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북소리(상권)
(전설로 사라진 나라)
이수광
----- 차 례 -----
작가 소개
작가의 말
1. 프롤로그
2. 발해를 꿈꾼다
3. 족외혼으로 부족이 연합하다
4. 환인(桓因)시대
5. 제천(祭天)과 개국(開國)
6. 전삼한(前三韓)에서 고구려까지
7. 대륙의 아이들
8. 초원의 봄
9. 승천한 여인
10. 파란 눈의 미인
11. 초원의 전투
12. 솔빈의 홍의녀
13. 동경(東京)
14. 여춘화의 비밀
15. 녹의녀 설문랑
16. 반군(叛軍)이 일어나다
17. 혼탁한 세월
18. 분노의 칼
19. 야율 아보기
20. 멀고 먼 유형(流刑)의 길
21. 피는 피로 갚는다
22. 칼과 붓
23. 고려로 가다
24. 여걸(女傑) 아화
25. 필살의 반격
26. 여걸의 마지막 노래
27. 눈보라 피보라
이 수 광
1. 프롤로그
끝이 보이지 않는 대륙의 짙푸른 초원.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서쪽 초원의 하늘에 붉은
점 하나가 나타나더니 점점 커졌다. 그리고 그 붉은
점은 차차 깃발의 모습으로 변하고, 이윽고는 점점
많아져 붉은 깃발이 청천하늘을 가득 메우는가 싶더니
수많은 군사들이 질풍처럼 달려오기 시작했다. 붉은
깃발에는 당(唐)의 국호를 상징하는 당(唐)자와
측천무후(測天武后)의 무(武)자가 씌어져 천지사방을
제압할 듯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당군(唐軍)의
기마대였다. 그들은 무수한 깃발을 앞세우고 드넓은
초원을 휩쓸어버릴 듯이 위풍당당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두두두......
기마대의 뒤를 이어 당의 선봉군이 초원을 까맣게
메우고 달려왔다. 창기병(槍騎兵)을 비롯해
기사병(騎射兵), 보병(步兵), 병참병(兵站兵), 군량을
실은 우마차 등 그들의 행렬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A.D 698년.
단기(檀紀)로는 3031년.
산해관(山海關) 너머 초원을 지나 수십만의
당군(唐軍)은 천문령(天門嶺:현재의 요령성)을 향해
질풍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고구려의 유민들이
일으킨 폭동(고구려인들에게는 독립투쟁)을 제압하기
위해 파견된 당의 정예 군사들이었다.
천문령.
발해만(渤海灣)에 위치한 요동반도(遼東半島)에
있는 천산산맥(天山山脈)의 험준한 산령.
깎아지른 듯한 협곡을 내려다보는 바위 위에는
흑마를 탄 한 영준한 사내가 흰 옷자락을 바람에
표표히 날리며 서 있었다. 훤칠한 키에 넓은 이마,
사려 깊은 눈, 그리고 유난히 두툼하고 커다란
귀(耳). 한 눈에 귀인(貴人)의 풍모가 역력한
사내였다.
"가독부(可毒夫)."
그때 등뒤에서 우렁찬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독부라고 불리운 사내는 그때서야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의 이름은 대조영(大祚榮). 당의
폭정에 항거하는 고구려 유민들의 뜻을 받들어 고구려
복국(復國)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그는 이미 대륙을 지배하는 당과
거란(契丹)에 고족(高族: 또는 藁離族) 출신의
맹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매복을 마쳤는가?"
대조영이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예."
사내는 공손히 대답했다.
"화공(火攻) 준비도 마쳤겠지?"
"예. 준비는 모두 마쳤으나 과연 당군이 함정에
걸려들지가 의문입니다."
대조영은 사내의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사내는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가독하의 지시를 거부할 태도는 아니었으나 군사를
부리는 작전이 들어맞지 않을까 저어하는 기색이
분명했다.
"우(虞)부인 을 부르게."
"예."
우부인은 말갈여인(靺鞨女人)으로 대조영과는
막역한 사이인 걸사비우(乞四比羽)의 부인이었다.
걸사비우는 자랄 때도 대조영과 같이 자랐고 고구려의
복국투쟁인 696년부터 지금까지 2년간의 대장정에도
늘 함께 한 사이였다. 그러나 걸사비우는 불과 두 달
전에 당군과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가을이었다.
천문령도 색색의 단풍이 들고 마른 나뭇잎이 바람에
쓸려 다니고 있었다. 대륙의 북방은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가을이 빨랐다. 8월이면 벌써 온 산이
누르스름한 빛을 띄기 시작하고 9월 초순이면 추색이
완연해진다. 그리고 9월 하순이면 낙엽이 떨어져
켜켜로 쌓이는 것이다.
천문령의 협곡과 산자락에도 벌써 낙엽이 뒹굴고
있었다.
"가독하. 부르셨습니까?"
이내 우부인이 군진에서 날렵하게 말을 타고
달려왔다. 몸은 경장(輕裝) 차림이었고 등에는
말갈족들의 무기인 반월도(半月刀)를 메고 있었다.
말갈족 여인 특유의 조야한 얼굴에는 아직도 남편을
잃은 슬픔이 진하게 어려 있었다.
"우부인이 당군을 유인하여야겠소."
대조영은 우부인의 얼굴을 조용히 응시하며 말했다.
"제가요?"
"우리는 당군을 섬멸할 모든 준비를 마쳤소.
고구려를 복국하고 아니하는 것은 이제 부인의 손에
달렸소."
"허나 그들이 과연 유인책에 말려들지......"
우부인의 아름다운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 대조영은 우부인의 맑고 서늘한 눈을
응시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부인이 적장 아들의 목을 베지 않았소? 부인이
나타나면 적장은 물불 가리지 않고 죽이려 들 거요.
그때 부인이 적장의 약을 올리며 계곡으로 퇴각하면
적장은 반드시 뒤쫓아 올거요.그러면 우리가 그들을
섬멸하겠소. 부인은 유인만 하시오!"
"알겠습니다."
우부인의 얼굴이 비로소 환하게 펴졌다. 대조영의
계략을 듣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당군을 섬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부인의 남편인 걸사비우의 복수를 하는
길도 될 것이오. 반드시 유인해야 하오!"
대조영이 거듭 다짐을 했다.
"알겠습니다."
우부인도 굳게 약속을 했다. 대조영이 두 번씩이나
다짐을 하자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날쌘 군사 5백명을 끌고 나가시오."
"예!"
우부인이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당의 대군은 이때 천문령 앞에까지 도착하여
둔병(屯兵)을 하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거란군을
멸망시킨 뒤 동쪽의 고구려와 말갈 연합부대를
추격하여 5백 리를 달려온 그들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천문령의 협곡이 나타나자 추격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병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협곡에
매복이 있으리라고 의심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척후병을 보내 계곡을 살핀 뒤
통과할 요량이었다.
"돌격!"
그때 협곡에서 와 하는 함성이 일어나며 일단의
군마가 질풍처럼 달려오기 시작했다.
"뭐냐?"
당군의 대장군 이해고(李楷固)는 군막에서 잠시
쉬려다가 깜짝 놀랐다. 그는 군장을 풀다가 말고 말에
뛰어 올라 재빨리 군영 앞으로 달려갔다.
"토족(土族:고구려족)의 군사들입니다."
이해고의 부장(副將)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해고는 부장들의 앞에 서서 천문령의 협곡에서
토족의 군사들이 벌떼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토족의 군사는 기껏해야 5백명 남짓밖에
안되어 보였다.
(매복이 있을 줄 알았지......)
이해고는 빙긋이 웃고 좌우를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누가 나가서 저것들을 쓸어버리겠느냐?"
그러자 한 장수가 쏜살같이 달려나왔다.
"소장이 나가겠습니다."
이해고가 달려나온 장수를 보자 거란 출신의
소덕(蕭德)이었다. 수염이 더부룩한 오척(五尺)
단신의 맹장이었다. 이해고를 따라다니며 수많은 적군
군사들의 목을 벤 사내였다.
"가서 적장의 목을 베어 와라! 그러나 협곡 안으로
들어가지는 마라!"
"예!"
소덕이 우렁차게 대답하고 청룡도를 휘두르며
토족의 군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소덕은
흰옷을 입은 토족의 장수에게 맞붙었다가
일합(一合)도 버티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배신자 이해고야! 나를 알아보겠느냐?"
토족의 장수가 당군 장수의 목을 창에 꽂아서
흔들며 고함을 질렀다. 뜻밖에도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것으로 보아 여자인 모양이었다. 당군 장수 소덕의
목에서 흘러내리는 선혈이 장창을 타고 흘러내려 토족
장수의 백의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너는 계집이 아니냐?"
이해고는 어리둥절했다.
"그렇다! 네 놈 손에 죽은 걸사비우의 아낙
우금(虞錦)이다. 오늘 남편의 복수를 하러 왔으니
목을 내놓아라!"
"하핫.....귀여운 계집이구나! 네 년을 사로잡아
오랜만에 계집의 살맛을 보아야하겠다!"
이해고는 어깨를 흔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해고! 내가 네 놈의 어린 아들을 잡아 먼저 맛을
보았느니라! 헌데 이제 네가 스스로 나의 노리개가
된다고 하니 귀여워 죽겠구나!"
그러나 적장은 오히려 이해고를 야유하고 있었다.
계집이지만 말투가 담대하기 짝이 없었다.
"뭣이?"
이해고는 여유만만하게 토족 장수를 희롱하다가
얼굴이 시뻘개졌다. 이해고의 아들도 토족과의 전투에
참여했는데 얼마 전 걸사비우의 부인 우금에게 죽었던
것이다. 그 계집이 눈앞에서 자신을 희롱하고 있는
것을 보자 이해고는 분통이 터졌다.
"네 년을 갈가리 찢어 죽이겠다!"
이해고는 장창을 높이 들고 번개 같이 우금을 향해
달려갔다.
"네가 과연 그만한 재주가 있느냐?"
우부인은 계속해서 이해고의 약을 올렸다.
"네 년을 발가벗겨 우리 군사들에게 주겠다!"
"제발 그렇게 좀 해다오!"
"거기 꼼짝 말고 있어라!"
"쏴라!"
우금은 이해고가 질풍처럼 달려오자 군사들에게
활을 쏘라고 지시했다. 이해고는 당군의 대장군이지만
무예가 뛰어난 장수였다. 그와 대적을 하는 것은
승산이 없을 뿐 아니라 당군을 천문령 안의 협곡으로
유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화살이 이해고를 향해 빗발치듯이 날아갔다.
이해고는 화살이 날아오자 재빨리 말머리를 돌려 뒤로
물러섰다.
"토족을 공격해라!"
"전 군사는 총공격을 하라! 저 계집은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라!"
이해고는 천문령에 매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악에 바쳐 당군에게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당군이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토족의 군사를 향해 달려갔다. 토족의
군사들은 조금씩 뒤로 물러서면서 계속 활을
쏘아댔다.
"돌격해라! 저 계집을 놓치지 마라!"
당군의 선봉대가 토족 군사들의 화살에 맞아
쓰러지자 이해고는 더욱 화가 나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그것은 당 나라 최고의 명장이라는
이해고 최대의 실책이었다. 당군의 대군이 천문령의
협곡으로 들어서자마자 와 하는 함성이 일어나며
바윗덩어리가 굴러 떨어져 입구를 봉쇄해 버렸다.
"함정이다!"
"계략이다!"
당군은 그때서야 깜짝 놀라서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와 기름을
뿌린 건초 더미에 꽂혔다. 건초더미는 순식간에 불이
붙어 타오르고 시커먼 기름 연기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당군은 우왕좌왕하다가 산 위에서 바윗돌을
굴리고 활을 쏘아대는 토족의 군사들에게 태반이
몰살을 당했다.
A.D 698년 9월의 일이었다. 이 천문령 전투의
참패로 당은 더 이상 토족을 공격하지 못하게 되었고
대조영은 부족을 이끌고 동진(東進), 마침내
발해국(渤海國)을 건국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2년이나 걸친 대장정이었고 고구려 유민들의 치열한
복국투쟁의 결과였다.
이에 앞서 A.D 660년에 신라는 당(唐)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에는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리하여 당 나라는 패수 이북의 고구려
영토에 여러 개의 도호부(都護府)를 설치하여 당 나라
도독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면서 고구려 유민들을
중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시기에 당 나라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들은 3만 8천 3백호, 약 10만 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이 끌려간 곳은 대개
회하(淮河:양자강일대), 산남(山南:호북, 섬서, 하남,
사천일대), 양주(楊洲:감숙성일대) 등의 황무지였다.
그러나 이들은 당군에게 끌려가다가 탈출하여
영주(營州:요서와 열하일대)에 정착하기도 했다.
당 나라는 고구려 유민들을 자신들의 황무지에 강제
이주시켜 저항을 무력화시키려는
기미(羈 :종속)정책을 편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
유민들의 투쟁은 격렬하였다.
고구려 유민들은 보장왕(寶藏王:고구려의 마지막
왕)이 당 나라로 끌려가고 고구려가 멸망했는데도
불구하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을 30년
동안이나 전개했다.
이 무렵 영주의 동모산(東牟山)에 고구려의
후인(後人)으로 자처하는 한 영웅이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대조영, 아버지는 걸걸중상이었다.
그는 안동도호부의 도독인 조문홰가 폭정을 일삼자
거란족과 말갈족(靺鞨族), 그리고 습족(習族),
해족(奚族) 등과 연합하여 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A.D 696년의 일로 거란족은 당의 동쪽을,
고구려인들은 당의 서쪽을 공격하여 거란족은 영주를
점령하고 고구려인들은 안동도호부를 점령했다.
당나라 측천무후 재위 6년의 일이었다. 측천무후는 당
고종의 비(妃)로써 고종이 죽자 두 아들까지 독살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중국을 통치한 여걸이었다. 중국
최초의 여황제였으나 당의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두
아들을 폐위시켰기 때문에 국정이 문란해졌다.
당 나라 전국에서 도둑떼가 극성을 부리고 관리들은
백성들을 착취하기에 혈안이 되었다. 당의 변방에서는
이족(異族)들이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다.
고구려와 거란도 반란을 일으켰다.
당 나라는 고구려와 거란 등의 저항이 거세어지자
697년 4월에 20만의 대군을 일으켜 거란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거란은
동협석곡(東陜石谷:하북성) 일대에서 당 나라 대군을
격파했다. 이에 당 나라는 당황하여 20만 대군을 다시
일으켰으나 이들 역시 거란군에게 크게 패하고
말았다.
거란군의 연전연승은 고구려와 말갈족의
연합부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구려와 말갈의
연합부대도 당 나라의 동쪽을 계속 유린했고 고구려가
잃은 많은 영토를 회복했다.
그러나 4월이 지나자 당 나라와 돌궐족(突厥族)이
연합함으로써 전세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내외 몽고의 광활한 초원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돌궐족은 이 틈을 노려 당 나라와 동맹을 맺고 거란의
배후를 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거란과 함께 당
나라를 공격하던 해족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어 거란은
큰 혼란에 빠졌고 거란의 칸(汗:대족장)
손만영(孫萬營)은 불과 수 천 병력을 이끌고
후퇴하다가 배신자에게 살해되었다.
거란이 당에 투항하자 고구려와 말갈군도 위태롭게
되었다. 당 나라를 공격하던 거란군에는 이해고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696년 8월의 황장곡(黃長谷)
전투에서 비색(긴 밧줄을 던져 적의 목을 낚아채는
무기)으로 당의 장수들인 장현우, 마인절 등을
사로잡아 당군을 섬멸하는데 큰공을 세웠다. 그는
비색 뿐 아니라 기사(騎射: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에도 능했고 무삭(긴 창으로 적을 찌르는 것)에도
능하여 당군이 연전연패하는데 주역이 되었던 용맹한
무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란군이 돌궐군에 대패하자
당에 투항을 했다.
측천무후는 이해고를 등용하여 고구려와 말갈의
연합부대를 치게 하였다. 이해고의 대부대와 처음으로
싸운 것은 걸사비우의 말갈인부대였다. 그러나
걸사비우의 말갈인부대는 이해고에게 대패했고
걸사비우는 전사하였다.
이해고는 승리의 여세를 몰아 대조영의 고구려인
부대를 맹렬히 공격했다. 이에 대조영은 패배한
말갈인 부대까지 수습하여 동쪽으로 후퇴하며
이해고의 부대를 유인하였다. 이해고의 부대는 단숨에
고구려인 부대를 섬멸할 듯이 질풍처럼 초원을
달려왔으나 천문령에서 대조영에게 대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때의 패배로 당군은 더 이상 고구려를 추격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이에 대조영은 동진하여 동모산 일대에 정착하고
698년 개국을 선언했으니 이 나라가 발해였다. 발해는
2대인 무왕(武王)대에 이르러 서진(西進)과
북진(北進)을 계속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모두
회복하니 강토(疆土)가 동서남북 수 천리에 이르렀다.
발해는 이후 2백년이나 만주의 광활한 대륙을
통치하여 민족의 기상을 드높이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순환을 되풀이한다. 고구려의
후예들과 함께 당 나라에 반기를 들었던 거란족
일라부(迭刺部)에 2백년 만에 야심만만한 한 인물이
태어났다. 전통적으로 유목생활을 하는 중국 북방의
거란족들은 부족에 따라 8부(八部:여덟 부족)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3년마다 질립제(迭立制:선거제)로
대족장을 추대하였다. 그 여덟 부족중 일라부가 낳은
불세출의 영웅 야율 아보기(耶律阿保畿)는
실위(室韋), 돌궐, 해족 등을 공략하여 명성을 얻은
뒤 스스로 일라부 부족의 칸위(汗位)에 올랐다.
아보기는 그후 거란8부의
제부대인(諸部大人:대족장)을 차례로 살해하고 심복을
제부대인에 임명한 뒤 요국(遼國)을 세웠다. 그리고
그는 대륙 정복의 야욕을 불태웠다.
그러나 거란의 남쪽에 발해국(渤海國)이라는 강대한
나라가 있어서 함부로 군사를 움직이지 못하였다.
이에 야율 아보기의 심복들은 중원 정복에 나서기
전에 발해부터 정벌할 것을 건의했고 야율 아보기는
발해의 군사력이 두려워 발해와 전쟁을 하는 대신
동맹을 맺을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발해는
이족(夷族:오랑캐족)과 동맹을 맺는 것은
해동성국(海東聖國)이라는 명성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하여 동맹을 거절했다. 이에 요국 태조 아보기는
발해를 멸망시키는 것이 자신의 소원이라고
대신들에게 누차 말할 정도로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냈다.
발해는 이로써 처절한 전운이 감돌게 되었다.
그러나 발해 왕조는 강역(彊域:영토)이 수천 리나
되는 강대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누대에 걸친 왕권
투쟁과 왕실의 부패로 군대를 양성하는 일을 게을리
하고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신흥왕조인
고려(高麗)의 태조 왕건(王建)에게 공주를 정략결혼
시켰다. 그러나 고려는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에
돌입해 있어서 발해를 도울 만한 여지가 전혀 없었다.
고려는 후백제(後百濟)의 견훤(甄萱)과 전쟁중이었고
태조 왕건이 궁예(弓裔)를 제압한 지 얼마되지 않아
국력이 북방(北方)을 경영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발해 왕조는 요 나라와 전쟁을 하여 국가를
지키려는 진취적인 호국정신을 버리고 투항주의로
일관함으로써 멸망의 길을 재촉하였으니
고조선(古朝鮮)과 고구려(高句麗)에 이어 발해의 수천
리나 되는 대륙의 광활한 영토(領土)가 전설의 땅,
전설의 나라가 되어 역사에 남게 되는 것이다.
................................................
1). 거란(契丹)은 몽골계의 유목민족으로
시라무렌강 유역에서 일어나 발해의 건국 당시
끊임없이 연합과 배신을 되풀이하였다. 발해가 멸망할
무렵엔 요(遼)라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대륙에서 요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2). 돌궐(突厥)은 터어키계의 유목민족으로
알타이산맥 일대에서 일어나 몽고 와 중앙아시아에서
수없이 흥망을 되풀이했다. 이들은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 유민들의 복국투쟁까지 방해를 하게 된다.
물론 당 나라로부터 빼앗긴 자신들의 영토를 되돌려
받고 조공(租貢:여기서는 물자의 공급)을 받는 조건에
의해서다.
3). 말갈(靺鞨)은 시베리아, 만주 북동지방, 함경도
일대에 걸쳐 살던 민족이다. 고구려에 예속되었다가
뒤에는 발해에 예속되고 발해가 멸망하자
여진(女眞)이 된다. 고조선 때부터 있던 민족인데
사실상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말갈은
크게 7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4). 대조영의 천문령전투는 698년 여름에 있었던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정확한 시기와
천문령의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2. 발해를 꿈꾼다
발해는 과연 어디서부터 온 나라인가.
왜 발해는 우리에게 남의 민족처럼 여겨지고
있는가.
발해가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분명한데도 무엇
때문에 발해국사(渤海國史)가 전해지지 않고 그
광대한 영토가 중국 영토가 되어 있는가. 이 소설은
그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까마득한 태고에 있었던
인간족의 대이동으로부터 발해의 역사를 역추적해
본다.
휘이잉......
바람은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벌판의 마른풀을
휩쓸며 사납게 불어오고 있었다. 인간족 무리들은
뇌수를 후벼팔 듯이 스산하게 부는 바람소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온은 차디찼다. 태양이 구름 속에
들어간 이후 날씨가 더욱 차가워져 있었다. 그러나
인간족 무리들은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고행을 하듯
계속 묵묵히 걷고 있었다.
한겨울이었다. 아득한 옛날 그들의 선조들이 떠나온
고향(아프리카)에서는 도무지 겪어보지도 못한 맹렬한
추위였다. 인간족 무리들은 짐승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중얼거리며 어깨를 바짝 움츠렸다.
춥다.
추위와 차디찬 바람이 나뭇잎 따위로 엉성하게 가린
그들의 몸으로 사납게 몰아치고 있었다. 날씨는
음산했다. 하늘은 눈발이라도 날리려는지 우중충한
잿빛이었다. 추위가 닥치기 전에 겨울을 나야 할
동굴을 찾아야 했으나 짐승에 가까운 두뇌를 갖고
있는 그들은 여름철이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바람이 선선해지면 동굴을 찾아서 겨울을
나야 하는 것은 그들 인간족의 오랜 생활 경험에서
터득한 것이었으나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동안
그들은 거짓말처럼 잊어버리는 것이다.
족두(族頭:무리의 우두머리)는 앞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침침한 눈으로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의
뒤에는 굶주림과 추위, 피로에 지친 인간족들이
차디찬 북풍에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무리는 모두 다섯이었다. 처음엔
족두가 거느리고 있는 인간족 무리들은 열 손가락을
꼽아도 남는 숫자였으나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죽어서 이제는 다섯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죽음은 언제나 그들의 곁에 있었다. 호랑이나 표범,
늑대, 멧돼지, 곰 따위의 맹수들에게 물려 죽기도
했고 다른 인간족들과 싸우다가 죽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생물들이 그러했듯이 인간족들도 끊임없이
번식을 했다.
수명은 몹시 짧았다. 그들은 태어나서 한 살이 되기
전에 태반이 죽었고 종족을 번식시킬 수 있는 나이인
열 다섯, 여섯이 될 때까지 또 다시 반이 죽었다.
그들의 평균 수명은 20세도되지 않았다.
그들은 족두 정도의 나이까지 사는 일이 거의
드물었다. 족두는 스물 일곱 살이었다. 물론 족두는
자신의 나이를 알지 못했다.
족두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곁을
스쳐간 숱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족두는 무리 중에
암컷을 하나 거느리고 있었다. 그 암컷은 원래 다른
족두의 암컷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족두가
되었던 다른 족두는 얼음이 얼은 강을 건너다가 빠져
죽고 말았다. 그것은 이미 5년이나 전의 일이었다.
족두는 겨울이 바뀌는 것을 열 손가락을 꼽아서
기억했다. 손가락의 범위를 넘는 숫자는 족두로서도
알지 못했다.
족두는 처음의 족두가 물에 빠져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리는 것을 어렴풋하게 기억했다. 그것은 불과
5 년 전의 일인데도 기억이 희미했다. 그러나 그는
처음의 족두가 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족들은 그때까지도 헤엄을
칠 줄 몰랐다.
그후 암컷은 자연스럽게 그의 소유가 되었다. 그의
무리들 중에는 아직 암컷을 거느릴만한 나이의
인간족이 없었다.
그 암컷이 있는 한 족두는 종족을 번식시킬 수 있을
터였다.
암컷이 그의 무리들과 함께 살게 된 것은 어떤
동굴에서였다. 그들이 추위를 피해 한 동굴을 찾아
들어가자 한 무리의 인간족들이 늑대의 무리에게
습격을 받아 죽어 있었다. 처음의 족두와 족두는 피에
굶주린 늑대들과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늑대들은 이미 습격을 마치고 인간족들을 사나운
이빨로 뜯어먹고 있었다. 동굴 안은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인간족들은 늑대들에게 물어 뜯겨
피투성이였다.
마침내 늑대들이 물러갔다. 동굴 안에 낭자한 피와
시체가 즐비했다. 시체들의 모습은 참혹했다.
그러나 시체들 가운데 암컷이 하나 살아 있었다.
암컷은 추위와 공포에 떨며 그들을 따라 나섰다.
암컷의 몸도 곳곳이 늑대의 이빨에 물어뜯기고 발톱에
할퀴어 끔찍했다.
족두는 암컷에게 다가가서 몸을 만졌다. 암컷의
둔부며 가슴이 눈에 들어오자 이상하게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 처음의 족두가 그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그것은 암컷을 건드리지 말라는 처음의
족두의 신호였기 때문에 족두는 더 이상 암컷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의 족두가 물에 빠져 죽어 족두는
마침내 그 암컷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족두와 인간족들은 아직 말조차 하지 못했고 의사
교환은 괴성이나 손짓으로 했다. 드물기는 하지만
눈빛으로 의사를 알아차릴 때도 있었다.
"워!"
족두는 무리들을 향해 주먹을 흔들며 괴성을
질렀다. 그것은 빨리 오라는 신호였으나 무리들은
여전히 힘들게 걸음을 떼어놓고 있었다.
"워!"
족두는 이번에는 하늘을 향해 주먹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하늘에서 눈이 올지 모른다는 신호였으나
무리들은 여전히 지친 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음을
떼어놓을 뿐이었다.
족두는 무리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을 단념했다.
그는 길에서 꺾은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그것은
지팡이로도 쓰이고 이동중일 때는 뱀 따위의 짐승을
쫓는 무기로도 사용되었다. 그 무렵까지 인간들이
사용하는 유일한 도구였다.
이내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서쪽 지평선에서부터
잿빛이 점점 짙어지더니 잠깐 사이에 대륙이
어두워졌다. 이제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밤에는 인간족들도 쉬어야 했고 황량한
들판에 서식하고 있는 피에 굶주린 늑대들의 습격도
피해야 했다.
족두는 오래지 않아 인간족들이 쉴만한 곳을
찾아냈다. 들판이 움푹하게 들어간 장소였다.
주위에는 마른풀이 무성했다. 인간족들은 마른풀을
굵어 모았다. 밤이 몹시 춥다는 것은 어린 인간족이나
어른 인간족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인간족들은 낮에 마련한 식량을 먹었다. 그것은
어떤 줄기의 뿌리인데 줄기를 걷어내자 어른 주먹만한
뿌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것을 낮에 잔뜩 먹고
인간족들이 두 세 개씩 가지고 왔던 것이다.
식량을 먹은 뒤에 인간족들은 하나 둘씩 잠이
들었다. 어린 인간족이 칭얼대기도 하고 어미
인간족인 암컷과 장난을 하기도 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잠에 떨어졌다.
그러나 족두는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족두는 이 번 여행에서도 인간족의 무리를 잃었다.
추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고 인간족들은 추위를
피해 멀고 먼 여행을 해야 했다.
얼마 전부터 족두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생각,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자신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저 멀리 들판에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음산하게
들려왔다. 족두는 머리끝이 곧추 서고 소름이 오싹
끼쳐 왔다. 황량한 벌판에서 가장 무서운 적이
늑대였다. 그러나 그가 귀를 바짝 세우고 귀를
기울여도 늑대의 울음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어쩌면 잘못 들은 것인지도 모른다.
족두는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
그때 부드러운 손 하나가 족두의 몸을 더듬어 왔다.
족두는 눈을 감고서도 감촉만으로 암컷의 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눈을 뜨자 암컷의 손이 그의
가슴을 부드럽게 애무하며 낑낑대는 신음소리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히힝!"
족두는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이....."
암컷이 수줍은 표정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암컷의 옆에 가 누웠다. 그러자 암컷이 그의 손을
잡아 당겨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손에 뭉클한
암컷의 가슴이 만져졌다. 족두는 자신도 모르게
아랫도리로 뻐근한 기운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어린 새끼 인간족에게 젖을 먹이는 암컷의 가슴은
수컷과 달리 크고 둥글게 솟아 있었다. 게다가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족두는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암컷이 낑낑대며
좋아했다. 족두는 다시 혀로 그것을 애무했다. 이내
암컷이 두 다리를 벌리고 하늘을 향해 누웠다.
족두는 암컷의 몸 위로 올라갔다.
암컷이 두 팔을 그의 목에 감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에 매달렸다.
밤이 깊었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고 있었다. 살을 에일 듯이
사납게 불던 바람도 어느덧 잔잔해져 사방이 죽은
듯이 조용했다.
족두는 여전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족두는 잠시 암컷을 내려다보았다. 암컷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 일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는
아랫도리에서 무엇이 빠져나간 듯한 허전한 기분이
들기도 했으나 암컷이 지극히 기분 좋은 포만감에
빠져 있는 듯해서 만족스러웠다. 그것은 암컷이
포식을 하고 잠이 들었을 때와 흡사한 표정이었다.
암컷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는
표정이었다.
족두는 암컷을 내려다보다가 기분이 좋아져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어쩐지 암컷이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그는
암컷의 얼굴을 덮고 있는 머리카락을 옆으로 치운 뒤
암컷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덮었다.
귀를 기울이자 암컷이 쌔근쌔근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족두는 무릎을 웅크리고 앉아 무릎 위에 턱을
받쳤다. 그의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오늘은 기어이 알아내야 했다.
어두운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얀 꽃잎처럼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족두는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동굴만 있다면 눈이 내리는 것도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황량한 벌판에서 눈이 내리는 것은
인간족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일뿐이었다.
"워!"
"워!"
족두는 두 손을 모아 입으로 가져가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간족들에게 눈을 뿌리지
말아달라는 처절한 기원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흰
눈은 족두의 외침은 아랑곳없이 자욱하게 눈발을
뿌리고 있었다.
족두는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른풀을 굵어 모아 덮기는
했으나 눈 때문에 온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족두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날이 밝은 것인가.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눈은 어느
사이에 그쳐 있었으나 사방은 밤중에 내린 눈(雪)의
흰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때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암컷이 몸을
일으켰다. 족두는 암컷을 향해 웃었다. 암컷도
무릎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고는
그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족두와 암컷은 나란히 서서 동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때 동쪽 하늘에 붉은 빛이 희미하게
번지기 시작하더니 보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핏빛으로
붉어졌다. 그리고는 아득한 지평선위로 찬란한 태양이
솟아 올라왔다. 장엄한 일출(日出)이었다.
"아!"
족두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그가 지금까지 찾고 있던 것, 그의 머릿속에서
뚜렷하지 않게 자리잡아 그를 괴롭히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한순간에 알았다.
족두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가슴속에서
뜨겁게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암컷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한 손으로 태양을
가리켰다. 암컷도 태양을 보았다. 그리고 암컷도
족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둘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교감에 의하여 그들의 오랜 방랑이
태양이 뜨는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암컷이 발을 동동 구르며 끼익끼익 소리를 냈다.
족두는 태양을 향해 두 손을 벌렸다. 그리고 붉은
태양을 향해 힘껏 소리쳤다.
"우!"
그 소리에 평화롭게 잠들어 있던 인간족 무리들이
모두 깨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벌판에 하얗게 쌓인
눈을 보았고 그 다음에 동쪽 지평선에서 떠 오른
태양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족두를
따라 힘차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들의 소리는
족두와 달리 원숭이들이 나무 위에서 부르짖는 소리와
흡사했다.
얼마후 인간족들은 해가 뜨는 나라를 향해 또 다시
길고 긴 여정에 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거대한
대륙, 그들의 후손들이 요동(遼東)이라고 부르는
대륙에 이르러 정착했다.
................................................
1) 족두의 인간족들이 이동하는 모습은 원시시대
이동의 전형(典刑)이다. 인간족들은 어떤
이유(과학자들은 빙하기의 도래를 이유로 들고
있다)에서인지 알 수 없으나 계속 이동을 하여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2) 5백만년 전 지구의 한 대륙에 직립인(直立人)이
태어났다. 그것은 초신성(超新星)의
빅뱅(Bigbang:대폭발)으로 150억년 전에 우주가
창조되고 미행성(微行星)의 이합집산으로 46억년 전에
원시지구가 탄생한 이후 인류로서는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직립인들은 인류의 조상이라고 여겨지는
영장류(靈長類)인 유인원(類人猿)에게서 직립하므로서
마침내 인간으로 진화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진화 이전의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이들이 인종적 특징을 가지면서 전세계로
퍼져 나간 것은 20만년 전쯤의 일이었다. 그들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으나 현인류의
조상들(新人: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이 태어난
아프리카를 떠났다.
이들은 아프리카를 떠난지 10만년만에 중동(中東)에
도달했고 니그로이드(黑人)에서 코카서스(白人)으로
갈라져 3만 5천년 전에 크로마뇽인이라고 불리는
유럽인들의 조상이 되었다.
히말라야 산맥의 남부로 진출한 인류는 인도인의
조상이 되었고 북부로 향한 인류는 빙하시대의 차가운
환경에 적응하여 몽골로이드(黃人)가 되었다.
3) 인류가 이동을 시작한 것은 20만년(계몽사 발행
과학잡지 뉴턴) 전쯤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이미 70만년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구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되어 그 이전에 인류가
존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고등학교 국사(國史)는
한반도에 70만년 전에 인류가 존재했다는 학설을
취하고 있다.
3. 족외혼으로 부족이 연합하다
그 대륙은 인간족 무리들이 살기에 알맞은 기후
조건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아프리카를 떠난 이후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온난하고 다습한 기후였다.
계절은 사계(四季)가 되풀이되었다. 봄은 따뜻했고,
여름은 뜨겁고, 겨울은 추웠다. 그러나 산들이 많았기
때문에 동굴에서 얼마든지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여름엔 우기(雨期)가 계속되었다.
우기는 인간족들에게 생명수인 물을 풍부하게
제공하였다.
인간족들은 좋은 기후에서 종족을 번식해 나갔다.
기후가 나쁜 곳에서처럼 인간족들이 자꾸 죽는 일은
드물어졌다. 물론 그 무렵에도 인간들을 위협하는
맹수들은 곳곳에 있었다. 늑대를 비롯한 곰, 호랑이
같은 맹수는 대륙에도 있었고 질병도 인간족의 수명을
단축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영장류였다. 수십 억의 동물들이
지구상에 존재했다가 사라지고는 했으나 영장류인
인간족은 마침내 도구를 사용하는 시기에 이르게
되었다. 동물의 뼈, 돌, 끝이 뾰족한 나뭇가지,
방망이들이 인간족들의 도구였다.
그들은 점점 진화했다.
이제 수컷들은 짐승을 사냥하기 시작했고 암컷들은
동굴에서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수컷은 더욱 힘이 세어졌고 암컷은 반대로 연약해져
갔다.
게다가 그들은 손과 소리만으로 의사로 교환하던
것을 언어로 의사를 교환하게 되었다. 언어로 부족한
것은 간단한 기호로 표시했다.
그들은 또한 무리를 이루고 함께 살았다. 암컷인
여자는 동굴에 남아서 아이를 키우고 아직도
원시적이긴 했으나 옷을 만들고 음식을 만들었다.
수컷들은 사냥을 하거나 다른 무리들과 싸워서
자신들이 속한 집단을 보호했다. 물론 이것은
인간족들이 대륙에 도착한 뒤에도 수만 년이
흐르기까지 쉬지 않고 진화한 결과였다.
마을에서는 북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궁호(弓戶)는 활의 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다가 말고
북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북소리의 둔탁한
타음이 심장의 박동처럼 울리고 있었다. 날씨는
좋았다. 밤까지 비가 내렸으나 아침이 되자 물안개가
산 위로 뽀얗게 피어오르면서 구름이 걷히고 눈부신
햇살이 퍼지고 있었다.
이제는 다시 사냥에 나서야 했다. 아침은 사냥을
떠나기 전에 챙겨 온 건량으로 했기 때문에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본격적인 사냥을 하기 위해 다른
소년들도 활을 챙기고 창을 손질하고 있었다.
궁호는 번깐산맥 일대의 넓은 평야에 거주하는
부루족(夫婁族)의 하나인 아루족(阿婁族) 족두의 세
번째 여자에게서 낳은 아들이었다. 족두는 세 여자를
거느리고 있었고 아들과 딸이 일곱이었다. 궁호는
족두의 아이들중 가장 어렸다.
아루족의 부족들은 이미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나
여름철과 겨울철엔 사냥을 했다. 겨울이 오면 추위가
닥치기 때문에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어야
했던 것이다.
여름철의 사냥은 조금 특이한 것이었다. 사냥은
대부분 겨울에 했으나 여름철의 사냥엔 성인이 되어
가는 소년들이 동원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성인신고식으로 사냥에 참여해야만 용사로서 대접을
받는 것이다.
이 사냥은 사흘 동안 계속되는데 마을은 내내
축제로 들떠 있었다. 사흘 동안 마을에 남아 있는
노인들과 여자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이
사냥에서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춤을 추고
놀았다.
궁호는 생각에서 깨어나 다시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겨보았다. 시위의 탄력이 마음에 들었다. 화살은
싸리나무를 뾰족하게 깎고 박달나무로 촉을 만들어
끼운 것이었다.
궁호는 이 번 사냥에서 누구 못지 않게 많은 사냥을
했다. 활로 토끼 두 마리와 장끼 한 마리, 그리고
창으로 노루를 한 마리 잡았던 것이다.
오늘은 이번 여름철 사냥의 마지막 날이었다.
족두는 약간 긴장이 되는 것을 느꼈다.
지난 이틀 동안의 사냥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아직 맹수류의 커다랗고 사나운 짐승은 잡지 못했다.
호랑이를 잡지는 못해도 멧돼지 정도는 잡아야
마을에서 용사로 대접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이틀은 소득이 별로 없었다.
밤에는 숲에서 잠을 잤다.
호랑이 같은 맹수가 이따금 숲 속에서 포효를 하고
마른번개와 뇌성으로 이따금 산이 울었으나 궁호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아버지인 족두는 언제나 자애로운 눈빛으로 그를
살피고 있었다.
"너는 우리 부족의 족두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용감해야 해."
아버지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아요."
궁호도 눈빛으로 대답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저두 아버지를 사랑해요."
궁호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자 아버지가 궁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궁호는 가슴이 묵직해 왔다.
아버지는 벌써 늙어 있었다. 얼굴엔 주름살이 생기고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서 헐떡거렸다. 궁호는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에 어쩐지 가슴이 아팠다.
사냥이 시작된 첫날 그들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마을을 출발했다. 그러나 첫날이라 소득이 별로
없었다.
사냥은 이튿날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튿날도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비가 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냥을 멈추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야 했다.
비는 밤에도 계속 왔다. 이따금 천둥 번개가 치고
비바람에 나뭇잎이 사납게 흔들렸다.
겨우 비를 피할 수 있는 바위 밑에서 궁호는 족두인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다른 무리들도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의
나무나 바위틈에서 비를 피해 잠을 자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날밤 내내 궁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궁호가 잠을 자다가 깨어 보면 아버지가 언제나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궁호는 아버지의 손에서
따뜻한 체온이 자신의 몸 속으로 흘러드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해가 산 위로 높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신호에 따라
무리는 다시 사냥에 나섰다. 궁호는 활을 어깨에 메고
창을 들었다. 무리 중에 노련한 사냥꾼들이 짐승의
발자국과 배설물을 찾아 추격을 하기 시작했다.
"멧돼지다!."
"멧돼지다!"
마침내 무리들이 멧돼지를 찾는데 성공했다.
멧돼지는 풀숲에서 길을 잃었는지 주둥이로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무리들에게 신호하여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했다.
궁호는 활을 어깨에서 내려 멧돼지를 겨누었다.
멧돼지는 1백보 정도 떨어져 있었다. 창을 쓰기 위해
가까이 접근하면 멧돼지가 달려들거나 달아날 염려가
있었다.
궁호는 심호흡을 하고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다른 소년들도 일제히 활을 겨누었고 아버지의 신호에
따라 시위를 놓았다. 그러자 수십 개의 화살이
멧돼지를 향해 날아갔다.
"맞았다!"
화살 몇 개가 멧돼지의 등에 박혔다. 멧돼지가
주둥이를 번쩍 들더니 사나운 괴성을 지르면서
무리들을 향해 달려왔다.
"피해라!"
어른들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으나 멧돼지는
질풍처럼 달려서 무리들을 머리로 받았다. 무리들이
어이쿠 하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나뒹굴었다.
궁호는 재빨리 멧돼지를 피했다. 그러나 멧돼지의
뿔이 옆구리를 스쳤는지 옆구리가 화끈했다.
"멧돼지가 달아난다!"
"멧돼지를 쫓아라!"
아버지가 무리들에게 외쳤다. 궁호는 활을 버리고
재빨리 멧돼지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멧돼지는 벌써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궁호도 풀숲을 헤치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궁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멧돼지의 생각만 가득차 있었다.
마을에서는 계속 북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궁호는 숨을 헐떡거리며 멧돼지를 쫓았다. 이제
동료 소년들이나 사냥에 나선 어른들은 보이지
않았다. 궁호는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등성이를 몇 개나 넘을 때까지 쉬지 않고
멧돼지를 추격했다. 멧돼지는 피를 흘리면서도 계속
달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잠깐 사이에 궁호는 멧돼지를 놓치고
말았다. 멧돼지가 계곡의 무성한 넝쿨 속으로
들어가더니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궁호는 이마의 땀을 주먹으로 훔쳤다. 동료들에게
너무 멀리 떨어진 것 같았으나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긴장과 멧돼지를 잡아야 한다는 일념에 숨이
가쁜 것도 잊어버렸다.
궁호는 계곡 주위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아!)
그러다가 궁호는 마침내 계곡에서 물을 마시는
멧돼지를 발견했다. 궁호는 조심스럽게 멧돼지를 향해
접근했다. 멧돼지는 화살을 맞아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기진맥진해 있었다.
궁호는 멧돼지에게 가까이 접근하자 목덜미를 향해
힘껏 창을 찔렀다. 멧돼지의 목에 창이 깊숙이
찔렸다. 멧돼지가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다가
계곡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창이 목덜미를 찔렀기
때문에 몸부림을 치며 계곡을 휘젓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잡았다!"
궁호는 환호성을 질렀다.
멧돼지의 목에서 흘러내린 피로 계곡 물이 온통
시뻘겋게 변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궁호는 멧돼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어?)
그때 궁호는 계곡 옆에 여자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궁호는 잠시 여자를 살폈다. 여자는 바위
위에 엎어져 있었다.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여자는 허벅지의 살결이 뽀얗게 희었고 낮게 신음을
하고 있었다.
궁호 또래의 여자였다. 그러나 아루족이 아닌 것을
보면 산 너머에 살고 있는 마루족(馬婁族)의 여자
같았다.
(죽었나?)
그러나 여자는 살아 있었다. 뱀에 물렸는지 왼쪽
발이 퉁퉁 부어 신음하고 있었다. 궁호는 잠시
망설였다. 최근에는 별로 전쟁을 하지 않았으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루족은 마루족과 전쟁을 했었다.
전쟁은 대개 가을철에 하는데 상대 부족이 농사를
지은 곡식을 약탈하기 위한 것이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여자를 빼앗기 위한 전쟁을 할 때도 있었다.
부족에서 여자가 모자라면 다른 부족과 싸워서 여자를
빼앗아 오는 것이다.
마루족의 여자라면 적의 여자인 것이다.
여자는 간절한 눈빛으로 궁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크고 맑은 여자였다. 가슴은 봉긋했고 둔부는
풍만했다.
궁호는 여자를 들쳐 엎었다. 의외로 여자는
가뿐했다.
궁호는 여자를 엎고 마을로 돌아왔다. 멧돼지를
창으로 잡았기 때문에 궁호는 마을에서 용사가
되었다. 게다가 마루족의 여자까지 얻었으므로 모두들
기뻐했다.
궁호는 여자를 치료했다. 뱀에 물린 상처를 칼로
째고 피를 빨아낸 다음 약초를 발랐다. 여자의 상처는
한 달쯤 걸리자 아물었다. 여자의 이름은
아리(阿利)로 마루족 족두의 딸이었다.
궁호는 아리와 사랑에 빠졌다. 궁호는 이미 사랑에
빠질 나이에 이르러 있었고 이번 여름의 사냥 행사에
참여하여 당당한 용사가 되었기 때문에 여자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리가 마루족의 딸이었기 때문에
아리를 강제로 가질 수는 있었으나 그렇게 되면
마루족과 전쟁을 해야 했다.
마루족도 커다란 부족이었기 때문에 전쟁은 부족
전체의 의견을 물어야 했다. 궁호는 아리로 인해
부족이 전쟁에 휩쓸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인 족두는 전쟁을 해도 좋으니 궁호에게
아리를 가지라고 했다. 아버지도 아리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궁호는 아리의 상처가 아물자 아리를
마루족으로 돌려보냈다. 아리도 마루족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아리가 돌아가자 궁호는 허전했다. 궁호는 족두인
아버지의 말대로 아리를 자신의 여자로 갖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아리를 강제로 갖고 싶지는
않았다.
궁호는 아리가 쓰러져 있던 계곡을 찾아갔다.
아리가 돌아가자 아리가 더욱 보고 싶어졌다. 궁호는
거의 매일 같이 아리를 처음 만났던 계곡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궁호는 그 계곡에서 아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날도 궁호가 아리를 만났던 일을
회상하며 계곡을 찾아가자 뜻밖에 아리가 계곡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궁호는 가슴이 쿵쿵거리고
뛰었다.
아리도 궁호를 발견했다. 둘은 처음에 한참동안
서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아리가 수줍음을
느꼈는지 물 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시
머리를 내밀고 까르르 웃었다.
"궁호!"
아리가 궁호를 손짓해 불렀다.
"아리!"
궁호도 그때서야 기쁨에 넘쳐 소리를 질렀다.
"이리 들어와서 같이 목욕할래?"
"그래도 괜찮아?"
"물론이야."
아리가 쾌활하게 대꾸했다.
궁호는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아리와
함께 물 속에서 놀았다.
아리의 아버지인 마루족 족두가 궁호의 아버지인
아루족 족두를 찾아온 것은 늦가을이었다.
두 족두는 궁호와 아리에 대한 문제를 토론했다.
그것은 부족의 족두들이 처음 갖는 회합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궁호와 아리가 함께 사는 것을
허락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두 부족은 자유로이
왕래하고 전쟁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인간족들은 마침내 족외혼(族外婚)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부족과 부족이 연합을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
1) 족외혼(族外婚)은 부족 연합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전에는 부족과 부족이 약탈을 위한 전쟁을
했으나 이제는 혼인으로 인하여 부족 연합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족외혼이 이루어진
뒤에도 부족들의 약탈전쟁은 계속되었다. 약탈전쟁은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다.
2) 궁호와 아리는 창조된 인물이다. 아루족 마루족
역시 창조된 이름이며 조선족은 부루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부루는 불의 어원에서 왔다고도 한다.
부루족은 시베리아에서 몽고, 만주 그리고 중국
대륙에 분포되어 있었다. 궁호와 아리가 살던 지역이
어느 지역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편의상 요야(만주)
대륙으로 설정한다.
3) 인간족 무리들이 해뜨는 나라를 찾아 길고 긴
여정에 오른지 몇 만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
극심한 가뭄으로 아프리카를 떠난지 10만년만에
중동에 이르고 그 곳에서 다시 히말라야로 진출한 지
5만년, 그들은 빙하기의 극심한 추위를 피해 남하를
계속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요야(遼野)에
정착했다. 물론 인간족들은 아주 작은 무리로
이동했기 때문에 요야에 이르기 전에 죽은 무리도 수
없이 많았고 몽고, 중국, 사백력(斯白力:시베리아),
흑수(黑水:黑龍江)유역에 도착한 무리들도 있었다.
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장정을 계속하여 마침내
해뜨는 대륙에 이른 것이다.
4. 환인(桓因)시대
궁호의 아루족은 아리의 마루족과 함께 계속 번성해
나갔다. 생활 습관이 다룬 부족과 부족이 교통을 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습관을 만들게 되었고 이러한 습관은
부족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언어가 나타난 뒤에 인간들은 불을 도구로 사용하게
되었다. 언어와 불은 수 천년 동안이나 지지부진하던
인간의 진화를 기하학적으로 발전시켰다. 불은
청동기문화를 열고 철기시대를 도래하게 했다. 언어는
시간의 개념을 탄생시켰고 언어에 의해 전대(前代)의
일들이 후대(後代)로 계승되었다.
언어가 기록성이 없자 인간들은 기호를 쓰기
시작했다. 기호는 또 다른 의사표시였다.
인간들은 또 말을 타기 시작했다. 말은 최초의
탈것이었으나 거리를 단축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말을
탄 전쟁이 시작되었고 농사로 벼, 조, 콩을 재배했다.
흙과 나무, 그리고 벼에서 나온 짚을 엮어 집을
지었다.
궁호는 많은 자손을 번성시켰다. 그는 용사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많은 여자를 아내로 거느리게
되었고 그 여자들이 궁호의 자손을 번성시켰다.
자손들이 다시 자손을 번성시킴으로써 부족은 크게
번성했다. 그들은 마침내 문자까지 탄생시켰다.
아직은 상형문자(象形文字)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문자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궁호의 자손 중에 안파견(安巴堅)이라는 용사가
태어났다. 그는 18세에 부루족의 대족두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용맹하여 다른 부족들과의 전쟁에서도
가장 용감하게 싸웠고 스스로 신(神)이 되어 부족들을
통치하였다.
안파견은 부루족의 다른 종족들을 통일시켰다. 그의
전쟁은 지금까지의 약탈을 위주로 한 전쟁과 달리
지배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는 지배하기 위해서
계속 전쟁을 했고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적어도 그는
해가 뜨는 곳에서부터 해가 지는 곳까지 그의 영토로
삼았다.
그는 전쟁에 나가기 전 박달나무(壇木) 아래서
하늘에 기도를 했다. 스스로 하늘(天帝)의 아들이라
부르며 환인(桓因)이라고 했다.
이들의 강역(彊域:영토)은 멀리 요야(만주)와 중국
대륙일대, 그리고 반도까지 이르고 있었다.
안파견은 한 해의 농사가 끝나면 부족을 이끌고 그
해의 농사를 풍요롭게 해준 바람, 구름, 비의 신에게
제사를 바쳤다. 그 제사를 10월에 지냈기 때문에
상달이라는 말이 나왔다. 3월엔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는 뜻으로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은 당연히 대부족의 족두가 맡았는데 그를
수두(首頭:우두머리 족두)라고 불렀다.
그들은 초대 수두의 이름을 따서 다음 수두를 모두
환인(桓因)이라고 불렀다.
