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수 지음 / 미래타임즈
이 책은 저자가 오랜 세월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중년이 되어서야 이해하고 알아 가
는 과정을 그린 소설 같은 에세이다. 저자는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때로는 너무나 멀게 느
껴지는 관계인 ‘가족’만큼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단어는 없다면서, 가족을 이해해 가
는 과정을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는 방법을 통해 유쾌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려 낸다.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제인 수 지음
▣ 저자 제인 수
도쿄에서 나고 자랐다. 작사가, 라디오 진행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고민 상담 등으로 재담을 뽐내고 있으며 <제인 수의 생활은 춤춘다>의 진행자로도 유명하다.
『나는 여자로 삽니다』로 제31회 고단샤 에세이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우리가 프러포즈를 받지 않
는 것에는 101가지 이유가 있지』, 『여자의 갑옷과 투구, 입거나 벗거나 매일 전쟁 중』 외 다수가 있
으며 만화 『나나토에리』의 원작인 『미중년』을 펴내기도 했다.
▣ Short Summary
저자인 제인 수의 가족은 77살이 된 아버지와 42살의 외동딸로 이루어져 있는데, 20년 전 어머니가 돌
아가시고 나서 2번 정도 같이 살아 볼까 시도를 해 봤지만 서로 맞지 않아서 결국 따로 살고 있다. 한
편 이 부녀는 가끔 함께 어머니의 성묘를 가고 외식을 하면서 대화도 나누긴 하지만, 제인 수는 아버
지에 대해 정작 아는 게 없다. 그리고 2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서도 ‘어머니’로서의 어머니밖에
모른다. 어머니에게는 아내로서의 얼굴도 있었을 것이고 여자로서의 인생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제인 수는 어머니에게서 당신의 인생에 대해 직접 듣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아버지에게만큼은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에게도 남편으로서의 얼굴, 남자로서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알아 가기 시작하고,
아울러 아버지의 인생을 통해 엄마의 인생 또한 한 가지씩 알아 가면서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난다.
이 책은 칼럼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로 활동하는 제인 수가 오랜 세월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중년
이 되어서야 이해하고 알아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같은 에세이다. 저자는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때로
는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관계인 ‘가족’만큼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단어는 없다면서, 가족을 이해
해 가는 과정을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는 방법을 통해 유쾌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려 낸다.
▣ 차례
이 남자, 혈육이므로
미워할 수 없는 남자
결핵남과 다윗의 별
-2-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사바랭과 밀푀유
패밀리 트리
불편한 유전자
전쟁을 겪은 사람과 브라스 밴드
칠월의 가지구이
저마다의 긴자
미니 트럼프
도쿄 출신의 도쿄 잘알못
H 씨
둘만 아는 것
장사는 어렵다
스테이크와 파나마모자
속인다든가 속는다든가
여기에 없는 사람
다시 한번 누마즈
새빨간 매니큐어
징조
반쪽짜리 수탉
고이시카와, 그 집Ⅰ
고이시카와, 그 집 Ⅱ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
다른 듯 닮은 사람들
아버지의 전언
-3-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제인 수 지음
이 남자, 혈육이므로
우리 집은 새해 첫날 반드시 성묘를 간다. 그런데 ‘우리 집’이라고 표현했지만 77살이 된 아버지와 42살
의 외동딸로 이루어진 가족이며, 새해 첫날에 성묘를 가는 게 우리 집 연례 행사가 된 것은 18년 전 어
머니가 저승으로 주민 등록을 옮기고 나서부터다. 한편 아버지와 약속하면 늘 내가 지각한다. 지각하는
버릇은 아버지를 쏙 빼닮은 것이라 유전이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근래 들어 아버지가 좀 달라졌다. 노
인이 되고부터는 시간이 넘쳐 나는지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해 주변을 서성이곤 한다.
2016년 첫날도 아버지는 나보다 먼저 고코쿠지(도쿄도에 있는 사찰)에 도착해 있었다. 차콜색 중절모
에 유니클로 회색 라이트다운을 입고 석재점(묘역 근처에서 묘석 등을 관리하고 꽃이나 향 등을 판매
하는 가게)의 큰 시계 아래에 앉아 있었는데, 온종일 TV를 보면서 소파에 누워 있었던 탓인지 꾸부정
하게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고, 그런 아버지를 보는 마음이 안 좋았다. 요즘은 화려한 색상의 옷을 즐
겨 입었는데, 오늘은 왠지 우중충한 차림새다. 웬 묘석 같은 남자가 다 있네, 했더니 아버지였다.
