陽書院)의 철폐를 명령하였다.
서원은 원래 학문이 높은 명현(名賢)을 제사지내고 청년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조선에 최초의 서원이 생긴 것은
중종(中宗) 때에 성리학 (性理學) 학자인 주세붕(周世鵬)에
의해서였다. 주세붕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풍기(風基)군수(郡守)로 있으면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을
설립 했는데, 명종(明宗)은 이 백운동서원에
소수서원(昭修書院)이라는 액(額)을 하사하고 서책과 노비,
토지를 내려 주었다.
임금이 하사했다고 하여 사액서원(射額書院)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서원은 그후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선조(宣祖) 때에
전국에 1백 24개가 되었고, 숙종 대는 한 도(道)에 80 - 90개에
이를 정도가 되어 구운몽(九雲夢), 사씨남정기 (謝氏南柾記)등의
소설을 남긴 김만중(金萬重)은 상소로서 서원의 폐단을
통박하였다. 영조(英祖) 때 전국의 서원은 6백 50개에 이르렀다.
서원은 당초의 설립 목적과 달리 많은 폐단을 낳았다. 서원에
소속된 토지 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고, 서원에 소속된
사람들에게는 군역(軍役)이 면제되어 많은 양반들이 스스로
원노(院奴)가 되었다.
서원 중에도 가장 세력이 크고 횡포가 심한 곳은 청주의
화양서원이었다. 화양서원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明)나라의 신종(神宗)과 익종(謚宗) 황제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만동묘 안에 있었다.거유(巨儒) 송시열(宋時烈)의 유지로
세워진 서원이었다.
이 화양서원에는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한
화양묵패(華陽墨牌)를 발행하고 있었다. 화양묵패는,
"우리 서원에 모모의 제사를 지낼 때 수전이 필요하니 모월
모일까지 얼마를 봉납하라."하는 식의 고지서(告知書)를
보내는데 끝에 화양서원의 묵인(墨印)이 찍혔다고 하여
화양묵패라고 부르고 있었다. 일단 이러한 종류의 고지서를
받으면 그 대상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봉납에 응해야 했다.
봉납에 응하지 않으면 서원에 끌려가 곤장을 맞고 죽기까지
하였다.
만동묘애서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낼 때면 조정의 모든 관리와
8도 감사, 각 지방 수령들이 모두 모이는 엄청난 규모여서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향리의 군소 벼슬아치는 감히 그
자리에 낄 수조차 없었다.
대원군은 젊어서 제사에 참여하거 간 일이 있었다. 대원군이
무심하게 부채를 흔들며 하마소(下馬所)를 지나는데 유생들과
원복(院僕)들이 달려들어 불충하다 면서 발길로 마구 걷어찼던
것이다. 하마소는 명나라 황제에 대한 예(禮)의 차원에서 누구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하는 것은 물론 옷깃을 여미고
들어가야 한다는 곳이었다. 조선조 중화사상(中華思想)의 극치를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내 나라 내 땅인데 어찌하여 통행을 막으며, 명 황제의
제사를 온나라 유림이 지내고자 하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화양묵패를 발행해 제 나라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니 뉘라서 웃지 않을 것인가? 이러고도
유림이 학문을 하는 무리들이라 할 수 있는가?"
대원군은 이를 갈았다.
유림은 대원군의 서원철폐 정책에 대해 맹렬히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그리하여 유통(儒通)이라는 격문을 써서 전국에
돌렸다. 아울러 복합상소(伏閤 上蔬)도 빗발쳤다. 복합상소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조신(朝臣)이나 유생들이 대궐문 밖에서
상소를 올리는 것을 말하는데 골자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서원은 선현을 숭사(崇祀)하고 사림(士林)을 배양하는 곳인데
어찌 철폐하여 중정(衆情)을 들끓게 하는가. 청컨대 서원을
그대로 보존케 하소서."
유림의 반대는 극렬하였다. 대신들은 유림의 반대가 날로
거세어지자 서원 철폐를 중지하자고까지 대원권에게 품의하기에
이르렀다.
"진실로 백성을 토색하는 폐단이 비일비재한데 어찌 서원을
존속시킬 수 있겠는가. 서원은 명현의 제사를 지낸다는 핑계로
도둑의 소굴이 되었으니, 이것이 비록 공자에게서 나온 제도라고
하여도 용서할 수 없다!"
대원군은 불같이 노하여 서원철폐를 강행했다.
대원군은 포도청에 명하여 대궐 안에서 시위를 하는 유생들을
강제로 해산 시키는 한편 한강 건너로 축출해 버렸다. 또한 지방
고을의 수령들에게 명하여 서원을 철폐케 하고, 수령들이 유림의
위세에 눌려 서원을 철폐하지 못하면 관직에서 내ㅉ고 엄벌에
처하였다. 이리하여 오랫동안 백성들 위에 군림하여 온갖 악행을
일삼던 서원은 모조리 철폐되어 47개소만 남게 되었다.
(대원군은 동방의 진시황이야.......)
김병기는 대원군의 서원철폐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대원군은 역대 어느 왕도 하지 못했던 서원철폐를 단행하여
백성들로부터는 칭송을 받고 약화된 왕권을 회복하여 절대권력을
휘어잡고 있었다.
1) 시경 용풍편의 시 백주(伯舟)는 서울대
김학주(金學主)교수의 역(譯)을 인용했다.
제4장 감고당(感古堂)의 천재 소녀
1
1865년 봄.
집 바깥에서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며 삭풍이 불어왔다. 그
음산한 바람에 문풍지가 울고 등잔불이 가물거렸다. 허공을
가르며 달려오는 바람소리가 진종일 귓전을 어지럽게 하더니
밤이 되어도 그치지를 않고 있었다.
민 자영은 진저리를 치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람소리가
음산했다. 정(正)2월, 열었던 샛강(西江)이 녹고 양지바른
곳에서는 봄풀이 파릇파릇 돋아 나고 있는데도 요 며칠 세찬
광풍이 불어 동지 (冬至)섣달 칼바람을 부색케 하였다.
자영은 읽고 있던 좌씨춘추전(左氏春秋傳)에서 시선을 거두고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간난이가 삭정이를 모아서 군불을 지핀
탓에 방바닥으로 따뜻한 온기가 돌았다. 그러나 방바닥에 온기가
도는데도 불구하고 가슴 속이 가을비가 추적대는 황량한
들판처럼 스산하기만 했다.
공풍처럼 미쳐 날뛰는 바람소리 탓일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좌시춘추저의 오자서(俉子胥)때문일 것이다.
좌씨춘추전이 이미 수없이 읽은 책이다. 그 책에 나오는 영웅
호걸의 흥망성 쇠로 인해 가슴을 졸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오자서 같은 대영웅도 끝내는 한줌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오왕(吳王)부차(夫差 )의 배신으로
오자서가 자결을 하는 대목에 이르면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깊은
한숨이 흘러 나오곤 하였다.
(오자서 같은 영웅도 결국 그렇게 죽으니....)
자영은 가물거리는 등잔불의 심지를 돋구고 허공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이제는 잠을 자야 했다. 밤이 얼마나 되었는지 알수
없었으나 간난은 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러나
나형은 쉬이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사기는 여덟 살에 읽었다. 그녀는 아버지 민치록에게서
다섯살에 천자문(天 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떼고 여섯
살에 소학(小學)을 배웠다.
그 다음부터는 스스로 한학(漢學)을 공부했다. 어려운 글자가
있을 때만 아버지 민치록의 도움을 청했으나 거의 대부분 혼자서
공부했다.
최근에는 좌씨춘추전만 집중적으로 탐독했다. 좌씨춘추전에는
영웅호걸이 수없이 등장했다. 크고 작은 국가의 흥망성쇠,
왕조의 장엄한 몰락, 영웅이 탄생, 지략과 음모가 소용돌이치곤
했다.
자영은 좌씨춘추전을 읽을때마다 가끔 깊이 느끼는 감회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 광활한
중원(中原)을 통일한 뒤에 그 땅을 지배해 보았으면 하는
욕망이었다. 부질없는 꿈이었다.
"이 아이가 사내로 태어났으면 천하를 경영할 아이인데...."
아버지 민치록은 생전에 그런 탄식을 자주 했었다. 자영의
총명을 아쉬워하는 탄식이었다.
민치록은 자영이 서책만 가까이하는 것도 우려를 했다. 특히
자영이 사기를 즐겨 읽는 것을 걱정했다.
"사기는 그만 읽고 이제 이 책을 읽도록 해라."
민치록은 숨을 거두기 전 자영에게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이라는 책을 한 권 주었다. 특별히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것은 인현왕후를 본받아 부덕(婦德)을
쌓으라는 뜻이라고 자영은 생각했다. 자영이 살고 있는 감고당이
인현황후가 폐서인 시절에 살던 집이었다. 그러나
한미(寒微)하기 짝이 없었다.
민치록이 죽기 바로 전에 미승호가 양자로 들어왔으나
감고당은 빠르게 몰락 의 길을 걸었다. 과천(果川)현감(縣監)을
거쳐 장악원의 첨정 벼슬에 아버지가 있을 때만 해도 감고당은
모든 것이 풍족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영이 여덟살에 병으로
죽자 가세가 일시에 기울었다.
아버지 민치록은 그녀가 태어나자 몹시 실망했다고 하였다.
가문을 일으킬 아들을 바랐느데 모진 산고(産苦)끝에 남아 애신
그녀가 태어난 탓이었다. 아버지는 비록 죽었지만 아버지의 뜻을
받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조선에서는
아무리 여자가 총명하고 영특해도 대접을 받을 수가 없었다.
벼슬길에 나설 수도 없으려니와 족보에 이름 석자도 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면 반드시 이런 모순을 혁파할
거야.....)
자영은 입술을 지그시 사려 물었다.
밖에는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고 있었다. 바람소리가 집이
떠나갈 듯이 요란 했다.
"간난아."
자영은 벽에 기대어 졸고 있는 몸종 간난을 불렀다.
"예!"
간난이 화들짝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 간난은 흥선대원군의
부인 민씨가 자영에게 보내 준 계집종이었다. 허우대가
남정네처럼 크기만 했지 도무지 속이 없는 처녀였다.
"이부자리를 펴라."
자영이 나직하게 일렀다.
"예."
간난이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한 뒤에 주섬주섬 이부자리를
폈다.
자영은 집에서 입는 광목 치마저고리를 벗어 웃목에 조신하게
개어 놓았다. 등잔불 그림자가 일렁거리는 벽에선 여린 흙냄새가
풍겼다.
"눕자."
자영은 속치마차림으로 이불 속에 들어가 누었다. 간난이
등잔불을 끄고 자영의 옆에 와 누웠다.
안방은 아버지 민치록이 생전에 양자로 들인 민승호 내외가
사용하고 건넌방 은 자영의 생모 이씨가 사용하고 있었다. 방은
행랑채까지 여러 개가 되었으나 방마다 불을 지필 수 없어
자영은 몸종 간난이와 방을 같이 사용했다.
(그래도 내가 태어난 여주 섬락리에 자색 서기가 뻗쳤다고
했는데...,)
예로부터 큰 인물이 태어날 때는 하늘이 그 징조를 알린다고
하였다. 한중록(恨中錄)을 남긴 혜경궁(惠慶宮)홍씨(洪氏)나
인현왕후가 태어날 때도 집 주위에 오색 서기(瑞氣)가 뻗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자영이 태어날 때도 섬락리 일대가
찬란하도록 자색 서기가 뻗쳤다는 것이다.
(설마 내가 중전이 된다는 징조는 아니겠지?)
자영은 자신의 헛된 망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어둠 속에서
쓸쓸한 미소를 떠올렸다. 영라간 감고당에 처지에 국모인 왕비를
낸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감고당은 연명을 하는 것조차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조정에서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제사를 모시라고
내리는 약간의 곡식과 흥선대원군의 부인 민씨가 철따라 보내
주는 곡식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민승호가 양자로 들어온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민승호는 위인이 총명 한데도 불구하고 안동 김문의 세도에 눌려
벼슬길에 출사조차 못하고 있었다. 민승호가 미관말직이나마
벼슬길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이 조선의
제 26대 국왕으로 등극하면서부터였다.
(재황이 왕이 될 줄은 몰랐어.....)
자영은 몸을 뒤채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이따금 선머금애 같던 재황의 얼굴이 아련히 떠오르면
가슴에 꽃물이 드는 것처럼 얼굴 이 화끈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영이 재황을 처음 본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영이 재황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뚜렷이 기억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재황이 소년왕으로 등극하기 다섯 달 전의
일이었다.
자영이 부대부인 민씨에게 문안을 드리러 가자 민씨가 아버지
민치록의 제사 에 쓰라면서 쌀 한 말을 주고는 재황에게 바래다
주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자영 은 재황과 함께 감고당까지
걸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저녁 무렵이었다.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찌뿌퉁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등줄기와 겨드랑이로 흘러내려 속곳이 흥건하게
젖었다. 자영은 재황을 데리고 공덕리 구름재로 올라섰다. 쌀 한
말을 어깨에 진 재황은 빰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재황의 집엔 하인이 여럿 있었는데도 민씨가 무슨 까닭으로
재황에게 쌀을 지고 가라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구름재에 올라서자 서쪽 하늘이 컴컴해 지면서 빗발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영과 재황은 걸음을 서둘렀다. 빗발이 점점 굵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서대문을 지나자 빗발은 장대질를 하듯이
세차게 퍼부었다. 그들은 비를 흠뻑 맞고 감고당에 도착했다.
집은 덩그라니 비어 있었다. 자영의 어머니 이씨는 경기도
포천의 절에 갔고 민승호 내외는 처가에 가고 없었다. 방문은
모두 잠겨 있었다. 지난 해에도 흉년이 들어 도성까지 도둑떼가
들끓고 있었다. 사람들은 집을 비울때면 으레 방문을 잠궜다.
자영은 재황과 함께 봉당에서 비를 피했다. 빗발이 좀처럼
수르러들 기색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할래? 비를 맞고서라고 집에 갈래?"
"무서워서 싫어."
재황이 어깨를 부르르 떨며 대꾸했다. 재황의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옷을 말려야겠어."
자영은 부엌에 들어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자영도
치마저고리가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내가 불을 피울께."
재황이 부엌에 들어와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불이 피면 저고리를 벗어서 빗물을 짜내."
자영이 재항에게 말했다.
"아줌마는?"
재황이 머리를 긁으며 대꾸했다.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매캐한 연기와 뜨거운 열기가 금세 부엌에 가득 퍼졌다.
"난 괜찮아."
불길이 피어오르자 재황이 저고리를 벗어 빗물을 짠 다음
아궁이 앞에 펴들었다. 자영은 재황을 외면했다. 재황은
흩저고리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다.
"아줌마도 옷을 짜서 말려."
재황이 말했다.
"괜찮아."
"속적삼 안 입었어?"
"왜 안 입어?"
"그럼 짜서 말리나니까. 내가 짜 줄가?"
"아냐."
자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공연히 얼굴이 붉어졌다.
잠시 재황이 입을 다물었다. 자영은 아궁이에서 활활 타는
불길을 바라보다가 장독대로 눈길을 보냈다. 장독대 뚜껑이
그대로 열려 있었다.
"에그머니."
자영은 깜짝 놀라 장독대로 달려가 허겁지겁 뚜껑을 닫았다.
빗발이 더욱 굵어져 있었다. 장독대 뚜껑을 닫느라고 잠깐
나갔다가 왔는데도 옷이 걸레처럼 젖어 몸에 척척 감겼다.
"웬 비가 이렇게 장하게 오실까?"
자영은 장독대 위로 하얗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내다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아무래도 옷을 벗어서 물을
짜내야 할 것 같았다. 빗물이 어깨와 등줄기를 타고 종아리로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영은 재황을 보았다. 재황은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탁탁 소리를 내며 타고 있는 불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영은 재황에게 등을 돌렸다. 먼저 저고리를 벗어 놓고
속적삼을 벗었다. 가슴이 쿵쿵거리고 뛰었다.
자영은 재황을 힐끔힐끔 살피며 속적삼을 비틀어 빗물을 짜기
시작했다. 그때 재황이 힐끗 고개를 돌렸다.
"보지 마!"
자영은 재빨리 속적삼으로 가슴을 가리고 주저앉았다.
"왜 그래?"
재황이 눈을 동그렇게 떴다.
"보면 안 돼!"
"왜?"
"몰라!어서 고개 돌려!"
"나는 저고리를 벗었는데...
아줌마 창피해서 그래?"
"넌 남자잖아?"
말은 그렇게 했으나 자영은 조금씩 부끄러운 생각이 사라져
갔다.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도 알 수 없는 대담한 생각이
내부에서 용솟음치고 있었다.
"우리 집에 있는 침모는 나한테 가끔 가다가 가슴을 만져
달라고 그러는데...."
"왜?"
"몰라. 내가 만져 주면 기분이 좋은가봐."
"거짓말이지?"
"정말이야. 침모는 내 고추를 만지기도 해......."
자영은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짜 줄께."
재황이 자영에게 다가오며 눈웃음을 쳤다.
"안 돼."
자영이 낮게 말했다.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내가 짜 준다니까....."
"괜찮아."
"괜찮기는......"
"그럼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 돼."
목소리가 모기소리처럼 작았다.
"걱정하지마."
"창피한데....."
"창피하긴 뭐가 창피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
재황이 자영의 가슴을 가린 속적삼을 빼앗듯이 나꿔채서
빗물을 짜기 시작 했다. 자영은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재황을
빤히 쳐다보았다. 재황이 싱긋 웃고는 자영의 속적삼을 아궁이
앞에 가지고 가서 펴들었다.
"불 옆으로 와."
"다 짰으면 나 줘. 입고 있으면 저절로 마를 거야."
재황이 자영의 속적삼을 들고 자영에게 다가왔다.
"아줌마 미안해."
"괜찮아."
자영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가슴이 뛰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럼 옷 입어."
재화이 자영의 속적삼을 어깨에 걸쳐 주며 말했다. 자영은
빠르게 속적삼을 옷고름을 매고 저고리를 걸쳤다.
재화이 다시 아궁이 앞에 장작을 밀어 넣었다. 자영도 재황의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차츰 사방이 어두워져 왔다.
자영은 아궁이의 장작만 뒤적거렸다.
밤이 되자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푸른 섬광이 번쩍하고
어두운 하늘을 갈라 놓으면 벼락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고막을
때렸다.
"감자 쪄 줄까?"
자영이 재황에게 물었다. 갑자기 재황이 남이 아닌 듯한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너 몇 살이라고 그랬지?"
"열 두살."
"......"
"아줌마는?"
"열 셋."
"아줌마 시집 가야겠네."
"뭐?"
"우리 어머니가 그러는데 여자는 나이가 들면 시집을
가야한대."
"......"
"우리 어머니는 열 여섯 살에 시집 왔대."
"너는 ?"
"나? 나는 장가 가는 거지."
"누구한테?"
"아버지가 그러는데 난 정혼한 규수가 있대. 김씨 성을 갖고
있대."
자영은 재황의 말에 가슴이 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규수한테 장가 들 거야?"
자영은 내색하지 않고 재황에게 물었다.
"몰라."
재황이 도리질을 했다.
"정혼했으면 장가 들어야 해."
"아줌마는?"
"난 정혼한 사람 없어."
"난 아줌마한테 장가 들었으면 좋겠는데......"
"뭐?"
자영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진짜야."
재황이 치죽거리고 웃었다.
"실없는 소리 하는 거 아니야."
자영은 재빨리 재황의 얼굴을 외면했다. 얼굴이 또 다시 화끈
거렸다.
"난 아줌마가 좋아. 나 오늘 감도당에서 자고 갈까?"
"안 돼."
자영이 도리질을 했다.
"비가 그치면 가야 돼."
그러나 밤이 깊어도 비가 그치지를 않았다. 자영은 저녁 대신
재황에게 감자를 쪄 주고 부엌에 앉아서 인현왕후 얘기를
해주었다. 재황은 자영의 옆에서 인현왕후 얘기를 듣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자영은 부엌에 보릿단을 깔고 재황을 자게
했다.
(나한테 장가를 들겠다구...?)
잠자는 재황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자영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재황을 지아비로 섬기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적이 없었다. 재황이 평소에 그녀를 잘 따르기는 했으나
그것은 자영이 재황의 친척 아줌마인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영은 기분이 이상했다.
남자와 여자는 성년이 되면 혼례를 올리고 함께 산다. 그리고
그런 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터득하여 깨닫는다.
그런데 재황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재황은 밤이 이슥해서야 흥선군댁의 하인이 와서 데리고 갔다.
흥선군 이하응은 자영에게 12촌 형부가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영은 이하응을 볼 때마다 날이 퍼런 비수를 보는
것처럼 가슴이 섬뜩했다.
그것은 자영이 재황을 마지막 만난 날의 일이었다.
(재황은 아직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자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영이 재황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신왕의 봉영행렬 때였다. 그러나 재황은
자영을 본 척도 하지 않았었다.
자영은 쓸쓸했다. 문밖에서 부는 세찬 바람이 가슴 속으로
불고 있는 기분 이었다.
재황의 얼굴은 벌서 희미해 져 가고 있었다.
(나는 재황에게 시집 갈 거야.....)
자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재황은 이미 좌의정 김병학의
딸과 혼담이 정해 져 있다는 말이 장안에 파다했다. 다만
국상중이라 국혼이 선포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자영은 가슴이 아리고 저렸다. 그러나
그럴수록 재황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더욱 간절해 지고
있었다. 재황에게 시집을 가려 하는 여자들은 모두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들었다. 잔인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식 일어나곤 하는 자영이었다.
(재황이도 나에게 장가 들고 싶다고 했어.....)
자영이 조선의 왕비가 된다면 감고당에서는 두번째 왕비가
탄생하는 셈이었 다. 왕비의 자리는 여자로서는 가장 높은
자리였다.
자영은 이제 15세였다. 초조(初潮)는 14세 때에 치르었고
가슴이 조금씩 조금씩 커지고 있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문득문득 가슴이 땡기듯이 아파서 손을 가슴으로 가져가
만져보면 가슴이 풋사과처럼 봉긋하게 부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재황이 조선의 국왕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성에 눈을
뜰 시기였다.
재황은 이제 14세였다. 아직 중전이나 후궁을 거느리고 있지
않았다.
(나이도 나하고 비슷해.....)
자영의 나이가 재황보다 한 살 더 많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흠이 되지 않았다. 조선엔 조혼 풍습과 함께 혼례를 올리는
여자의 나이가 남자보다 더 많은 풍습이 유래하고 있었다.
여염집 혼례의 풍속은 여자가 남자보다 세 살 정도 더 많은 것이
상례였다. 왕실도 왕비가 국왕보다 나이가 더 많은 예가 흔했다.
자영은 또 다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람소리가 음산했다.
벌판을 달려오 는 바람소리가 집이 떠나갈 듯이 요란했다.
(내일은 운현궁에 가야 할 텐데...)
자영은 이불 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내일 운현궁에
다녀가라는 부대부인 민씨의 전갈이 와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부대부인 민씨가 그녀를 각별히
총해하고 잇는 것은 자영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엔
딸처럼 자영을 사랑해 주고 있었다.
(날 며느리로 삼으려는 것일까?)
자영은 그런 생각을 해본 일도 있었다.
아직 남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중전이라는
자리가 국왕인 재왕의 아내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하끈거리고 가슴이 뛰었다. 고종의 헐굴이
어렴풋이 머리 속에 떠올라 왔다.
고종도 이제는 훤훤장부가 되었을 것이다. 지존이므로 곁에는
항상 항아처럼 예쁜 궁녀들이 시중을 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옛날부터 임금의 간택은 댕비가 결정한다. 고종에게는
흥선대원군 부부가 부모가 되므로 그들이 결정권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흥선대원군은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지략가의 한 사람이었다.
안동 김씨가 종친들에게 역적의 누명을 씌워 죽이기 시작하자
상가집 개라는 소리를 들으며 절치부심, 둘째아들을 조선의
왕통을 계승하게 한 사람이었다. 왕실의 가장 어른인 조 대비도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조 대비는 제23대 순조대왕(純
祖大王)의 아들 익종대왕의 세자빈으로 책봉이 되었으나 익종
대왕이 보위에 오르지도 못하고 승하하자 아들인 헌종대왕이
보위를 이어 중전의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대비가 된 불운의
여인이었다.
흥선대원군의 혁신정치는 이미 외척정치로 누대에 걸쳐 부패한
조정의 기강을 바로 잡고 백성들에게 새 바람을 불러일으켜,
민란을 가라앉히고 민심을 안정시 키고 있었다.
1.吾欲引千里爲咫尺(나는 천리를 격하여 떨어진 것을 가깝게
지내겠다.)
1.吾欲 泰山爲平地(나는 태산처럼 높은 것을 깎아 평지로
만들겠다.)
1.吾欲高南大門三層(나는 남대문을 3층으로 높이 올리겠다.)
대원군이 섭정을 하면서 밝힌 포부였다.
천 리나 떵어진 것을 지척지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외척정치로 멀어진 종친 과 가깝게 지내겠다는 뜻이고, 태산처럼
높은 것을 깎아서 평지로 만들겠다는 것은 권력을 잡고 있던
노론(老論)을 거세하겠다는 뜻이고, 남대문을 3층으로 높이
올리겠다는 것은 그 동안 천대받고 있던 남인(南人)을
등용하겠다는 뜻 이었다.
바야흐로 대원군의 시대였다.
재황의 아내, 임금의 왕비가 되려면 먼저 흥선대원군의 눈에
들어야 했다. 그러나 호상(虎相)인 흥선대원군의 눈에 든다는
것은 여간 지난한 일이 아니었다.
(재황이 보고 싶다.재황이....)
자영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뒤챘다.
집 밖에서는 여전히 사나운 바람이 허공을 가르며 달려오고,
앙상한 나뭇가지 들이 몸부림을 치듯 비명을 질러댔다.
2
이튿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새벽녘까지 미쳐 날뛰던 바람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자고, 봄볕이 깃털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저기 부러진 나뭇가지와 판자쪽이
뒹굴어 어수선했다.
조반이 끝나자 자영은 안방에 들어가 민승호와 독대했다.
"운현궁에서 오라고 하였다고?"
민승호는 자영이 운현궁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관복을 입다
말고 자영에게 앉으라고 하였다.
"무슨 까닭으로 누님이 들르라고 하는지 연유를 알겠느냐?"
"소녀는 모르고 있사옵니다."
"하긴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오라버님께서는 무슨 연유인지 알고 계시옵니까?"
"나도 아직 확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감고당에
서광이 비칠 일임에는 분명해...."
"소녀가 알면 아니 되는 일이옵니까?"
"아직은 모르는 것이 더 낫다."
민승호가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 민문도 이제는 기지개를 켜야 할 때야. 언제까지나
이렇게 영락한 꼴로 살 수는 없지 않니?"