환인시대에는 모두 7대의 환인이 있었다.
환인시대 이후는 신시시대(神市時代)가 시작되었다.
신시시대에는 제사를 지내는 수두를 환웅(桓雄)이라고
불렀는데 모두 18대의 환웅이 있었다.
신시시대의 환웅은 대부족의 족두들이 돌아가면서
맡았다. 그리고 둘째 셋째로 큰 대부족의 족두들이
장로가 되어 환웅을 옆에서 거들었다. 그러나
차츰차츰 세력이 강한 대부족의 족두들이 세습하기
시작했다.
................................................
1) 환인(桓因)은 한단고기(桓檀古記:桂延壽 편찬
林承國 번역.주해:정신세계사 刊)에서 환을 한으로,
인을 임(任:님)이라고 읽는다. 한님, 또는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2) 한단고기에서 발췌한 환인시대의 제위는 다음과
같다.
제1대 안파견(安巴堅)
제2대 혁서(赫壻)
제3대 고시리(古是利)
제4대 주우양(朱于襄)
제5대 석제임(釋提任)
제6대 구을리(邱乙利)
제7대 지위리(智爲利)
3) 신시시대의 제위는 모두 18위나 된다.
신시시대에는 제사장 수두를 환웅(桓雄:한웅)이라고
불렀다.
신시시대의 세보는 다음과 같다.
제1대 거발한(居發桓)
제2대 거불리(居弗利)
제3대 우야고(右耶古)
제4대 모사라(慕士羅)
제5대 태우의(太虞儀)
제6대 다의발(多儀發)
제7대 거련 (居連)
제8대 안부련(安夫連)
제9대 양운(養雲)
제10대 갈고 또는 독로한(葛古 瀆盧桓)
제11대 거야발(居倻發)
제12대 주무신(州武愼)
제13대 사와라(斯瓦羅)
제14대 자오지 또는 치우(慈烏支 蚩尤)
제15대 치액특(蚩額特)
제16대 축다리 (祝多利)
제17대 혁다세(赫多世)
제18대 거불단(居弗檀)
이들은 모두 80세에서 149세까지 산 것으로
한단고기에 실려 있는 삼성기전(三聖記傳) 하편에
나와 있다. 이들이 모두 장수했다는 기록이나 연표는
의문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스라엘의
상고사(上古史)를 비교할 때 오히려 야사(野史)로
취할 점이 더욱 많다.
삼성기 하편을 지은 인물 원동중(元董仲)이 어느 때
인물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삼성기 상편이 신라
때 승려 안함로(安含老)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평가된다.
5. 제천(祭天)과 개국(開國)
신시시대의 탄생은 인간족들이 부족을 이루고
인간의 생활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찾아 정착하게
됨으로써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족으로써
가장 발달한 영장류인 이들은 자연에 외경심을 갖게
되었고 자연에 대한 외경심은 곧 원시종교로
발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은 태양이 사라지는 일식(日食)이나 달이
사라지는 월식(月食), 비바람, 천둥, 번개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이 두려움은 모든 것을 주재하는
신(神)이 존재한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물론
태양이나, 비, 바람, 천둥, 번개.....심지어 나무와
물도 이들에게는 신성한 존재였다.
이들은 자연의 변화가 있을 때나 추수가 끝나는
가을이면 이 모든 것을 주재하는 신들--특히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이 제사의 이름이 제천(祭天)이었다.
추수가 끝난 뒤의 제사는 축제의 의미도 있었다.
이들은 신단수(神檀樹:박달나무) 아래 천지를 향해
제천의식을 지낸 뒤 춤추고 놀았다.
환인시대 이전은 단위부족의 시대였다. 그러나
환인시대는 대부족의 시대로 발전했다. 좋은 환경에서
정착한 인간들은 빠르게 번식하기 시작했고
단위부족이 여러 부족으로 갈라지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 온 부족들과의 마찰도 일어났다.
이들은 전쟁을 시작했다. 처음엔 다른 부족에 대한
단순한 공포심에서, 다음엔 약탈을 하기 위해 전쟁을
했다.
부족들은 비대해졌다. 여러 부족을 통합한 부족은
커다란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 전에는 기껏해야
수백명 단위의 부족이었으나 이제는 한 부족이 수
천명의 단위가 되었다.
이들은 전쟁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전쟁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빼앗아 가고 있었다. 부족들은 마침내
전쟁을 하지 않기로 동맹을 맺었고 제사를 지낼 때면
신성한 장소에 모였다. 그들은 이 신성한 땅을
신시(神市)라고 불렀다. 신시는 상호 불가침의
성스러운 땅이 되었다.
그들은 신시에서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낸 뒤에는 먹고 마시고 춤을 추는 축제가 벌어졌기
때문에 부족들은 한 민족으로서 우의를 두텁게 다질
수 있었다.
신시시대는 제1대 거발한(居發桓:재위 94년 世壽
120세)에서 제18대 거불단(居弗檀:재위 48년 세수
82세)에 이르기까지 모두 1,565년에 이르렀다. 연대가
어느 정도 정확한 지는 알 수 없으나 부족은 더욱
커졌다.
부족은 드디어 국가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부족을 통일하여 나라를 열었는데 이름은
조선(古朝鮮)이고 나라를 연 환웅은
왕검(王儉)이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대족두를
단제(檀帝) 또는 단군(檀君)이라고 불렀는데 단군은
초대 왕검(在位 93년 세수 130세)에서부터 마지막
고열가(古列加 재위 58년)까지 약 2천년에 이르렀다.
단군 왕검은 8조에 이른 금법(禁法)을 발표하고
나라를 통치했다.
................................................
1)단군의 개국은 삼국유사(三國遺事) 등 여러
역사서에는 천강설(天降說)을 바탕으로 신화처럼 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 단군신화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세계 모든 나라의 상고사의 한 형태일 뿐
우리 민족의 역사이다.
단군 천강설은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아득한 옛날이다.
천상의 세계를 다스리는 상제(上帝)에게
환웅(桓雄)이란 서자(庶子)가 있었다. 그는 매양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며 천하를 다스리려는 뜻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 상제는 아들의 뜻을 알고 지상을
굽어보았다. 그리고 삼위태백(三危太柏: 3개의 높은
산 가운데 태백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산)이
인간에게 이익이 될 만하다고 여겨져 아들 환웅에게
부하 신(神)을 거느릴 수 있는 천부인(天府印) 세
개를 주어 내려가 지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천상의 군대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柏山:묘향산) 산정(山頂)에 있는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라고 부르니
이 분이 곧 환웅천왕이었다.
그는 풍백(風伯:바람의 신), 우사(雨師:비의 신),
운사(雲師:구름의 신)을 거느리고 곡식, 수명(壽命),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세상의 360 가지 일을
주관하여 다스렸다.
이 무렵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동굴에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늘 신웅(神雄:환웅)에게
사람이 되고 싶다고 기원했다. 이에 신웅이 신령한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너희는 이것을 먹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되리라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신웅의 지시대로 금기(禁忌)에
들어갔다. 삼칠일(21일)을 금기하여 곰은
웅녀(熊女)가 되었으나 호랑이는 금기를 지키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는 사람이 되자 잉태하기를 소원했다. 이에
신웅이 사람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을 했다. 웅녀가
아들을 낳으니 이 사람이 곧 단군(제사장의 의미와
통치자의 의미를 갖고 있다) 왕검이었다.
단군 왕검이 당요(唐堯:중국 고대의 임금)가 즉위한
지 50년이 되는 경인년(庚寅年)에
평양성(平壤城:서경)에 도읍하고 조선이라 불렀다.
후에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다. 그 곳은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 부르기도 하니 나라를 다스린
것이 1500년이었다.
주(周)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이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고 다시 아사달로
돌아와 은거하다가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그의 나이
1908세였다......
2) 단군세보는 고려시대의 학자 행촌 이암(李암)의
단군세기(檀君世記)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3) 기자(箕子)가 조선에 와서 조선을 다스렸다는
기자조선설은 오류로 지적되고 있다.
4) 고조선의 말기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전삼한,
부여 등 여러 나라들이 왕을 단제, 또는 단군으로
불렀기 때문에 고조선 말기에는 단군이 같은 시대에도
여러 명 등장하는 것이다.
6. 전삼한(前三韓)에서 고구려까지
고대에 삼한(三韓)이 있었다. 하나는
진한(眞韓:또는 辰韓)이고, 둘은 번한(番韓:또는
卞韓), 셋은 마한(馬韓)이었다. 이들을
전삼한(前三韓)이라고 하는데 단군시대에 진은 대왕,
번한과 마한은 부왕(副王)의 직위를 일컬었다.
그러므로 이들 세 장로가 사실상 고조선을 통치하고
있었다. 이들이 당시의 가장 큰 부족이었기 때문에
부족 연합의 형태로 고조선이 이루어져 있었다. 가장
큰 부족인 진의 족두는 단군, 두 번째 세 번째 큰
부족의 족두들은 장로로서 단군을 보좌했다.
그러나 부족의 연합국가인 고조선은 어느 시기에
이르자 동맹이 깨어져 갈라지게 되었다.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로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세
부족이 언제까지나 부족 연합국가 형태로 존재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세 부족으로 갈라져 고조선은 진한,
나머지 둘은 번한과 마한이 되었다.
번한은 제1대 치두남(蚩頭南)에서 기준(箕準)까지
74대에 이르고 약 2천년을 존재했다.
마한은 제1대 웅백다(熊伯多)에서 맹남(孟南)까지
35대에 이르고 역시 약 2천년을 존재했다.
고조선은 제1대 단군 왕검이래 매우 강성하여
기원전 4세기경에는 연(燕) 나라와 전쟁을 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단군세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고조선이
분리되고 연 나라와의 전쟁을 하는 부분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43대 단군 물리 재위 36년
을묘 36년(B.C 461년). 융안(隆安)의 사냥꾼
우화충(于和庶)이 장군을 자칭하며 무리 수만 명을
모아 서북 36군을 함락시켰다. 단제는 병력을
파견했으나 이기지 못했으며, 겨울이 되자 도적들은
도성을 에워싸고 급하게 공격했다. 단제께서는 좌우의
궁인과 함께 종묘사직의 신주들을 받들어 모시고는
배를 타고 피난하여 해두(海頭)로 가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이 해에 백민성(白民城)의
욕살(褥薩:성주) 구물(丘勿)이 어명을 가지고 군대를
일으켜 먼저 장당경(藏唐京)을 점령하니 구지(九地)의
군사들이 이에 따라서 동서의 압록(鴨綠) 18성이 모두
병력을 보내 원조하여 왔다.
이 부분은 43대 단군 물리가 우화충의 반란으로
해구라는 곳으로 피난을 가서 죽고 백민성에 있는
구물이 군사를 일으켜 장당경을 수복하는데 구지, 즉
아홉 개의 지역 또는 아홉 부족의 18개 성이 병력을
보내 원조했다는 내용이다. 이로 인해 구물이 44대
단군으로 즉위한다.
장당경은 뒤에 경(京)자가 붙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고조선의 도읍이거나 중요한 도시일 가능성이 있다.
......44대 단군 구물 재위 29년
병진 원년(B.C 425년) 3월 큰물이 도성을 휩쓸어
버리니 적병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구물 단제께서는
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이들을 정벌하니 적군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저절로 괴멸하니 마침내 우화충을
죽여 버렸다.
이에 구물은 여러 장수들의 추앙을 받는 바 되어
마침내 3월16일에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지내고
장당경에서 즉위하였다. 이에 나라의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라고 고치고 삼한(三韓)은
3조선(三朝鮮)이라고 바꿔 불렀다.
이때부터 삼조선은 단군을 받들어 모시고 통치를
받기는 했지만 전쟁의 권한에 있어서는 애오라지 한
분에게만 맡겨 두지는 않게 되었다.
7월에는 해성(海城)을 개축하여 평양(平壤)이라
부르도록 하시고 이궁(離宮)을 짓도록 하였다.
구물이 장수들의 추앙을 받아 단제에 즉위하는 것은
연합부족국가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또 단제의 통치를
받기는 했지만 자치권도 갖고 있었다. 평양은 북한에
있는 평양이 아니라 만주의 요령성을 의미한다.
.......정사 2년(B.C 424년) 예관이 청하여
삼신영고(三神靈鼓)의 제사를 지냈다. 곧
3월16일이었는데 단제께서 친히 행차하시어
경배하시니 첫 번째 단에 세 번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째 단에 여섯 번 절하고 세 번째 단에 아홉 번
머리를 숙여 예를 올리는데, 무리를 거느리고는
특별히 열 번 머리를 조아렸다. 이를 삼육의 대례라고
한다.
임신 17년 (B. C 409년) 감찰관을 각 주(州)와
군(郡)에 파견하여 백성들을 살펴보아 효도를 잘 하는
자와 청렴결백한 관리들을 천거하도록 하였다.
무인 23년 (B. C 403년) 연 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새해 문안인사를 올렸다.
갑신 29년 (B.C 397년)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여루(余婁)가 즉위하였다.
을유 원년 (B.C 396년) 장령(長嶺)의 낭산(狼山)에
성을 쌓다.
신축 17년 (B.C 380년) 연 나라 사람이 변두리의
군을 침략하매 수비 장수 묘장춘(苗長春)이 이를
쳐부수었다.
병진 32년 (B.C 365년) 연 나라 사람 배도(倍道)가
쳐들어와서 요서를 함락시키고 운장(雲障)에 육박해
왔다. 이에 번(番) 조선이 대장군 우문언(于文言)에게
명하여 이를 막게 하고 진(眞) 조선, 막(莫:馬)
조선도 역시 군대를 보내어 이를 구원하여 오더니
복병을 숨겨 두고 공격하여 연 나라, 제 나라의
군사를 오도하(五道河)에서 쳐부수고는 요서의 여러
성을 남김없이 되찾았다.
정사 33년 (B.C 364년) 연 나라 사람이 싸움에
지고는 연운도에 주둔하며 배를 만들고 장차 쳐들어올
기세였으므로 우문언이 추격하여 크게 쳐부수고 그
장수를 쏘아 죽였다.
46대 단군 보을 시대에 이르러 번 조선 왕
해인(解仁)이 연 나라가 보낸 자객에게 암살을
당한다. 이로 인해 오가(五加)가 다투어 일어났다.
오가가 다투어 일어났다는 것은 반란과 혼란을
의미한다. 실제로 단군 보을 재위 38년에 도성에
큰불이 일어나고 46년에는 한개(韓介)가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려 했으나 고열가가 의병을 일으켜
가까스로 쳐부순다. 이때 나라의 국고가 바닥이 나서
비용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의병을 일으킨 고열가는 단군 보을이 붕어하자
단제로 즉위한다.
그러나 고조선은 이미 붕괴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단군 고열가는 어질고 순하기만 하고 결단력이
없었으며 명령을 내려도 시행이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여러 장수들은 용맹만 믿고 쉽사리 반란을
일으켜 고조선을 혼란에 빠트렸다.
단군 고열가는 3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오가들에게 단군을 추천하라 이른 다음 왕위를 버리고
입산하여 신선이 되었다.
이에 오가들이 6년 동안을 나라를 다스렸다.
이후 위만(衛滿)이 조선에 들어와 왕이 되니
위만조선이 시작되었다. 위만은 중국 열나라 사람으로
많은 유민들을 거느리고 패수를 건너 조선에 와서
고조선왕(실제로는 번조선) 준왕의 신임을 얻었으나
후에 그를 몰아내고 조선의 왕이 되었다. 위만 조선은
3대 88년만에 한(漢)나라 무제(武帝:유방)에게
멸망했다.
이 무렵은 고조선이 몹시 혼란하던 시대였다.
고조선(3조선)은 강대한 나라였으나 말기에 이르러
광활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지 못하게 되어
수많은 부족들이 독립하거나 떨어져 나가고, 혹은
반란을 일으켰다.
이 무렵 고조선의 국경내에 예맥(濊貊)과
옥저(沃沮)가 있었다. 단군세기에 의하면
청아(菁 )의 욕살인 비신(丕信)과 서옥저의 욕살인
돌개(突蓋)를 봉하여 왕으로 삼았다는 구절이 있다.
예맥은 조선족을 통칭하기도 하는데 만주 일대에
있었다.
이 혼란한 시기에 북부여가 탄생한다.
부여는 가섭원부여(迦葉原夫餘),
졸본부여(卒本夫餘), 동부여(東夫餘), 북부여(北夫餘)
등 여러 명칭이 혼재한다. 부여족이 고조선과 거의
같은 시대에 존재했는데 역시 단제의 통치를 받았다.
북부여의 탄생은 고조선의 혼란기에 이루어졌다.
임술 원년 (B.C 239년)의 일이었다.
북부여는 7대까지 이어져 B.C 59년에 멸망했다.
북부여의 시조는 해모수(解慕漱)로 하늘에서 내려와
웅심산에 도읍하였다. 상제(上帝)가 재상
아란불(阿蘭弗)의 꿈에 나타나 이 곳은 장차 내
아들이 도읍할 곳이니 가섭원으로 옮기라 하였다.
이에 해부루(海夫婁)가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고 했다.
해부루는 해모수의 아들이었다.
해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다. 어느 날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는데 큰 연못가의 바윗돌에
이르러 말이 움직이지 않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부루왕이 기이하게 여겨 신하들을 시켜 바위를
굴려보니 어린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금빛 개구리
모양이었다. 부루왕은 기뻐하며 아이를 데리고 와서
태자로 삼은 뒤 금와(金蛙)라고 이름을 지었다.
금와왕이 하루는 우발수(優發水)에서 아름다운 한
여자를 만났다.
"그대는 누군가?"
금와왕은 아름다운 여인에게 물었다.
"저는 하백(河伯)의 딸로 이름이 유화(柳花)입니다.
여러 동생들과 함께 물가에서 노는데 능신산(能神山)
압록강(鴨綠江:여기서 압록강은 어루하, 아루하와
함께 큰 강이란 뜻이다)가에 있는 남자가 자신은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고 하며 강제로 정을 통하더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부모가 혼인도 하지 않고
정을 통했다 하여 여기로 추방했습니다."
금와왕은 이상히 여겨 유화부인을 데리고 돌아왔다.
유화부인이 태기가 있어 알을 낳았는데 알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골격이 특이하고 영특했다.
특히 아이는 활을 잘 쏘아 백발을 쏘면 백발이 다
명중했다.
부여의 풍속에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朱蒙)이라고 불렀는데 알에서 낳은 아이는
그래서 고주몽으로 불리게 되었다.
금와왕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어서 언제나 주몽을
시기하였다. 그들은 마침내 주몽을 죽일 계획을
세웠는데 유화부인이 이를 알고 아들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주몽은 이에 동부여를 탈출하여 졸본주(卒本州)에
이르러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고구려(高句麗)라 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한단고기의 태백일사에 있는 고구려국 본기는 약간
다르다.
......고리군( 利郡:고구려의 다른 이름이다)의 왕
고진(高辰)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며 옥저후(沃沮候)
불리지(弗離支)는 고진의 손자이다. 모두 도적 위만을
토벌함에 있어서 큰공을 세웠다. 불리지는 일찍이
서쪽 압록강변을 지나다가 하백녀 유화를 만나 즐겨
그녀를 맞아들여 고주몽을 낳게 하였다.
불리지가 죽으니 유화는 아들 주몽을 데리고
웅심산으로 돌아왔으니 지금의
서란(舒蘭:길림성)이다. 주몽이 성장하여 사방을
주유하다가 가섭원을 택하여 그 곳에서 살다가 관가에
뽑혀 말지기가 되었다. 얼마 안되어 관가의 미움을
받아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와 함께
도망을 쳐서 졸본으로 왔다. 때마침 부여왕은 후사가
없었다. 주몽이 마침내 사위가 되어 대통을 이으니
이를 고구려의 시조라 한다.
태백일사의 고구려국 본기는 주몽의 성이 고씨라는
것과 졸본부여를 계승했다는 사실이 명백하여
신화적인 성격보다 오히려 역사성이 더 강하다.
태백일사는 유화부인도 단순한 여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백녀라는 것은 하백지방, 또는 하백이 물의
신이므로 큰 강가의 여인이라는 의미도 있다.
................................................
1) 고조선을 단순하게 하나의 나라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고조선은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연합부족국가이고 크게는 진(眞), 번(番), 마(馬)
조선 등 3조선이 있었고 작은 나라들도 무수히
많았다. 물론 이 작은 나라들은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으므로 단위 부족국가였을 것이다. 이 단위
부족국가까지 통칭하여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이 조선을 통치한 것은 단제였고 단제의
권위는 정교(政敎) 일치시대의 교황에 버금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2) 신채호는 자신의 저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고조선을 신조선,
불조선, 말조선으로 분류하고 있다. 신조선은 진,
불조선은 번, 말조선은 막이라고 했다. 아울러 부여,
고구려 등이 신조선에서 분립하였다고 보았다.
3) 국사학계에서는 위만조선도 고조선에 포함시키고
있다. 허나 엄밀히 따지면 위만조선은 고조선이
아니라 위만의 고조선 침략기에 해당한다. 일제36년을
근세조선도 아니고 대한민국으로도 보지 않고
일제36년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3) 발해 건국의 배경을 알기 위해 우리 선조들의
역사를 살피는 것은 여기서 끝을 맺는다. 발해의
광활한 영토를 알기 위해서는 고조선의 영토가
어디쯤인지 살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7. 대륙의 아이들
여기는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발해(渤海) 최고의
절경이라는 이름이 붙은 홀한해(忽汗海:경박호).
소슬바람과 함께 장려한 저녁놀이 핏빛으로
용두산(龍頭山) 산자락을 휘감아오면서
북우위(北友衛) 연무당(鍊武堂)에 한줌밖에 남지 않은
가을햇살을 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북우위의
연무당은 군사들이 내지르는 우렁찬 고함소리와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북우위 대장군 장영(張榮).
그는 북우위 연무청의 높은 누대에서 부장들을
거느리고 군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대는 불이라도 뿜을 듯한 진홍색의 깃발들이 처처에
꽂혀 펄럭거리고 조련을 하는 군관(軍官)들이 대장군
장영의 뒤에 삼엄하게 도열해 있었다.
"저게 현무검(玄武劍)이야."
북우위 연무당 동쪽의 낮은 담장. 잎사귀가 모두
떨어진 아름드리 수양버들 가지 사이로 두 아이가
연무를 하는 군사들을 훔쳐보며 소곤거리고 있었다.
두 아이의 나이는 기껏해야 12, 3세로 보였다. 옷은
너덜너덜 헤어지고 얼굴엔 땟국물이 자르르 흘러
동냥아치로 보였으나 눈빛만은 이슬을 머금은 듯
초롱초롱했다.
"나도 알아."
입술이 앵두처럼 붉고 살빛이 뽀얀 아이가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아이는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연무하는 군사들의 동작을 뚫어질 듯이
주시하고 있었다.
군사들의 연무는 아직도 기초적인 것이었다.
봉술(鋒術), 검술, 기사술(騎射術) 등...... 그러나
그들이 각양각색의 무예를 연마할 때마다 내지르는
우렁찬 고함소리에 북우위 연무당이 떠나갈 것
같았다.
아화(阿花)는 문득 군사들의 동작에서 시선을 떼고
연무청의 누대를 쳐다보았다. 누대에는 장영 대장군이
장창(長槍)을 들고 석상처럼 서 있었다. 그는 발해의
명문인 장씨 성을 갖고 태어나 12세에
국선원(國仙院)에 들어가 낭도들의 으뜸인
국선랑(國仙郞)이 되었고 16세에 무과(武科)에
급제했다. 발해의 제2대 무왕(武王)을 도와 발해의
영토를 9천리로 확장시킨 대장군 장문휴(張文休)의
혈손답게 18세에 이미 흑수(黑龍江) 일대에 살고 있는
흑수말갈(黑水靺鞨)족의 침입을 격퇴하여 크게 명성을
떨쳤다. 그의 무예는 발해의 군사들이 군신(軍神)으로
추앙하는 대장군(上將軍) 백인걸(白人傑)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고강했다. 특히 군사를 치고 물리는
진법(陣法)이 기기묘묘하여 거란 8부의 하나인
일라부족이 5만 군사로 발해를 침략하여 수도인
홀한성으로 질풍처럼 달려오고 있었을 때 5천의
군사로 격파하여 신장(神將)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런 까닭에 장영이 지휘하는 북우위는
군사를 자원하는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군비가 모자랐다. 발해는 국고가
바닥이 나서 군사들의 군량은 커녕 녹봉조차 제대로
지급할 수 없었다. 군사들에게 소요되는 군량, 피복,
병기를 제조하는데 쓰이는 군비를 조정에서 지급 받을
수 없었다.
북우위의 군사가 되기를 자원하는 젊은이들을
군문에서 되돌려 보내야 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아화도 소사온(蕭思溫)과 함께 상경용천부에서
1천리가 넘게 떨어진 부여부(夫餘府)에서 왔으면서도
북우위의 군사가 되지 못한 것은 나이가 어리기도
하지만 그 까닭이었다.
이내 장영 대장군이 장창으로 누대 바닥을 세 번
쳤다. 그러자 북소리가 여섯 번 울렸고 군사들의
연무가 끝났다.
"가자."
아화가 먼저 담장 위에서 가쁜하게 뛰어내렸다.
벌써 사방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술시(戌時:저녁
5시에서 7시 사이)를 지나면 성문을 지키는 군사들의
기찰이 심하므로 그 안에 성으로 들어가야 했다.
"아야!"
그때 소사온이 담장위에서 뛰어내리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비명을 질렀다.
"넌 왜 맨날 엉덩방아를 찧니?"
아화는 소사온을 향해 눈을 샐쭉 흘겼다.
"아유 아퍼. 난 왜 담장에서 뛰어내릴 때마다
엉덩방아를 찧는지 몰라......"
소사온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투덜거렸다.
"니가 중심을 못 잡으니까 그렇지! 그래 가지고
어떻게 무예를 배우니?"
"난 무예 따위는 배우고 싶지 않은데....."
"배우기 싫으면 부여로 돌아가!"
"누가 돌아간 댔나?"
"그럼 왜 또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해? 그래 가지고
니 부모를 죽인 거란놈들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겠어?"
야멸찬 아화의 목소리에 소사온은 어깨를 움찔했다.
소사온의 부모가 거란인들에게 죽은 것은 2년 전의
일이었다. 그후 소사온은 아화의 집에서 머슴처럼
농사일을 거들며 살게 되었다. 그러자니 아화 부모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주인집 딸인 아화에게 주눅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아화는 계집애였다. 얼굴이 곱상하고 눈빛도
서글서글하기만 한데 하는 짓은 영락없이 사내였다.
소사온이 무예를 배우겠다고 상경용천부에 있는
북우위까지 찾아온 것도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화에 의한 것이었다.
"가자!"
아화가 먼저 홀한성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소사온도 아화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홀한성 북문인 진덕문(震德門)에 이르자 군사들이
거지꼴을 하고 있는 아화와 소사온에게 험한 눈길을
보냈다. 매일 같이 드나들어 눈이 익을만한데도
성문을 지키는 군사들은 아화와 소사온을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성으로 들어서자 그들은 황궁이 있는
주작대로(朱雀大路) 뒷골목을 향해 걸어갔다. 황궁
앞의 주작대로는 발해의 관청들이 즐비했으나 뒤에는
기루와 주루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기루와
주루가 있는 뒷골목에 가야만 저녁 땟거리를 얻어먹게
되는 것이다. 상경성(上京城:또는 대도성이라고도
하고 홀한성이라고 부른다)은 사방 30리에 이르는
왕성이었다. 그 규모와 화려함이 당 나라의
장안(長安)을 능가한다고 하여 동경(東京)이라고 까지
불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루와 주루에서도 저녁 땟거리를 얻을 수가
없었다. 아화와 소사온은 난전이 열리던 저자로
걸음을 옮겼다. 저자거리에는 장사치들이 팔다버린
푸성귀들이 군데군데 버려져 있었다. 아화는 그것을
주워다가 우거지국을 끓였고 그것으로 끼니를 때웠다.
저자거리는 북적이던 장사치들과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서 덩그라니 비어 있었다. 군데군데 상인들이
버리고 간 푸성귀더미만 널려 있었다.
아화는 깨끗한 푸성귀만 주워 모았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있었다. 사방은 이미
캄캄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아화와 소사온은 푸성귀를 주워 북촌방(北村房)의
염하교(鹽河橋) 다리 밑으로 갔다. 그 곳에 아화와
소사온의 움막이 있었다.
"불 피워!"
소사온은 불을 피우고 아화는 흐르는 냇물에
푸성귀를 씻었다. 밥은 아침에 구걸을 한 것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푸성귀에 된장을 풀고 소금을
풀면 우거지국이 된다. 벌써 수없이 먹은 것이지만
잔치집이라도 생기기 전에는 푸성귀국에 동냥한
찬밥을 말아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었다.
아화와 소사온은 저녁을 먹자 짚을 깔고 나란히
누웠다. 어두운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고 이따금
철새들이 떼를 지어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홀한성 주작대로를 돌아 흐르는 마련하(馬蓮河)는
홀한성 사람들의 빨래터가 되기도 했다. 낮이면
빨래를 하는 부인네들이 냇가에 하얗게 앉아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염하교 밑은 아화와
소사온의 안식처였다.
"춥니?"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던 아화가
소사온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소사온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화는 신경이 쓰인 것이다.
"아니"
"너 돌아가고 싶지?"
"........"
"까놓고 말해봐."
"........"
"공연히 나를 따라왔다고 생각하지?"
소사온을 부여에서 홀한성까지 데리고 온 탓에
아화는 그 점이 늘 신경에 쓰였다. 소사온은 부모가
죽은 뒤에 더욱 의기소침해져 말수도 적어졌고 매사에
의욕이 없었다.
아화는 그런 소사온이 측은해 견딜 수가 없었다.
부모가 거란인들에게 죽임을 당했는데도 원수를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계집애처럼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아화와는 기질적으로 다른 아이였다. 그러나 아화는
소사온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소사온의 부모 원수를
갚기 위해 무예를 배우려고 홀한성을 찾아온 것이다.
"겨울이 오면 무척 추울 거야."
소사온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소사온의 말에 이번엔 아화가 입을 다물었다.
아화도 은근히 다가올 겨울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대륙의 추위는 모든 것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매서웠다. 그 추위를 견딜 생각을 하자 아화는 턱부터
덜덜 떨려왔다.
"부여로 돌아갔다가 봄에 다시 올까?"
"부여에 언제 돌아가? 부여가 코앞이라도 되나?"
아화가 퉁명스럽게 내쏘았다.
"네가 추울까봐 그러지?"
"바보야."
"........"
"남자가 그까짓 추위 하나 못이기고......"
아화의 핀잔에 소사온이 입을 다물었다. 아화도
입을 다물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바닥에 짚을 주워 깔고 상가집 대문 앞에서
죽은 사람이 덮던 이부자리를 가져다가 덮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냉기가 몸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아화는 몇 번이나 몸을 뒤채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나 잠이 들었다가는 깨고 잠이 들었다가는 깨곤
하였다. 소사온도 잠이 깊지 않는지 뒤채는 기색이
느껴졌다.
"자니?"
아화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소사온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소사온이 물기 묻은 소리로 대답했다. 주작대로
어디쯤에서인지 밤늦게 다듬이질하는 소리가 들리고
길손이 있는지 개짖는 소리가 컹컹거리고 들렸다.
"어제처럼 잘까?"
아화가 모기소리처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응."
"이리와."
소사온이 몸을 뒤척이더니 아화에게 가까이 다가와
누웠다. 아화는 소사온의 품속으로 바짝 파고들었다.
(나는 정말 소사온이 좋아.......)
아화는 소사온의 품에 안겨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마치 달콤한 젖물(乳液)이 목으로 흘러들어 오듯이
소사온의 몸에서 따듯하고 감미로운 기운이 그녀의
전신으로 번져왔다. 그 기운은 아화의 둔부를 안고
있는 소사온의 손을 통해서 그녀의 전신으로 파도치고
있었다.
아화는 문득 소사온이 그녀의 가슴을 만져 주었으면
하는 욕구가 일어났다. 그녀의 가슴은 아직도
능금알처럼 작았다. 젖무덤이 봉긋했으나 완전히
봉우리를 이루지 못했고 유두(乳頭)는 앵두처럼
작았다.
그래도 그녀의 가슴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뽀얗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숫기가 많은 아화도 차마 그
말을 소사온에게 할 수가 없었다.
새벽이 되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아화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불을 피웠다. 불을 피우고 푸성귀로 국을 끓이는 것은
언제나 아화의 몫이었다. 그리고는 아침을 먹은 뒤에
동냥질을 나서고 동냥질이 끝나면 소사온과 함께 다리
밑에서 무예를 연마했다.
그날 오후에도 아화와 소사온은 북우위 연무당
담장에서 군사들이 무예를 연마하는 것을 훔쳐보았다.
그날은 북우위 군사들이 늦게까지 무예를 연마했기
때문에 아화와 소사온도 늦게까지 무예를 연마하는
것을 훔쳐보았다.
"개새끼 같으니!"
그러나 그날 밤 아화와 소사온은 성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유들거리며
아화가 계집애인지 사내인지 확인하겠다며 아화의
옷을 벗기며 희롱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화와
소사온은 북우위 연무당 담장에서 훔쳐 배운 무예로
병사들 둘을 쓰러트렸으나 병사들이 와 하고 달려드는
바람에 팔다리를 잡히고 말았다.
"요 거지가 어째 이래 사나워?"
"계집이 앙탈을 부리는 품새가 제법 맵싸하지
않은가."
"여물지 않은 계집이라 그렇지......"
병사들은 낄낄거리고 웃으며 발버둥치는 아화의
저고리 앞섶을 마구 풀어 헤쳤다.
"이 놈들!"
그때 벼락을 치는 듯한 호통소리가 들렸다. 북우위
대장군 장영이 어린 아들과 부인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장영 장군의 호통소리에 병사들이 소스라쳐
놀라서 아화와 소사온에게서 떨어졌다.
"하라는 파수는 제대로 하지 않고 무고한 걸인을
희롱하니 네 놈들 목이 몇 개나 되는지 모르겠구나!
너희 놈들 목을 군문에 효수하랴?"
장영 장군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병사들을
쏘아보았다.
"장군님. 살려주십시오! 저희들이 그만 눈이
뒤집혀서 못된 짓을 하였습니다."
병사들은 장영 장군의 말 앞에 엎드려 싹싹 빌었다.
"허면 이따위 짓을 또 할 테냐?"
"아, 아니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장군. 용서해 주세요."
그때 장영 장군의 부인이 그윽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둠 속이지만 얼굴이 박꽃처럼 하얀 여인이었다.
아들은 장영 장군이 안고 있었다. 이제 5, 6세로밖에
보이지 않는 유동(幼童)이었다.
아화는 앞섶이 벌어진 것도 잊고 감격에 넘쳐 장영
장군을 쳐다보았다. 장영 장군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장영 장군의 몸에서 사람을
압도하는 듯한 기도가 뿜어지고 있었다.
아화는 눈이 부셨다.
"너희들은 무예를 훔쳐 배우는 아이들이 아니냐?"
장영 장군이 아화와 소사온을 쏘아보았다. 눈빛이
불을 뿜을 듯이 형형했다.
"예."
아화는 그때서야 엎드려 절하며 대답했다. 장영
장군도 아화와 소사온이 무예를 훔쳐 배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북우위 연무당으로 오너라!"
장영 장군이 낮게 말하더니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예?"
아화는 깜짝 놀라 장영 장군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장영 장군과 부인은 벌써 말을 달려 저만치 가고
있었다.
아화와 소사온은 재빨리 북우위 연무당으로
달려갔다.
"일(一)의 시작은 무에서 시작하나 삼극(三極)으로
석(析)해도 본(本)은 무진이니라. 천일(天一)은
일이요, 지일(地一)은 이요, 인일(人一)은 삼이라
일에서 적(積)하여 십으로 거(鋸)해도 화(化)함에는
궤( )함이 없느리라........"
장영 장군과 부인은 한밤중에 북우위 연무당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있었다. 아화와 소사온은 담장
위에서 장영 장군과 부인이 무예를 연마하는 것을
훔쳐보았다. 그것은 군사들이 연마하는 무예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저건 천부경(天府經)에 있는 말씀이야. 우리에게
들으라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고 있어......."
"천부경?"
"천부경(天符經), 또는 천부비록(天府秘錄)이라고도
하는 책인데 무림비서래."
아화와 소사온은 장영 장군과 부인이 무예를
연마하는 것을 겨우 내내 훔쳐보았다. 장영 장군이
무예를 가르쳐 주겠다고 하지는 않았으나 북우위
연무당으로 오라고 한 것은 훔쳐서 배워도 좋다고 한
뜻인 것이다.
그러나 그해 겨울은 아화와 소사온에게 혹독하게
추웠다. 마련하도 꽁꽁 얼고 하늘에 있는 별들조차
추위에 얼어붙어 옹숭거리며 떨었다. 아화와 소사온은
염하교 다리 밑에서 바짝 끌어안고 잠을 잤다. 추위가
얼마나 혹독하게 몰아쳤는지 마련하가 꽁꽁 얼어붙고
밤이면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들었다.
그러나 아화는 그해 겨울이 춥지만은 안았다.
소사온의 가슴속을 바짝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몸속에서 알지 못할 뜨거운 기운이 일어나곤 했다.
"사온아 너를 사랑해. 너두 나 사랑하지?"
"응."
"난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던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화는 소사온의 품을 파고들며 사랑을 속삭였다.
아화와 소사온이 홀한성을 떠나기로 한 것은 장영
장군이 황제의 부름을 받아
백력(伯力:하바로프스크)으로 공녀(貢女)를 호송하러
북우위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장영 장군이 돌아오려면
몇 달이 걸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아화와 소사온은
고향 부여로 돌아가기로 했던 것이다.
봄이었다.
대륙의 봄은 초원의 아지랑이와 함께 찾아온다.
산골짜기에 잔설이 녹아 시냇물이 졸졸거리고 흐르기
시작하면 들판에는 푸릇푸릇 봄풀이 돋아나고
아낙네들은 양지쪽에 삐죽삐죽 돋아난 쑥을 뜯는다.
1천3백년 전의 대륙이라고 해서 무엇이 다르겠는가.
빈민들에게는 봄이 왔어도 춥고 무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형적인 귀족 봉건사회를 이루고 있던
발해도 봄은 춘궁기였다.
가을 곡식을 귀족층에 수탈당한 발해인들은 겨우
내내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었으나 춘궁기가
닥치자 하나 둘 굶주림으로 쓰러져 갔다. 해빙이 되자
오히려 굶주림이 더욱 심해 발해의 곳곳에 해골만
앙상하게 남은 시체들이 뒹굴었다.
아화와 소사온은 봄볕이 나른한 영주도(榮州道)를
타박타박 걸어 부여로 향했다. 영주도는 당 나라와
발해가 왕래를 하던 길이기도 했고 발해의 시조
대조영이 당 나라의 추격을 피해 끝없이 대장정을
하던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굶주려 죽은 발해인들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는 길이기도 했다.
................................................
1) 천부경은 81자로 되어 있다. 한단고기에서
발췌했다.
2) 국선도는 단군시대부터 존재했다. 단군세기에
이미 천지화랑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8. 초원의 봄
발해의 멸망은 도처에서 예고되고 있었다.
발해국은 수년에 걸친 흉년으로 백성들이 혹독한
기아에 빠져 있었다. 발해국의 흉년은 무엇보다 3년에
걸친 가뭄이었다. 가뭄이 극심해 요서(遼西)지방의
얼마 되지 않는 논은 바닥이 쩍쩍 갈라졌고
요동(遼東)과 요북(遼北)의 비옥한 초원도 풀들이
말라가고 있었다. 발해국 백성들의 중요한 생업의
하나인 목축(牧畜)도 타격을 받아 가축들이 이름 모를
병으로 떼죽음을 하거나 굶어서 죽게 되었다.
광활한 대륙에서 생산되는 논농사와 밭작물의
소득도 해마다 떨어졌다.
방방곡곡에서 도적 떼가 극성을 부렸고 굶어 죽은
시체가 길바닥에 바람에 쓸려 다니는 낙엽처럼
뒹굴었다.
흉년이 계속되자 전에 없던 흉사(凶事)와
괴사(怪事)가 잇따랐다.
발해국 212년 5월, 발해국의 왕도(王都)가 있는
상경용천부의 우물을 마신 백성들이 걸쳐 떼죽음을
당했다. 조정에서 예부(禮部:刑部)대신이 직접 나와
조사를 했으나 우물에서 독극물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민심은 흉흉해졌고 백성들은 속절없이 죽어
나자뻐졌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9월까지
상경용천부에서는 매일 같이 시체를 실은 수레가 성을
나갔다. 홀한성 북문 옆 시구문(水口文) 일대에는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고 마련하(馬連河)가
흐르는 냇가에는 언제나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자옥했다.
엄청난 사신(死神)의 침입이었다.
이 해의 10월에는 개들이 미쳐 날뛰었다. 수많은
개들이 곳곳에서 미쳐 날뛰어 사람들을 물어 죽였다.
발해국은 흉년과 괴사로 2백년을 면면하게 이어온
해동성국의 위업이 기울고 국정이 피폐해 지고
있었다.
그러나 발해국의 멸망을 재촉하는 일은 저 멀리
요북(遼北)쪽에서 먼저 닥쳐오고 있었다.
송화강(松花江) 지류인 이통하 유역에 위치한
부여부(夫餘府:발해 15부의 하나) 부여성(夫餘城)은
진종일 흙바람이 불다가 그치고 자옥한 복사꽃 향기
속에서 어둑하게 날이 저물고 있었다. 부여부는
발해국(渤海國)의 변경이었으나 평시에는 거란으로
통하는 길목이었고 전시에는 발해국의 최대
군사요충지였다. 발해국은 건국이래 줄곧 발해국
최고의 정예군을 주둔시켜 외침을 경계하고 있었다.
A.D 915년. 해동성국(海東聖國) 발해국 218년 4월.
부여성의 성루(城樓)위에는 초병(哨兵)들이 저 멀리
아득한 초원에 시선을 못박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4월이었다. 북방의 길고 긴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있었으나 바람은 아직도 차디찼다. 한겨울 내내
병사들을 혹독한 겨울 삭풍 속에 떨게 한 북풍이었다.
북방지역 특유의 차가운 대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한겨울에는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몰아치곤 했었다. 밤이면 언 하늘이 쩡쩡거리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문고리가
손에 쩍쩍 달라붙었다. 부여성에서 발해국의 국경을
경비하는 병사들은 혹독한 추위와 싸우면서 성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는 어김이 없었다.
초원의 저쪽 언덕에는 파릇파릇 봄풀이 돋아나고
깃털처럼 보드라운 햇살에는 따사로운 기운이 섞여
있었다. 아지랑이가 지신대지 않아도 나른한 봄이라는
것을 여실하게 알 수 있었다.
병사들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어느 사이에
석식(夕食)시간인 교대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교대병을 기다리며 먼 초원을
응시했다. 동요하(東遼河)의 상류인 회덕(淮德),
송화강 지류인 장춘(長春), 농안(農安)의 버들가지도
연두빛으로 물이 올라 실바람에 나부끼고 먼
초원에서는 피를 찾아 헤매는 늑대 울음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초원이 푸르게 바뀌고 들꽃이
난만하게 필 것이다.
병사들은 봄볕이 나른하게 졸고 있는 초원을
응시하며 성하(盛夏)를 대망(待望)하고 있었다.
그때 요란한 말발굽소리와 함께
요하강(遼河江)쪽에서 뽀얀 흙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이 병사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병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사이에 흙먼지를
뚫고 한 떼의 군마가 부여성을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성문을 열어라!"
"성문을 열어라!"
일단의 군마는 성문 앞에 이르기도 전에 다급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뭐야?"
"거란군이다!"
"거란군이 몰려왔다!"
성곽 위의 병사들은 군마의 복장이 적군인 거란군의
복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소리를 지르며
웅성거렸다.
"성문을 열어라! 우리는 귀순자들이다!"
성문 앞에 이른 군마는 긴 장창(長倉)에 흰 깃발을
매달고 휘둘러댔다.
"누구냐?"
발해군사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수하를 했다.
"요의 귀순자들이다! 발해국에 귀순하니까 성문을
열어라!"
그때 초원에서 또 다시 뽀얀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면서 수많은 군마가 부여성을 향해 질풍처럼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성문 앞에 도착한
군마를 향해 화살을 빗발치듯이 쏘아대고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그들이 귀순자들을 추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문을 열어 주어라!"
부여성의 수비 책임을 맡고 있는
부여사(夫餘司:발해의 군사제도, 120사의 하나)
대장군 정배걸(鄭倍傑)이 병사들의 보고를 받고
성루에 올라와 명령을 내렸다.
"예!"
그러자 병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하고 재빨리 성문을
열어주었다. 귀순자들은 거란군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우왕좌왕하다가 성문을 열자마자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요국의 배신자들을 내놓아라!"
"역적을 내놓아라!"
거란군은 성밑에까지 들이닥쳐 발해군을 향해
일제히 함성을 질러댔다. 거란군의 기세가 사나운
것을 보면 귀순자들의 신분이 예사롭지 않은 것
같았다.
"닥쳐라!"
"요국의 역적들을 내놓지 않으면 부여성을
공격하겠다!"
"어디 마음대로 해봐라! 거란의 오랑캐들아!"
"발해 놈들을 죽여라!"
거란군 장수가 소리를 지르자 거란군이 일제히
부여성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거란군의 화살이
성곽을 향해 빗발치자 발해군도 일제히 화살을
쏘아댔다. 수차에 걸쳐 사격전이 전개되자 거란군이
뒤로 물러서서 함성을 질러댔다.
"성밖으로 나와라!"
"발해의 겁쟁이들아 성밖으로 나와라!"
거란군은 발해군을 향해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기세를 울렸다.
"누가 거란군 장수의 목을 베어 오겠느냐?"
발해의 대장군 정배걸이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거란군이 비록 귀순자들을 추격해 온 것이라고 해도
부여성까지 몰려온 것은 명백한 국경침범이었다.
"소장이 나가서 적의 목을 베어 오겠습니다!"
그러자 젊은 장수가 가슴을 쭉 내밀며 앞으로
나섰다. 눈이 부리부리한 청년 장수였다.
"귀관의 이름은 무엇인가?"
"고돌몽(高突蒙)입니다!"
"가라! 가서 적장의 목을 베어 와라!"
"예!"
고돌몽이 찌렁찌렁 울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성문이 열리자 장창을 들고 밖을
향해 나는 듯이 달려갔다.
"거란군 장수는 나와라!"
거란군 군사들 앞에서 고돌몽이 우렁차게 외쳤다.
그러자 검은 수염이 턱을 덮고 있는 거란군 장수가
말을 휘몰아 달려오며 소리쳤다.
"발해의 애숭이야! 내 창을 받아라!"
"거란군의 겁쟁이야! 내 창에 목을 바쳐라!"
양 군영에서 기세를 울리기 위해 일제히 북을 쳤다.
병사들은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장수들을 응원했다.
그러나 그때 이미 발해군의 고돌몽과 거란군의 장수는
일합(一合)을 부딪친 뒤 떨어져 있었다. 무승부였다.
창과 창이 부딪치는 요란한 쇳소리가 났으나 두
장수는 창이 비꼈을 뿐이었다.
"애숭이가 제법이구나!"
"이번엔 네 놈의 목을 베겠다!"
두 장수는 한차례의 거친 욕설을 주고받은 다음
다시 창을 꼬나쥐었다.
"간다!"
"와라!"
고돌몽이 먼저 말 엉덩이를 세차게 걷어차고 앞으로
내달렸다. 또 다시 양 군영에서 와 하는 함성이
일어나고 북소리가 둥둥둥 하고 울렸다.
고돌몽은 거란군 장수가 장창을 똑바로 겨누고
달려오자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고 거란군 장수의
말을 겨누었다. 창으로 적의 장수 목을 찌르는 것은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었다. 고돌몽의 예상대로였다.
적장은 고돌몽의 목을 겨누고 달려오다가 고돌몽의
창이 말을 겨누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황급히
말고삐를 잡아챘다. 그러자 말이 히히잉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앞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때 이미 고돌몽의 창은 말의 목을 찌르고 있었다.
"앗!"
적장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창에 찔린
말이 앞으로 꼬꾸라졌기 때문에 적장은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 순간 고돌몽의 창이 적장의 목을
힘껏 찔렀다.
"와!"
발해군의 군영에서 일제히 함성이 일어나면서
성문이 열리고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거란군은
장수가 쓰러지자 기세를 잃고 허겁지겁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거란군이 달아난다!"
"거란군을 추격해라!"
발해군 병사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거란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추격하지 마라! 함정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자 성루에서 추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병사들은 성루에서 추격을 중지하라는 명령과 함께
추격중지 군호(軍號)인 쇠북소리가 울리자 말머리를
돌려 되돌아왔다. 일사불란한 행동이었다.
고돌몽은 그 동안 적장의 목을 베어 장창에 꽂고
늠름하게 성안으로 돌아왔다.
"와!"
"와!"
병사들은 창을 흔들며 환호했다.
이날 부여성에 귀순한 거란군의 군마는 모두 15기나
되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은 요왕 아보기의
황숙(皇叔)인 야율 할저와(耶律轄底)와 두
아들이었다. 정배걸 장군은 그들의 신분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요왕의 황숙인 할저에
대한 소문은 그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할저는
지략가인데다 야심도 만만치 않아 얼마 전 요왕
아보기를 제거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반란은 실패했고 할저는 행방이 묘연했었다.
(할저의 귀순이 위장은 아닐까?)
정배걸 장군은 할저의 귀순에 의구심이 일어났다.
할저의 귀순 행렬도 특이하기만 했다. 할저는 두
아들을 데리고 귀순하기는 했으나 두 명의 여자와
호위무사들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한 여자는 얇은
백사(白絲)로 얼굴을 가렸으나 바람에 하늘거리는
백사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얼굴이 눈(雪) 처럼
하얗고 눈(目)이 파란 것으로 보아
색목인(色目人:백인) 같았다.
다른 여자는 등에 장검을 메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림인으로 보였다.
이들에 대한 소문은 금세 부여성 성내에 쫙 퍼졌다.
부여부 성민들은 거란의 귀순자들을 구경하기 위해
저자거리로 몰려들었다.
"거란의 황숙이래."
"황숙처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귀순을 했지?"
"요왕에게 죄를 지었겠지......"
사람들이 저자에 모여 수군거리는데 병사들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할저 일행이 나타났다. 할저
일행을 호송하고 있는 것은 부여성을 지키는 정배걸
장군과 그의 군사들이었다.
"할저는 소경이래."
"소경?"
"요 나라를 탈출할 때 눈을 찔렸다는군."
"쯧쯧......"
할저는 발해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마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마상에 앉아서 보이지 않는 눈을
끔벅거리며 부여 성민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앞에는 발해군사들이 길을 안내하고 그의
좌우에는 요국에서부터 호위를 맡고 있는 무사들이
냉혹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며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할저의 두 아들이 발해군의 호위를
받으며 뒤를 따르고 있었다.
"할저야! 이 칼을 받아라!"
그때였다.
어린 소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면서 구경꾼들
틈에서 돌멩이 하나가 쌩 하고 날아왔다.
"주군(主君)!"
"위험합니다!"
할저의 좌우에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무사들이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할저가 눈을 번쩍 떴다. 그 순간 돌멩이는 할저의
머리를 정확하게 맞추었고 그와 거의 동시에 휘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뒤에서 하나의 인영(人影)이
솟구쳐 할저의 앞에 내려섰다.
