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김의 발견
▣ Short Summary
과연 튀김의 매력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튀김을 씹을 때 와삭, 바사삭 하는 식감이 좋아서? 아
니면 기름기 가득한 고소함 때문에? ‘겉바속촉(같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의 황홀한 조화? 이리저리
생각나는 대로 답해 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명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튀김이라는 요리를 파헤쳐
보기로 했습니다. 무엇이든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과학자로서, 자칭 튀김 애호가이자 20년 전통 돈카
츠 전문점의 사위로서 작은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그냥 ‘맛있다’가 아니라 ‘왜 맛있는지’ 제대로 설명하
고, 튀김이 만들어지는 원리와 그 맛의 비밀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제게는 과학이라는 훌륭한
도구가 있었으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역사, 인문, 사회, 대중문화 등 튀김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도구들도 빌려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과학의 눈으로 들여다본 튀김의 세계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무언가를 튀긴다는 행위는 마치 하나의 정
밀한 과학 실험과도 같으니까요. 밀가루의 힘을 측정하고, 튀김옷의 단백질 함량을 조절하고, 사용되
는 기름의 발연점을 조사해야 합니다. 또 기름의 산화 여부도 체크하고, 조리 온도와 시간에 따른 물
성의 변화를 관찰해야 하지요. 어느 한 부분에서 작은 실수라도 하게 되면 튀김의 품질은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게다가 이와 관련된 과학 원리도 어찌나 많은지 모릅니다.
게다가 튀김은 단순히 맛있는 요리 이상이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가 많았으니
까요. 튀김이라는 요리가 탄생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메뉴 중 하나로 자리를 잡은 데에는 인
류의 미식 본능이 발휘된 덕분이지요. 뛰어난 풍미와 높은 열량 덕분에 튀김은 19세기 흑인 노예들의
삶과 애환을 지탱해 주는 ‘소울 푸드’가 될 수 있었습니다. 튀김 산업의 발전은 한 나라의 경제나 기업
의 흥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 다양한 튀김 요리가 현대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덴푸라와 돈카츠, 미국의 프라이드치킨, 영국의 피시앤칩스 등 각국
을 대표하는 튀김 요리에는 그 나라 국민의 고유한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튀김은 요
리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튀김이라는 요리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재료와 기름, 각종 조리 도구와 튀김옷, 튀겨지
는 과학적 원리와 맛의 비밀 등을 가능한 쉽고 상세하게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앞으로
무궁무진한 튀김의 세계로의 여행이 한층 더 즐겁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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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의 발견
▣ 차례
프롤로그: 기름에 튀기면 과학도, 교양도 맛있다!
1장 인류는 언제부터 튀기기 시작했을까
전 세계인의 소울 푸드, 튀김|튀기면 맛이 부풀어 오른다|기름이 없으면 튀김도 없다|요리가 인류
를 진화시키다| 기름의 대중화가 곧 튀김의 대중화|지방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능|곤충의 바삭함과
닮은 튀김의 식감
2장 세상에 튀기지 못할 재료는 없다
· 아시아에 진출한 중세 유럽의 야채튀김: 덴푸라
· 세 겹의 튀김옷을 껴입은 돼지고기: 돈카츠
· 기름과 건조 기술로 세상을 구휼하다: 라면
· 신대륙에서 닭튀김의 신세계가 열리다: 프라이드치킨
· 이름만 프랑스인 국적 불명의 감자 요리: 프렌치프라이
· 영국인의 영원한 ‘생선과 감자’ 친구: 피시앤칩스
· 소스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요리: 탕수육
3장 ‘겉바속촉’을 완성하는 튀김의 과학
구멍이 많을수록 바삭해진다|글루텐 보호막으로 육즙의 유출을 막아라
빵가루로 완성하는 궁극의 바삭함|왜 집에서 만든 튀김보다 전문점 튀김이 더 맛있을까
튀김이 무지하게 ‘당기는’ 과학적 이유|마이야르 반응, 세상에 없던 풍미를 만들다
달콤하게 타 버렸다, 캐러멜화 반응
튀김의 세계에 불가능이란 없다: 과일 튀김, 아이스크림 튀김, 고중력 튀김
4장 기름은 튀김의 친구인가 적인가
튀김 맛의 절반은 기름 맛|식용 유지가 만들어지는 과정|다이어트를 방해하는 지방의 두 얼굴
우리 건강을 해치는 주범, 산화된 기름|기름의 산화를 막는 최선의 방법
어떤 기름이 튀김에 더 적합한가
5장 튀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옷을 입다
밀가루가 튀김옷 재료로 안성맞춤인 까닭|튀김옷에 적합한 밀가루는 따로 있다