"......"
"밖에는 봄이다."
"봄은 아직 이르옵니다."
"그러나 봄을 맞이할 준비는 해야지......"
"민승호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자영은 민승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민승호의 말이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민승호는 총명한 사람이었다. 1830년대에 출생했으니 올해
나이 서른 다섯 살이었다. 일곱 살에 천자문을 떼고 열 다섯
살에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줄줄이 암송했다. 그러나 벼슬길에
나선 것은 늦어서 작년에야 증광시(增廣試)에 급제 하여
사간원(司諫院)정언(正言)의 벼슬에 출사해 있었다. 정6품의
청직(淸直) 이었다.
"무슨 뜻이옵니까? 오라버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선문답을
하고 있는 듯 하옵니다."
자영은 생긋이 웃었다. 민승호와 얘기를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아직은 입을 열어 말할 단계가 아니다."
"저에게도 좋은 일이옵니까?"
"좋은 일이다 뿐인가?"
"오라버니에게도 관계된 일이구요?"
"암."
민승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뜻대로 되는 일이옵니까?"
"안 되면 되도록 만들어야지."
민승호의 얼굴에 전에 없이 자신만만한 미소가 번졌다.
"되도록이요?"
"사람의 운명이란 저 하기 나름이야. 운현궁의 둘째 도령이
대통을 이은 것도 우리 자형이 만들어 낸 작품이야. 저절로
국왕이 된 것이 아니야."
"그 분이야 지략가가 아니옵니까?"
"오래비는 그만한 지략이 없어 보이느냐?"
민승호가 야릇한 미소를 입언저리에 떠올렸다.
"어찌 오라버님에게 그만한 지략이 없겠습니까?"
"네가 믿으면 되었다. 어서 가 보아라."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운현궁 어른들을 뵈올 때는 몸가짐을 단정히 해라.
여흥 민씨는 지체 높은 양반이요, 인현왕후를 배출한 집안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자영이 깊이 허리를 숙여 대답했다.
자영은 건넌방에 들어가 누운 어머니 이씨(李氏)에게 문안을
드린 후 제 방으 로 돌아와 나들이 준비를 서둘렀다. 집에서
입던 치마저고리를 벗어 단정하게 개어 놓고 옷장에서 노랑
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찾아 입었다. 어머니가 시집을 올 때 입고
온 옷이었다. 옷이 약간 큰 듯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자영의 몸을
조숙해 보이게 했다.
마지막으로 자영은 가리마를 타고 댕기를 맸다. 머리엔 동백
기름을 살짝 묻히고 얼굴엔 창백해 보이지 않도록 분을 발랐다.
"간난아, 나 옷 입은 데가 허술한 곳이 없는지 살펴보아라."
자영의 나들이 준비가 끝나자 간난에게 옷 매무새를
보아달라고 하였다.
"네."
가난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허술한 곳은 없느냐?"
"없사옵니다."
간난이 자영의 몸을 한 바퀴 돌면서 살핀 뒤에 대답했다.
자영이 옷을 입은 맵시는 단정했다. 옷고름 매는 법이며
버선코가 보일 듯 말 듯 치마를 올려 입은 것까지 양반가의
규수로서 손색이 없었다.
간난이 흥선대원군의 사저(私邸)인 운현궁에서 민치록의 딸
자영의 몸종으로 보내 진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이었다. 그 무렵
궁색하기가 감고당이나 다를 바 없던 운현궁은 둘째아들이
조선의 국왕으로 책봉되는 바람에 일시에 가세가 펴졌다.
끼닛거리를 거르던 운현궁 곳간에 쌀이며 곡식이 그득그득
쌓이기 시작 했고 권문세가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았다. 상전이
상가집 개라는 소리를 들을 때는 하인과 몸종들조차 어깨를
움츠리고 살았으나 상전이 국왕의 자리에 오르자 그때부터
부구도 함께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간난은 부귀를 누릴 틈도 없이 약간의 재물과 함께
감고당으로 보내졌다. 부대부인 민씨가 친정 쪽 사람들에게 내린
하사품이었다.
(나는 어찌 이다지 박복할까?)
간난은 부대부인 민씨가 원망스러웠다. 주인집이 잘 되어
영화를 누리려던 참에 빈한하기 짝이 없는 민치록의 집으로
내ㅉ긴 것이다.
간난은 며칠을 이불 속에서 울었다. 몸종의 신분이라
부대부인의 명(命)을 거스를 수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감고당에 와서 자영의 시중을 들다보니 간난은
생각이 달라졌다. 감고당은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빈한하기 짝이
없었다. 집은 흥선군이 대원군으 로 책봉되기 전의 운현궁보다
더욱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었다. 흥선군저가 낙척한 집이라면
감고당은 폐가처럼 스산했다.
그러나 감고당의 어린 주인인 자영은 가까이 대할수록
신비하기 짝이 없는 소녀였다.
(이 아가씨는 결코 범상한 분이 아니야......)
간난은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녀가 모시고 있는 상전
민자영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존재였다.
눈빛은 서늘하고 목소리는 옥을 굴리듯이 맑았다. 이마는
반듯했다. 눈썹은 짙고 살빛은 투명했다. 빙기옥골(氷肌玉骨)의
몸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보 다 자영에게서 풍기는 기품은
형언할 수없이 신비로운 것이었다.
"자, 이제 네가 앞장 서라."
나들이 준비가 다 끝나자 자영이 쓰게치마를 뒤집어쓰고
간난을 채근했다.
"네."
감고당을 나서자 볕이 따뜻했다. 공덕리의 운현궁 가는 길은
여기저기 사람들 이 몰려 나와 양지 쪽에 웅크리고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모두 궁색한 차림이었다. 춘궁기였다.
그러잖아도 입성이 부족한 때인데 탐관오리의 토색질이 심해
백성들은 굶어 죽는 사람이 허다했다.
봄이 오히려 백성들에게는 더욱 춥고 배고픈 계절이었다.
자영은 걸음을 서둘렀다. 백성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눈은 움푹 드러가고 얼굴은 누렇게 부황이 들어
보기에 흉직했다.
갑자기 행길이 왁자해 지면서 한 떼의 포졸들이 죄수들을
오라지어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포졸들은 얼핏 보아
5,6인이었고 죄수들은 여자만 둘이었다.
"무슨 일이지?"
자영은 고개를 숙이고 간난에게 물었다.
"아마 천주교도들인 듯합니다."
간난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주학을 하는 사람들 말이지?"
"예."
"벌써 기해년에도 수백 명이 잡혀 죽었다는데 무슨 연유로
천주학을 하는 것일까?"
"배교만 해도 살려 준다는데 도무지 배교를 하지 않는답니다."
자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영도 천주교도에 대해서는 풍문을 들은 일이 있었다.
이벽(李蘗)이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중국에서 들여온 이래
천주교도는 급속히 불어나 순조대왕 때는 양인 신부들까지
조선에 들어와 활동을 하다가 옥사를 당한 일이 있고, 최근엔
로서아 오랑캐가 북쪽 변방에 자주 침입을 하고 그들이 한성으로
침략해 온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아 조정이 바짝 긴장해 있다고
하였다.
"아기씨! 어서 걸음을 서두르세요."
간난이 재촉을 했다. 포졸들과 죄수들은 벌써 종로의
좌포도청을 향해 빠르게 가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지, 대원군의 부인 민씨도 천주교도라는 풍문이
있던데....)
자영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부대부인 민씨는 아들이 조선의
국왕에 책봉되자 감사미사까지 드렸다고 했었다. 또 대원군도
천주교도들과 왕래가 잦았다고 하였다. 천주교도를 사교라고
하여 유림에서 상소가 쇄도하고 있다는 말도 들렸다. 불길한
일이었다.
"감고당 아기씨께서 오셨어요."
간난이 운현궁에 이르러 대문을 지키는 포졸들에게 말했다.
포졸들이 정치기 에게 연락을 하고, 청지기가 안채로 기별을 한
뒤에야 들어오라는 부대부인 민씨의 전갈이 전해 졌다.
자영은 안채의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부대부인 민씨는
안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좀처럼 자영을 보러 나오지 않았다.
자영은 초조하게 부대부인 민씨를 기다렸다.
점심때가 되었다. 부대부인 민씨는 그때까지도 안방에서
나오지 않고 잇엇다. 간난이 안채로 들어가 동정을 살피더니
좌의정 부인이 와 있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으나 좌의정의 부인은 열 예닐곱 살쯤 되는 딸까지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좌의정의 딸이면 재황과 혼담이 오가는 규수인데....)
자영은 가슴이 타는 것 같았다. 좌의전 김병학의 딸은 서시를
능가하는 미인 이라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했다. 그런 규수에게
재황을 뺏길지도 모른다고 생각 하자 눈에서 파랗게 불꽃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머리 끝이 곧추서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자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국모의 자리를 뺏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지 좌의정 김병학의 부이이 딸까지
데리고 와서 부대부인을 만나고 있는 것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엇인가 대책을 세워야 해....)
자영은 골똘히 생각했다.
점심때가 조금 지났을 때 상이 들어왔다. 간난이 안채의
부엌을 돌아다니며 챙긴 탓인지 찬이 정갈하고 가짓수가 많았다.
그러나 자영은 점심상을 조금만 뜨고 말았다.
"오래 기다렸지?"
부대부인 민씨는 해가 기울 무렵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아니옵니다."
자영은 민씨에게 큰 절을 했다.
"그래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느냐?"
"언니께서 돌봐 주시는 덕분에 가내가 두루 평안하옵니다."
"내가 돌봐 준 게 뭐가 있어.... 너 좌씨춘추전을 즐겨
읽는다며?"
"요즈음은 인현왕후전을 읽고 있사옵니다."
"인현왕후전은 나도 규수 때에 읽었지."
민씨가 내심에 있는 말을 꺼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 서학이란 말 들어보았니?"
"서학이요?"
자영이 놀라서 민씨 부인을 쳐다보았다. 서학(西學)은
서교라고도 하고 천주교라고도 했다. 나라에서는
사학(史學)이라고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내가 그 교의 가르침을 가만히 들어보니 그른 데가 하나도
없더구나."
"......"
"실은 나도 그 교에 입교했다. 아직 영세를 받지 않아
정식교인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신부님까지 만나보었다. 너
이양인에 대한 소문은 들었겠지?"
"예."
자영은 어리둥절했으나 속내를 감추고 조용히 대답했다.
이양인(異壤人)은 서양인을 말하는 것으로 양이(洋夷)라고도
불렀다. 서양 오랑캐라는 뜻이었다.
"너는 이양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아직 이양인을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어....."
"이양인을 만나볼 생각은 없구?"
"내외가 유별한데 어찌 이양인을 만납니까? 또 나라에서도
서학을 금지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주상께서도 성교에 관심이 많으시다."
"상감마마께서요?"
"그래, 주상의 유모 박씨가 오래 전부터 서학을 하고 있어서
말씀을 드리니까 주상께서도 봉교하시겠다고 하더구나."
자영은 민씨 부인이 왜 그런 얘기를 자신에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주상이란 재황을 말하는 것이고 봉교(奉敎)란 천주교를
받든다는 뜻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에서 포교의 자유를
허락하는 것일까. 그런데 민씨 부인은 무엇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일까. 자영은 빠르게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떠냐? 너도 성교를 받들지 않으련?"
민씨 부인이 한 무릎 더 다가앉으며 자영에게 물었다.
"이양인에게 배워야 하나요?"
"아니다. 승지를 지낸 남종삼 어른께 배우면 된다."
"그분이 서학을 하고 있사옵니까?"
"그래. 출가한 큰 애와 함게 배우면 된다."
출가한 큰 애는 흥선대원군의 딸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결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돌아가서 잘 생각해
보아라...."
자영이 망설이는 기색을 눈치챘는지 민씨 부인이 웃음며
그렇게 말했다.
자영이 운현궁을 나온 것은 저녁 땅거미가 어스름하게 깔리고
있을 때였다. 해가 기울면서 바람이 일기 시작하는지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자영은 서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일부러 서소문
네거리를 돌아서 종로 쪽으로 걸음을 떼어 놓았다. 민씨 부인이
자신에게 서학을 권유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더욱
궁금한 것은 좌의정 김병학의 부인과 그 딸의 행차였다. 그들이
운현궁을 찾아온 까닭이 무엇인지는 뻔한 일이었다.
"서학을 받들라고 했다고?"
저녁에 자영의 얘기를 들은 민승호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예."
"안된다. 누님이 서학에 몰두해 있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라에서 사학이라고 금지하고 있어....."
"혹시 포교의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림도 없어! 이 나라는 유림이 지배하고 있어."
"허면 저는 어찌 해야 하옵니까?"
"누님의 뜻을 따른는 척 해라. 누님의 뜻을 거스르면 내가
추진하는 일이 성사되지 않아."
민승호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가 낮게 말했다.
"그 일이 어떤 일인지 저에게도 알려 주세요."
"그렇게도 알고 싶으냐?"
민승호가 빙그레 웃었다.
"예."
민승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라버니!"
자영이 어리광을 부리듯재촉을 했다.
"그래."
민승호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겨렸다.
"너에게도 알려 주는 것이 좋겠지. 자영아...."
"예?"
"실은 너를 국모의 자리에 앉히려 한다."
"국모요?"
자영이 해연히 놀라서 민승호를 쳐다보았다.
이심전심이었던가.
그 동안 민승호가 은미하게 추진하고 있던 일이 그것이었던가,
하고 생각하 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물론 재황이 겸병학의 딸과 정혼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재황은 국왕 이야."
"....."
"더욱이 재항의 혼례는 매형인 흥선대원군의 머리 속에 있다고
봐야 해."
"....."
"흥선대원군은 재황을 국왕의 자리에 앉히고 안동 김문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김병학의 딸과 재황을 정혼하게
한거야."
"....."
"허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 흥선대원군이
명실상부하게 정권을 장악 하면 파혼을 하게 될거다. 왜 그런지
알겠니?"
"약간은 짐작이 가옵니다."
"그래. 너도 총명한 아이니까 짐작을 하고 있겠지만
흥선대원군은 두 번 다시 외척이 발호하지 못하게 할 것이
뻔하다. 김병학의 딸과 국혼을 맺어 안동 김문이 또다시
척족정치를 하게 하지 않을 거야....."
"......"
"너에게 한번 물어보자. 재황의 색시가 되고 싶으냐?"
"오라버니?"
자영은 재빨리 고개를 떨어트렸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뜨거웠다.
"그럼 다시 묻자. 일인지상 만인지하인 국모가 되고 싶으냐?"
"오라버니, 저처럼 미천한 계집이 어찌 그런 자리를 탐을
내겠사옵니까?"
"허허... 여중장부인 네가 부끄러워 할 때가 다 있구나!"
민승호가 무릎을 치며 너털대고 웃어댔다. 자영은 민승호에게
얼굴을 붉히고 눈을 흘겼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러 있는데 무엇을 부끄러워 한단 말이냐?
내가 너의 오라비이니 부끄러워 할 필요 없다.!"
"......"
"명문가의 규수라면 누구나 국모의 자리에 마음이 있을
것이다. 결코 흠이 아니야."
"......"
"이 일은 내가 추진할 터이니 조금도 걱정하지 말아라."
민승호의 말이었다.
이튿날은 비가 왔다.
자영은 방문을 열어 놓고 봄미가 내리는 바깥을 오랫동안
내다보았다. 비가 내리는 담장 저 너머로 안개에 싸인 듯한
궁궐의 담장이 잿빛으로 보였다.
궁궐과 가모다은 지척지간이다. 자영은 안개처럼 내리는
봄비사이로 재황의 얼굴을 아련히 떠올렸다. 재황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 그가 손이 닿지 않을
국왕이 되었기 때문일까. 도대체 국왕이란 얼마나 높은
신분일까......
앙상한 나뭇가지를 적시며 봄비가 오고 있기 때문인지 그녀의
마음도 연두빛 으로 물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완연히 봄이야.....)
자영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
문고리가 얼어붙고 언 하늘이 쩡쩡 갈라지는 겨울이 갔다는
사실이 자영의 가슴에 알 수 없는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3
장대비가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1865년 8월.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입궐도 하지 않고 사랑채 대청마루에서
세찬 소낙비가 장대질을 해대는 하늘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어둠침침한 하늘이었다. 이틀째 장마가 계속되어 도성이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하게 젖어 있었다. 장대비가 그치고 나면 또
고질이 돌 것이다.
(난제야, 난제...)
대원군은 뒷짐을 지고 이마에 내 천(川)자를 옆으로 그었다.
그가 장고를 하는 것은 해마다 찾아오는 괴질 때문이 아니라
고종 때문이었 다. 고종이 벌써 여자를 가까이 하고 있었다.
고종의 나이 이제 불과 열 넷, 그 나이에 여자를 가까이 한다는
사실이 대원군은 얼핏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었다.
(궁녀가 꼬리를 친 것인가?)
고종은 나이가 어리기도 하지만 심약한 성격이었다. 스스로
궁녀를 침전으로 불러 들였을 리가 만무했다. 고종이 아무리
만인지상의 자리에 잇는 국왕이라고 해도 낮에는 내관들이,
밤에는 노(老)상궁들이 침전까지 수발을 들었다. 일개 궁녀가
지밀인 고종의 침전까지 드나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궁녀는 누군가의 비호를 받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이 일을 어쩐다?)
대원군은 난감했다. 그러잖아도 중전(中殿)의 간택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었다. 아직은 철종의 국상중이어서
그 문제가 물밑에서 은밀히 거론되고 있을 뿐이지 국상이 끝나면
활발하게 논의될 것이 분명했다.
이미 안동 김문과 대왕대비 조씨는 대원군에게 은밀하게
압력을 넣고 있었다.
조 대비는 영의정 조두순의 손녀딸을 밀고 있었고 안동 김문은
좌의정으로 승차한 김병학의 딸을 밀고 있었다. 김병학은 자신의
딸이 국모로 간택되었다고 믿고 그 사실을 기정사실화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사사롭게는 며느리고 공적으로는 국모였다. 누구의
딸이 간택되느냐에 따라 조정의 권력분포가 새롭게 편성되는
것이다. 좌의정 김병학의 딸은 인물이 출중하고 학문이 높은
규수였다. 그리고 이미 김병학과는 정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그러나 철종의 국상이 끝나가 고 고종의 국혼을 생각해야 할
시기에 이르자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김병학은 학문이나 경륜에 있어서 나무랄 데 없는 인물이었다.
그 딸 역시 서시에 버금간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아름다운
규수였다. 그것은 대원군 자신도 친히 보아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안동 김문의 일족이라는 것이 그를 주저하게
하고 있었다. 안동 김문의 일족이 국모가 외면 또다시
척족정치가 기승을 부려 삼정이 문란해 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다.
(아까운 규수인데.......)
그것은 영의정 조두순의 손녀딸도 마찬가지였다. 조 대비가
섭정을 하고 조두순이 영의정으로 있는 동안 조재응(趙在應)을
경기감사에, 조영하(趙寧夏)를 대교(待敎)에, 조성하(趙成夏)를
대사성(大司成)에, 조헌영(趙憲永)이 형조판서 에 임명되는 등
조씨 일문의 조정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었다.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조두순은 풍양 조씨는 아니었다. 그러나
조 대비와 친밀한 사이였다.
여기에 중전까지 영의정 조두순의 손녀딸로 간택이 되면
날개를 달아 주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재는 조정의
권력분포가 대원군 이하응과 영의정 조두순, 좌의정 김병학이
삼분(三分)하고 있는 가운데 대원군이 약간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형상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국왕의 생부인 대원군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실제 내막은
그렇지가 않았다.
(집안이 조촐해야 돼....)
대원군은 샛강 쪽을 묵연히 응시했다.
민승호도 최근들어 운현궁 출입이 잦았다. 자신의 양부인
민치록의 딸 때문 이었다. 민승호는 민치록의 딸을 국왕의
왕비로 들이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민승호는 대원군의 친처남이었다. 고종에게는 외숙이 되므로
외척의 우려는 별로 없었다. 다만 민치록이 일찍 죽은 탓에
중전의 단자를 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국법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삼사(三司)의 반대가 격렬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대감마님, 감고당 아기씨께서 문안드리러 오셨습니다."
그대 안방 침모인 유씨(柳氏)가 들어와 허리를 숙였다.
"누구라고?"
대원군 이하응은 눈을 번쩍 뜨고 유씨를 쏘아보았다.
"감고당 아기씨께서 오셨습니다."
"감고당?"
"예."
"민치록의 딸 말이냐?"
대원군은 알고 있으면서도 물었다. 자신이 며느리감에 대한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는데 찾아온 것이 기이해서였다.
"예. 내당마님께서 만나실 것인지 여쭈어 보라 하셨사옵니다."
"만나겠다고 여쭈어라."
대원군은 뒷짐을 풀고 유씨에게 일렀다. 민치록의 딸이 부인과
민승호에 대해 며느리감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민치록의 딸은 대원군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인물도
가려(佳麗)한 편이고 학문도 규수로서는 드물게 추룽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인현왕후의 혈통이니 오죽할까.......)
대원군은 대청에 책상물림을 하고 앉았다. 며칠 전 장순규의
동생 장순아로부터 고종이 궁녀 이씨를 총해한다는 보고를 받고
부인에게 비나가는 말처럼 주상이 성혼할 나이가 되었나 보오,
하고 말했었다. 그러자 민씨 부인이 대뜸,
"마땅한 규수를 물색하리이까?"
하고 바싹 달려드는 것이었다.
"어디 그런 규수가 있소?"
대원군은 어리둥절해서 반문했다. 그는 그때까지도 김병학의
딸을 며느리감으 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보다 좌의정 대감댁과는 어찌하시렵니까?"
"글쎄......"
"설마 안동 김문을 또 국구로 삼으시지는 않겠지요?"
"영초와는 정혼을 한 사이가 아니오?"
"주상이 되기 전의 일이지요."
"그래 부인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당연히 파혼을 해야지요."
"부인! 인륜지대사를 어찌 그리 가볍게 여기오?"
"안동 김문을 60년이나 외척정치를 했습니다. 명색이 이
나라의 상감인데 왕비감이 안동 김문밖에 없습니까?"
민씨의 말이었다. 대원군은 그날 더 이상 그 얘기를 하지
않았으나 속으로 짚이는 데가 있었다. 그것은 최근에 서학에
빠져 들고 있는 민씨가 김병학이 천주교를 반대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 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주교
탄압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김병학뿐이 아니었다. 수렴청정을
탄압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김병학뿐이 아니었다. 수렴청정을
하고 있는 조 대비를 비롯하여 영돈령부사 정원요, 영의정
조두순, 좌의정 김병학 등 6조의 판서들 대부분이 천주교 탄압을
강경하게 중장하고 있었다.
이내 민치록의 딸이 사랑채에 모습을 드러냈다. 뒤에는 민씨도
따라오고 있었다.
"대감마님, 그 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민치록의 딸이 대례를 올리고 나서 다소곳이 물었다.
"그래, 너도 별일 없었느냐?"
민씨가 그의 옆에 와서 앉았다. 대원군은 낮게 헛기침을 했다.
"부대부인 마님의 자애로운 보살핌을 받아 잘 지내고
있사옵니다."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 있는 듯했다.
대원군은 민치록의 딸 민자영을 실눈으로 지긋이 살펴보았다.
눈매가 곱고 얼굴이 갸름했다. 살빛은 뽀얗게 흰 편이었다.
광대뼈가 튀어 나오지 않고, 하관이 길거나 뾰죽하지 않아
귀인의 풍모가 은연주에 풍겼다.
"게 좀 앉거라."
대원군은 장죽을 입에 물었다. 민자영의 미모가 김병학의 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예."
민자영이 조심스럽게 대청마루의 한 켠에 앉았다.
"자당께서는 혼후가 어떠시냐."
자당이란 민자영의 어머니 이씨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요즈음은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오래비는?"
대원군의 처남 민승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무고합니다."
대원군이 부싯돌을 쳐서 장죽에 불을 붙인 뒤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규수티가 완연한 자영의 자태가 대원군의 한 눈에
들어 왔다.
"금년에 몇 살이냐?"
"열 다섯이옵니다."
"과년했구나!"
대원군 이하응의 입에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말은 호기에
이르렀다는 뜻도 되지만 혼기를 놓쳤다는 뜻도 되었다. 자영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느꼈다. 대원군의
안광이 자신의 온몸을 매섭게 훑어보고 있었다.
자영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대감 기민교혜한 아이입니다."
민씨가 옆에 앉아 있다가 참견을 했다.
"일찍 선친을 여의어서 적막하게 자랐지요."
"......."
대원군은 입을 꾹 다물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민치록은
영양부원군 민유중의 후손이다. 현황후처럼 뛰어난 부덕을 갖춘
왕비를 배출했으니 여흥 민씨는 당대의 명문이다. 대원군의 부인
민씨 또한 여흥 민씨이고 민치록의 딸과는 12촌 자매지간이다.
가문은 더 이상 흥 잡을 것이 없다.
"학문도 빠지지 않느다 합니다."
민씨가 또 참견을 하고 나섰다. 아무래도 민치록의 딸을 이미
며느리감으로 점지하고 있는 눈치였다.
"규수가 학문이 높아서 무얼해? 안 그렇느냐?"
대원군이 자영에게 퉁명스럽게 내쏘았다.
"....."
자영은 섣불리 대답을 할 수 없어 마른 침만 꿀꺽 삼켰다.
"재황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성군의 재목으로 아옵니다."
"어째서?"
"아버님 되시는 국태공 저하께서 학문을 이도하시고 어머님
되시는 부대부인께서 내훈에 따라 훈도하셨으니 어찌 성군이
아니 되시겠습니까?"
자영의 목소리는 나아랑하기까지 했다. 옥음(玉音)이란 저런
목소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대원군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시집은 언제 가려느냐?"
"형부께서 인도하여 주십시오."
"형부?"
자영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대원군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쩍 벌어졌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산정수전을 다 겪은 대원군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국왕의 생부인 자신을 사사로이 형부라고 부르는
민자영의 당돌함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사로이 형부되시니 과년한 처제의 혼사를 주서하시는 것도
아름다운 일인 줄 아옵니다."
"허어!"
대원군은 감탄을 했다.
부대부인 민씨가 민치록의 딸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것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나이가 열 다섯 살밖에 안 되지만
규수로서는 드물게 총명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극진하다고
했었다.
또 어린 규수의 입에서 형부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기분좋은
일이었다. 자신 도 모르게 장난끼가 발동했다.
"그럼 내가 정하는 혼처로 시집을 가겠느냐?"
"믿고 따르겠사옵니다."
"곰배팔이에게 시집을 가라해도?"
"소녀를 떠보시는 말씀인 줄은 아옵니다만 형부의 뜻이라면
따르겠사옵니다."
"정녕?"
"분부 받자올 뿐입니다."
"재황이에게 보낸다면?"
"따르겠사옵니다."
