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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by Casey,Riley 2021.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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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카 선카라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
이 책은 맑스와 엥겔스의 시대부터 미국의 버니 샌더스, 영국의 제레미 코빈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라
는 이념을 내세우며 등장했던 다양한 정치 운동의 역사를 검토하고, 미국적 맥락에서 앞으로의 사회주
의 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저자는 사회주의는 정치 세력 혹은 학파에 따라 내용이 상이하
고 다양한 유형이 있기 때문에, 시기와 장소, 맥락에 따라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바스카 선카라 지음

▣ 저자 바스카 선카라
잡지 《자코뱅》의 창립자이자 편집자이다. 그는 조지 워싱턴 대학의 학부생이던 2010년에 이 잡지를
창간했다. 그는 《뉴욕타임스》, 《가디언》, 《바이스》, 《워싱턴포스트》에 글을 쓰고 있다. 또한 선
카라는 영국 기반의 《트리뷴》과 《카탈리스트 : 이념과 전략의 저널》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 역자 미래를소유한사람들 편집부
▣ Short Summary
미국에서 사회주의 인기가 높다. 매카시즘 이래 미국에서 사회주의만큼 불온한 단어는 없었다. 그런데
사회주의가 21세기에 들어선지 20년이 더 지난 시점에 미국에서 부활하고 있어 아이러니다. 최근에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18세~34세 미국인 중 58%는 사회주의를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리
고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 의원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2016년과 2020년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에 연이어 참가하여 각각 43%, 27%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인식 변화의 한 가지 이유는 ‘사회주의가 갖는 이미지’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젊은 층의 58%는 사회주의를 덴마크 같은 노르딕 국가로 이해한 반면, 65
세 이상의 고령층은 사회주의를 소비에트 시스템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아마 우리 사회를
대상으로 조사하더라도 이제는 사회주의에 대해서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이 책은 맑스와 엥겔스의 시대부터 미국의 버니 샌더스, 영국의 제레미 코빈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라
는 이념을 내세우며 등장했던 다양한 정치 운동의 역사를 검토하고, 미국적 맥락에서 앞으로의 사회주
의 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저자는 사회주의는 정치 세력 혹은 학파에 따라 내용이 상이하
고 다양한 유형이 있기 때문에, 시기와 장소, 맥락에 따라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 차례
역자 서문
서문
CHAPTER 1 사회주의 시민의 어떤 하루
PART 1
CHAPTER 2 무덤을 파는 사람들
CHAPTER 3 우리가 상실한 미래
CHAPTER 4 소수의 승리
CHAPTER 5 실패한 신
CHAPTER 6 제3세계 혁명
CHAPTER 7 사회주의와 미국

-2-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PART 2
CHAPTER 8 맥의 귀환(Return of the Mack)
CHAPTER 9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CHAPTER 10 하늘을 나는 희망


-3-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바스카 선카라 지음

사회주의 시민의 어떤 하루
20세기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회주의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몇
가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로 가는 길은 개혁과 사회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거친다는 점이다. 개혁과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로 가는 별도의 경로가 아
니다. 또한 우리들이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가진 선한 의도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
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사회는 자유로운 시민 사회와 활력 있는 민주적 제도를 갖춰야 권력의 남용을
막을 수 있다. 그런 사회가 이름에 부합하는 ‘사회주의’이다.
최근 들어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들이 많다. 사실 나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와 동의어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민주적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구분은 사회적 정의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
가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믿음의 차이가 아니라 어떻게 개혁을 위한 투쟁을 전개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오늘날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위로부터의 거시 경제 정책을 통해서 노동자를 돕고자 투쟁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들도 다양한 형태의 기술 관료적 전문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이 있어야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
영국의 제레미 코빈과 미국의 머니 샌더스는 ‘계급투쟁’ 사회민주주의을 추구하면서 좌파를 부활시킬
대중적 에너지를 확산시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잠정적인 전략을 제안하고 왜
노동 계급이 여전히 사회적 변혁의 주체인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는 착취, 기후적인 대재앙, 악선
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류를 위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과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PART 1
사회주의와 미국
베르너 좀바르트가 1896년에 발표한 저작인 『왜 미합중국에는 사회주의가 없나?』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좀바르트의 추론에 따르면, 만약 근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필
연적인 반동으로 등장했다면, 가장 자본주의가 발전한 선진국, 즉 미합중국이 사회주의의 전형을 보여
주는 나라가 되고, 미국의 노동 계급이 가장 급진적인 사회주의 운동의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왜 그렇지 않고, 미국의 노동 계급은 왜 또 그렇지 않을까? 그의 답은 간단했다.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선동에 현혹되기에는 미국의 번영으로 ‘로스트버프와 애플파이’를 너무 많이 먹는다.