밀가루가 그냥 옷이면, 배터믹스는 날개옷|반죽에 맥주를 넣으면 튀김옷발이 산다
고소한 접착제 달걀과 비법 양념 시즈닝
6장 기름과 온도의 마술사, 튀김기의 구석구석
막강한 화력의 원조 튀김기 듀오, 칩 팬과 웍|튀김꾼들의 로망, 업소용 튀김기 파헤치기
높은 압력으로 육질을 부드럽게, 압력 튀김기|낮은 압력으로 골고루 익히는 진공 튀김기
튀김의 패러다임을 바꾼 에어 프라이어
에필로그: 우리의 튀김순애보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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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의 발견
튀김의 발견
임두원 지음
1장 인류는 언제부터 튀기기 시작했을까
전 세계인의 소울 푸드, 튀김
치킨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조선 시대부터 각별했습니다. 조선 세조 때 어의를 지낸 전순의가 1460
년경 편찬한 요리책 『산가요록』과 『식료찬요』에는 ‘포계’라는 닭튀김의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을 정
도입니다. 현재 국내에 약 8만 곳의 치킨 전문점이 영업 중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프라이드치
킨은 미국 남부 켄터키 지방에서 유래했습니다.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 ‘KFC’의 명칭은
‘Kentucky Fried Chicken’의 약자입니다.
감자를 길게 썰어 튀겨 낸 프렌치프라이의 인기는 또 어떤가요? 우리나라에는 약 2만 개의 패스트푸
드 매장이 영업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빠져서는 안 될 메뉴가 바로 프렌치프라이입니다. 감자튀김 하
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요리가 있습니다. 바로 영국의 국민 요리, 피시앤칩스입니다. 대구와 같은 흰살
생선에 튀김옷을 입혀 튀겨 내고 여기에 ‘칩스’라 불리는 감자튀김이 함께 제공되는 매우 간소한 요리
이지만, 윈스턴 처칠이 ‘영국인의 좋은 친구’라고 불렀을 정도로 그 위상은 대단합니다.
전 세계 각국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을 조사하면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이 라면 또한 튀김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본래 삶아 내는 식재료인 면을 튀겨 낸다는 창의
적인 발상을 통해 라면이 탄생했으니까요. ‘먹을 수 있는 것 중에 튀기지 못할 것은 없다’라는 말처럼
튀김의 응용력은 무궁무진합니다. 또한 일본에서 유래했지만 우리나라에선 흔히 돈가스라 불리는 돈카
츠도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튀김을 논할 때면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요리가 바로 탕수육입니다. 탕수육은 분명 튀김 요리입니
다. 그리고 튀김의 매력은 바삭함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걸쭉한 소스를 더하는 것은 얼핏 튀김의
매력을 반전시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또 다른 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튀김을 좋
아하는 이유는 그 특유의 바삭한 식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튀김이 품고 있는 다양한 풍미 때문이기도
합니다. 튀김옷에 뿌려진 달짝지근한 소스는 튀김의 풍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이처럼 튀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메뉴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토록 튀김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튀김이 전 세계의 ‘소울 푸드’이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과장
을 보태자면, 돈가스는 제육볶음과 더불어 우리나라 남성들의 대표 메뉴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인의 ‘최애’ 메뉴 중 하나는 프라이드치킨과 프렌치프라이입니다. 마찬가지로 영국인에게는 피시앤
칩스, 중국인에게는 탕수육(혹은 꾸루로우), 일본인에게는 덴푸라와 돈카츠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요리들은 그저 맛이 좋아서, 대중에게 인기가 많아서, 언제 어디서나 접하기 쉬워서 한 나
라를 대표하는 요리, 또는 누군가의 소울 푸드가 될 것이 아닙니다. 이 요리들의 탄생 배경에는 안타
까운 사연과 가슴 아픈 역사가 존재합니다. 프라이드치킨에는 신대륙으로 이주한 아프리카 흑인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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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의 발견
애가, 피시앤칩스에는 영국 노동자의 고단한 삶이, 탕수육과 돈카츠에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난사가
담겨 있습니다. 즉, 각각의 요리에는 역사의 한 장면과 주인공들의 한과 혼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
런 의미에서 튀김은 ‘진짜’ 소울 푸드인 셈입니다.
