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책,영화,리뷰,3440 이문열 선택 선택 이문열 제1부 비구름 걷힌 뒤의 달을 보며 세상의 슬픈 딸들에게 나는 조선 왕조 선조 연간에 태어나 숙종 연간에 이 세상을 떠난 한 이름없는 여인의 넋이다. 이 세상에서 나를 특정하는 유일한 기호는 아버지의 핏줄을 드러내는 장이라는 성씨와 훌륭한 아 들을 기려 나라에서 내린 정부인이란 봉작뿐이다. 그나마 그 둘을 결합해서야 겨우 딸이거나 아 내거나 어머니거나 며느리 또는 할머니라는 여인 보편의 이름에서 나를 특정해 낼 수 있다. 나를 수백 년 세월의 어둠과 무위 속에서 불러낸 것은 너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웅녀의 슬픈 딸들이었다. 너희 성난 외침과 괴로운 울부짖음이 나를 영겁의 잠에서 깨웠고 삶을 덧없어하는 한숨과 그 속절없음에 쏟는 넋두리가 이제는 기억에서 아련해진 내 한 살이를 돌아보게 하였다... 2023. 6. 23. 이문열 변경 11 변경 11 제3부 떠도는 자들의 노래 이문열 제 25 장 치고 빠지기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신문을 뒤적이던 영희는 한군데 박수기사에 눈길이 머물렀다. '냇가 에서 신음하는 철거민들'이란 제목의 광주대단지 관련 보도였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든 영 희는 찬찬히 그 기사를 읽어나갔다. 영희가 그쯤 읽었을 때 방문을 빼곰 열어본 시어머니가 끌끌 혀를 차며 한마디 했다. "박사 났제, 박사 났어. 아침마다 처억 눈을 내리깔고 신문을 들고 않은 그 모양새 정말 혼자 보기 아깝네." 하지만 말을 그래도 공격 심리를 동반하지 않은 악의였다. 석 달 전 영희가 신문 정기 구 독을 신청했을 때 시어머니는 펄펄 뛰다시피 반대했다. "읽을 사람도 없는데 비싼 신문을...당장 끊어." 그 때 사전에 승낙을 했던 시아버지가 나.. 2023. 6. 23. 이문열 변경 10 변경10 제3부 떠도는 자들의 노래 이문열 제 12 장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수업이 있는 날 오전이어서 그런지 도서관은 한산했다. 인철은 다분히 조작된 열정으로 빠져들었던 책에서 눈길을 떼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오월의 신록이 교정을 덮고 있 었다. 오늘 강의는 뭐였더라-인철은 약간은 쓸쓸한 기분으로 그 시각 자신이 들어가 있어야 할 강의실을 떠올려보았다. 화요일 오전이면 '언어학 개론' 세 시간 연강이었다. 그러자 이번 에는 불안과 울적함이 그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인문계 신입생의 첫 학기는 개론의 홍수에 빠져 흘러가게 마련이었다. 인철이 따야 할 학 점의 태반도 이런저런 개론에 할애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애써 들어온 대학을 따분하 다 못해 불만스럽게 만든 것이 바로 그 개론이었다. 제도.. 2023. 6. 23. 이문열 변경 9 변경9 이문열 제3부 떠도는 자들의 노래 제1장 1968년 9월 광산 지역이어서 그런지 길바닥부터 색깔이 달랐다. 포장 안 된 도로는 흙이라기보다는 거무스레한 재 같은 것으로 덮여 있었고 그 가운데 자동차 타이어로 다져진 곳은 잘 찍어낸 연탄 표면처럼 까맣고 매끈했다. 도시의 연탄공장 정문을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타고 있는 스용차는 코로나에서 이름만 국산으로 바꾼 새나라였는데 한물간 논다 니 얼굴 가꾸듯 날마다 닦고 칠해 껍질은 아직 번지르르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들여온 지 이미 대여섯 해가 지난 데다 그 중 몇 해는 택시로 굴러 속은 골병이 들 대로 든 고물이었 다. 그런 차가 그토록 기세 좋게 언덕을 오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솜씨 좋은 운전사를 만 난 덕분 같았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더해진 .. 2023. 6. 23. 이전 1 ··· 15 16 17 18 19 20 21 ··· 86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