거침이 없는 대답이었다.
"재항이가 누구냐?"
"사사로이는 13촌 조칸님이 되옵고 공적으로는 조선 팔도의
지존이십니다."
"그런데도 시집을 가겠다는 말이냐?"
"형부의 분부를 받자올 따름입니다."
"재항이에게 시집을 가겟다 함은 조선의 국모요, 중전이
되겠다는 뜻인데 그 일이 가할 것 같으냐?"
"모든 것은 형부의 마음 속에 있는 일인 줄로 아옵니다."
대원군이 다시 또 고개를 끄덖렸다. 민치록의 딸 민자영의
대답은 흡족한 것이었다. 가슴 속이 훈련하도록 대답이
시원시원했다.
(민치록의 딸을 중정으로 간택해야 하겠어.....)
대원군은 마음 속으로 그렇게 결심했다.
그러나 대원군은 다른 말을 입에서 뱉았다. 민자영은 떠보기
위해서였다.
"허나 재황은 조의정댁 따님과 정혼이 되어 있어."
대원군은 말을 뱉아 놓고 민자영의 얼굴을 곁눈으로 살폈다.
민씨가 무엇인가 말참견을 하려는 것을 대원군은 재빨리 준짓을
보내 제지했다.
"......"
민자영은 아무 대꾸가 없었다. 얼굴이 창백해 진 채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너의 혼처는 내가 달리 알아보도록 할 테니 심려하지
말아라."
대원군은 한마디 더 매뱉았다. 민치록의 딸에게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
"김병문에게 장성한 자식이 하나 있다더구나."
"......"
"그만 돌아가거라."
대원군은 헛기침을 했다.
"예."
민자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일어나서 뒷걸음으로
불러갔다.
"어찌 하시려구요?"
"부인은 모른 체하고 있소."
"저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부인이 관여할 일이 아니오. 그만 내당으로 건너가
천주학책이나 보구려."
민씨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대원군을 쳐다보고는 획
몸을 일으켜 대청을 나갔다. 찬바람이 도는 것 같았다.
대원군은 대청에서 혼다 남아 장죽을 빨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빗발이 여전히 장대질을 하고 있었다. 장하게 오는
비였다. 벌써 경상(慶尙), 전라(全羅 )두 지방에는 폭우로 인해
인명피해가 2백 70여명, 미가 유실이 2천 44호, 선박 파손
8백75척, 염전 훼손이 71개터나 된다는 장계(狀啓)가 올라와
있었다. 농지 유실이 얼마나 될지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비도 난리고 주상의 혼례도 난리로군....)
김병학과 파혼을 해야 하는 일이 난제 중의 난제였다. 폭우야
하늘이 내리는 재앙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김병학에게 파혼을 선언하는 것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이었다.
4
바람에 일렁거리던 등잔불이 휙 꺼졌다. 자영은 호롱에 다시
불을 붙이려다가 그만두고 밖을 내다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사방이 칠흑처럼 캄캄한 가운데 여전히 세찬 빗줄기가
장대질을 하고 있었다.
(흥선대원군, 그는 정말 무서운 인물이야.....)
자영은 어둠 속에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얼굴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그가 집정하여 개혁한 일들이 하나씩 머리에 떠올라 왔다
대원군은 집정하자 왕조의 중흥에 최대의 역점을 두었다. 그는
근대적인 독재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척족정치를
과감히 청산하고 인사혁신을 단행했다. 또한 서원을 철폐하고
경복궁을 중수하기 시작해 임진왜란으로 수도다운 위엄이 없던
한성을 웅장한 모습으로 되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6조 관청까지 다시 중건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숭례문(崇禮門:남대문) 에서 광화문(光化門)까지의 6조 거리가
활기로 넘치고 있었다.
한편 조정 대신들의 넓은 갓과 도포 소매를 짧게 하여 신풍을
일으켰다. 세제를 개혁하여 양반들까지 세금을 물려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하고 폐풍(弊風)과 악습을 뜯어고쳤다. 경향 각지의
양반과 토호(土豪)들이 백성들을 마구잡이로 수탈하고
부녀자까지 겁탈하는 일이 빈번했으나 이를 엄격히 금지하는
한편 양반들에게도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독려했다. 대원군의
내정 개혁은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게는 구세주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때를 전후야여 조선의 국시나 다름없는 유교에 매치되는
신흥 종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신흥 종교와 함께 출처를 알
수 없는 도참설(圖讖說)도 끊임없이 나돌았다.
-이씨(李氏)는 망(亡)하고 정씨(鄭氏)는 흥하되 그
도움(都邑)은 공주 계룡산(公州 鷄龍山)이 되리라
-이씨(李氏)5백 년에 혁명(革命)이 있을 것이다.
-대원군(大院君)은 만인(萬人)으로 인하여 패(敗)하리라.
대체로 이런 것들이었다. 이에 앞서 경복궁
의정부(議政府)청사 밑에서 푸른 돌이 발견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 있어 화제를 뿌렸다.
이는 계해년 말에 새 임금이 즉의하는데 경복궁을 지어 임금의
자리를 옮기게 되면 국운이 부흥하고 백성이 부강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경복궁을 중수하는 대역사의 당위성을 선동하는
글이었다. 그 옆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까지 씌어 있어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동방노인
동방노인이 비결을 전하는 것이니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
역적이 된다는 뜻이었다.
자영은 그런 품문을 낱낱이 듣고 있었다. 민심이 흉흉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풍문이었다. 올해도 흉년이었다. 붐에는
한해(旱害)때문에 논밭이 갈라지더니 여름엔 늦장마까지 들어 큰
수해(水害)가 나고 가을엔 바람이 크게 불어 농작물을 쓰러트런
것이었다.
종교가 기승을 무리는 것은 사회가 어지럽고 혼란에 빠져 있을
때이다. 이 무렵은 서학(西學)과 동학(東學)이 크게 성행하였다.
동학을 일으킨 교주 최제우(崔濟寓)는 경주
가정리(柯亭里)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신라 말기에 이름을
멸치던 최치원의 후손으로 아버지 최옥(崔沃)은
도학자(道學者)로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최제우는 6세에
어머니를 잃고 10년 후인 16세 때에 다시 아버지를 잃는 불행을
겪게 되었다. 그는 당시의 조선 실정을,
"임금은 임금 같지 못하고 신하는 신화 같지 못하며 아버지는
아버지 같지 못하고 아들은 아들 같지 못하였다."
라고 하였다. 최제우는 이어서,
"이 세상은 요(堯)임금이나 순(舜)임금이 다시 살아 온다고
해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라고 단언한 데, 오랫동안 도를 연구하여 인내천 (人乃天)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나의 도는 천도다'라고 말한 뒤, 학은
동학이라고 내세웠다. 동학은 그 후 영남지방을 무대로 빠르게
확산되어 교도들이 늘어났고 철종 13년 에는 호남과
기호지방까지 휩쓸어 경주 진영에서는 일단 최제우를 체포하여
문초했으나 교도들이 수백 명씩 몰려와 항의를 하는 바람에
석방하고 말았다. 그러나 조정과 유림의 여론이 비등하자
대원군은 정상감사에게 동학을 엄중히 다스리라고 지시했다.
이에 경상감사는 최제우를 대구 장대(將臺)에서 처형한 뒤 그
목을 효수하고 점주들을 귀양보냈다.
서학은 천주교를 일컫는 것으로 이를 믿는 자들을 서교도라고
불렀다. 영조와 정조시대부터 박해를 받아왔으나 철종 때에
이르러 박해가 완화되자 외국 신부들 까지 조선에 들어와 포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겨울이 왔다. 그 무렵 북면에 로서아(露西亞)가 침노할 것이
라는 풍문이 공공연히 나돌아 조정을 바짝 긴장하게 하였다.
전에도 로서야인들은 간간이 두만강을 건너와 약탈을 하기도
하고 통상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조정에서는
하친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로서아이들을 되돌려 보냈었다.
그러나 로서아가 통상을 하지 않으면 전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국서를 보내 보내 오자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게다가
몇 해전에는 영불연합군(英佛聯 合軍)이 청나라 북경에 침입하여
청황제가 열하(熱河)로 피난을 가는 사태까지 일어났었다.
그리하여 로서아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해 오자 백성들은 공포에
떨게 되었던 것이다. 양반들 중에는 로서아가 침입해 온다는
풍문이 돌다 깊은 산으로 들어가 숨고, 미처 숨지 못한 사람들은
식솔들을 지방으로 피신하게 하는가 하면 십자가를 만들어
가슴에 걸고 서교도인 체하는 사람도 있었다. 로서아인들이
서교도는 죽이지 않는다는 풍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영은 이런 풍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자영에게는
그럴 여가가 없었다. 자영의 머리 속에는 오직 고종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대원군으로부터 재황이 김병학의 딸과 정혼이 되어 있고
대원군이 자영을 김병문의 장성한 자식에게 혼처를 알아보겠다고
했을때, 자영은 천 길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운현궁의 사랑채 대청에서 일어나 월동문을
나설 때는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간난이와 함께 장대비를 고스란히 맞고 집으로 돌아오자
자영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서럽게 울었다. 아버지 민치록이
죽었을 때보다 더욱 슬펐다.
"몹시 상심했나 보구나."
부대부인 민씨가 감도당으로 자영을 찾아온 것은 그날 저녁의
일이었다. 자영은 퉁퉁 부은 눈으로 민씨를 맞이했다.
"대감마님께서 너를 중전의 재목으로 점지하고 계신다.
대감마님께서 너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그저 네 마음을
떠보기 위한것이었다고 하더라."
"언니!"
자영은 민씨 부인의 품으로 쓰러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헛되이 소문을 내어서는 아니 된다. 나나 승호가 너를
중전의 자리에 앉히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해선 안돼."
"네."
자영은 민씨에게 깊이 감사했다. 마치 죽었다가 소생한
기분이었다.
"사사로이는 며느리고 공적으로는 국모의 자리다. 그런 광영된
자리에 다른 문중의 규수를 앉히고 싶지는 않다. 여흥 민씨가
어떤 집안이냐? 인현황후를 배출한 명문세가 아니냐? 우리대에
이르러 영락하긴 했지만 안동 김문에 떨어질 가문이 아니다.
어질고 자애로운 왕비가 되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자영은 거듭 다짐을 했다.
이내 민승호가 퇴청했다. 민씨는 민승호를 안방에서 따로 만나
무엇인가 오랫동안 얘기한 뒤에 돌아갔다.
"자영아, 이제 비로소 네 소원을 이루었구나!"
민씨가 돌아가자 민승호가 자영의 방으로 건너와 축하를 했다.
"오라버님, 감당하기가 어려운 기쁨이옵니다."
자영은 솔직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민승호에게 털어 놓았다.
비는 밤에도 계속해서 퍼부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였다.
자영은 빗소리를 들으며 인현왕후전을 읽었다. 입언저리에는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그려졌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나는 이 나라 국모가 될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온몸이 떨렸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재황의
얼굴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라 왔다. 대원군을 만나고 민씨가
감고당까지 찾아온 일이 꿈 같기만 했다.
대원군은 경복궁 중수(重修)에 몰두해 있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어 그 궁지(宮地)만 남아 있었는데
대원군이 왕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대역사(大役事)였다. 경복궁 중수는 순조대왕 때도 추진된 일이
있었으나 재정이 없어 포기했었다. 그러나 대원군은 경복궁
중수를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대소신료들이 완강하게 반대
의견을 제시했으나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영돈령부사 정원용은 ,
"수백 년 동안 불황지사(不遑之事)로 내려온 것인데 지금 이
대업을 시작하려 면 국용(國用)과 민력(民力)을 먼저 살핀뒤에
여려 전각 중에서 차례를 정해 건조하여야 하옵니다."
하고 완곡하게 반대했다.
영의정을 사임한 김좌근과 판돈령부사 이경재 등도,
"원체 대업이며 재력을 창졸지간에 판출(瓣出)하기 어려우니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하고 은근히 반대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영의정 조두순과
좌의정 김병학은 찬성했다. 조 대비도 대원군과 뜻을 같이 했다.
마침내 고종 2년(1865년) 4월에 경복궁 중수가 시작되었고, 한
달이 채 못 되어 공사장에 불려온 부역자의 수가 4만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대원군은 영건도감(營建都監)을 설치하고
도제조(都題調)에 조두순과 김병학을 임명했다.
고종 2년의 경복궁 주건 소사(小史)는 다음과 같다.
4월2일(음력)대왕대비 경복궁 중건을 명함.
4월3일 경복궁 중건의 대역사를 대원군에게 위임.대원군
영건도감을 설치하고 도제조에 조두순, 김병학을 임명.
4월13일 경복궁 중건 고사 착공.
4월 16일 경복궁 중건 공사에 참여한 중건에 참여한 농민들을
귀가시킴.
5월3일 작농(作農)의 실기(失期)를 우려하여 경복궁
중건공사에 지원한 부역자 들도 귀가시킴.
5월3일 영건도감, 자원부역민 3만 5천 8백 81명에게
사기진작을 위한 격려금 조로 1전(錢)씩 분급.
5월 9일 영건도감의 건의에 따라 각 능원(陵園)내의
거목(巨木)도 벌채하여 중건 공사에 사용토록 함.
6월 1일 경복궁 중건에 쓸 목재를 벌채한 공지에 나무를
심도록 함.
6월 19일 황해도에 폭우, 압사2명 표류 민가 1백16호.
7월 30일 포도청의 곡가 조작을 엄금.
7월 30일 경상, 전라, 지방에 폭우, 인명피해 2백70여명, 민가
유실2천 44호, 선박 파손 8백 75척, 염전 파괴71개처.
9월12일 폭풍우로 피해 입은 제주도에 내폐금 2천냥을 하사.
9월13일 전라도 관찰사로 하여금 곡식 1천 석을 제주도로
보내게 함.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고사는 초기에는 상당한 성광를 거두고
있었다.
대원군은 또 조정의 개혁을 단행하여 비변사를 폐지하고
삼군부를 설치하여 현재의 잔상들에게 겸직하도록 했다.
비변사는 중종(中宗)때 설치되어 군사의 사무를 맡아보더
관청이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의정부를 대신하여 정치의
중추기관이 되어 폐단이 많았다. 이는 정조대왕(正祖大王)도
폐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런데
대원군은 이를 일거에 폐지했을 뿐 아니라 강화부(江華府)를
승격시켜 진무영(鎭撫營)으로 삼고 별효사(別驍士)를 모집하여
배치하였다. 또 양화진(揚花鎭)에 포대(砲臺)를 쌓아 도성의
수비를 견고케 하는 한편 북변(北邊)에서는 무주(茂州),
후주(厚州), 강계(江界), 자성(慈城) 등의 4군(4郡)을 다시
설치해 내지민(內地民)들을 옮겨 개척케 했다. 또
재상(宰相)이하에게는 반드시 말을 타고 다니게 하여 외침에
대비하도록 했다. 물론 이러한 모든 것은 자영이 성 안에 떠도는
풍문과 민승호가 가져온 조보(朝報:관보)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자영은 조보를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정독했다. 그런
까닭으로 자영은 조정의 소식에 정통할 수 있었다.
대원군은 서슬이 퍼런 정치를 하고 있었으나 일반
백성들로부터는는 칭송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양반들에게는 신포(身布)를 징수했을 뿐 아니라
팔도의 감사(監司 )에게 영을 내려 조세(租稅)의 징수를
철저하게 했는데 양반이 세금을 내지 않으면 참수(斬首)까지
했던 것이다.
경복궁 중건도 처음엔 활당하게 시작되었다. 원납전을 거두어
부역자의 임금 으로 지급했을 뿐 아니라 일인당 1전씩을
위로금으로 지급하여 격려했다. 그리고 성내(城內)의 양반을
공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자영의 집-감고당에도 두 사람의 부역자가 들어 있었다.
그들의 수발을 간난이가 들고 있었으나 자영은 탓하지 않았다.
자영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오로지 중전 간택뿐이었다.
자영은 크게 우려하는 것이 한가지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
민치록이 일찍 죽은 것과 어머니가 계실(繼室)이라는 점이었다.
아버지 민치록은 오씨와 혼례를 올렸으나 오씨가 생산을 하지
못하고 병으로 죽자 자영의 생모 이씨를 계실로 맞아들였던
것이다.
국법에는 과부가 단자(單子)를 내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폄모 슬하에서 자란 규수가 국모의 재목이 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대원군만 용인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텐데......)
자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대원군은 이미 그 사실까지 파락하고 있었다. 그는
고종의 국혼을 계기로 조 대비의 수렴청정을 거두게 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대감, 이제 상기가 끝나가고 있으니 주상이 국혼을
준비해야겠지요?"
대원군이 희정당에서 정사를 마치고 나올 때 조 대비가 넌지시
대원군을 불러 한 말이었다. 상기(喪期)란 철종의 국상 기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하옵니다."
대원군은 허리를 숙여 조용히 대답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내가 듣자니 주상께서 궁녀를 가까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감은 알고 계시겠지요?"
"대비마마, 신은 근시초문이옵니다."
대원군은 시침을 뚝 떼고 거짓말을 했다.
"아니 대감께서 모르신다는 말씀이오?"
"대비마마, 지엄한 궁궐의 일이라 신이 알 까닭이 없사옵니다.
대체 어느 궁녀라 하옵니까?"
"내가 듣기에 무수리 나인 이씨라 하더이다."
"나이는 몇이구요?"
"열 일곱이라 하던가....."
"허허....!"
대원군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대감."
"예."
"주상의 보령이 열 넷이면 적다고 할 수 없소.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국혼을 준비합시다."
"대비마마, 대비마마의 분부 지당하온 말씀이오나 주상전하는
소신이 어릴 적에 정혼을 맺은 규수가 있사옵니다."
"아니 그게 누구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좌의정 김병학의 딸이옵니다."
"김병학의 딸이라구요? 대감! 대감은 또다시 안동 김문에
이나라 왕실을 맡길 작정이오?"
조 대비의 언성이 높아졌다. 대원군은 움찔했으나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발 뒤의 잔뜩 화가 나 있을 조 대비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신이 불우한 시절에 맺은 언약이라....."
대원군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 끝을 흐렸다.
"대감, 그 언약은 주상이 보위에 오르기 전의 사사로운
언약이오 국혼은 이 나라 조선 팔도의 꾸모를 간택하는 일이니
사사로운 언약은 의당 파기해야 하오!"
조 대비의 목소리가 서릿발처럼 싸늘했다.
"항송하옵니다."
"좌의정 김병학에게도 간택에 참여할 기회는 주겠소! 허나
사사로이 맺은 언약은 파기하시오!"
"대비마마, 분부 받자옵겠습니다."
대원군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대감."
대비가 지나치게 대원군을 몰아 세웠다고 생각했는지 목소리를
낮췄다.
"예."
"국혼에 고나한 일은 대감에게 위임하겠소."
"항송하옵니다."
"신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변 국혼에는 부친을 여읜 규수도
참여케 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부친을 여읜 규수요?"
조 대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것이 발 너머로 보였다.
"대감, 어찌하여 부친이 없는 규수를 간택에 참여케 하려는
것이오?"
"전례에 없는 일인 줄은 아오나....."
대원군은 잠시 뜸을 줄였다.
"그러면 부원군이 없지를 않소? 국법에 어긋나는 일이오."
"대비마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영상 댁에 출중한 규수가
있다는 풍문이 있기에..."
"영의정 조두순 대감 댁이오?"
"예. 영상댁 손녀딸이 인물이 출중하고 학문이 높다는 소문이
있사온지라..."
"그렇지. 영상 댁에 그만한 규수가 하나 있지...."
조 대비가 머리를 끄덕이는 시늉을 했다. 영의정 조두순과
조대배는 긴밀한 사이인 것이다.
"허나 국법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오?"
"대비마마, 이 나라 지존인 금상의 혼례이옵니다. 대비마마의
지엄한 분부라 면 아무도 거역하지 못할 것으로 아옵니다."
"음."
조 대비가 낮게 신음을 토했다. 영의정 조두순의 손녀딸을
국모로 책봉하면 풍양 조씨가 다시 권세를 잡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조두순의 손녀딸은 조실부모하여 할ㅇ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그런 규수를 국모로 책봉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인
것이다.
"대비마마, 신의 좁은 소견으로는 영상 댁 규수를 간택
절차없이 국모로 맞아 들이고 싶사옵니다."
조 대비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대원군은 한 술 더 떴다.
조 대비는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간택 절차 없이오?"
조 대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하옵니다."
"대감께서는 영상 댁 규수가 그리도 마음에 드오?"
"아비를 보면 자식을 안다고 했사옵니다. 영상의 인품이며
학문이 출중하지 않사옵니까?"
"하기야 영상만한 재목도 드물지...."
조 대비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허나 김병학의 딸 문제도 있고 하니 간택 절차를 밟아야
하오."
"황송하옵니다."
"국상이 끝나는 즉시 금혼령을 내리고 규수들의 단자를 받아
들이도록 하시오."
"예."
"승정원에는 내가 조실부모한 규수의 단자도 받아들이라고
명을 내리겠소. 국혼의 대임은 대감께서 처리하시오."
"예."
대원군은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조 대비 앞을 물러나왔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대왕대비 조씨도 일개 여자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과 긴밀한
관계인 영의정 조두순의 손녀딸을 국모로 맞아들이고 싶다고
하자 조시부모한 규수의 단자가지 받아들이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이 조 대비의 수렴청정을 거두게 하려는
대원군의 계락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조 대비는 대원군이 물러가자 영의정 조두순을 대비전으로
불러들였다.
"대감, 대감의 손녀딸이 재색이 뛰어나다고 하던데 정녕
그러하오?"
"황송하옵니다."
"선왕의 국상이 끝나면 주상의 금혼령을 선포할 작정이오.
대감께서도 단자를 내도록 하시오."
"대왕대비마마, 금혼령이 선포되어 사대부가의 규수들이
단자를 내는 것은 지당하온 일이옵니다. 허나 신의 손녀는
재색이 부족할 뿐 아니라 조실부모 한지 라 단자를 낼 수
없사옵니다."
조두순은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백발의 노정승이었다.
수염이 은빛으로 희었다. 그의 말 한마디는 천금 같은 무게가
실려 있었다.
"대감."
"대왕대비마마, 이 일은 법도나 다름이 없사옵니다.
경국대전에 의하여 금혼령을 내리고 단자를 받아들여야
하옵니다."
"영상, 참 답답하오. 주상의 생친인 대원군이 대감의 손녀딸을
국모로 책봉 하고 싶어하오."
"하오나 경국대전에 없는 일이라....."
"대감, 대감의 손녀딸이 국모로 책봉도면 이 나라 조선팔도가
양주 조씨의 것이 되오. 어찌 법도 하나를 들어 막중대사를
그르치려고 하오?"
"황송하옵니다."
"아무 말 말고 간택 단자를 내도록 하시오. 대감네 양주
조씨와 우리 풍양 조씨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대감의 손에 달려
있소."
"......"
"영상, 내 말을 알아 듣겠소?"
"예."
조두순은 마지못해 대갑을 했다. 양주(楊州)조씨와 풍양
조씨의 흥망이 자신 에게 달려 있다고 하는 조 대비의 말에
조두순으로서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대원군은 12우러 9일에 금혼령을 선포했다. 철종의 국상이
끝난 다음날 이었 다. 전국에 간잭령이 내리고 규수들이 단자를
받아들이라는 지시가 승정원에 내렸다. 단자를 내는 기간은
12우러 20일까지였다. 승정운은 조실부모한 규수의 단자도
받아들이라는 대왕대비전의 지시에 어리둥절했으나 그대로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대원군은 가례도감(嘉禮都監)을 설치해 정사(正史)에 이경재,
부사(府史)에 대원군의 장인 민치구를 임명했다.
간택령이 내리자 전국의 사대부가는 떠들썩했다. 임금의
왕비요, 국모를 뽑는 행사였다. 용행히 중전으로 간택만 되면
본인의 영광은 물론이고 가문을 빛낼 수 있는 기회였다.
전국의 사대부가는 혼기에 이른 규수의 단자를 써서 승정원에
바쳤다. 그러나 단자를 써내는 사대부가가 모두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조선조 때는 사대부가 라고 해도 명문세가가 아니면
대부분 빈한하게 살았기 때문에 단자가 뽑혀 간택 에 참여하게
되어도 비용을 염출하는 일이 어려웠다.
.....그때 우리 집이 몹시 빈한하여 간택에 쓰일 옷을 해 입을
길이 도무지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간택에 참여하지
않으려고까지 하였으나 처녀 단자령에 수긍하지 않으면 나라에
죄를 짓는 일이라 억지로 참여하게 되었다.
우선 치맛감은 언니 혼수 때 쓰려던 것으로 대신하고, 속옷은
낡은 것을 깨끗하게 빨아서 헤진 곳을 기워 입히고 가마와 교전
비는 빚을 내어 마련 하셨다.
이것은 조선조 때 한 양반가문의 딸이 간택에 참여한 되에
남긴 기록이었다. 가난한 양반이었기 때문에 간택이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자영은 손수 단자(單子)를 썼다. 민승호와 자영의 생모 이씨,
민승호의 부인 이씨가 옆에서 지켜보았으나 초첩(初貼:첫줄)에
한성부 안국방이라고 정성스럽게 썼다. 자영의 필체는 이미
민승호에게 못지 않았다. 획은 연미하고, 부드러우 면서
깨끗했다. 한성부 안국방이라고 하는 것은 주소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 재첩을 써라."
민승호가 옆에서 말했다. 재첩(再貼)은 둘째 줄로 단자를 내는
규수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時), 그리고 사조(四祖)의 이름을
쓰게 되어있었다.
마지막 삼첩(三貼)에는 중국 연호와 월일(月日), 그리고
가장의 이름을 쓰게 되어 있는데 이름 앞에는 반드시
신(臣)이라는 글자를 먼저 썼다.
"수고했다."
자영이 단자를 다 쓴 것은 얼추 한식경이 자나서였다. 자영의
이마에는 땀방울까지 송송 맺혀 있었다.
(이제 나는 국모가 되는 거야.....)
자영은 가슴이 설레었다. 간택은 형식적인 행사가 될 것이
분명했다.
자영의 간택단자는 그날로 민승호가 예조에 바쳤다.
5
해(年)가 바뀌었다.
자영은 설레임과 흥분 속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처녀 단자를
낸 지 보름 째 되는 정월 초 닷새. 감고당 민자영의 집에
초간택에 참여하라는 승정원(承政院) 의 기별이 왔다.
상의원(尙衣院)에서는 옷감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자영은
초간택일이 하루하루 가까이 다가오자 불안하고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대원군의 서원철페, 경복궁 중건으로 나라 안이 어수선한데다
천주교 탄압 까지 시작되어 불길했다. 게다가 영의정 조두순의
손녀딸이 간택에 참여하고 대왕대비 조씨가 조두순의 손녀따을
중전의 재목으로 점찌고 있다는 소문까지 은밀하게 나돌았다.