요리가 인류를 진화시키다
‘요리(料理)’라는 단어는 ‘헤아리고’, ‘다스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처방전에는 다
양한 약재의 배합 비율이 적혀 있었는데, 요리는 약재들의 ‘정확한 분량’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이와 같
은 어원을 염두에 두고 요리를 정의하면 ‘정확한 헤아림을 통해 식재료를 먹기 좋게 가공한 최종적인
산출물 또는 그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요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넘어 상당한
기술이 요구되는 고도의 지적 행위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원시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약 400만 년 전입
니다. 원시 인류는 오랫동안 수렵 채집의 단계에 머물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날것 그대로
섭취했습니다. 그러던 인류는 2가지 큰 사건을 계기로 요리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바로
‘불의 발견’과 ‘농경의 시작’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약 50만 년 전에 불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우연히 발생한 산불로 인해 타 버
린 동물의 사체를 먹어 본 후, 화식이 음식의 풍미를 더 좋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것
입니다. 그런데 화식은 음식의 풍미를 좋게 해줄 뿐만 아니라 식재료의 조직을 부드럽게 만들기 때문
에 영양분을 소화 흡수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효율적으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된 인류는 커다란 뇌를 갖는 방향으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음식을 바라보
는 관점 또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음식이 단지 생존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면, 요리라는
창조적인 활동이 더해지면서 보다 고차원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전환점이 된 사건은 약 1만 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이때 인류는 오랫동안 이어 오던 수렵 채
집의 단계를 끝내고 농경문화의 단계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농경문화가 시작되자 곡식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게 되면서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훨씬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되어 도시들이 형성되고 바야흐로 인류 문명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농경의 시작으로 식
량 생산은 획기적으로 증대되었지만, 생산되고 소비되는 식량이 조, 기장, 수수와 같은 일부 곡물에만
국한되면서 영양 불균형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전보다 훨씬 많은 양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다양한 식재료를 통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었던 수렵 채집
단계에 비해 오히려 퇴보하게 되었습니다.
『판도라의 씨앗』의 저자 스펜서 웰스에 따르면, 농경 생활이 시작되기 이전 인류의 평균 수명은 남성
35세, 여성30세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남성 33세, 여성 29세로 감소했으며, 남성의 평균 신장 또한
177센티미터에서 161센티미터로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 조상들은 단조로운 식단 때문에 발생한 영양 불균형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민했고, 다
양한 조리법을 개발했습니다. 식재료를 혼합하고 가공했더니 다양한 맛과 향이 창출되었을 뿐 아니라
영양분의 소화 흡수 효율도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이처럼 요리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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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의 발견
2장 세상에 튀기지 못할 재료는 없다
세 겹의 튀김옷을 껴입은 돼지고기: 돈카츠
서양 콤플렉스를 요리로 승화하다: 돈카츠는 두툼한 돼지고기에 밀가루, 달걀, 빵가루를 차례로 묻힌
후 고온의 기름에서 튀기고 여기에 갈색의 소스, 잘게 썬 양배추, 밥과 함께 제공되는 일본 전통의 튀
김 요리입니다. 카레라이스, 고로케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3대 양식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형태의 돈카츠는 1929년 도쿄 우에노에 위치한 폰치켄이라는 식당
에서 시마다 신지로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카츠의 기원은 이보다 오래전으
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54년, 일본 정부는 미국 함대에 굴복하여 강제적으로 개항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왕을 받들고 서양을 배척하자는 존왕양이(尊王攘夷)운동
이 전국 도처에서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1867년, 마침내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
노부가 권력을 왕에게 반환하면서 막부 정권은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이때 즉위한 메이지 왕은 1868
년 메이지 유신이라 불리는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기존의 쇄국 정책을 과감히 폐지하고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됩니다. 일본의 유학생들이 유럽 각국으로 파견되었고, 전국 각지에서 서양식 학
