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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나는 조선의 국모다6

by Casey,Riley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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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조선의 국모다6
  
  제 30장
  청당과 왜당
  1
  박갑성은 몸을 잔뜩  웅크렸다. 어둠이 잔뜩 또아리를 틀고 있는  김옥균의 집 
내당으로 찬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박갑성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어둠을 헤치고  내당 안방으로 바짝 접근했다. 
찬바람이 만호 장안의 골목과  골목을 휘젓고 다니며 아우성을 치다가 김옥균의 
집 내당에 서  있는 흔행나무를 흔들어댔다. 그럴 때마다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
져 바람에 쓸려다녔다. 
  내당은 방마다 불이  꺼진 채 조용했다. 김옥균이 들어간 안방조차  불이 꺼져 
기척없이 조용했다.
  벌써 잠이 든 것일까.
  그러나 한참 동안 귀를 기울이고 있자 낮게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
다. 박갑성은 봉당까지 올라서서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문이 겹겹이 닫혀 있어 
무슨 소리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따. 
  부부간에 나누는 얘기야 이번 거사와 무슨 상관이 있을려고...
  박갑성은 염탐을 그만두고 돌아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날
이 밝을 것이다.  여명이 잿빛으로 밝아오기 시작하면 월장을 하는  것이 부지런
한 행인들의 눈에  뛸 염려가있다. 이만하면 김옥균의 거사 음모가  낱낱이 밝혀
지지 않았는가. 민영익  쪽에서 김옥균을 제거하려면 지금까지  염탐한 증거만으
로도 넉넉한 것이다. 
  청당과 왜당은  극심한 대립을 보이고  있었다. 임오군란 이후  청당과 왜당은 
다투어 각국 공사관을  출입했다. 일본에 이어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공사
관과 영사관이 설치되어 활발한 친소에 따라 출세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믿고 불
과 몇 년전까지도 양이라고 배척하던 그들과 가깝게 지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
다.
  김홍집이 외아문의  독판(장관급)이 된 것은  경륜이나 학문으로 보아  손색이 
없는 인사였으나 김옥균, 민영익, 김윤식 등이  협판(차관급)에 임명된 것은 청년
재사들이라고는 하나 일천한 경력에 비추어 보면  파격적인 인사였다. 게다가 개
화정책을 추진하는 협판 이상의  당상관들에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임금을 배
알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개화를 추진하는 인사들이 분열되어  청당과 왜당을 결성하여 
서로 질시하고 반목하고 있었다. 청당은 민영익이  수괴노릇을 하고 있었고 왜당
은 김옥균이 수괴노릇을 하고 있었다. 민영익의  뒤에는 정치력을 인정받고 있는 
민비가 포진하고 잇었고 김옥균의 뒤에는 고종이  버티고 있었다. 얼핏보면 국왕
과 왕비가 대립을 하고 있는 듯한 양상이었으나 실제로는 일본과 청나라의 각축
이었다. 
  원세개는 일본을 견제하여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일본은 청
나라가 프랑스와 전쟁을  하고 있는 틈을 타서  조선에서 청나라를 내몰려고 했
다. 
  장안에는 이미 청당과 왜당이 한판 승부를 벌이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
돌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비방질과 세작질이  극심한 가운데 청당은 친군영제를 
실시하여 한규직을 전영사, 이조연을 좌영사,  윤태준을 후영사, 민영익을 우영사
에 않혀 병권을 장악해 버렸다. 
  이에 왜당은 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4영사를 제거하고 고종의 내락을얻어 친위
정변을 일으킬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김옥균은 두번째의  도일에서 일본의 명치유신이 성공한  사실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후쿠자와 유키치, 고토 쇼지로,  이타가키 다이스케를 접촉하면서 그들의 
대정봉환운동에 대해서 수없이 듣게 되었다. 김옥균은  강력한 중앙집정 체제 아
래 근대화가 이루어져 가고 있는 일본이야말로 조선이 배워야 할 나라라고 생각
했다.
  후쿠자와 유키치, 고토  쇼지로, 이타가키 다이스케는 김옥균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김옥균이 후쿠자와  유키치와 고토 쇼지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들을 
각하로 부르고 혈맹이 있다고 운운하는대목이 그 단적인 예인 것이다.
  김옥균은 철저한 왜당이었다.
  박갑성은 조심스럽게 김옥균의  내당에서 물러나와 가볍게 담을  넘었다. 어는 
집에선가 개들이 요란스럽게  짖어대고 있었다. 박갑성은 예조판서  김홍집의 담
장을 돌아서  명륜동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화동에는 김옥균,  김홍집, 윤태준의 
집들이 바로 이웃해 있었다. 
 박갑성은 조심스럽게  김옥균의 내당에서 물러나와  가볍게 담을  넘었다. 어는 
집에선가 개들이 요란스럽게  짖어대고 있었다. 박갑성은 예조판서  김홍집의 담
장을 돌아서  명륜동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화동에는 김옥균,  김홍집, 윤태준의 
집들이 바로 이웃해 있었다. 
 명륜동에 이르자 벌써 날이 훤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박갑성은 주위에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담을 넘어 들어갔다. 
 그의 아내는 안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박갑성은  승립과 승포를 서둘러 벗고 아
내의 옆에 누웠다. 만삭인 그의 아내는 그때서야 눈을 뜨고 박갑성을 살폈다. 
  "어디서 이렇게 늦었어요?"
  "밀지를 받들어 이행하느라고 밤새 사람 뒤를 밟았소."
  "세작 일이군요."
 그의 아내가 희미하게 웃었다. 웃음 끝에  임신으로 인한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곧 변사가 있을 것 같소."
  "변사요?"
  "왜당과 청당의 동태가 심상치 않소."
  "그런 소문은 장안에도 파다해요. 왜당이 무슨 음모를 꾸민다면서요?"
  "그렇소. 김옥균이 전하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것을 빌미로 사단을 일으킬것 같
소."
  "우리는 괜챦을 까요?"
  "우리 같은 서민들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소? 권력 싸움이야 양반들 싸움인 것
을...."
  "당신은 조심하셔야 해요.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아기 아버지가 되잖아요?"
 박갑성은 눈을  감았다. 아내가 옆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으나 밤을  꼬박 새운 
탓에 졸음이 쏟아져 왔다.
  "조반 차릴까요?"
  "아니오. 오시가 될때까지 깨우지 마시오."
  "아기가 뛰어요."
 박갑성의 아내가  박갑성의 손을 잡아 당겨  자신의 둥그스름한 복부에 갖다댔
다. 박갑성은  손바닥에 느껴지는 아내의  따뜻한 체취를 나른한  졸음기 속에서 
의식했다. 아내의  뱃속에 자신의 분신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기뻣으나 졸음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발로 차는게 느껴지지요?"
  "...."
  "아이."
 박갑성이 대꾸가 없자 그의 아내가 앙탈하는 시늉을 했다.
  "자요?"
  "...."
  "우리 아기가 흉보겠네."
 박갑성은 어느덧 가늘게 코를 골기 시작하고  있었다. 박갑성의 아내는 낮게 한
숨을 내쉬었다.
 창호지가 훤하게 밝아 오고 있는데도 밖에서는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불고, 바람
이 불때마다 나뭇잎들이 뒤안으로 쓰려다니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방안은 훈훈했다.  새벽에 다시 군불을 지핀 탓에  방바닥이 따끈따끈했
다.
 (밤을 꼬박 새운 모양이야....)
 박갑성의 앳된 얼글은 피곤에 지쳐 있었다.  박갑성의 아내는 어린 남편을 마끄
러미 들여다보다가 그의 양경으로 가만히 손을 가져갔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남편을 기다리느라고 그녀도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
녘에야 깜박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이 깰까봐 조심하면서 양경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뱃속에 아이를 
갖고 있는데도 그녀는  점점 몸이 더워져 왔다. 손바닥 안에서  불끈거리는 남편
의 양경이 점점 거대하게 부풀고 있었다. 
  (아!)
  그년는 눈 앞이  환해지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박갑성의 양경이  자신의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한생각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 박값잉 몸을 돌려 그녀를 바짝  끌어안았다. 박갑성은 잠이 깨었는지 그녀
의 둔부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이."
 그녀는 허리를 비틀었ㄷ. 어디선가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드려왔다. 박갑성의 
손이 그녀의 가슴을 움켜 쥐었다. 
 얇은 속적삼 한  자락으로 가린 가슴이었다. 만삭이 가까워지면서  젖무덤이 부
풀기 시작해 걷잡을 수 없이 켜져 있었다.
 박갑성은 잠결이면서도 아내의  속적삼 매드을 가볍게 풀러내고 고쟁이까지 벗
겨냈다.
  "조심해야 해요."
 그의 아내의 입에서 단내가 왈칵 풍겼다.
 "아이를 짓누르면 안돼요."
 박갑성은 서둘러 자신의 옷을 벗고 그의 아내  몸 위에 엎드렸다. 그의 아내 말
처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왜당의 뒤를 밟는  일이나 만삭인 
아내와 교접을 하는  일이나 다를바가 없을 것이다. 박갑성은 그런  생각을 하면
서 그의 아내를 안았다.
  박갑성은 오후 늦게 사동 민영익의 집으로  찾아갔다. 민영익의 집은 권문세가
답게 문객들이 들끓고 있었으나  박갑성을 알아본 최녹사가 눈치 빠르게 박갑성
을 내당 후원으로  안내했다. 민영익의 집 내당 후원에도 나뭇잎들이  수북히 떨
어져 쌓여 있었다. 
 “대감마님.”
 잠시 후 민영익이 조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박갑성은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왜당을 잘 염탐하고 있느냐?”
 민영익은 박갑성을 보자  수고가 많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눈썹이 짙고 
촘촘해 언제 보아도 사려깊은 얼굴이었다.
 “예.”
 “옥균과 일본 공사와의 접촉이 빈번하겠지?”
 “그러하옵니다.”
 “어제는 무엇을 했느냐?”
 “어제는 일본 공사관에 갔다가 청계천의 대치 유홍기의 집에 들렸습니다.”
 “유홍기의 집에는 누가 있었느냐?”
 “유홍기뿐이었습니다.”
 “그럼 유홍기와 김옥균 둘이서만 밀담을 했느냐?”
 “예.”
 “음.”
 민영익의 시선이 생각에 잠기는 듯 먼  허공을 더듬었다. 박갑성은 머리를 조아
리고 그의 하문을 기다렸다.
 “왜학생도들은 어찌하고 있느냐?”
 “김옥균을 따르고 있사옵니다.”
 “옥균이 언제쯤 거사를 할 것 같으냐?”
 “아직 시기를 정한 것 같지는 않으나 조만간 거사를 할 듯싶사옵니다.”
 “역천이냐?”
 민영익의 질문은 찌르듯이 날카로웠다. 역천이란  역모를 말하는 것이므로 임금
을 갈아 치운다는 뜻이 있다.
 “역천은 아닌 줄로 아옵니다.”
 “그렇다면 중전마마가 표적이 되겠군.”
 “송구하오나 중전마마가 아니라 청당이라 하옵니다.”
 “청당?”
 민영익의 짙은 눈썹이 꿈틀했다. 청당이란  민영익자신을 두고 이르는 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청당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민영익도 청나라의  횡포를 알고 있었고 그들의  횡포에 대해서 분개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청군이 조선에 들어온  것은 임오군란에 의해서 비롯된 일이었다.  청군이 입조 
하기 전에도 꼬박꼬박 사대의  예를 바쳐온 조선이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
례적인 것이었을 뿐 내정에 간섭을 하거나 간섭을  받은 일은 없었다. 그러나 임
오군란은 조선에 청군이 4천  명이나 들어오게 되는 비극적 사태를 맞이하게 하
였다. 청군은 음력 7월 13일(8월 26일) 청군 진영에서 대원군을 납치하여 7월 14
일 남양부 마산포에서  청군 군함에 태워 강제로 청나라로 끌고  갔다. 대원군은 
이로 인하여 청나라 보정부에 유폐되어 3년 동안이나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청나라는 이에 그치지 않고 7월 16일 이태원과 왕십리의 군인 부락을 습격하여 
수백명이나 되는 군인가족들을 살상하는 학살극을 벌였다. 비참한 일이었다.
 조정도 대대적으로 개편하게  하였다. 고종이나 민비의 개화에 대한  의지도 확
고했지만 청나라의 입김은 청나라식 개화를 조선에  이식시키고 있었다. 전에 없
이 내정간섭도 심했다.
 특히 원세개는 오만한 인물이었다.  그는 청군의 오조유, 오장경 같은 인물들의 
참모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들보다 더욱 강경하게  조선의 내정에 간섭을 했다. 
청나라의 위세를 등에 업고 조선을 멸시하는 수작이었다. 
 (원세개가 장차 조선의 화근이 될 것이다!)
 민비는 원세개의 간섭에  치를 떨었다. 원세개의 내정 간섭은  조선왕실에 대한 
간섭이었고, 조선왕실에 대한  간섭을 민비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
다. 그것은 민영익도 같은 생각이었다.
 고종도 원세개를  싫어했다. 원세개를 멀리  하자니 자연스럽게  일본과 가까운 
김옥균 등을 협판에  임명하고 자주 어전으로 불렀다. 김옥균의 재기  넘치는 대
화술도 고종을 사로잡았다.
 작금의 살얼음판  같은 정국은  개화당(왜당)과 사대당(청당)의 대립이라기보다 
일본과 청나라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었다. 그  선두에 서 있는 사람들이 김옥
균과 민영익이었다. 김옥균이 급진적인  개화주의자라면 민영익은 점진적인 개화
주의자였다. 김옥균은 청나라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으나  민영익은 아직
도 청나라가 조선을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잇었다. 둘은 외아문이나 어
전에서의 회의에서도 자주 논쟁을 벌였다. 그런  까닭으로 그들의 대립이 청당과 
왜당의 대립으로 비화되고 조정사대부들이 편가르기를 하였다.
 물론 명분은 조선의 개화와 내정개혁이었다.
 “청당이라면 누구를 거론하고 있느냐?”
 “구체적으로는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이 누구인지 듣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렇겠지. 그런 일들을 함부로 발설하고 다닐 김옥균이 아니니깐....”
 민영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본군을 끌어들여야 1백명  안팎이고 왜
학생도들과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수노를 모두  합해야 2백명 안쪽인 것이다. 그 
정도의 병력이라면  4영의 병사들과 청군 1천  5백명을 동원하면 쉽사리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내전에 입시하느냐?”
 “아직 중전마마께서 밀지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되었다. 계속해서 김옥균을 염탐하도록  해라. 일이 끝나면 너에게 벼슬 자리
를 내리도록 하마.”
 “송구하옵니다.”
 박갑성은 머리를 숙여  보이고 총총걸음으로 민영익의 집을 나왔다.  벌써 승석 
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박갑서은 화동 김옥균의 집을 향해 걸음을  떼어 놓다
가 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가에 잠겼다. 김옥균이  염탐을 당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챈 것이 분명했다. 어젯밤 그의 집 담장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김옥균에게 발각
되었던 것이다. 물론 재빨리 모습을 감추어  김옥균에게 얼굴을 들키지는 않았으
나 김옥균도 자신을 감시하고 미행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
했다. 이러한 때에 김옥균의 집을 다시 염참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는 쉬어야겠어...)
 박갑성은 다방골로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김옥균과 민영익은 걸출한 인물
들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자신은 반딧불처럼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
나 김옥균의 음모만 적발하게 되면  민영익의 신임을 얻어 출세를 하게 될 것이
다. 박갑성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방골로 재게 걸음을 놀렸다.
 김옥균은 듬직한 체구의 하인 정경호를 거느리고 탑골 승방으로 걸음을 재촉했
다. 탑골 승방은 동대문  밖에 있는 조그만 절이었다. 박영효와 서광범을 비밀리
에 그곳으로 오라고 기별을 한뒤 김옥균은 일부러 종로와 6조 거리를 빙빙 돌아
서 걸음을 서둘렀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민문의 미행자를 따돌리기 위해서였다. 
하인 정경호를 뒤따르게 하는  것도 미행자로부터 자격을 방지하기 위한 고육지
책이었다. 
 (놈들이 이젠 내집까지 염탐하는 실정이야...)
 김옥균은 담장을 넘어와 내당을 염탐하던  괴한을 생각하자 뒷덜미가 서늘했다. 
아내에게 남녀가 교접할때 내는 신음소리를 내라고 한 뒤 문틈으로 바깥을 살피
자 괴한은 한참 동안이나 그 소리를 엿듣다가 담을 넘어 사라졌던 것이다. 
 김옥균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날씨는 잿빛으로 우중충했다. 비가 오려는 것일
까. 조석으로  변하는 것이 가을 날씨라고  하지만 이 며칠 날씨마저  변덕이 죽 
끊듯 했다.
 청당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청당은 음력 9월  30일부터 계엄을 실시하고 있었다. 김옥균이 그날  고종의 부
름을 받고 입시하였다가 낮오고에 화동으로 퇴궐하자 이인종과 이창규가 기다리
고 있었다. 김옥균은 그들을 밀실로 불러들여 만났다. 
 "무슨 일들인가?"
 김옥균은 조복도 벗지 않은채 좌정하여 이인종에게 물었다.
 "어젯밤 4고에 민영익이 원세개를 찾아가 밀담하였습니다."
 "민영익이?"
 "예."
 "민영익은 인후통 때문에 대내에  입참조차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자가 원세
개를 찾아가 밀담을 해?"
 김옥균은 의아했다. 민영익은 얼마전부터 목구멍이  아프다는 핑계로 밀지가 내
려도 입시를 하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들조차 만나지않고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틀림없는 정보입니다."
 "무슨 밀담을 나누었는지 알겠나?"
 "민영익과 원세개가  역관도 없이 대좌하였기  때문에 밀담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대좌 도중에 원세개가  진중에 영을 내려 갑자기 단속이 
심해 졌다고 합니다."
 "민영익과 원세개는 곧바로 헤어졌나?"
 "원세개가 민영익과 함께 우영으로 가서 다시 밀담을 나누었다고합니다."
 "그래?"
 김옥균은 미간을 잔뜩 찌프렸다. 민영익과  원세개의 전격적인 밀담은 수상스럽
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김옥균은 즉시 고영석을  보내어 정황을 탐지해 오게 하
였다. 그러나 고영석의 보고도 이인종의 보고와 다를바가 없었다. 
 다음날 김옥균은  서신을 보내어 오위장  양홍재를 불렀다.  양홍재는 민영익의 
심복이었다.
 "어젯밤 민영익이 원세개를 만났다고 하던데 무슨 까닭이오?"
 "그 내막을 알 길이 없어서 저도 무척 궁금해 하던 참입니다."
 "원세개가 우영까지 왔다고 하던데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우영에서 통역도 없이 필담을 나누었습니다."
 "필담의 내용이 무넛인지 알고 있소?"
 "필담의 초고를 민영익이 상자 속  깊숙이 보관하였습니다. 기회를 보아서 꺼내 
볼 작정입니다."
 "좋소, 필담의 초고를 보게 되면 나에게 먼저 보여 주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튿날은 10월 2일이었다.  아침 일찍각감 박대영이 찾아왔다. 각감은 규장각의 
잡급직으로 역대  임금들의 초상화따위를  쉬위하는 벼슬이었다. 직각이나  대교 
같은 각신들과 달리 군직에서 임용되었다.
 "묄렌도프가 수입한 대포 2문을 그동안 연경당에 두었었는데 민영익이  3경에하
도감 청군 진영으로 싣고 갔습니다."
 박대영의 복에 김옥균은 흙빛이 되었다. 민영익과  청당 쪽에서 점점 목을 죄어 
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영국과 미국의 영사들도 김옥균의 거사계획을 듣고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는 뜻
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사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시정에는 이미 김옥균 등이 거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서 이
제는 빼도 박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시운도 하늘이 정하는 것이나까...)
 김옥균은 자꾸 부길한 예감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탑골 승방에 도착하자 박영효와 서광범이 이미 조착해 있었다.
 “고균장, 어째 늦었소?”
 박영효가 온화한 음성으로  물었다. 김옥균은 탑골 승방의 대웅전에  시선을 보
냈다가 박영효에게로 모았다.
 “미행자가 있을까봐 길을 돌았습니다.”
 “아무래도 저쪽에서 눈치를 챈 것 같지 않습니까?”
 “인명은 재천입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김옥균은 단호하게 내뱉았다.
 “거사를 앞당기는 게 좋겠습니다.”
 “언제쯤이면 좋겠습니까?”
 “10월17일이 어떻겠습니까?”
 “10월17일이면 여드레 남았는데...”
 김옥균이 다시 대웅전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아직 고종으로부터  밀칙을 받아
내지 못한 것이다.
 “우정국은 이미 완공되었습니다.”
 서광범이 김옥균의 결단을 재촉했다.
 “낙성식을 계속 미룰수없는 처지 아닙니까?”
 “우리쪽의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
 “장사들은 언제든지 소집하기만 하면 됩니다.”
 “폭약이나 무기도 넉넉합니까?”
 “금릉위 대감의 압구정 별장에 있으니 가져오기만 하면 됩니다.”
 서광범의 대답이었다. 김옥균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고균장, 이제 실행에 옮깁시다.”
 박영효도 김옥균을 재촉했다.  김옥균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단안을 내렸
다.
 “좋습니다. 가까운 시일내에  거사하기로 하고 부평에 있는 신복모를  불러 옵
시다.”
 신복모는 왜학생도들의 우두머리급으로  민영목이 해방총관에 임명되어 군사를 
양성하기 시작하자 교관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왜학생도들에게 신망이 높았다.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박영효와 서광범이 일제히 찬성했다.
 김옥균은 박영효, 성광범과  함께 묘동의 이인종의 집으로 가서  거사에 대해서 
좀더 깊숙이 상의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것은 장사들에 대한 동원과  고종의 밀
칙을 받는 것이었다.  고종의 밀칙을 받으면 민영익이나 청당 쪽에서  함부로 군
사를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 주상전하의 밀칙을 받는 것을 서 동지가 힘을 써야 할 것 같소. "
김옥균은 동부승지 서광범에게  지시했다. 김옥균이 별입시를 해서  고종을 배알
할 수도 있었으나 이목이 없을 때 배알해야 하는 것이다.
" 그 일은 내가 맡겠소. "
서광범이 흔쾌히 맡고 나섰다.
" 좋소. 그러면 나는 내일 서재필과 무라카미  대위를 불러 장사 동원 계획을 짜
겠소. "
김옥균은 결심을 굳혔다.
이튿날은 10월10일이었다.  서재필과 무라카미 대위를  오후 3시에  집으로 부른 
김옥균은 장사 동원 계획을 세웠다. 무라카미  대위는 일본의 대정봉환운동을 본
따서 조선의 장사를 동원할 것도 없이 일본군들이 조선인으로 변장을 하고 청당
을 모조리 참살하면  간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재필이  완강히 반대
했다. 일본의 대정봉환운동은  명치 천황이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여 왕정복고를 
이룩한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그 와중에서 명치 천황의 아버지가 참살되고 수많
은 정적들이 살해된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명치유신으로 일본이 근대국가로 탈
바꿈하기는 했으나 일본인들의 피로 이룬 왕정  복고였다. 서재필이 일본군 동원
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일보군은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이  정변을 반드시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요. 
"
" 일본군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소. "
" 조선군으로 이 정변을 성사시키기는 무리요! "
" 일본의 지사 몇 사람만 협조를 하면 될 거요. "
" 그럼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오? "
" 청군을 견제하는 것이오. "
무라카미 대위와 서재필은  팽팽하게 대립했다. 김옥균은 무라카미  대위와 서재
필을 달랬다. 큰 싸움을 앞두고 적전 분열을 일으킬 수 없는 일이었다.
무라카미 대위는 화가  나서 하도감으로 돌아갔다. 하도감에는  청군과 일본군이 
나란히 주둔하여 대치하고 있었다.
( 일본을 전면에 내세울 수는 없어...... )
김옥균은 그날 밤 집에 돌아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바람은 점점 차가워지고 있
었다. 하늘에는 기러기가  떼를 지어 남쪽으로 날아가고  나뭇가지들은 앙상하게 
헐벗은 채 찬바람에 몸을 떨고 있었다.
춥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눈발이 날릴 것이고  길바닥이 꽁꽁 얼어붙을 것이다. 그
러나 김옥균의 마음이 추운 것은  날씨 때문이 아니라 정변이 실패했을 때 당해
야 할 청당의 복수극이었다. 그들은 피로 보복을 하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김옥균은 음력 10월 12일에 고종으로부터 소명을  받고 입대하였다. 서광범이 고
종을 움직여 김옥균을 입대하게 한 것이다.
고종은 보료에 좌정해 있었다. 대조건 동온돌,  고종의 침전이었다. 마루 하나 건
너는 중전 민비의 침실인 서온돌이었다. 그러나 서온돌은 지금 조용하기만 했다.
김옥균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고정에게 옷깃을 여미고 숙배를 했다.
" 전하, 신 김옥균 분부를 받자옵고 대령했사옵니다. "
방안에는 황초 타는  냄새가 자욱했다. 이미 을야  ( 2경 ) 를  넘긴 시간이었다. 
불면증을 앓고 있는 고종은 한밤중인데도 눈빛이 또랑또랑 했다.
" 가까이 오라. "
고종의 성음은 낮고 부드러웠다.
" 예. "
김옥균은 조심스럽게 고종의 앞에 가까이 가서 엎드렸다.
고종과의 입대는 자주  있었던 편이었다. 그러나 침전에서  입대하기는 처음으라 
김옥균은 바짝 긴장이 되었다.
" 동부승지로부터 경이 배알을 원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경이 과인을 보기
를 원한 것은 무슨 연유인가? "
고종의 눈빛이 김옥균의 얼굴에 부드럽게 머물렀다.
" 전하. "
김옥균이 새삼스럽게 머리를  조아렸다. 고종은 멀뚱히 김옥균을 살피고 있었다. 
대답을 재촉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 전하.  지금 천하의 대세를 두루  살펴보면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국내정황이 
위태로워지고 있다는 것은 전하계서도 촉지하고 계시는 일이라 신이 군더더기로 
아뢰올 필요는 없사옵니다. 그러나 신이 다시  한번 아뢰고자 하는데 들으시겠사
옵니까? "
김옥균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비장하기까지 했다.
" 말하라. "
고종은 선뜻 윤허했다. 김옥균은 달변이었다. 그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이 
가는 것도 잊어 버릴 정도였다.
" 시국이 이렇게  된 것은 청나라와 프랑스가 교병을 하는  일 때문이 아닙니다. 
청나라와 일본은 오래 전부터 불화 하였고 러시아의 동방정략은 날이 갈수록 절
박한 실정이옵니다. 서양  여러 나라의 동방정책은 10면이 못 되어  급변하여 동
양을 침략하고 있는데  프랑스가 안남 문제로 청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지금 청나라는 재정이  궁핍해 날의 근간이 흔들리고, 군병이 있기는  하나 군령
이 무절제하기 짝이  없습니다. 청나라는 영불연합군에게 패하여  황제가 열하로 
몽진을 가는 변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다시  이와 같은 곤경을 당하고 
있으니 어찌 이러한 나라에 사대의 예를 바칠 수 있사옵니까?
사방의 형편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부질없이 옛 규례만 지키려고 하는 수구 
세력이 있어서  스스로 지키려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날의 정치를 
살펴보면 당오전의 폐해가 극심하여 백성들이 의지하여  쓸 형편이 못되고, 묄렌
도프 같은 위인을  잘못 초빙하여 많은 실정이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간신들이 
성상의 총명을  흐려서 국사의 한심한  바가 적지 않사옵니다.  전하계서는 부디 
통촉하시옵소서. "
김옥균이 두 눈에  힘을 주어 고종을 쳐다보았다. 고종은 김옥균의  말을 새기고 
있는지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 경은 개혁을 원하고 있는가? "
고종은 김옥균이 주장하고 있는 뜻을 파악한 것 같았다. 
" 그러하옵니다. "
" 개혁이라 하면 어떤 개혁을 말하는 것인가? "
" 우선 조정부터 혁신해야 될 것으로 보옵니다. 조정의 중신들은 서양 여러 나라
의 형편에 대하여 몽매하기 짝이  없어서 명색이 나라의 녹을 받고 있는 중신들
인데도 여전히 공맹이나 찾고 있사옵니다. 이들에게  나라를 맡기면 조만간에 누
란의 우기에 처할 것이옵니다. "
" 외국 견문을 한  청년 사대부들의 경륜이 일천하지 않은가? 백성들은 걷고 있
는데 임금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따라오라고 한들 백성들이 어찌 따라오겠는가? 
"
"전하. 시운을 놓쳐서는  아니 되옵니다. 지금 일본은 청나라와 일전을  불사한다
는 각오 아래 군비를 확정하고 있사옵고 러시아는 호시탐탐 아국 진출의 기회만
을 엿보고 있사옵니다. 또 청나라는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국력이 쇠진해 있사옵
니다. 이  기획에 조선은 일대  개혁을 단행하여 청나라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입국의 계책을 도모해야 할 것이옵니다. "
" 입국? "
" 그러하옵니다. 조선은 병자년의 치욕을 잊고 청나라를 상국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사옵니다. 이제는 거한 폐단을 버리고 명실상부한 입국이 되어야 하옵니다. "
" 중신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게야. "
" 전하. 그런 까닭으로 조정을 개혁해야 하는 것이옵니다. "
" 그러하옵니다. "
" 중신들을 물갈이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 도목 ( 정기인사 ) 이 곧 닥
치니까...... "
고정이 다시 생각을  하는 표정을 지었다. 도목은 도목정사의 물인  말로 음력 6
월과 12월에 하는 것이 관계였다.
고정은 아직도 곤룡포와  익선관 차림이었다. 고종의 용포자락에  촛불이 일렁이
는 것을 바라보던 김옥균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전하. 시기를 놓치면 큰 낭패를 
보옵니다. "
" 허나 중신들을 물갈이 한다고 개혁이 이루어지겠는가 ? "
" 전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나라에 왕법이 통하지 않고 있는  지 오래이옵니다. 
지방은 말할 것도  없고 도성까지 도둑의 무리가 극성을 부리고  있사옵니다. 군
대는 허울뿐이고 세미가 제대로 걷히지 않아  나라의 재정이 궁핍해 있사옵니다. 
청나라가 프랑스에 핍박을 받고 있는 것도  다 그러한 연유이옵니다. 망설여서는 
아니 되옵니다! 실로 5백  년 종사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무엇을 주저하
시옵니까? "
김옥균은 고정을 재촉했다.  그 때 서온둘 쪽에서 앝은 기침소리가  나면서 중전 
민비가 스란치마를 끌면서 동온돌로 건너왔다. 김옥균은  황망히 몸을 일으켜 민
비에게 숙배를 했다.
민비는 고종 앞에서  옆으로 약간 비켜 앉았다. 만인지상의 몸인  국왕은 국가적
인 대행사 때 외에는 왕비와도 나란히 동석을 하지 않는 것이 궁중의 법도였다.
" 내가 경의 말을 처음부터 모두 들었소. 사세가 그처럼 절박하다면 조선은 어찌
해야 하고? "
김옥균은 민비의 하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민비는 청당의  수괴인 민영
익을 누구보다도 아끼고  있었다. 그러한 민비에게 흉중에 있는 말을  모두 털어
놓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 계칙이 있으면 경은 숨기지 말고 말을 하라. "
고종도 김옥균의 대답을 재촉했다.
" 타케소에 일본 공사와  소신이 불화하여 신의 하는 일을 타케소에가  사사건건 
방해하여 일이 여의치 못했음을 전하계서도 소상히  알고 계시는 바이어니와, 이
번에 귀국했다가 복임한 뒤로 갑자기 태도가 바뀌어져 도리어 신에게 은근한 뜻
을 보이오니, 신이  짐작컨대 이것은 반드시 일본의 정책이 전날과  바뀌었다 할 
것이옵니다. 타케소에 공사의 태도로 보아서도 일본과  청나라의 거사가 머지 않
아 있을  것 같사옵니다. 이 때를  당하면 조선은 일본과 청나라의  전쟁터가 될 
것이 분명하데 장차 무슨 계책으로 나라의 독립을 보전하겠사옵니까? "
김옥균의 간언에 고종과 민비의 신색이 어두어졌다.  고종과 민비도 청나라와 일
본이 일촉즉발의 형세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그들은 무슨  연유로 남의 나라에 와서  으르렁거리고 있는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
고종이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그러자 민비가 대뜸 말참견을 하고 나섰다.
" 조선이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까? 나라의 중신들이 일은 한하고 포저 (  뇌
물 ) 에 눔이 멀어 제  안위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옵니다. 신첩이 
알기엔 개화당 인사들조차 파당을  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척신, 종
친, 중신 ...  ... 하나같이 시에의 이만  쫓고 있으니 나라가 도탄에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
민비의 목소리는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김옥균은 민비가 고종이  무능한 임금
이라고 힐책을 하는  것 같아 떨떠름했다. 얘기는 어느덧 핵심을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먼저 나라의 독립에 대한 모책부터 세워야 하옵니다. "
김옥균은 얘기의 방향을 바로 잡았다.
" 청나라를 배척하자는 얘기요? "
민비가 김옥균에게 하문했다.
" 그러하옵니다. 우리가 개혁을 단행하려고 해도 청나라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방해를 하고 있사옵니다. 원세개는 감국대신이라도 된  듯이 조선의 내정을 간섭
하고 있으니 참으로 통분하기 짝이 없사옵니다. "
" 청나라는 아직도 조선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지 않소? "
" 중전마마, 청나라는 지금 프랑스와 전쟁을 하고 있사옵니다. "
" 일본과 청나라도 교전을 할 것 같소? "
" 그러하옵니다. 일본은 이미 10년 전부터 군세를 확정해 왔습니다. "
" 허면 조선이 독립을 하는 것은 이 때가 가장 적절하지 않겠소? "
" 옳으신 하교이시옵니다. 조선이 독립할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이옵니다. "
김옥균은 민비를 향해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민비는 이미 김옥균의 속뜻까지 
간파하고 있었다. 조선이 독립을 선언하면 청나라는 군사를 동원할 것이고, 청나
라가 군사를  동원하면 일본이 나서서 견제한다는  김옥균의 방책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통찰력이었다. 김옥균은 민비의 통찰력에 가슴이 서늘해져 
왔다.
" 일본과 청나라가 교전을 하면 어느 쪽에 승산이 있겠는가? "
이번에는 교종이 김옥균에게  하문했다. 그러잖아도 근심이 많은  고종은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긴 것이다 신색이 어둡기 짝이 없었다.
" 일본과 청나라가 교전을  한다면 최후 승패에 대하여는 짐작할 길이  없사옵니
다. 그러나 일본과 프랑스가 합세하면 승패는 결단코 일본에 있사옵니다. "
" 그러면 조선이 독립을 하는 계책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 "
" 참으로 성상의 하교와 같사옵니다. "
" 헌데 우리가 독립을 선언하면 일본이 정녕 우리를 도울 것인가? "
" 전하. 타케소에는  일본 조정의 정략이 조선의 독립과 개혁을  돕는 데 있다고 
하였사옵니다. 일본은 서양 여러 나라와 같이 러시아를  가장 큰 적으로 보고 있
습니다.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방어하는 것은 조선에  있다고 보고 조선을 독립시
키고 개명한 정치를 구현하기 위하여 청나라와 전쟁도 불하한다는 것이옵니다. "
" 하면 일본에도 무익한 일이 아니겠군, 경은 자세히 계책을 말하도록 하라. "
" 황공하옵니다. 전하의 우악하신 성교를 받들어야 마땅하오나 전하 폐부의 신들
이 청나라에 붙어서, 청나라를  위해, 구양의 역을 하고 있사오니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도와 주려고  해도 뜻을 이루기가 어렵사옵니다. 신이 이  말씀을 아뢰면 
목숨이 위태로우나 나라의 위망이  조석에 달한지라 일신을 돌보지 않고 함부로 
아뢰는 거시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
김옥균의 얼굴빛은 창백하고 목소리는 격정을 이기지  못해 떨렸다. 그러나 김옥
균은 불을 토하듯 뜨거운 눈길을 고정과 민비에게 보냈다.
민비는 잠깐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 경의 말이 나를  의심하는 듯하나 국가의 존망이 달린 일에 한낱 부녀자의  몸
으로 어찌 대계를 그르치게 할 수 있겠소? 경은 숨기지 말고 모두 말하시오. "
민비의 얼굴은 한겨울 얼어붙은 달빛처럼 차고 맑았다.
김옥균은 잠시  입을 다물고 민비를  쳐다보았다. 문득 김옥균의  뇌리로 민비가 
중전이 되기전, 고종이  소년왕으로 등극하던 날 길에서 만았던 앳된  규수의 얼
굴이 떠올라왔다. 당돌하고 야멸차기까지 했던 소녀, 그녀가 지금은 조선의 황후
가 되어 김옥균 앞에 도도하게 앉아 있었다.
옷차림은 분홍색 소고의 (  저고리 ) 에 남치마를 입고 옷고름에는  소삼작 노리
개가 달려 있었다  저고리 위에는 초록색의 견마기  ( 덧옷 ) 을  걸치고 있는데 
머리에는 가르마를 타고 비녀를 꽂고 있었다.  여염 사대부가의 부인네들처럼 단
촐하고 수수한 차림이었으나 그녀의 전신에서는 국모다운 기품이 은은하게 풍기
고 있었다.
김옥균이 대답을 하지 않자 민비는 미간을 찌푸렸고,  고종은 목을 길게 빼어 김
옥균의 안색을 살폈다.
" 경의 마음 속에 품은 생각을 과인이 어찌 모르겠는가? 무른 나라가 위급한 때
를 당하였으니 경은  의심하지 말고 품하라. 나라의 대계를 경의  주모에 일임할 
것이니라. "
고종의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 같았다. 김옥균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속
내를 주청했다.
" 신이 비록 감당할  수가 없으나 전하의 우악하신 성교가 신의 귓전에 남아  있
는 한  어찌 감히 져버리겠사옵니까? 원하옵건대  전하의 친수밀칙을 얻어 항상 
몸에 지니고자 하나이다. "
고종이 민비에게 눈길을 던졌다. 민비의 의향을 묻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김옥균이 원하는 친수밀칙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김옥균이 단순
하게 청나라로부터의 독립만을 원하고 이는지, 아니면  그 어떤 거사를 도모하기 
위해 친수밀칙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비는  그 내막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지 수락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종은 민비의 내락이  떨어지자 지체없이 연상을 끝어당겼다.  연상에는 언제나 
지필묵이 준비되어 있었다.
고종은 연상 위에 선지를 편치고 곤룡포의 소매를 걷어 올린 다음 붓을 잡아 먹
을 찍었다.
김옥균은 꿇어 엎드린 채  고정을 응시했다. 고종은 체수가 작았다. 얼굴은 둥글
어서 동안인데다 눈매가  소년처럼 부드러워 어질면서도 흐리멍텅해 보이기까지 
했다.

협판 옥균 대계일임

모든 계책을 김옥균에게  맡긴다는 뜻이었다. 고종은 그 여덟 글자를  한참 동안
이나 들여다 보다가 세필을 바꾸어 잡았다.

갑신년 10월 12일 조선국왕

고종은 빠르게 붓을 놀린 뒤 옥새까지 찍어서 김옥균에게 내렸다.
김옥균이 공손히 절을 하고 머리 위로 친수밀칙을 받았다.
" 이제 공손히 절을 하고 머리 위로 침수밀칙을 받았다. "
" 황공하옵니다. 신이 어찌 성상의  망국하신 은혜를 저버리이까? 성상계서는 안
심하시옵소서. "
" 내 일찍이 영공이 청년재사임을  간파하고 있었소. 이제 전하의 친수밀칙을 받
아 나라의 독립에 신명을 바치는  경에게 어찌 술 한 잔을 내리지 않을 수 있겠
소? 경은 잠시만 지체하오. "
" 중전마마. 신이  어찌 감히 어전에서 주산을 대접받을  수 있겠사옵니까? 분부 
거두어 주시옵소서. "
" 경은 사양치 마오. "
김옥균은 새삼스럽게 머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세간에  파다한 풍문처럼 중전 민
비는 확실히 국모로서의 재색을 겸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신하를 부리는 용인술
까지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김옥균은 민비에게서 주찬을 대접받고 새벽에야 퇴궐했다.
( 아아, 마침내 친수밀칙을 받았다! )
김옥균은 가슴이 뻐근했다. 이제 남을 것은 횃불을 들고 일어서는 것뿐이었다.

3

왜학생도 박갑성은  평소처럼 집에 도착하자  담을 훌쩍 뛰어  넘었다. 밤이슬을 
맞고 돌아다니다가 새벽이 이슥해서  돌아온 처지에 대문을 두드려 이웃을 깨워 
이목을 번다하게 하기가 싫은 탓이었다.
안방에는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내가 아직도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박갑성은 마루로 올라서려다가  걸음을 멈췄다. 집안이 적요했다. 10월  13일, 보
름을 이틀 앞둔 달은 박갑성의  집 마당에 하연 달빛을 신비스럽게 뿌려놓고 있
었다.
하늘은 창백해 보였다. 바람 한 점 없는 새벽, 희고 매끄러운 달빛만이 천지사방
에 넘치고 있었다.
박갑성은 갓과 신을 벗고 마루로 성큼 올라섰다.  아내가 잠이 들지 않았으면 그
의 기척을 들었을 법한데 방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 아내는 나를 기다리다가 잠이 든 모양이군 ... ... )
박갑성은 아내의 잔뜩 부른 배를 생각하며 방문을 열었다.
( 아! )
안방을 들여다 본  박갑성은 가슴이 섬뜩해 왔다. 이부자리가 깔린  방바닥에 흙 
묻은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그의 아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
다. 박갑성은 망연자실하여  허공을 쳐다보았다. 대체 아내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리고 이 무수한 흙 뭍은 발자국은 어찌된 것일까... ...
도둑이 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도둑은 도성까지  기승을 부려 
나라의 화근이 되기까지  하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도둑이 들었다고  해도 아내
의 행방이 묘연한 것이 기이했다. 아내는 만삭의 몸이었다.
( 혹시 친정으로 해산을 하러 간 것이 아닐까? )
아내의 친정은 동대문 밖 궁전 옆에 있었다.  그러나 만삭인 아내가 자신에게 한
마디 상의 조차 하지 않고 그 먼 고까지  해산을 하러 갔을 까닭이 없었다. 게다
가 이불  위에 찍혀 있는 어지러운  흙발자국이 어리 속을 불안하게  했다. 무슨 
사단이 일어난 것이 분명한데도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삐그드득하고 들렸다.
( 아내인가? )
박갑성은 신경을  곧추세웠다. 대문에 빗장이  걸려 있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뒤통수를 후려치고 있었다. 박갑성은 가슴이 격렬하게  뛰는 것을 진정시키며 대
문 쪽을 내다보았다.
( 오위장! )
마당엔 희디 흰 달빛  아래 거한이 종자 둘을 거느리고 서  있었다. 민영익이 심
복처럼 거느리고 있는 오위장 양홍재였다.
" 박갑성! "
양홍재가 박갑성을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 예. "
박갑성은 얼떨결에 대답을  하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양홍재는  체구가 우람하고 
힘이 장사였다.
( 이 자가 무엇 때문에 나를 찾아온 것일까? )
박갑성은 머리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으나 양홍재가 무엇 때문에 찾아왔는지 짐
작조차 할 수 없었다.
( 혹시 민영익 대감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
박갑성은 양홍재의 출현이 이해할 수 없었다.
" 너를 보자는 어른이 계시다. "
양홍재의 말투는 쌀쌀맞기 짝이 없었다.
" 그 어른이 누구십니까? "
" 가보면 알 것이다. "
" 어느 댁 어르신인지 알아야 따라 나설 것이 아닙니까? "
" 이놈아! 흉한 꼴 당하기 전에 어서 따라 나서! "
양홍재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양홍재가  거느리고 있는 종자  둘은 여차하면 
칼이라도 뽑을  기세였다. 박갑성은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양홍재가 결코 좋은 
일로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박갑성은 그때서야 깨달았다.
" 민 대감께서 부르시옵니까? "
" 민 대감이 너 같은 생쥐를 어찌 부르겠느냐? "
" 그러면 누가 ... ... ? "
" 가보면 알 것이다. "
"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 말미를 주십시요. "
" 도둑? "
양홍재가 빈정거렸다. 박갑성은 찬물을 뒤집어 쓴 듯한 기분이었다.
" 만삭의 아내가 없어졌습니다. 이불 위에  흙묻은 발자국이 찍혀 있고... ... 무슨 
사단인지 알아야 하지를 않습니까? "
" 더러운 세작놈이 말이  많구나! 한 칼에 목을 베어 버리고 싶지만  내 칼에 피
를 묻히기 싫으니 어서 딸 나서라! "
" 그, 그럼 제 아내를 ... ... ? "
박갑성은 양홍재의 말에 눈 앞이 아득해 왔다.  양홍재의 말에 의하면 아내가 납
치된 것이 분명했다.
" 이제 알겠느냐? "
양홍재가 언성을 높였다.
" 무, 무엇때문에 제 아내를 데리고 갔습니까? "
박갑성은 목소리까지 떨렸다.  아내에게 어떤 위해를 가했는지 알 수  없어 불안
했다.
" 가자. "
양홍재가 박갑성에게 눈을 부아렸다.
" 오위장 어른, 오위장 어른이나 저는 다같이 민 대감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
" 누가 민 대감을 위하여  일을 한단 말이냐? 너는 민 대감을 위하여 일을 하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내가 무었 때문에 썩어빠진 민문과 손을 잡겠느냐? "
" 그럼 김 협판을 위하여? "
" 이제야 알겠느냐? 우리는 그 분과 혈명을 맺은 동지다! "
박갑성은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렸다. 양홍재는  민영익을 배신하고 김옥균 쪽
에 붙어 있었다.
" 가자. "
양홍재가 다시 재촉을  하자 종자 둘이 박갑성의 등을 떠밀었다.  박갑성은 휘청
대는 걸음으로 양홍재를  따라나섰다. 양홍재는 박갑성의 사동의  어느 기와집으
로 데리고 갔다. 민태호의 집에서 불과 서너 채 떨어진 곳이었다.
 “나으리, 박갑성을 데리고 왔습니다.”
 양홍재가 불빛이 환한 사랑채에 보고를 하자  문이 덜컹 열렸다. 사랑채에는 사
람들이 가득했다. 박갑성에게  낯익은 일본인들의 얼굴도 보였다. 일본군 중대장 
무라카미 대위와 지사 이노우에 가꾸고로오였다.
 “네 놈이 고균장의 뒤를 밟은 놈이냐?”
 문을 연것은 동부승지 서광범이었다. 서광범의 눈이 칼날처럼 싸늘했다.
 “.....”
 “왜학생도가 맞느냐?”
 “그렇습니다.”
 “왜학생도라면 고균장이 선발하여  일본에 유힉을 시켰거늘 어찌하여 그 은공
을 배신하고 썩어빠진 청당에 붙어서 세작질을 한단 말이냐?”
 서광범의 추궁은 날카로웠다.  박갑성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대꾸도  하지 않았
다.
 “민영익이 너를 시켰느냐?”
 “.....”
 “냉큼 대답해, 이놈아!”
 양홍재가 칼등으로 박갑성의 어깨를 후려쳤다.  박갑성은 어깨를 감싸쥐고 마당
에 나뒹굴었다. 그러나 양홍재가 발로 등을 밟아댔다.
 “그만해라.”
 박영효가 앞으로 나섰다. 박갑성은 고개를 들고 박영효를 쳐다보았다.
 “누가 세작질을 시켰느냐?”
 “중전마마의 밀지를 받았습니다.”
 “중전?”
 “박영효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성상께서도 알고 계시느냐?”
 “전하께오서는 모르옵니다.”
 “그럴테지.......”
 박영효가 강파른 얼굴에 쓴 웃음을 지었다.
 “중전은 이번 거사 중에 폐비조칙을 받게  될 것이다. 아녀자가 궁중법도를 무
시하고 내정을 간섭하고  있으니 나라 꼴이 이렇게 된 것이다.  치마폭의 밀지를 
받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박영효는 민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박영효뿐이  아니라 왜당의 젊은 사대부들
은 한결같이 민비를 경원하고 있었다. 국정의  폐단이 모두 민비로부터 비롯되었
다고 믿고 있는 왜당들이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대했느냐?”
 “.....”
 “네가 서출이라도 아우처럼 대해 주지 않았느냐?”
 “.....”
  박갑성은 대꾸하지 않았다.
 “에이, 더러운 놈!”
 “.....”
 “너를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마는 대계를 위하여  참기로 한다. 
저놈을 묶어서 광에 가두어라.”
 김옥균은 보이지 않았다.
 박갑성은 양홍재가 거느리고  있는 종자들에게 묶여서 캄캄한 광  속에 갇혔다. 
광 속에는 그의 아내도 손발이 묶인 채 갇혀 있었다.
 “여보.”
 박갑성의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박갑성을  불렀다. 아내의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오? 혹여 다친 데는 없소?”
 박갑성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다친 데는 없습니다.”
 박갑성의 아내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서방님은 어떠세요?”
 “나도 다친 데는 없소.”
 “다행입니다. 저는 서방님이 다친 줄 알고 마음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미안하오. 만삭인 임자에게까지  이 지경을 당하게 하였으니 모두  내 불찰이
오.”
 “서방님과 함께 있으니 마음이 놓입니다.”
 “두렵지 않소?”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춥지는 않소?”
 “짚덤불이 깔려 있어서 그다지 추운 줄을 모르겠습니다.”
 박갑성은 아내의 차분한  대답에 대꾸할 말이 없어졌다. 김옥균을  미행하는 일
이 발각된 것은  전적으로 자신이 부주의한 탓이었다.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다만 만삭의 아내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이제 우리는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신세인가......)
 바각ㅂ성은 천 길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듯한 아득한 절망감을 느꼈다.
 그때 박갑성의 뇌리에  갑자기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그것은  자신이 김옥균
을 미행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고 살려두고 있는 점이었다.
 (이들은 나를 이용하려고 하고 있는거야!)
 박갑성의 예상대로였다. 이튿날 아침 일찍  사동에 나타난 김옥균은 박갑성에게 
역세작질을 할 것을 제안했다.
 (민 대감을 배신하라는 말이군.......)
 박갑성은 김옥균의 제안에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어쨌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김옥균은 박갑성의 아내를 내당에 옮겨 몸조리를 하게 한 후 박갑성을 풀어 주
었다. 물론 내당은 김옥균을 따르는 장사들이 삼엄하게 감시를 했다.
  고종으로부터 친수밀칙을 받은 김옥군의 행보는 더욱  빨라졌다. 10월 13일 김
옥균의 동교 별장에서 별궁에 불을 질러 거사를 시작하기로 한 김옥군은 자신의 
뒤를 밟던 박갑성까지 잡아들여 역공작에 이용하게 되자 거사를 더욱 서둘렀다.
 10월 14일에는 영국 영사 애스턴과 회식하기로  약속이 되었다. 회식 시간은 저
녁 7시였다. 저녁 6시 30분에 집을 나서는데  우정국 총판인 홍영식이 다급한 서
신을 보내왔다.
 조금전에 일본 공사관의 시마무라 서기관이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타케소에 공
사가 오늘 저녁에 우리들을 다시 만나보고자 한답니다.
 서신의 내용은 간단했다. 김옥균은 다시 사랑으로 돌아와서,
 지금 영국 영사  애스턴과 약소이 있어서 박영효, 서광범 양인과  함께 거기 가
려는 참이니 그대가 일본 공사관에  먼저 가 있으면 9시 전후에 우리 세 사람이 
같이 가겠소.
 하는 내용의 서신을 써서 홍영식에게 보냈다.
 영국 영사 애스턴과의 회식은  9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김옥군이 박영효, 
서광범과 함께 종로 4거리에 이르자 달이 휘영청 밝아 은세계 같았다.
 김옥군은 수종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일본  공사관으로 들어갔다. 공사관에는 이
미 홍여식이 도착하여 앉아 있었다.
 타케소에 공사는 보이지  않고 통역인 아사야마가 합석해 있었다.  김옥균은 타
케소에가 나오지 않는 것이 불쾌했으나,
 “거사 기일을 10월 20일로 정하였소.”
 하고 시마무라에게  말하였다. 김옥균이 거사하기로 한날은  이날이 아니었으나 
거사일이 누설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렇게 말했다.
 “어찌 그렇게 늦습니까?”
 시마무라가 의심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20일 이전은 달이 밝아서 좋지 않소.”
 “과연 그렇겠습니다. 달이 밝으면 무사들이 잠복해 있을 수가 없지요.”
 시마무라는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았다.
 “대가는 어떻게 하기로 하였소?”
 “대가는 타케소에 공사의 염려가 있는 만큼 경우궁으로 옮기기로 하였소.”
 대가는 임금이 타는 가마를 말하는 것이었다. 경우궁은 계동에 있었다.
 “어디에 있습니까?”
 “계동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위치를 알려 주십시오. 주변을 살펴 보겠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김옥균과 박영효,  서광범이 일본 공사관을 나온  것은 새벽 2시가 되어서였다. 
김옥균 등은 이동 박영효의  집으로 몰려갔다. 이동 박영효의 집에는 이인종, 이
규정, 황용택, 이규완, 신중모, 박은명, 김봉균, 이은종, 윤경순등이 모여 있었다.
 “마침내 때가 온 것 같소.”
 김옥균은 자리에 앉자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박영효의 집에는 거사 계획을 세운 
이래 처음으로 장사들과 개화당 동지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동지들이 알고 있다시피 일본은  명치유신을 단행한 지 불과 20년이 못 되어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소. 그러나 일본의  국력신장이 어찌 저절로 이루어졌겠소? 
일본의 명치유신에는 요시다 쇼인과  같은 지사의 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오.”
 김옥균의 날카로운 눈매는  좌중을 한눈에 쓸어보았다. 1등대신 금릉위 박영효, 
영의정을 지낸 홍순목의 아들  홍영식까지 좌정해 있었으나 김옥균의 기개는 그
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우리가 목숨을 하늘에 맡기고 일어선 것은 우리의 일신상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애국애족하기 위해서요!”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했다.
 “나는 국왕전하의 친수밀칙을 받았소.”
 “.....”
 “이는 국왕전하께서도 우리의  거사를 성원하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
 “그러므로 이번 거사는 왕명에 의한 거사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라오!”
 김옥균은 말을 끝내고  품 속에서 고종의 친수밀칙을 꺼내어  좌중에게 보였더, 
좌중은 마른 침을  삼키며 ‘협판 옥균 대계일임’  이라는 여덟 글자를 뚫어질 
듯이 들여다보았다.
 “거사는 오는 17일 별궁에 불을 지르는  것을 시작으로 일제히 봉기할 것이오.