새해 인사를 하면서 아버지를 따라 가게로 들어갔다. “일전에 그 블루종이 참 멋있었는데…. 오늘은 다
른 옷을 입고 오셨네요?” 석재점 여주인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지난번 성묘 때 아버지는 새빨간 블루
종에 크림색 머플러를 두르고 나타났다. 여기에 내가 사 드린 보르살리노 모자를 쓰고 있어서 무슨 조
직의 보스인가 싶을 정도였다. 꽤 근사했기 때문에 “와~ 전혀 무일푼으로 안 보여!”라고 찬사를 보냈
다. 수입차라도 타고 다닐 듯이 번지르르한 차림새가 잘 어울리지만, 이 남자에게는 전 재산을 깡그리
말아잡수신 전과가 있다. 뭐 당신이 번 돈이고 내가 부모 밑에 있을 때 돈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어서
이러쿵저러쿵 참견할 입장은 아니지만 ‘참 거하게도 까먹으셨네.’ 감탄스러울 때도 있었다.
곧이어 가게 안쪽에서 할머니가 나오더니 “아이고야, 오늘은 빨강 블루종이 아니시네?” 하면서 아버지
한테 말을 건넸다. 그리고 잠시 후 여주인 남편이 나오더니 또 블루종을 두고 똑같은 말을 했다. 지난
번에는 가게에 없었던 두 사람이 빨간색 블루종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보면 여주인이 말한 게 분명하다.
여주인은 아버지의 빨간색 블루종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아버지는 여자들이 좋아
할 만한 남자다. 참고로 아버지와 나는 따로 살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두 번 정도 같이 살
아 볼까 시도를 해 봤지만 서로 맞지 않아서 결국 포기했다.
“마하반야바라밀다, 마하반야바라밀다.” 아버지는 묘석을 향해 합장하더니 가락을 붙여 『반야심경』을
외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최소 십 년은 매일 아침 불단 앞에서 합장하고 경을 외고
있는데도 아버지는 ‘마하반야바라밀다’밖에 못 한다. 그렇게 어설프게 『반야심경』을 외고 나면 “미치
코 님, 신이치로 님, 치카코 누님, 조상님, 항상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딸아이도 저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무덤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도 하고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 비
슷한 이야기도 한다. 그것이 아버지의 의식이다. 미치코는 엄마 이름이고, 신이치로는 아버지의 아버
지, 그러니까 할아버지다. 아버지는 삼 형제 중 막내로 위로 형님만 둘 있다. 치카코 누님이 누구인지
는 모른다. 아마 일찍 죽은 누나가 아닐까 싶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4-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내가 아버지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데는 이유가 있다. 아버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함께 지낸 세월 동안 일어난 일은 알고 있지만, 부녀로 살아온 사십 몇 년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것 말고는 치카코 누님이 누구인지 모르듯 전혀 모른다. 내 인생 중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인데도
나는 아버지에 대해 무지하다. 어머니는 내가 스물네 살 때 예순넷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밝고 총명하
고 유머 넘치는 멋진 분이셨지만, 나는 ‘어머니’로서의 어머니밖에 모른다. 당신에게는 아내로서의 얼
굴도 있었을 것이고 여자로서의 인생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어머니에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직접 듣
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아버지만큼은 같은 후회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미워할 수 없는 남자
아버지가 이사를 했다. 이사하기 전,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살던 고이시카와(도쿄 중심에 있는 동네)
집을 나와 그보다 북쪽에 위치한 가나메초라는 동네에서 오 년 정도 살았었다. 아버지는 가나메초 집
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 새집을 구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새 거주지는 도쿄 도심
의 23구 안에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도심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주택가 아파트 단지다.
꽤 이전부터 “혹시 이사를 하고 싶으면 몇 달 전에 말해 줘.”라고 아버지한테 단단히 일렀다. 왜냐하면
이사 비용 등을 내가 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돈을 보태는 건 싫지 않다. 고생의
‘고’자도 모르고 자란 나로서는 고이 키워 준 은혜를 살아 계신 동안 갚고 싶다. 이런 마음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더 절실해졌다.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다. 아버지한테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들은 적도 없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눈곱만큼의 후회도 없다. 그래도 귀여운 손주 얼굴을 아버
지에게 보여 드리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곤 하는데, 이런 미안함을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몇 개월 전부터 아버지는 ‘이사 계획 중’이라는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일하
는 곳 근처까지 왔으니까 좀 보잔다. 아버지의 방문은 가뭄에 콩 나는 정도로 드문 일이라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어 친구와 같이 나갔다. 제삼자가 있으면 아버지도 나도 흥분을 가라앉히며 이야기할 수
있고, 마침 또 이 친구가 부동산 빠꼼이다. 은행 앞에서 만나 찻집으로 들어갔고, 아버지는 로열밀크티
를 주문했다. 나는 아버지 옆에 보란 듯이 놓여 있는 부동산 로고가 박힌 쇼핑백 속이 궁금해 견딜 수
가 없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른 척하고 앉아 있다. 이런 밀당의 고수 같으니!