교가 세워졌습니다. 또한 철도, 전신 등 서양의 신기술들이 무서운 속도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이처럼 일본은 맹렬한 속도로 서구화가 진행되었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콤플렉스
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양인들과의 현격한 체격 차이였지요. 1854년 미국의 페리 제독을 만난
일본인들은 그의 거대한 체격에 위압감을 느낀 나머지 그를 덴구라는 요괴로 묘사할 정도였습니다. 그
만큼 일본인들의 콤플렉스는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일본 왕은 서양인 교사들에게 자문을 구했습
니다.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육식과 목축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후 일본 정부는 우유와 육
식을 적극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그러나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육식을 금기시했던 일본인들이 육식에 익숙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을 따라야만 했기 때문에 육식을 자신들의 입맛도 맞도록 다양한 시
도를 펼쳤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덴푸라를 통해 친숙해진 튀기는 조리법이었습니다. 육류를 튀기면
잡내가 없어지고 고소한 풍미까지 가미되지요. 덕분에 일본인들의 입맛에 잘 맞는 고기 요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돈카츠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돈카츠와 가장 유사한 서양의 요리로는 뼈가 붙은 고기에 튀김옷을 입히고 기름에 부쳐 내는 커틀릿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커틀릿을 ‘카츠레츠’라고 부릅니다. 1895년 도쿄 긴자의 음식점 렌카테이의 주인,
기타 겐지로는 이 요리를 응용해 뼈를 발라낸 돼지고기를 얇게 손질한 후 밀가루, 달걀, 빵가루를 차
례로 입히고 기름에 튀겨 내었지요. 여기에 채를 썬 양배추를 곁들여 내놓았습니다. ‘포크 카츠레츠’라
는 이름의 이 요리가 바로 최초의 돈카츠인 것입니다. 이후 돼지고기는 더 두툼해졌고, 튀겨진 후 먹
기 좋게 몇 조각으로 잘려 나왔으며, 일본식 된장국과 밥이 곁들여졌지요. 이렇게 돈카츠는 발전을 거
듭하며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기름과 건조 기술로 세상을 구휼하다: 라면
세상을 뒤바꾼 인스턴트 라면의 탄생: 즉석요리의 대명사, 라면은 밀가루로 반죽하여 길게 뽑은 면을
구불구불한 형태로 뭉친 후 기름에 튀겨 내고 건조한 제품입니다. 라면은 일본의 라멘에서 유래한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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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의 발견
리이기는 하지만 그 기원은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중국의 면 요리인 라이미엔, 즉 납면 (拉
麵)입니다. 납면은 밀가루 반죽을 당겨서 면을 만들고 고기 국물로 맛을 낸 요리입니다. 중국의 납면이
일본에 전래된 것은 19세기 후반,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중국인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부터입니다. 해
산물을 이용해 맑은 국물을 내어 먹는 소바나 우동과는 달리 납면은 소, 돼지, 닭 등 육류를 이용해 우
려낸 진한 국물이 특징입니다. 이후 납면은 점차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어 라멘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지요. ‘라멘’이라는 이름도 납면의 일본식 발음으로 유래했습니다. 한국에서 부르는 ‘라면’은 한
자 납(拉)의 일본식 발음과 한자 면(麵)의 우리식 발음이 합쳐져 만들어졌습니다.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은 1958년, 대만계 일본인인 안도 모모후쿠가 개발했습니다. 몇 번의 사업
실패 후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찾고 있던 그는 어느 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튀기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면을 삶은 기존의 라멘 대신 면을 튀기고 건조하는 새로운 조리법을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을
토대로 닛신식품을 창립하고,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인 ‘치킨 라멘’을 출시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당시 일본은 부족한 식량의 상당 부분을 미국의 원조로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 대부분이 밀
가루였습니다. 오랜 세월 쌀을 주식으로 삼았던 일본인에게 밀가루는 매우 생소한 식재료였고, 그래서
시중에는 미처 사용되지 못한 밀가루가 넘쳐났습니다. 안도 모모후쿠는 남아도는 밀가루를 활용하여
서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고 그 노력은 인스턴트 라멘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
다. 그는 이 제품을 통해 자신의 철학이었던 ‘식족세평(食足世平; 풍족하게 먹으면 세상이 평화로워진
다)’을 실현해 누구도 배를 곯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했습니다.
라멘은 서민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소박한 요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요리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2014년 영국문화원은 ‘지난 80년 동안 세상을 바꾼 80대 사건’ 중 하나로 인터넷의 탄생,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 소련의 붕괴 등과 함께 인스턴트 라멘의 발명을 꼽기도 했습니다.
