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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달의 지평선 2 달의 지평선 2 윤대녕 12. 파리의 우울 나는 비가 내리는 베란다에 나가 새벽녘까지 서 있었다. 송두리째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 처럼, 사막 한가운데 버려져 있는 고장난 자동차처럼, 거기 가시만 한 그루 선인장처럼. 그 런데도 이상스레 고통이란 게 느껴졌다. 손톱 끝에서부터 발톱 끝까지 온몸 구석구석이 죄 아파서 도무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웬일인지 움직인다는 게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눈동 자만 슬쩍 돌려도 안에서 지뢰가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비안개 속에서 떨고 있는 나트륨 등과 상가의 쇼윈도와 불꺼진 아파트의 창문과 이따금씩 물을 튀기며 과속으로 지나가고 있 는 도로의 차들을 멀뚱하게 내려다보며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 었다. 그게 낯선 사람이라 하더라도 가까이 마주앉아.. 2023. 6. 19.
윤대녕 달의 지평선 1 달의 지평선 일권 윤대녕 일식 이십세기의 마지막 일식이 있던 날 한 여자와 헤어졌다. 다음날 신문은 그날 하늘에서 벌 어진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달이 해 삼키려 든 휴일 우주 쇼 - 어제 두시간 이십여 분 이십세기 마지막 부분일식" 어제는 달이 해를 삼키려 든 날. 구일 오전 여덟시 사십분께부터 전국적으로 달이 태양의 일부를 가리는 부분일식 현상이 두시간 이십여 분 간 진행됐다. 여덟시 삼십육분 제주도를 시작으로 광주 여덟시 삽십팔분. 대전 여덟시 사십분. 서울 여덟시 사십일분. 강릉 여덟시 사십삼분 등 북쪽 지방으로 서서히 진행됐다. 지역별로 아홉시 오십분을 전후해 태양이 가 장 많이 가려지는 최대 식분을 기록한 뒤 제주 열시 오십오분. 서울 열한시 삼분에 이어 열한시 구분 울릉도를 마지막으로 끝.. 2023. 6. 19.
유혜자 음악의 숲에서 음악의 숲에서 - 순수의 시절에 들어야 할 클래식 음악 55 유혜자 사랑으로 산다 사랑해, 어느 어스름한 저녁 무렵, 아이들의 농구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던 그날, 아름다웠던 그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입술을 안으로 말아 들이며 사 랑 해... 너무 조심스러워, 슬퍼 보이기까지 했던 ...그의 눈빛, 나도 사랑해 첫사랑이 일렁이던 네카어 강 지난 가을 하이델베르크에 찾아 들었을 때 현대화된 다른 도시들과 달리 차분 하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머리 보이는 자작나무 숲은 반쯤이나 단풍으 로 물들어가는데 도시의 가로수는 먼지가 없어서인지 옅은 햇살아래 정갈한 풀 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대학 건물을 제외하곤 웅장하거나 유별난 건물이 눈에 안 띄고 아담한 주택의 창틀마다 싱그럽게 비치던 햇살, 그리고 담.. 2023. 6. 19.
유현숙 체 게바라 체 게바라 유현숙 페루에서 온 편지 몇 년 전 체 게바라를 혁명가와 정치적 지도자로서가 아닌 참된 인간의 감정으로 그의 생애를 소설로 엮어 보겠다는 말을 전해들었을 때 나는 찬 성하지 않았었다. 내용이 어떻든 그 당시만 해도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정치현실은 '체 게바라'를 책으로 내놓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이번에 '체 게바라'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민주화를 실감하게 되었다. 또 체 게바라의 유해를 찾았을 때 한국 의 매스컴들이 보여 준 관심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독자들도 체 게바라와 멀리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는 체 게바라는 높은 도덕심과 독특한 특징을 가진 전례없 는 사람이다. 자신의 사상을 실천으로 옮긴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사랑했 다.. 202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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