결국 참을성이 바닥난 나는 “그거 뭐야?” 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싱긋 웃으며 쇼핑백에서 부동산 자료
를 꺼냈다. 벌써 이사할 곳을 정한 것 같았다. 어째 의논 한마디 없이 정해 버렸을까.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자료를 슥 훑어봤다. 그때 아버지가 말했다. “녹지가 많은 곳이야. 가을엔 단풍이 아주
끝내준대. 사진도 찍어 왔는데, 볼래?” 아버지가 가방에서 디지털카메라를 꺼냈다. 친구가 익숙한 손
놀림으로 사진을 열었다. 빨강과 노랑으로 물든 가로수 풍경이 정말 아름답기는 했다.
집은 어땠냐고 묻자 그것도 찍어 왔다고 했다. 난 버튼을 눌러 사진을 열었다가 공포 영화 <블레어 위
치>인 줄 알았다. 벽장, 문 등이 마구 흔들린 채 찍혀 있었다. 친구와 나는 사진을 보다가 그만 웃음보
가 터져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우리들의 웃음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맞바꾼 셈이다.
-5-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나는 아버지가 내민 부동산 자료를 보다가 눈을 의심할 뻔했다. 아버지가 얻으려는 집은 60제곱미터,
그러니까 18평이 넘었다. 짐이 많은 남자긴 하지만 이건 너무 넓다. 도면을 보니 방 두 개에 거실과
다이닝 키친까지 있다. “그런데 얼마야?” 나는 가슴이 벌렁거리는 걸 겨우 진정시키며 물었다. 아버지
가 집세를 말했다. 미안하다거나 주눅이 들었다거나 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시치미를 뚝 떼고 말한
금액은 당신이 매달 받는 연금보다 만 엔 정도 많았다. 늘 날 부르던 아버지가 왜 일부러 먼 길을 납
셨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아버지는 모른 척하며 계속 말했다. ‘수입이 없는 사람은 일 년 치 월세를
미리 내야 한다, 찜해 놓고 왔으니까 얼른 입금해야 한다.’ 어쩌고저쩌고….
“알았어.”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깜짝 놀라 “야, 너 제정신이야?!” 소리쳤다.
뭐, 괜찮다. 작년에 나는 운이 좋아서 좀 많이 벌었고 또 저축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나이 든 아버지를
모른 척할 순 없으니까. 게다가 아버지가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집에서 사는 걸 보는 것도 마뜩잖다.
다양한 측면에서 아버지의 프레젠테이션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내가 조건 없이 돈을 내는 건 아니었다.
나도 꿍꿍이가 있었다. 나는 말했다. “그 대신 아버지 이야기를 쓰게 해 줘.” 돈이 걸려 있으니 아버지
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좋아.” 아버지도 흔쾌히 대답했다.
이케부쿠로(도쿄 북쪽에 위치한 번화가)에서 30분 정도 전철을 타고 아버지가 이사한 동네로 갔다. 약
속한 역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잠시 후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가 운전을 그만둔 지는 꽤 됐지
만 아버지가 걸어 다니는 모습은 여전히 낯설다. 일흔일곱의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일 때도 있고 자기
연배로 보일 때도 있는데 오늘은 후자다. 아버지를 따라 걸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다카시마다이라
지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학교, 병원, 우체국, 공원, 마트 등 주변 편의 시설이
잘되어 있는 이 단지는 지어진 지 30년 하고도 조금 더 되었다고 한다.
단지에 들어선 지 꽤 됐는데도 여전히 걷고 있다. 아버지도 아직 따끈따끈한 신참 주민이라 헷갈리는
지 오른쪽으로 갔다 다시 왼쪽으로 갔다 빙빙 돌아간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의 뒤를 열심히 쫓아갔다.