그의 답은 오랫동안 어느 정도 혹은 그 이상으로 정확한 것으로 여겨졌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다른 이
는 미국적 ‘예외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예외주의란 건국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개인주의와 제
한적 국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말한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사실 미국에서도 오래된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가 좀바르트의 시대에는 미국 정치에서 대중적 힘을 갖지 못했을 수 있지만, 점
차적으로 추진력을 얻기 시작했던 것 같다. 1912년에 사회주의당(Socialist Party)은 대통령 선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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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거의 1백만 표를 얻었고, 당원이 25만 명에 달했으며, 1천 명 이상이 공직에 선출되었다. 이 문화가
당시 미국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1820년대 말에 미국에서 세계 처음으로 노동자 정당이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등에서 조직되었다. 공장 생산이 막 도입되고 여성과 아동을 주로 고용한 공
장은 뉴잉글랜드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조직들은 장인들의 이해를 대변했다.
뉴욕에서는 노동당의 지도자인 토마스 스키드모어가 급진적인 토지 균분 운동과 함께, 잠시 동안 노동
시간을 제한하려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혁명의 공화주의에 근거하여 임노동을 비판하는 표
현을 사용했다. 한편 오늘날 수천 명의 인민들이 깊은 시름과 가난에 빠진 채, 자신들의 하루 생계를
우리들 중 몇 명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몇 명은 야만스럽게 거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다. 이것은
자유롭고 공화주의적인 우리 자신의 제도가 자연스럽지 못하게 운용되기 때문이다. 한편 스키드모어는
그의 강령이 공상에 가까웠고 성품이 권위적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되는 첫 선거 운
동 이전에 이미 조직에서 쫓겨났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지 않아서 뉴욕의 ‘노동자당’은 민주당
(Democratic Party)으로 흡수되었고 민주당 내에서 독립적인 노동자 활동의 모범을 보인다.
이후 1870년대와 1880년대에는 노동 분규의 시대였다. 1873년의 공황은 노동자의 감원을 초래했고
파업에 불을 지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877년의 대철도파업인데, 10만 명의 노동자들이 연방 군
대뿐만 아니라 주 방위군과 민병대에 의해서 큰 패배를 당했다. 비슷한 운명이 1890년대에 홈스테드
파업과 풀먼 파업을 덮쳤다. 풀먼 파업의 과정에서 미국철도조합의 지도자 유진 뎁스는 급진화되었다.
1890년, 현재 사회주의 노동당(SLP)으로 알려진 노동자당은 다니엘 드 레온의 지도하에 들어갔다. 드
레온은 큐라소에서 온 이민자이다. 그가 1886년 헨리 조지의 시장 선거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그는 컬럼비아 대학 법대의 강사였다. 조지는 넓게 보면 맑스주의 계통의 뉴욕 지역 동맹인 중앙노동
동맹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조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은 절충적이었다. 그는 『진보와 빈곤』이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였는데, 그 책은 평등주의적인 토지 가치세를 주장했다. 이 사상에 따르면, 인민이
자신의 노동 결실을 장악해야 하지만, 토지와 다른 자연 자원은 전체적으로 사회에 속한다.
드 레온이 장차 아일랜드 순교자가 되는 제임스 코널리와 벌인 논쟁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1902년 사
회주의노동당이 아일랜드 이민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설회를 위해 코널리를 초대했고 코널리가 처
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당시 카톨릭 교회는 아일랜드 노동자들에게 노동 운동에 참여하지 말 것을
권유했고, 코널리의 메시지가 성공적인 반응을 가져왔기 때문에, 사회주의노동당은 그를 전임 조직자
로 데려왔다. 그러나 코널리는 스스로를 손님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회주의 노동당의 강령과 관련하여
드 레온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코널리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임금에 대한 당의 입장이었다.