신대륙에서 닭튀김의 신세계가 열리다: 프라이드치킨
아프리카 노예들의 한과 혼을 요리하다: 프라이드치킨은 닭고기를 여러 부위별로 나눈 후 각각의 조각
에 튀김옷을 입히고 고온의 유지에 담가 튀겨 낸 요리입니다. 그런데 프라이드치킨은 언제 탄생했을까
요? 아쉽게도 그 정확한 기원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튀김 요리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중세 유럽에
서 프라이드치킨과 비슷한 요리가 있지 않았을까 추정될 뿐입니다. 하지만 이 요리가 널리 퍼지기 시
작한 시기와 장소는 분명합니다. 바로 19세기 미국에서부터였지요. 그 배경에는 인간의 탐욕과 망향의
슬픔으로 가득한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유럽의 튀김 요리가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은 15세기, 대항해 시대가 열린 후부터입니다. 대항해 시대에
는 유럽 열강들 간의 식민지 쟁탈전과 무역 전쟁이 활발했습니다. 당시 유럽의 무역상들은 각종 공산
품을 싣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가서 생활필수품과 술, 화약, 무기 등을 흑인 노예들과 맞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이 노예들을 배에 싣고 다시 카리브해의 서인도 제도로 향했습니다. 당시 이곳에는 사탕수수,
커피 등을 대규모로 재배하는 플랜트 농장들이 있어 항상 많은 일손이 필요했습니다. 아프리카의 흑
인 노예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된 작물들과 교환되어 그곳에 남겨지고 유럽의 무역상들은 이 상
품을 유럽으로 가지고 와서 비싸게 팔아 큰 이익을 챙겼지요. 그렇게 흑인 노예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붙잡혀 와 자유를 박탈당하고 죽도록 일만 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타지에서도 삶은
계속되어 아프리카 흑인들은 점차 아메리카 내륙 곳곳으로 확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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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의 발견
이때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들여온 것은 흑인 노예만이 아닙니다. 16세기 이전에는 아메리카 대륙에 닭
이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스페인 탐험가들에 의해 들어와 번성하게 되었지요. 스페인 탐험가
들은 닭은 비상식량으로 항상 배에 싣고 다녔지요.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흑인 노예들은 미국 남부
지방의 대규모 면화 농장의 주된 노동력이 되었습니다. 1807년 영국 정부는 노예 무역을 전면 금지시
켰지만, 미국 남부에서는 1865년 남북 전쟁이 끝날 때까지 노예 제도가 지속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프라이드치킨을 만든 사람들은 바로 이 아메리카에 끌려온 흑인 노예들입니
다. 당시 미국인 대다수가 유럽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었고, 유럽은 중세부터 튀김 요리가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다양한 튀김 요리가 존재했습니다. 한편 미국 남부의 흑인들 또한 오래전
지중해를 거쳐 아프리카로 전래된 튀김 조리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흑인들이 백인
이민자들의 주방에서 일하게 되면서 유럽과 아프리카의 튀김 요리가 서로 융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튀김옷에 각종 향신료를 첨가하는 방식은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조리법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초창기 프라이드치킨은 노예들을 위한 요리였습니다. 백인 농장주들은 먹기 편한 가슴살과 다리 부위
를 선호했는데 주로 오븐에 구워서 조리했습니다. 그 외의 날개나 목처럼 뼈가 많은 부위들은 자연스
레 흑인 노예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흑인들은 이 부위들을 조각낸 뒤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 내
었습니다. 그런데 흑인 노예들은 왜 닭을 굽는 대신 튀겼던 것일까요? 우선 바삭하게 튀긴 닭요리는
뼈까지 씹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음식의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었고 또한 튀기는 과정에서 한층 더
고열량의 음식으로 변모하였지요. 덕분에 힘든 노동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우수한 영양식으로 사랑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튀김 요리는 미국 남부 지방의 더욱 날씨에서도 비교적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
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미국 남부의 프라이드치킨은 점차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오래되지 않아 백인들까지
즐겨 먹게 되었습니다. 20세기 들어서 미국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과 함께 프라이드치킨도
세계적인 요리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처럼 프라이드치킨에는 노예 무역의 참담한 실상, 고향을 떠
나 낯선 대륙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아프리카 흑인들의 설움이 담겨 있습니다.
이름만 프랑스인 국적 불명의 감자 요리: 프렌치프라이
프렌치프라이는 정말 프랑스 요리일까?: 프라이드치킨과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튀김 요리
는 바로 프렌치프라이입니다. 하지만 프렌치프라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합니다. 그중 대
표적인 것이 프랑스 기원설입니다. 이 주장에 의하면 미국에 프렌치프라이가 들어온 것은 1802년 미
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프랑스 대사를 역임한 바 있는 제퍼슨은 열렬
한 프랑스 요리 애호가였다고 하네요.
