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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시간을 찾아서 제3권

by Casey,Riley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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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간 을 찾 아 서 제 3 권
이수광


                         차  례
작가소개
제 39 장 비밀전사
제 40 장 인류의 기원
제 41 장 장막 뒤의 여자
제 42 장 유전자의 비밀
제 43 장 전쟁의 날
제 44 장 하란공주
제 45 장 음모
제 46 장 초능력 인간
제 47 장 강변의 추억
제 48 장 사랑의 배신자
제 49 장 물의 심판
제 50 장 물위의 사랑
제 51 장 불의 심판
제 52 장 여신의 나라
제 53 장 인간의 마성
제 54 장 멸망을 향하여
제 55 장 돌아온 클론
제 56 장 신들의 전쟁
제 57 장 악신의 후예들
제 58 장 천신과 악신
제 59 장 지구의 종말
제 60 장 에필로그





       제 39 장 비밀전사
  밖에는 빗발이 추적거리고 있었다. 우희  위버는 반제동맹
  의장인 로버트 퍼그스가 니트론시를 떠나가자  빗발이 추적
  대는 호수를 우두커니 내다보았다. 로버트 퍼그스는 유러너
  스 제국의 음모를 파헤친다면 아침 일찍 아라크네시로 떠나
  갔던 것이다.
  '과학문명이 이렇게 발달한 시대에 누네즈 같은 여인이 존
  재하다니 '
  인간의 존재는 신비스럽기 짝이 없었다. 우주선을 쏘아 올
  리고 인간과 똑같은 로봇을 만들어 내면서도 인간들은 절대
  자를 필요로 했고 절대자에게 의지하려 하고  있었다. 누네
  즈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은 인간들의 의식 깊은 곳에 잠
  재해 있는 절대자에 대한  기대심리를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로버트 퍼그스는 대단한 인물이야.'
  그녀는 로버트 퍼그스로 인해 비로소 유러너스  제국이 어
  떻게 탄생되었는지 상세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누네즈의
  변신인 마더 살로메에게 충성을 바쳐온 사실이 후회되었다.
  이제는 과학의 시대, 그리고 코스모스(우주)의  시대였다.
  절대권력을 갖고 있는 한 인간에게 노예처럼 지배를 당하며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우희 위버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창밖을 내다보자 사람들
  이 보였다. 호수 쪽에서 그녀를 위장시켜  아라크네시로 데
  리고 갈 반제동맹 요원들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녀는 로
  버트 퍼그스처럼 아라크네시로 다시 돌아가서 활동을 할 예
  정이었다.
  로버트 퍼그스의 권고에 의해서였다.
  "이제는 누네즈와 같은 악녀를 처단하고 우리가 지구를 지
  배해야 하오."
  로버트 퍼그스의 말이었다. 우희 위버는  지구를 지배한다
  는 로버트 퍼그스의 말이 어쩐지 귀에 거슬렸다. 그러나 누
  네즈의 정체를 안 이상 그녀를 제거하는 일에  협조해야 한
  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반제동맹 요원은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였다. 여자는 유강
  렬박사를 살해한 금발의  안드로이드처럼 투피스로  정장을
  하고 있었고 머리가 짧았다. 우희 위버는  또박또박 걸어오
  는 여자 요원을 보자 유강렬박사의 죽음이 생각이  나서 가
  슴이 아팠다. 그녀는 금발의 안드로이드와 너무나  닮은 모
  습을 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는 아닐 거야.'
  우희 위버는 빗발이 뿌리는 황량한 호숫가를  응시하며 고
  개를 저었다.
  우희 위버의 예상대로였다. 그들은 점점 가까이 왔고 윤곽
  이 뚜렷해지자 반제동맹 요원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남자 요원이 우희 위버가 내다보고 있는 유리창을 향해 손
  을 흔들어 보였다. 그는 지난밤에 로버트  퍼그스의 명령을
  받고 우희 위버를 아라크네시에 잠입시킬 준비를 해 가지고
  온 것이다.
  우희 위버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 레인코트를  찾아 입었
  다. 그녀가 니트론으로 찾아올 때도 비가 내렸는데 떠날 때
  도 비가 오고 있었다.
  "박사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요원들이 안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여자 요원은 자세히 살
  피자 얼굴에 주름살까지 있었다. 결코 안드로이드가 아니었
  다.
  "무슨 준비를 하죠?"
  "박사님은 안드로이드로 위장을 해야합니다."
  남자 요원이 말했다.
  "안드로이드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유러너스 제국의  비밀경찰은 안드
  로이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박사님이 변장하실  안드로이
  드는 '로즈 5호'로 마더 살로메의 경호원입니다."
  "마더 살로메!"
  우희 위버는 마더 살로메라는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했다.
  "박사님. 걱정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마더 살로메가
  살고 있는 마더 랜드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
  되고 있습니다. 박사님은 마더 살로메를 그림자처럼 따라다
  니기만 하면 됩니다."
  "그쪽에서 눈치 채지를 않을까요?"
  "우리는 이미 로즈 3호를 우리 요원으로  대체하여 잠입시
  켰습니다. 그녀는 3년째 정체를 발각 당하지 않고  마더 살
  로메의 경호원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은 무엇이죠?"
  "현재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위장을 한  뒤에 반제동맹의
  지시대로 하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우희 위버는 어쩐지 불안하여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옷을 벗으세요."
  여자 요원이 우희 위버에게  말했다. 여자 요원의  얼굴은
  음산하고 냉막해 보였다.
  "옷을 벗어요?"
  "박사님의 이마에 바코드를 새겨 넣어야 해요.  마더 랜드
  를 출입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를 막론하고  바코드가 있어
  요. 그리고 금발로 머리도 바꾸어야 하고 약간의 성형수술
  도 필요해요."
  여자 요원이 가방에서 마취 도구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희
  위버는 어쩔 수없이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여자
  요원이 주사기를 꺼내서 에어를 뽑은 뒤에 그녀의  팔에 꽂
  았다.
  "마취주사예요."
  여자 요원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남자 요원은 등을 돌리고
  있었다.
  "오래 걸리나요?"
  "5시간쯤 걸려요. 아무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잠을 자요.
  즐거운 생각을 하면서 "
  여자 요원의 말에 우희 위버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으나 눈까풀이 빠르게 무거워 지
  면서 서서히 잠이 쏟아져 왔다.
  "끝났나?"
  남자 요원이 여자 요원에게 물었다.
  그의 얼굴은 어느덧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네. 마취에 떨어졌어요."
  여자 요원이 대답했다.
  "좋아 그럼 수술실로 옮긴다!"
  "네."
  남자 요원의 지시에 여자  요원이 벽의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크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우희 위버가 누워 있던 침
  대 옆의 바닥이 옆으로 갈라지고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여자 요원이 침대에 누워 있던 우희 위버를 안아
  서 지하실로 내려갔다.
  남자 요원은 그 동안 무전기를 꺼내 어디론가 신호를 보냈
  고 신호를 보낸지 3분도 되지 않아 호수 쪽에서  흰 가운을
  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들은  남자 요원이
  턱짓을 하자 재빨리 지하실로 내려갔다.
  여자 요원이 거실로 올라와 벽의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지하실 바닥이 다시 닫혔다.
  "무인순찰선 접근중!"
  그때 무전기에서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요원과 여자 요원은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후닥닥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무인순찰선은 유러너스 제국의 비밀경찰이 순찰에  사용하
  는 특수 장비였다. 소형 장난감 에어카에  카메라를 설치하
  여 유러너스 비밀경찰의 감시가 어려운 지역을 순찰하게 하
  고 있었다.
  "제기랄! 이젠 유러너스 제국의 비밀경찰이  무인순찰선까
  지 이용해 니트론을 감시하는군 "
  남자 요원이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니트론은 유러너
  스 제국에서는 치외법권 지역이나 다름없었다. 유러너스 제
  국에서 온갖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도피처로 삼아도 유
  러너스 제국의 비밀경찰이 추적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니트론
  에 만연해 있는 질병 때문이었다. 반제동맹은  유러너스 제
  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니트론 지역
  에 살포해 놓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가드 바이러스를 살포해야겠어요."
  여자 요원이 낮게 속삭였다. 가드(God)  바이러스는 '신의
  바이러스'로 반제동맹 요원들도 두려워하는  바이러스였다.
  반제동맹의 과학자들이 가드  바이러스를 만들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살포하면 우리도 죽을 수 있어! 그건 비상시에만 사
  용해야 돼."
  남자 요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여자 요원이 입을 열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무인순찰선 500m 전방까지 접근. 주의 요함!"
  무전기에서 다시 무인순찰선의 접근을 알리고  있었다. 남
  자 요원과 여자 요원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의 몸을 바짝
  끌어안았다. 그때 앵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섬광이  창을
  뚫고 침대를 비추었다. 이어서 소형 에어카가 창 앞에 나타
  났다. 남자 요원과 여자 요원은 숨소리조차  죽이고 서로의
  몸을 포갰다. 그러자 번쩍  하는 섬광이 사라지고 앵  하는
  소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떠났어요?"
  여자 요원이 고개를 들고 창을 응시했다.
  "쉿!"
  남자 요원이 여자 요원의 머리를 끌어당겨 가슴에 안았다.
  그러자 푸른 섬광이 또 다시 창을 비추고  무인순찰선이 지
  나갔다.  "경계 해제. 무인순찰선 떠났다!"
  무전기에서 무인순찰선이 니트론을 떠났다는 것을  알려온
  것은 5분이나 지나서의 일이었다. 그들은  비로소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찾아 입었다.
  그들은 컴퓨터를 켰다. 그러자 컴퓨터의 모니터에 비밀 지
  하실의 풍경이 떠올라왔다. 지하실에는 거대한 수술실이 있
  었다. 우희 위버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수
  술대 위에 누워 있었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그녀를 수
  술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컴퓨터의 모니터에는 지하실의  수술 풍경이 그대로  보였
  다.
  "저 여자는 이 곳에 거대한 수술실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거예요."
  여자 요원이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질 듯이  응시하며 말했
  다.
  "저 여자뿐이 아니야.  이 집의 주인이었던  유강렬박사도
  까마득하게 몰랐어."
  "유강렬박사가 살해된 것은 정말 안됐어요. 아까운 사람이
  었는데 "
  "며칠만 더 살아 있었으면 우리에게 포섭되어 보호를 받을
  수 있었어."
  남자 요원도 고개를 끄덕거려 동감을 표시했다.
  "뇌 천공(穿孔) 준비 완료."
  수술실에서 의사들이 우희  위버의 뇌에 구멍을  뚫으려는
  모습이 비치기 시작했다. 남자 요원과 여자 요원은 숨을 죽
  이고 컴퓨터의 모니터를 응시했다. 수술실의 의사들이 분주
  하게 움직이며 우희 위버의 마리 속에 레이저로  구멍을 뚫
  고 마이크로 칩을 삽입하려고 하고 있었다.
  "천공 실시!"
  집도의의 명령이 떨어지자  레이저 시술기가 우희  위버의
  뇌로 접근했다. 레이저 시술기에서는 미세한 소리가 들리며
  레이저 빛이 쏘아졌고 그 빛이 우희 위버의 뇌에  직경 2cm
  의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마이크로 칩 이식 준비!"
  집도의의 명령이 다시 떨어졌다. 수술실은  침삼키는 소리
  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남자 요원과 여자 요원
  은 바짝 긴장하여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했다. 인간의 뇌 속
  에 구멍을 뚫고 마이크로 칩을 이식하는 작업은 초정밀작업
  이었다. 미세한 실수라도  발생하면 시술을 받는  대상자의
  뇌가 파괴되어 정신박약자가 되거나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되
  는 것이다.
  "이식 준비 완료!"
  "마이크로 칩 이식 실시!"
  "실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지하실에서 수술을 하는  의사와 간
  호사들의 긴장된 말이 또렷이 들려왔다. 남자  요원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우희 위버의 뇌속에  삽입되는 마이크로
  칩은 우희 위버의 뇌를  제어하기도 하고 보조하기도  하는
  것이다. 마이크로 칩은 일종의  인간 로봇 뇌라고도 할  수
  있었다.
  우희 위버의 뇌에 마이크로 칩을 이식하는 작업은 두 시간
  이나 걸렸다. 마이크로 칩과 우희 위버의 뇌와 충돌을 하지
  않고 상호 보완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신경을 연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이내 우희 위버의 뇌에 마이크로 칩의 이식이 완전히 끝났
  다.
  남자 요원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여자
  요원도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마이크로 칩의  이식이
  끝나자 길게 한숨을 토해 냈다.
  다음은 안구 교체 수술이었다. 우희 위버의 눈  하나를 빼
  어내고 카메라 칩이 들어있는 인조 눈을 삽입하는 수술이었
  다. 그 수술은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젠 근육 강화 수술이군요."
  여자 요원이 말했다. 근육 강화 수술은 우희  위버의 근육
  을 안드로이드처럼 단단하게 강화시키는 작업이었다.
  우희 위버를 로즈 5호로 완전히 탈바꿈시킨 것은 꼬박 5시
  간이 지나서의 일이었다.
  우희 위버는 눈을 뜨자 거실에 있는 반제동맹 요원을 쳐다
  보았다.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우희 위버를  살피고 있었
  다. 우희 위버는 그들을  힐끗 살핀 뒤에 침대에서  일어났
  다.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반제동맹 요원들의 말
  에 의하면 수술을 한다고 했으나 수술은 간단했던 모양이었
  다.
  "어디를 수술했죠?"
  "눈과 머리입니다."
  남자 요원이 대답했다.
  "눈을 왜 수술했어요?"
  "박사님의 왼쪽 눈에  카메라 칩을 이식했습니다.  뇌에는
  특수 마이크로 칩을 이식했구요."
  이번엔 여자 요원이 짧게  끊어서 대답했다. 우희  위버는
  머리를 만져보았다. 그러나 어디를 어떻게 수술했는지 수술
  한 부위가 만져지지도 않았고 상처도 없었다.  다만 그녀의
  머리가 단발로 잘라져 있었고  머리색도 금발로 변해  있었
  다.
  "뇌는 왜 수술했어요?"
  "뇌에 이식한 마이크로 칩에는 바코드와 우리의 명령에 따
  라 행동하는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어요."
  "그럼 나는 당신들의  로봇이 되었나요? 당신들이  명령을
  내리면 그대로 따라야 하나요?"
  우희 위버는 놀라서 여자 요원을 쏘아보았다. 그들이 자신
  의 뇌속에 마이크로 칩까지 이식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우희 위버는 그들이 뭔가 좋지 않은 일을
  꾸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예요."
  "난 당신들에게 협조하겠다고 했지 당신들의  명령에 따르
  겠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박사님을 나쁘게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우희 위버가 화를 내자 남자 요원이 달랬다.  우희 위버는
  남자 요원을 쳐다보았다.
  "박사님은 이제 우리의 동지입니다.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
  시오. 모두가 우리 인류를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남자 요원의 말에 우희 위버는 비로소 기분이 조금 나아졌
  다.
  "거울을 보고 싶어요."
  우희 위버의 말에 여자 요원이 말없이  거울을 가져다주었
  다. 우희 위버는 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에는 우희 위버가
  아니라 전혀 다른 모습의 금발의 안드로이드가  서 있었다.
  우희 위버는 그들이 성형수술로 자신의 얼굴까지 바꾼 사실
  에 가슴이 저렸다. 그러나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아무 흔적도 없군요."
  우희 위버는 그들이 준비해  둔 투피스로 정장을 하고  그
  위에 레인코트를 걸쳤다. 안드로이드들은 언제나  투피스로
  정장을 했다.
  밖으로 나오자 빗발이 푸숫하게 얼굴을 때렸다. 빗발이 제
  법 차가웠다. 우희 위버는 레인코트의 깃을  세우고 에어카
  에 탔다. 운전은 남자 요원이 맡았다.
  에어카가 니트론의 상공을 날기 시작하자 우희  위버는 담
  배를 피워 물었다. 에어카의 차창으로 황량한  니트론의 벌
  판이 내려다보였다. 한때 뉴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세계
  의 중심 역할을 했던 도시, 이제 그 도시가  황량한 벌판으
  로 변해 있었다.
  남자 요원이 에어카에 블랙실드(차단막)를 가동했다. 남자
  요원의 에어카는 특수하게 제작된 에어카인 모양이었다. 일
  반인들의 에어카에는 첨단장비인 블랙실드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블랙실드는 전파탐지기나 열감지 레이더로  추적을
  할 수 없는 에어카 보호장치였다.
  "로즈 5호는 어떻게 되었어요?"
  우희 위버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물었다.
  "우리가 제거했어요."
  "나는 마더 랜드를 한번도 들어가 본 일이  없는데 어떻게
  하죠?"
  "우리는 로즈 3호를 잠입시킨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에어카의 뒷좌석에서 여자 요원이 대답했다.
  에어카가 아라크네시 교외의  주라기 파크에 이르자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반제동맹 요원들은 주라기 파크에서 내
  리고 우희 위버는 에어카를 운전하여 마더 랜드로 향했다.
  우희 위버는 서서히 긴장이 되었다.
  마더 랜드로 잠입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자 긴장  때문에 가
  슴이 세차게 뛰었다. 마더 랜드는 금발의  살인 안드로이드
  들을 비롯해 누네즈의 변신인 마더 살로메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불로불사의 몸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봉선화 혜성이 지구궤도를 침략하기 전에  태어난 여자이므
  로 이미 5백살이 넘었을 것이다.
  5백살!
  5백년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여자!
  우희 위버는 그 생각을 하면 숨이 막혀  오는 기분이었다.
  마더 살로메 누네즈는 5백년을 넘게 살았을 뿐만 아니라 앞
  으로도 얼마나 더 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여자를 감
  시하면서 첩보활동을 한다는  것이 불안했다. 마치  죽음을
  무릅스고 불에 뛰어든 불나방 같았다.
  "박사님! 내 목소리가 들려요?
  그때 머릿속이 웅하고 울리면서 반제동맹 여자  요원의 목
  소리가 들려왔다. 우희 위버는 흠칫했다. 그녀는 깜짝 놀라
  자신의 귓속에 이어폰이 설치되었는지 확인했으나 이어폰은
  없었다.
  "놀라지 말아요. 나는 방금 헤어진 반제동맹의 나나예요."
  여자 요원의 이름이 나나인 모양이었다. 우희 위버는 사방
  을 두리번거렸다.
  "내 목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끄덕거려요."
  우희 위버는 나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목소리는 박사님의 뇌에  이식한 마이크로 칩을  통해
  뇌로 전달되고 있어요. 아울러 박사님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있어요. 그러니 앞으로 우리에게 전
  달 사항이 있으면 낮게 중얼거리도록 하세요."
  "알았어요. 나나.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우희 위버는 낮게 중얼거려 보았다.
  "잘 들려요 박사님."
  나나가 웃으며 말했다. 우희 위버는  아라크네시의 관청가
  가 내려다보이기 시작하자 약간 몸을 떨었다.
  "박사님. 긴장할 필요 없어요."
  "마더 랜드가 가까워지고 있어요."
  "박사님! 에어카의 운전을 자동운전에 놓도록  해요. 시스
  템을 찾아서 자동운전에 놓으면 에어카가 스스로 마더 랜드
  금궁의 입구로 찾아갈 거예요."
  "알았어요."
  우희 위버는 에어카에 설치되어 있는 운전  시스템에서 자
  동운전을 클릭했다. 이제 에어카는 자동으로 마더  랜드 안
  에 있는 금궁의 입구로 찾아갈 것이다.
  우희 위버는 될대로 되라 하는 심정이 되었다. 유강렬박사
  가 죽은 뒤 유러너스 제국의 비밀경찰이 파견한  살인 안드
  로이드를 피해 니트론까지 도망쳤던 자신이  거꾸로 유러너
  스 제국의 금궁으로 잠입한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어...'
  그녀는 로버트 퍼그스를 잠깐 생각했다. 그는 유러너스 제
  국의 퇴역장군이었다. 한때  유러너스 제국을 위해  충성을
  바쳤던 사내가 지금은 반제동맹을 결성하여  유러너스 제국
  을 붕괴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는 지구를 지배할 목적을 가
  지고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누네즈와  똑같은 악
  인이라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적이 아니면 동지야....'
  로버트 퍼그스가 적인지 동지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주어진 숙명이었다.
  에어카가 자동으로 관청가의 워터로에 착륙하여  지상도로
  를 달리기 시작했다.  관청가의 워터로는 어떤  에어카든지
  상공을 날 수가 없었다. 워터로는 에어카  비행 금지구역이
  었다.
  에어카가 워터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려서 파나카이아  총통
  관저 옆으로 돌았다. 총통 관저의 옆에 마더 랜드의 금궁으
  로 들어가는 비밀 입구가 있었다.
  에어카는 순식간에 금궁의 비밀 입구에  이르렀다. 감시병
  은 전혀 없었다. 파나카이아 총통 관저 뒤로 에어카가 돌아
  가자 넓은 광장이 나타났고 시민들의 출입이 금지된 공원으
  로 에어카가 미끄러져 들어갔다.
  에어카의 운전 시스템에  입력되어 있는 프로그램에  의해
  에어카가 자동으로 입구를 찾아가고 있었다.
  "박사님. 근육이 굳어져 있어요."
  나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우희  위버는 고개
  를 끄덕거리고 억지로 얼굴을 폈다. 에어카는  벌써 수목이
  울창한 공원의 가운데에 있었고 S자 코스를 돌아서 두 개의
  기둥 앞에 이르러 멎었다.
  "그 곳이 마더 랜드 출입구예요."
  "문도 없는데요?"
  "잠자코 기다리세요."
  우희 위버는 나나의 지시대로 기다렸다. 1분쯤  지나자 갑
  자기 적외선이 에어카를 비추었고 적외선이  에어카를 훑고
  지나가자 어디선가 금속성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즈 5호! 입궁을 허락한다!"
  이어서 크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우희 위버가 탄  에어카
  가 서 있던 땅이 지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로즈 5호의 에
  어카는 금궁의 지하 입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우희 위버는
  약간 긴장이 되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금궁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오고 있었다.
  에어카가 지하로 하강하다가 멎었다. 그러자  에어카가 자
  동으로 시동을 걸고 미끄러져 지하통로를 빠져나갔다.
  "절대 긴장하지 마세요."
  나나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다짐을 했다.
  "알았어요."
  우희 위버는 입술을 달싹거려 대답했다.  에어카는 빠르게
  지하통로를 빠져나가 지상으로 상승하더니 금궁의  정원 입
  구로 들어갔다. 정원의 입구에는 기화이초가 만발해 있었고
  드문드문 카메라 칩과 마이크로폰이 설치되어 있었다. 감시
  병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더 랜드는 완전히 자동 시스
  템으로 침입자를 감시하게 되어 있었다.
  '대단한 시스템이야.'
  우희 위버는 속으로 감탄했다.
  문득 에어카가 멎었다. 우희 위버는 에어카의 자동운전 시
  스템을 살폈다. 자동운전 시스템 모니터에 'STOP, 검문중!'
  이라는 붉은 글씨가 나타나 있었다. 에어카가  검문소의 위
  치를 알고 자동으로 멈춘 것이다. 우희 위버는 에어카의 자
  동운전 시스템 기능에 감탄했다.
  "로즈 5호! 하차하라!"
  어디선가 금속성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희 위버
  는 에어카에서 내렸다. 그러자 우희 위버의 몸으로 붉은 빛
  의 적외선이 쏘아졌다. 우희 위버는 속으로 침을 삼켰다.
  "로즈 5호! 바코드 확인!"
  적외선이 그녀의 이마에 있는 바코드가 이상이  없다는 것
  을 확인했다. 우희 위버는 잠자코 서 있었다.  적외선이 바
  코드를 인식하여 본인인지 아닌지 확인을 마친 것이다.
  "로즈 5호!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음!"
  금속성의 목소리가 바이러스 감염 여부의 확인을 마쳤다.
  "로즈 5호! 신체 기능 이상 없음! 입궁을 허락한다!"
  우희 위버는 잠자코 기다렸다. 아직  에어카에 탑승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로즈 5호! 에어카에 탑승하라!"
  이내 우희 위버에게  에어카에 탑승하라는 명령이  떨어졌
  다. 우희 위버는 절도  있는 걸음으로 에어카에  탑승했다.
  에어카가 시동을 걸고 정원으로 달려들어갔다.
  우희 위버가 마더 랜드의 거미줄 같은 통로를 지나 성전에
  도착한 것은 10분쯤 지났을 때였다. 성전은  마더 살로메의
  궁전이었다. 우희 위버는 경비병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기가 질렸다. 경비병들은  레이저건과 광
  자포 따위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통로의  모퉁이마다 남녀
  경비병들이 세워져 있었고 그들이 일일이 우희 위버의 바코
  드를 확인하고 몸 수색을 했다.
  '어마어마하게 경비를 하고 있어!'
  우희 위버는 성전에 있는 마더 룸으로 들어갔다.  마더 룸
  은 마더 살로메의 침실이었다.
  "로즈 5호!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우희 위버는 꼿꼿하게 서서 보고했다. 나나 요원이 마이크
  로 칩으로 가르쳐 준 말이었다.
  마더 룸은 붉은 커튼이 장막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커튼이 투명해서 침실의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수고했다!"
  마더 살로메는 거대한 침대 위에 비스듬하게 누워 있었다.
  거인이었다. 우희 위버는 마더 살로메의 거대한  몸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전율했다.
  "보고는 받았다! 돌아가서 쉬도록!"
  "예!"
  우희 위버는 절도 있는 걸음으로 성전을 나왔다.  마더 살
  로메에 대해 잔뜩 겁에 질려 있어서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
  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마
  더 살로메, 아니 누네즈도 인간은 인간이었다. 그녀가 인간
  이 확실한 이상 언젠가는 인류를 위하여 제거할  수 있으리
  라고 생각했다.
  우희 위버는 경비병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하고  있는 성전
  을 나와 로즈 5호의 숙소로 갔다. 로즈 5호의  숙소는 마더
  랜드 지하에 있었다. 그 곳에는 안드로이드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안드로이드라기보다 아직은 로봇에 더욱 가
  까웠다.
  '이들은 기계일 뿐이야....'
  정밀하게 제작된 안드로이드가 아니었다. 그들은 생각하는
  기능도 갖고 있지 않았고 입력된 프로그램에 의해 명령하는
  일만 수행하고 있었다.
       제 40 장 인류의 기원
  적막했다. 우주는 가도가도 고요와 어둠뿐이었다.
  장애란은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을 눕히고 우주선의  디스
  플레이 스크린으로 광대무변한 우주를 보고 있었다. 우주선
  이 빠른 속도로 날고 있었기 때문에 이따금 붉은 빛이 창을
  지나가기도 했고 긴 꼬리를 끌면서 혜성이 떨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아름다웠다. 그러나 우주는 적막할 정도로 고요했다.
  '유러너스 제국이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공격하다니 '
  니리드 위성에서는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바
  르시크대령의 실종 이후 니리드 위성에 있는 사피언스 그라
  운드군을 한 밤중에 유러너스 제국의 군대가 대대적인 공격
  을 감행했던 것이다.
  뜻밖의 사태였다. 이제는  우주에서조차 유러너스  제국과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사피언스 그라운드는 바르시크대령의 실종을 파악하기  위
  해 장애란을 니리드 위성으로 보낼 계획이었으나 이제는 장
  애란에게 유러너스 제국군대를 격파하게 할 계획이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은 유러너스 제국의 군대에게  대패를
  했다. 니리드 위성에서  사피언스 그라운드 평의회에  보내
  온 보고에 의하면 군대와 주민들이 2만  명이나 몰살되었다
  고 했다.
  전쟁은 원시적인 전쟁이었다.  기묘하게 니리드  위성에는
  금속이 존재하지 못해 첨단  과학무기를 사용할 수가  없었
  다. 거기서는 오로지 나무나 돌 따위의 창과 칼  따위로 전
  쟁을 해야했다. 그러나 장애란은 전쟁보다  이리노중위에게
  더 마음이 이끌렸다.
  '니리드 위성과 살로메 위성이 동일 위성이라는 것이 밝혀
  졌으니 그 곳에  도착하면 이리노중위를  만날 수 있을  거
  야.'
  장애란은 이리노중위를 생각하자 가슴이 저려왔다. 이리노
  중위를 만나지 못한지 벌써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장애란은 이리노중위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장애란은 눈을 감았다. 니리드 위성을 왕복하는 우주선 오
  딧세이 17호에 탑승한지  벌써 31일째였다. 니리드  위성에
  도착할 시간이 하루밖에 남지 않아 가슴이 설레어  오고 있
  었다.
  '그도 나를 그리워 하고 있을까?'
  장애란은 이리노중위의 얼굴을 머릿속에 아련히 그리며 잠
  을 청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 잠을 자기 위해
  책을 읽고 싶지는 않았다. 우주선 오딧세이  17호에 탑승한
  뒤에 그녀는 하루를 쉬고는 계속해서 무수한 장서를 읽었었
  다. 지구의 고대사를 비롯해 문명사, 과학사, 전쟁사 그녀
  가 한 달 동안 읽은 책은 수만 권이나 되었다. 그녀는 아이
  큐가 600이나 되는 초능력자였다. 마이크로 칩에 저장된 수
  많은 책을 영화를 보듯이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통해 빠르
  게 읽었다. 책을 읽는 속도가 화살처럼 빨랐다.
  책장을 넘길 필요도 없었고 디스 플레이  스크린의 시스템
  을 조절할 필요도 없었다. 디스 플레이 스크린의 책장은 그
  녀의 눈빛이 움직이는 방향에  의해 스스로 다음  책장으로
  넘어갔다.
  '이리노중위가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공격했으면 나의 적이
  되는데 어떻게 하지?'
  장애란은 이리노중위와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싶었다.
  "지구로부터 통신입니다."
  그때 아이락소령이 조종실로 들어와 보고했다.  그의 뒤에
  는 우주선 오딧세이 17호의  선장인 매킨리제독도 서  있었
  다.
  "무슨 일입니까?"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조절하십시오. 예멘 의장께서 명령
  을 내리실 것입니다."
  장애란은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조절했다.  그러자 스크린
  에 예멘 의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의장 각하! 장애란 소위 인사드립니다!"
  장애란은 벌떡 일어나서 거수경례를 했다.
  "수고가 많소. 블랙 캐츠.  하루만 지나면 니리드  위성에
  도착할 텐데 기분이 어떻소?"
  "매우 좋습니다."
  "다행이오. 그 동안 블랙 캐츠가 수만 권의 책을 읽었다는
  보고를 받았소. 특히 고대의 전쟁사는 니리드  위성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오."
  "의장 각하! 니리드 위성에 금속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사실입니까?"
  "불행한 일이지만 사실이오."
  예멘 의장이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럼 무엇으로 적들과 싸우죠?"
  "나무를 깎아서 만든 창이나 돌도끼, 짐승의 뼈로 만든 칼
  을 사용해야 하오."
  "알겠습니다."
  장애란은 도리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블랙 캐츠는 니리드 위성에 도착하는 즉시 특수 전투부대
  를 창설하여 니리드 위성을 정복하시오. 우리  평의회는 블
  랙 캐츠  장애란을 니리드 위성의 총독으로 임명하였소."
  "의장 각하!"
  장애란은 깜짝 놀랐다.
  "그대는 충분한 자격이 있소. 그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
  는 자는 즉각 군법에 의해 즉결 처형을 하시오!"
  "아, 알겠습니다."
  장애란은 얼떨떨했지만 재빨리 거수경례를 했다.
  "그대의 임무는 니리드 위성을 정복하는 것이오! 명심하시
  오!"
  "명심하겠습니다!"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서 예멘 의장이 사라졌다.
  "총독님께 경례!"
  그때 매킨리제독과 아이락소령이 갑자기 장애란에게  부동
  자세로 거수경례를 바쳤다.
  장애란은 당황했다. 자신이 그들로부터 경례를 받으리라고
  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총독각하!"
  "고맙습니다!"
  장애란도 그들에게 답례를 했다.
  장애란은 마치 도깨비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첩보사령부의
  일개 소위에게 니리드 위성의 총독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
  긴다는 것이 얼핏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멘 의장은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최고 통수권자이자 절대자였다.  모든
  것이 그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고 좌우되었다.
  오딧세이 17호의 착륙선이 니리드 위성에 도착한  것은 다
  음날 아침의 일이었다. 착륙선에서 장애란이 내리자 윌리엄
  장군과 폴리소령이 부대를 이끌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
  이락소령에게 들은대로 그들은 목창과 칼  따위의 원시무기
  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이 별은 정말 기이하군.'
  여러 가지 의문점이  많았지만 장애란은 상쾌한  공기부터
  마음껏 들이마셨다. 니리드 위성은 태고의 지구처럼 하늘이
  맑고 깨끗했고 아름다운 밀림과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
  다.
  "어서 오십시오! 총독각하!"
  윌리엄장군이 장애란에게 거수경례를 바쳤다. 장애란도 거
  수경례로 답례를 했다.
  "반갑소 장군!"
  장애란은 윌리엄장군에게 손을 내밀었다. 윌리엄장군이 장
  애란의 손을 잡았다. 윌리엄장군의 얼굴이 어쩐지 불만스러
  워 보였다.
  "이쪽은 폴리소령입니다."
  "총독각하를 환영합니다!"
  폴리소령도 거수경례를 바쳤다. 장애란은  폴리소령에게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거렸다.
  "유러너스 제국의 침략을 받았다는데 그들은 어디 있소?"
  "그들은 북쪽에 있습니다."
  윌리엄장군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들의 군대가 얼마나 됩니까?"
  "2만 명쯤 됩니다."
  "그럼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군대는 얼마나 됩니까?"
  "10만 명쯤 됩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당했다는 말이오?"
  "그들은 갑자기 기습을 하기 때문에 방비를 할  수가 없습
  니다."
  장애란이 날카롭게 추궁하자 윌리엄장군이 비로소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좋소! 일단 부대로 돌아갑시다."
  "각하! 말을 타십시오!"
  위관 장교 하나가 장애란에게 말을 끌고 왔다.  털이 하얀
  백마였다. 장애란은 말 위에 올라탔다.
  "출발!"
  장애란이 말 위에 올라타자 윌리엄장군이 옆에 와 섰고 폴
  리소령이 병사들에게 출발 명령을 내렸다. 장애란은 가볍게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말이 천천히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바르시크대령이 착륙선에서 행방불명되었다고 했는데  어
  떻게 된 것일까?'
  장애란은 말 위에 앉아서 잠시  바르시크대령을 생각했다.
  바르시크대령이 외계인에게 살해되었을지도 몰라 불안했다.
  "각하!"
  그때 폴리소령이 장애란에게 말을 걸었다.
  "지구에서도 전쟁이 일어났습니까?"
  "아직 전쟁이 일어날 조짐은 보이지 않아."
  유러너스 제국이 니리드 위성에서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을
  공격한 것은 이미 전쟁상태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지구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유러너스 제
  국이 반제동맹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러너스 제국이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을 공격하면  지하에
  서 암약하고 있는 반제동맹이  일제히 봉기할 것이  분명했
  다. 반제동맹이 봉기하면 유러너스 제국은 양쪽에  적을 두
  게 되는 것이다. 과학문명이 가장 뛰어난  유러너스 제국이
  라고 해도 그것은 위험을 자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니리
  드 위성은 달랐다. 니리드 위성은 먼저 정복하는 쪽이 주인
  이 되는 것이다.
  유러너스 제국이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공격한 것도  그 까
  닭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니리드 위성의 총독에  임명된
  장애란으로서도 한판 승부를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니리드 위성에서의 전쟁은  원시 전쟁이야. 오로지  강한
  체력과 기습만이 적을 물리칠 수 있어 '
  장애란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원시 전쟁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가 그
  녀에게 실시했던 지옥훈련,  일명 죽음의 벌판을  통과하는
  훈련을 병사들에게 시킨다면 얼마든지 적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이 없는 유러너스 제국은 종이 호랑이에  지나지 않는
  다.
  장애란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사피언스 그라운드가
  니리드 위성에 건설한 애브너시에 도착했다. 애브너시는 커
  다란 성곽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윌리엄장군의  말에 의하
  면 성곽의 길이가 80km에 이를 것이라고  하였다. 80km라면
  장장 2백리가 되는 길이가 된다. 성루에는 초병들이  서 있
  었고 처처에 깃발이 꽂혀 펄럭거리고 있었다.
  성문에는 병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새로운  총독으로 임명
  된 장애란을 환영하기 위해서였다. 병사들은 잔뜩 긴장하여
  도열해 있었으나 목창으로 무장을 하고 있어서 어딘지 모르
  게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도시는 구획이 잘 되어 있었다. 그러나 건물들은 흙벽돌과
  나무로 건축되어 있었다.
  '적이 화공을 펼치면 속수무책이겠군.'
  장애란은 건물들의 지붕이 모두 목재로 되어 있는 것을 보
  고 유러너스 제국이 화공(火攻)을 펼치면 전멸을 할 것이라
  고 생각했다.
  총독 관저는 도시의 가장 안쪽에 있었다.
  60만 명의 주민과 군인들이 주둔하는 도시답게 총독관저는
  제법 으리으리하게 꾸며져 있었다. 관저는  2층으로 건축되
  어 있었다. 지붕 위의 첨탑은 뾰족했고 지붕은 돔형이었다.
  관저는 군대가 삼엄하게 경비를 하고 있었다.
  "총독님을 향해 받들어 총!"
  장애란이 관저에 도착하자 근위병들의 우두머리인  위관급
  장교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근위병들이  일제히 받
  들어총 자세를 취했다.
  "총독 근위대장 필립중위입니다."
  장애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애란이 관저로 들어가자 정원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
  해 있었고 시종들이 도열하여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장
  애란은 관저의 방을 모두 살핀 뒤 시종들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을 하고 쉬었다. 시종들은  모두 하얀 옷을 입고  있었
  다.
       제 41 장 장막 뒤의 여자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평의회 회의실은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에 둘러싸여 있었다. 오딧세이 17호의 선장 매킨리제독
  으로부터 장애란이 무사히 니리드 위성에  도착했다는 보고
  가 들어와 있었다.
  "의장 각하! 우리가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요?"
  몰루카장군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예멘 의장을  쳐다보았
  다.
  "최상의 선택이오."
  예멘 의장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했다.  압둘라장군을 비
  롯해 다른 평의원들도 근심스러운 표정이  역력하게 나타나
  있었다.
  "차후에 우리의 적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몰루카장군이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몰루카장군의 말에 평의원들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검은 고양이는 옛날의 안드로이드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한 로봇입니다."
  "그렇소. 그녀는 이미 로봇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
  과 똑같소. 그녀는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번식도
  할 수 있소. 몰루카장군은 그녀가 어디서  제작되었는지 알
  고 있소?"
  "안드로이드와 인류가 전쟁을  했던 시대, 일명  판도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안드로이드가  있다는 전설이  있었습니
  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 전설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판도라
  의 전쟁이 끝나고 안드로이드 사냥시대에  욥중위와 엘리사
  소위라는 두 안드로이드 초급장교가 살아 있었답니다. 그들
  은 안드로이드 사냥꾼 헐버트에게 살해되었는데 엘리사소위
  의 뱃속에는 태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압둘라장군의 말에 평의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도 그런 전설을 들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전설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소?"
  "그렇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태
  아가 살아 있다면 안드로이드의  부흥을 꿈꿀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 태아가 어디에서 안드로이드의  부흥을 꿈꾸고
  있다는 말이오?"
  "그것은 몇 가지 사실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사냥시대가 끝나고 20년쯤 후에 유러너스 제국은 우주선 하
  나를 분실했습니다. 우리는 그 우주선이 엘리사소위의 몸속
  에서 태어난 안드로이드가 탈취하여 우주로 달아난 것이 아
  닌가 하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주의 어떤 행성에 안드로이드들이  살고 있다
  는 말이오?"
  "그럴 가능성이 너무나 높습니다. 안드로이드들은  스스로
  를 복제할 있습니다."
  "복제한다면 사이보그를 말하는 것이오?"
  "클론입니다. 안드로이드들은 수많은 안드로이드들을 복제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소.  그 무렵 안드로이드들은  인간들처럼
  자기들끼리 짝짓기를 하여 수태를 하고 있었소. 안드로이드
  전쟁시대에 대부분의 안드로이드들은 그렇게 짝짓기를 하여
  태어났소. 그 바람에 안드로이드들을 일컬어  휴먼로이드라
  고도 부르지 않았소?"
  "그렇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안드로이드인 엘리사의  몸속
  에서 태어난 태아는 여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여자
  안드로이드만 복제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장애란이 행성
  에서 지구로 온 것입니다."
  "나는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소."
  예멘 의장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차이나족의 가오
  슝장군은 두 사람의 대화가 마땅치 않은 듯 잔뜩 얼굴만 찌
  푸리고 있었다. 심통이 난 표정이었다. 그는 두  사람의 대
  화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몰루카장군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좋소."
  예멘 의장이 안락의자에 몸을 눕혔다.
  "지구를 탈출한 안드로이드는  분명 여자  안드로이드였을
  것입니다. 그는 우주의 한 행성에서 자신을  무수히 복제하
  여 안드로이드 세상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자신을
  복제했기 때문에 안드로이드들은 여자밖에 복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남자 안드로이드들을 만들기 위해 지구로
  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구의 남자들을 납치하여  남자
  안드로이드들을 제작하기 위해 연구를 하는가 하면 여자 안
  드로이드와 지구 남자와 짝짓기를 하게 하여 완벽한 안드로
  이드들을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몰루카장군의 말에 평의원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평의회 평의원들은 안드로이드와 지구가 벌였던 끔찍한 전
  쟁을 생각하고 몸서리를 쳤다.
  "장애란이 지구에 온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장애란은 안드로이드라기보다 휴먼로이드로군. 그런데 안
  드로이드들은 무엇 때문에 굳이 남자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오?"
  "그것은 로봇의 역사를 살펴보시면 아시게 됩니다. 로봇에
  지능이 만들어지면서부터 로봇들의 최대의 꿈은  인간과 같
  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처럼 감정을 갖고, 생각을 하고,
  아이들을 낳는 것이었습니다. 장애란은 인간처럼 아이를 낳
  으려 할 것입니다."
  몰루카장군의 말에 가오슝장군이 입술을 비틀며 피식 웃었
  다. 그것이 실제로 가능 하느냐 하는 의미였다.  기계와 인
  간이 결합하여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
  다.
  "여러 평의원님들께서 과연 그럴 가능성이  있겠느냐 하고
  의심을 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과학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몰루카장군. 그것은 너무나 막연한 말씀이오.  우리가 알
  아듣게 설명을 해주시오."
  압둘라장군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하라고 말했다. 몰루카
  장군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 장애란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장애란은  IQ
  600의 초능력자입니다. 우리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지능지수
  입니다. 게다가 장애란의 몸속에 숨어 있는  에너지도 어마
  어마합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그녀의 세포는  무한대로
  재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세포  조직을 떼어내
  어 조직검사를 했는데  인간과 전혀 달랐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계시겠지만 인간의 세포는 50번 정도밖에 재생을 하지
  못합니다. 50번을 재생하고  나면 인간은 세포가  노화되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세포 중에  유일하게 무한대로
  재생을 하는 것은 암세포밖에 없습니다."
  몰루카장군의 말에 예멘 의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장애란이 우리에게 온 목적이 무엇이란 말이오?"
  "장애란은 인간의 유전인자를 갖고 있는 정자를 얻기 위해
  온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인간과 짝짓기를  하여 아이
  를 낳기 위해 온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몰루카장군의 말에 모두들 웅성거렸다. 인간과  기계가 짝
  짓기를 하여 태아를 낳는다는 말이 지나치게 황당하게 들렸
  기 때문이었다.
  "불가하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소?"
  "과학은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을 뒷받침해 왔습니다. 기계
  라고 해도 장애란은 인간이나 다를 바없는 완벽한 안드로이
  드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몰루카장군. 그러면 장애란을 때가 되면 제거해야 된다는
  말씀 아니오?"
  "그렇습니다. 장애란이 니리드  위성을 정복하면 그  즉시
  제거해야 합니다. 제가  장애란에게 니리드 위성의  총독을
  맡기자고 한 것도 그녀가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
  문입니다. 지구인과 안드로이드가 또 다시 전쟁을  할 수는
  없습니다."
  "좋소. 장애란이 니리드 위성의 정복을 하는 데는 아직 시
  간이 많이 있으니 그  문제는 그때 논의합시다. 이제  우리
  첩보사령관인 바르시크대령에 대해서 논의합시다. 그의  행
  방불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바르시크대령이 보내 온 보고에 의하면  니리드 위성에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과학문명을 소유하고 있는 외계
  인이 살고 있습니다."
  "외계인?"
  평의회 회의실이 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우주계획을
  총괄하고 있는 몰루카장군의  말은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몰루카장군은 술렁거리는 평의원들의 얼굴을 살피다가  가
  오슝장군을 노려보았다.  가오슝장군은 게걸스럽게  산소만
  흡입하고 있었다. 그는 평의회의 심각한 회의  따위는 안중
  에도 없는 것 같았다.
  '역시 가오슝은 탐욕스러운 사람이야.'
  몰루카장군은 문득 가오슝장군을 놀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
  났다.
  "가오슝장군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몰루카장군의 말에 가오슝장군이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그리고 평의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자 당황한 표정
  을 감추지 못했다.
  "뭘 어떻게 생각합니까?"
  가오슝장군의 말에 평의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니리드 위성의 외계인들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 유러너
  스 제국과도 싸워야 하고  외계인들과 싸워야 할  처지입니
  다."
  "중국의 고사에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랑캐를 이용하여 오랑캐를 친다는 말이지요. 외계인을 이
  용하여 유러너스 제국을 공격하고 나중에 우리가 힘이 빠진
  외계인을 공격하면 되는 것입니다."
  "명안이오!"
  몰루카장군은 가오슝장군의 엉뚱한 말에 박수를  쳤다. 평
  의원들도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의견이
  옳다고 박수를 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바르시크대령이 외계인들에게 잡혀 있소?'
  가오슝장군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가오슝장군의 말
  에 사피언스 그라운드 평의원들의 얼굴에  잔잔한 웃음기가
  번졌으나 곧이어 또 다시 무거운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바
  르시크대령이 과연 외계인에게 잡혀 있는가. 외계인에게 잡
  혀 있다면 그는 과연 살아 있는가. 사피언스 그라운드는 그
  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못했다.
       제 42 장 유전자의 비밀
  바르시크대령은 지쳐 있었다. 그가 만난  외계인들은 상상
  을 초월할 정도의 과학문명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
  체를 정보로 만들어 순간이동을 하기도 했고 인체의 에너지
  를 이용해 무기로 사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들은 텔레파
  시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들은 자신들을 신으로 생각하고 있어.'
  바르시크대령은 외계인들에 대해 공포에 가까울 정도의 외
  경심을 느꼈다. 그들은 바르시크대령을 비롯해  지구인들을
  납치하다가 온갖 실험을 했었다. 지구인들은  바르시크대령
  을 비롯해 유러너스 제국의 비밀경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납치되어 그들로부터 온갖 실험을 당했다.
  그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인간의 욕망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었고 자신들
  이 창조한 인간들이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고  살인을 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동안  끝없이 지
  구에 미확인비행물체를 보내서 지구인들을 관찰하기도 했고
  지구인들을 납치하여 실험을 하기도 했으나 풀리지 않는 수
  수께끼라고 했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자신들의 창조물이라는  것이
  아닌가?'
  바르시크대령은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그야말로 외계인이  신이라고 인
  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간들은 진화한 고등동물이다. 종교적인 관점에서야 창조
  주가 있고 창조주에 의해 인간들이 창조되었다고 말을 하지
  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관점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나를 어떻게 할 예정이지?'
  바르시크대령은 그 점이  걱정되었다. 아직은  외계인들이
  그에게 실험을 하는 단계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들이 원하는
  실험이 모두 끝나면 죽여 없앨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때 외계인들이 바르시크대령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바르시크대령은 그들을 묵묵히  쳐다보았다. 그들은  여자
  외계인들이었다. 바르시크대령을 오딧세이 17호의 착륙선에
  서 납치했을 때처럼 세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외계인들이 바르시크대령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그들
  은 지구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구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텔레파시로 분석하여 지구인들과 대화를 할 때 사용
  하고 있는 것이다.  바르시크대령은 그 바람에  외계인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바르시크대령은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무슨 일이오?"
  바르시크대령이 무표정하게 물었다.  그들이 찾아온  것은
  보나마나 바르시크대령에게 또 다시 실험을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바르시크대령은 자신이 그들의 실험대상이 되었다는  생각
  을 하자 수치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수
  치스럽게 생각한 것은 진화의 법칙을  연구한다고 외계인들
  이 그에게 강제로 섹스를 하게 만들어놓고 관찰하는 일이었
  다. 그는 그러한 일을 수백번이나 당했던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가관인 것은 그들은 섹스에 들어가기  전의 흥분상
  태에서부터 끝난 뒤의 포만감과 나른한 기분까지 낱낱이 체
  크한 뒤에 자기들끼리 심각하게  그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알몸으로 섹스를 하다가  외계인들에 의해 동작이  중지된
  채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
  었다. 그것은 영화나 비디오를 보다가 스톱 버튼을 눌러 정
  지시킨 것과 같았다.
  "대령에게 바람을 쏘이게 해주겠어요."
  외계인들이 바르시크대령의 팔짱을 끼었다. 그들이  또 다
  시 순간이동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나를 또 모르모트로 쓰려는 것이 아니오?"
  "당신에 대한 실험은 모두 끝났어요."
  "그렇다면 나를 제거하면  되겠군. 나는 이제  당신들에게
  무용지물이니 "
  바르시크대령은 외계인들의 속셈을 떠볼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외계인들이 소리없이 웃었다.
  "우리는 지구를 파괴할 때까지 대령을 죽이지 않아요."
  "뭐요? 지구를 파괴한다는 말이오?"
  바르시크대령은 깜짝 놀라서 여자 외계인들에게 물었다.
  "아직 완전히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에요.  허지만 지구를
  파괴하던가 지구인들을 모조리 제거하던가 무슨  결정을 내
  리게 될 거예요."
  "무엇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소?"
  "일단 밖으로 나가시죠."
  외계인이 정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바르시크대
  령이 모르모트가 되어 섹스를 할 때 바르시크대령이 좋아하
  는 색이라던가, 여자의 얼굴,  여자의 몸 따위를  분석하여
  자신들을 그렇게 변화시켰다. 바르시크대령에게 최대한으로
  호의를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갑시다!"
  바르시크대령이 말했다. 그의 팔짱을 낀  여자 외계인들이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시늉을 하자  바르시크대령은 순식간
  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속도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순간
  이동을 하는 동안 감각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순간이동을 처음 할 때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었다. 그러
  나 이제는 지극히 편안했다.
  바르시크대령은 순간이동을 하면서 수많은 외계인들이  제
  각각 순간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것
  은 마치 영혼들이 어두운  공간을 떠돌아다니고 있는  듯한
  기이한 모습이었다.
  바르시크대령은 눈을 움직여 공중에서 돌아다니는  외계인
  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처음엔 순간이동에 놀라 외계인들
  을 살필 여유가 없었으나 이젠 외계인들을 충분히  살필 수
  있었다.
  외계인들이 순간이동을 하여 바르시크대령을 내려놓은  곳
  은 아름다운 시냇가였다. 시냇가에는 많은 외계인들이 있었
  다. 그들은 냇가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거나 몸에 향유를 바
  르고, 물 속에서 인어처럼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이 있
  는 곳에는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새
  들은 평화롭게 날고 있었고 사슴은 그들과 어울려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앉으세요."
  여자 외계인이 말했다. 바르시크대령은 나무뿌리에 걸터앉
  았다. 그 나무는 거목으로  끝없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
  다. 외계인들은 그 나무가지에도 걸터앉아서 노래를 부르며
  바르시크대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의 이름은 뭐요?"
  바르시크대령은 여자 외계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 이름은 리나예요. 물꽃의 신이죠."
  리나가 하얗게 웃었다.
  "그럼 당신들은 모두 신이란 말이오?"
  "고대의 지구인들에게는 신이고 현대의 당신들에게는 외계
  인이죠."
  "그 말은 무슨 뜻이오?"
  "우리는 한때 지구에 살았어요. 지구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어요. 그렇지만 지구에서 전쟁이 일어났어요. 신들의
  전쟁이었죠. 전쟁이 지나쳐 재앙이 덮쳐 왔어요. 지구가 폭
  발하여 마그마가 솟구쳐  지구 전체가 마그마로  덮였어요.