드 레온은 외과의사이자 식민지 관료의 아들이었다. 그는 코널리와 달리 진정으로 노동자 생활을 이해
하지 못했다. 코널리는 에든버러의 카우게이트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9살 때부터 노동을 했다. 드 레온
주의자들은 노동 계급의 일상적 현실로부터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임금 인상은 자동적으로 가격 상승
에 의해서 상쇄된다는 추상적인 임금 이론에 집착했다. 따라서 임금 인상 투쟁은 시간과 자원의 낭비
였다. 그런데 코널리는 이것이 ‘매우 혁명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상 노동자가 사회주의 운동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어렵게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이것은 중요한 논쟁
이었다. 코널리의 주장은 미국의 급진주의자들이 1890년대의 노동 분규를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으로
이어가는 데 실패한 원인을 해명할 수 있는 통찰력 있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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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한편 1890년대의 혼란은 미국 노동자의 힘을 드러내 주는 계기가 되었다. 1901년 미국사회주의당
(Socialist Party of America, SP)이 창당되었고 노동 운동은 마침내 큰 장막을 갖추었다. 이 당의 창당
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유진 뎁스인데, 그는 풀만 파업 이후 6개월간 수감되면서 급진화한 대표적
인 노동조직가였다. 그는 당시의 많은 사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독일 사회민주주의로부터 감화를 받
았다. 그러나 사회주의 진영에서 모든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독일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
이 이념 노선 때문에 분열했던 것처럼, 당은 노선에 따라 나눠졌다.
이후 1960년대에도 미국사회주의(SP)의 귀환을 보지 못했다. 그 당은 1972년에는 3개로 쪼개졌다. 우
파는 미국사회민주주의자(Social Democrats, USA)를 결성했고 러스틴이 첫 의장이 되었다. 이 조직은
매파 반공주의와 결합했고 기존 노동조합 내에서 미미한 압력 단체의 역할을 했다. 좌파는 미국사회당
(Socialist Party USA)을 결성하여 독자적인 선거 참여에 초점을 맞추는 뎁스주의적 노력을 계속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마이클 해링턴이 이끌던 중도파는 민주적사회주의자조직위원회(DSOC)를 조직했는데,
그것이 미국 민주사회주의자의 전신이다. DSOC는 진보적 노조 지도자, 민주당 관료, 새로운 사회 운
동을 광범위하고 효과적인 연합체로 한데 묶고자 했다. 해링턴의 정치적 목표와 스타일은 크게 달랐지
만 기본적으로 브라우더주의의 전략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왜 미국은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독자적인 노
동 계급의 당을 가지고 있지 못한가? 좀바르트가 언급했듯이,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는가? 이 질
문들은 여전히 오늘날 우리를 괴롭힌다. 미국의 사회주의적 전통은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보다 더 영
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리케이드로 돌진하지 못했고 권력을 잡지도 못했다. 사회주의
자들은 미국을 보다 민주적이고 인간적으로 만드는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오늘날 미국 사
회를 특징짓는 불평등은 우리들의 실패를 상기시켜주는 냉혹한 상징이다.
해링턴은 급진주의자들이 ‘아주 위험한 외줄 위를 걸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우리는 ‘새로운 사회의
사회주의적 비전에 충실해야’하며, 또한 ‘그 비전을 체제를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나마 존엄성을
높이고 한 조각의 빵이라도 성취해내는 실제적인 운동과 결부시켜야’ 한다. 미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여
러 계기마다 비현실적인 종파주의에 빠져 스스로를 고립시키거나 현실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민주당과 자유주의적 경향 속에 가두었다. 결국 외줄 위를 걷는다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가능
성 없는 제3당 후보를 당장 지지하라고 요구하지 않으면서 노동 계급의 특수한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선거 전략을 수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갓 태어난 ‘붉은 노조’를 맹신하고 지
지하도록 요구하지 않으면서, 노동 운동을 성장시키고 근본적으로 민주화시킬 필요가 있다.
현재 악랄한 지배 계급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간의 간극을 확대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은 우리가 미국에서 보다 지속적인 사회주의적 정치를 창
조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의 명성과 지난 수년간의 고무적인 행동
주의 때문에 이 염세주의자까지도 대답은 ‘그렇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PART 2
맥의 귀환(Return of the Mack)

-6-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최근 들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20세기 중반까지 미래를 두고 경쟁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1939년 뉴욕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서 기업들은 나일론, 에어컨, 형광등, 뷰마스터 등의 새 기술을
선보였다. 그러나 신제품 이상으로 대공황과 경제적 부족으로 지친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중산 계
급이 누리게 될 여가와 풍요의 이상이었다. 만국 박람회의 ‘미래 생활 전시회’는 새로운 고속도로와 발
전 기획이 담긴 변모한 풍경, 간단히 말해서 다가올 세계의 축소 모형이 참석자들을 불러 모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이 비전의 일부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널리 공유되던
번영의 꿈은 퇴색하기 시작했다. 사회민주주의와 그것의 미국적 아류를 격퇴하려는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새롭게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성장을 회복했다. 하지만 그 성과는 단
지 노동 계급을 향한 난폭한 공격을 통해서였다. 그때 이후 실질 임금은 정체되었고 부채 규모는 치솟
았으며 젊은 세대들은 부모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기를 기대하지만 그들의 전망은 암울하다.