 “만약에 비가 오면 어찌 하겠소?”
 홍영식이 이의를 달았다.
 “이런 가을에 무슨 비가 오겠소?”
 김옥균의 대꾸는 퉁명스러웠다. 홍영식은 완고한  부친 홍순목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거사에 대한 결심이 자주 흔들리고 있었다.  허우대가 커서 모질지 못한 것
도 원인이었다.
 “혹시라도 몰라서 하는 소리요.”
 “비가 오면 18일로 연기하기로 하오.”
 박영효가 온화한 목소리로 중재했다.
 “이제부터 각자가 할 일을 지시하겠소. 명심하기 바라오.”
 김옥균은 박영효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장사들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내뱉았다.
 “이인종 동지.”
 “예.”
 이인종은 판관 출신이라 김옥균과도 허교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별궁에 불을 지르는  것은 이인종 동지가 전적으로 맡아야겠소.  이인종 동지
의 지휘 아래 이규완,  박은명, 윤경순, 최은동 4인은 포대 수십  개를 만들어 그 
안애 불이 잘 붙는 마른 장작을 넣어 별궁  정전안에 쌓아 두시오. 또 석유를 30
개 한정하고 작은 병 속에  담아 때가 되면 정전에 쌓아둔 포대에 뿌려 불이 쉽
게 붙도록 하시오.”
 “예.”
 이인종이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동소 행랑에는 화약을 묻어서 불길이 번지면 일시에 터지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이인종이 고개를 꾸벅하고  대답했다. 화약은 이미 일본을 통해  준비되어 있었
다.
 “불이 일어나면 각  영사는 불을 끄러 달려와야  하지만 혹 의심을 하여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우정국 연회가 시작된 뒤에  하기로 하겠소. 홍 동지는 연회
가 시작되기 전에 4영사의 무고 또는 유고를 잘 탐지하여 연회를 주최하도록 하
시오.”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홍영식에게 쏠렸다.
 “잘 알겠습니다.”
 홍영식이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불이 일어나면 우정국에 모인 사람들은 반드시 불을 그러가야 하니 곧 그 화
재 현장에서 4영사를 하수하시오. 장사들은 단검  한 자루, 단총(권총) 한 자루씩
으로 무장하여 2인이  영사 1인을 하수하시오. 장사들이 혹 시수할  염려가 있을
지도 모르니 일본인 함 명씩을 별도로 배치하겠소.”
 “일본군이오?”
 박영효가 김옥균에게 물었다.
 “낭인입니다.”
 “낭인이라면 사무라이?”
 “오카모토 유우노스케란 자가 지휘할 것입니다.”
 “일본인이라면 조선 사람들이 수상하게 여길 것이 아니오?”
 “우리 옷으로 변경시키겠습니다.”
 김옥균은 박용효에게 공손하게 대답했다.
 “4영사는 다음과 같이 장사들이 맡아 주시오.”
 장사들이 김옥균의 입을 주시했다.
 “민영익은 이은종, 윤경순 동지가 맡으시오.”
“예.”
 이은종과 윤경순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윤태준은 박삼룡, 황용택 동지가 맡으시오.”
 “예.”
 “이조연은 최은동, 신중모 동지가 맡으시오.”
 “예.”
 최은동과 신중모가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다.
 “한규직은 이규환, 박은명 동지가 맡으시오.”
 “예.”
 4영사에 대한  주살 명령이 모두 끝났다.  그러나 김옥균의 지시는 계속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이인종 등과 합의한 계획이었다.
 “이인종, 이규정 동지는 나이가 많으니 호령의 소임만을 맡으시오.”
 장사들을 지휘하라는 지시였다.
 “연락은 유혁로, 고영석 동지가 맡으시오.”
 “예.”
 고영석이 대답을 했다. 유혁로는 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있었다.
 “신복모 동지는 전영 장사  43명을 거느리고 이동에 매복해 있다가 별궁에 불
이 나면 즉시  금호문으로 달려가서 파수하시오. 그리하여  민태호, 민영목, 조영
하가 입궐하기 위해 나타나면 곧장 하수하시오.”
 대궐에서 화재가 일어나면 근시나 승후관은 즉시 입궐하여 임금에게 문안을 드
려야 하는데 대신들의 입궐은 반드시 금호문을 통해야 했다.
 “전영 소대장 윤경완 동지는 거사날에 합문의 파수를 자원해서 맡으시오.”
 합문은 편전의 정문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국왕 침전의 정문을  말한다. 합문
의 파수는 각 영의 중대장과  소대장이 병사 50명을 거느리고 번갈아 파수를 보
고 있었다.
 “예.”
 윤경완이 절도 있게 대답을 했다.
 “그리하여 외간에 불이 일어나는 것을 신호로 삼아 병정을 단속하고 금호문에
서 살아 남아 궐내로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처지하시오.”
 “알겠습니다.”
 김옥균은 윤경완의  씩씩한 대답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윤경완은 윤경순의 
아우로 나이가 어려서 거사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으나 전영의 소대장을 맡으면
서 김옥균이 발탁한 것이다.
 “대궐에서는 궁녀 고대수가 통명전에 묻은 화약을 폭발시킬 것이오.”
 궁녀 고대수는 김옥균과 가까운 사이였다.  민비가 임오군란으로 퇴위당했을 때 
가까이 모셔서 얻은 별명이었다. 신체가 남자처럼 건장하고 힘이 세서 장정 5, 6
인을 거뜬히  해치운다는 여자였다. 42세나  되는 여자였으나 그의  신상에 대해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화약은 2년전  김옥균이 탁정식을 시켜 일본에서  서양인들에게서 구한 것이었
다.
 “김봉균, 이석이  동지도 미리 궁궐에 들어가  인정전 행랑 몇몇  곳에 화약을 
숨겨 두었다가 우리가 들어갈 때 폭발시켜 대궐을 혼란에 빠트리시오.”
 “예!”
 김봉균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김옥균은 잠시 일ㅂ을  다물었다. 좌중에는 주안상이 차려져 있었으나  누구 하
나 술잔을 입에 대는 사람이 없었다.
 “일본인 넷은  전후로 삼아 화재현장에서 놓친  자가 있으면 뒤따라가 자격을 
하게 하겠소.”
 김옥균의 그 말에는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일본인 낭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김오균의 몫이라는 묵시적인 합의가 그들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별궁에 불이 일어나면 일본 공사관에서 병사 30명을 동원하여 금호문과 경우
문을 왕래하며 돌발적인 사태에 대처하도록 하겠소.”
 그 말에도 대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옥균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일어나면  우리 사이에 혼란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군호가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인종의 제안이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김옥균은 무릎을 치고 박영효를 쳐다보았다.  박영효의 동의를 구하는 눈빛이었
다.
 “천이 어떻겠소? 우리의 거사는 천명이요, 우리의  목숨을 하늘에 맡긴다는 뜻
이 있으니 아니 좋겠소?”
 박영효의 말이었다.
 “요로시!”
 김옥균이 흔쾌히 맞장구를 쳤다. 요로시는 일본말로 좋다는 뜻이었다.
 “그럼 우리 쪽이 천으로 하고 일본은 요로시로 합시다.”
 홍영식이 흔쾌히  동의했다. 서광범도 이의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고 
장사들은 천과 요로시를 외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김옥균은 청당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고 장사들끼리의 낯을 익히게 하기 위하여 
당므날 압구정 박영효의  별장 근처에 있는 산으로 장사들을 사냥  가게 하였다. 
그 자리에는 일본인 낭인들까지 합세하게 했다. 지휘는 이인종이 맡게 했다.
 그들이 헤어진 것은  먼동이 트고 있을 때였다. 밤을 꼬박  새워 눈이 충혈되었
으나 혁명의 진영이 갖추어졌다는 생각에 쉬이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결행뿐이었다.
  홍영식은 우정국 낙성  축하연을 음력 10월17일(양력 12월4일) 오후  7시로 잡
았다. 우정국은 전동에  완광되어 낙성식만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였다. 10월17일
은 후영사 윤태준만 번을 서게 되어 있어 민영익, 이조연, 한규직은 낙성 축하연
에 참석할 수 있었다.
 홍영식은 일일이 초대장을  써서 수종들을 시켜 보냈다. 김옥균의  지시에 의해 
4영사를 초대하는 것이었으나 홍영식은 4영사를 동시에 자격하는 일이 꺼림칙했
다. 특히 우영사  민영익은 홍영식과 교분이 두터웠고  왜당, 개화당, 독립당으로 
불리는 그들과 늘 같이 어울려 지냈었다.  그러나 민영익이 묄렌도프를 두둔하면
서부터 김옥균과 틈이 벌어지게 되었고 결국은 개화당과 결별을 하게 되었던 것
이다.
 그를 죽이는 것은  아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홍영식을 무엇보다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은 김옥균이 고종을 속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김옥균이 고종에게서 받은 
친수밀칙은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도모하는 일이지 정변을 뜻하고 있는  것이 아
니었다.
 물론 김옥균의 주장도  당당한 논리가 있었다. 고종과 민비가  개화정책을 추진
해 온 것은  김옥균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종과 민비의  개화정책은 일본
의 무력시위와  청나라의 권고로 비롯되어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임오군란으로 치명적인 도전을 받아 민심의 향배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옥균은 일본과 유사한  개화정책을 원했다. 그것은 좀 더  혁신적이고 가시적
이어야 했다. 그러나 고종의 우유부단한 성격, 청나날의 내정간섭은 일본식의 개
화를 원하는 김옥균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김옥균은 그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정변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요즈음 왜당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말이 파다한데 어찌된 일이냐? 김옥
균은 비록 주상의 총애를 받고  있으나 거조가 방정하지 못하고 금릉위 또한 재
기가 승하나 상종할 인물은 못된다. 교분이란  매일같이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삼가하고 또 삼가해야 올바른 교분을 나누게 되는 법이다.”
 홍영식은 며칠 전  부친 홍순목으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나서  얼굴을 찡그렸다. 
홍순목은 봄에 일어난  의복제도 변경에 대한 반대상소를 올렸다가  사판(관리대
장)에서 이름이 깎이었다. 그의 형 홍만식도 이조참판의 자리에 있었으나 의복제
도 개정을 반대하다가  관리대장에서 삭직되었다. 형이나 아버지는  완고한 유학
자일 뿐 아니라 철저한 근왕주의자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불충이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었다. 홍영식 역시  그들의 영
향을 받아서 거사를  하는 일이 못내 찜찜했다. 최근에 홍영식의  심사가 울적한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아버님, 저희들이 일본과 교유하고 있는것은  그들의 개명한 정치를 배우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홍영식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올바른 이링라
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개명한 정치를 배우려다가 왜인들의 앞잡이가 되는 것이 아니냐?”
 홍순목이 홍영식에게 다짐을 받는 것은 노파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버님, 그럴 리가 있겠습니가?”저희들은 조선의 신민입니다. 조선을 위하여 
이 한 목숨을 바칠 각오가 서 있습니다.“
 “기군하는 죄를 지어 가문에 앙화를 불러들여서는 안된다!”
 “저희들은 우국충정할 뿐입니다.”
 홍영식은 단호하게 결심을 밝혔다. 그러나 홍영식은  그때 갑자기 목이 꽉 메였
다.
 홍순목은 이미 68세의  노인이었다. 수염은 은빛으로 하얗게 희었으나  눈은 정
기가 넘치고 있었다. 의복제도로 인해 삭직되고  사판에서가지 깍이는 신세가 되
었으나 학문과 경륜 어느쪽으로도 일세를 풍미한 꼬장꼬장한 노인이었다.
 홍영식은 아버지 홍순목을 생각하자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정변에 성공하면 몰라도 실패를 하면 일가각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이다.
  홍영식에게 열살 난  아들이 하나 있었다. 정변에 실패하면 그  아들까지 죽임
을 당하리라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아팠다.
 그날은 10월15일이었다. 10월 보름이라  밤이 되자 달이 휘영청 밝았다. 갑신정
변의 주역들은 사동  서재창의 집에 모여 술을 마셨다. 거사계획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기 위한 자리였다. 서재창은 서재필의 아우로 역시 왜학생도였다.
 홍영식은 그 자리에서 묵묵히 술을 마셨다. 김옥균, 박영효등이 연신 거사 계획
과 장사 동원을 확인하고 있는데도 홍영식은 묵묵히 술만 마시고 있었다.
 그때 고영석이 타케소에 공사가 경우궁을 정찰하고 돌아갔다는 보고를 해왔다.
 “일본이 출동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오.”
 박영효는 기분이 좋아서 김옥균에게 말했다.
 “탄약도 진고개 둔병소에서 암암리에 교동 공사관으로 옮겼습니다.”
 “탄약까지?”
 “병사들을 직공처럼 위장해서 운반했다고 합니다.”
 “잘 되었소. 일본이 출병을 하는 것이  확실하니 우리의 거사는 결탄코 성공할 
것입니다.”
 김옥균도 기뻐했다. 그들은 다시  화동 김옥균의 집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작은 
사고가 일어나  거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 서재창의  집에서 거사 
모의가 한창인데도 술만 마시던  홍영식이 거어이 대취하여 말에서 떨어졌던 것
이다.
 “아니!”
 “이, 이런 변고가 있나?”
 장사들이 재빨리 홍영식을 부축했다.
 “금석, 어디 다친 곳은 없소?”
  박영효가 말에서 내려 홍영식을 근심스럽게 살폈다. 금석은 홍영식의 호였다.
  "괜찮습니다."
  홍영식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공손히 대답했다. 박영효는 스물세  살밖에 되지 
않았으나 1등대신이요, 부마였다.  왕족답게 연소한데도 언행이 겸손하여 장사들
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낙마를 했는데 다친  곳이 없을 수가 있겠소?  취중이라 모를수가 있으니 잘 
살펴보시오."
  "팔을 조금 다친 것 같습니다."
  "어 쪽이오.?"
  "왼쪽입니다. 조금 시큰거리기는 해도 괜찮습니다."
  "대사를 앞두고 횡액을 당했ㅇ드니 불길하구려."
  "모두 소인의 불찰입니다."
  홍영식은 자신의 부주의를  사과했다. 김옥균은 말에서 내리지  않고 홍영식을 
마땅찮은 기색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뼈가 접질렸으면 다시 맞추어야 하니 서둘러 김공의 집으로 갑시다."
  홍영식은 장사들의 부축을 받아서 김옥균의 집에 도착했다.
  "팔은 좀 어떻소?"
  "괘찮은 것 같습니다."
  홍영식은 웃으며 김옥균에게  종이와 붓을 청하더니 단숨에  한시 한 수를 썼
다.
  (내가 말에서 떨어졌을때에 내피가  땅에 스미었네 내가 죽을 때에 하늘은  내
마음을 굽어 보리 나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나와 같이 맹세하라 만약에 이
마음을 배신하면 하늘이 반드시 벌을 할 것이다.)
  김옥균은 홍영식이 쓴 한시를 보고 몹시  언짢게 생각했다. 박영효도 홍영식이 
쓴 한시의 내용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홍영식의 한시는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좌중의 모든 사람들도 홍영식
의 한시를 돌려가면서 익ㄹ으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내색하지 않았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갑자기 뒤통수를 둔기처럼 후려치고 있었다.
  1) 김옥균이 고종으로부터 받은 친수밀칙이  어떤 것인지는 기록에 없다. 김옥
균의 (경의 대책에 일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2) 왜당은  개화당 또는 독립당을 일컫는다.  갑신정변을 전후하여서는 이들을 
모두 왜당이라고  불렀는데 갑오개혁  이후부터 개화당이라 불렀다.  일본인들과 
사가들이 주로 (개화)라는 말을 사용했다.
  3) 합문은 각문이라고도 부른다.
  4) 김옥균은 갑신정변을 위해 대궐에까지 매수의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제31장
  피를 부른 불꽃놀이 
  민영익은 홍영식으로부터 온 우정총국  낙성식 축하연 초대장을 앞에 놓고 잠
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공사다망한 이때  또 왜당의 무리들이 외국인들을 
초대해 놓고 술이나 마시려는 것인가 하는 불쾌한 생각이 일어났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굳게 문을 닫아 걸었던 쇄국의 문이 열려 외국인들이 도성까지 
물밀듯이 들어오자 새로운 풍조가  만연 했는데 그 하나가 외국인들과의 만찬이
니, 연회니 하는 어줍잖은 술자리였다. 외아문의 관리들이 외국인과의 접촉이 빈
번해 지면서  연소한 나이에 당상관이  되고, 고종의 별입시까지  허락되자 너도 
나도 다투어 외국인들과의 교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있었으나 만찬과 연
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열렸다.
  지방에서는 명망있는 산림과 청관들이 나라의 재용을 절약하라고 계속해서 상
소를 올리고  있었으나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지 자중할 줄을  몰랐다. 그러한 
상소가 빗발치듯이 올라오는 것은  민문이 부패한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
이 고작이었다.
  민영익은 그러한  상소문이 올라올  때마다 씁쓸했다. 임오군란때  부정부패의 
원흉으로 몰려 여흥 민씨 일족이 쑥대밭이 된것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초대장은 정중했다.  초대장은 민영익에게만 온  것이 아니라  4영사 모두에게 
배달되어 있었다. 4영은 도성 방위와 대궐 수비의 중책을 맡고 있었다. 그런 4영
사들에게 낙성식 축하연의 초대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금석이 왜 
이런 초대장을 보낸 것일까?)
  민영익은 홍영식의 인후한 얼굴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민영익의 사랑에 출입하던 젊은  사대부들 중에 홍영식의 인물됨이 가장 원만하
여 민영익은 속으로 은근히  흠모하는 처지였고 홍영식 쪽에서도 민영익을 남달
리 아끼었다.
  김옥균이 호방한 성격으로 왜당을 규합하여 두령  노릇을 하고, 왕족의 신분인 
박여효가 왜당에 가입하여  김옥균과 호형호제하며 지냈으나 홍영식은 아버지가 
영의정을 지낸 거물  정치인인데도 불구하고 과묵하고 진중한  인물이었다. 그러
므로 왜당과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도 청당 쪽과도  두루 원만하게 지내고 있었
다.
  홍영식은 민영익의 부사로 미국에  다녀온 후 우편제도 실시를 고종에게 주청
했고, 김옥균, 박영효, 민영익을 비롯한 개화당뿐 아니라 김홍집, 김윤식 등이 적
극적으로 밀어서 성취시켰다.
  조선의 우편제도는 기껏해야 역참 뿐이었다. 역참은  봉화와 역마를 말하는 것
으로 통신수단으로써는 가장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서양을 비롯한  일본까지 전
신을 사용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때 오히려 우편제도의 실시는 비록 경성과 
경인에 한정된 것이었으나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조선은 이미 음력  9월11일 우정총국, 우정국의 직제장정,  우정규칙, 경성내우
정왕복개설법, 경성인천간왕복우정규법을  제정 반포했다.  한국최초의 법령이었
다.
  우정총국 총판에는 당상관 홍영식이,  인천분국분국장에는 월남 이상재가 임명
되어 음력 10월 1일부터 업무를 보고 있었다.
  우정국의 낙성 축하연은  보름이나 늦게 열리는 것이다.  민영익은 새삼스럽게 
그 사실도 신경이 쓰였다. 사실 낙성  축하연이라기보다 개국 축하연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했다.  우정국은 전의감으로 쓰던  건물을 개수한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정규칙은 전문 7장 46조로  되어 있는데 박영효, 서광범, 김옥균, 민영익, 신
낙균등  범 개화당 인물들을 15명이나 사사에 임명하여 출범시켰다.
  민영익으로서도 참가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였다. (낙성식 축하연이니 외국인
들과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는 자리인데...)
  민영익은 홍영식의 초대장을 내려다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정국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듯이 위태로왔다. 시정에서는  이미 정변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었다. 
  김옥균이 고종의 친수밀칙을 받았다는  소문은 민영익에게도 들려왔다. 왜당의 
빈번한 회합도 청나라를 자극하여 청나라도 진중이  계엄을 실시하고 있었다. 청
나라의 원세개는 타고난 무인이며 지략가였다. 그는  타케소에 일본 공사가 진수
당을 뼈없는 해삼으로 조롱  했을때 일본이 청나라에 노골적으로 도발하고 있다
는 사실을 즉각 알아챘던 것이다.
  민영익은 난감했다.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에서 무력행사를 할 기세였다.
  원세개는 조선의 4영에도 계엄을  요구했고 연경당에 있던 대포 2문까지 청군
진영으로 가져올 것을  요구했다. 민영익은 원세개의 요구에 따르지 않을  수 없
었다. (김옥균이 받은 친수밀칙은 무었일까?)
  민영익은 그점도  궁금했다. 친수밀칙의 내용이  대계일임이라는 소문도 있고, 
개명정치일임이라거나 혁명, 또는  유신이라는 말도 있었으나 어느  것도 확실치 
않았다.(어쨌거나 조선 군사들의 모든 병권은 내가 장악하고 있으니까...)
  민영익은 불안한 생각을 떨쳐 버리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왜당의 중동은 탁상
공론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우정국 낙성식  축하연에는 외국공사들도 다수 참석할  예정이었다. 외
국 공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정변을 도모한다면 어리석기 짝이없는 짓이 될 것이
다.
  "최녹사 있는가?"
  민영익은 집사  최녹사를 불렀다. 고영근이  장단 군수로 부임한  이래 집안의 
대소사를 최녹사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예 대감마님."
  사랑 뜰에서 최녹사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박 생도는 아직 오지 않았는가?"
  민영익은 사랑채 남행각의  누마루 쪽문을 열고 최녹사를  쳐다보았다. 최녹사
의 비쩍 마른 몸이 구부정했다.
  "예."
  "박 생도가 오면 기별하게."
  "예."
  민영익은 최녹사의 늙수그레한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인후통 때문에 입궐을  하지 않은 것이 벌써 열흘째였다. 그래서  그런지 중전
민비로 부터 밀지조차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요지막에 다방골에 나간 일이 있는가?"
  민영익은 문을 닫으려다가 말고 최 녹사를  다시 쳐다보았다. 눈발이라도 뿌리
려는지 하늘이 잔뜩 흐려 있었다.
  "어젯밤에 잠시...."
  최녹사가 말끝을 흐렸다. 최 녹사는 투전판이며  다방골 출입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엇다. 몇 년 전에 창궐한 호열자에  내자와 자식을 모두 여의고 혈혈단신
이 된 최 녹사는 잡기와 계집질에 정을 붙이고 있었다.
  "다방골에서 주워 들은 소문은 없는가?"
  "스무날께 큰 변사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변사?"
  "왜당이 조만간 거사를 할 것이라는 소문 이었습니다."
  "거사라니? 무슨 거사인가?"
  "혁명이라는 말도 있고 유신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김 협판이 상감마마의 친
수밀칙을 받아 거사를 도모한다는 소문입니다."
  민영익은 고개를 끄떡거렸다.
  "스무날께 거사를 한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일곱시에 전동의 우정총국 낙성식 축하연에  갈 것이다. 무술 잘하는 장사 둘
에게 단총과 단검을 소지하여 나를 따르게 해라."
  "예."
  최 녹사가 허리를 깊숙이  숙여 보였다. 민영익은 누마루쪽의 문을 닫았다. 바
람이 차가웠다. 이제 점심때를 조금 지났을 뿐인데 방안이 어둑했다.
  민영익은 연상에  펼쳐진 운미란에 힐끗 시선을  주었다가 일어서서 내당으로 
걸음을 놓았다. 마음이 산란해서인지 붓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당에는 민영익의  부인 김씨가 아랫것들과 이불을  꿰매다가 포근하게 웃는 
낯으로 민영익을 맞이했다. 아랫것들은 황망히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이고 물러
갔다.
  "이시간에 무슨 일로 내당 출입을 다 하십니까?"
  "날씨가 찌푸드드하구먼. 이젠 겨울이 완연한 모양이야."
  "벌써 초동이 아닙니까?"
  김씨는 옆에 와 있는  민영익을 향해 살갑게 눈웃음을 쳤다. 그  웃음 끝에 색
기가 대롱거렸다.
  "몸이 으슬으슬해."
  "고뿔이 드는 것 아닙니까?"
  "글쎄."
  민영익은 슬그머니 치맛자락으로  감싼 둔부를 토닥거렸다. 김씨가  얼굴을 붉
히며 고개를 떨구었다. 고운  미태였다. 대갓집 부인들의 정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옥색저고리와 남치마로 감싼 풍성한 여체가 민영익의  눈에 환하게 들어왔다. 인
후통 때문에 열달동안이나  보듬지 못했던 여체였다. 그윽한  지분냄새와 살냄새
가 민영익의 색심을 울렁거리게 했다.
  "아이고 이제 겨우 낮때가 지났는데 어쩌자고 이러세요."
  김씨가 허리를 비틀며 앙살을 떠는 시늉을  했다. 둔부를 토닥거리던 민영익이 
김씨를 덥썩 안아서 제무릎위에 앉혔던 것이다.
  "내가 뭘 어쨌기에?"
  "벌건 대낮에 망칙하지 않습니까? 아랫것들 눈과 귀가 있는데..."       
  김씨는 아랫것들을 조심하는지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있었다.  싫어서 암살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허허...... 아랫것들이라고 그만한 눈치가 없을까...... ."
  "대감, 체신이 있지 않습니까?"
  "대감 체신이 이 일조차 삼가하는 것이랍디까?"
  "삼가고 삼가는 것이 사대부의 체신이지요."
  "이 일만은 삼가지 못하겠소."
  민영익의 손이 대뜸 김씨의 젖가슴에 얹혀졌다.
  "에그......"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않겠소?"
  "대낮에 별이 어디 있답디까?"
  "부인 엉덩이 밑에 있지 않소?"
  "별이 어쩌자고 치맛자락 밑에 깔려 있습니까?"
  "궁을 찾지 못해 그런 것일세."
  민영익이 김씨를  안아 손질을 하고  있던 두툼한 솜이불위에  눕혔다. 김씨가 
눈을 흘기는 시늉을 하며 제옷을  벗는 동안 민영익도 서둘러 옷을 벗고 김씨의 
몸위에 제몸을 포갰다.
  민영익도 그 일에  담백할 수는 없었다. 민영익은 중전 민비의  친정 사손이자 
세자빈의 오라버니였다. 벼슬은  이미 판서의 대열에 올라있고  학문도 여느사대
부 못지 않게 출중했다.  왕실의 내명부와 여흥 민문의 중망이 그  한 몸에 쏟아
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혼례를 올린지  10년이 가까이 되는데도  김씨는 수태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민영익은 그점이 늘 마음에 걸리고 초조했다.
  그 점은 김씨도 마찬가지였다. 중전민비의 친정  여인이 되었으니 자손을 번성
시킬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잠자리를 같이 하고  있는데도 태기가 
없는 것은 속이 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정국 낙성식 축하연이 있어서 다녀오겠소."
  민영익은 잠시후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부인 김씨에게 말했다.  김씨는 돌아
앉아서 미적거리며 옷을 입고 있었다.
  "우정국이요?"
  "홍 대감이 총판으로 있는데 초대장을 보냈소."
  "영상을 지내신 홍순목 대감의 자제분 말씀인가요?"
  "그렇소."
  "그럼 그자리엔 김 협판도 나오겠군요?"
  "김옥균 말이오?"
  "예."
  "당연히 나오겠지."
  "고뿔기운도 있는데 나가지 않으면 안 되시겠어요?"
  "너무 오랫동안 쉬었어. 열흘  동안 두문불출했더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소. 스무날께 변사가 있을것 같기도 하구..."
  "변사요?"
  "나가서 왜당의 동정이라도 염탐해야지."
  민영익은 다시 한번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이불 위에서 일어섰다.
  :사랑으로 쌍화차를 올릴께요."
  "그러지."
  민영익은 내당의 안방을  나서서 마루로 나갔다. 하늘이 더욱 흐려져  금세 빗
발이 뿌릴것 같았다. 운혜를 신고 내당 중문을  나서는데 최 녹사가 왜학생도 박
갑성을 데리고 사랑채를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민영익은 걸음을 멈추고 박갑성
을 기다렸다.
  "대감마님."
  박갑성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늦었구만."
  "송구하옵니다."
  "왜당들은 별일이 없나?"
  "우정국 축하연에서 술 마실 얘기로 떠들썩합니다."
  "시정에 변사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해. 그쪽 동정이 어떤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스무날께 거사를  할 것이라면서 여기저기 모여 수군대
고 있사옵니다."
  박갑성이 어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내키지 않는 말을  발설하듯 그의 
목소리에 맥이 빠져 있었다.
  "스무날?"
  민영익의 시선이 박갑성의  얼굴을 차갑게 더듬었다. 스무날이라면  최 녹사가 
다방골에서 주워 들은 얘기와 같은 것이다.
  "열 아흐레에 김옥균의 집에 모여서 구체적인 지시를 한다고 하옵니다."
  "그럼 그때서야 거사의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다는 말이냐?"
  "송구하옵니다."
  "송구할 것 없다. 명색이  세작이라면 다방골까지 파다하게 퍼져있는 소문이나 
주워올 것이 아니라 쓸만한 것을 가지고 와야 할 것이 아니냐?"
  박갑성을 쏘아보는 민영익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오늘의 축하연은 단합대회라고 하옵니다. 축하연이 끝난뒤에 왜당생도들이 따
로 술자리를 가질 것이라고 하옵니다."
  박갑성은 만삭의 아내얼굴을  떠올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박갑성이  오늘의 거
사 계획을 누설하면 아내가 죽게 되는 것이다.
  "흥!" 
  민영익이 콧방귀를 뀌었다.
  "스무날 거사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줄 믿습니다."
  "어째서?"
  "왜당의 거사는 청당을 물리치고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라고 하옵니다. 
일본군과 연합하여 상감마마를 호위한  뒤 청당을 요직에서 내친뒤 조정을 혁신
할 것이라고 하옵니다."
  "장사들을 동원하면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것이 아니냐?"
  "장사를 동원하는 것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청나라 군사들의  공
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 하옵니다."
  "김옥균이 친수밀칙을 받았다는데 사실인 것 같으냐?"
  "그러하옵니다. 중전마마께서 주찬까지 대접하셨다고 하옵니다."
  "주찬을?"
  민영익의 눈썹이 옆으로 쭉 찢어졌다. 중전  민비가 주찬을 대접했다면 파격적
인 은전인 것이다.(김옥균의 말솜씨에 넘어 가신 것인가?)
  민영익은 민비의 새침한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민비는 결코 김옥
균의 변설에 호락호락 넘어갈 녹록한 여인이  아니었다. 민비가 김옥균에게 주찬
을 대접했다면 김옥균의 거사가 결코 민문에 해악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알았다. 내일은 좀더 상세한 내막을 알아 오너라. 네가 가지고  오는 정보라는 
것이 뜬구름 같지 않느냐?"
  민영익이 박갑성에게  일갈을 하고 사랑채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
다. 찬바람이 도는 것 같은 쌀쌀한 태도였다.
  박갑성은 오늘밤 민영익이 장사들에게 자격당해 죽으리라는 생각을 하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김옥균은 10월 17일  아침 내내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다. 어젯밤에  이번 거사
에 동원하기로 한 일본인 4명을 불러 확정된 계획을 자세히 일러주고 술까지 대
접하느라고 숙취가 남아 있었으나 운명의 날이었다.  그는 여러곳에 산재해 있는 
장사들에게 밀령을 보내 은신해  있게 하는 한편 청당과 4영의 동정도 빠짐없이 
염탐했다. 아침엔  일본 공사관으로 박영효를  보내 다시 한번  타케소에 공사의 
다짐을 받았다.
  점심때가 되자 대궐을 출입하는 변수가 찾아왔다.  변수는 고종이 어젯밤을 꼬
박 새우고 아침에도 정무를 보고 있다고 보고했다.  고종은 낮에는 자고 밤에 일
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성격이 꼼꼼하여 승정원에서 올리는 문서와 의정부, 통
리아문에서 올리는 서류들을 일일이 읽어 보고서야  재가를 했다. 근신들은 고종
의 불면증 때문에 밤에 입궐하고  아침에 퇴궐하는 일이 흔했다.(임금이 밤에 정
사를 보니 조정 대신들도 덩달아서 밤에 정사를 보는거야...)
  고종의 불면증은 김옥균도 몇번이나 경험한 일이  있었다. 고종과의 독대도 대
부분 한밤중에 이루어져 먼동이 밝아야 끝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날 아침은  고종이 밤을 새우고도 계속해서 정무를 보고  있었다. 승
정원에서 밀린 서류들을 결재해 달라고 아침부터  고종에게 올린 것이다. 승정원
의 그 원리는  김옥균에게 매수된 자였다. 김옥균은 고종이 초저녁부터  깨어 있
으면 거사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침에도  정무를 계속해서 보게하여 
초저녁에 잠들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고종이 김옥균의 계획대
로 움직이고 있었다.(하늘이 나를 돕는거야....)
  김옥균은 만족했다. 거사가 성공을 하려면 천명이  있어야 하는데 천명이 자신
에게 내린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청군도 안남에서  벌이고 있는 프랑스와의 전쟁
으로 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 천오백 명을 철수시켰던 것이다.  절호의 기회
가 아닐 수 없었다.
  김옥균은 오후 4시에 축하연 준비 상황을 알아보기 위하여 전동의 우정국으로 
나갔다. 홍영식은  아침부터 우정국에 나와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초청을 받은 
사람들 중에 타케소에 공사와 독일 영사가 병으로 참석하지 못한다고 통보가 왔
을 뿐 대부분 참석하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타케소에가 얼굴을 내밀지 않으려는 
수작이군....)
  김옥균은 불쾌했다. 후영사  윤태준도 궁중의 숙직이라 참석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후영사 윤태준은  제거 대상이 되는 인물이 아니었으나 후영에  소속된 군
사들을 오합지졸로 만들기 위해 죽음의 축하연에  초대된 사람이었다. 그다지 근
심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대궐에서 다시  변수가 나온 것은  김옥균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변수는 
고종이 승후관들을 오후 2시에 입대하게 한 뒤 곧 물러가게 하였다고 보고했다.
  김옥균은 서재필의 집으로  갔다. 서재필의 집에는 일본인들과  장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김옥균은  장사들에게 행동요령을 지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김옥균이 옷을 갈아 입고 집을  나서려는데 내다에서 부인 유씨가 일곱 살 된 
딸을 데리고 나오다가 중문앞에 멈추어 섰다. 김옥균은 가슴이 싸하게 저려왔다. 
어쩌면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면 부인과 아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게되는 것이다.
“ 어디 외출하오? ”
김옥균은 유씨의 행색이 외출하는  차림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유씨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는 선연하게 맑은  눈으로 김옥균을 쳐다보고 있었
다.
“다녀오겠소. ”
김옥균은 휭하니  몸을 돌려 대문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대문앞에 서재필과 
장사들이 도열해 있다가 김옥균을 에워쌌다. 김옥균운  서둘러 걷다가 골목을 벗
어나기 전 뒤를 힐끗 돌아다 보았다. 무엇인가  뒷덜미를 잡아 당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자 유씨와 어린딸이 대문앞에까지 나와 오도카니 서 있었다.
( 미안하오. )
김옥균은 또다시 가슴이 묵직하게 저렸다. 그러나  날이 이미 캄캄하게 어두워져 
있었으므로 골목을 벗어나 뛰듯이 빠르게 전동으로 향했다.
우정국은 이미 휘황한 불빛에 둘러싸여 있었다.  총판 홍영식은 우정국 청사앞에 
나와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박영효는 안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김옥균
은 요리사에게 부탁하여 천천히 음식을 차리도록 하였다.
손님들이 완전히 도착한  것은 7 시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홍영식이 주인의 입
장에서 길다란 탁자의 중앙에  앉고 박영효가 왕족의 신분이라 홍영식의 맞은편 
의장에 앉았다.
홍영식의 오른편으로는  푸트 미국공사, 통역  윤치호, 시마무라 서기관, 김옥균, 
가와가미 통역, 승지 민병석 홍영식의 왼쪽으로는 예조판서 겸 외무독판 김홍집, 
미국 공사  서기관 담갱요, 우영사 민영익,  전영사 한규직이 착석했다.  모두 18 
명이었다.
김윤식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무엇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김옥균은 간간이 민영익과  이조연, 한규직을 살폈다. 민영익도 틈틈이 김옥균을 
살피고 있었다.
이내 홍영식이 긴장된 얼굴로 인사말을 하기  시작했다. 의례적인 담소를 주고받
던 좌중은 일시에 조용해졌다.
홍영식은 말을 더듬기까지 하면서 우정국이 설치된 경위와 우정국이 조선인들의 
생활에 미칠 영향을  나열한 뒤, 우정국을 설립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외국사절들을 치하하는 내용으로 인사말을 끝맺었다.
이내 박영효가 건배를 제안했다. 좌중은 모두  일어나서 우정국의 앞날을 축원하
는 건배를 들었다.
술잔이 돌면서 연회장의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손님들은  옆사람들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면서 술을 마셨다. 김옥균도 옆에  앉은 사마무라 서기관과 일본말로 
애기를 했다. 민영익은 이조연과 심각한 표정으로 귓속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김옥균은 대화 도중에 불쑥 시마무라를 시험했다.
“ 그대는 천을 아는가? ”
시마무라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 요로시 ”
시마무라가 목소리를 낮추어  대구했다. 김옥균은 빙그레 웃었다. 민영익이 김옥
균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 무슨 애기요? ”
“ 시마무라 서기관에게  하늘을 아느냐고 물어봤소. 민대감께서는  인후통이 심
하다고 하던데 차도가 있습니까? ”
김옥균은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견딜 만합니다. 내일부터는 출사하여 업무를 볼 참이오. 시정에 해괴한 소문도 
나돌고 있고 해서 ....... ”
“ 해괴한 소문이라니요? ”
“ 고균장은 듣지 못했소? ”
“ 금시초문입니다. ”
“ 마당발이라는 별호까지 붙어있는  고균장이 듣지 못한 소문이 있다니 그야말
로 해괴한 일이구먼 .......”
민영익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김옥균은 손바닥에서  진땀이 솟아나오는 것 같
았다.
“ 민대감께서 말씀을 해주시면 귀를 씻고 듣겠소이다. ”
민영익은 뜸만 들이고 청나라 서기관 담갱요와  술잔을 부딪쳤다. 김옥균을 철저
히 무시하는 태도였다.
( 교활한 놈! )
김옥균은 전신이 바짝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그때 우정국의 급사가 김옥균에게 다가와서 홍현집에서 사람이 찾아왔다고 말했
다. 김옥균은 급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박제형이 숨을 허럭거리고 있
었다.
“ 무슨 일인가 ? ”
“ 낭패가 생겼습니다. 별궁 방화가 실패했습니다 ! ”
“ 뭐야 ? ”
김옥균은 가슴이  철렁했다. 병궁에 불을 지르는  것은 혁명의 신호탄이었다. 그 
신호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 별궁 방화는 기량을 다 써 보았으나  되지 않았습니다. 사세가 급하니 어찌해
야 좋을지를 가르쳐 주십시오. ”
“ 별궁이 안 되면 초가집이라도 한 채 불태워야 할 것이 아니냐? ”
“ 어느 집 말입니까? ”
“ 어느 집이건 가릴 것 없다! 속히 블을 지르도록 해! ”
김옥규느이 이마로 구슬 같은 땀방울이 흘러 내렸다.
“ 알겠습니다! ”
박제형이 황급히 어둠속으로  내달렸다. 김옥균은 소매자락으로 이마의  땀을 씻
고 연회장으로 들어가 앉았다.
“ 무슨일이 있습니까? ”
시마무라가 김옥균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 별궁 방화가 실패한 모양이오. ”
김옥균은 술잔을  들어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시마무라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 그럼 어떻게 항 작정입니까? ”
“ 또 다른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
김옥규은 차갑게 내뱉었다.  박영효와 홍영식이 긴장된 눈빛으로  김옥균을 살피
고 있었다. 그러나 김옥균은 옆에 앉은  가와카미 통역에게 청불전쟁이 어느쪽이 
이기겠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가와카미는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
으나 유창한 조선말로 청불전쟁을 애기하기 시작했다.  좌중의 시선과 귀가 일제
히 가와카미에 쏠렷다.
청불전쟁은 예민한 사안이었다.
다시 30분이 지났다. 음식은 거의 다 들어와  죄중은 후식만 나오면 해산할 참이
었다.
김옥균은 초조하여 밖으로 나왔다. 홍영식과 박영효는  시간을 끌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연락을 담당한 유혁로가 숨이 턱에 차서 달려왔다.
“ 어떻게 되었나 ? ”
김옥균은 다급하여 물었다.
“ 방화가 여의치  않습니다. 별궁에 방화하기로 한 이인종 동지의  별동대가 담
을 넘어 들어가 불을 붙였으나  폭발약만 폭발 했을 뿐 불이 일어나지 않았습니
다. 순라군들이 달려와 순식간에 불을 껐습니다. 동지들이 모두 이리로 달려오려
고 합니다 . ”
“ 다른 곳을 방화하라고 하지 않았나? ”
“ 순라군들이 쫙 깔려 있습니다. ”
“ 그렇다면 도리가 없다 장사들이 이리로 몰려오면 큰 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
니까 이근처 어디라도 불을 지르도록 하게. 서둘러야 할 것이야! ”
“ 알겠습니다. ”
김옥균은 다시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모두 일어설 차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후식으로 다과가 들어오자 사람들이 다시 주저앉았다.
  그때 밖이 소란해지면서 ‘ 불이야! 불이야! ’ 하는 소리가  잇따라 들려왔다. 
김옥균은 재빨리 북쪽  창문을 열어 젖혔다. 우정국의 바로 지척에서  화광이 시
뻘겋게 치솟고 있었다. 좌중이 어수선하여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웅성거렸다.
( 불길해! )
민영익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불은 우정국 코  앞의 초가
를 불태우고 있었다.
민영익은 청사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러자 싸늘한 검기가  우정국 담 밑에서 뻗쳐 
왔다.
( 이노우에 가꾸고로오! )
민영익은 어리 끝이 곧추서는 것을 느꼈다. 소름이 오싹 끼쳐왔다.
이노우에 가꾸고로오는 김옥균이 일본에서 후꾸자와 유키치의 추천을 받아 데리
고 온  인물이다. 조선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를 발행할때  신문제작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데리고 왔으나 시문에도 능했다.  언젠가 대궐에서 곡연이 열렸는데 
외아문의 주사들이 모두  참석하여 운을 내어 시를 지었다. 시간이  오래되자 모
두 술이 거나해서 이노우에 가꾸고로오를 조롱하며 웃었다.
그때 이노우에 가꾸고로오가 정색을 하고 일어섰다.
“ 오늘밤은 대단히 즐거우니  허튼소리를 좀 할까 하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
다. ”
이노우에 가꾸고로오의 말에 모두들  괜찮다고 대꾸했다. 이노우에 가꾸고로오는 
좌중을 날카로운 눈으로 쓸어보고 입을 열었다.
“ 제공들이  평소 우리 일본 사람을  왜놈 왜놈 하는데 우습기  짝이 없소이다. 
제공들은 자칭 사대부라 자처하며 이웃나라를 업신여기는데 과연 그럴만한 힘이 
있는지 모르겠소. 오늘날의  왜놈들이 제공들이 사대부의 허세를  부린다고 굴복
하리라고 생각하오? ”
사대부들은 입을 다물고 쳐다보기만 했다.
이노우에 가꾸고로오는 연약을 빼어들고 우뚝 섰다.  그의 전신에서 살기에 가까
운 기도가 폭사되면서 연약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쉬익쉬익 들려왔다. 아무도 
이노우에 가꾸고로오의 연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순
간 이노우에 가꾸고로오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으면서 촛불이 반으로 쫙 갈라졌
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기가 질려 입을 다물었다.  술기운이 말짱하게 달아나는 기분
이었다.
“ 제공들은 일본을  함부로 욕하지 마시오. 통상을 하던 초기에  조선의 백성들
이 들고 일어나서 우리를  죽이려 했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겠소? 무력이 강해
야 화의도 이루어지는것인데 사대부라고  빙자하여 힘을 기르지 않고 욕이나 하
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 우리 왜놈들은 옛날의 왜놈이 아니외다. ”
이노우에 가꾸고로오의 말에 아무도 대꾸하지 못했다.
민영익은 조선옷을 입고 일본도를 들고 서 있는 이노우에 가꾸고로오를 보자 소
름이 닭살처럼 돋아왔다. 김옥균이 일본인들까지 동원한 것이 분명했다.
“ 탓! ”
이노우에 가꾸고로오의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일본도가  민영익을 향해 날아왔
다. 민영익은 재빨리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오른쪽 얼굴이 화끈하면서 피가 주르
르 쏟아졌다.
“ 악! ”
민영익은 얼굴을 감싸쥐고 우정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때 한규직은,
“ 우리들은 장수의 소임을 맡고 있으므로 불을 끄러 가야겠소. ”
하고 서둘러 연회장을 나가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민영익이 피투성이가 되어 뛰
어나ㅗ자 연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밖에서도 순라군과 거사를  하는 장사들
이 뒤섞여 떠드는 소리가 들끓었다.   
  김옥균은 연회장의 분위기를 살피다가 박영효, 서광범과  함께 창문을 넘어 우
정국 앞문으로 나갔다.  장사들이 월등히 많았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축하연에 
참석했던 주인들을  모시고 그새 달아났는지 순라군과  수종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김옥균이 우정국  앞문으로 나오자 한 떼의 장사들이 재빨리  달려와 김
옥균을 에워쌌다. 그중엔  이노우에 가꾸고로오와 오카모토 유우노스케  같은 일
본일들도 보였다.
“ 자네들은 우리 집에 가서 은신해 있도록 하게. ”
김옥균은 일본인 낭인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교동의  일본 공사관으
로 향했다.  별궁 방화가 실패하여  타케소에 공사의 마음이  변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교동 못미처에 이르자 한떼의 장사들이 골목에서 우르르 쏟아져나와 김옥균일행
을 맞이했다. 별궁 방화에 실패한 이인종과  왜학생도들을 거느리고 있는 서재필
이었다.
김옥균은 그들을 경우궁에 가서 잠복하게 했다.
일본 공사관 안에는 무라카미  중대장의 지휘로 일본군들이 빽빽하게 도열해 출
동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옥균은 통역  아사야마를 통해 타케소에  공사의 면회 
신청을 했다. 그때 우정국에서 돌아온 시마무라 서기관이 공사관에서 나오며,
“ 공들은 대궐로 가지 않고 왜 이리로 왔습니까? ”
하고 힐책했다.
“ 공사가 태도를 바꾸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들렀소. ”
“ 우리 군대가 출동한 것을 보면 모르겠소? ”
“ 그럼 안심하고 가겠소. ”
김옥균은 미쓱하여 박영효와  서광범을 재촉하여 이동으로 향했다.  이동에는 이
미 김봉균, 이석이 등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을 이끌고 창덕궁 금호문으로 달
려가자 신복모가 장사 43명을 거느리고 매복하고 있었다.
금호문에는 문이 잠겨 있었다. 김옥균은 큰소리로  파수군사를 불러 문을 열리고 
호통을 쳤다.
“ 열쇠가 승덩원에 있어서 열 수 없습니다! ”
파수군사가 문안에서 대답했다.
“ 닥쳐라! 금릉위께서 입시하신다! 어서 문을 열어라! ”
김옥균은 목청을 높여 파수군사를 꾸짖었다.
“ 문을 열수 사 없습니다! ”
“ 지금 큰 사변이 일어났으니 어서 문을 여어라! ”
김옥균이 계속 소리를 지르자 수문장이 달려나와  금호문을 열였다. 수문장도 김
옥균의 심복이었다.
김옥균 일행은 재빨리  금호문안으로 들어가 금천교를 건넜다. 대궐은 적막했다. 
빽빽한 침전과 누각위에 달빛만  대낮처럼 밝은데 이따금 군사들이 순라를 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김옥균의 일행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김옥균은 숙장문안으로 들어가 김봉균, 이석이에게 인정전  옆에 묻은 화약을 30
분 후에 터뜨리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곧바로 협양문으로 달려가자 파수를 보던 무감이 앞을 막았다.
“ 대감! ”
“ 비켜라!  너희들은 대궐버ㄲ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는  말이
냐? ”
“모르오, 여기는 지엄한 재전이니 평복으로 어찌 입궐을 한다는 말이오? ”
“ 지금 평복 대례복을 따질 계제가 어디 있느냐? ”
장사들이 무감을 밀치며  길을 텄다. 무감은 장사들의 기세에 놀라  황급히 길을 
비켜싸. 합문앞에서 윤경완이 병사 50명을 거느리고 김옥균을 기다리고 있었다.
“ 윤동지는 병사들을 잘 단속하고 기다리시오! ”
김옥균은 그때서야 이마의 땀을 도포 소매 자락으로 씻으며 가쁜 호흡을 진정시
켰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숨을 헐떡거리며  정신없이 달려왔다는 사실을 째달았
다. 그러나 머뭇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김옥균은 고종이 잠들어 있는 대조
전 월대로 달려 올라가 숙직을  하는 내시에게 고종을 깨우라고 크게 소리를 질
렀다.
    3
  고종과 민비는 대조전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자 벌떡  일어났다. 사방
이 칠흙처럼 캄캄한 가운데  궁녀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와 장사들의 왁자한 소리
가 섞여 대전밖이 시끌벅적 했다.
“ 전하, 변사가 있는 모양이옵니다. ”
민비는 오봉  촛댕에 불부터 밝혔다.  고종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의대를 
걸치기 시작했다. 임오군란을  겪은 일이 있는 민비는 사색이 된  얼굴로 속치마
를 걸치자마자 서온돌로 달려가 시령상궁의 옷을  벗겨 입었다. 밖에서는 장사들
과 내시들이 큰소리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그중에 내시감  유재현과 김옥균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 어서 기침하시게 하여라 ! ”
유재현을 몰아치고 있는 것은 김옥균의 호통이었다.
“ 밤이 야심한데 무슨일로 주상전하를 뵈려하오? ”
“ 주상전하의 친수밀칙을  받았다! 어서 침전에 들어가서  주상전하를 기침하시
게 하라! ”
“평복차림으로 어찌 주상천하를 배알할 수 있다는 말이오? 영공은 속히 돌아가
서 대례복을 입고 와서 주상전하의 입대를 청하시오! ”
“ 지금 나라가 위테로운데 어찌 감히 환관의 무리가 중신의 앞을 가로 막느냐? 

“ 궁중의 법도가 아니올씨다! ”
“닥쳐라 이놈! ”
김옥균은 금방이라도 유재현을 때려 죽일 듯리 사납게 몰아부치고 있었다.
( 옥균이 무엇 때문에 장사들을 끌고 와서 소란을 피우는 것일까? )
  민비는 사령상궁의 옷을  벗고 다시 왕비의 평상복으로  바궈입었다. 김옥균처
럼 연부역강한 사대부앞에서 위험에 처했다고 해서 궁녀의 옷을 입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전 박은  더욱 소란해지고 있엇다. 궁녀들이 황망히 오가는 소
리, 수군대는 소리가 들렷다. 궁녀들은 모두 서온돌로 모여들고 있었다.
“ 옥균을 들게 하라! ”
그때 동온돌에서 고종의 옥음이 들렸다. 김옥균은  박영효와 서광범과 함께 대조
전 대청으로 올라섰다. 숙직을 하던 지밀상궁들이 황급히 옆으로 물러섰다. 김옥
균은 고종앞에 부복했다.
“ 전하! ”
“ 밤도 깊은데 궐안이 왜 이리 소란한가? ”
고종은 당황하여 우두망찰해 있었다.
“ 우정국에서 자객이 들고 불이 일어났습니다. 속히 출어하셔야 하겠습니다. ”
김옥균은 황급히 대답했다.
“ 이변사는 청나라에서 불러 일으킨 변사요? 일본에서 불러 일으킨 변사요? ”
민비의 써늘한 눈이 날카롭게 김옥균을 쏘아보았다.  김옥균은 민비의 서릿발 같
은 질문에 말문이 꽉 막혔다. 민비는 벌써  사태의 핵심을 파악하려고 하고 있었
다.
그때 통명전 쪽에서 요란한 폭음이 들리며  대조전이 우르르 흔들렸다. 고대수가 
화약을 터트린 모양이었다. 고종과 민비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 대조전 뒷문
으로 뛰쳐나갔다. 지축을 흔드는 목음이 잇따라  울리면서 궁녀들과 환관들이 이
리 뛰고 저리뛰면서 비병을 질러대고 있었다.  궁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
다.
“ 대왕대비마마를 모셔라! ”
“ 세자를 이리 데리고 오너라! ”
고종과 민비가  번갈아 궁녀와 환관들에게  명을 내렸다. 김옥균은  전영 소대장 
윤경완을 불러 고종과  민비를 호휘하게 했다. 그러나 폭음에 놀란  궁녀들과 환
관들리 다투어 고종과  민비를 호위하게 했다. 그러나 폭음에 놀란  궁녀들과 환
관들이 다투어 고종과 민비를 에워싸는 바람에 호위가 제대로 되지 앉았다.
“ 전하, 변사가 대궐까지 미치고 있으니  일본군사를 요청해서 호위를 맡기셔야 
하옵니다. ”
김옥균은 궁녀들을 물러서게  하고 고종에게 일본군을 부르도록  요청했다. 언제 
청나라가 들이닥칠지 알 수 없어서 김옥균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 일본군을? ”
고종이 몸을 떨면서 김옥균을 쳐다보았다.
“ 전하. 서두르셔야 하옵니다. 일각이라도 지체하면 큰 변을 당할까 우려되나이
다! ”
“ 중신들을 들게 하라! ”
“ 전하. 전하께오서 신에게 대계를 일임하시지 않았사옵니까? ”
“ 대계? ”
“ 그러하옵니다. ”
“ 그럼 이 일이 경의 대계에 의한 것인가? ”
고종은 사태를 알 수 없어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 어서 일본군을 부르시옵소서. ”
김옥균은 고종을 재촉했다. 등에서는 진땀이 흐르고 있었다.
“ 김 협판,  만약 일본군이 몰려와서 호위를 하면 장차  청군은 어찌할 것이오? 