  화산재가 하늘을 가려 지구는 캄캄한 지옥으로 변하고 무시
  무시한 빙하기가 온 거예요. 그 바람에  광합섬이 중단되어
  지구의 생명체가 모두 멸종했어요."
  바르시크대령은 리나가 지구의 빙하기를 설명하고  있는데
  놀랐다. 지구는 캄푸라기의  대진화 이후 빙하기가  닥쳐서
  지구에 살던 공룡들이 사라지고 생명체가  멸종하다시피 했
  던 것이다. 그것은 수억년 전에서부터 수천 만년 전의 일이
  었다. 인류의 탄생은 그 뒤의 일이었다.
  "우리는 공룡들과 어울려 살았고 익룡들을  타고 다니기도
  했어요. 그때까지 우리에게는 꼬리가 있었어요.  그러나 우
  리는 신이었고 지구에 대재앙이 닥쳐오자  순간이동을 하여
  이 곳으로 오게 되었어요. 물론 지구를 떠나면서 우리의 후
  손들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어요."
  "당신들의 후손이 누구요?"
  "지구인들이죠."
  "우리가 당신들의 후손이란 말이오?"
  "우리는 과일이나 풀잎을 먹는 원테리움(원숭이의 조상)이
  라는 동물에 유전인자를 이식했어요. 그리하여  원테리움이
  수천 만년이 흐른 후에 인간으로 진화한 거예요."
  바르시크대령은 여자 외계인  리나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
  다. 그녀의 말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약 5백만년 전에 인간원숭이(類人猿)에서  직립인
  간으로 진화를 했소. 그런데 우리가 당신네들의 후손이라니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믿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지구를 파괴하겠다는 것이오?"
  "지구를 파괴한다기보다 지구를 구원해 주지  않을 작정예
  요."
  "지구가 위기에 처해 있소?"
  "지구는 조만간 완전히 파괴되고 말 거예요."
  "봉선화 혜성의 침입을 말하는 것인 모양이군."
  그것은 지구인들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봉선화 혜성
  의 제2차 침입을 피해 지구인들은 머나먼  니리드 위성까지
  우주선을 타고 날아온 것이다.
  바르시크대령은 그 생각을 하자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것은 우주의 변화에 의한 것이지만 막을 수  있는 재앙
  이죠. 우주는 놀라울 정도로 엄격한 질서  속에서 움직이고
  있어요. 우주를 질서라는  뜻의 코스모스라고 부르는  것도
  그 까닭이죠."
  리나가 얘기를 하는 동안 사슴 한 마리가 가까이 다가와서
  풀을 뜯기 시작했다.  리나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사슴은 기쁜 듯이 리나의 가슴에 얼굴을  부벼댔다. 리나가
  간지럽다는 듯이 깔깔대고 웃음을 터뜨렸다.  바르시크대령
  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나무가지 끝을 쳐다보았다. 30m
  는 족히 됨직한 나무가지 끝에서 새들이 아름답게 지저귀며
  날아다니고 원숭이 한 마리가  눈빛을 반짝이며 넝쿨  줄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구가 무엇 때문에 파괴된다는 거요?"
  "지구인들의 유전자에서 악의 유전인자가 발견되었어요."
  "악의 유전인자?"
  "우리는 지구인들의 유전자에 인류가 우주의  질서에 맞게
  진화할 수 있도록 유전자 코드를 배열해  놓았어요. 그런데
  지구인들의 유전자를 철저하게 조사한 결과  악의 유전인자
  가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한 거예요."
  "그것은 그대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소. 당신들이 인류
  를 창조했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인류는 지금
  까지 스스로 발전해 왔소."
  "스스로 발전을 해왔다구요?"
  리나가 갑자기 커다랗게 웃었다. 리나의  웃음소리에 바르
  시크대령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소. 인류는 5백만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발전
  을 했소. 다른 말로 바꾸면 진화를 한 것이겠지요."
  "인류가 탄생하기 전에 지구에는 무엇이 있었지요?"
  바르시크대령은 그 질문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
  다. 인류의 기원이라는  직립인간이 탄생하기 전에  인류는
  영장류의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영장류의 동물이라는 것은
  뇌의 용량이 큰 동물을 말하는 것이었다.
  "영장류가 있었지요."
  "그 이전에는요?"
  "알 수 없소. 아니 인간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존재가 아니
  었소."
  영장류 이전에는 원시시대의 동물이 있었을  것이다. 46억
  년 전에 원시지구가 탄생하고 바다의  영양염에서 남조류가
  탄생한 것은 그 뒤에도 20여 억년이 흘렀을 때였다. 지구는
  지층의 변화로 캄푸라기의 대진화 이후에도  멸종과 진화를
  계속했고 현재의 지구 모습을  갖춘 신생대에 이를  때까지
  대륙이 와해되어 바다로 가라앉는가 하면 바다의 대륙이 치
  솟아 육지가 되는 일을 반복했다. 바다에서  지금도 석유가
  생산되고 천연가스가 솟아 나오는  것은 모두 그  까닭이었
  다.
  "우리는 인류 기원 이전에 지구에 존재하고  있었어요. 우
  리가 지구에 존재했던 것은 중생대인 백악기였어요. 지금부
  터 7천만년 전쯤  일이에요. 지구의 마지막  공룡시대였죠.
  뭍에는 소철나무 종류와 양치류등의 식물이  존재했고 하늘
  에는 익룡, 바다에는 어룡, 땅에는 공룡들이 살았어요."
  바르시크대령이 리나의 얘기를 듣는 동안 넝쿨을  타고 내
  려온 원숭이가 포도 한 송이를 바르시크대령에게 내밀었다.
  바르시크대령은 원숭이가 내미는 포도의 알을 따서 입에 넣
  었다. 그것은 달고 청량했다.
  리나는 그 동안 물속으로  들어가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녀 스스로 물의 신이라고 하더니 리나는 인어처럼 물속에
  서 자맥질을 하고는 물가로 나와  바르시크대령을 쳐다보았
  다. 하반신은 물속에 담근 채였다. 리나의 아름다운 머릿결
  에서 물방울들이 보석처럼 굴러 떨어졌다.
  "이것 좀 드셔보셔요."
  리나가 물속에서 따온 과일을 바르시크대령에게 내밀었다.
  바르시크대령은 그 과일을 받았다. 그  과일은 복숭아처럼
  생긴 것으로 껍질은 미끌미끌했다. 그러나 한 입 깨물자 청
  량하고 달콤한 꿀물이 목구멍으로 흘러 내려갔다.
  "어때요?"
  "맛있소."
  바르시크대령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것은 지구에서  먹어
  본 어떤 과일보다도 더욱 맛있었다.
  "당신들은 지구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소?"
  "여러 가지 모습으로 존재했어요. 독수리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조인(鳥人), 아귀(餓鬼)의 모습을 한  악인(惡人), 괴
  수(怪獸)의 모습을 한 괴인(怪人), 꼬리를 달고  있는 미인
  (尾人), 인어의 몸을 갖고  있는 어인(魚人), 천사의  몸을
  갖고 있는 선인(仙人) 지구인들이 상상 속에  존재하는 악
  마나 신들은 모두 우리의 과거 모습예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우리가 지구를 떠나게 된 것은 우리가 커다란  전쟁을 하
  게 되었기 때문예요."
  "그 전쟁은 어떤 전쟁이었소?"
  바르시크대령은 공허하게 웃었다. 리나의 얘기를  듣고 있
  자니 마치 아득한 고대의 신화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전쟁 때 우리는 두 파로 나뉘었어요. 하나는 하늘을 지배
  하는 선인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땅을  지배하는 악인들이었
  죠. 그 전쟁은 참으로 치열했어요.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뒤집히고, 지구의 내핵이 폭발하는 대전쟁이었죠. 그리하여
  지구는 쑥밭이 되었어요 "
  리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지구인들이 빙하기라고 말하는 사태는 그렇게 해서 온
  거예요. 결국 우리는 악의 종자들을 섬멸했지만  암흑과 같
  은 빙하기에서 살아갈 수는 없었어요. 우리는  지구에 우리
  의 후손들을 남기기로 하고 빙하기에도 기적적으로 살아 남
  을 수 있는 생명체, 다시 말해 원테리움에 우리의 유전인자
  를 이식했어요. 빙하기가 물러간 뒤에 그들이  지구에서 살
  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죠."
  "그럼 당신들의 유전인자를 갖고 있는 것이 우리 지구인이
  란 말이오?"
  "그런 셈이죠."
  "그런데 우리 지구가 무엇 때문에 파괴된다는 것이오?"
  "당신들의 유전인자에 우리와 전쟁을 했던  악인들의 유전
  인자가 섞여 있기 때문예요."
  "악인들의 유전인자?"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에 대해서 아세요?"
  "물론이오."
  "인간들은 선천적으로 착한 성격과 선천적으로  악한 성격
  을 동시에 갖고 태어나요. 유전인자의 배열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예요."
  "우리가 당신들의 착한 유전인자를 받았는데  어떻게 악한
  성격의 유전인자가 배열되어 있다는 말이오?"
  "우리가 유전인자를 이식한  생명체에 우리와의  전쟁에서
  패한 악인들도 몰래 유전인자를 이식해 놓았기 때문이죠."
  바르시크대령은 리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리나의
  얘기는 어느 정도 그럴 듯했으나 쉽사리 납득할  수는 없었
  다. 리나는 바르시크대령의 그 생각을 알아채고  다시 설명
  을 하기 시작했다.
  "때대로 지구인들은 어린  시절에도 악몽을 꾸어요.  불과
  5, 6세밖에 안된 어린아이가 지옥에서 나온 듯한 악마의 공
  격을 받기도 하고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괴수들에게 쫓기는
  무시무시한 꿈을 꿀 때가 적지 않죠. 당신도 아마  어릴 때
  그런 무서운 꿈을 꾸었을 거예요."
  리나의 말대로 바르시크대령도 무서운 꿈을 꾼  일이 있었
  다.
  "그렇소."
  바르시크대령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리나의 말이 점점 현실감을 가지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유전인자에 숨어 있던  악의 유전인자가
  마침내 발호를 하고 있다는 말이오?"
  "이미 오래 전부터 그것들은 발호를 하고  있었어요. 인류
  에 닥치는 재앙, 악의 근원이 모두 그것으로부터 오고 있는
  거예요."
  "그럼 그 유전인자만 제거하면 되지 않소?"
  "그래서 우리는 그 악의 유전인자를 찾기 위해 지구인들을
  납치하다가 끊임없이 실험을 한 거예요. 그러나  그것은 불
  가능했죠. 인간들 스스로 악을 물리치려는 마음을  갖게 되
  면 우리가 당신들에게 이식한 유전인자는 스스로 악의 유전
  인자를 소멸시켜요. 그러나 인간들은 그런 생각을  전혀 갖
  고 있지 않아요."
  바르시크대령은 리나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그녀의 풍만
  한 가슴으로 시선을 모았다. 리나의 뽀얀 젖무덤이 그의 시
  선을 도발적으로 자극하고 있었다.
  "무얼 하고 있죠?"
  리나가 눈을 깜박이며 바르시크대령에게 물었다. 바르시크
  대령은 리나의 탐스러운 젖무덤에서 재빨리  시선을 거두었
  다. 오안네스족이 그에게 강제로 섹스를 하게 한 뒤에 바르
  시크대령은 여자들을 볼 때마다 하체가 묵직해 오곤 했다.
  "당신 나를 원하고 있죠?"
  리나가 색정적으로 눈웃음을 치며 물었다.
  "그렇소."
  바르시크대령은 솔직하게 대꾸했다. 오안네스족들이  텔레
  파시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를 사랑해요?"
  리나가 바르시크대령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당신을 원하오."
  "그럼 나를 가지세요."
  리나가 눈을 살며시 감았다. 바르시크대령은  리나에게 얼
  굴을 가까이 가져가서 리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얹었다
  가 떼었다.
  "음 "
  리나의 입술 사이로 짤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바르시크
  대령은 리나를 안아서 격렬하게 입술을 포갰다.  그러자 리
  나의 입술이 열리면서 그의 혀를 세차게 흡입했다.
  바르시크대령은 리나를 안고 풀숲으로 쓰러졌다.  그의 내
  부에서 격렬한 욕망이 솟구치고 있었다.
  "이게 번식의 행위인가요?"
  잠시 후 리나가 그의  혀를 밀어내고 붉게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리나의 눈이 야릇한 윤기로 번들거렸다.
  "아니 진화의 행위요."
  바르시크대령은 리나의 둔부를 둥글게 애무했다.
  "기분이 이상해요."
  바르시크대령의 애무가 짙어지자 리나의 입에서 단내가 훅
  풍겨왔다. 리나는 새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지구인들과 사랑의 행위를 나눈 일이 있소?"
  "아뇨."
  리나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럼 당신네 오안네스족과는 ?"
  "없어요."
  "당신네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소?"
  "네."
  바르시크대령은 리나의 둔부를 쓰다듬던 손을 리나의 허벅
  지 안쪽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리나의 무릎이  자연스럽게
  열리면서 허리가 젖혀졌다.
  바르시크대령은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
  다.
  숲은 조용했다. 강은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따금 먼
  숲에서 새들이 울고 원숭이가 눈을 빛내며 넝쿨  줄을 타고
  돌아다니기는 했으나 숲은 호젓할 정도로 조용했다.
  바르시크대령은 리나의 옷을 한 겹 한 겹 벗기며 오안네스
  족에게 끌려와서 지낸 일들을 생각했다. 그는 이 곳이 어디
  인지 알 수 없었다. 오안네스족의 리나는 4차원이라고 했으
  나 바르시크대령은 그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리나는 세차게 몸을 떨었다. 바르시크대령에 의해 옷이 모
  두 벗겨지자 자신도 알 수  없는 수치심과 욕망 같은  것이
  그녀의 내부에서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리나는 눈을 감았다. 바르시크대령의 손이  허벅지 안쪽으
  로 거슬러 올라와  자신의 비고(秘庫)에 얹혀지자  화인(火
  印)이 찍히는 것 같았다.
  그때 바르시크대령이 그녀에게 몸을 실어 왔다.
  "아 "
  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바르시크대령을 힘껏 끌어안았다.
  "옷을 "
  리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바르시크대령은
  아직도 옷을 입고 있었다.
  "리나!"
  바르시크대령이 다시 입술을 포개왔다. 리나는 바르시크대
  령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격렬하게 부딪쳤다.  이상한 일
  이었다. 악의 유전인자를 찾아내기 위해 지구인들이 진화의
  행위를 하는 것을 실험실에서 무수히 보았으나 그때는 아무
  런 감정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지구인인  바르시크대령과
  육체를 접촉하자 알 수 없는 쾌감과 흥분이  전신의 혈관으
  로 물결처럼 번지고 있었다.
  바르시크대령이 허겁지겁 옷을 벗기 시작했다.
  리나는 눈을 감은 채 오안네스족의 족장을 생각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오안네스족은  한때 지구인이었고  지구인들은
  오안네스족이 남긴 유전인자에 의해 태어난 생명체였다.
  '우리는 신이야 '
  리나는 자신이 언제 어떻게 태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는 단지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구인들에게는 우리가 외계인이겠지 '
  오안네스족은 4차원에 살고 있었다. 4차원은  시간과 공간
  을 뛰어넘는 개념이었다.  지구에서 악의 종자들과  처절한
  전쟁을 한 후에 오안네스족은 4차원으로 이동을 했다. 지구
  에 살던 악의 종자들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바르시크대령이 다시 그녀에게 몸을 실었다. 바르시크대령
  의 몸이 묵직했다.
  "리나 "
  바르시크대령이 그녀의 귓전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었다.
  "바르시크 "
  리나는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바르시크대령의 몸을
  안고, 바르시크대령이 그녀를 짓눌러 오자 몸이 불덩어리처
  럼 달아오르고 있었다. 바르시크대령은 느리게 그녀의 가슴
  을 애무한 뒤에 몸을 합체시켰다.
  "헉!"
  그 순간 리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입을 딱  벌렸다. 무
  엇인가 거대한 것이 갑자기 그녀의 내부로 침입했고 하체로
  격렬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
  다. 고통이 어느 한순간 쾌감으로 바뀌면서 몸이 구름을 탄
  것처럼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리나는 흐느껴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남자의 몸이 자신의
  몸 안에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울면서 몸부림치게 했다.
  격렬한 희열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또 밀려왔다.
  리나는 몇 번이나 의식이 단절되는 듯한  행복감을 맛보았
  다.
       제 43 장 전쟁의 날
  비가 오고 있었다. 잠결인데도 빗소리가 쏴아아 하고 귓전
  을 울려왔다.
  이리노중위는 침대에 혼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장애란은
  이리노중위가 잠들어 있는 침대 옆에 서서 오랫동안 이리노
  중위의 잠자는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사랑하는  남자였다.
  그와 헤어진 것이 얼마 되지 않는데도 수많은  세월이 흐른
  것처럼 아득하게 여겨졌다.
  "내 사랑 "
  장애란은 낮게 중얼거리고 옷을 하나 하나 벗었다. 그리고
  마지막 속옷까지 둔부에서 끌어내린 뒤에 침대로 올라가 그
  의 옆에 누웠다. 그와 일체가 되고 싶었다.
  얼마나 이 시간을 그리워했는지 알 수 없었다.
  장애란은 이리노중위의 옷을 한  겹 한 겹 벗기며  얼굴을
  붉혔다. 그의 나신을 보는 것이 처음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꿈이었을 것이다.
  밖에서 비가 내리고 있는  것 같은 소리조차 착각인지  알
  수 없었다. 장애란은  시체처럼 잠들어 있는  이리노중위의
  위에서 격렬한 사랑을  불태웠다. 비록 꿈속이었지만  희열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울었다.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
  다.
  그때 꿈이 깨었다.
  장애란은 잠과 꿈에서 깨어난 뒤에 한동안  우두커니 어둠
  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밤중이었다. 사위가  캄캄한 가운
  데 병사들의 왁자한 소리와 말발굽소리, 그리고  처절한 비
  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기습이야 !"
  장애란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허겁지겁 옷을 입고
  밖으로 뛰어 나오자 애브너시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총독각하!"
  그때 필립중위가 황급히 달려왔다.
  "필립중위 어떻게 된 거야?"
  "유러너스 제국의 기습입니다."
  병사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불길은 여기저기서 치솟고
  있었다. 교활한 유러너스 제국군대가 불화살을 쏘아 애브너
  시를 불바다로 만든 뒤 기습을 해온 것이다.
  '이것들이 화공을 펴고 있군.'
  장애란이 니리드 위성에  처음 도착했을 때  예측했던대로
  유러너스 제국군은 화공을 펴고 있었다. 그들이  쏘아댄 불
  화살에 애브너시가 온통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필립중위! 당황하지 말고 적을 막아라!"
  "옛!"
  장애란은 백마를 타고 옆에 있던 병사의 창을 하나 움켜쥐
  었다. 장애란은 직접  유러너스 제국군대와 싸울  작정이었
  다. 예멘 의장이 자신을 니리드 위성의 총독에 임명한 것은
  전쟁을 하라고 임명한 것이다.
  "총독각하!"
  윌리엄장군과 폴리소령이 황급히 장애란을 만류했다.
  "이랴!"
  장애란은 말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단숨에 적진으로 내달렸
  다.
  "총독각하!"
  총독 근위대장 필립중위가 말을 휘몰아 장애란의  뒤를 쫓
  았다.
  "공격하라!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을 모조리 죽여라!"
  그때 유러너스 제국군에서 장교 하나가 긴  창을 휘두르며
  병사들을 이끌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오너라!"
  장애란은 개미떼처럼 몰려오는 유러너스 제국의 군대를 향
  해 창을 똑바로 겨누었다.
  유러너스 제국군 장교도 장애란을 향해 창을  겨누고 달려
  오고 있었다. 장애란은 적이 가까이 오자 적을 향해 겨누고
  있던 창을 땅에다 꽂았다.
  "애숭아! 너의 소속을 밝혀라!"
  장애란이 말을 멈추고 유러너스 제국 장교에게 외쳤다.
  "유러너스 제국의 터커중위다!"
  "터커중위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될 것이다!"
  "흥! 젖비린내 나는 계집이 감히 누구에게 덤벼드느냐? 살
  가죽을 벗기기 전에 썩 돌아가라!"
  "호호 터커중위! 오늘 계집의 매운 맛을 보아야  할 것이
  다."
  장애란이 허리를 뒤로 젖히고 웃었다.
  "너의 이름과 소속을 말해라!"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총독 장애란이다!"
  "뭐? 총독?"
  유러너스 제국의 터커중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너는 네 손에 죽는 유러너스 제국의 첫  번째 장
  교가 될 것이다!"
  "웃기는 수작하지 마라! 사피언스 그라운드에는 그렇게 사
  람이 없느냐? 잠자리에서나  써먹는 계집을 총독에  앉히고
  감히 유러너스 제국의 정예부대에 대항하려고  하다니 가소
  롭구나! 핫핫 "
  유러너스 제국의 터커중위가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가소로운 놈! 간다!"
  장애란은 창을 바로 쥐고 공격준비를 했다.
  "얼마든지 오너라!"
  터커중위도 창을 꼬나쥐었다.
  "이랴!"
  장애란이 말을 세차게 휘몰아 터커중위를  향해 달려갔다.
  터커중위도 말에게 채찍질을 하여 장애란을 향해 달려왔다.
  장애란은 터커중위가 가까이 달려오자 창을 땅에다 꽂고 그
  반동을 이용해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러자 터커중위가 깜짝
  놀라 허둥댔다.
  "죽어라!"
  장애란은 허공에서 한 바퀴 몸을 회전하여 적의 등에 창을
  찔렀다.
  "헉!"
  터커중위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장애란은  터커중위의
  등을 발로 차면서 창을 뽑아 자신의 백마로 뛰어내렸다. 터
  커중위의 등에서 피가 왈칵 솟구치면서  터커중위가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장애란은 재빨리 말을 달려  터커중위의 가
  슴에 단숨에 창을 꽂았다.
  "와!"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장
  애란은 창을 높이 들어 병사들의 환호에 답했다.
  "계집아! 내 창을 받아라!"
  그때 유러너스 제국의  진영에서 장교 하나가  달려나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장교는 키가 크고 몸집이 우람하여 목
  소리가 찌렁찌렁 울렸다.
  "이번엔 제가 놈을 해치우겠습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 진영에서도 체구가 거대한 사내가 재빠
  르게 말을 달려나갔다.
  "필립중위! 저 친구는 누구인가?"
  "폴리소령 휘하의 제프리소위입니다."
  "우량아로군."
  장애란은 미소를 지으며 유러너스 제국의 장교에게 달려가
  는 제프리소위를 쳐다보았다. 제프리소위는 창을  휘두르며
  달려갔으나 유러너스 제국 장교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몸
  이 육중한 탓에 말이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고  그러자 유러
  너스 제국 장교의 날카로운 창이 말에서 뒤뚱거리는 제프리
  소위의 목을 일합에 날려버린 것이다.
  제프리소위는 목이 떨어진 채  말 위에 꼿꼿이 앉아  있었
  다. 그러나 유러너스 제국의 장교가 창으로 가볍게 밀자 그
  대로 말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유러너스  제국군에서 일제
  히 환호성이 일어났다.
  "음!"
  장애란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장애란이  적군의 터커중
  위를 죽이고 유러너스 제국 장교가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제
  프리소위를 죽였으므로 피장파장이었다.
  그러나 제프리소위는 장애란의  부하였다. 자신의  부하가
  적군의 장교에게 목이 잘려 죽자 분노가 일어났다.
  '놈의 창은 단순한 나무로 만든 창이 아니야!'
  적군의 장교가 사용하는 창은 목을 일합에 잘라 버릴 정도
  로 날이 예리했다. 짐승의 뼈나 금속에 가까운 물질로 만들
  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의  창은
  나무로 만든 창이었다. 짐승이나 사람을 찔러도 여간해서는
  깊숙이 들어가지 않았다.
  "공격하라!"
  유러너스 제국의 장교가 창을  높이 들고 외쳤다.  그러자
  유러너스 제국군 진영에서 일제히 함성이  일어났고 유러너
  스 제국 병사들이 벌떼처럼 공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장군! 우리도 공격하시오!"
  장애란이 창을 들고 윌리엄장군에게 지시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은 적을 공격하라!"
  윌리엄장군이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병사들은 나를 따라 돌격하라!"
  폴리소령이 창을 휘두르며 먼저 달려나갔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의 병사들이 화답을 하듯이  우렁차게
  함성을 지른 뒤에 폴리소령의 뒤를 따라 유러너스 제국군을
  향해 질풍처럼 달려갔다. 장애란도 근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유러너스 제국군을 향해 달려갔다.
  "공격!"
  "돌격!"
  유러너스 제국군과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은 벌판에서  대회
  전을 벌렸다. 군대의 숫자에서는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이 월
  등히 우세했다. 그러나 유러너스 제국군은 무기가 날카로웠
  다. 유러너스 제국군이 창을 휘두를 때마다  사피언스 그라
  운드군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총독각하 일단 퇴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윌리엄장군과 폴리소령이 장애란에게 달려와 후퇴할  것을
  건의했다. 벌판은 이미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의 시체로 즐비
  했다.
  "윌리엄장군! 내가 앞장을 서겠소!"
  장애란은 유러너스 제국군의 창 아래 피를 뿌리며 죽어 가
  는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총독각하! 위험합니다!"
  윌리엄장군과 폴리소령이 말고삐를 잡아채며 제지했다.
  "비키시오! 예멘 의장각하께서 나를 니리드 위성의 총독에
  임명한 것은 병사들의 선두에 서서 싸우라는 뜻이오!"
  "총독각하! 저희들이 앞장을 서겠습니다."
  근위대장 필립중위가 재빨리 근위병들을 이끌고  장애란의
  앞에 섰다.
  "필립중위!"
  장애란은 단호한 목소리로 필립중위를 불렀다.
  "옛!"
  "귀관은 내 뒤를 따르라!"
  장애란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총, 총독각하!"
  필립중위가 당황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필립중위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애브너시가 불타고 있다! 여기서 물러서면 어디로 가겠는
  가?"
  "총독각하! 일단 퇴각했다가 애브너시를 탈환하는 것이 좋
  을 듯합니다!"
  "안된다! 물러서라!"
  장애란이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치자 필립중위가 마지못하
  여 뒤로 물러섰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병사들은 들으라!"
  장애란이 말 위에서 외치자 목소리가 찌렁찌렁 울렸다.
  "예!"
  병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우리는 병력에서 적을 압도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
  에 퇴각을 하는가? 적이 우리보다 용감한가?"
  장애란은 병사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우리가 적을 두려워하는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적을 향해 돌격을 할 테니 내 뒤를 따르겠는가?"
  "따르겠습니다!"
  "좋다! 자, 돌격하자! 돌격!"
  장애란은 병사들의 독려가 끝나자 질풍처럼 달려나갔다.
  "돌격!"
  장애란이 선두에 서서 진격을 하자 병사들이 일제히 와 하
  는 함성을 지르며 뒤따랐다.
  '젊은 여자가 병사들을 떼죽음시키려는 거야!'
  윌리엄장군은 장애란이 병사들을 독려하여 유러너스  제국
  군을 향해 바람처럼  달려가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장애란은 무모한 짓을 감행하고 있었다. 유러너스 제국군은
  정예부대였다. 게다가 화공으로 애브너시를 불태웠기  때문
  에 사기 면에서도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을 압도하고 있었다.
  '평의회에서 왜 저런 젊은  여자를 니리드 위성의  총독에
  임명했는지 알 수 없군 '
  장애란은 기껏해야 스무살 안팎으로 보였다.  그런 여자가
  니리드 위성을 통치하는 총독에 임명된 것도 이해할  수 없
  었고 여자가 총독관저에 앉아  있지 않고 남자들의  전쟁을
  지휘하겠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상관이 없어.  저 여자가 유러너스  제국군에게
  죽으면 내가 총독에 임명될 테니까 '
  윌리엄장군은 총독에 자신이 임명되지 않고 새파랗게 젊은
  장애란이라는 여자가 임명된 것이 불만스러웠다. 그러나 무
  모하게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장애란을 보자 그런  불만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장애란이 유러너스 제국군에게  죽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필립중위의 근위대가 바짝 뒤따르고 있었으나  유러너스 제
  국군은 장애란을 목표로 집중적으로 공격을  퍼부을 것이었
  다.
  "돌격하라!"
  장애란은 윌리엄장군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벌써
  유러너스 제국군의 진영으로 거세게 쇄도하고 있었다.
  "계집을 죽여라! 저  계집은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총독이
  다!"
  유러너스 제국군은 장애란이 질풍처럼 달려오자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진영에서 뛰어나갔다. 장애란을 죽여
  서 서로 먼저 공을 세우려고 벌떼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오너라!"
  장애란은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이 달려오자 긴  창을 휘두
  르며 마주 달려갔다.
  유러너스 제국군 병사들을  주춤했다. 장애란이  병사들을
  이끌고 공격을 해오는 모습이 마치 태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사나웠다.
  "두려워하지 말고 적을 공격하라!"
  그때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의 뒤에서 한 장교가 소리를 질
  렀다.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은 그때서야 와 하는 함성을 지
  르며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을 향해 달려갔다.
  "모조리 덤벼라!"
  장애란은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이 달려오자  대갈일성하고
  창을 휘둘렀다. 병사들은 무엇인가 눈앞에서 번쩍이는 듯한
  그림자를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앞에서 장애란
  을 향해 창을 휘두르던  병사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말
  에서 굴러 떨어졌다. 장애란의 창이 눈 깜짝할 순간에 병사
  들의 몸을 후려쳤던 것이다.
  장애란의 창은 목창이었다. 날이 예리하지는 않았다. 그러
  나 바윗돌을 깨트리는 파괴력을 갖고 있는 장애란이 휘두른
  창은 빠르기도 빨랐지만  쇠망치처럼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목이 부러진 병사도 있었고 어깨가 으깨진 병사도 있었다.
  얼굴이 흉측하게 짓뭉개진 병사도 있었다.
  "병신 같은 놈들!"
  유러너스 제국의 장교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다른 사람들
  이 볼 때는 병사들이 말을  잘못 타서 굴러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장애란의 창이 그만치 빨랐기 때문이었다.
  "뭣들 하나? 계집을 죽여라!"
  장교가 병사들을 독려하자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이  다시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장애란을 향해 달려들었다.
  "얼마든지 오너라!"
  장애란은 말 위에 태연하게 앉아서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
  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계집을 죽여라!"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이  아우성을 치며 장애란을  에워쌌
  다. 장애란은 그들이 빽빽하게 에워싸자 비로소  말에게 채
  찍질을 가하고 창을 휘둘렀다.
  "한꺼번에 오너라! 모조리 죽여주마!"
  장애란이 창을 휘두를  때마다 유러너스 제국의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말에서 떨어서 뒹굴었다.
  "계집이 귀신처럼 빠르다!"
  "계집을 조심하라!"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은 그때서야 장애란에게 두려움을 느
  끼기 시작했다. 이미 장애란의 주위에는 유러너스  제국 병
  사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인간이 아니다! 저 계집은 살인귀다!"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은  시산혈해를 이룬 동료  병사들의
  시체 앞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장애란은  유러너스 제
  국 병사들이 에워만 싸고 공격을 하지 못하자  빙그레 웃고
  있었다.
  "뭣들 하나? 계집은 혼자다! 너희들이 일제히 공격하면 계
  집은 맥을 못 춘다! 계집을 잡는 병사에게는 일계급 특진과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여자 포로들을 러브 타임 상품으로 주
  겠다!"
  유러너스 제국의 장교가 뒤에서 악을 썼다. 병사들은 장교
  가 악을 쓰고 독려를 해도 주춤거리기만 했다.
  "공격을 하지 않는 자는 내가 먼저 죽이겠다!"
  장교는 유러너스 제국의 병사들이 공포에 질려 주춤거리자
  등뒤에서 창으로 위협했다.
  "내 창에 죽기 싫으면 계집을 먼저 공격하라!"
  장교의 위협에 공포를 느낀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이 다시
  창을 움켜쥐고 장애란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장애란은 창을 늘어트린 채 신비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은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장애란이 지쳤다고 생각했다. 지친 계집애라면 얼마
  든지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그 계집이  귀신처럼 빠
  른 창 솜씨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인간인 이상 지치지 않을
  수 없다.
  "죽어라!"
  병사 하나가 장애란을 향해  빠르게 창을 찔렀다.  그러나
  그 창은 장애란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병사는
  분명히 봉긋하게 솟아 오른 장애란의 가슴을 향해 찔렀으나
  장애란이 가볍게 몸을 흔들자 창이 비껴 간 것이다.
  "흥!"
  장애란이 병사의 창을 움켜쥐었다. 병사는 깜짝 놀라 창을
  잡아 빼려고 했다. 그러나 장애란에게 잡힌 창은 흡사 바윗
  돌에라도 박힌 듯이 꼼짝을 하지 않았다.
  '이 틈이다!'
  장애란의 뒤에 있던 병사는 장애란이 병사의  창을 움켜쥐
  고 있는 사이에 장애란의 등을 향해 힘껏 창을 찔렀다.
  "핫!"
  그 순간 장애란의 입에서 짧은 기합이 터지며 뒤에서 등을
  찌르던 병사의 눈앞으로 무엇인가 번쩍했다. 기습을  한 병
  사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창에 가슴이 뚫렸다. 앞에
  있던 병사의 창을 낚아챈 장애란이 그 창으로  뒤에서 기습
  을 한 병사의 가슴을 찌른 것이다.
  "헉!"
  앞에 있던 병사는 자신의 창이 뒤에 있는 동료  병사의 가
  슴을 찌르자 소스라쳐 놀랐다. 그러나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장애란의 입에서 또 다시 짧은 기합이 터지자 그는
  자신의 창에 의해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유러너스 제국의 병사들은 주춤했다. 두 명의 병사가 기습
  을 했으나 오히려 목숨을 잃은 것이다.
  "공격하라!"
  "와!"
  "계집을 죽여라!"
  "와!"
  병사들의 눈이 핏빛으로 이글거렸다. 그들은  동료 병사들
  의 죽음에 이를 갈면서 장애란을 향해 집중적인  공격을 퍼
  부었다. 그러나 장애란은 여유만만했다. 죽음의 벌판이라는
  지옥훈련을 통과한 장애란이었다. 수백 명이 장애란을 향해
  창을 찔러왔으나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들을 쳐부수고
  있었다.
  '젊은 계집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
  윌리엄장군은 장애란이 단신으로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과
  혈전을 벌이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에게 장애란이 죽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병사들은 총공격을 하라!"
  윌리엄장군은 장애란의 명령도 기다리지 않고  병사들에게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와!"
  장애란이 유러너스 제국군을  쳐부수는 것을 본  사피언스
  그라운드군들은 용기백배하여 유러너스 제국군을 향해 달려
  갔다.
  "퇴각하라!"
  유러너스 제국군은 장애란 하나를 상대하기에도 벅찬데 사
  피언스 그라운드군이 질풍처럼 달려오자 당황했다.  유러너
  스 제국 사령부는 황급히 퇴각명령을 내리고 후퇴하기 시작
  했다.
  "추격하라!"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은 맹렬하게 유러너스 제국군을  추격
  했다.
  "유러너스 제국군을 몰살시켜라!"
  윌리엄장군이 말을 휘몰아  달려가면서 거듭 명령을  내렸
  다.
  장애란에게 전투의 모든 공이  돌아가게 할 수는  없었다.
  퇴각하는 유러너스 제국군을  끝까지 추격하여  몰살시키면
  승전의 공적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추격을
  중단하면 이번 싸움은 완전히  장애란의 공적이 되는  것이
  다.
  유러너스 제국군은 대군이 퇴각하느라고 서로 부딪치고 넘
  어지고 정신이 없었다.
  "공격!"
  윌리엄장군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며 병사들을 독려했
  다.
  "윌리엄장군! 추격을 중지하시오!"
  장애란이 깜짝 놀라서 추격 중지 명령을  내렸으나 병사들
  의 함성과 말발굽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사피언스 그
  라운드군들은 도망가는 유러너스 제국군을 추격하여 살해하
  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장애란이 만류할 사이도 없이 그
  들은 퇴각하는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을  정신없이 추격하고
  있었다.
  "필립중위!"
  장애란은 황급히 필립중위를 불렀다.
  "옛!"
  필립중위가 장애란의 앞으로 달려왔다.
  "윌리엄장군에게 가서 추격을 중지하라는 내  명령을 전하
  라!"
  장애란은 질풍처럼 유러너스 제국군을 추격하는  윌리엄장
  군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윌리엄장군의 뒤를  따라 사
  피언스 그라운드군이 까맣게  달려가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어둠 속에서 무작정 유러너스 제국군을 추격하
  다가 잘못하면 함정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사피언스 그라운드나 유러너스 제국군은 재래전에는  약했
  다. 그들은 첨단무기를  사용하여 폭탄을 퍼붓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현대전에 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러너스 제국군은 화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화공
  을 사용한다는 것은 적에게 작전이나 진법을 사용할  줄 아
  는 전략가가 있다는 증거였다.
  "옛!"
  필립중위가 장애란의 명령을 받고 윌리엄장군을 향해 달려
  갔다.
  '윌리엄장군을 돌아오게 하기에는 틀렸어!'
  장애란은 윌리엄장군과 그가  이끄는 병사들이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져보이지 않자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병사들을 헤아려 보았다. 그들은  모두 장애란
  을 경호하는 근위병사들이었다. 얼추 5, 60명쯤  되어 보였
  다.
  "근위병사들은 들어라!"
  장애란은 근위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예!"
  "윌리엄장군이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나를  따라 윌
  리엄장군을 구하러 가자!"
  "예!"
  병사들이 일제히 대답을 했다.
  "출발!"
  "출발!"
  장애란이 말을 타고 어둠 속을 질주하기  시작하자 병사들
  도 대오를 정리하여 장애란의 뒤를 따라 달렸다.
  한편 유러너스 제국군을 추격하던 윌리엄장군은 기분이 미
  묘했다. 유러너스 제국군은 그들이 추격하기 알맞은 속도로
  퇴각하고 있었다. 얼핏 보았을 때는 퇴각이  어수선한 듯해
  보였으나 자세히 살피자 질서정연하게 퇴각을 하고 있었다.
  '함정이야!'
  윌리엄장군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노도처럼 유러너스
  제국군을 추격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퇴각명령을 내리기에는
  늦고 말았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은 벌써 협곡안으로 물밀 듯이 달려들
  어가고 있었다.
  "추격을 중지하라! 중지!"
  윌리엄장군은 당황하여 황급히 유러너스 제국군의  추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명령이  제대로 들
  릴 리 없었다. 병사들은 요란한 말발굽소리에  스스로 도취
  하여 질풍처럼 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불기둥이 어두운 하늘로 치솟았다. 불화살이었다. 그
  와 함께 와 하는 함성이 일어나며 절벽 위에 매복하고 있던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이 일제히 바윗돌을 굴렸다.
  "함정이다!"
  사피언스 그라운드 병사들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바윗돌이 굴러 내려온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병사들은 당황하여 우왕좌왕했다. 그
  러나 오랫동안 매복하고 있었던 듯 수많은 바윗돌들이 우박
  처럼 협곡으로 굴러 떨어지자 사피언스  그라운드 병사들은
  서로 달아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한 곳에 뒤엉켜 엎
  어지거나 넘어져 밟혀 죽고 말발굽에 채어 죽기도 했다. 거
  기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바윗돌에 깔려 죽었다.
  "으악!"
  캄캄한 어둠 속이었다. 병사들의 아우성이 처절했다. 그러
  나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은
  협곡의 양쪽 입구를 막고 불화살을 쏘아댔다.
  "불이다!"
  여기저기 불화살이 꽂히자  시커먼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
  다. 마른 나뭇잎까지 협곡에 늘어놓은 것을  보면 유러너스
  제국군은 오래 전부터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을  몰살시키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전멸이야!'
  윌리엄장군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젊은 여자 총독 장애
  란의 추격중지 명령을 못들은  체 하고 병사들을  독려하여
  달려온 것이 후회되었다. 그러나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었
  다. 이미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병사들 수만 명이 협곡 안에
  서 떼죽음을 당했고 나머지 수천 명의 병사들도  포로가 될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은 들으라! 너희들은 완전히  포위되
  었다. 유러너스 제국 살로메 위성의 총독  커밍스 해군제독
  께서는 투항하는 자는 살려주시겠다고 하셨다!"
  협곡 위에서 한 장교가 소리를 질렀다. 젊은 장교였다. 윌
  리엄장군은 젊은 장교를 쳐다보았다.
  "그대의 소속을 말하라!"
  "나는 커밍스 제독  휘하의 코드웰중령이다! 그대는  누군
  가?"
  "나는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니리드 위성  총사령관 윌리엄
  장군이다!"
  "투항하시오! 투항하면 포로로써 정당한 대우를 해줄 것이
  오!"
  "그대의 말을 어떻게 믿는가?"
  "나는 유러너스 제국의 장교요!"
  "좋다!"
  윌리엄장군은 이제 투항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
  피언스 그라운드의 병사들이 협곡 안에서  떼죽음을 당하게
  할 수는 없었다.
  "윌리엄장군!"
  그때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윌리엄장군은
  흠칫했다. 갑자기 협곡 입구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윌리엄장군은 투항을 중지하시오!"
  장애란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윌리엄장군이 소리나는 방향
  을 쳐다보자 장애란이 유러너스 제국군을 마구 도륙하며 달
  려오고 있었다.
  윌리엄장군은 미간을 찌푸렸다.
  '제기랄!'
  장애란은 근위병사들을 거느리고 유러너스 제국군의  포위
  망을 뚫고 있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신기에 가까운  창
  솜씨를 보이며 유러너스  제국 군사들을 물리치고  있었다.
  장애란이 말을 휘몰아 창을  휘두를 때마다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려졌다.
  '이 창은 금속으로 만든 창이나 다를 바 없어!'
  장애란은 창을 휘두를 때마다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이 피
  를 뿌리며 쓰러지자 창의 위력에 감탄했다. 창은 끝이 반달
  모양의 월도(月刀)로 만들어져 있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은 들으라!"
  윌리엄장군은 장애란이 포위망을 뚫기 시작하자  우왕좌왕
  하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총독각하께서 구원군을 이끌고 오셨다! 모두 포위망을 뚫
  고 탈출하라!"
  "와!"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은 구원군이 도착했다는 말에  일제히
  함성을 질러댔다. 그들은 용기를 내어 장애란을  향해 달려
  갔다.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은 장애란이 창을  휘두르며 질
  풍처럼 달려오자 물이 갈라지듯 일제히 옆으로 비켜섰다.
  장애란은 지옥의 악귀처럼 보였다. 그녀의  옷이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의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총독각하!"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이 감격하여 장애란을 에워쌌다.
  "병사들은 빨리 퇴각하라! 뒤는 내가 맡는다!"
  "총독각하! 저희들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장애란을 에워싼 병사들은 퇴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빨리 퇴각하라!"
  장애란의 명령은 추상같았다.  병사들은 그때서야  다투어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병사들이 허겁지겁 협곡을 빠
  져나가려고 하자 절벽 위에서 다시 바윗돌이 굴러 떨어지기
  시작하고 불화살이 날아왔다. 병사들은 바윗돌에  깔려죽고
  불화살에 타죽으면서도 필사적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장애란은 정신없이 병사들을 구하여 협곡을 빠져 나왔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이 퇴각한다! 놈들을 추격하라!"
  이번엔 유러너스 제국군이 퇴각하는 사피언스  그라운드군
  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은 꽁지가 빠져라 달아났다. 병사들이
  나 장교들이나 마찬가지였다. 협곡에서 빠져 나온  것만 해
  도 기적이었다. 이제는 빨리 달아나기만 하면  살수가 있었
  다.
  필립중위는 병사들에게 섞여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문득 장
  애란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그는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
  았다. 장애란이 말을 탄 채 협곡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아!"
  필립중위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뻐근해져 오는  것을 느
  꼈다. 유러너스 제국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서  장애란이 단
  신으로 협곡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유러너스 제국의 병사들은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을  추격하
  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일제히 멈춰 섰다.
  여자였다. 흰옷 자락이 어둠  속에서 표표히 날리고  있었
  다. 그녀는 지쳤는지 창을 비스듬히 비껴 들고 있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총독이다!"
  그때 병사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병사들이 놀라서 장애란을  쳐다보았다. 장애란은  수많은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이 잔뜩 몰려와 있는데도 눈  하나 깜
  짝하지 않고 있었다.
  초연했다.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병사들을 한  눈에 쓸
  어보는 눈에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뻗치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여자 하나였다.  유러너스 제국 병사들은  사피언스
  그라운드 병사들을 협곡으로 유인하여 대승리를  거두고 그
  들을 추격 중이었다. 그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몰살을 시키
  면 살로메 위성은 그들의 것이었다.
  "공격하라!"
  코드웰중령이 말을 타고 달려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병
  사들이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장애란을 향해  파도처럼 짓
  쳐 들어갔다. 장애란은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벌떼같이
  달려오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계집을 먼저 죽여라!"
  코드웰중령이 병사들을 독려했다.
  "오너라!"
  병사들이 가까이 접근해 오자 장애란이 창대를  바닥에 쿵
  하고 내리쳤다. 그 순간 병사들이 일제히 장애란을 향해 창
  을 찔러댔다.
  "핫!"
  장애란이 짧은 기합을 토하며 창대의 반동을  이용해 공중
  으로 솟구쳤다. 장애란의 가슴을 겨누고 창을  찌른 병사들
  은 헛되이 허공을 찔렀다. 장애란은 번개처럼  허공에서 몸
  을 뒤집으며 창을 수평으로 그었다. 병사들은  바람이 허공
  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성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장애란의 창은 병사들의 목에서 현란한 춤을  추고 있
  었다.
  "으악!"
  병사들을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눈 깜짝할 순간의 일이었다. 뒷줄에 있던 병사들이 눈이 휘
  둥그레져 장애란을 쳐다보자 어느 사이에  장애란은 사뿐히
  말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계집을 죽여라!"
  코드웰중령이 다시 병사들을 독려했다. 이번엔  뒷줄의 병
  사들이 일제히 장애란을 향해 창을 쩔러댔다.  그러나 그들
  도 장애란이 휘두른 창에 비명을 지르며 피를  뿌리고 나뒹
  굴었다.
  유러너스 제국의 병사들은 장애란의 창에 수많은 병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는데도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이것들이 끝도 없이 밀려오는군 '
  장애란은 지치기 시작했다.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겨드랑이와 등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왔다.
  "계집이 지치기 시작했다! 계집을 죽이는  병사들에게 2계
  급 특진을 시킨다!"
  코드웰중령은 뒤에서 병사들만  독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애란은 일파, 일파  파도처럼 밀려오는 유러너스  제국의
  병사들을 쉴새없이 도륙했다. 그녀의 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시체들은 산처럼 쌓였다.
  마침내 날이 번하게 밝기 시작했다. 유러너스 제국의 병사
  들은 그때서야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장애란은
  흡사 지옥에서 나온 야차 같았다.
       제 44 장 하란공주
  전쟁은 곤충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땅에도  회오리처럼 몰
  아쳐오고 있었다. 유러너스 제국과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전
  쟁이 정복을 하기 위한 전쟁이라면  곤충족들과 사튀로스족
  의 전쟁은 식량을 위한 전쟁이었다. 반인반수인 사튀로스족
  은 곤충족들을 식량으로 삼고 있었다. 그들은  다같이 인간
  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었다. 그러나 사튀로스족은 곤충족
  을 식량으로 삼고 있었고 곤충족들은 과일과 꽃  따위를 식
  량으로 삼고 있었다.
  곤충족들은 사튀로스족을 막기  위해 장구한 세월에  걸쳐
  성까지 쌓았다. 그러나 사튀로스족은 성을 넘어서 사튀로스
  족을 습격했다. 사튀로스족은 곤충족이 아니면 식량이 없었
  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곤충족만이 그들의 식량이라는 생
  각을 하고 있었고 곤충족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는 의식
  이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
  '이들은 인간으로 진화 과정에 있을 뿐이야!'
  이리노중위는 사튀로스족의 습격이 밤마다 계속되자  그들
  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 따위로는 도저히 그들의 습
  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리노중위는 곤충족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처음엔 손
  짓 발짓으로 사튀로스족과 싸우는 시늉을 하고 총검술 훈련
  과 제식훈련을 실시했다. 그리고 지구인들의 언어를 가르치
  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혀가 짧아서 지구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귀는 발달되어 있었다. 사튀로스족의  습격을 경계
  하기 위해 청각만이 본능적으로 발달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이리노중위의 말도 금세 알아들었다.
  '일단 말을 알아듣는 것만 해도 중요해 '
  이리노중위는 그들이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자 본격적인 훈
  련을 실시했다. 곤충족들에게 고슴도치의 가시로 칼과 창을
  만들게 하고 전투에 대해서 가르쳤다. 활과  화살도 만들어
  쏘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공격, 후퇴 따위의  간단한 군
  대용어도 가르쳤다.
  이리노중위가 곤충족들을 훈련시켜 대오를 만들어  행군을
  하게 한 것은 꽤 오랜 시일이 지나서의 일이었다.
  곤충족들은 이제 독립적으로 전투를 할 수  있게까지 되었
  다. 사튀로스족은 그 동안에도 매일 같이 성벽을 넘어와 곤
  충족을 잡아먹고 사라졌다.
  이리노중위는 곤충족들에 대한  훈련이 어느 정도  끝나자
  마침내 사튀로스족과 전쟁을 하기 위해 출정하기로 했다.
  그날 밤의 일이었다.  이리노중위는 곤충족들을  훈련시킨
  뒤의 피로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곤충족들
  을 이끌고 전쟁터로 떠나야 했다.
  날씨는 좋았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들어차서 반짝이
  고 뺨을 간지르는 바람결은 부드럽고 서늘했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이리노중위는 잠결인지  꿈결인지 자
  신의 옷이 한 겹 한 겹 벗겨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하체에서 짜릿한 쾌감이 일어나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번져
  갔다. 이어서 하체가 부드러운 자극에 의해  급속하게 팽창
  하고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눈을 번쩍 떴다.
  "키키 "
  하란공주였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이 파란 광채를 발산
  하고 있었다.
  "공주!"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를 제지하려다가 흠칫했다. 어느 새
  그가 하란공주의 몸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이리노중위
  는 자신도 모르게 하란공주의 등을 힘껏 껴안았다.
  아아
  이리노중위는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란공주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흡착
  력을 갖고 있었다.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이리노중위는 시간의  흐름을
  전혀 의식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감미로운 감
  각이 점점 깊어지고 확대되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그의 내
  부에서 폭발했다. 화산이 터지고 용암이 분출되는  것 같은
  격렬한 폭발이었다.
  하란공주가 땀을 흥건히 흘리고 그의 옆에  떨어져 누웠을
  때 이리노중위는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하란공주는 언제나  이리노중위 옆에서
  모든 시중을 들었다.
  '공주는 너무나 귀여워 '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
  들은 언제나 손을 잡고 걸었고 사랑의 행위도  서슴지 않았
  다. 하란공주는 자신이 즐거우면 아무 때나 이리노중위에게
  키스를 했고 이리노중위는 그런 하란공주가 마음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부대가 대오를 정리하자 이리노중위도 출정준
  비를 했다.
  "행군준비!"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를 안고 말을 탔다.  하란공주가 가
  벼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하란공주는 그의  말을 자신들의
  종족들에게 통역하기도 했다.
  비록 그들은 키키라는 한  마디 말밖에 하지 못했으나  그
  단어에는 그들 나름대로 무수한 표현방식이 있었다.
  "정찰대 출동!"
  이리노중위가 명령을 내리자 뒤에 도열해 있던  곤충족 병
  사들 중에서 정찰부대 병사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정찰대는 사튀로스족에게 들키지 말아야 하므로 7명으로 편
  성되어 있었다.
  "본진 제1대 출발!"
  이리노중위는 뒤를 돌아다보며 명령을 내렸다.
  "키키!"
  하란공주도 자신의 종족 병사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
  자 1천명이나 되는 곤충족 병사들이 요란한  날개짓 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곤충족 본진 제1대는 창술부대였다. 그들은 창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좌익을 맡고 있었다.
  "본진 제2대 출발!"