민승호는 그 일 때문에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대원군의 처남인
민승호까지 대원군의 흉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동 김문의 권신들이 대부분 정계에서 밀려 났으나 김병학은
좌의정으로 승차해 있었다. 대원군은 낙척 시절부터 김병학과
친분을 두텁게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김병학의 딸이 간택에 참영할 게 분명해.....)
정치란 무상한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정치였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어 자영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상의원에서 내려온 옷감은 송화색(松花色)의 저고리감 두벌과
다홍치맛감 한 벌, 그리고 초록 견마기(故意)와 모시 속치맛감이
한 벌이었다. 선공감(鐥工監)에서는 운혜(운혜)도 한 켤레
내려왔다.
초간택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였다.
감고당에는 아침 일찍부터 자영의 일가친척들이 몰려들었다.
민씨 일문에서 중전 간택에 참영하는 날이었다. 국혼은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사라 가깝고 먼 친척들이 찾아와 치하도
하고 장차 국모가 될지도 몰를 규수를 구경 하는 날인 것이다.
감도당은 자영의 일가친척들로 떠들썩했다.
자영은 조심스럽게 모든 일을 준비했다. 자영의 생모인 어머니
이씨가 밤을 세우며 옷을 지었다.
초간택에 참여하는 규수들은 복식이 똑같아야 했다. 위에는
송화색(노랑)명주 저고리를 입고 그위에 덧저고리로 견마기를
입었다. 견마기는 초록색 당의였다. 치마는 다홍색인데 명주에
풀을 먹여 물방울이 구르도록 다듬어야 했다. 그것을 입으면
치마가 부챗살처럼 퍼졌다.
또 규수는 분을 바르는 것 외에는 얼굴에 성적(成赤)을 하지
못하도록 엄격 하게 금했다. 성적은 입체적 화장으로 이마를
사각으로 되게 족집게로 솜털로 뽑고, 눈썹을 초생달 처럼
그리며, 얼굴에 연지와 곤지를 찍는 것이었다.
자영이 단장을 모두 끝냈을 때 부대부인 민씨가 도착했다.
민씨는 국왕의 생모였다. 사람들이 황망히 민씨를 맞아들였다.
민씨는 자영의 방으로 가서 자영의 옷차림부터 살폈다. 간택은
형대비는 왕실의 가장 어른일 뿐 아니라 고종의 양어머니였다.
그것이 비록 승통을 잇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법적인 어머니인
것이다. 며느리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이 조 대비에게 있었다.
대원군과 부대부인 미씨가 자영을 점찍어 놓앗다고 해도 조
대비가 바구면 그만인 것이다. 자영과 민씨는 그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민씨가 대원군에게 그 점을 누누이 말했으나 대원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다.
"아름다움이 월궁 항아 같고 영명함이 선녀가 하강한 것
같구나."
민씨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모두가 부대부인 마님의 하해 같은 은혜이옵니다."
자영은 조심서럽게 대구했다. 민씨가 찾아준 것이 눈물이 나올
정도로 고맙고 든든했다.
"여러 가지로 마음이 쓰일 줄 안다. 네가 비록 총명한
규수라고는 하나 이런 큰 일을 앞에 두었으니 어찌 막막하지
않겠느냐?"
"....."
"나라에서는 천주교인들을 잡아 죽이라고 아우성이다. 국혼을
앞에 두고 이 무슨 해괴한 일인지....."
민씨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우리 대감은 성격이 불 같은 분이다. 천주교인을 잡아
죽이라고 한 것은 대감의 뜻이 아니다."
"....."
"그건 그렇고 오늘 간택이지? 대궐에 들어가면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너무 긴장하여 일을 그르치지 말고... 눈앞이
캄캄해 지거든 허벅지 살이라도 꼬집어 서 정신을 수습할도록
해라."
"예."
"나는 먼저 대궐에 들어가야 한다. 뒤따라 들어오너라!"
민씨가 몸을 일으켰다.
"어머님 고맙사옵니다."
"얘야, 천주교인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래."
민씨가 자영의 손을 꼬옥 잡았다가 놓았다. 자영은
아름다웠다. 자영의 나이 열 여섯, 한창 물이 오른 규수의
나이인지라 자태는 부용 같고 살빛은 뽀얗게 희었다.
부대부인 민씨가 대궐로 떠난 뒤 자영도 서둘러 가마를 타고
대궐로 향했다. 행길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그들은
국왕의 간택에 참여하는 규수의 가마를 보려고 아우성이었다.
(이제 나는 대궐로 들어간다......)
자영은 가마 아나에서 흥건히 미소를 지었다. 처음 타보는
가마라 흔들려 어지러웠으나 그래도 참을만 했다.
도 고종의 얼굴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라왔다. 고종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의 얼굴을 생각하자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
거렸다.
가마가 창덕궁을 향해 나아갔다. 자영은 밖을 내다볼 수
없었으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다. 그들의
쇠리가 귓전을 간지럽혔다.
"저 가마가 감도당 민 규수의 가마인 모양이지?"
"인현황후의 후손이래."
"민 규수는 서사에 능통하고 미태가 빼어났다며?"
"아무래도 감도당에 경사가 나겠어."
가마가 창덕궁을 앞에 멎었다. 자영은 가마에서 내려
궁문(宮門)턱을 넘을 때 미리 준비해 놓은 솥뚜껑의 꼭지를 밟고
넘었다. 무슨 까닭인지는 알수 없었으나 신부가 처음 시댁
문지방을 넘을 때 솥뚜껑 꼭지를 밟는 것은 민간에도 전해 지고
있는 풍속이었다.
궁문을 넘어서는 다시 가마를 탔다. 가마는 인정전(仁政殿)을
돌아 중희당 앞에 멎었다. 그 곳엔 초간택을 받기 위해 모인
규수들의 가마가 30여 개나 되었다.
(슈수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으니....)
자영은 또다시 불안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자신이 내막적으로
중전으로 간택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자 다소 안심이 되었다.
중희당 앞뜰은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규수들의 안내를 맡은
나인들과 의장고(義仗庫)의 교정(轎丁)들은 나라의 큰 행사를
맡아 부산하게 움직였다. 청룡, 백호의 의장기(義仗旗)가 하늘
높이 펄럭이고 규수들을 위해 청(淸), 홍(紅), 황(黃),
흑(黑)의사색 개(蓋)가 마련되었다. 개는 사(沙)로 이루어진
양산 모양의 의장이었다.
나인들은 차례로 규수들을 중희당의 큰 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차비(差備) 로 불리는 방으로 일종의 대기실이었다.
이윽고 30명의 아름다운 규수들이 중희당의 큰 방에 모였다.
규수들의 몸에서 꽃향기가 진동했다.
그 안에는 김병학의 딸과 영의정 조두순의 손녀딸도 섞여
있었다. 자영이 보기에 두 규수는 지극히 아름다웠다. 특히
김병학의 딸은 여자인 자영의 가슴 까지 울렁거리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우물이야....)
자영은 입술이 타는 것 같았다.
우물(尤物)은 가장 좋은 물건을 말하는데 여자에게 쓰일 때는
경국지색(傾國 之色)의 미인을 말하는 것이었다. 김병학의 딸은
그렇게 아름다웠다. 자영은 맹렬한 질투심을 느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규수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송화색의 노랑저고리와 다홍치마,
초록색 견마기를 똑같이 입었으나 키도 각각이고 몸매도
각각이었다. 얌전하게 앉아 있는 규수가 있는가 하면 초조하여
얼굴이 핼쓱하게 질려 있는 규수도 있었다.
자영은 태연하게 앉아서 기다렸다.
이내 간선(揀選)이 시작되었다. 간선은 선을 보이는 것이었다.
중희당의 넓은 대청에 발을 치고 규수들이 차례로 나가서
간선자인 왕족들에게 절을 하는 것이다.
그날 고종은 나와 있지 않았다. 자영은 재황이 보이지 않아
서운했으나 간선이 끝나자 중희당에서 점심을 대접받고
감고당으로 돌아왔다.
점심으로는 왜반기상에 국수장국, 신선로, 김치가 놓여 있었고
또 하나의 상에는 화채(화채)가 놓여 있었다. 화채는
후식이었다.
자영이 집으로 돌아오자 일가친척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일가친척들은 자영 에게 궁중에서 있었던 일을 이것저것
캐물었으나 자영느 재간택에 뽑혔다고만 대답했다. 기분이
찹잡했다. 중희당에서 간선을 보이던 일이 몇 번이나 머리 속에
떠올라 왔다.
"민 규수는 대왕대비전에 사배를 하시오."
차례가 되어 자영이 중희당의 대청으로 나가자 시립돼 있던
노상궁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영은 상궁 나인들의 부축을
받아 조심스럽게 사배를 했다. 자영은 상궁 나인들의 부축을
받아 조심스럽게 사배를 했다. 지엄한 대왕대비전 이었다.
그러나 발이 가려 있어 간선자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민치록의 딸이옵니다."
다만 발 건너편에서 폐부를 찌르는 듯한 대원군 특유의 낮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민치록이 누굽니까?"
50대 여인의 기품 있는 목소리였다.
"대왕대비마마, 영양부원군의 후손이옵니다."
"오, 그럼 인현왕후의 인척이 아니오?"
"그러하옵니다."
"대감, 그러면 저 규수도 재간택에 넣도록 하시오"
"황송하옵니다. 허나 아비되는 민치록을 여의어서....."
"대감 영상의 손녀딸로 조실부모 하지 않았소? 개의치
마시오."
민치록의 딸을 재간택에서 제외하면 영의정 조두순의 손녀딸도
재간택에 넣을 수 없을 것이다. 조 대비는 그런 까닭으로 한사코
민자영을 재간택에 넣으라고 하였다.
"그럼 분부 받자옵겠습니다."
대원군은 마지못해 응하는 척했다.
자영은 대왕대비 조씨와 대원군의 얘기를 들으며 대원군에게
배신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세한 재막을 알 수 없었으나
영의정 조두순의 손녀딸을 위해 자신이 들러리를 서고 있는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재간택은 초간택일로부터 보름 후에 실시되었다. 초간택에
뽑힌 7명의 규수들 이 다시 중희당에 모였다.
"네가 민치록의 딸이구나."
그날은 대청에 발이 쳐져 있지 않았다. 대왕대비 조씨는
자영이 인사를 올리자 만면에 홍조를 띄었다.
"예."
자영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자영은 대왕대비 조씨에게서
찬바람이 도는 것을 느꼈다.
"지엄한 자리이니 민 규수는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아미는
살짝 들도록 하십시오."
노상궁이 근엄하게 말했다.
"예. 항아님."
자영은 노상궁의 지시대로 시선을 내리깔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 중희당의 넓은 방에 대왕대비 조씨가 좌정해 있고 그
옆으로 왕대비 홍씨, 대비 김씨가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대원군은 대청 문쪽에 부대부인 민씨와 함께 서 있었다. 고종은
그날도 보이지 않았다.
"감고당의 민 규수는 물러가도록 하라."
대왕대비 조씨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싸늘했다.
"예."
자영은 다소곳이 대답하고 차비 방으로 물러나왔다. 대왕대비
조씨의 싸늘한 목소리를 생각하자 두 다리에 맥이 풀렸다.
재간택에서 떨어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 때문에 눈앞이
캄캄하기까지 했다.
차비 방으로 낮것(점심)이 나왔다.
자영은 재간택에서 떨어졌다는 생각 때문에 낮것을 들지
못했다.
그러나 그 시간 중희당의 넓은 방에 파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자영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재간택의 간선을 모두
마친 중희당의 넓은 방에서는 대왕대비 조씨와 두 대비, 그리고
대원군 사이에 한담이 오가고 있었다. 간선을 마친 뒤의 가벼운
설레임과 흥분에서 오가는 한담이었다.
"어떻소 대감, 이제 간선을 마쳤으니 삼간택에 올릴 규수들을
가려야지요?"
대왕대비 조씨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대왕대비마마."
"어ㄷ소? 대감께서 세 규수를 뽑으시겠소?"
"대왕대비마마께서는 하교해 주시옵소서."
"내가요?"
대왕대비 조씨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좌우의 두 대비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기쁜 표정이 역력했다. 대왕대비 조씨 옆에
앉아 있는 왕대비 홍시와 대비 김씨 는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나설 계제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대왕대비마마께서 세 규수를 뽑아 주시면 신이 주상전하의
생친된 도리로 중전의 재목을 뽑을까 하옵니다."
"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중전의 간택은 재간택 대
내막적으로 정해 온 것이 전례지요."
대왕대비 조씨는 대원군이 의당 영의정의 손녀딸을 중전으로
간택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럼 이 늙은이가 세 규수를 간선하리라."
"예."
대원군은 대왕대비 조씨의 얼굴을 주시했다. 대비들도
상궁들도 마른 침을 삼키면서 대왕대비 조씨를 주시했다.
"먼저 감도당의 민 규수."
대왕대비 조씨가 자영을 삼간택에 올리는 것은 영의정
조두순의 손녀딸을 위한 들러리로 삼기 위해서였다.
"당연한 간선이옵니다."
대원군이 맞장구를 쳤다.
"다음은 좌상 김병학의 영애 김 규수."
"타당한 간선이옵니다."
대왕대비 조씨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영의정 도두순 대감 댁의 조 규수."
"지당하신 간선이옵니다."
대원군의 예상대로였다. 대비들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예상대 로 왕비 후보가 뽑혔다는 뜻이었다.
"이제 대감의 차례요."
대왕대비 조씨가 미소가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대원군을
응시했다.
"예."
대원군은 잠시 뜸을 들였다. 대원군도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원군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흘러 나왔다.
"대왕대비마마. 중전의 재목은 대왕대비마마께서 가려
주시옵소서."
대왕대비 조씨의 입이 다시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그러하옵니다. 신은 감당하기가 어렵사옵니다."
"아니오. 대감은 주상의 생친, 당연히 대감이 뽑아야
도리일것이오."
"하오나 존엄하신 두 분 대비마마게서 계시고 왕실의 가장
어른이신 대왕대비마마께서 계신데 신이 어찌 중전의 재목을
가리옵니까?"
"대감.중전의 자리요, 국모의 자리이기도 하지만 사사로이는
대감의 며느리요 . 대감이 뽑아야 도리입니다."
"신은 대왕대비마마의 의중을 잘못 짚을까 심히 걱정이
되옵니다."
"대감의 뜻이 바로 우리의 뜻이오. 어서 중전의 재목을
고르시오.우리는 대감 이 어느 댁 규수를 고르더라도 대감의
뜻을 따르겠소."
대왕대비 조씨는 대원군이 한시 바삐 중전의 재목으로 영의정
조두순의 손녀딸을 점지하기를 기대하면서 대원군을 재촉했다.
"대왕대비마마의 분부가 지엄하여 신 감히 중전의 재목을
점지하옵니다."
대원군이 조용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대왕대비 조씨와 두
대비는 잔뜩 긴장하여 대원군의 입을 주시했다.
"신은 감고당의 민 규수를 중전의 재목으로 점지하옵니다."
대왕대비 조씨의 눈이 커졌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신이 보건대 감도당의 민 규수는 인현왕후의 혈손으로 그
가문의 어진 성품을 이어 받아 눈에는 정기가 흐르고 자태에는
총기가 넘치고 있사옵니다. 또한 규수로서는 드물게 서사에 두루
통하고 있는지라 중전의 재목으로 짝을 찾기 어려운
규수이옵니다."
대왕대비 조씨는 입을 딱 벌린 채 할 말을 잊고 있었다.
얼굴을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이럴 수가!)
대왕대비 조씨는 몸이 부르르 떨렸다.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대왕대비 조씨는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 대원군이 선동과 계략의 달인인 줄은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이리라고는 예상조차 못했었다.
(깨끗하게 당했어....)
감고당의 민 규수는 영의정 조두순의 손녀딸을 중전으로
간택하기 위한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거꾸로 영의정
조두순의 손녀딸이 감고당의 민 규수를 위해 들러리를 선
셈이었다.
"과연 잘 고르셨소."
대왕대비 조씨는 침통하게 내뱉았다. 눈에서 불길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왕대비 조씨는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대원군이
대왕대비 조씨의 수렴청정을 거두기 위한 1단계 계략에 지나지
않았다.
대왕대비 조씨는 대비전으로 올라오자 너무나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중전 간택의 생각만 해도 속이 타고 분통이
터졌다. 대원군에게 이용을 당했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피가
역류하는 듯하 기분이었다.
대왕대비 조씨는 칭병을 하고 며칠 동안 정사를 보지 않았다.
대원군에 대한 불만과 항의의 표시였다. 그러나 대원군은
문병조차 오지 않았다. 명색이 수렴 청정을 하는 대왕대비였다.
대왕대비 조씨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고종과 대원군을
대비전으로 불렀다.
"찾아 계시옵니까. 대왕대비마마."
"그렇습니다."
대왕대비 조씨의 얼굴을 차갑게 빛났다.
"긴요한 일이 있어 외람되어 두 분을 불렀습니다. 이젠
수렴청정을 거두겠습니다."
대왕대비 조씨의 입에서 중대선언이 터져 나왔다. 고종이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대원군은 누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주상의 보령이 열 다섯입니다. 열 다섯이면 성년이 아닙니까?
게다가 중전 까지 맞이하게 되었으니 나 같은 노파가 발 뒤에
앉아서 청정을 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입니다."
"황송하옵니다."
대왕대비 조씨는 눈썹을 꿈틀했다. 수렴청정을 거두겠다고
하면 한사코 철회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 신하된 자의
도리였다. 그런데 대원군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대왕대비
조씨의 말을 수용할 태세였다.
(내가 또 당했어!)
대왕대비 조씨는 아찔했다. 수렴청정을 거두겠다고 하면
대원군이 만류를 할 것이고, 그 기회를 노려 중전이 간택 문제를
새롭게 거론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수렴청정을 거두겠다는
그녀의 말을 대원군이 수용할 태세를 보이자 대왕대비 조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혹을 떼려다 혹 하나를 더 붙인 격이었다.
"앞으로는 주상을 보필하여 대감께서 정사를 처결하시오."
"황송하옵니다."
대왕대비 조씨는 입술을 깨물었다.
대원군은 끝내 수렴청정을 거두겠다는 대왕대비 조씨를
만류하지 않은 것이다.
음력 2월 13일이었다.
대왕대비 조씨는 중희당으로 시원임대신들을 불러들여
수렴청정 철폐를 손수 선포했다. 대신들이 혹시 만류하지 않을까
해서였다.그러나 글것은 대왕대비 조씨의 착각이었다.
"왕비가 발을 늘이고 정사를 보는 것은 나라에 큰 불행이
있어서 만부득 그렇게 한 일이었소. 그러나 주상이 혈기왕성한
때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청정을 하는 것은 백해무익한 일이라
나는 이제 궁중 아녀자로 돌아가겠소."
대왕대비 조씨의 목소리는 찬서리가 내리는 것같이 냉랭했다.
"계해년 겨울에 선왕께서 창졸지간에 승하하시어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대왕대비께서 큰 계책을 마련하시어 금상전하를 옹립하시고
유충하신 전하를 깨우쳐 주고 도와 주고 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주상전하께서 정사를 도맡아 처결할 수 있게
되었사오니 이거승은 모두 대왕대비마마의 공적이옵니다."
영부사 정원용이 수렴청정 철폐를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말했다.
(괘씸한 늙은이.....)
대왕대비 조씨는 치를 떨었다. 그러나 돈령부 영사 김좌근,
영의정 도두순, 돈려웁 판사 이경재, 좌의정 김병학, 우의정
유후조까지 대왕대비 조씨의 수렴청정 철폐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우리 전하는 한창 때이고 성인의 학문은 날을 따라 성취되고
있는 이때 대왕대비마마의 교지를 받들게 되니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하자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가 대원군에게 붙었어....)
대왕대비 조씨는 참담한 기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절감했다.
6
달은 뜨지 않았다. 별빛이 초롱초롱할 뿐이다. 밤은
자시(子時)에 가까워지고 있어 사위가 적막했다.
자영은 운현궁 안뜰에서 별빛이 맑은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이제 올 때까지 왔어....)
내일은 삼간택을 실시하는 날이다. 그러나 삼간택 역시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그 동안 대궐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대왕대비 조씨가 수렴청정을 거두고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된 것이다. 세간에는 대왕대비 조씨가 수렴청정을
거둔 것은 중전 간택 때 대우너군에게 철저하게 우롱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 그 자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었다.
자영은 자신이 재간택에서 중전으로 뽑힌 것에 만족했다. 중전
간택은 원래 초간, 재간, 산간의 절차로 이루어졌다. 단자를
내서 초간에 나서게 되는 것까지 하면 사실상 네 번이나 심사는
받는 것이다. 그러나 중전 간택이 삼간택에서 결정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재간택에서 중전의 규수를 선발하고
삼간택은 형식적으로 했다.
자영이 그랬다. 자영은 차비 방에서 상궁들에 의해
경춘전(景春殿)으로 안내되었다. 왕비의 행차에 준하는
위의(威衣:義仗)를 준비하는 동안 다시 낮것을 대접받았다.
그날 감고당으로 자영이 돌아올 때는 가마가 먼저 달라져
있었다. 가마는 궁중에서 쓰이는 덩으로 바뀌었고, 행렬의
선두에는 선전관(宣傳官)이 섰고 뒤에는 승지가 따랐다. 행렬은
비자(婢子)가 스물 넷, 호위 병사가 스물 셋으로 모두
47명이었다.
(이제 나는 이 나라의 국모야....)
자영은 가마 안에서 생각했다.
행렬은 안동(安東)별궁(別宮)으로 향했다. 별궁은 국혼 때
간택에 뽑힌 규수가 거처하는 일종의 안가였으나 대원군은
자신의 운현궁을 안동별궁이라 칭하고 자영의 가마를 그곳에
내리게 하였다.
이미 운현궁은 막대한 국고를 들여 수리를 마친 상태였다.
운현궁의 안방은 자영이 차지하게 되었다.
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은 대궐에서 나온 근장군사들이
삼엄하게 지켰고 중문은 별감(別監)이, 건넌방은 궁중법도를
가르치기 위해 나와 있는 상궁들이 썼다. 자영의 몸종 간나이도
특별 상궁에 임명되어 궁중법도를 익혔다.
삼간택은 3월에 6일에 실시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참 오랜 시간이었어.....)
자영은 착잡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중전 간택을
둘러싸고 일어난권좌에서 밀어낸 대원궁의 동주철벽(銅柱鐵壁)의
기개에는 자영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2월 9일 금혼령이
내리고서 거의 석 달에 가피를 말리는듯한 기간이었다. 그러나
이젠는 끝난 것이다. 내일이면 중전 간택의 모든 절차가 끝나는
것이다.
(벌써 봄이 오다니......)
날씨는 포근했다. 완연한 봄이었다. 중전 간택이 처음 시작된
지난 12월은 엄동설한이었으나 산에는 진달래꽃이 만발하고
담밑에는 개니리꽃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자영은 양지 쪽에
화사하게 피는 봄꽃들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 속에도 꽃이 피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영은 밤하늘에 빼곡하게 들어찬 별들을 바라보았다. 오랜
가뭄이 게속되어 별빛이 초롱초롱했다. 초승이라 밤이
깊었는데도 달이 뜨지 않고 있었다.
"불이다!"
그때 집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경복궁에 불이 났다!"
"불이야!"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더욱 커졌다. 자영은 경복궁 쪽을 재빨리
쳐다보았다. 서쪽 하늘에 시뻘건 화광이 치솟고 있었다.
(아!)
자영은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렸다. 화염은 이미 맹렬하게
치솟고 있었다. 사람들의 함성소리에 별당에서 민승호가 뛰어
나오고 자영의 어머니 이씨도 뛰어 나왔다.
"이 일을 어째?"
"국혼의 대사를 앞두고 이 무슨 괴사인가?"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궁녀들과 별감들도 총총히 달려와
자영을 에워쌌다. 자영에게 안채를 내주고 별채에 기거하고 있던
대원군 일가도 불 때문에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소자가 다녀오겠사옵니다."
민승호가 도포를 걸치고 나와 자영의 생모 이씨에게 말하고
황급히 밖으로 달려나갔다.
경복궁은 운현궁의 지척에 있었다. 경복궁에서 치솟는 불길이
운현궁에서도 뚜렷이 보였다.
"중전마마, 상서롭지 못한 일이옵니다. 그만 안으로
드시옵소서."
궁중법도를 가르치는 상궁이 자영에게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삼간택이 실시되기 전인데도 자영은 벌써 중전마마로 불렸다.
자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에사로운 불이 아니었다. 담 너머
대원군이 기거하는 별채에서도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불 때문에 어수선했다.
자영은 뜰에 서서 시뻘겋게 타고 있는 경복궁 쪽만
쳐다보았다. 불길이 쉬이 잡힐 것 같지 않았다.
"어서 안으로 드시옵소서."
상궁이 재촉을 했다. 자영은 마지못해 안방으로 들어갔다.
경복궁의 대화재는 삼간택이 있기 바로 전날 밤에 일어난
참사였다. 불길은 삽시간에 경복궁의 가건물과 목재에 옮겨 붙어
시뻘겋게 타올랐다. 경복궁은 이미 8백여 간이 가가(假家)형태로
골조가 세워져 있었다. 모두 목재로 세워진 전각이었기 때문에
불길은 누깜짝 할 사이에 모든 전각에 옮겨 붙었다. 충전하는
화광으로 도성이 온통 불길에 휩싸인 것 같았다. 백성들은 자다
말고 뛰어나와 불길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높이
치솟아 불을 끌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하늘은 모질기도 하지. 어찌하여 이런 재앙을 나에게
내리는가....)
대원군은 운현궁에서 경복궁까지 달려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비통했다. 아니 허망한 일이었다.
경복궁의 중건은 왕부의 위엄을 세우기 위한 역사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헤이헤진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바른 정사를
펴기 위한 민심쇄신 차원의 역사였다. 누대에 걸친 병폐로
대신들은 우유부단했고 백성들은 삶의 의욕을 잃고 있었다.
항간에 떠도는 수많은 도참설, 이씨왕조 멸망설은 민심이 얼마나
흉흉한지 일깨워 주는 단적인 증거였다.
백성들은 차츰차츰 삶의 의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불이 일어난 것이다.
(맹렬한 화재다. 대원군이 나를 우롱하더니 하늘의 벌을 받고
있음이 아닌가?)
대왕대비 조씨는 대원군의 낭패한 얼굴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빙긋이 웃었다.
(엄청난 화재다. 점점 독선적으로 변해 가는 대원군에게
하늘이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돠의정 김병학은 교동에서 경복궁의 대화재를 바라보며 뜻모를
미소를 지었다. 경복궁의 화재를 바라보는 시각도
각양각색이었다.