하지만 벨기에의 역사학자 조 제라드에 따르면, 벨기에에서는 이미 17세기부터 프렌치프라이와 유사한
감자튀김 요리가 존재했다고 합니다. 당시 벨기에의 뫼즈 강 유역에는 강에서 잡은 작은 물고기를 튀
겨 먹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겨울에 강이 얼어 낚시를 할 수 없게 되면 물고기 대신 길게 썬
감자를 튀겨 먹었는데 이것이 바로 프렌치프라이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프렌치’란 말은 프랑스를
의미하는 것 외에 ‘잘게 썰다’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고,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감자튀김 요리
가 존재했기 때문에 아마도 프렌치프라이의 정확한 기원은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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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의 발견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이 요리의 인기가 국경을 초월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프렌치프라이, 프리츠,
칩스, 프라이스, 핑거칩스, 프렌치프라이드 포테이토 등 이름만큼이나 다양하게 변신한 감자튀김 요리
는 이제 어느 한 나라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화에 성공했습니다. 예를 들어 가늘고 긴
막대 모양의 감자튀김을 두고 미국에서는 프라이스라고 부릅니다. 영국에서는 신발 끈을 닮았다고 하
여 슈스트링이라고 부릅니다. 프리츠 또는 폼 프리츠는 주로 벨기에에서 즐겨 먹는 감자튀김입니다.
이때 ‘폼’은 사과라는 뜻인데, 예로부터 감자가 ‘땅속의 사과’라고 불렸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감자튀김 요리에는 파타타스 프리타스가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잘라 낸 감자를
올리브유에 튀겨 만드는 요리로, 여기에 매콤한 칠리소스나 토마토소스를 얹으면 파타타스 브라바스라
는 요리가 됩니다. ‘파타타스 프리타스’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 감자칩 브랜드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
다. 영국에서는 다소 두꺼운 감자튀김인 칩스를 즐겨 먹습니다. 보통은 생선튀김 요리에 곁들이곤 하
는데 바로 이것이 영국의 대표 요리 ‘피시앤칩스’입니다.
3장 ‘겉바속촉’을 완성하는 튀김의 과학
튀김이 무지하게 ‘당기는’ 과학적 이유
우리가 음식을 먹는 가장 큰 목적은 생존입니다. 우리 몸에 영양분이 부족해지면 뇌는 우리에게 ‘어서
무언가를 먹어라’하고 명령을 내리지요. 이때 아무 음식이나 먹고 싶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 몸에 부족
한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이 ‘당기게’ 되는 것입니다. ‘맛있다’는 감각은 단순히 우리의 미각이 느끼는 2
차적인 감각이 아닙니다. 그 음식에 대해 우리 뇌가 판단하여 내보내는 2차적 전기 신호인 것입니다.
뇌는 우리가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도록 그 영양분이 많은 음식에 ‘맛있다’라는 꼬리표를
붙여 놓았습니다. 따라서 음식의 맛은 그 음식이 갖고 있는 영양학적 유용성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튀김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가 튀김의 영양학적
유용성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식재료의 조직을 부드럽게 만들어 소화 흡수율을 높여 주는 연화 작용에는 크게 저온 연화와 고온 연
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저온 연화의 대표적인 예로 생고기의 숙성 과정을 들 수 있습니다. 도축된 고
기를 저온에서 며칠 동안 숙성시키거나 파인애플이나 키위, 배를 넣어 만든 양념장에 재워 놓으면 고
기의 육질이 한층 더 부드러워집니다. 단백질 분해 효소가 작용하면서 고분자 형태의 단백질이 더 작
은 형태로 분해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음식을 입안에 가득 넣고 오래도록 꼭꼭 씹는 활동도 저온 연화
와 관련이 있습니다. 씹는 과정에서 물리적 분쇄 작용이 일어날 뿐 아니라, 침으로 분배되는 소화효소
아밀라아제의 화학적 작용에 의해 식재료의 조직이 연화됩니다. 체온은 약 36도이므로 저온 연화에 해
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화 작용은 열에 의해서도 촉진되는데 이를 고온 연화라고 합니다. 불을 사용해 조리한 화식이 날것
그대로 먹는 생식에 비해 더 높은 소화 흡수율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고온 연화 작용 덕분입니다. 열
을 가하면 얼음이 녹듯,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의 단단한 고분자 결합이 분해되면서 분자의 크기가 점차
줄어드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튀김이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가열되는 과정에서 식재료의 조직이 연화되기 때문입니다.