"주군!"
인영은 젊은 여자였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덧 날카로운 연검이 들려
있었다.
"괜찮다."
할저가 손을 내저었다. 그의 이마에서는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서지 마라!"
"예."
여인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미동(美童)이다!"
"미동이야!"
"미동이 웬일이지?"
성민들이 돌멩이를 던진 소년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어린 소년이었다. 불과 9, 10세 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으나 어딘지 모르게 귀공자처럼
예쁘장했다. 언제부터 부여성에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으나 성민들은 그 소년을 모두 알고 있었다.
"저 놈을 잡아라!"
정배걸 장군은 미동의 돌멩이가 날아왔을 때 할저를
먼저 살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할저가 눈을 떴다가
재빨리 감은 뒤였다.
(역시 소경인가.....?)
정배걸 장군은 풀리지 않는 의혹 때문에 미간을
찌푸렸다.
"저 놈이 귀순자에게 돌멩이를 던졌다!"
발해군사들은 그때서야 구경꾼들 사이에서 돌멩이를
던진 소년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그러나 소년은
재빨리 구경꾼들 틈에서 빠져나가 골목으로 달려갔다.
군사들이 칼을 뽑아들고 달려갔으나 소년은 저자의
상인들을 미꾸라지처럼 피해 사라져 버렸다.
"놈이 축지법을 쓰나?"
"쥐방울만한 놈이 어떻게 그렇게 걸음이 빠르지?"
발해군사들은 혀를 내두르며 돌아왔다.
"대인. 다치지 않으셨소?"
정배걸 장군은 그때서야 할저에게 물었다.
"조금 다쳤습니다."
할저는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미안하오."
"괜찮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호위를 철통같이
하겠소."
"장군의 말씀만 들어도 감읍할 따름입니다."
할저는 정배걸 장군에게 정중하게
포권지례(包拳之禮)를 올렸다.
"그럼 도독부(都督府)로 출발하겠습니다."
일행은 다시 도독부를 향해 출발했다. 비록 어린
소년이 던진 돌멩이에 지나지 않았으나 귀순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할저가 습격을 당했던 탓에
경비는 더욱 삼엄했다. 그러나 그들이 도독부에 이를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대들이 요국에서 아국(我國)에 귀순한 이유가
무엇이오?"
발해국 15부(附)의 하나인 부여도독부의 도독
왕문구(王文邱)는 귀순자들을 도독부에서 직접
심문했다. 부여부의 병마절도사(兵馬節都使)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병권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소인은 요왕 아보기의 삼촌인 할저로 요왕
아보기가 주위의 인국(隣國)과 끊임없이 전쟁을
획책하여 백성을 돌보지 않는 관계로 이를
간(諫)하다가 아보기의 미움을 받아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보기를 제거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감히 해동성국
대발해국의 은덕을 입고자 찾아왔사오니 영명하신
황제폐하께 아뢰어 주십시오."
할저는 두 아들을 데리고 왕문구 앞에 엎드려 눈을
끔벅거렸다.
"요왕이 백성을 돌보지 않고 어진 신하를
버렸구나!"
왕문구는 눈이 보이지 않는 할저를 내려다보고
탄식을 했다.
"오다가 습격을 당했다는데 상처는 괜찮소?"
"도독의 자상한 보살핌을 입어 괜찮습니다."
"요왕의 인품과 군세는 어떻소?"
"요왕은 천하제패의 야망을 가지고 있으나 성품이
포악하고 황음하여 아첨배들만 따르고 있사옵니다.
군사들도 오랜 전쟁에 지쳐 하루속히 고향에 돌아가
농사 짓기만을 갈망하고 있사옵니다."
"군사의 사기는 어떠하오?"
"요왕이 어질지 못하여 군사들의 불평불만이
높사옵니다. 요국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망국지란(亡國之亂)에 처하게 될 것이옵니다."
할저는 요국의 정세와 군세를 날조하여 부여도독
왕문구에게 보고했다. 왕문구는 흡족하여 무릎을 치며
웃었다.
"군주가 어질지 못하니 요국의 성쇠가 기우는
그믐달 같으리. 그대는 우리 발해국에서 여생을
안락하게 보내시오. 날이 밝으면 용천부(龍天府)의
상경(上京:도읍)으로 사신을 보내겠소."
"도독의 높으신 은혜 하해 같사옵니다."
왕문구는 할저 일행에게 융숭한 대우를 하도록
했다. 그러자 할저를 마땅치 않은 기색으로 쏘아보던
무관들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예로부터 모국을 배신하고 귀순하는 자에게는
세작(細作:간첩)이 많았습니다. 도독께서 할저를
용천부로 보내고자 하는 뜻은 소장(小將)들이
헤아리지 못할 바는 아니나 호랑이를 우리에서 키울까
걱정되옵니다. 차라리 할저의 목을 베어 후환을 없이
하소서."
무관들이 할저를 처형할 것을 요구하자 문관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귀순자의 목을 베는 것은 대발해국으로서 할 일이
아니옵니다. 소경인 할저가 아국에 무슨 해가
되겠사옵니까? 무관들의 주장은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옵니다."
무관들도 지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할저를 상경용천부로 보내면 황제폐하께서는
반드시 그를 살려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할저를 죽여야 합니다!"
"할저를 죽이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무관들은 한결 같이 할저를 처형할 것을 요구했다.
"아니되오!"
왕문구는 무관들의 주장을 일언지하에 배척했다.
"할저를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은 황제폐하께서
하실 일이오. 어찌 부여 도독이 할저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이오?"
발해는 건국초기의 씩씩한 기상과
강군강국책(强軍强國策)이 쇠퇴되어 무(武)부다
문(文)을 숭상하고 있었다. 건국초기에는 끊임없이
전쟁을 해야 했으나 발해가 고구려의 옛 영토를 거의
모두 수복하고 나라가 안정이 되자 반역의 염려가
있는 무관들보다 문관들을 우대하게 되었고, 그러한
국풍이 2백년 남짓 계속되는 동안 해동성국이라는
이름을 듣게는 되었으나 국력이 기울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부여 도독 왕문구는 무관들의 주장을 무릅쓰고
할저를 상경용천부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대발해의 앞날이 걱정되는구나!"
무관들은 탄식을 하며 도독부를 물러 나왔다.
이 날이 4월 스무 나흘이었다.
(적국의 군세를 염탐하는 것은 10년의 세월도 적지
않은 법이지.....)
소경이라는 할저는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면 가늘게
실눈을 뜨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요 나라에서 발해국의 군세를 탐지하기 위해
파견한 세작이었다. 요 나라는 천하제패의 야망을
가지고 중원을 정벌하려 했으나 배후에 있는 발해국이
그 틈을 노려 공격을 해 오지나 않을까 하여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할저가 귀순한다는 명목으로 발해에 들어와
암약하기로 한 것은 발해의 군세를 탐지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요 나라의 중원(中原) 정벌이
끝나면 영토만 방대한 발해를 요는 정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할저는 4월 스무 이레에 부여부를 떠나
상경용천부로 향하기 시작했다. 할저 일행은 부여부
군사들의 삼엄한 경비를 받았다. 부여부에서 발해국의
도읍이 있는 상경용천부까지는 천리(千里)나 떨어져
있었다.
그들은 5월 초이틀이 되어서야 발해의 수도
홀한성(忽汗城)에 도착했다.
(과연 발해의 수도는 위엄이 당당하구나.......)
할저는 주위의 눈을 피해 발해의 수도인
상경(上京)을 살피며 감탄했다. 상경은 수 십리에
걸쳐 축성되어 있는 외성(外城)과 내성(內城)으로
나뉘어 있었고 황제가 거처하는 황궁은 당 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을 능가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웅장했다. 성안에는 귀족들의 장원(莊園)이 즐비했고
저자에는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발해의 수도 상경이 당 나라에서까지
동경(東京)으로 불리고 있는 까닭을 할저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할저는 홀한성에 도착한 지 사흘만에 자신이 요에서
데리고 온 무리들을 이끌고 황궁에 들어가 국왕
인선( 選)황제를 알현했다. 발해의 대신들은
부여부에서처럼 할저의 귀순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로 논의가 분분했고 그 까닭에
사흘이나 지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발해의 조정도 문관들이 득세하고 있었다.
그들은 귀순자를 우대한다는 명분에 얽매여 할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신 할저 삼가 폐하를 뵈옵니다."
할저는 두 아들의 부축을 받아 인선황제에게
사배(四拜)를 올렸다. 황제가 정사를 보는
어림청(御臨廳)이었다. 용상 뒤에는 금방이라도
승천할 것처럼 쌍룡이 꿈틀대는 현무도(玄武圖)가
그려진 병풍이 둘러져 있었고 용상 아래는
문무백관들이 도열해 있었다.
"원로에 고생이 많으셨소."
인선황제는 옥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할저를
살폈다. 인선황제는 황제의 보위에 오른 후
미주가효(美酒佳肴)만 입에 대어 몸이 비대했다.
그러나 눈은 새우처럼 작았다.
"신은 요왕 아보기의 백성이었으나 이제 폐하의
신하가 되고자 하나이다. 부디 이 불쌍한 목숨을
버리지 마시고 거두어 주시옵소서."
"공이 데리고 온 사람들은 모두 가족들이오?"
인선황제가 할저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불쑥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할저가 데리고 온 무리들
중에는 여자도 둘이 있었다. 모두 20세 안팎의
미희들이었다. 인선황제는 그 중에 한 여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 있었다.
미인이었다.
게다가 다른 여인은 엎드려서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있는데도 이따금 고개를 들고 인선황제를 힐끔힐끔
살피곤 하였다. 인선황제는 그 여인의 미색에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발해에도 미인은 많았고
황궁에도 내노라하는 미인들이 그의 부름만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여인도 황제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지는 못했었다.
여자는 색목인이었다.
눈이 파랗고 살결이 눈 처럼 희었다.
서역(西域:아랍)에 색목인들이 있다는 것은 문헌으로
보아 알 수 있었으나 할저가 데리고 온 여인은 좀
달랐다.
"가족은 두 아들뿐이고 나머지는 제가 거느린
가복(家僕)들이옵니다."
할저가 여전히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대답했다.
인선황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할저의 뒤에 있던 여인이 다시 고개를 들고
인선황제를 향해 살포시 웃었다. 인선황제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미희의 눈웃음에
관자놀이가 뛰고 가슴이 설레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요의 최고 미인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임소홍(林小 )이었다. 할저가 귀순하기 전에
미인계를 쓰기 위해 사백력(斯白力:시베리아) 일대를
헤매고 다니다가 구해 온 온 여인이었다.
"여인들에게 고개를 들라고 하시오."
인선황제의 어명에 발해의 대신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발해의 대신들 중에는 할저의 귀순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주장하던 대신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인선황제가 무엇 때문에 그런 어명을 내렸는지
알 수 없었으나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폐하의 어명을 듣지 않았느냐? 너희들은 속히
고개를 들라."
할저의 말에 여자들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들었다.
그러나 인선황제에게 무례하지 않기 위하여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 여인은 다행이 가족은 아니군.......)
인선황제는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뚫어질 듯이
살피며 안도하는 기색이 되었다. 미모의 여인이
할저의 시녀라면 언제든지 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들 이 나라를 찾아와 주어 고맙소. 그대들에게
발해 왕실에 준하는 대우를 해줄 터이니 편히 쉬도록
하시오."
인선황제는 할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융숭한 대우를
해주라고 좌우의 신하들에게 지시했다. 이로써 할저는
발해의 수도 상경에서 마음대로 세작 노릇을 하게
되었다.
................................................
1). 요사(遼史)에는 할저가 요왕 아보기에게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는데 요의 개국초에 동족의
형제가 자주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어떤 연유인지
알 수 없으나 할저는 발해로 귀순한 뒤 몇 년 후에
탈출하여 다시 요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는 요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신분인데도 중요한 벼슬을 누리는
것으로 미루어 귀순은 위장 귀순이었음이 명백하다.
2). 인선황제는 애(哀)왕이라고도 한다. 당 나라는
발해의 왕을 발해 군왕이라고 멋대로 부르며
깍아내리다가 발해가 강성해지자 정식으로 발해
국왕이라고 부르는 등 추태를 보이고 있다. 발해는
국왕이 제(帝)를 칭했다는 기록이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에 있다. 제는 천제, 또는
황제를 말한다. 발해의 원래 국호는 진국(震國)이다.
9. 승천한 여인
발해의 민심 이완 현상은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었다.
발해국 남해부(南海府:함경남도 북청 부근)의
남경(南京).
일명 신라도(新羅道:신라와 교역을 하는 길)라고
불리는 남해부의 남경 남쪽 해안에 어느 날 길이가
3장(三丈:세 길)이나 되는 물고기가 잡혀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게다가 그 고기를 먹은 사람들이 모두
죽어 남해부가 발칵 뒤집히게 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고 괴사(怪事)가 잇따랐다.
남경은 발해국 5경(五京)의 하나였다.
저자는 번화했고 일찍부터 신라와 교역을 하여
문물이 발전하고 물자가 풍부했다. 그러나 이 해(年)
5월부터 비가 두 달을 계속 내려 남경이 온통
물걸레처럼 흥건하게 젖더니 괴이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수재민이 생긴 것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가옥과 전답이 유실되었다. 게다가 까닭을 알 수 없이
사람들이 죽어갔다. 산과 들판에 부민들의 시체가
버려졌고 까마귀들이 시체를 파먹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러나 비가 계속 내리자 까마귀들도 어디론가 가버려
시체들만이 비에 불어서 살점이 흐늘흐늘 떨어져
나갔다.
사람들은 이 모든 일이 해안에서 나온 죽은
물고기를 먹은 탓이라고도 했고 남해부의 도독이
신라녀(新羅女) 박씨(朴氏)를 해친 탓에 하늘이 노한
것이라고 하였다.
신라녀 박씨의 얘기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신라녀 박씨가 언제부터 남해부의 남경에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는 알 수없다. 그러나 박씨는
남해부 남경성(南京城) 남문(南門) 밖에 주막을
차리고 술을 팔았다. 나이는 얼추 25, 6세로 보였는데
뛰어난 미인이었다.
박씨녀는 얼굴이 이화(梨花:배꽃)처럼 하얗고
입술이 앵두처럼 붉었다. 허리는 버들가지처럼 가늘어
요염하기가 이룰 데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배꽃
같이 어여쁘다고 하여 이화랑(梨花娘)이라고 불렀다.
이화랑의 주막엔 소문을 들은 남정네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이화랑의 손목이라도
한 번 잡아보려고 아우성을 쳐댔다.
그러나 이화랑은 절개가 대쪽처럼 곧았다.
술을 팔다가도 소나무가 빽빽한 해구(海丘)에
올라가 먼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가늘고
처량한 목소리로 신라 노래(鄕歌)를 불렀다.
달님이시여 달님이시여
동해 먼바다 샅샅이 비추어 주세요
고기잡이 나선 우리 낭군
돌아오는 길을 대낮처럼 비춰주세요
혹여 우리 낭군이 뱃전에 나와 있거든
관음보살 부처님 탑전에
낭군님 자비를 빌며
그리워하는 사람 있음을 아뢰어 주세요
아 오늘도 해구에 올라와
낭군님 오시는 길을 마중합니다.
혹여 더디 오실까
마음 졸이며 기원합니다.
이화랑에 대한 소문은 남해부 도독에게도 들어갔다.
남해부 도독은 정사에는 관심이 없고 탐욕에 눈이
어두운 관리였다. 그는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고
착취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남해부 도독은 이화랑에 대한 소문을 듣자 욕망이
불타 올랐다. 그러나 이화랑을 범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고심을 하였다. 매파를 보내어 좋은 비단을 주며
이화랑의 환심을 사려고도 해보았으나 번번이 거절만
당하였다.
남해부 도독은 이화랑이 괘씸했다.
마침내 그는 이화랑에게 신라의 첩자라는 누명을
씌우고 하옥한 뒤에 수청을 들면 풀어 주겠다고
하였다.
"자고로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 하여
죽어도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아녀자는
불사이부(不事二夫)라 하여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화랑은 도독의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면 네가 내 명을 거역할 셈이냐?"
"지아비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어찌 도독을
섬기겠습니까? 이는 사통(邪通)이나 다름없습니다."
"네 지아비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어부입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고기잡이를 하는
뱃놈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런 하잘 것 없는 뱃놈을 지아비로 섬기며 정절을
지켜 무얼 하겠느냐? 나에게 수청을 들면 온갖 호강과
호사를 시켜 주겠다."
"세상의 아무리 좋은 호강과 호사도 지아비만
못합니다."
이화랑의 절개는 추호도 흔들리지 않았다. 도독은
이화랑을 온갖 감언이설로 구슬리다가 말을 듣지 않자
화를 벌컥 내고 날이 밝으면 처형하라고 지시했다.
이화랑은 다시 하옥되었다.
그때 도독부의 감옥을 지키는 늙은 병사가 이화랑을
불쌍히 여겨 도망을 치게 하여 주었다. 그는 도독이
아무 죄도 없는 이화랑을 죽이려 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이화랑은 늙은 병사의 도움으로 도독부의 감옥을
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캄캄한 밤중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비는 억수 같이 쏟아지고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화랑은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이화랑이 도망친 것을 안 도독은 대노하여 병사들을
시켜 이화랑을 잡아오게 했다. 병사들은 도독의
명령이 떨어지자 횃불을 들고 이화랑을 잡으러
나섰다.
이화랑은 병사들이 추격해 오자 맨발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커다란 강이 나타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갑자기 내린 비로 강은 흙탕물이 불어 넘치고
있었고 뒤에서는 병사들이 계속해서 쫓아오고 있었다.
"하늘이여! 어찌 이 연약한 여자를 금수만도 못한
인간에게 능욕을 당하게 만드는 것입니까? 저를
불쌍히 여긴다면 차라리 벼락을 때려 죽여주소서!"
이화랑은 강둑에 꿇어앉아 통곡을 했다.
그때 어두운 하늘에서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는 하늘에서 우르르 뇌성이 울더니
번쩍 하고 섬광이 일어나 이화랑을 때렸다.
"아!"
이화랑을 추격하던 병사들은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이화랑은 맹렬한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그 불길이
얼마나 밝았는지 남해부 남경성의 모든 부민들이
놀라서 뛰어 나왔을 정도였다.
"이화랑이다!"
"이화랑이 승천하고 있다!"
불빛에 놀라서 뛰어 나온 남해부 부민들은 이화랑이
불길 속에서 승천하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사람들은 한밤중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깨어났다.
"발해는 망한다!"
"발해는 망한다!"
이화랑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는 비가 올 때마다
음산한 빗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남해부의 해안에 커다란 물고기가 잡힌 것은 그
후의 어느 날이었다. 물고기의 길이는 어른 키의 세
배나 되었다. 사람들은 다투어 그 고기를 먹었는데
고기를 먹은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사람들은
이화랑이 복수를 하는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남해부의 도독도 이화랑의 원혼이 씌웠는지
한밤중에 발가벗은 몸으로 성내를 뛰어다니다가
급살(急煞)을 맞아 죽었다.....
박씨녀에 대한 얘기였다.
남해부는 그 일로 민심이 흉흉했다. 부민들이 이고
지고 성을 떠나 남해부는 텅텅 비게 되었다. 새로운
도독이 부임하여 민심을 안정시키려고 했으나 한번
떠난 민심은 돌아오지 않았다. 남해부는 어느덧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전쟁터처럼 폐허가 되어 갔다.
낮에도 도적떼가 들끓고 사람들이 떠난 빈집에 쥐들이
드나들었다. 담은 무너지고 기와는 풍상에 삭아서
잡초가 돋아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팔던
남해부의 저자 골목에는 들풀만 무성해지고 있었다.
................................................
1) 발해는 15부(府) 5경(五京)이 있었는데 5경이
있는 부는 발해에서 가장 큰 지역이다. 부 밑에는
주(州), 주 밑에 다시 현(縣)이 있었다. 부에는 도독,
주에는 자사(刺史), 현에는 현승(縣乘)이 있어서
지방을 다스렸다.
10. 파란 눈의 미인
요에서 귀순한 할저는 인선황제가 임소홍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임소홍을 황제에게 바치는 대신 발해국의 최고 대신인
정당성(政堂省:발해의 3省)의
대내상(大內相:조선시대의 영의정)인
두경용(杜景庸)에게 바쳤다.
"뜻하지 않게 소생이 발해국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눈도 보이지 않고 살 만치 산 늙은이라
목숨이 아깝지는 않습니다만 대인의 두터운 은덕을
입었습니다."
할저는 두경용을 찾아가 엎드려 절하고 사례했다.
두경용도 할저의 귀순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로 발해
조정의 의견이 분분할 때 할저의 귀순을 받아들이라고
인선황제에게 주청했던 것이다.
"허허......내 은덕이랄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귀하를 받아들인 것은 모두 우리 황제폐하의 성품이
어지신 탓입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두경용은 황급히 할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할저가 인사를 온 것은 발해의 국정 수반에 대한
인사치레일 것이다. 그러나 요국의 황숙이므로 왕족에
대한 예우는 해주어야 했다.
두경용은 할저를 서방(書房)으로 안내하여 차를
대접했다.
"대인! 소인은 요에 있을 때부터 대인의 높은
학문을 흠모해 왔습니다. 저희 가복들에게도 말하기를
내 생전에 해동성국 발해국의 노상(老相) 두(杜)
대인을 뵙는 것이 소원이다 했는데 과연 오늘 그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대인의
청풍선유도(淸風仙遊圖)는 요 나라까지 명성이
자자합니다."
할저는 연신 눈을 꿈벅거리며 두경용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청풍선유도는 두경용의 산수화(山水花)로
홀한해 일대의 풍광을 화폭에 담은 것이다.
수묵(水墨)의 은은함에 탈속함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부끄럽습니다."
두경용은 할저의 칭송에 낯이 간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요지음은 국정 수반에 계시니 그림을 그리기가
여의치 않을 듯 싶습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틈만 나면 산수화를
그리고 글씨를 쓰지요. 문방사우(文房四友)를 가까이
하고 있으면 마음이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맑아집니다."
"그래서 대인의 서가에서는 언제나 은은한
묵향(墨香)이 풍기는군요. 대인! 언제 틈이 나시면
제게 그림 한 폭만 그려 주십시오. 저희 가보로
삼겠습니다."
"그러지요."
"참, 제가 요에서 올 때 가복을 여럿 데리고 왔는데
그 중에 계집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부엌 일밖에
모르지만 하나는 임소홍이라는 계집으로 시문도
읽혔습니다. 대인께서 그림을 그리실 때 옆에서
먹이라도 갈게 해주시면 대인의 화격(畵格)을
흉내라도 내지 않을까 합니다."
"글쎄요....."
"대인!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두경용이 머뭇거리자 할저가 다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두경용은 할저가 전력으로 부탁을 하자
못이기는 체하고 임소홍을 거두기로 하였다.
두경용은 인물이 강직하여 조정대신들의 신망이
높았다. 3사(三師) 3공(三公)과 함께 발해국의
원로대신이었다. 인선황제가 주색에 빠져 있는데도
발해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모두 그의 바른
정사(政事) 탓이라고 할 정도로 조정을 잘 이끌고
있었다. 게다가 두경용의 집안은 대대로 조정에서
벼슬을 지낸 탓에 일가가 적지 않게 조정에 출사해
있었고 그의 학문을 따르는 사대부들이 많아 발해
조정에서 막강한 파벌을 이루고 있었다. 홀한성에서는
음으로 양으로 두경용을 수장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들을 일컬어 두경용의 성을 따서 두변(杜邊)
인물들이라고 불렀다.
두경용은 할저가 돌아가자 별당에 주안상을 차리게
하고 임소홍을 불렀다. 할저가 임소홍을 먹이나 갈게
하라고 했지만 임소홍 같은 여인에게 그런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먹을 가는 일 따위는
서동(書童)이 해도 충분한 일이었다.
두경용은 잠시나마 요의 미인과 함께 시름을 잊고
싶었다. 요 나라가 발해와 가까운 나라이기는 해도
이국(異國)이 분명했고 또한 적국이기도 했다.
두경용은 이국에서 온 여인과 술을 마시며 국정에
대한 시름을 잊으려는 것이다.
근래에 발해는 국정이 문란해지고 있었다. 관리들은
매관매직을 일삼는가 하면 백성들을 착취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다 천재지변까지 겹쳐 몇
년째 흉년이 드는가하면 괴사가 잇따랐다. 풍속도
난삽해져서 왕성인 홀한성마저 주루와 기루가 늘고
아녀자들의 속곳이 헐거워지고 있었다.
나라가 망하려면 풍속이 먼저 혼탁해 진다.
저자는 밤이 되면 불야성처럼 환했다. 집집마다
장명등(長明燈)이 걸리고 주루에서는 기녀들의
노래소리와 술취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발해의 도읍 홀한성이 온통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조정의 관리들과 귀족들은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사방 40리나 되는 홀한성 안에는 기와집이 즐비했고
그들은 땔감으로 숯만을 사용할 정도로 사치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풍요는 부패를 불러오고 있었다.
왕족간의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왕위를 차지한
인선황제는 어느덧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있었고
변방의 부족들이 바치는 공녀들의 치맛자락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그것은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국왕이 여자들의 치맛자락에서 잠이 들고
치맛자락에서 깨어나자 저자에 주루와 기루만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엄격한 일처주의인
발해인들의 풍속이 바뀌어 첩을 거느리는가 하면 여자
노예들을 사고 팔았다. 그런 까닭에 저자에는 해괴한
노래까지 퍼져 있었다.
만두가게에 만두를 사러 가니
색목인(色目人:아랍인)이 내 손목을 잡더이다
이 소문이 점포밖에 나돌면
조그만 새끼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다른 여인들 소문을 들으면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하겠지
색목인이 말하길
그 잔 곳 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
이 노래는 유녀(遊女)가 몸을 팔고 다니는 행각을
노래한 것인데 색목인과 관계를 가질 만큼 타락한
시대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 잔 곳 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는 귀절은 여인의 비고(秘庫)를 말하는
것이었다.
삼장사에 불공을 드리러 갔더니
그 절의 주지가 내 손목을 잡더이다
이 소문이 절밖에 나돌면
조그만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
다른 여인들 소문을 들으면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하겠지
그 절의 주지가 말하길
그 잔 곳 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
두레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우물의 용(龍)이 내 손목을 잡더이다
이 소문이 우물밖에 나돌면
조그만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다른 여인들 이 소문을 들으면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하겠지
우물의 용이 말하길
그 잔 곳 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
술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는데
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잡더이다
이 소문이 집밖에 나돌면
조그만 술바가지야 네 말이라 하리라
다른 여인들 소문을 들으면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하겠지
그 집 아비 말하길
그 잔 곳 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
요지음 기루와 주루에서 널리 불리고 있는 노래는
쌍화점(雙花店)이라는 속요(俗謠)였다. 기루와
주루뿐이 아니라 조정 관리들의 주연에서도 거침없이
불리고 있었다.
이런 노래가 민간에서 널리 불려지고 있다는 것은
발해의 국풍이 그만치 혼탁하다는 증거였다.
발해의 국정 수반인 두경용은 그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소홍이 대인을 뵈옵니다."
이내 주렴 밖에서 은방울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들라."
두경용은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헛기침을 했다.
임소홍이 주렴을 걷고 조심조심 들어와 절을 했다.
(아!)
두경용은 임소홍이 절을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뜻밖에
임소홍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절색이었다. 머리는
검은 옻칠을 한 듯이 매끄럽고 눈은 영롱한 아침
이슬이 맺힌 듯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사람을
빨아들일 것같은 아름다운 눈이었다.
게다가 눈이 파랗고 살결이 하얀 여자였다.
(경국지색이군......)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나라를 위태롭게 할만큼
아름답다는 뜻이다. 두경용은 예순에 가까운 나이도
잊고 임소홍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술을 따라 올리겠습니다."
두경용이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하자 임소홍이
수줍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섬섬옥수를 뻗어 호리병을
들었다.
"그래라."
두경용은 비로소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임소홍이
술을 따르자 단숨에 입속에 털어 넣었다. 술은
발해인들이 좋아하는 두견주(杜鵑酒)였다. 입안에서
향긋한 진달래 향이 감돌았다.
임소홍은 다시 술을 따라 올렸다.
"술 향기가 그윽하구나."
미인이 따른 술이라 그런지 두경용은 술이 입에
달라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요에서 가져온 술이옵니다."
임소홍이 살갑게 눈웃음을 치며 술을 따라 올렸다.
두경용은 두 번째 두견주를 마셨다. 그러나
두경용은 임소홍이 두견주에 여춘화(麗春花:아편꽃)의
열매에서 채취한 가루를 탄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
가루는 미약(媚藥:마약)의 재료로 그 가루를 탄 술은
칠보주(七寶酒)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칠보주를 한
잔만 마셔도 일곱 무지개가 눈앞에서 아롱거리는 듯한
환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두경용은 석 잔을 마시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임소홍은 이제 고혹적인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두경용에게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임소홍이 지분 냄새를 풍기며 가까이 왔다. 그러자
두경용은 재빨리 임소홍의 허리를 안아서 무릎 위에
앉혔다.
(임소홍을 얻은 것은 보배를 얻은 것이다......)
두경용은 임소홍을 자신에게 준 할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할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던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삼스럽게 할저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옷자락
사이로 손을 뻗어 임소홍의 몸을 만졌다.
"아이......"
임소홍은 허리를 비틀며 앙탈을 부렸다. 그러나
벌겋게 충혈된 사내의 눈에는 교태를 부리는
몸짓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두경용은 노인인데도 불구하고 임소홍을 번쩍
안아서 침상 위에 쓰러트렸다. 그리고는 서둘러 옷을
벗고 침상위로 올라갔다.
(우물 중에 우물이야.....)
두경용은 새삼스럽게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감탄했다.
색(色)이 뛰어난 여자를 우물(尤物)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두경용은 임소홍이야말로 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경용은 황급히 임소홍의 겉옷을 벗겼다. 가슴이
소년처럼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아!)
임소홍의 겉옷을 벗긴 두경용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살결이 투명하게 비치는 비단 나삼(羅衫)이 터질
것처럼 팽팽하게 솟아 오른 젖무덤, 그리고 버들가지
같은 허리..... 둔부는 풍만하고 허벅지는 살이
통통했다.
이튿날 아침 두경용은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났다.
임소홍과 밤새도록 뱀처럼 뒤엉켜 지낸 생각을 하자
가슴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두경용은 매사에 의욕이
넘치기 시작했다. 밤에는 임소홍을 끌어안고 뒹굴고
낮에는 의욕적으로 정사(政事)를 보았다.
며칠 후 두경용은 3사(三司)와 3공(三公)을
초대하여 성대하게 주연을 베풀었다. 임소홍이
두경용의 귓전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 넣으며 주연을
베풀어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두경용은 기꺼이
임소홍의 청을 들어주었다.
발해의 3사와 3공은 국가의 원로대신들인데 3사는
국왕이 신하로 대하지 않고 스승으로 대우한다는
벼슬이고 3공은 국왕을 도와 나라를 다스리는데 어느
부서를 가릴 것 없이 통괄하고 있었다.
두경용이 이들을 초대하여 주연을 연 것은 임소홍의
청도 있었지만 은근히 원로대신들에게 임소홍을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대내상 대감이 말년에 저럼 미인을 얻었으니
시황(始皇)이 부럽지 않겠구료."
"과찬이십니다."
"그래 저런 미인을 얻으니 춘정이 되살아나던가요?"
"이 늙은이에게는 과한 여인이지요."
3사의 태사(太師)를 비롯해 원로대신들은 다투어
임소홍을 칭찬했다. 두경용은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두경용은 그날 밤도 임소홍을 끌어안고
정염을 불태웠다.
임소홍에 대한 소문은 홀한성 안에 파다하게
퍼졌다. 그리고 그 소문은 황궁에 있는 인선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인선황제는 임소홍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새삼스럽게 임소홍에 대한 연정이
뜨겁게 되살아났다.
임소홍을 어전에서 얼핏 보았을 때도 인선황제는
임소홍의 눈웃음에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렸었다.
임소홍은 황제인 그로서도 처음 보는 미인이었다.
그러나 할저가 데리고 온 여인이었기 때문에
내색조차 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런데
임소홍이 천하절색이라는 소문이 황궁에까지 들어오자
더욱 연모하는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다.
인선황제는 안달이 났다. 임소홍 같은 천하의
절색을 늙은 대신 두경용이 매일 끌어안고 잔다고
생각하자 눈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인선황제는 두경용을 저주했다.
임소홍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황제의
체면으로 차마 대신의 계집을 내놓으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매일 같이 수라도 제대로 들지 않고 짜증만
부렸다. 밤에도 술만 마시며 내관들과 궁녀들을
까닭없이 들볶고 걸핏하면 어림군을 불러다가
내관들을 매질하게 했다. 내관들은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렵 한 내시(內侍)가 인선황제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해 왔다. 인선황제의 옆에서 의전(儀典) 시중을
드는 진림(陣林)이라는 내시였다.
"폐하! 어찌 그리 심려가 크시옵니까?"
그는 상시(上侍:내시의 우두머리)가 없는 틈을 타서
인선황제에게 가만히 속삭였다.
"네가 알 바가 아니다."
인선황제는 오만하게 내뱉았다. 그의 근심을 내시
따위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초여름이었다.
발해의 황궁에도 신록이 짙었다. 어림청의 뒤편에
있는 숲에도 녹음이 짙어 바라보기만 해도 입안이
파래질 것 같았다. 인선황제는 점심 수라를 마치자
더위를 피해 숲을 찾아온 것이다. 평소에는 왕비나
궁녀들이 산책을 하는 산이었다. 숲으로 뻗은
자드락길에는 그들의 발자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신이 폐하를 모셔온지 어언 10년이옵니다."
"벌써 그리 되었는가?"
"신이 어찌 폐하의 근심을 모르겠사옵니까?"
"네가 내 근심을 안다고?"
"신이 처리하겠사오니 안심하시옵소서."
"허허....."
인선황제는 껄껄거리고 웃었다. 내시 진림의 말이
귓전을 감미롭게 간지럽히고 있었다.
"폐하께서는 한 미인 때문에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황제는 의전 내시 진림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뭣이?"
"그 미인은 요에서 온 여인일 것이옵니다."
"그렇다!"
"신에게 묘계가 있사오니 안심하시옵소서."
"정녕 그 말이 사실이렷다?"
"폐하.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거짓을
아뢰겠사옵니까? 통촉하시옵소서."
"어디 그 묘계를 나에게 말하여 보아라!"
"예."
진림은 주위를 살피고 황제에게 바짝 다가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진림의 말을 듣고 있던 황제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알았다! 그만 물러가거라."
"예."
의전 내시 진림은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물러갔다.
이튿날 조반을 마치고 황궁에 등청하려던
두경용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정당성 대내상 두경용은 적국과 내통하고 뇌물을
받아 사리사욕을 채웠으니 속히 포박하여 하옥하라는
어명이오!"
황궁에서 어명을 받든 어림군(御臨軍)이 달려와
고하자 두경용은 어리둥절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어림군은 다짜고짜 두경용을
포박하여 끌고 갔다.
두경용은 중죄수를 다루는 옥에 갇혔다.
정당성 대내상 두경용이 하옥되자 발해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대신들은 각 부의 관청에 삼삼오오 모여
어찌된 영문인지를 수소문했다. 그러나 영문을 아는
대신은 아무도 없었다. 역모자라면 고변자가 있을
터인데 고변자도 없고 역모의 내용도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두경용은 영문도 모르고 역모 혐의를 뒤집어쓰게
되자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명색이
국정수반이었다. 대내상이라면
일인지상만인지하(一人之上萬人之下)의 몸인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옥에 갇히자 비감한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러나 신문이 시작되자 더욱 괴로웠다. 신문관들은
아무 증거도 들이대지 않고 무조건 요 나라와 내통한
사실을 자백하라고 요구했다. 두경용이 그러한 일이
없다고 하자 자백을 하지 않는다며 태질을 했다.
신문관들은 모두 대내상 두경용과 친분이 두터운
대신들이었다. 그러나 인선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인선황제는 매일 같이 신문관들을 닥달하고
있었다.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태질을 당한 두경용의 몸에서 살점이 찢어지고 피가
튀었다. 그래도 태질은 멈추지 않았다.
"두경용을 원지에 부초하고 가산을 몰수하라!"
다시 인선황제의 엄명이 떨어졌다.
두경용은 눈앞이 캄캄했다.
(할저가 임소홍을 나에게 바친 것은 음모야.....)
두경용은 그때서야 할저가 임소홍을 자신에게 바친
것이 함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은
때늦은 후회였다.
정당성의 대내상인 두경용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하옥되자 여론이 물끓듯했다. 그 중에는 노골적으로
인선황제를 탄핵하는 대신들도 있었다.
.......노재상 두경용으로 말하면 국정수반을
지낸지 5년에 나라의 태두로 내외에 신망이 두터운
재상이옵니다. 그가 요 나라와 내통했다고 하나
내통한 증거가 하나도 없고 또한 고변자도 없습니다.
모름지기 역모라고 하면 고변자도 있어야 하고
연루자도 있어야 합니다. 헌데 이 무슨 해괴한 일인지
국가의 원로요, 국정 수반의 직위에 있는 노재상을
역모를 했다고 하옥하니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설령 그러한 일이 있더라도 사직에 끼친 공로가
적지 않은데 어찌 그를 죄 주어 엄벌로 다스리려
하시나이니까. 이는 천부당만부당 한 일이오니
굽어살피시어 두경용을 속히 방면하시옵소서.
폐하께서 그를 파직하고 유배하시니 대신들이 모두
황망해 하고 어진 백성들이 의아해 하니 이로 인하여
나라의 공론이 분산되고 어지러워질까
염려하나이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글을 올려 황제에게
충간을 하는 대신들은 오히려 모조리 관직을
박탈당하거나 하옥되었다.
황궁에서도 두경용의 유배를 반대하였다. 먼저
귀비(貴妃:왕비)인 효경왕후(孝敬王后)가 두경용을
복직시킬 것을 주장했다.
"폐하! 두경용 같은 대신을 유배하심은 나라의
근간을 흔들리게 하는 일이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효경왕후는 황제의 편전인 양의전(陽議殿)까지
찾아와 호소했다.
"궁중의 아녀자가 정사에 관여해서는 아니되오!"
인선황제는 어탁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폐하! 신첩이 엎드려 비옵니다!"
"물러가시오!"
인선황제는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쳤다. 인선황제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시립해 있던 내시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효경왕후는 인선황제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태자 대광현(大光顯)을 보냈다.
"폐하!"
"너는 또 왠일이냐?"
인선황제는 태자 대광현을 보자 눈꼬리부터 치켜
올렸다. 태자 대광현은 인선황제가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고 늘 충간을 하여 인선황제의 눈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두경용의 유배를 풀어 주시옵소서."
"닥쳐라!"
"아바바마!"
"네 따위가 정사를 어찌 안다고 간섭을 하려
하느냐? 네 놈이 또 아비의 일에 콩 놔라 팥 놔라 할
것이냐?"
"황공하옵니다."
"물러가라!"
인선황제는 대광현의 말을 듣기도 전에 호통을 쳐서
쫓아버렸다.
효경왕후와 태자 대광현이 인선황제에게 호통만
받고 돌아오자 정연공주(貞燕公主)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연공주는 이제 겨우 열 두 살이었다.
그러나 공주답지 않게 황궁의 어림군에게 무예를
배우는 등 엉뚱한 일에만 심취하여 효경왕후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너는 또 어디를 다녀 오느냐?"
"어머마마! 어림군 둔영에 다녀옵니다."
"또 무예를 배웠느냐?"
"예."
"쯧쯧......."
효경왕후가 혀를 찼다. 남자 같은 정연공주의 하는
짓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이제는 야단을 치는
것도 지쳐 있었다. 정연공주는 태자 대광현과는 전혀
성품이 달랐다. 태자는 여자처럼 섬약하고 서책을
좋아했으나 공주는 사내들처럼 말을 타거나 활쏘기를
좋아했다.
인선황제가 효경왕후를 멀리하기 시작하자
효경왕후는 오로지 정연공주를 키우는 낙으로 살았다.
효경왕후에게는 또 하나의 딸이 있었으나 그녀는
거란이 침략 야욕을 드러내자 고려의 후원을 얻기
위해 고려왕 태조 왕건에게 시집을 보냈다.
정략결혼인 셈이었다. 효경왕후는 고려로 딸을 시집
보내고 하나 남은 정연공주에게 더욱 애정을 쏟게
되었던 것이다.
정연공주는 사내들처럼 무예를 배웠으나 자라면서
얼굴이 더욱 예뻐졌다. 성품도 봄날씨처럼 부드러워
궁녀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우리 공주님은 분명히 하늘의 문곡성(文曲星)이
현신한 분일꺼야. 그러니 저렇게 고우시지........"
"그럼 문창성(文昌星)과 맺어져야 하겠네."
"그럼 문창성이 아니면 누가 감히 우리 공주님의
낭군이 될 수 있겠어?"
궁녀들은 누구나 정연공주를 사랑했다.
임소홍은 아무도 모르게 대궐로 불려가 인선황제
앞에 나갔다.
"폐하."
임소홍은 두려운 눈빛으로 인선황제를 쳐다보았다.
인선황제의 새우처럼 작은 눈이 그녀의 전신을 핥고
있었다.
"네가 임소홍이냐?"
인선황제는 임소홍을 보자 가슴이 찌르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임소홍은 얼핏 보면 남자를 모르는
청순한 소녀 같았고 어찌 보면 무수한 남자들의 손을
거친 요부(妖婦)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러하옵니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황공하옵니다."
임소홍이 치맛자락을 끌며 가까이 다가왔다.
(세상에 어찌 이런 여자가 있는가.......)
인선황제는 눈이 부신 느낌이었다.
임소홍은 20세를 갓 넘긴 것 같았다. 인선황제는
임소홍이 가까이 오자 뚫어질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머리에 하늘 색 두봉(斗蓬:머리의
장식)을 쓰고 있었고 옷은 소매가 넓고 치마자락이 긴
당의(唐衣:당 나라 여인들의 옷)를 입고 있었다.
당의는 흰색이었으나 속에 붉은 옷을 받쳐입은 듯
은은하게 붉은 빛이 비치고 있었다.
얼굴은 더욱 아름다웠다. 갸름한 얼굴에 호수처럼
깊고 맑은 눈은 보는 사람의 눈을 그대로 빨아들일 것
같았다.
그야말로 화용월태였다.
임소홍이 하늘거리고 걸어와 인선황제 앞에 섰다.
"옷을 벗으라."
인선황제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명을 내렸다.
"예."
임소홍이 은방울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유삼을 벗고 치마끈을 풀렀다.
(음.....!)
유삼과 치맛자락이 임소홍의 발 밑에 떨어져 쌓이자
인선황제는 다시 한 번 신음을 삼켰다. 임소홍은 속에
붉은 색의 짧은 기포(旗袍:원피스 모양의 만주인 옷.
치마의 한쪽 옆이 터져 있다)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아름답구나! 정녕 선녀가 하강한들 이토록
아름다울꼬.....!"
인선황제는 신음처럼 중얼거리며 임소홍의 허리를
낚아채 끌어안았다.
"폐하."
임소홍은 기다렸다는 듯이 인선황제의 품에 안기며
허리를 비틀었다. 원래가 황음한 인선황제였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궁궐에 있는 수많은 궁녀들을
희롱해 왔던 인선황제였으나 임소홍의 요염한 미색에
반한 인선황제는 날이 어두워지지도 않았는데
임소홍을 안고 침전으로 들어갔다.
그날부터 인선황제는 전혀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밤과 낮이나 임소홍과 어울려 뒹굴었다. 그러자
대신들이 잇따라 상소를 올렸다. 게다가 인선황제는
임소홍에게 이귀비(二貴妃)라는 직첩을 내리고
홍련궁(紅蓮宮)을 하사함으로써 발해 조정에 파란을
일으켰다. 발해의 왕비는 귀비(貴妃)라는 직첩을 갖고
있었는데 이귀비는 두 번째 왕비라는 뜻이었다.
홍련궁은 발해 황궁의 오궁(五宮) 중 하나였다.
발해의 오궁은 적(赤), 홍(洪), 금(金), 청(淸),
백(白)으로 하늘에서 5색의 연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지었다는 궁궐이었다.
황제의 침전이 금련궁(金蓮宮), 왕비의 침전이
백련궁(白蓮宮), 황태자궁이 청련궁(淸蓮宮)이었다.
.......폐하! 신들은 돈수백배하고 아뢰옵니다.
폐하께서 임소홍이라는 천하에 둘도 없는 악독한
요부를 취하여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치마폭에만
매달려 있사오니 신들은 차마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다만 백번을 양보하여도 임소홍에게
이귀비의 직첩을 내리심이 불가한 것은 그가 대내상
두경용의 첩이었기 때문이옵니다. 어찌 지존이신
폐하께서 신하의 여자를 취하여 이토록 풍속을
더럽히나이까. 신들은 차마 하늘에 머리를 들 수가
없사오니 차라리 신들을 먼저 죽여 주시옵소서.
세간에 말이 나돌기를
제두임녀동복승(帝杜林女同腹乘)이라 하여 폐하와
두경용이 같은 배(腹)를 탔다는 말이 나돌고 있으니
망측하여 입을 열 수가 없나이다. 폐하께서는 요부
임소홍에게 대처분을 내리시고 바른 정치를
펴시옵소서......
젊은 관리들의 상소는 격렬했다.
"이 놈들이 감히 황제를 능멸해?"
인선황제는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상소문을 올린
관리들을 잡아 죽이라는 어명을 내렸다. 그러자
어명을 집행하는 관리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관리들의 충간이 구구절절 옳은데 관리들을 죽이라는
어명을 집행할 수 없다고 하였다.
"오라! 이 놈들이 작당을 했구나!"
인선황제는 눈에 핏발을 세웠다.
"어림군을 들라고 해라!"
인선황제의 명은 추상같았다. 이내 어림군들이
어전으로 들이닥쳤다.
"어림군 대령이오!"
"지금 당장 어림청으로 가서 어명을 집행하지 않는
중정대(中正臺:감찰기관) 놈들을 몽둥이로 두들겨서
내쫓아라!"
"폐하!"
어림군도 놀라서 인선황제를 쳐다보았다.
인선황제의 명은 전에 없이 극렬한 것이었다.
"어서 가서 집행하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폐하! 노염을 거두시옵소서."
"닥쳐라! 내가 손수 어림청에 나가서 몽둥이질을
하랴?"
인선황제는 길길이 날뛰었다. 그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어림군은 도리없이 어림청에 나가서 젊은 관리들을
몽둥이로 두들겨서 해산시켰다. 인선황제는 그들이
어림청에서 물러가자 농성에 가담한 대신들을 모조리
파직하고 새로운 대신들을 임명했다. 그러나 그
대신들도 인선황제의 명에 불복했다. 인선황제는
어명을 거부하는 대신들의 우두머리들을 주작대로에서
처단했다. 발해의 조정에는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충간을 하던 대신들은 공포에 질려 입을 다물었다.
(감히 황제를 업신 여겨?)
임소홍의 직첩으로 일어난 파란은 두 달만에
가라앉았다.
인선황제는 대신들의 반발이 진정되자 아예
홍련궁의 침전에서 나오지 않고 임소홍과 발가벗고
뒹굴었다.
"에그머니!"
궁녀들은 인선황제와 임소홍이 발가벗고 뒹구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인선황제의 옆에서
시중을 드는 궁녀와 내시들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인선황제는 주지육림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미약에 중독된 모양이야.....)
내시 진림은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대내상 두경용을 죽게 하고 임소홍을 인선황제에게
바친 것이 후회되었다. 그는 어느날 자신의 신분도
잊고 인선황제에게 임소홍을 멀리 하라고 눈물로
충간을 했다.
"폐하. 임소홍은 천하의 요부이옵니다."
"뭣이라고?"
"임소홍이 하는 짓은 금수와 같사옵고 폐하께서는
성총이 흐려졌사옵니다. 임소홍을 멀리 하지 않으면
장차 폐하께 큰 화근이 될 것이옵니다."
"이, 이놈이.....!"
인선황제는 눈을 치뜨고 펄쩍 뛰었다.
"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간하오니 임소홍을 멀리
하소서."
"닥쳐라!"
"폐하!"
"네 놈이 어찌 그따위 방자한 주둥이를 놀리느냐?"
인선황제는 불호령을 내렸다.
"저 놈을 끌어내다가 당장 목을 베어라!"
진림은 어림군에게 끌려나가 그날로 목이 잘렸다.
진림 뿐이 아니었다.
임소홍을 멀리 하라고 충간하는 신하들은 속절없이
죽임을 당했다.
(이제 발해는 망하는구나......)
발해의 충신 열사들은 절망에 빠져 탄식을 했다.
임소홍은 갈수록 추악한 짓을 저질렀다. 인선황제를
충동질하여 궁녀들을 발가벗겨서 한 방에 몰아 넣고
기어다니게 하다가 황제가 올라타고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게 하였다. 그 일을 못하겠다고 하는 궁녀는
매질을 하여 죽이거나 술을 먹여서 죽였다. 한 궁녀는
술을 얼마나 많이 먹였는지 죽은 뒤에 어림군이
시체를 떠메고 나가려고 하자 살(肉)이 흐늘흐늘
하더라는 소문까지 파다하게 나돌았다.
임소홍은 그것으로 그치고 않고 발해의 각 부(府)에
채홍사를 보내 아름다운 여자들을 황궁으로 잡아 오게
했다. 게다가 채홍사를 발해의 용맹한 장군들에게
시켰다. 이에 분노한 장군들은 하나 둘 벼슬을
사직하고 초야로 숨어 버렸다.
................................................
1). 발해에서는 왕을 가독부(家督夫),
성왕(聖王)으로 부르고 왕의 명령을 교(敎), 왕비는
귀비(貴妃), 세자는 부왕(副王), 나머지 왕의
아들들은 왕자(王子), 딸은 공주(公主)로 불렀다.
후궁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2). 쌍화점(雙花店)이라는 노래는 고려의 가요다.
비록 고려에서 불리고 조선시대에는 음사(淫辭)라고
하여 금지시켰으나 발해에서 불리었을 가능성도
제외할 수 없다. 특히 색목인(서양인)이 고려까지
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 더욱 그렇다.
발해에서는 색목인이 아랍뿐 아니라 바로 국경 옆의
사백력에도 있었다.
11. 초원의 전투
끝없이 펼쳐진 대초원.
태양이 지평선에서 뜨고 지평선에서 떨어지는
광활한 초원지대. 바람에 나부끼는 풀숲 저 멀리
홍진(紅塵)이 일어나듯 울긋불긋한 깃발이 펄럭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이랴!"
"이랴!"
대발해국과 요국의 극동쪽 접경지대인 우수리강
유역의 넓은 초원에 병사들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7대의 이두마차(二頭馬車)가 달려오고 있었다.
병사들의 복장은 발해국 군사들의 복장이었고
기치창검이 하늘을 찌를 듯 빽빽했다.
"서!"
마차를 호위하는 병사들의 우두머리인 듯한 장수가
갑자기 말을 세우며 병사들을 정지시켰다. 병사들은
장수의 군호에 따라 일제히 말고삐를 잡아 당겨
초원에 멈춰 섰다. 그는 발해국 북우위의 대장군
장영이었다.
"장군!"