(세울 것이다! 억조창생이 비웃더라도 민심을 한데 모을
경복궁을 반드시 다시 세울 것이다!)
대원군은 모진 결심을 했다.
불길은 날이 훤히 밝은 뒤에야 겨우 잡혔다. 폐허처럼 시커먼
잔해만 남은 경복궁에서 대원군은 몇번이나 주먹을 움켜쥐었다.
삼간택은 예정대로 다음날 거행되었다. 경복궁이 불에 타
폐허만 남은 탓에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거행된 삼간택이었다.
3월7일, 민치록의 딸 민자영을 조선조 제 26대 국왕 고종의
왕비로 맞아들인 다는 조칙이 승정원을 통해 반포되었다.
경복궁의 화재와 턴주교인의 대탄압으로 나라 안이 온통
술렁거렸으나 국혼은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대혼은 납채례(納采禮:신랑집에서 신부집에 혼인을 청하는
의식)로부터 시작 되었다. 납채례는 3월9일,
납징례(納徵禮: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예물을 보내는 의식)는
3월11일, 고기례(告期禮)는 3월17일, 대혼과 책비례(冊妃禮)는
3월20일, 친영례(親迎禮:신랑이 신부를 맞아들이는 예식)는
안동별궁에서 3월21일, 상견례(相見禮:신랑과 신부가 마주보고
절을 하는 예식)는 3월22일 인정전에서 문무백관의 하례를
받으며 거행되었다.
이로서 한말(韓末)풍운(風雲)의 주인공이 될
명성황후(明成皇后)민비(閔妃)가 탄생하게 되었다. 민비의 그때
나이 16세. 무너져 가는 조선왕조를 그 한 몸으로 버티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1)경복궁 중건 소사(小史)는 신구문화사(新丘文化社)의
"年表로 보는 現代史"13쪽과 15쪽을 참고 했다.
2)민비와 고종의 국혼은 김용숙(金用淑)교수의
"朝鮮朝官中風俗硏究"를 참고 했다.
제5장 피를 부르는 바람
1
천주교에서 병인군난(丙寅窘難), 또는
병인교난(丙寅敎難)이라고 부르는 병인년의 대박해는
기해사옥(己亥邪獄)을 불러 일으킬 조만영(趙萬永)의 딸인
대왕대비 조씨가 권력의 전면에 나섬으로써 박해의 기운이
싹텄다고 볼수 있고 로서아의 남하정택이 불을 질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유교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나 누대에
걸쳐 악습을 일삼아 온 지배층인 양반의 부패와, 중국에 대한
사대적 관습이 뿌리 깊이 작용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특히 천주교의 교리 중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 있어 유교의 근본인 예(禮)와 배치되어 더욱
가혹한 박해를 당하게 되었다.
유교의 예는 살아 계실 때 섬기는 것도 예로 하며, 죽음에
장사 지내는 것도 예로 하며, 제사를 지내는 것도 예로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는 천주교의 교리는 흑세무민(黑世誣民)의 사교(邪敎)로
지목되어 탄압을 받게 되었다.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으나
병인년의 박해는 북변(北邊)의 로서아(露西亞)가 통상을 요구해
옴으로써 발단이 된 것이었다. 로서아는 청국(淸國)을 에워싸고
서구열강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을 때 꾸준히 남하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청국은 이미 강희(康熙), 건융(乾隆)두 황제의 전성시대를
지나 1839년에는 아편 수입의 일로 영국과 전쟁을 벌여
대패하고, 1842년 8월에 남경조약(南京 條約)의 체결로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게 되었다. 또 1856년에는 영국 상선(商
船)애로우호 사건, 불란서 선교사 살해사건으로 영국과 불란서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으나 오히려 영불연합군이 북경(北京)까지
침입하여 청나라 황제가 열하(熱 河)로 피신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이때 로서아의 중재로 북경조약(北京條約)을 맺은
청나라는 연해주(沿海州)를 로서아에 양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로서아는 숙원인 부동항을 해삼위(海參威:블라디보스톡)에
개설한 뒤 조선의 변방을 위협 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조선은 청나라가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므로 대적할
나라가 없다고 여겼으나, 영불연합군에 대패하여 청나라 황제가
몽진을 가는 사태가 발생하자 조선정부는 당황하게 되고 민심이
훙흉해 졌다. 이때 조선에는,
"인군의 병란, 서교도의 발호, 불병의 내습 등은 목하 초미의
우환인즉 속히 대책을 세우지 낳으면 안된다."
고 하는 상소문이 빗발치고,
"사대의 예는 사직의 중함과 바꿀 수 없다."
라고 하면서 청나라를 배척하고 로서아와 맞서야 한다는
주장이 팽배하게 일어났다.
고종 원년(元年:1863년)2월에는 5명의 로서아인들이 얼음을
타고 두만강을 건너와 경흥부(慶興府)에 통상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는 한편 그 회답을 요구 했다. 경흥부사 윤협(尹峽)은 우선
이들을 퇴거하게 하고 함경감사(咸鏡監司) 이유원(李裕元)을
거쳐 조정에 보고하였다. 조정은 이로 인해 발칵 뒤집혔는데,
고종2년(1865년) 9월에 또다시 로서아인 수십 명이 몰려와
'국서를 가지고 있으므로 함경감사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경흥부사 윤협은 '국교 가 없는 외인의 입국은
응할 수 없다.'고 하여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2개월 후인
11월에는 3명이, 수일 후에는 기마자(騎馬者)를 선두로 7명이
내습하여 전과 같은 요구를 해왔다. 경흥부사 윤협은 90일
이내에 회답을 해주겠다고 하고 그들을 돌려보낸 뒤 즉각
이사실을 조정에 보고했다.
이와 같이 로서아와 조선의 국경이 긴박해 지자 조정은 벌집을
쑤신 듯이 소란스러워졌고, 한성에서는 양반들이 전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산으로 도망가 숨기도 하고 십자가를 목에 걸어
서교도인 체하는 자들까지 생겼다. 로서아인들은 서교도를
해치지 않는다는 풍문이 파다하게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천주교도인 홍봉주(洪鳳周)와 김계호(金季浩)는
청나라를 굴복시킨 불란서, 영국, 조선이 3국동맹을 맺어
로서아를 방어하여야 하며, 그 외교적인 교섭은 조선에 들어와
있는 천주교 주교를 통해야 한다는 글을 작성해서 대원군 의
사돈인 조기진(趙基晋)을 통해 대원군에게 올렸다. 그러나
대원군은아무말도 없이 그 글을 무릎 밑에 넣어 버려 운현궁을
방문한 김계호, 홍봉주 등은 대원군이 두려워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대원군은 그때 대신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계호 등이 다녀간 지 이틀이 지났을 때 고종의 유모
박씨(朴氏)가 궁궐에서 나와 대원군의 부인 민씨를 찾아가
인사를 했다. 그러자 민씨 부인은 대뜸,
"어찌하여 너희 천주교도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느냐?
내가 듣자니 로서아 오랑캐가 조선을 침략하려고 변방을 어지게
외교적으로 수완을 발휘해야 하지 않느냐?"
하고 호통을 쳤다.
"3국동맹이라니 금시초문입니다."
유모 박씨는 어리둥절했다.
"일전에 김계호 등이 로서아의 침략을 막으려면 주교의 힘을
빌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글이 조잡하여 대감께서 좋아하지
않으셨다. 전 승지 남종삼 같은 이를 시켜 다시 글을 올리도록
해라. 주교가 로서아를 물리치도록 힘을 써주면 대감께서 표교의
자유를 허락할 것이 아니냐?"
"정말 그렇게 하실까요?"
"내가 무엇 때문에 허튼소리를 한단 말이냐? 속히 주교를
한성으로 올라오라고 하여 활약하게 하여라."
부대부인 민씨의 지시를 받은 고종의 유모 박씨는 즉시 이
사실을 홍봉주에게 알려ㅆ. 홍봉주 김계호 등은 자신들이 지은
글이 서툴고 빈약했던 것을 깨닫고 남종삼(南鐘三)에게 글을 써
올리도록 부탁했다.
남종삼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조선에 들어와 있던 외국
신부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도성에
머물면서 명문세가의 자제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고 있었다.
남종삼은 홍봉주의 얘기를 듣고 손수 글을 지어 대원군을
찾아갔다. 대원군은 남종삼이 지은 글을 자세히 읽고,
"참으로 좋은 계책이니 둘째 재상에게 가서 말하라."
하였다. 둘째 재상은 좌의정 김병학을 일컫는 말이었다.
남종삼은 김병학을 찾아가지 않았다. 김병학은 천주교 탄압에
강경한 인물이었 다.
다음날 대원군은 남종삼을 불러 천주교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그리고는 남종삼이 설명을 하자,
"이 도리는 좋고 옳으나 조상에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흠이다.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여 어찌 유림의
반대를 감당할 수 있겠소?"하고 남종삼을 뚫어질 듯이
쏘아보았다. 그러나 남종삼이 대답을 망설이자 대원군은 화제를
바꾸었다.
"로서아가 조선을 침략하려고 하는데 주교가 외교적인
수단으로 이를 방지할 수 있겠소?"
"주교에게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남종삼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주교는 어디 있소?"
대원군이 다시 물었다.
"주교는 지방에서 전교 활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급히 만나잔다고 전해 주시오."
대원군은 남종삼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남종삼은 대원군의
말을 듣고 이 사실 을 홍봉주 김계호 등에게 알리고 주교를 불러
오라고 하였다. 아울러 대원군이 주교를 만나겠다고 하였으므로
조만간 포교의 자유가 허락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섣부른
판단이었다. 홍봉주, 김계호 등은 그 얘기를 듣고 조선에서
선교의 자유 를 얻게 되었다거나 큰 성당을 짓는다고 떠들고
다닐 뿐 주교에게 알리지 않았 다.
그러나 조정의 4대신(정원용, 조두순, 김병학, 김병국)은 이때
천주교 탄압을 강경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서양인들을 배척해야 합니다. 서양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니 서양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서교도들도
죽여야 합니다."
그들은 대원군의 서교도 유화책을 강경하게 비난했다.
대원군은 이들의 비난을 묵살했다.
"청나라도 영국과 불란서의 전쟁에서 대패하였는데 서양인들을
죽이게 되면 오히려 화근을 부르게 되오. 이것을 빌미로 외국이
조선을 침략해 오면 어찌 방비할 것이오? 차라리 영국, 불란서,
조선이 3국동맹을 맺고 로서아를 방비하는 계책이 좋을 듯싶소."
그러나 대신들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유교의 근본인 서원은 철폐하고 서교도를 용인하는 이유는
무엇이오이까?"
"서양사람들을 이미 여럿을 죽였으나 아무도 군사를 일으키지
않았소이다."
그들은 계속 천주교를 탄압할 것을 주장했다. 이때 북경에
있던 동진사(冬至使 )이흥민(李興敏)이,
"청나라에서는 서교도를 용인하고 있으나 서교도들이 청나라
인민의 재산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
하는 편지를 보내 왔다. 이로 인해 조정의 여론이 물끓듯 하게
되자 대원군은 마침내 수결(手決)을 놓고 모든 천주교도를 잡아
죽이라고 지시하였다.
대원군이 대신들의 주장에 자신의 뜻을 굽힌 것은 남종삼에게
주교를 불러 오라고 하였으나 남종삼이 서둘러 주교를 불러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원군은 나라가 위급한데도 천주교도를
무성의 할 뿐 아니라 무능력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남종삼이 뒤늦게 장(張:베르뇌)주교와 안(安:다블뤼)주교를
부른 뒤 대원군을 찾아갔으나 대원군은 이미 마음이 돌아선
뒤였다.
"어찌하여 그대는 아직도 한성에 있는가? 그대는 새해가
되었는데도 부친에게 세배도 드리지 않는가?"
대원군이 크게 책망을 하자 남종삼은 당황했다.
"저도 세배를 드리러 충주로 내려가려고 합니다만 일전에
대감과 약속한 일이 있어서..."
"이제는 너무 늦었으니 향리로 돌아가 부친에게 효도나
하시오."
대원군은 냉정하게 잘라 말하고 돌아앉았다.
남종삼의 부친 남상교(南尙敎)도 승지 벼슬을 지냈을 뿐
아니라 학문이 높아 선비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일이 이와
같이 여의치 않게 되자 남종삼은 충주 로 돌아가 부친
남상교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남상교는 앞일을 예측하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신교에 힘쓴 것은 좋으나 너의 생명은 이미 위태롭게
되었으니 만일의 경우를 당하더라고 천주를 욕되게 하지 말라."
남종삼은 병인년 1월 15일 고양(高陽)에서 의금부 나졸들에게
체포되어 조사를 받은 뒤 1월 21일 홍봉주와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다.
남종삼은 우차(牛車)를 타고 서소문 밖 형장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형리들은 우차 위에 십자가를 세우고, 그 위에는 명패을
매달았으며, 아래 쪽을 나무토막으로 막았다. 그들은 십자가
형틀에 남종삼의 손발을 묶어 매단 뒤 서소문 언덕까지 달리게
하였다. 마침내 우차가 서소문 언덕에 이르자 형리들은 남종삼의
발밑에 받쳤던 나무토막을 빼내고, 우차를 끄는 소에게 사정없이
채찍질을 하여 남종삼이 십자가에 매달린 채 맨발로 비탈길을
내리달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남종삼이 형장에 이르렀을 때는
정신을 잃게 되었다.
형리들은 정신을 잃은 남종삼을 땅에 떨어트려 옷을 벗기고 두
팔을 결박한 ㄷ음, 나무토막으로 목을 괴고 군졸 하나가
머리카락을 맨 밧줄을 잡고 회자수로 하여금 목을 베게 하였다.
병인박해는 불란서인 선교사 장경일 주교의 순교로 실작되어
장장 6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박은식(朴慇植)의
"한국통사(韓國痛史)"에서 '교도를 잡아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으니 그 수가 1만여 명이었다.'하고 기록되어 있다. 또
파리외방전교회의"조선에 있어서의 천주교"에서는 '1868년9월에
이르기까지 이미 2천 명의 교우가 박해자의 검날에 쓰러지게
되었다. 1870년대에 이르러서는 죽음 의 괴로움을 당한 교우가
8천여 명이라 하는데 이 중에는 박해를 피해 도망다니 다가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은 교우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민자영이 고종의 왕비로 간택되게 된 것은 이러한
병인대박해의 피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있을 때였다.
2
천주교 박해의 피바람은 경상도 예천(醴泉)땅에도 불어닥쳤다.
1866년 2월 예천 부럭이골.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한성에서는 대신들의 강압으로 대원군이 서교도
박해의 수결을 놓고 장 주교 등을 급히 잡아들이고 있을 때였다.
이미 앞서 예천에서는 크고 작은 박해가 있었는데 그것은
몰락한 양반 황(黃) 가라는 파락호로 인해서 비롯된 것이었다.
황가는 주색과 노름으로 재산을 탕지하게 되자 노름꾼들과 손을
잡고 천주교 교인들을 습격하여 재물을 빼앗는 일로 소일하고
있었다. 천주교 교인들은 황가의 습격이 잇따르자 장정들로
하여금 마을을 방비하게 하는 한편 황가가 나ㅌ자 잡아서 한
두차례 때려서 ㅉ아 버렸다.
이에 앙심을 품은 황가는 예천 군수에게 달려가 고발을 한뒤,
형방의 하인 하나를 빌려 부럭이골에 사는 부유한 교인 박집에
없자 그 마을의 재물을 약탈 하고 집들은 불을 질러 버렸다.
박방지거가 이 사실을 이웃 동리의 교인들에게 알리자
교인들이 참나무 몽둥이를 들고 달려왔으나 황가는 이미 여자와
아이들을 잡아가지고 도망쳐 버린 뒤였다. 전(全)사베리오와
이(李)요한은 황가의 뒤를 추적했으나 잡지 못하자 관청에
고발했다. 그러나 관청에서는 오히려 전사베리오와 이요한이
서학군이라 고 하여 곤장을 때린 뒤 공주 감영에 넘겨 순교하게
하였다 전사베리오와 이요한 은 교수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한 달 후에 교인들의 손에 의해 곱게 묻히게
되었고, 그 후 얼마 안 되어 깔래 강(姜)신부가 예천의 건아기
공소에 찾아와 성사를 주게 되니, 이 두 치명자의 아내와
아이들이 미사를 청하고 성체를 영하게 되었다. 이때 강 신부가
이들을 흑은히 여기고 여덟 살된 아들에게, '너의 부친이 어디로
갔느냐'고 물으니, 그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저 위에
천당으로 갔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강 신부는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
이처럼 박해의 기운이 점점 지방으로 확산되어 가자 천주교
교인들은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산속 깊이 숨어 들어갔다.
그러나 차일피일 정든 고향을 떠나지 못해 머뭇거리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한겨울이었다. 날씨는 살을 에일 듯이 추워 길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소달구지를 빌릴 수도 없었으므로
이부자리와 끼니를 끓여 먹을 그릇과 식량을 이고 지고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교인들이 쉽사리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어디로 가서 숨어야 할 것 같소."
예천군 부럭이골, 건아기 공소에서 미사성제에 참례하고
돌아오던 젊은 사내가 아낙에게 근심스러운 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젊은 사내의 이름은 이창현(李昌玄) , 아낙의 이름은
조선이(趙仙伊)였다. 그들은 부부로 다섯 살된 딸은 이창현이
업고 여덟 살된 딸은 조선이의 손을 잡고 부럭이골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음력 2월 초순이지만 밤기온은 아직도
차디찼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조선이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황가로 인해
부럭이골이 피해를 입었지만 미사성제에 참례한 뒤라 가슴이
뿌듯했다.
"낮에 황가를 만났어."
"황가요?"
조선이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황가의 음침한
눈빛을 생각 가슴이 떨렸다.
"그 자가 나를 보고 씨익 웃더니 이 진사께서는 서학을 안
하시겠지요? 하고 묻는 거야. 마치 너도 서학군이라는 걸 다
알고 있어, 하는 눈치였어...."
이창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우울했다.
"그래서요?"
"난 서학이 뭔지도 모른다고 했어. 그랬더니 이 진사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기분나쁜 눈빛으로 흘겨보고
가더군...."
조선이는 가슴이 싸하게 저려 왔다. 홍가로 인해 조만간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말 것 같은 예감이 뒤통수를 엄습해 왔다.
황가가 남편에게 그런 식으로 물었다는 것이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옛날 같았으면 그런 놈은 한 주먹에 때려 죽었을 텐데....."
이창현이 짜증이 나는지 부럭이골을 내려다보며 침을 칵
뱉았다. 고갯마루였다. 컴컴한 숲에서 삭풍이 나뭇가지를
음산하게 흔들어댔다.
"당신두 참."
조선이가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이창현은 한때 부랑자로 지낸 일이 있었다. 이창현의 조부는
오랫동안 금부도사(禁府都事)를 지냈으나 낙향하여 학문만
벗삼았고, 부친은 조정이 혼탁하다고 하여 아예 과거조차 보지
않았다.
충청도 내포(內浦)가 향리였다. 슬하엔 이창현과 이창현의
누이동생 들을 남겼을 뿐이었다.그러나 집안은 가난했다.
이창현은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지 않고 내포의 유력한
양반 자제들과 어울려 다니며 주먹질을 하고 싸움질만 했다.
게다가 힘이 장사였다. 쌀 두 가마니를 양쪽 어깨에 짊어지고
내포 들판을 달렸다는 얘기는 아직도 내포 입대 에 두루 알려져
있었다.
그는 진사 과거에 등과했다. 그러나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내포 일대를 싸돌아 ㄷ니며 부랑자 짓을 했다. 포악한 양반들을
때려 눕히고 아전배들을 걸핏하면 두들겨 팼다.
아전(衙前)은 이(吏)를 말하는 것으로 중앙이나 지방의
하급관리를 통칭하는 것이었다. 특히 지방의 아전들은 중인 또는
상민 대우를 받는 자들로 재산도 소유하하고 있지 못하면서
관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되어, 백성들을 수탈하지 않으면
가족들과 함께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리하여 아전들을 백성들을 기만하고 착취하고 수단만 강구하여
그 폐단이 막심하였다.
이창현이 조선이와 혼례를 올린 것은 열 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조선이도 충청도 서산(瑞山)이 친정으로 당시에 열
아홉살이었다. 조선이도 나이가 이창현보다 두살이 위인 탓인지
빼어난 미모를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하게 되었다.
이창현은 조선이와 혼례를 올린 뒤에도 부랑자 생활을 계속
했으나 점점 조선이에게 동화되어 갔다. 조선이에게서는 보통
사람에게서 느낄수 없는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창현이 조선이가 서학을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을 혼례를
홀린 지 3년 쯤 되었을 때였다.
여름이었다. 날시가 후덥지근했다. 불볕 같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이창현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게다가 모기까지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이창현은 어디선가 낮게 중얼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내의
목소리였다. 몸을 일으켜 마루를 내다보자 아내 조선이가
단정하게 무릎을 끓고 앉아서 이상한 주문 같은 것을 외고
있었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자 '천주'니 '성모님'이니 하는
이상한 말들이 들렸다.
"무얼하는 거야?"
이창현은 눈을 치뜨고 조선이를 노려보았다. 조선이가
혹세무민의 사겨에 빠진 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던
것이다.
"에그머니!"
조선이가 화들짝 놀라 이창현을 돌아보았다. 이창현은 돗자리
위에서 몸을 일으키며 목침을 치켜들었다.조선이가 사교에 빠져
있다면 목침으로 후려칠 작정이었다. 조선이의 손에는 염주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앞에는 언문책과 십자가 상도 놓여 있었다.
"그거 서학 아니야?"
"아직 안 주무셨어요?"
조선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이창현의 안색을 살폈다.
"아니 이것아, 집안 말아 먹으려고 서학을 해!"
이창현은 목침으로 조선이의 머리를 푸려쳤다. 조선이는
목침을 얻어맞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으나 곧 자세를 단정히
했다.
"진작 말씀을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조선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목침으로 맞은
머리의 살이 찢어졌는지 얼굴로 붉은 피가 흘러 내기고 있었다.
"너 기해사옥을 알지?"
이창현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예."
"그것을 아는 년이 감히 서학을 해? 서학은 흑세무민의
사교라고 하여 국법 으로 금하고 있는 것을 몰라?"
"용서하십시오."
"어서 이것을 내다가 불태워!"
이창현은 다시 한번 목침으로 후려치려다가 소리만 버럭
질렀다. 조선이의 얼굴로 흘러 내리는 피를 보자 마음이 약해
졌던 것이다.
"서방님 한 말씀만 들어주십시오."
그때 조선이가 움음을 삼키며 조용히 말했다.
"무슨 말을?"
"서방님께서는 무슨 연유로 서학을 사교라고 박대하십니까?"
"나라에서 금하고 있지 않느냐?"
"서방님."
"....."
"제 소원을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
"저는 어릴 때 친정 어머니에게 이끌려 천주교에 입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서방님과 혼례를 올렸을 때 바로 이런 사실을
고해야 했습니다만 때가 아니라고 차일피일하다가 이리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천주교 교인이라고 하여 서방님
받들기를 소홀히 한 일이 없고 남들에게 요만큼도 해악을 끼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디 나뿐이겠습니까? 천주교에서는
천주십계라는 법이 있어 교인들이 도적질도 하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창현은 말문이 막혔다. 아내 조선이의 말을 구구절절이 옳은
것이었다. 그는 아직까지 서학군이 도적질을 하여 감옥에
갇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천주교는 세상을 창조하신 조물주를 숭배하는 교입니다.
조물주를 하늘의 주인이라 하여 천주(天主)라 부르고, 그분의
아들 야소(耶蘇:예수)를 성자(聖者 ), 또는 인자(人者)라고
부르고, 그분들의 심부름을 하는 영(靈)을 성신(聖神), 인자를
낳은 어머니를 성모(聖母)라고 부릅니다."
"......"
"천주교는 천주, 성자, 성신 삼위를 모시는 교입니다. 다만
우리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은 그분의 성자를 낳으신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의 교리는 천주를 숭상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선업을 쌓아 죽은 뒤에 천국 에서 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
"그럼 선업이 무엇이겠습니까? 선업이란 덕을 쌓는 일입니다.
착한 일을 하는 선덕(善德), 옳은 일을 하는 의덕(義德), 부모를
공양하는 효덕(孝德), 자녀와 이웃을 사랑하는
애덕(愛德)...이러한 모든 덕을 쌓아 완덕(完德)에 이른는 것이
천주교의 교리입니다. 그러한데 어찌 천주교가 사교가
되겠습니까? 서방님께서 한번만 이라도 우리 천주교의 책을 읽어
보시고 난 연후에 홀대하시면 저는 두말 않고 감당하겠습니다.
이왕 일이 이리 되었으니 서방님, 아내의 낯을 보아서 한 번만
읽어 보십시오."
조선이가 책 표지가 너덜너덕한 언문책 한 권을 이창현 앞에
내밀었다.
이창현은 낮게 한숨을 내쉬고 표지를 들여다보았다. 아내
조선이의 말에 무어 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다.
책 표지엔"天主實義"라고 씌어 있었고 그 안에 이익(李瀷)의
천주실의발문(天 主實義跋文)이 적혀 있었다.
천주실의라는 책은 이(李)마두가 지은 책이다. 그는 구라파
사람이니, 구라파 는 중국으로부터 8만여 리(里)나 떨어져
있어서, 천지가 생긴 이래 여태껏 오고 가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마두(마태오)라는 사람이 쓴 "천주실의"라는 책에 대한
발문이었다. 이창현은 무심코 책장을 넘겼다가 그 책을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는 밤을 꼬박 세워 "천주실의"를 읽었다.
"천주실의"를 그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였다. 그가
"천주실의"를 다 읽었을 때는 이미 날이 훤하게 밝아 있었다.
"천주실의"는 마테오 릿치 신부가 북경에서 출판한 책으로
중국을 오가던 사신 들에 의해 조선에 전달된 이래
이수광(李睡光), 유몽인(柳夢寅), 이가환(李家煥 ),
정약전(丁若銓)등의 남인(南人)계열의 실학자들 사이에
학문으로서 연구되다 가 마침내 기적이라고 부르는 한국
천주교의 자생을 낳게 되어 이승훈(李承薰)이 최초로 세례를
받게까지 되었다. 그리하여 "천주실의"는 학문으로, 종교로 양심
있는 학자들의 필독서가 되었던 것이다.
이창현이 "천주실의"를 밤새워 읽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천주실의"를 읽고 나서 가슴에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맛보았다. "천주실의"는 그 만큼 그에게 커다란 충력을 주었다.
그는 그때부터 천주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천주교의
교리는 아내 조선이 에게 배우고 재(齎:금식과 금육)를 지키도록
노력했다.