연화 작용을 거친 식재료는 한층 더 부드러워져서 우리 몸이 소화 흡수하기 좋은 요리로 탈바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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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의 발견
『요리 본능』의 저자 리처드 랭엄은 인류가 화식을 통해 필요 영양분을 보다 효율적으로 섭취함으로써
다른 동물들 보다 경쟁 우위에 설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한편 진화학자들은 인류가 화식을 시작
하고 나서 소화 흡수율이 좋아진 덕분에 장의 크기가 점차 줄어들었고 여분의 에너지가 뇌의 발달에
이용된 덕분에 뇌의 용적이 점차 커지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연화 작용은 요리를 더 맛있게
만들어 주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4장 기름은 튀김의 친구인가 적인가
튀김 맛의 절반은 기름 맛
튀김은 ‘식재료가 잠길 정도로 충분히 많은 양의 고온의 기름을 사용하여 단시간 내에 익혀 내는 조리
법’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튀김만의 독특한 식감과 풍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반드시 기름에 넣고 튀
겨야 합니다. 그만큼 기름 맛은 튀김의 절대적인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기름이란 무엇일까요? 아니, 그보다는 ‘유지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튀김 요
리에 사용되는 기름의 경우 식용 유지(油脂)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유(油)’는 상온
에서 액체 상태인 식물성 유지를 의미하고. ‘지(脂)’는 상온에서 고체 상태인 동물성 유지를 의미합니다.
본래 기름은 유를 포함하는 더 상위의 개념으로, 물과 잘 섞이지 않는 액체 상태의 물질 모두를 의미
합니다. 여기에는 식물성 유지뿐 아니라 석유와 같은 광물성 기름도 포함됩니다. 한편 고체 상태인 동
물성 유지도 가열하여 녹이면 기름이라 부르지요.
과거 튀김 요리에는 그 독특한 풍미 때문에 주로 돈지와 같은 동물성 유지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건강에 덜 해로운 식물성 유지가 주로 사용됩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용 유지 가운데
약 70%가 식물성 유지입니다. 그중에서도 팜유의 생산량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팜유는 기
름야자라고도 불리는 팜 나무의 열매를 찐 다음 압착하여 얻을 수 있는데 생산량이 많아 수급이 매우
안정적입니다. 또한 다른 유지에 비해 산화 안정성이 높아 상대적으로 보관이 용이하고 특유의 고소한
풍미도 가지고 있어 산업적인 가치도 매우 높습니다.
우리 건강을 해치는 주범, 산화된 기름
우리나라의 치킨 브랜드들 중에 기름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기름 한 통으로 딱
60마리만 튀긴다는 곳이 있는가 하면, 최상급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만 사용한다는 곳도 있지요. 그
만큼 기름은 튀김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셈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반복해서 사
용된 기름은 색이 탁하고 끈적끈적하며 불쾌한 냄새까지 납니다. 이것은 기름이 공기 중 산소와 만나
산화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세포의 산화는 곧 세포의 파괴와 노화를 의미합니다. 산화된 음식을 섭취하면 세포의 노화 과정이 촉
진되고, 더 나아가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환에 걸릴 확률도 높아집니다. 그래서 세포의 산화를 억제하
는 항산화 물질은 건강 보조 식품의 주성분으로 크게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은 산화가 잘
일어나는 식재료 중 하나입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되도록 산화된 기름을 섭취하지 말고, 산화된 기
름으로 조리한 요리도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기름의 산화 과정을 살펴보면 기름의 산화는 2가지 경로에 의해 일어납니다. 첫 번째는 물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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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의 발견
해진 상태에서 일어나는 분해 반응인 가수 분해입니다. 가수 분해성 산화는 수분을 함유하고 있는 기
름이 가열되면서 일어나는 산화 반응입니다. 튀김을 만들 때 기름에서 보글보글 기포들이 생겨나는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식재료에서 수분이 배출되는 현상으로, 튀기는 조리를 하는 동안 기름에는
계속 수분이 공급됩니다. 여기에 고온의 열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가수 분해성 산화가 일어나는 것입니
다. 지방은 지방산과 글리세롤이 결합되어 만들어졌지요. 그런데 가수 분해성 산화는 이 결합을 끊어
지도록 만들고 결국 지방으로부터 유리 지방산이 분리되어 떨어져 나오게 되지요. 이 유리 지방산은
산화된 기름의 품질을 측정하는 한 가지 기준이 됩니다.
두 번째는 자동 산화입니다. 열, 빛, 금속 이온 같은 촉매에 의한 산화 반응으로, 산화 이후 후속 반응
들이 자동적으로 이어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특히, 불포화 지방산에서 자동 산화가 잘 일어
납니다. 지방산에는 포화 지방산과 불포화 지방산,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때 ‘포화’는 말 그대로 가득
찬 상태를 의미하지요. 지방산과 같은 화합물이 합성되는 과정은 마치 레고 조립과 비슷합니다. 알맞
은 조각들(분자, 원자)을 이리저리 꿰맞추다 보면 어느새 완성품(지방산)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그중
에는 더 이상 다른 조각들을 붙일 여유 공간이 없는 완성품이 있습니다. 이것을 ‘포화’ 지방산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반대로 불포화 지방산은 여전히 불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조각들을 붙일 수 있
는 여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불포화 지방산은 포화 지방산에 비해 반응성이 월등히 높습니다.