  이리노중위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칼로 무장을 한
  곤충족 병사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본진  제2대는 우익을
  맡고 있었다.
  "본진 제3대 출발!"
  이어서 활과 화살을 갖고 있는 본진 제3대가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들은 중앙을  맡고 있었다. 일종의  학익진(鶴翼
  陣: 학의 날개 모양을  한 진) 형태였다. 고대의  전쟁에서
  많이 사용되던 진인데 물고기 비늘 같다고  하여 어린진(魚
  鱗陣)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좌익의 제1대가 1천명, 우익의 제2대가 1천명, 중앙의 제3
  대가 1천명이었다. 그러나 중앙의 제3대는  궁수병들이었으
  나 활과 화살이 얼마 되지 않아 실제로 궁수병은 1백 명 남
  짓 되었고 나머지는 창과 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고슴도치의 가시로 만든 칼을 차고 곤충족들
  을 지휘했다.
  성을 나서자 평원이 시작되었다.
  정찰대는 이미 2km 전방에서 날면서 사튀로스족을 찾고 있
  었고 3천명의 곤충족들은 하늘을 가득히 메우고 절서정연하
  게 날고 있었다.
  "이랴!"
  이리노중위는 날개가 없어 날지를 못하므로 채찍질을 하여
  말을 달렸다. 하란공주는 충분히 날 수  있었으나 이리노중
  위와 함께 말을 타고 달렸다.
  "이랴!"
  정찰대가 한 떼의 사튀로스족이 살고 있는 동굴을 찾은 것
  은 성을 나선지 세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이리노중위는 정
  찰대로 하여금 자신을 잡고 하늘을 날아 사튀로스족을 정찰
  하게 하였다.
  이리노중위가 잡혀간 동굴도 계곡에 있었다.
  하늘에서 자세히 살피자 그들은 부족 단위로 살고 있은 것
  같았다. 계곡에 있는 동굴마다 사튀로스족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밤에만 활동을 하는지 동굴에서  나와 빈둥
  거리고 있었다. 지난밤에 습격하여 잡아온 곤충족들을 희롱
  하고 있는 사튀로스족도 보였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 희롱하고 있는 것 같군.'
  이리노중위는 계곡 위에서 몸을 숨기고 사튀로스족을 살피
  며 낮게 신음을 삼켰다. 사튀로스족 하나가  곤충족을 손과
  발로 이리저리 굴리며 희롱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곤충족
  을 희롱하다가 배가 고프면 잡아먹는 모양이었다.
  '이들은 낮에는 활동을  못해. 곤충족을 제대로  희롱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눈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이리노중위는 곤충족을 희롱하는 사튀로스족을 보고  그렇
  게 결정을 내렸다. 날개가 찢겨 나간 곤충족이 엉금엉금 기
  어서 도망을 치는데 엉뚱한 곳만 갈퀴가 달린  손으로 더듬
  고 있었다. 줄에 묶인 곤충족은 사튀로스족이  엉뚱한 곳을
  더듬고 있는 사이에 줄을 풀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크악!"
  갑자기 사튀로스족이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괴성을  질렀
  다. 그리고 줄을 잡아당기더니 곤충족을  물어뜯었다. 곤충
  족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곤충족의 몸에서 피가  왈칵 쏟
  아졌다.
  "아 "
  이리노중위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사튀로스족은 잔인한 괴수였다.
  하란공주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잔인한 사튀로스족은 시장기가 돌고 있는지 피가 줄줄 흐르
  는 곤충족을 뜯어먹고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를 가슴에 안았다. 하란공주가 전신
  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공주 괜찮아. 우리가 이제 복수를 할거야."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의 귓전에 낮게 속삭였다. 요정처럼
  아름다운 곤충족을 잡아먹는  사튀로스족에게 강한  분노가
  느껴졌다.
  "키키 "
  하란공주가 눈물에 함빡 젖은 눈으로 이리노중위를 쳐다보
  았다. 이리노중위는 슬퍼하는 하란공주를 보고 가슴이 아팠
  다. 그는 하란공주를 안아서 입술을 포갰다. 하란공주의 입
  술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내가 용서하지 않겠어!"
  하란공주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리노중위의 가슴으로  바
  짝 파고들었다.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의 등을 토닥거려 주
  었다.
  정찰을 마친 이리노중위는 곤충족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본진으로 돌아와 작전을 세웠다. 사튀로스족은 낮에는 사물
  을 잘 보지 못하지만 사납고 포악한 괴수다. 곤충족들이 비
  록 날개가 있어서 하늘을 날아다녀도 막상 포악한 괴수들을
  공격하게 되면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공격을 하지 않으면 안돼. 오늘  승리하지 않으
  면 곤충족들은 영원히 사튀로스족의 식량이 될 거야 '
  이리노중위는 곤충족 병사들을 모아놓고 하란공주에게  사
  튀로스족을 공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설명하게 했
  다. 사튀로스족이 포악하기는 하지만 곤충족과 같은 하나의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다, 곤충족도 충분히 사튀로스족을 죽
  일 수 있다, 여러분들은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무엇
  보다도 훌륭한 무기다, 지구에서 온 나도  사튀로스족과 싸
  우지 않는가, 나는 여러분과 똑같은 허약한  지구인일 뿐이
  다, 지구인들도 수많은 괴물들에게 잡아먹히면서 강한 인간
  이 되었다, 사튀로스족과 싸우라! 사튀로스족을 죽여라! 이
  번에 승리하면 사튀로스족은  절대로 여러분들을  식량으로
  먹지 못할 것이다
  하란공주가 이리노중위의 말을 설명하자 곤충족  병사들의
  얼굴에 긴장된 빛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리노중위의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얼굴에 긴장된 빛이  흐르는 것을
  보면 비장하게 결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선두에 서겠다!"
  이리노중위는 곤충족들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사튀로스
  족을 공격할 때 선두에 서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사튀
  로스족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공주가 뒤따라 올  것이고 공
  주를 호위하는 시종들도 뒤를 따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용감하게 싸우는 것을 보면 다른 곤충족 병사들도 따라오게
  될 것이다.
  이리노중위는 작전을 세웠다.
  궁수병들은 이리노중위가 공격을 할 때 사튀로스족이 동굴
  에서 몰려나오면 일제히 활을 쏘아 공격을  시작한다. 이어
  서 제1대가 뒤를 받치고 제2대는  사튀로스족이 우왕좌왕하
  면 칼로 공격을 한다. 제3대는 제1대와 제2대가  위험에 빠
  지면 즉시 공격에 가담하여 적을 교란한다...
  이리노중위는 그와 같은 공격작전을 하란공주를 통해 곤충
  족 병사들에게 설명을 했다. 모든 설명이  끝나자 이리노중
  위는 절벽 위에서 사튀로스족이  동굴에서 나와 볕을  쬐고
  있는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살로메 위성은  하루가 8시간밖에
  되지 않으므로 빠른 시간 내에 공격을 해야했다.
  "키키 공격하겠어! 몸 조심해."
  이리노중위는 공격준비가 끝나자 하란공주를 응시했다.
  "키키 "
  하란공주가 이리노중위를 쳐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리
  노중위는 하란공주의 입술에 가볍게 자신의  입술을 얹었다
  가 떼고 절벽을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절벽은 험준했다. 그러나 이리노중위는 사관학교에서 훈련
  도 받았고 사관학교 생도시절에 클론들로부터  초능력을 부
  여받았기 때문에 간단하게 절벽을 내려갈 수 있었다.
  '내려와!'
  이리노중위는 사튀로스족이 한가하게 볕을 쬐고 있는 동굴
  앞에 이르자 하란공주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곤충족
  병사들이 곤두박질을 치듯이 활강하는 것을  보고 고슴도치
  의 가시로 만든 칼을 뽑고 사튀로스족에게 다가갔다.
  '정말 끔찍하게 잔인한 놈들이야.'
  사튀로스족이 어슬렁거리거나 볕을 쬐며 잠들어 있는 계곡
  에는 곤충족들의 뼈와 해골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사
  튀로스족들이 납치한 곤충족을 먹어치운 흔적이었다.  곤충
  족들의 날개도 함부로 찢겨진 채 버려져 있었다.
  '낮에 보니 더욱 흉악하게 생겼군!'
  이리노중위는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무겁
  게 신음을 토해내고 네 활개를 펴고 잠들어  있는 사튀로스
  족에게 칼을 겨누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곤충족  제1대가
  낮게 활강하여 공격준비를 하고 있었다. 곤충족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날아 내리자  해가 가려져 그림자가  드리워졌
  다.
  '이때야!'
  이리노중위는 잠들어 있는 사튀로스족의 복부를 겨누고 칼
  을 깊숙이 찔렀다.
  "크아악!"
  사튀로스족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손을  휘저었다.
  이리노중위는 사튀로스족의 비명소리에  소름이 오싹  끼쳤
  다. 사튀로스족이 입을 딱 벌리고 비명을 지르자 흉측한 이
  빨이 드러났던 것이다.  게다가 눈은 핏빛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소름이 오싹  끼쳤다. 이리노중위는  재빨리
  칼을 뽑아 사튀로스족의 팔을 쳤다.
  그러자  예리한 칼날에 의해 사튀로스족의 팔이 잘려졌다.
  "크아악!"
  사튀로스족이 괴로워하며 몸부림을 쳤다. 그와  함께 잘려
  진 팔에서 피가  솟구치며 이리노중위의 얼굴에  뿌려졌다.
  이리노중위는 얼굴의 피를 닦을 시간도 없어 펄펄  뛰는 사
  튀로스족의 목을 후려쳤다.
  사아아악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와 함께 거대한 사튀로스족의 목이
  잘라졌다. 사튀로스족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
  다. 그때 동료 사튀로스족의 비명을 들었는지  동굴에서 사
  튀로스족들이 꾸역꾸역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오너라!"
  이리노중위는 사튀로스족이 몰려나오자 전광석화처럼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일정한 초식이나 검법은  아니었다. 군
  대에서나 사관학교에서 검술에 대한 것은 배우지 않았었다.
  그는 그저 동물적인 감각으로 사튀로스족을 죽이고 있을 뿐
  이었다.
  "공격해!"
  이리노중위는 사튀로스족과 싸우면서 공중에 떠있는  하란
  공주에게 명령을 내렸다.
  "키키 "
  하란공주가 곤충족 병사들에게 명령을 전했다.  곤충족 병
  사들은 그때서야 일직선으로 하강하여 창으로 사튀로스족을
  찌르기 시작했다.
  "크아악!"
  여기저기서 사튀로스족이 곤충족 병사들의 창에 찔려 비명
  을 지르며 죽어갔다.
  처음에 사튀로스족은 무장을 하지 않은 채  동료의 비명소
  리를 듣고 동굴에서 몰려 나왔었다. 그러나  동료들이 공격
  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자 창을 들고  나와 곤충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리노중위는 혈투를 벌였다. 사튀로스족은 한낮이라 이리
  노중위를 똑바로 식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동물
  적인 본능에 의해 창을 휘둘러대고 있었다.
  이리노중위가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제2대가 계곡으로
  하강하여 곤충족 제1대의 싸움에 가담했다. 곧  이어 제3대
  도 싸움에 가담했고 제3대의 궁수병들은 활을  쏘아 사튀로
  스족을 죽였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군.'
  이리노중위는 지치기 시작했다. 한 시간을  넘게 사튀로스
  족과 혈전을 벌였는데도  사튀로스족은 동굴에서  꾸역꾸역
  몰려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곤충족들도 용감하게  싸웠다.
  곤충족들이 사튀로스족들과 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
  다. 곤충족들은 사튀로스족이 밤마다 습격을 하여 잡아먹어
  도 그것이 자신들의 운명이거니  체념을 하고 있었던  것이
  다.
  그들이 사튀로스족을 막기 위해 거대한 성벽을  쌓은 것이
  최대한의 항전이었다.
  그러나 이리노중위를 알게 되어 그들은 전쟁하는  법을 배
  우고 생존을 위한 전쟁을  하고 있었다. 종족이 생긴  이래
  처음 하는 전쟁이라 전투는 서툴렀다. 그러나  그들은 후퇴
  하지 않고 사튀로스족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키키 "
  그들이 전쟁을 하면서도 내뱉는 말은 단 한 마디뿐이었다.
  사튀로스족의 창에 찔리거나 갈퀴가 달린 손에 잡혀서 사지
  가 찢어질 때도 그들은 키키 하는 비명만 질렀다. 이리노중
  위는 그들의 한 마디가 무엇을 표현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하
  고 가슴이 아팠다.
  전투는 계속되었다.
  사튀로스족은 좁은 계곡에서의  싸움이라 시체가 쌓여  갔
  다. 곤충족 병사들의 희생도 많았다.  이리노중위가 사튀로
  스족을 죽이면서 하란공주를 쳐다보자 하란공주도 피투성이
  가 되어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가슴이 타는 것 같았다.
  '이제는 퇴각할 때가 되었어!'
  처음의 전쟁부터 완벽한 승리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이리
  노중위는 하란공주를 불렀다.
  "키키 "
  하란공주가 이리노중위의 옆으로 날아왔다.
  "공주! 사튀로스족 하나를 생포해서 끌고 가야겠어!"
  "왜요?"
  공주가 반짝이는 눈으로 이리노중위를 쳐다보았다.
  "쓸모가 있어! 내가  놈들의 그물을 빼앗아  사튀로스족을
  생포할 테니까 병사들에게 끌고 퇴각하라고 해!"
  "알겠어요."
  공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리노중위는 사튀로스족 하나
  를 부상을 입혀  쓰러트렸다. 그리고 재빨리  사튀로스족의
  그물을 빼앗아 덮어 씌웠다. 이리노중위가 갇혔던 그물이었
  다. 사튀로스족이 발버둥을 쳤으나 그물은 끄덕도  하지 않
  았다.
  "퇴각!"
  이리노중위는 곤충족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곤충족
  병사들은 이리노중위가 생포한  사튀로스족을 끌고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퇴각!"
  벌써 날이 저물어 오고 있었다. 검푸른 저녁  이내가 계곡
  을 덮어 오면서 어둠이 서서히 깔리고 있었다.
  "키키 "
  하란공주가 이리노중위에게 바닥에 엎드리라는 시늉을  했
  다. 이리노중위는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자  하란공주와 곤
  충족 병사들이 달려들어 이리노중위의 팔과 다리를 잡고 하
  늘로 날아올랐다.
  "크아악!"
  곤충족들이 일제히 퇴각하기 시작하자 분노한  사튀로스족
  이 발광을 하듯이 고함을 질러댔다.
  이리노중위는 곤충족 병사들에 의해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계곡에는 곤충족과 사튀로스족의  시
  체가 그득했다. 곤충족을 비롯해 사튀로스족들도 수천 명이
  죽임을 당했음이 분명했다.
  '이것은 이제 시작이야!'
  이리노중위는 계곡을 내려다보면서 입언저리에 미소를  떠
  올렸다. 첫 번째 전투로는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이리노중
  위는 자신의 팔을 잡고 하늘을 날고 있는  하란공주를 쳐다
  보았다.
  하란공주가 피묻은 얼굴로 미소를 보내왔다.  사랑이 가득
  한 미소였다. 이리노중위도 미소를 지었다.
  "이리노중위님. 사랑해요."
  하란공주의 미소에는 그런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키키 나도 너를 사랑해! 너는 요정처럼 아름다워!"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를 향해 속삭였다.
  그들은 초원에 이르자 잠시 쉬었다. 곤충족 병사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대오를 정리하자 3천명의  곤충족 병사들
  중에 5백 명이나 빠져 있었다. 5백 명의 병사들이 사튀로스
  족과의 전투에서 희생을 당한 모양이었다.
  성으로 돌아오자 곤충족들이 몰려나와 환호를  했다. 곤충
  족 병사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사튀로스족이 밤에 기습을 할지도 모르오!"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와 곤충족의 왕을 만나 전투에 대해
  보고를 한 뒤에 기습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왕은 근심
  스럽게 하란공주의 얘기를 듣고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표정으로 이리노중위를 쳐다보았다.
  이리노중위는 대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곤충족은 왕은 이리노중위에게 일임하겠다고 말했다.
  이리노중위는 왕의 궁전을 물러 나오자 오늘  전투에 참여
  하지 않은 병사들을 선발하여 성루에 세웠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 성루로 올라갔다.
  '우주에서 괴물과 전투라니 '
  이리노중위는 자신이 처한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신기루 같기만 했다.
  사방은 이미 캄캄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그는 문득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그러나 마의 숲을 통과하여 사튀로스족에
  게 납치되었을 때 담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부대로 돌아가야 할텐데 언제 돌아가지?'
  이리노중위는 부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대에서
  는 그의 소식을 몰라 궁금할 터였다.  나무스소령이 지휘하
  는 정찰대가 모조리 사튀로스족에게 살해되었다는  것을 부
  대에 알려야 했다. 그러나 위기에 빠진  곤충족을 내버려두
  고 부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사튀로스족만 물리치고 돌아가자!'
  이리노중위는 그렇게 결심을 했다. 그는 지구인이었다. 지
  구인이라면 마땅히 지구인들과 어울려 살아야 했다.
  밤이 깊어 갔다. 이리노중위는 성의 벽에  기대어 졸았다.
  사튀로스족과의 전투로 온 몸이 솜뭉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피곤했다. 바람은 상쾌했고 기온은 따뜻했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무엇인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몸에 감겨오는  듯한 기
  분에 눈을 뜨자 하란공주가 그의 가슴을  파고들고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가만히  하란공주를 끌어안았다.  하란공주는
  잠들어 있었다. 오늘 하루가 그녀에게도 피곤했던 하루였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여자야.'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를 가슴에 안은 채 머릿결을 쓰다듬
  어 주었다. 곤충족들이 모두 요정처럼 아름답지만 하란공주
  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투명한  살결과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 그리고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
  이리노중위는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하란공주에 대
  한 사랑이 샘물처럼 그의 내부에서 강하게  솟구쳤다. 그는
  하란공주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살며시 얹었다.
  하란공주의 입술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저 멀리 밀림에서 짐승의  소리가 들려왔다. 밤에  활동을
  하는 짐승들이 밀림을 헤치고 돌아다니는 모양이었다. 새들
  이 놀라서 푸드득 날아오르고 다시 조용해 졌다.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고 밤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  가득히 빼곡하게 들어찬  별들이
  이리노중위에게 쏟아질 것처럼 가까이 내려와 있었다.
  '아름다워 '
  이리노중위는 광대무변의 밤하늘을 보면서 마음이  깨끗해
  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를 안은  채 성
  루의 난간에 등을 기댔다. 그는 무한한 적막감과 함께 행복
  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리노중위의 예상대로 사튀로스족이 습격을 해온 것은 밤
  이 이슥했을 때였다.  사튀로스족은 성밑에 이르러  갑자기
  북을 쳐대서 곤충족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든 뒤에 공격을 시
  작했다.
  "일어나! 하란공주!"
  이리노중위는 황급히 하란공주를 흔들어 깨웠다. 성루에서
  불침번을 서던 곤충족 병사들도 대부분 잠들어  있었다. 그
  들은 아직도 군대의 개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그들
  이 우왕좌왕하며 몰려다닐 때 사튀로스족은 벌서 성벽을 기
  어 올라와 닥치는대로 곤충족들을 죽이고 있었다.
  '낮의 습격으로 사튀로스족이 분노하고 있어!'
  이리노중위는 창을 들고 사튀로스족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
  했다.
  일단 기선을 제압해야 했다.
  "크아악!"
  사튀로스족은 이리노중위가 긴  창을 들고 앞을  가로막자
  팔을 벌리고 덤벼들었다.
  "덤벼라! 이 괴물들아!"
  이리노중위는 성벽에 올라선 사튀로스족을 향해 창을 휘둘
  렀다. 성루에는 벌써 10여명의 사튀로스족이 올라와 곤충족
  병사들과 싸우고 있었다. 곤충족들은 변변하게 저항을 하지
  못하고 사튀로스족의 창과 날카로운 손톱에  목줄기가 뚫리
  고 심장이 터져 죽었다.
  '이들은 밤의 동물이야!'
  사튀로스족은 낮에 보다 행동이 훨씬 민첩했다. 그들은 어
  둠 속에서 번개처럼 달려와  곤충족의 등을 창으로  찍거나
  손톱으로 찌르고 발톱으로 굵었다. 곤충족들은 그럴 때마다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덤벼!"
  이리노중위는 흉측한 손톱으로 곤충족의 등을 꿰뚫은 사튀
  로스족에게 창을 휘둘렀다.
  "크아악!"
  사튀로스족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돌려 이리노중위를 덮쳐
  왔다. 이리노중위는 전광석화처럼 몸을 날려  사튀로스족의
  목을 창으로 후려쳤다. 사튀로스족이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
  고 성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사튀로스족의 목은  성루 위에
  그대로 뒹굴고 있었다.
  "공주!"
  이리노중위가 사튀로스족 하나를 죽이고 하란공주를  찾자
  하란공주는 사튀로스족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
  리노중위는 공중으로 몸을 날려 공주를  죽이려는 사튀로스
  족의 등을 창으로 찍었다.
  "크아악!"
  사튀로스족이 몸부림을 쳤다. 그때 하란공주가 사튀로스족
  의 가슴을 창으로 찔렀다.  이리노중위는 다시 한 번  몸을
  날려 비틀거리는 사튀로스족의 턱을 걷어찼다.  사튀로스족
  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성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공주가 달려와 이리노중위의 가슴에 안겼다. 이리노중위는
  공주의 어깨를 두드려 준 뒤에 성루로 올라온 사튀로스족들
  과 격렬한 싸움을 했다. 곤충족들도 그때서야 활을 쏘고 사
  튀로스족을 창으로 찌르는 등 맹렬하게 전투를 했다.
  사튀로스족은 파도처럼 덮쳐오고 있었다.
  곤충족은 이제 스스로 맹렬한 전투를 했다. 그들은 성루에
  서서 성벽을 기어올라오는  사튀로스족에게 돌을  굴리기도
  하고 창을 던지기도 하였다.
  '이들은 이제 전투를 할 줄 알아!'
  이리노중위는 그들이 전투를 하는 것을 보고 흐뭇했다.
  성밑의 사튀로스족은 성루에서 곤충족들이 맹렬하게  저항
  을 하자 성벽을 기어오르는 것을 포기했다. 그 대신 그들은
  성밑에서 북을 쳐서 기세를 올린 뒤에 일제히 창을 던졌다.
  휘이이잉
  사튀로스족이 던진 창은 흡사 귀곡성처럼 음산한 바람소리
  를 내며 성루로 날아와 곤충족들의 몸을 꿰뚫었다.
  이리노중위는 당황했다. 사튀로스족의 창이 우박처럼 쏟아
  지고 있었다.
  "키악!"
  곤충족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키키 "
  그때 이리노중위 옆에 있던 하란공주가 괴로운 신음소리를
  토했다.
  이리노중위는 공주를 돌아보았다.  창 하나가  하란공주의
  복부를 꿰뚫고 있었다.
  "공주!"
  이리노중위는 재빨리 공주를 안았다. 공주의  복부에서 선
  혈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키키 "
  공주가 괴로워하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이리노중위
  의 가슴에 안겨 있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는 표정  같았다.
  이리노중위는 공주의 미소에 가슴이 뭉클했다.
  "공주 아플 거야. 그러나 조금만 참아!"
  이리노중위는 공주의 복부에 박혀 있는 창을 힘껏 뽑았다.
  그러자 공주가 키악 하는 비명을 지르고 정신을 잃었다. 창
  을 뽑은 공주의 복부에서 선혈이 분수처럼 솟구쳐 이리노중
  위의 얼굴을 적셨다.  이리노중위는 공주의 복부를  지혈했
  다.
  "키키 "
  그때 공주의 시종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공주의 모습을 근
  심스러운 표정으로 들여다보다가 공주를 안고 날아갔다.
  이리노중위는 공주가 걱정이 되었으나 성밑의  사튀로스족
  때문에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이대로 당하고 있지는 않겠어!'
  이리노중위는 성루에서 내려와 말을 탔다.  그리고 성문을
  열게 하고 쏜살 같이 성밖으로 달려갔다. 캄캄한 어둠 속이
  었다. 사튀로스족은 이리노중위가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며
  질풍처럼 달려나오자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리노중
  위의 맹렬한 기세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모두 죽여버리겠다! 덤벼라 이 괴물들아!"
  이리노중위는 사튀로스족의 한 가운데로 뚫고 들어가며 마
  구 창을 휘둘렀다. 이리노중위가 창을 휘두를  때마다 사튀
  로스족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사튀로스족은 공포에 질렸다. 이리노중위는 악마처럼 날뛰
  고 있었다.
  그가 창을 휘두를 때마다  사튀로스족이 두 세 명씩  피를
  뿌리며 나뒹굴고 있었다. 이리노중위가 한 시간  동안 창을
  휘두르자 곤충족의 성 바깥에는 사튀로스족의  시체가 산처
  럼 쌓였다.
  사튀로스족은 그때서야 슬금슬금 달아났다.
  이리노중위는 사튀로스족이 전의를 잃고 도망을 치자 말을
  멈추고 창을 늘어뜨렸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그
  의 몸이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사튀로스족의 시체더
  미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전쟁은 끔직해!'
  이리노중위는 허탈했다.
  그때 성루에 있던 곤충족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러댔다.
  누가 시키거나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리노중위가 단신으로 사튀로스족과  싸우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이리노중위는 말을 돌려  성안으로 돌아왔다.  곤충족들이
  환성을 지르며 그의 옆에서 날았다. 연도에는  수많은 곤충
  족들이 몰려나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왕의 궁전에 이르자 왕과 왕비가 친히 문밖까지 나와 그를
  환영했다. 이리노중위는 그들과 함께 이리노중위의  집으로
  돌아왔다. 공주는 그의 집에 눕혀져 있었다. 곤충족들의 의
  사인 듯 나이 많은 곤충족들이 공주의 복부에  약초를 짓이
  겨 바르고 있었다.
  "공주!"
  이리노중위는 공주 옆에 앉았다. 공주가 가늘게 눈을 뜨고
  이리노중위를 쳐다보았다.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인지 공주
  의 얼굴은 창백했다.
  "키키 "
  공주는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이리노중위는 공주의 손을 잡아주었다. 공주는 이리노중위
  가 손을 잡아주자 희미하게  미소를 짓다가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그녀는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들어 보였다.
  '지구에서라면 공주를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을 텐데 '
  이리노중위는 공주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을 보자 가슴
  이 아팠다. 밤이 깊어지자 공주는 열이 더욱  높아졌다. 이
  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신음소리를 입밖으로 흘리며
  괴로워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이리노중위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내 피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리노중위는 고열에 신음하는  공주를 보자  안타까웠다.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 손가락을 베었다. 그리고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공주의  입을 벌리고
  흘려 넣어주었다. 공주의 시종들은 이리노중위가  손가락을
  베어 공주의 입에 피를 넣어 주자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그러나 이리노중위가 자신들의 편이라고 굳게  있었기 때문
  에 이리노중위를 방해하지 않았다.
  이리노중위는 10분쯤 공주의 입에 자신의 피를  흘려 넣었
  다.
  그리고 공주 옆에 누웠다. 공주의 말에 의하면  공주는 그
  의 여자였다. 곤충족들도 모두 그렇게 여기고 있는 듯이 고
  개를 끄덕거리거나 미소를 지었다.
  이리노중위가 깨어난 것은 날이 완전히 밝았을 때였다. 공
  주는 일어나 앉아 잠자는 그의 얼굴을 다감한  눈빛으로 내
  려다보고 있었다. 공주의 얼굴엔 화색이 돌고 있었다.
  "저를 살려주셔서 고마워요."
  공주가 입을 열어 낮게 속삭였다.
  "공주가 살아나서 너무 기뻐."
  "당신을 사랑해요."
  공주가 얼굴을 숙여  이리노중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얹었다. 이리노중위는 공주를 힘껏 껴안았다.
       제 45 장 음모
  마더 살로메 누네즈는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로즈 국장은 부동자세로 보고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 경호
  원들은 비밀경찰 제복을 입고 정문에 2명, 침대 옆에 2명이
  서 있었다. 우희 위버는 눈동자 한 번 굴리지  않고 누네즈
  의 뒤에 서 있었다.
  "살로메 위성에 있는 우리 제국군대가  사피언스 그라운드
  군에 몰살을 당했다는 말이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해?"
  누네즈는 불같이 역정을 내고 있었다. 로즈 국장은 입안의
  침이 마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살로메 위성에  올라간 유러
  너스 제국군대가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에 참패를 한 것은 살
  로메 위성에 금속이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압도하는 첨단무기들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효
  과적인 전투를 벌일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살로메 위성은 쇠붙이가 존재하지 못하는 기
  이한 별입니다. 우리의 과학무기들이 살로메 위성에서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에 참패를 한 것 같습니다."
  "이봐! 로즈 국장!"
  "네. 어머니."
  "특수 알루미늄과 실리콘으로 제작된 바바라는  그 곳에서
  아무 이상이 없었어 "
  "예. 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고 코스모스  과학센타의 과
  학자들이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연구하고 말고 할 필요가 어디 있어? 즉시 우리가 제작한
  안드로이드를 살로메 위성으로 올려보내 사피언스 그라운드
  군을 몰살시켜!"
  "네. 어머니!"
  로즈 국장이 다시 한 번 부동자세를 취했다.
  "돌아가서 안드로이드를 선발해  살로메 위성으로  올려보
  내!"
  "네!"
  로즈 국장이 절도있는  자세로 거수경례를 바치고  물러갔
  다.
  "흥!"
  마더 살로메가 콧소리를 내뱉았다.
  "저 계집을 너무 오랫동안 총애했어 "
  이내 파나카이아 총통이 마더 살로메의  침실로 들어왔다.
  파나카이아 총통은 문으로 들어오자 허리를 깊숙이 숙여 절
  을 했다.
  "파나카이아가 어머니를 뵙습니다."
  마더 살로메가 옆눈으로 파나카이아 총통을 흘겨보았다.
  "파나카이아! 전쟁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잇나?"
  "명령만 내리시면 언제든지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몰
  살시킬 수 있나?"
  "예. 완벽한 잿더미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놈들이 펄서폭탄을 개발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펄서폭탄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 아니야?"
  "마더 살로메께서 말씀하신 바 있듯이  그들이 펄서폭탄을
  사용하면 우주선을  타고 살로메  위성으로 날아가면  됩니
  다."
  "좋아 언제 공격하는 것이 좋겠나?"
  "명령만 내리시면 어느  때라도 상관없습니다. 오늘  또는
  내일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
  "반제동맹은 어떻지?"
  "반제동맹은 최근에 신의 바이러스를 개발했습니다. 그 신
  종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됩니다."
  "안드로이드에게도 위협이 되나?"
  "안드로이드에게는 위협이 안됩니다."
  "그렇다면 안드로이드를 보내 몰살을 시킬까?"
  마더 살로메가 실눈을  뜨고 파나카이아 총통을  노려보았
  다. 파나카이아 총통은 그 눈빛이 요기로  번들거린다고 생
  각했다.
  마더 살로메의 정욕이 꿈틀거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예."
  "안되지. 아직은 안돼."
  마더 살로메가 살래살래 고개를 흔들었다.  파나카이아 총
  통이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마더 살로메를 쳐다보았다.
  "파나카이아 총통은 돌아가라!"
  "예. 어머니."
  파나카이아 총통이 또 다시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물러갔
  다.
  "저 늙은이는 아무래도 나이를 너무 먹은 것 같아. 지금은
  안드로이드로 반제동맹을 공격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
  다니 안드로이드가 1500명밖에 안되는데 니트론의  공격에
  소비하면 어떻게 하란 말이야. 그들은 살로메  위성에 가서
  사피언스 그라운드와 싸워야 할 전사들이란 말이야 "
  파나카이아 총통이 물러가는 것을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
  던 마더 살로메가 불만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렸다.  우희 위
  버는 마더 살로메의 말투에서 그녀가 조만간 정쟁을 일으키
  리라는 짐작을 했다. 로즈 5호로 위장을 하고  마더 살로메
  의 침실 경호원 노릇을 하면서 그녀는 마더  살로메와 유러
  너스 제국의 권력의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과학이 최고로 발달한 유러너스 제국이  이토록 엉터리라
  니 믿을 수가 없어 '
  우희 위버는 유러너스 제국의 권력 핵심을  파악하게 되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섹스와 로
  봇 제작, 그리고 제국의 시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일뿐
  이었다. 시민들을 어떻게 하여 잘살게  한다던가, 시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 따위는  애초부터 안중에
  없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와의 전쟁도 시민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로즈 2호! 모리오 부국장을 불러!"
  마더 살로메가 정문에 서 있는 안드로이드에게  명령을 내
  렸다.  "네."
  로즈 2호가 대답을 하고 허리에 있는 인터폰의  버튼을 눌
  렀다.
  "모리오 부국장을 소환하라!"
  로즈 2호의 허리에는 무선 인터폰이 부착되어  있었다. 잠
  시 후에 모리오 부국장이  헐레벌떡 마더 살로메의  침실로
  들어와 거수경례를 했다.
  "모리오!"
  "네. 어머니!"
  모리오 부국장이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로즈 국장을 감시하라고 지시했었지?"
  "네!"
  "결과는?"
  "로즈 국장은  변함없이 어머니께  충성을 바치고  있습니
  다."
  "로즈 국장이 안드로이드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
  고 있지? 여기 있는 안드로이드를 비롯해서 우리 제국의 모
  든 안드로이드를 로즈  국장이 제작하고  있어. 그렇지  않
  나?"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렇다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네?"
  "로즈 국장을 제거해!"
  "네?"
  모리오 부국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더 살로메를 쳐다
  보았다.
  우희 위버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유러너스  제국에 내분
  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마더 살로메는 자신의  심복인 로
  즈 국장을 의심하고 있었다.
  "로즈 국장이 안드로이드 제작을 전담하고 있는데 로즈 국
  장이 배신을 하면 우리는 끝장이야. 그 계집은 영악하기 때
  문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알겠습니다."
  "돌아가 봐. 로즈 국장을 제거하는 것은 그 계집이 제작한
  안드로이드를 살로메 위성으로 보낸 뒤에 해!"
  "네!"
  모리오 부국장이 절도 있게 거수경례를  바치고 물러갔다.
  마더 살로메의 침실은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우희 위
  버는 마더 살로메의 뒤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마더 살로메
  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 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오가
  고 있었다. 500살이 넘은 마더 살로메, 그러나 여전히 아름
  다운 몸, 그녀가 먹는 정제로 된 알약 그것은 마더 살로메
  의 몸을 확대시키기도  하고 축소시키기도 했었다.  게다가
  그 약은 마더 살로메의 생명을 연장시키기까지 하였다.
  "마더 랜드의 방탄막 비밀암호를 바꾸어야 하겠어 "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마더 살로메가  침실에 설치되어
  있는 슈퍼 컴퓨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침실의 벽에 디
  스 플레이 스크린으로 바뀌고 마더 랜드의 구석구석이 스크
  린에 비쳐졌다. 마더 살로메는 슈퍼 컴퓨터의  버튼을 눌러
  마더 랜드를 보호하는 방탄막의 비밀암호를  바꾸라고 지시
  했다.
  우희 위버는 눈동자만 돌려서 슈퍼 컴퓨터의  모니터를 응
  시했다. 모니터에 비밀암호를  바꾸겠습니까? 하는  글자가
  떠올랐다. 마더 살로메가 오케이를 입력했다.  그러자 새로
  운 비밀암호를 입력하십시오, 하는 자막이  떠올랐다. 마더
  살로메가 손가락을 두들겨 비밀암호를 입력했다.
  우희 위버는 마더 살로메가 눈치채지 않게 왼쪽 안구 대신
  이식한 카메라로 비밀암호를 찍었다.
  반제동맹 의장 로버트 퍼그스는 우희 위버를  통해서 마더
  살로메가 마더 랜드에 설치된 방탄막의  비밀암호를 바꾸는
  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더  랜드에는 미사일이
  나 핵폭탄으로도 파괴되지 않는 강력한  방탄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반제동맹에서 몇 번이나 마더 살로메를 암살하기  위해 미
  사일을 발사했으나 번번이 방탄막 때문에 실패했던 것이다.
  이제 방탄막의 비밀암호를 알아냈으므로 마더  살로메를 암
  살할 수 있었다.
  "이제 마더 살로메의 운명도 끝장이 났군요."
  반제동맹의 나나 요원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직은 몰라!"
  로버트 퍼그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마더 살로메는 500년을
  넘게 살고 있는 여자였다. 알바레스가 그녀를  죽이려고 했
  을 때도 실패했고 일반 시민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
  러너스 제국 자체에서도 몇 번이나 암살을  시도했었다. 그
  러나 그녀는 불로불사의 몸을 갖고 있는 여자답게  그 때마
  다 살아나곤 했었다.
  "그들이 우리 본부가 니트론에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어
  떻게 하죠?"
  "니트론은 적에게 노출시키기 위한 본부야. 게다가 안드로
  이드들이 살로메 위성으로 출동을 하게 되면 당분간 우리를
  공격하지는 못할 거야."
  "그렇군요."
  나나 요원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마더 살로메가 로즈 국장을 제거할 모양이죠?"
  나나 요원의 말에 로버트 퍼그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로즈 국장은 로버트 퍼그스가 동정을 바친 여자였다. 로마
  노즈의 위노강, 은사시나무가 바람에 살랑거리는  강둑에서
  였다. 그 무렵 그는 입대를 앞두고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
  해 위노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물론 낚시가 목적은 아니었다. 그는 언제 전쟁터로 떠날지
  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낚싯대를 드
  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 바람처럼 로즈가 나타났다. 그녀는  당시에 전쟁터에
  서 커다란 부상을 입고  로마노즈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녀가 악명 높은 로즈중대의 대장이라는  것을 알
  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그때 로버트  퍼그스는 이
  미 입대를 하여 전쟁터에 있었다. 그러나 로즈의 악명을 들
  으면서도 자신이 동정을 바친 로즈에게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것이 일어나곤 했다.
  로즈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로버트 퍼그스는 포연이 자욱한 전쟁터에서,  취침 나팔소
  리가 구성지게 울리는 참호  속에서 로즈의 하얀  몸뚱이를
  떠올리고 그녀와 살을 섞던 일을 회상하곤 했다.
  그의 아들 이리노중위는 로즈가 낳은 아이였다. 그러나 그
  는 아들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아들에 대한 애정보다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야망이 더욱 강
  했다. 이리노중위는 그가 반제동맹의 의장이라는 사실을 전
  혀 모르고 있었다.
  "로즈 국장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겠어."
  "그녀는 마더 살로메의 심복예요. 그녀가 우리에게 가담하
  겠어요?"
  "마더 살로메가 자신을 제거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면 배신
  감을 느끼겠지. 게다가 그녀는 불사신인 마더  살로메를 죽
  이는 방법을 알지도 몰라."
  마더 살로메를 죽이는 것은 반제동맹으로서 최대의 숙원이
  었다. 마더 랜드의 방탄막을 제거한다고 해도  마더 살로메
  를 죽이지 못하면 그녀는 또 다시 유러너스 제국 같은 사악
  한 제국을 건설하려 할 것이었다.
  "그럼 안드로이드를 살로메 위성에 보내기 전에 만나야 하
  겠군요."
  "내가 접선을 하겠어. 나나는 우리 요원 중에서 로즈 국장
  과 비슷한 여자를 찾아서  로즈 국장으로 위장시킬  준비를
  해."
  "네."
  나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로버트 퍼그스가 니트론을 빠져 나와 아라크네시에 도착한
  것은 그날 밤의 일이었다. 그는 비밀경찰국에  접선하여 로
  즈 국장에게 카페 베아트리체에서 만날 것을 요구했다.
  로즈 국장이 카페 베아트리체 앞에 나타난 것은 30분 뒤의
  일이었다. 로버트 퍼그스는  로즈 국장이 유러너스  제국의
  고위 관리들의 에어카 페가서스에서 내려  베아트리체로 들
  어가려고 하자 재빨리 자신의  에어카를 로즈 국장의  옆에
  댔다.
  "누구야?"
  로즈 국장이 흠칫하여 소리를 질렀다.
  "로즈 타시오!"
  "그대는?"
  로즈 국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로버트 퍼그스의  얼굴을 살
  폈다.
  "로버트 퍼그스요. 이리노중위의 아버지 "
  "아!"
  로즈 국장이 해연이 놀란 표정을 했다.
  "타시오."
  로버트 퍼그스가 주위를 살피며 에어카의 문을 열었다. 로
  즈 국장이 망설이지 않고 에어카의 조수석에  탔다. 로버트
  퍼그스는 에어카를 8백m 상공으로  날게 하고 로즈  국장을
  응시했다.
  "참으로 오래간만이오. 로즈는 여전히 아름답구려."
  로버트 퍼그스의 말에 로즈 국장이 얼굴을 붉혔다.
  "왜 나를 만나려고 하는 거죠?"
  로즈 국장이 불안한 듯 주위를 살폈다.
  로버트 퍼그스는 로즈 국장도 자신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밀경찰국을 총괄하는  로즈
  국장은 마더 살로메 다음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파나카
  이아 총통은 행정적인 일에서 유러너스  제국을 대표했지만
  권력을 움직이는 것은 실제로 로즈 국장이었다.
  "당신이 보고 싶어서 "
  "흥!"
  로버트 퍼그스의 말에 로즈 국장이 콧소리를 냈다. 그러나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진작 연락을 안했죠?"
  "당신은 내가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소."
  "공연한 핑계죠. 유러너스 제국은 러브 타임  제도가 있기
  때문에 섹스에 대해서는 자유로워요."
  "보고 싶다는 것은 섹스만의 의미가 아니오.  로즈 당신은
  위기에 빠졌소."
  "사피언스 그라운드가 침략이라도 해오나요?"
  "아니오. 마더 살로메가 당신을 제거하려고 하고 있소."
  로즈 국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언젠가 그런 일이
  닥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으나 의외로 빨리  닥쳤다는 표정
  이었다. 그녀의 손이 표나게 떨렷다.
  "그것을 왜 나에게 알려주는 거죠?"
  "당신이 죽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 "
  "사실은 내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얻을 것이 있어서 그렇죠?"
  "물론 당신이 나를 도와주기를 바라오. 그러나  나를 도와
  주지 않더라도 당신이 죽는 것은 바라지 않소."
  "무엇 때문에요?"
  "당신이 알고 있지 않소?"
  "나를 사랑하나요?"
  "사랑하오."
  로즈 국장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사랑한다는 말은 위노
  강에서 그와 헤어질 때도 들었었다. 그러나  무수한 세월이
  흐른 지금 로버트 퍼그스의 눈빛은 옛날의 지고지순한 사랑
  을 호소하던 소년의 눈빛이 아니었다.
  '나도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했었어.'
  로즈 국장은 입술을 깨물며 그렇게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를 사랑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에어카가 주라기 파크로 가는 도로의 숲에 착륙했다. 언젠
  가 애브너소령이 살해된 장미 숲이었다. 장미숲  아래는 강
  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강파도 소리가 운치 있게
  들려왔다.
  "모리오 부국장이 당신을 제거할 거요. 안드로이드를 살로
  메 위성으로 보낸 뒤에 "
  "마더 살로메가 나를 죽이려 한다면 받아들이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오. 우리 애들을 생각해야  하지 않
  소?"
  "애들이라니요?"
  "이리노중위와 장애란 우리는 그들에게 살기 좋은 지구를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소."
  로즈 국장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 맑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로즈."
  로버트 퍼그스가 음흉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사랑하오."
  로버트 퍼그스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가져가  로즈
  국장의 입술에 얹었다. 로즈 국장의 두 손이 로버트 퍼그스
  의 목에 감기고 로즈 국장의 입술이 열렸다.
  첫사랑이었다.
  육체의 눈을 뜨게 해준 사내였다. 로즈 국장은  사랑에 굶
  주린 여자처럼 허겁지겁 로버트 퍼그스의  입술을 받아들였
  다. 그의 눈이 사악한 빛을 띠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운명
  처럼 그녀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모리오 부국장은 모니터로  로즈 국장과 로버트  퍼그스의
  정열적인 키스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로즈  국장과 로버트
  퍼그스가 한적한 장미숲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을 모니터를
  통해 감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마더 살로메는 로즈 국장을 제거하라고 했었다. 그러나 로
  즈 국장을 제거하고 나면 다음엔 자신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누군가에게 내릴 것이다. 물론 로즈 국장이  제거되면 그녀
  는 국장으로 승진될 것이고 누군가 부국장에 임명되면 그에
  게 자신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릴 것이 당연했다.
  로즈 국장은 마더 살로메에게 모든 충성을 다바쳤었다. 유
  러너스 제국에서 로즈 국장처럼 마더 살로메에게 충성을 바
  쳐온 사람은 없었다.
  '권력의 속성이야 '
  마더 살로메는 아무도 믿지  않고 있었다. 모리오  부국장
  자신이라고 해도 심복들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었다.
  로즈 국장과 로버트 퍼그스가 허겁지겁 옷을  벗기 시작했
  다. 로즈 국장의 허연 나신이 드러나고 둥글고 탐스러운 젖
  무덤이 모니터의 화면 가득히 비쳤다. 로버트  퍼그스가 뜨
  거운 눈빛으로 로즈 국장의 가슴을 응시하다가 풍만한 가슴
  에 얼굴을 가져갔다. 그들은 이제 육체의  향연을 즐기려고
  하고 있었다.
  '혹시 로버트 퍼그스가 반제동맹 의장이 아닐까?'
  모리오 부국장은 문득 그러한 의문에 사로잡혔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로즈 국장과 로버트 퍼그스를 죽이고
  싶지 않아.'
  모리오 부국장은 미간을 찌푸리고 모니터를  껐다. 그들이
  모처럼 열렬하게 사랑하는  모습을 감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한 것을 감시하는 일이 어쩐지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제 46 장 초능력 인간
  곤충족 공주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리노중위가 믿
  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몸은 하루만에 상처가 깨끗하게
  아물고 딱지가 떨어졌다. 이리노중위는 처음에 곤충족의 약
  초가 그렇게 좋은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게다가 공주의 몸
  은 사튀로스족의 창에 찔리기 전보다도 훨씬 건강해져 있었
  다.
  '이상한 일이야.'
  이리노중위는 그 까닭이 궁금했다. 무언가  공주의 몸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 틀림없었다.
  '혹시 내 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이리노중위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의 몸은 사관학교
  생도시절 이후에 초능력자로 변화되어 있었다. 무슨 상처든
  지 금세 아물었고 주먹은 바윗돌을 깨트리고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를 않았다. 힘을 쓰면 쓸수록 어디선가  새로운 힘이
  솟아나고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곤충족에게
  먹여 보았다. 그러자 불과 한 방울밖에  마시지 않았는데도
  곤충족은 힘이 넘쳤다.
  '역시 내 피였어!'
  이리노중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자신의  피를 이용
  해 곤충족들을 무적의 전사로 만들기로 했다.  그는 곤충족
  병사들에게 자신의 피를 한 방울씩 마시게 했다. 그의 피를
  마신 곤충족 병사들은 강인한 병사가 되었다. 이리노중위는
  그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을 시켰다.
  여러 날이 흘러갔다.
  곤충족 병사들은 이제 이리노중위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출정한다!"
  이리노중위는 그들이 강한 군대의 모습을 갖추자 사튀로스
  족을 토벌하기 위한 출정명령을 내렸다.
  이리노중위가 출정명령을 내리자 진군 나팔소리가 울렸다.
  이리노중위가 코끼리와 흡사한 공룡의 무덤에서  발견한 상
  아(象牙)로 만든 나팔이었다.
  "출정!"
  이리노중위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악대가 속이 빈
  나무로 만든 피리를 일제히 불었다. 악대는  모두 2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6명이 나팔을  불고 14명이 피리를  불었
  다. 북을 만들고도 싶었으나 재료가 마땅치 않았다.
  병사들이 일제히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대오는 삼엄했다. 병사들이 들고 있는 창에는 깃
  발이 펄럭거리고 있었고 눈빛은 날카로웠다.
  이리노중위는 말 위에 올라탔다.  공주도 말 위에  올라탔
  다. 이리노중위와 함께 행동하기 위해서였다.
  부우우웅.
  그때 악대가 다시 상아  나팔을 불었다. 곤충족  병사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랴!"
  이리노중위는 말을 힘껏 걷어찼다. 말이 히히힝 하는 울음
  소리와 함께 출발을 했다. 공주도 말을  몰아 이리노중위와
  나란히 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하늘에 날아오른  병사들은
  이리노중위와 공주의 머리 위에서 날았다.
  성루에서는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들을 전송하기 위해 수많
  은 곤충족들이 올라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제 떠나면 1년은 걸릴 것이다!'
  이리노중위는 비장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살로메  위성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사튀로스족을 완전히
  토벌하기 위해서는 살로메 위성을 한 바뀌 돌아야  할 것이
  다. 그렇게 되면 유러너스 제국군대와 만날 수도 있을 터였
  다.
  공주도 이리노중위의 비장한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행군을 시작한 지 3시간이 되었을 때 지난번 사튀로스족과
  혈전을 벌인 계곡에 이르렀다. 그러나 곤충족들에게 대대적
  인 공격을 당한 사튀로스족은 본거지를 버리고 어디론가 달
  아나 버리고 없었다.
  '본거지를 옮겼어.'
  이리노중위는 병사들을 쉬게 하고 점심을 먹도록 했다. 점
  심을 먹은 뒤에 다시 행군을 했다.
  행군은 3시간마다 쉬었다. 살로메 위성의  하루는 8시간밖
  에 되지 않았다.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3시간을  행군하자
  벌써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저녁을
  먹고 야영을 하게 했다.
  이리노중위는 공주와 함께 풀숲에서 함께 잠을 잤다.
  공주가 관계를 갖기를 원했으나 이리노중위는 결코 관계를
  갖지 않았다. 어느 날 새벽에 이리노중위는  공주가 풀숲에
  맺힌 이슬을 입술로 핥아먹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공
  주는 이리노중위가 보지 않을 때는 벌레까지 잡아먹고 있었
  다.
  '역시 공주는 곤충족에 지나지 않아.'
  이리노중위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행군을 시작한 지 사흘이 되었을 때 사튀로스족을 찾을 수
  있었다.
  "공격할 수 있겠지?"
  이리노중위는 공주를 보고 물었다. 공주가  곤충족 병사들
  을 지휘해야 했다. 그는 언젠가는 지구로  돌아가 장애란과
  결혼을 해야할 몸이었다.  곤충족의 문제는 곤충족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키키 "
  공주가 할 수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공격을 해봐!"
  이리노중위는 미소를 지었다.
  공주가 하늘로 날아올라 곤충족 병사들에게  갔다. 그녀가
  곤충족 병사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자 악대가  일제히 피리
  를 불었다. 그러자 동굴에서 사튀로스족이 몰려나와 웅성거
  리기 시작했다. 곤충족이 피리를 분 것은 동굴에 있는 사튀
  로스족을 밖으로 불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부우우웅.
  그러자 악대가 상아 나팔을 불었다. 곤충족 병사들이 나팔
  소리가 울리자마자 사튀로스족을 향해 활을 쏘기 시작했다.
  사튀로스족은 화살이 빽빽하게 하늘을 메우고  날아와 자신
  들의 몸에 꽂히자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크아악!"
  "크악!"
  사튀로스족은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곤충족 병사들은 숨돌
  릴 틈도 주지 않고 창을 들고 날아가 사튀로스족의 몸을 찔
  렀다. 사튀로스족은 크아악 하는 비명을 지르며 본능적으로
  창을 휘둘렀으나 이리노중위로부터 훈련을 받은  곤충족 병
  사들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곤충족 병사들이 두  시간에
  걸쳐 맹렬한 공격을 하자  사튀로스족은 마침내 전멸을  했
  다.
  싸움이 끝난 뒤에 사튀로스족의 시체를  점검하자 2백구가
  넘었다. 사튀로스족에게 죽임을 당한 곤충족 병사는 10여명
  이었다. 부상자는 60명이 넘었다.
  '사튀로스족이 괴멸을 했군.'
  이리노중위는 곤충족 부상자들을 치료하게 한 뒤 사튀로스
  족의 시체를 모아놓고 불을 지르게 했다.  곤충족 병사들을
  이끌고 다시 행군을 시작하다가 뒤를  돌아보자 사튀로스족
  의 시체 타는 연기가 하늘로 시커멓게 치솟고 있었다.
  행군은 이튿날도 계속되었다.