그때 마차 옆에서 따라 오던
안변부(安邊府:시호테이아린산맥일대)의 말갈족인
칼탄족의 족장이 우두머리 장영의 옆으로 말을
몰아왔다. 중국에서는 허저족(赫哲族)이라고 불리고
발해국에서는 이들을 위피따즈(魚皮革達子)족이라고
부르는 말갈계의 부족이었다. 물고기를 잡는
몽고인이라는 뜻이었다.
"이제 여기서 작별을 해야 할 것 같소."
칼탄족의 족장인 테링(鐵嶺)이 광활한 초원을
내다보며 장영에게 말했다. 7월이었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의 무리 너머 발해국의 상경용천부로
향하는 관도가 아득하게 보였다. 그러나 우기(雨期)가
지나 허리까지 자란 목초로 길은 드문드문 끊어져
있었다.
"족장 고맙소."
칼탄족이 발해국에 바치는 진귀한 공물(貢物)과
공녀(貢女)들의 호송 책임을 맡고 있는 장영이 테링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은
칼탄족과 사이가 좋지 않은 우조우(梧州)족의
땅이었다. 칼탄족은 해마다 조공을 발해국에 바치고
있었으나 우조우족의 땅은 침범하지 않았다.
우조우족은 발해의 안원부(安遠府:우수리강 동쪽)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무리를 지어 발해에 대항하는
기질이 사나운 족속들이었다.
"우조우족을 조심하시오."
테링이 장영에게 당부했다.
"우리는 정병이 2백명이오."
장영은 테링의 당부를 가볍게 받아 넘겼다.
"우조우족은 최근에 강대해 졌소."
"그래봐야 유목민일 뿐이오."
장영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칼탄족 족장 테링이 빙긋이 웃었다. 장영은 발해의
맹장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청수한 문사의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눈빛은 한없이 부드럽고 몸집은
호리호리했다. 몸에 걸친 갑옷과 투구만 아니라면
대장군이라고 보이지 않는 문약한 인상이었다.
"그들이 나타나면 한칼에 쓸어버리겠소."
테링의 미소가 마음에 걸렸는지 장영이 다시 단호한
목소리로 호기 있게 소리쳤다.
"그럼......"
테링이 장영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는
자신을 따라온 부족인들에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돌아가자!"
칼탄 족장 테링의 명령에 따라 칼탄족 병사들이
일제히 말머리를 돌려 백력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초원을 달리는 말발굽소리가 두두두 하고 지축을
흔들다가 이내 멀어지기 시작했다. 장영은 칼탄족이
초원으로 사라지는 것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태양은 중천에 떠 있었다.
초원은 짙푸른 녹음이 우거져 있었고 하늘엔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대륙의 초원이 성하를 맞아
파랗게 물들어 싱싱한 녹향을 뿜고 있었다.
(이 여자들을 우조우족에게 뺏기는 게 발해로서는
다행한 일일지도 몰라.......)
장영은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공녀들을 발해에
바치는 것이 어쩐지 마음에 꺼림칙했다. 발해국은
건국초기의 강성한 국가가 왕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이
누대에 걸쳐 계속되는 동안 천재지변에 의한 흉년이
계속되고, 발해국의 피지배층을 형성하고 있는
말갈인들과의 알력이 심해져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게다가 변방의 말갈인들이 발해국의 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항도 강해지고 있었다. 발해국은
변방의 말갈인들이 저항을 할 때마다 토벌군을 보내
정벌했으나 사방 9천리의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발해로서는 그것도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발해는 마침내 변방의 말갈인들에게 어느 정도
자치권을 허락하고 말았다. 그 대신 해마다 조공을
바치게 했는데 공녀들이 문제였다. 발해는 노예제도를
갖고 있었는데 변방에서 바치는 공녀들이 발해
귀족들의 노예가 되어 풍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발해는 처음에 일부일처제였다. 그러나 국가가
안정되면서 수많은 전쟁에서 잡아온 포로와 적국의
여자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리게 되었던 것이다.
장영이 호송하는 공녀들은 아무르강 안쪽에 있는
시호테이아린산맥의 울창한 삼림지대에 있는 쿠룬족의
여인들이었다.
장영도 쿠룬족의 여인들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들은 발해로 끌려가면 황제의
노리개가 되거나 귀족들의 노예가 될 것이다.
부우우웅.
그때 초원 저쪽에서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부우우웅.
우조우족의 나팔소리였다. 우조우족이 용사들을
모으고 있는 나팔소리가 분명했다.
"가자!"
장영은 그때서야 흠칫하여 병사들에게 출발신호를
했다. 마차 한 대에 쿠룬족 여자들이 15명씩 타고
있으므로 모두 65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들을
호송하고 있는 병사는 발해의 정병 150명이었다.
"행군(行軍)!"
장영의 지시에 따라 병사들과 마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부우웅.
부우웅.
나팔소리는 더욱 빨라졌다. 초원에서 풀을 뜯던
양떼들이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하고 이내 초원에
요란한 말발굽소리와 함께 우조우족이 까맣게
나타났다.
"대군(大軍)이군."
장영은 전신이 바짝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초원에
나타난 우조우족은 얼추 살펴도 3, 4백명이 넘어
보였다. 모두들 기병(騎兵)으로 일자진(一字陳)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우조우족의 병사들은 긴 창을
들고 있는 창기병과 반월도(半月刀)를 들고 있는
도기병(刀騎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창기병과
도기병은 모두 등에 활을 메고 있었다.
"대발해국의 천기(天旗)를 세워라!"
장영은 부장(副將)에게 지시했다. 그러자
대발해국의 천손(天孫:황제)를 상징하는 깃발과
국명인 대진(大震)을 써넣은 깃발이 높이 솟아 바람에
펄럭거렸다. 깃발의 색은 불을 뿜는 듯한 적색,
황룡이 승천하기 위해 용트림을 하는 듯한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적과 싸움을 할 때는 마차를 두고 공격한다. 자
모두 품자진(品字陳)을 펼쳐라!"
장영의 지시에 따라 병사들이 신속하게 움직여
품자진 형태를 취했다.
"적의 50보 앞에 도착하면 어린진(漁鱗陳:학익진)!"
"예!"
병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공격은 모순(矛盾:창과 방패)!"
"예!"
병사들이 일제히 창을 움켜쥐었다.
"방패로 화살을 막고 돌격하다가 적진에 이르면
방패를 버리고 창으로 공격한다!"
"예!"
"적진을 뚫으면 2백보를 전진하다가 천자(川字)로
갈라져 추격하는 적을 구(口)자로 포위하고
궁노(弓弩:활과 쇠뇌)로 공격한다!"
"예!"
그때 우조우족 진영에서 부웅 하는 나팔소리가 짧게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쉬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돌격!"
장영이 창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병사들이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우조우족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말발굽소리가 초원 위에 요란하게 울려 퍼지며
발해군이 일제히 창을 앞으로 내밀고 달렸다. 장영의
지시대로 품자진이었다. 우조우족은 맹렬하게 화살을
쏘아댔으나 발해군은 번개처럼 말을 몰아 50보 앞에
이르더니 갑자기 어린진으로 바꾸어 질풍처럼 공격해
왔다.
"토족을 죽여라!"
"토족의 여자들을 뺏어라!"
"토족의 마차에 있는 보물을 빼앗아라!"
우조우족도 기병(騎兵)이었다. 발해군이 코앞에
닥치자 활을 거두고 맹렬하게 돌진해 왔다. 발해군은
창을 우조우족을 향해 겨누고 말에게 세차게 발길질을
했다. 그러자 말은 더욱 질풍처럼 달려 우조우족
진영으로 내달렸다.
"앗!"
"으악!"
우조우족은 발해군의 창에 찔려 말에서 떨어져
나뒹굴었다. 피가 튀고 비명소리가 초원에
메아리쳤다. 그러나 수적으로 우세한 우조우족이었다.
발해군이 물고기 비늘 모양의 어린진 형태로 공격을
하는 바람에 삽시간에 중앙이 뚫렸으나 돌아서서
어린진의 옆구리(물고기 비늘부분)를 치기 시작했다.
"윽!"
"이 오랑캐놈들!"
발해군도 우조우족의 창에 찔려 피화살을 뿜으며
나뒹굴었다. 그러나 중앙을 뚫은 발해군은 이내
2백보를 달리더니 일제히 내 천(川)자로 갈라졌다.
우조우족이 어리둥절한 사이 발해군은 재빨리
구(口)자로 진을 만들어 우조우족을 포위하여
공격했다.
"쏴라!"
"대발해국에 대항하는 이족(異族)을 섬멸하라!"
발해군들은 장영의 명령이 떨어지자 어깨에서
일제히 활과 쇠뇌를 꺼내 우조우족을 쏘기 시작했다.
우조우족은 갑자기 우박처럼 쏟아지는 발해군의
화살과 쇠뇌에 픽픽 쓰러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발해군은 전통적으로 맥궁(貊弓)을 사용했다.
맥궁은 거대한활로 고구려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강력한 살상용의 화살이었다. 활이 크기도 하려니와
살은 싸리나무가지, 촉은 청동이었다.
뒤를 이어 발해군사들이 칼을 뽑아 들고 달려왔다.
발해인들의 칼 역시 고구려시대에 명성을 날린
환두대도(還頭大刀)였다. 칼을 뽑자 싸늘한 검기가
서리서리 뻗쳤다.
우조우족은 발해군사들의 환두대도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피보라가 일어나고 우조우족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초원에 메아리치듯 번져 나갔다.
우조우족은 그때서야 허겁지겁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으나 살아서 돌아간 족인들은 불과 수
십명에 불과했다. 비참한 패배였다.
"출발!"
발해군은 다시 대오를 정리하고 상경용천부를 향해
행군하기 시작했다. 공녀들을 호송하던 이두마차와
공물을 실은 우차를 끌고 발해군은 당당하게 관도를
행군해 갔다.
................................................
1) 발해는 처음에 대조영의 아버지인
대중상(大仲象:乞乞仲象)에 의해 고구려국이라고
했다가 대조영에 이르러 진국(震國)으로 국호를
정했다. 걸걸중상의 묘호는 세조(世祖)라 하고 시호를
진국열황제(震國烈皇帝)라 하였다. 대조영의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성무고황제(聖武高皇帝)였다.
2) 발해의 영토는 대조영 때에 사방 6천리, 2대
무왕(武王) 때에 9천리에 이르렀다고
<대진국본기:발해국본기>에서 말하고 있다.
3) 대진국본기는 조대기(朝代記)를 인용하고 있다.
조대기는 실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단군세기와 함께 금서로 지정된 것을
보면 조선조까지 존재했던 것이 분명하다.
12. 솔빈의 홍의녀
발해의 북우위 대장군 장영의 호송대는 그 날
중으로 안변부 도독부에 이르러 하루를 묵었다.
장영은 안변부 도독에게 우조우족이 호송대를 습격한
사실을 얘기하고 우조우족이 중앙의 통제에 벗어나
독자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게 다스리라고 요구했다.
"대장군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우조우족은 기질이
사나운 족속들입니다. 군사를 보내 토벌하면 그때만
잠잠하다가 또 다시 반란을 일으키지요."
안변부 도독 오소량(烏昭諒)은 난처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오소량의 성(性) 오(烏)는 발해
대성(大姓)의 하나로 발해 조정에도 오씨 성을 가진
인물들이 많았다. 그를 안변부 도독에 임명한 것은
안변부의 이름이 의미하듯이 먼 지방을 안정하라는
발해 조정의 뜻이었다.
"도독이 우조우족을 방치하면 장차 큰 화근이 될
것이오!"
"화근이 되다니요?"
"도독! 발해는 언제나 거란으로부터 침략 위협을
받고 있소! 우조우족을 지금 꺾지 않으면 거란이
침입할 때 반드시 반기를 들것이오!"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소!"
"속히 군사를 모아 토벌하시오!"
"알겠소!"
안변부 도독이 마지못해 우조우족을 토벌하겠다는
대답을 했다.
장영은 이튿날 아침 일찍 안변부를 출발했다.
그러나 안변부를 출발한지 이틀이 지나서야
솔빈부(率濱府)에 이르렀다. 솔빈부는 발해 15부의
하나로 안변, 안원을 비롯해 정리부(定理府),
동평부(東平府), 상경용천부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
부로 솔빈부 안에 흥개호(興凱湖)라는 호수가 있어
어업과 농사가 발달하였다.
상경용천부는 장백산맥(長白山脈)과
장광재령산맥(長廣才嶺山脈)의 중심에 있어서 분지를
이루어 천험의 요새로서는 다시없는 지역이었으나
농업은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솔빈부는 발해에서
가장 비옥한 토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벼의 생산이
풍부했다. 특히 목초지대는 알맞은 강우량과
일조량으로 좋은 풀들이 자라 말을 방목하기에 가장
좋은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솔빈부에서 나오는
말은 <솔빈의 말>이라는 말(言)이 중국까지 알려져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솔빈부 무주(霧州)에 이르자 넓게 펼쳐진 논밭이
보였다. 논에는 벼들이 푸르게 웃자라 있었고 마을도
드문드문 보였다. 마을은 대개 초가와 움막이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와가(瓦家)도 눈에 띄고 있었으나
화려하지는 않았다.
장영의 호송대는 흥개호 호수 옆의 관도를 따라
행군했다.
그때 장영은 흥개호 호수의 나루에 사람들이 구름
같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와라!"
장영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기이하게 여겨
호송대를 멈추게 하고 부하들에게 사정을 알아 오라고
지시했다.
"예!"
그러자 장수 하나가 달려가 사람들을 붙들고 사정을
물어왔다.
"홍의녀(紅衣女)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
하옵니다."
"홍의녀라니?"
"전임 자사의 여인이라고 합니다."
"자사의 여인을 백성들이 무슨 까닭으로 제사
지낸다고 하는가?"
"자세한 사정은 얘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사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합니다."
"그럼 무주에 들어가서 자사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겠군......"
장영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호송대를 출발시켰다.
홍의녀의 제사라는 것이 신비스럽게 생각되었으나
내막은 자사에게 물어보리라고 생각했다.
이내 관도(官道)가 넓어지고 무주성(霧州城)이
나타났다.
"안변부의 공물을 호송하는 북우위 대장군 장영
장군의 행차다! 자사에게 알리라!"
병사가 소리를 지르자 성문을 지키는 수비병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머리를 조아렸다.
장영의 호송대는 천기를 앞세우고 무주성으로
들어갔다.
성문을 지나 관도를 계속 행군하자 번화한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관도의 양쪽으로는 수양버들이
길게 늘어져 있고 관도의 연도에는 난전이 펼쳐져
있었다. 옷감을 파는 포목전을 비롯해 푸줏간, 각종
방물을 파는 잡화전, 어물전, 떡을 파는 노점, 모피를
파는 장사치들도 눈에 띄었다.
무주 읍내였다.
장영의 호송대가 읍내로 들어서자 무주
자사(刺史)가 허겁지겁 달려와 영접을 했다.
"대장군님! 무주 자사 이태흠(李太欽)이
인사드립니다."
"예를 거두시오!"
장영은 얼굴을 찌푸리며 이태흠의 얼굴을 살폈다.
무주 자사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불열부 말갈족
족장 설리몽(薛里蒙)의 아들 설자패(薛子沛)가 맡고
있었다. 설자패는 발해 피지배층인 말갈족의
아들이었으나 당당하게 과거를 보아 17세에 문과에
급제, 발해 조정의 청직(淸職:깨끗한 벼슬)을 두루
거치고 무주 자사로 임명되었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에 자사가 이태흠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천년의 고도에 쑥대밭이 우거졌네
사람은 간 곳없고 들풀만 무성하니
처량하네 옛 영화를 찾을 길 없구나
후인이 돌아보며 초인을 그리노라
설자패가 아홉 살 때 아버지인 설리몽을 따라
발해의 각 부를 순시하다가 졸본성(卒本城) 성터에
이르러 지었다는 시였다. 고구려의 유적인 졸본성에
쑥대밭만 우거진 것을 보고 아홉 살 소년이
초인(超人)을 그리워했다는 사실에 발해인들은
시재(詩才)가 탁월하다고 칭송을 했었다.
"그대가 신임 자사요?"
장영은 이태흠과 나란히 말을 타고 무주 관아로
들어가며 물었다. 저자 거리에는 장영의 호송대
행렬을 구경하느라고 사람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이태흠이 공손히 대답했다.
"언제 출사(出仕)했소?"
"3년 전에 급제를 하여 입사(入仕)했습니다. 처음엔
예부, 다음엔 중정대에 당하관(堂下官)으로 있다가
수령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전임 자사는 어디로 갔소?"
"전임 설자패 자사와 하복연 자사는 죽었습니다."
"그 동안 자사가 둘이나 죽었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설자패가 죽다니 어찌된 일이오? 그는 발해의
동량이 될 인재이거늘 어찌하여 죽었소?"
"사정을 말씀드리자면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무주 관아에 들어가시어 쉬신 뒤에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무주 자사가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발해의
문관들도 당 나라 풍속을 따라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관아는 건물이 아담했다. 자사가 정사를 보는
정당(政堂)인 동자각(東刺閣:동헌)은 당 나라 건물의
특색을 그대로 띄고 있었다. 동자각으로 들어가는
대문 앞에는 석계(石階)가 다섯 개가 있었고 처마
밑에는 동자각이라는 커다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
장영은 동자각에서 무주 이속(吏屬)들의 점고를
받은 뒤 자사의 호의로 자리를 옮겨 연못이 있는
정자에 앉았다. 그 정자는 전임 자사 설자패가 손수
쓴 '미타당(美陀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고
기둥에는 싯귀들이 붙어 있었다.
이른 아침 동녘이 겨우 밝은데
자련이 곱게 피니 누구의 임인가
설자패의 시재를 알아볼 수 있는 시였다.
"전임 자사가 죽은 것은 조정에 큰 옥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주 자사 이태흠은 주안상을 차리게 한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옥사?"
"이미 소식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상도(上都:수도)에서 큰 변이 있었습니다."
"무슨 변이오?"
"변방에 떨어져 자세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지난
4월에 요의 황숙이라는 할저가 귀순하였는데 그
이후에 갑자기 정당성 대내상인 두경용 대신이 역모
혐의로 하옥되었습니다."
"역모라구요?"
"역모라고 합니다만 역모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황상의 교지로 유배형에
처해지게 되었는데 두 대내상께서 유배 중에
자진하셨습니다."
"어찌 그런 일이....."
장영은 낮게 신음을 삼켰다. 두경용의 죽음은
그에게도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설자패는 어찌하여 죽었소?"
"두경용이 자진하자 설자패는 스스로 사임하고
흥개호 호수 옆에 초막을 짓고 홍의녀와 살았습니다.'
"홍의녀는 누구요?"
"홍의녀는 이름이 살미라(乷美羅)로 싱카이 호수에
사는 어부의 딸입니다. 얼굴은 3월에 핀 복숭아꽃처럼
예쁘고 허리는 흥개호 호수의 실버들처럼 가늘었다고
합니다. 일찍이 장백성모(長白聖母)에게 무예를
배우고 돌아왔는데 설자패 자사의 문장에 반하여 그와
약혼을 하였답니다. 혼례는 그의 부친이 있는 상도로
돌아가 올리기로 하였으나 둘이서 흥개호 호수를
다정하게 걷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 백마를 타고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답니다. 솔빈부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일컬어
선남선녀라고 부르며 이 사람들이 지나가면 자신의
일들처럼 축복했답니다."
"한 쌍의 원앙이었구려."
장영은 무주 자사 이태흠의 말을 들으며 설자패와
홍의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을 상상했다.
"살미라는 고니털과 기러기털로 가볍고 부드러운
우단(羽緞:깃털 비단)을 짠 뒤 아침마다 인삼꽃으로
우단치마를 붉게 물들였답니다. 살미라가 홍의녀라고
불리운 것은 인삼꽃으로 물들인 우단치마
때문입니다."
"헌데 어찌하여 죽었소?"
"새로 부임한 솔빈부의 무주자사 이름은
하복연(賀福延)인데 무예가 뛰어난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하몽진(賀蒙辰)으로
홍의녀가 무예가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고 비무대회를
청했습니다. 하몽진은 발해의 우성(優性)으로
귀족입니다. 헌데 천민인 불열말갈족(佛涅靺鞨族)의
살미라가 사람들의 칭송을 받자 시기하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비무대회가 열렸습니다.
하몽진이 처음에 말을 타고 다니며 활을 쏘았는데 첫
번째 화살은 과녁을 맞추고 두 번째 화살은 과녁을
맞춘 화살을 맞춰 떨어트리고 세 번째 화살은 과녁을
달아맨 끈을 맞추어 끊었습니다."
"........."
"살미라는 하몽진이 하는 방법대로 활을 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한 사람 더러 촛불 세 개를
머리에 이고 백보밖에 있게 한 다음 백설처럼 하얀
천리마를 타고 달리며 한꺼번에 화살 세 대를 쏘아
촛불을 꺼트렸습니다. 살미라가 비무대회에서 이긴
것이지요."
"........."
"하몽진은 비무대회에서 진 후 살미라의 미색에
반하여 청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살미라는 설자패와
장래를 약속하였기 때문에 거절하였습니다. 하몽진은
이에 앙심을 품고 살미라를 죽이려고 몰래 활을
쏘았습니다. 그러나 살미라는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고 재치 있게 몸을 돌려 화살을 손으로 받은 뒤
되돌려 쏘아 하몽진을 죽였습니다."
"음."
"아들을 잃은 하복연은 대노하여 살미라가 없을 때
무사들을 시켜 설자패를 죽였습니다. 이에 살미라는
솔빈부 도독 임아상(任雅相)에게 설자패의 억울한
죽음을 탄원하고 복수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복연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임아상은 살미라를
잡아서 하몽진을 죽였다고 매질을 한 뒤에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살미라는 너무나 원통하여 복수를
결심했지요. 그리고 마침내 솔빈부의 감옥을
탈출하였습니다. 솔빈부 도독 임아상은 살미라를
잡으라고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지만 살미라는 어디로
숨었는지 종적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후 여러 날이 흘렀습니다. 솔빈부 도독 임아상의
아들이 결혼하는 날이었지요. 도독의 아들의 혼인식
날이라 많은 하객들이 참석을 했습니다. 살미라는
혼인식을 하는 날 도독부에 뛰어들어 가 하복연과
도독 임아상을 살해하여 복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칼을 버리고 스스로 자수했습니다. 불열말갈인들은
살미라가 억울하다고 새로 임명된 솔빈부 도독에게
용서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새로 임명된 솔빈부
도독은 살미라를 처형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불열말갈인들이 홍의녀 살미라의 제사를 살미라와
설자패가 살던 흥개호 호수에서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무주 자사 이태흠의 긴 얘기가 끝나자 장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홍의녀 살미라와 설자패가
흥개호 호수를 거닐며 사랑을 나누는 모습과 연인을
위해 복수를 하는 홍의녀 살미라의 아리따운 모습이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올라왔다.
이튿날 장영은 호송대를 거느리고 솔빈부 도독부로
출발했다. 그러나 솔빈부 도독 해초경(解楚卿)은
살미라와 설자패가 불열말갈족의 독립을 꿈꾸며
도독부에 대항했기 때문에 처형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장영은 솔빈부 도독의 말에 더 이상 추궁을 할 수
없었다. 솔빈부 도독이 지방장관이기는 해도 북우위
대장군인 장영보다 품계가 높았던 것이다.
장영은 솔빈부 도독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다시
상경용천부로 출발했다.
솔빈부에서 상경용천부까지는 불과 3백리 길이었다.
공물과 공녀들을 호송하고 있었으나 이틀이면 충분히
상경용천부의 상도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
1) 홍의녀 살미라의 얘기는 발해 경박호의 전설에
나오는 홍라녀의 이이기에서 윤색했다. 홍라녀의
전설은 모두 11가지나 된다. 대개가 어부의 딸로
태어난 홍라녀가 나라를 위해 충성을 한 얘기와
발해왕의 딸인 홍라녀가 충성한 얘기, 경박호에
산다는 용왕의 딸 홍라녀녹라녀의 사랑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홍라녀의 전설은 연변대학출판사에서 발행하고
서울대학교출판부가 출판한 <발해사연구 3>에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13. 동경(東京)
발해국 북우위 대장군 장영은 목이 타는 갈증에
얼핏 눈을 떴다. 간밤에 통음을 한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고 목이 타는 갈증이 느껴졌다.
(음......)
장영은 머리를 흔들며 낮게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
그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자리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비로소 목이 타는 갈증이 가시며 지난밤에
미동을 만난 일들이 머릿속에 희미하게 되살아났다.
장영은 미동을 생각하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장영이 칼탄족의 공녀들을 호송하여 발해의 수도
홀한성에 도착한 것은 우조우족과 조우한 지 이레가
되는 날이었다.
장영은 황궁을 나오자 부하들을 군영으로
돌려보내고 혼자서 주작대로를 느릿느릿 걸었다.
사방은 이미 캄캄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황궁에
들어가 인선황제를 배알하고 나오자 길고 긴 여름
해가 지고 사방이 캄캄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장영은
집으로 곧 바로 돌아가려다가 주루로 발길을 돌렸다.
발해의 조정은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문관이 아닌 무관인 그가 조정의 일을
간여할 수는 없었으나 무엇인가 변한 것만은
분명했다.
그가 없는 동안 발해의 원로 재상 두경용이 죽고
그를 따르던 대신들이 모조리 파직되어 있었다. 발해
조정은 불과 몇 달만에 새로운 인물들로 가득차
있었다. 황제는 요에서 왔다는 여인의 치마폭에 누워
정사를 보고 있었다. 장영이 알현을 했을 때도 황제는
술에 취해 있었고 이귀비라는 여인은 살결이 훤히
내비치는 나삼을 입고 옆에 앉아 있었다. 장영은
민망하여 시선조차 둘 곳이 없었다. 게다가 그 여자는
색목인이었다.
"나리 어서 오세요."
추소루(秋小樓)라는 기루에 들어서자 얼굴에 분을
더덕더덕 바른 주모가 엉덩이를 흔들며 달려왔다.
장영은 일부러 신분을 숨기고 고려에서 온 상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그들은 고려의 태조가 어진
정치를 펴고 있어 신라 경순왕(敬順王)이 스스로
어보를 바치게 될 것이며 고려가 발해 대신
대고구려국의 맥을 이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변화는 상인들이 가장 먼저 안다. 장영은
상인들이 발해 대신 신흥국 고려가 대고구려의 맥을
이을 것이라고 하자 쓸쓸해졌다. 그것은 발해가 멀지
않아 멸망할 것이라는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장영은 그 주루를 나와 다른 주루로 갔다. 그
주루에는 당 나라와 거란을 오가며 무역을 하는
상인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발해의 상인들도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한결
같았다. 발해는 황제가 요부 임소홍의 치맛자락에
놀아나고 있어서 쉬이 망할 것이 틀림없다고 하였다.
요 나라는 비록 신흥국가이지만 황제 야율 아보기
밑에 맹장과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구름 같이 몰려
있어 거란 8주를 통일하고 중원(中原:중국) 정벌에
나서고 있으므로 중원 정벌이 끝나면 동벌(東伐:발해
정벌)을 단행할 것이라고 하였다.
장영은 술이 잔뜩 취해 귀가 길에 나섰다.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다. 장영은 주작대로 뒷골목에
하얗게 깔린 달빛을 밟으며 걸었다.
장영이 발해 홀한성 내에 있는 6방(六房:여섯
마을)의 하나인 북촌(北村) 어귀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펄럭거리는 바람소리와 함께 백영(白影)
하나가 장영의 옆을 휙 스치고 지나갔다. 조그만
물체였다. 장영이 깜짝 놀라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자
그것은 뜻밖에 어린 인영(人影)이었다.
(조그만 아이가 상승무공을 익혔군......)
장영은 감탄을 했다.
그때 백영이 가던 방향에서 걸음을 돌려 나무 위로
훌쩍 날아올랐다.
(장난질을 할 모양인가?)
장영은 빙긋이 웃었다. 어린 인영이 무공이
뛰어난데다 그를 해치려는 의도는 전혀 없어 보였다.
내가 어느 도사를 만났는데
도사가 말씀하시길
모월모일에 발해의 장수 하나가 죽으리
장수야 죽든 말든
상관이 있으랴마는
가련한 것은 발해의 백성
홀한성을 떠나면 살겠지만
떠나지 않으면 소경에게 죽으리라
백영은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장영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백영은
계집아이처럼 예쁘장한 소년이었고 노래는 어쩐지
장영에게 들으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장영은 백영을 노려보았다. 백영은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행동거지가 괴이했다. 게다가 백영이 익힌
경공술(輕功術)은 장영까지도 감탄할 정도로
비범했다.
"누구냐?"
장영은 거짓으로 호통을 쳤다. 백영은 괴이한
소년이었지만 악행을 저지를 것 같지는 않았다.
백영의 높은 무예도 장영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
"남들이 미동이라고 부르는 아이예요!"
백영이 깔깔대고 웃음을 터뜨렸다. 장영은 그때서야
백영이 홀한성 안에 소문이 파다한 미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불과 10세 안팎의 소년인데도
모르는 것이 없는 기이한 소년이었다. 홀한성뿐이
아니라 수천 리나 되는 발해 전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네 이름이 무슨 상관예요? 장군이나 죽지 않으려면
홀한성을 떠나세요."
새침하게 내뱉는 미동의 말에 장영은 얼굴을
찌푸렸다. 미동의 말이 당돌하기 짝이 없었다.
"나를 알고 있느냐?"
"알고 있어요."
"허헛....."
장영은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터뜨렸다.
"너는 누구의 제자냐?"
"그런 것은 몰라도 돼요. 때가 되면 알게 될
테니까....... 그것보다 먼저 장군은 홀한성을 떠나야
해요. 홀한성은 장군 같이 강직한 분이 있을 곳이
못되요."
"무슨 소리냐?"
"조만간 장군을 포박하라는 어명이 내릴 거예요!
그러니 어서 홀한성을 떠나세요!"
미동은 그 소리를 마치고 뿌옇게 흐르는 달빛
속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갔다. 마치 새가
밤하늘을 날고 있는 듯이 백의만 펄럭거리고 있었다.
장영은 미동이 달려가는 모습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백영은 용두산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용두산은 모란강(목단강:牧丹江)이 성의 서쪽에서
북쪽으로 흐르고 동쪽으로는 마련하(馬蓮河)가 흐르는
홀한성의 가장 큰산이었다. 백영이 그쪽으로 달려간
곳을 보면 홀한해(忽汗海:경박호)에 근거지가 있는
모양이었다.
장영은 그의 모습이 용두산 쪽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장원(莊園)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장영은 창문을 열었다. 시간이 얼마나 된 것일까.
정원에는 신비스러운 달빛이 사금파리 조각처럼
하얗게 깔려 있었다. 아직도 한밤중인 모양이었다.
"더 주무시지 그러세요."
그때 장영의 아내 설문랑(薛文娘)이 잠에서
깨어나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오."
장영은 느리게 고개를 흔들었다.
"몹시 취해서 오셨기 때문에 아침까지 주무실줄
알았어요."
설문랑이 침상에서 일어나며 그를 향해 애정이 담뿍
담긴 미소를 실어 보냈다.
설문랑은 불열부 말갈족의 여인이었다. 유목민족인
말갈족이 대부분 구리빛 피부와 오종종한 얼굴을 갖고
있는데 비해 설문랑은 사백력(斯白力:시베리아)
일대가 거류지인 말갈족으로 그네들 특유의 투명한
우유빛 피부에 푸른빛이 감도는 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색목인은 아니었다.
장영이 설문랑을 만나서 혼례를 치른 것은 벌써
10년 전의 일이었다. 설문랑의 몸은 이제 처녀의
풋풋함과 싱그러움이 사라졌으나 완숙한 여인의
체취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더 주무세요."
설문랑이 졸음기 가득한 말로 그에게 말했다.
"괜찮소."
장영은 웃으며 침상에 걸터앉았다. 아내가
사랑스럽기 짝이 없었다.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설문랑이 침상에서 일어나며 그의 가슴에 육향이
물씬 풍기는 몸을 기대왔다. 설문랑은 나신이었다.
그의 가슴에 몸을 기대자 크고 둥근 젖봉우리의
뭉클한 감촉이 장영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아니."
장영은 설문랑을 힘껏 껴안았다.
"거란에서 할저가 귀순했다면서요?"
"응."
"할저가 위장 귀순이라는 소문이 파다해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오?"
"미동이 그러는데 소경이 아니라고 그러대요."
미동에 대한 소문은 홀한성에도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소경이 아니라고?"
장영은 설문랑의 말에 깜짝 놀랐다.
"미동이 부여성에서 할저를 향해 돌멩이를 던졌더니
할저가 눈을 번쩍 뜨고 피하더래요."
"허!"
장영은 근심스러운 빛을 얼굴에 띄웠다. 할저의
귀순은 그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미동이 또 장난을 쳤군......"
"할저를 따라온 가족들도 무예가 출중한
사람들이래요."
"미동이 무얼 알겠소?"
장영은 설문랑의 둥글고 풍만한 둔부를 가볍게
애무했다.
"미동은 나이가 어리지만 성안이 떠들썩한
신동이에요."
"재주가 뛰어나면 요절을
하지.....미인박명(美人薄命)
재사단명(才士短命)이라고 하지 않소?"
"도대체 미동이란 소년은 누굴까요?"
"모르지......"
장영도 미동이 누구인지 몹시 궁금했다. 항간에는
미동이 계집애일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었다.
미동이 자라면서 점점 계집애처럼 얼굴이 예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디에 살고 있는지
누구의 자식인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는
신통력을 부리기라도 하듯이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번개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고는 했다.
"아무래도 북우위 대장군직을 사직해야 할 것
같소."
장영은 우울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말했다.
"사직이라니요?"
설문랑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장영을 쳐다보았다.
"조정이 너무 어지럽소."
"두경용 대신 때문에 그런가요?"
"그렇소."
"사직을 한 뒤에는 어떻게 하시게요?"
"잠시 천하나 주유해야겠소."
"혹여 강호에 발을 들여놓고 싶어서 그러시는 것이
아녜요?"
그러자 설문랑이 가볍게 눈을 흘기며 물었다.
강호란 무사들이 돌아다니며 무예를 닦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무인들은 칼 한 자루를 쥐고 천하를 주유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강호도 구경해야겠지......."
장영은 근심에 잠기며 말했다. 그러나 미동을 만난
일만큼은 설문랑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설문랑에게
공연히 근심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발해의
조정은 이미 난정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정치가 한
번 혼란에 빠지면 바로잡기가 요원한 것이다.
장영이 북우위 대장군직을 사직하고 강호를
유랑하려는 것은 몽골의 대초원을 통일한 야율
아보기가 어떤 인물인지 탐지해 보기 위해서였다.
야율 할저가 세작이라면 아보기가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닐 터였다. 야율 아보기가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는
것은 발해의 장래를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인선황제가 그런 일을 주도한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없는 일이었으나 황제에게 그런 일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하죠?"
"글쎄 잠시 외가나 다녀오는 게 어떻겠소?"
"외가에 다녀올께요. 고향을 다녀온지 벌써 몇 년
되었어요."
설문랑이 혼쾌히 대답했다.
장영은 설문랑을 안고 침상에 누웠다. 공녀들을
호송하기 위해 멀리 칼탄족의 근거지까지
다녀오느라고 여섯 달이나 설문랑을 안지 못했던
것이다. 버들가지처럼 가느다란 허리와 바람에
나부끼는 풀잎처럼 살랑살랑 흔들리는 설문랑의
탐스러운 몸을 안자 장영은 새삼스럽게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 장영은 별채로 향했다.
별채엔 그의 아들 장유(將由)가 기거하고 있었다.
그가 별채의 출입문인 월동문에 이르자 서가에서
책을 읽는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들의 책을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대륙의 원기(元氣)는 동으로 달려 장백산에 닿고
북으로 달려 요야(遼野)를 여네.
아득한 태초에 신인(神人)이 나라를 여니
상서로운 나라 조선일세.
8조의 금법(禁法)으로 백성을 교화하고
2천년 동안 중원(中原)을 지배했네.
장유가 읽고 있는 것은 발해국이 각 부의 도읍에서
아동들을 가르치는 해동소감(海東小鑑)이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유민들이 당(唐) 나라와 신라에
저항하다가 고왕(高王) 대조영(大祚榮)이 발해국을
건국한 후 고구려와 고조선의 맥을 잇기 위한
일환으로 편찬한 책이었다. 그러나 발해국이 건국초의
불안한 정세가 안정되자 상류층을 형성하는 지배층에
유학(儒學)이 들어와 급속히 확산되었다. 지배층은
당나라 시인들의 시(詩)를 외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게 되었고 고구려 때에 널리 읽히던 책이나 시를
경원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음사(淫詞:음탕한
노래)가 민간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
장유의 책 읽는 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해동소감은 고구려의 태학(太學)에서 가르치던 것을
아이들에게 맞게 발췌한 것이다.
해부루는 북부여의 시조
부여에 도읍하고 요야의 주인이 되었네
고주몽은 졸본에 나라를 세우고
고구려라 하였네
용맹한 기마민족이니 나라를 넓히었고
태학으로 백성을 교화했네
광개토대왕은 홍안의 소년으로 대륙을 정벌하고
왜를 정벌하여 서라벌을 구원했네
대조영은 발해국의 태조
고구려를 계승했네
단군 조선에서 발해까지 유구한 역사 3천년
장영은 낮게 기침을 했다. 그러자 서가의 문이
열리며 장유가 장영을 마중했다.
"아버님."
장유가 해맑은 눈으로 장영을 쳐다보았다. 피부는
설문랑을 닮아서 우유빛으로 뽀얗게 희었으나 머리는
까맣고 눈은 푸른 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설문랑이 그렇듯이 이족(異族)이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로 파랗지는 않았다.
"책을 읽고 있었구나."
장영은 장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자하게 말했다.
문득 영은 장유에게도 무예를 가르쳐야 할 시기가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장유는 어느덧 의젓한 소년으로
자라 있었다.
"예."
서가에는 수많은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나는 잠시 강호를 유랑하고 올 것이다. 너는
집안을 정리한 후에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 가기로
했다. 그러니 준비하고 있거라!"
"예."
장유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장영은 아들의
거처를 한 바꿔 휘둘러 본 뒤에 안채로 돌아왔다.
................................................
1). 발해의 수도인 상경성은(上京城), 동경(東京),
홀한성(忽汗城) 대도성(大都性)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었다. 발해의 수도는 으뜸 도읍이라는 뜻의
상도(上都)라고도 한다. 동경은 또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의 동경도 있다. 동경이
이렇게 여러 지명에서 보이기 때문에 혼동이 될 수도
있다.
14. 여춘화의 비밀
옷깃을 스치는 바람에 으스스 한기가 느껴졌다.
야율 할저는 어깨를 한 차례 부르르 떨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휘영청 밝은 달이 신비한 월광을 뿌리는
홀한성. 발해 조정의 관청과 고관대작들의
대가(大家)가 즐비한 천복방(天福房:홀한성 6방의
하나) 서쪽에 위치한 그의 집은 교교한 달빛아래 숨을
죽인 듯이 조용했다.
귓전이 먹먹할 정도로 시끄럽게 울어대던 계절의
전령인 풀벌레들도 이젠 잠이든 것일까. 조약돌이
깔린 정원에는 희디흰 달빛만이 당사실처럼 쏟아지고
정원의 수목을 흔드는 바람소리만 스산하게 들리고
있었다.
할저는 초조하여 정원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임소홍에게서 아직도 전서구(傳書鳩:편지를 묶어서
보내는 비둘기)가 날아오지 않고 있었다.
임소홍에게서 전서구가 와야만 그의 계획을 알리는데
어쩐 일인지 전서구가 오지 않고 있었다.
새벽이었다.
휘영청 밝은 달이 서쪽으로 기울고 어둠은 점차
새벽빛에 사위어 가고 있었다. 유서 깊은 발해의 수도
홀한성. 저자의 기루에서 들리던 노래소리도 그쳐
이제 사방은 물 속처럼 조용했다.
(발해에 온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몇
년이 지난 것 같군........)
할저는 자신이 발해에 위장귀순한 지난 몇 달이
길고 지루하게 여겨졌다. 그 동안 발해 조정에서
사도(司徒)라는 한직에 있던 대소현(大素賢)을
임소홍을 움직여 중경두덕부 도독으로 임명하게
하였다. 대소현을 중경두덕부 도독에 임명한 것은
거란이 침략할 때 길을 막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홀한성에 소경이 하나 사는데
그는 가짜 소경
요 나라 임금의 황숙
발해를 취하려 온 세작이거늘
아무도 믿지 않네
그때였다. 담장 밖 골목에서 낭랑한 노래소리가
들리더니 백영 하나가 휙 하고 지붕 위로 날아
올라왔다.
"누구냐?"
할저는 깜짝 놀라서 백영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할저가 머물고 있는 집은 발해군사들이 바깥담에서
철통 같이 에워싸고 있었고 안에는 할저가 요에서
데리고 온 무사들이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백영이 나타난
것이다.
"호호호....."
백영이 지붕 위에 앉아 낭랑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미동!"
할저는 부여에서 미동에게 봉변을 당한 일이
머릿속에 떠올라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얼래.....소경이 눈을 뜨고 있네!"
미동은 할저가 눈을 부릅뜨고 있자 깔깔거리고
웃으며 박장대소했다.
"오늘 네 놈을 죽여야겠다!"
할저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잠깐!"
할저가 지붕 위로 날아 올라가려고 하자 미동이
손을 내저었다.
"뭐냐?"
"혹시 이것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느냐?"
미동의 손에는 잿빛 비둘기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할저가 임소홍과 주고받는 편지를 묶어서 보내는
전서구였다.
"네, 네 놈이!"
"임소홍에게 가던 전서구도 나에게 있지....."
"도대체 네 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전서구에는 북우위 대장군 장영을 제거하는 음모가
적힌 편지가 있었지......"
"그럼 그 편지가 임소홍에게 가지 않았다는
말이냐?"
"눈 뜬 소경아! 이제야 알겠느냐?"
미동이 할저를 비웃으며 전서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할저는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분노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네 이놈!"
할저는 칼을 뽑아들고 재빨리 지붕위로 날아
올라갔다. 그러자 미동이 전서구를 할저를 향해 휙
던졌다. 할저는 미동을 공격하려다가 말고 전서구부터
낚아챘다. 그 틈에 미동은 계집애 같은 웃음소리를
허공에 뿌리며 멀리 날아가 버렸다.
(저 경공은 고구려국의 독보적인 무공......)
미동이 새처럼 달빛 속을 훨훨 날아가고 있는
경공은 고구려의 전설적인 무공
답보설흔(踏步雪痕)이었다. 중원을 지배한 고구려에는
옛날부터 무림천서(武林天書)라는 비서(秘書)가
있었다. 그 비서가 발해의 시조 대조영에게까지
전해져 그 무공으로 대조영이 발해국을 세웠다는
전설이 무림인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발해에서 저 정도의 제자를 가르칠 수 있는 자는
천무일협 백인걸 뿐이야.....)
천무일협(天武一俠) 백인걸(白仁傑)은 위해황제의
부마도위(駙馬都尉)로 한때 맹장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으나 인선황제가 등극하자 어디론가 은거하여
자취가 묘연했다. 그러나 최근에 홀한해 부근에서
백인걸을 보았다는 소문이 무림인들 사이에 나돌고
있었다.
홀한해를 이 잡듯이 뒤지면 백인걸을 찾아낼 수
있을 터였다. 미동은 분명히 그의 자손이거나
전인(傳人:제자)일 것이었다.
"알 수 없는 놈이군......"
할저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전서구에 묶인 편지는 장영을 제거하라는 그의 편지
대신 할저가 요의 세작이라는 것과 눈 뜬 소경이라는
글만 가득히 적혀 있었다. 미동이 편지를 바꿔치기한
것이 분명했다.
할저는 온 몸으로 한기가 몰아쳐 오는 것을 느꼈다.
추위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아무래도 정체를 발각
당할 것 같아 두려웠다. 더 늦기 전에 발해의
무관들이 군신으로 추앙하는 백인걸과 장영을
제거하고 요로 돌아가야 했다.
이틀 후 할저는 황궁에 입궁하여 은밀히 임소홍의
거처인 홍련궁으로 들어갔다. 인선황제는 지난 밤
어화원(御花園)에서 술을 마신 뒤 쿠룬족의 공녀들을
발가벗겨 끌어안고 깊은 잠에 떨어져 있었다. 여춘화
열매에서 채취한 미약 탓이었다.
"대인을 뵈옵니다."
임소홍이 나붓이 절을 했다. 할저는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임소홍을 살피다가 주위를
물리라고 지시했다. 이내 임소홍이 시녀들을 물러가게
했다.
"참으로 오래간만이구나."
할저는 주위에 아무도 없자 임소홍을 덥썩
끌어안았다. 인선황제가 자고 있는 어화원과 홍련궁은
1백보나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홍련궁에는 담장과
대문이 따로 있어 인선황제가 갑자기 들이닥칠 염려도
없었다.
"아이......"
임소홍이 간드러지게 웃으며 허리를 비틀었다.
"모처럼 만났는데 회포나 풀자구나."
할저는 임소홍을 끌어안고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임소홍은 할저가 보기에도 천하의 우물이었다. 허리를
살짝 흔드는데도 교태가 찰찰 넘쳤다.
"소홍이 어찌 대인을 사양하겠사옵니까?"
임소홍이 할저의 품에 바짝 안기며 말했다.
둘은 일다(一茶)경 남짓 침상에서 운우지정을 나눈
뒤 서둘러 옷을 입었다.
"여춘화 열매는 떨어지지 않았느냐?"
이윽고 할저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예."
임소홍은 다소곳이 대답했다.
"우리의 일을 눈치 채고 있는 놈이 있다."
"그게 누구옵니까?"
"아무래도 발해의 군신인 백인걸인 것 같아."
"그 늙은이가 아직도 살아 있습니까?"
임소홍이 깜짝 놀라서 할저를 쳐다보았다.
"소홍."
"예. 주군."
"나는 조만간 요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네가
발해에서의 일을 모두 처리해야 한다!"
"예."
"북우위 대장군 장영을 제거하고 다음엔 백인걸을
제거해라."
할저는 임소홍에게 귓속말로 계책을 일러주었다.
"내가 지시한대로 할 수 있겠느냐?"
"예."
임소홍이 착잡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할저는 요로
돌아가는데 자신은 적국인 발해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쓸쓸했다. 그러나 주어진 숙명이었다. 할저는
잔인한 인간이었다. 아니 할저만 잔인한 것이 아니라
일라부족 전체가 잔인했다. 임소홍의 어린 아들이
할저에게 인질로 잡혀 있듯이 할저도 부인과 딸이
요왕 아보기에게 인질로 잡혀 있었다.
할저는 원래 요의 반역자였다.
요왕 야율 아보기의 정복정책을 반대하여 반기를
들었으나 오히려 요왕에게 잡혀서 발해의 군사력을
탐지하고 군신 백인걸과 장영, 그리고 두경용을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고 위장 귀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들을 생각해서 실수없이 하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임소홍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할저가 돌아가자 임소홍은 몸단장을 했다. 밤이
되면 어화원에서 황제가 또 다시 주연을 베풀 것이다.
황제는 요지음 장영 장군이 호송해 온 공녀들과
발가벗고 노는 것에 몰두해 있었다. 그런 황제에게
장영이 공녀들을 호송하다가 황제에게 바치기도 전에
희롱을 했다고 하면 황제는 노발대발하여 장영을
제거할 것이 분명했다.
그날 밤 임소홍의 예상대로 인선황제는 어화원에서
주연을 열었다. 임소홍은 주연이 어느 정도 무르익자
할저의 계책대로 장영의 일을 고했다. 인선황제는
그녀가 예상했던대로 노발대발하여 장영을 잡아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어림군이 장영을 잡으러 갔을 때 장영은
북우위 대장군직을 사직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집에는
처와 아들밖에 없었다. 어림군은 장영의 집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장영은 이미 예측하고 있었군......)
임소홍은 가슴속으로 찬바람이 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벌써 도망을 쳤다고?"
"그러하옵니다."
"소홍! 너는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황제는 임소홍의 팔을 베고 물었다.
임소홍의 거처인 홍련궁이었다. 어화원에서 주연이
끝나자 임소홍은 홍련궁으로 인선황제를 유혹했던
것이다.
장영이 호송해 온 쿠룬족의 공녀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춤을 추고 있었다. 인선황제는 정신이
몽롱하면서도 황홀하였다. 임소홍과 술을 마시면
언제나 구름을 탄 것처럼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역적의 가족이니 잡아다가 처단하시옵소서."
임소홍이 깔깔대고 웃으며 대답했다.
장영을 제거할 수 없다면 가족이라도 죽여 없애야
한다. 황제가 가족을 죽인 것을 알면 장영은 분명히
황제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임소홍은 얼핏 그런 생각을 했다.
"장영의 가족을 죽이라고 해라!"
인선황제는 대수롭지 않게 주렴 밖의 내시에게
지시했다. 그는 미약에 정신이 몽롱하여 장영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예."
내시가 길게 대답하고 물러갔다.
"이리 오너라!"
인선황제가 나신으로 춤을 추고 있는 공녀 하나를
불렀다. 공녀가 조심스럽게 가까이 오자 황제는
낄낄대고 웃으며 공녀를 엎드리게 하고 말을 타듯이
그 위에 올라앉았다.
"어디 인마(人馬)를 타고 놀까?"
인선황제는 공녀의 살찐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희희낙낙했다. 풍마지희(風馬之戱)를 흉내
내는 놀이였다. 풍마지희는 여자를 발가벗겨서 발정한
말과 같은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임소홍은 술을 따라 인선황제에게 권했다.
인선황제가 술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엎드린
궁녀에게서 내려와 뒤에서 교접을 하기 시작했다.
금세 실내가 후끈거리는 열기로 가득해졌다.
임소홍은 속으로 암암하게 웃었다.
이제 인선황제는 밤새도록 공녀들과 짐승처럼 뒹굴
것이다. 여춘화의 열매에서 뽑아낸 미약은 약기운이
떨어지지 않는 한 힘이 넘치기 때문에 밤새도록
교접을 할 수 있게 하는 특징이 있었다. 그 약기운이
퍼질 때면 여자가 손짓만 해도 무릉도원을 거니는 듯
황홀경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인선황제는 새벽이 되어서야 공녀들에게서 떨어져
벌렁 누웠다.
임소홍은 인선황제에게 홀한성에 미동이라는 어린
소년이 있는데 그 소년이 해괴한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고 얘기했다.
"해괴한 노래를 불러?"
인선황제는 몽롱한 눈빛으로 임소홍을 쳐다보았다.
"성안에는 이미 그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옵니다."
"도대체 어떤 노래이기에 백성들이 모두 알고
있다는 말이냐?"
인선황제는 눈꼬리부터 치켜올렸다. 그러자
임소홍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노래 한 곡을 불렀다.
대(大)자에 점 하나를 찍으니 견(犬)자로다
해동성국 열성조는 15대
15대는 견자(犬子)일세
2백년 사직이 견자로서 끝나리라
대(大)자는 발해 왕국의 성씨인 대시를 말하는
것이고 견(犬)자는 개를 말하는 것이다. 15대는
인선황제이니 황제를 개라고 욕한 것이다. 게다가
2백년 사직이 끝난다고 한 것은 인선황제로 인하여
발해가 멸망한다는 뜻인 것이다.
"그만해라!"
인선황제는 노기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황공하옵니다."
임소홍이 두려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어느 놈이 그러한 노래를 지었다고 하느냐?"
"미동이라고 하옵니다."
"미동?"