한편 1990년대 기술 붐은 ‘신 경제’에 대한 논의를 불러 일으켰다. 신 경제는 낡은 포드주의적 작업
현장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신 경제는 1939년 만국 박람회가 약속했던 미래상과는 완
전히 달랐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떤 맑스주의자가 예상했던 것만큼이나 합리적으로 행동했다. 사
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들의 역량을 개조하려 했다.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고? 이력서를 다시 쓰고,
핸드세이크에 공을 들여라. 당신의 공장이 해외로 나갔다고? 투덜대지 말고 코딩 수업을 들어라. 한
자유지상주의적 책 제목처럼 『당신이 빈털터리인 이유는 당신이 그리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실리콘 밸리의 지배자들은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준비하고 있다 - 우주 여행, 3D 프린팅,
인공 지능, 자율 주행 자동차. 그런데 이 모든 단절적인 혁신과 함께 대량 고용이 약속되지 않는다면,
그 혁신들은 경외감보다는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을 수 있다. 우리 모두
가 단지 ‘혁신 진료소’로 가서 우리 자신의 앱을 띄울 수는 없다. 이런 노력은 산업의 새로운 강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정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하고 있다.
마크 주커버그 같은 기술적 지도자들과 자선가들은 자신들의 주장과 기부를 통해서 공적 영역에 지장
을 초래하고 있다. 그들은 (기부를 통해서) 세금으로부터 자신들의 부를 보호함으로써 공적 영역의 자
금 조성을 어렵게 하고 있다. 수백만 명이 악몽 같은 ‘태스크래빗(Task Rabbit, 심부름을 대신해주는
서비스를 말함) 경제에서 간신히 생활을 영위하고자 분투하고 있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자립 전문가들의 간청대로 부업을 하고 있다.
2008년 대불황은 아래로부터의 위협에서 자유로운 투기적 자본에 의해서 촉발되었다. 대불황은 적어
도 일시적으로 (자본주의의) 승리주의를 무너뜨렸다.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직장을 찾지 못
하고 빚을 지고 있다. 18세에서 29세 사이의 미국인들은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에 더 우호적인 입장이
다. 그들은 냉전의 기억과 기존 체제에 대한 애착이 없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사회주의를 어떻게 이
해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우파들이 기본적인 복지 프로그램조차 잠행적 사회주의로 비난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지지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경제적 고통이 한 세대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전 세대에 걸쳐 있다. 미국에서 1979년 이후 시간당 임
금이 고작 0.2% 올랐다. 영국의 상황은 실제로 더 나쁘다. 영국의 경우, 2007년부터 2014년 사이에
경제 생산성이 10% 올랐지만 임금은 오히려 그만큼 떨어졌다. 이 두 나라에서는 사용자의 유연성 증

-7-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가는 노동자의 불확실성 증가를 의미했다. 유럽의 ‘산업화 이후’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에서 2008
년 시간제 노동자의 약 9%가 정규직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2013년에는 그 비율
이 2배 이상 늘어났다. 전후 시기에는 보이지 않던 ‘비자발적 시간제 노동자’ 혹은 ‘1099 노동자(미국
에서 자영업자나 독립 계약 노동자를 의미)’가 우리의 경제 지형을 특징짓는다. 당신은 이 같은 시대에
사회주의 운동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옳다.
한편 버니 샌더스의 정치적 삶은 미국사회당의 스러져가는 잔해 속에서 무명의 정치 신인으로서 시작
되었는데, 그의 첫 시도는 미국 좌파에게는 익숙한 결과를 낳았다. 1972년 상원 보궐 선거에서 유효
투표의 2.2%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샌더스의 입장은 일관되었고 그의 메시지는 간명했다. 그는 닉슨
과 그가 대변하는 백만장자와 억만장자의 세계를 비판했다. 그 당시 그는 청중들에게 ‘미국은 현재 인
구 2%가 개인 소유 부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그들만의 세계’라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그의 메시지는 너무 명확하면서도 중요했기 때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70년대 내내 그의 선거는
아름다운 패배로 기록되었지만, 그는 1981년 레이건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때에 무소속 사회주의자로
벌링턴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로부터 거의 40년간 샌더스의 메시지는 변하지 않았다.