민비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김옥균을 다그쳤다.  일본과 청나라가 대립해 있는 
상태에서 일본군만을  부르는 것은 청나라로부터 반발을  사게 될것리기 뻔하기 
때문이었다. 사태가  위급해도 중전 민비의  사태를 보는 눈은  여전히 예리하고 
날카로웠다.
“ 청나라 군대도 불러서 호위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
김옥균은 급히 대답했다. 사세 판단이 빠른 민비에게  그대로 보고할 수 가 없었
다.
“ 상선 유영감은 속히 일본 공사관에 가서 호위군사를  데려 오도록 하라! 주상
전하의 안위가 위급하니 서둘러 달려가서 공을 세우도록 하라! ”
이어서 김옥균은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유재현을 몰아쳤다.
혁명을 주도한 김옥균에게는  어느덧 무시무시한 살기가 뻗치고  있었다. 그러자 
유재현이 눈을 데록데록 굴리다가 달려나갔다.
김옥균은 유재현이 고종앞에서 물러가자 다른 내시를 불러 청군 진영에 가서 청
군을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민비는 그때서야 다소 안도하는 표정이 되었다. 유재
현을 일본 공사관으로 보내고 내시를  청군 진영에 보내는 것은 모두 민비를 속
이기 위한 계책에 지나지 않았다. 유재현은  일본 공사관에 가서 타케소에공사를 
만나지도 못할 것이고 김옥균의  심복인 내시는 청군진영으로 가지도 않을 것이
다.
그때 대왕대비  조씨가 옥교를 몰아 들이닥치고  명헌왕후와 세자내외가 사갯이 
되어 달려왔다. 고종과  민비는 이들을 맞이하느라고 부산을 떨었다. 대왕대비응 
왕실의 가장 어른이고 세자는 왕실의 종사를 이어야 할 막중한 몸이었다.
박영효와 서광범은  법석을 떨고 있는 궁녀들과  내시들을 진정시키면서 어가를 
경우궁으로 인도하려고 정신없이 움직였다.
“ 어서 어서 서둘러라! ”
“ 어가를 경우궁으로  모셔라! 장사들은 어가를 호위하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박영효와 서광범은 칼까지 뽑아들고 호통을 쳤다.  마침내 고종의 어가를 선두로 
어가의 긴 향렬이 경우궁을 향해 출발했다.
김옥균은 박영효에게 달려갔다.
“ 대감, 일본군을 부르려면 칙서가 있어야하지 않습니까? ”
“ 그렇습니다. 속히 주청하여 칙서를 받으십시오. ”
“ 알겠습니다. ”
김옥균은 요금문앞에서 고종의 어가를 세웠다.
“전하, 이미 타케소에 공사를 불렀습니다만은 친수  칙서를 내리지 않으면 타케
소 공사가 오지 않을지 모르옵니다. 칙서를 내려 주시옵소서. ”
“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
“ 전하께서 손수 칙서를 쓰셔야 하옵니다. ”
“ 지필묵은 준비하였는가? ”
“ 신에게 연필이 있사옵니다. ”
김옥균은 재빨리  연필을 바쳐 올렸다. 그러자  박영효가 종이를 바쳤다. 고종은 
요금문 노상에서 김옥균과 박영효가  바친 연필과 종이로 일본군을 부르는 칙서
를 썼다.
    日本公事來護勝
  일본공사는 와서 짐을  호위하라는 뜻이었다. 박영효가 고종의  친서를 가지고 
일본 공사관으로 달려가자 어가는 요금문을 빠져  나가 경우궁에 이르렀다. 그러
나 경우궁은 겹겹이  잠겨 있었다. 김옥균은 전영 소대장 윤경완을  시켜 대문의 
자물쇠를 부수게 하였다. 경우궁의 대문은 모두 여섯 겹으로 잠겨 있었다.
  어가가 경우궁으로 들어섰다. 이때 한규직, 심상훈이 궁내 직소로부터 변을 듣
고 달려왔다. 한규직은 이미 우정국에서 도망을 친  뒤 부랴부랴 병사의 옷을 입
고 달려 왔으나병사들은  인솔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유재현이 일본공사관에서 
돌아와 군대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하고 있어서 공사를 만나지 못했다고 보고를 
했다.
“ 궐밖의 동정이 어떠한가? ”
민비는 궁녀들을 시켜 방에  불을 지피게하는 한편 내시 유재현에게 바깥동정을 
하문했다.
“ 밖에는 조용하옵니다.  만호 장안이 모두 잠이 들어서 이따금  개짖는 소리만 
들리옵니다. ”
“ 바깥이 조용하다고? ”
“ 예. ”
“ 우정국 축하연에 자객이 들고 큰불이 났다고 하지 않느냐? ”
“ 우정국의  변사는 신이 알수 없사오나  불은 민가가 한 채  탓을 뿐이옵니다. 
”유재현의 보고에 민비는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전영대장! ” 민비가 전영대장 한규직을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예,
중전마마.” “ 사변이  어찌된 일이냐?” “황공하옵니다. 중전마마,  신이 입궐
하는 도중에 궐밖을  세세히 살폈으나 아무 변고가 없었사옵니다. 이는  필시 누
군가 음모를 꾸민 것이라고 여겨지옵니다.” “뭣이?” 
  민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민비의 칼날 같은 눈빛이 김옥균에게 퍼부어졌다. 
김옥균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뒤늦게 들이닥친 홍영식과  서광범도 안절
부절하고 있었다. “김 협판 들었는가? 김 협판은  사변의 전말이 어찌 되었는지 
소상히 아뢰라!”
  민비는 여인이었다.  여인인데도 전신에서  풍기는 기도는 김옥균을  압도하고 
목소리는 천둥소리처럼 김옥균의  귓전을 때렸다. 김옥균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
제는 사실대로 보고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인정전 쪽에서 폭음이 터졌다. 
경우궁의 정전까지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폭음이었다. 
  김옥균은 고종과 민비가 깜짝 놀랄 정도로 한규직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너는 군사를 통솔하는 장수의  소임을 맡고 있으면서도 어찌 불경한 복장을 
하고 와서 주상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있느냐? 도대체 이런 불충이 어디 있
느냐? 오늘 이 사변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너는 마땅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한규직은 감히 대꾸를  하지 못했다. 한규직이 맡고 있는 전영의  군사들은 대
부분 박영효가 광주유수로 있을 때 조련한 군사들이라 김옥균 쪽으로 이탈해 있
었다. 김옥균은 한규직이 주춤하자 내시 유재현에게 화살을 돌렸다. 
  “너따위 쥐새끼 같은 무리가 대세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변란 중에 아녀자
의 짓을 하고 있으니  목이 열개라도 되는 모양이구나! 네 놈이 정녕  죽고 싶으
면 썩 나서라!”
  김옥균의 눈에서는 살기가 폭사되었다. 그러자 유재현이  몸을 떨며 뒤로 물러
섰다. “전영대장!”  “옛!” “앞으로 해괴한  말을 지껄여 주상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지 참하라!” “옛!”
  윤경환이 김옥균의 지시를  알아 듣고 칼을 뽑아 들었따. 전영소  대원 50여명
도 일제히 칼을 뽑았다. “ 병사들은 듣거라! 방근 김영공의 말씀을 들었으니 누
구든지 주상전하에게 해괴한 보고를 하는 자는 가차없이 목을 베라!” “옛!”
  전영 소대장 윤경완의 지시에 병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좌중
은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병사들이  김옥균의 지시에 복종하겠다고 대
답을 하는 순간  생살권이 김옥균에게 넘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때
마침 경우궁 정전 뜰로 타케소에 일본공사와 박영효가 일본군 100여명을 거느리
고 들이닥쳤다. 김옥균은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병사들을 배치하기 시
작했다. 고종과 세자,대왕대비,홍대비  왕비 세자빈은 정전에 좌정하고 김옥균,박
영효,서광범,타케소에 일본공사는  좌우에 시위하였다.  일본군 병사들은  경우궁 
밖을 경비하고 전영 소대장 윤경완은 당직 병사들을 지휘하여 전정 안팎을 철통
같이 에워쌌다. 서재필은 정난교, 박응학, 정행휘, 박은명,  신중모, 윤영관,이규완,
하응선,이병호,신응희,이건영,정종진,백낙운 등 13명을 거느리고 전상에  시립했다. 
또 이인종,이창규,이규정은 전문  밖에서 장사들을 거느리고 지키게 하여 삼엄한 
경비망을 구축했다. 
  (아아 이제야말로 혁명을 완수했다!)
  김옥균은 가슴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것이 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4
  타케소에 일본공사가 거느리고 온  일본군이 물샐 틈 없이 경우궁을 에워싸자 
김옥균은 고종에게  침소에 드실 것을  주청했다. 궁녀들이 서둘러  군불을 지핀 
탓에 정전의 방바닥이  그때서야 미지근했다. 그러나 방안에는  매캐한 청솔연기
가 배어  있었다. 고종과 민비는 대왕대비와  홍대비를 모시고 정전으로 들었다. 
세자와 세자빈도 따라 들어왔다. 
  “ 이제는 4영사와 간신도배들을 자격해야 하지 않습니까?”
  박영효가 섬돌을 내려서는 김옥균을  따라와 귓속말로 소근거렸다. 경우궁에는 
이조연, 한규직, 윤태준까지  들어와 있었다. 우정국에서 죽이기로  했던 일이 실
패한 것이다. 
  “옳습니다.”
  김옥균은 허공을  응시하여 대답했다. 혁명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장사들의 
칼에 피를 묻혀야  한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방망이질을 쳤다. 김옥균은  전영 장
사들 10명을 따로 불러 경우궁 정문을 지키게 하였다. 
  “너희들은 외문 밖을 지키고 있다가 변을 듣고 달려오는 재신들이 있으면 명
찰을 먼저 들여  보내서 하락을 받은 다음 홍영식 대감에게  보내도록 하여라!” 
홍영식은 경우궁 외청에서 조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옥균은 서재필을 불렀다. 
서재필이 전상 위에 시립해 있던 왜학생도들을 거느리고 정전 뜰로 달려와 김옥
균을 에워쌌다. “3영사를  처치해야겠소.” “ 이 자리에서 처치합니까?” 서재
필이 3영사 쪽을 힐끗  쳐다보고 김옥균에게 물었다. 한규직,이조연도 내시 유재
현과 함께 한쪽  구석에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윤태준은 어느 쪽도  가까이 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다가 슬금슬금 한규직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갔다. 
  “여기서는 곤란하니 후문 밖으로 나가게 해서 죽이시오.”
  그때 무라카미 중대장이 달려왔다. “  무슨 일이오?”“청군이 경우궁 앞에까
지 왔다가 물러갔소.”“청군이?” 김옥균은 가슴이 철렁했다.
  “걱정하지 말고 그대들  일이나 잘하시오. 청군은 오합지졸이오. 나는 청군이 
왔었다는 것을 그대들에게 알려주겨는  것뿐이오.”김옥균이 걱정하는 기색을 보
이자 무라카미 중대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수고스럽겠지만 무라카미 중대장이 
철통같이 경계를 해주시오. 이 은혜는 잊지 않을 것이오.”
  김옥균은 무라카미 중대장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3영사는 내가 밖으로 내쫓겠소.” 무라카미  중대장이 밖으로 나가자 박영효
가 3영사 쪽으로  걸음을 성큼성큼 내디뎠다. 박영효가 가까이 오자  3영사와 유
재현은 재빨리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대들 삼영의 영사들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소? 지금 변란이 닥쳐 일본 
공사까지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호위를 하고 있는데 명색이 장수라는 자들이 서
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오? 속히 나가서 군사들을 끌고 와서 대
전을 호위하시오!”
  박영효의 호통은 추상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도  이치에 맞는 말이라 아
무도 항변하지 못했다. “옳은  말씀이오. 나는 밖에 나가서 군사들을 모아 다시 
오겠소.”
  후영사 윤태준이 슬금슬금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후영사 윤태준 대감께
서 나가신다.속히 뫼셔라.” “예.” 박영효의 지시에 이규완,윤경순이 재빨리 대
답을 하고 윤태준을 좌우에서 호위하여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윤태준은 소중문
을 나서자마자 이규완, 윤경순의 칼에 비명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살해되었다. 무
서운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뫼셨느냐?” 이규완,  윤경순이 돌아오자 박영효가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
리로 물었다. “뫼셨사옵니다.”  이규완의 대답에 서재필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
다. 이규완,윤경순이 들고 있는 칼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따. 윤태준은 서
재필의 이모부였다. 그가  비록 청당이라고는 하지만 어머니의  얼굴을 생각하자 
가슴이 아팠다. 
  “이 영사와  한 영사는 어찌하여 그곳에  머물러 있소?” 박영효가 이조연과 
한규직을 쏘아보며 윽박질렀다. “김  협판에게 말하고자 하오!” 이조연이 박영
효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김옥균에게  가까이 오려고 하였다.  김옥균은 재빨리 
박영효가 한 말을 되풀이하여 이조연을 힐책했다.
  “그대들은 좌영의 대장과  전영의 대장이 아니오? 장수들이라면 마땅히 군사
들을 거느리고 움직여야 하거늘 나라의 중대한 변을 당한 지금에 군사들을 부릴 
생각을 하지 않고 무엇을 하는 게요?” 그러나 이조연은 만만치 않았다.
  “내가 주상전하를 입대하고자 하니  문 안으로 들여보내 주시오!”“안 되오!

  “김 협판이 무슨 권한으로 나를 막는 거요? 오늘의 사변은 김 협판이 도모한 
것이 아니오?”“어서 나가시오!”“못 나가겠소! 주상전하를 입대하고서야 나가
겠소!” 이조연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정전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서재
필이 칼을 뽑아 들고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전문을 호위하라는 어명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명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소!”
  “서 조련관! 그대가 이럴 수 있는가?”“어서  물러 가시오! 내 칼에 피를 묻
히고 싶지 않소!” 이조연과 한규직은 서재필의 어깨  너머로 김옥균을 쏘아보았
다.
  “이 영사와 한  영사께서 나가신다!” 김옥균은 후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조연과 한규직이 불쾌한  얼굴로 침을 뱉고 경우궁  후문을 향해 걸음을 재게 
놀렸다. 그러나 그들도 경우궁 후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매복하고 있던 황용태,윤
경순,이규완,고영석에게 참살되고 말았다. 김옥균은 왜학생도들을 시켜 민영목,조
영하,민태호를 입대하라는 거짓 왕명을 보냈다. 민영목이 제일 먼저 가마를 타고 
정문에 도착했다. 그러나 일본군들이 들여보내 주지  않자 통역을 불러오라고 호
통을 쳤다. 그 소식은 정전 뜰에 있는 김옥균에게 전해 졌다. 김옥균은 이규완과 
고영석을 보내 처치하게 하였다. 민영목은 일본군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서 이규
완,고영석에게 비참하게 살해되었다. 
  이어서 조영하,민태호가 거짓  왕명을 받고 입궐하다가 살해되고 말았다. 김옥
균은 즉시 보국숭록대부  이재원을 불러들였다. 이재원은 고종의  사촌형으로 이
미 완림군에 봉해져 있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맏형인 흥령군 이창응의 아들
이었다. 이씨 왕가의 장현인 셈이었다. 
  김옥균은 사변의 내막을 몰라 어리둥절한 이재원에게 자신들이 정변을 일으킨 
까닭을 자세하게 얘기하고 조선이 나아갈 길이  혁명밖에 없다고 역설하였다. 이
재원은 김옥균의 얘기를  들으면서 몇번이나 얼굴빛이 변하였다.  그러나 김옥균
이 7적을 참살했다고 하자 대의가 그렇다면 따르겠다고 말하였다. 
  그때 날이 밝기 시작했다.  김옥균은 증사(내시)와 변수를 불러 각국 공사관에 
가서 정변이 일어났음을 통보하게 했다. 변수는  민영익의 수행원으로 미국에 다
녀온 일이  있어서 서툴지만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외교관으로 제일  처음 미국 
공사관 해군 무관인 버나도가 윤치호를 데리고  나타났다. 윤치호는 미국 공사관
에서 기거하는만큼 영어가 뛰어났다. 김옥균은 윤치호를  통해 정변의 성격을 설
명하고 미국의 협조를 요청했다. 버나도 무관은  공사에게 그대로 전하겠다고 대
답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한 시간이 못 되어 푸트 미국 공사의,
  “사세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그대들은 오직  내정을 잘 개혁하시오....” 하는 
회보가 있었다. 
  혁명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김옥균은 밤을 꼬박 새운  탓에 눈
이 충혈되어 있었으나  정령을 정비하고 조각을 하는 일에 착수했다.  이제는 민
심을 수습해야 했다. 그러나 왕의 주위가 소란하여 경우궁은 안팎이 떠들썩했다. 
이제 겨우 날이 밝았는데도 수백 명이나 되는 궁녀들과 내시들이 경우궁 안팎으
로 몰려들어  소란스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게다가 민비와 세자는  창덕궁으로 
환궁할 것을 요구해 왔다.
  “아무래도 곤전이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서광범이 근심스럽게 말했다. 김옥균은 조각의 명단을  짜다 말고 주먹을 움켜
쥐었다.
  “곤전이 언제나 말썽이오!” 김옥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기회에 곤전을 폐위조치하는 것이 좋겠소.”  박영효가 민비의 폐위를 주
장하고 나왔다. “무슨 명분으로요?” “아녀자가  정사에 지나치게 간섭을 하고 
있지 않소? 척신이  발호를 하고 있는 것은 모두 곤전  때문이오.” “곤전을 신
하가 어찌 폐위한단 말이오?” “우리는 혁명을 한 사람들이오!  혁명을 한 사람
들이 어찌 그런 것을 따진단 말이오?”
  “세자의 어머니요. 게다가 주상께서 용납하지 않을거요.”
  “당장 환궁하자고 법석을 떨고  궁녀들과 내시들이 저렇게 소란을 피우고 있
는데 어찌할 거요?  저들 중에 누군가 청군이라도 불러  들이면 우리 일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오.  곤전을 폐위하여 내쫓읍시다!”  박영효가 완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안 되오!” 김옥균은 고개를 흔들고 서재필을 불렀다.
  “곤전의 환궁 성화를 꺽으려면 극약처방이 필요하오.  기회를 봐서 내시 유재
현을 육살하시오.” 내시  유재현은 정변이 시작되기 전부터  살해하기로 명단에 
올라 있던 자였다. 서재필은 즉각 장사들을  거느리고 정전으로 달려갔으나 기회
를 포착할 수가 없었다. 내시 유재현은 고종의 앞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김옥균
이 꾀를 내어  고종과 민비를 떨어트려 놓았다. 고종이 대신들과  정무를 협의하
는 자리에 비빈들이 함께 있으면 번거롭다고  아뢰자 대왕대비, 홍대비, 민비, 세
자빈이 다른 방으로  물러갔다. 궁궐에서는 내외가 엄격하여  비빈들이 대신들을 
접견할 때도 발을 치는 것이 관례였던 것이다.
  서재필은 고종의 방 앞에 이규완을  시립케 하고 비빈들이 있는 방 앞에는 윤
경수를 시립케 했다. 유재현은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민비의 밀지
를 받아 고종의 방을 들락거렸다. 그때 김옥균이 나타나서 그것을 보았다.
  “저놈을 입실하지 못하게 하시오”  김옥균이 서재필에게 지시하고, 서재필이 
윤경수에게 지시하자 윤경수가  칼을 뽑아 들고 유재현을  막아섰다. “중전마마
의 밀지를 받들고 가는  사신의 앞을 불충하게 가로막는 자는 누구냐?” 유재현
은 큰소리로 윤경수를 꾸짖었다.
  “저놈을 포박하시오!” 김옥균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서재필과 윤
경수는 재빨리 정전 위에서 유재현을 포박하여 내동댕이쳤다. 
  “이놈들!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네 놈들이 왜놈들을 끌어들여 대역을  저지
르고 있는 것을 중전마마께서 모두 알고계신다!” 유재현은  죽기를 무릅쓰고 발
악을 했다.
  정전은 고종과  비빈들이 있는 곳이었다.  유재현이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자 
고종과 민비가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뜰  아래서도 무슨 일인가 싶어 궁녀
와 내관들이 꾸역꾸역 모여 들었다.
  “너희들이 왜당을 만들어  흉계를 꾸미는 것을 내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너
희들은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유재현은 입에 거품을 물고 패악질을 했다. 
그러자 김옥균이 발길로  유재현의 가슴팍을 내질렀다. “네  이놈! 너 유재현은 
환관의 우두머리되는 자로  오로지 신명을 바쳐 충성을 해야 할  터인데, 밖으로
는 무당 나부랑이들과 어울리고  안으로는 와언을 퍼뜨려 대전의 인심을 어지럽
게 하였다! 더욱이 국가의 중요한 대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때 근시된 자의 소
임을 저버리고 온갖 와언과  낭설을 퍼뜨리면서 환궁해야 된다고 하였으니 하였
으니 죽어 마땅할 것이다! 장사들은 이 쥐새끼 같은 놈을 참살하라!”
  김옥균의 호령에 윤경수가 주의 속에서 칼을 뽑아 한칼에 내려쳤다. “으헉!”
  그러자 유재현이 짧은  비명소리를 지르며 나뒹굴었다. 유재현의  몸에서 새빨
간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피비린내가 정전에 왈칵 풍겼다. 
  “똑똑히 들어라!  환관이나 궁녀들 누구라도  쥐새끼 같은 짓을 하고  다니는 
자가 있으면 이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김옥균은  부릅뜬 눈으로 내시와 궁녀
들을 쏘아보았다. 내시와 궁녀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시 유재현은  아직도 숨이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피는  꾸역꾸역 솟아나오고 
사지는 사시나무 떨듯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상서롭지 못하다! 장사들은 이  쥐새끼의 송장을 치워라!” 김옥균의 호령은 
염나찰의 목소리처럼 정전을  찌렁찌렁 울렸다. 장사들이 재빨리  유재현의 몸뚱
이를 뜰로 끌어내자 정전이 온통 피로 흥건했다.  김옥균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고종에게 조각 명단을 바쳐  올렸고, 고종은 몸을 떨면서 재가했다. 김옥균은 지
체하지 않고 조각 명단을 조보에 실어 반포했다. 
  영의정 이재원
  좌의정 홍영식
  전후영사 검 좌포장 박영호
  좌우영사 겸 외무독판대리 겸 우포장 서광범
  좌찬성 겸 좌우참찬 이재면
  이조판서 겸 홍문관제학 신기선
  예조판서 김윤식
  병조판서 이재완
  형조판서 윤웅렬
  공조판서 홍순형
  한성판윤 김홍집
  판의금 조경하
  예문관제학 이건창
  호조참판 김옥균
  병조참판 겸 정령관 서재필
  도승지 박영교
  동부승지 조동면
  동의금 민긍식
  수원유수 이희선
  병조참의 김문현
  팡안감사 이재순
  설서 조한국
  세마 이준용
  군무총재 이척
  설서 조한국은 대원군의 외손, 세마 이준용은 대원군의 친손, 명예직인 군무총
재엔 세자가 임명되었다. 일본의 황태자가 육군대장에  임명되어 있는 것을 본뜬 
것이다. 신내각의 태반을 왕실과 종친에서 차지하였으나  척족인 여흥 민문은 철
저하게 배척되었다. 이는 민태호,  민영익의 자격에 이어 민비를 분노케 하는 또 
하나의 실책이었다. 이때 홍영식이  29세, 박영호가 23세, 서광범이 25세, 서재필
이 21세,  김옥균이 33세였다. 그들이 국정을  맡아 운영하기에는 일천한 나이였
다.
  1) 김옥균은 고종을 기만했다.  친수밀칙을 받았다고 ‘갑신일록’에서는 주장
하고 있으나 친수밀칙의  내용도 적혀 있지 않고  고종은 정변이 일어날 때까지 
누가 일으켰는지 모르고 있었다.
  2) 고종은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야사들은 민비가 밤마다 잔
치를 열어 날이 샐 때까지 흥청거렸다고 쓰고 있다. 
    제 32장
    혁명의 바람
  1
  김옥균과 박영효는 신내각 명단을  조보에 실어 반포하고 다시 고종의 배알을 
청했다. 신정령을  상주하기 위해서였다. 이때는 민비가  고종 옆에 동석에 있었
다. 
  “전하, 지난 번의 사변으로 대신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박영효는 고종 앞에 부복하여 입을 열었다.
  “대신들이 목숨을 잃다니 누구 누구인가?”
  고종이 민비의 눈치를 살피며 하문했다. 고종도  내시 유재현이 처참하게 살해
되는 것을 본 뒤끝이라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김옥균 등을 함
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민영익,  민영목, 민태호, 조영하, 이조연, 한규직, 윤태
준 등 7적 이옵니다.”
  “7적?” “그러하옵니다.”
김옥균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민비가 몸을 떨면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
으나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모두 어떻게 죽었는가?"
고종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하문했다.
"우영사 민영익은 우정국 낙성식 축하연에서 자객에게 척살되었사옵니다."
"죽었는가?"
"그러하옵니다."
김옥균의 거침없는 대답에  고종은 눈을 질끈 감았다. 민영익은 중전  민비의 친
정 가문의 기둥이요, 고종도 몹시 총애했던 신하였다.
"나머지 여섯 대감은 어찌 되었소?"
민비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박영효를 쏘아보았다.
"장사들이 간신들이라고 하여 자격했사옵니다."
박영효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들은 이제 두려운 것이 없었다.
"장사들이라니 어느 쪽 장사들이오?"
"소신이 거느린 장사들이옵니다.  소신은 누란에 빠진 종사를  구하기 위해 감히 
대신들을 자격했사옵니다. 이는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사변이었으니 유념하여 주
시옵소서."
"민태호 대감이 세자빈의 부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격했소?"
"송구하옵니다."
"이러다가는 민문의 씨가 마르겠소 그려."
민비가 눈물을 찍어내며  피를 토하듯이 내뱉았다. 임오군란때도  민겸호를 비롯
한 민문이  풍비박산이 되었던 것이다.  고종의 친정이후 민승호  부자가 폭탄에 
의해 죽고 민규호까지 병으로  죽자 호자 돌림으로는 유일하게 민태호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사변으로 민태호가 죽자 민문의 호자 돌림은  모두 비명
횡사하게 되었다. 민비의 입장으로서는 절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조각 명단을 보았소. 경들은 아녀자가 정사에 간여한다고 비난하고 있는 듯하나 
내가 경들을 위해 진심으로 충고하겠소. 이번 조각은 왜당 일색이오."
김옥균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중전마마. 신 등이 이번 거사를  준비한 것은 오로지 청당을 배척하기 위하여음
이옵니다."
박영효가 몸을 떨며 대답했다. 혁명의 1차 목적이  청당 제거와 4민 제거라는 말
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4민이라는  말은 민비 앞에서 차마 내뱉을 수가 없었
다. 4민은 민영익, 민태호, 민영목, 민응식이었다.
"청당을 배척하고 왜당을 끌어들여 사대하고자 하오?"
"중전마마."
"경들은 나이가 일천하여 인사의 어려움을 모르오, 청나라가 배척한다고 해서 배
척되는지 아시오?"
민비는 김옥균과 박영효를  야유하고 있었다. 그때 미국 공사 푸트와  영국 영사 
애스턴이 경우궁에 들어왔다.  김옥균은 푸트공사의 알현을 허락했다. 민비는 대
왕대비가 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푸트 공사는 김옥균이 고종 옆에  있는 것을 보고 국왕의 강녕과 국정의 신흥을 
기대한다는 호의를 표시했다.
영국 영사 애스턴은 사태를 관망하겠다고 하였다.
미국 공사와 영국 영사가 돌아가자 민비는 다시 김옥균을 불러서 대궐로 환궁할 
것을 촉구했다. 경우궁의  방들이 오랫동안 비어 있어서 아무리 불을  때도 따뜻
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아무래도 이어해야지 안 되겠소."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은 외청에 모여 숙의를 거듭했다. 환궁 요구는 이
제 대왕대비 조씨와 세자까지 가세하고 있었다.
"청군이 내습하면 그 넓은 대궐을 어떻게 방어하겠소? 불가하오."
"방바닥이 차서 비빈들이 모두 옷을 뒤집어 쓰고 있는 처지요."
"그럼 계동궁으로 옮깁시다."
"계동궁?"
계동궁은 그들이 영의정으로 영입한  이재원의 사저였다. 경우궁과는 지척간인데
다 이재원이 살고 있었으므로 방이 따뜻했다. 
김옥균은 병사들을 보내서  계동궁을 정찰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계동궁으로 이
어를 해도 상관이 없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곧바로 계동궁으로 이어한 다음 병사
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고종의 윤허를 받아서 신정령 14조를 반포했다.
1. 대원군을 수일내에 환국하게 하고 청나라에  대한 조공과 허례는 의논하여 폐
지한다.
2.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이 평등한 권리를  갖게 하고 사람으로서 벼슬을 택하되 
능력있는 자를 가려 뽑는다.
3. 나라의 지조법을 개혁하여 관리의 부정을 막고 국가재정을 풍족하게 한다.
4. 내시부를 혁파하되 능력있는 자는 관리로 등용한다.
5. 간악하고 탐욕한 자는 처벌한다.
6. 각 도의 환상미는 영원히 면제한다.
7. 규장각을 혁파한다.
8. 순사를 두어 절도를 방지한다.
9. 혜상공국을 혁파한다.
10. 유배, 도는 금고형을 받은 자는 재조사하여 정죄한다.
11. 4영을 1영으로 통합하고 근위대를 설치한다. 육군대장에는 세자를 임명한다.
12. 재정은 호조에서 전담하고 나머지 부서는 혁파한다.
13. 대신과 참찬은 합문 안의 의정소에서 회의하여 정령을 선포한다.
14. 6조 이외의 불필요한 조정 기구와 관리는 대폭 혁파한다.
이외에도 백성들은 일제히 단발을 행할 것, 청년들  중에 우수한 자를 뽑아 외국
에 유학시킬 것 등 80여 개조에 이르고 있다고 하나 시행하기 어려운 것도 많았
다.
고종이 계동궁으로 이어하자 독일 영사가 참내하고 돌아갔다.
타케소에 일본 공사도  다시 와서 고종을 배알했다. 타케소에는 세계의  국제 정
세와 조선이 내정을 개혁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을 역설했다.
"이제 조선은 양병을 서둘러 정예롭게 해야 하는데 4영의 병사들이 모두 오합지
졸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나마 쓸모 있는 병사들이라고는  오직 전영이 다른 영보
다 조금 나을 뿐입니다."
타케소에 공사는 조선의 양병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옥균 등이 정변을 
일으켜 친일 내각을 구성하였으므로 조선이 하루바삐 근대화된 군사를 양성해서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방어하는 기지가  되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 부합되는 것이
다.
타케소에가 물러가자 민비와 세자가 다시 환궁을  들고 나왔다. 김옥균과 박영효
는 난처했다. 고종도 계동궁이 불편하여 은근히 환궁을 바라는 눈치였다.
고종도 심기가 불편했다.  김옥균 등이 자신까지 속이고 일곱 대신을  참살한 사
실에 역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경들은 계동궁이 경우궁보다 널찍하다고 하나 이곳이 경우궁보다 무엇이 더  넓
은가?"
"......"
김옥균과 박영효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제 조정이 개편되고 신정령을  반포하였으니 속히 환궁할 차비를 해야 할  것
이다."
"전하. 아직은 때가 아니옵니다."
김옥균은 완강하게 환궁을 거부했다. 고종을 인질로  잡고 있었으나 아직은 환궁
할 시기가 아니었다.
"아직도 청당을 소탕하지 못했는가?"
고종의 용안이 불쾌해 보였다. 좀처럼 감정의  희노애락을 나타내지 않는 고종이
었으나 김옥균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황공하옵니다."
김옥균은 머리를 바짝 조아렸다.
"경이 하고 있는 일이 대체 무엇인가?"
"전하. 신 등은 개명한 정치를 하려고 하옵니다. 전하께서는 소신들을  믿고 따라 
주시업소서."
"경들이 기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고종이 냉랭하게 내뱉았다. 김옥균은 등줄기가 서늘해져 왔다.
"전하. 계동궁은 소수의 군사로도  지키기가 용이하나 창덕궁은 그렇지가 못하옵
니다. 청군이 불시에 내습을 하면 감당할 길이  없으니 천추에 한을 남길까 우려
되나이다. 신 등은 애초에 강화도까지 파천할  것을 계획하였으나 타케소에 공사
의 만류를 받았고 수차에  상의하여 경우궁만이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결정하였
사옵니다. 그러나 양전마마와  동조(세자)께서 경우궁이 협소한 까닭을 지적하여 
계동궁에 이르렀습니다. 계동궁에 이어하신 지 불과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는데 
다시 환궁하고자 하는 것은 이목상  좋지 않을 뿐 아니라 군신간의 약조에도 어
긋나는 일이옵니다."
"약조?"
"전하께서는 신에게 대계를 일임하시지 않으셨사옵니까?"
"경들은 물러가라!"
고종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김옥균에게 대계를  일임한 것은 조선의 내정개
혁과 청나라로부터의 자주독립에 대한 것이지 대신들을 참살하는 정변이 아니었
던 것이다.
고종의 진노에 김옥균과 박영효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외청으로 물러갔다.
이때 청군  진영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진수당을 통해  우정국의 참변을 
전해 들은 청군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했다.  조선군의 반란이라면 
청군을 동원하여 단숨에 진압할  수 있었으나 일본군 2백 명이 가담했다는 첩보
가 들어오자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군과 섣불리 맞붙으면 청일전쟁으
로 비화되는 것이다.
원세개는 친청당이라고 할 수  있는 김윤식, 김홍집, 남정철 등을 청군 진영으로 
불렀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청군 진영으로 달려왔다.
"왜당이 드디어 정변을 일으켰소."
원세개는 예측하고 있던 일이라는 듯이 가볍게 입을 열었다.
청군 진영에는 오조유와 오장경까지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청군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총명한 무장인 원세개였다.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김윤식이 대답했다. 청군 진영은 이미 삼엄한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어찌했으면 좋겠소?"
조선말이 짧은 원세개는 토막을 치듯이 짧게 끊어서 말했다.
"대신들이 일곱이나 참변을 당했소. 조선과 청국은 형제의 나라니 마땅히 군사를 
내어서 진압해야 할 것이오!"
"주상전하께서도 역적들에게  볼모로 잡혀 곤욕을  치르고 계시다고  하오! 속히 
출병을 하여 왜당을 소탕해야 하오!"
김윤식과 김홍집, 남정철은 한결같이 청군의 출병을 요청했다.
"지금은 안되오."
원세개는 완곡하게 출병 요구를 거부했다.
"어째서 안되오?"
"계동궁은 일본군 2백명과 조선의 군사들이  방어하고 있소. 게다가 조선 국왕의 
진의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소."
"전하의 진의?"
"조선 국왕은 청군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있소."
"그럴 리가 없소. 청군은 일본군과 전쟁을 하는 것이 두려운것이 아니오?"
"조선 국왕을 창덕궁으로 환궁하게 하고 어찰을 받아 오시오"
"어찰?"
"우리에게도 출병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하오."
원세개의 말에 김윤식과  김홍집, 남정철은 경기감사 심상훈을  포섭하여 계동궁
에 밀사로 보냈다. 심상훈은 사람이 두리뭉실하여  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등과도 
밀접하게 지내고 있었다.  한때는 8학사로 불리면서 김옥균 등과  함께 민영익의 
사랑방에 출입한 일이 있어서 김옥균은 동조자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민비는 심상훈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심 감사인가? 내가 경이 들어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소."
"황공하옵니다."
심상훈은 숙배를 올리고 나서 주위를  물리치게 한 뒤 청군 진영의 움직임을 소
상히 아뢰었다.  민비는 심상훈의 보고를 받고서야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김홍
집, 김윤식 등이  김옥균의 조각에 이름이 올라 있으면서도 출사하지  않고 청군 
진영에 들어가 출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흡족했다.
"중전마마. 청군 진영에서는 전하의 밀지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심상훈은 목소리를 잔뜩 낮추어 민비를 설득했다.
"밀지?"
"그러하옵니다. 청군은 명분이 없으면 출병할 수 없다고 하옵니다."
심상훈의 말에  민비는 아미를 잔뜩  찌푸렸다. 고종에게서 밀지를  받아낼 일이 
난감했다. 고종의 침전에는 호위를 한다는 구실로  김옥균 파의 장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밀지를 받으려다가 그들에게 발각될 염려가 있었다.
"꼭 밀지를 받아야 하오?"
"그러하옵니다."
"난제로구만......"
민비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 김옥균  등을 일거에 소탕해야 하는데 
밀지를 받을 일이 여의치 않은 것이다.
"중전마마."
심상훈이 민비를 재촉했다.
"우리 조선 군사들로는 역도들을 소탕할 수가 없소?"
"송구하오나 4영의 대장이 참살을 당한지라 지휘할 장수가 없사옵니다."
"한심한 일이로군. 장수가 참살을 당했다고  지휘할 대장이 없다면 나라 꼴이 무
엇이 되겠소?"
"송구하옵니다. 속히 밀지를  받아 주시옵소서. 신은 중전마마 앞에 오랫동안  머
물러 있을 수  없사옵니다. 저들이 신을 의심하면 일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옵니
다."
"주상전하께서는 감시가 심하여 밀지를 내리실 형편이 못되니 내가 내리겠소."
민비가 단안을 내렸다.  심상훈은 꿇어 엎드린 자세로 깜짝 놀라  민비를 쳐다보
았다. 뜻밖의 선언이었다.
"저들이 필요한 것은 명분이오."
"그러하옵니다."
민비는 그 자리에서 먹을 갈아 붓을 놀렸다.
청군래원
청군이 와서 도와 달라는 뜻이었다. 심상훈은 엎드려  절을 하고 머리 위로 민비
의 밀지를 받았다.
"중전마마. 중전마마께서는 신이 물러가면 창덕궁으로 환궁하게 하시옵소서."
"창덕궁으로?"
"원세개 장군의 당부였사옵니다."
"알겠소. 그렇지 않아도 환궁을 요구하고 있었소."
심상훈이 민비의 친서를 품속에  휴대하고 물러가자 민비는 곧바로 고종의 침전
으로 건너갔다. 고종은 김옥균이 올린 신정령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경기감사 심상훈이 입대하였는데 인견하였소?"
고종이 자세를 바로  하고 민비를 쳐다보았다. 민비는 고종 앞에  바짝 다가가서 
앉았다.
"방금 물러갔사옵니다."
"밖의 동정이라도 알려 주었소?"
"그러하옵니다."
민비는 목소리를 잔뜩 낮추어 대답한 다음 주위를 살폈다.
"밖에 누가 있느냐?"
고종이 민비의 의향을 알아채고 대청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예!"
대청에 시립해 있던 장사들이 일제히 대답을 했다. 김옥균의 부하들이었다.
"장사들은 대청에서 물러나 있으라. 과인이  중전과 사사로운 얘기를 할 것이 있
다!"
"황공하옵니다."
장사들이 일제히 대답을 하고 대청에서 물러가는  기척이 들렸다. 평소에는 임금
의 옷자락이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던 장사들이었다. 김옥균의  정변 때문에 
국왕의 호위를 담당하게 되었으나 삼가고 공경했다.
민비는 장사들이 물러가는 기척이 들리자 재빨리  장지문을 열었다. 비밀 얘기를 
할 때는 문을 열어 두는 것이 오히려 감시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민비는 엿듣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심상훈에게 들은 얘기를 그대로 
말했다. 민비의 얘기를 들으며 고종은 몇 번이나 얼굴빛이 변했다. 그러나 딱 부
러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전하는 역시 결단력이 부족해......)
민비는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계책을 세세하게 일러주었다. 고
종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거려 수락했다.
고종은 김옥균과 박영호가  외청에 나가 있는 틈을  타서 타케소에 공사를 불렀
다. 그 자리에는 민비가  동석하여 고종의 결심이 흔들리는 것을 막았다. 타케소
에는 무릎을 꿇고 고종과 민비 앞에 앉았다.
"대왕대비마마께서 장소가 협소하여 거처하기가 불편하다고 하시니 속히  환궁할 
차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대신들도 바꿔 치웠고 신정령도  반포했으니 혁
명은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고종의 말에 타케소에 공사는 머리를 조아려 대답했다. 일본식의 예의였다.
"황공하옵니다."
"공사께서는 속히 환궁할 차비를 하십시오!"
고종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알겠습니다. 즉시 무라카미 중대장을 대궐에 보내 지형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타케소에 공사는 고종의  지시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그는 즉시  무라카미 중
대장을 시켜 창덕궁을  정찰하게 하였다. 무라카미 중대장은 한 시간  남짓 창덕
궁을 살피고 와서 환궁해도 아무  지장이 없을 것 같다고 보고를 했고 타케소에
는 그대로 고종에게  상주하였다. 고종은 그 말을 듣자 기다렸다는  듯이 환궁하
라는 어명을 내렸다.
"환궁이라니 그게 무슨 망발이오?"
김옥균은 대경실색하여 타케소에에게  항의했으나 타케소에는 수비를 하는 것은 
대궐이나 계동궁이나 별 차이가 없고, 이미 어명이  내렸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
이라고 하였다.
"타케소에가 또 우리를 배반하는 것 같소."
김옥균과 박영효는 참담한 기분이 되어 대책을 숙의했다.
"이렇게 된 이상  혁명의 성공은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소.  하늘이 우리를 굽어 
보고 계신다면 외면이야 하겠소?"
홍영식과 서광범도 침통한 표정이 되었다. 창덕궁으로의  환궁은 적어도 열흘 정
도의 말미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대세는 기울어 있었다. 김옥균은 고종에게 기
군이라는 말까지 들은 일이 있어서 창덕궁으로의 환궁에 반발할 수가 없었다.
환궁은 그렇게 해서  결정되었다. 김옥균은 박영효와 무라카미를  보내서 창덕궁
을 다시  정찰하게 했다. 박영효는 창덕궁을  한 시간 남짓 세밀하게  살핀 뒤에 
관물헌이 방어하기에 가장 좋겠다고 보고를 해왔다.
오후 5시 마침내  국왕 이하 재궁전하가 환궁했다. 10월 17일  밤 창덕궁 대조전
에서 경우궁으로 이어하고 경우궁에서  계동궁으로 이어한 지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아서였다.
(중전에게 졌어. 중전을 진작에 설득했어야 하는데......)
김옥균은 어둠이 내리는 대궐의  누각과 침전들을 우울하게 살피며 불길한 예감
을 느꼈다.
그러나 수비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김옥균은  돈화문과 금호문에는 
좌영과 우영의 군사들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고 선인문에는 전영과 후영의 군사
들을 배치하여 지키게 했다.
이내 밤이 왔다. 각 궐문에 자물쇠를 보내어  잠그려고 하는데 일단의 청군이 선
인문으로 들이닥쳐 궐문을  잠그지 못하게 했다. 박영효가 그 소식을  듣고 청군
을 향해 발포지시를 내리려는 것을 김옥균과  타케소에 공사가 다급하게 막았다. 
궐문을 닫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김옥균은 전영과 후영의 병사 4백 명을  선발하여 궐문 주위에 매복시켰다. 타케
소에 공사도 일본군 병사들을 요소요소에 매복시켰다. 긴장된 밤이었다.
(오늘 밤이 중대 고비야......)
김옥균은 선인문 앞에서 대치하고 있는 청군 진영을 살피며 비장한 기분이 되었
다. 혁명 2일째,  혁명정부의 각료 명단을 발표하고  신정령을 공포한 10월 18일 
밤은 창덕궁으로의 환궁과 청군 내습에 대한 불안으로 어수선했다.
날이 서서히 밝아 오기 시작했다. 혁명 3일째 되는 날이었다.
김옥균은 눈을 뜨자 대궐의 후원을 거닐었다. 날씨는 쾌청했다. 대궐에 빽빽하게 
들어선 온갖 누각과 침전도 잿빛 기와를 이고 적막 속에서 밝아 오는 아침을 맞
이하고 있었다.
(어젯밤을 무사히 보낸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는 혁명의 전도를 밝
게 하는 일이 아닌가......?)
김옥균은 천복이라고 생각했다.  어젯밤을 뜬 눈으로 새웠으나  피로가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하고 초조했던  밤이었다. 그러나 청군과 대치하고 있으면서도 충돌
이 없었던 것은 하늘이 돕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형세가  며칠만 지속되면 정변이  혁명으로 정착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충분히 자주 입국의 방책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고, 조선은 개혁될 것이다. 생각
이 거기에 미치자 김옥균은 흡족해 졌다. 이로써  신흥 조선의 앞날에 서광이 비
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중전인데......)
김옥균은 관물헌 담 밑으로  하늘하늘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
에 잠겼다. 한낱  여인에 불과한 민비가 의외로 혁명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
다.
(어릴 때부터 여중군자라는 소문이 있더니......)
김옥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이한 운명이었다. 고종이 소년왕으로 등
극하던 20년 전, 우연히 노상에서 만난 규수가  이제는 자신의 최대의 정적이 되
어 있는 것이다.
그때 홍영식이 성정각에서 분주한  걸음으로 관물헌 모퉁이를 돌아오는 것이 보
였다. 김옥균은 홍영식이 가까이 걸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아침부터 걸음이 분주하구려. 어떻게는 눈 좀 붙였소?"
"청군이 언제 내습할지 모르는데 잠이 오오?"
홍영식이 퉁명스럽게 받았다.  김옥균은 웃으며 관물헌의 화초담  너머로 앙상하
게 헐벗은  벚나무를 바라보았다. 점점 밝아  오는 동녘 하늘로 붉은  해가 둥실 
떠오르면서 벚나무의 메마른 가지에 금빛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져 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소?"
"우영사 민영익이 살아 있다고 합니다."
"민영익이?"
"일본인 장사에게 자격을 당했으나 묄렌도프가 업고 달아났다고 하오. 미국 공사
관의 알렌이라는 자가 대수술 끝에 살렸다고 하오."
"목숨이 질긴 위인이군."
"금릉위 박영효  대감이 자객을 보내 죽이려고  하기에 내가 비밀리에  장사들을 
보내 보호하라고 했소."
"홍 대감!"
김옥균은 깜짝 놀라 홍영식을 쳐다보았다. 민영익은  여흥 민문의 두령이자 청당
을 이끌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미안하오."
"어찌 그런 망발을 저질렀소?"
"민영익은 그 인품이나  학문으로 보아 조정의 내정개혁에  꼭 필요한 인물이오. 
게다가 중전마마의 친정 종손이니 더 이상 중전마마의 노여움을 살 수 없소."
"홍 대감, 어차피 저질러진 일이오."
"중전마마의 심기를 어지럽게 하고서는 우리의 혁명이 성공할 수 없소. 중전마마
의 지략과 원모가 이미 주상전하를 능가하고 있지 않소?"
김옥균은 입을 다물었다.  홍영식도 중전 민비의 존재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
는 것이 분명했다.
 “대궐에 해괴한 소문이 난무하고 있소.”
 “해괴한 소문이라니요?”
 “대감이 역천(逆天)을 꿈꾸고 있다는 게요.”
 “허어!”
  김옥균이 탄식을 했다.
 “대감이 주상전하를  폐하고 금릉위를 옹립하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소. 
내시 유재현을 죽인 일도 엉뚱한 소문의 빌미가 되었소.”
 “어떤 소문이오?”
 “내시 유재현이 어선(御腺:수라)을 주상전하께  바쳐 올리자 대감이 발로 차면
서 말하기를  <지금이 어느 시국인데 한가하게  수라를 올리느냐> 하였다고 하
오. 그러자 내시 유재현이 크게 꾸짖기를 <너희 왜당은 모두가 주상전하의 은총
을 두터이 입은 교목(喬木) 귀경(貴卿)들이 아니냐? 어찌 있지도 않은 변사를 걱
정해서 천고(千古)의 미치광이 반역을 일으키느냐>  하였다고 하오. 그러자 대감
이 칼을 빼어 후려치니 섬돌  밑으로 유재현이 굴러 떨어지고 상께서는 벌벌 떨
었다는 것이오. 대감은 또 옥새를 꺼내 금릉위 대감에게 주면서 <마음대로 왕노
릇을 하시오> 했다는 거요.”
 “기가 막히는군. 옥균이 이제 난신적자가 될 모양이오.”
  김옥균은 어처구니가  없어 쓴웃음을  지었다. 내시부를 혁파한다는  신정령이 
내시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 모양이었다.
  소문은 장안에도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김옥균도  외국 공사들을 통해 출처도 
분명치 않은 소문들을 듣고   
있었다. 소문들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박영효 등은 우정국 앞에 불을 지르고 대궐로 쳐들어가 임금을 깨우고,  
 “청나라 사람들이 난을 일으켜 사태가 위급하니 상께서는 일본 공사관으로 천
가하시어야 합니다.”
하고 아뢰었다. 이에 고종이 따르려 하자 중궁이 말리기를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일본 공사관으로 가는 것은 옳치 못합니다.”
하고 명백하게  반대를 했다. 박영효는  온갖 방법으로 상과  중궁을 위협했으나 
중궁은 듣지 않았다.
 “그러시면 경우궁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박영효의 말에 중궁은 거부하지 못하고 따랐다.  도승지 박영교는 앞에 엎드려 
고종을 끌어 업고 경우궁으로 들어갔다.
  날이 밝자 적당들은 교지를 속여 민태호를  불렀다. 조영하는 민태호에게 말하
기를,
 “지난 밤의 사변이 헤아리기 어려우니 군사를 동원하여 원세개의 청군과 연합
하여 대궐로 쳐들어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였다.
 “상께서는 적당과 일군(日軍)에게  포위되어 있는데 우리가 언제  군사를 일으
켜 들어가는가. 내가 마땅히 먼저 들어갈테니 공은 뒷처리를 잘하고 들어오시오.

  민태호는 조영하의 제안을 거부하고  경우궁으로 들어갔다. 조영하와 민영목도 
얼떨결에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이 경우궁으로 들어가자  서재필이 왜학생
도들에게 영을 내려  마구 칼을 휘두르고 찔렀다. 그들은 차례차례  죽었는데 사
지가 찢어지고 몸뚱이가  여러 갈래로 떨어져 나갔다. 고종은 그  처참한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죽이지 말라, 죽이지 말라> 하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조영
하는 칼을 맞고서도 죽지 않고, 
 “조선의 법에 문신(文臣)은 어찌하여 칼을 차지 말라고  하였느냐? 내 손에 칼
이 없어서 너희 역적을 만(萬) 동강으로 베어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이다!”
하고 부르짖다가 숨이 끊어졌다는 것이다.
  소문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김옥균 등이 고종을  인천으로 납치하려 한다는 소
문에서부터 김옥균이 울릉도를 일본에  팔아먹었다는 소문까지 파다했다.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었다.
 “중전마마에게 민영익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아뢰시오.”
  김옥균은 낮게 한숨을 내쉬고 홍영식에게 말했다.
 “이제 와서 소용이 있겠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금릉위 대감의 말씀처럼 중
전마마를 폐하여 서인으로 만드는 것이 어떻겠소?”
 “중전마마는 이  나라의 국모요, 신하된 자로  어찌 그런 불경한  말씀을 입에 
담을 수 있소?”
 “사세가 부득하지 않소?”
 “민영익이 살아 있다는  것을 중전마마께 아뢰서 중전마마의 심기를 다소라도 
가라앉히시오. 어차피 대감이 장사들을 보내서 민영익을  보호하고 있으니 잘 되
지를 않았소?”
  홍영식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홍영식도 어찌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
하고 있는 눈치였다.
  박영효는 역성혁명(易姓革命)까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거사 계획
이 무르익어 갈 때 은근히 고종의 우유부단함과 민비의 내정간섭에 비판을 가해 
왔었다. 박영효는 겉모습의  온유함에 비해 내심에는 무쇠라도 녹일 것  같은 정
열을 숨기고 있었다.  그가 혁명이 성공하고 있는 시기에 역성혁명을  꿈꾸는 것
도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왕족의 신분인데다 박규수, 박지원 등  그의 선대들은 학문과 경륜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어서 따르는 무리들이 많았다.
  (허나 금릉위는 아직 어려......)
  김옥균은 속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한때 정변을 모의하면서 민의(民意)에 의해 
대통령을 뽑는 미국의 공화제(共和制)가 논의된 적도 있었다. 일부에서 사대부나 
중인(衆人)들의 신망이  두터운 백의정승 대치 유홍기를  대통령으로 옹립하자는 
논의도 물밑에서 있었다. 그러자 적기(適期)가 아니라는 지적에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었던 것이다.
 “어쨌든 청군의 내습을 막는 일이 급선무요.”
  김옥균은 무성한 소문을 떨쳐 버리듯이 강경하게  내뱉었다. 소문 따위에 전전
긍긍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찌할 속셈이오?”
 “청군이 어젯밤 폐문을 방해했소. 이대로 그냥 둘 수는 없소.”
  김옥균은 단호하게 말하고  성정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을  신조정의 의정
소를 사용하고 있었다.
  김옥균은 의정소에서 원세개에게  외교서신을 보냈다. 요지는 다음과  같은 것
이었다.

   청국 사마(司馬:참모) 원세개

  조선국 호조참판  김옥균은 작야(昨夜:어젯밤)에  귀국병사들이 폐문을 방해한 
사실에 심히 유감의 뜻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우리 대왕
과 신민을 무시한  처사이므로 도저히 간과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금후에 이런 
일이 또다시 발생하면 결코 좋은  말로 상대하지 않을 것임을 밝혀 두는 바입니
다.

                                                                         
조선국 호조참판 김옥균

  김옥균이 원세개에게  보낸 서신은 대담하기 짝이  없어서 이재원과 홍영식은 
깜짝 놀랐다.
 “어차피 청군이 내습을 할 것이 뻔한데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소.”
  김옥균은 당차게 말했다.  청나라로부터 자주독립을 한 처지이니  그들의 무례
한 행동을 항의해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어서 이재원과 홍영식은 감
히 반대하지 못했다. 박영효와 서광범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신정(新政)이 바로 서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정 확보와 강군정병(强軍
精兵)이오, 그러나 청군의  내습이 목전에 있다고 보아야  하니 병사들의 무기를 
점검해야 하오. 지금 전후좌우  4영의 병사들 무기가 칼과 창에 지나지 않소. 이
러한 무기로는 적을 막을 수가 없소. 속히  외국에서 구입한 총을 꺼내서 점검해
야 할 것이오.”
  박영효와 서광범은 김옥균의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즉시 왜학생도 신복모
에게 지시하여 미국에서 구입한 총을 점검시켰다.  그러나 총들은 군기고에서 오
랫동안 방치되어 있어서  습기가 차고 청화가 파랗게 덮여 있었다.  게다가 장전
이 되지 않은 총이 반이나 되었다. 탄환도 파랗게 녹이 슬어 있었다.
 “이런 총으로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신복모가 박영효와 서광범에게 군기고의 형편을 보고했다.
 “미국에서 구입한 총이 얼마나 되는가?”
 “4천 정은 족히 됩니다.”
 “그 많은 총이 전부 청화가 끼었는가?”
 “청화가 새파랗게 끼었습니다.”
  조선은 1886년 11월에 군제(軍制)를  친군영(親軍營)으로 바꾼 뒤 미국에 라이
플총 4천 정을 발주했었다. 8연발로 대검을 꽂을 수 있는 총이었다.
 “탄약은 어떤가?”
 “탄약도 대부분 녹이 슬어서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달리 방책이 없지 않나? 속히 분해하여 소제하게.”
  박영효는 입맛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복모 등에게 총기를  분해 소제
하라고 지시한 뒤 성정각으로 돌아오자 김옥균과 타케소에가 옥신각신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본군이 갑자기 철수를 한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소?”
 “거사는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일본군이  더 이상 대궐에 주둔하고 있을 명분
이 없습니다.”
 “공사, 지금 조선의 군사들은 겨우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있는 상태요. 미국에
서 구입한 라이플총을 꺼내 보니 모두가 녹이 슬어 분해 소제를 하고 있는 형편
이란 말이요. 실정이 이런데 일본군이 철수하겠다니 말이나 되오?”
  박영효도 타케소에 일본  공사를 공박했다. 박영효는 타케소에가  갑자기 철병 
문제를 꺼낸 것이 의심스러웠다.
  (혹시 곤전으로부터 궁궐에서 물러가라는 밀지를 받은 것이 아닌가?)
  박영효는 타케소에의  변심이 민비의 사주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
다.
  그러나 타케소에는 외교적인 곤경에 빠져 있었다.  일본 내각이나 조야는 조선
의 내정을 개혁하고 청나라와 일전도 불사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조선
에 있는  친일 정객들을  선동하여 명치유신과 유사한  정변을 조선에서 일으킨 
뒤, 청나라를 조선에서 축출하고 조선의 내정을  개혁해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방
어하게 한다는 정책은 일본에서는 공공연한 것이었다.
  타케소에는 조선으로  돌아오기 전에 일본의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고 
이노우에 외무경과  이토오 참의에게 형식적인  대조선책갑을안(對朝鮮策甲乙案)
을 상정해 놓고 회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노우에는 김옥균의 거사계획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비밀리에  이 거사계
획을 지지하고 일본 정부와
민간인(후꾸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이 일체가  되어 김옥균 등을 선동해서 정변을 
감행하게 하고 있었다. 타케소에가 일본으로 소환되어  있을 때 이노우에 외무경
과 이토오 히로부미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내락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
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어서 언제든지  변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에 타케소에는 
대조선책갑을안을 만들어  이노우에에게 9월 30일  훈령요청서를 보내고 회신을 
기다렸던 것이다.

    갑안:청국과의 일전을 각오하고 일본당(日本黨)을 선동해서 내란을 일으키는 
책(策).
    을안:청국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조선 자체의 운명에  맡기되 일본당이 
대화(大禍)나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책(策).
    공사의견:조선 공사는 갑을안 중 갑안이 최선책으로 사료됨.

  김옥균 등이 거사를 도모한  것은 타케소에가 제시한 갑을안이 일본 정부로부
터 공식적으로 채택되지  않았을 때였다. 오히려 일본 정부는 갑자기  정책을 바
꾸어 갑안이  적절치 못하다고 훈령을 보냈으나  타케소에에게는 도착되지 않았
다.
  타케소에는 일본 정부의 공식 훈령을 받지 않고 조선의 정변에 개입했기 때문
에 외교관으로서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공사의 발언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소.  우리의 자립하는  방도가 완전하다면 
굳이 공사의 말을 가달지 않고 우리가 먼저 철병해 주기를 요구했을 거요.”
 “병사들에게 휴식이 필요하오.”
 “공사. 지금 군기고에 있는 총검을 꺼내  보니 종잇장처럼 청화가 끼어 병사들
에게 분해 소제를 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  이러한 때에 공사가 일본군의 철
병을 고집한다면 우리의 혁명은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우선 3일만 기다린 뒤에 
일본 병사들을  철수시킨다면 우리 당이 준비가  갖추어져 청군이 내습하더라도 
근심이 없게 될 것이오.”
 “맞습니다! 또 군사를 철수하더라도  사관(士官) 10인을 교관으로 정하여 근위
대(近衛隊)를 훈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김옥균과 박영효는 다투어 타케소에를  설득했다. 타케소에는 그때서야 철병하
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가의 기본은 재정인데  지금 우리 조선의 재정은 궁핍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는 공사도 잘 아는 사실이며 전날 약속한  바도 있습니다. 이제 일본 우편선이 
불일(不日:며칠)내에 인천에 도착할 터인데 시급히 의정(議政)해야겠습니다.”
  김옥균은 내친 김에 재정 문제까지 거론했다.
 “얼마면 재정의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우선 5백만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3백만원이라도  있으면 시급한 재정을 해
결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 상인들에게 이런 거액을  모금한다는 것
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차관은  미국이나 영국 같은 외국에
서 융통하려고 하니까 공사께서 주선해 주시기 바랍니다.”
 “굳이 외국에서 차관을  얻을 필요가 없습니다. 상인들에게서 그만한  돈을 모
금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일본 대장성(大藏省)에서는 3∼5백만원은  당장에 마
련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틀림이 없겠습니까?”
 “공들은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합니까?”
 “믿습니다. 믿고 있기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본에 차관, 재정고
문, 군사교관을 일임할 용의가 있습니다.”
  김옥균의 언질은 일본에 막대한 이권을 줄  수 있는 사안들이었다. 타케소에는 
김옥균의 제의를 받아들여 철병을 연기했고 김옥균 등은 내정 개혁에 박차를 가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간 청군 진영은 출병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3

  민비의 밀지를  받은 청군은 일본군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김옥균이 정변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청군은 일본군과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
다. 청불전쟁이 시작되고  타케소에가 조선에 돌아오면서 일본은  청군에게 노골
적인 도발을 하고 있었다. 전면전이 되든 국지전이 되든 일전은 피할 수 없었다.
  (우리가 프랑스와  전쟁을 하고 있는 틈을  노려 조선을 충동질하다니  참으로 
비열한 놈들이 아닌가?)
  원세개는 일본의 정책에 강한 분노를 느꼈다.  일본으 청나라에 노골적으로 도
발을 하고 있었고, 조선의 개화주의자들은 고종을  움직여 청나라를 배척하고 있
었다. 명분은 자주  입국을 내세우고 있었으나 일본의 대륙 진출  책략에 이용당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조선의 정치는 기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국왕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앙
집권체제를 갖고 있으면서도 지방에서는 왕명이 통하지  않고 있었다. 정책은 수
없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나 제대로 시행되는  것이 없었다. 중앙과  지방이 모두 
부패하고 재정은 궁핍했다.
  (국왕의 영도력에 문제가 있어....)
  일본이 조선에 군함과 군대를 보내어 위협을 하는 것은 국왕이 무능하고 유약
하기 때문이었다. 국왕이 백성들이 구심점이 되지 못하고 겉돌고 있었다.
  (어쨌거나 일본을 막아야 해....!)
  원세개로서는 조선에 일본의 진출을 막는 것이  절대절명의 과제였다. 청군 진
영에서 지난 두 달 동안 경계를 강화한 것은 그 까닭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거어이 마각을 드러낸 것이다.
  (옥균 등이 일본을 끌어들여  자립자강을 도모하는 것은 화약을 지고 불  속에 
들어가는 것이야. 산중에서 늑대를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만난 격이지...)
  김홍집, 김윤식 등은 온건 개화파라고 하여  신내각에서 각각 한성판윤과 예조
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청나라 쪽에 가담하여 김
옥균 등을 토벌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도성은 어수선했다. 고종이 왜당에게  척살되었다는 소문에서부터 청군과 일본
군이 전쟁을 하려 한다는 소문, 민씨 일파가  도륙당했다는 소문 등이 꼬리를 물
고 나돌았다.
  조정 대신들도  우왕좌왕했다. 10월 18일 아침에  신내각 발표, 신정령 반포가 
잇따라 터져  어리둥절하였다. 정변이  일어나고 대신들이 참살되었으나  정확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청군 진영에서는 오후 1시가 되자 사관 1명을 보내어 고종을 배알하게 하려고 
하였다.
 “불가하다. 오조유(吳兆有)나  원세개, 장광전(張光傳) 중에  누가 와서 알현을 
요구한다면 허락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개 무명사관이 와서 알현을  청하니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는가?”
  김옥균은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자 청나라의 무명사관은 고종에게  올리는 봉
서를 내놓았다. 오조유가 보낸 것이었다.