"10세 안팎의 소년이옵니다."
"어린 소년이 어찌 이런 노래를 부르느냐?"
"그 미동은 천무일협의 전인이라고 합니다."
"전인이라니?"
"제자를 전인이라고 하옵니다."
"천무일협은 누구냐?"
"백인걸이라는 노인이라고 하옵니다."
"백인걸이라면 선왕(先王)의 부마도위......?"
인선황제가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백인걸이
자신의 큰 누님인 효덕(孝德)공주와 혼인한 사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효덕공주는 아들 하나를
얻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죽고 아들 내외는
딸 하나를 낳고 죽었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백인걸은 손녀딸 하나와 함께 살고 있는
셈인 것이다.
"게다가 백인걸은 황궁의 서고에서 고서(古書)를
훔쳐냈다는 소문이 파다하옵니다."
"고서라니?"
"그 책은 천서(天書)라고 하는 것으로
천부비록(天府秘錄)이라고도 하옵니다."
"그래?"
"그 책만 가지고 있으면 나라도 세울 수 있다고
하옵니다."
"음....."
"조선을 세운 단군 시조께서 남긴 책으로 고구려도
그 책으로 나라를 열었고 발해를 건국하신 대조영
할아버지께서도 그 책을 공부하여 당(唐)과 싸워서
이겼다고 하옵니다."
"그렇다면 황궁의 보물이 아니냐? 백인걸이 선왕의
부마도위라고 하더라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인선황제는 백인걸을 잡아오라는 어명을 내렸다.
인선황제의 어명이 떨어지자 영문도 모르는
어림군들이 홀한해로 달려갔다. 그러나 홀한해를
이잡듯이 뒤졌으나 백인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림군은 헛되이 돌아와 인선황제 앞에 부복했다.
"어찌하여 백인걸을 잡아오지 못했느냐?"
인선황제는 어림군을 노려보며 추궁했다.
"백인걸을 찾을 수가 없었사옵니다."
"백인걸이 홀한해에 있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찾지
못했느냐?"
"소인들이 홀한해를 샅샅이 뒤졌으나 찾을 수가
없었사옵니다. 다만......"
"다만 무엇이냐?"
"어느 골짜기에 이르렀는데 아무리 길을 찾아
올라가도 다시 그 곳으로 내려오게 되어 헛걸음만
하는 괴이한 일이 있었사옵니다."
"폐하. 백인걸이 기문진(奇問陣)을 설치한 듯
하옵니다."
인선황제의 옆에서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의 얘기를
듣고 있던 임소홍이 낮게 속삭였다.
"기문진이라니?"
"기문진을 설치하면 돌멩이 몇 개로도
천변만화(千變萬化)를 불러일으키게 되옵니다. 진법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잘못 발을 디디면 하늘이
캄캄해지거나 풍우가 몰아치기도 합니다. 또 길을
잃고 헤매이기 일쑤이고 진안에 갇히면 죽는 수도
있다고 하옵니다."
"그런 진이 있다는 말이냐?"
인선황제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무림에서는 흔히 쓰이고 군사들이 전쟁을 할 때도
진법을 펼칩니다."
"음......"
인선황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문진은 삼국시대에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잘
썼다고 하옵니다."
"허면 어찌해야 백인걸을 잡을 수 있겠느냐?"
"신첩이 어찌 그 방도를 알겠사옵니까?"
임소홍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무림의 절대고수인
백인걸을 잡아들일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그날 밤
할저에게 전서구를 받은 임소홍은 만면에 득의의
미소를 띄우고 인선황제에게 그 방도를 알려 주었다.
"옳커니!"
인선황제는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
"백인걸이 기문진으로 어명을 거역하겠다고 하면
발해의 백씨 성을 가진 자들을 모조리 죽이겠다고
하라!"
인선황제는 이튿날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을 불러
단호하게 어명을 내렸다.
어림군은 다시 홀한해로 몰려갔다. 그리고 기문진
앞에서 황제의 명령을 큰 소리로 전했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이 새카맣게 변하고 일진광풍이 휘몰아쳐
오면서 돌멩이들이 병사들을 향해 날아왔다.
"어이쿠!"
"이게 무슨 난리야?"
병사들은 돌멩이에 얻어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었다. 병사들이 두려움에 넘쳐 벌벌 떨 때
홀연히 하늘이 밝아지고 광풍이 그쳤다. 그리고
산기슭으로 향하는 길이 보였다.
병사들은 길을 따라 올라갔다.
백인걸은 홀한해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위의 초막에
살고 있었다. 어림군은 조심조심 백인걸의 초가에
이르렀다.
백인걸은 근처의 채마밭에 있었다.
천무일협이라는 별호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무지랭이 촌로처럼 어수룩해 보였다.
"대장군님! 황명이 지엄하여 장군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어림군의 대장군 강유원은 백인걸에게 공손히 예를
갖추어 말했다. 백인걸은 선왕의 부마도위이기도
했지만 무예가 뛰어나 무관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러한 백인걸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가야
하는 것이 강유원은 가슴이 아팠다.
그것은 황제의 명으로 대내상 두경용을 잡아들일
때도 마찬가지였었다.
그러나 지엄한 황명이었다. 어릴 때부터 충성하는
것만을 배운 강유원은 황명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세......."
백인걸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떠올리더니
어림군을 따라 나섰다.
어림군은 백인걸을 체포하여 황궁으로 끌고 갔다.
백인걸이 어림군에게 잡혀 온다는 소문을 들은
홀한성의 저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홀한성의
성민들은 앞을 다투어 거리로 몰려 나와 백인걸이
잡혀 오는 것을 보고 혀를 차거나 눈물을 글썽거렸다.
백인걸이 어림군에게 끌려와 국청에서 신문을 받게
되자 발해의 조정은 뒤숭숭해졌다. 백인걸은
문관들에게도 신망이 높았다. 게다가 그는 선왕인
위해황제의 부마도위였다. 백인걸의 체포에 대한
반발은 조정에서부터 폭넓게 확산되었다.
먼저 중정대에서 백인걸을 무죄방면하라는 상소가
올라왔다. 발해의 중정대는 관리들의 죄과를
규찰하거나 규탄하는 곳이었다.
.......폐하, 부마도위 백인걸로 말할 것 같으면
선왕의 부마도위요 무관들이 태산북두처럼 우러러보는
국가의 원로이옵니다. 지금 비록 태평성대이나 국가에
전란이 발생하면 누구보다 앞에서 용맹하게 싸울
장군입니다. 그의 충성심이 해와 같이 빛나고 있는데
하옥한다 하심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니다. 이로
인하여 민심이 이반될까 우려되오니 속히 방면하소서.
백인걸이 살아 있음은 발해의 홍복이요 적에게는
커다란 재앙이옵니다. 북쪽에 거란이라는 오랑캐가
있어서 아국의 변방을 괴롭혀 온지 수 백년 마침내
야율 아보기라는 괴수가 거란을 통일하고 아국을
침략할 흉계를 꾸미고 있는데 어찌 용맹한 장수를
잃고자 하시나이까?
이에 인선황제는 중정대의 수장인 대중정(大重政)을
파면하라는 교시를 내렸다.
......백인걸은 선왕의 부마도위인데도 과인을
능멸하였다. 너희 중정대는 관리들을 규찰하고
규탄하는 것이 임무일진대 백인걸을 탄핵하지는 않고
어찌하여 이따위 상소문을 올리느뇨?대중정을
파면하노라.
그러나 상소는 그치지 않고 올라왔다. 왕실의
인척을 관리하는 종속시(從屬侍),
문적원(文籍院:조선시대의 홍문관에 해당),
주자감(胄子監:조선시대의 성균관)에서도 다투어
상소문이 올라왔다.
인선황제는 그들의 상소문이 빗발치자 상소문에
연명한 관리들을 모조리 파면하였다. 이로 인해
발해의 조정은 또 다시 큰 혼란에 빠졌다.
백인걸은 어림군에게 체포되어 황궁으로 끌려간 지
두 달만에 처형되었다.
백인걸이 처형되던 날 황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 황궁의 뒤뜰에 있는
운영지(雲影池:연못)를 거닐었다.
10월이었다. 날씨는 청명했다. 하늘은 높고
바람결은 서늘했다. 대막(大漠)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쑥대가 금물결을 이루고 초목은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했다.
(괘씸한 놈!)
인선황제는 운영지로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있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백인걸을 생각하자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며칠 전 어림청(御臨廳)에서
백인걸을 심문했는데 백인걸이 오히려 황제인
자신에게 호통을 쳤기 때문이었다.
"너는 어째서 황제인 나를 음해하느냐?"
"나는 황제를 음해한 일이 없소."
"네가 미동이라는 전인을 시켜 나를 음해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지 않았느냐?"
"황제가 황음하니 일깨우고자 하였소!"
"내가 황음하다고?"
"발해는 황제로 인하여 멸망할 것이오!"
백인걸은 인선황제 앞에서도 당당했다.
"닥쳐라!"
"나라의 근원은 백성이오! 황제로서 백성들에게
바른 정치를 펴지 않고 요에서 온 요녀 임소홍에게
빠져 어진 신하들을 죽이고 간신을 옆에 두고 있으니
어찌 황음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임소홍을 단칼에 죽이고 새 정치를 펴도록
하시오!"
"네 이놈! 네가 감히 황제를 훈계하느냐?"
인선황제는 노발대발했다.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자에게 노부가 훈계를 한들
무엇이 잘못이오? 백성들이 들으면 모두 통쾌하다 할
것이오!"
"닥쳐라!"
백인걸은 하늘을 향해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네 놈이 황궁 서고에서 보물을 훔쳤느냐?"
"보물을 훔친 일이 없소."
"천서를 훔치지 않았다는 말이냐?"
"그것은 선왕께서 하사하신 것이오."
"그 책을 다시 가져오너라! 그것은 발해의 둘도
없는 보물이다! 발해의 사직이 그 책에 있다 하거늘
네가 정녕 사직을 생각하는 마음이 눈꼽만치라도
있다면 천서를 돌려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허면 요부 임소홍을 나에게 주시오."
"뭐, 뭣이?"
"사직을 위하여 보물을 돌려 드릴 터이니 애물
덩어리인 요부를 나에게 주시오. 황제께서는 사직을
생각하는 마음이 하늘같은 모양인데 애첩이 무어
중요하겠소?"
"닥쳐라! 네 놈이 감히 황제를 우롱하느냐? 여봐라!
저 놈을 매우 쳐라!"
인선황제의 명이 떨어지자 어림군이 백인걸에게
달려들어 매질을 하였다. 그러나 백인걸은 신음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매를 맞았다.
"더욱 쳐라!"
인선황제는 백인걸이 신음소리 한 번 지르지 않자
더욱 분개했다. 인선황제의 옆에서 시립하여 친국을
보고 있던 대신들이 모두 고개를 외로 꼬고 참혹한
정경에 눈을 감았으나 인선황제의 노여움은 풀리지
않았다.
"어떠냐? 이래도 천서를 내놓지 않겠느냐?"
인선황제는 백인걸을 비웃는 태도가 완연했다.
"내 몸이 조각조각 찢어진다 한들 어찌 천서를
황제에게 바치리오? 차라리 나를 죽이는 것이 황제의
수고를 덜 것이오."
백인걸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데도 의연했다.
"독한 놈이다! 저 놈에게 화형을 가하라!"
인선황제의 명에 어림군이 불에 달군 인두로
백인걸의 살갗을 태웠다. 금세 어림청에 백인걸의
살이 타는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고 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백인걸은 조금도 굽히려 하지
않았다.
백인걸에 대한 친국은 두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인선황제는 백인걸을 당장에 죽이고 싶었으나 천서를
빼앗지 못하여 옥에 가두었다가는 친국하고,
친국하다가는 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시일이 흐르자
온 성안에 야릇한 기운이 감돌았다.
홀한성은 백인걸이 황궁에서 친국을 받는다는
소문이 퍼져 뒤숭숭했다. 무관들은 황궁 앞을
어슬렁거리며 사태의 진전을 궁금해했고 백성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다.
인선황제도 그러한 분위기를 파악했다.
그는 다시 백인걸을 어림청으로 끌어내어 왼쪽 팔을
자르게 했다.
"자 이제는 천서를 내놓아라!"
그러나 백인걸은 왼쪽 팔이 잘라져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는데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인선은 들으라! 내가 지금이라도 너를 죽일 수
있으되 천명(天命)이 아니기에 출수하지 않는 것이다!
네가 숨을 쉬고 있다고 해서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뭐, 뭣이?"
"하핫......!"
백인걸이 하늘을 향해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어림청의 대들보가 흔들리고 기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인선황제는 머리끝이 쭈뼛하여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무슨 변괴인가?"
"죄인이 무공을 발출한 것이옵니다."
어림군이 놀라서 대답했다.
"무공이라니?"
"죄인의 무공이 입신의 경지에 있는지라 소리로도
사람을 죽인다 하옵니다."
"이는 사술(邪術)이다! 당장 끌어내다가 목을
쳐라!"
인선황제는 백인걸이 두려워졌다. 천서를
빼앗으려는 친국을 그만 두고 백인걸을 처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어림군은 백인걸을 옥으로 끌고
갔다가 홀한성의 저자에서 처형하게 되었던 것이다.
백인걸이 처형되던 날 홀한성의 저자는 또 다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백인걸을 처형한다는 말이오?"
"백인걸은 선왕의 부마도위가 아닌가?"
"백인걸 같은 충신을 죽이다니 이 나라가 어찌
될꼬?"
저자 거리에 몰려든 백성들은 웅성거리며 탄식했다.
백인걸이 어림군에게 끌려 나온 것은 오시(午時)
때였다. 휘척수(揮刺手:망나니)들이 칼춤을 추며
돌다가 백인걸의 목을 쳤으나 백인걸은 목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자에 모여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휘척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 백인걸의 목을
쳤으나 백인걸의 목에서는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오히려 휘척수의 시퍼런 칼이 백인걸의 목을 칠 때면
쇳덩어리를 치듯이 불꽃이 튀고 요란한 쇳소리가
났다.
"기인이야!"
"무공이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며?"
"그런데 왜 어림군에게 잡혀 죽지?"
"천운(天運)을 거역하지 않기 위해서래....."
사람들은 백인걸이 죽지 않자 신기해하며
웅성거렸다.
"하핫.....!"
그때 백인걸이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자 세찬 바람이 불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날렸다.
"너희들은 다시 내 목을 쳐라!"
백인걸이 불안에 떨고 있는 휘척수들을 향해 웅후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휘척수들이 머뭇머뭇하며
다가와 백인걸의 목을 쳤고 백인걸의 목이 그제서야
잘라져 땅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인선황제는 백인걸의 죽음을 전해 듣고는 겁이 덜컥
났다. 그러잖아도 미약으로 금단이 시작된 인선황제는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있었다. 눈만 감으면
백인걸의 산발한 얼굴이 떠올라와 인선황제를
괴롭혔다.
인선황제는 미동을 잡아들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미동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15. 녹의녀 설문랑
이에 앞서 북우위 대장군 장영의 부인 설문랑은
어림군이 다시 몰려올까봐 아들 장유와 함께 백마를
타고 허겁지겁 홀한성 동문을 나서고 있었다. 남편
장영이 검 한 자루를 메고 홀한성을 떠난 지 이틀
뒤의 일이었다. 다행이 남편이 떠난 뒤에 어림군이
들이닥쳤으나 그들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알수 없는
일이었다. 어림군이 그들 모자를 끌고 갈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 도망을 칠 시간을
주기 위한 것으로 여겨졌다.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이 내색을 하지는 않았으나
총명한 설문랑은 충분히 강유원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설문랑이 장영보다 이틀이나 늦게 홀한성을 떠난
것은 장원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장영과 설문랑이
살고 있는 장원에는 가복들도 많고 노예들도 많았으나
설문랑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므로 그 동안 장원을 잘
돌보아야 했다.
장영의 장원은 선대인 장문휴 대장군이 살던
집이었다.
발해를 건국한 고왕 대조영은 나라를 건국한 뒤에
당 나라의 제안을 받아들여 명목상의 속국이 되었다.
기울어져가는 당 나라로서는 이미 강대한 제국을
건설한 발해를 토벌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게다가
당 나라는 돌궐, 습족, 해, 거란의 침략 위협을 받자
발해와 동맹을 맺는 전략을 구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는 악명이 자자한 측천무후가 죽고
현종(玄宗)이 즉위했을 때였다. 돌궐의 가한(可汗:왕)
묵철(默 )은 40만의 대군으로 당 나라를 침공, 수만
명의 양민을 학살하고 재물을 약탈한 뒤 몽고로
돌아갔다.
당 나라는 돌궐의 위협에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거란족도 호시탐탐 중국을 노리고
있었다.
이에 당 나라는 발해를 정식 국가로 승인하는
전략을 채택하여 대조영을 발해군왕에 봉하고 홀한주
대도독으로 임명했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전략이었다.
대조영은 당 나라의 제의를 받아들여 둘째 아들
대문예를 당 나라에 파견했다. 당 나라는 대조영의
아들 대문예(大文藝)를 숙위(宿衛)에 임명했다. 당
나라는 주변의 속국들 왕족을 황제를 보호하는 숙위에
임명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명목상의 숙위일 뿐
사실상의 인질이었다.
발해는 형식상의 조공을 바치는 대신 당 나라로부터
위협에 시달리지 않게 되는 이익이 있었다. 대조영이
당 나라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이러한 현실적인
국익 때문이었다.
발해는 당 나라와의 전쟁을 끝맺고 주변의 작은
부족들을 병합하여 국토를 넓혀 갔다.
발해는 건국할 때 말갈의 7부족중
흑수말갈(黑水靺鞨)을 제외한 6부족을 연합하여
국가를 이루었다. 다만 흑수 유역의 광활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흑수말갈만이 발해와 연합하지 않고
독립하여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발해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발해가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면
동행하여 사신을 보내는 등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이 무렵 발해 고왕 대조영이 죽고 아들
대무예(大武藝)가 무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즉위하자 곧 바로 대군을 일으켜 발해의 영토를
넓히기 위한 군비확장에 들어갔다.
대무예가 군비확장에 들어간 것은 동맹을 맺고
우호적인 관계에 있던 흑수말갈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당 나라에 보호를 요청, 당 나라의 일개
주(州)가 되었기 때문이었고 고구려의 영토인
요동반도를 당 나라로부터 되찾으려는 원대한 야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침략자며 배신자인 당 나라를 정벌할 것이다!
그대들은 당 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하여 강토를 짓밟고
유민들을 당 나라로 끌고 가 노예로 부린 천추의 한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대무예는 장군들을 모아 놓고 출병의 이유를
밝혔다.
"당 나라는 큰 나라입니다. 우리 발해가 대군을
일으켜 당 나라를 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출병을 하면 발해는 멸망합니다."
당 나라에 불모로 잡혀갔던 대문예는 출병을
반대했다.
"당 나라를 치기 전에 흑수말갈을 친다! 흑수말갈
또한 우리 민족이 아닌가? 선왕께서 흑수말갈을 치지
않은 것은 흑수말갈의 군사가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민족이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흑수말갈은 민족의
소속에서 이탈하여 당 나라의 주구가 되었다!
흑수말갈을 쳐서 조선과 부여, 고구려의 맥을 잇는
우리 배달 민족의 드높은 기상을 과시해야 한다!"
"지금 흑수가 당 나라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흑수를
친다면 당 나라를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
나라는 군사가 백만이나 되는 대국입니다. 고구려의
전성기에는 고구려에 강병(强兵)이 30만이나 있었으나
수(隨)와 당의 침입을 받아 국력을 과도하게 소진했기
대문에 멸망했습니다. 허나 우리의 군대는 고구려의
3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당 나라와 싸우는
것은 망국을 자초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닥쳐라!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수효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보아야 하는데도 너는 어찌
패배자의 나약한 말로 군사의 사기를 떨어트리는가?
우리에게는 대장군 장문휴와 같은 용장이 있다!"
"장수 하나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당 나라의 거만한 콧대를 꺾고 옛날
우리 조상인 고구려의 원수를 갚아야 할 무거운
책임이 있다! 당장 출정하라!"
대무예는 화를 벌컥 내고 대문예에게 군사를 주어
흑수말갈과 싸우게 하였다. 형의 명령에 의해 억지로
군사들을 이끌고 출정한 대문예는 흑수말갈과의
국경에 이르자 대무예에게 편지를 보내어 원정을
중지해 줄 것을 애걸했다.
"이런 발칙한 놈이 있는가? 장수가 어찌 감히 적진
앞에서 철병을 원하는가? 이는 장수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이니 대문예를 파면하고 대일하(大一河)를
대장군에 임명한다! 대문예를 즉시 상도로 돌아오게
하라!"
대무예는 대문예를 상도로 불러들여 죽이기로
하였다. 이에 놀란 대문예는 밤중에 몰래 진중을 빠져
나와 당 나라로 도망쳐 버렸다.
발해군사들은 계속 전진하여 흑수말갈족의 군대와
조우하였으나 흑수말갈족을 완전히 격파하고 항복을
받았다.
당 나라는 대문예를 이용하기 위해 좌효위장군으로
임명하였다.
발해 무왕 대무예는 동생이 원수인 당 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였다.
대무예는 당 나라에 마문궤(馬文軌)와 총물아를
사신으로 보내어 발해의 반역자를 당 나라가 보호하고
있는데 강경하게 항의하였다. 이에 당황한 당 나라의
현종은 발해의 사신들을 억류하고 홍려경을 사신으로
파견하여 귀순자를 인도상 죽일 수 없으니 양해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이 무렵 거란족의 우두머리 중 하나인 가돌칸이 당
나라에 굴복하여 아부하는 이소고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뒤 돌궐과 동맹을 맺고 당 나라를
침공하는 한편 무왕에게도 편지를 보내 당 나라를
함께 공격할 것을 제의했다.
무왕 대무예는 마침내 가돌칸의 제의를 받아들여 당
나라 원정군을 일으킨 뒤에 장문휴를 대장군에
임명하고 당 나라의 등주를 공격하게 하였다. 장문휴
대장군은 압록강 하류로부터 출발하여 단숨에 등주를
짓밟고 개선했다.
당 나라는 대문예를 대장군에 임명하여 발해를 치게
하였으나 대륙을 덮친 혹한으로 동사자(凍死者)가
속출하여 발해를 정벌할 수 없었다. 장문휴 장군은 그
틈을 노려 수십만의 당군을 대파하고 당당하게
개선했던 것이다.
장문휴 대장군은 이후에도 영토를 넓히는 무수한
전투에서 연전연승하여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
대무예왕이 무왕으로 시호된 것도 장문휴 장군의
뛰어난 무예와 전략 때문이었다. 발해는 이로써
영토가 9천리에 이르는 강대한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무왕 대무예는 장문휴 장군을 총애하여 홀한성에
크고 넓은 토지를 하사한 뒤에 토목공사를 일으켜
장원을 짓고 충무장원(忠武莊園)이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장영과 설문랑이 살고 있는 장원이 바로 그
장원이었다.
설문랑은 홀한성을 나오자 계속 동으로 동으로 말을
달렸다.
그러나 홀한성을 나와서 10리도 가지 못했을 때
어림군이 쫓아왔다.
"어명이오!"
어림군의 요란한 말발굽소리에 놀라 설문랑이
말고삐를 잡아당겨 멈춰 서자 흙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어림군이 달려왔다.
"무릎을 꿇어라!"
설문랑은 재빨리 말에서 뛰어내려 엎드렸다.
"신 설문랑 삼가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대진국 황상페하께서 역적 전 북우위 대장군
장영의 처와 아들을 죽이라는 어명을 내리셨다!
너희들은 속히 어명을 거행하라!"
"예!"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의 호령에 군사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들고 설문랑과 장유를 에워쌌다.
"잠깐!"
설문랑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대장군! 도대체 무슨 영문이오?"
"모르오! 우리는 어명만을 집행할 뿐이오!"
"나의 남편이 역적이라는 것도 터무니 없는
모함이지만 황제께서 우리를 죽이라는 어명을 내리실
까닭이 없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장영 장군은 공녀들을
호송하면서 황제폐하께서 인견 하시기도 전에 추행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소! !"
"대장군! 그럴 리가 없소! 이는 누가 모함을 한
것이 분명하오!"
설문랑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그러나 황상폐하의
어명이 떨어졌기 때문에 부득이 집행해야 하오!"
"안돼!"
설문랑은 재빨리 칼을 뽑아 들고 장유를 막아섰다.
그러자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이 성큼 다가왔다.
"부인!"
"오늘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아들만은 죽게 놔둘
수없다! 누구던지 가까이 오는 자는 이
무정검(無情儉)이 용서치 않으리라!"
설문랑이 칼을 뽑아들자 군사들이 주춤했다.
설문랑의 칼에서 무쇠라도 자를 듯한 싸늘한 냉기가
서리서리 뿜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설문랑의 무예가
장영 못지 않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부인! 아들의 목숨은 내가 보장하겠소!"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소리요?"
"부인이 저항하지 않고 어명을 받는다면 장영
장군의 아들은 내가 살려주겠소!"
"정말이오?"
"그렇소!"
"좋소!"
설문랑은 아들 장유를 처연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다가 무릎을 털썩 꿇고 주저앉았다.
(아, 하늘이 어찌 이리 무심한가........?)
설문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을 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보! 저는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먼저
갑니다.)
설문랑은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는 살아서 장영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어림군에게 필사적으로 저항을 한다면 자신의
목숨은 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을 데리고
어림군과 싸우다보면 아들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강유원은 어림군 대장군이지만 강직한 인물이었다.
아들만은 살려주겠다는 그의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닐
터였다. 게다가 어명을 받들지 않고 저항을 하면
대대로 발해 왕실에 충성을 바친 남편 장영에게도
누가 될 것이다.
설문랑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그때 군사 하나가 재빨리 달려들어 설문랑의
어깨에서부터 가슴으로 칼을 내리쳤다. 설문랑은
입으로 선혈을 왈칵 토해 내고 쓰러졌다. 그러나
그녀는 비명 하나 지르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
그때 장유가 설문랑이 칼을 맞고 쓰러지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들려고 하였다. 그러자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이 재빨리 칼을 뽑아 장유의
등을 내리쳤다.
(아!)
군사들은 깜짝 놀랐다. 장유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요복(要福)은 역적의 시체를 치워라! 나머지는
나를 따라 황궁으로 돌아간다!"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은 싸늘하게 명령을 내리고
말에 올라타 황궁으로 돌아갔다. 군사들도 재빨리
강유원을 따라 돌아갔다. 시체를 치우라는 명을 받은
요복은 군사들이 뽀얗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아가자
장유와 설문랑의 시체를 살폈다.
장유는 숨이 붙어 있었으나 설문랑은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아, 충신의 부인을 이렇게 죽이다니.......)
요복은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홀한해 근처에 있는 인가에서 마차를 빌려
설문랑의 시체와 장유를 싣고 동평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설문랑의 시체를 양지바른 곳에 묻고
장유를 치료할 생각이었다.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이 장유를 칼로 친 것은
일부러 죽은 것처럼 만들기 위해서였다. 강유원은
장영 장군의 아들 장유만이라도 살리려고 고육지계를
냈던 것이다.
16. 반군(叛軍)이 일어나다
백인걸이 처형당한 이튿날부터 발해의 홀한성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때아닌 가을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두 셋만 모이면 황제가 충신을 죽인
탓이라고 수군거렸다. 사람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민심이 가파라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날아갈 듯이 세차게 몰아치던 광풍과 폭우는
이레 동안이나 계속되다가 그쳤다. 전례없이 큰바람과
큰비였다. 광풍과 폭우의 영향으로 수많은 집들이
유실되고 거대한 나무가 뿌리째 뽑혀서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게다가 수많은 이재민들이 발생하여
저자에 걸인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백인걸의 죽음은 천재지변과 함께 발해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발해의 명재상
두경용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을 때 발해의
앞날을 생각하며 깊은 탄식에 잠겼었다. 그러나
백인걸의 죽음은 그들에게 탄식을 넘어 분노하게
만들었다.
지방에서도 백인걸의 처형을 비난하는 상소가
빗발쳤다. 그들은 백인걸의 처형이 모두 요부
임소홍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임소홍을 처형하라고
황제에게 강경하게 요구했다.
인선황제는 지방에서 올라온 상소문을 모조리
불태웠다. 그리고 상소를 올린 지방의 관리들과
토호들을 어림군을 보내어 주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발해의 각 지방 민심은 더욱 흉흉해지고 마침내
반역의 기운마저 꿈틀거리게 되었다.
요야(遼野)의 드넓은 만주대륙.
고구려인들과 발해인들의 호쾌한 기상이 살아있는
곳. 아니 8조의 금법만으로 대륙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열었던 단군의 숨결이 느껴지는 땅.
발해국 15부의 하나인 압록부(鴨綠府)의 도읍
서경(西京:집안현 일대)에도 백인걸의 죽음이 알려져
부민들을 들끓게 하였다. 백인걸은 원래 압록부
출신으로 압록부 부민들은 다른 어느 부보다도 더욱
분개했다.
백인걸은 어릴 때에 집을 떠나 발해 전국을
종횡했고, 19세에 전장에 나가서 큰공을 세워 선왕
위해황제의 부마도위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백인걸은 압록부의 자랑이었고 압록부 부민들이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는 인물이었다.
압록부의 도독인 대원달(大原達)은 백인걸이
처형되어 압록부의 민심이 뒤숭숭해지자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뜻이 맞는 동지들을
규합하기 시작했고 그의 집에는 반역을 꿈꾸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대원달은 발해국 왕성(王性)을 갖고 태어나 과거에
급제하지 않았으면서도 발해의 조정에서
지부(병부:兵府) 대신(大臣:판서)를 지내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치열한 권력 다툼에 밀려 왕성에서 1천리나
떨어진 압록부까지 밀려와 있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이런 빈촌에서 썩을 수는 없지......)
대원달은 틈만 나면 왕성을 향해 눈을 부릅뜨곤
했다. 그는 야심만만한 사내였다. 제15대 인선황제는
궁녀들의 치맛자락에 둘러싸여 밤을 낮삼아
주지육림에 빠져 있었다. 최근에는 요 나라의
삼촌벌이 되는 할저가 데리고 온 요부를 황궁으로
끌어들여 주색에 빠져 있었다. 무관들은 인선황제가
정사를 돌보지 않자 모반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발해는 고구려인과 말갈인들이 주요 구성원이었다.
고구려인은 귀족층을 형성했고 말갈인들은 평민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말갈인들은 차츰차츰 발해의
구성민에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자연히 조정에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오호라. 애통할지어다. 당금 황제가 태조께서
세운 위업을 잊고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으니
조정에는 충간하는 신하가 없고 간신 무뢰배만
있구나. 황제가 마시는 미주(美酒)는 백성의
고혈(膏血)이요, 가효(佳肴)는 백성의 땀이로다.
황제가 이리와 같은 간신들의 아첨에 속아 발해의
대충신 백인걸 장군을 목베었으니 이처럼 원통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충신의 피가 마르기 전에 떨쳐
일어나고자 하노라.
아울러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들은 해골과 해골을
맞대이고 길바닥에 누웠으니 이제 요사한 계집을
죽이고 국정을 바로 잡고자 의(義)의 깃발을 드노라.
뜻 있는 자는 속히 이 깃발 앞에 모이라. 압록부의
대도독 대원달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친히
난정(亂政)을 치고 사직을 굳건히 하리라!
대원달은 마침내 압록부 일대에 격문을 띄웠다.
명색은 피폐한 국정을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야심찬 계획은 조정에 불만을 갖고 있는
세력을 규합하여 모반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대원달이 격문을 띄우자 압록부 일대에서 군사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대개 사냥에 종사하고 있거나
압록부의 각 현에 소속되어 있는 군사들이었다.
그들은 5, 6명씩 말을 타고 달려와 대원달의 휘하에
편입되었다. 특히 귀족과 토호들에게 억압을 받는
말갈인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압록부의 현승들도 군사들을 이끌고 참가해 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원달의 휘하에는 군사들이
불어났다.
대원달이 모반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은 발해의
조정까지 알려졌다.
"압록부의 도독 대원달이 모반을 일으킨다고
하옵니다."
인선황제는 대신들의 보고를 받자 노발대발했다.
"대원달이 무엇 때문에 모반을 일으킨다고 하느냐?"
인선황제는 눈에서 불이라도 뿜을 듯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대신들을 쏘아보았다.
"자세히는 알 수 없사오나 백인걸을 처형한 때문인
줄로 아옵니다."
"대역무도한 죄인을 처형했기로 그게 무슨 모반의
이유가 된다는 말이냐?"
"황공하옵니다!"
"모반에 가담한 군사는 얼마나 된다고 하느냐?"
"장계에 군사의 수효가 적혀 있지 않아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사옵니다. 허나 압록부의
부세(府勢)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2만 안팎이 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좋다! 과인에게 반역을 하는 놈을 모조리 찢어
죽이겠다! 허나 그전에 먼저 모반에 가담한 군사들의
가족이나 친척이 성안에 있으면 모조리 잡아다가
참하라! 모반의 죄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
주겠노라!"
인선황제는 살기등등하여 길길이 날뛰었다.
대원달의 반역을 주청하고 있던 대신들은 인선황제의
말에 입조차 벌릴 수가 없었다.
"폐, 폐하!"
간신히 입을 벌려 겨우 한 마디를 하였다.
"당장 시행하라!"
인선황제가 손으로 어탁을 두드리며 고함을 질렀다.
홀한성은 무시무시한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서릿발처럼 싸늘한 왕명이었다. 압록부에 인척이 있는
백성들이 영문도 모르고 잡혀와 목이 떨어졌다.
홀한성은 갑자기 불어닥친 피바람으로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백성들의 곡성이 그치지 않았다.
"당장 군사들을 소집하여 모반자 대원달을
토벌하라! 또한 어림군은 도성을 철통 같이 경계하고
모반을 틈타 수상한 짓을 저지르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라!"
인선황제는 계속해서 살벌한 어명을 내렸다.
홀한성은 순식간에 전시체재로 바뀌었다. 골목과
골목에 기치창검을 든 군사들이 뛰어다니고 저자의
상점들은 문을 닫아걸었다.
그 와중에도 파발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장계가 날아오고 파발이 올라오자 뒤숭숭하던
발해의 도성은 발칵 뒤집혔다. 성민들은 앞을 다투어
피난을 떠났다.
대원달은 압록부의 군사까지 3만으로 군대를
편성했다. 그리고 스스로 의병대장군에 올라 군사를
몰아 홀한성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대원달의
반군은 처음부터 기세가 당당했다.
그들은 11월초 압록부의 서경을 떠나 닷새만에
장령부에 이르렀다. 그들은 장령부의 경계에 이를
때까지 연도에서 백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전투
한 번 치르지 않고 진군했다. 그들이 관군과 처음으로
마주친 것은 장령부의 경계에 이르렀을 때였다.
"장군님! 관군입니다!"
척후병으로 나갔던 병사가 돌아와 황급히 보고를
했다.
"관군이라니? 관군이 벌써 출병을 했다는 말이냐?"
대원달은 바짝 긴장을 했다.
"예!"
"얼마나 되느냐?"
대원달은 마상에서 얼굴을 찌푸렸다. 관군이 벌써
장령부까지 출병했을 까닭이 없었다.
"초원을 까맣게 메우고 있습니다."
"기병들이냐?"
"예!"
"전진해라!"
대원달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전진 명령을
내렸다.
"장군님! 길을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적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장들이 대원달을 만류했다. 그러나 대원달은 전진
명령을 철회하지 않았다.
"길을 돌아가라는 것이 왠말이냐?"
대원달은 장수들의 만류를 단호하게 뿌리쳤다.
"장군님!"
"전진해라!"
"장군님! 관군에게 개죽음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관군이 벌써 장령부까지 도착했을 까닭이 없다!
이는 장령부의 지방군이 분명하다! 우리는 난정을
치는 의군이니 누가 우리를 막겠느냐?"
"알겠습니다!"
제장들은 그때서야 대원달의 말에 수긍했다. 관군이
장령부의 지방군이라면 오합지졸일 것이고 반군들이
충분히 격파할 수 있는 것이다.
"전진하라!"
대원달은 웅성거리는 병사들에게 진군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대원달의 명령이 떨어지자 열을
지어 진군하기 시작했다. 11월초라고는 하지만 압록부
및 장령부 일대는 한겨울이었다. 벌판에서는 살을
에일 듯이 차가운 바람이 불고 혹한이 병사들의
어깨를 잔뜩 움츠리게 했다.
강추위였다.
강물이 얼어붙고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나무가지들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귀곡성처럼 음산하여
병사들의 뼛속까지 시리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진군했다.
이윽고 그들은 장령부의 관군이 진을 치고 있는
벌판까지 도착했다. 병사들의 눈에도 붉은 깃발을
앞세우고 벌판에 도열해 있는 장령부의 군사들이
보이고 있었다.
"진(陣)을 쳐라!"
대원달은 매서운 추위에 몸을 떨고 있는 병사들에게
칼날처럼 냉엄하게 지시했다.
"진은 일자진(一字陣)이다!"
장령부 쪽에 진을 치고 있는 군사들도 일자진을
펼치고 있었다. 그들은 귀신이 도열한 듯 움직이지
않고 깃발만 펄럭거리고 있었다.
"군사들은 일자진을 펴라!"
장수들의 지휘로 군사들이 신속하게 움직여
일자진을 폈다. 대원달의 반군과 관군은 마침내
초원에서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관군의 숫자가 우리 보다 많은 것 같군.....)
대원달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관군과
전투를 벌이게 된 것이다. 최초의 전투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모반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판가름이 날 것이다.그러나 장령부의 관군은 숫자가
월등히 많아 보였다. 아무리 반군들이 사기가
드높아도 수많은 장령부의 군사를 당해내기가 여의치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초반에 기선을 잡아야 했다.
"듣거라!"
대원달은 칼을 뽑아 들고 군진을 돌면서 군사들의
사기를 돋구기 시작했다.
"예!"
"우리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난정을 치는 것이다!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는 자는 살
것이다! 모두들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각오로 싸움에 임해야 한다! 알겠느냐?"
"예!"
군사들이 우렁차게 대답을 했다.
"나를 따라 소리 높여 외쳐라! 난정을 치자!"
"난정을 치자!"
군사들이 대원달을 따라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난정을 치자!"
"난정을 치자!"
"요부를 죽이고 나라를 구하자!"
"나라를 구하자!"
병사들이 상기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대원달은
병사들의 사기가 어느 정도 올랐다고 생각하자 진군
명령을 내렸다.
"격고(擊鼓)!"
격고는 진군을 하기 위해 북을 치는 것이다.
"격고!"
제장들이 칼을 뽑아들고 복창을 했다. 그러자
진중에서 북소리가 둥둥 울리기 시작했다.
"전진!"
"전진!"
대원달의 군사들은 제장들의 명령에 따라 창을
겨누고 일정한 마폭(馬幅)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장령부의 군사들도 서서히 접근해 왔다.
"돌격!"
대원달이 먼저 말을 힘껏 채찍질하여 장령부의
군진으로 질풍처럼 달려갔다.
"돌격!"
제장들도 일제히 대원달의 뒤를 따라 돌격했다.
"와!"
대원달의 군사들은 노도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질풍처럼 달렸다. 말발굽소리가 두두두 울리며
대원달의 군사들은 장령부의 관군을 향해 일제히
돌격했다.
전투는 치열했다.
대원달의 군사들과 장령부의 관군들은 초원에서
처절한 혈전을 치루었다.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흰
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하늘로 메아리치고 초원이 피로
물들었다.
"죽여라!"
"난정을 펴는 앞잡이들을 죽여라!"
시간이 흐르자 전투의 우열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장령부의 관군들은 숫자가 많으면서도 대원달의
군사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돌격!"
"의군의 앞을 막지 마라!"
대원달은 목이 터져라 외치며 장령부의 관군을
공격했다.
그때 장령부의 도독 고영길(高泳吉)이 말이
넘어지는 바람에 대원달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장령부 도독이 죽었다!"
군사들이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뜻밖의 전과였다. 대원달이 달려가 보니 장령부
도독 고영길은 군사들의 창에 복부가 난자되어
있었다. 갑옷 사이로 내장이 쏟아져 나오고 주위에
선혈이 낭자했다.
"장령부 도독이 죽었다!"
대원달의 외침에 군사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
게다가 장령부 도독의 깃발까지 빼앗기게 되자
장령부의 군사들은 현저히 사기가 떨어졌다.
"도독이 죽었다!"
"후퇴해라!"
"후퇴!"
장령부의 군사들은 도독이 죽자 달아나기에 바빴다.
전세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대원달의 군사들은
허겁지겁 달아나는 관군을 추격하여 전멸시켰다.
벌판에는 장령부 군사들의 시체로 시산혈해를
이루었다.
"우리가 승리했다!"
"만세!"
"의군이 승리했다!"
"만세!"
군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대원달은 그 여세를
몰아 단숨에 장령부의 도독부로 짓쳐 들어갔다.
장령부에 남아 있던 관군들은 도독이 죽자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대원달은 장령부 도독부로 무혈입성했다.
장령부가 반군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은 파발마로
발해의 조정에 알려졌다. 발해의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조정에서는 즉시 중앙의 10위(十衛)를
소집했다.10위는 발해의 중앙군(中央軍)으로 각 위에
대장군 1명, 장군 1명, 무관(장수) 10명이 포진하고
있었다. 각 위의 군사는 한때 1만 명에 이르렀으나
차츰 군사가 줄어 5천명 안팎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인선황제는 대원달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좌맹분위(左盟分衛) 대장군 이도종(李道宗)을
대원수에 임명하고 좌맹분위, 우맹분위(友盟分衛),
북우위(北友衛), 좌우위(左右衛), 남우위(南友衛) 등
5위를 지휘하여 반란군을 토벌하도록 했다.
압록부의 반군 대원달의 군사도 파죽지세로
홀한성을 향해 질풍처럼 내달렸다.
이들은 12월 열 사흘에 중경두덕부(中京頭德府:발해
15부의 하나 혜산 건너편 만주일대)의 임강(臨江)에서
조우했다.
날씨는 여전히 차가웠다.
양군은 한겨울 삭풍이 휘몰아치는 벌판에서 일대
격전을 벌였다. 벌판에는 수많은 깃발이 나부끼고
북소리가 진동을 했다. 전투는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대원달의 군사는 수효에서 약간 우세했으나 훈련을
받지 않은 오합지졸이었고 이도종의 토벌군은
정규군이었으나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양군은 전투가 치열할수록 도망병이 늘어갔다. 특히
대원달의 반군에는 날씨도 춥고 보급도 원활하지 않아
전투를 할수록 도망병이 더욱 많아졌다.
"반군을 토벌하라!"
"반군을 죽여라!"
마침내 대원달의 반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임강
벌판에서 전투가 벌어진 지 이레째 되는 날이었다.
토벌군은 의기양양하여 반군을 공격했다.
"지원군이 왔다!"
"지원군이다!"
게다가 홀한성에서 지원군 2위 1만 명이 수많은
깃발을 앞세우고 들이닥치자 그들은 용기백백하여
반군을 공격했다. 반군은 마침내 벌판 가득히 시체를
남기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대원달도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달아났다.
처절한 패배였다.
반군이 도주하기 시작하자 토벌군은 압록부까지
단숨에 짓쳐 들어가 평정했다.
17. 혼탁한 세월
이도종이 반군을 격파하고 임강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낭보는 곧 바로 홀한성으로 보고되었다.
반군이 도성까지 쳐들어올까 봐 전전궁궁하던
인선황제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고 어수선하던
홀한성도 차츰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다. 피난을 떠났던
성민들이 돌아오고 저자거리는 다시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토벌군 대장군 이도종은 해가 바뀌었는데도
개선하지 않았다. 그는 3만의 대군을 이끌고 압록부에
주둔하면서 반군의 잔당을 토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도종의 토벌군은 압록부를 완전히
휩쓸었다. 명분은 반군의 잔당을 토벌한다는
것이었으나 토벌군이 하는 일은 양민의 학살과
약탈이었다. 그들은 닥치는대로 양민들의 재물을
빼앗고 부녀자들을 겁탈했다. 압록부는 토벌군의
만행으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그러잖아도 발해인들의
구성에서 이탈해가고 있던 말갈인들은 더욱 빠르게
이탈해 갔다.
"토벌군이다!"
"토벌군이 온다!"
양민들은 토벌군이 온다는 소리만 들리면 줄행랑을
쳤다. 여자들은 토벌군을 만나는 것을 사신을 만나는
것보다 더 두려워했다.
"이제 토족과 우리는 한 백성이 아니다!"
말갈인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고구려인들을
증오했다. 그러나 토벌군들은 말갈인들이 대다수인
양민들을 점령군처럼 짓밟았다.
피를 본 토벌군이었다.
그들은 두려운 것이 없었다.
압록부의 양민들을 반군의 무리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학살과 약탈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해가 바뀌었다.
대원달의 반군을 격파한 토벌군이 개선을 하지 않자
어명이 내려갔다.
"대원수는 속히 군사를 이끌고 홀한성으로
개선하라!"
이도종은 인선황제의 어명을 받고서야 토벌군을
수습하여 당당하게 개선했다. 그는 3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홀한성으로 돌아왔다.
백성들은 토벌군을 열렬하게 환영했다.
인선황제는 개선한 토벌군을 친히 사열하고 토벌군
대장군 이도종에게 지부대신(智府大臣:조선시대의
병조판서)을 제수했다. 군사들에게는 직급에 따라
승차시키고 녹봉미를 후하게 하사했다.
토벌군은 홀한성에 주둔했다.
대신들은 3만 대군이 홀한성에 주둔하자 위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토벌군은 위풍이 당당했다.
반란군을 진압하느라고 피를 본 군사들이었기 때문에
눈빛은 흉맹하고 대오는 삼엄했다.
일부 대신들은 재빨리 새로운 권력자인 이도종의
편에 붙었다. 그러나 나머지 대신들은 조정의 실권을
쥐고 있는 정당성 대내상 장문일(張文一) 편에
붙었다.
발해의 조정은 두 파로 갈리었다.
발해의 3재상인 선조성(宣詔省), 중대성(中臺省)의
대신들도 장문일과 이도종의 파로 갈렸다.
좌상(左相:선조성 대신) 최광묵(崔光默)은 이도종,
우상(右相) 두용표(杜用杓)는 장문일의 파였다.
이들은 두 파로 갈라져 사사건건 대립했다.
인선황제는 다시 주색에 몰두했다.
그 무렵 홀한성에 해괴한 소문이 나돌아 호사가들의
입방아 거리가 되었다. 그 소문은 음경이 거대한
사내의 얘기로 홀한성의 많은 귀족 부인들이 그
사내와 사통을 했으며, 부인들이 낳은 아이들 중
상당수가 그 사내의 아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내의 음경이 거대하여 한 번 접구(接口)한 부인네는
헤어나지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내들은 술잔을 앞에 놓고 그 사내의 얘기를 했고
부인네들은 우물가에서 얼굴을 붉히며 그 사내 얘기를
했다. 그 사내가 언제 상경의 성안에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으나 소문은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성안이
떠들썩하게 되었다.
그 사내의 얘기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발해국의 장령부(長嶺府) 토문강(土門江).
송화강의 지류인 토문강 오른 쪽에 있는
임촌(臨村)이라는 고을에 괴이하게 생긴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겨드랑이에 물고기의 비늘이
달려 있었고 태어나자마자 걷기 시작하였다. 태어날
때 오른 손 주먹을 꼭 쥐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두
손으로 간신히 풀자 임금 왕(王)자가 씌어 있었다.
아이는 석달 만에 말을 했고 여덟 살에 어른만큼
컸다. 그때에 이미 기운을 쓰는데 20관(慣)이 넘는
다듬이 돌을 한 손으로 들었다.
하루는 아이가 집 앞에서 뛰어 노는데 지나가던
노인이 엎드려 절을 하고는,
"귀인을 뵈옵니다."
하고는 다시,
"이름을 장근(長根)이라고 짓고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비늘을 보이지 말라."
한 뒤에,
"비늘을 떼어내면 힘을 쓰지 못하리라."
하였다.
이 소문이 도독부에 들어가자 도독이 병사들을
보내어 아이를 잡으러 왔다. 부모는 도독부에서
아이를 죽일까봐 겁이 나서 아이를 데리고 산으로
도망친 뒤에 아이의 겨드랑이에 있는 비늘을
잘라냈다. 아이의 겨드랑이에서 석달 열흘 동안 피가
흘러 내렸다.
그후 아이는 절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어느 날 임촌현의 현승(縣勝:현령)인
이재욱(李在旭)의 젊은 아내가 불공을 드리러 왔다.
그녀는 이재욱과 혼례를 올린 지 10년이 되었으나
소생이 없어 불공을 드리러 온 것이었다.
그는 불상 뒤에 숨어 있다가 부처의 소리를 흉내
내어 이 절의 주지는 지장보살의 후신이니 밤에
잠자리에 같이 들라고 하였다. 이재욱의 아내는
반신반의했으나 그대로 하였다.
잠자리에 들고 보니 그의 음경이 일척(一尺) 하고도
이촌(二寸)이나 되었다. 음경이 옥문(玉門)을 열고
들어오니 이재욱의 아내는 생전 처음 맛보는 쾌락에
비몽사몽을 헤매게 되었다.
이재욱의 아내는 집에 들어오자 절에서 만난
중--장근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밤마다 뒤척거리며
장근을 생각하다가 병을 앓게 되었다. 그때에 이웃
현의 부호에게 시집을 간 언니가 병문안을 왔고
이재욱의 아내는 언니에게 장근의 얘기를 하였다.
언니는 긴가민가하다가 절을 찾아갔다. 그리고
장근을 만나 몸을 허락하고 꿈 같은 쾌락을 맛보았다.
그 소문은 부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다.
처음엔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만 찾아갔으나 나중엔
임촌의 부인네들이 패물을 싸들고 찾아갔다. 마침내
그 소문은 남정네들에게까지 알려졌고 남정네들이
찾아가 절을 불질러 버렸다. 장근은 남정네들이
몰려오자 도망가 버렸다.
장근은 그후 발해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염문을
뿌렸다.
그리고 장근은 홀한성까지 올라와 홀한성의
부인네들의 몸을 달아오르게 하였다. 그러나 장근이
어디에 있는지 장근의 생김이 어떠한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장근의 소문만 무성하여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그 해도 발해는 가뭄이 극심했다. 우기가 되었으나
비 한 방울 뿌리지 않아 밭작물이 말라죽고 식수가
부족해졌다. 홀한성의 성민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고려로 이주해 갔다. 걸인이나 다름없는
유민들이 이고지고 길을 떠나는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나 가뭄이 극심해도 홀한성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발해의 귀족층이었고 노예를
거느린 부호들이었다. 그들은 노예들을 동원하여
홀한해와 마련하에서 식수를 날라다가 마셨다.
민심은 흉흉했다.
가뭄과 더위가 민심을 가파르게 하여 사람들은
사소한 이유로도 주먹질을 하고 살인을 했다.
가뭄과 더위로 장근의 소문이 잠잠해졌다.
장근이 옥문이 거대한 여자를 만나 산 속에 들어가
화전을 일구며 산다는 소문이 잠깐 나돌다가 그것으로
끝이었다.
장근의 소문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이번엔 괴인에
대한 소문이 홀한성에 퍼졌다. 괴인은 밤이면
홀한성에 나타나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인선황제도 그 소문을 들었다.
이도종에게 명하여 소문의 출처를 확인하라고
했으나 군사들이 몰려다니며 민심만 흉흉하게 했을
뿐이었다.