미국의 불평등은 깊은 골짜기이며 노동하는 사람들의 동맹만이 그것을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16년 대통령 선거 운동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구체적인 강령(모든 이를 위한 의료체계, 대학 무상 교
육, 전국 최저 임금 15달러)과 결합시켜 수백만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를 지지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회주의에 대해서 많이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미국 좌파들은 샌더스 운동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샌더스가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
라고 부를 때 그 의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아마도 대부분은 이 상원 의원을 통해서 유진 뎁스
와 덴마크의 복지 국가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샌더스는 근대적인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는 개혁을 위한 길은 엘리트와의 투쟁을 통해서 열린다고 믿었다. 그는 우리 모두가 더 나은 미국을
위하여 함께 일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반세기 전부터 비난해왔던 ‘백만장자’(그리고 ‘억만장
자’)로부터 권력을 가져와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법률의 통과를 위해 정치 동맹을 맺어온 자유주의
적 개혁주의자보다는 역사 속의 사회주의자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 있다. 샌더스는 미국 사회주의가 그
뿌리인 계급투쟁과 계급 기반을 다시 회복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주의에 구명 밧줄을 던졌다.
한편 영국의 제레미 코빈은 진짜 급진주의자이며 노동당의 역사에서 단연코 가장 좌파적인 지도자이다.
그는 미국의 버니 샌더스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정치의 앞선 시기부터 사상을 바꾸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샌더스와 달리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진보적 노동조합, 사회 운동, 다른 좌
파 정치인과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다. 코빈의 돌파구는 버니 샌더스의 대통령 선거 운동과 마찬가지
로 사회주의자들이 당당한 좌파적 전망에 뿌리를 둔 신뢰할 수 있는 반대를 통해서 대중적 지지를 모
아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사회주의자들은 단지 공포나 절망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제시함으
로써 지지를 획득할 수 있다. 코빈이 수상으로 선출되는 데에는 여전히 장애물들이 있다. 그러나 그가
사회적 기층의 결집, 노동조합의 지지, 정치적으로 일관된 지도력으로 승리한다면, 영국 노동당은 좌
파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와 단절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오늘날 미국과 영국에는 사회주의 정치를 위한 놀라운 기회가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소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맥락은 약하다. 사회주의 좌파보다 포퓰리스트 우파가 신자유주의 정책이 불가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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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양산한 불평등, 분노, 한탄에 대해서 더 적절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좌파는 승리하기 위
해서 경제 엘리트에 반대하는 서사를 마련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승리를 거두어서 자본에 도
전하는 제도의 네트워크의 구축에 기여해야 한다.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모든 사회주의적 전진은 3가지 요소(대중 정당, 사회 운동적 기반, 노동 계급의 참여)의 뒷받침을 받아
야 한다. 미국이 지난 150년간 이 3가지 요소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이 버겁
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버니 샌더스의 선거 운동을 통해
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 2018년 교사 파업 같은 새로운 대중의
행동은 노동하는 사람들의 힘을 보여주었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직이다. 분산된 산발적인
저항을 사회주의 운동으로 통합하고 발전시키는 노동 계급 정당과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좌
파 정치의 길고도 복잡하며 한편으로 고무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좌절을 반복했던 역사를 토대로
삼아 자본주의에 맞서서 민주 사회주의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고자 한다.
① 계급투쟁 사회민주주의는 급진주의자의 길을 가로 막는 것이 아니라 열어준다. - 샌더스와 코빈이
대변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정치는 전투적인 사회주의적 요구의 온건한 대안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노쇠한 중도좌파를 대체할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들은 계급투쟁과 재분배의 논리를 그 같은 요
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청중들에게 소개했다. 아무튼 계급투쟁 사회민주주의는 투쟁의 목표를 몇 사람
의 당선에 한정하지 않고 선거 운동을 통해서 노동 계급의 힘을 기르고자 한다.
② 계급투쟁 사회민주주의는 오늘날 주요 국민적 선거에서 승리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 코빈이 노
동 계급의 당을 이끌고 있는 영국에서 계급투쟁 사회민주주의가 선거에서 승리할 날은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버니 샌더스는 우파와 재계 민주당원으로부터 3년에 걸쳐서 공격받았지만 오히려 미
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 되었는데, 그의 핵심적 요구들 - 보편적 일자리 보장 프로그램과 단
일 보험자 의료보험 - 은 모두 유권자들로부터 실질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③ 선거 승리는 권력 획득과 같지 않다. - 우리가 약속한 것을 수행할 수 없다면, 선거 승리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1930년대에 프랑스 사회주의자 블륌이 했던 것처럼 한두 선거 주기 동안 우파를 배
제하거나 내핍 정책이 노동자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하는 것으로써 ‘권력 장악’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우리의 지지층에게 환멸을 안겨주고 중장기적으로 패배하는 확실한 길이다.