“다 왔다.” 아버지는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그제야 뒤따라오는 날 돌아봤다. 과연 나는 무사히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벌써부터 걱정되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짐으로 가득했다. 안 쓰는 건 버리고 나서 이사
하라고 그렇게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얘기했지만, 도대체 사람 말을 어디로 듣는 건지. 우산만 해
도 열 개가 넘었다. 큰 우산꽂이에 삐죽삐죽 넘치도록 꽂혀 있는 우산이 마치 식물 같아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거실로 들어가자 다이슨 선풍기가 두 대나 있었다. 그것도 찍어서 보냈다. 나는 아버
지의 이사를 돕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참 정나미 떨어지는 딸이다. ‘이사를 도우면 틀림없이 싸울
게 뻔하니까. 그게 싫어서….’라는 게 겉으로 내세운 이유지만, 진짜 속내는 다르다. 어쩐지 고이시카
와 집을 떠나 이사하던 장면이 떠올라 아버지가 또 패배하듯 이사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새집 집세를 일 년 치 먼저 내긴 했는데 내년에는 어떻게 하지?’ 불안감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집
세야 어떻든 아버지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런 내 불안을 아는지 모
르는지 미국 대통령 선거 뉴스를 보면서 아버지가 말했다. “나, 요즘 트럼프를 보며 용기를 얻고 있
어.” 우울함이나 뭐 그런 감정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사람, 네 번이나 파산했는데도 매번 재
기했어. 엄청나지 않냐?” 트럼프의 정치 능력이나 문제 발언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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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트럼프에겐 미워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 사업이든 뭐든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중
요하지.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 돼. 사람을 웃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어야지. 그런 매력이 있는
사람은 꿈을 보여 주거든. 사람들에게 꿈을 갖게 해. 그런 사람은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아
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아버지에게 거울을 보여 주고 싶어졌
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할아버지는 흔치 않다. 그래, 센티멘털해진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든 되겠지. 그래, 어떻게든 될 거야.
둘만 아는 것
나는 맑은 겨울 하늘이 좋다. 우리 집의 경우 ‘일요일’, ‘맑은 하늘’이라고 하면 성묘가 떠오른다. 팔월
중순이나 춘분, 추분 그런 절기에 상관없이 편하게 어머니를 자주 찾고 있다. 내가 어머니의 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니까 동네 산책하듯 나올 수 있어서 더 좋다.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 택시를 탔고, 택시가 폭주한 덕에 내가 먼저 고코쿠지에 도착했다. 석재점
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 평소에는 아버지가 나를 기다리는 곳이다. 가게 밖에 아버
지가 보였다. 빨간 가죽점퍼에 중절모, 여기에 베이지색 캐시미어 머플러를 두른 채 선글라스까지 쓰
고 있다. 스타일은 좋은데 걸음걸이는 불안하다. 운동 좀 하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근육을 좀 단련시켜야 한다. 못 걷게 되면 내가 곤란하니까.
“아버님, 멋지시네요.” 오졸오졸 겅둥겅둥 걷는 아버지를 보고 석재점 여자 점원이 말했다. 평소와 달
리 목소리가 들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 부녀가 성묘를 다니기 시작한 때부터 가게에 있었
으니까 벌써 이십 년 가까이 우리 부녀를 봐 온 셈이라 오늘 새삼스럽게 아버지가 멋져 보일 리는 없
을 텐데…. 하긴 세상일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나.
아버지를 보며 멋지다고 말하는 여성이 꽤 되지만 난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이야기를 해 보면 흥미로
운 사람이지만 나이도 꽤 먹은 할아버지라서 멋지다는 표현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다른 여성이
아버지에 대해 그렇게 말할 땐 아버지에게 다소 반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로 그 점이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혈연관계인 나 말고 다른 여성에게만 보이는 아버지의 매력, 뭐 그런 게 있
는 걸까? 아버지가 멋지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버지가 가게로 들어오자마자 “춥다, 춥다.” 하며 투덜댄다. 오늘은 비교적 따뜻하다는 것, 걸음새가
불안정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한쪽 다리를 앞으로 크게 내디디고 체중을 실어서 앉았다 일어서는
하반신 단련 운동을 알려 줬다. 워킹 런지라고 하는 것이다. 큰 근육을 움직이면 몸이 따뜻해진다. 넘
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옆에 의자를 두고 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 했다. 다음부터는 만날 때마다 꼭 이 운동을 시켜야지.
꽃과 향을 사서 어머니 묘로 올라갔다. 묘지 안쪽에 있는 매화나무에 꽃이 피었고 동박새 두 마리가
가지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그걸 보고 “곧 봄이네.”라고 해서 “그러네.”라고 대답했다. 얼마 전까지
만 해도 서리가 내렸었는데…. 우리 부녀는 성묘를 하며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어머니 묘를 청소하고
꽃을 놓고 향을 피운 후 묘석을 향해 합장했다. 이십 분 정도면 충분하다.
-7-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우리는 성묘 왔다가 후딱 돌아가 버리잖아. 그거 안 좋은 것 같아. 따뜻해지면 주먹밥 싸 가지고 와서
여기서 먹자.” 아버지가 언덕길을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한 십 년 동안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지만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슥 왔다가 후다닥 돌아가 버린다. 다음 성묘에 진짜로 주먹밥을 싸
가지고 오면 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할아버지와 중년 여자가 묘 앞에 서서 주먹밥을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얼마나 해학적인가.