     통령 오조유는 대왕전하께 상진(上陳)하옵니다.
     어젯밤에 대왕전하는 공연히 놀라셨 .......   성내외가 평온하고 조용하여 평
소와 다를 바가 .......
이는 대왕전하의 홍복(洪福)이옵니다.  저희 3영도 누.... 건재하고 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삼가 균안(鈞安)하심을 비옵니다.
                                                                        제
독 오조유 근상(謹上)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면 청군  3영 1천 5백명의 병사가 건재하다는 것으로 은
근한 협박장이었다. 도승지 박영교가 답서를 보냈다.
  청나라 사관이 돌아가자  다시 차비관(差備官:전령)과 통사(通詞)가 청군  진영
에서 왔다.
 “원 사마가 대왕전하를  배알하기 위해 병사 6백  명을 인솔하여 입궐 중입니
다. 병사는 3백명씩 2대로 나누어 동문과 서문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차비관의 통고였다. 김옥균은 얼굴에 핏기가 가시어 차비관에게 호통을 쳤다.
 “원 사마가 주상전하를  알현하는 것은 막지 않겠다. 그러나  군사를 거느리고 
입궐을 하는 것은 그  의도가 불순하므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만일 굳이 군사
들을 거느리고 입궐하겠다면 좋지 못한 일이 생길 것이다!”
  김옥균은 차비관에게 강경한  명령을 내려 원세개에게 전하도록  지시했다. 사
태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김옥균은 총기 분해 소제를  서두르라고 지시하고 각 영의 병사들에게 경계를 
철저히 하라고 한 뒤 관물헌 후당에서 묘당회의를 열었다.
  타케소에도 일본군에게 비상 경계령을 내렸다.
  오후 2시 30분 청군 진영으로부터 타케소에에게 다시 서찰이 왔다.

      들으니 난민들이 범궐하여 소란을  일으킨 것을 귀대힌(貴大人)이 인국(隣
國)의 정리로 군사를 이끌고 
조선 국왕을 수호한다  하니 제등(第等)도 청국황제의 명을 받아  탄압의 직임을 
다하고자 출병하여 일로(一勞)를 아끼지 않겠노라.

                                                         제독 원세개,  오조
유, 장광전, 돈수(頓首)

  타케소에가 그 서찰을 읽기도  전에 요란한 총성이 동북쪽에서 일어나며 탄환
이 관물헌까지  날아왔다. 타케소에는 당황하여  고종 곁으로  달려갔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도 고종의 곁으로 황급히 달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고종이 사색이 된 얼굴로 김옥균에게 하문했다.  민비도 침전에서 나와 회칠을 
한 듯 파리한 얼굴로 김옥균을 살폈다.
 “청군이 내습한 것으로 아옵니다.”
  김옥균이 당황하여 머리를  조아렸다. 김옥균의 가슴도 급박하게 뛰고 있었다. 
마침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 허면 어찌해야 되는가?”
  고종의 옥음이 떨렸다.
 “조선군과 일본군이 방비할 것이옵니다.”
  김옥균이 머리를 조아려 대답했다. 그러나 총소리가 더욱 요란해지고 있었다.
 “신은 선인문에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서재필이 분연히 외치고  왜학생도들을 이끌고 선인문을 향해  달려갔다. 김옥
균 등은 망연하여 서재필이 달려간 쪽을 쳐다보았다.
 “경들도 어서 나가서 살피시오!”
  그때 민비가 김옥균에게 차갑게 지시했다. 김옥균은  화들짝 놀라서 민비를 쳐
다보았다.
 “청군이 쳐들어 오고 있으니 어찌된 영문인지 살펴야 할 것이 아니오?”
  민비가 김옥균 등을 몰아세웠다.
 “황공하옵니다.”
  김옥균은 당황하여 머리를 조아렸다.
 “청군이 내습을 했으면 방비할  계책을 세워야 할 터인데 명색이 당상관인 대
신들이 우두망찰해 있으니 한심하고 딱하기 짝이 없소!”
  민비는 김옥균 등을 계속해서 몰아세우고 있었다.  김옥균은 얼굴이 벌겋게 상
기되었다.
 “신이 다녀오겠사옵니다.”
직후인 것이다. 계획적으로 자신들을 밖으로 내보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
었다.
  (요망한 것 같으니...!)
  김옥균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지략 하나는 제갈공명을 뺨치는 여인이 아닌가 ?)
  김옥균은 허탈했다.
  "주상전하는 언제 출어하셨느냐 ?"
  "방금 나가셨사옵니다."
  "따라잡을 수 있겠느냐 ?"
  "예 !"
  "좋다. 그럼 너희들은 나를 따라오너라 !"
  "예 !"
  병사들이 머리를 숙여 일제히 대답했다.
  김옥균은 관물헌을 지키는  병사들을 이끌고 북산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전투는 더욱 격렬해 지고 있었다. 오조유의  본진은 선인문을 돌파했고 원세개의 
본진도 돈화문을 돌파했다. 게다가 그들은 궐밖에  있던 조선군과 백성들의 지원
까지 받아 병사들이 2천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김옥균은 북산  중턱에서 한 무리의  무감들을 발견했다. 고종은  무감의 등에 
업혀서 그때서야 북산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어가를 멈춰라 !"
  김옥균은 무감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무감들이 엉거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전하, 어디로 가시옵니까 ?"
  김옥균은 고종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고종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
었다.
  "북묘로 가려고 하네. 경들은 어찌 종묘사직을 이렇게 우롱하는가 ?"
  고종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기까지 하였다. 김옥균에 대하여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목소리에 은은하게 노기가 서려 있었다.
  "아니 되옵니다 !"
  "아니 되다니 ?"
  "전하, 어찌 신들을  버리려 하시옵니까 ? 청군이 내습을  했다고 하나 조선의 
군사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대궐을 수비하고 있고, 일당 백의  정예군사인 일
본군이 청군을 막고 있사옵니다. 부디 통촉하시옵소서 !"
  "관물헌까지 탄우가 날아 오고 있지 않은가 ?"
  "우선 연경당으로 행차를 바꾸시옵소서 !"
  "......"
  "전하 !"
  "그렇게 하라."
  고종은 썩 내키지  않은 얼굴로 어보를 돌렸다. 김옥균과 병사들은  재빨리 고
종을 호위하여 연경당으로 들었다.
  김옥균은 변수를 시켜 타케소에를 불러오게 하였다.  밖에는 전투가 더욱 치열
해 지고 있었다. 변수는 탄우가 빗발치는 밖으로 뛰어나가 타케소에를 불러왔다.
  "전세가 어찌하여 이렇게 험악해 졌소이까 ?"
  "청군이 너무 많소."
  "일본군은 일당 백이라고 하지 않았소 ?"
  "대궐이 넓어 방위하기가 쉽지 않소."
  타케소에는 날패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타케소에도 일본군이 불리하다는 사실
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때는  서재필도 선인문에서 후퇴하여  연경당에 도착해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전하를 모시고 인천으로 가서 후일을 도모합시다."
  김옥균은 타케소에에게 인천으로의 후퇴를 요구했다.
  "과인은 결코 인천으로 가지 않겠다. 대왕대비께서 가신 곳으로 가서 죽더라도 
그곳에서 죽겠다 !"
  그러나 타케소에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고종이 단호하게  내뱉았다. 김옥균은 
깜짝 놀라서 고종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까지 연경당으로 
달려와 있었다.
  "국왕전하께서 이처럼 공의 의견에 반대하시니 어쩌면 좋겠소 ?"
  타케소에가 김옥균에게 물었다. 김옥균이 대답을 망설이고  있을 때 탄환이 연
경당까지 빗발치기 시작했다.
  "전하, 어보를 옮기셔야 하겠사옵니다 !"
  홍영식이 다급히 외쳤다.
  "어디로 옮기는가 ?"
  "우선 옥류천 쪽으로 옥체를 피신하셔야 하옵니다."
  "가자."
  고종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무감이 황급히 고종을 업고 옥류천  쪽으로 뛰
었다. 김옥균 등은 병사들과 함께, 타케소에는 일본군을 지휘하여 고종을 보호하
며 옥류천으로 뛰었다.
  그러나 옥류천도  안전한 곳이 못  되었다. 무라카미 중대장과  서재필이 다시 
방어진을 구축하고 있을 때 뒷산에서 무감이 달려왔다.
  "전하 !"
  무감이 고종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대왕대비전 무감이 아닌가 ?"
  "그러하옵니다."
  "대왕대비마마께서는 어디 계시느냐 ?"
  "대왕대비마마께서는 북묘에 중전마마와 함께 계시옵니다."
  "오... 세자는 어찌 되었느냐 ?"
  "세자저하 내외분도 함께 계시옵니다.  전하께서도 속히 북묘로 피신하여 옥체
의 안전을 도모하라 하셨사옵니다."
  "가자. 과인이 대왕대비전을 모셔야 하느니라 !"
  고종은 무감을 재촉했다. 고종이 대왕대비전을 모시겠다고  하는 것은 중전 민
비와 있겠다는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전하 !"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이 일제히 고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되옵니다 ! 전하, 북묘로 가시면 아니되옵니다 !"
  "비켜라 ! 대왕대비전께서 북묘에 계시다고 하지 않느냐 ?"
  "전하 ! 북묘에는 청군들이 매복하고 있사옵니다 ! 신들의 간청을 물리치지 마
시옵소서 !"
  "청군이 과연 해하겠느냐  ? 설혹 청군에게 죽더라도 과인은 대왕대비전을  모
실 것이니라 !"
  고종은 전에 없이 강경하게 김옥균의 간청을 물리치고 북묘 쪽으로 어보를 옮
겼다. 그러자 무감이 등을 내밀어 고종을 등에 업었다.
  "전하 !"
  김옥균이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고종을 업은  무감은 서둘러 북묘를 향
해 걸음을 재촉했다.
  "멈춰라 !"
  그때 박영효가 칼을 뽑아 들고 고종을 업고 가는 무감의 앞을 가로막았다.
  "금릉위 !"
  고종이 놀라서 박영효를 쳐다보았다. 박영효의 칼끝이  무감의 배에 닿아 있었
다.
  "무감은 옥체를 내리고 물러서라 !"
  무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고종을 내려놓았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은 재빨리 고종  앞에 꿇어 엎드렸다. 그들의 얼굴에 
비장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전하, 지금 탄우가 난무하고 있사오나 일본군이 금세 전세를 만회할 것이옵니
다. 신들을 믿고 조금만 지체하여 주시옵소서."
  "종묘사직이 위태롭게 되지를  않았느냐 ? 과인이 어디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북묘로 가려는 것이냐 ?"
  고종은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되옵니다 !"
  김옥균과 박영효는 고종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경들은 내 앞을 막지 마라 !"
  고종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전하, 신들의 불충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박영효가 핏발이 선 눈으로 고종을 쳐다보았다.  말투는 공손했으나 눈빛은 흉
맹했다.
  "열성조에 부끄럽다 ! 만고에 이런 변이 어디 있는가 ?"
  고종이 체념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청군을 방어하던 일
본군이 청군에 밀리면서  옥류천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고종은  김옥균 등에게 
에워싸여 북장문으로 향했다.
  그때 북산에서 요란한 총성이  울리면서 탄환이 북장문을 향해 빗발치듯이 날
아왔다. 북산에 있던 별초군(4영의 정원 외의 병사들) 1백여 명이 일본군 군복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맹령한 사격을 퍼붓고 있었다.
  "듣거라 ! 주상전하께서 임어하여 계신데 누가 감히 총을 쏜단 말이냐 ?"
  김옥균은 별초군을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홍영식,  박영효, 서재필도 일제
히 소리를 질렀다.
  "총을 멈추어라 ! 어가를 모시고 있다 !"
  별초군들은 그들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자  그때서야 총격을 멈추었다. 날
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초겨울의 쌀쌀한 날씨였다.
  전투가 한동안 소강상태를  이루었다. 청군은 대궐을 완전히  점령하고 대낮처
럼 횃불을 밝혔다. 일본군은 북산에 이중 삼중 방어선을 구축했다.
  김옥균, 박영효 등은 그 틈에 회의를 하여  고종을 인천으로 모시고 가기로 하
였다. 서광범, 서재필도 찬성했다.
  고종은 북묘 쪽으로  가고 싶어 했으나 김옥균  등이 에워싸고 있어서 형세만 
살필 뿐이었다.
  타케소에는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김옥균에게 입을 열었다.
  "일본군이 조선  국왕을 호위하고 한  것이 오히려 성궁(옥체)에  누를 끼치고 
있습니다. 사세가 이러니 군사를 철병하여 후일을 도모하겠습니다."
  김옥균은 깜짝 놀라서 타케소에에게 항의했다.
  "공사 ! 전하께서 북묘로 가시겠다는 것을  우리가 불충한 짓을 저지르면서 만
류한 것이 7, 8번이나 됩니다. 이는 오로지 일본군이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 어떻게 할 요량입니까 ?"
  "전하를 모시고 인천으로 가야 합니다."
  "전하께서는 가시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
  "강제로라도 모시고 가면 됩니다 !"
  "인천이라고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인천까지 가셔도 사세가  불리하다면 전하를 모시고 일본으로 가면  됩니다 ! 
일본에서 후일을 도모하면 될 것입니다 !"
  김옥균은 몸을 떨면서 타케소에를 다그쳤다.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 철병은  불가피합니다. 이제는 청군뿐만 아니라 조선군
까지 우리에게 총을  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일본군이 전하를  호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이 철수를 하지 않으면 전하의 안전이 위태롭습니다. 또 공들
이 전하를 인천으로  모시고 갔다가 여의치 않으면  일본으로 모시려 하는 것은 
중대한 외교문제가 됩니다 !"
  의외로 타케소에도 강경했다.
  "공사는 성궁의  안전을 이유로 철수를 주장하고  있으나 원래 공사가  군대를 
이끌고 여기까지 온 것은, 첫째 전하의 신변을 호위하고, 둘째 우리 당을 원조하
기 위함이  아니었소 ? 그런데 당초의  약속을 저버리고 군대를 철수시키겠다니 
공사는 또다시 우리를 배신할 작정이오 ?"
  "이것은 배신이 아니오 !"
  "이 시기엔 일본군이 철수를  하면 우리의 거사는 물거품처럼 흩어지고 말  것
이오. 공사, 제발 일본군을 철수시키지 마시오."
  김옥균은 비굴한 정도로  타케소에에게 간청을 했다. 그러나  타케소에의 결심
은 완고하여 아사야마를 시켜  일본군이 철수한다는 사실을 고종에게 아뢰게 하
였다. 그러자 무라카미 중대장이 반발을 하고 나섰다.
  "각하 ! 우리가  연합하여 싸운다면 일본 병사 일인이 청군  열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청군이 방심한 틈을 타서  싸우면 우리 군사가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
  무라카미 중대장은 타케소에에게 열변을 토했다.
  김옥균과 박영효도  다투어 타케소에를  설득했다. 그러나 타케소에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김옥균과 박영효는 무라카미 중대장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무라카미 중대장 부탁합니다 !"
  "그렇소. 우리를 구원할 사람은 당신뿐이오 !"
  "걱정마십시오. 여러분은 조선의 지사들입니다. 우리 군사가 비록 수는  적다고 
하지만 내가 맹세코 청군을 물리칠 터이니 여러분은 안심하고 성상을 모시고 잠
깐만 기다리십시오."
  무라카미 중대장은 김옥균과 박영효에게도 단호하게 외쳤다.
  "귀관은 누구의 지시를 받는가  ? 귀관은 천황 폐하를 대리하는 내 명령에 복
종하라 !"
  그때 타케소에가 얼굴을  붉히며 무라카미 중대장을 힐책했다.  무라카미 중대
장은 멈칫하여 뒤로 물러섰다. 무라카미 중대장의 얼굴도 벌겋게 상기되었다.
  고종은 북가를 서두르라고 무감들에게 지시했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은  참담했다. 그들이 일으킨 혁명은 일종의 친
위정변이었고 그  중심에 국왕이 있었다.  물론 고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고종을 기만하면서 정변을  일으켰기 때문에 고종과 틈이 
벌어져 있었다. 그러나 고종이 떠나면 그들의 목숨도 부지할 길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장차 어찌해야  좋겠소 " 사리로 따지면 당연히 주상전하를  따라가야 
할 것이나 공사가 일본군과 함께 철수하면 무슨 힘이 있어 뒷일을 도모하겠습니
까 ?"
  김옥균 등은 비감하기  짝이 없었다. 천운이 기울었다고 생각하자 눈  앞이 캄
캄했다. 목숨을 보존해야 후일을 도모할 수가  있었으나 이제는 목숨을 보존하는 
일조차 여의치가 않았다.
  "공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심려하지  마시오. 청군이 먼저 무례한 직을 저질
러 조선과 일본의  국위를 더럽혔소. 일본은 마땅히 군사를 동원하여  청국을 응
징하려니와 공들은 나를 따라와 목숨을 보존하고 뒷날을 도모하시오."
  타케소에의 말에 김옥균 등은 숙연해졌다. 청군이  진을 치고있는 북묘에 고종
을 따라가지 않으면  불충이 되고, 고종을 따라가면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만 누구  한 사람이라도 고종을 배종해야 김옥균 등이  거사한 명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혁명에  실패하고 명분까지 잃는다면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
었다.
  "대감."
  김옥균이 홍영식을 불렀다.  고개를 푹 떨구고 있던 홍영식이 퍼뜩  고개를 들
었다.
  "나는 대가를 따라가겠소이다."
  홍영식이 분연히 대꾸했다. 그 순간 홍영식의  뇌리에는 영의정을 지낸 아버지 
홍순목의 얼굴이 섬광처럼 스쳐 가고 있었다.
  "대감은 전하를 따르더라도 큰 변은  당하지 않을 것이오. 대감께서는 변이 일
어난 뒤에도 병사들을 보내어  민영익을 보호하였고 원세개와의 교분도 매우 두
텁지 않소 ? 어쩌면  안전할 가망이 있을 게요. 그러나 이 일은  생사가 걸린 문
제니 대감께서 스스로 결정하시오."
  김옥균은 홍영식의 손을 잡고 비감하게 말했다.
  "내 결심은 이미 섰소."
  홍영식이 다른 말  말라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 있었다.
  "대감 !"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도 홍영식의 손을 다투어 잡았다.
  "대감을 홀로 두고 떠나려니 면목이 없소."
  "아니오. 나는 기꺼이 남겠소이다."
  "대감은 반드시 살아남아 안에서 일을 도모하오. 우리는 밖에서 일을 도모하여 
권토중래하겠소."
  김옥균 등은 눈물을 비오듯이 흘렸다. 그리고 그들은  고종 앞에 가서 꿇어 엎
드리고 사태가 여의치 않아 일본 공사  타케소에를 따라가겠다고 하뢰었다. 그리
고는 일제히 배례를 올렸다.
  "사세가 위급한데 경들은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는가 ?"
  고종은 김옥균을  힐책했다. 김옥균은 눈물을  흘리며 후퇴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을 아뢰었다. 벌써 일본군은 완전히 후퇴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신 등은 국가의 후한  은혜를 입었사오나 사세가 위급하여 잠시 몸을  피할까 
하옵니다. 오늘 전하를 배종하여 죽지 못하는 것은  다른 날 전하를 위하여 청천
백일 아래 성안을 뵈려함입니다."
  김옥균은 눈물을 비오듯이 흘리며 하직인사를 했다.
  "경들은 뜻대로 하라 !"
  고종은 격정을 이기지  못하는 김옥균에게 무덤덤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이미 
고종의 마음은 김옥균을  떠나 있었다. 그러나 비참한 망명길에 올라야  하는 김
옥균은 그 사실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내 고종의 어가가 북묘를 향해 떠나기 시작했다.
  사방은 캄캄했다. 김옥균 등은 타케소에와 함께  비원 일각까지 고종을 배종했
다.
  홍영식, 박영교는  왜학생도 7명과 함께 고종을  호종했다. 왜학생도들 중에는 
신복모도 끼어 있었다.
  김옥균, 박영효,  서정범, 서재필은 비참한  심정으로 멀어지는  고종의 어가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내 북묘 방면에서  한 떼의 병사들이 나타나  고종의 어가를 영접하는 것이 
보였다. 구러나 그 다음에는 어둠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전하,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전하 !"
  김옥균 등은 캄캄한 북쪽을 향해 오열을 터뜨렸다.

    4

  북묘 입구에서 고종의 어가를 처음 맞이한  것은 별초군들이었다. 고종의 어가
는 별초군들에게 에워싸여  북묘로 들어갔다. 그러나 북묘에는  대왕대비와 민비
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중전은 어디에 있느냐 ?"
  고종은 민비를 먼저 찾았다.
  "중전마마께서는 대왕대비마마, 세자저하  내외분과 함께 각심사로 가셨사옵니
다."
  별초군 초군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각심사 ?"
  "예."
  "각심사가 어디 있느냐 ?"
  "동대문 밖에 있사옵니다."
  "각심사로 가자 !"
  고종이 별초군들에게 어명을 내렸다. 홍영식과 박영교는  고종 옆에 바짝 붙어
섰다. 그때 밖에서 와 하는 함성이 들리며 청군이 사나운 기세로 들이닥쳤다. 통
령 오조유가  지위하고 있는 군사들이었다.  그들이 고종을 에워싸는가  싶자 한 
장수가 군사들을 헤치고 나와 고종에게 부복했다.
  "대왕전하, 불충한 역적의 무리에 의해  얼마나 고초가 크셨사옵니까 ? 대청제
국 통령 오조유 삼가 문안을 여쭈옵니다."
  "오 통령이구려."
  고종은 얼굴을 찌푸리고  대꾸했다. 청군의 기세가 별초군을  압도하고 있어서 
겁이 덜컥 났다.
  "대왕전하, 대궐에 아직도 일본군과 왜당이  준동을 하고 있으니 속히 저희 청
진으로 납시옵소서."
  "과인은 중전이 있는 각심사로 가겠다. 청군도 외국군이거늘 어찌 과인이 청군 
진영으로 가겠는가 ?"
  "대왕전하, 조선과 대청제국은  형제의 나라이옵니다. 위급한 난을  당하셨사오
니 저희 진영으로  피신하신다고 하여도 체모가 깎이는  일이 아닌 줄로 아옵니
다."
  오조유는 완강했다.  여차하면 군사들을 불러서라도  고종을 끌고 갈  것 같은 
고압적인 태도였다. 고종의  힘없는 눈이 홍영식과 박영교에게 향했다. 어찌했으
면 좋겠느냐는 눈빛이었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청군 진영으로 가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이는  청
군의 볼모가 되는 일이옵니다."
  홍영식이 고종의 옷깃을  잡아 당기며 만류했다. 오조유는 벌써  4인교까지 대
령시키고 있었다.
  "허면 어찌 해야 되겠는가 ?"
  "중전마마가 계시는 각심사로 납신다고 하시옵소서."
  박영교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네 놈은 누구냐 ?"
  그러자 오조유가 박영교를  쏘아보며 호통을 쳤다. 홍여식과는  연회석에서 마
주한 안면이 있었으나 박영교는 처음이었다.
  "도승지 박영교요."
  "네 놈이 원 사마와 우리가 보낸 봉서에  방자한 답서를 보낸 놈이구나 ! 여봐
라, 이놈을 끌어내어 처형해라 !"
  "예 !"
  오조유의 명령이  떨어지자 청군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박영교를 개 끌듯이 
끌고 나갔다.
  "전하 !"
  "전하 !"
  박영교의 비통한 음성이 북묘  뜰에서 들려왔다. 고종은 눈을 질끈 감았다. 턱
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 요란한 총성이  들려왔다. 청군이 박영교를 총살시키는 소리였다. 고종은 
홍영식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홍영식은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것은 왜학생도들도 마찬가지였다.
  "전하, 4인교에 오르시옵소서."
  총소리가 그치자 오조유가 눈을 부라리며 고종에게  말했다. 고종은 떨리는 발
걸음을 뜰로 떼어놓았다.  북묘 뜰에 박영교가 피투성이가 되어 뒹굴고  있는 것
이 보였다.
  "오... !"
  고종이 휘청하자 오조유가 재빨리 부축하여 4인교에 태웠다.
  "하도감 영방으로 간다 !"
  오조유가 병사들에게 호통을 쳤다.
  "예 !"
  청군 병사들이 일제히 대답하고 4인교를  에워쌌다. 홍영식은 눈물이 그렁그렁
한 눈으로 고종에게 숙배를 올렸다.
  "전하 !"
  신복모를 비롯한 왜학생도들도 일제히 숙배를 올렸다.  고종의 어가가 청군 진
영으로 끌려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창덕궁에서 고종을  호위하여 북
묘까지 왔으나 고종이 떠나고나면 그들의 앞일은 예측할 수 없었다.
  "경들은 자중자애하라. 이제 변이 수습되면 피를 씻는 보복이 따를  것이다. 속
히 보신책을 세우도록 하라."
  고종은 홍영식에게 간곡한 당부를 했다. 홍영식이  북묘까지 따라온 것이 고마
웠던 것이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부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홍영식과 신복모 등은 눈물로 고종의 어가를  작별했다. 고종의 어가는 청군들에
게 에워싸인 채 북묘를 떠나 하도감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홍영식은 고종의 어가가 캄캄한 어둠속으로 사라진  뒤에야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얼굴이 눈물로 걸레처럼 젖어 있었다. 왜 학생도 신복모 등도 몸을 일으켰다. 그
러나 별초군이 빽빽하게 둘러쌓인것을 발견한 그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역적들이다!”
“왜놈 앞잡이 들이다!”
“역적들을 죽여라!”
별초군 병사들은 살기등등하여 소리를 질렀다. 홍영식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
다. 
“대역죄인을 참하라!”
별초군 초관이 장검을 뽑아들며 소리를 질렀다.
(ㅇ!)
홍영식은 비통하여  눈을 감았다. 그의 눈으로  완고한 아버지와 사랑스런 아내, 
그리고 어린 아들의 얼굴이 빠르게 스쳐갔다.
홍영식은 눈을  떴다. 그때 섬득한 칼날이  바람소리를 일으키며 허공을 갈랐다. 
홍영식은 다시 눈을  꽉 감았다. 그때 뒷목이 불에 데인듯이  화끈하면서 입안으
로 비릿한 것이 가득차  왔다. 그는 그것을 왈칵 내뿜었다. 피화살이 벌초군들의 
얼굴과 옷으로 뿌려졌다. 
“이, 이놈이......!”
그러나 홍영식은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의  몸뚱이가 쿵 소리를 내며 땅
바닥으로 쳐박히고 시뻘건  피가 땅바닥으로 콸콸대며 쏟아졌다.  혁명가의 비참
한 최후였다.
신복모를 비롯한 왜학생도  7명도 별초군들에게 무수히 난도되어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
고종의 어가는 청군진영으로 끌려갔다. 청군의 삼엄한  감시겸 호위를 받으며 청
군진영에 도착한 고종은 거기서도 민비부터 찾았다.  그러나 민비는 각심사에 있
었고 고종은 청군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19일 밤 고종의 어가가 어둠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눈물로 전송을 한 김옥균 등
은 타케소에의 일본군을 따라 비참한 패퇴의  길에 올랐다. 박영효, 서광범, 서재
필 등의 의견은 분분했다. 게다가 이규완, 유혁로, 정난교, 신응희, 변수까지 가담
하고 있어서 그들 일행은 9명이나 되었다.
그들의 생사는 이제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태로운 처지에 몰려 있었다. 그
들은 타케소에를 따라가더라도 전도를  예측할 수 없고 일본군이 전멸을 하게되
면 앞으로의 여망이 전혀 없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궁리 끝에 
인천, 원산 부산으로  흩어져 떠난다면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으며 후일
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공사관으로 떠날테니까 공들은 빨리 따라오시오.”
그때 타케소에가 통역 아사야마를 보내 우왕좌왕하는  김옥균 등을 재촉했다. 일
본군은 벌써 퇴각진형을 편성해 놓고 있었다.
“일단 일본군을 따라갑시다.”
김옥균 등은 그렇게 결정했다. 일본군이 비록  패퇴를 한다고 해도 병사들이 140
명이나 되었다. 
무라카미 중대장은 일본군 1개소대를 전위에  세웠다. 중앙은 타케소에를 비롯한 
김옥균 등 조선인 9명과 시마무라가 섰다.
달은 아직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일본군은  카ㅁ캄한 어둠속은 헤치고 신속하게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북문을 지나 취운정으로 나갔다.
장안은 불야성 같았다. 곳곳에 모닥불이 피워지고  횃불을 든 조선군과 백성들이 
일본군이 지나가려고 하자 총을 쏘고 돌을 던졌다.
“왜놈들을 죽여라!”
“역적들이 저기 있다.”
조선군과 백성들이 흥분해서 왜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어둠속을 뚫고 교
동으로 향하던 일본군의 전위부대는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러나 전투를 하고 있
을 시간이 없어서 전위를 지휘하던 중위가 총에 맞아 부상을 당했는데도 불구하
고 공사관으로 내쳐 달려가기만 했다. 지옥같은 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공사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공사관에서 맹렬한 사격을 가해왔
다. 전위에 서 있던 일본군 조장 1명과  병사 2명이 난데없는 총격에 그자리에서 
즉사하였다. 통역관  1명은 그자리에서 중상을  당했고 다수의  병사들이 부상을 
입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타케소에와 일본군들은 재빨리 공사관 앞 개천에 엎
드렸다. 
일본 공사관에서  맹렬한 사격을 가하고  있는 것은 공사관의  잔류수비대 였다. 
그들은 타케소에가 일본군을  이끌고 대궐로 들어가자 잔류병사들,  그리고 공사
관 직원들을 소집하여 수비대를 편성하고 공사관을 경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평온했으나 19일 낮부터 흉흉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대궐에 충돌
했던 일본군이  전멸했다는 풍문도 들려왔다.  오오니와 조장은  하사관 7명으로 
공사관 수비대를 편성하고 즉각 방어 준비를 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청군과 조선군들이 공사관을  습격해 왔다. 오오니와는 필사의 
힘을 다해서 이들을  격퇴했다. 그리고 경계의 눈을 날카롭게 하고  있을때 일본
군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일본군끼리의 격돌은  무라카미 중대장이  나팔수에게 대호를 불게하여  그쳤다. 
김옥균 등은  일본군들과 함께 공사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공사관은 이미 
일본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한성에  거주하던 일
본상인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껴 공사관으로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조선인들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곳곳에서 일본 상인들이  살해당하고 일본인들
의 집이 불태워 졌다. 
김옥균 등은 일본인들로부터  철저한 냉대를 받았다. 일본인들은  김옥균 때문에 
조선인들이 자신들을 죽이려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일본인은 믿을 수가 없어!)
김옥균은 일본의 배신에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인들의 손에 자신의 
목숨을 보호받고 있는 처지여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고종은 20일 아침이 되자 청군 진영에서 조정을 개편했다.
그 자리에는 각심사에서 돌아온 민비와 오조유, 원세개가 힘께하고 있었다.
좌의정 심순택
우의정 김홍집
행호군 겸 선혜청 제주 어윤중
교섭통상사무 묄렌도프
예조판서 이재완
교섭통상사무참의 서상우
전영사 이교헌
우영사 민영익
좌영사 이규석
후영사 겸 우변포도대장 이봉구
좌벼포도대장 신석희
한성부 판윤 민종묵

심순택은 다음 날인  21일 영의정으로 김홍집은 좌의정으로,  김병시는 우의정으
로 승차했다. 청당의 복구라고 볼 수  있었으나 온건개화파 김홍집, 김윤식, 어윤
중 등이 조정에 포진한 것은  고종이나 민비의 개화의지가 갑신정변 같은 큰 반
란에도 불구하고 퇴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민영익은 묄렌도프에게 구출되어 미국인 선교사 알렌으로부터 치료를 ㅂ받고 있
었으나 우영사에 그대로 복직되었다.  승정원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새로운 조
정에 출사한 사대부들은 회의를 거듭하고 명렬히 규탄했다.
오늘의 사변에 대하여 차마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이 남여를 타고 두 
번이나 피난을 가고 대궐이 마침내 청일의 전쟁터로 변하였으니 이는 만고에 다
시없는 일이옵니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역적을 하루라도 살려두면  윤리가 떳떳
하지 못하오니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과 그를  따르던 무리들을 잡아다
가 신문하고 사형에 처해야 할 것이옵니다.
도승지 이교익, 좌승지 박주양,  우승지 권용선, 좌부승지 이도재, 우부승지 강문
형, 동부승지 조인승이 올린 상소문이었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역적의 화가 예로 많았지만 이번 다섯 역적의 변고는 역사에 
없던 흉악한 일이었다.지금 생각해도 간담이 서늘하니 처분하도록 하겠다.
고종의 비답이었다. 처분한다는  의미는 대역죄로 처벌한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
이어서 조정과 사림의  상소가 빗발치듯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종은 승정원의 
상소가 올라오자마자 그대로 승인하는듯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김옥균 등에 대한 
배신감과 불쾌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상소는 계속해서 쏟아져  올라오ㅆ다. 조정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헌부와 사간
원, 그리고 홍문관의  관원들도 일제히 개화당을 흉악한 5적으로  성토하는 상소
문을 올렸다.
이날 부사과 송병옥은 고종의 환궁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22일이 되자 시원임 대신들까지 김옥균을 규탄하고 나왔다. 돈령부 영사 김병국, 
판부사 김병덕,  영의정 심순택, 좌의정 김홍집이  연명으로 차자를 올려 외세를 
끼고 나라를 팔아 먹은 자는 있었으나 외국군을 끌여들여 임금을 협박한 옥균과 
같은 자는  일찍이 없었으므로 빨리  잡아서 처분을 하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고종은 이들의 차자에도 마땅한 처분이 있을것이다. 
그러나 이들에 의해  5적으로 규탄되고 있는 정변의 주모자들은  홍영식, 박영교
만 별초군들에게 비참하게 살해되었을  뿐 김옥균 등은 일본 공사관에서 일본군
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10월 22일 일본 공사관 주위의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조선인들은 날
이 밝았어도 공사관의  습격을 계속했다. 공사관에는 일본인  상인들까지 몰려와 
있어서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게다가 지난밤에  조선인과 청군이 일본군의 주둔
지를 습격하여 식량을 불태워 버려 3백명에 달하는 일본군들은 추위와 굶주림의 
공포와도 싸워야 했다.
김옥균을 비롯한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은 머리를  짧게 깍고 양복으로 갈아 입
고 일본인 행세를 했다.
타케소에는 포위 상태가 계속되자 일본 공사관의 경리원을 불렀다. 
“식량이 얼마나 남았는가?”
“각하, 현재로서는 저녁밥도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식량을 비축할 방법이 없는가?”
“지금도 문관이나 부녀자들,  그리고 거류민들에게는 죽을 먹게  하고 군인들에
게만 겨우 쌀밥을 먹게 하고 있습니다.”
“식량을 사올 수는 없는가?”
“각하, 어제부터 경성의 모든 시가지는 문을 닫았고  성밖에서 쌀을 갖고 와 노
점에서 파는 농민들도 자취를 감추어서 쌀을 사들일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경리원의 보고에 타케소에는  절망상태에 빠졌다. 공사관 밖에서는  성난 조선인
들이 일본인들을 죽이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조선인들은  금방이라도 공사
관으로 쳐들어 올것처럼 분위기가 험악했다.
“각하, 적국안에서 굶어 죽을 수는 없습니다.”
시마무라 서기관의  제안이었다. 타케소에는  시마무라의 제안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곧 기밀서류를 불태우고 철수 준비에 들어갔다.  일본 공사관에는 모두 2백 60명
의 일본인들이 있었는데 일본군이 1백 40명이고 민간인들이 1백 20명이었다.
오후 2시  그들은 일본 공사관을 떠났다.  안도오 소위가 선봉을  맡고 오오니시 
소위가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니시다가 중위와 고다니 중위도  앞에서 패퇴하는 
행렬을 선도 했다.
무라카미 중대장은  타케소에 공사를  호위하며 일본군을 지휘했다.  시마무라와 
직원들은 모두 칼을  차고 총을 들고 따라갔다. 부녀자를 제외한  상인들은 부상
자를 부축하고 탄약을  짊어졌다. 김옥균의 일행도 일본 민간인들 틈에  끼어 경
성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의 탈출행렬을 간헐적으로  습격했다. 그러나 일본군이 전후
좌우에서 일본 민간인들을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이 서대문에 도
착하였다.
서대문은 대낮인데도 문이  닫혀있고 조선군이 지키고 있었다.  일본군의 선발대
는 서대문을 지키는  조선군들을 향해 일제히 총을  쏴서 조선군들이 도망 치게 
한 후 서대문을 열고 마포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서대문을 지났어도 조선인들은  끊임없이 공격을 해오ㅆ다. 일본군들은조
선인들과 전투를 하면서 해가 질 무렵에야 간신히 마포나루에 도착했다. 
뒤를 돌아보니 경성은  검은 연기가 하늘을 덮고 화광이 치솟고  있었다. 공사관
이 있는 교동이었다.
일본군이 나루터를 점령한 뒤 조선인들의 배를  빼앗아 한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조선인들은 나루터까지 쪼ㅈ아와 일본인들이 한강을 건너는 것을 습격하려고 하
였다. 일본군들은 맹렬한 총격을 가해서 이들을 격퇴했다. 그들이 한강을 완전히 
건너가자 날이 캄캄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그  뒤부터는 조선인들이 추격을 해오
지 않아 일본인들은 경계를 풀고 인천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음력 10월 20일, 캄캄한 하늘에서는 눈발까지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일본인들
은 추위와 굶주림을 참으면서  밤새도록 걸어 이튿날 아침 7시에야 가까스로 인
천의 일본 영사관에 도착했다. 김옥균 일행은  인천 일본영사 코바야시의 주선으
로 제일은행 지점장인 키노시타의 집에 들어가 숨었다. 
(이제는 일본으로 망명해야 하는가?)
김옥균은 비참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혁명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사람들은 장사들까지 합해  모두 1백명 정도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전투중에 
죽거나 살아있다고 해도  참살당할것이 분명했다. 목숨이 안전한  사람들은 타케
소에를 따라 온 아홉명 뿐이었다. 
(우리의 가족들은 이제 역적이 되어 비참한 죽음을 당하겠지.....)
김옥균은 어머니 송씨와 아내 유씨, 그리고 어린 딸을 생각했다. 그들이 어떤 상
태에 내몰리리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훤히 짐작할 수 있었다. 
김옥균의 예상대로 그들의 가족은 처참한 상태에 몰려 있었다.
홍영식의 일가는 쟁쟁한  명문이었다. 그러나 홍영식이 정변에  가담함으로써 이
들 일가도 풍지박산이 나고 말았다. 홍순목은  아들이 역적이 되어 별초군들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노신이 역적의 아들을  키워서 임금에게 죄를 지었으미  만번 죽은들 어찌 이 
죄를 다하리오.”
하고 탄식을 했다. 그는 홍영식의 열살밖에 않된 아들을 보고,
“역적의 씨를 어찌 남겨 두겠는가.”
하고 독을 먹여 죽이고  자신도 대궐을 향해 절을 한 다음  약을 먹고 자진했다. 
홍영식의 처 한씨도 약을 먹고 자살했다.
박영교의 아버지 박원양도 열살된 손자에게 독약을 먹인 뒤 자진했다.
김옥균은 동생이 있었다.  김각균으로 벼슬길에 올라 있었으나  경상도 칠곡으로 
도망을 쳤다가 아행어사 조병로에게 체포되어 대구  감영에서 죽었다. 생부인 김
병태는 천안 옥사에서  10년 동안이나 감금되어 있다가 눈이 멀었다.  그러나 그
도 김옥균이 홍종우에게  암살되어 시체로 돌아오던 1894년 4월 교수형에처해졌
다.
부인 유씨와 딸은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도망을 쳐서 10년 동안이나 유리걸식 
하다가 1894년 박영효가 내무대신이  되어 일본에서 돌아오자 겨우 복권이 되었
다. 
서광범의 아버지 서상익은  7년이나 감옥살이를 하면서 무슨 죄로 연좌되었는지
도 모르고 날마다 돼지먹이 겨를  먹다가 죽었고 아내 김씨는 옥 중에서 절개를 
지키다 1894년 서광범이 법부대신으로 입각하자 비로소 풀려났다.
서재필의 아버지 서광언과  어머니 이씨, 부인 김씨는  음독자결하였으며 두살된 
아들을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굶어 죽었다.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야.....)
박갑성은 갑신정변에 가담했던 개화당 인사들의 가족들이 비참하게 죽는것을 보
고 쓸쓸한 마음을  금할길이 없었다. 그는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화전민이 되었다. 
1) 민영익은 우정국  낙성 축하연에서 일본인에게 칼을 맞았으나 미국인  선교사 
알렌의 치료로 생명을  구한다. 이로 인하여 알렌은 조선 최초의  병원인 광혜원
을 설립하게 된다. 
2) 갑신정변의  거사 부분과 신정령은  김옥균의 「갑신일록」을 이용했고  정변 
주역의 가족들에 대한 것은 황현의 「매천야록」을 참고했다.

제33장
분노의 계절
1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바람은 살을 에일듯이 차가웠다. 대궐의 빽빽한 침
전과 누각을 오가는 내사와 궁녀들이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종종걸음ㅇ르 쳤다. 
창덕궁 대조전. 구중심처인  민비의 침전에도 바람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쇳
소리를 내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민비는 아까부터 대조전 서온돌에 앉아서 무릎을 세우고 골똘이 생각에 잠겨 있
었다. 머리속이 어수선했다.  짧은 겨울 해가 지고 바람소리가 을씨년스러워서가 
아니었다. 김옥균과 박영효가 주도한 정변, 그 엄청난 정변을 머리속에서 정리하
기 위해서였다.
민비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왕조가 위태롭다는 불길한  예감이 그녀의 뇌리를 엄
습하고 있었다.
(감히 임금을 협박해.....?)
김옥균의 얼굴이 망막속으로  스쳐왔다. 그는 지금 박영효 등과 인천의  일본 영
사관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후일을 도모한다고 해도 비굴한 처신이었다. 
(옥균은 믿을만한 인물이 아니야.....)
10월 어느날이었던가.  김옥균이 침전에서  도도하게 세계정세를 논하며  조선이 
독립하는 일은 일본의 힘을  빌려 자립자강한 뒤에 내정을 개혁하는 것뿐이라고 
했을 때, 민비는 그 말에 감동하여 손수  주찬을 마련하여 대접을 하기까지 했었
다. 그런데 갑신정변은 임금을 협박하고 대신을  여섯이나 죽인 참살극으로 끝맺
은 것이다.
죽은 대신 여섯이 사대당이요, 간신도배라는 것도  김옥균 일파의 일방적인 주장
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변의 수습이었다.
(이제 청나라의 간섭이  더욱 심해 질텐데 무슨  수로 그 일을 감당한다는  말인
가?)
민비는 청나라의 간섭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청나라는 정변을 진압했다는 구실을  내세워 조선의 내정에 사
사건건 간섭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생각만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었다.
(일단 김옥균의 무리부터 처단을 해야돼.....)
민비는 머리속으로 결심을 굳혔다. 김옥균 같은  지사를 처단하는 것은 조선으로
서는 커다란  손실이었다. 그러나 김옥균은 입금을  우롱한 것이다. 왕부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러한 무리를 살려두면 또다시 기군망상하는 흉계를 꾸밀 것이다.
민비는 입술을  깨물었다. 조정에는 5적을  하루빨리 잡아다가  국법을 집행하고 
그들 가족을 연좌하여 극형으로 다스리라는 상소가  빗발치고 있었다. 그러나 조
정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5적 중에 홍영식은  죽었으나 고종은 김옥
균과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을 처벌하라는 윤허만  내렸을 뿐 이렇다할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었다. 
고종은 의기소침해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심노에 감기 기운까지  겹쳐 용안
이 초췌했다. 
(전하는 지치신 게야.....)
민비는 고종의 용안을 볼 때마다 가슴이 싸하게  저리는 것 같았다. 고종은 왕재
의 그릇이 아니었다. 어질고 착하기만 한 천성이  여러 재변을 겪게 되자 심화를 
입었다.
언제나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눈빛은 밝지가  못하였다. 그런 까닭에 국왕으로서
의 위엄까지 보이지 않았다. 
고종은 편전인 선정전에서 이경무렵에야 대조선으로 돌아왔다. 
“전하, 옥체가 많이 성하신듯 하옵니다. 일찍 침수에 드시옵소서.”
민비는 고종의 무릎 앞에 앉아서 살뜰하게 아뢰었다. 
“잠이 오지 않소.”
고종이 민비의 포실한 장딴지에 손을 얹어 놓으며  대꾸했다. 엄 상궁도 궐 밖으
로 내친  처지라 고종에게는 이제  민비 뿐이었다.곤룡포 아래서  색심이 동하고 
있었으나 다른 상궁들을  침전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라가 어수선하면 
임금도 몸가짐을 지숙해야 하는  것이다.
“전하.”
민비는 눈을 흘기는  시늉을 하며 고종의 손을 장딴지에서 떼어냈다.  문득 고종
의 얼굴 너머로 엄 상궁의 후덕한 얼굴이 떠오른 탓이다.
  “내가 중전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소ㅗ?”
  “전하께서야 지존이 아니십니까? 신첩 같은 계집이야 아랑곳이나 하겠사옵니
까?”
  “중전의 마음이 단단이 돌아선 모양이구려.”
  “전하의 주위에는 언제나  상궁 나부랭이들이 들끓고 있지를 않습니까? 칠십
먹은 노파에서부터 일고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아기 나인들까지 수백 명 궁녀들
이 모두 전하의 계집들이니까요.”
  민비의 눈빛이 새초롭했다. 민비가 질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엄 상궁의 일로 상심을 한 모양이구려. 내가 사과하리다.”
  고종은 뜨악했으나 한 무릎 더 다가앉아  민비의 궁둥이를 토닥거렸다. 갑신정
변의 여파로 였새 동안이나 민비와 동침을 하지 못한 것이다.
  “신첩도 계집이옵니다.”
  “내가 언제 아니라고 하였소?”
  “신첩은 언제나 지아비인 전하의 사랑만을 갈구하고 있사옵니다.”
  “중전, 미안하오.”
  “전하, 이제 다시는 상궁 나부랭이들과 동품하지 마십시오.”
  “내가 약조하리다.”
  “믿어도 되겠사옵니까?”
  “내가 어찌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겟소?”
  고종이 용포  소매자락을 휘저어 촛불을  껐다. 그릭는 천천히  익선관을 벗고 
용포를 벗었다.  민비도  몸을 일으켜서 조심조심 옷을 벗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방이 깊었는데도  침전과 누각, 그리고  담모퉁이를 돌면서 북퐁이  매섭게 불고 
있었다.
  “중전.”
  어둠 속에서 고종이  민비를 불렀다. 하얀 속적삼과 속치마 차림인  민비가 선 
채로 몸을 돌렸다.
  ‘전하.“
  민비는 흥건한 미소를 지으며 고종이게 다가섰다.
  “중전.”
  “전하.”
  살과 살이 닿았다. 어둠 속이었다. 한 저 부끄러움도 없는 관능의 불길이 세차
게 타올랐다. 입술과  입술이 서로의 몸에 화인을 찍고 열풍이  몰아치기 시작했
다. 민비가 서른텟, 고종이 서른세 살이었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관응은 격
렬하게 뒤엉켰다.
  종염한 민비였다.
  장년인 고종이었다.
  민비의 농염한 여체는 고종의 어수에 의해  불길처럼 타올란ㅆ다. 어수는 둥글
로 탄력있는 가슴을 유린하고 세류같은 허리를  지나 계곡으로 향했다. 매끈매끈
한 여체였다.
  한 시간 후.
  고종과 민비가 나란히 떨어져 눕자 귓전으로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몸
이 떨리는 겨울 삭풍이었다.
  "전하“
  민비는 고종의  옆으로 바짝 파고 들었다.  나신이었다. 그러나 격렬한 교접을 
끝낸 뒤라 고종도 민비도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부끄러움이나 수치스러움 
같은 것은 사라직 아쉬움만이 땀방울처럼 대롱거리고 있었다.
  “왜 그러오?”
  “전하를 사랑하옵니다.”
  “새삼스럽기는......”
  공종은 민비의 말이  싫지 않았다. 팔을 뻗어 민비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둥근 
가습을 애무해 준다.
  “아무래도 인천의 일본 영사관에 숨어 있는 옥균과 그 일당을 잡아다가 신문
해야 할 것 같사옵니다.”
  고종은 흠칫하는 표정이 되었다.
  “옥균은 대역죄로 다스리지 않으면 왕법이 서지 않을 것이옵니다.”
  “.....”
  “옥균은 전하의 은총을 하늘처럼 입지 않았습니까? 옥균에게 배신을 당한 것
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분이 풀리지를 않사옵니다.”
  민비는 자신의 가슴을 만지고 있는 고종에게 계속해서 속삭였다.
  “옥균은 일본군이 보호를 하고 있지 않소?”
  “옥균은 기군망상지죄를 저지른 자이옵니다.  마땅히 극형으로 다스려야 하옵
니다.”
  “대신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소. 그러나 일본군이  보호를 하고 있으니 잡아올 
일이 난감하지 않소?”
  “옥균을 살려 두면 크게 후환이 될 것이옵니다.”
  “.....”
  고종은 냉큼 대답을  하지 않았다. 김옥균의 호방한 얼굴이 머리  속에 떠올라 
왔다. 고종이 김옥균을  가까이 한 것은 불과 2,3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뛰
어난 화술과 굽히지  않은 정열을 갖고 있는 김옥균에게 고종은  매료되었다. 그
들이 일본에서 가지고 온 개명한 세계,여러 나라의 소식도 고종을 사로잡았다. 
  김옥균은 게다가 끊임없이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과 자립자강을 역설했다. 그래
서 그들을 개화당으로 부르기도 했고 독립당으로  부르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의 
원로 대신들이나 유림은 그들을  왜당의 무리라고 비판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으
나 고종은 별입시의 자격까지 주면서 그들을  총애했다. 그러나 이제는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민영익을 자격한 자는 일본인이라고 하옵니다.”
  “일본인?”
  “영익이 어두워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으나 이노우에 가쿠고로오라는 자로 추
측된다고 하옵니다.”
  “그 자는 한성순보를 안들 때 기술고문으로 들어온 자가 아니오?”
  “그러하옵니다. 일본의 낭인이라고 하옵니다..”
  “낭인?”
  “일본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자를 그렇게 부르고 있사옵
니다.”
  “고약한 놈이로군. 참 영익은 어떻게 지내고 있소?”
  “상처가 심하여 한때 명운이 경각에 달했으나 미국 공사관에 있는 선교사 알
렌이 치료를 하여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옵니다.”
  “그것 참 다행이구려.”
  고종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민영익은 묄렌도프에게 업혀서 그의 집으로 갔으나  상처가 몹시 심하였다. 묄
렌도프는 처음 민영익의 치료를  조선인 한의들에게 맡겼으나 칼에 맞은 자상이 
워낙 커서 한의들은 손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묄렌도프는 미국 
공사관에 들어와 있던 의사 겸 선교사인 알렌에게 구원 요청을 하였다.
  알렌은 기꺼이 달려와  민영익을 수술해 주었다. 민영익은 알렌에 의해  두 시
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다.
  “전하, 어ㅉ지 하시려옵니까?”
  “일본군이 보호하고 있는데 어찌 잡아올 수 있겠소?”
  “혹여 전하꼐서는 아직도 옥균을 총애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아니오. 나는 옥균이 싫소.”
  “전하, 옥균은 전하의 성교를  배신한 자이옵니다. 이런 자를 살려 두시면 큰 
화근이 되옵니다.”
  “......”
  “홍영식과 박영교를 보시옵소서.  그들은 전하를 위하여 제  목숨을 버렸사옵
니다.”
  “......”
  “홍순목 또한 자진하여 충성하는 절개를 보이지 않았사옵니까?”
  고종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는 막상 김옥균을 죽여야 한다는  여론이 분분
하자 김옥균을 살릭 싶은 생각이 일어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전하”
  민비는 집요했다.
  “옥균의 가장 큰 죄는 어가를 인천으로 끌고 가려고 한 것입니다.”
  “......”
  “만에 하나 그렇게 되었다면 전하께서는 종묘사직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옵니
다.”
  고종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옳은 말이었다. 고종이 김옥균 등의 뒤협에 굴복하
여 인천으로 끌려갔다면 상황으로 봐서  일본에 볼모로 잡혀 갈 수도 있는 일이
었다. 만약에 그렇게 되었다면  이 나라 종묘사직은 어떻게 되었을까, 고종은 그 
생각을 하자 비감했다.
  :처분이 있어야 하겠소.“
  고종이 한숨처럼 무겁게 내뱉았다. 고종은 이미  청나라의 요구로 외무독판 조
병호와 인천 감리  홍순학, 외무협판 묄렌도프를 시켜 김옥균 일행을  잡아 오라
고 지시하여  그들이 타케소에 공사와  인천에서 혐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이 삼엄하게 보호를 하고 있어서 김옥균을 체포하지 못하고 있었다.
  “타케소에 공사에게 칙서를 보내야 하옴니다.”
  “칙서?”
  “전하께서 친히 칙서를 내리시면 타케소에가 거부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아니 되오.”
  “전하.”
  “내가 칙서를 보내어 타케소에가  듣지 않으면 조선의 군주체면이 어떻게 되
겠소?”
  “허면 신첩이 보내겠사옵니다.”
  고종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민비가  친서를 보내면 타케소에가  따를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으나  아른아른 졸음이 쏟아져왔다. 밖에서는  바람소리 사이사
이에 수직을 하는 병사들이 순라를 도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2
  