백성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져 갔다. 가뭄과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귀해진데다 관리들의 부패도
극심했다. 관리들은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하기에
바빴다.
백성들은 마침내 가산을 정리하여 압록강을 건너
고려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8. 분노의 칼
봄이 왔다.
토벌군의 개선과 함께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왔다.
봄은 여인들의 옷차림에서 먼저 온다고 누가
말했던가.
여자들의 옷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들의 몸에서 지분 냄새가 진동을 하자
봄은 이미 성큼 다가와 있었다. 멀고 가까운 들에
들꽃이 난만하고 집집마다 살구꽃이며 복사꽃이
다투어 피었다. 홀한성도 성큼 다가온 봄과 꽃냄새로
진동을 했다.
할저는 꽃나무가 무성한 정원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할저는 이제 귀국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발해의 군신으로 추앙 받는 백인걸도 제거되었고
대장군 장영도 어디론가 떠나버렸으므로 이제 그가
발해로 위장귀순한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귀국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발해의
군사(軍事)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파악하고
싶었다.
발해의 병권은 이제 이도종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이도종은 개선한 뒤에 병권을 관장하는 지부대신이
되었다. 그러나 이도종은 발해의 병권을 장악하였으나
군사를 지휘할만한 역량을 갖고 있는 인물은
못되었다.
대원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할저는 직접 전선까지
나가서 전투를 살폈다. 그리고 대원달의 반란군이나
이도종의 토벌군이 전략도 없이 전쟁을 하는 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러한 군대라면
거란군이 얼마던지 격파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요왕 야율 아보기는 할저에게 귀국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요왕은 다시 군사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할저는 요왕에게 바칠 선물이 필요했다.
그가 요왕을 반대하여 일으킨 반란을 상쇄할만한
공적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할저는 일단 귀국을 미루었다.
할저는 그 대신 무사들과 함께 변복을 하고
홀한성을 빠져나가 발해의 각 부에 있는 군사주둔지를
염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수 거란군이 대대적인
침략을 감행할 때 발해군과 부딪치지 않고 단숨에
홀한성까지 진격할 수있는 군사지도를 그렸다.
중경두덕부의 도독으로 있는 대소현도 부지런히
만났다. 중경두덕부는 거란이 침략할 때 반드시
지나야할 관문이었다.
그러나 할저가 군사지도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나돌았다. 지부대신 이도종은 할저의 집
주위에 군사를 파견하여 감시하기 시작했고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도 무사들을 시켜 할저를 미행하게 하고
있었다.
(잘못하면 귀신도 모르게 죽겠군.......)
할저는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자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그러는 동안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그해 여름도 발해는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었다.
하늘조차 발해를 멸망시키는데 일조하는 것 같아
할저는 내심 흐뭇했다.
이내 지리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시작되었다.
할저는 감시가 느슨해지자 요왕에게 귀국하겠다는
전갈을 보냈다. 요왕은 할저의 전갈을 받자 속히
귀국하라고 지시했다.
할저는 야율 아보기의 명령을 받자 발해에서
구마대회(毬馬大會)가 열리는 기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발해는 해마다 10월이면 천제(天帝)에게 제사를
지내고 들에서 구마대회를 열었다. 구마대회는 발해의
황제와 귀족들이 해마다 홀한성 밖의 들에서 말을
타고 죽방울을 치는 경기였다. 말을 타고 죽방울을
몰아서 구문(毬門)에 넣으면 이기는 경기였다.
당나라에서 열리는 격구(擊毬) 경기와 비슷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천제(天祭)를 지내는 날이었다. 인선황제는
대신들을 거느리고 목욕재계한 뒤에 재단에 나아갔다.
"아뢰옵건대 우리 대진국(大震國:발해)은
성무열성제 고왕께서 개천(開天)하신 후 위엄이
사해에 넘치고 2백년 동안이나 태평성대를
누려왔나이다. 여(予:나)는 천경(天經:천부경)의
가르침대로 백성들을 교화하고 의관(衣冠)을 겸손히
하여 모범이 되었습니다. 군신은 백성을 범하지 않고
도적과 걸인이 없으니 평안한 나라입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병 없이 장수하고 주리는 사람이 없이
물자가 풍부하니 선남선녀는 높은 산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달(月)을 맞이하여 춤을 추나이다. 이에 길한
날을 골라 목욕재계하고 천제(天帝)께 아뢰나니
천년세세 이 나라를 보우하소서."
청풍명월의 계절이었다.
하늘은 맑고 바람결이 서늘했다. 발해인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에 잔치를 벌렸다. 온 홀한성이 새옷을
입고 먹고 마시 고 춤을 추었다.
구마대회는 이튿날 열렸다.
인선황제는 친히 구마대회가 열리는 홀한성 밖의
마련하에 있는 백사장까지 나와서 경기를 관전했다.
그의 옆에는 요부라는 소문이 파다한 임소홍이 새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내 북소리와 함께 시합이 시작되었다. 발해의
귀족 자제들이 청(靑) 백(白) 홍(洪) 록(綠)의
4대(四隊)로 나뉘어 출전했다. 일종의 단체 경기로
오전 내내 전개된 경기에서 청대(靑隊)와
홍대(洪隊)가 먼저 붙고 이어서 백대(白隊)와
녹대(綠隊)가 붙었다. 그리고 두 대의 경기에서
우승한 청대와 백대가 붙어 청대가 우승하게 되었다.
오후에는 개인 경기가 열렸다.
그런데 뜻밖에 인선황제의 애첩 임소홍이 말을 타고
출전하여 귀족 자제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그
뿐 아니라 말을 얼마나 잘 타는지 말에 엎드리기도
하고 옆에 달라붙기도 하며 죽방울을 쳐서 구문에
집어넣었다.
"오! 소홍!"
인선황제는 입이 쩍 벌어져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임소홍은 연전연승을 하여 그 날의 개인전 우승자가
되었다. 인선황제는 기분이 좋아 크게 주연을
베풀었다.
주연은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할저는 주연이 무르익자 말을 타고 진중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요에서 데리고 온
무사들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천리나 떨어져 있는
요의 국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날씨는 밤이 되자 차가워졌다. 홀한성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밤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
뒹굴었다.
인선황제는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알 수 없었으나 할저가
발해의 군사지도를 가지고 달아났다는 소문도
파다하게 나돌았다. 그리고 발해의 군사지도를 빼돌린
것이 인선황제의 애첩 임소홍이라는 말이 퍼져
인선황제를 곤혹스럽게 했다.
"즉시 할저를 추격하라! 할저는 세작이 틀림없다!"
인선황제는 그때서야 두 눈에 핏발을 세우고 할저를
추격하도록 지시했다.
인선황제의 추상같은 명에 의해 어림군이 할저를
뒤쫓아 달려갔다. 그러나 할저는 이미 홀한성에서
50리나 벗어난 뒤였다. 할저는 50리나 벗어나고서도
쉬지 않고 북쪽의 흑수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흑수가
거란의 국경이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었다.
"할저야! 이 곳에서 너를 기다린지 오래다!"
그 날밤 할저가 해림(海林) 근처의 숲에 이르러
잠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벼락을 치는 듯한
소리가 숲에서 들려왔다. 할저는 깜짝 놀라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누구냐?"
할저의 부하들이 재빨리 할저를 에워싸고 칼을
뽑았다.
"발해의 대장군 장영이다!"
어둠 속에서 말을 탄 거한이 장창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대는 왜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할저는 간담이 서늘하였다. 장영에 대한 소문은
이미 귀가 따갑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너는 요왕의 황숙으로 발해를 멸망시키러 온
세작이 아니냐? 임소홍이라는 요망한 계집을 황제에게
바쳐 황음한 황제로 하여금 나의 아들과 아내를 죽게
하였다. 오늘 너를 죽이지 못하면 구천에 있는 나의
아내가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장영이 피를 토하듯이 비장하게 외쳤다.
"그것은 발해 황제가 죽인 것이지 내가 한 일이
아니다!"
할저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발뺌을 했다.
"할저! 대장부답게 변명하지 마라! 오늘 네 목을
잘라서 아내의 무덤에 바치겠다!"
"닥쳐라!"
그때 앙칼진 목소리와 말을 탄 여인이 장영을 향해
덮쳐갔다.
"너는 누구냐?"
"우리 주군의 호위무사 구연경(具蓮京)이다!"
"비켜라! 계집이 나설 일이 아니다."
장영은 껄껄대고 웃었다.
"계집의 매운 맛을 봐라! 찔레에 가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구연경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허공으로
솟아올랐다가 장영에게 일검을 내리쳤다.
"하핫......!"
그러나 장영은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긴
창으로 구연경의 칼을 가볍게 막았다. 그리고는
구연경이 다시 일검을 내리치기 위해 칼을 들어올릴
때 창으로 구연경의 복부를 찔렀다.
"윽!"
구연경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창이 한 번 번뜩이는가 싶었는데 어느 사이에
구연경의 복부를 깊숙이 찌른 것이다.
"쳐라!"
할저가 구연경이 당하는 것을 보고 이빨을 갈았다.
"예!"
할저의 호위무사들이 일제히 장영을 향해 덮쳤다.
장영은 구연경의 복부에서 창을 뽑아 할저의
호위무사들과 부딪쳤다. 할저의 호위무사들은
무림인들이었다. 장영이 용맹한 대장군이었으나
호위무사들이 12명이나 되어 막상막하를 이루었다.
"할저야!"
장영은 호위무사들과 싸우면서도 틈만 벌어지면
할저를 향해 달려갔다.
"내 칼을 받아라!"
그러나 그럴 때마다 호위무사들이 달려들어
가로막았다. 장영은 호위무사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할저를 죽이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장영은 그 생각을 하자 즉시 창을 던져 호위무사
하나를 꺼꾸러트리고 칼을 뽑았다.
장영도 무림의 고수였다.
장영이 검을 뽑자 무시무시한 살기가 폭사되었다.
"주군! 우리가 먼저 피해야 하겠습니다!"
장영의 검기가 폭사되자 흠칫한 할저의 호위무사
하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알았다!"
할저는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할저야! 어디를 도망가느냐?"
장영은 재빨리 할저를 뒤쫓았다. 그러자 할저가
말머리를 돌려 장영을 노려보았다. 할저의 눈에서도
무시무시한 살광이 쏟아지고 있었다.
"장영! 그냥 떠나려고 했는데 네 놈을 죽이고
가야겠다!"
할저가 등에서 칼을 뽑았다. 그러자 할저의
검에서도 싸늘한 검기가 쏟아졌다.
"네 놈도 무공을 할 줄 아느냐?"
"흥! 장차 화근이 될 싹이라면 미리 자르겠다!"
할저는 칼을 비스듬히 겨누고 달려왔다. 그러자
장영은 허공으로 솟구치며 할저의 칼을 가볍게 피한
뒤 머리 위에서 창을 꽂듯이 검을 내리꽂았다. 할저는
어깨를 뒤로 눕혀 장영의 일검을 피한 뒤 칼을
휘두르며 장영을 압박해 들어갔다. 할저의 칼에서
검영(儉影)이 어지럽게 펼쳐졌다.
"음......"
장영은 짧게 신음을 토했다.
할저의 검법도 이미 달인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검영이 장영의 눈앞에서 춤을 추더니 싸늘한 검기가
순식간에 장영의 눈을 겨냥하고 찔러왔다.
"제법이구나!"
장영은 크게 소리치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천무일식!"
그리고는 낭랑하게 일성을 터뜨리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싸늘한 검기가 할저의
검영을 뚫고 할저의 몸을 두 조각으로 갈라버릴 듯한
기세로 덮쳐왔다.
"앗!"
할저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일장이나 뒤로 물러섰다.
"어디로 가려느냐?"
그러나 장영은 할저가 뒤로 물러설 것을 알고
있었기나 하듯이 허공에서 회전을 하여 할저의 머리를
내려쳤다.
(아......!)
할저는 눈을 감았다.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장영의 검은 그의 머리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내리쳐
오고 있었다.
"아버지!"
그때 할저의 아들 철리특이 할저의 위험을 발견하고
몸을 날렸다.
"으아악!"
장영의 칼은 철리특의 몸에서 피보라를 일으켰다.
할저는 그 틈을 노려 재빨리 허공으로 솟구쳤다.
"할저! 너를 살려 보내지 않겠다!"
장영은 철리특의 피가 얼굴로 튀었으나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할저의 뒤를 쫓았다. 할저가 달아나면서
암기를 날렸으나 장영이 칼을 휘두르자 암기는 우수수
떨어졌다.
(역시 대단한 놈이군!)
할저는 모골이 송연했다. 어쩌면 이 곳에서 장영의
칼에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장영은 아수라처럼 할저를 쫓고 있었다.
"끈질긴 놈!"
할저는 돌아서서 장영을 향해 일검을 날렸다.
"기다렸다!"
장영이 할저의 검을 피하고 일검을 후려쳤다.
그러자 싸 하는 파공성이 들리면서 어깨가 화끈했다.
(아!)
할저는 눈앞이 캄캄해 왔다. 장영의 일검이 그의
왼쪽 어깨를 후려친 것이다. 어깨에서 뜨거운 선혈이
솟구치며 왼팔이 땅으로 떨어졌다. 할저는 재빨리
왼쪽 팔을 지혈했다. 그 순간 장영의 칼이 숨돌릴
틈도 없이 할저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끝장이다!)
할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할저의 다른 아들
삭괄이 장영의 뒤에서 공격을 하여 장영은 할저의
머리를 베려던 검을 거두어 등뒤의 삭괄을 공격했다.
"으아악!"
다시 처절한 비명소리가 어둠 속에서 메아리치며
삭괄의 몸을 두쪽 냈다.
(무서운 놈!)
할저는 그 틈을 노려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장영이 뒤쫓으려 하자 호위무사들이 필사적으로
장영을 가로막았다.
"장영! 이 칼을 먼저 받아라!"
장영은 주춤했다.
(이 놈들을 죽이지 않으면 할저를 제거할 수
없겠군......!)
장영은 할저의 호위무사들을 모조리 죽여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할저의 호위무사들은 한결
같이 절정고수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장영을 가로막고 있었다.
(할저는 운이 좋은 놈이군......)
장영은 탄식을 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장영이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강호를
유랑하다가 처가(妻家)인 백력(伯力:하바로프스크
일대)에 이르렀을 때였다. 강호를 유랑한 지 1년이
지났으므로 아내와 아들이 처가에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장영은 처가에서 아내와 아들이 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홀한성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인선황제의 명에 의해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인선황제가 내 아내를 죽였으니 이는 내 원수다!)
장영은 아내의 무덤 앞에서 이를 갈았다.
인선황제의 명으로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이 아내를
처형했으나 홀한성 밖 마련하 부근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장영은 인선황제를 자격(刺擊:암살)하기로 했다.
비록 한때는 충성을 바치던 임금이었으나 이제는
원수였다.
장영은 인선황제를 자격할 기회를 노리기 위해 매일
같이 황궁 주위를 서성거렸다.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는다고
하늘을 원망하겠는가
아비가 방탕하다고
아비를 죽이겠는가
그때 장영은 이상한 노래소리를 들었다. 노래의
가사가 이상하게 그의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누구지?)
장영은 저자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소녀를
보았다. 소녀는 뜻밖에 12, 3세 밖에 되지 않는
소녀였다. 그러나 치렁치렁한 머리에 샛별처럼 빛나는
눈은 예사로운 소녀 같지 않았다.
장영은 소녀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소녀의
노래가 마치 자신을 두고 만들어진 것 같아서였다.
"너는 누구냐?"
인적이 없는 곳에 이르자 장영은 소녀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러자 소녀가 걸음을 멈추고 장영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미동예요."
소녀가 햇살처럼 밝게 웃으며 대꾸했다.
"미동?"
장영은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소녀의 얼굴이
낯익은 듯 했다.
"어째서 그런 노래를 부르고 다니느냐?"
"장군님을 위해서요."
"나를 위해?"
"황제를 자격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 나라가
어디 황제 때문에 어지러운가요?"
"무슨 소리냐?"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임금 때문이 아니라
백성들이 사치한 까닭이래요."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느냐?"
"천부비록에 있어요."
"천부비록? 그럼 너는 백인걸 대장군의 전인이냐?"
"네."
소녀가 비로소 장영을 향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소녀는 백인걸 대장군의 손녀였다. 장영은 미동을
통해 백인걸이 죽은 까닭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것도 알았다.
천기(天機)까지 살피는 백인걸은 죽음을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으나 천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맞아들였다고 했다. 백인걸의 손녀인 미동이
그 말을 했을 때 장영은 비통함을 달랠 수가 없어서
소리 내어 울었다.
인선황제를 죽이면 발해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거란이 침략을 해온다면 발해는
멸망하게 된다. 아내를 죽였다고 해서 인선황제를
죽일 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장영은 비통함을 달랠 수가
없었다.
미동의 이름은 백초란(白草蘭)이었다.
백초란도 백인걸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울면서 백인걸에게 매달려 멀리 떠나자고
했으나 백인걸은 하늘의 뜻이니 거역할 수 없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백초란은 백인걸이 인선황제에게 처형당하자
홀한해를 떠나 장백산으로 갔다가 1년만에 홀한해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홀한성에서 장영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백초란은 다시 장백산으로 가고 장영은 강호를
유랑하였다. 그리고 장영은 할저가 도망을 쳤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죽이기 위해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할저는 부하 호위무사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장영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피가 흐르는 왼쪽
팔을 움켜쥐고 호위무사 하나와 함께 이십 리를
달려서야 가까스로 숨을 돌리고 쉬었다.
"주군. 좀 어떠십니까?"
호위무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할저의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장영의 검에 팔이 잘려진 할저의
어깨에서 계속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할저가
혈맥을 막아 지혈을 했으나 정신없이 달리는 바람에
혈맥이 터졌던 것이다.
"장영은 무서운 놈이다!"
할저는 창백한 얼굴로 이를 갈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의식이 희미했다. 상처의 고통도 극심하여 그의
얼굴에서는 진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피가 흐르는데 지혈이 안된 것 같습니다."
"망을 봐라!"
할저는 호위무사에게 망을 보게 하고 혈맥을 막은
뒤 옷을 찢어 상처를 싸맸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했다. 그때 따가닥 거리는
말발굽소리가 또 들려왔다.
"누가 오지 않느냐?"
할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장영입니다!"
"피하자!"
할저는 부하와 함께 재빨리 숲으로 몸을 숨겼다.
장영은 할저의 부하들을 모조리 죽이고 말을 타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그의 몸이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지옥의 야차(夜叉) 같았다.
(지독한 놈!)
할저는 큰길을 피해 오솔길로 계속 달렸다. 장영과
싸울 때 말을 챙기지 못해 발이 부르트고 어깨의
상처는 쑤셔왔다. 할저는 이를 악물고 또 다시 삼십
리를 정신없이 달렸다.
"불빛이 보입니다."
할저의 부하가 이름 모를 산기슭에 있는 오두막집을
발견했다. 할저도 나무 뒤에 숨어 오두막집을
살펴보았다. 오두막집은 어둠 속에서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정탐해라!"
할저는 부하를 오두막집으로 보내 살피게 했다.
"예."
할저의 부하가 어둠 속을 더듬어 오두막집으로
달려갔다. 할저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사냥꾼의 오두막입니다. 발해인들 밑에서 종노릇을
하다가 도망친 젊은 부부입니다."
이내 할저의 부하가 되돌아와서 보고했다.
"그럼 가서 쉬자!"
할저는 부하와 함께 오두막집으로 들어갔다. 부하의
말대로 오두막집에는 젊은 부부밖에 없었다. 할저는
그들에게 밥을 짓게 한 뒤 다시 상처를 치료했다.
그리고 밖에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불을 끄게
했다.
날이 밝았다.
할저는 오두막에 사는 부부를 불렀다. 할저의
부하는 할저가 사냥꾼 부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할저는 사냥꾼 부부가
가까이 오자 칼을 뽑았다.
"대, 대인!"
사냥꾼 부부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대들은 나를 위해 죽어 주어야 하겠다!"
"대인 저희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러십니까?"
"잘못은 없다. 허나 추격자가 당도하면 우리가 여기
들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죽어 주어야
하겠다!"
"대인 살려주십시오!"
할저는 무릎을 꿇고 사정을 하는 사냥꾼 부부의
목을 냉정하게 잘랐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칼에 묻은 피를 닦으며 짚으로 덮어서
위장하라고 부하에게 지시했다.
(무서운 사람이군......)
할저의 부하는 진저리를 쳤다. 도와준 사람에게
감사는 하지 못할 망정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목을 베는 비정함에 소름이 끼쳤다.
장영이 그곳에 당도한 것은 오시 때가 되었을
때였다. 그는 짚으로 가려져 있는 젊은 부부의 시체를
찾아내고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잔인한 놈이군.)
장영은 할저가 달아났을 것으로 추측되는
모란강쪽을 쳐다보며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할저를 추격하는 일이 결코 수월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할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장영은 할저가 달아났을 것으로 추측되는
모란강쪽으로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19. 야율 아보기
할저는 장영의 추적을 피하며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장영은 발해의 조정에 죄를 짓고 숨어 있는
처지인데도 악귀처럼 집요하게 할저를 추적해 오고
있었다. 게다가 발해의 관군도 할저를 추적했다.
할저는 발해의 주요 관문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관문 통과는 손쉬웠다. 관문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 장영의 눈을 피하는 것이었다.
할저가 발해와 거란의 국경인 통하(通河)에 이른
것은 한겨울인 11월이었다. 할저가 홀한성을 떠난 지
열 하루째가 되는 날이었다. 모란강 상류인 통하
유역은 이미 매서운 추위가 닥치고 있었다. 낮에는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으나 밤에는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몰아쳐 왔다. 추위에는 어느
정도 이력이 난 할저였으나 남하하는 사백력의 추위는
끔찍했다.
그러나 통하는 아직 얼어붙지 않고 있었다. 통하가
얼어붙어야만 걸어서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발해와 거란의 유일한 뱃길인 통하의 나루를
건너야 했다.
통하의 큰 나루는 발해의 국경수비대가 지키고 있을
터였다. 할저는 발해인과 거란인들이 밀무역을 하는
작은 나루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장영이 나루를
지키고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할저의 예상대로였다.
할저가 부하와 함께 통하의 작은 나루가 있는
사평촌에 이르자 며칠 전부터 작은 나루에 검 한
자루를 들고 있는 무사 한 사람이 오가는 사람을
살피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할저가 장사꾼들에게
무사의 인상착의를 물어보자 장영이 틀림없었다.
(끝까지 나를 추적하는군.......!)
할저는 가슴이 서늘해 왔다.
(내가 살아서 돌아가려면 계책을 써야
하겠어......)
할저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장영 같은 사나운
장수를 대적하려면 계략을 이용해야 했다.
할저는 정리부(整利府:요북지역의 거란 국경)
통하현의 한 농가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부하를 시켜
문방사우를 사오게 한 뒤 발해의 군사지도를 대략
필사했다. 이어서 보름에 걸쳐 책 한 권을 지은 뒤
겉에 <天府秘錄>이라고 썼다.
"천부비록이 무슨 책입니까?"
할저의 부하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우리의 목숨을 살려줄 책이다."
교활한 할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모처럼 통쾌하게
웃었다.
며칠후 정리부 통하현에 위장귀순한 할저와 그
부하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두 구의
시체를 발견한 사냥꾼은 시체의 품속에 발해의
군사지도와 천부비록이라는 책이 있다고 하여 통하현
현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시체는 어디 있느냐?"
통하현 현승은 사안이 중대하여 늙수그레한
사냥꾼을 직접 심문했다.
"상지현으로 넘어가는 운풍산(雲風山) 골짜기에
있사옵니다."
"길을 안내하라!"
통하현 현승은 사냥꾼을 앞세우고 운풍산을 향해
말을 몰아 달려갔다. 운풍산은 통하현과 상지현을
잇는 길목으로 산의 오른쪽에는 전나무숲이 빽빽하고
왼쪽에는 상수리나무숲이 빽빽하여 통하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음!"
통하현 현승은 시체가 있는 곳에 이르자 낮게
신음부터 삼켰다. 두 구의 시체는 빽빽한 전나무숲
아래 버려져 있었다. 한 구는 팔이 하나 없었고 또
하나의 시체는 이리떼에게 물어 뜯겼는지 온 몸이
피투성이었다. 외팔이의 품속을 뒤지자 사냥꾼이
말한대로 발해의 군사지도와 천부비록이라는 책이
들어 있었다.
"거란의 세작이 틀림없다!"
통하현 현승은 두 구의 시체를 통하현으로 끌고
가게 했다. 그는 할저를 한 번도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시체의 진위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다만
시체에서 발해의 군사지도와 천부비록이 나왔기
때문에 할저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거란의 세작들이 통하현 운풍산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통하현에 파다하게
퍼졌다. 통하현 사람들은 입을 모아서 거란의 세작이
늑대에게 물려 죽었으며 시체의 품속에서 발해의
군사지도와 천부비록이 나왔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통하현의 사평나루를 지키고 있던 장영도 장사치들의
입을 통해 그 소문을 들었다.
(그렇다면 할저가 발해의 보물인 천부비록까지 갖고
있었다는 말인가......)
장영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천부비록은 발해의 보물이다. 그 책이 어떻게
할저의 손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으나 사실이라면
함부로 돌아다니게 할 수 없다. 그 책은 발해를
상징하는 책이 아닌가.....?)
장영은 그 생각을 하자 즉시 나루터를 떠났다.
장영은 통하현 현청으로 달려가서 천부비록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할저는 강가에 숨어서 장영이 떠난 것을 확인한
뒤에야 배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는 뱃사공에게 황금
덩어리 하나를 주고 통하강을 건너는 나룻배에
올라탔다.
(장영! 이 원수는 기필코 갚아 주겠다!)
할저는 차가운 강바람이 불어오는 나룻배 위에서
점점 멀어지는 발해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강바람은 살을 에일 듯이 추웠다. 그러나 할저의
마음은 더욱 비통했다. 그는 장영에게 두 아들을
잃었으며 팔까지 잃었던 것이다. 임소홍을 이용해
발해의 국정을 어지럽게 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팔과 두 아들을 잃었던
것이다.
할저는 통하강을 건넌 뒤 닷새가 되어서야 요의
상도(上都:수도)인 한성(漢城:興安西城)에 도착했다.
야율 아보기는 그를 정중하게 맞이했다.
"황숙! 고생이 많으셨소."
"폐하의 성려로 미천한 소신이 간신히 살아
돌아왔습니다."
할저는 아보기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황숙! 고정하시오."
아보기가 할저를 위로했다.
"황공하옵니다."
"그래 발해의 군세는 어떻소?"
"발해는 피폐하여 더 이상 국가를 유지할 수가
없사옵니다."
"발해의 황제가 황음하오?"
"그러하옵니다."
"미인계가 성공하였군......"
야율 아보기는 흐뭇하여 미소를 지었다.
"그러하옵니다. 발해인 셋이 모이면 호랑이를
잡는다는 상무(尙武)의 기풍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조정은 두 파로 갈리었으며 백성들은 조정을 따르지
않고 있사옵니다."
"허면 동정(東征)을 하면 성공하겠는가?"
"신에게 선봉을 맡겨 주십시오. 신이 발해에서
잃어버린 두 아들의 원수를 갚겠사옵니다."
할저는 비통한 목소리로 선봉을 맡겨줄 것을
아보기에게 청원했다.
"알았소! 동정을 하게 되면 반드시 황숙을 선봉에
세우겠소."
야율 아보기는 굳게 약속을 했다. 그러나 신중한
야율 아보기는 할저의 보고를 받고도 군사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할저가 모반을 일으키려 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야율 아보기는 먼저 3만의 군사를 일으켜 발해를
공격하도록 했다. 발해의 군사력을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었다.
야율 아보기의 명령을 받은 거란군은 질풍처럼
발해를 공격했다. 그들이 공격을 한 것은 부여부의
부여성이었다. 부여성에는 도독 왕문구가 병권을
장악하여 수비하고 있었는데 120사의 하나인 부여사의
대장군 정배달은 왕문구의 눈에 벗어나 대장군 직위를
박탈당하고 홀한성에 돌아가 있었다.
야율 아보기의 3만 군사는 질풍처럼 초원을 달려와
부여성을 에워쌌다. 그리고 맹렬한 공격을 퍼부어
부여성을 무너뜨리고 부여부를 접수했다.
부여사의 1만 군사는 거란의 3만 군사와 맞붙어
사흘 동안이나 치열한 전투를 했다. 그러나 지휘관을
잃어버린 부여사의 1만 병사는 악전고투를 하면서
버티다가 전원이 장렬한 전사를 했다.
"발해의 부여부에 불을 질러라! 집이라는 집은 한
채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태워라!"
부여성을 점령한 거란군은 피의 보복을 하기
시작했다. 부여부는 거란인들의 만행으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발해인들의 재물을 남김없이 취하라!"
거란군은 닥치는대로 부여부의 성민들을 학살하고
재물을 약탈했다. 부여부의 집들이 불길에 휩싸이고
잿더미가 되어갔다.
"거란의 용맹한 군사들아! 발해의 계집은 모두
너희들의 것이다!"
발해의 부녀자들은 거란군에게 이리저리 ㅉ기다가
겁탈을 당했다. 부여부의 곳곳에서 집들이 불타고
부녀자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지를 않았다.
"으하핫......이 계집은 내 것이다!"
"에그머니!"
"도망을 가야 어디로 가느냐? 사나이들 중의 사나이
거란의 용사가 왔다!"
거란군은 닥치는대로 부녀자들을 겁탈한 뒤에
부녀자들을 발가벗긴 채 창으로 찔러 죽였다.
"금수만도 못한 놈들아!
"이 계집이 어디서 발악이야?"
"으악!"
부여부는 거란군의 약탈과 방화, 살인과 겁탈로
지옥으로 변했다.
그러나 거란군은 부여부에서 더 이상 발해의 영토를
침입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발해가 대군을 동원하여
거란과 사활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이려고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부여부에 대한 침략은 발해의
예기(銳氣)를 꺾으려는 전략에 지나지 않았다.
부여부가 요에 함락되었다는 다급한 파발은 열흘이
지나서야 홀한성에 도착했다.
홀한성은 벌집을 쑤신 듯이 들끓었다. 인선황제는
어림청에서 은퇴해 있는 원로대신들까지 불러 모아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공론이 없었다. 당장 군사를
일으켜 요를 정벌해야 한다는 지부대신 이도종과
전쟁을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니 요에게 화친을 청해
조공을 바치는 것이 현명하다는 정당성 대내상
장문일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붙었다. 조정의 대신들도
두 패로 갈리어 대립했다. 인선황제는 어떤 주장을
따를지 알 수 없어 안절부절하면서 날을 보냈다.
"요와 전쟁을 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이때 임소홍이 대내상 장문일의 의견이 가하다고
인선황제에게 말했다.
"부여부가 거란놈들에게 함락되지 않았느냐?"
"요는 강대국이옵니다."
"허면 어찌해야 되겠느냐?"
"요 나라를 상국(上國)으로 섬기고 해마다
조공(朝貢)을 바치면 전쟁을 피할 수 있는데 굳이
전쟁을 하여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사옵니다. 요는
이미 몽골을 통일했기 때문에 한 번 군사를 일으키면
군사가 30만에서 50만에 이르니 발해가 대적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요가 그렇게 강대하다는 말이냐?"
"요는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신흥제국입니다.
군마는 하루에 백리를 달리고 군사들이 사나워
닥치는대로 살상을 한다고 합니다."
인선황제는 임소홍의 말에 겁이 덜컥 났으나 거란을
상국으로 섬기고 조공을 바칠 수는 없었다.
"그것은 황제로서 차마 할 일이 아니다."
인선황제는 임소홍의 말을 거절했다.
"허면 어찌 하시렵니까?"
"글쎄......."
"대군을 일으켜 요와 전쟁을 하시렵니까?"
"......."
인선황제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 이리 하십시오."
"어떻게?"
"요가 부여성을 함락시키고 홀한성으로 쳐들어 올
기세면 맞서 싸우십시오. 그러나 부여성을 함락하고
그냥 거란으로 돌아가면 굳이 대군을 일으킬 필요가
없습니다. 발해가 대군을 일으키면 요는 발해가
전쟁을 하려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대군으로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십중팔구는 발해는
요에게 짓밟힐 것입니다."
"음....."
인선황제는 무겁게 신음을 삼켰다. 임소홍의 말대로
요가 부여부를 침공한 것으로 만족하고 그냥
돌아간다면 굳이 요와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부여부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겠지만 지천에 널린
것이 백성들인 것이다.
인선황제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요에게 조공도
바치지 않고 전쟁도 하지 않는다는 교시를 내렸다.
그리고 장문일을 시켜 거란군에게 부여부에서 속히
물러가라는 서신을 쓰게 했다.
(황제가 겁을 잔뜩 집어먹었군. 계집의
치맛자락에서 아침을 맞이하니 오죽하겠어?)
인선황제의 교시가 내리자 이도종은 분개했다.
그러나 장문일은 즉시 부여부에 있는 거란군에게
국서를 보내 부여부를 침공한 것은 이웃 나라의
정리로 옳지 않으니 부여부에서 철군만 하면 없던
일로 하겠다는 서찰을 보냈다.
부여부를 점령한 거란군은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부여부의 성민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들여 요양(遼陽:현재의 요령성)으로 끌고 갔다.
................................................
1) 거란이 부여를 침략하여 주민들을 납치해 간
것은 919년의 일이었다.
20. 멀고 먼 유형(流刑)의 길
부여부에서 서쪽으로 1백리 떨어진 허허벌판.
눈이 하얗게 쌓인 은색의 벌판에 수많은 기치창검이
번쩍이며 오고 없었다. 그들은 발해의 부여부를
공략한 뒤에 전리품으로 발해 유민을 끌고 가는
거란군의 행렬이었다.
"서둘러! 빨리빨리 움직이라구!"
거란군은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걸음이 느린 발해
유민들에게 사정없이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발해
유민들은 거란군의 채찍을 맞으며 길고 긴 유형의
길에 올랐다. 10세기 전후의 정복전쟁이 으레
그러하듯이 발해의 부여부를 침략한 거란군은
전리품으로 발해의 백성들을 끌고 가고 있었다.
부여부에는 선주(宣州), 부주(附州)의 2개 주와 7개
현이 있었다. 부여부는 옛날 부여국이 위치했던
자리로 사방 5백리나 되는 광대한 지역이었다.
거란군은 이들 지역의 발해인들을 요양으로
이주시켜 고착시킬 작정이었다. 발해의 군사 요충인
부여부를 무력화시키고 발해인들을 요의 영토 깊숙이
이주시켜 요의 백성으로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물론
요의 백성이라고 해야 가장 비천한 신분인 노예로서의
백성이었다.
엄동설한이었다.
삭풍은 눈가루를 날리며 매섭게 휘몰아쳤다.
발해인들은 추위와 거란군의 채찍으로 차츰차츰
죽어갔다. 밤에는 기온이 영하 20도를 넘는 혹한이
계속되었다. 발해인들은 동사자(凍死者)가 늘어갔다.
등에는 간단한 땟거리를 끓여 먹을 솥단지와
이부자리를 둘러메고 있었으나 남루한 차림이었다.
거란군은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그들을 강제로
인도했다.
부여부를 떠난 지 닷새 그들은 마침내
이수강(利水江)에 이르렀다. 이수강도 혹한으로 꽁꽁
얼어 있었다.
아화는 얼어붙은 강을 비틀거리며 걸었다. 동상에
걸린 발가락과 귓바퀴가 화끈거렸다. 아버지
가의(嘉儀)가 거란군이 침략할 때 부여성에서
전사하고, 어머니가 거란군에게 겁탈을 당하여 죽은
뒤 아화는 소사온과 함께 거란군에게 잡혀 요양으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아화는 어느덧 열 일곱 살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말갈인이었고 어머니는 신라인이었다.
아버지가 신라로 장사를 하러 갔다가 어머니를 만나
발해로 데리고 와 어머니도 발해인이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것이 20년 전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거란군과 싸우다가 죽고 어머니는
거란군에게 겁탈을 당한 뒤에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춥지?"
소사온이 아화의 옆으로 바짝 붙어서며 말했다.
"괜찮아."
아화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머니가
비참하게 죽은 일을 생각하자 또 다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거란군이 채찍질을 해댔기 때문에
어머니의 시체를 땅에 묻지도 못하고 떠나온 것이
가슴 아팠다.
"돌아오면 원수를 갚아야 해."
소사온이 눈을 부릅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거란놈들 탓이야!"
소사온의 말에 아화는 또 다시 눈물이 솟아 나왔다.
아버지의 전사, 어머니의 죽음이 거짓말 같기만 했다.
거란군이 침략만 하지 않았다면 아화의 가족은 사슴
사냥을 하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을 것이었다.
부여부에는 사슴이 유난히 많았다. 많은 부여인들이
사슴 사냥을 하여 고기는 먹고 가죽은 당 나라와
신라에 팔았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아화는 눈물에 젖은 눈으로 먼 허공을 쳐다보았다.
겨울 하늘이 윤기 하나 없이 푸르렀다.
"요 나라로 끌고 가는 거지....."
소사온이 침을 칵 뱉았다.
(내가 홀한성에서 무예를 배운 것은 이럴 때
써먹으라고 배운 것이 아닌가?)
아화는 거란군에게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체포된 자신이 미욱스러웠다.
그날 밤이었다. 거란군은 평원에서 야영을 했다.
군데군데 모닥불을 피우고 군막을 쳤다. 포로들은
군막도 없이 들판에 쓰러져 잠을 잤다. 차가운
땅바닥에 마른풀을 주워 깐 뒤에 저마다 꾸려온
이불보따리를 펴고 잠을 청했다. 아화도 소사온과
함께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다.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별들도 추위에
떠는지 옹숭거리고 있었다.
아화는 잠을 설쳤다. 하루종일 걸어서 발바닥이
부르트고 동상에 걸린 발가락이 간지러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차가운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 이불
속으로 스며드는 찬바람에 턱이 덜덜 떨렸다.
아화는 새벽녘에야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러나 금세
잠에서 깨어났다.
주위가 어수선하여 눈을 뜨자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아화는 두
눈을 비볐다.
"왜 그래?"
아화는 소사온을 보고 졸리운 눈으로 물었다.
"누가 도망을 치려고 그랬나봐."
소사온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소사온은 벌써
일어나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화는 그때서야 동쪽
하늘이 부옇게 밝아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란군의 말발굽소리가 다시 요란하게 들리더니 한
떼의 군사들이 달려왔다. 군사들의 뒤에는 손발이
꽁꽁 묶인 발해인 포로가 끌려오고 있었다.
소사온은 일어나서 거란군에게 끌려온 발해인들을
쳐다보았다. 거란군은 발해인 포로를 군막 앞에
내팽개쳤다. 발해인들은 이미 피투성이었다.
"뭐냐?"
군막에서 갑옷을 입은 장수가 나왔다. 그는 키가
7척이나 되는 거한이었다.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달아나는 자는 가차없이 목을 벤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텐데도 달아나려고 했다는 말이냐?"
"예!"
"포로들이 보는 앞에서 탈출자들을 죽여라!"
"예!"
장수의 명령에 군사들이 칼을 뽑아 들었다. 발해인
포로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발해인 포로들을 소집할 필요는 없었다. 발해인
포로들은 이미 그 소란에 모두 군막 앞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잘 보아라! 달아나는 자는 누구던지 살려두지
않는다!"
요의 군사들이 발해인 포로들에게 엄포를 놓은 뒤
발해인 포로를 향해 반월도를 내리쳤다. 그러자
발해인 포로의 몸에서 붉은 선혈이 솟구쳤다.
아화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발해인 두 포로의 입에서
짧은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 그들의 몸뚱이가
땅바닥에 뒹굴었다.
"잔인한 놈들!"
소사온이 주먹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었다.
발해인들이 쓰러진 땅바닥으로 선혈이 낭자하게
흘렀다. 발해인 포로들은 그때서야 하나 둘 흩어졌다.
발해인 포로들은 붉은 아침해가 떠오르자 아침을
지어먹고 다시 출발했다.
"나는 요 나라에 끌려가기 전에 탈출할 거야."
소사온은 거란군의 감시를 피해 아화에게 속삭였다.
"안돼. 위험해!"
"걱정하지 마. 여기서 50리만 더 가면
미농산(美農山)이 나와. 전에 아버지와 사냥을 갔었기
때문에 잘 알아. 산에 숲이 울창하기 때문에 달아나면
아무도 찾지 못해."
"잘못하면 죽어!"
아화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소사온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소사온의 얼굴엔 단호한
결심이 서려 있었다.
"걱정하지 마. 끌려가서 개죽음을 하나 달아나다가
죽으나 마찬가지야."
"그럼 나는 어떻게 해?"
"너두 데리고 갈께."
아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소사온의 말대로 탈출을
해야 했다. 그러나 수많은 거란군사들의 눈을 피해
탈출을 하는 것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닐 터였다.
이수강을 건너자 평원이 나타났다. 허리까지 자란
쑥대밭이 강가에 길게 펼쳐져 있었다. 거란군은
평원으로 행군을 하기 전에 쑥대밭에 불을 놓고
발해인들을 쉬게 했다. 동상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탓에 포로들이지만 몸을 녹이게 할 필요가
있었다.
이내 불길이 쑥대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발해인들은 재빨리 불길로 달려가 몸을 녹였다.
거란군은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포로들을 감시했다.
오후가 되자 하늘이 잿빛이 되었다. 눈발이라도
날리려는 것일까. 날씨도 한결 포근해져 있었다.
소사온의 말대로 거란군은 미농산에 이르러 산자락
밑에 야영을 했다. 사방은 이미 어둑어둑했고 숲은
하늘을 찌를 듯이 울창했다. 아화와 소사온은
거란군의 감시를 받으며 저녁을 끓여 먹었다. 좁쌀을
넣고 물을 부어 끓인 멀건 좁쌀죽이었다.
밤이 왔다.
멀리 벌판에서는 이따금 피에 굶주린 이리떼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화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그날 밤도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거란군사 하나가 아화에게 가까이 와서 이불을
들쳤다. 아화는 눈을 번쩍 뜨고 거란군사를
쳐다보았다.
"따라와!"
"왜요?"
아화는 불안하여 거란군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우리 장군께서 너를 찾고 있어!"
거란군이 아화의 팔을 우악스럽게 잡아끌었다.
거란군의 장군이 또 다시 아화를 유린하기 위해
부르는 모양이었다.
"소사온!"
아화는 겁먹은 표정으로 소사온을 쳐다보았다.
소사온이 일어나 있지 않으면 싶었다. 거란군
장군에게 유린당하는 꼴을 소사온에게만은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그러나 소사온은 눈을 뜨고 있었다. 소사온이
아화를 위로했으나 아화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모멸감을 느꼈다.
아화는 거란군에게 이끌려 어떤 군막으로 끌려
들어갔다. 군막에는 거란군의 장군이 침상에서 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화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화는 이미 거란의
그 장군에게 두 번이나 짐승처럼 유린을 당했었다.
전쟁은 여자들을 비참하게 만든다. 남자들은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부상을 하여 병신이
되기도 하지만 여자들은 겁탈을 당하여 누구의
씨인지도 모를 아이를 낳는 것이다.
거란군 장군의 군막은 겨울 파오(包)로 후끈거렸다.
밖에는 두터운 천이었고 안은 양털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군막 안에 군데군데 숯불을 놓아 뜨거운
열기가 치솟고 있었다.
거란의 장군은 아화가 들어오자 아화를 번쩍 안아서
침상 위에 눕혔다. 아화는 눈을 감았다. 이제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것뿐이었다.
거란군 장군이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음산하게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 소리에 섞여
간간이 늑대의 울음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아화는 자신이 늑대에게 물어뜯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화는 하체를 유린하는 고통 때문에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몸은 거란군 장군를 감당하기에는
아직도 어렸다. 이빨이 딱딱 부딪치고 하체가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에 정신이 아득해 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화가 눈을 뜨자 바람에
펄럭거리는 군막의 천자락 사이로 꽃잎처럼 하얀 눈이
송이송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거란의 장군은 아화의 옆에 누워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아화가 눈을 뜬것은 거란의
장군이 코를 고는 소리 때문인 모양이었다.
그때 검은 그림자가 군막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소사온이었다.
"소사온!"
아화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쉿!"
소사온은 군막 안으로 들어오자 재빨리 아화의 입을
틀어막고 소리지르지 말라는 신호를 했다.
아화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기서 달아나야 해. 군막 옆에서 번을 서던
병사들이 술을 마시러 갔어."
아화는 또 다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재빨리 옷을
주워 입었다.
"빨리 와!"
소사온이 군막 앞에서 손짓을 하며 아화를
재촉했다.
아화는 거란 장군의 군막을 빠져 나오려다가 침상
옆에 걸린 장검을 발견했다. 아화의 눈이 섬광처럼
번쩍 빛났다.
"왜 그래?"
"복수할 거야!"
아화는 침상 옆의 군막에 걸린 장검을 재빨리
뽑았다. 그러자 날이 시퍼런 칼날에서 싸늘한 검기가
아화의 얼굴로 뿜어졌다.
"아화!"
소사온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아화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소사온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아화는 거란
장군의 목을 향해 장검을 힘껏 내리쳤다.
"으....."
거란군 장군의 입에서 기이한 비명소리가
흘러나오면서 선혈이 왈칵 솟구쳤다. 아화는 역한
피비린내 때문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거란
장군의 목이 침상에서 굴러 떨어졌다.
"아화야 가자!"
소사온이 아화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아화는 황급히
소사온을 따라 군막을 나섰다. 소사온의 말대로 군막
앞에는 번을 서는 병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커다란 눈송이만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일 듯이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엎드려!"
소사온이 낮게 소리를 질렀다. 아화는 소사온의
손을 놓고 재빨리 엎드렸다. 군막 앞에서 번을 서던
병사는 보이지 않았으나 포로들이 웅크리고 잠을 자는
산비탈과 진(陣) 앞에는 거란군 병사들이 창을 들고
번을 서고 있었다.
아화와 소사온은 눈 속을 기어서 산으로 향했다. 산
속의 숲으로 달아나야만 거란군의 추격을 피할 수
있었다. 밤이 얼마나 되었는지 사방은 조용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눈송이만이 천지 사방에 가득했다.
"누구냐?"
그때 어디선가 거란군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들켰어!"
소사온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화도 따라서
일어났다.
"도망자들이다!"
"포로들이 도망간다!"
거란군 군사들이 외치는 소리에 이어 멀리서 거란군
군사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뛰어!"
소사온이 먼저 눈 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화도 소사온을 따라 허겁지겁 눈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오기
시작했다.
"소사온!"
아화는 어느 순간 짧게 비명을 질렀다. 화살 하나가
아화의 등에 박힌 것이다. 아화는 등이 화끈한 것을
느끼며 눈 위에 뒹굴었다.
"아화야!"
"소사온 먼저 가!"
아화는 등에서 맹렬한 통증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끼며 소사온에게 소리를 질렀다.
"안돼!"
"먼저 가라니까! 소사온 나는 틀렸어!"
아화는 소사온을 향해 울부짖었다.
"소사온이 내 원수를 갚아 줘!"
아화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사온은
입술을 깨물고 울다가 눈 속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거란군의 화살이 빗발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소사온. 잘가."
아화는 눈 속에 드러누웠다. 이내 눈 속을 달려오는
어지러운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거란군 군사들이
아화를 에워쌌다. 아화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죽은
시늉을 했다.
"이거 계집이군!"
"죽여 버려!"
"이미 죽었는데.......빨리 도망간 놈이나 쫓자구."
"그래. 화살을 맞고 죽은 모양이야!"
거란군이 무어라고 수군거리다가 아화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은 아직 거란의 장군이 죽은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화는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하늘에서는 오야꽃
같은 눈송이들이 아화를 향해 무수히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소사온 너를 사랑했어.......)
아화는 눈을 감으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
1) 919년 부여성을 공격한 거란인들은 많은 발해
주민들을 살해하고 약탈한 뒤에 포로들을 요양성으로
끌고 갔다. 포로는 민간인들을 말한다.
21. 피는 피로 갚는다
부여부 유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거란의
요양성으로 끌려가자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 지나고
해가 바뀌었다.
거란군이 부여부를 침략하여 일으킨 만행은
발해인들에게 커다란 분노와 충격을 안겨 주었다.
발해인들은 거란군이 부여부를 침략하여 불태우고
약탈과 학살을 일삼았는가 하면, 부민들을 대거
포로로 끌고 갔는데도 조정에서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자 조정을 원망했다.
지부대신 이도종은 기회 있을 때마다 요를 정벌할
것을 인선황제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발해의 최고
재상인 정당성의 대내상 장문일은 초원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신흥국가 요와 전쟁을 하는 것은
자멸하는 일이라며 군사를 일으키는 것을 반대했다.
두 대신은 어전에서까지 서로의 의견을 팽팽하게
주장했다. 장문일은 요가 침략을 해와도 발해의
군사력으로 방어하기가 쉽지 않은데 대군을 일으켜
요를 정벌하는 것은 기름을 지고 불섶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이도종은 군사를
일으키지 않으면 병기는 녹슬고 군사는 전쟁을
두려워하게 되어 막상 거란이 대군을 일으켜
쳐들어오면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요는 발해 조정이 우왕좌왕하자 마침내
서정(西征)을 결정했다. 요는 오래 전부터 서정을 할
계획이었으나 요가 서정을 하는 틈을 타서 발해가
공격을 해올까봐 서정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발해
조정의 의견 통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서정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A.D 924년. 요왕 야율 아보기는 대군을 일으켰다.
야율 아보기는 이 해 6월에 어전회의를 열어
거란군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는 황후와 황태자,
그리고 각 부의 대신들이 모인 어전에서 비장한
어조로 조서를 내렸다.
"짐은 대의로써 요의 충성스러운 신료들에게
고한다. 우리 요는 지금까지 천명을 받들고 너희
신료들의 충성에 힘입어 순조롭게 중원에 진출할 수
있었다. 안으로는 몽골 8부를 통일하고 영토를
중원까지 확장하였으니 이제 과인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허나 과인에게 아직 이루지 못한 소원이
두 가지 있으니 어찌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오늘
대의로써 서쪽 변방의 오랑캐들을 치고자 하니
그대들은 멸사봉공하라!"
야율 아보기는 손수 서정에 나섰다. 서정은 중국
서쪽에 대한 정벌을 말하는 것으로 아직까지 요에
굴복하지 않은 토혼(吐渾), 당항(黨項), 조복(阻卜)
등에 대한 정벌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미
아보기에 의해 정복되었으나 계속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아보기는 두 번째 정벌에 나선 것이었다.
아보기의 대군은 6월에 출정했다.
군사는 20만.
기치창검이 수십 리에 뻗치고 대오는 삼엄했다.
이도종은 요왕 아보기가 친히 대군을 이끌고
친정(親征)에 나서자 요를 응징할 것을 황제에게
간청했다. 요가 부여부를 침략한 이상 응징하지
않으면 서정이 끝나고 곧 바로 발해를 정벌하러 올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렇다. 부여부를 공격한 거란놈들을 응징하여야
한다!"
인선황제는 이도종의 끈질긴 설득에 마침내 거란을
공격해도 좋다는 승낙을 했다.
이도종은 인선황제의 승낙이 떨어지자 즉시 대군을
일으켰다.
발해는 삽시간에 전운에 휩싸였다. 발해의 수도인
홀한성으로 각 부(府)에서 군사들이 몰려오고 군량이
속속 도착했다. 발해 전역에 있는 120사와 10위도
군사를 이끌고 홀한성으로 몰려왔다.