  그날은 사튀로스족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은
  일단의 사튀로스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언덕 아래
  의 분지에서 살고 있었다. 이리노중위가 정찰을  하자 70여
  명쯤 되었다.
  "공주. 공격을 해!"
  "알았어요."
  공주가 고개를 끄덕거리고 곤충족 병사들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이리노중위는 말위에 앉아서 그들이 공격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곤충족 병사들은 불과 30분도 안되어 사튀로스족을 전멸시
  켰다. 곤충족 병사들은  전쟁을 하면 할수록  강병(强兵)이
  되어갔다.
  다음 날은 사튀로스족 150명과 조우했다. 곤충족 병사들은
  150명의 사튀로스족들도 짧은 시간 안에 전멸을 시켰다.
  이리노중위는 곤퉁족들을 이글고 3개월에 걸쳐 사튀로스족
  을 정벌하는 여행을 했다.
       제 47 장 강변의 추억
  로즈 국장은 살로메 위성으로 보낼 안드로이드를 사열하기
  위해 로버트 퍼그스와 헤어져 애드먼터  우주기지로 향하면
  서 착잡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마더 살로메가  그녀를 제거
  하려고 하고 있었다. 불사신이자 유러너스 제국의 통치자인
  마더 살로메가 그녀를  제거하려고 결심했다면  저항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로즈 국장은 죽음이 결코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자 가슴
  이 묵직하게 저려왔다.
  '나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던가?'
  로즈 국장은 차창으로 흐르는 어두운 밤하늘을  보면서 고
  개를 흔들었다. 한 번도 죽음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거나 두
  려워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로버트 퍼그스를  만나고, 그
  와 격렬한 사랑을 나눈 뒤라 그런지 삶에 대한 애착이 일어
  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 변해  있었다. 무엇이라고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었으나 그에게서  음산한 기운이 풍기고  있었
  다.
  위노강이었던가. 로버트 퍼그스를 처음 만나서  미칠 듯한
  사랑에 빠졌던 일이 주마등처럼 로즈 국장의 뇌리를 스쳐왔
  다.
  그때 그는 얼마나 아름다운 청년이었던가.
  눈은 보석처럼 빛나고 살결은 여자처럼 고왔다. 그리고 이
  제 비로소 성년이 된 풋풋한 육체
  그가 그녀의 몸속에 들어왔을 때 그녀는 신음했고 울었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몸이  조각조각 해체되는 듯한  희열과
  자신의 내부를 가득 채우는 듯한 희열을 느꼈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폭발하는 듯한  기분, 머리 위에서  빛이
  쏟아지는 듯한 기분에 전율했던 것이다.
  전쟁 중이었다. 그러나 휴양도시 로마노즈는  지극히 한가
  하고 평화로웠다. 부드러운 햇살, 바람에  살랑거리는 포플
  러 잎새, 강파도소리 모든 것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존재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변햇어 '
  조금 전에 헤어진 로버트 퍼그스는 옛날의  싱그럽고 아름
  다운 청년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이 사악하고 음흉했다.
  에어카 페가서스가 달리는 유러너스 제국의 상공은 아직도
  깊은 밤중이었다. 로즈 국장은 페가서스의 운전을 자동운전
  에 클릭해 놓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며 잠을 청했다.
  로버트 퍼그스와의 정사.
  그와의 정사로 인해 삶에 대한 열정이 점점 강하게 솟구치
  고 있었다. 물론 러브 타임 때 파트너들처럼 근육이 단단하
  지도 않았고 힘도 없었다. 그러나 로버트  퍼그스와의 정사
  는 꺼져가는 모닥불처럼 애틋하면서도 신뢰가 있었다.
  '내가 살려면 마더 살로메를 제거해야 돼!'
  로즈 국장은 시트에 등을 기대고 있다가  주먹을 움켜쥐었
  다. 마더 살로메에 대한 암살, 한때 알바레스가  그녀를 죽
  이려고 했으나 실패했었다. 총이나 칼 따위로는  그녀를 결
  코 죽일 수 없는 것이다. 마더 살로메는 세포가  스스로 부
  활하고 재생하여 어떤 상처라도 금세 회복이 되곤 했다.
  '판도라의 전쟁시대에 존재하던 안드로이드들도 상처를 재
  생하여 다시 살아나곤 했어. 그래서 처음엔  인류가 안드로
  이드에게 밀렸어 '
  안드로이드는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았었다.  그리하여 인
  류의 과학자들은 안드로이드 세포의 조직을  파괴하는 물질
  을 개발, 모든 살상용  무기에 삽입했다. 레이저건을  비롯
  해, 포탄, 미사일, 핵무기 인류가 사용하던 모든 무기에는
  반드시 안드로이드 세포의 조직을 파괴하는  물질이 들어갔
  었다.
  '그래 마더 살로메를 살해하는 것은  안드로이드와 전쟁할
  때 삽입했던 K1을 만들어야 돼 "
  'K1'은 안드로이드가 전멸한 후 한 번도 만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코스모스 과학센타의  과학자들을 동원하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터였다.
  로즈 국장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에어카 페가
  서스가 애드먼터 우주기지에 착륙했다.
  "받들어총!"
  페가서스가 착륙하자 우주기지의 경비병들이 후닥닥  달려
  나와 도열했다. 로즈 국장은 페가서스에서 내려 경비병들을
  쏘아보았다.
  "어서 오십시오. 국장님!"
  애드먼터 우주기지의 소장인 마린스키 제독이 부관을 거느
  리고 달려와 거수경례를 했다.
  "수고가 많소."
  "우주선 발사준비는 완료되어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들은 도착했소?"
  "예. 한 시간 전에 도착했습니다."
  "안드로이드가 모두 몇 명이오?"
  "공장에서 생산된 것은 천오백명입니다. 위성에는 8백명이
  올라갑니다."
  안드로이드들은 우주선 아르고 24호 앞에 정렬해 있었다.
  로즈 국장은 우주선 앞에 정렬해 있는  안드로이드들을 훑
  어보았다. 안드로이드들은 모두 여자였다. 유러너스 제국에
  서 여자 안드로이드들만 제작한 것은  여자의 부드러움으로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총독 장애란과  싸워서 이길
  수 있겠소?"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총독 장애란으로 인해 살로메 위성에
  있는 유러너스 제국군대가  연전연패를 하고 있었다.  이에
  유러너스 제국은 안드로이드들을 살로메 위성으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안드로이드였던 바바라가 살로메  위성에서
  며칠 동안 살아 있었던 것은 쇠붙이도 실리콘  따위로 감싸
  져 있으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안드로이드 혼자서는 어렵지만 여럿이 힘을  합치면 장애
  란을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린스키 제독이 대답을 했다.
  "여기 안드로이드들의 대장은 누구요?"
  "셀리대위입니다."
  "불러 보시오!"
  "예."
  로즈 국장의 지시에  마린스키 제독이 부관에게  지시했고
  부관이 큰소리로 셀리대위를 불렀다.
  "셀리대위! 명령을 받고 대기합니다."
  셀리대위가 재빨리 달려와 거수경례를 했다.
  "비밀경찰국의 로즈 국장님이시다."
  마린스키 제독이 로즈 국장을 소개했다.  그러자 셀리대위
  가 거수경례를 바쳤다.
  "안녕하십니까? 국장님!"
  "좋아. 셀리대위 나하고 좀 걷겠나?"
  로즈 국장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었다. 그러자 셀리대위
  가 재빨리 옆에 와 보폭을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셀리대위는 안드로이드지?"
  "예. 그렇습니다!"
  "이번 임무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
  "예. 살로메 위성의 사피언스 그라운드 총독  장애란을 죽
  이는 것입니다!"
  "장애란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나?"
  "예. 장애란은 안드로이드입니다."
  "안드로이드라면 너와 같은 종족인데 그래도 살해하겠나?"
  로즈 국장은 셀리대위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러자 셀리
  대위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히 나타났다.  로즈 국장
  은 셀리대위의 얼굴에서 유러너스 제국에서  제작한 안드로
  이드들이 이미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동족이라 죽이기가 싫은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로지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누구의 명령에 따르나?"
  "마더 살로메의 명령에 따릅니다."
  로즈 국장의 눈빛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녀는 이리노중위
  가 장애란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했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
  다. 그녀는 아들의 부탁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셀리대위!"
  로즈 국장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예!"
  "너희들을 제작한 것은  나야. 내가 너희들의  어머니라는
  뜻이야."
  "허지만 저희들은 마더 살로메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아니야."
  셀리대위가 의아한 얼굴로 로즈 국장을 살폈다.
  "이유는 묻지 마라! 너희들은  감정과 지능을 갖고  있다!
  인간과 무엇이 다른가?"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 안드로이드의 운명입니다."
  "긴 말 않겠다! 셀리대위! 동족에 대해서 애정을 가져라!"
  "예?"
  "동족이 동족을 살해하는 것은 죄악이야."
  "무, 무슨 말씀이신지 "
  "우주선을 타고 살로메 위성으로 항해하면서  이번 임무에
  대해서 신중하게 처리하도록 하라는 말이다! 이상!"
  로즈 국장은 장애란을 죽이지 말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할
  수 없어서 우회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셀리대위의 얼굴에 의혹이 지워지지 않았으나 그녀는 재빨
  리 거수경례를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로즈 국장은 우주선 아르고 24호가 살로메 위성을 향해 발
  사되는 것을 본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우주선 아르고 24
  호는 해가 뜨기 전에  발사되어 대기권을 탈출  광대무변한
  우주를 항해하고 있었다.
  마더 살로메 누네즈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컴퓨터 모니
  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컴퓨터  모니터는 비밀
  경찰 국장 로즈를 비치고 있었다. 로즈는  우주선 발사기지
  인 애드먼터에서 돌아와 집에서 자고 있었다.
  마침내 로즈 국장을 제거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누네즈는 리모트컨트롤로 감시 모니터를 모리오  부국장으
  로 바꿨다. 모리오 부국장이 자신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
  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모리오 부국장은 그녀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그녀는 집무실에서  닥터 킬러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로즈 국장님을 살해하라구요?"
  닥터 킬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마더 살로메님의 지시입니까?"
  "물론이야."
  "언제 살해합니까?"
  "지금 당장 명령을 이행하라. 로즈 국장은 집에서 자고 있
  다."
  "어떤 방법으로 살해합니까?"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첩보원들에게 살해당한 것처럼 위장
  하라!"
  "그럼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모리오 부국장이 안락의자에 몸을 깊숙이 뉘었다.
  "알겠습니다."
  닥터 킬러가 모리오  부국장의 집무실을 나가자  누네즈는
  즉시 원로회의를 소집하고 이번엔 닥터 킬러를 모니터로 불
  렀다. 그러자 로즈 국장을 살해하러 가는 닥터 킬러가 보였
  다. 닥터 킬러는 트렌치 코트에 검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로즈도 이젠 끝장이군."
  누네즈의 얼굴에서 잔인한 미소가 피어났다.
  누네즈 뒤에 서서 경호원으로 위장을 하고 있던 우희 위버
  는 가슴이 싸하게 저려왔다.
  닥터 킬러가 로즈 국장의  집에 이른 것은 30분쯤  지났을
  때였다. 살인의 전문가인  닥터 킬러는 소리없이  현관으로
  침입하여 거실을 지나 로즈 국장의 방에 이르렀다.
  로즈 국장의 집은 첨단 적외선 감시장치와  열감지기가 설
  치되어 있어서 침입자가 나타나면 자동으로  경보기가 울리
  고 벽에 설치된 레이저건이  자동으로 발사되게 되어  있었
  다.
  그러나 닥터 킬러는 적외선 감시장치와 열감지기를 간단하
  게 통과하여 로즈 국장의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로즈 국장은 침대에서 혼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닥터 킬러가 침대 앞에서 잠시 호흡을 골랐다.  우희 위버
  는 마른침을 꿀컥 삼켰다. 닥터 킬러가 침대의 시트를 벗기
  자 슈미즈만 입은 로즈 국장의 풍만한 몸이  그대로 드러났
  다.
  닥터 킬러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때  그는
  그녀의 러브 타임 파트너였었다. 게다가 로즈  국장은 유러
  너스 제국의 제2인자였다.
  "함께 관계를 했던 여자를 죽이는 닥터 킬러의  기분을 누
  가 이해해?"
  누네즈가 묘하게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모니터 안의 닥터
  킬러는 서서히 로즈 국장에게 접근하여 가제로 입을 틀어막
  았다. 그러자 로즈 국장이 발버둥을 치는 듯하다가 이내 잠
  들었다. 닥터 킬러의 가제에는 마취제가 묻어  있는 모양이
  었다.
  닥터 킬러가 로즈 국장을 어깨에 들쳐 멨다.  그리고는 로
  즈 국장의 방을 나와 서둘러 거실을 지나 현관 밖으로 나갔
  다. 카메라는 집요하게 닥터  킬러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닥터 킬러에게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 같았다.
  로즈 국장을 어깨에 들쳐  맨 닥터 킬러는 에어카에  로즈
  국장을 싣고 이륙했다. 에어카는 순식간에 로즈  국장의 집
  을 이륙했고 이어서 아라크네시의 상공을  날아 장미숲으로
  날아갔다.
  '잔인한 놈이야 '
  닥터 킬러는 장미숲에 착륙한 뒤에 로즈  국장을 끌어내리
  고 허겁지겁 겁탈하기 시작했다. 로즈 국장은  전혀 의식이
  없었다.
  "흐흐 "
  누네즈가 다시 기이하게 웃음을 깨물었다. 그녀는 닥터 킬
  러가 로즈 국장을 겁탈하는 모습에 흥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누네즈는 눈빛을 빛내며 닥터 킬러가  로즈 국장의
  슈미즈를 벗긴 뒤에 자신의 옷을 벗고 그 위에 엎드리자 모
  니터를 뚫어질 듯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네즈는 변태야 '
  우희 위버는 슬그머니 미간을 찌푸렸다.
  닥터 킬러가 로즈 국장의 위에서 반복운동을 시작했다. 그
  때 문득 누네즈의 숨결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내 노예를 불러!"
  누네즈가 침대 위에 몸을 눕히며 열에  들뜬 목소리로밖에
  있는 안드로이드 로즈 2호에게 명령을 내렸다.
  "네."
  로즈 2호가 재빨리 대답을 하고 물러갔다. 그 동안 누네즈
  는 침대 옆의 캐비넷에서 주사기를 꺼내 자신의  팔에 찔러
  넣었다. 주사기에는 파란 액체가 들어 있었다.
  갑자기 누네즈의 침실이 쿵쿵 울리는 듯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우희 위버는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  했다. 그때
  누네즈의 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아 !'
  우희 위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우희  위버의 팔
  과 다리, 사지와 몸통이 순식간에 커지기  시작하더니 인간
  의 다섯 배나 되는 거인이 되었다. 누네즈는 몸에  걸친 옷
  이 후드득 뜯어져 나가 순식간에 나신이 되고 말았다.
  '파란 약이 거인이 되는 약이었어 '
  우희 위버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은 반제동맹 요
  원 나나도 같은 모양이었다.
  "박사님! 누네즈가 잠을 잘 때 파란 약을 훔치세요!"
  누네즈의 귓속으로 속삭이는 듯한 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알았어요."
  우희 위버는 입술을 달싹거려 대답했다.  반제동맹 쪽에서
  도 누네즈가 저지르고 있는 짓을 낱낱이 보고 있는 것이 분
  명했다.
  그때 쿵쿵거리는 소리가 더욱 가까워지더니 거대한 사내가
  침실로 들어왔다.
  우희 위버는 그 사내를 보고 눈을 꽉 감았다. 그는 실오라
  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
  오는 거인 같았다. 그의 눈은 용광로처럼  이글거리고 있었
  다.
  "흐흐흐 "
  누네즈가 노예를 보고 교태스럽게 웃었다.  노예는 침실로
  들어오자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노예는 다짜고짜 누네즈의 옷을 찢고 달려들었다.
  그것은 컴퓨터의 모니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닥터 킬러는
  로즈 국장을 마구 겁탈하고 있었다. 누네즈는  컴퓨터 모니
  터로 닥터 킬러가 로즈 국장을 겁탈하는 것을  보면서 섹스
  를 즐기고 있었다.
  "흥! 너무 빨리 끝내는군 "
  누네즈가 노예의 등을 끌어안은 채 중얼거렸다. 컴퓨터 모
  니터에서 닥터 킬러가 로즈 국장의 겁탈을 끝내고  목을 조
  르고 있었다. 로즈 국장이 목이 답답하여  다리를 바둥거리
  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컴퓨터 화면으로 낱낱이 보였다.
  (인간이 아니야 )
  누네즈는 노예와 거칠게 부딪치고 있었다.  누네즈의 침실
  은 두 사람의 섹스로 열기가 후끈하게 몰아쳤다. 노예의 거
  친 숨소리는 태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고 누네즈의  하얀 유
  방은 거대하게 출렁거렸다.
  우희 위버는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누네즈와 노예의 위치가 바뀌었다. 이제  누네즈는 노예의
  위에서 세차게 공격을 하고 있었다. 누네즈의  호흡이 거칠
  고 등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침대가 누네즈의  땀으로 홍수
  가 난 것처럼 젖었다.
  "원로회의를 소집해!"
  누네즈가 섹스에 몰두해  있으면서도 로즈2호에게  명령을
  내렸다. 누네즈도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
  다.
  "옛서!"
  로즈2호가 밖에서 대답을 하고 물러갔다. 닥터  킬러는 로
  즈 국장을 장미숲에다 팽개친 후 나이프를 꺼내고 있었다.
  (아 )
  우희 위버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닥터  킬러가 로즈
  국장의 시체에 난도질을 하고 있었다.
       제 48 장 사랑의 배신자
  로즈 국장은 눈을 꽉 감았다. 닥터 킬러가  자신으로 위장
  한 반제동맹 요원을 살해하는 것을 차마 눈을 뜨고 보고 있
  을 수가 없었다. 그녀로 위장한 반제동맹 요원은 이미 시체
  가 되어 있어서 고통은 느끼지 못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
  나 그녀가 닥터 킬러에 의해 난도질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
  는 것은 마치 자신이 그런 꼴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
  "로즈."
  로버트 퍼그스가 그녀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고마워요."
  로즈 국장은 눈물이 글썽하여 로버트 퍼그스의  어깨에 얼
  굴을 기댔다.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는 로버트 퍼그스가 말
  없이 그녀를 감싸안았다.
  "어떻게 마더 살로메가 나를 살해하려고 하는 것을 알았어
  요?"
  그녀는 감격에 넘쳐서 물었다. 로버트 퍼그스에 의해 죽음
  의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다.
  "우리 반제동맹 요원들은 곳곳에 잠입해 있소."
  "왜 나를 살려주세요?"
  "당신은 이리노의 어머니가 아니오. 그리고 "
  "그리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소."
  "로버트 "
  로즈 국장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로버트 퍼그스로부터
  또 다시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 가슴이 터질 것  같았
  다.
  "마더 살로메는 이제 어떻게 할까요?"
  "사피언스 그라운드와 전쟁을 할거요."
  로버트 퍼그스가 조용히 말했다.
  로즈 국장은 얼굴을 찡그렸다.
  "전쟁?"
  "그렇소. 마더 살로메가 로즈 국장을 닥터 킬러를 통해 장
  미숲에서 살해한 것처럼 만든 것은 그 죄를  사피언스 그라
  운드에 덮어씌우고 그것을 구실로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이
  오."
  "왜 지금 그런 음모를 꾸미죠?"
  "살로메 위성에 안드로이드들이 올라가지 않았소?  안드로
  이드들은 사피언스 그라운드인들을  모조리 없애버릴  것이
  오. 그러면 살로메 위성은 유러너스 제국의  것이 되겠지
  그러나 사피언스 그라운드가 계속 살로메  위성으로 군인들
  과 주민들을 올려보내면 소용이 없소. 그래서 더 이상 살로
  메 위성으로 아무도 올려보내지 못하게  사피언스 그라운드
  를 박살내려는 것이오."
  "정말 교활하군요."
  로버트 퍼그스의 예측대로였다.
  마더 살로메, 아니 누네즈는 노예와의 질펀한 섹스가 끝나
  자 로즈 국장이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첩자에게 살해했다고
  방송과 신문을 통해 발표하게 했다. 유러너스  제국은 로즈
  국장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물끓듯했다.
  "이것은 분명히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미치광이  살인자 닥
  터 킬러의 짓이다!"
  마더 살로메는 닥터 킬러를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닥
  터 킬러가 즉시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끌려왔다.
  "나는 명령에 의해서 로즈 국장을 죽인 거야! 나는 사피언
  스 그라운드의 첩자가 아니고 유러너스  제국 비밀경찰국의
  요원이야!"
  닥터 킬러는 비밀경찰에 체포되자 몸부림을 치면서 저항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의 말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
  았고 아라크네시 광장에서 그는 흥분한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처형되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쳐부숴라!"
  군중들은 닥터 킬러가 공개 처형되었는데도 만족하지 않고
  대규모의 시위를 벌였다.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공격하라!"
  유러너스 제국의 여론이 들끓자 기다렸다는 듯이 누네즈는
  즉시 원로회의를 소집하였다.
  "파나카이아 총통! 유러너스 제국군대에 비상전투령 1급을
  내린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와 전쟁을 선포한다!"
  신전(神殿)이었다.
  마더 살로메는 제단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원로회의
  의 45인의 원로들은 머리를 깊숙이 숙이고 있었다.
  "예!"
  파나카이아 총통이 공손히 대답했다.
  "전군에 비상소집령을 내리고 대기하라!"
  "예."
  누네즈의 명령에 의해 유러너스 제국은 전운에 휩싸였다.
  "유러너스 제국이 전쟁상태에 돌입했다! 우리도  전쟁준비
  를 하라!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모든 주민들은  전쟁에 대비
  하라!"
  사피언스 그라운드도 즉각 전쟁태세에 돌입했다. 주민들이
  속속 군대로 집결했고 거리가 탱크와 군인들로  넘쳤다. 사
  피언스 그라운드는 압둘라장군을 총사령관에 임명했고 유러
  너스 제국은 파나카이아 총통을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우리의 군대는 얼마나 되는가?"
  누네즈가 파나카이아 총통에게 물었다.
  "육군과 공군을 합해 약 360만 명입니다."
  유러너스 제국은 각종 첨단무기와 신무기로 무장한 군대가
  360만 명이 동원되었다.
       제 49 장 물의 심판
  바르시크대령은 오안네스족의 우두머리를 멀뚱히 쳐다보았
  다. 오안네스족의 족장의  눈빛이 사납게 이글거리고  있었
  다.
  "인간들의 무리는 우주까지 와서도 살육을 감행하고 있다.
  누가 그들을 우주까지 오게 했는가? 누가  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문명을 주었는가? 그들이 누구의 후손인가? 악에 물든
  인간들의 무리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바르시크대령!
  그대는 이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해명하겠는가?"
  오안네스족 족장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보라! 저기 저 여자가 유러너스 제국의 인간들  2만 명을
  도륙하고 있지 않는가?"
  오안네스족 족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디스 플레이 스크
  린에는 장애란이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을 이끌고  유러너스
  제국군대와 싸우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치고 있었다.
  장애란은 백마를 타고 유러너스 제국군을  살육하다시피 죽
  이고 있었다. 유러너스 제국군의 시체가 평원에 즐비했다.
  '역시 장애란이야 '
  바르시크대령은 속으로 감탄했다.
  "인간들의 피가 내를 이루고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다. 왜
  인간들은 함께 살려고  하지 않는가? 인간들의  유전자에서
  악의 유전인자가 발호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오안네스족
  은 이제 인간들을 멸종시킬 것이다! 악의  유전인자가 발호
  하는 인간들을 이 아름다운 우주에서 존재하게 할  수가 없
  다 "
  바르시크대령은 오안네스족의 족장이 불같이 화를 내고 있
  는 까닭을 막연히 이해했다. 그는 인간들이 전쟁을 하고 탐
  욕에 빠지는 것을 인간의 유전자에서 악의 유전인자가 발호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대는 인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라! 돌아가서 멸종의
  시간을 기다려라!"
  오안네스족의 족장이 냉엄하게 선언했다.
  "리나도 따라가라! 그대도 이미 악의 유전인자에 감염되었
  다!"
  리나가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바르시크대령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가 팔짱을 끼었다고 생각한  순간 바르시크대령
  은 허공에 들어올려져 순간이동을 시작했다.
  바르시크대령은 재빨리 눈을 감았다. 무엇인가  세차게 소
  용돌이를 치기 시작했고  귓전으로 휙휙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오안네스족 족장의 웅후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려왔다.
  "물로 경고를 받을 것이다! 하늘의 물이  악의 유전인자를
  씻어내리라!"
  다음 순간 바르시크대령은 초원에 사뿐히 내려섰다.
  바르시크대령은 눈을 떴다. 사방이 캄캄한  가운데 장대비
  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바르시크대령은 캄캄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에  몸을
  떨며 리나에게 물었다. 굵은 빗발이 그의 몸에 세차게 내리
  꽂히고 있었다.
  "당신들이 있는 곳이에요."
  리나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리나의 옷이  비에 흠뻑
  젖어서 풍만한 나신의 굴곡이 요연하게 드러났다.
  "니리드 위성?"
  "네."
  "그럼 나는 추방을 당한 것인가?"
  "그래요."
  "잘됐어. 나는 마침내 지구인들에게로 돌아왔어."
  바르시크대령은 기쁨에 넘쳐서 리나를 와락 끌어안았고 입
  술을 부벼댔다.
  리나의 입술이 비에 젖어 축축했다.
  "이건 심판예요."
  리나가 우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심판이라니?"
  "비가 이 곳을 완전히 쓸어버릴 거예요."
  "오안네스족의 심판인가?"
  바르시크대령은 입꼬리에 비웃음기를 매달았다.  오안네스
  족이 지구인들을 심판한다는 것이 터무니없이 생각되었다.
  "그 분은 무서운 분예요."
  리나의 얼굴이 슬픔에 젖었다.
  "어쨌거나 비를 피해야 돼. 당신 순간이동을 할  수 있지?
  나를 숲으로 데려다 줘."
  "이젠 순간이동을 할 수 없어요."
  리나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소리야?"
  "당신과 함께 오안네스족에게서  추방되어 여기에  도착한
  순간 그 능력은 제거되었어요."
  "정말이야?"
  "네."
  "그럼 당신은 이제 나와 똑같은 인간이 된 거야?"
  "그런 셈이죠."
  리나가 쓸쓸하게 웃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비는 쉬지 않고
  억수 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벌써 초원이 물로  흥건했다.
  바르시크대령은 리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당신이 나와 같은 인간이 된 걸로 나
  는 만족해 "
  바르시크대령은 리나를 가슴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
  다.
  "이제 어떻게 하죠?"
  "날이 밝을 때까지 어디서든지 비를 피해야지."
  "일단 산으로 가요."
  "그래. 뛸 수 있겠어?"
  "네."
  "내 손을 잡아."
  바르시크대령은 리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리나
  가 손을 내밀었고 바르시크대령은 리나의 손을 잡고 빗발이
  억수처럼 쏟아지는 초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산이  어느 쪽
  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캄캄한 밤이라 방향도 분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정신없이 달리기만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빗속을 달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마침내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산을
  발견했다.
  말들은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초원을  질주하고 있었다.
  장애란은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전투부대를 이끌고 유러너스
  제국군을 추격했다. 장애란이 이끌고 있는 부대는 약 5천명
  이었다. 장애란이 이동과 공격,  퇴각을 불시에 하기  위해
  편성한 특수부대였다. 장애란은 그들에게 지옥훈련을  시켰
  고 살인훈련을 시켰다.그리고 장애란이 직접 전투부대를 이
  끌고 유러너스 제국군을 공격했다.
  유러너스 제국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니리드 위성에
  는 그들의 군대가 2만 명이나 올라왔으나  첨단무기를 사용
  하지 못하는 그들은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았다.
  장애란은 유러너스 제국군을 정신없이 추격하다가 말고삐
  를 잡아채고 말을 세웠다. 전방에 일자진  형태로 유러너스
  제국군대가 도열해 있었다. 대오가 삼엄한 것을 보면 잘 훈
  련된 병사들 같았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을 공격하라!"
  그때 유러너스 제국군에서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장애란은 눈살을 찌푸렸다.
  "공격!"
  유러너스 제국군이 질풍처럼 말을 달려오기 시작했다.
  "제군들! 유러너스 제국군대가 온다! 모조리 도륙하라!"
  "도륙하라!"
  장애란도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에 명령을 내리고 초원을 질
  주해 갔다. 사방은 비가 오려는지 어둠침침했다.
  "돌격!"
  "공격!"
  유러너스 제국군은 여군들이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은 초원을 질풍처럼 달려가서  유러너
  스 제국군을 도륙할 생각이었으나 수백 명이나 되는 유러너
  스 제국군대가 여군들이라는  것을 알자 한순간  주춤했다.
  여군들은 짧은 스커트에 금발의 단발머리였다.
  "쳐라!"
  그때 유러너스 제국군대의 장교가 명령을 내렸다.
  "와!"
  여군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을 향
  해 달려왔다.
  "으악!"
  사피언스 그라운드군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
  다. 유러너스 제국의 여군들은 창솜씨가  번개처럼 빨랐다.
  그 동안 수많은 유러너스 제국군대와 싸워서 노련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피언스 그라운드군들이었지만 그녀들의 번개같
  은 창솜씨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유러너스 제국의  여군들은
  순식간에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을 수십 명이나 해치웠다.
  '어떻게 된 거지....?'
  장애란은 어리둥절했다.
  장애란을 향해 덤벼드는  유러너스 제국의 여군들도  남자
  군인들보다 월등히 강했다.
  "너는 누구냐?"
  장애란은 유러너스 제국군의 장교에게 물었다.
  "한나소위다!"
  "너희들 책임자가 누구냐?"
  "셀리대위님이다!"
  한나소위가 장애란을 향해 창을 내리치며 말했다.
  "유러너스 제국군 소속이냐?"
  장애란은 재빨리 창을 들어  막았다. 창과 창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렇다!"
  장애란은 손목이 시큰해 왔다. 한나소위의 힘이 여간 강하
  지 않다는 증거였다.
  "언제 니리드 위성에 올라왔느냐?"
  "오늘 올라왔다!"
  "몇 명이나 올라 왔느냐?"
  "8백 명이다! 우리는 오로지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총독 장
  애란을 죽이기 위해 올라왔다!"
  "뭐라구!"
  장애란은 깜짝 놀랐다.
  "그만 떠들고 내 창을 받아라!"
  한나소위가 장애란을 향해 다시 창을  내리쳤다. 장애란은
  재빨리 한나소위의 창을 피하고 힘껏 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한나소위도 창을 피하고 다시 공격을 해왔다.
  '이거 만만치 않은데 '
  장애란은 놀랐다.
  '이것들을 얕보았다가는 크게 다치겠어 !'
  장애란은 한나소위를 공격하는 척하고 재빨리  한나소위가
  탄 말을 공격했다. 그러자 말이 히히힝 하고 놀라서 앞발을
  높이 치켜들어 한나소위를 팽개쳤다. 한나소위가 말에서 굴
  러 떨어져 땅바닥에 처박혔다. 장애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한나소위의 가슴에 창을 꽂았다.
  "으악!"
  한나소위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장애란은 한나소위의 가슴에서 창을 뽑아 목을 후려쳤다.
  '이, 이 여자는 안드로이드 !'
  다음 순간 장애란은 소스라쳐 놀랐다. 장애란의 예리한 창
  이 한나소위의 목을 치자 로봇의 내부가 드러났던 것이다.
  '여군들은 모두 로봇이야!'
  장애란은 초원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사피언스 그라운드
  군을 살펴보았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은 유러너스  제국의
  안드로이드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사람과 로봇의
  싸움이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은 안드로이드들을 몇  명
  죽이지도 못하고 벌써 수백 명이 죽어 있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은 모두 비켜라!"
  장애란은 말 위에 앉아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 말을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저 젓들은 안드로이드다! 나 혼자 상대한다!"
  장애란은 안드로이드들을 향해 창을 겨누었다.
  "총독각하! 괜찮으시겠습니까?"
  필립중위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말했다.
  "물러서라!"
  "예!"
  필립중위가 뒤로 물러섰다.
  안드로이드들은 다시 대열을 정리하여 장애란을  쏘아보고
  있었다. 셀리대위의 말대로 그들의 임무는 오로지 장애란을
  죽이는 것이었다. 장애란이 단신으로 맞서겠다고 나오자 누
  구의 명령을 기다리지도 않고 일제히 공격을 해왔다.
  "오너라!"
  장애란은 파도처럼 덮쳐오는 안드로이드들을 향해 말을 달
  려갔다.
  "죽어라!"
  안드로이드들도 빨랐지만 장애란의 창은 더욱  빨랐다. 장
  애란은 안드로이드들의 한 가운데로 달려가 앞줄에 있던 두
  명의 안드로이드들에게 창을 휘둘렀다.
  "악!"
  "으악!"
  안드로이드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그녀들
  의 창은 헛되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공격!"
  "장애란을 죽여라!"
  동료들이 비참하게 죽어 나자빠지는 것을 본 안드로이드들
  의 눈에서 독기가 올랐다. 그녀들은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벌떼처럼 몰려왔다. 파도와 같았다. 장애란은  그들이 몰려
  오자 사력을 다해 창을 휘둘렀다. 장애란이 창을 휘두를 때
  마다 안드로이드들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고 피
  가 장애란에게 쏟아졌다.
  '안드로이드가 너무 많아 '
  장애란은 지치기 시작했다.
  그때 어두운 하늘에서 빗발이 후드득대더니 소나기가 쏟아
  지기 시작했다.
  장애란은 우두커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벌써  캄캄하게 어
  두워지고 있는 하늘에서 빗발이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갑자기 웬 비지?'
  장애란은 의아했다. 그러나 사방이 캄캄해지고  빗발이 세
  차게 쏟아져 안드로이드들과의 전투는 더 이상 할  수가 없
  었다. 로봇인간인 안드로이드들과 싸우느라고 지친  사피언
  스 그라운드군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 일단 퇴각하라!"
  장애란은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들의 동정을 살피자 그녀들도 더 이상 싸울 기색
  이 없어 보였다.
  "셀리대위! 비가 그치면 만나자!"
  장애란은 유러너스 제국의 안드로이드 장교 셀리대위를 향
  해 외쳤다.
  "좋다! 도망가지 말고 내일 반드시 나와라!"
  "장애란은 결코 도망가지 않는다!"
  "흥!"
  "한 가지만 묻자! 너희 유러너스 제국군대에는  이리노 퍼
  그스중위가 있는데 그를 알고 있느냐?"
  "모른다!"
  "좋다! 그러면 돌아가서 이리노 퍼그스중위가 있는지 알아
  가지고 내일 비가 그치거든 다시 만나자!"
  "좋다!"
  셀리대위가 먼저 말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의 부하들도 일
  제히 말을 돌려 어두운 빗속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우리도 돌아간다!"
  장애란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말을 돌려  빗속을 달
  리기 시작했다. 이미 그녀도  온 몸이 빗줄기로 흠뻑  젖어
  있었다. 게다가 사방이 캄캄해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야. 비가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니 '
  장애란은 부하들을 이끌고 캄캄한 빗속을 달리면서 까닭을
  알 수 없는 공포가 뒷덜미를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사피
  언스 그라운드의 병사들은 캄캄한 빗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앞의 병사들을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바르시크대령은 산 속을 헤매다가 동굴을 발견했다.
  "다행이 동굴이 있어!"
  바르시크대령은 산중턱에서 동굴을 발견하고 리나를  데리
  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넓었으나 캄캄했다.
  바르시크대령은 비를 맞아서 몸을 떨고 있는  리나를 동굴
  에 눕히고 전신을 마사지 해주었다. 리나는  스스로 신이라
  고 자부하는 오안네스족의 초능력이 모두 사라져 한낱 가냘
  픈 여자에 지나지 않았다.
  "추워?"
  동굴밖에는 여전히 빗발이 장대질을 하듯이 쏟아지고 있었
  다.
  "네."
  리나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르시크대령은 주
  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꺼냈다. 라이터로 동굴  안을 살피자
  짐승들이 살고 있었던 듯  여기저기 마른풀이 흩어져  있었
  다. 바르시크대령은 마른풀을 모아 불을 지폈다. 그리고 동
  굴 앞의 나무들을 잘라다가 모닥불에 던져 넣었다.
  나무가지는 비에 젖어서 불이 잘 붙지 않았으나 조금씩 불
  이 옮겨 붙더니 이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르시크대
  령은 리나를 안고 불을 쬐었다. 리나는 불이 따뜻하자 졸음
  이 오는 듯 스르르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바르시크대령은 잠이 든 리나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리나는 아름다웠다.
  스스로 물꽃의 신이라던 여자였다.
  '너무나 평화로운 얼굴이야 '
  리나의 얼굴에는 한 점의 티도 없었다. 바르시크대령은 리
  나를 내려다보다가 자신도 동굴 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제 50 장 물위의 사랑
  이리노중위는 비가 세차게 쏟아지자 잠에서  깨어났다. 무
  엇인가 불길했다. 살로메  위성의 기후로는 이렇게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키키 "
  하란공주가 잠에서 깨어나 이리노중위를 쳐다보았다. 하란
  공주의 얼굴도 근심에 싸여 있었다.
  "공주. 전에도 이렇게 비가 많이 온 적이 있었어?"
  하란공주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리노중위에게 이렇
  게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는 처음이고 무엇인가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뭐가 불길해?"
  "우리 모두 죽을 것 같아요."
  "죽기는 왜 죽어? 비가 온다고 죽는 줄 알아?"
  이리노중위는 쓴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비가  이틀이 지나
  사흘째 계속 퍼붓자 이리노중위도  심각하지 않을 수  없었
  다. 벌써 곤충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도시가 온통  물에 잠
  겨 있었다. 곤충족들은 날개가 있어서 공중으로 날아다니거
  나 나무 끝에 앉아서 폭우를 피하고 있었다. 식량도 과일을
  따먹을 수 있어서 우선은 견딜만 했으나 한 달만 계속 내리
  면 살로메 위성이 완전히 물에 잠길 것 같았다.
  "배를 만들어야 돼!"
  이리노중위는 공주를 설득하여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비
  가 계속 내리고 있어서 나무를 자르고 넝쿨로  뗏목을 엮듯
  이 배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의 도움을 받아 사흘만에  돛폭까지 세운 한  척의
  배를 만들 수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배가 만들어지자 배 안
  에 식량을 준비했다.
  비는 열흘째 계속 내리고 있었다. 초원은 완전히  물에 잠
  겨 버렸고 물이 이제는 동굴바닥까지 넘실대고  있었다. 니
  리드 위성이 완전히 물의 도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물은 동굴 입구까지 차 올라서 출렁거리고 있었다.
  "물이 며칠 안에 동굴까지 삼켜버릴 거예요."
  리나가 눈물이 글썽하여 바르시크대령에게 말했다.
  "괜찮아. 우리는 배를 만들었으니까 "
  바르시크대령도 배를 만들기는 했으나 작은 뗏목에 지나지
  않았다. 그 배를 타고 억수 같은 폭우 속에서 살아날 수 있
  을지 알 수 없어서  불안했다. 그러나 리나를 불안하게  할
  수는 없었다.
  "당신을 알게 된 것이 기뻐요."
  리나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래."
  바르시크대령은 리나를 안아서 입술을 포갰다.  리나의 눈
  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리나의 눈물을 보자 바
  르시크대령은 가슴이 뭉클했다.
  "당신을 사랑해요."
  리나가 입술을 떼고 말했다. 리나의 눈빛이 무엇인가 간절
  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바르시크대령은 리나의 눈빛을  보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리나가 그를 원하고 있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
  "우린 모두 죽겠죠?"
  "지구의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
  어.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살게 될 거야."
  "당신을 갖고 싶어요."
  리나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나도 "
  바르시크대령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리나가
  갑자기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덮어 눌렀고  그를 물이
  넘실거리는 동굴바닥에 쓰러트렸던 것이다.
  옷을 벗을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비 때문에 옷이 다 젖어서 옷을 벗은채  살고 있었
  던 것이다.
  아
  바르시크대령은 등을 간지르는 물살에 몸이 두둥실 떠오르
  는 기분이었다. 하체가 급속하게 부풀고 리나가  몸을 포개
  오자 그의 전신이 물에 잠겨들기 시작했다.
  리나는 리드미컬했다.
  리나의 손이 물속에서 그의 몸을 애무하고 리나의 둥근 가
  슴이 그의 가슴을 압박했다. 리나의 가슴은  오랫동안 물에
  씻기어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었다.
  "리나 "
  바르시크대령은 몸이 더워져 왔다. 리나도 그를 향해 뜨거
  운 입김을 내뿜고 있었다.
  쏴아아아
  비는 계속해서 장대질을 하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리기라도 한 것처럼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러나 그들도 쉬지 않고 사랑의 행위를 나누었다. 모든 것이
  멸망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그들에게는 그 순간이 영원이었
  고 그들이 나누고 있는 사랑의 행위가 전부였다.
  '이것은 진화의 행위야 '
  진화는 번식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생명체가 오로지 번식을 위해 존재하고  번식을 마치
  면 자기의 임무를 다 마쳤다는 듯이 죽는다.
  바르시크대령은 리나와 사랑을 나누면서도 그렇게  생각했
  다. 물로 심판을 하겠다는 오안네스족 족장의 말이 점점 사
  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바르시크대령은 두려웠다. 머나먼 우주까지 와서 허망하게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지구에서 죽음의 순간이  닥쳐오고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
  다. 그러나 머나먼 우주에서의 죽음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
  인가.
  그러나 진화의 행위를 한다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다.
  리나의 긴 혀가 그의 몸에 꽂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때때
  로 햇살처럼 그의 몸을 부드럽게 애무하기도 하고 바람처럼
  그의 나신을 스치기도 했다.
  촉촉하게 젖어 있는 입술이었다.
  바르시크대령은 술을 마시듯 리나의 입술을  마신다. 리나
  의 입술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쏴아아아
  밖에서는 여전히 빗줄기가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빗소리
  에 섞여 물이 콸콸대고 흘러가는 소리도 들려왔다.
  리나는 광활한 우주처럼 동굴바닥에 눕고  바르시크대령은
  그녀의 우주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여자의 우주, 광대무변한 우주
  그러나 우주는 물의 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니리드 위성은 이제 완전히 물의  바다였다. 사튀로스족을
  비롯해 수많은 동물들이 물에 의해 어디론가 떠내려갔고 곤
  충족들도 부러진 나무가지에 의지해 표류했으나  비가 40일
  동안이나 계속 쏟아지자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인들은 비가  쉬지 않고 퍼붓자  하늘이
  저주를 내리고 있다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니리드  위성에
  그들이 건설한 도시가 불과 사흘만에 물에 잠겨  버렸고 수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거나 떠내려가 버린 것이다.
  '사람들의 말대로 이건 하늘이 내린 재앙이야 '
  장애란은 모든 것이 물에 잠겨버리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미 물바다가 되어 버린 니리드 위성은 날짐
  승과 들짐승, 산짐승 따위가 물에 둥둥  떠다니며 아우성을
  치다가 죽어가고 있었다.
  길이가 수십 미터나 되고 몸무게가 1톤은 족히  됨직한 공
  룡에서부터 사슴 모양의 짐승들, 그리고 요정처럼 아름답게
  생긴 곤충족들, 반인반수의 괴인들 온갖 짐승들이 물에 둥
  둥 떠다니고 있었다.
  장애란은 처음에 근위병들을 이끌고 높은 산으로 피했으나
  그래도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쏟아지자 서둘러 배를 한 척
  만들어 탔다. 배에는 필립중위를 비롯해 몇몇  근위대 소속
  병사들만 간신히 올라탔다.  다른 병사들과 주민들도  각자
  뗏목을 만들거나 배를 만들었으나 대부분 물에 휩쓸려 죽었
  다.
  '여기서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해 '
  비가 40일 동안이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자 장애란
  은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처음에  물에 떠다
  니는 짐승들을 건져서 뜯어먹거나 과일을  건져서 먹었으나
  그것들도 점점 사라지고 먹을 것이 없어져 굶어서  죽는 병
  사들까지 생겼다.
  그러나 가장 곤란한 것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낮과
  밤이 캄캄하다는 것과 단 1분도 멈추지 않고 줄기차게 쏟아
  지는 비였다.
  "총독님!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필립중위가 탈진하여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
  "뭐가 이상한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비가  40일 동안이나
  계속해서 온다는 것은 "
  "필립중위! 우주는 광대무변하고  신비로운 세계야.  우리
  인간들이 과학문명을 발달시켜 우주선을 타고  토성의 위성
  인 니리드 위성까지 오기는  했으나 우주의 신비는  하나도
  밝히지 못했어. 니리드 위성이 지구와 같을  것이라고는 생
  각해서는 안돼."
  "허지만 비가 40일 동안이나 온다는  것은 지구에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물의 재앙은 모르겠어. 그러나 빙하기는 수만년, 또는 수
  백만년 동안 계속된 일이 있었어. 원시지구에  있던 일이기
  는 하지만 그래서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멸종을 한 일이 있
  었어. 지구의 공룡들이 사라진 것도 자연의  재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학설이 있어 "
  필립중위가 입을 다물었다.
  장애란은 배에 앉아서  우두커니 빗줄기가 쏟아지는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장애란도  쉬지 않고 줄기차게  쏟아지는
  비가 두려웠다. 그러나 죽음을 목전에 두고 탈진해 있는 병
  사들에게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아아 이리노중위는 어떻게 되었을까 ?'
  장애란은 이리노중위가 그리웠다. 이리노중위와  함께였다
  면 지옥 같이 어두운 밤이나 장대질을 하듯  쏟아지는 비도
  두렵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구에서 머나먼  니리드
  위성까지 올라왔으나 이리노중위의 소식을 전혀 알 수 없었
  다.
  "우리는 결국 멸종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필립중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인간들은 강해. 어떤 어려운 환경도
  인간들은 극복을 하고 종족들을 번식시켜 왔어."
  "총독님. 결혼하셨습니까?"
  "결혼?"
  장애란의 얼굴에서 처연한 미소가 피어났다.
  "안하셨군요?"
  "애인은 있어...."
  장애란은 다시 이리노중위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는 이 빗속에서 어떻게  하고 있을까. 그가 이  빗속에서
  살아있기는 한 것일까. 살아있다면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그러셨군요."
  "필립중위는?"
  장애란은 손으로 얼굴의 빗물을 훔쳤다. 배는 노를 만들지
  않아 물결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로 흘러가
  고 있는지 방향조차 전혀 알 수 없었다.
  "전 지구에 아이들과 아내가 있습니다."
  "그러면 필립중위의 후손은 살아 남겠군."
  "지구엔 아무 일도 없을까요?"
  "없겠지. 아이는 몇인가?"
  "둘입니다."
  장애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언젠가 그녀도 이리노중위의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부인이 예쁜가?"
  "예."
  필립중위가 공허하게 웃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그들이 지금  무엇을 하
  는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  "
  "그들이 내가 여기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
  장애란은 필립중위의 말이 서글퍼서 배 위에  벌렁 누워서
  눈을 감았다.
  "비가 그쳤어!"
  장애란은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얼마나  잠을 잤는
  지는 알 수 없었다. 피로와 허기에 지쳐 눈을 감자 잠이 쏟
  아졌고 잠에서 깨어나자 비가 그쳐 있었다.
  필립중위를 비롯해 물난리 속에서 살아남은 병사들도 하나
  둘씩 잠에서 깨어나 비가 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
  나 하늘은 아직 잿빛이었다.
  "총독각하!"
  필립중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장애란은 배의 난간을 붙잡고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온 세
  상이 물의 세계였으나 비가 그쳐 가면서 사방이  점점 밝아
  지고 있었다.
  "서쪽 하늘이 개고 있습니다."
  "그래. 나도 보고 있어!"
  장애란의 목소리도 떨렸다.
  그들이 보고 있는 동안에도 서쪽 하늘이 점점 밝아지고 있
  었고 마침내 잿빛 구름장 사이로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해야!"
  "햇빛이다!"
  "해가 떴다!"
  병사들이 감격에 넘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병사들
  의 말대로 하늘은 빠르게 구름장들이 걷혀 가고  햇살이 축
  복을 하듯이 쏟아지는가 하면  푸른 하늘이 드러나고  있었
  다.
  장애란은 넋을 잃은 채 자연이 연출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40일 동안을 캄캄하게 어두운 하
  늘에서 비가 쏟아지더니 드디어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나타난 것이다.
  사방은 물의 바다였다. 육지는  완전히 물에 잠겨  있어서
  배가 물결에 따라 쓸려 다니고 있었다.
  "니리드 위성이 완전히 물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육지가 보이지 않아 "
  장애란도 시야 가득히 넘실대는 물의 세계를  살피며 근심
  스럽게 말했다.
  "물이 빠지기는 할까요?"
  "빠지겠지 "
  그러나 언제 물이 빠질 지는 알 수 없었다.  장애란은  물
  의 세계로 변한 사방을 시린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을 뿐이
  었다.
       제 51 장 불의 심판
  40일 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비로  인해 낮
  에도 캄캄했으나 비가 그치자 하늘이 맑게 개고  햇볕이 비
  치기 시작했다.
  "공주 우리는 살았어!"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의 어깨를  흔들며 외쳤다.  탈진한
  하란공주가 무거운 눈까풀을 들어올렸다. 하란공주가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그녀는 굶주림과  비 때
  문에 죽어가면서도 이리노중위를 사랑하는 눈빛으로 쳐다보
  고 있었다.
  "공주!"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를 안아서 일으켰다.
  "키키 "
  하란공주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비가 그쳤어! 우리는 살았어."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벼댔다.
  공주의 입술에서 비릿한 비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저길 봐!"
  이리노중위의 말에 하란공주의 흐릿한 시선이 물의 세계를
  응시했다. 사방이 온통 푸른 물결로 넘실대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물의 세계에서  살아갈 길이 막막했으나  일단
  비가 그친 것만 해도 축복이었다.
  "중위님 사랑해요."
  하란공주가 이리노중위의 가슴에 풍성한 머리숱을  기대왔
  다.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의 어깨를 감싸안고 망망한 대해
  를 바라보았다.
  물이 빠지기 시작한 것은 닷새가 지났을 때였다.
  처음엔 밀림의 거대한 나무 끝이 물속에서  모습을 드러내
  더니 높은 산부터 차츰차츰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다.
  "물이 빠지고 있어!"
  이리노중위는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배가 계속  쓸려 다니
  지 않도록 배를 나무에  묶었다. 그리고 높은 산이  물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하란공주를 안고 육지에 내렸다.
  "흙이야!"
  45일만에 밟아 보는 육지였다. 이리노중위의  목소리가 표
  나게 떨렸다. 그러나 육지의 모습은 흉했다. 나무들은 대부
  분 쓰러지거나 죽어 있었고  짐승들도 살아있는 것이  없었
  다. 모두둘 흉하게 시체가 되어 나뒹굴고 있었고 밀림도 거
  대한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황폐해져 있었다.
  게다가 햇볕도 따가웠다.
  온도가 하루가 다르게 높게 올라가고 있었다.
  "키키 "
  그때 하란공주가 공포에 잠긴 표정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맙소사!"
  하늘엔 태양이 두 개가  떠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자신이
  잘못 것이 아닐까 하여  눈을 비비고 하늘을  쳐다보았으나
  둥글고 밝은 태양은 쌍둥이처럼  동쪽 하늘과 서쪽  하늘에
  커다랗게 떠 있었다.
  '이건 무슨 변화일까 ?'
  우주의 조화는 인간으로서 측량할 수가 없다. 그러나 태양
  이 두 개가 떠 있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었다.
  '태양이 두 개나 떠 있어서 비가 그친 뒤부터 지금까지 낮
  이 계속되고 있었어. 이건 불길한 일이야 '
  이리노중위는 어쩐지 소름이  끼쳐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
  다. 태양이 두 개나  떠있는 것은 분명히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밤이 없다는 것은 질서가 없는 것이다.
  물이 빠지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곤충족들이 한
  무리 나타났다. 그들은 이리노중위와 하란공주를  발견하고
  는 목을 놓아 울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수많은 곤충족들
  이 비 때문에 죽었다고  했다. 하란공주는 그 얘기를  듣고
  슬프게 울었다.
  그러나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물은 계속 빠지고 있었으나 햇볕이 뜨거웠다. 두  개의 태
  양이 머리 위에서 이글거려 모든 것을 녹일  것처럼 내려쬐
  고 있었다.