  바람은 이튿날 아침이  되어도 매섭게 불었다. 민비는 아침 일찍  선전관 이필
주를 침전으로 불렀다.  선전관청은 고종 3년에 폐지되어 있었으나  시급한 왕명
을 전하기 위해 몇몇 무사들을 선전관에 임명하여 사사로이 부리고 있었다.
  “알겠느냐? 내 말을  한마디도 빠짐없이 외무독판 조병호와 외무협판 묄렌도
프에게 전해야 할 것이니라!”
  민비의 영은 추상 같았다.
  “예!”
  선전관 이필주는 고랑마루에  부복하여 대답했다. 민비의 얼굴에  서린 상화에 
몸이 떨렸다.
  “임오군란이 일어난 지 2년밖에 안 되었는데 김옥균 일당이 국와을 협박하는 
흉악한 역적질을 했으니 조선왕조  오백 년에 이토록 흉약무도한 역적은 일찍이 
없었다.
  이 교언영색은 할  줄 알았지 왕명이 추상열일한  것은 모르는 소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황공하옵니다.”
  “내가 오늘 왕명을 바로 세울 것이다! 선전관은 이 말을 반드시 전해라!”
  “명심하겠사옵니다..”
  이필주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 져서 머리를 더욱 깊숙히 조아렸다.
  “옥균을 비롯하여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을 반드시 잡아오너라!”
  “삼가 명을 받자옵니다.”
   “내금위는 듣거라!”
  민비의 목소리가 대조전을 찌렁찌렁 울렸다.
  “예!”
  병사들이 일제히 대답을  했다. 어느 틈에 내금위 무사들이 대조전  월대 아래 
빽빽라데 들어차 있었다.
  “너희들은 선전관을 호종하여 네 역적을 잡아오너라! 내가  그놈들의 간을 꺼
내 씹을 것이다!”
  내금위 무사들은 민비가 대령시킨 것이 분명했다.  선전관 이필주는 다리가 후
들후들 떨렸다.
  “예!”
  붉은 철릭을 휘날리는 내금위 무사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대답했다.
  “어서들 가라!”
  민비가 손을 내저으며 호통을 쳤다.
  “예!”
  내금위 무사들이 일제히 대답을  한 뒤 서둘러 고랑마루를 내려오는 이필주를 
에워싸고 대조전  뜰로 몰려 나갔다.  돈화문 앞에는 내금위에서  사용하는 말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피는 피로 씻어야 해......)
  민비는 야무지게 입술을 깨물었다. 김옥균, 박영효 등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생
각을 하면  치가 떨렸다. 무엇보다  대신들과 백성들이 임금을  임금같이 여기지 
않고 있는 것에 분통이  
터졌다.
  (왕명이 서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는 거야......)
  민비는 왕조의 앞날에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대신들이 어둥대고 백성들이 갈
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왕명이 제대로  서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비
의 기대와 달리 외무독판  조병호와 협판 욀렌도프는 인천에서 김옥균을 체포할 
수가 없었다.
  일본 우편선 천세환호가  인천에 도착한 것은 음력 10월 19일의  일이었다. 천
세환호에는 타케소에에게 보내는 일본 외무성의 훈령이 있었는데 그 훈령에는,
  “조선의 일본당을 선동하여 내란을  일으키는 것은 청군과의 마찰 우려가 있
으므로 불허한다.”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일은 이미 저질러진 뒤의 일
이었다. 타케소에는 일본 정부의 훈령을 기다리지  않고 김옥균등을 선동한 것을 
후회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제는 외무성의 문책을  기다리는 일밖에 
달이 할 일이 없었다.
  김옥균 등은 인천  영사의 호의에 의존항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타케
소에는 훈령 때문에 더욱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타케소에는 김옥균 등의 처리에 
고심하고 있었다.
  조병호와 묄렌도프는 조선  군사들을 풀어 일본 영사관과  거류지를 에워쌌다. 
거리와 골목에 군사들을 풀어  삼엄하게 기찰을 하는 한편 타케소에에게 김옥균 
등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아무래도 어선을 타고 도망을 쳐야 하겠소.“
  “어디로 도망치란 말이오?”
  “섬이든지 어디든지 도피를 하시오.”
  타케소에는 조병호와 묄렌도프의  요구가 집요해 지자 동요하기  시작했다. 김
옥균 등은 타케소에의 태도에 불안을 느꼈다.  타케소에가 선창에서 김옥균 등의 
신병을 묄렌도프에게 넘겨주기로 했다는 불길한 소문도 들렸다.
  “타케소에가 우리를 묄렌도프에게 넘길 모양이오.”
  김옥균은 박영효를 보고  우울한 눈빛으로 말했다. 큰 뜻을 품고  대사를 도모
하여 정권을 잡았으나 48시간, 3일 천하로  끝나고 비참한 망명길에 있는 자신의 
처지가 허망했다.
  “차라리 국왕전하를 호종하여 죽은 금석이 부러울 지경이오.”
  박영효가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 박영효는 한성에서  인천까지 밤을 새워 걸어
온 후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유력한 양반의 아들로 태어나  왕실의 부마도위가 
되어 온갖 호강을  누린 박영효였다. 한성에서 인천까지 피신을 할  때도 제대로 
걷지를 못해 동반들이 돌아가며 업다시피하여 인천까지 왔던 것이다.
  “금릉위께서 나 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후세의 사가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나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
다. 우리는 이 나라의 자립자강을 위해 혁명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일본을 믿은 것이 잘못입니다.”
  “애초에 일본을 끌어들인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우리의 힘이 미약하지 않습니까”
  “사가들은 분명히 그 점을 지적할 것입니다.”
  김옥균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도 일본을 끌어들인  것을 후회했으나 이미 어
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혁명도 실패하고 명분도  잃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만 아
팠다.
  “여러분들은 속히 천세환호로 피신할 준비를 하십시오.”
  그때 인천 영사 코바야시가 제일은행 지점장 키노시타의 집으로 달려왔다.
  “부슨 일입니까?”
  “경성에서 선전관이  내려와 공들의  신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왕비전하의 
엄명이라고 합니다.”
  “옹비가?”
  김옥균은 가슴이 묵지근하게 저려왔다.
  “어서 일본옷을 입고 피하십시오.”
  코바야시의 독촉에 김옥균의 일행은 서둘러 일본옷으로 갈아입고 일본군의 보
호를 받으며 천세환호로 달려갔다.  거리는 이미 조선군이 쫙 깔려 있었다. 그러
나 일본옷을 입고 머리까지 짧게 자른 김옥균의 일행을 기찰하지는 않았다.
  김옥균 일행은 무사히 천세환호에 올랐다. 그러나  그들이 천세환호에 탄 뒤에
도 묄렌도프의 신병 인도 요구는 걔속되었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은 조선국의 반란자들이니  우리에게 인도해 
주시오!”
  “우리는 그들을 인도할 수가 없소.”
  타케소에는 일단 묄렌도프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는 중전마마의 지엄한  명령입니다. 중전마마께서 보내신 선전관이  와 있
습니다.”
  “그들은 망명객입니다. 망명객을 보내 줄 수는 없습니다.”
  “공사, 공사가  그들을 보호하고 있으면 국제  관례상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귀국 정부에 엄중히 항의할 것입니다.”
  “일본과 조선에는 범인인도조약을  맺은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
인들을 인도할 의무가 없습니다.”
  “공사, 조선과 일본이 범인인도조약을 맺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의 국
사범을 숨기는 것은 외교관으로서 온당한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공사가 역적
들을 선동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리는 한편 
귀국 외무성에 항의 해서 공사를 문책하도록 하겠습니다.”
  묄렌도프는 완강했다. 타케소에는 묄렌도프의 말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목 협판은 말씀이 지나치지를 않소?”
  “공사는 조선에 복임한 뒤에 청국과 전쟁을 일으키려 했을 뿐 아니라 조선의 
내란을 선동했습니다. 이웃 나라의 외교관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선 정부가 범인들을 체포한다면 나로서는 막을  권리가 없소. 그러나 그들
을 우리 손으로 체포해서 넘겨줄 수는 없소.”
  타케소에는 묄렌도프의 요구가  강경하자 한 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옥균의 문제는 외교적인 분쟁을 야기시킬 것이  분명했다. 타케소에는 이미 외무
성의 훈령도 없는  상태에서 조선의 내란을 선동한 실책을 저지른  것이다. 본국
에 돌아가면 그것만으로도 면첵 사유가 된다.  그런데다가 김옥균의 망명 문제까
지 거론되게 되면 국제분쟁을  싫어하는 외무성으로부터 책임을 추궁받게 될 것
이다.
  “알았소. 그럼 우리가 군사들을 끌고 와서 체포해 가게쏘.”
  묄렌도프가 천세환호에서 하선했다.  타케소에는 그 틈에 김옥균  일행에게 재
빨리 통역관을 보냈다.
  “위험이 닥쳐 왔으니 여러분은 속히 하선하여 피신하십시오.”
  타케소에는 위험만은 피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김옥균 일행에게 미리 알
렸던 것이다. 김옥균 등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천세환호가 정박하고 잇는 부
두에는 조선군이 새카맣게  몰려와 있었다. 천세환호에서 내리기만  하면 조선군
에게 체포되어 느ㅡㅇ지처참의 참형을 받게 될  것이다. 능지처참은 한동안 실시
하지 않았었으나 대왕대비 조씨가  섭정을 하면서 서학군을 말살하기 위해 사용
했었다. 능지처참형은 머리, 양판, 양발, 몸뚱이의 순으로 찢어서 전국 각지에 보
내 백성들에게 구경시키는 형벌이었다  .대역죄인들에게 행하는 참혹한 형벌이었
다.
  “이렇게 된 이상 욕이나 남기지 맙시다.”
  “맞소. 우리 모두 자진합시다.”
  김옥균 등은 역적이 되어 처참하게 죽느니  깨끗이 자결하기로 결심했다. 그때 
천세환호의 선장 쓰지가 김옥균등의 자결을 만류하고 나왔다.
  “이 배에 조선의 혁명가들을 태운 것은 공사의 지시가 잇기도 했지만 무엇보
다도 우리 배의 선원들이 조선의 혁명가들을  존경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선
을 하면 조선군에게 잡혀가서 비참하게 죽을 것이 분명한데 하선을 하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육지에서의 일은 나에게 아무 권한이 없으나  배에서는 내
가 책임자입지다. 여러분들은 안심하고 숨어 잇으십시오.”
  스지 선장은 김옥균 일행을  배 밑창에 숨게 했다. 배 안의  승객들 중에 밀정
이 숨어들 우려도 있었고 기항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
다.
  쓰지 선장은 담력이  두둑한 사내였다. 타케소에가 김옥균  등을 묄렌도프에게 
인도하려 하자 단호히 거부했다.
  “각하께서는 어찌하여 이들이게 하선 명령을 내렸습니까?”
  “쓰지군. 조선  국왕과 왕비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그들을 퇴선시키도록 
하라.”
  “각하, 그들은 애국자들입니다. 애국자들을 호랑이굴로 보내는 것은 표리부동
한 일입니다.”
  “그들을 퇴선시키지 않으면 중대한 국제 분쟁이 야기된다!”
  “각하께서는 지금까지  이들을 도와서  조선에 내란을 일으켰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는 조선을 위한 일이 아니라 일본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인천의 거류
지에 있는 일본인들도 한결같이 이들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쓰지 선장의  단호한 말에 타케소에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때 묄렌도프가 
조선 군사들을 이끌고 갑판으로 달려오려고 하였다.  쓰지 선장은 재빨리 선원들
을 무장시켜 묄렌도프의 앞을 가로막았다. 
  “누구든지 나의  허락없이 갑판으로 올라오는 조선  병사가 잇다면 가차없이 
발사할 것이다!”
  묄렌도프는 주춤했다. 조선군 병사들도 통역을 통해  쓰지 선장의 말을 듣고는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였다.
  "배에서의 일은 나도 어쩔 수가 없소."
  묄렌도프가 타케소에에게  항의하자 타케소에도 시치미를  뚝뗐다. 묄렌도프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서 물러섰다. 조선군이 일본군과 맞설 수는 없었다.
  천세환호는 음역 10월 24일  인천항을 떠났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이 우여곡절 끝에 앞날이 가시밭길 같은 비참한 망명의 길에 오른 것이다.
  (돌아오리라, 반드시 돌아오리라...)
  김옥균은 점점 멀어지는  조선의 땅덩어리를 바라보며 통한의  눈물을 뿌렸다. 
앞일을 기약할 수  없는 망명길이 이제 그의  앞에 망망대해처럼 펼쳐지고 있었
다.
   3
  3일 천하, 갑신정변은 철저하게  실패한 혁명이었다. 김옥균은 정변의 실패 원
인이 일본의 배신에 있다고 강한 불만을 나타냈으나 정변은 처음부터 늑대를 몰
아내기 위해  호랑이를 끌어들이는 위험을  안고 있었고 대중적  기반도 없었다. 
국왕인 고종을 등에 업고 혁명을 일으키려 했으면서도 고종을 속인 것도 고종이 
결정적인 순간에 등을 돌리게 한 원인이 되었다.  물론 민비나 청군에 대한 과소
평가, 일본의 정책을 제대로 알지 못한것도 실패의 원인이었다.
  일본도 정변에 대한 자신들의  확고하지 못한 정책 때문이라고 스스로 지적했
다. 이때  일본 정부의 실권은  이토오히 로부미와 이노우에  가오루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조선에서 친일당(親日黨)이 정변을 준비하고 있고 일본 민간인들
인 고토오와 후쿠자와 유키치가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급히 타케소에를 
조선으로 돌려보내  일본 공사의 주도로  혁명(일본 쪽에서는 내란)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러나 일본 내각에서
도 반대하는 여론이 비등했다.
  "타케소에는 문관이다. 도저히 조선에서의  대사를 성공적으로 결행할 만한 인
물이 못 된다. 타케소에보다는 원산의  총영사마에다(前田)가 적임자다. 조선에서
의 대사는 마에다에게 맡겨야 한다."
  내각에서의 반대 의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오와 이노우에는 타케소에
를 믿고  조선에서의 대사를 주도하라는  밀명을 내렸던 것이다.  물론 청군과의 
일전을 벌여도 좋다는 내략까지 받았다.
  타케소에가 조선으로 돌아간 다음 상황이 다시  변했다. 청나라와 불란서의 전
쟁은 일본이 기대했던 것처럼 청나라에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일본은 청나라와
의 전쟁이  시기상조라는 위기감을 갖게 되었고  타케소에에게 내란을 선동하는 
것이 온당하지 못하다는 훈령을 황급히 보냈다. 그러나 그 훈령이 인천에
도착한것은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난 10월 19일의 일이었다.
 이 실패는 김옥균  또는 개화당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실패다. 일
본 정부는 정세를 잘못 판단했다.
  일본인들이 스스로 내린  갑신정변의 평가였다. 거사의 목적은  일본과 김옥균
이 달랐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하여 김옥균 등을 선동했으나  김옥균 등
은 일본의 힘을  빌어 조선의 독립과 개화를 쟁취하려는 야망이  있었다. 그러나 
외세를 끌어들여 외세로부터 독립한다는 모순된 발상으로 명분에 설득력이 없었
다.
  정변의 주모자들인 김옥균, 서광범, 서재필, 박영효  등은 기약할 수 없는 망명
길에 올랐고, 그 가족들은 체포되어 처형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 하면 
신분을 속이고 달아남으로써 3일 천하, 만 48시간의 정변은 끝이 났다.
  그러나 그 뒷처리가 남아 있었다. 음력  11월 1일 개화당 인사들을 연좌법으로 
처벌하라는 상소가 빗발치는데도 불구하고  관직 박탈의 관대한 처분을 내린 고
종과 민비는 11월  6일 청나라 북양제도 정여창이  군함 2척을 거느리고 남양부
(南陽府) 마산포(馬山浦)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정여창은 11월  8일 입경
(入京)하여 청군 진영으로 들어갔다.
  11월 13일엔 타케소에도 일본군 1개 소대를 이끌고 입경하여 갑신정변의 사후
처리에 대한 회담을 요구해 왔다. 조선에서는  외무독판 조병호와 협판 묄렌도프
를 협상에 임하도록 했다.
  같은 날  청나라에서는 오대휘(吳大徽)와 속창(續昌)이 병력  5백 명을 이끌고 
마산포에도착함으로써 정변 전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까지 합하여 청군은 4천 
명에 이르게 되었다.
  일본은 11월 14일 이노우에  가오루가 일본군 2개 대대를 이끌고 인천에 도착
했고 11월 18일  호위병 1개 대대를 이끌고 입경하여 국왕  알현을 요구했다. 고
종은 11월 21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이노우에를 접견했다.
  "오랫동안 흠모하던 전하의 존안을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전하와 전하
의 왕국에 무한한 발전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노우에는 노련한 외교관답게 고개를  숙여 의례적인 인사를 한 다음 고종을 
쳐다보았다. 고종이 앉은 어좌  뒤에 발이 하나 드리워져 있었고, 조선의 대신들
은 어좌 앞에서 양쪽으로 시립해 있었다.
  "원로에 고생이 많았고. 혹여 배멀미라도 하지 않았소?"
  고종의 목소리는 어눌하고 느릿느릿했다.
  "전하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에 즐거운 여행을 하였습니다. 회담이 잘 성사되어 
돌아갈 때도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과인도 대사가 돌아갈 때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라오."
  고종이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이토오 히로부미와 함께  일본조야를 장악하고 
있다는 이노웨가 이의로 깨끗한  중년신사의 풍모를 풍기고 있어서 고종은 흡족
했다.
  "국서는 받으셨습니까?"
  이노우에가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국서는 잘 받았소.  일본국 대황제가 친선과 우위를  보전하기 위하여 특별히 
대사를 파견했는데 우리도 계속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라고 있소. 의정부 외사부
와 함께 잘 토의할 것이오."
  "전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은 제가 우리 황제를 대리하여 왔기 때문에 전하와 
단독으로 회담을 하기를 원합니다."
  "단독으로 회담을?"
  고종은 얼굴을 찌푸렸다.  타케소에도 일본에서 돌아온 뒤에  단독회담을 원했
었다.
  "그렇습니다."
  노련한 외교관으로 정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던 이노우에의 얼굴 표정이 단호
해 졌다.
  "아니 되옵니다."
  "단독 담판은 아니 됩니다."
  대신들이 일제히 반대했다. 그러나 이노우에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있었
다.
  "전하. 이전의 회담이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오로지 전하에게 달려 있습니다. 
조선에서의 사변으로 일본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고종은 슬며시 발 뒤로 시선을 돌렸다. 발  뒤에서 민비가 낮게 기침을 한뒤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영상과 좌상, 그리고 외무 협판  목인덕과 통역만 남고 대신들은 잠시 물러가 
있으시오."
  고종의 어명이  내리자 대신들이 웅성거리며 낙선재에  마련된 어전을 물러갔
다.
  "전하."
  대신들이 물러가기를 기다렸다가 이노우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전하께서 저와 단독으로  담판을 하시든지 조선의 대신 하나를 시켜  전
하의 면전에서 담판을 하게 하든지 전하께서 결정해 주십시오."
  이노우에는 오만하게 조종을 위압했다. 고종은 얼굴빛이  창백해 지고 발 뒤에 
않아 있던 민비는 입술을 깨물고 몸을 떨었다. 
  "대사는 일본국 황제의 특파전권대사가 아니오? 귀국 황제께서 관인을  핍박해
도 좋다고 하였소?"
  "전하. 이번의 전란으로 일본은 공사관이 불에타고 부녀자들이 수십 명이나 조
선인들에게 겁탈을 당한 뒤 살해되었습니다. 이는  고금에 없는 야만적인 행위옵
니다."
  "담판이라 하였는데 어떤 담판을 말하는 것이오?"
  "조선은 일본에 대한 피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임오년의 전례를 다르려 함이오?"
  고종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임오년에도 하나부사 일본  공사로부터 모
욕을 받은 일이 있어다.
  "일본 정부의 요구는 공명정대한 것입니다."
  "저선은 정대하지 못하다는 말이오?"
  "그런 말씀은 아닙니다마는 조선에는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고종은 이노우에를 지그시 쏘아보았다. 김옥균 등이  일본과 손잡고 변란을 일
으킨 것은 그대들의 책임이 아닌가 하고 따지고 싶었으나 이를 물고 참았다.
  "전권대신을 임명하여 외사부에서 담판한다 하십시오."
  발 뒤에서 다시 낮은  기침소리가 들리고 민비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려왔
다. 고종의 러굴이 화창하게 펴졌다.
  "조선에서도 전권대신을 임명하여 대사와 협상하도록 하겠소."
  고종은 민비의 말을 듣고 그대로 이노우에게  말했다. 좌의정 김홍집이 얼굴을 
찌푸렸으나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지는 않았다. 영의정 심순택은 잠자코 있었다.
  "전하. 저는 본국에서 나라 일로  영일이 없으나 조선과 일본의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특별히 파견되었습니다. 병자년에 수교조약을  맺을 때 제가 바
로 그 조약을 체결한 대신입니다. 그때도  조선에서는 까닭없이 시일을 끌었는데 
이번에 전하의 면전에서 회담을 청하는 것은 속히 결속을 지으려는 것입니다."
  "임금 앞에서 외국 사신과 회담을 한 일이 전례가 있는가?"
  고종이 좌의정 김홍집에게 물었다. 김홍집이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다가 짧게 
끊어서 대답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옵니다."
  "대사, 대사가 청하는 것은 아국의 전례가 없는 일이오."
  "저는 일본을 대표하여 왔기 때문에 황제를 대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신 한 사람을 파견하여 전권을 주어 일을 처리하게 하겠소."
  "좋습니다. 그러면 내일부터 회담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사의 제안에 따르겠소."
  "전하, 제가 비밀회담을 원한 것은  이번에 오고간 문건들이 대부분 사실을 왜
곡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일본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즉시 돌아갈 것입니
다."
  "이번에 일어난  사건은 매우 불행한 일이어서  양국간에 오해의 소지가  많을 
것이오. 귀국에서 특별히  대사를 파견하여 회담하게 하였으니  공정하게 매듭이 
지어지리라고 보오."
  "온화한 전하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이노우에가 허리를  굽신하면서 내뱉았다. 통역을  통해 그 말을  들은 고종과 
민비는 얼굴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온화한 얼굴을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은 협
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력을 동원할  것이고, 무력을 동원하게  되면 고종의 
생명도 보장할 수 없다는 노골적인 협박인 것이다. 
  (일은 일본놈들이 저질러 놓고 이제와서 조선의 국왕을 협박해?)
  민비는 이노우에가 알현을 마치고 물러가자 가슴에서 불덩어리가 치밀고 올라
왔다.분노로 머리끝이 곧추서고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했다. 그러나 민비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일본 전권대사가 담판을 요구한 것은 일이 이전과는 다르다. 일본은 육전대를 
2개 대대나 끌고 조선땅에 들어와  있고 청나라는 4천 명의 정병이 조선땅에 와 
있다. 양쪽 나라의 군대를 당장 철수하게 해야  할 것이나 우리의 실정이 그렇지 
못한 것은 대신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좌의정 김홍집을 전권대신에 임명
하여 속히 협상을 매듭짓고 일본 군대를 철수하게 하라."
  고종은 좌의정 김홍집에게 일본과의 협상 책임을  맡겼다. 일본이 조선에 요구
한 것은 다섯 개 항목이었다.
  김홍집은 일본으로부터 요구 조항을 전달받아 고종에게  보고 했다. 그 자리에
는 민비도 동석해 있었다.
  "회담장의 분위기는 어떻소?"
  민비는 잔잔한 눈길로 김홍집에게 물었다.
  "회담장은 임오군란  때와 마찬가지로 일본군들이  삼엄하게 에워싸고  있습니
다."
  "그 자들이 하는 짓은 으레 군대를 동원하니 한심하기 짝이없지를 않소?"
  "섬나라 근성인가 하옵니다."
  "일은 왜당이 저질러 놓고 경에게 뒷마무리를 맡기니 민망하기 짝이 없소."
  고종이 김홍집을 위로했다.
  "황공하옵니다. 옥균 등이 재주는 비상하나 생각이 짧고 어리석어서 나라에 큰 
해독을 끼쳤사옵니다.."
  "그렇소. 내가 그들을 그렇게 총애했는데 기군망상하고 임금을  환롱(幻弄)했으
니 후회막급이오."
  고종은 진심으로  후회하는 표정을 지었다.  김홍집은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고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본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오?"
  "첫째가 조선에서 일본에 사신을 보내 사과하는 일이옵니다."
  "조선에서 일본에 사과를? 적반하장이지 않소?"
  "그러하옵니다."
  "옥균이 만고역적이 아닌가? 그럼 두번째는 무엇이오?"
  "이번에 살해된 일본인들의 유가족과  부상자들, 그리고 일본 상인들의 재산을 
약탈한 것을 보상하기 위하여 조선에서 11만원을 지불하라고 하였사옵니다."
  "점입가경이 아닌가?"
  고종은 깊게 탄식을 했다. 그러나 민비는 잠자고 듣고만 있었다.
  "세번째는 일본군 대위  이소바야시(磯林)를 살해한 범인을 조사  체포하여 엄
중하게 처벌하라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무엇이오?"
  "네번째는 일본 공사관을 새로 짓는 데 필요한 신축부지 제공과 건축비로 2만 
원을 지불하라고 하였습니다."
  "일본은 인두겁을 쓴 탐욕스러운 승냥이로구만......"
  "황공하옵니다."
  "다섯번째는 무엇이오?"
  "일본군의 주군지를 공사관 부근에 정해주고 임오 속약 제 5조에 근거하여 시
행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임오 속약 5조?"
  "임오 속약 5조에는  일본군의 병영 설치과 수리는  조선에서 맡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좌상. 우리로서는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 아니오?"
  "그러하옵니다."
  김홍집이 조용히 대답했다. 김홍집도 일본의 요구  조건을 받고는 아연하지 않
을 수 없었다.
  "일본이 이러한 조건을 내세우는 데는 그만한 연유가 있을 것이 아니오?"
  민비가 김홍집에게 하문했다.
  "그러하옵니다. 일본의 주장은 일본군이  전하의 친서를 받고 동원되어 전하를 
호위하여 이소바야시 대위를  비롯하여 4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므로 당연히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옵니다."
  "일본은 이번 사변을 선동하고 공모하지 않았소?"
  "하오나 저희 쪽에는 증거가 없사옵니다."
  "옥균의 죄가 하늘을 찌르고도 남소,  내 반드시 옥균을 죽여서 왕법의 무서움
을 보여 주고 말겠소."
  민비가 몸을 떨며 이를 갈았다.
  "좌상."
  "예, 중전마마."
  "경은 학문이 높고 인품이 고매하여 대소 신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있소. 또한 
물욕을 탐하지 않고 검소하기까지 하니  전하의 진정한 복심지신(腹心之臣)이 되
어 주시오."
  "황공하옵니다."
  "일본 전권대사가  군대를 끌고 와서 전하의  면전에서 협박을 하니  교아절치
(咬牙切齒) 할 일이오! 나는 궁중 아녀자에 지나지 않으나 10월의 사변만 행각하
면 괴악망측(怪惡罔測)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소."
  교아절치는 이를 갈 정도로  분하다는 뜻이고 괴악망측은 상리에 벗어나 괴악
하기 짝이 없다는 뜻이다. 민비가 김옥균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심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김홍집은 아무 대꾸도  하니 않았다. 김홍집도 김옥균 
등이 정변을 일으켰을 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이 망연자실했고 그 다음엔 피가 
역류하는 듯한 분노를 느꼈었다. 
  "부모를 죽게 한 원수나 임금을 죽게 한 원수는 불구대천의 원수요. 군자의 복
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고 햇으니 반드시  옥균을 죽여서 죄를 물어야 
하오."
  "황공하옵니다."
  "허나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세니 좌상은 속히 일본과 담판을 해서  일본군이 
조선땅에서 물러가게 하오."
  "명심하겠사옵니다."
  김홍집은 머리를 깊숙히  숙이고 어전을 물러나왔다. 날씨가 차가웠다. 김홍집
은 대궐의 담모퉁이를 돌아  돈화문을 나오면서 민비가 거의 편집광적으로 김옥
균을 증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홍집은 이튿날  이노우에 일본 전권대신을 만나  한성조약(漢城條約)을 체결
했다. 일본의 요구  조건을 그대로 수용한 조약이었으나 군대를 앞세운  일본 앞
에서 김홍집은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찍어야 했다. 11월 24일의 일이었다.
  김홍집은 우울했다.
  임오군란 때도 김홍집은 군란의  마무리를 위해 하나부사 일본 공사와 굴욕적
인 제물포조약과 임오 속약을  체결함으로써 무력한 조선의 현실에 울분을 느껴
야 했다.
  좌의정이라면 영의정  다음의 직책이었다.  영의정에 심순택이 있기는  했으나 
고루한 유학자일 뿐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김홍집은 정사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는 25세가  되던 고종 
4년(1867)에 문과에 급제한 이래 청관을 역임하고 제  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
오면서 조정의 신임을 획득하여 외교가로서 폭넓은 활동을 벌여 왔다.
  그의 지금 나이 42세. 좌의정의 벼슬은 파격적이라고 할 만 했다. 그리고 대원
군이 집정을 했을 때나 고종이  친정을 했을 때나 반대파로부터 경원을 당한 일
이 없었다. 나라에 큰 변란이 있을 때마다  오히려 김홍집은 탁월한 수습 능력을 
인정받았다.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벅차......)
  김홍집은 쓸쓸했다 일본과 청나라를  상대하여 조선을 개혁하는 일이 힘에 부
치기만 했다. 김옥균  등이 일본을 등에 업고 정변만 일으키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임금의 총애를 믿고 안하무인으로 날뛰지만  않았다면 이 나라는 점진
적으로 개화될 수 있지 않았을까.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은 조선의 개화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진퇴를 분명히 해야 돼......)
  김홍집은 사임할 결심을 했다. 그러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김홍집은 11월 27일 좌의정을 사임했다.
  "경은 조정에 출사한 이래  변란을 겪을 때마다 주선하여 나가고 교섭하는  일
에 힘을  다사다 보니 하루도 편안히  지낼 경황이 없었다. 지금  교외의 군사를 
철수시킨 형편이라  걱정되고 근심스러운 일이 아직도  허다하며 영원히 군색한 
마음을 품게  되는 대에 경을 버릴  수 없다. 그러나 예의로  대우하는 처지에서 
오래도록 어진 사람을 수고시킬  수 없기 때문에 좌의정의 벼슬을 사임하겠다는 
데 대하여  윤허한다. 경은 과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책임을  벗었다고 자처하지 
말고 날마다 나와서 영의정과  함께 협조하고 보좌해서 간고(艱苦: 어렵고 힘든)
한 시국을 바로 잡을 것이다."
  고종은 김홍집을 위로하는  비답을 내라고 한직인 판중추부사에  임명했다. 이
어서 11월 30일  특별 윤음을 내려 자신의  정치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모든 정사를 의정부에 위임하였다.  
                                   4 
  조선은 한성조약 제1조에  다라 12월 21일에 특파대신에 서상우(徐相雨), 부사
신에 묄렌도프를 임명하여 일본에 보냈다. 갑신정변에  대한 진주사로 일본에 파
견한 것이었으나 묄렌도프는 일본에  도착하여 김옥균 등을 조선에 인도해 주기
를 요구하는 한편 서상우도 모르게 주일 러시아 공사를 만나 러시아가 청나라와 
일본의 침략행위로부터 조선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러시아는 적극적
으로 찬성하고 한성에서 한로밀약(韓露密約)을 체결할 것을 합의했다.
  "러시아로부터 조선이 보호를 받아야 한단 말이오?"
  민비는 묄뢴도프가 귀국하여 보고를 하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하옵니다. 전에도 늘 상주하여  아뢰었으나 일본과 청나라가 가장 두려워
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러시아입니다."
  "여우를 피하여 도망가려다가 호랑이굴에 빠질까 염려되오."
  민비는 묄렌도프의 제안이 그다지 탐탁하지 않게 생각되지 않았다.
  "조선 속담에 호랑이 등에 업혀 있어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날 길이  있다
고 하였습니다."
  "러시아가 조선을 보호해 줄 까닭이 없지 않소?"
  "러시아는 부동항이라고 하여 얼지 않는 항구를 원하고 있사옵니다."
  "부동항?"
  "러시아는 조선의 항구 하나를 조차할 것을 원합니다."
  "항구든 무엇이든 영토를 조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오."  
  "중전마마, 조선은 지금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일청 양국의  군대가 조
선보다 더 많이 한성에 많이 몰려와 있으니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신이 러시
아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일청 양국을 견제한 다음 
조선을 부국강병하게 하여 조선의 독립을 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민비는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외세를 자꾸  조선에 끌어들이는 것은 썩 내
키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궁궐은  평화를 찾았으나 이리와 승냥
이에게 둘러쌓인  평화었다. 언제 그들이 사나운  이빨과 발톱을 꺼낼 지  알 수 
없었다.
  "중전마마, 신을  믿어 주시옵소서. 심이 약한  나라는 이이제이(以夷制夷)하여 
나라를 보전하는 법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러한 계략이  흔하게 쓰이고 
있사옵니다."
  묄렌도프는 민비를 설득하려고 애를 썼다. 
  "글쎄......"
  민비는 망설이는 듯한 태도였다.
  "중전마마."
  묄렌도프가 다시 재촉했다.
  "정히 그러면 추진하시오."
  "중전마마께서 주상전하의 내락을 받아야 하옵니다."
  "알겠소."
  민비는 선선히  대꾸했다. 확실히 일청  양국은 군대를 서로  파견하여 조선을 
위협하고 있었다. 마치 조선이라는 고깃덩어리를 놓고  서로 먼저 뜯어 먹으려는 
탐욕스러운 짐승들 같았다.
  "러시아의 보호를 요청한다는 말이오?"
  민비의 얘기를 들은 고종도 뜨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종은 일청 양국의 각
축만 해도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러시아가 일본과 청나라를  견제하는 사이에 조선을 부국강병하게 하자는  계
책이옵니다."
  민비는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고종을 설득했다. 고종은 처음에는  뜨악한 표정
을 짓다가 민비의 설득이 계속되자 마침내 윤허를 내리고 말았다. 
  묄렌도프의 제안을 받은 러시아는  비밀리에 주일 러시아 공사관 서기관 스페
이에르를 조선에 파견했다.
  그러나 제1차  한로밀약은 외무독판 김윤식이  스페이에르 서기관이 신임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조인을 거부함으로써 큰 파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청
일 양국은 격렬하게 반발했고 조선은 궁색한 변명을 거듭했다.
  묄렌도프는 청일 양국으로부터  조선을 떠나라는 압력을 받게  되었다. 러시아
는 청일 양국에  가장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에  조선이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은 결사적으로 막아야 할 입장에 있었다.
  (김윤식이 내 일을 방해하는군......)
  민비는 대조전에 앉아서 한로밀약설로  긴장된 청일 양국과 조선의 관계를 수
습했다. 그러는 가운데 1885년이  되었고, 1876년 말의 대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
던 경복궁의 수리가  끝나자 고종과 민비는 경복궁으로 이어했다.  1885년 1월이
었다.
  일본은 1885년 천진조약(天津條約)을  이홍장과 체결했다. 일본 측에서 이토오 
히로부미가, 청나라에서는 이홍장이 서명했다. 
       1. 청국과 일본국은  조선에 주둔하는 모든 군대를 4개월  이내에 철수한
다.
       1. 조선국왕에게 권고하여  군사를 조련하게 하되 일.청 양국은 참여하지 
않는다.
    1. 조선에  중대한 사태가 발생하여 군대를  파병할 때는 그에  앞서 문서로 
합의하여야 하며, 그 사태가 진정되면 즉시 철수하여야 한다.
  3월 4일의 일이었다. 이에 앞서 조선의 남쪽  섬 거문도가 영국 해군에 점령되
는 미증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그 일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
다가 북경주재 대리  공사인 오코너의 조회문(각서)을 받고서야 겨우  알게 되어 
큰 소동이 일어났다.
  황제가 임명한 대영국 대리대사로서  조선과 교섭하는 일을 맡고 있는 오코너
는 대조선 외무대신에게 각서를 보냅니다.
  본 대사는 지금  본국에서 공문을 받았는 바  거기에는 뜻밖에 일어날 사태에 
대응하기 위하여  본국은 이미 본국의  수사관(제독)에게 대조선국 남쪽의  작은 
섬인 거문도를 점령하게  하였으므로 이를 통지하라 하였습니다.  대영국이 조선
국의 거문도를 점령한 것은 일시적인 일에 지나지 않고 조선국과 우의를 버리고
자 하는 뜻이 전혀 없으므로 조선국은 이해하기 바랍니다.
  오코너의 조회문을 받은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무도할 수가 있느냐?”
  민비는 가슴을 쳤다. 그러나  분하기는 해도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거문도
는 전라남도  흥양반도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여수와 제주의  중간에 있어서 
나룻배나 돛단배를 타고 가서 추궁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일본과 청나라도 바짝  긴장했다. 조선에 사신을 보내 영국에 항의할  것을 권
고하는 한편 영국의 진의를 파악하기에 분주했다.  그 와중에서 영국과 러시아가 
아프카니스탄 문제로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프카니스탄은 아시
아의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러시아가 일찍부터 눈독
을 들이고 있다가  1885년 2월 침입, 아프카니스탄과 전쟁을  벌임으로써 러시아
의 남진정책에 공포를 느끼고 있던 유럽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표면적인 이유는 아프카니스탄의 분쟁이었으
나 내막은 1884년 한로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러시아가 원산항의 사용권을 얻어 
남진할 움직임을 보임으로써  비롯된 것이었다.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하자 러시
아도 함대를 영흥만에  보내 영국과 러시아가 대립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
홍장의 주선으로 영국함대는 1887년 거문도에서 철수했다.
  일본은 조선이 친로정책을 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자 활발히 방해 공작에 
나섰다. 러시아의 남진은 일본으로서도 치명적인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일본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는  이홍장에게 서신을 보내 조선을 일청 양국의 
보호하에 둘 것을 제안했다. 「한정감찰의 방책」이라는 이름의 변법 8개조였다.
  1. 조선에  대한 정책은 모두 최고  비밀의 절차이므로 항상  이홍장과 본인이 
협의하여 이홍장이 시행한다.
  2. 조선  국왕이 내궁에서 친히 정무를  보는 것을 금지하고  내관들의 권세를 
제거하여 정무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한다.
  3.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을 골라 그에게 정무를 위임하고, 그의 인사 문
제에 있어서는 국왕이  이홍장의 승인을 받도록 한다. 여기서 말한  가장 뛰어난 
인물은 김홍집,김윤식,어윤중 같은 사람이다. 
  4. 이런 인물에게 위임할 정무는 외교,군사,재정을 첫째로 한다.
  5. 가능한 한 묄렌도프를 물러나게 하고 후임은 미국인으로 한다.
  6. 진수당은 학문에 조예가 깊으나 재능이 부족하니 다른 유력자로 대치한다.
  7. 진수당의 후임자를  이홍장이 임명하고 미국인을 조선 정부에  천거한 뒤에
는 그 사람을 일본에 보내 본인을 면회하게 한다.
  8. 진수당의 후임자는  경성 주재 일본 공사와 깊은 교분을  맺고 매사를 협의
하여 처리한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제안은 이홍장에 의해  깨끗이 거부되었다. 이홍장이 청
나라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러한 제안을 승낙하리라는 것은 이노우에의 오
판이었다.
  일본은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하여 가상의 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청나
라와 연합하여  조선을 보호하에 두려고 했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일본의 대조선  정책은 러시아가 등장함으로써 청나라에  양보하면서 조
선에서의 일본의 지위만은 유지해야 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러시아가 과연 강하기는 강한 나라인 모양이구나.”
  천진조약에서 일본이 청나라에 밀리는 것을  본 민비는 체한 것이 뚫린 듯 시
원했다.
  “러시아는 유럽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고 하옵니다. 땅덩어리만 해도 미국,청
나라와 함께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하옵니다.”
  민영익이 부복하여 대답했다.  갑신정변이 일어나던 10월 17일, 우정총국 낙성
식 축하연에서 일본 자객으로부터  불의의 습격을 받아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던 
민영익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문후차 별입시하여 민비와 한가롭게 정담을 나
누고 있는 것이다.
  민영익은 지난 해 12월 25일 상소를 올려 전하의 시측지신으로 마땅히 변사가 
일어났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가 전하를 구출하여야 했으나 그러지 못하여 
송구한 마음뿐이고 아버지의 거상중이므로  벼슬을 할 수 없으니 사임시켜 달라
고 청하였다. 고종은 민영익의  사직 상소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 민비도 민영익
의 상소문을 읽으며 울었다.
  “상소문의 내용이 서글프고 측은하여 끝까지 다  읽지 못하였다. 경의 집안에
서 여러 번 화를 겪은 것은 경의 집안 일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라를 위하여 환
난을 받은 것이다. 온갖 시련을 겪은 뒤에  경만이 외롭게 살아 남았으니 이것은 
바로 하늘의 의사가 경의 집안을 보존해서 우국충정케 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가닥 충성스러운 일념으로 병상에서 신음하고 있으면서도 나라를 걱정하고 있
으니 내 마음이 후련하다.
  우영사의 벼슬을 사임한 문제는 예투로 사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우
선 제의대로 시행할  것이다. 경은 안심하고 몸조리를 하여 빨리  회복해서 나의 
마음을 위로할 것이다.”
  고종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비답을  내렸다. 3개월 전의 일이었다. 고종은 민
영익이 다시 완치되자 다시 우영사를 제수했다.
  “헌데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것이 토끼굴에 호랑이를 끌어들이는 것처럼 불안
하게만 생각되는구나.”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가장 유용합니다.”
  “미국은 어떠냐?”
  “미국이 큰 나리이기는 하나 조선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청나라는 일본을 견제하지 못하겠느냐?”
  “청나라는 일본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양병을  한 군대는 벌써 청나
라 군대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난감한 문제로구나. 청나라에게  조선이 사대의 예를 바치고  조공을 바치고 
있기는 하였으나 내정에 간섭을  받지 않았었는데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도 예전
과 같지 않으니....”
  “그러하옵니다. 땅이 작고 조그만 나라인 조선에  외국이 물밀듯이 밀고 들어
와 잇속을 채우려고 하는  것은 청나라가 섬나라인 일본보다도 약해졌기 때문이
옵니다.”
  “그렇고 말고....”
  민비는 한숨을  쉬고 한쪽 무릎을  세웠다. 민비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봄이었다. 밖의 날씨는 화창했다. 갑신정변이 지나고 을유년에 찾아온 봄도 여
느 해와 다름없이  대궐을 꽃향기로 진동하게 했다. 고종과 민비는  음력 1월 17
일 경복궁으로 환어했다. 갑신정변의 악몽을 떨쳐  버리려는 의도도 있었고 외국 
공사들의 알현이 빈번해 지면서 왕부의 위엄을 보이려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
  “청나라에서는 지금 대원군을 환국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하옵니다.”
  민영익이 머뭇거리다가 민비의 눈치를 살피며 아뢰었다.
  “대원군을?”
  민비가 깜짝 놀라서 민영익을 쳐다보았다.
  “천진조약에 의해 청군과  일본군은 조선에서 철수해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지. 그거야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냐?”
   “이홍장은 청군이 철수한 뒤에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인물로 대원군을 꼽
고 있는 듯합니다.”
  “대원군은 일본을 생리적으로 싫어해. 그러나 일본을  싫어하는 것이 어디 대
원군뿐이라더냐? 전하나 나도 일본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신이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작금의 실정으로 따지면 청나라도 조선에는 백해무익한 존재일 뿐이야.....”
  “그러하옵니다.”
  민비가 다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즈음 들어 한숨이 많아진 민비였다.
  “대원군이 돌아오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민영익이 민비의 파리한 얼굴을 살피며 아뢰었다.
  “어떻게?”
  “대원군이 돌아오면 운변 인물들이 또 기승을 부릴 것이 아니옵니까? 대원군 
쪽에서도 우리 민문에 사원이 많을 것이옵니다.”
  “사원이야 많겠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지가 3년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대원군은 우리가 술책을 부려 청나라에 나포되어 간 것으로 알고 있을 테니 
환국하면 반드시 우리 민문의 씨를 말리려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하겠느냐? 청나라에  주청사를 보내 대원군을 돌려보내지 
말라고 사정이라도 하라는 말이냐?”
  민비의 눈빛이 새침해 졌다.
  “무엇인가 대책이 있어야 하겠기에 아뢰는 말씀입니다.”
  “부질없는 짓이다. 이홍장이 결정을 하였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
  “그것보다 조정을 혁신한 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청나라와 일본은 무엄
하게도 전하께서 정무를 친재하시는  것을 방해하여 의정부에 그 일을 맡기라고 
하고 있다. 국왕의  존재를 유명무실하게 하려는 계책이나 이 나라가  누구의 것
인지 모르는 무식한  일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너는 김홍집,어윤중,김윤식 같은 
인재들이 국왕을 배신하지 않도록 각별히 살펴야 할 것이다.”
  “예.”
  “지금 조선에는  온통 외국 군대뿐이다.  조선의 군사는 지난  해의 정변으로 
오합지졸이 되었고 장수들도 믿을 수가 없는  처지다. 전하의 옥체를 호위하여야 
할 군사들조차 왜당에 가입하여 지난 난리에 청군이 동원되지 않았느냐?”
  “그러하옵니다.”
  “왕궁을 호위할 충성스러운 군사들이 필요해.”
  “허면 새로 조련해야 하옵니다.”
  “믿을 만한 장수가 있느냐?”
  “평안감사 민응식 대감에게 맡기시옵소서.”
  “그렇지. 민응식 대감이면 근위 군사를 조련할 수 있을 게야.”
  민응식은 민비가 충주 장호원에 피신해 있을 때 민비를 보호해 주어서 벼락출
세를 하게 된  인물이었다. 민응식에 대한 민비의 신임이 각별해  먼 척족인데도 
세도가 만만치 않았다.
  “그만 돌아가도록 해라.”
  민비는 민영익을 교태전에서 물러가게 했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
다. 대궐은 조용했다. 민비는 턱을 무릎에  받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대원군
이 환국한다는 소문은  1년 전부터 흘러나와 민비를 긴장시키곤  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헛소문이라는 것이 밝혀져 민비는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다르리라고 생각했다. 대원군의 환국은  조선을 둘러싼 
정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대원군이 돌아온 뒤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고 생각했다.
  민비의 예측은 정확했다. 5월이 되자 청나라에 가 있던 이재면이 돌아왔다. 이
재면은 대원군을 환국시킬 테니  석방 진주사를 파견하라는 이홍장의 자문을 고
종에게 바쳤다.
  (볼모로 잡아갈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환국을 애걸하라는  진주사를 보내라고 
해?)
  민비는 부아가 끓어  올랐다. 청나라는 대원군을 환국시키면서도  체면을 차리
고 있었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민비는 청나라에 대한 신뢰가 또다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종은 중국에  가는 사신이 있을 때마다 대원
군을 환국시켜 달라는 자문을 청나라 황제와  이홍장에게 보냈었다. 조선은 유교
를 숭상하는 나라였다.  고종도 부모에 대해 효도를 바쳐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박혀 있었다.
  “중전 어찌해야 되겠소?”
  고종이 침울한 눈빛으로 민비의 의향을 물었다.
  “당연히 진주사를 보내셔야 할 것이옵니다.”
  “아버님이 돌아오면 풍파가 많을 텐데 그 점이 걱정스럽소.”
  “풍파라 하심은 저희 민문에  닥칠지도 모를 위험을 말씀하시는 뜻으로 압니
다만 과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옵니다.”
  “무슨 계책이 있소?”
  “지난 10년 동안 저희 민문은 까닭없이 수모를 당하기 일쑤였고 억울하게 죽
은 자도 허다합니다.  그러잖아도 손이 귀한 민문 아닙니까? 이제  남은 것은 영
익이와 지난 번에  전하께서 공조참판을 제수하신 영환이뿐입니다.  나머지는 신
첩의 친정붙이라고 해도 먼 일가입니다. 설마하니  아버님께서 아무리 사원이 깊
다고 해도 저희 민문의 씨를 말리기야 하겠습니까?”
  민비의 목소리가 처연해서 고종은 가슴이 저렸다.  그러나 6월 11일 고종은 석
방 진주사로 민종묵과 조병식을 파견했다. 청나라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민비
가 반대를 해도파견할 수밖에 없었다.
  청나라에서는 6월  12일 주  천진대원(공사역할)인 남정철을 조선에  돌려보내 
묄렌도프를 해임하도록 권고했다. 묄렌도프는 청나라에  의해 6월 16일 외무협판
에서 해임되고 7월 26일에 해관총세무사 직에서 해임되었다.
  민종묵과 조병식은  청나라에 도착하자 예정된 수순에  의해 보정부에 유폐된 
대원군의 환국을 예부에  바쳤다. 청나라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원군의 환국
을 허락했다.
  이홍장은 원세개와 총병 왕영승을  호환위원에 임명했다. 원세개에는 주자조선
총리교섭통상사의 라는 긴 직책이 새로 주어졌다.  조선에 대한 감국의 직책이었
다.
  민비는 대원군의  환국이 구체화되자  민영익을 청나라에 파견했다.  민영익은 
거상중인데도 고종이 우영사의 직책을  다시 맡겼으나 사임하고 민비의 명을 따
라 이재면과 함께  청나라에 가서 대원군을 만났다. 민비의 친선  사절단인 셈이
었다.
  “저하. 그동안 고초가 크셨사옵니다.”
  민영익은 대원군에게 배례를  올리고 대원군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대원군
도 이제는 늙어 있었다. 턱 밑으로 은빛 수염이 가지런했다. 그러나 눈빛은 여전
히 날카롭고 매서웠다.
  “민문도 풍파가 심하다고 들었네.”
  대원군이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민영익을 위로했다. 대원군의  뒤에서는 앳
된 청국 여인이 한가롭게 오엽선(부채)을 흔들고 있었다. 전족을 하여 허리가 버
들가지처럼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민문의 업보라 사료되옵니다.”
  민영익의 대답이 처연했다.
  “자객이 왜인이었다지?”
  대원군의 눈길이 민영익의  얼굴에 있는 칼자국에 멎었다. 오른쪽 눈  밑의 길
게 찢어져 있는 칼자국이 흉칙해 보였다.
  “그러하옵니다.”
  “왜인의 발호가 큰 화근이 될 게야.”
  대원군이 혀를 찼다. 민영익은 대꾸하지 않았다. 
  “중전마마께서 안부를 전하라 하셨사옵니다.”
  “중전은 여전하신가?”
  대원군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얼굴은 온화한 빛을 띠고 있었다. 3년 
동안 보정부에 유폐되어 있으면서 수양이 깊어진 모양이었다.
  “중전마마께서는 늘 시름에 잠겨 계시옵니다.”
  “무슨 일로?”
  “나라에 변란이 끊이지를 않고... 세자저하께서 우환이 자주 계시옵니다.”
  “그래?”
  대원군의 얼굴빛이 흐려졌다. 세자는 대원군에게 친손자가 되는 것이다.
  “해서 중전마마는 의화군마마와 준용 도령을 각별히 살피고 계시옵니다.”
  “.....!”
  대원군은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이 얼떨떨했다.  중전 민비가 의화군과 이준용
을 각별히 살피고 있다는 것은  왕통이 의화군이나 이준용에게 옮겨 갈 수도 있
다는 의미인 것이다.
  (세자가 왕도를 펴지 못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대원군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민영익의 말은  대원군에게 화해를 청하는 뜻
을 내포하고 있기도  했다. 대원군이 이준용을 유난히 사랑하는 것을  민비도 알
고 있었고, 세자에게  변이 생기면 의화군이나 이준용에게 왕통을 잇게  할 터이
니 환국하더라도 잠자코 있어 달라는 뜻인 것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서로를 죽일 듯이 반목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원군은 때늦은 후회를 했다.
  “중전마마께서 새우젓을 보내 오셨습니다.”
  민영익이 다시 말했다.
  “허허.... 늙은 시아버지를 생각하는 중전의 마음이 갸륵하군.”
  대원군이 입술을 비틀며  공허하게 웃었다. 대원군은 보정부에 3년  동안 유폐
되어 있으면서 중국의 음식이 맞지 않아 조선에서 새우젓과 김치를 가져다가 먹
었는데 민비가 그 사실을  알고 새우젓을  보내온 것이다. 역시  지난 날의 은원
을 잊고 화해하자는 뜻이 담겨 있는 선물이었다.
  (경륜이 높은 분이니 이만하면 중전마마의 뜻을 알아 들으시겠지...)
  민영익은 대원군에게 하직 인사를 올렸다.
  이튿날 민영익은 이홍장을 만난  뒤 상해를 경유하여 홍콩으로 떠나는 여행길
에 오르고  대원군은 북양함대 소속의  비호,진해 두 함정편으로  귀국길에 오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1) 갑신정변의 여파로  일본에 귀국한 타케소에 공사는 평생동안 관리에  임명
되지 못한다는 처벌을 받는다.
  2) 묄렌도프는 한로밀약설로  청일 양국의 미움을 받아서 조선의 관직에서  해
임되어 중국으로 돌아가 1901년 하문에서 사거한다.
  3) 한로밀약서에서의 보호는  을사보호조약처럼 침략의 전단계인 보호를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제34장
    3국 시대
    1
  깃발이 무수히 펄럭거렸다.  악대는 진군 나팔이라도 불듯이  우렁차게 주악을 
울렸다. 대청제국의 하북성 천진.
  기치창검이 늘어선 천진항 부두에  청군들의 삼엄한 가마 속에 호화로운 가마 
한 채가 나타났다. 연도에는 주민들이 구름처럼  운집해 있고 북양함대를 상징하
는 붉은 깃발들이 불이라도 뿜을 듯이강렬하게 나부꼈다.
  날씨는 쾌청했다. 음력  8월 23일. 이미 중추절을  여드레 지난 천진의 날씨도 
차고 맑기만 했다.
  “어서 오십시오. 태공.”
  가마가 멎자 원세개와 왕영승, 정여창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대원군이 호화
로운 가마에서 내렸다. 
  “수고가 많소이다.”
  대원군은 가볍게 대꾸했다.  청나라 군사들이 빽빽하게 도열해  있었으나 대원
군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있었다.
  (역시 조선의 태공이야...)
  원세개는 마음 속으로 감탄했다. 이홍장이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하
여 양성한  해군들이니만큼 청나라  제일의 정병들이었다. 대원군은  사열이라도 
하듯이 북양함대 소속의 수군들을 살폈으나 당당하고 오연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습니다. 순풍을 만나면 스무닷새  날에는 조선의 인천에 도
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여창의 말이었다.
  “정 대인에게 수고를 끼치게 되었소.”
  대원군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3년 만의 환국이니 기쁘실 것입니다.”
  원세개가 아첨의 빛을 띠고 말했다. 원세개는  약관 26세의 나이인데도 의기가 
날카로운 인물이었다. 대원군은 원세개를 볼 때마다  조선에도 저런 인물이 있었
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함대에 오르십시오.”
  대원군은 원세개의 안내를  받으며 진해호에 올랐다. 대원군은  감개가 무량했
다. 기억하기조차 싫은 임오년  7월 13일. 달도 뜨지 않은 캄캄한 밤에 청군에게 
납치되어 청나라  보정부로 끌려간 지 어느덧  3년, 처음엔 살아서  돌아갈 수도 
없으려니 여겼었다. 그때 얼마나 비분강개했던가, 얼마나 이를 갈고 몸을 떨었던
가...
  대원군은 눈시울이 젖어 오는  것을 느꼈다. 이제 그의 나이 66세였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벗어나 세사를 덤덤하게 관망하자고 마음 속에 몇 번이나 다짐을 했
으나 가슴 깊은 곳에서 회한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진해호와 비호호가 천진항을 떠난 것은 그날 늦은 오후의 일이었다.
  천진항은 바다에서  1백여리 떨어진 하북성의 평야지대에  있었다. 바닷물이운
하를 따라  천진항까지 들어오기 때문에  군함까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다. 
북운하로 대청제국의 수도인  북경과 연결되고 남운하로 덕주,  동운하로 발해만
의 대고항까지 연결되는 하북성 수로의 중심지였다.
  대원군은 진해호 갑판에서 살같이  지나가는 운하 양쪽의 육지를 감회어린 표
정으로 살폈다. 중국이라고 해도  산천은 다를 바가 없었다. 누렇게 고개를 숙인 
들판과 단풍이 들어 추색이 완연한 산, 가을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농부들, 청천
하늘, 광대한 땅... 그러나  중국도 이권을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서양 여러 
나라의 각축과 서태후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민란이 끊이지를 
않고 조정은 부패해 있었다.
  원세개가 다시 대원군  옆에 와서 말을 붙였다. 대원군은 흘낏  원세개를 쳐다
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원세개는  황색 관복에 양모를 쓰고 있었다. 이마는 훤
하고 눈빛이 형형해 연부역강한 기개를 엿볼 수 있었다.
  (장차 중국을 움직일 인물이로군...)
  대원군은 원세개에게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조선의 사정은 많이 변해 있습니다.”
  “어떻게요?”
"조선도 외세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세상이 서양 오랑캐의 세상이니 조선도 어쩔수 없는 노릇이지요."
대원군은 원세개의 말을 가볍게 튕겼다.
"조선은 갑자기 인아배청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아배청?"
대원군은 이맛살을 찌푸리는  시늉을 했다.조선이 인아배청 정책을  추진하고 있
다면 청나라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일 것이다.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처
럼 위태로운 처지에 몰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홍집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홍집이야 총명한 정치가지......"
"대가 약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갖출 수는 없소이다."
"김홍집이 일본을 견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외다."
"일본이야 귀국에서 견제해야 하지 않소?"
"일본이 강해졌습니다.  우리 대청제국은  일본과 교전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
다."
원세개가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그것이 귀국의 정책인가요?"
"그렇습니다.일본은 개명한 나라입니다."
"귀국도 개명하면 되지 않소?"
"개명이 쉽지가 않습니다.조정은  커녕 인민들조차 개명을 반대하고  있습니다.인
민들은 새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대원군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문득 자신이  섭정을 하고 있었을  때 쇄국정책을 
버리고 외국에  문호를 개방했으면 조선이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불란서와는 신부 아홉 명을 죽인  일이 있어서 문호를 개방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미국과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학의 박해가 일을 꼬이게 만든 거야......)
대원군은 후회를  했다. 지금은 서학을 박멸하자고  주장하던 대신들,정원용,조두
순,김병학 등이 모두 죽고 없었다.
"조선에서는 왕비의 내정 간섭이 극심하다고 하옵니다."
"왕비는 조선의 국모입니다."
"국왕과 대신들이 정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왕비는 국왕을 보필하고 있을 뿐입니다."
대원군은 민비를 두둔했다.원세개로서는 뜻밖이었으나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대원군은 음력 8월 25일 인천에 도착했다.
진해호의 선상에서 원세개와 국제정세에  대한 토론도 하고 조선의 장래에 대한 
얘기도 나누었으나  대원군은 고국땅을 밟자 천만  감회가 가슴속에서 꿈뜰거렸
다.그러나 인천에는 대원군을  마중 나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대원군은 가슴을 
예리한 칼로 저며내는  듯한 아픔을 참아야 했다.이럴수가 있는가,명색이 국왕의 
생부인 내가 돌아왔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  대원군은 고국산천에 대한 감회보다 
분노로 인해 몸을 떨었다.70객의 노구인데도 대원군의 분노는 식을 줄을 몰랐다.
"저하.먼저 청국 공사관으로 가시지요."
원세개는 대원군의 안전을 위해 인천에 있는 청국 공관으로 안내를 했다.
"조선에 내가 돌아온 것을 알려야 하오."
"전보로 조선 조정에 알리겠습니다."
대원군은 묵묵히 원세개를  따라 청나라 공관으로 갔다.가슴이 답답했다. 자신이 
돌아온 것을 조선에서 모를 수도 있으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사나운 심사가 
풀리지 않았다.
(이는 분명히 악돌한 소부의 짓이야!)
대원군은 민비를 머리 속에 떠올렸다.민비가 민영익을  시켜 화해 제의를 했으면
서도 냉대를 한다고 생각하자 심사가 뒤틀렸다.
원세개의 전보에 의해 대원군이 환국했다는 소식이 조정에 전해진 것은 그날 늦
은 오후의 일이었다.고종은 황급히 중신들을 편전으로 불러들였다.
"지금들으니 대원군이 인천에 환국했다고 한다. 기쁜 마음을 어떻게 형용하여 말
할 수 있겠는가.서둘러 도승지를 보내 문안하고 오도록 할 것이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야."
민영익의 보고를 받은 민비는 담담했다.
인천에 있는 청국 공관에는 그날 밤 인천부사와 경기감사가 차례로 찾아와 문안
인사를 했다. 대원군은 그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26일 고종은 대원군을 영접하는 대신에 경기감사를 임명하고 각 영의 군사를 각
각 20명씩 선발하여  영관들이 인솔하여 호위하게 하였다.고종이  대원군을 영접
하는 장소는 남대문으로 정하여 악차를 세우게 하였다.
오후에 시원임대신과  의금부 당상관,좌우포도대장들이  알현을 요청했다.영의정 
심순택,판부사 김홍집,김병시,의금부 판사 심이택,  지사 이교익,의금부 동지 윤성
진,심동신,좌변포도 대장 정락용,우변포도 대장 이종건 등이었다.
"대원군이 며칠 안으로 입경한다고 하니 기쁜 아음을 금할수가 없소."
고종은 먼저 대원군에 대한 자신의 효성을 은근히 강조했다.
"전하께서 안타깝게 사모하는 마음이  갈수록 간절하고 신 등도 늘 마음속에  두
고 잊지 않았는데 지금 입경한다는 기별을 받았으니 신하된 자로서 기쁨을 금할 
수 없습니다.먼저 사람을 보내어 자세히 알아 보셨습니까?"
영의정 심순택도 대원군의 환국이 달갑지 않았으나 반기는 시늉을 했다.
"영접하는 절차는 잘 진행이 되고 있다고 하오."
"참 다행한 일입니다. 모두가 전하의 지극하신 요성 덕분이가 하옵니다."
"지금 전보를 받은 것에 의하면 원세개가 오는데 총병 왕영승이 함께 온다고  하
오.왕영승은 오  제독의 부하라고 하는데 김  판부사는 이전에 만나 본  일이 있
소?"
"신이 오 제독의 군영세서  그 부하를 여럿 보았으나 왕씨 성을 가진 부하는  본 
일이 없습니다."
김홍집이 대답을 했다.
"아침에 접견을 했는데 경들이 또 알현을 청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요?"
고종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영의정 심순택에게 물었다.심순택이 낮게  기침을 한 
뒤에 얼굴빛을 바로 했다.
"신 등이 포도청에서  제의한 사항을 보니 두  죄인이 범한 죄는 동서고금에 그 
유례가 없는 흉악한  역적죄입니다.그들이 법을 모면하고 도망다니고  있는 것에 
대해 온 나랄 사람들이 통분해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포도청에서 이들을 체포하
여 조사하고 있으니 추국청을 설치하고 엄하게 신문해서 중벌로 다스려야 할 것
이옵니다."
"두 죄인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이요?"
"임오군란의 흉적 김춘영과 이영식입니다."
"그들을 포도청에서 체포하였소?"
고종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스스로 포도청을 찾아와서 체포하게 되었습니다."
"연전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리오.그런데 처벌을 모면한 흉악한 범인
이 어떻게 스스로 찾아와서 체포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소."
"조를 진 것은 끝내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심순택의 대답이었다.그러나 김춘영,이영식이 포도청에 자수를 한 것은 대원군이 
환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원군이 자신들을  구해 주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2년 
남짓 포졸들의 기찰을 피해 숨어 사는데 지치기도 했지만 대원군이 돌아온 이상 
자신들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판부사 김홍집과 김병시도 추국청을 설치할 것을 제의했다.
"포도청에 갇혀있는 죄인  김춘영과 이영식을 의금부를 시켜 잡아다가  중죄인을 
하옥하는 남간에 가둘 것이다."
고종은 단호하게 영을 내렸다.
"대궐에서 죄인을 신문하되 신문관은 판부사 김홍집으로 하고 추국청은  3군부에 
설치하라!"
고종의 명이 떨어지자 그날로 3군부 안에 추국청이 설치되고 김춘영과 이영식을 
끌어다가 가혹한 신문을 하기 시작했다.
"김춘영과 이영식이 포도청에 자수를 했다고?"
뒤늦게 소식을 들은 민비는 깜짝 놀랐다.
"그러하옵니다."
"공교롭기도 하지.그 역적들이 왜 하필이면 이때 자수를 한단 말이냐?"
민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대전 내시가 추국청까지  설치했다고 하였으
므로 달리 손을 쓰지 않았다.
그러한 와중에도 대원군을 영접하기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대원군이 환국한다는 
말이 도성에 파다하게 퍼져 도성을 뒤숭숭하게  하였다.대원군이 섭정을 할 때는 
등을 돌리고 있던 민심이  그가 청나라에 유폐되었다가 환국함으로써 다시 돌아
오고 있었다.
이튿날도 날씨는 맑았다.대원군은  청국 북양수군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양화
진을 지나 입경했다.연도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어 대원군의 입경 행렬
을 구경했다.
고종은 아침 일찍 남대문에 설치한 악차로 나아갔다.
대원군은 가마에서 내려  남대문을 걸어 들어와 악차로  들어갔다.황금색 곤룡포
를 입은 고종이 황급히 어좌에서 일어나 대원군에게 절을 했다.
"아버님."
고종의 목쇠가 떨렸다.눈길은 애써 대원군의 얼굴을 피하고 있었다.
"주상.내가 돌아왔소."
대원군은 가슴이 뭉클했다.자신도 모르게 노안에서 두  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버님.소자의 불충을 꾸짖어  주시옵소서.낯설고 물설은 이국에서 얼마나  고초
가 크셨사옵니까?
"주상이 무슨 죄가 있겠소?"
대원군의 대꾸는 퉁명스러웠다.국왕이자  아들인 고종에 대한 원념이  가득찬 목
소리였다.
"어서 좌정하시옵소서."
"주상께서 먼저 어좌에 앉으십시오."
고종과 대원군은 서로 사양하다가  나라히 좌정하고 뒤이어 조정 중신들의 영접
례가 시작되었다.영의정  심순택을 비롯하여 판부사  김병시,김홍집 등이 차례로 
절을 올리고 치하의 인사를 했다.대원군은 묵묵히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영접례가 파하자  고종과 대원군은  비로소 헤어져 고종은  경복궁으로,대원군은 
구름재의 운현궁으로 돌아갔다.
"대감마님!"
"대감마님!"
운현궁은 울음바다가 되었다.대원군이  청나라에 유폐되어 있을 때는  숨조차 제
대로 쉬지 못했던 대원군의  하인들이며 계집종들이었다.대원군의 자비가 운현궁
의 골목에 이르자 무릎을 꿇고 울음을 터뜨렸다.
"저하!"
"저하.감축드리옵니다!"
운변 인물들도 다투어  대원군에게 인사를 올렸다.대원군은 착잡한  시선으로 그
들을 훑어보고는 대문으로  향했다.3층 솟을 대문 앞에 부대부인  민씨가 학처럼 
서 있었다.곱게 늙은 얼굴이었다.대원군은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 왔다.
"부인!"
"대감!"
부대부인의 얼굴에서 한 줄기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초가 많으셨소."
대원군은 위로의 말을 던지며 부인의 손을 덥썩 잡았다.
"제가 무슨  고생을 했겠습니까?  멀리 이국땅에 유폐되신  대감께서 고생을 했
지....."
"어서 듭시다."
대원군이 먼저 내당으로  들었다.3년 만에 안방에 좌정을 하자  소ㅈ자 이준용이 
들어와 절을 올렸다.
"네가 준용이로구나!"
대원군은 손자 이준용을  보자 반색을 했다.이준용은 이재면의  아들로 1870년에 
태어났으니 15세였다.홍안의 미소년이었다.
"할아버님,원로에 얼마나 고초가 크셨사옵니까?"
"네가 이렇게 큰 것을 보니 할애비도 기쁘구나."
대원군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반가움을 표시했다.이준용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대원군이었다.이준용이 태워나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무릎에 
앉히고 귀여워했던  대원군이었다.대원군은 손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억눌러 
참았다.
청나라에서도 이준용의 소식만 들으면 생기가 돌던 대원군이었다.
확실히 이준용은 총명한  데가 있었다.고종의 어릴 때와 비교해 보면  더욱 두르
러지는 총명이었다.게다가 국왕인  고종이 갖추지 못한 패기와  담대함까지 갖추
고 있었다.
(이 녀석이 왕통을 이을 세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대원군은 이준용을 앉혀  놓고 그런생각을 했다. 세자는 병약했고,무엇보다 우유
부단한 국왕과 표독한 독부의 소생이라는 사실이 대원군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대원군은 이튿날부터 종친들과 외교  사절들을 찾아다니며 환국인사를 했다.척화
를 부르짖던 대원군으로서는 놀라운 변화였다.
그러나 대원군이 활발한 귀국인사 겸 정치를 재개하고 있을 때 대궐에서는 피바
람이 불어 오고  있었다.3군부 안에 설치된 추국청은 전에 없는  가혹한 고문 끝
에 김춘영과 이영식에게 사지를 찢어 죽이는 사형에 처한다는 판결을 내려 승인
을 요구했다.고종은 의금부의 판결을 그대로 승인했다.
김춘영과 이영식은 8월 28일 군기시앞에서 능지처참형에 처해졌다.
김춘영은 임오군란때 대궐까지 쳐들어갔던 주동자였다.2년  남짓 용케 피해 다녔
으나 이날 그의 몸은 여섯 토막으로  분시되었다.대원군을 호종했던 역관 김병문
도 체포되었다.8월  28일과 29일 이틀  동안에만 임오군란과  관련되어 처형당한 
죄인들은 30명이나 되었다.
"아이고 끔찍해라.종로 바닥이 온통 시체뿐이래."
"여섯 토막으로 잘라 죽였다며?"
"임오난리를 일으킨 역적들이래."
"설마?"
"사실은 임오 난리 때  역적질한 사람들은 둘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대원군의 
수족들이래.중전 민비가 그들을 죽이라고 시켰대."
"중전마마가?"
"그래서 사람들이 악독한 소부라구 그런대잖아."
성안에는 피비린내와 함께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그런나 민비는  민심을 들을 
길이 없었다.고종도 세간에서 나도는  소문을 듣지 못햇다.8월 26일 설치한 추국
청은 나흘 만인 8월 28일 거두었다.
9월 10일 예조에서는 대원군을 높이 받든다는 핑계로 의식절차를 대신들과 토의
하고 별지에 써서  들여 보냈다.모두 10개 항목이었으나 그 중에  사람들을 기절
초풍하게 한 것은 4개 항목이었다.