④ 그들은 우리를 멈추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다. - 제레미 코빈이 초기에 겪었던 일들은 교
훈적이다. 코빈은 첫 임기가 끝났을 때 노동당의 기득권 세력과 공화당으로부터 중상모략과 같은 공격
을 받았고, 선거인단에서 그의 지지자들을 배제하려는 당 내부의 움직임을 비롯하여 많은 도전에 직면
했는데, 코빈에 대한 내부적 반대는 진보적인 외양을 띤 채 그의 지도력을 훼손했다. ⑤ 우리의 즉각
적인 요구들은 매우 잘 성취될 수 있다. - 자본주의 내에서도 어떤 사회주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우리가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어떤 성과물도 위기에 취약할 것이며 단계마다 저항에 부
딪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필수적이다.
⑥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로 신속히 이동해야 한다. - 사회민주주의자는 그들의 의
도가 어떠하든 간에 항상 좌측보다 우측으로 경도되기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쪽 편에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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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력한 이해 집단으로부터의 안정성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있고, 다른 한쪽 편에는 자본 파업과 완고한
저항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어떻게 권력을 획득할 것인가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들의 강령의 기반을 약화시키려는 자본의 시도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 도
전은 20세기보다 더 강하다. 달리 말하면 사회민주주의적 타협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우리는 이
불안정성에 직면하여 후퇴하기보다는 전진할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⑦ 우리는 사회주의자를 필요로 한다. - 종파적이지 않은 새로운 세대의 사회주의 조직가들을 훈련시
키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는 숙련된 연설가, 영향력 있는 작가, 영민한 사상가이면서 민주적 사회주의
자인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데, 그들은 배울 수 있는 겸손이 있어야 하고 신뢰를 심어줄 만큼 용기가
있어야 한다. 만약 노동 계급의 힘을 재건하여 자본에 대안적인 압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우리 조직
은 훈련된 핵심적인 사람들에게 의존해야 한다. 그들이 없이는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⑧ 노동 계급은 지난 150년 동안 변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은 아니다. -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에서 해방적 정치를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노동으로 체제를 작동시키는 계급을 중심으로 체
제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 계급의 대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노동 계급에 근
거해서 노동 계급을 중심으로 정치적 문화를 창출하고 노동 계급 내에서 조직화를 해나가야 한다.
⑨ 사회주의자는 노동 계급의 투쟁에 뿌리박아야 한다. - 젊은 사회주의자들은 외부의 조직자로 남아
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점점 중요해지는 분야에서 보통의 직업을 얻어야 한다. 오늘날
의 경제에서 젊은 사회주의자들은 교육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1970년대의 활동가들이 택할 수 있
었던 전문 직업을 갖기는 힘들다. 만약 그들이 직업 세계에서 시간제 혹은 임시직을 전전하기보다는
간호 업무나 교육 같은 전략적 분야에 들어간다면 실제로 경제적 전망이 더 좋다.
⑩ 진보적인 변화를 위해 노조와 함께 일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 내부에서 민주적 전투를
치려야 한다. - 일반 노동자가 노조 내부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 노조가 오히려 단지 노조원
의 이해만을 위해 투쟁하고 그들의 역량을 계발하는 데만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존 노조
를 우파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조합원들이 손쉽게 노조 활동에 참여
할 수 있게 하고, 지도부가 보다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는 노조를 보다 확장적이고 민주적인 노조주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바꿔 가야 한다.
⑪ 좌파와 일반 노동자의 느슨한 네트워크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정당을 필요로 한다. - 우리가
오늘날 좌파 정당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일부 사람들은 낡은 스탈린주의와 좌파 사회민주주의의 생기
없고 획일적인 정당을 머리에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정당들도 이질적인 활동가의 과업을 조정하
고 여러 세대에 걸친 노동 계급 전투원의 비전을 확립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조직 성원과
자원을 기회주의적으로 장악하려는 잠입자로서가 아니라, 이 정당들을 바로 세우고 독립된 면모를 갖
추도록 진지하게 노력하는 성원으로서 필요하다면 지도부에 도전해야 한다. 정당은 명시적인 사회주의
세력과 폭넓은 노동 운동 간의 결정적인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 일이 잘 되어간다면, 우리들은 이
두 흐름을 한 단어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사회주의 노동 운동이다.