이창현은 교리를 배우기 시작한 지 1년만에 법국(法國:불란서)
신부(神父) 장베르뇌 주교(主敎)에게 영세를 받았다. 이창현은
그 후에 천주교 교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경상도 예천으로
이사를 했다. 그의 생활은 나날이 달라져 갔다. 그의 아내
조선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조신한 부인으로 칭송을 받았듯이
부랑자였던 이창현도 이웃에게 이 진사 어르신네라고 깍듯한
공경을 받았다.
"내일은 충천도 진천엘 한 번 다녀와야겠어."
"진천에요?"
"거기 진천 땅 백곡이라는 곳에 우리 교우들이 많이 살고
있다니까 우리도 거기 가서 삽니다."
"그럼 또 이사를 가야 하나요?"
조선이가 울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동안 우리는 요예 박해를 피해서 살아왔소. 이제 잠시
고난을 겪는다고 해서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되오."
"알았어요. 어떻게든 살아야지요."
조선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 한 방울 이 불을 타고 흘러 내렸다. 장베르뇌
주교가 한성부에 체포되어 순교를 했으므로 박해가 지방으로
뻗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진청 땅 백곡이라고 안심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선이는 어린 딸들을 데리고
유리걸식을 할 생각을 ㅎ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춥겠소. 어서 갑시다."
이창현이 먼저 걸음을 떼어 놓았다. 조선이도 이창현을 따라
걸음을 서둘렀다. 부럭이골은 죽음처럼 깊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이튿날 이창현이 충청도 진천 땅으로 떠났다. 조선이는
아이들에게 아침을 먹인 뒤 이삿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날씨는
아직도 쌀쌀했다.
"이 진사 계시나?"
한낮이 지났을 때 사립문 밖에서 갑자기 황가의 거들먹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선이는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섰다.
"안 계십니다."
조선이는 고개를 숙이고 대꾸했다. 황가의 탐욕스러운 눈빛이
자신의 몸을 음흉하게 더듬고 있어 속이 메슥거렸다.
"어디 출타하셨소?"
"예."
"내 긴히 의논할 일이 있었는데..... 부인은 혹시 서학을
아시오?"
"모릅니다."
"허, 그럼 어디 가서 이 도리를 배우지? 내 이번 일로 크게
깨우쳐 서학을 알려고 하는데 누가 길을 가르쳐 주어야 말이지,
낭패로고....."
"서학은 나라에서 금하고 있습니다"
조선이는 쌀쌀하게 내쏘았다. 황가가 서학을 배우겠다고 하는
것은 천주교 교인들을 염탐하려른 수작이 분명했다.
"그걸 누가 모르나? 그러니 내 이렇게 음밀히 물어 보는 것
아니오?"
황가가 유들유들 말질을 했다.
"우리는 서학을 모릅니다."
"정녕 모르오?"
"모릅니다."
"공연히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황가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조선이를 살폈다. 조선이는
자신의 가슴과 둔부에 달라붙은 황가의 징그러운 시선을 떼어
버리듯 날카롭게 소리쳤다.
"남녀가 유별하니 그만 돌아가십시오!"
"그럼 내 밤에 다시 들리리다."
"저녁에도 아니 계십니다."
"저런. 이진사께서 아주 먼 걸음을 했군."
황가가 입꼬리에 야릇한 미소를 매달았다. 조선이는 그때서야
아차하고 후회를 했다. 그것은 집에 남자가 없다는 사실을
황가에게 가르쳐 준 꼴이나 마찬가지 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교활한 황가가 남편 이창현이 출타하는 것을 보고 염탐을 하려
온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황가가 어기적어기적 팔자 걸음으로 고샅을 돌아서 사라져
갔다. 조선이는 황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사립문을 닫아 걸었다.
그날 밤이었다. 조선이는 누군가 방문의 창호지를 찢어
문고리를 벗기려고 하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창호지에
시커먼 사내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다. 조선이는 겁이 덜컥
났다. 다듬이 방망이를 찾아서 움켜쥐고는,
"누구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문밖이 조용해 졌다. 그림자가 가쁜
호흡을 고르고 있는 소리가 방 안까지 뚜렷이 들렸다. 조선이는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듯이 뛰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렸다.
(이 일을 어째?)
조선이는 눈앞이 아득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몸이
떨렸다. 그때 한가지 꾀가 머리 속에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여보! 밖에 누구 왔나 봐요."
조선이는 남편을 깨우는 시늉을 했다. 밖에 있는 그림자가
믿어 줄지 어떨지는 알수 없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여보!"
밖의 그림자는 기척없이 조용했다.
"빨리 일어나요. 밤손님이 온 모양이니 이 몽둥이로 혼쭐을
내주세요!"
조선이는 계속해서 남편을 깨우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문밖에서 후다닥하는 소리가 들리며 괴한이 달아나는 것이었다.
황가가 분명했다. 조선이는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를
했다.
황가는 이창현이 힘이 장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가가
조선이에게 마음을 두고 있으면서도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것은
이창현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조선이는 그날 밤 이창현의 헌 미투리 한 켤레를 봉당에 내려
놓고 잠을 잤다. 황가는 그날 밤 다시 오지 않았다.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이는 아이들과 함께 매괴 신공을
드리는 것으로 하루 해를 보냈다.
밤이 되자 조선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교의의 집으로 마실을
갔다. 황가가 찾아올까 봐 겁이 나서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거기서 그들 가족과 함께 기도를 한 다음에 얘기를 했다. 그들도
어디론가 떠나야겠다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 애들이 뭐라고 그랬느지 알아요?"
집 주인인 최홍숙(崔洪淑)여인이 한숨을 뱉듯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녀는 마흔 셋의 과부였다. 남편은 독실한 신자인데
경상도 진해에서 치명(致命)했다. 그들에게는 딸만 셋있는데
셋이 모두 어른 못지않은 신앙심을 갖고 있었다.
"뭐라고 했기에요?"
조선이는 황혼이 가슴 속으로 잦아드는 듯한 쓸쓸한 기분으로
물었다.
"우리도 멀지 않아 순교를 하게 될지 모른다구 큰 애가
말했어요. 그 애도 벌써 죽음을 생각하는지..."
최 여인의 큰 딸은 열 두살이었다.
"가운데 아이가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더니 순교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그러더군요."
"무섭지 않다구요?"
"기도만 열심히 하면 된대요."
"기특하군요. 어떻게 그 어린 것이..."
"둘째가 좀 담대하거든요. 막내에게도 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그러더군요."
"왜요?"
최 여인의 둘째딸은 여덟 살, 막내딸은 이제 겨우 여섯
살이었다.
"관가에 잡혀가면 모진 고문을 당하니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열심히 기도를 해야
한다고....."
최 여인이 울먹울먹 하더니 그예 낮게 소리를 내어 흐느껴
울었다. 조선이도 눈자위가 불어지고 목이 메였다.
밤이 이슥해 집으로 돌아오자 방바다가에 흙묻은 신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황가가 서학군이라는 증거를 잡기 위해
방을 뒤진 것이 분명했다.
(천발을 받을 위인 같으니...)
조선이는 입술을 깨물고 방바닥을 걸레로 깨끗이 닦아냈다.
십자가와 성교책은 헛간 숨겨 둔 탓에 안전했다.
이튿날 황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조선이는 황가가 집 주위에
나타나 어슬렁거 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살림도구와 양식을
나타나 어슬렁거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살림도구와 양식을
뒷산에 옮겨다 묻었다. 남편 이창현이 진천에서 돌아온다고 해도
한꺼번에 나르지 못하므로 미리 손을 써 두어야 했다.
그날 교인 가족 두 집이 떠났다. 한 집은 경상도 창녕으로
간다도 했고 한 집은 전라도 완주로 간다고 했다.
다음날은 최 여인네도 떠났다. 황가가 교인촌을 드나들면서
노골적으로 집까지 뒤지는형국이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2월인데도 날씨는 살을 예일 듯이 추웠다. 문고리가 손에 쩍쩍
달라붙고 밤이면 언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선이는 쓸쓸했다. 이따금 신앙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곤
했다. 천주교에 입교만 하지 않았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을 것이고 황가와 같은 못된 위인에게 수모를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니야, 내가 왜 이런 생각을....)
조선이는 그럴 때마다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성모 마리아에게
용서를 빌곤 했다.
그날 밤이었다. 조선이는 아이들을 재운 뒤 매괴 신공을
드리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이 오랫동안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조선이는 아가다야,아가다야....하고 부르는 소리에 얼핏 눈이
떠졌다. 사방을 둘러보자 등잔불만 일렁거리고 있을 뿐 사위가
죽은 듯이 조용했다. 아가다는 조선이의 세례명이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조선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가다야,하고 부르는 소리 가 이명처럼 귀에 쟁쟁했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눈이 푸짐하게 내리고 있었다.
조선이는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캄캄한 동북쪽 하늘에서 눈송이
들이 어지럽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 눈송이들 사이로 멀리서 횃불이 한 무리 어른어른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아!)
조성이는 가슴이 철렁했다. 포졸들이 마을을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조선이는 재빨리 아이들을 깨워 막내 옥희(玉姬)에게
옷을 입히고 등에 업었다. 옥순(玉順)이는 미투리를 신겨 걷게
하고 옷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집을 나섰다. 햇불을 든 포졸들의
무리가 마을로 들어서자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댔다. 조선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다. 벌써 사방에 눈이
하얗게 쌓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를 어째?)
조선이는 옥순이의 손을 잡고 숨이 차게 달리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포졸들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서둘러 집을 나오느라고
헛간 속에 숨겨 놓은 십자가 상과 성교책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일을 어쩌나?)
조선이는 발을 동동 굴렀다. 십자가 상과 성교(聖敎)책자들은
조선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 속엔
천주가사(天主歌辭)도 들어 있었다.
(헛간에 다시 갔다가 와야겠어....)
조선이는 머리에 인 보따리를 내려놓고 옥순이를 보따리 위에
앉혔다.
"옥순아, 여기 잠깐만 앉아 있어, 응? 엄마가 집에 가서
성물을 가지고 올께."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야?"
"지금은 알수 없어."
조선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포졸들이 교인들을 잡으러
부럭이골에 들어온 것이라면 가야 할지 자신도 알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은 가까운 뒷산에라도 피하고 보야야 했다.
"추워."
옥순이 몸을 잔뜩 웅크렸다.
"조금만 참고 있어."
"금방 오는 거야?"
"그래, 금방 올께."
조선이는 등에 업은 아이를 어르며 대답했다. 아이가 잠에서
깨어 칭얼대고 있었다.
"나두 엄마 따라가면 안 돼?"
"집에는 포졸들이 와 있어. 그러니 여기 꼼짝 말고 있어야
해."
"응, 알았어."
"무서워도 울면 안 돼?"
"응."
조선이는 옥순이에게 단단히 다짐을 해두고 집으로 달음질을
쳤다.
포졸들은 박지원의 집 앞에서 왁자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박지원의 가족들도 교우였다. 조선이는 박지원의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조선이는 서둘러
집에 들어가 옷보따리 하나를 더 챙긴 뒤 헛간으로 가서
성물(聖物)을 보따리에 챙겼다.
그때 사립문 쪽이 시끌벅적해 지면서 남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선이는 재빨리 뒤안으로 가서 ㄱ가리 뒤에
몸을 숨겼다.
"이 집엔 아무도 없는데?"
"계집이 없단 말이야?"
"아무도 없어. 방바닥에 이불이 깔려 있는 걸 보니까 우리가
오는 소리를 듣고 도망친 모양이야."
"그러게 내가 뭐래? 이 집부터 덮쳐야 한다고 안 그랬어?"
"젠장..."
"여러 소리 말고 빨리 한 길 쪽으로 달려가 봐. 계집은 애가
둘이나 딸려 있으니까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야."
"정말 한양에서 서학군을 잡아 죽이라는 대비마마의 전교가
내린 거야?"
"서학군을 많이 잡는 자에게 크게 상까지 내린데..."
"정말 한양에서 서학군을 잡아 죽이라는 대비마마의 전교가
내린거야?"
"서학군을 많이 집는 자에게 크게 상까지 내린데..."
남자들이 웅성거리더니 집 밖으로 나갔다. 조선이는 그들이
한길 쪽으로 사라지자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가는
길에 옥순이가 보따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조선이는 걸음을 서둘렀다. 남자들은 햇불까지 들고 한길로
몰려가고 있었다.
(천주님!)
조선이는 자신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횃불을 든 사내들이
조선이의 보따리 앞에 서서 웅성대고 있었다. 자욱하게 내리는
눈과 어둠 때문에 자세히 보이지 않았으나 말소리는 뚜렷이
들렸다.
"이게 그 계집 보따리 아니야?"
"옳거니, 계집이 아이 둘에 보따리까지 들고 가려니까 힘에
부쳐서 버린 모양이야."
"그럼 서둘러 가보자구. 장정들이 계집 걸음 하나 못
당하겠어?"
"이건 어쩌구?"
"불질러 버리지. 옷가지하고 솥단지인데..."
"그려."
사내들이 조선이의 옷보따리에 횃불로 불을 지르고는 왁자하게
한길을 향해 달려갔다. 조선이는 그때서야 보따리가 있는 곳으로
허겁지겁 뛰어갔다. 옥순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조선이는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고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눈발이 점점 거세어지는 가운데 사방은 칠흑처럼 어우웠다. 멀리
포졸들이 횃불을 들고 달려가는 모습만 보일 뿐 옥순은 어디로
갔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포졸들이 끌고 간 것 같지는 않은데....)
조선이는 가슴이 타는 것 같았다.
"옥순아."
조선이는 어둠 속을 향해 낮게 소리를 질러 보았다. 그러나
옥순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옥순아!"
조선이는 조금 더 크게 소리를 질러 보았다. 그래도 옥순의
대답은 들리지 않고 커다란 누송이만 천지사방에 자욱하게
날리고 있었다.
(천주님!)
조선이는 눈물이 주르르 쏟아졌다. 포졸들이 잔뜩 몰려 있는
마을에서 머릴 달아나야 하느데도 걸음을 떼어 놓지 못하고
웅크리고 앉자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그때 개천 쪽에서 옥순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옥순아."
조선이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엄마."
개천 쪽에서 흰 저고리 하나가 오들오들 떨며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옥순아!"
조선이는 옥순에게 달려가 와락 끌어 안았다. 옥순이 울먹울먹
하더니 앙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울면 안돼. 소리 내지 마..."
조선이는 주먹으로 자신의 눈을 훔쳤다. 옥순이 어깨를
들먹이며 울음을 삼켰다.
"거기는 왜 갔어?"
"몰라."
"내가 보따리 위에 꼼짝 말고 앉아 있으라고 그랬잖아?"
"누가 옥순아, 옥순아...하고 불러서 갔어."
"누가?"
조선이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물었다.
"몰라."
옥순이 고개를 흔들었다.
"우선 여기를 피하자, 포졸들이 우리를 잡으려고
돌아다니다까."
조선이는 옥순이의 손을 잡고 서둘러 뒷산으로 걸어 올라갔다.
한길까지 갔던 포졸들이 허탕을 치고 뒤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눈가지 사정없이 내리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것을 보면 아이들도 여간 춥지 않을 것이다.
조선이가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에 미끄러지고
엎어지며 이른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조선이는 소나무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마을을 내려다보았 다. 마을은 어느덧 조용해
져 있었다. 햇불이 십여 개 오락가락 하더니 한길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확자한 사내들의 소리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산 중턱 까지 들리는 것을 보면 포졸들이 교인들을
예천 동헌으로 끌고가는 모양이었다.
(불쌍한 교우들....)
조선이는 또다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조선이는 새벽이 가까워져서야 집으로 내려왔다. 아이들
때문에 눈을 맞고 산에 있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집에는
포졸들도 황가도 없었다. 조선이는 아이들의 젖은 옷을 벗기고
새옷을 갈아 입혔다. 짚으로 만든 우장을 옥순에게 걸치게 하고
등에 업은 아이에게는 이불을 덮어 씌웠다. 남편이 돌아올 때를
대비해 산에 묻은 살림도구 밑에 편지도 한 장 써 넣었다.
남편도 그 장소를 알고 있었다.
조선이가 옥순의 손을 잡고 예천땅 부럭이골을 떠난 것은 동녘
하늘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을 때였다.
3
예천에서 점촌(店村)으로 가는 길은 마을에서 산이 흰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조선이는 영마루에 서서 설화(雪花)가 나뭇가지마다 하얗게 핀
한길을 시린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산이 거하고 숲이
깊어서일까? 눈은 멎은 듯하다가 다시 내리고 멎은 듯하다가
다시 내리곤 했다.
예천을 떠난 첫 날은 50리(里)를 걸었다. 이정표가 있어서
50리를 걸은 것은 알 수 있었으나 둘째 날은 얼마나 걸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흘째 되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산을 두 개나 넘고 마을을
여럿 지났는데도 점촌이 얼마쯤 남아 있느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발이 눈에 푹푹 묻혀 걷기가 어려웠다. 걸음이 천근처럼
무거웠다. 미투리에 새끼줄을 꼬아서 감았는데도 걸음이
더디었다. 산이 험하고 눈이 내려서인지 포졸들이 눈에 띄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러나 큰 마을을 지날대는
포졸들이 길목을 지키고 서서 어디로 가느냐고 묻고는 하였다.
조선이는 그럴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으나 기찰을 하는
포졸들은 유별스럽게 까탈을 부리지는 않았다.
밤에는 헛간을 빌려 잠을 잤다. 따뜻한 아랫목에 아이들을
재우고 싶었으나 주막을 ㅌ아들기가 겁이 났다. 아이들이 추위에
몸을 떨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 30리밖에 안 남았어...)
고갯마루를 내려서자 이정표가 눈 속에 하나 보였다. 이정표엔
'점촌30리'라고 씌어 있었다.
조선이는 걸음을 서둘렀다. 점촌이 가가워지고 있다고
생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솟는 것 같았다.
옥순은 기운없이 타박타박 걷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사흘을
내쳐 눈길을 걸었으므로 다리가 몹시 아프리라고 생각했다.
예촌서 점촌까지는 1백 50리.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되는
길인지도 알수 없었으나 남편은 그저 1백 50리 길이라고만
했었다. 그 먼길을 여덟 살밖에 안 된 어린 것에게 걷게 하는
것이 가슴이 아팠으나 달리 재간이 없었다. 조선이도 등에
아이를 업고 머리엔 보따리를 이고 있는 것이다.
"옥순아, 다리 아프지?"
조선이는 타박타박 걷는 옥순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
옥순이 기운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다와 간다."
"...."
"이모 본 지 오래됐지?"
"응."
"이모집에 가면 푹 쉴 수가 있어. 그러니 기운을 내서
가자,응?"
"응. 기운내고 있어."
옥순의 대답은 기운이 하나도 없지만 어른스러웠다. 사흘을
내쳐 걸었는데도 다리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조선이는
딸의 그런 모습을 대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도무지
어린아이 같지 않은 것이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마을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포졸들이
지키는가 하면 천주교인이 틀림 없어 보이는 죄인들을 포졸들이
오라를 지어 끌고가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조선이는 그럴
때마다 간이 콩알 만해 지곤 했다.
순라를 도는 포졸들이 행여라도 옥순이에게 너의 어머니가
천주학을 하느냐고 물을까 봐서였다. 그렇게 되면 옥순이 어떻게
대답을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길에서 만난 포졸들은
옥순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이를 향해서도,
"이 추운데 어데를 가오?"
"애들 아버지는 어디로 가고 이 추운 날에 아낙이 애를 데리고
길을 가나?"
하고 혀를 차기까지 했다.
조선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리아께서 이 아이를 도와 주시는 건가?)
예천 부럭이골에서 도망을 쳐 나올 때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었다. 옷보따리 위에 앉아 있던 옥순이를 누군가가
개천으로 불러서 포졸들에게 들키지 않게 한 것은 암만 해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 캄캄한 밤중에, 더구나 누까지 자욱하게
내리고 있는데 개천에서 누가 옥순이를 부르겠는가. 조선이는
처음에 옥순이가 환청을 듣고 개천으로 간 것이려니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부럭이골에 포졸이
들이닥쳤을 때 아가다야,아가다야....하고 부르는 소리에 그녀가
잠을 깨어 화를 면한 것을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예사롭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은 지난 여름에도 있었다. 조선이가 집에 옥순이를
남겨 두고 밭에 김을 매러 간 일이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아침부터 찌는 듯한 더위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비오듯이 흘렀다. 6월의 불볕은 풀잎 하나 까딱하지 않는
밭고랑에 쏟아져 작렬하고 있었다.
옥희는 밭머리의 그늘에서 앉아 놀고 옥순이는 최 여인의
딸들을 따라 멱을 감으러 갔다. 그런데 옥순이가 잘못하여
소(沼)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조선이가 나중에
최 연인의 ㄸ라들로부터 들은 얘기였다.
그 소는 밤이면 어른들이 들어가 멱을 감곤 하는 곳인데 최
여인집 딸들을 따라간 옥순이가 소에 빠진 것이었다.
옥순은 소에 빠지자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면서
허우적거렸다. 최 여인의 딸들은 소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최 여인집 둘째딸이 발을 구르다가 조선이를 부르러 허겁지겁
달려간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최여인집 큰 딸은 사람
살라라고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때 개천 옆에 있는 논에서 피를 뽑던 노인이 최 여인집 큰
딸이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논에서 헐레벌떡 뛰어나와
개천으로 달려갔다.
(아니, 저럴 수가...!) 노인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옥순이가 소 한가 운데서 마치 물 위를 걷듯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이려니 생각했다. 몇 번씩 눈을
비비고 옥순을 쳐다보았으나 헛것을 본 것이 아니었다. 최
여인의 두 딸도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노인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갑자기 까닭을 알수 없는
공포가 가슴을 서늘 하게 했다.
그때 옥순의 주위에서 눈부신 광채가 쏟아졌다. 노인은 눈이
부시어 재빨리 눈을 감았다. 최 여인집 두 딸도 그 빛을 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들의 코 끝에 기이한 꽃향기가 은은하게 풍겼다.
조선이가 숨이 차게 개천으로 달려왔을 때는 옥순이는 이미
물가에 나와 옷을 입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니?"
조선이는 옥순이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최 여인집의 큰딸에게
물었다.
그러나 최 여인집 큰 딸은 한참 동안이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노인 도 비실비실 논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모르겟어요."
최 여인집의 큰딸은 조선이가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물은
뒤에야 겨우 대답을 했다.
"옥순이가 소에 빠졌었다며?"
"예."
"그럼 누가 꺼내 주었니?"
"옥순이 혼자서 나왔어요."
조선이는 최 여인집의 큰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옥순이
소에 빠졌다면 스스로 헤엄쳐 나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남자들도
그 소를 이무기가 승천한 소라고 하여 가운데로 들어가 멱을
감지는 않았다. 소 한가운데가 두 길이 된다는 사람이 있고 세
길이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소 위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골짜기에서 흘러 내리는 물이 그 절벽에 이르러 폭포가 되고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괴어 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이
개천을 따라 흘러 부럭이골의 생활용수가 되었다.
"내가 물에 바져서 허우적거리는데 '아가야, 내손을
잡아라,'하는 소리가 들렸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손을 잡고
나온 거야."
옥순은 나중에 조선이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했다.
"누구 손인데?"
조선이는 옥순의 대답이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몰라, 얼굴은 못 보고 하얀 치마만 봤어."
"어른이니?"
"그런 것 같아."
"잘 생각해 봐. 여긴 아무도 없잖아?"
"......"
"니가 잘못 본 건 아니니?"
"아니야. 냄새까지 났어."
"무슨 냄새?"
"장미꽃."
"장미꽃?"
조선이는 장미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장미꽃은 서양에
있는 꽃이었다.
"응."
"니가 장미꽃을 알아?"
"몰라, 그렇지만 장미꽃 냄새라는 생각이 들었어."
조선이는 입을 다물었다. 장미꽃은 조선이도 강 깔래
신부에게서 들어 그런 꽃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꽃을 본
일도 냄새를 맡아 본 일도 없었다.
(설마, 그 분이....?)
조선이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성모 마리아의 상징이 장미꽃이고, 성모 마라아가
발현(發現)할 때 장미꽃 향기가 그윽하게 풍긴다는 말을 강 깔래
신부에게 들은 기억이 났다.
천주교인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매괴
신공(枚塊神功:로사리오 기도)을 장미화관의 기도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까닭이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 교인들이
로아인들에게 박해를 받아 순교했을 때, 그 순교자의 무덤에
그리스도교 교인들 이 모여 장미꽃을 한 송이식 던지며 기도를
했다고 하여 장미화관의 기도, 또는 장미의 기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었다.
매괴 신공은 천주교인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신심기도로, 성모 마리아를 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구(傳救)하여 주기를 청원하는 기도였다.
일반적으로 15단으로 되어 있는데 매괴로 만든 구슬을 꿰어
사용하고 있었다.
매괴는 붉은색의 구슬로 미옥(美玉)이라고도 했다. 해당화의
다른 이름이 매괴화였다.
그런 일은 가을에도 있었다.
가을이면 마을마다 고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는데
부럭이골에서도 마을 고사가 한바탕 벌어졌었다. 조선이는
고사를 지내는 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옥순이 보이지 않아
찾아나섰다가 굿거리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가난한 마을
이지만 그래도 마을 고사라 커다라하게 차일이 처진 황가네
마당에서 굿거리가 한바탕 벌어지고 있었다. 초저녁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거반 다 모인 듯했고, 전물상도 화려했다.
옥순은 사람들 틈에 끼어 신장대를 흔들며 겅중겅중 뛰고 있는
무당을 말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쟤가...)
조선이는 공연히 가슴이 선뜩하여 옥순의 뒤로 돌아갔다.
옥순을 굿거리판에서 살그머니 끌고 나올 작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당이 옥순을 향해 가까이 오더니 신장대를 똑바로
겨누었다. 조선이는 얼굴이 핼쓱하게 질렸다.
"부정탄다. 부정타아....!"
징 치는 소리 꽹과리 소리에 섞여 무당의 주문이 높아져 가자
사람들이 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으나
옥순이도 무어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이쿠!"
그때 무당이 펄쩍 뛰어오르더니 쿵하고 나자빠졌다. 사람들의
입에서 어,하는 서리가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무당이 눈을
까뒤집고 온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조선이는 재빨리 옥순의 손을
나뀌채 집으로 끌고 돌아왔다.
굿거리는 그것으로 파장이 되었다. 옥순이 그 자리를 떠난 뒤
무당도 일어났 으나 신이 나갔다고 신장대를 잡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주의 기도"主祈禱"만
했어요."
"왜 거기서 주의 기도를 했어?"
"무당이 주문을 외길래 나도 그냥 기도를 한 거예요."
옥순은 영특했다. 네 살 때 이미 주의 기도를 외고 매괴
신공을 바칠 줄 알았다.
조선이는 그런 일들을 가만히 생각하자 옥순이 어리게만
생각되지 않았다.