  1.대문 밖에 하마비를 세운다.
  
  1.대문에 차단봉을 설치한다.

  1. 대문은 습독관들이 윤번제로 수직을 선다.

  1.조정 대신들은 지시를 전달하는 일 외에 감히 개인으로 만날 수 없다.

철저한 연금책이었으며  감시였다.대원군은 차라리  허탈했다.눈에서는 피눈물이 
솟아나올 것 같았으나 운현궁에서 두문불출할 수밖에 없었다.
대원군의 풍모는 여전해서  달변인데다 교제가 능란해져 있었다.두  차례나 나와 
면담을 했는데 국정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였다.그러나  외국과의 교제
는 국가대사와 관련이 있으므로 잘 추진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의외로 대
원군은 개명해져 있었다.
타케소에의 후임으로 부임한 일본 대리공사 곤도 신스케의 촌평이었다.
태공이 환국한 다음날부터 이틀동안  살해당한 자가 30여 인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으며,그들 모두가 임오군란의 연루자라고  한다. 그러나 그 진위는 알 수 없으
며 그들은 지난 6월에 체포되었는데 태공이 귀국하자 처단함으로써 세상을 놀라
게 하였다.태공은 그 이후 폐문거객하게 되었다.
진수당이 이홍장에게 보고한  내용이었다.폐문거객은 문을 닫아 걸고  손님을 받
지 않는다는 뜻이다.

                                  2

대궐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1885년 가을이었다.1885년은 조선은 통신업무에 
획기적인 변화가 온  해였다.8월 20일 한성전보총국을 개국한 조선은  경인간 전
신업무를 8월  25일 개시했고 평양이  9월 28일,의주가 10월  18일에 전신업무를 
개시하였다.경인간을  서로전선,경인간을  북로전선이라고  불렀는데 남로전선은 
1888년에야 준공되었다.
서로전선과 북로전선은 청나라에 의해,남로전선은  일본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추
진되었다.
대원군이 환국했을 때 인천에서 환국했다는 소식을 전보로 알린 것도 서로 전선
에 의해서였다.
1885년은 러시아의  주 조선 대리공사 겸  총영사인 카를웨베르가 부임함으로써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3국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이 무렵  한로밀약설이 다
시 터져 나왔는데 그것의 발단은 일본에 망명중인 김옥균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
었다.일본에 망명한 김옥균 등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집에서 환대를 받으며 지냈
으나 그의 집에 오랫동안 머물  수가 없어서 교바시구 간야마치에 방을 얻어 분
가했다.
이 무렵 후쿠자와 유키치는 조선에 대해 통렬한 비난을 했다.
"오늘날 생각컨데  우리 날라(일본)에게는  이웃나라(조선)가 개명하기를 기대할 
만한 시간이  없다.악우와 친하게 지내는 자는  함께 악명을 면할수 없다.우리는 
마음으로부터 아시아 동방의 악우를 사절한다."
1885년 3월 16(양력)지지신보에  실린 탈아론의 골자였다.5개월 후인 8월 13일자
에는 비난까지 서슴치 않았다.
사설의 제목은<조선 인민을 위해 그 나라의 멸망을 축하한다>였다.
"타국 군대에 멸망된다면 망국의 백성으로 크게 기쁠리는 없지만 전도에  희망이 
없는 고경 속에서  평생을 내외의 치욕속에서 죽게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강대 
문명국의 보호를 받아 다만 생명과 재산만이라도 안전하게 한다면 불행 중 다행
일 것이다."
지지신보 사설의 골자였다.이 사설 때문에 지지신보는  발행 정지명령을 받아 속
편격인<대세상 조선의 멸망은 피할 수 없다>는 게재되지 못했다.
김옥균은 이때 암살의  위협에 처해 있었다.원세개은 고종에게  김옥균의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고,고종의 밀명을  받은 민응식은 장은규에게 김옥균의  암살을 지
시했다.
장은규는 의화군을 낳은 궁녀 장씨의 동생이었다.장  상궁은 민비에 의해 대궐에
서 내쫓겼으나 왕실  여인이었다.게다가 고종의 소생인 의화군까지  있어서 언젠
가는 대궐에서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국적인 김옥균을 암살하면 
민비의 신임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장은규는 막대한 암살 자금을 받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오베에 여관을 정
하고 김옥균 암살의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장은규가 일본에 있을 때 오오사카  사건이 터졌다.오오사카 사건은 오이 
켄타로,아라이 쇼고등 일본 자유당의 장사들이 조선의  정부 전복을 목적으로 도
한을 음모한 사건이었다.장은규는 일본에서 이 정보를 입수,김옥균의 차병침입설
(일본군을 빌려서  조선을 침략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을 조선에  제보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장은규는 김옥균이 일본의 자유당계 인물들과 음모하여 강화도를 침범하고 도성
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정보를 민응식에게 보냈던 것이다.
조선 조정은 장은규의 보고를 받고 동요하기  시작했다.장은규의 보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김옥균이 강화 유수인 이재원에게  밀서를 보냈고,이재원이 그의 음
모를 염탐하기 위해 회신을  보냈더니 장은규의 제보와 다름없는 침략음모가 전
달되었다는 소문까지 흉흉하게 나돌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연말이 되자 일본에서 코바야시와  오이,아라이의 의옥사건이 
터져 장은규의 보고를  뒷받침했다.소문은 날개가 돋친 듯이 퍼져 나갔다.민심이 
동요되어 무장한 일본군이 폭탄을  싣고 조선에 잠입했다는 소문에서부터,인천에 
정박중인 일본군함 금강호의  수군들이 자유당에 매수되었다는 소문까지 일본과 
조선에 파다하게 나돌았다.주일  청국 공사 서승조는 이러한  사실을 이홍장에게 
알리고 이홍장으로  하여금 조선 해안을 철통같이  지키라는 엄명을 원세개에게 
내리게 했다.원세개는 부랴부랴  청군과 조선군을 동원하여 해안의  경비에 나섰
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더니......)
민비는 기가 찼다.김옥균은  일본으로 도망을 가서도 끈질기게  조선을 괴롭히고 
있었다.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죽은 뒤에까지  사마중달을 괴롭힌 것처럼 김옥균은 
일본에서까지 정권 탈취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김옥균을 반드시 죽여 없애
서 화근을 제거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일본 정부에서도 사건이  확대되자 조사에 나섰다.일본은 조선에  경찰관을 파견
하여 거류민들을 조사하고 돌아갔다.일본은  갑신정변의 실패로 대외적인 위신이 
크게 실추되었다.타케소에 공사에게는  평생 동안 관리에 임용되지  못한다는 판
결을 내리고 이노우에 가쿠고로오는  재판에 회부했다.후쿠자와 유키치는 증인으
로 소환되었다.
김옥균과 자유당 낭인들의 조선침략 음모는 일본내 의옥사건
으로 결말이 났다. 그러나  이 사건은 조선 조정을 러시아 쪽에  더욱 기울게 하
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김옥균에게 계속 암살범이 찾아가는 결과를 만들었
다.
  조선은 두번째 자객으로  지운영을 파견했다. 일본과 조선은  서상우와 묄렌도
프가 진주사로 일본에 파견되었을 때 김옥균을 인도하지 않는 대신 김옥균을 암
살해도 간섭하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의 밀약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지운영은 김옥균의 암살에  실패하고, 김옥균에게 나포되어 민응식으로
부터 김옥균의 암살을 명령받았다는 사실을 털어 놓게 되었다.
  김옥균은 일본에서 고종에게 애절한 상소문을 올렸다.
  ‘신 김옥균 황공하여 돈수백배하고 주상전하께 아뢰옵니다. 신이 미충(변변치 
못한 생각)을 말씀드려 성덕을  펴고자 한 지 오래였으나 천의가 진노하여  장차 
과격의 일이 있으리라 함을 듣고, 시기가 없었으므로 오늘에 이르렀나이다.
  그런데 근경(요즈음)에 이르러 지운영이란 자가 돌연히 일본에 와서 말하기를, 
대군주(국왕)의 특명을 받아 전권포적대사로 대래하였으니, 만약 나를 위하여 역
적 김옥균을 주륙하여 주면  성공한 후 5일을 기하여 금 5쳔원을  줄 것이다, 하
고 일본인들에게 소문을  내고 다녀 신은 경악함을  마지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
다. 복유(엎드려 생각함)하건대 전하께오서는 지운영 무리가 군명을 칭하고 이런 
말을 퍼뜨리고 다니면 전하의 성덕을 상하지 아니 하리라고 보십니까? 지운영이 
휴대한 위임장은 과연 전하께서 친수한 것이옵니까? 신은 이를 알지 못하겠나이
다.’
  고중과 민비는 김옥균의  상소문을 대하자 얼굴빛이 파랗게  질렸다. 김옥균의 
상소문은 처음부터 고종을 비난하는 말투로 시작되고 있었다.
  ‘전하께서 신에게 역적의 이름을  붙일진대 신이 어떠한 죄를 지었기에 그렇
게 하시나이까? 요유(조용히  생각함)하건대 이것은 전하의 성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반드시 간신도배의 입에서 나온 것이  분명한즉 전하는 총명하신 군주라 
설사 간신들이 참무(거짓  무고)를 날조하여도 성명을 가리우지 못할  줄을 알기 
때문에 신은 다언(여러 말)을 필요로 하지 않나이다.
  우리의 민족(민비 일파)은  현불소(어질지 못함)를 불문하고 신중(지나치게 믿
음)하여 고굉(팔다리)과 복심(심복)을  삼은 지 2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능히  전
하의 성의를 헤아려 생민을 윤택하게 하는 정치를 편 자가 몇이나 되오이까? 다
수는 나라를 파는 죄인으로, 가타는 청국에 국권을  넘겨 주자고 하는 자도 있으
며 허다의 죄는 일일이 논할 수가 없나이다. 더욱이 간신이 곤전(민비)의 총애를 
받고 감히 성명을 가려 국사를 깨뜨리고자 하는 자또한 적지 아니하외다.’
  민비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김옥균의  상소문은 민비까지 싸잡아 비
난하고 있었다.
  (이 역적놈이 이제는 전하와 나까지 이간질을 해? )
  민비는 눈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김옥균의 상소는 계속  이어지고 있
었다.
  ‘신이 우매할지라도 청국이 크므로 우리와  순치(입술과 이처럼 밀접한 사이)
의 관계에 있는데 이를 멀리하는  것이 득책이 아닌 줄은 아오나 전하의 간신은 
원세개등과 같은 무식의 무리와  결당하여 국사를 어지럽히니 이것은 신이 좌시
할 수 없나이다.
  신이 다년간 견문에 의하여 전하께 주상한 바가 있사온데 전하께서는 이를 기
억하시나이까? 그 뜻은 오늘 우리나라의 병폐인  양반을 삼제(베어 버림)하는 데 
있나이다.’
  이번엔 고종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고종은 아무 말  없이 김옥
균의 상소문을 읽어갔다.
  ‘대원군은 원래 전하의 형세를 잘 알지 못해 쇄국정책을 폈으나 이를 회오하
여 민심을 잡을  것이 분명하니 원컨대 잠시나마 대원군에게 위하여,  국가의 전
권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대원군이  전처럼 과실이 있게  되면 전하께서 
주권을 휘하여 스스로 이를 광정하는 것이 위급을 구하는 방책일까 하나이다.’
  김옥균의 상소는 대원군을 다시 섭정의 자리에  앉게 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갑신정변의 주역들을 다시 불러  주십사하는 읍소로 바뀌고 
있었다.
  ‘비록 신과 같이 난을 해외에서  피하는 자 10여 인이 이미 충성직실한 자이
오니 전하께서 이를 본국에 소환하여 채용하여 정사를 맡기오면 다른 날 국가의 
일을 할 만함을  신이 보하는 비로소이다.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의 3인은 연방
소장하고 또 충성스럽고 곤란을 경력하여, 능히  외국의 사정을 관찰한 자이오니 
전하께서 속히 이를  소환하사 이를 신임하시면 곧  국가의 동량이 되리니 전하 
각국의 누가 전하의 성덕을 찬양하지 아니하리까? 신을 처함에 이르러서는 오직 
무실의 죄명을 소제하면 곧 전하의 공론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겠나이다.
  신은 천지에 맹세하여  다시 영총(임금의 은총)을 그리는 마음이  없사오니 전
하께서 진실로 이를 지득하시고 또 장갑복, 지운영  무리와 같은 자는 사형에 처
함을 불요하나이다. 그들이 비록 대죄가 없는 것은 아니나 당초부터 기극(기회와 
틈)을 얻지 못하게 하였으면  그들이 어찌 능히 성총을 고혹하게 하였으며  성덕
에 누를 끼칠 수 있었겠나이까? 원컨대 전하는 천부의 인애로 신의 우매한 직언
을 용납하여 주시기를 천만 번 엎드려 앙망하나이다.’
  끝 구절은 자신들을 복권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고종과 민비는 김옥균의 상소
문을 다 읽고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김옥균의 상소문을 되씹어 보기 위해서
였다. 얼핏 보면 김옥균의 상소문은 우국충정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김
옥균의 자유당 낭인들의 조선 침략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해명이 없었다.
  “어찌 생각하오? ”
  고종의 눈이 민비의 얼굴을 더듬었다.
  “김옥균의 죄는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
  민비는 단호하게 내뱉았다.  고종은 민비의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김옥균의 상소문은 오연했다. 아직도 자신만이 조선을 개혁할 수 있고 
자신만이 충신열사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김옥균은 일본인들의 조선침략설에 아무 해명도 없습니다. ”
  “ ... ”
  “일본인들이 조선을 얼마나 업신여기고 있으면 낭인 무리들까지 조선을 치러 
가자고 작당을 하겠습니까? ”
  “ ... ”
  “게댜가 변란이 있을  때마다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군대를 몰고  오지 않나... 
일본인들의 교활한 얼굴만 생각해도 신첩은 몸서리가 처집니다. ”
  고종은 끌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이 없었다.  고종도 이노우에로부터 면전에 협
박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청나라 원세개의 오만한 태도도 싫었다. 김옥균
의 상소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 통상을 하여 나라를 
부흥시키는 길밖에 대책이 없었다. 그러나 역적의  말을 따르는 것이 고종으로서
는 꺼림칙했다.
  “지운영을 일본에서 압송한다는데 어찌하는 것이 좋겠소? ”
  “지운영은 국위를 실추시킨 인물입니다.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것입니다. ”
  고종은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민비의 야멸찬 말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나 
가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하”
  “치자에게는 위엄이  있어야 하옵니다.  김옥균의 문제가 일본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김옥균의 인도를  다시 한번 요구하고 잔당들도 소탕해야 할 것
이옵니다. ”
  “잔당들? ”
  “조선에서도 그 잔당들이 있을 것입니다. ”
  “역적이라면 뿌리를 뽑아야지... ”
  고종이 단호하게 대꾸를 했다. 이로 인해 신기선, 이도재, 경광국, 홍진유, 안종
수, 안영수 등이 먼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갑신정변의 연루자
로 부사 이재석과 대사간 허직의 상소로 탄핵을 받게 되었다.
  “러시아에게 보호를 요청하자는 목 참판의 주장은 어찌 생각하오? ?
  86년이 되면서  고종은 민비의 의견을  묻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묄렌도프는 
청나라와 일본에 의해  해임되었으나 아직도 조선에 머무르고  있었다. 원세개가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기 시작하자  민비를 움직여 러시아를 끌어들일 계책을 세
우고 있었다. 독일과  미국은 조선의 내정에 관심이 없었고 청나라와  일본이 조
선을 좌지우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묄렌도프는 궁여지책으로 일본에서 실패
한 한로밀약을 다시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장일단이 있을 것으로  아옵니다. 지금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에서 이권을 
챙기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
  “러시아라고 해서 조선에서 이권을 챙기려고 하지 않겠소? 일본이 교활한 승
냥이라면 청나라는 미욱한 곰이요, 러시아는 붉은 늑대일 것이오. ”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
  “허면 중전이 추진해 보시오. ”
  고종은 러시아로부터 보호를  받는 문제를 민비에게 일임했다.  민비는 러시아 
공사의 부인인 웨베르 부인을 자주 접견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신첩이 처리하겠습니다. ”
  이튿날 민비는 묄렌도프와 웨베르 공사 부부를  불렀다. 웨베르 부부가 민비를 
알현하는 자리에는 러시아어를 잘하는 통역관 채현식이 배석했다.
  건청궁의 알현실에는 커피향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조선에 커피와  홍차가 본
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1890년 경부터이지만 미국을  비롯한 영국, 독일 공사들이 
부임하면서 커피와 홍차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들이 궁중에 선물로 진상을 하
게 되어 궁중에서는 민간보다 훨씬 먼저 보편화되었던 것이다.
  “조선과 러시아는 사사로운 은원도 없고 웨베르 공사가 부임한 이래 더욱 친
근하게 지내고 있소. ”
  먼저 민비가 말문을  열었다. 웨베르 공사 부부는 의자에 앉아  있고 채현식은 
시립해 있었다. 민비는 그들보다 높은 단 위의 벨벳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모두가 왕비 전하의 지극한 보살핌 때문인가 하옵니다. ”
웨베르 공사가 의례적인 인사를 했다.
  “공사가 알다시피 조선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소. 청나라와  일본이 군사
들을 끌고와서 내정까지 좌우하려고 하니 만고에 없던 일이오. ”
  “ ... ”
  “해서 조선은 러시아로부터 보호를 받고자 하오. ”
  웨베르 공사는 자기  귀를 의심하고 싶을 정도였다. 민비의 말은  어투가 완곡
하긴 해도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문제였다.
  “우리는 연로협약을 맺고자 하오. ”
  “연로협약이라 하오시면... ? ”
  “공사도 알다시피 청나라와  일본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에는 조선이 힘이 
너무 약하오. 조선이 자립자강할 때까지 러시아에서  외침을 방어해 주었으면 하
오. ”
  “조선은 스스로 청나라의 속국으로 안주하고 있지 않습니까? ”
  “조선이 청나라를 상국으로 모시고 있는  것은 큰 나라와 전쟁을 하여 이 강
토를 피로 적시지 않으려는 고육책이었소. 청나라  또한 조선을 속방이라 여기고
는 있었으나 내정에  간섭을 한일은 없었소. 혹자는 청나라와 조선의  이런 관계
를 종주국과 속국이라고 하고 있으나 기실은 청나라에 명분을 주고 조선은 실리
를 취했을 뿐이오. 지난  2백 년 동안 조선은 외교, 국방,  내정 모두 자주적으로 
처리하였소. ”
  웨베르 공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민비의 지적은 타당한 것이었다. 청나라에
서는 2백 년 동안 조선의 자주권을 인정해  왔던 것이다. 청나라가 간섭을 한 것
은 국왕의 등극,  왕비 책봉, 세자 책봉에 관한 것들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
들도 대부분 조선의 요구를 수용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임오군란, 갑신정변으로 이어지는  변란이 일어나면서 청나라는 군대를 
파견했고 조선의 내정을  노골적으로 간섭하고 있었다. 원세개는  대궐까지 가마
를 타고 들어와  민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각국 공사들과의 연회가 있으면 
상석을 차지하려고 하여 각국 공사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민비가 인아거청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청나라와 일본 틈바구니
에서 살아남으려는 처절한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종주국인 청나라가 일본을 견
제하기는커녕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는 데 급급한  현실을 탈피하려는 항청책인 
것이다.
  “국왕 전하께서 국서로 보내 주시면 러시아는 기꺼이 조선을 돕겠습니다. ”
  “고맙소. ”
  민비는 큰 짐을 던 듯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3
  날씨는 금방이라도 빗발을 뿌릴 듯이 찌푸퉁했다.
  대원군은 조신하게 앉아서 먹을  가는 계집종을 힐끗 쳐다본뒤에 아소당의 외
원으로 다시  시선을 보냈다. 바람결이  시원하고 축축한 물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면 남쪽 어디쯤에서 비가 오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외원의 정원수들
도 살매 들린듯이 검푸른 빛으로 살랑거리고 있었다.
  (벌써 가을인가? )
  대원군은 알이 제법  굵어진 대추나무를 보며 몸이  떨리는 듯한 한기를 느꼈
다. 그러나 한기를 피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기가 느껴지는 것은 날
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춥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되었다. "
대원군은 계집종에게 물러가라는  눈짓을 했다. 눈치빠른 계집종이  조신하게 몸
을 일으켜  뒷걸음질로 아소당을 물러갔다.  그러나 대원군은 붓을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외원만  넋을 잃은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모처럼 난을  칠 생각이었으
나 막상 먹을 갈아 놓자 선뜻 붓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화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조정이 커다란 풍파에 휘말려 있었다. 민비의  주도로 추진된 한로밀약이 원세
개에게 탐지되어 청나라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 있었다.
  민비는 죽산 부사 조존두, 내무주사 김가진,  김학우, 전양묵 같은 인물들을 내
세워 웨베르와 협의하게 하였다.
  민비가 민응식이나 민영식을 내세우지  않고 비교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벼
슬아치들을 내세운 것은 정치적인 감각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들의 예비교섭은 빠르게 진행되어  며칠 전인 7월 9일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논의가 되고 7월 10일엔  영의정 심순택이 러시아의 원조와 보호를 요청하는 국
서를 전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제는 조선이 큰  나라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종사를 유지해 나갈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단 말인가? )
  대원군은 탄식을 했다. 고종의 친정으로 정사에서 손을  뗀 지 벌써 13년이 지
난 것이다. 대원군이 섭정을 하던 시절, 공식적으로는 정사를 협찬하던 시절이지
만 외국인들이 조선땅에  발을 들여 놓은 일이 없었다. 병인양요는  양헌수 장군
이 격파했고 신미양요는 이재연  장군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조선을 지켰던 것
이다.
  (왕이 우유부단해... )
  대원군은 이맛살을 찡그렸다. 고종의  유순하기만한 얼굴을 떠올리자 재떨이라
도 집어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늘같이 외세가  준동을 하는 거은 정치 지도
자가 강력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하는 대원군이었다. 국가가  갈팡질팡하고 있
었다. 정치의 중심에  있는 왕이 우유부단하자 대신들도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
고 있었다. 일본이 강하면 일본에 붙고 청나라가  강하면 청나라에 붙는 것이 대
신들이었다. 정책도 없고 소신도 없었다.
  그러나 민비는 대담했다. 원세개의  내정간섭이 노골화되자 러시아를 끌어들여 
청나라를 견제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이제이 수법이었다. 민비가 아니라면 2백년 
동안이나 상국으로 모시고 있던 청나라를 치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
다.
  (그러나 만만한 청나라가 아니야... )
  대원군은 혼자  생각하고 혼자 고개를  흔들었다. 원세개는 지금  조선의 목을 
바짝 조여 오고  있었다. 제2차 한로밀약설이 터지자마자 곧바로  고종을 폐위하
겠다고 위협을 했다.
  원세개는 제1차 한로밀약설이  터졌을 때도 은밀하게 고종의 폐위를 거론했었
다. 대상자는  김윤식이었다. 김윤식은 청나라에  영선사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온 
후 강화유수를 거쳐  병조판서와 외무 독판을 역임했다.  원세개와는 누구보다도 
친밀하게 지내서 훙금을 털어 놓을 정도였다.
  “김공. 조선의 국왕이 아둔하고 옹졸하여 민망스럽기 짝이 없소. ”
  원세개는 혈기방장했다. 김윤식은 원세개의  진영에 초대받아서 술을 마시다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원 대인, 무슨 말씀이오? ”
  “조선의 국왕이 밤에만 정사를 보고 있는데 해괴한 일이 아니오? ”
  “우리 주상전하께서는 낮이나 밤이나 정무를 보느라고 영일이 없소. ”
  “그런 말씀 마시오. 조선의 국왕은 밤에는 정사를 보고 낮에는 잠을 자오. 따
라서 대신들이 밤에 입궐을 하여 날이 훤하게 밝은 위에야 퇴궐을 하니 이런 변
이 어디 있소? ”
  김윤식은 원세개의 말에 고개를 떨구었다. 원세개의 지적은 옳은 것이었다. 국
왕인 고종은 불면증에 시달려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비로소 정무를 보고 있었
다. 그에 따라  대신들도 새벽까지 입대할 때가 비일비재했고 오후  늦게서야 일
어나 관할 관아로 등청을  하는 것이다. 국사가 제대로 다루어질 까닭이 없었다. 
그것은 이미 공개된 나라의 음사였다.
  “시경에 동방미명이란 시가 있소. ”
  동방미명은 시경 국풍에 나오는 시였다. 김윤식도 그 구절을 암송하고 있었다.
  동녘이 밝지도  않았는데, 허둥지둥 옷을 거꾸로  입네, 허둥지둥 거꾸로 입는 
것은, 임금님께서 부르시기 때문이라네. 동녘에  동이 트지도 않았는데, 허둥지둥 
옷을 거꾸로 입네, 허둥지둥 거꾸로 입는 것은, 임금님 처소에서 영이 내렸기 때
문. 버들가지 꺽어 채전에 울을 치면,  미치광이도 울타리를 알고 조심하는데, 아
침 저녁도 분별 못하는 우리 임금, 너무 이르지 않으면 너무 늦게 부르시네.
  무절제한 임금을 비난하는 시였다. 원세개는 시경을  예로 들어 고종의 불면증
을 비판하려는 태도였다.
  김윤식은 머리끝이 곧추서고 손에서 끈적거리는 땀이 솟는 것을 느꼈다.
  “국왕이 혹시 치우(정신병)에 걸린 것이 아니오? ”
  원세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김윤식을 쏘아보았다.
  “당치 않은 말씀이오. ”
  김윤식은 얼굴이 벌개져서 원세개의 말에 반발했다.  원세개의 말을 그대로 듣
고 있는 것조차 중대한 죄가 되는 것이다.
  “세자는 어떻소? ”
  “세자저하께서 어떻다니요? ”
  “조선의 세자가 양도를 펴치 못한다는 소문이 파다하오. ”
  “세자저하의 연치가 이제 겨우 열셋이오. ”
  “소문에는 국왕의 반대파가 세자를 독살하려다가 실패하여 양도를 펴지 못하
게 되었다는 말도 있소. ”
  “국왕의 반대파란 있을 수 없소. ”
  “그럼 왕비의 반대파요? ”
  “왕비의 반대파도 없소. ”
  “완화군이 독살되지 않았소? ”
  “완화군의 어머니 이 귀인은 궁궐 밖에서 살고 있소. ”
  “의화군도 있지 않소? ”
  “장 상궁 역시 시가에서 살고 있소. ”
  “그들이 아니라면 대원군이오?  대원군은 아직도 호랑이의 기개를 갖고 있는 
인물이 아니오? ”
  “원 대인.  그런 것은 모두 소문이외다.  주차대신이나 다름없는 원 대인께서 
어찌 그런 소문을 귀담아 듣는다는 말이오? ”
  “왕비가 정치에 간여하고  있소. 국왕이 총명하다면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소? 왕비 일족의 조정 진출도 두드러지오. ”
  김윤식은 눈 앞이 아찔했다. 원세개는 오만방자할  정도로 저선 왕실을 비판하
고 있었다. 이런 말이 고종이나 민빈의 귀에  들어가면 그날로 자신은 죽은 목숨
이나 다름없었다.
  "국왕은 내선(왕위를 세자에게  물려주는 것)을 얻고 대원군에게  섭정을 맡기
면 조선은 병이 치료될 것이오. "
  김윤식은 원세개의 말에  가슴이 떨려서 감히 대꾸를 하지 못했다.  고종이 버
젓이 살아 있는데 세자에게 양위를 하라는 것은 불충도 이만저만한 불충이 아니
었다. 김윤식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나는 오늘 아무 말씀도 듣지 못했소이다. ”
  김윤식은 황급히 원세개의  진영을 물러나왔다. 두 다리가  휘청거리고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러나 원세개가 고종의 폐위  문제를 거론했다는 것은 시정에 파다하게 퍼져 
대원군의 귀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대원군은  그 소리를 듣고서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김윤식이 자신을  함정에 몰아 놓으려는 음모인지도 알 수  없었고 고
종을 폐위하는 문제를 청나라에서 거론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윤식 같은 작자를 살려 두다니... )
  대원군은 김윤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윤식이  총명해도 기개가 없다고 생
각했다. 김윤식의 면전에서  원세개가 조선의 국왕을 탄핵했다면  청나라의 주차
대신이라고 해도 목을 베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조정 대신들이 이렇게 주체성이 없어서야... )
  대원군은 다시 탄식을  했다. 생각할수록 민비가 맹랑하고  당돌하다고 여겨졌
다.
  후두둑, 빗소리가 외원의  나뭇잎을 두드리면서 성긴 빗발을 뿌리기 시작했다. 
대원군은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대문께가 소란스러워지더니  천하장안의 일인인 하정일이 후다닥 달려왔
다.
  “대감마님. ”
  대원군은 하정일에게로  울적한 시선을  보냈다. 천하장안의 일인인  하정일도 
어느덧 귀밑머리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청나라의 원 대인께서 오셨습니다. ”
  하정일이 허리를 굽신했다.
  “원세개가? ”
  대원군은 그때서야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 대문 앞에 청나라 군사들이 쫙 깔려 있습니다. ”
  “무슨 일이라고 하더냐? ”
  “대감마님을 뵈러 왔다고 합니다. ”
  “뫼셔라. ”
  원세개가 찾아온 것이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대원군은 계집종
을 불러 문방사우를  치우게 한 뒤 원세개를 맞아들였다. 원세개는  청나라 관복 
차림이었다. 무인 출신이지만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눈이 서글서글했다.
  (역시 삼국지의 관우처럼 덕과 지모를 갖춘 인물이야... )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고 마주앉아 대원군은 원세개를  뚫어질 듯이 쏘아보았
다.
  (아무리 보아도 대원군은 조선의 호걸이야... )
원세개도 대원군의 인물됨을 가만히 살폈다.
  “근경에 원 대인께서는 무척 바쁘다고 하더군요. ”
  “국왕 전하께서 일을 만들고 계십니다. ”
  한로밀약설에 대한 화제였다.  노련한 정치가들이라 핵심은 피하고  변죽만 올
리는 것이다.
  “주안상을 준비하겠습니다. ”
  대원군이 계집종을 불러  주안상을 차리라고 지시했다. 원세개의  막료들은 아
재당 뜰에 도열해  있었다. 통역을 배석시키지 않은 것은 원세개의  조선말이 익
숙하기도 했지만 밀담을 하기 위해서였다.
  “영손이 몇 살이 되었습니까? ”
  주안상이 들어오고 술잔이  세 순배 돌자 원세개가 본론을 꺼냈다.  영손은 대
원군의 손자 이준용을 말하는 것이다.
  “금년에 열여섯 살입니다. ”
  “영손이 총명하다고 들었습니다. ”
“ 이제 겨우 글줄을 읽는 아이요”
“조선은 러시아의 보호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조선  조정이 이래도 되는 것입니
까 ·····?”
“······.”
“오늘 외무독판 서상우를 불러들여  추궁했습니다. 저에게는 한로밀약의 사본까
지 있습니다.”
“······.”
“서상우는 한로밀약이 터무니없는 낭설이라고 부인했고 웨베르 공사도 그와 같
은 비밀문서를 수수한 사실이 없다고 발뺌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갖고 있는 사
본에는 봉칙이라는 글자와 옥새가 찍혀 있었습니다!”
  대원군은 눈을 질끈 감고 대꾸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사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좌시하지 않다니요?”
“우리는 조선 국왕을 폐위시킬 것입니다.”
“뭐요?”
  대원군은 눈을 번쩍 떳다.
“직예총독 이홍장 대신에게  밀서를 보냈습니다. 조선 국왕을  폐위하고 국태공
의 손자 이준용을 국왕으로 추대하여 국태공께서 섭정을 맡게 할 작정이오.”
“당치 않은 소리!”
  대원군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고종의 폐위하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찌르
고 있었다.
“국왕 천하는 이민 백성들에게서 신망을 잃었소.  조선이 누란의 위기에서 빠져
나오려면 국왕이 왕위를 양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되오!”
  대원군은 눈을 부릅떴다. 그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살광이 폭사되었다.
“그러나 조선 국왕은 양위를 하지 않을 것이오! 또  양위를 한다고 해도 세자에
게 양위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원 대인은 말씀을 삼가시오!”
“그래서 나는 국태공의  손자 이준용을 옥좌에 앉힐 작정이오. 이미  우리 청나
라에 그런 내용의 밀서를 보내고 군함 파견을 요청했습니다.!”
“왕좌는 하나뿐입니다! 비록  조선이 청나라의 속방이라고해도 왕을  함부로 갈
아 치우지는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삼천 리천 만 백성이  들고 일어납니다! 원 
대인이 지나치게 혈기방장한 나머지  조선 국왕을 업신여기는 듯한데 나는 이제 
원 대인을 다시 보지 않을 것이요!”
대원군이 벌떡 일어섰다.
“태공! 내 의견이 곧 대청제국 황제폐하의 황명이라는 것을 아시요!”
원세개도 벌떡 일어나서  대원군을 쏘아보았다. 원세개가 내세운  조건은 대원군
을 위한 조건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대원군은 일언지하에  원세개의 제안을 
뿌리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문도 제거되는 것이오!”
“누가 민문을 제거해 달라고 하였소? 비도 오는데 축객을 하는 것은 예의가 아
닌 줄 알고 있으나 돌아가시오!”
“대감!”
“나는 오늘 원 대인을 만난 일이 없는 것으로 하겠소!”
  대원군이 찬바람을 일으키며 내당으로들어가 버렸다.
  (교활한 늙은이 같으니 ······!)
  원세개는 주먹을  불끈 움켜 쥐었다.  그러나 대원군이 내당으로  돌아가 버린 
이상 화풀이를 할  수가 없었다. 원세개는 비를 맞으며 운현궁에서  청군 진영으
로 돌아왔다.
4

  빗소리가 을씨년스러웠다. 민비는  사납게 퍼붓는 빗소리를 들으며  골똘히 생
각에 잠겨 있었다. 아미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  깍아 놓은 석
상처럼 단정했다.
  고종은 민비를 쳐다보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민비도 마땅한 대책이 서지 
않는 모양이었다.
  일이 맹랑하게 꼬여  가고 있었다. 제2차 한로밀약을 추진한  일이 원세개에게 
탐지되어 정국이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원세개는 한로밀약설
에 분노하여 국왕인 자신까지 폐위시키려 하고 있었다.
  고종은 그 소리를  처음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얼굴
이 창백하게 변해서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되, 되놈 주제에 감히 조선의 국왕을 ······.”
  고종은 비명소리 같은 신음을 간신히 몸으로 삼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왕의  자리에서 폐
위되면 사인이 된다.평범한  민간인으로 살아가면 일본이나 청나라의  무도한 위
협을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국왕의 자리가 노상 편한 것만도 아니잖는가. 고종
은 그런 생각도 했다.
“전하.”
  민비가 고종을 불렀다. 방아니이 어둑해서 그런지  민비의 얼굴도 수심이 가득
해 보였다.
“말씀하오.”
  고종의 대꾸는 풀이 죽어 있었다.
“아무래도 일을 수습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수습해야 하오?”
“조존두,김가진,전양묵을 원지에 귀양보내십시오.”
“그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귀양을 보내겠소 ?”
“원세개를 달래야 합니다.”
“그들은 왕명을 수행했을 뿐인데 어떻게 귀양을 보내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
소.”
“그들이 충신이라면 기꺼이 귀양을 갈 것입니다.”
  고종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민비가 무릎 걸음으로 바짝  다가와서 고
종의 손을 잡았다.
“전하.”
“······.”
“원세개가 군함 파견을 요청했다고 하옵니다.”
“······.”
“이 나라가  청나라 군병의 군화발에 짓밟혀서야  되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옵니다.”
“내가 왕위에서 물러나면 그만이 아니겠소?”
“전하의 보령이 얼마인데 벌써 양위를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나는 왕의 재목이 아닌 것 같소.”
  고종이 울적하게  내뱉았다. 고종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었다. 민비는 
고종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을 저미는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심약한 말씀 하지 마십시오. 전하는 조선 팔도의 군주이십니다.”
  민비가 입술을 깨물며 고종을 위로했다.
“준용에게 왕 자리를 물려 주고 조용히 살고 싶소.”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전하께서 양위를  하면 상왕이 되고  폐위되면 죄인이 
되옵니다. 한 나라에 임금이 둘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동서고금의 이치입니다. 상
왕이 되면 누군가의 독수에 의해  죽게 될 것이고 폐위되면 죄인이니 평생 갇혀
서 살거나 사약을  받아서 죽게 될 것입니다. 상왕이었던 단종의  예가 그러하고 
폐위되었던 광해군과 연산군의 예가 그러하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오.”
  고종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단종은 문종의  아들로 12세에 왕위에 올랐으
나 그를  보필하던 황보인, 김종서  등이 수양대군에게 참살되자  왕위를 빼앗겨 
상왕으로 물러나 앉았다. 그러나 곧바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를 가
서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광해군은 폐위되어 강화도에서  제주도로 이배되어 죽었고 연산군 역시 폐위되
어 비참하게 죽었다.  상왕이 되는 것은 왕위를 양위하여 물러났을  때이고 폐위
되는 것은 반정으로  왕위를 빼앗기는 것이다. 어느 것이나 비참하게  죽음을 당
하는 것은 매일반이었다.  청나라에 의해 폐위된다고 해도 앞날을 예측할  수 없
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땅한 대책도 없었다.
“러시아에서는 무엇이라고 하오?”
  러시아와 제  2차 한로밀약을 추진한 것은  이럴 때 보호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조선을 보호해 줄 낌새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를 완성하지 못해 군대를 보낼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럼 우리가 한로밀약을 잘못 추진한 것이 아니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러시
아라도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비는 후회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고종은  다시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밖에서는 빗소리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엇다. 늦장마라도 지려는 것인가. 고
종의 풀죽은 눈빛이 빗소리가 사나운 장지문 쪽을 더듬다가 민비의 얼굴에 머물
렀다. 민비는 무엇인가 결심을 굳힌 듯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다. 이내 민비의 얼
굴에 차가운 냉기가 서렸다.
“전하. 이번 일은 신첩에게 맡겨 주시옵소서.”
“중전에게?”
“원세개가 조선을 능멸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그렇게 하오.”
  고종은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게 누구 있느냐?”
  민비가 치렁치렁한  치맛자락을 발로 차듯이 찬바람을  일으키며 벌떡 일어섰
다. 민비의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날카로웠다.
“예. 김상궁 대령해 있사옵니다.”
  장지문 밖에서 시령 상궁이 냉큼 대답을 했다. 
“도승지를 들라 해라!”
“삼가 명을 받자옵니다!”
  김상궁이 재빨리 대답을 하고 서둘러 물러갔다.
“밖에 또 누구 있느냐?”
“문 상궁 대령해 있사옵니다.”
“명소패를 보내서 영의정을 들라 해라!”
“삼가 복명하옵니다.”
  민비는 일단 결심을 하면 태풍처럼 몰아치는  성격이 있었다. 김상궁의 전갈을 
받은 도승지가 부리나케  빗속을 달려와 부복했을 때  장지문은 활짝 열려 있고 
발이 한 장 처져 있었다.
“도승지는 들으라! 이조에 명하여  조존두, 김가진, 김학우, 전양묵을 원지에 귀
양 보내도록 하고 조보에 싣도록 하라.”
  발 뒤에는 고종과 민비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러나 어명을 내려야 할 고종
은 잠자코 있었고 민비가 영을 내리고 있었다.
“예.”
  도승지는 뜨악하여 대답했다. 조정에 출사해 있는  사대부를 귀양 보내는 지시
가 왕비에게서 나와 석연치 않은 것이다.
“도승지는 어서 서두르지 않고 무얼 꾸물대고 있는가?”
  왕비의 지시는 서릿발 같았다.
“삼가 존명하옵니다.”
  도승지는 그때서야 민비의  침전인 교태전을 물러갔다. 밖에는  암천의 하늘에
서 빗발이 사납게 몰아치고 있었다.
  영의정 심순택이 교태전으로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식경이 훨씬 지났을 때
였다.
“일기가 불순한데 재상을 한밤중에 불러들여 미안하기  짝이 없소. 허나 목전의 
정세가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 경을 부르지 않을 수 없었소.”
  영의정 심순택이 교태전의 대청에  부복하자 민비는 한껏 위엄을 갖추고 대했
다.
“황공하옵니다.”
  심순택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조복이 젖은 것을 보니 비가 많이 오는 모양이오.”
“그러하옵니다.”
“절기가 다 지났는데 큰  비가 오는 것을 보니 하늘이 노여움을  타신 것 같소.

“신 등이 불충한 탓이옵니다.”
“경 등이 불충한 일이 무어 있소? 원세개는 어찌 지내고 있소?”
“직예총독 이홍장에게 군함 파견을 요청했다고 하옵니다.”
“원세개의 기세가 만만치 않으니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하겠소. 수고스러운 일
이지만 영상께서 원세개의 진영에 가서 해명을 해야 할 것 같소.”
“…….”
  심순택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왕명이라면 마땅히  대답을 해야 한다. 그러나 
왕명도 아닐 뿐더러 원세개의 진영에  가서 해명을 하라고 하는 것은 사과를 하
라는 것이다. 영의정이라면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자리다. 한낱 주차대신에 지나
지 않는 원세개에게 사과를 하는 일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조선의 5백년 사직이 백척간두에 섰소.”
  민비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조용했다. 심순택은  슬며시 고개를 들어  발 뒤의 
고종을 살폈다. 고종은 민비 옆에서 목석처럼 앉아 있었다.
  (우리 주상전하는 어찌하여 저렇게 심약하시기만 한가?)
  심순택은 고종의  유약함에 가슴이 저렸다.  임금이 내려야 할  교지를 왕비가 
내리고 있는 현실이 암담하기만 했다.
“영상!”
“예. 중전마마.”
“원세개는 무엄하게도 주상전하의 폐위까지 거론하고 있으니 참담하지 않소?”
“황공하옵니다.”
  심순택은 손발이 떨리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져 왔다.
“영상!”
  민비의 목소리에 날이 퍼렇게 섰다.
“예. 중전마마.”
  심순택은 바짝 긴장했다.
“원세개를 만나시오! 오늘 밤이라도 만나서 한로밀약이 와언이라고 말씀하시오!

“황공하옵니다.”
“원세개를 만나거든 조선은 중국의 동쪽 모퉁이에 떨어져 있는 작은 나라로 영
토는 3천 리가 못 되고 인구는 천만 명에 불과하여 거두어 들이는 조세도 2백만 
섬이 못 된다고 하시오!  군사 역시 수천 명에 불과하여 큰 나라의  보호를 받지 
않고는 사직을 이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오! 그런 까닭으로 조정의  낮은 신하
들이 한로밀약설을 꾸며 냈으나 영명하신 주상전하께서  이를 알고 조존두, 김가
진, 김학우, 전양묵을 귀양 보냈다고 하시오!”
“황공하옵니다.”
“서두르시오!”
“신 물러가옵니다.”
  심순택은 머리를 깊숙히 숙이고 교태전을 물러 나왔다.
  기분이 착잡했다.  어두운 하늘에서는 뇌성까지  울고 있었다.  우르르 우르르. 
먼 하늘에서 뇌성이 울 때마다 어둠이 진저리를 치듯이 몸을 떨었다.
  심순택은 그날 밤  원세개를 찾아가 한로밀약설을 해명하려고 했다.  음력 7월 
17일이었다. 그러나 원세개는 심순택을 만나 주지도 않았다.
  심순택은 비를 맞고 의정부 관아로 돌아와 외부독판 서상우를 불렀다.
“합하. 이 밤중에 어인 일이십니까?”
  서상우가 헐레벌떡 달려와 궁금한 낯빛을 했다.  합하 또는 각하는 영의정에게
만 사용하는 칭호였다.
“나라 일이 심상치 않소.”
“한로밀약설 말씀이오이까?”
“원세개가 주상전하의 폐위까지 거론하고 있소.”
“불러들인 화근이 아니옵니까?”
“어쨌거나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소.”
“원세개를 달래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오늘 내가 원세개를 마나러 갔다가 거절당하고 돌아왔소.”
“그럼 내일은 제가 가보겠습니다.”
  이튿날 외무독판 서상우가 원세개를  만나러 갔으나 원세개는 여전히 만나 주
지 않았다.
  7월 22일 심순택과  서상우는 다시 원세개를 만나러 갔다.  원세개는 그때서야 
비로소 심순택과 서상우를  만나 주었으나 한로밀약이 친로항청책이라면서 조선
을 피로 씻겠다고 위협했다.
  심순택과 서상우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도 가만 
있지 않았다. 7월  23일 러시아 공사 웨베르는 조존두, 김가진 등의 석방을 요구
했다.
  (이제야 러시아가 나서는군 …….)
  민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7월 25일 정여창이 군함  4척을 인솔하
고 인천에 도착하자 민비는 얼굴이 핼쑥하게 질렸다.
  (청나라가 기어이 조선을 업신여기는군 …….)
  민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청나라가 고종을 폐위시키려고  무력시위를 벌이
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민비는 웨베를르 다시 어전으로 불렀다.
“러시아와의 밀약 때문에 청나라가 군함을 파견했소.”
“영명하신 왕비전하. 청나라는 결코 조선의 국왕전하를 폐위시키지 못하옵니다.