⑫ 우리는 미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 미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일으켜 세우는 일은 문화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 이유 때문에 독특한 접근을 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에서 대의권 대리자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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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델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대중 당원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다양한 분파로 구성되어 있고 민주적으로
결정된 강령을 종합하는 민주당 외부의 노동자 당이 필요하다. 수천 명은 아니라 하더라도 수백 명의
후보자들이 출마하며 서로 논쟁하는 정당을 상상해보라. 처음에 일부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다
른 일부는 민주당으로 출마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후보들은 강령의 기본적 원리에 충실해야 하며 당
원과 연대한 노조와 조직으로부터 자금을 모을 것이다. 그들은 일반 당원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
고 즉각적인 목표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독자적인 이념과 정치적인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⑬ 우리는 정치 제도를 민주화해야 한다. - 우리는 권리 장전이 담고 있는 개인적 자유에 대한 불완전
한 안전장치를 보존하고 확장하는 한편, 미국인을 진정으로 대표하는 새로운 정치 체제를 확립하기 위
한 과업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들의 이상은 인구 비례로 선출된 단원제 의회가 권한을 부여하는 강력
한 연방제 정부이다. 그러나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회의 의사 진행 방해를 폐지하고,
선거에 대한 연방적 통제권을 확립하고, 국민 투표로 헌법을 개정하는 단순한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⑭ 우리 정치는 보편적이어야 한다. - 사회주의자들은 우리 조직 내에서 사회적 편협성, 맹목적 애국
주의, 어떤 형태의 편견일지라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평등을 먼 미래를 위한 목표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실천으로서 심각하게 고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주의적 전제는 명확하다. 그
핵심적인 것은 인민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품위와 존중, 공정한 대우를 바란다는 점이다. 민주적인 계
급 정치는 공동의 반대자에 맞서서 인민을 단결시키고,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최선의 방법일 뿐
만 아니라, 모두를 인종, 성, 편견에 뿌리는 둔 압제에 대항하는 긴 대열에 참여시킨다.
⑮ 역사가 중요하다. - 오늘날 사회주의를 둘러싼 흥분이 운동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진다(운동 내에 있는 사람들도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행진하고, 조직하고, 꿈을
꾸었던 사람들로부터 배우지 않는다면 목표를 실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는 민
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우리 공동체와 노동 현장까지 확대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끝내는 것이
다.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좌파를 위한 정치 전략은 대중과 함께 투쟁을 진행하는 내내 근본적
인 질문들을 하나씩 책상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성취물을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다
른 한편으로 관료주의화를 피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
하늘을 나는 희망
사회주의는 최근 모든 방향에서 도전을 받았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를 인간 정부의 최
종 형태’라고 선언했지만, 랠프 다렌도르프가 후쿠야먀의 선언이 ‘심각한 주장을 희화화’한 것에 불과
하다고 말했을 때 그는 옳았다. 그러나 다렌도르프는 후쿠야마의 다음과 같은 전제에는 동의했다. “사
회주의는 죽었고 사회주의의 어떤 변형태도 다시 소생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는 이미 스탈린주의와
브레즈네프주의라는 이중의 악몽으로부터 깨어났기 때문이다.” 좌파 측에서는 앙드레 고르가 그 생각
에 다음과 같이 공감했다. “시스템으로서 사회주의는 죽었다. 운동과 조직된 정치적 세력으로서 사회주
의는 거의 다 죽어가고 있다. 사회주의가 한때 주장했던 모든 목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고르의 좌절감은 노동 운동 전반을 향하고 있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여전히 노동 운동과 그것의 실패에
매달려 있었지만 노동 운동은 혁명적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 자본주의는 놀라울 정도로 지속력이 있는
것으로 판명 났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맑스와 엥겔스의 시대 이후 노동 계급 정치와 역사는
경탄할 만큼 대성공이었다. 신은 7번째 날에 쉬었다. 그런데 노동 운동은 우리가 6일째 날에 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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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했다. 우리는 자본이 어떤 도전도 받지 않고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에서 자본의 행위에 강력한 제한을
가질 수 있는 시대로 넘어왔다. 주 40시간 노동, 노동 및 환경 규제 등이 그 예이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악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잔인하고
불평등하지만 계급 운동에 의해서 보다 인간적으로 변해왔다. 하지만 한때 우리의 포부가 아주 높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큰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
식을 언제나 잘 파악했고 자본주의의 추악한 몇몇 특성은 개혁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데 동의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왜 우리가 또 한 번 사회주의 체제를 만들어서 20세기의 재앙을 되풀
이하려고 하는지를 묻는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해서 몇 가지 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 번째, 오늘날 세계가 처한 엄청난 곤경은 우리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발전은 대단한
풍요를 가져왔지만 취약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두 번째는 이념적이다. 자본
주의는 임금 노동에 기반하고 있고 임금 노동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와 착취에 의존하는데, 도덕
적 가치와 모두의 번영에 충실한 경제의 민주적인 작업 현장은 이 같은 예속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 번째 답은 우리가 자본주의를 개혁하는 데 만족하더라도 그 개혁들은 자본의 구조적 힘에
의해서 기반이 약화되기 때문인데, 이에 대처하는 것이 민주적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또 다른 대답은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가 문명을 파괴할 실질적 가능성이다. 기존의 국제적인
기후 협약이 준수되더라도 우리는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섭씨 3도 이상 온난화되었다. 우리는 그 숫자
를 1.5도 이하로 유지해야 심각한 경제 불황, 대규모 작황 실패, 회복할 수 없는 대륙 빙하의 감소를
막을 수 있다. 우리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듯이 대참화를 겪을 운명에 처해 있다.