그들이 점촌읍에 도착한 것은 해가 기울어 날이 어욱하게
저물고 있을 때였다. 조선이의 형부인 윤백남(尹白南)은
상가집에 가고 집에는 언니 조선애(趙仙愛)와 장성한 조카
봉구(鳳九)만 있었다.
"아이고, 이 어린 것들을 데리고 눈길을 어떻게 왔어?"
조선애는 혀를 차면서 조선이를 맞이해 주었다.
조선이는 언니 조선애가 지어 주는 따뜻한 저녁을 먹은 뒤
옥순이와 옥희를 재웠다. 아이들은 피곤한지 금세 잠이 들었다.
"그래,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되었어?"
아이들을 재우고 나자 조선애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조선이는 언니 에게 예천에서 떠나온 사정을 자세히 얘기했다.
그러자 조선애가 아이고 불쌍 해라, 아이고 불쌍해라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조선이도 목이 메었다.
"얘는 그럼 계속 걸어서 왔어?"
"응, 다리 아프다는 소리도 않고 걷는데 어찌나 딱한지....."
"천주님도 무심하시지. 이 어린 것이 미슨 죄가 있다고....
이런, 발에 얼음이 백혀 퉁퉁 부었어... 쯧쯧....."
"어디?"
"이거 봐."
"정말."
조선애가 옥순이가 신은 버선을 벗기자 발등까지 퉁퉁 부어
있었다.
조선이는 또 목이 메였다.
"내가 얼음을 빼줄 테니 만지지 마, 이걸 그대로 두면 썩어.
조선이가 옥순이 의 발을 이불 속에 넣고 가지나무 뿌리를
삶으러 갔다. 가지나무 뿌리를 삶은 물에 발을 담가 두어야
얼음이 빠진다는 것이었다. 조선이는 밤늦게까지 언니와 얘기를
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진천땅 백곡 으로 떠난 남편에 대한 걱정,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한 근심으로 머리 속이 뒤숭숭했다. 조선이는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조선이는 점촌 언니네서 사흘을 머물렀다. 밥상만 드면 남편이
오나 하여 어린 것들을 데리고 한길까지 나가서 길바라기를
했으나 남편은 오지 않았다.
조선이는 사흘이 지나자 언니네 집을 떠나기로 했다. 언니네
집도 먹을 것이 만만치 않았다. 자기네 식구들은 아침 저녁으로
멀건 조당수를 끓여 먹으면서도 조선이와 아이들에게는 조카반
넘어 섞인 밥을 끼니 때마다 따뜻하게 지어서 먹였다.
조선이이는 민망하여 차마 밥숟갈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언니 내외 에게 더 이상 부담을 줄 수가 없었다.
"지금 떠나면 어디로 가게?"
조선애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충주에 있는 시누한테 갈래요."
"시누도 교인이야?"
"교인은 아니지만 며칠 묵을 수는 있을 거야. 애들 아버지가
찾아오면 충주로 갔다고 전해 줘요."
"그래."
조선애는 주먹밥을 만들어서 보따리에 넣어 주고 형부
윤백남은 5리(五里)밖 까지 옥희를 업어다 주었다. 조선이는
그들과 눈물로 작별을 한 뒤 문경(聞慶) 새재(鳥嶺)쪽으로
걸음을 떼어 놓았다. 새재를 넘어 충주로 들어갈 요량이었다.
그날 저녁 조선이는 점촌에서 50리 떨어진 주막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국밥을 한 그릇 먹고 보부상들을 따라
길을 나섰다. 보부상들은 옥희를 업어 주기도 하고 재미있는
얘기도 해주어 한결 걸음이 수월했다.
점촌 언니네 집을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 조선이는 문경
새재를 넘었다. 보부상들은 조선이와 어린 것이 걸음이 느리자
새재를 넘은 뒤 앞질러 가버렸다.
조선이는 그날 밤 늦게서야 시누이 집에 도착했다. 시누는
조선이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으나 남편되는 장문길(長文吉)은
탐탁치 않아 하는 눈치였다.
장문길은 한의원이었다. 첫날은 그래도 멀리서 왔다고
대면하기는 했으나 떠나라 소리까지는 하지 않더니, 이튿날이
되자 우리 집안 멸문지와 당하기 전에 떠나라고 독촉을 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이창현이 들이닥치자 술을 받아 오고 닭을
잡아서 대접한다고 법썩을 떨어댔다.
조선이는 이창현과 함께 충주에서 하룻밤을 더 지낸 뒤
제천(堤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창현의 얘기에 의하면 진천
백곡도 포졸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해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진천군 백곡에는 교우촌이 있는데 이진사라는 사람이
회장이고, 정삼이골이라 는 곳은 호환(虎患)이 두려울 정도의
깊은 산골이어서 포졸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경포가 한성에서 내려와 드나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선이 내외는 충주로 떠난 이튿날 오후에 제천 봉양을 지나
월림에 도착했다.
1)성모 마리아의 발현은 천주교 용어로 이적(異蹟)또는
기적(奇蹟)을 말하는 것으로 2천 년 천주교의 교회사에서 수없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천주교 에서 공식적으로 발현으로
인정하는 것은 과테말라, 파티마, 루르드뿐이다.
2)강(姜)깔래(Galis)신부는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61년 조선에 들어와 활발한 전교 활동을 했다.
3)천주교는 마리아교가 아니다.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라는 뜻이고 이 소설에서 마라아을 향해 천주교 교인들이
기사라는 뜻이고 이 소설에서 마리아를 향해 천주교 교인들이
기도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고 있는 것은 1만여명이 목숨을 잃은
병인대박해가 닥쳐, 자애와 동정의 상징인 성모 마리아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당시 교인들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4)"천주실의"를 지은 이마두는 마태오 릿치 신부의 중국식
이름이다.
5)김계호는 김면호(金勉浩)라는 기록도 있다.
6)장베르뇌 주교, 안다블뤼 주교, 남종삼 등은 천주교 103위
성인 반열에 올라 있다.
7)조선이와 이창현은 소설 속의 인물이다.
제6장 멀고 긴 봄의 시작
1
ㅉ기는 자가 있으면 ㅉ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조선이 내외가
예천을 떠나 충청도 제천에 도착했을 무렵, 박해의 검날은
무서운 피바람을 일으키며 전국 으로 확산되어 갔다. 서학군을
잡는자에게는 포상을 한다는 방(榜)까지 나붙자 전국은 서학군
색출에 벌집을 쑤신 것처럼 떠들썩했다. 무위도식하는 건달들,
포수, 각 관아의 포졸들은 눈에 불을 켜고 서학군 사냥에
나섰다.
박달(朴達)도 그런 사내였다. 그는 경복궁 중건이 한창일때
공역으로 동원되어 일을 하다가 도망쳤다.
그는 경기도 양지(陽智:利川)로 도망쳤다. 그의 처자
옥년(玉蓮)이 양지 술청 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무위도식하며 지내다가 아낙이 강짜를 부리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저자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 갔다.
쏴아. 바람이 휘몰아칠 때마다 차가운 빗발이 앙상한 흙벽을
들이쳤다.
박달은 마을의 개들이 사납게 짖어대는 서리에 얼핏 눈을
떴다. 사방은 캄캄 했다. 칠흙의 어둠이었다. 마을 어느 집에
도둑이라도 든 것일까. 개짖는 소리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박달은 바깥 동정에 바짝 귀를 기울였다. 개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다 가 뚝 그치고 빗발이 흙벽을 들이치는 소리가
귓전을 어지렵혔다.
(이년은 세상 모르고 자빠져 자는군...)
옥년은 코까지 골면서 곤하게 자고 있었다.
박달은 얼굴을 찡그리고 습관적으로 어둠 속을 더듬어 옥년의
궁둥짝을 쓰다듬 었다. 옥년의 궁둥이는 펑퍼짐하게 살이 붙어
있었다. 잘 먹이지도 않았는데 허벅지까지 피둥피둥 살이 찐
것을 보면 아무래도 술 살이 올랐지 싶었다.
개 짖는 소리가 다시 요란해 지고 있었다. 박달은 공연히
머리맡이 선뜩해져 문께를 쳐다보았다. 누렇게 변질된 창호지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겨우 희미한 윤관을 드러내고 있었다.
(속살 하나는 푸짐한 년이야....)
박달은 옥년의 탄력 있는 궁둥이를 만지며 새삼스럽게 감탄을
했다. 낯짝만 번드르 했다면 벌써 땅마지기라도 장만했을
터였다. 술청에 간간이 낯짝 내밀기 3년, 박달이 여태 나뭇짐
장사를 면하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옥년의 맷돌 짝처럼 못생긴
얼굴 때문이었다.
박달은 옥년의 궁둥이를 슬금슬금 어루만졌다. 옥년이 잠에서
깨어 악다구니를 퍼붓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으나 벌써
하체가 뻐근하게 일어서고 있었다. 김 선달네 기일에 쓸 돼지를
잡으며 내장을 포식한 탓이었다. 모처럼 뱃속에 기름기가
들어가서인지 아직도 속이 든든했다.
(개 짖는 소리에 이년만 호강하게 생겼네."
박달은 아랫도리가 팽팽해 지는 것을 느끼며 싱겁게 웃었다.
옥년에게 바짝 다가가자 희미한 살 냄새가 풍겼다. 어쩌면
젖냄새인지도 알 수 없다.
"내가 이 궁둥이 때문에 널 데리고 살지, 얼굴보고는 안
데리고 살아...."
박달은 이불 속에서나마 이따금 옥년의 궁둥이를 토닥거리며
칭찬을 하곤 했다.
"흥, 내 얼굴이 어때서?"
"이년아, 그게 어디 얼굴이냐?"
옥년은 이때쯤이면 대개 눈에 쌍심지를 돋우었다.
"내 발바닥두 네 년 얼굴보다는 낫겟다."
박달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니 놈 쌍판대기는 얼마나 낫기에?"
"뭐, 놈?"
"너는 왜 년이라고 그러니?"
"에라, 이년아."
술청에 낯짝을 내밀기 시작한 이래 옥년은 말하는 뽄새가
사나워졌을 뿐만 아니라 명색이 서방인 박달에게 겁없이
대거리까지 하였다. 옥년이 대거리를 하면 박달은 대뜸 옥년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어, 이놈이 사람을 치네."
"그래 이년아, 서방이 제 계집 치는 것두 잘못이냐?"
"이놈아 말로 하지 왜 사람을 쳐?"
"뭣이 어째?"
"칠 테면 아주 죽여라. 니 계집 죽이지 내 계집 죽인다더냐?"
"서방을 알기를 뭘루 알어 이년아! 네년 눈깔엔 서방이
개코로밖에 안 보이냐 ?"
"그래. 개코로 보인다!"
옥년이 패악질을 하면 박달은 옥년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휘두르기도 하고 앞마당으로 뛰어나와 장작개비를 찾아들고
뛰어들어가 복중에 개패듯 옥년을 후려패곤 했다. 옥년은
그때서야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는 데 박달도 그때쯤이면 분이
풀어져 매에 사정을 두는 것이었다. 그래도 옥년은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사흘거리로 대거리를 하고 패악질을 해서 매를
벌었다.
물론 박달이 쪽에서 먼저 심사가 나서 옥년을 두드려팰 때도
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김 선달네 제사가 내일이라 돼지를
잡는데, 내장을 삶아서 술추렴을 하던 마을 장정들이,
"박달이네 밭은 어때 소출이 없나?"
"밭이 시원찮은가 씨가 시원찮은가?"
"밭이야 기름진 밭이라고 소문이 난 밭 아니여?"
"누가 봤남?"
"내돌린 밭인데 한두 사람이 봤을려구. 그 밭이 비옥하다는
것은 곧은골이 다 아는 사실이여....."
하고 박달을 호롱했던 것이다. 박달의 여편네가
논다니(遊女)짓을 했다는 것은 곧은골(直谷)이 다 아는
사실이었고, 곧은골에서도 삼서리 술청에서 일을 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박달을 회롱하는 수작이었다. 소출이 없다는 것은
자식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내돌린 밭이라는 것은
몸뚱이를 판다는 것인데 공연히 트집을 잡는 수작들이었다.
박달은 마을 장정들이 희롱을 하자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
나오고 말았다. 내장을 배불리 먹은 탓에 더 있어 봤자 돼지
잡은 뒤치다꺼리나 해야 하는 것이다.
옥년은 초저녁인데 아랫목에 네 활개를 펴고 자빠져 자고
있었다. 박달은 눈꼴이 시어 옥년의 넓적한 궁둥이를 냅다
걷어찼다.
"이놈아, 자는 사람을 왜 발로 차?"
옥년이 잠결에 놀라 눈을 희번득거렸다.
"이년아, 서방도 안 들어왔는데 가랭이 버릴고 자빠져 자?
어디서 배워 처먹은 수작이여?"
"술 처먹었으면 곱게 자빠져 자."
"이년 봐라."
박달은 다시 옥년의 펑퍼짐한 엉덩이를 냅다 걷어찼다. 논다니
짓을 해서 그러는지 옥년은 도무지 옷차림이 단정하지가 않았다.
허술하게 맨 옷고름이 풀어져 옥년의 젓가슴이 허옇게 삐져나와
있는 꼴을 보자 박달은 부아가 나서 발길질을 했는데, 옥년은
웬일인지 더 이상 대거리도 하지 않고 패악질도 하지 않았다.
박달도 싱거워서 옥년을 웃목으로 떠밀고 아랫목에 누웠다.
방바닥이 뜨근뜨근했다. 박달이 장터에 내다팔 나무로 군불을
지핀 것이 분명했다.
박달은 옥년을 두들겨 패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쩐지 옥년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다. 모로 누워 죽은 듯이 자고 있으나
숨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이년아, 아프냐?"
박달이 소리를 질러 물었다.
"....."
옥년은 대꾸가 없었다.
"이년아, 아프냐고 묻잖아?"
"....."
"우라질 년, 소 죽은 귀신이 씌웠나....."
박달은 혼자말로 중얼거리고 눈을 감았다. 밖에는 빗발이
추적대고 있었다. 그것이 초저녁의 일이었다.
(이년이 아픈가?)
박달은 옥년의 치마자락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허벅지가
뜨거웠다. 옥년이 끙하고 몸을 뒤채더니 바로 누웠다.
박달은 누운 채 바지저고리를 벗고 알몸이 되었다. 개 짖는
소리가 차츰차츰 수구러들고 빗소리 바람소리가 어수선해 졌다.
철이른 봄비였다. 빗소리가 썰렁하기는 해도 그치고 나면
봄기운이 한결 완연할 것이다.
박달은 치마자락을 옥년의 허리깨로 걷어올리고 속곳을 끌어
내리기 시작했다.
"이놈아, 그냥 자빠져 자!"
옥년이 잠이 깼는지 대듬 짜증스럽게 내뱉았다.
"가만 있어, 이년아!"
박달은 옥년을 윽박지르고 옥년의 몸뚱이 위에 엎어졌다.
옥년이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귀찮단 말이야."
"귀찮기는, 네년도 좋아하잖아?"
옥년이 앙탈을 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 싶었다. 그러나
옥년은 잠에 취한 기색이 역력했다.
"싫다니까...."
옥년의 말투에 잠투정이 묻어났다.
"네년의 몸이 이렇게 뜨거운데 왜 싫어?"
박달은 옥년이 그 짓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옥년은 박달이보다 그 짓을 더 좋아했다. 논다니 짓을
해서 숱한 사내 경험을 얻은 뒤로는 수단까지 기기묘묘해 져서
제년이 기분이 좋을 때면 온갖 요분질을 다하여 박달이를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옥년이 논다니 짓을 한 것은 전적으로 박달이 탓이었다.
박달은 옥년과 혼례를 올린지 1년이 채 못 되어 기침을 하고
피를 토하는 병을 얻었는데 옥년이 품앗이 일도 하고 삵바느질도
하여 입에 겨우 풀질을 했었다. 그러나 박달의 병환이 점점
심해져 운신까지 하지 못하게 되자 옥년은 술청에 나가 논다니
짓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박달이와 옥년이 혼례를 올리고 살림을 차린 곳은 황해도
신천(信川)이었으나 경기도 양지로 옮겨 옥년은 저자의 술청에서
논다니 짓을 하고 박달은 병환을 치료하였다. 박달은 처음에
옥년이 품앗이 일을 나가고 마을의 큰 일이 있는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것으로만 알았다. 그러나 옥년이 논다니 짓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침 저녁으로
색경(石鏡)을 들여다보면 시체처럼 눈이 움퍽 들어가고 뼈만
남은 자신을 버리고 옥년이 도망이나 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아침에 운신도 못하는 박달에게 옥년이 억지로 밥 한릇을
떠먹이고 술청에, 나가면 박달은 이제나 저제나 옥년이
돌아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병은
점점 심해져 가서 가래가 끓고 피를 한 사발씩이나 토했으나
좀처럼 나아질 줄을 몰랐다. 어느때는 눈앞이 아득하고 캄캄해
져서 이제는 내가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박달은 오얏꽃처럼 하얀 어머니의 얼굴이 아련히 떠오르곤
했다.
어머니는 노비였다. 우의정(右議政)을 지내고 향리인 신천에서
봉조하(奉朝賀) 의 벼슬에 있던 김병일(金炳一)대감댁의
계집종이었다. 외할머니가 누구이고 외할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어머니도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예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김병일 대감댁에서 자랐고, 나이가 들자 김 대감의
명을 받아 박판석(朴板石)이라는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 그때
어머니의 뱃속에는 박달의 형이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박달의
형은 생후 3일이 되자 죽었다.
아버지 박판석은 소작인이었다. 신천에서 김 대감댁과
명문세가로 쌍벽을 이루던 이기선(李期善)판서댁의 논을
소작하고 있었다. 이기선 대감은 조부가 예조판서를 지냈으나
자신은 진사 벼슬에도 오르지 못한 위인이었다. 그러나 조부의
위헤로 근동의 땅을 많이 소유하여 대가집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 집의 마름이나 하인들도 주인의 행실을 배워서인지 거드름을
피우기 일쑤였다.
어머니가 이기선 대감댁의 마름에게 그 짓을 당한 것은 박달이
여섯 살 때였다. 가을걷이가 모두 끝난 음력 10월이었다.
타작까지 모두 마치자 이기선 대감댁의 마름 황개(黃介)가 찾아
왔다. 마름이 가을걷이가 끝날때 소작인들을 찾아오는 것은 으레
있는 일이었다. 한 해의 소출을 계산하여 논 임자에게 바치고
소작인들에게 떼어 주는 일을 하는 것이 마름이었다. 소출이
시원찮으면 다음해에는 소작을 못하게도 하기 때문에 위세가
나랏님보다 높다는 말까지 도는 형편이었다.
박달의 아버지 박판석은 황 마름이 찾아오자 닭을 잡아 술상을
차렸다. 황 마름을 잘 대접해야 소작벼도 적게 바치고 내년에
다시 논을 소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 마름은 술이 얼큰해서 돌아갔다. 아버지도 술이 몹시
취하였다. 아버지는 원래 밀밭에만 가도 술이 취한다는 사람으로
황마름을 대접한다고 마신 술이 대취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목이 타는 갈증에 눈을 뜬 것은 밤이 이슥했을
때였다. 어둠 속을 더듬어 어머니에게 냉수를 떠오라고 할
참이었다. 머리가 쪼개지는 듯이 아프고 방안이 빙빙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으나 방문을 열고 봉당으로 내려섰다.
달이 휘영청 밝았다. 바람은 서늘하고 별빛이 초롱초롱했다.
아버지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마당엔 달빛 그림자가 길게
깔려 있었다. *사위가 죽은 듯이 조용했다. 마치 달빛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바깥 기운을 쐬어서인지
비로소 머리 속이 명징하게 밝아진 느낌이었다.
"이, 이러지 마시라니까요."
그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헛간 쪽에서 들렸다.
"가만히 좀 있으라니까."
사내의 목소리도 들렸다.
"아이참! 애 아부지 알면 다리 몽댕이 분질러 진다니까 자꾸
이러시네."
"아따 오늘이 처음두 아니잖아?"
"그땐 그때구...."
"가만 있어라. 한강에 배 지나간 자국 남느다던?"
황 마름이었다. 아버지는 머리 끝이 곧추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큰일 났네..."
어머니의 안달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 서방두 계집 잘 둬서 우리 대감댁 논 갈아 먹는지 알고
있을 게야...."
"이를 어째...."
"요것아, 이제 그만 좀 뻗대."
아버지는 부엌 옆의 벽에 걸린 낫을 움켜잡았다. 사람들이
여편네 잘 둬서 이 판서댁 논을 부쳐 먹고 있다고 빈정거리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황 마름은 변덕이 심한 사내였다. 얼굴이 살짝 얽어서
살짝곰보라고도 불리웠으나 이 판서댁의 논을 부치려면 황
마름에게 잘 보야야 했다. 황 마름에게 잘못 보이면 부치던 논을
뺏기고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농사
지을 땅이 없어 대개 품앗이 일을 했다. 그러나 품앗이 일도
농번기 때뿐이어서 초근목피로 연명을 해야 했다. 먹고 살 것이
없었다. 그들은 견디다 못해 집을 버리고 마을을 떠났다. 마을을
떠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대체로 가서
식솔들과 함께 걸식을 했다. 걸식도 못하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다. 그럴때 가장 먼저 죽는 것이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었다.
박달이 태어날 무렵엔 전국에 큰 수재(水害)까지 일어났었다.
전국에 있는 농토가 물에 소실되어 큰 흉년이 닥쳤다. 굶어 죽는
사람이 가을 낙엽처럼 길바닥에 뒹굴고 도적떼가 들끓었다.
이듬해엔 전국적으로 호열자(虎列刺)라는 괴질(怪疾)이 돌아
수만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호열자는 박달이 여섯 살이 될때까지
기승을 부리다가 없어졌다. 그런 때에 소작농지를 뺏기는 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아이..."
어머니가 야릇한 신음소리를 내뱉았다.
"요것아, 허리를 들어야지."
아버지는 헛간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떼어 놓았다.
"이렇게?"
"옳지..."
"아이 숭해라."
"좋으냐?"
"으응."
"이렇게 하면?"
아버지가 헛간으로 들어섰다. 어머니와 황 마름은 아버지가
헛간으로 들어서는 것도 모르고 한 덩어리가 되어 헐떡대고
있었다.
아버지는 헛간에 들어서자 한동안 잠자코 서 있었다. 왜
그랬는지 알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황 마름이
가쁜 숨을 몰아 쉬는 것을 넋이 빠진 듯이 지켜보았다고 하였다.
"에그머니!"
그때 어머니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댔다. 어머니가 황 마름의
어깨 너머로 아버지를 발견한 것이다. 어머니의 비명소리에 놀란
아버지는 그제서야 어머니의 알몸에서 떨어져 일어나는 황
마름의 등짝을 낫으로 찍었다.
"어이쿠!"
황 마름이 등짝에 낫이 박힌 채 후다닥 달아났다. 아버지는 황
마름을 뒤ㅉ아 달려갔다. 아버지가 돌아온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아버지는 삽을 들고 다시 바깥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그때 재빨리 방으로 들어와 박달을 끌어안고 산으로
달아났다.
이튿날 어머니는 아버지를 관가에 고발했다. 아버지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관가의 포졸들에게 잡혀가
재판을 받았다. 어머니도 부정한 짓을 저질렀다고 하여 관가에
끌려가 곤장을 30대나 맞고 마을에서 내쫓겼다. 아버지는 황
마름을 죽여서 산에 묻었다고 하여 해주 감영에 끌려가 목이
베여 죽었다.
어머니는 장독(杖毒)이 올라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이것은 박달이 어른이 되어 들은 얘기였다.
박달은 걸인이 되어 떠돌아 다녔다.
박달이 아내 옥년을 만난 것은 충청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걸식을 하다가 고향 신천에 돌아와 품앗이 농사꾼 노릇도 하고
나뭇짐을 해서 장에 팔고 있을 무렵 이었다. 겨울이 닥쳐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섣달 어느날 밤에 걸인 모녀가 찾아와
유숙할 것을 청했다. 박달은 그들 모녀를 헛간에 재워 주었다.
그때만 해도 옥년은 살빛이 뽀얗게 흰 처녀였다. 은근히
옥년에게 마음이 끌린 박달은 아침에 모녀를 방으로 불러들여
조반까지 주었다.
모녀들은 겨울이 다가도록 박달의 집을 떠나지 않았다. 박달도
그들에게 떠나라고 하지 않았다.
이듬해 봄에 박달은 목수의 손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방 한
칸을 더 들여 처녀의 어머니를 기거하게 했다. 처녀는 박달과
함께 안방에서 기거했다. 그렇게 해서 혼례 아닌 혼례를 올리고
남편과 아내가 된 박달이었는데 옥년의 어머니가 죽고 박달이
병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박달이 긴 병에서 헤어난 것은 옥년이 논다니 짓을 하여
약재를 지어온 탓이었 다. 박달은 옥년이 지어온 약재를 먹기
시작하면서 차츰차츰 몸이 회복되더니 2년 만에 건강을
되찾았다.
갑자기 옥년이 몸을 뒤채며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박달은
옥년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재빨리 어깨를 찍어 누렀다.
고통스러워하는 옥년의 몸부림이 손바닥 안에서 펄덕거리는
생선처럼 그의 아랫도리를 자극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 이년아!"
박달은 옥년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왜 때려 이놈아?"
옥년이 발길로 박달의 배를 내질렀다.
"이년이!"
"때리기만 해봐라."
"이년아,때리지 않을 테니 잠자코 있어."
"이놈아, 그 짓이 하고 싶으면 사정을 해야지. 우격다짐으로
계집을 깔고 눌러? 그러면 어느 계집이 좋다고 그러니?"
"그년 입 한번 걸직하네."
"입만 걸죽한지 아니?"
옥년도 잠이 달아났는지 그제서야 호응을 해왔다. 박달은 더
대꾸를 하지 않고 옥년의 몸뚱이로 다시 기어 올라갔다. 이번엔
옥년이 발길질을 하는 대신 가랑이 를 벌리고 박달의 등에 두
팔을 감았다.
"어떠냐?"
박달이 옥년의 몸 속 깊은 곳에 자신을 밀어 넣었다.
"좋구나."
옥년이 입을 헤벌쭉 벌렸다. 옥년의 입에서 달디단 외 냄새가
풍겼다.
"무슨 맛이니?"
"떫은 살구 맛이다."
"예끼 이년아!"
박달은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또다시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고 비바람 소리가 들렸다. 박달은 옥년을 세차게
몰아붙였다. 논다니 짓을 해서 사내 다루는 데 이력이 붙어
웬만해서는 옥년을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옥년이
명색이 서방에게 이놈, 저놈하고 대거리를 하고 달려드는 것은
아무래도 잠자리에서 옥년을 만족시키지 못한 탓일 것이었다.