  이리노중위와 하란공주는 곤충족들을 이끌고 물을 따라 산
  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이 계속 빠지자 산이 완연히 모습을 드러냈고 이어서 지
  상이 드러났다. 지상에는 수많은 짐승들과  사튀로스족들이
  죽어 있었다. 사튀로스족이나  공룡 같은 거대한  짐승들은
  몸무게가 워낙 무거워서 40일 동안이나 비가 계속 쏟아지자
  물에서 죽은 모양이었다.
  곤충족들이 하나 둘씩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위와 굶주림으로 풀썩풀썩 쓰러졌다. 두 개의 태
  양이 너무나 뜨거웠다. 그들은 더위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
  고 땀이 솟아 나왔다.  그러나 땀은 미처 흘러내릴  시간도
  없이 말라버리고 있었다. 공기가 건조했다. 바람 한점 없는
  날씨가 계속되어 40일 동안  내린 비에도 간신히  살아있던
  풀이며 나무들이 시들시들 말라죽었다.
  이리노중위는 곤충족들을 이끌고 물을 따라  이동을 했다.
  온 세상이 물의 세계가 되었던 일이 불과 며칠 전인데도 물
  은 빠르게 증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증발한  물은 다
  시 비가 되어 내리지 않았다.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질서가 파괴된 거야 '
  이리노중위는 숨이 턱턱 막히는데도 하늘을 쳐다보고 중얼
  거렸다. 우주의 질서가 깨어지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리노중위는 곤충족들을 이끌고 계속 이동을  했다. 살아
  남은 곤충족이라고는 불과 수십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
  나 그들도 마른 먼지가 풀썩풀썩 일어나는 대지  위에 하나
  둘씩 쓰러져 죽어갔다.
  '이, 이건 너무나 비참하다!  하늘은 어떻게 이런  재앙을
  내리는 것일까....?'
  이리노중위는 그들이 시체로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 슬픔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하란공주는 그들보다  사흘이나
  더 버티었다.
  그러나 하란공주도 비가  그치고 불볕이 내려쬐기  시작한
  지 보름만에 쓰러졌다.
  "공주!"
  이리노중위는 무릎을 끓고 앉아서 슬픈 눈으로 하란공주를
  내려다보았다.
  "이리노중위님!"
  하란공주가 힘없는 눈으로 이리노중위를 쳐다보았다. 이리
  노중위는 하란공주를 끌어안고 입술을 부볐다.
  "공주 죽으면 안돼!"
  "전 이리노중위님을 사랑했어요."
  "나도 공주를 사랑했어."
  "전 이제 마지막이에요."
  "아니야. 죽으면 안돼!"
  이리노중위는 절규했다. 하란공주는 이미 더위와 굶주림으
  로 요정처럼 아름다운 몸이 젓가락처럼 바짝 말라 있었다.
  "사랑해요 "
  하란공주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공주!"
  "키 키 "
  하란공주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이리
  노중위는 혀로 하란공주의 눈물을 핥았다.
  "키키 "
  그것이 하란공주의 마지막 말이었다.
  "공주!"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를 안고 몸부림을 쳤다.  이상한 일
  이었다. 하란공주의 죽음이  가슴이 미어지는 것처럼  슬펐
  다. 이리노중위는 하란공주가 죽어서 부패할 때까지 시체를
  지켰다. 하늘에서는 두 개의 태양이 작렬할  듯이 이글거리
  고 있었고 모든 것이 바싹바싹 마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리
  노중위는 하란공주의 시신에 조금이라도 그늘을  만들어 주
  려는 듯 오래오래 안고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눈물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이리노중위는  마른 먼
  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사막으로 정처없이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두 개의 태양이 작렬을 하자 숨이 턱턱 막혔다. 울창한 숲
  과 푸르디 푸른 숲은 불과 15일 남짓 작렬한 태양  빛에 의
  해 말라서 타버렸고 공기는 건조했다. 사람의  입에서도 단
  내가 느껴질 정도로  태양열이 뜨거웠다. 바위나  돌멩이를
  만지면 마치 불덩어리를 만지는 것 같았고 바닥은  살이 탈
  정도로 뜨거웠다.
  바르시크대령은 리나를 안은  채 희디흰 햇살이  난무하는
  먼 벌판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들에게도 죽음은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바르시크대령은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
  꼈다.
  물꽃 요정 리나는 정신이  들락날락 하고 있었다.  태양열
  때문이었다. 태양열은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이 강렬하게
  내려쬐고 있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내려쬐는 불볕이었다.
  "바르시크대령님 "
  리나가 간신히 입술을 열어 말을 했다. 그들은  바위 그늘
  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이제는 사막으로 변해 버린 니리드
  위성에서 물을 찾아 더 이상 이동할 기력도 없었다.
  "리나 "
  "안아 주세요."
  리나가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바르시크대령은  손을 뻗
  어 리나를 안았다. 그러자 리나가 바르시크대령의  몸 위로
  간신히 기어 올라왔다.
  "바르시크대령님과 함께 죽게 되어 기뻐요."
  "리나는 오안네스족이니까 나와 함께 죽을 필요는 없어."
  바르시크대령은 목이 메어 왔다. 리나는 그가 처음으로 사
  랑한 여자였다. 그녀와 함께 죽는 것이 기쁘면서도 목이 메
  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니 유러너스 제국이니 하는 지구의 모든
  것들도 생각해 보면 부질없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은 존재에서 비존재로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도
  그것과 마찬가지로 한낱 흙과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것이
  다. 그러나 이 머나먼 우주까지 와서 우주의 먼지로 사라지
  다니 도대체 누가 이런 것을 주관하는 것일까. 오안네스족
  이 이런 일을 주관한다는 것은 믿기가  어려웠다. 오안네스
  족보다 더 강하고 더 전지전능한 그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르시크대령님!"
  "리나 "
  "졸리워요."
  "졸리면 눈을 감고 자."
  "저보다 먼저 떠나시지는 않겠지요?"
  "우리는 우주의 먼지가 되어 떠돌아도 함께 떠돌 거야."
  "고마워요."
  리나의 입언저리에 기쁨의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리나도 탈진하여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리나의 얼
  굴이 바르시크대령의 가슴 위로 얹혀지고 리나의 눈이 감겼
  다. 바르시크대령은 리나의 등에 팔을 두르고 눈을 감았다.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리나도 죽고 그도 죽으리라고 생각했다.  리나나 바르시크
  대령이나 이제는 한 나절을 넘기지 못하고 숨이  끊어질 것
  이다.
  지열이 아지랑이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제  니리드 위
  성에는 습기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라고는 단 한  종(種)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두 개의 태양에서  작렬하는 불볕
  속에서도 미생물은 존재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으나 육안으
  로 확인할 수 있는 생명체는 없었다.
  비가 그친 지 40일째였다.
  (태양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
  니리드 위성에 존재하는 생명체가 불볕에 타죽고  있는 것
  은 태양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 분명할  것이다. 니리드
  위성이 궤도에서 이탈하여 태양을 향해  전속력으로 항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불볕이 내려쬐는 것일 터였다.
  장애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니리드 위성이
  태양열에 의해 붉게 타고 있는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40일 동안이나 비가 퍼부운 것도 니리드 위성이 궤도를 이
  탈하는 바람에 대기권에 모여 있던 구름이 모두  녹아서 쏟
  아지는 것일 터였다.
  '허지만 '
  장애란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비가  그치자 갑자기
  태양이 두 개로 변한 현상은 무엇인가. 이 곳이  토성의 위
  성이라고는 하지만 또 하나의 태양이 있었다는  말인가. 그
  렇다면 그 동안에 또 하나의 태양은 어디에 숨어 있었는가.
  장애란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
  다.
  장애란은 계속 걸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인들은 물의 재앙으로 대부분  죽었으나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도 불볕으로 죽어갔다. 우주선을 타
  고 니리드 위성에 올라온 사피언스 그라운드인들은 모두 60
  만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으로 죽고 물의 재앙
  으로 죽었다. 물의 재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불과 수천
  명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들도 불볕에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장애란은 니리드 위성의 총독이었다.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그녀의 얼굴을 힘없이 쳐다볼 때 장애란은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기아와 갈증이 사람들을 무섭게 휘몰아쳤고 사람들
  은 나무토막처럼 픽픽 스러졌다.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도 파리 떼조차 끓지 않고 독수리 떼
  조차 없었다. 사람들의  시체에는 희디흰 햇살만  난무하여
  시체를 태웠다.
  필립중위가 죽은 것은 비가 그치고 불볕이  내려쬐기 시작
  한지 20일째 되던 날이었다.
  "총독님! 저는 결국 여기서 죽습니다."
  "필립중위. 누구나 죽는 거야."
  장애란은 안타깝게 외쳤다.
  "우리는 죽어서 무엇이 될까요?"
  "우주의 먼지가 되겠지."
  "한낱 먼지가 되어 떠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슬퍼요."
  "필립중위 슬퍼하지마. 나도 필립중위 뒤를 따라  죽게 될
  거야."
  "총독님은 살아남으셔야 해요."
  "내가 왜?"
  "지구에 돌아가서 지구인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재앙은 우리가  불러들인 겁
  니다."
  "봉선화 혜성의 침입은 우리 죄가 아니야."
  "전 어쩐지 우리가 불러들인 재앙이라는 생각만 듭니다."
  "아무 것도 생각할 필요 없어. 그냥 쉬어 "
  "총독님. 저 를 기억해 주세요 "
  필립중위의 눈이 감겨지며 목소리에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
  다. 장애란은 필립중위의 손을 꽉 잡았다.
  "그래. 내가 죽을 때까지 기억할게."
  "고 마 워 요 "
  필립중위의 손이 가늘게 경련을 하다가  그쳤다. 필립중위
  의 숨이 끊어진 것이다.
  "필립!"
  장애란은 목이 메어 필립중위를 불렀다. 그녀 외에는 니리
  드 위성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 필립중위의 죽음은 그녀
  의 육친이 죽은 것처럼 슬펐다.
  '처음부터 니리드 위성은 이상했어 '
  장애란은 필립중위의 죽음을 생각하다가 금속이  존재하지
  못하는 니리드 위성의 신비를 생각했다. 그리고  물에 떠내
  려가던 수많은 공룡들과 짐승들, 곤충족과 사튀로스족의 시
  체들을  생각하고  니리드  위성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니리드 위성은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었다.
  '어쩌면 니리드 위성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학문명을 가
  지고 있는 외계인들이 살지도 몰라 '
  장애란은 그렇게 생각하자 소름이 오싹 끼쳐왔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 걸었다. 계속 걸어야만 착륙선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고 착륙선을 찾아야만 지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리노중위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리노중위를 생각하자 장애란은  또 다시 슬픔이  복받쳐
  왔다. 40일 동안이나 퍼부운 물의 재앙과  50일째 계속되고
  있는 불볕 더위 속에서 굶주림을 이기고 이리노중위가 살아
  있지 않을 것 같았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장애란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장애란은 이리노
  중위도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가 죽었으면 나도 죽을 거야.'
  장애란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리노중위가 없는  삶은 의미
  도 목적도 없을 것이다.
  장애란은 계속 걸었다.
  벌써 모래사막으로 변한 니리드 위성은 간간이  건조한 열
  풍만 불고 있었다. 건조한  공기로 인해 숨이 턱턱  막히고
  지열은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솟아오르고 있었다.
  덥다.
  숨이 막힐 것처럼 덥다...
  "아아, 너무 더워!"
  장애란은 하늘을 쳐다보며 절규하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청천 하늘에서는 아무 응답이 없었다.
  "더워....!"
  장애란은 다시 사막에 발자국을 찍어 놓으며  고행을 하듯
  걷기 시작했다.
       제 52 장 여신의 나라
  누네즈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겼다. 날씨는 상쾌
  했다. 하늘은 눈이 시리게 맑았고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바람
  은 나무가지 끝에서 금빛으로 살랑거리고 있었다.  마더 살로메 누네
  즈는 장미궁전 난간에서 전쟁터로 출정하는 병사들을 사열하고 있었
  다.
  "위대한 마더 살로메님께 경례!"
  장미궁전에 도열해 있던 병사들이 장미궁전을 향해 일제히 경례를
  했다. 그와 함께 경쾌한 군악이 울려 퍼졌다.
  누네즈는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체 쉬어!"
  병사들이 일제히 쉬어 자세를 했다.
  누네즈는 천천히 병사들을 굽어보았다. 누네즈가 수많은 군중들 앞
  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병사들은 마더 룸에서 경
  배를 바치던 마더 살로메의 실체를 보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마
  더 살로메는 거인이었다. 보통사람들보다 몸이 다섯 배나 컸다. 마치
  거대한 동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병사들아!"
  마더 살로메 누네즈가 병사들을 향해 한 손을 뻗었다. 병사들은 숨
  을 죽이고 누네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희 위버는 누네즈 뒤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거인으로  변신한
  누네즈는 종아리 하나가 장미궁전의 기둥처럼 컸다.
  "이제 우리는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총공격할 것이다! 사피언스  그
  라운드는 우리의 경찰 국장 로즈 국장을 닥터 킬러를 통해 비참하게
  살해했다! 여러분들은 우리의 로즈 국장을 살해한 닥터  킬러에 대해
  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닥터 킬러는 잔인한 살인 강도로 우리 유러
  너스 제국의 아름다운 여자들 수백 명을 강간한 뒤에 살해했다. 어떤
  여자는 가슴을 도려냈고 어떤 여자는 국부를  훼손했다. 그렇다면 닥
  터 킬러는 왜 이런 짓을 저질러 왔는가. 그것은  우리의 민심을 어지
  럽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우리는 평화를 위해 참아 왔다."
  병사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질러댔다. 하시시 캡슐로  인해 병사들은
  이미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참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제 우리는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총공격할 것이다!"
  "공격하자!"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초토화시켜 로즈 국장의 원수를 갚자!"
  "원수를 갚자!"
  병사들이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누네즈가 외칠 때마다
  주먹을 흔들며 열광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로즈 국장의 시체가 발견된 직후 닥터 킬러는 체포되었다. 닥터 킬
  러는 유러너스 제국의 메가TV가 생중계를 하는 가운데 자신이 사피
  언스 그라운드의 첩보사령부 소속이며 첩보사령관 바르시크대령의 지
  시를 받아 여자들을 살해해 왔다고 자백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누네즈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유러너스 제국 시민들은 그 방송을 보고  흥분해서 사피언스 그라
  운드를 공격하라고 시위를 벌였다.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아라크네시
  로 쏟아져 나와 사흘 동안 시위를 벌이고 로즈 국장의 죽음을 애도했
  다. 아라크네시 시민들은 로즈 국장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제국 정부에서 비밀경찰 국장이라고 말하고 그녀가 옛날에 로
  즈중대를 이끌고 사피언스 그라운드와 싸운 전쟁영웅이라고 추켜세우
  자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피켓을 들고 데모를 한 것이다.
  로즈 국장의 장례식은 시민들의 애도 속에서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파나카이아 총통이 직접 장례식에 참여를 했고 수많은 장미꽃들이 그
  녀의 관을 덮었다.
  시민들은 장례식이 끝나자 사피언스 그라운드에 로즈 국장의 보복
  을 하라고 유러너스 제국 정부에 관제데모를 벌였다.
  누네즈는 기다렸다는 듯이 유러너스 제국에 동원령을 내린 것이다.
  "출정하라!"
  누네즈가 마침내 최후의 명령을 내렸다.
  "출정!"
  누네즈의 명령이 떨어지자 각  군단의 장교들이 명령을  복창했다.
  이어서 대전차부대를 선두로 병사들이 트럭에 올라타고 사피언스 그
  라운드의 국경선으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유러너스 제국 시민들은 연
  도에 서서 힘차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전쟁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눈에는 전쟁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는 그들의 적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피언스 그
  라운드의 군사들은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 반제동맹의 본부에서 로즈 국장은  유러너스 제국 장미궁
  전 광장에서 유러너스 제국군대가 사피언스 그라운드와 전쟁을 하기
  위해 출정하는 모습을 디스 플레이 스크린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반
  제동맹의 디스 플레이 스크린은 반제동맹의 요원인 우희 위버의 눈에
  있는 마이크로 카메라 칩을 통해 유러너스 제국의 동정을 낱낱이 감
  시하고 있었다.
  유러너스 제국군대는 삼엄했다. 미사일부대와  대전차부대, 중성자
  포부대 장미궁전 광장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수많은 전투기와 장갑
  기병들까지 국경선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드디어 전쟁을 하는군 "
  로버트 퍼그스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말끔하게 군복
  을 입고 있었다. 반제동맹도 활동 준비가 끝난 모양이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가 유러너스 제국을 당해 낼 수가 있을까요?"
  "사피언스 그라운드도 만만치는 않을 거요."
  "인구가 많아서 그런가요?"
  "인구뿐이 아니라 사피언스 그라운드도 그  동안 부단히 과학문명
  을 발전시켜 왔소. 그들은 펄서폭탄을 개발했다고 하오."
  "펄서폭탄이요?"
  "그 폭탄은 핵폭탄보다 더욱 강력한 것으로 순식간에 지구를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오."
  "그럼 그 폭탄을 사용할 수가 없잖아요?"
  "아마 폭탄의 위력을 감소시켜서 유러너스  제국을 날려버릴 정도
  의 폭탄만 사용하게 될 거요."
  "반제동맹은 어떻게 할거죠?"
  "우리는 두 제국이 전쟁을  하여 기진맥진할 때를 기다리고  있소.
  두 제국이 지쳐 있을 때 요원들을 동원해서 가드 바이러스를 살포할
  거요."
  "가드 바이러스요?"
  "가드 바이러스는 일명 신의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바이러스로 순
  식간에 유러너스 제국과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멸망시킬 것이오."
  로즈 국장은 로버트 퍼그스의 말에 가슴이 묵직해져  왔다. 그녀는
  지금까지 로버트 퍼그스가 반제동맹 의장으로서 인류를 위해 봉사하
  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가드  바이러스를 살포하여 유러
  너스 제국의 시민들과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시민들까지 모조리 살해
  한다면 유러너스 제국의 누네즈와 무엇이 다른가. 결국 반제동맹이라
  는 비밀결사 단체도 지구를 지배하려는 한 인간의 야욕에 지나지 않
  는 것이다.
  로즈 국장은 로버트 퍼그스에게 실망했다.
  "나를 왜 구해주었죠?"
  "당신은 내가 얼마나 위대한 인간인지 알아야 하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해도 우주의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아요."
  "로즈. 그대는 모르는 것이 있소. 인간은 물론 우주의 한낱 먼지만
  도 못한 존재일지 모르지만 우주를 창조하고 우주를 정복할 수 있는
  능력도 있소."
  "야욕은 결국 야욕으로 끝날 거예요."
  "후후 "
  로즈 국장의 말에 로버트 퍼그스가 음흉하게 웃었다.
  "왜 웃죠?"
  "사피언스 그라운드나 유러너스  제국은 토성의  위성에 우주선을
  보내 도시를 건설하고 있지 "
  "그래서요?"
  "우리 반제동맹 요원들은 이미 사피언스  그라운드와 유러너스 제
  국의 군대에 잠입하여 토성의 위성에 가드 바이러스를 살포할 준비를
  끝냈어. 토성의 위성과 지구를 우리 반제동맹이 지배하는 거야."
  "그건 환상예요."
  "환상이라고?"
  "그래요. 당신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지구와 우주를 지배하려는
  거예요. 당신은 마더 살로메나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예멘의장보다 더
  악랄한 사람예요."
  "당신은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소."
  "무슨 소리예요?"
  "당신은 유러너스 제국의 제2권력자로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왔소.
  엘리자베스 버틀리라는 사이보그 인간을 만들어 유러너스 제국에 반
  대하는 시민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것을 비롯해 닥터 킬러까지 양성해
  시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소."
  "그래요! 나는 유러너스 제국의 마더 살로메에게 충성을 했어요!"
  "이제는 나에게 충성을 하시오!"
  "뭐라구요?"
  "당신에게 열 두 번째 부인 자격을 주겠소."
  로버트 퍼그스가 음침하게 웃었다.
  "여, 열 두 번째?"
  로즈 국장은 아연했다.
  "나에게는 부인이 여럿이야. 한때 나를 사랑한 공로를 생각해 너에
  게 부인 자격을 주려는 거야."
  로즈 국장은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로버트 퍼그스의  말이 어처
  구니가 없었다.
  "어림도 없어! 너는 내가 러브 타임 파트너로 즐긴 한낱 소년에 지
  나지 않아 "
  "그래? 시건방진 년!"
  로버트 퍼그스가 느닷없이 로즈 국장의 뺨을 후려쳤다.  로즈 국장
  은 로버트 퍼그스에게 뺨을  얻어맞아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러나
  로버트 퍼그스는 그녀가 바닥에 나뒹군  뒤에도 구둣발로 마구 차고
  짓밟았다.
  '이, 이 놈은 정신병자야 '
  로즈 국장은 로버트 퍼그스의 구둣발에 얻어맞은 복부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삼키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눈
  빛이 어쩐지 사악한 기운을 풍기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녀
  는 옛날 위노강에서 만난 소년이 모습만 생각하고 애써 로버트 퍼그
  스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었다.
  "이년을 엘리자베스 버틀리에게 넘겨줘라!"
  로버트 퍼그스가 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우락부락한 청년들이 나타나 로즈 국장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로즈
  국장은 그들에 의해 어떤 방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소
  름이 오싹 끼쳐왔다. 그 방에는 그녀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이보
  그 인간 엘리자베스 버틀리가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엘리자베스 버틀리는 입언저리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녀가 무수
  한 사람들을 산채로 잡아먹고 있다는 증거였다.
  "후후 이게 누구야?"
  엘리자베스 버틀리가 쇠사슬을 끌고 로즈 국장에게 가까이 다가왔
  다.
  "에, 엘리자베스 "
  "내가 존경하는 로즈 국장 아니신가?"
  "그래. 나 로즈 국장이야. 너를 창조한 로즈 국장이야!"
  "호호 !"
  엘리자베스 버틀리가 소름이 끼치게 요란하게 웃어젖혔다.
  "네가 나를 창조한 것은 사실이야. 그러나 인간의 살과  피를 먹어
  야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었지 "
  "마더 살로메의 지시였어!"
  "그래 마더 살로메의 지시라고  하자. 나는 수많은 인간들의  살과
  피를 먹으면서 반듯이 너희들도 먹어치우리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마침내 기회가 온 거야 "
  엘리자베스 버틀리가 잔인하게 웃었다. 로즈 국장은 그녀가 가까이
  오자 눈을 질끈 감았다.
  로버트 퍼그스는 로즈  국장이 엘리자베스 버틀리의  제물이 되는
  것을 디스 플레이 스크린으로 지켜보다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자신
  이 창조한 사이보그 인간에 의해 자신이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리라는
  것은 예상조차 못했던 일일 것이었다.
  '나를 거역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될 것
  이다!'
  로버트 퍼그스는 피묻은 입언저리를 주먹으로 문질러 닦는 엘리자
  베스 버틀리를 보고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엘리자베스 버틀리는 유
  러너스 제국의 비밀경찰 본부에 있었으나 로버트 퍼그스가 요원들을
  시켜 빼돌렸던 것이다.
       제 53 장 인간의 마성
  로버트 퍼그스는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조절하여 유러너스 제국의
  누네즈를 비치게 했다. 그는  유러너스 제국이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침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녀는 살로메 위성에 안드로이드들을
  파견한 후 안드로이드들이 살로메 위성을 충분히 정복할 것이라고 예
  상하고 지구에 전쟁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누네즈는 지구가 전쟁으로 폐허가 되면 우주선을  타고 살로메 위
  성으로 갈 작정이었다. 그녀는 마더 랜드의  지하에 우주선을 발사할
  수 있는 비밀기지를 건설해 놓고 있었다.
  로버트 퍼그스는 제국군인으로 근무할 때에 마더  랜드의 비밀 지
  하기지를 건설했었다. 누네즈는 지하기지 건설에  참여한 제국군인들
  을 모조리 학살했으나 로버트 퍼그스는 그 사실을 미리 알고 대역을
  만들어 죽게 만든 뒤 자신은 감쪽같이 빠져나왔던 것이다.
  모두가 알바레스의 도움에 의해서였다.
  알바레스는 마더 랜드의 지하실에 갇혀 있으면서 로버트 퍼그스에
  게 그녀의 비밀을 낱낱이 가르쳐 주었고 로버트 퍼그스는 알바레스로
  부터 마더 살로메를 제거하는 방법까지 배웠다.
  "로버트 퍼그스. 누네즈는 인류 최악의 악마요. 그녀를 제거해야만
  인류에 평화가 올 거요."
  "알바레스. 누네즈는 불사신입니다. 불사신을 어떻게 죽입니까?"
  "누네즈가 발견한 피그미족의 연구소는 누네즈를 불사신으로 만드
  는 연구 업적도 이루었지만 그와  반대로 누네즈를 제거하는 방법도
  연구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이러스요."
  "바이러스?"
  "신의 바이러스요. 나는 누네즈를 죽이는 생각에만  골몰하여 미처
  그 비밀을 캐내지 못했는데 이 지하실에서 2백년 동안이나 살면서 마
  침내 그 비밀을 알게 되었소."
  알바레스가 소리없이 웃었다. 로버트 퍼그스는 알바레스의  얘기를
  듣고 소름이 끼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알바레스는 이미 5백년이나
  산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과 마주 앉아서 얘기를 한다는 사실이 로버
  트 퍼그스로서는 믿어지지 않았다.
  "바이러스로 어떻게 누네즈와 같은 불사신을 죽입니까? 그녀는 여
  신과 같은 여자입니다."
  "모든 물질에는 상극이 있소."
  "상극?"
  "누네즈를 죽이는 바이러스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죽여 없앨 수
  있는 바이러스요. 전염이 엄청나게  빠르기도 하지만 모든  유생물을
  무생물로 만들어 버리오."
  로버트 퍼그스는 알바레스의 말을 얼른 납득할  수 없었으나 고개
  를 끄덕거렸다. 어렴풋이나마 무슨 말인지 짐작을 할 수  있을 것 같
  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는 자는 재앙을 면치 못할 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의 바이러스는 엄청난 살상 효과가 있어서 그것을 개발해도 살
  포하는 자까지 죽을 수밖에 없소. 지구인들이 모두 죽는다는 얘기요."
  "그토록 무서운 것입니까?"
  알바레스의 말에 로버트 퍼그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소."
  "그렇다면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군요."
  "아마 펄서폭탄과 비슷한 효과가 있을 거요."
  "차라리 누네즈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게  되면 신의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날 수 있지 "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한 번 개발해 보겠소?"
  "예."
  "좋소. 그럼 내가 일러주는대로 하시오. 신의 바이러스를 개발하려
  면 내가 만든 X파일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반제동맹을 만드시오.
  반제동맹을 만든 뒤에 X파일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신의 바이러스를
  만들고 X파일은 지워버리시오."
  "알겠습니다."
  로버트 퍼그스는 알바레스의 지시대로 X파일을 가지고 마더  랜드
  의 지하실을 나온 뒤 반제동맹을 결성했다. X파일에는 신의 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누네즈의 비밀에 대해서도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로버트 퍼그스는 알바레스의 말대로 신의 바이러스를 제조했다. 그
  리고 신의 바이러스를 제조하자 자신이 누네즈를 제거하면 유러너스
  제국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누네즈 같은 한낱 계집이 지구를 지배하는데 내가 왜 지구를 지배
  하지 못해 ?'
  로버트 퍼그스는 누네즈를 제거하고 자신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환
  상에 사로잡혔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그는 누네즈가 사용하
  던 하시시를 이용해 자신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11명의 여자
  들을 부인으로 거느렸다. 12명째는  로즈 국장을 임명하려고  했으나
  그녀가 반대하자 죽여버렸다.
  로즈 국장은 나이가 많은 여자였다.  한때 그 여자를 사랑한  적은
  있었으나 사랑이 영원하지는 않았다. 여자들은 그의 주위에 얼마든지
  있었다. 여자도 권력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 마음대로 소유할
  수 있었다.
  로버트 퍼그스는 군대에서 퇴역을 한 것처럼  기록을 위조해 놓은
  뒤에 로마노즈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가족들조차  모르게
  비밀리에 니트론에 반제동맹 아지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선량한 퇴역
  군인 행세를 하면서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음모를 실행해 왔던 것이
  다.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국경을 향해 달려가는
  유러너스 제국군대가 보였다. 유러너스 제국군대는  장갑기병만 20만
  명이 동원되고 있었다.
  '어디 누네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까?'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는 마더랜드의 궁전에 있는 누네즈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우희 위버의 안구에 삽입되어 있는 카메라 칩을 통해
  누네즈가 보이고 있는 것이다.
  누네즈의 뒤에는 파나카이아 총통과  돈 카에스 부총통,  비밀경찰
  부국장 모리오가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누네즈의  앞에 있는 콘솔에
  는 유러너스 제국과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군사지도가 입체로 만들어
  져 있었다.
  "제임스 장군! 한 시간 이내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공격하라!"
  누네즈가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통해 제임스장군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유러너스 제국군대의 장갑기병을 이끌고  있는 제임스장군이 긴장
  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더 살로메님! 미사일부대는 지금 즉시  공격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 포병부대의 해링톤장군의 모습이 떠올랐
  다. 해링톤장군의 뒤에는 수많은 핵탄두 미사일 발사대가 보이고
  있었다.
  "좋다! 허락한다!"
  "미사일 발사준비!"
  해링톤장군이 핵탄두 미사일 발사대에 명령을 내렸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국경선 815지점에 조준!"
  "815지점에 조준!"
  해링톤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영관급 장교들이 부산하게 명령
  을 미사일 발사대에 전했다. 모든 명령은  컴퓨터를 통해 발사대
  까지 일사천리로 전달되고 있었다.
  "조준 완료!"
  영관급 장교가 하얀 깃발을 치켜들고 말했다.
  "핵탄두 미사일 발사!"
  "핵탄두 미사일 발사!"
  해링톤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언덕에 서 있던 영관장교가 깃
  발을 내렸다. 그와 함께 핵탄두 미사일을  발사하는 로켓이 요란
  한 폭발음을 일으켰고 핵탄두 미사일들이 불꽃을 쏘며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 미사일들의 아름답고 미끈한 자태가 드
  러났다.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들이었다.
  그때 사피언스 그라운드 국경선 쪽에서  하얀 접시 모양의 비
  행체들이 나타났다. 그 비행체들은  은빛으로 반짝이며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국경선을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 전방에 빽빽하게  떠
  있었다.
  "미사일 전방에 괴물체 출현!"
  유러너스 제국의 통신본부가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물체의 정체를 파악하라!"
  "괴물체의 크기 둘레 30cm, 길이 45cm, 무게 130kg "
  "괴물체는 모두 몇 개가 되는가?"
  "괴물체 3800개!"
  "괴물체를 격추시켜라! 지대공 미사일 발사 준비!"
  "괴물체의 종류를 분석하라!"
  "지대공 미사일 발사 준비 완료!"
  "지대공 미사일 발사!"
  "괴물체 분석 완료! 괴믈체는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공중방어막
  이다! 지대공 미사일 발사 중지!"
  "핵탄두 미사일 철수!"
  유러너스 제국의 전략사령부는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러나 그 시간 이미 핵탄두 미사일은 사피언스 그라운드가 발사한
  괴물체가 구축한 방어망에 충돌하여 핵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핵탄두 미사일이 유러너스 제국 상공에서 터진다!  대공 방어
  막 가동!"
  "대공 방어막 가동 준비!"
  "대공 방어막 가동 준비 완료!"
  "대공 방어막 가동 실시!"
  "실시!"
  전략사령부의 명령이 떨어지자 유러너스 제국의 상공에 푸른빛
  이 번지면서 순식간에  투명한 막이 펼쳐졌다.  핵탄두 미사일은
  대부분 방어막 위에서 폭발했으나 몇 개인가는 미처 방어막이 펴
  지기 전에 터지는 바람에 유러너스 제국을 핵폭풍 속으로 몰아넣
  었다.
  핵탄두는 언제나 같은 식으로 폭발했다.
  먼저 천지가 진동하는 같은 폭발음이 들리면서 장대한 버섯구
  름이 피어났다. 이어서 거대한 핵폭풍이 불고  죽음의 비가 쏟아
  지기 시작했다.
  "제기랄!"
  누네즈가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보고 있다가 발을  굴렀다. 그
  녀의 눈이 표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는 유러너스 제국의 제7의 도시 릴리시티
  가 불바다가 되고 있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건물이 무너져 내
  리고 숲이 마른 장작처럼 빠르게 타  들어갔다. 수많은 시민들이
  비명을 지를 시간도 없이 불빛이 번쩍 하는 순간 타버렸고  핵폭
  풍에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이어서 죽음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살아남은 사람들을 죽
  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유러너스 제국의 제7의 도시 릴리시티는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핵폭풍에 이어 죽음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시민들이  벌레처
  럼 죽어갔다. 유러너스 제국의  핵폭탄 방어막도 소용이  없었다.
  릴리시티는 불과 몇 분 사이에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릴
  리시티는 인구가 40만이나 되는 도시였다. 그러나 핵탄두 미사일
  이 릴리시티에서 터지는 바람에 불과 몇 분도 안되어 파괴된  것
  이다.
  "제기랄!"
  누네즈는 디스 플레이 스크린으로 릴리시티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개인 같은 사피언스 그라운드에 당하다니 믿을 수 없어! 파
  나카이아 총통! 어떻게 이렇게 되었지?"
  "죄송합니다. 놈들의 괴물체가 방어막이 뛰어나서 "
  "놈들이 방어막을 개발했다는 것을 몰랐다는 말이야?"
  "그 부분은 비밀경찰에서 담당이라 "
  파나카이아 총통이 말끝을 흐렸다. 누네즈가 이를 갈며 분노하
  고 있어서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비밀경찰? 모리오 부국장 어떻게 된 일이야?"
  누네즈가 모리오 부국장을 다그쳤다. 그녀의 눈에서 파란 불꽃
  이 일어나 모리오  부국장에게 꽂히고 있었다.  모리오 부국장은
  가슴이 철렁했다.
  "죄송합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첩보는 로즈 국장이 실시하
  고 있었습니다!"
  "뭐야?"
  "첩보는 점조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로즈 국장이 아니면 그
  쪽 첩보원들이 보고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밀경찰이 몰랐다는 말이야?"
  누네즈가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다. 모리오  부국장은 누네즈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누네즈가 어쩐지  변한 것
  같았다. 누네즈의 눈에 총기가 없이 흐릿했다.
  "로즈 국장이 너무 빨리  살해되어서 정보조직을 인수할 겨를
  이 없었습니다!"
  누네즈가 자승자박을 저지른 꼴이었다. 비밀경찰의  모든 조직
  은 로즈 국장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모리오 부국장도 어
  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정보는 아무리 심복이라
  도 알려주지 않는 것이 정보 계통의 철칙이었다.
  누네즈가 우려한 것도 유러너스 제국의 모든 정보뿐만 아니라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정보까지 독점하고 있는 로즈 국장에게  불
  안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닥터  킬러에게 로즈 국
  장을 살해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로즈! 그 망할 년이 나를 망쳤어!"
  누네즈가 이를 갈았다.
  "흥! 그러나 미개인 같은 사피언스 그라운드에게  이대로 당하
  고 있지는 않아! 안드로이드 3호! 연참의장과 각군 참모총장을 불
  러라!"
  누네즈가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옛서! 마더!"
  안드로이드 3호가 허리의 팜탑 컴퓨터로 연참의장과 각군 참모
  총장을 호출했다. 유러너스 제국의 연참의장은 해군과 공군, 그리
  고 육군 참모총장을  지휘하는 참모총장 의장이었다.  그는 각군
  참모총장들과 달리 대원수였다. 참모총장들은 대장이었다.
  이내 연참의장과 각군 참모총장들이 부관을 거느리고 누네즈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연참의장 밴 크로포트 대원수! 마더 살로메의 부르심 받고 각
  군 참모총장들과 함께 대령했습니다!"
  연참의장 밴크로포트 대원수가 절도  있게 경례를 했다.  각군
  참모총장들도 일제히 경례를 했다.
  "밴 크로포트 대원수!"
  누네즈가 싸늘한 눈빛으로 밴 크로포트 대원수를 쏘아보았다.
  "옛서 마더!"
  "릴리시티가 쑥밭이 되었다! 대 유러너스 제국군대의 총사령관
  인  연참의장으로써 어떻게 생각하나?"
  "죄송합니다! 곧 사피언스 그라운드에 일대 타격을  가하는 공
  격을 지시하겠습니다."
  "좋아! 이번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옛서!"
  "좋아,  돌아가서 공격하라!"
  "옛서! 연참의장 밴 크로포트 대원수! 각군 참모총장들과 용무
  마치고 돌아갑니다!"
  밴 크로포트 대원수가 다시 경례를 하고 물러갔다.
  "흥! 이번에 실패하면 살려두지 않겠어! 경호대장 워시번을 불
  러라!"
  누네즈가 밴 크로포트 대원수 일행이 총총히 걸어나가는 뒷모
  습을 노려보다가 안드로이드 3호에게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옛서!"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고 있던 안드로이드 3호가 경호대장을
  호출했다.
  누네즈의 경호대는 외형상 마더 랜드와 누네즈를 경호하는 임
  무를 맡고 있었지만 누네즈의 친위대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로
  즈 국장의 비밀경찰과 쌍벽을 이루며 유러너스 제국의  배신자를
  비롯해 반제동맹 요원, 그리고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첩보원들을
  체포하는데 주력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았
  고 체포라던가 제거는 비밀경찰에 맡기고 있었다.
  "마더 살로메! 경호대장 워시번 소장 대령했습니다!"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워시번 소장이 집무실에 나타났다. 그는
  키가 작달막한 사내였다.
  "워시번!"
  "옛서!"
  "사피언스 그라운드에 안드로이드 장갑기병을  침투시켜라! 30
  명만 침투시켜서 사피언스 그라운드를 혼란에 빠트려라!"
  "옛서!"
  워시번 경호대장이 거수경례를 하고 물러갔다.
       제 54 장 멸망을 향하여
  유러너스 제국 연참의장 밴 크로포트 대원수는  마더 랜드
  를 나오자 곧바로 전략사령부가 설치되어  있는 아라크네시
  북쪽 언덕의 지하 벙커로 갔다.
  "릴리시티가 폐허가 되어서 마더 살로메께서 불 같이 노하
  고 계시오! 전쟁은 아군이 초반에 패배했소!"
  밴 크로포트 대원수는  전략회의를 소집하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마더 살로메께서 무슨 명령을 내리셨습니까?"
  "사피언스 그라운드에 보복을 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소."
  "핵탄두 미사일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어떤 공격을  합니
  까?"
  연합참모본부의 작전국장이 밴 크로포트를 응시했다.
  "핵탄두 미사일 공격을 다시 하시오!"
  "이미 핵탄두 미사일 공격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번엔 MMX 미사일 공격을 하시오!"
  "MMX 미사일이오?"
  밴 크로포트 대원수의 말에 장군들이  일제히 웅성거렸다.
  MMX(mutlimedia extension)미사일은 최첨단 미사일로  땅속
  을 뚫고 적을 공격한다. 어뢰가 물속에서 점의 함정을 공격
  하는 미사일이라면 MMX 미사일은 두더지처럼 땅속을 파면서
  목표물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다. 처음 개발했을  때는 시속
  1km밖에 되지 않았으나 최근엔 시속 40km  속도까지 개발되
  었다. 땅을 파면서 날아가기 때문에 속도가 느린 것이다.
  그러나 적의 레이더나 전파 탐지기 따위에 걸릴 염려도 없
  었고 살상력도 엄청나게 컸다. 특히 MMX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게 개발되어 있어서 순식간에 적을 초토화시키
  는 비장의 무기였다.
  "좋습니다! 어디를 목표로 할까요?"
  "지금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가오슝장군이 이끄는  차이나
  군이 어디에 진출해 있소?"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가오슝장군이 이끄는 차이나 군은 국
  경지대인 시모프시에 집결해  있었다. 그들의 군대만  해도
  약 170만 명이나 되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에서는 숫자
  가 가장 많았으나 가장 약한 군대이기도 했다.
  "시모프시입니다."
  정보국장이 대답했다.
  "좋소! 그러면 MMX 미사일부대를 휘하에 두고 있는 알폰스
  장군에게 명령을 내리시오!"
  "알겠습니다."
  정보국장은 즉시 화상 컴퓨터로 알폰스장군을  불렀다. 알
  폰스장군의 MMX 미사일부대는 사피언스 그라운드와의  국경
  선이 15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계곡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
  들의 부대는 비정규군인 야전병원부대로 위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피언스 그라운드도 가장 약한  부대인 가오슝장군
  의 차이나군을 투입했던 것이다.
  "알폰스장군! 여기는 전략사령부다!"
  화상 컴퓨터에 알폰스장군이 떠오르자 정보국장이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릴리시티에 대한 보복을 한다! 지금 MMX 미사일로 가오슝
  의 차이나군을 공격하라!"
  "알겠습니다!"
  알폰스장군이 거수경례를 하고 대답했다. 알폰스장군의 사
  령관실에도 작전본부가 설치되어 있었다. 알폰스장군  휘하
  의 각 단위 부대장들이 집결하여 사피언스 그라운드군을 공
  격하기 위한 작전이 세워졌다.
  그들이 확보하고 있는 MMX  미사일은 120기나 되었다.  각
  단위 부대장들은 12기씩 MMX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었다.
  "각 부대에서 MMX 미사일 3기씩만 발사한다!  목표는 사피
  언스 그라운드의 시모프시! 공격시간은 30분 후!"
  알폰스장군이 부대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는 그들이 발사한 인공위성으로 사피언스 그라운드
  군이 시모프시에서 공격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상세하게
  비치고 있었다. 대전차부대가 시모프시 언덕에 가득차 있었
  고 병영과 군대가 득시글댔다. 병영은 이동이  쉽도록 천막
  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상공격이나 공중공격은 불가능
  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는 공중방어막을 개발하여  유러너
  스 제국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빨리 공격을 하지 않고 무얼해?"
  누네즈는 집무실의 디스 플레이 스크린으로도  알폰스장군
  의 MMX미사일부대가 공격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집무실 벽에는 수많은 디스  플레이 스크린
  이 설치되어 있어서 유러너스 제국군대의 움직임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알폰스장군!"
  누네즈는 알폰스장군을 직접 불렀다.
  "옛서! 마더!"
  알폰스장군이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했다.
  "공격 개시 시간을 단축하라!"
  "옛서!"
  알폰스장군의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도 거인 마더 살로메가
  비치고 있었다.
  "5분 후에 공격하라!"
  "옛서!"
  알폰스장군은 마더 살로메의  지시를 받자 식은땀이  흘렀
  다. 알폰스장군이 작전회의를 하는 모습까지 마더 살로메는
  감시를 하고 있었다.
  "공격시간을 변경한다!"
  알폰스장군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마더  살로메의
  명령은 철저하게 복종해야 했다.
  "5분 후 일제히 미사일을 발사하라!"
  알폰스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부대장들은 긴박하게  움직
  이기 시작했다. 5분이면  MMX 미사일을 발사하는데  너무나
  짧다. 물론 모든 것은  기계가 하지만 수많은 부속과  자동
  제어장치의 이상유무를 체크할 수 없는 것이다. MMX 미사일
  은 핵탄두를 장착하기 때문에 발사하기 전에 자동으로 이상
  유무를 체크하고 있었다.
  그러나 발사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아 자동 검사  기능을
  중지시켰다.
  "발사 1분전!"
  MMX 미사일 발사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누네즈는 안락
  의자에 등을 기대고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지그시  응시했
  다.
  "워시번!"
  "옛서! 마더!"
  누네즈가 워시번 경호대장을 부르자 즉시 디스  플레이 스
  크린에 경호대장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안드로이드들을 침투시켰나?"
  "지금 침투 중에 있습니다."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 띄워라!"
  "옛서!"
  워시번 경호대장이 대답을 마치자 MMX  미사일부대의 디스
  플레이 스크린 옆에 국경선으로 달려가고 있는 30명의 여자
  안드로이드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
  어깨에는 휴대용 핵탄두 미사일을 메고 있었고 손에는 중성
  자포를 들고 있었다.
  "여기서 각자 흩어진다!"
  30명의 안드로이드들의 지휘를 맡고 있는 안드로이드가 명
  령을 내렸다.
  "각자 사피언스 그라운드에 침투하여 가장 많은 인명을 살
  상하라! 이상! 즉시 행동 개시하라!"
  안드로이드의 명령에 다른 안드로이드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장갑기병보다 더욱 막강한 화력을 갖추
  고 있었고 2km까지 저공 비행을 할 수도  있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경계망을 뚫고 침투한 뒤에 그들을 혼란에 빠트
  릴 수 있었다.
  "미사일 발사 준비 완료!"
  "발사!"
  "발사!"
  같은 시간 알폰스장군의 MMX 미사일이  지하기지에서 일제
  히 발사되었다. 지하  포부대에서 발사되기 때문에  폭음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MMX  미사일은 발사되자 마자  무서운
  속도로 흙을 파헤치며 지층을  뚫고 날아가고 있었다.  MMX
  미사일에 부착되어 있는 컴퓨터가 전방의  바위나 암석층을
  찾아내어 비켜가기 때문에 미사일은 부드러운 흙만 뚫고 전
  진하고 있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총사령부가  설치되어 있는 지하  벙
  커. 그 곳에는 지금 몰루카장군과 예멘 의장이 디스 플레이
  스크린으로 MMX 미사일이 시모프시를 향해 날아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오슝은 오늘로써 운명을 달리하겠군."
  예멘 의장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몰루카장군이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가오슝장군은 유러
  너스 제국의 MMX 미사일 공격을 받아 전멸을 하게  될 것이
  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군대뿐이 아니라 그의 뒤를 받쳐주
  고 있는 수억의 차이나족도 MMX 미사일에 장착되어 있는 핵
  탄두로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예멘  의장은 그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지구에는 인간들
  이 너무나 많았다. 봉선화 혜성의 침입으로 수십 억의 지구
  인들이 죽었으나 그래도 지구에는 인간들이 넘치고 있었다.
  가히 종(種)의 폭발적인 진화라고 할만 했다.
  진화의 법칙이 깨어진 것이다. 인간들은 너무나 많은 종족
  들을 번식시켜 왔기 때문에 지구가 황폐해졌다.  이제는 인
  간들을 솎아내고 추려야 했다. 불필요한 인간들을 제거하고
  지구가 필요한 적절한 인간만을 남겨야 하는 것이다.
  예멘 의장은 유러너스 제국과의 전쟁을 이용해  지구의 인
  간들을 멸종시키려는 것이다.
  "유러너스 제국의 과학은 참으로 훌륭해!"
  예멘 의장은 유러너스 제국의 MMX 미사일에 감탄하고 있었
  다. 그것은 몰루카장군도 마찬가지였다. 미사일이  땅 속에
  서 날아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피언스 그라운드는 MMX 미사일까지 감시할 수  있는 감지
  장치를 개발한 것이다. 지진계를 이용한 것이었다.
  "5분 후면 미사일이 시모프시에 도착합니다."
  "긴장된 순간이로군! 가오슝은 무엇을 하고 있나?"
  "불러보겠습니다."
  몰루카장군이 버튼을 누르자 시모프시의 가오슝장군  벙커
  가 보였다. 가오슝장군은 차이나족 참모들과 심각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첩보에 의하면 우리 전방에 유러너스 제국의  MMX 미사일
  부대가 포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MMX 미사일부대가 뭐야?"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입니다."
  "상관없어! 우리에게는 핵탄두  미사일을 격파할 수  있는
  방어막이 있잖아?"
  "MMX 미사일은 지하로 날아온다고 합니다."
  "뭐라구?"
  "어뢰처럼 땅속으로 날아오는  핵탄두 미사일이라고  합니
  다."
  참모의 보고에 가오슝장군은  자신도 땅 밑을  내려다보았
  다. 어쩐지 땅이 흔들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 앞에는 비정규군인 병원부대가 있지 않나?"
  "그 부대가 위장부대라는 첩보가 방금 들어왔습니다."
  "뭐야? 그런 보고를 지금 하면 어쩌자는 거야?"
  가오슝장군이 버럭 화를 냈다. 핵탄두를 장착한  MMX 미사
  일의 공격을 받으면 가오슝이 거느리는  차이나군은 쑥밭이
  될 것이다.
  "전원 전투준비!"
  가오슝장군은 그 생각을 하자 선제공격을 해야하겠다고 생
  각했다. 유러너스 제국군대가 MMX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공격을 해야만 그들의 미사일 공격을 방지하는 것이다.
  "예?"
  참모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전폭기는 즉시 이륙하여  유러너스 제국군의  병원부대를
  공격하라!"
  "장군님!"
  "무엇을 하고 있나? 시간이 없다! 전투기는 모조리 이륙하
  라!"
  "옛서!"
  가오슝장군의 명령에 사피언스 그라운드 차이나군의  중성
  자빔으로 무장한 전투기들이 일제히 이륙준비에 들어갔다.
  "지대지 미사일은 즉시 병원부대를 목표물로  잡고 발사하
  라! 모조리 발사하라!"
  작전도 계획도 없었다. 병원부대로 위장한  유러너스 제국
  군대의 미사일부대를 선제 공격해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다.
  가오슝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가오슝장군 휘하의  전투기
  1600대가 순식간에 일제히 이륙했다. 가오슝 군단의 전투기
  들은 최신예 전투기라 활주로조차 없이 이륙하고 착륙했다.
  이어서 지대지(地對地) 미사일도 일제히 발사되었다. 가오
  슝 군단의 지대지 미사일부대는 미사일만 5만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과거의 미사일들과 달리 47세기의 미사일들은 최소
  한으로 축소되어 어른 팔뚝만하였다.
  지대지 미사일은 1차로 1천기가 발사되었다. 1천기의 미사
  일이 발사되자 하늘을 까맣게 메우고 유러너스 제국으로 날
  아갔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에서 지대지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요
  격용 미사일 발사 준비!"
  유러너스 제국의 감시망에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미사일이
  떠오르자 방공부대가 일제히 활동에 들어갔다.
  "요격용 미사일 발사 준비 완료!"
  "미사일 발사!"
  "미사일 발사!"
  "발사 완료!"
  유러너스 제국의 미사일  방공부대는 숨가쁘게  움직였다.
  그들이 요격용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과 동시에 땅속을 달리
  던 MMX 미사일이 가오슝 군단이 진을 치고 있는 시모프시에
  이르렀다.
  "땅이 흔들린다!"
  "MMX 미사일이 폭발한다!"
  가오슝 군단의 주둔하고 있는 언덕이 지진이 일어난 듯 진
  동을 하기 시작하자 병사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땅은 점점
  크게 진동을 하더니 갑자기 요란한 폭음을 일으키면서 흙더
  미와 불기둥이 수km씩 치솟았다.
  "미사일이다!"
  병사들은 깜짝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전원 퇴각하라!"
  가오슝장군은 흙더미와 불기둥이 치솟기 시작하자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린  상태였다. 핵탄두가
  폭발하면서 버섯구름이 하늘로 치솟고 수만  명의 병사들이
  찰나지간에 9천도가 넘는 불길에 흔적도 없이 타버렸다.
  대재앙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대재앙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땅에서 솟
  구친 MMX  미사일은 잇달아  폭발하면서 핵탄두가  터졌다.
  MMX 미사일이 시차를 두고 터지기 시작하자  시모프시 일대
  는 완전히 쑥밭이 되었다. 마치 원시지구가  탄생할 때처럼
  무시무시한 불기둥이 치솟고 검은 구름이 태양을 가려 캄캄
  한 암흑 속으로 돌변했다. 게다가 MMX 미사일이 폭발하면서
  가오슝 군단이 보유하고 있던 핵탄두들도  연쇄적으로 터졌
  다.
  "제기랄! 이제 우리 차이나족은 완전히 멸종할 거야!"
  가오슝장군은 분통을 터뜨렸다.
  핵탄두 수백 개가 터졌는데 시모프시 일대가  멀쩡할 수가
  없었다. 가오슝장군은 참모들과 함께 핵폭탄 속에서도 파괴
  되지 않는 특수 방호용 에어카를 타고 시모프시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시모프시 일대는 차마 눈뜨고 볼  수없을 정도의
  아비규환으로 돌변해 있었다.