기후 위기의 심화는 미래 세대가 우리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우리가 현재 1920년대와 1930
년대에 파시즘에 대항하여 다시 사람들이 취했던 행동(혹은 그것의 부족)을 되돌아보는 것과 비슷하다.
지구 온난화가 심화되면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고 경제의 불안정과 함께 사악한 새로운 우익 운동이 기
승을 부릴 수도 있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단계의 문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이상에서
멀어져가는 우리의 현재를 향수에 젖어 되돌아볼지도 모른다.
기후 변화와의 투쟁은 ‘혁명 이후’까지 기다릴 수 없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투자의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쳐서 지금 이 자리에서 대개혁을 이룩할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녹색화’가 선진권에
서 단순히 긴축 정책의 도구로 사용되거나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 필요성을 부정하는 수단이 되어서
는 안 된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역효과를 낳을 수 있는 데다 도덕적인 면에서도 터무니없는 일이다.
또한 사회주의자는 자연의 복잡성뿐만 아니라 ‘조종하려는’ 시도가 초래할 수 있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
도 이해해야 한다. 자본은 무한히 확장하려 하지만 물질적 세계 - 인간 노동과 물리적 환경 - 는 유한
하다. 맑스는 10시간 노동법안 같은 개혁을 ‘노동 계급의 정치 경제학’의 승리로서 반겼다. 그 이유는
그러한 개혁으로 노동자에 대한 자본주의적 착취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본이
지구를 착취할 능력에도 새로운 제한을 가해야 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우리가 속한 넓은 생태계와 함께 인류가 번영할 수 있도록 한다. 민주적 사회주의
가 그 과제를 잘 수행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노동자 통제의 기업은 자본가 기업
과는 달리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긴급성에 쫓기지 않는다. 시민들은 힘이 강해져서 새로운 발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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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따르는 비용과 편익을 더욱 잘 평가할 것이다. 적어도 더 많은 민주주의는 우리의 자녀와 손자들을 위
해 정치를 펼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왜 사회주의인가?’에 대한 마지막 대답은 간단하다. 사회주의는 평화를 유지하는 최선의 보증이다. 만
약 우리가 수백 년 전에 살고 있다면, 영주는 당신과 다른 농민들을 소집해서 창을 주면서 이웃 마을
인민들과 전쟁을 벌이게 할 수도 있다. 전투에서 당신은 가엾은 사람들을 창으로 찌르거나 아니면 자
신이 창에 찔릴 것이다. 어느 날 인민들은 이 작은 세계가 경쟁적 민족과 군대로 나눠져 있음을 깨달
을 것이고, 우리가 전근대 역사에 대해서 갖고 있는 실망감과 다르지 않은 감정을 느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어느 날 에스페란토어로 ‘인터내셔널가’를 부를 수 없다. 하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국제적인 호
소는 자유주의적 사해동포주의보다 민족주의를 저지하는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사회주의는 지난 세기의 굴욕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급진적으로 재편되고
위대한 주인공인 노동 계급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 그런데 사회주의는 진정 미
래가 있는가? 나의 도덕적 신념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아야 살아갈 수 있는 세계, 수억
의 사람들이 풍요 가운데서 고통 받는 세계, 그리고 환경적 대재앙으로 다가가고 있는 세계를 용인할
수 없다. 또한 나는 우리들이 계급으로 찢긴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불평등과 착취에 대해 반대하는 것
이 자연스럽다고 믿는다. 진보를 가로막는 기술적, 정치적 장애물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
는 만인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를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 정
치는 우리에게 그곳에 다다를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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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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