옥년이 걸핏하면 문전만 더럽히냐고 강짜를 무린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오늘은 돼지 내장으로 포식을 했으니 이년이 다시는 덤벼들지
못하도록 해야지...)
박달은 옥년을 힘차게 밀어붙였다. 옥년은 눈을 감고 있었다.
턱은 꼿꼿이 들고 가늘게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박달은 점차 숨이 가빠왔다. 가슴이 격렬하게 뛰었다. 그러니
온몸의 기운이 한 곳으로 집중되면서 옥년과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 되었다. 옥년의 못생긴 얼굴이 고와 보이고 이놈 저놈
하고 대거리를 하는 것도 귀엽게 생각되었다.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왔다. 어머니의 얼굴도 머리 속에
희미하게 떠올렸다. 이제는 두 사람의 얼굴을 뚜렷하게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박달의 귀에 속삭이던 소리는
꿈결인 듯 들려오곤 했다.
"일어나거라, 일어나...."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게 속삭였다.
양반이 되어라. 네 아버지도 양반이 되려고 부지런히 농사를
지은 거야. 양반이 되면 계집종 치맛자락도 마음대로 벗기고
땅도 가질수 있어. 네 땅을 갖고 있어야 소작료도 안 바치고
마름따위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 거야. 돈을 벌어서 족보를
만들어..."
박달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속삭이는 소리를 처음 듣기 시작한
것은 고향 산천 을 떠나 충청도에서 걸식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겨울이었다. 살을 에일 듯이 날씨가 추웠다. 밤이면 언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고 별빛도 취위에 떨며 옹송그리고 있었다.
박달은 사흘 동안이나 비럭질을 하지 못했다. 언제부터이지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하더니 다리에 힘이 빠져 걸을 수가
없었다. 박달은 낮엔 양지쪽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밤이면
논바닥의 짚가리 속에 들어가 잠만 잤다. 그렇게 사흘이
되었을때 박달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배도 고프지 않았고
취위도 느껴지 지 않았다. 이따금 혼미한 어둠 속에서 어머니의
얼굴만 하얗게 떠오르곤 했다.
일어나거라.
그때 어머니가 박달의 귀에 속삭였다.
어머니!
박달은 꿈속을 헤매듯 어머니를 불렀다.
일어나거라. 그렇게 잠만 자고 있으면 너는 굶어 죽어.
어머니, 자꾸 졸려요.
일어나야 한다. 비럭질을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해.
아버지도 박달의 귀에 속삭였다.
다리에 힘이 없어요.
굶어서 그런 거야. 무엇이든지 먹고 기운을 차려.
싫어요.
얘야, 죽으면 안 돼. 무슨 짓을 해서든지 살아라....
박달은 논바닥의 짚가리 속을 기어 나왔다. 어떻게 해서 마을
까지 찾아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박달은 걷다가 넘어지면
기어서 가고 기다가 힘들면 다시 일어나 걸어서 갔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 앞에서 '얘야, 얘야... 고 박달을
불렀다.
박달은 어느 집 부엌으로 숨어 들어갔다. 솥뚜껑을 열자
감자찐 것이 세 개 남아 있었다. 박달은 그것을 허겁지겁 꺼내
먹고 물동이에 얼굴을 쑤셔 박고 물을 마셨다.
박달은 그때부터 낮에는 비럭질을 하고 밤이면 무엌에 들어가
음식을 훔쳐 먹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민들이 가난했기 때문에
부엌에 음식이 남아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모두들 굶주리고
있었다.
춘궁기가 되자 굶주림은 더욱 심했다. 박달은 씨감자를 훔쳐
먹고 시래기죽도 훔쳐 먹었다. 잔치가 있는 집에는 아침
저녁으로 찾아가 며칠 먹을 음식을 동냥 했다.
잔치도 없고 씨감자를 훔쳐 먹지 못할 때는 산에서 칡뿌리도
캐먹고 소나무 껍질도 벗겨서 씹었다.
"그, 그만...."
처음에는 눈을 감은 채 얕은 신음소리만 흘리던 옥년이 마침내
허리를 비틀며 격렬하게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박달은 옥년을
안아 일으켰다. 그러자 옥년이 박달의 허벅지 위에 올라앉아
요분질을 하며 짐승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어디선가 또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고 있었다.
쏴아. 음산한 비바람이 휘몰려와 창호지에 뿌려졌다.
옥년은 박달의 머리를 쓸어 안아 제 가슴 위에 올려놓고 눈을
감았다. 뿌듯했다. 박달의 등에선 땀이 흘렀고 호흡은 차츰
잦아들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박달의 그것이 그녀의 몸속에
가득차 있어서 한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싸움은 끝났다. 오늘도 피를 흘리고 짐승처럼 날뛰는 격렬한
싸움이었다. 박달의 등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만 보아도 그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박달이 그녀의 젖무덤에 제 입술을 한 번씩 찍고는 몸을
일으켰다. 이어 박달이 이불 속을 빠져 나갔다. 옥년은 자신의
몸 속에서 남자가 빠져 나가자, 허전함을 느꼈다. 뿌듯하게
자신을 채우고 있던 그 무언가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옥년은 눈을 떴다. 새벽은 어디쯤 있는 것일까. 창호지를 통해
박명이 희미 하게 비치고 있을 뿐 방 안은 아직도 어두웠다.
박달이 어둠 속에서 부스럭대더니 부싯돌을 치기 시작했다.
부싯돌을 칠 때마다 어둠 속에서 파랗게 불꽃이 피었다가
스러졌다. 옥년은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박달의 등을
쓰다듬었다. 박달이 장죽에 부싯돌로 불을 붙여 연기를 뻑뻑
대고 빨아댔다.
밖에서 다시 개 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어째 개새끼들이 저렇게 짖어대지?"
박달이 장죽을 빨아대다 말고 바같 동정에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박달의 말투가 은근하게 눅어 있었다.
"도적이 드는 모양이지."
옥년은 몸을 옆으로 굴려 박달에게 바싹 다가갔다. 옥년도
이제는 박달에게 이놈아 저놈아 하고 강짜를 부리지 않았다.
옥년은 박달보다 다섯 살이 더 많았다. 그런데 박달은 거꾸로
옥년이 자기보다 세 살이 어린 줄 알고 있었다. 옥년이 박달이
혼자 사는 집에 기어들어 왔을 때 나이를 속였기 때문이었다.
남자들은 나이가 어린 여자를 좋아했다. 옥년은 그것을 어릴
때부터 터득해 나이를 엿가락처럼 늘였다 줄였다 했다.
"도적은 무슨 도적..... 곧은골처럼 못 사는 마을에 도적들
집이 어디 있겠어? 너나 없이 시래기죽이나 끓여 먹고 멀건
조당수나 먹는 처지인데...."
옳은 말이었다. 옥년은 박달의 말에 내심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박달의 비쩍 마른 두 다리 사이의 샅으로 손을
가져갔다. 박달은 긴 병을 앓은 이후 몸이 막대기처럼 말라
있었다.
"왜 이래? 아직도 성이 안 찼나?"
"성이 안 차긴. 이것이 내 것이지 니 것이니?"
옥년이 박달의 근을 한 손으로 움켜 쥐고는 농탕을 쳤다.
"천주학쟁이를 잡으로 경군이 내려왔나?"
박달이 옥년의 손놀리는 것을 싫다 하지 않고 낮게
중얼거렸다. 경군(京軍)은 한성에서 내려온 포교와 포졸들릉
말하는 것이다.
"천주학?"
"서학군 말이야."
"아, 그 서학군? 하긴 나라에서 오가작통법까지 시행하고
있다니 경군이 올 만도 하지."
"오가작통법이 뭔데?"
"마을에서 다섯 집이 서로 기별하고 염탐해서 서학군을 잡는
거래."
옥년은 술청에서 들은 얘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서학군을 많이 잡은 포교 백중진(白仲鎭)이라는 사라마에게
변장(邊將),이라는 벼슬을 주고 정인식 (鄭仁植),
한관식(韓寬植)에게 큰 상을 주었다는 것도 거기서 들은
얘기였다. 변장은 첨사(僉使), 만호(萬戶)를 통칭하여 부르는
무관직이었다. 원래는 1만호를 다스린다고 해서 붙여진 만호의
다른 이름이었다.
"우리도 서하군이나 잡을까?"
"서학군을 잡아서 뭘하게?"
"서학군을 잡으면 큰 상을 준다잖아? 남정네들이 서학군을
잡으면 포졸까지 시켜 준대."
"그게 참말이여?"
"참말이잖구."
"그것 참..."
박달이 혀를 찼다. 서학군을 잡으면 나라에서 큰 상을 준다는
것은 박달도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한성에서는
법국(法國)사람이 의금부에서 참수형을 당하고 승지 벼슬을 지낸
사대부 양반까지 회자수의 칼날 아래 목이 잘려 나갔다고 했다.
광주부(廣州府)둔토리(芚土里)와 용인 손곡리(孫谷里)에 서도
법국 신부들이 잡혀 죽었다. 조 대비는 전국에 명하여 양인
신부와 서학군들을 샅샅이 잡게 하고, 고발한 자에게는 상을
주고, 숨긴 자는 죽이며, 황해도와 충청도 바닷가에서 청국배에
왕래하는 자는 선참후게(先斬後啓)를 하라고 추상 같은 영을
내려놓고 있었다.
"우리도 서학군이나 잡으러 다니지.....!"
박달이 장죽만 뻐끔뻐끔 빨아대자 옥년이 *는실난실 박달의
샅에서 손을 놀렸다.
"어떻게?"
박달이 비로소 입에서 장죽을 떼고 고개를 돌려 옥년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내가 전에 비럭질을 할 때 제천 배론골에 살았었어. 거기서
사학군들을 많이 보았어......."
"배론?"
"제천 땅 봉양에 있어. 거기서 법국 사람이 살고 있대."
"그 말이 참말이야?"
"내가 설익은 밥 먹었다구 거짓말을 할까?"
"그럼 내일 당장 서학군을 잡으러 가자."
"우리 둘이?"
"아니야, 포교를 데리고 가야지. 우리가 어떻게 서학군을
잡겠어?"
"서학군을 잡으면 포교라도 시켜 달라고 해."
"포교를 시켜 줄까? 포졸이라면 몰라도...."
박달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에 장죽을 물었다.
"서학군 잡아서 만호가 된 사람도 있는데 포교를 안 시켜
줄까...."
"그럼 포교를 시켜 달라고 해야지..."
박달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새벽이
오는지 창호지가 희붐히 밝아 왔다.
"춥지 않아?"
옥년이 박달의 허리를 이불 속으로 잡아당겼다. 손 하나는
여전히 박달의 샅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가만 있어."
"이리 들어와."
"어허, 서두르지 말라니까...."
"이게 단단해 졌단 말이야."
옥년이 콧소리를 하며 궁둥이를 흔들었다.
"포교는 한성에서 데려와야 하나?"
그러나 박달은 딴 생각을 하는지 허공만 멀뚱히 쳐다보았다.
서학군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갑자기 절대절명의 과제처럼
생각되었다.
"아이 참."
옥년이 짜증을 부렸다.
박달은 그때서야 옥년의 끈질긴 손놀림에 의해 자신의 근이
불끈 일어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또다시 옥년과 방사를
치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다. 방사는 한 번으로 족하다.
그런데 옥년은 좀처럼 한 번으로 만족을 하지 않았다. 옥년은
허기증이 있었다.
"포교는 한성에서 데려와야 하나?"
박달은 재차 따른소리를 하였다. 서학군을 너댓만 잡으면
만호는 몰라도 포교 자리 하나쯤은 얻을 수 있다. 포교가 어떤
자리인가. 포졸을 수십 명이나 거느릴 수 있는 포도부장이
아닌가.
"아마 그래야 할걸."
옥년이 마지못해 맞장구를 쳤다.
"그럼 노자를 마련해야겠군. 나뭇짐 팔아서 마련할수도 없고
어떻게 노자를 마련하지?"
"내가 마련하지."
"임자가?"
"왜 나는 못랄 줄 아니?"
"무슨 재간으로 임자가 노자를 마련한다는 거야?"
옥년이 코웃음을 치는데도 박달은 탓하지 않았다.
"김 선달네 큰 아들이 준다네."
"왜?"
"왜는 왜야?내가 탐나서 그러지."
"임자를 탐해?"
박달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흥, 내가 이래뵈두 몸 하나는 실하다는 거 곧은골이 다
아니까....."
"하긴."
박달은 그제서야 수긍을 했다. 옥년이 논다니 짓을 하는 탓에
옥년의 몸이 실하다는 사실을 곧은골에서 모르는 사내가 있다면
그것은 숙맥이거나 천치일 터였다. 곧은골에서 속곳 헐거운
여자는 옥년이 말고 또 없을 것이다.
"김 선달네 큰 아들은 아직 임자를 탐하지 않았나?"
"내가 좀 튕겼지."
"왜?"
"몸이 달아야 행하를 많이 내놓을 테니까."
박달이 흐흐 웃었다. 옥년이한테 몸이 달아 쩔쩔매는 김선달네
큰아들을 생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잘했지?"
옥년이 박달의 턱밑에 제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물었다.
"잘했구만."
"이제 이리 들어와."
"또?"
"너는 행하도 안 내는 거저인데 왜 마다하니? 남들은 돈을
내며 매달리는데...."
"내 것이잖아?"
"어디 도장 찍었니? 수결을 놓았니?"
입담이 걸다 못해 추해 졌다.
박달이 장죽을 화로에 털고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그런
박달을 눕히고 옥년이 박달의 몸 위로 올라가 엎드렸다.
비는 아침이 되어도 계속해서 내렸다. 빗발이 굵어지고 바람이
거칠어져 박달은 저자에 나무를 팔러 가지 않고 아랫목에서
뒹굴었다. 아침은 느지막하게 멀건 조당수를 끓여 먹고 점심 겸
저녁을 시래기죽으로 배를 채운 뒤, 박달은 팔베개를 하고
옥년이 술천에 나가기 위해 치장하는 것을 구경했다. 옥년은
머리에 물칠을 하여 참빛으로 가르마를 타고 비녀를 꽂았다.
"이쁜 걸."
박달은 옥년이 한 벌밖에 없는 옥양목 치마저고리를 갈아 입기
위해 집에서 막입는 검정치마와 때에 절은 솜저고리를 벗어
던지는 것을 보고 아랫도리가 뻐근하여 한마디 건네 보았다.
"이쁘기는."
옥년이 색경을 들여다보고 눈을 샐쭉 흘겼다.
"얼마나 준대?"
"10전이야 안 주겠어?"
"언제 만나기로 약조를 했나?"
"약조는 안 했지만 오늘 주막에 온댔어."
이내 옥년의 준비가 다 되었다. 남빛 옥양목 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받쳐 입자 방 안이 온통 화사했다.
"나 댕겨올께."
옥년이 멎적은 듯이 박달에세 눈웃음을 쳤다.
"그래. 어쨌거나 그 작자 비윗장 잘 말춰 행하나 넉넉하게
챙겨."
박달은 옥년을 사립까지 배웅했다.
"행하 챙기는 데는 이력이 났어. 내가 어디 한 두 해 논다니
짓 하나."
옥년은 질척대는 땅바닥에 치맛자락이 끌리까 봐 잔뜩 말아
쥐고 황토길을 재게 걸어갔다. 비바람이 여전히 사나웠다.
하늘은 잿빛으로 흐려 잇고 머리 산 밑에 옹기종기 엎으려 있는
퇴락한 초가 마을은 기척없이 조용했다.
2
삼거리 술집은 추적대는 봄비를 맞으며 너부죽이 엎드려
있었다. 술 주(酒)자 를 써서 처마 밑에 매달은 붉은 헝겁
조각이 바람에 펄럭대는 모양이 눈에 들어오자 옥년은 가슴이
썰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암만해도 오늘도 손님이 없을 것
같았다. 하기사 이런 춘궁기에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나가는 길손이 들어야 할 터인데 날궂이를 하고
있으므로 길손이 들 턱이 없는 것이다.
(김선달네 큰 아들이라도 와 있었으면....)
박달에게는 10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흰소리를 했으나
1전을 마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연히 희떠운 소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선달네 큰아들도 술청 출입을 자주 하는 사내가 아니었다.
게다가 약조를 했어도 오늘은 김 선달네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옥년은 아슴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주막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술청하는 그래도 낮선 사내 둘이 앉아서 국밥을 뜨고
있었다. 외지 사내들이었다. 옆에는 탁주 대접도 놓여 있었으나
한성댁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고, 무신 놈의 비가 이렇게 지ㅇ게 오는지 모르겠네."
옥년은 호들갑을 떨면서 재빨리 사내들을 새우눈으로 살폈다.
부엌에서 구수한 술국 냄새가 풍겼다.
"마침 잘 왔네. 그렇잖아도 부르러 갈 참이었는데...."
옥년의 기척을 듣고 부엌에서 허칠복(許七福)이 낯짝을
내밀었다. 눈은 개구리 처럼 툭 불거져 나오고 몸집이 통통한
사내였다.
"안성댁은 어디 갔어요?"
"여편네는 안성에 갔어. 오늘이 즈 아버지 기일이라나..."
"그럼 남정네가 혼자서 술을 팔아요?"
"남정네라고 못 팔 것도 없지."
"술국 냄새가 좋으네."
"한 그릇 퍼줄까? 김 선달네 돼지 잡았잖아? 다리 하나
사왔어. 거기서 손님들 시중이나 들고 있어."
"그래요."
옥년은 눈웃음을 치며 손님들 상 옆으로 가서 철버덕 앉았다.
손님들은 모두 서른 안쪽으로 기골이 장대했다. 옷차림이 양반의
행색은 아니나 궁기가 흐르지도 않았다.
"어째 술 한 잔 올릴까요?"
옥년이 덥석부리 사내를 쳐다보며 물었다.
"주모인가?"
"주모는 아니고 술 치는 계집이지요."
"그럼 작부란 말이지? 그 얼굴에 무슨 작부 노릇을 하겠다구
술청에 나오나?"
얼굴이 허여멀건한 사내가 변죽을 놓았다. 덥석부리 사내는
히죽히죽 곰살궂게 웃고 있다.
"작부 노릇을 얼굴로 한대요?"
옥년은 새침하게 내쏘았다.
"그럼 뭘루 해?"
"몰라서 물어요?"
"밑물 소세나 정하게 했는가 모르지..."
옥년은 얼굴을 찡그렸다. 낮짝이 허여멀건 사내는 생긴 것답지
않게 입이 걸었다.
"어디서 오신대요?"
"한성에서."
"술 한 잔 따라올릴까요?"
"관두고 일이나 보게. 우리는 국밥이나 먹고 서둘러 떠나야
하네...."
"급한 일이 있나 보지요?"
"우린 경군이야. 충청도 덕산에 가서 서학군을 잡아 와야
하네."
덥석부리 사내의 말이었다.
"서학군을 잡으면 상을 주냐요?"
"상을 주다 뿐인가? 많이만 잡으면 상놈이래도 벼슬까지 할 수
있어."
옥년은 덥석부리 사내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천
땅 배론에 가면 서학군을 잡을 수 있다. 거기 배론 사거리의
주모 봉양댁이 천주학쟁이들과 내통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 근처에 법국 신부가 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신부만
잡으면 상을 받아도 크게 받을 것이다.
"웬만하면 객고 좀 풀고 가시지요."
옥년은 경군에게 서학군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어 그렇게
말했다.
"그 얼굴에 무슨 객고를 풀겠나?"
"일이 있어 안 되겠어."
경군들은 국밥을 서둘러 뜨고는 일어섰다. 옥년은 그들을 잡지
않았다. 언사가 흉칙해 옆에서 술을 치기가 싫었다.
"서학군 잡으러 경군까지 내려오고 난리군."
경군들이 주막을 나가자 허칠복이 술국을 한 그릇 퍼 가지고
와서 옥년이 앞에 앉았다. 옥년은 술국을 후루룩후루룩
퍼먹었다. 집에 있는 박달이 마음에 걸렸 으나 내색할 수가
없었다.
"한 그릇 더 줄까?"
허칠복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요."
"그럼 술이나 한 사발 마시지."
"술꾼도 없는데 우리가 앉아서 술을 마시나요. 그렇게 하다가
장사는 뭘루 할려구...."
"죽어서 싸가지고 가는 것도 아닌데 아껴서 뭘해?"
허칠복이 바가지에 술을 가득 퍼왔다. 허칠복은 곧으골에
파다한 노랭이였다. 그런 노랭이가 술을 아찌지 않고 퍼오은
것은 옥년이와 음사를 즐기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옥년은
사양하는 체하다가 사발에 따라서 탁주를 반쯤 마셨다. 허칠복은
바가지째 벌컥벌컥 마셨다.
밖에서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가 청승맞았다.
옥년은 빗소리를 들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비를 맞은 데다
찬술까지 마셔서인지 으스스 한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김 선달네 큰아들은 술을 마시러 올 것 같지 않았다. 옥년은
사발의 탁주를 비우고 입가를 손으로 씻엇다. 바람에 문이
덜컹대벼 흔들렸다. 바람소리가 썰렁하여 술청이 스산했다.
허칠복은 무엇을 궁리하는지 왕눈만 데룩데룩 굴리고 있었다.
"비가 엥간히두 오네."
이윽고 허칠복이 허공을 쳐다보고 낮게 중얼거렸다.
"박달인 뭘해?"
"구들장 지고 있지 뭐하겠어요?"
"팔자 좋은 위인이군."
"팔자야 허씨가 더 좋지요. 돈두 맣이 벌었다던데..."
"자식이 잇어야지 돈이 있음 뭘해?"
허칠복이 허전한 표정을 지었다.
"시앗을 들이지요."
"여편네가 시앗 들이게 하나..... 한 사발 더해."
옥년은 허칠복이 따라 주는 술을 사양하지 않고 마셨다.
술꾼이 들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칠복도 그런 사정을
알고 옥년과 마주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터수가 분명했다.
"방으로 들어갈까?"
"뭐하게?"
"날씨가 추우니 그렇지. 비도 청승맞게 오고...."
허칠복의 눈언저리가 붉게 충혈되어 갔다. 옥년도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권주가나 하지..."
옥년이 눈웃음을 쳤다.
"군주가 하면 방아 좀 찧을래나?"
"무슨 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
"흥!"
허칠복이 옥년의 옆으로 바싹 다가왔다.
"김 선달네 큰아들은 안 오나?"
옥년은 짐짓 딴청르 부렸다.
"오면 뭘해? 술도 변변히 마시지 못하는 위인을...."
허칠복의 손이 옥년의 치마를 걷고 허벅지로 들어왔다.
"이게 어딜 들어와?"
옥년이 그 손을 움켜잡았다.
"삵괭이 같은 여편네 없을 때 남의 살 구경해야지 언제 하나?"
허칠복이 숨을 색색거렸다.
"안성댁 알면 머리 끄덩이 잡힐라."
"방으로 들어가세."
허칠복이 옥년의 허리를 안아서 방으로 잡아 끌었다. 옥년은
못 이기는 체하고 허칠복에게 이끌려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알사한 황토 흙벽 냄새와 함께 메주 뜨는 냄새가 퀴퀴하게 배어
있었다. 이불은 아랫복에 깔려 있었다. 허칠복은 밖으로
들어서기가 바쁘게 옥년을 눕혔다. 옥년은 허칠복이 허겁지겁
치맛자락을 걷어올리려 하자 스스로 치마를 벗어 개어 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허칠복이와 방사를 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주막의
주인이므로 논다니 지시을 하기 위해 술청에 출입이라도 하려면
허칠복의 눈에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안성댁 눈을 피해
헛간에서 허겁지겁 일을 치르기로 했고 집 뒤 담벼락 에서 선
채로 일을 치른 적도 있었다.
"술국이나 갖다가 박달이 먹여."
방사가 끝나자 허칠복이 인심이라도 쓰듯이 술국 한 뚝배기를
퍼주며 말했다.
"겨우 술국 한뚝배기?"
옥년은 옷을 챙겨 입으며 눈을 흡떴다.
"그럼 솥단지째 가져 갈라냐?"
"인심도 고약하네."
"인심 후해서 잘 사는 사람 없어. 이게 돈을 얼마나 주고 사온
거라구...."
"이왕이면 술도 한 됫박 주시구려."
"나는 뭘 갖구 장사해?"
"인심이 측간 갈때 다르고 올 때 다른 사람도 있나?"
인색한 허칠복에게 술국 한 뚝배기와 술 한 되를 얻어서
집으로 돌아오며 옥년은 가슴 속이 허전했다. 비가 오고 있는
탓인지 마을은 불빛 하나 없이 캄캄했다.
김 선달네 큰아들은 이튿날 밤에야 허칠복네 주막에 나타났다
친정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돌아온 안성댁이 안방을 내주고
허칠복이 닭을 잡아 술상을 차렸다.
"얼굴은 박색인데 이곳은 춘색일세."
김 선달네 큰아들은 술이 얼큰하게 오르자 옥년의 궁둥이를
쓰다듬다가 치마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이구, 점잖으신 양반이...."
옥년은 재빨리 몸을 빼는 시늉을 했다.
"가만 좀 있거라."
"서방 알면 다리 몽둥이 분질러지겠네."
"아다. 여태까지 술처에 내돌린 주제에 빼기는 ...."
"공연히 큰일 날려구."
"이이쿠, 이 살집 한 번 푸짐하다."
"겉만 보구 어떻게 안대요?"
"그럼 속살도 푸짐한가?"
옥년은 김 선달네 큰아들의 손을 허벅지 사이에 낀채 몸을
흔들었다.
김 선달네 큰아들은 몽롱하게 풀어진 눈으로 옥녀을
쏘아보았다가 방바닥으로 옥년을 쓰러트렸다.
"왜, 왜 이런대요?"
"가만 있거라."
"행하는 얼마나 주실래요?"
"얼마나 받을 텐가?"
"많이 주면 줄수록 좋지요."
"2전이면 되겠나?"
김 선달네 큰아들이 옥년의 가슴을 풀어헤쳤다.
"5전은 되어야지요."
옥년이 손으로 저고리 앞섶을 여몄다.
"5전?"
김 선달네 큰아들이 깜짝 놀라서 멈칫했다.
"싫으면 관두구요."
"3전이면 안 되겠나?"
"나두 입에 풀칠은 하고 살아야지요."
옥년은 김 선달네 큰아들의 가슴을 떠밀고 일어났다.
"좋다."
김 선달네 큰아들이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옥년을
다시 쓰러트렸 다. 옥년은 그제서야 허겁지겁 달려드는 김
선달네 큰아들의 등을 힘껏 껴안았 다.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는 조선의 국모다(하) (0) | 2023.06.25 |
|---|---|
| 나는 조선의 국모다(중) (0) | 2023.06.25 |
| 금빛 육체의 여자 (0) | 2023.06.25 |
| 남자에 대한 한 보고서 (0) | 2023.06.24 |
| 악녀시대 (0) | 2023.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