이에 놀란 것은 장문일 일파였다. 홀한성 일대가
군사들의 기치창검으로 뒤덮이자 이도종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의혹에 사로잡혔다.
"폐하. 이도종에게 군사를 맡겨 요를 치는 것은
실로 위험한 일이옵니다."
장문일은 인선황제 앞에 엎드려 간했다.
"무엇이 위험하오?"
"이도종은 성품이 거만하기 짝이 없는 데다 생각이
짧은 무관이라 불손한 생각을 품을 수도 있사옵니다."
"흠."
인선황제도 곰곰이 생각하니 장문일의 주청이 옳은
것처럼 여겨졌다.
"허면 어찌하는 것이 좋겠소?"
"요를 치는 것은 크게 급한 일도 아니옵고 요가
신흥제국이라 서정을 하기에도 바쁜 처지이옵니다.
또한 요의 황제 아보기는 친히 서정길에 나서고
있어서 아국에 해될 바가 전혀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이러한 때를 노려 요를 치는 것은 오히려 요의 황제
아보기의 비위를 거스리는 바 되어 서정이 끝나면 그
핑계로 발해를 침략할까 우려되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소?"
"요의 황제 아보기는 오랫동안 서정을 하기 위해
군사를 양성하고 군량을 비축하여 그 기세가 자못
범과 같은 줄로 아옵니다. 이러한 때에 요를 치면
요는 서정을 하려던 군사를 되돌려서 아국을 침략할
지도 모르옵니다. 그러한 연유로 자칫 아국이
침략군에게 유린을 당할까 염려되옵니다."
"허면 요에게 조공을 바쳐야 하오?"
"어찌 원수인 요에게 조공을 바치겠사옵니까?"
"그러니 어찌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오?"
"군사를 일으키던 것을 중지하고 부여부 부여사를
지휘하던 정배걸 장군에게 약간의 군사를 주어
부여부를 유린한 거란의 요주를 공격케 하옵소서!"
"그것이 대군을 일으켜 요를 정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
인선황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군을 일으키면 요가 반드시 서정을 멈추고
아국을 공격해 올 것이나 정배걸 장군으로 하여금
요의 요주를 치면 부여부를 유린한 것에 대한
응징이라 여기고 이미 서정을 시작한 거란군은 철군을
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흠."
"게다가 아국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요에게 보여
주므로 요는 감히 아국을 침략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옵니다. 이는 일석이조의 계책이옵니다."
"과연 그렇소!"
주견이 없는 인선황제는 무릎을 치고 대군을
일으키던 것을 중지시켰다. 발해의 군사들은
홀한성까지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왔으나 갑자기
출정을 중지하고 돌아가라는 어명이 내리자
어리둥절했다.
특히 발해 10위의 대장군들과 120사의 장군들은
모처럼 녹슨 병기를 수리하고 군량을 모아 달려왔으나
느닷없이 돌아가라는 어명이 내리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명이기 때문에 장군들은 군사들을
인도하여 주둔지로 되돌아갔다.
"이런 요망한 늙은이 같으니!"
인선황제가 출병을 중지시키자 이도종은 대노했다.
그는 당장에 군사를 거느리고 장문일을 잡아죽이려고
했으나 제장들이 만류하는 바람에 간신히 참았다.
군사들이 돌아간 홀한성은 다시 평온해졌다.
다만 부여사를 지휘하던 대장군 정배걸 장군만이
1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총총히 부여부로 떠났다. 원래
요주를 공격하려면 중경두덕부를 지나 장령부
압록부를 지나야 했으나 부여부의 참상을 확인하기
위해 정배달 장군은 모란강을 건너 부여부로 향했다.
홀한성에서 부여부까지는 1천리 길이었다. 정배달
장군은 3월에 홀한성을 출발해 4월에 부여부에
도착했다.
(부여부가 이토록 황폐하다니.......)
부여부에 도착한 정배달 장군은 부여성에 진을
쳤으나 옛날의 번화한 모습은 간 곳 없이 황폐하여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성벽은 무너지고, 집들은 불에
타고, 인적이 없는 마을엔 들쥐 떼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튿날 정배달 장군은 요주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여부에서도 요주까지는 5백리나
떨어져 있었다. 4월에 부여부를 출발하여 5월에야
요주의 드넓은 땅에 이르렀다.
"듣거라!"
정배달 장군은 요주성 앞의 벌판에 둔병(屯兵)하고
병사들을 독전했다.
"예!"
병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우리는 오늘 요의 요주성을 친다. 너희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서 알겠으나 요는 지난해에 우리의
부여부를 침략하여 양민들을 학살하고 부여 땅을
폐허로 만들었다! 부여가 어떤 땅인가? 부여는 옛부터
우리의 땅이었고 우리의 영토였다. 고조선, 북부여,
대고구려......!자랑스러운 우리의 선조들이 지키고
가꿔온 성스러운 땅이다! 이러한 땅을 더러운 거란
오랑캐에게 짓밟혔으니 어찌 그냥 있겠는가?"
정배걸 장군의 목소리는 윤기없이 푸른 하늘을
찌렁찌렁 울렸다. 부여는 정배걸 장군의 말대로
선인(先人)들의 땅이었다. 조선을 개국한 단군(檀君)
왕검(王儉), 북부여의 해모수(解慕漱),
해부루(解夫婁), 동명성왕(東明聖王),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그들이 말을 타고
천군만마를 호령하며 민족의 기상을 드높인 땅이었다.
하늘에는 종달새가 울고 있었다.
군사들은 4열 횡대로 정렬하여 정배걸 장군의
독전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제 요를 치러 가니 제군들은 애국충정하겠는가?"
"예!"
"제군들은 나라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는가?"
"예!"
병사들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좋다! 그럼 나를 따라 전진한다!"
정배걸 장군은 말 위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격고(擊鼓)!"
"격고"
정배걸 장군이 소리 높여 외치자 부장들이 일제히
복창했다. 그러자 북소리가 둥둥 울리고 깃발이 높이
솟았다.
"진군!"
"진군!"
군사들은 북소리에 맞추어 진군하기 시작했다.
거란군도 요주성 앞에 나와 둔병하고 있었다.
"돌격!"
"돌격!"
정배걸 장군의 돌격 명령이 떨어지자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발해의 군사들은 거란군을 향해
질풍처럼 달려갔다. 북소리가 빨라지고 말발굽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정배걸 장군의 군사는 모두
기병이었고 거란군도 기병이었다.
그들은 초원에서 맞부딪쳤다.
전투는 정배걸 장군의 군사들이 단연 우세했다.
정배걸 장군은 노련한 장수였고 그가 홀한성에서
부여부까지 오면서 틈틈이 훈련을 한 결과 군사들은
누구보다도 용맹했다. 게다가 발해인 셋이 모이면
호랑이를 잡는다는 씩씩한 상무의 기풍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모조리 도륙해라!"
"거란은 옛날부터 우리의 원수였다!"
정배걸 장군은 처절한 백병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누비며 거란군을 쳐죽이는가 하면
발해군사들을 독전하여 용기를 북돋웠다. 거란군은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요주의 초원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여갔다.
게다가 거란의 요주 자사 장수실이 발해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하자 거란군은 전의(戰意)를 잃고 낙엽처럼
쓰러져갔다.
거란군은 마침내 막대한 사상자를 남기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추격해라!"
"거란놈들을 씨도 남기지 마라!"
발해군은 도주하는 거란군을 추격하여 전멸 상태에
빠트렸다. 발해군의 완전한 승리였다.
"만세!"
"만세!"
발해군사들은 거란군이 무수한 시체를 남기고
달아나자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다.
"피는 피로 갚아라! 거란놈들이 우리 부여부의
백성들을 도륙했으니 너희들이 원수를 갚아라!"
정배걸 장군은 군사들에게 거란의 요주를 마음껏
농락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거란군이 두 번 다시
발해를 침략하지 못하도록 철처한 응징을 하기
위해서였다.
발해군사들은 신명이 나서 요주의 거란인들을
짓밟았다. 재물은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유린했다.
정배걸 장군은 거란의 요주를 정복한 뒤에 조정으로
승전보를 알렸다. 발해 조정에서는 정배걸 장군의
승전보를 받자 희희낙락했다.
"폐하! 정배걸 장군이 거란의 요주를 공격하여
함락했다고 하옵니다!"
"오! 장한지고!"
인선황제는 감격했다. 대내상 장문일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배걸 장군을 부여부 도독으로 임명하고
철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거란군과의 더 이상의
충돌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배걸 장군은
요주성에서 포로들을 나포하고 재물을 전리품으로
노획했다. 그리고 거란군이 돌아와서 성을 복구하지
못하도록 민가를 불태우고 부여부로 개선했다.
"부여부는 우리 선인들의 땅이다! 우리 땅에 어찌
오랑캐가 들어올 수 있게 하겠는가? 두 번 다시 거란
오랑캐가 침략하지 못하게 하고 여기에 낙토(樂土)를
만들자!"
정배걸 장군은 부여부를 새로 건설하기 시작했다.
성을 증축하고, 민가를 세우고, 군사를 훈련시켰다.
거란군이 조만간 발해를 다시 공격해 올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
1) 924년 5월 발해는 거란의 요주를 공격하여
요주자사(刺史) 장수실을 죽이고 개선했다.
2) 발해의 부여부는 고조선시대에 존재했던 옛
부여국의 고토(古土)다.
22. 칼과 붓
정배걸 장군의 승전으로 발해의 홀한성은 생기를
되찾았다.
인선황제는 승전을 축하한다며 대소신료들을
어화원에 모아 놓고 주연을 크게 열었다. 발해 조정의
대소신료들은 모두 대취했다. 주연은 사흘 밤낮이나
계속되었다.
"취하라!"
"대소신료들은 모두 취하라!"
인선황제는 손수 술을 따르며 대신들에게 강제로
술을 마시게 했다. 취하지 않으면 나의 신하가
아니다, 취하지 않으면 정배걸 장군의 승전을
기뻐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혀꼬부라진
인선황제의 명에 대소신료들은 전전긍긍하며 술을
마셨다. 황궁의 정문인 오봉문 앞에는 만취한
대신들이 종복들에게 업혀 나오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허.....호부대신도 황궁에서 업혀 나오는군."
"황궁의 잔치가 사흘이나 계속되고 있대."
"그래서 밤에도 황궁이 대낮처럼 환하고 가무음곡이
그치지를 않는군."
"황제가 대신들 앞에서 궁녀들을 발가벗기고
희롱하기도 했대."
백성들은 서로 주워 들은 소문을 수군거리며 혀를
찼다.
지부대신 이도종은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정배걸
장군이 승전보를 알려왔으나 정배걸 장군에게 곧 바로
철군령을 내려 부여부로 돌아오게 한 장문일의 소행이
괘씸했다. 정배걸 장군이 멀리 요주까지 출정하여
거란군에게 일대 타격을 가한 것은 장거가 분명한데도
부여부 도독에 임명하여 철군하게 한 것은 싸움에
이기고도 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정배걸 장군의 1만 군사로 요를 공격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요를 공격하려면 적어도 10만 대군은
있어야 했다. 그의 계획대로 10만 대군을 일으켜 요를
공격했으면 요왕 아보기가 서쪽 변방을 공략하기 위해
친정에 나섰으므로 요에게 강한 타격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한 때에 요왕 아보기가 서정에서 대승을 하여
개선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아보기는 6월에 20만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여 토혼, 당항, 조복을 차례로
정복하고 소번, 회홀, 연(하북성 지역), 조(산서성
지역)까지 휩쓸어버렸다. 야율 아보기의 대군은
3개월에 걸쳐서 중국 서쪽을 완전히 평정한 것이다.
요의 대군은 가는 곳마다 승리했고 투항한 군사들을
요의 군사에 편입시키고 개선하였다.
"이제 두 가지 일중 하나는 끝났다. 그러나 대대로
내려온 원수를 정벌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내가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 있겠는가?"
야율 아보기는 발해 원정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군사들이 서정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충분하게 쉬게 한 다음 군량을 비축하기 시작했다.
이도종은 야율 아보기가 발해를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하면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었다.
요를 정벌하여 명성을 떨치고 싶었으나 나약한
문관들이 방해를 하여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이것들이 나를 무시해?)
그러한 와중에 장문일의 하인들과 이도종의
하인들간에 충돌까지 일어났다.
이도종은 용두산 근처에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도종의 선대가 조정에 큰공을 세웠기
때문에 하사 받은 토지인데 이도종은 그 토지를
말갈인들에게 소작을 주었다. 그러나 소작인 중에
하나가 불평불만만 일삼고 일을 하지 않아 하인들이
쫓아가 소작인을 혼내주다가 장문일의 하인들과
충돌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주인들이 앙숙인지라 하인들도 마주치면
으르렁거렸다.
이도종의 하인들은 소작인 부부와 그 딸을
이도종에게 끌고 오려고 하였다. 소작인 사내는
구레나웃이 무성한 털보로 농사는 짓지 않고 술만
퍼마시고 있었다.
"도대체 우리 말갈인들은 왜 고족의 농사를 지어야
해?"
집사는 하인들을 시켜 털보를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
"나리. 술에 취해서 그러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들이 농사를 짓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털보의 부인과 딸이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하였다. 털보와 달리 부인은 행실이 얌전했다.
특히 털보의 딸은 얼굴이 곱상하여 집사는 문득
그녀를 이도종에게 바쳐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사가 보기에도 이도종이 울적한 날을 보내는 것
같아 계집으로 위로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집사가
소작인 노예의 딸을 끌고 가서 이도종에게 바친 일은
전에도 더러 있었다. 소작인들도 자신들의 신분이
노예인지라 항거하지 못했다.
"이 놈이 노예 주제에 불평불만을 일삼았으니 딸을
끌고 가겠다. 얘들아 이 계집을 끌고 가자."
집사는 하인들에게 털보의 딸을 끌고 가라고
지시했다. 소작인들은 사실상 이도종의 노예들이었다.
"어느 놈이 백주대로에서 부녀자를 희롱하느냐?"
그때 장문일의 하인들이 나타났다. 장문일의
하인들은 이도종의 하인들이 털보와 옥신각신하자
부녀자를 희롱하는 것으로 보고 야료를 부리게 되었던
것이다.
"너희들이 상관할 바 아니다."
이도종의 하인들은 장문일의 하인들과 다투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상관을 해야겠다. 어느 대가집 하인들인지
몰라도 사람을 그렇게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
"이 놈들아 우리는 지부대신 이도종 장군댁의
하인들이다!"
"오라! 권세 있는 대가집 하인들이로구나!"
"알았으면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썩 물러가라!"
"아무리 권세 있는 대가집 하인이기로서니 계집을
희롱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계집을 두고
물러가라!"
"너희 놈들도 권세 있는 집 하인들 같은데 대관절
누구의 하인이냐?"
"우리는 정당성 대내상댁 하인들이다!"
장문일의 하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도종의 하인들은 그때서야 흠칫했다. 정당성
대내상은 황제 다음의 높은 직책인 것이다. 이도종이
지부대신의 위치에 있으나 장문일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렇다고 남의 가내(家內) 일에 참견하는 것이
아니다!"
이도종의 하인들은 어물쩍 물러설 채비를 했다.
그러나 장문일의 하인들은 저희 상전의 권세를 믿는지
다짜고짜 이도종의 하인들을 두들겨 팼다.
이도종의 하인들은 매를 흠씬 맞고 돌아왔다.
그들은 매를 맞고 상전인 이도종에게 고하지도 않고
하인들을 대거 이끌고 가서 장문일의 하인들을 두들겨
패고 주모자 둘을 잡아다가 홀한성의 치안을 맡고
있는 상도위(上都衛)에 넘겨 옥에 가두게 했다.
상도위는 지부 관할이었다.
장문일의 하인들도 그냥 있지 않았다.
장문일의 하인들은 무리를 규합하여 상도위를
침입하여 옥을 부수고 동료들을 구출해 갔다.
상도위는 장문일의 하인들 위세에 눌려 수수방관했다.
이 일은 인선황제에게까지 알려졌다.
발해의 젊은 관료들이 나라의 녹을 받는 대신들의
하인들이 패싸움을 하였으니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규탄했다.
장문일은 하인들을 단속하지 못한 죄가 크다고
사직을 청했다. 이도종도 사직을 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선황제는 장문일과 이도종의 사직서를 모두
되돌려보냈다. 하인들끼리의 사소한 다툼이니
대신들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답변이었다.
이도종과 장문일은 그후 더욱 앙숙이 되었다.
한 번은 어림청에서 이도종과 장문일이 마주친 일이
있었다. 이도종은 장문일의 체면을 생각하여 하인들의
일을 사과했다.
"소인이 집안을 단속하지 못한 죄가 크옵니다."
"개의치 마시오. 지부대신은 원래 무반이니
하인들이 거친 것은 당연할 터, 내 이미 다 잊었소."
장문일은 빙긋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마치
이도종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괘씸한 늙은이.......)
이도종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장문일 일파가 이 나라를 망치게 할 것이
틀림없어!)
이도종은 장문일 일파를 제거하리라고 결심했다.
그는 장문일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비밀리에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장문일 일파도 세력을 규합해 놓고
있었다. 발해의 유력한 토호(土豪)들과 조정의
대신들이 상당수 장문일 일파에 가담해 있었다.
장문일에 비해 이도종은 선조성의 좌상을 비롯해
발해의 중앙군대인 10위 중 7위를 장악하고 있었다.
군사 수효에 있어서는 이도종이 월등했으나
인선황제는 장문일 일파에 기울어져 있었다.
게다가 상도방위군(上都防衛軍:수도방위군)의
향배도 문제였다. 상도방위군의 대장군
최충일(崔忠一) 장군은 불과 1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으나 홀한성을 방위하고 황궁을 수비하고 있었다.
10위의 군사는 조서가 내리지 않는 한 내성으로
들어갈 수가 없고 10위의 장군들은 무기를 휴대하고는
황궁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물론 군사를 동원하여 황궁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토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신진 사대부들의 반발을 부를 수도 있었다. 신진
사대부들은 대개가 중국의 유학(儒學)을 받아들여
시(詩)를 짓거나 공자의 중용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들은 발해의 여론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들과 등을
지고서는 장문일 일파를 제거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도종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는 홀한성 안에
있는 지부에 등청하지도 않고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장군."
하루는 이도종이 종복도 거느리지 않고
흥릉사(興陵寺)를 찾아가 경내를 걷고 있는데 그의
집에서 문객으로 있는 설용한(薛龍瀚)이 뒤따라왔다.
"무슨 일인가?"
"장군께서는 무슨 근심이 있으십니까?"
"근심은 무슨....."
이도종은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설용한은
무관의 집안이었으나 무에는 뜻이 없어 문을 닦고
있었다. 일찍이 당 나라에 유학하여 학문이
뛰어나다는 평판이 자자했다. 북우위 대장군이었던
장영의 처 설문랑의 먼 친척이었다.
"장군께서는 혹시 장문일 대내상의 일로 근심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응?"
이도종은 깜짝 놀랐다. 그 일을 내색조차 하지
않았는데 설문랑이 알아채고 있어 의외라고 생각했다.
"장군의 근심은 행하지 않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소린고?"
"무릇 번뇌는 사념에서 오고 사념은 행하지
않는데서 온다고 했습니다. 뜻은 있는데 행하지
않으니 근심이 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도종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설용한의 말이 옳게
여겨졌다. 그는 장문일을 제거할 생각을 했으나
행동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고민이 된 것이다.
"허나 행동이 쉽지 않으니 그게 문제 아닌가?"
"제게 계책이 있습니다."
"계책이 있다고?"
"조용히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설용한이 주위를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이도종을
살피며 말했다. 이도종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도종은 집으로 돌아오자 별채에 자리를 마련하고
잡인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자네는 어떻게 내가 장문일의 일로 근심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장군을 모신 지 벌써 2년입니다. 저의 처남 장영
장군이 상경을 떠난 뒤에 장군의 식객이 되었지요.
조금만 세상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다면 장군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찌 모르겠습니까?"
"음....."
이도종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용한의 대답은
두루뭉실한 것이었다.
"계책이 있다고 했으니 들어나 보세."
"상도방위군의 대장군 최충일 장군은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는 장군입니다. 그런 까닭에 장문일 대내상도
소홀히 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 그렇지."
"최충일 대장군 밑에는 장군 정전웅(鄭田雄)이 있고
그 밑에 또 소장(少將:발해의 군대는 대장군, 장군,
소장의 직급으로 되어 있다)으로
맹화덕(孟華德)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아직 마흔이 채
되지 않은 장수로 당에서 귀순한 자입니다. 이 자는
최충일 대장군의 신임을 받고 있었으나 연전에 할저가
도망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최충일 장군에게
매를 맞은 일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맹화덕은
최충일에게 원한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군께서 맹화덕을 포섭한 뒤에 군사를 이끌고
홀한성을 치고 장문일 일파를 제거하면 간단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음......."
이도종은 무겁게 신음을 삼켰다. 설용한의 계책은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빈틈이 없는 묘안이었다. 다만
맹화덕이 그에게 가담을 해주느냐 하는 것뿐이었다.
이도종은 다음날 밤 은밀히 무사들을 그의 집에
매복시킨 뒤 맹화덕을 불러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맹화덕이 머뭇거리거나 반대를 하면
무사들에게 한 칼에 목을 잘라버리게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맹화덕은 목숨을 바쳐 이도종을 돕겠다고 굳게
약속을 했다. 모든 것이 의외로 수월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불이야!"
"불이야!"
한밤중에 홀한성의 민가에 큰불이 일어났다.
백성들은 불이 일어나자 집에서 후다닥 뛰어나와
우왕좌왕했다. 상도방위군 대장군 최충일은
상도방위군을 이끌고 나와 불을 끄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상도방위군 군영에서 허겁지겁 일어나 군장을
차릴 때 맹화덕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왔다.
"맹 장군! 속히 불을 끄게 군사를 소집하라!"
최충일은 맹화덕을 보자 반색을 하며 지시를 했다.
"대장군! 불을 끌 필요가 없소이다!"
"무슨 소리야?"
"불은 우리가 놓았소이다!"
"뭐, 뭐야?"
최충일은 그때서야 맹화덕이 좌우에 사나운
무사들을 거느리고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맹화덕은 다짜고짜 갑옷을 입는 최충일
장군의 목을 쳐버렸다.
"윽!"
상도방위군 대장군 최충일은 부하 장군의 칼에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상도방위군의 부장격인 장군 정전웅도 최충일 장군이
부른다는 전갈을 받고 군영으로 들어오다가 역시
맹화덕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상도방위군은 순식간에 맹화덕의 손에 장악되었다.
"성문을 열어라!"
맹화덕은 이도종의 군사가 들어오게 홀한성의
성문을 활짝 열게 했다.
이에 지부대신 겸 대장군인 이도종은 2만 군사를
거느리고 홀한성 안으로 물밀 듯이 쳐들어왔다.
안에서 맹화덕이 호응을 했기 때문에 이도종의 군사는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었다.
홀한성은 때아닌 군사들의 입성으로 어수선했다.
그러잖아도 불이 일어나 어수선한 성내에 군사들이
노도처럼 밀려들어오자 백성들은 불을 끄다가 말고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인선황제는 임소홍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밖이
소란하여 내관을 불렀다. 침전 밖에서 궁녀들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군사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변란이 일어난 듯하옵니다!"
내관이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변란이라니? 누가 변란을 일으켰다는 말이냐?"
인선황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신등은 황궁 밖에서 일어난 일이라 알 수가
없사옵니다."
내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을 불러라!"
인선황제가 파리한 얼굴로 내관을 질타했다.
"예."
이내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이 달려와 부복했다.
"밖에 변란이 일어난 것이 사실이냐?"
"그러하옵니다!"
"어찌하여 변란이라고 하느냐?"
"성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발해군사들이옵니다."
"상도방위군은 무엇을 하느냐?"
"상도방위군도 변란에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옵니다."
"뭣이?"
인선황제는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시간 이도종의 군사들은 홀한성을 휘젓고 다니며
장문일 일파를 주살하고 있었다. 대내상 장문일은
불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가마를 준비하여
황궁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다가 집 앞에서
매복하고 있던 이도종의 군사들에게 처참하게
피살되었다.
이도종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황궁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오?"
오봉문의 입구에서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이
이도종을 가로막았다.
"황제폐하를 배알하러 들어간다. 비켜라!"
"폐하께서 계신 황궁에 어찌 군사를 거느리고
들어간다는 말이오?"
"변란이 일어났다! 폐하를 보위해야 한다!"
"누가 변란을 일으킨 것이오?"
"대내상 장문일이 변란을 일으켰다! 어서 비켜라!"
"군사를 이끌고는 들어갈 수가 없소!"
"네 따위가 나를 막으려느냐?"
"여기는 지엄한 황궁이오! 누구던지 군사를
거느리고 들어가면 역적이 되는 것이오!"
"가소로운 놈!"
이도종의 얼굴에 비웃음기가 번졌다. 그때 이도종의
군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이 놈들! 너희들이 감히 반역을 일으키려는
것이냐?"
강유원이 반발하여 칼을 뽑아들고 호통을 쳤다.
강유원은 어림군의 대장군이었다. 무예도 뛰어났으나
황제의 측근답게 충성심도 남달랐다. 이도종 일파가
칼을 들고 황궁으로 난입하려고 하자 반역을 일으킨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목숨을 바쳐 막으려고
했으나 수많은 이도종의 군사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우리를 막으면 죽음뿐이다!"
이도종이 눈을 부릅뜨고 강유원을 윽박질렀다.
"여봐라! 역적들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참하라!"
강유원은 부하들에게 큰 소리로 지시하고 손수 칼을
들어 이도종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강유원의
뒤에 있던 어림군 장수 권순활(權舜活)이 갑자기 칼을
뽑아 강유원의 등을 찌르는 바람에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게 되고 말았다.
"권순활! 네, 네 놈이 배신을......."
강유원은 비틀거리며 권순활을 쏘아보다가 고목처럼
쿵 하고 쓰러졌다. 그의 등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그러자 이도종의 군사들이 서로 공을
세우려는 듯이 일제히 달려들어 난도질을 했다.
강유원은 이도종의 군사들에게 수 십 군데의 칼을
맞고 나뒹굴었다.
"대장군이 죽었다!"
"대장군이 살해되었다!"
어림군은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이도종의 군사들은 황궁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은 반발하는 어림군을 진압하면서 황궁으로
쳐들어갔다. 인선황제는 비빈과 황태자, 그리고
임소홍과 함께 정전(正殿)인 양의전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폐하!"
이도종은 칼을 차고 거만한 눈빛으로 인선황제를
쏘아보았다.
"오! 지부대신!"
인선황제는 반색을 했다. 이도종이 자신을 보호하러
온 군사들을 끌고 황궁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내상 장문일 일파가 변란을 일으켜 제압을
했사오니 안심하시옵소서!"
"대내상 장문일이?"
인선황제는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하옵니다!"
"그러면 대내상은 어찌되었소?"
"신의 군사들이 죽였사옵니다."
"어림군 대장군이 죽었다고 하는데 어찌된 연유요?"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도 장문일과 내통하고
있었사옵니다! 신은 이제 장문일 일파를 모조리
제거하고자 하오니 폐하께서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알겠소. 경의 뜻대로 하시오."
인선황제는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윤허했다.
이도종의 군사들은 살벌했다. 그들은 황궁까지 칼을
차고 들어와 함부로 궁녀들을 희롱하는가 하면
내관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인선황제는 그들이 자신을
죽이고 황제 자리를 빼앗을까 봐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다행히 이도종은 반역의 기색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도종은 인선황제 앞을 물러 나오자 어명을
빙자하여 장문일 일파의 대신들을 황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대신들이 들어오는 즉시 황궁
정문에서 무사들에게 쳐죽이라고 지시했다.
제일 먼저 죽임을 당한 것은 선조성 좌상
최광묵이었다. 그는 변란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자
허겁지겁 황궁으로 들어오다가 이도종의 군사들에게
죽음을 당했다.
다음은 충부대신(忠府大臣:조선시대의 이조에
해당된다) 황보숭(皇甫崇)이 들어오다가 죽었다.
그리고 인부대신(印府大臣:조선시대의 호조)과
신부대신(信部大臣:조선시대의 공조)이 차례로 죽임을
당했다. 황궁의 정문인 오봉문은 이로 인해 피로
흥건하게 젖게 되었다.
이도종의 학살은 날이 훤히 밝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도종의 군사들에게 죽은 발해의
대신들은 10여 명이나 되었고 관리 외에는 수 백명의
군사들과 하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홀한성내의 유력한
토호들도 장문일과 가까운 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했다.
그들의 죄명은 한결 같이 역모였다.
이도종은 혁명에 의한 주살이 끝나자 조정을
개편했다. 정당성 대내상에 중대성 우상인 두용표,
선조성 좌상엔 지부대신인 이도종, 지부대신엔 그의
부하인 좌맹분위 대장군 부상필(夫相弼), 어림군
대장군에 강유원을 죽인 권순활 장군을 임명하여
인선황제의 윤허를 받았다.
발해의 조정이 마침내 그의 휘하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도종은 그로부터 황제에 버금가는 위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황제는 이도종이 두려워 정사는 아예
이도종에게 일임한 채 홍련궁과 어화원을 오가면서
주색만 즐겼다.
................................................
1) 발해는 말기에 극심한 권력투쟁을 벌였다.
요사에 의하면 발해의 권력투쟁으로 싸우지도 않고
이겼다는 기록이 있다.
23. 고려로 가다
하늘은 점점 낮게 가라앉고 있었다.
바람은 살매 들린 듯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나뭇잎들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음산한 날씨였다.
8월 하순(음력). 압록강 건너 장백산맥의 울창한
삼림지대도 벌써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아침저녁으로는 기온이 쌀쌀하여 옷깃을 여며야 했고
나뭇잎들은 노랗게 물이 들어 바람이 불지 않아도
하늘거리고 떨어지고 있었다. 들판과 산에는
야국(野菊)이 흐드러지게 피어 청신한 꽃향기를
날리고 있었다. 이 지역은 발해의 가장 남쪽이었으나
산들이 높아 봄은 늦게 오고 가을이 유난히 빨랐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이 낮게 가라앉고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자! 서두르시오!"
신덕(申德) 장군이 길게 이어진 대열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비가 오기 전에 거처할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울창한 삼림에는 5백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머무를 곳이 마땅치 않았다.
"장군님. 아무래도 비를 만날 것 같습니다."
가복인 목지몽(木知蒙) 노인이 신덕의 옆에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헌데 우리가
파오(包)를 칠 곳이 마땅치 않아!"
파오는 둥근 천막이었다.
발해의 상경용천부를 떠나올 때 신덕은 2백명이나
되는 대가족 때문에 파오를 잔뜩 가지고 왔던 것이다.
몽고인들의 유르타를 본딴 것이었으나 유목생활을
하는 말갈족들도 파오를 사용했다. 신덕이 거느리고
있는 가족들은 대부분 말갈인들이었다.
"나무가 많기는 하지만 이 근처에 파오를 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럴까?"
"매를 맞고서야 아플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하핫........"
가복 목지몽의 말에 신덕은 모처럼 호쾌하게
웃었다. 아직 발해의 영토인 서경압록부 일대이긴
했으나 추격자들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었다. 고려의
서경(松都)까지는 5백리쯤 남았으나 이런 상태라면
열흘 안으로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여기서 파오를 치도록 한다! 큰비가 와도
떠내려가지 않도록 파오를 잘 치도록 하라!"
목지몽의 말에 길게 꼬리를 물고 따라오던 대열이
웅성거리며 우마에 실은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길이
험하기 때문에 마차나 소달구지는 사용할 수 없었다.
성긴 빗방울이 뿌리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파오를
완전히 친 뒤였다. 신덕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친 파오를 돌아보고 대파오로 오자 나뭇잎에
후두둑 빗발이 때리기 시작했다.
신덕은 대파오의 침상에 앉아서 추적추적 빗발이
뿌리는 모양을 우두커니 내다보았다. 비가 오기
때문인가. 막상 고려가 가까워졌는데도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누대에 걸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고향을
떠나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게다가 고려가 귀순을
받아줄 지 어떨 지 알 수없어 마음속에 한 가닥
불안의 그림자가 자리잡고 있었 다.
(발해는 쇠퇴하고 있어.......)
신덕은 마음이 가을비처럼 황량하고 쓸쓸했다.
정당성 대내상 두경용이 죽은 이후 발해 조정은
장문일파와 이도종파로 갈라져 치열한 암투를
벌였었다. 그들은 사사건건 의견 대립을 보여 발해
왕실 성을 갖고 있는 대신들도 두 파로 갈리어 싸움을
벌였다.
인선황제는 주견도 없이 대신들에게 휘둘리고
있었고 이도종은 마침내 군사를 동원하여 장문일
일파를 제거하고 말았다. 이도종은 장문일 일파뿐이
아니라 발해의 조정에서 중요한 직책에 있는 관리들을
모조리 숙청(肅淸)했다.
권력을 잡는데는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어야 했다.
이도종은 그 명분을 장문일 일파의 부패에서 찾았다.
그러나 숙청의 바람이 휘몰아치자 부패한 관리들만이
쫓겨나게 되지는 않았다. 이도종 일파는 자신의
세력을 공고하게 하기 위해서 자파에게 아부하는
관리들만 등용하고 소원한 관리들은 닥치는 대로
추방했다.
권력을 잡기 위해 혁명을 일으킬 때는 주요 인물만
살해했으나 일단 권력을 잡은 뒤에는 반대하는 세력의
싹을 자르기 위해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한 것이다.
그것은 왕족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예부대신(禮部大臣) 대화균(大和均),
신부대신(信府大臣:工部) 대복모(大福模), 좌우위
대장군 대심리(大審理), 균로사정(均老司政)
대원균(大元均)도 하루아침에 벼슬에서 추방되었다.
그만해도 다행인 것은 그들이 목숨이라도 부지한
것이었다.
홀한성은 숙청의 무시무시한 바람에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신덕은 예부의 낭중(郎中)이었다. 예부는 형률을
관장하는 곳으로 대신을 경(卿:판서급)이라 부르고 그
밑에 소경(小卿:참판급)이 있는데 정부(正部)와
계부(計部)로 나뉘어 있었다. 정부와 계부의 책임자가
낭중인데 정부는 문관이, 계부는 무관이 맡게 되어
있어 신덕은 계부를 관할했었다.
그러나 이도종이 권력을 잡아 벼슬에서 추방당하자
신덕은 고려로 귀순하게 되었던 것이다. 주지육림에
빠져 있는 황제와 이도종에 의해 무단정치가 실시되고
있는 발해의 조정에 애정이 식어버린 것이다.
"따뜻한 차를 한 잔 올릴까요?"
가복 목지몽이 추적추적 빗발이 뿌리고 있는 바깥을
내다보는 신덕에게 넌지시 다가와서 물었다.
"불을 피울 수 있겠는가?"
"삭정이도 있고 송진 기름도 있습니다."
"그럼 차를 한 잔 주게."
차는 중국에서도 귀하게 여기고 있었다. 당 나라
유학생인 오조위(烏朝瑋)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요복도 부르게."
"예."
목지몽이 비를 가리는 바위 밑에 불을 피우고
요복을 부르러 갔다. 유민들이 저녁을 짓기 위해 불을
피우는지 매캐한 연기가 빽빽한 삼림 사이로 푸르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요복은 어림군 소속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장영
대장군의 아들 장유를 구출하여 숨어 있다가 신덕이
고려로 귀순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뒤따라 온
것이었다. 요복의 가족은 모두 13명이나 되었다.
신덕의 가족은 가복까지 합해 2백여 명밖에 되지
않았으나 상경용천부를 떠나면서 따라오는 사람들이
많아 5백명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상경용천부는 집을 떠나 고려로 귀순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었다.
이내 목지몽이 요복과 함께 대파오로 왔다.
"이렇게 폐를 끼치게 되어 송구합니다."
요복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오."
신덕은 손을 내저어 요복을 만류했다. 요복은 얼추
40이 넘어 보이는 사내였다. 그러나 눈빛이 그윽하고
신중해 보였다.
"장영 대장군의 아들은 좀 어떻소?"
장영의 아들 장유는 설문랑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는지, 아니면 원정(遠征)에 지쳤는지 몸이
불덩어리처럼 열이 올랐었다. 요복의 아내가 계속
업고서 왔는데 차도가 있는지 궁금했다.
"다행히 열이 내렸습니다."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신덕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영의
부인 설문랑이 죽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장유를 살린 것은 천지신명의 도움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발해에 아직도 충신열사가 남아 있다는
증거였다.
"장영 대장군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장영 대장군도 아들의 목숨을 구한 것을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어림군 대장군 강유원 장군의 공이 큽니다."
"발해의 앞날이 걱정입니다. 나야 고려로 귀순하는
처지니 말할 형편도 못됩니다만......."
신덕과 요복은 점점 어두워지는 바깥을 내다보며
비탄에 잠겼다.
비는 밤에도 계속 내렸다. 그들은 저녁을 마치자
술을 마셨다. 발해를 떠나 고려로 귀순하는 그들의
마음은 청승맞게 내리는 가을비만치나 쓸쓸했다.
비는 이튿날 아침까지도 계속 내렸다.
신덕은 오후가 되어 비가 그치자 파오를 걷고
고려로 다시 출발했다. 그러나 발해의 감시병을 피해
고려로 가야 했으므로 산길을 이용한 탓에 9월이
되어서야 고려 송도(松都)에 도착했다.
................................................
1) 발해에서 변란이 일어난 것은 발해의 대신들이
발해가 망하기도 전에 속속 고려로 망명한 사실에 알
수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신덕은 5백명의 유민들을
이끌고 귀순했고, 예부경(禮部卿:형조판서)인 대화균,
신부경(信部卿:공조판서)인 대복모, 좌우위 장군
대심리 등이 가속 1백호를 이끌고 귀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24. 여걸(女傑) 아화
바람 한 점 없는 날이었다.
초원의 풀 포기는 까딱도 하지 않은 채 잎사귀를 축
늘어뜨리고 작렬하는 태양아래 시들어가고 있었다.
우기가 지나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아화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성벽을 쌓기 위해
진흙을 발로 밟아 다지기 시작했다. 거란인들이 언제
침략을 해올지 몰라 정배걸 장군은 부여성을 토성으로
개축하고 있었다. 아화는 등줄기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진흙을 다지는 맨발이 천근처럼 무거웠다.
그러나 아화는 이를 악물고 진흙을 다졌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거란군에게 침략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아화는 진흙을 다지면서 먼 허공을 응시했다. 해가
설핏이 기울고 있는 푸른 하늘에 소사온의 얼굴이
아련히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기필코 소사온의 복수를 할거야.......)
아화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소사온을 생각할 때마다 아화는 눈이 충혈되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소사온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만신창이로 짓밟힌 자신을 생각하면
눈에서 피눈물이 솟고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아화는 그날 거란군의 화살이 등에 박혀 죽음
일보직전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은
하늘이 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아화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거란군이 소사온을 추격하기 위해 아화를
내팽개치고 숲으로 달려가자 아화는 눈발이 자욱하게
날리는 하늘을 쳐다보다가 혼절을 하고 말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혼절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등을 후벼파는 듯한 통증에 눈을 뜨자 여전히
눈발이 자욱하게 날리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늑대의 울음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대륙에 무리를 지어 살고 있는 살인 늑대가 피냄새를
맡은 것이 분명했다. 아화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이 뇌리에 떠올랐다.
아화는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화는 오로지 살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몇
번이나 눈 속에서 혼절을 하고 깨어나면 다시 기는
것을 반복했다. 기운이 탈진하면 눈 속에 엎드려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럴 때면 전나무 숲에서 피 냄새를 맡은 늑대의
울음소리가 더욱 가까이 들리곤 했다. 아화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모골이 송연하고 소름이 오싹
끼쳤다. 아화가 그 지경 속에서도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늑대의 먹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일념
하나 때문이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아화는 어둠 속에서 불빛이 하나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아!)
숲속이었다.
바람은 점점 세차져 전나무를 누비며 눈보라를
휘몰아쳐 왔다.
아화는 불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기었다.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집은 숯막이었다. 바람에 날아갈 듯
엉성한 움막에서 간신히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화는 움막의 문고리에 매달리다가
쓰러졌다.
그 집에는 사냥꾼 사내가 살고 있었다. 사냥꾼
사내는 사경을 헤매는 아화를 정성껏 치료해 주었다.
아화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처음엔 죽은 것으로 알고
숲에 버리려고 했으나 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지혈을 시키고 상처에 약초를 이겨서
발랐다. 그리고 그는 아화에게 귀중한 약인 웅담과
녹용까지 복용시켰다.
아화는 사냥꾼의 정성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이다.
그러나 소사온은 거란군에게 쫓기다가 숲 속에서
죽은 뒤였다. 아화가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었을 때
숲 속을 찾아가자 소사온의 시체는 찾을 수가 없었고
소사온의 피 묻은 옷과 뼛조각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사냥꾼의 말에 의하면 소사온은 거란군에게
쫓기다가 칼을 맞고 죽었거나 늑대에게 물려 죽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화는 그 곳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봄이었다.
초원과 산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푸른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녀의 가족에게 죽음의 바람을
몰고 온 겨울은 물러갔고 만물이 약동하는 봄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슬프고 서러운 봄이었다. 몸은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냥꾼은 아화에게 온갖 정성을 베풀었다. 날씨가
한결 따뜻해지자 아화는 사냥꾼에게 활쏘는 법을
배웠다. 사냥꾼이 사냥을 나가 그녀 혼자 있게 되면
아화는 수없이 활쏘기 연습을 했다.
봄이 완연해졌다. 사냥꾼은 아화에게 아내가 되어
줄 것을 요구했다. 아화는 자신이 거란군에게
더럽혀진 몸이라는 사실을 들어 사양했다.
그러나 사냥꾼은 막무가내로 아화를 요구했다.
아화는 사냥꾼의 아내가 되고 싶지는 않았으나
사냥꾼에게 너무나 많은 신세를 졌기 때문에 사냥꾼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아화는 사냥꾼을 자신의 몸 속에 받아들였다.
초여름이 왔다.
아화는 사냥꾼이 사냥 나간 틈을 타서 움막을 나와
부여로 향했다. 부여까지는 5백리의 멀고 험한
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쉬지 않고 걸어서 부여에
이르렀다. 부여는 거란군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어
있었다.
아화는 황량한 부여에서 혼자 살았다. 주민들은
모두 거란군에게 학살을 당하거나 잡혀가서
부여성에는 인적이라고는 없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멀리 산 속으로 도망을 쳐버려 거리에는
먹이를 찾아다니는 굶주린 개들뿐이었다.
아화는 불타지 않은 집을 골라 수리했다. 수리라고
해야 비가 새지 않게 지붕을 고치고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문을 달아 맨 것이 고작이었다.
식량은 집집마다 뒤져서 구했다. 불탄 집에서도
보리와 콩, 그리고 조가 나왔다.
이따금 사냥꾼에게 배운 활로 어슬렁거리는 개를
잡아서 고기를 뜯어먹기도 했다.
아화는 들짐승처럼 살았다.
그 무렵 아화는 말 한 마리를 얻게 되었다. 아화가
부여군과 거란군이 격전을 치른 곳에서 칼 한 자루를
주워 허리에 차고 돌아다니는데 어디선가 말 한
마리가 나타나 히히힝 하고 울었다.
병든 말이었다.
아화는 그 말을 치료해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정배달 장군이 1만 군사를 이끌고 부여부로
들어왔다. 아화는 정배달 장군의 군사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어 산으로 숨었다. 정배달 장군은
부여부에서 잠시 쉰 뒤 군사를 이끌고 요주로 향했다.
아화는 정배달 장군의 군사를 멀리서 뒤따랐다.
그리고 거란군과 격전이 벌어지자 아화도 질풍처럼
말을 몰아 거란군과 싸웠다. 그리하여 정배달 장군의
군사가 승리하여 개선할 때 아화도 개선군이 되어
부여부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부여부는 나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배달 장군이 들어와 성을 개축하고 민가를 세우자
도망을 친 주민들이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옛날의 번화하던 부여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으나
부여부도 차츰차츰 생기를 되찾았다.
정배달 장군은 무엇보다도 군사들의 조련에 힘썼다.
아화에게도 무예를 가르쳤다.
아화는 정배달 장군에게 많은 무예를 배웠다.
아화는 석식 시간이 되자 배식을 받아 저녁을 마친
뒤 성루로 올라갔다. 저녁 시간에 성루에서 광활한
초원을 내다보면 자신도 알 수 없는 웅지가
꿈틀거리곤 했다.
(그 옛날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저 드넓은 초원을
달리며 군사들을 호령했겠지......)
아화는 광개토대왕이 말을 타고 달리며 군사들을
호령하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아화는 부여성
성루에 올라서서 광활한 초원을 바라보며 사물에
새롭게 눈을 뜨는 기분이었다.
초원은 어느덧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작렬하던
태양이 초원에서 넘어가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었다.
아화는 노을이 장려하게 물드는 서쪽 하늘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윤기 없이 매끄러운 쪽빛 하늘에
붉은 빛이 번지면서 점점 사방이 놀빛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언젠가 나도 광개토대왕처럼 저 드넓은 벌판을
마음껏 달릴 것이다.......!)
아화는 성루에서 장려한 초원의 석양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다짐했다.
(저게 뭘까?)
그때 놀빛 속에서 뽀얗게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화의 눈에 들어왔다. 아화는 눈심에 기운을
바짝 모으고 초원을 노려보았다.
흙먼지는 점점 가까이 달려오더니 순식간에 초원을
가득 메웠다. 거란군이었다. 아화는 전신이 팽팽하게
긴장이 되어 오는 것을 느꼈다.
"거란군이다!"
"거란군이 온다!"
성루에서 망을 보던 파수병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거란군의 침략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고 병사들이 바쁘게 전투 준비를 시작했다.
"당황하지 마라!"
정배달 장군은 성루로 올라와 거란군의 동태를
살피고 군사들에게 침착하라고 지시했다. 거란군은
부여성 앞에 이르더니 군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장
공격을 해올 의향은 없는 것 같았다.
그때 한 떼의 군마가 흰 기를 앞세우고 성 앞으로
달려와 화살 한 대를 쏘았다. 그 화살에는 편지가
묶여 있었다.
.......천명을 받들어 거란을 통일한 과인은 너희
아우국에 대한 정이 남달라 특별히 타이르노라.
상고해 보면 너희가 나라를 세울 때도 우리 동족의
도움이 컸고 2백년을 내려오는 역사를 회고하여도
너희는 우리를 형으로 받들어 정성을 다하여
섬겼노라. 이제 과인이 거란을 통일하여 천하의
주인이 되었으니 너희는 마땅히 아우로써 예를 다하여
섬겨야 하고 조공을 바쳐야 하나 어찌된 일인지
군사를 일으켜 대항하려 하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마땅히 군사로써 죄를 물어야 하나 너희를 가련히
여겨 다시 한 번 타이르노니 진실로 사죄를 하고
성문을 활짝 열어 우리 군사를 맞이하라. 이에 불복할
시는 너희 동족의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참하리라.
항복을 하라는 편지였다.
정배달 장군은 노기로 얼굴이 붉어졌다.
"흥!"
정배달 장군은 편지를 구겨서 팽개치고는 백기를
앞세우고 온 거란의 군사들을 쫓아 버리라고
지시했다. 발해의 군사들은 거란군사들에게 위협을
하기 위해 활을 쏘았다. 그러자 거란의 군사들은
일제히 말머리를 돌려 쏜살 같이 달아났다.
이튿날 날이 밝자 거란군이 먼저 공격을 해왔다.
발해군도 성문을 열고 나가서 싸웠다.
전쟁은 한나절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쌍방간에
무수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거란군은 발해군을
초원으로 유인하여 포위 한 뒤에 섬멸하려는 작전을
폈다. 거짓으로 패하는 척하면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해군은 거란군을 깊숙이 추격하지 않았다.
정배걸 장군이 북을 쳐서 군사를 철수시켰기
때문이었다.
"유인에 걸려들지 않는군......"
"이제는 성을 포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을 포위해?"
"지구전에 들어가야지요. 발해군은 분명히 군량이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좋다! 성을 포위해라!"
거란군은 부여성을 에워쌌다.
그로부터 이틀 동안 대치 상태만 계속되었다.
거란군이 성 밑에까지 와서 싸움을 걸었으나 발해군은
응수하지 않았다. 다시 사흘이 지났다. 거란군은
지치기 시작했다. 초원에서 작렬하는 태양은 견딜
수가 없었다.
거란군의 병사들은 더위로 신음했다. 발해의
군사들도 더위 때문에 고통이 극심했다.
다시 이틀이 지났다.
발해군은 마침내 성문을 열고 나가 거란군과
부딪쳤다. 거란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돌진해 왔다.
이번엔 발해군이 패하여 성안으로 도주했다. 거란군은
필사적으로 발해군을 추격하여 성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때 성루에서 바윗덩어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여성 성문을 향해 돌진하던 거란군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성문이 닫혔다.
"속았다!"
"함정이다!"
부여성 안으로 들어간 거란군은 그때서야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려고 했으나 이미 육중한 성문이 닫힌
뒤였다. 거란군은 발해군에게 포위 당해 도륙을
당했다.
성밖에 있던 거란군은 사기가 떨어졌다. 군사의
수효에 있어서는 발해군이 훨씬 미치지 못했으나
발해군은 용맹했다. 거란군은 싸움을 포기하고 성을
에워싼 뒤에 또 다시 지구전에 들어갔다.
"거란군이 성을 포위했습니다!"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장령부와 영주(營州)로
구원병을 보내야 하겠다!"
정배걸 장군은 부여부의 이웃 부(府)인 장령부와
영주로 구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장령부에는 발해의
지방군이 있었고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이 근거지로
삼았던 영주에는 중앙군인 별기군이 있었다.
장령부에는 5천, 영주에는 군사가 1만 정도 될
것이었다.
"누가 거란군의 포위를 뚫고 장령부로 가서 구원을
요청하겠느냐?"
정배걸 장군은 부하들을 돌아보고 물었다.
"소인이 가겠습니다."
그러자 30대의 무장이 나서며 외쳤다. 정배걸
장군의 무관인 고종대(高宗大)였다.
"좋다. 정병 20기를 끌고 가라!"
"예!"
고종대는 야음을 틈타 정병 20기를 끌고 성을
나섰다. 그러나 수 만 명의 거란군이 에워싸고 있는
포위망을 뚫을 수가 없었다. 발해군이 성루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고종대는 정병 20기와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음!"
정배걸 장군은 비통한 신음을 삼켰다. 정배걸
장군은 그 후에도 계속 구원을 요청하는 병사들을
내보냈으나 병사들은 성밖으로 나가기가 바쁘게
거란군에게 도륙을 당했다.
정배걸 장군은 구원병을 요청하는 병사를 성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거란군과 부여군은
성을 사이에 두고 한 달 동안이나 대치했다.
"장군님! 소인을 보내주십시오!"
그때 아화가 정배걸 장군 앞으로 나섰다.
"그대는 아화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남자도 못하는 일을 여인이 어찌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구원병을 불러올 수 있겠는가?"
"목숨을 바쳐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아화는 진지한 얼굴로 요구했다.
"그대의 용맹은 알고 있으나 공연히 목숨만 잃을
뿐이야."
"장군께서는 여자라고 얕보시는 것입니까? 옛부터
고구려와 발해의 여자들은 나라가 위급하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대의 용기가 가상한 것은 잘 알고 있다. 허나
우리가 어찌 그대를 적진 속으로 보내겠는가?"