  47세기의 전쟁은 승리와 패배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그
  와 함께 전쟁에 패배하면 병사들이 전멸을  한다. 옛날처럼
  부상자가 생기지도 않고  건물이 무너지지도 않는다.  물론
  건물이 무너지기는 하지만 건물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
  리는 것이다.
  "만세!"
  "가오슝 군단이 쑥밭이 되었다!"
  알폰스장군의 MMX 미사일부대의  병사들은 가오슝  군단이
  흔적도 없이 불길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지
  르고 있었다.
  "알폰스장군!"
  누네즈가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들여다보다가 말고 알폰스
  장군을 호출했다.
  "옛서 마더!"
  이내 알폰스장군이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그대는 우리 유러너스 제국의 영웅이다!"
  누네즈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MMX 미사일을 계속 발사하여 차이나족을  멸종시켜라! 가
  오슝 군단이 괴멸했으니 차이나족을  보호해 줄 군대가  없
  다!"
  "차이나족은 인구가  수억이나 됩니다.  모두 멸종시킵니
  까?"
  "그렇다! 멸종이다!"
  "알겠습니다! 멸종시키겠습니다!"
  알폰스장군은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마더  살로메의 명
  령은 민간인인 차이나족까지 완전히 청소해  버리라는 것이
  었다. 비정한 명령이었다.
  이때 가오슝 군단의 전투기들은 1600대가 이륙하여 알폰스
  장군의 MMX 미사일부대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 날지 않았을 때  유러너스 제국군의 전투기  3000대와
  맞부딪쳤다. 가오슝 군단이 파괴되지 않았다면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나 가오슝 군단이 보유하고 있는 3만기의 지
  대공 미사일을 발사하면 유러너스 제국군의  전투기쯤은 아
  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괴멸되어 있었다.
  "적이 온다!"
  "적은 우리의 두 배다!"
  "당황하지 말고 싸워라!"
  "사령부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 상황에서 지원도  받지
  않고 어떻게 전투를 하는가?"
  전투기 조종사들은 사기를 잃고 우왕좌왕했다. 그 틈을 이
  용해 유러너스 제국군의 전투기들이 광자포를 쏘아댔다. 사
  피언스 그라운드의 전투기들은 광자포가 번쩍일  때마다 불
  꽃을 일으키며 허공에서 추락했다.
  그것은 지대지 미사일도 마찬가지였다. 가오슝장군의 명령
  에 의해 발사된 1천기의 지대지 미사일들은  대부분 유러너
  스 제국군대의 요격 미사일에 격추되어 효과적인 공격을 하
  지 못했다. 겨우 10여기의 미사일만 MMX 미사일부대에 떨어
  져 미미한 손상을 입혔을 뿐이었다.
  시모프시에서 80km 떨어진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네스고원
  은 차이나족이 밀집해 있었다. 이들은 동족의  군대가 유러
  너스 제국군에 대파되는 것을 비통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
  었다. 80km 전방이기는 했으나 핵탄두가 터지고  가오슝 군
  단이 철저하게 파괴되는 것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우리는 이것으로 끝장이야!"
  차이나족은 흐느껴 울었다. 그러나 그들이 흐느껴 있을 시
  간도 없었다. 가오슝 군단을  파괴한 MMX 미사일이  그들이
  있는 네스고원까지 땅밑으로 날아와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
  다.
       제 55 장 돌아온 클론
  태양계의 소행성만큼이나 거대한 초광속 우주함정  뉴엘리
  사호의  브리지에는 함장이자 클론족의  족장인 한 여자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콘솔(CONSOL)에는 성간항로지도(星間航路地圖)가 펼쳐져 있
  었고 광각(廣角)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는  광대무변한 우주
  의 항성과 행성, 그리고 무수한 유성들이  아름답게 명멸하
  고 있었다.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녀는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 명멸하는 우주의  모습을 살
  피면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이름은 여랑(女浪).
  마지막 안드로이드 엘리사의 뱃속에서 태어나 6백년만에 지
  구를 다시 찾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태어났을 때 이미 아이큐 800의  초능력자였다. 그
  러나 태어나자 마자 어머니 엘리사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
  게 되었고 피눈물을 흘리며 안드로이드 사냥꾼 헐버트를 레
  이저건으로 살해한 뒤 깊은 산 속으로 달아났다.
  '나는 반드시 우리 안드로이드족의 복수를 하겠어 '
  그녀는 산 속에 숨어서 지구인들에게 복수를  하리라고 맹
  세를 했다. 그녀는 태어날  때 이미 생각을 했고  성인처럼
  활동을 했다. 그러나 당장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녀
  는 아이큐가 800이나 되는 초능력자였으나 지구인들이 안드
  로이드 살상용으로  제작한 레이저건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최대한으로 안드로이드 사냥꾼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 했다. 그녀가 안드로이드 사냥꾼에게 발각되어 살해된
  다면 안드로이드는 완전히 멸종을 하는 것이다.
  그녀는 당시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안드로이드였다.
  지금도 지구에는 안드로이드가 더러 있지만  명령에 움직이
  는 기계에 지나지 않았고 번식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의 안드로이드들은 남자 안드로이드들과 관계를  하여 번식
  까지 했었다. 그리하여  지구인들은 인간과 똑같다고  하여
  휴먼로이드라고도 불렀던 것이다.
  그녀는 가능한 깊이 숨었다. 봉선화 혜성이 침입하기 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아프리카를 탈출한 뒤 서아시
  아를 횡단하여 부여족의 근거지인 만주에 이르렀다.
  만주는 과학문명이 가장 발달한 부여족으로  안드로이드들
  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으나 빠른 시일 내에 유토피아
  를 건설했다. 그녀는 한 노파의 움막에서 10년을 살았다.
  그녀는 처음에 만주의 오지인 깊은 숲에 숨어살았다. 그녀
  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어머니 엘리사가 남겨 준 팜탑 컴퓨터
  한 대였다. 그녀는 낮에는 숨어서 팜탑 컴퓨터에 입력한 방
  대한 안드로이드 역사를 공부했고 밤에는  숲을 돌아다니며
  짐승들을 잡아먹었다. 옷을 구하지 못해 나뭇잎으로 중요한
  부위만 가린 채 그녀는 숲속에서 5년을 살았다.
  '이제 인간들 세상으로 나가야 돼. 우리  안드로이드가 원
  하는 것은 인간들과 같이 사는 거야 '
  안드로이드의 희망은 그것뿐이었다. 인류와 공생공존이 최
  대의 목표였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것을 거부했고 안드로이
  드와 전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랑은 짐승들과 어울려 살다가 인간이 있는  곳을 찾기로
  했다. 그녀의 나이가 다섯 살 때였다. 그러나 그때 이미 그
  녀는 여자로서 완전히 성숙해 있었다.
  여랑이 깊은 숲에서 나와 인간이 잇는 곳을 찾아가다가 아
  름다운 계곡을 발견했다. 미타호(美陀湖)라는 호수의  상류
  였다. 계곡에서는 폭포가 하얀 물줄기를 이루고  호수로 쏟
  아지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세외선경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곳이 마치 그 말처럼 아름답다...'
  여랑은 호수와 폭포를 보고 감탄했다. 그리고 그  옆에 한
  움막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랑은 천천히 움막 앞으로 걸어갔다. 움막 앞에는 기화이
  초가 만발해 있었고 움막 뒤의 울창한 숲에서는  새들이 한
  가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여랑은 움막 주위에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신비한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랑은 그것을 알기 위해 일부러 움막 앞에  엎드렸다. 그
  녀는 움막의 주인이 나올 때까지 굶주려 쓰러진  것처럼 숨
  도 쉬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의 얼굴 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기이한 향기가  뻗쳐왔다. 여랑은 눈을  뜨고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잠자코 있었
  다. 그는 여랑을 안아다가 움막의 침상에 눕혔다. 침상이라
  고 해야 산에서 주워온 널찍한 돌에 마른풀을  깔아놓은 것
  이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군 기는 넘치고 왕성해 굶주리고 있지
  도 않고 나보다 더 건강한  것을 보니 사냥꾼들에게  숨어
  다니는 안드로이드야 "
  목소리가 부드러운 여자였다. 그녀는 여랑의 손을 잡아 보
  더니 단숨에 여랑의 정체를 파악했다.
  '이 여자가 내 정체를 알았으니 살려둘 수가 없어!'
  여랑은 자신의 정체가 발각 나자 그 여자를 살해하기 위해
  목을 움켜쥐려고 전광석화처럼 손을 뻗었다. 그러나 여랑이
  손을 뻗치자 그 여자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인 듯 안
  개처럼 사라졌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여랑은 깜짝 놀랐다. 그러자  움막 밖에서 호방하게  웃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여랑은 재빨리 움막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러자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움막 앞에 지팡
  이를 짚고 서 있었다. 얼굴은 중년부인인 듯했으나 하얀 머
  리카락이 무릎까지 치렁치렁 내려와 있었다.
  "아가야?"
  여인이 여랑을 불렀다. 여인의 얼굴에는  신비스러운 미소
  가 감돌고 있었다.
  "네가 마지막 안드로이드 엘리사의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
  구나."
  "당신은 누구요?"
  "어떠냐? 안드로이드 사냥꾼에게 쫓겨다니는 것도  지겨울
  텐데 나와 같이 물고기나 잡으면서 살겠느냐?"
  "나는 할 일이 있소."
  "네 할 일이 무엇이냐?"
  "먼저 내 정체를 알고 있는 당신을 죽인 뒤에 우리 안드로
  이드를 부활시킬 것이오."
  "호호....!"
  그러자 여인이 파안대소를 했다. 여인의  웃음소리를 얼굴
  을 찌푸리며 듣고 있던  여랑은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머리가 뻐개질 것처럼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그만!"
  여랑은 귀를 틀어막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예끼 고연 놈!"
  여인이 지팡이로 여랑의 머리를  딱 하고 때렸다.  여랑은
  지팡이에 맞은 머리가 아픈 것보다도 30m나  떨어진 여인이
  어느새 자신에게 다가와 지팡이로  머리를 때렸는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실패작이야 "
  여인이 여랑을 주의 깊게 살피더니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
  었다. 여인이 마땅치 않다는 기색이었다.
  "인간의 못된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 "
  여인이 다시 혀를 찼다. 여랑은 여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기야 인간이 만든 제품이니 인간을 닮는 것은
  당연하지 "
  여인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랑은 여인을  멀뚱히 쳐다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인은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어떠냐? 나와 같이 살겠느냐?"
  여인이 다시 여랑을 쏘아보았다. 그 말을 할 때 여인의 안
  광은 여랑의 동자를 꿰뚫을 듯이 날카로웠다.  여랑은 공연
  히 전신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당신은 누구죠?"
  여랑은 여인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여인이 그에게 적의
  가 없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장백성모."
  여인이 낮게 말했다. 잠시 여인의 눈에 유현한  빛이 감돌
  았다.
  여랑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녀는  장백성모(長白聖母)라
  는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이다.
  장백성모는 고대국가 발해국(渤海國)의 전설에 나오는  여
  자였다. 발해 전설 중 홍라녀(紅라女)는 무예의  달인이 있
  었는데 그녀는 여자의 몸으로 발해국을 거란족이 침입해 오
  자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하여 후세 사람들의 추모를 받고
  있었다. 그녀에게 장백산(長白山: 백두산)에서 무예를 가르
  쳐준 사람이 장백산에 사는 장배성모라고  하여 발해인들이
  나 부여족의 후손들은 장백성모를 무예의  시조라고까지 부
  르고 있었다.
  그러나 장백성모는 전설의 여인일뿐이었다. 여랑이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장백성모가 뭘하는 사람이죠?"
  "그런 것은 알 필요 없다. 너를 만난 기념으로  너에게 선
  도(선도)를 먹게 해주마."
  장백성모가 말을 마치자 눈 깜짝 할 사이에 여랑에게 날아
  와 여랑을 낚아채서 옆구리에 끼었다.
  아....
  여랑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았다.  솔개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여랑을 옆구리에 낀  장백성모가 어느 새  호수로
  날아가 물위를 걷고 있었다.
  여랑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수는 장백성모가  물위를 걷
  고 있는데도 물방울 하나 튀지 않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
  다. 장백성모는 물위를  미끄러지듯이 넓은 호수를  건너고
  있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야....'
  여랑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호수를
  건넌 장백성모는 차앗 하는 소리와 함께 숲으로  날아 들어
  갔다. 그러나 그녀의 발은 한순간도 땅을 디디지 않았고 숲
  으로 들어선 뒤에는 새처럼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날아
  가고 있었다.
  "다왔다."
  장백성모가 여랑을 내려놓은 것은 도원(桃苑)이었다. 커다
  란 복숭아나무에 탐스러운 복숭아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것이 선도란다."
  장백성모가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
  "선도가 뭐죠?"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라는 뜻이란다."
  "그런 복숭아가 정말 있나요?"
  "네가 먹어 보면 안다."
  장백성모가 복숭아나무 가지에서 농익은 복숭아 하나를 따
  서 여랑에게 주었다. 여랑은 장백성모가 주는  복숭아를 받
  아서 한 입 깨물었다.  그러자 달고 청량한 향기가  입안에
  가득 풍기면서 복숭아 액이 목으로 흘러 넘어갔다.
  "어떠냐?"
  "달고 향기로워요."
  "이것을 너에게 매일 같이 먹게 해주겠다."
  "왜 저에게 그런 일을 하는 거죠?"
  "너에게 살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당신은 신선인가요?"
  "글세...."
  장백성모가 희미하게 웃었다.
  "제가 여기서 살면 저에게도 물위를 걷는 법을  가르쳐 주
  시겠어요?"
  "그럼. 물위를 걷는 것뿐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을 가르
  쳐주지...."
  "우리도 인간들보다 오래 살아요."
  "너는 인간과 지구밖에 몰라. 이제는 우주를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니겠니?"
  "우주라고요? 우주는 과학으로 정복할 수  있어요. 언젠가
  는 우리 안드로이드들의 힘으로 정복하게 될  거예요. 우주
  를 정복하면 인간들과 싸울 필요도 없겠죠."
  "그래. 내가 그 우주를 정복하는 길을 가르쳐 주마."
  장백성모는 신비한 여인이었다.
  "어떻게요? 여기도 과학이 있어요?"
  "여기엔 물질문명을 숭배하는 과학은 없다. 그것은 서구적
  관점이다. 서구의 과학문명은 결국 지구를 파괴하게  될 것
  이다. 우리는 그것을 막아야 한다."
  "서구적 관점이요?"
  "옛날에 기독교라는 종교 중심의 문화가 서구적 관점이다.
  우리의 동양적 관점은 정신과 기(氣)에 있다."
  "기가 무엇이죠?"
  "기는 곧 에너지다."
  여랑은 그날부터 장백성모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녀는
  아이큐가 800이나 되는 초능력자였다. 장백성모가 가르쳐주
  는 동양의 정신을 빠르게 이해했고, 기로  물질적인 과학을
  능가하는 에너지를 일으키게 되었다.
  "우리가 최고로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순간이동예요. 기로
  써 순간이동도 가능하게 할 수 있나요."
  "그렇다. 우리의 몸을  과학에서 말하는 정보로  바꾼다면
  천문학적인 용량을 전송할 수있는 전송 시스템이 있어야 한
  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전세계에 있는
  모든 책의 정보를 다 합쳐도  우리 몸이 갖고 있는  정보의
  삼분의 일이 안된다. 그런데 그 많은 정보를 어떻게 전송할
  수 있겠느냐? 또 영혼을 육체에서 어떻게  분리하여 전송한
  다는 말이냐? 그러나 기로서는 가능하다. 물위를 걷거나 나
  뭇가지를 스치듯이 밟고 나는 것도 물질적인 과학으로는 에
  너지 즉 막강한 동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양의 정신은
  기로써 동력을 바꾸어 할 수있는 것이다...."
  "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여랑은 아이큐가 800이 되었으나 장맥성모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우리 몸에  벌레에 물린 상처가 있다고  하자.
  물질에 의한 과학으로는 상처에 약을 바른다.  다시 말하면
  지혈을 시키고 상처가 썩지  않도록 소염제를 투여하고  새
  살이 돋아나도록 항생제를 투여하는 것이다. 상처가  클 때
  는 상처로 인해 고통이 생기니까 진통제까지  투여한다. 그
  러나 동양에서는 그런 물질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우리
  인체의 기로써 상처가 생긴 세포가 죽지 않도록  세포를 죽
  이는 세균을 몰아내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기를 이
  용해 면역균을 강하게 만들어 치료하는 것이다 "
  장맥성모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랑은 장백성모의 말을 듣고 비로소 인간들과 싸울 필요없
  이 저 머나먼 우주에 있는 한 행성에  안드로이드의 제국을
  건설하기로 결심했다.
  여랑은 장백성모와 함께 10년을 지냈다.  장백성모와 함께
  지낸 10년중 8년은 장백성모에게 기를 이용하는  방법을 배
  웠고 2년은 우주여행 준비를 했다.
  10년 후 여랑은 마침내  유러너스 제국의 우주선 한  척을
  탈취했다. 그리고 6개월의 우주여행  준비를 한 뒤  기나긴
  우주여행에 나섰다. 그것은 1백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그
  녀는 단신으로 우주선을 조종하며 한 편으로는 우주의 수많
  은 행성들을 탐사하고 한 편으로는 동양정신에 대해서 깊은
  연구를 했다. 우주선 안에서 그녀의 식량이 될 선도 복숭아
  나무도 재배했다.
  지구에 있는 수많은 식물들은  어떤 것은 씨앗으로,  어떤
  것은 유전자로 우주선에 실었다. 유전자를 복제하기 위해서
  였다. 동물은 대부분 유전자 상태로 우주선에 실었다.
  여랑이 1백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우주여행을 한 것은
  특별히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1백년 동안 안드
  로이드들이 살아갈 수있는 가장 적합한 천체를 찾아 방랑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고독한 여행이었다. 여랑은 그 기나긴 여행
  에서 고독 때문에 수많은 날을 울었다. 캄캄한 성간(星間),
  성간을 빛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는 소행성집단,  오렌지 빛
  으로 혹은 핏빛으로 반짝이는 변광성(便光星)들,  생명체가
  살지 않는 천체에서 간간이 일어나는 마른번개와  천둥, 암
  흑 성운(星雲), 푸른 성운,  붉은 성운, 새로 태어나는  별
  (新星)과 사라지는 별, 천체들의 집합체인 은하군단(銀河軍
  團), 그리고 활동은하와 블랙홀
  그 광대무변한 우주를 여행하면서 여랑은 고독  때문에 울
  었다.
  그러나 1백년의 기나긴 여정 끝에 여랑은 마침내 안드로이
  드가 살아가기 적합한  천체를 발견했던 것이다.  지구에서
  21 광년(光年: 빛이 21년 동안 갈 수있는 거리)이나 떨어진
  붉은 성운이 있는 곳이었다.
  여랑은 그  행성을 장백성모성(長白聖母星)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장백성모성은 지구의 두 배나 되는  크기였고 자전
  (自轉)은 56시간, 공전(空轉)은 286일이었다. 하루가  56시
  간, 1년이 286일인 것이다.
  해양은 장백성모성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대륙은  세
  개로 나뉘어 있었다. 대륙이 탄생된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
  으로 식물이 진화했으나 지구의 원시식물  수준이었고 동물
  도 고등동물은 없었다.
  '여기가 이제 나와 나의 후손들이 살 땅이야 '
  여랑은 장백성모성에 안드로이드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
  다. 그녀는 먼저 자신의 세포와 유전자를 복제하여 클론(복
  제생명)을 창조했다. 이어서 클론에서 다시  클론을 복제하
  여 안드로이드 인구를 넓혀 나갔다. 그리고 그 클론들과 함
  께 장백성모성에 안드로이드 제국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2백년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녀에게서 복제된 클론들은 인
  간들과 다름없이 생각하고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복제되었기 때문에  안드로이드 클론들은  여자들뿐이었다.
  안드로이드의 인구는 점점 늘어갔으나 여자들뿐이어서 여랑
  은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여자 클론들의  성(性)을 남자로
  바꾸려고 무수히 노력했으나 성을 결정하는  염색체를 바꾸
  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시 2백년이 흘러갔다.
  장백성모성은 여자 안드로이드들로  가득차 졌다.  여랑은
  남자 안드로이드들을 만들기 위해 지구에  돌아가서 남자들
  과 안드로이드 클론을  결합시키기로 했다. 그녀는  복제된
  안드로이드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헬렌이라는  안드로이드
  클론을 선발하여 그녀를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초광속 우주선 엘리사호를
  건조하여 지구로 파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사호는 10년이라는 기나긴 여정 끝에  지구 가
  까이에서 활동은하를 만나 블랙홀로 사라지는  비운을 맞이
  했다. 다행히 은하탐사선이  헬렌을 지구에 데려다  주는데
  성공하여 헬렌이 이리노 퍼그스라는 사내를 사귀고 있었다.
  여랑이 초광속 우주선 뉴엘리사호를 타고 지구를 향해 항진
  하고 있는 것은 헬렌이 이리노 퍼그스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초광속 우주선 뉴엘리사호는 태양계로
  진입한다.
  "각 함대는 들어라!"
  여랑은 브리지의 콘솔 앞에 앉아서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보면서 각 함대에 명령을 내렸다. 뉴엘리사호는  만약의 사
  태를 대비하여 10여 척의 함대와 500척의 우주  전투기, 그
  리고 은하탐사선 13척까지 거느리고 지구로 향하고 있었다.
  천장의 광각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는 초광속 항공모함 뉴엘
  리사호의 전후좌우 상하에서 수많은 전함과  전투기들이 호
  위를 하고 잇는 선단(船團)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하루만 더 있으면 태양계에  도착한다. 척후
  함은 태양계의 행성에 대해서 경계를  강화하고 은하탐사선
  은 활동은하를 찾도록 하라!"
  여랑은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통해 명령을  내리면서 장백
  성모를 잠깐 생각했다.  그녀가 지금도 살아있는지  궁금했
  다.
  "제인 선장!"
  "옛서!"
  "헬렌을 추적할 수 잇는가?"
  "태양계에 가까이 도착했으니 추적해 보겠습니다."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서 은하탐사선 제1호의  제인 선장이
  대답을 했다.
  "좋다! 추적하라!"
  "옛서!"
  은하탐사선 제1호의 선장 제인이 안드로이드  클론 헬렌을
  추적한지 30분도 못되어 헬렌의 모습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헬렌은 지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듯 사막을 걸어가는 헬렌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랑은 깜짝 놀라서 헬렌을 쳐다보았다. 디스 플레이 스크
  린을 들여다보고 있던 뉴엘리사호를 비롯해  수많은 안드로
  이드 병사들도 뜨거운 사막에서 죽어가고 있는 헬렌을 보고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기가 지구인가?"
  여랑은 제인 선장을 향해 물었다.
  "아닙니다. 태양계에 있는 행성의 위성입니다."
  제인 선장이 비통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어떤 면에서 안드
  로이드 클론 헬렌은 그들의 희망이었다. 그들은 복제생명에
  서 자연생명으로 종족을 번식시키는 것이  최대의 희망이었
  던 것이다.
  "헬렌을 분석하라!"
  "옛서!"
  안드로이드 클론 헬렌에게는 마이크로 칩이 삽입되어 있었
  다. 그것은 헬렌이 어디에 있던지 클론들이  위치를 확인하
  고 헬렌이 위기에 빠져 있을 때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그러
  나 장백성모성에서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헬렌의 위치를 확
  인할 수도 없었고 헬렌을 도와줄 수도 없었다.
  "헬렌 분석 완료!"
  이내 제인 선장이 디스 플레이 스크린으로 보고를 했다.
  "상태가 어떤가?"
  "헬렌은 현재 극심한 탈수 형태입니다. 헬렌이  있는 사막
  은 복사열이 89도나  되는 불볕입니다. 사막에는  생명체가
  하나도 살아있지 않습니다. 헬렌 혼자 살아있는  것 같습니
  다."
  "사막을 분석하라!"
  "옛서!"
  제인 선장이 헬렌이 서 있는 사막을 분석하는 동안 여랑은
  헬렌을 비통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헬렌은 그녀의 분신이
  었다. 안드로이드 클론들이 모두 그녀의 분신이나 다름없었
  으나 헬렌은 그녀에게서 직접 복제되었던 것이다.
  "사막 분석 완료!"
  "보고하라!"
  "행성의 위성은 보호막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보호막 안에
  태양이 두 개가 있고 그 태양에서 쏟아져 나온 열이 위성을
  불볕의 사막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보호막이라니?"
  "헬렌이 있는 위성에 고도의 문명을 갖고 있는 외계인들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헬렌을 구출해야 한다. 현재의 속도로 헬렌에게 접근하려
  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는가?"
  "현재의 속도로 8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좋다! 전 함대에 명령한다!  전 함대는 비상전투  준비를
  하고 해도(海圖)의 87지점을 향해 전진한다! 전 우주전투기
  들도 최선을 다해 초계 임무를 수행하라!"
  "옛서!"
  전 함대와 우주전투기들에서 일제히 대답이 들려왔다.
       제 56 장 신들의 전쟁
  장애란은 계속 걸었다. 이제 니리드 위성은 완전히 불볕으
  로 변해 있었다. 땅에서는  숨이 컥컥 막히는 지열이  솟고
  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공기가 건조했다.  그녀의 얼굴
  에서는 이제 땀 한 방울 흐르지 않고 있었다.  울창하던 숲
  은 완전히 메말라 있었다. 건조한 숲은 조그만 마찰에도 불
  이 일어나 순식간에 온 숲으로 불이 번졌다. 곳곳에서 일어
  나는 이러한 불로 사막은 더 한층 더웠다.
  '이것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재앙이야....'
  처음엔 물의 재앙이었다. 물의 재앙으로  머나먼 지구에서
  올라온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주민들과 군인들 60만 명이 죽
  음을 당했다. 물의 재앙에도 살아남은 몇몇  병사들은 불볕
  으로 죽어갔다. 식량도 없고  물도 없었다. 오로지  그들의
  머리 위에는 두 개의 태양이  떠 있어서 타는 듯한  불볕을
  쏟아 붓고 있었다.
  "목, 목이 마르다...."
  장애란은 숨이 막혀 왔다.  그녀의 초능력으로도 더  이상
  걸음을 떼어놓기가 어려웠다. 발이 천근처럼 무거워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장애란은 계속 걷고 있었다. 그것
  은 오로지 이리노중위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한 가지  신념
  때문이었다.
  "이리노중위를 단 한 번만 만나고 죽어도 소원이
  없겠어...."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블랙버드 애브너소령의 장례식에서 처음 만났는데  마치 오
  랫동안 사귀어 온 사람처럼 그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그녀는 무엇에 사로잡힌 것처럼 이리노중위를 쏘아보았다.
  이리노중위도 간간이 그녀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이리노
  중위의 눈빛에서 그녀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어쩌면 숙명과 같은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첩보사령관 바르시크대령의  명령을
  받고 위장 잠입해야  하는 곳이 하필이면  이리노중위였다.
  장애란은 그 명령이 너무나 좋았다.
  마침내 장애란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이리노중위의 하녀
  로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비록 임무중의 하나이기는
  했지만 이리노중위와 육체의 사랑까지 나누었다.
  그때도 그녀는 이리노중위의 육체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언젠가, 마치 오래 전에도 그와 함께 살을 섞은 것 같은 기
  분이었다. 그리고 이따금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을  꾸었었
  다. 꿈에서 깨어나면 금방 그 꿈을 잊어버렸지만 그 사내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오르곤 했었다.
  "나는 그를 너무나 사랑해."
  장애란은 이리노중위를 생각하자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사막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
  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막을 걸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
  녀는 지쳤다.
  그녀는 이제 한 걸음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지열이 아지랑이처럼 솟고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비틀대고
  걸으며 흰 능선을 쳐다보았다. 저 멀리  모래언덕이 알몸의
  여자가 누운 것 같았다. 완만한 곡선이었다. 저  언덕을 넘
  어가야 했다. 언덕을  넘어가면 오아시스가 있을지도  모른
  다. 그러나 그는 걸음을 떼어놓기가 어려울 정도로 지쳐 있
  었다.
  목이 타는 갈증과 굶주림으로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제 죽을 거야....'
  이리노중위는 열에 들떠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불볕에
  살갗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태양의 직사열과  땅에서 솟는
  복사열로 숨이 막혔다.
  살로메 위성에는 이제 살아있는 생명체가 없었다.
  곤충족의 하란공주가 죽은 것이 언제인지도 알 수 없었다.
  요정처럼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의 곤충족은  사튀로스족
  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물과 불의 재앙으로 모두 죽었다. 사튀로스
  족을 비롯해 살로메 위성에 존재하던 모든  동물들, 공룡과
  사슴, 거대한 잠자리들까지도 물에 떠내려가고 불볕으로 죽
  어서 한낱 흙먼지가 되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지구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리노중위는 지구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동생...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장애란을 생각
  했다. 장애란을 생각하자 이리노중위는 가슴이 타는  것 같
  았다.
  그녀를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다. 그녀의  보석처럼 아름
  다운, 눈처럼 흰 살결, 탄력 있는 몸...그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갖고 싶었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장애란은 수십억km나 떨어진 지구에 있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날 수없을 것이다.
  이리노중위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여전히  두 개
  의 태양이 떠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태양은  점점 뜨거워지
  고 있는 것 같았다. 지옥의 불볕이었다.
  "애란..."
  이리노중위는 입속으로 장애란을  불렀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애란, 사랑해..."
  이리노중위는 장애란의 이름을 부르자 기운이 솟는  것 같
  았다. 마치 죽을 때까지 계속 걸으면 장애란을 만날  수 있
  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는 다시 지친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그가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흙먼지가 풀썩거리고 일어났다.
  아....
  그때였다. 이리노중위는 하얀 모래 위에 사람이 쓰러져 있
  는 것을 발견했다. 어쩌면 신기루인지도  몰랐다. 이리노중
  위는 눈을 부비고 쓰러진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어쩌면 신기루일 거야.
  신기루를 몇 번이나 보았었다. 초점이 없는 그의  눈에 오
  아시스가 보이고 지구의  가족들이 보이기도 했었다.  지친
  걸음을 이끌고 허겁지겁 달려가면 그것들은  순식간에 사라
  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허망하여  모래벌판에 주저앉
  고는 했다. 신기루를 만나면 더욱 절망스러웠다.
  쓰러져 있는 사람은 여자였다. 옷은 헤어지고 떨어지고 흙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그것은 엎드려 쓰러져 있는 그
  녀의 몸 전체도 마찬가지였다.
  "환상일 거야..."
  이리노중위는 다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여자의 옆에 주질러 앉았다.
  "애란...."
  이리노중위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뜻밖에 모래벌판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장애란이었다. 그로나 이리노중위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지
  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모래벌판에 쓰
  러져 있는 애란이 신기루가 되어 훌쩍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이리노중위가 눈을 감았다가 떠도 그 여자는  그대로 쓰러
  져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여자의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역
  시 확실한 인간의 촉감이 느껴졌다.
  "애란!"
  이리노중위는 장애란을 큰소리로  불렀다. 그러자  여자가
  부시시 눈을 뜨고 이리노중위를 쳐다보았다.
  "중위님?"
  장애란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이리노중위를  쳐다
  보았다.
  "그래 나 이리노중위야!"
  "이게 지금 꿈인가요?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장애란의 얼굴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아니야 꿈이 아니야!"
  이리노중위는 장애란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허겁지겁
  장애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벼댔다. 장애란도  그의
  품에 안기어 오열을 하고 있었다.
  오안네스족의 수정 모양의  원형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는
  벌거벗은 두 남녀가 비치고 있었다. 그들은 물의 재앙과 불
  의 재앙에서도 살아남은 인간들이었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어떻게 저들이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지?"
  오안네스 족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주위에는 여신(女神)들이 잔뜩 몰려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저들도 신이 아닐까요?"
  한 여신이 자신의 의사를 말했다.
  "신이 인간으로 변신을 했다는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물의 재앙과  불의 재앙에서 살아날  수가
  없어요."
  "태양을 더 뜨겁게 하는 것이 어때? 그렇지 않으면 태양을
  하나 더 띄우던지...."
  "잠시 두고 보는 것이 어떨까요? 저들은 저기서 만날 때까
  지 죽어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만나자 마자  기적처럼 에너
  지가 생겼어요.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생겼는지  알아볼 필
  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다른 여신의 말에 오안네스 족장이 무릎을 치고 고개를 끄
  덕거렸다. 그들은 수정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  시선을 못박
  았다. 사막의 두 남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사랑의  행위를
  나누고 있었다. 어쩐지 그 행위는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이 지구인들을 납치하다가 강제로 하게 한 사랑의
  행위와는 전혀 달랐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행위에 열중
  하고 있었고 그 행위가 오안네스족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
  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이리노중위와 장애란은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  사랑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들은 머지않아 자신들에게 죽음이 닥쳐
  오리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죽음 직전에 사랑
  하는 사람을 만난 까닭에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그들은 처절할 정도로 사랑의 행위에 열중하고 있었다.
  모래사막은 불덩어리처럼 뜨거웠다. 그래도 장애란은 미처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리노중위의 손이  스치는
  곳, 이리노중위의 입술이 스치는 그녀의 몸이  오히려 더욱
  뜨거웠다.
  그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었다.
  모든 생명체가 죽어버린 사막이었다. 머리 위에서는 두 개
  의 태양이 작열하듯 그들의 몸에 불볕을 쏟아놓고 있었다.
  "음 !"
  장애란이 짧은 신음을 삼켰다.
  이리노중위의 입술이 그녀의 전신을 탐험하자 그녀의 몸을
  구성하고 세포가 일제히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것  같았
  다. 이리노중위의 입술, 혀, 손가락이 스치는  곳으로 신경
  이 집중되고 빠르게 쾌감이 증폭되었다. 이어서  숨결이 가
  빠져 왔다.
  이리노중위는 섬세하면서도 정성스럽게 애무를 하고  있었
  다. 장애란은 그의 애무가 너무나 좋았다.
  그녀의 몸 깊은 곳에서 뜨거움 감각이  전신으로 물결치기
  시작했다.
  "이리노중위님 "
  장애란은 열에 들뜬 사람처럼 입을 열어 말했다.  이제 그
  를 갖고 싶었다. 그가 자신의 몸속 깊숙이 들어오기를 간절
  히 바랬다.
  "헉!"
  마침내 이리노중위가 그녀와 하나가 되었다.  장애란은 무
  엇인가 자신의 내부에 가득차는  듯한 감미로운 기분에  온
  몸을 떨었다.
  아름다웠다. 오안네스족은 두 사람의 행위를  어떤 감동에
  젖어 응시하고 있었다.
  "드디어 일치가 되었나?"
  오안네스 족장의 말에 여신들이 얼굴에 홍조를 띄며
  대답했다.
  "네."
  사막 한 가운데서 두 남녀가 처절하게 사랑의  행위를 나
  누는 것을 오안네스족은 이해할 수 없었다.
  "비상! 비상!"
  오안네스족이 수정 디스 플레이 스크린으로 사랑에 몰두하
  고 있는 이리노중위와 장애란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비상
  등이 켜졌다.
  "무슨 일이야?"
  오안네스 족장이 전면의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응시하며
  물었다.
  "비상 사태입니다.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 정체불명의 광점
  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태양계를 관측하는 오안네스족의 우주방공망의 디스  플레
  이 스크린에 빠르게 움직이는 몇 개의 광점이  나타나 있었
  다. 오안네스 족장은 광점이 나타나고 있는 디스 플레이 스
  크린을 긴장하여 주시했다. 오안네스족의 우주방공망은  태
  양계 전체를 커버하고 있어서 태양계에서  일어나는 천체의
  변화와 지구에서 쏘아 올리는 우주선을 관찰하고 있었다.
  "속도가 얼마나 되는가?"
  오안네스족 족장이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초광속입니다!"
  우주방공망 본부에서 즉시 회신이 왔다.
  "천체인가? 비행물체인가?"
  "M광자파를 발사하여 정체를 확인하겠습니다."
  M광자파(光子波)는 전파보다 속도가 더욱 빨랐다.  M은 메
  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광속 이상의 속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M광자파로 측정할 수밖에 없었다.
  "즉시 확인하라!"
  "옛"
  오안네스족 족장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오안네스족
  은 태양계에 존재하는 신(神)들이었다. 그들은 처음에 지구
  에서 살았으나 지구의 악신(惡神)들과 대전쟁을  하여 지구
  가 생명체가 살 수 없게 파괴되자 이 곳으로 올라왔던 것이
  다. 악신과의 전쟁에서 오안네스족 신들이 승리했으나 지구
  도 파괴되는 바람에 그들은 자신들의  유전자만을 남겨놓은
  채 태양계의 끝으로 올라왔던 것이다.
  유전자는 지구에 다시 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자 영장
  류에서 인류로 진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들의 유전인
  자에는 악신의 유전자들까지 함께 남아 있었다.
  악신들과의 전쟁 이후 수 천만년이 흘렀으나  그들은 평화
  롭게 살았었다. 그러나  악신의 유전인자까지 함께  진화한
  인류는 과학문명을 발달시키면서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기에
  이르렀고 태양계의 끝 그들의  영역까지 침범해 왔던  것이
  다. 이제 지구인들은  그들의 영역에서까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오안네스족은 지구인들의  유전인자에서 악의  유전인자를
  제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구
  인들을 납치하여 온갖 실험을  했으나 끝내 실패했던  것이
  다.
  오안네스족은 지구인들의 유전자에서 악의 유전인자를  제
  거할 수 없자 지구인들을 멸종시키려 했다. 그들은 먼저 토
  성의 위성인 아르스 위성에 올라온  지구인들을 멸종시키기
  로 했다. 지구인들은 자신들이 편리한대로 니리드 위성이니
  살로메 위성이니 하고 이름을 붙였으나 엄격한 의미에서 그
  별은 오안네스족의 것이었다.
  "비행물체입니다!"
  이내 디스 플레이 스크린이 광점을 분석하여 보고했다.
  "비행물체라고?"
  "그렇습니다. 비행물체가 틀림없습니다."
  "지구의 우주선인가?"
  "아닙니다. 항로도 다르고 에너지가 다릅니다. 비행물체의
  속도가 초광속입니다."
  "음 "
  오안네스 족장은 무겁게 신음을 삼켰다. 어쩌면 예상치 못
  한 강적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르스  위성에는 방공막
  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방공막은 어떤 병기도 뚫지  못한
  다. 지구에서 6천만 년에 대혈투를 벌였던 악신들이 찾아온
  다고 해도 뚫지 못하는 방공막이다. 방어막  안에는 쇠붙이
  가 존재하지 못한다. 방공막이 무너지지 않는 한 아르스 위
  성은 안전한 것이다.
  초광속 우주선  뉴엘리사호에서도 장애란과  이리노중위의
  사랑의 행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랑을 비롯해  제인 선장
  수디아, 박사, 나타샤 박사는 형언할 수없는 감동에 젖어서
  그 모습을 살피고 있었다. 제인 선장과 수디아  박사, 나타
  샤 박사는 헬렌을 데리고 지구에 왔을 때 그들이 사랑의 행
  위를 나누는 것을 지켜본 일이 있었다. 물론 손바닥을 마주
  대는 사이버 섹스였으나 그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
  다.
  그러나 여랑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
  의 행위에 얼굴이 붉어졌으나 차츰차츰 감동에 젖어갔다.
  "저 사람이 이리노 퍼그스인가?"
  여랑은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 비친 이리노 퍼그스를
  응시했다.
  "네."
  은하탐사선의 선장으로 헬렌을  지구까지 보낸 일이  있는
  제인 선장이 옆에서 낮게 대답했다. 헬렌의  몸속에 삽입되
  어 있는 마이크로 카메라 칩으로 연결된 것이었으나 화면은
  선명했다.
  "저희가 이리노 퍼그스를 초능력자로 만들었습니다. 저 남
  자가 우리 헬렌과 같이 사랑의 행위를 나누어 제2의 안드로
  이드 생명체가 탄생하려면 헬렌과 같은  초능력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음."
  여랑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옳은 말이었다. 헬렌과 사랑의
  행위를 나누려면 헬렌과 같은 초능력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다. 헬렌과 이리노중위는 그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체위가 바뀌어 있었다. 이제 헬렌이 위에서 이리노중위에게
  격렬한 사랑의 행위를 퍼붓고 없었다.
  "광자파가 감지되었습니다."
  그때 초계의 목적을 띄고 있는 제7함정에서 다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어디서 온 광자파인가?"
  여랑이 깜짝 놀라 제7함대 함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헬렌이 있는 위성입니다. 그들의 방공막을 뚫고 광자파가
  우리를 향해 쏘아지고 있습니다!"
  여랑은 긴장했다. 초광속으로 항진하고 있는 뉴엘리사호를
  비롯한 클른족의 선단에 광자파를 발사하는 것은 그들의 감
  시망에 뉴엘리사호가 노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방공막을 가동 중에 있나?"
  "네. 강력한 방공막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발견했어. 제5함대 캐서린 박사!"
  여랑은 제5함대의 캐서린 박사를 불렀다.  제5함대는 각분
  야의 과학자 2백 명이 탑승해 있었다.
  "예!
  "적의 방공막 재질이 무엇인지 분석하라!"
  "알겠습니다!"
  제5함대의 캐서린 박사가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여랑과 제
  인 선장을 비롯한 클론들은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  비친 헬
  렌과 이리노중위를 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땀이 비오듯이
  흐르고 있었다.
  이내 제5함대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적의 방공막을 분석했습니다.! 적의 방공막은 특수세라믹
  생체에너지 광섬유입니다. 어떤 포탄이나 에너지에도  폭발
  하지 않습니다! 중성자포나 광자포로도 방공막을 부술 수가
  없습니다! 중성자포나 광자포를 맞아도 방공막의 세포가 분
  리해 버리기 때문에 폭발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저
  방공막은 합성으로 이루어진 모든 화학물질을  순식간에 분
  해해 버립니다. 쇠붙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물질,
  특히 화학물질과 금속물질을 원소 상태로 분해해 버립니다!
  화학물질과 금속물질의 경우는 원자들끼리의 결합까지 방해
  합니다."
  핵폭탄까지 폭발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저들의 방공막을 뚫나?"
  제 5함대에서 전송한 보고와 함께 방공막의 재질을 분석한
  데이터가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 일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 번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뚫을 수 있나?"
  "예. 저것은 세포를 해체시키는 폭탄만이 가능합니다.
  방공막을 해체시키는 폭탄을 제조하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나?"
  "20분이면 가능합니다!"
  "좋다! 폭탄을 제조하라!"
  "예!"
  제 5함대의 캐서린 박사가 다시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위기에 빠진 헬렌을 구해야 한다! 적의  방공막을 해체시
  키는 폭탄을 제조할 때까지 전 함정은 전투준비를 하라! 전
  투준비를 하라!"
  여랑의 명령이 떨어지자  뉴엘리사호를 비롯한 전  함대의
  클론 병사들이 긴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직까
  지 한 번도 전투를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일
  어날지도 모를 우주에서의 전쟁을 준비해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다.
  "적의 방공막이 열리고 광점이 나오고 있다!  우리 함대를
  공격할 것 같다!"
  그때 제7함대에서 다시 보고가 들어왔다.
  "음."
  여랑은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응시하다가 무겁게  신음을
  내뱉았다. 적의 방공막에서  무수한 광점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전투기들인가?"
  "예. 전투기입니다!"
  "좋다! 우리도 저들을 공격한다! 전 함대의 주위에서 초계
  임무를 맡고 있는 전투기들은 즉시 적의 전투기들을 공격하
  라!"
  여랑의 명령이 떨어지자 클론의 전투기들이 초광속으로 적
  을 향해 날아갔다. 클론의 전투비행단 사령관은 제3기 클론
  데보라 베이커였다. 그녀는 에너지파를 분석하는  분석시스
  템을 가동시키고 적의 전투기들을 살펴보았다.
  "적의 전투기는 몇 대나 되는가?"
  "약 800대 정도 됩니다."
  "속도는?"
  "광속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좋다! 접근하기 전에 광자포를 발사하여 공격하라!"
  데보라 사령관의 명령에  의해 클론들의  전투기에서
  일제히 광자포를 발사했다. 광자포는 빛보다 더  빠르
  게 적의 전투기들을 향해 날아갔다. 수백 개의 광자포
  가 빛줄기를 형성하며 날아가는 모습은 육안으로는 보
  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그러나 디스 플레이 스크린
  은 육안으로 살필 수 있도록 광자포를 느리게  화면에
  띄우고 있었다.
  "앗! 적의 전투기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뭐야?"
  "광자포들이 도착하면 적의 전투기들이 감쪽같이  사
  라집니다!"
  전투기를 조종하는 클론병사들이 당황한 목소리로 보
  고를 했다. 데보라 사령관은 즉시 화면을  들여다보았
  다. 클론 조종사들의 보고대로였다. 광자포가 적의 전
  투기에 도착하여 폭발하려고 하면 적의 전투기들은 순
  간적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순간이동이야!"
  데보라 사령관은 무겁게 신음을 삼켰다.
  "앗! 맞았다!"
  그때 클론 전투기 한 대가 우주에서 대폭발을 일으켰
  다. 어둠과 고요뿐인 우주에서 화려한 불꽃이  피어났
  다가 사라졌다. 적의 전투기가 공격을 하여 당한 모양
  이었다.
  "데보라 사령관!"
  그때 모함 뉴엘리사호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클론
  족 족장 여랑이었다.
  "예. 데보라 사령관입니다!"
  "적은 순간이동을 하고 있다. 순간이동을 하면  아군
  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아 당황하지만 에너지파를 추적
  하면 적이 순간이동을 해도 잡을 수가 있다! 에너지파
  를 추적하여 적을 공격하라!"
  "예!"
  클론족 족장 여랑의 지시에 데보라 사령관은  미소가
  떠올랐다. 순간이동을 하려면 막대한 정보를 전송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에 못지 않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에너지파를 추적하면 순간이동을 하는
  적의 전투기들을 잡을 수가 있다.
  "클론족의 우주전투기 조종사들에게 명령한다! 전 전
  투기의 포탄에 에너지파 추적장치를 부착하여 적의 전
  투기들을 공격하라!"
  데보라 전투기 사령관은 즉시 100대의 클론족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적의 전투기들은 순간이
  동을 하고 있었다. 전방에 있던 전투기가 순식간에 뒤
  에 와 있기도 했고 위에서 공격을 해오기도 했다.  클
  론족 전투기들은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십여 대의 전투
  기를 잃었다. 그들은 포탄에 에너지파 추적장치를  부
  착하여 적의 전투기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적의  전투
  기들은 순간이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에너지파 추적
  장치도 속수무책이었다.
  "음!"
  여랑은 짧게 신음을 내뱉았다. 그녀는 아이큐가  800
  이나 되는 초능력자였다.
  "좋다! 이번에는 블랙홀을 설치하여 적들을  잡는다!
  우주전투기들은 철수하고 각 함대가 앞으로 나가 장방
  형의 진형을 갖춰라!"
  여랑의 명령이 떨어지자 우주전투기들이 일제히 함대
  로 귀환하고 각 함대가 빠르게 우주 공간에  타원형으
  로 진형을 갖추었다.
  "제2함대 장방형 진형 완료!"
  "제3함대 진형 완료!"
  "제4함대 완료!"
  이내 각 함대가 뉴엘리사호의 브릿지로 속속  진형을
  갖추었다는 보고를 해왔다.
  "가스층 발사 준비!"
  "가스층 발사 준비 완료!"
  "가스층 발사!"
  여랑의 지시에 각 함대가 차례로 가스층을 발사했다.
  각 함대에서 발사되는  가스층은 우주의 성간에  있는
  활동은하의 가스원반을 구성하는 물질을 채취하여  만
  든 것으로 우주 공간에 발사되면 즉시 고에너지의  열
  을 발사하면서 무서운 회전을 일으켰다.
  "가스원반 완료!"
  "블랙홀 완성!"
  "각 함대 가스원반에 접근하지  말고 뒤로 2광속  후
  진!"
  여랑의 지시를 받은 각 함대가 일제히 2광속을  후진
  했다. 그 순간 가스원반이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
  작했다.
  그것은 고에너지 입자가 충돌을 하여 가스원반을  만
  들어내는 것이었다. 이 가스원반은 표면이 섭씨  수십
  만 도나 되는 고열의 열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수
  십만 도의 열에너지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소용돌이를
  일으켜 근처에 있는 물질을 순식간에 블랙홀로 빨아들
  이는 것이다.
  적의 전투기들은 순간이동을 하고 있었으나 클론족의
  함대들이 블랙홀을 만들어내자 순식간에 수백만  도나
  가스원반의 중심 불길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역시 블랙홀의 위력은 대단해 "
  여랑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적의 전투기들을  보
  면서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클론족이 우주에  설치한
  블랙홀은 순식간에 반경 20km의 물질들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한 것이다.
  "만세!"
  클론족들이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그들은  21광년(1
  광년은 약 9경 4630조km)이나 날아오는 동안 한  번도
  전투를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태양계 근처에 처음
  으로 적을 만나 격퇴한 것이다.
  "캐서린 박사! 적의 방공막을 해체할 수있는  포탄을
  개발했는가?"
  여랑은 제5함대의 캐서린 박사를 불렀다.
  "개발했습니다!"
  캐서린 박사가 화면에 나타나 보고를 했다.
  "좋다! 그럼 즉시 적의 방공막을 향해 공격하라!"
  "예!"
  캐서린 박사가 대답을 하고 화면에서 사라졌다. 적의
  방공막은 생체 에너지로 만들어져 있었다. 생체  에너
  지는 공격해 오는 적의 광자포나 중성자포까지 순식간
  에 반물질로 만들어 포탄의 위력을 무력화시킨다.  원
  자나 중성자 모두 물질이다. 이러한 물질을  반물질로
  만드는 것은 독특한 방어 방법이었다.
  "우리의 전투기가 모조리 사라졌소!"
  오안네스족 족장은 침통했다. 의외로 적의 함대가 막
  강했다. 그의 주위에 있던 오안네스족의 무리들도  사
  색이 된 얼굴로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지켜보고  있었
  다.
  "적들은 블랙홀까지 만들어내고 있어."
  블랙홀을 만들 수있는 수준의 과학문명이라면 방공막
  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오안네스족의 방공막은  반
  물질 방공막이다. 원자폭탄이  우란, 토늄,  플루토늄
  따위의 원자핵(原子核)이 중성자나 감마선 등의  조사
  (照射)에 의해 분열(分裂)할 때 같은 크기로 두  개의
  원자핵이 만들어지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
  을 응용한 것인데 반물질 방공막은 거꾸로 이러한  물
  질을 반물질화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옛날에 만났던 악신들보다도 더 무서운 자들
  이야!"
  "적들은 옛날의 악신들이 변한 것이 아닐까요?"
  "글세...."
  "우리는 다시  26차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
  다."
  오안네스족의 한 여신의 말에 족장이 침통한  얼굴을
  했다. 지구에서 6천만년 전에 악신들과 처절한 전쟁을
  했을 때 그들은 1백년 동안 차원이동(次元移動)을  하
  여 도피한 적이 있었다. 악신들도 다른 차원으로 도피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적들에게서  도피를 하는 것  아닌
  가?"
  "우리의 실력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할 수없지. 모두 차원이동 준비를 하시오."
  족장의 명령에 오안네스족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
  했다.
  "일단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악신들의
  근거지가 지구니까 지구를 파괴하는 게 좋겠습니다."
  "지구는 스스로 파멸할 거야 "
  "사막의 인간들은 어떻게 할까요?"
  "지금은 지구인들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어 "
  오안네스족 족장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이리노중위는 모래사막에서 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다.
  격렬한 사랑의 행위였다. 그러나 한 점의 후회도 없는
  사랑의 행위였다. 장애란도 만족한 얼굴로 두 개의 태
  양이 이글거리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애란?"
  "네?"
  "우린 이제 여기서 죽겠지?"
  "그럴 거예요. 죽음이 두려우세요?"
  "아니. 애란과 함께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아무렇지도
  않아. 애란은 후회스러워?"
  "아뇨."
  애란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흙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처음엔 꿈인가 했어요."
  "나도 그랬어."
  이리노중위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
  다. 이리노중위는 그녀가 장애란이라고 생각하자 말할
  수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장애란도  마찬가지였
  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랑의 행위에 돌입했다.
  그것은 동물적 본능이었다.
  안드로이드인 장애란이 그러한 본능을 느낀 것은  그
  녀가 이미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다.