아버지는 이빨 상태가 어떻다 저떻다 하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는 “아~” 하고 입을 크게 벌렸다. 부분
틀니를 하고는 있지만 충치도 없고 착색도 없고 치아도 고르다. 참으로 정갈한 구강이다. 일흔여섯 살
치고는 상당히 관리가 잘되어 있다 싶었는데 잘 보니까 왼쪽 아랫니가 빠져 있다. “이건 왜 이래?” “이
빨 뿌리가 안 좋아져서 뺐어. 의사가 임플란트를 하라고 하는데 이 나이에 무슨 임플란트야.”
“아버지, 여기 좀 봐.” 나는 아버지를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손가락으로 입 안을 가리켰다. “너도냐?”
아버지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나도 아버지도 입이 작아서 말하거나 웃을 때 말고는 거의 이가 드러
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왼쪽 아랫니가 빠져 있다. 나 역시 의사에게 임
플란트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대대적인 수술이 무서워 그냥 이가 빠진 채 살고 있었다. 부녀
가 똑같이 이가 빠져 있다니 참 한심하다. 꼴불견이지만 둘이 똑같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다.
늘 가는 패밀리 레스토랑 대신 이케부쿠로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역으로 향했다. 즉석 운동 효과 덕
분인지, 딸에게 잔소리를 듣는 게 싫었기 때문인지 아버지 걸음새가 아까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래도
걷는 속도는 느리다. 플랫폼에 전철이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아버지가 천천히 걸어서 타려고 하는데,
나와 비슷한 나이대 여자가 갑자기 뒤에서 새치기하더니 먼저 타 버렸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도 아버지는 다른 승객보다 한 박자 늦었다. 그러면 반드시
옆에서 새치기하며 파고드는 사람이 꼭 있다. 그런 녀석들은 마치 “걸리적거리는 노인네는 저리 비켜!”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 세상이 언제 이렇게 노인에게 차가워진 걸까. 굼뜨면 짐짝 취
급을 당한다.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고 하는 실수인 것 같은데, 중년일수록 마치 노인을 단죄하듯 당
당하게 행동한다. 눈에 거슬리는 게 너무나 많다. 내가 복잡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아버지가 목적지를 정해 버렸다. “세이부 백화점에서 돈가스 먹자.” 또 돈가스? 뭐 좋지만.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줄을 서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흑돼지 등심!” 하고 아버지가 말했다. ‘네네, 알겠어요.’라고 말하고 나는 점원을 불러 아버지가 요청
한 흑돼지 등심 돈가스 정식과 내 안심 돈가스 정식을 주문했다. 성묘, 패밀리 레스토랑, 때때로 돈가
스. 아버지는 언제나 등심이고 딸은 언제나 안심. 장대한 매너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안녕하세요.” 매끄러운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자 오십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점원이 아버지에게 인사
를 하고는 가게 안쪽으로 사라졌다. 익숙한 시추에이션의 재탕이다. “여기 자주 와?” “혼자서도 와. 맛
있으니까.” “그래에?” 나는 아버지가 혼자가 아닐 때 동석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못 봤다. 돈가스를 먹으면서 약간 복잡한 이야기를 나눴다.
깊은 속내를 별거 아닌 듯 이야기하는 것이 아버지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랄 때는 단점이고, 별거 아니라고 말해 주길 바랄 때는 장점이 된다. 이번에는
-8-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후자다. “결국은 사람 됨됨이지.” 입에 발린 이상론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을 방패 삼아
정론을 펼치는 것도 아닌, 속내와 겉마음이 균형을 잘 잡으며 돌아온 대답에 나는 안도했다. 그 뒤부
터는 TV에서 본 것을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죽은 유명 배우의 마지막을 지킨 여자에 관한 이야기로 발전했다. 배우와
여성은 딱 아버지와 나만큼 나이 차이가 났다. 그런데도 남녀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이 나는 그저 놀라
울 따름이었다. TV에서는 여성이 보인 행동을 미담이라며 부추기고 있었지만, 나는 좀 불편했다. “마지
막 여자를, 그런 식으로 포장하는 건 좀 그래.” 아버지 말에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오늘은 생각이 잘 맞네. 아버지도 나도 그녀를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세상사는 언제 누가
어느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한다. 종종 남들이 내리는 진단은 당사자
에게는 무의미하다. 둘만 아는 유일한 뭔가로 관계의 가치는 유지된다. 물론 둘이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전해 들은 이야기를 또 전하는 과정에서 아름다워 보이는 부분만 잘라 마치
사실인 양 떠드는 게 아버지도 나도 불편할 뿐이다. “폼 잡다가 죽는 건 멋지지 않으니까, 마지막까지
멋있었다는 식으로 주변에서 떠들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배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아버지는 스스로를 그 배우에게 투영하고 있다. 만약 아버지 가는
마지막 길에 그 옆을 지키는 여자가 있고, 세간에서 이 여자에게 갸륵하다는 평을 내린다면 난 아마도
끔찍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 여자의 마음이야 진심이겠지만, 그렇다고 손을 들어 환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워하고 경멸하던 단계를 어찌어찌 지난 후, 아버지가 맺은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 깊게 파
고들지 않는 기술을 체득했다. ‘딸’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고 해서 아버지 인생에 간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도 ‘부모’라는 라벨을 무기로 내 인간관계에 파고드는 무례한 일은 하지 않
는다. 아버지와 내 관계도 둘밖에 모르는 무언가로 유지되고 있다.