“어째서 그렇소?”
“청나라가 그러한 만행을 부린다면 우리가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
“조선은 이제  세계 열강의 중심에  있습니다. 조선이 비록  약소국이라고 해도 
청나라가 좌지우지하는 것을  열국 공사들이 방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원세계
는 무력으로 조선을 위협하다가 그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소.”
  민비는 비로소 안심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다. 좌
불안석의 나날이었다.
  (한로밀약이 시기상조였어 ….)
  민비는 후회했다. 그러나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청나라의 군함 4척이 인
천에 도착하여 여차하면 도성으로 짓쳐 들어올 기세였다.
  그러나 며칠 후 원세개가 뜻밖에 조선 정세를 논함이라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의정부로 보내 조선 조정을 점잖게 꾸짖었다.

  조선은 조그만 나라로 영토도 작고 인구도 보잘  것 없습니다. 지금 강대한 나
라들이 조선의
 숨통을 조여 오는데 사람들은 안일만 탐내고 있습니다.
  <부유하고 강대한  나라들이 구라파에 많이  있으미 조선은  영국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보호를
 받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하기에 이런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렇지 않다. 영국과 프랑스는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영토를 탐내므로 호랑
이를 방안에 끌
 어들이는 것과  같다. 더구나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유사시에 구원을  할 수가 
없는 처지이니
 채찍이 길다 해도 말에 닿을 수 없는 것 같은 이치다.>
  <영국과 프랑스를 믿을 수 없다면 독일과 미국은 어떠한가?>
  그 사람이 묻기에 저도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독일은 병력이 강대하고  미국은 나라가 부유하지만 먼 나라에는  뜻을 두지 
않고 있다. 그
 러므로 같이 상론할 수 없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가까이에 있으니 의지하고 있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이것은 진짜로 문을 열고 도적을 맞아들이는 것과 같다. 러시아는 오래 전부
터 아세아를 
 탐내어 항구를 점령하고  수군을 주둔시킴으로써 병탄할 뜻을 이루려고 하는데 
만일 조선을 
 먹지 않는다면 어느 나라를 먹겠는가. 끌어들이지  않아도 곧 올 터인데 불러들
일 까닭이 있
 는가.>
  <구라파에서 원조를 받을 수 없다면 아세아의 일본밖에 없지 않은가?>
  <이것은 더욱 저속한 논의다.  일본은 영토가 조선과 비슷한 나라인데 서양법
만 적용하여 실
 업만 강조함으로써 겉으로는  강한 것 같지만 속은 텅 비어  있다. 뿐만 아니라 
본성이 교활하
 여 잇속만을 노리므로  일본과 화친은 맺을 수  있어도 의거할 수는 없는 것이
다.>
  <만약에 조선이 중국과 관계를 끊는다면 나라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없다.>
  <조선이 중국과 의거하면  이로운 점은 무엇이고 배반하면 해로운  점은 무엇
인가?>
  <조선이 중국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면  어린 아이가 자기 부모에게서 떨어
져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으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은 천하를 한 집안처럼  여기고 변방의 나라들은 한몸처럼 여기기 때문에 
변란이 생기면 
 즉시로 평정한다. 장수를  임명하고 군사를 출동시킬 때 군사비용을  아끼지 않
고 물자공급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임오년과  갑신년에 실천한 사실이 있으니 
그 은혜를 믿을 것이다.
  중국의 병력은 군사가 30만이고 군함도 100여 척이며 해마다 들여오는 수입도 
6천만 섬이나   된다. 조선이 배반을 하면 청나라가 조선을  치는 것은 돌맹이로 
계란을 깨트리듯 쉬울 것이 다.>
  <만약 그렇다면 조선은 끝내 자주할 가망이 없는가?>
  <이것이 웬말인가. 조선은 자기  나라를 자체로 통치하고 자기 백성들을 자체
로 거느리며 각
 나라들과 조약을 맺음에  있어서 자주국이라고 부르고 잇다. 다만  중국의 통제
를 받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공의 말은 참으로 눈을 틔워 주고 귀를  열어 주었으니 약도 침도 이만 못하
다.>
  그 사람은 저에게 깊이 사례하고 돌아갔습니다.  대왕전하께서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말 씀  드리는지 깨달아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앙화를 부르는  것도 대
왕전하의 심중에 있고 복을
 부르는 것도 대왕전하의 심중에 있습니다.

  원세개가 의정부에 보낸 장문의 편지는 설득과 위협으로 친로정책을 추진하려
는 조선을 회유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말대로였다.
  편지는 모두 두 통으로 두번째의 것은 조선의 내정을 개혁하는 문제를 10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충고하고 있었다.
  (원세개는 장차 중국의 큰 인물이 되겠군 …….)
  민비는 원세개의 편지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원세개는 김옥균에 대해서도 김
옥균을 일본에서  찾아내려고 할 필요가 없으며,  조선에서 생겨나는 제2, 제3의 
김옥균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었다.
고종은 그날로 원세개에게 답장을 보냈다.
  어제 보내온 편지를 보았는데 충고가 극진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이 몸을 가르
칠 수 없다고 여기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타일러 주었는데 글자마다 약이 되고 
침이 되어 감격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족하(편지글에서 같은  나이 또래를 높여 부를  때 사용)는 조선에 온  지 5년 
동안에 좋은 일  궂은 일을 함께 치르었고 환난도  함께 겪어서 나의 마음 속을 
족하가 알고, 위급한 때에는  오직 족하에게 의존하였으며, 족하 역시 쉽고 어려
운 것을 가리지 않고 이  변방 나라를 보호함으로써 밤낮으로 이 나라를 근심하
는 황제에게 조력하였으니,  이 나라의 높고 낮은 신하들치고 누가  족하의 의리
를 흠모하고 감격의 칭송을 하지 않겠습니까? 근래에 이 나라의 정사에 대한 지
시가 하나도 집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 암둔한 내가 똑똑히 못해서 일처
리를 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안팎의 여러 신하들  역시 우물쭈물
하면서 간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족하만은 간곡하게 일깨워 주며 당면한 폐단들을 명확하게 지적하였으
니 감히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씻고 새로운 정사를 도모함으로써 고심어린 족하
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족하는 두터운 우의를 아끼지 말고 교훈적인 충언을 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삼가 회답을 보냅니다.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한로밀약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원세개에게 사죄하는  글이었다. 8
월 6일 영의정 심순택이 사직하고 8월 13일엔 서상우가 이홍장에게 보내는 고종
의 친서를 가지고 천진으로 떠남으로써 한로밀약설로 긴장되었던 정국이 해소되
었다.
  그러는 가운데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해가 바뀌었다. 그리고 1887년 2월 
조선에 최초의 전기불이 들어왔다. 경복궁 향원정  연못의 물을 끌어올려 발전기
를 돌려서 건청궁의  대청과 뜰에 전기불을 공급한 것이었다. 민간에서는  이 전
기불을 연못의 물을 먹고  켜진 불이라고 하여 물불, 또는 묘불이라고도 불렀다. 
묘한 불이라는 뜻이었다.
  이때 설치된 발전기는 그  당시로서는 최신식으로 동양에서 가장 좋은 시설이
었다. 시설 능력은 16촉광의 백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규모였다.
  그러나 전등 설비를 위해 초빙된 미국인 W.매캐이가  동년 2월 14일 조선인에
게 저격당하여 숨짐으로써 9월 1일에야 정상 가동에 들어갔다.
  1) 임오군란의 주모자인 김춘영,  이영식은 민비 쪽에서 대원군의 환국을 기다
려 처벌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스스로 포도청에 자수하였다.
  2) 대원군을 고립시킨  것은 대원군을 내세워 임오군란 같은 소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예조에서 만들었다.
  3) 차병침입설은 일본에 팽배해 있는 정한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
  4) 시경의 시 동방미명은 김학주 교수의 번역을 인용했다.
  5) 원세개가 의정부에  보낸 편지와 고종의 답신은 이조실록에서 발췌  요약하
였다. 그 당시 조선과 청국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 35장
  산하여 일어나라
  1
  1887년에 이르러서야  표류하던 정국은 비로소  진정 국면을  맞이했다. 제2차 
한로밀약설로 고종 폐위까지 거론했던 원세개가 친서를 보내어 회유하는 것으로 
사태를 매듭짓자 러시아는 86년  10월 5일 조선의 어떠한 영토도 침범하지 않겠
다는 선언을 공포했고 영국은 87년 2월 7일 거문도에서 철수함으로써 영국의 거
문도 점령사건도 큰 충돌없이 매듭이 되었다.
  그러나 세계는 급변하고 있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같은 유럽 여러 
나라는 전세계  곳곳에서 약소국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보호국화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태리, 러시아, 미국도 영토확장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와 함께 세계는 과학과  공업, 문명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은
자의 나라 조선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1881년 미국에서는  롤 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가  발명되었고 영국은 런던에 
화력발전소를 건설하여 런던 시민들이 세계 최초로 전등을 켜게 되었다.
  1882년 독일의 코호는 결핵균을 발견했다.
  1883년 독일의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발표하여 화제를 
낳았고 프랑스의 모파상은 「여자의 일생」을 발표했다.
  1884년 영국의 파즌즈는  증기터빈을 발명했고 독일의 엥겔스는  「가족, 사유
재산, 국가의 기원」이라는 사상서를 발표했다.
  1885년 독일에서 가솔린 자동차가 발명되었다.
  1886년은 일본에서 철도산업을  비롯한 방적업, 광산업을 하는  신규회사 설립
이 많아지고 미국의 톰슨은 전기용접법을 발명했다.
  1887년엔 전신업무의 발달로 파리, 브뤼셀 간에  세계 최초의 국제전화가 개통
되었다.
  1888년에 코닥 필름이 완성되었고 1889년엔 파리에 에펠탑이 건설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에 조선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1885년에서 동학이  들불처럼 일어난 1894년까지는 얼핏  보면 커다란 정치적 
쟁점이 없는 태평한 시대 같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조선은 국
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외세에 의한  내정 간섭이 
어느때보다도 격렬했고 근대화는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1885년에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정동에 학교를 설립하여 
고종으로부터 배재학당의 교명을  하사받고, 1886년에는 조선 정부에  의해 육영
공원이 설립되어 양반 자제들을 입학시키고 서양식  학교 교육에 나섰다. 그러나 
외국인 선교사까지 초빙하여 근대학교 교육을 시키려고 했으나 학생들이 입학하
지 않자 고종은 왕명으로 관리들의 자제부터 입학시키기에 이르렀다.
  이화학당도 미국인 선교사  스크랜턴에 의해 1886년에 설립되었다.  때늦은 교
육제도의 혁신이었으나 근대화가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을 때 고무적인 일이
었다. 언더우드도 고아원형식의 학당을 설립하여 언더우드 학당이라고 명명했다. 
이 학당은 1905년에  경신학교로 개칭되어 대학부를 설치,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이 되었다.
  이 시기에 백성들의 삶은 여전히 굶주림과  질병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85년 6
월 24일에  전국에 호우가 내려 민가가  4,930채나 물에 떠내려 가고  물에 빠져 
죽은 사람도 75명이나 되었다. 엄청난 수재였다. 그러나 큰 장마가 지고 나자 이
번엔 전염병이 휩쓸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들풀처럼 픽픽 쓰러져 죽어
갔다.
  “생각하면 과인은 덕이 부족한 것 같소.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어 하늘이 이
런 재앙을 내리겠소.”
  고종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수재와  전염병에 대한 장계가 매일같
이 조정으로 빗발치고 있었다.
  “백성들의 정상을 생각하면  참으로 딱하기 짝이 없습니다.  예조에 지시하여 
전염병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내도록 하십시오.”
  민비도 근심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근년에 기근과 흉년이 들어서 백성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다가 쓰러져 신음
하는 정상만도 측은한데 지금  또 전염병이 중앙과 지방에 창궐하였으니 참혹한 
일이오.”
  “가장 가엾고  딱한 것은 고장을  떠나서 유리걸식하는 사람들과,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이 혹 들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혹은  길에서 쓰러지기도 하여 물 한 
모금 얻어 먹지 못하고, 약 한 첩 얻어 쓰지 못하며, 이미 몸조리할 방도가 없어
서 갑자기 죽는 우환을 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 근심스러운 일이 아니오?”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마땅한 대책이 있겠소?”
  “한성부에서는 성 밖의 놀고 잇는  빈땅에 여막을 짓고 약과 음식을 많이 마
련해서 한지에서 방황하거나 쓰러진 행려자들이 있으면 일일이 들것으로 날라다
가 각별히 치료해서 소생시켜야 할 것입니다.”
  “음.”
  “또한 미처 구원하지  못하여 쓰러져 죽은 사람이  있다면 즉시로 묻어 주되 
시체가 여기저기 드러나는 일이  없도록 하고 뒷바라지를 하는 대책에 대해서는 
해당 당상관이 묘당과 토의 해서 적당히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 합니다.”
  “......”
  “지방에서도 각기  고을 수령들이 경내를  두루 살피며 치료해  주고, 시체를 
거두어 묻어 주는 방도는 일체  한성부가 하는 방법을 따라서 화되 병든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게 하고 죽은 사람은 유감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고종은 민비의 제안대로 즉시 윤음을 8도와 4유수도에 반포했다.
  지금 모진 전염병이 기운이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에  번지고 있다. 이 병이 계
속 확대되면 장차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 구제하는 일을 결코 
늦잡을 수가 없다.  8도와 4유수도의 수령들은 한성부의 예를 따라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휼하라.
  고종의 윤음이 반포되자  전국에서 전염병 퇴치운동이 일제히  시작되었다. 곳
곳에 여막을 설치하고 죽을 쑤고 약을 마련하여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구휼했
으나 소용이 없었다.
  6월에 창궐한  전염병은 7월까지 전국을 휩쓸다가  8월이 되어 찬바람이 불자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러나 전염병이 사라졌다고 해서 백성들의 삶이  윤택해진 것은 아니었다. 전
염병이 물러갔어도 백성들은  굶주림 때문에 속절없이 죽어갔다.
  86년에도 전염병은 전국을  휩쓸었다. 85년과 마찬가지로 호열자(콜레라)는 전
국에서 백성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헤매게 했다.  지방 곳곳에서 시체들을 모
아 태우는 일로 농사조차 제대로 지을 수가 없었다.
  88년에 한성부에서 전국의 인구를 조사하여  발표했는데 656만 7,038명으로 83
년도에 발표한 662만 8,587명보다 오히려 6만  1,549명이 줄어 있었다. 이 시기에 
기아와 질병이 얼마나 극심한 것이었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였다.
  일본의 약탈 행위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87년 8월에 일본 어선  6척이 제주도
에 상륙, 가축을 약탈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91년 5월 15일에는 일본 어선 수십 척이 제주도 건입포에 상륙하여 주민 16명
을 살해했고, 6월 13일에는 조천리에 상륙하여 살인과 약탈을 자행했다.
  일본인들은 92년 2월에도 144명이 성산포에 상륙하여 도민들을 살해하고 부녀
자를 겁탈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4월 1일에는  화북포에 어선 6척이 상륙, 부락민
들을 살상하고 재물을  약탈했다. 이어서 4월 2일에는 두모리 일대에  일본 어선 
수십 척이 상륙하여 살인, 강간, 약탈 행위를 저지르고 달아났다.
  이에 앞서 89년 9원 함경감사 조병식은 흉년을 이유로 10월부터 1년간 미곡의 
대일 수출을 금지하여 방곡령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조병식은 85년 대원군이 환국할 때 주청사로 청나라로 파견될 만큼 내외의 신
망이 높은  인물이었따. 이때 조선은  전국적으로 가뭄이 들었으나  그 중에서도 
황해, 가우언, 함경도  지방의 가뭄은 더욱 극심했다.  함경감사 조병식은 백성들
이 굶주리게 되자 방곡령을 내렸던 것이다.
  일본은 이에 즉각 반발했다. 11월 7일  일본 공사관의 곤도신스케는 조선 정보
에 대해 방곡령 철폐와 일본 상인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
러나 함경감사 조병식은  단호히 거부했다. 1883년 민영목이  타케소에 일본공사
와 조인한  통상장정 제37관에는 조선의 지방장관이  1개월 전에 예고하면 쌀과 
콩의 수출을 금지해도  좋게 되어 있었다. 조병식은 이에 따라  1개월 전에 예고
했으나 원산의 일본  영사에게 통지할 때에 절차상의 실수가 있었다.  일본은 이
를 트집잡아 강력하게 배상을 요구했다.
  조선 조정은 방곡령이 외교 문제로 비화되자 12월 18일 조병식에게 방곡령 철
폐를 지시했다. 그러나 조병식은 조선 정부의 지시까지도 거부했다.
  조선 정부는 1890년 1월 7일 방곡령 철회 지시를 거부한 조병식에게 녹봉 3개
월분을 감봉하는 처분을 내렸다.
  (조병식이 참으로 대찬 인물이군...)
  민비는 그 소식을 듣고 흥건히 미소를  지었다. 정부의 지시에 불응하면서까지 
백성을 사랑하는 충직한 목민관이 있다는 것은 기꺼운 일이었다.
  1891년 일본 공사관의 가지야마  데이스케는 방곡령으로 인한 일본 상인의 손
해를 14만 5천 원이라면서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4년동안이나 교섭이 계속되
다가 1893년 5월이 되어서야 11만 원으로 타결이 되었따.
  원산의 일본 상인들이  방곡령에 의해 손해를 본  것은 대단치 않았으나 조선 
쪽에서 보면 농민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조병식의 방곡령은 합법적인 것이
었고 방곡령이 철폐된 뒤에는  그렇지 않아도 흉작으로 고통받던 함경도에서 민
란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일본의 대조선  수출은 거의 모두  교활한 수법으로 이루어졌따.  일본은 질은 
떨어지지만 염가인 면사를 조선에 대량 수출하여 조선의 목화 재배 농가를 파탄
에 빠트렸다.
  직물에서도 조선 사람들이 조금 좋다고 소중히 여기면 점점 그 품질을 떨어트
리고, 남비, 솥 등은 중량을 줄여서 깨지기  쉽고, 가위, 작은 칼, 식칼류는 곧 무
디어지고, 칠기는 더욱 조잡해 지고, 궐련초의 경우는 자주 다른 것을 섞어서 조
선인들에게 혐오감을 주었다.  쌀의 경우에도 경작전에 궁핍한  조선인들에게 약
간의 자금을 전대해 주고 가을에 수확한 쌀을  가져가는 방법을 썼다. 그들이 계
약을 할 때는 미곡의 매매 시세보다 훨씬 낮게 책정하기 때문에 풍년일 때는 막
대한 이익을 보고 흉년일 때도 손해가 거의  없었다. 이것은 사실상 정상적인 상
거래가 아니라 약탈이었다.
  일본은 조선을  산업자본의 시장 확보보다는 부의  축적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했고 대조선 무역을 평등 호혜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약탈이나 다름없는 
방식을 채택했다. 일본은 조선을 정치적, 군사적 지배하에 둠으로써 약탈 행위를 
수월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2
  문 밖에는 며칠째  바람이 음산하게 불고 있었다. 진종일 흙바람이  불면서 꽃
잎이 분분히 날리고 나뭇가지들이 피를 토하듯이 울어댔다.
  옥년은 분홍 저고리에 분홍 치마를 입은 옥순을 만감이 교차는 눈빛으로 응시
했다. 옥순은  얼굴빛이 약간 파리했다. 눈은  초점이 없었으나 깨끗했고 피부는 
맑았다. 도화가 만개한 듯 염염한 맵시였다.
  (풍염해...)
  옥년은 옥순을 살피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자  또다시 가슴이 묵지근하게 저
려왔다. 옥순의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청백지신을 갖고  있어서인지 청초했
다.
  “절 받으십시오.”
  옥순이 두 손을 이마에 갖다대고 다소곳이 큰 절을 했다.
  “고맙구나.”
  옥년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옥순의 몸에서 희미
한 살냄새가 코끝으로 풍겼다.
  “그간 신세 많이 졌습니다.”
  “신세랄 것이 무어 있어...”
  옥년은 쓸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옥순이 이창현을 찾아온 것은 다섯  달 전
의 일이었따. 조선이  프랑스와 수교조약을 맺고 볼랑 주교에 이어  뮈텔 주교가 
조선에 들어옴으로써  조선은 마침내 피로 얼룩진  천주교 박해시대를 매듭짓게 
되었다. 옥순은  천주교 박해시대가 끝나자  비로서 한성을 거쳐  이창현이 살고 
있는 장산리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앉아라.”
  옥년의 말씨가 딸을 대하듯 부드러웠다.
  옥순과 해후한 것은  20여 년 만의 일이었다. 옥년은 아직도  병인년의 일들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눈에 밟히곤 했다. 서학군을 잡으로 박달과  함께 경군을 
따라 제천과 진천 일대를 누비고 다니던 일, 조선이의 비참한 죽음, 박달이 죽던 
날 밤 옥순과 함께 달빛이 하얗게 깔린 밤길을 걷던 일들이 환영처럼 망막을 스
치곤 하였다.
  옥년은 그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안개가 낀  것처럼 눈이 부옇게 흐려져 왔다. 
여덟 살짜리 당돌하고 앙증맞은  계집애가 이젠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하여 그녀 
앞에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도대체  서학에서 말하는 야소(예수)는 누
구인가, 무엇 때문에 나이 어린 옥순을 중국을  거쳐 머나먼 불란서까지 가게 하
여 청맹과니가  되게 하였는가, 그들이  말하는 천주가 옥순에게  안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옥년은  그 해답을 알 길이  없었다. 옥순이 다소곳이 옥년 앞에 
앉았다.
  “아버님이 안계셔도 자주 찾아와.”
  “예.”
  이창현이 죽은 것은 옥순이 찾아 오기 두  달 전의 일이었따. 해마다 장마철이
면 어김없이 찾아와  무지랭이 백성들의 잡초 같은  목숨을 앗아 가는 호열자가 
창궐했을 때 이창현도 덜컥 앓아 누었다가 숨이 끊어진 것이다.
  옥년은 이창현이 죽었을 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부박한 삶이 었다. 그의 
아내 조선이가 죽었을 때 이창현은 이미 생의  의미를 잃었고, 나머지 생은 더부
살이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옥년은 이창현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 주었다. 이창현도  그녀에게는 서방이나 
다름없는 사내였다. 그의  유언에 따라 관을 수에에 싣고 홍주까지  가서 조선이
의 무덤에 합장을 해주었다.
  전국은 호열자로 초상집 같았다.
  임금의 지시로 곳곳에  여막이 세워지고 약과 죽을  쑤어 놓고 호열자를 피해 
해골처럼 떠도는 유민들을  구제하고 있었으나 개천둑과 벌판,  야산 골짜기에는 
시체들이 즐비했다.
  호열자가 돌면  사람들은 마을에 불을  놓고 떠돌았다. 그러나  호열자의 균은 
사신 처럼 그들을 뒤쫓아와 죽음의 수렁으로 몰아 넣곤 하였다.
  옥년은 이창현의  관을 수레에 싣고  홍주에 가면서 무수한  시체들을 보았다. 
산골짜기와 벌판  어느 곳에나 시체가  버려지고, 버려진 시체가  썩어서 악취를 
풍겼다.
  (임자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구려...)
  옥년은 홍주 조선이의 무덤에 이창현을 합장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다.
  황혼녘이었다.
  멀리 땅거미가 깔리는 들판에는 무심한 벼이삭들이 영글어 바람결에 술렁이고 
있었다.
  옥년은 돌아오는 길에 진천에 있는 박달의 무덤에 들렸다.
  (나도 죽으면 임자 곁에 묻히고 싶구려...)
  옥년은 바람에  나부끼는 잡초를 꺾어  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진천 관내도 
어수선했다. 여기저기 불에 타서 무너진 집터,  부모를 잃고 울부짖는 고아들, 우
묵한 눈과 뼈만  남아 비칠거리는 사람들... 마치 해골 같은  빈민들이 황토 먼지
처럼 조선 땅 어디서나 바람에 쓸려다니고 있었다.
  옥순이 이창현을 찾아온  것은 옥년이 홍주와 진천을  거쳐 동래에 돌아온 지 
사흘 되었을 때였다.
  옥년은 다시  옥순을 데리고 홍주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러나  옥순을 데리고 
홍주를 다녀오는 것이 조금도 싫지 않았다.
  옥순은 청맹과니였다. 초점없는  눈이 언제나 허공을 더듬고  있었으나 도화빛
의 두 볼은 세사에 물들지 않아 새벽이슬처럼 청초하면서도 기이한 요염함이 느
껴졌다.
  “나도 언젠가는 한성에 올라가서 구경을 해야지.”
  옥년은 옥순의  손을 잡았다.옥순이 동래에  와서 머무는 동안  옥년은 딸처럼 
자상하게 대해  주었었다. 이연이란 참으로 질기고  기구한 것이 아닌가.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어서 이창현의 일가와  나의 인연이 끊어지지를  않는가. 옥년은 
한밤중 잠자리에 들면 으레 그런 생각을 하곤 하였다.
  옥순은 옥년을 미워하지 않았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 옥순의 천성인지 
알 수 없었으나 옥년은 옥순에게 늘 죄를  진듯한 미안함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옥순이 이창현을 찾아  오지 않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옥년의 가슴  속에는 언
제나 옥순에 대한 미안함이 앙금처럼 자리하고 있었따.
  그런 까닭으로 옥순이  장산리에 머무는 다섯 달  동안 옥년은 극진히 보살펴 
주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옥순에 대한 죄 갚음이 조금이라도 씻어질  것 같았던 
것이다.
  “오시면 꼭 종현에 들려 주십시오.”
  “종현에 가면 만날 수 있나?”
  “종현에는 수녀원과 성당이 있습니다.”
  “수녀원?”
  “프랑스 성바오로 수녀회에서 수녀님  네 분이 들어와서 조선인 수녀를 양성
하고 고아원과 양로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옥순도 수녀인가?”
  “저는 수녀님들을 뒷바라지하고 있습니다.”
  “무슨 뒷바라지를 하는데?”
  “수녀님들을 도와 고와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옥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옥순의 말을 잘 알아 들을 수  없었으나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한양에 가면 또 그 일을 하나?”
  “지금은 치명일기의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치명일기가 무엇인데?”
  “치명일기는 순교일기로 뮈텔 주교님의 지시로 병인년에 박해를 받아서 죽은 
사람들의 자료를 모아 기록한 것입니다.”
  뮈텔 주교는 1890년  9월 21일 (양력) 프랑스 파리에서 주교서품을  받고 11월
에 파리를 떠나 1891년 2월에 조선에  도착하였다. 그는 조선에 들어오자 곧바로 
순교자들의 행적을 모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성교회에서 위주치명(주를 위하여 죽음)한자를 뽑아  성인품에 올리려 하매 여
러 모양으로  빙거(증거)를 찾고 많은 증인을  불러 그 사정을  세세히 탐문하고 
사행(실정을 정확히 조사) 한 후에야 일이 능히 이뤄지리라. 그러나 조선 치명일
을 생각건대 혹형 아래 굴치 아니한 자 무수하되 사정을 명백히 아는 이 드문고
로 이같이 목록처럼 열명하여 각 공소에 도리노니 이 책에 올린 바 치명한 자의 
사정을 아는 교우는 부디 급히  기록하여 본당 신부께 바칠 것이나 치명한 사정
은 장황히 하지 말고 다만 말하기를 보았으면  보았노라 하고, 들은 것이 있으면 
들었도라 할 따름이요, 또한 증인되는 자의 성  본명과 사는 지방을 분명히 적어 
올릴것이며 또 이 일에 관계한 바는 치명자의 평생 행위를 찾는 것이 아니라 다
만 저의  잡히던 일이나 혹 문목(죄인  신문하는 조목)한 사정이나  또한 임종한 
사정을 구핵(속속들이 살피어 밝힘)하는  바이니, 만일 교유 중에서 보았거나 혹 
똑똑히 들은 자가 있으면 비록 외인이라도 능히 증인을 세움이 가하니라.
  뮈텔 주교가 천주교  신자들에게 내린 지시였다. 이 기록은 나중에  로마로 보
내져 천주교에서 103위 성인이 탄생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만 하직하겠습니다.”
  옥순이 치맛자락을  끌고 일어섰다. 한성까지는 천  리 길이 넘었다. 길잡이로 
옥년의 술집에서 일을 하는 추선이와 봉필잉를 딸려 보내기로 했지만 옥년은 마
음이 놓이지 않았다.
  “한성까지 잘 뫼시도록 해라.”
  옥년은 추선이와 봉필이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추선이는  이제 옥년이 차린 술
집 청솔옥을 맡아서  운영하고 있었고 봉필이는 추선의  기둥서방이었다. 불학무
식한 사내였지만 눈썰미가 빠르고 붙임성이 좋았다.
  “걱정마세요.”
  “마님은 염려 풀 놓으십시오.”
  추선이와 봉필이 허리를 숙이며 대꾸했다.
  “저자에 나가면 세마를 빌리도록 하고......”
  “예.”
  “잘 뫼셔다 드린 뒤에는 한성 구경을 하고 와도 좋으니 그렇게 알구......”
  “예.”
  옥년은 옥순을 떠나 보내는 것이 허전했다. 대문 앞에서 당부가 길었다.
  “그럼......”
  옥순이 옥년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래. 몸 아끼고, 쉬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예.”
  옥년은 옥순의 손을 꼬옥 쥐었다가 놓았다.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웠다.
  “마님,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올게요.”
  봉필이와 추선이 옥년에게 다시 허리를 굽신했다.
  “어서 가.”
  옥년은 손을 내저었다. 추선이  옥순의 손을 잡고 걸음을 떼어 놓기 시작했다. 
봉필도 등에 진 괴나리 봇짐을 추스르고 걸음을 떼어놓았다.
  (봉필이 있으니 한성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 거야.)
  옥년은 점점 멀어지는 옥순 일행을 시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중국에서  편서풍을 타고 날아  온다는 황사바람이 
부옇게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옥순과 추선은 치맛자락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치마귀를 잔뜩 말아쥐고 있
었다. 마치 꽃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는 듯한 형상이었다.
  옥년은 그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방에 돌아와  누웠다. 공연히 
뒤숭숭하고 어수선했다. 바람은  지붕이 날아갈듯이 사납게 불고 있었다. 잉잉대
는 바람소리가 진종일  귓전을 어지럽게 하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요즈음
은 청솔옥도 손창이 생겨 손님이 썰물처럼 줄어든 것이다.
  박 서방이  운영하는 미곡상과 잡화상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옥년은 
술집은 추선에게 맡기고 점방은 박 서방에게 맡긴 채 두문분출했다.
  귀 밑으로 흰머리가 듬성듬성 생기고 있었다.  달거리가 끊어진 지도 어느덧 2
년이 넘고 있었다.
  (나두 이제 늙었어......)
  옥년은 석경을 볼 때마다 가슴으로 찬바람이 부는 것 같은 쓸쓸함을 느꼈다. 
  쇠돌은 1년에 한 번씩 다녀갔다. 대개  여름철에 다녀가고는 했으나 겨울에 다
녀갈 때도 있었다. 이제는 벌써 훤훤장부가 되어  쇠돌이를 볼 때마다 옥년은 자
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저녁 때 박 서방이 찾아왔다. 옥년은 순아에게  술상을 차리게 해서 박 서방과 
마주앉았다.
  “왜놈들 하는 짓이 수상한걸.”
  박 서방은 술 석 잔을  마시자 듬성듬성 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수심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왜?”
  “제주도에서 왜놈들 소란에 여러 사람이 다친 모양이야.”
  “제주도에서 부녀자들을 겁탈하고 아이들까지 죽였다더니 아직도 그 일이 해
결되지 않았나?”
  “왜놈들이 조사를 하고 나서 배상을 하겠다고 하지만 죄다 거짓말이야.”
  박 서방은  좀체로 근심스러운 표정을  풀지 않았다. 미곡상과  잡화점을 맡아 
운영하면서 살집이  오르고 얼굴빛이 훤해져서 생선  비린내는 풍기지 않았으나 
팔팔하던 기운이 많이 쇠하여  있었다. 옥년은 박 서방도 늙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박 서방의 아낙이 죽은 뒤 바짝 늙었어......)
  옥년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어가고 있는 사실이  서글펐다. 박 
서방의 아낙은 이태  전에 사흘걸이에 걸려 죽었다. 박 서방과의  관계가 있어서 
직접 대면한  일은 없었으나 먼 발치에서  얼굴을 본 일은 있었다.  체수가 작고 
병약한 여자였다. 박 서방은 그  후 여자를 얻지 않고 내내 혼자서 살고 있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으나 옥년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
양새였다.
  “쌀은 기한내에 준비되겠어?”
  옥년은 뚱하게 앉아 있는 박  서방의 빈 잔에 화주(소주)를 따랐다. 박 서방이 
그 잔을 잡아서 냉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벌써 틀린 일이야.”
  박 서방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짜증스러운 기색이었다.
  박 서방은 요즈음  미곡상 때문에 골치를 썩히고 있었다. 박  서방은 일본인들
에게 1년 동안 매월 쌀  1백 가마씩을 공급하기로 계약했으나 의의로 쌀을 준비
하는 일이 여의치 않아 일본인들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었다.
  지난 섣달에는 간신히 1백 가마를 채웠으나  정월에는 92가마, 2월에는 76가마
밖에 마련하지 못해  모자라는 쌀값의 세 배씩  손해배상금으로 물어 주어야 했
다. 박 서방은  배상금이 아깝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일본 상인들의  교활한 술책
에 분통이 터졌다.
  박 서방은 미곡상을 운영하기 시작한 뒤에 경남 일대와 전남 일대의 부농들에
게 해다다 쌀을 구입해서 일본 상인들에게 공급해  왔었다. 그러나 지난 해에 일
본 상인들이 갑자기 볍씨를 뿌리자마자 헐값으로 사재기를 하는 바람에 쌀을 구
입하기가 어려워지고 말았다.  일본인들은 돈이 궁핍한 농민들에게  가을에 갚으
면 되니까, 하고 돈을 빌려준 뒤에 쌀로 빼앗아 갔던 것이다. 
  “성안 조선인들의 동태는 어때?”
  “그저 그래.”
  “왜인들 행패가 갈수록 심해  지니 조선인들이 그냥 있겠어? 조만간 무슨 사
단이 일어날 거야.”
  일본인들은 제주도에서만 부녀자들을  겁탈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동래에서도 심심찮게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동래의 공
기가 불안했다. 게다가  함경도에서 방곡령을 실시하여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는
데도 불구하고  황해도에서도 방곡령을  실시했고, 나주와 김해에서도  방곡령을 
실시하는 한편 일본인들이  사들인 미곡을 압수하였다. 일본인들은  즉각 방곡령 
철폐와 몰수한 미곡의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외무독판 조병직은 단호히 거절
했다. 그러자  일본인들은 부랑자처럼  몰려다니며 조선인들의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하기 시작했다. 방곡령과 미곡 몰수에 대한 반발이었다.
  “왜놈들이 가버렸으면 좋겠어.”
  “왜놈들 때문에 돈을 벌었는데 왜 그래?”
  “조선인들이 나를 보는 눈이 곱지 않아.”
  “행실 나쁜 왜놈들 때문에 그런 거야. 왜놈들이라고 다 나쁜건가?”
  “마쓰다는 요즈음 왜 소식이 없지?”
  “죽었어.”
  “죽어?”
  “인편에 들으니 원산에서 조선인에게 맞아 죽었대.”
  “별일이군.”
  박 서방이  코웃음을 쳤다. 옥년은 우두커니  허공을 쳐다보았다. 바람은 밤이 
되자 잔잔해 진 모양이었다. 어수선하고 을씨년스럽던 바깥이 조용했다.
  “모처럼 합방이나 할까?”
  박 서방이 손수 화주를 자작하여 마신 뒤 옥년을 멋적은 눈빛으로 건너다보았
다.
  “아직도 그 생각이 나나?”
  옥년은 박 서방에게 눈을 흘겼다.
  “늙었다고 그 생각이 안 날까?”
  옥년은 쓸쓸하게 웃었다.
  “달거리 끊긴 지도 몇 년 되었어.”
  “그러고 보니 임자도 흰 머리가 많이 생겼어. 쉰을 넘겼나?”
  “쉰만 넘겼을까......”
  “그래도 살집이 피둥피둥한걸......”
  “언제 내 속살을 보았다구......”
  옥년이 다시 눈을 흘겼다.  박 서방과 동침을 한 지 어느덧 1년이  넘은 것 같
았다. 
  “하긴 꽤 오래 되었지.”
  박 서방이 술상을 웃목으로 밀어 치우고 촛불을 껐다.
  옥년은 등을  돌리고 앉아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내 나이 쉰하고도  몇 살인
가? 어쩌면 예순이 가까운 것이 아닐까? 옥년은 옷을 벗고 박 서방의 품에 안기
며 그런 생각을 했다.
  뒷산 어느 숲에선가  접동새가 울고, 접동새 우는 소리에 공기가  파르르 떨었
다.
    3
  일본인들은 제주도에 이어 남해안까지 상륙하여 재물 약탈, 방화, 부녀자 겁탈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의 만행은 일본  어선의 제주도 
어채금지로 비롯된 것이었다.  조선 조정으로서는 제주도 어민들을  보호하기 위
한 당연한 조치였으나 조선을 이미 일본의 속국처럼 여기고 있는 일본 어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일본 정부의 묵인 내지 방조 아래 노략질을 일삼았다.
  남해안의 섬 일대는 조선 조정의 단속이 미치지 못해 피해 사실까지 확인하지 
못하는 실정이었고 해안 지방의  작은 부락들도 일본인들의 노략질 대상이 되었
다.
  경상남도 양산군의  해안 마을 청송리도 일본인들의  잦은 노략질에 주민들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특히  해안 일대의 자연 부락들은  일본인들이 상륙하기가 
쉬워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892년 음력 9월 7일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조선 반도의 가장 남쪽인 청
송리는 단풍이 그때서야 곱게 물들기 시작했고  바람이 선들거렸다. 가을이 북쪽
에서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날 밤 청송리 일대는 예고된 피의 살륙이 칠흙의 어둠처럼 소리없이 찾아오
고 있었다. 사위는 죽은 둣이 조용했다. 해안을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들판에
는 누렇게 고개를 숙인 벼들이 밤바람에 술렁거리고 있었고 육지 안쪽으로는 낮
은 야산과 구릉들이 해풍을 막아 주려는 듯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다. 마을은 야
산 밑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오이! 거기 조용히 해라!”
  “오이! 소리를 내지 말라!”
  해안에서 갑자기 일본인들의  왁자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술에 취했는지 
선두에 서 있는 사내가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도 왁자하게 떠들고 있었다.
  “조센진들이 잠에서 깨면 안돼!”
  “거기 조용히 하라니까!”
  “조용히 하란 말이야!”
  “빠가야로!”
  그들은 일본도와 총으로 무장을 한 채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논둑길을  지나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벼들이 고개를  숙인 들판을 
함부로 짓밟고 마을 어귀로 몰려갔다.
  “조용히!”
  선두에 선 사내가 갑자기 일본들을 제지시켰다.
  “엎드려!”
  일본인들은 재빨리 논바닥으로 엎드렸다. 마을 어느  집에선가 개 한마리가 요
란하게 짖어대고 있었다. 그러자 그것이 신호이기나 하듯이  이 집 저 집에서 개
들이 요란하게 짖어댔다.
  “망할 놈의 개새끼들!”
  선두에 선 사내가 침을 칵 뱉았다.
  “잘 들어. 마사오와 료이치는 동쪽 길을 감시한다. 알았나?”
  “알았습니다.”
  총을 든 두 사내가 일제히 대답을 했다. 마사오와 료이치였다.
  “히라다와 스스끼는 서쪽 길을 차단한다. 알겠지?”
  “알겠습니다.”
  히라다와 스스끼도 총을 갖고 있었다.
  “나머지는 남자들을 모조리 죽인다. 여자들은 그 뒤에 갖는다.”  
  “노인들과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방해가 되면 죽여라!”
  선두에 선 사내가 눈썹을 꿈틀하며 잔인하게 내뱉었다. 그의 이름은 다케시마. 
어선 시나가와호의 선장이었다. 그난 지난 봄  제주도 성산포에 상륙하여 부락민
들을 살해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한 뒤에는 본업인 고기잡이보다 조선인들을 노략
질하는 데 더 열중해 왔다.
  조선인 부락을  습격하는 것은 사냥을  하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었다. 조선은 
치안제도가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도시다운  도시도 없었고 포졸들도 창
과 칼로 무장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총 몇  방을 쏘면 포졸들이 먼저 흩어져 달
아났다.
  부락도 자연 부락뿐이어서 관청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백리이상을 걸어야 하
는 마을이 흔했다.  길목만 막고 있으면 조선인들을 독안에 든  쥐처럼 마음대로 
사냥할 수 있었다.
  “마사오와 료이치는 먼저 가라.”
  “예.”
  마사오와 료이치는 총을 들고 동쪽 길로 달려갔다.
  “히라다와 스스끼도 가라!”
  “예.”
  히라다와 스스끼도 서쪽  길로 달려갔다. 그들은 모두  시나가와호의 선원들이
었다. 그러나 그들도 조선인들의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데 맛을 
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조선인 부락을 습격하는 것을  <사냥>이라는 은어로 불
렀다.
  “가자!”
  히라다와 스스끼, 마사오와 료이치가 청송리 해안  마을의 동서쪽 길목을 차단
하자 다케시마가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선원들이  어둠에 잠겨 있는 마을을 
향해 신속하게 달려갔다. 마을에서 다시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고 있었다.
  “개들을 죽여!”
  다케시마는 마을 어귀에  이르자 선원들에게 지시했다. 선원들이  일제히 일본
도를 뽑아들고  흩어져 마을로 달려갔다.  그들이 마을로 가까이  갈수록 개들은 
더욱 요란하게 짖어대고 있었다.
  다케시마가 선원 둘과  함께 몰려간 집은 마을 어귀에 있는  초가집이었다. 삽
짝문을 걷어 차고 뛰어 들어가자 가죽끈에 묶여 있는 중개가 으르렁거리며 달려
들려고 하였다.
  “죽여!”
  다케시마가 짧게 소리치자  기관장 요시하루가 일본도로 중개를  내리쳤다. 그
러자 중개가 켕 소리를 내며 나동그라졌다. 피비린내가 확 풍겨 왔다.
  “누구요?”
  그때 중문이 열리며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뛰어나왔다.
  “쳐라!”
  다케시마가 소리를 질렀다.
  “오잇!”
  다케시마의 지시에 갑판장 아이카와가 일본도로 사내의 목을 쳤다. 사내가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요시하루는  벌써 방으로 뛰어 들어가 
칼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안방에서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었
다. 
  “묶어라!”
  다케시마는 안방에 들어가 요시하루에게  지시했다. 요시하루가 방구석에서 이
불을 뒤집어쓰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여자를  새끼줄로 묶었다. 다케시마와 아이
카와는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난한 집이라 그런지 여자의  집에는 변
변한 패물도 돈도 없었다.
  “다른 집으로 가자.”
  다케시마는 요시하루와 아이카와에게 지시했다.
  “이 여자는 어떻게 하지요?”
  “죽여라!”
  “그냥 죽이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까?”
  “젊은 계집도 아니야. 그 계집은 오십이 넘어 보이지 않나?”
  “그런가요?”
  요시하루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자는 속치마 차림으로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공포에 질려 있는 얼굴이었다.
  “믿지 못하겠나? 그러면 벗겨 보면 알겠지......”
  다케시마가 웃으며 여자에게 일본도를 들이댔다. 여자가  입을 벌릴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나 다케시마는 칼로  새끼줄을 베어내고 옷을 벗으라는 시늉을 했
다. 여자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힐끔힐끔 눈치를 살피며 옷을 벗었다.
  “어때?”
  다케시마가 요시하루를 보고  물었다. 여자는 저고리를 모두 벗은 뒤  두 손으
로 가슴을 가리고 있었다. 밑에는 속바지 차림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가슴이 늘어지지는 않았아요.”
  “그럼 마음대로 하게.”
  다케시마가 유쾌하게 웃었다.  요시하루는 이제 스물한 살이었다. 유곽에 출입
한 일이 있을지는 몰라도 여자에 대한 경험은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럼 나가 있으십시오.”
  “나가 있으라고?”
  “여자를 갖는 일입니다. 구경거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요시하루가 어색하게 웃었다.  다케시마와 아이카와는 웃으며 방을 나왔다. 달
은 그때서야 동쪽 하늘에 떠올라 희미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다케시마는 아니카와와 함께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여기저기서  횃불이 일렁
거리고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살륙을 자행하고  재물을 약탈하고 
있었다.
  “계집이야!”
  “계집이 도망간다!”
  그때 선원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면서 검은 물체가  다케시마 앞으로 구르듯이 
달려왔다. 다케시마는 검은  물체를 향하여 일본도를 휘두드려다가 멈칫했다. 계
집이었다.
  “서라!”
  다케시마는 계집에게 일본도를 겨누었다.
  “에그머니!”
  계집이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방향을  틀어서 논바닥으로 후다닥 달아
나기 시작했다. 다케시마는 계집을 쫓기 위해 재빨리 논바닥으로 달려 내려갔다. 
그러자 계집이 경황중에  발을 헛디뎌 논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다케시마는 엉금
엉금 기어서 달아나려는 계집을 뒤에서 덥썩 끌어안고 논바닥으로 뒹굴었다.
  “요것아, 너는 오늘 내 것이야!”
  다케시마는 계집을 논바닥에 눕혔다.
  “사... 사...람 살려요.”
  계집이 악을 쓰고  소리를 질러댔다. 다케시마는 계집의 치마를 허리  위로 들
쳐 올리고 속곳을 벗기려고 헐떡거렸다. 그러나  계집이 바둥대면서 속곳을 움켜 
쥐고 몸부림을 쳤다. 다케시마는 계집의 아랫배를 깔고 앉아서 저고리를 찢었다. 
그러자 계집의 소담스러운 가슴이 희디흰 달빛 아래 뽀얗게 드러났다.
  “흐흐......”
  다케시마는 흡족한 웃음을 터트렸다. 계집은 이제 열예닐곱살쯤 되어 보였다.
  “사, 사람 살려요!”
  계집이 몸부림을 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 이년아!”
  다케시마는 계집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계집이 뺨을 감싸 쥐고  울기 시작
했다.
  다케시마는 계집의 속곳을 재빨리 벗겼다.
  어디선가 또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고 있었다. 그는 여자의 배를  깔고 앉아
서 가슴을 움켜 쥐었다. 여자의 둥근 가슴이, 아직 설익은 과일처럼 풋풋한 살덩
어리가 다케시마의 손바닥 하나 가득히 잡혔다.
  다케시마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밤바람이 차가왔다. 그는 아랫도리를 벗고 
여자의 몸 위에 바짝 엎드렸다. 여자의 입에서  끄윽 하는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
다. 여자의 얼굴은 눈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흐흐......)
  다케시마는 기분이 좋았다.  다케시마가 조선인 부락을 습격하는  것은 재물도 
재물이지만 여자를 사냥하는 즐거움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다케시마 일행은 그날 밤 청송리  일대의 자연 부락 다섯 개 부락을 습격하고 
여자들 여섯을 잡아서  배로 끌고 갔다. 그들이 재물을 약탈하고  여자들을 납치
하여 청송리 일대에서 완전히 철수한  것은 먼동이 훤하게 밝아 오고 있을 때였
다.
  “인두겁을 쓴 놈들이 아닌가?”
  동래부 관아의 포교  김우갑은 몸을 떨었다. 그가 양산군 청송리  일대의 자연 
부락이 일본인들로부터 습격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은 것은 중식 때가 가까웠을 
때였다. 그는 중식도 거르고 곧바로 형방에게 보고를  한 뒤 수항의 포졸들을 이
끌고 청송리로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청송리 일대의 부략은 처참했다.
  곳곳에 일본인들에게 살해당해 죽은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고 부녀자들이 시체
를 부둥켜 안고 울부짖고 있었다. 일본인들에게 죽운  시체는 다섯 개 부락에 17
명이나 되었고 부락의 부녀자들은 거의 모두 겁탈을 당해 정상이 참혹했다.
  “왜놈들은 짐승 사냥을 하듯이 부락을 습격했다고 합니다.”
  포졸 김준연이 망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짐승 사냥?”
  “왜놈들은 50명쯤  된다고 합니다. 마을을  에워싸고 습격을 해서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답니다.”
  “습격받은 부락은 어디 어디인가?”
  “모두 청송리인데 창골, 범바위골, 백산골, 황새골, 쑥골이라고 합니다.”
  “모두 이런 참화를 입었나?”
  “예.”
  포교 김우갑은 가슴이 컥 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하지요?”
  “부사님께 보고를 해야지......”
  “여기는 이대로 놔둡니까?”
  “놔둘 수밖에.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
  “좌수영에 알려서 바다 경계를 엄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상 좌숭영은 동래에 있었고 우수영은 고성(통영)에 있었다.
  “글쎄......”
  “부녀자들도 납치해 간 것 같습니다.”
  “여섯이나 납치해 갔다지 않은가?”
  “그놈들이 무엇을 할려고 부녀자들을 납치해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래개로 삼으려는  짓이겠지. 왜놈들은  전부터 조선 여자들을  좋아했으니
까......”
  “아무래도 좌수영에 알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게 좋겠어. 이만 돌아가세.”
  김우갑 포교는 동래부로 돌아와 양산군 청송리의 비참한 상황을 동래부사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동래부사는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6방 관속들을 모아 
놓고 회의만 거듭했다. 그러나 6방 관속들도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일본 
영사관에 항의하자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청송리 부락민들의 복수를 하지 않는 것입니까?”
  포졸 김준연이 불만이 가득하여 볼멘 소리로 말했다.
  “동래부도 힘이 없어.”
  “그럼 백성들은 누구를 믿고 삽니까?”
  “부사의 입장도 헤아려야  하네. 일본인들을 잘못 건드리면  배상을 해달리나 
어쩌느니 하면서 또 군함을  파견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나라에서는 부사
의 녹봉을 감하거나 원지로 귀양을 보내게 되네.”
  “참 더러운 세상이군요.”
  김준연이 침을 칵  뱉았다. 그들은 불만을 토로하며 좌수영의 수영에  가서 수
사에게 청송리 상황을 보고했다. 수사 이현상은  김우갑의 보고를 받고 오만상을 
찡그렸다. 그는  최근에 섬 지방과  해안 일대에서 일본인들의  노략질이 극심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피해는 얼마나 되는가?”
  “참혹합니다.”
  “인명 피해가 있었나?”
  “부락민 17명이 살해되었습니다.”
  “부녀자들이 봉욕을 당하기도 했는가?”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부녀자들은 모조리 봉욕을 당했사옵니다.”
  “음.”
  수사 이현상이 주먹을 꽉 움켜 쥐었다. 그의  눈에서 불길 같은 눈빛이 뿜어졌
다.
  “정상이 어떠한가?”
  “목불인견의 참상이었습니다.  집들은 불에 타고... 아이들은  울부짖고... 부락
민들은 시체를 매장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울
고만 있습니다. 왜인들에게 도륙당한 시체가 집집마다  쌓여 있고 피가 낭자하옵
니다. 하늘 아래 그런 참상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이옵니다. “ 
 포교 김우갑의 목소리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 짐승같은 놈들이다! 축생들도 그러한 짓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
 “ 사또! 왜인들은 청송리의 젊은 부녀자들도 납치해 갔습니다. ”
 “ 뭣이? ”
 “ 납치당한 부녀자들이 여섯이나 된다고 하옵니다. ”
 “ 왜인들이 임진년에 저지른 추악한 만행을 또다시 저지르고 있구나! ”
 “ 사또! 청송리 부락민들의 원한을  갚아 주십시오! 부락민들이 애통하여 원수 
갚아 주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사옵니다. ”
 김우갑은 눈물을 흘리며  아뢰었다. 자신이 당한 일이 아니었으나  김우갑은 비
통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 알았다. ”
 좌수영 수사 이현상은 수사청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의 손에는 어느덧 경
상 좌수영의 모든 수군을 지휘할 수 있는 황색실이 달린 군령검이 들려 있었다.
 “ 군노 사령은 듣거라! ”
 이현상이 수사청 월대에 시립해 있는 군노 사령들에게 호령을 했다.
 “ 예! ”
 군노 사령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대답했다.
 “ 군령을  내린다! 군노 사령들은  즉시 각 진무영으로  달려가 첨수사(수영의 
버금 벼슬), 중군, 우후, 만호를 수영으로 달려오도록 하라! ”
 “ 예! ”
 “ 동래부에 있는 어선들에게도 영을 내려 일본 어선을 보는 즉시 수영에 알리
도록 하라! ”
 “ 예! ”
 “ 어서 시행하라! ”
 수사 이현상의 지시는 추상과 같았다. 군노  사령들은 다시 한번 복명한다는 대
답을 크게 외치고  외삼문 옆의 수직청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그곳에  각 진무영
에 군령을 보내는 군령병들의 방이 있었다.
 “ 감관은 듣거라! ”
 “ 예! ”
 감관이 황급히 달려와 허리를 숙였다. 감관은 무기고를 지키는 직책이었다.
 “ 군기고 감관은 수군장교와 사령들에게 무기를 지급하고 화공을 불러 왜인들
의 용모파기를 만들어 방을 붙이도록 하라! ”
 수사 이현상의 지시는  태풍이 몰아치듯이 사나웠다. 수사 이현상의  지시에 수
군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김우갑은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김우갑 포교는 해가 지자 다시 좌수영  수영으로 달려갔다. 수영은 이미 삼엄하
게 계엄이 선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둠 때문에 수군은  출동을 하지 못했고 이튼날 아침이 되어서야 출동
을 했다.
 “ 우리 수군들이 왜놈을 잡아올 수 있을까요? ”
 “ 모르지,,,,,,. ”
 포졸 김준연의  물음에 김우갑은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수군들이 
일본인들을 잡아올 수 있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동네 앞바다는 조
선 수군의 군선으로 가득차 있었다.
 “ 부녀자들을 여섯이나 납치했는데 죽이지 않았을까요? ”
 “ 내가 어찌 알겠나? ”
 김우갑은 한숨만 내쉬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좌수영의 수군들은 그날 하루종일 
남해안 일대를 샅샅이 뒤졌으나 일본 어선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은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좌수영의 수군들이 일본어선  시나가와호를 발견한 것은 남해안 일대를 수색하
기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시나가와호는  거제도 못 미쳐 거덕도 앞바
다까지 진출해 있었다. 조선 수군들은 시나가와호를 나포해 돌아왔다.  
 조선 수군들이 시나가와호를 나포한 것은 시나가와호에 조선인 여자가 하나 있
었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는  청송리 살던 여자로 남창문의 처 감하련이었다. 김
하련은 일본인들에게 수없이 짓밟혀 참혹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나가와호의 선원들은 청송리의 만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김하련이 시
나가와호의 선원들이 청송리에서  주민들을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했다고 증언했
으나 막무가내로 잡아뗐다.
 ( 이놈들이 완전히 오리발을 내미는군 ,,,,,, ! )
 경상 좌수영 수사 이현상은 입술을 깨물고  치를 떨었다. 조선인 같았으면 곤장
을 치고 주리를 틀어서라도 
자백을 받을 수 있었으나 일본인이라 함부로 다룰 수가 없었다.
 벌써 부산에 있는 일본 영사관에서는 군사를 풀어 수사청을 에워싸고 있었다.
 ( 차라리 거문도 앞바다에서 왜놈들을 도륙했어야 했어 ,,,,,,. )
 그러나 신문은 해야  했다. 일본 영사까지 수영에 와서  시나가와호의 선원들을 
영사관에 넘겨달라고 요구했으나 이현상은 단호히 거부했다.
 이현상은 일본말에 능통한  사람을 데려 오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동래부 관아
의 포교 김우갑이 통사 (역관)  을 데리고 왔다. 서옥년은 동래부에 아전을 만나
러 왔다가 먼  발치에서 일본인들을 신문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일본인들에 대
한 소문이 동래 부중에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에 수사청의 담장 너머에는 조선인
들이 빽빽하게 모여들어 구경을 하고 있었다. 
 “ 너희들의 수괴가 누구냐 ? ”
 이현상은 수사청 당사청에 앉고,  통사는 종사관과 함께 월대에 서고, 시나가와
호의 선원들은 월대 아래 마당에 서 있고,  조선의 수군들은 월대 아래 마당에서 
창과 총을 들고 도열하여 신문이 시작되었다.
 “ 다케시마라고 하오 . ”
 “ 배의 선장인가? ”
 “ 그렇소. ” 
 다케시마는 검은 색 하카마 차림에 일본도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얼추 서른이 
넘어 보였다. 눈은 가늘게 옆으로 찢어져 뱀처럼 차가운 인상이었다.
 “ 어디 출신인가? ”
 “ 나가사키 출신이오. ”
 “ 9월 7일에 어디에 있었나? ”
 “ 풍랑을 만나서 제주도 근해에 있었소. ”
 “ 9월 7일엔 큰 바람이 불지 않았다. ”
 “ 먼 바다에서는 큰 바람이 불었소. ”
 “ 당신들은 청송리에  상륙하여 부락민들을 살해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하지 않
았는가? ”
 “ 그런일 없소. ”
 “ 조선인 부녀자들을 여섯이나 납치하지 않았는가? ”
 “그런 일 없소. ”
 다케시마의 대답은 유들유들하기까지 했다.
 “ 당신네 배에 조선인 여자가 있었는데도 거짓말을 하는가? ”
 “ 그 여자는 물에 빠져 떠내려 오는 것을 우리가 구출했을 뿐이오. ”
 “ 거짓말하지 마라! ”
 통사의 언성이 높아졌다.  담 너머에서 신문하는 것을 구경하던  조선인들이 웅
성거렸다. 옥년은 눈살을 찌프렸다.
 “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소. ”
 “ 너희들은 조선인 부녀자  여섯을 납치하여 배에 끌고 다니며 돌아가며 욕을 
보이다가 넷은 다른 배에 팔지 않았나? ”
 “ ……. ”
 다케시마의 얼굴이 비로소 창백해졌다.
 “ 부녀자 하나는 너희들에게 짐승 같은 짓을 당하자 물 속에 뛰어들어 자진했
다고 한다! ”
 “ 그런 일 없소. ”
 다케시마는 발뺌을 하였다. 김하련이 다케시마  일행의 만행을 모조리 진술했는
데도 다케시마는 계속해서 잡아떼고 있었다.
 일본인들에 대한 신문은 사흘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다케시마를 비롯한 
일본인들 누구 하나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자백하지 않았다.
 결국 일본인들에 대한 처리는 부산에 있는 영사관으로 신병을 인계하는 것으로 
매듭이 지어졌다. 일본 영사관의 항의가 격렬한  데다 조선에는 일본인들에 대한 
재판권이 없었다. 한성의 외무독판도 일본과 마찰을  일으키지 말라는 긴급 훈령
을 보내왔다. 그러나  좌수영 수사 이현상은 양산군 일대의 피해  상황과 김하련
의 구두진술을 청취해서 사계장 (수사보고서) 을 만들어  일본에 보내 일본 측의 
철저한 수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은 시나가와호의  선원들을 닷새 동안 영사관에 연금하고 형식적인 
조사를 하고 나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석방하였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동래부로 퍼졌다.  일본인들은 의기양양하여 부산 영사관을 
나와 동래부의 수영 앞 바다로 향하였다.
 “ 왜놈들이 온다! ”
 “ 왜놈들이 양산군을 노략질했대! ”
 “ 왜놈들을 죽여야 해! ”
 동래 부민들은 흥분했다. 일본 영사관  경찰에 에워싸여 다케시마들이 나타나자 
침을 뱉고 돌맹이를 마구 던졌다.
 “ 빠가야로! ”
 “ 칙쇼! ”
 일본인들은 칼을 뽐아 들고 화를 냈다.  그래도 흥분한 조선인들은 계속해서 돌
을 던졌다.
 “ 야, 이 쪽바리들아! ”
 “ 개만도 못한 왜놈들아! ”
 조선인들이 계속해서 돌을 던지자  일본 영사관 경찰이 허공을 향해 총을 쏘았
다. 조선인들은 그때서야 뿔뿔이 흩어졌다. 
 “ 저놈들이 정말 양산군 부락을 습격한 거야? ”
 박 서방과 옥년은 일본인들이 무리를  지어 수영 앞 바다를 향해 가는 것을 우
울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 양산군뿐 아니라 제주도에서 만행을 저지른 것도 저놈들이 라는군 ……. ”
 “ 저기 앞에 서 있는 놈이 선장인가? ”
 “ 다케시마라는 놈이야. ”
 “ 증거가 없다는 게 무슨 소리야? 김하련이라는 여자가 그 배에 있었잖아? ”
 “ 물에 빠져 떠내려 오는 것을 구출한 거래. ”
 “ 말도 안되는 수작이지. ”
 박 서방이 분개한 표정으로 말했다. 옥년은 더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의 
만행에 분개하고 있는 것은 박 서방뿐이 아니었다.
 김하련을 비롯하여 일본인들의  어선에 납치되어 간 청송리 부녀자들은 매일같
이 일본 선원들에게  짐승처럼 윤간을 당했다. 여자들은  여섯이었으나 시나가와
호의 선원들은 50명이나  되었다. 일본인들은 부녀자들을 희롱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게 되자 다른 어선에 팔아 버렸다. 부녀자  하나는 치욕을 견디다 못해 일본
인들의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서 바다에  뛰어들어 자진했다. 김하련도 자진하려
고 했으나 허리가  빠져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일본인들이 매일같이  짐승 같은 
짓을 되풀이했기 때문에 아랫도리를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조선 수군이 김하련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걷지도 못했다. 조선 수군들이 그녀
를 업어서 조선 군선에 옮겼으나 그녀는 울부짖으면서 죽여 달라고만 하였다.
 일본인들은 어선으로 돌아갔다.
 좌수영 수사 이현상과 동래 부사는 일본  영사관에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
본 영사관은 일본인들이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배상을 
거부했다.
 조선인들은 분개했다. 그러나 힘이 없는 조선인들은  아무 대책도 세울 수가 없
었다.
 그러는 동안 여러 날이 지나갔다. 양산군  청송리에 대한 소문도 잠잠해진 어느 
날 한 떼의 장정들이  옥년을 찾아왔다. 밤중이었다. 옥년은 한성에서 돌아온 추
선과 봉필이로부터 한성 얘기를 듣고 막 잠을 청하려던 참이었다.
 “ 무슨 일들이오? ”
 “ 마님께서 우리를 좀 도와주셔야 하겠습니다. ”
 “ 어디 사람들이오? ”
 “ 양산군 청송리 사람들입니다. ”
 “ 내가 무엇을 도와 주어야 하오? ”
 “ 왜놈 한 놈을 우리가 잡았는데  말이 통하지를 않습니다. 마님께서 일본말을 
잘 아신다니 저희 마을에 오셔서 왜놈을 신문해 주십시오. ”
 옥년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일본인들의  만행 때 살아  남은 청송리 
사람들이었다. 
 “ 김하련이 제 아낙입니다. ”
 얼굴에 큼직한 칼자국이 난 장정이 옥년에게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 갑시다. ”
 옥년은 봉필을 깨웠다. 장정들은 가마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옥년은 양산군  청송리에 이르자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서성거리고 있었
다. 옥년이 가까이 가자 마을 사람들은 죽창과  참나무 몽둥이를 들고 살기띤 표
정을 짓고 있었다.
 “ 일본 어선은  아직도 수영 앞 바다에 있습니다. 놈들은  조선수군 때문에 고
기잡이를 못하여 손해가 막심하다면서 오히려 동래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
습니다. 세 놈이 동래부  관아에서 나오는 것을 습격하여 한 놈은  죽이고 한 놈
은 놓쳤습니다. 한 놈은 잡아서 끌고 왔습니다만…… ”
 일본인은 마을의 대추나무 밑에 묶여 있었다. 온 몸이 피투성이었다. 옥년이 횃
불을 바쳐 들고 살피자 시나가와호의 선원이 분명했다.
 “ 일본인을 놓쳤으면 보복하러 올 텐데요? ”
 “ 우리는 이놈을 죽이고 동학에 몸 담을 것입니다. ”
 “ 동학? ”
 “ 동래부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
 “ 동학이 어디에 있습니까? ”
 “ 삼남 지방 어디에나 있습니다. ”
 “ 꼭 동학에 들어가야 하나요? ”
 “ 여기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서 살 수 있겠습니까? ”
 “ 가능하면 멀리 도망가야  합니다. 일본인들은 반드시 보복하러 올 것입니다. 