  그때 요란한 폭음과 함께 무엇인가 강렬한 빛이 눈앞
  을 스쳐 지나갔다. 눈을 뜰 수없을 정도의 강하게  붉
  은 빛이었다. 이리노중위와 장애란이 깜짝 놀라서  하
  늘을 쳐다보자 서쪽 하늘의 태양이 요란하게 폭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장관이었다. 하늘이 온통 붉은 빛으로
  가득 차고 태양의  파편들이 하늘에서 흩어지고  있었
  다.
  "맙소사!"
  장애란이 벌떡 일어나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리
  노중위도 사막에서 일어나 하늘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일까요?"
  장애란이 의아한 표정으로 이리노중위를 쳐다보았다.
  "글세 "
  이리노중위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전혀 알 수  없었
  다. 그러나 서쪽 하늘의 태양은 순식간에 하늘에서 산
  산이 파괴되어 흩어져버렸다. 서쪽 하늘에 또  하나의
  태양이 떠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서쪽
  하늘은 두 번째 태양의 흔적이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
  다.
  신기한 일이었다.
  "태양이 폭발했어요."
  장애란이 이리노중위의 허리에  손을 감아오며  말했
  다. 그녀의 얼굴에 기쁨의 표정이 넘치고 있었다.
  "그래! 태양 하나가 사라졌어!"
  이리노중위도 감격에 넘쳐서  장애란의 어깨에  팔을
  감았다. 태양이 하나 사라지자 벌써 뜨거운 기운이 식
  어가고 있었다.
  그때 다시 귀청이 터질 것 같은 요란한 폭음이  들려
  왔다. 장애란과 이리노중위는  재빨리 귀를  틀어막았
  다. 그러자 공중에서 무엇인가 폭발하고 있었다.
  "방공막이야!"
  이리노중위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얀 구름 위
  에서 투명한 것들이 잇달아 폭발하면서 파편이 쏟아지
  고 있었다.
  "방공막?"
  "하늘에 방공막이 설치되어 있었어!"
  장애란과 이리노중위는 오랫동안 방공막이  폭발하는
  것을 넋을 잃고 지켜보았다. 방공막의 폭발이 끝난 것
  은 세 시간이나 얼추 지나서였다.
  "저쪽으로 한 번 달려가 봐요!"
  그때 장애란이 이리노중위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방공막이 폭발하고 나자 저 멀리 모래사막에 푸른빛이
  비치고 있었다. 신기루 같은 녹색이었다.
  장애란과 이리노중위는 손을  잡고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신기루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물이 있고  식량이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숲이에요!"
  장애란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래 언덕을 넘
  어서자 거짓말처럼 울창한 밀림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
  이리노중위는 눈앞에 있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눈앞의 울창한 숲도 투명한 막에 의해 가로막혀  있었
  다. 그러나 방공막이 폭발할 때 숲을 막고 있던  막도
  파괴되어 숲이 드러났던 것이다.
  "물도 있어요!"
  장애란이 골짜기의 물이 나타나자 첨벙  뛰어들었다.
  이리노중위도 물에 뛰어들었다. 장애란과  이리노중위
  는 물에 뛰어들어 물을 마신 뒤에 밖으로 나와 과일을
  따서 먹었다.
       제 57 장 악신의 후예들
  오안네스족 족장의 예상대로였다. 적들은 오안네스족
  이 설치한 방공막을 순식간에 파괴하고 물밀 듯이  쳐
  들어오고 있었다. 함대는 10여 척이나 되었고  전투기
  들은 500척이나 되었다. 오안네스족은 순간이동을  하
  면서 그들의 공격에서 몸을 피했으나 오안네스족의 근
  거지가 마구 파괴되고 있었다.
  "우리가 저들에게 당하다니 "
  오안네스족들은 비통한 심정으로 근거지가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차원이동은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했
  다. 그들은 6천만년 동안을 적들을 만나지 못했고  차
  원이동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지구에서 대전쟁을 치루었던 악신들이
  언제가는 공격을 해올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전투
  력만 근근히 유지하고 있었다.
  차원이동 준비를 하는데 5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적
  들은 서쪽에 있는 태양까지 파괴했다. 그러나  태양이
  파괴된 것은 아깝지가 않았다. 그것은 인공  태양이었
  다. 아르스 위성에 사는  모든 동식물을 태워  없애기
  위해 오안네스족이 만든 태양이었다. 그들은 이미  목
  적을 이루었고 이제 그 태양은 필요없는 존재나  마찬
  가지였다.
  "차원이동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그때 오안네스족의 한 여신이 황급히 보고를 했다.
  "좋다! 발진한다!"
  차원이동선(次元移動船)에는 오안네스족의 모든 족인
  들이 탐승해 있었다. 그들은 불안한 눈으로  브리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력 제어 장치 이상 없나?"
  "이상 없습니다."
  "관성 제어?"
  "이상 없습니다!"
  족장의 지시에 차원이동선의 각 계기를 점검한  오안
  네스족의 족인들이 차례로 대답을 했다. 동력 가속 장
  치도 이상이 없었다.
  "발진 준비!"
  오안네스족 족장이 근엄하게 명령을 내렸다.
  "발진 준비 완료!"
  "발진!"
  "발진!"
  오안네스족 족장의 명령을 계기 앞에 앞에 앉아 있던
  수많은 족인들이 일제히 복창했다. 동시에 그들은  자
  신의 앞에 놓여있는 버튼을 눌렀고 오안네스족은 불과
  수초 사이에 아르스  위성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
  다.
  제57장 악신의 후예들
  사피언스 그라운드와 유러너스 제국의 전쟁은 치열하
  게 전개되었다. 우희 위버는 두 나라의 전쟁을 손바닥
  처럼 들여다보자 회의가 일어났다. 도대체 이들은  무
  엇 때문에 전쟁을 하는가. 우희 위버는 그들의 전쟁으
  로 수많은 인간들이 아무 의미도 없이 죽어가고  있다
  고 생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솟구쳤다.
  '이들은 악마의 후예들이야!'
  우희 위버는 그렇게  생각했다. 전쟁의 피해는  점점
  커 가고 있었다. 유러너스  제국은 군인들 40만  명이
  전사를 했고 13개 도시가 파괴되었다. 주민들은 7백만
  명이 넘게 희생되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피해는 더욱 컸다. 사피언스 그
  라운드는 군인들만 350만 명이 전사를 했고 72개 도시
  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주민은 3억2천만 명이  희생
  되었다.
  "전쟁을 막을 수는 없나요?"
  우희 위버는 누네즈가 잠을 잘 때 입속말로 반제동맹
  의 나나 요원에게 전쟁을 중지시켜 달라고 말했다.
  "그럴 수는 없어요."
  나나 요원이 차갑게  대꾸했다. 우희 위버는  귓전에
  찬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가고 있어요!"
  "박사님! 박사님은 우리의 지시만 따르도록 하세요!"
  "내일은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주민들을 향해  유러너
  스 제국이 대대적인 공격을 할 거예요!"
  유러너스 제국의 누네즈는  밴 크로포트  대원수에게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민간인들이 밀집해 있는  아제르
  바 지역에 핵탄두 MMX 미사일로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
  려놓고 있었다. 아제르바는  전쟁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민간인 거주 지역이었다. 그 곳에는 사피언스 그
  라운드의 민간인 1억7천만 명이 살고 있었다.  누네즈
  가 그곳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그들을  학살
  하려는 음모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전쟁이에요. 서로 공격을 하는 것은 당연하죠. 그런
  일에 박사님이 신경 쓰실 필요는 없어요!"
  나나 요원의 목소리가 냉랭했다.
  "그들을 구해야 해요!"
  "그들을 구하다니요? 사피언스 그라운드도 우리의 적
  이에요."
  "그들은 민간인이란 말이에요!"
  "박사님! 흥분하지 마세요! 박사님은 박사님의  임무
  에만 충실하세요!"
  "반제동맹의 하는 일이 유러너스 제국의 탄압에서 인
  류를 구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왜 이런 위기에서
  아무 대책을 세우려고 하지 않죠?"
  "그들을 구할 수 없어요!"
  "왜요? 사피언스 그라운드에  알려주기만 하면  구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우희 위버는 화를 벌컥 냈다. 나나 요원이  무엇인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녀는 유러너스 제국의 스파이일 것이다.
  "로버트 퍼그스 의장과 얘기하고 싶어요."
  "그 분도 박사님과 얘기하고 싶어해요."
  나나 요원이 낭랑하게  웃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우희 위버는 얼굴을 찡그렸다.
  "우희 위버 박사?"
  이내 로버트 퍼그스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려왔다.
  "네. 저예요."
  "무슨 일이오? 듣자니 내일은 유러너스 제국이  아제
  르바를 공격한다는데 사실이오?"
  "이미 알고 계실 거라고 믿어요."
  "물론이오."
  반제동맹은 우희 위버의 안구에 삽입되어 있는  카메
  라 칩을 통해 유러너스 제국의 동정을 샅샅이  파악하
  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아요?"
  "무슨 대책을 새운다는 말이오?"
  "아제르바 주민들을 소개시켜야 하잖아요?"
  "박사!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지 마시오.  우리는
  지구를 지배하기 위해  원대한 프로젝트를 세워  놓고
  있소. 사피언스 그라운드와  유러너스 제국의  전쟁은
  우리가 지구를  지배하려는 프로젝트의  하나일  뿐이
  오."
  "반제동맹이 지구를 지배한다구요?"
  우희 위버는 어이가 없었다.
  "박사에게 미리 설명을 하지 않은 것은 유감으로  생
  각하오."
  "그렇다면 당신들이나 유러너스 제국이나 다를  바가
  없잖아요?"
  "굳이 말한다면 다를 바가 없지. 그러나  지금까지의
  지구는 유러너스 제국과 사피언스 그라운드로  나뉘어
  있었지만 앞으로의 지구는 우리 반제동맹에 의해 통일
  이 될 것이고  통일된 지구는  내가 지배한다는  것이
  오."
  반제동맹 의장 로버트 퍼그스의 말은 광오하기  짝이
  없었다.
  "미쳤군요!"
  우희 위버는 로버트  퍼그스가 정신병자라고  생각했
  다.
  "박사!"
  "말씀하세요!"
  "박사에게 나의 열 두 번째 부인이 되는 영광을 주겠
  소."
  "뭐라구요?"
  "나는 지구를 지배하는 위대한 남자요. 나를  섬기는
  것은 박사에게 무한한 영광이 될 것이오!"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당신마저 악마에게  영혼을
  팔다니 "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마와 천사의 유전인자를 가
  지고 태어나오. 악마의  유전인자가 강하게  발호하면
  악마가 되는 것이고 천사의 유전인자가 강하게 발호하
  면 천사가 되는 것이오."
  로버트 퍼그스가 낭랑하게 웃었다.
  "박사!"
  "당신을 알게 된 것이 후회스러워요!"
  "나의 열 두 번째 부인이 되면 모든 쾌락을 얻게  해
  주겠지만 거부하면 죽음을 주겠소!"
  "흥! 당신의 열 두 번째 부인이 되느니 차라리  죽음
  을 택하겠어요."
  "로즈 국장도 결국 죽음을 당했지 "
  로버트 퍼그스가 음흉하게 웃었다. 우희 위버는 그의
  웃음소리에 소름이 끼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희 위버는 짙은 의혹을 느꼈다.
  "무슨 뜻이에요?"
  유러너스 제국의 비밀경찰  로즈 국장은  누네즈에게
  살해되었다. 우희 위버는 누네즈가 모리오 부국장에게
  로즈 국장 살해 지시를 내리는 것을 직접 보았고 모리
  오 부국장이 닥터 킬러에게 지시를 내려 닥터  킬러가
  장미숲에서 로즈 국장을 살해하는 것을 컴퓨터 모니터
  를 통해 보았던 것이다.  누네즈는 닥터 킬러가  로즈
  국장을 살해한 것을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짓이라고 몰
  아붙여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로즈 국장은 내 손에 죽었어!"
  "로즈 국장은 닥터 킬러에게 살해되었어요!"
  "천만에! 그건 가짜야. 우리가 만든 가짜 로즈  국장
  이라구. 우리는 누네즈가 로즈 국장을 살해하라는  지
  시를 내리는 것을 너를  통해 알고는 바꿔치기  했어.
  왜 바꿔치기 했는지 아나? 로즈 국장을 나의 열 두 번
  째 부인으로 만들기 위해서였어. 그런데 그녀가  거절
  하여 내 손에 죽었어 "
  "믿을 수 없어요!"
  "박사가 믿고 안 믿고는 상관이 없어. 그것은 사실이
  니까 박사 역시 열 두 번째 부인이 되는 것을 거절한
  다면 비참하게 죽어야 하겠지 "
  "나를 죽이고 싶으면 죽여요!"
  "천천히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
  "흥!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
  "과연 그럴까? 그럼 어디 한 번 당해 보라구 "
  로버트 퍼그스가 징그럽게 웃어댔다. 그때 우희 위버
  는 갑자기 머리가 쪼개지는 것처럼 아파 왔다. 로버트
  퍼그스가 그녀의 뇌속에 삽입되어 있는 마이크로 칩을
  조정하는 버튼을 누른 모양이었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은 맹렬한 고통을 느꼈다. 그
  녀는 이빨이 딱딱 부딪치고 식은땀이 등줄기로 흘러내
  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통증을
  참았다.
  "어때? 견딜 만 한가?"
  그때 로버트 퍼그스의 징그러운 웃음소리가 다시  들
  려왔다.
  "누네즈에게 당신네 반제동맹의 음모를 모두  고발하
  겠어요!"
  "핫핫 "
  "왜 웃어요?"
  "박사! 당신의 뇌속에 있는 마이크로 칩에는  폭탄이
  장치되어 있어. 여기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당신의 머
  리는 꽝 하고 폭발해 버리지!"
  "비열한 인간!"
  우희 위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머리가 폭발한
  다는 사실을 알고 누네즈에게 고발할 수는 없었다. 게
  다가 반제동맹의 음모를 고발한다고 해서 누네즈가 그
  녀를 살려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누네즈는 잔인한 인간이었다. 반제동맹을 이끌고  있
  는 로버트 퍼그스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악인들이었
  다.
  '이제 남은 것은 사피언스 그라운드 뿐이야 '
  사피언스 그라운드에는 평의회 의장 예멘이  있었다.
  그는 사피언스 그라운드 주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
  고 있었다. 그에게 누네즈의 음모와 반제동맹의  음모
  를 알려야 했다. 그러나  당장은 마땅한 방법이  없었
  다. 그녀의 움직임은 반제동맹에 낱낱이 파악되고  있
  었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현재는 사피언스  그라운
  드가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희 위버는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평의회  의
  장 예멘까지 지구를 지배하려는 무서운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었다. 이튿날  유러너스
  제국의 밴 크로포트 대원수가 MMX 미사일부대의  알폰
  스장군에게 아제르바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알
  폰스장군은 즉시 MMX 미사일을 아제르바를 향해  발사
  했다.
  아제르바는 연면적이 약 3천6백만km 나 되는  방대한
  지역이었다. 30억이나 되는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인구
  중 15분의 1정도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
  아제르바는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하려고 하고 있었다.
  첫새벽이었다. 아직 해는 뜨지 않고 황량한 모래  언
  덕 너머에서 남빛이 희미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아제
  르바의 대다수 주민들은 새벽의 달디단 잠 속에  빠져
  있었다.
  크르르 크르르릉.
  그들은 잠결에 땅이 진동을  하는 듯한 소리를  얼핏
  들었다.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은 소리였다. 1억7천만
  의 아제르바 주민들이 거의 동시에 들은 그 소리는 처
  음에 육중한 탱크의 엔진음처럼 창을 흔들고 방바닥을
  흔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지진인가?"
  "아니야. 유러너스 제국 놈들이 에어 장갑차를  끌고
  공격해 오는 소리야."
  주민들은 눈을 부비고 일어나 웅성거려다. 에어 장갑
  차는 공중을 나는 장갑차였다. 60년을 끈 산소전쟁 때
  유러너스 제국의 에어 장갑차는 사피언스  그라운드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었다.
  콰앙!
  그때 귀청을 찢을 것 같은 요란한 폭음이 일어나면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아제르바의  주민들은 미처  놀랄
  순간도 없이 불기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백만 명
  의 주민들이 불과 몇 초밖에 되지 않는 찰나지간에 수
  천 도가 넘는 불길 속에 휩싸여 타죽었다. 비명을  지
  를 시간도 없었다. 무엇인가 화끈한 것이 그들을 덮쳐
  온 순간 그들은 이미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중성자 핵탄두는 위력이 너무나 강해!'
  우희 위버는 누네즈의 디스 플레이 스크린으로  중성
  자 핵탄두의 공격을 받고 있는 아제르바를 보면서  가
  슴이 타는 것 같았다. 알폰스장군의 미사일부대가  아
  제르바에 발사한 MMX 미사일은 중성자 핵탄두를  장착
  하고 있었다.
  반경 200km 이내의  물질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
  다.
  그러나 알폰스장군의 미사일부대가 발사한 중성자 핵
  탄두 미사일은 20기나 되었다. 중성자 핵탄두가  20번
  이나 폭발하면서 아제르바 지역에 20개의 장대한 버섯
  구름이 치솟았고 핵폭풍이  불어닥쳐 모든 것을  날려
  버렸다. 이어서 죽음의 재를 동반한 죽음의 비가 쏟아
  지기 시작했다.
  '잔인한 인간들 '
  아제르바는 지옥으로 변하고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불길에 타죽거나 핵폭풍에 날아
  가고 죽음의 비를 맞고  쓰러졌다.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아 아제르바가 쑥밭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악마와 같은 누네즈는 또다시 공격명령을  내
  렸다.
  "밴 크로포트 대원수!"
  "예!"
  "아제르바의 공격이 성공했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이제 아이네티를 공격하라!"
  "알겠습니다.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누네즈의 명령은 지상명령이었다. 밴 크로포트는  대
  원수는 알폰스장군에게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아이네티
  지역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이네티는 사피언
  스 그라운드에서 아이네티 군도(群島)라고 불릴  정도
  로 50여 개의 도시가 인접해 있었다. 거주하는 주민들
  은 2억9천만 명이나 되었다.
  아제르바는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사피언스  그라운
  드의 전략사령부 벙커의 몰루카장군은 지옥으로  변한
  아제르바를 살피면서 가슴이 저려왔다. 아제르바는 흑
  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들과의 인연은 전연 없었
  으나 피부색만으로 따지면  같은 종족이었다.  그들이
  지옥의 불길에 휩싸이고  죽음의 비를 맞고  죽어가는
  모습은 처절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
  던 일이었으나 문자 그대로 지옥도였다.
  1억7천만 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유러너스 제국의  전략사령부는
  아이네티 군도를 향해서도 MMX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
  었다. 중성자 핵탄두를 장착한 MMX 미사일이 아이네티
  군도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아이네티가 무너지면 사피언스 그라운드는 전방이 완
  전히 붕괴된다. 비록 그들이 민간인이라고 해도  그들
  을 보호하는 것은 유러너스 제국의 공격을 더디게  하
  는 효과가 있었다.
  "몰루카장군!"
  그때 전략사령부의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 예멘  의장
  이 나타났다.
  "예. 의장 각하!"
  몰루카장군은 황급히  부동자세를 취했다.  평시에는
  평의회 의원이지만 전시에는  부하 장군일  뿐이었다.
  예멘 의장이 자신의 정체를 밝힌 뒤에는 예멘  의장에
  대해 두려움까지 느끼게 된 몰루카장군이었다.
  "니리드 위성에서는 아직도 연락이 없소?"
  "예. 전혀 연락이 없습니다."
  "그거 참 기이한 일이 아니오? 니리드 위성에서 연락
  이 전혀 없다니 "
  "그렇습니다. 이해할 수없는 현상입니다."
  몰루카장군도 그 생각을 하면 난감했다. 니리드 위성
  에 주민들을 싣고 올라간 우주선 오딧세이 17호가  15
  일째 연락이 두절되어 있었다. 그들이 마지막  보고를
  받은 것은 15일 전으로 니리드 위성 총독에 임명된 장
  애란이 유러너스  제국군대를 격파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승전보였다.
  "이제 니리드 위성은 우리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것이
  야!"
  승전보에 고무된 사피언스  그라운드 평의회는  축하
  파티까지 벌렸었다. 그리고  유러너스 제국이  자국의
  로즈 국장이 사피언스 그라운드에 살해되었다는  터무
  니없는 주장으로 선전포고를 하자 평의회도 기꺼이 전
  쟁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이제야말로 유러너스 제국을 지구에서 없애버릴  기
  회가 왔다!"
  "유러너스 제국을 응징하자!"
  사피언스 그라운드는 주민들을 선동했고 그렇게 하여
  지구를 재앙으로 몰아넣을 대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
  다.
  사피언스 그라운드는 유러너스 제국을 격파할 자신이
  있었다. 그들은 최첨단 무기인 펄서폭탄이 있었다. 펄
  서폭탄은 지구까지 송두리째 우주의 먼지로  날려버릴
  가공할 위력을 갖고 있는 폭탄이었다. 그러나 그 폭탄
  을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 폭탄을  사용하면
  지구가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피언스 그라운드는 펄서폭탄을  사용하기
  위해 니리드 위성 진출을 꾀했던 것이다. 마지막 순간
  에 지구를 완전히  파괴하고 니리드 위성으로  올라갈
  작정이었다.
  그 계획은 봉선화 혜성의 제2차 지구궤도 침입  예정
  일도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서 결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지구를 완전히 파괴해 버리는 것은 너무나 아
  까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사피언스 그라운드는 봉선화
  혜성이 지구궤도를 비켜 간다는 전제 아래 지구의  인
  류를 말살하는 위력이  약한 소형 펄서폭탄을  개발한
  것이다.
  그것을 사용하면 지구의 인류를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펄서폭탄은 아직 두 개 밖에 만들어지
  지 않았다. 두 개의 펄서폭탄으로 지구의 모든 인간을
  살해할 수는 없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가 유러너스 제국과의 전쟁을 기꺼
  이 수행하고 있는 것은 이 소형 펄서폭탄을  사용하기
  위해 지구의 인구를 줄이려는 음모일 뿐이었다.
  "혹시 유러너스 제국이  니리드 위성을 정복한  것이
  아니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방금 밴 크로포트의 전
  략사령부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측 첩보원들의  보고
  를 받았는데 유러너스 제국도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니리드 위성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
  닐까?"
  예멘 의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바르시크대령의 실종이 심상치 않습니다."
  "좋소! 그러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니리드  위성
  으로 올라가는 우주선을 점검하시오!"
  "우주선이오?"
  몰루카장군은 얼굴이 해쓱해 졌다. 예멘 의장이 니리
  드 위성으로 올라가는 우주선을 점검하라는 것은 전쟁
  에서 질 수도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제 와서 니리드 위성으로 올라가다니 '
  몰루카장군은 쓸쓸해 졌다.
  문득 예멘 의장이 악신의 후예가 아닌가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6천만년 전 지하에 사는 악신들은 지상에 사는  천신
  (天神)들과 일대 전쟁을 벌였었다. 그 전쟁이  얼마나
  결렬했는지 지구는 대폭발이 일어났고 그 폭발의 여파
  로 빙하기가 찾아왔다. 천신들은 지구에 유전자를  남
  겨놓은 채 어디론가 사라졌고 악신들은 천신들이 남겨
  놓은 유전자에 자신들의 유전인자를 배열했다.
  6백만년 전 천신들의 후예인 인간이 진화했다.  그러
  나 인간의 유전자에는 악신들의 유전인자가 숨어 있었
  고 그 유전인자들이 발호를 하여 지구에 악이  들끓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소. 니리드 위성으로 올라가는 우주선을 점검하
  시오! 가능한 그 우주선을 사용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
  지만 항상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오."
  "알겠습니다."
  몰루카장군은 맥없이 대답했다.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는 아이네티 군도가 MMX 미사일
  의 공격을 받고 있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인구 2억
  9천만 명이나 되는 아이네티 군도가 MMX 미사일의  공
  격에 속절없이 파괴되고 있었다. 아이네티 군도가  파
  괴되면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30억 인구중 6분의  1이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멸망에 관
  심을 가질 시간이 없었다.
  몰루카장군은 전략사령부를 빠져  나와 에어카를  탔
  다. 그는 수행원 한 명 거느리지 않고 곧장 '死의  계
  곡'에 이르렀다. 사의 계곡, 죽음의 계곡은  한낮인데
  도 음습한 기운이 가득차 있었다. 4차원의  무저갱(無
  低坑)에서 흘러나오는 악의 기운 때문이었다.  그러나
  몰루카장군은 그 기운에 오히려 말할 수없는 안락감과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드디어 무저갱 입구에 이르렀다. 무저갱은 작은 우물
  처럼 돌이 원형으로 쌓아져 있었다. 가운데는 밑이 보
  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칠흑의 어둠뿐이었다.  사람
  들이 어둠을 말할 때 무저갱처럼 어둡다고 하는  말을
  몰루카장군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몰루카장군은 마치 미행자가  있기라도 하듯이  뒤를
  살핀 뒤에 무저갱의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제 58 장 천신과 악신
  이리노중위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위성
  에 착륙한 외계인들은 똑같은 얼굴 형태를 하고  있었
  다. 아니 얼굴 형태뿐이 아니라 몸매며 모든 것이  기
  계로 생산한 것처럼 똑같았다. 그들을 구별할  수있는
  것은 이마에 찍혀  있는 기호뿐이었다.  이리노중위는
  나중에야 그들이  안드로이드 복제생명인  클론이라는
  것을 알고 쓴웃음을 지었다.
  "헬렌! 무사했군요."
  제인 선장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장애란에게  다가왔
  다. 그녀와 함께 장애란을  지구까지 실어 온  나타샤
  박사와 수디아 박사도 감격에 넘치는 표정으로 장애란
  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은하탐사선을 이끌고  위성에
  착륙한 것이다.
  "당신들은 누구시죠?"
  장애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웃고  있는
  얼굴에는 전혀 적의가 없었다.
  "헬렌은 우리가 누구인지 모를 거예요."
  제인 선장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헬렌이 아니고 장애란이에요."
  "그것은 지구에서의 이름이죠."
  "그럼 내가 지구인이 아니라는 건가요?"
  장애란은 이리노중위를 쳐다보았다. 이리노중위도 의
  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헬렌은 태양계에서 21광년이나 떨어진 장백성모성에
  서 왔어요. 우리가 헬렌을 데리고 왔어요."
  "나는 장백성모성이 어디에  있는 별인지 전혀  몰라
  요. 그리고 당신들이 나를 데리고 왔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일단 은하탐사선을 타고 뉴엘리사호로 돌아가요. 뉴
  엘리사호에 올라가서 자세한 얘기를 해줄께요."
  제인 선장이 장애란을 설득했다.
  "이 분은 어떻게 하죠?"
  장애란이 이리노중위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녀는
  이리노중위와 함께가 아니면 어디든지 가고 싶지 않았
  다. 물의 심판과 불의 심판이 닥쳐왔을 때 그녀는  이
  리노중위를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었
  다. 그런데 그 소원이 이루어졌고 이제는 두 번  다시
  그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물론 같이 가셔야죠."
  제인 선장이 환영한다는 뜻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들
  에게는 이리노중위도 장애란 못지 않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복제하는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번식하는 안드
  로이드를 위해서 이리노중위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
  다.
  "좋아요."
  장애란이 고혹적인 미소를 짓고 이리노중위의 팔짱을
  끼었다.
  제인 선장은 은하탐사선을 향해 걸으면서 장애란에게
  모든 설명을 해주었다.
  장애란은 제인 선장의 설명으로 니리드 위성에  물과
  불의 재앙을 내린 오안네스족이 클론족의 공격을 감당
  하지 못해 차원이동으로 어디론가 달아났다는 것을 알
  았고 인공적으로 만든 태양과 방공막까지 그들이 파괴
  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호의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들에 의해 장애란과 이리노중위는 죽음의  위기에서
  구조를 받은 것이다.
  다만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안드로이드  클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슬픔을  억제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처음에 그 말을 듣고  소리를
  죽여 흐느껴 울었다. 그것은 이리노중위도 마찬가지였
  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안드로이드 클론을  사랑했
  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허망함
  을 느꼈다.
  그러나 장애란, 아니 헬렌은 인간이나 다름없는 클론
  이었다.
  그는 오히려 헬렌을 위로했다. 그들은 서글픈 미소를
  교환한 뒤에 제인 선장을 뒤따라 걸었다.
  헬렌과 이리노중위가 은하탐사선에 승선하자 모든 승
  무원들이 계기 앞에서 일어나 일제히 박수를 쳤다.
  "이 사람들이 왜 우리에게 박수를 치지?"
  이리노중위는 은하탐사선 내부를 살피며 헬렌에게 귓
  속말을 속삭였다. 은하탐사선은 아르고 24호의 착륙선
  만한 크기였다. 수많은 장비와 계기가 있었고  탑승인
  원도 수십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은하탐사선의  승무
  원들은 모두 여자들뿐이었다.
  "승무원들이 모두 여자야. 여인천국에서 온 외계인들
  인가"
  이리노중위는 승무원들이 여자뿐이고 여자  승무원들
  이 몸에 타이트하게 달라붙은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승무원들이 모두 똑같이 생겼어요."
  "헬렌을 닮았어."
  "정말이요?"
  "이들이 우리를 환영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거야."
  그들이 속삭이는 동안 은하탐사선이 이륙을 시작했고
  순식간에 뉴엘리사호로 접근했다.
  "뉴엘리사호! 여기는 은하탐사선 제1호"
  제인 선장이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향해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뉴엘리사호 브릿지다! 보고하라!"
  이내 뉴엘리사호 브릿지의 여랑이 디스 플레이  스크
  린에 나타났다.
  "이리노중위와 헬렌을 구출하여 이륙했다. 5분 후 뉴
  엘리사호에 착륙하려 한다! 허락해 주기 바란다!"
  "은하탐사선 제1호 수고했다. 착륙을 허락한다!"
  뉴엘리사호는 거대한 선체를 가지고 있었다.  이리노
  중위가 은하탐사선의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통해서 보
  자 선체가 소행성만 했고 10여 척의 함대와  우주전투
  기 편대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이리노중위가 지구에서
  타고 올라온 우주선 아르고 24호와는 비교도 되지  않
  을 정도의 위용이었다.
  '어마어마하군 '
  이리노중위는 클론들의 우주함대에 속으로 경탄을 했
  다.
  "저들이 중위님만 살피고 있어요."
  이번에는 헬렌이 이리노중위의 귓전에 속삭였다.  은
  하탐사선 제1호의 승무원들은 이리노중위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남자를 보는 것이  처음이
  었다. 안드로이드에서 복제된 클론이었으나  그녀들은
  사고를 할 수도 있었고 감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나 다름없이 진화해 있었기 때문에 이성에 대해
  자신들도 모르게 시선이 가고 있었다.
  5분 후 은하탐사선 제1호는 뉴엘리사호에  착륙했다.
  투명한 막으로 가려진 갑판에서 긴 통로를 따라  이동
  을 하자 이동도로가 나타났다. 이동도로는 에스컬레이
  터처럼 체인으로 되어 있었으나 체인이 미로처럼 뒤엉
  켜 있었다. 그러나 손잡이 부분에 목적지가 씌어 있는
  버튼을 누르면 체인이 스스로 작동을 하여 목적지까지
  이동도로가 찾아갔다.
  제인 선장이 브릿지를 입력하자 이동도로는 빠른  속
  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걸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
  동도로도 관성 제어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모양으로 속
  도가 마하 에 이르고 있었으나 속도감이 전혀  느껴지
  지 않았고 오히려 쾌적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이리노중위와 헬렌이 브릿지를 향해 가는 동안  이동
  도로를 타고 오가는 클론들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살펴보았고 때때로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환성
  을 지르거나 박수를 쳤다.
  마치 영웅이 돌아온 듯 그들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들이 브릿지에 도착한 것은 5분쯤 지났을 때였다.
  브릿지 앞에는 레이저건으로 무장한 클론병사들이 삼
  엄하게 경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하자
  경비하는 클론들도 반기는 표정이 역력했다.
  "헬렌이 도착했다고 함장님께 보고하라!"
  제인 선장이 클론 경비병들에게 낮게 말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함장님께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
  경비병들이 앞을 비키자 브릿지의 육중한 문이  스르
  르 열렸다. 이리노중위와 헬렌은 제인 선장을 따라 브
  릿지로 들어갔다. 함장 여랑은 콘솔 앞에 앉아 있다가
  그들이 들어오자 벌떡 일어나서 그들을 맞이했다.
  여랑의 옆에 있던 클론들도 모두 일어나 웃음띈 얼굴
  로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헬렌! 어서 오너라!"
  여랑이 헬렌을 껴안았다.
  "저를 어떻게 아시죠?"
  "그건 차차  설명하기로 하고  이리노중위도  환영하
  네!"
  "감사합니다."
  여랑이 손을 내밀자 이리노중위는 그녀의 손을  잡았
  다.
  여랑의 손은 따뜻했다. 이리노중위는 여랑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로 그녀들이 진심으로 헬렌과  이리노중
  위를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리노중위도
  그녀들에게 호감을 느꼈다.
  "앉게."
  여랑이 그들을 의자로 안내했다. 클론들은  이리노중
  위와 의자에 앉자 시종들처럼 뒤에 시립했다.  여랑은
  클론들에게 이리노중위와 장애란에게 마실 것을  가져
  오도록 한 뒤에 약 6백년 전에 지구에서 일어난  안드
  로이드와 인간들의 전쟁, 일명 판도라의 전쟁부터  헬
  렌을 지구에 파견하게  된 얘기를 숨김없이  털어놓았
  다. 여랑이 그 얘기를 하는 동안 이리노중위와 헬렌은
  몇 번이나 충격을 받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노중위는 자신이 안드로이드와 깊은 사랑을 나누
  었다는 사실을 고통스러워했고 헬렌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안드로이드 클론이라는 사실에 또 다시 괴로워
  했다. 부끄러운 일이기는 했으나 제인 선장의  은하탐
  사선에서 발가벗은 나신으로 사이버 섹스에  참여했던
  기록도 스크린을 통해 보았다. 제인 선장이 그 모습을
  촬영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랑의 태도가 진지했고 그들을 관찰하고  있
  는 수많은 클론들의 눈동자를 생각하자 괴로움이 약간
  사라졌다.
  "안드로이드는 이미 기계가 아니라 인간예요. 이리노
  중위도 그 점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기계가 아니라구요?"
  "이리노중위가 우리 헬렌과 같이 살았으니까  누구보
  다도 그 사실을 잘 알 거예요. 헬렌이 인간과 다른 점
  이 있던가요?"
  장애란, 아니 헬렌은 인간과 조금도 다른 점이  없었
  다. 그러나 이리노중위는 마음이 무거웠다.
  "헬렌이 사랑스럽지 않던가요?"
  "사랑스럽습니다."
  "지구의 모습을 한 번  보세요. 지구는 지금  커다란
  전쟁에 휘말려 있어요."
  여랑이 리모트컨트롤의 버튼을 누르자 불타는 지구의
  모습이 비쳐졌다. 지구는 여기저기서 불기둥이 치솟고
  수많은 사람들이 시체가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지구의 인구는 벌써 반으로 줄었어요."
  "왜 전쟁을 하는 거죠"
  이리노중위는 근심스러운 목소리로 여랑에게 물었다.
  "지구의 전쟁은 악신들에 의한 것이에요."
  "악신들?"
  "6천만년 전까지 지구에는 천신과 악신들이 살고  있
  었어요. 천신들을 하늘을 지배했고 악신들은 땅의  세
  계를 지배했죠. 6천만년 전 천신과 악신들은 지구  사
  상 최대의 전쟁을 벌였죠. 처음엔 악신들이  승리하여
  천신들이 26차원의 세계로 달아났고 다음엔  천신들이
  승리하여 악신들이 5차원의 세계로 달아났어요. 그 전
  쟁이 너무나 치열하여 지구에는 화산이 폭발하고 빙하
  기가 찾아왔어요. 그리하여 천신들은 토성의 위성으로
  오게 되었고 악신들은 5차원의 세계로 달아났어요. 천
  신들은 토성의 위성으로 오기 전에 자신들의 유전자를
  지구에 남겨놓았는데 교활한 악신들은 천신들이  남겨
  놓은 유전자에 자신들의 유전인자를 배치했어요.  6백
  만년 전 지구가 제 모습을 찾자 천신의 후예인 인간들
  이 진화되었는데 인간의 유전자에는 악신의  유전인자
  가 숨어 있었죠. 그리하여 악신의 유전인자가  발호를
  하기 시작하여 지구는 끝없이 악한 일을 일으키게  된
  거예요. 현재 지구는 악신들의 유전인자가 완전히  발
  호를 하여 지옥으로 변했어요. 악신의 유전인자들은 6
  천만년 전에 자신의 선조들인 악신이 달아난  5차원으
  로 들어가는 길을 찾았고 지금도 한 사내가 그리로 들
  어가고 있어요."
  여랑이 말을 하는 동안 디스 플레이 스크린은 한  사
  내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는 지금 캄캄한 어둠  속으
  로 곤두박질을 쳐서 들어가고 있었다.
  "몰루카장군이군요"
  헬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맞아.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제2인자야."
  "땅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까?"
  이리노중위는 그가 어디로 들어가고 있는지 알 수 없
  었다. 다만 몰루카장군이 캄캄한 무저갱으로 곤두박질
  을 쳐서 들어가자  땅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기는 우주선이 발사되는 지하기지야."
  그러나 여랑이 설명을 해주어 비로소 고개를  끄더거
  렸다.
  "우주선이 발사되는 기지가 왜 땅속에 있습니까?"
  "도피처를 준비해 두는 것이겠지. 만약의 사탤르  대
  비하는 것이야."
  여랑이 말을 하는 동안 무저갱으로 곤두박질을  치던
  사내가 발을 딛고 섰다. 그러자 갑자기 어둠이 걷히고
  거대한 지하기지가 나타났다.
  그때 갑자기 디스 플레이 화면이 어두워졌다.
  "어떻게 된 거죠?"
  헬렌이 깜짝 놀라 여랑에게 물었다.
  "저기는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심장부야 "
  "그럼 저기를 파괴하면 그들이 멸망하겠군요."
  "불가능해."
  여랑이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왜 불가능하죠?"
  "저들의 심장부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방어를 하고 있
  어. 잘못 건드리면 지구가 폭발해."
  이리노중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네들은 지구의 희망이야."
  "지구의 희망이라고요?"
  "우리의 목적은 원래 번식하는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것이었어. 그래서 헬렌을 지구로 파견했던 거야."
  그러나 헬렌은 아직도 임신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리노중위는 그 사실이 의아했다. 헬렌이 임신을  못하
  게 되어 있다면 그들의 목적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먼저 자네들을 조사해야겠네."
  "조사라구요?"
  "특히 이리노중위는 유전자에 대핸 세밀한 조사를 받
  아야 돼."
  "무슨 말씀이십니까?"
  "헬렌이 임신을 하여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면 자네
  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게 되네. 그런데 자네의 유
  전자 중에는 악신의 유전인자들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
  여랑의 말에 이리노중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의 몸속에 악의  유전인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요?"
  "악의 유전인자를 제거해야지."
  "그게 가능합니까?"
  "우리는 유전자만 수백 년을 연구했어."
  "헬렌은요?"
  "헬렌도 유전자에 악의 유전인자가 숨어 있을 가능성
  이 있어서 조사를 받아야 돼. 헬렌뿐이 아니라 우리에
  게도 악의 유전인자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
  그렇다면 도리 없는 일이었다. 이리노중위는  헬렌과
  상의하여 클론족의 과학자들로부터 조사를 받기로  했
  다. 이리노중위와 헬렌은 여랑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은 뒤에 곧바로 제5함대로 건너갔다.
  "어서 오십시오. 두 분을 한영합니다."
  제5함대의 함장이자 과학자인 캐서린이 그들을  정중
  하게 맞이했다. 제5함대는 뉴엘리사호보다 훨씬  규모
  가 작았다. 그러나 2백 명의 과학자들을 비롯해  승무
  원 70명까지 모두 320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각종  실
  험자재와 실험실도 즐비했다.
  이리노중위와 헬렌은 먼저 소독실로 안내되어 세균검
  사를 받았다. 그들은 종류 미상의 세균이 침투해 있었
  으나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의 위험스러운 것은  아니
  었다. 이리노중위와 헬렌은 초능력자가 되었을 때  면
  역세포인 T세포가 강화되어 인체에 해로운 각종  바이
  러스나 박테리아균을 처치하고 있었다.
  이리노중위와 헬렌은 '세포자살현상'도 평범한  인간
  들과 달랐다. 평범한 사람들은 세포가 정해진  수명만
  큼 활동을 한 뒤에 유전자의 지시를 받아 곧바로 자살
  을 감행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한 시간에 약 10억  개
  의 세포가 스스로 자살을 하고 있다.
  세포가 스스로 자살을 하는 것은 세포가 노화되면 인
  체에 해를 입히기 때문에 유전자가 인체에 해를  가하
  지 못하도록 세포에게 자살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암 세포는 스스로  자살을 하지 않고  무한정
  증식을 하여 인간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것이다.
  1백년 전에 죽은 사람의 암세포가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암세포가 무한정 증식을 하고 있다는  증거
  가 되는 것이다.
  소독실에서 세균검사를 마치자 이리노중위와  헬렌은
  실험실로 옮겨졌다. 그들은  과학자들의 지시에  몸을
  깨끗하게 씻고 실험대 위에 누웠다.
  "마취를 할 테니까 편안하게 잠을 자세요."
  캐서린 박사의 지시에 이리노중위는 눈을 감았다. 헬
  렌도 이리노중위를 힐긋 쳐다본 뒤에 눈을 감았다. 이
  내 그들의 팔에 마취주사가 놓아졌고 이리노중위와 헬
  렌은 빠르게 마취되었다.
  "먼저 생명을 탄생하게 하는 번식 능력부터 알아봅시
  다."
  캐서린 박사의 지시로 비뇨기과 계통의 박사들이  이
  리노중위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이리노중위의  옷을
  모두 벗긴 뒤 정자에 대한 검사에 들어갔다.
  정자는 인간이 탄생할 때 필요한 염색체의 절반을 가
  지고 있다. 인간의 체(體)세포는 상염색체 46개와  성
  염색체 2개를 가진다. XY염색체다. 생명 탄생의  절반
  근원인 정자는 상염색체  23개와 성염색체(X 또는  Y)
  한 개를 갖고 있다.
  여자는 난소를 한 달에 한 번씩 생산한다. 정자와 난
  소의 결합으로 비로소 인간이 탄생되는 것이다.
  이리노중위의 정자를 채취하여  조사한 결과  완벽했
  다. 헬렌의 난소도 결함이 전혀 없었다. 다만 제인 선
  장이 지구를 방문했을 때 이리노중위의 정관을 막아놓
  는 바람에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었어도 임신을 할 수
  가 없었을 뿐이었다.
  "이제는 유전자를 검사합시다!"
  캐서린 박사의 말에  과학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
  다. 그들은 지난 수백년 동안 연구해 온 '게놈 프로젝
  트'의 성과를 시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
  다.
  게놈(Genome) 프로젝트는 원래의 이름이 휴먼(Human)
  게놈 프로젝트로 인간의 유전자 염색체 1조(組)에  대
  한 연구를 말하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는 유전자 지도
  라고 불렀다.
  인간의 DNA(디옥시리보핵산)에는 수많은 유전자가 있
  는데 DNA 염기쌍은 약 60억 개가 된다.
  클론족의 유전자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수백년
  동안 유전자에 대한 연구만 계속하여 유전자의 신비를
  완전히 풀었다. 아직 그들이 풀지 못한 유일한 유전자
  는 성염색체 X와 Y로 그 때문에 클론족은 여자들만 복
  제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리노중위가 있었다. 그의  유전자
  에서 악신이 배치한  자신들의 유전자를 제거한  뒤에
  이리노중위를 복제하면 장백성모성의 수많은 클론족과
  같이 어울려 사는 남자 클론들을 탄생시킬 수있는  것
  이다. 그렇게 되면  장백성모성도 양(陽)과  음(陰)이
  어우러져 비로소  코스모스(질서)가 존재하는  천체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리노중위의 DNA에서 유전자를 추출했다. 인
  간의 유전자는 약 30억 개의 암호로 되어 있었다.  이
  30억 개의 유전자에서 악신들이 배치한 유전자를 찾아
  내는 것은 막대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어떻게 되고 있나?"
  초광속 우주선 뉴엘리사호의 브릿지에서 여랑은 캐서
  린 박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유전자를 추출하고 있습니다."
  "유전자를 모두  검색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
  나?"
  "3일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음."
  여랑이 낮게 신음을 토했다.
  "알았네."
  여랑은 캐서린 박사와 통신을 마치자 전 함대에 명령
  을 내려 과학자들이 이리노중위의 유전자를  검색하는
  제5함대를 철저하게 보호하라고 지시했다. 여랑의  지
  시에 클론족의 전 함대가 캐서린 박사를 비롯한  과학
  자들이 있는 제5함대를  타원형으로 에워싸고  외부의
  침입에 대비했다. 우주전투기들은 1광년 전방에서  초
  계임무를 수행했다.
  "긴급 상황! 긴급 상황! 초계정 29호에서 알린다!"
  1광년 밖에서 초계 임무를 하고 있던 우주전투기  29
  호가 갑자기 다급한 보고를 해왔다.
  "무슨 일인가?"
  여랑은 재빨리 우주전투기 29호를 디스 플레이  스크
  린에 띄웠다.
  "혜성 하나가 초속 1백Km의 속도로 지구를 향해 돌진
  하고 있습니다."
  "초속 1백km?"
  여랑은 깜짝 놀랐다.  광속의 시대에 초속은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었으나 혜성이 그 정도의 속도를  가지
  고 있다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지구와 충돌할  경우
  지구는 완전히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구로서는
  사상 최악의 재앙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반경 얼마 짜리 혜성인가?
  "반경 20km짜리 혜성입니다."
  "음."
  여랑은 무겁게 신음을 내뱉았다. 반경 20km라면 지구
  가 완전히 파괴된다.
  "가스원반을 가지고 있나?"
  "그렇습니다. 혜성의 주위에 거대한 가스층이 형성되
  어 맹렬한 회전을 하고 있습니다."
  "블랙홀 같군."
  "어떻게 할까요?"
  "지구가 완전히 파괴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면 혜성을 파괴할까요?"
  "안돼. 그것은 우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야. 지구
  가 파괴되면 태양계도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혜성의 속도를 늦추게 하는 방법을 강구해 봐!"
  "알겠습니다."
  여랑은 봉선화 혜성의 궤도에도 신경을 집중했다. 그
  러는 동안에도 캐서린 박사 팀은 이리노중위의 유전자
  검사에 박차를 가했다.
  "찾았습니다!"
  캐서린 박사팀이 이리노중위의 유전자에서 악신의 유
  전자 코드를 찾아낸 것은 사흘째가 되던 날이었다.
  "찾았나?"
  "네."
  "그러면 즉시 악신의 유전자를 제거하라!"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뭐라구?"
  "악신의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들과 고리 모양으로 연
  결되어 있습니다. 그 유전자를 제거하면 생명을  탄생
  시키는 유전자도  사망합니다. 번식을  할 수  없습니
  다!"
  "그럴 수가!"
  "유전자를 촬영해서 이쪽으로 보내 봐!"
  "네."
  이내 캐서린 박사에게서 악신의 유전자를 촬영한  것
  이 뉴엘리사호의 디스 플레이 스크린으로 떠올랐다.
  "음!"
  악신의 유전자들을 보자 여랑은 자신도 모르게  낮게
  신음을 삼켰다. 악신의 유전들은 괴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떤 유전자는 아귀의 모습을 한 것도 있었고
  반인반수의 얼굴을 하고 있는 유전자를 비롯해 꼬리가
  달린 유전자까지 수십 종류나 되었다.
  '저것들 때문에 인간들은  악한 짓을 저지르게  되는
  거야....'
  악신의 유전자들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돌출한다.
  인간들이 어릴 때 악몽을 꾸는 것도 악신의  유전자들
  때문인 것이다.
  여랑은 깊은 고뇌에 빠져들었다. 악의 유전자를 제거
  하지 못하면 이리노중위의 유전자를 복제해도 악은 계
  속 유전될 것이다. 그것은 절망적인 일이었다.
  "방법이 전혀 없겠나?"
  "악의 유전자를 제거하지는 못해도 유전자 코드를 밀
  폐시킬 수는 있습니다."
  "밀폐시킨다고?"
  "예. 유전자 코드를 밀폐시켜 놓으면 악의  유전자가
  활동을 하지 못합니다."
  "누군가 밀폐시켜 놓은  코드를 찾아내면 악이  다시
  활동을 할 것이 아닌가?"
  "수억년 동안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밀폐시키겠습니
  다."
  "그렇다면 도리가 없지. 지구가 곧 파괴될 테니까 이
  리노중위의 유전자와 헬렌의 유전자를 추출하여  지구
  로 보낼 준비를 하라!"
  "알겠습니다."
  봉선화 혜성과 지구가  충돌하면 지구에는  생명체가
  살아 남지 못한다. 지구에  네 번의 빙하기가  닥쳐온
  것도 세 번은 혜성과의 충돌로 인한 것이었다. 한  번
  은 악신들과 천신들과의 전쟁 때문이었다. 이제  이리
  노중위와 헬렌의 유전자를 추출하여 지구로 보내면 그
  유전자들은 수천 만년 후에 인간으로 진화할 것이다.
       제 59 장 지구의 종말
  유러너스 제국과 사피언스 그라운드와의 전쟁은 점점
  파국을 향해 치달리고  있었다. 사피언스  그라운드는
  전쟁이 발발한지 불과 두 달만에 폐허가 되다시피  하
  고 있었다. 유러너스 제국의 MMX 미사일 공격으로  사
  피언스 그라운드의 광활한 국토가 한 꺼풀 뒤집히다시
  피 했고 30억의 인구 중 17억의 인구가 죽었다.
  처참한 전쟁이었다.
  핵탄두를 장착한 MMX 미사일은 가공할 파괴력을 가지
  고 있었다. 여기에 안드로이드 장갑기병들이 사피언스
  그라운드 내륙 깊숙이 침투하여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가 하면 민간인들을 대량 살상하여 아수라의 지옥으로
  만들었다.
  이리노중위와 헬렌이 유전자 검사를 모두 받고  마취
  에서 깨어난 것은 62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들은 뉴엘
  리사호의 브릿지에서 여랑과 제5함대의 과학자 팀장인
  캐서린 박사를 비롯해 제인선장, 나타샤 박사, 수디아
  박사 등과 나란히 앉아 식사를 했다.
  "저희에 대한 조사가 모두 끝났으면 이제 지구로  돌
  려보내 주십시오."
  식사가 끝나고 티타임이 되자 이리노중위가 여랑에게
  정중하게 요구했다.
  "지구는 돌아갈 수가 없네."
  여랑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는 지구에 돌아가서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이리노중위가 옆에 앉은 헬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헬렌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지구는 파괴되기 직전에 있어."
  "파괴되기 직전에 있다고요?"
  "짐작하고 있겠지만 유러너스 제국과 사피언스  그라
  운드가 전쟁을 벌였어. 벌써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30
  억 인구중 절반이 죽고 지구의 표면이 한 꺼풀 뒤집히
  다시피 했어."
  여랑이 눈짓을 하자 제인선장이 재빨리 디스  플레이
  스크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디스 플레이  스크린
  에 파괴되어 가고 있는 지구의 참혹한 모습이  떠올랐
  다. 유러너스 제국과  사피언스 그라운드와의  전쟁이
  일어나 최첨단 무기를 사용하는 바람에 양국은 무수한
  인명이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는 전쟁의 참상이 낱낱이  비치
  고 있었다.
  지금 디스 플레이 스크린이 비치고 있는 것은 유러너
  스 제국 수도 아라크네시의 주택가였다. 사피언스  그
  라운드가 중성자포를 발사하여 주택가가 불바다가  되
  어 있었다. 한 여자는 옆에서 중성자포가 터져 불길에
  온몸이 타서 죽고 있었다.  총을 복부에 맞은  여자는
  입을 벌리고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팔다리가
  잘린 병사도 있고 내장이 튀어나온 병사도 있었다.
  '아....'
  이리노중위는 자신도 모르게 낮게 신음을 삼켰다.