아버지가 당신의 등심 돈가스 한 조각을 내 접시에 덜어 줬다. 나도 아무 말 없이 아버지 접시에 안심
돈가스를 놓는다. 등심의 지방은 아주 달고 맛있었다. “더 먹을래?” 하고 아버지가 물어보길래 끝 부분
을 한 조각 집으려고 했더니 “돼지에게 실례야. 가운데 먹어.”라고 한 소리 한다. “맛있는 부분 줄게.”
라고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절대로 말 못 하는 아버지다.
다른 듯 닮은 사람들
아버지와 내가 닮은 부분을 꼽으라면 먼저 얼굴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누가 어떻게 봐도
붕어빵이라고 한다. 손바닥이 크림빵처럼 동그란 것도 닮았다. 손가락이 퉁퉁해서 반지가 안 어울린다.
어머니는 술을 좋아했지만 아버지도 나도 단것만 좋아하고 술은 못 마신다. 피부가 약한 것도 팔이 짧
은 것도 닮았는데 이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이니 누굴 탓할 수는 없다. 아버지도 나도 입이 걸다. 우리
둘이 나누는 대화를 남들이 들으면 깜짝 놀란다. 아버지보다 내 쪽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둘 다 거
친 말투를 쓴다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으면 테이블 위가 티슈 투성이가 되어 버린다. 입 주변
에 붙어 있는 지저분한 것이 신경이 쓰여서 먹으면서 닦지 않으면 안정이 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아기인 내가 식사 중에 입 주변을 더럽힐 때마다 아버지가 그것을 티슈
로 닦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 쪽인가 하면 아버지는 결벽증이고 나는 아니다. 아버지는 미식가고
-9-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나는 뭐든지 잘 먹는다. 아버지 때문에 티슈로 닦는 습관만 내게 남아 버렸다. 이 습관을 고칠 생각은
없다. 테이블에 쌓인 티슈 산더미는 아버지가 아기인 내 옆에 있었던 시간에 대한 증거니까.
아버지 때문에 내게 남은 버릇이 하나 더 있다. 수학여행이나 친구와 가기로 한 여행은 물론이고, 출
장을 갈 때도 “일단 비상구와 대피 루트를 확인해라.”라고 아버지는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당부했다.
화재가 걱정이 된다며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잔소리를 해 댄다. 아버지의 화재 걱정증 덕분에 내게는
지금도 여행지에서 대피 방법을 상상하는 버릇이 남아 있다. 해변의 코티지에서 묵으면 쓰나미가 왔을
때를 대비해 높은 곳으로 도망치는 방법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고, 고층 호텔에서 묵으면 엘리
베이터 홀에서 비상구 표지를 무의식적으로 찾는다. 조심성이라기보다는 망상증에 가깝다. 몸에 밴 가
르침은 벗어날 수 없다는데 과연 이것은 자산일까, 부채일까.
