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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변경 10 변경10 제3부 떠도는 자들의 노래 이문열 제 12 장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수업이 있는 날 오전이어서 그런지 도서관은 한산했다. 인철은 다분히 조작된 열정으로 빠져들었던 책에서 눈길을 떼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오월의 신록이 교정을 덮고 있 었다. 오늘 강의는 뭐였더라-인철은 약간은 쓸쓸한 기분으로 그 시각 자신이 들어가 있어야 할 강의실을 떠올려보았다. 화요일 오전이면 '언어학 개론' 세 시간 연강이었다. 그러자 이번 에는 불안과 울적함이 그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인문계 신입생의 첫 학기는 개론의 홍수에 빠져 흘러가게 마련이었다. 인철이 따야 할 학 점의 태반도 이런저런 개론에 할애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애써 들어온 대학을 따분하 다 못해 불만스럽게 만든 것이 바로 그 개론이었다. 제도.. 2023. 6. 23.
이문열 변경 9 변경9 이문열 제3부 떠도는 자들의 노래 제1장 1968년 9월 광산 지역이어서 그런지 길바닥부터 색깔이 달랐다. 포장 안 된 도로는 흙이라기보다는 거무스레한 재 같은 것으로 덮여 있었고 그 가운데 자동차 타이어로 다져진 곳은 잘 찍어낸 연탄 표면처럼 까맣고 매끈했다. 도시의 연탄공장 정문을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타고 있는 스용차는 코로나에서 이름만 국산으로 바꾼 새나라였는데 한물간 논다 니 얼굴 가꾸듯 날마다 닦고 칠해 껍질은 아직 번지르르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들여온 지 이미 대여섯 해가 지난 데다 그 중 몇 해는 택시로 굴러 속은 골병이 들 대로 든 고물이었 다. 그런 차가 그토록 기세 좋게 언덕을 오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솜씨 좋은 운전사를 만 난 덕분 같았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더해진 .. 2023. 6. 23.
이문열 변경 8 변경 8 제 2부 시드는 대지 이문열 제 37장 주고받기 `싫어! 정말 싫어...' 영희는 화장을 하다 말고 몇 번이나 그렇게 중얼거렸다. 마음속이 그래선지 화장발이 영 받아주지 않았다. 로션부터 잘 먹지 않는 기분이었고, 크림도 파운데이션도 계속해 속을 썩 였다. 그래서 왠지 얼굴이 얼룩덜룩해진 것 같아 파운데이션을 진하게 발랐더니 이번에는 덕지덕지 들고일어나는 식이었다. `망할 영감쟁이, 만난 지 며칠 된다고 대낮부터... 시답지도 못한 주제에.' 영희는 화장지로 거칠게 얼굴을 닦아내며 다시 애꿎은 박원장에게 욕을 퍼부었다. 지난 수요일에 만났으니 아직 나흘밖에 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따지고 보면 박원장의 요구 가 그리 별난 것도 아니었다. 전에도 더러 그랬을 뿐만 아니라 한때는 영희 자신도 그.. 2023. 6. 23.
변경 7 변경7 제2부 시드는 대지 이문열 제 25장 첫날밤 인간이 스스로를 혐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문서들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한 것들 중에 하 나는 에두라르트 풍속과 성에 관한 방대한 저서가 될 것이다. 한 사람의 논객으로서보다는 수집 가, 역사가로서의 능력이 훨씬 두드러져 보이는 그는 그 저서를 통해 생산 구조와 성의 관계에 대해 통시적인 관찰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미리 설정된 대전제를 향해 억지로 논리를 끌어간 듯한 혐의와 수집가로서의 예외적 사료를 일반화시킨 무리는 설득력을 떨어뜨려 그 책이 불러일 으킬 인간 혐오에 대한 휴머니스트들의 우려를 다소간 덜어주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논리적 근거를 당시의 일반론이나 보편적인 현상보다는 그가 일생에 걸쳐 수집한 풍속화, 캐리커쳐, 만화, 사진, 삽화,.. 2023.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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