"새벽에 비가 올 것입니다. 그때 말을 몰아 단숨에
포위망을 뚫겠습니다!"
"비가 온다고?"
"저녁에 노을이 지지 않고 모든 소리들이 가까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는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좋다! 비가 오면 그대를 보내겠다!"
정배걸 장군은 그때서야 혼쾌히 승낙했다.
아화는 정배걸 장군의 승낙이 떨어지자 포위망을
뚫을 준비를 했다. 남자 군사들처럼 갑옷을 입고
투구를 썼다. 말발굽에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단단히
헝겊을 씌웠다.
아화의 예상대로 새벽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두 달
동안이나 오지 않던 비였다. 발해군도 잠에서 깨어나
비가 오는 것을 쳐다보았으나 거란군도 군막에서 나와
비를 쳐다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비는 점점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발해군은 아화를 말에 태우고 성루에서 밧줄로
묶어서 조심스럽게 밑으로 내려보냈다. 성문을 열면
거란군들이 소리를 듣고 탈출자가 있는 것을 눈치
챌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화는 성 밑에 이르자 밧줄을 풀고 적진을 살폈다.
사방은 칠흑처럼 어두운 가운데 빗줄기만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아화는 말 엉덩이를 발로 찼다.
적진은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에 어수선했다.
군사들은 군막으로 비가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해
군막 옆으로 도랑을 파기에 분주했다.
아화는 적진의 한 가운데로 말을 몰았다.
"누구냐?"
"거기 서라!"
아화가 가까이 다가오자 거란군은 그 때서야 창을
겨누며 수하를 했다.
"이랴!"
아화는 채찍으로 말을 후려쳤다. 말이 히히힝 하고
울면서 앞발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깜짝 놀란
거란군이 뒤로 물러섰고 아화가 탄 말은 그 틈에
질풍처럼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발해인이다!"
"발해인이 탈출한다!"
"발해인을 죽여라!"
거란군의 진영이 삽시간에 소란에 휩싸였다.
"이랴!"
아화는 말채찍을 더욱 세차게 휘둘렀다. 그러나
말도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잘 분간하지 못하여
우왕좌왕했다.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어야 하는데
엉뚱하게 거란군의 군영으로 달려갔다.
"활을 쏴라!"
"탈출자는 한 놈이다!"
거란군이 아화를 향하여 활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아화는 이를 악물고 말에게 채찍질을 해댔다.
"이랴!"
"이랴!"
그때 화살 하나가 날아와 아화의 등에 박혔다.
아화는 화살이 등에 박히는 것도 모르고 필사적으로
말에게 채찍질을 해댔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때 부여성의 성문이 활짝 열렸다. 성루에서는
발해군들이 거란군을 향하여 맹렬하게 활을 쏘아대고
있었다.
"발해군이 성문을 열고 나왔다!"
"발해군을 죽여라!"
거란군은 아화를 추격하다가 말고 부여성으로
몰려갔다. 그러자 북소리가 울리면서 발해군들이 성문
안으로 재빨리 들어가 버렸다.
"속았다!"
거란군은 그제서야 발해군의 공격이 아화를
탈출시키기 위한 위장공격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아화는 이미 멀리 달아난 뒤였다. 그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사방은 칠흑처럼 캄캄하고 비가 계속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란군은 아화를 추격할 수가
없었다.
비는 이튿날도 계속 내렸다. 거란군은 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도 부여성을 공격했다. 탈출자가 구원병을
요청했다면 구원병이 도착하기 전에 발해성을
함락시켜야 했다.
그러나 부여성은 견고했다. 발해군사들은 군량이
떨어져 가면서도 필사적으로 성을 수비했다. 거란군의
공격은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7월의 장마는 열흘
동안이나 계속되다가 그쳤다. 거란군은 비가 내리는
동안 내내 공격을 계속했다. 그리고 장마가 끝나고
다시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거란군은 숨이 막히는
더위 속에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7월이 지나가 버렸다. 성을 공격하는
거란군도 지쳤으나 안에서 수비를 하는 발해군도
지치고 말았다. 거란군은 더위 때문인지 공격을
멈추고 부여성만 포위하고 있었다. 발해의 구원병이
오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지구전으로 돌입한
모양이었다.
발해군은 그 틈에 다시 성을 복구했다.
구원병을 청하러 간 아화는 어떻게 되었는지 감감
무소식이었다.
(아화를 보낸 것도 실패란 말인가......?)
정배걸 장군은 탄식을 했다. 발해군은 군량이
떨어져 굶주리고 있었다. 이런 상태가 며칠만
계속되면 발해군은 거란군과 싸워서 죽는 것이 아니라
굶어서 전멸을 할 것이 분명했다. 벌써 발해군은
더위로 인해 여기저기서 픽픽 쓰러지고 있었다.
(이렇게 굶어 죽을 바에야 차라리 성을 나가서
싸우다가 죽는 것이 낫겠어.......!)
정배걸 장군은 비장한 각오를 했다.
그는 남아 있는 식량으로 모두 밥을 짓게 하여
병사들에게 배불리게 먹게 했다. 그리고 구원병을
부른 것은 실패한 모양이다, 여기서 굶어 죽을 것이냐
싸우다가 죽을 것이냐, 해동성국 대발해의 장부라면
마땅히 내 뒤를 따라 싸우다가 죽자.....!하고
군사들을 독려했다.
"싸우겠습니다!"
"싸우다가 죽게 해주십시오!"
병사들은 소리 높여 외쳤다.
"좋다! 그러면 나를 따라라!"
정배걸 장군이 말에 올라타자 병사들도 일제히 말에
올라탔다.
"성문을 열어라!"
"성문을 열어라!"
한 달 동안이나 철 통 같이 닫혀 있던 부여성의
성문이 활짝 열렸다.
"진군!"
"진군!"
정배달 장군의 군령이 떨어지자 성루에서 진군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비장하게 울려 퍼졌다. 발해군은
질서정연한 4열로 성문을 빠져 나와 부여성 앞에
2열로 늘어섰다.
"발해군이 나왔다!"
"발해군을 죽일 준비를 하라!"
거란군도 발해군이 성문을 빠져 나오는 것을 보고
진을 펼쳤다. 거란군은 아직도 벌판을 까맣게 메우고
있었고 무수한 깃발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제장들은 듣거라! 돌격 명령을 내리면 어린진을
펼친다! 알겠나?"
"예!"
제장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가자!"
정배걸 장군이 마침내 환두대도를 뽑아 들고 거란군
진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린진을 펼쳐라!"
제장들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돌격!"
병사들은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제장들의 뒤를
따라 달렸다. 어린진은 물고기의 비늘 같은 모양의
진이었다. 장수가 앞에 서고 제장들이 뒤를 따르고
군사들이 그 뒤를 쫓는 형태였다. 배수의 진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펼칠 수 없는 진이었다.
"와!"
"와!"
이내 초원이 양군 군사들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양군은 처절한 전투에 돌입했다. 칼과 창이 부딪치고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말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고 팔 다리가 짤려진 병사, 목이
달아난 병사, 가슴에 창이 꽂힌 병사......초원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돌격!"
"돌격!"
그런데도 장수들은 목이 터져라 병사들을 독려했다.
어차피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이 전쟁이었다.
장수들이 독려하지 않아도 병사들은 살아 남기 위해
칼을 휘두르고 창으로 적군을 찔렀다.
"발해군을 죽여라!"
"발해군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몰살해라!"
거란군의 장수들도 칼을 휘두르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확실히 발해군은 거란군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태반은 성안에 있는 민간인들로
급조된 민병(民兵)들이었다.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수세에 밀려 포위되고 말았다.
"발해군이 포위되었다!"
"모조리 죽여라!"
거란군은 사기가 충천하여 발해인들을 압박해
들어갔다. 발해인들은 점점 숫자가 줄어갔다.
거란군의 사기가 높아지고 있는데 반해 발해인은
기운까지 탈진하여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갈
뿐이었다. 거란인들은 이제 발해인들을 도륙하다시피
죽이고 있었다.
(절망이다. 모든 것이 끝났어......)
정배걸 장군은 허탈했다.
그때였다. 발해군을 포위하고 살육전을 전개하는
거란군의 진영 후미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어났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흑마를 탄 장수가 장창을 휘두르며
거란군의 진영을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있었다.
거란군은 그 장수의 창에 무수히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거란군의 비명이 처절하게 초원에 메아리치고
시체가 나뒹굴었다.
(도대체 어느 장수가 저토록 고강한 무예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정배걸 장군은 싸우는 것도 잊고 잠시 그 장수를
우두망찰하여 쳐다보았다.
흑마를 탄 장수가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하며
거란군을 도륙하자 거란군은 감히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접근하지 마라!"
"활을 쏘아 죽여라!"
마침내 거란군은 흑마를 탄 장수를 포위하고 활을
쏘아댔다. 그러나 흑마를 탄 장수는 온 몸에 무수히
화살을 맞고서도 거란군을 도륙하고 있었다.
(저 이는 북우위의 대장군이셨던 장영 장군......!)
정배걸 장군은 흑마를 탄 장수와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가슴이 뜨거워져 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나라에서 역모로 몰려 부인이 죽임을 당했는데도
단신으로 전쟁터로 달려와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정배걸 장군도 전력을 다해 거란군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해군은 중과부적이었다. 또 다시
포위를 당해 몰살을 당할 위기에 몰렸다.
둥둥둥......
그때였다. 저 멀리 초원에서 북소리가 들리며
뽀얗게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거란군과 발해군은 싸우던 것을 멈추고 초원을 향해
돌아섰다.
"구원병이다!"
발해군사의 입에서 감격에 넘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뽀얀 흙먼지 사이로 발해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이 무수히 달려오고 있었다.
"발해의 구원병이 온다!"
발해군사의 외침이 감격에 넘친 것인데 반해
거란군사의 외침은 공포에 질린 것이었다.
(아아 마침내 구원병이 오는구나......)
정배걸 장군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화다!"
"아화가 온다!"
발해군사가 더욱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군사들의 외침대로 붉은 깃발의 선두에는 아화가
머리에 백건을 질끈 동여매고 달려오고 있었다.
구원병을 데리고 온 것을 발해군사들에게 알려 주기
위함인지 백색의 치맛자락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구원병이 왔다! 힘을 내어 오랑캐를 무찔러라!"
정배걸 장군은 감격에 넘쳐 소리를 질렀다.
거란군은 벌써 꽁무니를 슬금슬금 빼고 있었다.
"오랑캐를 무찔러라!"
전세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거란군사는 도주하기에 바빴고 발해군사는 추격하기
시작했다. 장령부와 영주에서 온 군사들도 도주하는
거란군을 맹렬히 추격하여 살해했다.
완전한 발해군의 승리였다.
전투가 끝나고 거란군의 시체를 살피자 2만
구(具)가 넘었다. 그러나 발해군사의 시체도 6천 구나
되었다.
아화도 거란군과 처절한 혈전을 벌였다.
거란군이 막대한 손실을 입고 물러간 뒤에 정배걸
장군이 아화를 찾자 아화는 백의가 온통 피에 젖어
있었다. 게다가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데도 창에
의지하여 말 등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장영 장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발해에 어찌 충신열사가 없다고 하랴......)
정배걸 장군은 아득히 먼 지평선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거란군의 침략을 저지하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
1) 924년 7월에서 9월 거란인들이 부여성을 포위
공격했으나 발해군사들이 용감하게 항전하여
격퇴했다. 그러나 2년 후 거란군은 발해정복을
목적으로 또 다시 대대적인 침략을 감행한다.
25. 필살의 반격
발해국의 변방, 부여부가 거란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군사들이 죽음을 불사한 처절한 전쟁에 휘말려
있는데도 발해의 조정은 권력투쟁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장문일 일파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이도종은 장문일의 잔당을 숙청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장문일의 잔당은 의외로 뿌리가 깊었다. 이도종은
무자비하면서도 철저하게 숙청을 단행했다.
그러자 이도종을 자격하려는 무리들이 생겨났다.
이도종의 무시무시한 숙청에 하루아침에 관직을 잃고
홀한성에서 쫓겨난 무리들이 무사들을 고용하여
이도종을 암살하려고 했다.
이도종은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암살
위협이 계속되자 이도종은 황궁을 드나들 때도
호위무사들을 좌우에 거느리고 들어갔다. 그것은
황제를 알현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황제가 오히려
위압감을 느끼게 되었다.
(역성혁명을 일으키려는 것인가?)
사람들은 이도종이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도종은 점점 거만해졌다. 그는 인선황제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인선황제는 이도종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도종의 거만한 눈빛을 대할
때면 인선황제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움찔 몸이
떨렸다.
(저 놈은 나를 죽일 것이 분명해......)
인선황제는 이도종을 만나는 것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이도종이 허리에 차고 있는 칼로 자신의
목을 베는 상상을 할 때마다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음력 7월이었다.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인선황제는
임소홍과 함께 황궁의 뒤뜰에 있는 운영지를 거닐고
있었다. 운영지는 때아니게 색색의 연꽃이 만발해
있었다. 인선황제는 지난밤의 꿈 때문에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꿈은 아주 흉칙한 것이었다.
한밤중이었다. 인선황제는 임소홍과 나란히 침상에
누워 잠이 들었었다. 그러나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인선황제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밤이 되면 술을 마시고
임소홍을 껴안고 뒹굴 때가 많았다. 그날도 임소홍과
뒹굴며 땀을 흥건히 흘린 인선황제는 새벽까지
뒤채다가 얼핏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을 잤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 앞에
기척이 있어서 눈을 번쩍 뜨자 이도종이 칼을 뽑아
들고 서 있었다. 인선황제는 가슴이 철렁하고
머리끝이 곧추 섰다.
"폐하! 이제 보좌를 신에게 양위하셔야겠소!"
이도종의 칼에서는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좌, 좌상!"
인선황제는 너무나 놀라서 입조차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 나라는 이제 나의 것이오!"
"좌상, 짐을 죽이지 마시오!"
"한 나라에 두 해가 있을 수는 없는 법, 황제께서는
나를 원망하지 말고 극락으로 가시오!"
이도종의 얼굴에 특유의 거만한 미소가 어렸다.
인선황제는 재빨리 이도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
"좌, 좌상 살려주시오!"
인선황제는 이도종에게 절을 하며 애원을 했다.
그러자 이도종이 앙천대소를 터뜨리며 칼을 높이
쳐들어 인선황제를 내리쳤다.
"으아악!"
인선황제는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었다. 눈을 뜨자 인선황제의 침상이었고 촛불이
바람도 없는데 일렁거리고 있었다.
(무서운 꿈이다......!)
인선황제는 누운 채 식은 땀을 흥건히 흘렸다.
아직도 이도종의 거만한 웃음소리가 귓전을 쟁쟁하게
울리고 있었다.
임소홍은 인선황제의 옆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가늘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인선황제는 꿈이
흉악하여 몸이 부르르 떨렸다. 금방이라도 이도종이
칼을 뽑아 들고 나타나 자신을 해칠 것만 같았다.
(소홍은 잘도 자는군......)
인선황제는 임소홍이 부러웠다. 임소홍은 나삼
하나만을 걸친 채 잠들어 있었다. 잠자리 날개 같은
나삼으로 임소홍의 나신이 그대로 내비치고 있었다.
봉긋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풍만한 둔부는 여전히
가슴이 설렐 정도로 아름다웠다.
벌써 날이 부옇게 밝아 오고 있었으나 인선황제는
임소홍의 품으로 바짝 파고들었다. 그리고 임소홍의
크고 뭉클한 가슴을 만지며 밤을 꼬박 새웠던 것이다.
(이도종은 무서운 자야......)
인선황제는 이도종을 생각만 해도 저절로 소름이
돋았다.
이도종은 스스로 변란을 일으키고도 장문일이
변란을 일으켰다는 죄명을 씌워 죽인 뒤 조정을
마음대로 유린하고 있었다. 이도종을 죽이지 않으면
황제의 자리가 위태로울 것이었다.
"폐하!"
임소홍이 정신없이 붉은 연꽃을 들여다보고 있는
인선황제에게 소곤거렸다.
"응?"
"폐하께서는 어찌 근심을 하고 계시옵니까?"
"내가 근심을 한다고?"
"폐하의 용안에 수심이 가득하옵니다."
"보위가 위태롭다!"
인선황제는 주위를 살핀 뒤 임소홍에게 낮게
말했다. 사랑하는 임소홍에게만은 거짓을 말할 수가
없었다.
"좌상 이도종 장군 때문이 아니옵니까?"
"너도 알고 있었느냐?"
"좌상의 무도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어찌
신첩이라고 모르겠사옵니까?"
"그가 나를 죽일 것 같아 두렵다."
나약한 인선황제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임소홍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임소홍이 팔을 벌려 어린아이를
안 듯이 인선황제를 품에 안았다.
"폐하께서는 이 나라의 지존이신 황제이옵니다.
어찌 무도한 역적을 제거하지 않으시고 눈물을
흘리시나이까?"
"내가 어떻게 이도종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이냐?"
"폐하께서는 어명만 내리시면 되옵니다."
"황궁엔 모두 이도종의 부하들뿐이다. 누가 있어서
과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느냐?"
인선황제는 처연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황궁을
지키는 어림군 대장군 권순활 장군이 이도종의
심복이라는 것을 황제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눈을
피해 지방에 있는 군사들에게 밀지를 내려 구원을
청할 수가 없었다.
"폐하. 어림군 무관중에 황보헌(皇甫憲)이란 장군이
있사옵니다."
"황보헌?"
"성이 황보고 이름이 헌이옵니다."
"성이 두 자이고 이름이 외자로군."
인선황제가 빙긋이 웃었다.
"그 장군은 전 충부대신 황보숭의 사촌 아우이나
직급이 무관에 지나지 않아 지난 변란에 살았다고
하옵니다."
"음."
"비록 무관에 지나지 않으나 황보헌은 무예가
만만치 않고 충성심 또한 남다르다고 하옵니다."
"......."
"그가 직숙을 할 때 폐하께서 부르시어 밀지를
내리시옵소서!"
"황보헌에게 밀지를?"
"황보헌은 분명히 폐하의 성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무슨 밀지를 내리란 말이냐?"
인선황제가 어눌한 목소리로 물었다.
"역적 이도종을 처단하라는 밀지를 내리시옵소서."
"허면 황보헌이 성공할 수 있겠느냐?"
"성공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임소홍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인선황제는
임소홍의 말대로 황보헌이 직숙을 하는 틈을 타서
슬그머니 어전으로 불러 들였다.
"신 황보헌 폐하를 뵈옵니다."
황보헌이 절을 하고 부복했다.
"황보헌!"
"예."
"이리 가까이 오너라."
인선황제의 목소리는 어쩐지 울적했다. 황보헌은
조심스럽게 인선황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짐은 요즈음 잠을 이룰 수 없구나. 2백년 사직이
짐의 대에 와서 무너지게 생겼으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느냐?"
인선황제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이기 시작했다.
황보헌은 황송하여 머리를 바닥에 찧듯이 수그리고
아뢰었다.
"폐하!"
"그대가 이도종에게 죽은 충신 황보숭의 아우라기에
심중의 말을 털어놓는 것이다. 그대는 나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폐하! 신은 목숨을 바쳐 폐하의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이도종에게 들키면 삼족이 죽을텐데도.....?"
"폐하! 저희 황보 일가는 대대로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이제 폐하를 위하여 버러지
같은 목숨을 바친들 무엇이 아깝겠사옵니까? 신에게
밀지를 내려 주시면 기꺼이 역적들을
토벌하겠사옵니다!"
"오오 과연 충신의 집안에서 충신이 나는도다!"
인선황제는 감격한 표정을 꾸미며 바닥에 꿇어
엎드린 황보헌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품에서
준비한 밀지를 꺼내 황보헌에게 주었다.
황보헌은 깊숙이 절을 하고 물러갔다.
逆臣道宗除去大計一任皇甫憲(역신 도종을 제거하는
큰 계책을 황보헌에게 일임한다.)
황보헌이 집에 돌아와 밀지를 펴보자 열 세 글자가
씌어 있었고 옥새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황보헌은 밀지를 앞에 놓고 엄숙히 절을 했다.
황보헌은 밀지를 받은지 열흘이 지나서야 인선황제
앞에 나와서 엎드렸다. 이도종이 정당성에서 대신들과
부여부를 침략한 거란군을 응징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을 때였다.
"폐하!"
"오 황보 장군!"
황제는 반색을 하며 황보헌을 맞아들였다.
"신이 모든 계략을 세웠사옵니다."
"그래 어떤 계획인고?"
"역계(逆計)이옵니다."
"역계?"
"역신 이도종이 지난번에 대내상 장문일 노상을
살해한 것처럼 어명으로 이도종 일파를 차례로
불러들여 척살하는 것이옵니다."
"묘계로다!"
인선황제는 황보헌이 내놓은 계획에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 이도종이 써먹은 방법 그대로 이도종
일파를 제거한다고 생각하자 통쾌하기도 했다.
이튿날 인선황제는 황보헌의 계략대로 내관을 시켜
이도종을 황궁으로 불렀다. 이도종은 인선황제가 무엇
때문에 부르는지 알 수 없었으나 거란군의 침략
문제로 윤허를 받을 일도 있고 하여 황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마지막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역적 이도종은 칼을 받아라!"
이도종이 황궁으로 들어가 거만한 걸음으로 황제가
정사를 보는 어림청에 이르자 황보헌이 매복시켜 놓은
무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도종을 난도질했다.
"이, 이 놈들!"
이도종이 마지막 뱉은 말은 그것뿐이었다. 이도종은
어림청에서 매복한 무사들에게 무수히 난자되어 죽고
말았다.
전세는 다시 뒤집혔다. 이도종 일파는 그날로
인선황제의 어명을 받고 입궁하다가 모조리
척살되었다. 이도종은 황궁 앞에서 대신들을
주살했으나 황보헌은 그들이 눈치챌까봐 어림청까지
끌어들여 차례차례 살해했다.
인선황제는 황보헌에 의해 다시 실권을 잡게
되었다. 무관들의 횡포가 극심했으므로 3성 6부의
대신들을 모조리 문관들로 교체했다. 지부대신만
황보헌의 공로를 참작하여 황보헌에게 맡겼다.
어리둥절한 것은 백성들이었다.
홀한성의 유력한 토호들도 두 번씩이나 일어난
변란에 희생을 당했다. 이도종이 정변을 일으켰을
때는 장문일과 가깝다고 하여 숙청되었고 황보헌이
정변을 일으켰을 때는 이도종과 친분이 있다고 하여
숙청되었다.
임소홍은 다시 인선황제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이제 정치는 대신들에게 맡기시옵소서."
어화원에는 다시 궁녀들이 모여들고 지분 냄새가
물씬거렸다.
26. 여걸의 마지막 노래
황보헌에 의해 발해의 조정은 안정되었다.
그러나 적국인 요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았다.
서정을 마친 요의 아보기 황제는 발해를 정벌하기
위해 군량을 비축하고 군사를 양성했다. 이 소식은
즉각 발해로 전달되었고 비록 망국의 길을 걷고 있는
발해 조정이었으나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발해의 조정은 매일 회의를 거듭했다. 그러나
뚜렷한 대책은 세우지 못하고 논의만 거듭했다.
군량을 비축하자는 논의가 일어나면 재정을 담당한
호부에서 백성들의 폐해가 크다고 이를 반대했다.
발해의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호부의 창고는 이미
바닥이 나서 조정 관리들의 급료조차 제대로 지급할
수 없었다. 그러한 때에 군량의 비축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황궁의 사치가 너무나 심했다. 황제가
황음한 탓에 황실도 사치만 부렸고 그것은 토호들도
마찬가지였다.
발해는 토호들이 막대한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그들은 사치를 부리면서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
국가 재정은 항상 파탄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자니 군량의 비축을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다.
군량이 없으니 군사를 양성할 수도 없었다.
군사를 모으면 급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급료를
지불할 재정이 없었다.
또 군사로 충당되어야 할 젊은이들이 대개 토호들의
노예로 들어가 있었다. 노예가 아니면 유목생활을
하거나 사냥을 하고 산 속 깊은 곳에서 화전을
일구었다.
발해는 토호들의 세력이 지나치게 방대했기 때문에
적국의 위협을 받고 있으면서도 군사조차 양성할 수
없었다.
발해는 궁여지책으로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상호간에 원조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신라는
이미 기울어 가는 왕조였다. 반도는 신라, 후백제,
고려로 나뉘어 후삼국시대에 돌입한 뒤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발해는 고려에도 사신을 파견했다. 고려를 처음
내세운 것은 궁예였으나 포악무도하여 민심을 얻지
못하고 왕건이 등장하여 후백제와 신라와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도 발해에게 도움을 줄만한 처지는
못되었다. 발해 황실에서 공주까지 왕건에게 시집을
보내어 정략결혼을 시켰으나 고려는 반도를 통일하고
국가의 기틀을 세우기에도 급급했다.
발해의 조정은 전전긍긍했다.
요 나라가 침략을 해오리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나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황제는
여전히 어화원에서 궁녀들과 주색에 몰두해 있었고
토호들은 군량의 비축이나 군사의 양성은 나 몰라라
하고 있었다.
(국풍이 변했어......)
발해의 뜻 있는 대신들은 탄식했다.
A.D 925년 12월.
인선황제 재위 19년. 발해력으로는 228년이었다.
요의 아보기 왕은 서정을 할 때 혁혁한 명성을 날린
거란의 명장 야율 적로(耶律적로), 야율
안단(耶律安丹), 아고지(阿古只), 강묵기(康默記),
한연휘(韓延徽)에게 40만 대군을 주어 발해를
정복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둘째 아들 야율
덕광(耶律德光)을 대원수로 삼아 발해를 침략하게
하였다.
요왕 아보기는 황태자 야율 배(耶律培)와 야율
할저, 그리고 야율 우지(耶律羽之)를 거느리고
뒤따랐다.
이번에도 거란군은 부여부로 노도처럼 밀려왔다.
거란군의 선봉은 안단과 아고지가 맡았다.
정배걸 장군은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거란군이 물밀 듯이 밀려온 초원은 그들의 깃발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의 군사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얼추 보아도 수십만은 족히 될 것 같았다.
(이것으로 우리 발해는 끝이다. 2백년 성업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이야.......)
정배걸 장군은 성의 방비를 튼튼히 하라고
지시했으나 부여성이 조만간 함락되리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음력 윤 12월이었다.
날씨는 살을 에일 듯이 추웠다. 바람은 초원의
끝에서 아우성을 치며 세차게 불어오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턱이 덜덜 떨리고 이가 딱딱 부딪치는
매서운 추위였다.
거란군의 선봉은 본진이 도착하자마자 발해를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거란군은 수십만이나
되었다. 발해군사들이 부여성을 사수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싸움에 임했으나 거란군사들이 한 번 활을
쏘면 수 만개의 화살이 성벽위로 날아왔다.
발해군사들은 성벽 위에서 방패로 날아오는 화살을
막았으나 빗발처럼 쏟아지는 거란군의 화살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발해군사들은 거란군사들의 화살을 맞아
속속 죽어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군사들이 거란군의 화살에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겠어........)
아화는 사상자가 늘어가는 발해군사들의 비참한
실정을 살피며 입술을 깨물었다. 투항을 결정하지
않으면 발해군사들이 떼죽음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정배걸 장군이나 발해의군사들은 결코 투항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나가서 싸워야 해........)
아화는 그렇게 생각했다. 거란군사들이 수십만이나
되는 이상 싸워서 이길 수도 없을 뿐아니라 성안에서
농성을 한다고 해도 사흘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나가서 싸워 거란군사들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는 것이 거란군의 발해 침략속도를 늦추게
하는 방편이 될 것이었다. 거란군의 침략속도가
늦어지면 발해의 조정은 그만치 거란군의 침략에
대응할만한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아화는 그렇게 생각하자 말을 타고 단신으로
성밖으로 달려나갔다.
(저건 아화가 아닌가.....?)
정배걸 장군은 성루에서 거란군 진영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언제 성문을 열고 나갔는지 아화가 말을
타고 성문 앞 벌판에 우뚝 서 있었다.
"아화다!"
"아화가 성문을 나갔어!"
발해군사들이 낮게 웅성거리더니 성루 위로
몰려들었다. 아화는 장창을 비스듬히 세워 들고
있었다. 옷은 눈처럼 하얀 백의였고 머리엔 백색
두건을 두르고 있어서 흑색 준마와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바람은 그녀의 옷자락을 표표히 날리고 있었다.
거란군도 아화를 발견했다. 그들은 아화가 단신으로
흑색 준마를 타고 성 앞에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리둥절했다.
"저건 누구냐?"
요왕 아보기는 친히 진영 앞에 나와 아화를 살폈다.
"발해의 군사인 듯 합니다."
요의 둘째 왕자 야율 덕광(또는 堯骨)이 옆에서
대답했다. 야율 덕광은 아보기의 둘째 왕자이면서도
발해 침략군의 대원수에 봉해질 정도로 전략과 용맹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단기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단기로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
"무엇을 하려는 짓인지 알 수 없습니다."
"괴이한 일이다!"
아보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 바람을 타고
여자의 노래소리가 아스라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푸른 산과 들에 바람이 불어옵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님이여 우리 한때는 즐거웠습니다
버드나무가지 아래 벽계가 흐르고
나는 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무정한 초원에 비가 내립니다
나는 울지 않습니다
우리 님은 침략자 원수와 싸우다가 죽었고
나는 님을 따라 원수와 싸울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여인의 노래는 애절하였다.
발해에서 오래 전에 널리 불리던
사모가(思慕歌)라는 노래였다. 노랫말은 전쟁터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잃은 여자가 그의 뒤를 따라
전쟁터에 나가 원수를 갚겠다는 내용이었다.
님이여 나를 기다려 주세요
원수와 싸우다가 죽으면
혼령이 되어 님을 만나겠습니다
님도 내가 오기를 기다리겠지요
제가 가는 길에 꽃가루를 뿌려 주세요
말을 탄 여자, 아화가 부르는 노래였다. 그러자
부여성의 성루에 있던 발해군사들도 일제히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님이여 당신은 보잘 것 없는 군사였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당신을 불렀고
당신은 기꺼이 떨쳐 일어섰습니다
용맹한 당신이 가신 길
나도 이제 따라 가렵니다.
아화가 노래를 마쳤다.
그녀의 눈에는 이슬 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발해군사의 눈도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랴!"
노래를 마친 아화가 창을 꼬나 쥐고 거란군의
진영을 향해 질풍처럼 달려가기 시작했다.
"성문을 열어라!"
"우리도 아화의 뒤를 따르자!"
"성문을 열고 침략자들을 쳐부숴라!"
발해군사들은 성문을 열고 노도처럼 거란군을 향해
달려갔다. 정배걸 장군이 미처 제지할 틈도 없었다.
흥분한 군사들은 벌떼처럼 성문을 쏟아져 나가고
있었다.
"나가지 마라!"
"성문을 닫아라!"
정배걸 장군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발해군사들은
그때서야 성밖으로 나가는 것을 멈췄다.
"발해군이 온다!"
"발해군을 막아라!"
거란군은 발해군이 순식간에 진영까지 쇄도하자
우왕좌왕했다.
"아보기는 내 창을 받아라!"
아화는 거란군이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에 쏜살
같이 황제의 깃발이 세워져 있는 군막을 덮쳤다.
거란군이 황급히 아화의 앞을 막고 방패로 아보기를
겹겹이 에워쌌다.
"계집이다!"
"계집을 죽여라!"
거란군은 아화가 여자인 것을 알자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내 창이나 받아라!"
아화는 거란군이 방패로 아보기를 에워싸자 창으로
방패를 힘껏 찔렀다.
"으악!"
아화의 창은 방패를 뚫고 들어가 거란군사의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아보기야 계집이 무서워 숨었느냐? 쥐새끼 같은
얼굴을 내밀어라!"
아화는 재빨리 창을 뽑고 다시 맹렬하게 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거란군이 그 틈에 아화의 뒤에서
창을 찔러왔다. 아화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거란군이 옆에서 창으로 아화의 창을 후려쳤다.
아화는 창을 놓쳤다.
"비켜라! 졸개들아!"
아화는 이를 악물고 환두대도를 뽑아 들었다.
병사들의 방패 사이로 요왕 야율 아보기가 얼핏
보였다. 아보기는 거란군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눈이
휘둥그레져 아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보기야 목을 내놓아라!"
아화는 말잔등에서 허공으로 솟아올라 아보기를
향해 덮쳤다. 그러나 그것은 아화의 실수였다. 아화가
허공으로 솟구쳐 아보기를 덮치려는 순간 거란의 맹장
야율 우지가 아화를 향해 창을 힘껏 찔렀던 것이다.
(아!)
아화는 아랫배가 화끈한 것을 느꼈다.
야율 우지의 창은 아화의 복부를 뚫고 등까지 나와
있었다.
"이 오랑캐 놈!"
아화는 마지막 힘을 다해 그녀에게 창을 찌른 야율
우지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야율 우지는
수많은 전투를 누빈 맹장이었다. 아화가 복부에 창이
꽂힌 채 칼을 휘둘러오자 재빨리 머리를 숙여 칼을
피하고 아화의 복부에서 창을 뽑았다.
아화의 복부에서 피가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거란군사가 아화를 향해 창을 휘둘러왔다.
아화는 그 군사를 향해 사력을 다해 칼을 휘둘렀다.
"으악!"
거란군사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그
바람에 아화는 복부로 피를 뿜으며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거란군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아화의 몸에 무수히 창을 찔러댔다.
아화는 그렇게 절명했다.
장렬한 전사였다.
"계집이 어찌 이리 담대한고?"
아보기는 그때서야 가까스로 제 정신을 차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화를 따라 나온 발해군사들도
거란군에게 모조리 죽음을 당한 당한 뒤였다.
"계집의 목을 잘라서 부여성으로 보내라!"
아보기의 명령에 야율 덕광이 아화의 목을 잘라서
상자에 넣어 부여성으로 보냈다.
"아화의 목이다!"
"아화가 죽어서 돌아왔다!"
"우리도 아화의 뒤를 따르자!"
아화의 목을 본 발해군사들은 흥분하여 날뛰었다.
그들은 정배걸 장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성문을 열고
나가 거란군을 공격했다. 치열한 혈전이었다.
거란군은 수십만 대군이었으나 아화의 죽음으로
분노한 발해군사들을 쉽사리 물리칠 수가 없었다.
거란의 맹장들인 야율 덕광, 야율 우지, 안단,
한연휘, 강묵기 등이 군사들을 독려하여 발해군사들과
맞섰으나 일대 혼전이었다.
그러나 발해군사들은 숫자에 있어서 거란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화의 죽음으로 흥분하여
성문을 열고 나온 지 두 시진 만에 전원이 장렬한
옥쇄를 했다.
"성을 공격해라!"
거란군은 혼란을 수습하고 마침내 부여성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여성은 완고했다.
거란군은 40만이나 되었으나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혈전은 3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거란군은 수많은 군사를 잃으면서도 부여성을
공격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하여 부여성은 3일
동안 전 발해군사와 어린이와 노인을 비롯한
민간인들까지 나서서 장렬한 전사를 할 때까지
버티다가 끝내 함락되고 말았다.
"홀한성으로 진격하라!"
부여성을 함락한 거란군은 질풍처럼 발해의 수도를
향해 달렸다. 거란군은 야율 할저가 가져온
군사지도를 보면서 진격했기 때문에 발해의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방어군 진영을 피해 노도처럼
홀한성으로 달려갔다.
특히 거란 최고의 용장 야율 안단이 지휘하는
거란군의 선봉 1만 명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서
6일 만에 1천리를 돌파했다.
A.D 926년. 발해력 229년 1월 경신(庚申)일의
일이었다.
................................................
1) 거란군이 6일만에 부여성에서 홀한성까지 진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기마족이기도 했지만 발해의
지방군이 전혀 방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거란군의 침략 루트에 있는 부여부와 중경두덕부의
중요한 성들이 싸우지도 않고 길을 비켜준 것으로
여겨진다.
거란군을 맞이하여 용감히 싸운 것은 부여성의
군민들뿐이었다.
2) 대인선 황제 재위때 거란군은 3차례나 발해를
침략하였다. 1차 침략은 부여성의 함락으로 끝났고,
2차 침략은 발해군사들이 격퇴했다. 그러나 3차
침략은 군사 규모에 있어서도 대규모여서 부여성을
깨트리고 단숨에 홀한성까지 짓쳐 들어간 것이다.
27. 눈보라 피보라
거란의 대군은 얼어붙은 초원을 가로질러 물밀 듯이
발해를 침공하였다.
부여성이 함락되자 발해의 각 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거란이 세 차례에 걸쳐 침공을 하는 동안
발해는 별다른 군사 양성도 하지 않았고 성을 수축한
일도 없었다. 홀한성까지는 1천리나 되는
먼길이었으나 거란군은 파죽지세로 밀어닥쳤다.
"폐하. 거란군이 침공해 왔다고 하옵니다!"
부여성에서 최초의 파발이 올라왔을 때 발해의
조정은 그다지 긴박감을 느끼지 않았다. 조정의
대신들은 전에도 부여성이 침략 당한 바 있고 정배걸
장군이 부여성을 견고하게 지킨 사실을 상기하면서
황제에게 대수롭지 않게 보고했다.
"거란군이 또 침공을 했다고?"
"그러하옵니다."
"거란의 군사는 얼마나 된다고 하오?"
"아직 거기까지는 알 수 없사옵니다. 부여성에서
올라온 파발에 의하면 40만은 족히 될 것이라고
하오나 이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이옵니다. 거란은
서정을 하고 돌아온지 불과 석달밖에 되지 않아 이런
군사를 일으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옵니다."
발해의 대신들은 부여성에서 올라온 파발이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정배걸 장군은 이미 거란의
요주를 공격한 바 있고 부여부를 침략한 거란군을
격퇴한 일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거란군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으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게다가 발해 조정은 발해의 군사 요충인 부여성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했었다. 부여성에 충분히
군량을 보내고 군사를 뽑아 보내 부여성은 발해의
어느 성보다 견고하다고 보았다.
"허면 이번에도 정배걸 장군이 거란군을 격파할 수
있다고 보오?"
"격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옵니다. 정배걸 장군은
발해의 용장이옵니다."
"음."
"폐하께서는 성려를 놓으시옵소서."
"그럼 경들만 믿겠소."
인선황제는 대신들의 말을 듣고 안심하였다.
그러나 부여성에서 파발이 빗발치듯 날아오기
시작하자 인선황제도 긴장하였다.
......신 정배걸 삼가 북향사배하고 아뢰옵니다.
거란의 아보기 황제가 손수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부여성밖에 와 진을 치고 있어서 부여성의 함락이
실로 목전에 있사옵니다. 저희 2만 군사는 한결 같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고 싸움에 임할 것이오나 그
승패를 예측할 수 없사옵니다. 원병이 늦기 전에
도착한다면 다소간 오래 버틸 수 있사오나 그것도
사흘을 기약할 수 없사옵니다. 거란의 군사는 그
수효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나 척후를 보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진(陣)의 길이가 30리 요,
군량이며 보급을 하는 병참이 50리까지 뻗쳐 있다고도
하고 1백 리까지 뻗쳐 있다고 하오니 그 군세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저희는 최후의 한 사람까지 적군을 도륙하고 죽을
것이오나 내 강토에서 적군을 쫓아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원통할 뿐이옵니다.
모쪼록 폐하께서는 상도의 방위를 견고히 하시어
2백년 사직을 굳건히 하시고 천추에 한을 남기지
마시옵소서.
이 파발이 도착할 때쯤이면 신들은 모두 죽어 있을
것이오나 다만 한 가지로 폐하의 강령하심을 염려할
뿐이옵니다.
정배걸 장군의 편지는 비장하기까지 하였다. 주색에
빠져 있던 인선황제는 그제서야 당황하여 어전회의를
열었다.
"아무래도 부여성이 함락될 것 같소."
인선황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대신들을
돌아보았다.
"경들은 어찌해야 좋을지 말씀들을 하시오."
인선황제는 현직에서 물러나 있는 원임대신들까지
불러서 대책을 하문했다. 어전회의가 국가의 위급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에 군사를 다루는 무신(武臣)들도
모처럼 황궁에 들어와 회의에 참석했다. 그들은
아직도 부여성이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속히 군사를 모으고 상도를 방위할 계획을 세워야
하옵니다."
무신들은 당당하게 싸울 것을 주장했다.
"거란의 병참 행렬이 30리에서 50리까지 뻗쳐
있다니 수 십만 대군이 침공해 온 듯 합니다."
문신(文臣)들도 이 번에는 주전론(主戰論)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니 거란의 침략을 막아야 할 것이 아니오?"
"방위군을 편성하고 각 부에 연락을 하여 군사들을
모으소서."
무신과 문신들이 방위군을 새로 편성할 것을
제안했다.
"방위군 대장군을 임명하여 그에게 군권을 모두
맡겨야 하옵니다."
"그럼 누가 방위군 대장군이 되는 것이 좋겠소?"
"몇 해 전에 북우위 대장군을 지낸 장영 장군이
적합하옵니다."
태상시(太相侍)인 이종명(李種銘)이 아뢰었다.
태상시는 3사 3공과 함께 국가의 원로대신이었다.
이종명은 20년 전에 좌우위 대장군을 역임하고 각
부의 대신을 두루 거친 뒤 선조성 좌상을 마지막으로
조정에서 물러나 있었다. 무관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선조성 좌상까지 승차한 사람이었다.
"장영 장군?"
인선황제는 장영 장군이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안되옵니다. 그는 나라에 죄를 짓고 쫓기는
자이옵니다. 어찌 그러한 자에게 상도 방위의 막중한
임무를 맡길 수 있겠사옵니까?"
그때 중대성 우상 대발거(大發居)가 강력하게
반발을 하고 나섰다. 그는 발해 왕국의 왕족 출신으로
당 나라에 유학까지 하고 온 인물이었다. 발해가
국풍인 상무의 기풍을 버리고 유풍(儒風)으로 기울자
무관들을 업신여기고 있었다. 문존무비(文尊武婢)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장영 장군이 지었다는 죄가 무어요?"
이종명이 대발거를 노려보며 물었다.
"태상시께서는 장영의 죄를 모르십니까?"
"장영의 죄라는 것은 석연치 않소!"
"장영이 공녀들을 호송하면서 저지른 죄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함이 분명하오!"
"태상시께서는 어찌 그 일을 모함이라 하십니까?"
"장영 장군처럼 강직한 인물이 어찌 그런 일을
저지른다고 할 수 있겠소? 그것뿐이오? 이 나라의
군사들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백인걸 장군까지 죽은
이상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말이오? 그대들
문관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이오?"
"태상시께서는 말씀이 지나치시오!"
"똑똑이 들으시오! 그대들 문관들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소!"
태상시 이종명은 80 고령의 노구답지 않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문관들을 질책했다.
"그만들 두시오!"
보다 못한 인선황제가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각 부에서 파발이 빗발치듯 날아오고
있었다.
"거란군이 부여부를 돌파했다고 하옵니다!"
"장령부가 위태롭다는 전갈이옵니다!"
"장령부가 거란군에게 함락되었다고 하옵니다!"
"거란군이 중경도덕부로 밀어닥치고 있다고
하옵니다!"
파발은 다급하게 조정으로 날아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식 날아드는 파발에 인선황제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또 함락되었다는 말이냐? 도대체 발해군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이냐?"
인선황제는 극구 사양하는 태상시 이종명을 정당성
대내상 겸 상도방위군 대장군에 임명하고 상방검을
하사하여 거란군과 대적하게 했다.
(나 같은 늙은이를 전선에 세우다니.......)
이종명은 어림청을 물러 나오자 깊은 탄식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뇌리를 스쳤다. 발해의 군사력으로는 요를
감당하기가 버거울 것이고 필경은 발해가 투항을 하게
될 것이다. 80의 늙은 나이에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느니 전선에서 죽는 것이 무인다운 죽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종명은 상도방위군을 새로 편성하기 시작했다.
상도방위군을 3대로 편성하고 1대는 선봉, 2대는
본진, 3대에는 후비병을 배속했다. 선봉장에는
김중만(金中萬) 장군을 임명하고 1만의 군사를
배속시키고 본진에는 지부대신 황보헌을 중군장으로
임명하여 1만 군사를 배속시키고 3대는 좌맹분위
대장군 최문영(崔文永) 장군을 임명하여 1만 군사를
지휘하게 했다. 이종명은 손수 중군인 본진에
합류하여 출전했다.
발해의 상도방위군은 겨우 명색만 유지되고 있었다.
문서상에는 군사가 1만이었으나 실제로는 5천도 되지
않았다. 병기고에 보관되어 있는 병기들도 모두
청화(靑花:녹)가 끼어 사용할 수가 없었다. 홀한성과
상경용천부의 민간인들까지 동원하여 가까스로 3만
군사를 만들어 3군으로 나누어 출전했으나
전의(戰意)는 상실되어 있었다.
그것은 성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거란의 대군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데도
홀한성의 성민들은 피난보따리를 꾸리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수도 홀한성의 모든 거리가 피난을 가는
성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래도 전쟁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거리와 골목 곳곳에 깃발이 나부끼고 군사들을
모으는 관리들의 걸음이 분주했다.
발해의 홀한성은 어두운 그림자가 먹물처럼
덮쳐왔다.
이종명은 군사들을 이끌고 출전했다.
거란군이 이미 홀한성을 향해 질풍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거란군은 부여성 이후 별다른 저항조차 받지
않고 1천리나 되는 상경용천부까지 단숨에 달려온
것이다.
(발해국이 망하는구나......)
이종명은 탄식을 했다.
발해군은 상도방위군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출전에 임했으나 밤만 되면 군사들이 무리를 지어
달아났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군막이 텅텅 비어
있어서 태풍이 휩쓸고 간 벌판처럼 을씨년스러웠다.
남아 있는 군사들은 노병들뿐이었다.
게다가 인선황제는 황궁을 경비해야 한다고 정예
군사인 어림군을 황궁에 주둔시켰다.
이종명의 발해 상도방위군과 거란의 선봉군은
홀한성 남쪽에서 30리 떨어진 벌판에서 조우했다.
"저것이 발해 상도방위군이냐?"
"상도방위군이 어찌 저리 허약하단 말이냐?"
거란군의 선봉은 1만 기병이었다. 그러나 발해
상도방위군은 대부분 보병이었고 군복이나 무기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이 입은 군복으로는
정월의 매서운 추위조차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거란군은 발해군의 초라한 모습에 신명이
났다. 발해군의 진영에도 무수히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으나 어쩐지 죽은 나무를 보는 것처럼 생기가
없었다.
"발해의 군사는 오합지졸이다! 마음껏 쳐라!"
거란의 선봉군 장수들은 발해군사를 비웃었다.
"발해의 선봉군을 단숨에 격파하고 오늘 중으로
홀한성까지 들어가자!"
거란군은 사기가 충천해 있었다. 그들은 부여성에서
잠시 지체 당했을 뿐 발해의 영토 깊숙이 들어올
때까지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았다.
"돌격!"
거란군 선봉장 야율 안단은 1만 기병을 질풍처럼
몰아 발해의 선봉군을 공격했다.
"와!"
거란의 선봉군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발해군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발해의 선봉군 대장
김중만 장군은 거란 선봉군의 사나운 기세에 처음부터
기가 질려 있었다. 거란의 선봉군이 짓쳐 들어오자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본진으로 후퇴해 버렸다.
(어찌 이런 인물이 장군이란 말인가......)
80의 고령인 태상시 이종명은 변변하게 싸우지도
않고 후퇴하는 김중만 장군을 보고 탄식을 했다.
발해의 선봉군만이 우왕좌왕하다가 질풍처럼 달려오는
거란군에게 떼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진격 준비!"
태상시 이종명은 황제가 하사한 상방검을 뽑아 들고
소리를 질렀다. 이미 80까지 살았으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상도방위군 대장군의
입장에서는 쓸쓸하기까지 했다.
상도방위군 진영에서 둥둥둥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격을 알리는 북소리조차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진격!"
이종명은 비장한 목소리로 진격을 명령했다. 거란의
선봉군이 벌써 벌판을 까맣게 메우며 달려오고
있었다. 거란의 선봉군 대장 야율 안단은 40대의
맹장이었다. 발해의 상도방위군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보자 단숨에 박살을 낼 듯이 달려왔다.
"적을 막아라!"
발해의 상도방위군 대장군 이종명도 칼을 높이 들고
군사들을 질타했다.
양군은 벌판에서 부딪쳤다. 그러나 발해군은 애초에
거란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거란군의 사나운
기세에 몇 번 싸우는 척 하고는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태상시 이종명은 군사들이 달아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어차피 지고 있는 전쟁이었다. 그들이 목숨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달아나는 것을 막고 싶지 않았다.
"적장은 내 칼을 받아라!"
태상시 이종명은 야율 안단을 향해 말을 몰아
달려갔다.
"네가 상도방위군 대장군이냐?"
야율 안단도 이종명을 향해 달려왔다.
"그렇다! 발해의 태상시 겸 상도방위군 대장군
이종명이다!"
"하하....!이종명 발해에 그토록 사람이 없느냐?
어찌 너 같은 늙은이가 사직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런
전투에 나왔느냐?"
"늙은 몸이라도 너 하나는 죽일 수 있다!"
"이종명! 항복을 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흥! 내가 어찌하여 너따위 조무라기에게
항복하느냐?"
이종명은 야율 안단과 입씨름을 하는 것이
무용하다고 생각하고 칼을 들고 야율 안단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야율 안단도 칼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이종명은 야율 안단의 목을 향해 칼을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야율 안단이 재빨리 칼을 들어
이종명의 칼을 막았다.
창!
칼과 칼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금속성이 들리고
불꽃이 튀었다. 이종명은 칼을 쥔 손목이 시큰한 것을
느꼈다. 힘에서 야율 안단에게 밀리고 있는 것이다.
"이종명! 제법이구나!"
야율 안단이 호쾌하게 웃으며 재빨리 말을 돌려 두
번째 공격을 해왔다. 이종명도 말을 돌려 야율 안단을
향해 돌진했다.
창!
또 다시 요란한 금속성과 함께 칼과 칼이 부딪쳤다.
다음 순간 이종명은 칼을 쥔 손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칼을 떨어트렸다.
"으하하하!"
이종명은 깜짝 놀라 말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야율 안단의 칼이 더욱 빨랐다. 야율 안단은 이종명이
칼을 떨어트리자 말을 돌릴 틈을 주지 않고 섬광처럼
이종명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으악!"
이종명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피를 뿜었다. 야율
안단의 칼이 투구를 두 쪽으로 내면서 얼굴에서
가슴까지 일직선으로 그은 것이다. 이종명의 얼굴과
가슴에서 피가 왈칵 쏟아지고 이종명의 늙은 몸이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러자 야율 안단이 재빨리
거란군 병사의 장창을 넘겨받아 이종명의 가슴을
창으로 찔렀다. 발해국의 원로대신 태상시 이종명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대장군님이 죽었다!"
"대장군님이 전사했다!"
발해군사들은 공포에 질려 외쳤다.
"발해군사를 쳐죽여라!"
야율 안단은 이종명을 쓰러트리자 거란군사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 거란 군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발해군사들을 향해 노도처럼
달려갔다.
발해군사들은 태반은 달아나고 태반은 용감히
싸웠으나 거란군에게 전멸을 하고 말았다.
거란군은 발해의 상도방위군을 격파하고 쉬지 않고
홀한성을 향해 진격했다. 무인지경이었다. 발해의
홀한성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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