수없이 많은 나쁜 것을 아버지한테서 받았지만 이어받지 않은 습관도 있다. 그중 하나가 ‘죽는다, 죽는
다 사기’다. 아버지는 피란지에서 아직 덜 익은 매실을 먹고 탈이 나서 ‘위독에 가까운 상태’가 된 일을
비롯해, 중학교 이 학년 때는 충수염, 고등학교 졸업 직전에는 결핵, 오십 대 중반에는 C형 간염, 예방
접종을 해도 일 년에 한 번은 꼭 독감에 걸리는 체질 등 병과 인연을 맺고 있는 인생이라서 무슨 일이
생기면 “곧 죽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얼마 전에는 “남은 수명 삼 개월, 길어 봤자 반년”이라는 진단을 스스로 내렸다. 물론 의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푸념을 방치했더니 전화가 왔다. 감기에 걸린 듯 콧소리가 심했다. “죽는다, 죽는다.” 하도
지겹게 말을 하길래 약을 사서 아버지가 사는 단지로 갔다. 노인네가 혼자 있기 무서울 것 같기도 했
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혼자가 아니었다. 예전의 나라면 ‘안 와도 될 뻔했는데….’ 하고 기분
이 상했을 법한 상황이었지만, 화가 나지 않고 먼저 온 손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솟아났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오늘까지 버텨 온 건 왜곡된 집착이었
을까. 아버지는 잠옷 차림에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귤을 먹고 있었다. 옆에 있던 껍질을 보니 2개째
같았다. 코가 막힌 목소리지만 혈색도 좋고 건강해 보였다.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지 “죽는다,
죽는다. 이제 곧 죽어.”라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나를 보며 섭섭해 했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가지고 온 약을 먼저 와 있던 손님에게 설명했다.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해도 어차피 기억하지 못할 테니, 아니 하지 않을 테니 괜히 헛수고하고 싶지 않았다. “녀석은 어디에
있냐?” 아버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녀석이란 내 동거인을 말한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는 그
렇게 대답하고 집을 나왔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반년쯤 전의 일이다.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곳
이 없다.”라고 불평하던 내게 “큰 사고를 당했을 때, 돈이 한 푼도 없을 때, 친구에게 말할 수 없는 긴
급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럴 때 연락하는 곳이 집 아냐?”라고 내 동거인은 말했는데, 나는 아버지에
게 연락할 수 있을까? 정말로 귀신한테 홀리게 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전언
오월에 아버지로부터 갑자기 ‘전언’이라는 제목의 메일이 왔다. 열어 보니 다음과 같은 담담한 유언 같
은 것이었다. “어머니가 좋아했던 오래된 가게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나카는 구야, 이쑤시개는 사루야,
주방용 칼은 우부케야, 한펜(다진 생선살에 참마 등을 넣고 굳힌 음식)은… 가게 이름을 잊어버렸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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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다. 스키야키용 고기는 히야마….” 구야에서 만든 모나카는 먹어 본 적이 있지만, 그 외에는 처음 듣는
가게였다. 엄마가 다니던 곳을 내가 이어 찾아 주길 바란 것일까? 아버지는 나와 함께 어머니가 다녔
던 가게에 가 보고 싶은 듯했다.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어머니가 가던 곳을 내가 계승해 버리면 왠지
뭔가가 끝나 버릴 것 같은, 다가가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한 발 나아가 버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해야 한다면, 지금 해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알아보니 대부분이 유서 깊은 가게라 일요일은 쉬는 날이어서 아버지와는 토요일에 만나서 가기로 했
다. 약속 시간은 오후 한 시, 와코 앞에서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시간에 가도 모나카는 못 산다고 해
서 구야는 포기하고 닌교초로 향했다. 평소라면 전철을 이용하지만 오늘은 택시를 탔다. 너무 더워서
도저히 걸을 수 없었다. 닌교초역 앞에서 내렸는데 엄청난 더위에도 신축 맨션을 선전하는 입간판을
든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었다. 참 고생이 많다. 나눠 주는 티슈를 받아 보니 대기업 부동산 회사가 운
영하는 맨션이었다. 나는 전단지를 가방에 쑤셔 넣었다. 휙~ 하고 버리지 못하는 것이 내 약점이다.
아버지 손에 무거워 보이는 가방이 들려 있어서 물어봤다. “네 엄마가 쓰던 칼이야. 손 좀 보려고.” 어
머니가 새해에 염장 연어를 손질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그 칼을 아직 가지고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 닌교초 거리에서 반대 방향으로 걷는 바람에 우부케야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아버지도
나도 땀투성이였다. 가게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지만 에도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은 착각을 불
러일으켰다. 허리보다 약간 낮은 유리 케이스에는 다양한 사이즈와 사양의 주방 칼이 진열되어 있었다.
중국 관광객처럼 보이는 가족이 들여다보고 있는 유리 케이스에는 족집게, 손톱깎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벽에는 에도 문자로 적힌 도토노렌회의 포스터가 액자로 장식되어 있었다. 도라야, 마메겐, 이세
타쓰, 사라시나호리이, 고토토이단고, 우부케야, 이후에 들를 사루야, 아버지가 이름을 잊어버린 어묵
전문점 간모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잠시 찬찬히 들여다봤다.
도토노렌회는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초기 사이에 창업하여 백 년 이상 전통을 지닌 오래된 가게 모임
으로, 장사를 3대 이상 계속하지 않았으면 회원이 될 수 없다고 들은 적이 있다. 도시의 타워 맨션에
는 돈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지만 이 모임에는 역사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힘내라! 진짜 도쿄!”