불포화 지방산에서 특히 자동 산화가 잘 일어나는데 그 이유는 불포화 지방산의 반응성이 더 좋기 때
문입니다. 불포화 지방산이 산소와 반응하면 과산화물이 만들어지고, 이 과산화물은 ‘자동적으로’ 일련
의 반응을 거쳐 알데히드, 유리 지방산과 같은 물질로 분해됩니다. 일부 과산화물들이 서로 뭉쳐 큰
덩어리를 만들기도 하는데, 기름이 산화되면 색이 탁해지고 끈적끈적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5장 튀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옷을 입다
튀김옷에 적합한 밀가루는 따로 있다
밀가루의 보존성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수분입니다. 습할수록 세균과 미생물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수분 함량이 높을수록 변질ㆍ부패될 가능성이 높고 수분 함량이 낮을수록 보존
성이 좋아집니다. 대부분의 밀가루는 수분 함량이 10~14% 수준으로 낮은 편입니다. 또한 밀가루의
수분 활성도는 0.6 수준입니다. 수분 활성도는 어떤 일정한 온도에서 식재료의 수증기압과 순수한 물
의 수증기압 간 비율을 말합니다. 순수한 물의 수분 활성도는 1이며, 다른 식재료는 0과 1 사이의 값
을 가집니다. 일반적으로 세균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수분 활성도가 0.9 이상, 곰팡이가 생기기 위해서
는 0.8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밀가루는 통풍이 잘되는 서늘한 곳에서 보관한다면 장기간 안전
하게 보관할 수 있습니다.
또한 회분 함량이 적을수록 밀가루의 품질이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회분이란 탄수화물이나 단백질과
같은 유기물 이외의 무기질 불순물을 말합니다. 그래서 회분 함량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유기물을 모두
제거하고 무기질 불순물만 남겨야 합니다. 회분은 제분 과정에서 겉껍질이 제대로 제거되지 못한 경우
에 주로 발생합니다.
기름의 종류가 다양하듯이 밀가루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특히, 단백질 함량 수준에 따라 강력분, 중력
분, 박력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각각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용도도 다릅니다. 먼저 강력분은 단백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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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의 발견
함량이 13% 이상인 밀가루로 빵을 만드는 데 주로 쓰입니다. 중력분은 단백질 함량이 9~13%로 면의
원료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박력분은 단백질 함량 9% 미만으로 튀김옷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은 각각의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밀가루가 가진 ‘힘’에 따라 분류됩니다. 밀가
루를 반죽하여 얇은 도우를 만들고 그 안에 기포를 불어 넣어 기포가 터질 때까지 버티는 정도를 측정
하면 그 밀가루가 가진 힘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이 방법은 1921년 프랑스의 사업가 마르셀 쇼팽에
의해 처음 개발되었는데, 그는 밀가루가 가진 힘을 W지수(도우 탄성 지수)로 수치화하였습니다. 강력
분은 이름처럼 ‘강력’한 힘을, 중력분은 ‘중간’ 수준의 힘을, 박력분은 ‘얇은(약한) 힘’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강력분은 250~300W, 중력분은 150~250W, 박력분은 90~150W 값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밀가루의 종류에 따라 힘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밀가루가 가진 힘의 원천은 바로 단백질과 글루텐입니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밀가루일수록 반죽 과정
에서 생성되는 글루텐의 양도 많아지고 탄력성도 커지게 됩니다. 결국 단백질 함량이 높은 밀가루일수
록 더 강한 힘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글루텐 생성량이 많은 밀가루, 즉 단백질 함량이
높은 밀가루는 바삭한 식감을 만들어야 하는 튀김 요리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튀김옷을 만들
때에 박력분이 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용도에 따라, 즉 단백질 함량에 따라 밀가루를 특화하여 생산하려면 원료가 되는 밀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밀은 경질밀과 연질밀, 2가지 종류로 구분되는데, 경질밀은 단백질 함량이 많
아 조직이 매우 치밀하고 단단합니다. 반면 연질밀은 단백질 함량이 적어 손으로도 쉽게 으스러질 정
도로 조직이 성글고 연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강력분의 주원료가 경질밀이라는 사실을 쉽
게 알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박력분은 연질밀을 분쇄해 만듭니다. 중력분은 경질밀과 연질밀을 적당
한 비율로 혼합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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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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