 “ 저희들 염려는 마십시오. ”
 사내는 주먹으로 눈물을 씻었다.  옥년은 공연히 목이 메여 왔다.
 “ 너의 이름이 무엇인가? ”
 옥년은 일본인을 신문하기 시작했다. 일본인에 대한  신문을 잘할 수 있을지 어
떨지 알 수 없었으나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을 해본 일은 없었으나 
신문을 당한 일은 여러 번 있었다.
 “ 요시하루입니다. ”
 일본인은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일본인의 몸 여기저기에 죽창으로 찔
린 듯한 흔적이 있는데다 마을 사람들이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 어디 출신인가? ”
 “ 나가사키 출신입니다. ”
 “ 선원인가? ”
 “ 그렇습니다. ”
 “ 어느 배의 선원인가? ”
 “ ……. ”
 “ 어느 배의 선원인가? ”
 “ 시나가와호의 선원입니다. ”
 옥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마을 사람들이 궁금한 낯빛으로 옥년을 쳐다보았다. 
옥년은 요시하루가 시나가와호의 선원이라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얘기했다.
 “ 이놈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물어봐 주십시오. ”
 김하련의 남정인 남창문이 옥년에게 말했다.
 “ 너희들이 이 마을에 쳐들어 왔었지…… ? ”
 “ …… . ”
 “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야. ”
 “ 예. ”
 요시하루가 겁 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 달아난 놈은 누구인가? ”
 “ 다케시마 선장입니다. ”
 “ 너희들이 조선인 여자드라을 납치했지? ”
 “ 예. ”
 “ 너희들이 저지른 죄악을 종이에 낱낱이 적어라! ”
 옥년은 남차아문에게  붓과 종이를 준비하라고  시켰다. 남창문이  붓과 종이를 
준비하자 옥년은 요시하루를 풀어 주게 하여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낱낱이 적도
록 했다.  요시하루는 손이 풀리자  장정들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며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 요시하루는 시나가와호의 선원으로 다케시마 선장의 지시에 의해 조선국 양
산군 청송리의 마을을 동료들 50명과 함께  습격하여 재물을 약탈하고, 부락민들
을 살륙했습니다.  또 부녀자들을 겁탈한  뒤에 어선으로 납치하여  끌고 다니며 
어선에서 윤간을 하고는  다른 어선에 팔기도 했습니다. 이는 짐승  같은 짓이라 
죽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옥년은 요시하루가 일본말로 쓴 사죄의 글을 한문과 언무나으로 번역하여 남창
문에게 주었다.
 “ 고맙습니다. ”
 남차아문은 몇 번이나 치하의 인사를 했다.  옥년은 청송리를 떠나서 봉필과 함
께 동래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남창문이 가마를  태워서 모셔다 주겠다고 했으
나 옥년은 한사코 사양하고 밤길을 걸었다.
 “ 마님. 가마를 타실 걸 그랬습니다. ”
 “ 호젓한 밤길을 걷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야. ”
 옥년은 웃었다. 달빛이 밝았다.  찬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
고, 떨어진 나뭇잎들이 쓸려다녔다.
 “ 바람이 찹니다. ”
 “ 이제 곧 겨울이 아닌가? ”
 “ 하긴 벌써 타작을 하는 집도 심심찮게 많이 있습니다. ”
 “ 금년에도 흉작인가? ”
 “ 큰 비가 내리고 냉해까지 겹쳐서 이삭들이 모두 쭉정이뿐이라고 합니다. ”
 “ 금년에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겠네……. ”
 옥년은 온 몸이 떨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 흉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왜놈들이라고 합니다. ”
 “ 그러게 말일세. ”
 “ 요즈음은 우는 아이도 왜놈이 온다고 하면 뚝 그친답니다. ”
 “ 한성도 그런가? ”
 “ 한성도 왜놈들이 득실득실 합니다. ”
 “ 하긴 부산만 해도 왜놈드라이 반이나 된다고 하지 않는가? ”
 “ 벌써 왜놈 아이들을 낳는 조선 여자도 있다고 합니다. ”
 “ 그래? ”
 옥년은 가슴이 철렁했다. 봉필의 말이 일본인들을  상대로 술을 파는 옥년을 비
난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 그 사람들이 왜놈을 어떻게 할까요? ”
 “ 누구? ”
 “ 청송리 사람들말입니다. ”
 “ 글쎄……. ”
 옥년은 말 끝을 흐렸다. 가슴 속으로 찬 바람이 불 듯이 우울했다.
 “ 아까 보니 마을 사람들이 이만저만 분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
 “ 나부터라도 그럴 거야. ” 
 “ 세상살이가 참 이상합니다. 사람 사는  것이 꼭 버러지들 같으니 말입니다…
…. ”
 옥년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봉필의 버러지라는 말에 가슴이 메였다.
 “ 한성 얘기나 하게. ”
 옥년은 화제를 돌렸다. 밤길을 줄이기 위해  얘기를 하는 것이었으나 화제가 우
울했다.
 “ 한성에서 우스운 얘기를 하나 듣고 왔습니다. ”
 “ 무슨 얘기인데? ”
 “ 마님은 빙예(스케이트)라고 들어보신 일이 있습니까? ”
 “ 빙예? ”
 “ 양말굿이라고도 합니다. ”
 “ 아니, 들어본 일이 없네. ”
 옥년은 고개를 흔들었다. 빙예고 양말굿이고 한번도 들어본 일이 없었다.
 “ 한성에 서양인들이 들어와  살면서 빙예를 타게 되었는데 양말에 썰매를 만
들어 타는 것입니다.  서양인들은 조선의 겨울이 하도 추워서 동대문  밖에 논물
을 막아 빙판을  만들어 양말굿을 타는 것으로 한겨울을 지냈다고  합니다. 조선
인들은 이  신기한 굿거리를 보려고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고  합니다. 자리값이 
암매되고 떡장수가 우글거렸다고 하바니다. ”
 “ 그래? ”
 옥년은 빙긋이 웃었다. 키가 껑충하게 큰  서양인이 빙예를 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 그런데 이 빙예를 우리 중전마마께서도 보고 싶어 하셨다고 합니다. ”
 “ 중전마마께서? ”
 “ 그래서 대궐의 향원정이라는 연못에서 알렌이라는 사람이 빙예를 타게 되었
는데 우리 상감님께서도 임어하시고 고관대작들이 나열하여 구경을 했다고 합니
다. ”
 “ 중전마마께서도 보시고? ”
 “ 중전마마께서는  발을 치시고 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렌이라는 사람이 
양말굿을 놀다가  머리가 벗겨져  대머리를 드러났다고 합니다.  중전마마께서는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으려고 했으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큰 소리로 웃
고 말았다고 합니다. ”
 “ 옥년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대머리가 벗겨진 양인, 그리고 민망하여 
어쩔 줄을 모르는 임금과 대소신료들을 생각하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내 재가 나타났다. 동래에  두번째로 높은 고개마루였다. 옥년은 재에 오르자 
얼굴을 찌푸리고 동래 부중을 내려다 보았다.  양산군으로 나가는 길에서는 가장 
높은 재였다. 달빛이 부옇게 흐르는 부중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부중이 모두 잠들었군......)
 옥년은 달빛이  몸으로 스며드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마을과 산과  들이 온통 
달빛에 젖어 신비스러웠다.
 이튼날 옥년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날은 이미 훤하게 밝아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옥년은 옷을 입고 봉필을 불렀다.
 “마님, 어제 그 왜놈을 청소리 사람들이 효수했습니다.”
 봉필이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효수?”
 목을 잘라 동래성 밖에 매달았습니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 있습니다.“
 옥년은 봉필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여자들도 여기저기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사람의 목을 잘라서 성문 밖에 매달았다고 생각하자 공연히 겁이 났다.
 “피가 낭자합니다.”
 봉필의 말에 여자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공연히 소란을 부리지 말게......”
 옥년은 밖으로 나왔다. 날시가 쾌청했다. 멀리 금정산의 연봉들이 쪽빛 하늘 아
래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산중턱은 단풍이 들어 타는 듯이 붉었다.
 청명한 가을이었다. 살갗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도 청정했다. 
 “가보시겠습니까?“
 봉필이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옥년을 쳐다보았다.
 “......”
 옥년은 얼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호기심이  동했으나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
다.
 “가요.”
 추선이 옥년에게 말했다. 여자들도 모두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아침이나 먹고 가지......”
 옥년은 고개를 흔들었다. 여자들이 실망한  기색이었으나 옥년은 아침을 차리라
고 이르고 느릿느릿 아침을 들었다. 아침국은 토란국이었다.
 “가보세.”
 아침 식사가 끝나자 옥년은 봉필을 앞세웠다. 여자들도 옥년의 뒤를 따랐다. 거
리는 일본인의 머리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어수선했다. 모드들  동래성 밖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남쪽 성문 밖이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있었다.
 (아......!)
 옥년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남쪽 성문 밖 늙은  소나무에 봉두난발의 인두
가 하나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었다.
 “어제 그놈입니다.”
 봉필이 옥년의 옆에 와서 낮게 소근걸렸다.
 “모르는 척하게.”
 옥년은 봉필에게 눈을 흘겼다. 공연히 겁이 났다. 요시하루의 머리 밑에는 「축
생동왜인양치지두」라는 글자가 씌어  있는 광목헝겊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
다. 피로 쓴 듯 글자가 붉었다.
 “저게 무슨 뜻이지?”
 “축생과 같은 왜놈의 머리라는 뜻이야.”
 “축생?”
 “짐승말이야.”
 ‘오라, 그러니까 짐승과 같은 왜놈 양치의 머리라는 뜻이군.“
 사람들은 낮게 수군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동래부에서 포졸들이 나와 요시
하루의 머리를  수습한 것은 한참이  지나서 였다. 사람들은  동래부의 포졸들이 
돌아감 뒤에야 웅성거리며 흩어졌다. 옥년도 여자들과 함께 술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옥년을 동래부 부사의 소환을  받았다. 동래성 성문밖 소나무에 메달린 
요시하루의 머리에 대한 것이 부산에 있는  일본의 영사관에도 알려졌고, 일본의 
영사관에서 동래 부사에게 강력하게 범인 체포를 요구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나를 잡아 가는 거요?”
 옥년은 형방과 김우갑 포교에게 물었다.
 “양산군 청송리 사람들이 저질러 놓고 모두 도망쳤소.”
 “그럼 마을에 아무도 없다는 말이오?”
 “그 마을에는 쥐새끼 하나 남아 있지 않소.”
 “그렇다고 나를 잡아갈 까닭이 없지 않소?”
 옥년은 동래 부사가 하는 일이 마뜩지 않았다.
 “청송리에서 요시하루라는 놈을 신문할때 일본놈  하나가 숨어서 봤다고 하오. 
서 소사도 알겠지만 일본 어선 시나가와호의 선장 다케시마라는 자가 봤다고 하
오.”
 “흥! 그게 무슨  증거가 되오? 청송리를 노략질한 시나가와호에  김하련이라는 
여자가 있는데도 증거가 없다고 석방한 놈들인데......"
 “여하튼 갑시다.”
 “갑시다. 부사님도 우리 조선인이 분명한데 나한테 해꼬지야 하겠소.”
 옥년을 화가 나서  포졸들 앞에 서서 동래부 관아로 갔다.  동랩 부사가 정사를 
보는 동래부 동헌에는  횃불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부사가  동헌 대
청에 좌정해 있었다.  육방관속은 월대와 그 아래 뜰에 도열해  있었는데 일본인
들도 보였다.
 일본인 중에는 다케시마도 있었다.
 (저놈이 고발을 했군......)
 옥년은 다케시마를 흘겨보고 동헌에 앉아 있는  부사에게 목례를 했다. 비록 소
환을 받아서 온 것이었으나 옥년은 두려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대가 서 소사인가?”
 부사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하옵니다.”
 “어젯밤에 양산군 청송리에 간 일이 있는가?”
 “없습니다.”
 옥년을 거짓말을  했다. 일본인들도 죄수영에서 신문을  할때 거짓말을 했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오히려 떳떳하다고 생각되었다. 청송리  사람들이 요시하루
의 목을 잘라서  소나무에 매단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오히려  요시하루의 목을 
자른 것 하나로는 청송리 사람들의 비통한 원한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저기 있는 일본인이 목격했다고 하는데 거짓말을 할 참인가?”
 “저 자가 잘못 보았을 것입니다.”
 “잘못 보았을 리가 있나?”
 “사또께서는 누구의 말을 믿는 것입니까? 저 자는 청송리 다섯 마을을 습격하
여 우리  조선인들을 살륙한 짐승  같은 놈입니다.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청송리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왜놈들의 살점을 씹고 피를  마시고 싶어할 것입니다. 요시
하루가 죽은 것은 참으로 시원한 일입니다. 동래  부중의 모든 성민들이 모두 쾌
거라고 칭찬해 마지 않습니다.”
 옥년은 청산유수로 내뱉았다. 유창한 언변이었다.
 “소사의 말이 참으로 옳다. 그러나 일본인이 목격을 했다고 하지 않는가?”
 동래 부사는 난처하였다.  서옥년의 말이 지당했으나 그대로 인정할  수가 없었
다. 일본인들의 항의가 여간 드세지 않았다. 잘못 하면 일본 군함이 부산포로 몰
려와 큰 소동을 일으킬 것 같은 기세였다.
 “왜놈이 잘못 보았다고 하면 그뿐입니다."
 옥년이 야무지게 내뱉았다.
 "소사기 청송리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 아닌가? 포졸을 풀어 조사를 하면 금방 
드러날 것이다!"
 "사또께서 저  흉악한 왜적의 말을 믿으십니까?  저 흉악한 왜적은 죄수영에서 
신문을 했으나 그런 일이 없다고 거짓 진술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은 마음 속으로  땅을 치며 통곡을 했습니다! 게다가 일본인들은  조선에서 재판
을 할 수 없다고 하여  부산의 영사관으로 보냈는데 그들은 증거가 없다는 핑계
를 대고 석방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누구라서 이를  갈지 않겠습니까? 가재는 게 
편입니다! 사또께서 미천한  이 아낙이 설사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말할  수 
없습니다. 저 흉악한 왜적이 목격자라고는 하나 짐승같은 놈입니다! 저놈도 목을 
베어 성문 밖에 매달아야 합니다!"
 "......"
 동래 부사가  입맛을 다셨다. 서옥년의  언변이 이로정연하여  부사룰 압도하고 
있었다. 부사는 한참 동안이나 입맛만 다시고  있다가 6방 관속들을 불러 무엇인
가 상의한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의 말이 옳다! 그러나 그대를 석방할 수 없으니 하옥시켜야 하겠다!”
 “어째서 저를 하옥시키는 것입니까?”
 옥년이 분개하여 소리를 질렀다. 옥년을 에워싸고 있던 포졸들이 이럴 수 있나, 
이런 법이 어디  있어......? 하고 수군거렸다. 포졸들도 동래  부사의 처분을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본관의 입장이 난처하다.  일본 영사관에서 항의를 하고 있으니  잠시 동안만 
구류간에 들어가 있도록  해라. 결코 아무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본관이 보장하
겠다.”
 “정히 그러시다면 사또의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옥년은 당당하게 대답을 했다. 이제는 감옥이 두렵지 않았다. 옥년은 자신의 가
슴 속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구류간은 차가웠다. 바닥은  마룻장이 깔려 있었고 판자벽은 바람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옥년은 그곳에서 한 달을 지냈다. 옥년의  석방은 의외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
다. 일본 영사관의 항의가 점점 심해 동래  부사는 옥년을 끌어내다가 곤장을 때
리고 주리를 틀기까지 했다.
 옥년은 피눈물을 흘렸다. 엉덩이의 살이  터지고 주릿대에 정갱이가 문드러졌으
나 육신의 상처보다 더욱  너덜너덜하게 찢어지고 문드러진 것은 그녀의 마음이
었다.
 “내가 이러고 싶어 이러는 것이 아니다.  조정에서 지시가 내려왔는데 일본 영
사관의 요구를 수용하여 수습하라고 한다. 그러니 너는 헤량할 일이다.”
 부사의 말이었다. 옥년은 그 말을 듣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대체 일본 영사관의 요구가 무엇이옵니까?”
 “소사를 사형시키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또께서는 저의 목을 베어 버리시렵니까?”
 “내가 아무리 조정의  녹을 받는 관리이기로 소사의  목을 자를 수 있겠는가? 
소사에게 혹형을 가하는  시늉만 하고자 하니 나를  원망하지 말고 시절을 탓하
라.”
 옥년은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갈아 엎어야 해. 갈아 엎지 않으면 백성들이 살아갈 수가 없어......)
 옥년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옥년은 한 달 
동안 구류간에 갇혀 있다가 석방되었다.

 1) 1880년대의 세계정세는 신구문화사의 『연표로 보는 현대사』에서 인용했다.
 2) 치명일기는 순교자 일기로 이 일기를 바탕으로 천주교 103위  성인이 탄생했
다.
 3) 공창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1885년의 일이다.
 4) 일본인들의 양산군 청송리 노략질  사건은 1887년 8월부터 1891년 5월, 1892
년 2월에서 4월까지 제주도  주민들을 대대적으로 살해, 강간, 약탈한 사건을 대
입한 것이다.

    제 36장
  피어라 녹두꽃아
1
그 해(1892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동짓달부터 눈발이 간간이 날리더니 갑자
기 기온이 뚝 떨어지고 혹한이 엄습해 왔다.  문고리가 손에 쩍쩍 달라붙고 몰동
이가 얼어 터지는  혹한이 달포를 넘게 계속되었다. 아무리 군불을  때도 밤이면 
머리맡으로 찬바람이 설렁설렁 불었다.
 옥년은 엉덩이의  장독과 주리에 어긋난 정갱이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겨우 
내내 누워서 지냈다.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았다. 그러나 육신의 상처보다 더
욱 깊고 무거운 것이 마음의 상처였다.
 머릿속이 뒤숭숭한 탓에 꿈도 많았다. 꿈속에서도  날씨는 살을 에일 듯이 추웠
다. 언제나 같은  꿈을 꾸었다. 흰 옷을  입은 백성들이 황토마루를 올라가는 그 
꿈, 검은 하오리와 하까마를 입은 일본인들과  조선의 양반과 관리들이 황토마루
에 올라사는 백성들을 채찍으로 후려치는 꿈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옥년은 그  꿈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인가 어둠 속
을 쿵쿵 울리면서 다가오고 있는 듯한 기분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해가 바뀌었다 .1893년 계사년이었다.
 혹한은 계사년 새해가  밝았어도 계속되었다. 옥년은 계사년 새해도  누워서 맞
이했다. 이따금  아이들이 골목을 뛰오다니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요즈음 들어 
민간에 부쩍 많이 불리고 있는 동요였다.
  새야 새야 녹두 새야
  웃역 새야 아랫역 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함박 쪽박 열나무 딱딱후여
 옥년은 그 노랫소리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전주  고부라는 노랫말은 전
라도 어느 지방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생각만 해볼 뿐이었다.
  새야 새야 녹두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사 울고 간다.
 노애는 녹두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옥년은 녹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새야 새야 팔왕 새야
  네 무엇하러 나왔느냐
  솔잎 댓잎 푸릇푸릇
  하절인가 하였더니
  백설이 펄펄 날리니 
  저 건너 청송 녹죽이 날 속인다.
 팔왕은 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라도  고부지방의 전씨 성을 가진 사
람과 관련된 노래인 것이다.
 (설마 동학과 관련된 노래는 아니겠지......?)
 옥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때 목자지망이라는  노래가 민간에 파다하게 퍼진 
일이 있었다. 이씨가 망한다는  뜻이었다. 이제 그 노래가 전씨로 바뀌어 아이들
에게 불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씨를 상대로  한 노래는 노랫말에서부터 비극적
인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 무렵  동학은 이미 크게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동학에 2대  교주 최시형이 
등장하여 열성적으로  교새 확장을 해나간 탓에  1890년대에 이르러서는 동학이 
경상, 전라, 충청도에 이어 경기도와 황해도까지  그 세력을 뻗치게 되었고, 교도
가 수십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지방 관리들은  동학에 대해 극심한 탄압을 하였
으나 교도들은 오히려 점점 늘어갔다.
 최시형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 지방 관리들의 탄압으로 교도들이 사경에서 울부
짖게 되자 전국 동학도들에게  입의문을 보내어 1892년 11월 1일 전라도 삼례로 
모이게 한 뒤 전라, 충청  양도 감사에게 소문을 냈다. 이때 삼례에 모인 교인들
은 수천 명이 되었다.
 이 강시 전라도  감사는 이경직이었다. 이경직은 동학 교인들의  움직임이 심상
치 않자 6일에야 비로소 어정쩡한 회신을 보냈다.
  동학은 나라에서 금하는 사학인데 어찌 교조의  신원을 바라는가, 너희들은 사
학에 미혹되지 말고 정학에 힘쓰라.
 동헉인들의 1차 신원운동에  대한 전라도 감사의 회신이었다.  동학인들의 시원
운동이란 교세가 확장된 동학인들이  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을 풀고 동학인
들에 대한 탄압을  중지해 줄 것을 요구하는 운동이었다. 그러나  전라도 감사의 
회신은 동학인들의 기대에 저버린 것이었다. 동학인들은 다시 상소문을 올렸다.
  각하께서는 민정을 세세히  살피기를 기다리느라고 저희는 풍찬노속하기를 닷
새가 되었  나이다. 이에 굶주림과 추위가  살을 에이며 모두가 죽음의 구렁텅이
에 들어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신원
금폭에 있나이다.
  지금 각 읍 지목의 화는 물보다 깊고 불보다 맹렬하여 수재로부터 서리군교와 
향간토호까지 우리의  가산을 탈취할 뿐 아니라  살상, 구타, 능욕을 거리낌없이 
행하고 있으나 중생들이 호소할 곳이 없소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신원금폭은 교조 최재우를 복권시켜 주고 관리들의 폭정을 시
정해 달라는 호소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전라도  감사 이경직은 동학 교인들 수
천 명이 삼례에 모여 호소하자  교조 최제우의 복권은 자신의 권한이 아니고 관
리들의 폭정은 즉시 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경직의 약속에 동학  교인들은 스스로 해산했다. 그러나 불붙은  신원 운동은 
1893년 복합상소로 발전하였다.
 이듬해 2월 12일 소수 박광호, 김연국, 손병희,  손천민 등 40여 명이 광화문 앞
에 엎드려 복합상소를 올렸다.
 역시 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동학을 인정해 달라는 호소였다. 고
종은 2월 13일  칙교를 내려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면 소원을  들어 주겠노라, 하
였다. 이에 동학인들은 모두 해산했다. 그러나 고종은 동학인들이 해산하자 최제
우의 복권이나 동학인들에  대한 칙교를 내리지 않고 유야무야 흘려  버렸다. 오
히려 동학인들을 처벌하라는 반대  상소가 빗빌치자 고종은 슬그머니 그들 쪽으
로 가담해 버렸다.
 상소를 통한 평화적인 신원운동이  수포로 돌아가자 최시형은 3월 10일에 충북 
보은에 교도들을 소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저 유명한 보은집회의 시발이었다.
 최시형의 지시가 떨어지자 전국 각지에서 동학인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기 시작
했다. 그들은 보은에 석성을  쌓고 좌차를 정하여 재상소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일같이 몰려 오는  동학인들을 정돈하기 위햐여 각 포(각 지역단위  신
도회) 와 접주(신도대표)의 기를 세워 질서를 잡았다. 각  깃발에는 척양척왜창의 
의 여섯 글자를 써넣었다.
동학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조정에서는 급히 어윤중을 양호도어사로 삼아 보
은으로 내려 보내는 한편. 정령관 홍계훈(홍재희)으로 하여금 6백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뒤따라 내려가도록 했다.
이때 고종은 어전회의를 열어  원세게에게 청군을 출동시켜 달라는 요청을 하자
고 했으나 영의정 심순택. 좌의정  조병세,우의정 정범조,판부사 김홍집이 적극적
으로 반대하여 어윤중을 선무사로  바꾼 뒤 동학도를 설득하여 해산시키라는 지
시를 했다.
어윤중이 보은군  속리면 장내리에 도착하여 동학인들을  살피자 깃발이 천지를 
뒤덮고 흰옷을  입은 동학인들이 장내리  들판을 하얗게 메꾸고  있었다. 그러나 
질서가 정연하였고  손에는 무기가 전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동학인들으 비가 
내리는데도 동요되는 빛이 전혀 없이 동학의 주문만 외우고 있었다.
어윤중이 그들의 대포를 불러  해산할 것을 종용하자 그들은 척양척왜하여 자주
독립할 것과, 교조의  억울한 죄목을 풀고, 동학의 승인을 받게  할 것과 ,탐관오
리의 폭정을금지시키는 조정의 명지를 받은 후에야 퇴산하겠다고 말했다.
어윤중은 동학인들의 주장을 그대로 조정에 보고했다.
조정에서는 회의를 거듭한 뒤에 고종의 이름으로 해산하라는윤음을 내렸다.
어윤중은 4월2일 보은 군수 이규백으로 하여금 윤음을 받들고 동학 교도들이 운
집한 장내에 들어가 고종의
칙유를 낭독하였다.
임금은 말한다.
너희 낮은 백성들은 나의 지시를 들으라. 돌을  쌓아 성을 만들고 깃발을 세우고 
서로 호응하면서 감히  큰 의리를 제창한다. 하고 써서는 통문을  돌리기도 하고 
방을 붙여 인심을 선동하니 너휘들이 아무리 어리석고
영리하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대세와 조정에서 정한 조약을 왜듣지 못하
고 척양척왜를 부그짖는가.
이것은 다 내가 너희를 잘 인도하지 못하고 너희들을 편안하게 하지 못한 데 원
인이 있으며 또한 각 고을의 원들이 너희들의 피땀을 짜고 너희들을 못 살게 굴
었기 때문이니 탐오한 아전들과  고을 원들은 이제 곧 정벌할 것이다.   내가 백
성의 부모된  사람으로서백성들이 스스로 얼ㅎ지 못한  길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고 가슴 아파하면서  어두운 데서 밝은 데로 이끌 방도를 생각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타이른 후에도 너희들이 퇴산을  하지 않으면 나는 마땅히 큰 처분을 내
릴 것이다.
고종이 내린 윤음이었다.  동학인들은 교조에 대한 신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
나 탐관오리를 징벌하겠다는 임금의 말에 감읍하여  해산을 결정했다. 물론 교주 
최시형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남접의 대표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교도들
에게 무기를  들게 하여 조정을  공격하자는 주장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그러나 
최시형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다. 옥년이  동학인들에 대한 소식을 들
은 것은 3월  초순의 일이었다. 혹한의 겨울이 지나자 옥년은  겨우 거동을 하게 
되어 양지 쪽에서 해바라기를 하고는 하였다.
“보은에 동학 교주가 있다지?”
“보은에 동학인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다네.”
"보은에 동학인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다네.“
“동학인들은 왜 그렇게 모이는데?”
“척양척왜를 한다는군.”
“척양척왜? 그럼 난리를 일으킨다는 겐가?”
“나리를 일으킬지는 모르겠네만 동학인들은 신통력이 있어 총칼로도 죽지 않는
다네>”
“허.정감록에서 진인이 나타난다더니 그 진인인다?”
동래 부중도  동학인들의 보은 집횔로  떠들썩했다.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야 할 
철인데도 보은으로, 보은으로 몰려갔다.  “우리도 보은에난 가보자.”
옥년은 봉필과  추선을 불러 말하였다. “보은엘요?”  봉필이 눈을   크게 뜨고 
추선의 눈치를ㄹ 살폈다.
“동학 교주가 그곳에 있다면  동학의 도가 무슨 도인지 알아 보세.” “글쎄요.

“왜 ? 가기 싫은가?” “아닙니다. 날도 따뜻해  지고 있으니 원행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요.”
옥년이 씩 내켜하지 않는 봉필과  추선을 앞세우고 보은을 향해 길을 떠난 것은 
음력 3월  13일이었다.
날씨는 따뜻했다. 춘궁기가  닥쳤으나 들에는 봄꽃들이 만개하고 햇살이 부셨다. 
농부들은 논에 물을 대고  씨레질을 했고 마을마다 집집마다 살구꽃과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집을 나서자 봄이 더욱 완연했다.
옥년은 파적삼아 걸었다.  (난 역마살이 낀 모양이야---.)
옥년은 길을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옥년은 원행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거렁
뱅이 노릇을 할때는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풍찬노숙을 하면서 등걸잠을 자기 
일쑤였고 다리품 팔기를  다반사로 하였었다. 그것분이 아니었다. 유두례의 집에 
있을때도 그랬고,동래까지 플러  와서 술집을 차린뒤에도 걸핏하면  원행을 했었
다.
그 새 많은 세월이 흐르기는  하였다. 박달을 만나고, 박달이 죽은 지도 벌써 20
년이 넘어 옥년은  머리까지 희끗희끗하였다.  어쩌면 이번 원행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허전했다.옥년이 충청도  보은 땅에 도착한 것은 
3월27일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찌푸드드하더니  오후가 되자 성긴 빗발
이 뿌리고 있었다.  옥년은 동학인들이 운집해 있는 보은군 속리면  장내리로 가
까이 갔다. 보은군 일대는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동학인들은 속내면에 
대도소를 설치하고 있었으나 그 일대는 각종 장사치들이 모여 들어 대혼잡을 이
루고 있었다.  소문도  무셩했다. 동학인들이 난을 일으켜 도성으로 쳐들어갈 것
이라는 소문에서부터 동학에  들면 장생불사한다는 소문. 청군이  동학인들을 도
륙할 것이라는 흉흉하게 나돌았다.
옥년은 동학인들이 모인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동학인들을 좀더  가까이 가
서 보고 싶었다. 동학인을은 속리면  장내에 구름처럼 모여있었다.  (아!) 옥년은 
속리면 장내에 이르자  가슴이 ㅃ근해 왔다. 장관이었다. 척양척왜창의 깃발에서
부터 자신들의 소속을 표시하는  각종 깃발이 무수히 펄럭이는 가운데 동학인들
이 장내 벌판을 하얗게 메우고 있었다. (큰 의를 세운다더니 동학이 이렇게 거대
할 줄이야---.)
창의는 국난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동학이 창의
의 깃발을 세우고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척양척왜창의는 서양과 일본을 물리
치기 위해  의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옥년은 바람에 펄럭이는  무수한 깃발을 
바라보며 가슴이 뭉클해  왔다. 보은에서 돌아오는 길은 동학인들과 할께  할 수 
있었다. 옥년은 보은집회가  해산한 음력 4월3일 남접 측 동학인들의  무리에 섞
여서 남행을 했다.  보은 집회는 엄밀하게 따지면 조정의 압려데  동학의 지도부
가 굴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최시형을비롯한 북접 지도부는  고종의 윤음이 
내리자 교도들의 피해를 예상하여 해산을 지시했으나 납접은 강한불만을 표시했
다. 그들은 일단  교주 최시형의 지시에 따르기로 하였으나 남접의  지도부뿐 아
니라 남접의 일반 동학인들은  ㄴ죽창을 들고서라도 떨쳐 일어나야 한다는 기운
이 팽배해 있었다. (조만간 큰 난리가 나겠어----.)
옥년은 동학인들의 무리에  섞여 남행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보은
집회는 옥년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남겼다.  보은에 모인 동학인들은 자그마치 2
만 명을 헤아렸으나 질서정연했고 민페를 끼치지  않았다. 특히 동학인들은 소속 
포별로 대오를  정하여 깃발을 세운 여막(막사)에  있게 하였으나 출이  할 때는 
반드시 신고를 하고, 청결을 위주하여 용변과 가래침은 땅에 묻고,장사치들의 음
식값은 한 푼도 깎지 않았다. 그들은 약  1개월 동안 장내 벌판에서 농성을 했으
나 행동이 엄숙하여 주위의 농민들로부터 현도라는 칭송을 받았다.
“북접이 우유부단하니  조정에서 우리의 신원을  받아들이지 않는 거야----.” 
“그러면 임금을 갈아 치우나?” “임금을 갈아 치우는 게 아니고 썩어 빠진 조
정대신들을 내치는 거야.” “그일이 쉬운가?  경성으로 쳐들어 가면 임오년이나 
갑신년처럼 청군들이 들이닥칠 텐데 청군을 무슨 수로 막겠어? 북접에서 공연히 
해산하라는 지시를 내린  게아니야.” “조정이 썩었어.” 동학인들은 중앙과 지
방의 관리들을 규탄했다.
“그래도 이번의  상소는 임금의 마음을 움직였다며?”  “상소가 명문이었어.” 
“어떤 내용인데?”
“보은 집회에서 못들었나?”  “난 늦게 참석했는걸.” ‘그럼 내가  얘기할 테
니 들어 보게.“
옥년도 보은집회에서 올린 상소문의 내용은 알지  못했다. 동학인들이 보은 집회
에서 올린 상소문은 충청 감사 조병식에게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충청 감사 조
병식에게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하여 조정에 상주해 달라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모등이 피를 머금고 눈물을 마신  지30여 년에 선사의 지극한 원한을 아직 풀지 
못한지라 예전  금영에서의 원통함을 외치던 것과  완부에서으이 호소는 오로지 
신원 금폭의 뜻에서  나온 것어었습니다. 혼탁한 세상에 엷은 풍속이  아직도 그 
진정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항상  동학을 지목하여 당파로 배척하여 공사를 빙자
해서 사리를 영위하매 돈과  재물을 토색질하고 아버지를 캐어 자식을 체포하매 
집을 털어  재산을 탕진하니 동학이라 이름  붙은 자는 살 길이  없나이다. 대개  
동학이란 이름은  다른 뜻이 없습니다. 선사가  생전에 동방에서 낳아서, 동방에 
거하여, 동학의  이름을 불러 서양에서  들어오는 학을 대칭한  것이어는 뜻하지 
않게 금일에 다시 동학의 금고가 일어나서 도리어 서학의 왼팡르 도우니 유유한 
푸른 하늘아, 이  어느 사람 이 얼ㅎ단 말인고, 금백(충청감사)은  동학을 말하되 
조저의 금하는 것이오,우리가 마음대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제결하니 진실로 조
정의 영이  이럴진대 8도가 이와 같아  수령들이 탐폭하고 지방토호들이 포악한 
짓을 행사하여 곳곳에서 아전들이  인민을 괴럽히고 생명을 손상하는 일이 더욱
더 처참하고 혹독하여  슬프면서도 알리 수 없는  원통한 소리가 하늘에 들리니 
동학인들이 올린 상소문이었다.
  옥년이 동래로 돌아온 것은 4월 중순의  일이었다. 보은으로 올라갈 때는 농부
들이 논에서 써레질을  하고 잇었으나 돌아올때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보리는 
푸르게 웃자라 이랑을 따라 부른 파도를 치고 나뭇가지들은 잎잎이 무성새져 싱
싱한 녹향을 뿜고 있었다.
(동학은 참으로 큰  도야---.) 옥년은 보은에서 돌아오며 동학인들에게  배운 것
이 많았다. 특히 동학의 인내천 ,시천주, 궁궁,사민평등, 보국안민, 척양척왜  사상
은 봄비처럼 옥년의 가슴 속에 촉촉하게 흘러 들었다.
옥년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기분이었다. 동학인들을 통해 들은  조정의 부패
는 극심하였다. 궁궐에는  귀사가 많아 밤이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여 무당, 
수(점 치는 소경),승도며 기타 잡술객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대궐에 굿하고 경 읽고 ,  염불하는 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게다가 창기 화랑
이며 온갖 건달  잡류를 모아들여 안락을 일삼았다. 그러한 까닭으로  대궐은 늦
잠 자는 버릇이  생겨 태양이 중천에 떠오르도록  방장을 그대로 둘러치고 자는 
폐가 생기었다.  위가 흐리면 아래가 깨끗하지  못한 것이다. 왕궁에서 늦잠자는 
폐풍이 만조배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때에 관리라는  자들은 밤이면 대궐에 들
어가 노름,잡기, 술타령으로 시간을 보내고 먼동이 훤하게 밝아야 퇴궐하여 잠을 
잤다. 그리하여  조회가 석회가 되었다. 대궐은  밤낮이 바뀌어 정무가 적체되어 
국정이 마비되었다. 그  중에서도 통탄할 일은 무당,판수,  창기 화랑들의 노름채
로 금전으로 주는 외에 ㅂ슬까지 주는  일이었다. 심지어는 방백수령까지 그들의 
손에서 풀풀  쏟아져 나오는데 그들은  홍간(내전의 밀지)을 얻어서  돈타작질을 
마음대로 하였다.
옥년은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중전 민비를 한  번도 본 일이 
없었으나 그녀의 얼굴을  어둠 속에서 생각해 보고 쓸쓸한 미소르  지었다. 대궐
의 부패에  대해서는 전사간 권봉희,전정언,안효제등이  시정을 공박하는 상소를 
올려 유배되었다. 전 정언 안효제의 상소는, 
우리 성상께서 북쪽 관와묘를 더  지은 것도 다같이 훌륭한 뜻에서 난온 것인데 
어찌하여 근래에 와서는  시속이 거짓과 야박한 것을  숭상하고 굿을 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어 제사 지내는 위풍당당한 곳을 주문을 외우며 기도를 드리는 장소
와 같이 여기는 것입니까? 요사이 일종의 괴물이 은근히 여우 같은 ㄴ생각을 품
고 거룩한 황제의  딸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제절로  북쪽 관왕모의 주인이 되어 
요사스럽고 황당하며 허망한 말로써  중앙과 지방의 사람들을 속이고 함부로 군
의 칭호를 부를며 감히 임금의 총애를 가로채고 있습니다. 
소경쟁이와 무당, 염불쟁이들이  이 때문에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중들의 요망스
러운 교리가 이 때문에  마음대로 퍼지며, 창고의 재정은 이 때문에 군색하고,관
청준칙과 관리 추천은 이 때문에 난잡하며 ,대궐  안은 이 때문에 엄숙하지 못하
고, 형벌과 표창은 이 때문에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백성은 이 때문에 곤궁에 빠
지며 , 조정의 정사는  이 때문에 문란하게  되는데 그 근원을 따지면 모두 귀신
에게 비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 빌미가 되는 것입니다.   하고 진령군 박소사를 
통력하게 비판했다. 이 무렵  대궐에는 진령군 박소사를 비롯한 무당과 판수, 중
까지 드나들어 어지러운  조선조말의 말기적인 증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음력4우러8일 부처닌  오신 낭에는 왕실에서 연등놀이를  했는데 화약비가 80만 
냥이 소모되어 궁핍한 재정을더욱 고갈되게 하였다.   이에 앞서 세자의 20회 생
일인 음력2월8일에는 내탕금30만냥을  내어 공납인들과 장사하느 사람들에게 나
누어 주게 하였다.  또 3월20일과 3월22일에  양로연을 대궐에서 베푸는 큰 잔치
를 열었다. 양로연은 노인들을 대접하는 잔치로 3월 20일엔 바깥 노인을 ,22일엔 
안노인을 대접했다.  1893년도 나라 안은 뒤숭숭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집집마다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 올라 마을을 푸르게 덮곤 하
였다. 마을 주변에는 높고 낮은 언덕이 누워  있는 여자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이
루고 있었고 곳곳에 산재해  있는 대밭은바람이 일 때마다 자지러지는 비명소리
를 질러댔다. 그러나 고부는 난치의 고장이기도 했다. 고부 동구 악에 있는 윤문
고개는 옛날부터 신관 사또가 부임해  오면 마을 사람들이 몰려 나가 영접을 한
는 곳이기도 했지만  학정을 일삼는 군수를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해 추방하는 
곳이기도 했다. 전봉준은 1888년 동학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혁명적인 인물인 서
장옥의 부하 황행일로부터 입교를 권유받고 동학에  몸담았다. 서장옥은 교주 회
시형 밑에서 교단의 총부를 본  일도 있었으나 북접과 사상적인 배경이 맞니 않
았다. 전봉준은  풍채가 자고 과묵했다. 그러나  넓은 이마와 사려깊은 눈에서는 
별빛 같은 광채를  뿜고는 하였다.평소에는 마을 아이들에게  천자문과 동몽선습
을 가르쳤다. 그러나  사람들이 찾아오면옛 성현의 사적을 얘기할 뿐  세속 이야
기를 전혀 하지 않아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게다가 말수도 없었고 종일 무
엇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2천냥을 거두어 들이라고 하고  그 책임을 향교의 장의를 지낸 전창혁에게 맡겼
다. 전창혁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농민들의 불만이 높던 수세남봉과  양여 부
족미 재차  징수건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민소를 군수 조병갑에게  올렸다. 이때 
전창혁이 수장두가 되었다.    조병갑은 이들을 난민으로 몰아  전창혁, 김도삼 , 
정일서를 하옥하여 테질을  한 뒤 전주 감영으로 보냈다. 전라감사  김문현은 장
두들이 순박한 백성들을 선동하여  난을 일으켰다고 하여 엄형으로 장두들을 징
벌한 다음  다시 영을 내리더 고부  본옥에 이수하고 엄형  납고(관가의 다짐)를 
받으라고 하였다.  이에 조병갑은 전창혁,김도삼,정일서에게 혹형을  가해 전창혁
이 장독으로 죽게 되었다.  (인륜이  무너져도 이렇게 무너질 수 있는가? 명색이 
목민관이라는 자가 죄없는 백성을 때려  죽이니 내 반드시 이 혼탁한 세상을 뒤
집어 엎을 것이다!)    전봉준은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에 피눈물을 흘렸다. 전봉
준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12월28일 고부 군민 60명과 함께 만석보 수세의 
면멸과 학정의 시정을  요구하는 민소를 올렸다.  아버지 전창혁이  이루지 못한 
민소를 아들이 재차 올린 것이다. 그러나 고부 군수 조병갑은 이번에도

전봉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혁명의 기운은 무르익어 있었다. 보은집회는 표면적
으로는 실패한 듯이 보였으나 동학인들은 자신들의 세력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
을 실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비록 소수의  관군과 왕지에 의해 해산 되었
으나 후천개벽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력으로 봉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했
다.
선무사 어윤중이  장계에서 지적했듯이 보은  집회는 외탁양이  내회사란(밖으로 
양이를 구실삼아 내란을 기도하는)의 혁명적인 기세가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동학의 교주인 최시형과 북접이 해산을 결정함으로써 남접은 눈물을머금
고 해산했던 것이다. 그때 이미 납접은 상당수의  농민들이 전산을 팔아 무력 봉
기에 뛰어들주비를 했었다. 조병갑은 이러한 남접에 불을 붙인 격이었다. 조병갑
은 불효죄,음행죄,잡기죄 등을 농민들에게  뒤집어 씌워 2만여 냥의 금전을 수탈
하고 송덕비 건립, 모친상 부의금 등을 강제로 거우었다. 뿐만 아니라 멀쩔항 만
석보와 팔왕리보를 3년에   걸쳐 부녀자들과 아이들까지 동원하여 뜨더 고친 뒤 
수세를 걷고 새로 생긴 토지에서 세미를 징수하여  7백여 석을 착취 하였다.  고
부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전봉준은 손화중, 김개남과 
함께
상의하여 창의문을 지어 전국에 돌렸다.
세상에서 사람을귀하다 함은 인륜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성상은 인휴
자애하고 총명하여 현랴한 신하가 잘  보필할 것 같으며 요순지처를 얻을 수 있
을 것이나 금일에  신하된 자들은 한갓 녹우만  도적질하여 총명을 용훼할 뿐이
다. 충간하는 신하의  말을 요언이라 하고 정직한 사람을 도적이라  하니 안으로
는 나라를  돕는 인재가없고 밖으로  백성을 학대하는 관리뿐이다.  학정이 날로 
자라고 원성이 그치지 아니하여 군신부자 상하의  본분이 무너지고 말았다. 허다
한 재물의 수수는 국고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만 개인의 사복을 채우고 만 것이
며 국가에는 누적되 빚이 있어도 모두 갚을 생각을 하지 않고, 교만하고, 사치하
고,음란하고,더러운 일만을  기탄없이 행하여  8로(8도)가 어육이 되고  백성들이 
도탄에 들었다. 수령의 탐학에  백성들이 어찌 곤궁치 아니하랴.  우리들은 비록 
초야에 있는 유민이나 군토를 먹고  군의를 입고 사는 자들이라 어찌 차마 국가
의 멸망을 앉아서  보겠느냐. 팔역(조선8도)이 마음을 같이 하고 억조가 잘 상의
하여 의기를 들어 보국안민으로써  사생의 맹세를 하노니 금일의 광경에 놀라지 
말고 승평성화와 함께 들어가 살아보기를 바라노라.  동학 접주 전봉준
“금번 창의가 동학에서 나왔으니 동학이야말로 참  도가 아닌가.우리 모두 동학
으로 들어가세.”
창의문을 받아  본 농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들의 가슴  가슴에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세상을가라 엎자는  뜨거운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가셰!” 
“동학으로 가세!” “천지를 새로 개벽하세!”
창의문을 세상에 선포한 전봉준,손화중,김개남은 그날로 사발통문을 돌리고 혁명
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사발통문이 돌자 동학인들은 머리에  흰띠를 두르고 태인 주산리 접주 최경선의 
집으로 속속 모여 들었다  1월10일 밤이었다. 날씨는 살을 에일 듯이 추웠다. 그
러나 얼어붙은 동진강  건너 황량한벌판은 홰불과 죽창으로  뒤덮였다. 강바람이 
차가웠으나 흰 옷을 입은 농민들이 3백여명이나  몰려 들어 기세가 삼엄했다. “
여러분! 우리들은 고부 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를 견디다  못해 마침내 사발통문
을돌려 봉기하게 되었습니다.!  
명색이 목민관이라는 자가 백성들의  고혈만 짜고 있으니 우리 무지랭이 농민들
이 어떻게 살아갑니까?“
전봉준은 농민들앞에서 열변을 토했다.  “우리  농민들이 농사를 지으면 무얼하
겠습니까? ㄴㅇ사를 지어 풍년이  드는데도 왜 농민들이 굶어 죽고 얼어 죽어야 
합니까?” 전봉준의 열변에 농민들은 숨조차  쉬지 않고 경쳐ㅇ했다.“세미를 걷
고 각종 죄를 만들어 옥에 가두고 매질을 하다가 돈을 내면 풀어줍니다.!
도대체 불효죄는 무엇이고 음행죄는 무엇입니까?“ 농민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
다. 
“여러분! 이렇게 사느니 죽느니만 못합니다!  우리 모두 떨쳐 일어나 후천 개벽
을 도모합시다!”
“옳소!” “탐관오리를  몰아냅시다!” 농민들은  전봉준에게 일제히  화답했다. 
전봉준은 동하긔 고부군  접주였다. 양바은 아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몰락한 양
반의 후예인 잔바의 위치에 있었고 농민들에게  신망이 높았다. 농민들의 함성이 
우뢰와 같았다. “여러분!우리는 이미 창의문을 전국에 돌렸습니다.! 창의문이 한
번 세상에 떨어지자 온 백성이  모두 찬동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대의를 앞세우
지 않았다면 어찌 억조 창생이 우리에게  호응하겠습니까?” “옳소!” “탐관오
리를 처단합시다!” 농민들은 일제히 죽창과 홰ㅂ불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 동진
강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었다. “이제 우리는 관아로 진군할  것입니다.!이 길로 
관아로 진군하여 썩어  빠지 탐관오리를 징벌하고 새  세상을 세울 것입니다.!” 
전봉준의 말에 농민들이  와 하는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
“무고한 인명을 해쳐서도 안 됩니다.!”
“----.”
“여러분은 이 점을 명심하고 관아로 진군하시오!” 이윽고  전붕준이 죽창을 높
이 들고 피를 토하듯이 외쳤다. ‘진군!“ ”진군!“ 그러자 장사에  임명된 정종
혁,정일서,김도삼이  복창을 했고  ,그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북소리가  둥,둥,두웅
---! 울리기 시작했다.    ”관아로 진군합시다.!“ ”가렴주구를 임삼는  조병갑
을 처단합시다!“
북소리가 울리자 3백여 농민들은 거대한 함성을 지르며 노도처럼 내달리기 시작
했다. 그들은 곧장 고부 북면  마항시로30리를  달려가서 그곳에 운집한 농민 수
천 명과 합세하여 고부읍으로 짓쳐들어갔다. <7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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