라고 말해 주고 싶다. 액자 옆에는 큰 유리 케이스가 걸려 있었다. “앗!”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
렀다. 케이스에는 20종 이상의 재단 가위가 진열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소중히 사용하던 것과 똑같이
생겼다. 어릴 때 가위로 천 이외의 것을 자를 때마다 어머니에게 혼이 나곤 했다. 자르는 것에 따라 가
위를 바꿔야 한다고 어머니는 몇 번이고 나를 가르쳤다. 재단 가위는 지금 우리 집에 있고 플라스틱이
든 비닐이든 뭐든지 사각사각 자르는 데 사용하고 있다. 나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유리 케이스를 사이에 두고 반대쪽에는 다다미가 깔린 반 평 정도 되는 공간에 있었다. 케이스 너머로
칼이 들어가 있는 가방을 가게 여점원에게 건넸다. 그리고 “갈아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미닫이문
으로 닫힌 안쪽이 작업장인 듯, 점원은 문을 열고 안쪽으로 사라졌다가 잠시 후에 다시 돌아왔다. “이
주일 정도 걸립니다.” 몸짓과 스타일에 기품이 배어 있다. 이런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
다. 마침 안쪽에서 장인이 나와서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육 촌(길이를 재는 단위, 1촌은 약 3.03센
티미터)이나 되는 칼을 가정에서 사용하시다니 참 드문 일입니다. 보통은 오 촌 정도지요.” “집사람이
쓰던 칼입니다. 이젠 저세상 사람이라서 오늘은 딸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버지가 젖은 목소리로 말하자 장인과 여점원이 애처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이렇게 더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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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 여점원 목소리에는 측은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위험하다. “돌아가신 지 이십 년은 됐어요.” 나는
서둘러 덧붙였다. 점원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창업하고 몇 년이나 되었나요?” 얼른 화
제를 바꾸었다. “일 대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백삼십 년째입니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다른 여
점원이 마치 이백삼십 년을 계속 지켜봤다는 투로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칼은
배달로 받기로 하고 아버지와 가게에서 나왔다.
다음은 사루야다. 가게가 이전을 해서 그런지 모던한 느낌을 풍겼다. 대충 제품을 살펴봐도 어머니와 얽
힌 추억은 느껴지지 않는다. 우부케야의 가위처럼 그리움과 해후하기를 기대했지만 멋지게 기대가 무너
졌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동거인에게 줄 작은 선물이라도 사서 돌아가자. 아무 생각 없이 눈앞에
진열되어 있는 과자용 이쑤시개를 손에 들었다. 순간 이쑤시개를 만드는 조장나무 향이 코를 자극하더
니 나를 추억 속으로 데리고 갔다. 이 향기는 집 주방에서 나던 향이다. 양갱을 먹을 때도 났고, 사과를
먹을 때도 났다. 어머니가 서 있는 주방에서는 이 향이 났다. 가게 사람이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계
산대를 등지고 서서 맘껏 조장나무가 내뿜는 향을 맡았다. 이쑤시개를 날 위한 선물로 사자.
어묵 전문점인 간모에서는 녹색 덩굴이 그려져 있는 포장지를 본 적이 있다. 히야마의 소고기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 피와 살이 되었을 것이다.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던 가게에서 내 먼 추억을 소환하는
제품을 변함없이 팔고 있었다. 새로운 것만 좇는 듯한 도쿄에도, 이곳에서 나고 자라고 죽은 사람들을
위해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가게가 있다. 도쿄에 살고 있는 나와, 살았던 어머니를 이어 주는 가게들,
아버지가 정리해서 내게 준 ‘전언’은 어머니가 살아 계셨더라면 어머니에게 받았을 메시지였다.
오늘, 아버지가 처음으로 어머니와 나를 연결시켜 줬다. 어머니가 저세상으로 가 버린 지 이십 년. 엉
망진창, 뒤죽박죽, 혼란과 카오스의 연속이었던 부녀 사이는 가끔은 격렬하게 부딪치면서도 친구같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매처럼 그렇게 정을 쌓으며 살아가고 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아버지와 딸
의 완충제로, 통역으로 활약 중인 어머니는 사려가 얕은 아버지와 딸을 잇는 매개체 역할도 해 준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내 시선의 중간 지점에는 늘 어머니가 서 있다. 오늘 아버지는 기억 속 어머니와
내 사이에 서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아버지다운 아버지로 보였다.
복과 화는 새끼줄처럼 번갈아 온다고 하지만, 부녀는 사랑과 증오를 꼬아서 만든 밧줄과 같다. 사랑도
증오도 양이 많을수록 밧줄은 굵어지고 튼튼해진다. ‘어머니, 우리 집도 드디어 아버지와 어머니와 딸
로 구성된 가족이 되었습니다.’ 니혼바시에서 아버지의 뒷모습을 배웅하며 나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
다. 아버지는 뒤돌아보지 않고 가볍게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지하철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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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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