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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변경 6 변경6. 이문열 문학과지성사 제13장 낯선 세월로 아직 10월에 든 지 며칠 안 되었는데도 해질녘의 바람은 쌀쌀했다. 개간지가 산비탈이라 더욱 그런지는 몰랐다. 영희는 콩을 따던 손길을 멈추고 약간 한심한 기분으로 남은 콩이 랑을 세어보았다. 아직 절반 이상의 콩밭이 남아 있었다. 영희는 다시 밭둑에 놓인 마대 쪽을 보았다. 더욱 한심했다. 듣기로 어머니가 묻은 씨앗만도 두 말이 넘었는데 그 절반 가까이 수확한 게 깍지까지 합쳐 한 마대가 채 차지 않았다. 깍지를 깐다면 글세, 넣은 씨 앗의 두배나 제대로 거둔 것일까. 계절에서도 수확 방식에서도 이상하기 그지없는 그 콩 따기는 형편없는 개간지의 생산력 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원래 콩은 서리가 내린 후 그루를 낫으로 베어 타작을 하는게 정상적인 수확의 시.. 2023. 6. 22.
이문열 변경5 변경5 이문열 제1장 부르는 소리 사랑이 깊으면 얼마나 깊어, 여섯 자 이 내 몸이 헤어나지 못하나,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 달 밝은 밤에는 임 보러 간다, 엥헤이 엥헤이 엥헤이 엥헤이... 주방 쪽에서 미스터 리의 라디오가 그 무렵 들어 자주 들리는 민요조의 유행가를 낮게 흥 얼 거리고 있었다. 밖은 아침부터 궂은비였다. 원래가 사람이 북적거릴 까닭이 없는 변두리인 데다 날까지 궂어서인지 다방 안은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점심나절부터 어항 곁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뭉그적거리다가 방금 온 석간을 맞바꿔가며 읽고 있는 동네의 중년 실업자 둘과 30분 전쯤 들어온 뒤 턱없이 심각한 얼굴로 한구석에 앉아 담배만 빨아대고 있는 청년 하나가 손님의 전부였다. "도대체 어쩌겠다는 거야? 통 그눔의 속을 알 수가 .. 2023. 6. 22.
이문열 변경 4 변경 4 이문열 제37 장 출발연습 영희 보아라 그간 어린것들 데리고 별고 없었느냐? 에미는 이곳 집안 사람들의 보살핌 덕에 잘 지낸 다. 나무가 빽빽히 들어찬 13정짜리 산이 겨우 5만 환이니 일가들은 모두 반값이라고 말하 지만, 목마른 놈이 샘 판다고 당장 급한데 어쩌겠느냐. 보릿고개가 한창인데 석공(대한석탄 공사)이라도 있어 산을 사주니 오히려 생광스럽게 여겨야지. 하지마는 명훈이한테 일이 있어 너희들에게는 얼마 보내지 못하게 되었으니 답답하기 그 지없다. 네 서울 오라비도 이번 학생들 소동에 휩쓸렸다가 어디 좀 다친 모양이더라. 거기다가 직 장도 그만두었다며 돈을 좀 보내달라는 편지가 왔다. 어지간해서는 내게 그런 소리를 안 하 는 네 오라비라 거기 우선 만 환 보냈다. 생각 같아서는 서울로 가보.. 2023. 6. 22.
이문열 변경 3 변경 3 이문열 제 25장 추억의 쇠기둥 무엇이 한 어린 영혼을 들쑤셔, 말과 글의 그 비실 제적인 효용에 대한 매혹을 기르고, 스스로 도 알 수 없는 모방의 열정과 그 허망한 성취에 대한 동경으로 들뜨게 한 것일까. 스스로의 문 학적인 재능에 대한 과장된 절망과 또 그 만큼의 터무니없는 확신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소중한 젊은 날을 탕진하게 한 뒤, 마침내는 별 가망 없는 언어의 장인이 되어 남은 긴 세월 스스로를 물어뜯으며 살아가게 만들 것일까. 이따금씩 독자나 청중 또는 문학 담당 기자로부터, 왜 당신은 말과 글을 당신의 도구로 선택하 게 되는가 하는 질문을 받으면 젊은 날 내 재능과 자질에 대해 그토록 자주 느꼈던 것보다 더 컴 컴한 절망을 느끼곤 한다. 실로 그 무엇이 일찍이 내 눈앞에 펼 져져 .. 2023.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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