  그러나 사피언스 그라운드는 더욱 참혹했다. MMX  미
  사일에 장착한 핵탄두가 터지자 섬광이 번쩍 하는  순
  간 수십만 명의 사람이 죽어 나자빠졌다. 핵폭탄이 터
  져 건물이 송두리째 부서지고 아이들이 핵폭풍에 날아
  가 바윗돌이나 부서진 건물의 잔해에 부딪쳐  죽었다.
  이어서 죽음의 재가 쏟아져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맞
  이했다.
  "끔찍한 일이군요. 지구가 저렇게 파괴되다니...."
  이리노중위는 몸서리를 쳤다.
  "그런데 묘한 일이 일어났어."
  "예?"
  "유러너스 제국의 마더 살로메와 사피언스  그라운드
  의 예맨 의장이 동맹을 맺었어."
  "어떻게 앙숙 같은 그들이 동맹을 맺죠?"
  이리노중위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제인선장이 버튼을 다시 누르자 참모들을 대동하고 지
  구의 지붕이라고 할 수있는 유러너스 제국과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국경선에서 있는 에오스(Eos:  그리스 여
  신. 바람과 별의 어머니로 밤의 포장을 여는  신)산에
  서 회동하고 있는 마더 살로메와 예멘 의장이 디스 플
  레이 스크린에 나타나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부
  부처럼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위대한 유러너스 제국의 마더 살로메와 나 예멘  의
  장은 인류의 보다 나은 발전과 군형 있는 진화를 위해
  지구의 인구를 줄이기로 합의했다! 지구는 인구가  지
  나치게 많아지는 바람에 환경이 파괴되고 지구의 수명
  조차 짧아지고 있다. 우리는 지구의 수명 연장을 위해
  이런 과감한 조치를 취하기로 완전히 합의했다!"
  예멘 의장의 말이었다.
  "무슨 뜻이죠?"
  이리노중위는 그 말의 뜻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
  다.
  "인류를 학살하겠다는 거야."
  "왜요?"
  "지구의 인구가 너무 많다는 거야!"
  "아니 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지구인들은 그 동안 말도 안되는 일을 너무 많이 저
  질러 왔어. 서기 1940년대의 지구의 독일인들은  유태
  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6백만 명의 사람들을 학살했어.
  어린아이들에서 노인까지  발가벗겨서 가스실에  넣고
  가스로 학살한 뒤 시체를 소각했지. 유태인이라  이유
  로 6백만 명을 학살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 그래도...."
  이리노중위는 말끝을 얼버무렸다. 여랑의 말은  옳은
  말이었다. 그래도 지구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  지구인
  들을 학살한다는 것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발상이었다.
  "지구에 불필요한 인간들, 지구에 존재해야 아무  쓸
  모가 없는 인간들을 모조리 살해하라! 그들은 우리 지
  구에 해악이 될뿐이다. 청소를 하듯 지구인들을  살해
  하라!"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서는 마더 살로메 누네즈가  유
  러너스 제국의 군대에 학살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왜 저들이 저런 명령을 내리고 있는지 알고 있나?"
  여랑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리노중위에게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저들은 정신병자들 같습니다."
  "저들의 유전자에 있는 악의 유전인자가 발호를 하고
  있기 때문이야."
  "악의 유전인자요?"
  "우리가 본 유러너스 제국과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동
  맹 모습을 유전자를 통해 다시 보면 알 수 있어. 우리
  는 유전자를 분석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그걸 통해
  서 누네즈와 예멘 의장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어떤 자
  들인지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어."
  여랑의 지시에 의해 제인  선장이 다른 버튼을  눌렀
  다. 그러자 디스 플레이 스크린의 화면이 누네즈와 예
  멘 의장의 세포를 확대하기 시작하더니 이상한 그림을
  나타냈다. 그들은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네즈
  는 아귀에 박쥐 날개를 단 모습, 예멘은 파충류의  비
  늘을 갖고 있는 괴인이었다.
  "저것이 유전자로 본 누네즈와 예멘의 본 모습이야."
  여랑의 말이었다.
  "악의 유전자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잘 보게.  누
  네즈와 예멘이 에오스 산에서 동맹을 맺는 모습을  유
  전자를 통해서 다시 볼 수 있어...."
  여랑의 얘기대로였다. 제인 선장이 클릭한 디스 플레
  이 스크린에서는 화면이 컴퓨터 그래픽처럼  형형색색
  으로 빠르게 변했다. 예멘 의장이 몰루카장군에게  지
  시를 내리고 있었다.
  "몰루카장군! 5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열려  있겠
  지?"
  예멘 의장이 디스 플레이 스크린으로 폐허가  되어가
  고 있는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육지를 살피며  물었다.
  그의 모습은 어느 사이에 악신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
  었다. 그는 귀가 유난히 컸고 눈은 핏빛이었다.  살갗
  은 파충류처럼 비늘로 이루어져 있었다.
  "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굳게 지키도록  했습니
  다."
  몰루카장군이 대답했다. 몰루카장군도 악신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돼."
  "그렇습니다. 의장님!"
  몰루카장군이 예멘 의장의 본모습에 몸을 부르르  떨
  며 대답했다. 예멘 의장의 본모습인 악신에게서는  살
  기(殺氣)와 악기(惡氣)가 으스스하게 뻗치고 있었다.
  "저길 보라구. 유러너스 제국의 안드로이드들이야."
  예멘 의장이 가리키는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는  사피
  언스 그라운드 주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유러너스
  제국의 안드로이드들이 보이고  있었다. 그들에  의해
  사피언스 그라운드가 불타고 있었다.
  "오늘도  2천만 명이 넘게 죽었어."
  "이제 펄서폭탄을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야. 아직도 사피언스  그라운드는 인구가  너무
  많아."
  예멘 의장이 음흉하게 웃었다.
  "우리는 유러너스 제국이 지구의 인구를  최소한으로
  남겨 놓았을 때 펄서폭탄을 사용해야 돼."
  "봉선화 혜성이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괜찮을까요?"
  "우리는 5차원으로 피하면 괜찮아."
  예멘 의장이 웃었다.  몰루카장군은 아주 잠깐  동안
  그가 다녀온 4차원을 생각했다. 캄캄한 무저갱,  무저
  갱에서 들려오는 음산한 바람소리, 무저갱의 벽에  박
  쥐처럼 달라붙어 있는 반녀반수(半女反獸)의  괴인들,
  지옥처럼 유황불이 솟고 있는 지하세계, 아홉 개의 머
  리를 갖고 있는 뱀처럼 아홉  개의 머리를 갖고 있는
  괴인....
  그 곳은 삭막하고 스산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
  향이기도 했다.
  "의장님. 누네즈도 우리와 같은 악신일까요?"
  몰루카장군은 자신도 모르게 악신들이 금기로 여기고
  있는 질문을 했다.
  "몰루카. 보고 싶은가?"
  예멘 의장이 희미하게 웃었다.
  "솔직히 그녀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그녀는 음귀의 화신이야."
  "음귀는 어떤 모습입니까?"
  "저길 봐."
  예멘 의장이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  순
  간 몰루카장군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딱 벌리고  말았
  다.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는 박쥐 모양의 괴녀가 비치
  고 있었다. 그녀는 수시로 몸이며 얼굴이 변하고 있었
  다. 눈에서는 색기가 번들거리고 혀는 탐욕스럽게  큰
  입으로 연신 들락거리고  있었다. 입언저리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녀는 인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잡아먹을 인간이 없으면 제 살까지 먹어치웠다.  잔인
  하고 끔찍한 악신이었다.
  "마더 살로메의 유전자에 들어있는 악신이야..."
  예멘 의장이 다시 음산하게 웃었다.
  그러나 유러너스 제국의 수도. 아라크네시의 마더 랜
  드에 있는 신전에서도 누네즈가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보면서 음탕하게 웃고 있었다.
  "나도 네 놈의 정체를 알아!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예
  멘! 네 놈은 살귀야...."
  누네즈의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는 본래의 모습을  드
  러내고 있는 악신 예멘이 나타나 있었다. 예멘은 죽이
  기를 좋아하는 파괴의 악신 살귀(殺鬼)였다. 그의  손
  에는 언제나 피가 묻어 있었다. 그 까닭에 그의  몸에
  서는 언제나 비린내가 풍겼다. 그러나 그것은  누네즈
  도 좋아하는 냄새였다.
  누네즈는 디스 플레이의 스크린을 통해 예멘에게  메
  시지를 보냈다.
  "예멘! 우리가 싸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서로 합체한
  다면 손쉽게 지구를 지배할 수 있어! 우리가 합체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러면 우리가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
  그러자 예멘에게서 즉각 답변이 왔다.
  "마더 살로메! 좋은 생각이다. 진정으로 나와 합체할
  의향이 있는가?"
  살귀와 음귀가 하나로 합치면 더욱 가공할 힘을 발휘
  할 것이다.
  "그렇다! 나와 일체가 되자! 우리는 원래 일체였다!"
  "그렇다면 우리 몸의 반은  마더 살로메 음귀의  것,
  반은 나 살귀의 것이 되는 것인가?"
  "그렇다!"
  "좋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물론이다!"
  "그렇다면 음양산으로 오라!"
  "간다!"
  누네즈가 먼저 음양산(陰陽山)을  향해 어둠  속으로
  날기 시작했다. 음양산은 지구의 끝에 있었다. 누네즈
  가 어둠 속을 날아 황폐한 바위산 위에 내려서자 하늘
  에서 번개가 치고 뇌성이 울었다.
  "살귀 아직도 안 왔느냐?"
  누네즈가 산 정상에서 어둠을 향해 소리쳤다.
  "핫핫....!"
  그러자 요란한 웃음소리와 함께 피냄새가 진동을  하
  면서 예멘이 악신 본래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악신이
  나타나자 주위에 소름끼치는 살기가 돌고 유령들의 아
  우성소리가 들려왔다. 음양산은  금세 음귀  누네즈가
  뿌리는 음탕한 기운과 살귀 예멘이 뿌리는 엄청난  살
  기로 가득 찼다.
  "합체하자!"
  "좋다!"
  "호호....!"
  "핫핫!....!"
  그들이 움직이자 어둠이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음귀
  와 살귀의 화신이었다.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면
  서 그들의 웃음소리는 더욱 높아 갔고 파란 섬광과 뇌
  성이 몰아쳤다.
  "핫핫호호....!"
  그들은 마침내 일체가 되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그때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 아라크네시의 모습이  얼
  핏 비치더니 마더 랜드가 나타났다. 반인반수의  괴인
  들은 마더 랜드의 마더 룸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그 곳
  에는 안드로이드 로봇들이 삼엄하게 경호를 하고 있었
  다.
  "저 여자는 누구죠?"
  경호원들 중에는 유일하게 안드로이드가 아닌 여자가
  한 사람 있었다. 금발의 아름다운 여자였다.
  "반제동맹의 여자야."
  "반제동맹이요?"
  이리노중위는 반제동맹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
  러나 헬렌은 장애란이라는  이름으로 활약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반제동맹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자네의 부친이 반제동맹의 의장이야."
  "반제동맹이 무얼하는 곳입니까?"
  "지구를 지배하려는 단체야. 사피언스 그라운드와 유
  러너스 제국이 전쟁을  하면 어부지리를 얻어  지구를
  정복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어."
  "그, 그럴 수가...."
  여랑의 말에 이리노중위는 머리를 움켜쥐고 괴로워했
  다. 그러자 헬렌이 이리노중위의  손을 꼭 잡아 진정
  을 시켰다. 이리노중위는 다시 디스 플레이  스크린으
  로 시선을 옮겼다.
  우희 위버는 눈앞의 괴물을 보고 소스라쳐 놀라고 있
  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아수라(阿修羅)  음양인
  (陰陽人)이었다. 괴물의 왼쪽  반은 벌거벗은  여자고
  오른쪽 반은 발가벗은 남자였다. 그들은 한  몸뚱이에
  달라붙어 하하호호 웃으며 신전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악의 세계를 만들어 지배하려는 우리의 목적이 이루
  어지기도 전에 봉선화 혜성이 침입을 해오고 있다! 우
  리는 4차원으로 도망을 가야한다! 그러나 지구를 떠나
  도망가기 전에 지구에 있는 인간들을 모조리 살해하여
  없앤다!"
  광오했다. 무시무시한 위협이었다.
  "MMX 미사일을 모조리 발사해라!"
  반쪽 음양인이 음탕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펄서폭탄으로 지구를 날려버려라!"
  다른 반쪽 음양인도 킬킬대고 웃으며 명령을 내렸다.
  '이들은 완전히 악의 종자들이야!'
  우희 위버는 소름이 끼쳤다. 유러너스 제국과 사피언
  스 그라운드의 전쟁으로만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 근원
  적인 악의 발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악마처
  럼 미쳐 날뛰고 있었다.
  "제기랄! 저것들이 마침내 발악을 하고 있어!"
  갑자기 반제동맹의 로버트  퍼그스가 화면에  비쳐졌
  다. 이리노중위는 아버지 로버트 퍼그스의 모습을  보
  자 만감이 교차했다. 고향 로마노즈에서 선량한  가족
  이었던 아버지가 저런 인물이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자
  너무나 괴로웠다.
  "우희 위버 때가 왔다!"
  로버트 퍼그스가 우희 위버에게 지시를 내렸다.
  "무슨 때가 왔어요?"
  "네가 우리 반제동맹을 위해 희생할 때가 온 것이
  다."
  "무슨 소리예요?"
  "누네즈와 예멘을 제거하라!"
  "내가 어떻게 그들을 제거해요? 게다가 그들은  불로
  불사의 몸을 갖고 있어요!"
  "흐흐....너는 신의 바이러스 덩어리야. 네가 그들에
  게 가까이 접근하면 여기서 너를 폭발시키겠다!"
  "나, 나를 폭발시켜요?"
  "그렇다! 네 머릿속에는 바이러스가 가득차 있다! 가
  라! 그들에게 접근하라! 네가 그들에게 접근하면 내가
  네 머리통을 폭발시켜 바이러스에 감염시키게  만들겠
  다!"
  "아, 안돼요!"
  우희 위버가 사색이 되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에게는 자유가 없어. 너의 뇌는 우리에게  통제되
  고 있다! 저 악인들을 향해 가라! 저들이 죽으면 지구
  는 우리의 것이다!"
  로버트 퍼그스의 지시에  우희 위버가  반인반수들을
  향해 주춤주춤 걸어갔다. 그러자 반인반수가 몸을  홱
  돌려 우희 위버를 쏘아보았다.
  "핫핫호호....."
  반인반수가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갑자
  기 우희 위버가 반인반수를 향해 날아가 요란하게  폭
  발했다. 그녀의 살점과 피가 음양인에게 비수처럼  날
  아가 꽂혔다.
  "이게 뭐야?"
  "피와 살점이다! 계집년의  몸이 조각조각  분시되었
  어!"
  "더러운 년!"
  "신의 바이러스야! 반제동맹이 만든 바이러스가 살포
  되었어!"
  "제기랄!"
  음양인들은 우왕좌왕했다.
  "반제동맹은 지독한 곳이군요."
  이리노중위는 우울하여 고개를 떨어트렸다. 우희  위
  버의 살점이 음양인에게 날아가 꽂히고 피가 튀어  음
  양인들은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리노중위는 우희 위버의 몸이  순식
  간에 미세한 살점으로 변해 음양인들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그때 제인 선장이 디스 플레이 스크린을 껐다.
  뉴엘리사호의 브릿지는 무거운  침묵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아버지 로버트 퍼그스가 반제동맹 의장
  의 신분으로 마더 살로메와 예멘 의장을 죽이기  위해
  우희 위버를 폭발시키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헬렌도 이리노중위에 못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
  는 마더 살로메를 악의 화신, 예멘 의장을 평화의  사
  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악의  화신이라
  는 것을 알았을 때 마음이 아팠다.
  "지구가 파괴되는 것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습
  니다."
  이윽고 이리노중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구의 인
  간들이 모두 악인들이라면 파괴되는 것이 오히려 바람
  직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고맙네."
  여랑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우리는 장백성모성으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지구가 파괴되면 장백성모성으로 돌아가야지. 그 전
  에 우리는 자네의  유전자와 헬렌의 유전자를  지구로
  보내려고 하네."
  "왜 저희들의 유전자를 지구로 보내죠? 지구는  파괴
  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헬렌이 모처럼 입을 열고 여랑에게 물었다.
  "지구는 태양계뿐이 아니라 우주에 있는 수많은 천체
  중에서도 몇 개 안되는 아름다운 천체의 하나예요. 일
  시적으로 파괴되기는 해도 다시 살아나요. 그때  악의
  유전인자를 제거한 이리노중위와 헬렌의 유전자는  지
  구에서 스스로 진화하여 다시 인간이 되는 거죠. 물론
  그렇게 되려면 수천만 년에서 수억년이 걸릴지도 몰라
  요. 그래도 이리노중위와 헬렌의 유전자는 장구한  세
  월에 걸쳐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
  고 마침내 낙원에서 살아가게 될 거예요."
  캐서린 박사가 차분한  어조로 이리노중위와  헬렌의
  유전자를 지구로 보내는 까닭을 설명했다.
  "저게 당신들의 유전자인 M과 W예요."
  제인선장이 디스 플레이 스크린 버튼을 눌렀다. 그러
  자 비누방울 같은 투명한 막에 갇힌 남녀의 나신이 보
  였다. 이리노중위와 헬렌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비누
  방울 같은 구형(球形) 기구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유전자 남녀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유전자 남녀는 이리노중위와 헬렌의 분신이었다. 유전
  자를 M과 W로 부르는 것은 남자(man)와  여자(wooman)
  의 첫 자에서 딴 것 같았다.
  "저들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이군요."
  "스크린에는 10억배로 확대되어 있어. M과 W의  크기
  는 실제 크기는 1000미크론(1미크론은 1백만분의  1m.
  1000미크론은 10억분의 1m)에 지나지 않아. 다시 말하
  면 먼지의 입자보다도 더 작은 거야."
  여랑의 설명에 이리노중위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1000미크론이라면 인간의 육안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
  을 것이다.
  "저 작은 M과 W를 어떻게 지구로 보내죠?"
  이번엔 헬렌이 물었다.
  "내일 초소형 로켓으로 보낼 거야."
  여랑의 대답이었다.
  이튿날 이리노중위와 헬렌은 뉴엘리사호의  브릿지에
  서 지구로 날아갈 로켓을 디스 플레이 스크린으로  지
  켜보았다. 유전자 M과 W를 지구로 싣고 떠나는 로켓은
  만년필 크기의 초소형 로켓이었다.
  "유전자 로켓 발사준비 완료되었는가?"
  여랑이 로켓 발사대를 향해 질문을 했다.
  "유전자 로켓 발사준비 완료되었다!"
  유전자 로켓 발사대의 캐서린 박사가 발사대  관제탑
  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스피커로 들려왔다. 디스  플레
  이 스크린에는 유전자 로켓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유전자 로켓 최종 점검실시!"
  "실시!"
  캐서린 박사가 복창을 했다.
  "유전자 로켓 발사대의 전 클론 승무원들에게 발사대
  대장으로서 명령한다! 각자  계기를 점검하고  보고하
  라!"
  캐서린 박사가 이어서 유전자 로켓 발사대의 클론 승
  무원들에게 명령했다.
  "관성제어기 점검 완료!"
  "중력 제어 장치 이상 없음!"
  "로켓 부스트 이상 없음!"
  유전자 로켓 발사대의 클론 승무원들이 차례로  점검
  완료 보고를 했다.
  "유전자 로켓 카운트다운 실시하라!"
  여랑이 긴장된 표정으로 명령을 내렸다. 디스 플레이
  스크린에 나타난 시계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카운트다운 실시!"
  캐서린 박사가 발사명령을 내렸다. 이리노중위는  약
  간 긴장을 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만년필  크기의
  유전자 로켓은 지구를 향해 광속으로 날아갈 것이다.
  이리노중위는 깊이 숨을 내쉬었다.
  "카운트다운 텐 "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으나  이리노중위는
  카운트다운을 하는 소리에 긴장이 되어 전면을 응시했
  다.
  "나인 에잇 세븐 "
  카운트다운 소리에 섞여 발사 7초 전, 발사 승무원들
  은 긴장을 푸시고 심호흡을 하십시오 하는  아나운스
  먼트가 들려왔다.
  "식스 화이브 포 "
  카운트다운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리노중위는 눈을 감았다.
  "쓰리 투 원 제로 "
  그 순간 무엇인가 폭발하는 듯한 요란한 폭음이 귓전
  을 때렸다. 우주선이 충격을 받은 듯 흔들리고 이리노
  중위는 갑자기 땅 속으로 아득하게 추락하는 듯한  기
  분이 들었다. 마침내  유전자 로켓이 발사된  것이다.
  로켓은 초소형이지만 광속을 가지고 있는 로켓의 발사
  대로 인해 순식간에 태양계를 향해 날아갔다.
  발사의 성공이었다.
  "유전자 로켓 발사 성공!"
  관제탑에서 스피커로 발사 성공을 알리면서 디스  플
  레이 스크린에 광속으로 날고 있는 유전자 로켓이  잡
  혔다.
  "로켓 부스트 분리 준비!"
  여랑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로켓 부스트 분리 준비 완료!"
  캐서린 박사가 복창을 했다.
  "로켓 부스트 분리!"
  "로켓 부스트 분리!"
  "실시!"
  "실시!"
  캐서린 박사가 로켓 부스트 분리 버튼을 눌렀다.  그
  러자 유전자 로켓의 모선 엔진이 가동을 시작했다. 이
  제 로켓 부스트는 역추진력을 얻어 뉴엘리사호로 돌아
  오고 유전자 로켓은  본격적으로 지구의 궤도를  향해
  날아갈 것이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모선에서 분리되는 로켓 부스트
  의 꼬리 부분이 디스 플레이 스크린으로 보였다. 로켓
  부스트는 눈 깜짝 할 사이에 모선에서 멀어지고  있었
  다.
  "유전자 로켓 부스트 분리 완료! 안전항해 시작!"
  캐서린 박사가 여랑에게 보고를 했다.
  "수고했다!"
  여랑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러나 그 순간 클론  승무
  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그러나  이리
  노중위는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리노중
  위와 헬렌의 유전자는 지구에 도착하여 먼지처럼 떠돌
  아다닐 것이고 지구는  파괴될 것이다.  이리노중위와
  헬렌은 클론족을 따라 21광년이나 떨어진  장백성모성
  에서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다.
  이리노중위의 눈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굴러 떨어졌다.
  유러너스 제국의 마더 살로메와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예멘 의장은 에오스산에서  동맹을 맺은 뒤  대대적인
  학살명령을 내렸다. 그들이 내린 학살 이유는 단 한가
  지 지구에 인구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지구는 무시무시한 피바람이 불었다. 수많은 지구인들
  이 누네즈와 예멘의 학살명령으로 영문도 모르고 군대
  에 의해 학살되었다.
  "봉선화 혜성이 3일 안에 침입해 올 것이오."
  예멘은 애오스산에서 동맹을 맺은 후 누네즈와  함께
  지냈다. 그러나 반제동맹의 인간폭탄 우희 위버에  의
  해 감염되어 두 사람 모두  흉측한 몰골로 변해 있었
  다. 불로불사의 몸을 갖고 있는 그들은 바이러스로 인
  해 죽지는 않았으나 얼굴에 반점이 생기고 진물이  흐
  르는 등 흉물로 변해 있었다.
  "지구가 비로소 파괴되는군요."
  누네즈가 그 소리에 하얗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도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야 할 것 같
  소."
  "마지막 순간에 떠나기로 해요. 지구가 파괴되는  것
  을 보고 싶어요."
  유러너스 제국과 사피언스  그라운드에 의해  지구는
  이미 폐허로 변해 있었다.  수십억 지구의 인구가  두
  제국의 전쟁으로 참혹하게 죽고 건물이 불타거나 무너
  져 버린 것이다.
  "좋소. 그러면 지구의 모습이나 구경합시다."
  "가요."
  예멘 의장의 말에 누네즈가 웃으며 에어카  페가서스
  에 올라탔다. 그들은 페가서스로 8백m 상공을  날면서
  처참하게 변한 지구의 모습에 감탄했다.
  "펄서폭탄으로 지구를 완전히 날려버리는 것이  어때
  요?"
  "지구가 완전히 파괴되면 태양계의 질서가 파괴되오!
  그러면 우리는 어디 가서 살겠소? 펄서폭탄으로  지구
  를 날려보낼 수는 없소!"
  아라크네시도 벌써 폐허로 변해 있었다. 여기저기 시
  체가 즐비했고 불타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만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가도가도 인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라크네시도 완전히 파괴되었군요. 펄서폭탄의  위
  력은 정말 대단해요."
  사피언스 그라운드는 아라크네시에 펄서폭탄을  사용
  했다. 아라크네시는 단 1초만에 완전히 죽음의 땅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당신네 MMX 미사일도 위력이 대단했소. 1백만  메가
  톤이나 되는 핵탄두 미사일이 땅속으로 날아와 폭발하
  니 살아있는 생물이 어디 있겠소?"
  유러너스 제국은 사피언스 그라운드에 수백 개의 MMX
  미사일을 쏘았다. 그  미사일에는 핵탄두가  장착되어
  있어서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인구 30억을 대부분 살상
  한 것이다.
  '저것들이 감히 동맹을 맺다니....'
  반제동맹 의장 로버트 퍼그스는 누네즈와 예멘이  동
  맹을 맺자 분개했다. 뜻밖의 사태였다. 누네즈와 예멘
  이 전쟁을 하여 양쪽의 군대가 힘이 없을 때 신의  바
  이러스를 살포한 뒤  지구를 정복하려던 그의  음모가
  보기 좋게 실패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같이 망하는 거야....'
  반제동맹의 로버트 퍼그스는 음모가 실패로 돌아가자
  신의 바이러스를 살포했다. 우희 위버를 살해하면서까
  지 누네즈와 예멘을  죽이려고 했으나 그들은  몸에서
  진물이 흘러내리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신의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지구를 휩쓸었다.  유러너
  스 제국의 MMX 미사일과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펄서폭
  탄에도 살아남은 지구인들은 신의 바이러스에  감염되
  어 떼죽음을 당했다.
  "이제는 지구를 떠나는 수밖에 없어...."
  로버트 퍼그스는 불모의 땅이 된 지구를 떠나기 위해
  11명의 부인이자 부하를 거느리고 예멘 의장이 감춰놓
  은 우주선으로 향했다. 우주선 주위에도 신의  바이러
  스를 살포해 경비병들이  모조리 죽어 나자빠져  있었
  다. 신의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인간을 죽인 뒤 부패한
  시체를 갉아먹어 뼈만 남게 하였다. 우주선  주위에는
  뼈만 남은 해골들만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로버트 퍼그스 기다리고 있었다!"
  로버트 퍼그스가 여자들을 거느리고 우주선에 도착하
  자 누네즈가 깔깔대고 웃으며 우주선에서 나왔다.  누
  네즈는 레이저건을 들고 있었다.
  "누네즈....!"
  로버트 퍼그스는 깜짝 놀랐으나 누네즈가 들고  있는
  레이저건을 보고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레이저건
  따위로 자신을 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로버트 퍼그스! 감히 바이러스로 우리를 죽일 수 있
  다고 생각했나?"
  "누네즈. 그 레이저건으로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
  하나? 그러잖아도 열 두  번째 부인이 없어서  누구로
  채울까 곤혹스러웠는데 누네즈 당신이 나의 열 두  번
  째 부인이 되는 것이 어떻겠나?"
  로버트 퍼그스도 불로불사의 몸을 갖고 있었다. 마더
  랜드에 잠입해 있던 반제동맹 요원들이  누네즈에게서
  몰래 훔친 것이었다.
  "미친 놈!"
  "예멘은 어디 있나?"
  "우주선을 점검하고 있어! 이제 우리는 지구를  떠날
  거야. 잘 가라! 로버트...."
  누네즈가 입술을 비틀며 웃고는 레이저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파란 섬광이 번쩍하고 로버트  퍼그스
  에게 날아갔고 로버트 퍼그스는 파란빛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레이저건에 펄서폭탄이 장착되어 있었
  던 것이다.
  "깨끗하군. 역시 펄서폭탄은 위력이 있어...."
  누네즈가 유쾌하게 웃었다.
  그때 우주선에서 예멘이 나왔다.
  "예멘...."
  "로버트 퍼그스를 해치웠나?"
  "해치웠어. 이젠 네 차례야!"
  "뭐라구?"
  "동맹은 없다! 이제 우주는 내가 지배한다....!"
  "핫핫.....!"
  예멘이 하늘을 쳐다보며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그 순
  간 퍼런 빛이 번쩍했고 예멘은 퍼런 빛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누네즈가 쏜 레이저건에 의해  예멘도
  사라진 것이다.
  "호호....나는 이제 지구를 떠나겠어!"
       제 60 장 에필로그
  누네즈는 레이저건을  버리고 우주선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주선 발사준비를 마치고 대기중인  승무원들
  에게 발사명령을 내렸다.  우주선은 소형  우주선이었
  다. 탐승 인원은 남녀  2백 명밖에 안되었다.  그들은
  우주선을 조종할  승무원이기도 했지만  누네즈에게서
  선택받은 인간들이었다.
  누네즈가 탄 우주선은 발사와 로켓 부스트 분리를 마
  치고 대기권을 벗어나 안전한 항로에 들어섰다.
  "이젠 끝났어...."
  누네즈는 우주선의 브릿지에서  망망한 우주  대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누네즈! 혼자서 어디로 가는가? 혼자 가기가 고독하
  지 않은가? 혼자서 여행하는 것이 즐겁다면 영원히 우
  주를 떠돌게 해주마...."
  그때 예멘의 낭랑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를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년이 나를 배신할 줄 알았어. 그래서 나도  우주
  선을 점검한다면서 여기에  들어와 네 년을  죽어서도
  영원히 우주의 미아로 만들 장치를  설치했어....그럼
  안녕....핫핫핫...."
  우주선 안에서 예멘 의장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비, 비열한 놈....!"
  누네즈는 얼굴이 핼쓱해 졌다. 그러나 예멘 의장에게
  이를 갈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누네즈는 예멘 의장이
  설치했을 펄서폭탄을 찾아야 했다. 그녀는 미친  듯이
  우주선 안을 뛰어 다녔다. 우주선은 벌써 대기권 밖을
  빠져나가 망망한 우주 대해를 항해하고 있었다.  우주
  선의 선창(船窓)으로 보이는 하늘은 캄캄한  어둠뿐이
  었다. 무저갱 같은 어둠이었다. 그 무저갱 같은  어둠
  속에서 수많은 별들이 명멸하고 있었다.
  아....
  그때 누네즈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우주선에
  서 번쩍 하는 섬광이  터지고 그녀는 산산이  비산(飛
  散)하는 우주선의 조각들과 함께 우주로 내동댕이쳐졌
  다.
  이제 그녀는 예멘 의장의 말대로 죽은 뒤에도 우주를
  끝없이 항해할 것이다.
  60장 에필로그
  유전자 M과 W가 지구에  도착한 것은 봉선화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기 하루 전의 일이었다. 그들은  투명한
  막에 갇힌 채 봉선화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봉선화 혜성이 엄청난 속도로 지구 궤도에
  진입하면서부터 지구는  바닷물이 넘치고  광풍폭우가
  불어닥치는가 하면 우박이  쏟아졌다. 아울러  지진이
  일어나 땅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화산이 폭발했다.  엄
  청난 기상의 변화였다.
  유러너스 제국과 사피언스 그라운드의 전쟁,  반제동
  맹의 바이러스 살포로 죽음의 땅이 된 지구는  봉선화
  혜성의 충돌로 생명체가 멸종하는 비운을 맞이한 것이
  다.
  봉선화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순간 지구는 그 충격
  으로 수 만, 수십 만개의 불덩이로 분해되었다.  봉선
  화 혜성 자체가 엄청난 규모의 불덩어리였다.
  '지구는 우주의 질서에 역행했어....'
  유전자 M과 W는 구형의  막 안에서 지구가  부서지고
  합체되는 과정을 낱낱이 목격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
  주의 탄생과 지구창생과 흡사했다.
  처음에 우주(Cosmos: 코스모스)는 혼돈(Chaos:  카오
  스) 상태에 있었다. 전 우주에는 빛이라고는 한  점도
  없었고 오직 에너지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형태나  형
  체를 가지고 있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았고 웅장한  심
  연(深淵)뿐이었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혼돈 상태에 있으면서도 우주는 밀집된  핵으
  로부터 끊임없이 팽창을 거듭하고 있었고 마침내  150
  여 억년 전에 빅뱅(Big bang: 대폭발)이 이루어져  물
  질로서의 우주가 존재하게 되었다. 그것은 우주가  혼
  돈의 세계에서 질서의  세계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했
  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우주의 기원이라고 명명했다.  기
  원 이전의 우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아무 것도  알려
  지지 않았다. 다만 기원 이전의 우주는 카오스 상태였
  을 것이라는 추측에만 과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을 뿐이
  었다. 이것은 성경에서 '한 처음에 빛이 있었다' 하는
  구절과 흡사하다. 성경에서는  빛이 있었다고  했으나
  과학자들은 '처음에 에너지가 있었다' 라고  주장하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빛이나 에너지가 있기 전에 카오
  스(혼돈) 상태였다는 것은 과학자들이나 성경이  기이
  하게 일치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밀집된 핵의 상태에 있던 우주를  코스믹
  에그(Cosmic egg: 우주 달걀)라고 불렀다. 이  코스믹
  에그는 밀집된 핵의 상태에서 점점 팽창하여 빅뱅이라
  고 부르는 초폭발을 하게 되는데 비로소 우주가  카오
  스 상태에서 코스모스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주의 역사는 빅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빅뱅  이전
  에도 우주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으나 빅뱅  이전에
  대해서는 카오스 상태였을 것이라는 학설 외에는 밝혀
  진 것이 없다. 그러므로 우주의 기원(紀元) 이전의 우
  주역사는 장막 뒤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장막 뒤에는 무한한 유러너스(Ouranos: 하늘)만 있을
  것이다.
  은하계가 형성된 것은 우주가  대폭발을 할 때  터져
  나온 파편들에 의해서였다. 이때 탄생된 무수한  별들
  이 은하계를 이루었고  별들의 상호 에너지  작용으로
  인해 명멸해 갔다. 물론 이 별들의 명멸은 언제나  일
  정한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주는
  질서라는 뜻을 가진 코스모스라고 불리게 되었던 것이
  다.
  은하계는 150 여 억년 전의 대폭발이 있은 뒤에도 일
  정한 에너지 운동을 되풀이했다. 그 결과 무수한 별들
  의 이합집산이 이루어졌다.  별들의 이러한  운동으로
  별들끼리 서로 충돌하여 어떤 별들은 은하계에서 사라
  졌고 어떤 별들은 합체하여 새로운 별이 탄생되었다.
  지구는 약 46억년 전에 수많은 미행성(微行星)이  수
  천만년 동안 충돌과 합체를 거듭하여 형성되었다.  처
  음에는 운석(隕石)이라고 여겨질 정도의 작은  소행성
  (지름 10km 미만)에 불과했으나 이러한 충돌과 합체가
  무수히 진행됨으로써 현재의 지구인 거대한  행성으로
  까지 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미행성은 초속 10km(A급 태풍의 초속은 30m)로  빠르
  게 원시지구에 충돌했다. 이 엄청난 속도에 의해 수천
  도의 열에너지가 발생했고 충돌 행성이나 원시 행성을
  이루고 있던 물질이  녹아서 금속 성분은  원시지구의
  심저(深抵)에 가라앉고 증발하기 쉬운 물질은  가스가
  되어 원시대기를 형성했다. 물론 원시대기가 처음부터
  산소, 질소, 수소 등 생물체가 생활하기에 적합한  대
  기는 아니었다. 원시대기는  현재도 우주의  천체에서
  발견되곤 하는 수소헬륨 따위의 원소로 되어 있었다.
  원시지구의 심저에 가라앉은 금속물질은  핵(劾)으로
  불리워졌다. 그리고 원시지구는 수천 만년 또는  수억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미행성의 충돌이  줄어들었다.
  지구 형성의 말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이것이 약  46억
  년 전후의 일이었다.
  지구 형성이 끝나갈 무렵에는 지구에 바다가  만들어
  졌다. 원시대기는 미행성이 충돌할 때 열에너지의  발
  생으로 이루어진 고온의 수증기를 갖고 있었다.  미행
  성의 충돌이 사라지자 대기의 온도는 식어 갔고  수증
  기는 물이 되어 지표로 쏟아져 바다가 이루어진  것이
  다. 물론 바다의 형성 역시 수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지구에 판(板) 구조가 시작된 것은 약 40억년쯤의 일
  이었다.
  지구의 지각(地殼: 지표에서 35km 이내)과 핵 사이에
  있는 맨틀(mantel: 지각 바로 밑에서 2천9백km까지)은
  상승과 하강을 되풀이했다.  이로 인해  해구(海丘)가
  생겼고 해구가  갈라져 중앙해령(中央海嶺)이  탄생했
  다. 판은 중앙해령에서 생성되어 떠다니다가 해구에서
  다른 판 밑으로 하강했다.
  바닷속의 지각이 맨틀의 내부로 침강한 곳에서  육지
  의 지각을 형성하는 화강암 마그마(Magma)가 만들어졌
  다. 화강암 마그마는 용암(熔岩)처럼 상승하다가 바다
  의 열기와 상호작용을 일으켜 육지가 탄생되었다.
  이때 비로소 원시지구는 지구다운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므로 지구에 제일 먼저 탄생된 것은 해양과  대기
  였고 육지는 그 다음이었다.
  46억에서 40억년 사이에 탄생한 중앙해령에는 고온의
  열수(熱水)가 끊임없이 솟구치는 분출공(噴出孔)도 생
  겨났다. 해수가 지각의 갈라진 틈으로 스며들고  현무
  암질의 뜨거운 마그마에 의해 가열되어 수천도의 열수
  가 되었다. 열수는 주변의 금속물질과 광물질을  녹이
  면서 수많은 분출공을 통해 계속 솟구쳤다. 이때 열수
  분출공을 통해 분출된  해수에 녹아 있던  영양(營養)
  염류(鹽類)를 사용한 종류 미상의 유기물이 최초의 생
  명으로 진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생명체는 27억년 전까지 해수 깊은 곳에서
  만 겨우 진화를 하고  있었다. 27억년 전까지  지구는
  태양이나 우주에서 발사되는 고 에너지 입자에 무방비
  로 노출되어 있었고 이 고 에너지 입자는 생명체의 디
  옥시리보핵산(DNA: 유전자)을 파괴했던 것이다.
  그러나 27억년 전을 전후하여 지구에 강력한  자기장
  (磁氣場)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태양이나 우주
  에서 발산되는 고 에너지 입자를 지구의 자기장이  차
  단하게 됨으로써 생명체는 마침내 해수의 얕은 곳까지
  진출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해수의 깊은 곳에서 얕은 곳으로 진출한 생
  명체는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라고  불리는
  남조류(藍藻類: 바다말 식물류)로 진화하고 광합성(光
  合成: 빛의 에너지에  의한 합성)에 의해  대기권으로
  산소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지구에 자기장이 형성된 것은 하강하기 시작한  판이
  지구의 외핵까지 침강하게  되자 외핵이 격렬한  대류
  (對流)를 타기 시작하여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하게 된
  것이었다.
  해구(海丘)에서 하강한 판은 지표에서 지하 670km 지
  점에서 머물게 되었다. 이 장소는 맨틀의 상부와 하부
  로 갈라지는 곳이었다. 판은 여기에서 27억년 전을 전
  후하여 외핵까지 다시 침강하게 되었다. 침강한  판은
  외핵보다 온도가 낮아서 뜨거운 외핵을 자극하여 액체
  금속이 규칙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액체 금속인  외
  핵이 유동을 시작하자 맨틀도 급속히 대류를 타기  시
  작해 지구에 강력한  자기장이 발생했고 이  자기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대류의 움직임에 의해 지구에 초대륙이 탄생했다.
  이 대륙의 이름은 '로렌시아'였고 19억년쯤에 탄생되
  었는데 현재의 북아메리카(미국, 캐나다),  북유럽(스
  칸디아나비아 지방의 국가들), 북부 중국, 오세아니아
  대륙이 합쳐진 초대륙이었다.
  이후 대륙은 수없이 분열과 합체를 계속했다. 로렌시
  아 대륙이 분열하였다가  15억년 전에 새로운  대륙이
  탄생했고, 이 대륙도 분열하였다가 10억년 전에  다시
  합체를 했다.
  6억년쯤 전에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또 다시  새로운
  초대륙이 탄생했다. '곤드와나랜드'라는 이름의 이 초
  대륙은 아프리카와 시베리아까지 포함되어 현재의  지
  구 모습과 유사한 모양을 갖추었다.
  이시기는 사상최대의 빙하시대였다. 얼음이 아프리카
  일대의 적도 부근까지 확장되어 모든 생명체에 위기가
  닥쳐왔다.
  동쪽 하늘은 피에 젖은 듯이 붉었고 북쪽 하늘은  어
  둠의 심연이었다. 산소는  희박했고 암록색의  이끼는
  얼어붙었다. 지구의 선태식물(蘚笞植物: 이끼류)도 종
  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람은 폭풍처럼 무서운  굉음을 토하면서  생명체가
  멸종한 계곡을 달렸다. 바람에 실려 커다란  눈송이들
  이 떨어지고 그것들은 다시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태
  양 빛에 눈산들이 황금처럼 번쩍거리고 낮 기온이  영
  하 수백도로 떨어졌다.
  그러나 지구는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때맞춰 슈퍼 플룸이라는 고온의 맨틀류가 현재의 남태
  평양 심저에서 지표를 뚫고 터져 올라왔다. 플룸의 상
  승으로 초대륙이 분열하여 태평양이 형성되고  분열한
  대륙과 대륙 사이에 지구대(地溝帶)가 생겨 해수가 침
  투했고 얕은 바다가 탄생했다. 고온의 맨틀류로  얼어
  붙었던 지구의 빙산들이  녹기 시작해 온난한  기후가
  되었다.
  해수는 따뜻했고 갑자기 영양염(營養鹽)이  풍부해졌
  다. 영양염이 풍부한 이 환경에서 생명체들은  다형다
  세포로 폭발적으로 진화해 나갔다.
  대기에는 산소가 20%로 증가했다. 4억4천만년 전에는
  오존층이 형성되어  육상에서의 생명활동이  가능해져
  식물이 바다에서 육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지구의 생물은 '캄푸리아기의 대폭발'이라고  불리는
  대진화 이전에는 수십 종에 불과했고 단세포 생명체였
  다. 게다가 눈으로 식별할 수없을 정도의 작은 것이었
  다. 이때 탄생한  남조류는 산소를 방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소는 이시기의 생물체에 해로운 존재에 지나
  지 않았다. 생물체들은 산소에 적응할 수있는  것들만
  존재하게 되었고 나머지는 서서히 도태되었다.
  7억년 전에 비로소 산소에 적응하는 생물들이 등장하
  기 시작했고 이 생물은 눈으로도  볼 수 있게 성장했
  다. 그리고 이 생물은 단숨에 1만 여종 이상으로 폭발
  적인 증가를 했다.
  약 4억년 전의 지구에 생명체들이 진화에 진화를  거
  듭하여 어류(魚類)의 시대가 도래했다. 바다 안에  철
  갑의 피부를 가진 갑각류(甲殼類) 어류들이 번성했다.
  시노세라스(앵무조개), 암모나이트,  해미키쿠라스피
  스와 같은 어류와 패류(貝類: 조개류), 바다나리 같은
  해초들이 등장했다.
  시노세라스는 지금도 존재하는  어류와 패류의  중간
  형태의 물고기로 원통형의 몸에 오징어와 흡사한 연체
  (軟滯)를 갖고 있었다. 이 무렵을 '데본기'라고  불렀
  는데 바다에서 육지로 생물들의 대이동이 시작된 시기
  였다.
  생물의 이동은 먼저 식물이 이동을 했고 다음이 곤충
  류가 퍼져 나가게 되었다. 육지에 식물이 무성하게 번
  성하자 산소가 공급되어 오존층이 형성되었고  양서류
  (兩棲類: 개구리, 도마뱀), 파충류(爬蟲類: 뱀, 악어,
  공룡 따위), 포유류(哺乳類), 조류(鳥類)가  진화되어
  탄생했다.
  양서류는 '이크티오스테가'라고 불리는 개구리와  올
  챙이의 중간형 동물들이 많았다. 몸길이가 90Cm나  되
  는 거구였고 고생대(古生代)에 주로 번성했다. 기후는
  따뜻하고 습기가 많아 습지 생물이 번성했다.
  중생대(中生代: 2억2천만년 전에서 6천5백만년 전)는
  대형 파충류인 공룡의 시대였다. 육지에는 비로소  활
  엽수가 자라고 소철류(蘇鐵類: 아열대 식물),  송백류
  (松柏類: 소나무와  잣나무), 양치류(羊齒類:  이끼와
  고사리 종류)가 발육하게 되었다.
  중생대 중 '트라이아스기(三疊紀: 중생대의 처음)'에
  해당하는 2억년 전을 전후하여 지구에는 은행나무, 소
  나무, 잣나무, 편백나무 등 현재에 존재하는 식물들이
  등장했다.
  주라기(중생대의 두 번째 시기: 1억8천만년 전에서 1
  억4천만년 전)는 스위스와  프랑스 경계에 있는  주라
  (Jure)산맥에서 딴 이름으로 가히 공룡들의  전성시대
  였다.
  중생대의 첫 시기인 삼첩기부터 주라기, 백악기(白堊
  紀)에는 거대한 크기의 공룡들이 활개를 쳤다. 브라키
  오사우러스(팔도마뱀:  몸길이23m),디플로사우러스(도
  마뱀: 몸길이 6m),캄푸터사우러스(초식도마뱀: 몸길이
  59m),마이아사우러스(도마뱀: 몸길이 9m) 등이 등장
  했고 주라기 시대가 지나자 시조(始祖)새인  아키오프
  테릭스(몸길이 50Cm)도 등장했다. 이후 익룡이라 불리
  는 조류들이 번성하여 몸길이 7m나 되는 프테로탁틸러
  스와 프테라노든이 탄생했다.
  공룡 중에 가장 큰 동물은 티라노사우러스로  몸길이
  가 15m나 되었다. 최근에 발견된 디플로토쿠스라는 공
  룡의 화석은 몸길이가 50m나 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중생대가 지나고 신생대(新生代)가 시작되었다.
  6천5백만년 전을 전후하여  지구에 대이변이  일어났
  다. 운석(隕石)의 지구 충돌에 의한 것인지 화산 폭발
  로 인한 것인지는 규명되지 않았으나 지구에 두  번째
  빙하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로 인해 거대한 몸집을 갖고 있던 파충류의 공룡들
  이 멸종했다.
  그러나 빙하기가 사라지고  다시 지구가  온난해지자
  이번엔 포유류가 무섭게 번성해 나갔다. 이들은  중생
  대부터 숲속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빙하기를
  거치면서 파충류의 공룡들이 멸종하자 지구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대부분 나뭇잎을  먹는
  초식동물이었다.
  약 3천7백만년 전 지구는  세 번째 빙하기를  맞이했
  다. 원시 포유류들은 차례로 멸종하고 약 2천만년  전
  이 되자 풀을 먹는  근대 포유류가 등장했다.  삼림의
  나무 위에는 인류의 조상이라고 여겨지는 영장류(靈長
  類)가 나타났다.
  이들은 다종 다형으로 다양하게 진화했고 마침내 현
  대 수준의 동물과 식물이 등장했다. 나뭇잎을 먹는 원
  터테리움, 아르시노이테리움(코뿔소와 비슷한),  히라
  코테리움(말과 유사), 인도리코테리움(들소와  유사),
  노타르구토스(원숭이와 비슷한)가 등장했다.
  약 2천만년 전에 탄생한 노타르구토스는 영장류로 진
  화해 갔다. 영장류는 가장 고등적인 동물로 대뇌가 발
  달하고 얼굴이 짧으며 가슴에는 한 쌍의 유방이  있고
  네 개의 다리가 있었다. 이 네 개의 다리는  단순하게
  이동하는 동작을 떠나서 물건을 잡을 수도 있었다.
  유인원(類人猿: 인간과 비슷한 원숭이)은 약 5백만년
  쯤 전에 탄생했다.
  과학자들은 인류와 유인원의 DNA를 분석하여 인류 탄
  생을 5백만년쯤으로 추정했다.
  약 4백만년쯤 전에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아파르
  원인(猿人: 원숭이 인간)의 화석은 직립(直立: 두  다
  리로 걷는) 원인이 분명했다.
  1992년에 발견된 라미다스 화석의 원인은 치아가  원
  인과 갈라진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원인과 인간의 분기점은 5백만년 전  전후라
  고 추정한 것이다.
  이 무렵의 인간들은 초식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
  되었다. 인간들의  초식은 땅속줄기나  나무열매였다.
  몸에는 털이 나 있었고 도구는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
  다. 아직 불을 사용하지도 못했고 언어도 사용하지 못
  해 짐승이나 다를 바없는 상태였다. 다만 이들이 다른
  동물보다 고등동물이었을 뿐이었다.
  종족 번식에 대한 본능이  강했으나 암컷은 한  번에
  한 명씩의 인간을 낳았다. 이들의 수명은 20년에서 30
  년이었고 길어야 40년이었다.  물론 이들이  태어나서
  병에 걸리지도 않고 짐승들의 습격을 받지 않고  자랐
  을 때의 수명이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열악한  환경
  (질병과 맹수) 때문에  그들의 수명을 누리지  못하고
  어릴 때에 죽었다.
  약 240만년 전  마침내 인류의 조상인  호모속(屬)이
  탄생했다. 호모 하빌라스라고 불리는 인류였다.  이후
  이들보다 좀 더 진보한 호모 에렉투스(直立人)가 탄생
  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뇌의 크기가 원인의 두 배,  현대인
  의 3분의 2가 되어 마침내 사고하는 능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들은 종족 번식의 자연법칙에 따라  모계사
  회(母系社會)를 이루고 있었다.
  남녀 모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몸집이 우람했고 키
  는 1m8085Cm나 되었다.  근육은 단단했고  차츰차츰
  몸의 털도 사라지게 되었다.
  인류는 20만년 전을  전후하여 동아프리카  일대에서
  무리를 지어 살았다. 이들은 인류의 직접 조상이 되어
  호모 사피엔스(新人間)로  불렸고 차츰차츰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동아프리카를 떠난 신인들은 10만년 전에 중동지방에
  도달하고 여기서  유색(有色)이 갈라졌다.  니그로(黑
  人)족과 코카사스(白人)족이 그들이었다. 어떤 이유에
  서인지 알 수 없으나 니그로족은 아프리카로 되돌아갔
  고 코카사스족은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3만5천년 전에 유럽까지 진출한 인류는 유럽인의  조
  상인 크로마뇽인이 되었다. 그들은 원주민(좀 더 일찍
  도착한)인 네안데르탈인과  만났으나  네안데르탈인은
  이후 지구에서 사라졌다.
  히말라야로 진출한 인류는 빙하시대의 기후에 적응하
  면서 몽골로이드(黃色人)가 되었다.
  동남아시아로 진출한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서 오스트
  레일리아의 원주민이 되었고 동아시아의 몽골로이드는
  결빙이 되어 있던 베링해협을 도보로 건너 아메리카로
  진출했다. 지금부터 약 1만3천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봉선화 혜성의 충돌로 인한 지구의  재창생은
  처음의 지구탄생보다 훨씬 빨랐다. 지구는 봉선화  혜
  성과 충돌하여 분해되었으나 강력한 중력에 의해 재합
  체 되었고 용암을 내뿜고 바다가 식자 빠르게  생명체
  가 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다와 육지가 제 모습을 갖춘 것은 1백만년이  흐른
  후였고, 바다에서 생명체가 진화여 육지로 올라온  것
  이 다시 90만년이 흐른 후였다. 육지가 인간이 생활하
  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바뀌는데 다시 5만년이  걸렸고
  M과 W가 투명한 막에서 나와 육지에 직립한 인간이 되
  는데는 2만년이 걸렸다.
  파괴된 지구에서 유전자 M과 W가 인간으로  진화하는
  데 197만년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말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
  의 모습을 닮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꼈고 종족을  번
  식시키기 위해 섹스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
  는 동산에서 벌거벗은 나신으로 살았다.
         완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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